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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학연구 제 호 목 차 인성교육의 위기와 가족문화 정범모 기독교위임체계에 의한 대리의 효 연구 박철호 성경적 효사상 연구 김시우 삼국유사 를 통해본 삼국시대의 효문화 김덕균 글로벌 시대 효학의 방향과 역할 서은숙 고령화 사회와 출산장려정책에 관한 고찰 노인의 재혼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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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 감사담당관 정책: 행정의 투명성 제고 단위: 민원발생사전예방 1)민원심의위원 수당 70,000원*9명*3회 1, 업무추진비 5,800 5, 시책추진업무추진비 5,800 5, )민원심의 업무추진 250,000원*4회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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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s of compassion - Red Cross for our neighb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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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뉴스레터 1018

강은, 만화에서 주로 낭만적인 장소로 그려진다. 사랑을 나누고, 그리움을 실어 보내는 그런 곳. 결국, 켄신이 처음 사랑한 그 여자는 켄신을 차마 죽이지 못했고, 오히려 켄신을 대신해 죽는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이 잔인한 만화에서, 피는 마치 꽃처럼 선홍색을 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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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가인권위원회_국내 거주 재외동포와 인권(추가논문-보이스아이).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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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이용균(f.1)(103~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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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목차 들어가는 말 9 문전성시 문화시장 프로그램 99선 지역 공동체 10 시장 공동체 44 내발적 문화 74 예술의 역할 106 지역활성화 축제 150 여행지로 변신 182 문화중심 216 문화복지 258 문화예술학교 296 새로운 시장 개척 332 마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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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동북아역사논총 42호 금융정책이 조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일제 대외금융 정책의 기본원칙은 각 식민지와 점령지마다 별도의 발권은행을 수립하여 일본 은행권이 아닌 각 지역 통화를 발행케 한 점에 있다. 이들 통화는 일본은행권 과 等 價 로 연

아론 신권 교재 1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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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포커스_제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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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인권(통권제11호)_0626_최종_인쇄소편집요청_11차-최종(수정).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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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뉴스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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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서울대학교-제주평화연구원 공동정책회의 발표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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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구분 학수번호 교과목명 학점 시수 영문교과목명 현대독일미학Ⅱ 3 3 Contemporary German Aesthetics 현대프랑스미학Ⅰ 3 3 Contemporary French Aesthetics 현대프랑스미학

국외출장_결과보고서_ 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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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업 보 고 서 (제 55 기) 사업연도 2015년 01월 01일 2015년 12월 31일 부터 까지 금융위원회 한국거래소 귀중 2016년 03월 30일 제출대상법인 유형 : 면제사유발생 : 주권상장법인 해당사항 없음 회 사 명 : 현대증권 주식회사 대 표 이 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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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중앙아시아의 세계화 : 발전과 전망 Ⅰ. 서 론 1990년 냉전종식후 중국은 14개국과 국경을 접하게 됨으로써 러시아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접국을 가진 국가가 되었다. 이 말은 곧 중국은 지리적으로 유라시아의 중심에 있다는 뜻이다 1).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특건확대공청회자료[1].PDF

CONTENTS GYEONGSANGBUK-DO COMPOSITE INDEX 주요 경제 ISSUE 대구 경북 이야기 I. 국내외 경기종합지수 1 1. OECD 경기종합지수 1 2. 국내 경기종합지수 3 II. 경상북도 경기종합지수 및 경제지표 5 1. 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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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ion:

중국현대사의 再 構 成 과 동아시아적 시각 : 한국으로부터의 發 信 白 永 瑞 ( 延 世 大 學 ) 1. 周 邊 의 시각이란 무엇인가? 21세기 동아시아 學 의 새로운 방향 모색 이란 커다란 主 題 를 앞에 놓고 어떤 발표를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다가 지난 연말에 참여한 동아시아 소장학자들의 공동연구 프로젝트 주변에서 본 20세기 중국 1) 에서 발표한 문장의 문제의식이 주최측의 趣 旨 와 부합된다고 보 고 그것을 충실히 고려해 발표문을 고쳐보기로 했다. 먼저, 공동연구의 키워드인 周 邊 의 시각 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검토하는 데서부터 시 작하려고 한다. 우선 공동연구 취지문에서 말하는 주변 은 非 - 中 國 (역사적으로 中 華 文 明 圈, 현재로서는 大 陸 中 國 )으로서 구체적으로는 일본, 한국(남한), 대만, 홍콩( 및 越 南, 북한, 蒙 古 도 장래에 포함될 수 있다)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왜 중국을 비중국 즉 주변 의 시각에 서 보려는 것인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취지문은 중국을 상대적 으로 보려는 것이라고 한 다. 그 의미를 이해 못할 바도 아니나, 관점을 명료하게 하지 않으면 요즈음 유행하는 중국 위협론 과 심리적 심층구조에서 통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도 있다. 두 번째로 중국은 과연 중심 이고 나머지는 주변 인가라는 물음도 던질 수 있다. 사실, 현실적으로는 (미국의 하위 파트너로서의) 일본이 이 지역의 覇 權 을 쥐고 있는 중심이 아닐까, 또 한국은 半 周 邊 이 아 닐까. 만일 일본을 지금도 중국의 주변으로 간주한다면 중화문명권의 역사적 압력을 아직도 느끼고 있는 것이거나 중국의 대국으로서 갖는 잠재적인 거대함에 대한 콤플렉스일지도 모 른다. 세 번째 주변이 국가를 단위로 한 발상에서 나온 것은 아닌가 따져봐야 한다. 물론 홍콩도 포함되었지만, 대체로 ( 臺 灣 처럼 하나의 정상적 국가인지 여부가 논쟁적인 경우도 포함해) 국가들을 단위로 삼은 것 같다. 그러나 주변이라 할 때는 주변적인 개별 국가도 포 함되지만 개별 국가 내부의 지역(또는 지방)이라든가 소수 민족, 下 位 者 集 團 (subaltern) 등 도 존재하고 超 國 的 (transnational) 존재들(디아스포라나 NGO 등)도 있다. 이같은 몇가지 물음에 제대로 답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周 邊 性 이 과연 무엇인지 함께 토론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주변 이 중국 대륙의 주변이라는 지리적 위치를 가리키고 중국 대륙의 이웃들 (neighbors)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필자는 주변 이란 단순한 지리적 위치가 아닌 시각과 관련된 것이고, 중앙 이 주도하는 위계질서 속에서 차별 당하는 주변이 그 구조 자체를 문제삼는 자세를 뜻한다고 보려는 것이다. 이것은 발표자가 이미 전부터 강조한 지적 실험으로서의 동아시아 란 발상과도 기본적으로 통하는 것 같다. 그래서 전에 발표한 글의 관련 대목을 소개해 보겠다.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를 위해 앞으로 요구되는 것은, (문명이든 지역이든) 어떤 실체로 서의 동아시아와는 차원이 다른, 발견적 방편으로서의 동아시아에 대한 담론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 결과 필자가 (잠정적으로) 찾은 언어가 바로 지적 실험으로서 의 동아시아 ( East Asia in intellectual praxis)이다. 이것은 동아시아를 어떠한 고정된 실 체로도 간주하지 않고 항상 자기 성찰 속에서 유동하는 것으로 파악하는 사고와 그에 입각 한 실천의 과정을 뜻한다. 이런 태도를 익힘으로써 자기 속의 동아시아와 동아시아 속의 자 1) 동아시아 학자의 共 同 硏 究 發 表 會 周 邊 から 見 た20 世 紀 中 國 (2001.11.28-30, 對 馬 島 ). 이에 대한 소개는 중국 현대사연구, 제12집(2001.12)의 姜 抮 亞 의 보고문 참조.

