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영화 첼르부르외 우산 은 빗소리 같이 7r슴을 적시는 첫사량의 진한 of픔을 람람하게 담고있다. -본문중에서 - 명화와 고활흘 찾아서 크라운판.252먼 / 값 10, 000원 이 동 걸 지음 11 신지서원 이 책의 특정은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점보다 는 가능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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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져13 호 고구력 밀4 며 년(엉략 1611년) 팔1메토대왕 유쩍 답1\t 11 념 특핍호 e( 시론) 영락회 발전을 위한 제언... 조영섭 1)특집) 고구려 및 광개토대왕 유적 답사기 l 광개토대왕의 얼을 찾아서... (김영조) 광개토대왕의 기상을 다시 꿈꾸며... (지우효) 만주벌판을 달리고 싶은 젊은 영 락의 꿈.. (성윤수) 영락회 영락연구소

2 프랑스의 영화 첼르부르외 우산 은 빗소리 같이 7r슴을 적시는 첫사량의 진한 of픔을 람람하게 담고있다. -본문중에서 - 명화와 고활흘 찾아서 크라운판.252먼 / 값 10, 000원 이 동 걸 지음 11 신지서원 이 책의 특정은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점보다 는 가능하면 발로 뛰며 발굴하는 식의 살아 m m 있는 글과 사진어 l 더 큰 비증을 두었다는 것 01 풍 컬 지용 i 이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사진 중심의 책이 되었는데 이것은 또한 영상 시대의 시각적인 효과를 살리는 시대의 추세를 따른 하나의 장점이 될 수도 있다고 기대한다. 심지서원 이 책은 한국언론재단의 언론인 연구 저술활동 지원으로 출판되었다. 이책의 져깎 아동걸은 부산댐학교를 졸업학고 춘추샤(부산, 댐전, 팡주, 강원일보, 매일신문 등 5J)1.q) 공동특팍원으로 팍리엔 주재학였으며 면XJI 부산일보 논설위원O(며 영략획 부잔X(구 회원이다.

3 2.001 명락효 I i훌명폭훌l (1) 영략이념의 정협 맺 ~좁 (2) 자우조적의 창설 맺 확대 (3) 채쟁내실의 확충 맺 강화 (4) 래외샤업의 개빨 맺 τ1 원 영락회 사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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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폭 *t (시론) 영락회 발전을 위한 제언 (조영섭) (특집) 고구려 및 광개토대왕 유적 답사기 광개토대왕의 얼을 찾아서 (김영조) 광개토대왕의 기상을 다시 꿈꾸며 (지우효) 만주벌판을 달리고 싶은 젊은 영락의 꿈 (성윤수) (논문) 한반도에 氣 가 모이고 있다 (홍성태) (논문) 퇴계 선생의 건강 장수론 (김춘식) 영 락회 알림 글

6 총4웰 영락회발전을위한제언 I 조영 섭( 曺 永 變 ) 영락회 사무처장 조영섭 띠부과의원장, 의학박사, 피부과전문의 ( [email protected]) 2001년 2 월! 새로운 천년, 새로운 한 세기인 21세기가 사실상 시작되는 시점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 우리 배달민족이 나아가야 할 길은 어디 인가? 또 이후 세상은 어떻게 변화할 것이며 세계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연초부터 우리의 우방이자 초강대국인 미국은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면서 더욱 강한 군사력 으로 세계의 중심에서 세계질서를 주도하겠다고 선언하였으며 또 우리의 주변국이며 21세기 강대국을 지향하는 우리의 영원한 역사적 라이벌인 중국은 21세기는 위대한 중화민족 부홍의 세기 라고 세계를 향하여 외쳐대고 있다. 이들이 우리의 우방이며 이들과의 우호관계가 앞으로도 계속 유지되리라 예상되지만, 우리는 이들로부터 두려웅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민족 앞에는 그 갚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이 가로막고 있다. 우리는 IMF 의 암울한 기간동안 미래에 대한 명쾌한 대안이나 비전도 없이 임기응변식으로 처방하여, 오히 려 직업간의 갈등과 계층 지역 세대간의 갈등만을 한층 심화시켜 놓았다. 또한, 급변하는 세계화와 정보화의 와중에서 우리 배달민족의 가치관이 혼돈에 빠지고, 주체 성마저 상실되어 가고 있다.

7 시론 I 5 이러한 상횡들을 극복하지 못하고 어려움이 지속된다면 우리민족의 모든 활동영역은 더욱 좁 아질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강대국들은 21세기에는 세계화와 정보화 등으로 국가간의 국 경이나 영토의 개념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하고 있고 심지어 우리의 식자층 일부에서 조차 이러 한 논리에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강대국들이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커고자 하는 논리에 불과하다. 이들은 이와 같은 논리로 이들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에 의해 불분명해진 우리민족의 영역만큼 자신들의 국경과 영토를 넓혀 가는 것이다. 그러나 되돌아 보면 우리 민족사에서 우려 배달민족에게도 거대한 영광을 안겨준 시대가 있었 다. 그것은 고구려 국민의 끈질긴 노력과 더불어 위대한 지도자를 만났던 광개토대왕의 시대였 다. 광개토대왕의 시대에는 고구려인의 다물정신을 기반으로 고토의 회복은 물론 광활한 영토 를 확보하였으며, 이로서 고구려가 세계의 중심이 되면서 독창성이 벚나는 화려한 문화의 꽃을 피웠다. 이러한 문회는 중국의 북조 문화와 서역의 돈황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고 일본에도 고 구려의 앞선 문화를 전파하였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민족의 이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하여, 광개토대왕의 시대에서처 럼 우리에게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지도자와 민족의 주체성(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즉 영락이 념인 자주 자조 자강정신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절실히 요구된다 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하여 영락회는 영락이념을 국민 혹은 민족정신으로 승화시켜, 새로운 영광의 시 대가우리민족에게 다시 도래하도록끊임없이 노력하여야한다. 2 영락회 사무처는 영락회 발전을 위하여 올해 본회의 운영 목표를 (1) 영락이념의 정립 및 보급 (2) 지구조직의 창설 및 확대 (3) 재정내실의 확충 및 강화 (4) 대외사업의 개발 및 지원 등의 4 가지로 설정하고, 이 4대 지표의 구체적인 사업들을 지속적이고도 강력하게 집행하고 반드시 달성할것이다.

8 6 /영락이데아 첫째, 영락이념의 정립 및 보급을 위한 실천사업으로, 1) 청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락이념의 보급에 주력한다. * 각종 홍보물이나 웹사이트의 활용 및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청년학생들에게 영 락 이념을 보급하고, 특히 대학생들에게는 국가의 동량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영락동아 리 창립을지원토록한다. 2) 본회의 사업에 대한 회원들의 관심과 참여를 확대한다. * 각 지구별로 정기적 집회를 개최하며 전 회원이 참석하여 소속 연대의식을 고취하고 영 락이념의 학습 및 대외봉사활동 등 본회 사업을 적극적으로 전개한다. 3) 정기적인 회원세미나 및 수련회를 개최하고 이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한다. * 본회회원 및 청년학생들을 상대로 매년 일회이상 세미나 또는 수련회를 개최하고, 이 를 통해 영락이념을 고취하며 회원상호간의 유대를 강화한다. 4) 영락연구소에서 발행되고 있는 영락이데아는 년 2 회 발행될 수 있도록 재정적 학술적 지원에총력을다한다. 둘째 지구조직의 창설 및 확대를 위한 실천사업으로 1) 설립 중에 있는 지구설립에 박차를 가하고 전국적 규모로 지구조직을 완성한다. * 설립 중에 있는 동해지구 등의 창설에 많은 회원들이 성원하도록 하며, 주요 시, 도 및 해외지역에 지구조직을 창설함과 동시에 다 OJ=한 직업을 가진 회원을 제한 없이 영입하 여 명설공히 전국적 규모를 갖춘다. 2) 영락회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해를 증진시킨다. * 각 지구별로 본회의 활동 및 홍보자료를 작성하여 언론기관과 정기적으로 접촉하고, 이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영락회 및 영락이념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킨다. 셋째, 재정내실의 확충 및 강호}를 위한 실천사업으로, 1) 회칙 및 제 규정을 엄중히 적용하여 회원들의 성실하고도 자발적인 회비납부를 유도한다. * 본회의 운영에 필요한 경비로 회비의 충실한 징수와 대외사업 등에 필요한 특별기금을

9 시론 / 7 후원금 형식으로 조성한다. 2) 영락홈페이지를 더욱 확충하여 정보교환을 활성화한다. * 지식정보화에 부응하여, 광개토대왕에 대한 자료를 데이타 베이스화하고, 회원뿐만 아 니라 일반인과의 의견 및 정보교환을 위해서 홈페이지를 더욱 확충하고, 회원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영락회보를 정기적으로 발행한다. 넷째 대외사업의 개발 및 지원을 위한 실천사업으로, 1) 자매결연을 맺은 조선족학교에 대한 장학사업을 실행하고 만주지역에 대한 교육사업을 확대해나간다. 2) 전년도에 처음으로 실행한 중국집안의 광개토대왕릉 및 고구려 유적답사를 매년 정례화 한다. 3) 각 지구별로 1개 이상의 중요 지역봉사사업을 계획하고 실천하며, 특히 환경보전운동에 솔선수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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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광개토대왕릉바 특 칩 : 고구려 뭘 굉t'l H를, th펑i 유적답샤rJ l 본 특집은 영락회 기획사업으로 지난 2000년 8월 12 일부터 16일까지 4박5 일 간 중국 집안( 集 安 )시를 중심으로 실시된 고구려 및 광개토대왕 유적답새 에 관 한 3편의 기행문으로 구성하였다 영락연구소- 폭 차 광개토대왕의 얼을 찾아서 김영조(영진전문대학 교수) 광개토대왕의 기상을 다시 꿈꾸며 지우효(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만주벌판을 달리고 싶은 젊은 영락의 꿈 성윤수 (일산 백석고등학교 2 학년)

12 10 / 영락이데아 광개토대왕의 열을 찾아서 김영조( 金 永 祚 ) 영락회 의장 겸 중앙운영위원장 영진전문대학 교수, 법학박사 프롤로그 지식정보화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작되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창의성과 개척정신이 우리 의 필수적인 생존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이때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 감과 용기를 가지고 무한한 가능성에 도전하여 세계초일류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우리의 국가적 과제이다. 좁은 국토에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로서는 우수한 인적 자원을 양성하고 활용하여 지식정보화라는 거대한 미지의 세계를 개척해 나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며 또한 시대적 소명이다. 그러한 목표에 대한 사실적 정신적 토대로서의 광개토대왕이라는 위대한 인물과 그 가 추구하고 이룩한 이념과 정신은 진정 한국인이 본받아야 할 표상이며 지금 우리가 나아가야 할 지향점이다. 특히 젊은 청소년과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자신감과 용기를 북돋워 줌으로써 앞으로 이들이 세계를 경영하고 세계를 지도해 나갈 수 있는 우수한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국민적 관심과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세계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교육열이 매우 높고, 개인의 창의력과 지적 수준이 우수한 것으 로 정명이 나있다. 따라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21기 지식정보화시대는 우리나라에 가장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이며 우리나라가 세계 제일의 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는 생각이 든다. 다만 이러한 목표는 우리들이 가만히 앉아 기다려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 리 스스로 자신감과 용기를 가지고 부단히 노력할 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 청소 년 및 학생들이 학창 시절의 높은 이상과 피끓는 정열로 학업에 전념한다면 이러한 목표는 보다

13 광개토대왕의 얼을 찾아서 /11 빨리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러한 돗으로 광개토대왕의 위대한 업적과 정신을 직접 체험하고 그가 품었던 웅지를 되새 겨보기 위하여 23명의 영락 전사들은 2000년 8월 12 일부터 8월 16일까지 4박 5 일간 고구려 및 광개토대왕의 유적지를 답사하였다. 이 유적 답사 프로그램은 영락회의 기획 사업으로서 오래 전부터 회원들 사이에 강력하게 요청이 있었던 것을 지난 2000년 7월 29 일 대구에서 열린 중앙 운영위원회에서 최종확정하여 추진하게 된 것이다. 프로그램 일정과 진행은 대한항공 안동지점장으로 있는 이한용 회원이 직접 챙겨 주었다. 특 히 이한용 회원은 이번 답사 여행에 함께 참가하여 우리 일행이 안전하고 편안하며, 재미있고 유익한 일정이 되도록 세심한 배려를 하고 인솔책임을 맡아 주었다. 답사를 위한 홍보 및 회원 모집 업무는 사무처장인 조영섭 원장이 맡아 주었다. 병원 업무와 의약분업 때문에 바쁜 가운데 에도 직접 참여하여 진행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특별한 회원으로서 안동대학교 인문대학 사학 과에 재직하고 있는 이윤화 교수는 학회 관계로 미리 중국에 가 있다가 심양에서 우리 일행과 합류하여 함께 답사를 하게 되었다. 중국통으로 불려질 정도로 중국의 역사와 문물에 대한 해박 한 지식을 가지고 유적 및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 상세하면서도 재미있게 설명해주었다. 능통한 중국어 실력과 달변을 발휘하여 우리를 안내하여 주었기 때문에 이번 답사는 더욱 알차고 유익 한 여행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 답사 여행에는 영락회 정회원 이외에 광개토대왕 및 고구 려에 관심 있는 분틀이 함께 참여하여 더욱 다채로운 행사가 될 수 있었으며, 젊은 영락 회원 들도 많이 참여하여 앞으로 영락회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현재 성균관 대학 교 경영학부 4학년에 재학중인 지우효군은 아버지인 지용광 회원(울진중앙병원장)으로부터 이 미 영락회 및 영락이념에 대한 내용을 상세히 교육받아 역사인식이 뚜렷하여 젊은 영락 의 대 장격으로서 충분한 자질을 갖춘 것으로 인정되었으며 4 명 전 가족이 참여할 정도로 열성을 보 인 서울지부 성기석 회원(한국이엠에스주식회사=지멘스의 이사)의 장녀인 성윤수양은 고교생으 로서 메모지를 들고 다니면서 유적을 일일이 기록하는 등 진지한 자세로 역사탐구를 하는 모습 이 대견스러웠고, 우리의 역사유물이 중국인들에 의해 훼손되고 방치된 데 대하여 안타까움과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눈물을 흘렬 정도로 역사 의식이 투철하게 정립되어 있었다.

14 12 / 영락이데아 8월 12 일(토) - 심양으로 가다 - 서울에서 중국 심양행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가 김포공항 활주로를 힘차게 질주하여 푸른 창 공을 날아오를 때 마음속에는 어느 새 말을 탄 옛 고구려 병사들이 푸른 초원의 만주대륙을 질 주하던 때의 기분으로 돌아갔다. 눈 아래 광활하게 펼쳐지고 구름은 마치 미지의 세계처럼 느껴 진다. 비행시간은 약 1시간 40분이 걸렸다. 우리보다 1시간의 시차가 있다. 시계를 1시간 뒤로 돌려야 했다. 우리보다 1시간 늦은 걸 보니 동경 120도를 기준으로 시간을 정한 것 같다(우리나 라는 동경 135도를 기준으로 함). 심양 공항에서의 입국절차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 우리나라 시골 역 대합실 정도의 허름한 시설과 느리게 진행되는 수속업무 과정을 보면서 과연 이곳이 국 제공항인지 의문이 갈 정도였다. 서울 김포공항과 비교했을 때 자본주의체제의 사회주의체제에 대한 비교우위의 한 단면을 보는 듯 했다. 모든 공항 분위기가 작년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 톡에 갔을 때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곳이 다 사회주의국가 체제의 한계 상 경제발전이 더디고 의식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탓인 것 같았다. 저무는 석양의 아름다운 도시 로 불려지는 심양은 약 680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북경, 상 해, 천진 다음 중국 4번째 큰 도시이다. 청태조 누르하치가 후금을 세워 처음 수도로 정한 곳이 다. 그 후 태종이 후금에서 청으로 국호를 바꾸고 수도를 북경으로 옮겼다. 이후 심양은 봉천으 로 불리기도 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알려진 도시이다.2, 000의 역사를 가진 도시이며, 한때는 고구려의 영토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는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일찍이 요녕 성의 성도로서 1900년 이후 제국주의의 침략이 시작되지 일본에게 짓밟히기 시작했고, 1931년 에는 만주 사변의 기지가 되었다. 이후 일본의 중국 침략이 근거지가 되었고,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심양이라는 이름으로 해방되었다. 깡마르고 왜소한 체구의 조선족 젊은 남자 가이드가 우리 여행의 전체일정에 대한 안내를 해 주었다. 지역적 인접성으로 인해 북한 말투를 쓰고 있었으나 같은 한국인(조선족)이라는 말에 친근감과 동정심을 느낄 수 있었다. 가이드의 얘기로는 중국 국민은 매우 게으르다고 한다. 아

15 광개토대왕의 열을 찾아서 / 13 침 출근은 거북이처럼(천천히) 저녁 퇴근은 토끼처럼(빨리) 하고 있으며, 아침에 출근해서도 신문을 보거나 차를 마시면 업무를 천천히 시작하고 퇴근 시간에는 정식 퇴근시간 이전에 미리 퇴근 준비를 해놓고 시계를 본다는 얘기이다. 중국 원래의 국민성이 그런 점도 있지만 사회주의 국가체제의 한계성으로 인한 점도 있을 것이다. 빨리빨리 문화에 젖어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볼 때는 매우 답답할 일이다. 심양에 내려 제일 먼저 본계수동굴( 本 漢 水 洞 )을보러 갔다. 심양에서 40km거리에 위치에 있 는 큰 동굴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45만년 전에 형성된 대형 석회암 동굴이다. 전체길이는 약 3km 이며, 세계적으로 가장 긴 석회암동굴이다. 일반 동굴로서 세계에서 가장 긴 것은 미국에 있는 것으로서 555km나 된다고 한다. 제주도 만징낼이 세계에서 가장 긴 것이라고 알고 었던 우리들에게는 엄청난 놀라움이 아닐 수 없었다. 본계수동굴은 동굴 안으로 강물이 흐를 정도로 규모가 크다. 수심은 평균 2m이고 가장 깊은 곳은 7m 이다. 한여름인데도 내부가 추워서 무료 로 벌려주는 조끼를 걸쳐 입어야 했다. 1시간 정도 배로 유람하면서 동굴내부를 구경하였다. 내 부에는 형형색색의 대형 종유석 석순들이 장관을 이루고 었다. 우리나라 울진 석류굴이나 강원 도 환성동굴과는 규모에 있어서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저녁에 까르푸 쇼핑센터에 들렀다. 앞 광장에는 많은 대중이 운집한 가운데 노래자랑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타고 온 자전거가 건물 앞에 빽빽하게 들어서 었다. 사람들이 매우 복잡하게 분 비고 있다.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각종의 다OJ=한 상품들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었으니 중국인인 들 얼마나 사고싶어 하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쇼핑용 비닐 봉지에 물건들을 사들고 나가는 수 많은 사람들의 모습들에서 자본주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중국도 이제 서서히 자본주의화 되어 가고 있고, 국민들이 의식이 바뀌어가고 있는 상태에서 더 이상 사회주의체제를 고집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늦게 집안( 集 安 )으로 가기 위하여 통화( 通 化 )행 야간열차를 탔다. 새벽까지 잠을 자면서 달려가야 한다. 열차 내 좌석을 2층 내지 3층으로 개조하여 침실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다. 우리나라 열차의 좌우 양쪽 좌석을 한 쪽으로 합쳐 놓은 다음, 앞 뒤 좌석을 마주보게 하여, 1실 4 인 내지 6인의 이른바 열차호텔이다. 차창 밖으로 휘영청 밝은 달이 보이고 별빛이 반짝인

16 14 / 영락이데아 다. 새로운 정취를 맛본다. 달리는 기차가 마치 옛 우리 조상들이 말을 타고 만주 별판을 달리던 때의 모습으로 오벼랩 되면서 야간 완행열차를 타고 여행하던 때의 옛 추억이 반추되어 옹다. 낭만적순간이다. 8월 13 일(일) - 집안에서 (5호분묘, 장군총, 집안박물관, 광개토대왕릉비, 압록강) - 새벽에 교통요충지인 통화역에 도착하였다. 열차에서 내려 다시 버스로 고구려 유적지인 집안 으로 가야 했다. 통화에서 집안까지는 버스로 약 4시간 정도 걸렸다. 집안( 集 安 )은 중국 강서성 ( 江 西 省 ) 중서부에 있는 도시이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학교가 많이 있는 학문의 중심지로 송대 와 명대에 뛰어난 학자들을 많이 배출했다고 한다. 집안은 우리의 역사상 가장 광대한 영토를 지녔던 고구려 도읍지가 번성했던 지역이다. 집안은 고분 천국이다. 도시 곳곳에 무덤이 있다. 동북아시아 민족 중에서 무덤의 범위가 가장 크고 많으며 다양하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왕릉 크기에서부터 이름 모를 조그만 무덤 크기까지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그래서 집안 지역 은 분지앓 地 )임과 동시에 분지( 鐵 뼈 라고도 불린다. 처음에는 1만 2천여기의 무덤이 있었으 나 지금은 7천여기의 무덤이 남아 있다고 한다. 다만 무덤의 피장자가 누구인지를 알 수가 없 고, 많은 무덤이 관리 소홀로 파헤쳐지고 자연 훼손되어 가고 있는 현상이 안타까웠다. 이곳에서의 주요교통수단으로서 자전거 인력거 오토바이 삼륜차 미니버스 등이 눈에 보인 다. 우리가 묵을 호벨에 짐을 내려두고 5호분묘(퉁고우분묘), 장군총, 박물관, 광개토대왕릉비 등을답사하였다. 먼저 5호분묘를 찾았다. 집안에 있는 20여기의 벽화고분 중 유일하게 일반관람이 허용된 곳 이다. 분묘 안에는 백열구를 희미하게 켜놓았다. 입구에 들어서자 서늘한 공기가 몽에 와 닿는 다. 외부와의 온도차로 인한 결로 현상이 가장 뚜렷이 나타나는 고분이다.5호묘란 일렬로 나란 히 서 있는 5개의 봉토분 중 5번째에 해당하는 분묘라는 뭇이다. 묘실 천장은 삼각형 받침돌로 네 벽면의 모서리를차츰좁혀 나간 모줄임천장식 ( 말각조정식 이라고도함)이다. 현실 바닥

17 광개토대왕의 열을 찾아서 / 15 에는 피장자와 부인, 첩의 관대가 3개 놓여 었다. 묘실 4면 벽에는 사신도 벽화가 그려져 있었 다. 입구 남쪽 면에는 2마리 주작이 서로 대칭된 모습으로 힘찬 날갯짓을 하고 있는 주작도가 그려져 있고, 북쪽에는 거북과 뱀이 엉겨져 있는 현무도가 있다. 서쪽에는 백호도가 자리잡고 있고, 동쪽에 청룡도가 그려져 있었다. 천장받침돌에는 일월신 벽화가 그려져 있다. 보리수나무를 중심으로 흰옷 입은 두 신이 각각 해와 달을 머리에 이고 있다. 또 해는 세 발 달린 까마귀인 삼족오( 三 足 烏 : 고구려에서는 이를 영물로 취급하였다)를, 달은 두꺼비를 각각 달고 있다. 심한 결로 현상으로 인해 흰옷에 줄무늬 가 생겼다. 천장과 벽면에는 당시의 채색과 그림형상이 1, 50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 남아있어, 어떻게 생생하게 이리 오래도록존속할수 있을까감탄을금치 못했다. 집안의 12, 000여 고구려 고분 중 유일하게 일반에게 고분 벽화를 공개하는 5호묘는 고구려 후기시대의 고분으로서 초기 중기의 고분벽화와는 달리 사신도를 통해 고구려인의 신앙과 정 신세계를 표현했다. 이 고분벽화를 통해 고구려인들의 기질과 풍습, 생활관, 종교와 사상, 우주 관, 예절, 남녀의 복식과 관모, 꾸멈새와 화장법, 각종 기술과 발달 정도 등 수많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고구려 고분벽화는 문화적 역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생 각을해본다. 이어 5호분묘 멀지 않은 곳에 장군총을 찾았다. 장군총은 화강암을 사용해 7층으로 계단을 만 들어 쌓아올리는 독특한 분묘의 형식을 띠고 있어 동방의 피라미드로 불리고 있다. 즉 장군총은 계단식 피라빗형 돌무덤으로서, 서기 년 사이에 축조된 것으로 보고 있다. 장군총에 사 용된 돌은 모두 화강암으로서 돌의 전체 무게는 1만 9천 t이상이 될 것이라 한다.4t트럭 약 4천 750대 분량이다. 톨 외에도 흙과 자갈이 1만 2천 500t 가량 들어갔다. 집안 박물관측은 연인원 7만명이 넘는 인력이 동원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잘 다듬은 화강석재로 7단의 방단( 方 劃 을 계단형으로 쌓았고, 분구의 정상은 절두방추형을 이루었다. 제 1방단은 4단이고, 제 2방단에서부 터 윗 부분은 3단으로 되어었다. 전체 높이는 약 12.4m이다. 제 1방단의 한 변은 약 32m, 제일 위의 제 7방단의 한 변은 약 15m이고 각 변은 각각 방위선상( 方 位 *없)에 놓여었다. 제 1방단의 각 변에는 돌이 무너져 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각기 긴 자연석의 버팀돌이 기대어 세워져

18 16 / 영락이데아 있다. 가장 큰 벼팀돌의 너비가 약 2.7m 길이가 4.5m나 된다. 그런데 네 변 중 한 변에는 버팀 돌이 없어졌고, 없어진 변에 쌓아놓은 돌에 틈이 벌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장군총의 정면은 국내성을 바라보며 네 귀는 동서남북을 가리킨다. 최근에 밝혀진 바로는 석 실 안 석관의 머리 방향이 53도로 북동쪽에 있는 백두산 천지를 향하고 있다고 한다. 즉 고구려 의 근본이 백두산 천지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인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장군총을 둘러싼 12 개의 자연석의 호석( 護 石 )과 주변에 배총( 暗 劇 이라 하여 이집트 피라미드의 스핑크스처럼 이 장군총을 지켜주는 수호자가 있었다. 호석은 십이지신상의 기원으로 설명되기도 하지만 배총에 대하여는 아직까지 분명한 학설이 제기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배총은 훼손되고 1기만 남아 있었으나, 그것도 거의 다 무너져 내렸다. 무너진 돌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핑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중국 당국이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적을 경시하는 처사에 분통을 터뜨리기도 하였다. 그 내부 주체인 횡혈식 석실은 저113방단의 윗면이 현실 바닥이고 제 5방단의 서남 면에 연도가 달려있으며 평면은 정방형, 한 변의 길이는 약 5.5m이고, 높이도 약 5.5m라 한다. 현실의 네 벽은 다듬은 화강암을 사용하여 6단으로 쌓아올리고 네 벽의 윗 부분에는 벽면과 평행으로 1단 의 방주형( 方 柱 形 ) 평행 굉돌을 놓고 그 위에 커다란 판석 한 장을 덮어 구축한 평천장이다. 그 라고 벽면, 천장에는 석회를 바르고 현실 입구에는 2장의 돌문이 있었으나 파괴되었다. 연도의 길이는 약 5.45m, 너비 2.6m, 높이 약 2.6m라고 한다. 장군총은 한때 광개토대왕의 무텀( 廣 開 士 王 劇 으로 여겨졌으나 광개토대왕의 비석에서 불과 500m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적석총에서 꽤왕릉이 산처럼 굳건하고 평안하가를 바란다 願 太 王 I 埈 安 如 山 固 如 폼) 라는 의미의 명문( 銘 文 ) 벽돌아 출토되고, 무덤의 크기도 이 장군총에 비하여 4배나 큰 것이 발견되어 이것을 오히려 광개토대왕의 무덤( 太 王 團 으로 여기고 있다. 반면 이 장군총은 광개토대왕의 비석으로부터 1km나 떨어져 있어 장수왕의 무덤이라 추정하는 학자도 있지만 아직 분명하지 않다고 한다. 집안박물관에도 여러 가지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1958년에 개관했으며 고구려 고분에서 출토된 각종 유물틀을 3관으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다. 입구에는 고구려 역대 왕들의 초상화가 있었으며, 제 1관은 고구려 고분과 성에 관련된 자료실, 제 2관은 광개토 대왕 비문 자료실, 제 3

19 광개토대왕의 얼을 찾아서 / 17 관은 고구려 유물자료실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자료설명이 모두 중국 한자로 되어 있 었고 사진촬영을 금지하는 바람에 생생한 자료를 가져올 수 없었다. 더구나 이번 답사를 통하여 광개토대왕 때 사용되던 우물 정( 井 ) 모양의 문양이 새겨진 기와를 확인하려 박물관 내부를 일 일이 찾아보았으나 끝내 찾을 수 없었다. 그 대신 작은 돌로 만든 능비 모조품과 광개토대왕의 영정 사진을 구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어 광개토대왕릉비를 답사하였다i 능비는 집안현의 현청 소재지인 통구성으로부터 동북쪽 약 4.5km지점인 태왕향 대비가( 太 王 觀 大 6 解 삼)에 서있다. 너비 1. 35~2.0m. 높이 6.39m 에, 무게가 무려 37톤이나 나가는 동양 최대의 크기이다. 능비의 재료에 대해서 종래에는 응회암으 로 보았으나 최근에는 현무암질 화산암으로 보고 있다. 하나의 돌에 약간의 인공을 가한 것으로 서, 蓋 石 이 없는 고구려 석비 특유의 형태로 되어 있다. 서체는 전한( 前 i횡의 예서( 慧 書 )체로 되 어었다. 능비에 대한 기록으로서는 조선시대의 용비어천가에 태조 이성계가 고려말에 동녕부를 원정 갔을 때 비석을 본 것을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이수광이 지은 지봉유설(호 峰 類 調 에는 16세기 전반기에 명안도 강계 만포진 일대 국경지방을 시찰한 섬언광( 沈 彦 光 )이 압록강 너머로 능비를 보고 지은 시가 있으나. 이것은 능비를 금의 황제비로 잘못 본 것으로 되어 었다. 그 후 17세기 에 들어와서 청이 전 중국을 지배하면서부터 능비가 있는 집안지방을 비롯한 그 주위 일대를 만 주족의 발상지로 간주하여 이곳에 사람들이 살지 못하게 하는 이른바 봉금( 封 禁 ) 제도를 실시하 였기 때문에 사람들의 접근이 불가능하여 황폐화되었다. 그러다가 1875년(고종 12 년)에 봉천 유수( 留 守 ) 숭실(뿔 實 )이 통구 지방의 민정을 선포하던 때에 다시 발견된 것으로 되어 있다. 능비는 고구려 제 19대 왕인 광개토대왕의 엽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아들인 장수왕이 414년에 세웠다. 사면석비( 四 面 石 E뽕)로서 글자수가 자로 되어 었다. 제 1면 11행, 제 2 면 10행, 제 3 면 14 행, 제 4면 9행이고, 각 행이 41자(제 1면만 39자)로 되어 있다. 당시 고구려의 수도였던 국 내성 동쪽 국강상(지명)에 대왕의 능과 함께 세워졌다가 이곳으로 옮겨졌다. 묘호( 願 號 )인 국강 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 國 剛 上 廣 開 土 境 平 安 好 太 王 )의 마지막 세 글자로 약칭하여 일명 호태왕 비 라고도 한다. 비석의 내용은 고구려의 건국과 광개토대왕의 즉위 대외진출업적 능묘의 관

20 18 / 영락이데아 리문제등 세 부분으로 요약되며 고구려인의 자존적 국가의식과 진취성을 배경으로 한 영토확장 부분이 서술되어 있다.1889년 일본군 참모본부가 밀정 λ까와 중위를 보내 비문 문자를 변조, 왜가 신라와 백제를 지배하였다 는 임나일본부설 등 일제의 한국통치 합리화 일원의 근거로 활 용하였다. 서체나 비석의 규모만으로도 굉장한 작품임에 틀림없으나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비문의 내용이다. 특히 비문에 나오는 辛 매 年 기사에 대한 해석은 각양각색이다. 즉 비문 중 rf 委 以 辛 ~p 年 來 禮 海 破 百 殘 000 羅 以 寫 民 民 의 구절은 고구려 남진정책의 주정복대상인 백제와 신라 및 왜에 대한 관계를 모두 밝히고 있어 정복기사의 구성과 성격 이해에 매우 중요한 기능을 갖는 한편 일본임나일본부의 존재 여부에 대한 주요한 역사적 자료가 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해 석을 둘러싸고 한일간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었다. 사료에 따르면 신묘년 기사에 대한 해석 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3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지고 있다고 한다. 첫째는, 문장 전체 주어를 왜로 보아 r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 백제, oo( 임나), 신라를 격파하고 신민으로 삼았다 고 해석하는 방법이다( 橫 井 忠 植 管 政 友 등). 이 해석에 따르면 4세기 후반 왜의 한반도 남부에 대한 지배가 기정사실화 되며, 임나일본부설의 유력한 논거가 된다. 둘째는, 앞부분의 주어는 왜로, 뒷부분의 주어는 고구려로 보아 r왜가 신묘년에 왔으므로 고 구려가 바다를 건너와 백제(또는 왜)를 격파하고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 라고 해석한다( 金 錫 亨 등). 능비의 주체가 고구려 및 광개토대왕임을 고려할 때 비문 내용의 주어를 당연히 고구려로 보는 이 견해가 타당한 해석으로 보인다. 셋째는, 신묘년 기사 자체가 과장된 기록으로 외부의 압력으로 인하여 왜곡이 많이 되어 전면 적 수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다. 특히 1972년 재일교포 사학자 이진희( 李 進 熙 )씨는 광개토대 왕비문의 변조설을 주장하여 학계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여러 탁본, 사진, 해독문을 대조해 보고, 당시의 정황들을 조사한 결과, 일본 육군참모본부가 전후 3회에 걸쳐 비석에 석회 칠을 하고 비문을 가공하여 일본역사에 유리한 내용이 되도록 변조하였으며, 특히 신묘년 기사 에는 상당히 조작이 가해졌다고 결론지었다. 그 후 牌 文 變 造 說 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었는데, 1984년 중국 길림성 문물고고연

21 광개토대왕의 얼을 찾아서 I 19 구소장인 왕건군( 王 建 群 )씨는 牌 文 變 造 說 과 任 那 日 本 府 說 을 모두 비판하여 논쟁은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고 전개되었다. 그는 현지 조사결과 牌 文 變 造 說 은 사실과 거리가 번 것으로 나타나며, 오히려 任 那 日 本 府 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물이라고 주장하였다. 광개토대왕비는 고구려 전성기의 웅대한 민족의 기상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아시아를 대표하는 웅장하고 당당한 비석으로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한 기념물이다. 다행히 비석 에 벼를 맞지 않도록 보호각을 세워 놓았다. 그러나 옆으로는 여전히 비바람을 맞을 수밖에 없 어 이대로 놔두면 비석이 훼손될 것으로 보여 안타까웠다. 비석 모습을 홈페이지에 싣기 위하여 디지털 카메라에 담으려고 하였으나 디지털 카메라를 비디오 카메라로 착각한 무식한 여자 관 리자와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무식자의 고집 때문에 일반카메라로 찍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문화유적을, 이곳 멀리까지 찾아와서 사진을 찍겠다는데 왜 저들이 저렇게까지 못하도록 막는 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광개토대왕의 왕릉이라고 추정되는 무덤을 보려 했으나 볼 수 없다는 관리자의 얘기를 듣고 아쉬운 마음 그지없었다. 그러나 버스로 지나면서 보는 것은 관계없다고 하였다. 다행히 지나는 길에 멀리서나마 왕릉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내일 아침에 몰래 찾아보기로 생각하면서 아쉬운 발길을돌렸다. 저녁에 압록강으로 갔다. 강 건너 바로 지척의 거리에 있는 곳이 바로 평안도 만포이다. 강 하 나가 국경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강폭은 흔히 시골에서 볼 수 있는 정도로 좁다. 상류에는 한 발자국 거리 정도의 강폭도 있다고 한다. 강은 조용히 펑회롭게 흘러간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 고 우리가 갈 수 없는 저곳이 바로 북한 땅이라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는다. 북한 지역에서 트럭 몇 대가 지나가고 있고, 풀베는 사람의 모습이 가끔 보인다. 산은 대부분 민둥산이다. 밸감으로 쓸려고 나무를 베었거나 화전으로 가꾸기 위하여 벤 듯하다. 중국인 한 사람이 자유롭게 강을 건너갔다 왔다 한다. 초소는 보이지 않는다. 아무나 건널 듯하다. 그런데 건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보이지 않지만 비밀초소가 설치되어 있다든지 이쪽에서 공안원이 상주하고 지걱보고 었 다든지 하는 얘기도 나누었다. 저 건너 우리의 산하를 거쳐 이곳까지 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멀리 중국 심 OJ-을 거쳐 이곳으로 올 필요가 있었느냐 하는 의문을 가져 본다. 그리고 강 건

22 20 / 영락이데아 너 저기에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잃은 채 굶주린 생활을 하고 있는 곳이라고는 상상이 되지 않 을 정도로 강온 말없이 흘러간다.6.15 정상회담 이후로 급속도로 진전하고 있는 남북간의 화 해와 협조의 무드 속에 빨리 통일이 되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원해 본다. 오후 늦은 거리 곳곳에는 사람들이 모여 무엇인가 열심히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모두 마 작을 즐기고 있다. 특히 여자들이 많다. 간판에는 몇 가지 특이한 사항이 보인다. 반점 이라고 표시되어 있는 곳은 식당이 아니고 주로 여관이나 호텔을 의미한다. 이곳에서 기차 란 우리나 라에서의 버스를 의미한다. 그 대신 우리나라에서의 기차는 화차 라고 부른다. 이곳 사람들은 같은 글자를 중복하여 쓰는 것을 즐긴다. 보석상 이름을 金 (금흠)이라고 하거나 식당 이름을 林 森 (임삼) 또는 火 웠 (화염염)이라고 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곳 중국 음식은 이상한 향신내 때 문에 우리들의 구미에는 영 맞지 않는다. 한국의 밥맛이 최고라는 것을 절실히 느껄 수 있다. 컵 과 그릇에 이빨이 나간 것을 그대로 사용한다. 이곳 사람들은 그릇이 깨어져 못 쓸 때까지 사용 한다고 한다. 절약 차원에서는 좋다고 생각되나 우리들 사고에는 맞지 않는다. 8월 14 일(일) - 광개토대왕릉, 태왕향 소학교, 국내성, 환도산성, 적석묘 - 광개토대왕릉에 기습적으로 잠입하여 사진을 찍기로 마음먹고 새벽 일찍 조선인이 운전하는 인력거(오토바이와 리어카가 합체된 것)를 타고 왕릉으로 향하였다. 일단 운전사에게는 왕릉과 인접해 있는 태왕향 소학교에 볼일이 있는 것처럼 얘기하고 길을 재촉하였다. 저들이 저렇게 알 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정도로 답사를 금지시키는 것을 보면 운전사가 혹시 함께 가는 것을 꺼려 하거나밀고하지나않을까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원래 거사(?)란조그마한실수 때문에 일을그 르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조심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운전사를 안심시키 기 위하여 먼저 학교 전경 사진을 한 커트 찍었다. 왕릉은 학교와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사잇문에는 자물쇠가 잠겨져 있었고 안내 표지에는 통구고분묘 밑에 대왕묘 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광개토대왕의 묘라는 의미이다. 운전사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린 후 사진을 찍으려고 하

23 광개토대왕의 얼을 찾아서 / 21 는데 결국 실패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급히 나오는 바람에 디지털 카메라의 맛데리를 충 전시키기 위하여 호텔에 그냥 두고 온 것이다. 거기다가 일반카메라 마저 펼름이 막 끝나고 만 것이다. 결국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보기에 매우 큰 무덤이었다. 운전사의 얘기 로는 이것이 장군총보다 더 크다고 한다. 장군총은 돌기단이 7층으로 되어 있는데 비해 이것은 16층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무텀 윗 부분은 대부분 무너지고 밑 부분만 약간 남아 있을 뿐이었 다. 도굴과 중국 정부의 무관심으로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적이 훼손된 것을 보니 안타깝기 그지 없다. 더욱이 그것이 광개토대왕의 무덤이라고 하였을 때는 그들의 처사에 비분강개하지 않을 수없었다. 이러한 비분강개도 잠시, 내가 몰래 왕릉을 다녀온 얘기를 듣고 우리 일행 중 7명이 아침을 먹 고 왕릉을 보러갔다 왔다. 그들은 태왕향소학교 선생님( 集 安 市 太 王 劉 朝 蘇 族 小 學 校 金 英 }I면 先 生 님)을 만나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왕릉을 관리하는 할아버지를 불러 내 열쇠를 열고 직접 왕릉에 올라갔다 왔다고 한다. 더구나 학교 교장 선생님과 얘기하여 우리 영락회와 자매결 연의 길을 마련하고 온 것이다. 대단히 큰 성과를 거두고 돌아온 것이다. 미리 겁을 내고 몰래 행동한 나의 생각과 처신이 기우에 그쳤다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조선족 학생 약 50명이 다니고 있는 학교라고 한다. 교장선생님의 얘기로는 조금만 도와주면 학교에 큰 보탬이 될 것이 라고 한다. 어느 목사 한 분이 중국 돈 4천원(우리나라 돈으로 약 50만원)을 도와주어 학교 지붕 을 모두 수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에 조영섭 영락회 사무처장이 고무되어(사실은 매우 흥분 하여) 지금 당장 자매결연을 맺고 우리가 도와주면 어떠냐고 얘기한다. 일단 주소와 연락처를 메모해가니 돌아가서 방안을 연구해보자고 하여 겨우 말렸다. 그러나 집안을 떠나는 버스 속에 서 다시 돌아가서 자매결연을 맺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내놓고 싶다며 못내 아쉬워하 는눈치이다. 아침에 국내성과 환도산성으로 향하였다. 국내성은 시내 아파트 밀집지역에 우리나라 시골 돌 담처럼 겨우 그 흔적만 남아있을 뿐 모두 허물어지고 없었다. 성터 위에는 채소밭, 놀이터가 들 어서 있고, 성터 앞에는 큰 도로가 나있는 등 성터로 잘 구분되지 않는 상태였다. 이것이 강력한 고구려왕국의 수도였다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고, 세월의 아픔과 회한을 여실히 느

24 22 / 영락이데아 껴볼 수 있었다. 중국 당국이 이러한 우리의 귀중한 유적지에 대한 대책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아파트단지로 난개발하고 있는 것이 매우 불쾌하였다. 사실 국내성이 있는 집안은 처음에는 한자로 輯 安 으로 썼다가 1965년 중국 당국이 발음(지안)이 같은 集 安 으로 바꿨다. 장수왕 15년 (427 년) 평양으로 다시 도읍을 옮길 때까지 424년 동안 수도였는데 중국 당국이 마음대로 지명 을바꿔 버린것이다. 고구려의 성은 거의 대부분 산성인데 비해 국내성은 드물게 평지성이다. 국내성은 당초 토성 으로 이미 성의 형태가 갖춰져 있던 것을 유리왕이 도읍을 옮긴 후 석성을 쌓았다는 기록도 었 다. 고구려 당시에는 동벽 555m, 서벽 665m, 남벽 750, 북벽 715 정도였단다. 방어시 설인 치 적대 등도 7개가 있었으나 현재는 집안 황금가공공장이 있는 자리 서벽에 하나만 남아 있 다. 서쪽으로는 통구하( 洞 句 河 )가 압록강으로 흘러들고 나머지 3면은 해자( 埈 子 )를 파서 적의 접 근을 막았다. 국내성에서 현재 성벽이 가장 잘 보존되고 있는 부분은 북쪽 성벽. 300m 정도가 남아 성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낮은 곳은 4단 높은 곳은 8~9단 정도 돌들이 쌓여 었다. 그 러나 하루가 다르게 훼손되고 있는 상황이다. 100m 정도 구간은 성 바깥 부분이 완전히 허물어 새로 쌓았는데 고구려 시대 때부터 보존돼 오는 부분과 비교하면 조잡하기 이를 데 없다. 동쪽 과 남쪽 성벽은 모두 없어져 버렸고 서벽은 구간 구간 일부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주택들이 뒷 담으로 사용하고 있어 외부에서는 쉽게 관찰되지 않는다. 이름 있는 고구려 유적이 대부분 국보 급인 데 반하여 국내성은 성( 省 )에서 관리하는 문화재로 그 격이 낮춰져 있다. 중국이 국내성을 보는 시각이 어떠한지를 잘 나타내준다. 국내성을 뒤로하고 산 속으로 한참 올라가니 환도산성이 나타났다. 산성이 나타났다기보다 숨 어있었다 하는 표현이 나을 정도로 천연의 요새에 자리잡고 있었다. 앞에는 강이 흐르고 뒤에는 협곡과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었다. 전쟁 중심의 고구려에서 방어를 위한 가장 전형적인 산성이 라고 한다. 위나암성(템 那 岩 뼈으로도 불리며 국내성 북쪽 2.5km의 환도산 위에 있는데 유리명 왕이 도읍을 옮기며 지은 것으로 고구려 10대왕 산상왕( 山 上 王 )때 크게 재건하였다고 한다. 환 도산성은 원래 국내성의 군사 수비성으로 평소에는 양식과 무기를 비축해 놓다가 전시에는 입 성을 막는 역할을 했다. 중국은 1982년 환도산성을 중국의 중요문물 보호구역으로 공포하였다.

