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조선시대의 죄형법정주의 斷想* 소급입법의 문제를 중심으로 1) 崔秉祚** 목차 Ⅰ. 머리말 Ⅱ. 大明律 斷罪依新頒律 조 1. 소급입법의 원칙 2. 同條의 의미(1): 정긍식의 견해 3. 同條의 의미(2): 필자의 소견 Ⅲ. 맺음말 * 이 논문은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기술과법센터의 2011년도 연구비 지원을 받았음.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 법학대학원 교수. [감사의 말] 투고 심사자 세 분께 감사한다. 특별히 큰 지적은 없었으나, 몇 가지 수정과 보 완을 하였다. [일러두기] 조선왕조실록의 기사는 편의상 임금 治年-西曆年.月.日.② 의 형식으로 표기 하였다. 끝의 원문자는 기사의 순서이다(②=2번째 기사). 참고문헌 목록의 문헌은 기본적으로 서명 또는 筆者나 編者명만으로 인용한다. 이해와 논의의 발전을 위하여 唐律疏議, 大明律, 經國大典 의 律文에는 가 능한 한 可用한 번역을 모두 붙였다. 이두문의 경우에는 풀어서 실었다. 그러나 이들 번 역과 관련한 토론은 이 글의 취지와 지면관계상 꼭 필요한 경우로 한정하였다. 大明律 의 조문 체제와 번호는 Jiang Yonglin의 것을 따랐다. 번역문 또는 인용문 중 [ ] 부분은 원래의 것을, < > 부분은 필자의 수정 내지 보충 제 안을 의미한다. 한문 중 밑줄은 인명이다. 중국의 大明律 주해서들은 조선에서의 활용 여부와 관계없이 大明律 의 이해에 도움이 되는 한 인용하였다.
8 法史學硏究第 45 號 [ 국문요약 ] 이글은조선시대의죄형법정주의에대한이해를 大明律 斷罪依新頒律 조( 제45 조 ) 를중심으로고찰한것이다. 종래이문제는죄형법정주의일반에관한고찰에서크게주목받지못하였거나, 아니면그것이배태하고있는문제점을지적하기보다는당시지배의依法主義的측면이강조됨으로써지나치게善解되거나한것으로보인다. 이글에서는오늘날의죄형법정주의가요구하는이른바소급입법에의한불이익한처벌의금지라는본연의맥락에서당시의입법과사법운용의모습을조명하고필요한경우로마법과의비교도곁들이면서비판적으로고찰하였다. 당시의법질서에근원적인개인의권리에대한인식의저조함과사안법적인대처가裁判時法主義를채택하는데결정적으로역할을한것으로생각된다. 전통법제의이부분이근대적법관념으로보면미흡한것이었음은서양법의수용과함께서구식의죄형법정주의관념과사상이동양에도채택된사실에서잘알수가있다. [ 주제어 ] 講讀律令조, 經國大典, 斷罪依新頒律조, 斷罪引律令조, 唐律疏義, 唐六典, 大明律, 소급입법, 略和誘人赦後故蔽匿조, 裁決 (decretum), 죄형법정주의, 특례법 (ius singulare) Ⅰ. 머리말 1. 오늘날형사처벌은행위시의법률에따라야하며, 사후적으로법을중하게바꾸어서그에따라처벌을해서는안된다. 이취지를우리나라헌법제13 조제1항은 모든國民은行爲時의法律에의하여犯罪를구성하지아니하는행위로訴追되지아니하며 라규정하고, 또형법제1조 ( 犯罪의成立과處罰 ) 제1항은 犯罪의成立과處罰은行爲時의法律에依한다, 또제2항에서 犯罪後法律의變更에依하여그行爲가犯罪를構成하지아니하거나刑이舊法보다輕한때에는新法에依한다 라규정하였다. 이것은죄형법정주의원칙의大宗을이루는것으로, 모든국민으로하여금법적안정성과자유를누리도록하려는취지에서인정된것이다. 1) 1) 죄형법정주의는범죄법정주의 (nullum crimen sine lege) 와형벌법정주의 (nulla poena sine lege) 로구분되며, 소급입법의금지와관련해서도두측면이구별가능하다. 전자의그리스도교적맥
조선시대의죄형법정주의斷想 9 일반적으로서구근대식의죄형법정주의가정착하지않았던조선시대에는과연소급입법에의한불이익한형사처벌이가능했을까? 이글은이문제를 大明律 의관련규정을중심으로살펴보려는것이다. 보다정확한모습을그리기위해서는많은사례들이발굴되어종합적으로분석되어야하겠지만, 일단원칙의문제를검토하는데그쳤다. 종래조선시대를죄형법정주의의관점에서고찰한논문들은모두正條가없는경우의보충적포괄규정인 不應爲 조 ( 제410조 ), 違令 조 ( 제409조 ) 등및引律比附를규정한 斷罪無正條 조 ( 제46조 ) 를중심으로고찰하였고, 소급입법이나改律의문제는중심적인주제가되지못하였다. 2) 김재문의방대한 한국전통민주적입법이론과법의형성 ( 아세아문화사, 2007) 역시기대와달리이문제는전혀다루지않았다. 3) 락에대해서는일반적으로잘알려져있지않은데, Berman, 186 + n.43 에의하면 12 세기페트루스롬바르두스 (Petrus Lombardus, ca. 1100-1160) 와같은신학자가그선구적반열에속하였다 ( Non enim consisteret peccatum, si interdictio non fuisset : 이에관해 Berman: There is no sin if there was no prohibition. The use of the past tense was is striking. Here was the beginning of a long and winding jurisprudential path in the Western legal tradition, which culminated in the principle expressed in the eighteenth century in the Enlightenment and in the French Revolution s Declaration of the Rights of Man and the Citizen: Nullum crimen, nulla poena sine lege No crime, no punishment without a law, that is, without previously enacted statute defining the crime and fixing the punishment.). 그러나원래 Non enim consisteret peccatum, si interdictio non fuisset ( 금지가없었다면죄도없을것이다 ) 는 Ambrosius (339-397), De paradiso, Caput 8 n.39 에서인용한것이다. Petrus Lombardus, Liber II, Distinctio XXXV, Cap. 1 (231), p.529 Fn.5. 더욱이이미신약성서에도이러한사상은나타나있다. 가령로마서 4:15 οὗ δὲ οὐκ ἔστιν νόμος οὐδὲ παράβασις (Vulgata: praevaricatio; Calvin, ad h.l., p.51; Bengel, ad h.l., p.561: transgressio) - 법률이없는곳에는또한범법이없습니다 또는 5:13 ἁμαρτία (Vulgata: peccatum) δὲ οὐκ ἐλλογεῖται (Vulgata: imputatur) μὴ ὄντος νόμου - 죄는법률이없으면귀책되지않습니다. 여기서사도바울의可罰性에주목하는법률적표현 ( 귀책 ) 에주의해야한다. 그러므로가령성경 [ 표준새번역 ] 이로마서 5:13 을 율법이없을때에는죄를죄로여기지않았습니다 로옮긴것은오해의소지가크다. 왜냐하면성경의다른곳들에서분명하듯이법률 ( 율법 ) 이전에도죄는죄였고그러한當罰性차원과는구별해야하기때문이다. 주지하듯이이 imputatio 개념은후대에사무엘푸펜도르프 (Samuel Pufendorf, 1632-1694) 에의하여법이론의중심개념으로되었다. 2) 鄭肯植 (1), 110-158; 조지만, 70f. 중국법에대해서도유사하다. 가령何勤華, 319-350; 414-415; 시마다마사오, 86-89. 3) 다만김재문, 290 에 (1) 형법의적용범위 1) 행위시법, 신법의거, 재판확정후법개정무죄형집행면제 : 대명률 ( 명례률 ; 단죄의신 [ 분 ]< 반 > 률 ) 이란간단한메모만보이는데, 이마저도
10 法史學硏究第 45 號 이글은이러한연구상황에서일차적으로문제제기의성격이강하다. 2. 종래조선시대의죄형법정주의를논할때별로거론되지않은것중의하나가바로관리들의율령숙지를규정한 大明律 吏律卷第三公式 講讀律令 조 ( 제63조 ) 이다. 이것은국가의법령이실제로제대로시행되기위한충분조건은아니지만필요조건중의하나인것만은분명하다. 大明律釋義 는 [ 釋義 ] 에서이를 凡此皆欲使人講明而斷獄不謬遵守而律令易行也 라표현하였다. 4) 국가의大事인兵 刑 錢 穀의담당자인관리의국가법에대한무지와무능은어떤훌륭한법제라도결코감내할수없는현실조건이기때문이다. 이들이법을잘알고그에따라公事를처리하는한, 일단法治의풍토가가능한것이다. 大明律釋義 는이를 律令所以斷罪, 蓋治獄之規矩準繩也. 臣下固不得擅有改更. 若使講解不精, 則引用必謬刑罰, 豈能得中哉 라표현하였다. 5) 大明律 는국가기강의확립이라는차원에서관리들의遵法을확보하기위하여그前代보다더엄격한법령과제도마련에특별히신경을썼던것으로알려져있는데 ( 엄벌을통한吏治의정돈과탐관의징벌 ) 6), 건국의경험을공유했던조선역시이점에서는 大明律 의규정이어쩌면不敢請固所願의일단이었을것이다. 大明律 講讀律令 조 ( 제63조 ) [1]: 凡國家律令參酌事情輕重定立罪名頒行天下永爲遵守. 百司官吏務要熟讀講明律意剖決事務. 每遇年終在內從察院在外從分巡御吏提刑按察司官按治去處考校. 若有不能講解不曉律意者 7) 初犯罰俸錢一月再犯笞四十附過三犯於本衛門遞降敘用. 앞부분은그취지가모호하고, 후반부도법개정이유리한경우만을염두에둔듯하여소급입법의문제점을전체적으로포착한것같지않다. 4) 楊 II-1, 357. 5) 楊 II-1, 356f. 6) 장진번주편, 599ff. ( 특히 605).
