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韩 半 岛 统 一 愿 景 和 韩 中 关 系 的 未 来 2013.11.20 수 서울대 호암교수회관, 무궁화홀 2013.11.20 星 期 三 首 尔 大 学 湖 岩 教 授 会 馆 주최 主 办 후원 协 办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韩 半 岛 统 一 愿 景 和 韩 中 关 系 的 未 来 2013.11.20 수 서울대 호암교수회관, 무궁화홀 2013.11.20 星 期 三 首 尔 大 学 湖 岩 教 授 会 馆 주최 主 办 후원 协 办
Program 11.20 수 * 한 중, 중 한 동시통역 제공 개회식 9:00-09:30 환영사: 박명규 ( 朴 明 圭, 통일평화연구원장) 개회사: 김학준 ( 金 學 俊,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축 사: 윤병세 ( 尹 炳 世, 외교부장관), 오연천 ( 吳 然 天, 서울대 총장) 기조연설 9:30-10:30 한국측: 하영선 ( 河 英 善, 서울대) 중국측: 진찬룽 ( 金 灿 荣, 인민대) 제1회의 중미 신형대국관계와 한중관계 10:40-12:30 사 회 발 표 토 론 송민순 ( 宋 旻 淳, 前 외교통상부 장관) 박근혜 정부의 대중국 정책: 기대와 전망 천펑쥔 ( 陈 峰 君, 북경대) 시진핑 정부의 한반도 정책: 기대와 전망 전성흥 ( 全 聖 興, 서강대) 중미 신형대국관계와 동북아 지역질서 진창이 ( 金 强 一, 연변대) 이문기 ( 李 文 起, 세종대), 장샤오밍 ( 張 小 明, 베이징대), 신성호 ( 申 星 浩, 서울대) 오찬: 크리스탈룸 12:30-14:00 제2회의 한중관계의 미래비전과 한반도 통일 14:00-16:00 사 회 발 표 토 론 장달중 ( 張 達 重, 서울대) 한반도 통일에 대한 중국의 인식과 대응 진징이 ( 金 景 一, 북경대) 한반도 통일과 동북아 평화안정: 비전과 과제 전재성 ( 全 在 晟, 서울대) 동북3성과 한반도 경제협력: 비전과 과제 퍄오동쉰 ( 朴 東 勛, 연변대) 조성렬 ( 趙 成 烈, 국가안보전략연구소), 한시엔둥 ( 韓 献 棟, 중국정법대학), 정형곤 ( 鄭 衡 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홍면기 ( 洪 冕 基, 동북아역사재단) 휴식 16:00-16:20 제3회의 동북아 평화를 위한 한중 소통과 협력 과제 16:20-18:20 사 회 발 표 토 론 진징이 ( 金 景 一, 북경대) 동북아 역사인식의 전환적 과제 박태균 ( 朴 泰 均, 서울대) 한중 인문유대 강화를 위한 과제와 전망 장즈창 ( 張 志 强, 사회과학원) 한중 문화교류 발전을 위한 과제와 전망 강명구 ( 姜 明 求, 서울대) 진쥔 ( 金 俊, 절강공상대학), 백지운 ( 白 池 雲,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왕린창 ( 王 林 昌, 인민일보), 박장배 ( 朴 章 培, 동북아역사재단) 만찬: 릴리룸 18:40-20:30
11.20 星 期 三 * 提 供 韩 - 中, 中 - 韩 翻 译 开 幕 式 9:00-09:30 开 幕 词 : 朴 明 圭 ( 首 尔 大 学 统 一 和 平 研 究 院 院 长 ) 开 会 词 : 金 学 俊 ( 东 北 亚 历 史 财 团 理 事 长 ) 祝 词 : 尹 炳 世 ( 外 交 部 部 长 ), 吴 然 天 ( 首 尔 大 学 校 长 ) 几 条 演 讲 9:30-10:30 韩 方 : 河 英 善 ( 首 尔 大 学 ) 中 方 : 金 灿 荣 ( 人 民 大 学 ) 第 一 场 中 美 新 兴 大 国 和 韩 中 关 系 10:40-12:30 主 持 宋 旻 淳 ( 前 外 交 部 部 长 ) 發 表 朴 槿 惠 政 府 的 对 中 国 政 策 : 期 待 和 展 望 陈 峰 君 ( 北 京 大 学 ) 习 近 平 政 府 的 对 韩 半 岛 政 策 : 期 待 和 展 望 全 圣 兴 ( 西 江 大 学 ) 中 美 新 型 大 国 关 系 和 东 北 亚 区 域 秩 序 金 强 一 ( 延 边 大 学 ) 讨 论 李 文 起 ( 世 宗 大 学 ), 张 小 明 ( 北 京 大 学 ), 申 星 浩 ( 首 尔 大 学 ) 午 餐 : Crystal Room 12:30-14:00 第 二 场 韩 中 关 系 的 未 来 愿 景 和 韩 半 岛 统 一 14:00-16:00 主 持 张 达 重 ( 首 尔 大 学 ) 發 表 对 于 韩 半 岛 统 一 的 中 国 的 认 识 和 对 应 金 景 一 ( 北 京 大 学 ) 韩 半 岛 统 一 和 东 北 亚 的 和 平 稳 定 全 在 晟 ( 首 尔 大 学 ) 东 北 三 省 和 韩 半 岛 经 济 协 力 愿 景 和 课 题 朴 东 勋 ( 延 边 大 学 ) 讨 论 赵 成 烈 ( 国 家 安 保 战 略 研 究 所 ), 韩 献 栋 ( 中 国 政 法 大 学 ), 休 息 16:00-16:20 郑 衡 坤 ( 对 外 经 济 政 策 研 究 院 ), 洪 冕 基 ( 东 北 亚 历 史 财 团 ) 第 三 场 为 东 北 亚 和 平 所 需 要 的 韩 中 间 沟 通 和 协 力 16:20-18:20 主 持 金 景 一 ( 北 京 大 学 ) 發 表 为 了 东 北 亚 历 史 认 识 的 转 换 朴 泰 均 ( 首 尔 大 学 ) 为 了 加 强 韩 中 人 文 纽 带 的 课 题 展 望 张 志 强 ( 中 国 社 科 院 ) 为 了 进 一 步 韩 中 文 化 交 流 的 课 题 和 展 望 姜 明 求 ( 首 尔 大 学 ) 讨 论 金 俊 ( 浙 江 工 商 大 学 ), 白 池 云 ( 首 尔 大 学 统 一 和 平 研 究 院 ), 王 林 昌 ( 人 民 日 报 ), 朴 章 培 ( 东 北 亚 历 史 财 团 ) 晚 餐 : Lily Room 18:40-20:30
Contents 06 08 환영사 기조연설 제1회의 중미 신형대국관계와 한중관계 第 一 场 中 美 新 兴 大 国 和 韩 中 关 系 23 34 37 54 57 68 朴 槿 惠 政 府 的 对 中 国 政 策 : 期 待 和 展 望 陈 峰 君 ( 北 京 大 学 ) 박근혜 정부의 대중국 정책: 기대와 전망 천펑쥔 ( 陈 峰 君, 북경대) 시진핑 정부의 한반도 정책: 기대와 전망 전성흥 ( 全 聖 興, 서강대) 习 近 平 政 府 的 对 韩 半 岛 政 策 : 期 待 和 展 望 全 圣 兴 ( 西 江 大 学 ) 中 美 新 型 大 国 关 系 和 东 北 亚 区 域 秩 序 金 强 一 ( 延 边 大 学 ) 중미 신형대국관계와 동북아 지역질서 진창이 ( 金 强 一, 연변대) 제2회의 한중관계의 미래비전과 한반도 통일 第 二 场 韩 中 关 系 的 未 来 愿 景 和 韩 半 岛 统 一 73 86 91 105 107 124 对 于 韩 半 岛 统 一 的 中 国 的 认 识 和 对 应 金 景 一 ( 北 京 大 学 ) 한반도 통일에 대한 중국의 인식과 대응 진징이 ( 金 景 一, 북경대) 한반도 통일과 동북아 평화안정: 비전과 과제 전재성 ( 全 在 晟, 서울대) 韩 半 岛 统 一 和 东 北 亚 的 和 平 稳 定 全 在 晟 ( 首 尔 大 学 ) 동북3성과 한반도 경제협력: 비전과 과제 퍄오동쉰 ( 朴 東 勛, 연변대) 东 北 三 省 和 韩 半 岛 经 济 协 力 愿 景 和 课 题 朴 东 勋 ( 延 边 大 学 ) 제3회의 동북아 평화를 위한 한중 소통과 협력 과제 第 三 场 为 东 北 亚 和 平 所 需 要 的 韩 中 间 沟 通 和 协 力 129 140 141 151 153 155 동북아 역사인식의 전환적 과제 박태균 ( 朴 泰 均, 서울대) 为 了 东 北 亚 历 史 认 识 的 转 换 朴 泰 均 ( 首 尔 大 学 ) 为 了 加 强 韩 中 人 文 纽 带 的 课 题 展 望 张 志 强 ( 中 国 社 科 院 ) 한중 인문유대 강화를 위한 과제와 전망 장즈창 ( 張 志 强, 사회과학원) 한중 문화교류 발전을 위한 과제와 전망 강명구 ( 姜 明 求, 서울대) 为 了 进 一 步 韩 中 文 化 交 流 的 课 题 和 展 望 姜 明 求 ( 首 尔 大 学 ) 157 프로필
환 영 사 안녕하십니까? 오늘 한반도통일과 한중관계의 미래 국제학술회의를 위해 자리를 함께 해주신 내외 귀빈 여러 분께 환영과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특히 기조발제를 맡아주신 하영선 교수님, 발제를 위해 글 을 작성해주시고 먼 길을 와주신, 진징이 교수님을 비롯한 중국의 연구자 여러분, 그리고 옥고로 함께 참여해주시는 한국의 연구자들께 주최측을 대표하여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도 바쁘신 가 운데 축사를 해 주시는 윤병세 외교부장관님, 오연천 서울대 총장님께 감사드리고 사회를 맡아주 신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장관님, 장달중 교수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공동주최기관 이자 이 행사가 가능하도록 여러모로 도와주신 김학준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올해 한국과 중국에서 새로운 정부가 공식 출범하고 지난 6월에는 양국 간 정상회담이 개최되 면서 양국의 협력관계 확대와 발전에 대한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미 한국과 중국 간에는 매우 활발하고 역동적이며 상호보완적인 다양한 관계들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경제관 계는 두말할 필요도 없고 양국을 오가는 유학생의 숫자도 매우 많습니다. 서울대학교에는 적지 않은 수의 중국인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으며 중국으로 유학하기를 희망하는 학생도 매우 많습 니다. 오고가는 항공기의 숫자만큼이나 상호기대와 협력의 기회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기대가 높은 만큼 현실의 벽도 높습니다. 흔히 말하듯 아시아 패러독스 의 현실이 한중간에 도 놓여있어서 상호신뢰와 문화적 이해의 수준은 경제협력과 사회교류의 실상에 미치지 못하는 형편 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북한문제와 한반도 통일문제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과제일 것입니다. 한반도 통일 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에 대한 오늘의 회의는 한국과 중국이 당면한 어려움을 넘 어서 건설적으로 협력하면서 함께 더 나은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필요한 쟁점들을 확인하는 자리입니 다. 한중 간에의 학술적, 문화적, 정치적 관계는 그 역사가 매우 오래고 20세기 이후의 변화도 매우 컸습니다. 하지만 21세기에 접어들어 한중관계의 발전은 한반도 문제만이 아니라 동북아 질서, 나아 가 전세계의 평화와 발전에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동북아 평화안정에 대한 중장기적 미래 비전을 공유하고, 역사 화해와 교류 확대를 위한 과제를 발굴하며,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위한 발전적 담론을 개발하는 학문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6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오늘날 북한문제와 통일문제는 한중간 협력을 가장 필요로 하면서도 자칫 그것을 가장 어렵 게 만들수도 있는 사안입니다. 그만큼 전략적인 고도의 협력이 필요한 사안이 아닌가 합니다. 현재 북한 핵문제가 전지구적 쟁점이 되어 있고 이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재개 문제가 지속적으로 논의되 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비핵화에 대한 공감대는 국제적으로 널리 확인되고 있지만 정작 북한의 가 시적인 비핵화조치를 얻어내는데는 이르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여기에 북한의 경제난, 많은 잠 재적 갈등을 안고 있는 북한문제가 중국 및 동북아 전체의 중대한 과제가 됨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한반도 통일 이라는 큰 화두는 단순히 한국민족의 오랜 숙원을 이 룬다는 차원을 넘어서 동북아 지역의 잠재적 불안구조를 해소하고 21세기 평화와 공영, 발전과 신뢰의 지역을 만들어가는 큰 프로젝트의 핵심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6월 박근혜 대통령-시진핑 국가주석 간의 정상회담에서는 한중미래비전 공동선언 이 발 표되었고 양국간 다양한 협력의 방안들이 논의되었는데 그 가운데 인문협력 의 필요성이 언급된 바 있습니다. 그리고 11월 18일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과 김장수 국가안보실장간의 전략대화 가 있었고 어제 19일에는 제1차 한중인문교류공동위원회 가 열렸습니다. 실제로 현 한국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은 한결 같이 주변국 간의 긴밀한 협력과 공동노력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과의 인문교류, 문화 교류, 학술교류는 단기적인 현안 해결 차원을 넘어서 본격적인 상호신뢰와 공동발전의 21세기를 여는 자산이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는 한중 간에 진지한 토론과 소통을 통해 이런 방향으로의 공감과 지혜를 모아 가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21세기 미래에는 국제적 역할과 영향력을 날로 확대해 나 가고 있는 중국과 한반도 및 동북아지역의 중추적 행위자의 하나인 한국이 상호 소통하고 협력 할 필요성이 날로 증가할 것입니다. 이번 회의가 향후 바람직한 학술협력의 한 모델로 자리매김되 고 지속적으로 발전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바쁘심에도 불구하고 귀한 발걸음 해주신 모든 내외 귀빈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 립니다. 감사합니다. 2013년 11월 20일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장 박 명 규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7
기조연설 미 중의 동아시아 신질서 건축과 한반도 복합그물망 통일* 하영선 ( 河 英 善, 서울대) 한반도 역사는 항상 주변 열강들의 커다란 영향 속에서 전개되어왔다. 한반도의 분열과 통일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동아시아 천하가 통일과 분열을 거듭하는 틀 속에서 한국은 오랫동안 통일을 유지했지만, 19세기 산업혁명에 이은 본격적인 서세동점의 문명사적 변화와 더불어 국제질서라는 새로운 틀 속에서 근대국민국가 건설에 실패해 망국의 뼈아픈 체험을 했다. 1945년 이후 미 소 중심의 냉전질서 속에서 한국은 기적같이 다시 살아났으나 분단된 불구국가로서 통일국가의 꿈을 쉽사리 현실화할 수 없었다. 탈냉전의 변화를 겪은 후 복합의 세기로 접어들고 있는 21세기의 새로운 질서 속에서 한국은 새로운 형태의 통일을 새로운 방식으로 추구해야 할 역사적 변환을 맞이하고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천하 질서와 한반도 통일, 국제질서와 한국의 망국, 냉전질서와 한반도 분단의 역사를 간단하게 되돌아본 다음에 21세기 미 중의 동아시아 신질서 건축과 한반도 복합그물망 통일 문제를 미래지향적 시각에서 풀어보고자 한다. 1. 천하 질서와 한반도의 통일 1) 한반도가 자리 잡고 있는 동아시아는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천하예의지방( 天 下 禮 儀 之 邦 )이라는 문명표준에 익숙해져서 살아왔다. 천( 天 )이 본격적으로 정치적 의미를 가지고 동아시아에서 사용되기 시작하는 것은 B.C. 11세기 중국의 은 왕조에 이은 주 왕조의 등장과 함께였다. 주나라 초기 대표적 금문( 金 文 )인 대우정( 大 盂 鼎 )에 새겨진 명문( 銘 文 )은 위대한 문왕은 천명( 天 命 )을 받았으며 무왕은 사방( 四 方 )을 보유했다고 적고 있다. 따라서 천자가 다스리는 천하국가가 있고 그 속에 제후의 나라인 국이 품어져 있었으며, 동시에 변방의 이적국가들도 이러한 위계질서의 일부로 포함시켰다. 천하국가의 중심무대는 예( 禮 )의 무대였다. 예( 禮 )라는 글자의 풍( 豊 )이 본래 * 이 글은 하영선 남북통일의 역사적 전망: 미 중시대의 복합그물망 통일, 윤영관 편, 한국통일 (서울: 늘품플러스, 2013)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1) 하영선, 동아시아질서건축사: 천하에서 복합까지 (근간); 하영선, 동아시아질서의 역사적 변환: 고대천하에서 미래복합까지, EAI 사회과학대강좌 (2012); <http://www.hayoungsun.net> 8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제기( 祭 器 )를 나타내는 것처럼, 예의 기원은 하늘이나 귀신들에 대한 제사에서 시작해서, 나중에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면 인간관계전체를 규율하는 것으로 의미가 확대되었다. 천자와 제후 간에는 책봉( 冊 封 )과 조공( 朝 貢 )의 예를 교환하는 군신관계를 맺었으며 권외의 야만인 오랑캐 와의 관계에도 이 예를 준용했다. 이러한 무대에서 천하예의지방의 기본 행동원칙은 큰 나라는 작은 나라를 사랑하고 작은 나라는 큰 나라를 섬긴다는 자소사대( 字 小 事 大 )였다. 진한시대에 이르러 중국은 춘추전국시대 이래 오랫동안 분열되었던 천하를 통일하고, 한 제국은 주변 세력들에 따라서 군사적 정벌, 정치적 기미( 羈 縻 ), 회유( 懷 柔 ) 정책을 적절히 활용하는 한편, 사대자소의 예치를 통치의 근간으로 삼아 명실상부하게 동아시아 천하질서를 형성했다. 그 이후 당 제국은 천하질서의 본격적인 제도화를 추진하였고, 명 청 제국들은 보다 복합적인 천하질서를 건축했다. 이러한 천하질서 속에서, 한반도는 원칙적으로 중국에 사대의 예를 지켰으나 때로는 중국과 갈등과 전란을 겪으면서 통일된 삶의 단위체를 유지하기 위한 끈질긴 노력을 계속하였다. 그래서 중국 중심의 천하질서에 오랫동안 속해 있기는 했으나 자주성을 상실하지 않는 독특한 역사를 이끌어 왔다. 2. 근대국제질서와 한국의 망국 2) 천하예의지방을 오랫동안 문명 표준으로 삼고 살아왔던 동아시아에 19세기 중반 뒤늦게 역사의 태풍이 불어닥쳤다. 중국 중심의 전통 천하질서가 구미 중심의 근대 국제질서로 탈바꿈하는 문명사적 대변환을 맞이했다. 주인공은 천하국가에서 국민국가로, 중심무대는 예( 禮 )에서 부국강병으로, 연기( 演 技 ) 원칙은 자소사대( 字 小 事 大 )에서 자강균세( 自 强 均 勢 )로 바뀌게 된다. 1840년의 아편전쟁 이후 구미의 국민국가들은 부국강병의 무대에서 자강균세를 넘어서서, 아시아를 포함하는 전 세계에서 다른 국가들에게 압도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제국적 경쟁을 벌였다. 새로운 근대국제질서와의 본격적 첫 만남에서, 동아시아의 중국이나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은 전통적인 척사론의 시각을 넘어서서 새로운 외적에 대한 정보 수집과 방어책을 고민하는 해방론( 海 防 論 ), 서양 근대국제질서의 작동 원리인 만국공법과 균세지법을 활용하여 서양세력을 다루되, 이러한 서양국제사회의 작동원리를 새로운 문명표준으로서 받아들이지 않고, 중국 고대의 춘추전국시대에 이미 존재했다는 원용부회론( 援 用 附 會 論 )을 추진하였다. 한 국은 임오군란(1882)과 갑신정변(1884)을 거치면서 천하국가에서 근대국가로 변모하고 있는 중국의 감국( 監 國 )정치를 감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을 포함한 구미 열강들과의 근대적 2) 하영선, 한국 근대국제정치론 (근간)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9
국제관계를 추진해 보려는 양절체제론( 兩 截 體 制 論 )의 어려운 시도를 했다. 청일전쟁(1894-1895)에서 패배한 중국은 천하질서 대신 근대국제질서를 새로운 문명표준으로서 받아들여야 했다. 한국도 갑신정변 이후 잃어버린 10년을 넘어서서 본격적으로 새로운 문명무대에서 활약하기 위한 자강균세론을 뒤늦게 모색해야 했다. 한국이나 중국에 비해서 근대 국민부강국가라는 새로운 문명표준을 과감하고 재빠르게 받아들인 일본은 청일전쟁의 승리 이후 겪은 삼국간섭의 수모를 와신상담 외교로 극복하고 러일전쟁(1904-1905)을 승리로 이끈다. 일본의 승리는 한국이 희망하는 자강균세의 좌절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동시에 일본 주도의 지역제국 질서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일본은 새로운 지역질서 개편을 위한 명분으로서 일본 주도의 아시아 연대에 기반을 둔 동양평화론을 본격적으로 주장했다. 한국은 국권회복을 위한 투쟁론과 준비론의 갈등 속에서 일본형 동양평화론의 허구성을 일사불란하게 드러내지 못하였고, 동양과 한국이 동시에 평화로운 한국형 동양평화론을 본격적으로 실천에 옮기지도 못한 채 1910년 국망의 비극을 맞이한다. 식민지 기간에 한국의 준비론, 외교론, 무장투쟁론의 힘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칠흑같은 어두움 속에서 광복의 불빛은 쉽사리 찾아지지 않았다. 3. 냉전질서와 한반도의 분단 한국은 일본이 2차 대전에서 패망함에 따라 식민지의 질곡에서 해방되어 다시 전후 국제정치무대에 서게 됐다. 그러나 한반도는 불행하게도 전후 세계냉전질서의 주전장이 됨에 따라 남북으로 분단되었고 세계대전을 방불케 하는 한국전쟁을 겪었다. 전쟁 이후 분단은 본격적으로 고착화되어 60년이 지난 오늘까지 냉전이 계속되고 있다. 냉전 한반도는 1972년 남북한의 7.4 남북공동성명과 함께 데탕트의 기대와 좌절의 역사를 겪는다. 3) 한국은 1970년대 초 미 중의 데탕트가 시작되는 과정에서 핵무기를 포함한 3중 생존전략을 세우고 7.4 남북공동성명을 했으나 한반도 데탕트의 꿈을 현실화하지는 못했다. 한편 북한은 1990년대 초 지구적 탈냉전의 시작과 함께 핵무기를 포함한 3중 생존전략을 마련하고 남북고위급회담을 진행했으나 한반도에 탈냉전을 가져오지는 못했다. 21세기를 앞두고 소련의 해체에 따른 지구적 탈냉전과 한국의 민주화라는 새로운 변화 속에 분단의 갈등을 계속하고 있는 한반도는 탈냉전의 실험을 뒤늦게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21세기 3) North Korea International Document Project, Woodrow Wilson Center, The Rise and Fall of Detente on the Korean Peninsula, 1970-1974: A Critical Oral History ; <http://www.wilsoncenter.org> 10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세계질서의 변화는 한국 현대국제정치의 힘겨운 변화를 훨씬 앞서가고 있다. 21세기 세계질서의 주인공, 무대, 연기의 변화는 거의 19세기 한국이 겪은 문명사적 변환을 방불케 하고 있다. 국민부강국가가 그물망지식국가로 탈바꿈하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국민부강국가들의 생존경쟁은 여전히 치열하다. 동시에 국내정치사회의 민주화도 역동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한반도 냉전분단체제의 못 푼 숙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따라서 21세기 한국은 복합 변환의 세계질서를 맞이하고 있다. 4. 21세기 신문명표준과 복합화 세계 전체가 빠르게 복합그물망화되어 가고, 동아시아도 미 소 중심의 복합질서가 형성되는 속에서 한반도 통일은 기존의 근대국민국가의 완성이라는 시각을 넘어서서, 복합그물망의 형성이라는 틀에서 추진돼야 한다. 그런데 국내의 통일담론은 아직도 근대적 통일론을 본격적으로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60년대 이후 북한의 남북연방제나 낮은 단계의 연방제, 그리고 한국의 국가연합, 연방제 통일방안은 모두 근대적 안목의 통일 모색이다. 국내 진보그룹의 국가연합, 연방제안이나 북한의 연방제안이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판단은 21세기의 변화를 긴 역사의 안목에서 읽으면쉽게 가능하다. 그리고 19세기 동양의 전통국가가 서양의 국민국가라는 새로운 문명 표준을 따라잡지 못해서 겪었던 커다란 어려움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떤 모습의 정치체를 구축해야 21세기 무대에서 생존과 번영이 가능한가를 주목해야 한다. 복합의 세기 라는 21세기에는 새로운 문명의 표준이 등장했다. 국제정치 전문가들은 냉전이 해체되면 탈냉전의 시대, 평화의 세기가 올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냉전이 끝나고 탈냉전이 시작하는 작은 변화가 온 게 아니라 훨씬 더 큰 변화가 찾아왔다. 이 변화는 주인공, 무대, 연기의 세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동양의 전통 질서에서 천하국가가 기본 단위였다면 19세기에 우리에게 다가 온 서양의 근대 국제질서에서는 국민국가가 주연급 주인공이었다. 국민국가의 모습을 갖추지 못한 주인공은 무대에 오를 수가 없었다. 21세기에는 근대 국민국가의 모습만으로는 무대의 주인공으로 서기 어렵고, 늑대거미처럼 그물망 국가(network state)의 이중 모습을 갖춰야 한다. 무대도 바뀌고 있다. 전통 천하질서의 기본 무대는 예( 禮 )였으나. 근대로 넘어오면서 무대의 모습은 부국강병, 곧 군사와 경제가 중심이 되었고 21세기에는 복합무대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부국강병 중심의 근대무대는 환경과 문화를 포함하는 새로운 변화를 겪고 있다. 뿐만 아니라 21세기 첨단 기술혁명과 함께 지식이 새로운 기층무대로 등장했다. 그리고 3층 복합무대의 상층무대로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1
통치무대가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평면적인 부국과 강병의 두 무대에서만 잘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21세기의 주인공이 되려면 다보탑 같은 3층 복합무대에서 동시에 활약해야 한다. 연기의 내용도 갈등과 협력 그리고 공생의 복합화를 보여주어야 한다. 따라서 남북한도 19세기가 아니라 21세기다운 모습으로 만나야 한다. 또한 복합 그물망의 통일 한반도가 동아시아와 지구촌, 그리고 사이버 공간의 질서와 새롭게 만나야 하고 동시에 국내 그물망 질서를 갖춰야 한다. 5. 미 중의 동아시아 신질서 건축 복합화의 세기를 맞아 우리의 삶터인 동아시아에도 신질서 건축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미국은 아시아 태평양 재균형(rebalancing)정책의 기본 설계에 맞춰서 본격적인 개축을 진행하고 있으며 중국도 신형대국관계의 실험장으로서 동아시아 신질서 건축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따라서 양국의 두 정책이 서로 어떻게 얽히느냐에 따라서 구체적인 건축의 모습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미국의 힐라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2011년 10월 미국의 태평양세기 라는 글에서 재균형 정책의 핵심 6원칙으로서 안보동맹 강화, 중국을 포함한 신흥대국과 관계 강화, 지역 다자기구의 관여, 무역과 투자 확대, 광역 군사력 배치, 민주주의와 인권을 강조했다. 4) 힐러리 클린턴 장관 은 2012년 3월에 미국 평화연구소에서 기성세력(established power) 과 신흥 세력(emerging power) 은 역사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반드시 군사적으로 충돌했으나, 미국과 중국은 역사 이래 처음으로 싸우지 않는 새로운 대국관계를 건설해 보겠다고 연설했다. 5) 척 헤이글 국방장관은 2013년 11월 CSIS 강연에서 미국이 당면하고 있는 장기적 도전의 복합화를 지적하고 이에 대한 미국의 균형된 대응을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아시아태평양 재균형 정책을 동맹국, 파트너들과 함께 추진하며, 군사력은 선도적 역할이 아닌 외교, 경제, 문화적 노력을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을 강조했다. 6) 한편 중국도 시진핑 국가부석이 2012년 2월 미국 워싱턴을 방문하면서 공식적으로는 처음으로 미 중이 협력해서 21세기 신형대국관계를 건설하자는 연설을 했다. 7) 후진타오 4) Hilary Rodham Clinton, America s Pacific Century Foreign Policy Magazine (October 11, 2011). 5) Hilary Rodham Clinton Remarks at the U.S. Institute of Peace China Conference Remarks, (March 7, 2012); <http://www.state.gov/secretary/ rm/2012/03/185402.htm>. 6) Chuck Hagels, Global Security Forum, (November 5, 2013); <http://www.defense.gov/speeches/speech.aspx?speechid=1814> 7) 習 近 平 在 美 國 友 好 團 体 歡 迎 午 宴 上 的 演 講 (2012. 2. 16.) 12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국가주석은 2012년 5월 제4차 전략경제대화에서 최대발달국가인 미국과 최대발전국가인 중국의 신형대국관계를 강조했다. 8) 왕이 외교부장은 2013년 9월20일 부르킹스 연구소에서 행한 강연에서 미국과의 신형대국관계를 불충돌 불대항, 상호존중, 함께 이기는 협력 으로 요약한 다음에 신형대국관계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우선적으로 건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 첫째, 중국과 미국이 아시아-태평양에서 쌍방의 핵심이익을 진정으로 존중해야 하고, 구체적 사례로서 대만문제를 들었다. 둘째, 중국과 미국이 공동 노력하여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뜨거운 문제에서 협력의 실질적 성과를 얻어내야 하며, 구체적 사례로서 북핵문제와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들었다. 9) 미국의 재균형 정책과 중국의 신형대국관계 정책을 종합해 보면, 우선 미국이 신흥대국 중국의 부상에 따라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취하되 중국을 파트너로 일단 인정하고 있고 중국도 향후 10년 전면적 소강사회 건설이라는 경제발전을 위해서 미국과 최대한 군사적 충돌과 대항을 피하고 평화관계를 유지하려 하므로, 미 중이 군사무대에서 충돌할 위험성은 낮다. 그러나 경제무대에서는 협력과 경쟁이 진행될 것이며, 특히 새로 부상한 환경, 문화, 정보기술/지식 등의 무대에서는 새로운 표준질서 마련을 위한 치열한 각축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아시아 태평양의 지역질서에서는 중국이 국내 체제의 안전을 위한 국내안보, 주권이나 영토를 지키는 국제안보, 지속적 사회경제발전을 위한 경제안보의 3대 핵심이익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중 일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센카쿠/댜오위다오 문제의 경우에 미 중 간의 군사적 갈등으로 확대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중국은 핵심이익을 강하게 주장할 것이며, 일본의 아베 정부도 미일 군사동맹의 강화와 함께 적극적 평화주의를 강조하고 있으므로 조심스러운 관찰이 필요하다. 한반도의 북핵문제에 대해서, 미국은 나쁜 행동에 대해서는 절대로 두 번 다시 보상하지 않으며 북한이 새 노선을 택하면 도울 수 있다는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중국은 반도 안정, 반도 비핵화, 대화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의 3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이에 따라서 6자회담 재개 조건에 대한 본격적 논의가 진행되고 있으나, 북한이 경제 핵 병진로선을 유지하는 한, 진정성을 검증하기 위한 6자회담이 재개되더라도 2005년 9.19 합의의 악순환을 벗어나기 어렵다. 8) 胡 錦 濤 在 第 四 輪 中 美 戰 略 与 經 濟 對 話 開 幕 式 上 的 致 辭. (2012. 5. 4.) 9) 王 毅 如 何 构 建 中 美 新 型 大 國 關 系, 美 國 布 魯 金 斯 學 會 (2013. 9. 21.).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3
6. 북한의 변화: 경제 비핵안보 병진로선 2.0으로 가는 길 21세기 한반도와 동아시아가 새로운 문명표준 모델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한반도 문제를 푸는 핵심 고리는 북한의 경제 비핵안보 병진로선 2.0을 위한 공동진화(coevolution)다. 10) 지금까지 남북한은 분단 상황에서 통일을 위한 여러 모색을 해 왔는데 크게 보면 햇볕 과 제재 의 양극단적인 시도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시도들은 어느 것도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햇볕론자들은 오랜 노력 끝에 햇볕의 열매를 얻으려는 때에 새 정부가 정책전환을 해서 망쳐버렸다고 말한다. 하지만 10년의 햇볕정책이 제한적인 교류협력의 확대를 가져오긴 했지만 북핵실험을 막지 못한 현실이 잘 말하고 있듯이 북한체제의 핵심인 핵선군정치의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그러나 단순한 제재론도 답은 아니다. 북한은 전 세계 어느 체제보다도 제재를 끝까지 견뎌낼 수 있는 체제다. 따라서 제재를 통해서 북한의 선군정치를 바꾸기는 어렵다. 북한의 선군정치를 바꾸기 위해서는 북한의 안과 밖에서 공진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그런데 햇볕론은 북한 내부의 변화 가능성의 어려움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햇볕이 언젠가는 정치 군사영역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낙관했다. 반대로 제재론은 모든 책임을 북한의 체제적 속성에서 찾고, 이것만 해결하면 문제가 풀릴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안과 밖이 서로 맞물려서 공동진화하지 않는 한 북한의 변화를 가져 오기란 어렵다. 중요한 것은 안의 진화가 효과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밖의 진화를 어떻게 동시에 추진하느냐는 것이다. 2010년대 초반 북한의 진화 과정 중에 특히 주목할 것은 리더십의 변화다. 지난 60년을 되돌아보면, 북한은 1950년대에 한국전쟁처럼 무력통일을 시도했으며, 60년대에 들어서서 3대 혁명역량강화로 통일을 모색하기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김일성의 사망 이후 김정일 체제는 선군정치를 강조했지만 통일정책의 본질적 변화를 시도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60여 년의 역사적 과정에서 북한 정치 권력의 변화는 지도자의 사망에 따라 김일성,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의 등장이라는 세 번 뿐이었다. 따라서 김정은 체제는 20년 만에 찾아 온 중요한 기회다. 북한의 새 지도자가 핵선군정치를 포기하지 않는 한 북한이 21세기무대에서 정상국가로 연기( 演 技 )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때문에 새 지도자가 첫 번째로 고민해야 할 것은 핵선군정책을 대신할 수 있는 신국가안보정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동시에 북한 2천만 주민들의 먹는 문제를 풀어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로동당 중앙위 2013년 3월 전원회의에서 적들은 우리에게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없다고 위협 공갈하는 동시에 다른 길을 선택하면 잘 살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회유 도 하고 있지만 조성된 정세와 우리 혁명발전의 합법적 요구에 10) 하영선 조동호 공편, 북한 2032: 선진화로 가는 공진전략 (서울: EAI, 2010). 14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맞게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을 병진시킬 데 대한 새로운 전략적 로선 을 제시했다. 11) 그러나 대외적으로는 최룡해 총정치국장이 2013년 5월 24일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회견에서 병진로선대신에 북한식 화평발전론이라는 표현을 하고 있다. 12) 병진로선 2.0의 선택은 단순히 정치구호나 정책의 변화가 아니다. 새 지도자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정책을 실천할 정치권력이 기존의 선군정치 주도세력에 이어 김정은 체제의 구심적 역할을 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김정은 체제가 신생존전략을 추진하려면 국내적 정통성의 기반을 마련해야 하는 국내안보, 핵문제를 포함한 국제안보, 그리고 인민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경제안보의 3대 난관을 성공적으로 돌파해야만 한다. 문제의 어려움은 아버지 김정일처럼 어려운 숙제를 다시 한 번 핵선군정치로 풀어 보려고 하는 경우에 부딪치게 될 제2의 고난의 행군은 북한을 다시 소생하기 어려운 식물국가로 만들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북한은 죽지 않기 위해서 조심스럽게 병진로선 2.0의 진화를 모색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북한의 김정은 체제가 경제 핵 병진로선 1.0을 벗어나서 경제 비핵안보 병진로선 2.0을 추진하도록 하려면 북한 못지않게 관련 당사국들의 노력이 중요하다. 현재 북핵 문제의 논의과정에서 북한이 끊임없이 주장하는 것은, 북한의 핵개발이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 때문이므로 미국이 대북 적대시정책을 철회하면 북한도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명백히 선군정치의 과잉 안보론이다. 김정은 체제가 기존의 과잉 안보론 대신 적정 안보론으로 정책전환을 시도하는 경우에, 미국의 대북정책도 북한의 새 체제에 적대적이 아니라 비적대적 모습으로 비치도록 신중하게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동시에 새 체제가 추진하는 선경( 先 經 )정책 이 성공할 수 있도록 국제적인 북한 병진로선 2.0을 위한 협력체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개혁개방정책을 취하면 북한에 자본주의의 황색바람 이 불어서 북한 경제가 완전히 붕괴되리라는 공포감을 주지 않도록 해서 김정은 체제가 조심스럽게 개혁개방의 길에 들어서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1990년대 중반 김일성 후계체제가 선군정치 대신 개혁개방으로 왜 가지 못했는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당시 새 김정일 체제는 새로운 정책적 선택을 하지 못하고 김일성 주석의 유훈통치 에 따라 결국 핵선군정치에 머물렀다. 그러면 김정은 체제가 또 다시 아버지의 유훈통치를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통치를 시작할 것인가를 주목해야 한다. 11) 조선로동당 중앙위 2013년 3월 전원회의 (2013. 3. 31.); 김정은, 조선로동당 중앙위 3월 전원회의 보고, 로동신문, 2013년 4월 2일. 12) 习 近 平 会 见 金 正 恩 特 使 崔 龙 海 (2013-05-24) 崔 龍 海 說, 朝 方 眞 誠 希 望 發 展 經 濟, 改 善 民 生, 需 要 營 造 和 平 的 外 部 环 境. 朝 方 愿 与 有 關 各 方 共 同 努 力, 通 過 六 方 會 談 等 多 种 形 式 的 對 話 協 商 妥 善 解 決 相 關 問 題, 維 護 半 島 和 平 穩 定, 朝 方 愿 爲 此 采 取 積 极 行 動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5
21세기 세계무대의 문명사적 변환에도 불구하고 새로 등장한 북한의 김정은 체제가 앞으로 30년 동안 핵선군정치를 계속한다면 제2의 고난의 행군을 거쳐 식물국가화되는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반대로 북한의 새 리더십이 선진화 1단계로서 중국의 개혁개방처럼 북한형 개혁개방을 추진해서 근대적인 기본조건을 갖추는 방향으로 매진하고 선진화 2단계로서 21세기에 맞는 복합 그물망까지 추진할 수 있다면 남북한의 복합그물망 통일은 보다 자연스럽게 진행될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발전은 자주적인 노력만으로 이룰 수 없으며, 한국과 동아시아, 그리고 지구의 공동진화 속에서 가능하다. 북한의 선진화와 함께 남북은 근대적 만남을 넘어서서 복합의 새로운 방식으로 만나야 한다. 국가 대 국가의 만남이 아니라 다양한 행위자들이 복합적 형태로 얽혀야 한다. 근대적 의미의 통일은 국가 간의 문제이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정치, 군사, 경제 문제이다. 그런데 앞에서 설명한 복합그물망의 모델에 맞게 남북관계를 진화시켜 나가려면 현재 보다 훨씬 복잡한 건축물을 구상해야 한다. 한반도의 남북한 차원에서 지식기반 무대를 어떻게 마련하고 또 중심층의 안보, 번영, 문화, 환경 무대를 어떻게 짜야하며, 마지막으로 통치무대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를 새롭게 궁리해야 한다. 그 일차적인 출발은 북한 내부의 선진화다. 동시에 북한에 3층 복합탑 쌓기의 변화가 일어나도록 돕는 한국과 동아시아의 3층 복합탑 쌓기가 함께 공진해야 한다. 이러한 복합 진화과정을 통해서 남북한은 비로소 21세기 복합통일국가의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다. 7. 복합그물망 통일과 동아시아신질서 공진 한반도는 21세기 통일 과정에서 동아시아 와 도 새롭게 연결돼야 한다. 우선 21세기 동아시아의 목표로서 동아시아 공동체 개념은 비현실적이다. 공동체와 사회는 개념사적으로 보면 유럽의 커뮤니티(community)/게마인샤프트(Gemeinschaft)나 소사이티(society)/ 게젤샤프트(Gesellschaft)의 번역어이다. 사회는 이해와 가치를 같이 하는 인간 집단들의 모임을 의미한다. 사회의 사( 社 ) 는 원래 글자의 역사를 찾아보면 시( 示 ) 에다가 토( 土 ) 를 합친 것이다. 전통 농경 집단은 풍년을 위해 땅에 제사를 지내야 하기 때문에 명백히 이해관계를 같이했다. 원래 사( 社 ) 의 모습은 먹고 살기 위한 모임이다. 하지만 공동체는 단순히 이해나 가치를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identity)을 공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달리 말해 마음과 마음이 같아지는 것이고 가슴으로 함께 느끼는 것이다. 따라서 동아시아 공동체론은 21세기동아시아 현실과 맞지 않다. 역설적으로 19세기 동아시아의 공동체적 요소는 서양의 근대 국제사회적인 요소가 전파되는 16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속에서 해체되었다. 21세기 한반도의 복합네트워크 통일을 위해서는 동아시아 질서도 공동진화해야 한다. 그러나 동아시아 공동체는 아직 갈 길이 먼 목표다. 공동체의 형성은 원칙적으로 가슴과 가슴의 만남을 통해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에 동아시아 개별 국가들의 국가 정체성과 더불어 동아시아의 정체성 형성이 이루어져야 현실적으로 가능하다. 동아시아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미국의 연방이나 유럽의 국가연합처럼 이중 정체성을 만들어야하며 우리 경우에는 통일이 안 된 상황에서 국가, 한반도, 동아시아의 3중 정체성이 필요하다. 사회의 형성은 상호 이익과 가치를 위해 집단적 모임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에, 동아시아 국제사회의 형성은 아직 공생을 위한 복합네트워크 를 마련하려는 초보 단계에 있다. 13) 이러한 초보 단계에서 우선 풀어야 할 숙제는 21세기에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미 중 중심의 동아시아 복합질서 속에서 한국이 어떻게 살아남고 통일을 이루느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과 일본 같은 기존 우방을 비롯하여 중국과 같은 새로운 우방을 아우르는 복합그물망 치기의 국제정치 다. 한반도에서 남북한 복합거미줄을 치면서 한국이 병행할 것은 기존 동아시아 그물망의 심화다. 핵심은 한 미동맹이고 보조망은 한일 협력이다. 한 미동맹은 1950년대 냉전시대에 국가 생존을 위한 군사적 협력에서 시작됐고 21세기에 들어 전략동맹에서 복합네트워크적 동맹으로 새롭게 진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지난 20년 동안 새로 쳐온 한중 그물망이다. 전략적 우호협력관계로 표현되고 있는 한중관계는 상호 정치경제체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상호의존도를 빠르게 높여가고 있다. 20세기 냉전시대에는 미국과 중국이 적대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한국이 동시에 미국,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는 불가능했다. 그러나 21세기 한중 협력그물망은 반드시 한 미동맹 그물망과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21세기 복합화 시대의 거미줄은 이중으로 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을 신흥대국 파트너로 인정하고 있는 미국은 지정학적 특수성 속에서 높은 수준의 경제협력이 진행되고 있는 한중 관계를 더 이상 냉전시대처럼 적대관계에 머무르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21세기 미 중 복합화 시대에서는 한국은 한 미관계를 계속 발전시키면서 동시에 중국 거미줄을 충분히 확대시켜 나갈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은 한 미 간의 복합적 동맹관계를 강화하고 한일 복합네트워크관계를 키워나가면서, 동시에 한중의 전략적 우호 협력관계를 21세기형 동맹관계로 키워 나가야 한다. 13) 한일신시대 공동연구 프로젝트, 한일 신시대 를 위한 제언: 공생을 위한 복합네트워크의 구축 (서울: 한울, 2011).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7
21세기 한중관계에서 핵심적으로 중요한 것은 중국의 2049 프로젝트 다. 현재 중국은 국내 경제발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화평발전 에 몰두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발전 수준이 일정 단계를 넘게 되면 핵심이익 의 범위를 점차 확대하고 군사력을 포함한 보다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서 핵심이익 을 보다 적극적으로 확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중국과 관련 당사국들은 이러한 현실이 다가오기 전에 중국이 동아시아와 지구 거미줄 속에 제대로 자리 잡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 동아시아의 향후 30년은 21세기 세계질서의 사활을 결정하는 긴박한 30년 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이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를 비롯한 관련당사국들과 함께 동아시아 신질서를 본격적으로 건축하기 위해서는 안보, 번영, 신흥의 세 무대를 복합적으로 동시 건설하려는 구상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8. 한국의 천하 복합그물망 짜기 한반도의 복합그물망 통일을 위해서는 동시에 21세기 천하통일적 사고가 필요하다. 이러한 사고의 핵심에는 전통적 자원력(resource-power)을 넘어서는 네트워크력(network-power)이 자리 잡고 있다. 최근 경영학 연구들은 네트워크력의 세 원천을 강조하고 있다. 14) 첫째로 네트워크력 강화를 위해서는 기존 거미줄을 보다 두껍게 쳐야 한다. 냉전시대에 군사동맹으로 시작한 한 미관계는 21세기 복합네트워크 동맹관계로 심화시키고, 한일 간에도 새로운 복합네트워크를 보다 촘촘하게 쳐야 한다. 둘째로는 거미줄을 최대한 넓게 쳐서 생기는 확대 네트워크력이다. 한국이 네트워크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미국, 일본과의 기존 그물망을 넘어서서 중국에 복합그물망을 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그리고 다음 단계로서는 지구 공간과 사이버 공간으로 그물망을 확대해야 한다. 셋째로 네트워크의 구조적 구멍(structural hole)을 정보와 지식으로 연결해 주는 지식 중개인(knowledge broker)의 역할이다. 동아시아 그물망 중에 남 북, 북 일, 북 미 관 계는 공 식 외교 관 계가 없어서 구 조적 구멍이 나 있 으 므 로 한 국 은 지식 중개인 역할을 통해서 네트워크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러한 세 가지 원천을 잘 이용해서 거미줄을 치면 주변 대국들에 비해 자원력이 상대적으로 작더라도 네트워크력을 키울 수 있다. 한반도는 21세기 동아시아에서 미국이나 중국, 일본과 같은 자원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그림 1에서 보는 것처럼 상대적으로 자원력이 강한 대국들보다 네트워크력으로 훨씬 세련되게 힘을 14) 하영선 김상배 엮음, 네트워크 세계정치: 은유에서 복합으로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0) 결론. 18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보완해야 하며 보다 구체적으로 이 힘을 어떻게 동아시아에서 키울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네트워크력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18세기 후반 박지원이 허생전 에서 강조하고 있는 대청 네트워크 외교론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15) 18세기 초 서울의 변부자가 자신의 친구이자 북벌론을 고민하던 어영대장 이완을 데리고 온다. 허생은 첫 번째로, 지식 외교를 위해 와룡선생 같은 지략가를 천거하면 임금에게 아뢰어 삼고초려하게 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 이완이 어렵다고하자 두 번째로, 종실의 딸들을 명나라가 망한 후 조선으로 넘어온 명나라 장졸들에게 시집보내고 훈척 권귀들의 집을 빼앗아 그들에게 나누어 주어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냐고 묻는다. 그것도 어렵다고 하자 마지막 계책으로 청나라를 치고 싶으면 우선 적을 알아야 하니 나라 안의 자녀들을 가려 뽑아 변복, 변발시켜 대거 중국으로 유학 보내서 벼슬할 수 있도록 만들고, 또 서민들은 중국에 건너가서 장사를 할 수 있게 청의 승낙을 받아 지식인과 장사꾼들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중국을 제대로 파악한 다음 청의 중심 세력들과 유대관계를 긴밀하게 구축해서 사실상 천하를 호령하거나 최소한 대국의 위치를 유지하라는 것이었다. 이완은 그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허생이 대노하면서 이완을 쫓아 보냈다. 허생은 당시 현실적인 힘의 역학관계를 고려해서 북벌론을 비현실적으로 보고 현실적 대안으로서 소프트 파워 외교론인 북학론을 제시한 것이었다. <그림 1> 한국의 천하 복합그물망 짜기 15) 하영선, 역사속의 젊은 그들: 18세기 북학파에서 21세기 복합파까지 (서울: 을유문화사, 2011), 제1장 연암 박지원의 중국 바로 보기.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9
21세기 연암 프로젝트는 국내를 포함해서 한반도, 동아시아, 지구촌, 사이버공간까지 5중 네트워크 짜기를 구체적으로 추진해야한다. 그중에도 21세기 한반도 그물망 통일은 21세기형 천하 그물망 짜기와 함께 공진해야 한다. 근대 국제질서를 되돌아보면 자원력이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가 세계질서의 중심이 되었던 경우가 있었다. 좋은 예로서 네덜란드는 17세기 세계질서를 주도했다. 21세기 한국도 근대의 숙제인 남북통일을 21세기적 복합그물망 통일의 모습으로 완성하고 나아가 동아시아와 지구, 더 나아가 사이버 공간과 복합적으로 그물망을 짜고 동시에 국내 그물망 짜기에 성공한다면 한반도의 21세기 천하 복합 그물망 짜기는 새로운 문명 표준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20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제1회의 중미 신형대국관계와 한중관계 第 一 场 中 美 新 兴 大 国 和 韩 中 关 系 朴 槿 惠 政 府 的 对 中 国 政 策 : 期 待 和 展 望 陈 峰 君 ( 北 京 大 学 ) 박근혜 정부의 대중국 정책: 기대와 전망 천펑쥔 ( 陈 峰 君, 북경대) 시진핑 정부의 한반도 정책: 기대와 전망 전성흥 ( 全 聖 興, 서강대) 习 近 平 政 府 的 对 韩 半 岛 政 策 : 期 待 和 展 望 全 圣 兴 ( 西 江 大 学 ) 中 美 新 型 大 国 关 系 和 东 北 亚 区 域 秩 序 金 强 一 ( 延 边 大 学 ) 중미 신형대국관계와 동북아 지역질서 진창이 ( 金 强 一, 연변대)
朴 槿 惠 政 府 的 对 中 国 政 策 : 期 待 和 展 望 < 朴 槿 惠 政 府 对 华 政 策 与 前 景 > 陈 峰 君 ( 北 京 大 学 ) 如 何 准 确 概 括 朴 槿 惠 政 府 对 华 政 策 说 法 不 一, 较 多 的 提 法 是 在 中 美 间 推 行 平 衡 外 交 政 策, 也 有 提 联 美 和 中 战 略 1) 笔 者 以 为 用 实 质 性 的 全 面 战 略 伙 伴 关 系 较 为 贴 切 客 观 地 说, 中 韩 建 交 二 十 年 來, 韩 历 届 政 府 均 重 视 对 华 关 系, 也 均 力 图 在 中 美 间 实 行 一 定 程 度 上 均 衡 外 交, 而 且 间 隔 5 一 6 年 就 上 一 个 的 台 阶 (1992 年 善 邻 友 好 关 系,1998 年 合 作 伙 伴 关 系,2003 年 全 面 合 作 伙 伴 关 系,2008 年 全 面 战 略 伙 伴 关 系 ) 中 韩 战 略 伙 伴 关 系, 自 李 明 博 执 政 时 期 就 已 拟 定, 但 受 诸 多 内 外 因 素 制 约, 特 別 是 天 安 舰 等 事 件 影 响, 中 韩 战 略 伙 伴 关 系 虽 然 也 有 进 展, 但 虚 多 实 少, 甚 至 在 某 些 方 面 有 倒 退 迹 象 两 国 的 战 略 伙 伴 没 有 任 何 具 体 和 实 质 性 的 内 容 2010 年 之 后, 中 韩 之 间 的 战 略 疑 虑 甚 至 在 不 断 上 升 2) 虽 然 从 经 济 和 社 会 这 两 国 角 度 来 说, 中 韩 关 系 很 紧 密, 但 处 于 一 条 腿 粗 一 条 腿 细 的 经 热 政 冷 状 态 李 明 博 政 府 对 朝 政 策 的 失 败 为 朴 槿 惠 修 订 调 整 提 供 了 前 车 之 鉴 李 明 博 本 想 通 过 韩 美 同 盟 压 缩 朝 鲜 战 略 活 动 空 间, 以 逼 迫 朝 就 范, 不 惜 弱 化 甚 至 忽 视 与 中 国 的 协 调 事 实 证 明, 韩 美 对 朝 共 同 施 压 导 致 朝 鲜 与 韩 美 同 盟 的 全 面 反 弹 与 对 立, 朝 鲜 在 压 力 下 进 一 步 加 强 了 与 中 国 的 关 系, 弱 化 和 忽 视 与 中 国 的 协 调, 不 仅 从 根 本 上 使 得 韩 国 对 朝 政 策 的 进 一 步 无 效 化, 而 且 反 过 来 也 使 得 韩 国 更 加 依 赖 美 国 的 支 持 在 美 国 对 朝 政 策 无 根 本 变 化 的 1) 申 宗 代 中 美 之 间 的 均 衡 外 交, 要 从 改 善 南 北 关 系 开 始 (미 중 사이에서의 (균형외교, 남북관계 개선으로 시작해야) 庆 南 大 学 极 东 问 题 研 究 所 聚 焦 朝 鲜 半 岛 第 25 号 (2013-09-06) 2) 朱 锋 : 中 韩 关 系 是 亚 洲 最 有 潜 力 的 战 略 伙 伴 关 系 华 西 都 市 报 2012 年 08 月 27 日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23
情 况 下, 李 明 博 的 政 策 实 际 上 压 缩 了 韩 朝 的 谈 判 空 间, 显 得 手 足 无 措, 只 得 进 一 步 依 赖 美 国 3) 朴 槿 惠 吸 取 了 李 明 博 对 北 政 策 的 教 训, 执 政 后 一 改 前 任 的 状 况, 直 正 意 义 上 的 战 略 伙 伴 关 系 己 初 见 端 倪 中 韩 关 系 上 升 了 一 个 大 的 台 阶 虽 然 还 不 能 简 单 说 韩 中 关 系 与 韩 美 关 系 己 等 量 齐 观, 但 与 等 距 离 外 交 相 距 已 不 远 前 韩 驻 华 大 使 李 揆 亨 早 在 2011 年 就 说 过 韩 中 关 系 重 要 性 不 亚 于 韩 美 关 系 目 前 的 韩 中 关 系 比 韩 国 和 任 何 其 他 国 家 的 关 系 都 要 重 要 4) 李 大 使 的 说 法 无 疑 有 些 夸 大, 但 今 天 看 來, 被 他 言 中 了 朴 槿 惠 在 正 式 上 任 之 前 就 多 次 表 现 出 要 进 一 步 提 升 中 韩 关 系 的 用 意 当 选 总 统 对 外 派 出 的 第 一 个 特 使 就 是 出 使 中 国, 并 向 习 近 平 转 达 朴 槿 惠 的 亲 笔 信 朴 槿 惠 在 信 中 说, 中 国 是 韩 国 重 要 邻 邦, 也 是 战 略 合 作 伙 伴 我 高 度 重 视 韩 中 关 系, 希 望 与 中 方 深 化 互 信, 加 强 各 领 域 合 作, 巩 固 和 发 展 两 国 战 略 合 作 伙 伴 关 系, 共 同 为 半 岛 稳 定 及 东 北 亚 和 平 繁 荣 作 出 努 力 5) 这 是 朴 槿 惠 对 华 友 好 关 系 的 最 为 明 确 也 是 最 为 集 中 表 述, 应 看 做 是 韩 国 对 华 政 策 的 最 高 指 导 原 则 而 朴 槿 惠 访 华 之 行 以 及 取 得 的 成 果 正 是 这 一 指 导 原 则 在 实 践 中 的 具 体 体 现, 在 中 韩 关 系 史 上 具 有 里 程 碑 式 的 意 义 6) 香 港 凤 凰 卫 视 何 亮 亮 先 生 赞 称 朴 槿 惠 访 华 标 志 中 韩 关 系 跨 越 式 发 展 7) 朴 槿 惠 访 华 之 行 取 得 的 重 大 成 果 集 中 体 现 在 双 方 共 同 发 表 了 中 韩 面 向 未 来 联 合 声 明 和 充 实 中 韩 战 略 合 作 伙 伴 关 系 行 动 计 划 之 中 充 实 中 韩 战 略 合 作 伙 伴 关 系 的 内 容 具 体 有 三 大 成 果 成 果 之 一, 加 强 了 政 治 安 全 领 域 战 略 沟 通 与 互 信 其 中 包 括 两 国 领 导 人 密 切 沟 通, 全 方 位 多 层 次 推 进 两 国 政 府 议 会 政 党 学 术 界 等 多 种 主 体 间 的 战 略 沟 通 韩 中 首 脑 会 谈 之 后, 双 方 又 签 订 了 一 项 政 府 间 协 议 七 项 部 门 间 协 议, 这 是 韩 国 首 脑 对 中 国 的 访 问 史 上 签 订 协 议 数 最 多 的 一 次 双 方 决 定 进 一 步 加 强 两 国 领 导 人 的 沟 通, 建 立 青 瓦 台 国 家 安 保 室 室 长 和 中 国 主 管 外 交 的 国 务 院 负 责 人 之 间 的 对 话 机 制, 强 化 两 国 在 政 治 安 全 领 域 的 合 作 等, 使 两 国 经 热 政 冷 的 关 系 转 变 为 经 热 政 热 成 果 之 二, 进 一 步 扩 大 经 济 与 社 会 领 域 合 作 朴 槿 惠 访 华 带 来 了 韩 国 史 上 最 大 规 模 的 经 济 代 表 团 双 方 再 次 确 认, 中 韩 自 贸 区 的 目 标 应 是 一 个 包 含 实 质 性 自 由 化 广 泛 3) 王 俊 生 : 第 三 条 道 路 与 朴 槿 惠 政 府 对 朝 政 策 走 向 当 代 韩 国 2013 年 06 月 26 日 4) 李 揆 亨 : 韩 中 关 系 重 要 性 不 亚 于 韩 美 关 系 中 国 网 china.com.cn 2011-07-02 5) 中 国 为 什 么 喜 欢 朴 槿 惠 的 4 个 理 由 凤 凰 网 强 国 论 坛 2013-02-27 6) 人 民 网 韩 国 频 道 2013 年 07 月 08 日 7) 何 亮 亮 : 朴 槿 惠 访 华 标 志 中 韩 关 系 跨 越 式 发 展 凤 凰 卫 视 2013-07-01 24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领 域 的 高 水 平 全 面 的 自 由 贸 易 协 定 双 方 还 对 完 成 模 式 谈 判 所 取 得 的 实 质 性 进 展 表 示 欢 迎, 并 指 示 两 国 谈 判 团 队 加 强 努 力, 使 中 韩 自 贸 区 谈 判 尽 早 进 入 下 一 阶 段 此 外, 为 加 强 人 文 纽 带, 双 方 决 定 成 立 中 韩 人 文 交 流 共 同 委 员 会, 作 为 政 府 间 协 调 机 构 加 强 教 育 旅 游 文 化 艺 术 体 育 等 领 域 的 多 种 交 流, 同 时 将 合 作 把 以 上 领 域 交 流 合 作 扩 大 至 国 际 舞 台 首 尔 经 济 用 访 中 比 访 美 成 果 大 来 总 结 朴 槿 惠 的 此 次 心 信 之 旅 8) 成 果 之 三, 朝 鲜 半 岛 信 任 进 程 获 中 方 支 特 朴 槿 惠 2011 年 在 面 向 新 的 朝 鲜 半 岛 一 文 就 认 为 历 届 韩 国 政 府 均 往 返 于 软 硬 两 种 基 调 开 展 对 朝 政 策, 并 没 有 产 生 根 本 性 的 变 化 韩 应 该 重 新 制 定 对 朝 政 策, 表 示 将 打 破 之 前 非 黑 即 白, 非 绥 靖 即 对 抗 的 方 式 朴 槿 惠 对 朝 明 确 要 推 行 所 渭 第 三 条 道 路, 提 出 将 努 力 推 进 半 岛 信 任 建 设 9) 朴 槿 惠 对 朝 政 策 获 得 了 中 国 的 支 持 中 韩 面 向 未 来 联 合 声 明 中 涉 及 朝 鲜 半 岛 问 题 的 内 容 比 以 往 大 幅 增 加, 表 明 中 韩 两 国 在 朝 鲜 半 岛 问 题 上 的 共 同 点 正 在 扩 大 中 方 欢 迎 朴 槿 惠 总 统 提 出 的 朝 鲜 半 岛 信 任 进 程 构 想, 高 度 评 价 韩 方 为 改 善 南 北 关 系 缓 和 紧 张 所 作 的 努 力 双 方 一 致 认 为, 南 北 双 方 是 朝 鲜 半 岛 问 题 的 直 接 当 事 者, 应 通 过 政 府 间 对 话 等, 为 解 决 朝 鲜 半 岛 问 题 发 挥 积 极 作 用 韩 方 赞 赏 中 方 为 维 护 朝 鲜 半 岛 和 平 与 稳 定 所 作 努 力, 希 望 中 方 今 后 继 续 发 挥 建 设 性 作 用, 推 动 朝 鲜 半 岛 发 生 有 利 于 地 区 和 平 与 稳 定 的 新 变 化 中 方 重 申, 支 持 朝 鲜 半 岛 南 北 双 方 通 过 对 话 增 进 信 任 改 善 关 系, 最 终 实 现 朝 鲜 民 族 所 期 盼 的 和 平 统 一 10) 提 升 实 质 性 的 关 系 是 中 韩 两 国 共 同 战 略 利 益 的 需 要, 是 两 国 共 同 的 选 择 从 韩 国 方 面 來 说, 只 少 有 以 下 三 个 因 素 第 一 个 因 素, 韩 国 在 经 济 上 韩 国 末 來 发 展 需 要 中 国 韩 国 新 政 府 正 在 致 力 于 构 建 国 民 幸 福 新 时 代 中 国 是 韩 国 最 大 的 出 口 市 场, 最 大 的 投 资 市 场, 最 大 的 贸 易 顺 差 来 源 国 现 今 韩 中 贸 易 额 已 超 过 韩 美 韩 日 贸 易 额 之 和 8) 韩 媒 : 朴 槿 惠 访 华 成 果 超 访 美 新 华 网 2013-07-01 9) A New Kind of Korea: Building Trust Between Seoul and Pyongyang Foreign Affairs, September/October 2011 朴 槿 惠 : 面 向 新 的 朝 鲜 半 岛 外 交 事 务 2011 年 9-10 月 10) 中 韩 面 向 未 来 联 合 声 明 人 民 网 2013 年 6 月 28 日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25
