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대회 경제사학회 발표논문 20세기 우리나라 혼인연령의 추이-경남 언양 사례 박기주(성신여대) 김성남(서울대) Ⅰ. 머리말 맬서스는 아무런 장애가 없다면 인구는 25년마다 두 배로 증가할 것이며 이런 인구 증가는 식량부족에서 오는 기근이나 질병 등으로 인해 불가항력적으로 감소하거나(positive check) 결혼 지연이나 낮은 결혼출산력에 의해서 증가가 억제된다(preventive check)고 하였다. 혼 외 출산도 있지만 대부분의 출산이 有 配 偶 여성에 의해 이뤄진다는 점에서 결혼은 인구증가라 는 동태적 변화의 출발이면서, 동시에 인구조절의 중요한 기제로 작용한다. 맬서스 이후 결혼은 인구학 뿐 아니라 경제학, 사회학의 중요한 주제였다. 결혼패턴에서 중요 한 것은 혼인율과 혼인연령이다. 혼인율과 혼인연령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역의 상관관계에 있다. 즉, 혼인연령이 낮으면(높으면) 혼인율이 높은(낮은) 것이 일반적이다. 배우자간 연령의 차이도 포함하여, 결혼패턴에 대한 이해는 다양한 측면에서 유의미하다. Talberg(2003)는 북서유럽을 중심으로 진행된 2차 인구학적 변천이 현재 서유럽 외의 다른 지역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하였다. 그것은 1960년대 중엽 이후 나타나고 있는 인구현상으로, 혼인율 및 출생율의 감소, 이혼율 및 미혼동거율의 증가, 미혼출생율의 증가, 초혼연령 및 초 산연령의 상승이다. Saardchom and Lemaire(2005)는 UN의 World marriage patterns의 데이터를 사용하여 대부분의 국가에서 초혼연령이 상승하고 있다고 하였으며, Mensch et al.(2005)은 지난 30년 동안 저개발국에서도 혼인율이 뚜렷하게 감소하였음을 밝혔다. 우리나라도 근대 이전에는 조혼의 관습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초혼연령이 지나치게 높 고 혼인율도 매우 낮아져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Hajnal(1953)이 고안한 방법에 따라 센서스를 이용하여 추계한 평균 초혼연령(SMAM, Singulate Mean Age at Marrriage) 은 장기에 걸친 꾸준히 상승하였다. 1) 이 방법의 한계는 모든 출생코호트의 크기가 같고 사망 이나 이동이 없으며 각 연령계급 내의 연령 간에는 혼인율이 균일함을 가정하고 있는 점이다. 이와 달리, 두 시점의 센서스를 이용하여 두 시점 사이의 평균 초혼연령을 측정하는 Agarwala의 방법이 있는데, 그 결과도 Hajnal에 의한 결과와 거의 대동소이하였다(김남일 이 지현 1995). Hajnal 방식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평균 초혼연령은 1925년에 남성 21.1세, 여자 16.6세이며, 1940-55년에 남성 21.8세에서 24.7세, 여자 17.8세에서 20.5세로 3세 가까이 급 상승하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2000년에는 남성 29.3세, 여자 26.5세였다(권태환 김두섭 2002). 센서스를 이용한 초혼연령 추계는 매 5년 간격이며 1925년 이전과 1940-55년 사이의 기간이 누락되었다. 족보를 활용한 초혼연령 추정에 의하면, 20세기 전반에 양반계층을 기준으로 한 국인의 평균초혼연령은 남성 16.72세, 여자 16.58세여서(박희진 2006), 남성의 경우에 상당한 1) Hajnal은 특정 연령코호트의 15세 미만에서는 결혼이 없고 49세까지는 모두 결혼한다는 가정 하에 이 코호트가 49세까지 미혼으로 있을 가능성으로부터 평균 초혼연령을 추정하였다. 그것을 산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는 x 연령의 미혼율. - 1 -
차이가 있다. 조선인 인구동태통계에 의하면 20세 미만에 결혼하는 비율이 1912-23년에 남녀 각각 0.43 0.39%, 0.68 0.64%로 변하였다( 善 生 永 助 1925). 또한 1938 39년에 평균 혼인연 령은 남성이 25.8세이고 여성은 20.3세였으며( 朝 鮮 厚 生 學 會 1943), 10% 정도의 재혼이 포함 된 것을 감안하더라도 센서스로부터 추계한 평균 초혼연령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혼인연령 은 1990년에 남성 27.8세, 여성 24.8세이고, 2010년에 남성 31.8세, 여성 29.8세( 統 計 廳 )이 며, 이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높은 편이다. 본 논문의 목적은 한국인의 혼인연령 혼인율의 장기 추이를 시야에 두고 1940-50년대 일 제하 전시기와 한국전쟁이 한국인의 혼인율과 혼인연령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민적부의 혼인기록을 이용하여 구명하는 것이다. 즉, 전시기에 혼인연령 혼인율은 다른 시기와 뚜렷한 차이가 있는가?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며, 전시기의 동원이 그것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일제하 戰 時 期 와 한국전쟁기 간에는 어떤 차이가 있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본 논문은 자료상의 한계로 인해 이론적 분석보다는 실태를 밝히는데 초점을 두었으며, 혼인연령의 장 기 추이는 제시함으로써 센서스를 이용한 기존 추계를 보완 또는 대체하는 의미를 갖고 있 다. 이하 제II절에서 혼인연령과 혼인율에 관한 이론과 본 논문이 이용한 자료에 대해 설명 하고 제III절에서는 초혼연령의 장기추이를 연도별 코호트별로 분석하며, 제IV절에서는 1940-50년대의 전시기에 초점을 맞추어 결혼패턴이 달라지는 것을 설명하고 제V절에서 글을 요약한다. II. 이론과 자료 1. 이론 결혼패턴은 다양한 측면에서 영향을 미친다. 우선, 인구학적 측면에서 보면, 혼인율과 초혼연 령은 출산율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인위적인 피임이 용이하지 않던 전근대 사회에서는 물 론, 근대사회에서도 초혼연령은 출산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영국은 18세기 이 후 인구가 급증하였는데 그 중요한 요인은 바로 혼인율의 증가(즉, 미혼율이 1/4 1/10로 감 소)와 여성의 초혼연령 하락(26세 23세)이었다. 물론 현대에는 초혼연령이 출산력에 미치는 영향이 과거보다는 상대적으로 감소했지만 초혼연령이 낮을수록 가임기간이 길어질 뿐 아니라 출산능력이 커기 때문에 더 많은 자녀를 가질 가능성이 커진다. 다음으로, 사회학적 측면에서 결혼은 가족이 재생산되는 시작이며 가족이 구성되고 기능하는 방식을 반영하며 가족 내의 남녀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서 주목받고 있다. 또한 결혼은 배우자로서의 역할에 관련된 사회적 규범에도 영향을 미치므로 결혼패턴을 통해 여타의 사회 적 변화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다. 가령 초혼연령은 가족형성의 시기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 이 높아질수록 세대교체의 간격이 길어지는 반면, 부부간에 적응기간이 짧아지는 결과를 가져 온다는 점에서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마지막으로 사회정책 측면에서, 초혼연령과 혼인율의 변화는 사회정책 수립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부부와 자식으로 구성된 핵가족을 일반으로 하는 사회에서는 초혼연령 패턴은 주택시 장의 수요와 노동시장의 공급에 영향을 주며, 이들 시장에 대한 정책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또한 조혼 또는 만혼이 질병이나 출산에 여러 가지 영향을 미치므로 초혼연령은 보건위 생 정책과도 관련 있다. - 2 -
