敎 育 學 碩 士 學 位 請 求 論 文 홍대 앞 인디문화에 관한 연구 2005년 2월 仁 荷 大 學 校 敎 育 大 學 院 美 術 敎 育 專 攻 柳 秀 珍
敎 育 學 碩 士 學 位 請 求 論 文 홍대 앞 인디문화에 관한 연구 2005년 2월 指 導 敎 授 : 성 완 경 이 論 文 을 석사학위 論 文 으로 提 出 함 仁 荷 大 學 校 敎 育 大 學 院 美 術 敎 育 專 攻 柳 秀 珍
本 論 文 을 柳 秀 珍 의 碩 士 學 位 論 文 으로 認 准 함 2005 年 2 月 主 審 印 副 審 印 副 審 印
[국문초록] 1990년대 중반 무렵 보다 참여적이고 실천적이며 다양한 영역을 가 진 새로운 문화로서 한국 사회의 문화 지형도 내에 새롭게 등장하게 된 문화현상 중 하나가 바로 인디문화이다. 인디문화의 인디(indie) 는 독립 을 의미하는 것으로, 산업경제학적 용어로 시작하여 그 출발점을 인디펜던트 레이블(independent label)에 두고 있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인디문화는 독점 문화자본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문화생산물을 만들어 나가는 일종의 소수자본의 문화를 의미한다. 이러한 인디문화는 한국사회의 주류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고 급문화의 영역 확장을 위한 새로운 시도에서 발생하였으며, 주류문화의 또 하나의 맥이라 할 수 있는 대중문화의 소비자본주의의 지배적 질서를 벗어나려는 탈 중심적 실천에서 시작되었다. 한국사회에서의 인디문화의 발생은 1990년대 문민정부의 출현과 함 께 시작된 정치적 변동과 정보통신기술의 확산에 따른 새로운 문화적 욕 구, 다성성을 기저로 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담론과 신세대 소비문화와는 또 다른 흐름을 이루던 한국사회의 청년문화가 독립예술의 중심지이자 점차 거대한 잡종적 문화생태계를 활발히 형성 중이던 홍대 앞 공간과 연계되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90년대 중반부터 떠들썩해지기 시작한 라이브 클럽이나 명문 미대를 바탕으로 나타나는 홍대 앞의 예술적 분위기, 홍대 주변에 포진해있던 젊은 예술가들의 아틀리에와 그곳을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홍대 앞 특유의 자생적 문화 등이 어우러진 홍대 앞 인디문화는 자생적으로 발생 한 다양한 문화적 지류들의 이질적 접합의 형태를 보임으로 멀티 (multi-)의 문화라기보다 폴리(poly-)의 문화로 규정지을 수 있으며, 경 제적 이윤의 추구에 적극적이지 않음으로 보다 실험적인 새로움을 시도 하는 문화이고, 잡종적이고 퓨전문화적인 성격을 보인다. 인디문화의 생산영역과 수용, 매개영역은 각각의 활발한 활동과 교류
를 통하여 인디문화를 실천하거나 소비, 전파하고 있는 중이며, 역할이 다른 각각의 영역들이 상호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됨으로 그 역할이 이 행되거나 중첩되는 등의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특히, 이러한 인디문화 내의 각각의 다양한 영역과 활동 동향과 실천적 움직임 등을 가장 극명 하고 다이나믹하게 보여주는 것이 홍대 앞 인디문화의 축제 서울 프린 지 페스티벌 이라 할 수 있는데, 프린지 페스티벌은 우리문화계에 소수 문화의 네트워크가 더욱 다양하게 증가했음을 증명하고 있으며, 주류문 화와는 다른 문화적 흐름들을 형성하는 구체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홍대 앞을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인디문화는 우리 사 회의 문화 지형도 내에 비주류나 소수자, 혹은 주변부의 문화 등 예술의 다양성과 문화 다원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적 흐름을 형성함 으로 우리 문화계의 구도를 확장하였고, 독립적 문화 산업을 구축함으로 대중문화의 독식을 막고 고급문화가 가진 권위의 벽에 도전함으로 고급 문화의 매너리즘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는 등 우리 사회의 주류문 화가 가진 문제점을 해결하는 대안을 제시하였으며, 대중문화의 거대자 본에서 독립하여 새로운 유통망을 개설함으로 자유로운 실험과 시도에 의한 문화의 질적 발전을 가져옴과 동시에 문화 시장의 구조를 넓히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디문화는 문화의 영역을 확장하고 문화의 턱을 낮 추는 등 문화 공공성을 실현하게 됨으로 문화 사회를 더욱 폭넓고 다양 화 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며, 독립적인 문화산업망의 구축으로 인해 대중문화의 구조 내에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함으로 문화시장의 영 역을 더욱 세분화 시킬 것이고, 보다 실효성 있는 정책적 지원이 보장된 다면 현 정부인 참여정부의 문화예술 정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문화 적 다원주의 실현을 앞당길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 망을 가지게 한다.
[ 목 차 ] 국문초록 표 그림 목록 제 1 장 서 론 제 1 절 문제 제기 및 연구의 목적 1 제 2 절 연구 방법 및 논문의 구성 3 1. 연구 방법 3 2. 논문의 구성 6 제 2 장 인디 문화 (indie culture)의 개념 및 이론적 배경 제 1 절 인디 문화의 개념 9 1. 인디 문화의 일반적 개념 9 2. 주류 문화와의 관계 10 3. 유사 개념과의 쟁점; 언더그라운드, 얼터너티브, 반문화 14 제 2 절 인디 문화 의 이론 및 역사적 배경 20 1. 현대 예술사에 나타난 인디 정신 20 2. 하위 문화론 내의 인디문화의 형성 31 제 3 장 인디 문화 의 발생적 맥락과 특성 제 1 절 한국에서의 인디 문화의 발생적 맥락 40 1. 사회적 맥락에서의 발생 40 2. 문화적 맥락에서의 발생 43 3. 공간적 맥락에서의 발생 48 제 2 절 홍대 앞 '인디 문화 의 특성 54
1. 공간적 특성 54 2. 성격적 특성 57 제 4 장 홍대 앞 인디 문화 의 영역별 특성 제 1 절 생산 영역의 특성 60 1. 인디 밴드 60 2. 아트마켓 작가군 64 3. 독립영화의 제작 67 제 2 절 수용 영역의 특성 70 1. 수용 영역의 일반적 특성 70 2. 팬덤의 형성과 특성 72 제 3 절 매개 영역의 특성 74 1. 홍대 앞 클럽 74 2. 대안 공간 79 3. 웹진 82 제 5 장 홍대 앞 인디문화 축제 프린지 페스티벌 (fringe festival) 제 1 절 프린지 페스티벌의 연원 86 제 2 절 홍대 앞 프린지 페스티벌의 발생과 변천 88 1. 초기 프린지 페스티벌의 발생과 변천 88 2. 현재 프린지 페스티벌의 진행 상황 92 제 3 절 홍대 앞 프린지 페스티벌의 운영 100 제 4 절 홍대 앞 프린지 페스티벌의 장르 103 1. 인디 밴드의 뮤직 페스티벌 <고성방가> 103
2. 아시아 독립영화의 한마당 <암중모색> 106 3. 참여와 실험으로서의 공연 예술<이구동성><중구난방> 107 4. 권위의 벽을 허무는 전시 미술 <내부공사> 111 제 5 절 홍대 앞 프린지 페스티벌의 문화, 제도적 의의 및 한계 113 제 6 장 홍대 앞 인디 문화 의 의의와 전망 제 1 절 홍대 앞 인디 문화의 의의 121 1. 문화의 영역 확장 측면에서의 의의 121 2. 주류문화에 대한 대안 제시 측면에서의 의의 122 3. 독립적 문화 산업 구축으로서의 의의 124 제 2 절 홍대 앞 인디 문화의 한계 및 과제 126 1. 내부적 갈등과 분열 126 2. 외부적 개입에 의한 변질 129 제 3 절 홍대 앞 인디 문화의 전망 132 1. 문화적 측면에서의 전망 132 2. 산업적 측면에서의 전망 136 3. 제도적 측면에서의 전망 141 제 7 장 결 론 제 1 절 연구 결과의 종합 157 제 2 절 연구의 평가와 제언 162 자료 및 참고문헌 영문초록
<표 목록> <표 1> 홍대 지역 문화 예술 그룹 및 지역 문화 단체 현황 60 <표 2> 상시 공연을 기준으로 한 전국 라이브 클럽 현황 74 <표 3> 라이브 클럽과 댄스클럽의 특성 비교 78 <표 4>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 연감 88 <표 5>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 2004 프로그램 개요 94 <표 6> 인디문화의 분야별 현황 142 <표 7> 인디문화에 대한 지원 현황 143 <표 8> 독립예술지원 현황 비교 (2001년 대 2004년) 145 <표 9> 다원예술 관련 지원 사업 현황 (2001년 ~ 2005년) 146 <표 10> 2004년도 예술창조역량강화 세부 분야별 지원규모 현황 146 <그림 목록> <그림 1> Cocktail, 1927 24 <그림 2> Cocktail, 1927 24 <그림 3> 캬바레 볼테르에서 의상을 입고 시를 낭독하는 휴고 발, 1916 27 <그림 4> 백남준의 퍼포먼스 우랄알타이의 꿈, 1990 29 <그림 5> 하위문화를 바탕으로 한 펑크족의 다양한 스타일 35 <그림 6> 홍대 주변 지도 50 <그림 7> 아트마켓에서 작가가 직접 초상화를 그려주는 풍경 65 <그림 8> 홍대 앞 라이브 클럽 현수막 77 <그림 9>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 2004 심벌마크 92 <그림 10>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 2004 마스코트 93 <그림 11>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 2004 야외 축제 상황실 95
<그림 12>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 2004 개막 축제 중 춤추는 언니들 공연현장 96 <그림 13> 찾아가는 만화연대 전시 모습 100 <그림 14> 음악 축제 고성방가 의 라이브 공연 현장 104 <그림 15> 야외 공연 축제 중구난방 의 거리 무대 공연 장면 109 <그림 16> 미술전시 축제 내부공사 중 충돌하기의 전시작 112 <그림 17> 중구난방의 거리 공연을 관람하고 있는 관객들의 모습 117 <그림 18> 홍대 앞 놀이터의 야외 공연 장면 152 <그림 19> 홍대 전철역 부근의 걷고 싶은 거리의 풍경 153
제 1 장 서 론 제 1 절 문제 제기 및 연구의 목적 우리는 이념 이 사회를 지배하던 격동의 1980년대와 사회 전반적 변 화와 다양성을 모색하던 1990년대를 거쳐 새로이 21세기를 맞으며, 경 제적 잣대나 이데올로기적 구분을 망라한 문화(culture) 의 개념이 득 세하는 소위 문화의 시대 를 살고 있다. 이제 문화 는 여가시간의 확대와 더불어 이른바 대중 사회에서 소비 되는 문화소비량이 증가함에 따라 고부가가치의 산출이라는 경제적 잠재 력을 가시화 시키는 경제 산업적 기반으로서의 역할을 함은 물론, 날로 확대되어가는 대중의 자아실현 욕구와 맞물려 삶의 가치를 실현하고 삶 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요소로 부각되며 우리의 일상 속 깊이 자리하여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하나의 삶의 총체적 방식(a whole way of life)"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문화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것 이라는 윌리엄즈의 견해와 같이(R. Williams, The Long Revolution, 1965, p.55) 문화는 지적, 정신적 맥락과 역동적이며 상호작용적인 실천으로서의 맥락, 정신 적이고 실천적 활동의 가시적 산물로서의 맥락에서 각각 다양한 양상을 띄우며 우리의 일상 구석구석을 잠식 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이제 문화 에 대한 연구 역시 이론적이며 학문적인 연구나 담론에 그치지 않고 참여와 실천적 시각에서의 다각적 접근과 연구가 검토되고 논의되어야 하는 시점 에 이르렀다. 이 같은 시점에 입각하여 한국 사회에서의 여러 가지 문화현상을 보았을 때, 현재까지도 끊임없는 정체성의 획득과 파괴, 생성과 소멸, 변화와 확장 이 진행되고 있는 인디문화 (independence culture)는 현 시점에서 나타나 고 있는 여러 가지 문화적 현상들 중 이러한 문화의 일상적이며 참여적이고
실천적인 측면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매우 다원화되어 있고 지극 히 동적인 문화 현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최근 문화의 개념이 일상화되고 문화의 영역이 확장됨에 따라 문화의 내용 또한 다원화 되면서 문화수용자 역시 좀 더 다양하고 새로 운 문화를 요구하게 되었고, 이에 문화는 일상적으로 대중문화의 반대급 부로서 소수집단 의 문화이자 질적 최고를 지향하는 고급한 주류 문화 (Mainstream Culture)가 대중의 그러한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 는 가운데 주류문화의 대칭선상에 비주류 문화를 태동하기에 이르게 되는 데, 이러한 문화를 대표하는 문화 가 바로 인디문화현상이다. 인디문화(indie culture)는 사회 전반을 장악하고 있는 주류문화에 대한 대항적 개념 중 하나 로 기존의 지배적인 문화, 즉 주류문화의 흐름으로부 터 벗어나 제도권 문화의 장에 포함되지 않는 여타 문화를 통칭하는데, 이 는 자율적이며 독립적인 정신의 토양 위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남으로 기존 의 문화와 그 규범이나 방식, 형식면에서 완전히 다른 새로운 문화적 흐름 의 탄생을 뜻하는 동시에 문화수용자의 입장에서 이윤의 극대화를 목적으 로 하는 거대 자본구조 하에서 창작의 자유와 다양성을 유지할 수 없었던 주류 문화의 메이저로부터 독립함으로 보다 다양한 문화에 대한 선택권의 확장을 획득했다는 새로움을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비주류 가 바야흐로 문화의 새로운 이슈로 부상하면서 저항과 일탈, 혹은 언더그라운드, 얼터너티브, 반문화 내지 하위문화 등과 함께 기존의 질서와는 다른 의미망의 문화로만 인식되어 온 인디문화가 서서 히 양지로 나오기 시작한 것은 시대의 변화와 대중의 다양한 문화적 요구가 몰고 온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으며, 이에 문화는 더욱더 다양화되고 역 동적인 양상을 보이게 되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본 연구는 특히, 90년대 중반 산업화의 고도성장으로 인한 경제적 안정을 바탕으로 새롭게 나타나기 시작한 소비주의 양상과 그에 맞물려 탄생한 신세대들의 개인적 정체성 표출과정에서 발생한 다
