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tting Intangible Heritage in its place(s): proposals for policy and practice 네드 카우프만(Ned Kaufman)
무형유산 제자리 찾기: 정책 및 관행에 대한 제안 네드 카우프만(Ned Kaufman) 뉴욕 카우프만유산보존(Kaufman Heritage Conservation) 대표 미국 NYC 프랫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 문화재학과 겸임교수 개론 무형유산과 유형유산 사이에 존재하는 유감스런 간극은 이제 해소돼야 한다. 유형의 장소가 중요한 이유는 대개의 경우 그곳에 존재하는 무형 의 가치 때문이며, 무형유산은 대부분 특정 장소에 뿌리를 두고 있어 장소가 사라지면 존속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유네스코의 무형문화유산 보호협약은 이런 장소의 중요성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국가 및 지역사회 차원의 보존 정책도 장소에 내재된 무형의 가치를 보호하는 데 효과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다. 특정 장소에 내재된 무형의 가치 보 호를 위한 정책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 정책을 개발하려면 문 화유산 전문가들이 관광에 적합한 문화유산에만 관심을 기울이지 말 고 평범한 일상적 장소로 눈을 돌려야 한다. 이런 장소에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부여하는 요소는 사람과 장소 사이에 형성되는 심리적 유대다. 문화유산 전문가들이 이런 유대를 찾 아내는 통찰력을 가지려면 사람들의 관습, 사연, 기억에 담긴 이야기에 주목해야 한다. 문화유산 분야 관계자들은 인류학, 사회학, 지리학, 환 경생태 연구의 조사 기법을 응용해 사람과 장소의 관계를 분석하고, 그 런 관계의 주관적 측면을 정형화해 효과적인 정책의 토대로 삼을 수 있 다. 이렇게 만들어진 정책을 실행하려면 조직력이 필요하며, 한 조직에서 유형유산과 무형유산을 함께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 조직은 무 형유산의 가치에 열린 자세를 갖고 있어야 할 뿐 아니라 무형유산을 규 정함에 있어 민주적인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핵심어 무형유산, 이야기경관(storyscape), 도시 민속, 국가사적지, 미국, 캐나 다, 멕시코,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부에노스아이레스, 보고타, 뉴욕, 제3의 장소, 가치 위주의 보존, 전통 문화 자산, 장소애착도, 장소관계 (place-relationships), 장소 및 유산 보존 전문가, 심상지도, 절차 민주주 의, 유네스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20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보호협약은 세계유산협약이라고 불리는 1972년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협약에 명시된 개념을 보완하는 동 시에 도전과제를 제시한다. 1972년 협약은 문화유산을 기념물, 건물군, 유적지로 정의했지만 새 협약은 이를 구전 전통, 공연, 사회적 관습, 의 례, 축제, 자연과 우주에 관한 지식과 풍습, 전통 기술 등으로 확장했다. 유산에 대한 두 협약의 정의에 이런 간극이 생기자 문화유산 분야 관 계자들은 안전하게 둘 중 한 쪽을 택하고 있다. 그러나 논리와 경험으 로 미루어 볼 때, 이런 분열된 접근방식을 택할 경우 중요한 유산의 가 치가 사라질 수 있는 사각지대가 생긴다. 각 협약 관계자들은 이 중간 영역의 일부를 포함시키려 소극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을 뿐이다. 좀 더 포괄적인 방법으로 이 간극을 메울 필요가 있다. 무형유산의 존속에 필 수적인 유형의 장소를 외면한 채 보호가 가능할까? 기념물과 유적지는 무형의 가치를 배제한 채 보호될 수 있을까? 시기에 좋다. 위스키 애호가들은 위스키의 진정한 맛을 음미하고 싶을 때 절대 희석하지 않는다. 좋은 위스키에 다른 맛을 가미해서는 안 된 다. 그러나 보드카는 다르다. 러시아인들은 고수, 레몬, 블루베리, 크랜 베리, 고추, 꿀, 마늘, 생강, 살구 등을 이용해 보드카에 맛을 더하는 경 우가 많다. 그 결과 보드카 고유의 특성에 기타 재료의 특성이 절묘하 게 스며든 음료가 탄생한다. 문화유산 보존작업이 추구해야 하는 바 도 보드카 마시는 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장소의 물리적 본질과 그 무 형 가치의 혼합이 필요하다. 순수성을 지향하는 위스키 애호가가 아니 라 다양한 맛을 섞는 보드카 애호가의 본을 받아, 유형유산과 무형유 산, 기념비적 유산과 일상적 유산, 영구적 유산과 일시적 유산을 혼합 해야 한다. 다음은 더 결정적인 두 번째 지침이다. 이 글에서 저자는 두 협약의 접근법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을 들여다 보려 한다. 저자 역시 건물 유적지 기념물 영역에서 일해온 터라, 국 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활동을 출발점으로 삼을 것이다. 세계 유산협약과 달리 무형유산협약은 ICOMOS에 특별한 책임을 부여하지 않았지만 ICOMOS 멤버들에게 무형유산 및 무형의 가치를 함께 다뤄 야 한다는 압력으로 다가왔고, 2005년 국제무형문화유산위원회 출범 의 계기로 작용했다. 하지만 이미 그 전부터 (비록 본연의 목적은 기념 물과 유적지라 명시되어 있을지 몰라도) ICOMOS 활동에서 무형유산의 비중은 커지고 있었다. 1 무형의 가치에 초점을 맞춘 문화경관과 역사적 도시경관은 오래 전부터 ICOMOS 활동 영역에 포함되어 있었다. 더욱 이 세계유산 목록의 등재 기준 6항에는 특정 사건이나 살아있는 전통, 사상이나 신념, 예술 또는 문학 작품과 관련된 장소(즉, 무형의 가치와 결부된 장소)라고 명시되어 있으며, 세계유산협약에 따라 ICOMOS가 후보들을 평가한다. ICOMOS는 1998년 무형유산 전문 심포지엄을 조 직하기로 결정하면서 무형유산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그리하 여 2003년 장소-기억-의미: 기념물과 유적지에 담긴 무형의 가치 보 호 란 주제로 첫 심포지엄이 열렸고, 2008년 장소에 담긴 정신의 발견 에 초점을 맞춘 두 번째 심포지엄이 열렸다. ICOMOS와 그 관계자들이 무형유산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에 관해 여전히 의문이 많이 남아 있 지만, ICOMOS의 이제까지 발자취로 미루어볼 때 건물 유적지 장소 의 정수는 무형의 가치이며 따라서 ICOMOS의 임무의 정수라는 인식 이 계속해서 강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형과 무 형에 대한 고찰을 진행하려 한다. 몇 가지 지침과 정의 먼저 이 여행의 선전 표어 또는 이정표를 몇 가지 제안하고 싶다. 첫 번째는 음식에 빗댄 비유를 포함한다. 음식은 문화유산의 무궁무진한 원천인 만큼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당장 기준을 낮추자! 어머니들이 자녀에게 높은 기대치를 갖는 것처럼 기준을 높게 설 정하기 쉽다. 하지만 타당하지 않은 기준을 세워놓고 여기에 집착하면 목표 달성에 장애가 된다. 무형유산이 그 좋은 예다. 오페라 공연은 이 탈리아어로 하든, 중국어로 하든 분명히 등급을 매겨 완성도를 평가할 수 있지만 특정 장소, 전통, 기억에 해당 지역사회가 품고 있는 애착 에 어떻게 등급을 매기겠는가? 무형의 가치는 우수한(excellent) 이나 가장 중요한(most important) 등의 범주로 분류할 수 없다. 딱딱한 상 자에 구겨 넣듯 억지로 끼워 맞추려다가는 편협하고 과도하게 비판적 인 시각을 갖게 된다. 물론 높은 기준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문화유산 을 다루는 이들의 정직성과 근면성을 평가할 때는 그래야 한다. 하지 만 무형유산의 가치를 판단하는 잣대로는 부적절하다. 그런 일에 높은 기준을 들이대면 정작 포함시켜야 할 것을 제외하고 섞어야 할 때 분 리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이제 높은 기준 대신 높은 관련성이나 높 은 유용성을 추구하자. 낮은 기준과 보드카가 전문 분야의 방향 제시 수단으로 부적절해 보일 수 있으나, 저자는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유용한 구호를 하나 더 제안하고 싶다. 영어의 intangible heritage(무형유산) 는 스페인어로 patrimonio intangible 이지만 patrimonio inmaterial 로 쓰기도 한다. 영어 로는 non-material heritage(비물질적 유산) 가 된다. 두 표현의 차이는 미 묘하다. 무형 이란 표현은 만질 수 없는 유산임을 강조하지만, 비물질 적 은 유산의 특질을 묘사하는 듯하다. 나에게는 이 표현이 물질과 비 물질의 두 우주가 같은 시간과 공간 안에 공존할 수 있다는 의미로 들 린다.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는 영어 표현을 굳이 바꿀 필요는 없지만, 대안적 용어인 patrimonio inmaterial을 우리의 이정표로 삼는다면 도움 이 될 것이다. 실제로 이 표현은 내가 제시할 두 질문 중 첫 번째와 직 접 연관되어 있다. 나란히 존재하는 두 우주, 즉 문화유산의 유형적 가 치와 무형적 가치는 어떻게 접점에 다다를 수 있을까? 위스키 대신 보드카 저자는 위스키 팬이다. 하지만 무형유산을 논하기 위한 이정표로는 보드카가 더 적합하다. 위스키와 달리 보드카는 다른 음료와 섞어 마 유럽회의(The Council of Europe)가 제안한 문화유산의 정의는 이 문 제와 맞닿아 있다. 유럽회의에 따르면 문화유산은 전승된 일련의 자원 으로, 사람들이 소유 여부와 상관 없이 과거로부터 진화해온 자신들의 제8권 2013 국제저널 무형유산 21