조선시대의 죄형법정주의 斷想 11 直解 凡國家律令은 參酌事情輕重하여 定立罪名 頒行天下 永爲遵守하라고 하옵시 는 일이었으니만큼 百司員吏들이 모름지기 熟讀하여 律意를 精通 事務를 辨決하오되, 年終이거든 京中을랑 司憲府 外方을랑 按廉使가 各村에 監行糾察하오되, 不能解明하 며 不通律意한것을랑 初犯이거든 一朔俸祿俸을 還生徵하고, 再犯이거든 笞四十過名施 行하라. 三犯이거든 本司에 降等敘用하라. [處譯] 무릇, 國家의 律令은 犯罪事情의 가볍고 무거운 것을 參酌해서 罪名을 規定 하여 온 세상에 公布施行하여 길이 遵守하게 하는 것이니 모든 官司의 官吏는 모름지기 律令의 條文을 熟讀하고 그 뜻에 精通하여 事務를 判斷處理하여야 한다. 每年末에 中央 에서는 司憲府가, 地方에서는 按廉使가 官吏의 律令에 대한 成績을 考察하여, 만약 律 令을 解讀講釋하지 못하거나 뜻을 理解하지 못하는 者가 있으면, 初犯은 1個月의 俸祿 을 停止하고, 再犯하면 笞四十의 刑에 처하는 위에 官員의 名簿에 罪科名을 附記하고, 3犯하면 그 在職官司에서 職位를 降等하여 任用한다. [會譯] 무릇 국가의 율령은 사실의 경중을 참작해서 죄명을 정하여 천하에 반포시행 해서 영원토록 준수케 하는 것이니, 모든 관사의 관리는 율령의 뜻을 숙독하고 분명히 파 악하여 사무를 판단결정하는 데 힘써야 한다. 매년말에 중앙은 찰원(察院)에서, 지방은 분 순어사(分巡御使) 제형안찰사(提刑按察使)에서, 관리가 조사하여 처리한 것을 심사한다. 만약 율문을 익히지 못하거나 율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가 있으면 초범은 벌로 1개 월의 봉록을 정지하고, 재범은 태형 40대에 처함과 동시에 과명(過名)을 부기하며, 삼범은 재직하고 있는 아문에서 강등하여 임용한다.8) 7) 법문의 앞에서는 讀과 講이 쓰였으나 이 뒷부분에서는 講만이 쓰인 것에 주의할 필요가 있 다. 讀律瑣言 該條 [瑣言] 瑣言曰, 講者解曉其意, 讀者記誦其辭 (楊 IV-2, 392); 王 儀部先生箋釋 該條 [第一節] 講者解說其意, 讀者記誦其辭 (楊 II-3, 324)에 의하면 講은 그 뜻을 이해하여 밝히 아는 것을 가리키고, 讀은 그 문언을 기억하여 외울 수 있는 것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이 중에서 당연히 그 뜻을 通曉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이 주석들은 이어 서 암기할 수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함을 지적하였다( 若不能講解不曉律意, 雖能記誦引用 猶差, 何以剖決事務 ). 따라서 이 부분의 정확한 번역은 不能講解 와 不曉律意 를 실질 적으로 동일한 의미로 새긴 번역이어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는 이어서 바로 소개하는 우리 나라의 기존 번역들이 다소 문제가 있다. 8) 중국의 예를 보면, 大明律集解咐例 該條 [纂註] (劉兆祐, (一) 471) 및 王儀部先生箋
12 法史學硏究 第45號 Ⅱ. 大明律 斷罪依新頒律 조 1. 소급입법의 원칙 大明律 는 총론인 名例律편에서 명시적으로 소급입법에 의한 처단을 원 칙으로 선언하였다. 大明律 名例律 卷第一 斷罪依新頒律 조(제45조): 凡律自頒降日爲始. 若犯在已前者, 並依新律擬斷. 直解 凡律文을 頒降日始遵行하오되 已前犯罪人이라도 新律을 따라 擬斷. [處譯] 모든 法律은 公布한 날로부터 施行한다. 만약 犯罪行爲가 法律의 公布 이전 에 있는 者는 모두 새法에 의하여 처리한다. [會譯] 무릇 법령은 반포한 날로부터 비롯하니, 만약 이미 앞서 (죄를) 지은 경우에도 모두 새 법령에 따라 비기어 처단한다. [정긍식譯] 무릇, 법령은 반포한 날로부터 비롯하여 시행하니, 만약 이미 앞서 죄를 지 은 경우에도 모두 새 법령에 따라 비기어 처단한다.9) 이러한 한도에서는 어쩌면 개별 사례 연구의 의미가 반감된다고 볼 수도 있 을지 모른다. 그러나 모든 법에서 많은 경우 원칙적인 규정이 구체적인 적용사 례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저 선언적인 성격의 구색으로 머무르는 경우들도 적 지 않다는 점을 생각하면 大明律 名例律편의 원칙 규정의 의미를 구체적 인 사례를 통하여 (재)확인하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작업이 아닐 수 없다. 무 釋 該條 [第一節] (楊 II-3, 324f.)에 의하면 知府(府의 장관)를 同知(=知縣)로, 同知를 通判 으로 강등하는 것과 같은 類이고, 大明律附例 (上) (奎章閣, 284), 律條疏議 該條 [疏議] (楊 I-2, 297) 및 大明律直引 該條 [解頤] (楊 III-1, 122)에 의하면 知縣(縣의 장 관)을 縣丞으로, 縣丞을 主簿로, 典史(9품의 小관리)로 강등하는 것과 같은 類라고 한다. 9) 鄭肯植(1), 116.
조선시대의 죄형법정주의 斷想 13 엇보다도 소급입법에 의한 불이익처우 금지의 관점이 법질서 자체에 의하여 처음부터 배제되어 있다는 사실은 관련 문제의 고찰에 있어서 잊어서는 안 되 는 전제이며 배경이다. 따라서 전통법의 소급입법에 대한 태도를 비판한다면 그것은 개별 사례를 하나하나 비판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斷罪依新 頒律 조(제45조)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어야만 할 것이다. 이 글은 소급 입법을 전면적으로 허용하는 이러한 독특한 태도의 배경을 살펴보고, 또 어떤 구체적인 모습으로 표출되는가를 예증적으로 검토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 글을 계기로 학계에서 더욱 진전된 연구 성과가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2. 同條의 의미(1): 정긍식의 견해 이 규정의 의미에 관해서 정긍식은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형사법의 적용시기를 행위시의 법이 아닌 재판시의 법으로 하고 있다. 일견 이는 법률불소급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이 규정의 취지는 처벌에서 법적통일성을 도모하고 이를 바탕으로 황제의 齊民支配를 관철 하기 위한 것이다. 사회질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형률을 제정하였으므로 당연히 舊律보다 新律이 우선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명 태조는 즉위 초부터 법전편찬에 지대 한 관심을 가졌다. 1368년(洪武 1)에 처음 대명률을 반포한 후, 세 차례의 수정을 거쳐 1397년(洪武 30)에 최종적으로 대명률을 완성하였다. 명 태조는 1397년 최종 대명률을 반 포하면서 수정을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처벌하도록 하였고, 그 후 대명률은 개정되지 않 았다. 이는 이전의 대명률을 적용하지 않고 오로지 최종 대명률만 효력을 인정한다는 의 미이다. 따라서 행위시법주의가 아닌 재판시법주의는 한편으로는 법적안정성을 확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제민지배를 관철하기 위한 입법적 조치라고 할 수 있다. 10) 10) 鄭肯植(1), 116f.
14 法史學硏究 第45號 조선시대에는 대명률을 일반법으로 수용했기 때문에 대명률에서 천명된 죄형법정주 의 원칙은 조선에서도 그대로 유효하다. 우선 [斷罪依新頒律]에서 형법의 시간적 효력 을 규정하였는데, 이는 소급입법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그 취지는 법의 통일과 황제권을 강화하여 백성을 專一的으로 지배하기 위한 입법적 조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明律에서의 죄형법정주의는 현재의 그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어떤 의미에서는 백 성에 대한 군왕의 지배권, 나아가 황제의 齊一的 지배를 확립하기 위한 수단이다. 법준수 의 궁극적인 감시자는 황제이다. 황제를 법적으로 감시하고 구속하는 기구는 존재하지 않 는다. 관리들은 황제통치권의 표현인 법을 준수해야 하는 의무가 있고, 또 법을 준수하였 다. 즉 관료를 구속하는 원리로서 죄형법정주의는 존재한다. 이 점에서 백성들은 죄형법 정주의의 혜택을 간접적으로 입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서구의 죄형법정주의 자체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변할 수 있는 가변적인 개 념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형법의 규정 체제가 다른 중국적 전통과 가벌적 행위는 어 떻게든 처벌해야 한다는 소박한 正義觀念 을 고려한다면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을 것이 다. 따라서 상대적 관점에서 대상인 역사적 상황에 조응하여 판단하고 평가해야 할 것이 다. 11) 3. 同條의 의미(2): 필자의 소견 이러한 정긍식의 평가는 타당한 것인가? 몇 가지 점에서 논평을 하기로 한다. (1) 첫째로, 죄형법정주의라는 관점에서 역사적인 법제를 살피는 데에 있어 서 죄형법정주의의 개념 자체를 가변적인 것으로 설정하는 것은 방법론적으로 합당한 것 같지 않다. 그렇게 되면 모든 법제에 어떤 형식으로든 포함되어 있 11) 鄭肯植(1), 149f.
조선시대의죄형법정주의斷想 15 을수밖에없는이른바 죄형법정주의 적인요소를긍정할수밖에없고, 그렇게되면결국그차이를드러내는데에어려움이따르기때문이다. 그러한요소의정도의차이나비중만이라도제대로포착하고드러내기위해서는적어도확고한기준이제시되어있지않으면안될것이다. 그리고그러한기준으로서는역사발전의최종단계의그것을활용하는것이가장무난하고, 그러한최종단계의법을체현하고있는현행법과의비교고찰에도득책이될것이다. (2) 둘째로, 이렇게할때만이사법담당자의관점이아닌일반국민의입장에서그형사법제가어떤기제로다가오는지가판명될수있을것이다. 행위시에알려져있지않은새로운죄목이나형벌로처벌을받는다는것은그가능성만으로도국민의입장에서는정긍식의주장과정반대로법적안정성에역행하는처사이고, 불합리한불이익처분에해당하기때문이다. 주지하듯이소급입법의문제는고스란히이논점에초점이놓여있는것이다. 따라서원칙적으로일정한기준시점을중심으로新律의적용을배제하는조치, 특히제재자체를배제하는조치 ( 勿論 ) 라면더욱더, 불리한처분이아니므로죄형법정주의의관점에서는얼마든지가능한것이되, 다만그기준시점이新律의반포보다앞서는경우에한하여소급적용의문제가발생할뿐인것이다. 이러한예는 大明律 娶樂人爲妻妾 조 ( 제119조 ) 나 逃避差役 조 ( 제90조 [1]) 에서볼수있는데, 각각 其在洪武元年(1367) 以前娶者勿論, 其在洪武七年(1374) 十月以前移流他郡曾經附籍當差者勿論 이라명문으로규정하고있는것이다. (3) 셋째로, 중국의경우에도 大明律 의규율을최대한善解만할수는없는것이明나라이전의법제에서행위시법주의가채택되어있었던경험이있기때문이다. 통시적인고찰에의한상대평가가필요한까닭이다. 漢唐이래형벌적용상從輕主義원칙을강조하여, 漢令에는 犯法者, 各以法時律令論之, 明有所訖也 라규정하여新定의重法으로처벌하지않음을분명히한바가있다. 12) 이令이문제되었던漢나라때의淳于長사건의기록 13) 은이에의
16 法史學硏究第 45 號 하면정릉후 ( 定陵侯 ) 淳于長이大逆을범할당시그의小妻였던迺始 ( 내시 ) 등 6인을연좌할것인가를논함에있어서승상적방진 ( 翟方進 ) 은令의 法時 를 ( 淳于 ) 長犯大逆時 로파악하고당시에이들은長의妻였으므로이를긍정했고, 반면에孔光은 ( 淳于 ) 長坐大逆時, 즉재판시로파악하고이미그전에이들과長의夫妻관계가해소되었음을이유로이를부정하였는데, 당황제는孔光의견해를손들어주었다고보고한다. 그렇지만이것은재판시법주의를취하여오히려유리한처분이내려진예이므로통상소급입법의문제로논하는불리한처분의사례와비교하는것자체가 ( 통설 14) 과달리 ) 별로의미가있지는않다. 반면에행위시법주의를취한가장확실한선례는바로唐六典 (738년) 15) 의다음규정이다. 16) 역대가장개방적이고외부와의교류에적극적이었던당나라법문화, 특히그입법사상 17) 의일단이엿보이는대목이다. 唐六典卷第六尙書刑部 : 凡有罪未發, 及已發未斷而逢格改者, 若格重則依舊條, 輕從輕法. 18) ( 무릇죄가발각되기전및발각되었더라도판결되기전에格 19) 이개정된경우, 만약 12) 敎育部高等敎育司組編, 313; 김택민, 64. 13) 漢書 卷八十一孔光傳 : 光久典尚書, 練法令, 號稱詳平. ( 成帝 ) 時定陵侯淳于長坐大逆誅, 長小妻迺始等六人皆以長事未發覺時棄去, 或更嫁. 及長事發, 丞相 [ 翟 ] 方進, 大司空武議以爲 : 令 : 犯法者各以法時律令論之, 師古曰 : 此 ( 其 )[ 具 ] 引令條之文也. 法時謂始犯法之時也. 明有所訖也. 長犯大逆時, 迺始等見爲長妻, 已有當坐之罪, 與身犯法無異. 後乃棄去, 於法無以解. 請論. 光議以爲 : 大逆無道, 父母妻子同產無少長皆棄市, 欲懲後犯法者也. 夫婦之道, 有義則合, 無義則離. 長未自知當坐大逆之法, 而棄去迺始等, 或更嫁, 義已絕, 而欲以爲長妻論殺之, 名不正, 不當坐. 有詔光議是. 14) 仁井田陞, 80; 殷嘯虎 (1), 244; 蒲堅, 395; 김택민, 64. 15) 唐六典과그조선에서의쓰임새에관해서는鄭肯植 (2), 37-39. 16) 殷嘯虎 (1), 245. 敎育部高等敎育司組編, 313 은이것을唐律疏義로잘못알고있다. 그러나唐律疏義에는이같은조항이없고, 기껏해야범죄시에는老疾이아니었으나발각시에그렇게된경우老疾로 ( 유리하게 ) 논한다는규정만이들어있다 ( 卷第四名例제 31 조 : 諸犯罪時雖未老 疾, 而事發時老 疾者, 依老 疾論 ). 譯註唐律疏議 (I), 242-245. 17) 葉孝信, 146-149; 越曉耕, 111-113. 18) 大唐六典, 145.