[그림 1] 결혼패턴의 인과관계 일반적으로 경제가 성장하면서 초혼연령은 점차 높아지고 혼인율은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저 개발국은 개발국보다 초혼연령이 낮고 동일 국가 내에서는 도시보다 농촌이 혼인연령이 낮은 경향이 있다. 혼인율과 초혼연령을 결정하는 요인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첫째, 혼인은 사회조직으로서의 가족, 친족제도를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따라서 혼인과 관련한 다양한 관습 및 제도와 지역, 문화, 시기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 혼인에 대한 태도가 혼인에 영향을 준다. 예컨대, 전근대 사회에서 아시아와 유럽 간에는 결혼 패턴에 차이가 있 어, 전자에는 조혼과 보편적 혼인 풍습이 있고 후자에는 만혼 풍습이 있었다. 혼인은 당사자 뿐 아니라 가족 친족제도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대가족제도 하에서는 조혼이 나타날 가 능성이 큰 반면, 경제적 자립을 요구하는 핵가족제도 하에서는 만혼의 가능성이 있다. 분할 또는 공동 상속제도에서는 조혼의 가능성이 큰 반면, 단독상속제 하에서는 만혼의 가능성이 크다. 결혼지참금 제도와 종교 및 신분제가 강한 사회에서는 조건에 맞는 배우자를 찾기 어렵 기 때문에 초혼연령이 상승하고 혼인율이 낮을 가능성이 크며, 종교적 배경도 결혼패턴에 강 한 영향을 미친다, 남녀 간에도 차이가 있어, 남성의 초혼연령은 경제적 변수에 더 영향을 받 지만 여성 초혼연령은 문화적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는 연구도 있다(Li 1995). 둘째,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초혼연령이나 혼인율은 결혼에 대한 개인의 합리적 선택에 의 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Becker(1973)로부터 비롯된 결혼에 대한 합리적 선택모델은 결혼 시장에서 좋은 배우자가 가져야 할 특질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결혼패턴은 기본적으로 가정에 서의 남녀 간의 분업에 의해 결정된다. 남성이 생업을 담당하는 경우에는 여성의 인적자본은 가사에 특화되기 때문에 여성이 남성보다 빨리 결혼한다. 그러나 맞벌이의 경우에는 노동시장 과 가사에 대한 시간할당이 남녀 간에 대칭적이고 따라서 분업화가 생기지 않고 남녀의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도 동일하기 때문에 결혼이 주는 기대소득이 크지 않아 혼인율이 하락하고 여성의 혼인연령이 상승한다. 어떤 경우이든 간에 남녀는 결혼을 통해 기대수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배우자의 특질을 측정하고 상호 교환하며, 또한 기대에 부합하는 배우자 획득의 전망에 따라 결혼을 연기하거나 포기한다. Keely(1979)는 Becker의 모델에 따라 결혼(초혼연령) 패턴 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초혼연령 탐색기간 혼인율 결혼에 의한 기대수익 - - + 배우자 탐색 직접비용 + - - 개인 특성의 편차 0 + 0 시간 할인율 - - - 자료: Keely(1979), p.532 <표 1> 결혼의 기대수익과 비용이 결혼패턴에 미치는 효과 예컨대 여성임금의 상승은 남녀 모두의 결혼 기대수익을 낮추고 탐색기간을 연장하며, 혼인율 을 낮춘다. 혼인적령기 남녀성비(남/여)의 하락은 남성(여성)의 수익을 높이며(낮추며), 따라서 - 3 -
남성의 초혼연령은 높아지고 여성의 초혼연령은 낮아지며, 또한 탐색기간과 혼인율도 남녀 간 에 달라진다. 여성의 교육 증가는 결혼의 기대수익을 낮추기 때문에 여성의 교육증가는 초혼 연령을 높이고 혼인율을 낮춘다. 그런데 교육은 탐색비용을 낮추어주므로 초혼연령을 낮추고 혼인율을 높이는 효과도 있다. 도시화는 탐색비용을 낮추므로 초혼연령은 낮아지고 탐색기간 은 길어지고 혼인율은 증가하게 된다. 그러나 Ermisch(1981)는 여성의 경제참여율(과 임금) 상승이 결혼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만 소득증대가 가족구성의 경제적 제약을 감소시켜 결혼을 촉진할 수도 있기 때문에 경제적 요인 의 효과가 선험적으로 반드시 명확하지는 않다고 한다. Mensch et al.(2005)는 근대 교육의 보급과 문맹율의 하락은 혼인연령을 상승시키지만 반대로 결혼이 늦어져 학교를 더 오래 다니 거나 결혼으로 인해 학교를 중단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학교교육과 초혼연령의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고 한다. 또한 근대적 부문에 여성의 취업기회가 증가하면 혼인율이 낮아지고 혼인연령이 상승할 가능성이 크며 따라서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혼인연령이 상승할 가능성이 크지만, 저개발국의 경우에는 도시화가 진행되더라도 근대적 부문의 취업 증가를 의미하지 않 기 때문에 혼인연령에 큰 변화가 없을 수도 있다고 한다. 셋째, 경제학자들은 기대수익을 최대화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기회비용을 강조하지만, 인구학 자들은 결혼 pool에서의 연령구조, 즉 혼인적령기에 있는 남녀의 성비구성이 혼인력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Glick et al.(1963)는 혼인적령기 남녀의 성비 불균형을 marriage squeeze로 표현하였다. 결혼시장에서의 성별구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출생 사망률이나 인구이동과 같은 것이다. 예컨대 전쟁은 혼인적령기 남성의 감소를 야기하여 혼인율을 낮추며 적절한 배우자를 찾지 못한 남녀의 평균 초혼연령을 높일 가능성이 있다. 그와 반대로 전근대 중국이나 일본에 서 행해졌던 여아살해는 혼인가능 여성을 감소시켜 혼인율을 낮추고 초혼연령을 높이게 된다. 또한 사망률이 높은 사회에서는 인구의 장기적인 균형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혼인연령이 낮아 질 가능성이 크다. 결혼시장에서의 성비 불균형은 동거, 이혼 증가와도 관련 있다. 그런데 성 비불균형은 혼인율에 영향을 주기보다는 배우자 연령에 대한 선호를 바꾸도록 하는 경향이 강 하다(Esteve et.al 2009, 174-175). Akers(1967)는 marriage squeeze가 초혼연령의 변화를 대부분 설명한다고 하고 그것을 측 정하였으며, 과거 출생율 추세의 변화와 연관되어 있는 남녀 연령별 구성이 marriage squeeze를 발생시킨다고 하였다. Schoen(1983)은 Akers의 측정이 남녀 어느 한쪽의 연령구 성만을 고려하므로 한계가 있다고 보고 성과 연령을 모두 고려한 산식에 의해 marriage squeeze를 측정하였으며, 남녀 배우자간 연령 차이가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가정 하에서 인구 가 증가할 때는 여성이, 그리고 인구가 감소할 때는 남성이 squeeze 상태에 놓인다고 하였 다. Fraboni and Billari(2001)는 Schoen의 공식을 이용하여 2차대전 이후 이탈리아에서 나 타난 marriage squeeze가 출생률과 국내 이주에 의해 생겨난 것이라고 하였다. 