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 <6월호> 월간서신원 제 6호(vol.1-6) 발행인: 권호덕총장 편집인: 장석조교수 발행소: 서울성경신 학 대학원대학교 하나의 몸인, 우주적 교회 권호덕 총장(Dr.theol.) -건강한 유기체, 병든 유기체 몸이 건강하다는 것은 그 사람의 몸의 모든 지체들이 각기 자기 기능을 온전히 수행하여 상호간에 도움을 준다 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유기체의 특성이다. 반면 에 건강하지 못한 몸은 각 지체들이 자기 기능을 다하지 못하여 다른 지체들에 대해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한의에서 침을 놓으면서 기가 막힌 기를 뚫는다고 하는 데, 병든 몸의 지체들 간에 교통이 없어서 유기체 전체가 고장 난 것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공동체 성경은 아담과 그의 후손들로 이루어진 아담 가족 공 동체가 성령으로 서로 교통하며 돕는 건강한 공동체를 이 루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가르친다. 즉 이 가족공동체 의 지체인 모든 인간들이 인격적으로, 생리적으로 하나 됨을 실현하는 공동체를 이루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고 락을 함께 나누는 것을 추구한다. 성경은 모든 지체는 다 른 성도의 지체라고 표현한다. 즉 우리 각자는 다른 지체 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이다. 세상의 모든 인간들이 다른 사람의 필요를 위해 내가 봉사하고 희생하 는 공동체를 생각해 보라. 이 사랑의 공동체에는 전쟁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아담의 범죄와 더불어 타락하자 그 마음속에 탐욕이 생김과 동시에 인류는 상호간에 돕고 봉사하기는 커녕 시기 질투하며 증오하고 갈등하며 피비린내 나는 전 쟁의 역사를 이루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가리켜 병들고 고장 난 공동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인류 사회가 불행해 진 것은 공동체가 병들고 고장 났기 때문이다. 이 상태로 는 인류 공동체가 결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는커녕 자멸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다른 한 공동체 를 원하신 것이다. 즉 하나님은 이런 병든 공동체를 대신 할 새로운 공동체를 원하셔서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그 모든 구성원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성령을 보 내신 것이다. 이 성령을 통해 모든 지체들이 서로 연락하 고 소통하는 우주적 유기체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아직도 불완전한 공동체 그런데 질문이 생긴다.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 공동체는 온전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한편으 로는 지금 지상교회 안에는 참된 신자와 가라지와 같은 외식자( 外 飾 者 ) 교인들도이 섞여 있기 때문에 그렇고, 다 른 한편으로는 참된 신자들 역시 아직 그 속에 죄성이 남 아 있어 온전하지 못하여 상호간에 온전한 사랑을 나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상의 모든 교파와 교단들은 하나 됨을 향 하여 가고 있는 것이다. 인종을 초월하여, 민족을 초월하 여, 교파를 초월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을 신앙하는 모든 성도들은 이 세상 마지막에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지상 의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모든 지체들이 서로 통 하는 하나의 우주적 교회 공동체를 이룩할 것이다. 그때 까지 지상의 여러 가지 교단들이나 교파들은 온전한 하나 의 우주적 교회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이때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시는 사 랑의 교통이다. -교회정치의 필요성 유감스럽게도 우리 주위에는 병들고 고장 나서 유기 적인 기능을 못하는 교회 공동체들이 많이 있다. 고린도 교회는 여러 파벌로 나누어져 긴장과계를 이루어 하나가 되지 못하자 바울은 직분론과 은사론을 언급하여 교회를 치료하려고 했다. 이것은 고린도 교회가 영적으로 어렸다 는 것을 보여준다. 이 문제를 위해 하나님은 교회에 노회 와 총회와 같은 치리기관을 두시고 교회의 하나 됨을 추 구하게 하셨다. 교회 정치가란 교회 전체가 진리의 말씀 에 따라 물 흐르듯이 잘 움직일 수 있도록 물꼬를 트는 일에 봉사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영적인 혈관이 막히면 뚫어주고, 소화계나 신경계가 막히면 뚫어주는 역할을 하 는 것이 교회정치인 것이다. 문제는 교회 지도자들이 어 떤 마음으로 교회를 다스리는가 하는 것이다. 더러는 교 회정치가 세속화 되어서 부패한 교회정치가들이 자기 집 단의 이익을 추구하여 교회의 유기적인 교통을 막아버리 고, 더러는 진리에 대한 무관심으로 각자 자기가 옳은 대 로 행하기 때문에 교회의 하나 됨은 사라진다. 우리 교단 전체가 온전한 유기체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다. 정치가들은 교단의 막힌 부분을 뚫어주어 시원한 흐름이 있는 교단이 된다면 많은 발전이 있고 유기체인 우주적 교회의 한 부분이 될 것이다.
- 2 - <교계소식> 광복 70년 평화통일 위해 기도의 힘 모은다 한국교회평화통일기도회 내달 9일 서울광장 개최 확정 교단 교파 초월 연합행사 구 및 보수와 진보, 기독교 통일운동 및 선교 관련 단 체 등이 모두 참여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기도회에서는 한국교회의 통일 비전을 담은 선언문도 채택한다. 선언문에는 분열을 거듭하며 세속화된 한국 교회의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와 한반도 통일을 위한 한국교회의 다짐 등을 담을 계획이다. 이를 위해 가칭 선언문 준비위원회 를 구성하고, 각 교단에서 위원들을 파송 받아 문안 조율작업을 하기로 했다. 광복 70년 평화통일 위해 기도의 힘 모은다 기사의 사진 한국교회평화통일기도회 준비위원회 우순태 사무총장 이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삼정호텔에서 다음 달 9일 열리는 광복70년 한국교회 평화통일 기도회 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다음달 9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예수그리스도 민족의 희망, 분단을 넘어 평화통일의 새날을 주소서 를 주제로 광복70년 한국교회 평화통일 기도회 가 열린 다. 한국교회평화통일기도회 준비위원회가 주최하는 기도 회는 교단 교파를 초월해 추진된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통합 백석, 한국기독교장로회, 기독교대한성결교 회, 기독교대한감리회, 기독교한국침례회, 기독교대한하 나님의성회 등 8개 교단장들은 지난 6일 모임을 갖고, 기도회 준비위원회에 구성에 합의했다. 준비위 우순태 사무총장은 이번 기도회는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과 1974년 엑스플로74, 1984년 한국기 독교100주년선교대회, 2007년 한국교회대부흥100주년 기념대회, 2010년 한국교회8 15대성회 등의 연합정신 을 계승한다 면서 한국교회 및 우리 민족 모든 구성원 들과 한반도 평화통일에 대한 비전, 감동, 결단을 나누 는 자리가 될 것 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평화통일기도회는 서울은 물론 부산 인천 대구 대전 등 160여 곳의 국내 주요도시와 미국 뉴욕과 시 카고, 러시아 모스크바와 독일 베를린 등 90여 곳의 해 외 도시에서 동시에 개최할 계획 이라며 이를 위해 현 지 교회들과 협력 방안을 논의 중 이라고 밝혔다. 준비위는 이번 기도회에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한국교 회연합 한국장로교총연합회 등 주요 연합기관과 산하기 우 사무총장은 한국교회가 광복 70주년인 올해를 제2의 8 15 광복을 맞이하는 전환기로 삼아 나라와 민 족의 미래를 향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고 말했다. 준비위는 기도회에 이어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순복 음교회 대성전에서 평화통일특별새벽기도회도 개최한 다. 한국교회평화통일기도회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조직 됐으며 지난 1월 1일 경기도 파주 임진각에서 2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첫 연합기도회를, 3월 1일에는 서 울 강동구 명성교회(김삼환 목사)에서 1만여 명이 모여 통일기도회를 개최했다.