洞 祭 2010_12 1
권두 칼럼 내소사의 동제 전정권 시조사 편집국장 크리스마스와 동제( 洞 祭 )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세상에 탄생했을 때 동방박사들이 예물을 가지고 먼 길을 달려와 예배드린 것처럼 그렇게 경배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크리스마스라고 할 수 있겠다. 가을 역( 驛 )이라고 했던가. 붉게 잘 익은 감과 울타리 옆 국화 향기가 가득한 시골 역에 계절이 한동안 멈춰 서 있다. 노을 지 는 바다가 그리워 변산반도에 갔었다. 그곳의 내소사는 좁은 줄 포만만 건너면 바로 고향 마을이어서 몇 번 들른 적이 있는데 지 난 추억을 더듬으면서 걷는 전나무 숲길이 무척이나 상쾌하게 느 껴졌다. 불교에서는 세상사( 世 上 事 ) 잡다한 번뇌와 애착 그리고 가슴에 끓어오르는 갈애( 渴 愛 )를 불을 끄듯 불어서 끈다. 라는 뜻으로 열 반( 涅 槃 )이라는 말을 쓴다고 들었다. 미련 없이 후드득후드득 지 는 낙엽을 밟으며 가을에는 나무도 열반에 들 준비를 하는 것이 라고 혼자 생각했다. 절 마당이야 언제나 그 모습이었겠지만 전에 없이 눈길을 끈 것이 경내에 있는 수령 천 년의 느티나무였다. 이 절의 일주문 앞 에 있는 느티나무를 할아버지 나무, 이곳 대웅전 앞의 나무를 할 머니 나무라고 한다는데 나무의 허리에 지난 정월 열나흗날 동제 ( 洞 祭 ) 때 감아 놓은 용줄이 새삼스럽게 눈에 띈다. 사찰 경내( 境 內 )에 동제라니! 떠오르는 추억이 금방 어린 시절 고향 마을로 줄 달음을 친다. 동제( 洞 祭 )의 추억 우리 동네에서는 우선 농악대가 뜨는 데서부터 동제가 시작되 었다. 언제나 춘수리 양반이 상쇠가 되어 꽹과리를 잡고, 팔배 아 제가 장구를 메고 징은 늘 박자를 못 맞추는 갑배 차지가 되었 다. 이 농악대가 동네 집집마다 한 바퀴 돌면 이날 쓸 경비는 늘 넘치게 되어 있다. 열두 발은 아니라도 상모를 돌리고 나발을 부 는 소리가 요란하게 동네 아이들을 불러내 아이들도 신이 나서 건들거리며 농악대의 뒤를 줄기차게 따라다니는 것이다. 집집마다 농사를 끝낸 뒤라 햇짚을 서너 단씩 거두면 그것으 로 종기네 고구마 밭에서 용줄을 튼다. 용줄이란 짚으로 꼬아 만 든 어른 허벅지 두께의 긴 새끼줄로, 달이 둥실 떠오르면 위뜸과 아래뜸이 패를 나누어 그것으로 줄다리기를 하는 것이다. 항상 위뜸에 실한 사람이 모자라서 지기 때문에 위뜸이 끌려 갈 상황이 되면 나이가 지긋한 구동댁이 나서서 아래뜸의 힘깨 나 쓰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허리춤에 간지럼을 먹이면 그 틈에 위뜸 쪽으로 동아줄이 끌려가는 것이다. 이렇게 밀거니 당기거니 몇 차례 하고 나면 이제 용머리를 한 동아줄을 어깨에 메고 동네 고샅을 지나 저만큼 동네 앞의 모정( 茅 亭 ) 곁에 있는 늙은 감나무 로 향하는 것이다. 다른 동네에는 대개 느티나무가 있었지만 웬 일인지 우리 동네에서는 나이를 알 수 없는 늙은 감나무에 동제 를 지내는 것이었다. 이제 메고 온 용줄을 감나무에 칭칭 감고 그 위로는 서너 개의 금줄을 치고 나면, 뭐라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진양조의 늘어진 목소리로 축문을 읽고 술을 올리고 동네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 서 속이 빈 감나무에 절을 하는 것이다. 대개 일 년 동안 마을을 평안하게 잘 지켜 주신 동네 수호신께 감사를 하고 올해도 잘 부 탁한다는 축원을 비는 것이겠다. 이렇게 동제가 끝나고 나면 금 기( 禁 忌 )가 시작되어 한동안 이 감나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어 머니들은 아이들에게 신신당부를 하는 것이다. 너 모정 옆의 감나무에 올라가면 절대 못써잉. 그 감나무에 큰 구멍 있제? 그 속에 한 발이나 되는 시뻘건 지내가 사는디, 그 놈헌티 물리면 찍소리도 못허고 죽는 디야. 외동댁네 영수 있제. 그 영수네 성이 애려서 거그 들어갔다가 붕알을 물려 각고 팅팅 부어서 한 달 동안이나 오짐을 못 싸서 냉중에는 죽었다 드랑게. 그러닝게 알아들었제. 감나무에 절대 올라가면 못써잉. 이런 주 의를 여남은 번씩 들었기 때문에 여간한 담력을 가진 사람이 아 니고는 여름이 지나 장맛비에 용줄의 지푸라기가 삭아서 축 처질 때까지도 감나무 근방에 접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추억이 어린 용줄이 어찌 절간의 느티나무에 둘러 있단 말인가? 거기다 울긋불긋 금줄까지 덧댄 용줄이 말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유일하게 변산의 내소사가 절 마당에서 동제를 지 내는 곳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의 유수한 사찰 경내 에 원래 불교에는 없는 토속신앙의 잔재들이 남아 있는 것을 보 게 된다. 어느 절이랄 것도 없이 어지간히 이름을 댈 만한 곳이면 거의 예외 없이 절의 맨 뒤쪽 으슥한 곳에 삼신각( 三 神 閣 )이니 칠성각 ( 七 星 閣 )이니 하는 민간신앙의 기복처( 祈 福 處 )가 들어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본래 무속신앙이 보편화되어 있던 우리 나라에 불교가 들어오면서 일종의 타협을 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 다. 즉 널리 퍼져 있던 민간신앙을 일소( 一 掃 )할 수 없어서 사찰 내에 용납하는 조건으로 불교를 전파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기독교의 이교( 異 敎 ) 문화 불교에만 그런 것이 아니고 기독교 내에도 그런 이교( 異 敎 ) 문 화의 잔재( 殘 在 )는 적지 않다. 우선 기독교의 시작이라 할 수 있 는 크리스마스에도 그런 기독교의 외적( 外 的 ) 요소가 다분하다. 크리스마스가 12월 25일이 된 데에는 여러 설이 있다. 그중에서 도 가장 유력한 설은 고대 로마 에서 지키던 동지절과 관련이 있 는 것으로 본다. 대영백과 사전이 밝히고 있는 크리스마스의 유 래를 대강 정리하면 이렇다. 크리스마스의 유래 크리스마스를 12월 25일에 기념하는 이유는 불확실하지만 초 기 기독교들이 정복당하지 않는 태양의 탄생일(Natal is Solis Invicti) 이라는 로마의 이교 축제와 같은 날에 기념하기 시작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 이교 축제는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 고 태양이 하늘 높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동지( 冬 至 )를 기념한 것 이었다. 따라서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전통 관습들은 이교도들이 한겨울에 벌이던 농신제 및 태양숭배의식들과 그리스도의 탄생 을 한데 합쳐서 생기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마에서는 농경신 사투른(Saturn)을 기념하는 축일인 사투 르날리아(12월 17일~1월 6일) 에 흥겹게 지내며, 서로 선물을 교 환했다. 또한 이란 지방 사람들은 12월 25일을 신비로운 신, 미트 라(정의의 태양)의 탄생일로 여긴다. 역시 동지 3일 후에 태양의 기운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기념했던 것이다. 또한 튜튼족이 갈 리아, 브리튼, 중앙 유럽으로 침입해 들어오면서 게르만족과 켈 트족의 크리스마스 축제 의식이 이러한 관습들에 융합되었다. 음 식과 교제, 크리스마스이브에 벽난로에 때는 장작과 크리스마스 케이크, 푸른 나무들과 전나무들, 선물과 인사 등이 이 축일을 기념하는 행사가 되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는 어디까지가 기독 교적이고 어디까지가 이교도적이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뒤섞이 게 되었다. 하늘에는 영광이, 땅에서는 기쁨이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를 뜻하는 헬라어 크리스투스 (Christus)와 제사 또는 예배를 뜻하는 마스(Mass)가 합쳐져서 만들어졌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세상에 탄생했을 때 동방 박사들이 예물을 가지고 먼 길을 달려와 예배드린 것처럼 그렇게 2 Signs of the Times 2010_12 3
월간 시조 2010 DECEMBER 경배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크리스마스라고 할 수 있겠다. 동방박사들은 먼 동쪽(아마 페르시아 지방일 것임.)에서부터 특이한 별이 나타난 것을 보고 특별한 인물의 탄생을 직감하고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 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 고에, 태초에니라 (미가 5장 2절). M O N T H L Y M A G A Z I N E S I N C E 1 9 1 0-2 0 1 0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아마 그들은 구약성경을 연구하면서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 (민수기 아기 예수가 베들레헴의 어느 가난한 마구간에서 태어났을 때 24장 17절)리라는 예언을 읽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별 하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은 하늘에서 들리는 천사들의 청아한 나를 보고 40일 동안이나 밤하늘을 쳐다보며 사막을 건널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 별이 40일간이나 그들을 인도한 것도 신비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들은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이스라엘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았던 것을 보면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간절히 찬송소리에 흠뻑 빠져 있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누가 복음 2장 14절). 그 노래가 끝나자마자 그들은 아기가 태어난 곳 에 찾아가 경배를 드렸다. 이런 깨달음과 자세가 바로 크리스마 스를 진정으로 축하하고 감사하는 사람들의 태도일 것이다. COVER STORY 커버스토리 축제로서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기다리던 메시아(구세주)의 강림을 확신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 12 크리스마스의 주인, 예수는 누구인가? _ 이국헌 서 당시로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황금이니 유향이니 몰약이니 하는 왕에게만 드리던 예물을 준비했을 것이다. 예수가 탄생하기 700여 년 전에 이사야는 메시아의 신분과 그 의 어머니가 누구일지에 대해 예언해 두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 성경이 예수 탄생의 날짜를 밝히지 않은 것은 메시아가 태어난 날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분과의 바른 관계와 그분의 가르침 대로 사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기원도 불확실 한 날에 그리스도의 삶과 모본과는 정반대로 과도한 낭비와 방 종이 난무해서 로마 농경시대에 태양신을 섬기던 사투르날리아 14 크리스마스에 기억해야 할 감동적인 이야기들 _ 김성익 16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어떻게 보낼 것인가? _ 강석우 18 기다림의 신앙과 성탄 _ 이승동 20 크리스마스에 얽힌 신화 - 날짜? 날짜! 날짜? _ 남수명 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 축제로 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리라 (이사야 7장 14절). 그리스도의 탄생이 지구 역사를 기원전(B.C.)과 기원후(A.D.)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 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 임이라 (이사야 9장 6절). 그뿐인가. 역시 비슷한 시대에 살았던 미가는 메시아가 어디서 태어날지 이렇게 분명한 예언을 하고 있다. 로 나누었듯이 그분이 우리 삶에 작더라도 새로운 기원( 紀 元 )이 되었으면 싶다. 축복처럼 흰 눈이 쏟아지는 계절에 사랑의 임금 이신 예수께서 우리 마음에 태어나시는 크리스마스를 기대해 본 다. 목차 CONTENTS 02 권두 칼럼 PREFACE 크리스마스와 동제( 洞 祭 ) _ 전정권 세상을 보는 눈 06 시조의 눈 1 세계정부, 하나의 공상일까? _ 황춘광 영성과 믿음 34 구원에 이르는 믿음, 로마서 율법의 완성, 그리스도 _ 홍광의 36 영혼의 내비게이션 과연 세상의 종말은 오는가? _ 김일목 38 이야기로 읽는 성경의 예언 - 요한계시록(최종회) 생명수 강으로의 초청 _ 박성하 40 사랑의 하나님 영원하신 아버지 목숨을 건 창조 _ 송원무 08 시조의 눈 2 체벌을 보는 눈 _ 조영일 10 문화 프리즘 오디션 프로그램 _ 정근태 시대를 읽고 삶의 희망을 찾는 월간 시조 2010 DECEMBER Vol. 1,087 희망을 만드는 삶의 이야기 21 맛있는 세상 새로운 가족 _ 김종윤 22 취재 누가 우리의 이웃인가? _ 김 철 2010년 11월 22일 인쇄 2010년 11월 25일 발행(매월 마지막 목요일 발행) 등록일-1960년 7월 1일 등록번호-(서울 라-09730) 월간 교양지 (재)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한국연합회 유지재단 24 세밑 특별기획 감동을 남기고 떠나간 사람 1 _ 최영규 26 세밑 특별기획 감동을 남기고 떠나간 사람 2 _ 홍순명 28 감사 축복을 헤아리라 _ 쥬디 에이체트 발행인 김대성 편집인 전정권 인쇄인 김시영 편집장 김철 취재, 교열 강선철, 이혜진 디자인 정금순, 이혜연 발행, 인쇄처 시조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청량리동 1번지 대표전화 (02)3299-5200 30 수기 사선을 넘는 사람들 _ 무명의 선교사 32 봉사의 기쁨 어느 고려인의 인생역전 _ 임재명 43 독자의 글 행복 _ 강원화 주소변경 독자문의 (02)3299-5317~9 구독신청 (02)3299-5311~3 내용, 투고 문의 (02)3299-5322 팩스 (02)960-0848 지로번호 3005963 정기 구독료-1년분 35,000원 본지는 한국 간행물 윤리 위원회의 윤리 강령 및 실천 요강을 준수한다. 4 Signs of the Times 2010_12 5
