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佛敎學報 第 48 輯 서도 이 목적을 준수하였다. 즉 석문의범 에는 승가의 일상의례 보다는 각종의 재 의식에 역점을 두었다. 재의식은 승가와 재가가 함께 호흡하는 공동의 場이므로 포 교와 대중화에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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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習 說 ) 5), 원호설( 元 昊 說 ) 6) 등이 있다. 7) 이 가운데 임제설에 동의하는바, 상세한 논의는 황패강의 논의로 미루나 그의 논의에 논거로서 빠져 있는 부분을 보강하여 임제설에 대한 변증( 辨 證 )을 덧붙이고자 한다. 우선, 다음의 인용문을 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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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Educational Innovation Research 2017, Vol. 27, No. 2, pp DOI: : Researc

본문01

zb 2) 짜내어 목민관을 살찌운다. 그러니 백성이 과연 목민관을 위해 있는 것일까? 아니다. 그건 아니다. 목민관이 백성 을 위해 있는 것이다. 이정 - ( ᄀ ) - ( ᄂ ) - 국군 - 방백 - 황왕 (나) 옛날에야 백성이 있었을 뿐이지, 무슨 목민관이 있 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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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되지만, 논란은 더욱 증폭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광주지역 민주화 운동 세력 은 5.18기념식을 국가기념일로 지정 받은 데 이어 이 노래까지 공식기념곡으로 만 들어 5.18을 장식하는 마지막 아우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걱정스러운 건 이런 움직임이 이른바 호남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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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ion:

한국 근대불교의 대중화와 석문의범* 29)韓 相 吉 ** 차 례 Ⅰ. 머리말 1. 불자필람 의 구성 Ⅱ. 석문의범의 간행 배경 2. 석문의범 의 구성과 내용 1. 조선후기 의례집의 성행 Ⅳ. 근대불교 대중화와 석문의범 2. 근대불교 개혁론과 의례 Ⅲ. 석문의범의 체재와 내용 간행의 의미 Ⅴ. 맺음말 한글요약 釋門儀範 은 조선시대에 편찬된 각종 의례서와 의식집을 망라하여 한국불교 의 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결집서이다. 1935년 卍商會에서 간행한 이 책은 이후 한 국불교 의례의 교과서라고 할 정도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지니게 되었다. 주권상실 기 혼란의 시대에서 석문의범 의 등장은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계승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한국불교의 왜곡 과정에서 영산재를 비롯한 많은 불교의례 와 의식 등이 사라지는 현실에서, 고유의 신앙과 의례에 관한 의식문을 집성하는 노력은 다름아닌 전통불교의 회복과 계승의 산물이었다. 본고는 일본불교의 침투와 한국불교의 개혁론이 팽배한 시기에 간행된 석문의범 의 역사적 의미를 고찰하였 다. 그 의미는 대략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석문의범 편찬의 가장 중요한 목적 은 불교의 대중화에 있었다. 어려운 한자의 의례문을 쉬운 한글로 병기하는 서술의 형식에서 대중화의 의지를 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안진호는 의례문의 선별 과정에 * 이 논문은 2005년 정부(교육인적자원부)의 재원으로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 행된 연구임(KRF 2005 005 J14601) **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연구교수 - 135 -

2 佛敎學報 第 48 輯 서도 이 목적을 준수하였다. 즉 석문의범 에는 승가의 일상의례 보다는 각종의 재 의식에 역점을 두었다. 재의식은 승가와 재가가 함께 호흡하는 공동의 場이므로 포 교와 대중화에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둘째, 석문의범 은 새로운 시대에 맞는 현대적 의례와 의식의 변화를 적극 권장하 였다. 장례의식을 간소화하고, 무주고혼을 천도하는 추도의식을 새롭게 바꿀 것을 주장하였다. 그의 의례와 포교에 대한 열린 생각은 불전에서의 혼례식을 제안하기 도 하였다. 또한 찬불가를 보급하여 포교에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셋째, 이 책은 근 대불교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하였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석문의범 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대중을 위한 불교서적은 전무하다시피 하였다. 이 책이 간행된 지 불과 2 년이 못되어 매진되었다는 사실은 대중들의 의례, 의식에 관한, 즉 불교문화에 대한 욕구가 얼마나 컸던가를 짐작하게 한다. 책의 보급을 통해 불교의례와 문화가 발전 할 수 있는 기회가 확산되었다는 점에서 석문의범 은 불교대중화의 모범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주제어 석문의범, 불자필람, 안진호, 최취허, 권상로, 김태흡, 한용운, 만상회, 근대불 교, 의례집, 의식집, 대중포교, 불교개혁, 불교출판. - 136 -

한국 근대불교의 대중화와 석문의범 3 Ⅰ. 머리말 安震湖(1880 1965)의 釋門儀範 은 한국불교 의례의 결집서이다. 조선시대에 편 찬된 각종 의례서와 의식집을 망라하여 한국불교 의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였다. 1935년 卍商會에서 간행한 이 책은 이후 한국불교 의례의 교과서라고 할 정도로 매 우 중요한 위치를 지니게 되었다. 당시 한국불교는 사찰령체제하에서 전통불교의 근간이 위축되고 있었다. 일제는 사찰과 불교계를 식민통치의 수단으로 삼기 위해 전통불교를 변질 왜곡시켰다. 그러나 전통과 자주성을 수호하려는 노력 또한 꾸준 히 전개되었고, 이 과정에서 갈등과 마찰이 빈번히 야기되었다. 이러한 혼란의 시대에서 석문의범 의 등장은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계 승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한국불교의 왜곡 과정에서 영산재를 비롯한 많은 불 교의례와 의식 등이 사라지는 현실에서, 고유의 신앙과 의례에 관한 의식문을 집성 하는 노력은 다름아닌 전통불교의 회복과 계승의 산물이었다. 19세기말 개항과 함 께 상륙한 일본불교의 여러 종파는 불법을 전파한다는 미명으로 일본불교를 이식하 는 데 앞을 다투었다. 철저하게 어용화된 일본의 각 종파는 식민지 경영의 첨병을 자처하였고, 포교의 차원이 아닌 정략적인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일본의 불교의식과 의례는 급속히 퍼져나갔고, 한국 전통불교의 수행풍토와 의례문화는 설 자리가 점차 좁아지고 있었다. 한편 근대화의 물결과 함께 새로운 사상과 문명이 범람하는 1910년대 이후 불교 의 반성과 개혁을 촉구하는 다양한 개혁 주장도 불교의례의 입지를 위축시켰다. 만 해를 시작으로 이영재, 권상로, 백용성 등의 불교개혁론들은 직접, 간접으로 불교의 례의 개혁을 제창하였다. 이와같이 전통불교 의례는 안팎의 도전에 직면하였고, 바 로 이 시기에 석문의범 이 간행되었던 것이다. 본고는 이처럼 일본불교의 침투와 한국불교의 개혁론이 팽배한 시기에 간행된 석문의범 의 역사적 의미를 이해하는 데 목적이 있다. 특히 근대불교의 대중화 과 정에서 석문의범 이 지니는 가치와 그 지향점이 무엇이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로써 한국 근대불교에서 의례가 차지하는 위상을 아울러 이해하고자 한다. Ⅱ. 석문의범의 간행 배경 1. 조선후기 의례집의 성행 조선은 왕조 건국의 이념을 성리학으로 내세우면서 건국초부터 억불시책을 단행 - 137 -

