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11 회 고대 고분 국제학술대회 고분을통해본 호남지역의 EH 외교류와 연대관 Dating and Cultural exchanges as seen th ough the tomb in Honam region 국립나주문확쩨연구소 Naju National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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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저 11 회 고대 고분 국제학술대회 고분을통해본 호남지역의 EH 외교류와 연대관 Dating and Cultural exchanges as seen th ough the tomb in Honam region 국립나주문확쩨연구소 Naju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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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제 1 호 고대 고분 국제학술댄회 순서 제1부 (09:00-12:0 이 09:00 09:20 09:20 09:40 09:40-1 O:Q(] 10:00 1 0:20 10:20-10:40 사호 : 조상순(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실장) 로 개회사 ; 이상준(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장) 환영사 ; 강순형(국립문화재연구소장) 축 사 ; 강인규(나주시장) 기조발표 ; 호남지역 삼국시대 고분의 전개양상 발표 ; 초 성락(목포대학교) 신안 배빌리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언대관 발표 ; 이정호(동신대학교), 토론 ; 김낙중(전북대학교) 고흥 야막고분의 언대와 등장배경에 대한 검토 발표 권택장(문화재정), 토론 김영민(울산대학교 박물관) 10:40 10:50 10:50-11:10 11: :30 11 :30 11 :50 11 :50-13:30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발표 ; 전용호(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토론 ; 홍보식(부산박물관)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발표 ; 이영칠(대한문화재연구원), 토론 ; 서현주(한국전통문화대학교) 고장 봉덕리 1호분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발표 ; 이문형(원광대학교 마한 백제문화연구소), 토론 ; 성정용(충북대학교) 오찬 저 12부 (13:30 16:0이 13:30 14: 10 14:10 14:50 14:50 15:30 15:30 15:50 저 13부 (15:50-18:0 이 15:50 18:00 일본 북부큐슈 고분시대 중기의 매장시설과 동경 발표 : J± 田 淳 - 郞 (츠치다 준이치로/일본 큐슈대학교), 토론 ; 박전수(경북대학교) 백제권역 출토 중국 육조정자의 연대와 성격 발표 ; 李 B 軍 達 (리후이따/절강성문물고고연구소), 토론 ; 권오영(한신대학교) 베트남옹관의먼모 발표 : Bui Van Liem(부 01 반리엠/베트남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부소장) 토론 ; 이동흐 (순천대학교박물관) 등시 "TT --, 종합토론 좌 장 ; 임영진(전남대학교) 토론자, 김낙중(전북대학교), 김영민(울산대학교 박물관), 홍보식(부산박물관), 서현주(한국전통문화대학교), 성정용(충북대학교), 박천수(경북대학교), 권오영(한신대학교), 이동흐 (순천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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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고분을통해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CONTENTS 호남지역 삼국시대 고분의 전개앙상 최성락 07 신안 배빌리 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이정호 19 고흥 야막고분의 연대와 등장배경에 대한 검토 권택장 39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57 전용호 이진우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이영철 99 고창 봉덕리 1호분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이문형 129 日 本 北 部 九 州 仁 <f.31t 깅 古 增 B꿈 代 中 理 흉 施 設 t 鋼 鏡 749 일본 북부큐슈 고분시대 중기의 매장시설과 동경 I J± 田 淳 - 郞 (츠치다 준이치로) 百 淸 故 地 出 土 中 固 六 朝 룹 資 的 年 代 和 意 X 179 백제권역 출토 중국 육조정자의 연대와 성격 李 B 軍 達 (리후이따) Lo~i hinh m(> chum Vi 당t Nam qua nghien cuu cac giai do?ll phat trien Va khu VIJC phan bo 베트남옹관의 먼모 207 I Ph6 giao su, Ti n si Bui Van Liem Th~c si Hoang Thuy Quynh (부이 반 리엠 황 튀 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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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01 호남지역 삼국시대 고분의 전개양상 최 성 락 (목포대학교 고고학과).머리말.고분의개념과분류. 고분의 펀년 및 연대관 IV. 고분의 변천 및 대외교류 v. 맺음말.머리말 호남지역에서의 고분연구는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되었는데 일본 연구자들이 나주 반남면 고분군 을 조사하는 것이 그 시초이다. 이후 우리 연구자들의 고분 연구는 1960년대 영암 시종리 고분군의 조사가 그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 50 년간 수많은 고분이 조사되었고, 그 실체에 대한 접근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영산강유 역에서는 다른 지역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고분들이 확인되었고, 그 분포 양상과 더불어 편년과 성격도 어느 정도 밝혀졌다 하지만 각 연구자들이 호남지역 고분을 바라보는 시각은 너무나 차이가 있어 다소 혼란스러운 면도 없지 않다. 이러한 시각 차이를 계속 방치한다면 고분 연구에 하나의 장 애요인으로 작용할 뿐 아니라 고고학 연구 전반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없을 것이다. 본고에서는 호남지역 삼국시대 고분의 전개양상을 몇 가지 측면, 즉 고분의 개념과 분류, 고분의 편년과 연대관, 고분의 변천과 대외교류 등을 정리해 보고, 앞으로 연구방향에 대한 의견을 제시해 보고자한다.. 고분의 개넘과분류 한국고고학에 서 古 慣 의 개념은 분명하게 정의된 적은 없지만 대체로 삼국시대 이후의 무덤을 지 칭하는 용어이다. 즉 고구려의 적석총과 석실분, 백제의 적석총과 석실분, 신라의 적석목곽분, 가야 의수혈식 석곽분등이 대 표적인고분이다(김원용 1986). 한국고고학에서 고분의 개념은 1990년대에 호남지역 삼국시대 고분의 전개앙상 I 7
9 들어와서 논의되었다. 최종규 (1991, )는 고분의 개념을 부정하고, 그 대신 大 形 基 와 高 隊 으로 분류한 반면에 신경철 (1992)과 안재호 (1992) 등은 고분이란 高 t 象 古 慣 의 약어로 정치적 신분질서체 제화의 상징물로서 王 者 의 묘를 지칭하는 용어로 보면서 I 류 목곽묘(즉 북방계 목곽묘) 단계를 고 분으로 보았다. 이러한 고분의 개념은 일본고고학에서의 개념을 염두에 둔 것이다. 즉 일본고고학 에서의 古 瓚 은 古 瓚 時 代 의 무덤 으로 정의되면서 前 方 後 [HJ 慣 을 지칭하는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으 며, 古 慣 時 代 이전의 무덤을 慣 묘 基. 區 畵 I] 基, 方 形 周 構 훌. 方 形 臺 狀 훌 등으로 불리고 있다( 近 購 義 郞 1977' 1995). 그런데 호남지역에서의 고분은 매장시설을 중심으로 옹관묘, 토광묘, 석곽묘, 석실분 등으로 분 류되었다(호남고고학회 1997). 다만 영산강유역에서는 일찍부터 석실분 이외에도 대 형옹관묘(성닥 준 1983) 혹은 옹관고분(이정호 1996)과 전방후원형고분(최성락 1986) 의 존재가 인식되고 있었다. 호남지역 고분에 각 연구자들의 분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최완규 (1997) 는 금강유역의 백제고분을 연구하면서 주구묘에 뒤이어 수혈식석곽분, 횡구식석곽분. 횡혈식석실분 등이 등장한다 고 보았다. 또한 그는 호남지역에서 분구묘 I) 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면서 전북지역 원삼국시대의 분 묘를 주구묘, 주구토광묘 분구묘 등으로 구분하고 분구묘란 주구묘의 평면적 기획에서 입체적으로 이행된 것으로 익산 율촌리 무덤을 그 예로 들고 있다(최완규 1996). 뒤이어 그는 분구묘의 개념 속 에 주구묘와 일부 삼국시대 고분도 포함시키면서 마한의 무텀을 토광묘 옹관묘 그리고 분구묘로 나 누고, 분구묘를 다시 주구묘, 이형 분구묘, 방대형 분구묘. 원형 분구묘 등으로 세분하기도 하였다 (최완규 2000). 임영진 (1997)은 전남지역의 석실분을 영산강식 석실봉토분. 남해안식 석실봉토분. 백제식 석실 봉토분 등으로 구분하였다. 하지만 그는 분구묘의 개념을 받아들인 후 封 瓚 과 項 Ji의 개념을 구분 하면서 境 묘홍를 저분구묘, 중분구묘, 고분구묘로 분류하고, 각각 주구묘, 만가촌 고분 신촌리 9호 분을 예로 들고 있으며 주구묘에서 초기 석실분(전방후원형고분 포함)까지 호남지역의 특색을 보여 주는 무덤을 분구묘라 통칭하였다. 또한 그는 장고분(전방후원형고분)을 제외한 모든 무덤에 모두 묘 를 붙여 토광묘, 옹관묘. 석실묘 등으로 지칭하고 있다(임영진 ). 한편 백제고분을 전반적으로 분류 정리한 안승주 (1975)는 기단식적석총, 토광분. 석실분(수혈 식 석실분과 횡혈식 석실분), 전축분, 옹관묘, 화장묘 등으로 분류하였다. 반면 이남석 (2002)은 석 실분, 전축분, 적석총을 제외하면 토광묘, 옹관묘, 석곽묘, 분구묘(분구토광묘, 분구옹관묘), 주구묘 (주구토광묘, 방형주구묘), 화장묘, 와관묘 등으로 분류하였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백제의 지배층 무 덤을 00분으로 명명하고. 그 외의 무텀을 00묘로 인식하는 데에서 출발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남석 (2013)은 최근 논문에서 고분의 명칭을 다소 달리 사용하고 있다 즉 마한의 분묘인 옹관묘, 토 광묘를 봉토요, 봉석묘로 파악하고. 백제의 분묘로 분구묘(분구토광묘, 분구옹관묘) 이외에 주구토 1) 분구묘를 개념적으로 정의한 것은 이성주이다. 그는 일본 야요이시대 분구묘에서 착안하여 혐묘의 개념을 封 土 와 뚜렷이 구분하면서 동아시아의 고분을 봉토분과 분구묘로 앙분하였다, 즉 封 土 慣 은 선 매장주체부 설치 후 봉토 이고, 분구묘는 선 분구축조 후 매장주체부 설치 로 규정하였다(이성주 200이 8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0 광묘, 관곽토광묘, 석곽묘, 석실묘, 옹관묘, 횡혈묘, 전축묘, 화장묘, 적석총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러한무덤의 분류와 인식은분구묘를 마한의 무덤이라고 보는 다른 연구자와상이하게 4 5세기대 의 백제의 무덤으로 보고 있고 마한의 무덤을 오히려 봉토묘, 봉석묘라고 인식하고 있다. 이와같이 삼국시대의 무덤에 00묘로붙이는 경향은호남동부지역의 고분에도 적용되어 대부분 연구자들은 가야계의 고분을 수혈식 석곽묘로 기술하고 있다(곽장근 1999, 이동희 2005). 한편 김닥중은 영산강유역의 고분을 복합제형분 1(목관중심), 복합제형분2(옹관중심), 고총(옹관 분, 초기석실분), 백제식 석실분으로 분류하고 있다. 복합제형분은 영산강유역에서 나타나는 제형의 주구에 매장주제가 목관 혹은 옹관이 무덤에 붙여진 새로운 명칭이고, 옹관분은 기왕에 사용되는 옹 관고분의 개념을 좁혀 고총화되는 5세기대의 옹관고분만을 지칭하고 있다. 그리고 필자는 古 環 이란 왕 혹은 수장급의 무덤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왕 혹은 수장급의 무 덤이 출현한 시기 이후 즉 삼국시대의 무덤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았고 고분의 명칭을 매장주체 부에 근거하여 제시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필자는 영산강유역의 고분을 옹관고분, 목관고분, 석곽분, 석실분, 전방후원형고분 등으로 분류하였다. 다만 전방후원형고분은 석실을 매장주체부로 하지만 일본의 전방후원분과 관련성이 있기에 고분의 외형에 따른 명칭이고, 목관고분은 주구토광 묘(주구묘)에서 변화되면서 매장주체부가 다장화되면서 수평적 혹은 수직적 확대가 이루어진 고분 을 말한다(최성락 2009).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호남지역에서 여러 연구자들이 쓰고 있는 고분의 개념과 분류는 다 음과 같은 문제점들이 나타난다. 첫째, 고분의 개념이 불분명하고, 고분의 분류가각 연구자마다다르다. 고분의 개념이 선사시대 의 무텀을 포함하는지 아니면 삼국시대의 무덤을 언급하는지에 대한 논의된 바가 없이 그 개념이 모 호하게 사용되고 있다. 오히려 분구묘의 개념이 설정되면서 과거 고분에서 제외되었던 주구묘(주구 토광묘)도 분구묘에 포함시킴으로써 고분의 개념을 확대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더구나 삼국시대 고분의 분류 체계가 각 연구자들마다 아주 달라 혼란을 야기시키고 있다. 둘째, 호남지역에서 사용되고 있는 분구요의 개념이 일정하기 않다. 분구묘의 개념이 등장한 이후 크게 다섯 가지 방향으로 사용되고 처음 사용한 분구묘 개념, 즉 선분구 후매장시 설 설치 의 개념을 받아들여 주구묘에서 전방후원형고분까지를 분구묘로 인식하는 경우이다(최완규 2000, 임영진 기존의 개념을 따르지만 방형 주구에 토광(목관)이 매장주체인 무텀을 분 구묘로 강조하는 경우이다(이택구 2008, 김승옥 2011). 분구묘의 개념을 축소하는 경우이다. 즉 분구묘를 주구토광묘(주구묘)와 분리하여 사다리꼴의 주구에 매장주체부가 토광묘인 무덤에 한정하 는 것으로 사용하는 경우(김영희 2008) 가 있고, 또 분구묘를 분구토광묘와 분구옹관묘로 나누면서 주구묘나 주구토광묘와는 차별화하는 경우이다(이남석 분구묘의 개념을 과거와 같이 선 분구 후매장시설 설치 로 정의하기 어렵기 때문에 지상에 매장시설을 설치한 무덤 으로 정의하는 경 우이다(임영진 2011). 그밖에 분구묘의 개념을 다르게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즉 김닥중 (2007, 2009)은 분구묘의 개념을 단순히 선분구 후매장시설 설치 가 아니라 주구를 돌리고 분구에 대한 매 호남지역 삼국시대 고분의 전개앙상 I 9