조선시대의죄형법정주의斷想 17 ( 개정된 ) 格의 ( 형벌이 ) 무거우면옛조문에따르고, 가벼우면가벼운법에따른다.) 20) 그러므로전대에비하여폐쇄적이었던明나라가從輕主義원칙을버리고新從重主義원칙으로선회한 重大變化 21) 를그저그에반영된重典治世 22) 의긍정적인면만을부각하여외면하는것은문제가있다. (4) 넷째로, 정긍식이들고있는법적통일성과제민지배의필요성등으로인한新法優先의원칙 [ 從新主義 ] 은통상죄형법정주의에의한소급입법의금지가통용되지않는모든경우에적용되는일반원칙이다. 신법우선주의는일견 19) 格역시모두형법제도였다는점에관해서는 大唐六典, 135f.; 김택민주편, 譯註唐六典上, 575-577; 葉孝信, 155. 20) 김택민주편, 譯註唐六典上, 613 ( 김택민번역 ). 단김택민은동번역에대한역주 194) 에서 唐律疏議 제 488 조斷獄 20 赦前斷罪不當조 ( 諸赦前斷罪不當者, 若處輕爲重, 宜改從輕. 處重爲輕, 卽依輕法 : 번역문은譯註唐律疏議 (III), 3361) 을唐六典의해당부분에대한설명의뜻으로부기하고있는데, 이는누가봐도분명오류이다. 두법문은전혀다른사안을규율하는것이기때문이다. 21) 敎育部高等敎育司組編, 313. 특히族刑連坐의방면에서모반대역죄에한하여아비와 16 세이상의아들만사형에처했던唐律에비하여 ( 唐律疏義 제 248 조賊盜 1 謀反大逆 조 [ 율문 1] 諸謀反及大逆者皆斬, 父子年十六以上皆絞, 唐律疏議 (II), 2381) 明律이범위와양형면에서훨씬더가혹해졌고, 실제로明太祖주원장이각종의혹사건을일으켜관리 10 만여명을살해했고, 永樂帝역시方孝孺의九族과제자, 친구등 873 명을능지처참했다는역사적사실과같은것 ( 殷嘯虎 (2), 321; 신경진, 27) 은호도해서는안될것이다. 반면에서양의법사상은連坐및緣坐를분명히거부하였다. 가령 Grotius (1583-1645), Lib.II Cap.21 12: dicemus neminem delicti immunem ob delictum alienum puniri posse. ( 우리는범죄의負責이없는어느누구도타인의범죄로인하여처벌될수없다고말할것이다 ); 또한 Lib.II Cap.21 13 ( 특히 Arcadius et Honorius C.9.47.22 [a.399] 인용 : Sancimus ibi esse poenam, ubi et noxa est.... Peccata igitur suos teneant auctores nec ulterius progrediatur metus, quam reperietur delictum); cf. Maihold, 4. 특히반역죄인의경우인데도자식, 친척과친지들을死刑에연좌시키지않는법리는 Arcadius et Honorius C.9.8.5 (a.397), 특히 pr. Quisquis..., ipse quidem utpote maiestatis reus gladio feriatur, bonis eius omnibus fisco nostro addictis: 1. Filii vero eius, quibus vitam imperatoria specialiter lenitate concedimus... (pr. [ 반역행위를 ] 한자는자신만대역죄의피고인으로서검으로처형되고, 그의전재산이국고에몰수되지만, 1. 그러나그의아들들은, 이들에게는생명을황제의관용으로써특별히허용하는바,...). 22) 郭成偉, 303-304; 張晉藩, 291-293.
18 法史學硏究第 45 號 자명한것처럼생각되지만, 이것은어디까지나법을성문법위주로생각하는법규범이론의전제하에서그러한것이다. 법의연원에대한기본적인관념이성문법위주가아닌때에는신법에도불구하고오히려법원리를더잘구현하고있는것으로판단된舊法을적용하는법학적태도도얼마든지가능하다. 로마법은구체적인예를제시한다. 23) 실제로조선의법운용에서도이러한모습은낯설지않았다. 기본적으로효력이있는것으로전제된성문의법조가마련되어있음에도불구하고, 필요한경우舊法에의뢰하는것이가능했던것이다. 가장전형적인예를들어본다. 經國大典 이공포시행되었음에도불구하고唐律에의거한법운용이사라지지않았던것이다. 이러한사실은당시의 법전 이자족적인완결성을전제하는오늘날의 codification이아니라, 論想論 (topica) 의의미에서법을발견하는데에최우선적으로동원되는, 동시에가장포괄적인, 규범프로그램 (Normprogramm) 이었음을증거하는것이다. 법적논거의論想 (topoi. loci) 은 經國大典 및그것이지시하는 大明律 안에만있는것이아니라, 밖에도, 그것도舊法에, 얼마든지존재하는것으로관념된것이다. 24) 여기서원래 受範者가행위시에법규범을알았거나, 적어도알수있었거나알수있었어야만그의책임으로돌릴수있는법위반이인정될수있다는 과실책임주의원칙에입각하여인정되었던 25) 소급입법에의한형사처벌의금 23) Cf. 최병조 (1), 253f. 24) 이러한태도는동아시아의법제에만고유한것이아니었다. 이점에서가령영국의컴몬로법관이로마법의구속력을공식적으로前面에서는부인하면서도, 구체적인경우그법리를결정적인것으로까지원용하는일이있었다는사실은매우시사적이다 (12 M. & W. at 353; Lewis, 201f. 에서재인용 ): The Roman law forms no rule, binding in itself, upon the subjects of these realms; but in deciding a case upon principle, where no direct authority can be cited from our books, it affords no small evidence of the soundness of the conclusion at which we have arrived, if it proves to be supported by that law, the fruit of the researches of the most learned men, the collective wisdom of ages and the groundwork of the municipal law of most of the countries in Europe. 25) Cf. Voet, ad D.48.19 n.10 (p.915): Tempus quod attinet, si quidem post crimen commissum, sed ante condemnationem, poena statuto exasperata sit, illa magis imponenda videtur, quae tempore perpetrati facinoris obtinuit, eo quod quisque delinquens velut contractu quodam involuntario intelligitur sese ad eam
조선시대의죄형법정주의斷想 19 지가, 바로이런이유로창설적으로형벌을가하는, 즉그전에는가치중립적이던행위에새롭게형벌에의한제재를과하는법률에대하여적용되고, 기존의지배적인가치관을그저수용하여실정법에의하여이를선언할뿐인선언적신법률에대해서는작용되지않았던과거서양의경험을상기할필요가있다. 이때에는그러한행위가금지된다는것을그러한법률에의한확정없이도인식할수가있었기때문이다. 26) 로마공화정의경우에는소급입법의금지는실천적인의미가크지않았는데, 많지않은형사법률들이그저선언적인성격이었기때문이었다. 이것은제정으로넘어오면서바뀌는데, 이제법률은대부분창설적이되었기때문이었다. 누구도자신의계획을남을침해하도록바꿀수없다 (D.50.17.75 Papinianus 3 quaestionum: Nemo potest mutare consilium suum in alterius iniuriam) 는일반적인행위준칙이입법자에게도타당할때쉽게수긍할수있는소급효의금지는다수의황제들치세에, 특히테오도시우스 I세 (379-395), 테오도시우스 II세 (408-450), 발렌티니아누스 III세 (425-455) 때, 모든형사법률에대하여원칙으로법정되었다. obligasse poenam, quam scivit, aut scire saltem potuit atque debuit, delicto per leges propositam esse; nec divinare necesse habuit, levioris poenae prioris futuram in durius commutationem. ( 기준시점에관한한, 범행후, 그러나유죄판결전에형벌이법률로써엄중하게된경우에는, 범죄자는마치비자발적계약에의한것처럼자신을, 그가법률들에의해정해졌음을알았거나적어도알수있었거나알았어야만했던형벌에, 구속했던것으로생각되므로, 악행을범한시점에유효했던형벌이부과되어야하는것으로인정된다. 또그는이전의가볍던형벌이苛重한것으로변경될것임을점쳐야할필요도없었다 ). 26) 초기로마의경우에대하여 Cf. Platner, Quaestiones de Jure Criminum Romano (1842), Quaest. I, p.8: Civem scire debere ex notione reipublicae, cui adscriptus est, quae peccata sint fugienda, si in poenam incurrere nolit. Legem hic omnino deesse dici nequit, verum enim vera lex, qua poena infligitur, est illa omnium civium communis conscientia, quae cum unoque quasi nascitur et adolescit, ita ut a nemine ignorari possit, qui vinculo reipublicae illigatus [eneatur]<creatur?>. ( 시민은그가속한공동체의관념상, 범죄에빠지지않으려면, 어떤범죄들을피해야만하는지알아야만한다. 이때법률이전연없다고말할수없는데, 왜냐하면개인과더불어말하자면태어나고자라나는시민모두의저공동양심이정녕그에의해형벌이부과되는진정한법률이어서, 공동체의法鎖 (vinculum) 에구속되어태어나는어느누구에의해서도不知될수가없기때문이다.). Jhering, 48 n.31 에서재인용.