4 佛敎學報 第 48 輯 하였다. 불교 배척은 조선왕조 전 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수많은 사찰 과 승도는 통폐합되거나 환속당했고, 그나마 존속하였던 사찰과 승도는 양반관료제 사회하에서 온갖 수탈을 겪어야만 했다. 조선 중기 명종대 문정왕후의 노력으로 불 교는 일시적으로 부흥의 기운을 맞았으나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고, 조선후기의 불 교는 더 이상의 억불시책이 필요없을 정도로 피폐화되었다. 사찰은 이제 깊은 산중 으로 밀려들어가 이른바 산간불교, 산중불교1)라는 이름으로 불려졌다. 한편 이러한 조선후기 불교를 규정하는 또 다른 특징은 信仰佛敎이다.2) 오랫동안의 억불의 결과, 19세기는 교단과 사상 등 불교 제반이 침체에 빠져있던 시기였다. 불법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종단과 사찰, 그리고 승가 등의 기본 여건은 국가적으로 용인되지 않 았다. 이같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불교는 명맥을 유지해나갔고, 그 원동력은 신앙불 교의 흐름에서 찾을 수 있다.3) 신앙불교는 경전에 의거한 체계적 사상이 아니라 염불과 기도 등을 통한 祈願的 신행활동을 말한다. 교리와 사상을 선도할 출가자가 부족하고 또 원천적으로 출가 의 길이 막혀있는 현실에서 대중은 결사공동체로서 미타신앙이나 관음신앙 등의 신 행결사를 추진하였다. 또한 기층민의 문화로서 뿌리박힌 喪禮와 祭禮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49재의례, 영혼천도의례, 영산재, 수륙재 등의 다양한 신앙불교를 전 개시켰다. 여기에 의례와 염불의식을 뒷받침하는 각종의 의례집, 진언집, 다라니의 간행이 뒤따랐다. 교학과 사상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신앙 중심의 불교는 구원적 기 능만을 강조할 위험이 있었지만, 이러한 신앙불교의 흐름은 조선후기 불교의 보편 적 경향이었다. 신앙불교의 흐름에 따라 조선후기에는 많은 의례집 진언집이 간행되었다.4) 조선 말기까지 간행된 의례집, 염불집은 대략 70여 종에 이른다. 釋門家禮抄 (1660), 釋 門喪儀抄 (1705), 梵音集 (1713), 作法龜鑑 (1826), 茶毘作法 (1882) 등 조선후기 이어졌다.5) 현존하는 판본을 조사한 결과, 전기간에 걸쳐 의례집의 간행은 꾸준히 진언집류를 제외하고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의례집은 水陸無遮平等齋儀撮要, 念彌陁道場懺法, 豫修十王生七齋儀纂要, 그리고 1) 2) 3) 4) 天地冥陽水陸齋儀纂要 禮 등이 金煐泰, 韓國佛敎史槪說, 경서원, 1986, pp.165~167. 洪潤植, 朝鮮後期 佛敎의 信仰儀禮와 民衆佛敎, 韓國佛敎史의 硏究, 敎文社, 1988. 曹溪宗史 근현대편,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 2001. pp.21 23. 洪潤植, 朝鮮時代 眞言集의 刊行과 儀式의 密敎化, 앞의 책, pp.277 310. 南希叔, 朝鮮後期 佛書刊行 硏究 眞言集과 佛敎儀式集을 中心으로, 서울대 박사학위 논문. 2004. 5) 한국의 불료의례 자료를 망라한 韓國佛敎儀禮資料叢書 (朴世敏編, 1993)에는 모두 74편의 의례집을 담고 있는데, 편찬 시기별로 보면 1400년대가 4편, 1500년대는 7편, 1600년대는 11편, 1700년대는 12편, 1800년대는 11편, 1900년대가 9편이고, 나머지 20편은 연대 미상이 라고 한다. 박종민, 한국 불교의례집의 간행과 분류 韓國佛敎儀禮資料叢書 와 釋門儀 範 을 중심으로, 역사민속학 제12호, 한국역사민속학회, 2001, p.116. - 138 -

한국 근대불교의 대중화와 석문의범 5 다.6) 이상과 같이 많은 의례집의 간행은 조선시대 신앙불교, 혹은 의식불교의 다양 성을 보여주는 실증적 사례이다. 많은 불교의식집이 간행되었던 것은 불교의식의 종류가 워낙 많았고, 그 절차에 따라 염불이나 의식이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 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많은 의례를 집전하는 일은 전문적인 儀式僧이라 하더라도 쉬운 일이 아 니었다. 의식에 따라 적게는 몇 권, 많게는 십여 권을 소지해야 하니, 그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또한 의식의 절차나 염불문 등은 지역에 따라, 혹은 사찰에 따라, 때로는 스님마다 각양각색으로 달랐다. 더구나 당시는 유통되고 있는 목판본 서적도 극소수에 불과했기 때문에 염불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은 직접 베 껴서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발음도 와전되기 일쑤여서 원본과는 다른 발음이 재차, 삼차 필사, 유포되는 일도 있었다. 심지어는 경상도 스님과 전라도 스 님이 같이 의식을 집전할 경우 발음이 맞지 않아서 함께 염불할 수 없을 정도였 다.7) 대규모의 천도재라도 있게 되면 관음시식용, 수륙재용 등 여러 권의 염불집을 가지고 다녀야했으므로 의례를 주관하고 의식절차에 따른 다양한 예불과 염불을 진 행해야 하는 승가의 입장에서는 곤란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석문의범 을 편찬한 일차적인 목적은 바로 이러한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 있었 다. 먼저 조선시대 70여 종에 달하는 많은 의식집에서 당시에 널리 시행하는 의례 만을 간추렸다. 각 의식집의 가사와 발음 등을 통일하여 원문과 한글을 병용함으로 써 불교의식의 통일을 기하였다. 2. 근대불교 개혁론과 의례 1910년 만해 한용운은 조선불교유신론 을 저술하여 불교개혁을 제창하였다. 만해 는 불교의 모든 분야에 걸친 비종교적 비시대적 비사회적인 인습을 타파, 혁신하 여 불교 본연의 자세로 복귀하고, 시대의 발전에 따라 새로운 진로를 개척할 것을 주장하였다.8) 총 17장에 걸쳐 승려교육, 참선, 염불당 폐지, 포교의 강화, 불교의식의 간소화, 승려의 권익을 찾는 길, 승려의 혼인문제, 주지의 선거, 승려의 단결, 사원의 통괄 등 불교의 전부라고 할 만한 방대한 사안에 관하여 구체적인 개혁 방안을 제시 하였다. 6) 불교민속문헌해제, 국립문화재연구소, 2005. 7) 윤창화, 근현대 한국불교를 움직인 명저 50선 ⑥ 안진호의 석문의범, 법보신문, 2004. 8. 10. 8) 만해에 관한 연구는 불교학 문학 역사학 등 다방면에 걸쳐 많은 성과가 축적되었다. 다 양한 분야의 연구성과를 종합한 최근의 연구는 강미자의 한용운의 불교개혁운동과 민족 주의 운동 (경성대 박사학위논문, 2007)이다. - 139 -

