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Business Insight 1183

표준 경쟁 생존 경쟁에서 생태계 경쟁으로 이서원 책임연구원 swlee@lgeri.com Ⅰ. 표준화의 의미와 중요성 Ⅱ. 표준화의 두 가지 의미 Ⅲ. 변화하는 표준 경쟁 양상 Ⅳ. 표준 경쟁 양상의 변화와 시사점 한 국가의 표준 전략은 기술 발전은 물론 경제적인 의미도 크기 때문에 표준의 제정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더 나아가 국가간의 경쟁을 염두에 둔 산업정책적 차원에서 전개되어 온 측면이 많았다. 특히 글로벌화가 진행되면서 기술 표준을 놓고 벌어진 기업간의 경쟁은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문제와 직결되는 것으로 인식되었고 그 중심에 일본과 유럽연합 그리고 미국이라는 3대 강대국이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HDTV 표준화 경쟁과 2G 이동전화 표준 경쟁을 들 수 있 다. 여기에 중국 변수가 더해지면서 국가간 경쟁은 더 복잡해 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최근 부각되고 있는 또 다른 패러다임은 에코시스템 경쟁이다. 과거와 달리 국가와 개별 기업을 넘어 생태계 안에서 연합한 기업끼리 생태계의 확산을 놓고 경쟁하는 것이다. 애플의 ios를 기반으로 한 애플 생태계와 구글의 안드로이드 생태계에다 최근에는 각국의 통신사들이 연합하여 웹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생태계간에는 경쟁 뿐 아니라 공존관계도 존재한다. 애플 생태계 위에 구글서비스가 올라가기도 한다. 전기차 충전방식에서도 미 국과 유럽이 교류 충전방식을 상호 인정하고 직류방식을 통합하기도 한다. 주목할 만한 점은 생태계 를 통한 사실상의 표준화 작업은 결국 시장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한 국가나 어떤 기업이 주도하는 표준화 보다 더 강력하고 파괴력이 클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발생하고 있는 표준 경쟁 양상의 변화를 고려한다면 표준화를 좀 더 넓은 시각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특히 단일 표준 경쟁 보다는 경쟁과 협력이 공존하는 생태계 경쟁 양상이 부각되고 있 고 기술의 변화가 빨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표준에 대한 의사 결정은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둔 유 연한 탐색과 테스트 과정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LG Business Insight 2012 2 8 15

표준화가 지켜지지 않을 경우의 손해는 금전적 피해에 그치지 않고 인명 손실까지로 이어질 수 있다. Ⅰ. 표준화의 의미와 중요성 표준화 : 비용을 넘어 생존의 문제 1904년 미국 볼티모어에서 대규모 화재가 발생하였다. 화재 발생 후 수시간 안에 필 라델피아, 워싱턴, 애너폴리스 등으로부터 소방인력과 장비가 도착하여 화재 진압 을 도우려고 하였으나 주변 도시들의 소방 장비는 볼티모어의 소화전과 규격이 달 라 급수를 받을 수 없었다. 결국 인근 도시들의 1천여 인력들은 본격적인 화재 진압 에 나설 수 없었고 결국 30시간의 화재로 인해 총 140 에이커(= 0.57km2), 1,500 개의 빌딩이 화재로 손실되었으며 수많은 인명 피해가 있었다. 당시 미국의 소화전 에는 약 600개의 서로 상이한 규격들이 사용되고 있었고, 표준부재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볼티모어 대화재를 계기로 당시 미국의 표준청(National Bureau of Standards, 현재는 국립표준기술원 National Institute of Standards and Technology)에서는 전미 표준을 만들게 되었다. 하지만 2.5인치의 소방 호스 규격 을 사용하기로 정해진 국가 표준(이른바 볼티모어 스탠다드)이 1905년 결정되었음 에도 불구하고 표준의 전파는 더디게 이루어졌다. 1914년 8천여 도시 가운데에 287 개의 도시만이 표준 규격을 채택하였고, 1917년에도 총 897개의 도시가 표준채택을 선언했지만 실재 적용에까지 이른 도시는 390개에 불과했다. 1991년 오클랜드에서 다시 한 번 대규모의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 진압의 가장 큰 문제는 여전히 표준화 미흡이었다. 오클랜드 시는 다른 도시와 다른 3인치 소화 전을 사용하고 있었고, 그 결과 수많은 인명과 재산피해로 이어졌다. 오클랜드 시에 서는 이후 국가 표준으로 전환하였지만 아직도 많은 대도시들이 독자 표준을 고집 하고 있다. 특히 과거 1906년 대화재를 경험한 샌프란시스코 조차도 3인치의 독자 규격을 유지하였고, 뉴욕은 2.5인치의 동일한 크기에도 불구하고 나사산 규격이 달 라 호환이 되지 않는 등 표준화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이들 도시에서 대규모 화재 가 발생할 경우 여전히 주변 도시 소방인력 및 장비는 사용이 어려운 상황이다. 기 존의 장비에 대한 매몰 비용(sunk cost)로 인해 표준의 변경이 어려운 것이다. 이처 럼 표준화가 초기에 이루어지지 못하거나 다른 표준을 선택한 도시, 국가, 집단은 16 LG Business Insight 2012 2 8

