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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ion:

일제 시기 중국 현대소설의 국내 번역과 수용 * 박남 용 윤혜 연 ** 2) 1) 目 次 1. 2. 3. 4. 들어가는 말 魯迅 소설의 수용과 번역 기타 작가 소설의 수용과 번역 나오는 말 1. 들어가는 말 1920 30년대는 조선의 외국문학 수용의 전성기로 외국어에 익숙한 전문가들과 각종 신문, 잡지 등의 매체를 통해 외국문학에 대해 연구 및 소개가 지속적으로 이 루어졌다.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은 朝鮮日報, 東亞日報, 잡지 開闢 등의 언론매체를 통해 계몽과 민족개조를 위한 글을 투고하며 다양한 논의를 전개하였으 며 외래의 앞선 계몽 사상을 번역 및 소개하려고 노력하였다. 1921년 安自産이 <世界文學觀>에서 독일 러시아 프랑스 영문단 등으로 구분하여 본격적으로 세계 문학을 광범위하게 소개하였고, 이후 1924년 2월에 발행된 開闢 에서는 <現 文壇 * **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BK21 신한중문화전략사업단 연구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BK21 신한중문화전략사업단 참여대학원생

306 中國語文論譯叢刊 第24輯 의 世界的 傾向>이라는 특집으로 중국 프랑스 독일 일본 러시아 영국 아메리 카의 문학 경향을 소개하였다.1) 외국 문학연구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던 20 30년대는 우리나라가 일제 통치 하에 처해있던 시기였다. 당시 동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근접한 중국 역시 일제 통치하의 침략과 영토 유린과 신구문화의 충돌 및 서구문화의 수용의 영향으로 매우 혼란스 러운 상황이었다. 이는 조선과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수 백년 동안의 역사적인 유대 감과 제국주의 통치하라는 시대적 동질감을 느끼도록 하였으며, 일부 중국 일본의 우리나라 유학생들이 현지에서 접하게 된 중국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고국에 들어와 번역 또는 논평을 하였다. 김시준 교수는 1920년 11월에 잡지 開闢 제5號에 梁 白華가 번역하여 게재한 梁啓超의 <胡適氏를 中心으로 한 中國의 文學革命>이라는 글을 한국에 중국 현대문학이 소개된 최초의 글로 간주하였다.2) 본고에서는 중국 문학 중 현대소설의 수용 상황을 비교문학 연구 방법을 바탕으로 실증적 자료와 연 구를 바탕으로 재정리하여, 어떠한 작가와 작품이 소개되었는지 그 경향을 살펴보 고, 일제 강점기의 중국 현대소설의 수용과 번역이 당대사회에 어떠한 의의를 가지 고 있는지 연구해보고자 한다. 2. 魯迅 소설의 수용과 번역 1920 30년대 지식인들은 세계문학과 지리적으로 근접하고 유사한 상황에 처해 있던 중국 문학을 수용하였다. 일반 대중들에게 중국 현대문학 작품의 번역과 평론 이 소개되었는데, 이 시기에 번역된 소설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魯迅 의 소설이었다. 사실상 역대 중국문학사상 소설은 시가와 산문에 비해 비주류의 위치에 놓여 있 었다. 明淸代에 와서 서민문학 장르가 흥행함에 따라 소설이 주목받게 되었다고는 1) 서은주(2005: 48 49) 2) 김시준(1997: 1)

일제 시기 중국 현대소설의 국내 번역과 수용 307 하나 淸末에 와서야 변혁운동을 통해 소설장르가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 는 梁啓超의 기여가 컸고, 당시 1905년 과거제의 폐지로 인한 과거 문인들의 활발 한 창작활동과 인쇄 출판업의 발전 등 유리한 사회 문화적 조건을 배경으로 삼고 있었다.3) 한국에 중국 현대문학이 소개될 초반기인 1910년 이전, 梁啓超 저서의 번역소개 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1897년 大朝鮮獨立協會會報 제2집의 글을 통해 梁啓超 가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되었고,4) 당시 한국은 계몽소설론이 생산되고 역사 전기 소설이 번역되기 직전이었다.5) 1895년경부터 1900년대의 조선의 번역가들은 梁啓超의 소설의 사회 효용론적 소설관6)을 받아들임으로써 1908년 4월 25일자 大韓協會月報 에 <動物談>을 싣 는 등, 梁啓超에 관한 논담과 소개를 활발히 하였다. 梁啓超 소설에 묘사된 구국 영웅의 전기나 역사물의 내용을 통해 전달된 사상은 당시 번역자들의 자주적, 계몽 적의식과 애국심에 자극을 줌으로써7) 보다 나은 세계를 이끌 것이라 여겨졌다. 3) 이주노(2006: 154 157) 4) 大朝鮮獨立協會會報 제2집(1897: 146) 청나라 신민회에 梁啓超씨가 나라의 정세에 비분하여 파란국 멸망한 역사에 뜻을 빌어 덧붙여 논의하기를 약한 나라를 병탄하여 스스로 강성해진 나라는 비록 군대를 파견하나 임기응변의 꾀를 쓰려고 한다. 이런 꾀 로 다른 나라를 폐허 시탄 나라가 어찌 하나뿐이랴. 파란국은 내정을 닦지 않고 갈수록 약해져 나라 안에 간신배들이 강대국에 의지하여 강해지려고 한다. 그러나 나중에 자기 를 잡아먹으려 한 것을 알고 서로를 쳐다보며 얼굴빛이 창백하여 어찌할 바를 모른다. 매우 어리석은 짓이다. 스스로 힘을 쓰지 않고 강한 나라의 보로를 받으려고 한 것은 오히려 그 스스로의 멸망을 더욱 재촉할 뿐이다. 5) 송현호(1990: 19) 6) 김경선(1999: 593 595) 그는 소설이 시국에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았다. 즉, 간단하고 활발한 글자로 쓰여 누구에게나 효과적일 교재가 되며 묘사도 생동감 넘 치어 민중들의 감동과 자극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7) 김경선(1999: 592) 한국에서 梁啓超를 소개한 내용을 살피면 첫째, 계몽적인 역사류 나 영웅, 지사, 애국자 및 위인 등의 전기가 번역되었고. 둘째, 문명개화와 자주독립의 이상이나 준거가 될 수 있는 교육정책, 학교설립, 언론계몽, 애국론 등이 번역되었으 며, 셋째 번역자 대부분이 국민에게 애국심이나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자하는 시대의지 와 상응되는 이야기를 이끌어내었고, 넷째 번역과 동시에 직접적으로 수용된 내용이 신