(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동성애자 옹호하는 국가인권위 권한 강화 안돼 한국교회언론회(대표 유만석 목사)는 국가인권위원회에 대한 관련 법규를 개정해 권한을 대폭 강화시키려는 일부 국회의원들의 시도에 문제점이 있다는 논평을 12일 발표 했다. 교회언론회는 최근 국가인권위와 관련된 일부 개정 법 률안이 국회 소관 상임위에 무더기로 올라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면서 주요 내용은 국가인권위의 권한을 대폭 강화시키고 기구를 확장시키겠다는 것 이라고 분석했다. 교회언론회는 동성애자와 에이즈 확산 간 연관성 보도를 통제하는 국가인권위의 언론보도준칙 등을 예로 들며 국 가인권위의 권한 강화에 강한 우려감을 나타냈다. 교회언 론회는 국가인권위는 2011년 9월 한국기자협회와 인권 보도준칙 을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동성애에 관련된 보도 를 가로막는 조항이 들어 있다 면서 이로 인해 대부분의 언론들은 동성애의 문제점과 그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제 대로 보도하지 못하고 있다. 그야말로 독재국가에서나 있 을 법한 언론통제 가 벌어지고 있다 고 질타했다. 교회언론회는 이처럼 한국에서 국가인권위는 초헌법적 기관이 되기 쉬운 상황인데도 국가인권위에 또 다시 권력 을 집중시키는 것은 대다수 국민들에게 오히려 역차별을 가하는 길을 열어줄 것 이라고 우려했다.(백상현 기자)
- 3 - <레위기 주해>(6) 6:6). (3) 속건제도 속죄제처럼 제사장이 속건제 희생제물을 번제물을 잡는 곳에서 잡고, 그 피를 단 사면에 뿌린다 제 5장 속건제 (레 7:2). (4) 정결케 된 나병환자의 경우에 제사장은 속건제물의 임창일 교수(구약학, Ph.D.) 피를 환자의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쪽 엄지손가락, 오른 쪽 엄지발가락에 바른다(레 14:14). (5) 속건제물은 속죄 제물처럼 제사장의 몫으로 돌렸고, 1. 개요 양식으로 사용한다(레 7:6-7; 14:13). 본장은 속건제( 贖 愆 祭, Guilt Offering)에 관한 율법을 기록한다. 속건제를 드리는 4가지 경우를 소개한다. 첫 4. 증인의 법정 침묵이 죄가 되는 이유 째, 증인이 된 후에 증언하지 않은 자가 그 죄 사함을 법장에서 증인으로 지명 받은 자가 범죄의 실상을 알 받기 위하여 드린다. 둘째, 부정한 것을 만진 자가 그 면서도 증언하지 않을 경우에 그 증인이 죄를 짊어진다 죄 사함을 받기 위하여 드린다. 셋째, 조급하게 맹세한 는 것이다. 솔로몬은 도둑과 짝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 자가 그 죄 사함을 받기 위하여 드린다. 넷째, 성물을 을 미워하는 자라 그는 저주를 들어도 진술하지 아니하 범하거나 법을 어긴 자가 그 죄 사함을 받기 위하여 드 느니라 (잠 29:24)고 한다. 에스겔도 진리를 알고도 침 린다. 묵하는 것은 죄라고 한다(겔3:18). 이것은 사회악에 대 하여 개인의 연대책임을 강조한다. 신자는 남의 죄에 2. 속건제와 속죄제의 차이점 대하여 무책임해선 안 되고, 그것을 막으려고 힘써야 속건제와 속죄제를 구별하긴 매우 어렵다. 본장은 속 함을 강조한다. 신자의 사명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기 건제와 속죄제를 드리는 경우를 다음과 같이 구별한다. 때문이다. 속죄제는 법정에서 증인으로 채택되어 그 죄상을 증언 하지 않을 경우(1절), 부정한 것을 만진 경우(2-3절), 조급하게 맹세한 경우(4절)에 드린다. 속건제는 성물에 대하여 범과한 경우(14-16절), 여호와의 금령을 부지중 에 범한 경우(17-19절)에 드린다. 속건제란 사람과 사 람 사이에 저지른 죄, 즉 성물에 대한 죄와 이웃의 물 건을 늑탈한 경우에 드리는 제사이다(15,17절; 레 6:1-7; 14:12; 19:20-22; 민 6:12). 따라서 속죄제란 하나님께 지은 죄를 사함받기 위하 여 드리는 제사이고, 속건제란 사람에게 지은 죄를 용 서받기 위하여 드리는 제사이다. 속건제의 규정은 먼저 손해 입은 사람이나 성물에 대하여 그 손해의 1/5을 5. 부정( 不 淨 )하다는 의미 배상하고(16절; 레 6:4-5), 그 후에 속건제를 드려야 한 이것은 의식적( 儀 式 的 ) 부정, 즉 종교적 의미의 부정 다(레 6:6-7). 그러나 탕자의 고백처럼(눅 15:18), 하나 함이다. 사람이 짐승의 시체처럼 부정한 것을 부지중에 님께 지은 죄와 사람에게 지은 죄를 구별하는 것은 어 만져도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된다. 그것은 그 부정함이 려운 일이다. 따라서 본장도 속건제와 속죄제를 혼용하 죄악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물질적 불결함을 고 있는 것이다. 그 잘못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속죄 통해 종교적 불결함을 느끼도록 한다. 그 결과 하나님 제(속건제)를 드리되 양 떼의 암컷 어린 양이나 염소를 은 자기 백성들에게 거룩한 삶을 요구한다. 예를 들면, 끌어다가 속죄제(속건제)를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그의 할례제도는 종교적 성결을 가르친다. 그러므로 너희는 허물을 위하여 속죄할지니라 (레 5:6).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신 10:16). 또한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엄격하게 취급함을 3. 속건제를 드리는 방법 보여준다. 부지중에도 죄를 짓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1) 손해 입은 물건과 그 물건 값의 1/5을 더하여 돌려 주어야 한다(16절; 레 6:5). 6. 함부로 말하여 맹세한 것이 죄가 되는 이유 (2) 속건제 제물은 흠 없는 숫양을 드린다(15,18절; 레 경솔한 맹세가 하나님 앞에서는 죄가 된다. 즉 경솔
- 4 - 하게 악을 행하겠다고 해도 죄가 되고, 경솔하게 선을 행하겠다고 해도 죄가 된다. 그런 관점에서 예수님도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하셨다(마 5:33-37). 결국 경 솔한 맹세는 허세이고, 만용과 가식이기 때문이다. 하 나님 없이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인 간의 교만이다(잠 16:18). 7. 속죄제를 드리기 전에 필요한 조건 모든 제사에 선행조건은 회개이다. 하나님께서 구하 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 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시51:17). 우리의 예배에 속죄제와 속건제의 의미가 포함되어야 한다. 예배자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살피고 회 개하는 심령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회개하라! 천국 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 4:17). <교계이슈>샬롬나비소식 이슬람 근본주의의 잔혹한 연쇄 테러에 대하여 유엔을 중심으로 국제사회는 연합하 여 테러집단 IS를 박멸해야 한다 김영한 박사(샬롬나비 상임대표 기 독교학술원장) 지난 6월26일 IS의 잔혹한 테러가 또 한 번 수 많은 무고한 인명을 해치고 말았다. 프랑스 동남부 '생 캉탱 팔라비에'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가스 공장에 폭탄을 터트리고 1명을 참수했고, 튀니지의 지중 해 연안 휴양지에서는 총기 난사로 38명이 목숨을 잃었 다. 또 이날 쿠웨이트 수도에 있는 시아파 이슬람사원에 서는 금요 예배 도중 자폭 테러가 발생해 27명이 숨지고 202명이 다쳤다. 소말리아 중남부에선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단체 알샤바브가 남부 아프리카연합(AU) 군사기지를 공격해 최소 30명이 사망했다. 7월 1일에는 이슬람 IS 무 장 세력이 이집트 시나이 반도 북부의 셰이크 주웨이드 마을 인근에서 군 검문소와 경찰서 등 최소 6곳을 공격해 군인과 민간인 70명 이상이 숨지고, 군인 55명이 다쳤다. 이러한 IS의 잔혹하고 비인도적이며 악마적인 테러행위에 대해 우리들은 충격과 분노를 금할 길 없다. 샬롬나비는 IS의 테러에 아까운 생명을 잃은 모든 분들 과 유가족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위로와 평화를 전하면서 다음같이 천명한다. 1. 유엔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사회는 IS의 박멸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IS는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 등장했던 수많은 악들 가운 데 가장 악랄하고 잔혹한 악이다. 2차 대전 때 아우슈비 츠에서 유태인 수 백 만 명을 조직적으로 살해했던 나치 에 버금가는 악마적 범죄 집단이다. 따라서 국제사회는 전력을 다해 이 범죄 집단을 박멸하는 일에 모두 나서야 한다. 