이상 세 가지 요인은 Dixon(1971)이 초혼연령과 혼인율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지적한 availability of mates, feasibility of marriage, desirability of marriage와도 통한다. 2) 혼 인력을 결정하는 요인이 다양하듯이 분석의 결과도 일률적이지는 않다. Saardchom and Lemaire(2005)는 평균 초혼연령이 상승하고 배우자간 연령 차이가 감소하는 요인에 대해 분 석하였는데, 그들은 근대화와 교육이 여성의 결혼 연기와 배우자 연령 차이 감소에 중요한 영 향을 미친 반면,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요인은 여성의 혼인연령을 낮추고 배우자간 연령 차이 2) Dixon은 feasibility를 주로 거시지표로 표현하고 있지만, 대가족제가 일반적인 경우에는 결혼이 실행 가능하며 조기에 이뤄진다고 하여 제도나 관습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하였다. - 4 -
를 증가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Mensch et al.(2005)에 의하면, 지난 30년 동안 저개발국에서 도 조혼과 혼인율이 뚜렷하게 감소하였지만 조혼의 감소가 교육이나 도시화로 충분히 설명되 지 않는다. 초혼연령 상승에 관한 요인은 중매결혼의 감소, 남성배우자의 부족과 그에 따른 결혼지참금의 상승, 법적 혼인허가연령 조혼에 대한 규범의 변화 등이며, 남성의 경우에 교육 이 결혼연기에 기여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가정을 이루는데 드는 비용의 증가로 초혼 연령이 높아졌다고 한다. Gupta(1999)는 우리나라 결혼시장에서의 mariage squeeze를 세 시기로 구분하고 있다. 한 국전쟁기에 출산율이 하락했다가 전쟁 이후 회복됨에 따라 1950-54년생 남성이 결혼시장에서 유리했던 시기, 1960년부터 시작된 출산율 하락과 남아 선호로 인해 혼인적령기 여성의 부족 이 발생하는 시기, 출산율 변천이 끝나 출산율 감소로 인한 영향은 줄어든 후에도 남아 선호 현상으로 혼인적령기 여성이 부족해지는 시기이다. 단, 마지막 시기에는 베이비붐 세대에 의 해 1991-94년생 출산이 증가하였기 때문에 1985-89년생 남성에게는 여성 배우자의 부족이 완화되는 면이 있었다. 정창무(2008)는 1990-2006년의 시계열자료를 이용하여 초혼연령 상승 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가지 사회경제적 요인을 분석하였다. 그는 회귀식을 통해 남성과 여성 의 초혼연령이 양의 상관관계를 갖고 있으며 각각 이전 시기의 초혼연령과는 음의 상관관계를 갖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2. 자료 본 논문에서는 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과 삼동면을 대상지역으로 하여 1911년부터 1977년까지의 제적부 및 1975년, 77년의 재제부 에 기재된 혼인기록을 분석한다. 제적부 란 말소된 호적을 모아 편철한 장부를 말한다. 호의 대표자인 호주가 사망하여 호적 내 다른 구성원으로 호주가 승계되거나, 호주승계자가 없어 절가가 된 경우, 호 전체가 다른 행정관할 구역 3) 으로 본적지를 바꾼 경우(전적) 등의 사유가 발생하면 호적을 말소하게 되는데, 이 때 말소되어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된 호적들을 말소연도별로 편철하여 제적부라고 부르고 면사 무소에 보관하게 된다. 4) 재제부란 현재 사용 중인 호적을 새로운 양식으로 옮겨 적은 후 구양 식의 호적을 일제히 말소하여 편철한 장부를 말한다. 대상지역에서는 1975년과 1977년 두 차 례에 걸쳐 식민지기부터 사용하여 온 세로쓰기 방식의 구양식의 호적을 전부 가로쓰기 방식의 신양식으로 이기하면서 재제부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호적자료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연도별 제적부만을 사용하게 되면 해당연도에 말소되지 않 은 호적들은 분석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특정 기간의 인구동태정보 중 일부가 누락되게 된다. 예를 들어 1945년 이전의 출생, 사망, 혼인 등의 인구동태정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1945년 이전의 제적부뿐만 아니라 1945년 시점에 존재하다가 그 이후에 말소되는 호적까지도 포함해 야 한다. 본 논문에서는 특정 시점에서 전체 호적이 일괄 말소된 재제부를 분석에 포함시킴으 로써 구양식으로 된 호적에 기재된 정보를 전부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단 1970년 부터는 호주승계나 분가 혹은 다른 행정관할구역으로부터 전적하여 대상지역에서 새로 만들게 되는 호적은 신양식으로 작성하였기 때문에, 재제부를 포함했다는 것이 1977년까지의 인구동 3) 식민지기에는 부 또는 면이 호적의 행정관할구역이었다.(조선호적령 제3조) 4) 1909년 제정된 민적법의 시행세칙인 민적법집행심득 및 후속법령에 따르면 제적부의 보존기한은 50년으로 되어 있으나 언양읍 및 삼동면 지역은 1911년 제적부까지 폐기하지 않고 면사무소에서 보 관하고 있다. - 5 -
태정보를 모두 확보하였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1개의 호적에는 호주를 중심으로 호주의 직계존속, 배우자, 직계비속, 방계친족 등이 호의 구성원으로서 기재되어 있으며, 이러한 호적은 호주승계나 다른 행정관할지역으로부터의 전적 등으로 생성되어 호적의 말소시점까지 존속하면서 구성원의 출생, 사망, 혼인 등의 인구동태 정보를 수록하였다. 호주승계로 생성된 새 호적에는 이전 호적에 기록된 출생, 혼인 등이 동 일하게 기록된다. 단, 여성이 출가로 인해 호적에서 제적된 경우에는 단 1차례의 기록만이 남 는다. 필자들은 반복 기재되어 있는 동일 사건을 1개의 사건으로 정리하고 그 과정에서 원문의 오기나 원문을 전산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입력 오류를 교정하였다. 남녀 각각 별도로 기재 된 혼인기록을 통합하여 1건으로 하고 초혼의 경우만 추출한 결과, 혼인건수는 19,004건이고 이 중에서 배우자 양측의 출생정보를 모두 파악할 수 있는 것은 7,821건이었다. 나머지 11,183건 중 여성이 지역 밖으로 출가하여 제적된 경우가 9,000여 건으로 대부분이며 1962년 법정분가제도 실시 이후 장남 이외의 자가 다른 행정구역으로 분가한 경우가 1,000여 건, 기 타 배우자가 호적에 기록되기 전에 사망하였거나 기재가 누락된 경우 등이 있다. 