가치, 신념, 지식, 전통이 반영 및 표현됐다고 여겨 동질감을 느끼는 것 이다. 여기에는 오랜 세월에 걸쳐 사람과 장소가 상호작용을 하며 만 들어진 환경의 모든 면이 포함된다. 2 이 정의는 사실 조금이라도 관련 성이 있을 경우 모두 문화유산에 포함시킬 수 있을 만큼 포괄적이다. 유형과 무형의 이분법적 분류라는 문제를 없애주는 장점이 있다. 이런 시각으로 문화유산을 다룬다면 많은 문제가 해소된다. 그러나 늘 그럴 수는 없다. 이 정의의 약점은 실제 적용이 어렵다는 것이다. 날마다 무 수히 많은 결정을 내려야 하는 문화유산 분야 관계자들에게 별반 도움 이 되지 못한다. 이 때문에 각종 정책 및 프로그램에 적용할 수 있는 현 실적인 정의가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대로, 유용한 접근법 중 하나는 유형과 무형의 가치가 특정 장소에서 공존하는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다. 진부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이는 ICOMOS의 강점(유형의 장소에 대한 전문성)으로 무형유 산협약의 약점(무형유산의 보호와 유형의 장소 보호 연계에 실패한 점) 을 보완하는 데 유용한 연결고리를 제공한다. 이런 접근법은 향후 활 동 방향을 제시한다. ICOMOS는 무형유산 보호에 중추적인 역할을 수 행할 수 있다. 유형의 장소를 보호하는 기존 임무에서 굳이 벗어날 필 요 없이, 무형유산의 요람이자 서식지인 장소를 이해하고 보호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면 된다. 이 단순한 접근법의 또 하나의 장점은 요식( 要 式 )체계에 적합하다는 점이다. 여기서 요식 이란 표현은 문화유산 정책을 입안하고 결정하고 이행하는 작업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사용했다. 이런 일을 담당하는 관 료들은 소속 기구의 법률, 지침, 임무에 규정된 권한과 제약을 동시에 부여 받는다. 외부 전문가나 대중은 문화유산 담당 관료들이 무형유산 의 가치 보호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바라지만, 이들은 소속 기관 이 한정한 활동 범위를 먼저 살필 수밖에 없다. 범위가 좁다면 먼저 조 정을 요청해야 한다. 따라서 특정 장소에서 유형과 무형의 가치가 어떻 게 접점을 찾느냐 라는 관념적 문제는 결국 요식체계라는 현실적 문제 로 이어진다. 무형의 가치 보호가 구호로 끝나지 않으려면 법률, 규범, 지침, 조직이 갖춰져야 하는 것이다. 이 글의 나머지 부분도 이러한 맥 락에서 전개될 것이다. 소의 역사적, 문화적 연관성을 잘 보여준다. 특정 장소로 영역을 좁히면 기능적 연관성이 드러난다. 탱고는 바, 카페, 댄스홀 등 밀롱가(milonga, 저녁에 사람들이 모여 탱고를 추는 행사)가 열리는 장소에서 볼 수 있 다. 이런 장소가 없다면 탱고가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문화로서 존속할 수 없기에, 이는 매우 중요한 연관성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탱고 보 호책 중 하나로 탱고를 즐길 수 있는 장소를 홍보하는 2개 도시 공동 프로그램을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 2009년 대표목록에 오른 또 하나의 유산은 공동체 활동인 칸돔베 (Candombe)와 칸돔베가 이루어지는 사회문화적 공간이다. 칸돔베는 특히 몬테비데오의 아프리카계 이민자 후손들과 연관이 깊다. 가장 주 요한 특징은 일요일이나 공휴일에 고수들이 구시가지(특히 수르, 팔레 르모, 코르돈 노르테)를 돌며 선보이는 북 연주(llamadas de tambores de candombe)다. 칸돔베도 도시뿐만 아니라 특정 동네와 문화적으로 연관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탱고처럼 특정 장소(전통적인 출발점과 행진 경로 등)와 기능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몬테비데오의 한 건축가는 거리 자체가 시각적 특성이 아닌 음향 공진을 통해 칸돔베의 일부가 된 다고 설명했다. 4 안타깝게도 칸돔베를 보호하려는 우루과이정부의 노 력은 칸돔베가 이루어지는 역사적 장소에까지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세 번째 등재 유산은 멕시코 톨리만(Tolimán) 오토미-치치메카 (Otomí-Chichimeca) 부족의 살아 있는 전통과 기억의 장소들 이라 명 명된 곳이다. 바로 신성한 땅의 수호자 페냐 데 베르날(Peña de Bernal) 이다. 오토미와 치치메카는 남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으로, 에스파냐에 끝까지 저항하며 고유의 문화적 특성을 지켜냈다(물론 극심한 빈곤도 따라왔다). 음식, 사회관습, 공동체 조직 패턴 등에서 무형유산이 다양 하게 발견되지만 260군데 예배당과 같은 유형유산도 있다. 각 예배당 무형유산과 장소의 연결: 적용 사례 장소에 대한 몰이해에도 불구하고 유네스코 무형유산협약은 이 문 제에 대한 몇 가지 실증적 해답을 이끌어냈다. 이 협약 이전에 진행된 세계걸작 프로그램에서 첫 번째로 목록에 등재된 유산 중 하나는 세계 적으로 유명한 모로코 마라케시의 제마 엘 프나 광장이었다. 3 그렇다 면 대표목록(the Representative List)에 등재를 신청한 후보들을 분석해 장소와 무형의 가치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탱고는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가 함께 신청했다. 음악, 춤, 시, 노래를 한데 아우르는 탱고는 라 플라타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아르 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의 하 류층이 만들어낸 문화다. 탱고는 오랜 세월을 거치며 라 플라타 강 일 대의 정체성을 상징하게 되었다. 지역 차원에서 탱고는 무형유산과 장 사진 1 톨리만 가족예배당의 18세기 벽화 앞에 앉은 관리인들. 사진제공: 저자 22
사진 2 오토미-치치메카 지역의 자연지형인 페냐 데 베르날(Peña de Bernal). 사진제공 : 저자. 은 특정 가족집단이 관리한다.[사진1] 예배당은 가톨릭과 민속신앙의 혼합된 독특한 특징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정교한 벽화가 케레타로주 (Querétaro) 유산부 소속 건축가들의 관심을 처음 잡아 끌었다. 건축가 들은 예배당 유산을 기록으로 남기고 보존하려 했지만, 이를 사용하고 관리하는 살아있는 문화의 맥락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곧바로 깨 닫고 오토미, 치치메카 부족과 협력하여 무형문화유산 보호협약에 따 라 등재를 추진했다. 이 유산은 너른 면적을 망라하는데, 제목 속 장소들 이 이를 관통하 는 주제를 담고 있다. 결국 여러 예배당, 독특한 자연지형,[사진2] 연례 행진, 치말레(chimale, 교회당과 성지마다 임시로 세우는 인상적인 구 조물), 이 메마른 땅에서 더없이 귀중한 요소인 물에 초점을 맞춘 연중 의례 등 오토미-치치메카의 상징적 영역을 모두 포함한다고 규정할 수 있다. 이곳에서 무형유산은 단순한 문화적 퍼포먼스가 아니라 지역사 회 삶과 연관된 수많은 단면을 체계화하는 역할을 하며, 기능적 장소, 상징적 장소, 특정 사건의 무대가 되는 장소 등 다양한 장소와의 관계 를 기반으로 한 일련의 관례와 해석이다. 이 등재유산은 물질적인 유형 의 전통뿐만 아니라 상징적 전통까지 아우르며, 상징적 영역을 지리적 공간, 즉 지형적 생태적 특징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인간 활동의 흔적이 남아 있는 건조 문화 환경으로 규정함으로써 이 점을 더 부각시킨다. 오토미-치치메카 문화의 물리적 장소들은 무형유산의 보고일 뿐만 아 니라 물질과 비물질을 한데 엮는 의미 체계의 필수 요소다. 유형유산과 무형유산은 각 장소에서 심오하면서도 단순한 방법으로 결합된다. 어떻게 보면 톨리만 등재는 유형과 무형 사이 경계를 허무는 유럽 회의의 접근법과 궤를 같이 한다고 할 수 있으며, 아르헨티나 학자 라 몬 구티에레즈(Ramón Gutiérrez)의 무형유산에 관한 정의를 떠올리게 만들기도 한다. 5 구티에레즈는 피에스타, 가두행진 등 잘 알려진 전통 에서 출발하여, 가정이나 사회에서 앞선 세대로부터 이어받게 되는 무 형유산이라는 광범위한 개념으로 서서히 옮겨간다. 여기에는 인간으로 살아나가며 매일 경험하게 되는 모든 것이 포함된다. 구티에레즈가 제 시한 정의의 실용적 의미는 무형유산의 특정 단면이 특히 눈길을 끌거 나 흥미로워 보인다고 해서 무작정 분리해낼 수 없으며 각 전통이 더 큰 문화적 그림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에 서 잘 드러난다. 그 문화적 그림에는 공간이 어떻게 활용되고 해석되는 지에 관한 이해까지 포함된다. 여기서도 구티에레즈의 비전이 빛을 발 한다. 그는 피에스타 혹은 가두행진의 공간이 실제 무대가 되는 장소 너머까지 확장되며 도시 전체, 지역 전체를 아우를 수 있다고 말한다. 