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장정 100년, 광주 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총 론 나간채
목 차 <머리말> 07 제1부 사회와 사회운동 11 제1장 사회의 형성과 사회운동 1. 사회적 행위와 사회관계 2. 사회구조와 사회제도 3. 사회질서와 사회운동 제2장 사회운동의 실제와 이론 1. 몇 가지 사례 2. 사회운동의 개념 3. 혁명과 사회운동 4. 집합행동과 사회운동 5. 사회운동의 이론 제3장 국가와 지역사회운동 1. 국가란 무엇인가? 2. 국가와 지역사회 3. 지역사회운동이론의 모색 제4장 광주 전남지역 사회운동의 역사쓰기 1. 사회운동론적 역사인식의 특성 2. 지역사회운동의 역사쓰기 3. 19세기 이전 전남 역사에 대한 운동론적 성찰 11 11 13 15 17 17 23 26 28 30 37 37 41 44 48 48 51 54 제2부 20세기 광주 전남지역의 사회운동 62 제1장 동학농민혁명과 한말의병 1. 동학농민혁명 1) 혁명전야 2) 동학농민혁명-1차 3) 동학농민혁명-2차 2. 광주 전남 의병항쟁 1) 전기의병과 중기의병 2) 후기의병과 전환기의병 제2장 일제 강점기 민족운동 1. 1910년대 전남지방과 3 1운동 1) 3 1운동 이전 전남지방 항일운동 62 62 62 66 68 72 72 76 84 84 84
2) 광주 전남의 3 1운동 3) 토론 2. 1920년대 전남지방의 민족운동 88 95 97 1) 청년운동 97 2) 농민-노동운동 100 3) 광주 항일학생운동 108 3. 1930-40년대 전남지역 민족운동 1) 식민지에서 사회운동의 변화 2) 사회주의 운동 3) 농민-노동운동 4) 전쟁과 저항 제3장 해방 후 사회운동 114 114 116 120 124 127 1. 전남지역 건국준비위원회와 인민위원회 1) 전남지역 건국준비위원회 2) 인민위원회 2. 사회단체의 분출과 사회적 갈등 1) 다양한 사회단체의 형성과 발전 2) 미군정에 대한 저항과 좌우갈등 제4장 1960년대 이후 사회운동의 진전 1. 4월혁명과 60년대 사회운동 1) 4월혁명-1 2) 4월혁명-2 3) 한일협정반대운동 4) 토론 2. 유신체제와 70년대 사회운동 1) 70년대 사회운동-전국 2) 함성지 제작 배포와 민청학련 3) 기독교장로회 전남노회의 저항과 함평고구마 피해보상투쟁 4) 교육지표선언과 양서협동조합운동 5) 노동야학과 송백회 3. 광주항쟁과 80년대 사회운동 1) 민주화 성회와 5 18광주민중항쟁 2) 5월운동 3) 6월민주항쟁 4) 노동자 대투쟁과 전교조 건설운동 5) 농민-여성운동 6) 문화예술운동 7) 80년대 전남지역 사회운동의 전체적 성격 127 127 131 136 136 140 144 144 144 149 155 159 163 163 168 172 175 179 183 183 188 196 201 208 213 220
4. 시민사회 발흥과 90년대 사회운동 1) 91년 5월투쟁과 광주 운암전투 2) 5 18특별법 제정운동 3) 노동과 교육운동 4) 농민과 여성운동 5) 문화예술운동 6) 시민운동의 개화: 사회운동의 새 물결 제5장 종합정리 1. 전체적 양상 2. 진전과정 1) 전체적 진전과정 2) 부문운동의 진전과정 3. 운동주체 1) 개별주체 2) 연대 및 연합조직 주체 4. 과제와 전망: 사회운동의 발전을 위하여 222 222 227 231 237 243 248 255 255 261 261 263 267 267 270 274 참고문헌 280
<머리말 : 문제> 이 책은 20세기 한국의 사회운동을 다룬다. 공간적으로는 한국사회 전체가 아니라 그 중에서 광주 전남지역을 중심으로 하며, 시간적으로는 20세기의 서막인 1894년 동학농민봉기를 기점으로 하여 현 시기에 이르는 약 100년을 대상으로 한다. 지금은 21세기를 시작하는 새벽이다. 이 시점에서 방금 지나 온 20세기를 되돌아보는 일은 우리 지 역의 지나온 날을 조명하고 사회의 건실한 발전을 위해서 자연스럽고 필요한 일이다. 우리 앞에 전개 되는 미래는 우연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과거의 터전 위에서, 과거사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고 규정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20세기는 매우 압축적이고 격동적인 시간의 흐름이었고, 개인과 사회에 큰 충격과 지대한 영향을 준 사건들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조선조 말기 세도지배층의 정신적 타락과 부 정부패, 이로 인한 민중의 수난과 피어린 저항, 왕조의 비극적 몰락과 일본의 잔혹한 강제병탄, 일제 의 식민 지배에 대한 줄기찬 민족독립투쟁, 준비되지 않은 해방과 독립, 민족분단과 좌우대립, 한국전 쟁과 정전상태의 지속, 남북 양측의 체제경쟁과 적대적 대치, 남한에서 산업화와 민주화의 진전 등 암 울한 현실 속에서도 우리는 희망을 키워 왔다. 국제적인 차원에서는, 한반도를 둘러싸고 장기간 지속되어 온 국제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정립되는 불안정한 시기였다. 천 년 동안 이어진 중국 중심의 조공질서가 해체되고 미국 중심의 자본 주의 세계체제에 편입됨으로써 우리나라는 유사 이래 초유의 대전환에 직면한 것이다. 1) 또한, 세계수 준의 냉전체제는 무너졌지만 한반도와 중국 및 일본뿐 만아니라 베트남, 필리핀까지 포함하는 동북아 시아는 다국 수준의 냉전 분단체제가 형성되고 해체되면서 첨예한 긴장상태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 는 엄중한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2) 이와 같은 세기적 전환점에서 이 책이 다루는 주제는 광주 전남지역의 사회운동에 초점을 맞추고 1) 임형택, 한국학의 동아시아적 지평 (창작과 비평, 2014), 73쪽. 2) 정근식, 동아시아 냉전 분단체제의 형성과 해체, 임형택 엮음, 한국학의 학슬사적 전망 2 (소명출판, 2014), 51-52쪽. 총 론 7
있다. 왜 광주 전남지역인가? 무엇이 이 지역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했는가? 국가사회 전체가 아닌 지역사회에 주목하는 배경에는 지구화와 지방화가 병행하여 진전되는 세계적 추세가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 두 흐름은 서로 상반되는 목표를 추구하지만, 과도하게 성장된 국 가권력을 제약하는 효과를 갖는다는 점에서 동질적이다. 국제적으로는 국가사회를 초월하는 국제연 합, 유럽연합, 그린피스 등 여러 가지 국제기구의 활동으로 국가 중심적 사고와 행동이 약화되고 국경 의 규제력이 완화되는 추세이다. 국내적으로는 지방분권과 지방자치가 진전됨으로써 중앙정부의 구 속력이 약화되고 있다. 지구적 차원에서 서구중심주의에 도전하듯, 한국적 차원에서는 서울중심주의 로부터 탈피할 필요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토인비가 말한 바와 같이 지나치게 강화된 국가주의에 대한 전 지구적 대응이다. 3) 이와 같은 세계적 흐름이 바로 구체적인 지역연구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 키는 효과를 수반한다. 다음으로, 한국의 여러 지역들 가운데 전남(호남)에 초점을 맞추는 배경에는 한국사회 내에서 이 지 역이 감내해 온 특유한 고난의 역사 경험과 관련된다. 4) 20세기 후반 이후 우리의 현대 역사에서 국 가의 지배세력은 전라도 사람들에 대하여 충분한 객관적 근거도 없이 부정적 편견을 강화시키고 일반 화시켜 왔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차별적인 개발정책과 인재등용을 통해 전라도 지역을 철저히 소 외시킴으로써 이 지역을 황폐한 낙후지역으로 전락시켰다. 정서적 차별은 거듭되는 선거정치 과정에 서 더욱 심화되어 왔으며, 악의에 찬 인격모독적인 낙인은 권력과 결탁한 언론에 의해 확대 재생산되 어 왔다. 그 결과 전라도는 한 민족국가 내에서 지배 권력에 의해 배제되고 따돌림 당하는 고립된 섬 이 되었다. 오랜 세월 누적된 이 반민족적이고 잔인한 공격의 화살은 지역민의 영혼을 망가뜨려왔으 며, 그 화살에 찢기고 패인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고 그로 인한 신음이 산하를 울렸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은 힘을 잃고 한을 안은 채 절망의 계곡을 헤맸으며, 어떤 이는 본적을 바꾸기도 했고, 적 지 않은 사람들이 이민을 이야기했었다. 20세기 말에 처음으로 전라도 출신 대통령이 선출됨으로써 전라도사람에게 강요했던 억압과 차별 의 상흔은 일정 정도 치유된 것처럼 보였다. 소외와 무력감에 지쳐 있던 지역민에게는 실로 오래 만에 받은 위로였고 축복이었다. 그러나 그 재임기간이 지나고 난 후에 들어선 보수-반공정권의 최근 현실 을 보면, 아직도 우리 사회의 밑바닥에는 편견에 찬 지역감정이 잠복된 채로 남아있음을 부정하기 어 려우며, 일부 권력집단은 이에 근거하여 부당한 지역분할지배전략을 동원하고 있다. 전라도와 전라도 사람에 대한 야만적이고 사악한 험담과 유언비어가 인터넷을 동원하여 더 잔혹한 형태로 지금 이 순 간에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 국가 내에서 특정 지역에 대하여 자행되고 있는 비인간적이고 반민족적인 이 지역차별은 매우 불 행한 일로서 민족통일과 질 높은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청산되어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리 3) 노명식, 토인비와 함석헌 (책과함께, 2011), 139쪽. 4) 함석헌, 뜻으로 본 한국사 (한길사, 2011), 462쪽. 8 민주장정 100년, 광주 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하여 이 책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문제의식은 최근의 이와 같은 왜곡되고 병든 현실에서 전라도 사람 에게 들씌워진 부정적인 정서의 거짓 장막을 벗겨내고, 맑은 진실을 찾으려는데 있다. 지배권력의 저 주에 담긴 불의와 폭력의 야만성을 폭로함으로써 오랜 세월 앓아 왔던 지역민의 아픔을 치유하고 짓 밟혀 더럽혀진 자존감과 명예를 회복하자는데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사회운동인가? 이 질문과 관련하여 한 국가 내에서 여타 지역과 차이가 있는 어떤 지 역 특유의 역동성을 주목한 관점을 강조하고 싶다. 5) 사회운동이란 바로 이 역동성의 직접적이고 적극 적인 표현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수 세기 한국의 역사에서 전라도 사람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더 치열하고 희생적인 저항의 사회운동을 실천해 왔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다. 국가가 외세 의 침략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독재 권력에 의해 민주주의와 정의가 짓밟힐 때, 못 배우고 가난한 노 동자 농민이 폭력 앞에 수난당할 때, 희생을 무릅쓰고 앞장서 왔던 빛나는 역사를 갖고 있다. 약무호 남 시무국가( 若 無 湖 南 是 無 國 家 ), 의향, 민주성지 등의 명예로운 호칭이 이를 증명한다. 또한 이 지역의 사회운동은 민주화의 도정에 처한 아시아 여러 국가들의 사회운동에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 다. 홍콩의 아시아인권위원회나 스리랑카 및 태국의 민주화운동단체들은 광주 전남의 사례를 그들이 본받아야 할 교과서로 평가해 왔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와 같이 명예로운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만들었는가? 누가, 어떻게 그 잘못된 역사에 대하여 저항했는가? 다른 지역에서 보기 어려운 그 힘의 원천은 어디에 있는가? 이 질 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이 연구의 기본 과제이다. 그 답이 전라도 사람의 짓밟힌 자존심에 새 생명 의 힘을 불어넣고, 퍼렇게 멍든 영혼에 선혈이 흘러 더 맑은 빛을 발하게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작업은 우리 지역사회와 지역민들이 살아온 사회와 역사의 성격을 살펴보고, 이들의 내면 에 자리 잡고 있는 정신적, 사회구조적 특성, 다시 말하자면 우리 지역에 특유한 심층적 역동성을 탐 색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이루고 있는 값진 자산을 찾아내는 일이다. 구체적으로, 이 연구는 광주 전남지역에서 진전된 사회운동의 전체적인 양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 려 한다. 현재 우리사회의 사회운동에 관한 연구가 대체로 전국적인 수준에서 민주화운동에 초점을 맞추어 전개되어 왔고, 이 연장선상에서 지역의 민주화운동에 관한 연구결과가 다른 지역에서 제출된 바 있다. 이 연구는 그 연구결과들을 참조하여 더 구체적이고 폭넓은 연구를 기획했다. 시기적으로는 동학을 기점으로 하여 일제시기를 포함함으로써 사회운동연구의 시야를 확장했으며, 다른 한편으로 민주화운동연구라는 기존의 포괄적 접근 방법에서 벗어나 민주화, 노동, 농민, 시민, 문화, 여성 등의 부문운동을 개별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취함으로써 사회운동의 구체성을 제고하려 했다. 이 책은 위의 각 부문운동 내용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그 전체적인 틀과 흐름의 양상을 그려보려고 한다. 말하자면, 총론의 성격을 갖는다. 이 책은 서론에 이어 제1부에서는 사회와 사회질서 및 사회운 5) 테다 스카치폴, 사회학에서의 역사적 상상력, 테다 스카치폴 엮음, (박영신 외 옮김), 역사사회학의 방법과 전망 (도서출판 민영사, 1991), 7쪽. 7-32. 총 론 9
