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어느 시대나 정신질환자가 있기 마련인데, 표현형식이 어떻게 나타나느냐가 중요하며, 강남역 살인사건 피의자가 여성 혐오적 망상을 하게 된 사회적 배 경에 주목해야 한다 는 거다. 80년대 정신질환의 증상이 누군가 나를 도청하고 있다 는 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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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 이 6) 위 (가) 나는 소백산맥을 바라보다 문득 신라의 삼국 통 일을 못마땅해하던 당신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하나가 되는 것은 더 커지는 것이라는 당신의 말을 생각하면, 대동강 이북의 땅을 당나라에 내주기로 하고 이룩한 통 일은 더 작아진 것이라는 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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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되지만, 논란은 더욱 증폭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광주지역 민주화 운동 세력 은 5.18기념식을 국가기념일로 지정 받은 데 이어 이 노래까지 공식기념곡으로 만 들어 5.18을 장식하는 마지막 아우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걱정스러운 건 이런 움직임이 이른바 호남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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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은이가 4) ᄀ에 5) 위 어져야 하는 것이야. 5 동원 : 항상 성실한 삶의 자세를 지녀야 해. 에는 민중의 소망과 언어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 입니다. 인간의 가장 위대한 가능성은 이처럼 과거를 뛰어넘고, 사회의 벽을 뛰어넘고, 드디어 자기를 뛰어넘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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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생각하고, 재료를 준비하고,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이 작업을 3번 반복 하는 것만으로 하루가 다 간다. 그들이 제작진에게 투쟁하는 이유는 그들이 원하는 재료를 얻기 위해서다. 그 이상의 생각은 하고 싶어도 할 겨를이 없다. 이 땅은 헬조선이 아니다. 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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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ion:

혐오라는 가랑비, 내 젖은 옷을 말리는 방법에 대하여 김홍미리/ 여성주의연구활동가 1. 낯선 익숙함, 혐오 새삼스러웠다. 강남역에서 한 남성이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여성이 오기를 기다려 그 분을 살해했다는 소식이 과거와는 달리 논쟁 이 된다는 사실이 말이다. 여성이라서 죽는 일은 너 무 흔한 나머지 익숙한 일이었다. 2009년 여성의전화 사무실로 출근하자마자 내가 했던 일 은 그날 올라온 여성살해/살인미수 기사를 챙기는 일이었다(우리는 그 작업을 분노의 게이 지 라고 불렀다). 어느 해는 사무실 입구에 상시 분향소를 차리기도 했고, 또 어느 해에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작은 애도식 도 하기도 했지만, 밀려드는 현안들로 애도는 뒤로 밀렸 다. 2016년 이전에는 연일 여성들이 죽거나 죽을 뻔 했어도 세상은 그 문제로 논쟁하지 않 았다. 1980년대 말 화성에서 여성만을 골라 살해하는 연쇄살인범이 나타났을 때에도, 2004년 여 성들은 몸을 함부로 굴리지 말라 는 말을 남긴 연쇄살해범 유영철의 등장에도 한국사회는 단지 여성을 단속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봉합해왔다. 유영철은 대한민국 최초로 사이코패스 판정을 받았지만 그 진단은 여성에게 위험을 경고하는 새로운 방식으로만 사용됐다. 사이코 패스로 진단하면 피해자의 성별이 여성 이라는 것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사이코패 스 진단 이후에도 성별은 면밀히 검토되지 않았다. 2006년 강호순이 아내(들)을 포함해서 10명의 여성을 강간/살해했을 때에도 젠더 삭제는 별다른 저항 없이 일어났고, 얼마 전 대 전시 한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 남자 중학생이 벽돌로 여성을 내리친 사건에서도 이 사건 가해자와 피해자의 성별에 주목하는 시선은 부재했다. 그 일은 별다른 질문 없이 묻지마 범죄가 됐다. 꾸준히, 범죄의 대상이 왜 여성 인지는 이 사회의 주요 관심대상이 아 니었다.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이 여성을 대상으로 벌어진다는 사실은 각종 통계가 아니라 여 성들 몸에 새겨진 안전하지 못하다는 감각을 통해 입증가능하다. 여성이 갖는 일상적 두려 움이라는 감각은 끊이지 않는 여성 대상 범죄들 속에서 생겨났다. 끊임없는 여성표적범죄와 그때마다 여성을 조심시키는 방식으로 문제를 덮으려는 주거니 받거니의 하모니 속에서 대 책 없이 당하고 삶의 반경을 축소하는 여성의 불안한 일상이 구축되어 왔다. 보이지는 않 는다 는 혐오는 아이러니하게도 여성의 몸에 새겨진 두려움의 감각 으로 그 존재를 드러낸 다고 하겠다. (때문에 힘의 응집을 통해 두렵지만 두려움만이 아닌 것 으로 몸의 감각을 이 동시키는 일이 혐오에 저항하는 아주 구체적 실천이 될 수 있다).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이 일어난 며칠 뒤 부산의 한 길거리에서 한 남성이 일면식 없는 여성 2명을 각목으로 무차별 구타했다. 피의자 김씨는 피해자들을 범행상대로 고른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경찰의 질문에 대해 아시잖아요 라고 답했다. 여성이라는 표적은 그렇게 알지만 모르는 것으로 공모된 표 적이라 할만하다. 2. 여자들까지도 나를 무시하다니! 여성학자 허민숙은 사이코패스여서 살인을 한다면 왜 사이코패스 는 여성 앞에서만 사이코 가 되는지, 충동조절 장애가 원인이라면 왜 그 충동 은 하필 여성 앞에서만 조절되지 않는 지에 대해 질문해야할 때라고 말한다. 젠더 선택이 결코 중립적 이지 않다는 이야기다. 얼마 전 유시민도 JTBC 썰전 (5월 26일 방송분)을 통해서 정신질환의 표식이 시대에 따라 달라진 - 1 -