25 광개토대왕의 얼을 찾아셔 / 23 환도산성은 밖으로 절벽이 있고 산세를 충분히 이용하였으며 일정 크기의 벽돌로 견고한 성벽 을 쌓았다. 성 둘레는 6, 951m이고 담장의 높이는 5m 전후로 위쪽에는 여장( 女 瓚 ; 성가퀴,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으로 몸을 숨겨 적을 치는 곳)이 있고 성문은 전부 6개이다. 옹성(효 城 ; 튼튼 한 성) 북쪽에는 돌로 쌓은 높은 대가 있는데 속칭 점장대 點 將 臺 )로 불리우며 설제로 경계를 하 기 위한 전망대로 쓰였다고 한다. 산성 안에는 말을 먹이던 음마지( 散 馬 池 ) 또는 음마만( 飯 馬 灣 ) 이라는 연못 일부가 남아 있다. 이 연못에 대한 다음의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옛날 고구려에 현명한 신하가 한 사람 있었다. 적군과 오랜 씨움에서 양쪽의 군사력이 거의 다 소진되고, 먹을 양식도 다 떨어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약간의 소강상태에서 서로 담판하게 되었으며, 이 과정에 이 현명한 신하가 음마지에 있는 물고기를 잡아 적군에게 보여주었다. 그 러자 적군이 고구려에는 아직 먹을 양식이 풍부하다고 생각하고 급히 도망쳤다.J 이어 환도산성 아래에 있는 적석묘를 답사하였다. 무덤을 돌로 쌓은 것은 고구려 무덤의 특정 이다. 크기가 매우 큰 것으로 보아 높은 관직에 았던 사람의 무덤으로 보인다. 규모가 적은 것은 흙으로 덮어있고, 적석묘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의 묘로 보인다. 이렇게 강건하고 웅장한 고구려가 하루 갑자기 하향곡선을 그으면서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 었던 것은 민심이반과 지도층분열로 보아야 한다. 지도층이 백성의 고통을 아랑곳 않고 자신의 배불리기에만 신경 쓰고 지도층내부에서도 권력다툼으로 서로 분열되었기 때문에 중국과도 대 적했던 고구려는 결국 망하고 만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매우 안타까운 일이며, 그 영향은 앞으 로도 오랫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영토를 잃어버렸고, 문화를 잃어버렸고, 민족정신을 잃어 버린 것이다. 회한의 역사를 슬퍼하는 것인지 아니면 애절한 마음을 달래주기 위한 것인지 하 늘에서는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오후에 집안을 출발하여 다시 통화로 가다. 멀리 장군총 모습이 보인다. 이윤화교수가 그냥 떠나기가 못내 아쉬운 듯 잠시 버스를 세워 사진을 찍는다. 주위 산에는 인삼을 재배하고 있다. 이곳 남자들이 웃통을 벗고 다니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이곳 중국 남^r들은 우리나라 여 ^l들이 하는 일을 예사로 한다고 한다. 남자들이 예사로 밥하고 설젖이하고 빨래한다고 한다. 같이 간 여자분들의 부러워하는 모습이다. 반대로 조선족 남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우리와 똑같은

26 24 / 영락이데아 방식으로 생활한다고 한다. 집도 벽돌집이 많다. 간판이나 지붕 색깔이 빨간 색이 많다. 밭에는 옥수수와 벼를 심고 있다. 수박은 우리나라 수박과 달리 줄무늬가 없고 호박처럼 민자이다. 옛 날식 저울로 달아 파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8월 15 일(화) - 이도백하, 백두산(천지, 장백폭포), 용정(일송정, 해란강, 용정중학교, 운동주시1::11), 언길, 자흐- 0'-'- 통화에서 저녁 10시경에 호텔식 열차를 타고 이도백하( 二 道 터 河 )로 출발하다. 새벽 5시경에 이도백하에 도착하여 백두산 방향으로 향하였다. 열차 내리는 곳에 많은 사람들이 광고지 비슷 한 종이를 들고 손을 내밀기에 받아들었더니 지도와 손수건을 파는 것이라 한다. 안 산다고 하 여도 끝까지 따라오는 것을 겨우 뿌리쳤다. 한국에서 올 때 함부로 사지 말라는 충고를 들었던 그대로였다. 공기가 맑고 산림이 울창하게 퍼져있다. 아침 식사를 하고 버스를 타고, 다시 지프 차를 갈아타고 백두산에 올랐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지프차는 숨이 가쁘게 올라간다. 곳곳에 이 름 모를 꽃들이 피어 있다. 저 멀리 내려다보니 숲과 나무로 뒤덮인 산하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어 산 정상 문턱에서 하차하여 빨리 천지를 보겠노라고 가쁜 숨을 쉬면서 뛰다시피 올라갔건 만 천지는 그 요염한 자태를 보이려 하지 않는다. 안개인지 구름인지 온 천지를 뒤덮고 있다. 모 여든 모든 사람들이 실망과 갈망 속에서 지켜보고 있노라니 웬일일까 천지가 살짝 그 자태를 드 러내주고 있었다. 수천년의 전설과 신비를 안고 있는 천지가 그 일부를 보여준 것이다. 모두가 감탄과 찬사의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그것도 순간이었다. 20~30초도 안되어 다시 천지는 그 자태를 숨기고 말았다. 그것이 더욱 신비스라움을 더해주었다. 아쉽지만 그래도 다행이라 생 각하고 하산해야만 했다. 마침 오늘이 광복절이라 백두산 등정이 매우 의미가 깊은 날이라 생각되었다. 원래 오늘은 남 북이 백두산에서 공동으로 방송을 하는 날이다. 이곳이 우리나라 땅이었더라면 우리의 이번 답 사와 등정에 대한 의미를 메시지로 담아 벨레비전 방송을 통하여 전달하고 싶었다.

27 광개토대왕의 얼을 찾아서 / 25 광개토대왕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개척하고 우리나라를 세계 중심국가로 건설 하기 위하여 노력하신 임금입니다. 광개토대왕의 위대한 엽적과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 국민 모 두가 항상 꿈과 희망, 용기와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면 세계 제 1의 국가로 도약할 수 있 다고 자신합니다. 이러한 광개토대왕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남북간 화 해와 협력의 정신을 더욱 발전시켜 나간다면 우리가 바라는 통일을 이룰 수 있고, 나아가 우리 나라와 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국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생 각합니다. 양쪽 정상들의 각별한 관심과 노력이 있기를 온 국민은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J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곳은 중국 땅이었다. 산 이름도 장백산이라 한다. 내려오면서 장백폭포를 구경하였다. 휘몰아쳐 내리 뻗는 물줄기가 매우 사나와 보인다. 어디 서 저런 물이 생겨나서 저토록 시리고 힘찬 물줄기를 만들었을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백두산에서 흘러내리는 뜨거운 물줄기를 모아 계란을 삶아 파는 모습이 보이고, 밑에는 온천장 까지 생겨났다. 중국인과 조선족이 각각 1개씩을 운영한다고 한다. 조선족이 운영하는 온천장으 로 갔다. 우리나라 사우나 시설과 매우 흡사하다. 비싼 요금 (1인당 10달러)에 비해 물은 뜨겁지 않았다. 백두산 등정을 마치고 오후에 연길로 향하였다. 가는 길에 용정에 들러 윤동주시비를 보기로 하였다. 지난번에 왔을 때 너무나도 많은 눈물을 흘렸노라고 강조하는 이한용회원의 그 노스텔 저한 감정을 함께 느껴보리라 작정하고 발길을 용정으로 재촉하였다. 그러나 좁은 도로 곳곳에 도로공사로 길이 막히기도 하여 재촉하는 발길을 막는다. 급기야는 버스 바퀴에 펑크가 나는 사 태가 나고야 말았다. 우리 일행이 함께 도와준 덕택에 겨우 바퀴를 바꿔 달고 용정으로 길을 달 렸다 용정은 길렴성 연변조선족자치주에 소속되어 있는 도시로서 동남쪽은 북한과 두만강을 사이 에 두고 있다. 거주언구는 약 27만명이며 그 중 조선족 인구가 약 68.2%로서 중국에서 가장 많 이 거주하고 있다. 중국조선족 문화의 발상지이며 항일투쟁의 중심지로서 민족 역사의 축도로 유서 갚은 도시이다. 또한 용정에는 명나라 때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데 청태조 누르하지가 지었다는 한왕산성(규 王 山 빼이 유명하다. 한왕산성은 여진인들의 발상지로 숭상하고 있는 곳

28 26 / 영락이데아 으로서,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먼 옛날 한왕산과 오지바위 사이의 양지바른 언덕에 아담한 외딴 초가집 한 채가 있어, 여기 에는 늙은 부부와 무남독녀인 딸 등 세 식구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딸아이의 배가 아무 런 이유 없이 갑자기 불러오기 시작하였다. 부모들이 놀라 자초지종을 물으니, 딸은 몇 달 전부 터 한밤중에 비몽사몽간에 이름 모를 총각이 뒤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 정을 나누고는 사라진다 고 고백하였다. 부모들은 총각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하여 명주실 꾸러미를 딸에게 주면서 총각 이 나타나거든 다리에 묶도록 시켰다. 다음 날 부모들은 명주실을 따라 가보니 명주실은 오지바 위에 이르러 소용돌이치는 두만강 물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부모들은 정체도 알 수 없는 괴물 의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며 탄식을 하였다. 얼마 후 딸이 아이를 낳게 되고 성도 모르는 채 아이 이름만 바위 이름을 따 오지라고 지어 정성으로 커웠다. 몇 년의 세월이 흘러 아이가 자라게 되 면서 아이는 두만강 물 속으로 들어가 노는 것이었다. 모두가 걱정을 태산같이 하고 있는 어느 날 아이의 외할아버지 꿈에 신선이 나타나 저 오지바위 굽 깊은 물 속에 물소 한 마리가 있는 데, 그 물소의 뿔에 조상의 뼈를 결되, 오른쪽 뿔에 걸면 그 후손이 왕이 되고, 왼쪽 뿔에 걸면 재상이 된다 고 하였다. 그래서 아이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명주실을 따라 물속의 아버지의 뼈를 찾아보라고 하였다. 아이가 들어가 보니 거기에는 도룡농이 있었다. 자기가 도룡농의 자손 이라는 것을 알게 된 아이는 외할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뼈를 물소 오른쪽 뿔에 걸고 나왔다. 그 리하여 그 후손이 누르하치라고 한다.J 이도백하에서 용정으로 가는 차창 밖으로 굽이굽이 강이 흐르고 있다. 해란강 줄기라 한다. 가이드 아가씨가 설명하는 해란강의 전설이 기막히다. 원래 해란강안 양쪽에 두 개의 마을이 있었는데, 한 마을에는 해 라는 청년이 살고 있었고, 다른 한 마을에는 란 이라는 처녀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이 강에 아홉개의 머리가 달린 괴물이 나타나 마을에 흉년이 들게 만들었다. 마을 사람들이 괴물을 물리치려고 하 였으나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해 라는 청년이 용기를 내어 칼을 들고 괴물을 물리치기로 마 음먹었다. 괴물을 찾아 차례로 머리를 베었으나 이내 머리가 다시 몸에 붙고 하여 도저히 죽일 수 없게 되었다. 이때 란 이라는 처녀가 머리를 써서 칼로 벤 머리부분에 석탄가루를 뿌리니

29 광개토대왕의 얼을 찾아서 / 27 더 이상 괴물이 살아날 수 없었다. 이로써 마을에 풍년이 들기 시작하였고, 이때부터 이 강을 해 란강이라고 불랐다J. 과연 우리가 본 해란강은 아직도 그 전설을 말해주듯 많은 양의 물이 흘러 내리고 있었고, 강을 따라 넓은 전답이 펼쳐져 있었으며, 곳곳에 산들이 이를 에워싸고 있었다. 일제하 독립운동가들이 이곳에 터전을 삼을 만한 자연적 조건이 되어 있었다. 가는 길목에 일송정이 멸리서 보인다. 일송정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고 한다. 용정 서쪽 약 3km 지점에 비암산이 있고 이 비암산 허리 지점에 10m쯤 되는 깎아지른 듯 한 바위틈에 뿌리를 박고 억세게 자란 소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그 소나무는 흡사 돌기둥에 청 기와를 없은 정자와 비슷하다 하여 사람들은 이를 일송정( 一 松 停 )이라 불렀다 한다. 일찍부터 용정사람들은 이 고색찬연한 일송정을 길상물( 吉 햄 物 )로 삼고 우러러보았으며 여인들은 일송정 의 바위를 기자석( 析 子 石 : 아들을 낳기를 기원하는 것)으로 삼았고 농부들은 기우제를 지내는 명암으로 이용하였다. 분만 아니라 1028년 연변에서 처음으로 중국 공산당 용정촌 지부가 건립 된 후 이 비암산은 혁명투사들과 항일투사들의 비밀활동장소로 되었다. 그리고 용정의 각 학교 사생들이 진달래가 피는 봄날과 단풍이 물드는 가을이면 일송정으로 원족을 가곤 하였다. 애국 적 학생들은 이 일송정 아래에서 일제를 규탄하는 시 낭송도 하고 반일가도 높이 부르는 한편 일송정을 일제의 통치 밑에서 나라와 민족을 구하기 위하여 싸우는 애국지사들의 성스러운 형 상으로 찬미하였다. 이를 가시처럼 여긴 일제는 간악한 음모를 꾸미기 시작하였다. 우선 그들은 1930년대 초에 용정에 든 수재는 일송정 귀신 탓이다 는 유언비어를 산포하는 한편 일본 총영 사관의 군경들은 고의적으로 비암산 부근에서 사격연습을 하면서 일송정을 과녁으로 삼았다. 그러나 일송정은 여전히 푸르고 싱싱하게 자랐으므로 일제는 악에 바쳐 밤중에 군경들을 파견 하여 나무에 구멍을 뚫은 후 후추 가루를 가득 채워놓고 쇠못을 박아 죽어버리도록 하였다. 이 후로부터 우리 민족이 그토록 숭상하고 찬미하였던 일송정 푸른 솔은 서서히 시들기 시작하더 니 1938년에 이르러 영영 말라죽었다. 이후 1991년에 소나무 한 그루를 옮겨다 원 일송정자리 에 심었으나 살려내지 못하였다. 그러나 용정 사람들은 이에 닥심하지 않고 그 이듬해인 3월에 또다시 깊이 언 땅을 파헤치고 재차 모양이 고운 소나무를 옮겨다 심었더니 푸르고 싱싱하게 자 라나기 시작하였다. 뒤이어 일송정이라는 기념비까지 세워 오늘도 해내외의 관광객들의 이목을

30 28 / 영락이데아 끄는 유람지로 되고 있다.J 그 핍박받던 고난과 역경의 시절에 우리의 선조들은 어떠한 애국충정심으로 일제에 항거하고, 어떠한 마음으로 현실을 한탄하며 시름을 달밸 수 있었는지 당시 상황을 내 자신의 마음속에 반추시키며 감정이입을 해보려 했으나 쉽게 되지 않는다. 안타까운 마음 달렐 길 없어 마음속으 로 선구자 노래 가사를 되뇌어 본다.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지난날 강가에서 말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용드레 우물가에 밤새소리 들릴 때 뭇갚은 용문교에 달빛오이 비춘다 이역하늘 바라보며 활을 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갚었나. 용주사 저녁종이 비암산에 울릴 때 사나이 굳은 마음 갚이 새걱두었네 조곡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윤해영 작사, 조두남 작곡의 이 노래의 제목은 처음에는 용정의 노래 라고 하였다. 일송정, 해란강, 용드레 우물, 용문교, 용주사, 비암산 등 가사에 나오는 이름이 모두 용정에 있었기 때 문이다. 그러다가 광복 후 조두남선생이 노래제목을 다시 선구자 로 바꾸었다. 이 노래는 일본 제국주의 침략자들에 의하여 나라를 빼앗겼던 암혹한 시절에 조국광복을 위해 피흘리며 싸우다

31 광개토대왕의 얼을 찾아서 / 29 죽어간 수많은 이름 모를 독립투사들에게 바치는 마음을 담아 창작된 것으로서, 오늘도 민족의 넋을 일깨우고 독립투사를 기리는 마음으로 시대와 세월을 초월하여 애창되고 있다. 특히 한줄 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라는 부분에서는 우리 선조들이 기약 없는 앞날을 얼마나 애절하 고 안타깝게 생각하였겠으며, 그래도 오로지 조국을 찾으려는 우국충정의 마음으로 자신을 희 생하였겠는가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용정중학교에 들러 민족교육 역사자료실과 윤동주 시비를 보았다. 워래 용정에는 동흥, 대성, 은진, 명신, 영신, 근화 등 6개의 중학교가 있었으나, 1946년 이들을 통합하여 성립( 省 立 ) 용정 중학교로만들었다. 고고하고 외로운 저항시인은 1917년에 북간도에서 태어나 소학교때부터 조선 역사와 민족주 의 및 독립사상 교육을 받고 자랐다. 용정의 은진중학교와 연희전문학교를 거쳐 일본 동지사( 同 志 벼대학 영문과에 유학 중 일제에 의해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기소되어 2년 선고를 받은 후 후꾸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차디찬 이국 땅 감옥소에서 1945년 2 월, 광복 몇 개월을 앞 두고 29세의 젊은 나이로 옥사를 하고 말았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시를 통하여 불안과 고독과 절망을 극복하고 희망과 용기로 현실을 돌파하려는 강인한 정신을 표출하려던 작은 영웅은 이 름 없이 죽어간 것이다. 비문에는 그가 지은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의 서시( 序 詩 )가 그 아픔을 달래려는 듯 말없이 서 있다. 비문 앞에 한참 우두커니 서서 위대한 시인의 영혼을 상상 하면서 그의 애절한 노래를 옳어본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이는바람에도 나는괴로워했다. 별을노래하는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태 주어진 길을

32 30 I 영락이데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용정을 뒤로하고 연길로 갔다. 오후 8시 비행기로 연길에서 심양으로 가기로 되어 있었으나, 갑자기 가이드가 일어나 성명서를 발표하듯 심각한 어조로 말을 꺼낸다. 심양 가는 비행기표를 구하지 못했으니, 일단 연길에서 장춘으로 비행기를 타고 가서, 다시 장춘에서 버스로 심양까지 3시간 정도 가야한다는 것이다. 약간의 동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오늘 하루 버스 탄 시간만 하더라도 수시간은 되는데 또 3시간(말로 3시간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4~5시간은 걸릴 것이라 고 각오하면서)을 버스로 가야하다니. 그러나 이곳은 외국이고 특히 사회주의 국가체제라는 것 을 생각하면서 동요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현실에 따르기로 하였다. 새벽 4시가 되어서야 호텔 에들었다. 8월 16 일(수) -심양고궁을보다- 부족한 잠을 깨워 식사 후 곧바로 심양 고궁을 방문하였다. 고궁은 청 태조 누루하치와 제 2대 태종 때의 황능으로 1636년 완공되었으며 만주족의 문화 예술과 건축 풍경을 집대성한 궁궐이 다. 중국의 현존하는 황궁 가운데 북경의 고궁 다음으로 큰 궁전이다. 만주족, 한족, 몽고족 등 세 종족의 건축문화가 혼합되어 있는 것이 북경 고궁과는 다른 특색여 있다. 즉 지붕색깔을 노 랑바탕에 파란 색깔(파란 색깔은 초원과 유목민을 상징함)로 한 것은 만주족 문화이고, 건물에 용 그림을 넣은 것은 한족(중국) 문화를 의미하며 지붕형태를 빠오 라고 부르는 천막 모양으 로 한 것은 몽고족 문화에 속한다. 특히 심양 고궁은 여러 색깔을 사용하기를 좋아하는 만주족 의 습성이 반영되어 북경의 고궁과는 달리 청색 등의 다양한 색이 사용되었다. 궁전은 숭정전 (뿔 政 關 과 대정전( 大 政 關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청태조가 지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청태종이 지은 것이라 한다. 대정전 앞 플에는 10개의 작은 건물이 양쪽으로 다섯 개씩 늘어져 었다. 이

33 광개토대왕의 얼을 찾아서 / 31 중 8개는 청나라가 자랑하는 8기 0χ 廣 )의 우두머리들이 머무르던 곳이고, 나머지 2개는 그 중의 대표들이 머무르던 곳이라 한다. 당시 청나라의 위용을 알 수 있다. 숭정전 뒷문으로 바로 왕비 와 후궁이 거처하는 곳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임금이 집무를 보다 기력이 빠지면 잠시 내실로 들어가서 재충전을 하고 온다는 농담에 함께 웃었다. 마당 한 쪽에 가느다란 나무를 높게 세워 놓은 것이 하나 서 있었는데, 동물의 내장을 메달아 까마귀에게 주기 위한 것이라 한다. 만주족 은 개고기를 먹지 않고, 까마귀를 숭상한다고 한다. 이런 전설에서 연유한다고 한다. 누르하치가 청나라를 건설하기 전에 적군과 싸우다가 패하게 되었다. 잠시 산 속으로 피신하 여 쓰러져 있을 때 갑자기 산불이 나서 그만 타 죽을 고비에 접하게 되었다. 이 때 개 한 마리가 나타나서 누르하치의 몸 주위를 물로 적셔 주어 누르하치는 겨우 살 수 있었다. 그러다가 누르 하치가 다시 적군에게 쫓기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수백 마리의 까마귀가 나타나서 누르하치의 몸을 에워싸서 덮었다. 원래 까마귀는 죽은 시체를 먹는 습성이 었으므로 적군은 누르하치가 죽 은 것으로 알고 돌아갔다. 이로 인하여 누르하치는 살아날 수 있었고 훗날 청나라를 건설할 수 있었다 :J 그래서 이들은 개고기를 먹지 않고 까마귀를 숭상한다는 것이다. 만주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던 당시로서는 매우 미개한 민족인 만주족(보통 누르하치가 통일 하기 전까지는 여진족, 통일 후에는 만주족으로 부른다)이 어떻게 거대한 중국대륙을 평정하여 청이라는 대제국을 세우고 그것도 300여년이란 오랜기간 동안 단일왕조를 지탱할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민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원래 고구려의 지배하에 있었 던 반농반목의 작은 부족국가에서 청이라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는 생각을 하니 고구려의 멸망 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고구려가 광개토대왕의 유업을 잘 이어받았더라면 우리민족이 저 들과 같은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고 저들로부터 약소국의 차별적 대우를 받지 않았을 것이라 는 생각을 하니 고구려 누대( 累 代 )의 위정자들이 한없이 개탄스럽고 역사의 아이러니가 안타깝 기만 하다. 당시 고구려의 위정자들 01 개인의 권력욕에 사로잡히지 않고 백성과 나라를 생각했 더라면 고구려가 그렇게 쉽게 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장수왕이 평양천도와 납하정책을 펴지 않고 오히려 만주 이북으로의 북진정책을 계속하였더라면 연개소문이 보다 남생 남건 같은 못난 아들을 두지 않고 보다 똑똑하고 훌륭한 아들을 두었더라면 신라가 나당 연합하지 않고

34 32 / 영락이데아 또한 신라가 삼국통일을 완수하지 않고 오히려 고구려가 통일을 하였더라면, 고려와 조선시대 에 들어와서도 부국강병하여 북진정책을 강화하였더라면, 하는 등등의 역사적 가정을 해본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부질없는 일이다. 과거의 역사는 가정이 아니다. 역사는 현실이고 사실일 뿐이다. 다만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통하여 현재를 재인식하고 반성함으로써 내일의 역사를 새 롭게 다듬어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 아직도 이를 깨닫지 못한 채 정쟁이나 일삼고 개인의 권력욕과 재산욕에 사로잡혀있는 우리나라 위정자들과 지도층인사들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의 현실은 아직도 암담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 빨리 광개토대왕의 얼과 정신으로 돌아가서 국력 배양과 실력향상에 매진하여야 할 것이다. 역에서 고궁으로 가는 길에 중산공원( 中 山 公 園 )이 보인다. 지금은 시민의 휴식처로서, 공원 안에는 동물의 곡예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조선조 인조 때 청태종의 침입으로 병자호란이 일어 나 오달제, 윤집, 홍익한 등 삼학사가 꿀려와 참형을 당한 곳이라 한다. 끝까지 청에 굴복하지 않고 척화를 외치다 머나먼 이국 땅에서 의연히 죽음을 맞은 것이다. 각각 28세, 31세, 41세의 나이였으니 얼마나 고국과 가족을 그리다가 죽음을 맞았을까 생각하니 슬픈 마음 그지없다. 또 한 최명길의 주화파에 반대하여 척화를 강력하게 주장하던 김상헌도 이 곳까지 끌려와 3년간 갖 은 고초를 겪었으나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굳은 절개에 청나라도 어쩔 수 없이 돌려보냈다고 한 다. 그가 이곳으로 잡혀오면서 지은 시조를 되새겨보면서 우리의 현실을 당시의 입장에서 재음 미해보았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하여라 애국충정으로 목숨을 마다 않는 그들에 비해 지금 우리들 특히 젊은 청소년들은 너무나 나약 하다는 생각이 든다. 보다 뚜렷하고 투철한 국가관과 목표의식과 용기와 자신감을 가지고 자기 직분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진정 아름다운 모습일 것인데 지금 우리들에게는 그러한 점이 부

35 광개토대왕의 열을 찾아서 / 33 족한 것 같다. 이를 바로 잡아나가는 것이 바로 영락회의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결코 목숨 걸고 애국하라는 뭇은 아니다. 각자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최고가 될 수 있도록 노 력하라는 뭇이다. 이렇게 각자 노력할 때 우리의 국력은 저절로 강해지고, 우리 민족의 능력과 저력으로 보아 분명히 세계 최고의 국가 이른바 미국과 같은 세계초일류국가가 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에필로그 이번 4박 5 일간의 고구려 및 광개토대왕의 유적 답사는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우리 역사와 문화, 우리 민족의 우수함과 강인함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함께 참여한 젊 은 영락 에게는 공부와 인생에 많은 도움을 주었으리라 생각된다. 이번 답사 여행을 통하여 특 별히 기억에 남는 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고구려의 유적이 크게 훼손되고 있는데 대한 안타까움이다. 우리의 수많은 수한 문화유 산이 만주지역에 많이 남아 있음에도불구하고 이를우리 손으로 직접 보존하지 못하고또한중 국정부에 대해서 보존 요청을 하지 못한 채 유적이 계속 방치되거나 훼손되어 가고 있다는 점 이. 정부차원에서 문화재 보호 내지 보존을 위한 특별한 지원책을 강구하여야 하며, 중국과의 사이에 문화재 보호를 위한 협조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와 동시에 학술단체 내지 민간단 체차원에서도 문화재에 대한 연구와 보존을 위한 노력이 더욱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태왕향 소학교와의 자매결연 체결 필요성이다. 집안에 있는 조선족 태왕향 소학교는 비 록 조그마한 소학교에 불과하지만 광개토대왕릉과 바로 인접해있고 또 왕릉 주로 관리하고 있 기 때문에 우리 영락회로서는 매우 중요한 학교라는 생각이 들었다. 왕릉은 이미 많이 허물어져 있고, 또한 왕릉의 다른 방향의 바로 옆에는 공장에서 시커먼 연기를 뿜고 있을 정도로 중국정 부에서 보존을 소홀히 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 소학교가 보존에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영락회 입장에서 이 소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어 우리의 문화유적을 다소라도 보존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36 34 / 영락이데아 셋째, 용정시내의 유적지를 독립정신 고취를 위한 배움의 산 현장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용 정은 일제강점하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중심지로서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활동하고 그 엽적이 남 아있는 곳이며, 지금도 많은 우리 동포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이다. 따라서 이곳을 독립정신 고 취를 위한 산 현장으로 삼아 정부 차원에서 지원방안을 마련할 펼요가 었고, 청소년 및 학생들 에게 고구려유적과 함께 이곳을 직접 답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개발이 필요하다. 넷째, 남북의 조속한 화해와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 이곳 만주지역은 심 OJ=-을 거치지 않고 바 로 북한을 경유하여 오게 되면 적은 경비로 짧은 시간에 답시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단절된 남북관계 때문에 복잡한 심양 공항의 입국절차와 통화 및 이도백하까지의 긴 열차여정을 거쳐야 한다. 남북통일은 교통소통과 강은 직접적 가시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여 우리의 주장을 크게 강화뺨 등 간접적 효과도 많다. 이 경우 중국에 있는 우리의 문화유적도 지금보다 훨씬 우리에게 유리하도록 보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섯째, 만주 및 간도지방 회복 필요성이다. 백두산의 위용과 천지의 아름다웅, 장백폭포의 웅장함은 우리들에게 웅지와 자부심을 섬어주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들 중 일부는 중국령으로 되어 있었다. 사실 백두산과 천지, 장백폭포는 물론이려니와 그 외 만주지방, 특히 간도지방은 우리의 옛 조상들이 삶의 터전으로 삼아 누천년간 살아온 지역이다. 이곳을 청의 위 세와 일제의 농간에 의해 송두리째 빼앗겨버리고 지금의 한반도로 우리의 영토가 축소 고착된 것은 안타까운 정도가 아니라 비분강개 그 자체이다. 하루빨리 우리의 국력을 키우고, 우리의 지혜를 모아 이를 해결해야 할 때이다. 우리의 청년학생들을 유능한 인재로 양성하는 데 보다 많은투자와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전 영락회원들이 함께 고생하고 대화하면서 여행하는 과정에 인간적 유대와 우의를 더 욱 굳건히 할 수 있었던 점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결실이었다. 이러한 유대관계를 이번 행사만 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이를 지속적으로 발전시걱나가는 방안을 연구하고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계속적 운영은 물론 새로운 프로그램의 개발도 검토해야 할 것으로 본다. 해외뿐 만 아니라 국내에서의 연수나 캠프 설치를 통하여 영락이념을 확산하고 실천하는 방안도 하나

37 광개토대왕의 열을 찾아서 / 35 의 방안이 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프로그램에는 영락회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답사를 통하여 우리 조상의 위대함과 우리문화의 우수힘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으며, 우리의 문화 유산을 소중히 보존하고 국력을 배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앞으로 영락회는 이러한 점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야 할 것으 로 보인다. 함께 답사를 한 모든 영락인들에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답사일정표 * ( )안은 단순한 경유지를 표시함 일자 장소 일 정 비고 비행기로 심양공항 도착 8/12(토) (서울)-심양-(통화) 본계수동굴관람 열차로 통화행 출발(열차내 숙박).5호분묘, 장군총, 박물관, 호태왕비, 8/13( 일) (통화)-집안 호태왕릉,압록강관람 호텔숙박 태왕향조선족소 학교교장접견 8/14(월) 8/15(화) 8/16(수) 집 안-(통화)-(이도백 하) (이도백하)-백두산- 용정 -(연길)-(장춘)- 심양 (장춘)-심양-(서울) 국내성, 환도산성, 적석묘 관람 압록강유람선승선 열차로 이도백하행 출발(열차내 숙박) 백두산등정 천지 및 장백폭포 관람, 온천욕 일송정, 용정학교, 윤동주시비 견학 호텔숙박 고궁관람 비행기로서울도착

38 36 / 영락이데아 탐방 참가자 명단(총 23 명) * 가나다 순(이 밖에 많은 회원들이 참가하기를 희망하고 또 신청까지 했으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참가하지 못하였음) 회원명(참가인원) 김영조 (3) 서영훈(1) 성기석 (4) 손성도 (4) 손종태 (3) 이윤화 (2) 이한용 (1) 조영섭(1) 지용광 (4) 참가자 본인, 부인, 자녀 1명 자녀 1명 본인, 부인, 자녀 2 명 부인,장모,친구부부 본인, 장인, 학교 동료 1 명 본인,부인 본인 본인 자녀 2 명, 조카 2 명 비고 탐방기 작성(김영조) 탐방소감문 작성(성윤수) 탐방소감문 작성(지우효) 유적 답사개념도 댄휩(출발) 비 행 기 댐힘(본계수동굴) 야간열차 똥헬 전세버스 엽효] (5호분묘/장군총/박물관/태왕비/태왕릉/국내성터/환도산성/적석묘 /압록강/태왕향소학교/조중철도) 전세버스 훔힘 야간열차 덴팩펠 전세버스 짚차 팬탤 (천지/장백폭포) 짚 차 전세버스 먼로펠랜 전세버스 훔켈 (일송정/용정중학교/뽑주시비) 전세버스 댄켈 비행기 찮휠 전세버스 댐휩 (고궁) 비 행 기 댄휠 (도착및해산)

39 광개토대왕의 기상을 다시 꿈꾸며 / 37 광개토대왕의 기상을 다시 꿈꾸며 지우효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지용광 회원(울진중앙병원장) 장남 이 글은 이번 답사를 통히어 열정과 용기를 가진 젊은 지식인으로서 광개토대왕의 기상을 다시 살려야 아는 당위성을 재획언하고 광개토대왕의 기%에 미래 역사 발전과 국가발전의 근죠떼 되 어야 힐 것이라는 확선을 대학생 입E때 l서 쓴 글임. 집안의 유전인자 중에 내가 아버지로부터 대물렴한 것이라고 절실히 믿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고소공포( 高 所 /댐 布 ) 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상하게도 비행기를 안타도 될 곳이면 으레 버스나 기차를 이용하기 마련이다. 할 수만 있다면 이번의 중국여행도 서울에서 신의주를 지나 만주를 직행하는 기차를 이용했으면 얼마나 수월한 여행이 되었을까 아쉬운 맘이 든다. 각설하고 이런 나의 고소공포증으로 인해 발생한 또 다른 버릇이 있는데, 이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비행기를 타면 신문을 펼친다는 것이다. 물론 평소에도 신문을 즐겨 읽기는 하지만, 이때 의 신문 읽기는 나에게는 사회적인 간접체험의 도구가 아니다. 분명코 비행기 안에서 보는 신문 은고소공포증을떨쳐 버리기 위한가장좋은탈출구가되기 때문이다. 8월 15 일, 정오 서울행 비행기에 올라서도 똑같은 행위로 고소공포증을 떨치기 위해서 신문을 짚어들고 좌석에 앉았다. 이번 닷새동안의 여행을 정리하기에는 비행기의 두려웅이 너무 컸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5 일 동안의 고구려 여행의 여운을 다스리기도 전에 나는 신문의 1면 기사를 보며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반세기만에 맞은 모자( 母 子 )간의 상봉을 타이틀로 한 남 북한 상호 이산가족 상봉 이라는 머릿기사였다. 이제는 머리에 허떻게 서리가 내린 당시의 젓먹이 아들과 이를 부둥켜 마지막 힘을 다해 그동안의 사랑을 전하고 있는 팔순의 어머니...