동에 관한 기초적인 논의로부터 시작한다. 또한 연구의 배경이 되는 19세기 이전 전남지역사회의 역 사적 성격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제시하고 있다. 지역사회 일부에 스며있는 패배사관과 소외사관의 소극적 역사인식을 넘어서서 더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역사를 만들어 가기 위함이다. 그리고 제2부에 서는 각 부문운동에서 보고된 내용을 요약적으로 정리하고, 그 과정에서 각 부문운동의 진전과정을 비교 검토하여 전체적 흐름과 그 물결의 높고 낮음과 장단의 유사성과 차별성에 대한 부문별 비교 등 의 작업을 시도하려 한다. 이 연구의 대상이 사회운동이라는 점에서는 사회학적 성격을 갖지만, 당대에 그치지 않고 근현대 1 세기의 기간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역사학적이다. 말하자면 이 지역사회의 역사, 더 구체적으로는 지 역사회운동의 역사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시간과 공간에 그냥 널려있는 사건 자체가 역사는 아니 다. 그 사건들의 단순한 나열도 역사가 아니다. 역사는 이 사건들을 일정한 원칙에 따라 선정하고 체 계적으로 구성하여 특정한 의미를 부여할 때 만들어진다. 6) 그리고 그 작업의 결과가 오랜 세월 앓아 온 아픈 상처에게 위로를 주고, 어둠의 장막에 덮인 사회에 값진 빛을 발할 때 의미 깊은 역사가 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 연구는 지배세력에 의해 배제되고 짓밟히면서 역사의 외부에 버려져 있던 전라도 사람들을 역사의 무대에 주역으로 초대하는 일종의 이정표이다. 7) 불의의 역사에서 소외 되고 차별받던 전라도와 전라도 사람이 사회운동의 역사쓰기에 의해 당당하고 명예롭게 복권됨을 의 미한다. 6) 한병철 (김태환 옮김), 시간의 향기: 머무름의 기술 (문하과 지성사, 2014), 33쪽. 7) E. H. Carr(길현모 역), 역사란 무엇인가 (탐구당, 1999), 230쪽. 10 민주장정 100년, 광주 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1부 사회와 사회운동 제1장 사회의 형성과 사회질서 1. 사회적 행위와 사회관계 사회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사회는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책의 주 제인 사회운동과는 다소 거리가 느껴지지만, 사회과학 전문가가 아닌 사람도 함께 논의해야 할 주제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중적인 시각에서 인문사회과학적 논의의 첫 머리에 걸맞는 질문이기도 하 다. 사회학은 물론이지만, 역사학이나 윤리학, 정치학이나 경제학 등의 학문도 이러한 물음을 기본으 로 하고 있으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한 후에 이에 맞추어 학술활동을 전개하는 것이 일반적이 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 질문에는 더 세부적인 두 개의 질문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 하나는 사 회를 형성하는 기본 요소가 무엇인가? 이며, 다른 하나는 그 요소들이 서로 어떻게 관계를 맺어 하 나의 사회를 이루는가? 이다. 물론 요소가 한 가지일 때는 두 번째 질문은 있을 수 없다. 여기에서 말 하는 요소 는 개별 사회가 각각 특유하게 가지고 있는 구성요소에 관한 것이 아니라 여러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일반적인 차원에서 발견되는 요소에 관한 설명임을 미리 지적해둔다. 8) 첫 번째 질문과 관련하여, 사회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사람이다. 말하자면 사회는 사람들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한국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고, 태국사회는 태국 사람으로 구성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물론 사람이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것은 사실 이지만, 이러한 응답은 완성도가 낮다. 너무 포괄적이고 애매하여 구체적이고 의미 있는 특성을 알려 주는 바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이려면, 사람의 동물적 특성, 인종적 특성, 인구 특성 등 을 규명하여 그 사회를 설명해야 할 것이다. 한국사회의 인구수나 평균수명, 성비나 체중 등 신체적 8) 역사학의 관점에서는 하나의 사회가 소규모 집단으로부터 거대한 규모로 형성되고 발전되는 과정에 대하여 답하려 할 것이다. 그 경우에는 여러 사회가 각자의 독자적 사회형성 과정을 보여주게 된다. 예를 들면, 오늘의 한국사회가 형성되고 발전된 역사적 과정이나, 인디안 사회의 진화과정을 소개함으로써 형성과정에 답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이와 같은 역사학적, 인류학적 응답은 논외로 한다. 제1부 사회와 사회운동 11
특성이라도 알려주면 좀 더 진전된 답이 된다. 그러나 이는 의학이나 인구학적 관점에 더 어울리는 것 이다. 실제로 사회과학은 사회구성원의 키나 무게, 뼈와 살에 관해 관심을 갖는 일은 별로 없다. 사회학은 구성원 자체보다도 그들이 하는 행동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사람의 여러 가지 행동 가 운데 특히 사회적 행위를 주목한다. 사회적 행위는 적어도 다음 두 가지 특성이 있다. 그 하나는 자연 발생적이거나 본능적인 반응이 아니라 행위자가 주관적 의미를 부여하면서 수행한 행위이다. 졸려서 자기도 모르게 하는 하품이나 눈에 티가 들어갔을 때 깜빡거림 등은 사회적 행위가 아니라 자연적 본 능적인 반응이지만, 어떤 이가 마음에 들어 눈을 깜빡하는 행위는 사회적 행위이다. 사회적 행위의 두 번째 특성은 사회적 이라는 말 그대로 어떤 대상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이 대상에는 자기 자신은 물 론, 현존하는 타인이나 집단뿐만 아니라 상상의 영역에서 가능한 과거와 미래의 대상도 포함한다. 방 금 태어난 아기의 울음은 사회적 행위가 아니지만, 독방에서 시험공부를 하거나 마음속으로 누군가를 연모하여 편지를 쓰는 것은 사회적 행위이다. 그래서 사회는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기도 하지만, 더 나 아가 사회적 행위로 형성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사회학적이다. 사회의 구성요소로 사람을 제시하는 데에는 쉽게 공감하지만, 사회적 행위로 보는 설명은 쉽게 납득 하기 어렵다. 사람은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지만, 그 사람의 행위는 나무나 바위와 같이 외형을 가진 물 체로 남아있지 않고 순간적으로 소멸하기 때문이다. 노래하는 행위, 편지 쓰는 행위 등은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현상으로서의 행위는 없어진다. 그러나 그 행위의 의미나 결과가 전적으로 없어지는 것 은 아니다. 예를 들면,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 역에서 사살한 행위는 그 순간 소멸했 지만, 그 행위가 갖는 의미는 여전히 우리민족의 정신세계에 남아 있다. 행위의 결과는 여러 가지 물 질적 형태로 남아 있기도 한다. 사회적 행위의 내용과 종류는 한계를 지울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먹고 놀고, 일하고 쉬는가 하면 말하고 쓰기도 한다. 기쁨에 웃고 슬픔에 우는가 하면, 여가를 즐기기도 한다. 친구를 사귀고 적대하 는 자와 싸우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헤일 수 없이 많은 이 행위들 가운데, 인 간의 삶에서 가장 기본적인 또는 본질적인 행위는 무엇일까? 매우 막연한 것 같기도 하지만, 인간 사 회에 대한 우리의 인식활동은 이 물음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데카르트나 칸트는 생각하는 행 위 를 강조한 반면, 마르크스는 일하는 행위, 즉 생산 활동을 주목했다. 이런 사회적 행위에 관심을 갖는 기본적인 이유는 그 행위에 담겨진 의미와 행위의 결과가 있음으로 해서 인간사회에 대한 사고와 감정, 그리고 물질적 영역이 그만큼 풍요로워지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또는 어떤 다른 사람을 향하는 행위와 그 행위에 부여하는 의미가 인간사회 본연의 모습을 나타낸다. 거기에 사랑과 미움이 담겨있으며, 희망과 절망, 이기심과 이타심, 아름다움과 추함 등의 의미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사회를 인간의 몸으로 한정해서 이해한다면 동물의 삶과 별 차이가 없어지게 되고, 인간사회 역사와 문화의 의미를 잃게 한다. 따라서 사회란 수많은 사회적 행위들로 이 루어져 있다는 것이 더 충실한 설명이 된다. 12 민주장정 100년, 광주 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그런데 어떤 사회적 행위가 현존하는 특정 대상을 지향할 때, 그리고 그 행위가 지속적으로 되풀이 되어 하나의 정형화된 틀이 될 때 사회학에서는 그것을 사회관계라는 말로 표현한다. 어린 딸아이를 안아 키우는 어머니의 행위가 정형화된 형태를 이룰 때 모녀관계를 형성하고, 형과 동생 간에 서로 돕 고 아끼는 행위가 거듭될 때 형제관계를 형성한다. 이 가족관계 영역을 넘어 사회 일반으로 확장시키 면, 의사와 환자, 제자와 선생, 기업가와 노동자, 고객과 상인, 그리고 수많은 다른 집단들 간의 다양 한 사회관계로 발전한다. 또 이 관계들을 추상화시켜 협동관계, 갈등관계, 지배-복종관계 등으로 재 구성할 수도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회구성의 세 번째 차원을 확인한다. 사회는 사회적 행위 자체로 구성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행위들 간의 유형화된 관계들로 이루어진다. 말하자면, 사회 란 결국 사회관계의 전체 집합인 것이다. 이때 그 행위자는 사회관계 속에서 일정한 역할 수행자로 된 다. 2. 사회구조와 사회제도 수많은 사회관계들은 각각 무차별적으로 제멋대로 분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의존적이고 통일 적인 체계를 갖춤으로써 사회를 형성한다. 이와 같이 사회관계들의 서로 결합되어 하나의 체계를 형 성한 것을 사회구조라고 한다. 이를 테면, 부부관계, 부자관계, 모녀관계, 형제관계들이 상호 결합되 어 가족구조를 형성한다. 기업구조는 사장, 부사장, 이사, 국장, 과장 등의 위계체계로 형성되며, 학 교의 구조나 군대의 구조도 유사한 체계를 갖는다. 그러나 사회구조는 그 수준에 따라 층위를 달리할 수 있다. 위에서 말한 가족구조나 기업구조는 비 교적 소규모의 조직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하위구조이지만, 전체사회를 나타내는 거대구조가 있다. 예 를 들면, 한 사회의 직업구조는 수만 개의 직업들로 이루어진 매우 복합적인 형태를 보이고, 세대구조 나 경제구조, 정치구조 등은 더 확장된 단위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가장 큰 단위는 1차산업, 2차산업, 3차산업 등으로 구성된 산업구조, 자본가계급, 중간계층, 노동자계급으로 구분되는 계급구조 등이 대 표적이다. 이렇게 볼 때 한 사회는 상호 연관된 몇 가지 사회구조들의 체계로 형성되어 있다고 할 것 이다. 그런데 사회구조와 병행하여 사용되는 개념이 사회제도이다. 가족구조와 가족제도, 기업구조와 기 업제도, 경제제도, 정치제도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두 개념은 사회적 행위나 사회관계와 같은 직접 관찰 가능한 미시적 사회현상을 토대로 하여 2차적으로 구성된다. 여기에서 사회관계의 틀이 구조적 측면이라면, 그 틀에 담긴 내용이 제도적 측면이다. 예를 들어, 구체적 사회현상의 하나로서 부부관계 를 보자. 여기에서 부부관계의 형식 즉, 평등한가 불평등한가, 또는 협동적인가 갈등적인가 등은 구 조적 측면이고, 갈등 행위의 표현 방법과 도구, 갈등의 강도와 지속기간 등은 제도적 측면에 속한다. 앞의 것을 사회라고 한다면, 뒤의 것을 흔히 문화라 표현한다. 따라서 제도란 사회구조의 문화적 측면 이며, 사회적 행위와 사회관계의 과정 및 결과를 규정하는 규범(상벌이 주어지는 행위규칙)과 역할의 제1부 사회와 사회운동 13
체계이다. 사회의 형성과 관련해 볼 때, 제도적 관점에서는 전체 사회를 여러 제도들의 상호의존적인 체계로 파악한다.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발전된 인류학 및 사회학의 기능이론에서 이러한 인식이 두드러진 다. 대표적인 기능주의 이론가인 파슨즈Talcott Parsons는 하나의 사회를 몇 개의 기축제도, 즉 경제 제도, 정치제도, 사법제도, 그리고 교육과 종교제도 등으로 형성된 자기충족적 체제로 파악했다. 말하 자면 사회가 자립성을 갖고 독립하여 존속하기 위해서는 위의 제도들이 최소한의 필수요건이라는 것 이다. 그러므로 제도는 사회질서의 근간을 이루며, 사회구조와 같이 사회를 형성하는 하나의 단위가 되는 것이다. 사회구조와 사회제도에 대한 이해 과정에서 한 가지 인식의 문제가 드러난다. 그것은 동일한 사회현 상에 대한 관찰로부터 차이가 있는 두 가지 시각과 관점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관점의 차이에 따라 관찰의 초점이 달라지고, 시각의 차이에서 관찰결과에 대한 의미부여와 해석의 방향이 달라진 다. 두 가지 관점과 시각의 차이는 흔히 거론되는 파라다임의 차이를 의미한다. 학문발전의 역사를 보 면, 이질적 파라다임들이 공존하는 상황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 파라다임들 간의 관계가 협동적이고 평화적이라기보다는 혁명적이고 갈등적이라는 사실을 주장한 점이 토마스 쿤Thomas Kuhn의 선구 적 통찰이라 하겠다. 이런 점에서 파라다임을 관점과 시각 등의 추상적인 요인으로 설명하지만, 이는 결국 동질적 학자집단의 시각으로 현재화된다. 구조와 제도라는 개념에서도, 좀 과격하게 말하면, 이와 유사한 파라다임적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구조 개념은 대체로 유럽 학계에서 발전되었고, 제도라는 개념은 이와 달리 미국에서 주로 발전된 개 념이다. 마르크스의 계급구조나 레비 스트로스의 인류학적 구조개념, 그리고 이와 대조적으로 프란츠 보아스나 루이스 크로버 등 미국 문화인류학들이 선호하는 제도개념이 그 사례가 된다. 구조가 사회 현실에서 심층의 강고한 측면을 주목한다면, 제도는 그 현실의 표면에 일어나는 행위의 가변성과 유 연성에 더 관심을 갖는 경향이 있다. 또한 구조적 시각이 계급갈등이나 세대갈등 지역갈등 등 전체사 회구성에서 내부적 갈등의 측면을 강조한다면, 이와 달리 제도적 시각은 전체 사회를 구성하는 각 제 도가 작용하는 기능, 그리고 각 제도 간에 상호의존성의 측면을 주목한다. 예를 들면, 결혼제도가 어 떤 작용을 통해서 그 사회의 유지 발전에 기여하는가를 밝히는 것이 전형적이다. 이상에서는 서두에서 제기했던 질문, 사회는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 라는 물음에 대하여 논의했 다. 그 결과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로 사회는 여러 겹의 층으로 이루어졌다. 마 치 양파가 그러하듯이. 가장 겉에 드러나 있는 층은 직접 관찰이 가능한 사회구성원과 그들의 행위이 다. 그 다음에 위치한 층은 직접 보이지는 않지만 비교적 쉽게 추론이 가능한 사회관계이고, 가장 깊 은 내면에는 사회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표층에는 사회구성의 단위가 비교적 소규모이며 심층에 이를 수록 그 구성단위가 대규모적이다. 