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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동북아역사논총 50호 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 는 일본 정부의 주장에 대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일 본 정부 군 등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이므로 한일청구권협정 에 의해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다 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또한 2011년 8월 헌 법재판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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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 인물 강순( 康 純 1390(공양왕 2) 1468(예종 즉위년 ) 조선 초기의 명장.본관은 신천( 信 川 ).자는 태초( 太 初 ).시호는 장민( 莊 愍 ).보령현 지내리( 保 寧 縣 池 內 里,지금의 보령시 주포면 보령리)에서 출생하였다.아버지는 통훈대부 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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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문화 34, 2009. 7, 369~406쪽 쉼터 생활을 중심으로 본 일본군 위안부 의 삶에 관한 사례연구 1)손 영 미* 조 원 일** 1. 서론 1) 문제의 소재 2) 연구의 필요성 및 목적 2. 문헌고찰 3. 연구방법 1) 연구참여자 2) 연구방법 및 절차 4.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쉼터 생활을 전후로 한 삶 1) 위안부 신고 후부터 쉼터 생활 이전까지의 사회적 처우 2) 쉼터 생활 후부터 현재까지 5. 결론 <국문초록> 본 연구의 목적은 과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불가항력으로 맞아 야했던 사건들이 현재 피해자들의 삶의 질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분석하고, 이들이 남은 생애 동안에 건강하고 행복한 여생을 보낼 수 있 도록 정책적 실천적 함의를 위한 기초적 자료를 제공하는 데 있다. 연구 내용으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사회적으로 본격적으로 조망되기 시작 한 신고 시기 이후를 중심으로 위안부 신고 후부터 쉼터 생활 이전까지 의 사회적 처우에 대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신고의 계기와 신고 후의 * 제1저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쉼터실장(elli8605@hanmail.net) ** 교신저자: 경기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wicho@kyonggi.ac.kr) - 369 -

2 / 한국민족문화 34 삶에 대해 살펴보았다. 더불어 쉼터 생활 후부터 현재까지의 삶에 관해서 는 쉼터 발족의 계기부터 쉼터에서의 현재 삶에 대해 고찰하였다. 이들 연구과제에 대한 사례연구법에 의한 분석 결과 피해자들에게는 경제적 지 원만이 아닌 정서적 지원이 여생의 삶에 중요함을 알 수 있었으며, 그 전 제로 우리 사회의 사회적 약자에 관한 인권 측면의 접근이 중요함을 제시 하였다. * 주요어: 일본군 위안부, 정대협, 쉼터, 인권, 사례연구 1. 서론 1) 문제의 소재 일본군 위안부 1) 문제는 일본군이 제도적으로 만들어낸 조직적이고 체 계적으로 행해진 범죄이며 역사에 유래가 없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다. 또 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식민지의 딸들이란 이유로 사회적인 약자가 강자로부터 받았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권리가 처참히 무시되고 멸시 되었던 아픔의 역사이기도 하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에 따르면 2008년 10월 현재 234명이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생활안정지원 및 기념사 업 등에 관한 법률 의 적용대상자로 결정되었는데, 고령으로 인한 사망자 1) 위안부 라는 명칭은 위안부 문제의 논의만큼 다양한데, 이는 식민사관에 기초하여 누 구의 시각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는가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위안부 는 정신대, 종군위안부, 일본군 성노예 등으로 칭해왔는데 위안부 란 그들을 통해서 성적 위안을 받은 일본 군인을 주체로 한 명칭이다. 위안 을 강요당했던 여성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들을 성노예(sexual slavery)로 부르는 것이 정확하고, 일본군 성노예라는 명칭이 이 사건의 진상을 더 잘 드러낼 수는 있으나, 강한 어감 때문에 일본군 위안부 스스로는 성노예 라는 명칭에 부정적이다. 이에 1995년 제3차 정신대문제 아시아연대회의 때부터 이 문제의 역사적 의미를 살려서 위안부 에 작은 따옴표를 붙여서 일본군 위안부 라는 고유명사로 쓰기로 결정했으며, 영어를 사용하는 지역에서는 Military Sexual Slavery by Japan(일본군 성노예)으로 사용하기로 결의하였다. 본 연구에서도 이에 따르기로 한 다. 한국정신대연구소,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2(증언집), 한울, 1997. - 370 -

쉼터 생활을 중심으로 본 일본군 위안부 의 삶에 관한 사례연구 / 3 수는 매년 증가하여 2008년 현재 96명이 생존해 있다. 이들의 연령대를 보면 74세가 가장 낮고 80대가 가장 많으며 90대도 5명가량 분포되어 있 다. 2) 이렇듯 피해자 대부분이 고령이고 또한 그들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 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에 대한 문제해결은 더욱더 시급하다. 이러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책은 1990년대에 들어와 비로소 갖추어지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이 1993년에 제정된 일제하 일본군위안부에대한생활안정지원법 이었다. 3) 이 법은 정부는 일제에 의하 여 강제동원되어 일본군 위안부 로서의 생활을 강요당한 자에 대하여 국 가가 인도주의정신에 입각하여 이들을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해 제정되었 으며, 대부분의 피해자는 이 법에 의한 정부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가해자인 일본 문부과학성은 2009년 4월 한국에 대한 식민 지 배를 합리화하는 내용이 담긴 지유샤판 역사교과서의 검정 합격을 발표하 는 등 사실의 은폐와 왜곡 의도를 감추지 않고 있다. 4) 불행했던 과거사 의 엄연한 증인으로서 피해자들이 생존해 있는 현재의 과거사를 청산하고 한일 양국이 진정한 동반자로서 공생하기 위해서 일본정부는 피해자 할머 니들 앞에 진심으로 사죄하고 배상해야하는 조치는 이러한 문제 해결의 기본적 전제 조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 연구의 필요성 및 목적 본 연구는 일본군 위안부 경험으로 인하여 평생을 정신적인 상처와 육 체적인 아픔 속에 살아온 위안부 피해자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자 하였 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본 연구에서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남은 생애 동 안 건강하고 행복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정책적 실천적 제언을 위한 기초 자료를 제공하고자 한다. 이 경우, 위안부 피해자의 생애사 중, 유 년시절부터 강제동원을 거쳐 위안부 신고 전까지의 사회적 냉담기까지는 2) 정대협 내부자료. 3) 2002. 12. 11, 법률 제6771호에 의해 법명 개정. 4) 日 정부 역사왜곡 교과서 검정 통과 철회하라, http://www.newsis.com (검색일: 2009. 4. 10) - 371 -

4 / 한국민족문화 34 기존의 선행연구에서 어느 정도 밝혀진 바, 본 연구에서는 위안부 피해 자의 삶이 사회적으로 본격적으로 조명되기 시작한 위안부 신고 후부터 현재까지를 대상으로 다음의 두 가지 연구 문제를 설정하였다. 첫째, 위안부 신고 후부터 쉼터생활 이전까지 피해자들에 대한 사회적 처우는 어떠하였으며, 어떠한 변화 양상을 보이는가? 둘째, 2004년부터 2009년 현재까지 위안부 피해자의 쉼터인 우리 집 에서의 삶의 실체는 어떠한가? 2. 문헌고찰 많은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살아온 일본군 위안부 에 관한 연구는, 1990년 11월 정대협이 결성됨에 따라 본격적으로 산출되기 시작하였다. 구체적으로는 1991년 8월 한국 최초로 피해자 故 김학순(당시 67세) 할머 니의 증언 이후 현재까지 다양한 학술논문, 단행본, 자료집 등이 국내외 에서 발표되었다. 초기의 주된 연구 형태는 일본군 위안부 들의 증언을 기록하는 것과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실 규명이었는데, 이후 피해자들의 의식이나 삶에 관한 연구도 다수 산출되고 있다. 위안부 문제가 사회적 관심을 끌기 시 작하면서 다양한 방면에서의 학술적 연구도 늘어났다. 이하, 연구방법론 별 위안부 연구의 대표적인 성과물을 개관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표 1>은 피해자들의 삶을 기록한 증언집으로 이 연구물들은 일본 군 위안부 에 대한 개별적인 사례 연구에 속한다. 이러한 증언집은 1993 년에 1집을 시작으로 2004년 6집까지 나옴으로써 총 78명의 피해자 증언 이 발표되었다. 특히 6집의 연구책임자인 김명혜(2004)는 생존해 있는 일 본군 위안부 피해자 여성들의 구술행위를 분석하여 피해자 여성들의 주 체성(subjectivity) 및 의식의 변화과정(즉, 침묵에서 목소리 내기로 옮겨 가는 과정)을 드러내고 있다. - 372 -

쉼터 생활을 중심으로 본 일본군 위안부 의 삶에 관한 사례연구 / 5 <표 1> 위안부 피해자들의 삶을 기록한 증언집 피해자들의 삶을 기록한 증언집(78명) 한국정신대연구소(1993)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1(증언집) 한국정신대연구소(1997)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2(증언집) 한국정신대연구소(1999)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3(증언집)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2001) 기억으로 다시 쓰는 역사 4(증언집) 한국정신대연구소(2001)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5(증언집)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2004) 역사를 만드는 이야기 6(증언집) 또 다른 연구 형태로 <표 2>에서 제시하였듯이 식민지 상황이라는 역 사적 맥락과 함께 다루는 역사학적 연구들과 더불어 젠더적 문제로 접근 하는 여성학적 시각의 연구를 들 수 있다. 먼저 여순주(1994)는 강제 동 원된 조선인 여자근로정신대에 관한 실태연구로 여자근로정신대의 성립 배경과 동원의 실태를 연구하였다. 정진성(2003)은 UN, ILO 및 국제 NGO에서 산출한 보고서에서 식민주의의 문제를 포함한 아시아 피해국의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이 상세히 분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에서 의 운동과정에서 이 문제가 단지 전시 하 여성침해의 문제로서만 인식되 게 된 배경과 운동의 새로운 문제의식을 연구하였다. 정현백(2004)은 일 본군 위안부 문제가 우리사회에서 역사화 된 과정 분석과 성노예에 대한 기억을 어떻게 현재화해 갈 것인가를 연구하였고, 이해미(2007)는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역사적 특수성을 고찰하여 2차 대전 하에서 존재했던 연 합군의 공창제와 나치의 강제 매춘 제도와 비교함으로써 일본군 위안부 제도가 지닌 특수성을 밝혀내려고 하였다. 또한 정진성(1999), 양수조 (2003), 이애리(2004) 등의 연구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가 당시 식민지 조 선의 상황에서 어떻게 발생했으며, 강제 동원, 강제 연행, 위안소 설치 운영 등에 관한 진상이 어떠한지를 밝혔다. - 373 -