양하고, 국지적이며, 독창적인 그들만의 문화 활동과 교류가 활발히 진 행되는 과정을 통해 하나의 거대한 문화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는 홍대 주변을 중심으로 하여 다양한 영역과 내용으로 전개되고 있는 인디문화 의 발생적 맥락과 특성을 논하고, 그에 앞서 인디문화의 개념을 언더그라운 드나 얼터너티브, 반문화 등 유사개념과의 쟁점에 대한 논의 및 주류문화와 의 관계 정립 하에서 살펴보고 그 이론적 배경을 적극적 행동과 기존 질서 에 대한 대립의식, 미래의 예술에 대한 예견으로 대변되는 아방가르드 정신 과 1960년대 영국의 히피족이나 미국의 펑크족을 중심으로 한 저항적 청년 문화로 시작된 하위문화의 지형 내에서 찾아볼 것이다. 또한, 인디문화의 활성화를 촉진시키는 동시에 인디정신과 그 실천을 가 장 극명하고 다이나믹하게 보여주고 있는 젊음과 문화의 축제인 프린지 페 스티벌(fringe festival)을 통해 메이저의 그늘 아래 문화의 다양화와 변화 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마이너리티의 활동을 통하여 한국의 문화 지형 도 내에서 아직 비주류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인디문화의 문화 적 혹은, 문화산업적 의의와 한계를 알아보고, 이를 토대로 기존의 주류문 화나 문화산업구조와의 상호작용에 주목하며 이른바 음지 문화의 하나쯤으 로 여겨지던 인디문화의 문화적 위치와 전반적 의미를 진단하는 것으로 인 디문화의 문화적, 문화산업적, 제도적 가능성에 대해 전망하고자 한다. 제 2 절 연구 방법 및 논문의 구성 1. 연구 방법 문화(culture)"는 끊임없는 정체성 획득의 진행형으로 정적인 존재 (being)이기보다 계속되는 생성과 소멸, 흐름과 변형을 해나가는 과정 (becoming)이다. 또한 문화현상 은 아무런 근거 없이 갑작스럽게 발생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 뿌리와 과거에서부터 현재로 진행되어 온 많은 철학,
사상, 이론이나 현상들과의 거미줄같이 얽혀 있는 복잡한 그물망 내에서 생 성된 하나의 줄기이다. 여러 학문 분야의 수많은 학자들이 문화의 개념을 정의했지만 문화는 명 확한 개념으로 정의하기 힘든 용어 중 하나이며 그 포괄적 특성과 여러 세 기에 걸쳐 굴절되어온 용법으로 인해 수많은 모순적인 의미를 얻으며 유별 나게도 애매한 개념이 되어 버렸다. 1) 여기서 문화에 대한 연구를 크게 두 가지 구도로 나누어 본다면 첫째, 과거를 돌아보는 것, 즉 위계적으로 질서 화 된 공동체의 봉건적 이상으로 돌아가는 고전적이고 보수적 방식이다. 이 러한 접근 방식은 기존의 문화연구를 미루어 볼 때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접근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문화 를 미적 탁월함의 표준으로 개념화하며 세상에서 생각되고 말하여진 것 중에서 가장 최상의 것 2) 으로 정의하는 방 법이다. 문화연구에 대한 또 다른 궤도는 미래를 향해 시선을 돌리는 것, 즉 문화 를 통해 노동과 여가의 차이가 없어지는 사회주의적 유토피아로 가는 것으 로 이때 문화는 더 이상 최상의 무언가가 아닌 일상적 행동이나 제도에서 어떤 의미나 가치를 표현하는 특정한 삶의 방식으로 정의되며, 그 분석의 방법 또한 어떤 특정한 삶의 방식이나 특정한 문화에 명시적이면서 암시적 으로 드러난 의미와 가치를 분류하는 작업으로 특정한 의미들과 가치를 연 구하되 하나의 규준을 확립하는 방식으로서 그것들을 비교하기보다 그것들 의 변화양식을 연구하는 것에 의해 총체로서의 일반적 원인이나 경향을 발 견하는 점에 중점을 두게 된다. 본 논문에서는 앞서 제시한 문화 연구의 방법 중 후자의 접근법을 택하 여 문화 를 탁월함의 표준으로서 이기보다 삶의 총체적 방식으로서 접근 할 것이며 이는 문화란 무엇인가 라는 측면에서가 아닌 문화란 어떻게 형성되며 재구성 되는가, 즉 What"의 관점에서 How"의 관점으로 그 시 1) 윌리엄스(Raymond Williams)는 문화 란 용어는 영어권 안에서 가장 정의하기 어려 운 것이라고 설파한다. 그 주된 이유는 이제 문화 를 너무 많은 학문영역에서 다루고 있으며, 이데올로기의 차이에 의해서도 그 정의가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2) Arnold,1868
각을 달리 하는 것을 의미한다 할 수 있다. 이러한 How"의 시각은 문화가 가지고 있는 여러 요소들을 다양한 각도로 접근하여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다채로운 활동의 양상과 그 문화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파악하는 데 매우 효 과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새로이 형성되고 있는 부상문화(emergent culture)라 할 수 있는 인디문화에 대한 연구를 하고자 하는데 있어, 이러한 연구자의 시각은 그 문화의 전반적 흐름을 파 악하기에 앞서 문화가 나타내는 현상들 하나하나에 주목하면서 문화를 정 지된 그 무엇(thing)으로 보지 않고,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이자 사회적 실천으로 파악하려는 태도와 거시적 안목을 유지하는데 있어서도 매우 유용하고 적절한 접근 방식이 될 것이며, 세부적으로는 인디문화에 대 한 정의를 가설로 정하고 그에 맞는 문화주체들을 선별하는 방식보다 문화 주체들의 문화 활동과 그 실천의 양상을 통해서 인디문화를 정의하는 방식 으로 인디문화를 대상화시키고자 하는 우려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이러한 시각 하에 본 연구는 우선, 충분한 문헌연구를 통하여 인디문화 의 개념과 이론 및 역사적 배경을 간략하게 살핀 후, 이어서 하나의 현상으 로 대두된 인디문화를 사회 현상학적 접근방법을 통하여 밝히고자 하는데, 특히 한국 내에서 인디문화의 메카라 할 수 있는 홍대 앞에서의 인디문화의 발생적 맥락과 쟁점을 살펴보고 인디정신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프린지 페 스티벌(fringe festival)의 연원과 발생, 활동유형과 발전 가능성에 대한 전망 등에 대한 심층적 연구로 홍대 앞 인디문화의 특성과 문화적 의미 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연구에 앞서, 문화를 연구하자 할 때에는 그것을 거시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안목과 문화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서술할 수 있는 냉정한 시각, 현 장감 있는 문화의 전개 양상을 발 빠르게 파악하려는 연구자로서의 부지런 함 또한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본 연구의 주제인 인디문화는 새로이 대두된 부상문화(emergent culture)인만큼 기존의 연구가 거의 전무하므 로 본 연구는 인디문화의 학문적 연구나 이론적 정립보다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문화 활동에 주목하였으며, 이를 위한 구체적 방법으로 현장 기술지 3) 의 연구 방법을 택하였다. 또한, 인디문화의 지형 내에서 활동하며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내는 문화 생산자들과의 인터뷰와 그들이 쓴 인디문화의 풍 경이 담긴 에세이와 문헌들을 참고하였고, 대안문화로서의 가능성을 모색 하고자 하는 전망부분에서는 인디문화의 문화 정책적 측면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포럼과 심포지엄 자료, 신문기사, 잡지나 웹진(webzine)을 참고 하였다. 2. 논문의 구성 본 연구는 현재 우리의 주류문화권 밖에서 새로운 영역을 형성하고 있는 인디문화(indie culture)의 문화적 의미와 전망에 대해 홍대 주변을 중심으 로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는 인디문화의 영역과 활동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 될 것이며 이를 위한 논문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먼저 제 1 장에서 본 논문의 문제 제기 및 연구 목적과 함께, 연구 방법과 그에 활용된 자료에 대해 설명하였다. 제 2 장은 인디문화의 개념을 인디(indie)의 용어적인 설명과 함께 새로 3) 현장 기술지의 방법을 이용하여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젊은이들의 자율적인 문화 가 어떻게 자본주의 질서를 재생산하게 되는지를 탁월하게 보여준 윌리엄즈는 문화 현상 분석에 있어서 현장 기술지의 장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가 참여관 찰을 주로 행하고 그것을 현장 기술지의 형식으로 쓴 것은 문화적 수준의 현상을 기 록하기에 현장 기술지의 방법이 매우 적절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법은 문화적 생산의 실제와 형식, 그리고 상징적 표출을 재현하고 해석하는 것은 물론, 의미와 가 치처럼 미묘한 문제에 접근하는 데도 매우 유용한 방법이 된다. 특히, 현장 기술지적 서술에서는 연구대상의 인간이 살라 움직이는 모습이나 그 능동성이 있는 그대로 분 석되어 독자의 경험으로 재생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문화란 단순히 변형된 일련의 내적 구조도 아니고, 지배 이데올로기가 일방적으로 착용해서 생겨나는 수동적 결과 도 아니며, 그것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집단적 인간 실천의 산물이기 때문에 이러한 능동적 모습을 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Willams, 1981:23)" 또한, 인리스는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자신의 가용 시간을 조직하는 것을 소비문화라 할 때, 이를 이 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현장 기술지 밖에 없다.(Inglis, 1988: 87)"라고도 말 해 문화현상의 연구에 있어 현장 기술지의 탁월함을 입증하고 있다.
움 이라는 측면에서의 일반적인 개념 부분과 경제적으로 메이저급의 문화 나 내용적으로 고급문화로 대변되는 주류문화와의 관계, 인디문화의 유사 개념이라 할 수 있는 언더그라운드나 얼터너티브, 반문화와 대비되는 쟁점 의 측면에서 파악하고, 그 이론적 배경을 현대 예술사에 나타난 실험적이며 전위적이고 실천적 아방가르드의 분파였던 다다이스트, 미래파, 초현실주 의자들의 활동에서의 자유로운 정신이나, 플럭서스 그룹의 활동 양상, 국제 상화주의자들(Internationale Situationniste)의 행적에서 찾아보고자 하였 고, 한편 1950년대에서 1960년대 사이 영국과 미국에 나타난 펑크와 히피, 생태주의자 등의 활동에서 기인한 하위문화론 내에서 인디문화(indie culture)의 궤적을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알아보고자 하였다. 제 3 장은 연구의 관점을 국내로 옮겨와 한국에서 인디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한 발생적 맥락을 당시 한국의 정치, 경제적 측면 등을 고려한 사회적 맥락과 문화적 상황이나 수용적 측면을 다룬 문화적 맥락, 홍대 앞 이라는 장소가 갖는 색채와 그만의 문화적 특성의 측면을 짚어보는 공간적 맥락으 로 나누어 다루어보고, 그러한 공간적 특성에 기인하여 홍대 앞 인디문화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스타일과 특성을 공간적 특성, 성격적 특성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제 4 장에서는 인디문화의 영역별 특성을 생산과 수용, 매개의 측면으로 나누어, 생산 영역에서는 인디밴드와 아트마켓 작가들, 독립영화의 제작진 들의 활동 및 향후 전망을, 수용의 영역에서는 수용자들의 일반적 특성이나 팬덤의 형성과 그들의 특성을, 매개 부분에서는 홍대 앞을 기점으로 포진하 고 있는 라이브 클럽과 대안적 전시 공간, 웹진의 문화 연계와 전파의 영향 력 및 가능성을 타진하고자 하였다. 제 5 장에서는 홍대 앞 인디문화 축제인 프린지 페스티벌 (fringe festival)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봄으로 그 연원과 발생, 1998년 제 1회 독립예술제에서 2004년 제 7회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까지의 변천과정, 프린지 페스티벌을 이루는 다양한 장르와 분야별 특성 및 활동양상, 프 린지 페스티벌이 가지는 현실적인 한계점과 의의에 대해 논하는 것으로
프린지 페스티벌의 향후 방향에 대해 전망해 보았다. 제 6 장은 인디문화가 우리에게 보여준 비젼(vision)과 의의를 문화 의 영역을 확장하였다는 측면에서와 주류문화의 대칭선상에서의 대안제 시 적 측면, 독립적 문화 산업 구축이라는 경제적, 문화산업적 성과 측 면에서 분석할 것이며, 한편 최근에 인디문화 내부에서 일고 있는 분열 과 갈등의 양상과 문화 외부적 개입에 의해 문화의 성격이 변질됨으로 야기된 문제점 내지 한계,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과제와 그 방향을 타진해 보았다. 또한, 인디문화의 전망에 대하여 새로운 문화로서 문화 공공성 실현의 가능성을 예견한 문화적 측면에서의 전망을 제시하고자 하였고, 문화산업적 맥락에서의 독립적 문화산업을 구축함으로 얻을 수 있는 성 과와 이로 인해 파급될 효과적 측면에 대해 전망하였으며, 창작과 매개 영역에 대한 정책적 지원차원에서의 문제점과 그에 대한 대안을 담은 제 도적 측면에서 향후 인디문화를 위한 전망을 제시하였다. 마지막으로 제 7 장에서는 인디문화의 형성이 한국 문화지형도 내에 서 차지할 영역과 문화적 영향, 특히 홍대 앞을 중심으로 자생적으로 발 생한 인디문화의 문화적 의의와 한계, 향후 전망에 대한 연구의 결과를 종합하고, 논문의 성과와 한계에 대하여 스스로 평가함으로 차후 이어질 연구에 방향을 제시하였다.