세상을 보는 눈 Perspectives 시조의 눈 1 세계정부, 하나의 공상일까? 아직 20대 초반이었으니까 30년도 더 지난 일인 듯싶다. 에리히 프롬이 저술한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는 책을 붙들고 씨름했던 기억이 새롭다. 겉표지가 노란 색깔이고, 크기는 손바닥만 한 문고판이고, 페이지 분량도 그리 많지 않은 것이었다. 그런데 내용은 결코 가벼이 읽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거대 기계사회의 마성( 魔 性 ) 이 책에서 프롬은 새로운 유령( 幽 靈 ) 을 주목하게 한다. 그 유령은 공산주의나 파시즘 같은 어떤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그 유령이란 인간성을 상실케 하는 거대( 巨 大 ) 기계사회의 마성( 魔 性 )이다. 기계사회에서 인간은 마치 복잡한 기능을 하고 있는 수많은 크고 작은 톱니바퀴 중의 하나같이 되어 전체적으로 조종당하는 입 장에 놓여 있다. 매우 피동적인 상태이다. 이로 인해 생명력은 약화되고 감정은 고갈되며 생각은 적어지고 희망은 사라진다. 그저 최 대 생산과 최대 소비 속에 파묻힌 기계적인 존재로서 살아갈 뿐인 것이다. 더구나 고도의 컴퓨터사회에서 인간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주인공인 윈스턴처럼 사찰과 조작과 지배의 대상으로 사생활이 거의 없어지고 자유가 크게 억압된다. 말하자면 비인간화, 즉 인간성 상실 사회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악마적인 문제점을 꿰뚫어 보며 프롬은 사회심리학자답게 거대 기계사회를 새로운 유령 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G20 의 속사정 지난 11월 11, 12일 양일간에 걸쳐 우리나라에서 G20 정상회의가 있었다. 이 회의는 세계경제의 85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20개국 의 수반들이 모여 세계경제의 안정화와 균형발전을 모색하고 논의하는 자리였기에 국제적인 이목을 집중시켰다. 1970년대에 제1차, 제2차 석유파동이 일어났을 때에 G7 정상 이 회동을 갖고 협력 체제를 가동시키기 시작한 이후 1990년대 에 아시아 경제가 파산에 빠져들자 G20 재무장관회의로 확대되 었다. 그러다 2008년에 미국의 리먼 브라더스가 하루 아침에 도 산하고 세계 금융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위기상황이 무척 심화되면서 G20 정상회의가 출범하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세계 금융위기가 거듭 심화되는 것과 비례하여 국제공조시스템 역시 거듭 강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서울회의에서 G2라 불리는 미국과 중국은 확연한 의견차 를 보였고, 어느 나라든지 원칙론만 동의할 뿐 각론에서는 제각 기 다른 주장을 펼쳤다. 그럼에도 이번 G20 서울회의에서는 시 장 결정적인 환율제도 도입, 경쟁적인 통화절하 자제, 세계 금융 안전망 확보, 무역불균형 해소를 위한 예시적인 가이드라인 설 정, 신흥국 참여 증진을 위한 IMF 쿼터 개혁 등 각 부문에 대한 논의 결과와 향방이 좀 더 구체화되었다. 왜냐하면 이렇게 해서 라도 앞으로 촉발될 세계경제의 위기들을 막아 보고자 하는 속 사정이 사뭇 커졌기 때문이다. 유령 중의 유령 그런데 문제는 미래의 세계경제가 결코 장밋빛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이 세상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다 음과 같이 예언하셨다.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 와 자주와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그러 한 부가 일시간에 망하였도다 (요한계시록 18장 16, 17절). 이 성 구가 예견하는 경제적인 총파국은, 마치 기상이변이 현재보다 미 래에 더욱 잦고 더욱 커질 것이라는 기후과학계의 진단과 같이, 그런 양상으로 경제위기가 거듭 발생하다가 마지막에 있게 될 것 을 의미한다. 이로 보건대 G20은 세계경제의 공멸을 피하고자 불가불 세계 경제 통합시스템을 구축하는 모습으로 확대될 것이다. 성경은 더 나아가 경제는 물론 정치와 종교까지 지배하는 세계적인 통합시 스템이 형성될 것을 요한계시록 13장 12~18절과 요한계시록 18 장 2, 3절에서 예언하고 있다. 예컨대, 유럽경제공동체(EEC)가 유럽공동체(EC)로, 유럽공동체(EC)가 유럽연합, 즉 유럽정치경제 공동체(EU)로 바뀐 과정을 살펴보라. 앞으로 드러날 세계적인 정 치 경제 종교 통합시스템의 중심 세력을 요한계시록 13장은 짐 승 으로, 18장은 바벨론 으로 표상하고 있다. 이 세력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 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할 것이다(요한계시록 13장 16, 17절). 이 표는 짐승 의 표인데 이 표를 받지 않은 자는 강압과 통제에 의하여 매매 즉 경제활동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 예언적 사실은 세계경제가 앞으로 얼마나 혹심하게 곤란스러울 지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며, 그 문제로 인하여 마치 세계정부와 같은 통합세력이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 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라는 예언대로 경제활동을 빌미 삼아 나 라와 민족, 가정과 개인의 신앙 문제까지 강압하고 통제할 것임 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종교 세력이 통합시스템의 중 심 세력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통찰할 수 있다. 그러기에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에리히 프롬이 거대 기계사회 속에서 새로운 유령 을 주목하게 했듯이, G20의 속사정을 들여 다보고 세계경제 통합시스템 과정과 그 향방을 내다보면서 이 세 상의 파멸을 꾀하는 유령 중의 유령 을 일찌감치 간파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갈림길 이 유령 중의 유령 을 가리켜 성경은 큰 용 옛 뱀 곧 마귀라 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 인 것을 분명하 게 가르쳐 주고 있다(요한계시록 12장 9절). 그러나 희망은 있다. 게다가 그 희망은 지극히 영광스러운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탄 과 그 조종을 따르게 될 세력에 대하여 요한계시록 18장의 예언 대로 마침내 종언( 終 焉 )을 고하실 것이다. 그리고 짐승의 우상에 게 경배하지 아니한 자들 즉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가 진 자들 (요한계시록 12장 17절)에게 새로운 시작을 이루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그들을 친히 구 원하실 것이며 어떤 고통도 없는 영원한 안식처인 새 하늘과 새 땅 에 거하게 하실 것이다(요한계시록 21장 1~5절 참조).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선택의 갈림길 에 서 있다. 과연 어느 쪽으로 가야 할 것인가? 랑코 스테파노비치가 <예수 그리 스도의 계시>라는 책에서 요한계시록 18장을 풀이하며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조사해 보고 시험해 보면 서 세상사와 시세를 분별하고 진정한 희망의 길로 가야 하는 것 이다. 황춘광 한국연합회 목회부장 6 Signs of the Times 2010_12 7
세상을 보는 눈 Perspectives 시조의 눈 2 체벌을 보는 눈 어느 여학생(초등학교 6학년)의 글 아버지가 어제의 화가 다 풀리지 않았는지 그저 화내 기만 한다. 고함을 버럭버럭 지르며 우리를 막 때린다. 회초리로 등을 찰싹찰싹 막 때린다. 왠지 교회 선생님이 자꾸 보고 싶다. 다 싫다. 엄마도 할머니도 아무도 보고 싶지 않다. 선생님을 만나서 얘기하고 싶다. 내가 다 싫 어하는 것처럼 식구들도 다 나를 싫어한다. 얘기하기도 싫어하고 놀기도 싫어한다. 선생님, 제 마음이 언젠가 활짝 펴지면 마음껏 공부하고 교회도 나가고 운동도 하 고 시도 써 보고 싶어요. 새가 되어서 온 세상을 돌아다 니고도 싶어요. 맑은 공기 마시며, 푸른 하늘로 가고 싶 어요. 하지만 오늘은 아버지 때문인지 죽고만 싶어요. 체벌자의 특징 한국 아동학대 예방협회 와 한양대학교 교육연구소 가 학술 세미나에서 발표한 부모들의 특징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1. 어릴 때 매를 많이 맞은 부모들의 90퍼센트 이상이 아이를 때린다. 2. 때리는 방법이나 강도도 자기 어릴 때 받은 것과 비슷하거나 더 심하다. 3. 부모의 인성이나 정신에 문제가 있을 때 자주 아이를 심하게 때린다. 4. 가정 내의 문제나 부부간의 문제로 쌓인 갈등이나 분노를 상대편에게 표현하지 못해 풀 길이 없을 때, 힘없는 아이에게 매를 든다. 5. 교육적인 염려를 명분으로 내세우나 문제해결의 무력감, 강 박적 불안감, 자신의 체면손상 등을 해소하려고 매를 든다. 6. 아이의 사고 수준이나 능력 이상을 아이에게 기대하다가 그에 못 미칠 때나 어떤 사태에서 어떻게 아이를 다루어야 할지 모를 때 권위로 누르다가 통하지 않으면 체벌을 가한다. 이렇게 매를 드는 부모나 교사는 모든 것을 자기 주관대로 판단하고 정당화하기 때문에 다른 어떤 정당한 교육이나 훈계에도 자신 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옛날의 체벌 방법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어른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요즘보다는 올곧았다. 아이들도 그런 어른들의 모습을 보며 자랐고 가정교육 도 엄격한 편이어서 그릇된 행동을 잘 하지 않았다. 어른들 이야 기로는 우리 어릴 때보다 더 옛날에는 매 맞을 짓도 잘 안 했다고 한다. 가끔 매 맞을 짓을 하면 회초리를 드는 어른은 대체로 가 장 웃어른인 할아버지였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간추리면 이렇다. 매를 드는 어른은 아무리 화가 나도 화난 채로 때리지 않았다. 먼저 잘못을 저지른 아이에게 회초리를 꺾어 오게 하고 다음에 는 아이 스스로 바지를 걷어 올리게 해서 목침 위에 올려 세운 다. 그렇게 하는 데는 까닭이 있다. 그동안 아이는 무엇을 잘못했 는지 생각할 테고, 매를 드는 어른은 파르르 오른 감정을 삭이면 서 마음을 가다듬고 진정 어린 사랑을 매에 담을 수 있었던 것이 다. 회초리를 들고도 바로 때리지 않았다. 어떤 잘못을 했는지 깨 우치도록 아이 스스로 말하게 한 다음에 때린다. 회초리의 양도 어른이 마음대로 정하지 않고 무슨 잘못을 했으니까 몇 대 맞으 면 되겠는지 물어서 아이 스스로 정하게 하였다. 이렇게 해서 회 초리로 때릴 때는 아이에게 그 수를 헤아리게 한다. 한 대 한 대 마다 반성의 뜻을 담도록 하는 것이다. 이때의 회초리는 아이의 감정과 어른의 감정 사이에서 완충 구실을 했다. 요즘은 자녀 수가 적어서 그런지 자녀에게 거는 관심과 기대가 지나치리만큼 크다. 물질로나 정신적으로나 아이가 해 달라는 대 로 다해 주려고 한다. 부모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때로는 부모의 능력을 넘어서라도 말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녀를 소유 물쯤으로 여기고 부모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말하자 면 과잉사랑, 이기적인 사랑이다. 이런 부모는 자녀교육관이 아예 없거나 뒤틀린 경우가 많다. 그러니 자녀교육도 일정한 원칙이 없이 생각나는 대로 하다가 자 기가 원하는 대로 안 되면 손쉽게 매를 들게 되는 것이다. 성서와 종교적 관점 성서와 엘렌 G. 화잇은 체벌교육에 관해 이렇게 권면하였다. 그대의 아이들이 과오를 저지를 때에 성급하지 않도록 하라. 그들을 징계할 때에는 갑자기 말하거나 거칠게 말하지 말라. 이 것은 그들을 혼란시켜서 진실을 말하기를 두렵게 만든다 (새 자 녀 지도법, 51). 모든 청소년의 훈련에 있어서 한결같은 확고함과 격정에 지배받지 않는 일이 필요하다. 결코 얼굴을 찌푸리거나 거 친 말들이 입술을 빠져나오지 않도록 하라 (오늘의 나의 생애, 81). 한편 <새 자녀 지도법> 83쪽에서는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무 례하도록 방임해선 안 되며 친절하고 애정은 있으되 단호한 훈련 을 권하고 있다. 화잇은 이어서 모든 방법이 실패할 때엔 매를 드는 것이 필요 하다고 하면서 단, 아이에게 고통을 주기 전에 잘못한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 줄 것을 권했다(리뷰 앤드 헤럴드, 1910. 7. 28.). 화잇의 체벌론은 결국 성서의 원리나 교육학적 관점과도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성서에는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 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에베소서 6장 4절)고 말씀했고 또한 잠언 22장 6절에는 마땅히 행할 길을 아 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고 했다. 아이를 방임하지 말 것과 필요시 책망과 채찍을 가할 것을 권면하기도 했다(잠언 29장 15절). 당신은 누구에게 화를 내고 있는가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는 부모나 교사는 가정이나 학교를 화목 하게 이끌어 갈 수 없다. 분노는 곡식을 파먹는 벌레와 같은 것 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듯이 그것은 모든 것을 망쳐 버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어떤 아이든 자랄 때는 말썽을 피우고 부모나 교사 의 뜻을 거역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부모나 교사를 화나게 하려고 고의로 그러는 게 아니다. 이럴 때 부모나 교사의 판단은 자칫 어떻게 된 아이가 저 모양이지? 도저히 묵과할 수 없어. 라 는 식의 분노와 체벌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보통 다른 사람을 때리는 일은 법으로도 어긋나는 일이다. 미국 대부분 주에서는 아이들을 때리면 법으로 처벌을 받는다. 교육상 부득이 체벌이 필요한 경우라도 그것은 아이가 앞으로 잘못을 하지 않도록 하 는 것이 주목적이어야 한다. 어떤 경우라도 아이를 잔혹하게 매 질해서는 안 된다. 부득이 때리고 나서는 너무 시간을 끌지 말고 진지하게 애정을 표현해야 한다. 아이에게 맞은 아픔보다 부모나 교사가 때릴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도록 해 주어 야 한다. 그러한 목적을 아이가 안다면 맞아도 부모나 교사를 증 오하지 않을 것이다. 체벌은 냉정하게 그리고 최대한도로 절제하 는 것 이 교육적이요 성서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조영일 전 삼육대학교 대학원장, 미국 네브라스카 대학교에서 철학박사(교육방법 분야) 학위 이수, 희망의 소리 방송 행복한 가정 집필 중 8 Signs of the Times 2010_12 9