2015 年 贸 易 额 将 达 到 3000 亿 美 元 中 韩 经 济 已 你 中 有 我, 我 中 有 你 在 韩 国 的 贸 易 顺 差 大 部 分 依 赖 中 国 的 情 况 下, 和 中 国 的 经 济 合 作 是 韩 国 能 够 实 现 持 续 增 长 的 基 础 11) LG 电 子 中 国 区 总 裁 慎 文 范 在 接 受 中 国 新 闻 周 刊 采 访 时 表 示 对 于 去 年 走 过 整 整 20 周 年 历 程 的 中 韩 关 系 来 说,2013 年 是 中 韩 合 作 下 一 个 20 年 的 开 局 之 年, 而 中 韩 首 脑 的 积 极 互 动 也 为 此 开 了 个 好 头 12) 第 二 因 素, 韩 国 急 需 中 国 在 对 北 政 策 上 相 助 如 前 所 述, 朴 槿 惠 执 政 后 在 外 交 核 心 目 标 就 是 改 善 停 滞 不 前 的 南 北 关 系, 为 此 提 出 有 别 于 前 任 的 第 三 条 道 路 与 信 任 进 程 方 案 朴 槿 惠 渴 望 中 国 能 在 推 行 新 的 对 朝 政 策 中 发 挥 独 特 作 用 朴 槿 惠 曾 叮 嘱 访 华 特 使 团 : 希 望 中 国 能 够 在 促 使 北 朝 鲜 能 够 做 出 正 确 选 择 并 产 生 变 化 方 面 起 到 重 要 作 用 希 望 能 够 将 这 一 立 场 清 晰 地 传 达 给 中 国 领 导 层 在 新 政 府 看 來 政 策 形 势 急 剧 变 化 的 状 况 下, 中 国 的 作 用 比 任 何 时 期 都 重 要 朴 模 惠 认 为, 要 想 改 善 对 朝 关 系, 实 现 半 岛 和 平 与 稳 定, 就 需 要 谨 慎 而 巧 妙 地 在 中 美 间 采 取 较 为 平 衡 的 政 策 13) 第 三 个 因 素, 在 中 美 两 大 国 采 取 极 积 平 衡 政 策, 实 质 性 改 善 对 华 关 系, 有 利 干 韩 囯 的 安 全 与 地 位 的 提 升 在 朴 槿 惠 看 來, 朝 鲜 半 岛 有 可 能 成 为 美 国 回 归 亚 洲 与 崛 起 的 中 国 间 激 烈 对 决 的 导 火 线 而 韩 国 应 该 通 过 改 善 南 北 关 系, 与 中 美 都 保 持 紧 密 的 合 作, 并 主 导 朝 鲜 半 岛 局 势 能 够 走 向 稳 定 阻 止 中 美 间 冲 突 发 生 韩 国 成 为 东 北 亚 的 强 国 政 治 里 的 维 护 秩 序 的 人, 起 到 仲 裁 者 作 用 14) 从 中 国 方 面 分 析, 中 国 高 度 重 视 中 韩 关 系, 将 之 放 在 中 国 对 外 关 系 的 重 要 位 置 习 近 平 主 席 在 同 朴 槿 惠 总 统 会 谈 时 指 出, 我 愿 同 你 一 道 努 力, 推 动 中 韩 战 略 合 作 伙 伴 关 系 更 加 密 切 更 加 健 康 更 具 活 力 地 向 前 发 展, 更 好 地 造 福 两 国 人 民 15) 这 三 个 更 加 体 现 中 国 对 韩 关 系 的 高 度 重 视 与 基 本 原 则 特 别 在 现 今 国 际 形 势 下, 中 国 也 同 样 需 要 韩 国 的 大 力 支 持 其 一, 在 美 国 大 力 拉 帮 结 盟 重 返 亚 太 制 衡 中 国 的 背 景 下, 韩 国 成 为 中 美 在 东 北 亚 校 力 的 重 要 阵 地 在 美 国 众 多 盟 友 中, 韩 国 应 被 视 为 对 华 最 为 友 善 国 家 之 一, 是 习 近 平 总 书 记 有 关 重 视 周 边 外 交 与 亲 邻 睦 邻 善 邻 政 策 的 重 点 对 象 国, 也 是 在 东 北 亚 最 能 发 挥 牵 制 美 日 作 用 的 国 家, 中 国 无 疑 企 图 拉 韩 制 美, 做 为 反 制 美 国 拉 帮 结 盟 重 返 亚 太 11) 韩 李 熙 玉 : 韩 中 建 交 二 十 周 年 及 今 后 韩 国 对 华 政 策 的 方 向 当 代 韩 国 2012 年 03 期 12) 中 国 通 朴 槿 惠 : 比 李 明 博 更 重 视 对 华 关 系 中 国 新 闻 周 刊 2013-07-10 13) 申 宗 代 : 中 美 之 间 的 均 衡 外 交, 要 从 改 善 南 北 关 系 开 始 (미 중 사이에서의 (균형외교, 남북관계 개선으로 시작해야) 庆 南 大 学 极 东 问 题 研 究 所 聚 焦 朝 鲜 半 岛 第 25 号 (2013-09-06) 14) 王 俊 生 : 第 三 条 道 路 与 朴 槿 惠 政 府 对 朝 政 策 走 向 当 代 韩 国 2013 年 06 月 26 日 15) 新 华 网 http://politics.people.com.cn/gb/n/2013/0627/c70731-21999037.html 26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的 重 要 举 措 美 韩 军 事 同 盟 关 系 虽 然 难 破, 但 使 韩 国 在 中 美 大 博 弈 中 保 持 一 定 程 度 的 中 立 是 可 行 的 曾 担 任 六 方 会 谈 美 国 代 表 的 前 美 国 国 务 院 负 责 东 南 亚 实 务 的 助 理 国 务 卿 克 里 斯 托 弗 希 尔 称 中 国 的 韩 半 岛 轴 心 从 朝 鲜 转 移 到 韩 方 是 中 国 版 重 返 韩 国 (Pivot to South Korea) 16) 中 国 深 知 今 日 之 韩 国 已 非 吴 下 阿 蒙 17), 韩 国 不 仅 是 今 天 的 亚 洲 也 是 今 天 全 球 政 治 中 正 在 不 断 上 升 的 国 家 看 看 这 几 年 韩 国 主 办 了 G20 峰 会 无 核 世 界 首 脑 峰 会 等 重 大 国 际 多 边 会 议, 韩 国 人 当 了 联 合 国 秘 书 长 世 界 银 行 行 长 等 重 要 职 务, 今 天 的 韩 国 是 在 积 极 扮 演 全 球 角 色 的 韩 国 正 如 北 京 大 学 朱 锋 教 授 所 言 : 中 韩 关 系 是 亚 洲 最 有 潜 力 的 战 略 伙 伴 关 系 18) 其 二, 在 日 本 右 翼 极 度 嚣 张 反 华 的 背 景 下, 韩 国 是 组 成 反 日 本 右 翼 联 合 阵 线 最 为 可 靠 的 首 选 盟 友 中 韩 在 历 史 问 题 上 保 持 了 高 度 一 致, 相 互 呼 应, 显 示 出 习 近 平 领 导 下 的 中 国 和 朴 槿 惠 领 导 下 的 韩 国 在 面 对 这 一 重 要 问 题 的 理 念 上 早 就 成 了 同 路 人 人 们 不 难 发 现, 中 韩 两 国 首 脑 不 仅 在 执 政 纲 领 上 早 已 投 缘, 双 方 在 历 史 问 题 或 对 二 战 战 后 国 际 秩 序 上 的 态 度 更 决 定 了 他 们 将 成 为 天 然 的 同 盟 19) 此 外, 在 经 贸 科 技 文 化 社 会 环 保 等 诸 多 领 域, 韩 国 需 要 中 国, 中 国 也 离 不 开 韩 国 这 个 东 北 亚 好 兄 弟 好 伙 伴 中 韩 关 系 的 迅 速 发 发 展, 诧 己 远 超 于 对 朝 关 系 的 发 展 当 然 我 们 也 不 会 喜 新 厌 旧, 中 国 依 旧 会 保 持 与 北 边 这 位 老 朋 友 的 友 好 关 系 第 一 痼 疾, 对 朝 的 强 武 的 政 策 南 北 关 系 改 善 不 仅 有 利 于 半 岛 和 平 稳 定 与 统 一, 也 将 促 进 中 韩 关 系 的 发 展 中 韩 关 系 与 南 北 关 系 相 互 促 进 相 辅 相 成 但 是, 在 朝 鲜 弃 核 与 维 护 韩 国 安 全 这 一 根 本 问 题 上, 朴 槿 惠 似 乎 仍 继 承 李 明 博 时 期 的 保 守 与 强 硬 政 策, 即 继 续 以 强 势 武 力 威 慑 政 策 在 这 种 强 硬 政 策 下, 朴 槿 惠 对 朝 第 三 道 路 政 策 能 否 走 出 李 明 博 对 朝 政 策 总 体 框, 则 大 打 折 扣, 很 值 得 怀 疑 近 来, 朝 韩 之 间 本 已 出 现 明 显 缓 和 朝 鲜 改 革 刚 刚 有 点 起 色, 可 恰 恰 在 这 种 急 需 韩 美 国 做 出 正 面 反 应 与 配 合 时, 却 反 其 道 而 行 之, 令 世 人 惊 愕 与 不 解 除 韩 美 高 调 的 联 合 军 16) 希 尔 : 中 国 现 在 现 在 开 始 将 ( 外 交 战 略 的 ) 中 心 轴 从 朝 鲜 移 到 韩 国 韩 国 中 央 日 报 2013.10.19 中 文 网 http://cn.joins.com 17) 吴 下 : 现 江 苏 长 江 以 南 ; 阿 蒙 : 指 吕 蒙 居 处 吴 下 一 隅 的 吕 蒙 比 喻 人 学 识 尚 浅 出 自 三 国 志 吴 书 吕 蒙 传 裴 松 之 注 引 江 表 传 18) 朱 锋 : 中 韩 关 系 是 亚 洲 最 有 潜 力 的 战 略 伙 伴 关 系 华 西 都 市 报 2012 年 08 月 27 日 19) 中 国 为 什 么 喜 欢 朴 槿 惠 的 4 个 理 由 2013-02-27 凤 凰 网 强 国 论 坛 )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27
演 外, 令 人 瞩 目 的 是 韩 美 正 式 签 订 应 对 朝 鲜 核 威 胁 的 针 对 性 遏 制 战 略 计 划, 声 言 如 发 现 朝 鲜 有 使 用 核 武 器 的 迹 象 就 启 动 采 取 先 发 制 人 的 威 慑 战 略 这 表 明 : 朴 槿 惠 提 出 的 韩 半 岛 信 任 进 程 与 通 过 协 商 对 话, 实 际 上 有 可 能 变 成 空 洞 口 号 与 一 纸 空 文 威 慑 与 信 任 二 者 绝 然 相 悖, 水 火 唯 融 事 情 只 会 变 得 事 与 愿 违 正 如 中 国 学 者 王 林 昌 所 言 : 朝 鲜 半 岛 呈 现 的 这 种 状 态 使 人 感 到, 韩 国 变 得 对 朝 鲜 越 来 越 强 硬, 而 对 美 越 来 越 依 恋 了, 如 果 朴 槿 惠 总 统 在 实 际 上 沿 袭 了 李 明 博 的 老 路, 半 岛 形 势 的 和 缓 就 越 加 困 难 了 20) 第 二 痼 疾, 是 韩 美 同 盟 美 韩 同 盟 一 直 是 韩 国 外 交 政 策 的 核 心 今 年 5 月, 朴 槿 惠 出 访 美 国, 行 前 她 曾 称 美 韩 同 盟 是 历 史 上 最 成 功 的 同 盟 早 在 朴 槿 惠 就 任 韩 国 总 统 前, 韩 国 媒 体 就 分 析 称, 韩 美 关 系 很 有 可 能 在 朴 槿 惠 的 推 动 下 得 到 进 一 步 的 升 级 朴 槿 惠 希 望 在 韩 美 同 盟 的 前 提 下 实 质 性 提 升 对 华 关 系, 促 使 中 美 共 同 支 持 其 对 朝 政 策 对 后 面 这 段 言 论 自 然 是 我 们 乐 见 的 但 实 际 上 二 者 却 难 以 统 一 与 并 行 不 悖 按 理 说, 韩 美 双 边 关 系 不 应 成 为 中 韩 关 系 的 障 碍 实 际 上 二 者 并 非 完 全 对 立 关 系, 也 有 诸 多 方 而 共 识 之 处, 如 中 美 韩 均 主 张 朝 鲜 无 核 化, 均 主 张 半 岛 和 平 与 稳 定 均 主 张 朝 鲜 尽 早 融 入 国 际 社 会 均 主 张 通 过 六 方 会 谈 解 决 半 岛 无 核 化 及 相 关 问 题 等 这 与 冷 时 期 截 然 敌 对 关 系 根 本 不 同 但 也 不 能 不 看 到 中 美 之 间 在 半 岛 问 题 上 仍 存 在 重 大 原 则 分 歧 与 阻 隔 其 一, 在 韩 美 同 盟 大 框 架 乏 下, 韩 国 几 乎 完 全 被 美 国 绑 架, 对 华 与 对 韩 关 系 难 有 突 彼 目 前 半 岛 南 北 关 系 实 质 上 己 变 味, 即 由 朝 韩 关 系 变 成 了 朝 与 美 韩 之 间 关 系, 美 国 由 外 因 转 变 成 了 内 因, 而 且 是 决 定 性 主 导 性 因 素 正 因 如 此, 朝 方 直 把 美 国 作 为 最 主 要 的 攻 击 目 标 与 主 要 敌 人, 而 韩 国 一 直 被 称 为 是 美 国 的 傀 儡 这 种 称 呼 当 然 很 不 雅, 我 们 不 赞 同 这 种 带 污 辱 性 的 用 词 但 在 美 韩 关 系 中, 美 主 韩 从 则 是 不 争 的 事 实, 即 使 美 将 主 导 权 交 于 韩 方, 也 恐 难 以 改 变 美 韩 的 实 质 关 系 在 这 种 美 主 韩 从 的 大 前 提 下, 不 仅 南 北 关 系 依 从 于 它, 就 是 中 韩 关 系 同 样 也 要 股 从 于 它 人 们 不 能 不 担 心, 中 韩 关 系 会 否 继 续 沦 为 韩 美 同 盟 的 附 属 品, 韩 国 将 对 华 关 系 仍 设 定 为 韩 美 同 盟 的 补 充 21) 朴 槿 惠 虽 熊 表 示 要 改 变 李 明 博 的 对 朝 政 策 与 对 华 政 策, 但 在 朴 槿 惠 身 后 有 美 国 这 一 强 大 后 台 与 支 柱, 将 会 牵 制 朴 槿 惠 对 与 华 与 北 政 策 朴 槿 惠 改 善 与 朝 鲜 关 系 的 愿 望, 很 难 有 较 大 的 作 为 22) 正 如 环 球 网 一 篇 文 章 所 说, 首 尔 缺 少 让 自 己 政 策 溢 出 韩 美 同 盟 的 勇 20) 王 林 昌 : 韩 国 对 军 事 威 慑 的 迷 信 令 人 忧 环 球 时 报 2013-10-17 21) 詹 德 斌 : 韩 国 不 应 再 把 中 国 放 在 美 国 之 后 _ 评 论 _ 环 球 网 2013-01-22 http://www.ahradio.com.cn 22) 韩 国 女 总 统 朴 槿 惠 对 中 国 的 态 度 着 墨 2012-12-20 28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气 和 能 力 23) 韩 国 必 须 更 加 自 主 地 应 对, 以 消 除 将 韩 国 外 交 捆 绑 在 美 国 框 架 内 的 担 忧 因 此, 韩 国 首 先 要 确 保 在 韩 半 岛 问 题 上 的 主 导 权 24) 其 二, 美 国 在 韩 的 驻 军 与 核 保 护 伞 问 题 美 国 在 韩 的 驻 军 完 全 是 冷 战 的 战 物, 早 该 弃 之 拉 圾 桶 如 果 说 美 驻 日 本 军 队 尚 有 防 范 军 国 主 义 复 活 的 积 极 意 义, 那 么 驻 韩 美 军 则 早 己 失 去 存 在 价 值 与 合 法 依 据 就 美 国 核 保 护 伞 政 策 而 言, 美 国 是 把 它 做 为 对 朝 核 威 慑 的 一 大 决 定 性 盾 牌 美 国 核 保 护 伞 虽 然 表 面 上 压 服 了 韩 国 的 有 核 化, 但 却 促 进 朝 鲜 的 有 核 化, 同 时 由 于 美 国 将 自 身 的 核 武 带 进 了 韩 国, 从 而 实 际 上, 整 个 半 岛 己 逐 渐 全 盘 有 核 化 了 只 不 过 南 北 有 核 的 形 式 规 模 水 平 不 同 而 已 现 今 核 保 护 伞 依 然 是 美 国 与 盟 友 韩 国 维 持 盟 约 关 系 的 重 要 基 石, 美 韩 美 日 大 规 模 的 诸 多 军 演, 均 配 有 名 目 繁 多 的 核 武 装 置 美 国 核 伞 政 策 实 际 上 是 通 过 高 度 强 势 威 慑 力 量, 逼 迫 压 服 朝 鲜 放 弃 核 武, 但 效 果 适 得 其 反 这 无 疑 强 化 了 朝 方 冒 险 心 理 与 拥 核 的 强 硬 姿 态 其 三, 美 利 用 韩 国 及 其 它 日 菲 等 军 事 盟 友, 加 大 对 中 国 的 制 䚘 随 着 中 国 崛 起, 美 国 对 半 岛 事 务 的 战 略 设 计 中 会 加 入 越 来 越 多 围 绕 中 国 因 素 的 考 量, 韩 国 也 越 来 越 像 美 国 在 东 亚 搞 战 略 再 平 衡 的 一 个 棋 子 韩 国 会 越 来 越 深 地 陷 入 美 国 战 略 玩 偶 的 角 色, 韩 国 早 已 失 去 半 岛 及 东 北 亚 政 策 的 主 动 权 25) 韩 国 始 终 把 韩 美 同 盟 看 作 是 外 交 政 策 的 基 石, 无 论 谁 当 选 总 统, 都 不 会 轻 易 动 摇 这 个 外 交 政 策 的 根 本 正 如 石 源 华 教 授 外 说 : 中 韩 关 系 的 发 展 有 时 会 受 制 于 美 韩 同 盟 关 系, 韩 国 新 政 府 如 果 与 美 国 的 关 系 太 紧 密, 积 极 配 合 美 国 一 些 亚 太 战 略, 这 将 在 无 形 中 使 中 韩 关 系 受 到 负 面 影 响 26) 四 末 來 走 势 与 结 语 一 根 据 上 述 分 析, 末 來 中 韩 关 系 将 会 继 续 沿 着 实 质 胜 的 战 略 伙 伴 发 展, 朴 槿 惠 政 府 对 华 关 系 已 奠 定 了 中 韩 未 來 二 十 年 或 更 长 发 展 的 基 础, 中 韩 关 系 或 许 会 遇 到 种 种 波 折, 但 总 的 友 好 关 系 大 方 向 不 会 逆 传, 不 论 谁 上 台 执 政 都 会 保 持 这 一 基 本 战 略 路 线 行 事, 这 是 韩 国 与 中 国 自 身 国 家 利 益 使 然, 也 是 历 史 必 然 的 选 择 中 韩 关 系 将 是 东 亚 各 国 关 系 中 的 楷 模, 中 韩 关 系 将 是 亚 洲 各 国 关 系 发 展 最 迅 速 潜 力 最 大 与 活 力 最 强 的 战 略 伙 伴 关 系 我 们 应 象 爱 护 眼 睛 一 样 珍 惜 维 护 这 一 关 系 23) 环 球 时 报 社 评 : 韩 国 需 要 战 略 上 的 大 智 慧 大 胸 怀 2013-03-12 24) 韩 李 熙 玉 : 韩 中 建 交 二 十 周 年 及 今 后 韩 国 对 华 政 策 的 方 向 当 代 韩 国 2012 年 03 期 25) 韩 国 需 要 战 略 上 的 大 智 慧 大 胸 怀 环 球 时 报 2013-03-12 26) 韩 国 女 总 统 朴 槿 惠 对 中 国 的 态 度 着 墨 2012-12-20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29
二 韩 对 华 关 系 中 上 述 两 大 症 结 无 疑 在 短 期 内 难 解 甚 至 无 解 但 从 长 远 考 量, 应 是 必 解, 对 此 笔 者 充 满 信 心 隨 着 国 际 环 境 的 重 大 变 化, 其 中 首 要 是 中 国 的 真 正 和 平 崛 起, 中 美 关 系 格 局 定 会 出 现 重 大 变 异 ; 朝 鲜 也 将 会 沿 改 革 开 放 走 出 困 境, 南 北 经 济 差 距 也 将 会 缩 小 ; 无 核 化 步 伐 也 必 将 加 快, 半 岛 实 行 统 一 的 愿 望 迟 早 会 降 临 与 此 同 时, 韩 国 对 华 对 美 对 朝 政 策 必 将 有 重 大 调 整 韩 国 现 今 的 亲 美 联 美 为 核 心 的 对 外 政 策 必 将 发 生 实 质 性 或 颠 覆 性 变 化 三 中 韩 实 质 性 战 略 伙 伴 关 系 如 再 上 一 更 大 台 阶, 即 中 韩 关 系 全 方 位 超 越 韩 美 关 系, 将 取 决 于 南 北 关 系 的 根 本 改 善, 也 更 取 决 于 韩 国 对 美 政 策 的 重 大 突 破, 可 这 非 轻 而 一 举 但 事 在 人 为, 关 键 在 于 韩 国 要 有 大 智 慧 大 胸 怀 的 领 军 人 物 现 今 韩 国 已 在 上 世 纪 创 造 了 汉 江 的 伟 大 奇 迹, 我 们 真 诚 期 待 韩 国 在 本 世 纪 也 能 再 创 另 一 个 伟 大 奇 迹 朴 槿 惠 在 韩 国 政 治 舞 台 的 出 现 已 使 世 界 刮 目 相 看, 她 有 胆 有 智 有 识, 堪 称 东 方 与 亚 洲 女 中 豪 杰 然 而 恕 笔 者 真 言, 韩 国 却 似 乎 缺 少 一 批 能 在 西 太 平 洋 复 杂 局 势 中 看 准 韩 国 战 略 生 命 线, 并 有 能 力 引 导 韩 国 告 别 南 北 长 期 对 峙 困 局 的 政 治 家 27) 光 有 朴 槿 惠 一 人 尚 难 成 大 气, 红 花 还 需 绿 叶 配, 否 则 将 孤 掌 难 鸣 我 们 寄 希 望 于 韩 国 政 坛 能 出 一 批 远 见 卓 识 敢 于 创 新 的 政 治 家, 真 正 从 美 国 式 的 思 考 中 走 出 来, 重 新 思 考 中 国, 思 考 韩 国 的 对 华 政 策, 赋 予 中 韩 关 系 更 独 立 更 广 阔 更 深 远 的 发 展 空 间, 28) 彻 底 改 变 半 岛 的 局 面, 我 们 拭 目 以 待 27) 韩 国 需 要 战 略 上 的 大 智 慧 大 胸 怀 环 球 时 报 2013-03-12 28) 詹 德 斌 : 韩 国 不 应 再 把 中 国 放 在 美 国 之 后 _ 评 论 _ 环 球 网 2013-01-22 30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朴 槿 惠 政 府 的 对 中 国 政 策 : 期 待 和 展 望 ( 摘 要 ) 朴 槿 惠 政 府 对 华 政 策 与 前 景 陈 峰 君 ( 北 京 大 学 ) 如 何 准 确 概 括 朴 槿 惠 政 府 对 华 政 策 说 法 不 一, 较 多 的 提 法 是 在 中 美 间 推 行 平 衡 外 交 政 策, 也 有 提 联 美 和 中 战 略 笔 者 倾 向 用 提 升 实 质 性 的 全 面 战 略 伙 伴 关 系 中 韩 战 略 伙 伴 关 系 自 李 明 博 执 政 时 期 就 已 拟 定, 但 受 诸 多 内 外 因 素 制 约, 中 韩 战 略 伙 伴 关 系 虽 然 也 有 进 展, 但 虚 多 实 少, 甚 至 在 某 些 方 面 有 倒 退 迹 象 处 于 一 条 腿 粗 一 条 腿 细 的 经 热 政 冷 状 态 朴 槿 惠 吸 取 了 李 明 博 对 北 政 策 的 教 训, 一 改 前 任 的 状 况 中 韩 关 系 上 升 了 一 个 大 的 台 阶 虽 然 还 不 能 说 韩 中 关 系 与 韩 美 关 系 己 等 量 齐 观, 但 与 等 距 离 外 交 相 距 已 不 远 朴 槿 惠 访 华 之 行 在 中 韩 关 系 史 上 具 有 里 程 碑 式 的 意 义 标 志 中 韩 关 系 跨 越 式 发 展 朴 槿 惠 访 华 有 三 大 成 果 1, 加 强 了 政 治 安 全 领 域 战 略 沟 通 与 互 信 使 两 国 经 热 政 冷 的 关 系 转 变 为 经 热 政 热 2, 进 一 步 扩 大 经 济 与 社 会 领 域 合 作 3, 朝 鲜 半 岛 信 任 进 程 获 中 方 支 特 总 的 说, 中 韩 两 国 共 同 战 略 利 益 的 需 要, 是 两 国 共 同 的 选 择 从 韩 国 方 面 分 析, 有 以 下 三 个 因 素 1, 韩 国 新 政 府 正 在 致 力 于 构 建 国 民 幸 福 新 时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31
代 发 展 需 要 中 国 2, 韩 国 急 需 中 国 在 南 北 关 系 与 对 北 政 策 上 相 助 朴 槿 惠 执 政 后 在 外 交 核 心 目 标 就 是 改 善 停 滞 不 前 的 南 北 关 系, 为 此 提 出 有 别 于 前 任 的 第 三 条 道 路 与 信 任 进 程 方 案 朴 槿 惠 渴 望 中 国 能 在 推 行 新 的 对 朝 政 策 中 发 挥 独 特 作 用 3, 在 中 美 两 大 国 采 取 极 积 平 衡 政 策, 实 质 性 改 善 对 华 关 系, 有 利 干 韩 囯 的 安 全 与 地 位 的 提 升 从 中 国 方 面 分 析, 中 国 高 度 重 视 中 韩 关 系, 将 之 放 在 中 国 对 外 关 系 的 重 要 位 置 特 别 在 现 今 国 际 形 势 下, 中 国 也 同 样 需 要 韩 国 的 大 力 支 持 其 一, 韩 国 成 为 中 美 在 东 北 亚 校 力 的 重 要 阵 地 在 美 国 众 多 盟 友 中, 韩 国 应 被 视 为 对 华 最 为 友 善 国 家 之 一, 是 习 近 平 总 书 记 有 关 重 视 周 边 外 交 与 亲 邻 睦 邻 善 邻 政 策 的 重 点 对 象 国, 也 是 最 能 发 挥 牵 制 美 日 作 用 的 国 家 之 一, 中 国 无 疑 企 图 拉 韩 制 美, 做 为 反 制 美 国 拉 帮 结 盟 重 返 亚 太 的 重 要 举 措 使 韩 国 在 中 美 大 博 弈 中 保 持 一 定 程 度 的 中 立 是 可 行 的 其 二, 韩 国 是 组 成 反 日 本 右 翼 联 合 阵 线 最 为 可 靠 的 首 选 盟 友 与 天 然 的 同 盟 第 一 痼 疾, 对 朝 的 强 武 的 政 策 在 这 种 强 硬 政 策 下, 朴 槿 惠 对 朝 第 三 道 路 政 策 能 否 走 出 李 明 博 对 朝 政 策 总 体 框, 则 大 打 折 扣, 很 值 得 怀 疑 朝 韩 之 间 本 已 出 现 明 显 缓 和 朝 鲜 改 革 刚 刚 有 点 起 色, 可 恰 恰 在 这 种 急 需 韩 美 国 做 出 正 面 反 应 与 配 合 时, 却 反 其 道 而 行 之, 令 世 人 惊 愕 与 不 解 除 韩 美 高 调 的 联 合 军 演 外, 令 人 瞩 目 的 是 韩 美 正 式 签 订 应 对 朝 鲜 核 威 胁 的 针 对 性 遏 制 战 略 计 划, 声 言 如 发 现 朝 鲜 有 使 用 核 武 器 的 迹 象 就 启 动 采 取 先 发 制 人 的 威 慑 战 略 这 表 明 : 朴 槿 惠 提 出 的 韩 半 岛 信 任 进 程 与 通 过 协 商 对 话, 实 际 上 有 可 能 变 成 空 洞 口 号 与 一 纸 空 文 威 慑 与 信 任 二 者 绝 然 相 悖, 水 火 唯 融 事 情 只 会 变 得 事 与 愿 违 另 一 障 碍 是 韩 美 同 盟 在 韩 美 同 盟 大 框 架 乏 下, 韩 国 几 乎 完 全 被 美 国 绑 架, 对 华 与 对 韩 关 系 难 有 突 彼 如 果 说 美 驻 日 本 军 队 尚 有 防 范 军 国 主 义 复 活 的 积 极 意 义, 那 么 驻 韩 美 军 则 早 己 失 去 存 在 价 值 与 合 法 依 据 美 国 核 保 护 伞 虽 然 表 面 上 压 服 了 韩 国 的 有 核 化, 但 却 促 进 朝 鲜 的 有 核 化, 同 时 由 于 美 国 将 自 身 的 核 武 带 进 了 韩 国, 从 而 实 际 上, 整 个 半 岛 己 逐 渐 全 盘 有 核 化 了 只 不 过 南 北 有 核 的 形 式 规 模 水 平 不 同 而 已 此 外, 美 利 用 韩 国 及 其 它 日 菲 等 军 事 盟 友, 加 大 对 中 国 的 制 䚘 韩 国 会 越 来 越 深 地 陷 入 美 国 战 略 玩 偶 的 角 色, 韩 国 早 已 失 去 半 岛 及 东 北 亚 政 策 的 主 动 权 32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四 末 來 走 势 与 结 语 一 末 來 中 韩 关 系 或 许 会 遇 到 种 种 波 折, 但 总 的 友 好 关 系 大 方 向 不 会 逆 传, 中 韩 关 系 将 是 东 亚 各 国 关 系 中 的 楷 模, 中 韩 关 系 将 是 亚 洲 各 国 关 系 发 展 最 迅 速 潜 力 最 大 与 活 力 最 强 的 战 1121 略 伙 伴 关 系 二 韩 对 华 关 系 中 两 大 症 结 在 短 期 内 难 解 甚 至 无 解 但 从 长 远 考 量, 应 是 必 解, 隨 着 国 际 环 境 的 重 大 变 化, 其 中 首 要 是 中 国 的 真 正 和 平 崛 起, 中 美 关 系 格 局 定 会 出 现 重 大 变 异 ; 韩 国 现 今 的 联 美 为 核 心 的 对 外 政 策 必 将 发 生 实 质 性 或 颠 覆 性 变 化 三 改 变 韩 美 关 系 南 北 关 系 大 局 非 轻 而 一 举 但 事 在 人 为, 关 键 在 于 韩 国 要 有 大 智 慧 大 胸 怀 的 领 军 人 物 现 今 韩 国 已 创 造 了 汉 江 的 伟 大 奇 迹, 期 待 韩 国 在 本 世 纪 也 能 另 一 个 伟 大 奇 迹 朴 槿 惠 在 韩 国 政 治 舞 台 的 出 现 已 使 世 界 刮 目 相 看, 她 有 胆 有 智 有 识, 堪 称 东 方 与 亚 洲 女 中 豪 杰 光 有 朴 槿 惠 一 人 将 孤 掌 难 鸣 希 望 于 韩 国 政 坛 能 出 一 批 远 见 卓 识 敢 于 创 新 的 政 治 家, 真 正 从 美 国 式 的 思 考 中 走 出 来, 重 新 思 考 中 国, 思 考 韩 国 的 对 华 政 策, 赋 予 中 韩 关 系 更 独 立 更 广 阔 更 深 远 的 发 展 空 间 彻 底 改 变 半 岛 的 局 面, 我 们 拭 目 以 待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33
박근혜 정부의 대중국 정책: 기대와 전망 (요약) 박근혜 정부의 대중국정책의 장래 천펑쥔 ( 陈 峰 君, 북경대) 박근혜 정부의 대중국정책을 어떻게 정확하게 요약하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비교적 많은 표현은 중미간 평행 외교 를 추진하는 정책이고, 다른 하나는 연미 화중 전략이라는 의견 도 있다. 글쓴이는 실제적인 전면전략의 동반자관계 쪽으로 나타내고자 한다. 1. 중국에 대한 실질적인 전면전략동반자관계를 나타내다 중한전략동반자관계는 이명박 정부 시기에 이미 협정되었었다. 하지만 많은 내외요소의 제약을 받아 중한전략협력관계는 발전도 있었지만, 허구가 많았고 얻은 것은 적었으며, 심지어 어떤 분야 에서는 퇴보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경제과 정치에서 불균형적인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박근혜는 이명박의 대북정책의 교훈을 받아들여, 전직의 상태를 바꿔, 중한관계는 더 높은 목 표로 상승하게 되었다. 비록 한중 관계와 한미관계가 동등한 관계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머지 않아 등거리외교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의 중국 방문은 중한관계의 역사상 이정표의 의미를 지니고, 중한관계의 큰 발전의 지표 를 나타낸다. 박근혜의 중국방문은 3가지 성과가 있었다. 1. 정치안전영역전략의 소통과 상호신용 을 강화하였다. 양국의 활발한 경제적 관계에 비해 정체되어 있는 정치적 관계가 경제와 정치 모든 면에서 활발하게 바뀌었다. 2. 경제와 사회영역에서의 협력이 한 단계 더 확대되었다. 3.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가 중국의 지지를 얻었다. 34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2. 중국에 대한 실질적인 전면전략동반자관계의 요소 결론적으로, 중한 양국의 공통전략이익의 요구는 양국 공통의 선택이다 한국측으로 분석하면, 아래와 같은 3개의 요소가 있다. 1. 한국 신 정부는 현재 국민행복신시 대 발전구축을 위해 중국이 필요하다. 2. 한국은 남북관계와 대북정책상 중국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박근혜 집정 후의 외교핵심목표는 정체 된 남북관계 개선이고 이를 위해 전 정부와는 다른 제3의 길 과 신뢰 프로세스 방안을 제기했다. 3. 중미 양 대국이 평행정책을 채택하고, 실질 적으로 대중국정책을 개선하면 한국의 안전과 지위 상승에 이익이 있다. 중국측으로 분석하면, 중국은 중한관계를 고도 중시하고, 중한관계를 중국대외관계의 중요 한 위치에 놓았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국제형세에서, 중국 역시 한국의 큰 지지를 필요로 한다. 첫째로 한국은 중국과 미국이 동북아에 영향력을 미치게 하는 중요한 지역이다. 미국의 많은 동맹국 중, 한국은 응당 중국의 제일 우호가 좋은 국가중의 하나이고, 시진핑이 중시하는 주변 외교와 주변국과 화친하는 정책의 중점 대상국이며, 미국과 일본을 가장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국가 중에 하나이다. 이에, 중국은 의심 없이 한국을 끌여 들여 미국을 견제할 것이며, 미국을 반대하고 연맹국을 끌여 들여 아태로 복귀 하는 중요한 조치이다. 이것은 한국이 중미간의 게임 중 어느 정도의 중립적인 위치를 취할 수 있게 했다. 두 번째로 한국은 반 일본 우익 연합전선의 제일 믿음직하고 우선적인 동맹국이고 천성적인 동맹이다. 3. 중국에 대한 실제적인 전면전략동반자관계의 두 가지 고질병 첫 번째 고질병은, 대북강경책이다. 이러한 강경정책 하에, 박근혜의 대북의 제3의 길 정책 이 이명 박의 대북정책은 엉망이 되었고 필요성이 있나 의구심이 든다. 남북관계가 이미 완화되었음이 명확이 나타나지고 있고, 북한의 개혁은 이제 막 조금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한미간 협력해야 할 시점에, 상대방과 정 반대의 방법을 이용하여 사람들로 하여 금 경악과 이해 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한미가 긴장을 고조시킨 연합 훈련 외 세인들을 주목시킨 한미가 정식으로 체결시킨 대북 핵 위협을 조준한 억제적 전략 계획은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한다 는 현상이 포착되면 선제 타격하여 제압한다는 협박적 계획을 표명하였다. 이것은 박근혜가 제기 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협상 대화를 표명하지만, 실제로는 아마 아무것도 없는 백지로 변할 수도 있다. 위협과 신뢰는 물과 물이 융합될 수 없듯이 같이 공존할 수 없다. 이러면 일은 바라는 대로 되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35
또 다른 장애는 한미동맹이다. 한미동맹의 큰 틀 아래, 한국은 거의 완전히 미국의 인질이고, 중 국과 한국의 관계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어렵다. 만약 미국이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대가 여전히 군국주의부활 을 방비하는데 적극적인 의사가 있다면, 주한미군은 이미 존재의 가치와 합법적인 의거를 잃어버린 셈이다. 미국의 핵우산은 비록 표면상 한국의 핵 보유를 압박하지만, 북한의 핵 보유를 촉진시키며 동시에 미국이 자신의 핵무기를 한국으로 들여오는 것 때문에, 실제적으로 한 반도는 이미 점점 핵 보유화가 되어가고 있다. 다만 남북의 핵 보유 형식의 규모, 레벨이 다를 뿐 이다. 이외에 미국은 한국과 기타 일본 필리핀 등 군사동맹을 이용해 중국에 대한 제제를 높이고 있다. 한국은 점점 미국의 전략적인 장난감으로 빠져들고 있고, 한국은 이미 반도와 동북아정책 의 주도권을 잃어버렸다. 4. 중한 외교관계의 향후 추세와 결론 첫째, 한중 관계는 앞으로도 많은 우여곡절을 겪겠지만 우호관계는 변치 않을 것임은 의심치 않다. 또한 양국의 외교관계는 아시아 국가 간의 공동발전 면에서 가장 빠르고 큰 잠재력을 가 진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유지해 갈 것이며 이는 아시아 외교의 롤 모델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둘째, 한국은 중국과의 짧은 외교기간 동안 많은 문제들이 봉착해 있지만, 장기적으로 모색한 다면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다. 특히 중국이 국제사회의 변화에 발맞춰 평화발전의 길을 나아간 다면 미국과의 외교관계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는 동시에 한국의 한미 동맹 의 기조 하에 이루 어진 대미정책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전망한다. 셋째, 한미 관계와 남북 관계를 변화시키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이에 앞서 모든 일은 사 람의 힘에 달렸듯이 한국은 큰 지혜와 넓은 포부를 가진 리더가 필요하다. 오늘날 한국은 한강 의 기적을 만들어냈고 21세기에도 위대한 기적을 새로 탄생시킬 것이라 믿는다. 예컨대 박근혜 대통 령은 한국의 정치무대에 나서 용기와 지혜를 보여 세계를 놀라게 한 아시아 여걸 로 불리게 되었다. 다만 한 손으로 매듭을 풀 수 없는 법. 박 대통령은 탁월한 식견과 개혁의지를 가진 정치가들과 함께 국정을 이끌어가길 바란다. 나아가 한국은 미국의 정치적 관념에서 벗어나 중국을 다시 이해 하고 나아가 대중정책에 새로운 기틀을 마련할 것으로 본다. 이로써 한중 관계는 보다 독립적이 고 먼 안목을 넓히는 발전 플랫폼으로 거듭날 것이다. 36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시진핑 정부의 한반도 정책: 기대와 전망 <중국의 한반도 정책에 대한 논쟁: 대북 정책의 진화 배경과 함의> 전성흥 ( 全 聖 興, 서강대) I. 문제제기 시진핑( 習 近 平 ) 정부의 대외전략 및 한반도 정책 방향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작년 11월 제18차 당대회와 금년 3월 제12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제1차 회의를 통해 최고 지도부의 권력 교체가 있었는데, 중국에서 새롭게 등장한 시진핑 총서기 및 주석의 제5세대 지도부가 과연 어떤 대외노선을 추구할 것인가라는 궁금증이다. 특히 미국 등을 겨냥해 신형대국관계 를 추구하겠다는 비젼을 공식 천명했는데, 그 속내는 무엇인지 많은 주목을 받아 왔다. 최근 들어 공세적 외교 행태를 보여준 중국이 이제 국제사회에서 강대국으로서의 자기 목소리를 본격적으로 내려는 것은 아닌지, 그 배경에 대해 우려와 의혹을 낳게 했던 것이다. 이와 동시에 북한이 작년 연말 장거리 로켓발사에 이어 금년 초 제3차 핵실험을 감행함으로써 다시 한번 한반도 정세를 긴장국면으로 몰아갔는데, 정작 관심의 대상이 된 나라는 오히려 중국이었다. 북한의 핵실험은 예정된 것이었고 문제는 그 시점이었다는 점에서 핵실험 자체는 그리 놀랄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핵실험 이후 중국이 보여준 태도는 많은 사람들의 예상 밖이었다. 중국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강경하고도 분명한 반대와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한편, 미국 등과 북핵 해결에 있어서 공조의 자세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련의 경향과 행태는 북한에 대한 중국의 정책이 크게 변화된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자아냈다. 그리고 이는 국내외 관련 학자들 사이에 중국의 대북 정책 변화 여부를 둘러싼 열띤 논쟁을 초래했다. 찬반양론에 더해, 제3의 해석 등 다양한 의견들이 개진되는바, 과연 어느 입장이 맞는지? 이는 현 단계 중국의 한반도 정책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일면 중국의 정책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는 동시에, 북핵 문제의 해결 및 동북아질서 변화의 방향을 가늠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은 관련 논쟁에 대한 분석을 통해 중국의 한반도정책 기조를 파악하고자 한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37
이와 관련해 본문은 다음 몇 가지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첫째, 대외정책 분야에 있어서 중국은 최근 어떤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가? 이는 주로 중국의 공세적 외교행태가 나타나게 된 배경과 그 해석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둘째, 제3차 핵실험 이후 북한에 대한 중국의 대응은 어떠했는가? 관련 정책 변화를 둘러싼 논쟁을 간략히 소개하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자 한다. 셋째, 중국 정치시스템에서 정책의 속성과 정책 변화의 양상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이는 중국의 대외행태 및 대북정책 변화의 실체를 이해하기 위한 논의이다. 넷째, 북핵문제에 관한 한중간의 인식 차이와 그것이 시사하는바 함의를 제시하고자 한다. II. 공세적 외교의 등장 기실 중국이 대외적으로 보다 공격적으로 행동하게 된 것은 2010년을 전후한 시점으로서 신 지도부 등장 이후의 현상만은 아니다. 물론 18차 당대회 정치보고에서 중국은 과거보다 강경해진 어조와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대외정책의 기조를 피력했다. 미국 등과의 관계를 간접적으로 명기해 거시적 협력을 전제로 하되, 1) 주권과 안보 등 핵심이익 ( 核 心 利 益 )에 저해되는 행위에 대해선 강경한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2) 미국의 아시아 회귀 이후 보다 공격적인 외교행태를 보이는 중국이 한반도 및 동북아 지역에서 미국과 충돌할 수도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소위 중국의 조기 부상 과 함께 중국인들의 자신감과 중화민족주의가 고조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중국이 거만한 태도와 공세적인 외교 행태로 일관한다는 지적이 이어왔다. 2009년 코페하겐 유엔기후변화협약회의, 그 후 남중국해 및 센카쿠 열도(조어도)의 분쟁, 그리고 천안함 및 연평도 사건 이후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강경 대응에서 표출된 중국의 공격적 입장 등이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에 대해 국내외 학자들은 대체로 중국이 과거에 비해 더욱 공세적 성향으로의 외교정책 변화를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그 이유로서 일차적으로 중국의 힘의 증대에 따른 당연한 예기된 * 이 글은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주최의 한중학술회의(2013. 11. 20)를 위해 준비된 미완성 발표문으로서 인용 및 전재를 불허함. 1) 중국은 기존의 경쟁 및 갈등적 강대국 관계와는 달리 상호 존중과 상호 이익 및 공동 승리를 도모하는 소위 신형대국관계 를 확대 제시함으로써 그 함의에 대해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胡 錦 濤, 堅 定 不 移 走 中 國 特 色 社 會 主 義 道 路, 爲 全 面 建 成 小 康 社 會 而 奮 斗, 在 中 國 共 産 党 第 十 八 次 全 國 代 表 大 會 上 的 報 告 (2012. 11. 8), http://www.xj.xinhuanet.com/2012-11/19/c_113722546.htm. 2) 18차 당대회를 통해 나타난 중국 외교정책의 경향에 대해선 조영남, 시진핑 시대의 중국 외교 전망: 중국공산당 제18차 당대회의 정치보고를 중심으로, 한국과 국제정치, 제29권 제2호(2013), pp. 203-231; 이영학, 중국 시진핑 체제의 출범과 대외정책 전망, 아태연구, 제20권 제1호(2013), pp. 29-58; Tim Summers, "China's New Leadership: Approaches to International Affairs," Briefing Paper, April 2013, pp. 1-12 참조. 38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귀결이며, 3) 그 이면에는 미국의 아시아 회귀 이후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하는 중국과 서로 충돌하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관련 상대국의 강경 정책이 중국의 맞대응을 촉발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또한 중국의 국내적 요인을 중시하는 관점에서는 개혁 이후 중국의 외교정책 결정과정이 과거보다 더욱 복잡하고 다양한 행위자들이 개입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인민해방군이나 네티즌과 같은 강경 입장을 견지하는 자들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4)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적지 않다. 즉 중국 외교노선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는 주로 중국 측 논리로서 중국의 최근 행태는 외부로부터의 도발 내지 분쟁 야기에 대한 정당한 방어행위라는 설명이다. 5) 또한 서방 학자 중에서도 이런 변화론 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제시하기도 한다. 예컨대, 중국이 과거에 비해 공세적 외교를 펴고 있다는 주장은 실증적 근거가 부족하며, 특정 이슈에 대한 공격적 태도와 외교 정책 전반의 변화를 각각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이에 대해 보다 체계적이고 엄밀한 분석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6) 이밖에 중국의 공세적 행태는 하나의 과도기적 현상으로서 새로운 상황에 대한 대응과정에서 나타나는 정책의 미세 조정 이라는 시각, 그리고 공세적 외교가 중국의 외교적 고립을 자초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내부적으로 강한 비판에 직면해 다시 평화와 협력을 중시하는 온건 노선으로 선회하게 되었다는 관점도 있다. 7) III. 대북 정책의 변화 여부 이런 중국 외교 정책 변화를 둘러싼 논쟁은 중국의 한반도 정책에도 해당된다. 물론 6자회담 등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과거와 동일하지만, 천안함사건 및 연평도 피폭 사건 직후 중국이 보여준 대북 편향적 행태에 비추어 보면 최근 제3차 핵실험 이후 일련의 행태는 분명 중국의 달라진 태도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3차 핵실험 이후 중국이 보여준 이례적인 대응 양상은 대략 다음 몇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핵실험 이후 중국은 즉각 강력한 반대 및 대북 비판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도발행위의 3) 이는 중국이 기존의 발전도상국가보다 강대국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하게 자각하게 됨에 따라 현실주의 국제정치 이론에서 가정하는 그런 대외행태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차창훈, 중국의 대한반도정책: 책임대국과 시진핑의 대북정책 딜레마, 한국과 국제정치, 제29권 제1호(2013), pp. 72-73. 4)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다음 자료에 잘 소개되어 있다. 조영남, 중국의 꿈: 시진핑 리더쉽과 중국의 미래 (서울: 민음사, 2013), pp. 228-242; 김재철, 중국의 공세적 외교정책, 한국과 국제정치, 제28권 제4호(2012), pp. 29-59 참조. 5) 이는 2010년 12월 외교담당 국무위원 다이빙궈( 戴 秉 國 )가 외부 세계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발표한 다음 자료에 잘 나타나 있다. 堅 持 走 和 平 發 展 道 路 中 國 新 聞 网, 2010. 12. 7, http://www.chinanews.com/gn/2010/12-07/2704984.shtml (검색일: 2013. 10. 30). 6) Alastair Iain Johnston, "How New and Assertive Is China's New Assertiveness?" International Security, Vol. 37, Issue 4 (Spring 2013 ), pp. 7 48. 7) 각각 조영남, 중국의 꿈 및 김재철, 중국의 공세적 외교정책, 참조.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39
중단을 요구했다. 둘째, 중국은 유엔 안보리에 대북 제재안을 제안 및 통과시키는 데 적극 동참했고, 북중 국경지대 통관 검색 강화, 중국 은행과 북한 은행 간의 거래 중단 등 실제 제재안을 비교적 성실히 집행하는 태도를 보여줬다. 특히 중국 교통운수부가 관련 산하기관에 결의안의 엄격한 이행을 지시했으며, 미중 정상회담이나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중국 지도부가 결의안 이행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이는 과거와는 다른 이례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8) 셋째, 중국의 최고 지도자 및 외교 담당 책임자들이 강한 어조로 북한을 비판하거나 경고의 메시지를 연이어 표명했다. 예컨대, 시진핑 주석은 2013년 4월 중국 하이난에서 개최된 보아오( 博 螯 ) 포럼의 공식 연설에서,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이기적 목적을 위해 지역과 세계를 혼란에 빠뜨려서는 안 된다 고 경고했다. 리커창( 李 克 强 ) 총리도 미국의 존 케리(John Kerry) 국무장관에게 (한반도에서 사건을 일으키는 것은) 돌로 자기 발등을 찍는 것과 같다 고 말했다. 그리고 왕이( 王 毅 ) 외교부장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중국은 그 어느 누구도 역내에서 도발행위를 하는 것에 반대하며, 중국의 대문 앞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 이라고 언급했다. 9) 넷째, 중국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지난 5월 특사로 중국을 방문한 북한의 최용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냉대했을 뿐 아니라 핵보유에 대한 분명한 반대의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다섯째, 2013년 6월 북중 외교 당국 간 전략대화 가 개최되었는데, 2차례에 걸친 기존 당 채널의 전략소통 과는 달리 정부 간 채널로 격하되고, 회담 대표가 상대국의 최고 지도자를 예방하는 기회도 갖지 못함으로써 북중관계의 냉각된 기류를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10) 이런 중국의 태도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부정적이었고 설령 마지못해 동참하더라도 그 실행에 소극적이었을 뿐 아니라 공개적인 대북 비난을 삼갔던 과거의 전례에 비추어 보면 크게 달라진 태도라고 하겠다. 북한에 대한 중국 내 여론도 악화되어 북한이 중국에 전략적으로 피해를 주고 있다는 논조가 확산되었을 뿐 아니라 급기야는 관방 언론에 종사하는 한 인사의 북한 포기 발언으로 전 세계가 중국의 의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현상까지 나타나게 되었다. 11) 이런 중국의 대응 태도에 근거해 적지 않은 분석들이 북한에 대한 중국의 정책 변화에 8) 2013년 3월 채택된 2094호 결의안을 포함해 2006년 제1차 핵실험 이후 대북 제재 조치에 대한 중국의 이행 행태에 대해선 다음을 참조. 이영학. 중국은 UN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을 충실히 이행했는가? 정덕구 추수롱 외, 기로에 선 북중관계: 중국의 대북한 정책 딜레마 (서울: 중앙북스, 2013), pp. 175-185. 9) 曾 九 平, 已 三 次 警 告, 朝 鮮 再 挑 釁 將 触 動 北 京 底 線, 多 維 新 聞 網 (2013.4.16), http://global.dwnews.com/news/2013-04-16/59164910-all.html (검색일: 2013. 10. 30). 10) 최명해, 중국 내 대북정책 논쟁, 핵심은 무엇인가? 정덕구 추수롱 외, 기로에 선 북중관계, p. 144. 11) 그는 중앙당교에서 발행하는 학습시보의 부편집장 덩위원( 鄧 聿 文 )으로 중국은 곧 붕괴될 북한을 포기하고 한국의 한반도 통일에 주력해야 한다 는 요지의 내용을 다음 언론에 기고했고, 이로 인해 곧 해직되었다. Deng Yuwen, China Should Abandon North Korea, Financial Times, February 27, 2013. 이와 유사한 논조로서 북한이 전략적이든 지정학적이든 전혀 도움이 안 되니 국제사회와 공조해 비핵화를 적극 추진하고 이제 북한을 방기해야 한다 는 주장도 개진되고 있다. Xie Tao, What s Wrong with China's North Korea Policy? 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 March 26, 2013, http:// carnegieendowment.org/2013/03/26/what-s-wrong-with-china-s-north-korea-policy/ftjw. 40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주목하고 있다. 대북 정책 변화의 배경 및 요인으로서 다음 몇 가지를 그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먼저, 중국은 북한에 대해 많은 원조와 지지를 제공해 왔으나 북한은 이에 대해 특유의 독립성을 유지해 중국의 입장이나 권유를 고려하지 않고 오히려 중국을 곤란에 처하게 한다는 것이다. 즉 북한이 너무 멀리 나갔고, 이런 북한에 대해 중국이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12) 이는 중국이 그간 추진해온 대북정책의 한계를 시사해주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포용 정책이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끌어 북한 스스로 변화하게 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한 기존의 정책이 예기된 효과를 거두지 못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에 기존과는 다른 강경한 자세를 취함으로써 북한의 잘못된 행동을 교정하는 한편, 점차 약화되어 가고 있는 대북 영향력을 회복하고자 시도하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13) 이와 동시에 상술한 중국의 인식은 북한 체제 및 김정은 정권에 대한 중국의 실망감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인식의 저변에는 중국 내 북한에 대한 여론도 일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 인민들은 과거 북중관계의 전통이나 사회주의국가로서의 동질감 등으로 인해 비교적 북한에 대해 우호 내지 동정적 태도를 견지해 왔었다. 그러나 최근 북한의 연이은 도발과 중국의 이해와는 배치된 행태를 반복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인식이 극히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은 중국의 미디어나 학계 및 인터넷 등을 통해 분명하게 반영되어 나타났으며 중국 지도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한다. 14) 또한, 중국은 신형대국관계를 미국과의 새로운 강대국관계의 기본 틀로 설정해 미국으로부터 긍정적인 화답을 받은 상태인데, 북핵문제 해결이 그 가능성 여부를 판단할 중요한 케이스라는 것이다. 15) 즉 북중관계의 상위 레벨에 있는 미중관계를 잘 처리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이 미국과 북핵문제에서 협력을 도모해야 하고, 그런 점에서 중국이 북한의 도발에 대해 강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는 의미이다. 이는 중국이 북한에 대한 전략적 가치를 새롭게 정립하고 재검토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기존에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지지하고 보호한 이유도 북한이 가지는 전략적 자산을 과소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었는데,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이 오히려 중국에게 전략적 손실이 되고 있다는 인식이 중국 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즉 기존에는 북한 체제의 불안정이 중국의 한반도정책 목표 중 하나인 한반도 안정과 평화 를 저해하는 주요 요인이라고 봤다면 이젠 북핵 문제가 가장 큰 요인이라는 판단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이다. 16) 12) 추수롱, 북중관계는 임계점에 도달했는가? 정덕구 추수롱 외, 기로에 선 북중관계, p. 31. 13) 한석희, 중국 시진핑 정부의 출범과 북중관계 전망, 수은북한경제, 2013년 여름호, p. 35. 14) 추수롱, 북중관계는 임계점에 도달했는가? p. 30. 15) 김흥규, 새로운 북중관계의 시대,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정덕구 추수롱 외, 기로에 선 북중관계, p. 44. 16) 이에 더해 중국 내에서는 중국이 북한에 끌려 다녀서는 안 된다는 전략적 함정론 이 일정 부분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한다. 김흥규, 새로운 북중관계의 시대,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p. 46.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41
이런 인식 전환과 함께 중국이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보다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한편, 북한만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를 자신들의 완충지대화하려는 시도를 위해 북한에 대해서는 압박정책을, 한국에 대해서는 우호정책을 각각 추진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북한 정권의 붕괴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이 중국 사회 내에 존재하는 가운데 장기적으로 한국이 중국의 영향권 아래 들어온다면 중국은 더 이상 북한에 대해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그 근저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17) 이상의 분석들에 기초해, 국내에서는 중국의 대북 정책 변화에 대한 다양한 평가들이 제시되고 있다. 예를 들어 핵실험에 대한 중국의 반응 및 대응에는 기존과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북핵 관련 중국의 기본 인식과 기조에는 별반 차이가 없다는 보수적 시각에서부터,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번 일을 계기로 중국이 북한을 포기하진 않겠지만, 북중관계에 균열이 발생하고 중국이 북한에 등을 돌려 북한이 고립무원의 처지가 되었다는 급진적 관측까지 있다. 18) 그리고 그 사이에, 전술적 차원을 넘어서 전략 차원의 변화까지 암시해 주고 있다는 시각, 후진타오 시기부터 나타났던 대북 인식의 변화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진핑 시기에 들어서는 정책 차원에서의 변화 가능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분석, 그리고 근본 정책은 변화되지 않았지만 한반도 문제에서 비핵화를 최우선시하는 것으로 정책 조정이 이루어졌다는 해석 등이다. 19) 중국 내에서도 대북정책을 둘러싼 이견이 노출되고 있으며 여러 가지 분석과 평가가 제시되고 있다. 변화를 강조하는 시각 중에는, 한반도 정책에서 비핵화를 최우선 원칙으로 설정하고 이를 위해 대북 강압조치를 지속하는 한편 국제 공조에도 적극적일 것 이라는 분석도 있다. 20) 그러나 대체로 그 주류적 입장은 한국 학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책의 지속성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이는 바, 대북정책 및 북중관계 자체가 근본 변화된 것은 아니며, 핵실험 등 북한의 도발 행위에 대해서는 중국이 단호히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비핵화 의지를 강하게 천명했다 는 정도로 변화의 성격과 의미를 해석하고 있다. 즉 북한이라는 국가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도발 행동에 반대하는 것으로 현 단계에서는 비핵화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입장이다. 21) 미국 내에서도 초기엔 변화 를 강조하는 시각이 우세하다가 최근에는 신중한 입장으로 선회하는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22) 17) 한석희, 중국 시진핑 정부의 출범과 북중관계 전망, p. 42. 18) 후자의 경우에 대해선 정덕구, 북한을 보는 중국의 본심, 정덕구 추수롱 외, 기로에 선 북중관계, pp. 8-25를 보라. 19) 이는 각각 다음을 참조. 김흥규, 새로운 북중관계의 시대,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 최명해, 중국 내 대북정책 논쟁, 핵심은 무엇인가? ; 박동훈,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의 출구전략은 무엇인가? 정덕구 추수롱 외, 기로에 선 북중관계. 20) Xiahe Cheng, The Strained Sino-North Korean Relations under the New Leaderships: A Retrospective Assessment, 평화를 묻는다 (북경: 2013년 한중평화통일포럼 논문집, 2013. 7. 24), pp. 102-113. 21) 추수롱, 북중관계는 임계점에 도달했는가? p. 32. 22) 예를 들면, 최근의 미 의회 보고서는 중국의 유엔 대북제재 동참은 북한에 대한 실망을 표시한 것으로 여전히 대북 정책의 최우선 순위는 북한의 붕괴를 막는 것 이라고 지적했다. Emma Chanlett-Avery and Ian E. Rinehart, North Korea: U.S. Relations, Nuclear Diplomacy, and International Situation,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Report for Congress (September 13, 2013), pp. 1-23. 42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이런 다양한 시각이 논쟁적으로 제기되는 이유는 첫째, 무엇이 어떻게 되는 상태를 변화라고 규정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부재한 상태에서 각기 다른 평가 척도를 적용해 해당 현상을 해석한 결과이다. 23) 따라서 변화 여부에 대한 사실 인식, 변화의 정도와 성격에 대한 평가 등을 각기 달리 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경우 모두, 기존 정책 기조가 유지되는 전제 하의 새로운 조짐이라는 점에서 정책 변화가 명확하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변화로 규정할 것인지가 모호해 지는 것이다. 둘째, 중국의 대북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전개되는 이유는 두 가지 상반된 현상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하나는 과거와는 달리 중국이 북한에 대한 제재에 적극적이고 비핵화의 의지를 강하게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여전히 전략적으로 북한을 중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자에 초점을 둔 경우 중국의 대북 정책 변화 내지 그 조짐을 강조하고, 후자에 착안하게 되면 대북 정책의 지속성을 지적하게 된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이런 병존 현상과 이중 태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해석의 문제가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중 현상과 이중 정책이 본질이며, 정책 면에서 현실에의 적용은 상대적 강조의 차이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두 개의 한국 정책을 추진하는 중국으로서는 남북한을 모순의 관계로 보고 그에 대해 각각의 전략적 이해를 관철시켜야 하는 이중적 입장에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정 사안에 대한 반응이나 태도에 근거해 정책의 변화를 가늠하는 것은 중국의 정치체제나 정책과정의 특성을 간과한 결과라고 하겠다. 따라서 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상술한 문제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IV. 중국식 정책과정과 대북정책의 진화 1. 국가 정책의 속성: 추상성과 일관성 일반적으로 정권 교체와 정책 변화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집권 정당이든 아니면 지도자 개인 차원이든 권력이 바뀌면 국정 운영의 기조와 대내외 정책이 그에 따라 변화된다. 대체로 이는 정당정치를 실시하는 민주주의국가에 해당하는 얘기이다. 이런 경험에 기초하면, 중국도 지도부의 교체나 다른 변수에 의해 자주 정책이 변화되는 것으로 짐작하게 된다. 상술한 논의에서도 변화를 강조한 시각들은 대체로 시진핑 시대의 새로운 변화 를 염두에 두는 경향이 있다. 23) 예컨대, 중국의 한반도 정책 변화 여부를 평가하는 척도로서 중국이 남북한에 대해 균형정책을 추구하고 있는바 소위 두 개의 한국 정책을 포기하고 중국이 어느 일방을 중심으로 통일을 추진하느냐의 여부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에 대해서는 이상숙, 북한 3차 핵실험 이후 중국의 대북정책 변화 평가와 전망, 주요국제문제분석, No. 2013-26(2013. 9. 11), pp. 8-9.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43