제 2 장 인디 문화(indie culture) 의 개념 및 이론적 배경 제 1 절 인디 문화의 개념 1. 인디 문화의 일반적 개념 1980년대 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의 주류문화에 대항하는 카운트 컬쳐 로서 언더그라운드 문화(underground culture) 라는 말이 성행했으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소비자본주의의 첨병으로 묘사되던 신세대들의 행적이 담론화 되고, 이를 중심으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문화적 현상 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인디(indie) 혹은 인디즈(indies) 라는 말이 언 더그라운드를 대체하기 시작하였다. 산업경제학적 용어로 시작된 인디(indie)는 메이저, 혹은 마이너와 같 이 그 출발점을 인디펜던트 레이블(independent label)에 두고 있다. 즉, 인디문화는 대체로 독점 문화자본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문화생산 물을 만들어 나가는 일종의 소수자본의 문화를 의미하는데, 이는 문화의 획일성과 창작과 수용의 상호 단절적 순환, 이로 인한 창조성의 제약 등 의 문제점이 기존의 메이저를 중심으로 한 문화산업 구조로부터 기인한 다는 구조적 모순에 대한 반작용으로 발생했으며, 문화의 독점적 카르텔 이나 메이저 제작사 중심의 배급시장에 편입하지 않고 자신들의 독립된 유통망을 만들어 문화적 검열이나 자본의 짐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때문에, 언더문화가 주류문화와 일정한 연결 관계들을 열어놓 는다면, 인디 문화는 문화의 생산과 유통, 분배 방식에 대한 독자적인 시장을 개척하려는 의미를 강하게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인디 레이블의 행보는 인디가 하나의 산업적 대안임과 동시에 문화 적 대안-즉 이데올 로기적 대안, 실천적 대안, 사회구조적 대안-을 향한 행위자들의 일련의 실천적 행위임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인디(indie)라는 용어는 이미 기존의 관행과는 상이한 문화적
행위를 지칭하는 언더그라운드, 얼터너티브, 반문화, 서브, 프린지, 마이 너리티 등의 용어들과 중첩되기도 하고, 분리되기도 하면서 혼재되어 사 용되어왔으나 이러한 엇비슷한 개념들과 인디문화는 그 성격을 규정하는 방식에 따라 약간의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차이가 존재하며, 그 차이점을 밝히는 과정에서 인디(indie)의 용어적 개념을 보다 명확하게 구분하자 면 우선, 인디(indie)는 언더에 비해 오버로 올라가고자 하는 조바심이 없이 매우 자기만족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인디문화는 얼터너티브의 현재형으로 존재하며 반문화의 잠재성을 지님과 동시에 반문화보다 온건하고, 소수의 문화이나 폐쇄적 이거나 배 타적이지 않으며, 관행화된 권력으로부터의 탈주 행위가 상징성으로 한 정되지 않고 사회 속의 문화적 실천으로 확장된다는 점에서 매우 미래지 향적이다. 앞서 제시했듯이 인디문화는 기존의 질서와 전혀 다른 새로운 문화적 흐름을 의미하며, 문화생산의 경제적 구조로 인한 경직성으로부터의, 다 양한 문화에 대한 선택권의 확장 및 자유를 획득한 면에서의, 근대 자본 주의를 토대로 한 기존의 사회적 규범이나 정치적 보수주의로부터의 새 로운 생활방식을 추구하게 된 새로움 이야말로 인디 문화의 생성동기 이자 존립의 근거인 동시에 인디문화를 문화의 다양한 영역 내에서 새로 운 대안이자 대안문화의 보편적 코드로 위치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2. 주류 문화(mainstream culture)와의 관계 어떠한 특정 시대에 있어 그 시대를 이끌어 가는 주류문화(mainstream culture)라 함은 그 구분의 기준을 양적 측면과 질적 측면의 두 가지 맥락에 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양적 측면에서의 주류문화라 함은 거대한 메이저급의 산업 구조를 내포하
며 그 문화적 가치를 산술적 가치로 끊임없이 환원하고 있는 대중문화 (mass culture) 4) 로 대변될 수 있고, 문화의 질적 측면, 즉 문화가 가지고 있는 심미적, 지적,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문화를 구분하자면 문화의 내용 상의 고급함과 미학적 권위로 인해 우수한(superior), 혹은 세련된 (refined) 문화로 인식되어지고 있는 고급문화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내용상의 질적 가치로 분류되어진 고급문화는 보통 대중문화의 반 대급부로 소수 집단 의 문화개념으로 간주되어진다. 여기서의 소수집단은 문화적으로 교육받고 선택된 엘리트 집단을 의미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이 러한 엘리트들의 문화는 다시 단절된 소수화 로 요약 되는데 이 단절된 이 란 사회적 장에서 고급문화의 영향력이 점차 줄어들고 있고 고급문화 스스 로 그가 가진 배타적 성격 때문에 타 문화와의 교류를 단절함이기도 하나, 다른 측면에서는 오히려 타문화의 문화수용자들에 의해서 고급문화가 단절 되고 있음을 의미하며, 소수화 란 그러한 단절 속에서 기존의 미학적 권위 는 소수화 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고급문화가 가진 또 하나의 특성은 대중문화가 경제적 이윤에 의해 움 직이는 것에 비해 고급문화는 경제적 요인에 움직이는 문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즉, 대중문화는 경제적 자본에 의해, 고급문화는 사회적 자본에 4) 대중문화를 매스 컬처라고 표기하는 것은 여러 가지 논란의 소지가 있다. 왜냐하면 이는 문화의 본질적인 그리고 질적인 속성에 대한 의미이며,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 의 사회적 신분에 대한 의미이기도 하고, 문화를 전달하는 매체에 대한 의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문화를 세 수준으로 보려고 하기 때문에 그 세 가지 변수간의 관계를 고려하는 중요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예컨대 최근의 대중문화에 대한 개념은 대 부분의 나라에서 반드시 지금 현 상태는 아니더라도 앨리트 등 많은 사람들도 범속 문화와 저속문화를 향유한다는 사실을 허용하기 어려운 개념이기 때문이다. 또 매스 미디어가 우수문화 작품을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지, 혹은 새로운 매스미디어가 발달시킨 장르가 창조성을 발휘하며 우수문화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문 제가 또한 제기된다. 또한 우수문화에 속하는 장르에서 만들어진 많은 내용들이 그 질에서는 분명히 범속할 수 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렇다고 지금으로서는 세 수 준의 문화물을 놓고, 그것을 구별하는 만족할만한 더 좋은 용어를 갖고 있지 못하다. 고급, 정제, 정교한, 참된, 혹은 진지한, 모호한, 범속한, 또는 중급과 하급, 저속, 속 된, 거친 등의 여러 말을 써 보았지만, 이들 단어 중의 어떠한 단어도 적절한 표현은 아니다.
의해 추동되고 사회적 자본의 축적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며, 이러한 사회적 자본의 축적은 고급문화의 사회적 위세를 강화하고 경제적 자본 으로 전환되는 통로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Bourdieu, 1984:3) 이렇게 대중사회에서 또 하나의 주류인 대중문화와 함께 끊임없이 경 쟁하며 공존하는 고급문화는 어떠한 사회에서나 마찬가지로 당면한 문제 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사회의 여타 부분에 대하여 고급문화가 가진 영향력과 질을 어떻게 계속 유지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고급문화는 그가 가진 사회적 영향력과 질을 유지하기 위해 문화 수용자 에 의해 거부당하더라도 계속 고유의 전통과 내적 결속력을 유지해야 하 는 것이다. 여기에 있어 전통을 존중하는 것과 함께 이 전통을 다루고 변화시킬 자유로운 창작욕구와 그로 인해 확장되는 고급문화의 새로운 영역들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인디문화는 고급문화의 바로 이러한 지점을 파고들고 있다. 인디문화는 고급문화의 고답적인 미학적 권위로부터 탈주함으로 문화 의 수용자와 생산자 간의 소통의 진정성을 회복해 주며, 제도화되고 고 착화된 답습적 커뮤니케이션으로부터 거리감을 유지하려는 태도로 고급 문화적 장에서의 제도화된 배타성과 폐쇄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계 기점을 마련해 준다. 인디문화의 정체성과 관련한 접점을 찾기 위한 또 다른 주류문화는 바 로 대중문화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대중문화는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그리고 인디문화와 대중문화의 관계를 밝히려면 그러한 대중문화의 문화 산업적 구조에 포커스를 맞추어야 할 필요가 있다. 대중문화는 엘리트와 서민 사이에 중간계급인 중산층이 생기고 예술에 대한 귀족적이며 권위적인 판단이 교양 있는 평민들의 담론으로 대체되 면서 발생하였다. 이후 대중문화는 오랫동안 지속된 고급과 저급이라는 이분법적 구별짓기로 인한 고급문화와의 지루한 경쟁에서 승리함으로 기 층 대중들의 문화적 경험의 가치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며 점차로 거대
산업화되기 시작한다. 5) 이후 문화산업은 그 개념의 범주가 일상문화를 형성하는 데 관여되는 문화자본의 총체로 확대되며 막강한 경제적, 이데 올로기적 권력을 가지게 되었고, 그 가치를 화폐적 환원의 측면에서만 고려한다고 해도 분명 엄청난 부가가치라는 경제적 잠재력을 지니고 있 는 것이 사실이며, 이러한 상황 하에 현재 문화는 공공연하게 스스로가 산업임을 자임하며 소비자본주의의 도래와 함께 점차 소비의 문화로 자 연스럽게 이행 되었다. 인디문화가 우리 사회의 문화지형도 내에서 발생하기 시작한 근원 중 하나가 바로 이 1990년대 신세대를 중심으로 시작된 독특한 소비문화였 다. 소비문화의 등장은 대중문화의 전반적 영역에 몇 가지 변화를 일으 키는데, 첫째, 소비문화로 인해 문화산업의 규모가 거대화 되었고, 둘째, 새로운 형태의 문화공간이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셋째, 시각적 볼거리가 많이 제공됨으로 다양한 문화 활동이 생겨났고, 마지막으로 이와 함께 대중들의 여가생활과 라이프스타일이 변화했다는 점이다. 이제 소비자본 주의시대의 문화산업 규모는 한낱 제 3차 서비스산업의 일부분에 해당 되지 않고 새로운 지식산업, 정보콘텐츠산업, 연예산업 등으로 독립, 확 장되는 경향을 보이며 그 성격 역시 다국적, 다장르화 되었고 하나의 문 화 콘텐츠를 다양한 기술적 원천으로 변형시켜 수많은 문화적 프로그램 이 개발되는 시점에 이르며, 이에 따라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 대중문화 는 단순히 소비문화론으로 해석될 수 없는 다양한 지형을 가지게 되며 소비자본주의문화의 지배적인 질서로부터 벗어나려는 개인들의 자생적인 문화적 실천을 경험하기 시작하는데, 이러한 대중문화의 탈중심화, 혹은 재중심화의 좋은 일례가 바로 인디문화이다. 5) 문화 산업화에 대한 언급은 프랑크푸르트학파에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데 특히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거대한 형태로 산업화되는 문화를 경계하며 문 화산업을 대중을 기만하는 계몽주의의 이데올로기 로 규정하였다. 이는 문화의 산업 화에 대한 부정적 개념을 내포하며 문화산업의 생성 차체가 문화의 와해와 문화의 산업화라는 퇴보를 분명히 보여주는 현상이라 단정 짓고 있는데 이러한 지적은 결국 문화산업이 문화주체들을 사물화 시키고 문화적인 것들의 자연적 생성을 붕괴시킬 것이라는 극단적 예견을 낳기도 했다.