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어느 시대나 정신질환자가 있기 마련인데, 표현형식이 어떻게 나타나느냐가 중요하며, 강남역 살인사건 피의자가 여성 혐오적 망상을 하게 된 사회적 배 경에 주목해야 한다 는 거다. 80년대 정신질환의 증상이 누군가 나를 도청하고 있다 는 서 사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건 그때의 사회문화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감시와 도청이 흔한 시절에 스스로 도감청되고 있다는 환상을 가지기 쉬운 것처럼, 여성을 존중하 지 않는 사회문화적 정서 속에서 여성 에 대한 오인된 원한 이 깊어질 수 있다. 때문에 강 남역 여성 살해 사건의 범인이 여자들이 날 무시해서 그랬다 는 말은 단지 여자들 이 그를 무시했다는 말 그대로 받아들일 일이 아니다. 정확히 말해서 그는 여자들이 무시해서 화가 난 게 아니라 여자들까지도 나를 무시한 사실에 분노한다. 적어도 그의 상식에서 여자들 은 그를 무시하면 안 되는 존재이고, 그의 이러한 기준은 지금의 사회가 만들어준 것들이다. 범인은 다른 사람의 무시에 반응하지 않거나 덜 반응했지만, 여성들의 무시 에는 격하게 반 응한다. 남성인지, 아니면 여성인지에 따라 주어지는 삶의 무대가 달라지는 세계에서 남성과 여성은 무시 라는 (보편적) 상황에 대해 각기 다르게 반응하곤 한다. 김치녀, 맘충(엄마 벌레), 김여 사( 아줌마 집에 가서 밥이나 해! ) 등의 말을 흔하게 듣는 여성들은 남성들이 여자를 무시한 다고 해서 남성을 표적 살해할 마음을 먹지 않는다/못한다. 여성들은 남성을 조심하거나 피 하는 방식으로 그 상황을 위험하지 않게 조절한다. 분노가 여성에게 허락된 감정이 아니기 도 하고, 여성이 남성에게 분노해봤자 들을 수 있는 응답은 더 큰 분노 혹은 더 큰 무시, 더 심한 공격 이라는 걸 이미 알기 때문이다. 반면에 남성은 종종 여성을 응징하는 방법을 택한다. 2009년부터 2015년까지 7년간 남편이 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던 자에게 살해당한 여성은 최소 657명, 미수포함 1051명에 달한다(한국여성의전화, 2016). 이것은 신문에 기사화된 것을 한국여성의전화가 하나하나 카 운팅 한 숫자다. 그러므로 이 숫자는 말 그대로 최소치 다. 가정폭력 가해 남편이 아내를 때 리는 이유는 아내가 나를 무시해서 다. 양말과 운동화를 세탁하지 않아서, 전화 받는 태 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어제 반찬과 똑같아서, 성관계를 거부해서 등이 그들이 말하 는 무시 의 구체적인 내용이다. 요컨대 이것은 남성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여성의 성역할 을 남성이 요구한 만큼 수행하지 않은 것들이다. 혹자는 지금시대의 혐오를 모두가 불안한 시대에 그 불안함이 사회적 약자에게 표출되는 것 이라고도 한다. 여성의 몸을 주요 대화 소재로 삼은 남성문화가 점점 격해지는 것도, 온라인 과 오프라인에서 여성에 대한 혐오발화가 점점 격해지는 것도 청년 세대가 느끼는 상실감으 로 설명한다. 하지만 우리는 물어야 한다. 청년세대의 상실감을 이야기할 때 청년 은 누구인 지에 대해서 말이다. 청년에 여성 은 포함되는지,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여성 에게 그 분노를 표출한다면, 정작 그 대상이 되는 여성이 설 자리는 어디인가라고 말이다. 3. 나는 아프다 / 아니, 너는 아프지 않다 청년에서 여성을 삭제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의 젠더를 남성 으로 가정하는 일은 생각 보다 자주,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이러한 무의식적인 생략 덕분에 여성의 자리는 어디인지 를 질문하는 일도 멈추지 않고 일어난다. 아르바이트 청소년 노동시장의 주된 문제는 받지 못하는 임금만이 아니다. 어린/여자/청소년들은 자주 일상적인 성희롱 문제를 호소한다. 청 소녀 라고 부를 때에야 발견되는 (결코 특수하다 할 수 없는) 성적 안전의 문제 말이다. 하 지만 왜인지 모르게 여성들이 보편적으로 겪는 문제는 보편 의 이름을 획득하기 어렵다. 그 - 2 -

것은 특수한 문제인 것처럼(만) 느껴진다. 그리고 그런 느낌 의 배경에는 남성을 인간 으로, 여성을 여성 으로 지정하는 혐오의 정서가 자리한다. 이때 혐오 는 불쾌함 이나 기분 나쁨 정도로 가볍게 사용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역사 적으로 혐오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지배와 통제를 정당화 하는 일에 기여해왔다. 일본제국 주의 시대에 근대화된 일본신민 이 조선인 을 통치하는 일을 정당화 한 것도 미개한-근대 화되지 못한 조선인에 대한 집단적 혐오감을 배경으로 한다. 더 인간적인 집단과 덜 인간적 인 집단을 구분할 수 있다는 잘못된 신념은 나와 구분되는 대상집단에 대한 집단적 혐오의 정서 속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혐오는 타자화된 집단의 고통을 상상하기 어렵게 만 들고, 그들의 고통이 나(인간)의 고통보다 덜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게 만든다. 타자의 목 소리를 삭제하는 일이 죄책감 없이 일어나도록 돕고, 심지어 그것을 정의로운 일로 포장하 는데 기여한다. 지금까지도 일본이 식민지 조선을 그들이 근대화시켰다 고 말하는 배경에는 그들도 인식하지 못하는, 조선인 혐오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정서에서 조선인에 대 한 사죄와 배상 은 이상한 것이 된다. 우리가 기찻길도 놓아주고, 너희가 근대화할 수 있게 도와주고 지켜줬는데, 왜 사과를 해야 해? 라고 말할 수 있는 지위, 그것이 바로 지배자의 위치다. 고통스러웠다는 피지배자의 외침을 삭제하고 그 위에 너는 고통스럽지 않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바로 그 위치 말이다. 4. 조직된 저항이 만든 새로운 국면 강남역10번 출구에 붙은 수만 장의 포스트잇과 눈뜬이들의 발화 덕분에 보이지 않던 여성 혐오는 거대한 몸체를 드러내는 중이다.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몰지 말라고 했다가, 어느 순간 나는 잠재적 가해자입니다 해시테그가 올라오다가,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라 실질적 가해자입니다 라는 말이 등장했다. 정희진은 이에 대해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잠재적 가해 자란 없다 는 컬럼으로 응답했다. 강남역 10번출구에 포스트잇이 붙지 않았다면, 그 곳에서 일군의 남성들이 잠재적 가해자 라는 말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이런 논쟁은 시작조차 되지 않았을 거다. 코르셋 벗은 남성 들이 등장하지도 않았을 거고, 이 남성 들이 치마를 입고 여 성혐오에 함께 맞서자며 거리시위에 참여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여자라서 죽었 다 는 문장이 그렇게 누군가에게는 분노, 억울함, 참을 수 없는 불편함을 준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을 테고, 그걸 몰랐다면 뭐가 불편하세요? 왜 그렇게 화가 나실까요? 라고 질문할 수도 없었을 거다. 여성이 여성의 입으로 여성살해에 대해 말한다는 사실이 공분을 일으키 고, 남성을 혐오한다 는 진단을 가능케 하며, 급기야 이들의 사진을 찍고 신상을 털어 모욕 댓글을 경쟁하듯 달 수 있는 <이유>가 된다는 사실도 드러나지 못했을 거다. 저항은 이렇게 싸움의 국면들, 굳이 드러내지 않고 우아하게 살아도 되었던 이들의 무지와 무사유, 무감각을 가시화시킨다. 되짚어보면, 장애인 시설을 두고 혐오시설 이라 부르는 이 들은 충분히 많(았)고 앞서 말했듯이 여자라서 범죄 표적이 되는 일은 강남역 사건이 처음 이 아니었다. 성소수자혐오세력도 어느 날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한 게 아니다. 존재에 대한 거부, 배제, 삭제는 공기처럼 빼곡하게 일상을 채우며 흐르던 것들이다. 존재를 삭제하지 말 라는 요구에 대해 내가 언제 삭제했음? 이라고 응답하면서 전혀 무엇이 문제인지 인지하지 <않으려는 것>은 이 체계를 유지시키는 견고한 무감각의 연대였다. 애써 여성혐오 로 칭하 지 않았을 뿐 여성을 인간의 하위범주로 구별 짓는 문화는 한국사회에 꾸준히 존재해왔다. 여아낙태와 줄어들지 않는 여/성폭력, 여성표적살해는 이런 흔한 문화의 반증이다. 여성의 고통에 덜 민감해도 되는 보편적인 무감각이고, 살해가 아니라 문화(남아선호문화, 남성중심 - 3 -