구티에레즈의 정의는 가장 매력적이면서 인상적인 무형유산에만 초 점을 맞추고 심지어 고립시키는 보존 프로그램이 과연 제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자문하게 만든다. 그가 옳다면 무형유산을 작품처럼 꾸며서 전시하는 대신 무형유산의 사회적, 문화적, 공간적 맥락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구티에레즈는 무형유산을 전시물로 만들지 말고 평범하고 일 상적이고 이름도 없어 관심을 끌지 못하는, 그래서 특별하지 않은 전 통을 보호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하는 듯하다. 그런 전통이 진정한 무형유산일 수 있다. 특별한 유산에 대한 선망이 그날그날의 현실과 상충할 때 어떤 결 과로 이어지는가는 멕시코의 할리스코(Jalisco)에 위치한 테킬라 생산지 파이사헤 아가베(paisaje agavero)로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지역 은 사건이나 살아있는 전통, 사상이나 신념 [ ] 등과 관련된 장소(즉, 무형의 가치와 결부된 장소)라고 명시하고 있는 세계유산목록 등재 기 준 6항에 따라 2006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세계유산 지정은 지 역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정부 차원에서 테킬라 생산과 아가베 재 배를 관리하게 된 점은 고무적이었지만 산업이 외국기업(대부분 다국 적기업)으로 넘어가는 결과를 낳았다. 테킬라 생산업체를 인수한 기업 들이 일일이 손으로 빚던 전통 양조 방식을 버리고 대량 생산, 국제 마 케팅으로 그 자리를 채우는 행태도 비판을 불러 일으킨다. 전통 방식 대로 양조하는 곳이 남아있긴 하지만 관광상품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경 우가 많다.[사진3] 실제 판매하는 제품은 대부분 대규모 현대식 공장 에서 생산하는 것이다. 한편 정부는 주민들의 우려는 뒷전인 채 관광 산업 지원에만 신경을 써왔다. 그 결과 유산 보존 측면에서 따져보자 면 득과 실이 모두 발생했다고 할 수 있다. 전통주 및 현지 문화경관 제8권 2013 국제저널 무형유산 23
사진 3 피냐(pinã)는 섬유질과 당분으로 이루어진 아가베 식물의 속을 가리킨다. 오 랜 전통을 자랑하는 테킬라 양조장 마당에 테킬라 원료인 피냐가 가득 쌓여 있다. 단, 내부 생산시설은 모두 현대식이다. 사진제공 : 저자. 의 전통 측면을 부각시켰다는 점은 이득인데, 현지 기업이 다국적 기 업에 흡수되고 그럼으로써 전통 양조 기법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은 손 실로 봐야 한다. 뿐만 아니라 세계유산목록에 아가베 경관 이라고 표현되기는 하지 만 주민들은 굳이 이를 1차원적 방식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2010년 할 리스코의 역사 및 예술유산 책임자가 주축이 되어 워크숍이 열렸고, 지 역 전역 도시 및 마을로부터 1,400여 명에 달하는 어린이들이 참여했 다. 6 이 어린이들은 아가베가 중요하다고 여기면서도 유산이나 경관으 로 인식하고 있지는 않았다. 이들에게는 옥수수나 기타 종교 축제도 마 찬가지로 중요했다. 어린이들은 유산을 다양한 요소들의 집합으로 생 각하고 있었다. 어떤 요소는 조금 더 특별하고(축제), 어떤 요소는 조금 더 일상적일 뿐이다(토르티야). 톨리만 주민들(혹은 구티에레즈)처럼 이 들도 무형유산을 음식, 경관, 관습을 아우르는 하나의 체계로 받아들였 다. 반면 세계유산목록은 유산의 수많은 단면 중 하나(즉, 외부인들 눈 에 가장 두드러지는 단면)를 가려내어 강조할 뿐이다. 그 과도한 단순 화와 왜곡은 손실 명단에 추가해야 할 것이다. 이 지역이 다른 협약의 적용을 받고 있었던 만큼 이러한 결과를 모 두 무형문화유산 보호협약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두 협약은 일상적 유산 및 그와 대척되는 개념으로서의 특별한 유산에 부여하는 가치에 있어 차이를 보인다. 세계무형유산 프로그램의 우수하고 보편적인 가 치 라는 기준은, 등재된 요소들이 각 맥락에서 얼마나 두드러지며 얼 마나 특출한지를 강조하는 데 중점을 둘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관계 자들은 유난히 뛰어난 걸작을 찾아내는 데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특히 건축사학자들 사이에 만연한 현상이다). 유네스코도 초기에는 구전 및 무형유산의 걸작 을 선정하던 초기 기준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듯했다. 그러나 2003년 협약의 대표목록 이 세계무형유산 프로그램의 걸작 을 대신하게 되면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됐다. 우수한 에서 대 표적 으로의 전환은 기준을 적절히 낮출 경우 오히려 더 나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음을 보여준다. 부적절한 전문성 발휘를 방지함으로써 무형유산협약은 과도한 단순 화의 원인 한 가지를 제거했다고 할 수 있으나 아직도 분야별 특성화에 대한 압박과 목록 등재를 위한 유산 분류라는 행정적 요건에서 자유롭 지 못하다. 대중화된 관광도 여기에 일조한다. 관광업계에서는 아가베 를 재배하지만 다른 작물도 많이 자라는 지역 중 하나 라는 상품을 팔 수는 없다. 그냥 아가베 지역 으로 판매해야 한다. 테킬라 도 마찬가지 다. 미국 관광업계라면, 국립 저장고 및 공장 유산지역 이란 제목과 함 께 미국의 심장을 느껴보세요 란 그럴 듯한 슬로건을 내걸고 아이오와 주 37개 카운티를 하나로 아우르는 상품을 내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7 관광산업은 주민들이 그런 과대포장과 과도한 단순화를 못마땅해 하 건 말건 상관하지 않는다. 어차피 관광은 외부인들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광이 중심축이 되는 유산 보존 프로그램은 예외적인 면 그래 서 관광객에게 팔릴 만한 면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일상적인 면을 희생 시킴으로써 무형유산을 단순화하게 된다. 보존의 목적은 무형유산 보호이지 관광산업 보호가 아니다. 따라서 관계자들은 평범한 전통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물론 차별화된 우수성 이 유의미하고 이를 통해 인정을 받는 전통 예술 작품도 분명 있으나, 무형유산 대부분은 그런 면에서 예술이라 할 수 없고 그저 사람과 사 람, 사람과 환경 사이 일상적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좋은 법안 을 마련하고 효과적인 요식체계를 수립하기 전에 특정 장소를 거주자 혹은 사용자에게 의미 있게 만드는 요인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이 는 근본적으로 보존 분야와 무관한 사회조직, 심리학, 지리학의 문제인 만큼 사회학자, 심리학자, 지리학자뿐만 아니라 인류학자, 인구통계학 자, 기자의 전문성이 두루 필요하다. 시각에 따라 소설가, 시인까지 명 단에 포함시킬 수도 있겠다. 다른 분야에서 얻는 교훈 인류학자 및 사회학자들이 이미 유용한 도구를 제시한 바 있다. 사 회학자 레이 올덴버그(Ray Oldenburg)는 제3의 장소 란 개념을 내놓았 다. 8 집도 아니고 일터도 아닌 장소를 가리키는 제3의 장소 는 서점일 수도 있고, 미용실일 수도 있고, 커피전문점이나 술집일 수도 있고, 기 24
타 활동을 벌이거나 다른 이들과 어울리는 곳일 수도 있다. 주로 동네 소식을 공유할 수 있는 곳으로 가까운 친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예 모르는 사이도 아닌 사람들의 집합 장소가 된다. 지역사회에는 대개 그 런 제3의 장소가 존재한다. 브롱크스의 카사 아마데오(Casa Amadeo)라 는 레코드숍이 좋은 예다. 벌써 수 세대에 걸쳐 뮤지션들과 음악팬들이 이곳에서 만나 교류하며 살사와 라틴재즈에 대한 정보를 나눈다. 피츠 버그 드 루카 레스토랑(De Luca s Restaurant) 역시 일요일 아침마다 몰 려드는 동네사람들로 북적거린다.[사진4] 로스앤젤레스의 소규모 아시 아 슈퍼마켓이 필리핀계 미국인 사회에서 담당하는 역할에 관한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이러한 슈퍼마켓은 아시아 식재료 구입처뿐 만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끼리 소식을 나누는 사랑방으로 기능한다. 9 올 덴버그의 정의에 따르면 이 모두가 제3의 장소 범주에 든다. 제3의 장소 는 보존 관행과도 잘 맞물리며 장소의 유산 가치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개념이다. 현재 관행 의 문제점을 꼬집는 대신 유용한 유산 가치 평가의 잣대를 하나 더 제 공해주기 때문이다. 제3의 장소 를 현 평가 관행에 통합시키기는 그다 지 어렵지 않다. 따라서 더욱 폭넓게 적용해야 할 것이다. 환경 정신의학 및 환경-행동 연구를 통해 사람들이 환경에 대응하 는 법에 관한 이해가 더욱 확장되기도 했다. 프랑스의 그러노블에 위치 한 건축대학원 소리공간 및 도시환경 연구센터(CRESSON)의 프로젝트가 여기에 포함된다. 10 영상 및 녹취, 면접, 지도를 통해 연구자들은 감각환 경 또는 인지환경을 공간을 활용하고 느끼는 방법에 연결시켜, 일반 유산 연구 기법으로는 잡아낼 수 없는 일상적 무형유산의 다양한 차원을 포착 해낸다. CRESSON 연구자도 일부 포함되어 있는 다학문 단체 바자르우 르바인(BazarUrbain)은 이러한 관행을 프로젝트에 적용하여 다양한 도시 환경 내 사람과 장소 사이 일상적 상호작용을 탐구했다. 11 장소 보존 전문 가들에게 이들의 작업이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인류학자와 민속학자들도 통찰의 범위를 넓히는 데 일조했다. 