이렇게 인디문화와 대중문화의 관계는 인디문화와 대중문화산업과의 관계설정에서 그 위치적 맥락을 찾을 수 있다. 대중문화 내에서 거대문 화자본의 지배에 맞서는 개인들의 자생적인 문화적 취향과 스타일을 생 산하는 인디문화는 자신들만의 문화적 시간과 공간을 소비하는 다양한 주체들을 등장시키는데, 그러한 소수의 주체들이 생산하는 이 새로운 문 화는 다분히 소수문화적 형태를 띠며 다양한 문화매니아들을 낳았고, 그 러한 가운데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인디문화집단들은 지배적인 문화자본으로부터의 단절을 꿈꾸며 주류 문화자본의 견고한 벽 에 균열을 내기 위해 독립적 형태의 자율적인 시장을 형성하기에 이르렀 다. 넓은 관점에서 보면 대중문화라는 큰 범주에 속하게 되는 인디문화 가 대중문화와 구별될 수 있는 가장 큰 특성은 인디문화가 가진 대중문 화의 상업성에 대한 거부감과 그에 기인한 메이저급의 대중문화산업구 조, 즉 경제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선언의 측면이다. 특정한 문화만이 유 통될 수 있는 대중문화의 기준은 상업적 이윤을 가져올 수 있는가에 의 해서만 결정되고 창작자의 권리와 수용자의 권리 모두가 제한되는 일방 적 소통체계를 가지고 있었으나, 인디문화는 이러한 대중문화산업체계를 거부하고 그로부터 독립을 선언함으로 외부의 개입 없이 문화 생산자가 느끼고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생산의 자유를 획 득함과 동시에 자유로운 생산(창작)은 내용과 형식에 있어 다양하고 실 험적인 것들을 시도해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였고, 그로인해 생성되는 다양한 인디문화의 콘텐츠들은 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질적 발전을 가져 오며 새로운 문화자원의 확보라는 수확을 얻는 효과를 가져왔다. 3. 유사 개념과의 쟁점 ; 언더그라운드, 얼터너티브, 반문화 인디문화는 여러 가지 유사 개념을 가진 용어들과 혼재되고 중첩되어
지기도 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문화, 얼터너티브(alternative)문화와 반문화(counter-culture)이다. 이 각각의 용어들은 나름의 의미망을 가지고 있으면서 상호간 접점을 형성하여 시 기나 상황에 따라 유사한 의미로 통용되기도 하고 분리되기도 하였다. 인디문화는 이러한 유사 개념들과의 공통적 요소와 변별적 요소가 공존 하며 생성, 발전되었으며 이에 대한 상호간의 쟁점을 분명히 하는 것은 인디문화의 정체성을 밝히는 중요한 근거가 될 것이다. 우선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문화와 인디문화의 관계는 이 두개의 문화가 자리하고 있는 문화지형 내에서의 위치를 찾는데서 설정될 수 있 다. 언더그라운드는 일반적으로 하위문화적인 것으로 지칭되는 것들 전 체를 일컫는 폭넓은 개념으로 흔히 특별한 관중(사회적 행위자)과 관련 된 배타적 세계를 의미하며(Thornton, 1996:117), 두 가지 면에서 자신 의 정체성을 가지는데 하나는 주류문화의 공식적인 활동과정을 거부한다 는 점과 둘째는 공식문화의 장르를 넘어서려는 일종의 크로스오버적 실험정신을 갖는다는 점이다. 언더그라운드가 가진 이러한 실험정신으로 인해 언더문화는 다양한 취향들의 공존을 그 형태로 가지며 사회구성원 들을 다성성을 가진 다양한 개별적 주체로 형성하는데 기여한다. 서구에서 언더문화의 출현은 상업적 대중문화의 대량 확산이 가능했던 1960년대 말 부터이며, 우리나라의 경우는 라이브무대가 대중화되기 시 작한 1980년대 중반부터라 할 수 있다. 사실, 현재 문화적 활동공간이 다양하게 보장되어 있는 서구에서 언더문화는 주류문화에 대한 대립관계 이기보다는 상호 보완적 관계이거나 준비단계의 의미가 강하다. 이는 언 더그라운드가 가진 배타성이나 전복적이고 일탈적인 성향 외에도 적당히 유동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는데, 언더문화의 이러한 유동적 인 측면은 언더그라운드가 생산성의 가치를 획득하고 이로 인해 권력이 개입되었을 때 분명해진다. 언더그라운드가 기존의 권력을 획득한 진영 으로 넘어오는 경우 즉, 오버그라운드가 되는 경우 언더그라운드는 주류
와의 대립관계를 청산하고 상호 공존의 길을 모색하게 된다. 그러나 언 더문화가 여전히 지하를 둥지로 하는 드러나지 않는 문화인 것은 언더그 라운드가 스스로 권력에 대해 빗겨가며 하나의 주변부의 문화로서 자리 하려는 성향 때문이다. 하지만, 언더그라운드는 문화 생산자가 공유된 취향집단을 근거로 하는 수용자의 문화이며 그 수용자들에 의해 오버로 올라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6) 때문에 언더문화의 문화생산자들은 언더 그라운드가 가진 본래의 성향과 상관없이 지상으로 올라가는 것 즉, 오 버그라운드를 꿈꾸기도 하며, 언더그라운드의 이러한 수직적 상승은 권 력과 경제적 가치에 무관심하고 그보다 자기만족적 성격이 강한 인디문 화의 특성과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얼터너티브와 인디의 관계는 부상문화 로서의 인디문화가 얼터너티브 의 가장 최신의 현재형이라는 점이다. 얼터너티브(alternative)는 1960 년대 후반 이래 덜 상업적이고 덜 주류적이고 더 진정하고 비타협적인 대중음악에 광범위하게 사용된 이름이자 느슨한 장르, 스타일이 다.(Shuker, 1998, p.217) 얼터너티브 음악의 핵심은 상업적인 음악 산 업을 거부하고 경제적 이윤을 위한 판매상품이 아닌, 예술 혹은 표현으 로서 록 음악을 강조한다는 점이며 이러한 얼터너티브는 기존 대중문화 산업의 상품화와 상품화에 기인한 문화적 행위의 탈각에 대한 하나의 대 안으로서 등장한 음악적 행위들을 일컫는다. 때문에 얼터너티브의 이러 한 대안적 성격은 음악분야 뿐 아니라 사회 모든 영역에 확대, 적용되며 기존의 주류적인 문화의 흐름을 포괄하는 영역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출 현한 문화적 행위와 흐름을 말한다고 하겠다. 얼터너티브 문화는 특정시기에 있어 언제나 새로운 문화 를 형성하는 데 이는 윌리암스가 분류한 문화 중 부상문화(emergent culture) 에 해 6) 일례로 과거에 언더그라운드 지형에 있던 뮤지션들이 자신의 음악적 경향을 크게 훼 손하지 않고 주류 대중음악에 편입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고, 1980년대까지만 해도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큰 축을 형성하던 재즈 는 최근 문화적 유행을 타고 대중적인 음악장르로 대접받고 있다.
당하며 이것은 특정한 시간적, 공간적 맥락 내에서 기존의 지배문화에 대한 반성으로 출현하는 문화이다. 7) 그리고 이 부상문화는 해당 시기와 공간에서 대안적 역할을 맡으며 반성적 문화 실천의 행위를 보이는 것으 로 인디문화가 기존의 상업적 문화구조에 대한 독립적 성격을 가지며 그 실천적 행위들이 기존의 주류문화에 대한 대안으로 정의될 수 있다는 측 면을 고려했을 때 인디문화는 얼터너티브의 가장 활발한 현재 진행형이 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얼터너티브가 기존의 문화에 대한 대안적 성격을 갖는다면, 반문화 (counter culture)는 사회내 지배적 집단의 규범과 가치를 날카롭게 반 대하는 집단의 규범과 가치의 틀로 정의할 수 있다.(Yinger, 1982, p.3) 반문화는 한 사회내의 규범적, 가치적 갈등을 지시하며 지배적 가치에 대한 직접적 반대, 권력구조에 대한 반대, 그리고 그러한 가치들로 확대 되고 유형화 된 교환에 대한 반대의 반항(protest) 등의 세 가지 형태로 조합되며 기존의 권력구조와 규범에 반항하는 강한 외적 지향을 그 특징 으로 한다. 때문에 반문화의 존재 이유는 일반적으로 지배문화의 의미에 대해 대안적이고 급진적으로 대립하는 것이며, 이러한 강력한 외적 지향 은 대부분 행동주의(activism)를 동반하기도 한다. 반문화의 기원은 흔히 1950년대 비트족(the Beats 또는 the Beatniks) 8) 을 설명하는데서 출발한다. 비트족은 은연중 흑인의 대의에 7) 윌리엄스의 문화에 대한 사회적 정의에서 찾을 수 있는 통찰력 중 하나는 바로 시대 에 따른 구분이다. 한 특정문화가 정태적으로 머무르지 않고 살아 움직인다는 점을 강조하는 윌리업스는 문화를 주도문화(dominant culture) 부상문화(emergent culture) 잔존문화(residual culture) 로 나누어 설명한다. 주도문화란 특정 시대를 주도하는 그 시대의 대표적인 문화를 뜻한다. 주도문화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주 도권에 도전하려는 새로운 형식의 문화를 만나게 되는데 그 도전하는 문화가 바로 부상문화이다. 주도문화가 문화를 주도하는 가운데에서도 문화의 한 구석에는 오랫동 안 전통 같은 것으로 존재하는 잔재들이 있게 마련이며 그렇게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문화를 잔존문화라 한다. 이 문화들은 단순히 제로섬 게임의 형식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존재하기도 한다. 그리고 주도문화가 밀려 잔존문화가 될 수도 있고 잔존문화가 부상문화로, 이어 주도문화고 될 수도 있는 것이다. 8) 1950년 미국에서 획일화된 체제, 가치관, 생활방식에 순응하지 않고 반기를 든 젊은
동참한 영국의 중산계급의 청년들로 그들은 아방가르드(추상회화, 시, 프 랑스 실존주의)에 대한 관심과 보헤미안적 아량이 넘치는 사해동포 주의 적 분위기에 영향을 받으며 듀플코트와 샌들을 걸치고 반핵운동 C.N.D (Campaign for Nuclear Disarnmemt)를 주도하던 대영제국의 반항아들 이었다. 이러한 반문화의 출발점에서도 볼 수 있듯이 반문화라는 용어는 대안 적인 중산계급의 청년문화들 - 비트족, 히피족, 플라워 칠드런족(the flower children), 이피족(yippies) 9) -의 혼합체를 지시하며, 1960년대 성장해서 1967년에서 70년 사이의 시기동안 두각을 나타낸 이들의 문 화는 스튜어트 홀(Stuart Hall) 등의 지적처럼 지배문화와의 대립이 명 시적으로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 형태들, 즉 정치적 행동, 일관된 철 학, 매니페스토의 입장을 취한다는 점에서, 대안적 제도들, 즉 언더그라 운드 언론, 코뮨이나 조합 등의 형태를 정교화 한다는 점에서, 마지막으 로 십대를 넘어서도 이행할 수 있는 단계를 열어놓는다는 점에서 여타의 하위문화내지 유사 개념들과 구분된다. 그리고 이는 다른 유사개념 내에 서 대립 이 상징적 저항의 형태로 치환되는 반면, 중산 계급 청년들의 반란이라 할 수 있는 반문화는 그보다 더 명확하고, 더 확신에 차있고, 이들을 말한다. 비트닉 혹은 비트 세대라 불리기도 하며 호밀밭의 파수꾼 의 작가 제 롬 셀린저와 길위에서 의 작가 잭 캐루악, 외설 시비에 대항해 자판을 승리로 이끈 바 있는 시인 앨런 긴즈버그를 언급한다. Goldman에 따르면 비트족은 Kerouac처럼 원래부터 진지한 중산계급의 남자대학생 들인데, Kerouac은 도시들과 그가 물려받은 문화에 의해 질식한 나머지 멀고 이국적 인 장소에서 떨어져 살길 원했고 그러한 장소에서 그는 사람답게 살 수 있었으며, 글을 쓰고, 담배를 피우고, 명상을 할 수 있었다. 이러한 비트족은 힙스터족처럼 흑인 문화라는 동일한 근본신화에서 성장하지만 각기 다른 방식으로 흑인문화에 의존하고 그 위치 또한 각기 다르게 위치 지워 진다. 그것은 비트족이 고귀한 야만인으로서 영 웅적 흑인에 대한 상상적 관계 속에서 살아왔음을 의미하고, 힙스터족이 빈민가 흑인 의 전통적 열망들을 어설픈 최신 유행의 의상들로 구현했던 반면, 비트족은 고의로 청바지와 샌들을 누더기로 하고 다니며 그들의 상상력 속에서 가난과 빈민에 대한 열망을 표현했다. 9) 히피족보다 정치적 경향이 강한 반체제 청년들의 집단으로 1960년대 활동했던 정치 적으로 급진적인 젊은 히피를 일컫는 약어. Y(outh) I(nternational) P(+hippie 히 피).
더 직접적으로 표현됨으로 언더그라운드적 문화의 범주 중에서 가장 대 립적인 행동주의를 표출하는 문화이자 매우 급격한 변동으로 진행되는 문화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급진적 행동주의의 양상을 띠는 반문화 내에서 인디문화는 잉 거(Yinger)의 분류를 적용하자면 잠재적 반문화주의자의 성향을 띠는 문 화형태이다.(Yinger, 1982:40) 10) 이는 인디문화가 반문화의 대립적 행 동주의를 표출하지는 않으나, 기존 문화구조에 대한 잠재적 저항성을 항 상 내재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인디문화는 언더그라운드나 얼터너티브, 반문화 등의 유사 개념과 함께 주류(mainstream)로 표현되는 지배적 권력과 그러한 지배 적 권력으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효과에 대해 거리감을 가지며 비주류 문화 내지 주변부 문화(marginal culture)라는 공통되는 의미소로 유사 한 의미망을 접속함과 동시에 그 문화적 행위에 있어 약간의 차이를 보 이고 있다. 정리하자면, 인디문화는 언더그라운드의 성향을 깊게 각인하 고 있으면서도 표면적으로 언더와 오버를 넘나들며, 지상과 지하의 경계 에 위치하면서도 오버그라운드를 꿈꾸지 않은 채 자기만족적 경향을 강 하게 보인다. 또한, 인디문화는 현 시기의 가장 최신형의 부상문화로서 인디문화의 이념이나 활동 방식이 기존의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관행 으로부터 새로운 가치를 획득하는 얼터너티브의 대안적 성격을 가장 활 발하게 실천할 수 있는 최신의 현재 진행형이고, 반문화의 급진적 저항 의 행동주의는 수반하지 않으나, 반문화의 대립적 성향을 항상 내재한 상태로 기존 문화구조에 대한 일정 정도의 가시적 차별성을 공공연히 드 10) Yinger는 반문화적 신념과 반문화적 태도의 조합을 통해 네 가지의 모델을 제시하 고 있는데, 반문화적 신념과 태도를 모두 갖고 있는 경우는 반문화주의자 (counterculturists)로, 반문화적 신념을 가지고 있으나 태도는 취하지 않는 경우는 잠재적(혹은 숨은) 반문화주의자(potential or hidden counterculturists)로, 반대로 반문화적 신념은 갖고 있지 않으나 반문화적 태도를 취하는 경우를 비정상적 일탈자 (aberrant deviationists)로, 반문화적 신념과 태도를 모두 갖지 않는 경우는 문화주 의자(cuilturists)로 분류한다.