문화) 라는 호명으로 억지스럽게 포장되어 온 역사의 결과다. 요컨대 혐오(감)을 인간과 덜 인간적인 인간을 구분 짓는 정서구조로 이해할 때, 혐오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고 이제야 표 면위로 드러났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그리고 이러한 가시화는 저항의 국면에서 일어난다. 동일한 존엄의 무게로 살아갈 수 없는 이들은 집밖에 나오지 않는 방식으로(장애인),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성소수자), 스스로 조심하고 주체에게 보호받는 방식(여성)으로 존재의 흔적을 삭제하는 일에 발맞추기도 한다. 흑인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을 하고 가끔 그 시 스템의 일부가 되어야 했듯이 (록산 게이, 2015:304) 권력이 날뛰는 세계에서 누군가는 그 시스템의 일부가 되는 방식으로 살아남아야할 때가 있다. 그러한 생존 은 저항을 품는다. 역사를 통해 목격하는 건 저항 이 역사에서 사라진 적 없다 는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 떠올려야 할 건, 공기 같은 혐오가 표면으로 드러나는 시점은 저 항이 조직되는 그 때, 부당한 시스템에 복무하는 것을 거부하고 나는/나도 존엄한 인간임을 드러내기 시작할 때 일어났다는 사실일 것이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서, 성소수자들이 쏟아 져 나온 거리에서, 보호 말고 권리를 외치는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혐오는 가시화 된다. 공 기였던 혐오가 가랑비로 내려와 내 옷을 적실 때 혐오는 인지가능한 형태가 되는 거다. 비 에 젖은 옷을 통해 만연한 혐오의 정서에서 예외일 수 없는 나 를 감지할 수 있는 때가 바 로 이때다. 질문의 방향은 바뀌었다. 만연한 혐오를 나는 어떻게 맞이하고 있을까. 혐오와 나는 대체 어떤 관계인 걸까. 나 는 혐오를 어떻게 수신하고 있는가. 정의로운/정의롭고싶은 나 는 혐 오의 예외인가? 5. 인간을 인간으로 사유하는 일 #1. 나는 왜 어머니를 전업주부로 기억할까. 그는 평생 집안팎에서 일하했음에도 불 구하고 말이다. #2. SBS <순간포착-세상에 이런 일이>에서는 어째서 여전히 기도 하면 아들 낳는 바위 를 전설이라며 소개할까(사람들은 이런 얘기를 들으면서 2등사 람이 누구인지 감지하지 않을까), #3 언론은 왜 앞 다투어 박유천 사건이 묻어버린 3대뉴스 식의 제목을 뽑아낼까. (오마이뉴스는 왜 예외가 아닌가) 피해 여성의 증 언은 가십으로 수용되어도 무방한가... 여성 의 언어, 경험, 고통, 노동은 왜 이리 사소할까. 어쩜 이렇게 가벼운가 말이다. 혐오가 해온 일들은 이런 것들이다. 여성의 경험을 삭제하고, 그것을 정당화하며, 그들의 존 엄은 생략가능해도 되는 것처럼 느끼게 해준다. 차별은 문제라고 여기는 이들조차 눈앞에 보이는 차별을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정서, 그곳에 혐오가 자리한다. 어떤 이들은 여성혐오 말고 다른 말을 쓰면 좋겠다고 제안하기도 하지만, 그 말이 흔해지고 난 후부터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아졌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 는 명제에 동의하면서 도 별로 설득력 없는 이유를 들어서, 혹은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면서 차별을 정당화하는 방 식들이 흔한 이유라든가,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차별에 부응하는 정서 구조라든가, 안 알아 듣는 것이 정상상태 로 인정받는 경로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됐다. 이건 실로 극적인 변화다. 이제까지 계속 질문(만) 받고 설명을 요구받아온 이들이 거꾸로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됐다. 박유천 성폭력 사건이 왜 정치적인 문제인지를 설명하는 방식이 아니라, 왜 당신들에게 이 사건은 정치가 아닌가를 질문할 수 있다. 어쩌다 그 사건은 다른 - 4 -

사건과 다른 무게로 감지되는지 질문하는 것을 통해서 스스로 그 판단의 경로를 추적할 수 있겠다. 초등학교 남교사의 비율이 낮은 것(23.1%, YTN 2016. 06. 15)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지만, 정작 초등학교 교장은 74.3%가 남성이라는 사실은 문제로 등장하지 않는 이유, 마 찬가지로 대학교수의 84.9%는 남성 1) 이라는 점은 이상하다고 감지하지 않는 지배적인 정서 를 쫒다보면, 결국 혐오의 정서에 통합된 나에게로 돌아오게 된다. 불평등에 불편함을 느끼 지 않고 외려 편안함을 느끼는 것, 불편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향해 예민하다고 (내가) 진 단할 수 있다 고 믿는 것, 그 믿음을 생성/유지/강화하게 돕는 나의 정서는 무엇인지 돌아볼 수 있다. 이건 내 안의 혐오와 직면할 수 있는 기회이자 성찰의 기회다. 나는 인간이지만 너/들은 나 보다는 덜 중요하다는 느낌적 느낌, 그 느낌이 어떻게 내 몸에 부착되었는지, 어떤 경로로 객관적 이고 합리적 이라는 외피를 쓰게 되었는지 살필 수 있게 된 거다. 2016년 봄 눈앞에 펼쳐지는 일련의 장면들은 이제까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일어났 을 때에 일어난 적 없는 광경들이다. 보호받지 않고 통제되지도 않겠다는 여성들의 외침에 대해 이제껏 보호해줄게 라고 답하던 세계는 이제 수신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보호나 통제 말고 여성 을 인간으로 마주하는 방법과 절차를 만들어야 한다. 오랜 시간 동안 도구화/대 상화/성애화된 여성-몸을 일순간에 인간으로 사유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살림밑천 맏 딸이나 고생 많았던 누이 대신 노동자-시민의 지위를 부여해야하는 일이고, 이소선 어머니 와 민가협 어머니, 위안부 할머니를 선생 으로 바꿔 불러야 하는 일이다. 여성의 몸에서 성 별 을 떼어내는 일이 얼마만큼 급진적이며, 정치적인 사건인지 직면해야 하는 일이다. 인사 동에 붙은 붉은 물감 뭍은 생리대 전시를 보면서 그것이 왜 정치 인지를 깨달아야 하는 일 이다. 이것은 불편하거나 불쾌할 수 있고, 때로는 불필요하다고 여겨질 수 있다. 구조적 모순에 문 제제기하는 강남역 봉기를 눈앞에 보면서도 듣는 자신의 불편감에만 집중하는 건, 구조적 모순에 결합된 자신의 이익에 대해 한 푼도 손해 볼 수 없다는 이기심일 수 있다. 불편감이 라는 비용조차 지불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젠더화된 세계의 모순과 직면할 수 있겠는가. 2) 강남역 봉기를 기회로 불쑥불쑥 이런 질문이 든다면, 먼저 나에게로 질문의 방향을 바꿔보 는 것도 좋겠다. 왜 나는/당신은 여성혐오라는 단어가 불편한가. 그것은 왜 적절히 다른 언 어로 변형될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가. 왜 당신은 성찰 없이 말해도 부끄러움을 모르는가. 왜 몰라도 되는가. 왜 강남역10번 출구 앞 4만 여장의 포스트잇에 적힌 이야기를 듣지 않을 방 도를 고민하는가. 1) 성인지통계 교육https://gsis.kwdi.re.kr/gsis/kr/charts/chartServiceInfo.html 2) 젠더화된 세계. 어려워 보이는 이 말은 우리의 일상을 생각하면 그렇게 어려운 말도 아니다. 밤길을 두려움 없이 걷는 느낌을 여성 은 알지 못한다. 또 밤길을 두려움에 떨며 걷는 느낌을 남성 은 알지 못한다. 몸의 생김새에 따라 배치되는 무대가 달랐고 덕분에 눈앞에 늘 펼쳐져 있지만 그쪽 세계는 이쪽 세계를 알 수 없었다. 그쪽도 이쪽도 아닌 이들은 괴팍하게 양분된 이 세계의 사이에 끼이거나 미끄러지는 식으로 이쪽저쪽의 타자로 살아간다. - 5 -