그러나 사회주의 중국의 시스템은 이와는 차별성을 지닌다. 중국식 권력 교체를 의미하는 지난 18차당대회의 세대교체는 비록 신 지도부의 등장을 의미하는 것이긴 하지만 정책노선의 변화와는 크게 무관하다. 이런 점은 지도부 전체에 대해서나 시진핑 총서기 개인에 대해서나 인적 변화가 정책 변화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는바 그 양자 간에 긴밀한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짐작하는 일반적인 인식과 매우 다른 결과이다. 예컨대, 시진핑 시대의., 시진핑 체제 하의, 시진핑 정권(정부)의 등의 수식 하에 용어 그 자체로서 중국의 새로운 변화를 강조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실제 중국 상황과는 유리된 우리식 사고방식에 불과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일당지배 체제 하의 중국 정치에서, 그것도 당 정 군 3권을 한 손에 장악하고 있는 최고 지도자가 당연히 그 어떤 국가의 권력자보다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리라 짐작하는 것이 일반적 상식에서는 무리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는 이와 정반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총서기 개인이든 지도 집단 전체이든 정책 자율성 측면에서 보면, 매우 제한된 권한을 지닐 뿐이다. 특히 집권 초기에는 기존 지도부의 정책과 거의 동일한 노선을 견지할 밖에 없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일원적 사고체계 하에 당-국가 체제를 유지하는 중국에서 특정 문제에 대한 인식과 해법은 획일적이다. 공식 이데올로기와 국가 정책 등은 전체의 의견으로서 단일한 견해만이 존재한다. 다양한 논의들이 결정과정에서 개진될 수는 있으나 한번 결정된 정책에 대해선 일사불란하게 집행되어야 한다. 소위 민주집중제 라는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민들이 정책의 변화를 위해 정권의 교체를 시도할 수 있지만, 정권 교체가 부재한 사회주의 중국에서는 정책 변화 역시 원론적으론 용이하지 않다. 정책의 변화란 기존 정책의 오류를 인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일당체제로서 당은 무결점의 위상 을 지니기 때문에 정책 오류를 인정하고 시정하기가 매우 어려운 시스템이다. 정책 변화가 주기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인 민주주의 체제와는 달리 정책 일관성을 중시하는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정책 변화를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둘째, 집단지도체제를 구축한 현재는 더욱 이런 효과가 증폭되어 나타나고 있다. 그 이유는 과거 마오쩌둥나 덩샤오핑과 같은 카리스마적인 인물이 부재하기 때문에 국가 정책은 지도부 내 합의에 의해 결정되므로 그 누구도 개인의 의견으로써 전체 지도부의 결정을 대체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래의 정책 방향을 제시한 당대회 정치보고문의 경우 총서기직에서 물러나는 후진타오가 발표했지만 신임 총서기 시진핑이 사전 준비작업을 주도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당내외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 수렴과 수정 작업을 거쳤다. 24) 말하자면 정치보고의 주체는 연설한 후진타오도, 준비작업을 수행한 시진핑도 아니라 포괄적 개념의 당 24) 당대회 준비과정에 대해선 Alice Miller, The Road to the 18th Party Congress ; Cheng Li, Preparing For the 18th Party Congress: Procedures and Mechanisms, China Leadership Monitor, No. 36(2012) 참고. 44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지도부 전체라고 봐야 한다. 즉 제4세대나 제5세대의 단독 견해도 아니며, 현 지도부나 퇴임 원로들 어느 한 쪽의 의견만도 아니다. 25) 따라서 이런 과정을 통해 합의된 정책이란 매우 추상성과 포괄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 최대한 변화되지 않고 여러 상황에 적용될 수 있기 위해서는 정책이 구체적이기보다는 추상적이어야 하고, 특정 범주에만 적용되는 협소한 것이 아니라 매우 포괄적인 형태를 띠어야 하는 것이다. 대개 중국에서 정책노선이란 지향하는바 방향성을 나타내거나 고수하고자 하는바 원칙 내지 방침 등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현재 중국이 견지하는 대외정책의 기본 노선은 독립자주의 평화 외교이다. 이는 1982년 제12차 당대회에서 제기된 것으로 이미 30년이 경과되었다. 당시에 비해 달라진 것은 평화 라는 두 글자가 추가된 것밖에 없다. 26) 2. 정책 운용의 방식: 진화 의 메커니즘 그렇다고 중국에서는 정책 변화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할 순 없다. 중국도 국내외 상황이나 주변국과의 관계 등 여러 가지 변수에 의해 정책이 변화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정책 변화를 잘 용인할 수 없는 체제적 요인이 존재한다는 것과, 실제 정책이 변화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다른 얘기이다. 다시 말해 정책 변화에 경직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정책 변화의 양상이 민주주의 체제와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첫째, 중국에서 새로운 정책의 등장이란 정책의 전환이 아니라 정책의 추가 내지 보완으로 나타난다. 흔히 정책 변화는 하나의 정책을 폐기하고 다른 정책을 채택하는 형식이 일반적이다. 즉 정책이 대체 내지 전환되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새로운 정책의 필요성이 존재할 때 기존의 정책을 폐기하지 않는다. 대신 필요한 내용을 기존 정책에 추가해 보완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는 기존 정책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정책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다시 상황이 변화되어 기존 정책이 다시 필요하게 되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27) 즉 정권 교체에 의한 정책 변화 가 없는 제도적 특징에 대처하기 위함이다. 예컨대, 1990년대에 급속한 발전을 구가하는 중국을 위협으로 인식하는 주변국의 우려가 있었다. 28) 중국은 이를 불식하기 위해 책임대국론, 평화부상( 和 平 崛 起 ) 내지 평화발전의 이론을 25) 그밖에 국내정치적 요인으로서 전체주의적 속성을 지니는 중국에서 국가 정책에 대해 당 간부나 일반 인민들이 충분히 숙지하고 이를 잘 이해하는 한편 그 집행에 협조하도록 이들을 동원해야 한다는 점도 정책의 일관성을 강조하는 한 이유이다. 26) 중국의 전략문화, 전략적 가치판단 및 그에 기초한 국익이라는 요인에 근거해 대외정책 및 대북정책의 지속성을 설명한 글로는 박병광,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중국의 대북정책 변화, 북한경제리뷰, 2013년 3월호, pp. 14-26 참조. 27) 국내 정치의 경우, 마오저둥 사상과 덩샤오핑 이론을 동시에 견지하고, 삼개대표론과 과학발전관을 추가로 당장에 삽입함으로써 각기 다른 시대적 배경과 상황 하의 다양한 이데올로기 및 이론들이 공존하고 있는 사례를 들 수 있다. 28) 소위 중국위협론 이다. 그 후 중국은 그렇지 않다 는 사실을 해명하는 데 급급했고, 다른 국가들은 그에 대응하는 전략 마련에 바빴다. 이에 대해선 Herbert Yee and Ian Storey eds., The China Threat: Perceptions, Myths and Realty (London: RoutledgeCurzon, 2002) 참조.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45
제기했다. 그리고 최근 들어 강대국으로의 부상이 임박한 시점에서는 더욱 적극적인 자세로 조화세계, 핵심이익 및 신형대국관계 등의 논리를 개진하고 있다. 개혁 초 독립자주 외교노선을 제기한 이래 중국은 새로운 상황에 맞춰 새로운 정책 개념들을 병렬적으로 추가해 오는 가운데 기존 정책은 대체하거나 폐기하지 않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측면은 외부 관찰자들로 하여금 정책의 변화 여부를 가늠하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즉 변화와 지속이 동시에 혼재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방식의 유용성은 기존 정책을 견지하는 전제 하에서도 새로운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둘째, 이런 추가 및 보완의 결과일 수도 있지만, 통상 모순된 관계를 처리할 경우 또는 이중의 목표를 추구하고자 할 때 중국은 단일의 정책이 아니라 복수의 정책 원칙 내지 방침을 제기해 이를 병행하는 방식을 취한다. 흔히 공식적인 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비핵화,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 등 3가지로 구성되는데, 이 중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서로 상충되는 것으로 인식된다. 즉 한반도의 안정은 주로 북한 체제의 안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지지하고 경제적으로 원조한다는 의미인 반면, 비핵화는 원론적으론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를 지칭하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론 북한 핵개발 저지에 초점을 둔 것으로 서로 상반된 정책 목표라는 지적이다. 동북아 국제질서 및 중국의 지정학적 특성상, 그리고 전략적인 측면에서 북한 체제의 안정이 비핵화에 우선하기 때문에 중국은 당연히 비핵화에 소극적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3차 핵실험 이후 중국의 강경 대응으로 이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앞서 소개한 대북 정책 변화 여부 및 그 정도에 대한 논쟁이 바로 그것이다. 복수의 정책 원칙 내지 목표 중에서 특정 지향점을 상대적으로 강조한 것도 변화의 한 측면으로 보는 것이다. 소위 비핵화를 최우선으로 설정함으로써 대북 정책을 조정하고 있다 는 주장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런 분석의 적실성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대북 정책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 강조의 차이이지, 정책 전환을 의미하는 고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상황 변화에 따라 다시 북한체제의 안정을 중시하는 것으로 회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중국은 세 가지 구성요소 중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하나를 선택하여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점에서든 이 세 가지 요소를 동시에 충족시키고자 추구하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외형상 모순된 것으로 보이는 이들이 각기 서로 다른 정책 기능을 가진 유기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한반도 평화와 안정은 어떤 상황에서도 견지해야 할 대전제 이며, 비핵화는 추구해야 할 목표 인 반면,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은 그 방법 내지 수단 에 46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해당하는 것이다. 29) 그런 점에서 실제 변화는 정책 자체가 아니라 정책의 운용 및 추진 방식에 반영되었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즉 대외행태 및 대북정책 추진에서 나타난 의미 있는 현상은 바로 대응의 강경성 과 적극성 으로서 이것이 새로운 측면의 핵심이다. 기존의 방식이 폐기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변화 보다는 진화 라고 보는 게 더욱 적절할 듯하다. 왜냐하면 정책의 한 축에서 다른 축으로 이전 내지 전환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내용이 가미 혹은 추가된 것이기 때문이다. 30) 그간 중국은 대외관계에서 미국 등 서방국가의 중국위협론에 직면해 주로 방어적 입장에서 중국의 부상이 평화적이며 주변국가에 도움이 되는 것임을 애써 변명하는 데 주력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중국의 이익이 무엇인지 대내외적으로 천명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수호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밝힌 것이다. 북핵문제에 있어서도 비록 방관자적 입장이었던 제1차 북핵 위기에 비해 제2차 위기 이후에는 보다 개입적인 자세를 취했었지만 그간에는 대체로 중립적인 태도에서 소극적으로 대처해 왔다. 이에 비해 최근엔 북한에 대해 핵개발 반대와 불용의 의사를 더욱 적극적으로 표명한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는 기존의 온건함과 소극성을 특징으로 한 중국의 대외행태 및 대북정책에 새로운 측면을 부가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즉 향후 중국은 강-온 정책을 병행하는 한편 상황에 맞게 적절히 운용하는 정책 혼용 의 경향을 보여 줄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런 경향은 비록 근본 정책 변화와는 다른 차원이지만, 한반도문제 특히 북핵문제 해결에 긍정적 신호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도 남기고 있다. 중국의 적극성이 북한의 핵개발 의지를 약화시키고 핵보유국 지위 획득의 목표를 수정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중국의 북핵문제에 대한 기본 인식 및 접근 방식의 변화 없이는 그 효과가 크게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한중 간 북핵문제를 대하는 다음과 같은 인식 차이를 더욱 좁히려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29) 상황에 따라 특정 정책의 중요성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를 우선순위로 정해두면 상황 변화에 신축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워진다. 따라서 정책의 성격 구분으로써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떤 상황에서든 해당 정책들이 각기 가장 중요한 위상을 변함없이 가지게 되는 것이다. 대내 정치의 경우, 개혁개방이라는 새로운 정책노선을 추진해야 할 상황에서 기존 사회주의체제도 고수해야 하는 이중 과제를 떠안게 되었을 때, 중국은 4항기본원칙과 개혁개방 노선을 소위 두 개의 기본점 이라는 논리 하에 동시 견지한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 4항기본원칙을 견지하는 대전제에서 개혁개방이라는 방법을 통해 경제건설이라는 국가목표를 추진해 나간다는 식이다. 예를 들어, 천안문사건 시에는 4항기본원칙의 견지라는 측면에서 통제를, 남순강화 이후에는 개혁개방이라는 정책 방침을 통해 제2의 개혁노선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전성흥, 전환기의 중국 사회 I: 변화와 지속의 역동성 (서울: 오름, 2004), 서론 부분 참조. 30) 다른 측면에서, 북핵문제에 대한 중국의 정책과 북한문제 전반에 대한 정책은 구분될 수 있다. 즉 중국의 대북핵 정책은 대북정책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47
V. 북핵에 대한 한-중의 인식 중국은 북핵 불용, 북한의 핵보유국 불인정 등 원칙에 있어선 한국 등과 입장을 같이 하지만, 북핵의 위협성, 비핵화의 범주, 폐기 가능성, 해결 방식 등에 있어서는 상이한 인식 및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점은 양국 간에 존재한 전략적 이해의 차이 외에, 해당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지 않은 장애요인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이에 대한 이해와 함께 그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첫째, 한국은 북한 핵의 존재가 자신의 안보 및 생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고 느낀다. 이에 비해 중국에 있어서 북핵은 직접적인 위협보다는 간접적인 파급효과가 주로 문제가 된다. 핵개발 과정에서 한반도 주변정세가 불안정해지고 이를 빌미로 미국의 역내 개입이 강화되는 부작용, 그리고 한국과 일본 등 국가들이 핵무장을 시도하는 도미노 현상의 발생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이다. 북핵이 한국에게는 최대의 위협 요소인 반면 중국에겐 역내 불안정 요인 중 하나인 것이다. 둘째, 한국은 미국과 함께 북한의 비핵화를 주장하는 반면, 중국은 북한 뿐 아니라 남한 지역에도 적용해 한반도 비핵화를 강조한다. 이런 차이는 한중관계가 개선되고 북중관계가 악화되었다고 평가되던 2013년 한-중 정상회담 시의 공동성명 내용에도 분명하게 반영되었다. 31) 이로써 중국은 한국 내 미국의 전술핵무기 배치도 반대하는 것이다. 또한 한국은 북핵 문제의 핵심 당사자로서 남북한 외에 미, 중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보는 반면, 중국은 미국과 북한이 핵심 당사자이고 중국을 포함한 나머지 주변국은 보조 및 중재 역할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고 인식한다. 32) 셋째, 한국은 북한 핵이 어떤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폐기되어야 한다는 당위론에 입각해 있다. 이에 반해 중국은 현실적으로 북한이 어떤 외부 압력에도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내부 체제 안정, 미국으로부터의 안보 위협에 대처, 해외의 경제 원조 등의 다목적용으로 개발된 핵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현실적으로 부재한 상황에서 설득이나 회유, 압박 등의 수단은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이 중국의 생각이다. 33) 그러나 한국은 현실적인 가능성보다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북한 핵은 용인할 수 없다는 규범적 판단에 31) 예컨대, 북한 핵 보유 불용 을 언급할 때는 한국 측의 견해임을, 그리고 유관 핵무기 개발의 위협... 한반도 비핵화 를 언급할 때는 한중 양측의 의견임을 각기 명기함으로써 양국 간의 입장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한중 미래비젼 공동성명, 통일연구원, 한중정상회담 결과 분석 (통일정세분석 2013-07), pp. 20-28; 中 韓 面 向 未 來 聯 合 聲 明, 人 民 日 報, 2013 年 6 月 28 日, http://paper.people.com.cn/rmrb/html/2013-06/28/nw.d110000renmrb_20130628_2-02.htm (검색일: 2013. 10. 29). 이런 평가에 대해선 김한권, 실익을 챙긴 중국과 장기적 포석을 둔 한국: 한중 정상회담의 평가, Issue Brief, No. 62(July 11, 2013), pp. 1-10 참조. 32) 신상진, 중국 외교안보전략의 자산, 북한과 북핵을 읽는 중국의 독법, 정재호 편, 중국을 고민하다: 한중관계의 딜레마와 해법 (서울: 삼성경제연구소, 2011), pp. 179-180. 따라서 관련 문제 해결에 있어서 중국의 영향력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王 俊 生, 冷 戰 後 中 國 的 對 朝 政 策 : 美 國 的 解 讀 與 分 岐, 東 北 亞 論 壇, 第 108 期 (2013), pp. 19-27. 33) 왕지스( 王 緝 思 ), 북핵문제 및 당면 한중 관계, 한 중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의 새로운 비전 (민주평통 한 중 평화포럼 자료집, 2010. 9. 28); 姜 龍 範 王 海 凡, 朝 鮮 的 核 戰 略 與 核 外 交, 社 會 科 學 戰 線, 2013 年 第 4 期, pp. 188-197. 48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기초해 있다. 넷째, 한 국 은 미국과 함께 그간의 유화적인 접근이 실패로 돌아간 현재 지속적인 대북 압박만이 북한으로 하여금 핵포기에 이르게 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간주한다. 대화 및 협상도 북한이 성의 있는 가시적 핵포기 조치를 선행한 후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한국은 북한 핵이 모든 문제해결의 선제조건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북핵이 다른 문제와 연동되어 있는 것으로 북핵에만 초점을 두면 해결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중국은 대북 제재란 근본 해결책이 아니며 6자회담 등 대화와 협상만이 유일하고도 최선의 방법이라고 본다. 그리고 스스로에 의한 핵 포기 외에 어떤 외부적 압력에도 북한이 굴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중국이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효과 면에서도 그다지 실효성이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북한의 강한 반발이나 북중관계 악화 등의 부작용만 낳을 것으로 판단한다. 34) 이런 미묘한 차이는 양국 간의 대북 공조라는 측면에서 큰 문제점을 낳고 있다. 중국은 북한 스스로 핵을 폐기하지 않는다면 강압적 방법은 불가하므로 그 해법으로서, 먼저 대결구도를 청산하고 화해국면을 조성한 뒤 개혁개방을 통해 북한 사회의 변화를 선행한 뒤, 북한 스스로가 핵이 도움이 되지 않고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을 자각해 폐기하게 만드는 접근법을 상정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에 있어서 북핵 해결이 외교 목표 중 하나이긴 하나 매우 장기적 차원의 것으로서, 이를 당면 목표 및 대북관계의 선결조건으로 생각하는 한국과 배치된다. 요컨대, 한국은 당장 북핵을 해결 해야만 하나, 중국은 현 단계에선 근본 해결이 불가하므로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도록 관리 하는 데 초점을 두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중국의 대북 강경 입장은 핵포기를 요구하는 의지 표명이라기보다는 핵을 통해 지역 안정을 저해하는 행동에 대한 강한 반대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향후 북한이 오판하지 않도록 경고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핵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북한의 의지며 선택에 의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핵을 가지고 주변을 위협하거나 타국에 빌미를 주어 지역 분쟁이 야기되게 할 수는 없다는 강력한 경고인 것이다. 35) 즉 핵을 반대하고 핵 보유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언사는 원칙의 표명이지 중국이 향후 북핵 폐기를 위해 구체적 행동을 취할 것 이라고 확대해석하기는 무리라고 본다. 34) 진창이, 중국의 대북정책,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정덕구 추수롱 외, 기로에 선 북중관계, pp. 323-324. 35) 자오밍하오,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은 변화하고 있는가? 정덕구 추수롱 외, 기로에 선 북중관계, p. 61.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49
VI. 함의와 제언 이상의 논의는 한국이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중국과의 관계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에 유의해야 함을 시사해준다. 36) 첫째, 우리와 동맹관계에 있는 미국과 갈등적 관계에 있는 중국이, 한국과 전략적 측면에서 입장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중국이 북한체제의 안정과 북중관계를 중시함으로써 역내 문제에 있어서 주로 북한을 두둔하고 보호하려는 행태로 나타난다고 이해된다. 즉 중국은 북한이 지니는 전략적 가치를 포기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외에, 한중간에는 북한 핵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적잖은 차이를 나타내고 이것이 근본 해법에 대한 차이로 이어진다는 점을 곰곰이 새겨봐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식의 차이를 좁히지 않고선 행동의 공조를 이루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둘째, 이분법적 사고방식, 흑백논리에 익숙한 한국인의 경험과 생각으로서는 중국의 정책 경향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중국이 서로 다른 정책 사이에서 운영의 묘를 부릴 때 한국은 수많은 중국의 정책 변화를 진단하게 된다. 우리와 같다고 전제하고 중국을 바라보면 이해란 요원한 일이다. 2010년 천안함사건 당시 중국의 대북정책 변화에 대한 논쟁이 있었는데, 그 때는 중국이 친북 편향으로 기울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최근 다시 중국의 대북 정책 변화를 둘러싼 논쟁이 야기된 것은 중국이 북한 견제 내지 압박 정책을 구사하는 한미와 같은 편에 서 줄 것을 기대하는 바램에서이다. 37) 우려나 기대 모두 우리의 객관적 판단을 흐리게 하는 장애물일 뿐이다. 보다 냉철하게 중국의 전략적 사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더욱 합리적인 판단을 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특히 중국의 대북정책 변화를 기대하는 경향이 있지만, 과연 정책 변화가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좋은지, 심지어 북중관계 악화가 한국에게 유리한 점만이 있는지 심각하게 따져볼 일이다. 이와 동시에 북핵문제에 있어서 중국식 해법 및 접근법이 지니는 문제점도 고민해야 한다. 첫째, 물론 강압적 방법 역시 만약 북한이 제재에 굴복하지 않으면 교착 상태가 지속되는바, 다른 대안이 부재하다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북핵 자체보다 북한사회의 폐쇄성에 문제의 초점을 두고 개혁개방을 유도함으로써 근본적 해결을 추구하는 중국식 방법도, 만약 북한이 그로 인한 체제 불안정을 우려하여 폐쇄성을 지속한다면 동일한 문제에 봉착한다. 따라서 이는 두 가지 방법 중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조화 및 균형의 문제로 봐야 할 것이다. 중국이 지금과 같이 북핵 문제를 36) 서론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글은 북핵문제에 초점을 둔 것으로 보다 넓은 의미의 한중관계 일반 및 한국의 대중국 정책 방향에 대한 것은 논외로 하고 있다. 해당 주제 영역에 관한 최근 연구로는 다음을 참고할 수 있다. 이희옥, 중국의 부상과 한중관계의 새로운 위상, 한국과 국제정치, 제28권 제4호(2012), pp. 1-28; 김흥규, 한중 수교 20년과 한중관계 평가: 미래 한중관계를 위한 방향과 더불어, 세계지역연구논총, 제29집 제3호(2011), pp. 211-240; 조영남, 한중 관계의 발전추세와 전망: 바람직한 중국 정책을 위한 시론, 국제 지역연구, 제20권 제1호(2011), pp. 89-123; 정재호, 중국의 부상과 한반도의 미래 (서울: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1), 37) 이런 기대는 일반 여론 뿐 아니라 정책 당국자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다. 김재철, 중국의 대북정책, 변화할 것인가? KERI Column, 2013. 4. 29, p. 2 참조. 50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장기적 과제로 미루고 현상의 안정만을 추구할 경우, 그 과정에서 북한은 핵보유의 지위를 더욱 굳히고자 할 것이며, 그럴 경우 시간이 경과할수록 핵포기의 대가는 증가하는 반면 그 가능성은 줄어드는 반비례의 관계가 성립된다. 특히 북핵 해결을 점진적인 접근을 통한 미래의 목표로 설정함으로써 당면한 위기 즉 핵실험 등 군사도발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는 문제도 있다. 둘째, 그런 점에서 최근의 강경 정책은 때늦은 감이 있다. 그러나 그보다 우려할 것은 현 국면이 완화되면 중국이 다시 온건 노선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북한이 얻게 되는 교훈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 북한이 원하는 바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만약 그럴 경우, 또 다른 북한의 도발행위가 차후 발생한다면 중국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무엇인가? 38) 요컨대, 중국은 외부 입력이 아니라 북한 내부의 변화에 의존해 스스로 해결하는 방식을 취하는 바, 이는 문제유발자가 문제해결자가 되어야 하는 모순을 의미한다. 결자해지의 입장이나, 북한이 그런 의지를 가지지 않는다면 속수무책인 것으로 매우 소극적이고 북한에 칼자루를 쥐어주는 형국인 셈이다. 중국 역시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는 견지의 자세 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한반도 안정과 비핵화를 분리하여 전자는 중국의 전략적 이익과 직결되는 것으로 간주하는 반면, 후자는 동북아 지역의 공공재로서 중국이 문제해결의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아니라는 인식으로부터 탈피할 필요가 있다. 과연 비핵화 없이 한반도 안정이 확보될 수 있을 것인가? 중국은 비핵화가 중국이 추구하는바 한반도 안정의 필수요건임을 인식하고 북핵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 북한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의 비핵화 노력은 결과적으로 실패로 돌아갔고, 그 사이 북한은 핵 개발로부터 실질적인 핵 보유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39) 요컨대, 한국은 북핵문제와 북한문제를 연동해 접근하는 포괄적 전략 사고가 필요한 동시에, 중국은 북핵문제의 내부해결 외에 외적해결 방식의 유용성에도 주목해야 한다. 38) 예컨대, 중국학자의 분석에 의하면, 2002년 2차 북핵 위기 이후 중국은 기존의 관망 자세에서 벗어나 적극 개입 정책을 취해 북한을 정상국가화하려고 시도했을 뿐 아니라 2006년 제1차 핵실험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비판을 제기했으나, 북한의 태도가 오히려 더욱 강경해지고 북한 변화의 노력도 허사가 되자 중국의 이런 적극적인 자세가 다시 유화적, 소극적, 수동적 으로 되돌아 간 경험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북한의 제3차 핵실험은 이런 유화적 정책의 한 결과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金 燦 榮, 朝 鮮 半 島 局 勢 的 新 動 向 與 中 國 的 應 對 之 道, 평화를 묻는다 (북경: 2013년 한중평화통일포럼 논문집, 2013. 7. 24), pp. 181-189. 39) 중국의 한반도 정책이 현상유지를 지향하는 것이라면, 이는 북한의 핵 개발 이전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핵을 보유하게 된 현 상황에 적용 가능한 것이라면 중국의 현상유지 정책은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이 핵 폐기를 추구한다면 현상 유지 가 아니라 현상 복구 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51
중국의 한반도 정책에 대한 논쟁: 대북 정책의 진화 배경과 함의 (요약) 전성흥 ( 全 聖 興, 서강대) 이 글은 대북정책의 변화 여부를 둘러싼 논쟁을 중심으로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을 평가하고, 그 의미를 제시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중국은 최근 여러 가지 국제문제에 있어서 소위 공세적 외교행태를 보임으로써 그 배경에 대해 많은 관심을 끌어왔다. 특히 2013년 북한의 제3차 핵실험 이후 기존 관행과는 달리 북한에 대해 강경한 태도와 함께 북핵 반대 및 경고의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했다. 이에 대해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중국의 정책 변화에 대한 적잖은 논쟁이 야기됐다. 본문은 이상과 같은 논쟁들을 개괄적으로 소개하는 한편, 상이한 분석 결과의 주요 요인을 분석했다. 하나는 무엇이 어떻게 되는 상태를 변화라고 규정하는지, 그 평가 기준에 대한 일치된 의견이 없기 때문이라고 봤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현상적으로 기존의 정책이 폐기되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이중성을 설명했다. 이런 이중성과 복잡성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중국 정치체제 및 정책과정의 특성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사회주의 중국은 정치 시스템의 특성상 국가 정책이 보편성과 추상성, 그리고 장기성을 지님으로써 단기 내에 잘 변화되지 않는 속성이 있다. 이에 근거할 때. 시진핑 지도부의 등장에 따른 중국의 정책 변화를 가늠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체제 하에 있는 우리의 경험에서 비롯된 인식 경향인 것이다. 다만, 중국에서는 새로운 상황과 필요에 의해 정책 변화가 요구될 때 기존의 정책을 폐기하고 다른 정책으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정책의 유지 하에 새로운 부분을 가미 내지 추가함으로써 기존의 것을 보완하는 방식을 취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상호 모순된 관계를 처리함에 있어서는 단일한 정책 목표만을 제시하지 않고 복수의 정책 원칙, 방침 등을 동시에 견지함으로써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해당되는 원칙을 근거로 유연하게 대처한다고 분석했다. 그런 점에서 중국의 한반도 정책 3원칙은 최근에 와서 상대적 강조의 차이는 있으나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없다는 것이다. 왜냐 하면 향후 상황 변화에 따라 다시 유사한 조정이 있을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정책에 있어서 굳이 변화 를 찾는다면 그것은 정책 방향 자체 가 아니라 정책의 52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추진 방식 에 있다고 봤다. 개혁 이후 그간 중국이 행해온 것과는 다른 새로운 현상은 바로 대외관계에서 중국은 더욱 강경하고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따라서 중국 정책과정의 특징에 근거할 때, 향후 중국은 상황에 따라 기존의 온건/소극적 자세에 더해 강경/적극적 행태를 혼용적으로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분석 결과는 북핵문제에 대한 양국 간의 인식 차이에 비추어 다음 몇 가지 함의를 제시해 준다. 우선, 북한 핵의 존재 자체가 지니는 의미에 대해 한국과 중국은 각기 다른 인식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북핵 폐기 가능성 및 그 해결 방법에 대해서도 상이한 접근을 취하고 있다. 예컨대, 최근 중국의 대북 강경 태도는 북한의 도발행위에 대한 반대 및 경고의 의사이지 북핵 폐기를 위한 구체적 실행을 예고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한국은 중국의 정책 변화에 대한 그릇된 기대와 우려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해선 안 되며, 보다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상황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또한 북핵문제 해결을, 북한 내부의 자체 변화를 통한 장기 과제로 상정하고 있는 중국의 전략적 사고 역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는 문제유발자에게 문제해결의 권한을 위임하는 것인 동시에, 그간 온건노선의 결과 북한이 핵의 개발 상태에서 보유 상태로 발전했다는 점에서 관련 정책은 유효하지 못했다고 평가된다. 따라서 중국은 비핵화와 한반도 안정이라는 방침을 분리하는 기존 정책의 폐단을 개선하는 한편, 대북 외적해결 및 내적해결의 병행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53
解 读 有 关 中 国 对 韩 半 岛 政 策 的 争 论 : 中 国 对 朝 政 策 变 化 的 背 景 与 意 义 ( 摘 要 ) 全 聖 興 ( 西 江 大 学 ) 本 文 旨 在 评 价 ( 韩 国 社 会 中 ) 有 关 中 国 对 朝 鲜 政 策 变 化 与 否 的 争 论, 并 揭 示 其 意 义 近 来, 中 国 在 多 项 国 际 问 题 中, 表 现 出 了 所 谓 攻 势 的 外 交 态 度, 引 起 了 各 方 广 泛 的 关 注 尤 其 是 在 2013 年 朝 鲜 第 三 次 核 试 验 后, 中 国 对 朝 鲜 表 现 出 了 与 以 往 惯 例 不 同 的 强 硬 态 度, 并 对 朝 鲜 核 试 验 表 示 了 强 烈 的 警 告 针 对 这 一 问 题, 相 关 领 域 的 专 家 之 间 展 开 了 对 中 国 政 策 变 化 的 争 论 本 文 在 简 要 介 绍 上 述 争 论 的 同 时, 指 出 各 方 提 出 不 同 分 析 结 果 的 原 因 其 一 是, 各 方 对 什 么 可 以 称 为 变 化 这 一 问 题 没 有 一 个 标 准 的 共 识, 因 此 意 见 也 出 现 了 分 歧 其 二 是, 从 中 国 政 策 的 表 现 形 式 来 看, 具 有 一 定 的 双 重 性, 即 在 现 有 的 政 策 没 有 得 到 废 除 的 情 况 下, 出 现 了 新 的 倾 向 和 变 化, 因 此 大 家 比 较 容 易 产 生 不 同 的 理 解 为 了 充 分 认 识 这 种 双 重 性 与 复 杂 性, 我 们 有 必 要 了 解 中 国 国 际 政 治 体 制 及 其 政 策 过 程 的 特 点 社 会 主 义 中 国 的 政 治 体 制 的 特 点 是, 因 为 其 政 策 具 有 普 遍 性 抽 象 性 及 长 期 性, 因 此 短 期 内 不 会 有 太 大 变 化 从 这 一 角 度 考 虑, 我 们 试 图 分 析 习 近 平 政 府 的 上 台 对 中 国 政 策 带 来 的 变 化, 这 种 思 维 方 式 本 身 就 源 于 我 国 的 经 验, 而 导 致 这 种 经 验 产 生 的 正 是 ( 与 中 国 的 体 制 完 全 不 同 的 ) 我 国 的 体 制 中 国 在 面 临 新 的 状 况 与 需 要 时, 并 不 是 废 除 既 有 政 策 而 选 择 新 的 政 策, 而 是 在 维 持 既 有 政 策 的 前 提 下, 通 过 添 加 新 的 内 容, 对 既 有 政 策 进 行 补 充 同 时, 在 处 理 相 互 矛 盾 的 关 系 时, 中 国 并 不 是 提 出 单 一 的 政 策 目 标, 而 是 坚 持 多 个 政 策 原 则 方 针, 根 据 需 要 随 时 进 行 调 整, 具 有 较 强 的 灵 活 性 在 这 一 点 上, 虽 然 最 近 中 国 对 韩 半 岛 政 策 的 三 大 原 则 的 侧 重 点 有 所 变 化, 但 根 本 的 方 向 是 没 有 变 的 今 后 中 国 完 全 有 可 能 根 据 状 况 的 变 化 重 新 调 整 政 策 如 果 说 中 国 的 政 策 一 定 有 什 么 变 化 的 话, 这 种 变 化 并 不 是 在 政 策 的 方 向 本 身, 而 是 在 政 策 的 推 进 方 式 上 改 革 以 后 中 国 在 外 交 关 系 上 较 以 前 的 新 变 化 是, 中 国 表 现 出 更 强 硬 更 积 极 的 态 度 因 此, 根 据 中 国 政 策 过 程 的 这 些 特 点, 可 以 预 测, 54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中 国 今 后 会 根 据 具 体 的 情 况, 表 现 出 稳 健 / 消 极 这 一 既 有 姿 态 与 强 硬 / 积 极 的 形 态 相 结 合 的 立 场 考 虑 到 两 国 在 认 识 朝 核 问 题 上 差 异, 这 种 分 析 具 有 如 下 几 点 意 义 首 先, 韩 国 与 中 国 对 朝 鲜 持 核 武 器 这 个 问 题 的 认 识 是 不 同 的, 同 时, 双 方 对 朝 鲜 放 弃 核 武 器 的 可 能 性 及 解 决 方 法 的 立 场 也 是 不 同 的 例 如, 中 国 最 近 强 硬 的 对 朝 态 度 是 对 朝 鲜 挑 衅 行 为 的 反 对 和 警 告, 并 不 能 把 这 种 态 度 视 为 中 国 对 废 除 朝 鲜 核 武 器 的 具 体 措 施 因 此, 韩 国 不 应 迷 茫 于 对 中 国 政 策 变 化 的 错 误 的 期 待 与 担 忧 之 中, 而 应 该 更 加 冷 静 客 观 的 认 清 状 况 此 外, 我 们 还 有 必 要 重 新 分 析 中 国 对 朝 核 问 题 解 决 方 案 的 战 略 性 思 考, 即 中 国 认 为 解 决 朝 核 问 题 是 一 个 长 期 的 课 题, 应 该 通 过 朝 鲜 内 部 自 身 的 变 化 来 完 成 这 种 态 度 无 疑 是 将 解 决 问 题 的 权 限 赋 予 挑 起 事 端 的 一 方, 同 时, 长 期 以 来 的 温 和 路 线 导 致 朝 鲜 已 经 成 为 持 有 核 武 器 的 国 家, 所 以, 这 一 政 策 可 以 说 并 不 是 十 分 有 效 的 因 此, 本 文 建 议, 中 国 有 必 要 改 善 现 有 政 策 的 弊 端, 即 在 非 核 化 和 韩 半 岛 稳 定 的 方 针 之 间 存 在 分 离 的 问 题, 同 时 应 推 进 朝 鲜 内 部 解 决 与 外 部 解 决 相 结 合 的 政 策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55
中 美 新 型 大 国 关 系 和 东 北 亚 区 域 秩 序 < 中 美 新 型 大 国 关 系 的 建 构 与 东 北 亚 秩 序 > 金 强 一 ( 延 边 大 学 ) 论 起 能 够 在 人 类 命 运 的 选 择 上 起 主 导 作 用 的 大 国, 可 以 列 举 美 国 中 国 俄 罗 斯 英 国 日 本 德 国 等 国 家, 但 是, 近 来 人 们 关 注 的 焦 点 常 常 集 中 在 美 国 和 中 国 这 两 个 大 国 身 上 这 大 概 是 因 为, 美 国 是 自 第 一 次 世 界 大 战 以 来 一 直 主 宰 世 界 的 唯 一 的 霸 权 国 家, 而 中 国 却 是 被 视 为 在 不 远 的 将 来 能 够 挑 战 美 国 霸 权 地 位 的 新 兴 崛 起 势 力 很 多 人 基 于 历 史 的 经 验 对 这 两 个 世 界 级 大 国 将 要 进 行 的 战 略 性 大 博 弈 予 以 极 大 的 关 切 因 为, 在 人 类 的 历 史 上 所 有 的 霸 权 国 家 的 崛 起 均 经 历 了 惨 烈 的 权 利 的 转 移 过 程, 即 以 战 争 的 胜 负 来 确 定 其 霸 权 地 位 那 么, 中 美 在 不 远 的 将 来 是 否 也 要 以 军 事 冲 突 的 形 式 来 决 出 胜 负, 以 确 定 由 谁 来 主 宰 这 个 世 界? 尽 管 人 们 不 会 轻 易 相 信 中 美 会 发 生 大 规 模 的 武 力 冲 突, 但 是, 这 种 可 能 性 总 是 存 在 的 正 是 由 于 这 种 可 能 性 的 存 在, 人 们 又 以 极 大 的 兴 趣 来 关 注 近 来 中 国 的 习 近 平 主 席 提 出 的 建 构 中 美 新 型 大 国 关 系 的 政 策 性 构 想 建 构 新 型 大 国 的 设 想 似 乎 早 已 提 出, 而 习 近 平 主 席 提 出 的 这 一 思 想 之 所 以 具 有 非 常 大 的 现 实 意 义, 就 在 于 形 成 了 中 美 两 国 的 初 步 共 识, 这 的 确 是 鼓 舞 人 心 的 事 情 但 是, 认 真 地 思 索 目 前 在 国 际 上 热 议 的 新 型 大 国 关 系 之 讨 论 就 会 发 现, 这 一 讨 论 并 没 有 摆 脱 以 往 思 维 模 式 的 框 架, 这 就 是 其 立 足 点 常 常 是 自 国 的 利 益, 或 者 说, 并 没 有 摆 脱 现 实 主 义 理 论 之 框 架 这 样, 所 谓 建 构 新 型 大 国 的 设 想 本 身 失 去 了 一 个 坚 实 的 基 础, 即 缺 乏 类 本 位 的 思 考 自 冷 战 结 束 之 后, 人 类 事 实 上 面 临 的 是 有 别 与 任 何 历 史 阶 段 的 新 的 历 史 时 期 人 类 不 仅 享 受 科 学 技 术 和 和 平 给 与 他 们 的 幸 福, 但 同 时 也 面 临 了 足 以 使 文 明 体 系 坍 塌 的 危 机 因 素 人 类 所 开 发 的 足 以 使 其 毁 灭 几 次 的 大 量 杀 伤 性 武 器 的 危 险 性 自 不 必 说, 所 面 临 的 人 口 粮 食 能 源 资 源 环 境 等 方 面 的 危 机 因 素 也 足 以 把 人 类 社 会 推 入 无 法 自 拔 的 生 存 危 机 之 中 这 就 是 说, 现 在 人 类 所 面 临 的 问 题 与 历 史 上 所 面 临 过 的 任 何 问 题 都 有 性 质 上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57
的 区 别, 也 就 需 要 从 人 类 生 存 的 角 度 思 考 现 在 的 危 机 因 素 本 质 上 讲, 这 是 人 类 进 行 命 运 之 选 择 的 分 岔 点, 而 在 这 一 分 岔 点 上 的 选 择 中 所 谓 的 大 国 起 着 至 关 重 要 的 作 用 也 就 是 说, 讨 论 建 构 新 型 大 国 关 系 的 逻 辑 起 点 应 当 是 人 类 的 命 运, 或 者 说, 只 有 建 构 类 本 位 的 思 考 方 式, 才 有 可 能 建 构 积 极 的 大 国 之 间 的 新 型 关 系 出 于 这 种 考 虑, 我 曾 经 提 出 主 导 型 大 国 的 概 念 1), 认 为, 所 谓 新 型 大 国 关 系 必 须 基 于 人 类 共 同 利 益 基 础 之 上 的 并 能 够 引 领 世 界 走 向 和 平 和 繁 荣 的 大 国 关 系, 唯 有 如 此, 才 有 可 能 彻 底 摆 脱 以 往 霸 权 国 家 的 行 为 范 式, 也 才 有 可 能 建 构 所 谓 负 责 任 大 国 的 关 系 而 理 论 上 对 大 国 新 型 关 系 的 描 述 是 一 回 事, 现 实 地 展 开 的 大 国 关 系 则 又 是 另 一 回 事 从 现 实 的 层 面 上 看, 中 国 和 美 国 虽 然 在 某 种 程 度 上 达 成 了 建 构 新 型 大 国 关 系 的 共 识, 但 正 在 进 行 全 方 位 的 战 略 博 弈 又 是 不 争 的 事 实 而 这 种 战 略 博 弈 的 主 战 场 就 是 东 北 亚 这 场 战 略 博 弈 大 有 世 纪 大 决 战 的 意 味, 因 为, 如 果 这 场 博 弈 不 过 是 以 往 霸 权 国 家 争 霸 历 史 的 翻 版, 那 么, 世 界 的 未 来 将 是 一 片 混 沌 的 状 态 ; 相 反 地, 如 果 这 场 博 弈 能 够 促 成 新 型 大 国 关 系 的 建 构, 那 么, 世 界 有 可 能 拉 开 崭 新 秩 序 之 序 幕 如 果 美 国 和 中 国 等 大 国 仍 然 以 以 往 的 霸 权 模 式 和 行 为 范 式 来 争 夺 霸 权 地 位 的 话, 东 北 亚 区 域 有 可 能 变 成 毁 灭 人 类 的 一 个 策 源 地 ; 而 如 果 大 国 之 间 摆 脱 支 配 几 千 年 人 类 历 史 的 行 为 范 式 并 建 构 崭 新 的 世 界 体 系, 东 北 亚 就 会 成 为 世 界 的 和 平 繁 荣 的 新 的 动 力 源 我 所 说 的 世 纪 大 决 战 的 含 义 正 在 于 此 自 冷 战 结 束 以 来, 世 界 从 总 体 上 呈 现 出 和 平 发 展 的 趋 势, 而 且 从 性 质 上, 这 一 发 展 趋 势 表 明 着 国 际 体 系 向 世 界 体 系 转 换 的 特 点 2) 经 济 的 一 体 化 世 界 性 社 会 化 和 民 主 化 思 潮 的 形 成 联 合 国 管 理 功 能 的 扩 大 等 等 的 现 象 事 实 上 表 明 目 前 世 界 的 总 的 发 展 趋 势 已 不 同 于 历 史 上 任 何 时 代 国 际 体 系 的 转 换, 这 一 转 换 已 内 在 地 具 有 一 个 明 显 的 方 向, 这 就 是 建 构 全 新 的 世 界 体 系 3) 当 然, 世 界 所 呈 现 的 发 展 趋 势 并 不 证 明 她 已 进 入 了 崭 新 的 历 史 时 期, 而 是 表 明 已 进 入 了 新 旧 秩 序 交 替 的 历 史 的 抉 择 期 在 这 一 大 抉 择 期 里, 人 类 要 在 方 向 上 进 行 选 择, 是 建 构 一 个 崭 新 的 世 界 体 系 并 以 此 消 解 人 类 所 面 临 的 生 存 危 机, 还 是 延 续 以 往 的 行 为 模 式 把 人 类 推 入 无 法 自 拔 的 危 机 深 渊 里 事 实 上 世 界 已 从 人 口 能 源 1) 金 景 一, 金 强 一 : 东 北 亚 国 际 秩 序 的 转 型 与 大 国 的 角 色 定 位 东 北 亚 论 坛 2013 年 第 二 期 2) 金 景 一, 金 强 一 : 东 北 亚 国 际 秩 序 的 转 型 与 大 国 的 角 色 定 位 东 北 亚 论 坛 2013 年 第 二 期 3) 上 文 58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资 源 环 境 粮 食 等 各 个 方 面 呈 现 出 足 以 毁 灭 自 身 的 各 种 潜 藏 的 危 机 因 素, 这 些 危 机 因 素 说 明 人 类 文 明 体 系 的 突 然 坍 塌 不 是 不 可 能 的 事 情, 从 这 种 视 角 上 看, 人 类 事 实 上 已 经 进 入 了 进 行 命 运 之 选 择 的 分 岔 点 上 这 个 分 岔 点 上 的 选 择 与 以 往 任 何 时 期 的 选 择 具 有 性 质 上 的 区 别, 这 就 是 要 选 择 共 同 繁 荣 还 是 共 同 毁 灭 在 这 一 选 择 的 重 大 分 岔 点 上, 人 类 却 面 临 两 大 不 幸 : 其 一 是, 早 在 上 世 纪 70 年 代 罗 马 俱 乐 部 曾 经 发 出 严 厉 的 警 告, 即 地 球 已 无 法 承 受 人 类 的 发 展, 但 是, 到 至 今 没 有 引 起 战 略 家 们 的 足 够 的 重 视, 这 是 悲 剧 性 的 ; 其 二 是, 并 不 是 所 有 国 家 都 能 掌 握 这 一 选 择 过 程 的 主 导 地 位, 而 是 由 几 个 称 之 为 大 国 的 少 数 国 家 正 在 左 右 着 人 类 的 命 运 这 也 就 是 说, 关 乎 人 类 命 运 的 选 择 权 几 乎 落 到 了 称 之 为 大 国 的 那 几 个 国 家 手 里 人 类 命 运 之 分 岔 口 上 的 选 择, 这 应 当 是 一 个 讨 论 近 来 热 议 的 建 构 中 美 新 型 大 国 关 系 问 题 的 理 论 框 架 或 者 说, 可 称 之 为 霸 权 国 家 的 那 些 大 国 应 当 明 确, 是 把 人 类 引 向 和 平 繁 荣, 还 是 以 以 往 的 行 为 模 式 来 争 夺 其 霸 权 地 位 并 把 人 类 推 入 危 机 的 深 渊, 在 相 当 的 程 度 上 取 决 于 大 国 所 具 有 的 理 念 和 战 略 指 向 但 是, 建 构 新 型 大 国 关 系 的 讨 论 并 不 是 把 这 一 重 大 的 问 题 当 作 其 前 提, 而 是 把 自 国 的 发 展 利 益 当 作 立 论 的 依 据 关 于 建 构 新 型 大 国 关 系 的 讨 论 显 而 易 见 地 形 成 了 两 个 视 角 : 其 一 是, 现 在 无 论 是 美 国 的 学 者 还 是 中 国 的 学 者 都 基 于 如 何 摆 脱 崛 起 大 国 和 守 成 大 国 之 间 对 抗 的 困 境 4) 的 角 度 关 注 建 构 中 美 新 型 大 国 关 系 之 问 题 这 种 理 解 基 于 大 国 的 崛 起 必 定 伴 随 武 力 来 实 现 权 力 转 移 之 历 史 的 经 验, 于 是 争 霸 必 伤 及 自 国 的 角 度 来 谈 论 新 型 大 国 关 系 ; 其 二 是, 以 自 国 的 利 益 为 基 点 来 讨 论 争 霸 之 路 是 否 行 得 通 的 问 题 比 如, 中 国 的 很 多 学 者 当 论 证 霸 权 之 路 不 适 合 于 中 国 这 一 论 点 时, 常 常 以 中 国 的 发 展 仍 然 需 要 稳 定 而 合 作 的 周 边 环 境 为 依 据 这 种 理 解 显 然 把 稳 定 和 和 平 锁 定 在 自 国 利 益 之 上, 而 且, 由 此 引 伸 出 的 中 国 决 不 走 国 强 必 霸 之 路 5) 的 结 论 显 然 缺 乏 逻 辑 性 我 并 不 是 在 指 责 这 种 视 角 的 错 误, 因 为, 这 些 视 角 至 少 有 合 乎 情 理 的 一 面 我 想 说 明 的 是, 在 这 些 议 论 中 几 乎 找 不 出 以 类 本 位 的 思 考 方 式 来 进 行 论 证 的 观 点, 这 就 使 所 谓 建 构 新 型 大 国 关 系 之 理 论 显 得 苍 白 无 力 我 们 所 处 的 时 代 显 然 与 以 往 的 任 何 一 个 时 代 有 着 本 质 的 区 别, 如 果 我 们 不 对 潜 藏 在 人 类 繁 荣 的 深 层 结 构 里 的 巨 大 的 危 机 因 素, 那 么, 地 球 有 可 能 处 于 失 控 状 态 正 因 如 此, 似 乎 掌 控 人 类 命 运 的 大 国 应 当 明 确 地 认 识 当 代 世 界 不 同 于 以 往 任 何 历 史 时 期 的 特 点 和 趋 势, 即 要 正 确 地 为 自 国 在 世 界 体 系 之 中 的 地 位 进 行 定 位 事 实 上, 在 这 一 问 题 上 已 有 很 多 学 者 关 注 到 世 界 的 趋 势 性 变 化, 由 此 得 出 霸 权 之 路 走 不 同 的 结 论 如 4) 王 缉 思 : 破 解 大 国 冲 突 的 历 史 宿 命 关 于 中 美 构 建 新 型 大 国 关 系 的 思 考 北 京 论 坛 2013 论 文 摘 要 集 构 建 新 型 大 国 关 系 : 机 遇 与 挑 战 5) 吴 乐 珺 : 亲 仁 善 邻 共 同 发 展 人 民 日 报??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59
威 廉 W. 凯 勒 认 为, 到 二 次 世 界 大 战 为 止 大 规 模 武 装 冲 突 是 大 国 崛 起 更 为 常 见 的 形 态, 而 当 今 世 界 有 两 个 因 素 有 效 地 限 制 了 大 规 模 武 装 冲 突 的 爆 发, 这 就 是 核 威 慑 和 全 球 经 济 一 体 化 6), 这 一 深 刻 的 变 化 正 在 限 制 大 国 的 行 为 但 是, 这 种 理 解 忽 略 了 极 为 重 要 的 另 一 个 变 化 趋 势, 这 就 是 世 界 行 为 范 式 的 本 质 性 变 化, 正 由 于 此, 很 多 议 论 并 没 有 把 握 大 国 正 确 定 位 的 客 观 的 依 据 如 果 说 战 略 性 恐 怖 平 衡 限 制 了 大 国 间 无 胜 负 的 大 规 模 战 争 经 济 的 一 体 化 使 各 个 大 国 成 了 利 益 的 共 同 体 等 等 的 因 素 促 使 大 国 基 于 自 国 的 利 益 而 进 行 更 为 理 性 的 选 择, 那 么, 世 界 行 为 范 式 的 变 化 正 在 促 使 大 国 以 类 本 位 的 角 度 思 考 和 选 择 其 行 为 的 合 理 性, 而 这 种 行 为 范 式 的 变 化 说 明, 大 国 为 所 欲 为 地 支 配 世 界 的 历 史 正 在 终 结 关 于 恐 怖 平 衡 限 制 大 国 的 行 为 经 济 一 体 化 形 成 大 国 间 利 益 共 同 体 等 等 的 问 题 已 有 很 多 论 述, 这 里 仅 就 世 界 行 为 范 式 的 变 化 是 如 何 改 变 大 国 的 行 为 并 使 世 界 形 成 新 的 演 化 趋 势 的 问 题 谈 谈 我 本 人 的 想 法 我 曾 经 在 国 际 行 为 范 式 的 演 变 与 当 代 国 际 关 系 7) 一 文 中 较 详 细 地 论 证 了 当 代 国 际 行 为 范 式 形 成 的 过 程 和 特 点, 以 此 为 基 点 论 证 了 当 代 国 际 关 系 演 化 的 趋 势, 这 里 概 述 其 结 论 : 一 是, 大 国 的 行 为 范 式 已 由 古 代 的 吞 并 扩 张 型 和 近 代 的 殖 民 掠 夺 型 演 化 为 控 制 合 作 型, 这 种 演 化 证 明 人 类 社 会 已 呈 现 向 世 界 体 系 演 化 的 趋 势 ; 二 是, 世 界 正 在 形 成 广 泛 的 以 主 权 观 念 为 核 心 且 以 民 主 平 等 法 规 正 义 公 正 共 赢 等 理 念 为 其 结 构 的 新 的 理 念 体 系 这 一 理 念 体 系 的 形 成 极 大 地 改 变 着 大 国 行 为 的 选 择 过 程, 或 者 说, 以 往 的 霸 权 国 家 为 所 欲 为 的 历 史 事 实 上 已 经 终 结 ; 三 是, 面 对 这 一 时 代 性 的 变 化, 大 国 应 当 进 行 正 确 的 定 位, 这 就 是, 应 当 以 新 的 理 念 体 系 来 引 领 这 个 世 界, 即 要 变 成 主 导 型 大 国, 唯 有 如 此 它 们 才 有 可 能 成 为 所 谓 负 责 任 大 国 而 其 核 心 就 是 要 确 立 类 本 位 的 意 识, 即 其 选 择 行 为 的 依 据 是 解 决 人 类 面 临 的 全 球 性 问 题 和 共 同 繁 荣 大 国 能 否 形 成 在 人 类 共 同 利 益 的 基 础 上 实 现 自 国 的 利 益 的 行 为 模 式, 这 将 是 衡 量 大 国 真 正 成 为 负 责 任 大 国 的 一 个 重 要 标 志 或 许 我 对 这 一 问 题 的 理 解 更 多 地 倾 向 于 理 想 主 义, 但 这 种 理 解 事 实 上 更 多 地 考 虑 的 是 世 界 所 面 临 的 困 境 与 演 化 路 径 的 现 实 问 题 我 所 以 认 为 世 界 已 进 入 了 抉 择 的 分 岔 点 是 因 为, 我 们 所 居 住 的 地 球 已 容 纳 不 了 大 国 间 无 休 的 争 霸, 大 国 的 理 智 的 选 择 就 是 变 成 引 领 这 个 世 界 走 向 共 同 繁 荣 的 主 导 型 大 国 6) 威 廉 W. 凯 勒 : 中 国 的 和 平 崛 起 路 线 图 或 者 是 幻 想? 中 国 的 崛 起 与 亚 洲 的 势 力 均 衡 上 海 人 民 出 版 社 2009 7) 金 强 一 : 国 际 行 为 范 式 的 演 变 与 当 代 国 际 关 系, 东 疆 学 刊 2013 年 第 2 期 60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所 谓 大 国 的 定 位 无 非 是 确 定 其 在 国 际 体 系 之 中 的 角 色 和 地 位 影 响 大 国 定 位 问 题 的 因 素 有 国 家 的 实 力 国 际 社 会 发 展 的 总 的 趋 势 国 家 在 国 际 社 会 中 的 作 用 国 际 社 会 对 该 国 的 评 价 对 自 国 力 量 及 作 用 的 自 我 评 估 等 在 通 常 的 情 况 下, 一 个 国 家 确 定 其 在 国 际 体 系 中 的 地 位 和 作 用 的 重 要 的 变 量 是 自 我 评 估, 这 是 由 于, 自 我 评 估 是 综 合 其 它 因 素 并 确 定 其 战 略 体 系 的 核 心 依 据 通 过 自 我 评 估, 国 家 战 略 决 策 系 统 将 确 定 自 国 的 实 力 和 在 国 际 体 系 中 的 地 位 和 作 用, 进 而 建 构 其 战 略 体 系 及 其 目 标 而 由 自 我 评 估 所 形 成 的 战 略 目 标 及 其 指 向 事 实 上 表 明 该 国 在 国 际 体 系 中 希 望 得 到 的 地 位, 由 此 完 成 所 谓 在 国 际 体 系 中 定 位 的 逻 辑 过 程 这 里 有 一 个 极 为 重 要 的 问 题, 即 这 一 定 位 过 程 所 形 成 的 战 略 目 标 的 性 质 和 方 向 将 对 国 际 体 系 产 生 极 大 的 影 响, 甚 至 它 可 以 重 组 世 界 格 局 比 如, 希 特 勒 发 动 第 二 次 世 界 大 战 可 视 为 德 国 错 误 地 自 我 定 位 的 结 果, 而 这 一 定 位 给 世 界 格 局 产 生 了 深 远 的 影 响 现 在 我 们 谈 中 国 和 美 国 在 国 际 体 系 之 中 的 定 位 问 题 事 实 上 也 将 对 未 来 的 世 界 格 局 将 产 生 深 远 的 影 响 如 果 这 些 国 家 进 行 自 我 定 位 的 主 要 依 据 是 自 国 的 利 益, 那 么, 其 结 果 只 能 是 与 其 它 的 战 略 对 手 进 行 博 弈, 以 确 立 其 霸 权 地 位, 这 就 会 出 现 历 史 上 争 霸 模 式 的 翻 版, 世 界 也 就 不 会 有 安 稳 的 日 子 ; 而 如 果 这 一 定 位 的 主 要 依 据 是 人 类 共 同 利 益 基 础 上 的 和 平 发 展, 那 么, 其 结 果 只 能 是 构 筑 和 平 发 展 的 共 赢 模 式, 由 此, 这 些 国 家 有 可 能 成 为 主 导 新 的 历 史 时 期 的 强 大 力 量 正 因 如 此, 如 同 冷 战 时 期 的 美 国 和 苏 联 那 样, 中 美 两 国 能 够 成 为 主 导 世 界 秩 序 和 格 局 的 两 个 极 的 话, 这 两 个 国 家 如 何 定 位 将 对 世 界 格 局 的 演 化 产 生 决 定 性 的 影 响 现 在, 我 们 应 当 确 定 议 论 的 前 提, 那 就 是 中 美 正 在 进 行 战 略 性 博 弈 这 一 事 实 从 美 国 的 角 度 谈, 它 在 短 期 内 无 法 摆 脱 霸 权 历 史 的 惯 性, 也 就 不 可 能 容 忍 其 它 挑 战 势 力 的 崛 起, 这 就 形 成 了 对 全 球 实 施 战 略 性 控 制 的 战 略 体 系 近 两 年 来, 美 国 借 美 韩 美 日 同 盟 得 以 强 化 之 势 加 快 了 实 施 重 返 亚 太 战 略 的 步 伐 尽 管 美 国 声 称 这 一 战 略 举 措 并 不 针 对 中 国, 但 是, 不 会 有 战 略 家 们 愚 蠢 到 了 天 真 地 相 信 美 国 的 这 些 表 白 倒 是 日 本 真 正 读 懂 了 美 国 的 用 意, 公 开 声 称 加 入 遏 制 中 国 的 行 列 这 就 是 说, 美 国 的 重 返 亚 太 战 略 事 实 上 摆 开 了 遏 制 包 括 中 国 在 内 的 未 来 挑 战 势 力 的 架 势 客 观 地 说, 自 冷 战 以 来 美 国 的 霸 权 治 理 在 相 当 的 程 度 上 考 虑 到 了 类 层 面 的 问 题, 这 是 美 国 所 起 的 积 极 的 作 用, 但 在 能 否 维 持 其 霸 权 地 位 的 问 题 上 美 国 几 乎 把 自 国 的 利 益 视 为 唯 一 的 准 则, 这 就 产 生 出 一 系 列 的 问 题 而 从 中 国 的 角 度 谈, 其 改 革 开 放 以 来 所 取 得 的 惊 人 的 成 就 是 在 短 短 的 30 余 年 的 时 间 里 实 现 的, 因 而, 中 国 的 发 展 并 没 有 深 厚 的 历 史 积 淀, 并 没 有 达 到 与 美 国 一 比 高 低 的 程 度, 因 此, 在 中 美 正 在 进 行 的 战 略 性 博 弈 中 中 国 常 常 处 于 守 势 于 是,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61
很 多 高 明 的 战 略 家 们 构 思 与 美 博 弈 的 路 径, 这 就 是 避 开 与 美 国 的 正 面 冲 突, 确 保 自 身 的 发 展 所 需 的 和 平 环 境, 用 一 句 话 来 概 括, 这 就 是 韬 光 养 晦 但 是, 这 里 有 一 个 必 须 回 答 的 逻 辑 问 题, 即 现 在 处 于 劣 势 的 中 国 为 了 自 身 的 发 展 需 要 和 平 环 境, 而 发 展 到 足 够 强 大 时 中 国 会 不 会 在 世 界 体 系 中 争 霸 权 地 位? 更 直 接 一 些 说, 中 国 从 其 理 念 体 系 上 是 否 具 有 力 量 不 足 时 韬 光 养 晦 而 力 量 强 大 时 争 霸 的 可 能 的 倾 向? 当 然, 现 在 有 一 些 学 者 和 政 界 人 士 宣 称 中 国 不 会 走 霸 权 之 路, 但 如 果 这 种 表 白 并 不 基 于 类 本 位 的 意 识, 也 就 有 可 能 变 成 一 个 空 洞 的 和 不 能 令 人 信 服 的 政 治 口 号 很 显 然, 现 在 正 在 展 开 的 中 美 战 略 博 弈 的 战 略 框 架 内 我 们 还 不 能 清 晰 地 看 出 出 自 类 本 位 意 识 的 战 略 思 路 如 果 中 美 两 国 正 确 地 理 解 人 类 所 面 临 的 诸 多 现 实 的 问 题, 并 形 成 以 类 本 位 为 基 点 的 战 略 框 架, 那 么, 建 构 中 美 新 型 大 国 关 系 的 构 想 就 会 具 备 非 常 坚 实 的 基 础, 相 反 地, 如 果 中 美 两 国 只 着 眼 于 各 自 的 眼 前 利 益, 那 么, 建 构 新 型 大 国 关 系 的 构 想 有 可 能 流 于 空 想 现 实 地 说, 中 美 两 国 的 战 略 事 实 上 更 多 地 出 自 自 国 的 利 益, 而 较 少 关 注 类 层 面 的 问 题, 于 是 就 出 现 了 美 国 更 关 注 如 何 遏 制 中 国 而 中 国 更 关 注 如 何 实 现 和 平 崛 起 的 博 弈 状 态 当 然, 任 何 一 个 国 家 制 定 其 战 略 体 系 的 出 发 点 在 于 自 国 的 利 益, 这 似 乎 是 无 可 非 议 的 自 古 以 来 的 铁 的 定 理, 但 是, 就 中 美 这 样 的 大 国 来 讲, 问 题 并 不 出 自 这 些 国 家 是 否 关 注 自 国 的 利 益, 而 是 出 在 是 否 把 实 现 自 国 利 益 与 人 类 的 共 有 利 益 有 机 地 结 合 了 起 来, 即 在 实 现 人 类 共 有 利 益 的 过 程 中 实 现 自 国 的 发 展 利 益 如 果 明 确 地 理 解 这 一 问 题, 那 么, 中 美 两 国 就 有 可 能 与 其 它 的 国 家 一 道 建 构 和 平 共 赢 共 荣 的 世 界 体 系, 也 就 有 可 能 以 主 导 型 大 国 为 自 国 在 国 际 体 系 中 的 地 位 和 作 用 定 位 我 并 不 乐 观 地 评 价 中 美 正 在 进 行 的 战 略 博 弈, 遏 制 与 反 遏 制 的 博 弈 状 态 有 可 能 延 续 相 当 长 的 历 史 过 程, 而 且, 很 难 预 测 这 种 博 弈 状 态 所 能 导 致 的 后 果 这 是 因 为, 这 两 个 国 家 的 战 略 在 短 期 内 不 可 能 一 改 以 往 的 行 为 模 式 而 更 深 切 地 关 注 人 类 的 命 运 但 是, 如 果 这 两 个 国 家 的 决 策 具 有 充 分 的 理 性, 或 许 不 致 于 出 现 危 及 人 类 生 存 的 情 况 那 么, 有 必 要 一 步 一 步 改 变 以 往 的 行 为 范 式, 由 此 建 构 全 新 的 国 家 间 的 行 为 范 式 就 中 美 关 系 而 言, 当 面 的 问 题 是 如 何 对 待 中 国 崛 起 的 问 题 现 在 中 国 的 很 多 学 者 讨 论 中 国 如 何 和 平 崛 起 的 问 题, 其 实 这 不 是 中 国 单 方 面 能 够 实 现 得 了 的 和 平 崛 起 包 含 一 个 双 向 进 程 : 崛 起 国 使 其 自 身 适 应 国 际 社 会 规 则 与 结 构 ; 与 此 同 时, 其 他 大 国 以 适 应 新 的 权 力 与 身 份 分 布 状 况 的 方 式 调 整 这 些 规 则 和 结 构 中 的 一 部 分 8) 也 就 是 说, 中 国 能 否 和 平 崛 起 是 一 个 关 系 到 中 国 的 战 略 指 向 和 其 它 国 家 能 否 容 纳 中 国 的 崛 起 的 双 向 的 问 题 一 方 面, 美 国 及 周 边 国 家 能 否 平 静 地 接 受 中 国 的 崛 起 并 与 中 国 形 成 一 个 共 赢 的 体 系 结 构 是 问 题 的 关 8) 巴 里 布 赞 : 中 国 能 和 平 崛 起 吗? 中 国 崛 起 与 世 界 秩 序 第 33-34 页 社 会 科 学 文 献 出 版 社 2011 年 62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键 这 种 状 态 需 要 美 国 等 国 家 抛 弃 以 往 的 霸 权 模 式, 建 构 全 新 的 行 为 范 式 ; 另 一 方 面, 中 国 是 否 从 主 观 上 确 立 类 本 位 的 思 考 方 式 并 以 更 为 积 极 的 姿 态 与 国 际 社 会 一 道 建 构 崭 新 的 世 界 体 系 和 秩 序 也 是 极 为 重 要 的 一 个 问 题 从 中 美 两 国 在 国 际 体 系 中 自 我 定 位 的 角 度 谈, 从 现 在 起 将 进 入 一 个 选 择 的 分 岔 点, 如 同 在 前 面 所 叙 述 的 那 样, 这 一 分 岔 点 的 选 择 将 具 有 决 定 性 意 味 以 美 欧 债 务 危 机 美 欧 关 系 重 塑 和 新 型 大 国 的 崛 起 与 联 合 这 两 个 并 存 的 进 程 为 标 志, 世 界 可 能 正 在 迎 来 新 的 国 际 规 则 制 定 期 9) 换 言 之, 这 一 分 岔 点 上 世 界 要 选 择 新 的 能 够 使 所 有 的 地 球 的 成 员 都 能 接 受 的 规 则 制 定 新 的 规 则 可 能 相 当 复 杂, 但 有 一 点 应 当 清 楚, 这 种 规 则 应 以 人 类 的 共 同 利 益 作 为 其 最 为 核 心 的 议 题 应 当 说, 围 绕 全 球 问 题 正 在 出 现 各 国 合 作 的 政 治 群 体 化 趋 势 和 机 制, 如 新 兴 大 国 气 候 政 治 群 体 化 10) 就 是 其 中 的 一 个 这 也 是 制 定 新 的 规 则 的 一 种 努 力, 而 在 制 定 这 种 规 则 时, 大 国 应 当 成 为 引 领 世 界 的 主 导 者, 即 要 成 为 全 球 治 理 世 界 体 系 的 建 构 的 引 领 者, 也 要 成 为 全 球 民 主 化 和 社 会 化 的 倡 导 者 这 也 是 中 美 两 国 自 我 定 位 的 方 向 从 全 球 的 经 济 和 政 治 的 结 构 上 看, 东 北 亚 是 最 具 吸 引 力 而 又 最 具 危 险 性 的 区 域, 也 就 成 了 大 国 间 战 略 性 大 博 弈 的 重 要 场 所 从 经 济 上 看, 东 北 亚 已 经 形 成 了 资 本 技 术 资 源 人 口 密 集 的 优 势, 成 为 最 具 发 展 潜 力 的 区 域 ; 而 从 政 治 上 看, 东 北 亚 又 是 冷 战 结 构 尚 存 且 军 事 大 国 林 立 的 区 域, 也 就 成 了 最 具 危 险 的 区 域 正 由 于 东 北 亚 区 域 所 具 有 的 两 重 特 性, 引 发 大 国 之 间 的 战 略 博 弈 是 非 常 自 然 的 事 情 我 在 前 面 已 经 阐 述, 人 类 已 进 入 了 选 择 的 分 岔 点, 而 这 一 分 岔 点 有 可 能 正 是 东 北 亚 这 是 由 于, 如 果 我 们 在 东 北 亚 区 域 建 构 一 个 和 平 的 国 际 性 经 济 体 并 为 世 界 的 发 展 提 供 一 个 新 的 动 力 源, 那 么, 人 类 有 可 能 向 建 构 新 的 世 界 秩 序 和 世 界 体 系 迈 进 一 大 步, 而 如 果 这 一 区 域 出 现 大 规 模 的 冲 突, 将 无 法 预 测 人 类 的 命 运 这 也 就 是 说, 未 来 全 球 的 走 向 有 可 能 取 决 于 东 北 亚 的 状 态, 或 者 说, 东 北 亚 将 是 决 定 未 来 世 界 演 化 的 方 向 的 重 点 区 域 正 由 于 此, 在 这 一 区 域 正 在 进 行 的 大 国 间 的 博 弈 具 有 了 世 纪 大 决 战 的 意 味 在 东 北 亚 区 域, 美 国 和 中 国 所 进 行 的 战 略 博 弈 已 成 了 世 界 瞩 目 的 关 注 点, 而 这 两 个 国 家 9) 庞 中 英 : 全 球 治 理 : 中 国 的 战 略 应 对 国 际 问 题 研 究 2013 年 第 4 期 10) 赵 斌 : 新 兴 大 国 气 候 政 治 群 体 化 的 形 成 机 制 当 代 亚 太 2013 年 第 5 期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63