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잠재적 반문화의 한 형태로서 존재한다고 하겠 다. 11) 제 2 절 인디 문화 의 이론 및 역사적 배경 1. 현대 예술사에 나타난 인디 정신 - 국제 아방가르드(미래파, 다다이스트, 초현실주의), 플럭서스 그룹, 국제 상황주의 예술사에 있어 새로운 문화란 낡은 개념을 대체하는 새로운 사조이자 새로운 실천적 움직임이다. 이렇게 문화의 생성과 소멸의 반복적 순환으 로 이어진 예술사는 현대에 들어서면서 예술의 질적 고급함과 권위를 확 립하고 예술의 경계를 규정하는데 있어 몇 가지 중요한 국면을 맞게 되 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전통적 예술의 권위와 규범에 정면으로 맞서는 전복적 행위들, 혹은 그에 따른 일련의 저항적이고, 실험적이며, 도발적 인 예술적 실천의 양상들을 대표하는 아방가르드(Avant-garde) 12) 이다. 11) 그로스버그 Grossberg,는 록의 수용자들과 지배문화 사이에 저항, 대안, 독립문화 라는 세 가지 유형의 영역을 설정하면서, 각각의 경계를 저항적인 록은 지배문화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 혹은 위협으로 나타나는 것, 선택적인 얼터너티브 록은 단지 지 배문화에 대한 함축적인 공격을 계속하는 것, 독립적인 록은 비록 그것이 지배문화에 대해 도전할 수 있을지라도 자신을 명시적으로나 함축적으로나 일종의 도전으로 드 러내지 않는 것이라 설명한다. (Grossberg, 1983:110 ; Longhurst, 1999 (1995) : 193) 12) 아방가르드(Avant-garde)란 말이 본래 군대에서 쓰이는 용어였다는 것은 잘 알려 진 사실이다. 이는 전투 중, 군대의 본대에서 떨어져 나와 본대가 진군하는 방향의 적정이나 지형 등의 상황을 정찰하는 임무를 띤 일부 병력을 뜻하는 말로 처음엔 이 처럼 군사적인 의미로만 사용되다가 1830년경 군주제에 반대하는 공화파의 사람들에 의해 처음으로 정치적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이 무렵 차츰 이상주의적 사회주 의 진영에서 아방가르드란 단어가 쓰이기 시작하면서 이 단어는 대중적 인기를 얻는 단어가 되는데, 특히 프루동(Pierre Joseph Proudhon)은 그의 글 속에서 아방가르드 를 사회적 진보와 사회주의적 사상, 그리고 예술가와 예술가의 집단행동 등의 의미로 함축하여 사용하였다. 19세기 후반에 와서 아방가르드라는 용어는 수많은 신문과 잡
레니토 포지올리는 아방가르드의 중요한 특성을 다섯 가지로 열거하고 있는데 그 첫 번째가, 액션과 다이너미즘, 전진과 탐험의 정신으로 대변 되는 적극적 행동주의(Activism)이고 둘째, 반전통주의를 기반으로 한 역사적, 사회적 기존 질서에 대한 대립의식(Antagonism) 셋째, 파괴성과 유치함, 극단적 행동으로 나타나는 허무주의(Nihilism) 넷째, 열정과 긴 장, 정신적 패배주의에 기인한 불안(Agonism), 마지막으로 미래의 예술 에 대한 예견이라 할 수 있는 미래주의(Futurism)가 그것이다. 13) 이와 같은 특성을 지닌 아방가르드의 예술 행동들은 공통적으로 순수예술에 대한 전통적 생각들을 파괴하고자 하는 데서 출발하여 예술의 자유를 가 로막는 제도적인 틀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하였고, 자유로운 창작을 저 해하는 기존의 기준이나 실천방식들의 변화를 꿈꾸며 이를 위한 가장 좋 은 대안은 창조적이고 실험적인 예술의 행위들을 일상에 통합시키는 것 이라 생각하였다. 유럽과 미국, 일본이 제 1차 세계대전을 벌이고 있던 1910년대에 이 같은 취지로 형성된 국제 아방가르드(Avant-garde) 모 임 14) 은 이로부터 1930년대에 이르기까지 각각 서로 다른 나라들에서 전위적 퍼포먼스 15) 를 실험하고, 회화와 조각을 제작하는 동시에 잡지와 지, 선전책자들의 제호로 쓰이는 등 주로 정치적 용어로 사용되며 아방가르드 자신의 정치적 개혁이란 역할에 대한 의식을 갖기 시작하였으나, 20세기에 들어 문학 및 예 술 분야에서 이 단어를 빈번하게 사용하게 되고 당대의 예술적, 사회적 편견에 대해 구체적인 방식으로 대응, 대항하려는 태도가 문화적ㅇ로 점차 보편화되면서 그 의미 도 점차 혁신적인 목표를 지닌 예술조류를 지칭하는 쪽으로 명확해지기 시작하였다. 13) Renato Poggioli, The Theory of Avant-garde, Cambridge : Belknap/Havard, 1968. 14) 국제 아방가르드의 구성원들은 중복되거나 유동적인 경우가 매우 많았는데, 이는 일련의 예술가들의 예술 행동의 성격이 공통되거나 중첩되는 부분이 많았음을 반영 하는 동시에 당시의 불안했던 시대 상황과 맞물려 유행하던 사조들이 매우 빠르게 급변하였던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 국제 아방가르드 모임의 구성원들은 미래파와 표현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자들과 드 스틸, 바우하우스에서 소비에트 제도 내에 서 작업하던 예술가들까지 다양한 사조들을 아우르고 있다. 15) 일반적으로 퍼포먼스는 많은 참조물-문학, 연극, 희곡, 음악, 건축, 시, 영화, 공상 등을 여러 가지로 조립하고 전개시키면서 자유로이 이용하는 것으로, 인간의 가장 원 초적인 표현이면서 그것이 무수한 방편을 통하여 개별적, 또는 총체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퍼포먼스에 관한 이론으로는 오스카 슐렘머 Oskar Schlemmer 의 독자 적인 이론이 가장 일반적이다. 슐렘머는 아폴로와 디오니소스라는 고전적 신화의 대
책을 출판하였고, 전시회를 열었으며, 영화와 사진을 찍고, 새로운 종류 의 건축과 상품, 의상을 디자인하고 선언문을 쓰는 등 수많은 각각의 서 로 다른 방식으로 자신들의 예술적 행위들을 통해 일상생활을 변혁시키 고자 노력하였다. 특히, 미래파(futurisme) 16) 와 초현실주의자들 (surrealism) 17), 다다이스트(dadaism) 18) 들의 활동은 이러한 변화와 진 조형식으로 퍼포먼스의 이론을 풀어가고 있는데, 이는 이론은 지성의 신인 아폴로에 속하며, 실천은 디오니소스의 매우 난폭한 축제에 의해 상징되었다. 일례로 그는 회 화나 드로잉이 자신의 작업 중에서 가장 엄격한 지성을 나타내는 것이고, 연극의 실 험에서 획득한 순수한 기쁨은 항상 일말의 의심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하며, 기호는 회 화와 같은 형태의 공간이론을 포함하며, 한편 현실공간에 있어 퍼포먼스는 그 이론을 보충하기 위하여 실천을 제공하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16) 본래 문법이나 논리 등을 타파하여 미래나 기계, 세계를 찬양하고자 하는 문학운동 으로 시작하여 1909년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미래주의 그룹은 산업과 군사, 기계에 열광하는 정치적 파시스트 집단으로 예술의 생산방식 및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이라 는 문제에 부여된 전위적 이념을 탄생시키기도 하였으며, 자신들이 단순한 문학적, 회화적 유파이기를 거부하고 문화적 혁명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게 될 살아있는 철학 이자 세계관임을 자처하기 위해 정치적 경향을 강하게 띠면서 전통과의 결별, 다양한 형식의 부단한 혁신에 대한 긴급한 요청, 자기시대의 사회-문화, 사회-정치적 역학의 중심에서 맡게 될 예술가의 능동적 역할 등 정신적 요체들을 강조하였다. 17) 1922년 다다와의 공식적 결별을 선언한 앙드레 브르통이 1924년 유명한 쉬르 레 알리즘 제 1 선언 을 발표하며 전개되기 시작한 사조이자 운동으로 그들은 프로이트 의 영향을 받아 무의식 세계와 꿈을 강조하였다. 그들은 프랑스의 다다운동을 흡수, 발전시켰으며 다다가 전통에 대한 거부 방식으로 이용한 방법과 과정들을 다시 활용 하며 인식의 방법,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때까지는 체계적으로 정리된 바 없던 무의식, 불가사의, 꿈, 광기, 환각의 상태 등 모든 논리의 이면을 실체로 인식하는 방 법을 추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대표적인 인물로 앙드레 브르통을 중심으로 자 끄 바롱, 레이몽 끄노, 자끄 브와파르, 죠르지오 드 키리코, 로저 비트락, 뽈 엘뤼아 르, 필립 수뽀, 로베르 데노, 루이 아라공, 삐에르 나비유, 시몬느 꼴리뉴 브르통, 막 스 모리스와 마리 루이즈 수뽀 등이 있다. 18) 별다른 의미가 없는 다다라는 말을 택한 배경에는 1916년 쮜리히에서 트리스탄 짜 라가 사전을 펼치고 무작위로 선택한 것이라는 설과 그 밖의 많은 설들로 논란의 대 상이 되고 있으며 의미론적으로는 허망한 말이지만, 다다 운동의 모든 폭약과 부정적 이면서 동시에 긍정적인 가정을 잠재적으로 안고 있는 말이라는 측면에서는 그 의미 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다다는 제 1차 세계대전 직후 쮜리히, 뉴욕, 바르셀로나를 이어 베를린, 퀼른, 파리로 확산된 운동으로 최초의 본격적인 반 反 미술 운동으로서 천만 이상의 희생자를 낸 제 1차 대전의 문화적 후유증이라 할 수 있다. 물질적 이들 을 가져다 준 새로운 기계시대의 테크놀로지가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엄청난 희생을 가져온 것에 대한 충격, 즉 모더니티의 과학과 기술발전의 이성적 힘이 유럽 문명을 자기파괴로 이르게 했다는 인식인 것이다. 다다는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은 것, 즉 황당무계하고, 유희적이며, 도전적이고, 허무적이며, 직관적이고 감정적이며 실험
보의 개념을 단순한 사조로서의 운동이 아닌 집단적 선언과 떠들썩한 시 위, 도발, 선전, 파괴, 엑스터시 등의 다양한 실천적 활동 양식의 형태로 보여주고 있으며, 문화적 혁명을 제안한 미래파들의 선언 19)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뚜렷한 목표와 미학적 이슈를 가지고 각각의 선언문과 함께 발기한 일련의 실천적 미술운동으로서 그 의의를 가진다. 이 중 1901년 미래주의 선언으로 그 공식적인 활동을 선언한 미래주 의자들은 그들의 예술적 선언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회화와 미술 행위 외 에 퍼포먼스의 공연을 이용하였다. 20) 초기 미래주의자들의 퍼포먼스는 실천보다는 선언이, 실제적 행위보다는 선전이 주였다. 그러나 퍼포먼스 는 대중의 자기만족을 산산이 부서지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었으 며, 화가를 화가에 의한 연극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발전시키는 창조자로 만드는 동시에 시인과 화가, 혹은 행위자(Performer) 라는 구별을 일소 시키고 예술작품이라는 보증을 화가에게도 부여해주는 새로운 소통방식 이었던 것이다. 적인 것을 추구하였다. 그래서 다다는 양식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세계관이라 할 수 있 다. 19) 현대 세계의 새로운 예술은 현대 기술의 가능성을 이용해야 한다는 미래파의 생각 은 마리네티의 선언문을 통해 공표되었고, 특히 1909년 2월 파리의 르 피가로 지에 실린 미래파의 첫 번째 선언문에서 그들은 예술과 인생의 모든 면들-회화, 건축, 요 리와 섹스-에 대해 문화적 혁명을 제안하였다. 20) 이 시기에 두드러지게 공연되기 시작한 퍼포먼스는 20세기에 들어서며 갑자기 생긴 장르가 아니며, 그 뿌리는 사실 서양사의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 등지에서도 광장에 모인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하거나 그와 함께 시인이나 광 대 등이 공연을 하는 등 원시적 퍼포먼스의 형태가 존재했으며, 특히 중세에는 사람 들이 많이 모이는 장터거리에서의 스펙터클이 서민들의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많은 호응을 얻었고, 중세 음유시인들의 공연이나 코미디가 주를 이루던 이탈리아의 소극 등 다양한 형태의 초기 퍼포먼스 공연이 이어져오고 있었다. 이후 각 분야에서 전통 과의 관계를 끊는 것을 목표로 하였던 예술가들, 즉 전위 예술가들의 역사에 있어 20세기의 퍼포먼스는 기성예술의 고정화에 대항하는 활동의 최전선, 따라서 전위의 전위에 위치하여 왔다. 미래주의자, 구성주의자나 다다이스트, 또는 초현실주의자들의 작업에 관하여 오늘날 쓰여 지고 있는 대부분의 것들은 각기 그 시기에 제작된 예술 작품에 중점을 두어 온 경향이 있으나, 그러한 운동의 뿌리가 바로 퍼포먼스였으며, 또한 이러한 아방가르드의 예술가 그룹 중에서는 퍼포먼스에 의해서 문제점을 해결 하려고 시도했던 측이 훨씬 많았다.
<그림 1과 2> Cocktail, 1927 Marinetti와 Silvio의 판토마임 공연 Cocktail의 한 장면으로 무대 디자인과 의상은 Prampolini가 맡았으며, 1927년 Paris의 Theatre de la Madelene 에서 상연되었다.
이들은 얼굴에 직접 그리거나 우스꽝스러운 가면들을 쓰고 그들이 채 택한 기묘한 복장들을 한 채 이들의 시와 회화에 나타나는 점잖지 못한 욕설과 떠들썩한 거리의 언어들을 내뱉으며 다다와 같은 현실의 부정을 암시하며 퇴폐적인 사회에서 순응하지 못한 쓸모없는 자신들을 신랄하게 조롱하거나, 기계나 군중의 아우성 같은 소음을 결합시킨 소음 음악, 21) 기계인형과 움직이는 무대의상 등을 이용한 미래주의 발레 22) 등의 행위 로 그들이 가진 행위에 대한 자율성과 실험정신을 표현하였고, 이후 등 장하는 다다나 초현실주의를 예고하였다. 한편, 다다는 반예술 Anti-art'를 기치로 쮜리히, 뉴욕, 베를린, 하노 버, 콜로뉴, 파리 등지에서 1915년부터 1925년 사이에 활발하게 펼쳐졌 던 20세기 최대의 아방가르드였다. 다다는 20세기 초반에 팽배해 있던 지배적 질서의 모순에 통감하여 기존 질서를 붕괴시키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고자 했던 혁명적인 예술운동으로, 르네상스 이후 형성된 인간관과 미학, 그리고 예술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결정론에 대해 비결정론 을, 범주에 대해 탈범주 를, 예술에 대해 반예술 을 목표로 내세웠다. 이러한 다다가 제시한 예술 양식은 창작 동기와 과정상의 우연 21) 바릴라 프라텔라에 의해 1913년 3월 로마의 영원좌에서 행해진 콘서트 후, 화가 루솔로는 <소음예술>에 대한 글을 써서 19세기에 이르러 기계의 발명과 함께 탄생 한 소음을 설명하고, 소음은 사람의 감성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으며, 단조로운 단순 음은 이미 사람의 감정을 각성시키지 못하므로 전철, 엔진폭발, 기차소리, 군중의 아 우성 등과 같은 소음의 결합을 목표로 제작된 특별한 악기들로 미래주의자들의 오케 스트라를 기획하였다. 이 소음음악에 의한 퍼포먼스는 일라노에 있는 마리네티의 저 택 장미관에서 1913년 8월 11일 처음으로 행해졌으며, 다음 해 6월에는 런던의 체 육관에서 행해졌다. 22) 1919년 이브 파나지는 미래주의 풍으로 묘사된 배경 속에 인물을 용해시켜 인간과 장치를 하나로 결합시키면서 환경으로 총합시키려는 의도로 기계와 비슷한 의상을 디자인 하여 <기계적 발레>라는 퍼포먼스를 공연하였다. 이는 살아있는 행위자들에 의한 발레 라는 동작에 의하여 마리네티에 의한 1917년 미래주의 무용 선언 속의 내 용 중 어떻게 움직이면 좋을까 에 관한 상세하고 효과적인 실현을 보여주었다. 이는 무용이 근육의 가능성을 초월하여 소리와 장면, 몸짓 등에 의해 관객의 마음속에서 심리적인 동시발생성을 불러일으키는 미래주의의 감성을 표현한 행위라 할 수 있다.