20 法史學硏究第 45 號 D.48.19.1.pr Ulpianus 8 disputationum. Quotiens de delicto quaeritur, placuit non eam poenam subire quem debere, quam condicio eius admittit eo tempore, quo sententia de eo fertur, sed eam, quam sustineret, si eo tempore esset sententiam passus, cum deliquisset. ( 범죄가문제될때마다범죄자는그에관해판결이선고되는시점에그의조건 (cf. D.48.19.1.1-2) 이수용하는형벌을받아야만하는것 [ 裁判時法主義 ] 이아니라, 범행시에판결에처했더라면받았을형벌을받아야만한다 [ 行爲時法主義 ] 는것이통설이다.) 27) D.48.19.41 Papinianus 2 definitionum. Sanctio legum, quae novissime certam poenam irrogat his, qui praeceptis legis non obtemperaverint, ad eas species pertinere non videtur, quibus ipsa lege poena specialiter addita est. nec ambigitur in cetero omni iure speciem generi derogare, nec sane verisimile est delictum unum eadem lege variis aestimationibus coerceri. ( 법률의명령에순종하지않은자들에게최근에일정하게정해진형벌을가하는법률들의제재는그법률자체에의하여형벌이특별히덧붙여진그러한사안들에는해당되는것으로인정되지않는다. 또여타모든법에있어서種 [ 특별법 ] 이類 [ 일반법 ] 를폐기한다는것은하등의심의여지가없고, 또하나의범죄가동일한법률에의하여다양한평가에따라懲治된다는것또한정녕비근한일이기도한것이다.) C.1.14.7 Theodosius et Valentinianus (a.440). Leges et constitutiones futuris certum est dare formam negotiis, non ad facta praeterita revocari, nisi nominatim etiam de praeterito tempore adhuc pendentibus negotiis cautum sit. ( 법률과칙법들이미래의사건들에규범을부여하고, 과거의행위들에소급적용되는것이아니라는것은명백하다. 그러나또한과거시점에비롯하여아직係屬중인사건들에대하여명시적으로규정이된경우에는그러하지아니하다.) 27) Cf. Bas.60.51.1 (Heimbach V, p.853): Ulp. Rei conditio spectari debet, non quam habet tempore sententiae (ἐν τῷ καιρῷ τῆς ἀποφάσεως), sed quam habuit, cum delinqueret (ἁμαρτάνων). Brunnemann, ad. D.48.19.1 n.1: Quando poena est irroganda, tempus delicti attendendum est, non vero sententiae, licet interim rei status sit mutatus (p.1347).
조선시대의죄형법정주의斷想 21 Cf. D.50.16.131.1 Ulpianus 3 ad legem Iuliam et Papiam.... poena non irrogatur, nisi quae quaque lege vel quo alio iure specialiter huic delicto imposita est:... (... 형벌은어떤법률에의하여또는다른법에의하여특별히이범죄에대하여부과된경우가아닌한부과되지않는다....) D.50.16.244 Labeo 4 pithanon a Paulo epitomatorum.... Paulus:... quia poenae certae singulorum peccatorum sunt... (... 파울루스 :... 형벌은개별범죄들에대하여일정하게정해진것인반면에...) 그러나황제에게는그에대한예외가무제한인정된다는한계가있었다. 28) 이러한비교사적고려하에조선을바라보면당시일정한행위 (crimina) 의當罰性과可罰性에대한관념과법의식은사법담당자뿐아니라모든백성들에의해서도공유되었던것으로보이고, 이러한측면에서행위시의舊律보다재판시의新律에의한처벌 (poena) 이더중할경우에발생할수있을인권침해에대한심각한의문은제기되지않았던것으로보인다. 어차피순수한法文에구애된司法이아니라情理를중시하여刑의加減이常態였던법운용 29) 은반드시엄한新律을그대로적용하는것에그치는것도아니었으므로문제의식이그만큼약화되었거나, 진지하게문제시될정도로중요한것으로치부되지않았을것으로생각된다. 성종 129권, 12년 (1481 신축 / 명성화 ( 成化 ) 17년 ) 5월 27일 ( 신축 ) 3번째기사형조 ( 刑曹 ) 에서아뢰기를, 공사 ( 公私 ) 의천구 ( 賤口 ) 로서도망한사람가운데사유 ( 赦宥 ) 뒤에붙잡힌경우에는관리들이혹시사유 ( 赦宥 ) 뒤에도그대로도망하였다고하여죄를결절 ( 決折 ) 하기도하고 28) Schreiber, 1105; Hall, 165ff.; 또한 Karlović, 256ff.; Ducos, 266-271. 29) Cf. 박종성, 999ff.
22 法史學硏究 第45號 (或以赦後仍逃決罪), 혹은 사유 전에 범한 죄라고 하여 완전히 석방하기도 하니(或以赦前 所犯全釋), 그 죄상(罪狀)은 한 가지인데 그 논죄하는 것은 각각 다릅니다. 당률(唐律)에 이르기를, 그 범죄로 인하여 도망하였다가 사유(赦宥)를 거쳐 죄를 면(免)하게 될 때 [기 한 이외에도]<기한을 넘기고도> 자수하지 않는 자는 다만 그 도망한 것만을 [연좌시키 고]<처벌하고> 본죄(本罪)는 논하지 않는다(其因犯罪逃亡, 經赦免罪, 限外不首者, 只坐 其亡, 勿論本罪). 30)고 하였으니, 금후로는 도망중에 있는 천구(賤口)가 1백 일 안에 자수 하지 않는 자31)는 위의 율(律)에 의하여 죄를 주소서.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어떤 범죄를 저지르고 도주한 경우에 그 범죄에 대한 赦宥가 있으면 그 도 주자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赦宥의 효력 범위가 문제된 이 사건은 바로 이러한 경우를 다루고 있는 율문이 大明律 에는 결여되어 있었기에32) 일선 30) 唐律疏議 第35條 名例 35 略和誘人赦後故蔽匿 조 [律文10] 其因犯逃亡, 經赦免 罪, 限外不首者, 止坐其亡, 不論本罪 (그러나 죄를 범하고 도망했다가 赦免令이 내려서 죄 가 免罪되었는데 기한이 지난 뒤에도 자수하지 않은 자는, 단지 도망죄만 처벌하고 本罪는 처벌하지 않는다). 31) 唐律疏議 第35條 名例 35 略和誘人赦後故蔽匿 조 [疏11] 議曰 : 謂赦前犯罪, 因卽 逃亡, 會赦之後, 罪皆原免, 赦後百日, 仍不自首, 止有逃亡之坐, 更不論其本罪 (사면령 이 전에 죄를 범하고 그것으로 인해 도망갔어도 사면령이 내린 뒤에는 죄가 모두 용서되어 赦 免되며, 사면령이 내린 이후 100일 내에도 여전히 자수하지 않았어도 도망죄만 처벌하고 그 本罪는 다시 논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32) 기껏해야 大明律 卷第一 名例律 徒流人在道會赦 조(제17조) [1]에 의하여 도형 유형을 받은 자가 도망 중에 있던 사이 도중에서 사면 받은 경우만이 규정되어 있을 뿐이다. 〇 凡徒流人, 在道會赦,... 若曾在逃, 雖在程限內, 亦不放免, 其逃者身死, 所隨家口願還者聽 直解 凡徒流人이 路次에 마침 宥旨이시었거든... 일찍이 在逃하였다는 人을랑 비록 行 路限日이 未滿하여도 不許放免하라. 在逃人이 身故하거든 隨去하였다는 家口가 自願還鄕 하거들랑 許聽放還하며 [處譯] 무릇, 徒刑이나 流刑을 받은 罪人이 귀양살이 곳으로 가는 途中에서, 마침 赦令을 만나면... 일찍이 逃避하여있던 사람은 비록 行路限日이 未滿되더라도 放免하지 아니하며, 逃避한 사람이 死亡하면 그에게 따라간 家口들은 自願하면 고향에 돌아가는 것을 聽許한다. [會譯] 도형 유형을 받은 자가 이동 중에 사면을 받으면... 만약 이미 도망 중에 있던 경 우에는 비록 행정 기한에 있어도 역시 방면하지 않고, 그 도망자가 죽었을 경우에는 함께
조선시대의죄형법정주의斷想 23 의사법관들이도주의죄책을묻기도하고불문에부치기도하는등혼선이있었다. 의심스러운때에는피고인에게유리하게해석하는원칙 (in dubio pro reo) 을따른다면법에규정이없다면당연히모든죄책이赦宥된것으로새길것이지만, 이러한의미의죄형법정주의를알지못하고, 오직有罪必罰의원칙을고수한가운데의심스러운때에도오히려처벌하되가볍게하는사법운용의원칙 [ 罪疑惟輕 ] 을따랐던당시의사법실무에서담당관들중에도주의죄책을묻지않은자들이있었다는사실이오히려놀라울정도이다. 이러한입장의논거가무엇이었는지는사료상알수없다. 도주의죄책을本犯과독립된것으로파악하면서도本犯에대한赦宥가도주에까지미친다고보았을수도있고, 아니면반대로도주를오늘날말하는不可罰的事後行爲 (straflose Nachtat) 로파악하여本犯과동시에처벌받는 (mitbestrafte) 행위로봄으로써赦宥가역시이에미친다고보았거나한때문일것이겠지만, 다른견해가있는것으로볼때이와관련한형사법의이론이확립되어있었던것은아닌것으로보인다. 오히려이사건의처결을통하여그반대로귀결된것임은분명하다. 이사건은소급효와관련하여적어도두가지점에서흥미롭다. 1 첫째로, 이사건은행위시에는사법당국자들을포함하여그누구에게도법의규율이구체적으로무엇인지가분명하게알려져있지않았던경우들이있었다는사실을적나라하게드러내는데, 이러한혼선이국왕에의한有權解釋 (authentische Interpretation) 을통하여정리된것이다. 사법관은이러한해석이전에발생한법률관계에대해서도이렇게해석된법규범을적용해야만하였던한, 유권해석은소급효가있는것이다. 그런데국왕의유권해석은입법과그경계가반드시명쾌한것이아니고, 이렇게보면이미원리적으로國王司法의성격상소급입법에대한자기억제가어려울것임을짐작할수있다 ( 후술참조 ). 따라간가구들이귀환을원하면허락한다.
24 法史學硏究第 45 號 2 둘째로, 그런데이렇게확정된법리의결여라는의미에서행위시의규율흠결을재판시의법규에의존해서가아니라 ( 로마법학의고전기에몇백년전의 12표법을적용했듯이 ) 몇백년전의당나라舊法에의거해서라도재판시에는해결하고자했다는점에서 ( 행위시에알려져있지않기는마찬가지였던 ) 逆時間的 소급법 의적용이기때문이다. 물론이사건의경우는赦宥로모든죄책이면제된다는피고인의가능한주관적기대를만족시키지않는법해석이사후적으로확정되었음에도불구하고엄밀히말해서내용면에서는赦宥로인해사후적으로불이익한대우가발생한것이결코아니므로엄격한의미에서는오늘날죄형법정주의의문맥에서논하는소급입법의문제라고하기어려운점이있는것은사실이다. 이러한예외적인경우를제외한다면실제로재판시의일반적인준거가된것은당연히新律일터였다. 33) 개인의자유와권리를위한현대적인죄형법정주의의원리가관철되지않은한이것은당연한모습일수밖에없었을것이다. 법의적용에관한신법우선주의의일반원칙이긍정된다고해서논리필연적으로소급입법에대한태도가가부간에결정되는것은아니다. 이를新法優先을관철하여긍정할것인지, 아니면인권보호의맥락에서예외적으로금지할것인지는법제의정책이결정할문제이다. 그러므로명태조朱元璋이거시적인차원에서大明律의最終版만이유효한것으로선언하고모든司法의기초로삼도록하고, 더욱이그변개를금지했다고해서그것이바로소급입법의 33) 그러나이때에도때로는舊法이라도그법리를강화시켜준다고생각될때에는함께원용되었다. 하나의전형적인예로성종 5-1474.10.19.5 을들수있다. 이사안은관리나公賤이虧欠 ( 휴흠 ) 또는遺失한물건을절도에준하여장물로추징하되죄인이사망한경우까지그렇게해온사법실무 ( 今奉法官吏等, 其官吏及公賤等所虧欠遺失物色, 一於律文有準竊盜計贓論之條, 至以身死人, 竝皆追徵 ) 를교정하면서장물의경우죄인이사망하면추징하지않는다는법조의勿論解釋상당연히추징해서는안된다는결론을내면서 大明律 卷第一名例律 給沒贓物 조 ( 제 23 조 ) [2] 외에도 唐律疏議 제 33 조名例 33 以贓入罪 조 [ 율문 2] 已費用者, 死及配流勿徵 ([ 贓物을 ] 이미消費한자가죽거나유배된경우에는추징하지않는다 ) 을원용하고있는것이다.