的 博 弈 具 有 霸 权 国 家 与 崛 起 的 新 兴 势 力 相 互 对 峙 的 性 质 中 国 的 崛 起 或 许 是 引 发 这 一 战 略 博 弈 的 原 因, 但 至 少 从 表 面 上 看, 美 国 的 重 返 亚 太 战 略 事 实 上 拉 开 了 这 一 战 略 大 博 弈 的 序 幕 从 全 球 政 治 结 构 上 看, 东 北 亚 正 在 成 为 新 旧 势 力 遭 遇 并 争 夺 主 导 地 位 的 主 战 场 东 北 亚 之 所 以 成 为 大 国 间 战 略 博 弈 的 主 战 场 有 两 个 方 面 的 原 因 : 一 是, 东 北 亚 区 域 特 定 的 政 治 结 构 给 大 国 的 介 入 提 供 了 理 由 当 今 世 界 已 形 成 了 被 国 际 社 会 广 泛 接 受 的 无 理 由 不 能 介 入 的 行 为 准 则, 由 此 美 国 等 周 边 国 家 广 泛 介 入 东 北 亚 事 务 就 需 要 足 够 的 理 由, 而 规 定 东 北 亚 冷 战 结 构 的 朝 鲜 半 岛 问 题 和 日 本 问 题 等 给 美 国 以 广 泛 介 入 的 理 由 ; 二 是, 东 北 亚 区 域 各 大 国 的 战 略 目 标 与 指 向 发 生 了 冲 突 美 国 的 维 持 霸 权 地 位 的 战 略 指 向 和 中 国 的 发 展 并 崛 起 的 战 略 指 向 本 质 上 具 有 冲 突 的 性 质 由 于 这 种 战 略 指 向 的 冲 突, 美 国 和 中 国 事 实 上 进 行 着 遏 制 与 反 遏 制 的 战 略 博 弈, 而 东 北 亚 的 特 定 的 政 治 结 构 为 这 一 战 略 博 弈 提 供 了 平 台 美 国 正 在 利 用 朝 鲜 半 岛 的 分 裂 状 态 和 局 势 挤 压 中 国 的 发 展 空 间, 并 利 用 日 本 和 韩 国 等 同 盟 国 来 牵 制 中 国 而 从 另 一 方 面 看, 日 本 的 右 倾 化 倾 向 有 可 能 形 成 东 北 亚 区 域 的 一 个 新 的 热 点, 如 果 日 本 继 续 激 化 与 周 边 国 家 的 关 系, 日 本 也 有 可 能 成 为 东 北 亚 区 域 冲 突 的 一 个 策 源 地 由 于 在 美 国 与 中 国 的 战 略 博 弈 中 美 国 显 然 占 据 了 主 导 权, 所 以 东 北 亚 的 局 势 更 多 地 左 右 于 美 国 的 战 略 美 国 的 重 返 亚 洲 战 略 并 不 简 单 地 是 在 亚 洲 扩 张 其 军 事 存 在, 从 其 战 略 目 标 上 美 国 更 着 眼 于 防 止 新 崛 起 的 中 国 在 亚 洲 区 域 建 构 自 己 的 某 种 秩 序 并 尽 可 能 地 挤 压 中 国 等 挑 战 势 力 的 战 略 空 间, 这 也 就 是 所 谓 遏 制 中 国 的 内 含 但 是, 美 国 在 这 一 问 题 也 深 感 力 不 从 心, 由 于 此, 美 国 希 望 日 本 韩 国 澳 大 利 亚 等 盟 国 投 入 更 多 的 力 量 来 共 同 遏 制 中 国 美 国 的 一 些 政 治 家 们 已 经 公 开 表 示, 支 持 这 些 盟 国 在 遏 制 中 国 的 问 题 上 扮 演 更 为 积 极 的 角 色 11) 美 国 的 这 种 战 略 举 动 无 疑 激 活 日 本 右 翼 政 治 家 们 的 政 治 野 心 正 由 于 美 国 给 日 本 打 气, 安 倍 在 接 受 美 国 华 尔 街 日 报 的 专 访 时 称, 外 界 期 待 日 本 担 起 更 大 的 角 色 来 抗 衡 中 国 影 响 力 安 倍 的 这 种 直 指 中 国 的 言 论 自 然 引 发 中 国 的 警 戒 于 是, 有 些 中 国 的 学 者 日 本 的 军 事 大 国 化 倾 向 视 为 未 来 十 年 内 亚 洲 区 域 最 大 的 安 全 问 题 12) 就 目 前 东 北 亚 区 域 所 出 现 的 政 治 结 构 的 变 动 可 以 提 出 这 样 一 个 问 题 : 如 果 说 东 北 亚 是 最 具 发 展 潜 力 的 区 域, 那 么, 这 一 区 域 内 的 各 国 为 什 么 不 能 全 身 心 地 投 入 到 国 际 合 作 事 宜, 反 面 形 成 了 多 角 警 戒 态 势? 我 认 为, 目 前 东 北 亚 区 域 所 有 问 题 的 症 结 在 于 朝 鲜 半 岛 正 由 于 朝 鲜 半 岛 所 具 有 的 冷 战 结 构, 各 国 形 成 了 相 互 冲 突 的 战 略 指 向, 也 出 现 了 足 以 改 变 东 北 亚 格 局 的 各 种 问 题 比 如, 美 国 的 重 返 亚 太 战 略 的 重 要 依 托 就 是 朝 鲜 半 岛 问 题 朝 鲜 半 岛 的 分 裂 朝 鲜 的 核 问 题 朝 鲜 半 岛 南 北 对 峙 等 等 的 问 题 不 仅 为 美 国 11) 美 议 员 力 推 亚 洲 盟 友 遏 制 中 国 环 球 时 报 2013 年 10 月 31 日 12) 刘 江 永 : 东 北 亚 局 势 面 临 的 机 遇 和 挑 战 成 均 中 国 研 究 所 中 国 观 察 2013 年 第 四 期 64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提 供 了 广 泛 介 入 东 北 亚 区 域 事 务 的 理 由, 而 且 也 形 成 了 美 国 遏 制 中 国 等 新 兴 崛 起 势 力 的 战 略 性 支 撑 点 尽 管 美 国 在 包 括 朝 鲜 核 问 题 在 内 的 朝 鲜 半 岛 问 题 上 起 着 相 当 大 的 积 极 作 用, 但 美 国 正 在 利 用 朝 鲜 半 岛 的 局 势 也 是 不 争 的 事 实 又 如, 日 本 也 正 在 利 用 朝 鲜 半 岛 问 题 来 促 进 其 正 常 国 家 化 战 略 近 二 十 多 年 来, 日 本 的 右 倾 势 力 实 现 正 常 国 家 战 略 的 努 力 一 直 以 朝 鲜 威 胁 论 为 借 口, 而 且 以 历 史 问 题 为 切 入 点 把 矛 头 逐 步 扩 大 到 韩 国 和 中 国, 形 成 了 其 自 陷 困 境 的 战 略 指 向 我 们 可 以 以 反 证 法 来 说 明 美 国 和 日 本 的 这 些 战 略 与 朝 鲜 半 岛 问 题 有 直 接 的 关 联 为 了 说 明 问 题, 我 们 可 以 假 设 这 样 一 种 状 态, 这 就 是 朝 鲜 半 岛 处 在 和 平 统 一 的 状 态 此 时, 美 国 事 实 上 丧 失 其 广 泛 介 入 东 北 亚 区 域 事 务 的 理 由 和 战 略 支 撑 点, 进 而 很 难 实 施 以 遏 制 中 国 等 国 家 为 目 标 的 所 谓 重 返 亚 太 战 略 届 时, 美 国 会 遇 到 与 美 韩 同 盟 及 美 日 同 盟 的 延 续 直 接 相 关 的 问 题, 即 美 国 在 东 亚 区 域 的 同 盟 体 系 将 失 去 重 要 的 理 由 根 基 这 也 就 是 说, 对 于 美 国 来 讲, 朝 鲜 半 岛 问 题 是 个 问 题, 但 朝 鲜 半 岛 全 然 没 有 问 题 也 是 个 问 题 而 日 本 的 右 倾 化 也 与 朝 鲜 半 岛 的 状 态 相 关 如 果 朝 鲜 半 岛 实 现 和 平 统 一, 日 本 将 失 去 推 进 其 右 倾 化 的 周 边 环 境, 如 果 此 时 日 本 为 其 右 倾 化 寻 找 借 口 的 话, 那 只 能 是 中 国 威 胁 论, 而 当 矛 头 直 指 中 国 时 将 对 日 本 也 产 生 极 大 的 负 面 效 果, 这 是 因 为, 如 果 朝 鲜 半 岛 和 平 统 一, 美 国 的 战 略 体 系 就 面 临 重 新 改 的 问 题, 此 时 美 国 不 可 能 为 日 本 的 右 倾 化 提 供 更 多 的 支 持 如 果 没 有 美 国 的 撑 腰, 日 本 不 可 能 选 择 四 面 楚 歌 的 自 杀 式 战 略 更 为 可 能 状 态 是, 朝 鲜 半 岛 和 平 统 一 将 会 导 致 中 国 俄 罗 斯 朝 鲜 半 岛 之 间 的 广 泛 的 经 济 合 作, 美 国 和 日 本 不 可 能 放 弃 这 一 块 肥 肉, 届 时 美 国 和 日 本 将 一 改 现 在 的 战 略 而 加 入 这 一 经 济 合 作 的 过 程 并 争 夺 这 一 过 程 的 主 导 权 尽 管 这 是 一 个 假 设, 但 朝 鲜 半 岛 问 题 的 解 决 将 会 出 现 的 逻 辑 过 程 就 是 如 此 如 果 以 上 述 的 视 角 分 析 在 东 北 亚 区 域 正 在 进 行 的 大 国 间 的 战 略 博 弈 和 政 治 格 局 的 重 组 等 问 题 就 会 发 现, 这 些 问 题 均 与 朝 鲜 半 岛 问 题 相 关, 因 为, 朝 鲜 半 岛 问 题 事 实 上 规 定 着 周 边 国 家 的 战 略 利 益 的 结 构, 也 规 定 着 它 们 的 战 略 指 向 从 这 种 意 义 上 可 以 说, 朝 鲜 半 岛 问 题 正 在 规 定 着 东 北 亚 格 局 演 化 的 方 向, 进 而, 对 世 界 发 展 的 方 向 产 生 非 常 大 的 影 响 换 言 之, 目 前 的 朝 鲜 半 岛 对 于 世 界 未 来 的 方 向 性 选 择 上 扮 演 非 常 重 要 的 角 色, 其 问 题 的 解 决 与 否 将 会 带 来 完 全 相 反 的 世 界 之 两 个 图 景 而 对 于 中 美 两 国 建 构 新 型 大 国 关 系 而 言, 朝 鲜 半 岛 的 重 要 意 义 更 为 凸 显 如 果 朝 鲜 半 岛 问 题 得 以 解 决, 所 产 生 的 极 大 的 波 及 效 果 将 是 东 北 亚 区 域 各 国 的 战 略 关 注 点 的 转 移, 即 由 原 来 的 冲 突 的 战 略 指 向 转 移 到 合 作 的 战 略 指 向, 这 就 会 形 成 一 个 新 的 巨 大 的 世 界 经 济 发 展 的 体 系 和 动 力 源 这 种 状 态 将 会 给 中 美 两 国 以 建 构 新 型 大 国 关 系 的 现 实 的 前 提 由 此 我 们 也 可 以 得 出 一 个 极 为 重 要 的 结 论, 这 就 是 朝 鲜 半 岛 问 题 不 仅 将 考 验 中 国 和 美 国 等 大 国 的 战 略 智 慧, 而 且 也 将 考 验 人 类 的 战 略 智 慧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65
中 美 新 型 大 国 关 系 和 东 北 亚 区 域 秩 序 ( 摘 要 ) 金 强 一 ( 延 边 大 学 ) 美 国 是 自 第 一 次 世 界 大 战 以 来 一 直 主 宰 世 界 的 唯 一 的 霸 权 国 家, 而 中 国 却 是 被 视 为 在 不 远 的 将 来 能 够 挑 战 美 国 霸 权 地 位 的 新 兴 崛 起 势 力 很 多 人 基 于 历 史 的 经 验 对 这 两 个 世 界 级 大 国 将 要 进 行 的 战 略 性 大 博 弈 予 以 极 大 的 关 切 近 来 中 国 的 习 近 平 主 席 提 出 的 建 构 中 美 新 型 大 国 关 系 的 政 策 性 构 想 建 构 新 型 大 国 的 设 想 似 乎 早 已 提 出, 而 习 近 平 主 席 提 出 的 这 一 思 想 之 所 以 具 有 非 常 大 的 现 实 意 义, 就 在 于 形 成 了 中 美 两 国 的 初 步 共 识, 这 的 确 是 鼓 舞 人 心 的 事 情 但 是, 认 真 地 思 索 目 前 在 国 际 上 热 议 的 新 型 大 国 关 系 之 讨 论 就 会 发 现, 这 一 讨 论 并 没 有 摆 脱 以 往 思 维 模 式 的 框 架, 这 就 是 其 立 足 点 常 常 是 自 国 的 利 益, 或 者 说, 并 没 有 摆 脱 现 实 主 义 理 论 之 框 架 这 样, 所 谓 建 构 新 型 大 国 的 设 想 本 身 失 去 了 一 个 坚 实 的 基 础, 即 缺 乏 类 本 位 的 思 考 自 冷 战 结 束 之 后, 人 类 事 实 上 面 临 的 是 有 别 与 任 何 历 史 阶 段 的 新 的 历 史 时 期 人 类 不 仅 享 受 科 学 技 术 和 和 平 给 与 他 们 的 幸 福, 但 同 时 也 面 临 了 足 以 使 文 明 体 系 坍 塌 的 危 机 因 素 人 类 所 开 发 的 足 以 使 其 毁 灭 几 次 的 大 量 杀 伤 性 武 器 的 危 险 性 自 不 必 说, 所 面 临 的 人 口 粮 食 能 源 资 源 环 境 等 方 面 的 危 机 因 素 也 足 以 把 人 类 社 会 推 入 无 法 自 拔 的 生 存 危 机 之 中 这 就 是 说, 现 在 人 类 所 面 临 的 问 题 与 历 史 上 所 面 临 过 的 任 何 问 题 都 有 性 质 上 的 区 别, 也 就 需 要 从 人 类 生 存 的 角 度 思 考 现 在 的 危 机 因 素 本 质 上 讲, 这 是 人 类 进 行 命 运 之 选 择 的 分 岔 点, 而 在 这 一 分 岔 点 上 的 选 择 中 所 谓 的 大 国 起 着 至 关 重 要 的 作 用 也 就 是 说, 讨 论 建 构 新 型 大 国 关 系 的 逻 辑 起 点 应 当 是 人 类 的 命 运, 或 者 说, 只 有 建 构 类 本 位 的 思 考 方 式, 才 有 可 能 建 构 积 极 的 大 国 之 间 的 新 型 关 系 中 国 能 否 和 平 崛 起 是 一 个 关 系 到 中 国 的 战 略 指 向 和 其 它 国 家 能 否 容 纳 中 国 的 崛 起 的 双 向 的 问 题 一 方 面, 美 国 及 周 边 国 家 能 否 平 静 地 接 受 中 国 的 崛 起 并 与 中 国 形 成 一 个 共 赢 的 体 系 结 构 是 问 题 的 关 键 这 种 状 态 需 要 美 国 等 国 家 抛 弃 以 往 的 霸 权 模 式, 建 构 全 新 的 行 为 范 式 ; 另 一 方 面, 中 国 是 否 从 主 观 上 确 立 类 本 位 的 思 考 方 式 并 以 更 为 积 极 的 姿 态 66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与 国 际 社 会 一 道 建 构 崭 新 的 世 界 体 系 和 秩 序 也 是 极 为 重 要 的 一 个 问 题 任 何 一 个 国 家 制 定 其 战 略 体 系 的 出 发 点 在 于 自 国 的 利 益, 这 似 乎 是 无 可 非 议 的 自 古 以 来 的 铁 的 定 理, 但 是, 就 中 美 这 样 的 大 国 来 讲, 问 题 并 不 出 自 这 些 国 家 是 否 关 注 自 国 的 利 益, 而 是 出 在 是 否 把 实 现 自 国 利 益 与 人 类 的 共 有 利 益 有 机 地 结 合 了 起 来, 即 在 实 现 人 类 共 有 利 益 的 过 程 中 实 现 自 国 的 发 展 利 益 如 果 明 确 地 理 解 这 一 问 题, 那 么, 中 美 两 国 就 有 可 能 与 其 它 的 国 家 一 道 建 构 和 平 共 赢 共 荣 的 世 界 体 系, 也 就 有 可 能 以 主 导 型 大 国 为 自 国 在 国 际 体 系 中 的 地 位 和 作 用 定 位 从 全 球 的 经 济 和 政 治 的 结 构 上 看, 东 北 亚 是 最 具 吸 引 力 而 又 最 具 危 险 性 的 区 域, 也 就 成 了 大 国 间 战 略 性 大 博 弈 的 重 要 场 所 从 经 济 上 看, 东 北 亚 已 经 形 成 了 资 本 技 术 资 源 人 口 密 集 的 优 势, 成 为 最 具 发 展 潜 力 的 区 域 ; 而 从 政 治 上 看, 东 北 亚 又 是 冷 战 结 构 尚 存 且 军 事 大 国 林 立 的 区 域, 也 就 成 了 最 具 危 险 的 区 域 正 由 于 东 北 亚 区 域 所 具 有 的 两 重 特 性, 引 发 大 国 之 间 的 战 略 博 弈 是 非 常 自 然 的 事 情 人 类 已 进 入 了 选 择 的 分 岔 点, 而 这 一 分 岔 点 有 可 能 正 是 东 北 亚 这 是 由 于, 如 果 我 们 在 东 北 亚 区 域 建 构 一 个 和 平 的 国 际 性 经 济 体 并 为 世 界 的 发 展 提 供 一 个 新 的 动 力 源, 那 么, 人 类 有 可 能 向 建 构 新 的 世 界 秩 序 和 世 界 体 系 迈 进 一 大 步, 而 如 果 这 一 区 域 出 现 大 规 模 的 冲 突, 将 无 法 预 测 人 类 的 命 运 这 也 就 是 说, 未 来 全 球 的 走 向 有 可 能 取 决 于 东 北 亚 的 状 态, 或 者 说, 东 北 亚 将 是 决 定 未 来 世 界 演 化 的 方 向 的 重 点 区 域 正 由 于 此, 在 这 一 区 域 正 在 进 行 的 大 国 间 的 博 弈 具 有 了 世 纪 大 决 战 的 意 味 目 前 东 北 亚 区 域 所 有 问 题 的 症 结 在 于 朝 鲜 半 岛 正 由 于 朝 鲜 半 岛 所 具 有 的 冷 战 结 构, 各 国 形 成 了 相 互 冲 突 的 战 略 指 向, 也 出 现 了 足 以 改 变 东 北 亚 格 局 的 各 种 问 题 朝 鲜 半 岛 问 题 事 实 上 规 定 着 周 边 国 家 的 战 略 利 益 的 结 构, 也 规 定 着 它 们 的 战 略 指 向 从 这 种 意 义 上 可 以 说, 朝 鲜 半 岛 问 题 正 在 规 定 着 东 北 亚 格 局 演 化 的 方 向, 进 而, 对 世 界 发 展 的 方 向 产 生 非 常 大 的 影 响 换 言 之, 目 前 的 朝 鲜 半 岛 对 于 世 界 未 来 的 方 向 性 选 择 上 扮 演 非 常 重 要 的 角 色, 其 问 题 的 解 决 与 否 将 会 带 来 完 全 相 反 的 世 界 之 两 个 图 景 而 对 于 中 美 两 国 建 构 新 型 大 国 关 系 而 言, 朝 鲜 半 岛 的 重 要 意 义 更 为 凸 显 如 果 朝 鲜 半 岛 问 题 得 以 解 决, 所 产 生 的 极 大 的 波 及 效 果 将 是 东 北 亚 区 域 各 国 的 战 略 关 注 点 的 转 移, 即 由 原 来 的 冲 突 的 战 略 指 向 转 移 到 合 作 的 战 略 指 向, 这 就 会 形 成 一 个 新 的 巨 大 的 世 界 经 济 发 展 的 体 系 和 动 力 源 这 种 状 态 将 会 给 中 美 两 国 以 建 构 新 型 大 国 关 系 的 现 实 的 前 提 由 此 我 们 也 可 以 得 出 一 个 极 为 重 要 的 结 论, 这 就 是 朝 鲜 半 岛 问 题 不 仅 将 考 验 中 国 和 美 国 等 大 国 的 战 略 智 慧, 而 且 也 将 考 验 人 类 的 战 略 智 慧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67
중미 신형대국관계와 동북아 지역질서 (요약) 진창이 ( 金 强 一, 연변대) 미국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에서 유일한 패권국가로 부상하였고, 중국도 머지않아 미국의 패 권을 도전하는 신흥국가로 떠올랐다. 전문가들은 두 대국의 정세에 대해 중 미 대국 간의 역사 적 경험을 토대로 전략적 경쟁이 패권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해석으로 조명되었다. 최근 시진핑( 習 近 平 ) 중국 국가주석이 제시한 중 미( 中 美 ) 관계의 정책적 구상은 마치 오래 전부터 준 비해온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시진핑 주석이 내놓은 구상이었던 만큼 현실적으로 매우 큰 의미 를 가진 것으로 본다.특히 중 미 양국 간에 형성된 기초적 공감대는 양국 국민에 큰 기대를 갖게 하는 사건임이 확실하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이번 정책 제시가 과거 정책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 다고 일축했다. 자국의 이익이 앞세웠거나 현실주의적 이론에만 입각했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는 뜻이다. 이처럼 두 강대국의 정책구상은 견고한 기초를 상실하고 범 인류적 사상(human race)이 결여되었다는 결과만 낳았다. 과거 냉전이 종결된 후 인류는 숱한 역사적 단계를 거쳐 새로운 역사의 장을 맞았다. 현 인류 사회가 과학기술의 발달과 평화로운 삶을 통한 행복을 누리게 되었지만, 문명체계를 붕괴시키는 파괴적 요소가 잠식해 있었다. 인류가 만들어낸 대량 살상무기는 물론 인구 식량 자원 환경 변화와 직결된 문제들이 인류사회의 생존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리스크로 떠오르게 되었다. 이때 부터 인류는 현재 직면한 문제와 역사적 문제를 개별적 성질로 구분하고, 인류의 생존본능에 따 라 리스크를 대처하는 사고능력이 생기게 된 것이다. 본질적으로 보자면 인류는 운명적 선택의 기 로에 서있는 가운데그 기로의 선택은 대국 과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을 각인시켜주고 있었다. 새로 운 대국관계에 대한 논점이 인류의 운명 에 달렸다거나, 대국 간의 능동적인 외교관계는 휴머니즘 의 명분 하에서 이루어진다는 해석이 심심찮게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닌가 싶다. 중국의 평화발전은 중국의 전략적 지향점과 주변국가의 중국발전에 대한 수용여부에 따라 달 려있다고 본다. 한 측면으로 볼 때, 미국과 주변국가가 안정적으로 중국의 발전을 다자간 윈윈 전략 체계로 협력할 수 있는 지가 관건이었다. 이러한 국제정세에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은 이전의 68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패권주의를 탈피하고 새로운 세계질서규범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다른 측면으로는 중 국이 능동적으로 휴머니즘 의 이념 하에서 국제사회와 혁신적인 세계질서체계 확립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냐는 점이다. 국가마다 제정한 전략적 체계의 출발점은 자국의 이익에서 비롯된 것이며, 고래로부터 전해져 온 불변의 법칙임에 더 논할 여지가 없다. 이에 반해 중국과 미국 같은 대국은 주변 국가의 이익에 관 심을 두기보다 자국의 이익과 인류의 공동이익을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그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냐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확실히 이해했다고 가정한다면, 중 미 양국은 주변국 가와 평화 공동번영의 세계체계를 구축하거나 대국으로서의 입지에서 국제체계의 지위와 역할을 주도할지도 모른다. 세계의 경제 정치의 구조적 측면에서 볼 때, 동북아 지역은 발전잠재력과 리스크가 가장 많이 산재한 지역이면서 중 미 대국 간의 전략적 경쟁이 벌어질 중요한 지역이기도 하다. 경제적 측면 볼 때 동 북 아 지역은 자 본 기술 자 원 인구 밀집으 로 가 장 발 전 잠 재력이 큰 지역으 로 손 꼽 히며, 정 치적 측면에서는 냉전구조의 잔재가 남아있는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동북아 지역이 이 같은 두 특징들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국 간의 전략적 충돌이 일어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인류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면 그 기로는 아마도 동북아 지역을 뜻한 것일지도 모른다. 때문 에 중국이 동북아 지역을 평화적 국제경제체제로 발전시킨다면 세계 발전에 기여하는 새로운 원동 력이 되며 이로써 인류는 새로운 세계질서 체계 면에서 진일보하게 되겠지만, 만일 동북아 지역에 대규모 충돌이 일어난다면 인류의 운명은 겉잡을 수 없이 악화될지 모른다. 따라서 국제사회의 미 래지향점은 동북아 정세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가정을 통해서 동북아 지역을 두 고 벌어지는 중 미 간의 전략적 경쟁은 세기의 결전 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편 동북아 지역이 직면한 모든 문제는 한반도에 달려있다. 한반도에 잔존한 냉전구조가 주 변국가 간의 이익충돌을 일으켰고, 동북아 정세에 악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이 발생하였기 때문이었 다. 즉 한반도 문제는 사실상 주변국가의 전략적 이익구조와 한반도의 전략적 방침에 귀결된 것이 다. 그러한 의미에서 한반도 문제는 동북아 정세의 변화를 이끌고 세계발전의 방향에 매우 큰 영향 을 미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바꿔 말하면 한반도는 한국 북한이란 상반되는 두 세계가 현 과 제의 해결여부를 두고 세계의 미래지향점에 중요한 역할을 맡은 셈이다. 따라서 한반도는 중 미 양국의 대국관계수립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 지역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한반도 문제가 해결된다면 이로 인한 파급효과가 동북아 지역까지 뻗어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 각국은 기존의 전략적 충돌에서 벗어나 전략적 협력으로 유도되어 새로운 세계경제발전의 체계와 원동력을 구축하게 되며, 이로써 중 미 양국의 대국관계는 매우 중요한 결론을 도출하게 된다. 바로 한반 도 문제는 중국과 미국, 나아가 전 인류의 전략적 지혜를 시험하는 무대가 될 것으로 내다본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69
제2회의 한중관계의 미래비전과 한반도 통일 第 二 场 韩 中 关 系 的 未 来 愿 景 和 韩 半 岛 统 一 对 于 韩 半 岛 统 一 的 中 国 的 认 识 和 对 应 金 景 一 ( 北 京 大 学 ) 한반도 통일에 대한 중국의 인식과 대응 진징이 ( 金 景 一, 북경대) 한반도 통일과 동북아 평화안정: 비전과 과제 전재성 ( 全 在 晟, 서울대) 韩 半 岛 统 一 和 东 北 亚 的 和 平 稳 定 全 在 晟 ( 首 尔 大 学 ) 동북3성과 한반도 경제협력: 비전과 과제 퍄오동쉰 ( 朴 東 勛, 연변대) 东 北 三 省 和 韩 半 岛 经 济 协 力 愿 景 和 课 题 朴 东 勋 ( 延 边 大 学 )
对 于 韩 半 岛 统 一 的 中 国 的 认 识 和 对 应 < 韩 半 岛 和 平 统 一 进 程 与 中 国 > 金 景 一 ( 北 京 大 学 ) 自 近 代 史 以 来, 东 北 亚 国 际 秩 序 的 几 次 变 化 都 是 通 过 战 争 完 成 的 1894 年 的 中 日 甲 午 战 争 导 致 以 中 国 为 中 心 的 东 亚 秩 序 崩 溃,1905 年 的 日 俄 战 争 成 为 日 本 建 构 所 谓 大 东 亚 共 荣 圈 秩 序 的 开 端,1950 年 的 朝 鲜 战 争 则 固 定 了 东 北 亚 冷 战 秩 序 的 格 局 这 些 战 争 都 始 于 或 发 生 在 韩 半 岛, 并 且 对 中 国 政 局 产 生 深 远 的 影 响 冷 战 结 束 之 后, 东 北 亚 重 又 进 入 新 秩 序 的 构 建 期, 而 东 北 亚 构 建 的 新 秩 序 依 旧 以 韩 半 岛 为 核 心 区 域 展 开 朝 核 问 题 引 发 的 东 北 亚 地 区 安 全 困 惑, 不 仅 影 响 着 东 北 亚 新 秩 序 的 建 成, 而 且 严 重 影 响 着 中 国 周 边 环 境 的 稳 定, 开 始 危 及 中 国 的 核 心 利 益 朝 核 问 题 源 于 韩 半 岛 残 存 的 冷 战 结 构, 而 韩 半 岛 残 存 的 冷 战 结 构 根 源 在 于 韩 半 岛 的 分 裂 韩 半 岛 的 统 一 终 究 要 解 体 韩 半 岛 冷 战 结 构, 淡 化 地 缘 政 治 意 义, 凸 显 地 缘 经 济 意 义, 使 消 极 的 和 平 变 为 积 极 的 和 平, 变 不 确 定 因 素 为 确 定 因 素 对 中 国 而 言, 韩 半 岛 的 统 一 意 味 着 近 代 以 来 一 直 影 响 中 国 的 韩 半 岛 问 题 彻 底 得 到 解 决, 韩 半 岛 名 副 其 实 地 成 为 海 洋 经 济 圈 与 大 陆 经 济 圈 的 连 接 点, 为 东 北 亚 区 域 经 济 一 体 化, 为 东 北 亚 新 秩 序 的 构 建 发 挥 巨 大 的 正 能 量 很 多 学 者 认 为 韩 半 岛 自 古 以 来 就 是 中 国 抵 御 外 敌 的 缓 冲 国 1) 但 是, 我 们 知 道 海 洋 势 力 通 过 韩 半 岛 企 图 征 服 中 国 大 陆 以 前, 韩 半 岛 的 重 要 性 并 非 体 现 在 它 的 地 缘 上 的 缓 冲 作 用 上 在 古 代 的 中 原 政 权 而 言, 威 胁 主 要 来 自 北 方 的 少 数 民 族 中 原 政 权 防 范 的 是 朝 鲜 和 与 这 些 少 数 民 族 联 手 攻 打 中 原 政 权 就 中 原 政 权 而 言, 与 朝 鲜 保 持 和 平 关 系, 1) 美 国 ]Rober R.Simmons: 朝 鲜 战 争 与 中 苏 关 系 ( 日 文 ), 林 建 彦 小 林 敬 尔 译,コリァ 评 论 社, 1976 年, 第 6 页.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73
确 使 受 益 匪 浅 2) 纵 观 古 代 中 国 与 韩 半 岛 关 系 的 历 史 轨 迹, 我 们 不 难 发 现, 在 古 代 中 国 的 局 势 对 韩 半 岛 影 响 巨 大 大 体 上 讲, 当 中 国 统 一 而 繁 荣 的 时 候, 韩 半 岛 也 保 持 相 对 稳 定, 两 国 关 系 也 保 持 密 切 关 系, 盛 唐 时 期 的 唐 朝 与 统 一 新 罗 的 关 系 便 是 如 此 当 中 国 政 局 出 现 混 乱 或 王 朝 交 替 的 时 候, 韩 半 岛 也 往 往 陷 入 混 乱 或 政 权 交 替, 两 国 关 系 也 出 现 波 折 中 国 的 元 明 交 替 时 期 是 这 样, 明 清 交 替 时 期 也 是 如 此 中 国 与 韩 半 岛 建 立 稳 定 发 展 的 关 系, 始 于 中 国 的 盛 唐 与 韩 半 岛 的 统 一 新 罗 时 期 可 以 说, 以 中 国 为 中 心 的 天 朝 礼 治 体 系 的 形 成, 也 得 益 于 此 时 两 国 的 密 切 关 系 其 后 中 国 与 韩 半 岛 的 辅 车 相 依 关 系 便 是 在 这 一 体 系 内 展 开 的 对 中 国 来 说, 维 护 这 一 体 系, 至 关 重 要, 它 本 身 就 是 维 护 中 国 封 建 王 朝 的 利 益 这 一 体 系 实 际 上 就 是 当 时 的 国 际 秩 序 对 朝 鲜 来 说, 它 们 是 希 望 在 中 国 大 陆 上, 有 一 个 强 大 的 政 府, 在 它 的 周 围 地 区, 提 供 某 种 国 际 秩 序, 维 持 朝 中 边 界 和 平 及 整 个 东 北 亚 地 区 的 和 平 3) 但 是, 这 一 体 系 的 发 展 并 非 一 帆 风 顺, 当 中 国 政 局 发 生 变 化, 改 朝 换 代, 新 旧 朝 代 交 替 时, 固 有 的 体 系 总 是 要 震 荡 一 次, 两 国 关 系 往 往 发 生 变 化, 冲 突 随 之 而 来 如 唐 朝 灭 亡 之 后 的 五 代 十 国 时 期, 高 丽 国 与 宋 朝 保 持 友 好 关 系, 以 牵 制 契 丹 和 女 真, 结 果 高 丽 与 契 丹 发 生 冲 突 到 了 元 朝 统 一 中 国, 元 朝 更 是 欲 以 武 力 征 服 高 丽, 高 丽 进 行 抗 元 斗 争, 最 终 还 是 被 征 服, 两 者 关 系 变 为 征 服 者 和 被 征 服 者 的 关 系, 已 不 是 过 去 体 系 内 的 关 系 了 加 上 蒙 古 人 不 是 儒 学 儒 术 礼 治 主 义 的 赞 赏 者 和 支 持 者, 也 很 难 在 文 化 上 沟 通, 双 方 的 关 系 很 大 程 度 上 不 是 在 天 朝 礼 治 秩 序 的 宏 观 架 构 之 内 展 开 的 4) 到 了 元 明 交 替 时, 高 丽 朝 的 恭 愍 王 主 张 反 元, 实 施 亲 明 政 策, 但 是 由 于 亲 元 派 的 反 对, 高 丽 王 朝 分 为 亲 元 和 亲 明 两 派, 而 此 时, 明 朝 对 高 丽 施 加 压 力, 两 国 关 系 又 处 于 紧 张, 高 丽 王 朝 决 定 进 行 辽 东 征 伐, 而 反 对 派 李 成 桂 率 军 撤 回, 随 即 发 动 政 变, 促 使 高 丽 王 朝 灭 亡 到 了 明 清 交 替 时, 刚 开 始 朝 鲜 朝 在 明 和 后 金 间 实 行 中 立 的 外 交 政 策, 但 后 来 仁 祖 反 正 后, 实 行 亲 明 排 金 政 策, 为 此, 后 金 到 清 初, 有 了 两 次 对 朝 鲜 的 征 伐 这 些 历 史 证 明, 朝 鲜 与 中 国 的 关 系, 虽 然 自 唐 中 叶 以 来 同 在 一 里, 但 它 经 常 受 中 国 政 局 的 影 响, 几 乎 每 次 改 朝 换 代 时 都 要 经 历 阵 痛, 而 后 编 入 新 的 体 系 中 但 归 根 结 底, 这 些 阵 痛 都 是 以 维 护 其 旧 的 体 系 或 建 立 新 的 体 系 为 目 标 而 引 发 的 冲 突 这 种 维 护 旧 体 系 建 立 新 体 系 的 努 力 最 终 还 是 以 中 国 为 中 心 的 新 的 体 系 所 替 代 尽 管 朝 代 不 同, 但 其 礼 治 体 2) 黄 枝 连 : 东 亚 的 礼 仪 世 界 ----- 中 国 封 建 王 朝 与 韩 半 岛 关 系 形 态 论, 中 国 人 民 大 学 出 版 社, 1994 年, 第 27 页. 3) 同 上 书, 第 109 页. 4) 同 上 书, 第 183 页. 74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系 的 性 质 没 有 发 生 本 质 的 变 化 一 旦 体 系 确 立, 双 方 都 为 维 护 其 体 系 而 努 力 作 为 体 系 的 中 心 国, 中 国 更 是 把 这 种 体 系 看 作 是 王 朝 利 益 的 一 部 分 5) 但 是 到 了 近 代, 随 着 中 国 开 始 沦 为 半 殖 民 地 半 封 建 社 会, 国 际 地 位 急 剧 下 降, 天 朝 礼 治 体 系 名 存 实 亡, 加 上 列 强 开 始 涉 足 韩 半 岛, 中 国 与 韩 半 岛 关 系 也 发 生 了 很 大 的 变 化 1880 年 代 初, 清 朝 驻 日 公 使 馆 参 赞 黄 尊 宪 在 朝 鲜 策 略 中, 劝 朝 鲜 注 意 提 防 俄 罗 斯, 为 牵 制 俄 罗 斯, 朝 鲜 要 亲 中 国, 结 日 本, 联 美 国 就 像 1881 年 朝 鲜 儒 生 万 人 上 诉 中 惊 呼 的 那 样 已 经 是 上 国 不 能 令 天 下, 在 当 时 的 中 国 看 来, 朝 鲜 问 题 已 非 中 国 一 国 所 能 左 右, 中 国 开 始 在 复 杂 的 国 际 关 系 中 考 虑 与 朝 鲜 的 关 系 了 之 后 展 开 的 历 史 表 明, 步 入 近 代 史 以 后, 在 中 国 周 边 国 中, 影 响 中 国 政 局 最 深 的 便 是 韩 半 岛 1894 年, 始 于 韩 半 岛 的 甲 午 中 日 战 争, 导 致 以 中 国 为 中 心 的 东 亚 国 际 秩 序 崩 溃, 中 国 退 出 朝 鲜 舞 台, 中 国 与 韩 半 岛 开 始 形 成 为 唇 亡 齿 寒 的 关 系 1905 年, 也 是 始 于 韩 半 岛 的 日 俄 战 争 将 使 日 本 加 速 吞 并 朝 鲜 的 步 伐, 并 以 朝 鲜 为 脚 踏 板 侵 略 中 国 大 陆 1950 年 发 生 的 韩 国 战 争, 导 致 中 国 付 出 沉 重 的 代 价, 失 去 解 放 台 湾 的 机 会, 并 与 以 美 国 为 首 的 西 方 世 界 隔 绝 数 十 年 从 历 史 的 经 验 看, 韩 半 岛 稳 定 与 否, 韩 半 岛 能 否 成 为 独 立 自 主 国 家, 直 接 关 乎 中 国 的 安 全, 也 关 系 到 东 北 亚 地 区 的 和 平 与 安 定 这 既 是 历 史 的 总 结, 也 是 对 未 来 的 展 望 战 后 美 国 和 苏 联 为 争 夺 势 力 范 围, 人 为 地 分 割 韩 半 岛, 韩 半 岛 南 北 政 治 势 力 最 终 走 向 了 分 裂 对 战 后 的 韩 半 岛 最 为 关 注 的 应 是 中 国, 中 国 经 历 甲 午 中 日 战 争 日 俄 战 争 中 日 战 争 深 刻 认 识 到 韩 半 岛 地 缘 政 治 的 重 要 性 二 战 时 期, 中 国 的 国 共 两 党 各 自 扶 持 自 己 支 持 的 韩 半 岛 独 立 运 动 势 力, 开 始 构 思 和 安 排 战 后 的 韩 半 岛 与 中 国 关 系 而 战 后 美 苏 把 韩 半 岛 纳 入 自 己 的 战 略 范 围, 又 一 次 提 升 韩 半 岛 地 缘 政 治 意 义, 这 是 中 国 本 所 不 愿 意 看 到 的, 也 是 最 为 担 心 的 地 缘 政 治 环 境 这 最 终 导 致 中 国 之 后 被 卷 入 韩 国 战 争, 与 西 方 阵 营 进 行 长 达 几 十 年 的 冷 战 而 1948 年 南 北 韩 各 自 建 立 政 府 的 时 候, 双 方 的 目 的 并 非 在 于 保 持 均 势, 维 持 现 状 双 方 都 不 能 容 忍 具 有 几 千 年 历 史 的 统 一 国 家 就 此 分 裂, 统 一 自 然 成 为 双 方 追 求 的 至 高 无 上 的 目 标 南 北 双 方 所 持 的 强 烈 的 统 一 愿 望, 使 得 南 北 关 系 成 为 零 和 关 系 南 北 都 把 5) 参 见 金 景 一 : 中 国 参 加 朝 鲜 战 争 的 起 源,2005 年, 论 衡 出 版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75
对 方 看 作 是 非 法 团 体 或 傀 儡 集 团, 朝 鲜 提 出 实 现 统 一 的 国 土 完 整 论, 韩 国 则 提 出 恢 复 失 地 的 北 进 统 一 论 6) 甚 至 朝 鲜 在 宪 法 里 把 首 尔 定 为 首 都 直 至 1970 年 代 修 改 宪 法 朝 鲜 战 争 就 是 这 种 零 和 关 系 带 来 的 热 战 冷 战 时 期, 朝 韩 双 方 展 开 了 另 一 个 零 和 博 弈, 即 所 谓 的 体 制 竞 争 某 种 意 义 上 讲, 朝 韩 双 方 在 冷 战 时 期 力 量 对 比 发 生 变 化 也 与 此 有 关 由 于 朝 韩 处 于 零 和 关 系, 即 便 是 在 冷 战 时 期 双 方 就 统 一 问 题 展 开 了 漫 长 的 博 弈 朝 鲜 战 争 结 束 后 的 第 二 年, 日 内 瓦 会 议 就 和 平 解 决 韩 半 岛 问 题 进 行 过 讨 论 分 属 美 苏 两 个 阵 营 的 朝 鲜 和 韩 国, 也 发 表 过 各 自 的 建 立 统 一 政 府 的 方 案 但 是, 南 北 双 方 发 动 的 和 平 攻 势, 实 际 上 重 复 了 朝 鲜 战 争 前 各 自 所 持 的 立 场, 双 方 都 还 是 想 用 自 己 的 方 式 统 一 对 方 表 面 上 看,1950 年 代 有 关 韩 半 岛 和 平 统 一 的 争 论 是 围 绕 着 如 何 建 立 统 一 政 府 的 问 题 展 开 的, 但 它 本 质 上 是 零 和 博 弈, 双 方 实 际 上 并 未 放 弃 武 力 统 一 的 方 针 到 了 1960-1970 年 代, 南 北 双 方 进 入 上 述 的 所 谓 体 制 竞 争, 展 开 了 另 一 种 方 式 的 零 和 博 弈, 双 方 在 经 济 建 设 国 防 建 设 等 方 面 展 开 激 烈 的 竞 争 韩 国 的 朴 正 熙 政 府 提 出 了 先 经 济, 后 统 一 的 方 针, 朝 鲜 则 提 出 经 济 与 国 防 并 进 的 方 针 可 以 说, 韩 国 朴 正 熙 政 府 实 现 汉 江 奇 迹, 重 要 动 力 来 自 朝 韩 的 零 和 博 弈 朝 韩 双 方, 一 方 面 加 强 经 济 建 设, 另 一 方 面 摸 索 着 另 一 种 性 质 的 统 一 朝 韩 在 1972 年 签 订 7.4 共 同 宣 言, 首 次 提 出 和 平 统 一 的 三 大 原 则 这 是 一 个 具 有 划 时 代 意 义 的 宣 言, 它 表 明 朝 韩 双 方 开 始 放 弃 武 力 统 一 的 方 针, 开 始 摸 索 着 和 平 共 处 7) 同 一 年, 朝 鲜 提 出 朝 美 是 朝 鲜 战 争 实 际 上 的 当 事 者, 并 首 次 提 出 与 美 国 签 订 和 平 协 定 8) 尽 管 如 此, 在 美 苏 冷 战 的 大 格 局 下, 南 北 的 真 正 和 解 朝 美 间 的 关 系 正 常 化, 由 此 实 现 和 平 统 一 是 超 现 实 的, 它 只 是 反 映 了 另 一 种 形 式 的 对 抗 冷 战 结 束 之 后, 影 响 韩 半 岛 和 平 进 程 的 美 苏 对 抗 消 失, 随 着 俄 罗 斯 与 韩 国 中 国 与 韩 国 建 交, 冷 战 时 期 的 所 谓 北 方 三 角 解 体, 但 美 日 韩 的 南 方 三 角 一 直 与 朝 鲜 处 在 对 抗 状 态, 形 成 了 残 存 的 冷 战 结 构 在 南 北 对 决 中, 处 在 劣 势 的 朝 鲜 急 欲 摆 脱 冷 战 结 构, 加 速 了 与 美 日 韩 改 善 关 系 的 和 解 步 伐 它 包 括, 与 美 国 进 行 高 方 会 谈, 与 日 本 进 行 8 次 邦 交 正 常 化 谈 判, 与 韩 国 签 署 南 北 基 本 合 意 书 和 韩 半 岛 无 核 化 宣 言, 南 北 又 同 时 加 入 联 合 国, 似 乎 韩 半 岛 冷 战 结 构 解 冻 在 即 但 是, 第 一 次 朝 核 危 机 的 爆 发, 把 和 平 氛 围 一 扫 而 光, 韩 半 岛 重 又 乌 云 密 布, 重 又 走 近 战 争 的 边 缘 第 一 次 朝 核 危 机 反 映 了 一 个 问 题, 即 朝 鲜 要 摆 脱 冷 战 阴 影, 与 韩 国 和 平 共 处, 并 非 只 6) 参 见 金 景 一 : 中 国 参 加 朝 鲜 战 争 的 起 源,2005 年, 论 衡 出 版 7) 金 景 一 : 韩 半 岛 和 平 机 制 的 构 筑 与 展 望, 北 韩 学 研 究, 创 刊 号,2005 年,p.9 8) 人 民 日 报,1974 年 3 月 26 日 76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是 韩 半 岛 南 北 间 的 问 题, 它 牵 涉 到 韩 半 岛 周 边 大 国 的 利 益 关 系, 尤 其 牵 涉 到 美 国 在 本 地 区 的 战 略 利 益 冷 战 结 束 后, 美 国 继 续 加 强 冷 战 时 期 的 南 方 三 角 即 美 日 美 韩 同 盟 关 系, 继 续 在 朝 鲜 问 题 上 做 文 章, 是 出 于 自 身 的 战 略 利 益 考 量 的, 它 所 针 对 的 不 仅 仅 是 朝 鲜 对 美 国 而 言, 和 平 解 决 韩 半 岛 问 题, 意 味 着 美 国 在 本 地 区 最 重 要 的 支 撑 点 消 失, 也 许 它 会 成 为 美 国 退 出 本 地 区 事 务 的 前 奏 而 1994 年 美 朝 间 签 订 的 日 内 瓦 协 议, 美 国 是 基 于 两 方 面 考 虑 签 订 的, 一 是, 美 国 希 望 朝 鲜 软 着 陆, 二 是, 判 断 朝 鲜 即 将 崩 溃 但 对 朝 鲜 而 言, 日 内 瓦 协 议 是 鼓 舞 人 心 的, 是 具 有 划 时 代 意 义 的 成 果 朝 鲜 立 即 提 出, 为 了 履 行 该 协 议, 朝 美 之 间 签 订 临 时 协 定, 以 取 代 停 战 协 定 此 时, 对 朝 鲜 而 言,1953 年 签 订 的 停 战 协 定, 只 是 朝 美 间 签 订 的 协 定 而 已 朝 鲜 执 意 要 把 停 战 协 定 转 换 成 和 平 协 定, 并 执 意 只 跟 美 国 谈, 其 用 意 显 然 也 还 是 在 与 美 国 改 善 关 系 上 这 一 时 期 美 韩 建 议 召 开 四 方 会 谈, 以 讨 论 建 立 和 平 机 制 问 题, 值 此 中 国 重 又 开 始 参 与 有 关 韩 半 岛 问 题 的 国 际 协 商 而 当 时, 中 国 尽 管 已 与 韩 国 建 立 外 交 关 系, 并 与 韩 国 保 持 良 好 的 政 治 关 系, 但 中 国 在 政 治 上 还 是 倾 斜 朝 鲜 在 四 方 会 谈 中, 中 国 主 张 有 关 各 方 结 束 对 抗, 改 善 关 系, 和 平 共 处, 使 半 岛 最 终 实 现 自 主 和 平 统 一, 敦 促 各 方 以 和 平 手 段 解 决 一 切 争 端, 在 平 等 互 利 原 则 基 础 上 发 展 交 流 与 合 作, 建 立 军 事 信 任 措 施, 分 阶 段 裁 减 军 备 9) 四 方 会 谈 先 后 召 开 6 次, 但 美 朝 韩 三 方 各 自 的 目 的 不 同, 朝 鲜 重 点 放 在 与 美 国 的 对 话 上, 采 取 所 谓 通 美 封 南 政 策, 韩 国 则 利 用 四 方 会 谈 的 机 会 欲 与 朝 鲜 展 开 双 边 对 话, 美 国 则 由 此 掌 握 在 韩 半 岛 问 题 上 的 主 动 权, 也 并 没 有 急 于 促 成 朝 韩 改 善 关 系 四 方 会 谈 最 终 不 了 了 之, 与 这 几 个 国 家 追 求 的 目 的 不 同 不 无 关 系 如 同 第 一 次 核 危 机 发 生 在 韩 半 岛 南 北 关 系 出 现 缓 和 朝 日 关 系 有 解 冻 迹 象 之 际, 第 二 次 核 危 机 爆 发, 也 正 值 首 次 朝 韩 高 峰 会 谈 和 朝 日 高 峰 会 谈 先 后 举 行, 朝 鲜 的 外 交 战 略 重 点 从 美 国 转 向 更 为 积 极 的 全 方 位 外 交 但 美 国 极 不 愿 意 朝 韩 朝 日 关 系 在 美 国 设 定 的 框 架 外 得 到 改 善 美 国 要 关 起 与 朝 鲜 改 善 关 系 的 大 门 解 决 朝 核 问 题 但 是 发 生 9.11 事 件 之 后, 美 国 开 始 在 朝 核 问 题 上 与 中 国 探 索 合 作, 中 国 也 开 始 积 极 介 入 地 区 事 务, 可 以 说 中 美 合 作 演 绎 出 六 方 会 谈 机 制 的 产 生 中 美 俄 日 及 南 北 朝 鲜 坐 在 一 起 讨 论 互 相 关 心 的 问 题, 六 方 会 谈 开 了 地 区 历 史 之 先 在 这 里, 朝 核 问 题 是 媒 介, 动 力 则 是 各 方 利 益 关 系 的 互 动 从 东 北 亚 建 立 新 的 秩 序 的 角 度 而 言, 六 方 会 谈 实 际 上 就 是 为 和 平 建 立 东 北 亚 新 秩 序 而 各 方 进 行 较 量 的 平 台 可 以 说, 冷 战 结 束 后 东 北 亚 新 秩 序 的 建 立 是 以 解 决 朝 核 问 题 为 契 机 拉 开 了 序 幕 而 标 志 六 方 会 谈 最 辉 煌 成 果 的 9.19 共 同 宣 言 则 勾 画 出 9) 光 明 日 报,1999 年 1 月 24 日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77
东 北 亚 新 秩 序 的 轮 廓, 谈 到 了 以 和 平 方 式 实 现 韩 半 岛 无 核 化 ; 朝 美 朝 日 采 取 步 骤 实 现 关 系 正 常 化 ; 通 过 双 边 和 多 边 方 式 促 进 能 源 贸 易 及 投 资 领 域 的 经 济 合 作 ; 共 同 致 力 于 东 北 亚 地 区 持 久 和 平 与 稳 定 ; 建 立 韩 半 岛 永 久 和 平 机 制 ; 加 强 东 北 亚 安 全 合 作 由 此 可 见, 如 同 近 代 史 以 来 韩 半 岛 一 直 成 为 东 北 亚 秩 序 变 化 的 震 源 一 样, 此 次 东 北 亚 新 秩 序 的 建 构 也 还 以 韩 半 岛 为 核 心 区 域 展 开 但 是 与 以 往 的 战 争 方 式 不 同, 东 北 亚 要 以 和 平 方 式 建 构 新 秩 序, 这 就 需 要 漫 长 的 反 复 和 磨 合 过 程 东 北 亚 新 秩 序 以 朝 核 问 题 为 媒 介, 以 六 方 会 谈 为 载 体 进 行 磨 合, 各 种 因 素 都 有 可 能 对 朝 核 问 题 的 解 决 设 置 障 碍, 韩 半 岛 统 一 进 程 及 东 北 亚 新 秩 序 的 进 程 也 由 此 遭 受 重 创 朝 核 问 题 的 根 源 之 一 就 是 美 国 一 直 把 韩 半 岛 纳 入 自 己 的 战 略 范 围, 把 韩 半 岛 作 为 其 东 亚 战 略 的 支 撑 点, 维 系 韩 半 岛 冷 战 结 构 所 以 说, 朝 核 问 题 折 射 反 映 着 东 北 亚 大 国 关 系, 是 东 北 亚 国 际 政 治 的 缩 影 实 际 上 朝 核 问 题 已 经 超 出 朝 核 本 身, 也 超 出 朝 美 关 系 范 畴, 它 引 出 的 是 大 国 关 系 的 互 动, 六 方 会 谈 正 是 这 一 互 动 的 结 果 所 以 要 解 决 引 发 朝 核 问 题 的 根 源, 就 需 要 大 国 关 系 在 磨 合 过 程 中 逐 步 消 除 其 战 略 在 韩 半 岛 的 互 动, 逐 渐 淡 化 韩 半 岛 的 地 缘 政 治 意 义 而 这 些 进 程 是 在 各 方 力 量 的 较 量 中 展 开, 有 时 要 经 历 相 当 激 烈 的 较 量, 有 时 要 经 历 艰 难 的 磨 合 如 今 六 方 会 谈 空 转 多 年, 正 是 反 映 其 较 量 与 磨 合 的 艰 难 朝 鲜 先 后 进 行 三 次 核 试 验, 使 朝 核 问 题 一 次 次 进 入 新 的 困 境 第 三 次 核 试 验 更 是 引 发 东 北 亚 地 区 新 的 动 荡, 韩 半 岛 经 历 韩 国 战 争 以 来 最 为 严 重 的 危 机 而 中 日 关 系 韩 日 关 系 朝 韩 关 系 朝 美 关 系 朝 日 关 系 日 趋 紧 张, 表 明 朝 核 问 题 的 解 决 与 东 北 亚 国 际 政 治 的 运 行 是 联 动 的 朝 核 问 题 引 发 的 危 机 影 响 东 北 亚 国 际 关 系, 东 北 亚 国 际 关 系 又 影 响 朝 核 问 题 的 解 决 东 北 亚 由 此 进 入 新 一 轮 的 较 量 和 磨 合 韩 半 岛 的 分 裂 是 在 美 苏 外 因 和 南 北 内 因 相 互 作 用 下 形 成 的, 因 而 韩 半 岛 问 题 本 身 既 是 南 北 问 题, 又 是 国 际 问 题 南 北 关 系 和 国 际 关 系 交 错 着 形 成 相 互 影 响 相 互 作 用 的 互 动 关 系 而 南 北 关 系 紧 张 的 时 候, 与 之 相 对 应 的 国 际 关 系 也 发 生 变 化 天 安 舰 事 件 和 延 坪 岛 炮 击 事 件 时, 韩 国 与 中 国 的 关 系 陡 然 紧 张 就 是 一 例 而 南 北 关 系 走 向 缓 和 的 时 候, 围 绕 着 韩 半 岛 南 北 也 发 生 国 际 关 系 的 变 化 众 所 周 知, 两 次 朝 核 危 机 都 发 生 在 南 北 关 系 走 向 缓 和 的 时 候 就 此 意 义 上 讲, 韩 半 岛 走 向 统 一, 它 既 是 朝 韩 间 和 解 的 问 题, 78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又 是 国 际 关 系 重 新 调 正 定 位 的 问 题 纵 观 近 代 史 以 来 的 韩 半 岛 历 史, 我 们 不 难 发 现 韩 半 岛 问 题 的 核 心 在 于 韩 半 岛 在 各 个 时 代 所 具 有 的 地 缘 政 治 意 义 上 我 们 所 理 解 的 地 缘 政 治 意 义 不 是 静 态 的, 而 是 动 态 的, 它 指 的 是 某 些 地 理 环 境 进 入 某 些 国 家 战 略 目 的 的 框 架 或 视 野 而 显 现 的 价 值, 可 理 解 为 自 然 因 素 和 人 为 因 素 的 有 机 结 合 一 个 区 域 显 现 所 谓 的 地 缘 政 治 意 义, 与 人 类 发 展 的 时 代 该 区 域 的 政 治 状 况 国 家 间 战 略 指 向 的 冲 突 状 态 等 因 素 相 关 10) 也 就 是 说, 自 近 代 以 来, 韩 半 岛 进 入 诸 列 强 战 略 目 的 的 框 架 或 视 野, 因 而 其 地 缘 政 治 意 义 凸 显, 也 因 而 演 绎 出 一 幕 幕 大 国 间 的 冲 突 和 战 争 19 世 纪 末, 俄 罗 斯 为 从 远 东 进 入 太 平 洋 制 定 南 下 战 略, 韩 半 岛 由 此 进 入 俄 罗 斯 战 略 的 框 架 之 中 ; 日 本 为 侵 略 中 国 大 陆, 制 定 北 进 战 略, 韩 半 岛 也 进 入 日 本 战 略 的 框 架 之 中, 成 为 日 本 侵 略 中 国 大 陆 的 脚 踏 板 ; 中 国 为 维 护 在 韩 半 岛 的 传 统 地 位, 把 韩 半 岛 纳 入 到 自 己 的 战 略 之 中 ; 连 远 在 欧 洲 的 英 国 也 为 遏 制 俄 罗 斯 南 下 出 兵 占 领 韩 半 岛 的 巨 文 岛 至 此, 至 少 俄 日 中 三 国 的 战 略 框 架 交 汇 在 韩 半 岛, 演 绎 出 甲 午 中 日 战 争 日 俄 战 争 而 二 战 结 束 后 的 韩 半 岛 悲 剧 则 始 于 韩 半 岛 进 入 美 苏 战 略 利 益 的 框 架 美 苏 为 各 自 的 战 略 人 为 地 分 割 占 领 韩 半 岛, 最 终 导 致 韩 国 战 争 和 六 十 多 年 的 分 裂 冷 战 结 束 之 后, 韩 半 岛 重 又 成 为 东 北 亚 国 际 政 治 的 焦 点, 其 源 于 大 国 战 略 依 旧 停 留 在 韩 半 岛 至 少 对 美 国 来 讲, 韩 半 岛 是 其 推 行 东 亚 战 略 的 支 撑 点 如 美 国 欲 利 用 这 一 支 撑 点 强 化 美 日 韩 美 同 盟 以 牵 制 正 在 崛 起 的 中 国, 那 么 韩 半 岛 的 地 缘 政 治 意 义 还 会 凸 显 实 际 上 当 今 的 东 北 亚 国 际 政 治 就 是 如 此 展 开 的 而 大 国 战 略 能 够 在 韩 半 岛 得 以 施 展, 关 键 在 于 韩 半 岛 还 处 在 分 裂 状 态, 为 大 国 提 供 介 入 空 间 而 如 果 韩 半 岛 得 以 实 现 统 一, 大 国 的 战 略 就 很 难 在 韩 半 岛 落 脚, 韩 半 岛 的 地 缘 政 治 意 义 将 呈 现 出 明 显 的 弱 化 或 消 失 11) 就 此 意 义 上 讲, 韩 半 岛 的 和 平 统 一 进 程 将 对 中 国 非 常 有 利 因 为 韩 半 岛 的 地 缘 政 治 意 义 越 凸 显, 越 会 限 制 中 国 在 东 北 亚 的 发 展 空 间 冷 战 时 期 是 这 样, 如 今 也 是 如 此 美 国 依 托 韩 半 岛 这 一 支 撑 点 强 化 美 日 同 盟 美 韩 同 盟, 又 执 意 促 成 韩 日 军 事 协 定, 对 中 国 将 形 成 巨 大 的 压 力 在 天 安 舰 事 件 和 延 坪 岛 炮 击 事 件 后 美 国 以 震 慑 朝 鲜 为 由, 把 第 7 舰 队 开 进 被 外 界 称 为 中 国 最 碰 不 得 的 地 方 黄 海, 美 国 搞 黄 海 航 母 威 慑, 有 人 甚 至 怀 疑 项 庄 舞 剑 真 实 意 图 别 有 所 指 由 此 可 见, 韩 半 岛 地 缘 政 治 意 义 的 凸 显 显 然 有 利 于 美 国 施 展 其 战 略, 对 中 国 而 言, 它 会 重 复 近 代 史 以 来 拖 累 中 国 危 及 中 国 核 心 利 益 的 局 面 10) 金 景 一 金 强 一 : 韩 半 岛 的 地 缘 政 治 意 义 及 其 对 我 国 的 影 响 研 究, 中 国 外 交,2008 年 第 11 期,p.38 11) 同 上,p.42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79
如 前 所 述, 近 代 以 来 韩 半 岛 问 题 的 核 心 是 韩 半 岛 地 缘 政 治 意 义 的 强 化 和 凸 显, 而 解 决 韩 半 岛 问 题 的 核 心 应 该 是 淡 化 地 缘 政 治 意 义 使 得 它 逐 渐 消 失 而 韩 半 岛 地 缘 政 治 意 义 最 终 的 淡 化 和 消 失, 是 要 通 过 韩 半 岛 的 和 平 统 一 去 完 成 而 对 中 国 而 言, 韩 半 岛 最 理 想 的 状 态 便 是 地 缘 政 治 意 义 淡 化 和 消 失 的 状 态, 也 就 是 说, 一 个 稳 定 的 和 平 的 统 一 的 韩 半 岛 最 符 合 中 国 的 国 家 利 益 12) 过 去 我 们 讲 韩 半 岛 的 地 缘 政 治 意 义, 讲 的 多 的 是 海 洋 势 力 与 大 陆 势 力 在 韩 半 岛 的 交 错 冲 突 甚 至 是 战 争 而 我 们 要 淡 化 韩 半 岛 的 地 缘 政 治 意 义, 讲 的 多 的 应 是 海 洋 经 济 圈 与 大 陆 经 济 圈 以 韩 半 岛 为 桥 梁 得 以 汇 合 融 合 发 展 也 就 是 说 要 大 讲 特 讲 韩 半 岛 的 地 缘 经 济 意 义 凸 显 韩 半 岛 的 地 缘 经 济 意 义, 实 际 上 就 是 凸 显 合 作 共 赢 发 展 可 以 说, 韩 半 岛 的 和 平 统 一 进 程 就 是 淡 化 地 缘 政 治 意 义, 凸 显 地 缘 经 济 意 义 的 过 程 地 缘 经 济 意 义 与 地 缘 政 治 意 义 不 同, 地 缘 政 治 意 义 强 调 综 合 国 力 的 对 抗 和 博 弈, 而 地 缘 经 济 意 义 强 调 利 用 地 缘 经 济 手 段 去 摸 索 国 家 利 益 和 国 际 关 系 如 今 世 界 趋 势 是 地 缘 政 治 向 地 缘 经 济 转 换, 对 经 济 利 益 的 需 求 超 过 政 治 军 事 和 意 识 形 态 13) 地 缘 经 济 的 角 逐 也 正 替 代 地 缘 政 治 的 角 逐 14) 凸 出 韩 半 岛 地 缘 经 济 意 义 符 合 世 界 发 展 的 趋 势, 也 符 合 朝 韩 逐 渐 淡 化 地 缘 政 治 意 义, 在 经 济 交 流 与 合 作 中 实 现 双 赢 谈 到 韩 半 岛 和 平 统 一 的 进 程, 其 主 体 是 韩 半 岛 的 韩 国 和 朝 鲜 朝 韩 是 韩 半 岛 问 题 的 内 因, 别 的 国 家 只 是 外 因, 外 因 是 通 过 内 因 起 作 用 中 国 一 直 主 张, 韩 半 岛 问 题 要 由 朝 韩 对 话 解 决 朴 槿 惠 总 统 访 华 时 习 近 平 就 表 示, 中 方 欢 迎 朴 槿 惠 总 统 提 出 的 半 岛 信 任 进 程 构 想, 支 持 南 北 改 善 关 系, 实 现 和 解 合 作, 最 终 实 现 自 主 和 平 统 一 15) 而 朴 槿 惠 总 统 提 出 的 半 岛 信 赖 进 程 能 否 取 得 成 功, 很 大 程 度 上 取 决 于 南 北 经 济 交 流 与 合 作 如 前 所 述, 朝 韩 关 系 本 质 上 就 是 零 和 关 系, 靠 零 和 关 系 实 现 政 治 信 赖 军 事 信 赖 非 常 艰 难 加 上 朝 韩 体 制 不 同, 难 上 加 难 即 便 是 建 立 了 一 定 的 信 赖 关 系, 随 着 政 权 交 替, 也 有 可 能 前 功 尽 弃 金 大 中 卢 武 铉 政 府 与 朝 鲜 建 立 的 信 赖 关 系, 到 了 李 明 博 政 府 一 扫 而 光 便 是 一 例 但 是, 经 济 合 作 就 不 同 经 济 本 身 就 是 基 于 信 赖 运 作, 无 信 不 立 以 朝 韩 共 建 的 开 城 工 团 为 例, 在 李 明 博 政 府 时 期, 南 北 关 系 12) 同 上,p.44 13) 韩 银 安 : 浅 析 地 缘 经 济 学, 外 交 学 院 学 报,2004 年 3 月 总 第 75 期, 第 73 页 14) 韩 银 安 : 浅 析 地 缘 经 济 学, 外 交 学 院 学 报,2004 年 3 月, 第 70 页 15) 新 华 社,2013 年 6 月 28 日 80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一 触 即 发, 但 工 团 却 安 然 无 恙 到 了 朴 槿 惠 政 府, 开 城 工 团 濒 临 关 停, 但 朝 韩 还 是 鼎 力 挽 救, 表 明 政 权 交 替 会 影 响 政 治 关 系 军 事 关 系, 但 经 贸 关 系 有 可 能 保 持 连 续 性 可 以 说, 实 现 半 岛 信 赖 进 程, 最 好 的 切 入 点 便 是 经 济 合 作 凸 显 韩 半 岛 地 缘 经 济 意 义, 对 中 国 而 言, 可 以 使 进 入 振 兴 进 程 的 东 北 地 区 经 济 得 到 巨 大 的 弹 力, 而 且 也 将 极 大 地 激 活 日 本 和 俄 罗 斯 等 周 边 大 国 参 与 东 北 亚 区 域 经 济 活 动 的 欲 望, 届 时 东 北 亚 区 域 大 规 模 经 济 合 作 或 国 际 性 高 层 次 合 作 体 系 的 建 构 将 具 备 现 实 的 可 操 作 性, 中 国 也 有 可 能 接 近 所 设 定 的 战 略 目 标 16) 在 韩 半 岛 和 平 统 一 进 程 中, 恢 复 和 发 展 朝 鲜 经 济 是 至 关 重 要 的 一 环, 某 种 意 义 上 讲, 朝 鲜 经 济 发 展 与 否 决 定 韩 半 岛 和 平 统 一 进 程 能 否 顺 利 进 行 要 扶 持 朝 鲜 的 市 场 经 济 因 素, 促 使 朝 鲜 融 入 到 国 际 社 会 促 使 朝 鲜 变 化, 还 是 需 要 淡 化 地 缘 政 治 的 因 素, 更 多 地 讲 地 缘 经 济 的 因 素, 而 且 要 更 多 地 讲 靠 自 律 的 变 化 如 果 对 朝 政 策 里 多 了 地 缘 政 治 的 因 素, 那 么 讲 的 更 多 的 是 可 能 是 施 压 制 裁 对 抗 甚 至 是 冲 突 而 如 果 从 地 缘 经 济 角 度 靠 近 朝 鲜, 讲 的 更 多 的 可 能 是 交 流 合 作 双 赢 和 发 展 17) 近 年 来 中 国 按 照 政 府 引 导 企 业 为 主 市 场 运 作 互 利 共 赢 的 原 则, 进 一 步 深 化 在 贸 易 投 资 基 础 设 施 建 设 资 源 开 发 利 用 农 业 等 领 域, 与 朝 鲜 的 务 实 合 作, 就 是 强 化 地 缘 经 济 的 因 素 今 年 朝 鲜 在 强 行 第 三 次 核 试 验 后 提 出 核 武 与 经 济 建 设 并 进 的 路 线 过 去 朝 鲜 曾 在 1960 年 代 提 出 过 国 防 建 设 与 经 济 建 设 并 进 的 路 线 说 是 并 进, 但 朝 鲜 是 向 国 防 建 设 倾 斜 的, 朝 鲜 的 军 费 开 支 在 国 民 生 产 总 值 中 所 占 的 比 重 剧 增, 从 1961 年 的 2.8% 提 高 到 1967 年 的 30.4% 而 今 朝 鲜 重 又 提 出 核 武 与 经 济 的 并 进 路 线, 但 两 者 相 互 制 约, 难 以 并 进 搞 核 武 需 要 对 抗 的 紧 张 局 面, 经 济 建 设 则 需 要 合 作 的 稳 定 局 面, 两 者 不 相 容, 朝 鲜 只 能 倾 斜 某 一 方 就 目 前 局 势 而 言, 朝 鲜 当 务 之 急 是 发 展 经 济, 朝 鲜 也 有 动 力 凸 显 半 岛 的 地 缘 经 济 意 义 而 朝 鲜 自 2000 年 以 来 把 国 家 的 战 略 重 心 逐 步 转 移 到 经 济 建 设 上, 到 了 金 正 恩 时 代 更 是 凸 显 经 济 建 设 的 重 要 性 但 是 朝 核 问 题 成 为 挡 住 经 济 发 展 的 拦 路 虎, 朝 鲜 所 处 的 国 际 环 境, 使 朝 鲜 难 以 具 备 经 济 建 设 所 必 需 的 各 种 因 素, 实 现 经 济 强 国 目 标 困 难 重 重 朝 鲜 进 行 第 三 次 核 试 验 后, 中 国 赞 成 联 合 国 安 理 会 对 朝 鲜 的 制 裁 决 议 并 认 真 加 以 履 行 外 界 尤 其 是 韩 国 的 主 流 媒 体 很 多 认 为 中 国 的 对 朝 政 策 发 生 质 的 变 化 有 的 认 为, 李 明 博 政 府 的 对 朝 政 策 之 所 以 未 能 见 效, 是 因 为 中 国 的 对 朝 政 策 没 有 变, 而 如 今 中 国 有 了 变 化, 所 以 即 便 是 同 样 的 政 策 效 果 却 不 同 在 他 们 看 来, 朝 鲜 从 制 造 危 机 突 然 转 向 对 16) 同 注 释 12,p.45 17)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81
话, 与 中 国 的 变 化 不 无 关 联 有 的 专 家 甚 至 主 张, 中 国 已 同 意 韩 国 主 导 的 统 一 似 乎 韩 国 的 对 朝 政 策 是 基 于 中 国 的 对 朝 政 策 而 制 定 如 何 正 确 解 读 中 国 的 对 朝 政 策, 防 止 判 断 失 误 和 误 判 是 目 前 中 韩 关 系 中 解 决 的 一 个 重 要 课 题 中 国 的 对 朝 政 策 发 生 一 些 变 化 是 事 实 但 它 是 对 朝 鲜 进 行 第 三 次 核 试 验 的 反 应 式 变 化 所 以 中 国 的 这 种 变 化 很 难 说 是 一 些 韩 国 学 者 讲 的 那 种 战 略 上 的 变 化 将 来 朝 鲜 再 而 三 进 行 核 试 验 的 话, 中 国 的 对 朝 政 策 还 有 发 生 变 化, 也 许 会 发 生 所 说 的 质 的 变 化 在 解 决 朝 核 问 题 上 与 美 国 不 同, 中 国 主 张 通 过 对 话 和 谈 判 加 以 解 决 中 国 不 会 像 有 些 韩 国 学 者 期 待 的 那 样, 与 韩 国 携 手 对 朝 施 加 压 力 让 它 就 范 对 韩 半 岛 统 一 问 题, 正 像 今 年 六 月 份 习 近 平 主 席 同 朴 槿 惠 总 统 会 面 时 讲 的 那 样, 中 国 是 一 如 既 往 支 持 南 北 实 现 自 主 和 平 统 一 的 中 国 主 张 自 主 和 平 统 一, 强 调 两 点, 一 是, 强 调 统 一 的 过 程 必 须 是 和 平 的, 反 对 用 武 力 方 式 ; 二 是, 统 一 必 须 是 自 主 的, 反 对 外 来 势 力 主 导 统 一 进 程 自 1840 年 的 鸦 片 战 争, 中 国 沦 落 到 半 封 建 半 殖 民 地 地 步, 被 称 为 东 亚 病 夫 近 一 个 半 世 纪, 东 亚 及 韩 半 岛 没 见 过 繁 荣 强 盛 的 中 国 而 韩 半 岛 则 在 20 世 纪 初 被 沦 落 为 日 本 殖 民 地, 战 后 又 分 裂 成 南 北 至 今 未 能 统 一 也 就 是 说, 一 个 多 世 纪 以 来, 东 亚 及 中 国 没 见 过 自 主 的 或 统 一 的 韩 半 岛 而 今 中 国 正 崛 起, 韩 半 岛 进 入 统 一 进 程, 双 方 正 在 体 验 近 代 以 后 未 曾 体 验 的 经 验, 免 不 了 相 互 间 感 到 一 种 威 胁 或 担 心, 这 就 需 要 重 新 定 位 双 方 关 系 如 同 前 述, 历 史 上 强 大 的 中 国 对 韩 半 岛 没 构 成 威 胁, 反 而 混 乱 而 贫 弱 的 中 国 危 及 韩 半 岛 的 政 局 同 样 统 一 的 韩 半 岛 对 中 国 不 是 威 胁, 分 裂 的 韩 半 岛 才 危 及 中 国 的 安 全 崛 起 的 中 国 与 统 一 韩 半 岛 的 关 系 是 东 北 亚 地 区 最 为 稳 定 的 双 边 关 系, 两 国 关 系 的 正 确 定 位 将 对 东 北 亚 新 秩 序 的 构 筑 产 生 巨 大 的 正 能 量 82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对 于 韩 半 岛 统 一 的 中 国 的 认 识 和 对 应 ( 摘 要 ) 金 景 一 ( 北 京 大 学 ) 自 近 代 史 以 来, 东 北 亚 国 际 秩 序 的 几 次 变 化 都 是 通 过 战 争 完 成 的 1894 年 的 中 日 甲 午 战 争 导 致 以 中 国 为 中 心 的 东 亚 秩 序 崩 溃,1905 年 的 日 俄 战 争 成 为 日 本 建 构 所 谓 大 东 亚 共 荣 圈 秩 序 的 开 端,1950 年 的 朝 鲜 战 争 则 固 定 了 东 北 亚 冷 战 秩 序 的 格 局 而 这 些 战 争 都 始 于 或 发 生 在 韩 半 岛, 并 且 对 中 国 政 局 产 生 深 远 的 影 响 而 纵 观 近 代 史 以 来 的 韩 半 岛 历 史, 我 们 不 难 发 现 韩 半 岛 问 题 的 核 心 在 于 韩 半 岛 在 各 个 时 代 所 具 有 的 地 缘 政 治 意 义 上 我 们 所 理 解 的 地 缘 政 治 意 义 不 是 静 态 的, 而 是 动 态 的, 它 指 的 是 某 些 地 理 环 境 进 入 某 些 国 家 战 略 目 的 的 框 架 或 视 野 而 显 现 的 价 值, 可 理 解 为 自 然 因 素 和 人 为 因 素 的 有 机 结 合 一 个 区 域 显 现 所 谓 的 地 缘 政 治 意 义, 与 人 类 发 展 的 时 代 该 区 域 的 政 治 状 况 国 家 间 战 略 指 向 的 冲 突 状 态 等 因 素 相 关 也 就 是 说, 自 近 代 以 来, 韩 半 岛 进 入 诸 列 强 战 略 目 的 的 框 架 或 视 野, 因 而 其 地 缘 政 治 意 义 凸 显, 也 因 而 演 绎 出 一 幕 幕 大 国 间 的 冲 突 或 战 争 19 世 纪 末, 俄 罗 斯 为 从 远 东 进 入 太 平 洋 制 定 南 下 战 略, 韩 半 岛 由 此 进 入 俄 罗 斯 战 略 的 框 架 之 中 ; 日 本 为 侵 略 中 国 大 陆, 制 定 北 进 战 略, 韩 半 岛 也 进 入 日 本 战 略 的 框 架 之 中, 成 为 日 本 侵 略 中 国 大 陆 的 脚 踏 板 ; 中 国 为 维 护 在 韩 半 岛 的 传 统 地 位, 把 韩 半 岛 纳 入 到 自 己 的 战 略 之 中 ; 连 远 在 欧 洲 的 英 国 也 为 遏 制 俄 罗 斯 南 下 出 兵 占 领 韩 半 岛 的 巨 文 岛 至 此, 至 少 俄 日 中 三 国 的 战 略 框 架 交 汇 在 韩 半 岛, 演 绎 出 甲 午 中 日 战 争 日 俄 战 争 而 二 战 结 束 后 的 韩 半 岛 悲 剧 则 始 于 韩 半 岛 进 入 美 苏 战 略 利 益 的 框 架 美 苏 为 各 自 的 战 略 人 为 地 分 割 占 领 韩 半 岛, 最 终 导 致 韩 国 战 争 和 六 十 多 年 的 南 北 分 裂 冷 战 结 束 之 后, 东 北 亚 重 又 进 入 新 秩 序 的 构 建 期, 而 东 北 亚 构 建 的 新 秩 序 依 旧 以 韩 半 岛 为 核 心 区 域 展 开, 其 渊 源 在 于 大 国 战 略 依 旧 停 留 在 韩 半 岛 至 少 对 美 国 来 讲, 韩 半 岛 是 其 推 行 东 亚 战 略 的 支 撑 点 如 美 国 欲 利 用 这 一 支 撑 点 强 化 美 日 韩 美 同 盟 以 牵 制 正 在 崛 起 的 中 国, 那 么 对 中 国 而 言, 韩 半 岛 的 地 缘 政 治 意 义 依 然 重 要 而 大 国 战 略 能 够 在 韩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83