(chance)과 자발성을 존중하는 비결정주의적 양식이었다. 휴고 발 Hugo Ball, 에미 헤닝스 Emmy Hennings, 트리스탄 짜라 Tristan Tzara와 아르프Arp 등 다다이스트들에 의해 쮜리히의 캬바레 볼테르 23) 에서 행해지던 실험적이고 새로운 공연과 도발적 행위들 에서 알 수 있듯이 다다의 전시와 공연은 작가와 관객의 구분을 없애고 동등한 관계 로서의 소통을 꾀하며, 군더더기 없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제시하여 포 장된 겉모습보다는 그것의 진면목을 보게 함으로 신비화된 예술을 과감 히 파괴하고 예술과 삶을 일체화시키려 했던 것이다. 스스로를 일시적인 운동으로 상정한 다다이스트들이 취한 사회적, 정 치적, 예술적 현상에 대한 확고부동한 반항적 입장의 고수 등 다다의 이 같은 반예술적 행위는 예술의 진정성을 위한 강력한 자극제로 작용하였 으며, 부정 이면에 숨겨진 새로운 예술과 삶의 건설을 갈구하는 다다의 긍정성과 함께 다다가 이후 초현실주의를 비롯하여 모더니즘과 함께 20 세기 미술의 큰 줄기를 구성하는 실험미술이나 아방가르드 미술운동의 모태로서의 역할을 하게 하였다. 23) 1916년 다다이스트였던 휴고 발 Hugo Ball과 에미 헤닝스 Emmy Hennings에 의 해 쮜리히의 슈피겔 골목에 열린 카페로 젊은 예술가들과 문학가들이 이곳에 모여 음악을 연주하고, 시를 낭독하고, 전위적 퍼포먼스를 공연하며 광란의 밤을 보냈다. 이곳을 들락거리던 예술가들은 유명한 트리스탄 짜라, 화가 마르셀 얀코, 게오르게스 얀코, 아르프, 칸딘스키, 벤자민 프랑클린 베데킨트나 리하르트 휼젠베크 등이었다. 아르프의 말을 빌자면 이들은 끊임없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며, 늘 새롭고, 게다가 순수한 듯한 예술을 창작하고 실험하였고 짜라는 볼테르의 가능성을 하나의 운동으 로서, 잡지로서, 심지어는 파리에 대한 습격의 수단으로 생각하기에 까지 이르지만, 소란스러운 밤이 계속되던 캬바레 볼테르는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불과 5개월 후 문 을 닫았다.
<그림3> 캬바레 볼테르에서 의상을 입고 시를 낭독하는 휴고 발, 1916 다다에서 이어져 생동하는 현대적 삶의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수단으로 서 끊임없이 삶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창작에 몰두하던 초현실주의자들 역시,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예술행위를 통해 예술과 일상을 틈을 없애고 주류의 틀을 벗어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기 위해 애쓴 아방가르드의 또 다른 행적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다다가 선언에 열중하는 동안 법전화 되어 버릴 위험을 안고 있다고 생각하고 캬바레 볼테르에서 행해진 일련의 쮜리히 방식에서 벗 어나 보다 다양한 군중들 앞에서 대규모적인 실증을 연기하기로 하였으 며, 이러한 초현실주의자들의 독자적인 연기방식은 많은 점에서 그랜드 버라이어티쇼와 비슷한 것이었다. 또한, 프로이트의 포로가 된 앙드레
브르통이 매료되어 있던 무의식의 탐구는 오토마티즘을 낳으며 초현실주 의의 동시성과 우연을 보여주었다. 이 자동기술법에 의한 시와 퍼포먼스 들은 당시 큰 변혁을 불러일으켰으며, 이는 초현실주의가 예술의 중심에 심리학적 연구를 받아들임으로 정신의 영역을 확대함으로 꿈과 무의식이 라는 정신적 측면은 퍼포먼스의 새로운 탐색거리를 제공하였음을 보여주 게 된다. 실제로 초현실주의의 퍼포먼스는 언어에 전심전력함에 따라 후 의 퍼포먼스 예술보다 오히려 연극계에 강한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왜 냐하면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이 간접적, 혹은 직접 적으로 주목했던 것은 다다와 미래주의의 기본적 신조였던 우연과 동시 성, 그리고 경악이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예술 행동에 나타난 실험의 자유 나 새로운 것에 대한 갈 망 오늘 속 내일의 예술의 추구 라는 아방가르드적 행동원리는 후에 1950년대 말 베를린과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한 플럭서스(fluxists)그 룹 24) 의 전위적 예술 활동과도 연결되며 인디문화의 자유로운 창작과 실 험정신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흐르면서, 흐름 속에, 움직임 속에, 끊임 없는 변화 라는 사전적 의미를 담고 있는 플럭서스는 특정한 규율에 얽 매이지 않고 마치 물이 흐르듯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자신의 이상과 작업을 개성 있게 표출하고 있는 플럭서스 그룹들의 성격을 고스 란히 반영하고 있다. 플럭서스가 지향하는 활동의 특성 중에는 인디정신 의 근간을 찾을 수 있는 몇 가지 특성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중 하나는 플럭서스가 예술과 삶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작업을 함으로 예술과 삶의 24) 플럭서스는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초에 베를린과 뉴욕에서 활동했던 백남준, 요셉 보이스, 볼프 포스텔, 존 케이지, 조지 마키우나스 등의 작가들이 주도한 전위예 술 운동을 말한다. 이들은 기존의 예술 형식 및 미술제도에 구애받지 않고 게릴라 극 장, 거리공연, 전자음악 연주회, 메일 아트 mail art 등의 무정부주의적 성격의 활동 을 펼쳤으며, 세계 여러 지역에서도 비슷한 활동이 독자적으로 펼쳐졌다. 플럭서스는 흐름, 끊임없는 변화, 움직임을 뜻하는 라틴어로 예술양식이기라기 보다는 정신 상태 에 가깝다. 플럭서스 예술가에게는 사회적 목적이 미적 목적보다 우위를 차지하는 경 우가 많은데, 이들의 주된 목적은 판에 박은 부르주아적 예술과 생활을 혼란시키는 것이었다.
통합을 꾀한다는 점이다. 이와 같이 플럭서스의 예술과 삶의 경계를 허 무는 작업은 주로 행위를 통해서 나타나는데, 행위가 가지고 있는 생생 한 현장성, 그리고 그 현장성을 바탕으로 한 관객들과의 긴밀하고 직접 적인 소통을 통해서 예술과 삶은 새롭게 환기되는 것이다. <그림4> 백남준의 퍼포먼스 우랄알타이의 꿈, 1990년. 현대 화랑의 뒤뜰에서 백남준이 연 요셉 보이스의 진혼제로 우리의 전통 굿과 헤프닝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또한 플럭서스의 특성 중 인디문화와 접점을 이루는 또 다른 하나는 플럭서스가 가진 놀이정신이다. 이는 다다가 부정 에서 비롯된 일종의 조소나 풍자적 특성을 보여주었던 반면, 플럭서스의 경우는 긍정 에서 출발한 유쾌한 놀이로서 주류의 아카데미즘의 진지함에 대항하는 방식으 로 놀이와 같은 유쾌한 예술을 지향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플럭서스의 재미, 익살, 풍자, 혹은 아이디어의 놀이, 자유 실험과 자유 연상의 놀이, 과학적 실험이나 장난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변환적 놀이 정신은 축제와 같이 떠들썩하고 부산하며 즐거움을 추구하는 인디문화의 유희적 문화 행위와 실천 등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이러한 인디문화의 놀이정
신을 통해 인디문화가 문화 행위의 지향점을 경제적 가치 창출이나 대립 과 저항, 혹은 전복 등에 의한 주류의 획득에 두지 않고, 문화의 행위 자체를 즐기고 관객과의 직, 간접적인 소통을 통해 문화를 함께 향유하 며 예술과 일상을 통합하는 데 더욱더 그 가치를 두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인디정신의 기저를 이루는 또 한 가지의 중요한 특성은 인디정신 내에 살아있는 모든 실천적 행위에 있어서의 자발성이라 할 수 있다. 인디문 화 내의 문화 행위자들은 경제적 이윤이나 미학적 권위의 획득, 나아가 문화 권력의 획득 등 여타의 보상에 상관없이 순수한 예술적 자발성에 의해 추동되고 있다. 또한 문화 행위의 이러한 자발성은 행위의 성과나 결과에 대한 보상에 상관없이 예술의 신실성 추구와 자율적 표현을 가능 하게 한다는데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현대 예술사에서 이러한 자발성과 자발적 행위의 뿌리는 가장 가깝게는 1957년 기 드보르에 의해 결성된 국제 상황주의자들(Internationale Situationniste) 25) 의 영구적 혁신의 삶을 향한 자발적 태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기 드보르는 시각문화의 거대한 출현을 스펙터클의 사 회 라 규정하며, 스펙터클의 사회가 문화의 공간적 지배와 그를 통한 대 중문화의 사용가치를 어떻게 교환가치로 전도하고 있는 지를 설명하였 25) 국제 상황주의자들은 프랑스에서 기 드보르를 중심으로 1953년부터 1973까지 활 동한 유럽의 신좌파 중 한 그룹으로 현대 사회가 스펙타클의 사회로 변화했다는 인 식 위에서, 스펙타클적 질서의 재생산의 기구인 국가와 그 관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노동조합주의자, 공산당 관료들, 저널리스트 등을 이 질서의 일부로 비판했다. 이들은 우회(detournement)'의 방법을 통해, 지배의 수단들을 해방의 수단들로 전환시키고 자 했으며, 새로운 상황의 주체적 창조를 통해 스펙타클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했 다. 이들은, 노동자들이 아무런 매개 없이 자유롭게 모여 자신들의 현실적 문제들을 토론할 수 있게 될 때, 국가는 해체되기 시작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제도적 좌파와 자본의 협공에 밀려 패배한 신좌파 세력은 부분적으로는 신자유주의와 포스트모더니 즘에 흡수되거나 기나긴 정치적 망명, 지하화의 위치에 놓이게 되었고, 1968년 혁명 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스펙터클의 사회를 대체하는 새로운 평의회 사회를 구성하 려 했던 상황주의자들은 1972년에 해체한 후 긴 침묵에 들어갔으며 주도자였던 기 드보르는 1994년에 권총 자살하였다.
다. 이들은 현실 비판을 통해 기성 권위에 대한 자발적 저항을 보여준 그룹으로 자유를 위해선 어떠한 방법도 정당하다고 여기는 과격파들이었 던 동시에 스펙터클 26) 에 의해 유괴된 진정한 삶을 되찾기 위한 자발적 행동의 실천을 목표로 삼았던 실천적 행위자들이었다. 또한 이들은 표상 과 허위의식에 의해 은폐된 현실을 과감히 부정하고 스펙터클적 사회로 부터 받아온 현실 수용의 일방적 강요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우리의 내 면, 혹은 세계의 기저에 존재하는 모든 허위의식을 도마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강력한 실천성과 부정을 바탕으로 하여 자아와 세계 간의 경계 와 진실과 허위 간의 경계를 없애야 함을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국제 상황주의자들의 좌파적 성향과 실천적 행동은 이 후 환경 운동, 여성 운 동, 반핵 운동, 반전 운동, 원주민 운동, 정보통신 운동 등을 포함하는 광의적 노동자 계급 운동으로 이어지며 다음 장에서 논의할 하위문화론 내의 저항성이나 실천적 행동들과 연계하게 된다. 2. 하위문화론 내 인디 문화의 형성 대중문화 이론이 형성되기 시작한 초기 산업자본주의 시대까지만 해도 문화의 지형도는 문화적인 것과 문화적이지 않은 것, 교양 있는 계급들 26) 보통 엄청난 자본을 투자하여, 볼 만한 눈요깃거리를 제공하는 영화를 선전할 때 자주 쓰이는 표현으로 기 드보르는 바로 이러한 '스펙타클'이라는 말로써 현대를 살 아가는 우리들의 삶이 '외양의 지배'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삶의 진실, 삶의 진정한 모습들은 은폐되고, 우리의 눈앞을 이루고 있는 것은 표상과 허위의식들일 뿐 인 것이며 이들은 결코 우리의 삶과 하나를 이루지 못하고 '별개의 거짓세계, 한갓된 관조의 대상'으로 우리의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우리는 결국 각자의 주어진 자리 에서 편파적으로 존재하는 이 세계에서 스펙타클을 허위적으로 통일시키고 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여전히 스펙타클을 관조하면서, 그로부터 삶의 질서와 긍정성을 주입 받고 있는 것이다. 혁명적 부정성이 존재하지 않는 자리, 바로 이러한 꿈과 환상의 세계에 스펙타클적 현실은 그 막대한 힘을 가지고 우리의 눈을 가리고서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듯 총체성과 통일성에 은폐되어 있는 이 세계의 분리, 분열은 우리로 하 여금 진정한 사회적 실천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으며 우리는 그 안에서 '분리된 상 태 그대로 재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의 일상문화와 그렇지 못한 것 사이의 구분만이 인정되었다. 말하자면 노동자 계급들의 일상문화, 혹은 일반대중들의 통속문화는 부르주아 범 주에서는 문화로 간주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문 화를 바라보는 시각은 현저하게 전환되었고, 이에 따라 고급의 범주를 벗어난 하위계급의 문화에 대한 관심이 환기되면서 현대 사회의 문화 지 형도 내에서 하위문화의 영향력은 대중문화를 언급함에 있어 배제할 수 없는 영역으로 발전하였다. 대중문화 연구에 있어 하위문화론의 형성은 영국의 맑스주의 문화이론 의 토대를 구축했던 톰슨(E, P. Thompson)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톰슨 은 영국의 좌파문화의 형성에 있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인물로 그의 저서 영국 노동자계급의 형성 을 통해서 산업혁명 초기 노동계급의 의 식과 문화가 형성되는 과정에 있어 밑으로부터의 역사에 주목하였다. 여기에서 톰슨은 노동자 계급에 대한 경험적 분석을 통해 문화에 대한 계급적 관점을 피력하면서 노동자 계급이 형성되기 시작했던 1790년에 서 1830년에 대중문화가 가장 융성하게 형성되기 시작되었음을 강조하 였고, 통상 노동자 계급의 일상적 삶의 경험들을 문화적인 경험과 구분 하려 했던 전통적 문화관을 비판하였다. 그는 계급을 비슷한 경험을 공 유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차이를 느끼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새롭게 정의하였다. 노동자계급은 만들어진 것만큼이나 스스로 만들어 낸다, 27) 는 지적을 통해서 그는 대중문화가 대량으로 복제되는 시기 이 전에 이미 노동자 계급의 중요한 일상적 삶의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노 동자계급의 형성에 있어 대중문화가 중요한 실천의 장임을 역설하였다. 톰슨의 이러한 견해는 문화의 정의를 고급 대 저급이라는 이분법적 편견 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였고, 노동자 계급을 포함한 기층 대중들의 문화 적 경험의 가치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 이렇게 대두된 하위문화론은 27) E, P. Thompson, The Making of the English Working Class, Penguin, 1980, 8p.