6 佛敎學報 第 48 輯 만해의 개혁론 가운데 불교의식의 개혁은 論佛家崇拜之塑繪, 論佛家之各樣儀 式 의 두 항목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論佛家之各樣儀式 에서 불교의식을 도깨비 의 연극 이라고 무시할 정도로 의식의 개혁에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였다. - 139 -

한국 근대불교의 대중화와 석문의범 7 조선 불가의 백 가지 법도가 신통치 않아서 하나도 볼 것이 없거니와, 그 중에서도 齋 供養의 의식(梵唄四勿 作法禮懺 등)이라든지 제사 때의 예절 따위의 일(對靈 施食 등) 에 이르러서는 매우 번잡 혼란하여 질서가 없고 비열 雜駁해서 끝이 없는 상태이다. 이 것을 모두어 도깨비의 연극이라고나 이름 붙이면 거의 사실에 가까울 듯하니, 지금은 말 하는 것도 부끄러운 까닭에 가리어 논하지는 않으련다. 그리고 기타의 평시의 예식(巳時 佛供 朝夕禮佛 念誦 誦呪 등)도 혼란해 진실성을 잃고 있는 터인즉, 대소의 어떤 예 식을 막론하고 일체를 소탕한 다음에 하나의 간결한 예식을 정해 시행하면 될 것이다. 각 사찰에서는 예불을 매일 한 번씩 행하되, 집회 때가 되어 執禮가 운집종을 다섯 번 때리면 승려와 신도는 옷깃을 가다듬고 일제히 불당으로 나아가 향을 사르고 三頂禮를 행한 다음 같이 찬불가를 한 번 부르고 물러나면 된다.9) 앞서 살펴보았듯이 조선시대 불교는 서민대중의 기층신앙에 의지하여 의례불교, 의식불교로 유지하였다. 국가의 철저한 억불시책에 맞서 불교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통과 역사를 도외시하고 만해는 齋供養과 제사의례, 영혼천도의례 등을 비열하고, 장황한 도깨비 연극이라 폄하하였다. 더욱 이 사시불공과 조석예불 등의 일상의례 조차도 모두 소탕하고 하나의 간결한 예식 으로 대치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과격한 논리는 개혁은 철저한 파괴로부터 라 는 조선불교유신론 의 기본 명제에 바탕을 두고 있었고, 허례허식에 치우치는 당 시 불가의 폐단을 지적한 것이다. 무릇 예는 번잡하면 어지러워지게 마련인 바 어지러우면 공경하지 않게 되고, 공경하 지 않으면 예의 본의가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예에 있어서는 근본에 중점을 두는 까닭 에 상례는 슬픔을 주로 하고 제사는 공경을 주로 해서, 기타의 자질구레한 절차에 있어 서는 들고 남의 있어도 무방한 것이니, 번잡하면서 공경하지 않는 것과 간소하면서 공경 하는 것은 어느 쪽이 나으며, 친숙하여 엄숙함이 없는 것과 뜸하면서도 공경함이 있는 것은 어느 쪽이 예에 합치되겠는가. 또 부처님에 대한 공양은 法供이라야 의의가 있고, 飯供은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매일 반공을 일삼는다면 부처님을 모독하는 것이 될 뿐이니, 이를 폐기한다 하여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다만 특별한 때(불탄신 성도일 열반일 時薦之類)에 진귀하고 깨끗한 음식을 바쳐 중생으로서의 작은 정성을 표하는 것은 용납될 수도 있는 문제겠 다.10) 즉 의례는 공경하기 위해 하는 것이므로 공경의 진심을 표현한다면 절차와 행위 는 간결하거나 생략해도 무방하다는 논리였다. 조선말기까지 불교는 국가의 법적, 제도적 틀 속에 포함되지 못했다. 사찰과 승려 9) 朝鮮佛敎維新論, 韓龍雲全集 제2권, 불교문화연구원, 2006. p.76. 10) 앞의 주9)와 동일. - 140 -

8 佛敎學報 第 48 輯 는 생활의 자구책을 모색해야 할 만큼 어려운 지경이었고, 이러한 현실에서 교리와 사상, 신앙의 발전은 생각하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이후 서구 열강의 도래와 함께 기독교가 침투하고, 개항 이후 일본불교가 상륙하면서 불교계는 정체성을 찾지 못 하고 표류하고 있었다. 더욱이 이들 외래의 종교는 체계적인 교리와 신앙, 그리고 의식을 구비하고 근대화된 포교방식으로 급속히 한국사회에 파급되고 있었다. 이러 한 현실에서 만해는 여전히 구태의연한 기원적 염불과 번잡한 의례만을 답습하고 있는 불교를 새 시대에 맞도록 철저히 개혁할 것을 제창하였던 것이다. 만해는 미 신적 요소와 기복적 요소가 결합된 예능적, 무속적, 비불교적 작법들을 폐지하고 불 교의례 본래의 경건성과 순수성을 회복하고자 하였다.11) 그러나 만해의 주장은 기존의 불교 현실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던 듯하다. 물 론 개혁의 이론은 적지않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지만, 오랫동안 행해지고 있던 관습 과 전통은 쉽게 변화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찰과 승가는 의례불교의 모습을 그대 로 유지하고 있었던 듯하다. 1927년 齋供儀式을 혁파해야 한다는 주장이 釋王寺 승 朴勝周에 의해 다시 제기되었다. 재공의식이란 것은 現今 조선사찰에서 거행되는 일종의 禮式입니다. 그런데 그 예식의 절차가 하나도 법다운 것이 없으며, 또 예식을 집행하는 행동이 심히 亂雜鄙陋하여 조금 이라도 양심을 가진 사람으로는 차마 눈으로 볼 수 없는 예식입니다. 말하자면 무당의 푸닥거리나 도깨비 연극이라 하였으면 썩 적합할 듯합니다. (중략) 원래 재공의식이란 施者의 복을 지어주는 동시에 受者도 또한 복을 지어 施者受者의 同種善根이 근본 목적 이었습니다. 그러나 금일에 유행되는 의식 같아서는 선근을 지음은 그만두고 도리어 뜻 하지 아니한 죄만 지을까 염려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이따위 의식으로는 죄를 지어도 여간한 죄를 짓지 않을 것입니다. 이 어떻게 불행한 일입니까? 그 동기는 어떠한 동기에 因함임을 물론하고 시자의 근본희망은 복을 지으려하는 것이었는데 만일 복이 변하여 죄가 된다하면 세상에 이렇게도 불행한 일이 어데 있으리까? 이따위 예식은 하루바삐 없애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12) 재공의식을 무당의 푸닥거리 라거나 도깨비 연극 이라고 비난하는 어조는 만해 의 입장과 일치한다. 조선불교유신론 이후 17년이나 지났지만 이러한 의례불교의 흐름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박승주의 지적대로 이러한 재공의식은 배불리 먹지 못하고, 따뜻이 입을 수 없어 난잡한 의식으로 축원을 올리고 和請을 친다고 하여 시자의 錢穀을 탈취하는 흉계 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대중의 의식 과 문화로 깊게 자리잡은 현실을 무시한 개혁론은 공허한 주장에 불과하였다.13) 11) 송현주, 근대한국불교 개혁운동에서의 의례의 문제 한용운, 이능화, 백용성, 권상노를 중 심으로, 종교와 문화 제6호, 서울대 종교문화연구소, pp.168 169. 12) 朴勝周, 齋供儀式에 對하야, 佛敎 제35호, 佛敎社, 1927. 5. pp.31 35. - 141 -