6 / 한국민족문화 34 <표 2> 강제동원 <역사학과 여성학> 관점에서의 위안부 피해자들에 관한 연구 강제동원 <역사학과 여성학> 관점에서의 연구 여순주(1994) 정진성(1999) 양수조(2003) 정진성(2003) 정현백(2004) 이애리(2004) 이해미(2007) 일제말기 조선인 여자 근로정신대에 관한 실태 연구 군위안부 강제연행에 관한 연구 일제의 강제 동원령과 일본군 위안부 실태 전시 하 여성침해의 보편성과 역사적 특수성: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 일본군 성노예문제와 기억의 현재화 일본군 위안부의 동원실태에 관한 고찰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역사적 보편성과 특수성 다음으로 <표 3>은 담론과 구술사적인 연구방법에 의한 연구물을 나타 낸다. 이러한 연구로서 김수아(1999)는 일본 정부, 한국 정부, 한국의 민 간단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등 각각의 주체가 어떠한 방식으로 담론 을 만들어 가는지에 대해 치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최지선(2003)은 국사 교과서, 신문, 박물관, 기타 매체 등 여러 문화적 재현물의 분석과 일본 군 위안부 사례를 통하여 특정 역사적 사실이 부각되고 축소되는 담론으 로서의 역사, 사회적 산물로서의 기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구술사적으로 의미 있는 연구로는 이선형(2002)의 연구를 들 수 있는데 생존자 증언을 방법론적으로 고찰하며 증언의 구술성을 어떻게 텍스트화 할 것인가, 구술주체가 어떻게 기억을 조직하고 구성하는지 의미부여의 측면에 중점을 두고 있다. 특히 이 연구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구술사적 접근을 통해 진상을 규명하고, 알리고자 하는 목적에 더하여 그들의 경험 이 현재의 담론과 어떻게 결합하여 현재적 의미를 갖게 되는지를 보여주 었다는 점에서 기존의 진상 규명 연구보다 진일보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 374 -

쉼터 생활을 중심으로 본 일본군 위안부 의 삶에 관한 사례연구 / 7 <표 3> 위안부 피해자들에 관한 담론 및 구술사적인 연구 김수아(2000) 최지선(2003) 이선형(2002) 담론 및 구술사적인 연구 일본군 위안부 담론 구성에 관한 연구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억의 정치 -일본군 위안부 사례를 중심으로-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증언의 방법론적 고찰 -증언의 텍스트와 의미부여를 중심으로- 다음으로 <표 4>는 본 연구에서 취하고자 하는 생애사적 연구방법에 의 한 연구물을 소개하고 있다. 먼저 이 연구법에 의한 최초의 연구물로 이상 화(1993)는 일본군 위안부 경험자들이 군위안부 문제 중에서 성 문제에 국한하여, 군위안부의 특수성과 그 인식이 우리사회의 성규범과 어떻게 연 결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또한 결혼 과정을 겪으면서 나타나는 인식 변 화에 관한 자신들의 경험을 어떻게 인식하고, 그것이 순결 이데올로기나 가부장적 담론, 여성주의적 담론 등 사회적 담론들과 맞물려 현재 그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인터뷰 방식을 통해 접근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의식 변화 과정에 관하여 황은진(1997)은 우리사회의 순결 이데올로기와 이중적 성규범으로 정상적 여성의 범주에 서 배제시키고 일탈자로서의 삶을 배제 부여받았던 6명의 군위안부에 대 하여 군위안부 생활시기, 귀환 후 군위안부 신고 이전까지의 시기, 군위 안부 신고 후 현재까지의 시기로 나누어 고찰하였다. 특히 공식적 문헌에 는 별로 남아 있지 않는 군위안부 경험을 인터뷰를 통해 드러내고자 하였 으며, 피해자 당사자의 수동적 역할에 주목하고자 하였다. 일본군 위안부 들의 생애에서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인 귀국 이후의 삶을 중심으로 하여 심영희(2000)는 6명의 위안부 할머니들과의 심층면접과 증언집을 참고하 여 귀국 후의 생활과 침묵의 효과, 후유증 등 증언의 효과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찰하였다. 구술 연구들의 경우 알려져 있지 않거나 왜곡되었던 사건을 당사자들의 증언을 통해 알릴 수 있다는 의미에서 의의를 가짐에도 불구하고 증언이 - 375 -

8 / 한국민족문화 34 가지는 치유적 의미에 대하여 충분히 고찰하지 못했으며, 생존자들의 증 언은 자신의 몸에 가해진 성적인 피해와 직결되어 있으며, 말하기 과정을 통해 극복되고 억압되어 있는지에 대한 고찰은 미흡하다. 김설아(2003)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경험한 아픔에 대해 논하고 그 아픔의 문제를 이야기 이론의 방법론을 통하여 피해자의 실제사례가 아닌 문헌자료에 의한 치유 의 방안을 모색하였다. <표 4> 위안부 피해자들에 관한 생애사적 연구 이상화(1993) 황은진(1997) 심영희(2000) 김설아(2003) 생애사적 연구 군위안부 경험에 관한 연구: 결혼 과정에서 나타나는 인식 변화를 중심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의식변화 과정에 관한 연구: 여성주 의 담론의 영향을 중심으로 침묵에서 증언으로: 군위안부 피해자들의 귀국 이후의 삶을 중심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 이야기와 치유 이상에서 살펴본 일련의 연구물들은 직접 인터뷰 내지 2차 자료를 이용 한 생애사적 연구방법을 취하고 있으나 오랫동안 일본군 위안부 들의 생 활에 밀착한 심층적인 분석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으며, 특히 쉼터 생활 이후의 피해자들의 삶의 실체에 대해 조명한 연구물들은 전무한 실정이 다. 그 이유로, 쉼터의 특성상 피해자와 연구자 사이의 장기간에 걸친 신 뢰 형성(라포)이 필요하며, 그 운영 현황에 있어서도 체계적인 자료의 수 집과 접근이 좀처럼 어려웠기 때문이라 사료된다. 이에 쉼터 실장으로서의 본 연구자는 과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어쩔 수 없이 맞아야했던 사건들이 현재 피해자들의 삶의 질에 어떠한 영 향을 끼쳤는지를 심층면접과 쉼터의 1차자료 등을 중심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에 대한 사회복지적 접근 방법 을 모색함으로써 생존자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여생을 보낼 수 있는데 기 여하고자 한다. - 376 -

쉼터 생활을 중심으로 본 일본군 위안부 의 삶에 관한 사례연구 / 9 3. 연구방법 1) 연구참여자 본 연구의 참여자로는 일본군 위안부 로 현재 정대협에서 운영하는 서 대문 쉼터 우리 집 에서 생활하고 있는 피해자 네 분 중 두 분으로, 이 분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피해자들이 겪었던 아픔에 대하여 국내 외적으로 알리는데 앞장섰다. 나머지 두 분은 현재 91세인 이00 할머니와 90세인 최00 할머니인데, 이 두 분은 고령으로 인하여 심층조사가 곤란 하다는 판단하에 최종적으로 길00 할머니와 이00 할머니를 선정하였다. 선정된 두 분 또한 고령임에는 틀림없으나 앞에 언급한 두 할머니보다는 10년가량 연세가 적으며 체력적으로나 지적으로 본 연구 주제를 이해하고 구술이 논리적이어서 심층조사 참여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들 연구 참여자의 개인적인 배경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표 5> 참조). 성명 구분 길00 이00 현재거주지 서대문 쉼터 우리 집 3일은 대구에서, 4일은 쉼터 우리 집 에 체재 출생년도 1928 1928 출생지 평안북도 회천 대구 고성동 위안부 연행시기/장소 1940(만12세)/만주 하얼빈(1차) 1941년 성병에 걸려 귀국 1942(만14세)/중국 석가장(2차) 1944(만 16세)/대만 신죽 귀국/장소 1945/인천 1945/부산 결혼, 자녀 유무 <표 5> 연구 참여자 개요 정상적인 결혼을 하지 못하였으며 양자를 들여 현재 목사 1988년 60세 때 75세 되는 남자에게 결혼, 의처증 등으로 인해 얼마간 살다 나옴, 자녀는 없음 - 377 -