문화의 지형도를 확장시키고 대중문화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키는 작용을 하며, 하위문화 자체가 가진 다양한 영역으로 인해 문화의 기층을 풍부 하게 하는 역할을 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 하위문화(subculture)란 용어는 영국에서 195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있었던 청년세대들의 독특한 스타일의 문화를 일컫는 말이다. 여기서 발생한 하위문화론은 청년(혹은, 청소년)문화, 특히 하층계급(즉, 노동자계급) 청년들과 관련된 기존의 지배적 문화나 그들의 부모세대의 문화와는 다른 구별적인 내용과 표현 형식을 드러내는 문화 이다. 28) 영국에서 처음 형성된 하위문화의 등장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의 불안정한 사회적 상태를 반영한 것으로, 전후 영국 사회구조의 와해가 노동계급의 생활 터전을 위협하였고 그로 인해 부모 시대가 오랫동안 유 지해왔던 가치관이 붕괴되기에 이르자 노동계급의 생활위기와 부모들이 간직했던 전통문화의 정체성 사이에서 방황하는 그들 자녀들의 불만과 공포, 자유가 일종의 청년문화라는 새로운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 하위문화의 발생점이라 할 수 있다. 29) 서구에서의 하위문화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1920년대 시카고 대학 28) 사실 우리나라의 청소년문화, 혹은 10대 문화는 신세대, X세대, N세대와 같은 포괄 적이고 추상적인 성격과는 다르게 분명한 연령층을 지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세대 문화라는 언어와는 다른 맥락을 가지며 20대 청년세대들과 10대 청소년 세대들 사이 에서도 분명한 문화적 구별짓기가 이루어져 있다. 요즘은 10대와 20대를 같이 볼 수 없을 정도로 경험하는 것이 다르고 10대들과 20대들 안에서도 서로간의 세대 차이를 느끼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이렇듯 1990년대를 일반화시켰던 신세대문화는 그 안 에 많은 단절의 경험을 가지게 되었고 신세대문화라는 일반적 정의로 구분할 수 없 는 특수한 성격을 지닌 청소년문화와 청년문화는 세대 안 문화에 대한 각각의 다른 감각과 견해를 갖는 다양한 연령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엄격히 말하자면 구분 지어져야 하나, 하위문화론에서는 일반적으로 청소년문화와 청년문화를 분류하지 않 고 청년문화로 묶어서 개념화하고 있다. 29) 필 코헨은 1950년대 있었던 런던의 도심 재개발 정책 과정에서 이루어진 영국의 전통적 슬럼지역인 East End'지역의 재개발을 하위문화 출현의 대표적인 사건으로 꼽으며 하위문화의 형성의 원인을 노동자계급 공동체의 붕괴로 지적하고 있다.(Phil Cohen, Sub-Culture Conflict and Working Class Community)
의 사회학자와 범죄심리학자들을 중심으로 당시 청년 갱스터 집단의 일 탈행위에 관한 연구로부터 시작되어 이후 Albert Cohen이 1950년대 청 년 갱단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사회의 지배적 가치들 사이의 연속성과 단절들을 추적하면서 하위문화를 하나의 종속문화로 이해하기에 이르렀 고, 1960-1970년대에 Phil Cohen, John Clarke, Stuart Hall 등 CCCS 그룹은 하위문화의 계급적이고 정치적이고 인종적인 문제에 대한 문화사 회학적, 혹은 민속지학적 접근을 시도하면서 하위문화연구의 여러 가지 문제의식에 대한 다양한 이해의 경로를 제시하였다. 이러한 하위문화론은 역사적 하위문화와 일반적 하위문화 개념으로 구 분지어질 수 있는데 먼저 역사적 하위문화는 1950년대 후반 노동계급문 화의 주체를 대변했던 모드족(the mode) 30) 에서부터 1970년대의 펑크 족 에 이르는 영국의 구체적인 청년문화를 지칭하고 있다. 이 기간 동안에 영국 사회는 기존의 지배문화와는 다른 새로운 청년문 화족들의 출현을 경험하는데 이들은 모드, 비트, 테디보이 31), 그리 30) 영국의 전후에 형성된 청년문화에 있어 전형적인 하위노동자계급의 댄디즘을 표방 한 집단으로 이들은 계급적으로 하층노동자계급이었지만 이전의 청년 노동계급과는 다르게 시련된 스타일을 선호했으며 1960년대 초 런던 외곽의 서인도제도인 이주타 운을 공유하며 그들의 스타일을 모방하고자 한 최초의 노동계급이었다. 딕 헵디지에 의하면 모드족은 미세한 의상 장식물에 몰두했고 셔츠의 칼라를 세우는 것은 미국 의 변호사들을 닮았으며 정장 자켓의 밴트를 내거나 수공제의 구두 형태를 고르는 데 신경을 곤두세웠던 전형적인 하위계급의 댄디였다. 모드족은 외관상 더 차분하고 세련되었으며 점잖은 색상의 보수적인 정장을 입은 까다롭고 말쑥한 스타일을 선호 하며 명백히 남성적인 로커족(폭주족)이 선호하는 번지르르한 머릿기름보다는 눈에 잘 띄지 않는 헤어스프레이를 사용해 범죄성이 없어 보이는 프랑스 패거리 식의 맵 시있는 외양을 유지하며 흑인 소울과 재즈, 때로는 자메이카 스카 음악에 몰두했 다 (Dick Hebdige, [하위문화, 스타일의 의미], 이동연 역, 현실문화연구, 1998, p79)고 기술하고 있다. 31) 에드워드 7세 시대의 복장을 모방하며 다분히 상류층 스타일을 흉내내며 다니던 룸 펜 프롤레타리아 계급 출신의 자녀들로 스웨이드 가족, 벨벳과 무명으로 만든 칼라, 구두끈, 타이 등 그들의 스타일은 대단히 시대를 초월하거나 이국적인 것들이 많았 다. 이들 역시 도심의 불량배로 명성이 높아 집단 패싸움을 즐겼는데 깔끔한 모드족 과 달리 이들의 스타일은 공격적이고 거칠었으며 테디보이들은 다분히 비타협적이고 프롤레타리아적인 외국인 혐오주의자들이었다.
<그림5> 하위문화를 바탕으로 한 펑크족의 다양한 스타일 서, 크롬비, 록커, 스킨헤드 32), 펑크 33) 와 같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 리워지며 이후 영국 내부의 변형과정 (히피-여피-이피-뉴웨이브-네오펑 크) 속에서 새로운 형태로 이행되었고, 한편으로 1960년대 이후 미국의 32) 스킨헤드족은 말쑥한 골수 모드족과 달리 1960년대 말부터 레게음악의 스카와 라 스타를 즐기는 신모드족의 유형을 닮아갔다. 그들은 모드족을 희화화하기 위해 짧게 깍은 머리와 멜빵, 짧고 넓은 리바이스 청바지, 별모양 장식이 박힌 바지들과 줄무늬 의 버튼 셔츠, 최고로 윤을 낸 부츠를 유니폼처럼 입고 다니며 하향적 룸펜 스타일을 지향하였다. 그들의 이러한 룸펜 프롤레타리아적 스타일은 노동계급의 전형을 상징하 며 반유태주의나 인종차별적 행동들로 서인도제도 문화의 탈백인종족화에 대한 공포 를 나타냈다. 33) 펑크족 역시 모드족의 사교적 댄디즘을 걸러내고 공격적이며 거친 스타일을 추구했 다. 이들은 다른 하위문화 그룹들에 비해 서인도제도의 흑인문화와 가장 친화적이며 펑크음악 또한 자메이카 레게음악의 효시라 할 수 있는 더브(dub-자메이카에서 기원 한 대중음악으로 초기의 레게음악 형식)와 스카(ska-가사없이 베이스에 강조를 두는 자유로운 리듬 형식)에 그 뿌리를 두고 레게문화의 라스타파리어니즘 (Rastafarianism-이디오피아 셀라지에 황제를 신봉하며 아프리카로 회귀하고자 하는 흑인 민족주의 정신)을 정치적으로 전유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한편, 펑크족은 60 년대 비트족과 히피를 거쳐 70년대 형성된 글램문화의 백인중심적 중산층 문화에 반 감을 가지고 노동계급성을 은유적으로 체인과 가죽끈, 움푹 꺼진 뺨, 얼룩진 자켓과 더러운 레인코트, 성적 변태의 가장 노골적인 의상과 아무렇게나 내뱉는 거친 말투 등으로 이러한 적대감을 표현하였다.
반문화 청년운동(히피 34) 와 생태주의자들의 일련의 행위들)과 소수문화적 형태들(흑인 할렘문화-퀴어문화-에시드하우스 클럽문화 35) -힙합문화)과 34) 1966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청년층을 주체로 하여 시작된, 탈사회적( 脫 社 會 的 )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이듬해에 뉴욕 로스앤젤레스 버클리 워싱턴 등의 대 도시로 퍼져 나갔으며, 파리 런던까지 파급되었다. 어원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 데, 해피(happy:행복한)에서 나왔다는 설, 히프트(hipped:열중한, 화가 단단히 난)에 서 나왔다는 설, 재즈 용어인 힙(hip:가락을 맞추다), 엉덩이를 뜻하는 힙(hip), 갈채 등을 보낼 때의 소리 '힙,힙'등에서 나왔다는 설 등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행 복에 최대의 관심을 가지고, 진부한 물질문명에 대해서 분노를 터뜨리며, 재즈에 황 홀해지고, 항의집회에서 뜨겁게 기세를 올리며, 발가벗고 인간성을 찾는 시위를 하므 로, 어느 설이든 부분적으로는 히피의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이처럼 많은 어원 이 지적되는 것 자체가 그들의 복잡성을 말해준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그들의 캐치플 레이즈인 자유와 사랑을 찾고, 비둘기의 힘, 꽃의 힘(평화의 상징)을 사랑하며, 자신 을 위해서 살려고 한다. 체질적으로는 외면적 기성적인 것에 만족할 수 없으며, 무엇 이든 자기 손으로 만들고 있지 않으면 안심할 수 없는 성격의 소유자가 많다. 외향적 스타일은 남성은 장발 수염투성이에 펜던트(목걸이)와 굵은 벨트에 부츠를 신었고, 여 성도 장발 미니스커트에 샌들 또는 맨발이다. 그들은 대도시 안에서나 교외에 히피 빌리지를 형성하는데, 그러한 곳에는 젊은이들의 탈사회적 생활방식에 공감하는 사람 들(diggers)의 기부금 등으로, 일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는 시설까지 마련되어 있 다. 또한 인간성을 압살( 壓 殺 )하는 물질문명이나 국가 사회제도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해방시키기 위해서 징병기피 반전 인종주의에의 반항 등을 내세운 캠페인을 벌이며, 기관지도 발행하고 있는 등 현재까지도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35) 에시드 하우스 클럽은 최근 새롭게 명명된 장르인 Acid Jazz를 틀어주는 클럽을 지 칭한다, 에시드 재즈는 '포스트 디스코'인 '하우스 뮤직'의 발전된 형태라고 보는 시각 과 흑인 음악의 여러 요소들을 섞어 재지한 분위기로 음악을 연출한 것이라고 크게 두 방향으로 나눠지는데, 이는 비단 한 장르로서가 아니라 음악계 전반의 세기말적 현상을 설명해주고 있으며 장르의 구분이 없어지고, 복합된 새로운 영역이 하루가 다 르게 생겨나는 지금의 혼란을 집약해준 대표적인 장르라고할 수 있다. 미국 뉴욕 뒷 골목에서 정통재즈에서 밀려난 뮤지션들이 싸구려 바(Acid House)에서 밤새도록 같 은 레파토리를 반복하여 연주하곤 했었는데, 이들이 오늘날 Acid Jazz의 원류가 되어 버렸다. 에시드 재즈의 가장 큰 특징인 지루할 정도의 반복이 밤새도록 연주하기 위한 방편 의 하나라고도 한다. 에시드 재즈는 음악적으론 이름과는 틀리게 JAZZ의 한 부류라 기보다 RAP이나 TRIP HOP 또는 몽환적인 느낌의 PSYCHE SOUND(VELVET UNDERGROUND나 DOORS의 일부곡)에 가깝다. 하지만 JAZZ 의 본질적인 면과 연 주하는 악기의 정통성을 유지하고, 리듬상의 파격을 줬기에 ACID JAZZ라 불리운다. 즉 용어의 무늬만 재즈라 되어있지 정통적 재즈적 요소나 형태는 빈약한 음악이라 할 수 있고 오히려 소울이나 펑크, 디스코, 하우스에 가까운 클럽 댄스용의 음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뉴욕 브로드웨이 등지에는 이러한 에시드 하우스 클럽이 성 행하고 있으며 흑인 뿐 아니라 백인이나 여피족들도 즐겨 찾는 하나의 클럽문화를 형성하고 있으나, 에시드 하우스 클럽문화는 사실 흑인들이 만든 하위문화의 범주에
연결되면서 청년문화의 역사적 출발점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궤적을 가진 하위문화는 일반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닌 가변적이고 생성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새롭게 생성되는 청년문화를 하위문화적 범주로 인식하는 데는 보다 포괄적이고 탄력적인 기준을 필요로 하는데, 그것이 바로 하위문화의 문화적 하위성 에 관한 것이다. 즉, 하위문화는 주류문화로부터 주변부화된 것, 지배적인 가치와 윤리로부터 배격당한 것, 동시대의 지배적 문화 형태와는 다른 새롭고 이질적인 문화로 폭넓게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한편으로는 그 내 부의 능동적인 요인으로 인해 스스로 주류문화를 거부한 것이며 지배적 인 가치와 윤리를 배격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일반적 하위문화론 내의 이러한 문화적 하위성에서 인디문화와의 접점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의 하위문화에 대한 연구는 서구의 하위문화에 대 한 연구와 차별화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첫째, 연구의 출발점 부터 우리의 자생적 청년문화를 서구의 역사적 하위문화로부터 구분지어 독자적으로 담론화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둘째로 우리문화의 세 력관계 즉, 우리의 부모문화나 지배문화, 세대문화의 이질적 지형도를 충분히 이해하고 고려해야 한다는 점인데 이것이 선행되어야 우리 문화 의 독특한 구조 내에서의 인디문화의 형성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하위문화의 출발점에 있어 서구의 하위문화가 하층 계급의 청년 문화에서 발생한 것과 달리 우리의 경우, 발생적 맥락의 성격이 노동자 계급의 자식 세대로 이루어진 청년문화이기 보다 중간계급 청년층의 급 진화와 정치화(혹은 탈정치화)에 따른 중간계층 적 성격이 강하며, 저항 의 방식에서도 서구의 경우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저항보다 육체의 탈금 기적 표현을 통한 스타일의 저항을 강조하면서 저항 방식의 전환을 예시 속한다.