기를 돌아보는 省 察 的 주체가 형성될 것으로 기대한다. 2) 발표자가 말하는 동아시아는 반복하자면, 순수한 단일문명(이나 문화)를 공유한 한덩어리 가 아니라 동아시아권역을 구성하는 다양한 주체가 서로 경쟁하고 타협하면서 서로 연결되 어 있는 장이다. 여기서 일본이나 중국이란 대국 사이에 끼여 종종 소홀히 다뤄지는 주변 적 존재들, 즉 (각 국민국가 안의 소수민족을 당연히 포함한) 여러 민족과 지역들의 역할을 특히 중시해야 한다. 주변 으로부터 중국과 일본을 다시 보는 시각은 지적 실험으로서의 동아시아 에 긴요하다. 단, 주변을 강조한다 해서 그것을 특권화해서는 안될 것이다. 중심에 거주하는 개인이나 집단도 주변 적 사고를 할 수 있듯이, 주변에서도 중심 적 사고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발표자가 말하는 주변 은 명사가 아닌 형용사적 의미이다. 3) 2. 한국인은 자동적으로 주변 의 시각을 갖는가? ----중국현대사연구의 몇가지 특징 지리적으로 중국이나 일본이 아닌 한반도에 거주하면서 연구를 하는 한국인 연구자라면 누 구나 자동적으로 주변적 시각을 갖게 되는가? 물론 이에 대한 발표자의 답은 No이다. 한국 인이라도 20세기 한국인의 역사적 경험이 갖는 독특성 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 않다면, 반드시 주변적 사고를 갖게 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역사적 환경에 많든 적든 어느 정도는 영향을 받기 마련이니 한국인이 주변(내지 반주변)적 시각을 갖기에 충분한 상황적 조건 속에 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불행했던 경험이 오히려 억압의 20세기를 비판하고 해방의 21세기를 창조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계기를 제 공하는 행운일 수도 있다.(이 점에서는 臺 灣 도 유사한 역사적 조건을 갖고 있다 하겠다. 그렇다면 실제로 그간 진행되어온 한국에서의 중국현대사연구 4) 는 이 불행을 행운으로 전 2) 졸저, 동아시아의 귀환, p.50. 3) 같은 책, p.65. 4) 여기서 현대사 란 학계의 관행에 따르면 신해혁명 이후의 시기를 말한다. 그리고 이 글에서는 1980년대 이후 의 연구 성과를 분석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자료는 밑에서 제시되는 역사학보의 회고와 전망(1997년까지는 3년 단위로, 1998년 이후는 1년 단위로 집필됨)에 의존했다. 1980년대부터 논의를 시작하는 이유는 그직전 에만해도 특히 20세기 이후의 문제에 대해서는 기피현상이 있다 고 지적될 정도로 연구자가 적었지만,( 李 炳 柱, P.163), 80년대 초가 되면 이미 불리한 여건 속에 근대현대사에 관심을 가진 신진이 많이 배출되었 다고 느껴질 정도로( 尹 世 哲, p.310) 신진연구자들의 수가 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갑자기 늘어난 이유는 국내의 정치적 변화와 중국 대륙에 대한 지나친 관심 이란 평가( 辛 勝 夏, p.75)에서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 는 중국 대륙에 대한 지나친 관심 이란 개혁개방 이 아니었다는 데 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1970 년대 후반 이후 특히 80년대에 민족민중운동이 활기를 띠면서 그 대안모델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중국혁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그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대학원에 진학해 중국근현대사를 전공하는 경향이 생겼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런 경향이 중국사연구에 있어서 근현대사분야에 지나치게 편중되도록 하였다 는 우려 가 나오기까지 했다.( 辛 勝 夏, p.76) 어쨌든, 그러한 연구자의 수적 증가에 힘입어, 1992년 1월, 中 國 現 代 史 硏 究 會 가 창립되었고, 1994-96년 시기에 단행본이 쏟아져 나왔을 뿐만 아니라 中 國 現 代 史 硏 究 會 의 기관지인 中 國 現 代 史 硏 究 誌 (1995년 創 刊. 2002년 5월 현재 第 12 輯 刊 行. 그 前 身 은 中 國 現 代 史 硏 究 會 會 報 )가 출간되기 시작되었다. 그리고 1991-93년에는 이미 연구인력의 현저한 증가, 특히 40대 이하의 소장 연구자들에 의 한 의욕적 연구가 돋보이는 수준에 도달했다.( 裵 京 漢, p.383-84) 李 炳 柱, 근대이후(1976-78), 歷 史 學 報, 第 84 輯, 1979 尹 世 哲, 근현대(1979-84), 第 108 輯 (1985) 辛 勝 夏, 근현대(1985-87), 第 120 輯 (1988) 羅 弦 洙, 근현대(1988-90), 第 132 輯 (1991) 裵 京 漢, 근현대(1991-93), 第 144 輯 (1994) 尹 惠 英, 근현대(1994-96), 第 156 輯 (1997)

환시키는 기회를 얼마나 잘 활용해 왔을까. 이 과제를 한국 연구자들은 한국 연구자의 정 체성 또는 독자적 중국 근대사 인식틀 이란 식으로 표현해왔는데, 과연 그것이 실제 연구 성과에서는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 검토해보려고 한다. 먼저, 주목되는 연구동향은 한국인의 중국 인식의 역사적 系 譜 를 추적하는 것이다. 주로 20세기 한국인이 남긴 (주로 한글로 씌어진) 사료를 분석해 동시대 한국인에게 反 映 된 중국 의 현실을 再 現 하는 일은 한국인이 하기 적합한 것으로 최근 이 분야의 연구업적이 축적되 고 있다. 5) 이러한 연구 방향이 한국에서의 중국사 연구에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투영 한 것으로 반길 만하다. 6) 더 나아가, 한국의 중국사연구는 한국사와 연결을 갖고 상호 통 로가 넓혀지는 內 外 同 心 圓 적인 구도로 나아감으로서 올바른 방향을 잡을 수 있다고까지 기 대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 7) 그런데 이것은 한국인만이 할 수 있는 작업도 아닐 뿐만 아니 라 素 材 主 義 에 머물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분야의 성과가 단순히 중국 에 관한 사실(지식) 축적의 차원에 그치지 않고 중국을 인식하기 위한 방법론의 모색에까지 도달해야 중국사의 재구성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중관계를 넘어선 동아시아 적 전망이 절실하다는 것을 필자는 강조하고 싶다. 그 다음으로, 한국에서의 중국현대사 연구는 본격적인 연구의 출발점인 80년대부터 상당 부분 공산당과 국민당이라는 20세기 중국의 정치적 중심 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하는 제3의 시각( 黨 史 中 心 으로부터의 脫 皮 )을 基 調 로 해왔다. 그리하여 1910-20년대의 연구, 특히 국 민혁명운동에 대한 실증적 연구성과를 축적해 중국현대사를 이해하는 새로운 분석 틀을 제 시하고자 했다. 8) 특히 국민혁명기 대중운동의 자율성과 (국공양당이 추진한) 혁명에 대한 종속성 사이의 긴장관계를 중시한 결과 여러 사회세력---학생 여성 상인 농민 노동자 기업-- 에 대한 연구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와 더불어 지역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주로 上 海 와 北 京 이 중심이되 湖 北 湖 南 河 南 廣 東 江 蘇 山 西 滿 洲 (또는 東 北 ), 臺 灣 티베트 등지에 대한 정 치사 사회사 경제사 연구로 영역이 확대되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연구 대상 시기도 점차 하 향되어 1930-40년대의 농촌경제, 소비에트정부의 경제정책, 남경정부의 재정정책 및 지식 인정책, 그리고 중일전쟁기의 밀수 및 아편문제까지 분석되었다. 