10 / 한국민족문화 34 2) 연구방법 및 절차 본 연구에서 취하고자 하는 주된 연구 방법론은 질적 사례연구법이다. 이는 맥락 속에서 풍부한 여러 가지 정보원들을 포함하는 세부적이고 심 층적인 자료 수집을 통해 시간의 경과에 따라 하나의 경계 지어진 체계 나 하나의 사례(또는 여러 사례들)를 탐색하는 것이다. 이 경계 지어진 체 계는 시간과 장소에 의한 경계를 갖게 되며, 이것이 연구되는 사례-프로 그램, 사건, 활동, 개인들-이다. 예를 들면, 여러 프로그램들(여러 장소 연구; multisite study)이나 단일 프로그램(장소 내 연구; within-site study)이 연구를 위해 선택될 수 있다. 다중적인 정보원들에는 관찰, 면 접, 시청각 자료, 문서와 보고서 등이 포함된다. 5) 본 연구에서 시간적으로는 위안부 피해자가 정부에 신고하는 1992년 이후 및 쉼터생활이 시작되는 2003년 이후라는 시간적 경계를 가지고, 위안부 피해자를 둘러싼 각종 체계와의 상호작용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러한 연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연구방법론으로는 양적 연구법보다 질 적 연구법, 그 중에서도 사례연구 접근을 시도하였다. 일정한 시간과 공 간의 경계를 가지고 환경과 상호 작용하는 특정 체계와 주체들을 연구하 는 데는 사례연구 접근이 가장 알맞기 때문이다. 본 연구에서의 자료수집 또한 면접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정대협 및 관련기관의 다양한 1, 2차자료 를 활용한 자료의 다원화를 시도하였다. 연구자는 정대협 소속인 쉼터의 실장으로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하여 1심층면접, 2참여관찰, 3세계 2차 대 전 중 자행되었던 일본군 위안부 의 역사적 배경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에 관련한 연구와 학술자료, 4전쟁 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사례와 근황조사, 5 위안부 의 증언록, 녹취록 자료 수집, 6 위안부 관련 여성단 체의 운동사 및 역사 현황 자료 조사, 7피해자 인터뷰 전 질문지 요지 정리 및 연구대상 피해자에 대한 사전 조사를 실시하였다. 먼저 본 연구의 주된 연구방법의 하나인 심층면접은 2008년 5월부터 9 5) John W. Creswell, 조흥식 외 역, 질적 연구방법론, 학지사, 2008, 87쪽. - 378 -

쉼터 생활을 중심으로 본 일본군 위안부 의 삶에 관한 사례연구 / 11 월까지, 자료수집 기간은 2008년 4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 진행하였다. 인터뷰 내용은 어떤 현상에 대한 탐색적인 질문을 취할 때 유용한 개방적 인 비구조화 질문을 사용하였다. 본 연구에서도 비구조화된 질문형태로의 진행으로, 예를 들어, 할머니 어린 시절 이야기를 좀 해주세요 등이다. 면담이 진행되면서 그 동안 진행된 면담 자료의 내용을 확인하고 보다 깊이 있는 질문으로 발전하기 위해서 반구조화된 질문을 하였는데, 예를 들면, 형제들은 학교를 다닐 수 없을 만큼 가난했나요? 와 같은 형식의 질문이다. 마지막으로 종료 단계에서는 구조화된 질문을 포함시켰는데, 그럼 형제들이 학교를 그만두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아버지의 감옥소 사 건이었나요? 와 같은 유형의 질문을 가리킨다. 인터뷰 진행방식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생애시기 중 중요하다고 생각되어지거나 기억나는 부분에 대하여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방법으로 채택하였다. 시간은 참여자의 연령을 고려하여 1시간 이상을 넘기지 않도 록 하였으나 참여자가 원하는 경우 연구자는 이야기를 중단시키지 않았으 며, 보완사항에 대해서는 차후에 추가 질문을 하였다. 문서자료의 경우는 정대협의 산하조직으로서 쉼터 운영에 관한 1차 내 부자료를 이용하였으며, 그 외 학술자료나 인터넷자료 등과 같은 2차자료 를 다양하게 활용하고자 하였다. 4.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쉼터 생활을 전후로 한 삶 1) 위안부 신고 후부터 쉼터 생활 이전까지의 사회적 처우 (1)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신고의 계기 1991년 당시 일본 정부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하여 그런 일은 없다고 한 것에 반발하여 故 김학순 피해자의 최초의 고발을 통해 위안 부 문제는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먼저 정대협은 1991년 8월 정신대신고전화를 개설하여 생존자를 발굴해내기 시작하였고, 정부 차원에서는 1992년 1월 정신대문제실무대책반을, 그리고 전국의 시 군 - 379 -

12 / 한국민족문화 34 구청에서는 피해자 신고센터를 설치하여 현재까지 신고가 이루어지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의 경험을 누가 알까봐 평생을 숨기고 살아온 피해자들 은 신고 전까지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문제 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대인 기피증을 갖고 있었고, 이로 인해 이웃과 가족들과 단절된 상태로 살면서 자신이 더러운 여자로 여겨질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늘 가슴 졸이며 살아왔다. 사실이 알려질 경우 자신 을 알고 있는 사람과 사회의 시선을 감당해 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군 위안부 로 살아왔던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는 것은 자신 의 의지로는 좀처럼 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제가 정대협을 알기 전까지는 혹시나 누가 내 과거를 알게 될까봐 정말 조마조마 하며 살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텔레비전을 보다가 위 안부 문제가 나올 때 혼잣말로 중얼거린 것을 며느리가 듣고는 캐물어 서 과거이야기를 했어요. 세 식구가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길00). (2) 위안부 피해자 신고 후 1 정부차원에서의 대책 오직 자신 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왔던 피해 자들은 주위 가족의 도움과 격려로 신고를 하게 되었다. 신고 후 정대협 의 행사를 통하여 같은 경험을 한 다른 피해자들을 만날 수 있었고, 군위 안부의 경험과 고통이 자신만의 문제가 아닌 식민지 상황에서 어쩔 수 없 이 겪게 된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신고를 한 후에도 누가 만나자고 해도 안 만나고 그러고 지내다가 2002년도에 처음으로 정대협에서 할머니들을 모시고 소풍을 간다며 함 께 가자고 해서 갔더니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중략) 정대협에서 가는 소풍에는 눈치볼 필요도 없고, 너무 마음이 자유로왔어요. 그래서 그 때부터 정대협 행사에 함께 하게 되었고, 수요시위라는 것에도 참여하 게 되고 그랬어요(길00). - 380 -

쉼터 생활을 중심으로 본 일본군 위안부 의 삶에 관한 사례연구 / 13 대부분 가난 속에 살던 피해자들은 신고 후 많은 변화를 보였다. 정부 의 지원으로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을 수 있었고, 사회적인 후원과 관심, 정대협이나 정신대문제연구소 등 다른 많은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내 면의 고통을 밖으로 끄집어내었다. 또한 동료를 만나 동병상련을 경험하 고, 사회여론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본질과 범죄의 성격 등을 인 식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1992년 정부 차원의 피해자 조사가 이루어진 이후, 정부에서는 1993년 6월 11일 법률 제4565호로 일제하일본군위안부에대한생활안정지 원법 을 제정하였다. 신규 법률은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보다 적 극적으로 해결하고 생활이 어려운 피해자를 국가가 직접 보호 지원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정하려는 것 을 목적으로 피해자들에게 생활보호 법 과 의료보호법 에 의한 보호를 실시할 것을 규정하였다. 일본군 위안부 의 생활안정을 위한 지원법의 중요한 항목 중의 하나로 생활의 유지와 직결되는 월 지원금이라 할 수 있다. 아래 <표 6>은 1993 년부터 쉼터가 발족되는 2002년까지 피해자에게 지원되었던 연도별 지원 추이를 나타낸다. <표 6> 생활안정지원금 연도별 지원 추이 단위: 만원 구분 1993~ 1994 1995 1996 1997 1998 1999 2000 2001 2002 월지원금 15 20 25 50 50 50 50 50 53.5 일시금 500 500 500 500 4,300 4,300 4,300 4,300 4,300 출처: 정대협 내부자료 월 지원금이 지급되기 시작한 1993년부터 살펴보면 이 해에 김영삼 정 부는 정대협을 비롯하여 과거사 관련단체로부터 항의를 받은 후 일제하 일본군위안부에대한생활안정지원법 을 제정하여 처음으로 피해자들에 대 - 381 -

14 / 한국민족문화 34 한 생활비를 지원하고 의료급여에 의한 의료지원, 임대주택 지원 등의 복 지정책을 시행하였다. 이후 1997년까지 일시금은 5백만원에 머물러 있었 다. 이것이 1998년에는 4천3백만원으로 크게 증액되는데, 이는 가해국인 일본과 한국 정부와의 정치적 관계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일본정부가 1995년 전후 50년 무라야마 담화를 통해 시작한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 화국민기금 6) 자금사업이 밝혀지자 1998년 우리 정부차원에서 피해자 1인 당 4,300만원의 일시금을 지급하여 국민기금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 였던 것이다. 일시금 지급은 1997년 이전 대상자에 대하여 1998년 5월에 3,800만원이 추가 지급되어 피해자들의 생활 안정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 다. 한편 월 지원금은 1993년 15만원에서 매년 증가하여 1997년부터는 50만원으로 크게 증액되었으며 2002년도에는 소폭 인상되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등 피해자들의 생활안정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 피해자로서의 굴레 탈피 후 달라진 사회인식 평생을 가족과 이웃이 알까봐 자신을 숨기고 살았던 이00 피해자는 1992년 위안부 신고 후 부모님 묘소를 찾아갔다. 아버지의 중풍과 어머 니의 죽음이 본인 때문이라는 자책으로 평생을 살아온 이00 피해자는 부 모님의 묘소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였음을 고백한다. 94년도에 아버지 엄마 산소에 그때 처음 갔어요. 처음 가가지고 아 버지 엄마가 모르지요. 그랬는데 그 김복선이하고 문옥주하고 모두 따 라갔는데 내가 그 산소에 절을 하면서로 내가 정말, 아버지 엄마 내 밤에 일본놈한테 붙들려갔다. 내 오늘에서 내가 엄마 아부지한테 내가 6) 국민기금은 1994년 8월 15일 일본정부가 패전 50년을 맞이하여 일본수상인 무라야마가 담화를 발표하였고, 일본이 국가배상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제시되었다. 피해자에게 위로금 형식으로 지원하고자 하였으며, 피해자들이 원하는 사죄는 아니었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국민기금에 대하여 반대하였고 국민기금측은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피해 자들에게 개별접촉을 시도하여 1997년 이후 10명 이상의 한국인 피해자에게 428만 엔 의 위로금이 지급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뒤이어 한국정부는 1998년 5월 3,800만 원의 지원금을 지불함으로 사실상 국민기금은 사업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 382 -