11 장시설의 설치순서가 동시에 또는 후행성을 나타내며 이에 따라 다장의 특정을 수반하고, 분구 확장 의 현상이 자주 관찰되는 묘제를 분구묘 라고 하고, 매장시설의 변천과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전통성 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분구묘전통 이라고 부르고자 하며, 일본과 같이 묘제의 발전단계의 한 과 정으로 설정하지 않는다 고 하였다. 셋째, 고분의 명칭에서 묘와 분이 혼용되고 있다. 특히 석실분을 석실묘로 부르는 경우가 있고, 석곽분도 석곽묘로도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무덤의 변천과정을 묘 - 분 - 총(이희준 1997) 혹은 분 묘 고분 - 고총(김용성 1998) 이라고 보고 있는 연구자들은 삼국시대 고분이나 고분군의 명칭에 00분 이나 00호분 을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호남지역에서도 고분의 명칭에서 00분으 로 명명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이상과 같이 각 연구자들이 사용하는 고분의 개념과 분류가 서로 달라 매우 혼란스럽다, 특히 1990 년대에 들어와서 분구묘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면서 더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2). 이러한 혼 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고분의 개념과 분류에 대한 학계의 진지한 논의가 펼요한 시점이라고 생각 된다. 왜냐하면 고분의 개념과 명칭은 고고학에서 사용되는 기본적인 언어이다. 연구자들 간에 서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고분의 개념과 용어의 통일은 고고학 연구에서 가장 기본적인 일이다.. 고분의 편년 및 연대관 고분의 편년은 고분 자체의 변화를 기준으로 하거나 혹은 출토유물에 의해 결정된다고 볼 수 있 다. 우선 영산강유역 고분의 대략적인 편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표 1). 표 1. 영산강유역 고분의 편년 연대 고분의양상 대표적인유적 기원전 2 1세기 (주구)토광묘, 옹관묘 해남군곡리 유적, 광주신창동유적 기원전 1세기 (주구)토광묘의 발달 영광군동 라유적, 함펑 순촌유적 기원후 3세기 말 옹관고분( I 기)과 목관고분의 등장 영암 옥야리 14호분, 나주 용호리 고분 기원후 4세기중반 기원후 5세기 중반 기원후 5세기 말 옹관고분 (JI 기)과 목관고분의 확산 영암 만수리 4호 신연리 9호 초분골, 함평만가촌고분 옹관고분 (ill 기)의 고총화와 나주 신촌리 대안리 덕산리 고분, 수혈식 및 횡구식 석곽분의 등장 영암방대형 고분, 해남만의총 석실분(전기); 횡혈식 석실분과 전방후원형고분의등장 나주 복암리 3호분 송제리 고분, 함평 신덕 1호분, 광주명화동고분, 무안 구산랴 옹관, 영광 대천리 고분 나주 복암리 3호분 흥덕리 대안리 4호분, 기원후 6세기 중엽 석실분(후기): 백제계 횡혈식 무안 인평 석실분, 함평 신덕 2호분, 신안도창라고분 이상과 같이 영산강유역에서는 3세기 말경에 옹관고분과 목관고분이 형성되었고, 5세기 중반에 는 수혈식 석곽분이니 횡구식 석곽분이 나타났으며, 5세기 말에는 석실분(전방후원형고분) 등으로 2) 필자는 이미 분구묘라는 용어의 문제점을 수차례에 걸쳐 지적한 바가 있어 본고에서는 반복하지 않겠다(최성락 2007, 2009). 10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2 변화되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편년을 호남지역 전체에 확대하여 적용시킬 수 없는 것이다. 우선 수혈식 석곽분의 경우, 전북지역에나 전남 동부지역에서 4세기 말경에는 등장하였고, 5세기에 들어 서면 횡구식 석곽분과 횡혈식 석실분이 축조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편년도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연구자들마다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 면 옹관고분인 나주 신촌리 9호분의 축조연대는 연구자마다 다른 연대관을 제시하고 있다 (표 2). 표 2. 나주 신촌리 9호분의 연대관 (오동선 2009) 'T 티 ι 연구자 예상 A.꽤U 示 -'Jt.(!~ I ) I띠 (1973) 장식 대도 外 - 2 安 承 }댐 (1 983 ) 옹관금동관 성충 - 4세기 5세기 6세기 - 중 후 ;ζ- 진 중 F ~ 진 -'6 우 3 1ffi싼찌j li\ti~i!i'(l988 ) 옹관 상하층 -- 4 朴 水 ~':) (1 989) 금동관 상층 ) 李 Jt쩌 ( 1 996) 옹관 - 상하충 6 lβ 太 J1j (1997) 금동관 상층 7 Hi''f1:!:( t998) 금동관 상층 이종선 (2001) 금동관 상층 ' J 헤 l써1~(2000) 7l!Ull 싱하충 JO 金 i~ 1j 1( 2006; l ) 옹관 장식대도 - 상히층 - ll ~* 水 ;t(2003) 분주토가 상하층 ~~ 'i't쩌;(2α)ix! 2007a) 위세푼 분주토 'lj I I L 상히층 1:1 싸W:~ i!(2이생) 옹관 상하충 비고 상하층 나주 신촌리 9호분의 연대를 빠르게는 4세기 중후반으로 보았지만 늦게는 5세기 말에서 6세지 전 반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연대는 옹관의 형식분류에 기초하거나 출토유물을 기준으로 제시된 것이다. 호남지역에서는 고분 연구와 더불어 유물에 대한 연구도 많이 이루어졌다. 특히 영산강유역 고 분 출토 토기를 집대성한 연구 (서현주 2006)를 비 롯한 개별적인 유물의 연구는 주로 형식분류와 연 대, 그리고 기능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는 고고학 자료에 대한 연구 결과로 제시되는 연 대를 통상 연구자의 연대관이라고 부른다 이 경우에 고고학 연대는 객관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제시 되어야 하지만 때 로는 연구자의 시각에 따라 결 정되기도 한다, 더구나 삼국시대가 역사시대에 속하 지만 연대를 알려줄 수 있는 문자 자료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고고학 자료의 연대는 선사시대와 다를 바가 없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삼국시대의 연대도 형식분류와 상대연대 결 정법에 의존하 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연구자의 시각이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이와 같이 한국고고학에서 형태 적인 변이에 따라 상대연대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역사시대에도 절대연대결정법을 적절히 사용하여야 한다는 지적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김장석 2014). 그런데 고고학의 연대는역사학의 연대기와같은의미이지만고고학자료의특성상쉽게 얻을수 없다. 고고학에서 연대를 결정하는 방법에는 상대연대결정법과 절대연대결정법이 있다. 고고학 자 료의 선후관계를 결정하는 상대연대결정법과 달리 절대연대결정법은 과학적인 측정방법에 의한 연 대결정이다. 고고학의 편년이 객관적이 되기 위해서는 상대연대결정법과 절대연대 결 정법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다(최성락 1989). 호남지역 삼국시대 고분의 전개앙상 I 11
13 결국 고분의 연대를 설정하는 작업은 고분의 성격을 밝히기 위한 기초적인 작업이다. 하지만 고 고학에서 연대관 이라는 표현 속에는 객관적인 연대라기보다는 고고학 연구자가 고고학 자료를 바라 보는 시각이 연대를 결정하는데 크게 작용할 수가 있다. 이를 극복하고 객관적인 연대를 얻기 위하 여 고고학 연구자들은 절대연대결정법을 적절히 사용하는 편년작업을 꾸준히 시도하여야 할 것이다. IV. 고분의 변천 및 대외교류 1. 고분의 변천 먼저 최완규 (1997)는 금강유역에서의 백제고분을 연구하면서 주구묘에서 출발하여 수혈식 석곽 분 횡구식 석곽분 횡혈식 석실분등으로 변화되었다고보았다. 다만이러한고분의 변천은다 소 수정이 불가피하다. 최근 금강하류에서 새로이 4 5세기대의 분구묘(필자의 목관고분)가 대규모 로 확인되고 있어 수혈식 석곽분과 어느 정도 공존하였을 가능성이 많다. ~JGU;빼!JI I 111uMi빼m t하 10~ 낀 '1i in i i밸렌 푼 I ~ 灣 t 얘 u~엉 660 IV 쳐외기 도면 1. 백제고분의 변천(초 완규 1997) 다음으로 곽장근 (1999)은 전북 동부지역 고분 변전을 토광묘로부터 수혈식 석곽묘 - 횡혈식 석 실분으로 발전된다고 보았고, 이동희 (2005)는 전남 동부지 역의 고분 변천을 토광(목관)묘 --- 가야계 석곽묘 백제계 석곽묘 순으로 변화된다고 보았다, 반면 전남서부지역인 영산강유역 고분은 대체로토광묘혹은옹관묘 옹관고분 석실분으로 변화된다. 하지만 분구묘의 개념이 도입되면서 변천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고 있다 즉 임영진 (2002) 은 영산강유역의 무덤을 분구묘로 규정하면서 방형목관분구묘 제형목곽분구묘 방대형옹관분 구묘 원형석실분구묘 장고형석실분구묘 등으로 변화되고, 또 분구의 형태를 제외하면 매장주제 부가 목관 목곽 옹관 석실 순으로 변화된다고 보았다(표 3). 3) 이러한 변천이 처음 제시된 것이 2002년(임영진 2002)이지만 여기에서는 인용한 것은 최근 수정된 것(임영진 2009)이다. 12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4 표 3. 영산강유역권 분구묘의 번전과 그 배경 3) 구 분 기원전후 2c 땅 2c 앙 - 4c 충 4c 충- 5c 앙 5c 알- 6c 초 방형특판용구요 를훌훌훌용흩훌.훌훌.톨률!!률릎훌릎l톨 제형욕팍동구요 --룰흩훌훌훌흩룰률훌훌훌톨를흩훌훌롤흩룰톨휠훌흩훌-- 방대형용판용구요 - -룰률를흩를률걷률톨 훌률를!!!!!!!!!!흩톨I톨를률룰 씬형석실용구요 장고형석실용구요 용구규모 -- 를.룰룰I를를흩를톨훌훌Uiii룰흩 져용구 충훈구 고용구 고용구 (쳐용구요) (용구고훈) (용구고총) (용구고총) 용구형태 방형 제형 방대형 원형 중심매장주째 욕판 육팍 전용용환 석실 매장방식 단장-다장 다장(수명척) 다장(수칙객) 합장 제사(도랑내) 미상 소규오 성앵 약화 용포 혹징 다지역 산재 다핵 충성권 다핵 계충화 다핵 계총 1다 이완 사회 룡항도 (소국)용렵 권역별 용항 유역권 홍항 흉함이환 (권역영 충성지) (대충성지 풍장) (권역명 부중심) 연화 배경 (금강유역권의 용구요 파급) 액재의 건국파 야산안권 영함에 따용 권역명 결집 액제의 긍강하휴권 명함에 따흘 영산강유역권외 룡항 대용 액체의 풍추 천도에 대용한 일용 구주와의 연계 그리고 김닥중 (2009)은 영산강유역의 고분을 매장시설(목관, 옹관, 석실), 분형(제형, 원대형, 방대형, 전방후원형, 원형), 그리고 분구규모(저, 중, 고)에 따라 구분하고, 이를 종합하여 복합제 형분 1(목관중심), 복합제형분2(목관옹관병용), 옹관분, 초기석실분, 백제식석실분 단계로 구분하였 다. 그의 견해는 매장주체시설이 목관 옹관 석실로 변화되고 있다고 보아 앞선 견해와 다소 차 이가나고있다. 표 4. 영산강유역 무덤의 전개 및 발전 단계의 설정(김낙중 2009) 석실 대표적인 분형 뭔 뾰 묘제의 부 장 품 특정 段 階 프 중 - 저- 1 욕관(싹) 욕판 l3a 형식 용뀐 솥인 l. 2 형식 -용관 1 용함제영혼!Il <\!~1 l쥬 11 세형훈 I n 형식 I j 원형용판운 제잉 (타)원영융꺼운 1 운구 원영 땅행펴 깅향 I D 기 IIIl IV 기 토기 엄마 한양식(원거안성호 영신강유역양삭의 성렁 이충구연호 웅) 171 금속 l 소형놓공구 챙갱, 환두!.'fi "I 롯힌 소양 01 누 > l 휴 제품 f양유 1 弟 形 t잠 複 잠재j 形 댐 1 짧유 t~:lf}1ft2 ( 木 t'i'irl' 心 ) I ( 木 t'i'i 낌i\t'i' y:,~ji j) 3B 형식 성얘 3R 형식 용판 III m 형식 핑혈식석성용 유 용싼 존속 앵 I 형식 횡혈삭 옹세판식 석싱 장식 대도 V 기 I VI 기 IVIJ V미기 영산강유역양 영산강유역양 액 체양식으호외 ;션환 빛 일 식의 성행 식의 경정! 훈l화 2/I 1 3 기 1471 우기휴 증가! 각정용 종류 1 부장양 감소하며 액계의 판 장식성 우 세휴 급중 등제와 판련원 용재판식 용 장식마구유 풍 신분표상흉,!'iH1쩔 혼토 장 高 j흉 짧챔캘$ 初 其 g ( 高 t흉) 石 옆단3 百 濟 式 石 室 t첩 호남지역 삼국시대 고분의 전개앙상 13
15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두 연구자는 분구의 축조과정을 중시하는 분구묘의 개념을 포함시켜 영산강유역 고분의 변천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고분의 연구에 있어서 매장주체부와 분구 의 축조방법을 함께 논의하자는 원칙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분구의 특정만을 중시해서는 안 될 것 이다. 영산강유역에서 분구의 형태는 대체로 제형 - 방대형 - 원형 등으로 변화되는 것은 사실이지 만 이것이 획일적으로 변화되었다기보다는 전반적인 흐름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예외적인 경우 도 많아 이를 고분의 명칭으로 사용하는 것이 타당한지는 의문이다. 또 분구형태나 축조방법의 변화 는 고분 연구에 중요하지만 가장 비중이 있는 것은 역시 매장주제부일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영산강 유역 고분의 변천을 매장주체부 중심으로 다음과 같이 제시해 보았다(최성락 2009). 回 -떼).. 옹찬R 도면 2. 영산강유역 고분의 변천(최성락 2009) 때 \ \ 떼 삐 셉 -\@ - 원 - 꿰 앵 回 -딩 없 -댐-@ 그 변전을 요약하면 주구토광묘에서 추가장과 더불어 수평적 혹은 수직적 확장이 이루어지면서 목관고분으로 발전되었으며, 동시에 일부 지역에서는 옹관고분으로 발전되었다. 그런데 옹관묘는 주 구토광묘의 대상부에 위치하다가 단독으로 매장되지만 고분으로 발전되면서 목관과 함께 매장되거 나 옹관만으로 구성되어 축조되었다 그런데 나주와 영암을 제외한 주변 지역에서는 옹관고분 대신 목관고분이 5세기 전반까지 지속적으로 축조되었다 U 그리고 5세기 말부터 횡혈식 석실분이 상부 계층을 대표하는 무덤이 되면서 옹관이나 목관은 그 위상이 상대적으로 낮아진다. 또 수혈식 혹은 횡 구식 석곽분은 횡혈식 석실분에 앞서서 영산강 상류나 서남해안지역에서 5세기 대에 등장하지만 영 산강 중 하류지역에서는 석실분에 앞서는 석곽분을 극히 적다. 이와 같이 고분의 변천은 각 연구자들이 고분의 분류와 연대관을 기반으로 제시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당시 문화양상을 설명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고고학에서 변천에 대한 연구는 단순히 어 떻게 변천되었는지에 대한 논의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왜 변화되었는지도 함께 논의해야할 것이다. 2. 