호적과 같은 인구동태자료는 당사자의 신고에 의존하는 소극적 파악방식으로 정보를 취합한 다는 점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신고의 성실성이 담보되지 않는 한 자료로서의 가치가 일정 정도 훼손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행정, 사법당국으로서는 적절한 정책을 수립하 는 데 필요한 근거자료의 확보나 민법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부속제도라는 측면에서 호 적제도의 완비가 중요한 문제가 되므로 주기적으로 일제신고기간을 두어 신고의무자의 성실한 신고를 독려하고 호적의 완결성을 높이려고 한다. 불성실한 신고에 의한 문제는 본 논문의 분석대상인 혼인 사건의 경우에도 찾아볼 수 있 다. 그림 2는 자녀의 출생정보까지 파악할 수 있는 혼인사건에 대하여 혼인 후 첫 자녀의 출산까지의 기간을 혼인연도별로 산포도를 그린 것이다. 기간이 음수인 것은 혼인연도보다 첫 자녀의 출생연도가 빠른 것인데, 이는 혼인신고를 뒤늦게 하였음을 의미한다. 혼인연도 와 첫 자녀의 출생연도가 같은 것은 첫 자녀의 출생신고를 하면서 본인의 혼인신고를 함께 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혼인신고의 연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많아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불분명하다. [그림 2] 혼인연도별 혼인 후 첫 자녀의 출산까지의 기간 - 6 -
이런 문제가 있기 때문에 혼인 당사자 양측의 정보가 모두 있는 7,821건 중 자녀의 출생정 보가 있는 7,088건을 분석 대상으로 하고 혼인연도를 첫 자녀의 출생정보에 따라 보정하였다. 혼인연도보다 자녀 출생연도가 빠르거나 같은 경우에 자녀 출생연도보다 1년 전에 혼인을 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자녀 출생기록이 없는 경우는 혼인연도를 보정할 수 없기 때문에 일관 성을 위해 제외하였다. 혼인연도를 보정한 후 연도별 혼인건수를 나타낸 것이 그림 3의 실 선이다. 점선은 보정하지 않은 상태의 연도별 혼인건수이며 1961년에 특별히 혼인건수가 많았던 것은 그 해 8-10월의 인구통태조사신고강조기간을 정해 신고불성실에 따른 과태료 를 면제하면서 신고가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첫 자녀의 출생연도로 혼인연도를 보정하면 1961년의 혼인 중 상당수는 그 이전에 혼인한 것으로 조정된다. 다음으로 혼인건수가 많은 연도는 1944년과 1938년이다. 1944년은 후술하듯이 징병제의 실시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 다. 1938년에 혼인건수가 많은 이유는 아직 불명확하다. 조선총독부통계연보 에 제시된 전국통계를 보면 1933년부터 1937년간 5년 동안 연평균 혼인건수가 12만여 건인데 비해 1938년에는 22만여 건의 혼인이 있었다고 보고되고 있는데, 이 또한 호적정비와 연관이 있 지 않을까 생각된다. 1960년대 후반 이후 혼인건수가 감소하는 것은, 법정분가제도에 의해 혼인과 동시에 제적되어 다른 행정구역으로 분가한 경우에는 자녀의 출생정보를 알 수 없어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1923년 이전은 혼인건수가 적은데, 민사령이 개정되어 법률혼주 의가 채택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림 3] 연도별 혼인건수 III. 초혼연령의 장기 추이 그림 4는 매년도 남녀별 평균 초혼연령의 추이를 제시한 것이다. 혼인 건수가 10건이 채 안되 는 1910년대 전반을 제외하고 보면, 초혼연령의 장기 추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남성은 1920년대 초까지 초혼연령이 급상승하였으며, 여성 역시 1920년대 초까지 상승 추세 였다. 2 남성의 초혼연령은 1920-30년대에 거의 일정하였으나 1940년대 전반에 크게 하락하 - 7 -
였으며, 여성의 초혼연령은 1930년대 초부터 계속 하락하는 추세였고 1940년대 전반에 더 빠 르게 하락하였다. 3 남녀 모두 해방 후 1960년대 말까지 초혼연령이 상승하였으며, 여성이 좀 더 빠르게 상승하였다. 4 배우자간 연령 차이는 1910년대 중엽에는 평균 2-3세였으나 1920년대 초까지 5-6세로 증가하였으며, 1940-50년대를 거치면서 다시 4-5세로 감소하였다. 주: 초혼연령 분산의 좌표축은 우측 [그림 4] 초혼연령의 추이 이상의 결과를 센서스로부터 Hajnal의 방법에 의해 추계한 평균 초혼연령(그림에서 점으로 표 시)과 비교하였다. 해방 후인 1955-70년은 언양의 평균 초혼연령과 센서스로부터 추계한 초 혼연령이 거의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식민지기에는 남녀 모두에서 언양의 평균 초혼연령이 센서스로부터 추계한 결과를 상회한다. 센서스로부터 추계한 평균 초혼연령은 전국 평균 초혼 연령이고 일반적으로 도시의 초혼연령이 농촌보다 상대적으로 더 높으며, SMAM이 초혼연령 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5) 것으로 알려져 있는 점을 감안하면, 언양의 평균 초혼연령이 SMAM보다 더 높다는 것은 의외의 결과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1938-39년의 동태통계에 의하면 평균 혼인연령이 남성 25.8세, 여성 20.3세였다. 이 동태통계에는 재혼도 포함되어 있 기 때문에 그것을 감안하면 평균 초혼연령이 남성 24세, 여성 19세 내외였을 것으로 보인 다. 6) 즉, 센서스를 이용한 추계는 실제보다 오히려 과소평가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혹은 언양 의 초혼연령이 지나치게 높게 나온 것이 자료상의 문제에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한편, 전시기인 1940년 전반과 1950년을 전후한 시기는 초혼연령의 추이에서 서로 뚜렷한 차 이를 보인다. 즉, 1940년대 전반에는 초혼연령이 하락하고 있는 반면, 1950년을 전후한 시기 에는 초혼연령이 상승하였다. 앞 시기에 나타난 평균 초혼연령의 감소는 남성의 경우에 보다 현저하였으며, 한국전쟁기의 초혼연령 상승은 여성이 보다 현저하였다. 다음 그림 5와 그림6은 매 연도별로 혼인연령 구성의 추이를 보여준다. 이는 혼인건수가 20 5) 이는 Hajnal의 방법이 계급구간 내 연령 간에는 미혼율이 동일하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6) 혼인 건수의 10%를 차지하는 재혼 남성의 평균 재혼연령이 40세라면, 초 재혼 평균연령이 25.8세가 되기 위한 평균 초혼연령은 24.2이다. - 8 -