이는 바로 사회구성의 다차원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 적 행위와 사회관계를 주요 연구대상으로 접근하는 입장을 미시사회학이라 하고, 심층의 거대단위에 14 민주장정 100년, 광주 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주목하는 경향을 거시사회학이라 부르기도 한다. 사춘기의 반항행동이나 형제관계에 관한 연구는 전 자의 사례이고 계급혁명이나 지역갈등 또는 세대갈등은 후자의 사례가 된다. 사회형성의 이와 같은 다차원성은 사회현상에 대한 설명의 다차원성, 사회학적 지식의 다차원성을 암시한다. 이를 테면, 전 국민에게 큰 충격과 절망감을 주었던 세월호 침몰사건이라는 사회현상에 대 하여 여러 수준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구성원의 측면에서는 승객과 피해자 및 관리자의 성별, 연령별, 학력별, 직업별 등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자료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행위의 수준에서는 승객, 선 장, 승무원, 회사원, 정부관리 등 여러 관계자들이 수행했던 개인의 행위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할 수 있다. 사회관계의 수준에서는 선장과 승무원, 승무원과 승객, 선장과 회사 경영주, 경영주와 정부관계 자, 승객과 그 가족들 간에 서로 주고받은 행위로 이루어진 광범한 관계를 규명함으로써 그 현상에 대 한 설명을 시도할 것이다. 또한 사회구조의 수준에서는 더 큰 형성단위로서 청해진 기업과 해양수산 부 그리고 유가족 등의 상호관계에 초점을 맞춤으로서 추상성이 높은 수준에서 이 사건의 전모를 해 명하게 된다. 사회형성의 이와 같은 다차원성은 사회학적 지식이 부분적이고 완성도가 낮다는 한계의 원인이 되 기도 한다. 그리하여 하나의 사회현상은 대체로 각 수준에서의 설명을 서로 보완하여 활용함으로써 전체적 설명의 완성도를 제고한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각 수준의 설명체계가 동일하지 않고, 수준에 따라 적용 가능한 이론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현재의 사회학적 지식이나 설명이 전체적이고 통일적인 이론에 근거하는 형성의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어렵다. 3. 사회질서와 사회운동 사회형성에 관한 논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번에는 사회질서와 사회운동의 주제를 살펴볼 필요 가 있다. 사회형성의 질문이 가장 기본적인 성격을 갖는다면 사회질서와 사회문제는 형성된 사회체제 의 작동과 그 결과에 관한 측면으로서 사회운동의 영역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사회질서라는 용어는 한 사회에서 정상적이라고 인정되어 당연시된 행위의 절차와 규범의 체계를 의미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사회제도가 규범의 체계를 의미한다고 할 때, 사회질서란 사회제도의 실 천적 측면이다. 행위의 절차와 행위들 간의 관계는 규범으로 정립되기 때문이다. 규범은 정당화된 행 위의 규칙이다. 이는 법, 도덕, 종교, 관습 등의 형태로 사회구성원의 행동을 규제한다. 그 규범의 내 용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구체적 행동방식이 정해져 있고, 이를 위반할 경우에 보상과 형벌을 포함 하는 강제적 재제를 수반하게 되어 있다. 강제성을 갖는 법규범은 더 상세한 분배원칙과 시행방법도 규정하고 있음을 본다. 규범이 정당화되고 당연시된 행위규칙이라고 할 때, 이와 관련하여 제기되는 기본적인 문제는 누 가 그 규범에 정당성을 부여하는가? 이다. 그 규칙의 정당성이 무엇에 의해 확립되었는가? 라는 질문 이다. 이는 현대 사회이론에서 제기되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의 하나로서, 크게 두 가지 입장이 병존하 제1부 사회와 사회운동 15
고 있다. 그 하나는 정당성의 근거를 사회구성원의 합의에서 찾는 입장이다. 이는 규범의 강제성이 전 체 사회성원의 뜻을 반영하는 것으로 본다. 현실적으로 이는 의회정치에서 다수결의 원칙과도 공존한 다. 이러한 논리는 20세기 중반의 사회과학을 풍미했던 미국 기능이론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다음 으로, 이와 상반되는 두 번째 입장은 사회구성에서 전체의 합의란 이상적인 기대일 뿐이고, 현실세계 에는 이해의 충돌이 불가피하며, 따라서 규범은 사회구성원의 합의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강한 자의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견해이다. 강한 자의 입장을 반영한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약한 자의 의 지는 배제되거나 무시되거나 억압당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기능론과 대비되는 갈등론적 시각이다. 전자가 기득권자의 입장에서 사회질서의 긍정적이고 조화적인 측면을 대변한다면 후자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회질서의 부정적, 억압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이 두 가지의 상반된 이론 가운데 어느 한편이 절대적으로 옳고 다른 편이 틀리다고 단언할 수는 없 다. 사회에는 이 두 가지 측면이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회구성원들의 개인적 특성을 존중하고 개 인이 처한 사회적 환경의 차별성을 인정한다면, 절대선으로 형성된 사회나 이와 반대로 절대악만이 지배하는 사회란 상상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현실은 이 양극의 중간 어느 지점에 위치할 것이며, 그에 따라 두 가지 이론에서 보는 진리의 절충점이 결정될 것이다. 이러한 논리의 연장선에서 볼 때, 분명 한 사실은 어느 사회에도 부정적 측면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이다. 최소한의 부정적인 측면은 불가피하 게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며, 이는 바로 사회에 근원적으로 내재하는 불균형, 착취, 빈곤과 억압 등의 개연성과 그에 따른 갈등이론의 보편적 가능성을 암시하는 바이다. 이와 아울러 사회질서가 갖는 보수성을 강조한다. 이 보수성은 두 가지 근원에서 유래한다. 그 하나 는 현재 정립된 질서 자체가 현상유지의 관성을 갖기 때문이다. 관성의 근원은 특정의 규칙이 홀로 존 재하며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체계의 한 부분으로 존재하고 작용하기 때문에, 이미 전체 체계 의 힘이 그 특정 규칙에 미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구조적 차원에서 발생하는 결과이다. 두 번째는 현 존 질서로부터 이익을 보호받는 기득권 세력의 힘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 질서의 안정성이 위협받 으면 기득권 세력의 이익이 손상될 것이다. 따라서 기득권 세력은 그것의 변동을 막아내는 대열에 참 여할 것이다. 질서는 편리한 것, 아름다운 것 이라는 흔히 보았던 구호는 사회 구성원 전체를 위한 보편적 진리라기보다는 기존 질서 옹호자들인 보수 세력이 자기에게 유리한 현재의 질서를 정당화하 고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낸 논리, 즉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에게 현재의 질서 는 오히려 불편하고 사악한 굴레일 뿐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질서의 태생적인 보수성에도 불구하고, 사회질서는 불가피하게 변동의 압력에 직 면하지 않을 수 없다. 변동을 일으키는 요인은 매우 다양하겠지만, 우선 중요한 두 가지를 지적한다. 그 하나는 새로운 사상과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부터 연유한다. 새로운 사상과 과학 기술에 근 거하여 기존 질서가 갖는 문제점과 한계를 인식하므로 그 결과 다른 대안을 모색하게 된다. 계몽사상 이나 진화론 및 물리학의 발전은 기존질서에 대한 반란의 서막이었으며, 뒤이어 도래할 혁명적 변화 16 민주장정 100년, 광주 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를 예고하는 바탕이었다. 다른 하나는 기존 질서에서 소외된 피해자들의 불만과 저항에서 유래한다. 신분제도 하에서 하층 신분의 불만, 산업사회로의 이행기에서 가난한 노동자 농민의 불만, 농촌사회 의 황폐화와 도시의 과잉인구 등이 그 사례들이다. 이 변동의 압력은 거대한 혁명의 물결로 표출 되었 다. 17세기 이후의 시민혁명, 산업혁명, 급격한 도시발전 등은 이러한 혁명적 변화의 대표적 지표들 이다. 이와 같은 혁명적 사회변동은 기존 질서의 붕괴와 새로운 사회질서의 미정립으로 특징지어 지는 이 행기에서 심각한 불안정과 무질서를 초래한다. 기존 규범의 행동 규제력이 상실된 상태, 즉 아노미 상 태에 봉착하여 다양한 사회문제를 야기한다. 자본주의의 진전에 따른 탐욕과 그에 따른 빈곤, 범죄와 폭력, 노동과 자본 간의 분쟁, 그리고 급속한 도시화가 초래한 주택문제, 교통문제, 위생문제 등이 그 것이다. 물론, 기존 제도는 이 사회문제를 자체의 틀 내에서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그 결과 부분적 문 제의 해결에 진전이 있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볼 때 기존 제도의 자기 개혁은 내재적 보수성으로 인 해 스스로 만든 한계에 머무르기 때문에 사회적 모순과 문제는 더욱 심화되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 제기된 사회문제를 기존제도가 해결하지 못할 경우에 이에 대한 대안적 해결방안으로서 사회운동이 발생한다. 말하자면 사회운동은 사회문제에 대한 비제도적 해결방식이다. 제도가 해결하 지 못하는 사회문제에 도전하는 길을 밝히는 촛불이다. 권력자나 기득권자가 아니라 힘이 약하고 가 진 것이 적은 대중, 그러나 이 사회의 진정한 주인인 민중이 뜨거운 가슴으로 불태우는 횃불이다. 또 한 그것은 억압과 탐욕, 지배와 독점에 대항하는 인간 존엄과 자유, 정의와 균형의 가치를 지향하는 진리의 섬광이다. 다음에서 몇 가지 사례들을 본다. 제2장 사회운동의 실제 1. 몇 가지 사례 1960년대 청계천변 상가의 어떤 풍경이다. 평화시장 건물 위층에는 의류제조 공장들이 있었다. 주 로 10대 여성으로 구성된 3만여 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은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열악하였다. 아침 8시 30분에 출근하면 밤 11시에 끝나는 14시간의 장시간 노동,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임금, 거듭되는 야간작업에 잠 안 오는 약을 먹었어도 어쩔 수 없어 눈만 멀뚱거리며 졸고 서있는가 하면, 과로에 지쳐 피를 토해도 방치되는 현실, 손가락의 지문은 재봉작업에 문드러져 없어졌고, 하루 작업 이 끝나면 부은 발이 신에 들어가지 않는 현실이 그 소녀들의 삶이었다. 천장을 낮게 함으로써 바로 설 수 없는 장애인을 더 많이 고용하여 노예같이 혹사했다. 이 처절한 노동현장을 괴로워하며 바로잡 기 위해 앞장서 나선 청년이 전태일(22세)이다. 그는 고용주들을 찾아가 호소했고, 노동청에 진정서 를 제출했으며, 마지막에는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어린 여성 노동자들 제1부 사회와 사회운동 17
이 당하는 고난의 삶을 철저히 외면하고 무시하고 짓밟았다.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절실했던 소망 이 물거품이 되자, 전태일은 1970년 11월 13일 오후 1시 30분쯤 서울 청계천 6가 평화시장 앞길에서 자기 몸에 석유를 붓고 불을 질렀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고 외치며 불 붙은 몸으로 시장 앞길을 질주했다. 불길은 순식간에 온 몸을 휩싸고 타올랐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그 날 밤에 한을 안고 그는 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행상, 신문팔이, 구두닦이 등을 전전했던 빈민가정 출신이었다. 평화시장에 들어온 후에는 어린 여공들을 자기 동생처럼 생각했다. 피로에 지친 그들을 위로하고 달랬으며, 배고픈 여공에게 빵을 사주고 자기는 퇴근길을 걸어가는 청년이었다. 못 배웠어 도 그는 일기를 썼고, 주변 동료들을 모아 바보회 와 같은 조직을 만들 줄 알았다. 노동자를 보호하 기 위해 근로기준법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근로기준법을 읽어도 내용을 이해할 수 없을 때, 자기에 게 법대를 다니는 친구가 없음을 한탄한 젊은이였다. 그의 처절한 분신 자결은 당시 사회, 특히 대학 생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먼저, 서울대학교 법대 학생들이 학생장을 치르겠다고 나섰다. 당국의 방해 를 무릅쓰고 11월 20일에 추도식을 거행했다. 서울대 상과대 학생 400명은 16일에 무기한 단식농성 에 돌입했다. 지식인과 학생들의 눈물에 젖은 행렬이 뒤를 이었다. 그의 분신자살을 계기로 평화시장 에 전국연합노조 청계피복지부가 결성되었다. 1970년대의 서막에 그가 올린 노동의 횃불은 그 이후 한국 사회운동의 앞길을 밝혀주고 있다. 다음은 인도의 사례를 소개한다. 1974년 1월, 인도 정부는 히말라야 레니 마을 근처의 삼림 2500그 루를 벌채하기로 공표했다. 이러한 정부의 정책에 대하여 주민들의 반대는 완강했다. 벌채에 맞서 나 무를 지켜내기로 다짐했다. 몇 주 동안 집회와 시위가 반복되었다. 정부의 추진 결정에 맞서 저항은 치열해졌다. 벌목을 강행하기로 된 3월 25일, 트럭을 타고 벌목꾼들이 오는 것을 본 어린 소녀가 뛰 어가 이를 촌장에게 알렸고, 마을에 남아있던 여성들이 나와서 벌목꾼들과 대치했다. 그 때 이 마을 남자들은 멀리 떨어진 일터에 나가고 없었다. 여성들의 저항에 맞서 벌목꾼들은 큰 소리로 희롱하고 총으로 위협했다. 그 와중에서 벌목꾼들이 살벌하고 예리한 기계톱으로 나무를 자르려 하자 여성들 은 여럿이 서로 손을 맞잡고 나무를 껴안아 자르지 못하게 막아냈다. 벌목꾼들이 포기할 때까지 나무 를 껴안은 손을 놓지 않고 밤을 새워 지켜냈다. 마침내 벌목꾼들은 물러갔고, 여성들의 강인한 저항은 탐욕에 찬 자본의 잔혹한 힘을 이겨내었다. 이는 폭력에 대한 평화의 승리, 죽임에 대한 생명의 승리, 남성에 대한 여성의 승리였다. 