왜냐하면 IS는 중동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지금 인류 전체가 직면한 심대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지 금까지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군이 저 악마적 범죄 집단의 근거지에 군사행동을 감행한 것은 세계평화와 인 류의 공존을 위해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에 국제사회가 나서서 끝까지 나치라는 악을 제거 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듯이, 유엔을 중심으로 국제 사회는 이제 IS의 완전한 제거를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 해야만 한다. 2. 전 세계의 젊은 층 사이로 IS가 확산되는 것을 막아 야 한다. 악 그 자체보다 더 위험한 것은 악의 파괴적 영향력이 다. IS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IS보다 실제로 더 위험한 것 은 IS의 영향과 그 확산이다. 미국 국무부 테러활동 보고 서에 따르면 90개국, 1만6000명의 외국인이 IS 가입을 위해 시리아로 들어갔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고등학생 하 나도 현재 IS에 가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왜 이렇게 나치 에 버금가는 잔혹한 테러 범죄 집단이 전 세계의 젊은 층 에 확산되고 있는가? IS는 '알카에다'나 '탈레반' 같은 이 전의 테러집단과는 달리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SNS 를 통해 젊은 층에게 엄청난 선전을 하고 있다. 그래서 현실에서 소외되고 더 잃은 것이 없는 '외로운 늑대들'이 IS에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제사회는 소외된 젊은 층들이 IS에 현혹되지 않도록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IS는 종교단체도 무장조직도 아닌 반인륜 적인 테러 범죄 집단임을 분명하게 인식시켜야한다. 아울 러 IS의 '온라인 투쟁'에도 국제사회가 단호히 대처해야만
- 5 - 한다. 5. 한국교회는 이슬람을 연구하고 한국 안에 이슬람이 3. 평화적인 이슬람은 IS의 테러 행위를 질책하고 이들 준동하지 못하도록 예방해야 한다. 과 선을 분명히 그어야 한다. 국내 체류 무슬림은 총 2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 이슬람은 여태까지 기독교, 불교, 힌두교, 유교와 함께 세 지고 있다. 이 중 해외에서 온 이주 무슬림은 국내 외국 계의 여러 고등종교 중 하나로 평가되어 왔다. 이슬람 종 인 175만 6천 여 명 중 14만 3천5백 여 명이다. 이 외 교가 중동의 문화에 끼친 긍정적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 불법체류 무슬림이 2만 천 여 명, 한국인 무슬림이 3만 5 다. 그리고 이슬람 역시 평화의 종교로 높게 평가되어 왔 천 여 명이다. 이슬람권 여성은 다산모( 多 産 母 )로 아이를 다. 그런데 2001년 9.11이래 이슬람은 세계의 무대에 하 평균 여섯은 낳는다. 반면 유럽 여성은 둘 미만 정도이다. 나의 테러의 표징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슬람 오늘날 프랑스와 독일에서 태어나는 아이 25%는 무슬림 극단주의들이 미국 맨해튼과 펜타곤에 자살테러를 감행했 자녀이다. 산술적으로 따지면 20~30년 후 유럽은 자연스 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세계 곳 럽게 이슬람 세계가 된다. 포교만으로는 번식을 못 이긴 곳에 테러를 감행하였다. 알카에다를 이어 2014년 6월에 다. 시작한 IS는 이러한 테러의 화산으로 각인되고 있다. 이 지금이야말로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은 이슬람이라는 는 평화적인 이슬람를 위기에 빠뜨리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에 관심을 가지고 제대로 알아야 할 때다. 지난 1월 평화적인 이슬람은 스스로를 변명해야 하며, 이슬람의 정 18일 국내 무슬림 4백여 명은 서울 이태원에서 거리행진 체가 IS와 다르다는 것을 천명해주어야 한다. 을 했다. 서울에서는 처음 열린 '무함마드 탄생' 기념행진 이었다. 이날 행진은 프랑스 파리 테러, 한국인 십 대인 김 모 군의 IS 자진 가담 보도 후 민감한 시점에서 이슬 람 반대 여론을 의식하여 강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교회는 이슬람 지역에 선교사만 보내기에 앞서 국내에 있 는 이슬람인 선교에 힘을 기울이고, 이미 운영하고 있는 이슬람 연구센터에 집중적 지원을 하여, 이슬람의 실체를 알림으로써 이슬람교의 한국공략에 대하여 만반의 방어와 대응을 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IS의 테러에 아까운 생명을 잃은 모든 분들과 유가족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 리스도의 위로와 평화가 임하기를 기도드린다. 2015년 7월 5일 샬롬을꿈꾸는 나비행동 4. 한국정부는 이슬람 근로자의 유입을 분별 있게 처리 해야만 한다. 2천 년대 들어 서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많은 외국 인 노동자들이 취업을 위해 한국에 들어왔다. 이들 중 상 당수는 합법적으로 한국에 정착해 살고 있으며 종교적으 로 이슬람이다. 더 이상 한국은 이슬람의 '무풍지대'가 아 니다. 혹시라도 있을 테러활동을 경계해야만 한다. 물론 모든 무슬림이 테러리스트는 아니다. 한국에서 일하고 있 는 동남아시아의 무슬림들은 대체로 가족을 위해 먼 타국 땅에 일하러 온 근로자들이다. 마치 1960년 대 한국의 아 버지 어머니들이 가족을 위해 독일의 탄광과 병원으로 일 하러 갔듯이 말이다. 그러나 테러는 언제나 예측하지 못 한 곳에서 발생했다. 이슬람권 이주 노동자들의 한국 이주( 移 住 )수( 數 )와 국 적 취득에 대하여 한국정부는 100년 대계를 보는 정책적 결정이 있어야 한다. 과거 중동도 이슬람에 정복되기 전 까지 4세기 동안 비잔틴 기독교 제국이었으나 지금은 90% 이상이 이슬람화 되었고, 유럽도 기독교가 꽃을 피 웠지만 지금은 점차 이슬람화 되어가고 있다. <선배 순교자 소개> 한경희 목사 만주의 사도바울이라는 별명을 지닌 한경희 목사는 젊었 을 때는 방탕했으나 회개한 다음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생명까지 바쳤다.
- 6 - <신앙시인의 시> 이경아 박사(Ph.D., 신원예닮교회) 현 서신원 신학석사과정 <종교개혁유적지> 한계령에서 산 맥을 짚는다 산맥을 가로지르며 산은 뿌리부터 머리까지 나무야 산의 맥 쉬는가 싶다 이어지는 혈자리 한계령이다 십여 년 전 엄마의 혈행을 위해 마가목주를 샀던 그 고개처럼 메아리도 쉬는 우중산첩 어디선가 울려 퍼지는 소리 ECCE HOMO ECCE HOMO 어떤 나무 눈을 들어 산을 부르고 길이 길에게 길을 묻는다 - 이 글은 남편이 목회자의 길을 가겠다고 결단하고 고백하고 기도하던 날(2004. 8. 6), 한계령 정상에서 쓴 작품입니다. Lamberti Kirche(람베르티 교회) 독일 웨스트팔리아주 루르지방 근방에는 뮌스터시가 있다. 이 도시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웨스트팔리아 평화 조약을 맺은 곳으로 평화 의 방 이 있어서 당시의 모든 영주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데, 그 당시 사람들은 그 영주의 종교를 따르게 되 어 개신교도들은 개신교 영주를 찾아 나섰다. 둘째 이 도시는 종교개혁시대에 재세례파들이 봉기하 여 천년왕국을 세우려 했던 곳이다. 이들이 너무나 과 격하여 그 당시 그 도시를 지배하던 로마 카톨릭 당국 은 이들은 잡아 죽여 그 시체를 도시 중앙에 위치한 람 베르티 교회 종탑에 새장을 만들어 놓아 반면교사를 삼 았다. 아래 그림은 이 교회의 종탑인데 새장이 걸려 있 다. 한계령
- 7 - <조직신학> 하나님은 누구신가? (6) 이동영 교수(Dr. theol.,) 이성 중심적 신학이야말로 계몽주의이래로의 서방신학의 가장 심대한 오류다 우리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주지주의적 내지는 이 성주의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계몽주의 이래로 서방신학이 빠졌던 가장 심대한 오류입니다. 거 듭 말씀 드리거니와 신학이 하나님에 관한 지식 이라 면 여기서 일차적인 강조점은 하나님 에게 있지 지 식 (학문)[ scientia ]에 있지 않습니다. 성령님께서 당신의 말 씀을 조명 ( illuminatio )하시어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 ( unio cum Christo )시킴으로서만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되 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연합은 예배 속에서 말씀 과 성례 를 통하여 구현되는 성령의 사역입니다. 이로 말 미암아 삼위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교제가 실현됩니다. 그러므로 삼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전인적인 예배 ( λι τυρεια )를 통해서 우리 삶 속에서 삼위 하나님과 교제함 으로써 획득되고 구현되는 지식입니다. 