표준 변경에 큰 비용을 지불하거나 진화 과정에서 고립된 갈라파고스의 섬처럼 고 립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게 된다. 첨단 기술과 표준화 첨단 장비의 경우 특히 표준화에 민감할 수 있으며, 시스템이 작동을 멈추는 위협이 되기도 한다. 표준의 중요성은 대규모 재난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첨단 장비에서도 나타 난다. 1967년 시간 표준이 기존의 지구 자전 평균에 따른 태양시에서 세슘 원자의 진동에 따른 원자시로 바뀐 이후로 윤초( 閏 秒 )라는 개념이 시작되었다. 기존의 1초 는 평균 일일( 一 日 )의 86,400분의 1의 시간으로 정의되었는데 문제는 지구의 자전 속도가 지속적으로 느려지며 새로운 정의인 원자의 진동에 맞춘 시간과 벗어나게 되는 것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부정기적으로 6월 혹은 12월 말일을 기점으로 1초를 새로 삽입하여 왔다. 이러한 윤초 작업은 지금까지 24번 있어왔으며, 최근에 는 2005년과 2008년 12월 31일 23시 59분 59초 이후 23시 59분 60초가 윤초로 삽입되었다. 이러한 윤초의 문제는 윤초가 발생하는 기준이 일관되지 않다는 것이 다. 그나마 1972년부터 1998년까지는 대략 18개월에 한번씩 있었던 윤초가 최근에 는 드물게 행해지고 있으며 다음 윤초는 2012년 6월 30일 23시 59분 59초 에 있을 예정이다. 이렇게 예측이 어려운 윤초로 인해 시간에 예민한 컴퓨터와 GPS등을 이용한 자 동항법장치 등에서 혼란이 발생하기도 한다. 실제로 2009년 1월 1일 몇몇 리눅스 시 스템 작동 오류를 일으킨 원인도 리눅스의 특정 버전 (2.6.21 커널, 2.6.26 커널, 2.6.27 커널 등)에서 윤초를 인식하지 못하여 발생한 것으로 시스템의 재부팅 등을 통해서 겨우 문제 해결이 이루어졌다. 만약 GPS 등에서 1초를 잘못 인식하게 될 경우 이 신호를 기반으로 하는 내비게이션 시스템, 미사일 등 방위 시스템, 항공 시스템 등에서는 잘못된 거리 정보로 인한 사고가 가능하며, 이 와 같이 표준의 혼란은 첨단 시스템에 큰 위협으로 작용 할 수 있게 된다. <그림 1> 72년 이후 적용된 윤초 시간차(태양시-원자시) -10-15 -20 UTC TAI -25-30 -35 1970 1980 1990 2000 2010 주 : UTC는 세계 협정시(Coordinated Universal Time)로 국제적으로 표준 시로 통용되는 시간이며, TAI는 국제원자시(프랑스어로 Temps atomique international)로 세슘 원자시계를 기반으로 한 시간이다. 1972년 9초의 윤초를 도입하여 세계협정시를 결정하였고, 국제도량형 국이 국제원자시와의 차이를 지속적으로 보정하여 발표하고 있다. LGERI 리포트 LG Business Insight 2012 2 8 17