半 岛 得 以 施 展, 原 因 在 于 韩 半 岛 还 处 在 分 裂 状 态, 为 大 国 提 供 介 入 空 间 而 如 果 韩 半 岛 得 以 实 现 统 一, 大 国 的 战 略 就 很 难 在 韩 半 岛 落 脚, 韩 半 岛 的 地 缘 政 治 意 义 将 呈 现 出 明 显 的 弱 化 或 消 失 而 韩 半 岛 地 缘 政 治 意 义 最 终 的 淡 化 和 消 失, 是 要 通 过 韩 半 岛 的 和 平 统 一 去 完 成 对 中 国 而 言, 韩 半 岛 最 理 想 的 状 态 便 是 地 缘 政 治 意 义 淡 化 和 消 失 的 状 态, 也 就 是 说, 一 个 稳 定 的 和 平 的 统 一 的 韩 半 岛 最 符 合 中 国 的 国 家 利 益 过 去 我 们 讲 韩 半 岛 的 地 缘 政 治 意 义, 讲 的 多 的 是 海 洋 势 力 与 大 陆 势 力 在 韩 半 岛 的 交 错 冲 突 甚 至 是 战 争 而 我 们 要 淡 化 韩 半 岛 的 地 缘 政 治 意 义, 讲 的 多 的 应 是 海 洋 经 济 圈 与 大 陆 经 济 圈 以 韩 半 岛 为 桥 梁 得 以 汇 合 融 合 发 展 凸 显 韩 半 岛 的 地 缘 经 济 意 义, 实 际 上 就 是 凸 显 合 作 共 赢 发 展 可 以 说, 韩 半 岛 的 和 平 统 一 进 程 就 是 淡 化 地 缘 政 治 意 义, 凸 显 地 缘 经 济 意 义 的 过 程 地 缘 经 济 意 义 与 地 缘 政 治 意 义 不 同, 地 缘 政 治 意 义 强 调 综 合 国 力 的 对 抗 和 博 弈, 而 地 缘 经 济 意 义 强 调 利 用 地 缘 经 济 手 段 去 摸 索 国 家 利 益 和 国 际 关 系 如 今 世 界 趋 势 是 地 缘 政 治 向 地 缘 经 济 转 换, 对 经 济 利 益 的 需 求 超 过 政 治 军 事 和 意 识 形 态 地 缘 经 济 的 角 逐 也 正 替 代 地 缘 政 治 的 角 逐 凸 出 韩 半 岛 地 缘 经 济 意 义 符 合 世 界 发 展 的 趋 势, 也 符 合 朝 韩 逐 渐 淡 化 地 缘 政 治 意 义, 在 经 济 交 流 与 合 作 中 实 现 双 赢 谈 到 韩 半 岛 和 平 统 一 的 进 程, 其 主 体 是 韩 半 岛 的 韩 国 和 朝 鲜 中 国 一 直 主 张, 韩 半 岛 问 题 要 由 朝 韩 对 话 解 决 朴 槿 惠 总 统 访 华 时 习 近 平 就 表 示, 中 方 欢 迎 朴 槿 惠 总 统 提 出 的 半 岛 信 任 进 程 构 想, 支 持 南 北 改 善 关 系, 实 现 和 解 合 作, 最 终 实 现 自 主 和 平 统 一 而 朴 槿 惠 总 统 提 出 的 半 岛 信 赖 进 程 能 否 取 得 成 功, 很 大 程 度 上 取 决 于 南 北 经 济 交 流 与 合 作 如 前 所 述, 朝 韩 关 系 本 质 上 就 是 零 和 关 系, 靠 零 和 关 系 实 现 政 治 信 赖 军 事 信 赖 非 常 艰 难 加 上 朝 韩 体 制 不 同, 难 上 加 难 但 是, 经 济 合 作 就 不 同 经 济 本 身 就 是 基 于 信 赖 运 作, 无 信 不 立 以 朝 韩 共 建 的 开 城 工 团 为 例, 在 李 明 博 政 府 时 期, 南 北 关 系 一 触 即 发, 但 工 团 却 安 然 无 恙 到 了 朴 槿 惠 政 府, 开 城 工 团 濒 临 关 停, 但 朝 韩 还 是 鼎 力 挽 救, 表 明 政 权 交 替 会 影 响 政 治 关 系 军 事 关 系, 但 经 贸 关 系 有 可 能 保 持 连 续 性 可 以 说, 实 现 半 岛 信 赖 进 程, 最 好 的 切 入 点 便 是 经 济 合 作 凸 显 韩 半 岛 地 缘 经 济 意 义, 对 中 国 而 言, 可 以 使 进 入 振 兴 进 程 的 东 北 地 区 经 济 得 到 巨 大 的 弹 力, 而 且 也 将 极 大 地 激 活 日 本 和 俄 罗 斯 等 周 边 大 国 参 与 东 北 亚 区 域 经 济 活 动 的 欲 望, 届 时 东 北 亚 区 域 大 规 模 经 济 合 作 或 国 际 性 高 层 次 合 作 体 系 的 建 构 将 具 备 现 实 的 可 操 作 性, 中 国 也 有 可 能 接 近 所 设 定 的 战 略 目 标 在 韩 半 岛 和 平 统 一 进 程 中, 恢 复 和 发 展 朝 鲜 经 济 是 至 关 重 要 的 一 环, 某 种 意 义 上 讲, 84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朝 鲜 经 济 发 展 与 否 决 定 韩 半 岛 和 平 统 一 进 程 能 否 顺 利 进 行 要 扶 持 朝 鲜 的 市 场 经 济 因 素, 促 使 朝 鲜 融 入 到 国 际 社 会 促 使 朝 鲜 变 化, 还 是 需 要 淡 化 地 缘 政 治 的 因 素, 更 多 地 讲 地 缘 经 济 的 因 素, 而 且 要 更 多 地 讲 靠 自 律 的 变 化 如 果 对 朝 政 策 里 多 了 地 缘 政 治 的 因 素, 那 么 讲 的 更 多 的 是 可 能 是 施 压 制 裁 对 抗 甚 至 是 冲 突 但 是 从 地 缘 经 济 角 度 靠 近 朝 鲜, 讲 的 更 多 的 可 能 是 交 流 合 作 双 赢 和 发 展 近 年 来 中 国 按 照 政 府 引 导 企 业 为 主 市 场 运 作 互 利 共 赢 的 原 则, 进 一 步 深 化 在 贸 易 投 资 基 础 设 施 建 设 资 源 开 发 利 用 农 业 等 领 域, 与 朝 鲜 的 务 实 合 作, 就 是 强 化 地 缘 经 济 的 意 义 朝 鲜 进 行 第 三 次 核 试 验 后, 中 国 赞 成 联 合 国 安 理 会 对 朝 鲜 的 制 裁 决 议 并 认 真 加 以 履 行 外 界 尤 其 是 韩 国 的 主 流 媒 体 很 多 认 为 中 国 的 对 朝 政 策 发 生 质 的 变 化, 有 的 认 为, 李 明 博 政 府 的 对 朝 政 策 之 所 以 未 能 见 效, 是 因 为 中 国 的 对 朝 政 策 没 有 变, 而 如 今 中 国 有 了 变 化, 所 以 即 便 是 同 样 的 政 策 效 果 却 不 同 中 国 的 对 朝 政 策 发 生 一 些 变 化 是 事 实 但 那 是 对 朝 鲜 进 行 第 三 次 核 试 验 的 反 应 式 变 化 在 解 决 朝 核 问 题 上 与 美 国 不 同, 中 国 主 张 通 过 对 话 和 谈 判 加 以 解 决 中 国 不 会 像 有 些 韩 国 学 者 期 待 的 那 样, 与 韩 国 携 手 对 朝 施 加 压 力 让 它 就 范 对 韩 半 岛 统 一 问 题, 正 像 今 年 六 月 份 习 近 平 主 席 同 朴 槿 惠 总 统 会 面 时 讲 的 那 样, 中 国 是 一 如 既 往 支 持 南 北 实 现 自 主 和 平 统 一 的 中 国 主 张 自 主 和 平 统 一, 强 调 了 两 点, 一 是, 强 调 统 一 的 过 程 必 须 是 和 平 的, 反 对 用 武 力 方 式 统 一 ; 二 是, 统 一 必 须 是 自 主 的, 反 对 外 来 势 力 主 导 统 一 进 程 韩 半 岛 的 统 一 终 究 要 解 体 韩 半 岛 冷 战 结 构, 淡 化 地 缘 政 治 意 义, 凸 显 地 缘 经 济 意 义, 使 消 极 的 和 平 变 为 积 极 的 和 平, 变 不 确 定 因 素 为 确 定 因 素 对 中 国 而 言, 韩 半 岛 的 统 一 将 意 味 着 近 代 以 来 一 直 影 响 中 国 的 韩 半 岛 问 题 彻 底 得 到 解 决, 韩 半 岛 名 副 其 实 地 成 为 海 洋 经 济 圈 与 大 陆 经 济 圈 的 连 接 点, 中 韩 合 力 为 东 北 亚 区 域 经 济 一 体 化, 为 东 北 亚 新 秩 序 的 构 建 发 挥 巨 大 的 正 能 量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85
한반도 통일에 대한 중국의 인식과 대응 (요약) 한반도의 평화통일 과정과 중국 진징이 ( 金 景 一, 북경대) 근대사이래, 동북아 국제질서의 몇 차례의 변화는 모두 전쟁을 통해 완성된 것이었다. 1894년의 중일갑오전쟁 이 초래한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질서 붕괴, 1905년의 러일전쟁 은 일본이 만든 대 동아공영권 의 시작이 되었고, 1950년의 조선전쟁 은 동북아냉전질서의 구조를 공고히 했다. 이런 전쟁은 모두 한반도에서 시작, 발생했고 중국 정치 국면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근대사 이래의 한반도 역사를 역사적으로 관찰할 때 우리는 한반도문제의 핵심은 각 시대에 있었던 지연주의 내 한반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이해하는 지연정치의의는 정태 적인 것이 아니라 동태 적인 것이다. 그것이 가리키는 것은 어떤 지리환경이 어떤 국가전략목표의 틀이나 시야에서 진입하는 것은 분명하게 드러나는 가치 라 는 것이다. 자연요소와 사람이 요소가 되는 유기결합 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한 지역에서 드러나는 지연정치의의라고 불리는 것은 인류발전의 시대, 그 구역 정치상황, 국가간 전략지향적인 충돌상태 등 요소와 관계 있다. 곧, 근대이래, 한반도는 모두 열강전략목적의 틀이나 시야에 진입했고, 그 지연정치의의는 부각 되었는데 그런 까닭에 묵묵히 대국간의 충돌, 전쟁이 전개된 것이다. 19세기말, 러시아는 먼 동쪽에서 태평양이 지정한 남하전략에 진입했는데, 한반도는 이에 근거하 여 러시아 전략의 틀에 진입했다. 일본은 중국대륙을 침략했고 북진전략 을 제정했는데 한반도 또한 일본전략의 기본틀에 진입해 일본이 중국대륙을 침략한 발판이 되었다. 중국은 한반도 내의 전통지위를 유지해서 한반도를 자신의 전략 안에 포함시켰다; 또한 유럽의 영국은 러시아가 남쪽 으로 내려와 출병해 한반도와 거문도를 점령하는 것을 제지했다. 여기에 이르러 최소한 러시아, 일 본, 중국 삼국의 전략의 기본틀은 한반도에서 합류해 갑오중일전쟁 러일전쟁 등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의 한반도 비극은 곧 한반도가 미소전략의 이익의 기본 틀에 진입 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미국과 소련은 각자의 전략인은 지분을 한반도 점령함으로 나누고 최종적으로 한국전쟁과 60년이 넘는 남북분열을 초래했다. 86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냉전이 끝난 후에, 동북아는 반복적으로 새 질서 형성기에 진입했고 동북아가 만든 새로운 질 서는 여전히 한반도가 핵심구역이 되어 전개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대국전략이 여전히 한반도에 멈 추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최소한 미국으로 말하자면 한반도는 동아시아전략을 수행하는 지지대역할을 하는 것이다. 예 를 들어 미국이 이 지지대를 이용해서 미일, 한미동맹을 강화해 솟아오르는 중국을 견제하려고 한 다면, 중국입장에서 한반도의 지연정치적 의의는 여전히 중요할 것이다. 대국전략은 한반도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는데 원인은 한반도는 아직 분열상태에 머물러있고, 대국이 개입공간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한반도가 통일이 된다면 대국의 전략은 한 반도에서 발걸음을 멈추기 힘들 것이고 한반도의 지연정치의의는 명확하게 약화, 소실될 것이다. 한반도지연정치의의는 최종적으로 약해지고 소실되는 것은 한반도의 화평통일을 통해 완성될 것이다. 중국으로 말하자면 한반도가 가장 이상정인 상태는 지연정치의의약화 및 소실의 상태 이 고 곧 하나의 안정적이고 평화적이고 통일된 한반도는 중국의 국가이익에 가장 부합한다. 과거의 우리는 한반도의 지연정치의의에 관해 이야기한 적 있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한반도에서 교차, 충돌하고 심지어 전쟁까지 했던 것이다. 우리는 한반도의 지연정치의의 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많이 이야기 되어야 할 부분은 해양경제권 과 대륙경제권 이 한반도가 다리가 되어 회합, 융합, 발전했다는 것이다. 명확하게 드 러나는 것은 한반도의 지연경제의의 는 실제로 명확한 협력, win-win, 발전이라는 것이다. 한반도의 화평통일과정은 지연정치의의 를 약화시키고 지연경제의의 의 과정을 명확히 드러내 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연경제의의 와 지연정치의의 는 다르고, 지연정치의의 는 종합국력의 대항과 게임을 강조하 고 지연경제의의 는 지연경제수단을 이용해서 국가이익과 국가관계의 좋은 방법을 찾는 것을 강 조한다. 지금 세계 추세는 지연정치가 지연경제로 전환되고 있고 경제이익의 수요는 정치, 군사, 의 식형태를 초월한다. 지연경제의 각축 또한 지연정치의 각축 을 대체한다. 한반도 지연경제의의 는 세계발전추세 와 부합하고 남북이 점진적으로 지연정치의의 를 약화시키는 것에 부합한다. 경제교류와 협력 중 win-win을 실현하면서 한반도평화통일의 과정을 이야기하면 그 주체는 한반도와 조선이다. 중 국은 한반도문제는 남북의 대화로 해결할 수 있다고 누차 주장하고 있다. 박근혜대통령이 방중 시기 시진핑은 중국측은 박근혜가 제시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를 환 영하고 남북관계개선을 지지하고 화해협력을 실현해 최종적으로 자주평화통일을 실현할 것 이라 고 표시했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87
그러나 박근혜대통령이 제시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성공할지 여부는 남북경제교류와 합작 에 달려있다. 앞에서 서술한 것과 같이 남북관계는 본질상 Zero-Sum관계 이고 Zero-Sum 에 의거해서 정치신뢰, 군사신뢰 를 실현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 남북체제가 다르기 때문에 합치기 어려운 것이 다. 그러나 경제합작은 다르다. 경제 자체는 운행을 신뢰하는 것에 기본을 두고 불신하면 경제가 설 수가 없다. 북한 남한이 공동으로 건축한 개성공단을 예로 들면 이명박정부 시기 남북관계 일촉즉발상황에서 공단은 평 화 무상했다. 박근혜 정부에 이르러 개성공단은 자주 문을 닫았다. 그러나 남북은 여전히 힘껏 구제했고 정 권교체가 정치관계, 군사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표명했다. 그러나 경제무역관계는 연속성 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를 실현하는 것은 가장 좋은 방법은 경제합작이다. 한반도의 지연경제의의 를 드러내는 것은 중국으로 말하자면 진흥과정의 동북지역경제에 진입 해서 거대한 탄력을 얻을 수 있게 하고 일본과 러시아 등 주변대국이 동북아구역경제활동에 참여 하고 싶은 욕망을 극대화해서 활용하고 그 때가 되어 동북아구역대규모경제합작이나 국제성이 높은 단계합작체제의 구축이 현실의 조작성을 구비할 수 있게 하고 중국 또한 설정한 전략 목 표에 접근할 수 있다. 한반도 화평통일과정 중, 회복과 북한경제를 발전 시키는 것은 중요한 일환인데, 어떤 의의에 서 설명하자면 북한경제발전 결정여부는 한반도화평통일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인가 결정된다. 북한의 시장경제요소를 돕는다면 북한이 국제사회에 융합되는 것을 촉진 시킬 수 있다 한반도변화를 촉진시키는 것은 지역정치의 요소를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지연경제요소에 더 초 점을 맞추고 더 자율적인 변화할 수 있게 한다. 만약에 북한정책안에 지연정치의 요소가 더 많다면 더 많이 이야기 될 것은 압력, 제재, 대항, 충 돌일 것이다. 그러나 지연경제의 측면에서 북한에게 있어 더 많이 이야기 되어야 하는 부분은 교류, 합작, win-win, 발전이다. 근래에 중국은 정부인도, 기업위주, 시장운영, 호혜공영 의 원칙에 입각해서 무역, 투자, 기초설비 시설, 자원개발이용, 농업 등의 영역과 북한의 실무합작을 심화하고 있는데 이것은 바로 지연경제 의 의의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제 3차 실험 후에 중국은 연합국 안보리가 북한에 대한 제제결의안에 찬성하고 열심히 88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실행했다. 외부세계 특히 한국의 주류매체의 많은 사람들은 중국의 대북정책은 질적인 변화가 있 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효과를 보지 못했는데 그것은 중국의 중국의 대북정책이 변화하지 않아서라고 했다. 현재 중국은 변화가 있기 때문에 정책효과는 같지 않을 것 이다. 중국의 대북정책 중 변화가 발생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북한이 제 3차 핵실험을 진행했던 것에 대한 반응식 변화이다. 북한의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미국과 다르고 중국은 대화와 담판을 통해 해결할 것을 주 장한다. 중국은 어떤 한국학자가 기대했던 것과 같이 한국과 손잡고 북한에 대해 압력을 가하고 그 가 복종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반도 통일문제에 대해 올해 6월 시진핑 주석이 박근혜대통령과 만나서 이야기했던 것과 같이 중국은 지난 날과 다름없이 남북자주화평통일을 지지할 것이다. 중국은 자주평화통일을 주장하고 두 가지를 강조하는데 첫째는 통일하는 과정은 평화로워 야 하고 무력방식의 통일에 반대하고 둘째는 통일은 자주적이고 외래세력이 통일과정을 주도하 는 것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한반도의 통일은 결국 한반도냉전구조를 해체하고 지연정치의의 를 약화시키고 지연경제의의 를 드러내서 소극적인 평화 를 적극적인 평화 로 변화시키고 불확실한 요소 를 확실한 요소 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중국으로 말하자면 한반도의 통일은 근대이래 지속적으로 중국의 한반도문제에 영향을 미쳐 철저하게 결정된 것이고 한반도는 명실상부하게 해양경제권과 대륙경제권의 연결점이 되며 동북아 신 질서의 형성은 거대한 에너지를 발휘하기 위해 중한이 힘을 합쳐 동북아시아구역 경제일체화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89
한반도 통일과 동북아 평화안정: 비전과 과제 전재성 ( 全 在 晟, 서울대) I. 서론 한반도 통일은 남과 북의 사건이기도 하지만 국제적 사건이기도 하다. 주변국가와 국제사회의 전략적 동의가 있을 때 더욱 수월하게 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한국의 통일 전략을 수행해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변 강대국들의 전략적 이해 관계 속에서 한국의 통일이 어떠한 지역적 이익을 가져올지에 대해 논리를 개발하고 설득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1991년 독일 통일의 경우를 보더라도 베를린 장벽 이후 동독 내의 변화가 중요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과 구소련 간의 협상,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 등 주변국들의 동의가 결국 통일을 가능하게 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현재 동북아는 탈냉전 초기의 낙관적 기대와는 달리 심화되는 민족주의적, 전략적 갈등의 와중에 놓여있다. 각 국가들은 군비경쟁과 민족주의적 열망 속에서 주변국들과의 갈등을 심화하고 있고, 동북아를 지구적 세력전이의 경쟁 공간으로 상정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남과 북의 분단은 지역적 갈등의 어려움을 체현하고 있으며 주변 강대국의 전략적 이해관계를 실현하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 모두가 극심한 분단비용으로 통일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노력을 배가해야 하는 이유이다.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앞으로 예상되는 본격적인 미중 간의 경쟁, 동북아 국가들 간의 민족주의 갈등 속에서 분단 상황이 더욱 심화되고 분단비용도 늘어날 것이다. 한반도 통일은 현재의 지역 안보, 경제 구조를 일신하고 새로운 지역협력을 도모하는 중대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한반도 통일이 가져올 수 있는 지역적 이익을 살펴보고, 통일에 대한 주변국과 강대국의 전략적 협력을 이끌 수 있는 논리를 어떻게 개발할 수 있을지 알아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첫째, 동북아 국제정치의 구조와 한반도 통일의 총괄적 의미를 우선 살펴보고, 둘째,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 지역 내 국가들의 전략적 이익이 어떻게 고양될 수 있는지 살펴본 이후에, 셋째,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91
통일 이후 한반도 외교 전략의 방향설정을 통해 통일 한반도에 대한 기대를 바탕으로 주변 강대국들이 현재 어떻게 한반도 통일을 지지할 수 있을지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이를 위해서 현재 한국이 전략적으로 노력해야 할 방향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II. 동북아 국제정치의 구조와 한반도 통일의 의미 1. 동북아 국제정치 구조의 특징 동북아는 세계 다른 어느 지역보다 갈등성이 높은 지역이다. 언제든지 무력을 사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갈등성의 정도가 매우 높다. 해묵은 갈등들이 해결되지 않고 지속되는 갈등의 지속성도 높다. 무엇보다 두드러진 것은 갈등 이슈의 다양성이다. 미중 간의 세력전이, 국가들의 전략적 협력망에서 비롯된 세력균형 경쟁, 다양한 영토분쟁, 북핵 문제, 양안관계 및 남북한 관계, 일본 구제국주의 청산문제, 역사해석을 둘러싼 민족주의 갈등 등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다. 서구에서 발전된 국제정치에 관한 이론들로 동북아 국제정치 갈등을 설명하려고 하지만, 각각의 갈등에 관한 중범위 이론의 설명은 가능하되, 문제의 본질을 총괄적으로 꿰뚫고 이를 해결하는 이론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 예를 들어 현실주의는 국가들 간의 세력과 이익의 경쟁으로 문제의 본질을 설명하고자 하지만, 역사문제나 민족주의 갈등은 비단 세력과 이익의 문제가 아니다. 자유주의 이론은 다자적 협력의 제도화 발전 정도가 약한 것을 문제 삼지만, 동북아 국가들은 다양한 지역과 지구의 제도들을 창출하면서도 제도적 균형과 경쟁을 펼치고 있다. 민주화 정도가 높아지더라도 시민사회의 민족주의적 경향은 더욱 강화되어 시민사회 간 반목과 충돌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구성주의 이론은 국가들의 다양한 정체성의 정치에 주목하지만 어떠한 역사적 과정을 거쳐 동북아 국가들의 정체성이 중첩적으로 형성되어 현재에 이르렀는지 내용 있는 가설을 그 자체로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동북아 국제정치는 전형적인 서구 국제정치이론으로는 설명되지 못하는 긴 역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동북아 질서의 역사적 진화과정을 총괄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가장 큰 특징은 근대 이전의 지역질서가 근대 이행의 과정을 거치면서 어떻게 변화했고, 독특한 근대로 정착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동북아 근대 질서는 완전하고 단일한 전형적 조직원리를 기반으로 하지 못하였고, 불완전한 이행 과정과 지속적인 전통의 영향 속에서 형성되었다. 동북아 질서의 전통적 원형은 사대질서로서, 하나의 제국 속에 동북아 국가들이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92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편입되어 있는 위계질서였다. 1) 그러던 것이 19세기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침탈이 일어나고 일본은 스스로가 제국주의적으로 변모하면서, 무정부상태의 근대 조직원리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제국주의 정복과 식민지 복속의 변화를 겪게 된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동북아 단위들은 주권국가로 재탄생했지만 새롭게 등장한 주권국가들은 매우 독특한 특성을 지니게 된다. 두 개의 중국과 두 개의 한국, 그리고 일본은 모두 완전치 못한 주권국가들이다. 중국은 전통적 사대질서의 역사적 전통을 지닌 공산주의 제국으로 등장한다. 이후 개혁개방을 거치면서 시장사회주의의 정체성을 함께 지녀 결국 전통유교적 중화의 정체성, 공산주의 정체성, 그리고 시장사회주의의 정체성을 함께 지난 복합국가로 등장하였다. 중국의 자기정체성과 외교정책에는 시진핑 주석이 표방한 바대로 중화의 꿈이 녹아있으며 이는 영토경계설정, 북한과의 당 대 당 관계, 문명의 중심으로 스스로를 설정하는 소프트 파워 외교 등에서 폭넓게 나타나고 있다. 21세기 지구적 강대국으로 등장하는 중국의 정체성은 근대 이전부터 이어오는 다양한 정체성의 중첩적 구조에 발을 디디고 있고, 중국인들은 강대국화되는 중국의 미래에 과거 중국을 투영하여 바라보고 있다. 반면 대만은 주권국가로 출범했지만 근대 국가들 간의 세력경쟁, 그리고 냉전이라는 독특한 세력배분구조 속에서 주권성을 상실했다. 양안 관계의 극심한 경쟁 속에서 생존은 하고 있지만,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 하에서는 주권적 지위가 매우 불분명한 상황이다. 양안관계가 경제적 상호의존 관계로 변모되는 최근의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이어지고 있으며, 이러한 분단 상황을 새롭게 강화되는 미중의 경쟁논리가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은 대만과의 전략적 관계 강화 속에서 중국이 통일을 통해 서태평양지역으로 진출하는 것을 최대한 막으려 한다. 중국이 전통적 민족관과 영토관의 관점에서 하나의 온전한 주권국가로 출현하지 못하는 상황이 동북아 국제정치구조와 맞물려 있는 것이다. 중국이라는 단위의 특성이 발생하게 된 원인, 경과 모두가 동북아 지역질서의 역사적 진화과정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일본은 최근 아베 정권 하에서 보통국가, 군사대국을 향해 빠르게 나아가고 있다. 한국 정부의 논평처럼 일본이 보통국가화되는 것은 국제연합 가입국가인 주권국가 고유의 권리이며, 미일 동맹의 틀 속에서 미국과의 협의 속에서 결정해야 할 일본 나름의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19세기부터 추구한 제국주의 때문에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일본만의 문제로 여겨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일본은 근대 이행 과정에서 지나친 성공으로 스스로 제국으로 탈바꿈하였고 동아시아 국가들 전체에 대한 제국주의 침탈, 그리고 미국과의 동아시아 지역 경쟁 및 전쟁을 통해 정상적 주권국가의 지위를 오랫동안 가지지 못했다. 일본이 다른 여느 국가들처럼 1) 위계질서에 대해서는 David Lake, Hierarchy in International Relations (Ithaca, NY: Cornell University Press, 2009) 참조.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93
보통국가의 지위를 얻으려는 과정에서 주변국가들이 이를 승인하지 못하는 양상은 역사적 전개과정과 밀접히 연관된 것이다. 유럽 근대의 경우를 보더라도 국가의 주권성은 국제사회의 동의 속에서 승인 받는 과정을 거쳐 정착되는 것인 만큼, 동아시아 국가들이 일본이 주권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역사적 과정 때문이다. 결국 21세기 중국과 일본을 보면 제국의 그림자 때문에 주권국가 간 상호존중과 합의에근거한 국제사회의 질서가 정착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은 전통질서 속의 제국, 그리고 공산주의 세계주의 속의 부분적 제국성,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제국의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근대주권국가의 틀 속에서도 비공식적 제국성을 가지고 있다. 2) 일본 역시 과거 제국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못하고 있으며, 향후 보통국가가 된 이후 일본의 행로에 대해 명확한 전략적 계획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국가들로부터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 유럽의 경우를 보더라도 19세기 비엔나 체제 이후 근대주권국가 간 관계가 정착한 것은 제국으로 나아가는 모든 길이 막힌 이후이다. 3) 나폴레옹의 프랑스를 비롯한 18세기 말까지의 제국 건설 경쟁이 마무리되고 제국의 포기가 국제사회적으로 인정된 이후에야 근대 주권국가들 간의 국제사회, 즉 무정부상태 속의 사회(anarchical society)가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이후에도 근대 국가의 틀 속에서 비공식 제국을 지향한 수많은 노력들이 있고, 현실에서도 작동하고 있다. 4) 그러나 동북아의 경우처럼 주권국가의 틀조차 완성되지 못한 채 제국의 그림자 속에서 왜곡된 것과는 경우가 다르다. 한반도는 동북아 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극심한 갈등과 피해를 입은 국가이다. 역사적으로 스스로 제국성을 한 번도 가지지 않은 채, 주변국들의 제국적 팽창의 대상이 되었고, 대륙과 해양의 각축 속에서 분단의 위기를 수없이 거치면서 결국 근대 국가를 완성하지 못한 채 현재 분단국가로 남아 있다. 전통 시대에는 사대질서 하에서 중화의 주변왕조로 존속하였고, 근대 초입에는 일본의 식민지로, 이후 냉전기에는 미소의 비공식 제국 하의 약소국으로 존속하였다. 냉전 종식 이후에는 동북아 강대국들 간의 새로운 각축 속에 놓이면서, 한편으로는 근대의 완성과 국제사회 건설이라는 과제, 다른 한편으로는 온전한 주권국가로 재탄생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렇게 볼 때 한반도의 통일이라는 것은 비단 통일한국이라는 새로운 단위의 출현을 의미할 뿐 아니라 왜곡되고 완성되지 못한 동북아의 국제정치적 근대의 완성의 시작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5) 2) William A. Callahan, Remembering the Future - Utopia, Empire, and Harmony in 21st-Century International Theory, European Journal of International Relations, vol. 10, no. 4 (2004). 참조. 3) Paul W. Schroeder, The Transformation of European Politics, 1763-1848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4) 참조. 4) Jack Donnelly, Sovereign Inequalities and Hierarchy in Anarchy: American Power and International Society, European Journal of International Relations, vol. 12 no. 2 (2006) 참조 5) 전재성, 동아시아 국제정치: 역사에서 이론으로 (서울: 동아시아연구원, 2011) 참조. 94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2. 한반도 통일의 총괄적 의미 한국은 전통적으로 한반도에 기초한 한민족의 단위라는 개념을 보존해왔다. 1991년 국제연합에 동시 가입하여 남과 북 모두가 국가성이 강화되었지만, 여전히 한민족이라 는 민족성도 변화하지 않은 채 지속되고 있다. 근대적 국가성과 전통적 민족성 간의 긴장과 갈등이 남아있는 한, 통일을 향한 움직임은 계속될 것이다. 동시에 21세기에 접어들면서 한국의 탈국가성도 강화되고 있다. 해외 이민이 늘어나고 한국인들의 해외진출도 활발해지면서, 시민권에 대한 개념도 변화된 것이다. 혈연적 민족성이 아닌 정치적 시민성을 기준으로 한국인을 정의하려는 노력도 활발해지고, 한국인의 해외진출 과정에서 이중국적도 허용되는 등, 한국인의 기준이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젊은 세대들의 범세계시민주의도 확산되어 민족통일에 못지 않게 보편적 시민주의도 강화되고 있다. 탈근대적, 탈국가적 세계질서가 한반도에도 큰 영향을 미치면서 지구화시대 통일의 의미는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한반도의 통일은 한편으로는 근대 이행의 완성되는 출발점을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개념화된 민족의 단위에 기반한 근대국가를 이루고, 이에 따라 국민, 영토, 주권의 개념을 온전히 한 채, 다른 단위들의 통합적 국가성을 승인하는 것이다. 중국 역시 전통적 민족과 영토 개념에 근거한 온전한 국민국가를, 일본 역시 제국성을 온전히 탈각하여 비제국적 국민국가를 이룰 때 서로 간의 주권을 인정한 무정부상태적 국제사회, 온전한 근대가 마련될 수 있는 것이다. 더불어 근대 이행이 완성된 이후에 지역통합, 더 나아가 탈근대적 거버넌스로 나아갈 수 있다. 만약 현재와 같이 제국의 그림자를 탈피하지 못한 채 지역통합을 추진한다면, 중국에 대해서는 전통 중화질서의 부활, 일본에 대해서는 과거 제국주의 부활의 정당하지 못한 인식과 비판이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심을 강화하는 각 단위별의 문제가 존속하는 것도 사실이다. 동북아 국가들이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국민국가를 건설하고, 그러한 자족 위에 타국의 주권적 권한을 상호 인정하는 모습을 보일 때, 동북아인들은 성숙한 국제정치적 근대인의 정체성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한국의 통일은 많은 시사점을 가진다. 한국이 통일되면 모범적 근대단위를 이루게 될 것이다. 한국은 근대국가를 만들어가는 과정과 제국을 건설하는 과정을 혼동할 만한 역사적 경험이나 주변의 의심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이 통일국가가 된다고 해서 동북아에서 팽창을 추구할 수 있는 국력도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제국을 건설할 경험적 기반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과 일본도 온전한 근대적 통일 보통국가로 재정립한다면 제국으로 나아가지 않겠지만, 주변의 인식이 계속 문제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더욱이 비공식적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95
제국을 향한 움직임도 버리고 지역통합으로 나아가려면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데, 새롭게 성립하는 통일 한국은 이러한 점에서 시사점이 크다. 이에 대한 동북아 국가들의 성숙한 승인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다른 국가들의 단위성 문제가 제기되고 타국에 위협적이지 않은 통일과 보통국가화가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바탕 위에 서로를 인정하는 국제사회가 성립되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통합과 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6) III. 한반도 통일과정과 동북아 지역 협력의 증진 1. 북한 내 급변사태로 인한 통일 한반도 통일 과정은 동북아 주변국가들과 국제사회의 협력을 증진함과 더불어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를 정립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통일 한국의 성격 규정, 향후 지역 국제질서에서의 역할 설정 등 많은 문제들이 함께 제기되기 때문이다. 한국이 어떠한 방식으로 통일하게 될 것인가는 확실하지 않다. 여기에서는 대략 북한 내 급변사태로 인한 통일과 남북 교류협력을 통한 평화적 통일의 두 가지로 설정하여 논의하기로 한다. 북한 내 어떠한 급변사태가 가능할 것인지, 급변사태가 과연 통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인지, 그 과정에서 통일을 가능하게 하는 국제적 환경이 마련될 것인지, 모두가 가능성으로서만 논의할 수 있는 상황이다. 첫째, 급변사태의 형태에 관한 문제로 북한 내 급변사태는 집권세력의 실정으로 인한 쿠데타 등의 정권교체, 그리고 주민들의 산발적, 혹은 조직적 운동으로 인한 정치불안과 집권세력 교체 등을 상정해 볼 수 있다. 어떠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북한 내 급속한 정치변동이 통일로 이어지려면, 한국과의 통합을 원하는 강렬한 주민들의 열망과 이를 대표하는 정치세력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만약 북한 스스로 일정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태를 수습하여 새로운 정권을 세우거나, 북중동맹을 발동하여 중국의 일방적 도움을 원할 경우 6) 동북아 국가들의 통일, 보통국가화가 근대국가의 최초의 건설인지, 혹은 재통일, 재보통국가화인지는 향후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한국의 경우 재통일과 최초의 근대국가건설이라는 개념상의 문제가 있다. 재통일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면 통일 상태로 회귀한다는 것인데 이때 말하는 통일 상태가 근대 국민국가 이전의 왕조 상태는 아닐 것이므로 우리 역사상 전범이 되는 근대적 통일 국민국가의 상태를 상정할 수 있어야 한다. 전통적 조선왕조를 마감하고 근대 국민국가를 수립한 것은 1897년 대한제국이 최초이다. 그러나 대한제국은 불과 8년 만인 1905년에 외교권을 빼앗긴 반식민상태로 전락했고 이후 1910년 일본에 의해 식민지화되고 만다. 제국주의 시대에 열강으로부터 온전히 국민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한반도 영토 전체에 온전한 근대 체제에 기반한 근대국가를 수립하지 못했던 대한 제국은 통일 상태의 근대적 한반도를 대표하기에는 너무 짧고, 불행한 역사를 겪었다. 일제강점기에 수립되었던 임시정부는, 한국민들의 열망을 대표하는 근대국민국가가 아니었다고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전한 통일근대국가의 모습을 갖추기에는 부족하였다. 지금까지 한국민은 스스로의 손으로 온전한 근대 국민국가를 수립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반도의 통일은 단순한 통일을 넘어 새롭게 근대적 국민국가의 체제와 역사를 만들어가는, 국가건설의 과제일 것이다. 중국과 일본 역시 각각 신해혁명과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국가를 건설했지만, 중국은 영토와 국민 전체를 장악한 성공적 통일근대국가를 이루는 데에 어려움을 겪어왔고, 일본 역시 국민국가 건설과 동시에 제국을 추진했기 때문에 과연 전형적 근대국가 건설에 성공했는가는 논의가 필요하다. 96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급변사태와 통일은 연결되지 않을 것이다. 다른 경우로 북한 내 대량학살과 같은 비인도적 사태의 발생가능성을 들 수 있는데, 이 경우 국제연합 안보리의 동의를 거쳐 국제사회가 개입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이 경우에도 중국을 비롯한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동의가 필요하며, 통일로 이어지려면 국제사회의 전반적 승인이 필요하다. 둘째, 급변사태로 인한 통일이 이루어지더라도 이후 통합 과정의 문제로 예기치 못한 급속한 통일은 많은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경제적 통일 비용은 다양한 경로로 산정되어 있기 때문에 준비된 점증적 통일보다 통일 한국에 많은 경제적 부담을 줄 것임은 확실하다. 몰락으로 인한 통일은 북한 집권세력과 주민들의 좌절감을 강화시킬 것이기 때문에 이후의 사회, 문화적 통합도 부작용이 따를 것임에 틀림없다. 한국 사회가 북한 주민들을 받아들여 통합적이고 발전지향적인 새로운 국가를 이룰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경우, 경제발전 지체, 사회통합의 어려움, 그리고 이후 북한 지역에 대한 정치적 통합, 군사화되어 있던 북한의 탈군사화 등의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을 겪게 될 것이다. 이 경우 국제사회의 전면적 개입과 투자가 상당부분 문제를 완화시킬 수 있다. 현재까지 동아시아의 지역 내 경제통합은 상당수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북한 지역이 동아시아 경제네트워크에 빠르게 편입된다면 통일 비용의 국제적 분산이 가능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 지역의 정치, 사회적 안정, 경제발전 기반 강화가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셋째, 급변사태로 인한 통일에서 주변국가와 국제사회의 적극적 동의와 승인이 대단히 중요하다. 앞서 논의된 바와 같이 북중동맹으로 인한 중국의 개입 가능성, 국제연합에서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의 찬성을 생각해보면 급변사태 발생 이전, 혹은 사태 진행과정에서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은 매우 중요하다. 북한 문제를 둘러싼 한중 협력은 동아시아 전체의 전략 구도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은 반드시 충돌로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협력 속의 경쟁 형태로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한반도는 미중 전략 경쟁이 본격적으로 일어나는 지정학적 공간 중 하나이다. 통일한반도가 미중 간의 경쟁에서 중국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있기 전에는, 중국이 북한 급변사태를 한반도 통일로 이어갈 동인이 부족할 것이다. 중국은 미중 전략 경쟁 속에서 통일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 북한 주민들이 바라는 향후 한반도의 모습, 북한 집권층에 대한 한국의 처리, 통일 이후 한미동맹의 방향, 통일 이후 한일관계의 향방, 통일 한국의 군사전략 방향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하여 북한 급변사태에 대한 대처 방안을 세우게 될 것이다. 한국은 급변사태를 지향하거나 조장하는 정책이 아니고 평화적 통일을 추구하되 있을지도 모르는 급변사태에 대비하는 것을 기조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국이 북한 급변사태 이후 통일한국의 미래에 긍정적인 통일을 이룩하려면 통일에 대한 준비는 물론이고, 통일 과정과 통일 이후 한국의 전략적 지향에 대한 동북아 강대국들과의 전략협력이 착실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97
한중 전략 협력은 물론이고, 미중 간에도 한반도의 미래를 둘러싼 평소의 전략대화, 그리고 중일 관계의 협력 등이 전제되어야 통일을 향한 전략 공간이 마련될 것이다. 이 과정을 한국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면 한국의 통일은 이후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2. 교류협력을 통한 평화적 통일과 동북아 가장 바람직한 통일은 북핵 문제 해결,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남북 교류협력 발전, 북한에 대한 국제적 경제네트워크 작동, 남북 간 사회통합, 이후 정치적 통일의 순으로 이루어지는 통일이다. 한국의 통일 방안은 시대별, 행정부 별 세부방안에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을 지향해왔다. 당면과제는 북핵 문제이다. 북한이 핵과 군사력을 통한 생존과 국가발전을 모색하는 한, 한국은 물론 주변국가들의 대북 협력이 불가능하고 통일은 실현이 사실상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 해결과정과 통일과정을 연결하고, 더불어 한반도 통일과 동북아의 협력을 연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다음과 같은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첫째, 북핵 문제 해결과정에서 북한 문제 해결과 동북아 안보구조의 문제를 동시에 제기하고 이를 연결하는 세심한 전략이 필요하다. 북핵은 다차원적 이슈로 대량살상무기 비확산이라는 지구적 비확산 레짐의 문제이자, 북한의 미래를 둘러싼 동북아 국가들 간 세력균형의 문제이고, 남북 안보경쟁 및 교류협력과 연계된 한반도의 문제이기도 하며, 냉전 종식 이후 불안정한 북한의 미래를 둘러싸고 발생한 문제이기에 북한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한반도 평화체제의 정착은 병행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평화적 환경 속에 핵을 버린 북한이 한국과 공존하기 위해서는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국제적 보장과 지원이 필요하다. 따라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동북아 구조의 문제와 밀접히 연결되는데, 이는 한국 외교의 도전이자 기회이다. 한국은 북핵이라는 미시적 문제를 통해 동북아 국가들 간의 다자적 안보협력의 모델을 정초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다. 북한 문제를 다른 어느 국가들보다 잘 알고 있으며, 외교의 주도권이 자연스럽게 인정되는 상황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다자적 해결과정을 동북아 안보협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둘째, 북핵 문제가 해결되고 남북 간의 평화교류 상황이 이루어지는 단계에 진입하면 한반도에 대한 국제적 지원과 교류가 활성화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이 자동적으로 통일을 향해 나올 것이라고 가정하기는 어렵다. 북한이 핵을 버리고 시장사회주의나 다른 형태의 개방, 개혁의 사회경제체제를 이룩하더라도 정치적 권위주의가 지속될 가능성도 있고, 남북 간의 경쟁은 다른 98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형태로 계속될 수도 있다. 이 과정을 통해 통일로 나아가려면 북한 체제에 국제적으로 관여하기 위한 본격적인 노력이 경주되어야 하 는데, 이는 한국의 대북 정책과 외교정책이 결합되어야 가능하다. 북한이 국제개발협력의 수원국 지위를 얻어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기존의 통합된 동아시아 경제네트워크에 편입될 수 있도록 무역과 투자 여건을 만들어가며, 미국 및 일본과의 수교를 통해 자본유입과 교류협력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등, 북한의 개혁개방이 궁극적으로 통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과정은 한반도의 미래가 동북아 강대국들 간의 협력과 궤를 같이하는 과정을 창출한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7) 결국 평화적 과정을 통한 한국의 통일 노력은 대북 전략만으로는 부족하고 동북아 지역을 염두에 둔 외교전략과 결합될 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북핵 문제 해결이라는 현재의 과정은 물론, 북핵 문제 해결 이후 개혁, 개방된 북한과의 통일 지향 노력 역시 국제사회, 특히 동북아 강대국들의 안보전략과 선순환을 이루며 연결되지 않으면 실현되기 어렵다. 한국은 대북 정책과 통일정책을 추구할 때, 이를 한반도에 국한된 정책으로 다루지 말고 동북아 지역 구조의 문제와 연결된 지역전략의 일부로 다루어가야, 통일과 동북아 평화를 연결시킬 수 있을 것이다. IV. 통일 한국의 외교전략 방향과 지역 구도의 변화 앞서 논의한 바대로 한반도 통일은 한민족의 근대국가 건설 과제의 완성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동북아 국제정치의 비정상성, 무정부상태 성립 이전(pre-anarchy)의 경쟁성 극복, 근대 국가들 간의 평화지향적 국제사회 수립, 그리고 근대를 넘어서는 지역통합을 이루기 위한 미래지향적 노력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안고 있다. 한국의 통일을 인구 8천만의 강대국 출현, 이후 한국의 영향력 확장과 기존의 동북아 민족주의 경쟁에서의 우세 점위 등 한국의 국익에만 국한된 과업으로 상정하면 주변국가들의 도움과 축복을 받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한국 스스로가 미래 통일 한국의 규범적 의미를 지역 차원에서 설정하는 인식적 성숙성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한반도 통일과정을 불완전한 근대의 경쟁성, 혹은 근대 국가들 간의 세력균형이나 강대국간 세력전이 차원의 사건으로 상정하는 주변국은 한반도 통일에 선뜻 찬성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조심스러운 것은 중국이다. 통일 한국에 주한미군이 여전히 대규모로 주둔하고, 미중 간 안보경쟁이 잠재적으로 심화되는 가운데 주한미군의 전진배치가 이루어지고, 한미 간 대중 전략 협력 과정에서 미사일 방어체제 등이 강화된다면 중국은 독립된 북한의 존재, 분단 한반도가 훨씬 국익에 부합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더 나아가 미일 양국과 통일 한반도의 군사적 협력이 7) 동아시아연구원, 신대북정책 제안: 신뢰프로세스의 진화를 위하여 (서울: 동아시아연구원, 2013) 참조.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99
강화된다면 중국으로서는 향후 미중 관계에 통일 한국이 부담스러운 존재가 될 것이다. 미국 역시 한반도 통일을 미중 간 세력경쟁의 차원에서 인식할 경우,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이 전통적으로 중국과의 문화적 근접성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고 있고, 한일 관계가 쉽사리 회복되지 않으며, 한중 간 경제협력이 불가역적으로 심화되었다고 미국이 느낀다면 통일 한반도는 미국의 영향권에서 멀어질 것으로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특히 중국의 부상에 직면하여 소위 아시아 재균형전략을 취하는 가운데 동맹과 전략 협력 파트너인 일본, 호주, 태국, 싱가포르, 베트남 등과 협력을 강화하는 가운데 한미동맹의 존재는 미국의 말대로 핵심축(lynchpin)이기 때문이다. 한반도가 통일되면 아무래도 한국은 동북 3성과의 경제적 관계를 강화하고 중국의 동북 지역 및 러시아 극동지역과 교통, 에너지, 자원, 인간안보 등의 영역에서 협력을 강화할 것이며, 이는 미국에게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8) 일본은 미중 경쟁 구도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군사적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형편이다. 미국은 중국과 신형대국관계를 통해 협력하려 하지만 동시에 일본에게 군사적 견제의 역할을 맡기고 싶은 상황이다. 통일 한국이 중국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한다면 대중 군사견제 역할에서 한일 협력을 원하는 일본의 희망은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또한 한국의 국력이 강화되면 일본과 상대적인 격차가 줄어들 것이고, 한일 관계가 쉽사리 나아지지 않는다면 일본은 한국의 통일이 환영할 만한 일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현재로서 한국의 통일을 가장 환영하는 세력은 러시아라고 볼 수 있다. 러시아는 중국의 부상과 미러 관계의 경쟁 속에서 동아시아의 협력 대상을 구하고 있다. 향후 동아시아의 경제적 중요성이 높아간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는 러시아는 극동개발 및 에너지 협력을 통해 동아시아 국가들과 협력하려 하지만 한국과의 협력도 큰 전기를 맞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의 존재는 오히려 한러 경제협력을 가로막고 있고, 북핵 문제에서도 러시아의 위상이 크게 높아지기 어려운 상황에서 통일 한국은 한러 경제협력의 새로운 전기가 될 수 있고,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는 파트너로서의 의미를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복잡한 동북아 강대국들의 경쟁 방정식에서 한국이 모든 강대국을 만족시키면서 통일을 이룬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오히려 한국이 원하는 지역구도를 독자적으로 내놓고 이에 대한 동의를 구한 후, 통일이 한국이 원하는 구조의 실현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를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은 동북아의 상대적 약소국이자 평화세력으로서 현재의 세력균형과 경쟁의 논리를 다자협력, 복합적 네트워크로 변환시켜 가는 데에 많은 이해관계를 가진 존재이다. 한국은 동북아의 평화 속에서만 번영할 수 있으므로, 스스로 강화되는 제국적 노력을 기울일 수 없는 8) Peter M. Lewis, US Foreign Policy toward the Korean Peninsula: An Anti-Unification Policy or Just Too Many Uncertainties to Account For?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Unification Studies Vol. 16, No. 2 (2007), pp. 79-108 참조. 100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존재이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이 통일과정과 통일 이후 한국의 외교정책을 통해 현재의 동북아 국제정치를 보다 협력적으로 바꾸려고 한다는 사실에 동의를 구하는 일이 필요하다. 통일 한국이 강대국 간 세력균형에서 어느 한 편에 서는 편중의 외교정책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강대국 간 갈등을 완화하고 전략적 협력을 도모하며, 구체적인 이슈에서 협력을 촉진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심어 준다면, 통일 이후 한국의 외교적 정향에 대한 믿음을 심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믿음이 미래의 그림자가 되어서 현재 한국의 통일 노력을 지지하는 정책으로 나타날 때, 한국은 통일 과정과 동북아 평화과정을 연결시킬 수 있을 것이다. V. 향후 한국의 전략적 노력 방향 최근 한국의 중견국 외교에 대한 다양한 제언들이 나오고 있다. 중견국이라는 용어는 한국의 국력크기에 비추어 제시된 말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한국의 역할과 관련하여 외교적 비전의 형태로 제시된 용어이다. 역사적으로 중견국의 역할은 다양한 변천을 겪어 왔다. 국력 기준에 따라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의 국가이기도 하고, 냉전기 동맹정치에 편중되지 않은 비동맹 국가이기도 하며, 규범적 역할을 자임하여 인간안보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국가이기도 하다. 냉전 종식 이후에는 강대국과 약소국의 가교 역할을 하는 중간 그룹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국의 경우 중견국 외교는 지구적 차원에서 보편규범 실현을 위한 역할을 하는 외교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동북아 강대국들 간의 전략적 경쟁을 완화하는 대안적 안보 구조를 제시하는 외교이어야 한다. 과연 중견국이라는 용어가 이러한 역할에 적합한가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가 있으며, 대안적 용어가 출현하면 더욱 반가울 것이다. 9) 핵심은 추상적으로 제시되는 동북아 중견국, 협력촉진자, 지역질서의 변환자 등의 역할을 어떻게 구체화시킬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첫째, 동북아 혹은 좀 더 넓은 의미의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본질에 대하여 정확히 인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비전 및 지식 능력이 필요하다. 현재 동아시아 국가들은 자신에게 가장 유리하면서 공통의 비전으로 여겨질 수 있는 동아시아 미래 담론을 형성하는 데에 진력하고 있다. 동아시아 공동체, 대동의 동아시아, 인권과 자유, 시장질서가 실현된 동아시아 등 국가별 비전이 제시되고 있다. 한국은 통일 한국이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상적인 동아시아 지역질서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그 속에서 미국과 중국, 일본이 수행해야 할 역할을 담론의 형태로 제시할 수 있을 때, 외교의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고, 그 가운데 통일한국의 9) Sook-Jong Lee. 2012. South Korea as New Middle Power Seeking Complex Diplomacy (EAI Asia Security Initiative Working Paper 25), pp. 3-4; Andrew F. Cooper, Richard A. Higgott and Richard Nossal Kim. Relocating Middle Powers: Australia and Canada in a Changing World Order (Vancouver: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Press, 1993) 등 참조.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01
위상을 정립할 수 있다. 둘째, 미중의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한미중 삼각관계의 새로운 공식을 고안해야 한다. 향후 한반도 통일의 문제는 결국 미중 간 지정학적 경쟁 속에서 통일한국의 위치를 설정하는 문제가 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현재 서로에 대한 헤징전략, 혹은 양방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미중은 신형대국관계를 통해 상호 협력하기로 입장을 표방하면서도, 전략적 경쟁구도를 상정하여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전략 협력을 구체화하는 한편, 중국은 강화되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내적 균형을 통한 군사력 증진 및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구도를 모색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통일이라는 과제를 놓고 미중의 경쟁의 축에서 어떠한 역할을 맡기가 어려운 처지이다. 더불어 미국과 중국을 모두 만족시키는 전략을 추구하기도 어렵다. 오히려 미국과 중국과 모두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한국의 전략적 입지를 넓혀나가는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미중 경쟁 구도에서 한국이 반드시 양국 모두에게 필요한 존재로서 인식되도록 하면서 한국이 원하는 바, 특히 통일의 목적을 지지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외교역량이 필요하다. 10) 셋째, 동아시아 각국들은 미래 동아시아 주도권을 취하기 위한 인프라 정비경쟁을 하고 있다. 중국은 최근 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에서 국가안전위원회를 설치하여 중장기 외교전략을 발전시키기로 했다. 일본 역시 일본판 국가안보회의(NSC)를 설립하여 향후의 전략환경에 대응하고자 하고 있다. 2013년 동북아 모든 국가에서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한 이후 각 국가들은 중장기 동아시아 전략을 내세운 바 있고, 향후에도 이를 발전시킬 수 있는 정책 인프라는 매우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한국은 현재 국가안보실을 중심으로 한 정책조정기능을 발전시키고 있지만, 과연 어떠한 동아시아, 혹은 동북아 전략을 구체화할지, 그 전략 속에서 통일전략이 어떻게 연결될지 큰 과제로 남아있다. 주변 국가들의 동아시아 전략이 자국의 영향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강대국 전략이라면, 한국은 동아시아 국제정치를 협력과 공존의 원칙에 기반할 수 있도록 하는 진정한 중견국 외교의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10) 전재성, 미중 간 신형대국관계의 전망과 한국의 외교전략, 외교, 107호 (2013) 참조. 102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한반도 통일과 동북아 평화안정: 비전과 과제 (요약) 전재성 ( 全 在 晟, 서울대) 한반도의 통일은 동아시아 국제정치의 근대 이행의 완성이라는 총체적 의미를 가진다. 19세기 중엽 이후 서구 제국주의 영향 하에서 근대 이행을 거친 동아시아 국가들은 1945년 이후 근대 국가 형성을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간직해온 민족과 영토를 보존하면서 온전한 근대국가를 이룬 동북아 행위자는 극히 드물다. 한반도는 분단되어 두 개의 정치체가 탄생했으며 중국 역시 두 개의 중국으로 분단되었다. 제국주의 물결 속에서 팽창주의의 길을 걸은 일본은 패전 이후 현재까지 보통국가의 위상을 찾지 못한 채 외교정책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한반도의 통일은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근대적 이행을 완성하는 총괄적 의미를 가진다. 한반도의 통일을 시발로 양안관계의 발전, 일본의 보통국가화가 평화와 안정 속에서 이루어져 결국 동아시아 근대 이행이 미래지향적으로 완성될 수 있도록 모든 동아시아인이 노력해야 한다. 한반도의 통일은 통일과정에서 동북의 평화와 안정에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다. 한반도의 통일은 북핵 문제 해결, 남북 교류협력 증진, 이후 평화로운 통일의 길을 걸을 수 있다. 다른 하나의 가능성은 북한 내 불안 상황이 조성되어 급격한 통일의 기회가 조성될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한반도의 통일은 주변 강대국들과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 속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평화로운 통일 과정에서 북핵 문제의 해결 없이 통일이 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북핵 문제는 미국과 중국의 협력, 더 나아가 6자 회담을 통한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을 통해 가능한 일이다. 한반도의 통일 과정은 남북의 협력 뿐 아니라 동북아 국가들 간의 제도화된 협력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고 따라서 한반도의 통일과 동북아의 다자안보협력은 선순환관계를 이룰 수밖에 없다. 설사 북한 내의 급변사태에 의한 통일이 이루어지더라도 주변국의 협력이 없이는 통일이 불가능하다. 북한과 동맹 관계를 맺고 있고 국제연합 상임이사국인 중국의 동의와 협력 없이 북한에 대한 어떠한 형태의 개입도 사실 어려울 것이다. 한국과 미국이 북한을 급속하게 통일하려고 해도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일이다. 이 모든 과정을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03