대외교류 최근 고분을 통해 대외교류의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 대한 연구동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서남해안지역 주구토광묘(주구묘)의 기원은 중서부지역에서 찾고 있으며(이호형 2004), 중국의 圍 構 養 ( 呂 智 榮 2002)와도 관련된다고 보고 있다. 더구나 이를 분구묘로 보면서 그 기원을 중 4) 목관고분을 분구묘로 인식하는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주구묘로부터 자체적으로 발전된 것으로 같은 용어로 설명하고 있다 다만 이남석 (2013) 의 경우 주구묘(주구토광묘와 방형주구묘)단계와 분구묘(분구토광묘와 분구옹관묘)단계를 구분하고 있어 필자와 유사한 인식을 하고 있다 다만 용어가 다른데 목관고분을 분구토굉묘로, 옹관고분을 분구옹관묘로 부르고 있다 14 I 고분을 통해 온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6 국 하남지역의 土 激 훌에 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임영진 2007). 토돈묘가 영산강유역 고분과 직 접적으로 관련되기 위해서 풀어야할 과제는 상호 관련된 유물을 통해 대외교류가 가능하였는지 검토 되어야 한다, 4 5세기경에는 중국 하남지역과 전남 서남부지역을 직접 연결하는 사단항로가 개설 되지 아니하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강봉룡 2010, 2013, 정진술 2013). 즉 사단항로는 적어 도 통일신라시대에 들어가서나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어 직접적인 교류를 상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다음은 석곽분의 문제이다. 호남 동부지역의 석곽분은 가야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호남 서부지역의 석곽분의 성격은 이와 다르다. 특히 전남 서부지역에서 나타나는 석 곽분은 가야의 영향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점차적으로 받아들인 무덤이다. 전남 서부지역에서는 5세 기 전반에 부분적으로 축조되면서 상위계층의 무덤으로 나타나지만 5세기 말경 석실분이 등장한 이 후 그 위상을 잃고 점차 중위계층의 무텀으로 변화되었다. 이러한 석곽분의 성격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필자는 목관고분을 사용하던 토착세력들이 다른 지역과 문화적인 접촉을 통해 새로이 인지 한 석곽분을 받아들였다고 해석하고 있다. 영산강유역에서 목관이 석곽으로의 변화양상은 가야지역 에서 목곽이 석곽으로 변화되는 것과 비슷한 양상이지만 그 연대는 다소 차이가 나고 있다. 이와 함께 남해안지역에 분포하는 고분의 성격 문제이다. 남해안에 나타나는 일련의 석곽계 고분 을 왜와 관련짓는 연구자들이 많다(하승철 2011, 김낙중 2013). 즉 그들은 석곽계 고분 구조가 일본 구주지역과 공통점이 있고 출토 유물도 왜와 관련된다고 보아 왜계 고분이며 그 피장자를 왜인으로 보고 있다. 펼자는 구주지역과 관련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을 왜인의 무덤으로 단정할 것 이 아니라 당시 활발한 해양교류의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것은 석실분과 전방후원형고분(전방후원분, 장고분)이다. 일부 연구자들은 석실분과 전방후원형고분이 일본지역의 석실분과 전방후원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면서 그 주인공을 왜인으로 보거나 왜계 백제관료로 보는 견해가 있는 반면에 이를 재지인의 무덤 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최성락 ). 하여튼 이러한 고분의 존재는 이 지역과 일본 구주지역 사이에 있었던 해상교류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고고학 자료임에 틀림없다. 이와 같이 삼국시대 고분은 대외교류의 결과일 뿐이지 이것이 대외교류의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고분이 외부지역의 고분과유사하다거나출토유물이 외부에서 왔다고하더라도바로그주인공이 외 부지역의 옹 사람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고분을 통해 대외교류를 살펴본다는 것은 대외교류 의 흔적을 찾는 것으로 이를 해석하고자 하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다. v 매으마 ::><::c그 E프 고분연구는 기본적으로 고분의 분류 단계, 편년 단계, 그리고 변천과 대외교류 등을 포함하는 해 석의 단계로 나누어진다. 각 단계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호남지역 삼국시대 고분의 전개앙상 15
17 호남지역 고분연구의 가장 큰 걸림돌은 고분의 해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분의 분류에서부터 연구자들간에 서로 다르게 인식하는 데 있다. 연구자들은 고분의 종류와 명칭을 다르게 사용하고 있 어 이에 대한 연대관이나 변천과 대외교류에 대한 인식도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또한 대부분의 연 구자들은 고분 자료를 객관적인 분석에 의해 해석이 아니라 자신의 시각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이용 되기도한다. 따라서 고분연구의 각 단계는 연구자의 시각에 의해 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 한 방안으로는 우선 고분의 분류에서부터 객관적인 분류가 되도록 노력하여야 하고, 단순히 개인적 인 연대관이 아니라 객관적인 편년안이 제시되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고고학 자료가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고분연구는 연구자들의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한 연구자의 해석만으로 그 실체에 접근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한 해석들을 종합할 수 있을 때 좀 더 실체 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곽장근, 1999, 호남동부지역의 석곽묘 연구, 전북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r나주 신촌리 9호분, 국립문화재연구소 전남대학교박물관, 2001, r나주 복암리 3호분. 김낙중, 2007, 분구묘의 전통과 영산강유역형 주구, r복암리 3호분,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 r영산강유역 고분 연구, 학연문화사 , 5-6세기 남해안 지역의 왜계고분의 특성과 의미, r호남고고학보 45, 호남고고학회. 김승옥, 2011, 중서부지역 마한계 묘제의 성격과 발전과정, 분구묘의 신지평, 전북대 BK21사업단 김영희, 2008, 도검을통해 본호남지방고분사회의 특정, r호남고고학보 29, 호남고고학회, 김용성, 1998, r신라의 고총과 지역집단-대구 경상의 여]-, 춘추각. 김장석, 2014, 한국고고학의 편년과 형태변이에 대한 인식, r한국상고사학보 83, 한국상고사학회. 김원용, 1986, r한국고고학개설 (3 판), 서울; 일지사. 서현주, 2006, 영산강유역 고분 토기 연구, 학연문화사. 성낙준, 1983, 영산강유역의 대형옹관묘 연구, r백제연구 15, 충남대 백제연구소. 신경철, 1992, 김해 예안리 160호분에 대하여, r가야고고학론총 1(가야문화연구소편). 안승주, 1975, 백제고분의 연구, r백제문화 7-8합집, 공주사범대학 백제문화연구소, 안재호, 1992, 울산 하대가지구 고분의 성격, r제 1회 영남고고학회 학술발표회 발표 및 토론요지, 영남고고학회. 오동선, 2009, 나주 신촌리 9호분의 축조과정과 연대 재고, r한국고고학보 73, 한국고고학회. 이남석, 2002, r백제묘제의 연구, 서울; 서경문화사. 16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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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02 신안 배널리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신안 배널리고분의 연대와 축조배경을 중심으로- 이 정호(동신대학교).머리말. 배널리고분군의 내용과부장품. 배널리 3호분과관련유적의 연대 IV. 배널리고분과 관련유적의 계보 및 위상 v. 5서 기 전반 서남해안지역 고분의 축조배경 VI. 맺음말.머리말 1986 년 해남 외도고분이 발견되고 2000 년대 초반에 출토유물인 삼각판갑과 철촉이 학계에 보고 되었지만방산리 전방후원형고분의 이례적 발견 에 묻혀 주목을받지 못하고 있었다(목포대학교 박물 관 1986, 국립광주박물관 2001). 이는 당시 한반도 남부, 특히 전남지역에서 갑주가 출토된 사례가 없어서 외도고분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이후 2006년 고흥 안동고분을 필두로 2009 년 나주 장동고분 2011년 신안 배널리고분 등이 차 례 로 발굴되면서 왜 계 갑주의 존재가 주목을 받게 되었고 더불어 그 성격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 루어지고있다. 배널리고분 발굴을 담당했던 발표자도 이 논의에 참여하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하면서, 이번 발표를 위해 다음의 사항을 정리해 보았다. 먼저 왜계 갑주가 발굴된 배널리고분의 내용과 연대, 계통을 검토 하고 또한 배널리고분과 같은 시기에 등장하는 서남해안지역 등의 고분의 양상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문헌사의 연구성과와 기록을 바탕으로 서남해지역 및 동시기 고분의 축조배경에 대해 검토해 보았다, 이번 발표에 앞서 배널리고분의 내용을 도면으로 작성해 제시했어야 하나, 아직 보고서 작성기간 중이라 도면이 완성되지 못하여 모식도로 대신하였다. 이 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II. 배널리고분군의 내용과부장품 1. 배널리 1, 2호분 l호분은 매장주제부가 도굴로 인해 완전히 멸실되었는데 분구의 토층 상태로 보아 매장주제부가 신안 배널리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언대관 I 19
21 분구 내에 위치하는 지상식으로 판단된다. 2호분은 분구의 크기가 동서 12.0m 높이 11.6m의 원형 분이다. 매장주체부가 도굴로 인해 대부분 유실되고 바닥과 벽석 로 보아 매장주체부는 수혈식석실 또는 횡구식석실로 추정한다. 매장주체부는 장축 240cm, 단축 160cm(내측 llocm) 정도이다. 일부만 남아 있었다. 바닥의 규모 매장주체부의 위치는 지상식이다. 2. 배널리 3호분 1) 분구 및 매장부체부 분구의 규모는 동서 8m 남북 6.40m 높이 70cm 정도로 잔존양상으로 보아서 원형분이며 단독 분으로 보인다. 매장주체부가 석곽형석실이다. 석실의 규모는 내부를 기준으로 길이 2,140cm, 너비 56cm, 깊이 70cm 정도로 좁고 갚은 편이다. 장축방향은 동-서이다. 석실은 덮개와 내부 시설이 거 의 완벽한 상태로 남아 있다. 벽석은 장대석과 작은 할석을 섞어 쌓았는데 쌓임새는 정연하지 않다. 동쪽과서쪽단벽은판석 1매를사용하여 조성하였다. 장벽은장대석 l매를통쪽에 배치하고서쪽으로 가면서 할석으로마감하였다. 북벽의 1단이 남벽의 1단에 비해서 조금더 정연한구조를보이고 있다. 내부에 목관을 사용했는지 직접적인 근거는 찾을 수 없다. 벽석은 토광을 파고 하단부터 쌓아가 면서 동시에 벽석과 토광사이에 점토를 채워 올라갔다. 벽석 보강석은 최소한으로만 받쳤다. 뒷면 석 곽의 바닥에는 별도 시설을 마련하지 않았다. 석실은 전체적으로 동쪽이 서쪽에 비해 약 locm 정도 높다. 두침은 동쪽이다. 2) 부장유물의 배치 피장자의 좌측으로는 벽에 붙여 사행검(추정)과 대도, 철도자를 나란히 놓았고 철검 날끝부터 1/3 지점에 철집게가 철검에 덮여 있다. 피장자의 우측으로는 벽에 붙여 철검과 도자를 나란히 놓았다. 다 른 철검 1점은 피장자의 가슴에서 허리부위에 비스듬하게 걸쳐 놓았는데 원래 피장자 위에 얹은 것인 지 목관 위에 놓았던 것이 내려앉은 것인지 불확실하다. 이 철검 위로 철도자가 비스듬히 놓여 있다. 피장자의 목 부위에는 관 옥과 곡옥 등 옥류기- 흩어져 있는데 머리 쪽에 관옥과 곡옥 이 집중해 있고 아래쪽에는 소 옥이 집중해 있다. 옥 위로 절 경이 덮고 있다 허리부위 양 측에는 철촉이 각 31 32점씩 두 무리로 나뉘어 있다. 피장 자 좌우에 화살 18본을 한 단 위로 했던 화살집을 놓았던 것 같은데 회잘집 부속품 등이 전 혀확인되지 않았다. 표 1. 배널리 3호분 부장품 일람 부장품 충각부주 삼각판갑 철검 대도 철도자 철부 철모 철촉 철집게 그l -, , 관옥 /κ 오 댐 비 고 삼각판정결 삼각판혁철 1점은사행검으로추정 마노제 3점, 활석제 1점 세장형. 활석제(또는 응회암) 활석제(또는 응회암)다수, 유리제 소수 20 고분을 통해 온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22 피장자 발치의 단벽에 밀착해서는 갑주와 철모5 점, 철부 1점이 놓여 있다. 판갑이 투구를 감싸고 있고 그 사이에 철모가 박혀 있거나 위에 놓여 있다. 철모 2점은 판갑의 전면부와 투구 사이의 공간 양쪽에서 지면을 향해 비스듬히 박혀 있고 다른 철모 2점은 박혀 있는 철모 상부에 날을 반대방향으 로 향하게 하여 나란히 놓았다. 철모 1점은 판갑의 후면부 고대판 위에 날을 단벽에 향하게 해 두었다. 그런데 철모 1점은 석곽 내부 공간 여건상 자루가 붙어 있어도 큰 위화감은 없으나 나머지 4점은 위치상으로 벽석과 거리가 너무 좁다. 철모 중 1점의 자루에 고정 못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자루를 잘라 내고 부장한 것으로 보이며 나머지 철모는 못을 제거하여 자루를 빼낸 후 부장한 것으로 보인다. 철부는 피장자 좌측 벽 모서리에서 판갑과 칠모 사이에 끼워져 있었다. 3) 부장유물의 내용 투구 투구는삼각판정결식의 충각부주인데 피장자의 발치에 삼각판헥철판갑과함께 일괄부장하였다. 투구를 가로방향으로 하여 중앙에 놓고 그 주위를 판갑으로 에워싼 형태로 배치하였다. 아마도 투구 를 가로방향으로 한 것은 판갑의 너비가 충각부주의 길이에 적합했기 때문일 것이다. 투구의 크기는 길이 28.9cm, 너비 18.8cm 높이 14.9cm이고 구조는 앞머리에서 정상부까지 이 어지는 복판, 삼각판 7매로 구성된 상단지판, 몽체 중앙을 지지하는 중단권판, 11매로 구성된 하단 지판, 몸체 하부를 지지하는 하단권판의 5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마가리개는 정변에서 측면으로 돌아가면서 부드러운 각을 가졌다. 투구의 각구성부는못으로고정하였는데 못 머리는상당히 돌출된 편으로못 머리의 너비에 비 해 높다. 최상부에는 삼미철을 묶었던 투공이 4개 확인되는데 출토 당시 삼미철 흔적이 전혀 확인되 지 않아 철제가 아닌 가죽을 부착했을 가능성이 있다. 목을 가리는 드림은 6cm정도 높이의 철판 2 매로구성하였다. 판갑 삼각판혁철판갑으로 고대판이 피장자쪽을 향하도록 부장하였다. 지판을 결합하는 가죽끈이 부 식된 탓에 부품이 분해되어 바닥에 무너져 있었지만 충각부주를 감싸서 부장했던 양상은 확인할 수 있었다. 판갑은 둔각계의 삼각판을 기본을 하여 7단으로 구성되어 있고 개폐장치는 없다. 고대판은 3매를 겨드랑이에서 분리하였고 상지판은 후면부 1판만 삼각판으로 하고 나머지 전면 부 2판과 후변부 2판은 부위별 구도에 맞춰서 장방판 또는 쐐기형 판으로 하였다, 상대금판은 전변 부 양쪽과 후면부 각각 1매를 사용하여 총 3매로 구성하였다 중지판은 총 9매로 구성되어 있는데 후 면부 중앙을 기준으로 삼각판 3매를 배치하였고 나머지 6매의 판은 부위별 구도에 맞춰서 재단 부 착하였다. 중대금판은 전면부 2 매, 후면부 1매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판은 삼각판 7매를 후면부에서 허리부분까지 배치하였고 전면부는 제형판 2매를 배치하였다. 도련판은 전면부 2매, 후면부 1매로 구성하였다. 섬판은 세장방판을 좌우에 각 1매씩 세워서 부착하였다. 신안 배널리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I 21