사실 상 사람들이 사물(및 장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 기 위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기법(설문지, 표적집단면접, 비구조적/반 구조적 면접, 참여자 관찰 및 방해 받지 않는 관찰 등)은 대부분 인류학 자들에 의해 개발되었다. 12 유산 보존 전문가들은 이러한 기법을 활용 하여 상황보고서 및 자원 인벤토리를 작성한다. 몇 년 전, 평범한 장소 및 사람들이 그러한 장소에서 발견하는 가치 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저자도 급조되기는 했지만 꽤 쓸만한 나만 의 방법을 개발했다. 저자는 이를 이야기경관(storuscape) 이라 명명 했다. 13 이야기경관 은 사람들이 장소를 주제로 나누는 이야기에서 해 당 장소가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드러나며 그런 이야기에 귀를 기울 이는 것이 장소 보존의 중심적 기법이 된다는 단순한 아이디어를 바탕 으로 한다. 이야기는 일화나 서술뿐만 아니라 전통까지 포함한다. 오토 미와 치치메카 원주민들은 매해 페냐 데 베르날을 오르면서 매해 페냐 데 베르날을 오른 이야기 를 전할 수 있다. 뉴욕 사람들은 5번가 공공 도서관 정문을 지키는 사자상 옆에서 친구들을 만난 뒤 사자상 옆에서 친구들을 만난 이야기를 되풀이할 수 있다.[사진5] 이야기를 재연하는 행위와 상기하는 행위는 전혀 다른 문제다. 데니스 바이른(Denis Byrne) 에 따르면 발리 사람들은 마을이 불에 타 잿더미가 됐을 경우 기억은 하지만 절대 그 이야기를 입밖에 내지는 않는다고 한다. 14 부에노스아 이레스에 가면 군사독재 시절 납치당했던 젊은 투사들을 기리는 모자 이크 기념판이 보도 여기저기 박혀 있다.[사진6] 사건이 발생한 지 한 참 지나서야 만들어지긴 했지만 어쨌든 이 기념판은 두고두고 되풀이 해 말할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간단히 말해서 장소 관련 이야기는 언어뿐만 아니라 행동, 기억으로도 전달된 다. 중요한 점은 이 모두가 서술의 형태를 띤다는 것이다. 과학적 분석 언어와는 무척이나 상이한 이 서술 형태를 통해 사람들이 장소와 어떻 게 의미 있는 관계를 맺는지, 또한 장소가 사람들에게 어떤 경로를 통 해 중요해지는지 알아볼 수 있는 문이 열린다. 사람과 장소 이야기경관 접근법을 택할 경우 빠르게 드러나는 점 중 하나가, 사 람과 장소의 관계는 일반적으로 무척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필자가 이 야기경관 을 개발하기 수 년 전 발생했던 사건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소 사진 4 피츠버그 드 루카 레스토랑의 일요일 아침 광경. 사진제공: 저자. 제8권 2013 국제저널 무형유산 25
사진 5 5번가와 42번가 모퉁이에 있는 뉴욕 공공도서관 정문. 유명한 사자상 2개 중 하나가 보인다. 사진제공: 켄 토머스(Ken Thomas) (Wikimedia Commons). 사진 6 보도의 기념판은 1997년 7월 13일 세실리아 비냐스(Cecilia Viñas)와 우고 페니노(Hugo Penino) 가 아르헨티나 독재 군부에 의해 자택에서 납치 당해 사라지고 말았던 지점을 표시한다. 바리 오스 X 메모리아 이 후스티시아(Barrios X Memoria y Justicia)라는 단체가 당시 탄압을 받았던 희생자 250명을 위해 곳곳에 이런 기념판을 설치했다. 사진제공: 저자. 년합창단의 오르간 반주자로 연주여행을 다니고 있을 때였는데, 어느 날 오후 런던에서 합창단원들을 데리고 세인트폴 대성당으로 갔다. 당 시 필자는 건축이란 형태와 공간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아이들 이 명암의 작용, 웅장한 아치 천장, 신도석의 공명을 체험할 수 있게 해 주고 싶었다. 우리는 이어 돔으로 올라가서 발 아래 펼쳐진 은회색 도 시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다른 인솔자 하나가 매우 심 기 불편한 얼굴로 아이들은 괜찮은지 거듭 물었다. 아이들은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후 아이 중 하나가 자살 시도를 여러 차례 한 적 이 있었다는 설명을 누군가로부터 듣고서야 그 인솔자의 행동이 이해 가 갔다. 왜 필자에게 미리 그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는지 지금도 의 아하다. 어쨌든 요점은 세인트폴 대성당의 돔이 시각에 따라 전혀 다르 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에게는 그저 훌륭한 전망대였지만 안젤 로에게는 뛰어내리기 좋은 장소였을 수 있다. 극단적인 예이긴 하다. 그러나 원칙은 같다. 어떤 장소든 각 개인의 삶의 이야기에 따라 실제 달라지기도 하고 달라 보이기도 한다. 사람 마다 삶의 이야기가 다르니 당연히 장소가 전하는 의미, 장소에 대한 느낌도 제각각 다르다. 그러나 세인트폴과 같은 기념비적 건축물뿐만 아니라 평범하고 유산가치가 없어 보이는, 그래서 환경 보호 활동가들 도 신경을 쓰지 않는 장소에 대한 느낌도 놀라울 정도로 강렬해질 수 있다. 필자가 몇 년 전 (스코틀랜드 시인이자 해설 전문가 마이클 글렌 (Michael Glen)과 함께) 기획했던 워크숍에서 한 참여자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소도시의 놀이터에 대해 아름다운 수필을 쓴 적이 있다. 최근 다시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저녁 어스름이 깔린 뒤라 아무도 없었지만 모래 위에 흩어져 있는 조그마한 발자국들을 보니 추억이 밀려들었다 고 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어렸을 때 올림픽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품 고 훈련을 받았던 밴쿠버의 스케이트장에 대해 썼다. 결국 선수는 되지 못했고 몇 년 동안 그 장소를 잊고 살았지만, 어느 날 출장으로 밴쿠버 를 다시 찾았을 때 문득 생각이 나서 들렀다고 했다. 다시 떠오른 기억 이 가슴 아프기는 했지만 마침내 감정에 매듭을 지을 수 있었다. 한 학 생은 어린 시절 가족의 버팀목과도 같았던 할머니의 부엌을 중요한 장 소로 꼽았다(할머니가 사시던 집은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파괴됐다). 집 에 대해 설명하다 울음을 터뜨린 학생도 있었다. 사람들이 중요한 장소와 감정적 관계를 맺고 있을 때 흔히 보이는 반응이다. 감정적 애착은 사람들이 환경에서 찾는 의미(및 가치)가 무 엇인지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유산 보존 전문가들과도 관 련이 깊다. 게다가 그 애착은 장소 자체가 그렇게 평범해 보이지 않았 다면 전문가들이 유산 가치로 쉽게 인식했을 사항(장소의 전통, 연상, 사회적 가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사실상 수많은 이야기 장소 (동네 놀이터, 싸구려 식당, 학교 운동장, 길모퉁이 등)가 일반적인 유적지 조 건을 충족시키지는 못한다. 이런 장소는 사람들이 묘사할 때에만 존재 가 인식 된다. 그래서 이야기 장소 라 이름 붙였으며, 사람들의 이야기 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식은 이야기 장소 와 관련하여 유산 전문가들이 해결해야 하는 첫 번째 도전과제다. 두 번째는 사람들이 해당 장소와 맺고 있는 관계 의 명백한 주관성이다. 사람들이 감정적 애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평 범한 놀이터나 가게가 유적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할 수는 있다. 그러 나 달리 생각해보면 어느 동네에 있는 놀이터, 가게, 집, 공원 벤치, 풍 경이든 다 누군가에게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극단적 주관성이 사람 과 장소 사이, 유형과 무형 사이 관계를 지배하는 것 같다. 공무원들 은 적법하고 정당한 의사결정을 위해 일관성을 견지해야 하는데, 이 극 단적 주관성이 일관성과 대척 지점에 서 있다. 대중이 객관적 기준으 로 무장한 전문가들에게 유산 평가를 일임하던 시절에는 문제 될 것 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무형 가치의 명백한 주관성으로 인해 상황 이 복잡해졌다. 그렇다면 유산 전문가들이 어떻게 해야 무형가치와 관련하여 일관 성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핵심은 명백하다 라는 단어에 있다. 26