308 中國語文論譯叢刊 第24輯 그러나 시대적인 영향으로 한국 역시 개화기에 접어들자 각종 서양이론과 문화에 치중하기 시작했고 중국문학자들도 점차 감소해갔다. 1910년 이전 지명도가 있던 梁啓超 魯迅 胡適 등의 글이 어느 정도 소개되다가 그 이후에는 중국문학의 연구 및 소개가 드물어졌다. 소수의 중국연구가들 중 중국문화와 일본문화를 동시에 접 하면서 지속적으로 중국문학을 번역, 소개한 이들은 李光洙 金億 梁白華 丁來 東 李陸史 崔昌奎 金泰俊 李敬純 金光洲 등을 꼽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梁白 華8)는 중국의 고대 현대문학을 망라하여 다수의 중국문학작품을 번역 소개하였 다. 주로 희곡을 번역하던 梁白華는 1929년 1월 몇몇 작가와 함께 開闢社에서 中 國短篇小說集 이라고 하여 <頭髮이야기>(魯迅), <阿蘭의 母親>(楊振聲), <两封回 信>(葉紹鈞) 등 15명의 작가의 15편의 단편소설을 번역하여 소설집을 발행하였다. 이것은 일제 시기 한국에서 유일하게 중국 번역소설로만 엮은 전문적인 책이라고 볼 수 있다.9) 梁白華는 그 서문에서 중국 단편소설 15편의 선택 기준과 그 과정의 고충을 밝혔고, 또한 단편소설 번역의 의의를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항상 이렇게 생각하였다. 남들은 어떤 것을 탐독하든지 간에 말할 것 없고, 우리는, 특히 우리 조선 청년들은 읽으면 피가 끓어오르고 읽고 난 뒤에 는 그 썩고 구린 냄새나는 생활 속에서 에라 하고 뛰어 나올만한 원기를 돋아 주는 혁명적 문예를 읽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중국 문예작품 중에서 이상에 말한 혁명적 소설을 심구하여 그것을 소개하려 하였 던 것이 곧 나의 초지이다. 10) 1920 30년대에 이르러 魯迅을 중심으로 한 중국소설에 대한 작가 작품 비평 속하게 전파되었다는 점이다. 8) 李錫浩(1976: 1~3) 梁白華(1889~1938)의 본명은 梁建植으로 일생을 중국문학연구 에 종사하였다. 주로 중국희곡연구 및 소개활동을 많이 하였으며 그 외에도 소설 고시 현대시 야담 수필 기행 비평 등 중국문학전반에 걸쳐 수 십편의 글로 소개한 바가 있다. 9) 朴在淵(1998: 263) 10) 黃秉國(1992: 230)

일제 시기 중국 현대소설의 국내 번역과 수용 309 또는 작품 번역 활동이 활발해졌다. 魯迅은 중국문학의 대문호인 만큼 우리나라의 작가들에게도 어느 정도 비중 있는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에서 연구되 는 중국문학과 마찬가지로 당시의 중국문학 연구도 魯迅에게 상당히 편중되어 있었 다. 1920년대 魯迅의 문학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도 번역되고 있었 다. 특히 한국의 경우에는 중국과 늘 근접해 있었으며 일제 치하에서 억압받는 시 대적 상황도 유사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나라에서는 魯迅의 문학이 그 어느 나 라보다 더 쉽게 수용될 수 있었을 것이다. 魯迅 소설이 한국 최초로 번역된 것은 柳樹人(靑園)이 번역하여 1927년 8월 5일자로 東光 에 실은 <狂人日記>이다.11) 이 후 일제 시기에 魯迅의 소설은 5편이 소개되었고, 그 밖에도 丁來東, 李陸史 등 을 중심으로 각 신문과 잡지에 魯迅에 관한 글들이 게재되었다. 당시 魯迅 소설의 번역 상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27 1929 1930 1933 1935 1936 연도 08-05. 01 01-04~2.16 01-29~02-05 06-01. 12-01. 제목 狂人日記 頭髮의 故事(一) 阿Q正傳 一 幸福한 가정 狂人日記 故鄕 <표 1> 魯迅소설의 번역상황 역자 柳樹人 梁白華 梁白華 金光洲 柳樹人 李陸史 출처 東光社 開闢社 朝鮮日報 朝鮮日報 三千里 朝光 일제 시기 魯迅의 소설은 비록 많이 번역되지 않았지만,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 비하여 魯迅 작품이 가장 많이 번역되었다. 이로 보아 중국 현대문학계에서 魯迅문 11) 金時俊(1998: 193), 한국 이외의 나라에서도 魯迅 작품의 번역활동이 활발하였으나 주로 중국인에 의해 이루어졌고, 일본에서는 1927년 10월에 <大調和>라는 잡지에 실 린 <故鄕>이 魯迅 소설 최초의 번역이라고 한다. 이것은 柳樹人의 <狂人日記>보다 2 개월 후가 된다. 이렇게 볼 때 외국인이 번역한 魯迅 소설은 柳樹人의 <狂人日記>가 최초로 여겨진다.

310 中國語文論譯叢刊 第24輯 학의 위상과 그 의미를 짐작해 볼 수 있다. 柳樹人은 1927년 東光 에 번역하여 발표한 <狂人日記>를 1935년 三千里 에 다시 게재하였다. 梁白華는 기타 작가들 과 함께 1929년 1월 開闢社에서 만든 中國短篇小說集 에 <頭髮의 故事> 및 다른 작품을 번역하여 발표하였고, 이듬해인 1930년 1월 4일부터 1월 25일까지 朝鮮 日報 에 23회에 걸쳐 연재하기 시작한 <阿Q正傳> 번역의 서문에서 第一革命當時 의 社會狀態를 魯迅氏一流의 辛辣한 諷刺와 透徹한 觀察로 如實하게 表現하였다 고 평가하였다. 1930년 3월 27일부터 4월 10일까지 丁來東은 <傷逝>를 <愛人의 死> 라는 제목으로 번역하여 朝鮮日報 에 연재하였다. 또한, 1933년 朝鮮日報 에 <幸福한 家庭>을 번역하여 연재한 金光洲는 이 소설은 짧고 平凡한 題材를 素朴한 筆致로 살려간 것과 一種 <히니구>에 갓가운人生現實의 <유모-어>味로보아 取할點 이 아조업는작품은 안임니다. 라고 평하였다. 작품 이외에 魯迅을 논평하는 글도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는데 특히 丁來東과 李陸史가 중심을 이루어 다수의 작품을 논평하였다. 연 도 제 목 저 자 출 처 丁來東 朝鮮日報 1930 04-09 12 1931 01-04 10-30 魯迅과 그의 작품(1) (完) 叢13篇 丁來東 朝鮮日報 1931 02-27~ 28 그 後의 魯迅(上)(下) 李慶孫 朝鮮日報 1932 05-09 中國 新興文學의 阿Q時代와 魯迅 阿Q정전을 읽고 1933(34) 05-22(04-01) 中國의 大文豪 魯迅訪問記 牛山學人 東方評論 申彦俊 新東亞 1936 04-01 魯迅印象記 洪生翰 四海公論 1936 10-23. 魯迅略傳 李陸史 朝鮮日報 1936 10-23~29 魯迅 追悼文(1) (5) 李陸史 朝鮮日報 1938 12-05. 魯迅에 대하야 李明山 朝鮮日報 <표 2>魯迅에 대한 評論 金時俊은 丁來東이 1929년 7월 26일부터 12회에 걸쳐 <中國現代 文壇槪觀>을 연재하면서부터 조선 문단에 중국현대문학이 본격적으로 소개되었다고 보았다. <中