그리하여 1949년의 경계마 저 이미 넘기 시작했다. 9) 姜 明 喜, 현대(1997), 第 159 輯 (1998) 金 世 昊, 현대(1998), 第 163 輯 (1999) 金 泰 丞, 현대(1999), 第 167 輯 (2000) 5) 閔 斗 基, 李 允 宰 (1888-1942)의 중국 경험과 한국, 시간과의 경쟁: 동아시아근현대사논집, 연세대출판부, 20001, 1920년대 한국인의 눈에 비친 孫 文 (1866-1925)과 三 民 主 義, 중국초기혁명운동의 연구, 서울대출판 부, 1997, 萬 寶 山 事 件 (1931)과 韓 國 言 論 의 對 應 : 相 異 한 民 族 主 義 의 視 覺 東 洋 史 學 硏 究 제65집(1999.1), 申 彦 俊 (1903-1938)과 激 動 中 國 의 現 場 報 告, 중국현대사연구, 제9집, 2000.6; 金 世 昊, 1920 年 代 韓 國 言 論 의 中 國 國 民 革 命 에 대한 反 應 - 東 亞 日 報 特 派 員 朱 耀 翰 의 新 中 國 訪 問 記 取 材 (1928.10-1929.1)을 中 心 으로- 중국학보, 제40호, 1999.12; 裵 京 漢, 손문과 상해한국임시정부, 동양사학연구, 제56집, 1996, 손문의 대아시 아주의와 한국, 부산사학, 30호, 1996, 1920년대 한국인들의 손문상, 부산사학, 33집, 1997, 上 海 南 京 地 域 의 初 期 (1911-1913) 韓 人 亡 命 者 들과 辛 亥 革 命, 동양사학연구, 제67집, 1999; 백영서, 1949년의 중국: 同 時 代 한국인의 인식, 중국현대사연구, 제9집, 2000.6 6) 김태승, 2000, 316면. 7) 李 成 珪, 韓 國 における 中 國 史 硏 究 現 況 東 洋 文 化 硏 究 ( 學 習 院 大 ) 제3호, 2001., pp.122-123. 8) 일련의 공동연구 성과물로 중국국민혁명의 분석적 연구, 1985, 중국국민혁명지도자의 사 상과 행동, 1988, 중국국민혁명의 구조분석, 1990가 있다. 9) 1949년 이후가 본격적인 역사연구의 영역으로 넘어왔 지만, 다른 학문(지역연구)에서 충족될 수 없는 역사 학도로서의 特 長 (역사학적 시각)이 발휘되느냐 는 것은 계속 문제가 될 것이다.( 金 世 昊, 위의 글, p.279).

이제 한국에서의 중국현대사 연구의 성과는 양적으로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방법의 다양화, 연구수준의 국제화 등의 측면에서 발전하였다고 내부적으로 평가될 정도 이다. 10) 그리고 그 일부는 중국 일본 등 학계에서 일정한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 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독자적 시각이 확보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얼마나 긍정적인지 확언하기 어렵다. 이에 대한 극히 부정적인 견해도 제기된 바 있다. 즉 일본이나 미국의 연구자의 역 사해석 방식에 종속된, 말하자면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 연구, 引 用 으로서의 중국근대사 연 구 라고 極 言 했다. 11) 발표자 용어로 바꿔 말하면, 우리 안의 中 心 의 존재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내부의 변화를 섬세하게 읽지 않고 외부자적 포즈를 취한, 다소 誇 張 된 비판이란 느낌이 들지만, 왜 이런 발언이 나오게 되었는지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계의 지식 생산과 유통 과정에 대한 좀더 깊이 있는 분석이 요구되지만, 여기서는 연구 테마가 너무 미세한 데 치우친 나머지 통사적 어프로치 랄까 총체적 어프로치 가 결여된 탓이란 지적에 주목하고 싶다. 이것은 문제점을 잘 짚어낸 진단임이 분명하지만, 그 처방의 핵심이 한국사(연구)와의 연결을 강조하는 데 그친 것 12) 같아 아쉽다. 이와 달리 한국에서는 연구 자가 생산하는 연구 논문의 전제라 할 각자의 역사관을 드러내는 것을 꺼리고 본격적인 논 쟁의 기피를 조성하는 학계의 풍토에서 그 원인을 찾는 진단도 제시되었다. 그런데 이런 풍 토는, ( 故 ) 閔 斗 基 교수의 영향을 받은 主 流 ---본 발표의 논지에 연관시키면 중심 ---의 연구자들이 주도한 것으로서, 객관적 실증 연구가 빚어낸 결과라고 비판되는 것이다. 13) 이런 풍토가 한국 학계 전반의 문제점이 아닌 동양사학계만의 것인지 등 따져볼 점이 많 지만, 여기서는 실증과 관련된 논란에 대해서만 한 마디 해두려고 한다. 사료나 기존 연구 성과를 가능한 한 섭렵하자는 학문방법으로서의 실증이야 연구자의 기본소양이요 역사연구 의 출발점이니 누구도 시비 걸 일이 못된다. 단지 그것이 지나쳐 자칫 인용만능주의 로 흐 르고 더 심하게는 독창적인 가설이나 이론적 문제제기를 제약하는가 여부에 있다 하겠다. 14) 그런데 민교수 자신이 문제를 설정할 때 주제의식을 전개하는 가운데에 스스로의 이론이랄 까 가설 같은 것이 들어 있다 고 밝힌 바도 있거니와 15), 그의 학문적 업적은 실제로 동시대 학계의 주류적 시각 즉 중심 을 해체하고 그 나름의 독자적 시각을 적극 제시한 데서 찾을 수 있으므로 그 자신은 일단 비판에서 벗어난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그의 영향 아래 성장 한 학자들이 어떻게 그를 계승하고 있는가인데, 이것은 좀더 지켜보고서 따져볼 일이 아닌 가 싶다. 16) 여기서는 이런 논란을 통해 한국학계 안에도 중심과 주변의 位 階 構 造 가 존재할 수 있다는 관점을 公 論 의 場 으로 끌어들인 의의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데 그치겠다. 10) 金 泰 丞, 中 國 近 代 史 認 識 의 系 譜 와 遺 産 : 脫 近 代 的 中 國 史 認 識 의 展 望 을 위한 問 題 提 起, 한국사연구회편, 20세기의 역사학, 21세기의 역사학, 역사비평사, 2000, p. 11) 같은 글. 12) 이성규, 위의 글, pp.122-123. 13) 金 希 敎, 東 洋 史 硏 究 者 들의 客 觀 主 義 神 話 와 批 判, 역사비평, 제51호(2000년 여름) 14) 黃 東 淵, 포폄, 실증, 목적론: 汪 精 衛 의 對 日 合 作 을 바라보는 시각의 문제점들, 중국현대 사연구, 제12집, 2001.12, p.106. 15) 민두기 정재서 특별대담, 실증의 피안과 중국학의 미래, 사상, 1998년 여름호, p.129. 16) 민교수의 학문 태도와 관련된 또하나의 쟁점은 역사연구는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 을 둘러싼 것이다. 그런데 그의 그런 학문관이 현대 한국사회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치열한 대응의 한 방편 이었던가 혹은 단지 현실과의 거리를 유지한 결과였던가 따져보고서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의 제자 가 운데서도 나온 바 있다. (배경한, 민두기 선생의 중국근현대사 연구과 그 성과] {서울대 동양사연구실 편 {중 국근현대샤의 재조명 1}, 지식산업사, 1999, p.31.) 말하자면 그의 학문 역시 역사 속에서 형성된 것임을 전 제하고 평가하는 것이 비판적 계승의 한 방향이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최근 들어 한국에서의 중국현대사연구의 새로운 방향 모색이 적극 시도되는 흐름 이 주목된다. 