세상을 보는 눈 Perspectives 문화 프리즘 오디션 프로그램 cover story 축제로서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폴 포츠, 수잔 보일, 캐서린 맥피, 서인국, 허각. 이들은 최근 세 인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름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소위 오디션 프로그램 이라고 불리는 TV 프로그램을 통하여 알려졌다는 것이 다. 오디션 프로그램이란 참가자들 간의 경쟁을 통해서 정상에 이르 는 과정을 시청자들에게 보여 줌으로써 재미와 감동을 이끌어 내는 TV 프로그램이다. 폴 포츠와 수잔 보일을 발굴한 영국의 브리튼즈 갓 탤런트, 캐서린 맥피를 발굴한 미국의 아메리칸 아이돌 그리고 한국에서 한참 화제가 된 서인국, 허각 씨가 등장한 슈퍼스타 K 등 이 이러한 프로그램이다. 시청자들은 자신을 프로그램 출연자와 동일시함으로 큰 만족을 얻는다. 어떤 이들은 자신을 심사위원과 동일시하여 채점을 하고, 자신이 선택한 이들이 프로그램에서도 선택되는 것을 보면서 만족 을 느낀다. 다른 이들은 출연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함으로 힘든 과 정을 이기고 성취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만족을 느낀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계속 살아남는 것은 당연히 탄탄한 실력을 지닌 이들의 몫이다. 탄탄한 실력이 없이는 계속해서 도전을 이어나 갈 수도 없고, 혹 정상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대중의 호응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력이 전부는 아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결과만을 보 여 주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하여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 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참가자들이 겪는 위기와 고 비를 넘기는 모습들, 또한 각 개인사의 굴곡진 모습들을 보면서 감 동을 받는다. 폴 포츠가 평범한 휴대전화 외판원이었고 그의 별로 호감 가지 않는(?) 외모에도 불구하고 노래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 았다는 것, 47세의 노처녀 수잔 보일이 모두가 꿈을 따라갈 나이가 아니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 가 정 형편 때문에 중학교 졸업 학력이 전부인 데다가 자신의 표현대 로 변변한 직업이나 멋진 외모, 큰 키 를 가지지도 못한 허각 씨는 어릴 적 아버지와 결별한 어머니와의 연락을 바라는 아들의 마음을 방송을 통해 소개하기도 했다. 결국 오디션 프로그램은 이에 도전하는 이들의 쟁쟁한 실력과 상 호 경쟁 관계를 이어 가는 재미와 그 뒤에 숨어 있는 휴머니즘을 복 합적으로 보여 주는 엔터테인먼트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쯤에서 한 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왜 사람들은 이러 한 프로그램에서 휴머니즘을 찾는가? 실력만이 살 길이어야 할 프 로그램에서 그 뒷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왜 개인의 재능을 겨루는 대회 에서, 그와 관계없어 보이는 어려운 환경을 이기고 도전하여 쟁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고자 하는 것 일까? 이 시대의 중요한 아이콘은 감동이다. 감동이 없는 언어가 상업적으로 우리의 귀를 두드리는 이 시대 에, 사람들은 감동을 찾는다. 감동이 부족한 시대에, 사람들은 감동 을 찾고 있는 것이다. 정근태 한국 ACT 지도 목사 금년도 12월 25일에는 예외 없이 크리스마스가 온다. 크리스마스는 이제 서구 세계만이 아닌 전 세계의 경축일이다. 존 데이비는 12월에는 두 개의 크리스마스가 존재한다고 했다. 하나는 미지수의 표시인 X 의 날, 즉 X-mas이고 다른 하나는 Christmas이다. X-mas는 약삭빠른 상인이 매상을 올리기 위해 만든 소비와 향락의 축제이고, Christmas는 그리스도의 오심을 경축하는 축제이다. 우리가 경축하는 크리스마스는 무엇인가? 매년 12월은 한 해가 기우는 마지막 달이다. 성육신의 참의미를 알고 경축한다면 크리스마스는 인생의 새로운 시작, 내일을 향한 새 출발의 견인차가 될 것이다. 10 Signs of the Times 2010_12 11
cover story 축제로서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제자들이나 혹은 당시의 유대 정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아버지 하 크리스마스의 주인, 예수는 누구인가? 인들이 생각하고 기대했던 그런 메시아가 아니었다. 다시 말해서 예수는 이스라엘을 정치적으로 해방시키고자 오신 메시아가 아 니었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 및 그 나라 백성의 윤 리에 대한 본질적인 의미를 가르치고, 그 나라의 실현을 위해 오 신 종교적 메시아였다. 나님과 동등한 분으로 고백게 하는 신앙적 기반이 되었다. 이후 1,000년 이상 교회는 예수를 진정으로 하나님이시면서 인간이신 분으로 고백하면서 그 구원을 위한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는 신 앙 고백을 확립했다. 물론 계몽주의 시대 이후 예수의 존재성에 대한 신학적 논란 성탄절 축일이 가까워 오면서 기독교 문화가 우리 사회에서 넘쳐 나고 있다.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과 더불어 기독교의 양대 축제 절기인 성탄절은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고자 교회가 뜻을 모은 축제일이다. 그것이 묘하게도 로마의 농신제 축일과 연결되어 있음 에도 불구하고, 지난 2,000여 년 동안 성탄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 생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매우 중요한 축일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 해에도 그랬고 지지난해에도 그랬듯이 올해도 우리는 예수의 탄생 을 기념하고자 아름다운 축제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 축일은 문화화 되어 그 본질을 상실한 채 세속 문화 속으로 편입해 들어갔다. 이 성탄절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축제와 문화적인 관점에서 그날 을 고대하는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주인공이겠지만, 역사 종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분명히 탄생하신 그분, 예수가 주인공이 될 것이다. 따라서 성탄절은 그날을 즐기는 모든 사람의 축제 못지않게 그 축제 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문화 의 주체인 인류의 의식 속에 예수가 구체적으로 살아서 함께 소통 하는 구원의 실체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또 다른 예수의 탄생을 체험하기 위해서 지금 우리는 여기 21세기의 시공 속에서 예 수의 정체성과 그 존재의 의미를 다시 한번 확립해야 하지 않을까? 제자들이 이런 종교적 메시아에 대한 깨달음을 구체적으로 얻 게 된 것은 그의 죽음과 부활 사건을 경험하면서부터였다. 알랭 바디우의 통찰처럼 예수의 부활은 그가 실패한 메시아가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의 메시아임을 증명했다. 제자들은 나아가 이런 종교적 경험을 통해 예수가 단지 인간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이시 라는 특별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바울이 고백하는 것처럼 예 수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 되셨다(로마서 1장 4절). 예수의 부활과 현현은 그가 단지 메시아 의 차원을 넘어서 신적인 권능으로 인류를 보편적 진리의 틀 속 에서 구원할 영적 메시아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해 주었으며, 이 로 인해 제자들은 그분을 단지 메시아(그리스도)의 차원을 넘어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기에 이르렀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마태 의 고백은 이런 경험과 관련된 고백이었을 것이다. 예수의 신적 특성을 강조하면서 나타나게 되는 하나님의 아들 로서의 신앙 고백은 마르다의 고백(요한복음 11장 27절)과 요한의 고백(요한복 음 20장 31절)에서 계속된다. 부활과 현현 이후 사람들은 예수를 메시아로서의 정체성을 넘어서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였다.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 그러나 그의 존재성에 대한 인식이 여기에서만 머물지 않았음 이 제기되면서 예수를 단지 인간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역사적 예수 논쟁이 가속화되었지만, 여전히 예수는 인간으로 오신 하나 님이시다. 만일에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신다면 그 분은 분명히 예수와 같은 정체성을 가지실 것이기 때문이다. 예 수께서는 빌립에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는 것 이라고 말씀 하셨다(요한복음 14장 9절). 그분은 정녕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 이셨다. 그분의 자비와 겸손과 희생은 하나님의 품성이며, 그분 의 권능과 부활은 하나님의 능력이었다. 그래서 그분은 인간으로 오셨지만 하나님의 계시인 존재이다. 2,000년 동안 인류는 예수 를 통해서 하나님을 보았고, 지금도 여전히 그분을 통해서 하나 님을 알게 된다. 이런 역사적 이해를 통해서 볼 때, 우리는 크리스마스에 즈음 하여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 즉 예수를 어떤 분으로 고백할 수 있을까? 예수는 하나님으로서 그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우 리의 실천이성 속에 말씀해 주시는 말씀(logos)이시다.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으로서 예수는 삶의 행위와 가르침을 통해서 우리에 게도 여전히 살아 계신다. 그분의 생생한 가르침은 항상 우리의 마음속에서 신앙적 결단을 요구한다.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이 되셨고, 하나님의 뜻이 되셔서 우리에게 인류사회의 문화와 역사 을 우리는 기독교 사상사를 통해서 보게 된다. 초기 교회의 그리 를 올바로 이끌도록 인도하는 능력이 되신다. 예수는 언제까지나 우리 사회에서 예수는 누구인가? 엘을 해방시키고 구원할 구원자)로 인식하였다. 가이사랴 빌립보 스도인들은 부활의 생생한 체험과 더불어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 우리의 심령 속에 살아 계셔 우리의 도덕적 행위와 종교적 결단 그렇다면 오늘 우리 시대에 예수는 누구이고, 그를 어떻게 이 에서의 예수의 물음에 대한 베드로의 대답은 사실상 메시아라는 하던 예수를 하나님과 동등한 신적 실체로 고백하기에 이르렀다. 을 추동하는 힘이 되신다. 그분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신다. 2,000 웃에게 소개할 것이며, 그의 정체성과 더불어 어떻게 인류 사회 것이었다. 마태는 베드로가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그 고백은 원형적으로는 부활한 예수에 대한 도마의 고백( 나의 년 전에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육화(incarnation)되셨던 그분은 와 구원의 문제, 진리의 문제에 대하여 진지한 소통을 이룰 것인 아들 이라고 고백한 것(마태복음 16장 16절)으로 기록하고 있지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한복음 20장 28절).)으로까지 지금도 우리 안에 살아 계셔서 사랑과 자비와 정의와 믿음의 삶 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예수는 누 만 마가와 누가의 기록을 대조해 보면 그는 단순하게 메시아 라 소급해 가며, 2세기 초의 이그나티우스의 고백( 우리의 하나님, 을 결단하게 하시고, 신앙적 의지를 이끌어 가는 하나님의 능력 구인가라는 그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와 더불어 제시될 수 있을 고 답했던 것 같다(마가복음 8장 29절; 누가복음 9장 20절). 이 Trall, 7:1)과 2세기 말의 이레네우스의 고백( 성자도 하나님이시 이 되신다. 2,000년 전에 인간으로 오신 그 하나님께서 지금도 것이다. 예수가 누구인지에 대한 물음은 저 옛날 가이사랴 빌립 는 당시 유대인들이 예수를 선지자 중의 한 사람 정도로 받아들 다., Dem, 47)에서도 등장한다. 이러한 신학적 이해의 진전에 따 여전히 인간의 지식과 정서와 의지에 오셔서 인류의 희망을 이끌 보에서 제자들을 향한 예수의 질문으로부터 시작해서 21세기의 이고자 했던 것보다는 좀 더 구체적인 표현임에 틀림없다. 제자 라서 초기 기독교 사회는 예수를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로 고백 고 계신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의 인류에게 예수는 바로 그 그리스도인들에게 던져진 종교 사회학적 물음에 이르기까지 거 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 메시아는 분명히 구 했고, 그러한 고백의 영향에 따라 니케아신조에서의 삼위일체 정 런 분이시다. 이것이 바로 크리스마스의 주인이신 예수의 참모습 듭되어져 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에 대한 예수의 제자들의 대 약 후기의 선지자들의 시대로부터 당시 유대인들에 이르기까지 식(아버지와 아들의 동등 본질, 325년)과 칼케톤신조에서의 그리 이다. 답은 지극히 현실적이며 문화적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유대 종교적 맥락에서 기다리던 그 메시아였을 것이다. 그들의 스도의 신성과 인성(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인간이심, 451 신약성경의 시대에 제자들은 예수를 메시아(messiah, 이스라 경험 속에서 예수는 분명 메시아의 능력과 권세로 받아들여지기 년)에 대한 정식이 확립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일련의 역사적 과 이국헌 신학박사, 삼육대학교 교수 12 Signs of the Times 2010_12 13