건 이상인 1914-75년에 매년도의 혼인건수를 100으로 하여 작성한 것이다. 언양에서는 남성 과 여성 모두 15세 미만에서 결혼하는 사례는 거의 없거나 미미한 정도였다. 그림 4에서 1910년대 중엽부터 1920년대 초까지 남성의 초혼연령이 상승한 것은 20세 미만 남성의 초혼 이 상대적으로 감소한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좀 더 상세히 말하면 15-17세에 혼인하는 남성이 감소하면서 20세 미만자의 비율이 줄어들었으며, 대신 20-24세의 비율이 증가하였다. 조선총독부가 혼인연령을 법적으로 규정한 것은 1922년의 조선민사령 개정(1923년 7월 시행) 에서이지만, 이전부터 혼인연령을 제한하고 있었다. 1912년 제정된 조선민사령 제11조는 능 력, 친족, 상속에 관하여는 일본민법에 의하지 않고 관습에 의한다고 규정하여 혼인연령도 그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하였다. 그러나 혼인연령에 관하여 통감부가 1907년에 "조혼금지에 관 한 건"이라는 조칙에 의해 남성 17세, 여성 15세 이상을 혼인이 가능한 연령으로 규정한 바 있고, 병합 이후에는 해당 조칙의 법적효력은 없어졌으나 민적 상의 처리에서 위의 혼인연령 규정을 지키도록 하였으며(경무과장통첩), 민적부가 경찰에서 행정관서로 이관된 후 통첩 "민 적사무취급에 관한 건"(1915년)을 통해 역시 연령이 미달할 경우에 혼인신고를 수리하지 않을 것으로 규정하였다. 따라서 조선총독부가 1922년에 제령 13호로 조선민사령을 개정하면서 혼 인연령에 관한 일본 민법을 적용하여 1923년 7월부터 남자는 만 17세 여자는 만 15세에 달 해야 한다. 고 규정한 것은 이미 행정처리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던 법적혼인연령 규정을 비 로소 성문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법적 혼인허가연령 이하의 결혼을 조혼이라고 한다면, 조혼 관습은 식민지 초기에 빠르게 사 라진 것으로 보인다. 여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혼인건수가 적어 제외한 1910년대 전반 에는 혼인연령이 15세 미만인 경우가 많았으나 후반에는 크게 감소하였다. 조선총독부통계연 보 의 인구동태통계에 의하면 전국의 결혼 여성 중에서 15세 미만 여성의 비율은 1910년대 전반에는 평균 18%였으나 1920년대 전반에는 6%였다. 대신 20세 미만과 25세 미만 여성의 비율이 조금씩 증가하였다. 통계연보 의 혼인통계는 재혼을 포함하고 있지만 대부분 초혼이므로 언양의 경우와 비교해볼 수 있다. 그림 6에서 보듯이 여성의 초혼연령이 20세 미만인 비율이 1910년대 후반에 80% 정도였으나 1930년 초의 60%대로 감소하였다가 식민지기 말까지 다시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추이는 통계연보 의 인구동태통계에서도 비슷하게 관찰된다. 즉, 1910년대 전반에는 20세 미 만의 비율이 80%에 가까웠으나 1930년대 초에는 60%였고 이후 다시 증가하였다. 한편 1941-45년에 혼인한 남성의 연령구성에서는 20세 미만자와 20-24세의 비중이 크게 증 가하였다. 그러나 해방 후의 혼인에서는 25세 미만자는 크게 감소하고 25-29세의 혼인이 빠 르게 증가하면서 초혼연령의 급상승을 가져왔다. 여성의 경우에는 해방 후부터 1960년대 초까 지 20-24세의 혼인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서 평균 초혼연령의 상승을 경험하였다. 초혼연령의 구성을 보면, 남성의 초혼연령은 넓게 퍼져있는 반면에 여성은 특정 연령에 집중 되어 있었다. 그러나 식민지 초기에 남성의 초혼연령 분산은 지속적으로 감소하였으며 1960년 대에 이르러 여성과 비슷한 정도가 되었다(그림4). 전국 통계도 마찬가지인데, 예컨대 1938 39 년에 전국의 혼인연령 구성을 보면, 여성의 혼인은 매우 좁은 연령구간에 집중되어 있는 반 면, 남성의 혼인은 넓은 연령에 분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남성의 경우에 전체 혼 인건수 중 19-24세가 45%, 17-25세가 62%, 17-29세가 79%를 차지하였으며, 여성의 경우에 는 17-19세가 42%, 16-20세가 63%, 15-22세가 81%를 차지하였다. - 9 -
범례의 1500은 15세 미만, 3000은 30세 이상 [그림 5] 혼인 당시 연령별 누적구성비(남) [그림 6] 혼인 당시 연령별 누적구성비(여) 이상은 단순평균에 의해 매년도의 평균 초혼연령을 산출한 것이다. 그런데 출생코호트별로 혼 인연령에 차이가 있을 때 평균 초혼연령은 각 코호트의 크기, 즉 인구의 연령구조에 따라 영 향을 받기 때문에, 이번에는 코호트별 평균 초혼연령을 살펴보기로 한다. 이 평균 초혼연령은 여러 요인이 작용한 결과이며, 각 코호트의 결혼패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1900년생부터 1950년생까지의 출생 코호트만을 분석에 포함하였다. 1900년생 이전 출생자의 경우에는 호적에 자녀가 등재되어 있어 혼인관계임이 분명함에도 혼인연도가 기재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 배제하였다. 또한 1950년 이후 출생자의 경우에는 본 DB가 再 製 시점인 1977년 에서 기록이 종료되므로 이후에 결혼한 경우 혼인여부 자체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배제하였다. 다음 그림 7에서 1940년대 후반에 출생한 남성의 경우에 평균 초혼연령이 하락 - 10 -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 기인하는 바 크다. 그림 7에서 보듯이, 1900년대에 출생한 남성은 평균 초혼연령이 24-26세이고 여성은 19-20 세 정도로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남성의 경우에는 만혼이 적지 않았으며 남녀 모두에서 조혼 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던 것 같지는 않다. 남성은 1910년대 말 출생자까지, 그리고 여성은 1920년대 말 출생자까지 평균 초혼연령이 하락하는 추세였으며 이후 남성은 1925년 출생자부 터 1934년 출생자까지, 여성은 1928년 출생자부터 1941년 출생자까지 상승하는 추세였다가 다시 하락하고 있다. 특히 남성은 1925-34년 출생자 사이에 초혼연령이 3.6세의 상승이 있었 고, 여성은 1927-41년 출생자 사이에 4.8세의 상승이 있었다. 초혼연령이 급격하게 변하는 시기에 초혼연령의 분산이 남성의 경우에는 오히려 작아졌으며 여성의 경우에는 전후의 시기 에 비해 약간 높아졌다. [그림 7] 출생코호트별 평균 초혼연령(좌축)과 초혼연평 분산(우축) 코호트별로 결혼 패턴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비교하기 위해 코호트별 혼인건수를 100으로 하 여 초혼연령의 구성을 보았다(그림 8, 그림 9). 1900년대에 출생한 남성의 경우에 50% 전후 가 25세 전에 결혼하지만 나머지 반은 25세 이상에서 결혼하였으며, 1910년대 출생자는 70% 가까이가 25세 이전에 결혼하였다. 이중 10대 후반에 결혼하는 남성이 매 코호트에서 20% 전후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1925-34년에 출생한 남성에서 10대 후반에 결혼하는 비율이 크게 감소하고 20대 전반에 결혼하는 비율도 감소하는 대신, 20대 후반에 결혼하는 비율이 크게 증가하기 시작하여 전체 혼인건수의 60% 이상을 차지하였다. 여성의 경우에는 1900년경 출생자는 10대 후반에 결혼하는 비율이 60% 정도였으며 1927년 출생자까지 그 비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대신 20대 전반에 결혼하는 비율이 감소하면서 그림 7에서 보듯이 출생 코호트별 초혼연령이 낮아졌다고 할 수 있다. 10대 후반에 결혼하는 비율이 가장 높았던 코호트는 1919-27년 출생자였다. 그러나 1928-41년에 출생한 여성에서 패턴이 크게 바뀌었다. 즉, 이 기간에 출생한 여성들 중 10대 후반에 결혼하는 비율은 크게 감소하고 대신 20대 전반에 결혼하는 비율이 70% 이상을 차지하는 정도로 크게 증가하였다. 이처럼 1920년대 중엽에서 1930년대 초 사이에 출생한 남성과 1920년대 말에서 1940년 - 11 -