통해 현재 벌어지고 있는 미중 경쟁은 중요한 문제로 대두할 것이다. 현재 미국과 중국은 소위 신형대국관계를 통해 협력 속의 경쟁을 추구하려는 정책기조에 합의한 바 있다. 한반도 통일의 과정은 동북아의 지정학적 변화를 일으키는 큰 사건으로 미중의 협력과 한반도 통일은 선순환 관계를 맺으면서 발전해야 할 것이다. 일본과 러시아 역시 중요한 행위자이다. 양국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의 행위자일 뿐 아니라 통일 이후 한반도의 발전에도 중요한 주변국이다. 통일 한반도는 러시아의 극동지방을 거쳐 아시아 대륙으로 이어질 것이므로 러시아의 극동개발과 통일 한반도의 발전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일본 역시 통일 한반도와의 경제적 협력을 통해 상호이익을 도모하고 한일 간의 협력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다. 따라서 한반도 통일 과정은 동북아의 평화, 안정과 선순환 관계를 맺게 될 것이다. 통일 한국의 향후 전략은 동북아의 상황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인구 8000만에 달하게 될 한국의 외교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는 명확한 외교전략의 방향설정이 필요하다. 특히 미중의 경쟁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통일 한반도가 출현한다면 어느 한 강대국에 치중하는 외교가 아니라 동북아 전체의 평화, 안정을 고양하는 한국의 외교가 중요하다. 현재 한국은 한미동맹과 한중 간 전략 협력관계를 동시에 추구하면서 동아시아 세력균형 구도를 평화로운 다자협력구도로 변화시키려는 중견국 외교를 추진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통일 이후 더욱 강화될 것이다. 한국은 미국 영향 하에서 중국을 견제하거나, 급격히 한미동맹을 약화시키면서 중국에 치중하는 양자택일의 외교전략을 택해서는 안된다. 미중 간의 경쟁이 지속되더라도 양국의 전략적 불신을 완화하고 협력을 증진시킬 수 있는 갈등해결 메카니즘을 강화함과 동시에 세력균형의 변화를 평화롭게 이끌 수 있는 체제적 유연성을 강화하는 외교를 펴나가야 할 것이다. 현재 동북아는 고립된 북한을 축으로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양분되어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동북지역, 극동지역 개발을 하면서도 한국과 일본, 미국과 연결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과 일본 역시 대륙과의 경제교류를 위해 먼 길을 돌아야 하는 불편함을 겪고 있다. 통일 한반도가 출현하면 한반도 북부는 교류의 맥을 잇는 중요한 연결점이 될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동북아 강대국들이 상호협력하는 장을 한국이 마련해 갈 수 있을 것이며, 궁극적으로 동북아의 다차원적 평화네트워크를 만드는데 통일 한국이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104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韩 半 岛 统 一 和 东 北 亚 的 和 平 稳 定 ( 摘 要 ) 全 在 晟 ( 首 尔 大 学 ) 韩 半 岛 的 统 一 具 有 完 成 东 亚 国 际 政 治 的 近 代 转 型 的 整 体 性 的 意 义 19 世 纪 中 叶 以 来, 在 西 方 帝 国 主 义 的 影 响 下, 东 亚 各 国 开 始 了 近 代 转 型,1945 年 以 后, 各 国 进 入 努 力 建 设 近 代 国 家 的 阶 段 但 是 在 东 北 亚 地 区, 很 少 有 国 家 是 在 保 留 传 统 的 民 族 与 领 土 情 况 下 建 立 完 整 的 近 代 国 家 的 韩 半 岛 分 裂 后, 形 成 了 两 个 政 治 体, 中 国 也 面 临 着 相 同 的 问 题 日 本 在 帝 国 主 义 的 浪 潮 下, 走 上 了 膨 胀 主 义 道 路, 战 败 后 至 今 还 没 能 恢 复 普 通 国 家 的 地 位, 在 外 交 政 策 上 经 历 种 种 困 难 从 这 一 点 上, 韩 半 岛 的 统 一 对 东 亚 国 际 秩 序 完 成 近 代 转 型 具 有 全 局 性 的 意 义 因 此 所 有 东 亚 人 应 该 为 实 现 韩 半 岛 的 统 一 促 进 两 岸 关 系 的 发 展 日 本 成 为 普 通 的 国 家, 而 最 终 完 成 东 亚 的 近 代 转 型 而 努 力 韩 半 岛 在 完 成 统 一 的 过 程 中, 可 以 对 东 北 亚 的 和 平 与 稳 定 做 出 很 多 贡 献 韩 半 岛 完 成 统 一 的 方 式 有 两 种 可 能 第 一 种 可 能 是, 通 过 一 条 解 决 朝 核 问 题 增 进 南 北 交 流 最 终 实 现 统 一 的 道 路 来 完 成 统 一 另 一 种 可 能 性 是, 朝 鲜 内 部 的 不 稳 定 局 势 提 供 一 个 可 以 迅 速 统 一 的 机 会 但 无 论 是 哪 种 情 况, 韩 半 岛 的 统 一 只 有 在 得 到 周 边 强 国 与 国 际 社 会 的 支 持 与 协 助 时, 才 有 可 能 实 现 如 果 朝 核 问 题 得 不 到 解 决, 和 平 的 统 一 过 程 将 是 不 可 能 的 而 朝 核 问 题 只 有 通 过 美 国 与 中 国 的 合 作, 进 而 通 过 六 方 会 谈 达 成 东 北 亚 多 方 安 保 协 议, 才 有 可 能 实 现 韩 半 岛 的 统 一 过 程 既 需 要 南 北 韩 的 合 作, 同 时 还 需 要 东 北 亚 各 国 间 的 制 度 性 合 作, 因 此, 韩 半 岛 的 统 一 与 东 北 亚 的 多 方 安 保 协 议 只 有 在 良 性 循 环 关 系 的 保 障 下, 才 可 能 实 现 即 使 因 朝 鲜 内 部 发 生 了 重 大 变 化 而 实 现 了 统 一, 如 果 不 能 与 周 边 国 家 有 良 好 的 合 作 关 系, 统 一 将 很 难 顺 利 完 成 在 得 不 到 中 国 这 个 既 与 朝 鲜 保 持 同 盟 关 系 又 任 联 合 国 常 任 理 事 国 的 国 家 的 同 意 与 协 助 的 情 况 下, 将 很 难 对 朝 鲜 进 行 任 何 形 式 的 干 预 韩 国 与 美 国 想 要 加 速 对 朝 鲜 的 统 一, 但 必 须 要 保 证 与 中 国 的 战 略 合 作 关 系 通 过 这 些 所 有 的 过 程, 现 在 已 经 开 始 的 美 中 之 间 的 竞 争 将 会 成 为 重 要 的 问 题 美 国 与 中 国 通 过 所 谓 新 型 大 国 关 系, 在 形 成 竞 争 与 合 作 并 存 的 关 系 上 达 成 了 协 议 韩 半 岛 的 统 一 过 程 是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05
一 个 会 伴 随 东 北 亚 地 政 学 上 重 要 变 化 的 事 件, 因 此, 美 中 的 合 作 与 韩 半 岛 的 统 一 应 在 维 持 良 性 循 环 的 前 提 下 发 展 日 本 和 俄 罗 斯 也 是 重 要 的 邻 国 两 国 不 仅 是 解 决 朝 核 问 题 的 六 方 会 谈 的 重 要 参 与 国, 同 时 对 统 一 后 的 韩 半 岛 的 发 展 也 有 重 要 影 响 统 一 的 韩 半 岛 将 通 过 俄 罗 斯 的 远 东 地 区, 与 欧 亚 大 陆 相 连, 所 以 俄 罗 斯 的 远 东 开 发 与 韩 半 岛 的 发 展 密 切 相 关 日 本 也 可 以 通 过 增 进 与 韩 半 岛 的 经 济 交 流, 寻 求 共 同 的 利 益, 发 展 韩 日 间 的 合 作 关 系 因 此, 韩 半 岛 的 统 一 过 程 将 与 东 北 亚 的 和 平 稳 定 形 成 良 性 循 环 的 关 系 统 一 后 的 韩 半 岛 的 战 略 将 对 今 后 东 北 亚 的 状 况 产 生 很 多 影 响 届 时 韩 国 的 人 口 将 达 到 8000 万, 为 了 不 对 东 北 亚 的 和 平 与 稳 定 带 来 威 胁, 韩 国 的 外 交 需 要 确 立 明 确 的 政 策 方 向 尤 其 是 在 美 国 和 中 国 持 续 竞 争 的 情 况 下, 如 果 韩 半 岛 实 现 统 一, 那 么, 有 必 要 建 立 一 种 既 不 倚 靠 任 何 一 个 大 国, 又 促 进 东 北 亚 整 体 的 和 平 与 稳 定 的 外 交 政 策 现 在, 韩 国 通 过 同 时 推 进 韩 美 同 盟 和 韩 中 战 略 合 作 关 系, 努 力 将 东 亚 的 势 力 均 衡 格 局 转 变 成 和 平 的 多 方 合 作 格 局 这 种 倾 向 将 在 统 一 后 得 到 进 一 步 的 强 化 韩 国 在 外 交 战 略 上 既 不 能 选 择 在 美 国 的 影 响 下 牵 制 中 国, 也 不 能 选 择 急 剧 削 弱 韩 美 同 盟, 转 向 与 中 国 形 成 更 密 切 的 关 系 即 使 美 中 之 间 持 续 竞 争, 韩 国 的 外 交 政 策 既 要 做 到 缓 解 双 方 在 战 略 上 互 不 信 任 的 局 面, 增 进 双 方 的 合 作, 同 时 还 要 具 备 灵 活 性, 起 到 以 和 平 方 式 促 进 势 力 均 衡 局 势 发 生 转 变 的 作 用 现 在 东 北 亚 形 成 了 以 朝 鲜 为 轴 的 海 洋 势 力 和 大 陆 势 力 中 国 与 俄 罗 斯 在 东 北 地 区 远 东 地 区 开 发 时, 苦 于 不 能 连 接 韩 国 与 日 本 美 国 美 国 和 日 本 也 面 临 着 绕 一 大 圈 才 能 与 大 陆 进 行 经 济 交 流 的 困 难 如 果 能 实 现 韩 半 岛 的 统 一, 那 么 韩 半 岛 的 北 部 将 会 成 为 交 流 的 重 要 的 连 接 点 通 过 这 个 过 程, 韩 国 将 会 形 成 一 个 促 进 东 北 亚 强 国 之 间 相 互 合 作 的 环 境, 最 终 将 会 为 东 北 亚 多 层 次 的 和 平 往 来 作 出 重 要 贡 献 106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동북3성과 한반도 경제협력: 비전과 과제 <동북3성과 한반도 경협의 비전과 과제 - 북중 국경협력에 대한 한국의 참여> 퍄오동쉰 ( 朴 東 勛, 연변대) 1. 서론 최근 들어 한국이 중국 동북3성에 보다 큰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다음의 두 가지 이유 때문 이다. 첫째, 중국정부의 동북진흥책이 본격적으로 실시되면서 동북3성이 중국 4대 성장축으로 부 상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중국 시장 개척이라는 차원에서 동북3성은 자연 관 심지역이 된다. 둘째, 2009년 이래 동북진흥책과 북중경협이 연계되어 협력패턴이 새로운 변화를 보 이면서 북중 간 '경제밀착'에 대한 한국의 관심이 증폭되었다. 이 중 후자가 보다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실지로 한국은 한반도 특유의 정치구도 속에서 북한의 비핵화 와 한반도 통일 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떠안고 있다. 일단 한국은 비핵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대북제재가 필요하지만 북중경협의 지속적 증대는 이러한 대북제재의 효과를 반감시키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 다. 한편 "한반도 통일" 준비를 위해서는 북한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북중경협은 북한 시장세력 확대 및 개방적 사회조성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긍정적 시각 또한 함께 존재한다. 이처럼 한국은 상당히 갈등적인 인식 속에 북중경협의 주요 현장인 동 북3성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연구는 무엇보다 동북3성과 한반도의 경협문제를 중국-북한-남한이라는 3자간의 상호 연계 속에서 고찰하고자 한다. 즉 북중경협의 실태를 파악하고 현재 안고있는 과제들을 밝 히는 것을 전제로, 한중 협력의 방향을 제시하는데 연구의 목적을 두고자 한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07
Ⅱ. 북중 국경 협력의 국제정치경제 동북3성은 중국 내에서 북한과 가장 긴 국경선(총연장선 1,318)을 접하고 있으면서 그동안 북 중 교류의 주요 창구로 작용해 왔다. 2000년대 이후, 특히 2009년 북한 제2차 핵실험에도 불구 하고 동북3성과 북한간의 경협이 보다 활성화되면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09년 중국이 북중국경지역 개발을 공세적으로 펼치게 된 데는 다양한 원인이 작용했다. 첫째, 중국정부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해 실물경제부문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 시작하자 2008년 11 월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4조 위안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제정했고, 이런 맥락에서 2009년 창지투 규획 랴오닝경제벨트 규획 등 1) 국가전략 수준의 지역개발 규획이 십 여건 발표된다. 둘째, 동북 지역 국경개발 프로젝트는 국가균형발전의 차원에서 장기간 추진되었던 동북노공업기지 진흥이 성 과를 내지 못하면서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추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991년 UNDP 주도로 추진된 두만강지역개발프로젝트 (TRADF)가 여전히 답보상태에 놓여 있었고 2003년 동북노공업 기지 진흥계획과 함께 2005년 대두만강 지역협력(GTI)도 재차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국들 의 시각은 여전히 관망적이었다. 이에 따라 중국은 우선 일국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지역개발을 강행하여 궁극적으로 국제협력을 이끌어 내겠다는 구상을 갖게 된 것이다. 2) 셋째, 북한의 지전략적 가치 때문이다. 정치적 측면에서 지역개발의 고질적인 문제는 역시 한반도 정세 불안정이었고, 또한 경제적 측면에서 보아도 지역개발의 경우 북한이라는 문호를 확보하여 지역 개방도를 높여야 할 필요성이 존재했다. 3) 물론 안보적 측면에서 한반도는 줄곧 외세침략의 발판이 되었었다는 전통인 식이 작용했다는 점도 결코 부인할 수 없다. 환언하면, 중국의 동북 국경지역개발은 북한에 대한 개혁 개방 유도를 통해 동북아 지역의 장구적인 평화 국면을 조성해야만 국제협력도 보다 현실 적으로 가능해질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중국의 국경지역 개발에 적극 참여하게 되었는가. 첫째, 이는 경제 개선의 필 요성이 보다 돌출이 되는 시기라는 점과 연관된다. 2009년 제2차 핵실험이후 북한은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을 토대로 정치강국, 그리고 핵무기를 기반으로 군사강국임을 자처할 수 있었지만 강성 대국의 대문을 열기 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경제강국 건설과업은 오히려 요원한 상 태로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둘째, 후계체제 구축의 필요성 때문이다. 2008년 8월 와병이후 자신 한테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음을 인지한 김정일은 2009년 1월 김정은 후계자 지명을 하달하 고, 점차 후계체제 구축에 들어섰다. 그러나 김일성 김정일과 같은 인격적 리더십을 가지지 못한 김 1) 이하에서는 논의의 편의를 위해 창지투규획, 랴오닝경제벨트 규획 을 통칭하여 동북 국경지역개발이라 부르기로 한다. 2) 중국 연변대학교 경제관리학원 리종림 교수 인터뷰, 2012년 7월. 3) 창지투규획 보고서 작성과정에 참여했던 자문위원들에 의하면 애초의 개발 계획은 주로 창춘( 長 春 )과 지린( 吉 林 ) 지역에만 집중되었다 한다. 그러나 두만 강 지역 대외통로 확보를 전제로 한 개방도 제고가 없이는 개발계획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다수 전문가 의견에 따라 연변-훈춘지역이 포함 되면서 창지투 규획 으로 범위가 확대되었다고 한다. 108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정은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김정일은 무엇보다 안정적인 내, 외부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했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인 경제난과 2차 핵실험이후 지속적으로 강화된 국제사 회 대북제재 속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는 어려웠다. 2009년 이래 미국의 전략적 인내 대북정책 은 변함없었고, 남북관계도 MB정부 등장 이래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김정일 위원 장이 협력파트너로 선택할 수 있는 국가는 오로지 중국밖에 없었다. 바로 이 시점에 중국이 대규 모 국경지역 개발을 제시하면서 북한은 북 중 국경지역개발에 적극 동참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북 중 국경협력은 양국 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측면이 있다. 중국으로서는 동북 아지역 협력국면을 이끌어 냄으로써 동북지역발전과 동북아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의도가 있었 고, 북한의 경우 핵실험 이후 경제강국 건설, 후계체제 구축 등 내부적으로 대외협력의 필요성이 증 대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북한의 국경개발 참여는 어찌 보면 중국의 동북지역개발 프로젝트가 하 나의 유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는 북한이 처한 국제적 상황 및 내부적 인식 변화 가 궁극적 요인이었다고 볼 수 있다. Ⅲ. 국경협력의 전개와 북한의 참여 2010년부터 정식 개시된 북 중 국경협력은 애초부터 상당한 협조관계를 이루며 진행되어왔다. 중국정부는 2009년 7월과 8월에 이미 인준한 국경개발 규획을 원쟈바오 총리 방북 이후인 11월 중순에 이르러서야 대대적인 내부적 동원과 대외홍보를 전개했고, 이 시점(12월)에 김정일은 18년 만 에 나선시를 방문하고 이듬해인 2010년 1월부터 일련의 대외개방조치를 실행했다. 그렇다면 현재 까지 북한은 북 중 국경개발에 어떠한 참여 형태를 보여 왔는가. 여기서는 주로 국경협력을 위한 북한의 일련의 정책조치와 구체적 영역들에서의 협력현황을 살펴보고자 한다. 1. 북한 대외개방정책의 변화 북한은 2010년 이후로 대외개방을 위한 일련의 조치들을 실시해왔다. 북한은 2010년 1월4일 나선시를 특별시로 승격한 이후 2010년 1월 15일에는 20년 만에 기반시설 기초공업 지역개발을 중심으로 한 국가경제개발 10개년 전략계획 을 발표했다. 2010년 1월 27일에는 라선경제무역지대 법을 개정한데 이어 7월 8일에는 외국투자를 전반적으로 관리하는 합영투자위원회를 설립했다. 또 한 2010년 8월 김정일 제2차 방중을 계기로 10월에는 나진 신의주 공동개발에 관한 북 중 협 정이 체결되었다. 2011년 5월 하순 김정일의 제3차로되는 파격적 대중 행보 이후 6월 8일과 9일에는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09
황금평 위화도 경제지대 공동개발 착공식과 나선경제무역지대 공동개발 착공식이 진행되었다. 4) 이를 배경으로 2011년 11월부터 12월까지 북한은 수정된지 2년도 채 안되는 라선경제무역지대법을 다시 거의 신규수준으로 개정했을 뿐만 아니라, 황금평 위화도 경제지대법 등 10여 개의 외국인투 자관계법들을 신규 공표 또는 수정했다. 이들 법규들은 투자기업 특혜조치, 국제법 기준 수용 등 대부분 외자유치와 관련하여 투자기업에 대한 우대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어 기업 친화적 조치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5) 2010년 이후 북한 경제개발의 청사진이라 할 수 있는 국가경제개발 10개년 전략계획 (이하 10년 개발계획 )은 2020년까지 해외 선진기술과 과학적인 경영관리 기법 및 해외자본을 받아들여 경쟁력 을 갖춘 세계적인 생산기지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주로 나선-청진-김책 의 동북축과 신 의주-남포-평양 의 서남축을 중심으로, a, 자원개발 및 산업단지 조성(산업분야), b, 철도 도로 항만 등 인프라(SOC) 개발 분야와 c, 금융 등 분야에 대한 건설을 중점적으로 진행하겠다고 선 포했다. 물론 기술과 자본이 극히 궁핍한 상황에서 북한은 주요대상들을 국가예산과는 상관 없이 주로 10년간 1,000억 달러 투자를 유치해 개발한다는 것이다. 6) 개발 사업은 애초 국방위원회 산하의 조선대풍국제투자그룹과 내각 산하의 합영투자위원회의 주도로 추진되었으나 7) 그동안 자본유치 실적이 미진하자 김정일 사망이후 대외경제 관련 조직체계가 개편되어 대풍그룹이 합영투 위 산하의 국으로 통폐합되었다. 그 대신 2012년 연초에는 합영투위 해외 유일 투자유치 전담부서 인 조선투자사무소 가 중국 베이징에 설립되어 현재까지 외자유치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2. 북중 국경협력 실태 그렇다면 위에서 제시된 일련의 경제조치 하에 현재 북한의 국경협력 참여는 어떠한 상황을 보여 왔는가. 여기서는 주로 인프라 건설, 투자유치, 인적교류 영역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4) 동 착공식을 통해 황금평 위화도 총 16km2의 부지에 양국은 정보산업 관광문화산업 현대농업, 그리고 가공업 등 4대 산업단지와 상업센터를 조성하기 로 약속했다. 나선무역지대의 경우 주로 원정리-나선시 도로보수 공사, 나진항을 이용한 중국내 화물 운송, 나선 시범농업지대, 연간 생산 100만 톤 규모의 시멘트 공장 건설과 나선지역 자가용 운전 관광 항목 등이 약속되었다. 5) 2011년 11월 29일 합영법, 외국인투자법, 합작법, 외국투자기업 및 외국인 세금법, 외국인기업법, 등이 수정 보충되었고 12월 김정일 사후에도 불구하고 12월 21일에는 외국인투자은행법, 외국인투자기업등록법, 외국인투자파산법, 외국인투자기업재정관리법, 외국인투자기업회계법, 외국인투자기업로동법 법령들 이 수정 공표되었다. 이에 관한 구체적 평가는 배종렬, 최근 개정된 북방특구법제의 개혁 개방성: 라선경제무역지대법을 중심으로, 수은북한경제, 2012, 봄호, pp.49-77; 유현정, 북한의 대외경제관련 법규정비 평가, 세종정책연구,2012-18, 2012, 참조. 6) 박희진, 김정일체제의 경제적유산과 북한경제전망: 거점개방과 반개혁의 이중주, KDI경제리뷰, 2012년 5월호. 7) 조선합영투자위원회(위원장 리수영)은 내각 산하기관, 조선대풍그룹(총재 박철수)는 국방위 산하 기관으로 알려짐. 합영투위는 통상적인 외자유치를, 대풍 그룹은 대규모 인프라 사업 등 목적성 사업을 위한 외자유치를 담당했던 것으로 알려짐. 김치관, 북, 제한조치 대폭 완화된 투자법을 올해 공표, 2011, 민족21, 110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1) 인프라 건설 중국정부는 창지투규획 에서 일찍 동북 변경지역 경제개발구 건설을 적극 추진함과 동시에 북 한 및 러시아 원동지역 항만을 경유하는 대외통로 확보를 2012년까지 일차적으로 완성해야 한다 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북한 항만을 경유하는 대외통로 확보는 중국 동북지역개발에서 그 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의미이다. 중국정부는 창지투 선도구 규획 100대 중점추진 프로 젝트 중 북한의 나진항과 청진항으로 통하는 도로, 철도 및 통상구 다리 등 교통 인프라건설에 총 160.5억 위안(약 25억 달러)을 투자하여 국내 구간은 2015년까지, 북한 내 구간은 2020년까지 완공할 것을 계획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북 중을 연결하는 중요 세관인 권하-원정리 교각건설이 이미 완공 되었고, 원정리-라선지역을 잊는 2급도로도 2012년 현재 이미 개통되었다. 단동과 신의주를 연결 하는 신압록강대교는 2010년 착공을 시작하여 18억 위안(약 2.8억 달러)이 투자되어 2014년 7월에 완공될 예정이다. 그 외에도 중국은 도문-청진 철도(171km), 도문-나진 철도(159km)에 총 32.78 억 위안을 투자하는 등 10여개 대외통로 프로젝트가 계획 중에 있다. 8) 항만개발의 경우, 2012년 9월 1일 연변하이화그룹( 延 邊 海 華 集 團 )은 북한 항만총회사와 계약 을 체결하여 청진항 해운항만합작경영회사를 공동 설립하고 연간 하역능력 700만 톤인 청진항의 3, 4호 부두를 30년간 공동관리 및 이용하기로 합의했다. 9) 대련 창리( 創 立 )그룹은 2008년 나선항 제1호 부두 10년 사용권을 확보한데 이어, 2009년부터 석탄부두 개조 건설을 진행했다. 2010년 중국 해관총서의 비준 하에 국내 화물 초국경 운송 ( 内 贸 货 物 跨 境 运 输 ) 무역형식의 해상운동 통로를 확보하고 2011년부터 훈춘광업집단 석탄 50만 톤을 1호 부두를 통해 중국 상해 등 지 역으로 운송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12년 5월까지 7회에 거쳐 총 10.4만 톤이 운송되었지만 석탄 가격의 변동 특히는 권하-원정리 도로 보수공사가 시작되면서 현재까지 일시 중단된 상태다. 특구건설의 측면에서 보면, 2012년 8월 장성택 방중을 계기로 라선경제무역관리위원회와 황금 평 위화도 경제구관리위원회가 각각 설립되면서 양 지역 협력이 가속화될 전망이었다. 그러나 북 한의 제3차 핵실험은 상기 공동개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10) 예컨대, 2011년 ' 나선특구'에 100만 톤 규모 시멘트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던 야타이그룹( 亞 泰 集 團 )이 2012년 8월 14일 북한 라선시인민위원회와 투자합작 MOU를 정식 체결하고, 합작기한을 50년으로 2013년 8) 중국 연변대 임금숙 교수 인터뷰, 2012.7.3. 9) 청진항은 동항과 서항으로 구분된다. 동항 1, 2호 부두는 아직 대외에 개방하지 않고 있으며, 하이화 그룹이 임대한 부두는 조건이 다소 열악한 서항의 3,4호 부두이다. 하이화 그룹은 현재 6천 만 위안을 들여 3, 4호 부두 개보수 공사를 마쳤으며 2015년까지 수만 톤에 불과한 청진항 물동량을 100만 톤으로까지 올리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10) 예컨대 중국 포털사이트 써우후 닷컴은(sohu.com) 2월14일 한국 언론의 보도 내용을 빌러 중국지도부는 이번 북핵실험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으며, 유엔 대북제재 결의이후 대북 단독제재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고 밝혔다. 특히 중국은 이미 2012년 8월 장성택 국방위원장 방중 시 체결했던 나선, 신의 주-황금평 2개 특구 공동개발에 대해 전면적인 재토론에 들어갔다 고 밝힌바 있다. 이에 관해서는 韩 媒 : 中 国 取 消 朝 鲜 罗 津 特 区 会 议 或 为 制 裁 朝 鲜 http://news.sohu.com/20130214/n366067796.shtml 참조.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11
부터 생산에 투입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2013년 9월 현재까지 본 투자항목은 그다지 순리롭지 않 은 것으로 추정된다. 11) (2) 투자유치 김정은 체제의 정당성 확보에 있어서 경제문제 해결은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그러나 주지하다시 피 북한은 공장가동률 저하(30% 이하)와 원부자재 및 전력 등 생산요소들의 만성적 결핍으로 경 제회생의 내적 동력을 잃은지 오래다. 비록 경제개발 10개년 계획 이라는 야심찬 청사진을 마련했지 만 핵실험으로 인한 국제사회 대북제재가 발효 중인 가운데 중국으로부터의 투자유치가 경제회 생의 유일한 대안으로밖에 될 수 없는 상태였다. 앞에서도 논의되었듯이 북한은 2012년 이후 대중 투자유치를 높이기 위해 대풍그룹을 합영투위에 통폐합시키고 해외 유일 투자유치 전담부서인 조 선투자사무소 를 중국 베이징에 설립함으로써 해외기업 대북투자 관련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12) 투자규모와 상관없이 실제로 북한이 유치하고자 하는 투자항목들을 파악하기 위해 중국 단 동화상해외투자유한공사( 中 国 丹 东 华 商 海 外 投 资 有 限 公 司 )에 13) 공개된 유치계획 항목 158건에 대해 분석해 보면<표 1>과 같다. 전체적으로 북한이 실지 계획하고 있는 유치항목들은 광산 물 류 가공 /제조 어로양식 유통 금융 관광 기반시설 가공구 등 다양한 분야들을 포괄하 고 있으며, 항목 수로 볼 때 경공업 광산업 농수산업 서비스업 화학공업 등 순으로 나타났 다. 인민생활 수준 향상이라는 목표 하에 경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북한의 의도 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표 1> 북한의 투자유치 항목 추이(2010-2012.7) 분류 농수산업 광산업 서비스업 경공업 화공업 합계 항목수 18 49 14 68 9 158 출처: 丹 东 华 商 海 外 投 资 有 限 公 司 (http://www.cxtzw.com) 경공업의 경우 품목별로 종이/인쇄 식품가공 의류 /신발 가전제품 /전기기기 조명 플라스 틱 제품 생산 등 다양한 영역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생산된 제품에 대해서는 내수를 전제로 수출 11) 야타이그룹 소개에 따르면, 2013년 9월 8일, 라선시 인민위원장 조정호 일행이 야타이그룹 방문, 양자간 소통을 강화하고 야타이그룹 시멘트 공장 건설항목 추진을 가속화 해줄 것을 희망 했다고 한다. 12) 조선투자사무소 는 조선합영투위의 대외 창구 역할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국가신용을 담보로 투자항목의 합법성과 진실성을 보장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 다. 또한 북한 시장, 투자항목, 투자유치 관련 정책 법규에 대한 설명과 시장고찰 등 대북투자 제반 절차에 편의를 제공하는 기능을 하고자 한다. 朝 鲜 投 资 事 务 所,http://www.cestcenter.com/firm.aspx(검색일: 2013.9.30). 13) 丹 东 华 商 海 外 投 资 有 限 公 司 는 대북 경제협력 민간단체와 대북경협 사업단위( 事 业 单 位, 국가기관 성격)를 바탕으로 설립되었다. 기존의 사업 우세를 빌 어 북한 투자유치 항목에 관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주로 북한 투자관련 자문, 시장조사연구, 협의 및 계약과정에 방편을 제공하고 있다. < 丹 东 华 商 海 外 投 资 有 限 公 司, http://www.cxtzw.com>, (검색일: 2012년 12월 10일). 112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가능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특히 아이스크림 햄버거 비누 껌 조미료 생활용세척제 태 양에너지온실항목 등 상대적으로 인민생활수준 향상 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생필품 생산은 평 양지역에 투자할 것을 희망하고 있다. 광산개발의 경우, 철 금 동 등 10여 종의 광산 관련 투자유치를 희망하고 있는데 개발대상 지역은 주로 함경북도, 황해남도, 평안남도, 평안북도 등의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 주로 현장탐 사를 통한 자원량 평가 및 투자기업의 자본조달 능력에 따라 투자규모가 확정되는 것으로 보인 다. 협력방식은 북한이 노동력과 자원 및 부분 시설을 제공하고 중국 측이 자본과 기술 설비를 제공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중국 측이 단순히 광물을 채굴해가는 형태에서 벗어나서 전반적인 채굴, 가공, 운송 시스템을 구축해주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제품은 내수와 대중 수출을 동시 에 추구하고 투자금 상환은 보통 보상무역을 통해 실현하고자 한다. 서비스업의 경우, 대부분 평양지역에 투자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주로 현대화 호텔 건설 항목, 육 해운 수 와 물 류 센터 건설 항 목 등이 포 함 되어 있다. 특 히 평양 지역에는 택시 공 공버스 L P G 충전소 등 항목도 투자유치를 희망하고 있다는 점이 새롭다. 예컨대 중국 측이 100대 정도의 택 시 버스차량 및 부품을 제공하고 북한이 이를 보상무역 또는 지분에 따라 이윤을 배분하겠다 는 것이다. 14) 뿐만 아니라, 북한은 현재까지 도시 교통운영에 관한 합작 운영의 경험이 없기 때문 에 가급적으로 중국 기업 측에 구체적인 운영계획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은 인 민생활수준 향상 을 상징할 수 있는 생필품 및 서비스항목 투자를 평양시에 집중하는 성향을 보 이고 있다. 생산성 제고와 더불어 기득권층에 우선적으로 보다 나은 생필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겠 다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중국을 향한 북한의 투자유치 희망항목은 전방위적이다. 그러나 중국을 향한 북한의 이러한 희망사항이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루었는지에 대해서는 쉽사리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왜냐 하면 중국이 정부인도, 기업위주, 시장운영, 호혜공영 ( 政 府 引 导, 企 业 为 主, 市 场 运 作, 互 惠 共 赢 )라는 국내 시장 운영모델을 북한에도 적용하면서 무엇보다 시장기제에 기반한 기업의 참여를 적극 권장하고 있으나, 중국기업들의 시각에서는 북한의 정책 정치적 리스크를 항상 고려하지 않 을 수 없기 때문이다. 환언하면, 정부적 차원에서 볼 때 북한은 무엇보다 중국정부에 '대규모 투 자'을 요구하고 있지만 15) 중국은 시장기제를 기반으로 기업 참여를 위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수익 14) 실지로 2013년 현재 중국 화타이그룹( 华 泰 集 团 )은 북한과 1000대 규모의 승용차 수출계약을 맺었다. 이미 100대 공무용차량 및 300대 택시용차량이 수출 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5) 예컨대 북한 김일성종합대 최영옥 교수에 따르면 (나선경제무역)지대 내의 하부구조정비와 관련한 투자수요만 보더라도 초보적으로 수십억 달러 이상에 달하며 그의 개별적 계획새상들의 대부분은 서억 달러의 투자를 요구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현재 이 지애에 대한 외국인 투자의 실태를 보면 연평균 외국 인 투자액은 몇 천만 달러정도이며 그것마저도 계약단계에 있고 실지 실현된 것은 연평균 수백만 달러에 불과하다 고 주장한다. 또한 부문별 투자총액의 68.5%가 서비스부문에 27.2%가 생산부문에, 4.3%가 하부구조부문에 투자되었다. 고 한다. 최영옥, 라선경제무역지대에 대한 외국인투자의 현 실태와 제 기되는 몇 가지 문제들, 두만강포럼2013 발표논문, 2013년 10월21일.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13
성을 우선시하고 있다. 북한개발에 참여함으로써 북한의 개혁 개방을 이끌어내는 것에 주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김정일 시기 나선항 4, 5, 6호 부두 50년 사용권을 양도함과 동시에 중 국에 3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요구했다는 설이 회자되었을 때 중국은 직접적 개발원조보다는 기업을 내세워 30억 달러 규모의 나선특구개발 항목을 추진했었다. 16) 2012년 8월 중순 장성택 행 정부장 방중 시에도 북한이 중국에 10억 달러 규모의 차관을 요구했다는 설이 나돌았으나 17) 중 국은 결국 9월 22일 민간기구인 중국해외투자연합회가 대표로 북한 북경투자사무소 와 협의를 체결하고 30억 위안규모의 대북투자전문펀드 를 조성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 업의 차원에서 볼 때 대북투자는 항상 가시 돋친 장미 로 비유된다. 미개척지 북한시장은 상당히 매력적일 수 있으나, 미숙한 제도적 기반과 열악한 인프라, 그리고 정책적 정치적 리스크가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우려스러운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2012년 장성택 북한 행정부장의 방 중에 즈음하여 중국 언론에 공개된 시양그룹 ( 西 洋 集 團 ) 사건이 그 단적인 예였다. 18) 물론 북한도 투자환경 이미지 개선을 위한 일련의 조치들을 취했다. 시양그룹 사건이 언론에 공개되자 북한은 이례적으로 대외경제투자협력위원회 명의로 9월 5일 성명을 발표하여 관련사건에 대한 적극적인 해명에 나섰으며, 9월 9일에는 홍수로 갇혀 있는 중국 투자자들을 김정은이 직접 비행기를 파견하여 구출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등 적극적인 홍보작업을 전개했다. 이러한 배경 속 에서 9월 22일 중국해외투자연합회와 북경투자사무소 간의 대북투자전문펀드 관련 협약에 체결 되게 된다. 특히 중국해외투자연합회는 중국 상무부 외교부 및 학자들과 공동으로 북한을 방 문하여 합영투위 주최 하의 북한 투자유치 설명회( 광산 도시기반건설항목 CBD상업구 BOT건 설 19) 5성급 호텔 온 천레이저단 지 등 )에 참 석하 고, 북 한 시장 동 향 고 찰, 정부 기업 금 융 전 문 가 등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2012년 제1차 중조국제경제합작투자 고위층 포럼 을 김일성종합대 학에서 개최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11월 24일 출발 예정이었던 이번 방북프로그램은 북한 위성 발사 문제로 세 차례 연기되다가 12월 말에 이르러서야 소극적으로 타진된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북한은 현재 저렴한 노동력과 자원 및 기존 시설을 토대로 중국의 기 술과 자본을 유치하여 생산성 제고 및 인민생활 수준을 향상시키는데 일차적 목표를 두고 있 다. 따라서 투자부문에서 보면 북한은 '경제회생'이라는 명목 하에 자본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 16) 张 成 泽 访 华 受 关 注 传 要 向 中 国 借 10 亿 美 元, 大 公 報 <http://www.takungpao.com/news/content/2012-08/16/content_943432.htm> (검색일: 2012년 9월 10일). 17) 10억 弗 규모 차관 장성택 中 에요청, 조선일보, 2012년 8월 15일. 18) 중국 시양그룹이 언론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 500대 기업 중 하나인 시양그룹(민간기업)은 양국 정부 비준 하에 2007년 북한 령봉연합회사와 계약 을 맺고 양봉합영회사 를 설립하고 황해남도 옹진군 옹진철광에 2.4억 위안(약 3천만 유로)를 투자하여 2011년 4월부터 생산에 들어갔다(연간 생산량 50만 톤). 그러나 2011년 9월 북한이 토지임대세 1 /m2, 공업용수 0.141 /m3 등 총 16가지 요구를 부가하면서 쌍방은 갈등을 빚게 되었고 중국기업은 2012년 3월 강제추방 당했다. 2012년 4월 북한은 시양그룹에 이전금 명목으로 3,124만 달러를 지급하기로 약속했으나 8월 현재까지 집행되지 않은 상황이다. 辽 宁 西 洋 集 团 投 资 2.4 亿 元 铁 矿 项 目 遭 朝 鲜 毁 约, 中 国 选 矿 技 术 网, 2012.8.16. 19) BOT(build operate transfer), 즉 건설-경영-이전 방식을 가리킨다. 정부가 계약을 통해 사영기업(해외기업 포함) 일정 기한내 특허권을 부여, 특정 공용기반시 설 융자건설과 경영을 허가하고, 기업이 경영이익을 통해 투자 회수 및 이윤 창출을 도모하게 된다. 특허권 만기 이후 기반시설을 무상으로 정부에 이전한다. 114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다 절실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경제도 사회주의식으로 '속도전'을 진행하려는 북한 엘리트들의 관습적 사고방식의 반영일 수 있으며, 또한 정당성 확보를 위해 하루 빨리 실적을 보여줘야 하는 김정은체제의 전시행정 의 반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시각은 다르다. 정부적 차원에 서는 제도적 환경을 조성하고 기업이 주요 행위체가 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대북경협은 무엇보 다 수익성이 우선시되고 있는 것이다. 즉 상무부 외교부, 해관총국 등 구체기관들이 북한과의 협 상을 통해 투자환경을 조성해주고 주로 기업들이 북한사회에 투자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기 업의 차원에서는 투자 리스크를 항상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자본회수가 빠른 광산업에 보다 많 은 관심을 갖게 되며, 설령 다른 항목들에 투자를 한다고 해도 그 대가를 광산자원으로 지불 해 주길 희망하고 있다. 20) 따라서 북한은 실지로 보다 다양한 영역들에서 중국기업의 투자를 희망 하고 있으나 그 여건이 충분치 않고 또한 남북간 교역도 중단된 상황에서 무연탄, 철광석 등 광 물자원 개발과 수출을 확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2011년 북한의 대중 수출 대표 적 물품은 무연탄, 철광석 등 광물제품으로 수출액은 16.47억 달러에 달해 전년 대비 136.4% 증 가함으로써 전체 수출액의 67%를 차지했다. 21) 북한 대중국 수출항목 중 석탄 등 고형연료 수출 은 2009년의 2.09억 달러에서 2011년 현재 11.41억 달러로 5.5배 증가했고, 철광석은 0.48억 달러에서 3.23억 달러로 6.7배 증가했다. 22) (3) 인적교류 북중 국경협력 개시 이후 또 다른 변화는 양국간 인적 교류가 그 어느 시기에 비해 활발히 전개 되고 있다는 점이다. 2010년 김정일 방중을 계기로 북중 양국은 정상회담을통해 고위층왕래, 전략 적 소통 및 중국동북지역과 북한 간 경제협력 강화 등을 합의하면서 양국간 인적교류가 갈수록 활발해졌다. 일련의 고위층 상호방문이 연이어 진행되는 가운데 국경지역 지방관리들 간의 교류활 동도 함께 활성화 되는 추세를 보였다. 이는 동북3성과 북한 간 경제협력이 진일보 활성화 되고 있다는 징표로 볼 수 있는 것이다. 2010년 5월 이후로 고위층 인사들의 대중 고찰이 증가되었으며 2011년 이후로는 지방정부 관 원들의 실무적 방중이 증가했다. 양국 관료들 간의 의례적인 방문보다는 현실적 사안을 해결하 기 위한 방문과 고찰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2011년부터 라진특구와 황금평-위화도경 제구 기초 관원들이 중국 대학에서 관리경험을 학습한 사례다. 중국 상무부 주관으로 약 200명 규모의 라진특구 및 황금평-위화도경제구 관원들이 중국 길림대학과 대련행정학원에서 각각 두 20) 예컨대 중국 뤼띠( 綠 地 集 團 )은 현재 라선특구 7km2에 기반시설 투자를 계획 중이나, 그 투자 대가를 석탄 등 광산자원으로 받기를 원하고 있다. 绿 地 集 团 招 商 局 等 国 企 组 团 投 资 中 朝 经 济 区, http://business.sohu.com/20120817/n350885423.shtml(2012.8.17) 21) 이상국, 북중 경제교류 협력 동향과 시사점, 앞의 자료, p. 5. 22) 박윤환, 2011년 남북교역 북중무역 동향비교 Trade Focous, Vol.11 No.17, 한국무역협회, p.16.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15
달 간의 학습과 현지고찰을 진행했다. 대학별로 매 회 20명씩 5회에 나누어 연수가 진행되었으며 중국 측에서는 학자, 기업인, 정부관원 등이 강사로 나서서 주로 노동력시장, 노동력 공급, 도시와 농촌개혁, 세제개혁, 개발구 규획과 관리 등 중국의 경험들을 전수했다. 특히 2010년 이후의 북한의 대중 인적교류는 관리계층의 방중에서만 반영되는 것이 아니다. 중 국 국가관광국( 中 國 國 家 旅 遊 局 )이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북한인원들의 중국 방문자 수는 2010년 이후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예컨대 2009년 현재 북한 주민 중국 방문자 수는 10.39만 명이었으나 2012년에는 18.12만 명으로 늘어났다. 불과 3년 사이에 80% 증가했음을 의미 한다. 2013년 제3분기까지도 14.95만 명의 북한주민이 중국을 방문함으로써 전년 동기대비 12.4% 증가했다. 특히 여행목적 별로 분석한 결과 회의 비즈니스 및 취업 을 목적으로 한 방문자 수가 가장 선명하게 증가하고 있다(<그림 1참조>). 회의 비즈니스 등의 목적으로 중국을 방문한 북 한주민은 2009년의 1.94만 명에서 2012현재 5.5만 명으로 불과 3년 만에 3배로 늘어났고, 취업 ( 服 务 员 工 )을 목적으로 한 방문자 수는 2009년의 5.2만 명에서 2012년 8만 명으로 증가했다. 투자 유치 무역 및 취직 등 경제활동을 목적으로 한 인적왕래가 2010년 이후로 급격히 증가하고 있음 을 설명해주는 부분이다. <그림 1> 북한주민 중국 입국 통계(2008-2013.09) 자료출처: 中 国 国 家 旅 游 局 각 년도 통계 여행 친척방문 기타 등의 목적의 중국 입국자가 최근 몇 년이래 큰 변화가 없다는 점을 감 안하여 회의 비즈니스 및 취직 주재 를 목적으로 한 입국자들의 분기별 중국 입국 현황을 구체 적으로 살펴보면 <그림 2, 3>과 같다. 상기 두 유형의 분기별 입국자 수는 2011년부터 선명한 증 가세를 나타내고 있다. 우선 회의 비즈니스(상용비자)를 목적으로 한 분기별 입국자 수는 2008, 116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2009년 줄곧 5천명 수준에 그쳤으나 2010년 2분기, 즉 김정일 방중이후부터 늘어나기 시작하여 2011년 2분기에 들어서면서 분기별 입국자 수는 이미 1만 명 선을 넘었고 2012년 4분기에는 이미 1.5만 명을 넘어섰다. <그림 2> 북한주민 중국 분기별 입국자 수 변화 추이 <그림 3> 입국자 수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 취업목적의 입국자 상황을 보면 그 증가세는 보다 선명하다. 2010년까지 분기별 취업목적의 입 국자 수는 대체로 1만 명- 1.5만 명 규모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김정일 방중이후인 2011년부터 분 기별 취업목적의 입국자 수는 약 2만 명 규모에 이르러 전년 동기대비 5천 명 정도 늘어났고 이러한 규모는 2013년 제3차 핵실험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북한 노동자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17
들의 중국 진출이 대부분 서비스업 및 봉제업 등에 종사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여 여성입국자 가 전체 입국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살펴보면, 2010년까지 10-12% 선을 유지하면서 큰 변화가 없었지만, 2011년 2분기부터 점차 상승세를 나타내기 시작했으며 2013년 3분기 현재 중국 입국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23.7%로 증가했다. Ⅳ. 북중 경협의 과제 앞에서 논의 되었듯이 2009년 후반기부터 북중 국경협력은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상당한 협 조관계를 이루며 진행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 국내 균형발전 및 지정학적인 고려 속에서 북중 국경협력을 다그치기 시작했고, 민생경제 발전을 통한 체제안정에 중 심을 둔 북한도 이에 적극 동참해 나섰다. 이에 따라 2010년 이후 북중국경지역은 상당한 측면에 서 성과를 이루어냈다고 볼 수 있다. 무역위주로부터 공동지대 개발을 중심으로 투자자들의 역할 이 중요해졌으며, 이러한 맥락 속에서 공동개발 및 외국인 투자자들을 위한 관련 법규들도 상당 부분 제정 및 개선되었다.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상당한 문제점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 또 한 사실이다. 첫째, 무엇보다 북핵문제 및 이로 인한 한반도 정세 불안정은 여전히 북중경협의 가장큰 걸림 돌이 되고 있다. 중국은 북핵실험 등 한반도의 지속적인 위기상황에서도 정경분리의 원칙을 고수 하고 북중경협을 강행했지만, 국제사회 수준에서는 행동의 정당성 측면에서 수세적 위치에 몰리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새로운 미사일 발사 및 핵실험 저지에도 실패했다. 결국 중국은 북의 제3차 핵실험에 대해 이례적인 강경자세로 나서면서 이는 다시 북중 국경협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 게 되었다. 중국은 현재 대 한반도 정책순위를 조정하고 비핵화문제를 무엇보다 강조하고 있기에 향후 북핵 변수는 갈수록 북중경협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둘째, 경협방식에 있어서도 문제점들이 존재한다. 북한은 현재 경제회생을 통한 정당성 확보의 차원에서 인프라 및 다양한 산업영역에 대한 투자를 희망하고 있다. 이에 중국은 정부인도, 기업위 주, 시장운영 의 원칙하에 지역공동개발을 중심으로 기업들의 참여를 적극 권장하고 있지만, 투자 여건이 충분치 않은 북한상황을 고려하여 중국 기업들은 무엇보다 투자회수가 빠르고 수익률이 높은 자원 항목 또는 투자의 대가를 지하자원으로 받고자하는 성향이 높다. 무역의 경우도 대 부분 구상무역 형태로 진행되고 있으나, 북한으로부터 들여올 수 있는 제품이 상당한 한계가 있 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지하자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북한의 경우 지하자원의 대 중국 수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면서 '종속적 발전'의 수렁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결국 자주 성을 강조하는 북한의 대중 경협에 대한 불만을 누적시킬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 안목에서 이는 118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북중경협에 이롭지 않다. 무엇보다 다자협력 구도를 창출해 냄으로써 북한의 현 대외경제환경을 개선시켜 주는 것이 중요하며 이는 다시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셋째, 열악한 인프라 및 생산구조도 문제겠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북한주민들의 시장인 식의 결여다. 북한주민들로서는 원초적인 인간의 합리성(또는 이기성)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시장 을 뒷받침할 수 있는 질서의 확립 및 그에 대한 이행의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 따라서 반칙과 특권이 난무하다보니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들에 대한 신용도가 상당히 낮다.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교류 와 협력을 통해 이들에게 진정한 시장 마인드를 심어주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제이다. Ⅴ. 한국에 주는 시사점: 한중협력의 관점에서 앞에서 논의되었듯이 대북경협은 상당히 어려운 문제다. 북한은 핵개발국가이며 비개방적인 폐쇄 국가일 뿐만 아니라 열악한 사업, 인프라, 제도환경 등 이익 창출에도 상당히 어려운 조건을 가진 국가이다. 분명한 것은 반드시 북한의 비핵화, 북한 제도개혁과 대외개방을 이끌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할 경우 우리는 대북경협을 위해 필요한 몇 가지 일들에 착수할 필요가 있다. 1. 북핵문제 해법: 중한미 공조의 선순환 구도 찾아야 방법론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북한 비핵화는 어디까지나 한 중 미 3국간의 대북정책 공조체제 수립이 우선되어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그동안 관련국들 간의 대북정책은 항상 미스매칭( 錯 配, mismatching)국면을 초래하면서 북한문제의 실질적 진전을 보다 어렵게 하는 측면이 있었다. 환 언하면, 대북정책에 대한 역내 관련국들의 이해차이가 발생하면서 채찍 과 당근 이 엇갈려(동시적이 아닌) 사용되다보니 유화 와 강경 의 효과는 모두 반감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한중미 공조를 이끌어 내기위해서는 무엇보다 3국이 각각 우선시하는 전략적 이익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이러한 전략적 이익들이 상호 만족될 수 있는 선순환적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첫째, 북한의 추가적 도발에 대해서는 중국이 한미와 함께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한국의 안보압력을 완화시키는 측면이 있으며 또한 미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대 북협상에 임하도록 하는 전제가 될 것이다. 이를 토대로 둘째, 대북협상의 조건을 보다 낮은 단계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 한미가 중국에 협조적이지 않 을 경우, 중국의 대북 설득력도 힘을 잃게 된다. 따라서 보다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협상조건을 제 시하고 정책적 능동성을 보여줌으로써 중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북한 설득에 임할 수 있는 모멘 텀을 형성해줘야 한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19
셋째, 한국의 '중견자' 역할이 중요하다. 한국은 현재 명실공이 '중견국'으로 부상해 왔지만 대북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에서는 자신의 신분에 부합되는 자신감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 국제체제 차원에서 한반도 문제 해결에 중미 양 대국 변수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사 실이다. 그러나 '갈등적 협력' 상태에 놓여 있는 중미 양국도 '제3자 변수'의 중요성을 갈수록 실감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북중 vs. 한미라는 틀을 깨고, 한국이 중미 쌍방의 협력을 이 끌어 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대국들에 각인시켜줘야 한다. 2. 대북경협에서의 주도권 확보 중요 앞에서 논의되다시피 2009년부터 급물살을 탄 북중경협은 2012년에 즈음하여 불혐화음이 나 타나기 시작했다. 북한은 가시적 경제성과가 시급했지만 중국은 민영기업 위주의 대북투자와 시 장운영기제 도입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중국이 유일한 협력대상국이라는 점에서 북한은 수세적 위 치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다. 경제분야에서도 다자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은 관련국 모두에 이롭다. 남북경협이 추진될 경우 북 한 시장변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은 자명하나 한 가지 가능성에 대해서는 항상 유의할 필요 가 있다. 즉 대북경협에서 한중 간 경쟁의 난맥상이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협력상대가 늘어난 상황에서 북한은 한중 양자사이에서 어부지리를 챙기려는 의도가 분명해질 것이다. 결국 북한 내 부적 상황은 다소 개선될 수 있더라도, 한중양국이 공동으로 요구하는 북한의 국제규범으로의 편입 목표에는 한계를 초래하게 된다. 대북경협이 단지 국면전환을 위한 협력보다는 북한의 변화 를 목적에 둔 협력이라는 점에서 목적지향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할 경우 경협의 주도권 문 제가 자못 중요해 진다. 따라서 한중양국은 대북경협에 있어서의 전략적 협조관계를 먼저 수립하 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대북 경협의 목표, 원칙, 방법, 절차, 내용 등에 대한 전략적 소통을 강 화하여 보조를 같이 함으로써 북한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해 나갈 수 있도록 함께 협력 해야 한다는 것이다. 3. 북한사회 변화를 위한 한국사회 변화 중국의 개혁 개방 경험을 볼 때 사회적 변화는 점진적이고, 장기적이었으며, 전방위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점진적이었다는 것은 장기간 폐쇄적 정치환경 속에서 단일한 이념적 교육을 받은 중 국사회가 오늘에 이르기 까지 상당한 시행착오를 경험했음을 의미하며, 장기적이라는 것은 그동 안 줄곧 사회주의 이념과 시장경제 원리, 즉 계획 과 시장, 평등 과 성장 이라는 논제를 중심으로 현재까지도 자체적 논쟁을 지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화상( 華 商 )을 선두로 한 해외기업의 진 입, 유학생 파견, 서구 사상의 유입 등 외부와의 전방위적 교류가 없었더라면 중국사회는 자체적 120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의 진화만으로는 오늘에까지 이르기 힘들었을 것이다. 환언하면 교류가 없으면 변화도 힘들다는 의미이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60년간의 개인숭배와 독재이념을 받아온 북한주민들로서는 왜곡 된 신념과 한계적 합리성 외에 그 어떠한 상상력을 가지기 어렵다. 따라서 북한이 개혁 개방만 하 면 모든 것이 다 바뀔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한국으로서는 조만간 개시될 정부 민간적 차원의 대북 경협, 인도적 지원, 문화 인문적 교류 역시 험난한 시련과 수없이 반복되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교류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현안들을 극복하 기 위해서는 지도자의 리더십과 우호적 국내외 여론조성이 필요하다. 국경지역에서의 수많은 갈등 사안들을 극복하면서도 중국대륙-대만경협, 북중 경협을 오늘까지 이끌어온 중국의 넓은 안목 과 깊은 심성을 한국은 본받을 필요가 있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21
동북3성과 한반도 경협의 비전과 과제 - 중한 전략적 협력관계 내실화의 관점에서 (요약) 퍄오동쉰 ( 朴 東 勛, 연변대) 최근 들어 한국이 중국 동북3성 경제발전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임. 첫째, 중국 국내시장 개척, 둘째, 북중 경제무역협력이 한반도 정세에 미치는 영향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임. 후자가 주된 원인이라고 봄. 중한 쌍방의 시각에서 보면,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여 대북경 협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은 반도정세 전환에 이로우며, 쌍방의 이익 에도 부합됨. 북중 국경협력의 국제정치경제: 2009년 이후 중국 : 첫째,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정부는 내수시장 확대의 차원에서 4조 위안 규모, 십여 개 대형 지역개발전략 추진함. 둘째, 비록 2003년부터 동북 노공업기지 진흥계획을 추진했지만 기 대치에 미치지 못했고, 주변국 역시 관망적이었음. 중국은 일국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지역개발을 주도해나가겠다는 구상을 갖게 됨. 셋째, 한반도 지전략적 의미도 중요한 원인이 됨. 북한: 민생경제 발전의 필요성, 후계체제 구축의 필요성, 국제사회 고립적 국면 타개의 필요성. 북중 국경협력의 전개와 과제 원쟈바오 총리 방북 및 김정일 위원장 나선특구 방문을 계기로 북중 양국은 일련의 개방조치 추진. 북중은 나선경제무역구와 항금평 위화도 경제구 개발을 주축으로 초국경 경제협력관계 심 화 발전시킴. 기반시설, 교역, 인원왕래 등 영역에서 상당한 성과를 이루어 냈음. 과제 : 첫째, 북핵문제는 현재 중국의 전략적 선택의 공간을 축소시키고 있음. 북중경협 발전에 도 갈수록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볼 수 있음. 둘째, 북중 경제협력구조가 개선될 필요 있음. 정 부인도, 기업위주, 시장운영, 호혜공영 은 현재 북중 경협의 기본원칙. 그러나 투자특징으로 볼 때, 북중 경제력 차이로 인해, 무역 투자 등 영역이 과도하게 지하자원 부문에 집중됨으로써 북측의 불만을 야기시킬 가능성이 높아짐. 동시에 대북 민간 소규모 투자에 대한 중국정부의 총체적 관 122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리가 부족함으로써 중국측 기업 투자 리스크 확대, 셋째, 북한은 시장경제 경험이 부족, 특히 시장 질서 수립, 감독, 이행 능력이 부족하다보니 북한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도 하락. 중국 기업들의 투자 원동력이 결여되는 등 문제가 발생. 대북경협과 중한 전략적 협력 북핵문제 해법 : 각자 이익에 기반 한 중한미간 공조관계 강화 필요성. 첫째, 중국은 북핵문제 에서 기존입장을 고수하는 전제하에 북한 추가 핵도발 억지 노력 필요. 둘째, 이를 전제로 한미 양 국은 보다 구체적이 세부적 협상조건을 제시하고 정책적 능동성을 보여줘야 함. 이는 중국의 대북 협상력 모멘텀 형성에 도움이 됨. 셋째, 중견국가로서의 한국은 자신의 신분에 부합되는 자신감을 충분히 보여줘야 함. 중미 새로운 대국관계 수립에 긍정적 에너지 부여 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함. 대북경협 : 다자협력을 통해 북한 개혁개방을 이끌어 내는 것은 불가피한 상황. 그러나 중한간 의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여 대북협상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는데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 가 있음. 북한사회 변화를 위한 한국사회 변화. 대북정책은 점진적이고, 장기적이며, 포괄적 차원에서 추 진될 필요가 있음. 교류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현안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도자의 리 더십과 우호적 국내외 여론조성이 필요.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23