cover story 축제로서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한 이야기가 적극적으로 자선 행위를 유발하는 보통을 넘는 역 할을 해냈다. 라고 치하하였다. 디나 도나휴의 빈방이 있습니까? 1966년 가이드 포스트에 최초로 게재된 이야기이다. 미국 중 서부에 있는 한 작은 마을에 윌리라는 덜떨어진 소년이 살고 있 크리스마스에 기억해야 할 감동적인 이야기들 폴 오스터의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오기 렌이 어느 해에 겪은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 추억 이야기 이다. 오기는 자신의 가게에서 좀도둑질을 하는 20세 전후의 청 소년을 쫓아내다가 그가 떨어뜨린 지갑을 줍게 된다. 지갑에 들 어 있는 스냅사진에 호감을 가진 그는 지갑을 돌려주기 위해 지 갑에 들어 있는 신분증의 주소를 확인한다. 그리고 그곳을 찾아 었다. 성탄절이 가까워 오자 여느 교회처럼 윌리가 다니는 교회 에서도 어린이부를 중심으로 성탄절 연극을 준비하게 되었다. 연 극을 지도하던 선생님은 윌리에게 대사도 짧고 간단한 여관집 주 인을 맡겼다. 드디어 성탄절이 되어 연극이 시작되었다. 추위 속 에서 숨을 몰아쉬는 배불뚝이 부인 마리아를 뒤에 둔 채 요셉은 다급하게 여관 문을 두드렸다. 주인 역을 맡은 윌리가 문밖으로 가 집에 홀로 있는 노령의 장님 할머니를 만나게 된다. 할머니는 얼굴을 내밀었다. 그러고는 그 가련한 요셉에게 말했다. 빈방이 한국에서의 크리스마스는 대부분 본질이 왜곡되어 있는 듯하다. 그가 자신을 잊지 않고 크리스마스에 찾아 준 손자인 것처럼 대 없으니 다른 곳을 알아보라고. 그것으로 연극은 평범하게 끝날 인터넷으로 크리스마스를 검색해 보니 대부분 이성과의 만남, 이성 했고 주인공도 역시 그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하루를 함께 것이었지만 윌리는 퇴장하지 않고 요셉과 마리아가 사라져 간 텅 에게 선물을 준비하거나 이벤트를 준비하는 이야기가 대세를 이루 보내며 식자재를 쇼핑하여 요리를 해서 대접하고 수많은 이야기 빈 허공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냥 그렇게 서 있는 윌리의 눈에 고 있다. 한마디로 뭔가 특별하고 이색적인 경험을 즐겼다는 내용이 를 그녀가 원하는 대로 들려준다. 오기는 이후에 다시 한번 찾아 서는 어느덧 산모와 아기를 향한 동정의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다. 그러나 감동적인 크리스마스의 이야기는 진정한 크리스마스 정 갔지만 할머니는 그곳에 더 이상 살고 있지 않았다. 아마도 그녀 윌리는 소리쳤다. 요셉, 가지 신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 준다. 대표적인 문학 작품 세 편과 기독 에게 그것이 마지막 크리스마스였을 것이라는 친구의 지적에 주 말아요! 마리아를 데리고 제 교와 연관된 이야기 두 편을 소개한다. 인공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발 돌아와요! 빈방이 있어요! 내 방을 쓰면 되잖아요? 매 에자르트 샤퍼의 넷째 왕의 전설 년 이 이야기는 이 마을에서 러시아의 민담을 에자르트 샤퍼가 넷째 왕의 전설 이란 단편으 반복되었고 미국 전역과 전 로 출간하였다. 성경에 나오는 동방박사 외에 예수의 탄생을 축 세계로 퍼져 나갔다. 마침내 하하기 위해 길을 떠난 넷째 존재가 있었는데 러시아 소왕국의 한국에도 1980년 한 신문의 왕이었던 알타반이다. 중간에 세 명의 동방박사와 만났지만 딸을 칼럼에 소개되었다. 이후 빈방 있습니까? 라는 연극과 뮤지컬로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 에서 부스럭거리더니 포장지에 싼 물건을 하나 꺼내 놓았다. 아 분만한 거지 산모를 돌보느라 동방박사들에게서 뒤처지게 되었 제작되어 매년 연말이면 셀 수 없이 많은 교회와 공연장에서 공 오 헨리의 단편 크리스마스 선물 의 주인공은 짐과 델리라고 주 값비싼 머리빗 한 세트였다. 아내의 출렁이는 아름다운 금발 다. 뒤쫓아 가면서 고난과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돕고 선물로 연되고 있다. 하는 미국의 젊은 부부이다. 이 부부는 서로를 마음속 깊이 아 을 빗으라고 남편 짐이 자기가 물려받은 유일한 금시계를 팔아 가져간 자신의 재물을 사용하느라 그는 결국 탄생한 예수를 만 끼며 사랑했다. 그러나 형편은 몹시도 가난했다. 가난하고 불편 한 생활이지만 두 사람은 각자 귀중한 보물을 하나씩 가지고 있 사 온 것이었다. 나지 못하게 된다. 이후에 어려움을 당한 이들을 돕다 마침내 자 신을 노예로 바쳐서까지 다른 이를 구해 내고, 우여곡절 끝에 알 진정한 크리스마스의 의미 세속적인 상업화는 내가 원하는 것을 선물로 받고 싶다는 욕 었다. 아내 델리는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금발을 가지고 있었 찰스 디킨즈의 크리스마스 캐롤 타반은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예수를 만나게 된다. 그는 탈진하 망을 부추기는 데 반해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크리스마스의 진정 고, 남편 짐에게는 아버지가 물려주신 금시계가 있었다. 어느 해 찰스 디킨즈의 크리스마스 캐롤 은 1843년에 발표된 그의 대표 여 흐려져 가는 의식 속에서도 십자가의 예수와 눈을 마주치며 한 정신이 나누는 것임을 보여 준다. 크리스마스의 쾌락적이고 크리스마스 무렵, 델리는 사랑하는 남편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작 중 하나이다. 주인공 스크루지는 자린고비 구두쇠로 인정이라 고백한다. 저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님께 갖다 드리려고 했던 이기적인 이교적 기원에 신랄한 비난을 가했던 엘렌 화잇이 이미 해 주고 싶어 주머니를 털었다. 그러나 1달러 87센트 동전이 전부 곤 털끝만큼도 없는 수전노였다. 그는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본 것들을 죄다 없애 버렸습니다. 그런데 불현듯 여자 거지의 말이 보편화된 크리스마스 트리를 불우한 이웃의 필요를 채우는 사랑 였다. 델리는 생각다 못해 아끼는 자신의 금발을 잘라 팔아서 남 래 함께 사업을 하던 남자의 유령을 만나고, 자기의 과거, 현재, 생각났다. 거지 산모가 고마운 마음에 자신은 가진 것이 아무것 의 선물을 모으는 상징으로 사용할 것을 권하는 것도 이와 같은 편 짐의 금시계에 걸맞는 시곗줄 하나를 샀다. 왜냐하면 남편이 미래의 모습을 본 후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크리스마스의 나눔 도 없어 자신을 도운 알타반을 마음의 왕으로 섬기겠다고 한 말 맥락이다. 올 크리스마스에는 당신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가지고 있는 금시계에는 시곗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저녁이 되 을 실천하게 된다. 이 소설은 아이들에게 곧잘 들려주는 이야기 이 기억난 것이다. 여인이 그에게 마음을 선사한 첫 번째 사람이 보지 않겠는가? 당신의 나누는 삶의 현장에서 진정한 크리스마 어 짐이 돌아왔다. 그 아름답게 출렁이던 아내 델리의 머리카락 인 동시에 크리스마스의 철학 이라고 흔히 일컬어진다. 저술 당시 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입술로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주 스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이 잘린 것을 보고 짐이 깜짝 놀라자, 델리가 말했다. 당신 크리 에 저명한 제프리 경은 1842년 크리스마스 이래로 기독교계의 님, 저의 마음을 그리고 저 여인의 마음을, 우리의 마음을 받아 스마스 선물로 제가 시곗줄을 사 왔어요. 그 말에 짐도 안주머니 어떤 설교단이나 고해소보다 따뜻한 정을 함양했으며, 이 소박 주시겠습니까? 김성익 삶 속의 이야기로 신앙을 이야기하기를 즐기는 교사이다. 14 Signs of the Times 2010_12 15
cover story 축제로서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어떻게 보낼 것인가? 반짝이는 성탄 트리의 전구를 보며 우리는 한 해를 보내는 아쉬 움과 새해의 기대감으로 크리스마스를 맞이한다. 크리스마스와 연말 을 겨냥한 많은 공연들이 홍보되고, 연말연시에 걸어 볼 만한 겨울 녹색길 10선 이 소개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크리스마스를 전후 해서 송년회의 일정들이 약속되겠지만, 아이들과 못다 한 대화도 나 누고 함께 뒹굴며 가족이라는 온실에서 지친 마음을 치유할 수 있 는 계획을 세운다면 가슴 따뜻한 가정을 세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이제 그 어떤 송년회의 계획에 우선하여 내 가족과 함께 하는 행복한 크리스마스의 계획을 세워 보자. 영어사전을 뒤적이며 남의 나라 말을 해석하듯이 십 대 자녀 들의 말을 해석해 보려고 애쓰다가 적당한 대화까지는 겨우 가 능한데, 이제는 동시통역이 안 되면 아이들이 대화에 끼워 주지 도 않는다고 한탄하던 어느 아버지의 말이 이 땅을 살아가는 모 든 아버지의 이야기가 되었다. 세대 간의 이해와 공감 그리고 가 족에게 사랑받고 가족을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 필 요하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친가나 외가를 방문해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면서 삼대의 애정을 키우는 기 쁨을 누리는 계획을 하는 것이다. 형제들과 사촌들까지 모일 수 있다면 더 행복한 시간이 될 것이다. 감동, 칭찬 나누기 온 가족이 모였을 때 할 수 있는 첫 번째는 지난 일 년 동안 지 내면서 가족들에게 느낀 감동과 칭찬을 나누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의 삶에서 작은 것에 감동을 한다. 상대방에게서 받은 그 감 동을 전하는 것은 크리스마스에 가족들에게 줄 수 있는 매우 값 진 선물이 될 것이다. 자녀들이 출생하여 성장하는 모습에서 부 모들은 감동하고 행복해한다. 어린 자녀들의 잠자는 모습과 표 정, 옹알이 소리, 아이가 처음으로 뒤집고 기어다닐 때, 앉고 서 고, 한 발짝 떼고 걷기 시작할 때 받은 감동과 행복을 이 세상에 서 나만이 누리는 것으로 착각했던 것은 나 혼자만의 경험이었 을까? 이러한 감동의 표현이 자녀들에게 큰 사랑으로 체험될 것 이다. 아기 예수가 탄생했을 때 천사들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 로다 하니라 (누가복음 2장 14절)라고 찬양했던 것처럼 크리스마 스에 가족 간에 나누는 이러한 정감 있고 사랑스러운 대화는 가 족의 화목과 평안 그리고 개인적으로 자존감을 높일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지난 일 년 동안 가족들의 삶에서 감동받은 것과 감 사한 것을 대화로 또는 크리스마스 카드에 그 내용을 적어서 나 누어 보자. 음식 함께 요리하기 두 번째로 가족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요리하는 것이다.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음식 준비물은 요리 전에 주방에 익숙한 아내가 먼저 준비한다. 남자들을 중심으로 자녀들과 함께 인내 심을 가지고 사랑이 담긴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이다. 서툴지 만 함께 모여 쿠키를 만들기 위해 밀가루 반죽을 하면서 아내에 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양파를 썰면서 눈이 맵다고 허리가 아프 다고 투덜대는 손자들이 할머니에게 감사하는 모습을 본다면 그 게 작은 천국이 아닐까? 그리고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을 이웃과 나누어 먹으면 자녀들에게 음식을 나눠 먹는 즐거움도 알려 주고 자부심도 심어 줄 수 있는 보너스가 될 것이다. 함께 산책하기 세 번째, 온 가족이 식사를 나눈 후에 함께 집 근처 뒷산에 있 는 산책로를 걸으며 오붓한 시간을 가져 보는 것이다. 눈이 조금 쌓였거나 낙엽이 떨어진 겨울 산길에서 동물, 새, 곤충들의 흔적 을 찾아보면서 가족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 볼 수 있을 것이 다. 산책로에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다면 어린 자녀들에게 운동 법을 가르쳐 주면서 신선한 공기를 맘껏 맡도록 하자.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활짝 펴고 크게 소리 내어 웃어 보자. 건강의 소중 함을 더불어 체험할 것이다. 희망의 소리 성경통신학교에서 신앙 서적을 무료로 보내 드립니다. 기독교에 대해 알고 싶으세요? <시조> 독자를 위하여 기독교와 성서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자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저명한 학자와 목사들이 집필한 이 책자를 원하시는 분은 아래의 주소나 전화로 연락하시면 무료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보내실 곳 130-650 서울 청량리 우체국 사서함 110호 <오늘의 신앙> 담당자 앞 (02)3299-5234, 5235 http://www.vop.or.kr E-mail:kucvop@kuc.or.kr 가족사진, 동영상 관람하기 네 번째로 다 함께 가족사진과 동영상을 함께 관람하는 것이 다. 디지털 카메라가 보편화되면서 사진을 인화하는 경우가 드물 어졌다. 대부분 컴퓨터에 저장해 두거나 DVD로 구워 놓기 마련 이다. 그동안 컴퓨터에 묵혀 두었던 사진들과 동영상들을 거실 TV에 연결하여 보자. 온 가족이 함께 성장해 가는 자녀들의 모 습, 부부간의 변화된 모습을 보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느낄 것이 다. 자존심을 세우기에 턱없이 모자라는 자녀의 성적표가 부모와 자식 간의 거리를 멀게 했다면 오늘은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 하고 있음에 감사하는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가족 십계명 만들기 다섯 번째로 그동안 가족들이 잘 지켜 왔던 것, 앞으로 지켜 가야 할 일, 약속할 것은 무엇인지 함께 나누어 보고 10가지를 정 리해서 가족 십계명을 만드는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자녀 손들에게 가족의 십계명을 설명해 주면 좋다. 신앙생활을 잘하라 고, 정직하게 살라고, 공부하는 목적이 자신의 안락만을 위한 것 이 아닌 사회에 봉사하고 이웃에게 나누어 주기 위한 것이라는 말을 하면서 삶에서 체험한 경험들을 이야기하고 일 년 동안 잘 실천할 수 있도록 축복기도를 해 주면 자녀 손들이 새로운 인생 의 결심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년 크리스마스에 다시 모였 을 때 어떻게 실천하였는지 나누면 더욱 좋을 것이다. 크리스마 스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감동과 행복의 선물이 있기에 온 세상 사람들에게 공평한 날이다. 사랑하지 않고 행복한 사람은 없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행복의 필수 조건이다. 건강 새 출발 (컬러판, 총 3권) 강석우 목사, 서중한합회 총무부장 오늘의 신앙 (신간 컬러판, 총 5권) 예수와 함께 (어린이용, 총 5권) 16 Signs of the Times 2010_12 17
cover story 축제로서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죄를 사함 받는 것이었기에 하나님은 아기 오셨네 우리에게 구세주를 보내 주셨다. 라고 했다. 이 세상 가장 낮은 지붕 위로 기다림의 신앙과 성탄 예수님이야말로 우리가 받은 최고의 선물이다. 찬란한 별 다 모여 비추고 둘째, 자신을 낮추며 겸비하게 사는 것이다. 아기 오셨네 기독교 신학의 핵심은 메시아 대망 신앙(The Messiah Expectation)이다. 아담 이후 4,000년 동안 인류는 메시아의 오심을 기다렸고, 예수 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후 2,000년 동안 성도들은 오매불망 그분의 다시 오심을 고대하고 있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기다림이다. 비록 더딜지라도 잠잠히 그리고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는 백성은 그분의 참백성이 아니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 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누가복음 2장 12절). 예수님은 군림하 러 오신 것이 아니고 섬기기 위하여 오셨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 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누가복음 2장 14절). 평화는 군림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섬김에서 온다. 섬기 는 리더십(servant-lead-ship)으로 평화가 만들어지고 섬기는 곳에 평화가 깃든다. 필립 얀시는 의학적 용어를 빌려서 예수님 장차 구름을 타고 내려오실 분 평화로이 구유에 잠이 드셨네 셋째, 그분의 나라가 임하도록 간절히 소망하며 사는 것이다. 인간은 희망을 품고 사는 존재(Erich Fromm) 이다. 나는 소망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몰트만의 속 깊은 주장 이다. 인생은 기다림이다.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행복하리라는 기대, 의 성육신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께 내일이 오늘보다 나아지리라는 꿈과 희망이 우리를 붙들고 있다. 서 작아지시고 작아지시고 또 작아지셔서 마침내는 하나의 난세 신앙은 기다림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대망( 待 望 )이 현세적 어 포가 되기까지 작아지는 형태를 취하셨다. 