아침이 되자 이 소식이 전국에 보도되고 이 소식을 들은 이웃 마을 사 람들이 찾아와 함께 동참했다. 이것이 오늘날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나무껴안기운동(칩코 안돌란: Chipco Andolan) 의 시발이다. 9) 이 운동의 뿌리는 희말라야 산맥의 삼림과 지역주민의 삶이 맺고 있는 생존의 진실에서 찾을 수 있 다. 1960년대 이후 가속화된 대규모 벌목은 푸르고 무성했던 삼림을 황폐화시켰다. 비가 오면 산사태 9) Trackback : http://blog.ohmynews.com/runkorea/rmfdurrl/120661 18 민주장정 100년, 광주 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와 범람을 초래했다. 큰 비 후에 남겨진 피해는, 1970년 7월의 홍수가 대표적인 것인데, 한 개 마을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가옥 600여 채가 빗물에 휩쓸려 떠내려갔으며, 200여 주민들이 희생되기도 했다. 따라서 이 지역주민들에게 삼림보호는 삶 그 자체였다. 이들에게 숲은 물이요, 식량이요, 생명 이었다. 말하자면, 숲을 지키는 단순한 삼림보호운동이라기 보다는 생존운동의 성격이 강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개발을 명분삼아 기업에게 더 많은 벌채를 허가했고, 기업은 더 많은 목재를 확 보하기 위해 주민의 저항을 무릅쓰고 벌채를 강행했다. 이에 따라 주민들의 반대와 저항도 강화되어 갔다. 1971년에는 삼림청의 정책에 반대하는 주민의 시위가 있었고, 다음해에는 집회와 시위가 더 빈 번해졌다. 그 중에서 상징적이고 극적인 사례가 바로 위에서 말한 레니마을 사건이다. 한 가지 첨언하 자면, 이 운동을 선도했던 순데랄 바후구나Sunderlal Bahuguna(1927년생)는 4700킬로미터에 이르 는 희말라야 삼림지역을 도보로 답사하였으며, 그의 이러한 현장체험이 생태환경에 대한 사랑과 헌신 의 원천이 되었다. 그는 또한 간디의 불폭력운동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평화적인 방법으로 자본과 권 력의 횡포를 이겨냄으로써 사회운동의 역사에 인상적인 기록을 남겼다. 그 후 이 운동은 인도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그리하여 대중의 산림보호의식을 일깨웠으며 마침내 정 부가 공개적으로 벌채 금지정책을 채택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면, 인도 정부는 1976년에 36만 타르 에 이르는 삼림에 앞으로 10년 동안 벌채금지령을 내렸는가 하면, 조림사업을 강화하는 조치를 취하 기도 했다. 또한 산간의 각지에 마련된 환경보호야영장은 수많은 학생, 학자,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는 교육장과 회합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그 후 이 운동은 생태여성주의운동 및 환경운동의 형태로 인도 는 물론 캐나다를 비롯한 전 세계의 여러 나라에로 확산되었다. 세 번째는 국내의 민주화운동에 관한 것이다. 1979년 11월 24일 오후 5시 30분 서울 명동 YWCA 강당에서 500여 하객이 모인 가운데 신랑 차림을 한 홍성엽(민주청년협의회 상임위원)이 입장하자 곳 곳에서 빠르게 유인물이 돌려졌다. 이들은 그 유인물에서 선 대통령 선출, 후 개헌 이라는 기만적 정치일정을 내걸고 유신독재의 연장을 획책하고 있는 유신잔당의 음모를 단호히 분쇄하고... 국민적 각성과 분발을 촉구하기 위하여 여기에 모였다(통대저지를 위한 국민선언에서) 고 선언했다. 곧이어 결의문이 낭독되고 통대선출 반대, 거국내각 구성 등의 구호가 터져 나오자 뒤쪽에서 쥐색 잠바 의 백골단이 난입하여 결혼식장은 수라장이 되었다. 의자가 날고 비명이 들리고 유리창이 깨지고 곤 봉에서 피가 튀었다 (이시영의 시 역사의 눈 에서). 대회장을 빠져나간 일부 인사는 밖에서 대기 중 이던 사람들과 합세했다. 핸드 마이크를 든 양관수가 예수를 믿읍시다 라고 신호음을 외치자 유신 철폐, 통대선거 결사반대 고함이 울렸고, 이들은 을지로 쪽으로 스크럼을 짠 채 200여 미터를 달 려갔다. 같은 시각, 종로2가 화신백화점 앞과 청계천에서도 비슷한 시위가 벌어졌다. 이 날의 통대선 출저지국민대회의 대회장은 함석헌, 준비위원장은 김병걸 백기완 임채정 박종태 김승훈 양순 직이었고 그 밖에 교수, 종교인, 문화예술인, 청년활동가 등이 실행위원으로 참여하여 결행되었다. 저항은 성공적이었지만, 아픔은 컸다. 계엄사령부가 140여 명을 잡아가 조사하는 과정에서 저지른 제1부 사회와 사회운동 19
고문은 잔혹했다. 김병걸은 계엄군의 야수같은 폭력에 정신착란을 일으켜 실려 나왔으며, 백기완은 고문 후유증으로 이후 수년간 입원해야 했다. 신랑 역을 자임했던 홍성엽 등 여러 사람이 폐인이 되었 다. 계엄사는 박종태, 양순직, 백기완, 등 18명을 군법회의에 회부했으며, 이듬해인 1980년 1월 25일 군법회의는 피고인 전원에게 징역 3년 등의 중형을 선고했다. 10) 평화적인 집회에 대한 야만적 폭력 진 압과 실형선고는 신군부 전두환 집단의 속성을 남김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은 서울의 봄 에 타오를 사회운동의 뜨거운 불길을 예고하는 것이었으며, 이 흐름은 국민연합, 민주 헌정동지회 등이 이어 나갔고 마침내 80년 5월의 거대한 저항물결을 이루어냈다. 80년대 민주화운동 의 샘물이 된 YWCA위장결혼식 사건이다. 이번에는 외국에서 싸우다 할복자살한 한국 농민운동가 이경해(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 회장)에 관한 이야기이다. 2003년 9월 11일 멕시코 휴양도시 칸쿤에서 제5차 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가 열리고 있 었다. 이 회의는 자유무역과 농업개방을 위한 협상이 중심내용이기 때문에 이를 저지하기 위해 전 세 계에서 5천여 명의 사회운동가들이 이곳에 집결해 있었다. 한국 시각 2003년 9월 11일 새벽, 시위 대가 농업의 죽음을 의미하는 상여를 메고 행진하였다. 대열을 멘 앞에서 이끌던 한국 농민운동가 이 경해는 WTO가 농민을 다 죽인다. WTO 협상에서 농업을 제외하라 고 외치며 비수를 꽂아 자결했 다. 곧바로 이 소식은 전 세계에 긴급 뉴스로 타전됐다. 추석 아침 차례 상을 준비하던 국민들은 멕시 코 칸쿤에서 날아든 비보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먼 이역에서 싸움을 위해 스스로 생명을 버린 이경해 는 전국농어민후계자협의회 2대 회장을 지낸 적이 있으며(1989), 스위스제네바 WTO본부 앞에서 1 인 단식농성을 감행하기도 한 매우 치열한 전사였다. 현지 분향소는 한국 칸쿤 투쟁단의 숙소인 아쿠아 마리나 호텔과 이경해가 자결한 칸쿤 시내 센트로 광장에 마련되었다. 현지시간으로 11일 저녁 7시 분수대가 있는 센트로광장에는 국제농민단체인 비 아 캄페시나를 비롯한 전세계 NGO 활동가 약 1천명이 모였다. 이경해 열사의 추모제는 거센 빗줄기 속에 세계농민장으로 치러졌다. 빗줄기가 거세지고 천둥까지 쳤지만 모여든 집회 참석자들은 동요하 지 않은 채 노래를 이어 부르며 멕시코 원주민의 북소리에 맞춰 행진했다. 한국 투쟁단이 아침이슬 이나 동지가 등을 부르면 멕시코와 남미의 활동가들은 스페인어로 체 게바라에 관한 노래나 사파티 스타 투쟁가 등을 불러 화답했다. 인종과 국경을 뛰어넘어 지구공동체의 집회 참석자들은 이경해 열 사의 죽음을 함께 추모했다. 이 사건은 전 세계 언론과 노동자 농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 결과 각료회의는 저항세력의 힘 에 밀려 무산되고 말았다. 이는 1999년 11월 제3차 시애틀 각료회의가 전 세계에서 모여든 운동가들 의 강력한 시위로 인해 무산된 것과 같이 비슷하다. 전 세계의 민주시민들이 대자본의 탐욕에 분노하 여 일으킨 저항의 물결이었고, 이 거대한 물결이 자본가의 함대를 표류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전태일 10) 이 사건에 관한 내용은 우리 강물이 되어 (유시춘 외, 2005, 경향신문사 출판부), 238-243쪽을 요약하여 재구성한 것임. 20 민주장정 100년, 광주 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의 분신이 한국 노동운동을 한 단계 도약시켰듯이, 이 열사의 할복은 전 세계 농민운동을 새로운 차원 으로 진전시켰다. 또한 이 사건은 한국 사회운동의 폭과 깊이가 전 세계적 차원으로 확장되고 성장했 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회운동의 진전과 인류역사의 발전은 이와 같이 공공선과 정의를 위한 피어 린 투쟁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아프리카 초원의 메뚜기 떼처럼 캄캄하게, 캄캄하게 세계화가 몰려올 때, 누가 앞장서 대지의 운명을 지켰던가? 역사의 모든 길이 어둠 속에 묻힐지라도 님이 꽂은 칼 한 자루 녹슬지 않으리니 세계 농민들의 이정표로 빛나리라. 이제 하늘 아래에서 가장 높은 곳이 된 여기! 밤마다 달빛이 찾아올 것을 우리는 믿노라. 바람도 구름도 지나갈 때마다 울어라. 지상의 모든 농민의 님, 이경해! (정도상 작, 2004) 이번에는 마지막으로 노무현 대통령 탄핵반대 촛불집회를 소개한다. 이 사건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의 국회통과가 발단이 되었다(2004. 3. 12). 그 당시 노 대통령은 다가오는 국회의원 선거를 앞 두고 공개적으로 집권 여당 지지를 호소했다. 이에 대하여 여타 정당들은 대통령이 정치적 중립의무 를 지키지 않는다고 격렬하게 비판하며 사과를 요청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그러한 요구를 납득할 수 없다며 사과를 거부했고, 이에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거대 야당은 연대하여 대통령 탄핵을 가 결했다(제적: 271; 찬성 193; 반대 2). 국회가 탄핵을 결정하자 도무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 다. 대통령 탄핵에 대한 전 국민적 반발은 거센 후폭풍으로 몰아 쳤고 그 형태가 탄핵반대 촛불집회로 나타났다. 물론 이 촛불은 탄핵안이 발의되기 전부터 간헐적으로 나타났었다. 7일 오후 여의도 국회 인근에서 탄핵발의에 반대하는 네티즌 50여 명이 시위를 했고, 9일 저녁 7시 경에 부산 서면 롯데백 화점 앞 광장에는 100여 명의 시민이 모여 반대집회를 가졌다. 찬반 논의가 총력전으로 번지는 가운 데 11일에는 노사모 회원이 집회 도중에 분신했는가 하면, 이와 반대로 탄핵을 찬성하는 보수단체들 (자유시민연대, 자유총연맹, 바른선택 국민행동, 인터넷 독립신문 등)도 행동에 나섰다. 탄핵안이 가결된 12일에는 전국에서 반대 집회와 시위가 잇따랐다. 여의도 국회 앞에는 시민 학생 등 2만여 명이 모여 밤늦게까지 촛불시위를 진행했고, 광화문 한 복판을 가득메운 촛불은 탄핵 무 효, 민주수호 를 외쳤다. 193마리 미친개를 찾습니다, 갑신오적, 국회를 해산하라 등의 분 노한 함성과 펼침막이 출렁거렸고, 여의도 집회의 즉석모금에서는 3천만원을 기록했다. 500여 개의 제1부 사회와 사회운동 21
시민단체로 구성된 탄핵무효 범 국민행동 이 주최한 3월 20일의 광화문집회에는 22만 명(경찰추산 13만 명)이 운집했고, 광주, 부산, 대전, 대구, 마산, 창원 등지에서도 대략 30만 명이 모인 것으로 추 산했다. 여기에 인터넷으로 참여한 인원은 오마이뉴스 35만, 라이브이즈 10여 만 명 등 총 45만 명으 로 추정되었다. 미국, 캐나다, 호주 등지에서도 집회가 있었다. 검찰은 핵심지도자들에 대하여 체포영 장을 발부했으나, 운동 지도자들은 자진출석하여 조사를 받고 나왔다. 이와 같은 촛불의 강물은 3월 27일에 공식적으로 마무리하였으나 그 이후에도 간헐적으로 계속되었고, 총선 이후에는 파병반대 촛 불로 이어졌다. 분노한 함성과 촛불 행진 속에 17대 국회의원 선거가 거행되었다(4월 15일). 그 결과를 보면, 탄핵 을 주도했던 거대 정당들이 결정적으로 타격을 입었고, 소수에 불과했던 여당이 152석을 차지함으로 써 국회의원 정원(271명)의 과반수를 획득했다. 탄핵 결정과 동시에 심의를 시작했던 헌법재판소는 5월 14일에 탄핵을 기각하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촛불의 정당성을 확인시켰다. 어느 시민은 말했다, 이것이 혁명이 아니면 무엇이 혁명인가! 이를 통해 우리는 사회운동에 담겨있는 거대한 힘을 볼 수 있고, 사회운동이 인간사회의 발전에 중요한 견인차임을 확인하게 된다. 지금까지 우리는 흔히 경험하는 사회운동의 몇 가지 사례를 간략히 살펴보았다. 여기에는노동자운 동, 여성운동, 청년 및 지식인운동, 농민운동, 불특정의 다수 시민운동 등이 포함되어 있다. 쟁점에서 는 노동자의 삶과 노동조건, 생명, 환경, 민주주의와 민주화, 국제경제와 자립경제 등의 다양성을 확 인할 수 있고, 노동자 농민운동과 같이 매우 과격한 형태로 이루어지는가 하면 시민운동과 같이 평화 적이고 온건한 형태도 있다. 또 지속기간에서도 장단기의 다양한 차별성을 확인할 수 있다. 말하자면, 오늘 날 사회운동은 다양한 주제와 주체, 다양한 강도와 실천형태, 다양한 지속기간 등을 보여주고 있 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겉으로 드러난 성격과 아울러 좀 더 심층적인 특성을 탐색해볼 수도 있다. 위의 사례에서 드러나는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공통된 특성의 하나는 운동의 참여자들이 개인이익을 위해서라 기보다는 공공의 이익, 공동의 권익을 지키고 확보하기 위해서 행동한다는 것이다. 노동조건을 개선 하고 나무숲을 보전하는 일, 인간의 기본적 자유를 향유하고 농민이 쌀값을 제대로 받을 수 있게 하며 대통령을 탄핵으로부터 보호하는 일은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인간사회의, 공공의 이익을 위한 행동인 것이다. 즉, 사회운동의 첫 번째 특성은 공공성에 있다. 물론 특정 이익집단이 자기들 집단의 권익을 회복하거나 보호하기 위한 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공공적 선에 기준에 수렴하는 경우에 운동의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두 번째로는 빼앗긴 권리나 부당한 침해 및 독점, 기득권에 대한 도전과 저항의 성격을 갖는다. 노 동자의 인권에 대한 자본가의 야만적 침해, 삼림이나 농촌 주민의 건강한 삶을 파괴하는 자본의 횡포, 적군을 향해 써야할 군사력을 자국민에게 향하는 군부의 잔혹한 폭력, 의회민주주의를 가장한 다수파 의 비합리적 횡포에 대한 도전과 저항이 바로 사회운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번째 특성은 부당한 22 민주장정 100년, 광주 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권력에 대한 저항과 도전성에 있다. 이와 연관된 특성으로서 도전의 표적은 정치경제적, 사회문화적 권력(자)이다. 