그리스도교의 신론은 삼위일체론 외에 다른 것이 아 니다 그리스도교가 믿고 고백하는 하나님은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입니다. 비록 그것이 한국교회 안에서 개별신자 들의 신앙생활과 현장교회의 예배 속에서 선명하게 표 현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이 이 세상과 관계( relatio )하고 소통( communio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천명합니다. 성부이신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 durch ) 성령 안에서 ( in ) 이 세상과 그것의 안을 향하여 관계하시어 이 세상 속에 내주 ( Immanenz ) 하시며, 동시에 성령 안에서 ( in ) 그리스도를 통하여 ( durch ) 이 세상과 그것의 밖을 향하여 관계하시 어 이 세상을 초월( Transzendenz )해 계십니다. 그리스도교는 성부이신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예수 그리 스도 안에서 당신 자신을 계시하셨다는 사실을 믿습니 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는 하나님을 삼위일체이신 하 monarchischr einziger 나님으로 고백하며, 전제 군주적 (단)일신( Gott )으로 고백하지 않습니다. 하여 그리스도교 신론은 그러나 우리가 서방교회의 신학의 역사를 반성적으로 성찰해 볼 때 서방 안에서 하나님에 관한 교리는 철저 하게 삼위일체적이지 못했던 측면이 있습니다. 왜냐하 면 그것은 희랍의 신개념의 영향 때문이었는데, 헬레니 즘의 전통 속에서 하나님은 초역사적이고, 무시간적이 며, 정태적인 유일자( το εν )로 파악되었고, 이러한 희랍적 신개념이 삼위일체교리에 크나큰 암영을 드리웠기 때문 입니다. 그러다 보니 삼위 ( τρεις υποστασεις )에 앞서 한 분 유일하신 하나님의 본질 ( ουσια )이 강조되었고, 그 한 분 유일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삼위로 존재하는가를 해명하 는 방식으로 삼위일체교리가 전개되었던 것입니다. 삼 위일체교리의 이러한 이해방식은 특별히 서방교회 안에 서 삼위일체교리에 대한 주류의 이해방식으로 뿌리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삼위일체교리는 전제 군 주적 일신론 ( monarchiser 해석으로 이해되게 되었습니다. Monotheismus )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서방 안에서 이러한 입장을 완성적으로 대변했던 인 물들이 다름 아닌 아우구스티누스( Augustinuns von Hippo354-430 ) 와 토마스 아퀴나스( Thomas von Aquin, 1225/6-1274 )였습니다. 토 마스는 자신의 저서 신학대전 ( Summa theologiae )에서 한 분 하나님의 단순성, 완전성, 무한성을 먼저 논구하고, 한 분 하나님의 속성들을 연이어 취급한 후, 삼위일체 하나님을 논구함으로써, 삼위일체교리를 전제군주적 일 신론의 부록으로 전락시키는 우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토마스류의 이러한 신론의 구성방식은 그 이후 서방 안 에서 표준적인 신론의 구성체계로 확립되고 전수되었던 것입니다. 삼위일체교리 외에 다른 것이 아니며, 철두철미하게 그 리스도교 신론은 삼위일체교리로서 기술되고 해설되어 야만 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교리의 서방적 이해에 대한 반성적 성찰 20세기 신학 안에서 칼 바르트( Karl Barth )가 이러한 문 제 많은 입장을 대변했던 대표적인 신학자였습니다. 바 르트는 삼위일체교리를 그리스도교적 일신론 ( christlicher Monotheismus )이라고 명명했으며, 1) 한 분 하나님의 주권에 1) Karl Barth, Kirchliche Dogmatik, I, 1, 374.
- 8 - 대한 그리스도교적 해석을 삼위일체론이라고 강변했습 니다. 2) 그러나 바르트처럼 한 분 하나님( unus Deus ), 즉 유 일하신 하나님을 전제한 후, 그 한 분 유일하신 하나님 의 삼위성( Dreiheit ), 즉 한 분 유일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삼위로 존재하는가를 설명하는 방식은 삼위일체교리 위 에 철학적 유신론( philosopischer Theismus ) 내지는 철학적 일신 론의 무거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사태를 불러일으킵니 다. 블라디미르 로스키( Vladimir Lossky )가 예리하게 비평한 것처럼, 이것은 사실상 희랍의 전통을 따른 철학적 유 신론 내지는 철학적 일신론이지 성경계시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삼위일체론이라 할 수 없습니다. 칼 바르트와 함께 20세기 서방신학을 양분했던 칼 라 너( Karl Rahner )는 삼위일체교리를 논구하는 자신의 논문에 서 대단히 풍자적으로 말하기를 2000년 교회의 역사에 서 삼위일체교리에 대한 문헌이 몽땅 불타 없어진다고 ( Vladimir Lossky )가 지적한 것처럼, 이러한 고대 동방교부들 의 삼위일체론은 당시 희랍세계의 주류의 세계관에 대 한 도전이며, 그것의 전복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고 대 동방교부들이 당시 희랍의 주류적 신개념과 그것에 의존한 세계관에 대항하여 이러한 혁명적인 신론을 견 지할 수 있었던 까닭은 하나님을 사색하되 희랍의 일신 론적인 유신론철학의 전제 위에서 사색한 것이 아니라, 성경 계시에 의존하여 성부, 성자, 성령이 함께 주도하 시는 삼위 하나님의 구원경륜 ( oikonomia salutis )의 토대위에 서 하나님을 삼위로 사색했기 때문입니다. 고대 동방교 부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되었고, 성경이 증언 하는 삼위 하나님의 구원경륜의 토대 위에서 하나님을 성부, 성자, 성령으로 인식할 수 있었고 이를 우리는 경륜적 삼위일체 ( Trinitas oikonomiae )라고 말 합니다 -, 그것 으로부터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계셨던 영원한 본 할지라도 서방교회의 신자들은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 질의 삼위일체를 이를 우리는 내재적 삼위일 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입으로는 삼위 일체교리를 정통으로 고백하지만 실재에 있어서 일신론 자들( Monotheisten )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3) 라너의 이러 한 풍자는 서방교회 안에서 삼위일체교리에 대한 (단) 체 ( Triniatas immanentiae )라고 말 합니다 - 추론적으로 사유함 으로써, 태초에 하나님이 고독한 일자의 존재가 아니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 상호간의 지극한 사랑과 사귐의 존 재였음을 바르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일신론적 이해가 얼마나 강한 세력권을 형성하고 있었 는가를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삼위일체 그림) 고대 희랍의 주류에 세계관에 대항한 고대 교부들의 반전: 태초에 삼위가 있었다!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모든 만물을 생성시키고 움직이게 하는 모든 만물의 근원이며 생명과 운동의 근 원인 부동의 유일자( 一 者, το εν )로서의 정태적 신을 강조 하는 이러한 철학적인 신개념이 희랍에서 형성되었음에 도 불구하고, 고대 동방교회의 교부들은 이러한 부동의 일자사상에 대항하여 태초에 삼위(성부, 성자, 성령)가 있었다고 천명함으로써 유일자로부터 만물이 유출되어 나왔다는 당시 희랍의 주류적 세계관을 뒤엎었던 것입 니다. 태초에 유일자가 있었다는 사상에 대항하여 태초 에 삼위가 계셨다는 사상, 그리고 만물이 유일자로부터 유출 ( emmanatio )되었다는 사상에 대항하여 만물이 삼위 creatio ex 하나님에 의하여 무로부터 창조 ( nihilo )되었다는 사상은 여기에서 자세히 논할 수는 없지만 세계와 사회 와 인간에 대하여 신학적으로, 윤리학적으로, 사회학적 으로, 정치학적으로 전혀 다른 세계관( Weltanschauung )을 제 공해 준다는 사실만큼은 지적해두고 싶습니다. 현대 러시아정교회의 신학자 블라디미르 로스키 예수께서 세례받으실 때의 삼위일체(성부의 음성, 성령의 비둘기, 예수) 2) K. Barth, 같은 책, 151, 170, 323. 참조하라: Manfred Marquardt, Das Trinitätsdogma als christlicher Monotheismus, in: S. Stiegler und U. Swarat, Hrsg., Der Monotheismus als theologisches und politisches Problem, Evangelische Verlaganstalt. Leipzig, 2006, 94. 3) Karl Rahner, Der dreifache Gott als transzendenter Urgrund der Heilsgeschichte, in: Mysterium salutis, II, 319.