6. 나오며. 저항의 목적은 승리가 아니라 연결 2016년 4월 수천 명의 멕시코 시민들이 여성 살해와 성폭력, 여성혐오 문화에 저항하기 위 해 거리로 나섰다. 그들의 구호는 "우리는 계속 살아있고 싶다"였다. 이 시위에 참여한 한 활동가는 여성 살해를 느린 집단학살(slow genocide) 로 표현했다. 전지구적으로 일어나는 여성 살해와 직면하고 이제 보다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때가 되었다. 나는 안 때렸다, 나는 안 죽였다 는 말로 피해갈 일이 아니다. 이것은 구조의 문제여서 그렇다. 그리고 저항의 목적은 승리가 아니라 연결 이었으면 한다. 바꿔 말하면 연결이 곧 승리 일 수도 있겠다. 엄기호는 <사랑과 난입> 3) 을 통해 강남역 10번 출구를 바로 이 난입 의 장소 로 지목했다. 그곳은 이 사랑이 파탄 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 사랑이라곤 희귀하 던 이 나라에 이제야 사랑이 시작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공간이라고도 했다.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와 엄기호의 글이 겹쳐지는 건 나만이 아닐 거다. 이때의 저항은 적대적/억압적 관계에 있는 주체의 제거를 목표로 하는 게 아니라 주체의 변화와 관 계의 질적 전환을 향한다. 가부장의 삭제는 물리적 죽음이 아니라 가부장의 힘을 무력화 시 키는 기존 질서의 변화로 일어난다. 요컨대 가부장 제 의 전복이고 그것은 나문희의 가출(난 입)로 촉발됐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강남역 봉기는 시작인 거다. 이게 그들이 사랑과 보호라고 불렀던 것들은 폭력과 통제임이 밝혀졌다. 이제 사랑 은 다시 쓰여져야 한 다. 강남역 봉기가 이뤄가고 있는 것은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함께면 저항이 가능하다는 경험, 저항해서 바꿔내는 기억, 곁에 있는 이는 영원한 나의 적대적 타자가 아니라는 감각이다. 점 점 혐오와 직면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고, 코르셋을 벗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권력감지 센서는 더 많아지고 있다. 지난 6월 6일 홍대 앞에서 열린 여성혐오 반대 시위의 주요 구호 는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 였다. 변화는 연결하고 연결되는 것을 통해서 일어날 것이다. 늘 그래왔듯이 말이다. <끝> 3) 경향신문 2016. 05. 29. [엄기호의 단속사회]사랑과 난입 - 6 -

[메모] - 7 -

경찰에게 사이코패스의 정의를 묻다 4) 이 영 문 들어가는 글 최근들어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더 불안해지고 있다. 그 이유는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의 범인이 조현병(정신분열병의 한국명)을 앓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이후에 벌어진 일종의 마녀사냥에 대한 반응들로 해석할 수 있다. 언론이 마구잡이로 들쑤시고, 경찰 청은 서둘러 조현병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받고 있는지 추적 관리하는 인신보호관제 의 도입 등이 검토되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또한 새누리당에서는 조현병 환자 전수조사 정책안을 마련 한다고 야단법석을 친다. 성숙하지 못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인권유린의 현장을 우리는 보고 있다. 이것은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에 대한 일상적 인 우리의 태도가 겉포장을 다 드러내고 보니 매우 천박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반증이다. 사회의 안전을 소망하는 국민들의 감정적 반응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정부와 국 회의 정책이 즉각적으로 정신질환자 관리방안을 마치 유일한 대책인 것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마치 독일이 히틀러 총통의 시대에 만들었던 정신질환자 박멸법 을 연상시킨 다. 당시 이 법은 1940년대 광기에 휩쓸린 독일정부가 일부 정신과 의사와 변호사들을 동원 하여 만든 악법으로 약 40만명의 정신질환을 앓던 사람들을 가스실에서 죽인 역사적 악행의 근거가 되었다. 70여년이 지난 지금도 독일 정신과 의사들은 국제 심포지엄 장소에서 유태인 관계자나 정신질환을 앓은 당사자와 유가족들의 항의와 질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국가는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항상 사회적 약자를 희생양으로 삼는 정책을 역사 적으로 반복하며 지탱해왔다. 보건복지 분야에서만 살펴보면, 한센병 격리정책과 중증 정신질 환 수용정책이 대표적이다. 한센병의 획기적 치료가 1950년대 이후 급속히 개발되면서, 2000 년 넘게 인류를 괴롭히던 한센병은 극적으로 퇴치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국립소록도병원이 있던 소록도에 한센병 환자들의 수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한 1990년대 초반, 정부는 소록도에 새로운 정신병원 건립을 추진하는 기이한 행태를 보인 바 있다. 많은 반대에 부딪힌 후 이 프 로젝트는 무산되었지만, 한센병 수용의 장소를 정신병 수용의 장소로 바꾸려 한 당시의 정책 또한 우리 정부의 안전을 고리로 한 참담한 인권유린의 천박함을 그대로 드러낸 일로 기록될 것이다. 정신질환의 위험성에 대한 언론의 태도 정신질환은 과연 위험한 것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대다수 정신질환은 적절한 치료를 통해 회복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범죄는 사이코패 4) 이 발제문은 2016년 7월 발간 예정인 부산복지개발원 연구보고서에 정신질환의 올바른 이해를 위한 제언 으로 기고한 내용임을 밝힌다. - 8 -

쓰나 일부 성격장애에 해당되는 경우에만 나타난다. 또한 정신질환의 초기 증상이 제대로 치 료되지 못한 상태에서 극도의 혼란을 경험하는 경우가 있는데 망상이나 환청이 당사자를 지배 하게 되는 상황이 범죄로 연결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다수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은 일반적 인 범죄와 무관하다. 오히려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하는 이른바 의도적 살인 을 할 수 있다 면, 조현병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조현병의 가장 큰 특성은 와해된 사고체계 와 연상의 이완 이라는 증상이 있어야 진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 강남역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대중의 편견을 만드는데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것은 바로 언론이다. 언론의 비 겁한 행태는 사회적 약자를 마녀사냥으로 몰고가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다음의 글을 참고해 보자. 편견의 형성과 유지에 대한 대중매체의 영향력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대중매체에서 정신장애인에 대한 위험성, 예측불가성, 공격성, 무능력 등과 같은 부정적인 이 미지를 일관되게 반복적으로 보여줄 경우, 정신장애인을 직접 만나거나 접촉해보지 못한 대다 수의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통해서 이들의 행동을 보게 되고 이들의 특성에 대한 정보를 습득 하게 되므로 결과적으로 정신장애인에 대한 텔레비전의 이미지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확인하게 되어, 정신장애인은 위험하며, 두려운 존재이며, 피해야 할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또한, 정신장애인을 비하하는 용어가 자주 사용되거나, 비참한 환경에서 구박받고 있는 정신 장애인의 모습이 빈번하게 노출될 경우에는 이들을 대하는 방식까지도 텔레비전을 통해 배우 게 된다. 언론을 통한 올바르지 못한 정신질환의 오해가 곧바로 경험되지 못한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고 반복적 노출이 결국 편견을 만든다는 것이다. 정신질환은 일반적으로 모두가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애매모호한 대중들의 태도와 인식에 언론이 확실하게 보이는 몇 가지를 매 개로 편견을 조장해나가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역사적 맥락에서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변화를 살펴보자. 그리스-로마시대의 정신장애인 역사적으로 정신장애인은 처음부터 부정적인 의미의 낙인(stigma)만이 찍혀진 것은 아니다. 원시사회나 고대 문명에서는 모든 질환이 초자연적인 원인에 의해 생긴다고 보았으므로 정신 질환을 다른 계통의 질환과 구별하지 않았다. 다만 특수 질환, 예를 들면 간질(epilepsy)은 Hippocrates의 자연과학적 의학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고대 그리스에서 신성한 병 으로 간주 되었고 원시 종족에서 어떤 특수한 정신적인 착란, 환상 체험을 장차 사람들의 병을 고쳐 줄 샤만(Shaman) 이 될 징조이며 신에 의해서 선택된 신이 보내준 병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어떤 정신장애는 부정적인 낙인보다는 긍정적이고 의미있는 징조의 표시로 보게 된 것인데 후자는 현대 정신의학의 질병관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의학의 마지막 거장인 Garen이 죽은 뒤 기원 100년경부터 서서히 시작하여 13세기에 이르러 결정적으로 대 두된 기독교회의 귀령학(demonology)적 정신병관은 정신장애를 완전히 의학의 영역에서 분 리하여 교회의 종교적 관리의 대상으로 삼게 하였고 이에 따라 정신장애, 정신지체 환자가 마녀, 마술사 의 낙인아래 수도사들의 심판의 대상이 되었고 마녀 식별을 위한 고문에 가까 운 혹독한 심문과 급기야는 이들을 화형에 처함으로써 사악한 마귀의 전염을 막는 잔인한 정 신장애자 박해의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모든 기독교도들이 이러한 박해를 한 것은 아니었다. - 9 -