위와 같은 비판적인 글들이 나오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그 증거의 일부인데, 아직 史 學 史 적인 정리 단계에 도달한 수준은 아니지만, 연구자의 방법론 역사인식 자체를 논 의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중요한 것이다. 그 하나가 (이번 포럼의 주제인 주변의 시각을 유행시킨) 포스트모더니즘의 受 容 을 둘러싼 논의이다. 적극 수용을 권장하는 한 연구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문제제기가 일반화되어 가고 있다 고까지 주장하는데 17), 만일 그것이 중 국현대사연구자들 내지 동양사학계를 염두에 둔 것이라면 과장된 발언이다. 그러나 동양사 학계란 제도의 밖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에 관심이 클 뿐만 아니라 18) 포스트모던한 사회현 상이 어느 정도 존재하고 있으니, 위와 같은 발언이 한국의 사회현실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이 이론을 수용할 경우, 구미의 중국현대사 연구자들에게서 확인할 수 있듯이, 종래 소홀 히 다뤄온 주변적인 주제들---소수민족 여성 환경 diaspora( 移 民 集 團 ) 下 位 者 集 團 등---을 적극 고려하는 연구 주제의 다양성과 국민국가의 해체란 점에서 상당한 성과를 분명히 쌓을 수 있다. 19) 그러나 이것이 또하나의 인용 이요 서구 이론 모방에 그치지 않으려면, 적어도 중국현대사연구자들이 그간 근거해온 기존 방법론이나 이론의 한계를 정말 연구 과정에서 절실히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것인지 먼저 확인되어야 하지 않을까. 20) 더 나아가, 포스트모더니즘의 근대 부정을 동아시아 人 (내지 非 西 歐 人 )이 쉽게 수 용할 수 있는 것인지도 고려해야 한다. 동아시아 일부에서 아직도 계속 되는 근대화를 향한 열망을 무시하는 것은 서구중심적인 관점일 수 있다. 그렇다고 근대주의로 되돌아가자는 것 은 아니다. 동아시아에서는 근대에의 적응과 극복의 二 重 課 題 의 수행이 필요하다는 복합적 사고를 강조하려는 것이다. 구체적이 예를 하나 들면, 국민국가의 형성이란 시각에서 동아시아의 20세기 역사를 연구 할 때에도 그것이 국민의 역사( 國 民 的 歷 史 ) 인 동시에 국민 억압의 역사( 國 民 被 强 制 的 歷 史 ) 였음을 인식해야 한다. 21) 바꿔 말하면 국민국가가 수행한 해방과 억압의 이중적 역할의 구조를 분석할 수 있어야 代 案 的 (alternative) 國 家 모델을 추구해온 동아시아인의 역사적 경험이 제대로 시야에 들어올 것이다. 22) 17) 金 泰 丞, 위의 글, p. 18) 역사비평, 2001년 가을호가 특집으로 한국역사학, 역사교육의 쟁점: 민족중심의 역사냐 포스트모던 역사냐 를 만들 정도이다. 또한 탈근대주의에 비판적인 한국사연구자도 1990년대 이후 한국사상계에서 두드러진 특 징 으로 탈근대주의 논의를 꼽으면서, 그것이 일시적인 유행현상으로 그치지 않고 인문사회과학의 새로운 패 러다임으로서 정착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고 판단한다.(근대의 다양성과 한국적 근대의 생명력, 역사비 평, 2001년 가을호, p.186) 이 현상진단에 동의하진 않지만 어쨌든 그 영향력을 상당수 학자들이 크게 느끼 게 된 것은 분명하다고 하겠다. 19) 중국역사학에 수용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간명한 개관으로는 김수영, 포스트모더니즘과 중국역사학, 한국 사학사학보, 제4호 pp. 153-176. 이 글에 따르면, 포스트모더니즘을 적극 수용한 중국사 연구의 특징으로, 1) 언어에 대한 예민성, 2)직선적 역사관에 대한 정면 도전, 3)기존의 역사관의 이분법적 사고구조---전통과 근 대, 서구와 비서구, 제구주의와 민족해방 등--- 해체의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학문적 성과는 주제의 다양성과 민족국가의 해체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이 글은 미국권의 연구동향, 특히 Modern China 의 논의들의 소개에 중점을 두었지 우리 학계에 관심을 기울인 것이 아니라 아쉽다. 20) 여기서 민두기의 견해를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일찍이 한국의 연구자들이 외국의 역사이론을 흡수하는 데 대해, 외국 학계에서 한계로 생각되는 것을 우리의 한계 로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와 더불어 우 리 학계 차원에서는 얼마나 절실한 限 界 突 破 의 필요를 의식하고 있는가를 생각 해볼 것을 권유했다. 閔 斗 基, 中 國 史 硏 究 의 ' 提 高 '와 ' 普 及 ', 東 洋 史 學 硏 究, 제50집, P.4. 21) 위의 졸저에 실린 [20세기형 동아시아문명과 국민국가를 넘어서], [중국에 아시아 가 있는가?:한국인의 시 각] 참조. 22) 필자가 말하는 이중과제 란 관점에서 국민혁명운동연구에 대한 비판을 다시 볼 수 있다. 종래의 연구가 혁

3. 중국현대사의 재구성과 비판적 동아시아 學 을 위하여 한국의 연구자들이 중국현대사 연구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은,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다양한 어학능력을 바탕으로 한국사 연구의 성과 또는 한국 현실에서 부닥치면서 얻게 되는 문제의 식을 갖고 실증작업을 수행하는 것이다. 한국인 연구자에게 주어진 局 部 優 勢 23) 의 자원을 잘 활용하면 어느 정도의 국제경쟁력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더 나아가 새로운 연구방법 론이나 인식론을 통해 중국사를 재구성하고 서구 중심의 근대성을 극복할 대안적 근대성 (alternative modernity)을 탐구하는 과제에 도전하려면, 좀더 창조적인 발상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발표자의 개인적인---개인적이지만 물론 한국학계의 磁 場 속에서 형성된--- 감상을 덧붙임으로써 전망에 대신하고자 한다. 먼저, 주변에서 본다 ( 從 周 邊 來 看 )는 지금으로서는 동아시아에서 본다 ( 從 東 亞 來 看 )로 바꿔 이해하고 싶다. 20세기에 익숙했던 개별 국민국가(내지 그들간의 관계)를 단위로 한 발상이 아니라, 동아시아 圈 域 을 하나의 분석 단위로 삼고 그것을 구성하는 다양한 주체가 서로 경 쟁하고 타협하면서 서로 연결되는 動 態 的 과정을 파악하려는 문제의식이 중시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우리가 해온 중국 현대사 연구 작업에 새로운 이름을 붙인 데 불과할지도 모른다. (비유를 들면, 比 較 地 域 硏 究 란 말을 들으면 연구 대상이 두 개 이상의 지역임을 쉽게 떠올릴 수 있지만, 동아시아의 학자가 동아시아의 다른 한 사회를 歐 美 의 이론이나 방법론을 빌려 연구한다면, 그가 한 지역을 연구하더라도 이미 세 개 대상을 비교하고 있는 것, 즉 이미 비교지역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새로운 이름을 요구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중국현대사의 재구성 작업을 좀더 目 的 意 識 的 으로 遂 行 하는 省 察 的 主 體 로 거듭나도록, 또 이렇게 自 覺 한 연구자들끼리 (때로는 國 境 을 넘어) 連 帶 하도록 이끌어 준다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제도로서의 역사학을 넘어서 새로운 학문의 성 격도 창조적으로 구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요즈음 역사학의 위기 란 말이 이곳저곳에서 들 린다. 