표준화는 사실상의 표준(de facto Standard) 과 공식 표준(de jure Standard) 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가진다. Ⅱ. 표준화의 두 가지 의미 표준화의 두 가지 방식: de facto vs. de jure 일반적으로 영어 Standardization은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가진다. 하나는 사실상의 표준(de facto Standard) 이 되는 것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공식 표준(de jure Standard) 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어로는 표준화 와 규제적 표준(Regulating Standard) 으로 나누어 볼 수 있으며, 독일어 등 다른 유럽권 언어에서도 표준화 (Standardisierung) 와 규준( 規 準 ) 설정(Normung) 등으로 구분되어 사용된다. 의미에 있어서도 표준화와 규제적 표준은 많은 차이가 난다. 다만 종종 우리를 혼돈하게 하는 것은 이 두 가지 용어가 영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표준화 라고만 번역되기 때문이다. 국제 표준을 둘러싼 국가간 자존심 경쟁 공식 표준(de jure Standard) 선정 과정에서 자국의 기준을 국제 기준으로 만들기 위한 국가 별 경쟁도 치열하다. 대표적인 예가 무게 표준 의 변경과 관련된 경쟁이다. 지금까지 약 120년 간 사용되어 오던 백금-이리듐 원기( 原 器, prototype)에 대한 재정의( 再 定 義 ) 문제이다. 1889년 이후 지금까지 사용해오던 프랑스 파리 에 보관된 1kg의 실린더 모양 원기(이른바 거 대한 케이(Le Grand K) )가 약 50 마이크로그 램(μg) 가량 무게가 줄어들면서 새로운 표준 제 정이 필요하게 되었다. 여기에 도전하는 두 표 준안이 하나는 미국, 프랑스, 영국, 스위스, 캐 나다를 중심으로 한 와트 저울(Watt balance) 아보가드로 방식에 의해 만들어진 실리콘 구( 球 ) 방식, 다른 하나는 독일, 일본, 이탈리아, 호주 등을 중심으로 한 아보가드로(Avogadro 방식이다. 와트 저울은 전자기 방식으로 1kg의 중력에 상응하는 전자기력을 발생하여 이 전압과 전류를 재는 방식이고 아보가드로 방식은 순수한 실 리콘으로 1kg의 공을 만들어 그 원자 수를 세어 이를 기준으로 질량을 측정하는 방식이다. 이 두 방식은 10의 마이너스 8승 수준까지 정확성이 요구되는 최종 기준을 통과할 경우 2014년 새로운 표준으로 선정될 수 있는 후보가 된다. 18 LG Business Insight 2012 2 8

사실상의 표준(de facto) 의 예로는 순수 민간 기업에서 단독으로 결정하거나 다 수의 기업들이 시장 경쟁을 거쳐 마련된 기준이 산업의 표준으로 사용되는 것을 들 수 있다. 소니와 필립스가 함께 제시한 CD(Compact Disk) 등 광 미디어의 기준이 나 치열한 경쟁을 거쳐 VTR 표준 자리를 획득한 VHS 기준 등이 민간 차원에서 마 련된 표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다른 용어로는 자율적 표준(Coordinating Standard)라고도 한다. 반면 공식 표준(de jure Standard) 은 정부나 국제 기구에 의한 규범 혹은 표준 강제라는 의미이고 이러한 의미에서 규제적 표준(Regulating Standard)이라고 할 수 있다. GSM 표준의 경우 유럽 연합 주도로 규격 채택이 이루어졌으며, 글로벌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였다. 정부 주도의 규제적 표준의 중요성 한 국가의 표준 전략은 기술 발전은 물론 경제적인 의미가 매우 크다. 특히 이러한 표준화가 거대한 시장을 기반으로 이루어질 경우 시장 및 기술(특허 등) 선점 효과 로 인해 매우 큰 산업정책적인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 때문에 정부의 표준 제정 은 산업화에 앞서 나가기 위한 핵심적인 과정이기도 하다. 과거 19세기 중엽 영국의 철도 관련 규격은 200종의 차축, 40 종류의 브레이크 등 호환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또 세계 1차 대전까지도 영국은 70개의 전력회 사가 50 종류의 배전 시스템과 24 가지의 전압 규격, 10개의 서로 다른 주파수가 혼 용되고 있었다. 이러한 표준화의 부재( 不 在 )는 산업 발전에 장애로 작용하게 되었고, 가장 앞서 나갔던 산업화의 과실을 상대적으로 표준화가 빠르게 이루어진 독일, 프랑 스 등 유럽 대륙국가들과 광범위한 시장을 기반으로 한 미국에 넘겨주게 되었다. 표준화가 이루어지면 빠른 속도로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시장 선도자들이 생겨 나고 그 성과는 표준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외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경쟁 우위로 나 타난다. 대표적인 사례가 2G 이동전화에서 노키아가 누린 광범위한 규모의 경제성 확보다. 2G 이동전화 표준은 유럽 주도의 GSM(Global System for Mobile Communications) 기술과 미국과 일본 등에서 각각 채택한 CDMA, PDC 기술 등이 혼용되고 있었으나 유럽에서 단일 규격으로 채택한 GSM 표준이 약 80% 이상의 시 장 점유율을 차지하였다. GSM 기술은 유럽연합의 주도 아래에 유럽의 26개 통신회 LGERI 리포트 LG Business Insight 2012 2 8 19