려움을 이기게 하는 힘의 원천인 것이다. 아기 오셨네 넷째, 예수님과 실제적인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이다. 허리를 굽히지 않으면 그리스도 베들레헴에 태어나심이 천 수백 번을 헤아리건만 들어갈 수 없는 마구간에 그리스도 네 마음 안에 다시 나시지 않으시면 그 영혼은 아직 버림받은 채로다. 아기 오셨네 십자가만이 네게 구원을 주리니 초림과 재림의 차이 다. 재림은 노 터닝 포인트(no turning point) 이다. 운명을 바꿀 무릎 꿇지 않으면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가 네 마음에 세워지지 않으면 초림과 재림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무엇인가? 목적의 차이이다. 수도 돌이킬 수도 없다. 내일은 내 시간이 아니다. 내 운명을 바 뵐 수 없는 어여쁜 아기 네 영혼은 영원히 잃어진 것이니라 (앙겔리우스 실레시우스). 초림의 목적이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것이었다면, 재림의 꿀 수 있는 시간은 바로 오늘 그리고 지금이다. 보라 지금은 은 목적은 의인을 데리러 오시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베들레헴에 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린도후서 6 누가 알았으랴 2,000년 전, 유대의 어느 허름한 마구간에 아기로 오셨던 예수 오셨을 때 구원의 문은 아직 열려 있었다. 예수를 은 30에 판 가 장 2절). 세상을 만드신 당신 님은 오늘 우리의 마음문을 두드리고 계신다. 우리가 아무리 요 룟 유다, 헤롯 그리고 빌라도에게도 희망은 있었고 그때에도 그 저리도 작게 오실 줄을 란하게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쳐도 그분이 내 마음 안에 다시 태 들이 구원받기에 너무 늦은 것은 아니었다. 모든 죄인을 위해서 재림을 기다린다는 의미 어나지 않는다면 나는 아직 잊혀진 사람이요 버림받은 존재일 뿐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러나 재림은 성격이 다르다. 초림이 그렇다면 재림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고, 어떻게 준비해야 누가 알았으랴 이다. 구원의 씨를 뿌리는 것이었다면 재림은 추수하는 것이다. 그러므 하는가? 태양을 만드신 당신 내 마음의 성소에서 그분이 다시 태어나는 날, 그날이 바로 구 로 재림 때까지 성숙하지 못한 열매들에게는 기회가 없다. 그때 첫째, 예수님을 유일한 구주로 인정하는 것이다. 저리도 연약하게 오실 줄을 원의 날이요 평화의 날이다. 서야 용서받고, 그제서야 죄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시도들은 부 척 스윈돌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정보였다면, 하나님 Merry Christmas, Happy Noel! 질없는 일이 될 것이다. 께서는 우리에게 교육자를 보내 주셨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포대기에 싸인 장밋빛 뺨에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 것이 기술이었다면 과학자를 보내 주셨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 내 차가운 볼을 부비면 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 요한 것이 돈이었다면 경제학자를 보내 주셨을 것이다. 우리에게 빙산의 눈물도 다 녹으리 이승동 퇴계원교회 담임목사 되게 하라 (요한계시록 22장 11절)는 두려운 선고를 듣게 될 것이 필요한 것이 쾌락이었다면 연예인을 보내 주셨을 것이다. 그러나 18 Signs of the Times 2010_12 19
cover story 축제로서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희망을 만드는 맛있는 세상 삶의 이야기 크리스마스에 얽힌 신화 - 날짜? 날짜! 날짜? 새로운 가족 다른 날은 사람 기척만 있으면 달려오던 진순이가 보이지 않 받지 않겠습니다. 내 사정을 눈치챘는지, 수의사는 진순이와 새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이 기념하고 즐기는 날, 그러나 그만큼 논란거리가 많은 날, 크리스마스(Christmas)! 크리스마스 하면 날짜 에 대한 세 가지 반응이 떠오른다. 았다. 나는 의아해서 진순이 집으로 가 보았다. 그리고 깜짝 놀 랐다. 밤새 진순이가 새끼 일곱 마리를 낳았던 것이다. 맙소사. 새끼 가진 줄도 몰랐는데. 공장이 어려워지면서 사람들이 하나둘 빠져나가고, 아무도 진 끼들을 맡겠다고 나섰다. 나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개를 데려가기로 약속한 날이 되었는데도 진순이는 기 력을 찾지 못했다. 결국 동물병원에서는 새끼 일곱 마리만 챙겨 갔다. 새끼들을 떠나보낸 것이 슬펐는지, 진순이는 며칠간 음식 순이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하다못해 진순이가 새끼를 가졌다 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기만 했다. 는 사실도 눈치채지 못했었다. 새끼를 낳느라 진이 다 빠진 진순 하지만 기운 없이 엎드려 있다가도 내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 이가 염려스러웠지만 곁에 붙어 있을 형편이 못되었다. 한 달 후 다녔다. 화장실에 가면 화장실 앞에서 나를 기다렸고, 출근 시 첫 번째로, 날짜? 크리스마스가 정말 12월 25일일까? 그날 정 탄생일로 지정하여 지키기 시작하였고, 5세기에 이르러서는 12월 면 공장 문을 닫아야 했고, 그러자면 정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간이면 공장 입구에서 나를 기다렸다. 냉기만 가득한 공장에 그 말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마구간에서 탄생하셨을 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영구히 지키게 되었다(<대영백과사 였다. 결혼도 하지 않은 채 매달려 여기까지 끌고 온 공장이었지 나마 진순이라도 있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 되었다. 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통적으로 긴 세월 동안 이 질문에 전>, <가톨릭 백과사전> 참조). 만, 경영난으로 더는 버틸 수 없을 지경에 이르고 만 것이다. 정 드디어 공장 문을 닫는 날, 눈이 펑펑 쏟아졌다. 크리스마스 대한 대답은 변함이 없었고, 우리의 오랜 의식 속에서부터 예수 그리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종교개혁과 함께 기독교에 받아들 신없이 일을 하다 밖을 내다보니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이브였고, 사흘 동안 연휴였다. 모든 짐을 챙기고, 공장 문을 나 그리스도께서 12월 25일에 태어나셨다는 것을 믿고 있었다. 그러 여지게 되었으며, 이제는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기념하고 즐기는 겨울에 무슨 비가 이렇게 쏟아질까. 나는 그때서야 진순이가 서는 발길이 천근만근 무겁기만 했다. 모두 잃어버렸고, 이제 무 나 얼마 전부터 약간의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날이 되었다. 이제는 12월 25일, 그 날짜가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 떠올라 얼른 가 보았다. 그리고 또다시 놀라고 말았다. 진순이가 엇을 의지하며 살아야 할까 암담할 따름이었다. 짐을 싣고 공장 두 번째로, 날짜! 그리스도의 탄생일이 12월 25일이 아니라는 도의 탄생일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된 셈이다. 실제로 팔 새끼를 입에 물고 공장 구석으로 가고 있었다. 따라가 보니, 공 을 나서려는데, 문득 진순이가 보였다. 진순이는 공장 앞에 망연 것을 알게 된다. 지금까지의 연구와 주장에 의하면, 크리스마스 레스타인 지역의 지리적 특성과 유대인들의 관습 그리고 성경의 장 구석에는 새끼들이 모여 있었다. 한꺼번에 쏟아진 빗물이 개 히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공장의 새 주인도 연휴가 끝나 의 시작은 고대 바벨론의 태양신 숭배의 풍습에서부터 유래되었 그리스도 탄생의 배경과 묘사를 살펴봐도, 12월 25일이 그리스 집 안으로 들이치자, 진순이는 어린 새끼들을 마른 곳으로 옮기 야만 출근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진순이는 며칠 동안 혼자 있어 다고 한다. 일례로, 크리스마스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인 율 데이 도께서 탄생한 날이라고 보기는 심히 어렵다. 는 모양이었다. 진순이는 일곱 마리의 새끼를 모두 한자리에 모 야 했다. 내가 차에서 내린 것은 진순이가 며칠 동안 먹을 사료 (Yule day) 는 이날이 바로 이교도 국가인 바벨론에서 유래되었 마지막으로, 날짜? 그렇다면 12월 25일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 놓고는 젖을 물렸다. 꼬물거리는 새끼들이 서로 젖을 먹으려 와 물을 챙겨 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나는 나도 모르게 진순이 음을 보여 준다. 여기서 율(Yule) 은 어린아이 를 뜻하는 갈대아, 탄생한 날이 아니라면 오늘날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지 않 고 아옹다옹거리는데, 진순이는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를 덥석 끌어안았다. 즉 바벨론 말이다. 그 바벨론의 태양신 숭배 풍습이 로마로 받아 고 즐기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12월 25일이라는 공장 일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이 수세미 같은데, 진 죽든 살든 함께 살아 보자. 서로 의지하다 보면 좋은 일 있을 들여지면서 사투르날리아(Saturnalia) 라는 축제를 하게 되었으 그 날짜보다는 그리스도 탄생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 그리고 순이 일까지 겹쳐서 이만저만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일곱 거야. 그런데 내 말을 알아들었을까. 갑자기 진순이는 멍! 하고 며, 12월 25일을 나트리스 솔리스 인빅티(Natlis Solis Invicti) 라 그분의 탄생이 인류에게 던지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되새기는 것 마리 새끼들은 진순이 젖무덤을 한시도 떠나지 않았지만, 진순 요란하게 짖으며 내 얼굴을 정신없이 핥았다. 그리고 나는 보았 고 불렀는데, 그 뜻은 정복할 수 없는 태양의 탄생일 이라는 뜻이 이 진정으로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이한테 먹일 음식이나 사료조차 충분치 않았다. 다. 진순이가 활짝 웃는 모습을. 눈가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다. 다. 로마에서는 12월 22일 동짓날이 해가 가장 짧은 날이므로 이 결국 염려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진순이가 쓰러진 것이다. 그때서야 나는 깨달았다. 모두 떠났지만, 진순이만은 내 곁을 끝 날은 태양이 죽은 날로 믿었으며, 12월 24일은 해가 다시 길어져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크리스마스(Christmas)는 그 기원 별로 먹지도 못하면서 새끼들한테 젖을 먹이느라 영양부족 까지 지켜 준 가족이라는 것을. 태양이 살아나는 것으로 믿어 12월 25일을 해가 다시 살아난 날, 에 있어서 매우 복합적인 요소(이교도, 천주교, 기독교 등)를 담 으로 쓰러진 것입니다. 새끼들하고 헤어지면서까지 내 곁을 지키려고 했구나. 태양의 탄생일로 숭배하게 되었던 것이다. 고 있는 날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날은 아들의 탄생을 통하 수의사는 진순이한테 링거를 맞혀야 된다고 했다. 공장 문을 내가 지켜야 할 가족이 있다는 것이, 내 곁을 지켜 줄 가족이 여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인류에게 전해진 날이라는 것이다. 닫아야 하는 상황에 몰렸는데 개한테까지 큰돈을 써야 하다니, 있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든든하게 해 주었다. 나는 진순이를 정치적인 면을 포함한 여러 가지 이유로 로마 가톨릭 교회가 4 울컥 짜증이 솟구쳤다. 옆에 앉히고 공장 문밖으로 천천히 차를 몰았다. 세기 후반에 태양신 솔(Sol)의 탄생일인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남수명 대구중동교회 담임목사 개들을 키울 수 없는 사정 같은데, 제가 데려오지요. 약값은 김종윤 시인, 작가 20 Signs of the Times 2010_12 21
희망을 만드는 취재 삶의 이야기 누가 우리의 이웃인가?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와 다문화가족 수 약 200만 명, 국제결혼이 10퍼센트를 웃도는 한국은 이제 다문화사회가 되었 다. 코리안 드림 을 안고 이 땅을 찾아온 외국인에 대한 인권과 대우 는 국가적으로는 많이 선진화되었지만 국민적 태도와 인식에는 여 전히 차별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동남아시아 출신 이주 여성들 이나 못사는 나라 외국인들을 우습게 여기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 들, 피부색이 다르다고 깔보는 이들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있다. 흔 히 사람 됨됨이가 안 된 사람들은 도와줄 가치도 없다. 도와줘 봐 야 실망과 배신감만 남는다. 라고 말한다. 각종 문화적 이질성과 언 어소통, 의료, 산업재해, 임금체불 등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제3 세계 외국인들에게 한국은 아직 내 집처럼 행복한 땅이 아니다. 객 지에서의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외국인 최대 집결지가 경기도 안 산이다. 안산에는 60여 나라 외국인 약 10만 명이 체류하고 있다. 이들의 눈물을 닦아 주고 이들의 필요를 돌보는 비영리 민간단체 중 하나가 다문화가족 행복나눔센터 이다. 인간을 아끼고 존중하며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는 사회를 꿈꾸는 NGO 단 체이다. 다문화가족 행복나눔센터가 섬기는 이웃 다문화가족 행복나눔센터 는 안산시에 터전을 마련한 외국인들 에게 교육, 문화, 복지 서비스(언어교육, 의료봉사, 법률상담, 직업알 선, 구타당한 이주자 여성 보호 등)를 통합적으로 제공하여 이주민 과 다문화가족이 한국사회에 조기 적응하여 안정적으로 생활하도 록 하기 위해 2008년 12월에 설립되었다. 한국에 터를 잡는 외국인들이 더 이상 낯선 이방인이 아닌 이 웃이라는 지역사회 인식 개선에 앞장서고 있다. 외국인을 돕는 여 러 단체에서 미처 돌보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숙박 문제이다. 다문 화가족 행복나눔센터 는 숙박시설을 갖추어 봉사하고 있다. 개인뿐 아니라 가족들도 함께 머물 수 있고 여러 가지 편의시설도 잘 갖추 어져 있다. 자녀를 가진 여성들, 폭행당한 여성들을 우선적으로 수 용하여 보호하고 수습해 준다. 현재 단기뿐 아니라 장기투숙이 필 요한 외국인들을 위한 객실이 56개로 비영리 민간단체로는 최고라 는 평을 받고 있다. 