40 38 / 영락이데아 보지 않아도 지금 서울은 이들에 대한 이야기로 그득하리라 생각하면서 다시금 내 고향 대한민 국으로의 무사귀환에 대해 감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비행기 속에서의 시간이 얼마만큼 흐르고 다소 고소공포로부터 벗어났음을 느꼈을 때 나의 생각은 다른 곳에 미치고 있었다. 이내 자신에게 내린 결론은 이번 중국여행과 이산가 족의 만남이라는 것은 우연한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이었다. 아주 우연의 일치였을 태지만, 나는 한민족의 맥을 되새겨 보고자 고구려의 영토를 되돌아보는 중요한 여행을 떠난 것이었고, 남 북의 화해 분위기는 이에 맞추어 보아도 나에게는 아주 의미있는 이야기 거리였다. 비록 역사 적인 사건의 순간에 그곳에 있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스스로에게 대견함을 부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1. 여행을가기 전에... 나와 나의 가족을 잘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 으레 내가 부모님의 소개를 할 때 잃 지 않는 한마디가 있다. 그것은 바로 당신의 자식을 크게 키우신다는 것이다. 이는 이십대 중 반에 이른 나에게 가정의 교육이 아직도 얼마나 중요한가를 역설하게 하는 가장 큰 대목이다. 어떠한 진로의 갈등 앞에서 항상 나는 자신의 능력과 믿음을 최우선으로 하는 교육을 받아왔다. 아마도 스스로 가끔씩 대견한 결정을 내릴 때 느껴지는 흐뭇함이란 진정 그것이 편협하지 않은 교육을 받아온 가정에서 연유한 것이라 굳게 믿고 있을 정도로 말이다. 아버지께서 이러한 교육의 일환으로 당신의 자식에게 늘 말씀하시는 것이 바로 영락 의 기상 이었다. 더불어 가끔씩 약주를 거나하게 드신 날이면 영락회원분들의 성함들을 한분 한분 되뇌 이시면서 아주 자랑스러워 하시곤 하는데 중학교때부터 나는 어린 나이에도 영락회의 회원 못 지않은 세뇌(?)와 훈련 η)을 받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것은 내 자신도 모르게 영락 회라는 이름이 이제는 낯설지 않고 한번은 콕 아버지의 말씀대로 영락회원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겠노라고 다짐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여름이 한창 고조에 올랐을 무렵 아버지께로부터 한가지 반가운 소식을 접하게 되었는데 바

41 광개토대왕의 기상을 다시 꿈꾸며 / 39 로 영락회 에서 고구려 탐방 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부터 나는 내가 받은 세뇌 와 훈련으로 인해 나는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는 의무감까지 지니면서 8월 12 일을 학수고대( 聽 首 苦 待 )하게 되었다. 아주 즐겁고 유쾌한 여행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 과연 어떤 분들이 오실 까. 여행중에 나는 무엇을 느끼고 보고 와야 할까. 여러 가지 복잡한 질문들과 더불어 여행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2. 고구려 탐방 첫째 날 (8월 12 일) : 섬양 12 일 김포공항의 구내는 휴가철의 인파와 더불어 매우 북쩍이고 있었다. 올해 해외여행객의 수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는 실정이니 조금의 불편은 이미 예상된 상황이리라. 그러나 아쉬운 것은 더불어 함께 오고 싶어하시던 부모님께서는 정작 이번 여행에 참석을 못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막내동생과 외사촌동생들은 나를 담임 선생님으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학생처럼 마냥 즐거워들 하고 있었다. 아마도 부모님 곁을 떠나 잠시동안의 자유를 만끽하는 것 이 그들에게는 한없는 기쁨인 듯하다. 세명의 동생을 포함한 우리 일행은 처음 법는 영락회원분들과의 첫대면을 하고는 서울발 중국 심양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제 그럴싸한 24명의 여행단이 구성된 것이다. 서울에서 중국의 심양은 그리 먼 곳이 아니었다. 대략 90분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우리는 어딘지 모를 너무나 생소한 느낌의 중국이라는 땅에 도착하게 되었다. 심양은 2천여 년의 오랜 역사를 지닌 고도( 古 都 )이며 1625년 청태조 누르하치( 努 爾 哈 ~)가 서울을 료양( 選 陽 )에서 심양 으로 옮겼으며 1634년에 청태종 황태극( 皇 太 빼이 심양을 성경 盛 京 )이라 칭하고 청왕조의 국도 로 정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심양은 상해 북경 천진 광주 다음가는 중국의 제 5대 도시이며 최대의 공업도시로서, 동북아 지역의 경제와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곳이다. 물론 큼직한 도로들이나 시원한 지평선은 앞으로 이루어갈 패권세력 중국의 저력을 충분히 말 해주고도 남음이 있지만, 이내 그러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거리의 건물이나 주민들의 옷차림에 서는 아직도 우리나라 어느 중소도시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고위도 지방이지만 대륙성 기후

42 40 / 영락이데아 를 지니고 있어 무더운 여름에는 중국남성들은 대부분 윗도리를 벗고 다니고 있었고, 시원하게 뚫린 도로에는 자동차보다는 자전거나 우마차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이번 여행이 중국을 관 광하기 위한 것이 아니니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양은 적어도 비쥬얼한 유흥을 즐기는 지금의 한국 청년들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인 곳이 못 되는 듯 했다. 조선족 교포 3세라는 가이드의 대략적인 중국과 심양의 소개를 받으면서 우리 일행은 늦은 조 금 늦은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예정된 식당을 찾았다. 식당에 들어가니 흔히들 말하는 중국산 고량주의 냄새가 진동을 한다. 알지는 못하지만 시큼한 냄새가 중국요리의 향료 냄새인 듯도 하 다. 이상하게도 심양 공항에서부터 이곳까지 일하는 사람들의 미소를 볼 기회가 적었다. 식당의 분위기는 종업원들의 상냥함과 실내의 청결함에 있다는데 도무지 어느 곳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띄워 줄 만한 매개체를 찾을 수가 없다. 더구나 기름이 거의 그릇의 반이 담겨져 요리는 몇 술 떠니 이내 포만감을 느끼는 듯하다. 역시 중국에서 차( 茶 ) 문화가 발전될 수밖에 없음을 절실히 느끼면서도, 특유의 식성으로 거몬히 회전탁자에 놓여 있는 이름 모를 음식들을 말끔히 비운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고구려 유적을 탐방하기에 앞서 중국의 수동굴 중 제일 길다는 본계석 회암동굴을 향했다. 혼자생각이지만 이곳은 심양 사람들에게는 연인의 데이트코스나 가족들의 놀이동산과 같은 역할을 하는 듯했다. 동굴은 갚이가 매우 갚어서 보트를 타고도 대략 왕복 40 여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아마도 한국사람의 상술이 이곳에 투여된다면 좀 더 인위적이지만, 오히려 더욱 자연적인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었을 댄데... 그렇지만둔탁한중국 특유의 거친 자 연미도 그리 나쁘지 않다. 조금 손을 본다면 동굴 주변에 안전시설이나 위락시설을 더 구비할 펼요가 었다는 정도였지만 자연과의 조화로운 동굴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내 저녁 무렵이 되고 중국에 도착한 첫날의 여행이 저물어갈 무렵 버스는 다시 심양 시내 의 한복판을 달리고 있었다. 한눈에 들어오는 도시의 낡은 간판들 밝고 순진해 보이는 시민들 의 웃음들 속에 심양의 도시 기운을 가득채우고 있는 도시의 매연은 앞으로 다가올 중국의 힘을 암시라도 하듯이 조용하지만 탁하게 전해져 오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가이드의 소개로 저녁식사를 하기 전에 조금의 중국문화도 익힐 겸, 미리 여행선 물도 준비할 겸 소위 중국의 백화점이라는 곳을 들렀다. 마치 여의도에서 중소기업박람회를 할

43 광개토대왕의 기상을 다시 꿈꾸며 / 41 때가 연상될 법한 넓은 실내, 그러나 손님이 드문드문한 것을 보니 여간 어색하지가 않다. 점원 들은 모두 우리 일행을 오늘의 처음이자 마지막 손님인 듯이 한가지 질문에도 많은 친절을 베풀 어주고, 끝내 고개를 흔드는 모습에 크게 실망하는 표정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같은 값어치의 보다 나은 물건을 구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논리라 생각하고, 이내 그들의 실망에 무관심해져 버린다. 그렇게 한시간 여의 시간에도 나는 어느 것 하나 손에 넣을 수 없었으니, 지 니고 간 경비의 부족함도 있겠지만 일단은 어느 것도 마음에 와 닿지가 않았다. 보자. 안내서를 보니까 오늘은 심양에 도착하여 통화지방으로 가는 침대칸이 있는 심야기차를 탄다. 전부터 이번 여행을 고대하면서 설례였던 것이 바로 중국 대륙을 기차로 여행한다는 것이 었는데, 첫날부터 여행의 진미를 느껄 수 있을 것같다. 조금은 고생스럽겠지만, 침대칸이 마련 되어 있으니 열차내에서 잠을 청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우리 일행은 미리 잡혀진 일정대로 차곡차곡 순조로운 여행을 하고 있었다. 저녁에는 한식을 먹으면서 일행의 소개가 이어졌고 기차시간을 맞춰 조금의 시간을 이용해서 심양의 번화가에 있는 쇼핑몰도 둘러보았다. 조금씩 여행에 중국의 문회에 익숙해져 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번 여행의 목적은 고구려 문화 유적을 되돌아보면서 다시금 당시 선조의 기상을 가슴에 새기 는 것이었으니, 조금의 태만은 인정할 수 있어도 그렇게 쉬운 여행은 아니었다. 아마도 진짜 여 행은 내일부터라 생각하며 발걸음을 심양내 기차역으로 향했다. 여행을 다녀본 사람들은 모두들 느끼겠지만 마음대로 일정이 순조롭게 되는 것만으로도 큰 부담을 더는 일이다. 아마도 이번 여행은 순간순간의 에드립에서 나오는 즐거웅과 긴장은 렬 할 듯하다. 이미 짜여진 일정은 차곡차곡 일기장에 적을 수 있는 명백한 단어들로 구성되어가고, 그러한 명백함이 오히려 권태롭다는 생각을 문득 들게 하였다. 그러나 하는 수 없는 일이지. 시 간은 제한되어 있고, 언어는 통하지 않는 곳에서 특별한 여행의 묘미를 기대한다는 것은 오히려 과욕일듯싶다. 잠시의 망상을 하면서, 심양발 통화행 기차에 올랐다. 한국에서는 오히려 고속버스나 자가용 의 이용이 증가하여, 철도교통이 많이 뒤쳐진다고들 하는데 이곳은 전혀 반대인 듯하다. 칸칸마 다 사람들이 그득하다. 마치 예전 어느 영화에서 본 듯한 장면이다. 피난길에 오르는 사람들이

44 42 / 영락이데아 빼곡이 열차에 박혀져 있는 모습. 순간 참 인상적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기적인 본능에 의 해 나만의 객석에는 깔끔하고 안락한 자리가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하고 있었다. 열차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침대간은 비좁고 그리 쾌적한 편이 아니었다. 보편화되어 있는 에어컨 시설은 고사하고 i 승객이 사용할 세면대조차 제대로 기능을 하지 않고 있었다. 문제는 연세가 지긋하신 어른들과의 여행에서 느끼는 책임감이라고 할까? 나이가 젊은 나로서는 문제 가 될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어르신들의 불편을 생각하니 오히려 자신이 죄송스렵다. 그러나 능숙한 승무원의 통제는 이내 잠시의 혼잡을 정리하였고 저녁 10시 반 이후에는 불꺼진 창 밖 으로 띄엄띄엄 보이는 거리를 알 수 없는 별들과 달빛을 머금은 들녘의 그림자가 중국이 아닌 고구려 옛 땅으로의 귀환을 환영하는 듯했다. 열차의 벽면에 붙어있는 회전식 선풍기는 여자의 마음을 조금도 몰라주는 무텀덤한 남자처럼 여독과 감성이 뒤섞여 있는 나의 복합적인 감정을 추스려 주지 못하고 하염없이 자신의 의무에 충실하고 있다. 좁다란 침대칸의 인상은 여행을 다 녀와서도 계속 되었는데 한동안 침대라는 것을 멀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언제 잠이 든지도 모르는 사이에 열차는 이내 새벽무렵 통화에 도착했다. 3. 고구려 탐방 둘째 날 (8월 13 일) : 집안 이제는 아주 중국의 생활방식에 익축해진 듯, 중국식으로 차려진 조식( 朝 食 )을 한번에 비워버 린다. 오늘은 통화를 지나 버스를 타고 집안으로 향해야 한다. 집안에 하루 머무르면서 고구려 박물관과 당시 왕들의 무덤을 여러 곳 답사하는 일정이 잡혀져 있었는데, 아마도 오늘부터가 여 행의 진미를 느낄 수 있을 법하다. 중국의 노령산맥을 넘어서는 버스는 지도에서 보기에도 멀어 보이는 집안셔를 향해서 4시간 남짓한 거리를 헤치고 있다. 전체적인 중국 외곽 도시들의 윤곽을 알 수 있을 법하다. 한족과 조선족의 문화가 뒤섞여 또 다른 중국문화를 이루는 곳, 이곳이 바로 집안이라는 중국의 도시이다. 집안은 고구려의 옛 수 도였던 국내성의 현재 지명으로 길림성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집안시의 남동쪽은 합록강 건 너 북한의 자성군, 초산군, 만포시와 마주보고 었으며, 서남쪽으로는 동북 3성의 하나인 요녕성

45 광개토대왕의 기상을 다시 꿈꾸며 / 43 과 인접하고 있다. 유구한 역사가 말해 주듯이 압록강과 훈강 수로의 교통, 내륙과 연결되는 육 로 및 북한과 이어지는 철도 등이 잘 발달되어 있으며 유서 갚은 역사의 도시로 널리 알려져 있 다. 집안은 외적을 무리치고 방비하기에 알맞은 곳이어서 고구려 2대 유리왕부터 20대 장수왕 까지 고구려의 중심지로 번영하였다고 한다. 집안시에는 우리가 둘러 볼 광개토대왕 비, 장군 총, 환도산성 등 고구려의 많은 문화 유산이 산재하고 있어 융성했던 시대의 발자취를 대변해 주는곳이기도하다. 중국과 고구려의 역사에 대하여 교수님들과 가이드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내 모습이 목 그 예전 고구려인이 된 듯하다. 아마도 민족의 개괄적 중흥을 따진다면 문화적으로나 영토적으로 그 렇게 창대한 시기가 있었는가 하는 알 수 없는 고구려 예찬론자가 되어 가는 듯도 하다. 지나치는 이야기지만, 요즘 한글 브랜드가 유행하면서 술집이나 옷의 상표에 고구려라든가, 고구령이라는 단어를 자주 볼 수 었다. 물론 그들이 예전 선조들의 기상을 따른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요즘 들어 고구려라는 이미지가 그만큼 국민의 인지도를 받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나 또한 고구 려라고 한다면 삼국의 화려한 역사보다 알지는 못하지만 무언가 가슴에 뿌듯함이 남는다. 정오 무렵이 되어서야 우리는 집안시의 어느 중류급 호텔을 잡고 본격적인 고구려 탐방을 나 설 수 있었다. 첫 방문지로 정해진 고구려 박물관 회색빛 시멘트 벽들에 색이 바랜 지붕 아래로 조그땅게 문이 몇 개 있었고 그 문으로 들어간 우리 일행은 고구려 역대 왕들의 초상화와 건국 전후의 생활도구와 병기 및 석기, 옥기, 금기, 금 도금기, 동기, 철기, 도자기류 등의 생활용품을 볼 수 있었다. 특히 동쪽 전시장에는 고구려시대의 고분 형태와 화려한 벽화가 전시되어 었으 며, 가운데 전시장은광개토대왕의 비문탁본과사진 및 국제 연구논문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 웃하여 함께 하고 있는 일행중의 고등학생 아이는 사진이 금지된 그곳에서 그 나마의 해결책으 로 연습장에 탁본을 새기듯 정성스레 유물들의 모습을 스케치한다. 역사의 뒤안길에서 저물어 가던 저 위인들은 지금 그들의 모습을 예측하고 있었을까? 저마다 한시대를 풍미할 만한 호걸로 그려져 었다. 고구려 박물관을 지나 5호분묘에 도착한다.5호묘는 1962년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발굴 정 리되었기에 국내에는 비교적 덜 알려져 있다고 한다. 높이는 8m 무덤 둘레가 악 180m, 벽화의

46 44 / 영락이데아 내용은 7세기의 전형적인 벽화 양식에 따라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의 사신도가 네 벽에 그려져 있 었고, 각종 문양들 또한 짜임새 있게 새겨져 있었다. 또한 가이드에 의하면 벽화의 내용은 문명 발달에 기여한 신들을 형상화하여 풍부한 설화적 내용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돌 위에 직접 광 물의 염료를 사용하여 그렸기 때문에 1300 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채취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는데, 집안의 20 여 개의 고분 벽화 중에서 유일하게 일반인에게 관람이 허용되는 곳이었다. 눈에 띠는 것은 동물과의 밀접한 관계를 나타낸 사실이다. 용을 탄 신선이나, 학을 탄 선인 등이 보여주는 다분히 주술적인 느낌 그것은 태고적 기복신앙이나 농업을 주업으로 삼았던 당시의 생활모습에서 연유한 것임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아쉬운 것은 해가 거듭할수록 훼손되어져 가 는 옛것의 소멸이었다. 왜 인간의 발길이 닿는 곳은 발전이라는 단어보다는 소멸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것일까? 아쉬운 일이다. 냉정한 관리인의 눈빛을 뒤로 한 채 그리 멀지 않은 곳의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리는 호태왕 비에 다다를 수 있었다. 이곳은 대략 장군총에서 500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호태왕비는 서 기 414년에 고구려 제 20대 장수왕이 그의 아버지인 19대 광개토대왕의 치적을 기러기 위해 세 운 기념비이다. 그의 호를 따서 영락 태왕비, 호태왕비라고도 불린다고 하는데, 실재로는 높이 6.39m, 무게 37톤, 각면의 너비가1. 5m 가량의 큰규모로 4변에 44 행, 1802자의 명문이 새겨 져 있다. 그러나 체감하는 크기는 오히려 더 큰 것이었다. 거침없이 새겨져 있는 특유의 글씨체 며, 거칠게 다듬어진 고구려 특유의 웅장함이 그대로 베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우리에게 는 광개토왕비야말로 그 당시의 국력과 영토를 규명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인 듯 하다. 그러나 이 비문의 일부 내용이 현재 한일간에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몇 해전 작가 최인호씨의 잃어 버린 왕국 이라는 소설을 기반으로 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었다. 호태왕비를 둘러싸고 일어나 는 일련의 의문점들을 추리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던 6부작의 이 프로그램에서 나는 아직도 비 오는 새벽 호태왕비에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서 글씨를 수정하고 탁본을 새기는 모습의 일본인 을 기억에서 지워 버릴 수가 없다. 물론 중국인에 의해서 비문의 글씨가 변형되었다는 주장도 있기는 하나, 어느 측의 주장이든지 우리의 입장에서는 가슴이 저리기는 마찬가지이다. 그 거대 한 돌비석은 동물원의 코끼리처럼 오늘도 무표정하게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지만, 그 비석이 지

47 광개토대왕의 기상을 다시 꿈꾸며 / 45 내온 시간들 속에 얼마나 많은 표정들이 숨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일행중의 몇몇 분들은 아침 일찍 광개토대왕묘를 다녀 오겠다고 벌써부터 벼르고 계셨고, 나 는이내 더 이상의 아쉬웅이 싫어 그만두겠다는마음을굳힌다. 정말슬픈일이다. 이제는타국 이 되어버린 만주 벌판, 과연 지금에 와서 고구려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또다시 원론적인 질문 을 거듭하면서 저물어 가는 시간 속에 부끄러움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지도를 보면 우리는 서울에서 그리 멀리 벗어나 있지 않았다. 단지 아직은 북한과의 직항로가 연결되어 있지 않아 돌아용 것 뿐 아마도 서울에서 제주도 정도의 거리를 와 있는 것이었다. 집 안에서 교외 쪽으로 10여분 정도를 지나니 압록강이 펼쳐졌다. 솔직히 펼쳐졌다는 표현보다는 졸졸 흐르고 있다는 표현이 옳을 정도로 예상보다 강의 너비가 그리 크지 않았다. 멀리는 산림 보호 라는 북한 특유의 붉은 글씨가 보이고, 쉽호흡 한번 크게하고 강물을 가로질러 잠수하면, 북한으로 바로 닿을 듯한 거리에 중국이 있었다. 집안은 거의 한국의 70년대를 보는 듯하다. 강 변에는 어선을 개조하여 만든 수상 음식점이 있었고 몇 척의 보트는 여행객만의 전유물인 듯 제 3자로서의 기능을 충실하게 완수하고 있었다. 도무지 이곳의 분위기를 알 수가 없다. 강 밑에는 중국 아낙네들이 넉살좋게 앉아서 능숙하게 빨래를 하고 있었고, 철부지 아이들은 캉을 훤히 들여다보듯이 얄은 곳을 골라서 수영놀이를 즐 기고 있었다. 옆에서는 몇 개의 상점들이 한국간판으로 장사를 하고 있었고, 한국인들은 큰 버 스를 몇대씩 부리고 와서는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어 보인다. 모든 것이 산만하다. 압록강을 건 너 중국으로 도피하던 꽃제비들의 모습이 환상처럼 스치고 멀리 지게를 젊어지고 가고 있는 북 한 사람의 모습은 이만큼에서도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까. 이내 또다시 내일 압록강을 오리라는 기대를 하면서 아쉬움의 하루를 마감한다. 4. 고구려 탐방 셋째 날 (8월 14 일) : 집안 전날의 새벽기차로 인해서인지 아침부터 몸이 개운치가 않았다. 조금씩 폼의 피로는 누적되는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부끄러운 생각이었다. 아침에 피곤한 기색을 하기도 전에 어른들은 먼저

48 46/ 영락이데아 세면을 하시고, 식사를 하고 계셨다. 젊음이라는 것은 나이로 결정하는 것이 아나라, 그가 지닌 열정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는 여야기가 맞음직도 하다. 아직도 나에게는 역사를 생각하는 인 식이 부족한 것인가를 스스로 반성하면서 아침 식사를 한다. 오늘은 오전에는 어제의 압록강을 다시금 찾아가 그야말로 관광을 한다. 이곳에서 기대하고 즐기는 최고의 것은 무엇인가를 타는 것이라는 생각을 어제 갖게 되었는데, 오토바이를 개조한 삼륜차를 타는 것이라든가 자건거를 타는 것.. 그리고 오늘처럼 합록강에서 보트를 타는 것은 아마도 집안시에서 내세우는 최고의 놀이시설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관광이 끝나면 우리는 고 구려 도읍지 국내성을 둘러 볼 것이다. 그리고 환도산성을 가서 옛 유적지들을 다시금 마옴에 담아 오면 오늘의 일정은 끝나는 것이다. 압록강의 보트 놀이는 생각보다 즐거운 것이었다. 어져l 압록강을 보면서 느낀 서글픔이 이제 는 유흥으로 변질된 것 같아서 내 자신에게 용서를 구했지만 보트는 놀이로서 뿐만아니라 건너 편 북녘의 땅에 한발짝 더 우리를 데려다주는 역할을 해주었기에 너무나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이상하게도 오늘은 북쪽에서 미역을 감는 두명의 청년이 보인다. 아침무렵이라 활기찬 듯하지 만, 모두들 이곳을 한번도 응시하지 않는다. 우리가 손을 흔들며 시션을 모으려해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듯하다. 아마도 그것은 반가움의 또 다른 표현이라 애써 생각하려하지만, 아무래도 마 음이 편하지가 않다. 그러나 압록강의 바람은 산골짜기와 만나는 지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무척이나 시원하다. 이 마음처럼 우리의 통일도 시원하게 되었으면 하는 바랩을 나는 압록강이 라는 훗말 앞에서 찍은 사진 한 장으로 대신해야 했다. 다음 일정은 순서대로 국내성 옛터였다. 역사적으로 보면(심국사기)에 유리왕 22년(서 713 년) 겨울 10월 도읍을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옮겼다 는 기록이 있어 국내성은 졸본성에 이어 고 구려의 제 2 수도였음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그것은 마치 북에서 오는 적을 막는 기다 란 성곽같이 생겼다고 한다. 어림짐작으로 생각해보아도 주변에는 산자락을 품고 있고, 앞으로 는 압록강이 흐르고 있으니 천연요새로서의 구실을 확실히 했음을 알 수 있겠다. 역사적 사실을 조금 더 들추어보면 졸본촌에 도읍한 지 40년, 그 사이 고구려는 주변의 여러 부족들을 제압하 고 그 세력이 강해져 있었지만 고구려 주변에 웅거하면서 고구려가 강대해지는 것을 꺼려하는

49 광개토대왕의 기상을 다시 꿈꾸며 / 47 한나라를 비롯해 부여와 선비 등 강대국 서l 력과 부족들의 침입을 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구 려가 마침내 국내성으로 도읍을 옮기게 된 이유는 바로 이러한 강력한 주변세력들의 침략이 미 치기 어려운 내지로 피할 뿐 만 아니라 자원이 풍부하여 생업에 적합한 자연환경을 찾음으로써 경제력과 군사력을 커우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또 높은 산들은 자연스럽게 북에서 불어오는 삭풍을 막아줌으로써 아늑하고 양지바른 기후조건을 마련해주었으며 땅까지 비옥하여 오곡을 재배하기에 적합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군사 경제적 여건으로 말미암아 국내성 지역은 장 수왕이 평양으로 천도하기 이전까지 장장 425년간이나 고구려의 정치 경제 문화 군사의 중 심지로 세상에 그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지금은 옛터전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사라져 버렸 지만, 국내성 성벽은 고구려 성벽의 한 형식으로 조선시대 말기까지도 그 축조수법이 전해져 내 려왔다. 현재 중국 정부에서도 국내성을 성급 보호 문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고 하니 그나 마의 위안이었다. 현재 관광객이 볼 수 있는 성벽은 북쪽 뿐인데 이것도 아파트 건물 사이에 4~5단 정도 남아 있을 뿐이어서 빈약한 상태였다. 현지 주민들에 의하면 이러한 성벽들은 광복 때까지만 해도 7 ~8미터의 높이로 잘 보존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훗날 주위의 주민들이 가옥을 지으면서 하나 둘 가져가 윗부분은 아예 없어지고 말았다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다. 정말 제대로 갖춰져 있는 유물이 없다는 것은 어쩌면 약소국으로서의 한국의 한 (~JV 일지도 모른다. 더구나 타국에 위치한 옛 유물에 대해서는 또다른 대책이 반드시 논의되어야 할 터인데도, 아무런 대책이 없다는 것이 아쉬운순간이었다. 환도산성은 주위가 병풍을 두른 듯한 험준한 산과 절벽으로 둘러싸이고, 앞으로는 큰 하천이 흐르고 있어 적의 침입을 막아주는 천연의 요새를 이루고 있었다. 이곳은 유리왕때 국내성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건설된 곳으로 원래 국내성의 방어적 역할을 수행하면서 평소에는 양식과 무 기를 비축해 놓다가 전시에는 적들의 입성을 막는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서 우 리는 그 지형의 미묘함에 감탄하고 있었는데, 정말로 대략적인 구도가 병풍을 쳐놓은 듯했다. 더욱이 선조들의 지혜가 열보이는 측면은 요새의 구실을 하면서도 일정구역의 농사가 가능하 도록 되어있다는 것이었다. 과학문명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사고력은 한층 좁아진다고틀 말하는

50 48/ 영락이데아 데 아마도 선조들의 유물들을 보면서 불가사의한 작품인 양 볼 수밖에 없음은 이러한 현상에서 기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지금까지 여러 고구려의 유적들을 답사하면서 느끼는 것은 현재의 내가, 고구려의 후손이라는 내가 지금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구나 하는 자괴감이었다. 여행을 하는 동안에도 내가 고구려 유적을 기억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은 부서진 기와조각 몇 개를줍는 일이나 돌조각 몇 개를수집해 오는 것밖에는 없었으니... 환도산성을 내려오는 길에 곳곳에 흩어져 있는 적석 고분군을 볼 수 있었다. 이제는 어린 아 이들의 놀이터가 되어버린 우리의 유산이여... 현실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아주 묘한 분위기다. 육안으로 확인되는 것만으로도 197H 정도의 고분군을 볼 수 있었는데, 누구의 묘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당시 귀족이나 전쟁에서 승리한 돌아온 장군들의 묘로 추정된다고 한다. 어제 본 장 군총과 비슷했지만 규모면이나 돌의 크기에서 한참 뒤지는 듯했다. 그러나 평원에 펼쳐진 군 ( 都 )을 이루는 무덤들을 보고 있자니 숙연한 마음이 들어 다시금 하늘을 한번 쳐다보게 된다. 저녁을 기다리면서 지난 3 일의 시간을 되돌아 본다. 과거의 시간에 서 있는 것은 과거를 보기 위함이 아니다. 명쾌하게 지난 삼일간의 일정에 대하여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이미 내 견문의 너비가 많이 넓어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는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분명코 미래에 대한자신감이었다. 무언가조금씩 이번 여행의 의미를몽소 느껴가는듯하다. 이제는 통화를 다시 내려가서 내일이면 장백산을 오르는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이틀 전에 탔 던 새벽기차를 다시금 타고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 우리 일행을 벌써 지치게 하는 듯하지만, 별 다른 방도가 없는 현실에서 가장 좋은 것은 적응이 아닐는지.. 집안의 철도역 주변에서 대기시 간을 한시간 가량 보내고, 또 다시 통화를 지나 장백산을 오르는 내인생의 새로운 역사적 준비 를해야한다. 5. 고구려 탐방 넷째 날 (8월 15 일) : 장백산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열차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탔다. 이곳 통화에서 버스로 대략 4시간정 도를 가야 장백산을 볼 수 있다고 한다.

51 광개토대왕의 기상을 다시 꿈꾸며 / 49 한국은 외세에 의해 국토가 양단된 지도 5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우리 민족은 광복 의 기쁨을 씨줄 삼고, 분단의 아픔을 날줄 삼아 남한은 남한대로 북한은 북한대로 현대사의 반 세기를 교직( 交 織 해 왔다. 그렇기에 우리는 민족의 영산 屬 山 ) 백두산을 더욱 그리워하고, 더불 어 고구려의 옛 조상들이 용장( 勇 뻐한 기상을 드날리던 만주 벌판을 찾아가고 싶어한 것이 아 닐까. 버스는 끝없이 펼쳐진 수림가도( 樹 林 街 道 ) 사이를 힘차게 달린다. 콘크리트가 아직 공사중인 도로는 먼지를 수북 일으킨다. 간간이 따라붙은 승용차와 지프들이 요란하게 경음기를 울리며 정신없이 추월해댄다. 언제 백두산 정상이 보일는지 초조한 마음으로 밖을 내다본다. 백두산 천 지를 보기 위해 정말 먼길을 돌아왔고 아직도 남아있는 먼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드디 어 백두산 입구에 도착한다. 관리사무소에서 입장료 (100 元, 한국 14, 000원)를 내고 장백 산( 長 빔 山 )이라고 적힌 관문을 지나 25Km를 더 들어가니 천지 행 지프들이 대기 중인 주차장 에 도착하고, 곧바로 바꿔 탄 지프는 관경대와 흑풍구를 경유하는 왼쪽 오름 코스를 통해 20여 분 달려 기상대 지나 천문봉 바로 아래의 개활지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오후 1가 무렵이었을 것 이다. 전날의 비는 걷혔지만 천문봉 (2.670m) 주위를 덮은 짙은 구름 때문에 천지가 전혀 보이지 않 는다.20여분을 기다렸지만 좀처럼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우선 장백산에 올랐음 을 확인하는 비석 앞에 서서 사진 찍기에 바쁘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백두산 날씨가 변덕스 러운 것은 러시아 한류와 태평양 난류가 천지주위에서 교차하기 때문이며, 시간이 제한된 관광 객들은 통상적으로 열 번 중 잘해야 두세 번 볼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천문봉에서 팔패암 근처로 내려올 즈음 구름의 일부가 걷히며 가파른 능선 사이로 푸른 수면 이 스치듯 나타나기 시작했다. 천지가 보인다 1" 외치자 모두 천지 쪽으로 모여든다. 극적인 순 간이었다. 얼마나 이 순간을 기다렸던가.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주위에서는 셔터소리 가 정신없이 터진다. 그러나 천지의 일부 모습조차 잠시일 뿐 다시 구름이 덮이며 천지는 좀처 럼 얼굴을 들어내지 않는다. 다시 천지관광을 포기하고 하산을 시작하려 했으나 변덕스런 구름 은 마치 약올리기나 하려는 듯 살짝 구름 치마를 들치며 발길을 막는다. 단 20 여 초에 동안의

52 50 I 영락이데아 시간에 우리는 천지의 전모를 느껄 수 있었다. 천지의 수려한 광경이란 정말 나에겐 일생의 처음 맞이하는 장엄함이었다. 전날의 비로 이번 주에는 오늘이 천지를 보는 첫날이라고 하니 더욱 그럴 수밖에... 더 이상의 행운이 있을까... 깎 아지른 절벽 아래로 펼쳐진 천지의 장엄함이란 실로 말로 형 언할 수 없는 것이 었다. 천지의 장엄함에 취해 감탄을 금치 못할 무렵 우리는 또 하나의 그림을 맞이한다. 장백폭포 다. 천지를 20여분 짚차로 내려와 바로 옆의 길로 접어드니 멀리서도 그 물줄기의 세기가 붐으 로 느껴지는 장백폭포가 보인다. 슬로우 모션처럼 폭포의 물줄기는 느리게, 그렇지만 아주 무겁 게 떨어지고 있었다. 이미 나는 대열에서 선두를 유지하면서 마치 돌이 갓 지난 아기가 눈앞의 장난감을 잡으러 넋을 잃고 기어가듯 폭포의 능선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걷는다. 머지 않은 곳 에 온천수와 아주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폭포의 모습이 펼쳐진다. 장백폭포는 높이가 60여미터에 이르는 웅장한 폭포로 200미터가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폭 포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크게 두 갈래의 물줄기로 나눠져 있고 떨어진 물은 송화강( 松 花 江 )으로 유입된다. 중국 북방의 폭포들은 모두 겨울에는 얼어서 그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오로 지 장백폭포 만은 일년 내내 멋진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마치 용이 날아가는 모습과 같다고 해 서 비룡폭포( 飛 龍 爆 布 )"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장백폭포의 묘미는 폭포에서 흐르는 물줄기를 타고 송화강으로 이어지는 계곡 이른바 흑풍구의 경치와 어울어져 더욱 빛을 발한다. 정말이지 이 젊은 나이에 이렇게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자연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크나큰 행운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일행은 가이드의 재촉에 발길을 옮긴다. 이후 용암대지에서 흐르는 옹천수의 기쁨을 만끽하고는 우리는 저녁의 비행기 시간에 맞추어 일정을 조금 변경했다. 이것은 모두의 찬성을 동반한 여행의 또다른 즐거웅이었는데, 바로 일제 시대 독립의 초석이 되었던 용청촌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두만강에서 가까운 용정 市 는 북간도의 수도로서 조선족이 가장 많이 사는 곳으로 알려져 었 다. 더불어 독립을 위한 저항의 자리가 되었기에, 아직도 강한 우리 민족성도 남아있다고 하였 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용정시 입구에 있는 수수밭 농장은 길이가 60리에 해당하며, 조선족 이 경영하는 농장 중 2번째로 큰 규모라고 한다. 용정시에는 선구자 노래가사에 나오는 한줄

53 광개토대왕의 기상을 다시 꿈꾸며 / 51 기 해란강 과 일송정 푸른 솔 이 있다. 고향을 버리고 이곳에 정착한 한민족에게는 슬픈 역사 를 지닌 도시임에 틀림없다. 원래 일송정 밑에는 1, 000년 묵은 아름드리 소나무가 있었지만 일 제가 이를 미워하며 갖은 학대를 가해 1938년 말라죽었다고 하니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당시 의 회상이 머리를 스쳐 가슴이 아프다. 지금 있는 소나무는 조선족 자치정부에서 민족 정기를 고취하고자 백두산에서 옮겨 심어 놓은 것이라고 하였다. 용정으로 가다 보면 길 오른쪽의 야산 위에 자그마한 정자가 하나 눈에 띄는데 이젓이 바로 그 유명한 일송정 이다. 전에는 늠름한 자태의 소나무가 한그루 서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작 은 소나무 한그루와 정자가 었다. 일행중의 어느 교수님의 말을 빌리면 오래 전 이 곳에는 정자 모양의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 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소나무 밑에서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항일의 의지를 불태웠다는데, 일제 가 소나무에 구멍을 뚫고 약품을 넣어 일송정을 고사시켰다고 전해진다.1980년대 후반 중국정 부 당국에서 이곳에 일송정 이라는 이름의 정자를 건립하여 이를 기념하고 있다고 한다. 또다 시 시간의 촉박함으로 우리는 일송정의 고고함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가곡 선 구자 를 구절구절 새기면서 합창을 하였다. 또다시 과거 약소국의 아픔이 절절이 베여 온다. 타 국에서 민족의 유적을, 그것도 행복이 아닌 슬픔의 흔적을 되씹는 것은 어떤 각오를 다지는 이 상으로 마음이 아픈 것이다. 이내 일행은 그 유명한 윤동주님의 시비(출핸뿜)가 있는 용정중학교로 향했다. 참고로, 장백폭 포 이후의 일정은 모두 임의적인 것이었다. 저녁의 비행기 표 예약이 어긋나서 시간을 수정해야 하는 탓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아직은 이곳을 떠날 수 없다는 일행 전체의 욕구에 의한 결과 였다. 다시, 용정중학교의 교정은 예전과는 다른 신식 건물로 바꿔있었고 예전의 모습은 작은 박물관 형식을 벌어 이어져 오고 있었다. 그 유명한 구절..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 를" 용정중학교는 우리가 알만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명문으로 평가되고 현재 국내 외 많은 교포들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고 있다고 하였다.2층 건물의 용정중학교 역사관(구관 건 물) 앞에는 시인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란 시 탑이 있고 작문을 중시하는 듯한 교풍 이 게시판 곳곳에서 발견된다.

54 52 / 영락이데아 언제든 여행의 마지막날에는 분주하기 마련이다. 처음의 여유로운 출발은 마지막의 재촉을 부 추기고, 마음처럼 빠르지 않은 일정은 오히려 여행의 끝자락을 소란스럽게 만든다. 이번 여행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초 예상과는 달리 비행기편이 없었기에 우리는 저녁 6시 비행기로 심양으 로 출발하려던 일정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연길에서 장춘으로 가는 비행기와 장춘에서 심양 으로 이어지는 버스여행은 중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매우 인상적으로 장식해 주고 있었다. 오늘 도많은 일들의 하루였구나를생각하면서 이내 새벽 4시경 심양의 호텔에 다다른다. 6. 고구려 탐방 마지막 날 (8월 16 일) : 심양~서울 여행을 할 때는 으레 여유로운 시간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어쩌면 당연한 논리인지라 오늘도 마지막 서울행 비행기 시간까지 우리는 심양고궁을 답사했다. 되돌아보면 이번 여행은 중국을 여행한 것이 아니었다. 사실 중국을 여행하려면 북경이나 상 해를 다녀오는 것이 오히려 많을 것을 경험할 수 있을테니.. 여행 중간에도 교수님들께서는 이 번 여행이 중국을 보는 여행이 아님을 재차 주지시키고 계셨다. 여담이지만, 북경을 가면 이제 는 한국의 대도시보다도 훨씬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더불어 큰 땅덩어리를 지닌 중국에서만 볼 수 있는 지역간의 크나큰 격차는 중국의 역사를 대변해주고 있다고. 그것은 지역 간의 격차와 이로 인한 욕구의 분출로 이어져 왕조의 흥망을 이루어왔고, 그것이 바로 지금의 중국의 역사였다라고. 심양고궁의 관광을 끝내고 버스는 심양공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내 머리속이 복잡해짐을 느낀다. 너무 좁은 그릇에 너무 많은 것을 담은 듯한 느낌 어린아이에게 무거운 젊을 들게 한 벼거웅... 여러 가지 감정들이 기복이 심하게 꿈틀거리지만 한가닥 내가 잡고 있는 매듭은 젊음 이라는 가능성이었다. 여행중에 기행문의 권유를 받은터라 많은 부분 여행을 자세히 들여야 보 고 있었지만, 나에겐 젊음이라는 참신함 쁜 어떤 지식도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나름대로 사물을 보는 중심이 있다. 그러한 개인적인 중심적 사고는 특유의 정체 성 때문에 쉽게 바뀌지 않는 성향이 있다. 따라서 상시 상황을 파악하고 변화와 더불어 좌표를

55 광개토대왕의 기상을 다시 꿈꾸며 / 53 보강하는 개방성과 탐구욕을 갖지 않는 한 건강한고 젊은 지식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 나는 단 하나의 희망, 이러한 젊은 지식과 열정을 이번 여행을 통해서 찾고 있었다. 12시경 서울행 비행기를 탑승한다. 모든 것이 아쉬움의 뒤에 있다. 서울에 도착하면 모든 것 은 순조로울 것이다. 이번 여행도 시간이 가면서 잊혀질 것이지만, 그러나 마음속으로 찍어둔 몇몇의 사진첩은 끝까지 마음을 밝혀줄 햇불이 될 것이다. 만주벌판에 우뚝 솟은 호태왕비, 민 족의 마르지않는 샘 백두산 천지.. 고소공포증과 더불어 미묘한 감정이 이내 나를 서울의 김포공항으로 인도한다. 7. 여행을마치고... 이제 여행을 마치고, 일상에 돌아온 지 일주일여가 되어간다. 기행문이라는 것은 지난 겨울 미국을 혼자서 배낭여행을 하였을 때 자펼로는 처음 써 본 것이 었다. 그만큼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는 탓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만큼 삶의 폭이 좁았고 사 고가 얄았다는 나름대로의 부찰도 크게 작용하였으리라. 선생님의 기행문 권유를 받고 수일동 안 그간의 많은 시간을 통해서 영락회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 영락회보집 1, 2권을 자세히 들 여다보면서, 수많은 논문들과 수려한 글틀에 자칫 위축도 되어보고... 어쩌면 이번 기행문을 회 보집에 올리는 것은 영락회의 위상을 짝아내리는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을 법하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나에게는 나만의 방식이 있다. 그것은 맑은 정신과 건강한 젊음이 기반 된 지적 능력 이상의 열정이었다. 이번 기행문에 나만의 느낌을 불어 넣어야겠다. 많은 지식으 로 그간의 논문과 승부할 형편도 아니었고 수려한 문장으로 내 얄은 사고를 담아낼 재간도 없 었으니... 어쩌면 영락회보에 어린 녀석의 젊음이라는 기운을 불어넣을 좋은 기회라 생각까지 하면서 또 다른 자신감을 내 자신에게 침투시킨다. 이제는 좀 마음이 편안해지는군.. 스스로 위 안을 하면서 고구려의 역사 지금의 우리에게 초점을 맞춘다. 역사는 사실을 고증하고 내용과 본질이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학문이다. 역사학이야말로 경험

56 54 / 영락이데아 과 사실을 바탕으로 한 학문이므로 실패율이 적은 해결방법론을 제시할 수 있다. 그리고 숱한 역사과정 속에서 가장 바람직한 모델을 설정할 수가 있다. 때문에 역사학은 과거를 연구대상으 로 하고 있음에도 미래학인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적인 기반으로 나름대로 이번 여행의 의미를 부여해 볼수 있다. 그것은 영락회 의 정신적 주제이기도한 고구려 기상의 회복이었다. 넓은 만주를 호령하던 과거를 떠올리면서 아쉬워하고, 현실을 개탄할 것이 아니라, 지금의 현실에서 고구려의 기상을 다시금 되새기는 노 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국토의 너비로 나라의 역량을 판단하는 시대가 아니지 않 는가... 그렇기에 지금에 와서 만주가 예전 우리의 것이니 아니니 하는 것은 평범한 일상인들에 게는 식상한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을 법하다. 문제는 인간은 아는 만큼만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식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지식이 그 자 체만으로 활용이 되어질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지식을 기반으로한 또다른 행동을 통해서 일 것이다. 내가 본 만주의 고구려땅 그 아는 만큼의 지식을 기반으로 내가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들의 기상을 몸소 실천하는 것이다. 호방하고 대륙적인 기질의 선조들의 기상.. 이제는 영웅의 의미가 과거와는 많은 부분 변화가 되었다. 대륙을 넓히던 광개토대왕의 기상 은 이제는 영토적인 의미에서 해석될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측면에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영토가 만주까지 이제는 넓혀질 수 없음을 현실적으로 개탄할 것이 아니라, 예전 선조들의 기상 을 지금까지 이어오지 못함을 개탄해야 할 것이다. 나에게 이번 여행의 의미는 바로 여기에 었다. 과거 만주땅이 우리의 것이었다는 이야기는 이 제는 진부하고, 식상한 이야기다. 그것은 어쩌면 역사적 사실로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내가 여행을 통해서 바라본 것은 고구려의 기상이 아직도 우리에게 흐르고 있다는 확신이었다. 나아 가 그것은 미래에 투여될 모든 투사적 지식인들의 근간이 되어야 할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지금도 고소공포증에 시달리면서 입었던 조간신문의 머릿기사가 기억난다. 남 북한 상호 이산가족 교환방문 이것은 어쩌면 이번 여행을 계기로 바라보게 된 세상에서는 새로운 그 예 전 고구려인들의 기상을 이어가는 우리의 첫 발디팀같아 너무나 흐뭇하다. (끝)

57 만주 별판을 달리고 싶은 젊은 영락의 꿈 / 55 만주 별판을 달라고 싶온 젊온 영락의 꿈 서으 A d 걷!:T 백석고등학교(경기도 일산) 2학년 성기석 회원(서울지구) 장녀 이 글온 반만년 이상을 저 거대한 북쪽민족과 대립하면서도 꿋꿋이 살아온 우리 민족의 역사 연 장을 직접 체힘하고, 남북분단의 아픔을 느끼면서 하루빨리 통일이 이루어져 저 광휠한 만주벌판 을 마음대로 달려보고 싶은 소녀의 심정을 고등학생 입^ölOJ l서 쓴 글임 시작하면서 - 나에게 여행의 하이라이트란 없다. 매 순간 순간이 너무 소중했기에 - 외국으로 나간다. 외국으로 나간다. 고2가 되도록 한번도 이 나라 밖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내가 드디어 외국으로 가는 것이다. 늘 간접적으로만 접하고 생각하고 평가하던 외국을 실제로 가보면 어떤 느낌일까? 나의 상상과 얼마나 차이날까? 어렬 때부터 들었지만 실제로 가 본적 없 는 백두산은 또 어떻고? 간접경험으로만 세상을 논하던 나였기에 이번 해외여행은 진짜 바깥 세 상을 향한 최초의 날개짓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다른 아이들이 흔하게 가는 미국, 일본, 동남 아 등의 관광지가 아닌 중국의 만주 벌판으로 가는 고구려의 역사 탐방이다. 단군님의 땅으로의 귀환인 것이다. 나같은 소위 민족주의자에겐 첫 번째 여행으로서 너무나도 완벽하게 값진 의의 를 지니고 있던 해외 여행이다. 그랬기에 방학 보충 수업이 시작된 후에도 나는 늘 8월 12 일 이 날을 손꼽아 기다려 왔다. 아버지 연배의 영락회 회원들의 모임이라지만 내 또래 고등학생과 대 학생들도 많다는 얘기는 아버지께 들었다. 비록 모두 남학생들이라지만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성비가 여학교나 다름없는 학교에서 2년간 부대끼던 나였으니 오히려 다른 분위기가 즐거울 것 같았다.