- 9 - <사도행전 강해>(5) 사도행전 3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와 주 예수 그리스도 장석조 교수(신약학, Ph.D.) 사도행전 3장 1-26절은 사도 베드로의 행함과 가 르침으로 구성된다. 본 장의 구조는 3장 1-10절(사도 베드로의 치유 기적을 행함)과 3장 11-16절(치유 행 함에 대한 베드로의 설명적 가르침), 그리고 3장 17-26절(죄 용서를 위한 회개로의 선포적 가르침)이 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는 주 예수님의 행 하심과 가르침(행 1:1-5)을 상기시킨다. 다시 말하면, 사도 베드로는 부활/승천하신 주 예수님으로부터 성령 의 부으심을 받아 그리스도의 지상사역을 계속 계승 하고 있는 것이다. 3장의 첫 장면(3:1-10)은 두 사도들이 행한 성전 의 치유 행위를 보여준다. 본 성전 모티프도 누가복음 의 성전 모티프(눅 1장과 24장)를 회상시킨다. 성전이 예수님의 탄생과 어린 시절에 관련되듯이 그의 부활 과 승천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특히 성전과 기도의 연결은 누가복음 19장과 사도행전 2장의 예루살렘 교 회를 회상시킨다(2:46). 이것은 예루살렘 교회가 마음 을 같이 하여 말씀과 기도에 힘씀으로써 종말론적 하 나님의 나라와 성전을 이상적으로 회복하는 것을 가 리킨다. 칼빈에 의하면, 제 구 시 는 낮을 4경으로 구분 하는 유대교의 시간 개념에 따라 오후 3시를 가리키 며, 그 시간을 수식하는 기도 는 저녁 제사에 참여하 는 구약의 모범적 경건 (행 3:12)을 가리킨다(출 29:41; 민 28:4). 하지만 두 사도의 기도 경건은 유대 교의 경건과 차별화된다(마 6장 참고). 성전의 기도 기능은 부활과 승천의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는 것 으로 성취되었기 때문이다(행 2장). 두 사도의 복음적 경건은 성전의 기도 기능을 성취하는 사도적 교회의 특징을 상기시킨다. 2절에는 또 다른 등장인물 못 걷게 된 이 가 등 장한다. 그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 과 대조적으로 성전 문 밖에 있는 것을 보게된다. 이것은 못 걷게 된 이 가 성전에 들어갈 수 없다는 율법 규정이 지켜 지는 유대교의 현실을 보게 해준다(레21.17-18; 신 15:21). 유대교의 성전은 그의 육체적 회복에 무능력 하고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나면서 와 메고 오니 는 못 걷게 된 이 의 건강상태가 선천적 장애 로 매우 심각하여 능동적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를 강조한다(칼빈 120). 사도 베드로는 사도 요한과 마음을 같이하여 유대 교의 성전이 할 수 없었던 회복 행위를 대신 행하려 한다. 두 사도는 그 장애인이 원하는 물질적 구제보다 더 필요한 육체적 회복을 주려한다. 예수님은 육체적 장애를 치료하는 능력을 행하심으로써 원래 하나님께 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셨다 (눅 5:17). 하나님의 구원사는 하늘과 땅의 아름다운 창조로 시작하지만(창 1-2장), 인간의 죄로 인한 멸망 의 상태가 되지만(창 3장)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님을 통해 회복되기 시작하고 다시 오실 때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완성된다. 그러므로 못 걷게 된 이 (3:2)의 뛰 (3:8)는 것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누가행전의 전체 문맥에서 보면, 사도들이 부활/승천하신 주 예수님에 의 해 성령으로 기름부음받아 행하신 그리스도의 일들 (눅 7:22)을 계속 수행하고 있는 표적이다. 성전에서 하나님 을 찬미하는 것은 성전의 종말론적 회복으로서 2장 하 나님나라를 회복하는 예루살렘교회의 일반적인 특성을 구체화한 것이다. 3장의 둘째 장면(3:11-16)은 사도 베드로가 치유 행함에 대하여 설명하는 가르침이다. 사도는 치유 능 력의 원천이 개인의 경건적 능력으로 오해하지 않게 교정해준다. 이 치유의 능력은 사도행전 2장 22절의 기독론적 사역과 2장 36절의 주 기독론을 상기시킨 다. 다시 말하면, 죄로 타락하여 심판받는 인간의 모
- 10 - 든 연약함은 단지 주 예수님의 능력으로 치유되는 것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점검해야 할 것이다. * 이 아니라 본질적인 죄를 용서하는 근거인 그리스도 우리는 지금까지 사도행전이 주 예수 그리스도 로 의 속죄와 새언약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영화롭게 되 시작하고(1:6) 마치는(28:31) 구조를 통해 하나님의 나 신 부활과 승천하신 주 예수님에 의해 철저하게 회복 라와 주 예수 그리스도 라는 주제를 제시하는 것을 발 된다. 이와 같은 사도들의 모든 성전 가르침은 예수님 견했다. 이 주제는 복음의 내용을 요약하고 있다. 누가 의 성전 가르침(눅 19장; 21장)뿐만 아니라 사도행전 는 이 기독론적 복음뿐만 아니라 그 복음에 대한 사람 2장 42-47절의 성전 가르침을 회상케 한다. 만물을 들의 반응을 서술하고 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회복하는 하나님나라의 종말론적 비전은 성전의 가르 회개의 반응은 중요한 요소다. 누가복음이나(눅1:16; 침과 기도가 회복되는 것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3:2; 24;46) 사도행전은(행2.38; 28:27) 모두 회개로 시 3장의 마지막 셋째 장면(3:17-26)은 치유의 능력 작하고 마친다.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처음 사용된 회 을 행하신 주 예수님의 궁극적 목적을, 즉 죄 용서를 개 의 문맥을 살펴보며, 하나님나라를 미리 맛보게 하 위한 회개로 초청하는 선포적 가르침이다. 베드로는 는 참된 회개에 관해 배우려 한다. 이 참람한 죄인들을 향해 회개와 죄용서의 기회, 복음 적 초청을 위하여 그들이 알지 못하는 근본적인 복음 행 2 : 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의 핵심을 제시한다. 즉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은 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 도행전 8장에서 이방인 내시가 이사야 53장에 근거하 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여 빌립의 기독론적 복음을 듣는 것을 예고하고 전망 시킨다(행 8:34). 주 예수님의 속죄와 새언약의 죽음은 베드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나사렛 예수님이 하 단지 육체적 연약을 치료하는 근거일 뿐만 아니라 궁극 나님나라의 비전을 이루어 가시는 주님이심을 증거한 적으로 만물을 회복하는 근거와 능력이다. 사도 베드로 (행 2:22-36) 후에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 주 예수님이 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특히 성전의 가르침과 기도 하나님나라의 비전을 이루어가는 구속사적 첫째 단계는 를 통해 만물을 회복하는 하나님나라의 비전을 구체적 예수님이 능력들, 즉 기사들과 표적들을 행하신 것이다 으로 시작하셨으며 그 완성을 날까지 하늘의 성전이 오 (행 2:22; 1:1 참고). 예수님은 능력들을 행한 목적이 르셔서 사도들을 통해 계속 일하신다. 사도 베드로는 회개하게 하는 것이라 명시했다(눅 10:13). 바로 이 구 부활/승천하신 주 예수님으로부터 성령의 부으심을 받 절은 누가복음에서 회개의 동사가 처음 나타나는 곳이 아 그리스도의 지상사역을 계속 계승하고 있음을 종 다. 이 회개의 결과는 죄 용서와 관련되어 있다(눅 5:8, 말론적 구원의 행함과 가르침으로 확실히 알리고 있 23). 예수님은 단지 병을 고쳐주시는 분이 아니라 죄를 다. 용서하는 주님이심을 명시하신다(눅 5:24). 예수님은 단 지 사회적 약자를 불쌍히 여기시는데 그치지 않고 궁극 적으로 죄까지도 치료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현재적으 로 선취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주님이시다(눅 7:19; 11:20). 베드로는 나사렛 예수님이 하나님나라의 비전을 이 루어 가시는 주님으로서 행하신 둘째 구속사적 단계를 증거한다. 주 예수님은 하나님나라를 궁극적으로 성취 하기 위하여 먼저 현재적으로 선취하는 능력들을 베푸 셨을 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인 죄 지은 사람들을 용서해주기 위해 속죄와 새 언약의 고난과 죽음으로 자 신을 내어 주셨다 (행 2:23). 예수님은 그를 믿고 따르 는 제자들에게 하나님나라의 궁극적 근거가 되는 속죄 동성애 등 사회적 문제가 심화되는 것은 한국교회 와 새 언약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자주 가르치셨고 의 내적 부패와 함께 회복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최후 최후의 만찬 행동으로 보이셨다(눅 9:22; 22:16-20; 행 의 심판을 당할지 모른다. 주 예수님이 하나님나라를 1:2). 회복하기 위해 오실 그 날까지, 우리는 거룩하고 의로 베드로는 예수님이 지상에서 하나님나라의 두 대표 운 마음과 말, 지성과 감성과 의지, 가정관계와 교회 적 구속 사역을 행하신 주님이심을 증거한 후 이스라엘 관계 속에 날마다 비본질적인 것도 놓치지 않아야 하 사람들이 바로 그 은혜로운 주님을 죽이되, 잔인무도한 지만 보다 본질적인 죄 용서를 위한 철저한 회개와