조선시대의죄형법정주의斷想 25 문제를고려하여정책적입장을밝힌것으로파악하는것은타당하지않다. 오히려이문제는 [ 斷罪依新頒律 ] 조를둠으로써비로소입장을정한것으로보아야할것이다. (5) 다섯째로, 新律이舊律보다우선적용되어야하는것은정긍식이주장하듯이 사회질서를안정적으로유지하기위해 刑律을제정하였으므로 당연히 그렇다는논리는설득력이떨어진다. 왜냐하면이논리는新法優先主義가적용되어야만사회질서가안정적으로유지되고, 따라서소급입법이금지되면신법우선주의가깨지는결과사회질서가안정적으로유지되기어렵다는논변으로보이는데, 이것은오늘날우리가역사적성취로평가하는소급입법을금지하는모든죄형법정주의법제를불안정한법질서로보는것과다름아니기때문이다. 사회질서의안정이란원칙과예외가모두일관되게관철될때에는달성할수있는법상태이지, 원칙만이예외없이적용되어야도달할수있는것이아닌것이다. (6) 여섯째로, 중국의경우에도, 조선의경우에도, 근대형법의도입과함께바로 斷罪依新頒律 조가개정되었다. 이것은이조문이기준으로삼을근대적의미의죄형법정주의에반한다는부인할수없는증거이다. 당시인들이스스로의식하여취한이러한엄연한역사적조치를보더라도大明律의동법조는죄형법정주의의맥락에서지나치게선해하기에는분명히한계가있다. 이와관련하여刑法大全 (1905.4.29. 공포시행 ) 부칙제679조 ( 從前施用 든律例 本法律施行日로붓터幷廢止 이라 ) 와제680조 ( 本法律은頒布日로붓터施行 이라 ) 를정긍식은斷罪依新頒律을따르는것으로이해한다. 34) 그러나이러한이해는형법의일반적시간적효력을정한것으로보는한타당하지만, 34) 鄭肯植 (1), 146.
26 法史學硏究第 45 號 이것을마치대명률의 斷罪依新頒律 조와같은것으로이해하는것이라면잘못이다. 소급입법을정한동율문의후단이삭제된것은그자체소급입법을배제했음을의미하는것이기때문이다. 참고로중국의경우를보면전통적관념의끈질긴존속을엿볼수있다. 즉 1908년완성되고 1911년 1월 25일공포된 ( 실시되지는않음 ) 大淸新刑律을보면 35) 다음과같이규정하였다. 光緒二十三年 (1897) 刑律草案刑律 ( 大清光緒新法令第十九冊 ) 修訂法律大臣沈家本等奏進呈刑律草案摺...... 光緒三十三年 (1907) 月日謹奏謹將酌擬刑律草案繕具清單恭呈御覽第一編總則... 第一章法例... 第一條 1 凡本律自頒行以後之犯罪者適用之. 2 若在頒行以前未經確定審判者俱從本律處斷. 但頒行以前之律例不爲罪者不在此限. ( 제1조 1 무릇本律은頒行이후의범죄에적용한다. 2 만약頒行이전에아직심판이확정되지않은것은모두本律을따라처단한다. 그러나頒行이전의律例가죄로삼지않은것은그러하지아니하다.) 행위시의법에의하여범죄를구성하지않는경우에는新律을적용하지않음을明定하였음에도불구하고 ( 제1조제2항단서 ), 新律보다이전에재판에회부되었으나아직확정판결이나지않은재판계속중인사안에대해서는여전 35) http://web.nchu.edu.tw/~hftsai/downloads/course/library/1.pdf ( 光緒二十三年刑律草案刑律 [ 大清光緒新法令第十九冊 ] ), p.1-3 을기본으로하되 http://www.lawtime.cn/info/lunwen/qitalw/2006102659151.html ( 近代西方刑法新旧派理论对 钦定大清刑律 的影响 ) 을참고하여수정보완하였다 ( 최종검색 2012.3.26.). 그러나두자료모두正文에는못미치는것으로생각된다. 향후재검토가필요하다.
조선시대의죄형법정주의斷想 27 히행위시의舊律이아니라그이후의新律을적용할수있도록정했던것이다 ( 제1조제2항본문 ). 따라서중한新律에의한처벌가능성을열어놓았던것이다. 36) 이것은조선을포함하여동아시아전통사회의당시司法이受範者, 특 36) 이점은당시최고의법학자였던沈家本 (1840-1913) 의관련해설에서그대로드러난다. 반면에로마법은계속중인사건에대하여예외를인정할때에도法定된매우제한적인경우에한하였었다 (C.1.14.7 cit. 단서 ). 沈家本의설명은제법긴관계로원문은생략하고拙譯으로소개한다. 이유 본조는형법의시간적효력에관한것이다. 제 1 조규정은형법불소급의원칙에기초한것으로, 제 10 조규정이채용한正條가없을시처벌하지않는다는원칙과서로도와시행하고응당어느한쪽을폐하지말아야한다. 제 2 항전단은범죄가新律시행전에있었으나심판이시행후인경우新舊두律중에서어떤것을마땅히끌어써야하는지를가리킨다. 本題의입법례에관해서는두가지가있다 : (1) 하나는新舊두법을비교하여그중가벼운것에따라처단하는주의이다. 프랑스형법제 4 조, 벨기에형법제 2 조, 독일형법제 2 조, 헝가리형법제 2 조, 네덜란드형법제 1 조제 2 항, 뉴욕형법제 2 조, 일본현행형법제 3 조제 2 항, 일본개정형법제 6 조, 이탈리아형법제 2 조제 3 항, 불가리아형법제 2 조제 2 항, 노르웨이형법제 3 조등모두이에기초한것이다. (2) 그둘은新舊두법을나누지않고모두新法에따라처단하는주의로서영국이쓰고있다. 우리나라의明律역시이주의를본으로삼았다. 本朝는비록제 1 주의의예가있으나, 律의본문에 犯在已前並依新律擬斷 라는규정이있는데, 의논하는자가피소된범죄의시점에당시법률이정하는바의형을받을권리가있다고한다. 이렇게이야기하면마땅히모두舊律의刑으로써科罪하고다시新舊두律의輕重을마땅히나누어서는안된다. 하물며臣民이국가에대하여결코이른바형을받을권리를갖지못한다는법리임에야. 혹은다시新律이舊律보다중하다고하면서舊律시대의犯人을新律의중형으로과죄하면舊律시대舊律의輕刑을받은동종의범인과서로비교하여그형평을잃은것으로보인다고한다. 이렇게이야기하면新律시행후삼가이舊律시대의동종범인은舊律의輕刑으로과죄하고, 저新律시대의범인은新律에의거하여중형을과해야하는데, 서로비교하면다시그형평을잃는것이다. 혹은다시형이엄함을잃는것은형이관대함을잃는것만못하다고이른다. 新律의가벼운것을따르는것은관대함을이루는것이다. 그러나형은은혜를사고파는도구가될수는없는것으로가히엄할수도가히관대할수있는것도아닌것이다. 무릇법률을제정하는것은民度를참작하여빼고보태는것이다. 이미재가를거쳐서반포되면법을세워서일대의憲章이되는것으로, 응당다시輕重과寬嚴을구별해서는안되는것이다. 歐美와일본등각국의입법례는제 1 주의를채용한바로써모두프랑스형법의영향을받았다. 그러나프랑스형법의규정은그시대의반동이었으며, 그래서오늘날에는살펴선택할수있는것이아니다. 우리나라는옛부터법리가본래제 2 주의의입법례를가졌는바, 이것이이法律案에서다수의예를제시하여서로부화뇌동하지않고제 2 주의를답습한까닭이다. 注意 제 1 항은이미형법불소급의원칙을채용하여新刑律시행이전의행위는新刑律에비록유
28 法史學硏究第 45 號 히국민의입장에서행위당시의예견가능성과기대가능성을중시한것이아니라, 재판시의현행법규를기준으로한사법담당자들의현재적규범의식과도덕관념이결정적이었음을의미한다. 이중에서도당시의사안법적 (casuistic) 법조들 37) 의文言자체보다도후자의재판담당자들의규범의식이더중요했었다. 그것은사안법의특성상명문의법조자체도어디까지나다양한현실의가능성을예비적인지침으로규정한것으로서법전전체의성격이어디까지나오늘날의진정한의미의 codification 과는달리규범프로그램이었고, 이프로그램의구체적인실현은당연히사법담당자들의손에맡겨져있었기때문이다. 다음의사안은임의의舊法역시이러한규범프로그램의일부였음을잘보여준다. 단종 11권, 2년 (1454 갑술 / 명경태 ( 景泰 ) 5년 ) 5월 16일 ( 병인 ) 3번째기사의정부 ( 議政府 ) 에서아뢰기를, 도적을다스리는법은 육전 ( 六典 ) 에기재된바와각년의수교 ( 受敎 ) 가지극히엄밀합니다. 그런데중외 ( 中外 ) 의도적이날로늘어나고달로성하여양민이해 ( 害 ) 를받아서, 옥송 ( 獄訟 ) 이번다 ( 繁多 ) 하여장차군도 ( 群盜 ) 가일어날조짐이있으니, 염려하지아니할수없습니다. 삼가 당률 ( 唐律 ) 을상고하니, 50필을절도한자는가역류 ( 加役流 ) 한다. 하였고, 당률소의 ( 唐律疎議 ) 에말하기를, 가역류 ( 加役流 ) 라는것은예전에사형 ( 死刑 ) 이다. 고하였습니다. [ 그러자 ]< 그런즉 > 절도는장물 ( 贓物 ) 의수 ( 數 ) 로써사형에처하는것이예전에도그제도가있었습니다. 또전 ( 傳 ) 에이르기를, 백성이게으르면규찰하기를엄하게하여야한다. 고하였습니다. 이와같이법을게을리하는무리는마땅히임시로무거운법전을써야하니, 청컨대우마적 ( 牛馬賊 ) 이소를죽였든지죽이지아니하였든지를막론하고, 초범 ( 初犯 ) 의수죄 ( 首罪 ) 는교형 ( 絞 사한범죄행위가있더라도新律의규정에의거하여이를벌하는것을할수없다. 제 2 항은아직재판의확정을거치지않은경우비록이미선고가있었더라도다시상소에의하여이를변경할수있음을가리킨다. 무릇안건이이러한사정을갖추면검찰관은상소하여新律을끌어쓸것을청구할수있고, 그상소방법과그제한은한결같이소송법에의거한다. 37) Cf. 崔秉祚 (3), 270-272.