한국 근대불교의 대중화와 석문의범 9 만해는 조선불교유신론 이후 평생을 불교의 개혁과 민족의 독립을 위해 일제에 항거하였다. 끊임없이 한국불교의 개혁 방안을 고민하였고, 불교의 주체성을 회복하 기 위해 분투하였다. 1931년에 발표한 朝鮮佛敎의 改革案 14)도 이러한 의지의 표 명이었다. 모두 6개의 항목에 걸쳐 불교의 개혁 방안을 제시하였다. 통일기관의 설 치, 사찰의 폐합. 교도의 생활보장, 경론의 번역, 대중불교의 건설, 禪敎의 진 흥 등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개혁안 중에 의례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 다는 점이다. 1910년 조선불교유신론 을 통해 불교개혁안을 제창할 당시 의례에 대한 개혁은 두 개의 항목을 설정할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21년 이 지나 불교개혁안을 제시하면서 의례의 문제는 일체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렇다 면 세월이 지나면서 만해는 의례에 관한 생각에 어떠한 변화가 생겼다고 추정할 수 있다. 안진호는 석문의범 을 편찬하기에 앞서 1931년에 佛子必覽 을 편찬하였다. 이 책 역시 전래하는 각종 의례, 의식문을 발췌한 의례의 결집서이다. 발간 직후 불교 계의 환영을 받았지만, 2년을 못 넘기고 품절되었다. 이를 대폭 증보, 수정한 것이 바로 석문의범 이었다. 불자필람 은 당시 예천포교당의 포교사였던 崔就墟15)의 제안으로 안진호가 편찬하고 蓮邦社에서 출판하였다. 그런데 이 책의 편찬에 만해 가 참여하고 있었다. 최취허가 쓴 발간의 취지 에 따르면 權相老와 金大隱이 교정 하고, 만해가 후원하였다고 한다.16) 지극한 경배의 대상인 塑繪조차 파괴할 것을 제 창하고, 각종의 의례, 의식을 모두 철폐할 것을 주장했던 그가 오히려 전통불교의 의례집을 간행하는데 깊이 후원하였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만해의 의례에 대한 입장 변화는 불교의 대중화라는 대전제를 염두에 두었기 때 13) 박승주는 錚, 鈸羅, 長鼓 등 난잡한 기구와 穢褻한 巫徒式 행동을 없애자는 것이고, 梵音 은 절대로 반대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朴勝周, 앞의 글 pp.33 34) 이러한 입장은 만해에 게서도 확인된다. 1932년 寺法改正에 대하여 라는 글에서 만해는 사찰령을 대신하여 독 자적인 寺法 개정안을 제정하자며 그 안을 제시하였다. 총 16장에 걸쳐 사격, 주지, 직제, 법식, 법계, 교육, 포교 등 각 방면에 걸친 구체적인 법규를 마련하였다. 이 가운데 법식 의 마지막 조에 法式에는 擊鼓 鳴鑼 蹈舞 등을 廢禁함 이라 하였다. 佛敎 제91호, 佛敎社, 1932, 1. p.8. 14) 佛敎 제88호. 佛敎社, 1931. 10. pp.2 10. 15) 崔就墟(1852??)는 경북 예천 출신으로 자호를 蓮邦頭陀라고 하였다. 자세한 행장은 전 하지 않으나 주로 경상도의 金龍寺, 桐華寺 등의 포교당에서 포교사, 설교사로 활동하였 다. 특히 대중포교에 관심을 가져 각종의 결사에 참여하고 대중설법에 활발한 활동을 하 였다. 1912년 朝鮮佛敎月報 등에 친일 성향의 글을 게재하는 등( 法類兄弟에게 顒祝, 朝鮮佛敎月報, 제2호, pp.38 39. 1912, 2) 친일인사로서 정치강연회 등에도 여러 차 례 참여하였다. 1916년 1월에는 金龍寺 華嚴會에서 법화경을 강설하였고, 1925년 12월에 는 예천불교진흥회를 창립하여 포교사로 활동하였다. 1926년에는 能仁學園長이 되었다. 1935년에는 안동포교당에서 개최한 心田開發 강연회에서 강연하였다.( 每日申報, 1935. 10. 21. 4면) 16) 發刊의 趣旨, 佛子必覽, 蓮邦社, 1931. - 142 -

10 佛敎學報 第 48 輯 문이 아닐까 짐작된다. 다음과 같은 주장에서 불교대중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재래의 조선불교는 역사적 변천과 사회적 정세에 의하여 다만 사찰의 불 교, 승려의 불교로만 되어 있었다. 이것은 불교의 역사적 쇠퇴의 일시적 현상에 지 나지 않는 것이니 어찌 이것을 불교의 敎義라 하리요. 불교는 마땅히 이러한 현상 에 대하여 단연 타파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니 산간에서 가두로, 승려로서 대중 에 가 현금 조선불교의 슬로건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17)라고 하였다. 승려가 산간에서 가두로 나와 적극적으로 대중에게 다가가는 방법 중의 하나가 염불을 위 시한 각종의 의례, 의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따라서 재래의 불교 의례, 의식집을 집성하는데 이처럼 적극 후원하였던 것이다. Ⅲ. 석문의범의 체재와 내용 1. 불자필람 의 구성 석문의범 은 1935년 11월경에 간행되었다.18) 석문의범 의 前身인 불자필람 은 4년 앞선 1931년 12월에 간행되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불자필람 은 최취허가 처 음 발의하여 안진호가 전래의 의례문을 집성하고, 권상로와 김태흡이 교정을 맡았 다. 1931년 봄, 안진호는 사찰의 역사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남부지방을 유력하였 고, 6월에 경북 예천의 龍鳳敎堂에서 최취허를 만났다. 그로부터 佛門의 初入者들이 持誦할 수 있는 의례문의 편찬을 의뢰받은 안진호는 불과 한 달 만인 7월에 초고를 완성하였다. 원고를 받은 최취허는 권상로와 김태흡의 교정을 거쳐 그해 12월에 자 신의 거처인 蓮邦社의 이름으로 발간하기에 이른다. 발간 즉시 신문에 광고를 게재 하는 등 적극적으로 홍보하였다.19) 이 책은 발간되자마자 인기리에 널리 보급되었다. 당시까지 사찰에서 사용하는 의례집은 조선시대 이래의 목판본이 전부였고, 이것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 17) 佛敎 제88호. 佛敎社, 1931. 10. pp.8 9. 18) 석문의범 의 판권에는 발행 시기를 1935년 4월 8일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때는 책이 발간되기 전이었다. 즉 1935년 10월 金剛山 지에 발간 지연에 대한 광고를 게재하였다. ( 金剛山 제2호, 金剛山社, 1935, 10. 끝면) 당시 인쇄소의 사정으로 지연되고 있어서 늦 어도 음력 9월 하순경에는 완료한다고 하였다. 즉 정확한 발행 시기는 1935년 11월경이 된다. 따라서 판권의 날짜는 편자가 원고를 탈고한 시기라고 생각된다. 19) 本書는 佛敎儀式에 精髓이며 日用行事에 指南이라. 우리 敎人의 修行上 導師良友되기에 부끄럽지 않고 福田心粮되기에 不足함이 업사온바 各位께서 一部式 備置하시와 座右에 銘과 靜案에 鏡을 삼으시기 爲하야 玆에 普告하오니 絶品되기 前에 爭先購讀하심을 바라 나이다 불자필람 하편, p.139. - 143 -