中 国 东 北 三 省 与 朝 鲜 半 岛 经 济 合 作 的 愿 景 和 课 题 - 以 深 化 中 韩 战 略 合 作 关 系 为 视 角 ( 摘 要 ) 朴 东 勋 ( 延 边 大 学 ) 近 年 来, 韩 国 关 注 中 国 东 北 三 省 经 济 发 展 主 要 有 两 大 原 因 : 第 一, 拓 展 中 国 国 内 市 场 ; 第 二, 中 朝 经 贸 合 作 日 渐 成 为 影 响 半 岛 局 势 变 化 的 重 要 变 量 从 中 韩 双 方 的 角 度 来 讲, 加 强 战 略 合 作, 克 服 对 朝 经 济 合 作 中 出 现 的 种 种 问 题, 有 利 于 半 岛 局 势 的 转 变, 有 利 于 双 方 各 自 的 利 益 2009 年 以 后 中 朝 经 贸 关 系 发 展 的 动 因 : 中 国 方 面 : 受 全 球 经 济 危 机 的 影 响, 中 国 政 府 提 出 四 万 亿 计 划, 推 动 多 项 大 规 模 地 区 开 发 战 略 ; 尽 管 多 年 来, 东 北 地 区 老 工 业 基 地 振 兴 取 得 了 重 大 进 展, 但 发 展 活 力 仍 然 不 足, 周 边 国 家 仍 持 观 望 态 度 ; 朝 鲜 半 岛 的 地 缘 战 略 意 义 决 定 朝 鲜 方 面 : 改 善 民 生 及 发 展 经 济 的 需 要 ; 政 权 交 替 的 需 要 ; 打 破 国 际 社 会 中 孤 立 局 面 的 需 要 中 朝 经 贸 合 作 的 现 状 及 存 在 问 题 : 以 温 家 宝 总 理 访 朝 以 及 金 正 日 委 员 长 访 问 罗 津 特 区 为 契 机, 中 朝 两 国 推 进 了 一 系 列 开 放 开 发 措 施, 旨 在 深 化 中 朝 经 贸 合 作 关 系 中 朝 以 罗 先 经 济 贸 易 区 和 黄 金 坪 威 化 岛 经 济 区 为 主 轴, 大 力 推 进 中 朝 跨 境 经 济 合 作 与 建 设, 在 基 础 设 施 建 设 贸 易 及 人 员 往 来 等 方 面 取 得 了 显 著 成 效 ; 存 在 的 问 题 : 第 一 朝 核 问 题 正 在 缩 小 中 国 的 战 略 选 择 空 间, 对 中 朝 经 贸 关 系 发 展 的 负 面 影 响 日 渐 扩 大 ; 第 二, 中 朝 经 济 合 作 结 构 需 要 改 善 政 府 引 导 企 业 为 主 市 场 运 作 互 利 共 赢 是 新 时 期 中 朝 经 济 合 作 的 基 本 原 则 然 而 就 目 前 投 资 的 特 点 来 看, 由 于 中 朝 经 济 实 力 存 在 巨 大 差 距, 出 现 贸 易 投 资 过 度 集 中 在 资 源 领 域 这 一 较 为 严 重 的 状 况, 并 极 有 可 能 引 发 朝 方 的 疑 虑 与 不 满 与 此 同 时, 由 于 中 国 政 府 对 民 间 小 规 模 投 资 124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缺 乏 统 筹 管 理, 加 大 了 中 方 企 业 对 朝 投 资 的 风 险 ; 第 三, 朝 鲜 缺 乏 市 场 经 济 经 验, 政 府 对 市 场 秩 序 的 监 管 与 维 护 意 识 欠 缺, 诚 信 度 低, 从 而 导 致 中 方 企 业 投 资 合 作 动 力 不 足 等 问 题 对 朝 经 济 合 作 与 中 韩 战 略 合 作 的 方 向 朝 核 问 题 出 路 : 加 强 中 韩 美 之 间 的 协 调 关 系 中 国 要 坚 持 朝 核 问 题 上 的 坚 定 立 场 ; 韩 美 要 调 整 对 话 门 槛, 在 对 朝 谈 判 问 题 上 采 取 灵 活 态 度 ; 作 为 中 等 国 家, 韩 国 应 在 外 交 层 面 上 更 加 自 信, 为 中 美 新 型 大 国 关 系 的 建 构 注 入 正 能 量 对 朝 经 济 合 作 : 打 开 多 边 合 作 之 门 是 推 动 朝 鲜 改 革 开 放 的 必 要 途 径, 但 需 要 通 过 中 韩 之 间 的 战 略 沟 通, 提 高 双 方 在 对 朝 合 作 中 的 话 语 权 ; 若 要 让 朝 韩 经 贸 关 系 发 生 根 本 性 变 化, 韩 国 需 要 亲 诚 惠 容 的 战 略 眼 光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25
제3회의 동북아 평화를 위한 한중 소통과 협력 과제 第 三 场 为 东 北 亚 和 平 所 需 要 的 韩 中 间 沟 通 和 协 力 동북아 역사인식의 전환적 과제 박태균 ( 朴 泰 均, 서울대) 为 了 东 北 亚 历 史 认 识 的 转 换 朴 泰 均 ( 首 尔 大 学 ) 为 了 加 强 韩 中 人 文 纽 带 的 课 题 展 望 张 志 强 ( 中 国 社 科 院 ) 한중 인문유대 강화를 위한 과제와 전망 장즈창 ( 張 志 强, 사회과학원) 한중 문화교류 발전을 위한 과제와 전망 강명구 ( 姜 明 求, 서울대) 为 了 进 一 步 韩 中 文 化 交 流 的 课 题 和 展 望 姜 明 求 ( 首 尔 大 学 )
동북아 역사인식의 전환적 과제 박태균 ( 朴 泰 均, 서울대) 1. 한중관계의 현재와 역사인식 1992년 한중수교 이후 한중관계는 급속하게 진화했다. 이는 특히 경제적인 측면에서 잘 나타나고 있으며, 한국으로 오는 유학생과 연구자 수의 증가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과거 기러기 가족의 자제들이 주로 중국으로 유학을 했지만, 이제 중국의 유명한 대학으로 유학을 가거나 연구년(sabbatical) 또는 post-doc을 가는 연구자들의 수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지금도 정치외교학부의 신욱희 교수가 북경대학에서 연구년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점차 진화하고 있는 가운데, 아직도 한중 간에는 많은 의견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역사인식에서는 심각한 온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고구려를 둘러싼 한 중 학계 및 시민사회 사이의 역사인식 갈등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고구려사 외에도 한중 간에 또 다른 역사인식의 차이는 장보고에 대한 인식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중국 역사가 장협( 張 峽 )의 저서인 석도( 石 島 ) 에는 장보고를 아래와 같이 소개하고 있다. 장보고는 한국 완도의 측징( 側 徵 )의 빈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 장벽익은 신라에 귀순한 중국인이며 적( 籍 )은 중국 산동성 석도만이다. 지금 석도진 장가촌에 살고 있는 장세응 선생은 아직도 그 분의 족보를 보유하고 있다. 장보고는 친구 정연과 함께 당혜종 원화 2년(807)에 적산포에 뿌리를 찾으러 왔다가 후에 양주로 유망한다. 그해 9월에 무령군에 입대하여 이기 반란을 진압하는데서 두각을 나타냈다. 11월에는 무령군과 함께 서주에 이전하여 통솔자인 왕지흥의 지휘 하에 복역한다. 그 후 이사도 반란을 반격하고 진압하는데 고을 세운다. 원화 14년에 소장으로 진급되었다. 장보고는 당 목종 장경 3년(823)에 무령군 소장직을 사임하고 적산포에 돌아와 적산법화원을 설립했다 1) 1) http://www.minjog21.com/news/articleview.html?idxno=87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29
결론적으로 장보고에 관심을 갖고 있는 중국인들은 그가 신라인이지만, 중국인의 핏줄을 갖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 점은 2004년 당시 국회의원 장영달의 보고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2) 한국인들은 장보고가 토벌한 반란군이 고구려를 재건하고자 했던 인물의 자손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이러한 일부 중국인들의 인식에 대해 상당히 거부감을 갖고 있다. 3) 해상왕 장보고를 중국인이라고 주장하는 최근 중국의 역사인식관은 고구려가 중국의 변방국가였다고 우기는 것과 같다. 13억의 인구를 바탕으로 무섭게 뻗어가는 중국의 입장에서 볼때 무리가 아니라고 본다. 따라서 우리도 정부 및 역사학계에서 적극적인 대응과 국민들에 대한 홍보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4) 그런데 장보고에 대해서 일본승려 엔닌은 높은 인의의 덕을 가진 인물로, 라이샤워는 해양상업제국을 건설한 위대한 무역왕으로 평가하고 있다. 5) 최치원의 경우에도 신라 사람인가 중국 사람인가의 논란이 있을 수 있었지만, 시진핑 주석이 최근 박근혜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최치원에 대해 언급한 이후 이에 대한 논란이 사라졌다. 6) 2. 상호 간의 인식 문제 이러한 역사인식의 문제는 한국인과 중국인 사이의 상호 인식과도 연결된다. 최근(2011년) 중국에서 조사한 중국에 대한 세계인의 인식에 대한 보고서에 보면 한국인들의 중국에 대한 인식은 세계적으로 가장 부정적이다. 한국인들의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일본인들의 부정적 인식보다도 더 크며, 미국인들의 인식과 거의 유사한 수치를 보이고 있다. 한국인들 사이에서 중국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20% 내외에 머무르고 있다. 7) 2011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8) 한국과 중국의 청년들은 상대국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지 않고 있다. 한국의 청년들이 갖고 있는 중국에 대한 관심도는 매우 낮은 편(49.8%+6.5%)이며, 중국 청년들의 경우에도 낮은 편(54.6%)과 매우 낮다(19.1%)로 높게 나오고 2) 연합뉴스, 2004년 8월 17일자 3) http://blog.daum.net/brightmoonlight/23 4) http://blog.yonhapnews.co.kr/789678/post/9156/ 5) http://www.baekdunet.com/bbs/board.php?bo_table=02_3&wr_id=2658 6) 박대통령 중국서 각별한 환대 받아, 한겨레신문 2013년 6월29일자 7) 우림걸, 중국의 대외전략에 대한 보고, 서울대 국제대학원/산동대 한국학원 워크샵, 2013년 8월 8) 한중관게의 미래: 한국과 중국 청년의 한중관계에 대한 인식과 역할 방안, 한국청소년저책연구원, 2011년 9월22일, 서울교육문화회관 130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있다. 상대국에 대한 이해 수준 역시 75% 이상이 낮거나 매우 낮은 편이라고 응답했다. 상대국에 대한 호감도에서는 한국 청년들의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일본(27.8%)보다 높은 28.9%로 나타났고, 긍정적 인식 역시 일본(52.9%)보다 낮은 20.0%에 그쳤다. 별 느낌이 없다는 비율은 51.5%로 북한(36.8%)보다도 높게 나왔다. 이는 중국의 경우 한국에 대한 긍정적 평가(37.3%)가 부정적 평가(17.7%)에 비해 높게 나온 것과는 비교되는 수치이다. 또한 중국에 대한 인식에서 나타나는 2중적인 이미지 역시 중요한 특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9) 즉, 한편으로는 대국이면서 자본주의 도입 이후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중국 사회의 후진성에 대해서도 깊은 인상을 갖고 있다. 한중 수교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중국 사회에 대한 인식에 일정한 변화가 나타났지만, 기본적으로 이러한 이중적 인식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여기에서 대국 이라는 인식에는 그 자체로서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여기에는 강대국이며 점차 더 강한 나라가 되고 있다는 가치중립적 인식도 있지만, 이와 동시에 지난 한국 역사 전체를 통해 한국을 끊임없이 침입하고 괴롭힌 국가라는 부정적 인식이 담겨 있다. 이러한 인식은 실제 역사적 사실과는 배치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10) 한국 사회 내부에는 한국이 중국을 포함한 이웃나라로부터 끊임없이 피침을 받았다는 것이 강조되어 있다. 조선 500년 동안 1.44년에 한번, 고려 417년 동안 1.09년에 한번 이웃 국가의 침략을 받았다는 주장과 함께 11) 한국 역사 전체를 통해 936번의 외침을 받았다는 주장은 한국 사회에 하나의 피해의식을 심이 놓았다. 그리고 이러한 피해의식으로부터 중국으로부터의 침략 또는 중국의 팽창정책에 대한 경계심을 강하게 형성하고 있다. 12) 이러한 주장은 학교 교육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으며, 한국 사회에서 강한 대중국, 대일본 민족주의적 의식이 형성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3. 역사인식 전환의 필요성 그렇다면 이러한 역사 인식은 과연 올바른 것인가? 그리고 이러한 역사인식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로 이러한 역사인식의 배경에는 지극히 역사의 근대적 재인식이 깔려 있다. 이는 특히 국가와 주권이라는 근대적 인식을 과거의 역사에 그대로 대입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이 과정은 이성시의 9) 진삼, 한국인의 대중국 인식 변화와 그 특징: 수교 전후 기행문과 2005-2007 인터넷 기행문의 비교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석사논문, 2009 10) 이삼성 교수에 의하면 중국의 침략은 중국 이 아니라 중국을 위협하거나 중원을 해체한 이민족, 특히 한반도 북쪽 유목민 또는 유목-농경민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그것도 신라 통일 이후에는 5차례도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삼성,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한길사, 2009. 11) 조선일보, 2004년 5월9일자; 12) http://orumi.egloos.com/v/4206894. 유명한 한 대중가수는 한국의 한 메이저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특별한 근거 없이 한국이 역사적으로 936번의 침략을 받았다는 주장을 내 놓았다. 중앙일보 2009년 8월8일자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31
만들어진 고대 (삼인, 2001)를 새로운 인식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이성시의 주장은 고대 역사에 대한 논쟁과 해석은 근대 국민국가 형성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당 시대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부분들이었다는 것이다. 즉, 논쟁 그 자체에서 과거의 모습을 재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국가 와 국적, 그리고 민족 을 이야기할 때 이러한 점들이 문제가 된다. 즉, 전근대 시대의 인물들에 대해 현재와 같은 국가와 국적, 민족의 개념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이 문제는 위에서 말한 장보고의 경우 그대로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과 중국 사이에서 장보고의 국적이 이 사람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성시 교수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근대 국민국가 형성 이후 일정한 영토와 주권의식을 갖게 된 서양과 달리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일부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지역의식이 강하게 나타났다. 따라서 하나의 국가나 민족이 근대 이전에도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일정한 지역에 살고 있거나 거주하고 있다는 의식은 강하게 존재했던 것 같다. 최치원이나 장보고의 경우에도 신라 사람 또는 신라 로부터 온 사람이라는 인식이 역사를 통해서도 분명히 나타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지역 출신이라는 지역 의식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 국적 개념과 곧바로 연결될 수는 없다. 물론 신라 출신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신라방 이라는 지역이 따로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곧 근대적 개념의 국가 또는 민족 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는 신라에서 건너온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당의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같이 시험을 볼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게다가 당시 한중일 사이에 언어의 차이가 지금처럼 크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근대적 개념이 전근대 시대에 그대로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이 점은 남동신 교수의 최치원에 대한 평가에서도 잘 드러난다. 12세에 신라를 떠나서 18년 동안 당에서 활동한 최치원의 의식을 신라의 6두품 지식인으로서의 정체성에 연결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는 것이다. 13)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신라 출신이라는 점은 이후 당에서의 관직 생활에서 하나의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이는 국적 개념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근대적 방식의 지역 개념이 적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4) 고구려 문제에 대해도 이러한 점은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 한국 사회 지배층과 지식인들이 전근대시대부터 고구려 계승의식을 강하게 갖고 있었기 때문에 고구려의 역사가 한국 역사에 포함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고구려 역사를 한국만의 역사 라고 할 수는 없다. 고구려에 살고 있었던 일반 사람들뿐만 아니라 고구려의 지배층도 동시대 고구려와 함께 한반도에 공존했던 신라나 백제와 동종 의식을 갖고 있었는가에 13) 남동신, 계원필경집의 문화사적 이해, 진단학보 112, 2011, 184쪽 14) 앞의 글, 190-191쪽 132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대해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백제와 왜의 가까운 관계를 고려한다면 동종 의식은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5) 또한 이러한 인식은 한일 간에서 뿐만 아니라 한중 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아래의 그림은 새로운 인식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 1> 4세기 동북아시아 지도 16) 이 지도는 한국의 한 민간인이 그린 상상 속의 지도이다. 한국 내에서 강한 민족주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고대 한국의 영역을 이 지도에서처럼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근거로 식민지 시기에 나왔던 환단고기 와 같은 역사책과 유사한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는 사실 등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지도는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반영했다고 할 수 없다. 17) 그러나 이러한 지도에서 역사적으로 다른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곧 이러한 영역표시는 동북아시아 지역에서의 생활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배권이나 관할권을 행사했던 지역이 아니라 해당 구역의 주민들이 하나의 생활권 내에서 활동했던 지역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역으로보면 중국의 동쪽 해안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의 생활권 내에는 한반도의 서쪽 해안이 연결될 수 있다. 15) 여기에 더하여 고대의 국가들을 지도에 표현하면서 국경선을 긋는 것 역시 정확한 역사인식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특정 지역에 대한 관할권을 주장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지역에 명확한 경계선이 존재할 수는 없다. 16) http://air1244.egloos.com/m/7556560 17) 최근에 나온 대쥬신을 찾아서 (김운회, 해냄, 2006) 역시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새로운 인종적, 민족적 문제를 들고나오고 있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33
중국의 경우 거대한 대륙 내에서 육지로 연결되어 있는 지역이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지역들 사이에 이동이 용이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해상을 통한 연결이 생활, 경제적으로 더 중요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림 2>는 이 점을 잘 보여준다. <그림 2> 고대의 동북아시아 해상교통로 18) 이러한 수로를 통해서 이 지역의 생활권과 경제권이 통합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근대 이후에도, 특히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이후에도 한반도와 중국의 동쪽 해안 지역과의 교류는 적지 않았다. 한국에 거주했던 화교의 대부분이 산동반도 출신이었으며, 식민지 시기 많은 한국인들이 해외로 나갈 때 상해는 가장 중요한 진출로의 하나였다. 또한 과거 백제인들과 일본인들 사이에서의 교류에 통역이 필요했다는 역사적 기록은 하나도 없는데, 이 역시 당시 동북아시아에서 형성되어 있었던 해상을 중심으로 한 생활권이 매우 중요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중국 내에서 근대 이후 이러한 인식은 매우 드물었다. 이는 식민지 시기뿐만 아니라 냉전시대를 통해 아래의 <그림 3>과 같은 형태의 동북아시아 지도와 의식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냉전 시대 동북아시아 지도는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전쟁에 중국이 참전한 이래로 1970년대까지 한중, 중일관계는 끊어져 있었다. 한반도 역시 남북한으로 분단되어 있었기 때문에 남한에서 대륙으로 연결되는 것이 불가능했다. 즉, 남한은 반도 가 아니라 섬 으로서 존재했다. 따라서 동북아시아에 대한 인식에서 중국이 빠져 있었다. 이러한 인식은 중국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한반도와 일본을 염두에 두고 있었겠지만, 실질적인 관계는 단절되어 있었던 것이다. 18)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fhmd&articleno=6824867 134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그림 3> 냉전 시대 한국에서 이용되었던 일반적인 동북아시아 지도 19) 이는 결과적으로 고대 이래로 계속되었던 생활권이 단절되는 것을 의미했다. 실제로 20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많은 중국 상인들이 인천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는 만약 식민지 체제나 냉전으로 인해서 과거의 생활권과 경제권이 단절되지 않았을 경우 한 중 간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과거의 생활권과 경제권은 탈냉전 이후 다시 복원되고 있다. 이 점은 아래의 <그림 4>를 통해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그림 4>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 20) 19)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eyesinwonder&logno=86809095 20) http://books.chosun.com/site/data/html_dir/2004/06/11/2004061155237.html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35
이 지도는 북극을 중심으로 해서 동북아시아 지역을 바라본 지도로 이를 통해서 과거 냉전시대와는 다른 새로운 동북아시아에 대한 인식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지도는 동북아시아의 범위를 확장해야 한다는 저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지만, 이를 다시 아래와 같은 <그림 5>의 범위로 축소해서 본다면, 한일 간에서 뿐만 아니라 한 중 간에서 또 다른 중요한 지역적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는 지리적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 5> 결국 이는 한국과 중국 사이에 새로운 인식이 형성되어야 할 필요성을 잘 보여준다. 이 점은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많은 한국인들이 중국의 동쪽 해안 지역에 투자를 늘려가고 있다는 점, 그리고 많은 중국 내 조선족들, 그리고 중국인들이 한국으로 이주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상호 간의 인식은 아직도 일천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4. 상호 인식의 전환 필요성 이상과 같은 논의를 보면 한중 간의 인식 변화를 위해서는 근대 국민국가 안에 닫혀 있는 역사 인식의 전환도 필요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상호 간의 인식에서도 변화 역시 필요하다. 밖에서 보았을 때 한국과 중국, 일본은 문화적, 생활적으로 그다지 큰 차이가 없는 지역으로 비추어지고 있다. 겉 모습도 유사하지만, 젓가락과 숟가락을 사용하는 방식 역시 동일하다. 게다가 3국은 공히 중국의 한자를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적 유사성이 136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차이점보다 더 크게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부에서 느끼는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은 서로 간의 차이가 너무나 크다. 아마도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들에게 서로가 서로 닮았을 뿐만 아니라 문화적, 사상적, 생활습관, 가치관에서도 서로가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한다면 이에 대해서 기분 나쁘게 생각할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중국인들에 대해 만만띠( 漫 漫 的 ), 그리고 일본인들에 대해 혼네( 本 音 )와 다떼마에( 建 前 ) 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이러한 서로 간의 차이가 공통점보다 더 많다고 보는 시각에서 나왔을 것이다. 이러한 서로 간의 차이에 대한 인식은 무엇보다도 동북아시아의 다른 국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와는 다른 특별한, 또는 특이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중적 인식을 갖고 있는 것 역시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 즉, 다른 생활습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하는 것 같다. 그러나 동북아시아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다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세계의 다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와 유사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지역과 기후, 그리고 종교에 따라서 서로 간의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생활방식과 습관에서는 질적인 차이가 없다. 게다가 하나의 지역 내에서는 다른 지역과 비교했을 때 차이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을 것이다. 이는 동북아 지역 내의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 사이 역시 그렇다. 최근 한국 내에서 이자까야( 居 注 屋 )와 꿔바로우가, 중국과 일본 내에서 불고기와 갈비가 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공통된 식생활 속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한중일 사이에서 다른 국가 내에 특별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와 유사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은 상호 간의 편견을 없애는데 있어서 중요한 길이 될 수 있다. 19세기 이래로 근대화에 가장 먼저 성공한 일본과 그렇지 못한 중국, 한국 사이에서 차이가 나타날 수 있고, 식민지 시기 일본 제국 안에서 있었던 한국과 그렇지 않았던 중국 사이에서도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 또한 냉전 시대를 통해 한중일의 사회 발전 정도 역시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탈냉전 이후 그 차이는 점차 좁혀지고 있다. 이는 현재 한중일의 도시에서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 속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러한 점들을 감안한다면, 앞으로 한중일에서의 학문적 연구는 일국 중심, 또는 양국 사이의 비교 연구를 넘어서야 한다. 지역학의 입장에서 상대 국가에 대한 심화 연구가 상호 간의 이해를 위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에만 머물 수는 없다. 물론 현재의 지역학 수준이 높은 경지에 이른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한 지역에 대한 연구의 심화 역시 중요하지만, 이를 넘어서는 연구 역시 필요하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37
역사학의 경우 일국사의 수준을 넘어선 동북아시아 차원에서의 연구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는 전술한 바와 같이 20세기 이전 동북아시아의 실재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아울러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경제발전이나 연성권력(soft power)에 대한 연구 역시 동북아시아 차원으로 그 단위를 넓혀야 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중국의 개혁개방 이전 발전국가(developmental state) 이론은 일본과 한국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지금 중국의 지속적 성장은 냉전시대의 발전국가 이론이 수정되어야 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아직은 체계화되는 단계에 있지만, 베이징 컨센서스에 대한 논의가 한편으로는 워싱턴 컨센서스에 대한 대응 논리가 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과 일본을 포함하는 발전국가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연성권력에 대한 논의 역시 마찬가지다. 이 논의는 발전국가에 대한논의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리콰유와 마하티르에 의해 제기된 아시아적 가치관(Asian Value)의 연장선상에 있다. 특히 유교적 가치관이 그 중심에 있는데, 이는 현재 중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중국적 연성권력을 만드는 작업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 21) 이는 첫째로 중국뿐만 아니라 중국의 이웃국가들 대부분이 유교를 중심으로 하는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두 번째 문제이다. 즉, 연성권력이 이웃국가들에 의해 공유되지 못할 때 그것은 연성권력이 아니라 팽창 이데올로기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유럽에서 시작된 민주주의 가 미국을 거쳐서 이제 세계적으로 연성권력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이라크를 비롯한 국가들에서는 서구식 민주주의가 연성권력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중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연성권력을 만드는데 있어서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즉, 인류 보편적, 아니 최소한 지역 내에서 보편적인 것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연성권력으로서 작동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는 일본의 경제성장이 일본의 국가 브랜드를 만들어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세계적 차원에서의 연성권력이 되지 못했고, 한국의 한류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지만, 반대로 혐한류 를 만들어내면서 그 영향력이 어느 정도 갈 수 있는가에 대해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렇게 일국의 단위를 넘어선 동북아시아에서의 연구는 동북아시아에서 상호 이해를 넓히고 평화로운 체제를 가져올 수 중요한 틀이 될 것이며, 더 나아가 세계적으로 중요한 공헌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동북아시아에서 상호 간의 역사인식과 상호 간의 인식 전환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21) 최근 개봉된 삼국지, 초한지, 공자 관련 영화들도 이러한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38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동북아 역사인식의 전환적 과제 (요약) 박태균 ( 朴 泰 均, 서울대) 1992년 한중수교 이후 한중관계는 급속하게 진화했다. 이는 특히 경제적인 측면에서 잘 나타 나고 있으며, 한국으로 오는 유학생과 연구자 수의 증가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이렇게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점차 진화하고 있는 가운데, 아직도 한중 간에는 많은 의견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역사인식에서는 심각한 온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고구려나 장보고를 둘러싼 논란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역사인식의 문제는 한국인과 중국인 사이의 상호 인식과도 연결된다. 서로 간에 부정적 인식뿐만 아니라 무관심 역시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한국 사회 내에서는 중국과 일본에 대 해 서로 모순된 이중적 인식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 지난 역사를 통해서 외부의 침략을 많이 받 았다는 것이며, 이는 한국 내에서 강한 민족주의적 성향을 상승시키는 작용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인식의 배경에는 지극히 역사의 근대적 재인식이 깔려 있다. 이는 특히 국가와 주권이라는 근대적 인식을 과거의 역사에 그대로 대입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또한 냉전 기간 동 안의 관계로 인해 19세기 이전에 존재했던 한국과 중국 사이의 경제권과 생활권이 단절되어 있었기 때문에 탈냉전 이후에도 상호 간의 편견이 계속되고 있다. 탈냉전의 시대는 새로운 역사 인식과 상호 인식을 요구하고 있다. 과거에 존재했던 동북아시아 내에서의 공통의 경제권과 생활권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하다. 물론 이는 탈냉전 이후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다. 아울러 상호 간의 이질적 인식에 대한 재인식 역시 필요하다. 여기에는 우리 와는 다 른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편견을 없애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동북아시아에서 공유할 수 있는 역사인식의 형성과 함께 앞으로 동북아시 아가 공유할 수 있는 연구의 틀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발전국가 이론과 연성권 력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자신들의 것이라고 여기는 것에 대한 해체와 재 구성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동북아시아 내부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 차원에서 공헌할 수 있는 수준의 것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39
为 了 东 北 亚 历 史 认 识 的 转 换 ( 摘 要 ) 朴 泰 均 ( 首 尔 大 学 ) 1992 年 韩 中 建 交 以 后, 两 国 关 系 得 到 了 迅 速 的 发 展 这 种 变 化 在 经 济 方 面 表 现 的 尤 为 突 出, 同 时, 在 来 韩 的 留 学 生 人 数 和 学 者 的 人 数 中 也 可 以 充 分 看 到 这 一 点 虽 然 两 国 间 的 关 系 有 了 很 大 的 进 展, 但 两 国 之 间 还 存 在 很 多 意 见 上 的 分 歧 尤 其 是 在 历 史 认 识 的 问 题 上, 表 现 出 明 显 的 差 异 关 于 高 句 丽 和 张 保 皋 的 争 论 就 充 分 体 现 这 一 点 这 种 历 史 矛 盾 还 与 韩 国 人 与 中 国 人 对 彼 此 的 认 识 相 关 两 国 人 不 但 对 彼 此 持 有 否 定 的 观 点, 而 且 还 表 现 出 漠 不 关 心 的 态 度 此 外, 韩 国 社 会 中 存 在 对 中 国 与 日 本 的 相 互 矛 盾 的 双 重 认 识 这 种 认 识 认 为, 韩 国 在 过 去 的 历 史 中 经 历 了 多 次 外 来 入 侵, 而 这 种 经 验 起 到 强 化 韩 国 内 部 民 族 主 义 倾 向 的 作 用 但 是 这 样 的 历 史 认 识 的 背 后 存 在 着 从 近 代 的 角 度 对 近 代 以 前 的 历 史 进 行 重 新 解 读 的 思 维 方 式 这 一 问 题 在 将 ( 近 代 以 来 ) 对 国 家 的 主 权 的 认 识 折 射 到 对 过 去 历 史 的 认 识 的 问 题 中, 表 现 得 尤 为 突 出 同 时 由 于 冷 战 的 原 因, 导 致 19 世 纪 以 前 韩 国 与 中 国 之 间 的 经 济 圈 和 生 活 圈 发 生 了 断 层, 所 以 在 冷 战 后, 相 互 间 的 偏 见 依 旧 存 在 在 后 冷 战 时 期, 我 们 要 有 新 的 历 史 认 识 和 相 互 认 识 有 必 要 重 新 认 识 东 北 亚 内 部 过 去 共 同 的 经 济 圈 和 生 活 圈 当 然, 进 入 后 冷 战 时 期 以 来, 这 些 变 化 已 经 发 生 在 此 基 础 上, 我 们 有 必 要 重 新 认 识 彼 此 的 异 质 性 在 这 一 问 题 上, 消 除 对 与 我 们 不 同 的 他 人 的 偏 见 尤 为 重 要 通 过 这 些 过 程, 我 们 有 必 要 在 形 成 东 北 亚 地 区 可 以 共 享 的 历 史 认 识 的 同 时, 形 成 东 北 亚 地 区 可 以 共 享 的 研 究 框 架 在 这 一 点 上, 我 们 在 形 成 发 展 国 家 论, 增 强 软 实 力 的 同 时, 有 必 要 对 我 们 自 认 为 是 属 于 我 们 的 内 容 ( 或 事 物 ) 进 行 解 体 和 重 构 这 种 变 化 不 仅 将 对 东 北 亚 做 出 贡 献, 同 时 还 能 为 世 界 范 围 内 的 变 化 做 出 贡 献 140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为 了 加 强 韩 中 人 文 纽 带 的 课 题 展 望 巨 型 分 断 的 超 克 与 理 想 东 亚 的 可 能 性 加 强 中 韩 人 文 纽 带 对 于 区 域 未 来 的 意 义 张 志 强 ( 中 国 社 科 院 ) 今 年 6 月 韩 国 总 统 朴 槿 惠 对 中 国 进 行 了 定 位 为 心 信 之 旅 的 国 事 访 问 所 谓 心 信 之 旅 被 海 外 媒 体 解 读 为 真 诚 沟 通 和 增 进 互 信 的 旅 程, 认 为 朴 总 统 此 行 的 根 本 意 义 在 于 巩 固 和 加 深 与 中 国 领 导 人 之 间 的 个 人 信 任, 同 时 要 赢 得 中 国 人 的 心, 为 今 后 的 坦 诚 对 话 奠 定 基 础 同 时 媒 体 也 指 出, 这 种 互 信 的 提 升, 也 将 成 为 韩 中 深 入 合 作 建 立 地 区 新 秩 序 的 基 础, 足 以 影 响 未 来 东 北 亚 的 地 缘 政 治 形 势 ( 参 见 新 加 坡 联 合 早 报 7 月 1 日 文 章 朴 槿 惠 访 华 加 强 中 韩 互 信 ) 这 次 访 华 的 一 个 重 要 成 果, 是 双 方 为 加 强 中 韩 人 文 纽 带, 成 立 作 为 政 府 间 的 协 调 机 构 中 韩 人 文 交 流 共 同 委 员 会, 同 时 双 方 还 决 定 增 进 历 史 研 究 方 面 的 相 互 交 流 与 合 作, 努 力 为 两 国 关 系 发 展 作 出 贡 献 加 强 中 韩 人 文 纽 带 这 一 新 提 法, 据 称 是 鉴 于 两 国 民 间 存 在 的 对 彼 此 的 误 解, 为 使 中 韩 战 略 合 作 伙 伴 关 系 发 展 到 更 高 水 平, 缩 短 两 国 国 民 间 心 理 距 离 构 筑 更 加 坚 实 的 信 任 关 系 而 提 出 的 加 强 中 韩 人 文 纽 带 是 一 个 意 涵 丰 富 的 提 法 首 先, 诚 如 朴 槿 惠 总 统 所 表 示 的, 韩 中 两 国 历 史 和 文 化 相 通, 这 是 中 韩 两 国 之 间 切 实 存 在 的 人 文 纽 带, 不 过 加 强 中 韩 人 文 纽 带 这 一 说 法, 却 也 从 另 一 种 意 义 上 承 认 了 当 前 存 在 于 中 韩 之 间 的 误 解 乃 至 不 信 任 的 状 况 加 强 中 韩 人 文 纽 带 提 法 的 目 的, 即 意 在 强 调 通 过 中 韩 之 间 固 有 人 文 纽 带 的 强 化 来 消 除 误 解 增 进 感 情 加 深 互 信 因 此, 在 我 们 看 来, 加 强 中 韩 人 文 纽 带 这 一 提 法 的 提 出, 在 一 定 程 度 恰 恰 是 对 当 前 存 在 于 中 韩 之 间 的 愈 益 严 重 的 情 感 疏 离 和 互 信 弱 化 状 况 的 准 确 反 映 我 们 知 道, 中 韩 之 间 目 前 的 贸 易 额 已 经 相 比 于 建 交 之 初 增 长 了 40 倍, 中 国 是 韩 国 最 大 的 贸 易 伙 伴, 韩 国 则 是 中 国 第 三 大 贸 易 伙 伴, 而 且 这 种 状 况 会 在 今 后 更 加 发 展 但 就 是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41
在 经 济 关 系 如 此 热 络 的 状 况 下, 中 韩 两 国 民 间 却 出 现 了 需 要 认 真 面 对 的 心 理 距 离 和 相 互 误 解, 需 要 重 新 强 调 潜 藏 于 两 国 之 间 的 人 文 纽 带 来 重 塑 信 任, 这 才 是 加 强 中 韩 人 文 纽 带 这 个 话 题 中 牵 涉 到 需 要 两 国 学 者 深 入 思 考 和 严 肃 对 待 的 问 题 严 格 说 来, 这 种 政 冷 经 热 的 状 况 是 当 前 中 国 对 外 关 系 当 中 普 遍 存 在 的 问 题, 不 过 在 周 边 国 家, 特 别 是 在 东 亚 区 域 表 现 地 更 为 突 出 而 已 所 谓 东 亚 区 域, 也 常 常 被 称 之 为 汉 字 文 化 圈 儒 教 文 化 圈, 是 一 个 具 有 高 度 相 同 辨 识 度 的 区 域, 正 如 法 国 学 者 汪 德 迈 所 说, 在 前 现 代 历 史 上, 这 是 一 个 具 有 高 度 内 聚 力 的 区 域 而 在 近 代 历 史 上, 这 个 区 域 中 的 人 民 也 都 曾 经 受 过 全 球 帝 国 主 义 的 压 迫, 也 都 经 历 过 民 族 解 放 和 现 代 化 赶 超 等 大 致 相 同 的 历 史 命 运 以 上 这 种 状 况 的 出 现 至 少 说 明, 在 原 本 应 该 具 有 更 多 文 化 和 历 史 亲 近 性 的 东 亚 区 域, 那 些 原 本 能 够 带 来 区 域 内 聚 力 的 文 化 因 素 和 历 史 命 运, 却 并 没 有 在 当 前 带 来 相 应 的 情 感 呼 应 和 理 解 信 任 那 么, 我 们 不 禁 要 追 问, 这 样 一 种 悖 论 现 象 何 以 会 发 生 呢? 当 然, 单 就 中 韩 之 间 而 言, 如 果 仅 从 国 际 关 系 的 角 度 来 看, 正 如 有 韩 国 学 者 所 指 出 的 那 样, 很 多 韩 国 人 对 中 国 未 来 的 远 景 既 期 待 又 担 忧 的 矛 盾 心 态 的 核 心 在 于 朝 鲜 问 题, 尽 管 建 交 20 多 年 来 两 国 关 系 获 得 极 大 发 展, 但 近 来 的 天 安 舰 事 件 和 延 坪 岛 事 件 却 引 发 了 中 国 威 胁 论 不 过, 如 果 是 由 具 体 事 件 引 发 的 中 国 威 胁 论, 当 然 也 可 以 通 过 另 外 的 具 体 事 件 或 加 重 或 缓 解 问 题 在 于, 何 以 这 些 具 体 的 事 件 总 会 不 断 引 发 类 似 的 担 忧 呢? 在 我 看 来, 普 遍 存 在 于 区 域 内 部 的 这 种 既 期 待 又 担 忧 的 纠 结 心 态, 不 仅 不 是 具 体 事 件 的 后 果, 却 可 能 是 一 种 导 引 对 事 件 认 知 态 度 的 基 本 社 会 事 实 加 强 人 文 纽 带 需 要 我 们 深 入 理 解 两 国 乃 至 区 域 内 部 的 人 文 传 统 和 精 神 世 界, 而 进 入 人 文 传 统 和 精 神 世 界 的 深 度, 取 决 于 我 们 对 当 代 现 实 的 理 解 的 高 度, 以 及 我 们 对 两 国 关 系 乃 至 区 域 未 来 的 关 心 的 深 切 程 度, 这 就 需 要 我 们 摆 脱 从 单 纯 因 果 关 系 的 角 度 关 心 现 实 的 认 识 态 度, 而 是 能 够 深 入 人 文 学 应 该 面 对 的 情 感 精 神 和 历 史 世 界, 给 出 合 情 合 理 地 解 释, 并 尝 试 通 过 对 历 史 的 解 释, 来 导 引 出 我 们 对 于 未 来 的 更 为 深 远 的 想 象 来 这 或 许 正 是 加 强 人 文 纽 带 向 两 国 人 文 学 者 提 出 的 任 务 2008 年, 白 乐 晴 先 生 在 台 湾 曾 做 过 一 个 题 为 东 亚 和 解 的 路 障 的 演 讲, 他 在 演 讲 中 讨 论 了 东 亚 存 在 着 的 各 种 分 断 状 况, 这 些 分 断 状 况 当 然 主 要 是 指 冷 战 后 依 然 存 在 着 的 如 142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两 韩 之 间 以 及 中 国 大 陆 与 台 湾 之 间 的 领 土 分 断, 我 们 知 道 白 先 生 曾 把 两 韩 之 间 的 分 断 状 况 上 升 到 一 个 分 断 体 制 的 高 度 来 加 以 描 述, 但 在 这 个 演 讲 中, 白 先 生 在 此 之 外 特 别 讨 论 了 存 在 于 东 亚 内 部 的 他 称 之 为 巨 型 分 断 (acro-division) 状 况 所 谓 巨 型 分 断, 白 先 生 的 定 义 是 具 有 较 长 历 史 根 源 的 大 规 模 分 断 在 他 看 来, 在 东 亚 最 重 要 的 巨 型 分 断 有 两 个, 一 个 是 日 本 与 其 余 地 区 之 间 的 分 断, 一 个 是 中 国 与 其 余 地 区 之 间 的 分 断 日 本 与 其 余 地 区 之 间 的 分 断, 根 源 于 明 治 维 新 之 后 的 脱 亚 入 欧 的 国 策 脱 亚 意 味 着 摆 脱 它 所 在 的 落 后 区 域, 入 欧 则 意 味 着 加 入 一 个 先 进 的 区 域, 成 为 其 中 的 一 员 在 这 里, 亚 洲 和 欧 洲 已 经 不 仅 仅 是 区 域 的 地 理 空 间, 而 是 一 个 具 有 强 烈 价 值 意 味 的 意 识 形 态 符 号 正 是 在 这 种 先 进 与 落 后, 甚 至 是 文 明 与 野 蛮 的 对 立 中, 日 本 思 想 史 上 原 本 具 有 朴 素 亚 洲 感 情 的 亚 洲 主 义 终 于 蜕 变 为 大 陆 主 义, 成 为 侵 略 和 殖 民 东 亚 的 意 识 形 态 尽 管 日 本 帝 国 主 义 的 历 史 终 结 于 1945 年 的 败 战, 但 这 种 意 识 形 态 却 并 没 有 终 结, 不 过 二 战 后 的 日 本 所 要 加 入 的 先 进 行 列 已 经 不 是 欧 洲, 而 是 美 国 正 是 通 过 与 美 国 直 接 的 特 殊 关 系, 这 种 意 识 形 态 继 续 被 实 际 落 实 着 日 本 通 过 不 断 地 赶 超 与 学 习 始 终 坚 持 代 表 着 所 谓 先 进 的 文 明 世 界 的 世 界 历 史 方 向, 成 为 那 个 先 进 文 明 世 界 的 代 理 者 正 是 因 为 这 种 意 识 形 态 的 持 续 存 在, 在 我 看 来, 日 本 与 其 余 地 区 的 分 断, 实 际 上 也 已 经 构 成 为 一 种 体 制 这 种 体 制 或 许 并 非 如 两 韩 之 间 的 分 断 体 制 那 样 是 一 种 对 立 面 之 间 相 互 依 存 的 政 治 经 济 社 会 之 间 的 共 生 结 构, 但 却 是 在 一 种 意 识 形 态 结 构 的 意 义 上 固 化 为 一 种 认 识 论 体 制 : 文 明 与 野 蛮 先 进 与 落 后 的 对 立 结 构 已 经 被 意 识 形 态 的 价 值 标 准 固 化 为 一 种 潜 在 的 思 维 模 式, 成 为 一 种 在 一 元 论 普 遍 主 义 之 下 的 非 此 即 彼 二 元 对 立 的 认 识 论 模 式 我 们 知 道, 这 种 发 生 在 意 识 形 态 领 域 里 的 分 断 体 制, 是 经 由 近 代 史 学 和 近 代 社 会 科 学, 通 过 进 步 史 观 实 证 主 义 主 体 哲 学 和 民 族 主 义 等 思 想 装 置 不 断 塑 造 的 结 果, 它 不 仅 是 日 本 社 会 的 意 识 形 态 预 设, 而 且 也 已 经 成 为 弥 漫 于 后 发 展 国 家 内 部 的 自 我 意 识 实 际 上 日 本 和 其 余 地 区 之 间 的 分 断 在 一 定 意 义 上 不 过 是 发 生 在 后 发 展 国 家 自 我 意 识 当 中 的 分 断 现 象 的 象 征 而 已 ( 与 其 说 这 种 自 我 意 识 分 断 是 现 代 化 意 识 形 态 的 内 容, 莫 如 说 它 是 欧 美 帝 国 主 义 精 神 霸 权 的 产 物 ) 关 于 中 国 与 其 余 地 区 之 间 的 巨 型 分 断, 根 据 白 先 生 的 分 析, 这 主 要 是 由 于 中 国 在 区 域 历 史 上 的 独 特 地 位 以 及 在 地 理 空 间 规 模 上 的 巨 大 导 致 的 在 他 看 来, 中 国 几 乎 无 法 算 是 一 个 普 通 的 民 族 国 家 由 于 中 国 的 大 小 历 史 内 部 的 多 元 性 等, 它 跟 其 他 东 亚 国 家 相 较 并 不 是 相 等 的 民 族 国 家, 也 不 可 能 相 等 而 当 中 国 带 着 自 己 特 有 的 民 族 主 义 等 特 质, 开 始 采 取 或 选 择 采 取 普 通 民 族 国 家 式 的 行 动 时, 它 跟 其 他 国 家 不 相 等 的 这 项 事 实, 就 变 成 严 重 不 调 和 与 不 平 衡 的 来 源 之 一 ( 东 亚 和 解 的 路 障, 白 乐 晴 : 分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43
断 体 制 民 族 文 学 台 北 联 经,270 页,2010 年 ) 也 就 是 说, 中 国 与 其 余 地 区 的 分 断, 是 由 于 中 国 这 个 国 家 由 于 其 历 史 传 统 而 带 来 的 独 特 国 家 性 质 以 及 其 地 理 空 间 巨 大 规 模 而 带 来 的 与 其 余 地 区 之 间 的 不 相 等 不 对 称 不 平 衡 状 况 这 也 就 是 说, 在 一 个 以 民 族 国 家 为 构 成 单 位 的 现 代 世 界 里, 国 际 之 间 遵 循 的 是 无 论 大 小 主 权 平 等 的 原 则, 但 中 国 却 由 于 其 自 身 历 史 和 空 间 规 模 上 的 独 特 性, 在 事 实 上 根 本 无 法 作 为 一 个 民 族 国 家, 也 不 可 能 完 全 自 我 约 束 以 真 正 遵 循 与 他 国 完 全 对 等 的 原 则 实 际 上, 这 种 说 法 背 后 的 潜 台 词 是, 传 统 中 国 是 中 华 帝 国, 是 整 个 东 亚 区 域 的 中 心, 尽 管 它 与 现 代 帝 国 主 义 不 同, 但 它 在 现 代 却 仍 然 无 法 完 全 摆 脱 其 帝 国 的 习 性, 或 者 说 它 总 是 具 有 成 为 帝 国 的 潜 质 在 一 个 以 民 族 国 家 为 基 本 政 治 单 位 的 现 代 东 亚 世 界 里, 中 国 只 能 算 是 一 个 异 数, 而 且 是 危 险 的 异 数 因 此, 中 国 与 其 余 地 区 之 间 的 巨 型 分 断, 实 际 上 就 是 地 理 空 间 规 模 上 的 大 与 小 之 间 的 不 相 称, 是 前 现 代 的 国 家 性 质 与 现 代 民 族 国 家 之 间 的 不 适 应, 是 历 史 上 的 中 心 边 缘 秩 序 与 现 代 去 中 心 的 国 际 秩 序 之 间 的 不 调 和 如 果 我 们 把 白 先 生 指 出 的 这 两 种 东 亚 内 部 的 巨 型 分 断 结 合 起 来, 我 们 就 会 发 现, 中 国 与 其 余 地 区 之 间 的 分 断 中 的 其 余 地 区 当 然 主 要 是 指 日 本 和 韩 半 岛, 而 日 本 和 其 余 地 区 之 的 分 断 中 的 其 余 地 区 当 然 主 要 是 指 中 国 和 韩 半 岛 因 此, 发 生 在 东 亚 内 部 的 巨 型 分 断, 就 其 实 质 而 言 不 过 是 中 国 和 日 本 之 间 的 巨 型 分 断, 其 中 韩 半 岛 则 处 于 居 中 的 微 妙 位 置, 一 方 面 正 如 白 先 生 所 言, 由 于 亲 日 与 亲 美 派 在 南 韩 统 治 阶 级 中 占 据 主 导 地 位, 因 此 南 韩 也 倾 向 对 亚 洲 其 余 地 区 采 取 如 日 本 一 样 的 暧 昧 立 场, 另 一 方 面, 从 现 代 历 史 来 观 察, 北 韩 则 当 然 更 多 地 接 近 于 中 国 的 态 度 也 正 是 在 此 意 义 上, 我 们 或 许 可 以 说, 发 生 在 中 国 与 其 余 地 区 之 间 的 分 断 主 要 是 以 中 国 与 日 本 之 间 的 分 断 表 现 出 来 同 样, 也 正 是 在 这 个 意 义 上, 如 果 我 们 接 受 了 日 本 与 其 余 地 区 的 分 断 背 后 的 意 识 形 态 预 设, 那 么 我 们 看 待 中 国 与 其 余 地 区 的 分 断 的 态 度, 便 会 将 其 理 解 为 一 种 先 进 与 落 后 之 间 的 分 断, 而 且 是 中 国 与 日 本 之 间 的 落 后 与 先 进 之 间 的 分 断 在 一 定 意 义 上, 中 国 内 部 的 现 代 化 派 们, 从 晚 清 直 至 当 代 也 都 是 如 此 看 待 中 日 关 系 的, 即 使 是 在 遭 受 日 本 侵 略 的 时 代, 那 也 不 过 是 落 后 就 要 挨 打 的 铁 血 证 明 不 过, 发 生 在 中 国 与 其 余 地 区 之 间 的 分 断, 特 别 是 与 日 本 的 分 断 当 中, 其 实 还 存 在 另 一 种 分 断 的 内 涵, 那 就 是 所 谓 落 后 对 所 谓 先 进 的 抵 抗 正 是 这 种 抵 抗, 其 实 也 同 样 构 成 了 日 本 与 其 余 地 区 分 断 的 内 涵 之 一 因 此, 在 看 待 中 国 与 其 余 地 区 的 分 断, 特 别 是 与 日 本 和 韩 国 之 间 的 分 断 时, 我 们 不 能 忽 视 另 一 个 重 要 的 历 史 维 度, 那 就 是 革 命 的 维 度, 实 际 上 这 也 构 成 了 一 个 重 要 的 理 解 东 亚 区 域 现 代 史 的 价 值 维 度 没 有 这 个 维 度, 我 们 便 无 法 理 解 中 国, 当 然 也 无 法 理 解 北 韩 于 是, 我 们 可 以 推 导 出 中 国 144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与 其 余 地 区 之 间 分 断 的 另 一 层 内 涵, 那 就 是 关 于 历 史 观 的 分 断 这 不 仅 包 含 着 对 前 现 代 历 史 的 基 本 看 法 上 的 分 断, 更 包 含 着 对 于 现 代 历 史 的 基 本 看 法 上 的 分 断 实 际 上, 正 是 由 于 这 些 历 史 观 价 值 观 和 意 识 形 态 上 的 深 刻 分 歧, 使 得 中 国 与 其 余 地 区 之 间 的 分 断 成 为 一 种 挥 之 不 去 的 心 理 纠 结 和 情 感 隔 阂 那 些 原 本 促 成 了 前 现 代 东 亚 世 界 的 内 聚 力 的 文 化 和 历 史 因 素, 在 当 前 不 仅 无 法 自 在 地 发 挥 其 人 文 纽 带 的 作 用, 甚 且 成 为 被 分 断 所 利 用 的 资 源 以 儒 教 这 个 可 以 作 为 区 域 文 化 象 征 的 共 享 资 源, 在 70 80 年 代 日 本 模 式 风 行 和 亚 洲 四 小 龙 崛 起 的 时 代, 则 成 为 解 释 其 成 功 模 式 的 传 统 因 素, 于 是 有 所 谓 儒 教 资 本 主 义 论 ; 同 样 的, 在 当 代 中 国 则 出 现 了 一 种 儒 教 社 会 主 义 的 思 潮, 其 思 想 动 机 则 是 为 中 国 模 式 的 成 功 经 验 寻 找 历 史 和 文 化 根 据 同 样 的 文 化 资 源 却 被 运 用 于 解 释 两 种 截 然 不 同 的 历 史 后 果, 这 说 明, 即 使 是 同 样 的 文 化 传 统 不 仅 不 会 必 定 化 解 分 断 状 况, 而 且 还 有 可 能 被 现 实 中 的 巨 型 分 断 所 利 用 这 样 的 事 实 让 我 们 清 醒 地 意 识 到, 感 情 上 的 亲 近 并 不 会 因 为 看 起 来 的 相 似 而 自 发 产 生, 即 使 自 发 产 生 也 不 会 持 久 只 有 经 过 感 而 遂 通 的 感 通 力 来 为 其 疏 通 渠 道, 通 过 感 通 中 的 相 互 理 解, 通 过 感 通 所 启 发 而 来 的 智 慧, 来 抵 达 对 方 历 史 中 的 困 难 与 苦 痛, 感 情 的 兴 起 才 有 可 能 沛 然 莫 之 能 御, 而 通 达 他 者 情 感 的 能 力 本 身 就 是 一 种 深 刻 的 关 心 他 者 的 道 德 情 怀 因 此, 在 我 们 看 来, 感 通 力 的 培 养 是 加 强 人 文 纽 带 的 关 键 只 有 在 我 们 具 备 了 能 够 通 达 对 方 痛 苦 的 能 力 时, 彼 此 之 间 的 相 互 认 识 和 理 解 才 会 是 顺 畅 的 用 儒 家 的 术 语 来 表 达, 这 是 由 仁 达 智 以 智 通 仁 的 境 界 因 此, 为 超 克 东 亚 内 部 的 巨 型 分 断, 我 们 首 先 需 要 一 种 认 识 论 的 变 革, 重 建 一 种 仁 智 合 一 的 感 通 能 力 三 如 何 超 克 东 亚 内 部 的 巨 型 分 断 : 中 道 主 义 智 慧 与 意 识 形 态 批 判 在 这 里 我 们 还 是 要 以 白 乐 晴 先 生 的 思 想 工 作 带 给 我 们 的 启 发 来 开 始 我 们 关 于 如 何 超 克 巨 型 分 断 的 思 考 白 乐 晴 先 生 特 别 强 调 智 慧 相 对 于 现 代 科 学 知 识 的 优 越 性, 但 智 慧 并 不 是 对 科 学 的 简 单 否 定, 应 该 说 智 慧 是 一 种 对 科 学 知 识 的 调 节 和 制 约 的 能 力 ( 柳 浚 弼 语 ) 或 者 在 我 们 看 来, 智 慧 就 是 导 引 科 学 认 知 的 一 种 道 德 能 力, 因 为 有 这 样 一 种 道 德 能 力 的 导 引, 科 学 知 识 才 有 可 能 成 为 对 人 类 生 活 真 正 有 意 义 的 洞 察 而 不 是 对 人 类 的 异 化 在 我 们 看 来, 智 慧 更 是 破 除 以 科 学 的 名 义 而 产 生 的 意 识 形 态 观 念 桎 梏 的 工 具 白 乐 晴 先 生 提 出 一 种 变 革 性 的 中 道 主 义 就 是 这 样 一 种 智 慧, 一 种 转 识 成 智 的 智 慧 在 我 们 看 来, 中 道 主 义 的 认 识 论 具 有 一 种 瓦 解 现 代 诸 种 意 识 形 态 迷 误 超 克 巨 型 分 断 的 智 慧 潜 能, 值 得 我 们 深 入 挖 掘 和 大 力 阐 扬 所 谓 中 道 是 佛 教 中 观 学 说 中 为 破 除 戏 论 ( 概 念 或 理 论 ) 执 着 而 采 取 地 一 种 准 确 呈 现 和 认 识 现 实 的 方 式 因 此, 所 谓 中 道 主 义 就 应 该 是 一 种 能 够 破 除 任 何 意 识 形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45