쉼터 생활을 중심으로 본 일본군 위안부 의 삶에 관한 사례연구 / 15 고백한다하면서로 그때 처음 얘기했어요. 94년도에, 94년도에 2월 한 그때 한 2월 한 십 몇일쯤 될 거예요(이00).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 였음을 신고하기 이전에는 위안부 생활을 했던 것이 개인적인 수치, 세상에 얼굴을 들 수 없는 부끄러움으로 인식해 과 거를 감추고 스스로 자책했던 것에 비해, 이제 위안부 경험이 우리 민족 이 국권을 상실한 데서 온 피식민지국가 여성의 불가피한 경험이었음을 부모님의 산소에서 고백한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긍정으로 이어지는 계 기가 된다. 피해자로서의 자아에 대한 긍정적 변화는 내면의 변화로 그치는 것은 아니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사회적 윤 리라는 울타리 안에 묶어 두고 곱지 않는 시각으로 대했던 것이 사실이 다. 최근에 와서야 피해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 많이 좋아졌고, 피 해자들의 아픔을 함께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아 사람들이 날 보고 아주 당당한게 저러는데 마음 한구석에는 저 사람들이 날 보는 눈치가 다 달리보고 있다. 옛날보다는 그 사람들이 나아졌는게 아니고 제가 나아졌다고 생각해요. 그거는 처머이 나올 때 는 죽고 싶기도 하고 누구 바라보지도 못하고 이랬는데 그것도 면역이 생기요. 많은 사람이 들어주니까 이 사람들한테 내가 있다는 걸 알려 야 되고 이 해결을 해야 하는데 나는 피해자로서 내가 할끼 뭔가 내 일이다 내가 나가야 된다(이00). 우리사회의 인식은 남자는 바람을 피워도, 이중살림을 살아도, 첩을 두 어도 괜찮고 여자는 조신해야 하고 남의 남자를 쳐다보아서도 안 된다는 관념이 아직은 지배적이다. 그러한 사회 속에 피해자들은 봉건적인 사상 을 지닌 남성 우월주의적 사회에서 위안부 라는 치명적인 낙인을 안고 떳 떳한 삶이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삶의 연속에서 힘든 나날을 보냈다. 정 대협이 발족되고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권 되찾아 주기 운동과 일본으로 부터 배상과 사죄를 요구하면서, 시민운동과 매스컴의 보도를 통해 시대 - 383 -

16 / 한국민족문화 34 적 배경으로 아픔을 간직해야 했던 위안부 피해자들의 삶을 일반 사람들 이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에 따라 피해자들은 심리 적 안정감이 많이 고취되었다. 2) 쉼터 생활 후부터 현재까지 (1) 쉼터 발족의 계기-함께 사는 삶 피해자들의 삶의 터전인 쉼터를 언급하기에 앞서 정대협의 존재를 언급 안할 수 없다. 정대협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90년 11월 16일 국내의 대표적인 36개 여성단체가 결합하여 발족시킨 민간단체이다. 이래로 정대협은 정신대 문제의 해결을 위한 한국정부의 역할을 촉구하는 등 본격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그림 1> 참조). 1990년 정대협이 결성된 후 가장 먼저 착수한 사업은 피해자들의 열악 한 삶을 목격 조사한 뒤 피해자들을 위한 생활대책을 세워주는 것이었다. 그 후 정대협을 비롯한 여론의 압박에 떠밀려 1991년 9월 정부는 정신대 실태조사 대책위원회 를 구성하고 일본에 우선 철저한 진상 규명을 강력 히 요구하였다. 1993년 3월 김영삼 정부는 진실 규명과 사과는 받되 1965 년의 한일조약 에 의거 일본정부에 배상 청구는 않겠다는 입장을 천명하 였다. 그 대신 한국정부가 1993년에 제정한 것이 일제하일본군위안부에 대한생활안정지원법 (이하, 일본군위안부지원법)이었다. 이 법은 일제에 의해 강제 동원되어 위안부 로서의 생활을 강요당한 피해자를 국가가 보 호, 지원하고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기념사업을 수행함으로써 이들의 생활 안정과 복지증진을 기하고 국민의 올바른 역사관 정립과 인권증진에 기여 하는 것 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피해자 생활안정 지원금과 영구임대주택 우선입주권 등을 지급하기로 하는 등 위안부 피해자에게 실 질적인 생활의 기반을 마련케 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평가할 수 있다. 한편 2003년, 매주 수요시위에 참석하던 등촌동의 황00 할머니는 어느 날 다니던 길을 잃어버려 고생을 하였고, 지방에서 병원진료와 수요시위, 할머니들의 행사를 위하여 올라오는 할머니들은 쉴 곳이 없어 여관이나 실 - 384 -

쉼터 생활을 중심으로 본 일본군 위안부 의 삶에 관한 사례연구 / 17 무자의 집에서 기거하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여기에 쉼터의 필요성을 깨달 은 정대협에서 동년 11월 피해자들이 언제나 편안하게 와서 지낼 수 있도 록 평안과 행복한 노후를 위한 쉼터 우리 집 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이 쉼터는 피해자 할머니들이 독거생활에서 겪을 수 있는 위급한 상황 에 대한 불안감에서 벗어나 행복한 생활과 여유를 찾음으로 자신을 돌아 보고, 대인관계를 원활히 하여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식을 키우며, 평화 로운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기 위한 곳으로, 할머니들의 현재 삶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공간이기도 하다. 쉼터는 피해자들이 여생을 보내기 위한 마지막 삶의 터전으로서 이곳에서 동료들과 함께 가 족적 분위기에서 생활하면서 대외적 활동을 위한 조직적 지원을 받는 등 피해자들에게는 민간의 지원 단체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림 1> 정대협의 기구현황 대표자회의 (총 회) 전쟁과여성인권 박물관건립위원회 공 동 대 표 법률전문위원회 정책기획위원회 감 사 국제협력위원회 실 행 위 원 회 생존자복지위원회 문화홍보위원회 부 설 기 구 교육위원회 전쟁과 전쟁과 여성인권센타 여성인권위원회 도서출판 재정위원회 여성과 인권 쉼터 우리 집 사 무 처 기 획 국 사 업 국 출처: 정대협 홈페이지, http://www.womenandwar.net - 385 -

18 / 한국민족문화 34 피해자들에게 있어 쉼터는 자신의 지나온 과거에 대하여 숨김없이 이야 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며, 함께 아픔을 공유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꼭꼭 숨기고만 살았던 이야기를 증언을 통해 드러내기도 하지만, 너무 끔 찍한 기억이어서 세상에 사실대로 내놓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서로 나누면 서 위로해주고 치유의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그러나 평생을 혼자서 살던 그간의 생활이 몸에 익은 피해자들에게 공동체 생활은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 독거노인인 할머니들이 혼자서 지내면서 겪을 수 있는 위급한 상황에 대한 불안감에서 벗어나 행복한 생활과 여유를 찾음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대인관계를 원활히 하여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식을 키 우며 평화로운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을 갖도록 함에 있어 쉼터의 역할은 매우 지대하다 할 수 있다. 쉼터는 피해자들의 행복과 남은 생애의 편안한 노후를 위한 곳이고 피 해자들은 이곳을 천국이라 이야기 한다. 이는 쉼터가 한적한 교외에 위치 한 것이 아닌 지역사회의 일반 주택 내에 자연스럽게 존재하고 있으며, 그러한 공간에서 동료 피해자들과의 공동생활로 인한 가족적 분위기가 유 지되고 있는 것을 그 이유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특히 공동생활이라는 집 단생활 가운데에서도 각자 개인의 방을 사용하는 등 일정 부분 독립된 공 간을 갖고 있기 때문에 피해자를 위한 종래의 다른 시설과는 차별화된다 고 생각된다. 실제 2005년부터 현재까지 함께 생활해오고 있는 91세의 이00 피해자는 평소 남의 간섭 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렇기 때문 에 쉼터에 오기 전 몇 군데의 요양원에 있었으나 체류기간이 2개월을 넘 긴 곳이 없었다. 쉼터 오기 전엔 목구넝 하나 생각하고 그냥 일에만 열심히 해서 힘 들었는데 쉼터에 오니까 밥걱정이 있나 옷 걱정이 있나 아프니 병원에 데려다 줘 뭐 하나도 걱정할 게 없으니까 쉼터에 오니까 이게 천국인 것 같아(길00). - 386 -