일제 시기 중국 현대소설의 국내 번역과 수용 311 國現代 文壇槪觀>에서 소설 방면으로는 문학연구회의 魯迅, 茅盾 이외에 창조사의 郭沫若, 郁達夫등 여러 작가와 그 작품을 아주 간결하게 소개해 놓았다.12) 연이어 1931년 1월 4일부터 11월 30일까지 朝鮮日報 에 <中國短篇小說家 魯迅과 그의 作品>이라는 기사를 13회에 걸쳐서 연재하였는데 이는 외국인으로서 최초로 魯迅 작품을 체계 있게 비평한 귀중한 자료라고 평가되고 있다.13) <中國短篇小說家 魯 迅과 그의 作品>에서는 1) 서론, 2) 魯迅의 자서전략, 3 6)까지는 魯迅 소설집 吶喊 彷徨 의 소개14), 吶喊 彷徨 의 비교, 野草 를 차례로 소개하며 평 하였고, 7) 부분에서는 魯迅의 용어의 소개, 8)에서는 결론을 지었다. 이 글에서 丁來東은 그의 제일의 특징으로 셀 것은 농촌, 농민을 창작의 주제로 하는 점 을 높이 평가 하였으며, 그의 소설 속에 반항정신이 고취된 점 을 제2의 특징, 그 밖 에 여성의 관한 작품을 쓰지 않은 점, 자신의 기억과 체험을 바탕으로 한 창작, 그 의 작품의 풍속성을 제 3, 4, 5의 특징으로 꼽았다.15) 丁來東은 成大新聞에 실은 <中國 現代의 傑作 阿Q正傳>에서 阿Q正傳을 첫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작품 이라 칭하였고, 중국인의 대다수는 척도가 얕고, 미개한 점이 많다는 것을 주인공 아Q 로써 증명하였다 고 평가하였다.16) 또 다른 阿Q를 논한 <阿Q正傳을 읽고>를 朝 鮮日報 에 1930. 4-9 4-12까지 연재하였다. 丁來東은 다수의 글을 통해 魯迅의 소설이 중국 현대문학사에 어떤 의미를 지니고 한국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지 서술하였다. 李陸史 또한 魯迅의 작품을 적극 번역, 소개한 인물로써 魯迅이 죽은 후 3일만에 <魯迅追悼文>을 朝鮮日報 에 1936년 10월 23 26일까지 연재하여 그가 魯迅을 만날 당시의 회고를 묘사하였으며, 魯迅이 李陸史에게끼친 강한 영향력을 보여주었 다. 이 글에서 魯迅에 잇서서는 예술은 정치의 노예가 아닐 뿐 아니라 적어도 예술 12) 丁來東全集2(1971: 116~119) 13) 金時俊(1997: 3) 14) 소개한 소설들은 吶喊 의 <阿Q正傳>과 <故鄕>, 彷徨 의 <祝福>, <술집에서> 등 11 편의 소설을 간략하게 소개 하였다. 丁來東全集1(1971: 311~340) 15) 丁來東全集1(1971: 297~362) 16) 丁來東全集1(1971: 426)

312 中國語文論譯叢刊 第24輯 이 전치의 선구자인 동시에 혼동도 분립도 아닌 즉 우수한 작품 진보적인 작품을 산출하는 데만 문호 魯迅의 지위는 노퍼 갓고 阿Q도 여기서 비로서 탄생하였으며 일세의 비평가들도 감히 그에게는 함부로 머리를 들지 못하였다 17)고 말하며 그의 위상과 작품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였다. 계속하여 丁來東은 <中國短篇小說家 魯迅과 그의 作品>에서 간략히 소개한 바 있 는 魯迅의 <故鄕>을 같은 해 12월 朝光 제14호에 번역 소개하였다. 심원섭은 <李陸史의 초기 문학평론 및 소설에 나타난 魯迅 문학 수용 양상>에서 李陸史가 <故鄕>을 번역한 이유를 외면적으로는 작품의 희소성을, 내면적으로는 陸史와 魯迅 의 출신과 배경, 고향에 관한 이미지 등을 공통점으로 서술하였다.18) 李陸史는 魯 迅의 문학세계에 빠져 그의 문학을 수용하였지만 모방에 가까운 수동적 수용 의 형 태로 자신의 문학창작을 펼쳐 나가지 못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李陸史의 창작품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에게 고향이라는 소재는 창작에 중요한 인상적인 모티브가 된다. 이는 李陸史가 <故鄕>을 번역소설로 택한 것과 연관지을 수 있는 구실이다. 아래에서는 일제 시기 李陸史의 번역본과 현대판으로 번역된 <故鄕>을 비교하여 보겠다. <故鄕>, 李陸史譯 그다음날 아츰 나는 우리집 사립문까지왔다. 지붕에는 기와짱사이에 마른풀 들이 즐기가엉클린대로바람에 날녀 그것이 이옛집의 주인을 가러내지 않으면 안될 원인을 설명하는듯하였다. 이방저방에 살고있든 친척들은벌서이사가 끝이 17) 박재우 이영구외 공저-신문편(2007: 316) 18) 심원섭(1986: 161~167) 그 외적인 이유로는 魯迅 대표작으로 알려진 <阿Q正傳>과 <狂人日記> 등이 일반 독자에게 널리 알려져 있으니 비교적 덜 알려져 있으면서 魯迅 의 특징을 잘 드러낼 수 있는 다른 새로운 작품을 번역해서 소개하려는 의도였을 가 능성이 있다. 현재까지는 육사 이외에 다른 작가가 魯迅의 <故鄕>을 번역한 흔적이 없어서 조선문단에서 최초로 번역한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내적인 이유로는 <故鄕>에 드러나는 魯迅 전반기의 정신적 내면이 드러나는 소설이라 여기고, 육사와 魯迅의 출신 및 성장 배경과 고향에 대한 글을 쓰는 모티브가 유사했기에 육사가 <故 鄕>에 특별히 관심을 보였다고도 볼 수 있다. 아울러 그의 창작 중에서도 고향을 소 재로 한 것이 다수 발견된다.