조선시대의죄형법정주의斷想 29 刑 ) 에처하고, 종범 ( 從犯 ) 은법에의하여자자 ( 刺字 ) 하여거제도 ( 巨濟島 ) 진도 ( 珍島 ) 남해도 ( 南海島 ) 에방치 ( 放置 ) 하고, 재범 ( 再犯 ) 은유사 ( 宥赦 ) 하기전의죄를통산해서교형에처하고, 그나머지절도는여러번범죄하여아울러발견된장물 ( 贓物 ) 을통산 ( 通算 ) 하여아울러장물이 10관이상인자는초범 ( 初犯 ) 의수죄 ( 首罪 ) 가되는자는교형에처하고, 종범및 10관이하인자는법에의하여자자하고, 재범인경우는또한사전 ( 赦前 ) 을통산하여교형에처하소서. 하니, 그대로따랐다. 이때국가구성원의시민으로서의개인적권리, 특히자유를법적사고의출발점으로삼지않는당시의법질서가소급입법에의한불이익한결과를재판시의관점에서그저대수롭지않은것으로여기지않았다면, 아예의식조차못했던것은아닌가도싶다. 38) 이점은무엇보다도 大明律 를다룬법률문헌들에서거의모든경우동법조에대한주해자체가아예없거나, 39) 주해가붙어있는경우에도거의전부가신반포의연혁적사실을거론하는데그치고있는데에서드러난다. 40) 극히드물게내용적인설명이있더라도동조문의소급입법의문제점을간과한채법률이반포된후에발생한범죄를그新律에따라처단하는것을말하는것으로이해하여일반신법우선주의의의미만이강조되고, 그래서국왕의법제를지키는것은舊律을다시쓸수는없는노릇이라고 38) 로마의인간관이법에서 persona 로표상된것의의미에관해서는일응崔秉祚 (2), 17-21. 39) 大明律直解 ( 中樞院, 104), 大明律附例注解 ( 宋祥瑞, 228-229), 大明律講解 ( 楊 I-4, 99), 大明律直引 ( 楊 III-1, 95), 律條疏議 ( 楊 I-2, 245), 讀律瑣言 ( 楊 IV-2, 324). 40) 大明律釋義 ( 楊 II-1, 321), 大明律附例 ( 上 )( 奎章閣, 228), 王儀部先生箋釋 ( 楊 II-3, 261), 大明律集解咐例 ( 劉兆祐, ( 一 ) 369f.). 특히마지막의것은이원칙을법조의시간적적용대상과관련하여명문의규정을둔구체적인예를두가지들어서설명하고있는데 ( 該條 [ 纂註 ] 然娶樂人爲妻妾條 ( 제 119 조 ) 有云其在洪武元年以前娶者勿論, 則元年以前者爲舊律, 以後者爲新律矣. 逃避差役條 ( 제 90 조 ) 有云其在洪武七年十月以前移流他郡會經附籍當差者勿論, 則七年十月以前者爲舊律, 以後者爲新律矣 ), 이로미루어볼때당시율학가들이 斷罪依新頒律 조 ( 제 45 조 ) 의후단이가져올실천적효과를사실상인식하지못한채동규정의의미를전단에치중하여법조일반의시간적효력문제로만이해했음을보여준다. 大明律集解咐例 ( 劉兆祐, ( 一 ) 370.) [ 纂註 ] 의마지막은이를이렇게정리하였다 : 合一以三十年 (1397) 五月內刊頒者爲定.
30 法史學硏究 第45號 첨언할 따름이다. 다음 주석이 가장 전형적인 예이다. 大明律集解咐例 斷罪依新頒律 조(제45조) [纂註] 此言犯罪在先頒律後事 發 並依新定律條擬斷 蓋遵王之制不得復用舊律也 41) 물론 다른 한편으로 (가령 서양의 경우 토마스 아퀴나스가,42) 동양의 경우에 는 管子가 강조했듯이43)) 법률의 공포 자체가 합리적인 법질서의 필요요건이 지만, 중국의 법제사에서 이것이 항상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은 아니 라는 점44)에서 보면, 大明律 이 적용법규를 다름 아닌 반포된 법률에 의한 다고 명시적으로 규정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 법조는 나름으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한도에서는 이 법조는 斷罪引律令 조(제439조)의 기반을 이루는 사항을 규율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大明律 刑律 卷第二十八 斷獄 斷罪引律令 조(제439 조)는 이러한 일반법리 외에도 개별적인 新律에 의한 처벌을 이미 전제하고 있 다. 국왕의 特旨가 그것이다. 41) 劉兆祐, (一) 369. 42) Thomas Aquinas, Summa Theologica I-II, q.90, a.4: Unde ad hoc quod lex virtutem obligandi obtineat quod est proprium legis, oportet quod applicetur hominibus qui secundum eam regulari debent; talis autem applicatio fit per hoc quod in notitiam eorum deducitur ex ipsa promulgatione: unde promulgatio ipsa necessaria est ad hoc quod lex habeat suam virtutem, id est, ut ex lege promulgata oriatur nova norma vere obligatoria (그러므로 법률이 그 고유한 속성인 구속력을 얻기 위해서는 그에 의하여 규율되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러한 적용은 법률이 公布에 의하여 그들이 인식하 게 됨으로써 일어난다. 따라서 公布는 그 자체 법률이 그 효력을 가지도록 하는 데에 필수적이다. 즉 公布된 법률로부터 진정 구속적인 새 규범이 발생하는 것이다). 상세는 Güenechea, 28-32. 43) 管子 第十六篇 [法法]: 令未布而罰及之, 則是上妄誅也 (It is reckless of the sovereign to mete out punishments before orders have been issued. - Rickett, 258) 및 蕭公權, 359f.; 管子의 以法治 國이 유럽의 법치사상과 동일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 관해서는 同, 366-369. 44) 楊鴻烈, 146-154.
조선시대의 죄형법정주의 斷想 31 大明律 斷罪引律令 조(제439조): [1] 凡斷罪 皆須具引律令 違者笞三十. 若數事共條 止引所犯罪者聽. [2] 其特旨斷罪 臨時處治 不爲定律者 不得引比爲律. 若輒引比致罪有出入者 以故 失論. 直解 [1] 凡罪人을 모름지기 律令比引決斷하오되 違者笞三十하라. 律文比條數條 이거든 所犯切當한 條를 聽從하라. [2] 王旨로써 決斷하옵시는 定律못되는 罪囚는 不敢比引이거늘 卽自比律하여 罪囚 를 入於罪하며 出於罪한것을랑 故失例로써 論하올일. [處譯] [1] 무릇, 罪人을 判決함에 있어서는 마땅히 律令의 條文을 具體的으로 引用 하여야 한다. 違反한 者는 笞三十의 刑에 처한다. 만약 律文比照할 것이 數條이면 所犯 에 適切한 條만을 引用하는 것을 許容한다. [2] 만약 王의 特旨로써 罪人을 判決하게 되었을 때, 그 特旨가 臨時로 처리하는 것 이고 一定한 刑律로 定한 것이 아니면, 그 特旨에 의한 判決例를 引比하여 類推 처리하 지 못한다. 만약 이것을 引用類推하여 罪에 增減을 가져오게 한 者는 故出入人罪 또는 失出入人罪의 例로써 論罪한다. [會譯] [1] 무릇 죄를 처단함에는 반드시 율령을 구체적으로 인용하여야 하며, 위반한 자는 태30에 처한다.[만일 한 조문에 여러 사안을 규정하고 있는 경우에는 범죄한 부분만 을 인용할 수 있다.]<만약 여러 건이 共히 율문에 해당한다면 범해진 (것으로 법에 따라 인정되는) 바의 죄를 인용하는 데 그치는 것을 허용한다(또는: 죄만을 인용하는 것을 허용 한다).> [2] 국왕의 특지로 단죄한 것이 임시로 처치한 것이고 정률이 되지 않은 경우에는, 그 것을 율문으로 삼아 인용하거나 유추적용하지 못한다. 만약 경솔히 그것을 인용 또는 유 추적용하여 죄에 증감이 생긴 경우에는 고의 또는 과실로 사람의 증감한 죄(官司出入人 罪)45)로 논한다. 45) 大明律 제433조.
32 法史學硏究第 45 號 이법조의제1항에관한한, 唐律疏議 卷第三十斷獄 16 斷罪不具引律令格式 조 ( 제484조 ) 의규정 : 諸斷罪皆須具引律 令 格 式正文, 違者笞三十. 若數事共條, 止引所犯罪者, 聽 도거의같은데, 특히뒷부분은동일하다. 임대희 김택민의이부분번역 (p.3350) 은 數事共條 를 여러사건이조문을같이한다 라고하였다. 필자도처음에는 ( 무엇보다도이번역이언어적으로더가깝다고생각하여 ) 이에따라會譯의大明律번역문을동일하게바꾸자고제안하였었다. 이에대하여심사자중한분 ( 이하 甲 ) 이다음과같이번역상이견을피력하였다. 46) 단죄인율령의해석 한조문에여러사안을규정하고있는 만약여러사건이조문을같이한다면 으로하고 경죄의법조는인용하지않는것을말한다 고하였습니다. 당률의원문 < 중疏부분 > 을보면 若數事共條, 謂依名例律, 二罪以上俱發, 以重者論. 卽以贓致罪, 頻犯者竝累科. 假有人雖犯二罪, 竝不因贓, 而斷事官人止引二罪俱發以重者論, 不引以贓致罪之類者, 聽. 인데이를분석하면명례율의규정을예로들어서설명한것이아닌가합니다. 즉명례율 ( 율문 1) 二罪以上俱發, 以重者論. ( 율문 [2]<4>) 卽以贓致罪, 頻犯者竝累科. 에의하면 ( 원래는모두다인용하여야하지만 ) 어떤사람이두가지죄를범하였는데모두장물로인한것이아니라면 ( 율문 [2]<4> 는인용할필요가없이 ) 斷事官人이二罪俱發以重者論만인용하면되고, 以贓致罪之類를인용하지않아도좋다라는의미가아닌가합니다. 또당대의판결은아닙니다만, 과거의양식이이어졌다고생각되는구한말의형사판결문을보면경죄의법조를인용하지않는것이아니라, 두가지법조를모두인용한다음에이죄구발이중론을거론하고있습니다. 그리고구한말의판결문에서는두가지법조를인용할때그법조에서규정하는모든사항을인용하는것이아니라범죄와관련된사항만을인용하고있습니다. 예컨대, 親屬相姦 凡姦同宗無服之親及無服親之妻者, 各杖一百. 若姦義女者, 加一等. 若姦緦 46) 이해의편의상단락구분을필자가다시하였다.