필자가 각 개인의 장소 관련 느낌을 강조한 이유는 이들의 정서와 그 질감을 이해해야(분석이 아닌 감정이입을 통해) 좋은 정책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소 관련 느낌이 개인마다 다르다고 해서 공 통점을 찾을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널리 공유되는 느낌도 있으며, 일 부는 예측 가능한 패턴을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집은 많은 사람들 에게 매우 중요하며, 집(혹은 동네)를 잃을 경우 비탄에 빠질 수도 있 다. 15 어린 시절과 연관된 장소 역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특정 장소 가 특정 민족, 인종, 문화, 성별 집단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장소는 더 강 한 느낌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기타 장소( 제3의 장소 등)는 지역사 회 정체성의 발현으로 동네 애착을 형성한다. 이러한 관찰을 통해 장소 애착이라는 무질서해 보이는 그림 안에 존재하는 질서가 보이기 시작 하면서 폭넓은 정책 가능성이 열린다. 당국이 이 중 어떤 애착을 선택 하여 인정, 보호할 것인지는 정책적 결정이다. 다만 애착이 분명 존재 하며 지역사회의 무형유산 일부를 이룬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논 의가 시작될 수 있다. 무형유산 정책에 관한 논의는 대중의 몫이지만, 일선 전문가들이 나 서서 그런 정책을 부각시키고 알려야 한다. 이는 곧 사람들이 장소에 부여하는 무형 가치의 타당성을 수용해야 하며, 논의된 내용과 부합하 는 용어로 다듬어야 한다는 뜻이다. 쉽지는 않지만 불가능하지도 않은 과제다. 30여 년 전 지리학자들은 개인의 장소 관련 선호사항 중 일치 하는 것들을 측정하는 방법과 이 측정 정보를 전체 조사 집단이 장소 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인식도로 전환하는 방법을 개발 했다. 16 물론 인류학자, 심리학자, 사회학자 등에 의한 추가 연구가 필 요하겠지만 이러한 기술이 주관성 문제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교 차학문적 조사에서 유산 전문가들은(사실상 오직 유산 전문가들만이) 보존 방법 선택안의 철저한 분석을 담당할 수 있다. 장소 관련 무형유산 보호를 위한 요식체계 정비 기준 및 의사결정에 관한 주제는 자연스럽게 요식체계 재정비라는 두 번째 문제로 이어진다. 요식체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 난 연구 성과도 빛을 발할 수 없다. 문제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해결책도 달라진다. 많은 유산 분야 관계자자들은 전문가(즉, 자신들) 와 비전문가(즉, 일반인) 사이 의견충돌을 극복해야 할 문제로 간주한 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일반인 대 전문가라는 이분법적 대립구도로 대 중의 다양한 목소리를 덮어버릴 수 있고, 결국 상충하는 두 진영 사이 타협점이 해결책 으로 둔갑하는 불편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소위 유산 분야 전문가 라 하는 이들도 논쟁이 벌어지면 의견이 여러 갈래 로 나뉘게 마련이다. 고고학자, 환경 보호 활동가, 유적 해설가, 관광 코 디네이터의 의견이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즉, 일반인 대 전문가의 이분법적 대립구도가 아니라 각각 전문성을 보유한 다양한 관점이 존 재하는 것이다. 건축사학자들이 건축물의 역사와 양식에 관한 전문가 이듯, 동네 주민들은 해당 동네에 계속 거주해온 동네 전문가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해결책 은 시민과 해당분야 종사자들의 전문성을 인정 하고 그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의사결정 절차의 수립이다. 조금 우스꽝 스러울 정도로 민주적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버라 헌장을 바탕으로 한 가치 중심의 보존 관행은 사실상 사적지나 고고학적 유적지 관리를 통해 이런 절차가 구현될 수도 있음을 잘 보여준다. 17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일상적 장소 및 관습에는 좀 더 신속하고 접근이 용이한 절차가 필요하다. 그러나 최우선과제는 역시 시민과 해당분야 종사자 등 전문 가들의 목소리가 반영되도록 만전을 기하는 것이다. 이는 절차 민주주의로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충분하지 는 않다. 의견을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내용에 주의를 기울 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의견은 내놓으라고 해놓고 정작 기관의 기준이나 지침에 부합하지 않아 들어줄 수는 없다는 말만 되풀이해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따라서 올바른 공공 절차를 수립하기 위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는 유산 담당 기관이 대중의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권한(즉, 적절한 법적 권한 및 제도적 구조)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민들이 과도한 교통 소음에 대해 공인회계사 사 무실로 몰려가 항의를 한다면 공인회계사는 당연히 자신은 권한이 없 기 때문에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다고 답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대 다수 보존 기관이 현재 무형유산 가치를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권 한이 결여된 상태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올바른 공공 절차를 수립하 려면 가장 먼저 이들 기관에 법적 권한과 요식적 구조를 부여하여 활 동을 허용 및 요구해야 한다. 미국에서도 이러한 필요성이 대두된 지는 오래 되었으나 실질적인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한 탓에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1980년 미 의회는 1966년 제정된 문화재법(National Historic Preservation Act)을 개 정하면서, 내무부(국가 보존 담당 기관)와 최근 설립된 의회 도서관 산 하 미국민속센터(American Folklife Center)에 예술 기법, 민속생활, 풍속 등 문화유산의 무형 요소 보존 및 보호에 관한 공동 보고서 제출을 요 구했다. 유명 민속학자 오먼드 H. 루미스(Ormond H. Loomis)가 진행 을 담당한 이 보고서는 1983년 발간되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무형유산 에 대한 광범위한 대중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법률은 유형의 문 화(특히 문화재 )에 치우쳐 있다. 구조나 장소를 통해 구체화되지 않는 한 전통 문화 표현물이나 무형 요소를 간과하고 배제하기 일쑤다. 무형 유산을 담당하는 미국민속센터는 의회로부터 연구, 자료수집 외에 어 떤 활동에 대한 권한도 부여 받지 못했다. 루미스는 문화자원 전체를 다룰 수 있어야 할 연방 보존 프로그램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고 힐난한다. 18 법률에 따라 무형유산 보호를 위한 요식체계를 수립하 기는 했으되 정작 권한은 주지 않은 것이다. 보고서의 결론은 단도직입적이다. 미국은 건축물부터 지역사회 전 통에 이르기까지 문화를 보존하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일관성 있는 제 도가 필요하다. 보고서는 문화재법 및 환경법을 확장하여 민속 및 관련 전통 생활방식에까지 적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19 두 번째 권고는 내 무장관과 의회도서관장을 각각 상대 기관 보존이사회 이사로 임명하 여 두 기관 사이 유대와 조화를 향상시키는 것이다. 즉, 보고서에 참여 한 저자들은 무형유산에 대한 법적 보호 강화와 무형 및 유형유산 보 호 책임 조정 등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제8권 2013 국제저널 무형유산 27