한국 근대불교의 대중화와 석문의범 11 니어서 대부분 직접 쓴 필사본이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활자본 의례집은 큰 인기를 끌었고, 더구나 한글이 병기되어 있어 누구라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정확한 발간 부 수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2년을 못 넘겨 품절되기까지 적지않은 책이 유통되었다. 품절된 이후에도 국내는 물론 일본과 만주에서도 주문이 몰려들어 답장쓰기에도 바 쁠 지경이었다고 한다.20) 당시 불자필람 의 가치를 靑潭(1902 1971)스님의 회고록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언젠가 나는 육당과 춘원을 만난 자리에서 그전과는 달리 솔선하여 불교의 의식을 해 설한 책자인 불자필람 을 번역해 주기를 부탁했더니 육당은 능력이 없다고 거절하였고, 춘원은 즉석에서 快諾하였다. 그러나 한 해 두 해 미루어 오다가 끝내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납북이라는 불행한 사태를 만나고 말았다.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21) 청담스님은 30대 무렵22) 불자필람 을 통해 불교의례를 익히고, 책의 가치와 중 요성을 이해한 듯하다. 나아가 의례의 대중화를 위해 당대의 최고 문필가였던 육당 최남선과 춘원 이광수에게 이 책을 쉽게 번역할 것을 청하였던 것이다.23) 이상과 같은 불자필람 은 석문의범 간행의 계기가 되었다. 편자 스스로 불자 필람 의 後身 24)이라고 규정했듯이 석문의범 은 불자필람 의 체재와 내용을 계 승, 확대하였다. 그러므로 석문의범 의 체재를 이해하기 위해 불자필람 을 살펴보 는 것이 순서이다. 불자필람 은 상하 2편과 부록으로 편성되었다. 상편은 朝夕鍾頌 을 시작으로 比丘尼八敬法에 이르기까지 27개 항목, 하편은 諸佛通淸, 神衆壇作法 등 33개 항목의 의례문을 수록하였다. 부록은 전래의 의례문이 아니라 포교방식, 설 교의식, 강연의식, 花婚儀式 등 대중포교를 위한 각종의 현대적 의식을 구성, 제시 하였다. 의례집의 발의부터 출간까지 불과 6개월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 책은 당 시 사찰에서 상용하는 의례, 의식 대부분을 망라하였다. 또한 현대적 포교, 설법 방 식 등을 제시하여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불교서가 되었다. 2. 석문의범 의 구성과 내용 20) 釋門儀範 刊行 豫告, 金剛山 창간호, 金剛山寺, 1935. 9. 끝면. 21) 견성과 파계의 사이, 마음속에 부처가 있다 청담큰스님 탄생 100주년 기념 말씀모음 집, 화남출판사, 2002, p.370. 22) 불자필람 이 간행된 이후 석문의범 이 출간되기 이전의 시기이므로 1932년에서 1935 년 사이의 일이다. 23) 주지하듯이 불자필람 은 2단으로 나누어 목차부터 본문에 이르기까지 한문과 한글을 상 하단으로 배치하였다. 즉 이미 한글이 있어 굳이 번역이 필요 없었다. 따라서 여기서의 번역이라는 의미는 단순한 한글 발음을 나열하는 차원이 아니라, 한문 원문의 내용을 알 기 쉽도록 우리말로 풀어쓴다는 것이라 생각된다. 24) 앞의 주20)과 동일. - 144 -

12 佛敎學報 第 48 輯 석문의범 은 불자필람 의 체제와 내용을 그대로 계승하였다. 간행의 직접적인 취지가 불자필람 의 품절에 있었고, 이를 세 배 가량 증보하였기 때문에 두 책의 체재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안진호는 불자필람 간행 이후 4년 만에 석문의범 을 발간하였다. 불자필람 은 원래 최취허의 위탁을 받아 수행한 작업이었고, 전체 6개월의 발간 기간 중에서 실제 의례문을 집성한 기간은 1개월 밖에 되지 않았다.25) 짧은 기간에 이루어진 책 이라 부족함을 깨닫고 있었던 것 같다. 더욱이 이 책이 많은 호응을 받아 2년이 못 되어 품절되자, 증보 발간할 필요가 대두되었다. 1935년 9월 석문의범 원고를 인 쇄소에 넘기고, 책의 간행을 알리는 광고를 金剛山 지에 게재하였다. 釋門儀範 刊行豫告(佛子必覽 後身) 본인이 年前에 경북 예천 포교사 최취허화상의 위탁을 받아 佛子必覽을 간행하게 되 었는데, 겨우 2년을 못가서 품절되었습니다. 그 후로 全鮮은 물론 內地 또는 滿洲 등 각 방면에서 주문이 沓至되어 書面 取扱에 눈썹 펼 겨를이 없었습니다.(중략) 본인은 敎運 의 발흥을 慶讚하여 다시 서적의 不備를 애석하게 여기고 이전에 누락된 것을 일일이 수집하여 우리 불교의 의식 진행에 집대성을 계획하였더니, 그 양이 전의 불자필람보다 약 세 배 가량 증보되었습니다. 명칭이 내용에 부합하기 위하여 釋門儀範이라 改題하고 이를 인쇄에 맡겼습니다. 그 목록만을 다음과 같이 예고하고 끝으로 注意 몇가지를 덧붙 여 各地諸氏의 感懷萬一에 奉副하고자 하오니, 여러분께는 서둘러 주문하셔서 품절의 후 회가 없으시길 바랍니다.26) 이와같이 간행 예고의 광고를 게재할 정도로 안진호는 석문의범 에 자긍심을 지 니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인쇄소의 사정으로 책이 약정 기일에 발간되지 못하 였다. 다시 지연의 광고를 게재하고 음력 9월까지는 반드시 발행할 것이며, 이미 선 주문한 구입자에게는 정가 2원 60전에서 50전을 감해준다고 하였다.27) 또한 책의 25) 안진호는 의례문의 집성을 마치고 최취허에게 초고를 보내면서 序 를 썼다. 이 때가 1931년 7월인데, 序 에서 최취허를 만난 때를 1931년 6월 上旬傾이라 하였다. 즉 1개월 만에 불자필람 의 원고를 완성한 것이다. 26) 釋門儀範 刊行 豫告, 金剛山 창간호, 金剛山寺, 1935. 9. 끝면. 27) 광고 : 본인이 석문의범이라는 책자를 인쇄에 付한지가 벌써 5개월이 가까웠고, 예고를 낸 지도 3개월 이상인 듯합니다. 참으로 미안천만입니다. 인쇄소에 고장이 발생하여 금일 까지 연기되었사오나, 늦어도 음력 9월 하순경에는 완료발행하게 됩니다. 이전에 주문하 신 僉員은 많이 용서하시고, 그때까지 고대하심을 바랍니다. 다만 책값과 우편요금 포함 2원 60전을 정하고 발행전에 先注文하신 분께는 50전을 할인하였는데, 그 규정은 변치 않고 발행 그 날부터 元 정가대로 실행하겠습니다. 또 한 가지는 구독자들이 페이지수가 많다며 상하권으로 묶어달라는 요구가 적지 않습니다. 이에 따라 單券 상하권 2종으로 제책하겠으니 주문자의 희망에 따라 각각 보내드리기로 하오니, 下諒하시고 소용에 따라 나는 단권책자로, 나는 상하권책자로 발부하라는 엽서 1장씩 미리 통지하여 주십시오. 단 상하권은 제책요금 10여 전을 추가로 받습니다 金剛山 제2호, 金剛山社, 1935, 10. 끝 - 145 -