스웨덴은 자국 자동차 업계의 이익을 위해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측 통행을 채택하였다. 사가 연합하여 표준 제정에 참여하였고, 15개 유럽 국가들이 이 표준을 채택하여 광 범위한 유럽 차원의 표준화가 달성되었다. 특히 2G 규격을 가장 먼저 채택한 핀란 드의 노키아는 유럽이라는 광범위한 시장을 기반으로 세계 시장에서 일본 및 한국 기업들에 대비해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산업계가 정부를 설득하는 표준 강제도 가능 산업계에서 주도적으로 정부의 설득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1967년 스웨덴이 차량 운행에서 우측 통행 제도를 실시한 것이다. 나폴레옹이 우측통행 제 도를 최초로 도입한 이후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에서는 우측 통행이 해당 국가의 표 준으로 자리잡아 나갔다. 여기에서 예외로 남은 국가가 영국, 스웨덴, 그리고 합스 부르크 왕국의 뒤를 이은 오스트리아 등이었다. 이 가운데 오스트리아는 1921년부 터 지방별로 점진적인 우측 통행을 채택하다 1938년 히틀러의 오스트리아 강제 병 합을 계기로 수도인 비인(Wien) 등을 포함한 전국 차원의 우측통행이 강제되었다. 결국 유럽 대륙에서 가장 늦게까지 좌측 통행을 유지하던 국가는 스웨덴이었고, 당 시까지도 국민들은 좌측통행을 원하고 있었다. 1955년 실시한 국민투표 결과는 좌 측 통행 지지가 월등히 높아 좌측 통행 지지가 82.9%, 15.5%만이 우측 통행을 지지 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스웨덴이 우측 통행을 도입하게 된 것은 산 업계에 대한 고려가 컸다. 스웨덴의 대표적인 자동차 회사인 볼보와 사브는 당시 승 용차 생산을 주저하고 있었고,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유럽과 다른 자국 통행 표준 이었다. 반면 도시에서 운전할 상황이 많지 않은 다수의 스웨덴 국민들은 많은 경우 유럽 표준인 좌측 운전대 방식의 승용차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적 으로 고려하여 스웨덴 제국의회는 훨씬 높은 비율의 국민들이 반대 의사를 표시하 였음에도 불구하고 1963년 우측 통행으로의 전환을 결정하였고, 1967년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볼보사에서도 1967년 처음으로 140 시리즈를 생산하며 승용차의 자국 판 매와 유럽 수출을 동시에 시작했다. 산업계의 이해를 고려한 국가 표준의 전환이 이 루어진 것이다. 20 LG Business Insight 2012 2 8

Ⅲ. 변화하는 표준 경쟁 양상 1차 경쟁 : 일본-유럽-미국의 3파전 - HDTV 표준 경쟁 HDTV 표준 경쟁은 일본, 유럽연합, 미국이 힘을 겨루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글로벌화가 진행되면서 기술 표준을 놓고 벌어진 기업 간의 경쟁은 개별 기업의 문 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문제와 직결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이 경쟁의 중심에는 일본과 유럽연합 그리고 미국이라는 3대 강대국이 중심에 서 있었다. 이 시기는 각국의 표준 정책이 산업정책으로 사용되면서 국가 주도 표준화 경쟁구도가 가장 첨예하게 이루어진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HDTV 표준화 사례인데, HDTV 표준이란 과거 미국 (NTSC), 독일(PAL), 프랑스(SECAM) 등의 방식으로 송출되던 525라인 혹은 625라 인 방식의 SD(standard definition) 방식 대비 최소 4배 이상 더 많은 영상정보를 담고 있는 선명한 송출방식을 말한다. 이 표준을 선점하기 위한 시도는 일본 통산성 주도로 이루어졌다. 일본은 1964년 동경 올림픽을 계기로 새로운 표준의 고선명 TV 개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방송사인 NHK와 일본 대표 전자기업들이 망라된 약 20년간의 연구 개발을 통해 1986년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에서 일본은 Hi-Vision 이라는 이름의 HDTV 국제 표준을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관련 제품 개발에도 진전을 보 여 소니와 미츠비시 등 일본 전자 산업계에서는 TV와 비디오레코더, 방송장비 등 을 개발하였고,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위성 송신까지 포괄한 고선명 TV 기술 일체를 선보일 수 있었다. 이러한 일본의 기술 개발에는 NHK를 비롯한 정 부 차원의 4억 달러, 그리고 약 6억7천만 달러~13억 달러 가량의 산업계 차원의 투자가 수행되었다. 하지만 일본의 독자 HDTV 표준에 대해 프랑스의 주도로 유럽 국가들이 반기를 들며 순조롭던 일본 기술의 국제표준화 시도는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1986년 두브 로브니크 표준회의에서 일본의 표준안은 국제표준으로 제안되었으나 결정이 미루 어졌다. 이를 계기로 유럽 연합에서는 새로운 독자 표준안 마련에 들어가 EU95라 는 이름의 컨소시움을 구성하여 독자적인 HDTV 시스템(HD-MAC) 개발에 뛰어들 LGERI 리포트 LG Business Insight 2012 2 8 21