쉼터 생활을 중심으로 본 일본군 위안부 의 삶에 관한 사례연구 / 19 난 죽어도 선상님이 있는 여기서 죽을 거야. 내가 죽으면 큰 꽃도 많이 갖다 주고 다른 데는 절대 안가~~여기가 내 집인데, 아파도 병원 안 가고 여기 있을 거야(이00). (2) 안식처로서의 쉼터 운영 1 운영상의 애로 <그림 2>는 쉼터의 평면도이다. 쉼터는 2층으로 총 80평이다. 2층에는 방 3칸과 거실, 화장실이 있으며 각각의 방은 피해자들이 한 칸 씩 따로 사용하고 있다. 1층에는 2칸의 방과 작은 사무실, 부엌, 거실과 화장실이 있고 거실은 낮 시간 할머니들의 휴식처이기도 하며 공동체 생활의 장이 기도 하다. 또한 할머니들의 작품을 전시해 놓은 전시장으로도 사용된다. 1층에는 쉼터의 모든 운영을 맡고 있는 실장과, 아들집과 쉼터를 왔다 갔 다 하는 최00 할머니의 방인 동시에 지방에서 휴식이나 병원 치료차 올라 오는 할머니들의 방으로도 겸하고 있다. 피해자 할머니들은 쉼터에서의 생활을 만족스러워하나 실제적으로 운영하는 정대협의 입장에서는 많은 애로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안정적 주거 환경의 확보가 어렵다는 점이 다. 쉼터는 현재 1억 8천만원의 전세 임대차계약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데 여기에 소요된 금액은 정대협의 실행위원회에서의 의결을 거쳐 박물관 건 립기금 7) 에서 지급된 돈이다. 그러나 2009년 3월, 서대문 독립공원에 지 어질 전쟁과 여성 인권박물관이 건립되면 쉼터의 전세비는 반납해야 하는 7)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 20여 명이 다시는 우리처럼 이런 일을 당해서는 안된다는 취 지하에 정부로부터 받는 생활비를 모아 내주신 것이 주춧돌이 되어 전쟁과 여성인권박 물관 건립을 위한 모금이 시작되었다. 이런 할머니들의 마음이 전국 각지로 퍼져나가 어린아이부터 학생, 수녀님들, 노동자들과 많은 사람들, 또한 일본에서도 오랫동안 일 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해 아시아 각지의 피해자들과 함께 연대하며 활동해 온 여 성들이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건립을 위해 연대와 지원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이 에 정대협에서는 2003년 12월 18일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점화식이 거행하였으며, 정 대협 조직안에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건립위원회 가 발족하여 박물관 건립사업을 추진 하고 있다(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지울 수 없는 역사, 일본군 위안부, 풀빛, 2005). 이렇듯 박물관 기금후원은 피해자들의 일상생활지원을 위한 후원과 그 목적을 달리하며, 쉼터 운영을 위해 기금을 전용할 수 없는 실정이다. - 387 -

20 / 한국민족문화 34 실정이다. <그림 2> 쉼터 우리 집 의 평면도 둘째, 위와 같은 문제점으로 인한 사회복지시설로의 전환 필요성이다. 현재 피해자 할머니들이 기거하는 곳은 경기도 퇴촌에 있는 나눔의 집 과 정대협에서 운영하고 있는 쉼터 두 곳으로 나눔의 집 은 사회복지시설로 등록되어 있다. 그러나 쉼터 는 여전히 비인가시설로, 그 결과 국고보조 금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쉼터가 국고보조를 받기 위해서는 인가시설 화가 필수 조건이다. 그러나 현재 쉼터는 비인가시설로 국고보조금을 받 으려면 사회복지시설 중 그룹홈(공동생활가정)이 되어야만 하고, 그룹홈이 되기 위하여서는 5명 이상이 거주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미 고령과 각종 질환에 노출되어 있으며, 현재의 동거 동료와의 가족같은 친분 등은 피해 자들로 하여금 인위적인 주소지 이전을 주저케 한다. 예를 들어 그룹홈의 - 388 -

쉼터 생활을 중심으로 본 일본군 위안부 의 삶에 관한 사례연구 / 21 5명 이상 거주는 주거지에 주소지가 되어 있어야하나 할머니들께서는 본 인은 와있으나 주소지를 옮기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현재 쉼터는 2분 만 주소지를 두고 있음). 또한 쉼터는 지방에서 치료차 올라와서 몇 개월 씩 머물기도 하는 곳(예를 들어 부산 다대포에 살고 있는 86세의 김00 할 머니께서도 2009년 3월에 올라오셔서 눈 치료 후 5월에 내려가심)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고령의 할머니들께서는 혼자 살고 계시더라도 며칠 씩 머물고는 가지만 집을 옮기기를 꺼려하고 있다. 이에 담당 실무자들이 간곡히 말씀드렸지만 나중에 갈께 라고만 하고, 2006년 12월에 오셔서 2007년 6월에 돌아가신 86세의 황00 할머니께서도 골다공증과 폐암이 걸 려 움직일 수가 없을 때 쉼터로 들어오셨다. 이처럼 사회복지시설로의 전 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은 장애인, 노인 등 기존의 그룹홈 이용자들과는 상이한 위안부 피해자들의 독특한 욕구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배려의 환기가 무엇보다 필요함을 시사케 한다. 2 쉼터운영에 따른 재정 상황 일반적인 복지시설 운영의 경우, 정부보조금과 이용자들의 시설이용료 로 구성됨이 일반적이나 위안부 피해자 들의 거처인 쉼터의 경우 이용자 인 피해자들로부터 별도의 이용료를 받지 않고 있다. 그것은 다음에서 보 는 바와 같이 피해자들에 대한 정부지원의 수준이 그들의 당면한 욕구조 차 충족시킬 만큼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2008년 현재 피해자들에게는 지원법 제4조(생활안정지원대상자에 대한 지원의 내용)에 의거하여 생활안정지원금 일시금 4,300만원과 월지원금 80만원,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한 생계급여, 8) 의료급여에 의한 의료급 여 9), 임대주택 우선입주, 2006년부터 간병인 지원(2006년부터 2007년까 8)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능력이 없거나 또는 부양을 받을 수 없 는 자로서,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자에게 지급되는 급여이다. 9) 국민기초생활보장 대상자 등 일정수준 이하의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그들이 자력으로 의 료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경우 국가재정으로 의료혜택을 주는 공적부조제도로서 의료보 험과 더불어 국민의 의료보장정책의 중요한 수단이 되는 사회보장제도이다. - 389 -

22 / 한국민족문화 34 지 300만원, 2008년 500만원 사용가능), 사망자는 장제보호를 받으며, 무의탁자 또는 희망자에 한해서 국립망향의 동산 안치, 정서적 안정지원 및 건강치료, 기초노령연금 및 교통수당, 시 도별 자체적으로 지방비 지 원, 가정봉사원 파견, 자활후견인 연결 등이 있다. 특히 2006년부터 지원 되는 간병비는 노령과 과거 경험에 의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이 잔재한 피 해자들에게 매우 유용한 지원이라 할 수 있다(<표 7> 참조). 실제 1년 중 약 3개월 정도 입원하는 쉼터에 거주하는 91세의 이00 피해자에게는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표 7> 생활안정지원금의 연도별 지원 추이 단위: 만원 구분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월지원금 60 64 70 74 78 80 일시금 4,300 4,300 4,300 4,300 4,300 4,300 출처: 정대협 내부 자료 피해자들은 대부분 1인 가구이므로 1인가구를 기준으로 한 최저생계비 와 월 지원금을 비교해 보면 후자가 2배 가까운 금액이며, 인상률만 보자 면 2000년의 50만원에서 2008년 현재 80만원으로 60% 인상되었음은 고 무적이다. 이러한 수치들만 보면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사회 전체의 지 원이 아직 미약한 가운데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액이 상대적으로 결코 적 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지원법의 의의는 과소평가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대부분이 고령과 각종 질환에 노출되어 불가피하게 발생되는 의료적 추가 비용과 대부분 생산적 활동에 종사하지 못함으로 인한 생계 수단의 결여 등을 고려해 볼 때, 단순히 최저생계비만을 두고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 수준의 높고 낮음을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것 이다. 즉 월 지원금과 같은 직접적인 현금 지원을 어느 수준에서 정하느 - 390 -

쉼터 생활을 중심으로 본 일본군 위안부 의 삶에 관한 사례연구 / 23 냐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여생을 안락하게 보낼 수 있도록 다양 한 형태의 사회적 정서적 지원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한편 <그림 1>에서 보듯이 쉼터는 정대협의 한 조직으로서 운영된다. 이 경우 쉼터 이용자인 피해자들로부터 별도의 이용료를 받지 않는 등 쉼 터의 운영 상황은 만성적인 적자 상태에 허덕이고 있는 실정이다. 쉼터에 서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의 쉼터 생활의 수입과 지출을 기록하고 있는 데, 수입은 전액 후원에 의존하고 있다. 그 중 가장 최근의 자료인 2008 년 1월부터 11월까지의 수입과 지출을 나타내면 <표 8>과 같다. 일자 내역 수입 지출 비고 1월 2월 3월 4월 5월 후원 1,090,000 경기대학원 학생 이십만원 후원 인건비 공과금 후원 690,000 인건비 공과금 후원 635,000 인건비 공과금 1,460,000 쉼터실장, 주말봉사자인건비 포함 867,820 도시가스비, 전화, 전기요금 1,380,000 쉼터실장, 주말봉사자인건비 포함 876,880 도시가스비, 전화, 전기, 수도요금 1,400,000 쉼터실장, 주말봉사자인건비 포함 892,580 도시가스비, 전화, 전기요금 후원 1,736,000 일반후원 칠십만원 후원 인건비 공과금 후원 2,534,518 인건비 공과금 <표 8> 쉼터 수입과 지출 2,550,000 쉼터실장 상여금포함 770,760 도시가스비, 전화, 전기요금 사법연수38기 연세대 동문회 일백만원 후원 1,400,000 쉼터실장, 주말봉사자인건비 포함 438,540 도시가스비, 전화, 전기요금 - 391 -

24 / 한국민족문화 34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후원 1,948,000 일반후원 1,000,000 인건비 공과금 지붕수 리비 1,300,000 쉼터실장, 주말봉사자인건비 포함 592,320 도시가스비, 전화, 전기요금 500,000 후원 859,150 일본 110,000 후원 인건비 공과금 후원 2,087,000 인건비 공과금 후원 1,820,912 인건비 공과금 후원 1,143,000 인건비 공과금 1,300,000 쉼터실장, 주말봉사자인건비 포함 285,580 여름철 도시가스비 절약 지붕수리비 오십만원 후원 개인 200,000 후원 1,350,000 쉼터실장, 주말봉사자인건비 포함 108,090 도시가스비, 전화, 전기요금 일반인 300,000 후원, 단체 200,000 후원 1,250,000 쉼터실장, 주말봉사자인건비 포함 468,790 도시가스비, 전화, 전기요금 봉은사 연화대학 삼십만원 후원, 교회 200,000 후원 1,200,000 쉼터실장, 주말봉사자인건비 포함 429,230 도시가스비, 전화, 전기요금 후원 2,515,000 일본에서 후원 일백삼십만원 후원 인건비 공과금 계 17,058,580 22,372,860 출처: 정대협 내부자료 1,300,000 쉼터실장, 주말봉사자인건비 포함 252,270 도시가스비, 전화, 전기요금 먼저 수입면을 살펴보면, 쉼터의 수입은 순수하게 후원으로만 이루어지 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매달 정기적으로 일반 후원(약 25명)은 40만원 정 도이며, 단체 후원(교회)은 10만원씩 두 곳으로 20만원과 개인 후원(1인) 약 40만원이다. <표 8>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금액으로는 쉼터 실장의 인건비와 공과금 지급만으로도 턱없이 부족하며, 식비 및 차량유지비를 - 392 -