23 - 사행검 (추정) 큰칼 4점 중 1점은 붐체의 하부가 S자형으로 굽어 있어 사행검으로 추정한다. 다만 몸체의 곡선 이 매우 완만하여 아직 단정짓지는 못하지만, 석곽내부가 흙이 쌓여있는 상태가 아니고 곡선도 날을 따라 형성되어 있으며, 곡선이 부식에 의한 녹 때문에 형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행검의 가능성 을 두고 있는 것이다. 검의 길이는 약54.5cm 이다. 한반도에서 사행검은 유일하게 전북 임실 금성리고분(석곽묘)에서 출토된 사례가 있는데 이 검 은 배널리고분 부장품보다 곡선이 크고 뚜렷하다. 절경 일본열도에서 수점 부장된 바 있고 한반도에서 부장례 를 확인할 수 없다. 녹이 심하여 문양 여부 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X Ray 사진상에서 중앙 뉴 ( 組 )를 가로지르는 투공이 확인된다. 절촉 모두 63점을 부장하였다. 철촉은 모두 전체길이가 locm 내외이고 몽체는 8cm 내외인 단신촉이다. 형태는 유엽형. 도자형. 역자식도자형, 능형, 규두형이 있다. 유엽형은 녹이 심해 뽑확실하지만. 톰체의 하단부에 돌출과 같 은 형상이 미세하게 관찰되기 때문에 이른바 담톱 織 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도자형은 2유형으로 도자형 철촉과 역자식도자형 철촉이 있다. 또한 철촉의 끝이 양날 끝처럼 모 아지는 규두형을 띤 철촉이 있는데 일반적인 규두형보다 날끝의 폭이 매우 좁다. '6; = -. U> :, = -,:..- i i 3활 ~ -; [8] :.' γ - t -? ι "" - -- ψ /.. -/ / / - ~,,, --- / - ~ -.A- '' ζ/ ~ -- (1; / '.4) ~{X.?넌;?년\ 꾀; 3; { ; r"" ::!::. ~:ι:::-: ~ l 꺼y ; " ;;; < /? ; ι -.;o:: \ !Of] en. n 니 U U n u o n - -! - 니 -- U Ī 냐 l j i l - l I U, -- l n - l i - -v u! - n u ν U U V ~ & 6 8 fl) / 쟁1 OJ c H 도면 1. 배널리 3호분 부장품 배치 및 @절촉 모식도(유엽형, 도자형, 금성리고분 출토 사행검 22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24 옥류 곡옥은 마노제 3점과 활석제 1점을 부장하였다, 관옥17 점을 부장하였는데 활석제(또는 응회암) 로 일반적인 관옥에 비 해 직경이 아주 작은 세장형 이 다. 소옥은 다수 부장하였는데 활석(또는 응회 암) 이 대다수이 고 소수의 유리옥을 포함하고 있다 배널리 3호분과 관련유적의 연대 1. 배널리 3호분의 연대 배 널리 3호분 부장유물은 갑주와 철제무기, 철경, 철집 게, 옥류 등이고 토기는 부장하지 않았다. 이러 한 철기는 변화속도가 느리고 사용기간도 길며, 특히 갑주는 대를 이은 전세를 행하는 경우가 많 아 연대를 파악하기에 불리한 편 이 다. 그러나 고분 축조연 대 의 검토는 고분 성격과 그 축조배경을 파 악하는데 반드시 검토해 야 할 사항이기에 대 략적이나마 그 연대문제를 검토해 본다. 먼저 갑주를 살펴보면, 전남지역에서 5세기 전반의 갑주가 출토된 유적은 모두 5개소이다. 투구 는 차양주, 충각부주, 갑옷은 장방판갑, 삼각판갑이 알려져 있다(표 2). 표 2. 전남지역 갑주 출토유적 유적명 시기 분특및형정 주 매체장부 투구 갑주 갑옷 낀 τf 얀 >L뉴 0 몰 I그 해남외도고분 5세기전반? 석곽형석실? 삼각판학철판갑 사두형철촉 고흥안동고분 고흥 야막고분 5세기전반 5세기전반 원분 즙석 원분 즙석 천-τ과 -,혀 천-,ι j 차양주 장방판헥철판갑 견갑 석곽형석실 신안 배 널리 3호분 5세기전반 원분 서 과 혀 서 석t 삼각판혁철 추-δ 카 T닝? 삼각판정결 경~카,,님..?- 삼각판혁철판갑 삼각판혁철판갑 여 O J.A H ;:_.:! 1 초=브L 5세기전반 H \.t_브l 횡구식석실? 삼각판혁칠판갑 견갑 마융한합+형왜계 원통형토기 배 널 리 3호분 출토 판갑은 대금계 판갑이 다. 일반적으로 대 금계 판갑은 크게 삼각판갑, 장방판 갑, 횡장판갑으로 나뒤 며 각 판을 연결하는 방법으로 가죽끈 묶기(혁철)와 못 고정(정결)방식이 사 용되 었다. 판갑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지판의 형 태와 연결법이 변화한다. 장방판혁칠판갑이 만들어 진 후 삼각판혁철판갑이 새 로 나타나면서 일정기간 병행하는데 그 시기에 대해서는 다소 견해가 다 르지만 대 략 5세 기 전반 이 후에는 정결기법이 도입되면서 장방판갑은 사라지고 삼각판갑에 정결기 법 이 도입된다고 보고 있다. 삼각판정결충각부주는 정결기법이 등장하는 시기로 혁철기법보다는 늦지만 삼각판의 사용으로 보아 5세 기 전반대에 해당한다. 하지만 갑주는 전세 의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 변화상을 직접 고분 축조시기에 적용할 수 없다 따라서 공반유물을 검토해 보기로 한다 신안 배널 리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I 23
25 배널리고분에서 출토된 유물 중 옥류를 제외하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이 철촉이다. 칠촉 의 분류와 편년에 대해서는 다양한 연구가 있는데 머리의 형태, 머리와 목의 비율, 몸체길이의 계측 치 등을 속성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발표문은 철촉의 세부적인 분류가 목적이 아니고 또한 기초적인 분류로도 그 연대관을 유추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자의적이지만 장신촉과 단신촉으로 나누어 보았다. 우선 배널리 3호분 출토 철촉 63 점은 모두 몽제의 길이가 짧은 단신촉이다. 그 중 날이 긴 도자 형 철촉의 시기를 4후반 이후로 보는 견해가 있고(김성태 1992) 일본열도에서는 유엽형(혹은 조설 촉)과 함께 5세기 전반으로 보고 있다아상 木 武 彦 2007, 水 野 敏 #1 2013). 삼각판혁철판갑. 삼각판정 결충각부주와 중첩되는 시기이다. 영산강유역에서 단신촉을 부장한 고분으로 나주 화정리 마산고분 5-1호 옹관과 나주 복암리 3 호분 10호 옹관을 들 수 있다(도면 2). 두 옹관은 모두 목이 약간 바라지고 목과 톰체 사이의 경계가 푸렷한 형식인데, 복암리 3호분 10호 옹관은 저부의 돌기가 형성되어 있어서 음각원문으로 마무리한 마산고분 5-1호 옹관보다 다소 앞선 듯 보이며 철촉의 형식차도 엿보인다. 하지만 옹관의 편년상 모 두 4세기 중엽 후엽에 해당하는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서성훈 성낙준 1986, 이정호 1996, 서현주 2006, 김닥중 2007, 오동선 2008). 반면 목의 길이가 llcm에 이르는 장신촉은 나주 복암리 3호분을 비롯해서 나주 신촌리 9호분. 영광 대천리 석실분 해남 만의총 1호분 등에서 나타나는데 5세기 후엽 에 출현한다. 따라서 배널리고분의 연대는 5세기 전반의 어느 시점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짧뽑 ~ /ii ~ = 때 $ 웹 # 월 엽 ~ u ~ ;- 二 웅 짧-빼용빼 :i ~ 웰 도면 2. 나주 화정리 마산고분 5-1호 옹관 및 복암리3호분 10호 옹관 출토유물 2. 관련유적의 연대 야막고분의 갑옷은 전면부 7단 후면부 9단으로 구성한 삼각판헥철판갑이고 투구도 삼각판혁철 충각부주이다. 철촉 중에는 유엽형의 조설촉, 규두형. 이중역자형이 포함되어 있다. 그 시기는 5세 기초 또는 전엽으로 보고 있다(권택장 2013). 외도고분은 삼각판혁철판갑과 단식촉으로 보아 배널리고분과 야막고분과 큰 시기차는 없을 것 이다. 24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26 안동고분은 축조시기를 5세기 후반 이후로 보는 견해(문안식 2007) 도 있지만, 장방판혁철갑이 야막고분, 외도고분, 배널리고분의 삼각판혁철갑과 통일한 원리인 혁철방식이라는 점에서 두 판갑 의 시기차는 크지 않을 것이다. 안동고분의 차양주는 충각부주보다 다소 늦게 출현하고 존속기간이 5세기 말까지 지속되지만 장방판혁철판갑과 병행하는 시기를 고려한다면 5세기 중엽보다 늦지는 않 을 것이다. 정황적이지만, 석실에 토기를 부장하지 않은 점에서 본다면 배널리고분, 야막고분과 매 장원리가 상통하므로 시기차는 크지 않을 것이다 1). 장동고분은 부장된 유공광구소호의 목이 발달하지 않고 옹관고분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 에서 5세기 후반 6세기 전반에 등장한다고 보는 초기횡혈식석실 및 전방후원형고분과는 다른 양상 이다. 또한 갑주는 삼각판혁철판갑이고 철촉도 5세기 후반 이후 등장하는 초기횡혈식석실 및 전방 후원형고분의 장신촉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이 철촉은 이전 시기인 나주 마산고분 5 1호 옹관의 철촉과 계통이 이어지는 유엽형 철촉인 단신촉이다. 그리고 추가묘인 횡구식석곽의 철촉도 단신촉 이어서 석실의 하한을 뒷받침한다. 따라서 장동고분의 연대는 5세기 중엽보다는 늦지 않을 것이다. 신흥고분은 보고서가 미발간이라 판단하기 어렵지만, 목재 기둥을 이용하여 석실을 축조한 점에 서 장동고분과 시기차가 크지 않을 것이다. IV. 배널리고분과 관련유적의 계보 및 위상 1. 고분과 부장품의 계보 주지하다시피, 영산강유역에는 3세기경부터 옹관으로 대표되는 무텀양식이 성립하였다. 옹관은 서해안의 고창지역, 영산강 중하류지역, 압해도 등 일부 도서지역까지 넓은 범위로 확산하였지만, 5 세기 후반경에 옹관의 주된 분포지가 영암 시종지역과 나주 반남지역 무안 몽탄지역에 한정되고 주 변지역은 옹관 사용이 중지되거나 퇴화된 형태로 남게 되었다. 반면 5세기 전반경 서남해지역의 배널리고분 안동고분 야막고분 외도고분 등 석곽형 석실이 등장하고 영산강 중하류지역에서도 장동고분 신흥고분 등에서 석실이 등장한다. 이들 고분은 옹관 묘와 달리 갑주와 다수의 철제무기류 등을 부장하였다. 그 중 판갑은 대금계 판갑으로 혁철식의 장 방지판(안동고분) 또는 삼각지판(외도고분, 야막고분, 배널리고분)을 사용하였고 사행검(배널리고 분), 규두형철촉(야막고분, 배널리고분), 동경(안동고분, 야막고분), 활석제 곡옥(배널리고분), 즙석 시설(안동고분, 야막고분), 석실내 토기부장을 하지 않은 점 등으로 보아 그 계보는 일본열도에서 찾 을수있을것이다. 안동고분은 백제계의 금동관과 금동신발 금동이식을 부장하고 있지만 석곽형 석실이라는 축조 방식과 갑주 등의 요소, 토기부장이 없는 점 등으로 보아 역시 왜계로 볼 수 있다. 한편 이들 고분의 부장품은 대금계 판갑과 도검 등 개인 단병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어서 일본열 도의 무기체계와 상통한다는 점도 왜계 요소로 지적할 수 있다. 다만 안동고분이나 배널리고분에서 여러 점의 철모가 부장되는데 아마도 한반도의 기병전을 겪으면서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1) 일본열도에서도 5세기 전반의 고분에 토기를 부장 한 경우가 많지 않다 신안 배널리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25
27 옹관묘의 중심지에 위치한 장동고분은 위의 고분과 전혀 다른 환경에서 축조되었다. 영산강유 역 재지사회에 왜계고분요소가 도입되는 상황을 보여주는 고분이다. 장동고분은 석실의 축조기술이 안정되지 못하여 내부벽체에 기둥을 세우고 목곽형으로 석벽 지지판을 댄 것 같다. 이와 동일한 양 상이 김해 양동리 93, 95호 석곽 등 남부지역에서 보이기도 하지만 계보상으로 연결하기 어렵고(김 닥중 2013b), 횡구식의 흔적이 관찰되는 점으로 보아 구조적으로 일본열도의 北 部 九 州 지역 횡구식 석실과관련된다. 판갑은 배널리고분과 동일한 삼각판헥철식이다. 그런데 석실내에 5세기 전반의 가야계 통형고 배, 호 등을 부장하였는데, 이 시기 일본열도의 석실에 토기부장이 희소한 풍습과는 차이가 난다. 원 통형토기는 마한계와 왜계의 속성이 융합되어 있고 2) 분구는 분할성토로 그 원형을 나주 횡산고분 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3 ) 분구에 추가했던 매장주체부가 재지양식인 옹관이다. 이렇게 재지계, 가야 계, 왜계 등 여러 요소가 복합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이 고분은 일본열도의 고분양식을 도입하였거나 또는 남해안의 가야를 경유하여 도입한 재지인의 고분으로 볼 수 있다 4 ). 재지의 옹관이 추가되는 양 상은 횡구식석실을 가진 신흥고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대한문화재연구원 2013). 2. 고분의 위상 일본열도 北 部 九 州 지역의 선도적 수장묘에는 수혈식석실을 바탕으로 횡혈식석실의 축조모델이 도입되면서 4세기말에 福 폐 市 老 司 古 境 과 짧뼈 古 慣, t보 賢 原 용 口 古 慣 등 횡구식석실이 등장하고, 5 세기 전반에는 보다 정형화한 福 問 市 갯L 限 山 古 境, 뾰 貨 멀 橫 田 下 古 境 등 횡혈식석실이 등장한다. 하지 만 老 司 古 慣 에서 보는 바와 같이, 추가장 또는 배장적 성격의 무덤 또는 하위의 무덤에서는 소규모 의 횡구식석실을 사용하거나 수혈식석실을 사용한다. 그리고 아직 횡혈식석실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곳에서도 수혈식석실을 계속 사용한다. 비록 개략적인 내용이지만, 위의 큰 흐름에서 본다면 야막고분과 배널리고분은 北 部 九 州 지역의 선도적 수장묘와 같은 횡구식석실 또는 횡혈식석실의 요소가 도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수장묘의 범주 에 포함될 수 없다. 北 部 九 州 지역에 이미 등장하였던 호형 또는 원통형의 t휩 輪 이 확인되지 않는 점 도 두 고분의 위상과 관련된다 5 ) 배널리 3호분은 분구의 규모가 작고 동경을 대신한 철경을 부장하고 있다. 갑주도 견갑이 빠지는 등 안동고분이나 야막고분에 비해 위상이 낮다. 아마도 매장주체부가 거의 멸실되었지만, 분구의 규 모가 크고 잔존 매장주체부 바닥도 넓은 1호분이 상위에 있었던 것 같다. 이 고분군은 무인도에 가까 운 곳에 입지하여 바다의 조수를 맞춰야만 갯펄을 통해 진입할 수 있던 곳이었다. 다시 말해 고분의 주인공이 일정 권역을 아우르는 수장적 성격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고분이다. 2) 이미 영산강유역 원통형토기와 중서부지역 원통형토기가 관련됨이 지적된 바 있으며(최성락 김성미 2012), 발표자는 이를 바탕으로 중서부지역의 원통형토기와 서남부지역의 군산 수송동 축동2호분, 3호분, 전 계화도유물, 광주 하남9호 구, 함평 중랑고분 주구, 나주 복암리 2호분, 나주 장등 나군 4호분의 원통형토기를 마한계로 하고 서남부지역의 광주 월계동 1호분, 2호분, 광주 명호띔고분, 함펑 노적주거지, 함펑 죽암리고분, 화순 백암리고분, 나주 신촌리9호분, 무안 고절리고분의 원통형토기를 왜계로 구분하고자 한다 3) 나주 횡산고분은 토괴의 흔적이 확인되지 않았지만 3등분으로 나뉘는 토질차이가 명확하다 초축연대는 저부 돌기가 있는 옹관을 분구정상에 옹관을 세운 흔적으로 보아 3세기 4세기 전반으로 볼 수 있다 4) 이 고분은 해님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들어온 가야적인 요소와 왜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현지 사정에 맞게 축조한 고분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으며, 재지세력의 고분이라는 점에서 전적으로 동의한다(김닥중 2013b). 5) 물론 植 輪 는 운반의 제약 때문에 사용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으나 장동고분처럼 재지생산 가능성도 충분하므로 이것은 피장자의 위상과 관련될것이다 26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언대관