한국 근대불교의 대중화와 석문의범 13 면수가 너무 두텁다고 하면, 두 책으로 분리해서 제책해준다는 친절한 안내도 있었 다. 사찰의 일상생활에서 쉽게 지니고, 독송할 수 있는 책을 만든다는 편의성을 염 두에 둔 배려이다. 석문의범 은 상하 2편과 부록으로 구성되었다. 상편은 禮敬 祝願 誦呪 齋供 各疏, 5장이고, 하편은 各請 施食 拜送 點眼 移運 受戒 茶毘 諸般 放生 持誦 簡禮 歌曲 神秘 등 13장이다. 그리고 부록은 朝鮮寺刹一覽表이다. 그런데 앞의 간행 예고에서 제시한 목차와 실제 간행된 목차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즉 간행 예고에서는 전부 7백여 면으로 <부록>에 吉凶雜錄十餘種 과 朝鮮 寺刹一覽表, 그리고 最近五百年歷史表 의 세 가지 항목을 포함한다고 하였다. 실 제 간행본은 650면이었고, 부록에 吉凶雜錄十餘種 과 最近五百年歷史表 의 두 항 목은 수록하지 않았다. 원고는 집필하였으나, 인쇄, 교열과정에서 제외된 듯하다. 그 이유는 7백여 면의 분량이 너무 많아 두 책으로 分冊해달라는 독자들의 요구도 있 었고, 일상에서 늘 수지독송하기에는 부담스럽다는 편찬자의 판단 때문이라고 생각 한다. 책의 출판은 만상회에서 맡았다. 만상회는 사실 안진호가 설립한 불교출판사였고, 출판과 서적판매, 나아가 불구용품, 범종 등도 판매한 일종의 불교서적상, 혹은 불 교백화점이었다.28) 설립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석문의범 을 간행하면서 창업한 것으로 보이는데, 書狀 과 都書, 금강경 등 1957년까지 58종의 책을 발간하였 다.29) 대부분 안진호 자신의 주해, 번역서였다. 불교대중화를 위해 경전을 번역하고 유통시키는 그의 노력은 당시 많은 칭송을 받았다.30) 이 만상회의 첫 간행물이 석 문의범 이었다. 아마도 불자필람 의 판매 호조가 자극이 되어 직접 출판사를 설립 한 듯하다. 결국 만상회는 석문의범 하나로 인하여 출판의 발판을 다졌고, 적지않 은 재산을 형성할 수 있었다.31) 28) 29) 30) 31) 면. 이와 같이 석문의범 은 1935년 10월 당시까지는 발행전이었고, 늦어도 음력 9월 하 순경에는 완료한다고 하였다. 즉 정확한 발행 시기는 1935년 11월경이 된다. 그런데 발간 된 책의 판권에는 1935년 4월 8일 이라는 날짜를 명시하였다. 판권의 날짜는 편자가 원 고를 탈고한 시기라고 생각된다. 김광식, 일제하의 불교출판, 대각사상 제9집, 대각사상연구원, 2006. pp.23 27. 佛經의 大家 安氏의 呼訴, 女人에게 1億財物 騙取 當했다고, 朝鮮日報 1957. 8. 2. 김광식, 앞의 글, pp.25 26. 안진호는 스스로를 卍商會主, 卍商會 會主 라고 칭할 만큼 만상회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안진호는 70여 종의 번역, 저술서를 모두 만상회에서 발간하였는데, 이를 통해 상당한 재 산을 축적하였다. 78세 때인 1957년 이말록(女, 50)이라는 점쟁이에게 1억여만 환을 사기 당했다는 고소장을 제출하였다. 30년 동안 번역, 편찬하였던 팔만대장경 58권의 紙型과 자기의 아들 世民 소유의 가옥을 이씨에게 강제로 사취당했다는 취지였다. 이씨는 안진 호가 喪妻하자 문하생을 빙자하여 접근하였고, 마침내 일종의 약점을 잡아 공갈협박, 감 금구타 등을 가하면서 도장을 빼앗아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佛經의 大家 安氏의 呼 訴, 女人에게 1億財物 騙取 當했다고, 朝鮮日報 1957. 8. 2) 이 사건은 결국 1960년 1-146 -

14 佛敎學報 第 48 輯 월 이말록의 범죄를 기소하면서 종결되었다.( 老僧 등친 女詐欺師를 起訴, 結婚 假裝코 家屋까지 빼앗아, 朝鮮日報 1960. 1. 18) - 146 -