쉼터 생활을 중심으로 본 일본군 위안부 의 삶에 관한 사례연구 / 25 포함시키면 경영이 몹시 어려운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불안정한 저임금 구조 속에 쉼터의 실질적인 운영자인 실장에게 안정적인 서비스의 지속을 바라는 것은 거의 희생에 가까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열악한 수입에 비해 쉼터 운영비는 매년 증가 추세에 있으며, 이는 쉼 터에서의 일상을 영위하고 있는 피해자들의 삶의 질 저하에 직결한다. 예 를 들어 쉼터는 아주 오래된 주택이기 때문에 수리비로 매년 많은 경비가 들어가고 있으며, 특히 장마 때가 되면 거실 천정으로 물이 새어서 5~6 개의 그릇을 받쳐두어야 하는 실정이다. 또한 당장 전쟁과 여성 인권박물관 건립시 전세비도 내 주어야겠지 만, 그 보다 더 다급한 것은 충정로 일대의 재개발로 인하여 언제 집을 비워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설령 빠른 기간 내에 충정로 쉼터를 떠난 다 해도 최소한의 안락함을 위해 집의 보수 등에 필요한 경제적 지원은 절실하다. 이곳에서의 생활에 만족하고 행복해하며 죽을 때까지 여기에서 살고픈 피해자들에겐 여간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3) 치유를 위한 치료교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여생을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서는 그들의 망가진 육체와 정신의 치유를 위한 각종 프로그램이 불가결하다. 그러나 전술한 바와 같이 쉼터의 재정 상황은 매우 열악한 실정이다. 이에 부족한 운영 재원을 보충하기 위한 일환으로 쉼터 운영실장은 각종 공모사업에 지원하 기도 하며, 실제로 운영에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2004년부터 현재까지 매년 서울시에서 실시하는 민간단체 지원사업에 선정되어(금액 일천만원) 치료교실과 부식 및 간식, 봄 가을 온천 나들이 등을 실시하 고 있다. 이 경우에도 서울시 지원은 4월에서 12월까지로, 1월부터 3월까 지 모든 생활비는 정대협에서 지급되고 있다. 또한 민간협력사업이 선정 된 후에도 공과금과 차량유지비, 쉼터 실무자의 인건비 등은 지급되지 않 아 후원으로 유지하고 있다. <표 9>와 <표 10>은 2007년 서울시 시정참여사업에서 실시하였던 사업 내용을 구체적으로 나타낸다. - 393 -

26 / 한국민족문화 34 상기 사업은 크게 할머니의 기쁨, 솜씨, 건강 찾기를 위해 기획된 것 으로 이는 할머니들의 당면 욕구인 신체적 정서적 건강을 충족시키기 위 한 것이다. 프로그램 기획자는 쉼터를 운영 관리하는 실장이 계획하여 운 영하며 상기의 사업으로 피해자들은 지역사회와의 소통과 건강 유지에 보 탬이 되었으며 할머니들의 삶이 밖으로 전달되는 계기가 되었다. 위와 같은 목적에 따른 상기 사업의 지출 내역은 <표 10>과 같다. 이 표에 의하면 할머니의 기쁨찾기 는 전체액수에서 3%. 솜씨찾기 는 45%, 건강찾기 는 52%로 나타났다. 이러한 비율의 분포는, 할머니의 기쁨찾기 의 경우 고령으로 인하여 외부 활동에 제한이 있으므로 그 비중이 낮기 때문이다. 반면 솜씨찾기 는 쉼터 내부에서 치료를 겸한 활동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 비중이 높으며, 건강찾기 는 매일매일 식생활과 연결되어 있고 고령인 피해자들의 병원출입의 교통비와 약품구입으로 또한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다. 한편 건강찾기 중에서도 가장 많이 드는 부분은 부식 및 간식비이며, 다음은 솜씨찾기 의 치료교실(강사비와 재료비 포함) 프로 그램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건강을 찾기 위한 치료교실은 피해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가장 중요한 욕구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하에서 치료교 실의 실체를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내고자 한다. 쉼터에서는 심리적 정신적 충격과 육체의 병마 속에서 찌들은 생활을 하였던 피해자들을 위한 치료교실(원예치료, 미술치료(2007년까지), 종이 접기 등)이 실시되고 있다. 2004년부터 2008년 현재까지 행해지고 있는 치료교실은 자신의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치료적 환경을 제공한다. 즉 실 제문제와는 어느 정도 감정의 거리를 두고 정서적으로 고통스러운 상태를 묘사하도록 함으로써 상대적으로 덜 위협적이며 간접적 방식으로 자신의 문제를 다룰 수 있도록 하며, 언어가 가지는 직접적, 위협적인 부분을 배 제하고 적절한 수준의 정서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무리 없는 자기표현을 하게 해주기 위함이다. - 394 -

쉼터 생활을 중심으로 본 일본군 위안부 의 삶에 관한 사례연구 / 27 할머 니의 솜씨 찾기 할머 니의 건강 찾기 원예 11월 08일 교실 11월 22일 12월 06일 12월 20일 <표 9> 서울특별시 시정참여사업 추진실적 10) 10월 18일 10월 25일 건강 관리 수시 쉼터, 병원 등 온천 나들 이 11월 30일 출처: 정대협 내부자료 - - 남양주 리치 플러스 실무자: 2명 할머니: 10여명 건강상담 및 침, 부황, 뜸 치료 실무자: 3명 할머니: 9명 봉사자: 2명 가을꽃꽂이 액자토피어리 하트장미 수경재배, 선물포장 수경재배 곡식액자 쉼터에 거주하는 할머니와 쉼터방문 할머니들의 건강을 위한 활동(병원, 보건소 등 모시기) 할머니들의 건강을 위한 침 치료 및 부황, 뜸 치료 가까운 찜질방 나들이, 건 강 발마사지 진행 등을 통 한 건강관리와 친교의 시간 또한 상징적인 재경험을 통하여 외상의 경험을 변화시키는 촉매제 역할 을 해 준다. 피해자로 하여금 주도적인 창작과정을 통해 입 밖으로 내놓 지 못하던 외상을 외부로 꺼내어 치료적 재경험을 함으로써 외상으로 인 한 후유증을 경감시키는 목적도 갖고 있다. 처음 치료교실 수업을 시작하였던 당시 피해자들은 치료교실 시간만 되 면 아파서 못하겠다, 다른 일로 바빠서 수업을 할 수 없다, 지금 나 이에 이런 것은 해서 무엇 하나 하는 등으로 귀찮아하며 수업을 거부하였 다. 그러나 치료교실 강사들의 꾸준한 관심과 노력, 사랑으로 시간이 지 나면서 피해자들이 변하기 시작하였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진행된 미술치료교실은 놀이적 차원의 즐거움 과 정서적 안정, 분노의 공격성의 안전한 표출과 정신적 외상의 완화, 집 10) <표 9>와 <표 10>은 2007년 쉼터에서 실시하였던 사업내용으로 2007년 12월 말일에 서울시에 보고하였던 내용의 일부를 발췌한 것임. - 395 -

28 / 한국민족문화 34 단 내에서 꾸며낸 가상적인 이야기들을 동화책으로 만드는 등 다른 사람 과의 결과물을 공유함으로써 내적인 성취감을 고취시켜, 노년기에 따르는 우울과 소외감 등을 줄여 주었고 따라서 긍정적으로 여생을 마감하도록 도움을 주는 시간이 되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함께 하였던 치료강사의 출 산으로 강사가 바뀌자 피해자들은 수업시간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않았 다. 그것은 변화된 환경을 싫어하는 심리 때문이다. <표 10> 서울특별시 시정참여사업 세부사업 집행내역 세부사업 비 목 자비 보조금 총 계 13,970,070 9,957,980 소 계 104,570 269,440 할머니의 기쁨찾기 봄동산나들이 269,440 추석상차림 104,570 소 계 4,500,000 원예교실 강사비 1,620,000 할머니의 솜씨찾기 원예교실 재료비 630,000 미술교실 강사비 1,620,000 미술교실 재료비 630,000 소 계 13,865,500 5,188,540 온천나들이 779,300 할머니의 건강찾기 부식 및 간식 2,969,240 의약품비 540,000 주유비 900,000 공과금 및 인건비 13,865,500 출처: 정대협 내부자료 2006년부터 현재까지 행해지고 있는 원예교실 수업을 통해 피해자들은 꽃과 식물을 보살피면서 아름다움과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면서 차츰 얼굴 에 홍조를 띄우기도 하면서 작업하는 모습이 나이와 관계없이 교육의 힘 은 대단함을 느끼게 해주는 시간이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시간에는 세 - 396 -