조선시대의죄형법정주의斷想 33 麻以上親及緦麻以上親之妻의경우에범죄와실제로관련이있는부분만을인용하고있는것입니다. 따라서 만약여러사건이조문을같이한다면 보다는 한조문에여러사안을규정하고있는 이라고하는것이보다자연스러운해석이라고생각합니다. 이견해는 Jiang Yonglin, Da Ming lü, Art. 439 [1] 제2문 : If several crimes are stipulated in one article, it is permitted to cite only the portions regarding the specific crimes 와동일한이해이다. 이를계기로좀더생각해본결과위에서제시한새로운번역의견에이르렀다. 이소견은直解文및그것을번역한處譯의이해와일치하는것이다. 그이유는다음과같다. 數事共條에서事란일응율문에서정한범죄행위에해당하는독립적인범행사안내지사건을가리킨다는데의심의여지가없다. 그러면왜이내용을설명하는데唐律에서는卷第六名例 二罪從重 조 ( 제45조 ) 를들고있는것일까? 그것은각각율문에해당하는행위가여럿일때에원칙적으로적용되는법조가바로이조문이고, 이에의하면그중가장중한범죄에해당하는죄만으로처벌하므로바로그율문만이인용되면족한것으로법정되어있기때문이다. 경한죄목은언급할필요가없는것이다. 다만贓罪의경우에는贓罪만을범했을때에는모든액수를누적하여과죄하므로예외를구성하는것이지만, 贓罪와다른죄를함께범한경우에는그중중한것에따라그것만을인용하면되므로원칙에따르면되는것이다. 이렇게보면共條의의미가 어떤법조에여러범죄행위가규정되어있다 거나아니면 여러사건이조문을같이한다 거나하는이해는잘못되었거나적어도오해의소지가매우크다. 오히려 여러건이共히, 즉각각, 율문에해당한다 는의미이고, 47) 그렇다면所犯罪者역시 죄를범한바로인정되는것, 47) 이점은大明律 二罪俱發以重論 조 ( 제 25 조 ) 첫부분의 [ 講 ] 을보면 謂如甲先犯私借官物 ( 제 134 조 ) 笞五十又犯把持行市 ( 제 173 조 ) 杖八十一時被人告發卽從重罪杖八十科斷. 又如乙先犯別籍異財 ( 제 93 조 ) 又犯逃避差役 ( 제 90 조 ) 俱該杖一百當從一罪斷之 ([ 會譯 ] 가령甲이私借官物笞 50 을먼저범하고또把持行市杖 80 을범하여동시에고발되면, 重罪에
34 法史學硏究 第45號 법에 의하여 범죄로 논하면 되는 것 이라는 의미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二 罪俱發의 경우에도 以重論하지 않고, 따라서 數事를 그대로 모두 인용해야 하 는 다른 경우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장 전형적인 것이 二罪俱發以重 論 조(제25조)의 단서 규정이다: 〇 其應入官 陪償 刺字 罷職 罪止者 各盡本法 48) [處譯] <그러나>49) 당연히 官에 沒收해야할 것, 賠償해야할 것, 刺字의 刑을 받아야 할 것, 罷職해야할 것, 罪를 어느刑에 그쳐야 한다고 規定한 것은 각각 그 本法대로 處斷 한다. [會譯] <그러나> 마땅히 입관, 배상, 자자, 파직으로 죄가 그치는 것은 각각 본법대로 한다. 결국 다른 정함이 없는 한, 원칙적으로 가장 중한 범죄의 해당 율문만 인용하 면 된다는 결론이 된다. 그러나 왜 그것만을 인용했는지는 당연히 밝혀야 하므 로 大明律 二罪俱發以重論 조(제25조) 역시 함께 인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〇大明律 二罪俱發以重論 조(제25조): 凡二罪以上俱發 以重者論. 罪各等者 從一科斷 直解 凡二件罪가 一時俱發하거든 從重罪論하라. 二罪가 相等하거든 從一科斷하라. 따라서 杖 80으로 과단한다. 또한 가령 을이 別籍異財를 먼저 범하고 또 逃避差役을 범하 면, 모두 杖 100에 해당하므로 응당 한 건만 처단한다) 분명하다. 48) 구체적인 예는 該律文의 [註]와 [講] 참조. 49) 율문에서 쓰인 其는 앞의 규정과 달리 규정하는 경우를 표시하는 것이다. 例分八字之義 其 [註] 其者, 變於先意. 謂如論八議罪犯, 先奏請議, 其犯十惡, 不用此律之類 ([處譯] 其 字를 쓴 것은 먼저 표시한 뜻을 변경하는 것을 표시한다. 가령 八議에 해당하는 者의 犯 罪에 대하여는 먼저 王에게 奏請하는 것이나 그中 十惡의 罪를 犯한 者에게는 이 規定은 適用하지 아니한다고 한 따위와 같다). 따라서 이를 그 라고 번역하는 것은 오역이고, 적어 도 번역하지 않고 넘기거나, 더 좋기는 그러나 로 명시해야 한다.
조선시대의죄형법정주의斷想 35 [ 處譯 ] 무릇두件이상의犯罪가한꺼번에發覺되면, 그中重한罪로써論罪하고, 두件이상의罪가서로相等하면그中의한事件에쫓아처벌한다. [ 會譯 ] 2건이상의죄가함께발각되면중한것으로논한다. 죄가각각같으면한건만과단한다. 따라서심사자甲이중한죄의율문이아니라二罪俱發以重論만인용하면된다고본것은잘못이다. 조선의실무에서둘중중한것에의하여제〇〇조에의하였다고적지않고, 경하고중한모든죄목을언급하고大明律제25조를적용한것은사무처리의면에서는더욱확실한照律실무이고, 바람직한것이지, 결코법에어긋나는것이아니다. 법은이럴때사무처리의번거로움을피하여편의상 ( 흡수되어버렸다고도볼수있는 ) 경한죄목을생략할수있다고했을뿐이기때문이다. 그러므로심사자甲이以贓致罪之類를인용하지않아도좋다고한것역시잘못이다. 數事가모두贓罪인경우거나, 贓罪가함께범한범죄중에서가장중한경우에는당연히贓罪의율문을인용해야만했기때문이다. 또심사자甲이親屬相姦의예를들어서하나의율문에서여러구성요건이규정된경우에는해당구성요건만을인용하면되었고, 실무도실제로그렇게했다고지적하는데, 이것은너무나도당연한것으로서굳이언급할필요조차없는사항이다. 大明律의율문치고번쇄하게길지않은것이드문데, 쓸데없이해당사항아닌부분까지모두인용하도록法定한다는것은아무리善解해도당시의수준을너무낮게보는것일터이다. 이법조는이와는무관한것이다. 위법조의제2항과관련해서비교법적으로살펴보면, 로마법에서도특례법 (ius singulare) 의경우그유추적용을금하는법리가알려져있었는데, 모두법의안정성을위한조치이다. 특례법이란법체계의主論理에는맞지않지만일정한효용으로인하여법설정권위자 50) 에의해도입된것을말하는데 (D.1.3.16 Paulus libro singulari de iure singulari. Ius singulare est, quod contra tenorem rationis propter aliquam utilitatem auctoritate constituentium introductum est), 이러한것들은
36 法史學硏究第 45 號 유추나引律比附를통한확대적용 51) 이그법의정신에맞지않기때문이다. D.1.3.14 Paulus 54 ad edictum. Quod vero contra rationem iuris receptum est, non est producendum ad consequentias. ( 법체계의主論理에반하여수용된것은끝까지일관되게적용되어서는안된다.) D.1.3.15 Iulianus 27 digestorum. In his, quae contra rationem iuris constituta sunt, non possumus sequi regulam iuris. ( 법체계의主論理에반하여설정된것은定律로隨從할수없다.) 조선의경우에도特旨에의한改律이초래할수있는문제점을잘알았기에그定律로서의성격을판단함에대단히신중한태도를보였음에도불구하고그것을군왕의至上결정으로서상시적으로허용하였다는사실이야말로당시의 죄형법정주의 가오늘날의죄형법정주의가될수없었음을보여주는것이다. 오늘날죄형법정주의의한가지인불리한소급입법의금지, 즉처벌은행위 50) D.1.3.11 Iulianus 90 digestorum. Et ideo de his, quae primo constituuntur, aut interpretatione aut constitutione optimi principis certius statuendum est. ( 그래서우선 ( 법으로 ) 설정된것들에관해서는혹은해석으로, 혹은至善한황제의칙법으로써더확실하게정립되어야한다.) 51) D.1.3.12 Iulianus 15 digestorum. Non possunt omnes singillatim aut legibus aut senatus consultis comprehendi: sed cum in aliqua causa sententia eorum manifesta est, is qui iurisdictioni praeest ad similia procedere atque ita ius dicere debet. ( 모든사항이하나하나혹은법률들로써, 혹은원로원의결들로써포괄될수는없다. 하여어떤사항에관하여이법규들의취지가명백한경우에는사법담당자가유사한것으로나아가서 [= 유추하여 ] 그에따라법을선언하여야한다.) D.1.3.13 Ulpianus 1 ad edictum aedilium curulium. Nam, ut ait Pedius, quotiens lege aliquid unum vel alterum introductum est, bona occasio est cetera, quae tendunt ad eandem utilitatem, vel interpretatione vel certe iurisdictione suppleri. ( 왜냐하면, 페디우스 ( 주활동시기 1 세기후반 ) 가말하듯이, 법률로써이런혹은저런어떤것이도입된경우마다동일한취지를향하는여타의것들이혹은해석으로써, 혹은확실히사법권의행사에의하여보충되는좋은계기인것이다.)
조선시대의죄형법정주의斷想 37 시의법률에의해서만가능하고, 사후적으로법률을바꾼다음그에의거하여처벌하는것을금지하는원칙과정면으로배치되는처결이가능하였던것이다. 그만큼당시에인민의자유와인신의보호는미흡할수밖에없었음을보여준다. 동시에이것은다른경우들보다훨씬더극명하게, 당시의재판이 ( 가령引律比附, 罪疑惟輕등을동원하여 ) 기존법규의단순한적용에그치는것이아닌많은경우에그실질이법의伸造, 즉발전적형성 (Rechtsfortbildung) 으로서입법과맥이닿아있었다는사실도보여준다. 이런의미에서모든照律은결과적으로는법의적용 (Rechtsanwendung) 에만그치는것이아니라그때그때마다의법창설 (Rechtsschaffung) 이었다. 궁극적으로주권자인임금의대응이라는점에서개별적인사건에대한처결이지만, 이역시법의정립에해당하는것이고, 병행적비교사례를들자면로마의황제가다양한방식으로내렸던모든공적인결정이칙법 (constitutiones) 을구성했던것과같은것이다. 52) 국왕의特旨는로마황제의개별사건판결인裁決 (decretum) 에상응한다. 格例로서의일반성을결여한受敎에대하여永典에수록할恒式으로서의가치를인정하지않았던태도 52) 이 constitutiones 에해당하는것이 大明律 제 64 조 制書有違 조의制書이다. 制란모든임금의말을, 書란그것을기록한것을말하기때문이다. 그런데 [ 處譯 ] 은이를 王의詔勅 이라번역하면서 (p.163) 그註 (93) 에서는 詔勅의 1 種. 帝之下書有四一曰策書二曰制書三曰詔書四曰誡勅云云, 制書者帝者制度之命其文曰制詔... ( 後漢書, 光武紀辛未詔註 ) 이라설명하고있다 (p.184). [ 會譯 ] 은그냥 제서 라쓰면서그각주 7) 에서 詔勅중의하나 라고할뿐이다 (p.160). Jiang Yonglin 의번역은그냥 imperial edicts 라옮겨서 edict 를이해하기에따라서는보다포괄적인의미도가능하기는하지만반드시명료한것은아니다. 그러나이러한이해들은그릇된것이다. 漢나라때의이야기 ( 大漢和辭典卷二, 制書 70, p.255) 가이후대에전거가될수없음은물론이다. 明 淸시기의의미는 大明律集解咐例 [ 纂註 ] 天子之言曰制而書則載其言者如詔勑箚諭之類 ( 劉兆祐, ( 一 ) 474); 大明律釋義 該條 [ 釋義 ] 天子之言曰制書則載其言如令誥勑之類故曰制書 ( 楊 II-1, 358); 王儀部先生箋釋 [ 第一節 ] 如奉敕詔赦諭箚聖旨之類 ( 楊 II-3, 326); 讀律瑣言 該條 [ 瑣言 ] 制命之辭如詔赦諭箚之類 ( 楊 IV-2, 394); 律條疏議 該條 [ 謹詳律意 ] 制令之出所當欽承 ( 楊 I-2, 301); 淸律該條 [ 注 ] 天子之言曰制, 書則載其言者, 如詔赦諭敕之類, 若奏准施行者, 不在此內 ; 또한 [ 淸國行政法汎論, 官吏義務, 忠順義務 ] 制書者, 謂詔赦諭敕等, 所有君主之命令 ( 大漢和辭典卷二, 制書 70, p.255) 에잘설명되어있다. 鄭肯植 (1), 128 + n.57 은두루 황제의명령 으로옳게이해하였다. 관리를대상으로한왕의敎旨라는조선세종대의이해에관해서는조지만, 82f.