그러나 아무런 조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금도 문화재법은 건조 (혹은 유형) 유산의 보호와 혜택을 제한한다. 연방차원에서 무형유산을 책임지는 기관은 의회 도서관 및 스미소니언 협회 산하 민속 연구 센 터 정도다.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은 데 따른 반향은 미국 유산 보 존 체계 이곳 저곳에서 나타난다. 연방정부나 지자체나 모두 유형과 무 형을 따로 떼어놓느라 열심이다. 유형 분야에는 국립공원관리청, 주 및 부족 문화재 기관, 지역 단위 위원회, 무수히 많은 비영리 단체가 포함 되어 있다. 무형 분야에는 국립 민속 연구 센터 두 곳, 국립/주립 예술 위원회, 기타 무형유산과 관련된 다양한 요소를 수집, 연구, 제시하는 단체들이 포함되어 있다. 관련 기관들은 모두 상대방 분야에 별 호기심 이 없으며, 따로따로 학술지를 발표하고, 컨퍼런스를 열고, 대학원 과 정을 운영함으로써 간극을 넓히고 있다. 내무부 산하 국립공원관리청이 주무기관인 국가사적지 등록제도 그 런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시민단체에서는 국가사적지 등재 후보를 자 유롭게 제안할 수 있다. 그러나 등재가 가능한 유산의 자격이 무척이나 까다롭다. 1983년 보고서에 나와 있듯, 규정에 따라 문화재(건축물, 건 물군, 고정 물체, 독특한 구조물이나 경관 특색으로 이루어진 구역 등) 만 등재가 가능하다. 무형유산이나 무형유산 관련 배경은 허용되지 않 는다. 그렇다고 절대적으로 금지된다는 뜻도 아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구조나 장소를 구체화 한다고 판단되는 무형요소, 역사적 인물이나 풍 조와 연관된 사항들은 등재를 긍정적으로 검토한다. 1992년에는 아메 리카 원주민 단체의 촉구로 규정이 조금 완화되어, 때에 따라 구전 전 통, 오랜 세월 공동체 내에서 전해 내려온 이용 패턴 및 신념까지 등재 가 가능하게 되었다. 그 배경이 되는 장소는 전통 문화재라 불리게 되 었으며, 원주민 부족의 요청에 따라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하다. 20 유산 보존과 대중 사이 관계의 분수령을 이룰 법한 변 화였지만 여전히 관련 규정이 복잡하고 엄격한데다 문서화에 대한 대 대적인 요구, 개발과 관련한 이해관계, 기술진의 지적 보수성까지 겹쳐 기회의 문이 거의 닫히고 말았다. 21 그렇다면 전반적으로 국가사적지 등록제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덜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공식적으로는 얼마든지 대중의 참여를 보장한다지만, 제한을 가하여 기존 유산 규격에 맞지 않는 것 은 거의 다 걸러낸다. 그 결과 이 제도는 이미 등록된 사항 외에 대중 이 요구하는 그 어떤 정보도 보유하고 있지 않고 굳이 보유하려 하지 도 않는다. 미국 전역의 지자체 및 시민단체 다수(아마도 대부분)가 비슷한 오 류를 저지른다. 뉴욕시 기념건축물보존위원회의 공청회에 참석했다가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사적지 등록제와 마찬가지로 위원 회 공청회는 대중 참여가 가능하다. 사실상 중요한 조치를 취하기 전 에는 공청회를 적어도 1회 개최한다. 이 공청회에서 한 주민이 연단에 나와 새 고층아파트 건설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펼쳤다. 고즈넉한 동네 분위기를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논거였다. 그는 마침내 정착지를 찾고 안정적인 삶을 구축한 러시아 이민자로서, 그런 동네 분위기가 사 라질까 불안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의장이 나서서 공청회 논점 과 무관한 내용이라고 일축했다. 제안된 사업이 법적으로 명시된 적절 성 의 기준을 충족시키느냐가 유일한 논점이었다. 그 러시아인도 물론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건축학적 혹은 역사적 용어로 포장 하는 대신 집, 장소, 동네의 무형가치를 환기시켰을 뿐이다. 주관성이 객관적 기준과 상충하여 패배한 사례다. 의장의 개입이 무례하기는 했지만 법적으로 무리가 없었음을 기억 할 필요가 있다. 개입이 적절했는가를 가늠함에 있어 법률에 따라 위 원회 구성원들은 기념건축물 외관의 건축학적 특징 및 (역사구역의 경 우) 그 주변부에 대한 영향을 고려하게 되어 있다. 또한 미학적, 역사 적, 건축학적 가치 및 의의, 건축양식, 디자인, 배치, 질감, 소재, 색상 까지 검토해야 한다. 그 외 관련 사항들의 검토 역시 법적으로 허용된 다. 22 그러나 건축학적 특징에 방점이 찍혔음을 감안할 때, 신중한 의 장이라면 이 애매모호한 허용이 개발 사업을 반대함에 있어 기껏해야 불확실한 근거밖에 되지 못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특히 법률 기록에 서 발견되는 조그만 결함 하나가 위헌 논란을 불러올 수도 있는 정치 적 맥락에서 보자면 더욱 그렇다. 의장의 법 해석은 조심스러웠으나 타 당했다. 간단히 말해 문제는 상상력의 부재가 아니라 법률과 요식체계 였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유산 전문가나 시민이 장소의 무형 가치에 초점을 맞출 것을 요구할 경우 해당 기관은 이를 위한 법적관 계와 제도적 구조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먼드 루미스(Ormond Loomis)도 이 점을 잘 이해하고 있었으며 30년에 걸친 경험을 통해 옳 았음이 입증되었다. 워싱턴과 뉴욕에서는 편협한 기준으로 인해 포괄적인 민주적 절차 가 짓눌리고 있다. 반대로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당국이 편협하여 포괄적인 기준을 짓누르기도 한다. 캐나다의 사적지 등록제도가 좋은 예다. 23 담당 공무원들은 역사적 연관성이나 건축학적 중요성이라는 전 형적인 기준 외에도 사회적 가치, 정신적 가치, 문화적 연관성 등을 염 두에 둔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사적지는 현지 지자체나 주당 국, 연방당국이 각자의 기준에 따라 유산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곳 이라고 설명한다. 그 결과 무형유산 가치를 규정하려는 노력은 진행되 고 있으되 지역사회는 이를 규정하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박 탈당하고 있다. 오직 당국 만이 유산 가치의 유무를 결정한다. 지난 30년간 미국에서도 진전이 없지는 않았다. 플로리다주에서 역 사 보존과 민속연구 프로그램을 부분적으로나마 통합했고, 하와이주 는 환경성 검토 요건에 문화적 영향 진술 항목을 첨가했다. 24 메릴랜 드주는 문화 보존 프로그램을 발족시켰다(2009년 예산 삭감으로 인해 없어졌던 프로그램이다). 25 연방정부 차원에서는 미 의회가 (지나치게 관광객들 위주이긴 하지만) 무형유산과 장소의 포함 가능성을 열어주 는 국가 유산 분야 제도를 승인했다. 앞서 밝혔듯 국가 사적지 등록 제 도에서도 전통 문화재 개념을 수용했다. 국립공원관리청(National Park Service)은 400곳에 가까운 공원 및 사적지 중 몇 곳에서 보호구역 내 전통적인 사용 및 거주 양식을 지원하는 방식을 실험하기도 했다. 26 그 외에도 고무적인 사례는 많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볼 때 미국의 유산 체계는 무형과 유형유산 가치를 통합하기보다 분리하는 편에 가깝다. 28
추가로 협약 및 요식체계를 도입하겠다는 유네스코의 결정이 비슷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다행히 두 가지가 융합된 유산 담당 기관도 있다. 유럽평의회, 노르 웨이문화유산연구원(NIKU), 아프리카의 유산개발센터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이러한 기관들은 직접적인 문화자원 보호 책임이 없다. 직 접적 책임이 있는 기관 두 곳은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보고타의 보존 담 당 지자체다. 각각 여타 유산 담당 기관에 유용한 모델을 제시한다. 미국 내 대다수 도시와 마찬가지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유산 보호 책임은 분산되어 있다. 역사지구 규제 권한은 시의 기획부서에 있다. 나머지 기능은 문화부에 집중되어 있다. 문화부는 산하에 문화유산 부 사무국과 역사 및 문화유산 보존 위원회를 두고 있다. 후자는(이름에서 알 수 있듯) 유산에 대한 광범위한 시각 을 견지한다. 27 여기서 유산은 유형과 무형을 모두 가리킨다.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건축물을 보호 하면서 동시에 시 전역에 걸친 무형전통을 기록하고 지도로 나타낸 무 형유산 지도책을 생산해내는 곳이다. 28 문화유산국도 구전 역사 및 각 동네 역사 등과 관련하여 주요한 성과를 거둔 바 있는 시의 역사연구 소를 산하단체로 두고 있다. 문화유산국의 교차학문적 조직은 유형과 무형 가치 사이 경계를 허 무는 역할을 해왔다. 2006년 유형과 무형 가치를 모두 보유한 부에노 스아이레스의 문화경관 을 세계유산목록 후보로 올린 것이 대표적 성 과였다. 29 주요한 카페, 바, 당구장, 제과점 보호 및 성장 촉진 위원회 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위원회 수립의 근거가 된 법률을 살펴보면, 시설은 중요한 문화 행사나 활동과의 연관을 통해, 혹은 해당 시설 자체의 전 통이나 건축설계나 지역사회와의 연관성을 통해 주요해진다. 30 마케 팅 활동에 더해[사진7], 위원회는 난간이나 말 매는 말뚝 등 각 시설을 독특하게 만드는 물리적 요소의 보존을 지원해왔다[사진8]. 31 보고타(Bogotá)의 유산 담당 기관인 지역문화유산연구원은 복원 사 업을 진행하는 건축가들이 주축이 된 꽤 전통 있는 조직이었다. 그러 다 최근 조직이 재편성되어 인류학자, 철학자 등의 전문가를 영입하게 되었고, 복원과 관련한 기술적 지원 외에도 워크숍, 특정 사회 집단(직 장여성, 난민, 성적소수자 등)을 타깃으로 한 프로그램, 전통 음료를 주 제로 매해 열리는 페스티발 데 치차(Festival de Chicha)[사진9] 등 무형 유산 활동 지원에까지 관여하게 됐다. 32 부에노스아이레스처럼 교차 학문적 요식체계를 창출하여 경계를 넘나드는(때로는 기대를 뛰어넘 는) 정책 시행이 용이해진 것이다. 33 2005년에는 시의회가 기존 법령 에 의거하여 유명한 산 알레호(San Alejo) 벼룩시장을 문화 및 관광 중 요도가 높은 보고타시 유산 으로 분류했다.[사진10] 공간이나 임시 구 조물이 아닌,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에 초점을 맞추어 전통유산으 로 지정한 것이다. 다분히 정치적인 조치라 처음에는 연구원의 환영 을 받지 못했다. 상인들은 유산으로 지정되었으니 지원금을 달라고 시 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연구원은 대화의 장을 마련해 결국 합의를 이 끌어냈다. 