HDTV 경쟁에서는 새로운 기술 진화를 반영한 표준을 만든 미국이 표준 전쟁의 승자가 되었다. 었다. 1986년에서 1992년에 걸친 기간 동안 유럽 연합은 공식적인 R&D 지출로 6억 2,500만 ECU(유로 이전 사용된 유럽통화단위, 약 9천억 원), 그리고 직간접적인 지 원으로 13억 4천만 ECU의 투자를 단행하였으며, 산업계 전체로는 약 27억 ECU의 투자가 이루어졌다. 유럽 기업들은 필립스, 톰슨, 노키아 등 제조 기업과 RAI, BBC 등 다수의 방송사들이 참여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일본과 유럽의 표준화 경쟁에도 불구하고 두 표준 모두 글로벌 표 준이 되는 데에 실패하고 말았다. 기술의 진보와 더불어 이 두 표준이 아닌 제 3의 표준이 우위를 점하게 된 것이다. 일본과 유럽의 표준 기술은 모두 아날로그 방식이 었다. 당시 미국은 독자적인 표준 개발 보다는 평판 TV 등 연관 산업에 관심이 있었 고, 일본의 표준 개발에도 비교적 호의적인 상황이었다. 그런데 1990년 미국에서 제 안된 5개의 HDTV 기술 가운데에 4개의 기술이 디지털 방식으로 나타나면서 독자 적인 디지털 기술 표준 제안에 나서게 되었다. 미국 FCC에서는 당시 표준을 제안한 주요 3개 컨소시움에 전체 기술을 융합한 하나의 디지털 방식 HDTV 표준을 만들어 줄 것을 요청하였고, 1995년 디지털 방식의 단일 표준이 채택되었다. 디지털 방식의 HDTV 기술이 보급되며 각 기술간의 호환 가능성도 급격히 높아졌다. MPEG 등 압 축 기술, 그리고 모션 벡터 기술을 활용하게 되면서 아날로그 방식에서 불가능했던 각 기술들간의 호환이 쉬워졌다. 디지털 기술을 통해 새로운 표준 정립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표준에는 유럽 기업들인 필립스, 톰슨 등도 참여하여 이들 기업들은 한편으로는 유럽 기준 제정에 참여여 보조금의 혜택을 얻으며 다른 한 편 으로 미국 기준 제정에도 참여하여 디지털 관련 기술을 선점하는 실리를 챙기기도 하였다. 결국 일본과 유럽 정부의 강력한 주도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바꾸는 새로운 기술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고 만 것이다. 이 당시 미국 정부의 정책에도 주목할 만 하다. 자국의 넓은 시장을 기반으로 미국 정부는 표준 경쟁에 주도적으로 나서지 않고 자 국 내에서 여러 기술들이 경쟁하도록 하였다. 이후 기술의 발전과 소비자들의 수용 가능성 등 다양한 요인을 고려하여 최선의 표준을 이끌어내고 이를 사실상 국제 표 준으로 관철해내는 노련함을 보였다. 22 LG Business Insight 2012 2 8

2차 경쟁 : 중국이라는 독자 표준 세력의 등장 그러나 미국과 유럽연합, 그리고 일본이 서로 겨루는 기술 삼국지는 중국이라는 독 자 표준세력을 맞이하게 된다. 80년대까지도 서구의 기술을 모방하는 데에 그쳤던 중국은 점차 자국의 큰 시장을 기반으로 새로운 표준 확립에 나서기 시작하고, 강력 한 내수 시장을 발판으로 글로벌 표준과는 다른, 중국만의 독자 표준을 적용하고 있 다. 다른 서구 선진국가들이 통신, 전력 등 기간산업 분야도 민영화 바람이 불면서 정부의 역할이 축소되고 있는 것과 달리 대부분의 자본집약적 산업들이 정부의 영 향 아래에 있는 중국적 상황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중국의 독자 표준 전략이 가장 잘 드러나는 사례가 바로 3세대 이동통신 규격이 다. 중국의 경우 독일의 지멘스가 보유하고 있던 기술을 변형시킨 TD-SCDMA 방 식을 차이나 모바일을 통해 공급하면서 글로벌 표준과 상이한 이동통신 규격을 적 용하고 있다. 물론 글로벌 표준인 W-CDMA와 CDMA2000을 각각 차이나 유니콤 과 차이나 텔레콤에 할당하였기 때문에 중국 독자 규격만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 만 중국 정부는 자국의 TD-SCDMA 방식을 타이와 인도에서 서비스 하려고 시도하 는 등 자국 표준의 국제화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은 이미 독자적인 표준화 전략을 통해 전략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다. CDMA에 대해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는 퀄컴사는 중국의 CDMA 기술에 대한 로열 티를 한국 기업에 요구하는 대당 5.25%의 절반수 준인 2.65% 수준으로 책정한 바 있다. 중국의 독 자 표준화 전략에 대응하기 위해 자신들의 수익을 일부 포기한 것이다. 여타 기술 분야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발견된 다. 중국은 CD, DVD 등 광미디어 분야에서 자국 의 독자적인 규격(VCD 등)을 발전시켰다. 물론 DVD 등 더 앞서간 규격에 따른 기기들이 비싼 가 격으로 소비자들의 선택이 어려웠다는 상황을 반 영하여, 소비자들을 다소 낮은 규격의 저가 영상 <표> 중국 시장의 VCD와 DVD 판매 연도 VCD 판매량 DVD 판매량 1994 20,000-1995 630,000-1996 2,850,000-1997 10,960,000 40,000 1998 14,300,000 300,000 1999 22,000,000 1,000,000 2000 21,500,000 3,000,000 자료 : Linden, Greg(2004), China Standard Time: A Study in Strategic Industrial Policy, in Business and Politics, Vol. 6, Issue 3, p.9 중국은 독자적인 표준 강화를 통해 첨단 기술 시장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LGERI 리포트 LG Business Insight 2012 2 8 23