38 法史學硏究第 45 號 까지제정기로마와조선의왕정은일치한다. Institutiones Iustiniani I.2.6: Sed et quod principi placuit, legis habet vigorem, cum lege regia, quae de imperio eius lata est, populus ei et in eum omne suum imperium et potestatem concessit. 53) quodcumque igitur imperator per epistulam constituit vel cognoscens decrevit vel edicto praecepit, legem esse constat: hae sunt quae constitutiones appellantur. 54) plane ex his quaedam sunt personales, quae nec ad exemplum trahuntur, quoniam non hoc princeps vult: nam quod alicui ob merita indulsit, vel si cui poenam irrogavit, vel si cui sine exemplo subvenit, personam non egreditur. 55) aliae autem, cum generales sunt, omnes procul dubio tenent. ( 그런데 [ 원수의칙법 ]< 황제가嘉納하는바 > 도법률의효력을가진다. 왜냐하면그의대권에관하여제정된 [ 왕법 ]< 王權法 > 56) 으로써국민이그에게그리고 [ 그에대한 ]< 그를상대로 >, 모든 [ 그 ( 국민 )]< 자신 > 의대권과권한을양도하였기때문이다. 그리하여황제가서한으로제정한것또는심리하여재결한것또는고시로명한것도법률이라는점 53) = D.1.4.1.pr Ulpianus 1 institutionum. Quod principi placuit, legis habet vigorem: utpote cum lege regia, quae de imperio eius lata est, populus ei et in eum omne suum imperium et potestatem conferat. 또한 C.1.17.1.7 Justinianus (a.530): Cum enim lege antiqua, quae regia nuncupabatur, omne ius omnisque potestas populi Romani in imperatoriam translata sunt potestatem, ( 왜냐하면王權法이라불렸던옛법으로써로마人民의모든권리와모든權能이황제의權能으로移讓되었기때문에 ) 54) = D.1.4.1.1 Ulpianus 1 institutionum. Quodcumque igitur imperator per epistulam et subscriptionem statuit vel cognoscens decrevit vel de plano interlocutus est vel edicto praecepit, legem esse constat. Haec sunt quas vulgo constitutiones appellamus. 55) = D.1.4.1.2 Ulpianus 1 institutionum. Plane ex his quaedam sunt personales nec ad exemplum trahuntur: nam quae princeps alicui ob merita indulsit vel si quam poenam irrogavit vel si cui sine exemplo subvenit, personam non egreditur. 56) lex regia 에는크게두가지용법이있다. 하나는로마古拙期왕정시기의 ( 로물루스, 누마폼필리우스등의 ) 왕법이라는의미이고 (Riccobono ed., caput I, p.1-20), 다른하나는이곳에서처럼 lex de imperio 를달리칭하는표현이다. 그렇다면이곳의역어는역시王權法또는大權法이더적합하다.
조선시대의죄형법정주의斷想 39 명확하다. 이것들이칙법이라고불리는것들이다. 확실히이중에서어떤것들은황제가원치않았기때문에 [ 예로써들어질 ]< 格例로삼을 > 수없는一身적인것이다. 즉그 ( 황제 ) 가어떤이에게功勳을이유로부여했거나또는어떤이에게형벌을부과했거나또는어떤이에게先例를짓지않으면서扶助한것은일신을넘어가지않는다. 그런데다른것 ( 칙법 ) 들은일반적이기때문에의심의여지없이모든이를기속한다.) 57) 다만조선이나중국의경우군왕의통치의그사상사적기반이로마처럼人民에의한권한의委讓과그사실을성문화한王權法 (lex regia, lex de imperio) 58) 과같은것과는거리가멀어도한참멀었었다는점에서근본적인차이가있었고, 59) 그에상응하여소급입법에의한시민의자유에대한제약역시다른태도로취급될수밖에없었을것이다. 그러나로마의경우에도후대로오면서帝政의성격도專制的으로변하고, 60) 법학의수준도달라지는데다가, 특히관료에의한부정과부패를명시적일반법률 (lex generalis) 에의한법운용으로써대처하려는의도에서더이상 lex 57) 성중모, 326f.; cf. 최병조 (1), 230. 58) 현전하는구체적인예를하나들자면유명한베스파시아누스황제의왕권법 (Lex quae dicitur de imperio Vespasiani, AD 69-70) 이있다. 상세는 Crawford (ed.), 549-553. 59) 이점은조선도중국과마찬가지로실질적으로군주의至上權과全權과專權에관한한, 일찍이儒家사상으로윤색되었지만 ( 기원전 136 년漢武帝에의한공인이후 ), 그실질은언제나철저히法家의군주유일절대권력주의를기반으로삼았고, 백성은정치적으로그저다스림과부림의대상이었을뿐이었던사실의반영이다. Cf. 정위안푸 (2011); 崔秉祚 (4), 82-84. 60) 왕권법도 238 년이후로는사라진다. Liebs(1), 24; Liebs(2), 86. 이러한변화의징후는가령아우렐리아누스황제 (Aurelianus: 270-275) 가투숙한여관에서집주인의아내와간통하다가현장에서발각된한병사에게알렉산더대왕만이실시했던가혹한형 ( 두나무그루를굽혀서양쪽끝에발을묶고잡고있던나무줄기를놓아서몸이두쪽나도록한처벌 ) 을명한것에서간취할수있을것이다. Scriptores Historiae Augustae (Flavius Vopiscus Syracusius) - XXVI: Aurelianus, cap. 7, par. 4: Solus denique omnium militem, qui adulterium cum hospitis uxore[m] commiserat, ita punivit, ut duarum arborum capita inflecteret, ad pedes militis deligaret easdemque subito dimitteret, ut scissus ille utrimque penderet, quae res ingentem timorem omnibus fecit.
40 法史學硏究第 45 號 이외의王旨는法源으로서원용하지못하도록사정이바뀐다. 61) 관료에의한恣意的인결정을미연에방지하려는것역시그취지의중요한일단이었던大明律 斷罪引律令 조 ( 제439조 ) 도官尊民卑의전통사회에서언제나가능했던권력남용의실태를염두에둔것이라는점에서후기로마의경우와크게다르지않다. Ⅲ. 맺음말 이글은조선시대의죄형법정주의에대한이해를 大明律 斷罪依新頒律 조 ( 제45조 ) 를중심으로고찰한것이다. 종래이문제는죄형법정주의일반에관한고찰에서크게주목받지못하였거나, 아니면그것이배태하고있는문제점을지적하기보다는당시지배의依法主義的측면이강조됨으로써지나치게善解되거나한것으로보인다. 이글에서는오늘날의죄형법정주의가요구하는이른바소급입법에의한불이익한처벌의금지라는본연의맥락에서당시의입법과사법운용의모습을조명하고필요한경우로마법과의비교도곁들이면서비판적으로고찰하였다. 당시의법질서에근원적인개인의권리에대한인식의저조함과사안법적인대처가裁判時法主義를채택하는데결정적으 61) Imperatores Theodosius et Valentinianus (a.426) C.1.14.3; C.1.14.2; C.1.19.7; C.1.22.5; CTh.1.4.3. 상세는 Liebs, 18-25; Kussmaul (1981). 참고로이러한태도는후대스피노자 (1632-1677) 의법사상에서도찾아볼수있다. Spinoza, Tractatus politicus, Caput VII 1 i.f.: Atque adeo imperium Monarchicum, ut stabile sit, instituendum est, ut omnia quidem ex solo Regis decreto fiant, hoc est, ut omne jus sit Regis explicata voluntas; at non ut omnis Regis voluntas jus sit, de quo vide Art. 3. 5. et 6. praec. Cap. ( 그러므로군주정이안정적이기위해서는모든것이왕의법령으로만행해지도록시행되어야하는바, 즉모든법이왕의분명한의지이도록시행되어야하는것이지, 왕의모든의지가법이도록시행되어서는안되는것이다. 이에관해서는. 前章 3 절, 5 절, 6 절참조.) 몽테스키외 (1689-1755) 에이르면아예그러한종류의개별王旨는나쁜입법방식의전형으로취급된다. Montesquieu, livre XXIX, Chapitre XVII: Mauvaise manière de donner des lois (p.1037f.).
조선시대의죄형법정주의斷想 41 로역할을한것으로생각된다. 전통법제의이부분이근대적법관념으로보면미흡한것이었음은서양법의수용과함께서구식의죄형법정주의관념과사상이동양에도채택된사실에서잘알수가있다. 참고문헌 經國大典 [ 奎章閣資料叢書法典篇 ], 서울大學校奎章閣, 1997. - 윤국일옮김, 신서원편집부꾸밈, 新編經國大典, 신서원, 1998/ 초판2 쇄 2005. - 법제처, 經國大典, 一志社, 1978. 光緒二十三年刑律草案刑律 ( 大清光緒新法令第十九冊 ) = http://web.nchu.edu.tw/~hftsai/downloads/course/library/1.pdf ( 최종검색 2012.2.27.) 唐律疏議 - 譯註唐律疏議 (I)- 名例編 -, 主編金鐸敏 任大熙, 한국법제연구원, 1994 = 唐律疏議 (I) - 譯註唐律疏議各則 ( 上 )- 衛禁 職制 戶婚 廐庫 擅興 賊盜 -, 主編金鐸敏 任大熙, 한국법제연구원, 1997 = 唐律疏議 (II) - 譯註唐律疏議各則 ( 下 )- 鬪訟 詐僞 雜律 捕亡 斷獄 -, 主編金鐸敏 任大熙, 한국법제연구원, 1998 = 唐律疏議 (III) 唐玄崇, 大唐六典, 臺北 : 文海出版社, 中華民國五十七年 [1968] - 大唐六典, 김택민주편, 譯註唐六典上, 신서원, 2003. 大明律講解 ( 明 ) 佚名撰朝鮮光武七年 [1903] 法部奉旨印頒活字印本 : 楊一凡編, 中國律學文獻第一輯第四冊, 黑龍江人民出版社, 2004 = 楊 I-4 - 大明律講解 - 初譯本 - : 서울대학교법과대학大明律講讀會譯註 (2006년 2월 28일 ) = [ 會譯 ] 大明律附例 ( 上 )( 下 ) [ 奎章閣資料叢書法典篇 ], 서울大學校奎章閣, 2001. 大明律附例注解 ( 明 ) 姚思仁, 北京大學出版社, 1993. 大明律釋義 ( 上 )( 下 ) ( 明 ) 應檟 ( 가 ) 撰明嘉靖二十八年 [1549] 濟南知府李遷重刻本 : 楊一凡編, 中國律學文獻第二輯第一冊 第二冊, 黑龍江人民出版社, 2004 = 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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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죄형법정주의斷想 47 <Abstract> Criminal Punishment by Way of a New Retroactive Enactment in the Joseon Dynasty 62) Choe, Byoung-Jo* This article is to elucidate the meaning of the Article 45 Dae Myeong Ryul ( 大明律. chinese: Da Ming lü), the basic criminal code of the Joseon Dynasty ( 朝鮮 ), for the administration of criminal justice. Dae Myeong Ryul, Article 45 (Deciding Penalties in Accordance with the Newly Promulgated Code [ 斷罪依新頒律 ]): The Code ( 律 ) shall take effect from the day it is promulgated. If crimes are committed before then, they shall all be judged in accordance with the new Code. Up to now, scholars fail to consider its legal connotations, or are inclined to overestimate its good side for the rule by law. I criticize its negative side in the spirit of the modern principle of nullum crimen nulla poena sine lege, comparing now and then with the regulations of the ancient Roman law. The declared principle of sentencing according to the law valid at the time of the judgment, not of the accused crime seemed to be, to a great extent, due to a not fully developed legal consciousness of individual right on the one hand, and to a typical trait of the jurisprudence based on the casuistic * Professor of Law, College of Law/School of Law, Seoul National University
48 法史學硏究第 45 號 legal norm program on the other. No significant reforming change had ever been introduced into the traditional legal system until it met the modern European legal idea prohibiting a retroactive law to the disadvantage of the accused. [Key Words] Dae Myeong Ryul ( 大明律 ), Dang-Ryul So-Eui ( 唐律疏義 ), decretum, Gyeong-Guk Dae-Jeon ( 經國大典 ), ius singulare, nullum crimen nulla poena sine lege, retroactive law 접수일 :2012. 2. 28., 심사일 :2012. 3. 12.~3. 19., 게재확정일 :2012. 3.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