기자가 둘러본 숙소는 매우 깨끗했고 편리해 보였다. 모든 시설 이 잘 관리되어 있었다. 중국에서 온 훼이 씨는 고향집같이 쾌적한 숙식을 무료로 제공 해 주는 이곳 센터에서 행복하고 즐겁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곳 원장님과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라고 하였다. 탄자니아에서 온 힐롱가 씨는 2년 넘게 박사학위 과정을 공부하 고 있는데 고향집보다 더 행복한 생활을 부인과 두 아이와 함께하 고 있습니다. 모든 숙식 문제가 무료로 제공될 뿐 아니라 언어교육, 문화교육 등 모든 외국인의 안식처가 되고 있습니다. 아이보리코스트에서 온 마리 씨는 이곳 센터에 온 것은 너무나 큰 행운입니다. 무료로 제공되는 숙식 등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 습니다. 라고 말했다. 사람 존중 다문화가족 행복나눔센터를 시작한 김영수 원장은 하나님 앞에 서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평등한 존재이며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하였다. 6 25 전쟁 중 유복자로 태어나 힘들고 가난한 김영수 원장 작업장 모습 치과 의료봉사 피난 생활을 하며 성장한 김영수 원장은 배고픈 사람들에 대한 애 정이 남달랐다. 도와줄 가치를 못 느끼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기아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외국인을 만나면 첫 인사말이 밥 먹었느냐? 가 되었단다. 다문화가족 행복 나눔센터 점심시간에는 배고픈 사람은 누구든지 식사를 할 수 있 도록 식당을 오픈 한다. 그들에게 최고의 식사를 준비하여 제공하 고 김영수 원장도 그들과 함께 식사한다. 김영수 원장은 주머니에 항상 몇 만 원의 돈을 예비로 지니고 다닌다. 돈이 떨어졌다고 하소 추석맞이 소풍 연하는 외국인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김영수 원장은 남을 돕는 것만큼 행복한 것은 없습니다. 기대하지 않고 도와주었 기에 실망할 것도 없습니다. 돕는 것만으로 이미 복을 받았습니다. 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라고 말한다. 진심은 전달되고 조건 없는 사랑은 감동을 낳기 마련이다. 우리 원장님은 정말 우리를 사랑합니다. 언제나 내 편이 되어 도와줍니 다. 그곳에서 만난 몇 외국인들의 입에서 나온 고백이다. 명절 연휴에는 게스트룸을 오픈 하여 갈 곳 없는 외국인들이 와 서 먹고 편히 쉬도록 한다. 올 추석은 중국인, 아프리카인을 위한 날을 정해 그 나라 명절음식을 먹이고, 장기자랑 대회 및 에버랜드, 제주도 관광 등의 행사를 통해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 주었다. 김영수 원장은 그의 꿈을 이렇게 말했다. 이집트에서 400여 년 종살이한 후 출애굽 한 이스라엘인들이 정착한 땅을 우리는 가나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서에서는 이 흐르는 물과 같은 삶 김영수 원장이 학비가 없어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 었을 때, 계속적인 수학의 희망을 준 학교가 있었는데 바로 유한공 업고등학교였다. 자기처럼 돈이 없어 공부할 수 없는 고학생들이 전 액장학금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유한양행 제약회사를 설립하신 고 ( 故 ) 유일한 박사가 세운 학교였다. 그분은 재산을 자손에게 유산 땅을 일컬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이라고 명명합니다. 나는 이 땅의 이름이 참 좋습니다. 왜냐하면 그 땅은 젖과 꿀이 고여 있는 땅이 아니라 흐르는 땅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더 부강한 나 라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찾아온 이 땅 의 나그네인 다문화가족들에게 내 자랑스런 조국, 이 땅 대한민국 이 진정한 이 시대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으로 남겨 주시지 않고 사회에 환원하였다. 유일한 박사의 영향과 성경 신앙은 김영수 원장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흐르는 물의 삶을 실천한 예수님과 유일한 박사처럼 내가 받은 축복을 흘려보내는 삶 을 살기로 결심했다. 다문화가족 행복나눔센터의 모든 프로그램에 는 이 정신이 흐르고 있다. 또한 흐르는 물 같은 삶을 따르는 개인 기부자들의 도움을 동력으로 운영하고 있다. 기대 이상으로 최선을 자신이 겪는 아픔은 대단하게 생각하면서도 이웃이 겪는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는 사회는 추워지는 날씨만큼이나 냉혹하고 비인간 적인 사회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것은 도움이 필요한 이웃의 현실을 주목하고 이들을 끌어안는 사랑뿐이다. 흐르 는 물 같은 삶을 실천하는 사람이 절실히 필요한 계절이다. 다해 정성껏 보살펴 주므로 외국인들이 난 존중받고 있다. 난 사랑 받고 있다. 여긴 내 집이다. 라고 감동하는 행복한 공간을 만들어 가 고 있다. 김 철 본지 편집장 22 Signs of the Times 2010_12 23
희망을 만드는 세밑 특별기획 삶의 이야기 감동을 남기고 떠나간 사람 1 나에게 형님이라고 부르는 후배 목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11 프가 연결되고 빔 프로젝트가 영상을 반사한다. 컴퓨터의 첫 화 월 22일이 결혼 10주년 기념일인데 올해가 아내와 보내는 마지막 면은 이들 부부와 싸이판에 여행 갔을 때 행복하게 웃으며 찍었 결혼기념일이 될지도 모른다며 그날을 특별하게 기념해 주고 싶 던 이들 부부의 사진을 바탕화면으로 결혼 10주년 기념 은데 좋은 아이디어가 없느냐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사모의 사모 초청 특별 영상음악회 라고 만들었다. 암 투병 소식을 듣고 찾아보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내가 무언가를 그 부부를 위해 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때 그 모든 준비를 마치고 우리 가족 셋이서 손을 잡고 무릎을 꿇었 사모는 갑작스런 암 진단을 받고 고통과 싸우며 하루하루의 시 다. 하나님, 오늘 우리의 사랑이 음악회를 통해 사모에게 전해지 간을 힘들게 보내고 있던 터였다. 클래식 음악 감상을 좋아하며 길, 이 순간만이라도 고통을 잊고 행복하기를, 오늘의 감동이 아 늘 환히 웃던 예쁜 사모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출장 중에 대구에 픔에 큰 치유가 되기를 그리고 함께 살아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 있는 후배 집을 방문했을 때 사모님이 한 상 맛있게 차려 내온 저 하는 시간이 되길 간절히 기도했다. 텅 빈 교회에서 약속된 시간 녁 만찬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동안 그 가족을 기다리면서 얼마나 긴장했는지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해가 지자 제시간에 사모를 태운 승용차 한 대가 교회 마지막 음악회 문 앞에 섰다. 얼마나 고통스런 통증에 시달렸는지 담요에 푹 쌓 나는 사모님을 위한 그리고 그 부부의 결혼 10주년을 위한 특 인 채로 사모님이 간신히 미소 지어 인사했다. 두 아이가 엄마를 별한 영상음악회를 준비하기로 하고 정성 어린 마음으로 명연주 부축하고 아빠와 함께 조심조심 자리에 앉았다. 자들의 훌륭한 음악으로 늦가을의 분위기에 맞게 다양하게 프로 그램을 짜고 음악회 순서를 파워포인트로 만들고 곡의 해석까지 두 가족이 자리에 앉고 조용히 첫 음악이 흐른다. 비발디의 사 준비하였다. 다양한 장르의 아름다운 곡들이 연주될 때 사모님 계 중 가을 1악장이다. 깊어 가는 가을의 산골짝 풍경의 영상 의 아픔과 진통도 치료될 거라는 기대감이 피곤함을 잊게 했다. 에 바이올린의 선율이 낙엽을 타고 흘러간다. 훔쳐본 사모의 야 그날은 토요일이었고 나는 부산에서 바다가 제일 잘 보이는 교회 윈 얼굴에 뜨거운 눈물이 한없이 흐른다. 두 번째 곡은 영화 남 를 음악회 장소로 섭외했다. 음악회에 초대된 사람은 사모와 그 태평양의 삽입곡으로 미 해병대원들이 부르는 여자보다 귀한 것 가족 네 명 그리고 우리 가족 세 명, 시간은 일몰 직후인 6시 30 은 이 세상에 없네 라는 곡이 유머스럽게 화면을 채운다. 남편에 분으로 정했다. 그리고 사모에게 비밀로 하고 깜짝 음악회를 하 게 아내가 없는 세상, 아이들에게 엄마가 없는 세상이 어떠하겠 자고 제안했다. 는가? 사모는 암으로 인한 죽음의 고통보다도 어쩌면 아내가 없 새벽바람이 차가운데 영상음악회를 위한 장비를 가득 싣고 부 을 남편의, 엄마가 없게 될 자녀들의 세상을 더 아파하고 못 견뎌 산으로 출발했다. 평생 처음 경험하는 특별한 음악회였다. 언덕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하니 젊고 예쁜 사모가 더욱 안타깝 위에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는 작은 교회는 오늘의 목적을 이루 기만 하다. 한 시간 반 동안 음악에 감동해서 울고, 마음이 아파 기에 꼭 맞는 장소였다. 예배 후 오후 내내 집에서 가져간 장비들 서 울고, 너무나 사랑해서 울고 그렇게 음악회는 끝나고 이젠 그 을 설치했다. 아내도 아들도 이 특별한 공연에 스태프로 돕고 나 시간이 아련하게 기억 속에 감동으로 남아 있다. 섰다. 강도상에 전면을 덮는 스크린이 달리고 대형 스피커와 앰 잊지 못할 감동을 준 사람들 여기에 다 쓸 수 없지만 나는 행복하게도 내 생애 가운데 잊지 못할 많은 감동을 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힘들고 어려울 때 그 이야기들은 내 삶을 새롭게 한다. 감동을 받을 때마다 감동을 받기만 하는 삶이 아니라 남에게 감동을 주는 삶을 늘 꿈꾸며 살고 있다. 작년에 아프리카 짐바브웨로 선교를 갔었다. 보이는 것은 가난 과 배고픔 그리고 부족함뿐이었다. 설교를 하는 중에 남루한 옷 차림의 장님을 보았다. 나는 그에게 잊지 못할 감동적인 말씀을 전하길 원했다. 설교 중에 그를 앞으로 불러 내 옆에 세우고 그 의 헤어지고 더러운 옷을 벗겼다. 그리고 그에게 내가 입고 있던 와이셔츠에 넥타이, 양복과 구두까지 다 벗어 입히고 예수님께 서 우리의 죄의 누더기를 다 벗기시고 사랑으로, 구원으로 이렇 게 새롭게 하셨습니다. 하고 설교했다. 수백 명의 흑인 성도들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할렐루야를 연호했다. 구약에서는 인간의 힘을 넘은 영적 존재로부터 받는 자극을 감동이라 말했다. 철학자 칸트는 감동이 없는 곳에는 큰일이 생 길 수 없다고 했다. 어떤 시인은 가을 달, 봄빛을 보고 감격할 줄 알거늘 십자가의 속죄를 입은 자가 어찌 그 은총에 감동이 없을 수 있을까라고 통탄했다. 감동은 아름다운 정서 중 하나이다. 불 멸의 빛을 남긴 위인들의 생활을 보면 그 전부가 감동의 유산이 다. 신앙의 위인들의 생활도 모두가 감동의 삶이었다. 신앙의 최 대의 위기는 구원의 감동이 사라지는 것이다. 감동을 경시하는 종교는 이론에 기울어지며 사상에 그치고 만다. 유대인의 탈무드 에서는 기억을 증진시키는 가장 좋은 약은 감동하는 것이다. 라 고 했다. 스님 천사 신학교 4학년 봄, 지리산으로 수학여행을 갔다. 구례 화엄사에 서 천왕봉으로 그리고 진주 중산리로 내려오는 종주 코스였다. 첫날 지도 교수님이 다리에 근육통을 호소했다. 나를 포함 덩치 큰 세 명의 제자가 천 고지 이상 되는 봉우리를 수도 없이 교수 님을 업고 오르고 내려 이틀 만에 천왕봉 정상에 올랐다. 우리는 체력이 완전히 고갈된 상태였고 정상에 선 기쁨보다 교수님을 모 시고 7, 8시간 하산할 일이 걱정이었다. 친구들은 잡힐세라 도망 치듯 내려가고 절뚝거리는 교수님을 등에 업고 쓰러질 듯 얼마쯤 산을 내려왔을까? 뒤에서 누가 우리를 불러 세운다. 학생들 우 리가 목사님을 업어다 드리면 안 될까? 두 분의 스님이었다. 하 나님이 스님 천사를 보내 주신 것이다. 목사님을 등에 업은 스님 들은 잰걸음으로 내려갔다. 얼마를 내려왔을까? 잠시 쉬기 위해 앉았을 때 스님 한 분이 땀을 닦으면서 목사님, 내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어 목사님을 등에 업고 갑니까? 하니 미안한 듯 목사 님이 스님, 내가 무슨 복이 있어 스님에게 업혀 갑니까? 하신다. 순간 계곡은 웃음바다가 되었고 그 산행의 추억은 아직까지 내게 잊을 수 없는 감동으로 남아 있다. 많은 사람이 감정적인 터치에 갈급해 있다. 딱딱한 논리로 전개되며 자신과 관계없는 이야기가 아닌 인간 냄새가 나는 삶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감동하는 삶을 살자. 감동을 주는 멋진 삶을 살자. 인생은 짧고 감동은 길다. 이 시대는 컴퓨터가 지배하는 시대이다. 한마디로 삭막한 시대 이다. 감동이 없고 눈물이 마른 세상이다. 모든 것이 칩(chip)에 의해서 이끌려 가는 시대이다. 이런 시대의 사람들이 굶주린 것 은 무엇인가? 그것은 감동이다. 많은 사람이 감정적인 터치에 갈 급해 있다. 딱딱한 논리로 전개되며 자신과 관계없는 이야기가 아닌 인간 냄새가 나는 삶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감동하는 삶을 살자. 감동을 주는 멋진 삶을 살자. 인생은 짧고 감동은 길 다. 최영규 목사, 서중한합회장 24 Signs of the Times 2010_12 25
희망을 만드는 세밑 특별기획 삶의 이야기 감동을 남기고 떠나간 사람 2 천사의 가슴에도 똥이 들어 있다. 하하하, 새똥이 들어 있 과 급수대 앞에는 새벽부터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긴 줄을 다. 정호승 씨가 쓴 천사의 시 중의 한 구절이다. 이 세상에 많 이루고 있었다. 은 사람이 살고 있지만 세상 사람과는 다른 천사와 같은 삶을 이곳으로 이사 온 그녀는 절실한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관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일상적 삶을 보면 우리와 크게 다르 심을 두기 시작했다. 경찰공무원이던 남편은 아침 일찍 출근하 지 않다. 시인의 유머와 같이 하루 세끼를 먹고사는 평범한 사 여 밤늦게 퇴근하였고 자녀들도 다 자랐으므로 낮 시간의 대부 람들이다. 그러나 한 가지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이 쏟는 분을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데 보냈다. 동사무소에서도 그녀의 사랑의 대상이 다르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돈과 재물을 찾아다 봉사 소식을 듣고 월곡3동의 부녀부장, 적십자 회장 등의 직함 닐 때 천사들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남들이 을 주어 더 적극적으로 어려운 이웃들을 돕도록 지원하였다. 그 자신들의 미각을 채우기 위해 맛있는 음식점을 기웃거리고 있을 렇게 몇 년을 보내자 월곡동에서는 개개인의 가정 형편을 가장 때 천사들은 마비된 몸으로 썩은 나무같이 누워 있는 병든 사 잘 아는 사람이 되어 동에서 나오는 작은 지원도 그녀를 통하여 람들을 방문한다. 남들이 화려한 도시에서 자신들의 쾌락을 좇 하게 되었고 동사무소를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극빈자들도 자신 고 있을 때 그들은 어두운 달동네 비탈길을 걸으면서 삶의 무게 의 처지를 잘 알아서 도와주는 그녀를 천사와 같이 생각하게 되 에 눌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가냘픈 신음소리에 귀 기울이 었다. 달동네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가난할 뿐 아니라 연로하 고 있는 것이다. 고 병약하여 항상 생명의 위험성이 높았다. 독거노인은 돌보는 사람이 없이 혼자 살기 때문에 숨이 끊어진지도 모른 채 며칠이 임금순, 그녀가 젊었을 때는 금순이라고 불렸지만 지금은 임 나 방치되는 경우도 있었다. 