평화시장 사업가, 인도의 목재상,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 쿠데타세력, 세계무역기구 등의 경제 권력자, 의회의 다수파 등이 그들이다. 세 번째로 강조하려는 점은 사회운동이란 기본적으로 강자에 대한 약자의 도전이기 때문에 그 싸움 에서 대체로 불리한 상황에 처하기 마련이다. 위에서 본 노동자 농민 여성 청년 지식인 등의 운동주 체들은 맞서 싸워야 하는 상대편에 비해 여러 면에서 취약하다. 이와 같은 사회운동의 본질적인 특성 은 운동가들이 큰 피해를 마다하지 않고 감당하는 자기 헌신과 희생성을 밑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 이다. 위에서 본 사례에서도 운동가들이 땀에 젖고 피 흘리며 넘어야 하는 헌신과 희생의 운명을 보게 된다. 또 하나의 역설적인 사실은 사회운동이 정의를 위한 도전임에도 불구하고 성공가능성이 높지 않은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대체로 중대한 사회문제일수록, 다수의 큰 이해관계가 관련된 쟁점일수록 그 만큼 강력한 대상과 맞서는 싸우게 되어 피해는 크지만 가시적인 성공가능성은 낮다. 노동자 전태일 이나 농민 이경해가 주도한 싸움에서 우리는 이를 확인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약한 자의 정의를 위한 자기희생, 성공가능성이 낮음에도 감행되는 자기희생은 인 간사회의 질적 수준을 한 단계 높여주고 인류발전의 길을 밝혀주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이런 관점에 서 볼 때, 사회운동은 역사발전의 가장 값진 동력이고, 그 자체가 역사의 힘을 실현하려는 노력이다. 11) 2. 사회운동의 개념 위에 소개된 사회운동의 사례들은 각기 서로 다른 환경에서 상이한 주제와 목표를 가지고 상이한 집 단에 의해 일어났다. 각 사건마다 참여자의 연령이나 성별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양한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인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위의 사례를 중심으로 보면 살펴보면 다음 사항이 두드러진다. 첫째는 각각의 사건들이 다수인의 참여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첫 사례는 학생들이 주도한 것이고, 다음은 농민들이 중심에 있으며, 세 번째는 여성들이 앞장섰지만, 그 직업이나 신분에 상관없이 한 사 람 이상의 다수인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따라서 사회운동의 가장 기본적인 특성은 참여자의 다수성으로 요약된다. 다수성이라고 할 때 그 수준은 매우 유동적이다. 2인 이상의 참여자 로부터 수십만의 거대한 집회까지 다양하게 분류될 수 있다. 물론 1인 시위와 같은 예외적인 경우도 있으나 이 역시 반복적 지속적으로 수행된다면 운동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지율 스님은 혼자서 천 성산 생태환경을 지켜내기 위해 5차에 걸쳐 400여일의 단식농성과 부산역 앞에서 천성산까지 3보1배 시위행진을 했었다(8일 소요). 여기에서 중요한 문제는 다수인의 참여를 만들어 내는 방법에 있다. 그 리하여 사회운동 연구에서는 참여자를 확장하는 방법에 대하여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 왔다. 예를 들 11) H. Zynn(이재원 옮김), 하워드 진, 역사의 힘 (예담, 2009). 제1부 사회와 사회운동 23
면, 집회의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풍물패의 마당굿이나 출연자의 깜짝 연행을 보여줌으로써 대중의 관심을 끌고 참여를 유도하려고 한다. 두 번째로, 각각의 사건에는 참여자들이 공유한 목적이 있다. 첫째 사례의 목적은 인간적인 노동환 경 조성이고 두 번째는 인권이며 세 번째는 자유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참여자 모두가 지향하는 목적 에 부분적인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각각의 개인들은 가정형편이나 개인의 가치관이 다양하기 때문이 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볼 때 적어도 일정한 공통된 합일점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공 유된 목표를 사회운동의 두 번째 특징적인 요소로 정리한다. 합의된 공동의 목표도 운동이 진전되는 과정에서 보완되거나 수정되기도 하며, 목표의 세부사항에 따라 운동조직 내부에서 갈등과 분열이 야 기되기도 한다. 광주 전남지역에서 80년 후반부터 주도해 왔던 5월운동의 목표는 오랜 기간의 수정 보완을 거쳐 1990년에 이르러 구체적으로 정해졌다. 또한 각각의 사건들은 공통된 연대행동을 감행한다. 연대행동이란 동일한 행동뿐만 아니라 상호간 에 유기적으로 공유되거나 조정된 행동을 포함한다. 목적을 공유하기 때문에 이를 이루기 위한 수단 으로서의 연대행동에 참여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측면이 있다. 그리고 이 연대행동을 통해서 비 로소 운동은 구체적 행동으로 실현된다. 그러나 목적을 공유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행동을 감행하였는지 아니면 실제 행동에까지 이르지는 못하고 공감의 정도에 그칠 지를 결정하는 문 제는 별개의 심리적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운동에의 참여는 정신적 물질적 사회적 비용과 희생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사회운동의 세 번째 특성을 연대행동으로 규정한다. 연 대행동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제기된 문제의 성격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정된 목표에 대한 공 감이 형성되는 계기, 그리고 이에 따라 행동으로 참여하겠다는 결단의 계기에 대하여 여러 연구자들 의 관심이 주어져왔다. 12) 연대행동에는 온건한 주장이나 저항으로부터 과격한 폭력까지 동원되기도 한다. 네 번째로 위의 사례들이 갖는 공통된 특징은 기존 제도의 절차와 과정을 지키지 않는 행동으로 이 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사회학에서는 이를 비제도적 행동uninstitutionalized behavior이라 말한다. 원론적으로 보면, 사회적 행위(행동)은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제도적 행위, 즉 제도적 절차와 규정에 따르는 행위이고 다른 하나는 제도나 규범이 규정하고 있는 행동방식을 벗어난 행위, 즉 비제도적 행위이다. 여기에서 사회운동은 비제도적 행위로 이루어진다. 위에서 제시된 사례들은 제도가 규정하고 있는 절차와 과정을 지키지 않거나, 무시하고 위반하는 행위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 러나 제도적 규범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그 행위가 범죄행위와 동일시 될 수는 없다. 범죄행동과 기 본적인 차이는 사회운동의 공적 정당성, 즉 공공성에 있다. 사회운동은 본질적으로 사적인 이익을 추 12) Klandermans, B. Interorganizational net works. in Bert Klandermans(ed.). International Social Movement Research: Research Annual, 1989, Vol. 2; 1992. The Social Construction of Protest and Multi-organizational Fields. in A. D. Morris and C. M. Mueller(eds.), Frontiers in Social Movement Theory (Yale University Press,1989). 24 민주장정 100년, 광주 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구하는 개인이나 이익집단의 행동과는 구별되어 인식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사회운동의 네 번째 특성 은 비제도성, 실천적인 측면에서 보면 제도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제도 를 운영하고 관리하는 자가 바로 정부이고 국가권력이라는 점이다. 이 비제도성을 제도가 정하는 절차와 일치하지 않는 현상이라고 볼 때, 여기에는 다음 두 가지 경우 를 포함한다. 첫째는 기존 제도에 규정되지 않은 운동행위이어서 일탈이나 범죄를 구성하지 않는다. 법이 없이는 범죄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운동행위는 법에 의해 단죄되지 않고 계속 전개된다. 예를 들면, 새로운 정서를 표현하는 문화예술운동이나 신흥종교운동 등이 이에 포함된다. 그러나 이 러한 운동행위가 기존 제도나 지배체제에 위협이 될 경우에는 국가는 이를 법으로 제정하여 규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두 번째는 기존 제도가 규정하고 있는 실정법에 의해 금지된 운동행위이다. 이러한 행위는 기존 법 률 체제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에 일탈이나 범죄로 간주되어 법적 제재를 받게 된다. 여기에는 권력에 대한 반대와 저항운동, 그리고 권력집단의 이익에 반하는 운동 등이 이에 해당한다. 쌀 수입을 반대하 는 농민들의 저항운동, 기본적 인권을 짓밟는 정권에 대한 투쟁 등이 그것이다. 자본주의 진영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전개하다가, 또는 독재권력 하에서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가 박해받고 단죄된 사례 가 그 얼마인가! 인간의 역사에서 법을 어긴 혐의로 희생되는 운명을 알면서도 이를 무릅쓰고 그 운동 을 계속하는 사례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무엇이 이를 가능케 하는가? 그것은 인간 본성에 근 원적으로 내장되어 있는 자유와 정의에 대한 사랑, 그 믿음의 힘 때문일 것이다. 프로이트가 말한 생 의 본능(Eros)과 관련하여 상상할 수 있다. 이 연구에서는 사회운동의 개념을 비제도성, 즉 집합적 저 항과 도전으로 정의한다. 따라서 도전적 공격적 성격이 제거된 문화운동이나 종교운동 시민적 생활개 선운동 등의 영역은 이 연구에서 제외된다. 13) 이 밖에도 사회운동의 특성에는 지속성이나 조직성 등이 포함된다. 실제로 하나의 사회운동이 하나 의 단위행위로 끝나는 사례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운동은 상호작용하는 대상이 있고 그 대상에게 운동의 목표와 수용방식을 한 순간에 전파시키고 상대를 변화시키는 것은 실현가능성이 낮기 때문이 다. 또한 사회운동이 단발행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정 정도 지속성을 갖도록 발전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최소한의 운동조직이 형성될 필요가 있다. 조직이 규정하는 역할 분담과 상호간의 유기적 관 계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13) Tarrow, S., Power in Movement(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4), p. 4. 이와 관련하여 볼 때, 운동참여의 배경에 따라서 저항운동[protest(insurrectionary) movement]과 사회운동(social movement)을 구별하는 관점도 있다. 전자가 기존 질서를 거부하고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과 도전을 시도하며 폭력적 성격을 갖는다면, 후자는 전체적 변화보다는 제도의 수정과 대안 제시, 공존을 전제로 한 다양한 토론과 경쟁의 관점을 갖는다. 운동은 폴란드의 솔리다리티 및 유럽의 사회주의운동과 같은 저항운동으로부터 자기발전의 과정에서 사회운동으로 발전하는 사례가 지적되기도 한다. Asef Bayat, Revolution without Movement, Movement without Revolution: Comparing Islamic Activism in Iran and Egypt, in Rosemary H. T. O kane(ed.), Revolution Volume VI: critical concepts in political sciences(london: Routlege, 2000), pp. 277(274~308). 제1부 사회와 사회운동 25
이상의 검토를 통해서 각각의 운동사례에서 발견된 공통된 특성을 확인했다. 이와 같이 어떤 대상에 대하여 공통된 특성을 귀납적으로 추출하여 그 특성을 하나의 언어로 표현하는 작업을 우리는 개념화 라고 하고 그 노력의 산물을 개념이라고 한다. 즉, 개념화란 특정 부류의 대상들이 갖는 속성을 인간 의 의식 속에서 이성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말한다. 우리는 이상의 검토를 통해서 사회운동을 개 념화했고, 그리하여 그 개념적 특성을 1다수성, 2공유된 목적, 3연대행동, 4비제도성(변화를 위 한 집합적 도전)으로 설정하고 이에 더하여 5조직성과 지속성을 추가했다. 그리하여 여기에서 사회 운동이란 다수의 사람들이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지배권력에 도전하여 조직적으로 전개하는 연대행 동, 줄여서 권력에 도전하는 집단적 연대행동 이라고 정의한다. 권력이란 국가권력만이 아니라 정치 권력, 경제권력, 가족이나 세대집단 등의 제반영역에서 나타나는 일방적 강제력을 의미한다. 3. 혁명과 사회운동 권력에 대한 집단적 도전행동을 사회운동이라고 개념화할 경우에 그 도전행동에는 여러 가지 유형 의 집단행동이 포함된다. 근대에서 신분이나 계급해방을 위한 혁명이나 반란, 현대에 이르러 식민지 독립운동, 인종이나 지역 등 소수집단의 폭동이나 봉기, 신흥국가에서 군부집단이 자행해 온 쿠데타 등을 포함한다. 여기에서는 이들의 개념적 차별성을 비교하여 검토하고 이에 따라 사회운동의 개념체 계를 정립하려 한다. 먼저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시각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혁명과 반란에 관해 살펴본다. 근대 서구의 사회과학에서 다루는 혁명은 17세기 영국의 청교도혁명(1642-1653), 명예혁명(1688), 18세기 미국 의 독립혁명(1774-1783), 프랑스 대혁명(1789), 등이 고전적인 사례들이다. 이 혁명들은 절대적 제 왕권의 신분사회로부터 정치적 기본권 쟁취와 사회적 신분 차별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식민지 지배에 대한 독립운동의 성격을 갖고 있다. 