- 11 - 불법자들의 손을 통해 가장 처참한 형벌인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인 죄를 지적한다(행 2:23). 사도 베드로의 설교 는 죄를 지적하고 심판을 경고하는데서 멈추지 않고 회 개와 구원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예수님이 하나님나 라의 비전을 성취하시는 주님이신 가장 명시적인 증거 를 제시한다. 하나님나라의 비전을 이루는 셋째 구속사적 단계는 예수님이 죄에 대한 형벌인 죽음의 능력을 파괴하며 부 활하신 것이다(행 2:24-32). 죄인을 지배하는 죄와 죽 음의 권세는 죄 없이 죽으신 거룩하고 의로운 예수님을 계속 죽음의 능력으로 가둬둘 수 없었다. 예수님이 약 속하신 나라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를 통해 결정적으로 성취되었고 사도들은 바로 그 증인이 되었다. 하나님나라의 비전을 이루는 넷째 구속사적 단계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영원한 하늘로 올라 가 원래 하나님나라의 보좌에 복귀하셔서 그 영광을 완 전 회복하신 것이다(행 2:33-36). 베드로는 이 승천의 의미를 시편 110편으로 해석하며 그것이 바로 예수님 이 주님이신 가장 확실한 증거라고 가르칩니다. 베드로는 마지막으로 나사렛 예수님이 현재는 승천 의 주님으로서 미래 재림의 주님으로 오실 때까지 성령 을 우리에게 부어주시고 계심을 가르친다. 베드로는 예 수님을 죽음으로 몰아놓은 죄인들에게 마음을 열고 회 개와 용서의 기회를 줄 뿐만 아니라 성령의 선물로 받 고 그 능력으로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복 음적 소명을 제시한다. 사람의 육체는 숨을 쉬어야 생존하고 생활할 수 있 다. 요즘 우리를 무섭게 하는 메르스는 우리가 편히 숨 쉬는 것조차 방해하며 생존을 위협하는 호흡기 질환이 다(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Coronavirus, 중동 호흡기 증후군). 세월호 사고로 받 은 상처가 아물지도 않았는데, 국민 전체와 세계를 위 협하는 메르스로 얼마나 힘이 듭니까? 성경에는 무서운 재앙들이 많이 언급되고 있다. 그중의 하나가 메뚜기떼 로 인해 힘들었던 사건이다(출 10장; 왕상 8장; 사 33 장). 구약의 선지서 요엘서는 그 무서운 메뚜기 재앙을 당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요엘 1:4) 참된 회개(요엘 2:1-17)로 하나님나라가 회복되기 시작하는 복(요엘 2:18-27)과 하나님의 나라가 종말론적으로 완전히 회복 되게 하는 성령의 복(요엘 2:28-32)을 약속한다. 우리는 메르스와 지진 등 육체적인 일들로 고통하 는 사람들을 위하여 요엘이나 베드로와 같이 육체적인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창조의 주의 이름을 부 르며 회개할 뿐만 아니라 그 어떤 현미경으로도 발견할 수 없는 주님과 그의 말씀을 떠나 방황하며 살아가는 영혼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구속사를 이루신 구 원의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며 회개해야 할 것이다. 예 수님이 지상 사역에서 하나님의 나라 를 선포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현재적 선취를 베푸셨듯이, 승천 이후에는 사도적 교회를 통해 그 사역을 계속 하신다. 구속사역은 탄생부터 재림까지 점진적으로 계시되지만, 주의 죽음과 부활, 승천 등 구속사의 결정적 사역이 성 취되었기에 사도적 교회는 승천과 재림 사이의 종말론 적 긴장감을 가지고, 한편으로는 하나님나라의 현재적 선취를 경험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나라의 미래적 완성을 소망하면서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증거하는 선교적 사명을 수행하고 있다. <선교신학> 영화 아바타 와 기독교(2) 배춘섭 교수(Ph.D. 선교학) 둘째, 종교학 분야에서 보 아도 세계관의 다양성과 혼합성 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기독교 측면에서 볼 때 캐머런 감독은 모든 종교의 사상들을 혼합하여 다원주의적이고도 비기 독교인 세계관을 만들어냈다. 한 마디로 민속학, 종교 학, 철학, 지질학, 고고학 등의 지식을 총집합하여 하나의 결정체를 생산해 낸 것이다. 예를 들어, 이 영화에서 푸른 빛깔의 나비족 모습의 아바타 는 전통 적 인도종교인 힌두교의 아바타 사상을 기원으로 하고 있다. 본래 아바타 는 힌두교의 파니니 경전에서 신 이 하늘에서부터 땅으로 내려오는 강림 이나 환생 혹 은 현현 을 가리켰던 용어로서, 산스크리트 아바따라 (avataara) 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를 뉴에이지 사상에 서는 선각자나 스승 의 뜻을 지닌 단어로도 사용하고 있다. 특히 아바타는 인도의 세 신들 즉, 비슈누 (Visnu)와 브라흐마(Brãhma)와 시바(Shiva) 중 비슈누 와 밀접히 연관되어 사용된다. 왜냐하면 힌두교에서 비 슈누는 다양한 모습으로 인간세계에 내려와 인간의 구 원을 위해 도움을 주는 신으로 이해되는데, 그렇게 강 림하고 현현하여 변한 모습을 일컬어 아바타라고 부르 기 때문이다.
- 12 - 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나비족이 자연계의 동식물과 소 통하며 그 생명을 존중하는 것처럼 힌두교들고 인간과 동물이 동등한 존재로서 다 함께 영혼을 갖고 있다 고 믿고 있다. 즉, 인간과 동물은 현생에서 쌓은 삶의 결 과 즉, 카르마(업보)에 따라 환생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나 동물로 다르게 태어날 뿐이다. 그래서 힌두교의 일 파인 자이나교는 모든 생명체에 대한 지극한 존중과 비폭력을 통해 영혼의 구원에 이를 수 있다 고 믿는다. 그렇다면 영화 속에서 나타난 신성한 영혼들의 나무 (tree of souls), 즉 여신 에이와 는 인격적인 존재라 기보다 모든 생물들 속으로 에너지를 흘려주는 힌두교 의 브라만과 같은 에너지의 생성지 와 같다는 점을 이 해해야 하겠다. 셋째, 세계관에 대해서라면 뉴에이지 사상에 대해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 속에는 뉴에이지, 즉 범 문제제기(Problem Statement) 신론 사상이 짙게 깔려있다. 범신론이란 자연을 신과 이런 쟁점들 속에서도 영화 아바타 는 인간실존의 동일시하는 데서 그 사상적 출발점이 있다. 그래서 기 회복을 위해 거듭남과 희생정신이라는 기독교적 정신을 독교 외( 外 )의 동서양철학이나 종교사상을 보면 범신론 매우 강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정신은 기독 적 사상체계의 다양한 신들이 많이 있는데 이는 자연물 교의 일반은총뿐 아니라, 타종교의 윤리관에서도 얼마 을 인간보다 위대한 신으로 여겨 자연을 의인화하여 신 든지 찾아볼 수 있다. 환언하면, 이 역시 기독교적 메 으로 섬기는 경우나, 어떤 보이지 않는 정령(anim)을 시지의 정수라고는 볼 수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 믿는 샤머니즘과 조상숭배 형태의 신앙적 형태까지 다 영화에서 성경과 충돌하는 세계관, 즉 비기독교적 신앙 양하다. 쉽게 말하면, 범신론자는 인간과 자연계를 하 체계는 무엇일까? 다시 말해서 이 영화가 우리에게 보 나의 뭉쳐진 종교공동체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 여주는 비기독교적인 메시지는 무엇일까? 문에 범신론자들은 창조자로서의 인격신을 받아들이지 첫째, 육체가 없는 인간이 아바타를 입고 죽음을 않는다. 이유는 창조자가 세상을 창조할 때 전체의 존 극복할 수 있다 는 사상이다. 영혼이 없는 아바타는 물 재는 창조자와 피조물의 합이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질로만 존재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아바타는 인간의 다시 말해, 창조자는 피조물을 창조하자마자 전체 존재 영혼이 들어가면 살아있는 생명체가 되는데, 이런 아바 의 한 부분이 되어 종속되고, 스스로 제한적 존재가 되 타는 또 다른 세계의 문을 활짝 여는 신비스런 문 의 어버리는 형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부분으로 기능을 감당한다. 