28 야막고분은 분구가 구릉정상부에 입지하여 우월성을 나타내고 있으며 위세적 모 스 장하고, 갑주 구성도 견갑을 포함하는 등 배널리고분에 비해 비교적 상위의 님 고분과 같은 금동관 등 수장급 위세품은 없다. 켜이 / 으- 보시 근! 랩 뺀, 을 부 1 안도 안동고분은 금동관, 금동신발, 동경 등의 위세적 성격의 부장품을 비롯해서 차양주, 견갑 등 갑 주의 구성도 완비하고 있다. 금동관은 백제지역인 공주 수촌리, 서산 부장랴, 화성 요리의 금동관 등 과 상통하는 양식이다. 백제지역 금동관은 백제의 지방통치 수단으로 인정하는 것이 통설인데, 안동 고분의 위세품도 이러한 백제의 정책과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ν l 싹 싣 L? ν r j i i1 ; 줬 r FJ h - 펀- τ j ν 렇 싹 - 꽤 ι갚 -J - ε/ 나 팎 A - 낀 十 폐 t Trl $ 벤 g u 파넙 r F 배 = 6 꽉? ι 힘 - (? 꿀 에 건 딸 μ - 기 건 f l씹 - ; F 1월 냐r 넨, k r - 찌 때 - 쩔필 까 - 씨 깨 - = ζ 파 은 - - ) A 빼 r간 γ 기 ι U까 μ쩨? ) r U % 강 ) η 년 / 1 김 κ? 때, 피 j t 끼 v p tt 1 꺼 끼 i 도면 3. 고흥 안동고분 석실 및 출토유물(김낙중 2013b) 장동고분은고분의 규모나원통형토기의 존재로보아지역집단의 수장묘라고할수 있다. 이 고 분은 석실 남벽 상부 쌓임새가 다른 벽에 비해 엉성하고 토층에서도 W층이 이 남벽에서 직하하기 때 문에 횡구식석실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이 고분은 구조상 큐슈지역의 수장묘인 福 固 市 老 司 古 境 이나 짧뼈 古 樓 과 비교할 수 있는데 6) 고분의 규모, 형태, 원통형토기의 수립 등의 양상을 통해 지 역 내에서의 위상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v. 5세기 전반 서남해안지역 고분의 축조배경 배널리 3호분의 축조배경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4세기 후반 5세기 전반의 상황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 연구된 고대사(문헌사)의 성과와 더불어 삼국사기 및 일본서 기 의 기사를 고분과 함께 검토해 보고자 한다. 6) 이 두 지역의 고분의 초축 연대에 있어서 약간의 편던차가 있다 신안 배널리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27
29 1. 침미다례의 위치 근초고왕대인 366 년 에 왜와의 통교 기사가 나온다(일본서기 신공 46 년 ) 7). 왜와의 통교는 고구 려와 대치하던 군사적 긴장에 따른 전략이었음이 많은 연구자에 의해 제시되어 왔다. 그리고 369 년 에는 배후의 안정과 연안항로의 확보를 위해 남만 침미다례를 정복하고 소국들의 항복을 얻어내었 다(일본서기 신공 49 년). 침미다례에 대해서는 이병도가 일본서기 의 기사는 백제의 마한잔여소국 평정사실을 반영 한다고 제시한 후 학계의 통설로 확립되었지만, 그 위치에 대해서는 고해진=강진 혹은 보성 /침 미다 례=강진(이병도 1959), 침미다례=제주도(이용현 1999), 침미다례=강진(김기섭 1995), 침미다례= 해남 북일(이도학 1995, 문안식 2007), 침미=강진/다례=보성(전영래 1985), 침미=강진/다례=장흥 (이근우 1997), 침미다례=영산강유역고분(성낙준 1997) 침미다례=신미국( 新 彈 國 )=해남반도(강봉 룡 1998), 침미다례=고흥반도(임영진 201이 등으로 나뉘고 있다, 또한 침미다례에 이어 나오는 比 利 짧 中 布 爛 支 古 四 둠의 위치도 전남지역(이병도 1959), 전북지역(천관우 1979) 충남+전북지역(이근 우 1997), 포미지=담양/반고=반남(김기섭 1995, 김태식 2007), 고창 이북지역(김낙중 2013a) 으로 나뉘고 있다. 그리고 신공기 기사의 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므로 백제의 전남지역 진출시기나 지배 방식 등과 함께 더 연구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최성락 2013). 이처럼 여러 견해에도 불구하고 침미다례의 위치를 전남지역으로 보고 있는 것이 대세이다, 그리 고.. 서쪽으로 돌아 古 쫓 律 에 이르러 南 蠻 挑 彈 多 禮 를 무찌르고.. 라는 기사에서 볼 수 있듯이 가야를 거쳐 서쪽으로 진행되는 사건의 흐름과 律 과 南 蠻 의 낱말을 복합해서 연상한다변 그 위치는 서남 해안지역(남해안 포함)이 떠오른다. 따라서 침미다례는 서남해안의 어느 지점일 것이다. 2. 침미다례와옹관묘사회 근초고왕의 침미다례 공격과관련된유적으로 4세기 중 후엽의 나주화정리 마산고분 5 1호옹 관과 복암리 3호분 10호 옹관이 있다. 이 옹관은 철도, 철촉 등 무기류 부장이 급격히 증가하여 이전 과 사뭇 다른 양상인데 당시의 군사적 긴장을 시사한다(도면 2). 하지만 함께 부장한 백제계 금동제 이식으로 보아 백제와의 친연성도 엿보인다, 이 시기 영산강유역에는 직구평저호 등 백제양식의 토기도 등장한다(서현주 2011). 직구호는 백제-서남해안-가야 사이에서 해로를 통한 철기류의 유통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제시된 바 있다 (김닥중 2012). 그리고 영산강유역의 특징적인 토기로 알려진 측면 기벽이 눌린 승문타날 단경호도 이 시기에 성 립하는데, 이 토기는횡치소성하는기법으로함안지역의 가야토기와공유하는속성이다. 승문타날의 단경호는 해남, 강진, 장흥 등 주로 남해안지역에서 집중 출토되며, 그 범위는 여수, 구례 등 전남 동 부 해안지역으로 이어진다(서현주 2012). 한편 백제 중앙에서도 영산강유역 계통의 토기가 출토되는데 풍납토성 101호 유구의 이중구연 7) 이하의 일본서기 인용은 신공 46년부터 응신기까지 2주갑 인상설을 따른다 28 I 고문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30 ι 호, 경당지구의 토기뚜껑 등이 영산강유역과 관련된 토기이다(권오영 2002). 또한 일본열도에서도 이중구연호, 양이부호 등 영산강유역 계통의 토기가 알려져 있다(서현주 2004). 그리고 福 間 縣 西 新 머I 遺 隨 의 주거지의 부뚜막시설과 연도시설 토기 등 영산강유역과 관 련된 유구 2012). 유물이 출토되어 4세기경에 인적교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武 末 純 一 2000, 정수옥 한규-- J ) l j J 써 J W 때 -- m 魔 贊 탔=~, 도면 4. 일본열도 출토 토기(@ 大 限 四 Y 池 遺 福 I퍼 浦 志 A 地 福 핍 西 新 田 I 遺 빠) 이처럼 근초고왕의 침미다례 공격은 영암, 나주 등 영산강유역 중하류일대의 옹관고분 중심지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지만 옹관묘사회를 동요시킬 만큼 큰 소용돌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백제영향을 보이는 직구평저호는 개제 수가 제한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또한 재지양식인 옹관 묘는 지속적으로 사용하면서 자체발전과정을 거쳤다(김낙중 2009). 다시 말해 영산강유역의 재지세 력은 여전히 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재지세력이 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로 근초고왕의 침미다례 공격에 자연항복한 比 利 많 中 布 爛 支 古 四 봅 중 일부는 재지세력도 포함되어 있었고 둘째로 이로써 백제가 원했던 후방의 안정과 연안항로 확보라는 두 목표는 달성되었으며 셋째로 백제는 직접지배에 따른 군사 경제적 자 원소모를 피할 수 있으며 넷째로 재지세력은 스스로 항복 하여 백제에 편입된 대신에 자신들의 세습 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북방의 고구려와 대치하고 있었던 백제의 군사적 부담이 작용하였을 것이다 결국, 3세기 후반경 목지국이 쇠퇴하면서 신미국을 필두로 독자적인 대외교섭을 모색하던 영산 강유역의 재지세력은 369 년 침미다례 사건과 함께 마한의 명맥을 종식하고 백제의 지방체제로 편입 하게되었다 신안 배널리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I 29
31 그러나 백제-서남해안-가야-왜로 이어진 연안항로는 영산강유역 재지세력의 활동무대이기도 하였다. 위에서 서술하였듯이 5세기 전반에 일본열도의 大 版 지역에서 나타나는 양이부호와 개 등은 재지세력의 대왜교류를 시사하고 있으며, 또한 일본열도의 스에키 등 토기생산에도 영산강 재지세력 의 관여했다는 사실이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입 井 克 也, 2001). 3. 백제의 연안항로와 배널리고분 아신왕 5년 (396 년)이 되자 고구려는 백제의 한성을 공격하는 등 58성과 700촌을 빼앗고 왕제와 대신 등 많은 사람을 포로로 꿀고 가는 사건이 발생한다(광개토왕비 영락 6 년). 이듬해 백제는 태자 전지를 왜에 인질로 보내서 외교를 한층 강화한다(삼국사기 아신왕 6 년). 또한 아신왕 11년 (402) 5 월에는 왜국에 사신을 보내어 大 珠 를 구하였고, 다음해 2월에는 왜국에서 사신이 내방하기도 한다( 삼국사기 아신왕 11년 및 12 년), 한편 아신왕이 서거하자 전지는 왜 군사 100 인의 호위를 받으며 귀국하여 우여곡절을 겪은 후 405 년에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삼국사기 전지왕 원년), 그리고 전지왕 5년 (409)과 14 년 (418) 에는 왜 와 사신을 교환하기도 한다(삼국사기 전지왕 5년 및 14 년). 또한 428 년에는 왕의 누이 신제도원( 新 齊 都 援 )을 7부녀와 함께 왜에 보내기도 한다(일본서기 응신 14 년). 이외에도 일본서기 에는 5세기 전반대로 추정되는 응신기( 應 神 紀 ) 14 년에 백제왕의 봉의공 녀( 績 衣 工 女 ) 헌상기사, 궁월군(럭 月 君 )의 귀화전승. 응신기 15 년에 아직기( 阿 直 技 )와 왕인( 王 仁 )의 도왜기사( 體 優 記 事 ) 등 백제와 관련 기사가 나타난다 그리고 비유왕 2년 (428) 에는 왜국에서 종자 50 인을 이끈 사신이 내방하기도 한다(삼국사기 비유왕 2 년), 이상의 내용을 보면 백제 왜의 통교는 4세기 후반 5세기 전반까지 10여차례 이상 나타나는데. 382 년 이후에는 약10 여년의 공백기가 있다가 392 년부터 다시 왕래가 시작된다. 그리고 396년에 고 구려가 한성을 위협하고 왕족이 포로로 꿀려가는 등 국가의 존망이 걸린 사건이 발생하자 그 이듬해 부터 왜와 왕족외교를 시작하고(연민수 1997) 그 행보도 빨라진다. 고구려에 의해 수세에 몰린 백제 가 왜와 외교를 통해 타개책을 모색하는 다급함이 엿보인다. 표 3. 4세기 후반 5세기 전반의 백제의 대왜관계 기사 연대 기 록 비고 366 일본서기 優 와 通 交 (신공 46 年 ) 일본서기 木 羅 ff 資 등이 tt 自 야 南 加 羅 U행 國 安 羅 多 羅 卓 淳 加 羅 七 國 평정, 369 서쪽으로 돌아 古 쫓 澤 에 이 근 러 南 蠻 挑 爛 多 禮 를 무찌르고-- tt 利 맙 中 布 爛 支 半 古 四 뭄 自 然 降 服 (신공 49 年 ) ~ 370 일본서기 백제의 久 에게 多 沙 城 授 與 (신공 50 年 ) 372 久 등이 七 技 刀 - 口, t 子 鏡 - 面 등을 바치다 (신공 52 年 ) 일본서기 신리를치러 보낸 沙 至 tt 距 가도리어 加 羅 國 을쳐서 加 羅 國 王 382 己 本 몬~파 이들 百 久 至, 阿 엽 至, 國 '];;f ij, 伊 뿔없햄 [jf;j5:st~ 등이 年 끼 I 백성을거느리고 백제로 도망함 (신공 62 年 ) 392 일본서기 백제 辰 斯 王 이 貴 國 ( 日 本 ) 天 皇 에 失 禮 하여 紀 角 宿 觸 등 )jl( 遺 하여 責 쫓, 百 濟 가 辰 斯 王 除 去 하고 謝 罪, 紀 角 宿 爛 等 이 阿 花 를 王 으로 擁 立 함 (응신 3 30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32 397 삼국사기 王 與 優 國 結 好 以 太 子 願 支 鳥 質 (아신왕6년) 일본서기 백제가 왕자 頁 支 를 보내 선왕의 우호를 닦게 함(응신 8 年 ) 402 삼국서기 造 使 優 國 求 大 珠 (아신왕11년) 삼국서기 優 國 使 者 至 王 迎 勞 之 特 1 享 (아신왕12년) 일본서기 百 濟 王 이 얹쫓 衣 工 女 바침, 딩 月 君 이 百 濟 에서 內 歸 함(응신 14 年 ) 일본서기 百 濟 가 박사 阿 훌 使 를 보내 좋은 말 2펼을 바쳐.. 阿 훌 使 로 하여금그 사육을 관장케 하다 (응신 15 年 ) 삼국사기 觸 支 在 優 聞 압 哭 엎 請 歸 優 王 以 兵 士 百 人 衛 送 (전지왕 원년) 왕인파견. 阿 花 王 이 죽자 흉 支 王 에게 東 韓 의 땅 주어 돌려보냄 (응신 16 年 ) 409 삼국사기 優 國 遺 使 送 野 明 珠 (전지왕 5년 ) 414 일본서기 백제 宜 支 王 죽고 아들 久 爾 辛 이 왕이 됨. 木 滿 致 가 국정을 전횡하고 왕모와 간음 [응신 2 5 年 ] 418 삼국사기 遺 使 優 國 送 白 線 lo lzi(전지왕 14년) 428 삼국사기 優 國 使 至 從 者 五 十 人 (비유왕 2년) 한편 일본열도의 왜는 고구려의 남진으로 인해 기존에 유지해 오던 금관가야와의 교류에 큰 제약 을 받게 되었다. 