전기 자동차 충전 규격에서도 새로운 국가간 경쟁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의 전기차 충전 시스템 기기로 적극적으로 공략한 완얀 등 토종 중국 업체들의 시장 확대도 주목할 만하다. 비록 불법 복제 영상물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기는 하지만 10위안에 못 미치는 저렴 한 가격을 앞세운 영화, 음반 등은 급속히 중국 시장으로 퍼져나갔으며, 이후 차기 광미디어 시장에서도 독자 규격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울러 중국은 광미디 어 분야에서도 DVD 등 새로운 기술에 대한 원천기술 보유자들로부터 낮은 특허료 협상을 이끌어 내는 등 독자 표준화를 통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3차 경쟁: 글로벌 표준 경쟁에 가세한 중국 - 전기 자동차 충전 규격 전기 자동차 충전 규격은 현재 진행되는 충전 규격을 둘러싼 국가간 경쟁의 양상을 띠고 있다. 전기 자동차 충전 규격은 보급의 원활한 발전을 위해 핵심적일 뿐 아니 라 한번 정해지고 보급된 인프라는 쉽게 바꾸기 어렵다는 점에서 각국별 경쟁이 치 열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은 일본과 공동으로 자국에 판매되는 전기자동차의 규격을 제정하며 2010년 말까지도 일본과 공동의 보조를 취하였다. 이 규격을 사용 하는 자동차들이 쉐보레 Volt, 닛산 Leaf, i-miev, 그리고 토요타의 플러그인 하이 브리드 자동차 Prius 등이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의 주요 자동차 기업들을 포괄한 교류 충전 규격까지의 공동의 보조는 일본이 독자적인 직류 충전 규격을 발표하며 24 LG Business Insight 2012 2 8

금이 가기 시작하였다. 일본은 직류 충전 방식에 관해 새로운 국제 규격을 선도하고자 하였다. 토요타, 닛산, 후지, 미츠비시 등 자국 자동차 기업 및 도쿄 전력이 중심이 되어 CHAdeMO 협의회를 구성하고 158개 협력사와 함께 자신들의 표준을 공표하였다. 하지만 이에 대응하여 직류 충전 규격과 관련해서는 미국과 유럽의 자동차 기업들이 협력체제를 구축하여 공동전선을 구축하면서 상황이 급변하게 되었다. 미국의 GM과 포드, 그 리고 독일의 아우디, 벤츠, BMW, 포르쉐, 폭스바겐을 포괄한 컴바인드 차징 (Combined Charging) 그룹은 미국과 유럽의 기존 교류 충전 방식을 상호 인정하는 가운데에 직류 충전 규격을 하나로 통합하는 교류-직류 겸용 커넥터를 만들기로 결 정하고 이를 글로벌 2세대 충전 규격으로 만들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 이들 규격은 양국이 기존에 추진하던 교류 충전 방식을 그대로 존중하면서 차세대 직류 충전을 위한 규격을 통일하여 자동차 충전 인프라의 호환성을 보장하였고 정보통신규격에 서도 일본의 캔(CAN, Controller Area Network) 방식과 다른 전력선통신(PLC) 방 식의 기준을 채택하였다. 중국도 전기자동차 충전과 관련하여 광범위한 투자와 표준화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유럽연합과 스마트그리드 등 차세대 전력 규격에서 긴밀한 협조를 바 탕으로 전기차 충전 규격에서도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반면 독자적인 중국 자동 차 업계 및 국영 전력회사와의 협력을 통해 오는 3월 일반규격, AC 충전 규격, DC 미국과 유럽의 자동차 업체가 연합한 새로운 표준이 상호 협력을 기반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그림 2> 미국과 유럽의 충전 규격 협력 <그림 3> 미국, 유럽연합, 일본, 중국의 표준화 관련 경쟁과 협력 구도 HDTV 미국 1세대 전기차 충전 (기업간 협력, 2세대 전기차 충전 de facto Standard 전략) (기업간 협력, de facto Standard 전략) 유럽연합 HDTV 전기차 충전 일본 주 : 미국(좌측), 유럽(우측)의 2세대 충전기 공동 표준, 점선 부분이 미국과 유럽 공통의 직류 충전 표준 전기차 충전 (표준 당국간 협력, de jure Standard) 중국 : 경쟁 : 협력 LGERI 리포트 LG Business Insight 2012 2 8 25