더 근원적인 차원에서 보면, 중세의 기독교적 정치사회체제가 와 해되기 시작하면서 근대 의회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등장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19세기에는 사회주 의적 성향이 강한 2월혁명(1848), 파리콤뮨(1871) 등이 두드러진다. 20세기에 들어서는 중국의 신해 혁명(1911), 러시아 2월혁명(1917)과 10월혁명(1917), 중국혁명(1949), 쿠바혁명(1959), 니콰라과혁 명(1979-1990) 등 허다한 사례들이 있다. 한국 역사에서는 4 19혁명(1960)이 포함될 것이다. 이 각 각의 사례들 속에 새겨진 인간의 진한 사랑과 치열한 싸움의 흔적은 우리는 전율하게 만든다. 혁명은 역사의 진전에서 가장 뜨거운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 사례들을 통해서 우리는 혁명이 무엇인가를 뚫어볼 수 있다. 첫째로 혁명은 매우 과격한 폭력투 쟁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것은 지배국가에 대항하는 전쟁의 형태로부터, 국가 내에서 신분이나 계급 계층 집단 간의 유혈투쟁으로 전개되었다. 물론 드물기는 하지만 명예혁명과 같이 피흘림 없이 의회 의 결정으로 마무리되기도 했다. 또한 최근에 거론되는 평화혁명, 선거혁명 등의 개념은 폭력성을 넘 어서는 전망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지만 혁명의 일반적인 기본 특성은 폭력성이다. 26 민주장정 100년, 광주 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두 번째 개념적 특성은 발본적 또는 근본적인 변화를 수반한다. 식민종속국으로부터 자치독립국으 로의 변화, 왕권으로부터 시민권으로, 자본가로부터 노동자로의 변화 등은 변화의 발본성radical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혁명은 그 사회의 심층적 구조에 있어서 중요한 변화를 특징으로 한다. 이는 정 치권력의 성격과 그 획득 방법, 정치세력의 개편 등을 포함한다. 다시 말하면 구조와 행위주체의 전복 이다. 단순한 정부의 교체는 혁명이라고 할 수 없지만 헌법 개정이나 중요한 사회제도의 변화, 주도 세력의 교체 등은 혁명의 요소가 된다. 성차별에서 남녀평등, 종교적 폐쇄로부터의 개방, 가족법의 기 본구조 변화 등은 혁명적인 것이고 이러한 영역의 변화는 사회혁명으로 규정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이 변화는 대체로 정치적 변화를 의미한다. 위의 대다수 사례들은 혁명의 결과로서 새로 운 정치체제의 성립을 실현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 정치사회의 밑바탕이 되는 사회체제의 변화-계 급 등의 사회세력-가 병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오늘날에 과학혁명, 정보혁명, 문화혁명, 녹 색혁명 등의 비정치적 변화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진행됨을 지적해둔다. 네 번째로 혁명은 사회의 전체적 변화를 수반한다. 정치사회적 변화는 사회전체의 체제적 성격을 변 화시키게 된다. 왜냐하면 전체사회를 구성하는 각각의 영역은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유 기적으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보통선거제도는 사회에서 남녀 평등사상의 확립과 여권신 장을 수반하며 아울러 가족제도에서의 성적 역할에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유념할 점의 하나는 전체적 변화가 특정 주체의 미리 준비된 계획에 의거한 것인가 아니면 사전 계획이 없이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초기 폭발로부터 진전되는 과정에서 전체적이고 체계적인 행태로 발전된 것 인가에 대한 검토이다. 혁명의 이와 같은 특성을 사회운동과 비교해보면, 혁명의 성격을 더 선명하게 부각시킬 수 있다. 앞 에서 사회운동의 개념적 특성을 다수성, 목표의 공통성, 연대행동, 집단적 도전으로 정리했는데, 이는 위에서 말한 혁명의 특성-폭력성, 목표의 발본성, 정치성, 전체성-과 재미있는 차이를 보여주고 있 다. 전체적으로 혁명의 특성은 사회운동의 특성을 이미 포함하고 있다. 말하자면, 혁명 역시 다수인이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연대하여 일으키는 집단적 도전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혁명은 사회운동의 네 가지 특성에서 최고 수준의 형태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사회운동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집단행동의 특성도 확인된다. 목표의 공통성에 관련해 보면, 사회운동의 목표는 일상생활의 사소한 문제로부터 전체 사회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까지 광범한 분포를 보이고 있으나, 혁명은 대체로 전체 사회의 근본 구조의 차원에 관련되어 있다. 연대행동에서도 혁명은 과격한 폭력성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사회운동 의 한 극단적인 차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혁명을 여러 수준의 사회운동 가운데 최 고 형태로 규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혁명과 연관성이 높은 집단행동으로 내란(반란), 쿠데타, 폭동, 봉기, 항쟁 등의 용어가 있다. 폭력 성이나 다수의 도전행동과 같이 혁명과 공통된 특성을 가진 반란(내란)이 개념적으로 혁명과 구별되 는 점은 도전행동의 성공여부와 관련하여 규정된다. 혁명은 도전행동이 성공하여 추구한 목표를 현실 제1부 사회와 사회운동 27
적으로 실현한 경우를 의미하는 반면에, 내란이나 반란은 실패한 도전행동을 의미한다. 내란이나 반 란으로 시작된 도전행동이 정치권력과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실현하면 혁명이 되는 것이다. 단순한 권력자의 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조와 제도에 근본적인 변화를 실현시킴으로써 혁명의 완결성 이 높아진다. 따라서 내란이나 반란이 혁명으로 발전하려면, 도전세력이 기존 체제를 제압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동원력뿐만 아니라 목표의 발본성과 그 목표를 실현할 준비태세가 충실해야 한다. 그리 고 반란은 정치권력에 대한 도전행위이고 권력 장악을 통해 권력자의 변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혁명은 정치권력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수준을 포함하여 사회전반에 걸친 구조적 전체적 변화라는 특성에 차이가 있다. 즉, 목표의 발본성과 전체성에서 차이가 드러난다. 이에 비하여 쿠데타는 정권을 장악하여 권력이동을 실현하기 위한 단순한 무력적 공격행동으로서 여기에는 발본적 변혁을 위한 목 표설정과 폭넓은 연대행동의 성격은 취약한 형태이다. 다음으로 폭동, 항쟁, 봉기를 비교적으로 살펴보면, 내란이나 반란은 기존 권력을 부정하고 새로운 세력의 권력장악을 목표로 하는 도전행동이지만, 폭동이나 봉기 및 항쟁은 대안적 권력장악을 지향하 는 측면보다는 특정 문제에 대한 불만과 저항의 성격을 갖는다. 다시 말하면, 기존 지배 권력을 부정 하거나 더 나아가 새로운 대안권력이 신중하게 기획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회 전체적 변혁보다는 부분 적인 사회문제에 대하여 불만을 표현하는 저항행동이다. 물론 폭동이나 봉기로부터 혁명으로 발전하 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동학농민혁명은 지방관리들의 부패와 착취에 대한 저항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지적해둔다. 4. 집합행동과 사회운동 사회운동 개념과 밀접히 연관된 사회학적 연구를 두 갈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위에서 살 펴본 혁명 등을 포함하는 거시적, 구조적 관점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집합행동 개념을 중심으로 고 려하는 미시적 행동적 관점이다. 구조적 관점이 사회학과 역사학 영역에서 유럽을 근거지로 삼아 발 전되었다면, 행동적 관점은 사회심리학 및 심리학적 전통을 바탕으로 하여 미국에서 널리 수용되었 다. 전자가 계급이나 인종 또는 종교를 바탕으로 하여 대규모 집단의 저항행동을 주목한다면, 후자는 제한된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비교적 한정된 집단의 행동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여 기에서는 집합행동 개념이 사회운동과 갖는 연계성을 중심으로 간략히 살펴본다. 먼저 집합행동이라는 말은 다수인의 자연발생적, 비제도적인 공동행동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교통 사고나 폭력 현장에 모여든 구경꾼들, 집회에 모인 군중들, 매주 토요일 밤에 광주우체국 앞마당에서 열리는 촛불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보이는 행동이 이에 포함된다. 건물화재를 당하여 대피하는 사람 들이나 야구장에서 심판의 오심 때문에 흥분한 군중, 선거유세장에 모인 사람들의 행동도 집합행동의 한 형태이다. 이러한 사람들의 행동은 자연발생적이기 때문에 미리 계획되고 조직되어 있지 않고, 비 제도적이기 때문에 정해진 절차와 형식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즉흥적이고, 상황적인 성격이 강하다. 28 민주장정 100년, 광주 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그러나 이 사람들은 특정 상황에서 밀착된 상호작용 과정을 통해 공감의 폭을 넓히면서 급속히 행동 이 일체화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다수성과 공동행동은 사회운동의 특성과 일정한 공통 성을 갖지만, 공유된 목적과 도전성은 사전 계획에 따라 선행된 것이 아니라 집합행동 과정에서 생성 된 것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렇게 보면 집합행동은 사회운동의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지만, 사 회운동의 계기 또는 초기적 국면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폭력의 비인간적 현 장을 본 사람들이 반폭력운동을 시작하는 경우나, 주택은행의 사례와 같이 의도적으로 부도낸 금융자 본의 탐욕에 분노한 군중이 일시적으로 항의시위를 벌이는 것은 집합행동으로부터 사회운동으로 발 전하는 사례에 해당한다. 또한 집합행동은 지속적으로 전개되는 사회운동의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행동방식이라는 점에서 사회운동의 일부 또는 한 국면을 이루기도 한다. 수년 동안 지속된 영광원자력발전소 건설반 대운동의 과정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났던 군중행동이 바로 이런 사례이다. 하나의 사회운동에는 허다한 집합행동들이 포함될 수 있고,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집합행동은 사회운동의 필수적 구성 요 소이기도 하다. 집합행동 없이 사회운동이 실효성 있게 전개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사회운동은 다 수인의 집합적인 힘이 갖는 압력으로 상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더 나아가서 이를 제압한다. 집합행동에 관한 고전적인 연구자로는 프랑스 심리학자 르봉(G. Le Bon, 1841-1931)이 있다. 그 는 집합행동의 한 형태인 군중행동에 관심을 가지고 19세기 말 프랑스 사회의 무질서와 불안 상태에 관한 심리학적 설명으로서 군중론을 전개했다. 14) 당시에 프랑스는 기존의 구질서가 해체되고, 다른 한편으로 새로 발전되고 있는 자본주의 질서는 아직 정립되지 않은 불안한 상태에 처해 있었고, 그에 따라 범죄와 폭력, 부패와 착취 등의 심각한 사회문제가 번지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상황에서 그가 제 시한 군중이론의 기본 시각은 전통에 입각한 보수적, 귀족주의적 관점과 다윈의 진화론적 관점을 견 지함으로서 군중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말하자면, 군중은 진화의 수준이 낮은 열 등한 존재이어서 어린이와 여자나 미개인에 비유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군중행동의 특성은 감정의 충동성, 흥분성, 유동성, 피암시성, 과장성, 비관용성 등 비합리적, 병리적, 문명파괴적 성향이 강조 되었다. 그러나 그의 이와 같은 군중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에 과학적 분석을 토대로 한 설명이라기 보다는 보수적 편견이 작용한 서술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와 달리 20세기 중반 미국의 사회학자와 심리학자들은 집합행동의 개념적 특성으로서 자연발생 성과 비제도성을 강조하면서도 르봉과 다른 관점에서 접근했다. 집합행동에 전제된 부정적 인식으로 부터 벗어나 중립적 관점에 입각해 있음을 다른 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즉, 집합행동이 비합리적이고 병리적이라는 편견을 극복하고 더 객관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 이들은 감정이나 충동에 휩싸인 즉흥 성과 상황의존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와 아울러 일정한 판단이나 신념에 기초한 측면도 있는 행 14) Le Bon, G., The Mind of Crowd (Unwin, 1987). 임희섭, 집합행동과 사회운동의 이론 (고려대학교 출판부, 1999), 6쪽에서 재인용. 제1부 사회와 사회운동 29