일제 시기 중국 현대소설의 국내 번역과 수용 313 났는지 적적하였다. 나는내가있든 방앞에 가자 어머니는 쪼처나오섰다. 그에따 라 뛰어나온것은겨우여덜살이되는 질녀굉아(宏兒)였다.19) <故鄕>, 金時俊譯 다음날 아침 일찍. 나는 우리집 대문 앞에 이르렀다. 기와지붕위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시들어 부러진 줄기들이 바람에 떨고 있었 다.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이집의 주인이 바뀌어야 하는 원인을 말해 주는 듯했 다. 함께 살던 친척들은 거의 모두 이사를 한 모양이어서 몹시 조용했다. 내가 우리집 모퉁이에 이르렀을 때 어머니께서 벌써 마중을 나와 계셨고, 뒤따라 여덟 살 난 조카 홍얼(宏兒)도 뛰어나왔다.20) 李陸史의 번역본은 띄어쓰기의 오류 이외에는 현대판 번역과 그리 많은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비슷한 시기의 梁白華의 <阿Q正傳>21)에 비해 한자어의 사용도 적으며 비교적 구어체로 서술되어 있어서 내용파악에 있어서 큰 문제가 없다. 약간 다른 표기법을 보이는 것은 조카 이름 宏兒 의 표기법인데 李陸史가 번역본 안에서 밝혔듯이22) 현대의 발음 그대로의 표기법과는 달리 당시 조선 사람들에게 한자음 으로 표기하는 것이 좀더 용이하게 읽힐 수 있다는 시대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 다. 그 외에도 牛山學人, 李明善 등이 魯迅에 관한 글을 東方評論 과 朝鮮日報 에 각각 게재하였는데 그 내용은 주로 <阿Q正傳>과 <狂人日記>, <孔乙己>에 대한 평가 및 魯迅에 대한 작가의 생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19) 박재우 이영구외 공저-작품번역편(2007: 430)/ 朝光(1936: 288~9) 20) 魯迅, 金時俊譯(2007: 83) 21) 梁白華 譯, 朝鮮日報, 1930년 1월 14일자 나는 阿Q를 위하야 정전을 지으라고 하기 는 벌서 한두 해만이 아니엇다. 그러나 지으라고 하면서 도리켜 생각하얏다 이것으로 보드래도 나는 立言 의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從來로 不朽의붓은 不朽의 사람 을 전하는 것이니 그래서 사람을 글에 依하야 傳하게된다 梁白華의 번역본에서는 한 자어의 사용이 많아 현대에 쓰고 있는 언어와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22) 李陸史는 조카의 이름을 굉아 라 표기한 이유를 다음쓰는 사람의 일흠은모다조선음으 로쓰는게 독자들에세 좀더 친절할가하야중국음은 쓰지안는다 라고 언급하였다.

314 中國語文論譯叢刊 第24輯 위에 서술한 바와 같이 魯迅의 문학은 李陸史, 丁來東, 梁白華 등을 중심으로 하 여 소개되었다. 이들은 대체로 1920 30년대 중국 북경, 상해, 남경, 광주 등지의 유학생들이며, 魯迅의 원전을 접하면서 중국이란 동일한 환경 속에서 魯迅의 정신 세계를 직접 접하였다. 주로 魯迅과 유사하게 사대부 출신인 이들은 魯迅의 문학에 매료 되었을 뿐 아니라 魯迅처럼 글을 통해 식민지 치하의 우매한 조선 민족을 각 성시키려는 강한 목적을 내포하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당시 중국문학 수용에서 魯 迅의 작품과 평가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중국에서뿐만 아니라 조 선 민족 사이에서도 魯迅의 높은 지위와 그 영향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3. 기타 작가 소설의 수용과 번역 동아시아에서 일본이 패권을 장악함으로써 중국은 국제적으로 지위가 하락하였 고, 일본의 반식민지 국가로 전락하였다. 따라서 식민지 조선에게 중국은 더 이상 참조할 근대적 타자가 아니었던 것이다.23)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전개됨에도 중국 문학은 꾸준히 번역 소개되었다. 조선 문단에서 郭沫若은 魯迅에 비해 연구보고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중국 현대문학사에서 두 작가의 위치를 가늠할 수 없다. 魯迅과 郭沫若은 그 문학의 성 격이 달라 혹자는 이백과 두보에 비교하기도 하였다. 비록 이 두 작가는 서면상으 로 충돌이 있었으나 적대적인 관계가 아닌 서로의 발전을 위한 자극되는 존재였다. 시간과 공간상의 문제로 살아생전 그 둘은 만나지 못하였지만 서로의 문학적 재능 만은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24) 단지 두 작가의 문학 스타일, 즉 기질, 창작의 풍격 이 달랐을 뿐이었다. 郭沫若 또한 魯迅과 마찬가지로 일제에 대한 반항을 주장하였 으나 그의 기본 문학 장르는 낭만주의의 제창에 있다. 아래의 표는 일제 시기에 번 역된 郭沫若 소설과 이 작가에 관한 평론이다. 23) 위와 같은 근거로 서은주는 중국문학의 수용을 세계문학수용 범주에 섞지 않았다. 24) 신진호(1996: 73~74)