사실 동아시아에서 근대적인 역사학을 수용할 때는 愛 國 主 義 를 위해, 즉 국민국가를 이념적으로 정당화하는 데 도움이 줄 것으로 기대해서였고, 따라서 역사학이 그런 역할을 수행할 때는 돋보였지만, 국민국가의 역할이 약화되는 요즈음 역사학의 위기 또한 자연스러 운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일본의 역사교과서 개편을 둘러싸고 동아시아에서 논란이 발생하 듯이 아직 국민국가와 역사학의 친화성이 존재하지만, 이전처럼 강한 연결이 아닌 것 또한 분명하다. 따라서 自 國 史 와 동아시아사의 和 諧 를 가능케 할 21세기의 새로운 학문체계를 전 망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그것이 어떤 이름을 갖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명사의 한계를 극복한다 는 명제 아래 실패한 역사들을 공산당의 역사와 동등한 위치 혹은 우위에 둔 나머지 혁명과 공산당은 자연스럽게 중국현대사에서 부차적인 변수나 불필요한 요소로 치환될 수밖에 없 었다는 비 판이 있다.( 金 希 敎, p.156) 그런데 그가 국공 양당의 이분법에서 공산당에 무게를 두다보니 국민혁명연구가 사회변혁에 대한 구조적 인식을 위해 힘쓴 부분을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 중국 현대사학계의 주류 는 매우 다양한 양상을 보이면서도 국민혁명 연구, 약간 시야를 확장시킨다면 근대 국민국가의 건설과정에 대 한 해명에 집중되었다 는 비판은 그간의 연구가 국민국가에의 적응에 집중했다는 지적으로 귀기울일 만하지 만, 역사적 전망이 1949년에 정지되어 버린 형태의 논의 라고 한 것은( 金 泰 丞, p.317) 적절한 것 같지 않다. 왜나면 종래의 국민혁명운동 연구가 처음부터 國 共 兩 黨 의 이분법을 넘어서고 민중운동의 자율성에 주목함으 로써 1949년 너머를 전망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23) 이 용어는 陳 弱 水, 傳 統 中 國 史 硏 究 與 臺 灣 史 的 未 來, 當 代, 111 期, 1995.7에서 빌려왔다. 타이완의 제한된 상 황을 활용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그것이 동아시아인이 학문제도의 안팎에서 형성한 역사적 경험 속에 전해 내려온 과거 요소 들을 創 發 的 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구체화될 것은 분명하다. 여기서 마지막으로 한국인 연구자들이 수행하는 한국근대사 연구의 새로운 동향에 대해 잠 시 언급하고자 한다. 한국에서도 20세기 초 근대적 역사학이 수용된 것은 제국주의열강의 침략 위기에 직면하여 국민국가 건설에 이바지 할 이념적 기반을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전 통적 왕조 중심의 역사서술에서 벗어나 민족을 주체로 한 國 家 史 가 제창되었다. 민족을 버리면 역사가 없을지며 역사를 버리면 그 민족의 그 국가에 대한 관념이 크지 않을지니 오 호라 역사가의 책임이 막중할진저 라고 한 한국 역사학의 개척자 申 采 浩 의 발언은 그 점을 아주 잘 말해준다. 그러한 지향은 일제 식민지를 벗어나서도 분단체제에 처하고 있어 아직 도 온전한 국민국가를 달성하지 못한 한민족에게는 여전히 강한 호소력을 가지고 있다. 그 러나 21세기로 들어선 요즈음 그러한 경향에 대한 반성도 한쪽에서 제기되고 있어 주목된 다. 그 예는 일본 우익의 역사 교과서 검인정 통과와 채택에 대한 대응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전의 주기적으로 발생한 역사교과서 파동과 달리 이번 파동에서 한국사학계 소장학자 일 부는 우리 역사교과서의 내용에 대해서도 반성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민족과 국가 중 심의 역사서술을 폐기하자 는 주장까지 나타나 학계의 논쟁거리가 된 형편이다. 이런 현상 의 배후에는 여러 요인이 얽혀 있지만, 학술적 요인으로는 탈민족주의(post-nationalism)를 강조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이 아주 중요하다. 이런 탈민족주의적 입장에서는 일본의 민족주의는 가해자니까 해롭고 우리의 민족주의는 주변의(또는 피해자의) 민족주의이니까 일정한 역사적 의의가 있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질 리 없고, 한일 모두 민족과 국가의 틀을 벗어나는 길만이 문제해결의 방법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주장이 주류는 아니다. 아직도 민족중심의 역사이해가 한국사를 왜곡으로 이끌 었다는 지적은 부당하다. 민족중심의 사관과 역사서술은 우리가 완성하고 이루러내야 할 과 제이다. 는 관점이 강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한국사학계가 지금까지 민족과 계 급의 틀에 집착하여 인간 삶의 다양성, 민중의 多 重 的 정체성(identity)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은 사실이며 이 점은 극복되어야 한다. 는 발언에서 엿볼 수 있듯이, 21세기 한국사학이 20세기 역사학의 유산을 그대로 계승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은 일반화되어 있는 것 같다. 그 방법과 정도에서 차이가 날 뿐이다. 앞으로의 한국사학계 주류의 향방은 열린 민족주의사 관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바꿔 말하면 그동안 민족주의사관이 이룩한 이론적 성취인 內 在 的 發 展 論 에 기반하면서 그 안에 담긴 근대주의적 시각이나 一 國 史 적 시각을 지양하는 이론 작업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하겠다. 이러한 새로운 추세 속에서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국사 동양사 서양사란 3 科 體 系 에 대한 비판이다. 식민지지배 시대에 제도화된 역사학과 역사교육의 영향인 이 체계가 국사 위주이 자 국민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역사인식임은 잘 알려진 대로인데, 3과가 통합된 역사교과 서의 필요성이 이제는 필요하다는 소리가 나타나고 있다. 새로운 학문체계가 필요한 변동의 時 點 에 도달한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위에서 제기한 자국사와 동아시아사의 和 諧 를 가능케 할 21세기의 새로운 학문체계 에 대한 요구와도 통하는 것이다. 필자는 그 새로운 방향이 冷 戦 時 期 미국에서 주도해온 지역학(Area Studies)이나 탈민족주의적 경향 이 강한 문화학(Cultural Studies) 모델 24) 의 또다른 수용이 아니라, 동아시아를 일상적 생활 24) 지역학이 문화적 나르씨즘의 최악의 형태라고 비판하면서 대안적 근대성alternative modernities에 대한 혐 오감을 보이는 동시에 문화론은 미국학의 재생산이고 나쁘게 말하면 비정한 현재지상주의(presentism)이자

의 터전(place)으로 삼는 주체적 인간들의 요구에 기반한 비판적 지역연구 이기를 기대한 다. 노골적인 자아도취(narcism of small difference)라고 혹평하는 커밍스와 하루투니안의 발언 참조. 브루스 커 밍스, 해리 하루투니안, 미국 아시아학의 비판적 검토, 역사비평, 2001년 봄호.