58 56 / 영락이데아 8월 12 일(첫째날) - 처음보는 중국땅. 처음보는 세계. 그리고 첫인상 - 4박 5 일간 강아지를 집에다 내버려 두는게 마음에 걸렸지만 들몬 기분으로 김포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부러워하던 친구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야, 백두산엔 날씨 맑은날올라가야돼 야생화좀 꺾어 가지고와라 자진 많이 찍어와, 돈주고라도 살테니까 하긴 우리 또래 입시생이 만주에 가는 게 좀 쉬운 일인가. 국제공항은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난생처음 출국한다는 설램에 앞으로 4박 5 일간 함께 지낼 애들을 만난다는 기대에 가슴이 진정 되지 않았다. 친구들에게 서둘러 마지막 연락을 띄우고 나니 함께 지낼 사람들이 차례차례 모인 다. 아버지께 반갑게 인사하는 여행 배낭을 진 어른들과 그 사이에 틈틈이 끼여있는 아이들. 웬 지 내 또래가 없어 보인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뜨고, 집들이 성냥갑만해지고, 얼마 안가 눈부신 구름받이 펼쳐지며 귀가 멍멍해진다. 초등학교 때 첫 비행기를 탔던 때는 모든 것이 얼마나 신 비로웠던가? 하지만 여러번 타본 비행기 그 자체는 암만 그때의 감동을 되살리려 해도 잘 되지 않았다. 아마 해외여행이라는 것도 마찬가지겠다. 첫 경험은 평생 기억에 남는다니 순간 순간의 감동을 소중히 여기리라.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거의 중국 본토에 도착한 듯한 느낌이 들어 슬쩍 밖을 내다보니 아 직도 구름밭이다. 그런데 그 구름들 사이로 슬쩍 슬쩍 육지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다. 드디어 중국이다. 낮선 남의 나라 땅이다. 기분 때문일까. 한눈에 보기에도 한국과 지형이 차이가 나는 것이 신기하다. 오밀조밀한 산은 어디가고, 난생 처음 보는 널찍한 평야에 슬레이트 지붕들이 짝르록 병렬식으로 박혀 있다. 평평한 지평선에 흥분된다. 너무도 넓다. 그곳에 완벽한 직선으 로 끝이 안 보이는 큰 도로 경지 정리가 안된 논들 누렇고 작은 개천은 범람 원인인 듯. 황토의 땅, 광활한 땅 중국대륙인 것이다. 심양 국제공항 활주로에 순식간에 착륙한다. 타일 바닥에 풀들이 솟아있는 것이 시골 공항같 다. 아직도 건설중인 공항의 휘어올라간 처마 끝이 낯설다. 중국의 첫 모습은 모든 것이 신기하

59 만주 벌판을 달리고 싶은 젊은 영락의 꿈 / 57 다. 한글대신 안내문도 몽땅 한자다. (당연한 것이지만) 통로를 따라 내려가는데 뒷짐지고 딱딱 하게 서있는 인민군 복장같은 중국 꽁안이 여기가 중국이라고 말해준다. 심양 국제공항의 첫인 상은 그야말로 만만디 국제공항이라고 부르는게 어울리겠다. 승객들을 잔뜩 세워놓고 입국 수 속은 감감 무소식이다. 중국땅에 발을 들여놓는게 이다지도 힘든가. 슬슬 지루해지고 정말 중국 은 모든게 느리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북경같은 대도시는 모르겠지만. 이곳은 정말이지 초라하 고 낯설다. 암만 중국의 발전이 무섭다 하지만 이곳은 아직 그렇지 않았다. 한국의 30-40년 전 이 이랬을까? 시골 기차역 같은 분위기에 일제시대 취조실 같은 직원실이 빼꼼히 보이고. 썰렁 하게 붙어있는 중국어 안내문들. 그 옆에 붙어있는 영문이 차라리 구세주였다. 간신히 입국이 시작된다. 공항 여직원들이랑 인민군 복장들이 서로 뭐라뭐라 중국어로 떠들어댄다. 정말 목소 리가 커서 발음은 확실하게 들리지만 아는 말은 한마디도 안 들린다. 과연 이런 곳에서 저12외국 어로 배운 중국어가 도움은 될른지. 한번 말을 걸어 보려고 했는데 너무 표정이 딱딱해서 잔뜩 웅츠려 들고 말았다. 시차가 우리나라와 1시간 늦지만 시계를 일부러 바꿔놓지 않았다. 한국을 완전히 잊지 않겠다는 일종의 심리적인 발로였을까? 어차피 정확하게 한시간 느리니까 시계를 보면서 일일이 계산하면 되겠지(나중에 불편해서 혼났다). 공항에서 우리를 태워줄 버스로 달려갔다. 버스에서 가이드 아저씨를 처음 만났다.6년 경험 이라는 이 베테랑 가이드 아저씨는 비쩍 마르고 조그망지만 까무잡잡한게 영락없는 중국인 스 타일이었다. 조선족 교포 3세로서 중국에서 태어나고 컸지만 한국말이 그다지 어색하지 않다. 완전한 북한 말투는 아니었고 억양은 중국 억양에 언어는 북한말이라서 아주 애매모호한 말씨 였다. 가이드 아저씨의 말로는 이곳의 조선족들은 90%가 북한말을 쓴다고 했다. 중국은 북한에 원조를 많이 했고 같은 사회주의 국가로서 굉장히 절친한 관계였다고 한다. 약간 서글픈 생각이 든다. 같은 민족인 남한보다 중국과 더 친했었다니. 옛 조상의 터전을 놓고 대립관계에 놓일지 도 모르는 중국과 말이다. 털털거리는 버스를 타고 가니 땀이 줄줄 난다. 자리도 좁고 불편하다. 그럼에도 창밖을 내다 보다가 꾸벅꾸벅 졸게 된다. 논으로 보였던 것은 거의가 다 옥수수 밭이었다. 논 대신 짝악 펼쳐 진 옥수수밭. 달려가는 길가에 한문 간판으로 된 구멍가게처럼 보이는 건물들이 드문드문 서 있

60 58 / 영락이데아 다. 평야를 벗어나 산길로 들어가니 더욱 특이하다. 산 모양이 한국과는 다르다. 약간은 고도가 더 높고, 부드러운 능선이 아니라 다듬다 만 조각상 같은 험한 편의 산세였다. 이곳이 고구려의 땅. 단군님의 옛 땅이로구나. 그러나 미리 예상했던 것 보다 이곳에서 옛 조상들의 모습을 상상승}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너무 낯설고 현실적이어서일까? 날씨가 더워서일까? 아니면 길가에 늘어서 있는 한족들의 집 때문일까? 한족들의 농촌가옥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서양적으로 느껴진다. 붉은 A 자형의 지 붕들이 규칙적으로 늘어서 있다. 내가 기대했던 중국식 휘어올라칸 처마 끝이 아니다. 잣길에는 소들이 마구 지나다니고 우리나라 시골서도 볼 수 없는 삼륜차가 지나간다. 한가지 몹시 기겁 을 했던 것은 길가 남자들의 3분의 1가량이 웃통을 벗고 돌아다는다는 것이었다. 보기가 참 민 망스럽기도 하고,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한국이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이 절실허 느껴진 다. 가다가 사고 현장도 지나갔다. 여기서 사고는 흔한 일인 듯 지나가는 현지인들의 반응이 너 무도 태연스렵다. 그도 그렬 것이 차를 너무 거칠게 모는 것처럼 느껴진다. 크렉션 소리에 귀청 이 떨어질 지경이다. 맨 첫 목적지는 점심식사를 하는 곳이었다. 중국 현지 음식은 과연 어떨까? 기대도 되고 걱정 도 되었다. 누구 말로는 중국가변 남자는 살이 빠지고 여자는 살이 젠다는데. 식당에 들어가는 데 갑자기 음식 쓰레기가 썩는 것 같은 시람한 냄새가 입맛을 뚝 떨어뜨린다. 알고 보니 그게 중 국 식당에서 나는 전형적인 냄새란다. 한국 식당에서 마늘냄새가 나듯. 그것을 알고나자 하늘이 노렇게 보인다.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라고. 음식이 나오는 탁자가 참으로 신기하게 생겼다. 가 운데에 빙글빙글 돌아가는 판이 있어 그 위에 반찬이 담긴 접시들을 차례로 올려놓는데 멀리에 있는 것은 내 앞으로 눈치 봐가면서 돌려야 된다. 다행스럽게도 음식맛이 업에 거슬리지가 않는 다. 그래도 웬지 뭔가 찜찜한게 남는 듯한다. 맛있는 것은 정말 괜찮은데 맛없는 것은 진짜 맛이 이상하다. 앞으로 완전 편식가가 될 것 같다. 식사 도중에 같은 식탁에 앉으신, 중국역사학이 전 공이신 교수님이 중국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 주셨다. 오랜 세월을 중국에 자주 다니신 교수님 말씀에 중국인 개개인은 한국인에 비하여 상당히 둔하고 열등하다고 하신다. 그도 그럴 것 같 다. 그렇지 않고서야 인구 숫자가 훨씬 적은 한국인이 반만년간 중국과 대립할 수 있었겠나...

61 만주 벌판을 달리고 싶은 젊은 영락의 꿈 / 59 실제로 중국인들은 약간 촌사람 같은 인상이었다. 외국에 와서 현지인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는 건 묘한 기분이었다. 한국 내에 사는 내 또래 아이들은 늘 일본이나 미국과 우리나라를 비교하 며 열등감을느끼곤하는데. 밥을 먹고 간 첫 관광지는 본계석회암동굴이라고 불리는 세계에서 가장 긴 석회암동굴이었다. 중국인들이 우글거리는 틈바구니에 끼여있으니 나도 여기서는 외국인이라는 생각에 묘한 기분 이 들었다. 동굴 전체가 밑에 물이 고여 강을 이루고 있어 배를 타고 들어가는게 마치 롯데월드 에 있는 놀이기구를 연상시킨다. 수심이 평균 2m라는게 믿기지 않는다. 물속에도 조명이 켜져 있어 물고기가 조명 근처에 몰린다. 조명이 켜진 곳마다 갖가지 모양의 기암괴석들. 어떤 것은 사람 같고, 어떤 것은 물에 빠진 코끼리 같다. 그 돌들의 이름이 한자와 영어 네온사인으로 쓰여 있는데 해석하기도 전에 지나친다. 롯데월드의 놀이기구에 비하면 엄청나게 길어 싫증나도록 감상할 수는 있었지만 슬슬 추워진다. 언제쯤 끝나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배는 끝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출구이겠거니 하는 기대가 커지는 순간 막다른 곳에서 다시 되 돌아 출발지점으로 모는 것이었다. 아흐흐! 정말이지 추워 죽겠다. 다시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리자 갑자기 심양 시내가 눈 안에 들어온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도시와는 완전히 다른 중국의 도시가 눈에 확 들어온다.10년은 족히 됨직한 낡고 누렇게 변색 된 건물들. 꺼떻게 녹슨 발코니에서 바지만 입은 아저씨가 창밖을 내다본다. 거리에는 붉은 글 씨의 간판들이 눈을 어지럽게 하고 촌스러운 원색 계열의 광고판들은 우리나라 60-70년대를 연상시킨다. 여기저기서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자동차 사이를 잘도 다닌다. 차선이 아예 없어 보이는 도로에 이층 버스랑 버스 두 대를 이은 형태의 희한한 버스들이 지나간다. 누런 풀색의 꽁안복장들도눈에 띈다. 여러 가지 잡동사니를설은고물수레를말한마리가꿀고지나간다. 길가의 가로수들은 매연 때문에 가물가물 늘어진 듯하다. 우리나라 일산같은 신도시에서는 상 상도 못할 누런 대륙 중국 도시의 혼잡하고 탁한 모습이다. 거리는 혼잡했으며 누런 황토바람이 일고 었다 매연에도 불구하고 창문을 연다. 흔들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사진을 찍었다. 길에 있는 모든 것 하나 하나가 낯설고 신기한 진풍경이다. 도중에 도착한 곳은 기념품 가게. 비록 비싸기만 하고 별 특색도 없는 관광상품에 불과했지만

62 60 / 영락이데아 새로운 도시에 왔다는 설레임과 친구들 선물을 사야 한다는 생각에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가이 드 아저씨에게 중국어로 이거 얼마예요 가 무엇인지까지 물어봐 가며. 어차피 바가지 씌우는 걸 뻔히 알면서 선물들을 대충 산 뒤 곧바로 카메라를 들고 혼자서 거리로 뛰쳐나갔다. 거리를 홀로 팔딱팔딱 뛰어 한 블록 떨어진 곳까지 가며 낮선 고장에 온 기쁨을 만끽한다. 지나가던 중 국인들이 나를 이상하다는 듯 힐끔힐끔 쳐다봤다. 그러나 카메라로 정작 사람들의 모습을 찍으 려 하니 눈치가 보여 잘 되지 않았다. 어떤 아줌마는 카메라를 뚫어지게 노려보기까지 한다. 저 기 캠코더 들고 옹 일행 오빠가 부러웠다. 염색한 머리 때문에 아무래도 나보다 더 확실히 외국 인으로 보이겠지. 뭔가 말을 붙일까 하다가 동생으로 보이는 애랑 얘기하길래 관뒀다. 나중에 통성명할 기회가 있겠거니. 동생 지수 손을 잡고 뒷골목으로 갔다. 우리나라 몇십년 전을 떠올 리게 하는 공터에 꾀죄죄한 모습의 아이들과 아줌마들이 모여 큰소리로 알아들을 수 없는 수다 를 떤다. 그 모습이 왜 그렇게도 인상갚고 정겨웠는지 가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저녁때 밥을 먹으러 한식당에 들어가면서 드디어 서로의 소개가 있게 되었다. 우리 가족만이 유일하게 전가족이 다 왔다. 어머니 연배의 아주머니들도 계시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계셨다. 난 특히 아이들을 소개할 때 주의갚게 봤다. 함께 붙어다니던 4명의 남학생들은 형제랑 외사촌 간이 었고, 어른 보호자는 없었다. 가장 큰 형은 대학교 4학년으로 의젓해 보였지만 남은 3명은 내 또래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콕 붙어있어 말 붙이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캠코더를 든 대학교 2학년생 오빠는 완전히 혼자 왔고 같이 었던 애는 동생이 아니었다. 내가 그 동생으로 착각했던 애는 부모랑 같이 온 고1인데 너무 조용해 보인다. 아버지는 전가족이 다 온 것을 기쁘게 생각하 셨지만 반면, 나는 보호자 없이 친척들끼리만 온 애들도 약간 부러웠다. 그 방에는 어른들만 있 었기 때문에 아버지 어머니 지수랑 떨어져서 다른 방으로 식사를 하러 갔다. 애들과 따로 통성 명하고 싶다는 마음과 그래도 가족과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반반 뒤섞여 있었 다. 방에 들어가니 대학생 오빠 둘이 가운데 자리를 비켜준다. 완전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다. 분위기도 분위기려니와 여자애가 하나도 없다니. 밥이 도저히 넘어가지 않았다. 중국식 한식당 이라 음식도 어설퍼 거의 먹지를 못했다. 대학 4학년 오빠가 먼저 분위기를 트기 위하여 말을 걸어 준다. 존대말까지 써 주며. 이 오빠

63 만주 벌판을 달리고 싶은 젊은 영락의 꿈 / 61 는 군대까지 갔다와서 그런지 너무 어른스러워 한결 마음이 놓인다. 그런데 나머지 세 아이들은 자기들끼리를 제외하곤 다른 사람에게 별 반응이 없고 서먹하기만 하다. 나랑 같은 고2도 있건 만 영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나중에 옆에 었던 캠코더 오빠가 말을 걸었다. 그래도 이 오빠는 혼자라서 그런지 말하는데 부담이 덜하다. 중국 사진을 많이 찍고 싶은데 뭔가 얘기가 통할 것 같다. 맞은 편에 앉은 고1짜리 애는 전혀 말이 없고... 밥을 먹고 밖에 나와 버스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그곳 거리를 둘러본다. 이미 어둠이 짙게 깔린 중국의 뒷골목에는 손수레와 고급차량 고물택시가 한데 어울려 빵빵거리며 세차게 지나 간다. 별안간한초라한중국인할머니 하나가중국어로돼라고중얼거리며 애들이 모여있는곳 으로 다가와 손을 내민다. 돈을 달라는 것이겠지만 우리가 무슨 돈이 있겠는가... 중국의 빈부차 를 실감하겠다. 바로 옆은 벤츠가 지나가는데... 그 다음에 간 곳은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곳 까르푸 매장이었다. 그래도 이곳은 생활 여 유가 있는 사람들이 오는 곳이라는데 정말이지 사람들로 바글바글거린다. 비탈에 에스컬레이 터를이용해 오르는것을비롯해 일산까르푸와다를것이 없었지만곳곳에 이국적인느낌이 스 며었다. 과일가게에는 처음 보는 과일 천지다. 역시 땅덩이가 넓은가 보다. 입을 딱 벌리고 돌아 다닌다. 특히 공책 매장에서 한국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노트를 봤을 때 얼마나 기쨌던지. 거기 다가 우리 동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모닝글로리 노트를 애틀이 사간다. 그대로 수입한 듯 한글 이 그대로다. 정말 놀랍고 반가웠다. 흥분해서 한국말로 떠드니 옆에 있던 내 또래 여자애들이 흘깃흘깃 쳐다본다. 보아하니 중국 여자애들은 커트머리가 굉장히 많다. 얼굴도 화장기가 없고 옷차림까지도 흡사 남자애들로 착각할 것 같은 복장들이다. 물론 완전히 명동이나 일본을 빼다 박은 듯한 멋쟁이 아가씨틀도 있다. 세련되 보이지만 자본주의에 물이 들어 전혀 중국적이지 못 한 그런 아가씨들이 그다지 곱게 보이지는 않는다. 밤기차를 탄다는 것에 어차피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기차역에 도착해 침대칸에 도달하니 처음에는 망연자실하다.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고물 화장실이 두칸마다 하나씩 띄엄띄엄 있는 듯 하고, 그나마 문까지 잠겨있다. 복잡하고 좁은 복도에 중국 현지인들이 계속해서 왔다 갔다 한다. 가방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도저히 자리를 잡을 엄두가 안난다. 옷을 그대로 입고 잘

64 62 / 영락이데아 건 각오하고 있었지만 피곤하고 먼지를 뒤집어 쓴 폼으론 좁고 층이 낮은 3층 침대에 비집어 들 어가는 것이 꺼려진다. 뭐 어차피 침대도 퀴퀴한 냄새가 났지만. 오늘 밤은 도저히 잠을 못 잘 것 같다. 그러나 표가 나누어져 옆칸으로 가니 약간 한산하고 벌써 자리를 잡은 사람도 있어 여 유가 생긴다. 수학여행때 하던 버릇대로 남들이 오기 전에 일찌감치 씻어둔다. 다행히 중국인들 은 씻을 생각을 하지 않아 세면대에 여유가 있었다. 자리를 잡으려고 돌아와보니 아까 그 캠코 더 오빠가 침대 3층에 있다. 심심한데 잘됐다 싶어 나도 3층에 올라갔다. 막상 자리를 잡으니 목 캠프를 온 것처럼 들뜨고 신난다. 기차가 덜거덩 멀거덩 움직이고 복도 끄트머리에 자리잡은 바 지만 엽은 중국인 아저씨들이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럽립하지만 싫지 않은 기차안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비위생적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모든 것이 정겹다. 어디서 담 배 연기 냄새가 난다. 갑자기 소등을 해서 깜짝 놀랐는데 오빠가 캠코더의 라이터를 켜고 얼굴 에 비추는 바람에 앞이 안보인다. 아래를 빼꼼히 내려다보니 참으로 이곳이 높았다. 어른들 커 이상이니까. 천장에 붙어있어 유 리창도 안보이고, 발치에 고물 선풍기가 행원거린다. 아버지를 비롯한 어른 분들은 자리에 들어 가지 않고 복도에서 와인으로 건배를 하며 즐거워하신다.3층에 었던 우리도 종이컵으로 받아 마셨다. 어른분들이 평소같으면 못마시게 하련만 한잔 더 주신다. 난생 처음으로 침대칸에 들어 앉았다는 설레임에 잠을 이룰 수 없다. 맞은면의 오빠랑 몇시까진지도 모르게 계속 이야기를 나 누었다. 오빠는 어느 틈에 말을 완전허 놓고 경상도 사투리가 콕 우리 사촌오빠들 같아 점점 이 야기하는 것이 편해진다. 정말 즐거웠다. 그런데 우리가 너무 시끄럽게 떠들었는지 옆칸의 중국 인 아저씨가 뭐라뭐라 투덜거린다. 중국에서의 첫 밤이 깊어간다. 기차가 계속 덜정거리고 창문에서는 만주 벌판의 바람이 들어 온다. 어느새 돌아다니는 여승무원을 빼고 복도는 고요하다. 정말 기분이 좋았다. 첫날 하루를 보낸 것만으로도 충격을 받고 감동을 받을 일들이 수두룩했는데 앞으로 4일간 또 무슨 놀라운 일들이 생길 것인지 마음이 두근거린다.

65 만주 벌판을 달리고 싶은 젊은 영락의 꿈 / 63 8월 13 일(둘셋날) - 만주 속의 고구려, 조선족, 우리 민족, 그리고 북한 - 새벽 일찍, 가장 먼저 잠이 쨌다. 간밤에 선풍기 등쌀에 잠을 설쳐 어디서 꿀고왔는지도 기억 안나는 냄새나는 담요를 두 개를 둘둘뭉쳐 자고 있었다. 아직 날이 밝지 않았다. 그러나 새벽의 여명이 서서히 기차안을 밝힌다. 아직 일어난 사람은 없다. 침대를 세로로 어설프게 가로막고 있는 두 개의 낡은 가죽끈은 정말로 생명끈이었다. 새벽녘에 맞은편에 있는 오빠가 두 번이나 떨어질 뻔하다가 끈에 걸린 것을 보면. 일어나 일찌감치 세수를 하러 간다. 밑에 계신 어머니는 피곤해 보이시고, 어제 강아지 보고 싶다며 사진들고 정징대던 지수는 세상 모르고 잔다. 세수 를 하러 가다 보니 어켓밤 여승무원 때문에 기겁을 한 일이 생각난다. 화장실에 가려고 했는데 문이 잠겨 있었다. 사람이 있는 줄 확인하려고 두드리는데 갑자기 안에서 그 여자가 마구 화난 목소리로 뭐라뭐라 소리치는 것이었다. 알고보니 문을 잠그면 자동으로 손잡이에 자람 있음 이라는 표시가 뜨게 되어 있다. 하지만 한자를 잘 모르는 내가 어떻게 그걸 아나. 아침에 우리 일행은 조용하면서도분주한분위기였다. 이젠 바깥이 꽤 밝아졌건만 3층은 아직 도 캄캄해 나는 1층이랑 3층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짐을 챙겼다. 아버지는 계속 편하게 주무신 다. 지수는 일어나자마자 천장에 머리를 박는다. 여승무원들이 돌아다니면서 시트를 걷어가는 데 인상이 험악하고 억세다. 말도 통하지 않아 처음엔 뭘 달라는 건지 이해를 못했는데 마구 짜 증을 내며 시트를 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님 말씀엔 지금은 옛날보다 많이 부드러워진 거란다. 아침에 침대칸에서 기념 사진을 몇 장 찍었다. 흔들려서 잘 나올까 의문이다. 종점에서 기차가 섰다. 드디어 두 번째 도시. 통화에 도착한 것이다. 여기서 아침밥을 먹은 후 버스로 노령산맥을 넘어 집안으로 간단다. 우리가 볼 광개토대왕비 장군총 등은 모두 집안에 있으니까. 기차역에서 나오니 새 버스가 서 있는데 보기에도 어제 타던 버스보다 훨씬 좋아보인 다. 자리도 넉넉해 두 자리에 한 명씩 앉아도 되고. 에어컨이 안 나오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길 가의 건물들이 심양보다 훨씬 낡아 있다. 중국어로 쓰여진 뱃말을 들고 꾀죄죄한 사람들이 뭐라 뭐라 소리치며 기차역 광장에서 돌아다닌다. 아무래도 교통펀 손님을 잡는 것 같은데 내가 아는

66 64 / 영락이데아 한자 같아서 햇말을 뻔히 들여다보니까 지-꾸 따라온다. 아침을 먹으러 호벨로 갔다. 중국식 뷔페였는데 웬지 업에 맞지 않고 받아주질 않는다. 이래 선 중국에서 살이 찌기는커녕 톰무게가 확 줄겠다. 지수랑 밥을 먹고 밖으로 나와 정처없이 걸 어다녔다. 그러다가 호텔 뒤편으로 돌아가 봤는데... 어쩌면 건물의 앞과 뒤가 그렇게 다를 수 있을까? 앞은 그나마 볼만한데 뒤는 완전히 빈민가 아파트 같은 회색 건물이다. 버스 안에서 가이드가 계속 설명을 해준다. 통화시의 인구는 40만인데 그 중에서 조선족이 4 만이니 적지 않은 소수민족이다. 비록 자치구가 될 수준은 못 돼지만. 조선족 자치구는 60%이 상이 조선족이여야 한다나? 그리고 한족은 한 집에 아이를 한 명밖에 가질 수 없지만 소수민족 은 두 명도 가능하고, 특히 조선족은 세 명까지도 낳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이유가 조선 족 인구 숫자가 자꾸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니 서글프고 안타깝다. 우리의 국력이 강해져 서 이들을 좀 더 도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버스가 산길을 계속 달린다. 어제 보았던 그 울퉁불퉁하고 험준한 특유의 산들이 우리 주위를 계속 에워싼다. 그 산맥을 타고 말을 달리고 산을 누비던 조상들 고구려인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려고 한다. 산세가 정말 아름답다. 만주의 산은 정말 아름답다. 가다가 휴게실에 들렸다. 앞으 로 몇 시간 더 버스를 타야 한다길래 화장실에 갔는데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다. 중국의 화장설 들은 보통 지저분한 정도를 넘어 상상을 초월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 다른건 그렇다 치더라도 왜 문이 없는거야? 그나마 호댈 화장실은 봐 줄만 한 편인데 그곳도 문이 반투명하고 낮다. 도대 체 중국사람들은 화장실이라는 공간을 프라이버시의 공간으로 생각하지 않는 듯 하다. 한참을 달려 어느 조그만 도시에 도착한다. 이곳이 바로 집안. 옛 고구려의 수도 국내성이 있 던 곳이다. 심양이 20-30년전의 도시라면 여기는 거기서 한 20년 정도 더 퇴보해 보인다. 버스 도 택시도 없고 건물들은 더 누렇고 오래되고 작아 보인다. 승용차도 몇대 다니지만 이 길에는 특히 삼륜 인력거. 앞에는 오토바이고 뒤에는 덮개만 있는 마차가 주를 이룬다. 그런 색색의 인 력거들의 물결이 도시를 오간다. 한번 타보고는 싶지만 과연 현지인들이 타는 것을 타도록 허락 해줄까? 집안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호텔로 향했다. 밤 기차를 타고 오느라 모두들 기대를 했다.

67 만주 벌판을 달리고 싶은 젊은 영락의 꿈 / 65 그런데 집안에서 가장 좋은 호벨이라는게 완전한 여관 수준이다. 밥을 먹으러 내려갔는데 이젠 애들이랑 앉는 것이 더 편하다. 이곳도 위에 있는 판이 빙글빙글 도는 닥자다. 그래도 집안은 한 국 교포와 관광객이 많은 편이라 그런지 여종업원들 중 한국어를 아는 사람도 있고, 음식도 약 간은 한국식이 섞여었다. 맥주만 음료수 먹듯 계속 마셨다. 그래봤자 두 오빠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아니지만. 그 다음 맨 처음 도착한 곳은 고구려 박물관.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산성에서 나온 고구려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내부 사진 촬영은 금지였다. 가이드 아저씨가 어제 어떤 곳에 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된다고 했는데 여기가 그곳이구나 생각되었다. 왜 사진촬영을 금지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어제 중국인들은 고구려의 역사를 우리 역사의 일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만주벌판에서 한때 었다가 소멸된 소수민족의 역사라나. 그래서 사진촬영도 금지 된 것일까... 더운 날씨에 더욱 분통이 터진다. 누구 마옴대로 우리의 역사를 제멋대로 평가하 는 거야. 공책과 연필을 들고 버스를 뛰쳐나왔다. 사진을 못 찍는다면 그림으로라도 그려가야 지... 밖에서 볼 때 박물관 규모는 초라했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정말 놀라운 것들이 많다. 특히 눈길을 꿀었던 것은 벽에 걸려 있는 역대 고구려왕들의 초상화. 조선왕조는 몰라도 1500 년 전 고구려의 역대 왕들의 초상화가 존재를 하다니... 비록 후세에 그린 것이라도 정말이지 혼 자 보 717} 아까웠다. 기념품 가게에서 초상화의 축소판도 사고 고분벽화의 사진들도 샀다. 사 진도 못 찍게 하는 판에 한국에서 이런 걸 어디서 구하나. 마치 보물을 얻은듯 한 기분이다. 공 책을 들고 안쪽으로 들어가니 고구려 시대의 말 안장 돈 등의 유물들이 있었다. 시간이 제한되 어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마음이 급해 잘 그려지지 않았다. 이걸 그리고 나면, 저것도 멋있어 보이고 요것도 멋있어 보이고. 한 중국인 아줌마가 졸졸 따라다니면서 내가 그림 그리는걸 고개 까지 디밀고 들여다 본다. 뻔뻔한건지 순진한건지 벽화에 있는 소머리를 한 신의 모습을 그릴 때는 아예 친구들까지 불러서 뭐라뭐라 떠든다. 결국엔 바리바리 기념품을 사들고 버스에 가장 늦게 올라탔다. 기분은 뿌듯했다. 약간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빠트리지 않고 건져냈 다는 기쁨이었다. 그러나 이 박물관이 만약 한국에 있다면 어됐을까. 규모도 더 크고, 진열도 잘 되어 있었겠지... 신라의 유물은 소중히 다루면서 고구려의 유물은 이렇게 남의 땅에 내팽겨쳐

68 66 / 영락이데아 놓아도 되는건가... 소수민족이라는 왜곡과 수모까지 받으면서. 다시 버스를 타고 달려 산길로 접어든다. 이번엔 고구려 고분들을 보러 간다고 한다. 듣자하 니 고구려 고분들은 신라의 고분들 못지 않게 크다고 하는데... 왜 한국엔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고 그런 사실을 몰랐을까? 고분 벽화가 그려져 있는 5호분 묘에 도착한다. 문을 들어서니 커 다란 언덕 앞에 들어가는 문이 뚫려 있다. 저렇게 커다란 언덕이 고구려의 고분이라니. 날씨는 찌는 듯이 더운데 안은 시원하다 하여 뛰쳐 들어갔다. 커다란 방이 있었는데 정말이지 냉장고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그 방은 나중에 만든 것이고 더 안쪽에 있는 방이 진짜 현실이라 했 다. 현지 가이드 언니를 따라 그 방을 들어가니 축축한 돌방 사방 천지에 온통 그림이다. 알록달 록한 색이 1300년의 풍상으로 많이 지워졌건만 아직도 선명하다. 정말이지 신비롭다. 현지 가 이드 언니가 돌아가면서 차근차근 설명을 해준다. 청룡과 백호 주작 현무가 가운데 왕의 시신 을보필하고, 해의 신, 달의 신, 농경의 신과불의 신, 철기의 신 등등천지창조와문명의 탄생을 상징하는 벽회들이 차례대로 빼곡히 그려져 있다. 태양의 상정인 그 유명한 세발달린 까마귀도 보인다. 가이드 언니에게 저것이 중국에도 있느냐고 물으니 고구려만의 고유의 것이란다. 자랑 스럽고 신난다. 천장 군데군데의 구멍에는 야명충을 집어넣어서 햇불대신 현실을 밝혔다 한다. 그저 놀랍고도 신비스렵다. 그런 불빛으로 이 그림들을 다 그렸단 말인가? 그림이 바로 코앞에 있어 손을 대 볼 수도 있겠다. 무심코 벽화를 쓰다듬으려다 손을 움츠렸다. 만지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내 손이 닿아서 지워질까봐 차마 건드릴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곳은 훼손이 심해 얼마 안 있으면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패쇄할 것이라 한다. 나오는데 발길이 차마 떨어지지 않는다. 맨 마지막으로 나오다 한번 더 뒤돌아 본다. 아쉬운 마음을 금할 길 없다. 안에서는 촬영 금지이기 때문에 밖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촬영한다고 그 림이 닮는 것도 아니면서. 나도 마찬가지지만 중국 정부의 처신이 얄맙다.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손대지 말라는 경고하나 없이 이런 식으로 관광객들에게 공개를 하다니. 감시원이 있지만 사람들이 바글거릴 땐 무용지물이다. 고분 위에 잡초가 무성한 것이 새삼스레 눈에 들어온다. 신라의 고분들이 떠오른다. 곱게 잔디로 손질해 놓고 넓은 잔디밭에 얼씬도 못하게 하던 모습. 밖으로 나오던 모퉁이에서 다시 마지막으로 고분의 모습을 본다. 눈물이 핑 돈다. 갑자기 눈물

69 만주 벌판을 달리고 싶은 젊은 영락의 꿈 / 67 이 나온다. 지금은 남의 땅. 저렇게 두고 가야만 하는가 헤어져야만 하는가. 다시 볼 수는 있을 까. 잡초로 덮인 고분의 모습이 왜 저렇게 슬퍼보일까. 물이 계속 나길래 사람들이 못 보게 다른 곳으로피했다. 다음에 간 곳은 장군총. 장수왕의 것으로 추정되는 능이다. 늘 한국에 있는 흑백사진만 봐 온 사람들은 실제 장군총의 모습을 상상도 못할 것이다. 그 엄청난 규모와 웅장함. 정말이지 동양 의 피라미드라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감격이 확 치솟는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마구 뛰어갔 다. 장군총 뒤쪽으로 사다리로 된 계단을 타고 뛰어오른다. 아까 말랐던 눈물이 다시 흐른다. 무 텀 위로 올라가 햇빛에 익은 돌 위에 엎드렸다. 조상님들의 숨소리가 혹시나 들릴까나. 뒤를 돌 아 옛 고구려의 산천을 돌아본다. 한족들의 집들이 상처처럼 쑤셔박혀 었다. 무정하리만큼 고요 하고 말이 없는 옛 고구려의 산하. 누구에게인지도 모르게 허공에 대고 중얼거린다. 고구려의 영혼들에게. 저기요. 저요. 목 다시 돌아올께요. 반드시. 지금은 남의 땅이예요. 돌아올께요. 약속할께요. 그리고요. 미안해요. 정말로" 뭐라고 말을 할 수 없었다. 더 이상 목이 메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과연 올까. 조금 진정이 된 뒤 앞쪽, 밑에 사람들이 모여있는 쪽으로 가 내 려다봤다. 어른들이 무심히 밑에서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는다. 오빠가 캠코더로 촬영을 하다가 관리인에게 걸렸나보다. 저 밑에서 중국인들이 카메라를 붙잡고 뭐라뭐라 시비다. 여기저기서 도둑 촬영을 잘도 하더니만... 콕. 이곳 고구려 유적 터에서는 사진은 부분적으로만 허용되고 캠 코더 촬영은 완전 금지다. 솔직히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 이렇게 경직되어 있는거지? 왜 우리가 고구려 유적을 촬영하는데 저들이 왜 이렇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거지? 안그래도 나중에 밑에서 사진을찍을때 아저씨 한분이 고구려 만세 1" 라고소리치니까중국인들의 얼굴 이 확 일그러진다. 기분나쁘게시리. 다음으로 간 곳은 현지에서는 호태왕비. 우리에겐 광개토대왕비로 알려져 있는 비석이다. 가 까이서 보니까 정말이지 너무나도 웅장하다. 사람커의 4배는 족히 념겠다. 비석의 모양을 따로 다듬지 않고 돌 위에다 그대로 글자를 새긴 것이 특이하다. 고구려 특유의 비석을 만드는 방식 이라는데, 가뜩이나 한자도 모르지만 글씨가 희미해 읽을 수 있는게 거의 없다. 글씨체가 예서

70 68/ 영락이데아 체와는 약간 다른데 호태왕체라는 독특한 글씨체란다. 비석 안쪽에는 특이한 성질의 돌이 받치 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이 비석은 이곳에 지진이 몇 차례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쓰러지지 않았다 한다. 비석 앞에서 어른들이 고개를 숙이고 함께 묵념을 했다. 옆에 있는 중국인 할머닌 지 아줌만지가 얼굴을 찌푸리고 쳐다본다. 나도 따라 묵념을 했다. 이렇게 웅장하고 꿋꿋한 비 석을 세우신 조상님들의 기상을 갈망하며. 한국에서 가장 오래 전에 쓰여진 역사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신라를 계승한 것이기 때문에 고구려와 백제의 역사를 거의 언급을 하지 않았다. 중국의 역사서 역시 마찬가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고구려의 영토와 고구려의 역사 업적은 대부분이 유일하게 이 광개토대왕비 속에 남 아 있었다고 한다. 만일 이 비석조차 없었다면 현재 교과서에 표시된 고구려의 넓은 영토는 교 과서에 실리기는커녕 한낱 허무맹랑한 속설로 치부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유적의 파 괴로 인하여 또다른 우리가 잃어버린 역사가 얼마나 많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는 더 넓고, 강하고, 위대했을 수도 었다. 이제는 알 길이 없는 것인가. 그러고보면 새삼 광개토대 왕비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고구려의 광활한 역사를 천년이 넘는 시간동안 꿋꿋히 지켜와 주었 으니 어쩌면 몇차례 큰 지진에도 광개토대왕비가 쓰러지지 않은 것은 안쪽에 받친 특수석 때문 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우리 민족의 웅장하고 위대한 역사를 끝까지 후손들에게 전해주려는 광 개토대왕비 스스로의 의지 고구려 영혼들의 강한 염원였을지도. 돌아오는 길에 잠깐구경하게 된 압록강에서는씁쓸함만이 기억에 남아었다. 우리나라에서 제 일 길다는 압록강이련만 처음 보았을 때는 압록강인지도 몰랐다. 완전허 우리나라 시골 개천이 었다. 폭은 임진강의 반의 반도 안되고 물도 몹시 얄다. 마음만 먹으면 걸어서도 건너겠다. 상 류라면 차라리 이해가 가겠지만 물은 상류답지 않은 구정물이다. 그런 물에서 동네 아이들이 물 장구를 친다. 이 개천(?)을 경계로 이 쪽은 중국 저 쪽은 북한. 이 쪽과 저 쪽은 다른 나라. 암만 되뇌어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맨날 임진강 같은 철조망만 봐 와서 그럴까? 저편의 옥수수밭, 집 들이 뻔히 보이는결. 지나가는 군인도 경비초소도 없는결. 북한의 산들이 헐벗었다. 몽땅 깎아 내리고 그 위에 밭을 만든게 코앞에 보였다. 왜 그 광경이 처음엔 눈에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애써 외면하고 싶어했을까? 하지만 그 정도는 양반이었다. 잠시 후 옥수수밭에 농민들 몇 명이

71 만주 벌판을 달리고 싶은 젊은 영락의 꿈 / 69 나타난다. 여자들도 섞여있다. 반가웠다. 한민족. 북한동포들. 마구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잠시동안 쳐다보다가 핵 무시를 하고 돌아서는 것이었다. 기분이 머씀해진다. 나중에 교수님이 오셔서 그러셨다. 왜 손을 흔드느냐고. 저 사람들은 북한 군인들이란다. 탈북자를 감 시하기 위해 잠복 근무 중이란다. 갑자기 몰려드는 이 감정은 무엇인가. 허탈함과 괴리감. 그렇 다. 괴리감이었다. 한국에서 W로 보여주는 마치 청사진 같은 북한과 지금 내 앞에 현실로 존재 하는 북한. 현재 남북한 간에 흐르는 화해 무드. 쾌활한 지도자 김정일 깔끔하고 아름다운 평양 의 모습. 늘 이런 것에만 길들여지고, 좋아하고 감격했던 나에게 코앞에 있는 북한은 차라리 외 면하고 싶은 모습이었다. 내가 너무 순진했던 것일까. 화해무드만 믿고 무조건 좋아했던 것일 까. 우울해진다. 아버지께서 압록강 돌을 몇 개 주워 주셨는데 거의다 강으로 획 던져 버렸다. 어차피 건너 편에 닿지도 않으면서. 그날 저녁을 먹은 뒤 막막해진다. 오늘 일정은 다 끝났는데 시간은 아직 이르다. 고등학생은 여행의 밤을 그냥 보내지 않는게 철칙인데. 그런데 그날 저녁 또 하나의 추억이 기다리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지수랑 같이 호댈 밖 이곳 저곳을 헤매는데 마당에 낮에 보았던 오토바이 인력거가 대기하고 었다. 어른분들이 이것을 타고 시내 구경을 나간단다. 아버지께서 우리도 갈 거냐고 물으셨다. 얼마나 재미있을까? 다른 상황 같으면 어른들만 가는데는 따라 나가지 않겠지 만 냉몸 좋아라고 찬성했다. 관광버스의 높은 곳이 아니라 현지인들이 타는 인력거를 타다니.4 인승 오토바이 택시가 밤거리를 달린다. 오토바이 택시를 타자 정말이지 성큼 다가선 상쾌한 중 국의 밤거리. 아니, 압록강변의 밤거리다. 오토바이가 사방으로 개방이 되어 있어 밤바람이 직 통으로 얼굴을 때린다. 차선도 없는 도로를 재간껏 다른 차를 요리조리 피하며 운전한다. 정말 재미있다. 바로 옆에서 현지사람들이 탄 다른 택시들이 스쳐 지나간다. 빵빵거리는 소리에 귀청 이 진동하며 환희가 가득 차오른다. 내내 탄성이 터져나온다. 마음이 들푼다.10분을 달리자 압 록강변에 도착했다. 우리를 태우고 옹 아저씨는 한국말을 약간 할 줄 아는 조선족이다. 하긴 이 곳 만주에서는 조선족을 흔히 볼 수 있다. 간판의 글씨들도 반은 한국어로 토가 달려 있다. 이곳 에서 통하는 것은 오직 두 개의 언어. 한국어와 중국어다. 누가 영어를 국제 공통어라고 했는가. 강변에 내리자 하필이면 내가 가로등 밑에 서 있어 가로등 나방들이 우박처럼 부딪친다. 아버지