동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15) 더 나아가서 이들은 집합행동이 새로운 행동방식과 규범을 창출해내는 효 과도 있음을 주장하기도 했다. 16) 예를 들면, 잔혹한 경찰의 폭력진압은 대학생의 무장을 초래했고, 반 면에 경찰의 온건한 대응은 대학생 측과 극단적인 충돌을 피하기 위해 비공식 소통방식을 발전시키기 도 했다. 사회운동과 집합행동의 유관성을 종합해서 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첫째로, 앞에서 제시한 혁명 이 사회운동의 고차원적 측면이라면 집합행동은 사회운동의 밑바탕이 되는 기본 요소의 하나라고 정 리할 수 있다. 혁명의 과정에서 여러 형태의 집합행동이 일어날 수 있으며, 앞에서 말한 폭동 및 봉기 도 사실은 집합행동의 한 사례이다. 두 번째는, 집합행동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넘어서 정상적 행위로 인식하여 객관적 과학적 분석의 가능성을 확보함으로써 사회운동 연구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성과를 이루었다. 세 번째로 집합행동적 접근은 역사적 관점을 자체의 이론 체계 내에 내장하지 못한 한계가 있음도 지적해둔다. 이는 집합행동 설명의 논리가 즉흥적 현장에 근거하여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사 회구조와 문화적 성격과 관련된 요인을 적절히 수용하여 발전시키지 못한 데서 연유하는 것이다. - 운동조직, 운동산업, 운동권 5. 사회운동의 이론 위의 사회운동 개념은 사회운동 이론의 기초 재료가 된다. 개념은 이론구성의 기본 요소이기 때문이 다. 모든 이론은 개념을 기본 재료로 구성된 명제의 체계이다. 그것은 문장의 형태를 갖는다. 다시 말 하면 문장이 갖는 의미를 명제라 하고, 아직 검증되지 않은 명제를 가설이라 한다. 가설이 검증되면 그 자체가 하나의 이론 또는 이론적 법칙이 된다. 이론이란 활용의 측면에서는 현상에 대한 설명의 도구이다. 따라서 사회운동이론은 어떤 대상이나 문제를 설명하는 도구이다. 여기에서 주의해야 사실은 하나의 대상을 설명하는 도구는 여러 가지 형 태가 있다는 점이다. 무게를 측정하는 저울은 과거의 막대저울에서부터 고도의 기술을 적용한 전자저 울 등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였으나 막대저울과 전자저울은 각각의 도구로서 특성과 장단점이 있다. 그 결과에 대한 평가에 의해 더 좋은 도구와 덜 좋은 도구로 구별되기도 한다. 좋은 도구는 우선 측정 의 정확성과 적용범위가 넓어야 할 것이다. 측정도구의 이와 같은 다양한 변화와 발전은 사회운동이 론에서 쉽게 확인된다. 그러나 먼저 지적해 둘 사실은 사회학이론은 수학이나 경제학 이론에서 발전된 이론만큼 측정이 정 밀하고 활용범위가 넓은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연구대상 자체의 특성과 관련되 기도 하다. 예를 들면, 사회학에서 노사 간의 협동이나 갈등의 측정을 백두산과 한라산의 거리를 측정 15) Smelser, N., The Theory of Collective Behavior(Routledge & Kegan paul, 1976). (김영정 역, 집합행동론, 서울: 진흥문화사, 1984: 141-154.) 16) Tuner, R. and L. Killian. Collective Behavior(Englewood Cliffs: Prentice Hall, 1987). 30 민주장정 100년, 광주 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과 비교해볼 만하다. 더 나아가 노사 간의 갈등이 한국에서 의미와 중국에서 의미가 다를 수 있는 측 면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는 또한 학문 발전의 역사적 차이에서도 연유하기도 한다. 다음에서는 기 존 사회운동이론에 관한 비판적 검토를 통해서 이 연구와의 유관성과 활용가능성을 가늠해본다. 사회운동이론들 중에서 고전적인 사례는 역시 19세기에 제기된 마르크스의 혁명이론이다. 그의 이 론은 철학으로부터 제 사회과학에 이르기까지 폭 넓은 영역을 포괄하는 전체성을 갖기 때문에 사회이 론으로 한정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운동이론의 중요한 일면을 포함하고 있다. 그가 발전시킨 사회운동이론의 핵심은 노동계급혁명론, 더 정확히 말하면 프로레타리아혁명론이다. 이는 사회운동으로서 혁명의 발생원인과 전개과정 및 그 결과에 대한 일관된 체계를 통해서 노동계급 혁명 의 불가피성과 최종적 승리를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혁명의 불가피성과 필연적 승리라는 부분은 객관적 현상에 대한 설명이라기보다는 그의 이념적 신념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과학의 영역을 벗 어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그러나 계급형성의 구조적 토대와 진전과정, 계급갈등 발생의 기 제와 갈등양상의 변화 등은 사회운동이론으로서 선구적 통찰을 보여준 것이 사실이다. 계급발생에 있 어서 생산수단 소유여부의 근원적 중요성, 잉여가치 및 집중과 집적에 따른 계급관계의 진전, 그에 따 른 모순과 갈등의 심화, 구조적 차원의 계급과 행위주체로서 계급의 형성, 계급과 국가의 관계, 혁명 의 과정과 그 결과에 대한 그의 논리는 전형적으로 사회운동이론의 성격을 갖는다. 다만 그의 이론이 사회운동의 여러 형태 중에서 가장 극단적인 유형, 즉 폭력적 계급혁명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지나치 게 단순화된 명제의 형태로 제시되고 있는 점은 비판받아 당연하다. 이러한 비판과 수정을 통해서 마 르크스의 이론은 20세기에서도 지배적인 파라다임의 하나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그 의 운동론이 갖는 한계의 하나는 여러 형태의 사회운동들 중에서 계급운동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은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인종, 민족, 지역, 성 등이 오늘날에도 사회운동의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기 때문 이다. 다만 그 시기에는 여타의 사회문제보다도 노동문제, 즉 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빈곤이 상대적으 로 첨예하게 나타났기 때문에 이에 따라 노동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급진적 혁명의 풍조가 더 지배적 이었다. 그러나 이 혁명론은 그 후 레닌을 비롯하여 아시아의 모택동, 중남미의 카스트로와 게바라, 차베스 와 룰라, 아랍의 나세르 등 전 세계의 혁명가들에 의해서 실천적으로 계승 발전되었다. 혁명가들은 이 들의 활동을 뒷받침하는 더 정교하고 세련된 운동이론으로 무장하였음을 추정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 밖에 안토니오 그람시, 프랑크푸르트 연구소의 허버트 마르쿠제 등을 위시한 다수의 연구자들은 마르 크스의 논리를 계승하여 더 진전된 운동이론으로 발전시켰다. 이를 테면, 프랑크푸르타학파의 마르 쿠제는 신좌파이론으로, 하버마스는 식민화된 생활세계론으로, 그람시주의자들은 상부구조의 상대적 자율성과 시민사회론으로 20세기 중반 이후의 급진적 운동이론을 선도해 왔다. 이 시기에 역사사회학적 시각에서 사회변혁을 설명한 사례도 본 연구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하다. 역사사회학적 시각이라 함은 사회현상의 역사적 특수성과 아울러 사회학적 일반화를 동시에 지향 제1부 사회와 사회운동 31
하는 입장이다. 배링턴 무어의 <민주주의와 독재의 기원, 1966>, 에릭 울프의 <20세기 농민혁명들, 1969>, 테다 스카치폴의 <국가와 사회혁명, 1979> 등이 대표적인 연구 성과이다. 우선 무어의 문제 의식에 주목한다. 그가 제기한 질문은 전통사회로부터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역사적 대 변동을 어떻 게 이해할 것인가? 이다. 이에 대하여 그는 세 가지 이행경로를 규명했다. 그 하나는 부르주아가 토지 귀족과 동맹하여 왕정을 무너뜨리고 의회민주주의로 발전한 경로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이 여기 에 속한다. 두 번째는 토지귀족이 왕정 및 관료와 결탁하여 강력한 파시스트 독재체제로 이행한 경로 로서, 여기에는 독일과 일본이 해당된다. 세 번째는 농민대중이 변혁의 주체가 되어 왕정과 귀족세력 을 무너뜨린 러시아 등 공산주의의 길이다. 그가 계급개념을 중시한다는 점은 마르크스와 유사하지만 결정론을 거부하고 역사적 상황적 조건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역사학적이다. 다음으로, 울프는 중국, 러시아, 멕시코, 베트남, 쿠바 등 여러 국가의 농민봉기를 조사하여, 농민봉기는 자본주의 시장에 편 입되는 과정에서 불만이 강한 농민과 주변적 지식인 세력 간의 연합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스카치폴은 프랑스혁명, 러시아혁명, 중국혁명을 비교분석한 결과, 사회혁명을 심리적 요인 이나 전위당 등의 사회구조적 원인으로 설명하는 접근을 비판하고, 그것들이 하나의 매개변인으로 작 용하지만 혁명은 결국 정치적 위기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혁명은 사회구조의 측면과 정치구조상의 요인이 상호적으로 고려됨을 강조했다. 한 가지를 추가한다면, 앨런 트림버거의 <위로 부터의 혁명, 1978>이다. 그는 일본, 터기, 이집트, 페루의 사례연구를 통해서 국가관료제의 엘리트 층이 취약해진 기존 정권을 무너뜨리고 탈법적으로 정권을 장악하는 형태를 보여주었다. 대체로 관료 와 군부엘리트가 주도하고 대중의 참여가 배제되며 권위주의적 정치체제가 형성되는 경향이 있음이 강조되었다. 위에서 설명한 이론과 시각이 다른 사회운동 이론이 20세기 중반에 미국에서 널리 퍼졌다. 이른 바, 기능주의적, 사회심리학적 이론들이다. 기능주의 사회운동이론이 답하고자 하는 기본적인 질문은 어떠한 사회구조적, 기능적 상태에서 운동은 발생하는가? 이다. 이 시각에서 혁명의 이름으로 전개 된 근대화론은 찰머스 존슨Johnson Chalmers과 사무엘 헌팅턴Huntington Samuel에 의해 주장되 었다. 존슨은 <혁명의 미래, 1966>에서 전근대 사회로부터 근대사회로의 혁명적 변화는 사회 각 부분 간의 불균형에서 촉발되기 시작한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불균형은 전통적 가치-규범과 새로운 근대 의 과학기술 간의 불균형, 근대적 경제체제와 전통적 정치체제 간의 불균형 등으로 표현되며, 이 불균 형을 정치엘리트가 적절히 통제할 수 없을 때 권력디플레(통제력 상실) 현상이 발생하고 이것이 진전 되면 새로운 사회세력에 의해 정치제도의 전면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또한 헌팅턴(1968)은 사 회경제적 변동으로 인해 형성된 새로운 엘리트 세력이 정치참여의 기회를 갖지 못할 때, 이들이 사회 체제의 불균형을 계기로 해서 정치권력을 장악한다. 서구사회가 급격한 왕정체제를 붕괴시키면서 다 수 시민이 참여하는 민주주의 체제가 확립되었다면, 후발의 근대화 국가들은 군사쿠데타나 민중해방 운동을 통해서 기존 체제를 무너뜨리고 군부독재체제나 사회주의 체제를 성립시켰고 이에 토대하여 32 민주장정 100년, 광주 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토지제도 등을 포함하는 사회경제개혁이 시도되었다. 17) 이 시기에 기능주의와는 다른 시각에서 사회운동의 설명을 시도한 흐름이 사회심리학적 이론인데, 여기에서 제기하는 기본적 질문은 누가, 어떤 심리상태에서 사회운동에 참여하는가? 이다. 그 선구 적인 논의는 데이비스가 혁명의 이론화 작업으로 발표한 논문으로서 흔히 J-곡선이론으로 알려져 있 다. 그의 논지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혁명은 사회경제적 조건이 최악의 상황에서 일어나지 않고, 그로부터 개선되고 있는 국면에서 일어난다는 점이다. 개선되는 상황에서 개인은 발전의 희망 을 가지고 현실에 적응해나가는데, 그가 성취한 현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경우에 불만이 발생한다. 누구에게나 불만이 없을 수는 없지만, 상상했던 기대와 실제 성과에서 격차가 클 경우에, 그래서 현실 과 기대 간의 격차가 참을 수 없을 때 혁명이 일어난다는 것이 그의 논지이다. 18) 그의 이러한 논리는 불만이 고조된 심리상태를 더 정교화하는 방향으로 진전되었는데, 그 이론적 산 물이 상대적 박탈 이론이다. 이 흐름에서는 상대적 박탈이 발생하는 상태와 그 유형이 더 정교하게 구체화되고 있다. 이를 테면, 객관적 현실의 개선에 따라 개인의 기대가 높아지고 있으나 그의 성취능 력이 객관적으로 하강할 때, 비록 그의 성취가 상승했다 하더라도 준거집단에 비해 떨어질 때, 객관적 조건 자체가 악화되어 개인 생활상태도 악화될 때, 교육받은 수준과 실제 소득 간에 상응성이 낮을 때 나타난다. 이는 결국 개인의 심리상태에서 경험하게 되는 인지부조화, 즉 내면적 부조화와 그로 인한 갈등상태를 감소하거나 해소하기 위한, 그리하여 현실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집합행동을 사회운동 으로 인식한다. 19) 이러한 논의는 그 후 개인의 차원을 넘어 사회체계에서 나타나는 집합적 기대와 현 실 간의 차이로서 체계불만으로 개념화되기도 하였다. 20) 주로 미국에서 발전된 사회심리학적 논의의 기본 성격은 우선 사회적으로나 심리세계에서의 균형모 델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능주의적 관점에 토대하고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러한 논리 의 배후에는 균형으로부터, 다수의 유형으로부터, 평균적인 것으로부터 어긋나는 현상을 하나의 예외 적, 더 나아가서는 병리적인 것으로 보는 현실인식을 떨쳐버릴 수 없다. 팍스 아메리카의 논리전개와 유사하다. 그리고 이 관점에서는 절대적 박탈현실을 외면하고 상대적 박탈로 관심을 집중함으로써 인 류사회에 만연된 절대빈곤의 엄중함을 적절히 고려하지 못하는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또한 이는 상 반된 관점에 입각하여, 절대적 박탈의 현실에서 발생하는 아시아 아프리카 현장의 더 치열한 저항과 도전의 현실에 대한 관심을 강조해 둘 필요가 있다. 희망을 가진 사람보다 절망하고 있는 사람에게 그 희망을 줄 수 있도록 인간의 눈을 돌려야 함이다. 17) 임희섭(1999)에서 재인용. 18) Davies, J., 1962, Toward a Theory of Revolution", ASR, Vol. 27, 5-19. (김 진 균,정 근 식 편 역, 1978, J곡 선 혁명이론, 혁명의 사회이론, 서울: 한길사, 105-131). 19) Geschwender, J. A. 1964, "Social Structure and Negro Revolt: An Examination of Some Hypotheses", Social Forces, 43: Pp 248-256; Gurr, T. R. 1970, Why Men Revel?,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 Feierabend, I. & N. R. Feierabend, 1989, "Social Change and Political Violence: Cross National Patterns", in H. D. Graham and T. R. Gurr, eds., Violence in America: Historical and Comparative Perspective, Washington D. C. 