일부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의지할 데가 없는 정신장애인을 구호시설에 수용하여 사회로부터 보호하려는 시도도 이루어졌는데 이는 17세기 들어 나타난 정신병원의 전단계의 형태로 분류 될 수 있다. 미셸 푸코의 관점 : 감금의 역사와 정신장애인 주지하다시피 감금의 역사를 통해 사회적 약자들의 수용을 비판한 미셸 푸코는 임상 의학의 출현을 또 다른 감금으로 정의하였다. 그가 본 관점은 지금도 유용하다. 실제로 중세초부터 십자군 시대에 이르기까지 유럽에는 한센병 환자 수용소가 19,000개 존재하였으며 1266년 루 이 8세가 수용소에 관한 법령을 선포할 때에는 프랑스 내에 2천개 이상의 수용소가 있었고 파리 시내에만도 43개나 있었다. 중세 말이 됨에 따라 반대현상이 일어났다. 한센병은 점차 퇴치되기 시작하였고 이에 따라서 수용자가 없는 수용소도 급속히 늘어갔다. 17세기 초에는 프랑스 전역에 수용자가 있는 수용소는 3곳으로 줄어들었다. 텅빈 건물과 시설들은 파괴되지 않은 채 다른 형태의 수용자들을 기다리기 시작하였다. 르네상스 시대를 거쳐 1635년 프랑스 에서는 한센병의 소멸을 신의 축복으로 믿고 신에게 감사하는 장엄한 행사를 치렀다고 한다. 적어도 르네상스 때까지만 해도 광기는 감금, 수용의 대상이 아니었다. 광기는 사회로부터 추 방되었지만 제거되지는 않았다.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은 이성과 비이성 사이에는 사회적 및 지적인 많은 공유가 있었다. 광기도 어떤 진리를 공유하고 있다고 믿었다. 광기는 신과 인간 사이의 매개체로 인식되기도 하고 광인은 상징적이고 도덕적인 세계로의 통로를 지니고 있는 이들로 여겨졌다. 17세기 집권자들은 노동에 의한 가난의 구제책으로 즉, 실업의 해소책이자 나아가 수공업 발전의 추진책으로 이러한 시설의 활용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1656년 프랑 스 국왕은 무질서의 근원이 되는 걸식과 나태함을 막기 위해 기존의 수용소 시설을 개조하여 이른바 '빈민구호병원'을 세우도록 명령하였다. 이 해에 파리에 맨 먼저 세워진 빈민 구제원에 는 성별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건강한 사람이건 아니건, 병자든 아니든 병자라 할지라도 치료 가능성 여부와는 상관없이 가난한 사람이면 무조건 감금되기 시작하였다. 파리의 대표적인 빈 민구제병원인 살페트리에르에는 처음에는 500명 정도가 수용되었으나 1690년 경에는 5,000명 이상을 수용하게 되었다. 이러한 감금 현상은 당시 파리 시민 가운데 1%의 인구가 감금을 경 험할 정도로 대규모적이었다. 이는 프랑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유럽적이었다. 절대왕정과 반종교 개혁시대에 있어서 천주교의 강력한 부흥은 프랑스의 경우 정부와 교회간 의 경쟁을 유발하는 동시에 공모하게 되는 독특한 성격을 형성시켰다. 대병원들, 감금시설들, 구호와 처벌을 하는 종교시설과 공공시설, 정부의 자선과 복지조치 시설 등은 모두 이 시기에 형성되고 내용 면에도 매우 보편적이었다. 이같은 르네상스 시대의 감금은 질병과는 무관한 하나의 거대한 수용시설이었고 결코 의료시 설이 아니었다. 이의 주된 이유는 게으름과 나태함을 가차없이 단죄하는 당시의 사회 분위기 를 대변한다. 단순한 억압만이 아니라 노동력의 확보도 겸하는 이중적 결과를 국가는 계속 수 행하고 있었다. 이 시대에 광기나 광인은 극빈자, 범죄자, 게으른자, 병든자들과 같은 부류로 인식되고 감금의 주요 대상자가 되었다. - 10 -

낙인 현상과 정신질환 낙인(stigma)이라는 용어를 정의할 때 우리는 이의 역사적 어원을 알아보는 것이 도움이 된 다. 그리스어로 stigma는 표시를 한다 는 의미를 갖는다. 주로 장식적인, 종교적인 문신 (tattooing)을 지칭하는 단어로 쓰였으며 정신장애인이나 나병환자를 차별하는 부정적인 의미 로는 쓰이지 않았다. 그 예로 기독교도인 그리스인들은 하느님의 성령을 입었을 때 낙인이 자 신의 몸에 배어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라틴계통에서는 낙인이라는 용어가 부끄러 움과 굴욕을 의미하는 용어로 변화해 가는 과정을 볼 수가 있는데 이는 두 문화의 발전방향을 고려해 볼 때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정신장애의 낙인찍음(stigmatization)은 정신장애를 앓는다는 이유로 그 개인을 차별하고 사회 에서 격리하며(marginalization) 그를 배척하고 추방하는 것(ostracism)으로 정의할 수 있다. Fink와 Tasman은 이러한 낙인은 정신장애인만이 아니라 정신장애인의 가족, 정신장애인을 치료하는 전문가까지도 확대된다고 하였다. 정신장애를 앓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낙인이 남 아 있는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정상으로부터 이탈된 행동을 좋아하지 않고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정신장애인들이 급성 증상이 있던 당시의 모습을 머리속 에 새겨 두고 이를 통해 정신장애를 앓았던 사람을 평가한다. 이런 낙인은 사회적 요인에 의 해 강화될 수 있는데 TV 혹은 영화에 비쳐지는 정신장애인의 모습은 80%이상이 위험하거나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 결국 정신과 치료에 대한 편견은 정신장애인의 치료를 지연시키고 병의 진행과정을 악화시킬 수 있다. 정신장애인의 가족 또한 많은 낙인현상때문에 고통을 당한다. 정신분열병 환자를 가 족으로 둔 정신보건 전문가인 한 심리학자의 말을 인용해보자. Gullekson 박사의 친형은 정 신분열병 진단하에 30년간을 치료받고 있다. 정신병이라는 낙인은 나에게 있어 두려움이고 자신감을 잃게 한다. 낙인은 큰 상실감이며 해 결되지 않는 슬픔을 준다. 낙인은 치료받을 수 있는 치료적 자원에 접근을 막고 유용한 기술 습득을 못하게 한다. 낙인은 가족의 자존심을 떨어뜨리고 극도의 부끄러움을 유발하며 타인에 게 수치스러운 비밀이 되며 이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 오해를 낳는다. 정신병이라는 낙인은 남 을 못 미더워하게 되고 분노를 자아내며 희망을 앗아가 버린다. 결국 이 모든 것이 모여 우리 가족 모두의 잠재력을 잃어버리게 한다 낙인(stigma)의 사회적 중요성 일부 사회학자들의 정신장애인에 대한 낙인현상에 대한 연구들은 예상과는 달리 일반인들의 태도가 비교적 우호적이며 정신장애인들에게 특별한 낙인이 없는 것처럼 나타난다. Crocett 등은 한 공장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정신장애인들에 대한 연구에서 94%의 응답자들이 정신장 애인과 함께 일할 수 있으며 64%는 방을 함께 사용할 수 있다는 결과를 보고하였다. 또한 다 른 연구에서도 일반인들이 정신장애인을 멀리하고 두려워 하는 것은 그들의 비적응적 (maladaptive)행동 때문이지 그들의 병이 정신장애라서 그렇지는 않다는 보고도 있었다. 다른 관점에서 정신장애인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낙인현상을 경험하는가 하는 연구에서도 환자들은 - 11 -