시에서 판촉 카탈로그를 지원해주면 상인들은 그 대가로 고 가구, 필사본, 식민지 시대 전 유물 등이 입수될 경우 연구원에 알리기 로 약속했다. 이로써 무형유산뿐만 아니라 유형유산 보존책까지 함께 마련된 것이다. 연구원이 양쪽 분야 모두에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었기 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뛰어난 직원들이 일구어낸 쾌거지만 기관의 요식적 조치가 뒷 받침 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다른 도시들도 이 시스템을 모 방해야 할까? 당연히 그대로 베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예를 들면 뉴욕의 시스템은 고정 유산과 관련해서 여타 도시보다 엄격한 규제를 가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나 보고타의 유산 담당 기 관은 장소의 무형/유형 가치와 연관을 맺는 등 뉴욕에서는 불가능한 일을 실현할 수 있다. 사진 7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정부는 서적, 컵받침, 리플렛 등을 이용해 바, 카페, 기타 유산 가치가 있다고 인정된 시설의 마케팅을 지 원한다. 사진제공: 저자. 사진 8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저소득층 동네에 위치한 페리아 데 마타데로스(Feria de Mataderos) 옆 바 마타데로스(Bar Mataderos). 유산 가치를 인정 받았으나 인테리어는 변하지 않았다. 사진제공: 저자. 제8권 2013 국제저널 무형유산 29
사진 9 보고타의 페스티발 데 치차의 음식 가판대에서 전통음식 프리탕가를 팔고 있다. 프리탕가는 감자와 플라타노, 블러드 소시지 등의 육류를 튀겨서 함께 먹는 음식이다. 사진제공: 아노리야트(Anoryat) (CC-BY-SA-3.0, Wikimedia Commons). 사진 10 보고타의 산 알레호 벼룩시장은 문화적 측면에서나 관광산 업 측면에서나 소중한 유산이다. 표지판에도 그렇게 써 있 다. 사진제공: 저자. 기존 유산 체계 사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먼저 요식체계를 재정비해 야 한다. 이는 곧 새로운 정책 프레임워크와 공공 절차를 수립해야 한 다는 뜻이다. 각 개인이 어떻게 행동하는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제 도적 프레임워크가 필수 전제 조건인데, 그러한 제도적 프레임워크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할 수 있다. 적절한 프레임워크는 세 가지 조 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먼저, 무형 장소 가치의 주관성을 일관된 의사결 정을 지원하기에 충분한 패턴으로 체계화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그러 한 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법제를 갖춰야 한다. 셋째, 그러한 법제를 유 형유산 관련 법제와 함께 적극 실행해야 한다. 이 세 가지 조건이 만족 되면 유형유산 보호와 관련한 사람들의 요구를 인식하고 민주적인 공 공 절차를 통해 구체적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다음 세 가지 이정표가 길잡이 역할을 해줄 것이다. Patrimonio inmaterial: 물질과 비물질이 한 공간에 공존한다. 위스키가 아니라 보드카: 유형과 무형을 한데 섞는다. 기준을 낮추자: 반드시 최고 수준을 지향해야 장소와 관련된 무형 유산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사람과 장소 사이 연결 고리 역할을 하고 양쪽 모두에 의미를 부여하는 애착의 대상을 지속시 키는 것이 중요하다. 30
감사의 글 이 논문의 시초는 2010년 더블린에서 있었던 ICOMOS International Scientific Committee on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에서 기조발제 로 발표하기 위함이었다. 앤드류 홀(Andrew Hall, 남아프리카), 닐 실버만(Neil Silberman, 미국) 그리고 마릴린 트루스콧(Marilyn Truscott, 호주)께서 유용한 제언을 해 주셨다. 다이엔 바셀-보우시어(Diane Barthel-Bouchier, 미국), 엔젤 카베자(Angel Cabeza, 칠레) 그리고 매리 디어릭스(Mary Dierickx, 미국)께서 논문의 초안을 읽고 의견을 주셨다. 제임스 마스톤 피치 장학재단(The James Marston Fitch Charitable Foundation)이 연구와 현지조사 비용을 보조해 주었다. 더불어 마리아 데 라 니에베 아리아 인코야(María de las Nieves Arias Incollá), 메르체데 가르존 마체다(Mercedes Garzón Maceda: Argentina), 일로나 머르치아(Ilona Murcia). 마르첼라 자라밀로 콘트레라스(Marcela Jaramillo Contreras: Colombia), 아나 루치아 곤잘레스 아바네즈(Ana Lucía González Ibáñez), 마가리타 아라나 시스네로스(Margarita Arana Cisneros), 제임 폰트 프란시(Jaime Font Fransi), 마뉴엘 빌라루엘 바즈쿠에즈(Manuel Villarruel Vázquez: Mexico), 그리고 어네스토 스포지토(Ernesto Spósito: Uruguay)에게 따듯한 환대와 특정 장소에 대한 식견을 제공해 주심에 감사를 드린다. 주석 1. Marilyn C. Truscott, 2011. Peopling Places, Storying Spaces: Heritage Sustaining Human Development?, Heritage and Society 4: pp. 125-134. 2. Council of Europe, 2005. Framework Convention on the Value of Cultural Heritage for Society (Faro: November 27, 2005), Article 2(a). 3. Ahmed Skounti, 2009. The Authentic Illusion: Humanity's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the Moroccan Experience, in Intangible Heritage, ed. Laurajane Smith and Natsuko Agawa (London and New York: Routledge), pp. 74-92. 4. 2009년 어니스토 스포지토(Earnesto Spósito)와 개별 대화 5. Ramón Gutiérrez, 2001. Urbanismo, arquitectura e identidad en América Latina: conceptos acerca del patrimonio intangible, in Patrimonio y urbanismo: memorias del VII foro internacional sobre patrimonio arquitectónico y restauración, Cartagena de Indias, Octobre 27 y 28 de 1999 (Bogotá: Universidad Jorge Tadeo Lozano), pp. 27-37. 6. Ana Lucía González Ibáñez, 2011. Proyecto de vinculación con la comunidad: la Ruta del Tequila en el Paisaje Agavero. Documento de recapitulación de la experiencia (unpublished report submitted to Fundación Jose Cuervo, Banco Interamericano del Desarrollo, Consejo Regulador del Tequila, and Secretaría de Cultura de Jalisco). 7. 국립유산지역(National Heritage Areas)프로그램은 미국 의회에서 승인되었다. 국립공원서비스는 현재 이 시스템에 포함되어 있 는 49 곳에 기술적 조언과 계획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아이오와(Iowa)는 다음 링크 참조: www.silosandsmokestacks.org (2012년 4 월 최종 확인). 8. Ray Oldenburg, 1987. The Great Good Place (New York: Marlowe), and Ray Oldenburg (ed.), 2001. Celebrating the Third Place: Inspiring Stories about the "Great Good Places" at the Heart of Our Communities (New York: Marlowe). 9. Anatolio Ubalde, 1996. Filipino American Architecture, Design and Planning issues (Flipside Press). 10. Nicolas Tixier et. al., 2011. The Recuperation of Public Space: A Closer Look at Bogotá, Colombia, in Pressures and Distortions: City Dwellers as Builders and Critics. Four Views, ed. Ned Kaufman, (New York: The Research Program of Rafael Viñoly Architects), pp. 339-428; and see www.cresson.archi.fr (accessed March, 2012). 