절 등의 문물수입에 차질 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더구나 당시 열도의 왜는 수장 간 의 정치 경제적 경쟁이 상존하고 있었고, 이 경쟁체제의 중요한 요소가 철과 대륙문물의 안정적 확 보였는데 그 통로가 제한된 것이다. 이처럼 백제는 고구려에 대응할 군사가 필요했고 왜는 철과 문물이 필요했기 때문에 양측의 이해 관계가 합치되어 적극적인 통교가 이루어졌다. 수세에 몰려 있던 백제가 왜의 군사를 동원하여 대방 계를공격한사실(광개토왕비 영락 14년) 5세기 전반에 서일본지역에서 갑주부장이 급격히 늘고 또 한 소규모 고분에서도 갑주가 부장되는 것은 ( 田 中 륭 作 2002) 이러한 상황을 시사하고 있다. 그런데 백제와 왜의 작은 통교는 그 교통로인 연안항로의 안정적 유지가 전제된다8). 일본서기 의 구이신왕 즉위기사에서 木 羅 ff 資 의 아들 木 滿 致 가 父 의 공으로 專 於 任 那 하다 돌아왔다고 기록하 고 있는데(홍성화 2009), 이처럼 백제 8대성에 들어가는 목씨 세력이 가야에서 체재한 것은 이 지역 에 대한 백제의 영향력을 지속시키려는 목적이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연안항로를 유지하는 것이었 다. 또한 404년 왜가 대방계를 공격할 때 반드시 지났을 교통로였고, 405년에 전지가 귀국할 때의 교통로이기도 하였다(삼국사기 전지왕 원년 ). 당시는 선박기술의 한계로 구조선을 구비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김재근 1989) 연안항로상 에 중간기착할 수 있는 다수의 거점 을 두어야 했다. 더욱이 고구려가 남진하여 남부의 금관가야까지 진출하는 등 정세가 급변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통로에 대한 군사적 방비가 더욱 요구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백제는 고구려와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직접 군사를 파견하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백제가 고구려와 전투에서 왜의 군사를 활용하고 있었듯이 (김현구 2009), 연안해 안의 방비를 위해 일본열도에서 파견된 왜 군사를 활용하였을 것이다. 다시 말해 서남해안을 따라 축 조된 배널리고분과 외도고분, 야막고분과 안동고분은 왜의 군사를 활용하여 연안항로를 방비하던 거 8) 물론 당시에도 섬진강하구에서 출발하여 한성에 이르는 내룩교통로가 형성되어 있었대곽장근 2011). 시기상 검토가 필요하지만 임실 긍성리고분에서 사행검이 출토된 바 있어 대왜활동과 관련성도 집어볼 수 있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당시 내륙교통로는 현대와 같은 정비된 도로가 아니었기 때문에 주된 교통로로서 역할은 불가능하였다 신안 배널리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I 31
33 점들이었다. 405 년 전지가 왕위계승을 위해 왜 군사 100 인의 호위를 받으며 귀국하던 중, 왕권다툼 으로 잠시 대기했던 섬이 바로 이러한 거점 중 하나였을 것이다(삼국사기 전지왕 원년). 만약 서남해안지역의 고분들이 백제의 의지가 개입되지 않았고 일방적인 왜의 개입이라면 이 집단의 위상은 한결 높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미 北 部 九 州 지역까지 확산되고 있었던 횡구식석실 또 는 횡혈식석실이 사용되었을 것이며 또한 열도에서 수송했던 현지에서 제작했던 간에 植 輪 가 나타 나야할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서남해안 고분 중 최고의 위상 안동고분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전술 하였다시피, 안동고분은 횡구식석실이나 횡혈식석실이 아니고 樞 輪 의 흔적도 나타나지 않는 점으 로 보아 그 주인공은 백제의 통솔에 따라 전투와 지역방어 등을 담당한 용병적 성격의 무장집단이었 을 것이다. 반면 금동관은 수장급의 위상을 보이고 있고 비록 그 위계는 수촌리나 부장리 등의 금 동관에 비해 낮지만(이한상 2009) 그 자제만으로도 수장묘로 인정할 만한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모순된 위상은 고분의 지정학적 위치와 관련되어 나타났을 것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고구려에 수세적으로 대응하던 백제는 군사적 대왜교섭의 통로인 연안항로의 방비를 다질 필요가 있 었을 것이다. 특히 낙동강 하구의 금관가야가 고구려의 수중에 들어감에 따라 남해안 항로의 안전보 장에 대한 위기감은 어느 때보다 컸을 것이다. 안동고분이 위치한 고흥반도는 남해안 가야의 제세력과 영산강유역 재지세력의 완충지역이며, 지역세력의 형성이 상대적으로 미약한 지역이다. 따라서 백제는 남해안 교통로의 중간거점을 구축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며, 이 때문에 고흥반도를 거점으로 교통로를 방비할 조직화한 군사집단을 이식 하게 되었을 것이다 더불어 그 집단에 대한 백제의 통제를 담보해 두어야 했기 때문에 이식한 거점 지역 군사조직의 상위 관리자인 안동고분 주인공에게 위세품의 사여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VI, 맺음말 배널리고분은 갑주와 다수의 무기를 부장한 왜계 고분이다. 이러한 왜계 고분은 안동고분, 야막 고분, 외도고분 등 서남해안을 따라 축조되고 있었다. 4세기 후반, 근초고왕의 침미다례 공격은 백제의 연안항로 개척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이었으며, 이 때 영산강유역의 재지세력은 스스로 항복 하여 백제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근초고왕의 목적이 연 안항로 확보였기 때문에 백제의 영향은 크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백제에 편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산강유역 재지세력은 오히려 자체발전을 지속하고 있었고, 또한 연안항로를 통해 대왜교류도 계 속할수있었다. 이후 고구려에 의해 수세에 몰린 백제는 대왜교섭을 통해 왜를 꿀어들였다. 그리고 왜와 통교하 는 교통로를 방비하기 위해 연안항로의 거점에 군사를 배치하였다. 서남해안 고분의 주인공은 그 역 할을 수행했던 왜계 무장집단이었다. 한편 내륙의 재지세력은 이 교통로를 이용하여 대왜교류를 지속하고 있었는데, 왜의 고분축조 양 식을 도입한 장동고분은 이러한 재지세력의 활동결과였다, 32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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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토 론 신안 배널리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에 대한 토론문 김 낙중(전북대학교) 발표자는 신안 배널리 고분을 직접 발굴하였을 뿐만 아니라 고대 영산강유역의 묘제에 대해 오 랫동안 연구를 지속해 왔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최근 서남해안에서 다수 발견된 동 시기의 왜계 고 분도 함께 고려하면서 배널리 고분의 연대와 축조 배경을 고찰하였다. 5세기대에 서남해안에 왜계 고분이 축조된 것은 백제와 왜의 통교와 지속적인 교류, 연안항로의 중요성, 고구려의 압박에 왜의 군사적인 지원이 절실한 상황 등이 배경이 되었을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러면서 서남해안의 왜계 고분의 피장자를 왜와 통교하는 교통로를 방비하기 위해 연안항로의 거점에 백제가 배치한 왜 계 군사집단으로 보았다.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의문 사항이나 보완 설명이 필요한 것을 제시하는 것으로 토론의 의무를 대신하고자한다. 1. 서남해안의 고분에 부장된 갑주는 고분의 계통과 연대를 추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그런데 발표자는 갑주는 대를 이은 전세를 행하는 경우가 많아 연대를 파악하기에 불리한 편이다 라 고 하면서도 결국은 각 고분의 연대 추정에 갑주를 활용하고 있다. 토론자는 영남지역의 가야 고분 이나 서남해안의 왜계 고분에 부장된 갑주와 묘제 및 여타 공반 유물의 연대가 대체로 정합하는 것 으로생각하고있다. 발표자가 갑주는 전세되어 고분 축조 시기와 직결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여기게 된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보완 설명을 해 주기 바란다. 2. 발표자는 근초고왕대에 영산강유역이 백제의 지방으로 편입되었으며 고흥 안동고분의 금동관 등 위세품은 백제의 지방 통치 수단으로 활용되었다고 여겼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백제를 연안 의 방비를 위해 왜인을 활용한 주체로 여겼다. 그런데 금동관등 위세품의 성격은사여의 객체에 따라성격이 다를수 있다. 한성기에 충청지역 을 중심으로 한 지역세력에게 나누어준 금동관은 백제의 지역지배 확대와 관련지을 수 있겠지만 가 야나 왜의 고분에 부장된 금동관은 이와는 다른 성격을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 영산강유역에는 5세 기 후반 이후에나 본격적으로 금동관 등 위세품이 부장되므로 안동 고분의 백제 위세품은 지배와는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3. 발표자는 서남해안의 5세기대 고분의 묘제와 부장품은 왜계이고, 백제가 이 지역을 지배하게 되었으므로 이러한고분의 피장지는왜와통교하는교통로를방비하기 위해 연안항로의 거점에 백제 가 배치한 왜계 군사집단이라고 판단하였다. 36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38 이러한 판단이 타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의문을 해소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우선 당시 해로를 통한 교류에서 연안항로가 중요하였다는 점에는 의견이 같다. 다만 현지세력의 역할을 간과할 수 없다. 선박으로 바다를 항해할 때 선원들이 가능하면 육지나 섬을 눈으로 바라보 면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며 항해하는 것이 조난의 위힘을 감소시킬 수 있는 가장 안전한 항해술이 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므로 항해술의 기본은 視 認 距 離 연안항해라고 말할 수 있다. 나침반이나 海 圖 없이 선원의 감각만으로 항해하는 원시항해술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한반도와 일본열도에서 언제 쫓을 단 구조선이 등장하였는지 아직 분명하지 않지만 5세기까지도 배는 準 構 造 船 으로서 통나무배의 측면에 별도의 측판을 부착하여 배 내부의 공간을 확보하고 선체 전체를 보강한 것이어서 원양항해를할수 있는규모는못 된다. 이러한 木 H돼i 海 時 代 에 항해에 가장중요한요소는 바람이었으며, 쫓을 이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연안을 떠날 수 없었다. 한반도 서해에서는 해류가 미 약한 대신 湖 流 가 지배적이며, 남해에서는 외해에서 해류가, 해안 부근에서는 조류가 강하다. 따라서 항해를 위해서는 湖 流 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었다. 특히 남해안과 같은 다도해는 암초, 수심이 깊 지 않은 곳 그리고 유속이 매우 빠른 곳이 곳곳에 있고 해안이나 섬의 항 포구에 대한 정확한 위치 를 찾기 위해서는 현지 사정을 꿰뚫어 보는 안내인이 있어야 한다. 왜 집단이 남해안 항로를 따라 항 해할 때 현지집단의 도웅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다, 또한 준구조선을 이용하여 노를 저어가는 운항 법으로 일본열도에서 한반도까지 장거 리 항해를 할 경우 물자의 보급과 노를 젓는 선원들의 휴식 문 제로 인한 중간 기항은 필연적이다. 이 경우 항로상의 여러 정치체와의 우호관계 유지가 필수적이다. 한편 고분의 축조는 피장자가 현지에 정착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남해안 일대의 왜계 고분의 피장자를 優 A 혹은 像 系 A으로 본다면 그들이 남해안 여러 요충지에 정착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 러나 5세기 후엽 이전 도입기의 왜계 고분은 무리를 이루지 않고, 현지에 집단적으로 이주하여 생 활한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군사적 성격의 집단이 현지에 무텀을 축조한다는 것도 상정하 기 어렵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왜계 고분은 像 A 혹은 優 系 A이 현지 집단과의 우호적인 관계 유지, 교 역로(항해로) 확보의 보장 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 연안항해에 필요 한 섬이나 육지의 주요 관측지점에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해안에 위치한 구릉의 능 선 상에 단독으로 입지하는 현상도 이 러한 상징성의 극대화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왜 그러한 상징으 로 고분이 사용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당시는 고분 축조가 유행하던 시기인 점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현지 집단도 왜인이나 않 系 A이 자신들의 영역 안에서 활동하는 것에서 무엇인가 얻는 대가 가 있었으므로 이러한 왜계 고분의 축조에 주도적이었거나 최소한 동의 또는 협조하였을 것이다. 이 런 관점에서 보면 왜계 고분의 피장자가 반드시 왜인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교류의 필요성은 왜와 백제(가야) 모두에게 있었을 것이며, 현지집단은 연안항로 상의 유리한 입지를 이용하여 해상교역에 필요한 역할을 하고 그 대가로 백제(가야), 왜 쌍방으로부터 위세품으로서 금동관, 무기류 등을 받으 며 현지사회에서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성장하였을 가능성을 상정할 수 있다. 그런데 남해안 지 역에 축조된 초기의 왜계 고분에서 백제의 위세품은 일부 부장되지만 백제 묘제의 요소는 보이지 않 는다. 이러한 점으로 보면 남해안 해로를 통한 교역에서 가장 적극적인 집단은 왜인들이었을 가능성 이 높다. 또한 백제의 정치적 영향력이 지역집단의 직접적인 지배 단계에는 이르지는 않았음을 시사 한다(김낙중, 2013, 5 6세기 남해안 지역 왜계 고분의 특성과 의미, 호남고고학보 45). 