국가간 경쟁을 넘어선 에코시스템 간의 경쟁이 점점 더 큰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충전 규격, 통신 규격 등 4부분에 대한 중국 전기 자동차 규격 발표를 앞두고 있다. 중국은 2015년까지 50만 대, 2020년까지 5백만 대까지 전기차 확산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현재 차량 한대당 6만 위안까지의 보조금을 지불하고 있다. 표준 경쟁의 또 다른 패러다임 변화: 에코시스템(Ecosystem) 그러나 앞서 말한 것과 같이 국가 간 표준 경쟁(de jure Standard)의 변화 양상과 함께 보아야 할 흐름은 민간 차원의 표준 경쟁(de facto Standard)의 변화 양상 이다. 소니와 마쓰시다의 비디오 규격 전쟁처럼 초( 超 )거대 기업 간의 세력 싸움 양 상으로 전개되었던 과거와는 다른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국가와 개별 기업의 단 순한 구분을 넘어 수많은 공급자와 소비자가 결합한 하나의 생태계(혹은 에코시스 템)가 구성되고 이를 주도하는 기업들이 각자의 생태계의 확산을 놓고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이 생태계 범위는 단일 산업, 단일 업태를 넘어선다. 여러 산업 파트 너들이 함께 하나의 생태계를 구성하는 것이다. 또한, 글로벌 단일 표준을 추구하 기보다 생태계 간의 균형성 있는 공존이나 심지어는 경쟁 세력 간의 협력이 발생 하기도 한다. 애플의 ios를 기반으로 한 애플 생태계 속에는 세계 각국의 통신사, 소형의 프로 그램(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개발자들이 모두 속해 있다. 애플 기기를 사용하는 소비자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기기를 통해 영화를 감상하고 음원을 구매하고 애플 리케이션을 다운로드 받는 등 애플의 표준에 따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 생태계가 기 존 통신사들의 수익 모델을 위협하면서 통신사들은 애플 대신에 구글의 안드로이드 생태계를 또 다른 대안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근에는 각국 의 통신사들이 연합하여 웹(HTML5)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려는 움직 임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애플의 생태계에 구글의 서비스가 구동되거나 구글 안드로 이드 생태계 내에서도 애플 생태계의 장점을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이 강화되는 등 일 정 부분 공존하는 경향이 있으며, 오히려 서로 다른 생태계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 들의 불편을 어떻게 없앨 것인가가 중요한 숙제로 강조되곤 한다. 26 LG Business Insight 2012 2 8

주목할 만한 점은 생태계를 통한 사실상의 표준화 작업은 열린 시장구조에서 열 린 수익 분배 모델이 작동하기 때문에 한 국가나 어떤 기업이 주도하는 표준화보다 결과적으로 더 강력하고 파괴력이 클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애플이나 구글의 생태 계가 어느 한 국가의 소유가 아니므로, 이것을 둘러싼 국가 간의 이해 관계를 따지 기보다는 이들 생태계를 어떤 기업이 잘 이용하고, 그를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 인가 하는 점을 살펴야 한다는 점이다. 사용자수 보다는 소비자의 가치가 표준경쟁에서 더 중요하다. Ⅳ. 표준 경쟁 양상의 변화와 시사점 표준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미래 산업에 대한 표준화를 주도하고자 하는 각국들, 그 리고 선진 기업들의 노력은 여전히 치열하다. 하지만 최근 발생하고 있는 표준 경쟁 양상의 변화양상을 고려한다면 표준화를 좀 더 넓은 시각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본질은 소비자 규모보다 소비자 가치 HDTV 사례에서 일본과 유럽의 표준화 노력이 조기에 결실을 맺지 못한 데에는 과 도한 세트 비용뿐 아니라 넓은 주파수 대역 사용에 의해 위성 방송으로 송출이 제한 되는 등 소비자들에게 쉽게 다가설 수 없는 기술이었다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하였 다. 1990년 당시 소니, 도시바, 히타치, 미츠비시 등 일본의 HDTV 가격은 36인치 기준 200만 엔을 넘어서는 고가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1년까지도 방송 시간은 하루 8시간을 넘지 못하는 상황에서 판매 또한 1천대 수준에 머물렀다. 소비자가 받 아들이기 힘든 기술 중심의 표준이었던 것이다. 반면 중국은 높지 않은 기술 수준에 도 불구하고 독자적인 광미디어 규격을 소비자들이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되면서 해 당 분야에서 급속한 추격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사용자의 규모가 표준 경쟁에서 매우 중요한 성공 요인이라고 생각 하기 쉽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용자가 많이 쓸 수 있는 기술인가 하는 점이 사실은 더 중요한 것이다. 국가 간의 표준 경쟁 역사를 보면 때로는 미국이, 때로는 LGERI 리포트 LG Business Insight 2012 2 8 27