제1부 사회와 사회운동 33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의 하나는 이 이론들은 사회운동 발생의 원인이나 누가 참여하는가에 대한 설명 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누가, 어떤 심리상태를 가진 사람들이 운동에 참여하는 가? 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 회운동이 진전되는 과정과 그 결과에 대한 설명은 보여주는 게 별로 없다는 한계를 피할 수 없다. 바 로 이러한 문제인식으로부터 발전된 이론이 바로 자원동원론resource mobilization theory이다. 사회심리학적 연구가 운동의 발생원인과 참여동기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에, 자원동원론은 운동의 성장, 쇠퇴 및 변동에 대한 역동적 과정과 그들이 택하는 운동방식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사회 구성원의 현실에 대한 불만이나 박탈감이 기계적으로 사회운동을 출현시키는 것이 아니라 운동 에 필요한 조직과 자원의 동원이 가능할 때 형성되고 발전된다는 입장이다. 여기에서 자원이라 함은 운동의 목표와 인원 및 재원과 시설 등이 포함된다. 이 이론에서는 사회운동이 비합리적이고 병리적 인 것이 아니라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사회현상이라고 보는 관점에서 두드러진 차이가 있다. 노동운동 으로 대표되는 고전적 사회운동이 중앙집권적 폐쇄적 조직모형과 체제변혁의 전체적 목표를 특징으 로 한다면, 자원동원론에서 주목하는 사회운동은 분권적 비공식적 조직모형을 중심으로 하고 전문화 되고 한정적인 목표와 조직의 개방성과 유연성이 특징적이다. 이는 사회해체의 산물이 아니라 운동조 직의 산물이다. 21) 자원동원론은 내부적으로 차이가 있는 두 가지 방향으로 발전되었다. 그 하나는 경제사회적 관점이 고 다른 하나는 정치사회적 관점이다. 전자는 사회운동을 보상의 분배체계에 변화를 지향하는 신념 과 행동의 집합으로 규정하고, 이를 비용과 보상이라는 경제적 요인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한다. 따라 서 이는 이용 가능한 인적 물적 자원의 양과 그것을 동원하는 기제를 분석하여, 사회운동을 합리성과 효율성에 준거하여 이해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22) 이와는 달리 정치사회학적 관점은 틸리의 동원모형 과 맥아담의 정치과정론에 의해 주도되었다. 동원모델은 운동세력이 정치적 영향력을 획득하고 강화 하기 위해 가용한 자원을 동원하여 기득권 세력에 도전하는 형태로 전개된다. 분석의 핵심은 도전세 력의 자원동원과 압력행사의 형태, 그리고 기득권세력이 자체의 자원을 동원하여 이에 대응하는 형태 로 귀결된다(Tilly, 1978). 23) 틸리의 동원모델에 뒤 이어 더 체계적인 분석을 시도한 맥아담의 정치과 정론 24) 은 기존 이론이 정치권력 요인을 적절히 고려하지 못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기존 정치권력을 옹 호하는 보수적 입장에 서 있음을 비판하면서 정치구조에 대하여 사회운동세력이 도전하는 과정을 분 석한다. 이 모형은 정치적 기회구조와 토착사회의 영향, 그리고 운동세력의 의식전환과 운동의 정당 성 인식을 포함하는 복합적 요인을 고려하고 있다. 이를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21) Government Printing Office, pp. 497-535. McCarthy, John, D. & M. N. Zald, 1977, "Resource Mobilization and Social Movements, A Partial Theory", A. J. S., Vol. 82, No. 6(May): pp. 1212-1241. 22) Jenkins, J. C., 1983, "Resource Mobilization Theory and The Study of Social Movements", Annual Review of Sociology, Vol. 9: pp. 527-53. 23) Tilly, C. From Mobilization to Revolution( Mass.: Addison-Wessley, 1978). 24) McAdam, D., 1982. Political Process and the Development of Black Insurgency 1930-1970. Chicago: Univercity of Chicago Press, 36-64. 34 민주장정 100년, 광주 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맥아담의 정치과정 모형> (McAdam, D., 1982, p.51 참조) 자원동원론의 이와 같은 다양한 발전은 그 자체의 현실적합성과 활용가능성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현재도 이 이론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형은 이 연구와 관련해 볼 때 다 음 요인들을 더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 하나는 지역사회운동의 설명에 있어서 국가권력 과 지역사회 간의 관계에 대한 검토이다. 구미의 이론에서는 제도화된 정치체제, 구체적으로는 정치 적 기회구조가 국가사회 전체에 균등하게 작동하는 것으로 전제될 수 있으나, 한국의 현실 정치과정 에서는 지역 간 차별적 효과가 크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는 제도정치의 배후에 존재하여 작동하는 국가권력의 성격과도 관련있다. 두 번째는 역사적 요인을 적절히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 회운동과 관련된 과거의 역사적 전통이 현재의 행위자들에게 작용하는 영향력을 주목함으로써 이해 의 영역을 확장하려는 시도이다. 이와 같은 요인들은 본 연구의 이론구성에서 더 구체적으로 검토될 것이다. 자원동원론이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된 사회심리학적 운동론에 대한 비판적 대안의 형태로 발전되었 다면, 이 시기에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구에서는 마르크스주의적 노동계급 혁명론에 대한 대안의 하 나로서 신사회운동론New Social Movement이 발전되었다. 이 이론을 대두시킨 현실적 배경은 기존 의 노동운동과는 다른 사회운동이 광범하게 발전된 현실과 관련된다. 이를 테면 1960년대 이후에 널 리 번졌던 학생운동, 여성운동, 환경운동, 반핵-평화운동, 동성연대자운동, 다양한 소수자운동 등에 서 이를 확인한다. 이 운동은 기존의 노동운동과는 달리 다양한 주변화된 집단들이 주도하고 있으며, 생산의 영역보다 는 소비와 문화의 영역에 관한 문제를 취급한다. 또한 이 운동은 혁명운동과 같이 국가 전체의 변혁이 나 권력 장악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생활에서의 국가에 의해 침식당하고 있는 자율성과 자기정 체성을 지켜내고 일상생활에서 자치영역을 확보하는 것을 추구한다. 이러한 운동이 발전하게 된 구조 적 성격은 자본주의와 과학기술의 급격한 진전에 따라 강화된 국가의 통제력 확장, 강화된 관료권력, 기술관료적 합리성의 증대 등으로 요약된다. 운동방식은 노동운동이 과거에 보여주었던 공격성과 폭 제1부 사회와 사회운동 35
력성과는 달리, 방어적, 거부적, 비타협적, 자기한정적 급진주의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신사회운동론이 대체로 자본주의의 진전에 따른 구조적 문제에 주목하고 있는 점은 일반적이나 여 기에도 두 가지 흐름이 공존하고 있다. 그 하나는 정치지향적 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문화지향적 운동 이다. 정치지향적 운동은 후기자본주의사회에 대한 구조적 모순을 거시적 수준에서 분석하고, 이를 극복하는 주도세력으로 신중간제계층 집단을 지목하지만 여기에 노동계급까지도 포함함으로써 다소 진보적이고 급진적인 전망을 지향한다. 앞에서 말한 마르쿠제, 하버마스 등의 신좌파운동가들이 이에 포함된다. 이와 달리 문화운동적 경향은 국가의 정보통제나 상징조작 등 미시적 시민사회에서 제기되 는 문제들에 관심을 집중하면서 방어적 저항을 통해 일상의 민주주의와 자아정체성 및 자율성을 보호 하려는 방어적 운동의 성격을 갖는다. 멜루치, 카스텔 등을 포함하는 포스트맑시즘으로 대표된다. 25) 한국의 시민운동에서는 새로운 사회운동의 성격이 강하며, 여기에서도 급진적 민중운동과 개량적 시 민운동의 분화현실을 보게 된다. 위에서 말한 자원동원론과 신사회운동론이 광범하게 확산되는 과정에서 이에 대한 비판적 관점이 1980년대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대두되었다. 이 두 이론이 사회심리학적 접근에 대한 비판을 배경으 로 하여 대두되었다면, 이와 유사하게 구성주의 이론 역시 이 두 이론에 대한 비판적 배경을 바탕으로 발전하였다. 두 이론은 사회운동을 설명함에 있어서 사회심리학적 관점이 중시했던 행위 및 행위자의 요인을 주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적 검토를 통해서 구성주의 이론은 기존이론들이 제기 한 요소들을 선택적으로 종합하여 더 포괄적인 체계로 발전되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회심리학적 요소로서 행위자의 사회적 불만과 저항의식을 포함하는 행위자 요인, 자원동원론에서 초점을 맞춘 자 원동원과 운동조직의 형성 발전에 관한 요인, 그리고 신사회운동론에서 제기된 국가권력의 과대성장 과 구조적 모순을 포함하는 거시적 사회구조적 요인 등을 종합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사회운동의 발생 근거와 운동 초기상태, 운동의 조직과 발전과정, 운동의 목표와 전략까지도 고려할 수 있게 하였다는 점에서 가장 광범하고 적용가능성이 넓은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이론에서 발전시킨 중요한 개념은 의미구성 주체로서의 행위자에 대한 재규정, 사회운동에의 참 여를 정당화할 수 있는 의미해석틀Frame, 참여자가 소속감과 행동의지를 공유하고 있는 집합적 정체 성Collective Identity, 운동조직들의 공통공간인 복합조직의 장Multi-organizational Field, 운동문 화Movement culture 등이다. 최근에 널리 수용되는 이론으로서 더 체계적이고 정밀한 분석도구로 발 전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개념적 고안물이 시도되고 있음을 이 개념들에서 본다. 이상에서 현재 사회학에서 전개되고 있는 운동이론의 전체적 윤곽을 살펴보았다. 이제 이를 토대로 하여 이 연구의 분석과 해석을 위한 도구로서 이론구성을 시도하고, 기존 이론에 대한 수정과 보완을 통하여 광주 전남지역의 사회운동을 해석하려 한다. 25) 정수복, 1968년 프랑스 5월운동의 전개와 새로운 사회운동의 탄생, 새로운 사회운동과 참여민주주의 (서울: 서울문학과 지성사, 1993); Melucci, A., 새로운 사회운동에 대한 이론적 접근 (앞의 책); Scott, Alen, 새로운 사회운동의 이데올로기와 조직(앞의책). 36 민주장정 100년, 광주 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제3장 국가와 지역사회운동 1. 국가란 무엇인가? 사회학에서는 국가를 사회의 한 형태로 본다. 인간생활에서 최초에는 소규모 집단으로부터 점차로 규모가 확장되고 또 내부구성이 복잡하게 분화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사회는 여러 가지 형태로 발전 한다. 이를 테면, 원시공동체, 가족집단, 씨족사회, 부족사회, 지역사회, 국가사회, 국제사회 등이 그 사례이다. 집단의 규모가 크고 내부 구성(지위-역할)이 체계적으로 조직된 상태를 사회라고 할 수 있 다. 이렇게 볼 때, 인간 집단생활의 위와 같은 발전 양상 가운데 국가는 그 규모나 내적 구성 및 잠재력 에 있어서 가장 완결성이 높은 수준에 이른 형태이다. 완결성이 높다는 말은 독자적 자기 존립성, 즉 외부에 의존함이 없이 스스로 존속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외부부터의 방어체제, 자립적 생산 체제, 지속적 전승체제 등을 포함하여 전체사회가 자체적으로 유지 존속하는 조건의 충족 정도를 말 한다. 물론 완결성은 정도의 문제이겠지만, 전체 구성원에 대한 통제력도 그만큼 잘 정비되어 있다. 달리 말하면, 사회(구성체)를 통일시키는 응집인자이면서 그 사회의 다양한 갈등과 모순이 응축되고 조절되는 곳이기도 하다. 26) 오늘의 인간사회에서 국가는 다른 형태의 사회를 강제하고 압도하는 힘, 즉 권력을 행사한다. 거주지를 옮기는 것뿐만 아니라 손가락의 지문이나 결혼한 사실까지 의무적으 로, 다시 말하면 강제로 신고하게 만드는 힘의 결정체, 그 실체가 바로 국가이다. 이는 한 사회 내의 인간과 사건과 사물에 대하여 완전하고도 독점적인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대외적으로 독립성과 자율성이 확보된 상태를 말한다. 국가가 강제력의 결정체라고 할 때, 국가형성에 관한 논리적 기반은 두 가지로 구분된다. 그 하나는 그 강제력, 즉 국가권력의 형성 근거가 구성원 전체의 보편적인 뜻을 반영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예 를 들면, 16-17세기 홉스나 룻소를 위시한 사회계약론자들이 국가의 형성을 구성원의 합의적 계약에 의해 설명하는 것이나, 19세기 헤겔이 국가를 공동체의 보편이익을 실현하는 이상적 형태로 언명하 는 것, 그리고 막스 베버나 현대 기능주의 이론적 가정도 이런 논리와 상응하는 것이다. 이른 바 합의 론이다. 이와 달리, 두 번째는 국가권력의 성립이 전체적 합의나 보편성에 근거한다고 보지 않고 강한 자가 갖는 힘의 실현으로 본다. 그 세력의 구체적인 형태는 역사적으로 다양하다. 맑스주의 시각에서 보면, 고대노예제 사회 단계에서는 귀족계급이, 봉건사회에서는 지주계급이,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자 본가계급이 다른 사회계급 즉, 적대계급을 지배한다. 물론, 이러한 강제력은 계급론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고 그 밖에 인종집단이나 민족 또는 지역 세력이 될 수도 있다. 오늘날에도 독자적인 국가건설을 위해 싸우고 있는 바스크족, 쿠르드족, 타미르족 등 다수의 소수민족들이 전형적인 예이다. 전자가 합 의모형이라 한다면, 후자는 강제모형이라 할 것이다. 26) 니코스 풀란차스(홍순권 조형제 공역), 정치권력과 사회계급 (도서출판 풀빛, 1986), 52, 58쪽. 제1부 사회와 사회운동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