11. See www.bazarurbain.com (accessed March, 2012); Marie de Paris, Place de la République en marches, Décembre 2008 -> Février 2009 (Paris: Mairie de Paris and BazarUrbain, 2009); and BazarUrbain, Hem Les Hauts-Champs: La fabrique d un quartier (Paris: BazarUrbain, 2009). 12. See for example H. Russell Bernard, 1995. Research Methods in Anthropology: Qualitative and Quantitative Approaches (Walnut Creek: AltaMira Press), and the seven-volume series The Ethnographer s Toolkit 1999. (Walnut Creek: AltaMira Press; various authors). 13. Ned Kaufman, 2009. Protecting Storyscape, in Kaufman, Place, Race, and Story: Essays in the Past and Future of Historic Preservation (New York and London: Routledge), pp. 38-74. 14. Denis Byrne, 2009. A Critique of Unfeeling Heritage, in Intangible Heritage, ed. Laurajane Smith and Natsuko Akagawa (London and New York: Routledge), pp. 229-252. 15. Marc Fried, 1963. Grieving for a Lost Home, in The Urban Condition: People and Policy in the Metropolis, ed. Leonard J. Duhl (New York and London: Basic Books), pp.151-171; Mindy Thompson Fullilove, 1996. Psychiatric Implications of Displacement: Contributions from the Psychology of Place, American Journal of Psychiatry 153: pp.1516-1523; Mindy Thompson Fullilove, 2004. Root Shock: How Tearing Up City Neighborhoods Hurts America, and What We Can Do About It (New York: Ballantine); J. Douglas Porteous and Sandra E. Smith, Domicide: the Global Destruction of Home, 2001. (Montreal and Kingston: McGill-Queens University Press); and Peter Read, 1996. Returning to Nothing: The Meaning of Lost Place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6. See for example Peter Gould and Rodney White, 1974. Mental Maps (New York and Baltimore: Penguin). 제8권 2013 국제저널 무형유산 31
17. See for example Randall Mason, David Myers, and Marta de la Torre, 2003. Port Arthur Historic Site Management Authority: A Case Study (Los Angeles: Getty Conservation Institute). 18. Ormond H. Loomis (coord.), 1983. Cultural Conservation: The Protection of Cultural Heritage in the United States (Washington, D.C.: Library of Congress), pp. iii, 3, 13. 19. Ibid., pp. 3, iv, v. 20. Patricia F. Parker and Thomas F. King, 1992. Guidelines for Evaluating and Documenting Traditional Cultural Properties: National Register Bulletin 38 (Washington, D.C.: National Park Service). For further commentary on traditional cultural properties and on what has happened to the concept since 1992, see Thomas F. King, 2003. Places That Count: Traditional Cultural Properties in Cultural Resource Management (Oxford: AltaMira Press), and Thomas F. King, 2009. Our Unprotected Heritage: Whitewashing the Destruction of our Cultural and Natural Environment (Walnut Creek: Left Coast Press). 21. 기사가 언론사로 보내지자, NPS는 그것이 더이상 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였다. 22. Administrative Code of the City of New York, 25-307.b (1-2). 23. Canadian Register of Historic Places, 2006. Writing Statements of Significance (Parks Canada, Historic Places Program Branch, National Historic Sites Directorate), pp. 9, 11. 24. Ned Kaufman, 2009. Sustaining the Living Heritage of Places: Some Suggestions for Using and Owning Land, in Kaufman, Place, Race, and Story: Essays in the Past and Future of Historic Preservation (New York and London: Routledge), pp. 337-381. 25. See mht.maryland.gov/traditions and www.marylandtraditions.org (accessed December, 2011). 26. For national heritage areas, see the National Park Service s dedicated website, at www.nps.gov/history/heritageareas and that of the Alliance of National Heritage Areas, at http://www.nationalheritageareas.com (both accessed April, 2012). For experiments and viewpoints within the National Park Service, see Rolf Diamant et. al., 2007. Stewardship Begins with People: An Atlas of Places, People, and Handmade Products (National Park Service Northeast Region et. al.), and Jacquelyn L. Tuxill et. al., 2000. The Landscape of Conservation Stewardship: The Reports of the Stewardship Initiative Feasibility Study (Marsh-Billings-Rockefeller National Historical Park et. al.). 27. www.buenosaires.gov.ar/areas/cultura/cpphc/quees.php?menu_id=14922 (accessed October, 2011). 28. www.buenosaires.gov.ar/areas/cultura/cpphc/fcyr/?menu_id=18621 (accessed October, 2011). 29. Cultural Landscape of Buenos Aires: the River, the Pampa, the Ravine and the Immigration, 2006. (Buenos Aires: Presidencia de la Nación Argentina and Gobierno de la Ciudad de Buenos Aires, Ministerio de Cultura). 30. Gobierno de la Ciudad de Buenos Aires, Ley Nº 35 1998. (Comisión de Protección y Promoción de los Cafés, Bares, Billares y Confiterías Notables). 31. Restauración y Puesta en Valor de Cafés y Bares Notables de Buenos Aires: Intervenciones 2002-2004 2004. (Buenos Aires: Gobierno de la Ciudad de Buenos Aires, Secretaría de Cultura, Subsecretaría de Patrimonio Cultural). 32. 기사가 언론사로 보내졌을 때, 지역 기관이 다시 한 번 주목 받는 다는 점을 시사했다. 이것은 현재 전통적 패턴으로 회귀되었다. 33. 2010년 일로나 머시아(Ilona Murcia)와 마첼라 자라밀로(Marcela Jaramillo)와 개별 대화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