사이에 출생한 여성의 결혼패턴에서 급격한 변화가 있었다. 이런 변화를 가져온 요인은 무 엇인가? 초등교육의 확산이 이런 변화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초등교육은 1920 년대 전반에 확대된 후 정체하다가 1930년대 초부터 식민지기 말까지 급격하게 확대되었다 (박기주 2012). 여성의 초등교육도 1930년대 초부터 빠르게 확대되었다. 도시화 또한 초혼 연령의 변화를 설명하는 하나의 요인으로 생각할 수 있다. 도시로 직업을 구하기 위해 이주 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늦게 결혼하는 경향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본 자료에서는 외지 이주 여부를 첫 자녀의 출생지로 판단할 수 있다. 군외 또는 도외로의 이동은 대체로 15-30%정도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외지로의 이동이 초혼연령에 미치는 효과를 보기 위해 출생연도 고정효과(fixed effect)를 포함하는 회귀분석을 시도한 결과, 외지로의 이동 을 나타내는 변수가 초혼연령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7) 그러나 초혼연령의 변화에 교육이나 외지로의 이동보다도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은 전쟁 이었을 것이다. [그림 8] 출생코호트별 초혼연령 누적구성비(남) [그림 9] 출생코호트별 초혼연령 누적구성비(여) 7) 관측치 수는 7,088건 중 첫 자녀의 출생지가 기재되는 않은 70건을 제외한 7,018건이며, 남녀 각각 에 대해 회귀 분석하였다. - 12 -
IV. 전시기의 결혼시장 앞이 그림 4에서 확인했듯이, 초혼연령은 1910년대의 상승, 1940년대 전반의 하락, 194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까지의 상승으로 크게 변하였다. 1940년대 전반은 일제하 태평양전쟁기 이며, 194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전반은 해방과 한국전쟁, 그리고 경제성장기가 이어지 는 시기이다. 특히 혼인연령의 추이에 큰 변화가 있었던 시기는 태평양전쟁기와 한국전쟁기 를 포함하는 1940-50년대이다. 이 시기에 결혼을 하게 된 출생 코호트는 1920년대 중엽에 서 1930년대 전반에 출생한 남성과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에 출생한 여성들이다. 앞의 그림 8과 그림9에서 본 것처럼, 남성의 경우 1924-26년 출생자는 10대 후반과 20대 후반 에 결혼하는 비율이 높았으며, 이후 출생자는 20대 후반에 주로 결혼하였다. 여성의 경우에 1920년대 말 출생자는 10대 후반에 혼인하는 비율이 이전 출생자보다도 더 높았으나 1930 년대 출생자에서 그 비율이 급격히 낮아졌다. 전쟁은 결혼시장에 가해지는 외생적 충격이다. 전쟁은 혼인적령기의 남성을 동원함으로써 결 혼 적령기의 남녀 성비를 여성에게 불리하게 하며(1차적 효과), 또한 다음 세대의 결혼시장에 도 영향을 미친다(2차적 효과). 즉, 전시의 남녀 성비불균형이 출생아의 성비에 영향을 주고 (Bateman and Kvasnicka 2011), 전시의 낮은 혼인율과 출생률, 그리고 전후의 혼인율과 출 생률 회복은 다음 세대의 결혼시장에 성비불균형을 야기한다. 전시에 출생한 남녀는 결혼시장 에서 유리한 입장이 되는 반면, 남성이 여성 배우자보다 연령이 높다면 전전에 출생한 남성이 나 전후에 출생한 여성은 결혼시장에서 불리한 입장에 놓인다. 1940년대 전반의 결혼시장의 변화는 전시동원체제에 기인한 바가 컸다. 1938년 국가총동원법 이 공포된 이후 본격화된 전시동원체제는 혼인적령기에 있는 남녀가 자원이나 강제에 의해 외 지로 이동하는 기회를 확대시켰다. 특히 1944년의 전면적인 징용 징병과 여자정신대에 의해 그것은 피크에 달하였다. 일제는 1938년 2월에 육군특별지원병령 에 의해 만 17세 이상 20 세 미만의 조선인 남성을 현역 또는 제1보충역으로 편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 1938-43년에는 지원병제도, 1944-45년에는 징병제가 실시되었으며 1943년 3월에 징병대상을 파악하기 위해 만 20세 이하의 조선인 남성에 대해서 일제히 조사하고 1943년 10월에 신청을 받아 1944년 4월부터 징병검사를 실시하였다. 강원도의 사례에 의하면 징집연령은 대체로 21세였으며, 해 군의 경우에는 22세가 가장 많고 18-20세도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김영미 2006). 전시동원체제로 인해 결혼 패턴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를 초혼연령별 구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표2에서 보듯이, 1941-44년은 직전의 시기와 비교하여 초혼연령이 남성은 1살 낮아 졌으며, 여성도 약간 낮아졌다. 남성의 경우, 줄어들고 있던 20세 미만 연령에서 결혼이 크게 늘었으며, 반면 증가하던 25-29세의 비율은 감소하였다. 여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이전 시기 에 비해 20세 미만의 비율이 증가하고 20-24세의 비율이 줄었다, 특히 1944년만을 보면 남 녀 모두 20세 미만의 결혼비율이 전체의 크게 높아지면서 평균 초혼연령을 하락시켰음을 알 수 있다. 결혼시장에서 나타난 이러한 변화는, 다음과 같은 여러 구술 자료로부터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징병을 앞둔 남성과 처녀공출을 피하기 위한 여성의 조기 결혼 때문이었다. 나는 18살에 장가를 갔지요. 한참 대동아 전쟁중이었지요. 그 전쟁바람에 나도 서둘러 장가 를 간거구요. 우리 부모님이 내가 군대가기 전에 장가를 들일려고 애를 쓰셨지요. 우리 집사 람도 나랑 동갑이었는데 그 집에서도 딸이 정신대로 끌려갈까봐 서둘러서 시집보낸 거구요. - 13 -
그래서 내가 좀 일찍 장가를 갔지요. (한경혜 1993, 307-308) 1931-34 1935-38 남 1941-44 1944 1946-49 1950-53 1956-59 20세미만 0.20 0.14 0.20 0.26 0.04 0.06 0.04 0.67 0.74 0.85 0.91 0.76 0.52 0.25 20-24세 0.38 0.40 0.46 0.50 0.31 0.45 0.31 0.29 0.23 0.13 0.08 0.22 0.46 0.71 25-29세 0.27 0.34 0.25 0.18 0.55 0.40 0.55 0.03 0.02 0.02 0.01 0.02 0.02 0.03 30세이상 0.15 0.13 0.09 0.05 0.11 0.09 0.11 0.00 0.01 0.00 0.01 0.00 0.01 0.01 평균 24.1 24.6 23.6 22.4 23.7 24.7 25.6 18.9 18.5 17.9 17.5 18.1 19.4 20.8 1931-34 1935-38 <표 2> 각 시기 혼인의 연령별 구성 여 1941-44 1944 1946-49 1950-53 1956-59 일제하의 징용 징병은 해방 후의 결혼패턴에도 큰 영향을 남겼다. 표 2에서 1946-49년의 남성 초혼연령을 보면 해방 전과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남성이 20세 미만에 결혼하는 것은 4%에 불과하고 25-29세에 결혼하는 것이 과반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여성은 1930년대와 비슷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남성은 징용 징병으로 결혼하지 못하고 떠나게 되면 해방 후 귀국할 때까지 결혼이 연기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20세 중후반에 결혼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할 수 있다. 8) 여성의 동원은 남성에 훨씬 미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가령 정신대로 동원되었더라도 해방 후 귀국하기까지는 1년 정도의 짧은 기간이었기 때문에 1940년 후반의 혼인연령의 구성은 1930년대와 큰 차이가 없었다고 생각된다. 