한번은 강원도에서 이사 오신 90세 금이라고 불린다. 금순이라고 부르기에는 80세라는 나이가 많 가 다 된 할머니가 한동안 얼굴이 안 보여 그 집에 가 보았더니 아서가 아니라 달동네 사람들에게는 그녀가 생명과 같은 존재였 안으로 문이 잠겨 있는 것이었다. 문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자 동 기 때문이다. 지금 그 여인은 이 세상에 없다. 올봄에 그녀의 노 사무소에 연락하여 집 열쇠를 열고 들어가 보니 할머니가 몸을 쇠한 날개를 접었기 때문이다. 1968년 서울로 올라온 가족들은 움직이지도 못하고 방 안에다 대소변을 가득 눈 채 정신이 가물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1970년경 이곳 월곡동에 정착하게 되었 거리는 상태로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급히 119를 부 다. 당시의 월곡동은 60년대부터 빈민들이 하나둘 모여들면서 르고 문을 열고 대소변 청소를 한 후 겨우 씻겨서 병원으로 보 산기슭에 무허가 집을 짓는 전형적인 달동네, 즉 도시 빈민지역 내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 그 후 할머니는 국가에 을 형성하고 있는 곳이었다. 대부분의 주민은 독거노인이거나 결 서 운영하는 노인요양원으로 보내져 비교적 건강하게 살고 계신 손가정으로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사는 날품팔이 신세가 대부 다고 하였다. 분이었다. 말이 집이지 고작 2, 3평 되는 단칸방에 온 가족이 한 이불을 덮고 살고 있었으며 부엌은 방 앞의 코딱지만 한 공간에 이렇듯 그녀는 매일 각각의 집들을 방문하여 그들의 생활 상 겨우 비 가림만 한 채 연탄불을 피워 준비하고 있었으니 거의 피 태를 파악하고 주민들에게 최대의 혜택이 돌아가도록 노력하였 난살이 수준의 생활이었다. 화장실은 공동화장실을 사용하였고 다. 혼자 살다가 위급한 일을 당한 사람들을 발견하여 가까스로 물도 마을 전체에 3개 정도의 급수시설로 공급하였기에 화장실 생명을 건진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최선을 다했지만 가족 하나 없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위해서는 한 대밖에 없 는 구청의 영구차를 수소문하여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까지 손 수 준비하던 헌신의 사람이었다. 그녀를 봉사에 미친 사람 이라 고 말하는 그 남편의 한마디가 그분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여실 히 보여 주고 있다. 그분이 그렇게 열심히 봉사하던 2002년경 필자는 월곡동 달 동네에 봉사센터를 세워 무너져 가는 집들을 수리해 주고 가난 한 이들에게 무료급식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우리 가족 들과 몇몇의 교우들이 협력하여 시작했으나 2, 3주가 지나자 교 우들은 다 떠나 버리고 우리 가족만 남아 봉사하게 되었다. 당시 에는 어려운 사람들이 너무 많아 토요일마다 100~120명의 독거 노인들이 식사하러 왔지만 나와 아내 둘이 그 많은 음식을 준비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때 기적같이 나타난 분이 바로 임금 순 회장이었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세 분의 적십자 회원을 데 리고 말이다. 그 후로 구청장도 격려차 방문하고 동장도 설거지 를 도우면서 우리는 손발이 척척 맞아 신나게 봉사하게 되었다. 가난한 이웃에게 밥 한 그릇이라도 더 주고 싶어 하는 그녀에게 나 밥을 해 줄 사람이 없어 고민하던 나에게나 서로가 서로를 꼭 필요로 하는 하늘의 선물이었던 것이다. 월곡동 봉사에 또 하나의 숨은 인물은 우리가 봉사 장소로 사용하고 있는 월곡청소년센터 이남재 관장이다. 이 건물은 성 북구청 건물이지만 조계종에서 위탁 경영하는 청소년 복지시설 이다. 이분은 동국대에서 불교학을 전공한 조계종의 지도자 중 의 한 분이지만 내가 목사인 것을 알고도 종교를 넘어서 지역 빈 민들을 위한 봉사에 한마음이 되었던 것이다. 그는 여러 해 동 안 필자가 진행했던 몽골에서의 건축 봉사, 미혼모들을 위한 청 소년 봉사, 고아들을 위한 입양사업, 도시 빈민들을 위한 급식 봉사 등을 지켜본 후 스님들과의 모임에서 우리의 다양한 봉사 를 공개적으로 칭찬할 만큼 월곡동 봉사의 강력한 후원자가 되 었다. 2, 3년 전 대장암으로 투병하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나도 기회가 있을 때 봉사하겠다고 하면서 당신 스스로 불교 봉 사 팀을 이끌고 지난해 몽골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아울러 함께 수년째 봉사하고 있는 은빛천사라는 청년들도 숨겨진 보화 같은 존재들이다. 월곡동 봉사는 올해로 8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 의 기초를 놓은 사람은 5년 전에 사별한 나의 아내이다. 지금도 2002년 시작할 때 그녀가 만들었던 기본 메뉴를 중심으로 매주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육류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도 토속적이 면서도 깊은 맛을 내는 채식음식은 어르신뿐 아니라 젊은 봉사 자들도 정말 맛있게 먹는 음식이다. 거기에다 지금 같은 가을에 는 먹음직스러운 홍시를 식후 과일로 드리니 할머니들이 더더욱 좋아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급식 봉사만 하고 있지만 초기에는 무료 진료, 무료 미용, 무료 집수리 봉사 등 달동네 빈민들을 위 하여 할 수 있는 모든 봉사를 다하였다. 그때마다 내 아내는 밥 도 해 주고, 머리도 깎아 주고, 혈압도 재 주고, 도배도 해 주고, 장판도 깔아 주는 그야말로 몸을 아끼지 않는 전천후 봉사를 하 였다. 집에 오면 몸이 엉망이 되어 누워 있다가도 또 봉사할 일 만 생기면 만사를 제쳐 놓고 앞장서 나서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2004년 말에 신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하다 2005년 9월 세 상을 떠났다. 병상에서도 녹슬어 없어지기보다는 닳아서 없어 지겠다. 는 각오를 새기면서 회복되면 다시 월곡동으로 나가겠다 고 다짐하였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헌신은 손석희의 시선집중, YTN 뉴스, MBC 시사 매거진 2580, KBS 뉴스타임 등에 방송 되면서 달동네 천사 아줌마란 칭호를 얻게 되었고, 네이버 인터 넷 독자들은 천사이시니까 진짜 고향으로 돌아가셨지만 정말 눈물 나네요. 라는 댓글로 고인의 가는 길을 아쉬워하였다. 그러나 진짜 감동은 그 봉사가 그치지 않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던 고( 故 ) 임금순 님의 자 리는 한춘희라는 분이 이어 가고 있는데 이분 역시 뇌에 악성종 양이 있어 투병하면서 봉사하고 있고, 전 아내(전영숙)의 자리 는 두 아이를 입양하여 키우고 있는 조태순이라는 지금의 아내 가 이어 가고 있다. 진정한 봉사란 자신의 삶과 전 생명을 드리 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봉사의 정신이 다. 이곳에 오시는 분들은 죽음을 넘어서 이어지는 희생적 봉사 를 눈으로 보고 음식으로 맛보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 가 되어 가고 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천국은 바로 이러한 자들 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홍순명 삼육대학교 교수, soonhong@syu.ac.kr 26 Signs of the Times 2010_12 27
희망을 만드는 감사 삶의 이야기 치솟는 물가와 기름값, 늘어나는 실업률, 무 었다. 설상가상으로 건강보험 자격까지 잃게 되었다. 나는 우리 병원에 갈 필요가 없었다. 또한 그때는 몇몇 낯선 사람들이 우리 축복을 헤아리라 주택 서민 등에 관한 뉴스를 접할 때마다 나는 내가 겪었던 상황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 가족 집마저도 결국 날아갈 것 같은 염려에 빠졌다. 어떤 때는 아이처 럼 울기까지 했다. 마치 지진이 나서 발밑에서 땅이 갈라지고 있 가족에게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었다. 그들은 따뜻한 미 소와 함께 담요나 음식 같은 것들을 제공했다. 많은 사람이 우 은 모든 것을 잃고 길거리로 나앉게 되었다. 여 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리를 위해 기도했고, 우리를 따뜻하게 안아 주었다. 우리는 이름 경제가 악화되고 고지서는 늘어날 때, 우울한 환경으로부터 눈을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는 일이 중요하다. 섯 자녀가 모두 어렸을 때이니 아주 오래전 일이 다. 우리가 가진 거라곤 낡은 자동차 한 대뿐이 었다. 여덟 명의 가족이 집도 없이 차에서 살아 야 했다. 결혼한 두 아들 또한 자녀를 키우며 집세와 생활비를 충당하 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직장에 다니는 한 아들은 생활비를 위해 근로자대출을 받을 정도였다. 어떤 때는 집에 있는 물건을 팔아 근근이 생활하였다. 나 또한 필요한 약을 사기 위한 돈이 도 모르는 이들이 보여 준 친절에 크게 감사하며 그것들을 하나 님의 축복으로 여겼다. 잊지 말아야 할 것 당시 겪었던 어려움은 아직도 내 뇌리에 분명 부족한 상황이었다. 우리 가족 모두는 하루하루 경제적인 두려 나는 현재의 상황에 너무 몰두해 이러한 축복들을 잊고 있었 히 자리 잡고 있다. 쓰레기통을 뒤져 음식을 구 움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었다. 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축복들을 마음 깊이 간직했어 하고, 어렵사리 구한 음식에 달라붙는 파리를 나는 지금 60세지만, 다시 길거리로 나앉게 될까 두렵다. 이 야 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나만 고통 받고 있는 쫓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부끄러움을 참 제는 예전처럼 억척스럽게 살 자신도 없다. 잠자리에 들 때마다 것이 아님을 일깨워 주셨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만의 싸움이 으며 직업 구함. 식사만 제공해도 좋음. 이라는 노숙자가 되면 어쩌나 걱정하고, 아침에 일어나서도 다시 걱정하 있다. 나는 마치 오랜 잠에서 깬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 문제에 팻말을 들고 길거리에 서 있던 적도 있었다. 그 기 시작한다. 지난 6개월 동안을 돌이켜보면 거의 매일 걱정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하나님을 잊었던 것이다. 동안 친하게 지내던 친척과 친구들이 우리에게 사로잡혀 살고 있었다. 눈을 뜰 때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걱정 우리의 삶에서 어떤 싸움을 싸우든 상관없다. 우리는 먼저 하 등을 돌리고 모른 척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 과 염려만 한 것이다. 더구나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나는 걱 나님과 그분의 선하심을 기억해야 한다.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이 찢어지는 경험도 했다. 이러한 기억들은 생생 정할 시간을 더 확보하기 위해 새벽 일찍 일어났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축복을 우리에게 붓고 계심을 잊어서는 안 하게 살아서 어느 때고 갑자기 밀물처럼 다가와 경제를 나아지게 할 수 있을까? 된다. 오늘날처럼 수많은 사람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때 언제 있을지 모를 가난에 대한 두려움으로 나 일수록, 사도 바울의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할 것이 를 몰고 가곤 한다. 이 기억들은 내게 속삭인다. 기억 그리고 감사 다. 배가 난파되고, 채찍과 돌에 맞고, 핍박과 투옥을 경험한 그 또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이 분명해. 라고. 나는 경제적 능력이 부족했다. 돈을 벌기도 힘들었고, 좋은 일 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 자리를 소개받기도 힘들었다. 뒤뜰에 돈이 열리는 나무가 있는 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염려와 두려움 것도 아니었다. 예전처럼 삶이 매우 고달프게 느껴졌고, 모든 희 비결을 배웠노라 (빌립보서 4장 12절). 그가 말한 비결이란 무엇 몇 달 전 나의 아들과 딸은 십여 년 넘게 종사 망이 사라져 버린 것처럼 보였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어려 이었을까? 다음 절에 보면 이렇게 나온다. 바울은 내게 능력 주 하던 직업을 잃고 말았다. 나는 드디어 어려운 웠던 시절의 유용한 경험을 상기시켜 주셨다. 차에서 살던 시절, 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고 말한다. 몇 절 시절이 다시 닥치고 만 것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나는 랜턴에 비추어 성경을 읽고 기도했었다. 하나님께서는 우 뒤에서 그는 또한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지나지 않아 막내딸의 전화를 받았다. 그 아이 리 가족이 엄청난 어려움을 이겨 낼 수 있도록 힘을 주셨다. 주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19절)고 조차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님은 우리가 비록 집 없이 낡은 차에서 살지만 여전히 그분의 사 고백한다. 자녀들이 집세는 어떻게 낼 것이며, 차량 유지비 랑으로 우리를 축복하심을 일깨우셨다. 나는 기억하기 위해 노력한다. 어떤 상황에 처할지라도 우리 를 포함한 모든 생활비를 어떻게 충당할 것인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시절 얼마나 작은 것들에도 감사하며 를 축복하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매우 걱정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몇 개월 동안 살았는지를 상기시키셨다. 우리는 배고픈 와중에 먹을 것이 조 이나 일을 찾지 못하였다. 결국 두 명은 생활비 금이라도 생기면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비록 쓰레 를 아끼기 위해 우리 집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 기통을 뒤져 얻은 음식이었지만 우리 모두는 건강했고 아무도 쥬디 에이체트 <Signs of the times>에 기고한 글을 옮겼다.. 28 Signs of the Times 2010_12 29