그렇지 않다고 하였으며, 정신보건 전문가들의 치료를 선호하는 것으로 보고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들은 현실과 다르다는 반론이 많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정신 장애인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행동에 대응하는 대답을 한 경우가 더 많았으며 정신장 애인들을 받아들이겠다고 대답은 하지만 사회적인 거리감은 더 느낀다는 이중적인 태도가 분 석되었다. 실제로 정신장애인과 일반인을 두 군으로 하는 사회적 거리감 척도(social distance scale)에서 정신장애에 대한 사전 정보를 제공하는 것과 제공하지 않는 것에 따라 정신장애인에 대한 거리감은 상반된 결과를 나타내었다. 이런 연구 결과를 종합해 보면 아직 도 정신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여전히 존재하며 일반인들의 태도는 당시의 사회적 분위 기, 정보의 흐름 등에 따라 쉽게 변화해 버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정신질환에 대한 환자 가족과 지역 주민, 정신보건인력의 태도 또한 정신장애의 치료와 재활의 성과를 좌우하는 중 요한 환경적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오해, 낙인 등은 이들 이 적절한 치료를 받고 사회로 복귀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으며 그 반대로 정신장애인에 대한 태도가 관대하고 수용적일수록 이들이 지역사회 내에서 가족과 사회의 보호속에 살아갈 수 있 는 가능성은 커진다고 볼 수 있다. 정신장애인의 권리 정신장애인의 권리에 대한 성명(statements)은 정의와 인간애의 이상적인 원칙만이 아니라 정신장애인의 권리를 소홀히 하는 사회로부터 정신장애인을 보호하는 실제적인 노력이라는 점 에서 매우 중요하다. 20세기 들어 이같은 정신장애인의 권리에 도움을 준 세 가지 미국 정신 의학계의 사례로는 첫째 치료받을 권리(right to treatment)를 인정한 Wyatt v. Stickey 사 례, 둘째는 자유로움에 대한 권리(right to liberty)로 Donaldson v. O'Connor 사례, 셋째는 치료를 거부할 권리(right to refuse treatment)를 인정한 Rogers v. Okin 등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정신장애인의 장기 수용화만으로도 자기 존중감은 소홀히 될 수 있고 의존성, 절망 감 등은 치료의 목적을 방해할 수 있다. 이러한 요소들이 수용을 조장하는 환경에 쉽게 노출 이 되면 이는 아주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결과를 막기 위한 방법은 오직 끊임없이 정신장애인의 권리를 존중하려는 정신보건 전문가들의 노력과 사회의 편견이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맺는 글 현대 정신의학에 있어 정신과 치료와 정신보건 의료체계의 치료적 수단과 목표에는 사회적 분 위기와 사회의 정치적 철학 등의 두 가지 요인이 반영되어 왔다. 정신보건의 구조와 기능은 변화를 거듭하였지만 그 근본 형태는 궁극적으로 동료 인류에 대한 인간적 태도로 요약될 수 있다. 정신건강에 대한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의 요구와 정신질환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상충하 는 시대를 살고 있다. 올바른 정신질환의 이해는 정신건강의 시대에 매우 합당한 우리 사회의 관용의 잣대가 될 것이다. 이번 강남역 사건을 계기로 정신질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생겨나 기를 기대한다. 적어도 경찰이 내세운 정신질환 관리대책은 미셸 푸코가 말한 새로운 감금의 시대를 연상시키는 일이니 부디 철회되기를 강력하게 소망한다. - 12 -

참고자료 1. 강남역 사건에 대한 정신보건전문가 단체 성명서. 정신질환자 사회적 혐오 대책마련을 위 한 전문가 토론회. 2016년 6월 8일 2. 이광래(1989) : 미셸푸코. 1판, 민음사, 서울, pp 103-142 3. 이부영(1992) : 정신질환자 낙인의 형성과정과 역사. 대한사회정신의학회 92년 춘계학술대 회 초록집. 서울, 대한사회정신의학회, pp 6-12 4. 이영문(1997) : 정신분열증과 사회적 문제. 정신분열증 제1판. 진수출판사 5. Crocetti G, Spiro H, Siassi I (1974) : Contempory attitudes towards mental illness. 1st ed. Pittsburgh, PA, University of Pittsburgh Press 6. Fink PJ, Tasman A (1992) : Stigma and mental illness. 1st ed. Washington, D.C.,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 이 영문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1987), 정신과 전문의(1991)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 / 인문사회의학과 교수 (1994-2012) 보건복지부 국립공주병원장 (2013.1-2015.12) 현, 아주편한병원 교육원장(2016.4- ) 중앙정신보건사업지원단장(2007-2013) 경기도정신보건사업지원단장/ 광역센터장 / 자살예방센터장 (1997-2012) 현, 충청남도 정신보건사업지원단장(2013- ) - 13 -

[메모] - 14 -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 여성으로 5) 미류(인권운동사랑방) 1. 이제 시작이다 2012년, 수원시 팔달구에서 한 여성이 살해되었다. 범인은 피해자와 집 앞에서 어깨가 부딪 혀 시비 끝에 집으로 데려가 살해 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경찰은 피해자의 신고를 받았지만 주소를 묻는 질문만 반복했고 전화는 끊겼다. 녹취록에는 부부싸움 같은데 라는 다른 경찰의 말도 들어있었다. 용의자는 조선족이었고 외국인과 외지인 등 인구 유입이 많다는 점 이 사건 의 배경으로 지적되었다. 이후 조선족에 대한 인종혐오가 확산되었고 수원시는 Any Call 시 스템을 구축하여 시민들이 미등록 체류 외국인을 감시하도록 했다. 이 사건은 오원춘 사건 으 로 세상에 알려졌고 피해자가 여성이었다는 점은 잔혹성을 부각시키는 소재가 되었을 뿐이다. 2016년, 강남역 인근 건물의 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살해되었다. 범인은 여자들이 나를 항상 무시해 아무 여성을 살해하려고 화장실에 숨어있었다 고 진술했다. 경찰은 범인이 조현병을 앓고 있었고 범행동기는 여성 혐오가 아니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정부는 이후 여성대상 강력 범죄 및 동기 없는 범죄 종합대책 을 발표했고, 내용에는 CCTV 확충, 정신질환자 강제입원 등의 조치를 쏟아냈다. 이 사건은 다행히도 강남역 여성혐오살인사건 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유사한 사건들이 발생할 때마다 발흥했던 형범 포퓰리즘도 맥을 쓰지 못했다. 강남역 10번 출 구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추모하며 함께 행동했던 이들이 죽음으로부터 여성을 구하기 시작했 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다. 강남역 사건을 통해 여성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 여성혐오임을 확 인했다. 이때의 여성혐오는 증오범죄나 혐오표현을 넘어서는 것이다. 가정폭력을 부부싸움일 뿐 이라고 간주하는 시선은 얼마나 많은 여성들을 죽음으로 내몰아왔나. 사회는 여전히 가정 이라는 공간에서 가족 이라는 관계에 놓인 여성에게 강요된 위치성(취약함)을 보지 않는다. 한국사회의 여성혐오가 어떻게 여성을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지 밝히고, 우연히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편안하고 온전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밝히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숙 제일 것이다. 2. 정부의 대책은 또 다른 여성혐오 강남역 여성혐오살인 사건 이후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그동안 여성이나 아동을 대상으로 한 흉악범죄가 공분을 불러일으킬 때마다 발표됐던 대책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처벌을 강화하 고, 재범을 방지하고, 피해자를 지원하고, 안전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는 내용이다. 대책들마 다 주요 내용은 한결같고, 그때마다 인권단체와 여성단체들은, 실효성이 없으며 오히려 인권 침해 우려만 높아진다는 비판 입장을 밝혀왔다. 눈에 보이는 곳곳에서 안전을 위협 당하는데 사각지대 로 시야를 한정시키듯 정부 대책은 문제의 본질을 은폐하며 폭력/범죄를 일탈적 사 5) 이 글은 지난 6월 14일 열린 인권운동장 <평등해야 안전하다> 토론회에서 발제했던 글을 수정 보완 재구성한 글로, 상당 부분을 그대로 옮겼음을 미리 밝힙니다. - 15 -