일제 시기 중국 현대소설의 국내 번역과 수용 315 연도 장르 제목 저자 출처 1932 07-01. 소설 金剛山 哀話 郭沫若(梁白華譯) 東方評論3호 1935 10-27~29 평론 郭沫若論 李達 朝鮮中央日報 <표3> 郭沫若 소설의 번역과 소개 郭沫若의 작품 중에는 여러 편의 시와 고대 희곡을 각색한 <卓文君>, <西廂>, <湘累> 등이 있는데, 몇몇 작품이 丁來東, 梁白華 등의 중국문학자에 의해 소개되 었으나, 소설장르에서는 <牧羊哀話> 단 1편이 소개되었다. 1932년 東方評論 3호 에서 梁白華는 <牧羊哀話>를 <金剛山 哀話>라는 제목을 붙여서 번역소개 하였다. 조선인의 이야기가 소재로 등장하고 그 무대가 한국의 땅, 금강산이었기에 매우 흥 미로운 소설이라 할 수 있다. 梁白華는 초기에 서구 소설의 번역을 주로 하였다. 1925년 8월 24일, 梁白華는 時代日報 에 <牧羊哀話>를 1회 연재하였으나 중단하 고, 그로부터 7년 뒤인 1932년에 7월에 완역하였다.25) <金剛山 哀話>에서 郭沫若 은 조선을 배경으로 하여 나라를 잃고 일제에 대항하는 조선의 지식인을 묘사함으 로써 당시 비슷한 상황에 처한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애국 반제정신을 일깨워주고, 애국소년을 사랑하는 여주인공을 통해 자유연애에 대한 반봉건 정신을 담아냈다. 실제로 일본 유학의 길목에서 한국을 접한 郭沫若은 한국과 韓人을 소재로 한 작품 을 쓰기도 하였다.26) 소설 속의 그는 한국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한국의 일제에게 유린당하는 상황을 스스로의 일처럼 애처로워하며 두고 볼 수 없기에 결국 한국을 떠나야 한다는 자전적 내용을 작품에 담았다. 그가 어떠한 경로로 조선에 머무르고 조선인과 교류했는지 알 수 있는 사료는 남아 있지 않으나 그가 소설 속에 표현한 묘사를 통해 조선 상황에 대해 그가 느끼는 안쓰러움과 애정을 표현하였다. 25) 朴在淵(1998: 261~264) 26) 한지연(2008: 2~3) 郭沫若의 단편소설 <양치기소녀의 슬픈이야기牧羊哀話)>는 그의 소설 중 처녀작이자 중국 현대문학사상 최초로 韓人을 제재로 한 작품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牧羊哀話>를 시작으로 하여 郭沫若은 <되돌아온 닭(鷄之歸去 來)>,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洪波曲> 제3장 제5절), <조선을 방문하다(訪問朝 鮮)> 등의 韓人題材作品을 지속적으로 창작하였다.

316 中國語文論譯叢刊 第24輯 하지만 이후 일제 시기 동안에 郭沫若의 소설이 번역된 예가 잘 드러나지 않는데 그에 관한 평론 또한 1935년 10월 李達이 朝鮮日報 에 1 3편의 <郭沫若論>을 연재한 1편의 기록이 남아 있을 뿐이다. 李達은 이 글에서 郭沫若을 중국현대문단 에서 가장 귀중한 존재 라 하며 뛰어난 반항정신과 낭만주의 색채에 대해 낙관적으 로 평하며 전사 라고 지칭하였다. <牧羊哀話>의 번역은 일제 시기에 梁白華의 <金剛山 哀話>와 현대판인 엄영욱의 <양치기의 슬픈 이야기>과 김승일의 <금강산 애화기>로 번역되어 있다. 그 중에서 梁白華와 엄영욱의 번역문을 비교해 보겠다. <금강산 애화>, 梁白華 譯 금강산(金剛山) 만 이천봉의 산령(山靈)이 나의 혼백에게 외쳐 해천만리(海 天萬里)밖에서 나를 조선으로 끌어왔다. 지금 있는 곳은 금강산 아래 일본해 (日本海)가 선창리(仙倉里)라고 부르는 조그만 마을인데 뒤는 산이요 앞은 바 다다. 이 마을 남쪽과 북쪽은 일대의 송림인데 수무(數畝)의 농전(農田)에는 나물꽃, 보리, 뽕나무요 성린 가운데로는 조그마한 내가 흘러가는데 이름도 엄 청난 적벽강(赤壁江)으로서 만 이천봉의 계류(溪流)를 모아 조조모모(朝朝暮 暮) 슬픈 소리를 치고 광포(狂暴)한 일본해로 먹히어 들어간다.27) <양치기의 슬픈 이야기>, 엄영욱 譯 금강산 만이청봉의 산신령은 이미 바다 위 만리 장천에 있는 나의 혼을 조 선으로 끌어왔다. 나는 조선에 온 후 금강산 아래에 있는 이 자그마한 마을에 안주했다. 선창리라고 부르는 이 마을에는 겨우 십여호가 살앗다. 집들은 모두 바다를 마주하고 산을 등진, 그다지 낡지 않은 초가집들이었다. 집집마다 앞에 는 납가새 울타리가 있고 그 너머로 꽃나무며 뽕나무,소나무가 보였다. 마을 의 남쪽과 북쪽 바닷가는 소나무 숲이었고 다만 마을 부근에는 몇마지기 논밭 과 뽕밭이 있을 뿐이었다. 유채꽃과 밀 이삭은 벌써 몇 마지기의 밭을 누른빛 으로 곱게 단장하였다. 남동쪽 소나무 숲속에는 적벽강이 흐르는데, 만이천봉 의 시냇물을 모아 아침저녁으로 애원의 소리를 싣고 저 광폭한 일본바다의 조 수에 말려 들어가고 있었다.28) 27) 박재우 이영구외 공저-작품번역편(2007: 204) 28) 엄영욱 譯(1999 : 70)

일제 시기 중국 현대소설의 국내 번역과 수용 317 두 번역본은 우선 제목에서부터 그 차이가 드러난다. 梁白華는 원제 <牧羊哀話> 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金剛山 哀話>라고 수정하였고, 엄영욱은 <牧羊哀話>를 직역 하여 <양치기의 슬픈 이야기>라고 중문제목과 함께 표기해 놓았다. 언어적 표현 방 면에서도 시대적인 차이가 현저히 드러난다. 첫째로, 일제 시기의 번역문에는 한자 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고, 현대에 사용되고 있지 않는 일본해 등의 단어가 출현한 다. 둘째, 현대의 번역문은 의역된 부분이 많아서 길이가 길어지고 수사적 표현이 많이 사용되어 이야기가 생동감 있게 전달되고 있다. 셋째, 소설 속에 편지글 중 怨日行 이라는 시는 梁白華의 <金剛山 哀話>에서는 원문 한자 그대로 옮겨 실은데 반해, 현대의 엄영욱의 번역본에서는 한글로 구체적으로 풀어 놓았다. 넷째, 梁白華 가 번역한 원본은 1918년 2월에 발표한 글을 번역한 글로 1922년 12월 郭沫若이 재수정한 것을 번역한 엄영욱의 것보다 후반부가 좀 더 간략한 내용으로 되어 있으 며 작가의 주석이 번역되어 있지 않다. 이상에서 언급한 魯迅과 郭沫若의 소설 이외에도 기타 중국 작가들의 소설이 간 간히 번역되고 있었다. 1930 40년도는 일제의 문학활동 역시 탄압이 심했던 시기 였기에 중국 소설가들의 연구 및 번역물의 수적인 양도 적었다. 당시 기타 작가 소 설의 번역 상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연도 1929 郁達夫 秋楓 劉大杰 제목 中國短篇小說集 頭髮의 古事 외 14편 피와 눈물 중국 할머니 밤(夜) 張資平 最後의 幸福(1) (17) 魯迅 외 14 1931 12-31 1932 03-05 1932 05-20 1933. 11-01 1935. 03-01 1935 07-01 1938 11-01 1940 06-01 1940 저자 09-01 翁仲 葉紫 林語堂 蕭軍 凌淑華 丁玲 <표 4> 일제 역자 출처 梁白華 외 開闢社 梁白華 崔昌圭 尹石樵 新生 東光社 第一線 李慶孫 中央 中國革命外史(長篇) 靑丘 四海公論 夜哨線 三千里 제10집 11호 北京好日 朴泰遠 사랑하는 까닭에 崔貞熙 三千里 제12집 6집 花之寺 朴啓周 떠나간 後 三千里 제12집 8호 시기 기타 중국 소설들의 번역 상황