한국전쟁기의 결혼패턴은 일제하 전시기의 그것과 전혀 달랐다. 남성의 경우, 20-24세의 비율 이 가장 커졌고 다음이 비슷한 정도의 비중을 차지한 25-29세였으며, 1940년대 전반에 비 해 평균 초혼연령이 1살 더 높아졌다. 여성의 경우에는 15-19세와 20-24세의 비중이 거 의 비슷한 정도가 되면서 1940년대의 조기 결혼의 모습은 상당히 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결혼패턴은 해방 직후에 나타난 변화와 연속선상에 있지만 한국전쟁을 통해 더욱 현저 해졌다. 남성의 결혼패턴에 변화를 가져온 것은 한국전쟁과 병역제도였다. 정부 수립 당시 한국군의 병력규모는 10만명 정도였다. 1949년 8월 병역법 공포로 국민개병제에 입각한 징병제도를 개 시하였으나 미군이 한국군의 규모를 10만명으로 제한했기 때문에 징집의 필요성이 없어져 징 병검사를 보류하고 병무행정기구도 해체하였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당시 필요 병력 이 약 30만 명으로 추정되었고 따라서 20만 명의 신병 보충이 요청되었다. 그러나 정상적인 징집은 불가능한 상태였기 때문에 20세 이상 40세 미만 병역해당자를 병역법 제2조에 의한 제2국민병으로 가두소집하였다. 1950년 11월에 제2국민병 등록을 실시한 결과 약 240만 명이 등록하였다. 1952년 9월부터 제2국민병 소집과 20세 남성의 징집을 병행하다가 1955년 8월말에 제2국민 병 소집을 종결하고 병역법에 따른 징집과 지원에 의해서만 신병을 보충하였다. 병역법상의 복무기간은 육군이 2년, 해군이 3년이었으나 전시 또는 사변시에는 복무기간을 연장할 수 있 었다(제18조). 연간 징집 가능한 병역자원이 20만 명을 약간 넘는 상황에서 1953년 7월 휴전 8) 한 구술자료는 징용이 늦은 결혼의 원인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나는 25살에 장가를 갔어. 해방되고 난 다음 해였지. 내가 20살 때에 일본 후꾸오카에 있는 탄광으로 끌려갔어 거기서 내가 4년을 있었 네 나는 내친구 처제한테 일본에서 돌아와서 일년쯤 있다가 장가를 들었어. 장가를 25살에 갔으니 정말 늦었지요. 그렇지만 전쟁터에 끌려가고 전쟁끝나고 돌아와 보니 이미 나이든 노총각이 된거지 요. (한경혜 1983,p.304,308) - 14 -
당시 70만 명의 병력을 유지한 것으로 보면, 사실상 군 복무기간은 3-4년이었던 것으로 추정 되며 휴전 후에도 3년의 복무기간이 불법적으로 유지되었다. 9) 이처럼 한국전쟁을 계기로 하여 실시된 제2국민병과 병역제도는 복무기간 동안 결혼을 연기시킴으로써 남성의 평균 초혼연령 이 상승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혼패턴의 변화는 출생 코호트별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림 10과 그림 11은 5세 간격의 출생 코호트별로 연령별 혼인 구성비를 누적하여 도시한 것이다. 곡선의 최고점은 1이 되며, 곡선의 형태를 결정하는 것은 결혼이 시작되는 연령, 혼인 연령대이다. 10) 남성의 경우 1925-29년 출생자 이전과 이후가 다르다. 즉, 이전에는 낮은 연령에서 결혼이 시작되어 혼인 연령대가 비교적 넓었던 반면, 이후에는 전보다 시작연령이 높아지고 혼인 연령대도 좁아졌 다. 1925-29년에 출생한 남성 코호트는 시작에서는 이전 코호트와 비슷하고 마치는 지점에서 는 이후 코호트에 비슷하다. 즉, 이 출생 코호트는 이전처럼 혼인을 일찍 하는 사람과 전쟁으 로 인해 혼인을 늦춘 사람들이 혼재되어 있는 과도기적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여성의 경우에 는 1930-34년 출생자 이전과 이후의 곡선이 차이가 있으며, 남성과는 달리, 이전에는 혼인 연령대가 좁았으나 이후에는 혼인 연령대가 다소 넓어지는 변화가 있었다. 각 출생 코호트에서 혼인의 40-80%가 발생하는 연령대를 보면, 1910-24년에 출생한 남성의 경우에는 22-26세인 반면, 1930-34년에 출생한 남성은 25-28세, 1935-44년에 출생한 남성 은 26-29세였다. 여성의 경우에는 1910-24년에 출생한 여성이 17-19세인데 반해, 1935-49 년에 출생한 여성은 20-23세였다. 결혼패턴 변화의 중간에 해당하는 1925-29년에 출생한 남성은 23-28세였으며, 1930-34년에 출생한 여성은 19-22세였다. 이처럼 전시기에 혼인 적령기를 맞이한 코호트를 기준으로 하여 이전과 이후의 결혼패턴에 변화가 있었다. [그림 10] 출생 코호트의 연령별 혼인누적비율(남) 9) 복무기간은 1959년에 33개월로 단축되고 1962년에 30개월로 단축되었다가 1968년 무장공비의 청와 대 습격사건으로 다시 36개월로 환원되는 변화가 있었다( 蘇 忠 鎬 2003). 10) Coale(1911)은 혼인 시작 연령과 혼인연령대(즉, 혼인 증가속도), 혼인율에 따라 혼인 누적비율 곡선 의 형태가 다르지만, 그것을 표준화하면 대부분 일치하는 패턴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 15 -
[그림 11] 출생 코호트의 연령별 혼인누적비율(여) 코호트별 혼인시점과 혼인 연령대가 전시기를 지나면서 달라지고 있음을 확인하였지만, 변 화는 전시기를 통해 배우자 간 연령 차이에도 나타나고 있었다. 다음 그림 12는 혼인 건수 가 20건 이상 되는 1914년부터 배우자 간 연령 차이별 구성비의 추이를 보여준다. 남성 연 령에서 여성 연령을 뺀 차이가 0세 미만, 0-2세, 3-6세, 7-9세, 10세 이상인 그룹으로 구 분하였다. 전 기간으로 두고 볼 때 가장 많은 혼인은 남성이 여성 배우자보다 3-6세 많은 그룹이며, 그 다음이 0-2세 및 7-9세의 연령 차이가 있는 그룹이었다. 1920년대 초까지 세 그룹은 큰 차이를 말하기 어려울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였다. 1920-30년대에는 3-6세 차이 그룹이 30% 전후를 차지하였으며 0-2세 및 7-9세 차이 그룹이 각각 20% 내외를 차지하였다. 11) 이 세 그룹의 합하여 1930년대까지 전체 혼인건수의 60-70%였으며, 따라 서 남성이 여성보다 10세 이상이거나 여성이 연하의 남성과 결혼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 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40-50년대를 통해 배우자간 연령 차이는 크게 바뀌었다. 전체 혼인 건수의 30% 에 불과하던 3-6세 그룹의 구성비가 점차 증가하여 1960년대 전반에 60%에 근접한 반면, 다른 그룹의 구성비는 감소하였다. 특히 남성의 연령이 10세 이상 많은 그룹과 여성의 나이 가 많은 그룹의 비율은 급격히 감소하였으며, 0-2세 및 7-9세 그룹의 구성비도 줄어들었 다. 즉, 전시기 및 이후의 시기를 통해 남녀 배우자간 연령 차이가 어느 정도 일정한 범위 로 좁혀진 반면, 전시기 이전에는 드물지 않았던 연하남과의 결혼이나 연령이 크게 차이나 는 남성과 결혼하는 경우는 줄어들었다. 배우자 간 연령 차이의 변화는 결혼시장에서 남녀의 연령대별 성비 불균형(age specific marriage squeeze)과 어느 정도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전시 이전에 남성의 연령은 비교적 넓은 연령대에 분포하고 여성의 연령은 20세 미만의 좁은 연령대에 집중되어 있었 다. 이런 패턴이 비교적 장기간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인구가 증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시기에 남성과 여성의 조기 결혼으로 인해 16-18세의 여성과 19-23세의 남성 간의 결혼이 많았다. 젊은 남성들이 대거 출현하면서 고연령의 남성이 결혼시장에서 저연령 의 여성 배우자를 구하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고연령 남성과 저연령 여성의 결합이 줄고 11) 1920년대 초까지와 그 이후에 연령차이의 구성이 조금 변하는 것은 남성과 여성의 혼인가능연령 에 차이를 둔 조선민사령 개정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 16 -