즉, 이 영화는 육체 없이 아바타를 서 종속되거나 제한되는 창조자는 절대자가 될 수 없 입고 영혼의 상태로서 활동하는 사자 (the living 고, 우주 만물이야말로 신성이 깃든 신들이 될 수 있다 dead)처럼 살아갈 수 있다는 세계관이 밑바탕에 존재 고 믿는다. 한다. 바로 이런 사후세계와 죽음에 대한 해석차이 때 따라서 힌두교를 신이 무수히 많다고 해서 다신교로 해 문에 기독교와 영화 아바타 가 서로 융합되거나 화해 석해서는 곤란하다. 힌두교는 엄연히 자연주의 일원론 할 수 없는 가장 걸림돌이 된다. 예를 들어, 영화 종반 에서 출발한 범신론적 사상이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에 가면 주인공인 제이크 설리가 자신의 육체를 포기하 피조물인 인간, 동물, 자연계를 엄격히 구분하는 기독 고 나비족의 일원으로 살아가는데, 마지막에 이교의 제 교와는 달리 힌두교는 창조자와 피조물을 구분하지 않 식에서 리드 과학자 역시 그들과 함께 이교도가 되는 는다. 오히려 범신론적 사상으로서 하나의 개념으로 파 영화의 한 장면은 기독교인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안 악하고 있다. 브라만에 의해 창조된 우주만물은 동시에 겨다준다. 물론 감독의 바람은 관객들로 하여금 끝까지 브라만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브라만은 하나의 인격 아바타와 마음을 같이 하여 이교제식까지 관객의 동정 적인 신이라기보다 신성한 절대원리, 또는 실존자체 심을 이끌어내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를 의미한다. 즉, 힌두의 무수한 신도 독립적인 것이 이 영화의 결론적 메시지는 죽음은 단순히 죽음으로 아니라 창조자 브라만의 여러 기능과 형상이 제각각 나 끝나지 않다 라는 점이다. 오히려 죽음은 새로운 삶으 타난 아바타에 불과한 것이다. 로의 변화 내지는 또 다른 삶의 연장선상 이라는 강한 이렇게 볼 때 영화 아바타 가 생명존중을 강조한 메시지를 이 영화는 담아내고 있다. 정확히 표현하면, 것은 모두 힌두교의 가르침, 즉 범신론 사상을 따른 것
- 13 - 기독교 외( 外 ) 타종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윤회 와 원 연합을 통해 신성한 정령들과 소통을 상징한다. 이렇듯 시토착종교의 죽음 에 관한 사상들을 한데 묶어 놓은 이 영화는 자연주의, 샤먼이즘, 애니미즘, 윤회적 세계 종합물인 것이다. 관, 생명의 망으로 연결된 정령주의 의사소통, 에너지 의 흐름이라는 범신론적 사상이 비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서 영화의 구석구석을 가득 채우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 야 할 것이다. 아바타 주배경: 중국 무릉원 풍경구 둘째, 신성한 영혼들의 나무인 에이와 는 비기독교 적 여신숭배사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아바타에는 장면 마다 여신숭배의 상징들이 나타난다. 이런 상징들로는 주로 나선(spiral) 모양의 식물로 자주 나타나는데 이런 모양새는 나비족이 거주하고 있는 홈트리(Home tree) 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필자는 이 여신숭배 사상에 해서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겠다. 과연 여신숭배 는 영화가 보여주는 것처럼 신성하고 거룩한 종교인가? 이 점에서 기독교비평가 조 쉬멀은 말하기를 캐머 런 감독은 원주민 종교가 무해하다는 거짓말을 한 반 면, 멜 깁슨 감독은 마야 사제들을 피에 주린 제신들에 게 붙들린 존재들로 묘사한다 고 했다. 또한 해럴드 퍼 거슨도 세계 고대문화 역사에 나타난 여신숭배는 가장 피상적으로 관찰해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잔인한 인간 의 희생제사를 보여주고 있다. 여신숭배사상에는 사랑 스럽고 정겹게 인간을 돌보는 신의 묘사가 없다 라고 말했다. 즉, 고대의 아즈텍문명, 마야문명잉카문명에서 발견되는 제신들은 모두 인간희생을 요구하는 악령들 이었음을 상기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교적 여신숭배사상을 에이와 라는 이름으로 야웨 혹 은 여호와 와 비슷한 이름으로 기독교화 하여 신성함 과 거룩함의 이미지를 보여주려 했던 이 영화의 거짓됨 을 바르게 분별해야 하겠다. 셋째, 영화 아바타 는 범신론과 관계된 애니미즘 사상이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나비족은 신성한 영혼 들의 나무(에이와)에 주위로 모여서 양팔을 뻗어 서로 가 서로의 몸을 접촉함으로써 거미집 같은 영적 소통의 망을 이룬다. 이는 생명의 망으로서 자연으로부터 생명 (에너지)을 부여받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에이와의 결론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아주 중요한 쟁점들을 가지 고 있음을 보았다. 사회정치학적, 종교학적, 세계관의 측면에서 더욱 그러하다. 특히 종교학적 측면에서 기독 교 신앙과 비추어 살펴보았을 때, 이 영화는 성경의 세 계관과 충돌되는 커다란 위험을 지니고 있었다. 첫째, 육체가 없는 인간이 아바타를 입고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 는 사상이요, 둘째 여신 에이와 라고 불리는 신성 한 영혼들의 나무를 통해 본 비기독교적 여신숭배사상 이 실은 역사상 잔인하고 더러운 종교이자 범신론임에 도 불구하고, 마치 기독교의 여호와 나 야웨 와 연관 되어 거룩함이나 신성함을 연상시키는 거짓된 미화작업 이요, 마지막으로는 범신론과 관계된 애니미즘 사상이 분명하게 드러냄으로써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이 아닌 만 물에 흡수되어 피조세계와 하나 된 정령주의로서 하나 님을 대체하고자 했던 신화화작업 등을 중요한 문제로 볼 수 있겠다. 물론 이 외에도 비기독교적 신앙체계들이 더 있지 만, 아무튼 캐머런 감독의 영화 아바타 (Avatar)는 충 분히 종교의 아바타 역할을 감당했음을 이상 살펴보 았다. 이제 영화는 단순히 보고 즐기는 차원의 문제가 아닌 게 되었다. 엘리아데의 지적처럼 영화는 현대판 종교이자, 세계관의 변화를 가져오는 강력한 소통의 매 개체이다. 한 마디로 영화에 담긴 세계관을 분별하여 읽어내지 못하면, 관객은 영화에 담긴 세계관에 따라 무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세계관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이라면 반드시 문화 안에서 상대적 가치를 좇아 기준이 없는 세속적 삶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으로서의 절대가치인 성경을 좇아 하나님 나라와 영광을 구하는 제자도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 14 - <욥기서 강해>(6) 욥의 탄식 박영준 교수(구약학, Dr.theol.) 하나님만을 경외하였던 욥은 재산과 가족, 자신의 건강을 잃는 재앙을 당한다. 욥의 이러한 소식을 듣고 세 명의 친구들이 와서 그와 함께 한다. 그러나 그들은 욥의 참담한 모습을 보고 아무런 말고 하지 못한다. 칠 일이 지나서야 욥이 드디어 입을 연 다. 욥기의 서언인 1-2장이 끝나고 본격적인 대화가 시 작되는 4장 이전에 3장에서는 이러한 욥의 독백이 등 장한다. 이 독백은 그의 탄식이다. 1-2장에 나오는 욥 의 모습은 경건하고 어떠한 재앙에서도 하나님을 잊지 않는 참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나님을 욕하 고 죽으라는 그의 아내의 충고에도 욥은 입술로 범죄하 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지켰다. 그러나 3장에 등장하는 욥의 고백은 감사나 신뢰의 고백이 아 니라 탄식과 저주의 고백이다. 욥은 왜 이러한 탄식의 고백을 하고 있으며 그 의미는 무엇인가? 우선 3장의 내용을 살펴보자. 3장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눈여겨보 아야 한다. 첫째, 그가 무엇에 대해 탄식하는가? 둘째, 그러한 탄식의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욥은 무엇을 탄식하고 있는가? 1절에서 욥은 자신의 날을 저주한다. 자기의 생일 이라고 번역된 히 브리어는 그의 날 (히, 요모)이다. 실제로 이어지는 독 백에서 그는 자신의 태어난 날을 매우 회의적으로 묘사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어머니의 태에서 만들어지고 태어난 날을 탄식하고 있다(비교, 렘 20:14이하; 집회 서 40:1).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히브리어 요모 (그의 날)는 일반적으로 자기의 생일 로 번역된다. 