中 國 現 代 史 的 重 構 與 東 亞 視 角 : 韓 國 人 的 觀 點 白 永 瑞 ( 韓 國, 延 世 大 學 ) 1. 什 麽 是 周 邊 的 視 角? 對 於 韓 國 的 中 國 現 代 史 硏 究 這 麽 一 個 大 題 目 如 何 說 起, 確 實 是 一 件 非 常 棘 手 的 事 情 如 果 要 對 韓 國 學 術 界 的 硏 究 動 向 作 以 槪 括 性 介 紹 的 話, 應 該 提 供 一 個 時 期 內 韓 國 學 者 發 表 的 硏 究 成 果 目 錄, 並 按 照 主 題 或 時 期 分 別 加 以 槪 括 反 思 和 展 望 這 種 工 作 也 許 對 增 進 大 家 對 於 韓 國 學 術 界 的 了 解 有 所 幫 助, 但 是 我 覺 得 這 對 於 我 們 這 次 共 同 硏 究 項 目 所 追 求 的 目 標, 卽 對 於 硏 究 ( 認 識 ) 方 法 論 的 陶 冶 不 會 有 太 大 的 幫 助 所 以, 充 分 考 慮 到 主 辦 方 的 宗 旨, 準 備 了 這 次 的 發 言 稿 那 麽, 首 先 讓 我 來 探 討 一 下 我 們 的 硏 究 主 題, 卽 所 謂 周 邊 的 ( 邊 緣 的 ) 視 角 指 的 是 什 麽 雖 然 我 是 在 讀 了 這 次 會 議 的 旨 趣 書 之 後, 對 其 基 本 宗 旨 表 示 贊 同, 才 參 加 這 次 聚 會 的, 但 是 我 還 是 想 就 旨 趣 書 的 內 容 提 出 幾 個 問 題 供 大 家 討 論 首 先, 旨 趣 書 上 所 說 的 周 邊 是 指 非 - 中 國 ( 在 歷 史 上 是 指 中 華 文 明 圈, 而 現 在 指 的 是 中 國 大 陸 ), 具 體 說 來 好 像 是 指 日 本 韓 國 ( 南 韓 ) 臺 灣 和 香 港 ( 也 許 將 來 還 可 能 包 括 越 南 北 韓 蒙 古 等 ) 這 樣 就 産 生 了 一 個 疑 問, 爲 什 麽 我 們 要 用 非 中 國 的, 卽 周 邊 的 視 角 來 看 中 國 呢? 旨 趣 書 中 說 是 要 以 相 對 的 眼 光 的 看 待 中 國 我 並 不 是 不 理 解 這 句 話 的 意 思 而 是 認 爲, 如 果 不 首 先 表 明 我 們 的 立 場 觀 點 的 話, 容 易 讓 人 聯 想 到 最 近 流 行 的 中 國 威 脅 論, 懷 疑 我 們 是 否 在 內 心 深 處 與 之 有 相 通 之 處 第 二 個 問 題 是, 中 國 眞 的 就 是 中 心, 而 其 他 地 區 就 是 邊 緣 嗎? 實 際 上, 從 現 在 的 情 況 來 看 好 像 日 本 ( 作 爲 美 國 下 面 的 一 個 合 作 夥 伴 ) 在 這 一 地 區 掌 握 著 霸 權, 是 這 一 地 區 的 中 心, 而 韓 國 好 像 處 在 半 邊 緣 的 地 位 如 果 我 們 現 在 就 把 日 本 看 作 中 國 的 邊 緣 的 話, 也 許 是 仍 然 深 深 感 受 到 中 華 文 明 圈 的 歷 史 壓 力, 或 者 是 在 潛 意 思 里 聯 想 到 中 國 潛 在 的 强 大 前 景 第 三 個 問 題 是 周 邊 是 否 是 基 于 以 一 些 國 家 爲 中 心 的 思 考 方 式 雖 然 包 括 了 香 港 ( 還 有 臺 灣 這 樣 是 否 可 以 作 爲 一 個 正 常 國 家 還 有 爭 議 的 地 區 在 內 ), 但 大 體 上 是 以 國 家 爲 單 位 來 看 的 但 是 我 們 所 說 的 周 邊, 雖 然 可 以 指 某 個 國 家, 但 是 也 可 以 指 各 個 國 家 內 部 的 地 域 ( 或 地 方 ), 以 及 少 數 民 族 或 下 層 民 衆 集 團 等, 所 以 也 可 以 是 一 種 跨 國 的 存 在 ( 如 diaspora 或 NGO 等 ) 要 想 準 確 的 回 答 上 面 所 提 出 來 的 幾 個 問 題, 我 們 必 須 首 先 討 論 一 下 所 謂 周 邊 性 到 底 是 一 種 什 麽 意 思 如 果 我 們 所 說 的 周 邊 並 不 僅 僅 意 味 著 在 地 理 位 置 上 位 于 中 國 大 陸 周 邊 的 話, 那 麽 與 本 人 以 前 所 强 調 的 作 爲 知 性 實 驗 的 東 亞 (East Asia in intellectual praxis) 這 一 觀 點 在 本 質 上 也 就 有 了 相 通 之 處 所 以 下 面 簡 單 介 紹 一 下 我 以 前 所 發 表 的 文 章 的 主 要 觀 點 與 一 般 所 探 討 的, 包 括 中 國 在 內 的 東 亞 未 來 所 追 求 的 是 一 個 什 麽 樣 的 ( 從 文 明 方 面 或 地 域 方 面 ) 實 體 這 一 層 次 有 所 不 同, 我 産 生 了 探 討 作 爲 發 現 的 方 便 的 東 亞 的 想 法 作 爲 這 一 硏 究 的 結 果, 我 逐 漸 形 成 的 一 個 槪 念 就 是 作 爲 知 性 實 驗 的 東 亞 也 就 是 說, 我 認 爲 東 亞 並 不 是 某 種 固 定 的 實 體, 而 把 它 看 成 經 常 在 自 己 的 省 察 過 程 中 流 動 的 東 西, 是 基 于 其 思 考 方 式 而 進 行 的 實 踐 我 估 計, 養 成 了 這 樣 習 慣, 會 形 成 考 察 自 我 裡 東 亞 和 東 亞 裡 的 自 我 的 省 察 性 主 體 本 人 所 說 的 東 亞 雖 然 並 不 是 一 個 共 有 純 粹 的 單 一 文 明 ( 或 文 化 ) 的 整 體, 而 是 構 成 東 亞 圈 的 各 種 主 體 旣 相 互 競 爭 妥 協, 又 相 互 聯 係 的 活 動 場 所 這 裡, 處 在 日 本 或 中 國 等 大 國 之 間 往 往 被 忽 視 的, 種 種 作 爲 周 邊 存 在 的 各 民 族 和 地 域 ( 各 國 民 國 家 內 的 少 數 民 族 當 然 也 包 括 在 內 ) 的 作 用 要 特 別 予 以 重 視 從 周 邊 看 中 國 和 日 本 的 視 角 對 於 作 爲 知 性 實 驗 的 東 亞 也 是 十 分 重 要 的 而 且, 卽 使 我 們 强 調 周 邊, 但 是 也 不 能 將 其 特 權 化 處 在 中 心 的 個 人 或 集 團 也 可 以 從 周 邊 的