한 반면, 우리의 문화 지형도 내에서 스타일은 그저 탈 정치적이고 탈계 급적인 개인의 자유로운 개성의 표현정도로 간과되며 그 안에서 오직 소 비문화를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신세대들의 소비방식에 대한 문제점만을 지적하고 수용하기 때문에 거기에 어떠한 저항성을 발견한다는 것이 다 소 어렵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렇지만 서구의 하위문화나 우리의 하위 문화는 결국, 사회를 지배적으로 구성하는 중심문화로부터 주변부화 된 공통의 맥락을 가지고 있으며, 하위문화의 주체가 하층계급의 청년집단 이던 중간계층의 집단이던 간에 지배문화에 대한 주변부 문화로서의 생 존 공간과 방식을 지켜가는 과정에서 위협을 느끼는 외부의 적대에 대해 매우 실천적 움직임을 보인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하위문화의 실천적 움직임은 그 가변적이고 생성적 성격으로 인해 시대 가 변함에 따라 유사-네오적 형태로 변형되거나 아주 색다른 문화적 형태의 출현을 야기하는데, 그러한 연유로 하위문화론 내에서 태동된 것 이 바로 인디문화이다. 특히, 인디문화는 하위문화가 지배문화와 단절이 아닌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거시권력에 대한 저항적 계기들을 다양한 실 천과 행동에 의해 사건적으로 구성해나가는 방법을 선택했다는 점에서도 하위문화와 매우 유사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 36) 36) 인디문화에 관한 선행 논문인 한국 인디문화에 관한 사회학적 연구 에서 논문의 저 자 김민규씨는 본 연구와 다르게 하위문화와 인디문화가 대비되는 구별점에 포커스 를 맞추어 하위문화론적 접근으로 인디문화를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는 없다고 결론 짓고 있다. 특히, 하위문화와 인디문화가 공통적으로 주목한 영역인 음악의 측면을 예를 들어 그 차이점을 언급하고 있는데, 요약하자면 하위문화의 노동자계급 청년들 의 스타일을 규정한 음악이 세대적 감수성의 지속적인 문화로 더 진전되지 못한 것 은 기존의 부모문화와의 관계와 세대적 감수성을 문화자본화하기도 전에 시장권력에 편입되었기 때문이며 이에 반해 인디문화의 행위자들은 이미 문화자본을 상당히 갖 고 있는 매니아 층을 중심으로 형성된 문화라는 점에서 하위문화와 상이하고, 인디문 화는 공간성의 지배하의 부모문화를 전제하는 대립이나 탈주가 아닌 행위자의 실존 적 반성으로부터의 대립과 탈주이기 때문에 하위문화론의 세대적 감수성을 넘어선다 고 설명하고 있다. 물론, 하위문화론적 접근만으로 인디문화를 이해하는 데는 무리수 가 따르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하위문화와 인디문화가 발생적 맥락이나 지향하는 내용에 있어 약간의 차이와 변별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위문화는 그 시작에 있어 하층계급의 청년문화라는 것과 기존의 계급공동체의 해체에 따른 반동적 행위 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에 반해 인디문화는 계급의 중심성을 갖고 있지 않고 기존
따라서 이에 근거하여 하위문화론 내에서 인디문화 형성의 지점을 다 시 살펴보자면, 첫째 하위문화론의 문화적 하위성, 즉 하위문화가 지배 적 가치와 윤리로부터 배격 당하거나 혹은 배격을 가함으로 스스로 주류 문화에서 주변부화 된 문화라는 점에서부터 이고 둘째, 그러한 지배문화 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주류문화와의 완전한 단절의 관계가 아닌 긴장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 안에서 저항적 계기를 발견하려 한다는 점, 마지 막으로 저항의 방식이 매우 실천적이고 활발한 사건의 결합체로 구성되 어진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이 아방가르드의 미래주의자와 다다이스트, 초현실주의자들, 그리고 이후에 이어진 플럭서스 그룹이나 국제 상황주의자들의 행보가 인디정신이 발생할 수 있는 정신의 토양을 제공하였다면, 하위문화론은 이러한 인디문화가 깊이 뿌리내리고 자유로이 확산될 수 있는 계기점을 마련해 주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의 공동체 형성과는 다른 흐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때문에 하위문화론이 계급성과 세대성의 타협에 의해 계급에 경도된 측면을 가진 모던한 사회의 대표적 문화현상이 라면, 인디문화는 이념적, 운동적 특성을 지닌 소수자문화론적 성격과 유목문화적 특 성(nomadism)을 강하게 내포한 포스트-모던 사회의 문화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 나 본 연구에서는 인디문화와 하위문화론과의 변별점보다 하위문화론 내에서 인디문 화가 태동할 수 있는 접점을 찾는데 포커스를 맞추었다.
제 3 장 인디 문화 의 발생적 맥락과 특성 제 1 절 인디 문화 의 발생적 맥락 문화의 발생적 맥락은 그것이 출현한 시기와 공간의 히스토리를 아는 것에서 시작하여야 할 것이다. 그것은 문화가 내, 외적인 발생적 맥락을 토양으로 하여 드러나는 것임을 이해하는 것으로 시작해 그러한 토양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 발생 이후 문화가 그 토양 속에서 유통되고 수용 되는 과정의 변형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초석이 되어주기 때문이 다. 따라서 이 장에서는 한국 사회에서의 인디문화의 발생적 맥락을 사 회, 문화, 공간적 맥락으로 나누어 파악하도록 할 것이다. 1. 사회적 맥락에서의 발생 한국 사회에서 인디문화의 출현과 관련된 발생적 맥락은 그것이 출현 한 1990년대 중반이라는 시간적 환경과 한국 사회라는 공간적 환경의 절합을 통해서 형성된다. 37) 그 중 당시의 인디문화의 발생적 맥락을 사 회경제적 환경, 즉 문화 외적인 맥락에서 살펴보면, 1990년대의 사회적 상황은 민주주의로의 이행이라는 정치적 변동과 정보통신기술의 확산에 의한 여러 가지 패러다임의 변화로 요약될 수 있다. 우선 정치적 변동을 주의하여 살펴보자면, 38) 한국 사회를 정치적 차원 37) 특정 지역의 하나의 문화적 현상의 발생은 이러한 시간성과 공간성이란 두 가지 기 본 축과 함께 한 가지를 더한다면 그 문화적 현상이 발생하는 지역과 지역주민(지역 사회 구성원)의 히스토리를 꼽을 수 있다. 이 세 번째 축인 히스토리는 시간성과 공 간성의 흐름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면서도 훨씬 더 장기간의 흐름을 통해 형성된 내 면화된 잠재성의 토대와도 같은 것이며 민족성, 지역성, 민족적 취향이나 관습화된 윤리 등과 같은 것들이 이러한 히스토리를 구성하는 요소라 하겠다. 이렇게 하나의 가시적인 행위 속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구별되지 않고 드러나지만 히스토리는 그러 한 행위 발생의 숨어있는 토대이면서 한편으로 변형을 가능케 함으로 다른 공간에서 의 가시적으로 유사한 행위와 구별시켜주는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38)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 문화 내적 논리에 의한 자율성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특정
에서 1990년대 이전과 이후로 구분 짓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정 권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1961년 군사 쿠데타로부터 시작한 박정희 군 부 정권은 이후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면서 1992년 김영삼의 문민정 부가 들어서기까지 약 30년간 한국 사회를 통치했었다. 이렇게 왜곡되고 거대한 정치적 억압은 우리 사회에 사회 심리적으로 깊은 상흔을 남겼고 이후에도 부정적 효과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1990년대 문민정 부의 출현 이후 민주주의로의 이행의 첫걸음과 함께 독재와 민주주의라 는 두 개의 대립적 흐름이 보수와 진보라는 새로운 대립적 흐름으로 대 체되었고, 독재와 민주의 대립구도 속에서 소수화 될 수밖에 없었던 성, 세대, 지역 등 권력의 분절점들이 새로운 대립구도인 보수와 진보 사이 에서 다양한 지류를 형성하며 다변화 시대를 예고하였다. 이 같은 변화 는 지난 30년간 문화에 대한 목마름과 표출되지 못한 채 억눌려져 있던 내적 욕구의 외침과도 같았으며, 이러한 외침의 주체로 전면에 부상한 시민(citizen) 은 사회 계층적으로 중산층의 안정화를 의미하며 그들 나 름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할 수 있는 토대, 즉 시민문화의 토대를 구축하 기 시작하였다. 시민문화는 이전의 민중문화와 달리 기본적으로 경제적 라이프스타일의 친화성을 기반으로 하며 국가 권력과 시장 권력의 동원 체계 속에서 그들의 정체성으로 확보하기 위한 주요 갈등 지점으로 문화 영역을 부각시키며 대중문화의 고도화를 부추겼으며, 이전까지 상승세를 타고 있던 사회변혁운동과 60년대 말부터 나와 문화운동으로 이어지던 예술운동과 민족예술운동 등은 1991년 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인해 그 기세가 많이 꺾여 이후부터 소위 신 사회 운동 39) 이라고 볼 수 있는 움 사회 내의 제방 환경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는 없다. 알튀세가 특정 사회의 구성을 정치적 차원, 경제적 차원, 이데올로기적 차원의 중층 결정에 의해 설명하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특히, 한국 사회처럼 정치적 영역에 의한 제반 사회생활 에 대한 과잉 효과를 자아내는 사회의 경우에 정치적 영역에서의 변동은 문화읽기의 주요한 컨텍스트(context)가 된다. 39) 신 사회(또는 대안) 운동의 개념은 70년대 중반 이후 새롭게 등장하는 다양한 형태 의 운동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환경운동, 반전 반핵 평화운동, 여성운동, 지 역 및 시민 단체 중심의 자발적인 소규모 운동들 뿐 아니라, 소규모 공동체 운동, 공 공 및 산업 시설 및 방치 가택 점거운동 등 다양한 운동 형태들이 포함된다. 이러한
직임들로 이행되기 시작했다. 한편, 대중문화의 신장과 더불어 1990년대 급속도로 발달하게 된 정 보통신기술의 확산은 그에 따른 미디어의 발달과 함께 개인의 라이프스 타일과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이전과는 다른 많은 변형을 가져왔 다. 특히, 인터넷의 확산은 시공간을 확장함으로 사회적 행위자의 사회 적 관계를 확장시키고 개인과 개인의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며 문화의 생산자와 문화 소비자이 분리된 개념을 모호하게 하였으며, 인터넷에서 다양한 형태의 커뮤니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채팅, 사이버 게임, 핸 드폰, mp3를 사용하는 등 과거에는 서로 다른 매체에서 할 수밖에 없었 던 일들을 하나의 매체가 소화해내기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정보통신기 술의 확산은 신세대 와 X세대 에 이어 디지털 세대, 혹은 인터넷 세대 를 의미하는 N세대 를 낳았는데, 40) 인터넷과 디지털 카메라의 대중적인 신 사회운동은 현대 후기 산업 사회의 특징을 고스란히 반영한다고 할 수 있는데, 즉 후기 산업 사회가 갖는 특징들인 다양하고 분화된 사회체제, 거기서 파생되는 다양한 이슈들, 그리고 빠른 사회적 변화와 그에 따른 이슈의 빠른 변화 등에 의해 사회운동 (moderne soziale Bewegungen)은 그 속성과 모습을 바꾸어 완전히 새롭게 탄생되 고 있으며, 이러한 차원에서 신 사회운동은 산업 사회의 발전론적인 패러다임의 붕 괴 에 대한 대답이라고 정의되어질 수 있다 (Schneider, Nobert F., Ewig ist nur die Veränderung. Entwurf eines analytischen Konzepts sozialer Bewegungen, Frankfurt am Main/Bern/New York, 1987, p. 43) 우리나라의 경우, 1980년대 진행되던 진보적 운동의 좌초와 함께 사회 곳곳에서 나 타나기 시작한 사회운동의 퇴조 경향이 짙어지는 가운데 새로운 형태의 운동들이 서 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는데, 특히 환경운동이나 여성운동, 그리고 각종 개발 사업에 맞선 피해 주민 집단의 자발적 저항운동 등은 괄목할 성장을 이루었으며, 이 렇게 다양한 목적을 가진 주체들에 의해 매우 다원화된 이데올로기적 스펙트럼과 다 양한 행동양상을 보이는 신 사회운동은 자발적인 실천을 통한 새로운 사회운동, 혹은 시민운동의 형태로 우리 사회의 정치와 사회, 자본주의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 비판 하는 기능을 실천함으로 사회운동의 새로운 대안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40) 신세대와 X세대, N세대는 모두 1990년대에 생겨났다. 그러나 PC의 대중적인 보급 이 본격화되고 초고속 정보망을 통한 인터넷 상용화가 시작된 것이 1990년대 후반부 터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90년대 초반의 세대와 90년대 후반의 세대들이 동시대 를 살고 있는 청년세대들이긴 하지만 디지털 문화 환경을 경험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상당한 차이를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이들은 그 1990년대로 그 발생시점을 같이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