318 中國語文論譯叢刊 第24輯 梁白華가 1929년 1월 開闢社에서 발행한 中國短篇小說集 에는 15편의 단편소 설29)이 수록되었다. 郭沫若의 <金剛山 哀話>와 郁達夫의 <피와 눈물> 두 편의 소 설이 각각 東方評論 제3호와 新生 37 38호에 연재되었다. 梁白華가 번역한 소설들은 주로 1920년대 창작한 작품들로 시대 속에 부침하는 지식인의 모습, 연 애, 결혼의 자유와 여성의 해방, 혼란한 사회상과 군벌의 횡포, 각성하는 소시민 등 을 주요 내용으로 삼고 있다.30) 이하에서는 梁白華가 번역한 낭만주의 작가 郁達 夫의 피와 눈물 의 일제 시기에 번역된 문장과 현대에 번역된 문장을 비교해보고 자 한다. <피와 눈물>, 梁白華譯 나는 그 인력거를 타고 사마로(四馬路)의 조고마한 하숙에 들어서 해진가방 을 열어볼때 일시에 나의 혈관은 응결하는듯하얏다. 그것은 상해에서 쓸 돈뭉 치가 없어진까닭이다. 가방을 걱구로 들도 가시 멫번 찾아 보았으나 마츰내 한 장의()지전도 나오지는 아니하얏다. 저녁밥을 먹고 나는 힘없이 십륙포(十六 舖)에서 장사하는동향사람을 찾어갓다. 인사를하고 돈을취해 달라한즉 그는 양 미간에 내천ㅅ자를쓰고 잠잠히 나를 흘끔본다. 이러한때 구멍이라도 있으면 대 강이를박고 드러갓을것이다. 그사람은 머리를 비스듬히하고 거드림을빼며 주머 니에서 대양이원을 끄내엿다. 이마적은 어찌 전황한지 우리네 장사하는사람은 곤난이 여간아니외다 31) <피와눈물>, 강계철譯 나는 그 인력거를 잡아타고 쓰마로(四馬路)에 있는 작은여관에 묵었다. 낡 은 가방을 열러본 나는 혈관이 얼어 붙는 것 같았다. 상하이에서 사용하려고 남겨두었던 지폐가 없어졌던 것이다. 누가 가져갔는지 알 길이 없었다. 가방을 29) 1929년 1월 開闢社에서 발행된 中國短篇小說集 은 <頭髮이야기>(魯迅), <阿蘭의 母 親>(楊振聲), <範圍內에서>(吳鏡心), <깨끗한 봉투>(馮文炳), <서울의共和>(蒲伯英), <光明>(南庶熙), <两封回信>(葉紹鈞), <離婚한 後>(馮叔鸞), <民不聊死>(陳大悲), <船 上>(徐志摩), <小說의 結局>(氷心), <내 아내의 남편>(何心冷), <초어스름에 온 손 님>(慮隱), <口約三章>(許欽文), <花之寺>(凌叔華)의 15편의 단편 번역 소설이 수록 된 단행본이다. 30) 朴在淵 (1998: 263) 31) 박재우 이영구외 공저-작품번역편(2007: 278)

일제 시기 중국 현대소설의 국내 번역과 수용 319 샅샅이 뒤졌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 나는 스류푸(十六舖)에 서 장사를 하는 고향 사람을 찾아갔다. 가로등 아래에서 한참을 걷자 마침내 그의 집에 다다랐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나서 내가 그에게 돈을 빌려 달라 고 하자, 그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조용히 나를 처다 보았다. 바닥에 구멍이라 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리저리 궁리를 하던 그는 주머니에서 2원을 꺼내면서 말하였다. 요새 경기가 좋지 않아. 우리 장사하는 사람들 고 생이 말이 아닐세. 32) 본고에 실은 <阿Q正傳>을 비롯한 梁白華의 세 편의 번역본을 살펴보면 <阿Q正 傳> 이외에는 한문 표현의 사용을 자제한 것이 보인다. 이것은 중국의 백화운동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세세한 표현들 역시 한국적으로 표현 하여 한국 국민들의 감성을 자극하며 더 쉽게 해외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구실 을 제공하였다. 그러나 현대의 작품과 비교해본다면 여전히 한자어 표현이 많고, 고유명사는 중국 보통어 발음 그대로 표기한 현대판 번역본과는 달리 梁白華의 번 역본에서는 십륙포(十六舖) 처럼 한자 독음으로 표기하고 있다. 日帝時期 中國現 代文學 受容史 의 서문에서 언급되었듯이 일제 시기의 번역문은 보편적으로 표점 부호의 오기와 부정확한 띄어쓰기 등의 문제로 인해 일부 내용파악의 어려움이 있 었으며, 또한 한자독음의 표기를 현대어로 풀어쓰는 과정에서 언어적 표현이 길어 지고, 맥락을 통한 의역으로 서술되어 분량이 더욱 길어지며 내용의 누락을 최소화 하는 현대의 번역문에 비해 일제 시기 번역문은 직역된 것이 많아 문장이 짧고 간 단하다. 그 밖에도 작품이 번역되지는 않았지만 잡지에서 중국 작가들에 대한 소개의 글 들도 있었다, 1933년 1월 朝鮮日報 에 天台山人이 쓴 蔣光慈의 <碎了的心>에 대 한 감상평이 그 예의 하나로 天台山人은 蔣光慈를 좌익문화의 중심축(重鎭)이라 칭 하고 조선사회에 필요한 반종교적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丁來東은 魯迅 이외에도 많은 작가들을 소개하였는데, 1933년 2월 28일자 朝鮮日報 에 <中國文壇의 新作家 巴金의 創作態度>라는 글로 巴金을 소개하였다. 그는 巴金을 魯迅 후에 처음 나타난 작가다운 작가라 칭하며, 그의 창작을 下層社 32) 강계철(1999: 103~104)