立 場 來 思 考 問 題, 處 在 周 邊 的 個 人 或 集 團 也 可 以 從 中 心 的 立 場 來 思 考 問 題 因 此, 我 所 說 的 周 邊 並 不 是 作 爲 名 詞, 而 是 作 爲 形 容 詞 來 使 用 的 2. 韓 國 人 是 否 注 定 要 持 周 邊 的 視 角? ---- 中 國 現 代 史 硏 究 的 幾 個 特 點 從 地 理 上 說, 居 住 在 非 中 國 也 非 日 本 的 韓 半 島, 硏 究 中 國 現 代 史 的 韓 國 人 是 否 就 自 然 而 然 地 持 一 種 邊 緣 的 視 角 呢? 當 然 我 的 回 答 是 不 作 爲 韓 國 人, 對 於 20 世 紀 韓 國 人 歷 史 經 驗 的 獨 特 性 尙 缺 乏 充 分 的 認 識, 所 以 還 不 會 命 中 注 定 地 採 取 周 邊 的 認 識 立 場 雖 然 如 此, 衆 所 周 知, 人 們 或 多 或 少 都 要 受 到 自 己 所 處 的 歷 史 環 境 的 影 響, 韓 國 人 似 乎 充 分 具 有 採 取 周 邊 的 ( 甚 至 半 周 邊 的 ) 視 角 的 事 實 條 件 但 是 這 種 不 幸 也 許 反 而 有 助 於 我 們 更 好 地 批 判 壓 迫 的 20 世 紀, 創 造 性 的 展 望 解 放 的 21 世 紀, 這 也 可 以 說 是 不 幸 轉 化 爲 萬 幸 ( 在 這 點 上, 我 認 爲 臺 灣 也 具 有 同 樣 的 條 件 ) 那 麽, 這 期 間 韓 國 的 中 國 現 代 史 硏 究 究 竟 在 多 大 程 度 上 將 這 種 不 幸 轉 化 爲 萬 幸 了 呢? 韓 國 的 硏 究 者 對 於 這 一 課 題 提 出 了 確 立 韓 國 硏 究 者 的 認 同 性 和 獨 特 的 中 國 近 代 史 認 識 架 構 的 目 標 下 面 我 們 要 檢 討 一 下 在 實 際 的 硏 究 成 果 中 是 如 何 反 映 這 一 目 標 要 求 的 首 先, 引 人 注 目 的 硏 究 動 向 是 追 溯 了 韓 國 人 中 國 認 識 的 歷 史 譜 系 主 要 是 通 過 分 析 20 世 紀 韓 國 人 留 下 的 ( 主 要 是 以 韓 文 書 寫 的 ) 史 料, 來 再 現 當 時 韓 國 人 所 認 識 的 中 國 現 實 這 種 工 作 對 韓 國 人 來 說 也 許 是 比 較 適 合 的, 最 近 不 斷 有 這 方 面 的 成 果 出 現 當 然 這 種 工 作 不 僅 不 是 只 有 韓 國 人 才 能 做 的, 而 且 很 容 易 停 留 在 單 純 積 累 有 關 中 國 的 事 實 ( 知 識 ) 的 層 次 上 所 以 是 否 可 以 突 破 史 料 主 義 的 局 限, 達 到 探 索 認 識 中 國 的 方 法 論 的 層 次, 還 是 有 疑 問 的 其 次, 韓 國 的 中 國 現 代 史 硏 究 眞 正 展 開 是 從 20 世 紀 80 年 代 開 始 的, 大 多 與 共 産 黨 或 國 民 黨 這 些 20 世 紀 中 國 的 政 治 中 心 保 持 一 定 的 距 離, 以 第 三 者 的 立 場 ( 擺 脫 以 黨 史 爲 中 心 的 視 角 ) 來 進 行 硏 究 因 此 關 於 1910-1920 年 代 出 現 了 一 批 實 證 的 硏 究 成 果 以 此 爲 基 礎, 時 期 不 斷 向 下 推 移, 現 在 已 經 開 始 突 破 1949 年 的 界 限 對 於 各 種 社 會 勢 力, 如 學 生 婦 女 商 人 農 民 工 人, 以 及 各 地 域, 如 上 海 北 京 湖 北 湖 南 河 南 廣 東 滿 洲 ( 或 東 北 ) 台 灣 等 地, 都 作 了 政 治 史 或 社 會 史 的 硏 究 有 關 硏 究 成 果 不 僅 數 量 不 斷 增 加, 而 且 從 質 的 方 面 來 說, 也 是 不 斷 向 硏 究 方 法 的 多 樣 化, 硏 究 水 平 的 國 際 化 等 方 面 發 展, 也 有 一 些 成 果 受 到 了 中 國 和 日 本 等 國 學 術 界 的 重 視 雖 然 取 得 一 定 的 成 就, 但 是 還 很 難 說 在 多 大 程 度 上 已 經 確 立 了 獨 自 的 視 角, 甚 至 有 人 對 此 提 出 過 激 烈 的 批 評 批 評 者 認 爲 韓 國 學 者 照 搬 日 本 或 美 國 學 者 的 歷 史 解 釋 方 式, 是 缺 乏 主 體 性 的 硏 究, 甚 至 出 現 了 作 爲 引 用 的 中 國 近 代 史 硏 究 這 種 極 端 的 說 法 用 一 句 我 們 今 天 的 話 來 說, 他 指 出 了 韓 國 人 在 內 心 深 處 存 在 著 中 心 這 雖 然 只 是 停 留 在 現 象 觀 察 層 面 上 的, 多 少 有 點 誇 大 其 詞 的 過 分 批 評, 但 不 管 怎 麽 說, 産 生 這 種 批 評 意 見 的 主 要 的 原 因, 還 是 韓 國 學 者 所 撰 寫 的 學 術 論 文 對 表 達 自 己 的 歷 史 觀 採 取 禁 欲 主 義 的 態 度, 造 成 了 迴 避 論 爭 的 學 術 風 氣 有 人 認 爲 這 種 風 氣 是 受 已 故 閔 斗 基 敎 授 影 響 下 的 所 謂 主 流 ---- 聯 係 今 天 的 主 題, 也 可 以 叫 做 中 心 ---- 學 者 們 所 主 導 的, 是 重 視 客 觀 的 實 證 硏 究 的 結 果, 但 是 也 實 際 上 産 生 於 受 自 由 主 義 理 論 影 響 的 意 識 形 態 偏 見 對 於 這 種 批 評 當 然 還 有 進 一 步 檢 討 的 必 要, 但 是 我 隻 想 通 過 這 一 主 張 來 說 明, 在 韓 國 學 術 界 之 內 也 存 在 著 中 心 和 周 邊 的 位 階 結 構, 並 且 已 經 被 引 入 公 開 討 論 的 範 圍 最 後, 我 要 說 的 是, 最 近 韓 國 正 在 積 極 探 索 中 國 現 代 史 硏 究 的 新 方 向 上 面 所 提 到 的 批 評 文 章 的 出 現 本 身 也 是 這 種 新 趨 勢 的 一 種 表 現 雖 然 還 沒 有 達 到 進 行 史 學 史 整 理 的 層 次, 但 是 已 經 開 始 討 論 硏 究 者 的 方 法 論 歷 史 認 識 本 身, 這 些 事 實 也 足 以 引 人 注 目 其 中 之 一 是 圍 繞 著 是 否 應 該 接 受

後 現 代 主 義 ( 也 可 以 說 是 這 次 項 目 主 題 所 揭 示 的 周 邊 的 視 角 開 始 流 行 的 演 源 ) 的 問 題 所 展 開 的 爭 論 主 張 積 極 引 進 後 現 代 主 義 理 論 的 一 位 硏 究 者 認 爲 後 現 代 主 義 的 問 題 意 識 已 經 逐 漸 普 遍 化, 但 是 要 說 後 現 代 主 義 已 經 左 右 韓 國 的 中 國 現 代 史 硏 究 者, 乃 至 東 洋 史 學 界 的 思 維 方 式, 那 也 是 有 點 誇 大 其 詞 但 在 東 洋 史 學 界 之 外, 不 僅 更 關 心 後 現 代 主 義, 後 現 代 主 義 的 社 會 現 象 在 某 種 程 度 上 也 確 已 存 在, 上 面 所 提 到 的 極 端 說 法 在 某 種 程 度 上 也 反 映 了 現 在 韓 國 的 社 會 現 實 在 接 受 這 種 理 論 之 時, 正 如 歐 美 的 中 國 現 代 史 硏 究 者 們 所 表 現 出 來 的, 從 來 不 受 重 視 的 所 謂 邊 