그러나 이 단어는 그의 인생 또는 재앙을 당하는 현재를 가리 키는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가 3절 이하에서 저 주하고 있는 내용이 자신의 생일(3a, 11, 16절) 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태에서 처음 만들어지 날(3b, 7, 10 절)과 현재의 고난의 날(20-21, 23-26절)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저주하고 있는 것이 자신의 생일 이던, 현재의 고난의 시간이던, 중요한 것은 그가 지금 3장에서 탄식하고 저주하고 있는 것은 모두 자신의 근 원과 삶이라는 것이며, 동시에 그가 저주하는 것이 하 나님은 아니라는 것이다. 3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돌 아보지 않으셨더라면 이라는 언급이 있으나 이것은 하 나님에 대한 불평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처음 만들어진 근원의 순간에 대한 탄식으로 보는 것이 옳다. 3장의 탄식은 시편의 탄식시와 유사하다. 특히 어찌 하여 라는 고난의 이유에 대한 질문은 탄식시에서 흔히 등장하는 문구인데, 이러한 질문은 현재 고난 당하는 시인의 참담한 심정을 극적으로 잘 표현해 주는 역할을 하며 동시에 시인이 당하는 고난이 자신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어찌하여 라는 질문은 욥기 3 장에서도 유사하게 쓰이고 있다. 우선 현재 고난당하는 욥의 심정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특히 여기에서는 삶 의 가치에 대해 매우 회의적인 욥의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왜 태어나서 이러한 고통을 당하는가? 왜 살아 있어서 이러한 고난을 당하는가? 무엇보다 10절에서 그는 탄식한다: 이는 내 모태의 문을 닫지 아니하여 내 눈으로 환난을 보게 하였음이로구나! 또한 욥 자신 에게 닥친 재앙이 자신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님을 보여 주고 있다. 욥은 두 번째 재앙 이후에 재 가운데 앉아 수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도대체 이 재앙의 이유가 무엇인가? 혹 그는 자신이 부지중에 무슨 죄를 짓지는 않았는지 자신의 지난 시간을 곰곰이 돌아보았을 것이 다. 그러나 적어도 욥은 자신에게서 이러한 재앙의 이 유를 찾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참고, 욥 29장). 전체 욥 기의 배경이 되는 1-2장의 서언에 의하면 욥은 의인이 지 죄인이 아니다. 우리는 이러한 신학적 배경을 바탕 으로 욥기를 해석해야 한다. 하나님만을 경외했던 의인 욥은 3장에서 자신의 근원 과 현재의 삶을 부정하고 저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죽음을 바라고 있다. 그는 왜 이러한 탄식을 하 고 있는가? 그 이유는 우선 현재 그가 받고 있는 고난 때문이지만, 더 근본적인 대답은 하나님의 부재 때문이 다. 욥은 고난당하는 자신이 현재 하나님과 분리된 상 태라고 생각한다. 그가 근본적으로 고민하고 탄식하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이 그를 계속해서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 (26절) 시편의 탄식시에서도 하나님
- 15 - 의 부재에 대한 주제는 흔히 등장한다. 그래서 시인은 메시지 개요와 흐름에 대한 제안 계속해서 하나님을 찾고 있는 것이다(예, 시 22편). 그 1) 1-2장에 이은 욥기 3장의 내용상의 흐름을 설명 런 의미에서 욥기 3장은 나의 아버지(창조주)는 어디 2) 욥기 3장에 나타난 욥의 탄식의 대상과 그 이유 있는가? 라는 욥의 이름에 대해서 시적으로 풀어내고 를 설명 있다. 3) 본문의 신학적 의도와 메시지를 현재 우리에게 적용(욥이 생각하듯이 고난이 하나님의 부재라는 잘 못된 신학이 우리에게는 없는가?) 4) 가르침과 다짐(고난 중에 하나님을 보고, 고난 을 받아들이는 참된 영성의 길로 가자) 곧 제헌절 다가온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선포하는 날이다. 욥은 자신의 현재 당하고 있는 고난의 이유는 모르지 만 이러한 고난이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가 붕괴되었다 는 증거로 보고 있다. 이러한 잘못된 생각이 자신의 실 존에 대한 회의와 저주로 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욥에게 가장 힘든 것은 재산과 자식을 잃은 슬픔 이나 피부병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졌다고 하 는 절망이다. 이것은 자신이 평생을 지켜온 신앙이 붕 괴된 것이다. 자신의 삶의 이유, 행동의 모든 근원된 하나님이 더 이상 자신과 함께 하시지 않는 다는 생각 이 자신의 생일까지 저주하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의 인의 고난은 하나님의 부재의 증거가 아니다. 욥은 아 직 이것을 인식하고 못하고 있다. 후에 욥기 42장 6절 에 묘사되어 있는 욥의 회개는 바로 이러한 자신의 잘 못된 신학과 생각을 회개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지는 4 장 이하에서 욥은 그의 세 친구와 자신의 고난에 대해 서 논쟁하지만, 사실 욥과 세 친구는 모두 기계적 인과 응보에 근거하는 고전지혜의 잘못된 해석에 사로잡혀 있다. 지금까지 살펴 본 욥의 탄식이 우리에게 어떤 의 미인가? 욥은 자신의 고난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인생을 저주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고난 받을 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 신다. 마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하나님 께서 그와 함께 하셨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의 인생은 고난의 시간도 포함하고 있으며, 참된 영성은 고난 받 는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진다. 욥의 잘못된 신학에 근 거한 탄식을 교훈 삼아 우리는 고난을 받아들이는 참된 영성의 길로 들어가야 한다.
- 16 - 성경적 개혁주의신학 을 바탕으로 영적지도자를 양성하는 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 장관이 인정한 자)로서 목회학석사 (M.Div.) 학위소지자 2) 학사 학위 소지한 자로서 목회학연구 과정(M.Div.eq.) 이수자 문학석사(M.A.)과정 모집정원 : 성경학 00명, 선교학 00명, 기독교상담학 0명 지원자격 : 1) 국내외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받은 자 2) 위와 동등한 자격이 있다고 교육부 장관이 인정한 자 2015 신 편입생모집 원서접수: 6월 15일(월)~7월 3일(금) 전형방법: ⓵ M.Div./ Th.M./ M.A.: 서류전형 (1차), 면접(2차) ⓶ Ph.D. : 서류전형(1차), 영어 및 전공시험(2차), 면접(3차) 전형일시 : 7월 9일(목) 오전 10시 문의 : 02-845-7711 서울특별시 동작구 신대방 14가길 45-1 (2호선 신대방역 4번 출구 도보 7분) 1. 대학원 과정 목회학석사(M.Div.)과정 모집정원: 신 편입학 00명 (주 야간) 지원자격: 1) 국내외 대학에서 학사 학위(전공 불문)를 받은 자, 또는 졸업예정자 2) 위와 동등한 자격이 있다고 교육부 장관이 인정한 자 3) 일반대학 및 본교가 인정하는 4년 제 신학교 졸업(예정)자 4) 세례 후 1년 이상 경과한 자 신학석사(Th.M.)과정 모집정원: 신학전공(구약, 신약, 조직, 역사, 실천, 주석 설교, 선교) 00명 지원자격: 1) 국내외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받은 자 (위와 동등한 자격이 있다고 교육부 철학박사(Ph.D.)과정(편입생 모집) 모집정원: 신학전공(구약, 신약, 조직, 역사, 실천, 선교) 0명 지원자격: 1) 구약, 신약, 조직, 역사, 실천, 선교 -국내외 대학에서 학사 학위 또는 동등 한 자격이 있다고 교육부 장관이 인정 한 자 -목회학석사(M.Div.) 및 신학석사(Th.M.) 학위를 취득한 자 2) 기독교교육학, 기독교상담학, 선교학 -국내외 대학에서 학사 학위 또는 동 등한 자격이 있다고 교육부 장관이 인 정한 자 -동일 전공의 석사(M.A.) 학위를 취득한 자 단, 목회학석사(M.Div.) 학위가 없는 자는 M.Div.과정 필수 4과목을 이수해 야 함 2. 평생교육원 기독교 상담반(상담연구원) 교인들 또는 위기체 처한 사람들의 상담을 위한 인 재를 키우는 과정 평신도 조직신학 교사반 평신도들에게 성경지식을 체계화시켜주는 과정 목회자 주석-설교 연구반 목회자들에게 성경을 주석하는 일을 숙지시키고 그 주석에 근거하여 설교를 작성할 수 있도록 연마하는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