320 中國語文論譯叢刊 第24輯 會의 恒茶飯있는 悽慘한 이야기, 혹은 權力者 財産家의 壓迫에 반항하는 個人 혹 은 團體를 그려내는데 충실하였다. 고 호평하였다. 이 시대의 중국문학 번역소개의 이색적인 특징은 중국 여성문학 초기의 작가들에 대한 지속적인 소개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비록 이전에는 낮게 평가되던 여성작 가들이었지만 서구 사상의 수용과 5.4 운동으로 인한 여성해방의 외침에 의해 신여 성작가들이 등단하기 시작하였는데, 시에서는 氷心, 소설에서는 丁玲 등이 두각을 드러냈다. 이와 같이 여성작가들이 연이어 등장할 뿐만 아니라 여성문제가 사회문 제로 대두되면서 여러 작가들이 그것을 작품의 소재로 쓰기도 하였다. 胡適 李大 釗 등은 연애결혼, 가정개혁, 여성 교육 등의 문제를 논의로 삼았고, 연이어 葉聖 陶 郭沫若 氷心 廬隱 馮文炳 등의 작가들은 이러한 문학적 조류를 따랐다. 葉 聖陶의 <두 통의 편지>는 주인공의 편지를 빌어 당시 그릇된 연애관에 대해 일침을 가하였고, 凌叔華는 1928년 단행본으로 출간된 <花之寺>에서 아내가 남편의 사랑 을 시험한다는 색다른 이야기로 사회적인 변혁시기에 보수적인 여성들의 우려와 두 려움을 묘사하였다.33) 개화기에 들어와 여권의 신장 또한 조장됨에 따라 여성작가들의 작품도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의 대표적 여류 소설작가라면 단연 丁玲을 꼽을 수 있다. 한국 에서 丁玲은 작품 번역보다 다양한 소개 및 평론이 먼저 전개되었다. 丁來東은 또 한 中國 女流作家들의 흐름과 경향에 관한 글을 쓰기도 하였는데, 1933년 10월호 의 新家庭 의 <中國의 女流作家>라는 글에서 당시 활동하던 여성작가들을 시가 소설 희곡 산문 별로 정리해 놓았고, 소설에서는 丁玲, 沅君, 綠漪 등의 작가를 소개하였는데 그 중 丁玲의 작품을 개인의 社會環境을 소홀히 하지 않은 것과 여 자의 心理描寫를 잘하였다 34)라고 평하였다. 이듬해 1934년 9월에 역시 新家庭 에 같은 제목의 글을 한편 더 써서 氷心과 丁玲의 창작경험담을 서술하기도 하였 다. 같은 해 金光洲는 中國上海에서 2월에 발표된 賀王波의 <中國女流作家論>을 번 역하여 같은 달 말경부터 東亞日報 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賀王波의 글에서 주로 33) 朴在淵(1998: 265~266) 34) 丁來東全集1(1971: 290)

일제 시기 중국 현대소설의 국내 번역과 수용 321 논하였던 작가는 氷心과 盧隱, 丁玲이었고, 그 중 丁玲에 대한 글은 약 10회에 나 누어 연재하였다. 이 밖에도 1935년에는 5월 26일 조선 문단에 게재된 朴勝極의 <中國女性作家 丁玲에 對하여>와 1941년 12월 1일 三千里 에 발표된 <支那女性 作家 氷心 丁玲의 作品>를 통하여 한국 작가들은 중국 여성작가의 역할을 근대화 의 단계라 바라보았고 그들의 우수한 점은 닮아가자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丁玲 의 소설 작품 중에서 <떠나간 後>35)는 1940년 9월 1일 번역소개 되었는데 고향 을 나와서 도회에 있는 작가 胡也頻과 연애 생활을 보내던 시대의 격렬한 정열의 기록 이라고 소개하면서 젊고 고은 여성이 연애를 하는 자기를 스스로 분석하는 그 줄기찬 문장에는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36)고 평하였다. 4. 나오는 말 이상에서 언급한 일제 시기의 번역소개 활동들은 1931년 9월 후에는 만주사변 을 계기로 점차 위축되기 시작하여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발생한 이후에는 거의 봉쇄되었다. 1945년 광복 직후가 되어서야 金光洲, 李容圭 공역의 魯迅 小說 選 集 이 출판되는 등의 활동37)이 있었으나 그 역시 활기를 띄지 못하였다. 이 시대 의 번역은 서양의 작품들보다 그 소개와 번역이 양적으로 저조해 있었다. 이는 중 국연구가의 부족을 꼽을 수 있는데, 梁白華나 丁來東 및 몇몇 작가들 이외에는 평 생을 중국문학을 연구한 이들은 매우 드물었다. 또한 그 연구실적 역시 기타 해외 국가의 문학연구에 비해 매우 적었다. 본고는 일제 시기에 소개된 소설가의 평론과 그 작품을 초점으로 하여 서술하였 는데 특히 일제 강점기라는 특수한 배경 속에서의 소설 수용과 번역을 살펴봄으로 써 따라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을 도출해 내었다. 첫째, 소수의 중국연구가들 35) 1929년 3월 小說月報 에서 발표한 글로써 발표당시의 원제는 <他走后>이다 36) 박재우 이영구외 공저-작품번역편(2007: 365) 37) 오순방(2008: 269)

322 中國語文論譯叢刊 第24輯 은 중국과 우리의 시대적 유사한 배경을 깨닫고 魯迅같은 대문호의 문학사상을 받 아들여 그 작품을 소개함으로써 당시 우리 민족 스스로가 우매함을 깨우치고 좀 더 낳은 세상을 만들어 가길 바랬다. 번역된 중국 현대소설은 대부분 그가 처해 있는 시대상 속에서 고뇌하는 지식인을 묘사, 자유연애와 결혼 및 여성의 해방, 일제강 점기의 유린과 군벌의 횡포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서 우매한 소시민들을 각성시키고 자 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둘째, 일제 시기의 번역문은 한자어의 사용이 많으며 띄어쓰기 등의 문제가 보인다. 한자어의 잦은 사용은 당시 학자들이 한자어에 더 익숙하였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기가 늦어질수록 점점 현대적 표 현이 많이 쓰이고 있는 현상을 볼 수 있다. 문헌조사를 하면서 기록은 남아 있으나 그 원전을 찾을 수 없는 것도 있었다. 현대에 보존되고 있는 번역문의 원전과 현대 의 번역문의 비교를 통해 번역의 양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보았다. 셋째, 1920 30년대 작가들은 여성문학에 눈뜨기 시작하여, 여성작가들이라든지 여성문 제를 소재로 삼은 소설 등을 소개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서구문물의 수용으로 인한 여성지위의 향상이 당시 한국에도 영향을 끼쳤음을 보여주며 작가들 역시 평등의식 을 가지고 있었음을 나타내 주고 있다. 일제의 유린 하에 자유로운 문학 활동이 일제의 유린 속에서 자유로운 문학 활동 을 할 수 없었으며, 사상 또한 억압당했지만 그 좁은 공간에서도 한국 학자들의 부 단한 노력과 깨우침에 의해 이러한 작품번역 또는 평론의 흔적이 남아 있게 된 것 이라 생각하며, 이러한 한국 근대 지식인들의 중국 근대문학 번역과 수용에 대한 정리는 현대 한국의 중국 문학연구의 중요한 밑바탕이 되리라 생각한다.