한국 근대불교의 대중화와 석문의범 15 Ⅳ. 근대불교 대중화와 석문의범 간행의 의미 한국 근대불교의 대중화 과정에서 석문의범 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오늘날 쉽게 접할 수 있는 다양한 불자독송집 등의 의례서가 간행된 것은 불과 십여 년 전 부터이다. 사실 이러한 서책들도 대부분 석문의범 을 모본으로 재편한 것이다. 그 이전까지 석문의범 은 한국불교 의례의 유일한 교과서로서 승가의 필수서적이었 다. 당시 이 책을 통해 의례를 배운 조계종정 법전스님의 회고에서 그 위상을 확인 할 수 있다. 묵담스님 밑에서 행자 생활을 하는 동안 나는 초발심자경문 을 배웠고, 석문의범, 불자필람 등을 모두 외웠다. 무엇이든 집어넣으면 소화가 되던 어린 시절, 배우는 책들은 줄줄 외웠고, 염불소리 또한 점점 힘이 실려 갔다.32) 이후 1960년대에도 석문의범 은 여전히 수행자가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염불집이 었다.33) 석문의범 은 창작물이 아닌 전래의 의례문을 편집한, 말하자면 2차 자료이 다. 물론 전래의 의례문을 그대로 全載하지 않고, 원문의 착오나 잘못된 점을 수정 하였다.34) 또한 자신이 직접 작사한 찬불가를 수록하고, 불교식 혼인의례 등의 불교 대중화를 위한 현대적 의례를 제안하는 등 저술로서의 면모도 포함되어 있다. 즉 이 책은 자료집으로서의 의미와 저술로서의 의미 두 가지를 모두 지니고 있다. 이러한 석문의범 이 오랫동안 한국 불교의례의 典範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 던 것은 전통불교의 회복과 근대불교 대중화라는 시대의식을 여실히 반영하였기 때 문이었다. 즉 주권상실기하에서 전통불교의 주체성을 바로 세우고, 이를 토대로 근 대불교로 나아가려는 불교계의 의지와 지향을 포함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金泰洽이 쓴 머리말 을 통해 이러한 취지를 엿볼 수 있다. 32) 엄한 스님 아래에서 승려 노릇을 배우다 조계종정 해인총림 방장 법전스님 법문. 월 간 海印 제261호. 2003. 11. 33) 필자가 절에서 염불을 익히던 1960년대만 하더라도 월정사에는 염불집이라곤 오직 이 석문의범 한 권 밖에 없었다. 이것을 돌려가며 노트에 베껴서 염불을 익혔던 시절을 생각 하면 몇 십년 전의 일들이 향수로 다가온다 윤창화, 앞의 글. 34) 안진호는 12개 항목의 凡例 를 제시하였다. 이 가운데 전래의 의례문 중에서 착오된 사 항과 자신의 견해대로 원문을 수정한다는 5개 항목의 범례를 밝혀 놓았다., 본서는 진 언에 대하여 재래의 난삽한 한문자를 拔去하고 但鮮文字로 全用處도 있음., 欲建曼拏 羅先誦 7자가 해석문구이고, 진언명이 아니기에 본서는 이것으로 괄호하여 正文이 아닌 것을 명시함., 재래로 神衆歌詠에 불타를 찬덕한 卽佛身普遍諸大會 운운 등 妄發句節을 삭제하고 乾鳳寺故 寶雲老德의 新製인 欲色諸天聖衆 운운 등의 句語를 기입함., 願往 生 願往生 운운 등의 초2절이 재래로 倒置되었기에 본서는 이를 正誤함. - 147 -

16 佛敎學報 第 48 輯 큰 道는 법이 없으면 세울 수 없고, 참된 가르침은 儀式이 없으면 베풀 수 없다. 畢竟 이 도는 面壁觀心으로 충분하고 죄업을 참회하는데는 마음의 이치를 깨달으면 그만이다. 무슨 법이 필요하며, 무슨 의식을 배울 것이 있겠는가. 그러나 이것은 上根人의 견지요, 中流以下는 달을 보는데 손가락이 필요하고 방향을 아는데 지남철을 필요로 한다. 손가 락이 없으면 달을 보는 緣이 끊기게 되고 지남철이 없으면 남북을 가리키는데 옹색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큰 조화는 크고 넓어 한 티끌의 먼지도 꺼리지 않으며 참된 자비 는 두루 널리 퍼져 한 물건도 버리지 않는다. 우리 부처께서 미혹한 중생들을 연민하여 무량한 방편을 세우시니, 이른바 格外向上門이요, 또 佛敎修行門이요, 또 秘密摠持門이 요, 또 念佛往生文 등이다.(중략) 이 석문의범은 참선과 염불에 있어 방편문의 방편문[方 便門之方便門]이니 菩提를 이룰 것을 기약한 자에게는 이것이 얼마나 귀하리오. 그러나 석문의범이라는 방편문이 없으면 염불에 길이 없고, 참선에도 의지할 바 없으니, 어찌 그 뜻을 이룰 날을 기약하리요. 따라서 이 책 한 권은 진실로 敎海之指南이요, 禪林之寶 鑑이라 말할 수 있으리라.35) 이와 같이 석문의범 은 上根人, 즉 방편이 필요없는 上根機人을 위한 책이 아니 라 中流以下의 근기가 낮은 사람을 위한 책이라고 하였다. 근기가 낮은 대중들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과 나침반과 같은 구체적인 방편이 있어야 방향을 제대로 찾 을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석문의범 은 염불과 참선 수행을 위한 방편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석문의범 이 지니는 의미를 몇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석문의범 편찬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불교의 대중화에 있었다. 어려운 한 자의 의례문을 쉬운 한글로 병기하는 서술의 형식에서 대중화의 의지를 쉽게 확인 할 수 있지만, 안진호는 의례문의 선별 과정에서도 이 목적을 준수하였다. 즉 석문 의범 에는 승가의 일상의례 보다는 각종의 재의식에 역점을 두었다. 이러한 편찬 태도에서 불교의 대중화에 대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사찰안에서 행하는 출가자 의 일상적인 의례와 의식은 재가자 즉 신도들과는 동떨어진 채로 이루어진다. 그러 나 영산재와 수륙재 등의 재의식은 반드시 재가자가 참여한 가운데 승가의 집전으 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승가와 재가가 한데 어우러지는 의례는 불교의 포교, 대중화 에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믿음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라 생각된 다. 둘째, 석문의범 은 새로운 시대에 맞는 현대적 의례와 의식의 변화를 적극 권장 하였다. 안진호는 조선시대 이래 전래하는 의례, 의식문을 집성하여 전통불교의 의궤를 중시하면서도,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의식과 의례의 변화를 위해 옛 것만을 고집하지 35) 머리말, 韓定燮註, 新編增註 釋門儀範, 法輪社, 1982. p.2. - 148 -

한국 근대불교의 대중화와 석문의범 17 않았다. 장례의식을 간소화하고, 무주고혼을 천도하는 추도의식을 새롭게 바꿀 것을 주장하였다. 그의 의례와 포교에 대한 열린 생각은 불전에서의 혼례식을 제안하기 도 하였다.36) 새로운 부부의 출발점인 혼례를 사찰에서 치룸으로써 평생의 불자가 될 수 있고, 그 2세들 또한 영원한 불자가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밖에 聖歌, 즉 찬불 가를 보급하여 포교에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이러한 취지에서 참선곡 회심곡 백 발가 몽환가 권왕가 원적가 왕생가 신년가 신불가 찬불가 경축가 성탄가 성도가 오도가 열반가 月印歌 目連歌 勸勉歌 등의 곡에 직접 가사를 쓰거 나 기존의 가사를 소개하기도 하였다. 셋째, 이 책은 근대불교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하였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석문 의범 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대중을 위한 불교서적은 전무하다시피 하였다. 불교대 중화를 취지로 적지않은 잡지가 창간되었으나, 대부분은 교리 설명과 소개로 일관 하여 대중문화로서의 불교를 이룩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석문의범 의 전신인 불자필람 이 간행된 지 불과 2년이 못되어 매진되었다는 사실은 대중들의 의례, 의 식에 관한, 즉 불교문화에 대한 욕구가 얼마나 컸던가를 짐작하게 한다. 의례집에 대한 수요가 높았다는 것은 당시의 불교계에 각종의 의례와 의식이 성행하고 있었 다는 사실을 말해주지만, 책의 보급을 통해 불교의례와 문화가 발전할 수 있는 기 회가 되었다는 점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Ⅴ. 맺음말 19세기말 열강의 외침이 이어지면서 한국은 많은 혼란과 좌절을 겪었다. 근대사 회를 위한 제반 준비가 미흡한 현실에서 발달한 과학문명과 思潮는 중세적 사고와 질서를 흔들어 놓았다. 서구문명은 기독교를 첨병으로 내세워 이권 침탈의 야욕을 노골화하였고, 일본은 같은 불교문화권이라는 친밀성을 바탕으로 기층사회에 일본 불교를 전파시켰다. 이들은 종교의 보편적 이념을 표방하면서 선진화된 포교방식으 로 단기간에 많은 교회와 포교당을 건립하였다. 이 무렵 한국불교는 오랜 억불의 그늘을 벗어나 겨우 종교적 권리를 회복하는, 초보적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따라서 급속히 팽창하는 기독교의 교세와 일본의 종파불교에 어깨를 견주기에는 모든 것이 미미한 상황이었다. 더구나 주권을 상실하면서 불교계는 사찰령이라는 일제의 악법 36) 불교식 화혼식은 이미 李能和가 제안하여 1920 1930년대에 보급되어 있었다.( 擬定佛敎 式花婚法, 朝鮮佛敎叢報 제4호, 1917. p.1. 및 佛敎普及은 精神과 形式이 竝行然後, 朝鮮佛敎叢報 제3호, 1917. 5. pp.1 2. 조선불교통사 하편, 1918, pp.981 983) 안진호 의 花婚儀式 은 이능화의 화혼식에 약간을 가감하여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송현주, 앞 의 글, pp.171 173) - 149 -