건으로 축소 규정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이분법을 근간으로 한 접근은 문제를 해결하기는커 녕 안전을 위협하는 구조를 은폐시키며 문제를 심화시켜왔다. 첫째, 특정 집단을 배제함으로써 안전이 달성된다는 환상을 주입시킨다. 신고된 성폭력 중 아 는 사람에 의한 성폭행이 80%에 달한다는 통계는 알려지지 않는다. 낯선 가해자에 의해 벌 어지는 사건들만 사회적 문제로 부각된다. 낯익은 대다수의 가해자들에 대해서는 오히려 온정 주의가 발휘되며 가해자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을 때에는 노골적으로 가해자가 보호된다. 일 상에서든 법정에서든 사회적으로든. 가해자가 외국인이거나 정신장애인이거나 홈리스이거나, 배제하기 쉬운 존재일 때 그것이 안전의 문제로 등극한다. 형벌 포퓰리즘이 강화될수록 구조 적 폭력도 강화된다. (같은 맥락에서 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혐오범죄는 무시된다. 이때의 가해 자들은 쉽사리 배제할 수 없는 정상성 을 구현하므로 오히려 피해자 유발론으로 귀결된다.) 둘째, 여성이나 아동은 피해자 가 되지 않고서는 목소리를 낼 수 없다. 피해자 가 되기 위해 여성은 보호받을 만한 존재여야 하며 스스로 안전을 지키기 어려운 취약한 존재여야 한다. 꽃뱀 이 아님을 입증해야 하거나, 장애여성이나 아동은 저항할 수 없었음 을 입증해야 했다. 안전할 권리는,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이기 때문에 보장받아야 하는 것이 다. 그러나 그/녀들은 권리의 주체가 아니라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되어버린다. 인정받지 못 한 피해자는 비난당한다. 걔는 원래 그런 애야. 속내는 다른 걸 노리고 있는 거야. 피해 자 는 다른 의미에서 다시 배제된다. 그녀들은 피해에 대해서 말할 것을 강요당하는 반면, 권 리를 주장할 때는 차단당한다. 목소리 큰 여자 는 보호 의 대상이 아니라 징벌 의 대상이 된 다. 범죄취약계층 이 범죄에 취약한 이유는 그/녀들이 약하기 때문이 아니다. 폭력과 범죄의 대상이 될 만하다 ( 때려도 된다 )고 사회가 승인하기 때문에 그/녀들이 취약해진다. 정부의 안전 대책은, 근본적으로 동등한 인간이라는 출발선에서 여성을 밀어내는, 보호 의 외 피를 입은 혐오일 뿐이었다. (여성뿐만 아니라 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폭력과 그 대책들도 마 찬가지다.) 안전은 수많은 여성혐오 사건들에서 여성혐오를 지워온 권력의 접근 방식이었다. 3. 권력의 꽃놀이패였던 안전 그러나 이와 같은 비판들은 허공에 흩어져왔다. 정부의 대책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면 사 무실로 전화가 쏟아져 들어왔다. 가해자 인권 운운 하며 피해자의 고통을 무시하는 인권단체 가 되어버렸다. 여성안전대책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시민의 안전 을 내세우며 서울역에서 노 숙인들을 강제퇴거할 때, 노숙인의 인권을 주장하는 목소리들은 멀리 가닿지 못하고 튕겨나왔 다. 외국인범죄를 들먹이며 이주노동자 강제단속을 정당화할 때에도 그랬다. 안전 은 권력의 꽃놀이패였다. 안전에 대한 욕구는 편안하고 온전하게 살고 싶다는 바람이고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다. 그러 나 안전 은 인권의 언어가 되기 어려웠다. 안전은 국가안보 에 붙들려 오히려 인권을 억압하 는 언어로 기능해왔고,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함께 안전은 국가형벌권을 강화하고 소수자들을 사회로부터 배제하는 언어로 자리잡아왔다. 삶의 불안정성으로부터 분출하는 저항을 탄압하기 위해 정부들은 범죄로 인한 위기를 과장하고 불안을 이용해 분할전략을 구사한다. 특정 집단 을 위험 으로 간주하여 배제한다. 위험한 집단은 언제나 소수자였고 그/녀들은 단속당하거나 추방되었고 강제퇴거되거나 구속되었다. 이런 정책들은 소수자혐오에 기대는 동시에 소수자혐 오를 부추겨왔다. 안전을 권리로 요구하지 못하는 난감한 상황들이 계속되었다. 안전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은 - 16 -

자신(만)을 어떻게 지킬지 궁리하는 것으로 쉽게 귀결되어왔다. 위험은 언제나 낯선 존재로부 터 오는 것이므로 정해진 경계 안에서 정해진 규칙대로 사는 것이 안전하기 위한 최선책이었 다. 안전을 위협당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타자 를 배제하는 것은 손 쉬운 선택이 된다. 스 스로 취약하다고 느낄수록 무력감을 느끼는 동시에 공포와 불안은 더욱 커진다. 구조적 문제 라는 것을 인식하더라도 오히려 회피하기 쉽다. 개인이 손댈 수 없는 거대한 문제라면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존 질서에 의존하는 것으로 불안을 달래게 된다. 4.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가 깨달은 것 세월호 참사는 안전 에 대한 다른 감각을 일깨웠다. 정해진 경계 안에서 정해진 규칙대로 사 는 것이야말로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안전은 낯선 존재가 아니라 낯익은 구조에 의해 위협받고 있었다. 안전을 말하지 않을 수도 없었거니와 더욱 적극적으로 안전을 권리로 말해 야 했다. 권력이 말하는 영토와 재산의 안전이 아니라, 억압과 불평등의 질서를 지탱하기 위 한 안전이 아니라, 생명과 존엄을 위한 우리의 권리로서 안전을 말해야 했다. 참사 2년이 되던 날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인권선언>이 선포되었다. 안전한 삶은 모든 사 람이 누려야 할 권리다. 안전은 통제와 억압으로 보장될 수 없으며,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유, 평등, 연대 속에서 구현되는 인간의 존엄성이야말로 안전의 기초 6) 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4조(안전을 위한 시민의 권리와 정부의 책임)를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모든 사람은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를 가지며,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모든 사 람은 위험을 알고, 줄이고, 피할 권리가 있으며 이를 보장할 일차적 책임은 정부에 있다. 이 렇게 선언할 수 있었던 것은, 곳곳에서 진행된 인권선언 풀뿌리토론 참여자들이 저마다의 경 험에서 길어올린 권리의 실마리들을 내어준 덕분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사람들이 안전 을 우리의 말로 만들어왔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는 국민안전처 를 신설하고, 안전혁신마스터플랜 을 만들었으며, 국가 안전대진단 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가 말하는 정책들로 우리가 안전하게 살 수 있을 것 이라고 이제 누구도 속지 않는다. 안전산업을 육성해 안전을 더욱 돈벌이 수단으로 만들겠다 는 발상이나 규제완화를 포기하지 않는 아집을 그냥 두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알 권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생명보다 이윤을 앞세우는 기업을 처벌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익혀가 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로도 너무나 많은 참사를 목격했으며, 메르스 사태나 가습기 살균 제, 구의역 참사 등에서 똑같은 문제들을 반복적으로 확인하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안전 하게 살아갈 권리,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참여할 권리 는 수많은 우리가 다시 말하고 외치고 행동하는 과정 속에서 완성되어 7) 가고 있다. 5. 불평등한 사회는 위험하다 4.16인권선언은 평등한 사회가 안전하고 불평등한 사회는 위험하다. 근원적인 평등이 안전을 위한 길 8) 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재난이나 참사는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는 사 건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재난참사야말로 불평등을 여실히 보여준다.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이 6)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인권선언 전문 셋째 단락 7)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인권선언 후문 8) 4.16인권선언 제안문, 416인권선언 추진단 구성을 위한 원탁회의, 2015.4.14. - 17 -