또한 약간의 연령차이를 보이는 젊은 남성과 젊은 여성 배우자 간의 혼인이 많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남녀 배우자의 혼인연령 간에 상관관계가 높아졌다. 12) 한국전쟁기에는 반대로 젊은 남성이 상대적으로 부족하였기 때문에 결혼시장에서 젊은 배우 자를 얻지 못한 여성들이 20대 중반의 남성과 결혼을 하는데, 그 결과 여성의 초혼연령이 높아지고 그에 맞추어 남성 배우자의 연령도 상승하며, 배우자의 혼인연령 간에 상관관계가 높아졌다. 이처럼 배우자 간 혼인연령이 높아진 것은 식민지기에 고연령과 저연령이 혼재하 던 식민지기의 결혼시장과 달리 1940년대 전반과 1950년대 전반의 전시기를 통해 혼인연 령대가 집중된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에 남성은 병역을 마친 후에 결혼하는 것이 일반화되었으며, 따라서 결 혼을 희망하는 남성은 20대 중엽의 비교적 좁은 연령층으로 집중되었다. 남성의 결혼연령 변화는 가족제도의 변화와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즉, 대가족제에서는 자립이 불 가능한 젊은 남성의 경우에도 결혼이 가능했지만, 전시기를 통해 대가족제가 해체되면서 남 성의 경제적 자립능력이 중요해졌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립의 기반을 가진 남성의 결혼 가 능성이 높았다. 여성의 경우에는 식민지기의 결혼시장에서 남편과의 지나친 연령 차이가 가 정 내에서 여성의 지위에 불리하게 작용하였으나 전시기에 그런 관습으로부터 벗어나면서 점차 조기 결혼을 피할 수 있었다. 소설 자유부인 은 가정 내 종속적인 지위로부터 여성이 해방되고 있음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어린 여성의 결혼연령은 점차 결혼시장에 서 사라지고 남성과 적절한 연령차이를 보이는 20대 전반으로 정착되어갔다. 그림 12에서 1960년 말-1970년대 초에는 배우자 연령 차이가 3-6세인 경우가 40-50% 로, 이전보다 작아졌고 0-2세의 경우가 커졌다. 이 기간에 결혼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 코 호트는 남성 1940-44년 출생자와 여성 1945-49년 출생자였다. 법정분가제도로 인한 자료 상의 한계로 유보적일 수밖에 없지만, 해방 후 혼인건수의 감소로 인한 출생률 하락이 여성 배우자의 상대적 부족을 야기하여 나타난 결과로 생각된다. [그림 12] 배우자간 연령 차이(남성-여성)별 혼인구성비 12) 해방 전에 젊은 여성의 혼인의 증가는 해방 후 결혼시장에서 남녀 간에 혼인연령의 상관관계를 낮추는 영향을 준 것으로 생각된다. - 17 -
V. 맺음말 이상에서 언양의 민적부의 혼인기록을 기초로 하여 장기에 걸친 초혼연령의 추이를 살펴보았 다. 이는 센서스를 이용한 초혼연령 추계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한계를 보완하거나 대체하는 의미를 갖는다. 이하에서 본 논문의 결과를 요약한다. 평균 초혼연령은 남녀 모두 1920년대 초까지 급상승하였으며, 이후 일정하다가 남성은 1940 년대 전반에 크게 하락한 후 1960년대 말까지 다시 상승하는 추세였으며, 여성은 1930년대 초부터 하락하고 1940년대 전반에 더 빠르게 하락하다가 이후 상승하였다. 배우자간 연령 차 이는 식민지기에 5-6세이다가 해방후 4-5세로 감소하였다. 연령대별로, 식민지 초기에 남녀 모두에서 법적 혼인허가연령 미만의 조혼이 감소하면서 평균 초혼연령이 상승하였다. 남성 25세 미만의 결혼이 1940년대 전반에 증가하였으나 해방 후에 급격히 감소하였으며 여성도 혼인연령 20세 미만자 식민지기 말까지 크게 증가하다가 해방 후에 급감하면서 남녀 모두 초혼연령이 크게 상승하였다. 출생코호트별로 초혼연령은 남녀 모두 하락 추세를 보이다가 남성은 1925-34년 출생자에서, 여성은 1927-41년 출생자에서 상승하다가 다시 하락하고 있다. 남성은 1925-34년 출생자 사 이에 초혼연령이 3.6세 상승하였고 여성은 1927-41년에 출생자 사이에 4.8세 상승하였다. 이전 코호트와 결혼패턴이 크게 달라져, 1920년대 중엽에서 1930년대 초 사이에 출생한 남성 은 10대 후반에 결혼하는 비율이 크게 감소하고 20대 후반에 결혼하는 비율이 증가하기 시작 하며, 1920년대 말에서 1940년 사이에 출생한 여성도 10대 후반에 결혼하는 비율이 크게 감 소하고 20대 전반에 결혼하는 비율이 크게 증가하였다. 혼인연령의 추이에 큰 변화가 있었던 시기는 태평양전쟁기와 한국전쟁기를 포함하는 1940-50 년대이다. 이 시기에 결혼을 하게 된 출생 코호트는 1920년대 중엽에서 1930년대 전반에 출 생한 남성과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에 출생한 여성들이었다. 1940년대 전반에 전시동원 체제로 인해 징병을 앞둔 남성과 처녀공출을 피하기 위한 여성의 조기 결혼 때문에 남성의 경 우에 줄어들고 있던 20세 미만에서 결혼이 크게 늘었으며 여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전후 시 기에 비해 20세 미만의 혼인비율이 증가하였다. 해방 직후에는 결혼하지 못하고 징용 징병으로 떠난 남성의 귀환으로 남성의 경우에 20세 중 후반에 결혼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으며, 여성의 경우에는 전시 이전인 1930년대와 비슷한 상태로 회복되었다. 뒤이어 발생한 한국전쟁을 계기로 하여 실시된 제2국민병과 함께 징병제 도는 3-4년 정도의 복무기간 만큼 남성의 평균 초혼연령의 상승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출생 코호트별로는 전시기에 혼인적령기를 맞이한 남성 1925-29년 출생자와 여성 1930-35년 출생자가 결혼패턴 변화의 과도기적 상황을 보여주었다. 남성의 경우에 이전에는 저연령층에 서부터 결혼이 시작되어 혼인 연령대가 비교적 넓었던 반면, 이후에는 전보다 시작연령이 높 아지고 혼인 연령대도 좁아졌다. 여성의 경우에는 1930-34년 출생자 이전과 이후의 곡선이 차이가 있으며, 이전에는 혼인 연령대가 좁았으나 이후에는 혼인 연령대가 다소 넓어지는 변화가 있었다. 변화는 배우자간 연령차이에서도 나타나고 있었다. 즉, 식민지기에는 배우자 간 연령차이가 매우 크거나 여성이 연하남과 결혼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으나 전시기를 지 나면서 남녀 모두 혼인연령대가 집중되면서 배우자 간 연령차이도 대체로 일정해졌다. - 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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