緣 的 主 題 ---- 少 數 民 族 婦 女 環 境 移 民 集 團 下 層 民 衆 集 團 (subaltern) 等 ---- 都 受 到 重 視, 硏 究 的 主 題 更 加 多 樣 化, 在 解 構 國 民 國 家 方 面 已 經 取 得 了 一 定 的 成 果 但 是 這 也 可 以 說 是 一 個 引 用 的 例 子, 如 果 不 想 停 留 在 模 仿 西 方 理 論 的 層 次 上, 至 少 應 該 首 先 淸 楚 地 認 識 到 以 前 中 國 現 代 史 硏 究 者 所 依 據 的 方 法 理 論 具 有 什 麽 樣 的 局 限 性, 確 定 在 實 際 硏 究 工 作 中 是 否 眞 的 需 要 引 入 新 的 方 法 理 論 進 而, 還 應 該 考 慮 到 後 現 代 主 義 的 近 代 否 定 論 是 否 容 易 爲 東 亞 人 ( 乃 至 整 個 非 西 歐 人 ) 所 接 受 這 一 事 實 在 東 亞 的 部 分 地 區 至 今 仍 處 在 持 續 的 近 代 化 過 程 之 中 亞 洲 的 後 現 代 主 義 學 者 無 視 這 些 地 區 對 近 代 化 的 熱 切 期 望, 也 說 明 後 現 代 主 義 仍 然 是 一 種 以 西 方 爲 中 心 的 理 論 當 然, 我 也 不 是 要 主 張 重 新 回 到 近 代 主 義 我 認 爲 東 亞 有 必 要 展 開 適 應 現 代 性 和 克 服 現 代 性 的 雙 重 課 題 這 是 我 所 要 强 調 的 復 合 的 思 考 方 式 擧 一 個 具 體 的 例 子 來 說, 從 國 民 國 家 的 形 成 這 一 視 角 來 說, 在 硏 究 20 世 紀 東 亞 歷 史 的 時 候, 我 們 應 該 同 時 注 意 到 這 旣 是 國 民 的 歷 史, 也 是 國 民 被 强 制 的 歷 史 換 句 話 說, 也 就 是 要 分 析 國 民 國 家 所 具 有 的 解 放 和 壓 制 的 雙 重 作 用, 只 有 這 樣 才 能 全 面 認 識 一 直 致 力 於 探 索 替 代 的 (alternative) 國 民 國 家 的 東 亞 人 的 歷 史 經 驗 3. 爲 了 中 國 現 代 史 的 重 構 韓 國 學 者 所 能 貢 獻 於 中 國 現 代 史 硏 究 的, 正 如 至 今 爲 止 所 表 現 出 來 的 那 樣, 是 以 多 樣 的 語 言 能 力 爲 基 礎, 與 韓 國 史 硏 究 的 成 果 以 及 韓 國 現 實 相 適 應 的 問 題 意 識 來 實 證 硏 究 充 分 利 用 韓 國 學 者 所 具 有 的 局 部 優 勢, 一 定 會 具 備 一 定 的 國 際 競 爭 力 但 是 如 果 要 更 進 一 步, 試 圖 以 新 的 方 法 論 或 認 識 論 來 重 構 中 國 史, 克 服 西 歐 中 心 主 義 的 近 代 性, 探 索 替 代 的 近 代 性 (alternative modernit y) 的 話, 還 需 要 有 更 具 創 造 性 的 新 思 考 出 現 對 此, 我 談 一 點 我 個 人 的 ---- 雖 然 是 我 個 人 的, 當 然 也 是 在 韓 國 學 術 界 的 磁 場 內 形 成 的 --- 兩 點 感 想, 作 爲 對 未 來 的 一 點 展 望 首 先, 我 想 從 現 在 開 始, 我 們 應 該 努 力 將 從 周 邊 來 看 換 成 從 東 亞 來 看 應 該 擺 脫 在 20 世 紀 里 已 經 習 以 爲 常 了 的, 以 個 別 國 民 國 家 ( 甚 至 是 它 們 之 間 的 關 係 ) 爲 單 位 的 思 維 方 式, 而 代 之 以 整 個 東 亞 地 域 圈 爲 一 個 分 析 單 位, 將 東 亞 歷 史 作 爲 構 成 這 一 地 域 圈 的 各 種 主 體 旣 互 相 競 爭 妥 協, 又 互 相 聯 係 的 動 態 過 程 我 們 應 該 重 視 這 樣 的 問 題 意 識 但 是 這 在 某 種 意 義 上 是 否 只 是 對 以 往 的 中 國 現 代 史 硏 究 工 作 加 個 新 名 詞, 都 是 我 們 値 得 去 考 慮 的 問 題 擧 例 而 言, 一 聽 比 較 地 域 硏 究 這 一 術 語, 就 想 起 來 其 硏 究 對 象 包 括 兩 個 以 上 的 地 域, 然 而 東 亞 的 學 者 借 鑑 與 東 亞 社 會 不 同 的 歐 美 的 理 論 或 方 法 來 進 行 硏 究 東 亞 的 另 外 一 個 社 會, 實 際 上 他 已 經 是 在 拿 三 個 對 象 在 進 行 比 較 盡 管 如 此, 我 們 之 所 以 需 要 新 名 詞, 也 說 明 我 們 還 要 作 爲 更 具 目 的 意 識 的 省 察 主 體, 重 新 ( 或 更 新 ) 進 行 中 國 現 代 史 的 重 構 工 作 而 且 我 希 望 具 有 這 種 自 覺 的 硏 究 者 們 ( 有 時 已 經 超 越 了 國 界 ) 將 來 能 互 相 聯 合 起 來 其 次, 在 向 這 個 方 向 前 進 的 過 程 中, 我 們 或 許 可 以 超 越 作 爲 制 度 ( 學 術 建 制 ) 的 歷 史 學, 更 具 創 造 性 地 構 想 新 的 學 術 特 性 最 近 我 們 在 各 地 都 時 常 可 以 聽 到 史 學 危 機 這 種 說 法 實 際 上 東 亞 接 受 近 代 歷 史 學 的 是 出 於 愛 國 主 義, 卽 期 望 有 助 於 在 理 論 上 確 立 國 民 國 家 的 正 當 性 因 此, 歷 史 學 在 擔 負 這 一 作 用 的 過 程 中 雖 然 倍 受 推 崇, 在 國 民 國 家 的 作 用 日 益 削 弱 的 今 天, 歷 史 學 的 危 機 也 許

是 不 可 避 免 的 事 情 當 然, 正 如 日 本 的 歷 史 敎 科 書 改 編 在 東 亞 引 起 很 大 爭 議 所 表 現 出 來 的 那 樣, 國 民 國 家 和 歷 史 學 之 間 的 親 和 性 現 在 依 然 存 在, 但 是 好 像 還 是 已 經 不 如 以 前 那 樣 聯 係 緊 密 了 因 此, 預 計 在 21 世 紀 本 國 史 和 東 亞 史 的 和 諧 將 成 爲 可 能, 從 而 展 望 新 的 學 術 體 系, 絶 不 是 一 件 毫 無 疑 義 的 事 情 這 種 新 的 學 術 體 系 將 來 會 取 一 個 什 麽 樣 的 名 字, 現 在 還 不 得 而 知 但 是 可 以 預 見 的 是, 它 必 將 是 在 對 東 亞 人 歷 史 經 驗 里 所 傳 承 下 來 的 旣 成 要 素 進 行 創 造 性 重 構 的 過 程 中, 日 益 具 體 地 呈 現 出 來 (* 本 發 言 稿 所 提 到 的 論 著 目 錄, 待 以 後 正 式 發 表 時 再 詳 細 提 出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