72 70 / 영락이데아 는 조선족 아저씨에게 남북 화해 무드에 대해서 얘기하고 계신다. 앞으로 철로가 개통되고 육로 로 이곳에 온다고 하니 이 아저씨 영 믿기지 않는 눈치다. 뒤로는 낮에 본 북한 산천과 압록강이 고요히 잠들어 있다. 얼마 안떨어진 이곳은 그래도 분위기가 활발하건만 저쪽은 불빛도 드물다. 한 곳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있고 거기서 노랫소리가 들리길래 호기심으로 다가갔다. 노천에 노래방 기계가 있는데 교수님이 거기서 중국 노래를 한 곡 부르신다. 아버지가 날 보시고는 니 도 한곡 불러라 그러면서 노래목록을 주신다. 한국 노래도 있는데 신세대 곡도 몇 개 있다. 비 록 몇 년은 된 노래지만. 서태지와 아이들? 이런 30~40년전 4박자 분위기의 중국거리에서 랩 으로분위기 전환해보는것도괜찮고. 내친 김에한곡이 아니라트로트까지 두곡을불렸다. 붉 은 한자 네온사인 밑에 댄스 뮤직이랑 박수소리에 분위기가 푼다. 친구들이랑 시험 끝나고 노래 방 갔을 때처럼 안올라가도 악을 쓴다. 댄스곡에 펌프 스탬까지 흉내내가며. 주위의 중국인들이 우르르 몰려와 멍하니 바라본다. 웃통을 벗은 아저씨들이랑 촌닭같은 여자애들, 바지만 입은 꼬 마애가 헤 벌리고 쳐다본다. 한 마디로 히트친 것이다. 등뒤에는 북녘땅이 어둠속에 펼쳐져 있 는 가운데 남한의 댄스곡이 압록강변에 팡팡 울린다. 노래가 끝나고 폼에 부딪치는 시선들을 무시하면서 단을 내려왔다. 그런데 어느새 그곳에 오 빠랑 태준이가 와 었다. 딴 애들도 다 있다. 뒤늦게 따로 택시를 타고 강변에 왔는데 갑자기 한 국 노래가 들려서 와 봤다나? 그럼 내 추태를 봤단 말이 아닌가? 그 후에 따로 따로 조짜서 흩어 져 밤거리를 구경하기로 했다. 난 원래 가족들과 함께 다녀야 했지만 친구들과 함께 있고 싶었 다. 그래서 지수를 데리고 부모님께 허락을 받은 뒤 오빠랑 태준이랑 4명끼리 밤거리를 돌아다 녔다. 즐거웅이 최고조에 달한다. 너무나도 즐겁다. 친구들끼리 이대앞에 갔을 때 이상의 기분 이다. 중국의 밤거리는 한국의 밤거리랑은 사뭇 다르다. 세련된 분위기가 아닌 토속적이고 푸근 한 시골시장 같은 분위기. 군것질거리도 애들이라고 공짜로 주고 길거리 경품게임도 잘만 상품 을 탄다. 물건을 사고 싶으면 내가 중국어랑 손짓발짓을 동원해 가면서 사고 다른 사람들은 중 국어를 한마디도 모르니 구경만 한다. 아니면 용감하게 한국어로 묻던지. 그런데 왜 정작 말을 하려고 하니 기본적인 1, 2, 3, 4 도 생각이 안날까? 하지만 말이 안통해도, 서로 답답해서 둘다 웃어도 즐겁다. 도중에 어른들을 만나지 못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더 놀려

73 만주 벌판을 달리고 싶은 젊은 영락의 꿈 /71 고 했으니. 아버지께 잔뜩 꾸중을 들었다. 여기 밤거리가 얼마나 위험한지나 알고 그러냐고. 숙소에 마지못해 와서 생각해 보니 그게 옳았다. 뒷골목도 캄캄한데. 이런 곳에서 중국말을 모르는 외국인들은 강도들의 표적대상이 되기 십상이겠지. 몇 년전처럼 압록강 건너로 납북될 수도 었다는 건 좀 심한 상상일까? 솔직히 난 그런건 전혀 생각도 안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물어 보니 오빠는 그런걸 좀 경계하고 있기는 있었단다. 나만 애 같다. 8월 14일 셋째날: 상질의 슬픔... 그리고 여정과 우정 아침부터 아버지와 어른분들을 따라 어제 다 못 본 고구려의 유적 광개토대왕릉을 보러 갔 다. 광개토대왕릉, 현지말로는 호태왕릉의 첫 인상은 완벽한 초라함과 허무함이었다. 원래의 터 로 추정컨대 장군총보다도 크다 하지만 이젠 그것의 반의 반도 안남아 거의다 무너져가는 돌무 더기는 높은 울타리 안에 갇혀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고 그 곁에는 학교와 공장이 들어서 있었 다. 길도 닦여 있지 않은 산비탈이라 차로는 도저히 올라올 수도 없다. 학교는 조선인 초등학교 인데 역시 한국 시골의 사라져가는 분교를 연상시킨다. 그렇지 않아도 작은 2층 건물에 썰렁한 냉기가 감돌고 조선족 아이들 몇 명만이 운동장에서 중국어로 뭐라 뭐라 하면서 놀고 있다. 조 선족임에도 평소엔 중국어를 쓰고 한국말을 목 외국어처럼 배운다는 현실이 슬프다. 우리가 탄 택시가 들어서자 교실로 후다닥 도망간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호태왕릉의 굳게 닫힌 창살문 앞 에 섰다. 잡초가 무성한 돌무더기에 쓸쓸함이 감돈다. 그 안을 멍하니 들여다본다. 아무런 느낌 도 없다. 그저 허무함과 무력감이 느껴질 뿐. 어제처럼 눈물조차 나지 않는다. 고요하다. 고구려 의 영혼들은 모두 사라졌는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어디로. 웬 조선족 아주머니가 다가온다. 삼촌분이 이곳 관리인인데 한참 후에야 나타나 한동안 어른들과 실랑이를 벌인 뒤 돈을 받고 문 을 열어주신다. 문이 열리자 마자 마구 뛰어들어갔다. 어른들은 서둘러 사진을 찍으려 하셨지만 난 도저히 사진 찍을 기분이 아니었다. 가까이 가니까 또 눈물이 난다. 무너져 가는 돌 위를 함 부로 오를 수 있는 방치 상태가 역겹다. 목대기까지 오르지 않고 그 근처의 돌들을 더듬거렸다. 혹시 고구려의 기핫조각 하나 발견할 수 있을려나. 두 개를 주웠는데 교수님이 고구려의 기핫장

74 72 / 영락이데아 이 맞다고 하셨다. 한국에서는 박물관에서도 못보는 것이니 가져가란다. 그곳에 하도 많이 굴러 다녀서 기핫장인줄도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우리에게 다가온 조선족 아주머니가 학교 선 생님이셨다. 한번 학교 내에 들어가 봤다. 아버지 말씀엔 그야말로 40년전의 초등학교를 빼다 박았다고 했다. 복도는 삐그덕거리는 목조 건물이다. 게시판엔 애들의 솜씨인지 한복과 중국옷 을 입은 사람들이 그려져 있고 모두 한국어로 쓰여 있었다. 교무실에는 여기 온 한국인들이 주 고 갔는지 도라에몽 만화책과 동화책등이 한켠에 쌓여있다. 교무실 위켠에는 주체사상을 기본 으로 하여 어쩌고 저쩌고 하는 훈시가 있었고 옆벽에 있는 거울은 뿌떻다. 그 옆에 있는 지 도를 주의갚게 살펴봤다. 중국대륙 위에 나의 조국이라고 쓰여 있었고 한반도는 오른쪽 귀퉁이 에 있는데 둘로 나뒤어 있고 평양 이 굵은 글씨로 인쇄되어 있고 서울은 작았다. 동해는 일본 해로 표시되어 있다. 한마디로 신경이 확 거슬리는 지도였다. 그러나 그 지도가 나에게 큰소리 로 말을 한다. 이게 현실이야 어떻게 한국을 약간 벗어났는데도 이렇게도 세상을 보는 눈들 이 다를까? 서로 자신들의 마음대로 해석을 하고 이다지도 주관적일까? 나는 늘 한국의 공적인 눈은 객관적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아닌가 보다. 한국에 불신감이 느껴진다. 모든 것이 불확 실하고 제멋대로다. 기분이 우울하다. 어른들은 타임머신을 탄 기분이라며 즐거워 하셨지만 난 도저히 즐겁지 않다. 교실을한번 들여다봤다.2학년 교실. 아까그아이들이 자리에 앉아 있다 가 빵히 쳐다본다. 바닥은 돌바닥이다. 꾀죄죄한 아이들의 눈빛이 경계하는 듯하다. 저 아이들 과 내가 세상을 보는 눈은 얼마나 다를까? 머뭇머뭇 하다가 교실로 들어갔다. 칠판 귀퉁이에 스 마일을 하나 그리고 뒤돌아서서 망설이면서 안녕 이라고 말했다. 아이들 반이 수줍게 웃는다. 마음이무겁다. 정식으로 오늘 일정이 시작된다. 모든 일행이 다같이 압록강에서 보트를 탔다. 강가에서 웬 중국인 아저씨가 날 보더니 춤추는 시늄을 하면서 막 웃고 아는 체 한다. 어제 봤던 아저씨중 하 나겠군. 처음엔 그냥 천천히 가는 유람선인줄 알았는데 모터보트다. 모터보트가 15분간 압록강 을 시원하게 달린다. 건너편 강변이 바로 옆에 있는데. 갈 수도 없거니와 가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건 왜일까? 강변에 대고 소리친다. 언젠간 변하겠지, 그때 만나자고. 국내성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웅장한 옛 성벽이 남아있을 거라는 것은 혼자만의 환상

75 만주 벌판을 달라고 싶은 젊은 영락의 꿈 / 73 일 뿐. 집안 도시 아파트촌 한 가운데 남아있는 국내성 성벽은 사람 커보다도 낮은 톨담이었다. 돌담 위에는 텃밭이 었고, 음식 쓰레기가 널려있고, 잡초가 무성한 풀숲이다. 아파트 어린아이 들의 놀이터쯤 되려나? 차들이 그 옆을 생생 지나간다. 이젠 뭐라고 할 말 조차 없다. 옛 모습을 찾아 볼 수 없게 된 국내성의 성벽. 힘이 쭉 빠진다. 날씨가 유난히 렵고 잔인하게 느껴진다. 더 위 때문에 허탈감 때문에 사진포즈를 취하면서도 웃을 수가 없다. 웃어? 그래. 웃는다. 옛 고구 려의 수도야. 이다지도 허무하더냐. 어찌 이다지도 처참하게 사라질 수 있느냐. 힘이 없다. 이렇 게 방치해 둔 중국정부에게 분노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슬플뿐. 버스를 타고 가다가 갑자 기 버스안으로 나뭇잎이 우수수 쏟아진다. 가로수를 스치고 지나가 이파리가 환풍구로 떨어지 는 것이다. 하긴 대형차가 지날 일이 거의 없는 길이니... 환도산성에 도착하니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농가에 있는 웬 중국인 꼬마애가 멋도 모르고 우리 일행을 졸졸 따라온다. 우산도 없이 산길을 타고 올라간다. 현지 가이드 언니가 계 속해서 전망대, 읍마지 등을 돌아보며 옛날 이야기도 해주고 설명도 해 주지만 뒤쳐져 걷다 보 니 잘 들리지 않는다. 어제는 앞장서서 마구 뛰어갔는데. 산성이라고 하지만 얼핏 보기에 돌벽 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그저 주위를 분지처럼 둘러싼 험준한 산세가 사람을 압도하고, 분지 가 운데의 비스듬한 언덕과 평야에는 옥수수밭이 들어서 었다. 이곳이 옛 환도산성의 내부인가. 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결까. 마치 분지속의 시골 밭처럼 보이는걸. 환도산성은 주로 한족들에 대한 방어를 위한 전투용 산성이라 한다. 저 산세를 타고 성벽을 쌓는다면 그야말로 완벽한 난 공불락의 요새일 것이다. 그 엄청난 규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저 벙 둘러싼 산의 모습은 도저히 카메라로 찍을 수 없는 것이다. 너무나도 아쉽다. 이런 웅장한 모습을 우리밖에 볼 수 없 다니. 아마 저 산을 타고 이 비탈을 타고 수천 수만의 고구려 군들이 한족을 맞으러 달려나갔을 것이리라. 마음이 벅차오른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 어디로 갔는가. 옛 산성터는 그곳에서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죽어나간 전쟁터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요하고 평화스러운 시골 마을이 다. 아까 그 꼬마애의 집인 듯한 농가에서 어른들이 수박을 사셨다. 중국에서 먹은 수박은 모두 특이하게도 모양이 길쭉하고 줄이 희미하거나 아예 없다. 여기선 이런 속담이 더욱 어울리겠다. 수박에 줄뺀다고 호박되나(썰렁)? 그 꼬마애한태 중국어로 몇 마디 물어봤다. 이젠 중국어로

76 74 / 영락이데아 물어보는게 떨 어렵다. 니지아요우지쿠어런(너네 식구 몇이니)7"이라고 하니 무조건 세 식구란 다. 그런데 아무래도 거짓말 같다. 근처에 다른 집은 없는데 동생이랑 형으로 보이는 애가 마당 에서 논다. 디디(동생)?"라고 물으니까 처음에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나중엔 옆으로 마구 젓는 다. 누가아나. 믿거나말거나. 중국에는유령인구가많다는데. 이제 집안에서 볼 것은 다 둘러봤고 떠날 시간이다. 다시 어제 왔던 길 그대로 통화로 돌아가 는 것이다. 통화에선 다시 밤 기차를 타고 백두산으로 가게 된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길이 건만 그다지 따분하지가 않다. 그간 오빠랑 태준이랑 많이 친해졌다. 둘 다 정말 좋아졌다. 오빠 한태 이첸 내가 별의 별걸 다 물어본다. 까불다가 맞기도 하면서. 버스에서 앞에 계신 어른들은 다 조용한데 마구 떠든다. (그러니까 나중에 내가 지수한테 욕을 먹지) 처음엔 복장 때문에, 대 학생이라는 것 때문에 약간 이질감을 느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오히려 내 또래 남자애 들보다 더 재미있고 어른스러워 좋다. 태준이는 처음엔 말도 없었는데 나중엔 남의 말을 조용히 들으면서 잘 웃는게 내 친구중에 하나랑 판박이라는 생각이 계속 든다(생긴 것까지 닮았다). 가 족끼리만 있었다면 자칫 따분할 뻔했던 여행이지만 이렇게 만난 친구하고 이야기하는 시간은 정말 모든 걸 잊게 만든다. 가다가 들른 휴게소에서 그리고 식당에서 기다리면서. 지금 이 버스 가 어디로 가는지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전에는 중요하지 않다. 이 순간 순간에 나누었던 이야기 들, 그때 보낸 즐거운 시간들은 여행에서 또 하나의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되겠지. 여행 속에서 이러한 친구들을 만나 기쁘다. 여행 속에서 먹 정이 많이 들었다. 앞으로 이틀밖에 시간이 남지 않았다는게 아쉬울 정도로. 통화에서 기차역을 가는 길에 사람들이 길가에서 무언가를 태우고 었다. 가이드 아저씨가 일 년에 한번씩 매년 영혼들에게 종이돈을 태워서 보내주는 의식을 하고 있다고 했다. 오늘은 음력 7월 15 일, 불교에서는 백중날이라고 한다나. 음기가 강한 날이라는데. 보름달은 폈으려나? 그러 고 보니 내일이 8월 15 일 광복절이다. 남북 이산가족들이 만나겠지. 기차역 앞 광장은 중국인들로 바글거린다. 주스를 하나 마셨는데 촌스럽게 달다.80년대 청량 음료 그대로다. 벙 둘러서서 제기차기를 하는 모습이 특이하다. 원래 저렇게 하는건개 아버지 랑 친구분들이 우르르 끼여드신다. (저래도 되는 건가7) 중국인들이랑 주거니 받거니 제기차기를

77 만주 벌판을 달리고 싶은 젊은 영락의 꿈 / 75 한다. 나도 끼여든다. 보니까 제기차기에 일정한 형식이 없다. 킥을 하건 발끝으로 날리건 바닥 에만 안떨어지면 그만이다. 나한태도 제기가 왔는데 계속 헛발질만 한다. 서로 어울려 한참 동 안 차다가 인사를 하고 자리를 댔다. 골목길에서 하는 01 런 전통놀이들이 중국인들이 주로 하는 놀이인가 보다. 낯선 사람이 끼여도 불쾌해 하지 않고, 오히려 반가워하며 어울릴 수 있는 놀이. 스타크나 펌프, 노래방이 아닌, 참 순박하고 건전하게 느껴진다. 자본주의의 물결이 이 시골바 닥에도 밀어닥치면 또 어떻게 될른지. 어제 압록강에서처럼 이곳에서도 경품 게임이 었다. 고리던지기를 했는데 내가 아버지를 졸 라서 시작하니까 다른 사람들도 한다. 은근히 통통 튀기는 것이 잘 맞지 않는다. 하지만 고리던 지는 것 자체가 재미있다. 나중에 이 중국인 아저씨 고리안에 상품이 완전히 들어각지도 않았 는데 두 개를 준다. 인형이랑 필통. 나중에 그 싸구려 필통 이음새 철사에 손가락이 찔려 피가 철철나는 바람에 완전 경을 쳤지만. 그런 것까지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다. 오늘 탄 밤기차는 지난번 것보단 겉으로 보기엔 양호하다. 좀더 깨끗하고. 하지만 물이 거의 안나오는데 무슨 소용이랴. 게다가 같은 칸을 쓰는 사람들이 모두 한국인 단체여행팀이다. 내 또래 여자애들이다. 씻기 경쟁이 얼마나 치열할꼬? 보호대는 가죽끈이 아니라 죄로 된 난간이 다. 하지만 떨어지는 사람 입장으로 봐선 가죽끈이 더 안전하겠다. 기차안에서 이번엔 지금까지 한번도 이야기를 못 해 봤던 3명중 나랑 동갑인 고2짜리랑 얘기를 했다. 오빠랑 태준이랑 지네 끼리 딴 데 가버려서 심심할 결 각오하던 참에 잘됐다. 딴 때 같으면 말을 못걸었겠는데 큰오빠 가 자기 같으면 여행와서 또래 친구랑 얘기하겠다고 자꾸 자리를 만들어준 덕이다. 붙임성 있게 대해주는 큰오빠가 고맙다. 개랑은 아직 서먹해서 별다른 이야기는 안 했지만. 좀 더 친해질 수 있으려나? 약간은 기대도 되고. 8월 15 일 넷째날: 백두산... 감격... 그리고 단군님의 민족 아침부터 공기가 무지 쌀쌀하다. 또 다른 사람들 보다 먼저 일어나 복도를 방황한다. 창밖으 로 보이는 색색 여명이 스쳐가는 나무와 벌판들 사이로 빛을 발한다. 너무나 아름답다. 멍하니

78 76 / 영락이데아 창밖을 구경한다. 이제 내일이면 이 여행도 끝나는가. 왜 떠나기가 싫을까. 이도백하, 백두산 근 처의 이 마을은 반이 한국어 간판이다. 우르르 몰려 지도를 파는 아줌마들, 오토바이 택시보다 도 더 심한 자전거 택시 말로만 듣던 구공탄 굴뚝의 새카만 연기. 회색빛 역의 모습이 심양이나 집안보다도 더 촌동네다. 여기서 우리를 새로이 옮겨다 줄 버스가 기다린다. 지금까지 탄 버스 중 제일 좋은 한국산 좌석버스다. 자리도 넓고 에어컨도 나오고. 중국 여행 며칠만에 촌사람 다 됐다. 새로 만난 현지 가이드 언니는 이번 가이드가 초행이라는데 집안에서 안내해 준 언니에 비해 초보티가 역력하다. 아직 한국말이 서툴러 중국어가 말 도중에 튀어나온다. 곧바로 백두산 이다. 현지에서는 장백산이랴 부르는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장백산이라는 말이 웬지 거슬린다. 우리 민족의 영산인데. 이렇게 반을 잘라먹혀야 하나? 백두산 초입의 나무들은 그 줄기가 하쌓 다. 가이드 언니가 얘기해 준 나무가 하쌓게 된 전설. 지주와 농노계급이 나오는 마르크스주의 식의 진부한 스토리였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확 둘러선 나무들을 보니 왜 이렇게 소름이 끼칠 까? 이야기 에 나오는 여 인의 혼이 나무에 살아 차갑게 숨쉬는 것 같다. 백두산 올라가는 길에 나타난 한식당에서 밥을 먹고 길을 재촉한다. 천지에 갈 일이 은근히 걱정된다. 날씨가 맑아야 천지를 볼 수 있다는데. 단군님! 제발 천지를 보게 해 주세요!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꽂힌다. 아름답다. 삼족오. 고분벽화에서 본 태양의 상징이 하늘을 가로지르며 찬 란한 빛을 내뿜는다. 이곳은 백두산. 고구려의 우리의 하늘이다. 아침 하늘은 시리도록 투명하 고 푸르지만 구름이 군데군데 동동거리는게 팬지 위협스럽다. 공기는 차갑다. 긴 팔을 꺼내 입 어야 할 정도로. 풀숲에 자라있는 야생화를 보니 친구 중에 백두산 가면 야생화 사진 좀 찍어오 라고 했던 친구가 생각난다. 수동 카메라도 없는데 과연 제대로 찍힐지. 필름만 버릴 것 같아 망 설인다. 목대기로 올라가는 초입에 이르자 어느 새 하얀 나무들은 사라지고, 침엽수림이 우거진 다. 여기서 버스는 더 이상 안돼고 지프차로 올라가야 한다. 민족의 영산으로 올라가는 길 답지 않게 붐비는 사람들, 귀청 떨어지게 빽빽대는 차량들 등으로 시장 바닥인양 너무나도 어수선하 다. 암만 백두산에 오르는 사람이 많다지만 이런건 상상도 못했기에 기분이 몹시 불쾌하다. 중 국인들, 이런 식으로 백두산을 어지럽히다니. 장백산이라는 이름의 백두산이 너무나도 낯설고 맥이빠진다.

79 만주 벌판을 달리고 싶은 젊은 영락의 꿈 / 77 6 인에서 10인까지 탈 수 있는 지프차를 타고 드디어 천지를 향해 오르기 시작한다. 이 지프차 를 모는 중국인 아저씨, 차만큼이나 상당히 억세다. 이런 튼튼한 차 아니면 못오를 정도로 바람 도 심하고 길도 구불거리고 차도 거칠게 몬다. 오르기 시작한지 몇분이나 지났을까. 숲이 확 사 라지고 정상의 초원이 눈에 들어온다. 갑자기 내 눈앞에 평생 듣도 보도 못한 별천지가 펼쳐진 다. 나무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탁 트인 넓고 넓은 비탈진 알록달록한 풀밭은 하늘과 이웃하고 비스듬히 미끄러지듯 지상으로 내려간다. 시야가 확 트이면서 먼 산 가까운 경치가 눈으로 쏟 아져 들어온다. 모든 산이 초원 초원이다. 군데군데 풀이 침범 못한 바위들이 조각상처럼 튀어 나와 있다. 구름들은 우리와 동급이거나 바로 머리 위에 있다. 옥색 하늘빛과 에메랄드 초원 빛 이 조화를 이루고. 저 밑으로 까마득히 보이는 산자락. 하늘에 확 트인 경치가 눈부시다. 지금까 지 한번도 올라와 보지 못했던 고도. 알프스 목대기 양치기 초원의 모습이 이런 모습일까? 아니 다. 더 아름답다. 더 신비스렵다. 숨이 턱턱 막혀도 창밖을 내다본다. 또 눈물이 나려 한다. 또 울라고? 천지는 그 초원의 폭대기에 마치 성 같이 서 있었다. 구름에 둘러싸인채. 우리는 운이 좋지 않아 보였다. 아무리 구름에 둘러싸였다 해도 천지의 모습은 희미하게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를 했건만. 정말이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였다. 이쪽 우리가 도착한 봉우리 앞 은 그냥 구름, 구름이었다. 손에 닿을 듯한 허연 장막이었다. 이게 천지라니. 너무나 허망했다. 갑갑하고 마음은 급하다. 제한 시간은 30분. 가장 목대기에 올라가면 혹시나 뭐가 보일까나. 숨 이 턱에 닿아 괴롭지만 필사적으로 가파른 비탈을 오른다. 풀 한포기 없는 발 밑의 돌이 마구 바 스러진다. 안전장치도 하나 없어 까딱하면 저 옆으로 떨어지겠다. 돌 색깔이 노란게 신기하나 볼겨를이 없다. 가장 높은 곳에 거의 다 왔을 때 쯤. 갑자기 함성소리가 들린다. 허연 장막 저편으로 갑자기 옥색 하늘빛이 거짓말처럼 나타난다. 나도 덩달아 비명을 지르며 달려갔다. 가슴이 터질 것 같 다. 그건 기적이었다. 구름 사이에 구멍이 뚫려있었던 것이다. 시야를 까망게 가리는 벽이 순간 적으로 사라지면서 천지의 신비로운 모습이 마술처럼 펼쳐지는 그 짧은 순간! 구름구멍 사이로 들어온 햇빛과 맑고 투명한 하늘빛. 말 그대로 온 천지가 환해진다. 저쪽 봉 우리들의 모습이 너무도 뚜렷한 녹색으로 거울물 속에 정확히 대칭된다.

80 78 / 영락이데아 그 물. 물.물. 정말 푸르고도 갚은 그 물은 잔물결에 떨며 다 OJ=한 빛깔을 만들어 낸다. 이쪽은 열은 하늘색, 저쪽은 깊은 남색. 모두가 푸른 옥빛, 히늘 빛이다. 하늘이 물 속에 들어왔다. 천지 다. 하늘 호수다. 단군님의 얼굴이다. 잠깐 동안 모습을 보여준 그 얼굴. 너무나 경이롭다. 이쪽 저쪽 봉우리에서 너나 할 것 없이 만세를 부르는 모습이 똑똑히 시야에 들어온다. 온 몸이 떨린 다. 감격으로 눈물이 솟구친다. 민족이 시작된 곳, 민족의 영산이다. 신비스러운 이 하늘, 호수는 민족의 영산이다. 다시 천지의 모습이 저 편으로 묻힌 후에도 나는 계속 떨면서 울고 있었다. 아예 눈물이 펑펑 쏟아진다. 아버지와 아저씨를 따라 애국가를 부르면서도 계속 영엉 울었다. 감사합니다. 단군 님. 감사합니다. 가이드 언니가 날 붙잡고 산을 내려가는걸 도와주며 날 보고 웃는다. 나는 이 말 한마디밖에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너무 아름다웠다고. 가이드 언니가 말했다. 목 다시 오라고. 정말이지 다시 오고 싶다. 그땐 걸어서 산을 오르리라. 초원에 주저앉아 보리라. 이번처럼 시간에 쫓기지 않고. 그곳에서 보았던 신비로운 얼굴을 다시 보고 싶다. 오빠가 아칩을 안먹을 때부터 뭔가 좀 심상치 않더니, 감기, 폼살, 배탈 등등의 합병증이라나. 이 오빠가 장백폭포에 오를때 쯤에는 완 전 맛이갔다. 아예 태준이가 뒤에서 밀고 올라간다. 지수는 아스피린 먹고서 재각 낫던데. 지금 은 우리 일행에게 생수가 하나도 없어서 약도 못먹는다. 조금 걱정된다. 폭포까지 올라가야 물 을 플 수 있단다. 장백폭포. 중국에서는 가게에서 파는 생수 외의 물을 마시면 당장 배탈이 나지 만 폭포의 물은 그렇지 않다. 당연하지. 천지에서 흘러나오는 물이니까. 여기서 물을 떠가서 천 지에서 댔다고 애틀한테 말하면 속겠지. 콕. 한참을 걸어야 했기 때문에 다리도 아프고 숨도 갔 지만 경치 하나는 완벽한 절경이다. 우리가 걷는 오솔길 오른쪽은 숲 왼쪽은 절벽이다. 절벽이 햇살을 등지고 거무튀튀하게 보인다. 절벽 위에는 나무도 풀도 없는 화산지형이다. 화산이 흘러 내린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절벽 위에 불쑥불쑥 튀어나온 큰바위 얼굴 위에서 절벽을 타고 내려오는 햇살이 바위의 기묘한 그림자를 절벽에 드리운다. 고개를 꺾고 쳐다봐야 다 보이는 이 거대한 갈색 병풍. 카메라로 찍으려 해도 햇볕이 가로막는다. 뒤에 있는 하늘이 더욱 푸르러 절 벽과 뚜렷하다. 기막히게 신비롭다. 정말이지 웅장하다. 달표면이 저와 같이 생겼을까. 폭포에

81 만주 벌판을 달리고 싶은 젊은 영락의 꿈 / 79 서 내린 물이 계곡을 콸콸 흘러간다. 이런 계곡은 한국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바로 옆에 깎아 지른 절벽이 있고 나무 그늘이 하나도 없는 커다란 U자형의 터. 물살이 강하면서도 그지없이 맑 다. 중국에서 지금까지 본 물중 가장 맑다. 계곡으로 가서 물을 가득 담았다. 물먹는 하마 지수 한태 부지런히 뺏겨가면서. 백두산 천지에서는 두 가지 물이 흐른다고 했다. 뜨거운 옹천수와 차가운 냉수. 온천물에서 아줌마들이 달갈을 익혀 판다. 손을 집어넣어 보니 손이 익겠다. 무엇 보다도 백두산에서 얻고 싶던 건 예전에 어디선가 들은적이 있는 물에 뜨는 돌, 부석이었다. 가 이드 언니가 시간이 촉박하다 하여 둘러볼 새도 없이 내려와 아쉬웠는데 산밑에서도 대야에 띄 워놓고 판다. 마르니 색깔이 하쌓게 변하는게 신기하다. 장백폭포 밑에 있는 온천에 들렀다가 서둘러 다시 출발한다. 이 초보 가이드언니 자꾸 시간이 없다며 빨리빨리를 연발한다. 오후에 별다른 일정도 없으면서. 오늘은 중국 국내선을 타고 심양으로 돌아간다는데 비행기 놓칠까봐 그러나? 아니면 백두산에선 원래 빨리 내려가야 하나? 피곤해서 차안에서 몸이 솜처럼 늘어지 고 맥이 빠진다. 백두산을 뒤로하고 내려오는 길이지만 돌아볼 생각도 나지 않는다. 아침은 숨가쁘게 정신없이 지나간 반면 오후는 무료함의 연속이었다. 지난 3 일간 예정에 맞추 어 착착 진행되던 여행이 갑자기 조금씩 꼬이기 시작했다. 비행기 타는 시간이 두시간 늦춰져 시간이 엄청 많이 남고, 연길로 가는 길에 그만 이놈의 차가 펑크가 난 것이다. 가장 좋은 차라 고 칭찬 해췄더니만.. 한낮에 맹볕 속에서 차바퀴를 임시로 고치느라 김나는 도로에 한참동안 멈춰있다. 잠깐 밖으로 나와 봤다. 가이드 언니가 길가 풀짚에서 혼자 쭈그려앉아 있다. 나도 그 옆으로 갔다. 이곳 가이드들은 다 조선족. 한 민족이지만 다른 국적을 가지고, 사회주의 체제 속 에서 다른 교육을 받고 자라온 사람들. 한번 언니랑 얘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정말 의외였던 것 은 조선족이 스스로를 중국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중국을 우리나라라고 하는게 처음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도 참 바보같다. 조선족이면 당연히 중국 국적을 가졌으 니 중국인이지. 하지만 정말 잊고 싶은 사실이다 만주를 뺏기지만 않았다면. 그래도 언니, 이곳 연변에서 가이드를 하는 것 자체가 어디냐. 젊은 조선족들이 계속 해외로, 한국 등 타 지역으로 빠져나가 이곳은 점점 인구가 줄고 있다는데. 둘이 함께 통하는 마음은 있었다. 한 민족으로서, 빨리 통일이 되어 왕래가 자유로웠으면 하는 마음 등. 내가 이곳 사람들과 오래 안 있어봐서 조

82 80/ 영락이데아 선족들이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이 말을 하고 싶다. 여러분들은 조상 님들의 땅을 지키는 마지막 지킴이들이라고. 잃어버린 만주 땅의 마지막 지킴이로서 부디 앞으 로도 꿋꿋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점심을 먹고 타이어를 본격적으로 수리를 한다. 차가 한참동안이나 멈추어 있자니 곳곳에서 손에 과일, 옥수수 지도책 등을 든 아줌마들이 차를 기웃기웃한다. 북한 지폐와 남한 지폐까지 있다. 누가 옥수수를 하나 사 주니까 아예 떼거리로 달라붙는다. 행색을 보니 영락없이 그런걸 로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들인 듯하다. 창밖을 내자보자니 물건을 쳐들고 펄쩍펄쩍 뛰어가며 하 나 사란다. 이젠 어린아이들까지 내세워 찍끄만 손에 지도책을 들린다. 가이드 언니한테 꽃제비 냐고 물어보니까 분명히 중국인이라는데 한국어로 사요, 사요 라고 한다 II명볕에 그을은건지, 못 씻어서 그런건지 새카닿고 꾀죄죄한 초라한 아이들이 보기가 불쌍하다. 저렇게 삶을 다르게 사는사람도있구나. 벽에 묘한 포스터가 붙어있다. 꽁안이 한 남자를 깔고 뭉게는데 그 남자 손에 들려있는 가위 가 파이프를 자르고 있는 그림이다. 한자로 뭐라고 쓰여 있는데 뭔지 짐작도 못하겠다. 가이드 아저씨한테 물어보니까 땅속에 묻힌 전화선을 끊어 가져가는 사람은 처벌을 받는다는 내용이 다. 꽁. 우리나라 전쟁 직후에나 볼 수 있는 포스터같다. 수리를 끝낸 버스가 용정촌에 도착한 다. 조선족 자치구. 대하소설 토지에도 나오는 땅이다. 가이드 언니의 말에 따르면 한족과 조선 족이 사는 집이나 그들의 땅은 확실히 구분이 된다. 수수밭은 한족의 땅이고 논은 조선족이 경 작하는 곳이다. 한족의 집 지붕이 단순한 A 자 모양인 반면 조선족의 집 지붕은 한옥처럼 처마 끄터머리가 살짝 꺾여 올라가 있다. 광활한 녹색 명야가 둘로 나뀐다. 아름다운 농촌의 모습이 다. 앞에는 조선족의 논, 뒤에는 한족의 밭이 이 있고, 맨 뒤로 야트막한 언덕들이 병풍처럼 늘 어서 었다. 푸른 물결위에 누런 점을 만들며 스쳐지나가는 어미소와 송아지들. 소들이 들길을 자유롭게 거닌다. 삼륜마차가 지나간다. 달리는 차안에서 사진을 찍을 수는 없고. 저 풍경을 그 냥 놓치는게 아쉽다. (오빠는 아직도 맛이 간 상태라 비디오 촬영을 할 생각도 안 한다. 누가 아 프래 킥 그냥.. J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꺾어진 처마, 조선족의 가옥이 눈에 띈다. 하지만 이미 조 선족들은 이 땅을 버리기 시작했다. 마음이 허전하다. 용정을 비롯한 이 지역을 일제시대 항일

83 만주 벌판을 달리고 싶은 젊은 영락의 꿈 I 81 독립투사들의 활동지로 유명한 곳이다. 음악시간에 배운 노래 선구자 의 배경이다. 음악시간에 배울 때는 가락도 단조롭고 촌스러워 보여 가사도 거의 까먹었는데 이곳에서는 그 어떤 다른 노래라도 선구자만큼 분위기를 일깨워 주는 노래는 없다. 일송정 푸른 솔과 천년을 흐르는 해란 강. 강가에서 말 달리던 독립투사들의 영혼이 잠들어 있는 이곳. 실제로 일송정 옛 터와 해란강 을 차를 세워두고 먼 발치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일송정은 일본놈들이 부은 황산으로 인해 말라 죽은지 오래이고, 해란강 역시 한강에 비하면 조그만 강이었지만, 역사의 현장이다. 실제 노래 에 나오는 그곳에 왔다는 감동에 젖는다. 난 일송정과 해란강이 실제로 있는지도 몰랐었다. 하 지만 지금 이 순간,. 그분들이 바로 내 곁에 었다. 이 땅에 기억을 묻고 한가락 노래로서 남아있 는 것이다. 역사책 속에 나오는 용정중학교도 역사 아직까지 문을 연 학교인지 몰랐었다. 이곳 이 윤동주 시인의 모교였다는 것도. 옛 학교 건물은 이미 남아 있지 않다. 학생들이 다니는 건물 은 새로 지은 건물이었고 한쪽에 박물관이 있었다. 박물관 앞에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비석으 로 새겨져 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가슴이 쩡하게 울린다. 이런 곳에서 윤동주를 만날 줄 은 꿈에도 몰랐다. 독립투사들을 수없이 배출해 낸 용정중학교. 이런 곳을 모교로 둔 윤동주 시 인 역시 그의 시에 나온 것처럼 항일정신을 일깨우며 자랐을 것이라. 교내에 있는 박물관에 들 어서자 대기하고 었던 어떤 아가씨가 재빨리 설명을 하며 일행을 안내한다.4개의 남중, 2 개의 여중이 하나로 합쳐져서 태어난 용정중학교는 1920년 개교한 이래 민족의식을 일깨워 주는 교 육으로 수많은 애국지사들을 태어나게 했으며 현재 재학생 1500여명 역시 100% 조선족이라 한다. 윤동주 시인의 사진들을 모아놓은 칸으로 갔다. 교과서에서도 보았었지만 처음 본 사진들 이 정말 많다. 여태껏 교과서에 나왔던 조그만 단 한 장의 사진으로 상상을 해야 했던 윤동주 시 인의 모습. 빛바랜 사진이지만 정말 잘생겼다. 한쪽에는 옥중에 있는 윤동주의 상상화도 었다. 조금 구도가 촌스러운 감은 있지만. 사진 앞에서도 그림 앞에서도 사진을 찍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정말 가슴에 사무친다. 차마 웃을 수가 없다. 용정중학 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축구에 여념이 없다. 옆에 있는 고물 아파트에서 한 아줌마가 한국말로 제 아틀에게 뭐라고 소리친다.7년짜리 신도시 학교에 다니는 나에 비해서, 이토록 민족 역사가 갚은 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정말 부렵다. 이 아이들은 우리 민족에 대해 과연 어떤 생각을

84 82 / 영락이데아 가지고 있을지. 언젠가 모두 자라면 이 만주에서 다 떠나 소멸되진 않을까 걱정된다. 그렇지 않 기만을빈다. 원래 용정촌과 이 중학교는 예정에 없는 것이었다. 오후들어 조금씩 예정이 바뀌기는 했지만 크게 불쾌할 일은 아니었다. 그 가이드 아저씨의 충격 발언이 있기 전까지는. 예정에 따르면 우 리는 연길에서 비행기를 타고 심양으로 가 지금까지 묵었던 호벨 중 최고로 좋은 호벨에 묵을 예정이었다. 지금까지 3 일간 침대칸이나 여관을 방불케 하던 방에서 갔기 때문에 모두 은근히 기대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갑자기 가이드 아저씨가 우리한태 사과를 한다. 연길에서 심양까지 가는 비행기를 관광사 측에서 예약을 해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간신히 구한 것이 장 춘이라고 한다. 저 북쪽으로 빵 돌아가는 밤 비행긴데 거기서 버스를 타고 4시간은 가야 심양에 도착한다고 한다. 두둥이 난다. 그러면 새벽 늦게나 되야 호댈에 도착한단 말인가? 하루도 제대 로 묵는 것이 아니잖아. 모두 막막해서 할 말이 없다. 이제 좀 쉬려나 했더니. 가이드 아저씨, 미 안해서 어쩔 줄 모르고, 현지 가이드 언니도 덩달아 가시방석이다. 참, 저 언니도 이번이 첫 번 째 가이드 경험이라는데 이런 일이 생기냐. 어른분들은 다른 대안을 모색해 보자고 의논하시고, 우리는 아예 축 늘어져버린다. 어머니께서는 그날 저년때 연길에서 먹은 식사가 최악의 식사라 고 하셨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기분이 엉망진창이니 당연하지. 그래도 큰오빠는 아까 차안에서 동생들한태 웃기는 얘기까지 해 주던데 난 지수한태 짜증을 냈다. 언 니로서 자격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오빠가 아침도 점심도 안먹더니 이젠 저녁까지 안먹을라고 한다. 암만 아파도 그렇지, 진짜 이 오빠 제정신이야? 아예 갈 일이 있어? 열받아서 뭐라고 해댔 다. 뭐 솔직히 나도 먹기는 싫었지만. 어른들은 차라리 술이라도 마시는데. 나중에 지수하고 태 준이하고 그렇게 동생들만 달고 밖에 나왔다. 그래도 밖에 나오니 기분이 많이 풀린다. 그래, 어 떻게든 되겠지 뭐. 중국이라는 나라가 원래 그런가 보지 뭐. 이런 것도 하나의 잊지못할 기억 아 니겠냐. 자동차 펑크나고 비행기 놓치고 이런 곳에 낯선 이방인으로 서 었다니. 분명 어제가 보름인데 달은 오늘이 더 밝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광복절이었는데 정말이지 까떻게 잊고 있었 다. 이산가족들은 잘 만났으려나? 잊그제 본 재래시장처렴 흥겹진 않아도 한산한 밤거리는 신도 시에서는 볼 수 없는 정겨움이 느껴진다. 어제 이야기한 고2 남자애는 오늘은 큰오빠가 자리를