态 执 着, 还 原 意 识 形 态 的 缘 起 性 质, 同 时 又 能 够 根 据 现 实 需 要 合 理 安 排 和 运 用 意 识 形 态 的 态 度 与 能 力 所 谓 中 道 主 义 认 识 论, 就 是 相 对 化 任 何 一 种 绝 对 真 理 的 一 元 化 宣 示 同 时 又 能 够 根 据 条 件 恰 如 其 分 地 安 顿 它 的 认 识 论 中 道 主 义 对 一 元 绝 对 真 理 的 相 对 化, 并 非 取 消 其 真 理 性, 而 是 恰 当 地 安 排 其 真 理 性 根 据 这 种 中 道 主 义 的 认 识 论, 我 们 是 要 突 破 意 识 形 态 观 念 对 现 实 的 遮 蔽, 如 其 本 来 地 呈 现 和 认 识 现 实, 而 这 就 要 求 我 们 能 够 恰 如 其 分 地 驾 驭 和 把 握 意 识 形 态 对 于 现 实 的 有 限 揭 示 作 用, 既 不 会 为 其 有 限 的 揭 示 所 带 来 的 视 野 局 限 所 蒙 蔽, 又 能 够 经 由 意 识 形 态 的 相 对 真 理 性, 抵 达 一 定 的 现 实 因 此, 在 我 看 来, 中 道 主 义 的 认 识 论, 更 为 重 要 的 作 用 在 于 开 放 出 了 更 高 地 把 握 现 实 的 主 体 可 能 性, 使 得 在 对 现 实 更 高 且 更 全 面 的 观 照 中 主 体 能 够 始 终 把 握 价 值 创 造 的 权 能, 而 不 为 任 何 一 种 意 识 形 态 的 执 着 所 俘 虏, 最 终 成 为 价 值 自 主 自 立 的 主 体 这 种 主 体 不 再 是 近 代 哲 学 自 我 肯 定 中 的 自 我 同 一 的 主 体, 而 是 始 终 处 于 无 与 有 的 辩 证 关 系 中 能 够 无 中 生 有 的 创 造 性 存 在, 是 一 种 在 价 值 创 造 中 不 断 进 行 着 创 造 的 机 能 性 主 体, 它 永 远 向 未 来 开 放 着 自 身 的 可 能 性, 在 创 造 中 尽 性 知 天 根 据 这 种 中 道 主 义 的 认 识 论, 那 种 曾 经 主 导 东 亚 区 域 的 现 代 化 意 识 形 态 强 权, 便 有 可 能 被 相 对 化 在 先 进 与 落 后 文 明 与 野 蛮 的 现 代 化 意 识 形 态 中, 先 进 和 文 明 是 通 过 对 自 我 的 简 单 否 定 实 现 的, 是 奴 隶 力 求 改 造 自 我 以 变 成 主 人 的 过 程 发 生 在 东 亚 的 具 有 一 定 普 遍 性 的 脱 亚 入 欧 的 赶 超 逻 辑, 便 是 这 样 一 种 丧 失 内 在 张 力 的 简 单 自 我 否 定 的 发 展 模 式 中 道 主 义 认 识 论 的 批 判 性 意 义 其 实 在 于, 它 并 不 是 要 对 这 种 简 单 自 我 否 定 的 赶 超 意 识 形 态 加 以 简 单 地 否 定, 而 是 要 从 中 拯 救 出 能 够 掌 控 赶 超 发 展 的 主 体 发 展 是 必 要 的, 但 发 展 不 是 通 过 放 弃 自 我 来 实 现 的, 发 展 恰 恰 是 对 自 我 的 发 展 对 现 代 化 意 识 形 态 批 判 性 转 换 的 一 个 历 史 效 应, 是 将 我 们 从 西 方 所 宣 示 的 普 遍 主 义 的 一 元 论 的 世 界 历 史 发 展 模 式 中 解 放 出 来, 再 次 确 认 自 我 的 位 置 : 亚 洲 或 东 方 不 再 是 西 方 或 欧 洲 确 认 自 我 的 依 附 性 他 者 ; 另 一 个 直 接 效 应 便 是 把 西 方 从 普 遍 主 义 的 一 元 论 霸 权 中 回 置 回 西 方, 只 有 把 西 方 作 为 西 方 来 对 待, 东 西 方 之 间 才 真 正 有 可 能 在 各 自 文 明 的 根 源 处, 重 新 寻 找 对 话 和 沟 通 的 可 能 性, 从 而 为 世 界 的 未 来 创 造 更 为 丰 富 的 可 能 图 景 对 现 代 化 意 识 形 态 的 批 判 性 转 换 的 另 一 个 历 史 效 应, 则 是 让 区 域 内 的 各 国 不 再 根 据 普 遍 主 义 的 价 值 秩 序 来 安 排 区 域 内 部 的 秩 序, 而 是 让 我 们 各 自 放 平 心 态 来 看 待 各 自 的 发 展 模 式, 认 识 到 不 同 发 展 模 式 是 不 同 主 体 根 据 自 身 条 件 确 立 的 发 展 自 己 的 方 式 而 已 中 道 主 义 的 认 识 论 也 可 以 批 判 性 地 转 化 以 抵 抗 为 主 题 的 革 命 意 识 形 态 在 东 亚 近 代 史 上, 相 对 于 日 本 的 脱 亚 入 欧 的 意 识 形 态, 出 现 了 另 一 种 以 亚 洲 为 本 位 的 抵 抗 欧 洲 和 帝 国 主 义 的 论 述 和 行 动 亚 洲 这 个 地 缘 空 间 观 念 的 出 现 本 来 是 欧 洲 用 146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来 确 认 自 我 时 所 设 定 的 他 者, 因 此, 以 亚 洲 为 本 位 进 行 地 反 抗, 便 包 含 了 一 种 吊 诡 的 逻 辑, 它 既 是 对 欧 洲 设 定 自 己 的 接 受, 但 同 时 又 尝 试 去 反 抗 这 种 设 定 的 特 定 内 容 相 对 于 欧 洲 对 亚 洲 的 他 者 想 象, 这 种 亚 洲 观 念 是 在 欧 洲 压 迫 下 的 亡 国 灭 种 危 机 中 的 反 抗 连 带 的 联 合 体, 一 种 否 定 性 的 联 合 体 (Negative Unity)( 参 见 柯 瑞 佳 Rebecca E.Karl 创 造 亚 洲 :20 世 纪 初 世 界 中 的 中 国 ) 因 此, 这 样 的 亚 洲 是 一 个 针 对 共 同 的 敌 人 而 形 成 的 政 治 行 动 的 联 合 体, 我 们 当 然 可 以 设 想, 如 果 对 立 面 不 存 在, 政 治 行 动 的 亚 洲 当 然 也 便 失 去 了 存 在 的 根 据 正 如 韩 国 学 者 柳 浚 弼 所 指 出 的 那 样, 如 果 被 压 迫 者 的 抵 抗 当 中 缺 少 了 一 个 自 我 抵 抗 的 环 节, 在 对 他 者 的 否 定 中 丧 失 了 自 我 否 定 的 环 节, 那 么 这 种 抵 抗 将 不 可 避 免 为 主 奴 辩 证 法 所 俘 虏 : 奴 隶 对 主 人 的 抵 抗 仅 仅 是 为 了 主 奴 地 位 的 转 换 这 与 那 种 试 图 通 过 变 成 主 人 来 转 换 地 位 的 做 法 并 无 实 质 上 的 不 同, 同 样 缺 乏 价 值 转 换 性 创 造 的 意 义 真 正 具 有 价 值 转 换 性 创 造 的 抵 抗, 不 仅 是 去 抵 抗 压 迫 者, 更 要 通 过 自 己 的 抵 抗 来 彻 底 转 换 压 迫 和 被 压 迫 的 价 值 秩 序 彻 底 根 除 压 迫, 从 而 谋 求 对 世 界 秩 序 的 根 本 改 造 而 要 做 到 这 一 点, 必 须 有 一 种 价 值 的 自 觉, 在 抵 抗 中 始 终 保 持 着 自 我 抵 抗 的 醒 觉 意 识, 这 才 有 可 能 产 生 出 一 种 全 新 的 主 体 和 全 新 的 世 界 秩 序 这 种 在 否 定 和 自 我 否 定 中 生 成 的 主 体, 本 身 即 是 一 种 价 值 和 文 化 的 原 理 它 总 是 把 他 者 作 为 自 我 成 长 的 契 机, 同 时 也 把 自 我 的 成 长 作 为 他 者 成 长 的 条 件, 这 正 是 以 他 为 自 的 主 体 生 成 原 理, 而 它 同 时 也 是 一 种 道 德 的 原 理 在 以 他 为 自 的 道 德 互 动 中 不 断 扩 展 自 我 生 成 的 广 度 和 厚 度, 同 时 也 赋 予 他 者 的 生 成 以 同 样 的 广 度 和 厚 度 在 以 他 为 自 的 道 德 互 动 中 真 正 落 实 的 是 一 种 齐 物 平 等 的 价 值 秩 序 对 这 种 以 他 为 自 的 主 体 生 成 原 理 的 发 明, 会 从 根 本 上 瓦 解 民 族 主 义 意 识 形 态 的 根 基 民 族 主 义 的 意 识 形 态 是 现 代 化 意 识 形 态 的 一 个 伴 生 物, 它 是 近 代 主 体 哲 学 在 民 族 层 次 上 的 展 现 它 以 一 个 绝 对 确 定 性 的 自 我 为 开 端, 中 间 尽 管 可 能 经 历 否 定 的 环 节, 但 最 终 仍 将 会 以 否 定 之 否 定 的 形 式 在 更 高 的 层 次 上 再 次 确 认 自 我 的 确 定 性, 它 是 一 个 螺 旋 形 的 孤 立 且 封 闭 的 结 构 : 起 点 即 是 圆 满, 是 包 含 了 所 有 潜 能 的 圆 满, 终 点 也 是 圆 满 的, 那 是 潜 能 实 现 后 的 圆 满 这 样 一 种 主 体 其 实 就 是 神, 而 这 样 的 民 族 主 体 自 然 是 一 个 神 话 这 样 的 主 体 或 民 族 是 历 史 的 前 提, 而 不 是 历 史 的 结 果 而 以 他 为 自 的 主 体 生 成 原 理, 则 经 由 一 种 源 流 互 质 的 程 序, 是 在 源 流 之 间 的 不 断 地 相 互 质 询 中 逐 渐 形 成 而 且 变 化 的 主 体 意 识, 它 是 历 史 的 后 果, 却 非 历 史 的 前 提, 因 为 并 没 有 一 种 贯 穿 历 史 始 终 虽 变 而 不 变 的 主 体, 成 为 历 史 的 前 提 以 他 为 自 的 主 体 生 成 原 理 会 要 求 我 们 正 视 历 史, 因 为 历 史 是 主 体 形 成 的 条 件, 而 民 族 主 义 的 意 识 形 态 则 只 关 心 民 族, 历 史 不 过 是 民 族 神 话 展 演 的 舞 台 正 视 历 史, 就 不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47
会 放 过 任 何 一 个 历 史 的 细 节, 更 不 会 有 意 回 避 任 何 一 段 历 史, 因 为 历 史 的 每 个 细 节 都 有 可 能 蕴 藏 着 理 解 我 们 自 身 的 秘 密 就 东 亚 区 域 而 言, 正 视 历 史 就 意 味 着 要 关 心 前 现 代 历 史 和 现 代 历 史 的 连 续, 对 于 现 代 与 前 现 代 的 断 裂, 也 必 须 在 历 史 的 连 续 理 解 中 才 能 真 正 获 得 解 释 让 我 们 斗 胆 以 朝 鲜 历 史 为 例, 为 了 理 解 现 代 韩 国 史, 就 无 法 回 避 五 百 年 李 氏 朝 鲜 的 历 史, 在 东 亚 历 史 上 还 没 有 一 个 王 朝 可 以 持 续 500 年 以 上, 这 本 身 就 是 一 个 政 治 成 就, 值 得 我 们 深 入 地 理 解, 其 中 一 定 蕴 含 着 丰 富 的 朝 鲜 历 史 和 政 治 的 智 慧 理 解 李 氏 王 朝 就 能 够 深 入 认 识 14-19 世 纪 东 亚 政 治 秩 序 变 迁 的 实 质, 因 而 便 不 会 轻 易 被 一 种 多 元 封 闭 的 民 族 主 义 想 象 所 局 限, 丧 失 重 建 新 东 亚 秩 序 的 智 慧 对 于 中 国 也 一 样, 只 有 把 对 现 代 中 国 的 理 解 纵 深 深 入 于 三 四 百 年 前, 才 能 够 真 正 把 握 中 国 现 代 历 史 变 迁 的 动 力 我 们 对 当 代 现 实 理 解 的 高 度 有 多 高, 就 决 定 了 我 们 深 入 于 历 史 的 深 度 有 多 深 在 某 种 意 义 上 我 们 可 以 说, 未 来 东 亚 的 本 质 取 决 于 我 们 对 东 亚 历 史 一 遍 遍 诠 释 的 深 度 和 广 度 这 种 历 史 智 慧 是 东 亚 文 明 的 重 要 精 神 财 富 根 据 民 族 主 义 的 意 识 形 态, 每 个 民 族 都 是 同 质 且 封 闭 的, 因 而 异 民 族 之 间 的 异 质 性 便 可 能 导 致 真 正 沟 通 的 不 可 能 ; 在 封 闭 同 质 的 意 义 上, 民 族 之 间 是 不 分 高 低 贵 贱 一 律 平 等 的, 但 在 不 可 沟 通 的 意 义 上, 民 族 之 间 的 关 系 便 也 有 了 霸 权 生 长 的 空 间 更 为 重 要 的 是, 民 族 之 间 的 多 元 平 等 是 一 种 抽 象 的 形 式 平 等, 它 并 不 能 取 消 民 族 之 间 在 规 模 和 实 力 上 的 实 质 不 平 等 民 族 之 间 的 抽 象 平 等 只 能 是 协 调 国 际 关 系 的 国 际 法 准 则, 却 不 能 真 正 成 为 协 调 民 族 关 系 的 政 治 准 则 在 现 代 条 件 下 强 权 政 治 盛 行 的 原 因 就 在 于 此, 民 族 主 义 无 法 真 正 带 来 一 种 公 正 的 国 际 政 治 公 正 的 国 际 政 治 秩 序 的 实 现, 恰 恰 需 要 我 们 破 除 民 族 之 间 抽 象 平 等 的 意 识 形 态 误 区, 凭 借 一 种 政 治 智 慧 的 彻 底 性 来 正 视 规 模 和 实 力 上 的 大 小 差 别 差 别 的 存 在 是 一 种 自 然 的 和 历 史 的 事 实, 但 差 别 却 并 不 必 然 意 味 着 不 平 等, 反 而 可 能 是 带 来 真 正 平 等 的 条 件 严 格 说 来, 真 正 的 平 等 不 仅 不 是 抽 象 的 一 往 平 等 意 义 上 的 普 遍 平 等 主 义, 也 非 抽 象 的 自 在 平 等 意 义 上 的 多 元 平 等 主 义, 而 应 该 是 发 生 在 个 别 与 个 别 具 体 与 具 体 之 间 的 不 齐 而 齐 的 价 值 对 等 性 意 义 上 的 平 等, 这 是 一 种 因 为 差 异 所 以 平 等 的 平 等 性, 是 一 种 尽 性 而 非 适 性 意 义 上 的 平 等 各 尽 其 性 与 各 适 其 性 的 区 别, 在 于 是 否 能 够 给 予 个 体 一 种 充 量 发 展 且 自 作 主 宰 的 条 件, 在 于 是 否 接 受 和 承 认 外 在 秩 序 所 规 定 的 性 的 内 涵 ; 只 有 这 种 意 义 上 的 平 等 性 才 真 正 建 立 起 了 个 体 之 特 别 性 的 价 值 ( 参 见 张 志 强 操 齐 物 以 解 纷, 明 天 倪 以 为 量 : 章 太 炎 齐 物 哲 学 的 内 涵 与 旨 趣 ) 因 此, 正 视 差 别 就 成 为 一 种 伦 理 要 求, 同 时 它 也 是 一 种 政 治 智 慧 正 视 大 小 的 差 别, 不 仅 是 对 小 者 的 伦 理 要 求, 更 主 要 的 是 对 大 者 的 伦 理 要 求 大 者 正 视 自 己 的 大, 148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意 味 着 大 者 对 大 的 责 任 的 自 觉, 是 大 者 对 自 身 媒 介 作 用 之 大 的 自 觉 在 不 齐 而 齐 的 齐 物 平 等 世 界 里, 大 意 味 着 媒 介 作 用 之 大, 同 时 这 也 意 味 着 责 任 的 重 大 正 视 历 史, 意 味 着 去 正 视 主 体 形 成 的 复 杂 条 件 ; 正 视 差 别, 意 味 着 去 正 视 差 别 带 来 的 不 同 伦 理 要 求 正 视 历 史 和 正 视 差 别, 才 是 产 生 出 创 建 更 为 合 理 合 情 的 政 治 秩 序 的 智 慧 根 源 最 后, 我 们 还 是 要 回 到 白 乐 晴 先 生 的 智 慧 创 造 上 来 白 先 生 曾 经 提 出 过 一 个 定 义 第 三 世 界 的 方 式, 他 说 : 如 何 定 义 第 三 世 界, 这 点 其 实 一 直 是 不 确 定 的, 我 主 张, 第 三 世 界 的 用 意, 或 者 说 把 第 三 世 界 概 念 提 出 的 用 意, 并 非 在 于 将 世 界 分 成 三 块, 而 在 于 将 世 界 视 为 一 个 单 一 整 体, 但 我 们 采 取 的 不 是 所 谓 第 一 或 第 二 世 界 的 强 盛 国 家 观 点, 而 是 从 普 通 民 众 出 发 的 观 点 这 就 是 我 试 图 形 成 第 三 世 界 观 点 的 方 式, 如 此 一 来, 就 没 有 需 要 去 争 论 哪 个 国 家 属 于 哪 一 部 分 的 世 界 ( 白 乐 晴 全 球 化 时 代 的 第 三 世 界 及 民 族 文 学 概 念, 白 乐 晴 : 分 断 体 制, 民 族 文 学,191 页 ) 在 白 先 生 看 来, 第 三 世 界 并 非 是 一 种 划 分 世 界 的 方 式, 而 是 一 种 定 义 整 个 世 界 的 方 式, 所 谓 第 三 世 界 是 从 一 种 不 同 于 强 盛 国 家 的 视 野 和 相 应 的 价 值 出 发 来 定 义 世 界 的 方 式 第 三 世 界 意 味 着 一 种 新 的 看 待 世 界 的 方 式, 一 种 新 的 结 构 世 界 秩 序 的 价 值 观 点 和 政 治 观 点 我 们 期 待 着, 经 由 我 们 对 东 亚 内 部 巨 型 分 断 的 超 克, 经 由 我 们 对 东 亚 内 部 人 文 纽 带 的 再 次 强 化, 经 由 转 识 成 智 的 具 有 实 践 效 能 的 认 识 论 转 化, 能 够 建 设 一 个 理 想 的 东 亚, 并 将 理 想 的 东 亚 作 为 建 设 一 个 理 想 世 界 的 起 点 这 或 许 是 我 们 讨 论 加 强 中 韩 人 文 纽 带 对 于 东 亚 乃 至 世 界 未 来 的 意 义 所 在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49
为 了 加 强 韩 中 人 文 纽 带 的 课 题 展 望 巨 型 分 断 的 超 克 与 理 想 东 亚 的 可 能 性 加 强 中 韩 人 文 纽 带 对 于 区 域 未 来 的 意 义 ( 摘 要 ) 张 志 强 ( 中 国 社 科 院 ) 加 强 中 韩 人 文 纽 带 的 提 法 意 在 强 调 通 过 中 韩 之 间 固 有 人 文 纽 带 的 强 化 来 消 除 误 解 增 进 感 情 加 深 互 信 因 此, 加 强 中 韩 人 文 纽 带 这 一 提 法 的 提 出, 在 一 定 程 度 恰 恰 是 对 当 前 存 在 于 中 韩 之 间 的 愈 益 严 重 的 情 感 疏 离 和 互 信 弱 化 状 况 的 反 映 不 过, 中 韩 之 间 的 情 感 疏 离 和 互 信 弱 化 的 状 况 并 非 偶 然, 在 一 定 程 度 上 是 东 亚 内 部 巨 型 分 断 的 征 兆 性 反 映 本 文 尝 试 对 东 亚 内 部 巨 型 分 断 的 内 涵 和 效 应 进 行 分 析, 试 图 建 立 一 种 超 克 巨 型 分 断 的 认 识 论 框 架, 对 塑 造 了 东 亚 内 部 巨 型 分 断 的 意 识 形 态 基 础 进 行 深 入 批 判, 来 为 中 韩 两 国 乃 至 东 亚 的 未 来 的 理 想 秩 序, 提 供 一 个 理 论 的 和 历 史 的 参 照 150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한중 인문유대 강화를 위한 과제와 전망 (요약) 거대분단 의 극복과 이상적 동아시아의 가능성 - 한중인문유대강화 가 지역의 미래에 주는 의미 장즈창 ( 張 志 强, 사회과학원) 중한인문유대의 강화 라는 제안은 중한간 고유의 인문적 유대의 강화를 통해 오해를 불식 하고, 정서적 유대를 증진하며 상호신뢰를 증가시키자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런 점에서 중한인 문유대의 강화 라는 제안이 제출된 것은 바로 어느 정도에서는 목전의 한중 간에 존재하는, 나날 이 엄중해지는 정서적 소원과 상호간 약화된 신뢰 상태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중간 의 정서적 소원과 상호 신뢰의 약화라는 현 상황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어느 정도에서 그것은 동 아시아 내부의 거대 분단 의 증후성 반영이다. 본문에서는 동아시아 내부의 거대분단 의 의미와 그 효과에 대해 분석하고, 거대분단 을 극복하기 위한 인식론적 틀을 수립하며 동아시아 내부의 거대분단 을 조성하는 이데올로기적 기초에 대해 비판적 분석을 진행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한중 양국 나아가 동아시아 미래의 이상적 질서를 위해 이론적 역사적 참조를 제공하고자 한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51
아시아를 흐르는 문화의 강물: 아시아를 보는 아시아의 시선은 오리엔탈리즘을 벗어났을까? (요약) 강명구 ( 姜 明 求, 서울대) 팔레스타인 출신 에드워드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이란 책을 통해 서구의 문학과 예술이 오리엔트를 어떻게 편견과 왜곡해 왔는지를 밝혔다. 오리엔트에 대한 뒤틀린 모습에 대한 사이드 의 비판은 지금도 통렬하다. 그런데 사이드의 저술이 나온 지 3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 아시아인들 은 서구가 만들어낸 편견과 왜곡을 벗어나서 스스로 아시아를 바라보는 시선을 만들어 내기는 한 것일까. 이렇게 물어보자. 우리 한국인들에게 인도, 중동, 동남아시아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 엇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상당 부분 공통점이 있을 것이다. 힌두교, 회교, 불교의 이미지, 타 지마할과 뭄바이의 빈곤한 거리장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전쟁 그리고 히잡과 이슬람 지하드 등 등. 동남아는 발리, 방콕 등등 관광의 장소 정도. 아니면 새로운 수출시장으로 인도 혹은 인도네 시아, 미얀마 등등. 우리나라 60년대 같아요, 여전히 625 직후 서울 모습 같아요 몽골과 동남 아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무심코 하는 말들. 티벳과 인도에 대한 여행하는 사진이 보여주는 이미 지들. 라마교의 어린 승려, 사막과 초원을 이동하는 중앙아시아의 유목민, 사랑과 낭만이 넘치는 신혼여행지로서 발리, 푸켓 등 동남아 해변의 휴양지들. 과거로 간 미래 라든지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사는 삶 의 모습을 바라보는 시선은 서구가 만든 오리엔트와 여전히 우리 내부와 아시아 사람들 모두에게 지속되고 있다. 동남아시아, 서아시아, 우 리가 속한 동아시아 안의 중국, 일본, 몽골, 중앙아시아 등에 대한 고정관념 (스테레오 타잎)은 틀 린 것은 아니다. 다만 대단히 부분적이고, 단편적 경험에 근거해 있기에 불완전하다. 또한 다른 인 종과 종교, 사람살이에 대한 단편적이고 획일적인 인식을 드러낸다. 이건 단순히 이미지, 편견, 인식 의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정치와 경제 갈등의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53
가장 좋은 사례가 중국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이다. 중국은 이미 몇 년 전부터 미국 일본을 합친 교역량을 훨씬 웃도는 경제교역국이다. 그러나 한국 언론의 중국 보도를 보노라면, 아전인 수와 지극히 파편적인 사실과 사건들로 넘쳐난다. 중국에는 달걀에도 짝퉁이 있다는 조롱, 납 성 분이 묻어 나오는 수산물, 어린아이를 위협하는 분유파동 등등. 원산지 중국산 표시가 되면 대 부분 농산물 가격이 반으로 뚝 떨어진다. 정말 중국의 농산물, 수산물은 모두 그렇게 형편없고, 위험하고 오염된 것일까. 중국내부에서도 식품안전이 문제인 것은 틀림없지만, 왜 한국의 9시 뉴스 는 중국의 대도시 중소도시 어디에 가도 널려있는 값도 싸고 싱싱한 채소와 과일들은 왜 수입하 지 않느냐고 묻지 않는 것일까. 중국사회과학원은 중앙정부 국무원 산하에 있는 직할 싱크탱크로 유명하다. 북경대, 칭화대 못지 않은 규모와 예산을 사용하는 사회과학원에서는 매년 청서( 藍 皮 書 라고 한다) 시리즈를 3백여권 씩 발행한다. 연감과 이슈보고서 중간쯤의 형태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목을 보면 <중국범죄문제 2012>, <중국여론동향 2012> <북경주택문제 2012> 와 같은 정치사회, 경제문화 등 사회전반의 문제를 다룬다. 이런 시리즈를 매년 3백여 종씩 발간하고, 중요한 책들은 100여 차례 에 걸쳐 공개토론회를 연다. 중국중앙정부의 공식문건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책들이고, 이걸 보면 누가 어떤 문제의 전문가이고, 중국정부가 어떤 정책과 시야를 가지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국내에 이런 동향을 알려주고, 공유하는 언론도 학술활동도 내가 아는 한 아직 없다. 아시아의 세기 라는 말은 1988년 등소평과 라지브 간디 수상이 만났을 때 사용했다고 하는 게 정설로 되어있다. 2011년 아시아개발은행은 2050년에 아시아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명목이 아니 라 구매력 지수로 환산했을 때 유럽수준에 도달할 것이고, 3백 년 전 아시아가 가졌던 경제력을 회복할 것이라 예측했다. 만일 이 예측이 맞다면 아시아의 세기라는 말이 나오고 62년 걸리는 셈이 다. 그런데 아시아인들은 여전히 서구가 만들어준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닐까. 자 신에 대해 스스로를 인식하고 성찰하지 않는 사람이 아시아의 세기를 운위할 수는 있는 것일까. 이 글의 목적은 아시아의 시대를 새롭게 인식하고 그러한 인식 위에서 중한 문화교류의 새로 운 전망을 성찰해 보는데 있다. 논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전반부에서는 아시아 내부 에서 transnational 하면서 trans-local한 문화의 구성을 위한 이론적 논의를 전개한다. 후반부 에서는 아시아에 새롭게 흐르는 대중문화 현황을,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 대중음악 부분 초점을 맞추어 개관한다. 마지막 절에서 실증적 분석이 시사하는 바가 아시아에 새롭게 생겨나는 translocalism으로서 새로운 문화의 강물이라 할 수 있는지를 검토할 것이다. 154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流 淌 于 亚 洲 的 文 化 之 河 : 亚 洲 人 看 待 亚 洲 的 视 线 是 否 摆 脱 了 东 方 主 义? ( 摘 要 ) 姜 明 求 ( 首 尔 大 学 ) 流 淌 于 亚 洲 的 文 化 之 河 : 亚 洲 人 看 待 亚 洲 的 视 线 是 否 摆 脱 了 东 方 主 义? 出 生 于 巴 特 斯 坦 的 爱 德 华 萨 义 德 在 其 著 作 东 方 主 义 中, 指 出 西 方 的 文 学 与 艺 术 长 期 以 来 是 如 何 歪 曲 东 方, 并 形 成 对 东 方 的 偏 见 的 萨 义 德 对 东 方 主 义 的 这 种 批 判 至 今 依 然 十 分 尖 锐 萨 义 德 的 这 本 著 作 已 经 发 表 了 三 十 多 年, 但 是 我 们 亚 洲 人 是 否 已 经 摆 脱 了 西 方 人 编 造 的 偏 见 与 歪 曲, 形 成 了 自 己 对 亚 洲 的 理 解 呢? 换 句 话 说, 当 我 们 韩 国 人 提 到 印 度 中 东 东 南 亚 的 时 候, 会 想 起 什 么 画 面 呢? 虽 然 每 个 人 想 到 的 可 能 会 不 一 样, 但 大 部 分 内 容 是 共 同 的 提 到 印 度 和 中 东, 大 多 会 想 起 印 度 教 回 教 佛 教 的 画 面 泰 姬 陵 和 孟 买 的 贫 民 街 景 象 伊 拉 克 和 阿 富 汗 的 战 争 ( 伊 斯 兰 女 性 的 ) 头 巾 和 伊 斯 兰 的 圣 战 等 等 内 容 ; 提 到 东 南 亚, 会 想 起 巴 厘 岛 曼 谷 等 度 假 景 区 或 者 印 度 印 尼 缅 甸 等 最 近 成 为 我 国 输 出 市 场 的 国 家 在 蒙 古 和 东 南 亚 旅 行 的 韩 国 人 会 不 经 意 间 说 出 ( 那 些 地 方 ) 就 像 我 国 的 60 年 代 ( 那 些 地 方 ) 就 像 刚 经 历 了 6 25 的 首 尔 等 等 去 西 藏 和 印 度 旅 行 的 人 们 最 常 拍 下 的 画 面 可 能 是 喇 嘛 教 年 轻 的 僧 侣 穿 梭 于 沙 漠 与 草 原 的 中 亚 游 民 充 满 浪 漫 与 爱 意 的 巴 厘 岛 普 吉 岛 等 东 南 亚 的 新 婚 旅 游 胜 地 我 们 看 待 成 为 过 去 的 未 来 或 遵 循 自 然 规 律 的 生 活 状 态 的 视 线, 如 同 源 于 西 方 的 东 方 主 义, 依 旧 存 在 于 我 们 亚 洲 人 的 内 心 之 中 这 并 不 是 说, 我 们 对 东 南 亚 西 亚 中 亚 以 及 ( 我 国 所 在 的 ) 东 亚 的 中 国 日 本 蒙 古 的 成 见 (stereotype) 是 错 误 的, 但 这 种 成 见 源 于 局 部 的 片 面 的 理 解, 所 以 必 定 不 是 完 整 的 同 时, 这 种 成 见 将 导 致 对 其 他 人 种 和 宗 教 生 活 产 生 整 齐 划 一 的 认 识 而 这 种 认 识 不 仅 仅 局 限 于 想 象 偏 见 认 识 层 面 的 问 题 上, 而 会 成 为 产 生 政 治 与 经 济 矛 盾 的 重 要 原 因 最 好 的 例 子 就 是 我 们 对 中 国 的 成 见 中 国 于 韩 国 而 言, 早 在 几 年 前 就 超 过 了 美 国 和 日 本, 成 为 了 韩 国 最 大 的 经 济 合 作 国 但 是, 韩 国 媒 体 对 中 国 的 报 道 依 旧 局 限 在 极 其 片 面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55
的 事 件 或 情 况 上 比 如, 中 国 连 鸡 蛋 也 有 假 的 水 产 品 含 铅 威 胁 儿 童 的 奶 粉 风 波 等 等 只 要 产 地 是 中 国, 农 产 品 的 价 格 就 会 折 一 半 中 国 的 农 产 品 水 产 品 就 真 的 那 么 一 文 不 值 污 染 问 题 严 重 吗? 虽 然 在 中 国 内 部 也 存 在 食 品 安 全 问 题, 但 韩 国 的 9 点 钟 新 闻 为 什 么 不 问 问 韩 国 不 进 口 中 国 大 中 小 城 市 随 处 可 见 的 既 便 宜 又 新 鲜 的 水 果 的 原 因 呢? 中 国 社 会 科 学 院 以 中 国 中 央 政 府 - 国 务 院 - 直 属 的 智 囊 团 著 称, 拥 有 不 亚 于 北 京 大 学 清 华 大 学 的 规 模 与 预 算 社 科 院 每 年 发 行 300 余 本 蓝 皮 书 这 些 蓝 皮 书 的 性 质 介 于 年 鉴 与 报 告 书 之 间 从 其 标 题 中 国 犯 罪 问 题 2012 中 国 舆 论 动 向 2012 北 京 住 宅 问 题 2012 可 以 看 出 这 些 蓝 皮 书 的 内 容 涵 盖 政 治 社 会 经 济 文 化 等 有 关 中 国 社 会 方 方 面 面 的 内 容 每 年 发 行 的 蓝 皮 书 达 300 余 本, 其 中 重 要 的 书 籍 在 发 行 之 前 还 进 行 百 余 次 的 公 开 讨 论 会 将 这 些 书 称 为 中 国 中 央 政 府 的 正 式 文 件 也 丝 毫 不 逊 色 阅 读 这 些 内 容, 可 以 清 楚 地 了 解 到 各 个 问 题 的 专 家 阵 容 和 政 府 对 这 些 问 题 的 看 法 但 是, 据 我 所 知, 在 韩 国 国 内 还 没 有 任 何 媒 体 学 术 活 动 介 绍 和 分 享 中 国 的 这 种 动 向 亚 洲 的 世 纪 这 一 词 汇 一 般 被 认 为 是 1988 年 邓 小 平 与 拉 吉 夫 甘 地 会 面 时 第 一 次 使 用 的 2011 年 亚 洲 开 发 银 行 预 测,2050 年 亚 洲 地 区 的 人 均 国 民 收 入 转 换 成 购 买 力 指 数 时, 会 达 到 欧 洲 的 水 平, 将 有 可 能 恢 复 300 年 前 亚 洲 的 经 济 实 力 如 果 这 一 预 测 是 准 确 的, 那 么 将 是 在 亚 洲 的 世 纪 这 一 词 汇 出 现 的 62 年 之 后 但 是 亚 洲 人 难 道 不 是 依 旧 按 照 西 方 人 设 定 的 框 架 来 看 待 自 己 吗? 如 果 不 对 自 身 进 行 充 分 的 反 省, 能 有 效 地 经 营 亚 洲 的 世 纪 吗? 本 文 的 目 的 是, 重 新 认 识 亚 洲 的 时 代, 在 这 一 认 识 的 基 础 上, 重 新 展 望 中 韩 文 化 的 交 流 论 文 主 要 由 两 部 分 组 成 前 半 部 分 是 关 于 亚 洲 内 部 跨 国 的 (transnational) 和 跨 地 域 的 (trans-local) 文 化 构 成 方 面 的 理 论 分 析 后 半 部 分 中, 通 过 对 电 影 电 视 剧 大 众 音 乐 进 行 分 析, 考 察 亚 洲 地 区 新 的 大 众 文 化 的 现 状 最 后 一 部 分 内 容 中, 将 探 讨 实 证 分 析 的 内 容 能 否 被 称 为 亚 洲 地 区 新 兴 的 跨 地 域 (trans-localism) 的 文 化 之 河 156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PROFILE 하영선 ( 河 英 善 ) 서울대학교 문리대 외교학과 학사, 석사 워싱턴 대학 박사 <현> 동아시아연구원(EAI) 이사장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 [주요 경력]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1980~2012)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 소장 서울대 미국학연구소 소장 한국평화학회 회장 한일 신시대 공동연구 프로젝트 공동위원장 (2008~2012) 대통령 외교안보자문단 (2008~2012) 대통령 국가안보자문단 (2013~ ) [주요 연구성과] 저서 : 역사속의 젊은 그들 : 18세기 북학파에서 21세기 복합파까지 2011 하영선 국제정치칼럼 : 1991~2011 2012 편저 : 2020 :한국외교 10대과제 : 복합과 공진(2013) 근대 한국 사회과학 개념형성사2 2012 복합세계정치론 : 전략과 원리, 그리고 새로운 질서 2012 한일 신시대와 동아시아 국제정치 2012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57
PROFILE 한일 신시대와 경제협력 2012 변환의 세계정치 2007/2012 위기와 극복 : 경제위기 이후 세계질서 2011 12시간의 통일이야기 2011 북한2032 : 북한선진화로 가는 공진전략 2010 21세기 신동맹 : 냉전에서 복합으로 2010 근대 한국 사회과학개념 형성사 2009 등 首 尔 大 学 文 理 大 学 外 交 学 专 业 学 士, 硕 士 华 盛 顿 大 学 博 士 < 现 > 东 亚 研 究 员 (EAI) 理 事 长 首 尔 大 学 政 治 外 交 学 院 名 誉 教 授 首 尔 大 外 交 学 教 授 1980~2012 首 尔 大 国 际 问 题 研 究 所 所 长 首 尔 大 美 国 学 研 究 所 所 长 韩 国 和 平 学 会 会 长 韩 日 新 时 代 共 同 研 究 项 目 共 同 委 员 长 2008~2012 总 统 外 交 安 保 咨 询 团 2008~2012 总 统 国 家 安 保 咨 询 团 2013~ 专 著 : 历 史 里 的 年 轻 的 他 们 :18 世 纪 从 北 学 派 到 21 世 纪 复 合 派 2011 河 英 善 国 际 政 治 专 栏 :1991-2011 2012 编 著 : 2020: 韩 国 外 交 10 大 课 题 : 复 合 与 共 进 (2013) 158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PROFILE 近 代 韩 国 社 会 科 学 概 念 形 成 史 2 2012 复 合 世 界 经 济 论 : 战 略 与 原 理, 还 有 新 的 秩 序 2012 韩 日 新 时 代 与 东 亚 国 际 政 治 2012 韩 日 新 时 代 与 经 济 协 力 2012 转 变 的 世 界 政 治 2007/2012 危 机 与 克 服 : 经 济 危 机 以 后 的 世 界 秩 序 2011 12 小 时 的 统 一 故 事 2011 走 进 北 韩 先 进 化 的 共 进 战 略 2010 21 世 纪 新 同 盟 : 从 冷 战 到 复 合 2010 近 代 韩 国 社 会 科 学 概 念 形 成 史 2009 等 송민순 ( 宋 旻 淳 ) 전 외교 통 상 부 장 관 국회의원 [주요 경력] 제9회 외무고시 합격 1975. 05 미국 하버드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 1994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비서실 국제안보비서관 1997. 08 외교통상부 북미국 국장 1999. 07 주폴란드대사관 특명전권대사 2001. 05 외교통상부 기획관리실 실장 2004. 08 외교통상부 차관보 2005. 01~2006. 01 대통령비서실 통일외교안보정책실 실장 2006. 01~2006. 10 제34대 외교통상부 장관 2006. 12~2008. 02 제18대 국회의원 (비례대표/민주당) 2008. 05~2012. 05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 2010. 06~2012. 05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59
PROFILE 宋 旻 淳 第 九 届 外 交 官 考 试 通 过 1975. 05 美 哈 佛 大 学 国 际 问 题 研 究 所 研 究 员 1994 总 统 秘 书 处 外 交 安 保 秘 书 处 国 际 安 保 秘 书 官 1997. 08 外 交 通 商 部 北 美 局 局 长 1999. 07 驻 波 兰 大 使 馆 特 命 全 权 大 使 2001. 05 外 交 通 商 部 计 划 管 理 室 室 长 2004. 08 外 交 通 商 部 助 理 2005. 01~2006. 01 总 统 秘 书 处 统 一 外 交 安 保 政 策 室 室 长 2006. 01~2006. 10 第 34 任 外 交 通 商 部 部 长 2006.12~2008. 02 第 18 任 国 会 议 员 ( 比 例 代 表 / 民 主 党 )2008. 05~2012. 05 外 交 通 商 统 一 委 员 会 委 员 2010. 06~2012. 05 천펑쥔 ( ) [주요 경력] 오랜 기간 동안 아태평양 분야의 교육과 연구 진행 중국동맹협회이사, 중국아태학회이사, 중국남아시아학회 상무이사 등 역임 <현> 베이징대학교 국제관계학원 교수, 박사생 지도교수 [주요 연구성과] 아태대국과 한반도, 당대 아태정치경제 분석론 동아시아와인도 : 아시아의 2개의 현대화 시스템 등 10여권의 서적 발간 국내외의 중요학술지에 100여편의 논문 발표 160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PROFILE 长 期 从 事 亚 太 方 面 的 教 学 与 研 究 中 国 东 盟 协 会 理 事 中 国 亚 太 学 会 理 事 中 国 南 亚 学 会 常 务 理 事 等 职 < 现 > 北 京 大 学 国 际 关 系 学 院 教 授 博 士 生 导 师 亚 太 大 国 与 朝 鲜 半 岛 当 代 亚 太 政 治 经 济 析 论 东 亚 与 印 度 : 亚 洲 两 种 现 代 化 模 式 等 十 余 部 著 作 在 国 内 外 重 要 学 术 刊 物 上 发 表 百 余 篇 论 文 전성흥 ( ) 서강대학교 대학원 졸업 <현> 서강대학교 사회과학부 정치외교학전공 부교수 [주요 경력] 중국인민대학교 국제관계대학 객원교수 西 江 大 学 大 学 院 毕 业 < 现 > 西 江 大 学 社 会 科 学 部 政 治 外 交 专 业 副 教 授 中 国 人 民 大 学 国 际 关 系 学 院 客 座 教 授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61
PROFILE 진창이 ( ) 1982년 7월 란저우( 蘭 州 ) 대학 철학과 졸업 [주요 경력] 중국 옌볜대학교대학교 정치과 주임교수 외 동북아국제정치연구소 소장 동북아 연구원 원장 등 역임 중국 옌볜대학교 국제정치학과 부교수 1982. 09~ <현> 중국교육부 고등교육연구기지한반도(한국 북한) 연구센터 주임 [해외 경력] 한국 경희( 慶 熙 )대학교 아태국제대학원석좌연구원 (1993. 06~1994. 03) 일본 시주오카( 靜 崗 ) 국립대학교 국제정치학과 객원교수 (2003. 06~2004. 06) 한국 동북아역사재단석좌연구원 (2009. 11~2010. 02) [주요 연구 방향] 한반도문제, 중국 동북아지역 발전전략 [주요 연구성과] 중국의 동북아지역 전략에 대해서, 미 일 동북아전략 및 한반도 문제, 중미일 동북아전략 속의 한반도 문제, 중국의 동북아지역전략과 동북아정치구조 등 60여편 논문 발표 1982 年 7 月 毕 业 于 兰 州 大 学 哲 学 系 历 任 政 治 系 主 任 东 北 亚 国 际 政 治 研 究 所 所 长 东 北 亚 研 究 院 院 长 等 职 延 边 大 学 国 际 政 治 专 业 担 任 教 授,1982. 09~ < 现 ) 任 中 国 教 育 部 高 校 重 点 研 究 基 地 朝 鲜 韩 国 研 究 中 心 主 任 162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PROFILE 韩 国 庆 熙 大 学 亚 太 研 究 所 客 座 研 究 员, 1993. 06~1994. 03 日 本 静 岗 国 立 大 学 国 际 政 治 学 部 客 座 教 授, 2003. 06~2004. 06 韩 国 东 北 亚 历 史 财 团 客 座 研 究 员, 2009. 11~2010. 02 朝 鲜 半 岛 问 题 中 国 东 北 亚 区 域 发 展 战 略 论 中 国 的 东 北 亚 区 域 战 略 美 日 东 北 亚 战 略 与 朝 鲜 半 岛 问 题 中 美 日 东 北 亚 战 略 框 架 之 中 的 朝 鲜 半 岛 问 题 中 国 的 东 北 亚 区 域 战 略 与 东 北 亚 政 治 结 构 等 论 文 60 余 篇 이문기 ( 李 汶 紀 ) [주요 경력] 세종대학교 중국통상학과 부교수 <현대중국연구> (현대중국학회 발행) 편집위원장 [주요 연구성과] 국제 금융위기 이후 중국의 국제정세 인식과 외교전략: 공세외교 논란을 중심으로, <중국연구> 52집, 2011. 중국의 기층선거: 선거민주주의인가 선거권위주의인가, <세계지역연구논총> 30집 3호, 2012. <중국의 부상과 동아시아> (백산, 2012) (공저) 李 汶 紀 现 世 宗 大 学 中 国 通 商 学 科 副 教 授 现 代 中 国 研 究 >( 现 代 中 国 学 会 发 行 ) 编 辑 委 员 长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63
PROFILE 国 际 金 融 危 机 以 后 中 国 的 国 际 情 势 认 识 与 外 交 战 略 : 以 攻 势 外 交 争 论 为 中 心, 中 国 研 究 52 卷,2011 中 国 的 基 层 选 举 : 民 主 主 义 或 权 威 主 义 世 界 地 区 研 究 论 丛, 30 卷 3 号,2012 中 国 的 兴 起 与 东 亚, 白 山,2012 장사오밍 ( ) 베이징대학교 국제정치학과 학사, 석사, 박사학위 취득 <현> 베이징대학교 국제관계학원 교수 [해외 경력] 미국우드로윌슨 센터 (1994), 한국 고려대학교 아시아문제연구소 (1998) 미국하버드대학 페어뱅크동아시아연구소(1999~2000) 스톡홀름국제평화문제연구소 (2000) 일본츄오( 中 央 )대학교 (2005) 영국런던경제대학 (2007~2008) 일본세이케이( 成 蹊 大 学 )대학 (2009) 방문학자역임 [주요 연구성과] 조지케넌(George Frost Kennan) 봉쇄사상연구, 1994년 냉전과유산 1998년 중국주변안전환경분석 2003년 국제관계영국학파 : 역사, 이론과중국관 2010년 미국과동아시아관계개론 2011 获 北 京 大 学 国 际 政 治 专 业 学 士 硕 士 和 博 士 学 位 164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PROFILE < 现 > 北 京 大 学 国 际 关 系 学 院 教 授 美 国 伍 德 罗 威 尔 逊 国 际 学 者 中 心 (1994) 韩 国 高 丽 大 学 亚 细 亚 问 题 研 究 所 (1998) 美 国 哈 佛 大 学 费 正 清 东 亚 研 究 中 心 (1999~2000) 瑞 典 斯 德 哥 尔 摩 国 际 和 平 研 究 所 (2000) 日 本 中 央 大 学 (2005) 英 国 伦 敦 经 济 学 院 (2007~2008) 日 本 成 蹊 大 学 (2009) 任 访 问 学 者 乔 治 凯 南 遏 制 思 想 研 究 (1994) 冷 战 及 其 遗 产 (1998) 中 国 周 边 安 全 环 境 分 析 (2003) 国 际 关 系 英 国 学 派 : 历 史 理 论 与 中 国 观 (2010) 美 国 与 东 亚 关 系 导 论 (2011) 신성호 ( ) 미국 터프츠 대학 플레쳐 스쿨 국제정치학 석사, 박사 <현>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부교수 [주요 경력] 미 국방부 아태안보연구소 (APCSS) 연구교수 미국 부르킹스연구소 동북아연구소 객원연구원 워싱턴 East West Center 객원연구원 등을 역임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65
PROFILE [주요 연구영역] 연구관심은 동아시아 안보와 국가전략, 한미동맹과 한반도, 인구변화와 동북아 국제정치 등 [주요 연구성과] Northeast Asia s Aging Population and Regional Security: Demographic Peace? Asian Survey Vol 53, No. 2 (March/April 2013) 박근혜 정부의 4강 외교 <외교> 2013년 3월 미국의 아시아 올인(All-in) 정책 전략연구 2012년 7월 Nuclear Sovereignty vs Nuclear Security: Renewing the ROK-US Atomic Energy Agreement The Korean Journal of Defense Analysis, Vol. 23, No.24 (June 2011) 등 美 国 塔 夫 斯 大 学 弗 莱 彻 学 院 国 际 政 治 学 硕 士, 博 士 现 首 尔 大 学 国 际 大 学 院 副 教 授 美 国 防 部 亚 太 安 保 研 究 所 (APCSS) 研 究 教 授 美 布 鲁 金 斯 学 会 东 北 亚 研 究 所 客 座 研 究 员 华 盛 顿 East West Center 客 座 研 究 员 等 东 亚 安 保 与 国 家 战 略, 韩 美 同 盟 与 韩 半 岛, 人 口 变 化 化 与 东 北 亚 国 际 政 治 等 Northeast Asia s Aging Population and Regional Security: Demographic Peace? Asian SurveyVol 53, No. 2 (March/April 2013) 朴 槿 惠 政 府 的 4 强 外 交 < 外 交 > 2013.03 月 美 国 的 亚 洲 All-in 政 策 < 战 略 研 究 >2012.07 月 166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PROFILE 장달중 ( ) <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학사, 석사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 대학원 박사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학과 교수 통일부 정책 자문위원, 통일부 정책평가위원회 위원장 [주요 경력] 일본 도쿄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객원연구원 1978~1979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조교수 1982~1986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대학원 동아시아연구소 객원교수1983 일본 도쿄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객원교수 1985~1986 국방부 정책 자문위원 2000~2004 < 现 > 首 尔 大 学 名 誉 教 授 韩 国 首 尔 大 学 学 士, 硕 士 美 国 加 利 福 尼 亚 大 学 伯 克 利 分 校 博 士 首 尔 大 学 社 会 科 学 大 学 政 治 学 教 授 统 一 部 政 策 咨 询 委 员, 统 一 部 政 策 评 价 委 员 会 委 员 长 日 本 东 京 大 学 社 会 科 学 研 究 所 客 座 研 究 员 1978~1979 西 江 大 学 政 治 外 交 学 助 教 授 1982~1986 美 国 加 利 福 尼 亚 大 学 伯 克 利 分 校 大 学 院 东 亚 研 究 院 客 座 教 授 1983 日 本 东 京 大 学 社 会 科 学 研 究 所 客 座 教 授 1985~1986 国 防 部 政 策 咨 询 委 员 2000~2004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67
PROFILE 진징이 ( ) 옌벤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졸업, 문학학사 학위 취득 베이징대학교 국제관계학원에서 법학박사 학위 취득 [주요경력] 베이징대학교 동방학과 강사, 부교수, 교수, 조선문화연구소 소장 역임 (1992~) 현베이징 동방학과 교수, 중앙민족대학교 985공정 특임교수 겸임 [해외경력] 일본게이오( 庆 应 )대학교 지역연구소 석좌 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경남대학교 국동문제연구소 방문 연구원 역임 [주요연구성과] 중국의 6.25전쟁참가 의기원 등 毕 业 于 延 边 大 学 中 文 系, 获 文 学 学 士 学 位 毕 业 于 北 京 大 学 国 际 关 系 学 院, 获 法 学 博 士 学 位 北 京 大 学 东 方 学 系 任 讲 师 副 教 授 教 授 朝 鲜 文 化 研 究 所 所 长 (1992- ) 现 东 方 学 系 教 授 兼 任 中 央 民 族 大 学 985 工 程 特 聘 教 授 日 本 庆 应 大 学 地 域 研 究 所 任 客 座 教 授 韩 国 学 中 央 研 究 院 韩 国 庆 南 大 学 极 东 问 题 研 究 所 任 访 问 研 究 员 168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PROFILE 中 国 参 加 朝 鲜 战 争 起 源 等 전재성 ( )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학사, 석사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 박사 [주요 경력] 일본 게이오 대학교 방문교수를 지낸 바 있다. <현>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교수 <현>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장과 동아시아 연구원 아시아안보센터 소장 <현> 외교통상부, 통일부 자문위원 [주요 연구영역] 국제정치이론, 국제관계사, 동아시아 안보론, 한국외교정책 등 [주요 연구분야] 유럽의 국제정치적 근대 출현에 관한 이론적 연구 국제정치논총, 2009 구성주의 국제정치이론에 대한 탈근대론과 현실주의의 비판 고찰 국제정치논총, 2010 강대국의 부상과 대응국의 전략 연구 안보문제연구, 2009 등 <동아시아 국제정치> <정치는 도덕적인가? : 라인홀드 니버의 초월적 현실주의> 韩 国 首 尔 大 学 外 交 学 学 士, 硕 士 美 国 西 北 大 学 国 际 政 治 学 博 士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69
PROFILE 日 本 庆 应 大 学 访 问 教 授 < 现 > 首 尔 大 学 外 交 学 教 授 < 现 > 首 尔 大 学 国 际 问 题 研 究 所 所 长 / 东 亚 研 究 院 亚 洲 安 保 中 心 所 长 < 现 > 外 交 通 商 部, 统 一 部 咨 询 委 员 国 际 政 治 理 论, 国 际 关 系 史, 东 亚 安 保 论, 韩 国 外 交 政 策 等 有 关 欧 洲 国 际 政 治 近 代 出 现 的 理 论 研 究 国 际 政 治 论 丛,2009 考 察 有 关 构 成 主 义 国 际 政 治 理 论 的 脱 近 代 论 与 现 实 主 义 的 批 判 国 际 政 治 论 丛,2010 强 国 的 兴 起 与 对 应 国 的 战 略 研 究 安 保 问 题 研 究,2009 等 东 亚 国 际 政 治 政 治 是 道 德 的 吗?:Karl Paul Reinhold Niebuh 的 超 越 现 实 主 义 퍄오동쉰 ( ) 옌벤대학교 외국철학전공(철학석사) 1999~2002 한국 전남대대학원 정치외교학과(정치학 박사) 2004~2008 [주요 경력] 한국 서울대 중국연구소 객원연구원 2012~2013 <현> 옌벤대학교 아시아연구센터 부주임, 부교수 [주요 연구성과] 2010 :한반도 국세변화와 미국의 아태전략, 한국년도관찰,옌벤대학출판사 2011년 박정희시대 한국발전형국가 형성과 과정, 옌벤대학학보 (철학사회판) 2011 年 제1집 중국의 대북 정책논리와 북, 중관계, 국제문제연구 2011년 제3집 중국의 대북정책과 중한 관계 : 천안함사건이후, 한국과국제정치 2011년 제2집 170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PROFILE 한중간의 실재적국경과 내재적국경의 상호작용 : 황해어업 분쟁을 중심으로, 국제정치연구, 제15권 제1호, 2012 중국의 조어도분쟁에 있어서 대응 전략의 변화, 한국동북아논총, 제66권, 2013 중국에서의 한국정치 연구동향과 과제 : 韓 國 硏 究 論 叢 과 當 代 韓 國 을 중심으로 한국과 국제정치, 제30권, 2013 김정은시대 북한 체제개혁의 과제 : 포스트마오시기 (1976~1978) 중국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통일정책연구, 제22권, 2013 延 边 大 学 外 国 哲 学 专 业 ( 哲 学 硕 士 学 位 )1999~2002 韩 国 全 南 大 学 政 治 外 交 学 部 ( 政 治 学 博 士 ) 2004~2008 韩 国 首 尔 大 学 中 国 研 究 所 客 座 研 究 员, 2012~2013 < 现 > 延 边 大 学 亚 洲 研 究 中 心 副 主 任, 副 教 授. 2010 : 朝 鲜 半 岛 局 势 变 化 与 美 国 的 亚 太 战 略, 韩 国 年 度 观 察, 延 边 大 学 出 版 社,2011 年 论 朴 正 熙 时 期 韩 国 发 展 型 国 家 的 形 成 与 演 变, 延 边 大 学 学 报 ( 哲 社 版 ),2011 年 第 1 期 中 国 对 朝 政 策 内 在 逻 辑 与 中 朝 关 系, 国 际 问 题 研 究 ( 韩 ),2011 年 第 3 期 中 国 的 对 朝 政 策 与 中 韩 关 系 : 以 天 安 舰 事 件 为 例, 韩 国 与 国 际 政 治 ( 韩 ), 2011 年 第 2 期 中 韩 黄 海 渔 业 纠 纷 探 析, 国 际 政 治 研 究 ( 韩 ), 第 15 卷, 2012 钓 鱼 岛 纠 纷 与 中 国 的 对 应 战 略, 韩 国 东 北 亚 论 丛 ( 韩 ), 第 66 卷, 2013 中 国 学 界 韩 国 政 治 研 究 现 状 与 课 题, 韩 国 与 国 际 政 治 ( 韩 ), 第 30 卷, 2013 金 正 恩 时 代 朝 鲜 体 制 改 革 所 面 临 的 问 题 与 后 毛 泽 东 时 期 (1976~1978) 的 中 国 经 验 相 比 较 统 一 政 策 研 究 ( 韩 ), 第 22 卷, 2013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71
PROFILE 조성렬 ( )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졸업 성균관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박사 <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 [주요 경력]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 종합연구과 게이오대학 법학부 객원연구원 국가안보전략연구소 기획실장 국제안보실장 청와대 안보실 정책자문위원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민주평통 상임위원 등을 역임 [주요 연구영역] 동북아국제관계론, 일본정치론, 한미동맹론, 한반도평화체제론, 북한외교론 등 [주요 연구성과] <정치대국 일본 : 일본의 정계개편과 21세기 국가전략>, 나비사랑, 1994 <주한미군 : 역사, 쟁점, 전망> 공저, 한울아카데미, 2003 <한반도 평화체제 :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체제의 전망>, 푸른나무, 2007 <뉴 한반도 비전 : 비핵 평화와 통일의 길>, 백산서당, 2012 등 首 尔 大 学 工 科 大 学 毕 业 成 均 馆 大 学 大 学 院 政 治 系 硕 士, 博 士 < 现 > 国 家 安 保 战 略 研 究 所 责 任 研 究 委 员 172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PROFILE 日 本 东 京 大 学 大 学 院 综 合 研 究 科 庆 应 大 学 法 学 部 客 座 研 究 员 国 家 安 保 战 略 研 究 所 计 划 室 长 国 际 安 保 室 长 青 瓦 台 安 保 室 政 策 咨 询 委 员 国 防 部 政 策 咨 询 委 员 民 族 平 统 常 任 委 员 等 东 北 亚 国 际 关 系 论, 日 本 政 治 论, 韩 美 同 盟 论, 韩 半 岛 和 平 体 系 论, 北 韩 外 交 论 等 < 政 治 大 国 日 本 : 日 本 的 政 界 改 革 与 21 世 纪 国 家 战 略 >, 蝴 蝶 爱, 1994 < 驻 韩 美 军 : 历 史, 焦 点, 展 望 >, 共 著, Hanul Publishing Group, 2003 < 韩 半 岛 和 平 体 系 : 韩 半 岛 非 核 化 与 北 韩 体 系 的 展 望 >, 绿 树, 2007 < 新 韩 半 岛 展 望 : 非 核 化 与 统 一 之 路 >, 白 山 书 堂, 2012 等 한시엔둥 ( ) 중국인민대학 공산당사과 졸업 한국 경남대학교 북한학과 박사학위 취득 <현> 중국정법대학 국제정치과 부주임교수, 동 대학 한반도연구센터 집행주임 [주요 연구 영역] 한반도문제, 동북아국제관계와 정치발전 [주요 연구성과] 한반도의 안전구조, 중국사회과학출판사 2009년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73
PROFILE 분단과동맹:한반도안전의 국제정치, 한국학술정보출판사 2008년 동아시아국제체제전환 : 역사발전과정과구조의변천사 북미관계의 발전 : 회고와사고 한국의 외교문제 : 한 개의 종합적 구조 해석 한국의 보수주의 : 특징과 영향 능력구축과조선 : 중국의경험 정전협정에서 평화협정으로 : 중국의각 Rethinking China-ROK Strategic Cooperative Partnership Relation : How to Substantialize It 中 国 人 民 大 学 中 共 党 史 系 毕 业 获 韩 国 庆 南 大 学 北 韩 学 博 士 学 位 < 现 > 中 国 政 法 大 学 国 际 政 治 系 副 主 任 中 国 政 法 大 学 朝 鲜 半 岛 研 究 中 心 执 行 主 任 朝 鲜 半 岛 问 题 东 北 亚 国 际 关 系 与 政 治 发 展 朝 鲜 半 岛 的 安 全 结 构, 中 国 社 科 出 版 社 2009 年 ; 分 断 与 同 盟 : 韩 半 岛 安 全 的 国 际 政 治, 韩 国 学 术 情 报 出 版 社,2008 年 东 亚 国 际 体 系 的 转 型 : 历 史 演 化 与 结 构 变 迁 朝 美 关 系 的 发 展 : 回 顾 与 思 考 韩 国 的 外 交 困 境 : 一 个 概 括 性 框 架 的 解 读 韩 国 的 保 守 主 义 : 特 征 与 影 响 能 力 构 造 与 朝 鲜 : 中 国 的 经 验 从 停 战 协 定 到 平 和 协 定 : 中 国 的 视 角 Rethinking China-ROK Strategic Cooperative Partnership Relation: How to Substantialize It 174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PROFILE 정형곤 ( 鄭 衡 坤 ) 獨 逸 쾰른(Koeln) 大 學 校 經 濟 學 博 士 [주요 경력] Johns Hopkins University, SAIS 방문학자 國 家 安 全 保 障 會 議 (NSC) 戰 略 企 劃 室 先 任 行 政 官 國 家 安 保 前 略 硏 究 所 硏 究 委 員 <현> 對 外 經 濟 政 策 硏 究 院 先 任 硏 究 委 員 [주요 연구성과] 북한의 시장화 현황과 경제체제의 변화 전망 한반도 경제공동체 : 그 비전과 전략 체제전환의 경제학 鄭 衡 坤 德 国 科 隆 大 学 经 济 学 博 士 Johns Hopkins University, SAIS 访 问 学 者 国 家 安 全 保 障 会 议 (NSC) 战 略 企 划 室 先 任 行 政 官 国 家 安 保 战 略 研 究 所 研 究 委 员 < 现 > 对 外 经 济 政 策 研 究 院 先 任 研 究 委 员 北 朝 鲜 的 市 场 化 与 经 济 体 制 的 变 化 展 望 韩 半 岛 经 济 共 同 体 : 展 望 与 战 略 体 制 转 换 的 经 济 学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75
PROFILE 홍면기 ( ) 중국베이징대학 국제관계학원에서 박사 학위 취득 [주요경력] 통일부 1989~2007 <현> 동북아역사재단 정책기획실 2007~ [주요연구영역] 남북한관계, 동아시아평화 및 초국경 협력, 재외한인문제 등 [주요연구성과] <<영토적 상상력과 통일의 지정학 : >> 삼성경제연구소, 2006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기원>> 논형, 2005 등 의 저역서와 관련논문이 다수있다. 获 北 京 大 学 国 际 关 系 学 院 博 士 学 位 统 一 部 1989~2007 < 现 > 东 北 亚 历 史 财 团 政 策 计 划 部 2007~ 南 北 韩 关 系, 东 亚 和 平 和 超 国 家 协 力, 在 外 韩 人 问 题 等 领 土 的 想 像 力 和 统 一 的 地 政 学 三 星 经 济 研 究 所,2006 中 国 参 战 朝 鲜 战 争 的 起 源 论 衡,2005 等 有 诸 多 的 著 译 书 和 有 关 论 文 176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PROFILE 박태균 ( ) <현>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 취득 [주요연구영역] 1956~1964년 한국 경제개발계획의 성립과정 (2000년) [주요 경력] 하버드 대학교 옌칭 연구소 방문 연구원 (Visiting fellow), 1997~1999 KBS 인물현대사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자문연구원, 2000~ 역사비평 편집위원, 2001~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의 Pacific Affairs 편집위원, 2005~ [주요 연구성과] 현대사 를 베고 쓰러진 거인들 1994 조봉암 연구 1995 한국현대사강의 공저, 1998 박정희 모델과 신자유주의 사이에서 공저, 2004 등 大 韩 民 国 的 历 史 学 家 < 现 > 韩 国 首 尔 大 学 国 际 大 学 院 教 授 首 尔 大 学 国 史 专 业 毕 业, 获 同 大 学 院 的 博 士 学 位 1956~1964 年 韩 国 经 济 开 发 计 划 的 成 立 过 程,2000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77
哈 佛 燕 京 学 社 访 问 研 究 员,1997~1999 < 现 > KBS 人 物 现 代 史 MBC 现 在 都 能 说 咨 询 委 员 团, 2000~ 历 史 批 评 编 辑 委 员, 2001~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的 Pacific Affairs 编 辑 委 员, 2005~ 枕 着 现 代 史, 倒 的 巨 人 们 1994 枕 着 现 代 史, 倒 的 巨 人 们 发 曹 奉 岩 研 究 1995, 韩 国 现 代 史 讲 义 共 著, 1998 在 朴 正 熙 模 式 与 新 自 由 主 义 之 间 共 著, 2004 等 장즈챵 ( ) 중국사회과학원철학연구소연구원 (교수) 중국철학연구실주임, 북경대학철학박사 중국철학사학회발간잡지 중국철학사 편집부주임 한국 서울대학교 철학연구소 방문학자 (2000) 일본 동경대학 중국사상문화연구소 (2009) 방문학자 대만 교통대학 사회문화연구소 담임 객원교수(2011) 역임 장기적으로 중국 명청 시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학술사, 사상사, 근대불학, 유식불학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왔다. 中 国 社 会 科 学 院 哲 学 研 究 所 研 究 员 ( 教 授 ), 中 国 哲 学 研 究 室 主 任, 北 京 大 学 哲 学 博 士, 兼 任 中 国 哲 学 史 学 会 中 国 哲 学 史 杂 志 编 委 编 辑 部 主 任 曾 在 韩 国 国 立 首 尔 大 学 哲 学 研 究 所 (2000 年 ) 日 本 东 京 大 学 中 国 思 想 文 化 室 从 事 访 问 研 究 (2009 年 ), 并 曾 在 台 湾 交 通 大 学 社 会 文 化 研 究 所 担 任 客 座 教 授 (2011 年 ) 长 期 从 事 中 国 明 清 至 近 代 的 学 术 史 和 思 想 史 近 代 佛 学 唯 识 佛 教 研 究 178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강명구 ( )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1987~ <현> 아시아연구소 소장 [주요 연구영역] 아시아 미디어론, 미디어와 문화연구, 질적연구방법론 최근에 냉전과 텔레비전 방송의 문화사, 해방 후 한국소비문화의 형성, 지식생산의 식민성, 훈민( 訓 民 ) 공론장의 이론적 구성 등에 대한 연구 수행 [주요 경력] 동경대 특임교수, 베이징대, 전매대 방문교수 세계문화학회 아시아지역 대표이사, 글로벌 인터넷거버넌스 공동대표로 활동 서울대 기초교육원 원장, 자유전공학부 추진단장 首 尔 大 学 言 论 与 情 报 专 业 教 授 1987- < 现 > 亚 洲 研 究 所 所 长 亚 洲 媒 体 论, 媒 体 与 文 化 研 究, 定 量 分 析 方 法 论 最 近 关 于 冷 战 与 电 视 播 放 的 文 化 史, 解 放 后 的 韩 国 消 费 文 化 的 形 成, 知 识 生 产 的 殖 民 性, 训 民 公 论 场 的 理 论 性 构 成 等 的 内 容 进 行 研 究 东 京 大 学 特 任 教 授 北 京 大 学, 传 媒 大 学 访 问 教 授 世 界 文 化 学 会 亚 洲 地 区 代 表 理 事, 全 球 因 特 网 管 理 共 同 代 表 首 尔 大 学 基 础 教 育 院 院 长, 自 由 专 业 学 部 促 进 团 团 长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79
진 쥔 ( ) 1970년 10월 15일 생 중국 난카이대학교 역사학과 중국사 전공(역사학 학사) 1988. 9~1992. 8 중국 옌벤대학교 역사학과 외교사 전공(역사학 석사) 1995. 9~1999. 7 일본 히로시마대학교 대학원 국제협력연구과 동양사 (박사) 2000. 4~2006. 3 [주요 경력] 중국 옌벤대학교역사과 조교수 1992. 9~1999. 3 일본 히로시마대학교 대학원 종합과학연구과 외국인특별연구원 2006. 4~2008. 8 중국 칭화대학 역사학과 보조연구원 2008. 9~2011. 3 중국 옌벤대학교 역사학과 부교수 2011. 4~2012. 5 <현> 쩌장공상대학 동아문화연구원 한국학연구소 연구원 겸 연구원장 2012. 6~현재 [소속학회] 중국일본사학회 대외연락부 부장 중국조선민족사학회 부비서장 절강성중한경제문화교류연구회부비서장 [겸직] 중국 칭화대학교 인문과사회과학 고등연구소 겸임연구원 중국중앙민족대학 한국문화연구소 겸임연구원 일본 토아대학교 동아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中 国 南 开 大 学 历 史 系 中 国 史 专 业 ( 历 史 学 学 士 )1988. 9~1992. 8 中 国 延 边 大 学 历 史 系 外 交 史 专 业 ( 历 史 学 硕 士 )1995. 9~1999. 7 日 本 広 岛 大 学 大 学 院 国 际 协 力 研 究 科 东 洋 史 专 业 ( 学 科 博 士 ) 2000. 4~2006. 3 180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中 国 延 边 大 学 历 史 系 助 教 授 1992. 9~1999. 3 日 本 広 岛 大 学 大 学 院 综 合 科 学 研 究 院 科 外 国 人 特 别 研 究 员 2006. 4~2008. 8 中 国 清 华 大 学 历 史 系 助 研 究 员 2008. 9~2011. 3 中 国 延 边 大 学 历 史 系 副 教 授 2011. 4~2012. 5 < 现 > 浙 江 工 商 大 学 东 亚 文 化 研 究 院 韩 国 学 研 究 所 研 究 员 / 所 长 2012. 6~ 中 国 日 本 史 学 会 对 外 联 络 部 部 长 中 国 朝 鲜 民 族 史 学 会 副 秘 书 长 浙 江 省 中 韩 经 济 文 化 交 流 研 究 会 副 秘 书 长 中 国 清 华 大 学 人 文 于 社 会 科 学 高 等 研 究 所 兼 任 研 究 员 中 国 中 央 民 族 大 学 韩 国 文 化 研 究 所 兼 任 研 究 员 日 本 东 亚 大 学 东 亚 文 化 研 究 所 兼 任 研 究 员 백지운 ( ) 연세대학교 중어중문과를 졸업,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 일본 게이오대학, 중국 칭화대학, 대만 텅하이대학 등에서 수학했다. <현>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주요 연구영역] 중국 근대성 담론을 통해 본 梁 啓 超 계몽사상 재고찰 [주요 연구성과] 폭력의 연쇄, 연대의 고리 오키나와 문학의 발견 근대 중국 아시아 인식의 문제성: 동아시아 평화공존을 위한 사상자원을 찾아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81
East Asian perspective on Taiwanese identity: a critical reading of overcoming the division system of Taiwan: A Radical Quartely in Social Studies 동아시아, 근대를 번역하다 (공저) 등 延 世 大 学 中 文 系 毕 业 获 延 世 大 学 大 学 院 博 士 学 位 博 士 毕 业 论 文 论 述 了 梁 启 超 的 启 蒙 思 想 和 中 国 的 现 代 性 话 语 日 本 庆 应 大 学 交 换 研 究 员, 北 京 清 华 大 学 高 级 进 修 生, 以 及 台 湾 东 海 大 学 研 究 员 等 < 现 > 首 尔 大 学 统 一 和 平 研 究 院 的 HK 研 究 教 授 暴 力 的 连 锁, 连 带 的 环 节 - 冲 绳 文 学 的 发 现 近 代 中 国 亚 洲 认 识 的 难 题 : 为 了 寻 找 东 亚 和 平 共 存 的 思 想 资 源 从 东 亚 视 角 看 台 湾 人 的 身 份 认 同, 东 亚, 翻 译 近 代 ( 共 著 ) 等 왕린창 ( ) [주요 경력] 1968년 북한 김일성대학 어문학부 졸업, 번역업무를 다 년간 하였음. 인민일보사 서울지사장, 특파원 기자 역임. 1997~2002 <현> 유럽-미국동학회 중국유학생연합회 부회장, 한반도분회 회장, 중국아태학회 한반도연구회 위원, 중한우호협회 미디어위원회 위원, 182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북경대학 한국학연구센터 겸직 연구원 등. 특파원 생활 기간 동안, 한국의 보도에 관하여 쓴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많은 글들을 인민일보에 발표. 귀국 후, 한반도문제연구하고, 가끔 환치우시보 등의 잡지에 기고 함. [주요 연구성과] 외국풍속-한국 2006년, 세계지식 출판사 1968 年 毕 业 于 朝 鲜 金 日 成 大 学 语 文 学 部, 从 事 翻 译 工 作 多 年 1997-2002 年 曾 任 人 民 日 报 社 驻 汉 城 ( 现 首 尔 ) 分 社 长 特 派 记 者 < 现 > 任 欧 美 同 学 会 中 国 留 学 人 员 联 谊 会 副 会 长 朝 韩 分 会 会 长, 中 国 亚 太 学 会 朝 鲜 半 岛 研 究 会 委 员 中 韩 友 协 媒 体 委 员 会 委 员 北 京 大 学 韩 国 学 研 究 中 心 兼 职 研 究 员 等 职 在 担 任 特 派 记 者 期 间, 写 有 大 量 关 于 韩 国 的 报 道 发 表 于 人 民 日 报, 有 一 定 社 会 影 响 归 国 后 从 事 朝 鲜 半 岛 问 题 研 究, 间 或 有 文 章 发 表 于 环 球 时 报 等 报 刊 杂 志 外 国 习 俗 丛 书 -- 韩 国 2006 年, 世 界 知 识 出 版 社 出 版 박장배 ( ) 서강대학교 박사학위 취득 [주요 경력] 한신대학교 연구교수 인천대학교 연구교수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83
<현>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주요 연구성과] 신중국 의 티베트 정책 중국근현대사연구 (39) 2008. 09 만철 조사부의 확장과 조사 내용의 변화 한국중국근현대사학회 (43) 2009. 09 역대 중국의 판도 형성과 변강 지배 한신대출판부, 2008 (공저) 중국 동북 연구-방법과 동향 동북아역사재단, 2010 (공저) 등 获 西 江 大 学 博 士 学 位 韩 信 大 学 研 究 教 授 仁 川 大 学 研 究 教 授 < 现 > 东 北 亚 历 史 财 团 研 究 委 员 新 中 国 的 西 藏 政 策 中 国 近 现 代 史 研 究 (39)2008.09 满 铁 调 查 部 的 扩 张 与 调 查 内 容 的 变 化 韩 国 中 国 近 现 代 史 学 会 (43) 2009.09 历 代 中 国 的 版 图 形 成 与 边 疆 统 治, 韩 信 大 出 版 部,2008( 共 著 ) 中 国 东 北 研 究 - 方 法 与 趋 势 东 北 亚 历 史 财 团, 2010 ( 共 著 ) 等 184 한반도 통일비전과 한중관계의 미래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1 서울대학교 문화관 151-742 1 Gwanak-ro Gwanak-gu, Seoul, 151-742 Korea T +82 (0)2-880-4052~4 F +82 (0)2-874-7305 http://tongil.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