18 佛敎學報 第 48 輯 에 발이 묶여 민족불교의 주체성마저 위태로울 지경에 처했다. 이 무렵 석문의범 이 등장하였다. 이 책은 전래의 한국불교 의례 의식문을 집 성하여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쉽게 염불하고, 참선하며 기도할 수 있도록 한다는, 비 교적 간단한 목적이었다. 그러나 간행 이후 이 책은 큰 반향을 일으키며 불교의례 의 교과서라고 할 만큼 중요한 위상을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전통불교의 주체성을 지키려는 근대불교의식과 대중화라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자리잡고 있 었다고 생각된다. 즉 조선시대의 많은 의례, 의식집을 결집하여 계승한다는 취지는 일본불교의 성행속에서도 민족불교의 고유성을 지키려는 노력이었다. 여기에 머물 지 않고, 불교의 대중화를 위해 각종의 찬불가를 작곡하고, 불교식 화혼식을 정리하 는 등 일상의례로서의 생활불교를 제창하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저자의 노력에 당시 불교계가 크게 호응하였다는 사실이다. 국내는 물론, 일본과 만주에서도 주문이 이어졌고, 출판사인 卍商會는 이 로써 불교출판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1930년대 불교계는 각종 경전을 번역하고, 잡지를 발간하는 등 불교서적 출판을 통한 불서보급에 힘을 기울였다. 이러한 불교 대중화의 한 가운데에 석문의범 이 있었고, 편자 안진호와 교열자 권상로 김태흡 은 그 선각자였다고 하겠다. - 150 -

한국 근대불교의 대중화와 석문의범 19 참고문헌 저서 및 잡지 佛敎, 佛敎社. 朝鮮佛敎叢報, 삼십본산연합사무소. 朝鮮佛敎月報. 朝鮮佛敎月報社. 慶北佛敎, 慶北佛敎協會. 李能和, 朝鮮佛敎通史, 新文館, 1918. 崔就墟 安錫淵共編, 佛子必覽, 蓮邦社, 1931. 安震湖, 釋門儀範, 卍商會, 1935. 韓定燮註, 新編增註 釋門儀範, 法輪社, 1982. 정 각, 한국의 불교의례, 운주사, 1991. 朴世敏編, 韓國佛敎儀禮資料叢書, 1993. 洪潤植, 韓國佛敎史의 硏究, 敎文社, 1988. 한국근현대불교사연표,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 2000. 曹溪宗史 근현대편,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 2001. 鄭珖鎬, 일본 침략시기의 한 일불교관계사, 아름다운세상, 2001. 韓龍雲全集 제2권, 불교문화연구원, 2006. 불교민속문헌해제, 국립문화재연구소, 2005. 韓國 近代 佛敎의 人文學的 再照明,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06. 12. 한국근현대불교사연구의 동향과 과제, 禪文化硏究 창간호, 한국불교선리연구 원, 2006. 논문 강미자, 한용운의 불교개혁운동과 민족주의 운동, 경성대 박사학위논문, 2007. 김광식, 일제하의 불교출판, 대각사상 제9집, 대각사상연구원, 2006. 김영태, 불교의식의 역사와 사상성, 새로운 정신문화의 창조와 불교,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우리출판사, 1994. 南希叔, 朝鮮後期 佛書刊行 硏究 眞言集과 佛敎儀式集을 中心으로, 서울대 박사학위 논문. 2004. 박종민, 한국 불교의례집의 간행과 분류 韓國佛敎儀禮資料叢書 와 釋門儀範 을 중심으로, 역사민속학 제12호, 한국역사민속학회 편, 민속원, 2001. 송현주, 근대한국불교 개혁운동에서 의례의 문제 한용운, 이능화, 백용성, 권상 - 1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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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불교의 대중화와 석문의범 21 Abstract The Popularization of Buddhism and The Sukmoonyibum in Modern Korea Han, Sang GIl The Sukmoonyibum is a buddhist ritual book in modern time Korea. This book was published in 1935, it kept the location which is important to Korean buddhist ceremony. And further, it became the important opportunity to confirm and succeeds in identity of Korean buddhism. Korean buddhist culture was destroyed and disappeared by the Japanese colonial policy. A endeavors to collect ritual ceremony was a result in recovery of Korean buddhist tradition. The purpose of this research is understanding a meaning of Popularization of Buddhism during infiltration of Japanese buddhism and assertion of buddhist reform. It is summarized that result, three points. First, A important purpose of publishing The Sukmoonyibum was popularization of Buddhism. We will easy to understand that intention to popularization of Buddhism, it writes together Chinese character and Korean character. But a writer An, Jin Ho(안진호), he thoroughly observed the rules to select in ritual text. He puts an emphasis on all sorts of special ceremony, because he belive that it is most important role in keeping with a Buddhist monk and a Buddhist. And second, this book was encourage a modernize ritual and change of an old consideration. He proposed a wedding ceremony in temple, and composed several Buddhist hymn. these are becomes help propagation and popularization of buddhism. And third, It was largely contributed the popularization of buddhism. Before it published, do not exist buddhist books for the masses. Only two years before, it was out of stock. In my estimation, this means that highly desire for a ritual of buddhism. According to more spread of the book and more grows of a ritual buddhism, We called that a model of the popularization of buddhism. - 153 -

22 佛敎學報 第 48 輯 Key Words The Sukmoonyibum(석문의범), The Bulhapilram(불자필람), An, Jin Ho(안진호), Choi, chui Heo(최취허), Kwon, Sang Ro(권상로), Kim, Tae Heup(김태흡), Han, Yong Woon(한용운), Mansanghoe(만상회), Modern Time Buddhism, A Ritual Book of Buddhism, Propagation of Buddhism, Buddhist Reform Movemant, The Korean Buddhism Publication. 논문접수일 : 2008. 1. 30. 심사완료일 : 2008. 2. 11. - 15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