85 만주 별판을 달리고 싶은 젊은 영락의 꿈 /83 만들어 줘도 통 얘기를 안한다. 어제 얘기를 해 보니 별로 할 말이 없었다나? 켓, 시시하게끔. 태준이를한쪽으로 데리고 가 뭐라고 뭐라고 궁시령거리니까 이녀석 그냥 웃기만 한다. 진짜 내 친구랑판박이다. 결국 장춘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중국 국내선은 처음 타본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데 기념품가게가 있다. 남자애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산다. 따라가 봤는데 팔찌 같은게 너무 촌 스럽다. 하여간 중국인들 센스하곤 그나마 제일 심플한결 하나 사 봤는데도 영 아니다. 나중에 학교 축제때 오백원 더 붙여서 팔아야지. 행. 비행기 타기 전에 가이드 언니에게 선물로 내가 그 린 만화 하나를 줬다. 초보 가이드 언니에 초보 관광객. 펑크도 많이 났던 하루였지만 그만큼 언 니도 힘들었을테고. 나중에 주소 교환도 했다. 이곳 만주까지 와 조선족 언니 하나와 인연을 맺 게 되어 정말 기쁘다. 안녕, 언니야. 고마웠어. 나중에 한국에 놀러와. 8월 16일 마지막 날: 한국인의 자존심... 그리고 돌아옴, 추억 버스 타고 새벽 4시에 호댈방에 들어와 한 시간 동안 목욕하며 늦장을 부리고 걱우 갔지만 8 시에 다시 기상이었으니 잔 것 같지도 않고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이 호텔 정말 좋지만. 내가 중 국에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한국 경주에 있는 호텔이랑 다를게 뭐야. 크고 깨끗한 방이 허전 하기만 하다. 아침밥을 먹고 다시 찾아온 심양도시를 버스로 가로지른다. 첫날 왔을 땐 한 20-30년은 뒤쳐져 보인다며 신기해 하며 마구 사진을 찍었던 심양 시내이지만 며칠 동안 만주를 헤 매다 와 보니 그래도 번화가라는 생각이 든다. 아침 일정 역시 빠듯했다. 원래는 북릉공원이랑 심양고궁을 관광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시간이 없어 북릉공원은 보지도 않고, 심양고궁만 대충 흩어보고 나와야 했다. 몇 백년 전 만주족이 나라를 창건하며 누루하친지 뭔지하는 사람이 세웠 다는 궁이다. 지금까지 고구려 유적만 돌아봤지 중국 유적은 처음이었지만 웬지 시큰둥하고 볼 마음이 안 생긴다. 총 천연색의 화려한 궁궐이지만 그저 생급스럽고 깊이가 없어 보이는게 차라 리 경복궁이 훨씬 낫겠다 싶다. 어차피 여유있게 볼 시간도 없었지만,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아무런 느낌도 받지 않고 그냥 수박 곁활기식 관광객이 되어 돌아다녔다. 거의 의도적으로 가

86 84 / 영락이데아 이드의 설명도 듣지 않는다. 이곳에서 생긴 중국에 대한 적대감과 만주에 남아있는 우리 민족의 흔적에 대한 슬픈 기억이 나에게 이런 곳에서 고개를 숙이지 말라고 한다. 그저 어줍지 않은 존 심이었을까. 이런 것이 참다운 강한 모습은 아닐텐데. 사진만 계속 찍으며 돌아다녔다. 오빠가 필름을 다 써야 된다나. 아마 정신없이 수도 없이 찍었을꺼다. 이제 오늘로서 모두와 이별이다. 조금이라도 사진을 더 찍고 뛰어다니며 그것을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어느 새 열두시가 다 되 고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야 한다. 대한항공 국제선에 올랐다. 지금까지 우리를 안내해 주었던, 특히 어제 정말 고생했던 가이드 아저씨에게 작별인사를 하며. 처음에 중국에 발을 디 딜 때는 중국 꽁안을 보고 신기해했는데 비행기에 오르자 어서오십시오 하는 한국 승무원들이 반갑다. 어제 탔던 중국 국내선에 비하면 대한항공은 완전 궁궐이다. 어제 탔던 그 비행기는 시 트도 너멀거리고, 무엇보다도 유리창 사이에 낀 머리카락이 충격이었다. (어떻게 거기에 머리카 락이 들어갈 수가 있지?) 비행기가 푼다. 중국을 푼다. 여기는 비행기 앞쪽이라 스크린이 보인 다. 비행기가 요동반도를 훌고 지나가는게 보인다. 창밖을 내다본다. 요동반도의 북쪽 해안선이 눈에 들어온다. 요동반도! 고구려의 옛 영토! 이제 나는 떠나는 것이다. 모든 추억을 뒤로 한 채. 비행기 안에서 뮤직비디오가나온다. 하얀 얼굴의 댄스가수들이 화려한춤을춘다. 그동안새카 만 얼굴의 중국사람들만 보다가 갑자기 가수들을 보니 정말 이쁘다. 태크노풍, 발라드 풍의 신 세대 노래에 숨이 확 트인다. 앞으로 가수들을 꽤 좋아할 것 같다. 중국에서 한국가수가 그렇게 인기라는 말을 들었으니. 어느새 창밖으로 오밀조밀한 산자락과 꾸불꾸불한 도로, 건물들이 내 려다보인다. 벌써 한국땅이다. 그동안 널찍한 중국 땅덩이만 보다가 이런 풍경을 보니 너무 신 기하다. 작지만 아기자기하고 너무 예쁘다. 우리의 땅 한반도. 비행기가 착륙 순서를 기다리느 라 천천히 선회를 한다. 무언가 보일 것 같아 뚫어지게 창밖을 바라봤다. 오뼈}야. 저기 좀봐, 일산신도시다 1" 하쌓게 솟은 아파트들, 우리 통네 일산이 창밖에 보인다. 공항에서 드디어 헤어질 시간이 됐 다. 너무 아쉽다. 계속 마음이 허전하다. 큰오빠가 인사를 하면서, 내년은 내가 고3이니 안되지 만 대학 들어가서 다시 보자고 한다. 그리고 기행문을 써서 꼭 보내 달라고 했다. 아버지 친구분 께서 그러신다. 첫 경험은 언제나 명생 기억에 남는 것이라고. 나한태 이 중국, 만주여행은 그

87 만주 벌판을 달리고 싶은 젊은 영락의 꿈 / 85 이상인 것 같다. 아무데서나 펑펑 울었던 울보에다 출량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날 좋게 봐 주셨던 어른분들. 오빠랑 태준이하고는 만날 때마다 인사를 했다. 오빠한태 비디오 촬영한거 보내달라 고 볼 때마다 얘기를 했다. 뭔가가 왜 이리 아쉽고 허전할까. 그동안 든 정 때문일까. 하지만 이 번 여행에서 보냈던 즐거웠던 모든 순간들은. 보석같은 추억이 되리라 믿는다. 반드시... 마지막 으로 한번 획 손을 흔들고는 공항 밖으로 가족들이 가는 쪽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갔다. 한국이 늘 후진국이다, 어디어디보다 못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곳 만주를 한번 와 봐 야 한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중국보다 훨씬 작은 땅덩어리에 살지만 군사지역 외에는 사진도 마음대로 찍을 수 있는 자유로운 땅 한국 비교적 골고루 잘 살고 훨씬 깨끗한 이 한국. 물론 중 국의 북경, 상해 등이 휘황찬란하다는 얘기는 들었다. 하지만 중국사람 모두가 그렇게 사는건 아니지 않는가. 타일바닥에 풀 기르는 섬양 활주로에 비해 김포공항은 얼마나 깔끔하고, 다니는 비행기도 얼마나 많다고. 무엇보다 반만년 이상의 세월을 저 거대한 땅덩어리와 대립하면서도 꿋꿋이 살아온 우리 민족의 역사를 보라. 지금은 잃어버린 땅이지만 저 만주벌판에서 조상님들 의 흔적을. 그분들의 영혼을, 그분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단군님의 얼굴을 보았다. 남북이 화해를 하는 이 시점. 우리 민족의 미래는 밝다고 믿는다. 한국인이건, 북한 사람이건, 중국조선 족이건, 언젠간 하나될 그날, 천지를 북을 통해 올라갈 그날을, 아버지 말씀대로 기차타고 압록 강을 건너 만주로 갈 그날을 그날이 반드시 올 것을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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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영락이데아 / 87 한반도에 혔가 모이고 있다 홍성태 영진전문대학 전자정보계열 교수, 이학박사 영락회 대구지구 회원 전국 주문식교육추진협의회 회장 이 글은 우리민족의 우수성과 무한한 발전가능성을 정신과학적 입장에서 설명하고 있는 글로서, 서울 대학교 이충웅 교수의 저서인 한반도에 기가 모이고 있다 를 참조하여 인용한 글이다. 광개토대왕의 이염에 많은 참고가 될 것으로 보여 특별히 저자의 허락을 받고 편집하여 이번 호에 게 재한다. 이충웅교수는 현재 서울대학교 전기 컴퓨터공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계시면서 뉴미디어통신공동연구소 소장 및 한국 정신과학 학회 회장으로 역임하고 계신다. 이번 영략이데아 저 13 호에 글을 게재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신 이충웅교수님께 김이 감사드립니다. -편집자주- 폭차 1. 서론 ) 氣 란 잉) 백두산과 한국의 氣 동북아시 아의 氣 ) 한국의 氣 한국의 운은 대상승기 ( 大 上 昇 期 )에 있다 잉) 중국의 氣 중국의 氣 가 흩어지는 조짐이 보인다 ) 일본의 氣... 일본의 氣 가 쩍이는 조짐이 보인다 위대한 쥬신족( 朝 蘇 族 ) 결론...

90 88 I 영락이데아 한반도에 憲 가 모이고 있다 1. 서 론 1) 氣 란 1950년에 발발한 한국동란에 참전했던 UN군이나 중공군 중에서 다시 한국에 와 본 사람은 한국의 발전상을 보고 너나 할 것 없이 한국에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기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한국 사람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한 당연 한 결과라고 행}는 사람도 있다. 돌이켜보건대 7.1유당시대에 미국의 1 억 달러 무상원조가 당시 국가세입의 80%를 차지하였으며, 이것으로 3, 000만 동포가 1년간 살았으니 그 당시 선진국 사 람의 눈에는 한국 사람의 사는 형편이 요사이의 소말리아나 루안다 정도로 보였을 것이다. 1962년도한국의 1인당 GNP가 82달러였던 것이 오늘의 거리에는고충빌딩이 즐비하고우리 가 만든 자동차의 홍수로 인한 교통체증에 시달리는 등 한국은 미국이 부렵지 않은 풍요로운 나 라가 되었다. 이것은 인류역사상 가장 발전속도가 빨라 세계의 이목을 꿀고 있다. 이러한 놀라운 현상은 우리가 생각해 보아도 이상하기만 하다. 그도 그렬 것이 자본, 기술, 자 원 및 고급인력, 국가의 기반시설이 전혀 없었던 한국이 어떻게 해서 이렇게 짧은 기간에 급성 장하여 천양지차C 天 壞 之 差 )의 변혁을 가져올 수 있었는지 잘 알 수가 없다. 이것의 근본적인 원 인은 한반도에 氣 가 모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o따 이것을 부정하는 한국 사람은 한 사람도없을것이다. 우리말에는 氣 가 세다, 氣 가 막힌다, 氣 를 모은다 등 氣 라는 글자가 들어 있는 문구가 유난히 많다. 이 지구상의 만물은 근본적으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에너지인 천기( 天 氣 : 陽 혜와 땅으 로부터 올라오는 지기( 地 氣 : 陰 뤘가 지구표면에서 만나 조화를 부려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해서 틀린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달은 천기를 아무리 받아도 지기가 없으므로 달에는 氣 가 생동하는 생물은 전혀 없다. 천기와 지기가 모여 뭉쳐서 조화를 부려 사람도 되고 나무도 되고 새도 되어

91 한반도에 氣 가 모이고 있다 / 89 우리가 구체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생물이 된다. 새벽에 음기가 걷히고 해가 떠올라 양기가 퍼 지면 모든 동물과 식물이 잠에서 깨어나 활동을 하다가 해가 지고 음기가 뒤덮이면 모든 동 식 물이 활동을 정지하여 몸을 웅츠리고 휴식에 들어간다. 이것은 천기가 동 식물에 주고 있는 영 향의 한 실례를 들어 본 것이다. 오늘날 과학이 아무리 발달했다고 해도 과학은 아직 초보단계에 있다. 천기( 天 氣 : 햇빛, 전 파, 우주선 등 하늘에서 내려오는 모든 에너지)와 지기( 地 氣 : 땅, 수분, 지열, 거름 등)가 어떻게 서로 작용하여, 감자가 되고 쌀이 되고, 사과가 되는지 우리는 아직 구체적으로 잘 모른다. 우리 는 아직 광합성( 光 合 成 )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모른다. 따라서 우리는 공장에서 광합성을 이용 하여 감자, 고구마, 땅콩을 생산할 능력이 전혀 없다. 사람이 죽거나 나무가 죽으면 氣 가 흩어져 우주공간으로 돌아가 다른 형태의 氣 (에너지)로 변한다. 따라서 우주공간에 들어 있는 에너지의 총량, 즉 우주공간에 차 있는 氣 의 절대량은 일정하다. 2) 백두산과 한국의 훨풍 백두산(면 頭 山 )은 한민족(쥬신족)의 영산이며, 한민족은 백두산의 정기를 타고났다. 그래서 남 북이 갈라져 자유로운 왕래가 끊어진 지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백두산을 그리는 정은 더욱 간절하다.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영산일 뿐만 아니라 천하의 명승지인 것은 한민족의 氣 의 원천 ( 源 꼈)인 천지가 있기 때문이다. 천지 주위를 둘러싼 167M 의 봉우리들이 기암괴석으로 단애를 이 루며, 천지에 뿌리를 박고 있어 마치 천지가 이들 봉우리를 이고 있는 듯한 신비감과 함께 경외감 마저 주고 있다. 천지의 물빛은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이며 그 무슨 괴력이 잠재운 듯 수면은 그렇 게 잠잠할 수가 없다. 육지와 맞닿은 부분의 호수면의 물빛은 화산호( 火 山 湖 )가 그러하듯 연초록 이 완연해 그 또한 천지의 신비감을 더해 주고 있다. 1년 중에 270여 일은 구름, 안개 및 바람에 휩싸여 그 본색을 감추기 일쑤인 천지는 때로는 실안개가 호수면을 잔잔하게 덮었다가 회오리바 람에 용트림하기도 하여 신비의 극치를 더해 준다. 열 번 올라가면 한 번 정도 겨우 진면모를 볼 수있다.

92 90/ 영락이데아 백두산의 위용은 광대함에 있다. 백두산을 덮고 있는 대현무암( 大 玄 武 岩 ) 바다는 한반도 북부의 심성암대( 深 成 岩 帶 )를 덮어 개마고원을 이루고 다시 동남으로 흘러 마천령산맥이 동해의 해저로 잠겼다가, 드디어 그 두각을 드러내어 울릉도, 독도를 이룬다. 한편 중국 쪽으로 뻗은 장백산맥을 멸리 길림, 통화 근처까지 퍼져, 중국 동북부의 대밀림지대의 밑으로 그 행방을 감춘다. 백두산은 제 3세기말의 화산활동에 의해서 종모양 (tholoid) 의 정구( 頂 퍼가 융기 峰 웹하여 탄생 하였으며, 그 후의 폭발의 영향으로 정상의 중앙부가 함몰하여 Caldera호 천지가 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지의 모양은 거의 원형에 가깝고 이것을 포옹하듯이 천지 수면보다 500~600m 높은 화구벽( 火 口 뽑이 둘러싸고 있다. 이 화산암에 독특한 다채로운 그림자를 호면에 드리워 유 현신비(뼈 玄 懶 )의 분위기를 주고 있다. 백두산은 먼 옛날부터 한민족의 건국신화의 영산설( 靈 山 흙에을 낳고 었다. 1981년에 중국과학원이 백두산을 조사 연구한 것을 발표한 바에 의하면 천 지 수면의 연간 평균표고는 해발 2J55m 천지의 둘레는 1만 3JOOm 제일 갚은 곳이 373m이 다. 또한 천지의 모양은 타원이고 천지의 남북의 길이는 4. 85km 동서의 폭은 3. 35km이다. 백 두산의 화구벽을 이루고 있는 암릉( 岩 權 의 표고는 해발 2.700m 전후이며 남변( 南 邊 에 제일 높 은 2, 749.6m의 장군봉 將 軍 峰, 중국에서는 면 頭 峰 이라 함)이 한층 더 높이 솟고 있다. 한편 회구 벽이 북변은 갈라져 달문( 門 )을 이루며 천지의 밑바닥에서 용출되는 천지물은 이 달문을 통하여 넘쳐 계곡으로 1.2km 흘러 장엄하고 웅장한 장백폭포( 長 되 爆 布, 폭포높이 68m)를 이루며, 이 우 람하고 세찬 폭포물이 이도백하( 二 道 白 河 )로 흐르다가 다시 북류하여 이도강( 二 道 江 )과 합류하여 송화강의 원류를 이룬다. 백두산은 만주 쪽에서 보면 외관은 완만한 경사를 이룬 산의 웅자를 하 고 있다. 산복( 山 劇 은 회백색의 경석질( 輕 石 質 )의 모래와 자갈층으로 덮여 었으므로 멀리서 관망 하여 거뭇거뭇한 산록( 山 麗 )의 삼림대앓 林 帶 ) 위로 솟아올라 하쌓게 빛나 보인다. 조선왕조실록 에 의하면 천지가 현재의 모습을 드러낸 것은 1702년 4월 14 일 세 번째의 화산 폭발이 있는 다음이었다. 실록에 나타난 제 1차 화산폭발은 1597년 8월이었고, 2차는 1668년 4 월로 백두산에 화산재가 비처럼 내렸다는 기록이 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여러 번의 화산활동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현재도 백두산은 화산활동을 미약하게 하고 있다. 그 증거로 천지 호수 안과 장백폭포 밑 500m 아래에는 82t 의 노천온천인 유황천이 솟고 있다. 최근에는

93 한반도에 氣 가 모이고 있다 / 91 백두산의 화산활동의 여러 가지 정후가관측되어 백두산이 제 4차폭발이 가까운장래에 있을 것으로 예측되어 90년대에 들어와서 백두산의 정기가 점점 강력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백두산에서 발생하는 氣 (에너지)를 생각해 본다. 우선 백두산의 천지에 들어 있는 물의 위치에너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천지의 물의 무게를 계산해 보기로 한다. 계산을 간단히 하기 위 하여 천지의 모양을 직경이 4km인 원통으로 보고 천지의 평균갚이를 300m라고 하면 천지 속 에 담겨 있는 물의 무게는 약40 억 t이 된다. 이 40 억 t의 물의 무게가 바다수면에서 2,000m 떠 있는 것으로 보면, 천지 물이 갖고 있는 위치에너지는 약100조 마력, 즉 12 억 마리의 말이 하루 (24시간) 일하는 에너지, 또는 100W의 전구 90 억 개를 하루 켜놓을 수 있는 에너지가 된다. 이 에너지는 현재 한국의 전력발전량 3, 300만kW의 전력을 27일간이나 쓸 수 있는 엄청난 양이다. 백두산이 장백폭포를 통하여 공급하는 수량은 연간 300여 억 t이며,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방 사상으로 뻗은 송화강, 압록강, 두만강의 수계( 水 系 )는 한반도의 북부와 만주지방의 산야를 적 시며 흘러 한반도에 지기를 더하여 준다. 장백폭포는 초당 약 t의 물을 쏟아내고 있다. 백 두산 천지의 수심 300m의 밑에서 초당 t의 물이 솟아올라 장빽폭포를 이루는 이 에너지 를 전력으로 환산하면 30만kW가 된다. 즉 장백폭포를 인공적으로 실현한다면 30만kW이상의 전력이 소요된다. 이것을 연간 소요전력으로 환산하면 약 10조kW의 막대한 에너지가 된다. 이상은 백두산이 발생하는 물의 에너지( 氣 )에 관한 설명이었으나 백두산이 품고 있으면서 발 생하는 열의 에너지(뤘에 관해서 관찰해 본다. 장백폭포를 뒤로하고 600m정도 내려오다 길 오 른쪽 해발 2, 000m되는 곳에 이르면 온천의 수증기가 뭉게뭉게 뽀쌓게 피어오르고 유황냄새가 코를 찔러 관광객의 눈길을 끌고 있다. 백두산의 화산활동과 관련 있는 온천들은 천지 북쪽으로 약 1, 000k마의 면적에 100여 개가 있으며, 특히 장백폭포에서 백두산 입구인 이도백하에 이르는 깊은 계곡과 주위의 13개 온천들은 이 계곡과 거의 평행하게 분포되어 있어 이 지역이 지질 구 조적으로 열기의 혈(1\)이 많은 곳임을 알 수 았다. 높은 해발고도에도 불구하고 백두산에 높은 온도의 온천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천지 밑에는 열의 氣 (에너지)를 공급하는 열기원( 熱 氣 源 )이 존재함을 시사한다. 특히 천지표면은 추운 겨울 철에 꽁꽁 얼어붙지만 세 군데만은 열지 않는다. 또 여름철에도 천지 수면의 온도를 측정해 보

94 92 / 영락이데아 면 곳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으로 미루어 천지 밑에서 뜨거운 대량의 온천수가 계속 용출하고 있음을알수있다. 중국의 지진관측소가 발표한 바에 의하면 1973년 4월에 백두산 천지의 북쪽 약 20km 지점에 서 리히터 지진계로 진도 2.1의 지진이 발생했고 같은 해 6월에도 천지 동쪽 약 20km 떨어진 곳에서 진도 2.5의 지진이 있었다. 또한 최근 진원( 震 源 )이 백두산 천지 lokm 인근까지 접근하 고 있으며, 진도 1~2.5급의 지진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1994년 11월에도 중국 신화사 통신은 최근 2년간 백두산 천지 심저부에서 화산진동을 감지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백두산의 화 산활동을 수직으로 살펴보면 백두산 천지 밑 약 60km 깊이의 상부 맨틀 암석 중에 있는 방사능 원소들이 붕괴하면서 발생한 열에 의하여 암석들이 녹아서 약 C 의 용융물질 懶 顧 物 質 )을 만든다.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백두산 천지는 100조 마력 이상의 물의 에너지( 水 氣 )가 발생하 고 천지의 밑에서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의 막대한 열 에너지(화기)가 발생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백두산은 수기(춤)와 화기(~)가 융합한 태극의 氣 (에너지)가 용솟음쳐 분출하여 백두산에 연결된 산맥을 통하여 한반도 구석구석까지 공급되고 었다. 백두산을 큰 나무의 뿌리 ( 氣 의 供 給 源 )로 본다면 태백산맥 등의 큰 산맥은 큰 나무의 대간( 大 幹 )에 비유되며 대간의 끝에 달린 작은 나뭇가지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듯이 우리가 모여 사는 곳은 모두 대간산맥에서 뻗어 나온 소산맥의 끝에 있다. 열매가 큰 나무의 대간에 열리지 못하듯이 우리는 큰 산맥 속에 서는 살 수 없다. 따라서 氣 의 원천인 백두산에서 대산맥을 통하여 공급되는 氣 를 받아 소산맥 끝에 맺혀 모여 사는 우리는 백두산의 정기를 타고났다고 아니할 수 없다. 2. 동북아시아의 훨 1) 한국의 옳 서두에서도 말했지만 우리말에는 氣 라는 글자가 들어 있는 단어가 참 많다. 氣 가 세다." 氣 가 통한다긴 氣 가 차다 氣 가 막힌다" 氣 를 모은다 등 그 예를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

95 한반도에 氣 가 모이고 있다 / 93 이다. 우리는 옛날부터 氣 라는 말을 써왔으면서도 氣 가 무엇인지 꼬집어서 구체적으로 말하라고 하면 선뭇 설명하기 어려움을 느낀다. 또 큰 인물이 나오면 그 인물이 태어난 곳의 산의 이름을 따서 아무개는 무슨무슨 산의 정기( 精 氣 j를 타고났다고 말한다. 사람 개인을 말할 때는 무슨 산의 정기를 타고났다고 하지만 한국 사람 전체를 말할 때는 백두산의 정기를 타고난 민족이라고 말 한다. 이상하게도 이러한 표현을 시용하는 데 대해서 아무도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없다. 그리고 우리 선조들은 예부터 지도를 그릴 때 산맥을 세밀하게 그렸으나 산의 높이에는 관심 이 없어서 산의 높이를 지도에 표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대동여지도 에는 서양지도에서와 같이 등고선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서양사람은 산맥의 흐름에는 관심이 없고 산의 높이에만 관심이 었다. 우리 조상들께서 이와 같이 산맥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산맥으로 氣 가 흐르고 있다고 생 각했기때문이다. 여기서 氣 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자. 氣 는 에너지가 우주 변화법칙에 따라 그 상태를 바 꾸어 가면서 서서히 순환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氣 는 에너지의 흐름이다. 아인슈타인의 에너지 공식 E = mc 2 (단 E=에너지 m=질량 c=광속)에서 보는 바와 같이 어떤 질량이라도 에 너지화될 수 있으므로 에너지의 종류는 수만 가지이다. 에너지( 氣 j가 뭉치면 물질이 되고, 氣 가 흩어지변 에너지가 된다. 그 에너지가 우리가 잘 아는 물리적 화학적인 에너지일 경우에는 우 리는 구체적으로 관찰, 측정할 수 있고 그 에너지를 이용하기도 한다. 우리가 모르는 상태로 있 는 에너지는 우리는 만질 수도 없고 관찰할 수도 없으며 그것을 이용할 수도 없다. 이 우주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에너지는 10여 가지밖에 안 되고 우리가 잘 모르는 형태로 있는 에너지가 대 부분이다. 그러면 氣 는 氣 인데 정기( 精 氣 j는 무엇을 뭇하는지 생각해 보기로 한다. 정( 精 )은 쌀, 즉 벼가 푸른 상태에 있음을 뭇한다. 벼가 푸른 상태에 있을 때 가장 힘이 강하고, 누렇게 되면 氣 가 빠 져 고개를 들 힘조차 없다. 다시 말해서 氣 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세어졌다 약해졌다 하는데 氣 가 최강상태에 있을 때의 氣 를 정기라 한다. 따라서 백두산의 정기라고 하면 백두산의 氣, 즉 백 두산의 에너지가 가장 왕성할 때를 뭇한다. 앞에서 우리가 왜 백두산의 정기를 받아 태어난 민족인지를 설명하였다. 그러면 이번에는 금오

96 94 / 영락이데아 산( 金 烏 山 )의 정기를 타고난 고 박정희( 朴 ie 熙 ) 대통령을 생각해 보기로 한다. 금오( 金 烏 )란 얼굴 이 폼체보다 덜 까만 까마귀를 말한다. 박 대통령의 얼굴을 잘 들여다보면 광대뼈가 나오고, 입 부분이 약간 뾰족하면서 앞으로 튀어나와 까마귀 얼굴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박 대통령을 가까 이서 본 사람들은 금오라는 글자가 의미동}듯이 몸체가 얼굴보다 더 까망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는 까마귀는 머리가 나쁘고 재수 없는 불길한 흉조로 생각하지만 실은 까마귀는 알고 보면 새들 의 영장( 靈 長 )이다. 새들 중에서 까마귀만이 자기 어미가 노쇠하여 거동을 못하게 되면 어미를 집에 모셔놓고 먹이를 구해 다가 봉양한다. 이런 연유에서 까마귀를 반포지효( 反 뼈 之 孝 )의 새 또 는 반포조( 反 뼈 鳥 )라 한다. 까마귀가 울면 사람이 죽는다고 사람들이 싫어하지만 실은 까마귀는 영물이므로 사람이 죽을 것을 미라 예감하고 사람에게 알려주는 것이지 까마귀가 울기 때문에 사람이 죽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박 대통령은 영물인 까마귀 산인 금오산의 정기를 받아 최소한 도 10년 이상 앞을 내다보고 국사를 계획 시행하였으며 그의 예측은 모두 잘 들어맞아 오늘날 한국은세계 180여 나라중에서 국세가랭킹 10위권에 드는작은거인이 되었다. 이상은 금오산의 정기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미친 영향을 기술한 것이나, 박 대통령의 공과 ( 功 過 )에 관해서는 별도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백두산의 정기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생각해 보기로 한다. 백두산을 거대한교류발전기에 대응시키고 백두산에서 뻗어 내려간산맥, 즉 백두대간을송전 선로에 대응시켜 공학에서 잘 쓰는 유추법 (analogy method)을 이용하여 백두산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기로 한다. 백두산에서 시작된 태백산맥은 영남지방의 남단에서 끊어 지고 태백산맥에서 갈라진 소백산맥은 호남지방의 남단에서 끊어진다. 그런데 전기에서는 항상 송전선이 끊어진 끝단의 전압이 제일 높다. 끊어진 부분이 뾰족할수록 끝단에서 나오는 전계( 電 界 )는 강해진다. 따라서 전기스파크는 항상 뾰족한 끝에서만 난다. 끝이 뭉묵하게 하면 전기스 파크가 안 난다. 이러한 전기스파크의 발생현상을 유추법으로 보면 한반도의 남단에 사는 사람 은 氣 가 세다. 우리는 경상남도 전라남도 사람들의 氣 가 세다는 것을 경험상 잘 알고 있다. 삼 국시대에 작은 신라가 큰 고구려를 이겨 끝까지 살아남고 6.25 때 대구 부산이 끝까지 벼틴

97 한반도에 氣 가 모이고 있다 / 95 것도이런 연유에서라고볼수있다. 그러면 백두산의 氣 의 변화주기, 즉 한반도에 발생한 氣 의 변화주기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최근에 한반도의 氣 가 최저상태에 있었던 때가 6.25 동란이 발발했던 1950년이라고 볼 수 있 다. 여기서 다시 과거로 올라가면 1592년 임진왜란이 나던 때이며 더 거슬러 올라가면 몽골의 1차 침략이 있었던 1231년이었고, 더 과거로 가면 고구려와 백제가 패망하고 기훤, 양길, 유긍 순, 청길, 견훤 등이 사방에서 난을 일으커던 889년에 氣 가 최소가 되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氣 의 최저 상태와 최저상태와의 시간간격이 週 期 )이 약 360년인데 그 중 180년은 氣 가 상승하 고 나머지 180년은 氣 가 하강한다. 최근에 한국의 氣 는 1950년부터 올라가기 시착하여 이미 47 년이 지났다. 따라서 앞으로 약 130년은 氣 가 상승하게 되어 있으므로 21세기는 한국의 氣 가 주 도하는 세기가 되는 것이 명백하다. 그러나 성수대교가 끊어지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는 등 참사가 잇달아 발생하고 전직 대통령 이 돈을 꿀어 모으고 경제가 어수선한데 그 무슨 엉터리 같은 소리를 하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 다. 그러나 여러 가지 참사(바다 하늘 땅에서)가 시리즈로 일어나는 것은 한국의 2000년대의 氣 의 상승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이런 참사가 발생하는 근본원인은, 소말리아나 르완다와 같이 낮은 레벨에 있었던 한국을 30여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서구 제국이 200 여 년에 걸쳐 쌓 아올린 수준으로 급격하게 꿀어올린 데 있다. 다시 말해서 한국에 氣 가 막 모여들어 끓는 현상이다. 즉 가마솥에 쌀을 안치고 불을 때어 밥 을 지을 때 일어나는 현상과 같다. 밥이 되려면 먼저 불의 氣 가 가마솥에 집중되고 밥이 막 끓어 야 한다. 불을 너무 세게 때면 증기가 솥뚜껑을 들썩들썩 밀어 올리면서 밥물이 밖으로 튀어나 오기도 한다. 그러다가 끓는 현상이 잦아지고 뜸이 들어 맛있는 밥이 된다. 즉 꼬리를 물고 참사 가 일어나고 전직 두 대통령이 정신 없이 마구잡이로 돈을 긁어모은 것도 2000년대에 한국이 세계의 중심이 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펼연적인 현상이며 이것이 한국이 세계를 선도하는 나 라가 되는 것을 방해하지는 못한다. 인간도 분명히 자연의 일부이므로 식물이나 동물처럼 천기앉 氣 : 陽 )와 지기( 地 氣 : 陰 )의 영 향을 받아 氣 가 강해지기도 하고 약해지기도 한다. 따라서 나라가 강성하고 발전하려면 그 나라

98 96/ 영락이데아 가 천기와 지기의 조화작용의 중심부에 들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氣 의 중심은 6.000년 전에 대주기( 大 週 期 )의 정점이 백두산을 중심으로 존재하다 가 여기서 출발하여 점차적으로 만주, 중국대륙, 몽골을 거쳐 그리스 반도, 이탈리아 반도, 이베 리아 반도, 영국 등의 순으로 구주를 옮겨가고 그 다음에 미대륙으로 옮겨져 목하 일본을 거쳐 한반도로 들어오고 었다. 이 氣 의 중심은 우주공간에 있는 성좌와 지구와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생긴다. 우주의 성좌는 주기적으로 서서허 변한다. 천기와 지기의 상호작용의 중심은 2, 000년 대 초에 6, 000년 만에 다시 한반도에 들어온다. 따라서 1996년을 기점으로 남북을 가로막고 있 는장벽이 무너지는조짐이 내부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남과북이 하나가되면, 만주의 200 만동포, 시베리아의 50만동포, 이 지역의 무진장한유전, 철, 석탄등의 지하자원, 양질의 인 력자원이 통일된 한국의 영향권에 들어오게 되며, 氣 의 중심에 있는 한국은 다시 한번 대도약을 하여 세계를 주도하게 될 것이다. 통일이 되어 만주 시베리아까지 氣 가 미치는 영역이 확장되 더라도 氣 는 한반도의 끝이 제일 강하므로 계속해서 남한이 이니셔티브를 쥐게 될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명심할 것은 한국의 氣 의 상승과 더불어 한국의 운세가 올라가고 있으므로 무 슨 일이든지 성심을 다하여 열심히 하기만 하면 다 잘 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어떤 일이 성사가 되려면 우선 인간의 의욕과 노력이 있어야 하고 그 다음은 하늘이 돕고 땅이 도와야 한 다. 인간의 힘만으로는 일이 안 된다. 우리는 한반도에 모여드는 氣 를 선용( 善 用 )하여, 모든 사 람이 행복하게 잘 살도록 연구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 말해서 氣 에는 물질적인 것 과 정신적인 것이 었다. 전자를 X축% 面 下 ), 후자를 Y축( 形 面 上 )으로 볼 때, X축(물질문명)과 Y축(정신문화)의 길이가 같아 조화를 이룰 때 이 두 축이 이루는 면적이 정사각형이 되어 최대 가 되어 인간이 가장 행복하게 된다. 이 두 축 중에서 어느 한 쪽이 더 길면 길수록 인간은 더욱 더 불행해진다. 우리는 한민족의 행복을 위해서 이 점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2000년대에 들어가면 한반도는 지구상의 氣 의 중심이 되어 남북의 통일은 물론, 氣 과학( 最 失 端 ) 기술, 예술, 윤리도덕 및 정치 경제 사회면에서 세계를 주도하게 될 것이다. 한국에는 모 든 분야에서 氣 가 강한 사람이 많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과학기술의 창조, 예술의 창조는 氣 가 강한 사람이 하는 일이다. 원래 창조적인 일은 고집이 세고, 자기주장이 강하고, 氣 가 세어 추진

99 한반도에 氣 가 모이고 있다 / 97 력이 강하고, 머리 속에서 氣 가 번득이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 음악분야를 보면 정명화, 정명훈, 장영주, 조수미 등,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이휘소, 조장희 등 세계적인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을 보아도 이미 氣 가 한반도로 들어오기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과학기 술의 센터인 대덕연구단지에 모여 있는 첨단과학을 연구하는과학 기술자들이 중심이 되어 과 감히 미래첨단과학이라고 치부되는 氣 과학의 연구개발에 도전하는 정신과학회( 氣 科 學 學 會 )를 설립한 것도 그런 조짐의 하나로 볼 수 었다. 이 지구상의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 및 무생물은 하늘로부터 오는 에너지, 즉 천기 g 氣 : 陽 )와 땅으로부터의 지기( 地 氣 : 陰 )가 서로 만나 조화를 부려 뭉쳐서 형성되었다. 만일에 지구 가 달이나 화성처럼 싸늘하게 죽어 지기가 안 나온다면 지구는 천기를 받더라도 인간을 비롯한 동식물을 생성하지 못하였을 것이 명약관화( 明 若 觀 火 )하다. 새벽에 음기가 걷히고 해가 떠올라 양기가 퍼지면 모든 동물과 식물이 잠에서 깨어나 활동을 하다가 해가 지고 음기가 뒤덮이면 모 든 동식물이 활동을 정지하고 몽을 움츠리고 휴식에 들어간다. 이것은 천기와 지기가 동식물에 주고 있는 영향의 한 실례를 들어 본 것이다. 그러면 한반도 氣 의 기저상( 基 底 相 )을 살펴보기로 한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氣 를 받더라도 氣 를 받는 위치에 따라 그 효과는 다르다 한반도에서 천기( 天 氣 : 陽 )를 받으면 지기( 地 氣 : 陰 )와 융합하여 인간을 비롯한 만물에 氣 가 넘쳐흐르게 되고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 받으면 그렇지 못하다. 한반도에서 태어난 사람은 氣 가 넘쳐흘러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공부 또는 일을 다이내 믹하게 한다. 데모를 해도 조용히 못하고 화염병을 던지거나 큰 돌을 던져야 직성이 풀린다. 한 국에서는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하므로 국가에서 이를 억제하기 위하여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가 에서 처벌을 해야만 했다. 또 일을 해도 3교대로 24시간 쉬지 않고 열심히 하여 자유당 시대에 1인당 GNP가 100달러가 못되었던 것이 오늘날에는 1인당 GNP가 엄청난 기적을 낳게 되었다. 일제로부터 해방되었을 당시 우리나라에는 고급인력 기술 자본 자원 등 모두가 거의 제로 상 태에 있었으며, 더군다나 한국동란 3년 동안에 거의 전 국토가 초토화되었다. 그러나 1961년 한 국의 공업화가 시작된 지 불과 39년의 짧은 기간에 경제 산업 과학 등 여러 분야에서 오늘날과 같은 기적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원인은 한반도에 氣 가 모이고 있기 때문이다.

100 98/ 영락이데아 일반적으로 전기의 스파크( 放 電 )는 뾰족한 데서 일어난다. 전기스파크는 평평한 곳에서는 전 하밀도( 電 倚 密 度 )가 낮아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한국은 지형이 길고 좁은 반도이므로 한반도 의 남쪽 끝 부분에 기가 모여 있어 氣 가 강하다. 그리고 중국같이 나라가 두리 뭉실하고 큰 평원 이 있는 땅에는 氣 의 밀도가 낮고 사람의 성격도 만만디 f 團 용 的 )가 된다. 팔랑개비를 들고 있는 한국 어린이는 바람이 안 불면 팔랑개비를 들고 막 뛰어서 돌라지만 중국 어린이는 바람이 불 때까지 마냥 서서 기다릴 것이다. 氣 가 강해지는 데는 하늘에서 오는 氣 의 영향이 크다. 최근에, 6, 000 여 년 전 동이족(백두산 민족, 쥬신족)이 중국 중원까지 지배했던 전성기를 이 루었던 성좌가 다시 이루어져 하늘의 氣 가 한반도에 모이고 있다. 한반도는 氣 가 매우 강한 곳 이다. 이것은 전기스파크가 뾰족한 곳에서만 일어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한반도에 사는 식 물, 동물도 氣 가 강하다. 한국에 은행나무를 심으면 나뭇잎에 징코민 성분의 함유량이 아주 많 아 70년대 은행잎을 대량 독일로 수출하였다. 진달래는 한반도에 많이 자생하며, 꽃 중에서 氣 가 가장 센 철쭉과의 꽃이다. 진달래는 氣 가 센 한반도에 주로 자생하기 때문에 일본 사람들은 진달래를 조선철쭉이라 한다. 진달래는 氣 가 강하기 때문에 아직 추운 봄에 어느 철쭉꽃보다도 먼저 핀다. 보통 철쭉꽃은 잎이 같이 돋아나면서 핀다. 보통 철쭉은 잎의 탄소동화작용의 지원 없이는 꽃을 피우지 못한다. 그러나 진달래는 꽃봉오리가 먼저 돋아나 잎 없이 꽃만 핀다. 진달 래는 가뭄도 안 타고 벌레에도 강하다. 추위도 안 탄다. 거름을 안 주어도 잘 자란다. 그리고 꽂 이 피면 다른 철쭉 종류보다 훨씬 오래 간다. 진달래는 氣 가 센 한반도에서 생겨난 꽂이며 한반 도 어디에 가도 있다. 추운 북한에 가도 있고 따뭇한 제주도에 가도 있다. 깊은 산중에 가도 있 고 무인고도에 가도 었다. 봄이 되면 한반도의 산 전체가 별정다. 따라서 진달래는 氣 가 센 한반 도를 대표한다. 진달래는 일본에서는 별로 볼 수 없고 중국에도 별로 없다. 따라서 진달래는 氣 가 센 한반도를 상징하므로,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나라꽃으로 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다. 한반도가 통일되면 나라꽃을 진달래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 진달래가 북한의 나라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으나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북한의 국회는 백색의 목란꽃이다. 氣 가 강한 한반도를 대표하는 나무가 있다. 이것은 다름 아닌 적송 (i}ft 松 )이다. 적송은 한반도 에 자생하며 일본, 중국 등 외국에 많지 않다. 적송은 메마른 땅, 바위틈에서도 잘 산다. 가뭄도

101 한반도에 氣 가 모이고 있다 / 99 안 타고 더위도 안 타고 추위에도 강하다. 다시 말해서 매우 단단하고 氣 가 센 나무이다. 적송의 뾰족한 바늘 같은 잎 끝으로 상당한 氣 가 나온다. 따라서 적송 숲에서 햇빛이 가장 강한 오후 1 시경에 삼림욕을 하는 것이 건강에도 좋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만든 거북선, 범선 등의 전선( 騙 )은 이 강한 적송으로 만들었다. 이순신 장군은 이 단단한 적송으로 만든 전투함으로 왜군선의 옆면을 들이받아 침몰시키는 전법을 사용하여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왜선은 스기나 무( 彩 木 ) 흑송( 黑 松 ) 등으로 만들어 선체가 약하였다. 적송은 관상목으로도 으뜸이다. 강가 기 암절벽에 비스듬히 뻗어난 적송은 한국의 운치 있는 풍경이다. 적송도 한반도에는 어디나 다 있 는 나무이므로 우리나라를 상정하는 나라 나무로 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반도에 사는 핑은 중국에 사는 핑보다 일본에 사는 핑보다 크고 힘이 세고 매우 아름답다. 한국의 백두산호랑이는 크고 용맹스럽다. 짐승 중에서 제일 강하고 氣 가 세다. 백두산호랑이는 뱅골호랑이보다 크고 강하다. 라이온보다도 훨씬 강하다. 한국의 진달래 소나무의 氣 가 세고 핑 호랑이의 氣 도 센데 여기에 사는 사람들의 氣 는 어떠할까? 말할 필요도 없이 한국 사람의 氣 는 대단히 세다. 한국 사람은 氣 가 센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우리보다 크고 강한 나라 사람을 지칭할때는목 놈 자를붙인다. 예를들면 미국놈, 소련놈, 중국놈, 일본놈 등이다. 상 대국이 아무리 크고 강해도 절대로 기죽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보다 작아 보이거나 약해 보이는 나라 사람들에게는 놈 자 대신에 자람 자를 붙여 대접한다. 즉 뉴질랜드 사람, 월남 사람, 인도네시아 사람 따위이다. 같은 중국사람이라도 대륙에서 왔으면 대국놈, 대만에서 왔으면 대만 사람 이라고 한다. 한국 사람(쥬신 族 )은 氣 가 몹시 강하기 때문에 과거 수백 년 동안 대륙 의 지배를 많이 받았으면서도 고유한 언어와 문자 관습 문화를 잘 지켜 왔다. 이 세상에는 자 기 나라의 언어와 문자를 잃어버린 민족이 여렷 었다. 예를 들면 만주족이 청나라를 세웠어도 지금 만주족의 언어와 문자를 알고 있는 사람이 없어서 큰 일이라고 한다. 우리가 일제로부터 해방되던 해인 1945년의 시점에서 우리나라의 실태를 회고해 보면 오늘 날의 실태와 비교해 하늘과 땅의 차이가 나서 깜짝 놀라다 못해 까무러칠 지경이다. 당시 한국 은 세계 170 여 개국 중에서 국력이 끝에서 4. 5변째였으며 자유당 때 1 억 달러의 무상원조로 겨우 살아왔다. 그래도 우리는 기죽지 않고 겁없이 용감하게 선진국을 목표로 모든 일에 뛰어들

102 100 / 영락이데아 었다. 지금 해방될 당시를 회고해 보면 남한의 전화회션 수는 3만 9, 000회선이었고, 남한의 전 력의 총 발전량은 20만 kw에 불과했다. 그 당시는 자동차는 말할 것도 없고 진공관식 라디오도 못 만들었는데 지금은 어떠한가. 자동차는 세계 8위의 생산국이 되었다. 첨단 전자제품인 IC메 모리 생산에서 세계 2위를 차지하고 었다. 미국 가전 업계의 대 메이커를 다시 말해서 RCA Victor, Emerson, Magnavox, Philco, Silvania 등은 1960년대에 일본이 트랜지스터 라디 오, TV등 가전제품을 값싸고 좋게 만들어 미국시장에 상륙하기 시작하니까 일본에 겁을 먹고 회사 문을 스스로 닫고 가전제품의 생산을 중단 가전사업을 포기하고 말았다. 따라서 일본은 손쉽게 미국의 가전시장을 독점하다시피 차지하고 말았다. 미국의 대재벌들이, 일본이 손을 댄 사업은 경쟁해서 이기기 어려울 것을 염려하여 사업에서 손을 떼는 데 반하여, 한국 사람은 일 본이 사업에 성공하여 성업하고 있으면 곧이어 겁없이 그 일에 손을 대고 대대적으로 사업을 시 작하여 급기야 시장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만다. 예를 들면 트랜지스터 라디오, 컬러 π1, 전자 레인지, IC메모리 등이 다 그러하다. 이뿐이 아니다. 포항제철, 조선엽, 자동차공업을 시작할 때 도 선진국의 사업규모나 기술수준을 보면 보통의 나라 사람은 氣 가 죽어 엄두도 못 내는데 한국 사람은 겁없이 달려들어 세계에서 대성공을 거두고 었다. 한국의 운은 대상승기( 大 上 昇 期 )에 있다. 지금부터 6, 000년 전에 쥬신족의 기운이 절정기에 있어 우리 쥬신족은 시베리아, 만주, 중국 의 중원을 지배한 바 있으며, 찬란한 홍산문명( 鴻 山 文 明 ), 황화문명을 일으켰다. 바야흐로 6, 000년의 대운( 大 運 )이 돌아오고 있다.6, 000년의 대주기의 기운으로 보나 360년의 소주기의 기운으로 보나 한국의 기운은 상승기에 었다. 그러면 1950년이래 한반도의 氣 가 남한에 유리하 게 상승하고 있는 정조를 살펴보기로 한다. 우리는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진 것을 뼈아프게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발전에 큰 장해요인으로 생각하고 크게 비관하였다. 남북이 갈라져 부부 간, 부모자식간, 형제간에 생이별을 하게 되어 우리나라의 운명을 개탄하고 하늘을 크게 원망하 고있다.