일제 시기 중국 현대소설의 국내 번역과 수용 323 참고문헌 저서류 丁來東, 丁來東 전집1-2, 서울: 금강출판사, 1971 김시준譯, 루쉰(魯迅)소설전집, 서울: 서울대학교출판사, 2007 엄욱譯, 阿Q正傳, 서울: 상록수, 1999 강계철譯, 타락, 서울: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1999 박재우 이영구외 공저, 日帝時期 中國現代文學 受容史-작품번역편/신문편/잡지 편, 서울: 글사랑, 2007 오순방, 중국 근대 소설번역과 중한 소설의 쌍방향 번역연구, 서울: 숭실대출판 부, 2008 신정호, 중국현대문학의 근대성 재인식, 광주: 전남대학교출판부, 2005 김병철, 韓國近代飜譯文學史硏究, 서울: 乙酉文化社, 1988 팡시앙뚱, 루쉰, 욕을 하다, 서울: 휴먼필드, 2004 논문류 서은주, <1930년대 외국문학수용의 좌표>, 민족문학사연구, No.28, 2005 송현호, <한국근대초기소설론연구>, 국어국문학, Vol.- No.101, 1989 이주노, <중국현대문학과의 만남>, 중국현대문학과의 만남, 동녘, 2006 李錫浩, <중국문학 轉信者로서의 梁白華>, 연세논총, 1976, 金時俊, <光復以前韓國에서의 魯迅文學과 魯迅>, 중국문학 Vol.29 No.1, 1998 金時俊, <한국에서의 중국현대문학연구 개황과 전망>, 중국어문학회, Vol.4 No.1, 1997 심원섭, <李陸史 초기문학평론 및 소설에 나타난 魯迅문학수용양상>, 연세어문학, Vol. 9, 1986 신진호, <魯迅과 郭沫若의 歷史小說比較論>, 중국현대문학 제11호, 1996.12

324 中國語文論譯叢刊 第24輯 朴在淵, <梁白華의 중국문학 번역작품에 대한 재평가-현대소설과 희곡을 중심으 로>, 중국학연구 제4집, 1998 黃秉國, <中國現代小說의 出版現況과 中國大陸의 新時期 現代小說 出版槪觀>, 出 版學硏究 No.34, 1992 金河林, <魯迅與他的文學在韓國的影響>, 中國現代文學 第17號, 1999 김경선, <중국문학과 한국문학의 영향관계고찰>, 우송대학교논문집, 제4집, 1999 洪申善, <李陸史論>, 東岳語文論集 第9輯, 1976 한지연, 郭沫若의 韓人題材作品 硏究, 碩士學位論文, 韓國外國語大學校, 2008 간행문류 朝鮮日報 中央日報 開闢 東光 韓國開化期學術誌大12-朝鮮獨立協會會報

일제 시기 중국 현대소설의 국내 번역과 수용 325 在 日 本 统 治 時 期 中 國 現 代 小 說 接 受 與 翻 譯 情 況 朴 南 用, 尹 惠 妍 中 文 提 要 自 古 以 来, 韩 中 文 学 的 研 究 持 续 进 行, 还 翻 译 介 绍 给 大 家 都 是 为 了 互 相 了 解 对 方 的 文 化. 无 论 是 古 代 或 现 代 的, 在 韩 国 已 经 有 很 多 中 国 作 品 被 翻 译 成 韩 文 给 大 家 阅 读 理 解 的 机 会. 從 此, 筆 者 集 中 在 殖 民 統 治 下 的 時 代 背 景, 主 要 研 究 韩 国 文 坛 进 行 中 国 现 代 小 说 翻 译 成 韩 文 的 情 况 及 其 接 受 过 程 整 個 都 按 比 较 文 学 的 方 式 觀 察 当 时 在 韩 国 翻 译 介 绍 中 国 小 说 的 趋 向, 尤 其 是 以 实 际 性 的 史 料 为 基 础 收 拾 整 理. 同 時, 分 析 了 介 紹 翻 譯 中 國 小 說 的 行 為 給 朝 鮮 社 會 帶 來 的 影 響 筆 者 通 過 介 紹 光 復 之 前 的 新 聞, 雜 志 及 作 者 翻 譯 成 韓 文 的 作 品, 分 析 了 中 國 現 代 小 說 的 接 受 與 翻 譯 問 題. 有 關 中 國 現 代 文 學 的 文 章 自 從 在 1920 開 闢 雜 志 上 首 次 被 梁 白 華 翻 譯 介 紹 以 后, 丁 來 東, 李 陸 史 等 人 將 中 國 現 代 小 說 漸 漸 地 介 紹 過 來, 并 且 還 翻 譯 了 許 多 小 說 作 品. 通 過 翻 譯 魯 迅 作 品 的 狀 況, 自 從 柳 樹 人 翻 譯 了 < 狂 人 日 記 > 以 后, 許 多 作 家 逐 漸 翻 譯 作 品 和 寫 論 評 過 來, 尤 其 是 梁 白 華 和 李 陸 史 作 出 較 大 的 貢 獻. 除 魯 迅 的 作 品 外, 還 介 紹 翻 譯 了 郭 沫 若 郁 達 夫 蕭 軍 丁 玲 等 作 家 的 作 品 中 國 研 究 者 翻 譯 介 紹 的 作 品 或 論 評, 內 容 上 主 要 反 映 1920~30 年 代 時 代 現 實, 就 是 會 提 醒 和 鼓 勵 朝 鮮 的 抗 日 精 神, 而 內 涵 朝 鮮 作 家 通 過 小 說 大 家 起 義 客 服 現 實 的 意 志. 從 而, 透 過 本 論 文 的 探 討 來 領 悟 韓 中 比 較 文 學 研 究 的 重 要 性 关 键 词 : 韓 中 比 較 文 學 翻 譯 接 受 魯 迅 郭 沫 若 梁 白 華 丁 来 东 투고일 : 2008. 11. 30. / 게재확정일 : 2009. 1. 6. / 최종수정일 : 2009. 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