신안 배널리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I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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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03 고흥 야막고분의 연대와 등장배경에 대한 검토 권택장(문화재정).머리말. 무덤과 매장주체부 형식. 출토유물 부장양상 IV. 출토유물에 대한 검토 v. 5서 기 왜의 정세와 동북아 연안항로 VI. 맺음말.머리말 야막고분을 비롯하여 한반도 서남해안의 연안항로를 따라 왜계 유물이나 흉 法 이 채용된 고분의 사례가 점증하고 있다. 지금까지 왜계 고분에 대해서는 재지수장설, 왜인용병설, 왜계백제관료설 등 이 주장되고 있는데, 야막고분과 같이 연안항로상에서 발견되는 왜계고분들은 그 배경과 성격이 내 륙의 거점지역에서 발견되는 왜계고분과는 다를 것으로 본다. 야막고분의 장법과 출토유물의 계보 등을 살펴 그 시기를 짐작하고 연안항로와 관련된 당시 동 북아의 정세를 파악하여 야막고분을 비롯한 연안항로상의 왜계고분 등장의 배경을 검토해보고자 한 다. 검토과정에 고분 피장자의 출자와 재지세력과의 관계도 파악될 것이다.. 무덤과 매장주체부 형식 야막고분은 직경 24m 내 외의 원분으로 무덤 표면 일부에 즙석이 있다. 매장주체부는 분구상에 위 치하며, 분구성토와 병행하여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구조는 석곽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벽석의 축조 방법을 보면, 목곽이 구조틀이 되지 않고서는 벽석이 유지되기 어려운 구조이다, 목곽을 먼저 설치하고 나서 벽석을 쌓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개석이라든지 별도의 폐쇄시설은 없었으며, 목곽을 폐쇄한 木 蓋 가있었던 것으로추정된다. 또벽석 외연으로돌을채워 보강한것도이 고분의 특정으로지적할수 있다. 벽석 내부는 길이 310cm, 너 비 73 86cm 깊이 45cm로 비교적 좁고 얄은 규모를 가지고 있다. 1) 목곽의 존재를 인정하면, 야막고분의 매장주체부는 영남지역에서 분류되는 위석식 목곽이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 남지역의 위석식 목곽의 위석보다는 비교적 정연하게 쌓은 벽석의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보강석도 정언하게 채워진 앙상을 보이고 있다. 축조순서를 보면 위석식으로 분류할 수 있겠지만, 그 구조를 보면 영남지역의 위석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어서, 여기서는 잠정적으로 목곽과 석곽이라는 이중곽의 구조로 설영하고자 한다 고흥 야막고분의 연대와 등징배경에 대한 검토 I 39
41 이러한 무덤 표면의 즙석과 매장주체부 형식은 국내보다 일본에 그 비교 사례가 더 많다. 물론 뒤에서 설명될 출토유물을 고려한다면 후자가 더 타당할 것이다. 즙석은 일본 고분시대에 보편적으 로 통용되던 무덤의 외표를 마감하는 방법이다. 야막고분의 매장주체부는 벽석 외연으로 비교적 넓은 보강석을 가진 것과 좁고 얄은 내부구조 목곽을 채용한 특정 등은 일본 북구주에서 5세기 대에 유행하던 石 相 系 뿔t 式 石 室 ( 重 購 輝 行 2007)과 비교된다. 이러한유형은김해율하 B-1호분, 마산진북대평리 Ml호분과배널리 3호분등에서도확 인되는데, 기본적인 형식은 가야의 수혈식 석곽과 비교할 수 있겠지만, 좁고 얄은 구조 그리고 출토 유물 또는 무덤의 즙석을 고려한다면, 북구주의 석관계수혈식석실과의 비교가 더 바람직 할 것이다. 구체적인 비교대상으로 그 구조와 규모, 개석이 없는 점 등은 후쿠오카현의 策 原 古 慣 2) 과 비교되 고 내부에 목곽을 설치하여 벽석을 쌓는 방법 등은 七 섯번 古 慣 을 참고할 @ 냉S:-,)\ l ~~ 鍵 합~ 율하 B 대평리 原 古 七 강 池 古 原 古 慣 옳C-4블 慣 도면 1. 매장주체부 비교 2) 매장주체부에 대한 조사에서는 개석이 확인되지 않았으나 도굴로 인해 교란된 분구 사면에서 확인된 2매의 석재를 개석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大 野 城 市 敎 育 委 員 용 1985) 하지만 도굴로 인해 없어진 다른 한쪽 단벽의 석재이거나 벽석 일부에서 큰 석재를 사용하고 있어서 벽석에 사용되었던 석재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다. 40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42 출토유물의 부장양상 야막고분에서는 갑주와 철촉 철모 등의 무구 무기류와 鐵 鋼, 철겸, 도자등의 농공구류, 동경과곡옥, 환옥등의 장 신구류 등 250여 점이 출토되었다. 출토위치는 석곽의 벽석 과 석곽 외부, 목곽 내부로 구분되고, 목곽 내부는 다시 피 장자 주변과 피장자의 발치 아래쪽의 부장공간으로 나띈다 석곽 외부의 보강석 상부에서는 철서, 철겸, 도자 등의 농공구류와 철모가 수습되었고 석곽 내부 피장자의 머리쪽 단벽 모서리에서 장식형 철촉이 꽂힌 채로 확인되었다. 목곽 내부 피장자 주변에는 머리쪽에 훔옹 樹 과 동경({ 立 至 르 公 鐘 ), 벽옥제 곡옥, 가슴과 허리 주변에서 환옥이 다수 확인되었 고, 오른쪽과 왼쪽에 각각 劍 과 刀 가 배치되어 있었다. 경옥 제 곡옥은 석곽 내부퇴적토 중간 위치에서 확인되었기 때문 에 목곽의 목개 위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매장 주체부에서 출토된 유일한 토기인 광구소호는 벽석 가장자 리의 상단에서 출토되었기 때문에 석곽바깥의 벽석 가장자 리에 있었을 것이다. 도먼 2. 매장주체부 내 유물 부장앙상 피장자의 발치 아래쪽에는 삼각판혁철판갑과 충각부주, 견갑, 경갑 등의 무구류 一 寶 과 철촉, 게, 刀 등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으며, 충각부주 내부에서 素 文 鏡 1점이 @ 兵 庫 옐 小 野 王 행 古 間 山 멍 隨 廣 古 慣 도먼 3. 매장주체부 내 유물배치 비교 고흥 야막고분의 연대와 등장배경에 대한 검토 I 41
43 IV. 출토유물에 대한 검토 1. 갑주 帶 狀 의 긴 철판을 구조틀로 하여 삼각형이나 직사각형의 철판( 地 板 )을 가죽 끈이나 못으로 꿰어 서 만드는 갑옷과 투구를 帶 金 式 甲 뿜라고 한다. 국내에서는 이러한 갑옷의 출토사례가 5세기 대 고 분에서 25 건 정도 보고되고 있다. 3) 부산 김해 합천 등 가야지역과 여수 고흥 해남 등 서남해안 의 연안항로상, 영암 장성 등 영산강 유역, 청주와 음성 등 금강유역의 백제지역 등으로 주로 내륙 수계상의 거점지역과 연안항로상에 나타나는 분포정형을 보인다. 한편 일본은 고분시대 중기에 이러한 대금식갑주가 무텀에 폭발적으로 부장되는데, 일본 전국에 서 570여 건 4 ) 이 보고되고 있다. 그리고 그 제작기술의 단계적 변화가 뚜렷하다. 송계현 (2004)은 대금식갑주의 기술적 체계의 성립과 제작지를 한반도 남부로 보았지만, 지금까지 양국의 출토수량과 가장 이른 형식의 출현시기, 형식의 단계적 변화상 등을 고려하면 일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일본의 대금식갑주의 성립과 변화상을 소략하면 다음과 같다. 고분시대 전기 후 엽, 帶 金 을 사용하지 않은 方 形 板 黃 爛 이나 堅 쐐 板 章 썼에서 중기 초 (4세기 말)에 삼각형이나 직사각형 의 작은 철판을 대금에 웬 대금식갑주가 성립된다. 이후 중기 말까지 일본 전역의 고분에서 중요한 부 장품으로 나타난다. 대금식갑주의 변화상은 크게 철판의 연결기법으로 가죽 끈( 童 績 )에서 못(뚫 留 )으로 고정하는 방식으로 발전하며, 세부적으로는 철판의 형태와 크기에서도 변화의 단계를 설정하고 있다. 야막고분에서 출토된 갑옷과 투구는 삼각형의 철판을 가죽 끈으로 웬 형식이다. 이러한 유형은 국내에서는 10 기의 고분에서 10 점, ( 吸 口 英 殺 1998). 일본에서는 73기의 고분에서 86 점의 출토사례가 보고되어 있다 표1 국내 삼각판혁칠 갑옷 출토 현황 연번 고분 갑옷 투구및부속구 매장시설 고흥야막고분 혁철 /A 삼각판견혁갑철,충 경카갑부주 (석관계 모수--,과혈 --,식석실) 2 부산복천동 4호분 혁철 /A 석곽 3 김해두곡43호분 혁철 /B 횡장판차양주 /-셔1 고 -끼 4 김해율하 B-1호분 혁철 /B (석관계 λ추 고월}식석실) 5 합천옥전 68호분 혁절 /B 목곽 6 함안도항리 13호분 혁절 /B -&고-t 7 해남외도 l호분 혁철 /B 상식석관 8 신안배널리고분 혁철 /B (삼각판병유충각부주) (석관계석수곽혈식석실) 9 방대 영형암고 옥분야 제리1호분 혁철 /B λ-4 λ d 10 파주주월리 혁철 갑옷의 A 는 삼각판의 형태가 등각(정삼각형), B 는 둔각(이등변삼각형)을 ( ) 는 추정되는 사항임 낀 τ~1?.1--r O 걷 I그i 왜 조계설촉 칠촉등 장경철족모,등토기, 꿇젤휠홀 철경 경옥제곡옥등 기타 ξ님드싸 { (즙석) 지표수습 3) 김혁중(2012)이 정리한 23건의 자료에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 저 11호분(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2012)과 신안군 인좌먼 배널리 고분(동신대학교 문화박물관 2011)에서 출토된 삼각판혁칠판갑을 추가해야 할 것이다 4) 橋 本 達 也 (2012a: )의 일본 고분시대 중기 갑주 집성 635건에서 소잘갑을 제외한 대금식갑주 출토수랑이다 42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44 이와 같은 삼각판헥철 갑옷도 삼각판의 형태에 따라 등각계(정삼각형)와 둔각계(이등변삼각형) 로 구분하는데, 등각계를 이른 시기로 보고 있다, 등각계 내에서도 갑옷을 구성하는 삼각형 철판의 수와 겨드랑이 부분 철판의 형태 에 따라 시기적 차이를 구분한다.( 쨌 口 英 殺 1998) 야막고분의 갑옷은 등각계이며, 국내에는 부산 복천동 4호분의 출토품을 포함하여 2점 이 이에 해당한다. 갑옷의 구성을 보면, 앞판과 뒷판 모두 7단으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야막고분의 갑옷은 앞판( 前 뼈) 7단, 뒷판( 後 뼈) 9단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리고 겨드랑이 부분의 철판은 일본에서 초현기의 형식으로 보고 있는 滋 뿔멍 大 據 越 古 樓 의 갑옷보다 발달된 형식으로 富 山 멸 용 內 21 뭉 境 의 갑 옷과 많이 닮았다 (도면 6) 표 2. 한국과 일본의 등각계 삼각판혁칠 갑옷 지판 비교 출토고분 前 뼈 賢 上 2 段 後 뼈 지판매수 長 껴m 段 長 껴 β 段 합계 전통 지판배치 大 t 家 越 4 7 f 左 野 八 睡 山 4 5 인t 보 깝 內 21 만 4 5 向 山 1뭔 4 5 井 手 / 上 2 5 한국 복천동 4호분 4 니 능형 ε;j τ 5- 엉.-~ 변칙 (13) (11) (31) 변칙 13 (12) (34) 능형 야막고분 수상2단 전동 -송 즈8- 수상4단 후동 장측l 단 장측3단 합계 전동 지판배치 늦, :1 일본에서도 등각계의 갑옷은 6점으로 그 사례가 많지 않고, 둔각계가 대부분이 다. 이러한 등각계 갑옷의 편년은 초현기의 뺀 轉 뺀 1 曉 2 형식(등각계 I 식)을 고분시대 중기 초 (4세 기말), 야막고분과 유사한 싼 內 21 뭉 樓 또는 向 山 1 뭉 境 의 형식(등각계 U 식)을중기 전엽 (5세기 전엽)으로 보고 있다. 등각계에서 둔각계로의 변화는 삼각판 이 커지면서 갑옷제작에 사용되는삼각판 의 수량도 줄어드는데, 이는 제작기술이 안 정화되어 본격적인 양산체제로 접어드는 L 靈 轉 L 睡 웰짧 4 羅 혔껴 5 { 轉 繼 L 1. 갤 角 系 I rt< 太 흉앓 古.IJ) 2 等 角 系 H 式 ( 向 山 l 됨 Jj!t ) 3. 純 角 系 I 式 ( 堂 Ill I 당명) 4 짧 角 系 n 式 (효뼈 西 古 벚) 5 짧 角 系 띠 式 (흉홍 古 따 ) 6 iu 角 系 W 式 ( 二 jν 古 빼) 도먼 4. 삼각판혁철판갑 형식변천( 限 口 英 殺 1998) 것으로 본다. 그 변화 시점도 5세기 전엽에 이루어진다( 版 口 英 殺 1998). 고흥 야막고분의 연대와 등장배경에 대한 검토 I 43
45 야막고분의 투구는 갑옷과 마찬가지로 삼각형 칠판을 가죽 끈으로 웬 충각부주로 板 짧과 볼가리 개가 붙어 있다. 판철은 투구 뒷부분에 붙어 뒷목을 보호하는 것으로 비교적 폭이 넓은 1매의 철판 에서 여러 매의 좁은 철판을 이어붙이는 형식으로 변화한다. 야막고분의 투구는 1매의 판철로 이루 어져 있고, 판철의 가장자리는 가죽 끈으로 꿰어 마무리 했다. 혁철이라는 기술적 속성과 더불어 1 매로 이루어진 판철의 형식, 그리고 판철의 가장자리를 가죽 끈으로 마무리하는 제 속성들을 고려하 면, 갑옷과 같은 시기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충각부주에 볼가리개가 붙어 있는 것은 일본에서도 아주 예외적인 것으로 주목된다. 일본에서 갑주의 부장위치는 고분시대 전기에 피장자의 머리 위쪽, 중기에 들어서는 발치 아래 쪽에 두는 것으로 변화한다, 물론 그 시작도 고분시대 중기 古 市 百 굵 鳥 古 樓 群 을 중심으로 하는 왜 왕권에서 성립되어 확산된다( 橋 本 達 也 1999). 야막고분과 배널리 고분이 이러한 장법을 그대로 따 르고 있다.(도변 3) 2. 鐵 織 과 農 I 具 1) 철촉 철촉은 피장자 발치 아래의 부장공간에서 갑주 뒤편과 옆 그리고 앞에 다발로 출토되었다. 또 피 장자의 머리 쪽 석곽 단벽 한 쪽 귀퉁이에 꽂힌 채 출토된 것도 있다. 철촉의 형식은 유엽형과 유엽 역자형, 능형, 규두형, 착두형 그리고 장식성이 강한 無 華 式 역자형으로 구분된다. 한국과 일본의 공 통 기종인 능형 철촉을 제외하면, 모두 일본 고분시대 중기 철촉과 비교된다 착두형과 무경식 역자 형은 피장자 머리 쪽 단벽에서 출토되었고 나머지는 모두 갑주 주변에서 출토된 것이다. 유엽형은 소위 烏 줌 織 이라 불리는 것으로 촉신이 S 자형의 곡선을 보이며, 關 部 가 뾰족하게 돌 출된 형태이다. 일본 고분시대 중기 초에 나타나 중엽이 되면 사라지는 형식이다. 유엽역자형은 촉신 하단부에 }쁘명 lj를 가진 것으로 유엽형(조설촉)과 마찬가지로 관부가 뾰족하게 돌출되어 있다. 국내에 서 유사한 형태가 있으나 관부가 돌출된 것은 왜계 이다. 촉신의 단변이 초생달 모양으로 오목한 것 과 가운데가 볼록한 렌즈형으로 구분되는데, 야막고분의 것은 전자의 형태이다. 단변형태가 오목한 것이 시기가 앞서는 것인데, 일본의 和 果 黃 金 據 下 山 天 빼 山 據 등의 출토품과 비교된다. 렌즈형의 출 토품은 五 f 山 B2뭉 樓 野 毛 大 隊 古 樓 등에서 확인된다. 규두형 철촉은 유엽형과 마찬가지로 촉신 하 단에 관부가 돌출되어 있고 織 先 端 이 규두 모양으로 각이 진 형태이다. 이와 같이 야막고분의 철촉은 그 형식에 있어서 왜계이며 5세기 전엽에 해당하는 일본의 고분 에서 그 사례를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5세기 중엽의 요소인 장경촉이 보이지 않이- 전반적으로 앞서 살핀 갑주와 시기적인 차이가 없다. 2) 농공구 야막고분에서 농공구는 鐵 購 과 鐵 鋼, 刀 子 가 있는데, 모두 석곽 외연을 채운 보강석 위에서 출토 되었다. 철서와 도자는 한일의 형식 차이가 거의 없는데 철겸은 국내보다는 일본의 출토품과 비교 된다. 일본은 고분시대 전기 장방형의 直 꺼 購 에서 중기가 되변 호F국의 곡인겸의 영향을 받아 購 의 끝 부분이 뾰족해지고 꺼 部 가 곡선형으로 변화한다. 