103 한반도에 氣 가 모이고 있다 / 101 그러나 남북으로 분단된 것이 전적으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우리에게 활력소가 되는 스트레 스를 주어 한국이 3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세계적인 수준으로 경제가 성장하는 데 일조( 一 助 )를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추어탕의 맛을 좋게 하는 비결이 있다. 추어탕 집에서는 미꾸라지를 큰 물 통에 잔뜩 넣어 보관한다. 그러면 미꾸라지들은 미꾸라지로 꽉 차 있는 물통 속에서 숨막히고 답답하여 맥이 빠져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었다. 이렇게 氣 가 빠져 맥없이 가만히 있는 미꾸라 지로 추어탕을 끓이면 맛이 없다. 이 경우에 미꾸라지를 넣어둔 물통에 메기를 서너 마리 넣어 두면 갑자기 미꾸라지들은 싱싱해지면서 활발히 웅직인다. 메기가 미꾸라지를 잡아먹으려고 하 니까 미꾸라지는 온 정신을 모아 긴장하고 필사적으로 메기를 피해야 한다. 미꾸라지는 메기보 다 동작이 민첩하므로 긴장만 하고 있으면 메기의 공격을 피할 수가 있다. 긴장해서 활기에 넙 치는 미꾸라지는 고기가 싱싱해지고 요리를 해도 맛이 었다. 어떤 분야이건 착실하게 그리고 급 속도로 발달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양의 스트레스가 필요하다. 스트레스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 다.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할 수 없는 스트레스와 노력만 하면 해결할 수 있는 스트레스가 있다. 전자는 몽에 대단히 나쁘나 후자는 옴에 좋을 뿐만 아니라 노화방지의 작용도 한다. 해결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계속하여 받으면 불치의 병에 걸려 죽고 만다. 원양에서 잡은 활어를 물통에 넣어 수송해 올 때, 활어의 몇 %는 도중에 죽고 만다. 그러나 물통 속에 상어 새끼 두서너 마리 를 넣어두면 활어는 한 마리도 죽지 않고 전부 싱싱하게 살아 있으며 회 맛도 훨씬 좋아진다. 한반도에는 남북이 갈라져 대치하고 있다. 그러므로 남한 사람들은 항상 긴장하여 열심히 일해 야 하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 결과 남한이 불과 30여 년의 짧은 기간에 산업 기술면에서 세계적인 수준으로 뛰어오르는 데 일조를 했다고 볼 수 있다.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소장은 산업화라곤 거의 되어 있지 않은 한국을 현대화된 산업국가 로 건설하기 위해 혁명을 일으켰다. 그 해 12월경에 박 최고회의 의장은 국민들이 깜짝 놀랄 앞 마이카시대를 GNP를 1,000 달러로 올린다. 이 때 이 말을 곧이듣고 기뻐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코웃음을 쳤다

104 102 / 영락이데아 이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서울 시내에 자가용 승용차는 500여 대 정도밖에 없었으며, 그것도 대부분이 군용 지프차를 개조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마이카라니 꿈 엔들 생각이나 할 일인가. 또 당시 우리나라 1인당 GNP는 78 달러였으므로 1인당 GNP가 1,000 달러라니 이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천문학적 숫자였다. 아무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차가 길이 막혀서 다닐 수가 없을 지경이다. 이것은 5.16 당시의 주어진 여건 으로 판단할 때 어느 누구라도 도저히 오늘날과 같은 결과를 예측할 수가 없었다. 한강변의 기 적이 일어난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열의와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하늘이 돕고 땅이 도와야 한다. 다시 말해서 우주에 있는 氣 가 한반도로 몰려들어야 한다. 일례로서, 1973년도의 삼성전 자의 1년 매출이 59 억원, 종업원 수가 1, 200명이었던 것이 1995년에는 1년 매출이 16조 원, 종 업원 수가 5만 4,000 명으로, 매출이 2, 700배, 종업원 수가 45배로 증가했다. 삼성전자만 발전 확대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전체가 폭발적으로 확대 발전하였다. 즉1962년에 우리나라의 총 수출액이 5, 500만 달러였던 것이 1996년 현재 1, 100 억 달러가 되었으니 30 여 년 만에 2,000 배의 성장을 이룩했다. 이것은 氣 가 모인 다기보다는 氣 의 태풍이 불어오고 있다고 하는 것이 맞을것이다. 갑자기 낮은 례벨에서 아주 높은 레벨로 올라갈 때 올라가는 시간이 빠를수록 부작용이 큰 것이 자연현상이다. 공학에서는 이와 같은 급변화나 급천이( 急 選 移 )에서 오는 상하 진동 현상을 오버 슈팅 (over shootíng) 현상이라고 한다는 것은 앞에서 이미 말한 바 있다. 이런 현상 때문 에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성수대교가 끊어졌다. 또 전직 대통령이 거대한 자금을 사적으로 축 적한 것도 급성장(변화)의 부작용인 오버 슈팅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오버 슈팅 현 상은 몇 번 진동하다가 가라앉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대운에는 별 영향을 주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성수대교가 끊어지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전직 대통령이 국민의 돈을 착복해도 한국은 여전히 발전한다. 1960년대 초의 우리나라의 외화 보유고는 약 4.000만 달러였다. 외국으로 유학하거나 여행 할 때 정부가 공식으로 미 달러로 교환해 주는 액수가 50달러였다. 이 때 우리나라가 외화 부족 으로 겪는 어려웅은 이루 말로써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던 중 1964년 월남전이 발발

105 한반도에 氣 가 모이고 있다 / 103 했다. 우리 국군은 UN군을 둡기 위하여 참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월남전으로 인해 우리나라에 는 달러가 막 늘어났다. 이것은 한국의 경제개발에 크게 도웅이 되었다. 이 때 우리 국군은 실전 을 통한 훈련을 하게 되고 군의 무력도 강화되었다. 현대건설을 비롯한 여러 건설업체들이 월남 에 진출하여 군사도로, 군시설 공사에 참여하여 국제 규모의 건설공사 경힘을 쌓아 70년대 초에 일어난 오일 쇼크 여파로 생긴 중동건설 붐에 참여할 수 있어 외화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 으며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기반이 되었다. 1993년에 우리는 무척 립고 평년보다 훨씬 긴 여름을 겪었다. 이 해는 더위가 극심하여 기온 이 35, 36도를 오르내렸다. 그러나 비가 오지 않아 우리나라의 일부지방에서는 식수가 고갈되 어 곤란하였다. 일본의 가뭄은 우리보다 훨씬 심하여 식수를 한국에서 수입하여야 할 지경이었 다. 이와 같이 마실 물조차 부족하였으므로 일본의 석유종합 화학단지에 있는 모든 석유화학제 품 생산공장이 모두 운전을 정지하게 되었다. 그 해 유럽에 있는 석유화학 종합단지의 큰 공장 이 고장이 나서 생산량이 대폭 줄었고, 미국의 석유화학 대 공장에 화재가 나는 바람에 생산량 이 대폭 줄었다. 더위가 유독 길고 더웠던 1993년은 세계적으로 석유 화학 종합단지에서 나오 는 원료가 고갈되다시피 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서해안 대산 지역의 간척지에 삼성과 현대가 각각 경쟁적으로 수조 원의 대 자본을 투입 세계적인 규모의 대 석유화학 종합단지를 건설해 두었는데, 이 단지의 공장에서 생산되는 석유화학원료가 평시의 몇 배의 높은 값으로 날개가 돋 혀 해외로 팔려나갔다. 이미 한국의 울산과 여천에 대 석유화학 종합단지가 있으므로 서해안에 대 석유화학 종합단지를 두 개나 더 건설하는 것은 세계시장에 공급과잉이 되므로 사업성이 없 다 하여 상공부에서 크게 반대하였던 것이 예상과는 달리 1993년 한해 동안에 투자비를 대부분 회수하였다. 2) 중국의 월 그러면 이웃 중국을 생각해 보기로 한다. 중국인들은 대평원에서 살고 있으므로 氣 의 밀도가 낮아 중국 사람들은 氣 가 약하다. 이것은 넓은 금속평판에서는 절대로 전기 스파크가 일어나는

106 104/ 영락이데아 일이 없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평평한 금속판은 전하밀도가 낮으므로 이 금속판에서 나오는 전계는 약하다. 따라서 전기 스파크가 일어나지 않는다. 전기 스파크는 뾰족한 도체 끝단에서 항상 일어난다. 넓은 평원에서 사는 중국인은 뾰족한 반도에 사는 한국인보다 氣 가 훨씬 약하 다. 중국인이 일본군에 의해서 10 여 년 동안 학살된 사람은 약 3.00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인이 고위층에 있는 일본인 거물을 암살하거나 테러를 행한 대사건을 일 으킨 일이 거의 없었다. 한국인의 피살자 수는 36년 동안에 약 3만 명으로 중국인 피 학살자 수 의 1, 000분의 1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항일활동은 대단하였다. 당시 일본정계의 최 고거물인 이토 히로부미를 안중근 의사가 상해파견 군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 대장은 윤봉 길 의사가, 당시 서울의 황금정 입구(을지로 입구)에 있었던 동양척식 주식회사와 식산은행에는 나석주 의사가 폭탄을 투척하고 이봉창 의사는 일본천황에게 폭탄을 투척하여 일인들의 간담 을 서늘하게 한 대사건을 일으컸던 것을 보면 중국인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중국인은 氣 가약하므로중국인의 정신적인구심점이 되고 있는등소평 사망후중국에 대 혼 란이 일어나, 4, 5개국으로 분열될 것이다. 그러면 만주는 자연스럽게 한반도의 영향권에 들어 오게 된다. 한국인의 氣 가 세다는 것은 앞서도 말했지만 한국 사람은 한국보다 강한 나라 사람 의 호칭에 놈 자를 붙이나 한국보다 약한 나라 사람을 지칭할 때는 놈 자 대신에 자람 자를 붙인다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중국의 기가 흩어지는 조짐이 보인다. 전기는 평평한곳에서는 스파크를 일으커지 못한다. 평평한금속판에는 전하밀도가작가 때문 이다. 뾰족한 금속봉 끝에는 전하밀도가 높아 전기 스파크를 잘 일으킨다. 다시 말해서 금속봉 으로 볼 수 있는 한반도의 氣 의 밀도는 높다. 특히 금속봉의 끝에 해당되는 경상도와 전라도 지 방은 氣 의 밀도가 높아 氣 가 세다. 중국은 넓은 대륙이다. 따라서 중국의 氣 의 밀도는 낮다. 따라서 사람의 성격도 만만디( 慢 慢 的 )가 된다. 중국의 소는 느려 터지기로 유명하다.

107 한반도에 氣 가 모이고 있다 / 105 중국은 광활한 대륙이다. 이 넓은 대륙에 54개 민족이 살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이 넓은 대륙에 있는 다수의 민족을 완전 통일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현재의 중구 국기의 모양이 붉 은 바탕에 큰 별이 하나 있고 그 주위에 작은 네 개의별이 모여 있듯이 중국은 엉성한 통일상태 에 었다. 그 동안 국기의 큰 별 역할을 한 인물이 모택동, 등소평 등이었다. 모택동과 등소평이 원자의 플러스 핵으로서 여러 개의 전자를 붙들고 있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평평한 평판 에 물을 부으면 물은 골고루 퍼지지 못하고 여기저기 고여 여러 곳으로 흩어져 있게 마련이다. 등소평이 세상을 떠났다. 중국은 서너 뱃 개로 분열되어 국가연합으로 될 운명에 있다. 그러면 현재 중국의 사정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1989년의 동구 민주화는 중국에 천안문사건을 일으켰다. 이 노도와 같은 민중의 폭발을 공산중국은 감수해야만 했다. 또한 공산중국은 경제의 파탄, 민주화의 움직임, 소수민족의 저항 등 대곤란을 겪고 있다. 1986년 고르바초프는 외몽골(몽골인민공화국)로부터 소련군을 철수시켰다. 그리고 외몽골에 지금까지 파괴해 왔던 라마교의 사원(티베트계의 불교로 몽골인의 원래의 종교)을 복원시커고, 라마승을 양성하기 위한 학교를 세웠으며, 라마교의 전통행사를 부활시켰다. 이것은 몽골 사람 들의 민족의식을 살리는 것이 목적이다. 옛날 몽골은 역사에 빛나는 나라였다. 원( 元 )나라 시대 에는 대몽골제국으로서 번영하였으며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세계에 최대의 국가를 형성하였 다. 그리고 이 몽골의 군사력이 대제국의 질서를 이루었기 때문에 실크로드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으며, 이 실크로드로 마르코폴로가 북경까지 올 수 있었다. 몽골의 강력한 힘이 있음으로 해서 유럽과 아시아를 결합시켜 동서양의 안정된 유통환경을 만들었다. 또한 몽골은 oμf라는 대단히 우수한 성문법( 成 文 法 )을 만들었으며 법률적으로 규율이 잡힌 국가였던 것이다. 고르바 초프는 먼저 외몽골의 민족의식을 고양시켜 내몽골(내몽골자치구)을 자극하였다. 당연히 내몽 골은 동요되어 외몽골과 더불어 대몽골제국을 건설하여야겠다는 의욕을 일으켰다. 원래 몽골이 차지하는 지역은 중국의 동북단에 위치하는 흑룡강성까지를 말하며 현재 중국이 지배하고 있 는 대흥안령을 포함한다. 중국에서 이 내몽골이 떨어져 나가면 단번에 공산중국의 해체에 연 결된다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고르바초프는 몽골인들이 쉽게 한데 뭉치는 민족이라는 것을 역 사를 통하여 알고 있었다. 그는 몽골인들의 민족의식을 고양시킴으로써, 이것을 중국 각지에 흩

108 106 / 영락이데아 어져 살고 있는 소수민족의 대북경정부 이반운동( 離 反 運 動 )으로 연결하는 하나의 도화선으로 사용하였다. 원래 원나라는 몽골이 중국에 세운 나라였다. 중국에 그 주변의 이민족이 흘러 들 어온 것은 이민족이 중국을 통치했을 때다. 예를 들면 청나라 시대에는 여진족 만주족이 중국 을 다스렸기 때문에 만주인이 중국에 들어왔던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내셔널리즘은 내몽골에서 몽골어의 학습을 금지해 왔다. 만주에서는 만주어를, 티베트에서는 티베트어의 학습을 금지해 왔다. 이로 말미암아 오늘날 만주지방에서 만주문자를 읽고 쓰고, 만주어를 말할 줄 아는 사람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이와 같은 북경정부의 말할 수 없는 주변민족에 대한 탄압은 폴리세트리즘 (Polycentrism), 즉 반중화사상( 反 中 華 思 想 )에 의해서 지금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내몽골 이외에 분리 독립 요구를 부르짖고 있는 곳으 로는 티베트, 신강웨이우얼의 두 자치구가 었다. 티베트는 원래 독립국이었다. 티베트가 역사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서기 600년경이며 이때 티베트는 대제국을 이루고 있었다. 현재는 대단 히 가난하고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어려우나 이 지역이 그토록 군사적으로 확장할 수 있었던 것 은, 당시 티베트가 대단히 훌륭한 통치를 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티베트 최후의 왕은 티베트 에 불교를 들여온 란다루마 왕이다. 그는 서기 842년에 한 불교 승려에 의해 암살되었으나 10 세기에 이르러 불교는 전역에 널리 보급되었다. 그리고 당나라 시대에도 티베트는 독립국으로 있었다. 그러나 1207년 칭기스칸이 티베트를 보호국으로 만들었고 그 후 중국을 통치한 원나라 는 티베트에 대해 종주국이 되긴 했으나 주권을 뺏지는 않았다. 종주권이란 내정, 외교를 완전 히 장악하는 것으로 티베트의 경우 외교와 군사를 원나라에 맡겼으나, 내정 즉 주권은 항상 독 립해 왔다. 이 상태가 공산중국이 티베트를 정복할 때까지 지속되었던 것이다. 현재 중국은 티 베트를 완전히 자기들의 주권 하에 두고 있다. 티베트는 원나라 시대에는 현재와 같이 종교국이었다. 그리고 명나라 (1368~ 1644) 시대에는 다시 왕국이 되고, 그 후 다시 종교국이 되는 것을 반복해왔다. 1475년에는 왕가가 없어지고 원 나라는 법왕에게 다라이 라마 라는 칭호를 주었으며 다시 왕족지배가 있은 후, 1642년 이후 1959년까지 다라이 라마에 의한 지배가 계속되었다. 결국 티베트는 현재 중국이 주장<5t는 바와 같이 중국의 속방이었던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공산중국이 된 후 1951년 중국은 티베트를 해방

109 한반도에 氣 가 모이 고 있다 / 107 시켰다고 선언했으나 이것은 외교적인 방편에 지나지 않았다. 이것의 증거로 1959년부터 거의 매년 티베트족의 반란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아도 알 수 있다.1965년 중국은 티베트를 자치구로 만들었으나 중국의 침략은 일층 강화될 뿐이었다. 다라이 라마 정부의 발표에 의하면 지금까지 120만의 티베트인이 학살되었다고 한다. 더욱이 중국은 티베트의 동부를 티베트 자치구에서 제 외해 버렸다. 이와 같이 종교 민속 국가의 3개의 개념이 겹쳐 있는 곳에서는 이스람교권과 마 찬가지로 통치한다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소련은 이미 이것을 알고 손을 떼었으나 중국 은 변함 없이 무모한 에너지를 쏟아 넣고 있는 것이다. 팽덕회(전국방장관)는 1950년 수원( 緣 遠 ) 지구(현재의 내몽골자치구)에서 4만 8, 000명의 회 교도(이스람 교도)를 학살한 것을 다음 해 서북군정치위원회( 西 北 軍 政 治 委 員 會 )에서 자랑스럽게 보고했다. 이와 같은 사람들이 정부 군의 중추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상 공산중국은 소수민족 의 통치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없다. 이와 같은 잘못을 중국은 신가웨이우얼 자치구에서 범하고 있다. 중국은 신강을 한족화( 漢 族 化 )하려고 수많은 한인( 漢 A)을 투입하고 있으나 한족회는 성 공할 수가 없다. 또한 티베트도 한족화하려고 하나 티베트인만으로도 살기가 어려운데 한족이 유입되면 경제는 더 악화된다. 신강에는 중국이 1963년 상해에서 10만의 청소년을 투입하였다. 그러나 이미 이 중 1만 5.000명이 탈출해 도망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생활고가 원인이다. 그럼 에도 중국은 신강에 2 억의 인구를 식민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으나 이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 다. 왜냐하면 중국인은 안이한 생활을 좋O핸}는 국민이다. 따라서 중국인은 내륙보다 비교적 풍 부하고 안이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연안지대로 유출해 간다. 즉 유민이 발생한다. 예를 들면, 사 천성 사람들은 광동성으로 흘러 들어간다. 공산중국은 이와 같은 현실과 역사를 객관적으로 판 단하지 않고 정책을 세우고 었다. 그러므로 중세 근세에 있어서 한민족 중심주의의 중국은 하 는일마다실패해왔다. 역사적으로 보아서 중국이 대국( 大 國 )으로 있었던 때는 언제나 이민족이 정복하고 있었을 시 대이다. 한민족은 대체로 중원에 소규모로 뭉치는 민족으로서 이민족을 지배하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중국의 중화사상이 이것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이민족이었던 만주족의 청조( 淸 朝 )까지도 중화사상이 몸에 배어 있었기 때문에 신강에서 실패했다. 이 시대에 신강에서는 항상

110 108 / 영락이데아 회도교의 반란이 끊이지 않았다. 당시 황제로 권세를 휘두른 건륭제( 乾 隆 帝 )는 회교도의 수모자 ( 首 讀 者 )의 목을 봉밀에 담가서 북경으로 가지고 오게 하였다고 한다. 동시에 수많은 회도교를 학살하고, 잘라 낸 이들의 귀를 큰 바구니 23개에 담아오게 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이 해서도 만주족은 신강을 통치할 수 없었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그 거대한 체구에 맞지 않게 의외로 취 약한 나라이다. 외압을 가하면 간단히 붕괴할 것은 용이하게 상상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등소평의 사후 중국의 중앙에 혼란이 발생하면 공산중국으로부터 티베트 는 완전히 독립하고, 그리고 신강웨이우얼, 내몽골, 만주는 북경의 지배로부터 떨어져 나온다. 결국 현재의 중국 국경을 형성하고 있는 각 성 각 지역은 북경의 공산당 지배에 등을 돌리게 된 다. 몽골이 통일되고 티베트 신간웨이우얼이 분리 독립되면 단숨에 중화인민공화국은 해체될 것이다. 이미 독립국의 양상을 드러내고 있는 광동성은 북경에 관심이 없다. 이 지역은 공산당 의 최고 간부였던 엽검영의 힘이 강대했기 때문에 북경의 영향력이 거의 미치지 않았던 곳이다. 경제적인 자주 기능이 상당한 정도로 주어지고 있고 연안지대인 데다가 홍콩에 가깝다는 지리 적 이점을 얻어 경제적인 발전을 눈부시게 해 왔던 곳이다. 이 광동성이 홍콩을 수중에 넣고 독 립하려는 것은자명한 이치라고할수 었다. 그리고 소수민족을 다수 포함하고 있는 사천성( 四 川 省 )도 북경으로부터 분리, 성내( 城 內 )에서 각 소수민족이 각각 국가를 형성 분산될 것이다. 이것은 발칸반도를 연상하면 된다. 이와 같은 북경 이탈의 조후 (~~fl벚)는 중국 각지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중화인민공화국이 무너져 작아지는 것은 시간적인 문제이다. 중국이 이와 같이 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등소평을 중심으로 했던 공산중국의 간부들은 역사의 흐름을 읽지 못한다. 한민족( 漢 民 族 ) 이 제일이라는 내셔널리즘의 시대는 종언( 終 폼)을 고하고 시대는 바야흐로 유니버설리즘의 시 대로 바뀌고 있다. 이것을 모르고 몽골, 티베트, 신강을 한민족화 하려는 것은 시대적 철학이 없는 중국인은 이권만을 추구한다. 나라가 바뀔 때는 매번 이권쟁탈전을 벌였다. 근대사에서 보면 국민당 시대의 장개석 일족이 권력을 한 손에 쥐고, 송일족( 宋 一 族 )도 같이 막 대한 부( 富 )를 모은 예가 었다. 모택동도 마찬가지다. 중국에서는 항상 권리가 우선하고 한번 잡 은이권은절대 놓지 않으려고한다. 이것은등소평뿐만아니라공산당간부들은자기들의 자녀 :장

111 한반도에 氣 가 모이고 있다 / 109 들을 홍콩이나 미국으로 도피시커고 었다. 또한 스위스 은행에는 공산당 간부들의 예금 총액이 늘어난다고 한다. 그 정도의 이권을 잡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옹갖 수단을 다 쓰기 때문에 시대나 역사의 흐름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러면 왜 중국인들이 이권을 따라 웅직이느냐 하면 중국인들은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철학이 없는 대신에 윤리학( 倫 理 學 )이 었 다. 윤리학이라는 것은 대인관계에 있어서 어떻게 하면 마찰 없이 품위 있게 살아갈 수 있는가 를 가르치는 것, 그 이상은 아니다. 이것은 유교로 대표된다. 이 유교조차 내던진 공산중국은 물 질만능주의자의 집단으로 되어 중국에는 54개의 민족이 었다. 그런데 사천성에만 해도 그만람의 소수민족이 있으므로 엄 밀히 세어 보면 한이 없다. 몽골인은 중국 사람이지만 한족은 아니다. 신강에 사는 민족도 중국 인이지만 한족은 아니다. 티베트인도 마찬가지로 한족은 아니다. 지금까지의 중국이 해 온 것을 보면 한민족과 이민족은 매사에 화합을 못하고 적대시하였고 한민족( 漢 民 族 )끼리만 뭉치는 방향으로 해 왔다. 천안문사건 이후 서방측으로 탈출한 여성지도 자 시령(뽕돼)은 연방제 공회국을 중국에 만들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 내용은 내몽골이나 신강, 그리고 티베트를 독립국에 가까운 형태로 하고 나머지의 중국 각 성( 省 )에 고도( 高 度 )한 자치권 과 상당 정도의 주권을 주어 연방제 공화국을 건설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러시아형의 연방제 주 권공회국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중국이 선택할 길은 두 개 중국의 27개성 각각에 자치구를 인정하여 고도한 자치권을 행사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미국 형의 United States이며 대외적으로는 중국은 하나가 되는 각 성, 각 자치주가 독자적인 주권을 갖는 독립국가가 되며, 이들의 상부기관으로는 각국 상 호간의 연결을 담당하는 연락기관을 두는 방법이다. 이 경우에 광대한 국토와 인구를 갖는 중국 은소멸하는것이된다. 중국은 국가연합의 길을 갈 것이 틀림없다. 실제로 해체가 서서히 진행되고 있는 중국에서는 이미 공산당의 영향이 희박해지고 았다. 중앙정권의 힘이 약해지면 자연히 지방은

112 110/ 영락이데아 자치체제가 강화된다. 그러면 공산당 지배 후에 오는 국가형태는 어떻게 될까? 중국에는 해방군 이 7개의 대군구( 大 君 區 )로 배치되어 었다. 이것이 기축( 機 輔 )이 되어 국가연합으로 이행될 것이 다. 중국대륙의 새로운 틀은 크게 나누어 다음과 같다. 대몽골제국 : 내외몽골의 통일 티베트법왕국 : 티베트 자치구 독립 사천공화국( 四 川 共 和 國 ) : 성내( 省 內 )의 각 소수민족으로 형성된 지역 연합국가 광동공화국( 廣 東 共 和 國 ) : 홍콩과 통합 복건공화국( 福 建 共 和 國 ) : 대만과 통합 동Turkestan제국 : 신강 Uigur 자치구와 소련연방 내의 Turkestan, Uzbegstan 등과 통합 중국의 내륙부( 內 陸 部 )에서 각 성이 고도한 자치권을 획득하여 독립국가의 형태를 취해 가고 있다. 그리고 북경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국가의 이익을 고려하여 지역연합을 운영할 것이 필연 적이다. 결국 북경이여 잘 있거라 가 된다. 역사의 필연은 아시아를 재편( 再 編 하여 한국을 중 심으로 한 아주공동체( 亞 洲 共 同 體 가 실현될 것이다. 3) 일본의 훨 그러면 이번에는 옆에 있는 일본의 경우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일본은 바다( 氣 의 절연체)로 둘러싸여 있는 섬으로 되어 있어서 기학적( 氣 學 的 )으로 보면 일본은 일종의 콘덴서로 볼 수 잇 다. 콘덴서는 전기를 충전하면 전압이 자꾸 올라가다가 어느 한계치를 념으면 절연이 갑자기 파 괴되면서 Break Down 이 일어나 콘덴서에 담겼던 전기( 氣 )가 다 방출되어 거의 제로 상태가 된 다. (예 : 제 2차 세계대전 패망) 일본은 제 2차 세계대전 후 지금까지 氣 를 충전만 하고 방출에 인 색하였다. 따라서 일본은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서라도 계속적으로 충전되는 氣 의 적당량을 주 변국에 방출하여, 2차 대전 때 피해를 주었던 여러 나라와, 경제적으로 곤경에 처해 있는 개도 국을 원조하여 Break Down을 방지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콘덴서에 氣 가 계속적으로 충전되어 다시 Break Down이 일어날 것이다. 명치유신 (1867)부터 2차대전 패망한 1945년까

113 한반도에 氣 가 모이 고 있다 / 111 지를 Break Down의 한 주기 (78년)로 본다면 앞으로 27년 후가 위험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원래 일본의 氣 는 백두산의 氣 가 부산지역에 모여 한반도에서 최강상태에 있는 氣 ( 陽 )가, 마주 보고 있는 일본의 야마구치( 山 口 )현의 조슈( 長 州 )를 중심으로 氣 가 유도된다. 따라서 야마구치 현에서 이토 히로부미( 伊 購 博 文 長 州 之 身 )를 비롯한 일본의 정계를 이끄는 거물이 명치유신 이 래 수없이 나왔으며, 한반도의 남단을 마주보고 있는 구주에서도 氣 가 유도되어 사쓰마( 摩 )지 역을 중심으로 사이고 다카모리( 西 椰 隆 盛 )를 비롯한 일본을 이끄는 거물이 많이 나왔다. 최근에 는 무라야마( 村 山 ), 호소가와( 細 川 )등이 나왔다. 일본에 유도되는 氣 는 유도전기 성질에 의해서 크기는 같고 氣 의 극성이 반대로 생긴다. 따라서 일본은 한반도와 상충되는 행동을 하게 된다. 사이고 다카모리는 막부를 넘어뜨린 다음 곧 정한론을 주장하였다. 사이고 다카모리의 정한론 은 실현되지 못하였으나 이토( 伊 購 )가 1910년 사이고의 숙원을 이루었던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氣 의 극성이 반대로 되어 있으므로 역사상으로 상충의 관계에 놓여 었다. 이와 같은 불화합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한반도와 일본에 대교를 놓아 연결하여 氣 의 극 성이 동일하게 하면 상충하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일본에 氣 가 과충전되어 Break Down이 생기는 불행도 예방될 것이다. 원래 일본민족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므로 서로 반목하면서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서로 협조하고 화합하면 우리가 21세기 에 세계의 중심역할을 할 때 더욱 효과적으로 하게 될 것이고 더욱 강력한 주도권을 발휘할 수 있게될것이다. 일본의 氣 가 쩍이는 조짐이 보인다. 일본의 속사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일본은 미국의 엔고압력( 圓 高 壓 力 )에 눌려 수출액은 증가 하고 있으나 실제로 수출물량은 엔고 영향으로 감소한다. 엔고로 인하여 단가가 올라가므로 바 이어들이 구매하는 물량이 줄게 마련이다. 팔리는 물량이 줄면 공장의 생산라인이 전가동을 못 하게 된다. 그러면 회사의 인원을 줄여야 되고 사회적으로 실업자 문자가 대두되고 국민의 구매 력이 떨어진다. 그러면 구매력이 없는 일본시장을 보고 자연히 수입물량은 줄이게 된다. 수출금

114 112/ 영락이데아 액은 증가하고 수입액은 줄었으니 자연히 무역흑자는 늘게 마련이다. 무역후자에 비례해서 엔 고압력은 더 강해진다. 한때 일본도 버블경제 현상으로 부동산 지가( 地 價 )가 막 뛰어오른 적이 있었다. 일본은 이 과열된 벼블경제를 진정시키기 위해 부동산세를 강화하였다. 이로 인해 지가 는 폭락하고 대지를 담보로 하여 대출하였던 은행들은 대곤란을 겪었으며 이들 중에는 도산한 은행들도 많다. 일본은 엔고압력에 살아남기 위해 조기퇴직제 연공서열제를 무시하고 실력위 주의 직제개편, 전통적인 종신고용제를 폐지하는 등 대변혁이 일어나고 있으며 경기도 상당히 침체되어 있다. 일본은 일본의 생명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첨단과학 연구개발비를 어디서 염출할 것인가를 걱정하고 있다. 핵융합, 우주개발, 초전도 등 이제부터의 연구개발은 연간 조 (?J~) 단위의 연구비 가 드는 것뿐이다. 이러한 대연구 프로젝트에 배당할 자금의 여유가 없으며 일본은 영원히 채산 이 안 맞는 유산을 자손에게 남겨주게 되어 있다. 세이칸(춤핍)터널(아오모리-하코다데 사이의 해저 60km터널) 혼시가교( 本 四 架 橋 : 本 - 四 國 사이에 놓은 대가교), 도쿄만가교( 東 京 灣 架 橋 ), 이것들을 사용하면 할수록 돈이 든다. 영원히 상 각( 慣 돼)이 안 되며 매년 막대한 유지비만 부담이 된다. 말하자면 일본의 현재는 미래를 먹어 없 애며 살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일본은 장차 대연구 개발프로젝트에 투자할 돈도 없어질 것 이다. 일본은 2000년대의 후손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큰짐을 떠맡기는 운명에 었다. 3. 위대한 쥬신족( 朝 購 族 ) 동이족( 東 奏 樹 인 우리는 쥬신족( 朝 蘇 劇 이다. 쥬신족은 지금부터 약 6, 000년 전에는 바이칼 호부터 남쪽의 양자강까지의 남북 5만 리 서쪽 몽골사막부터 동쪽의 황해까지 2만 리의 광활한 영토를 지배하였던 위대한 민족이다. 동이족의 대표적인 위대한 인물로는 동양철학인 주역( 周 易 )을 창시한 복희( 代 義 ), 농사법과 한의학, 경제, 음악 등을 창시한 신농( 神 農 ), 유교의 개조( 開 祖 ) 공자( 孔 子 ), 중국 역사상 가장 태명성대를 이루었던 강태공( 姜 太 公 ) 등을 들 수 있다. 대다수 의 한국 사람은 식민지 사관에 젖어 우리 조선족은 한때 부여 고구려를 거쳐 만주를 지배했다

115 한반도에 氣 가 모이 고 있다 / 113 가 지금은 한반도에서 두 쪽으로 갈라져 살고 있는 약소민족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었다. 다시 말해서 쥬신족의 氣 가 쥬신족의 사상 절정기에 있었던 부여 이전의 역사는 전혀 모르고 있다. 이것은 중국이 고구려가 패망한 후에 우리의 상고 때의 찬란했던 역사적 사건들을 기록한 자료 를 인멸 은폐하였으며, 일본도 1910년에 한반도의 성공적인 식민지통치를 위하여 20여만 권의 쥬신족의 고대사서( 史 書 )를 소각했기 때문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 때 소각된 사서들은 우리가 읽어보면 프라이드와 힘을 느끼게 되는 것들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족재 ( 朝 蘇 族 史 )는 일제가 의도적으로 남겨놓은 사대주의 사상에 절어 었던 김부식, 일연이 쓴 r삼국사기 r삼국유사 등에 근거한 식민지 사관이다. 즉 식민지사관에 의한 조선족사는 조선족은 양같이 양순하여 한 번도 남의 나라를 침범한 일이 없고 패기가 없 으며, 강대국에게 눌려만 살아 왔으며, 남을 헐뜯고 단결을 전혀 하지 못하는 약소민국이다라 는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쓴 신라를 중심으로 한 쥬신족의 일종의 지방사( 地 方 史 )이다. 신라는 자신들의 생존을 위하여 중화족인 당나라를 집안싸웅에 꿀어들여 동족인 백제를 멸망 시 킨 후, 중국식을 따르고 모방하며 스스로 소중화( 小 中 華 )로 행세하였다. 한족( 漢 險 의 적을 자 신들의 적으로 삼아 한족와 맞서 싸운 만주지방의 우리 동이족( 金, 漸 을 모두 오랑캐라고 칭하 며 우리 쥬신족으로부터 분리시켜 놓았다. 우리 쥬신족은 파미르고원에서 발상( 發 神 )하여 바이칼 호를 거쳐 백두산 쪽으로 이동 정착하 였다. 쥬신족의 氣 의 발원지인 백두산에 도착한 우리 조상들은, 백두산을 중심으로 집단 정착하 여 문화를 발전시킴으로써 사상( 史 1:) 쥬신족의 氣 의 절정기에 있었던 기원전 6, 000년경에는 홍산문명( 鴻 山 文 明 )을 일으키고 이어 남쪽으로 내려와 황하문명을 일으켰다. 우리 조상들은 이 미 서기전 4, 000년경에 배달나라를 세우고 농경민족인 중회족을 제압하여 대제국을 세웠다. 氣 의 상승기에 었던 우리 조상들인 동이족은 이미 치우천황(뿔 尤 天 皇 )이 기마민족인 쥬신족을 총 동원하여 대장정을 감행함으로써 활동 무대를 만주에서 황해 연안을 따라 산동반도, 하북성 일 대로 진출하였다. 쥬신족은 이어 남쪽으로 양자강 이남까지, 서북쪽으로 몽골, 동북 동남쪽으로 시베리아, 전( 全 )만주, 한반도 및 일본열도까지 지배하였다. 쥬신족은 새를 숭상하였으며, 특히 봉황 凰 凰 j을 상서(햄 瑞 )로운 새로 받들었다. 한편 중화족은 용을 길하게 여겨 받들었다. 따라서

116 114 / 영락이데아 동양의 고대역사는봉황의 쥬신족과용의 중화족과의 대패권 다툼의 역사로볼수 있다. 쥬신족 은 본래 기마민족으로 민족이동이 빠르고 용이하여 발해 연안으로 황해안을 선점하여, 중화족 을 내륙 쪽으로 몰아붙여 봉쇄하였으며 중화족은 화산( 華 山 )을 중심으로 내륙 산간지역에 갇혀 바다를볼수가없었다. 우리 동이족은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만주 벌판이 주 활동무대였던 관계로 철광과 양질의 유 연탄을 손쉽게 얻을 수 있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철의 제련법을 개발하여 철제무기로 무장한 우리 동이족(쥬신족)은 기병을 주력으로 하여 석제와 목제 무기로 무장한 중화족을 어렵지 않 게 제압할 수 있었다. 이것은 철( 鐵 )의 고자( 古 字 )가 쇠금변( 金 )에 동이족의 이 演 )자를 쓴 철( 鐵 이라는 글자였던 것을 보더라도 용이하게 알 수 있다. 즉 철( 斷 이라는 글자는 동이족인 쥬신족 이 세계에서 최초로 금속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을 의미한다. 이후 고구려가 당에 패망한 후에 중화족이 철( 鍵 )자로 바꾸었던 것이다. 그리고 중화족은 쥬신족을 보고 동이족이라고 불랬다. 이 演 )자는 옥편에 오랑캐이 라고적혀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설명이다. 다시 말해서 이 演 )자는 크다는 뭇의 큰대( 大 )자를 활궁(딩)자 에 덮어씌워 만든 글자로서 큰 활을 잘 쏟다는 돗이다. 중화족이 보기에는 쥬신족이 상고 때 동 쪽에 살면서 말 잘 타고 큰 활로 맹수사냥을 잘 하는 민족이었으므로 동이족이라고 불렀다. 이 런 연유에서 오늘날 올림픽 OJ=궁경기에서 금메달을 종목별로 다 따는 것은 지극히 당연지사라 고 아니 할 수 없다. 그러나 농경을 주엽으로 하던 중화족은 의심이 많고 왕래가 없어 발전속도 가 늦고, 순장뼈 聲 ) 풍습 때문에 백성을 병사로 쓰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동이 적은 중화 족은 문자를 발달시키고 인구도 빠른 속도로 증가하여 연나라 때 이르러 그 숫자가 동이족의 10 배 정도로 팽창하여 동이족은 서서히 중원( 中 原 )에서 밀려나기 시작하였다. 서기전 3898년에 개국한 환웅시대 (t밟훌 時 代 )는 그 나라 세력이 강대하여 영토는 전술한 바와 같이 바이칼호부터 남쪽으로는 양자강까지 남북 5만 리, 서쪽은 몽골사막부터 동쪽의 황해까지 동서 2만 리, 이 광대한 땅이 모두 우리의 것이었으며 환웅의 나라는 1565년간 지속되었다. 서 기전 2333년에 환웅왕조 (t따& 王 朝 )를 마감하고 도읍을 백두산 아사달로 옮겼다. 이때 나라 이 름을 단군쥬신( 橋 君 朝 蘇 )이라 하고 이 해를 단기원년( 禮 紀 元 年 )으로 하였다. 단군쥬신은 만주별

117 한반도에 氣 가 모이고 있다 / 115 판 및 시베리아를 강한 힘으로 다스렸으며 그 통치기간이 2.096년이나 되었다. 그 후 북만주에 예로부터 자리잡고 살던 가우리( 高 句 麗 )사람 몽골족을 비롯한 주변 종족을 제압하고 북부여 나 라를세웠다. 부여 이후는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조선 등을 거쳐 쥬신족의 氣 가 서서히 하강하다가 1950년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의 氣 는 상승기인 6.000년의 대주기와 360년의 소주기가 다 같이 다시 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불과 40여 년 만에 세계의 170여 개국의 하위권에서 일약 UN의 이사국,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을 건설하였다. 4. 결 론 백두산의 氣 의 변화주기, 즉 한반도에 발생한 氣 의 변화주기를 생각해 보면, 최근 한반도의 氣 가 최소의 상태에 있었던 때가 6.25동란이 일어난 1950년이다. 이미 앞에서 기술한 바와 같 이 1950년부터 180년 간은 계속 올라가고 180년 간은 서서히 내려간다. 한국의 氣 는 1950년부 터 올라가기 시작하여 50년이 지나갔다. 따라서 아직도 130년 간 상승하게 되어 있으므로 21세 기는 한국이 주도하는 세기가 되는 것이 명백하다. 氣 의 상승 커브에 간혹 플럭추에이션 (fluctuation) 이 있어 우리들의 마음을 우울하게 하는 때도 있으나 대세는 역시 올라가고 있다. 즉 우리 민족은 급속도의 발전가도에 있다.1960년 초에 5, 000만 달러밖에 수출하지 못하였던 것을 지금의 수출량에 비교해 보면 혁명적인 발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의 급속한 발 전에 세계가 놀라고 있다. 갑자기 국교가 넓어지면서 UN이사국이 되고 OECD 회원국으로 가 입하여 국제적으로 그 위치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한국의 국력이 신장한 결과이다. 우리 쥬신족은 氣 가 센 곳에 태어나 천부적으로 氣 가 강하고 창조력도 뛰어난 민족이다. 우리 민족은 세계에서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했고 거북선 등을 발명했다. 우리민족은 음(작대기 둘), 양(작대기 하나)과 천(이, 지( 口 )의 이론의 조합으로 세계에서 가장 잘된 문자 한글 을 창 조했다. 일본의 가다가나와 히라가나는 한자의 획을 따서 만든 글자이고 글자 수도 각각 51개나 되어 배우기가 불편하다. 한글은 영어 알파뱃보다도 2자가 적은 24자로 모든 음을 나타내고, 받

118 116/ 영락이데아 침으로 뭇도 표시하게 되어 있는 세계적인 걸작이다. 일본인은 어떤 사물을 보면 곧 본체에 아 이디어를 첨가하여 편리하게 만드는 데 천부적인 소질이 었다. 가다가나, 히라가나가 그 대표적 인 예이다. 한국 민족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창조적인 일에 소질이 있는 민족이다.2, 000년대는 기존의 과학과 기술은 그만하고 새로운 과학기술을 창조하고 새로운 윤리, 새로운 문화를 창출 해야 하는 시대가 된다. 다시 말해서 창조력의 경쟁시대가 된다. 이 새로운 시대에 가장 잘 맞는 민족이 氣 가 센 한국 민족이다.