쉼터 생활을 중심으로 본 일본군 위안부 의 삶에 관한 사례연구 / 29 상 시름을 다 잊어버릴 만큼 행복해하고 엄청난 집중력을 보이며 최선을 다해 열심히 작업한다. 처음 원예 수업을 진행 하였을 때 할머님들은 별 관심도 없으시고 귀찮아 하셨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할머님들은 힘들면 서로 도 와주시기도 하시고, 식물을 통해 양육의 기쁨과 완성된 작품에 만족감 과 때로는 불만을 가지시면서 차츰 원예수업에 관심을 가지셨어요. 첫 해에는 많은 식물이 죽어나가곤 했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식물에 대한 사랑과 정성을 쏟으시며, 표정도 밝아지고, 수업에 임했을 때 할머님들 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수업열기가 후끈 달아오르곤해요. 물론 이제는 쉼터거실이 작은 정원이 되었지만 길00 할머님의 경우는 처음에는 소 극적인 태도를 보였는데, 지금은 어느 누구보다도 더 적극적이시고, 몸 이 아파도 끝까지 작품 완성하세요. 얼마 전에는 선생님, 난 꽃 수업 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머리가 안 아파요 하시는데 정말 보람을 느꼈죠.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식물에 물도 주시고, 조그마한 물고기에 도 자식처럼 정성을 다하시는 모습을 보니 처음 뵐 때의 모습은 없어 지고, 편안하고 평화로운 하루하루를 보내시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요 (원예치료강사). 2008년부터 새로이 시작된 종이접기는 창작, 조립, 조직적 구성, 색채 구성, 공간구성 등이 확대된 조형예술로써 훌륭한 창조적 활동이다. 미술, 원예, 종이 접기 교육은 반복 작업을 통한 집중력 향상 및 정신적 안정감 에 도움을 주어 지금 피해자들은 또래의 연세에 비해 젊음을 유지하고 있 으며, 치매예방에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처음 시작하였을 때 힘들어 앉아 있지도 못하던 모습에서 이제는 남을 가르칠 정도의 실력을 쌓았고, 그렇게 힘든 시간을 지나 현재 피해자들의 자아 존중감은 고취되어 모든 일에 적극적이며 긍정적인 삶을 사는 계기가 되었다. 그 외 실시되었던 장구교실과 춤교실, 노래교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 통하여 피해자들은 내 면의 분노를 표출하여 심리적 안정을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피해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건강치료교실은 2005년 9월부터 시작 되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자원봉사지자인 윤00(윤박사라 칭함) 선생님 - 397 -

30 / 한국민족문화 34 은 항상 통증을 호소하는 길00 피해자와 이00 피해자 및 쉼터를 찾아오 는 피해자들의 주치의다. 일주일에 3회씩 방문하여 트라우마와 신체적 통 증클리닉을 통하여 치료하며 건강상담도 잊지 않는다. 여러 가지의 침법 을 구사하고 추나요법으로 마사지를 해드리며 때로는 중국 정통기법의 하 나인 기공치료를 한다. 기공치료는 신체접촉을 전혀 하지 않는 방법으로 오로지 기로서 하는 치료로서 시술 후에는 약 20~30분 정도는 휴식을 취할 만큼 힘들어 한다. 그러한 모습을 보는 할머니의 시선은 처음 몇 차 례는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나 2주일쯤 지나자 몸에 차도가 생기고 자원봉사자의 꾸준한 방문과 변치 않는 사랑과 관심으로 만 3년째 되는 지난 2007년 하나님이 보내주신 분 이라는 칭호와 함께 윤박사를 기다리 기 시작한다. 우리 윤박사님이 오실 때가 되었는데 를 되뇌이며 딩동 하는 차임벨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는 할머니의 얼굴에는 환한 빛 이 감돈다. (4) 나누는 기쁨 한평생 가난 속에 살아왔던 피해자들에게 정부에서의 지원금과 사람들 의 관심은 피해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가 난한 삶이기 때문에 나눔이란 단어가 자신밖에 모르는 생활을 60년이 넘 도록 살아왔던 피해자들은 자원봉자자들의 따스한 손길들, 관변단체 또는 관청의 호의 등으로 밖을 향해 열리게 되었다. 온정을 베풀며 함께 웃고 즐거운 모습으로 가족애를 표현한다. 이들의 따사로움 보살핌에 피해자들 의 병든 마음이 열리며 이제는 모든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우리들의 마음을 녹였다 고 말하며 피해자들 자신이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하 여 온정을 베푼다. 길00 피해자는 매달 기지촌 여성들을 위하여 후원금을 잊지 않는다. 2009년 6월에는 북한어린이들에게 줄 콩우유 기계 한 대 값인 성금 500 만원을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에 전달하기도 했다. 11) 또한 함께 생활 하는 고령의 또 다른 91세의 피해자 이00에게 말할 수 없는 보살핌을 드 11) 굶주린 北 아이에 아낌없는 후원, http://seoul.co.kr (검색일: 2009. 6. 26) - 398 -

쉼터 생활을 중심으로 본 일본군 위안부 의 삶에 관한 사례연구 / 31 러낸다. 시력이 많이 약화된 91세의 이00 피해자와 외출 할 경우 반드시 손을 잡아 길을 안내하는 등 이타적 봉사를 실천한다. 이것 또한 나누는 기쁨이라는 의식을 생활에서 실천할 만큼 쉼터 생활의 각 프로그램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5) 여한 없는 삶 1 하원 본회 121결의안 만장일치 채택 이00 피해자는 2007년 노구의 몸을 이끌고 하원 의원을 만나고 동포들 을 만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하여 미국을 4번이나 다녀왔다. 그리하여 2007년 7월 30일(미국 현지시간), 미국하원 본회는 H.R.121 12)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함으로써 하원 이름으로 일본정부에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공식인정과 사죄, 역사적 책임 이행 등을 권고하였다. 결의안 지지자로 알려진 톰 랜토스 하원 외교위원장은 일부 일본인들 이 역사를 왜곡하고 부정하고 있는 것에 대해 혐오감을 느낀다 며 일본 정부는 2차대전 당시 행한 자신들의 비인간적인 행위를 전적으로 인정해 야 한다고 강조했고, 전세계가 일본 정부의 완전한 과거사 청산을 기다리 고 있다고 역설했다. 결의안을 발의한 혼다 의원도 역사에는 시효가 없 다 면서 일본 정부는 반인륜적 인권 유린에 대해 명백한 사과를 해야 한 다 고 말했다. 그동안 일본정부는 결의안이 통과될 경우 미일관계를 훼손할 수 있다 고 `위협하기도 하였고, 토머스 폴리 전 하원의장 등 정치적 영향력이 큰 로비스트를 고용하여 결의안 채택저지를 위해 필사적인 로비활동을 벌였 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 일간의 문제인데, 왜 미국 의회에서 다 뤄지는가 하며 문제를 축소, 왜곡하여 제기함으로써 미국 하원에서의 결 의안 채택을 저지하는 전략을 쓰기도 하였다. 6월 14일 워싱턴포스트지 에는 일본정치가들이 거액의 돈을 지불하면서 사실 이라는 제목으로 광 고를 게재하였다. 이 광고는 일본군 위안부 는 강제가 아니라 합법적인 매춘행위이며, 그렇기 때문에 일본군 성노예로 표기한 혼다 결의안은 사 12) H.RES.121(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 399 -

32 / 한국민족문화 34 실왜곡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막대한 돈을 투자하면서까지 벌인 로비는 이미 국제사 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성노예제이며, 비인도적인 범죄로 공인받 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미국 시민사회의 비웃음을 사게 되었다. 일본정부의 집요한 로비가 먹히지 않았던 것은 국제사회의 여론도 있었 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미국 국내의 여론의 힘이 크게 작용하 였다고 볼 수 있다. 뉴욕타임즈와 워싱턴포스트지, 의회 기관지인 힐지, CNN, ABC방송 등 주요 신문과 방송에서 위안부 문제를 연일 보도하였 고, 이러한 대중매체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의 범죄성은 더 넓게 퍼져나 갔다. 이러한 여론의 밑에는 한인동포들의 단합된 힘과 정치력이 배경이 되었다. 워싱턴과 뉴욕, LA, 샌프란시스코 등 각 지역에서 한인들이 중심 이 되어 121결의안 채택을 위한 범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여기에 동포 2, 3세 젊은이들이 결합하면서 운동의 양상은 미국시민사회 운동의 발전 으로 확대되어 갔다. 각 지역에서 지역구 의원들을 상대로 투표권을 가진 한국계 미국시민들이 벌인 로비활동은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채택의 과 제를 수행하기 위한 새로운 유권자운동으로 확산된 것이다. 국제연대활동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한국과 대만 등 아시아피해국의 피해자들과 여성들, 일본, 호주, 독일 등의 여성 및 시민들은 낸시 펠로 시 의장에게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이 채택될 수 있도록 연대와 지원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성명채택을 통해 국제사회에 호소하기도 하였다. 결국, 일본의 대대적인 로비공세에 맞서 미국 내 한인들이 미 의 원들을 상대로 위안부 강제동원의 부당성과 결의안 채택의 의미를 설득 하는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의 한 면을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꿈이 실현되어 본회의 만장일치 결의안 채택의 결실을 맺은 것이다. 13) 그 자리에 참석하여 지켜보고 있었던 이00 피해자는 눈물을 흘리며 역사적 인 한을 풀어줘서 고맙다. 오늘 이렇게 기쁠 줄 몰랐다. 이젠 죽어도 좋 다 는 말로써 기쁨을 표현하였다. 13) 함께걸음, http://www.cowalknews.co.kr - 400 -