희망을 만드는 삶의 이야기 수기 은 분이시다. 세상 어디로부터든 신음과 탄식의 소리를 들으시 되고 싫어지고 원망스 고 다가가시는 그런 분이시다. 이번이 세 번째 탈북 시도라고 했 러웠다. 한참을 얼어 버 사선을 넘는 사람들 다. 이번에 또 실패하면 더 이상은 기회가 없을 거라 생각하는 듯 절박하게 만약 잡히더라도 구원의 소망 가운데 죽고 싶다고 린 듯이 그냥 그대로 있 었다. 가슴이 순식간에 말했다. 이곳까지 찾아오는 동안도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하나님 식어 버려서 움직일 수 의 섭리로 인도하심을 받았다며 그러니 꼭 침례를 달라고 했다. 가 없었다. 얼마의 시간 복음전도자라면 누가 이런 요청을 거절할 수 있을까 싶다. 목숨 이 흘렀을까. 침례식 장 을 건 매달림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할지라도 복음에 대 면이 떠올랐다. 물속에 한 이해 없이 침례를 줄 수는 없었다. 출발 일정을 일주일 정도 잠겨 어른거리던 그분 뒤로 미루길 나 역시 간청했다. 일정은 미뤄졌고 성경 공부를 시 의 마지막 머리카락 한 작했다. 그분은 마치 생명을 태워 밝힌 불로 공부하기라도 하듯 올부터 천천히 물에서 대단한 집중력을 보였다. 이렇게까지 갈급한 심령으로 말씀 앞 올라온 후 아무리 닦아 에 선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었다. 성령의 임재와 말씀 도 물기가 사라지지 않던 그분의 얼굴까지 선명하게 다시 그려졌 전하는 일을 내가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공부를 마치 다. 만약 잡히더라도 구원의 소망 가운데 죽고 싶다던 그분의 절 고 우린 비밀리에 침례식을 치렀다. 모든 문과 창을 잠그고 한껏 규, 어쩌면 그분은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떠한 상황에 숨을 죽여 찬양하며 예배소의 작은 욕실에서 사각형의 목욕통 서도 원망하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었던 듯 잡히더라도 소망 가 을 사다가 마치 시신을 관에 넣듯 그렇게 눈물의 침례식을 드렸 운데 죽고 싶다고 했다. 나는 말씀을 가르쳤다. 그리고 그분은 다. 비록 외형은 초라했지만 거듭남의 숭고한 모습 그리고 진정 말씀대로 걸어갔다. 우리 모두의 아버지께서 그분의 마지막 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침례 의식이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 간에 분명 함께하셨을 것이다. 나 같은 범인이 이해할 수 없는 어느 금요일 저녁예배에 낯선 얼굴이 보였다. 30대 초반쯤의 각했다. 현지 상황에 따라 도울 수 있는 한계가 다르기 때문에 리고 그분은 떠났다. 이곳에선 목숨을 걸고 움직이는 사람들을 깊은 섭리가 아버지의 뜻 안에 분명 있었을 것이다. 진정한 갈 검게 그을린 얼굴의 여자였다. 마치 운동선수를 보는 듯한, 여인 그때 내 안엔 이미 답이 있었다. 그런데 침례를 받고 싶습니다. 종종 본다. 그들의 강렬한 눈빛과 움켜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결 급, 진정한 소망을 가진 사람이었다. 비록 그는 잡혔지만 그리고 이라 하기엔 너무나 강인한 인상이었다. 누굴까? 평소라면 반색 또 한번의 놀라움이었다. 제 부탁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꼭 침 의는 가슴에 새겨져 잊혀지질 않는다. 그분의 뒷모습을 바라보 다시 연락이 없지만 그는 그의 원대로 구원의 소망 가운데 잠들 을 하며 다가갔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왠지 분위기가 달랐다. 례를 받고 싶습니다. 침례라니. 침례를 아무 준비 없이 드릴 며 아직도 온전히 바쳐지지 않은 생명의 일부가 남아 있는지 내 었을 거라 믿는다. 우린 어떠한 소망을 품고 살아가고 있는가? 가볍게 환영인사를 하고 예배를 진행했다. 모든 예배 순서가 마 수는 없습니다. 침례의 의미는 아시는지요? 네. 탈북 해서 숨 자신을 생각해 보았다. 슬프게도 너무 많이 있었다. 우리의 소망은 목숨만큼 갈급한가? 지나친 사치일까? 나는 오 치고 텅 빈 예배당에 그녀만 조용히 남아 있었다. 누굴 기다리기 어 지내는 동안 라디오를 통해 주님을 배웠습니다. 라디오라. 늘 오히려 그분이 부럽다. 눈을 뜨면 주님의 얼굴이 보일 테니. 라도 하는 듯 보였다. 분명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분 앞에 가서 앉았다. 탈북 해서 왔습니다. 예감대로였다. 염 점점 들을수록 새롭고 놀라운 이야기만 쏟아 놓았다. 마음 좋 은 중국인 가정을 만나서 몇 년 동안 숨어 지낼 수 있었다고 했 소망 가운데 잠들다 국경을 넘기 직전 마지막 통화에서 그분의 음성을 들었다. 긴 식었던 가슴에 온기가 돌아옴을 느꼈다. 차가운 가슴의 선교사는 존재할 수 없으니 주님께서 다시 내 치없지만,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이분들이 뭘 필요로 하는지 다.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맙긴 했지만 말이 전혀 통하지 장되어 있었지만 희망으로 고무된 그때의 음성이 아직도 귀에 게 선교사의 가슴을 주신 게다.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한숨 섞인 질문이라도 해야만 했다. 뭘 않는 그들 틈에서 느낄 수밖에 없었던 외로움과 고독 그리고 언 맴도는 듯하다. 국경까지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기도해 주세 도와 드리면 좋을까요? 나는 복음전도자인데. 이들의 대다수 제 발각될지 모르는 두려움으로 인해 그녀의 삶은 쉽게 잠들 수 요. 오늘 밤입니다. 다음 전화는 한국에서 드리겠습니다. 그분 갈급! 는 복음에 관심이 없다. 더 서글픈 것은 관심이 있는 듯 보이려 없는 밤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말을 하고 있는 그녀의 애절한 표 이 넘어야 할 철조망은 모두 8개, 그 후엔 사막이다. 가능할까?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한다는 그것이다. 탈북자에 대한 일반적인 선입견이 어떠한지 정을 통해 그간의 깊었던 고뇌가 보이는 듯했다. 그녀가 어느 날 말렸어야 했는데 후회가 간절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으니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시편 42편 1절). 알고 있습니다. 우연히 라디오의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언뜻 한국말이 들려 정말 절박하게 기도했다. 몇 달이 지난 후 발신자 번호가 표기되 오는 걸 듣고 깜짝 놀라 채널을 고정시켰는데 그것이 연합회 미 지 않은 전화를 받았다. 그분을 국경까지 인도해 준 안내인이었 소망! 희망의 소리 디어센터에서 방송하는 희망의 소리였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이 다. 짧은 소식이었다. 철조망을 몇 개 넘지 못하고 잡혔고 사형되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오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시편 놀라웠다. 이런 식의 시작은 처음이었다. 대개 잠시 숨어 지낼 방송이 가련한 도망자의 마음에 어떤 존재가 되었을지 상상이 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그때의 39편 7절). 은신처나, 내륙으로 들어갈 여비를 조금 도와달라거나 아니면 나 할 수 있겠는가? 거의 하루도 놓치지 않고 라디오를 듣는 동 심정이란 깊은 한숨만이 토해져 나왔다. 아버지 아버지 아 한국으로 망명할 길을 주선해 달라거나 하는 부탁일 것이라 생 안 자연스레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다. 우리 주님은 정말이지 좋 버지 그때 거기 계셨을 텐데요. 왜? 모든 것이 허무하고 자책 무명의 선교사 로부터 30 Signs of the Times 2010_12 31
희망을 만드는 봉사의 기쁨 삶의 이야기 어느 고려인의 인생역전 믿음이 있는 곳에 사랑이 있고 사랑이 있는 곳에 평화가 있으며 평화가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계신 곳에는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 술을 좋아하는 한 고려인이 있었다. 술을 마시다 기차 시간을 외 전기공사를 하는 동안 때로는 영하 30~40도에 이르는 추위 던 막내를 항상 안아서 따뜻히 포옹해 주시고, 교회를 오가는 적으로 마비가 와서 혼자서는 걸을 수도 없고 일어설 수도 없었 놓친 적도 있었고 대학 때는 술을 마시다 등록금을 날린 적도 와 싸우며 는 것은 술이요 담배뿐이었다. 그는 고려인이라는 사 아이들을 사랑하는 인자한 장로님이 되었다. 예전의 천덕꾸러 으며 말을 제대로 할 수도 없었다. 두 달 동안 집중치료를 받았 있었다. 40도에 이르는 러시아 보드카를 물 마시듯 마시지 않고 실이 거추장스럽고 성공과 출세에 장애가 되는 시대에, 살아남 기 인생이 이제는 살맛 나는 인생이 되었고, 남들이 질시하던 생 지만 여전히 뇌동맥의 심한 동맥경화로 수술을 해야 했다. 하지 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고난의 인생을 살아온, 고려인의 한이 기 위해 목적 없는 삶을 이어 갈 뿐이었다. 인생의 돌파구를 찾 활은 부러움과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술과 친구와 직장만을 오 만 러시아에서는 생명이 위험하다며 수술을 거부했고, 한국에 고스란히 묻어 있는 이 사람은 이제 환갑을 넘긴 교포 3세 박 아 쾌락을 탐닉하며 방탕한 생활로 몸도 마음도 지치고 찌들어 가던 사람이 교회와 가정과 직장밖에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다 있는 삼육서울병원으로 수술 원정을 가야 했다. 그곳에서 처방 빌로리 장로(62세)이다. 할아버지가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와 정 갔다. 그 사이 아들과 딸이 태어났고 소련의 붕괴와 함께 부인은 쓰러져 가는 교회를 보며 안타까워하는 필자를 보시고 돈 한 푼 대로 철저하게 노력하면 수술 없이도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성 착하는 바람에 온 가족이 소련과 역사의 굴곡을 함께하는 운명 보따리장사를 시작했다. 추운 겨울 시베리아 바람을 맞으며 시 없이 함께 기도하며 교회를 짓는 건축위원장을 맡아 헌신하신 경에 나와 있는 건강에 대한 말씀들을 보며 그 원칙들에 철저하 이 되었다.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으로 부모님이 중앙 장에서 일하다 몇 년 뒤 그나마도 건강이 나빠져 그만둘 수밖에 분도 이분이시다. 없는 형편이지만 너무 춥고 낡아 버린 교회는 게 순종했다. 1년 후에 재검진을 받았을 때는 거의 완치에 가까 아시아로 끌려가게 된 것이다. 없었다. 새로 지어야겠고 그래서 건축을 시작했다가 재정이 다 동나고 운 결과를 보였고, 러시아 의사들은 그 결과에 놀라지 않을 수 돈이 없을 때면 직장에서 가불하여 대신 자금을 채워 넣었다. 없었다. 지금도 두 군데의 직장에서 건강하게 일하고 있으며 이 당시 일주일여 만에 10만 명에 이르는 연해주 일대의 고려인 이런 와중에 자식이 없어 대신 돌보아 드리던 작은 어머니를 건축이 진행된 5년 동안 이렇게 헌금한 자금이 삼 만 달러나 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한다. 거의 매일 교회를 둘러보 들이 아무 영문도 모른 채 짐을 싣는 기차 칸에 실려 끌려갔다.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다. 술도 담배도 끊었다. 이전의 었다. 고 수리할 것은 수리하고 정리할 것은 정리하며 교회를 집처럼 들리는 바에 의하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열차에 포개어 실 나쁜 방탕한 습관들을 버리기 위해 노력하였다. 직장에는 토요 생각하는 이분에게 하나님은 인생역전의 힘이며 살아가는 원동 려 가던 고려인들은 가는 길에 삼 분의 일이 죽고, 도착해서 겨 일마다 교회에 가야 한다고 말하고 허락을 받아 교회를 다니기 그런데 놀라운 일은 건축을 시작하기 전 어렵던 가정형편이 력이 되었다. 울을 나면서 삼 분의 일이 죽고, 삼 분의 일 정도가 언 땅을 파 시작하였다. 교회에서는 설교 중에도 논리를 따져 이해가 되지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되었고 수입은 예전의 5배 이상이나 더 많 고 움막을 지어 해동을 한 후 토지를 개간하고 곡식을 심으며 않으면 의문이 풀릴 때까지 질문하며 답을 찾았다. 이렇게 성경 아졌다. 그사이 한 채밖에 없던 집은 딸이 자기의 살 집을 준비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믿음이 있는 곳에 사랑이 있고 사 살아남아 오늘날의 중앙아시아를 개척하는 역사를 이루었다. 고 을 읽으며 인생의 진리를 찾다가 1998년 침례를 받고 그리스도 하고 아들은 친척에게 물려받아 공짜로 집이 생겨 세 채가 되었 랑이 있는 곳에 평화가 있으며 평화가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시 한다. 1949년, 타슈켄트 인근에서 박 빌로리는 삼남 이녀의 장 인이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다. 그리고 아들은 하바롭스크에서 제일가는 대학의 장학생으 고 하나님이 계신 곳에는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 고 말하였다. 남으로 태어났다. 고향을 그리워하던 부모님은 이주 16년 만인 로 무료로 공부하며 최우등으로 졸업까지 하였다. 어릴 때부터 하나님은 한 사람의 고난의 인생을 변화시키시고 가정을 변화시 1953년에 러시아 극동의 하바롭스크로 돌아와 삶의 터전을 삼 이분이 하나님을 믿고 얼마 되지 않아 한국의 여수요양병원 이분의 꿈은 좋은 차를 갖는 것이었다. 그러던 그가 그 많은 자 키시고 끝내 인생을 역전시키신다. 오직 하나님만이 인생역전의 았다. 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일본 교포를 만나게 되었는데 금을 건축을 위해 바치면서도 평생에 꿈이던 당시 제일 좋은 승 명수이시며 주인이시다. 한국 사람이 한국말도 못하느냐? 는 말에 심히 부끄러움을 느 용차를 살 수 있었다. 예수를 믿고 살면서 은연중 바라고 원하 농사로 생계를 이어 가는 어려운 가정 형편 가운데서도 이분 꼈다. 그래서 러시아로 돌아가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매일 는 것을 모두 이루었으며 사람들의 존경과 부러움까지 받게 되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 은 부모의 가르침을 따라 열심히 공부하여 하바롭스크에서 철 삼십 분씩 러한 신약성서를 펴고 한글 성경을 읽으며 한국어를 었다. 형제들 사이에서 가장 곤궁했던 이 가정은 온 집안의 부러 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 도전기과를 졸업하고 엔지니어가 되었다. 그리고 민족 차별이 존 배우기 시작했다. 사전을 옆에 두고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찾아 움의 대상이 되었고 부인은 교회의 집사가 되고 동생들과 누나 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 재하는 가운데서도 남동생 둘은 의사가 되었고 누나는 후에 외 보며 공부해서 이제는 교회에서 제일가는 설교통역가가 되었다. 도 함께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네 자녀들은 속히 돌아오고 너를 헐며 국어 초 중 고(김나지)의 교장이 되었다. 하바롭스크에서 아내 2000년 3월 처음 러시아에 선교사로 부임했을 때 제일 기쁘 너를 황폐케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이사야 49장 15~17 를 만나 결혼한 후 공산당에서 정해 주는 직장을 따라 이르쿠츠 게 맞아 주신 분도 이분이셨고 지난 11년 동안 아들처럼 가족처 한번은 교회 건축을 마치고 얼마 되지 않아 직장과 교회에서 절). 크와 극동 인근의 공장과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하였고, 실내 럼 따뜻하게 도와주신 분도 이분이시다. 7개월 된 갓난아기였 힘든 일을 계속하다가 갑자기 뇌졸중이 찾아왔다. 왼쪽이 전반 임재명 러시아 하바롭스크 선교사 32 Signs of the Times 2010_12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