119 퇴계선생의 건강장수론 김춘식 천안대학교 교수, 행정학 박사 영락회 대구지구 회원 몰차 1. 글머리 에 음식을 통한 건강법 운동을 통한 건강법 소리를 이용한 건강장수법 마음을 다스려 건강을 유지한다 글을 마치며

120 118/ 영락이데아 퇴계선생의 건강장수론 1. 글머리에 40대 후반을 지나 50대로 들어서게 되니 자연히 건강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예전 과 달리 몸도 굳어져서 어깨가 결리기도 하고, 어쩌다 원고가 밀려 밤이라도 꼬박 새고 나면 피 로가 며칠간 지속된다. 마음은 아직도 청춘인데 몸은 마음과 같지 않다. 그래서 요즈음은 이것 저것건강에관한책도사서 읽어보고 단전호흡도해보고 집근처에 있는산에도자주간다. 아래의 글은 지난 일년간 내가 읽은 책들 중에서 건강에 관련된 내용들을 나름대로 정리해 본 글이다. 원고를 부탁 받고 게으름을 부리다가 독촉을 받고서야 갑자기 쓰게되어 매끄럽게 정리 는 되지 않았지만 내가 말하고자하는 의도는 전달되리라고 본다. 마침 2001년은 퇴계 탄신 5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영락인과 그 가족 그 리고 독자 모두가 건강하게 장수하기를 기원하며 퇴계선생의 건강론 활인심방 을 중심으로 건 강장수법을 살펴보기로 한다. 퇴계 이황은 1501년에 태어나서 1570년에 돌아가셨다. 지금은 70세가 장수한 나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당시의 평균수명을 고려해보면 70세에 돌아가셨다는 것은 비교적 장수한 편에 속한다. 퇴계선생은 일찍부터 병약하여 평생동안을 병과 함께 살았다. 그가 임금에게 올린 편지나 제 자나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거의 대부분 자신이 병을 앓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었다. 당연히 그는 건강과 병치료에 관해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중국의 함허자 라는 사람이 지은 活 A 心 이라는 책을 자필로 베껴서 活 A 心 方 이란 책을 남기고 있으며, 또한 제자나 가족들에게 편지로 병을 치료하는 방법들을 상세하게 알려주 고 있다. 덕분에 그는 70세로 사망할 때까지도 활발한 연구와 교육활동을 할 수 있었다.

121 퇴계선생의 건강장수론 / 119 현대의 각종 건강에 관한 유명한 서적들을 살펴보면 그 방법은 크게 세가지로 나눌 수 있는 것 같다. 첫째는 음식을 적절히 섭취하는 것이고, 둘째는 적당한 운동을 하는 것이고, 셋째는 과 로와 스트레스를 피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퇴계선생의 활인심방 에는 이밖에도 소리를 통한 건강장수법을 소개하고 었다. 2. 음식을통한건강법 현대 건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는 음식의 조절이다. 음식은 현대인의 질병을 결정 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한다.40세 이후 최대 사망 원인인 암의 40%는 부적절한 식사 때 문에생긴다고한다. 퇴계 선생은 우선 잡곡밥을 즐겨 먹었다. 반찬은 세가지를 넘지 않았는데 주로 채식을 하였 다. 하루는 제자 김성일이 선생과 같이 식사를 하면서 먹은 반찬을 기록하였는데 가지, 무, 미역 의 세가지 반찬을 먹었다고 했다. 또한 식사는 철저히 소식을 하였다. 퇴계선생이 서울에 있을 때 현직 좌의정이었던 권철(권율장군의 아버지)이 찾아왔다. 퇴계선 생이 식사를 대접하였는데 퇴계는 맛있게 먹 었으나 권철은 반찬이 담박하고 맛이 없어 먹을 도 리가 없었다. 결국 그는 젓가락을 대지도 못하고 말았다. 집에 돌아가서 말하기를 지금까지 입 맛을잘못길러 이렇게 되었으니 매우부끄럽다 고하였다고한다. 오늘날 식사에 있어 소식과 저지방 저칼로리 식사 그리고 콩이나 두부와 같은 식물성 단백질 과 야채나 섬유질 식품을 많이 섭취하라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과식과 지방 질의 과다 섭취로 비만과 그에 따르는 온갖 성인병을 불러 들여 수명을 재촉하고 있다. 3. 운동을통한건강법 퇴계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축구나 태니스 같은 운동도 없었다. 또한 그는 선비였으므로 당 시 무관들이 하던 격구나 사냥도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퇴계는 주로 실내에서 할

122 120 / 영락이데아 수 있는 운동을 많이 하였다. 또한 그는 자연을 사랑하여 공부하다가 지치면 도산서원 주변을 즐겨 산책하였다. 산책을 하다가 시상이 떠오르면 시를 짓곤 하였다. 퇴계의 활인심방 중에 가 장 중요한 부분의 하나인 도인법( 導 引 法 )은 바로 퇴계가 즐겨하던 실내운동에 관한 것이다. 퇴 계는 그림까지 그려가면서 운동방법과 운동횟수 등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1) 이 부딪치기와 귀 팅겨주기 이 부딪치기 :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눈을 감고 마음을 편안히 한다. 양손으로 머리 뒷부분을 감싸듯 하고 아래 윗니를 서른 여섯 번 마주친다. 귀 팅겨주기 : 두손을 머리 뒤로 각지끼고 조용히 숨소리가 들리지 않게 아홉번 호흡한다. 그 런 다음 두 팔꿈치를 앞으로 하여 천천히 당겨 손목이 턱에 닿게 한 다음 둘째 손가락을 가운데 손가락에 올려놓고 귀 뒷부분을 스물 네 번 팅겨준다. 2) 천주혈 잡고 팔 흔들기 한 손으로 손목 안쪽에 있는 천주혈을 잡고 고개는 잡힌 팔의 반대방향으로 돌린 다음 잡힌 팔과 어깨를 흔든다. 이러한 동작을 좌우 교대로 스물 네 번씩 한다 3) 혀를 저어 침 만들어 삼키고, 팔 올리기 혀를 입안에서 골고루 휘저어 이의 구석 구석을 닥아내듯 36번 돌리면 침이 많이 생긴다. 이 것을 세 번에 나누어 삼킨다. 이어서 숨을 멈추었다가 코로 조금씩 맑은 기를 들이마신다. 양손을 주먹쥐고 위로 올린 다음 숨멈추기와 호흡을 계속한다. 4) 신장 문지르고 단전에 기( 氣 ) 보내기 두 손을 돌려 허리 뒤의 신장 부위를 서른 여섯 변 꽉꽉 눌러 주고 숨을 들여마셔 멈추고 마음 으로 따듯한 기운을 단전으로 내려 기를 보낸다. 숨을 천천허 마셔 새로운 기를 받아들여서 한 참 멈춘 후 기를 단전에 보낸다 5) 어깨 올렸다 내리기 자리에 앉아 머리를 앞으로 숙이고 한 손을 주먹쥐어 허리 뒤에 대고 어깨를 올렸다 내렸다 하기를 36번 한다. 팔을 바꾸어 다시 36번 한 뒤 단전에 기를 보낸다. 이어서 두 손을 모두 주먹

123 퇴계선생의 건강장수론 / 121 쥐어 허리 뒤에 대고 대시 어깨를 36번 아래위로 흔들고 단전으로부터 기가 척추를 거쳐 머리에 오르게 한 다음 두 다리를 쭉 편다. 6) 두 손 짝지끼고 위로 뻗어 올리기 두 손을 각지끼고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게 하여 들어올리되 하늘을 밀어 올리는 기분으로 한 다. 자세가 구부러지면 안되고 3회에서 9회까지 한다 7) 발 잡아 당기기 자리에 앉아 양발을 뻗치고 두 손으로 발바닥 중심부를 감씨듯이 잡고 숨을 들여 마시면서 발을 잡아당기며 윗몸을 앞으로 구부린다. 허리를 펴면서 숨을 내쉰다. 이 동작을 13번 한다. 끝 으로 입을 다문채 혀를 저어 침을 만든 뒤 세 번에 나누어 천천히 삼켜 마무리 한다. 이것을 밤낮으로 하루에 세 번 정도씩 오래 하면 모든 병들이 없어지고 몸이 점점 가벼워진다. 활인심방의 양생지법( 養 生 之 法 ) 편에 보면 머리를 자주 벗고, 손으로는 얼굴을 문지르고, 이 는 자주 마주쳐라고 한다. 비비고 닦으면 건강해진다고 한다. 두 손바닥을 마주대고 뜨겁게 마 찰하여 눈을 닦으면 눈이 밝아진다고 한다. 양손의 가운데 손가락으로 콧등을 20~30회 문지르 면 페의 기능이 좋아진다고 한다. 사람이 앉아 있을 때 항상 두손으로 배를 좌우로 문지르고, 양 어깨를 수십번씩 쳐주면 혈기가 잘 통해서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 외에도 퇴계는 발 바닥에 있는 용천혈을 자주 눌러 주는 운동법을 자신은 물론 이웃 사람들에게도 권하였다. 퇴계의 도인체조는 오늘날로 말하면 스트레칭과 호흡법이 주를 이룬다.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단전호흡이나 기체조들은 이러한 원리와 동작을 그대로 사용하고 었다. 양생법은 온몸을 비비 고, 문지르고, 자극을 주어서 세포를 활성화시키는 방법이다. 내뇌혁명 의 저자 하루야마 시게오에 의하면 40대가 되면 격렬한 운동은 백해무익하다고 한 다. 격렬한 운동은 활성산소를 대량으로 분비시키며 활성산소는 세포를 공격하여 유전자에 상 처를 입힌다고 한다. 그러므로 격렬한 운동보다는 부드러운 유산소운동을 권한다. 요즈음은 비만으로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살을 빼기 위한 운동을 한다. 살을 뺀다는 것은 우 리 폼에 불필요하게 많은 지방을 빼는 것인데, 지방은 오히려 부드러운 운동을 할 때 많이 빠진 다고 한다. 고른 호흡을 하면서 부드러운 운동을 장시간 계속하면 산소가 충분히 공급되어 지방

124 122 / 영락이데아 을 점차 연소시킨다. 지방을 없애는 운동으로 가장 좋은 것은 워킹이다. 매일 30분에서 한시간 정도 워킹을 하면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4. 소리를 이용한 건강장수법 활인심방에 특이한 것은 소리를 통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리는 소리에 상응하는 각 기관을 생각하면서 길게 낸다. 1) 신장을 튼튼하게 하는 소리 취- 취- 승}는 소리를 내면 방광과 신장을 튼튼하게 해준다. 2) 심장을 튼튼하게 하는 소리 획- 휘- 하는 소리를 내면 심장을 튼튼하게 한다. 마음이 산란하거나 초조할 때도 좋다. 목 이나 입에 염증이 생기며 열이 나고 아플때에도 좋다. 3) 간을 튼튼하게 하는 소리 휴- 휴- 소리는 간을 튼튼하게 한다. 간이 병들면 시거나 쓴맛을 좋아하는데 눈도 붉어지고 눈물도 많이 난다. 그럴 때 휴-하면 좋다. 4) 폐를 튼튼하게 하는 소리 스 스- 하면 폐를 튼튼하게 한다. 침이나 가래가 많은 사람 가슴이 답답하고 번거러울 때 에도좋다 5) 비장을 튼튼하게 하는 소리 호- 호- 하면 비장을 튼튼하게 한다. 설사하는 경우에 호- 하여 속을 따뭇하게 하는 것이 좋다. 비장은 음악을 좋아하며 음악 연주하는 것을 들으면 비장이 활동을 시작한다고 한다. 따라 서 좋은 음악을 들으면서 식사를 하는 것이 소화에 좋다고 한다. 6) 삼초를 건강하게 하는 소리 히- 히- 하는 소리를 내면 위의 삼초(배의 윗부분, 위부분, 그리고 배꼽아래 부분)을 튼튼하

125 퇴계선생의 건강장수론 / 123 게할 수있다. 소리는 인체의 세포, 조직, 기관에 미세한 영향을 미친다. 그 중 사람의 목소리는 훌륭한 치유 도구이자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악기이다. 톰 속으로부터 에너지를 꿀어올려 모음을 길게 소리 내는 음성내공법(서양에서는 이를 토닝 Toning이라고 한다)은 놀라운 효과를 가지고 았다. 모음을 길게 내는 토닝은 공명효과를 통해 신체에 산소를 공급하고 호흡을 갚게 하며 근육을 이 완시키고 에너지의 흐름을 촉진시킨다. 활인심방의 소리를 이용한 건강법은 바로 이러한 공명 효과를 통해 건강을 유지하는 건강법이다. 내 생각에는 활인심방의 소리를 이용한 건강법은 소 리의 공명이 우리 인체의 각 해당부분의 세포를 자극하고 활성화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예술 중에서도 음악은 우리 눈에 가장 쉽게 눈물을 맺히게 하고 춤을 추게 하며. 사랑과 창조 의 절정에 오르도록 고무해 준다. 그 중에서도 고전음악은 건강에 매우 좋다고 한다. 요즈음 말 하는 모차르트 이펙트라는 것도 음악을 통한 건강법 두뇌개발법의 일종이다. 최근에는 음악을 이용한 질병치료 방법이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러나 모든 음악이 다 건강에 좋은 것은 아니다. 호킨스 박사가 측정한 바에 의하면 고전음악, 성가 등은 건강에 유익하지만, 요즈음 유행하는 랩음악은 건강에 해롭다고 한다. 5. 마음을 다스려 건강을 유지한다. 1) 퇴계의 마음에 관한 처방 퇴계는 병의 근원은 마음에 있다고 한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바르게 잡으면 병의 근원을 밝힐 수 있고, 미음속에 근심, 걱정, 온갖 잡생각을 모두 깨끗이 떨쳐 버리면 병을 고칠 수 있게 된다 고하였다. 그러므로 톰의 병을 고치려는 자는 먼저 그 마음을 다스리라고 하였다. 마음을 편안히하여 원 기(생명의 에너지)를 보호하고 나쁜 기운을 막아주면 모든 병을 물리치고 오래도록 편안하게 살 수있다고한다. 정신을 지나치게 쓰면 기가 소모되어 매우 피로해지고 건강을 해친다고 한다. 퇴계의 제자 중

126 124 / 영락이데아 에 남시보 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너무 많은 스트레스로 마음의 병을 앓게 되어 퇴계에게 편지 를 보내어 치료책을 물었다. 퇴계는 그의 제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답하고 있다. 미음의 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먼저 세상의 출세와 영욕과 이해득실 등의 일체를 마음에 두지 말아야 한다. 이 마음을 온전히 할 수 있다면 마음의 병은 이미 50~70%는 나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기호와 욕망을 절제하고 마음을 비워 편안하고 유쾌하게 하루 하루를 보낼 것 이며,... 심기를 항상 회순한 경지에 두며, 거스러고 어지럽힘으로써 성내고 원한 품는 일이 없 도록 함이 긴요한 치료법이다... 너무 집착하거나 마음을 얽매어 그 빠른 효과를 기대해서는 더 욱안된다" 퇴계는 그의 활인심방에서 마음을 다음과 같이 다스리라고 말한다. (1) 적극적으로 추구할 마음 좋은 일만 생각하고 행한다. 편안한 마음으로 행동한다. 하늘의돗에따른다. 자신의분수를지킨다. 만족할줄안다. 자신의 수명의 한도를 알아라. 절제하고 검소하게 산다. 모든 일에 성실하게 행동한다. 사랑히는 마음을 유지한다. 연약한 자를 사랑하고 보호하라. 드러내지 않고도와준다 깨끗한마음을가진다. 인내한다. 유순하게 말하고 행동한다. 겸손하고 상냥하게 행동한다.

127 퇴계선생의 건강장수론 / 125 청렴하고몸가짐을조심한다. 지나치거나부족하지 않게 처신한다. 조심스럽고 독실하게 행동한다. 고요한마음을지켜라. 기미를 알아서 좋은 방향으로 써라. (2) 버리거나경계해야할마음 (악을 행하거나 남을 해치는 일 등) 사악한 일을 생각하는 것. 자신의 마음을 속이는 행동. 질투하고 시기하는 마음. 간사하고교활한마음. 지나친욕심. 살생. 성을내는일. 거친언동. 옳지 못한 것(을용감하게 물리친다) 인간은 화를 내거나 강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에서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 이 물질은 호르 몬의 일종으로 대단히 극렬한 독성을 갖고 있다. 항상 화를 내거나 스트레스를 자주 받으면 이 호르몬의 독성 대문에 노화가 촉진되어 오래 살 수 없다고 한다. 한편 뇌는 B-엔돌핀이라는 호르몬도 분비한다. 아무리 불쾌한 일을 겪더라도 사태를 긍정적 이고 발전적으로 받아들인다면 뇌는 신체에 이로운 호르몬을 분비한다고 한다. 퇴계는 우리 몸에 해로운 감정을 피하고 건강에 이로운 감정을 유지함으로써 건강과 장수를 누렬 수 있다고 주장한다.

128 126 / 영락이데아 2) 호킨스 박사의 의식의 지도 미국의 유명한 의사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는 그의 의식혁명 이라는 책에서 의식의 지도 라 는 것을 만들었다. 그는 운동역학을 이용한 실험을 통하여 인간의 의식을 수치화하여 의식수준 의 위계지도를 만들었다. 의식수준 200이하는 인간의 근육반응을 약하게 하고.200이상은 인 간의 근육 반응을 강하게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200을 경계로 하여 수치가 높을수록 인 간의 건강에 유익하고, 수치가 낮을수록 인간의 건강을 해치는 감정이다. 200이하의 수준은 개인이든 사회이든 파괴적인 삶을 뭇하며 200이상의 수준은 잠재력의 건 설적인 표현이다. 그러므로 200이라는 수치는 분기점이 된다. 대수의수치 -λ iir 감정, 태도와행동 깨달음 언어이전, 순수의식, 자아, 존재 600 평화 축복, 자각, 항상 존재하는, 완전한 540 기쁨 고요함, 거룩함, 존재의 순간마다 내면에서 기쁨이 솟아 오름 500 사랑 조건없는 사랑, 용서와 보살핍, 자비 400 이성 빠르고 정확한 판단력, 높은 이해력, 현명함 350 포용 용서, 초월, 인정많은, 화목한, 조화롭게 살수 있는능력 310 자발성 낙관, 다른 사람에게 진실로 친절하게 대함, 남을 도우려는 마음 기꺼이 다른 사람의 펼요에 응함 250 중용 신뢰, 편파적인 관점으로부터 해방, 온화함, 정서 안정, 자유중시 200 용기 긍정, 힘을 줌, 장애물을 만나도 자극제로 활용함 1'75 자존심 경멸, 과장, 자만심으로 바뀌기 쉽다, 비난에 약함 150 분노 미웅, 공격, 복수에 찬, 적대적임, 과민반응 125 요-1 마 갈망, 구속, 부정, 실망 100 두려움 근심, 초조. (죽음 질병 실직 등에 대한)두려웅, 강박관념 /EkEI ni 75 후회, 낙담, 경멸, 비극, 우울함 50 무기력 절망,자포자기 30 죄의식 자기비난, 파괴, 사악함, 원한을 품음 20 수치심 굴욕, 멸시, 비참함, 열등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음

129 퇴계선생의 건강장수론 / 127 의식의 지도에서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한 개인의 내면에 순수한 상태로 명백하게 드러나 는 경우는 드물다는 점이다. 의식의 여러 층들이 언제나 복합되어 있기 마련이다. 살다보면 다른 사람과 부딪치고 스트레스도 받는다. 때로는 화도 나고 근심 걱정이 생기기도 한다. 우울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소화도 잘 안될 경우가 었다. 이렬 때는 한시 바삐 이러한 감 정에서 탈출하는 것이 상책이다. 내 마음상태를 이 의식의 지도 를 들여다보고 체크해볼 수 있 다. 그리고 명상을 통해서 즉시 새로운 기분을 가지도록 노력한다. 에너지 수준 20 : 수치심 수치심의 수준은 위험할 정도로 죽음과 가까운 상태로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지만 자살할 수도 없으니 마지못해 살아간다는 식의 자세아다. 체면을 잃었을 때의 아픔이나, 모욕을 당하거 나, 사람취급을 받지 못했을 때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수치심의 단계에서는 쥐구멍이라도 었으 면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다. 성폭행을 당하고 수치심으로 자살하는 경우도 었다. 수치심은 신경증을 초래하고, 정서적 심 리적 건강에 파괴적으로 작용하여 열등감에 사로 잡혀 지내게 된다. 수치심에 찬 어린이들은 동 물을 학대하고, 자기들끼리도 잔인하게 굴곤 한다. 수치심에 찬 사람들은 비판적이거나 피해망 상적인 환상을 보기 쉽고, 정신병환자가 되기도 한다. 에너지 수준 30 : 죄의식 죄의식은 자기연민이나 자기학대, 피해의식에서 생기는 여러 증상들이다. 자학증상이 심해질 수 있다. 죄의식은 분노를 일으키고, 스스로를 비난하고, 잔인성을 드러 내기도 한다. 에너지 수준 50 : 무기력 이 수준은 빈곤, 절망, 자포자기로 특징지어진다. 현재와 미래가 황폐해 보이고, 비애가 인생 의 주제로 보인다. 이 단계는 아무런 희망이 없는 단계이다. 살려는 의욕없이 허공을 응시하고, 자극에 무감각하다. 집도 없이 혜메는 노숙자들과 사회의 낙오자가 이 수준에 속한다., 에너지 수준 75 : 슬픔 이 상태는 슬픔, 상실, 닥담의 수준이다. 우리는 때때로 이러한 경험을 하지만 이 수준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계속되는 후회와 우울함으로 인생을 살아간다. 비탄, 공허, 과거에 대한 후회가

130 128 / 영락이데아 이 수준을 지배한다. 하나를 잃어버렸으면서도 전부를 잃어버린양 일반화시키고, 그리하여 사 랑하는 사람의 상실이 사랑 자체의 상실이 된다. 이러한 감정적인 상실은 심각한 우울증이나, 죽음을 불러오기도 한다., 에너지 수준 100 : 두려움 이 수준은 좀 더 활발한 에너지의 상태이다. 위험에 대한 두려웅은 건강한 반응이다. 세상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고 그런 두려웅이 인간을 활동하게 하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적에 대한 두려움, 늙음과 죽음에 대한 두려웅, 사회적인 다수의 두려움은 인간 행동의 근본적인 동기가 된다. 두려웅은 강박관념이 되어 여러 가지 형태로 번져간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끝나는데 대한 두려움은 질투를 유발하고 만성 스트레스를 초래한다. 두려움은 전염성이 있어 사회전체 를 지배할 수도 있다. 두려움은 개인의 성장을 제한하고 억압상태를 초래한다. 에너지 수준 125 : 욕망 욕망의 수준에는 더 많은 에너지가 발견된다. 경제적인 욕구를 위한 욕망이야말로 인간 행위 의 광범위한 동기로서 작용한다. 금전 명예 권력에 대한 욕망은 두려웅 의 수준을 벗어난 많 은 사람들에게 인생의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다. 욕망은 탐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욕망이란 언제나 계속되는 에너지의 장이기 때문에 만족 이란 있을 수 없으며, 하나를 채우고 나면 다른 무엇인가를 또 채우고 싶어진다. 그래서 퇴계는 지나친 욕망을 줄여야만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지나친 욕망은 악의 근원이 된다고말한다. 원하는 마음이 있어야 사람은 성쥐로 가는 출발선 위에 설 수 있다. 욕망은 바로 그러한 이유 에서 더 높은 수준으로 뛰어 오르는 도약대가 될 수 있다. 에너지 수준 150 : 분노 분노는 좌절된 욕구에서 생기므로 그 아래 수준인 욕망의 에너지 장에 기초를 두고 었다. 좌 절은 지나친 욕망에서 온다. 분노는 증오로 전환되기 쉽고, 증오는 한 개인의 삶 전체를 부식시 커는효과를낳는다.

131 퇴계선생의 건강장수론 / 129 분노는 억압된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분기점이 될 수도 있다. 사회적 부조리와 불평등은 분노 를 유발하고 그것이 사회구조의 대변혁을 가져온 혁명이나 사회운동으로 발전된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분노는 흔히 분개나 복수로 표현되고, 따라서 폭발적이고 위험하다. 성급한 사람들, 사소한 일에 과민하고 못된 짓만 하고 잘 싸우고 소송을 일삼는 사람들은 이 분노의 수준에 속 한다. 에너지 수준 175 : 자존심 이 수준에 이른 사람들은 낮은 에너지 장에 있는 사람들에 비해 훨씬 긍정적이다. 자존심은 삶의 행진을 계속할 수 있는 버팀목 구실을 한다. 자존심은 좋은 덕목으로 평가받으며 사회적으로 권장되고 있다. 그러나 도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자존심은 분기점인 200을 훨씬 밑도는 수준이다. 하지만 자존심의 팽만은 추락하기 일보 직전이라는 점이다. 자존심은 방어적이고 약점 투성이 다. 자존심이란 외부 조건에 의존해서 생기는 것이며 또 그것 없이는 언제나 낮은 의식 수준으 로 돌아갈 수 있다. 부풀어오른 자존심은 비난에 약하다. 자존심은 아주 쉽게 수치심의 수준으 로 떨어질 수 있으며, 바로 그점 때문에 약한 의식 수준이다. 자존심의 약점은 오만과 부정이다. 즉 자존심은 자만심으로 바뀔 수 었다. 자존심에 가득찬 사람들은 의식의 성장을 스스로 차단한다. 자존심이 있는 한 집착에서 해방되는 것은 불가능하 다. 자존심에 가득찬 사람들은 자신의 성품이 갖고 있는 약점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자존심은 진실한 성장과 명예를 안겨줄 수 있는 참된 내변의 힘을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물인 것이다. 에너지 수준 200 : 용기 200의 수준에서는 내면의 참된 잠재력이 처음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단계야 말로 인생 에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구분하여 주는 분기점이다. 이 단계는 탐구, 성취, 결단의 영역이다. 용기의 수준에 이르면 인생이 흥미롭고, 도전적이며, 자극적인 것이 된다. 용기는 우리에게 기꺼이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게 도와주고 파란만장한 인생을 긍정적으로 전 환시켜 준다. 이 수준에 이르러 우리는 비로소 인생이 우리에게 주는 기회를 효과적으로 처리할

132 130 / 영락이데아 수있는힘을갖는다. 이 수준에 이르면 두려움이나 결점에도 불구하고 성장할 수 있으며 걱정하는 일이 없지는 않 지만 노력 자체를 마비시커지는 않는다. 장애물을 만난다 할지라도 잠재력을 갖기 시작한 이 수 준의 사람들은 이를 자극제로서 활용한다. 이 수준의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성취함으로써 또 다른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힘 을 얻고, 더욱 더 용기백배하게 된다. 바로 이 수준에서 비로소 생산성이 생기기 시작한다. 에너지 수준 250 : 중용 이 수준은 편파적인 관점으로부터의 해방을 뭇한다. 편파적인 태도는 극단적인 대립을 초래하 고 대립은 분열과 반대를 낳는다. 중용의 태도는 유연성과 포용력 문제에 대한 현실적언 파악 능력을 갖게 해준다. 중용의 자세를 취함으로써 우리는 결과를 비교적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이 게 되고, 또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패배하거나 좌절하거나 놀라는 일도 없게 된다. 중용의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편안함을 느끼고 이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자기신뢰 를 잃지 않는다. 그들은 온화하고 근본적으로 정서가 안정되어 있다. 그들의 태도는 비난적이지 않다. 그들은 자유를 아주 중시한다. 에너지 수준 310 : 자발성 자발성이란 인생에 대한 보이지 않는 저항을 극복하고 기꺼이 참여하는 마음이다. 이 수준에 도달한 사람들은 마음이 활짝 열려 있다. 이 수준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진실로 친절하게 대 하고, 사회적 경제적 성공이 저절로 따른다. 그들은 밑바닥 일이나 손님을 접대하는 일에 수치 심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도우려는 마음을 품고 있으며, 사회의 선에 이바지 한다. 그들은 배움에 장벽을 두지 않는다. 이 수준에 이르면 자긍심이 높고 이것은 사회적인 인정 존중 또는 보상 등에서 오는 반응에 의해 향상 보강된다. 자발성이란 기꺼이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응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곤경으로부터의 회복 능력 시련을 통한 배움을 통해 이들은 자기 스스로를 바로 세우는 수준 으로 향상한다. 그들은 자존심을 극복함으로써 자신의 결점을 바라보려고 하며, 다른 사람들에 게 기꺼이 배우려고 한다. 이 수준의 사람들은 성장이 빠르고 마치 향상을 위해 태어난 사람들

133 퇴계선생의 건강장수론 / 131 처럼보인다. 에너지 수준 350 : 포용 이 수준에 이르면 인생의 여러 외적인 힘에 대응하면서도 조회롭게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200이하의 사람들은 자신들을 인생이란 폭군의 피해자로 바라보기 쉽다. 이러한 생각은 자신 의 행복이나 문제의 근원이 밖 에 있다고 믿는 데에 기인한다. 그러나 이 수준에 이르면 행복 의 근원이 자신 속에 존재한다고 깨달음으로써 커다란 도약이 이루어진다. 사랑이란 다른 사람들에게서 오거나 그들에 의해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 속에서 만들어 지는 것임을 알게 된다. 포용의 단계에 있는 사람은 세상사를 특정한 방향으로 억지로 꿀고 가 려고 하지 않는다. 이 수준은 노자의 무위자연사상과 일맥상통한다. 포용이란 균형, 조화, 지나치지 않음을 말한다. 포용의 수준에 이르면 대립되는 의견이나 갈 등에도 극단주의를 택하지 않는다. 포용의 수준에 있는 사람은 어려운 과제나 일을 만나더라도 괴로워하거나 곤혹스러워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눈앞의 목표보다는 장기적인 목표가 항상 중 요하고, 자기 훈련과 일의 숙달이 무엇보다 우위에 었다. 에너지 수준 400 : 이성 이성의 단계에서는광범위하고 복잡한 자료들을 처리할능력을 갖고 있어 삐르고 정확한판단 력을 보여준다. 이성의 단계에서는 관계의 미묘함 점진적인 변화와 분명한 차이점이 있는 것에 대한 이해력이 높아지고 추상적인 개념과 같은 상정체계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에너지 수준 500 : 사랑 여기에서 말하는 사랑은 흔히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남녀간의 사랑이 아니다. 그러한 사랑은 속절없이 무너지기 쉽고 주어진 조건에 따라 파도치곤 한다. 사랑에 좌절하게 되면 그 동안 숨 겨졌던 노여움과 의존성이 발가벗겨져서 그 정체를 드러낸다. 사랑이 미웅으로 변할 수 있는 것 은 상식같이 되어 있지만 이러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지독한 감상주의의 소산에 불과하다. 에너지 수준 500의 단계에서는 조건없고 변함없고 영원한 사랑에 눈뜸으로 특징지을 수 있 다. 사랑이란 외부의 조건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내부에서 그 근원을 찾기에

134 132 / 영락이데아 이 수준에서의 사랑은 오르내림의 파동을 보이지 않는다. 사랑은 용서와 보살펌의 세계로 가는 길이다. 사랑은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고양시켜 주고 그 동기의 순수성으로 인해 크나큰 성취를 이루기도 한다. 사랑의 느낌을 가지면 뇌에서는 엔도르 핀이 분비된다는 사실은 이미 밝혀진바 있다. 사랑은 신분이나 입장을 초월하는 보편성을 가진다. 사랑이란 모든 것을 감싸 안고, 자아에 대한 인식을 확장시켜 준다. 사랑은 삶의 아름다움에 눈뜨게 하여 삶을 힘차게 긍정하게 한다. 사랑은 삶의 부정적인 요소를 공격하거나 비난하기보다는 전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게 하여 그, 에너지수준 540 : 기쁨 것을 녹여 버린다. 이 수준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다. 사랑에 조건이 없어지면 없어질수록 내변의 기쁨 이 점차 차오르게 된다. 이 수준에서의 기 쁨이란 사건의 변화에서 오는 갑작스런 즐거움이 아니라 모든 활동에 동반되는 항구적인 것이 다. 기쁨이란 외부의 어딘가에 근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매순간마다 솟구치는 것이다. 이 수준에서는 치유가 시작된다.540 이상부터는 성인 영적 치유자 그리고 그 제::z.}들의 영역 이다. 이 에너지장의 특징은 계속되는 역경속에서도 인내하고 긍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수준의 특정은 이들이 갖는 자비의 마음장태이다. 이 수준에 도달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 이들에게는 사랑과 평화를 널리 전파할 수 있는 능력이 었다. 에너지 수준 600 : 평화 이 에너지장은 초월이나 자아실현 등으로 묘사되는 경험과 갚이 관련된다. 이들은 순수한 영 성의 소유자들이다.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이 다른 사람들이 보는 세상과 다를 바가 없는데도 불 구하고, 그들은 이 세상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무한한 가능성과 의미로 가득찬 진화의 춤을 계속 추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에너지 수준 700"'1000 : 깨달음 이 수준은 영적 완성자의 수준이다. 강력한 영감의 소유자로서 이들은 모든 인류에게 영향을 주는 꿀개 에너지장을 형성한다. 심오한 가르침은 사람들의 정신을 앙양하고 인간성의 자각에 눈뜨도록 부추긴다. 이러한 비

135 퇴계선생의 건강장수론 / 133 전을 갖는 것은 은총이라 불리며, 이 은총에 의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한한 평화를 경험하게 된다. 육신인 나에 대한 관념이 없어져서, 운명이라는 것에도 연연해하지 않는다, 육신이란 마음의 창문을 통한 의식의 도구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폼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의사소통을 위해 필요한것일뿐이다. 자아는보다큰 진아로녹아들어간다. 항상깨어있는상태이다. 이들은 손바닥에서 축복의 에너지가 발산되고 머리 뒤에는 후광이 비친다. 이처럼 신성한 은 총은 1, 000에 이르는 것으로 측정되며, 역사에 기록된 인간으로서는 가장 높은 수준으로서, 이 들에게는 주(Lord)라는 명칭을 붙이는 것이 마땅하다. 예수나 부처의 수준이 이에 해당한다. 6. 글을마치며 이 세상에서 건강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한국인의 40대 사망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한다. 한창 일할 나이의 젊은 사람들이 과로와 스트레스, 성인병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퇴계의 활인심방 은 음식과 운동 마음의 다스렴을 통한 종합적인 예방의학이다. 활인심방 에는 모름지기 현명한 의사라면 질병에 걸리기 전에 미리 손을 써서 건강을 유지하여 병에 걸 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의술이나 약으로 병을 고치는 것은 의사가 하는 방편이고, 병을 얻은 다 음에 손을 쓰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나 하는 짓이다. 사람이 질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도 먼저 마음을 가다듬고 수OJ을 쌓아야 한다. 모든 병은 마음가짐에서 생겨나게 마련이기 때문 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영락인 모두는 나름대로 건강장수법을 실천하여 80세에 히말리아에 오르고 100세에 백두산에 오르는 건강장수의 복을 누리기 바란다. 끝으로 영락회원 중에 의학박사님이 많은데 겁도 없이 비전공자가 건강장수론을 멸친 것을 용 서하여주시기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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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염락연구소는 영략외사무처(저장 조영섭)가 영략이데아 저13호 시론을 통째 발표 안 앙후 영략외의 끔영목표 및 구체적인 쉴전사업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특 01 쉴천사업중에서 영락사상의 연구 정립 보급 쉴전을 위안 광개토대왕의 이넘 논문칩인 영락이데아 에 대마여 재정적 후뭔과 막술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안 부분에 대때서 영락의 이름으로 치아드린다. 영락연구소소장이동춘 --뀔l템률 지난 영락이데아 제 2호 (2000년 봄 여름호)에 이어서 이번 제 3호 (2001년 특 집호)에서도 영락회 회원들의 편집자문에 관한 열정이 끊이질 않았다. 특히 이변호는 고구려 및 광개토대왕 유적답사 기념 특집호로 편집 제작되었으 며, 조영섭 사무처장과 지용광 위원은 지난번과 같이 광고로 후원해 주었다. 그 리고 영락회 대구지구의 김후근, 남웅수, 서영훈, 유영재회원, 서울지구의 권오 현, 박선기, 성기석, 이근형회원, 부산지구의 정낙진회원의 정성어린 재정적 후 원이 있었다. 위 회원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 영락회 영락연구소 -

138 명락 01뎌 l아 져I~효J(특칩) 펀질위원회 책임편집: 자문위원: 김영조 권오현 김춘식 박선기 성기석 이근형 조영섭 홍성태 이동춘 김후근 남웅수 서영훈 유영재 정닥진 지용광 (가나다순) 엉략이뎌l야 찌13호 비매품 인 쇄 /2001 년 2 월 15 일 발 행 /2001 년 2 월 25 일 발행인 /김 여 o 조(영락회 의장) ( [email protected]) 편 집 인 / 이 동 춘(영락연구소장) ( [email protected]) 했 본 서의 내용중 일부 혹은 전부를 무단으로 복제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139 이찌 l 는 편역 Ei 수,'tπl 밭다 ll 져왔광박샤핸 야심작 신국판.164먼 / 값 7, 000원 우려논 오든 스트레스 때문에 죽음 수도 옛고, 스트레스 때푼어 l 랜복판 새웰음 누램 수도 뱃마. 그건은 오석 Ri새 01 ~센의 갚음 에펠케 마스려느냐에 탕려뱃마. 직징인 학생 주부건강를위한 스트리ι 해소업 머리글 l장/스트레스는 우리는 친구이자 적이다 2장 가정:안전한 항구인가? 태풍의 중심권인가? G 트를tI~는 후를 l 오 I ~I' 져...:... 이자 1 이다 3장 직%뼈l서의 스트레스 4장 들어라! 당선의 신체가 당선에게 말을 하고 있다 5장 어느정도의 스트레스가 좋을까 세 '11 츠 용 n 용캉 인역 6장 불안을 져서 쓰러뜨리자 7장 우리의 세계를 살기좋게 만들어라 8장 쇠약 -어떻게 할까? 9장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방법을 알자 10장 스트레스를 이기는 10가지 완확 방법 도서 1... 를] 출판 ï 1:1 서울시 서초구 방배 2동 뚱휠 이 잭을 번역 감수한 지용광은 경북맨학교 의과대학, 중앙댐학교 댄학원을 졸업한 맨과전문의 의학박샤로셔 현~ 울진중앙병원 원장01며 영략회 중앙운영위원이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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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꾸는 꿈은 꿈에 불과하지만, 여럿이 꾸는 꿈은 현실이 되게 한다. 아빠가 나를 사랑하기는 했어? 치료나 하세요. 견디는 건 내가 하면 되니까. 너희들은 엄마라도 있지만 난 남편을 잃어 날 지탱할 수 없다고! 왜 우린하고 싶은데 못하는 게 많아? 여보, 내 곁에 오래오래 머물러 줘야 해요. 사랑해요. 아빠, 아빠의 사랑하는 첫째 딸 상 받았어.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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