쉼터 생활을 중심으로 본 일본군 위안부 의 삶에 관한 사례연구 / 33 2 서울시 여성상 대상 매년 서울특별시에서는 여성발전 및 여성이 행복한 서울을 만드는데 기 여한 공적이 큰 시민 및 단체를 발굴하여 여성상을 수상하여 왔다. 길00 피해자는 지난해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 영국을 방문하여 국회의원을 만나고 의원 청문회에 참석하여 일본의 만행과 위안부 의 피해사실을 세 계에 알렸다. 이런 노력의 결실로 네덜란드와 유럽연합의회가 위안부 강 제동원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만장 일치로 채택하는 성과를 얻었다. 수고한 공로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하여 아픈 몸을 이끌고 전 세계를 다니는 길00 피해자는 2008 년 제5회 서울시 여성상 대상에 수상되었다. 길00 피해자는 여성상 대상에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기쁨의 눈물 을 흘리며 죽지 않고 살아 있었더니 정말 좋은 세상을 살아간다 고 하며 그동안 본인을 위해 한 푼의 돈도 절약했던 피해자는 인사동에 나가서 예 쁜 한복을 구입한 일도 있었다. 수상소감을 묻는 자리에서 오늘 이 상은 내가 받는 것이 아니고 우리 젊은이(정대협을 칭함)가 받아야 하는데 너무나 명예롭고 행복하다며 지 금까지의 아픔이 한 순간에 없어지는 것 같다고 감격스러워 했다. (6) 다시 태어난다면 피해자들의 삶속에는 위안부 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한 채 살아왔다. 다시 태어난다면 이라는 문항은 어쩌면 소용이 없는 질문일지 는 모르겠으나 일본군 위안부 로 인해 겪어야 했던 많은 고통들을 지워버 리고 싶음을 표현한 것이라 여겨진다. 부잣집 딸로다 태어나서 곱게곱게 자라서 시집 좀 가가지고 애 낳고 살고 싶어(길00). 나는 죽어가지고 다시 태어난다면은 여군이 되고 싶어요, 여군하고 싶어요. 나라를 지키는 그래가지고 나라를 위해서 싸우고 싶어요(이 00). - 401 -

34 / 한국민족문화 34 가난과 거짓취업, 유괴 때문에 씻을 수 없는 참혹한 위안부 로서의 시 간을 보내야 했던 피해자들은 가부장적 사회분위기 때문에 스스로 죄인처 럼 자신들의 아픔을 드러낼 기회를 갖지 못하였다. 왜곡된 신념과 인지가 재구성되는 과정 없이 아픔을 극복한다는 것은 불 가능하며, 이 아픔을 극복하기 위하여서 중요한 주변의 환경이 존재한다. 그 중심에는 지지해주는 많은 사람들과 지원단체 그리고 쉼터가 있고, 함께 나누는 생활로 인하여 피해자들의 왜곡된 인지는 변화되고 있다. 5. 결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역사의 격동기에 일본 정부에 의해 직접적인 신체적 정서적 학대를 당하였고 피해 이후에도 자신이 당한 인권유린에 대해 보상받기는커녕 사회로부터 배척당하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자 신을 감추어야만 하는 또 다른 방식의 폭력을 경험해 왔다. 이로 인해 스 스로 감당할 수 없는 불안과 분노를 홀로 가슴에 묻고 살아왔으며 불안과 긴장으로 점철된 고단한 삶 속에서 개인적 차원의 전 역사까지도 황폐화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 속에 영원히 묻혀버릴 뻔했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1990년 초 여성인권운동가들에 의하여 수면위로 떠올랐으며, 그 뒤를 이 어 일본군 위안부 였던 故 김학순 피해자의 최초의 고발을 통해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한국의 거대한 역사 속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못하고 평생을 죄인 처럼 살았던 피해자들에 대하여 증언집과 일본군 위안부 의 정책과 그 비 인도성을 밝히기 위한 연구는 계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 들의 전 생애사를 알도록 한 연구는 매우 부족한 실정으로, 본 연구에서 는 피해자들의 쉼터 생활을 전후한 최신의 삶의 모습을 분석해봄으로 피 해자들을 이해하고 남은 생애동안 행복한 여생을 보낼 수 있는 기초적 자 료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 402 -

쉼터 생활을 중심으로 본 일본군 위안부 의 삶에 관한 사례연구 / 35 본 연구를 통하여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다음과 같은 사회적 배려가 필요함을 알 수 있었다. 먼저 일본군 위안부 신고 후 피해자들에게는 경 제적 지원이 불가결하였다. 실제로 일반인들이 바라보기에 피해자들은 자 식도 없고 이제까지 가난하게 홀로 살아왔으니 경제적(돈) 문제가 가장 시급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다행히 정부의 지원으로 피해자들의 생활 은 많이 나아졌고 실제로 쉼터에 거주하시는 피해자들은 경제적인 어려움 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 무엇이 가장 힘드냐 는 연구자의 질문에 외 롭다 그리고 일본이 사죄하고 배상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라고 말끝 을 흐렸다. 일본의 사죄와 배상은 피해자들의 죽기 전 가장 절실한 소망 이기도 하다. 그러나 경제적 지원 이상으로 피해자들에게는 그들의 분노와 상처에 공 감해 주는 일도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우리는 그녀들이 여성 으로서의 자존감과 특히 인간에 대한 믿음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 야 한다. 이러한 경제적 지원과 더불어 그들에 대한 심정적 지지를 통해 이제는 노후를 행복한 생활과 여유를 찾음으로써 자신을 돌아보고 다가오 는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며 생의 마지막까지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환경과 관심을 가져야 하여야 할 것이다. 사회적 인식의 전환과 그에 따른 재정적 지원.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이러한 해결책은 너무나도 평이하고 추측가능한 결론이지만, 이러한 근본 적인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에 대해 우리 사회는 얼마나 관용적인가 의심 해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그 어떤 사회적 약자보다도 여생이 얼마 안 되는 위안부 피해자의 문제에 대해 작금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인 효율성 의 추구라는 잣대가 아닌 보편적인 인권 측면에서의 접근은 불가결할 것 이다. - 403 -

36 / 한국민족문화 34 참고문헌 김설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 이야기와 치유, 이화여자대학 교 석사학위논문, 2003. 김수아, 일본군 위안부 담론 구성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01. 심영희, 침묵에서 증언으로: 군위안부 피해자들의 귀국 이후의 삶을 중 심으로, 정신문화연구 79,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0. 양수조, 일제의 강제 동원령과 일본군 위안부 실태, 충남대학교 석사 학위논문, 2003. 여순주, 일제말기 조선인 여자 근로정신대에 관한 실태 연구, 이화여자 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4. 요시미 요시아키[ 吉 見 義 明 ], 이규택 역, 일본군 군대위안부, 한림신서, 1998. 윤정옥, 조선식민정책의 일환으로서 일본군 위안부, 일본군 위안부 문 제의 진상, 역사비평사, 1997. 이상화, 군위안부 경험에 관한 연구: 결혼 과정에서 나타나는 인식 변화 를 중심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3. 이선형,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증언의 방법론적 고찰 -증언의 텍스트화 와 의미부여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2. 이애리, 日 本 軍 慰 安 婦 의 動 員 實 態 에 대한 考 察, 경남대학교 석사학위논 문, 2004. 이해미,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역사적 보편성과 특수성: 조선인 위안 부 동원을 중심으로, 서강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7. 정진성, 군위안부 강제연행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9. 정현백, 일본군 성노예문제와 기억의 현재화, 인문과학 제86집, 연세 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04. 조최혜란, 일본군 위안소에서의 범죄적 행위와 피해사실, 일본군 위안 - 404 -

쉼터 생활을 중심으로 본 일본군 위안부 의 삶에 관한 사례연구 / 37 부 문제의 책임을 묻는다, 풀빛, 2001. 최지선, 역사적사건에 대한 기억의 장치 -일본군 위안부 사례를 중심으 로, 서강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기억으로 다시 쓰는 역사 4(증언집), 풀빛, 2001.,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책임을 묻는다, 풀 빛, 2001., 역사를 만드는 이야기 6(증언집), 풀빛, 2004., 지울 수 없는 역사, 일본군 위안부, 풀빛, 2005. 한국정신대연구소,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1(증언집), 한울, 1993.,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2(증언집), 한울, 1997.,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3(증언집), 한울, 1999.,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5(증언집), 한울, 2001. 황은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의식변화 과정에 관한 연구: 여성주의 담론의 영향을 중심으로, 한양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8. John W. Creswell, 조흥식 외 역, 질적 연구방법론, 학지사, 2008. 日 정부 역사왜곡 교과서 검정 통과 철회하라, http://www.newsis. com (검색일: 2009. 4. 10) 굶주린 北 아이에 아낌없는 후원, http://www.seoul.co.kr (검색일: 2009. 6. 26)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http://www.womenandwar.net 함께걸음, http://www.cowalknews.co.kr - 405 -

38 / 한국민족문화 34 <Abstract> A Case Study on Lives of Japanese Military 'Comfort Women' Focusing the Lives at the Shelter 'Woorijip' Son, Young-Mi Cho, Won-Il This research focused on life-stories of victims of the 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 who have been living in physical and psychological pain from the experiences as 'comfort women'. The victims of the 'comfort women' who were forcibly drafted to serve the Japanese soldiers neither could live normal lives nor could get married to have a family due to post traumatic syndrome. To understand the lives of the victims, we adopted case study methodology. The main purpose of this research is to analyze how the forced experiences as 'comfort women' influenced the current lives of the victims and to provide a foundation for the victims to live healthy and happier remaining lives from the social welfare perspective. To discover how the victims' past experiences are connected with the current lives and how they influence each other, two of the four victims residing at the shelter 'Woorijip' have been selected for the research. The victims still suffer from physical and psychological trauma from their past experiences as 'comfort women'. The majority of the victims are now over 80 years old. Not only with the physical and economical support, it is also significant to provide the victims ways to improve their remaining lives and overcome their sufferings. * Key Words: Japanese Military 'Comfort Women', the Korean Council for the Women Drafted for Military Sexual Slavery by Japan, the Shelter 'Woorijip', Human Rights, Case Study ㆍ논문투고일: 2009년 5월 30일 ㆍ심사완료일: 2009년 7월 9일 ㆍ게재결정일: 2009년 7월 14일 - 4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