잦아지고 대형화되지만 피해의 발생은 불평등에 기인한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뉴올리언스만 덮친 것이 아니지만 대부분의 피해는 빈곤층(주로 흑인) 밀집지역에 발생했다. 안전을 해치는 것은 위험 자체가 아니라 사회가 위험을 어떻게 다루는가의 문제다. 위험을 다 루는 방식이 불평등에 기댈수록 위험은 더욱 위험해진다.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어떻게 안전을 위협하는지 세월호 참사를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이 과정은 정부가 강남역 살인사건이 여성혐 오와 무관하다고 주장하며 엉뚱한 대책을 내놓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먼저, 권력은 원인을 다르게 지목하고 문제를 축소하거나 왜곡한다. 초기부터 정부여당에서는 사고일 뿐 이라는 해석적 부인에 나섰다. 마치 유병언이 참사의 최고 책임자인 듯 반상회까지 소집하며 유병언몰이에 나섰고 종편들은 그의 이상행각 을 연이어 보도했다. 국민을 구조하 지 않은 사건 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참사를 규정했지만,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었던 이정현 의 보도통제 녹취록에서 드러난 것처럼 정부는 해경의 구조 방기에 대한 책임을 인식하지 못 했다. 지금까지의 재판 결과도 해경 123정장 한 명을 제외하고는 기소되지도 처벌되지도 않았 다. 사건의 정황상 세월호 참사에서는 강하게 주장되지 못했지만 일반적으로 권력이 가장 손 쉽게 동원하는 것은 피해자 책임론이라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원인(=책임)은 약자에게로 전가된다. 둘째, 권력의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 피해자들은 고립되고 배제된다. 순수한 피해자 운운하며 희생자 가족들이 눈물만 흘리고 있으면 손 잡아주지만, 농성을 하고 집회를 열면 불순한 것 으로 규정하고 음해했다. 피해자들 사이의 분열을 조장했으며 피해자들은 혐오의 표적이 되었 다. 참사 초기부터 온오프라인으로 막말과 비방글들이 많았지만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나서던 즈음부터는 조직적인 음해와 혐오 선동이 시작되었다. 피해자들은 진 실을 밝혀야 한다고 외쳤지만 권력은 보상 더 받으려는 이익집단으로 몰아갔고 배보상 절차를 서둘러 끝내고 입을 막으려고 했다. 권력은 진실을 유예시킨다. 셋째, 권력은 피해자들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탄압한다. 세월호 참사 초기부터 정부는 허위사실 유포 등에 대한 엄포를 놓으며 온오프라인에서 정보를 공유하 고 의견을 개진하는 것을 가로막아왔다. 함께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요구하는 집회시위는 철저하게 탄압되었다. 여당 국회의원은 세월호 가족대책위를 해체하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으 며 공안기구는 416연대 상임운영위원을 구속하기도 했다. 모여서 말하고 함께 행동하는 것을 불온시하고, 그것은 순수하지 않다 고 규정한다. 혼자 슬퍼하며 우는 것만이 순수한 추모가 되게 만드는 것이다. 권리의 주체인 우리가 직접 참여하고 토의하며 행동으로 사회를 변화시 키려는 민주주의가 불순한 것이 되어버리고 안전은 권리가 아닌 국가의 시혜가 되어버린다. 한편, 세월호 참사에서 많이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위험이 저평가되는 것도 문제다. 가난할수 록, 소수자일수록, 비정규직일수록, 감내해야 하는 위험은 사회적으로 덜 문제된다. 신자유주 의는 위험을 개인에게 전가하고 안전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데 이것은 위험, 안전 을 전 체화하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위험은 누구나 가리지 않고 찾아드는 것처럼, 안전은 사회 전체가 안정될수록 획득되는 것처럼 몰아간다. 누구의 안전이 더 위협당하고 있는지 묻지 않 고 하나의 안전 으로 문제를 설정하며 내부의 불평등을 은폐한다. 예를 들어, 학교폭력이 문 제가 되면서 안전한 학교 를 위한 여러 정책들이 제안되지만 그들이 말하는 학교폭력에 성소 수자 괴롭힘은 없다. 성소수자 학생은 오히려 학교를 혼란스럽게 만드는(학교 안전을 위협하 는) 존재로 낙인찍힌다. 6.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 여성으로 - 18 -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지배체제에 대한 인식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참사 이후로도 우리는 수많은 억울한 죽음 들을 접하게 되었다. 억울한 죽음 이 늘었기 때문일까. 사회가 죽음의 억울함 을 알아차리는 눈과 귀를 더 갖게 된 것이 아닐까. 운이 없 거나, 우연이거나, 유감스러운 것으로 누군가의 죽음이 잊혀져갈 때 그것을 다르게 기억하고 진실을 밝히려는 힘이 더 강해진 것은 아닐까.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스스로 권리의 주체임을 말해야 한다. 우리의 목소리로 우리의 안 전을 말하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국가가 생명과 안전을 해치는 범죄(살인, 상해 등)를 다루는 형벌권을 가지는 것은 그것이 국가의 고유한 권한이기 때문이 아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권리를 보호할 의무 로부터 도출되는 권한일 뿐이다. 우리의 권리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므로, 권리의 주체들로부터 승인될 때에만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다. 어디선가 홈리스들에게 고치 라는 미니 텐트를 배포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홈리스들은 텐트를 오히려 불편 해했다. 박스집을 만들 때는 바깥을 살필 구멍을 만들어놓는데, 구멍이 없으니 바깥 상황을 알 수 없고 위험에 대비하기 불리하다는 이유였다. 우리는 위험을 알 수 있어야 하고 지목할 수 있어야 한다. 위험을 피하고 줄일 수 있어야 하며, 제압하고 저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 은 특정 정책이나 제도에 대한 권리를 넘어 우리 스스로 행동할 권리이기도 하다. 구조적 원인에 의해 강요된 죽음을 온전히 애도하는 것이, 진실을 밝히고 다시는 유사한 일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도록 사회가 변화하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면, 우리는 안전하게 살아 갈 권리를 저항과 연대의 기초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권력은 분할을 통해 안전을 꽃놀이패 로 활용해왔다. 혐오에 기대어 위험을 왜곡하고 안전을 오히려 해치는 구조가 그렇게 강화됐 다. 노동자의 안전은 산업안전 의 영역 안에서, 자본에 위협이 되지 않는 만큼 다뤄졌고, 여 성과 아동의 안전은 보호 의 이름으로 차별을 강화해왔다. 특정한 정체성의 경계 안에서 안전 이 다뤄질 때 서로의 안전은 연결되지 않고 오히려 서로를 타자화하는 자본과 국가의 전략에 포획당했다. 안전할 권리를 말한다는 것은, 이런 분할을 넘어서 연대하자는 것이기도 하다. 이 것은 집단 간의 연대이기도 하지만 집단 내의 차이를 성찰하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정체성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정체성이 호출되는 역학, 그 정체성에 할당된 권 리의 경계, 그 정체성에 허용된 말하기의 내용과 형식의 한계가 문제를 구성한다. 여성혐오에 대해 나는 여성을 혐오하지 않는다 는 항변이 무의미한 이유도 그것이다. 혐오는 남성이 여성 을, 이성애자가 동성애자를,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향해 쏟아내는 감정이 아니다. 혐오는 오히 려 이런 구분된 위치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배치하는 힘-역학이다. 혐오에 맞선다는 것은 우리에게 강요된 위치를 벗어나 다른 말하기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 로 말 해본 사람은 들리지 않는 목소리 를 들을 줄 알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다르 기 때문에 평등으로 가로지를 수 있다. 평등해야 안전하다. 강남역 여성혐오살인 사건이 여성이 조금 더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된 사건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세월호 참사 이후 모두가 외치는 안전사회 가 여성에게도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우리는 더욱 두텁게 가로질러야 하지 않을까. - 19 -

[메모] - 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