중국은 광범한 시장을 기반으로 다양한 기준이 경쟁하도록 유도하여 가장 우월한 기술이 자국의 표준이 되도록 하고 있다. 유럽이 승리하곤 한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히 어느 한 쪽 세력이 우세한 힘을 가졌 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결국 어느 쪽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았는가 하는 점이 중요하 게 작용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라는 시장을 앞세운 새로운 표준화 움직임에 기존 미국과 유럽연합이라는 거대 선진국들의 움직임을 어느 쪽이 더 센가 라는 시각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무엇 이 더 소비자에게 기여하는 방식인가 를 중심으로 바라보아야 경쟁력 있는 표준 전 략이 나오게 될 것이다. 기술에 대한 유연하고 다양한 탐색 기술이 빠르게 변화할수록 표준에 대한 의사 결정은 유연한 탐색과 다양한 테스트 과 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HDTV 표준 제정에서 살펴 본 것처럼 유럽의 경우 독자 표준을 만드는 과정에서 유럽 내에서도 새로운 디지털 방송의 가능성에 대한 다양한 제안들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유럽 연합에서는 일본 방식에 대항하여 신속하게 독자 표준을 제정하는 데에 급급하여 디지털 방식의 표준을 만들지 못하였다. 반면 미국은 다양한 안들을 종합하는 과정에서 디지털 기술로의 진화를 받아들이고 이를 표준화 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표준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무조건 빨리 표준을 정하고, 그를 기반으로 시장을 주도하겠다는 속도 의 관점보다는 여러 가지 기술의 진화의 방향성 을 조기에 수용하고, 먼저 시험해 보는 탐색 의 자세가 더 중요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중국의 표준 전략도 주목할 만 하다. 과거 미국이 HDTV 방식에서 추진한 전략과 마찬가지로 광범한 시장을 기반으로 다양한 기준이 경쟁하도록 유도 하면서도 이 가운데에 가장 우월한 기술이 자국의 표준이 되도록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앞서 3세대 이동통신 사례와 마찬가지로 전기 자동차 충전 규격에서도 하나의 표준 제정에 서두르지 않고 현재의 다양한 시도들을 동시에 실증해나가고 있다. 현 재 미국과 유럽연합 그리고 일본이 자체 표준으로 경쟁하고 있는 접촉식 충전 방식 에도 이들 국가들과 긴밀한 협로를 구축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 외에도 다양한 비 접촉식 충전, 배터리 교환 등 여러 방식을 모두 포괄하여 자국 표준을 결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8 LG Business Insight 2012 2 8

표준화 주체와 방식에 대한 새로운 고민 국가가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규제적 표준(de jure Standard)을 만들고, 이것을 국 제 표준으로 만들어 국부를 창출하는 것이 과거의 방식이었다면 최근의 표준(de facto Standard) 경쟁은 좀 더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정부 주도의 표준화(de jure Standard)가 너무 강하게 추진되면 시장 상황과 동 떨어져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게 될 우려도 크다. 시장 상황을 적절히 반영한 공식 표준의 제정이라는 어려운 해답을 찾기 위해 각국 간의 표준 전쟁 상황을 더욱 유심 히 살펴야 할 것이다. 국가가 하나의 표준에 전력투구, 소위 올인 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점도 고민해 봐야 한다. 노키아가 핀란드의 국민 기업으로 꼽힐 정도였던 만큼, 핀란드의 IT 사 업 구조는 심비안 생태계에 깊숙히 의존하고 있었다. 하지만 애플과 안드로이드라 는 새로운 경쟁자들에 비해 다소 폐쇄적인 시스템 운영으로 인해 점차 경쟁력을 상 실하고 결국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모바일 윈도우 시스템을 자신의 운영 체제로 선 택하기에 이르렀다. 이 경우 심비안 생태계 중심으로 육성된 핀란드의 개발자들은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이것은 다시 핀란드 전 국가적인 타격으로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 국가 차원의 기술 경쟁력 확보는 중요하지만, 여기에는 최근 확산되고 있는 에코 시스템 간 경쟁 방식의 본질적 특성이 감안되어야 한다. 에코시스템에 속한 여러 기 업들이 공생하는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외부의 에코시스템이라 도 현명하게 이용하여 그를 기반으로 실질적인 수익을 확보해 나갈 수 있다는 시각 표준 경쟁 양상의 변화를 고려한다면 표준화를 좀 더 넓은 시각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전환도 필요한 시점이다. www.lgeri.com LGERI 리포트 LG Business Insight 2012 2 8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