이러한 변화가 고분시대 중기 초에 시작되어 중엽 이 되면 곡인겸으로의 변화가 완성되는데 야막고분의 철겸은 중기 초에서 전엽에 보이는 변화의 과 44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46 도기 형태를 보이고 있다. 또 같은 고흥지역에서 5세기 전엽에 해당하는 동강면 장덕리 고분의 철겸 과는분명한차이가 있다.(도면 7) 3. 동경과갑주 야막고분에서 출토된 鋼 鏡 은 位 至 三 公 鏡 (직경 10.0cm)과 素 文 鏡 (직경 6.5cm) 2점이다. 위지삼 공경은 位 至 三 公 이라는 문자와 龍 文 이 새겨진 것으로 西 쯤 代 에 낙양을 중심으로 주로 제작되었다. 位 至 三 公 이라는 銘 文 의 의미는 높은 벼슬에 오르기를 기원하는 吉 詳 句 이며, 중국에서는 奏 漢 대부 터 동경에 이러한 문자를 새기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로 사용되는 吉 詳 句 로는 位 至 三 상, 君 宜 高 官, 長 宜 子 孫, 홉 如 金 石 등인데, 높은 벼슬( 位 至 三 公, 君 宜 高 官 )과 자손번영( 長 宜 子 孫 ), 무병 장수( 壽 如 金 石 ) 등을 의미한다( 王 件 珠 1985). 위지삼공경의 국내 출토사례는 경주 교동 출토품이라고 전해지는 1점이 유일한 사례이며, 일본 에서는 고분 부장품으로 북구주지역에서 13 점, 오사카지역에서 6점, 그리고 懶 戶 內 海 上 의 香 川 縣, 山 口 縣, 問 山 縣 등에서 각 1점, 島 根 멍 1점, 그 외 출토지 미상 등 기타 6점을 포함한 모두 29 점의 출 토사례가 보고되어 있다 히. 또 素 文 鏡 과 位 至 三 公 鏡 이 공반되는 사례는 大 吸 府 塊 市 의 M1;J; 山 古 境 에 서찾을수있다. 동경은 갑주를 비롯한 부장유물과 상당한 시기 차를 보이고 있다. 일본 고분시대 중기에는 갑주 와 동경이 함께 공반되는 사례가 일반적이며 특히 위삼공경과 같이 전세된 중국경은 대금혁칠식 갑 주 단계에 주로 함께 부장된다( 上 野 휴 史 2012). 야막고분의 동경과 갑주는 일본 고분시대 중기의 이러한 부장관습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같은 고흥지역인 길두리 안동고분과신안배널리 고분에서도 이러한대금식갑주와동경, 철경 6)이 함께 부 장된모습을볼수있다. 표 3. 일본 고분시대 갑주와 경의 공반현황( 上 野 神 史 2이 2) 響 윷윷 튿벚햇뺀짧뼈 l 뚫뼈 했했천 훌j뼈 小 ;fu 1 7 I 85 2 (3) I 1 I ) l 뽑 ( 草 싫 I 10 (4) I 뼈 16 (10) I 29(15) I 6 (1) I 앓 ( 草 싫 1 I I 5 ~ I 8 (4) I 13 I 훔 考 三 重 멍 石 山 古 項 京 都 府 ][ ~l 뭉뺑장 含 ts :f,t 쥐Mfli:fr 1 용혐장 含 tr 三 重!양 石 山 古 뺑. 含 tr 奈 良 얻 五 종 1패t릉 古 增 장 含 tr 3 (1 ) 6 17 (2) 13 (6) 17 (2) 24 本 l양 江 田 船 山 古 뺑충 含 tr (1 ) 24 5) 2005, 鍵 志 優 Afri 흥꿇 ; 뿔 5i]l 呼 ~=t5-:it<ζ 鏡 j, 耶 馬 台 固 m용 第 며 講 演 용 資 料 ( 6) 신안 배널리 고분에서 출토된 절경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동신대학교 이정호 선생님의 배려로 실견할 수 있었다 고흥 야막고분의 연대와 등장배경에 대한 검토 I 45
47 v. 5세기 왜의 정세와 동북아 연안항로 일본 고분시대 정치세력 통합의 배경은 철 자원을 중심으로 한 선진문물 입수 루트의 지배권을 둘러싼 다툼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3세기 중엽 칠 자원을 비롯한 선진문물이나 정보의 공동입수기 구로서 왜 정권 이 성립되며, 그 맹주인 識 內 의 왜 왕권 은 각지의 정치세력으로부터 외교권을 위임 받는 대 신에 철 자원 등의 안정적인 확보와 분배의 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또한 4 5세기 단계에 일 본열도에 유입되는 갑주, 마구 등 새로운 철기 가공기술이나 금동제품 등의 금속공예기술을 장악함 으로써 왜 왕권의 권력이 강화되었을 것이다.( 白 石 太 - 郞 201이 오사카 평야의 百 굵 鳥 古 市 古 境 群 에 갑주 등 철제무기 무구의 부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도 이 시기와 맥을 같이 한다. 일본 열도에서 말의 도입시기는 마구(재갈 등)?) 의 존재로서 파악할 수 있다. 近 離 지역의 兵 庫 옐 行 者 據 古 境, 九 州 지역의 福 問 떻 池 φ 上 6뭉 境 熊 本 原 )\. 反 原 2뭉 境 등 5세기 초의 고분에서 도입시기 의 마구(재갈)를 확인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계보를 김해 대성동 39호분과 청주 봉명동 A 76호분 및 C-9호분의 출토품과 비교하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 課 早 頁 人 2012). 또 일본 열도에서 마구(재갈)는 5세기 초 구주와 기내를 중심으로 도입되어 5세기 전엽에 동일 본지역인 長 野 原, 5세기 중엽 경이 되면 동북지역인 宮 城 월까지 일본열도 전역으로 급속히 확산된다 ( 課 早 훌A 201 이. 이를 보면, 고분시대 중기 열도의 지방세력이 마구로 상정되는 기승문화에 대한 수요가 어느 정 도였는지 짐작케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공급을 담당하고 있던 왜 왕권은 한반도와의 적극적인 교섭 을 통해 물량을 확보했을 것이다, 왜 왕권의 교섭대상은 앞서 초기 마구의 계보가 가야지역과 백제 지역으로 확인된 바와 같이 다원적인 루트를 상정할 수 있다. 또 4세기 후반 백제로부터 말 2마리가 왜 왕권으로 전해지는 일본서기의 기사를 참고하면, 5세기 초 일본 열도의 기승문화 도입은 한반도 남부의 가야지역은 물론 한반도 중서부지역과의 관계도 분명해진다, 그리고 그러한 교섭과정을 구체 적으로 살피면, 한반도 서남해안의 연안항로상에 나타나는 왜계 고분들이 가시권에 들어오게 된다. 문헌에 나타나는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대 왜의 백제 또는 중국과의 관계를 보면, 卓 淳 國 을 통 한 백제와의 통교 개시, 고구려와의 군사적 긴장관계에 따른 백제와 왜의 七 支 刀 외교, 優 五 王 의 중 국남조에 대 한 책봉외교 등이다. 그리고 열도에서 대륙으로 향하는 항해의 시발점인 빼 / 島 에서 왜 왕권이 해양제사를 주관하는 것도 이 즈음이다. 왜의 교역로는 백촌강 전투 (663 년) 의 개입으로 인해 신라와의 관계가 틀어지기 전까지 대한해 협을 거쳐 한반도의 남해안과 서해안을 경유하는 연안항로이다. 이 곳의 해상지리를 살펴보면, 조석 간만의 차가 크고, 복잡한 해안선을 가진 리아스식 해안으로서 항해가 쉬운 곳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특히 여수반도에서 신안군까지는 연안에 섬들이 많아 바닷길이 복잡하며 또 이러한 섬과 육지 사이 에 해협이 발달해 있어 강한 漸 流 8) 가 발생한다 이로 인해 이곳은 뱃길이 가장 험한 곳으로 알려져 7) 마구(재갈)는 騎 乘 이나 말을 운용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로 마구(재갈)의 존재는곧 말의 존재를 증빙하는 것이 된다 일본에는본래부터 야생말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구(재갈)가 나타나는 시기가 일본 열도에 말이 도입된 시기이다 그러고 그 마구의 계보가 어디냐에 따라 일본이 한반도 어느 세력과 교섭을 통하여 도입했는 가를 알 수 있다 8) 이 지역의 섬과 연안 사이에 형성된 해협의 조류는 평균 3 5kn(1kn=1.852km/h)으로 나타나며, 가장 강한 콧은 12kn에 이른다 ( 大 韓 民 國 水 路 局 1988)) 46 I 고분을 통해 온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48 있다. 이 지역의 연안항로를 이용하려면 현지의 복잡한 해상지리와 湖 水 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항해 성공의 최대 관건이다. 지금까지 연안항로와 관련된 왜계 고분이 이 지역에 집중되는 것 도 이러한 정황을 佛 證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VI. 맺음말 지금까지 살펴 본 바에 따르면, 야막고분은 5세기 전엽 일본열도의 유물이 부장되고, 매장주체 부도 구주의 영향이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그렇다면 야막고분의 피장자는 누구였을까? 보수적인 기 제가 강한 裵 힘에 있어서 재지의 요소는 거의 찾아 볼 수 없고, 모두 외래의 요소라면 그 피장자는 외래인 즉, 왜인일 가능성이 높다. 한반도에 나타난 일련의 왜계 고분에 대해 그 입지와 주변 재지고분군과의 관계, 그리고 당시 의 정치사회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그 피장자를 재지 수장설, 왜계 백제관료설, 왜인 용병설 등으로 나뒤어 있다. 야막고분을 비롯한 연안항로상의 고분들은 이와 별도로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부산에서 신안군까지 연안항로상에서 확인된 왜계고분 9) 은 14기 10) 정도 된다. 그 중에서 5세기 전엽에서 중엽의 시기에 혁철식 갑주가 출토되는 곳은 김해 율하 B-1호분민 고흥 안동고분, 야막 고분, 해남 외도고분, 신안 배널리 고분 등 5곳이다. 고흥 안동고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5세기 전엽 에 해당하며, 매장주체부도 북구주의 석관계수혈식석실과 비교된다. 특히 매장주제부 내 유물 부장 양상의 전모가 확인된 야막고분과 배널리고분은 鏡 과 갑주 등 유물의 구성과 배치가 거의 유사하다. 서구학계의 이론에서 보면,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국제적인 교역장 (Places of Foreign Trade) 에서는 정치적 중립성 즉, 교역을 위한 居 7J 外.A(Trade Diaspora)들의 거주와 활동이 보장 되는 것이 보편적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교역장은 재지의 거점지역에서 다소 떨어진 공간에 형 성된다고 한다(김창석 2012). 김해 율하 B-1호분(경남발전연구원 2008)과 김해 관동리 나루터 유적(삼강문화재연구원 2009) 이 이에 부합되는 유적으로 여겨진다. 당시 정치세력의 거점지역인 김해 대성동이나 봉황동에서 일 정 거리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 입지가 배가 접안하여 기항하기 알맞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특별한 접안시설을 갖출 수 없었던 고대에는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간 灣 이 배가 접안하여 기항 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야막고분의 입지는 고흥만의 배후에 있어 이러한 조 건을충족하고있다. 고흥지역의 고분분포를 보면 고흥 북쪽의 동강면과 안동고분이 위치한 해창만의 배후인 도화 면 일대에 집중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도화면은 지표조사를 통해서 확인된 것으로 석실이나 석곽 을 채용한 고분으로 추정된다. 동강면 일대는 발굴조사를 통해 어느 정도 고분의 시기와 성격이 밝혀 9) 무덤의 즙석여부와 매장주체부, 출토유물 등에서 왜와 관련성이 밝혀진 고분을 잠정적으로 왜계고문 이라 명영해 둔다 1이김해 율하 B 1호분, 거제 장목고분, 마산 대평리 M1호분, 고성 송학동 고분, 사천 선진리 고분, 여수 죽림리 차동고분, 고흥 안동고분, 고흥 야막고분, 해남 외도 고분, 해남 신월리 고분, 해남 장고봉 고분, 해남 조산고분, 해남 용두리고분, 신인 배널리 고분 등이다. 11) 김해 율하 B-1호분에서는 삼각판혁철 갑옷편과 조설촉 역자가 있는 도자형 철촉 등이 확인되었다, 보고서에서는 삼각판혁절 갑옷과 매장주체부의 구조 등을 들어 5서 기 중 후엽으로 보고 있으나, 출토된 유물이 모두 왜계이며, 일본쪽의 펀년체계를 고려하면, 5서 기 전엽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또 매장주체부의 구조도 북구주의 석관계수혈식석실로 볼 수 있으며, 고분 가장자리에서 확인된 흐트러진 석재들도 호석이 아니라 즙석일 가능성이 높다. 야막고분과 마찬가지로 무덤의 구조와 매장주체부, 출토유물 모두 왜계이다 고흥 야막고분의 연대와 등장배경에 대한 검토 I 47
49 졌다. 4 5세기 대 제형주구에 목곽을 매장주체로 한 다장묘 등이 확인되고 있으며, 출토유물을 보 면, 소가야, 아라가야 등 가야계 토기를 다수 부장하고 있다. 또 동강면 장동 유적(대한문화유산연구 센터 2011) 에서는 경옥제 곡옥이 顆 師 으로 부장된 것이 확인된다 장법에 있어서는 범영산강유역 문 화권에 포함되며, 출토유물로서는 부산, 김해 등의 가야세력과 왜와의 교역상을 볼 수 있다. 야막고 분과 같은 시기의 재지세력으로는 동강변 일대로 추정되며, 야막고분은 거류왜인 집단으로서 재지세 력과는 상당한 거리를 둔 포구에 위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고흥 안동고분은 야막고분의 반대편인 포두면 길두리의 해창만 배후에 위치한다. 안동고분의 입 지와 장법, 출토유물로 볼 때 야막고분과 마찬가지로 거류왜인 집단으로 추정된다. 다만 시기적으로 는 야막고분보다 늦은 5세기 중엽 12) 언저리로 생각된다. 부산에서 서해안으로 이어지는 연안항로상 에서 야막고분이 입지한 고흥만 일대는 항로의 진행방향에서 역으로 돌아서야 되는 곳이기 때문에 기항지로서 최적의 조건은 아니다, 오히려 안동고분이 입지한 해창만 일대가 항로상의 진행방향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보다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야막고분과 관련된 거류왜인들은 최초 해창만을 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재지세력의 양해를 받지 못하여 부득이 고흥만 일대로 갔을 수 있으며, 이후 재지의 양해로 해창만으로 옮긴 것이 안동고분일 가능성이 높다. 5세기 대 기내를 중심으로 한 왜 왕권은 일본 열도의 철과 말 금공품에 대한 공급확대를 통해 일본열도 전역의 지역 세력에 분배하면서 열도 내의 지배권을 강화해 나갔을 것이다. 이러한 공급확 대는 기존 한반도 남부에 의존하던 공급지를 한반도 서남부와 중서부로 다변화하면서 안전한 항로개 척이 펼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항해가 가장 어려운 여수반도에서 신안군에 이르는 구간에 해당하는 고흥과 해남, 신안 지역에 交 易 船 의 寄 港 과 평 船 의 역할을 담당하는 왜인을 파견하였을 것으로 추정 된다. 그리고 그 출자는 앞서 살핀 매장주제부의 계보가 구주지역과 관련된 점, 帶 金 式 甲 뿜의 생산과 배포가 왜 왕권에서 - 元 的 으로 이루어진다( 橋 本 達 也 2012)는 것을 참고하면, 구주에 출자를 두고 왜 왕권의 영향하에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2008 r김해 율하리 유적 I. 慶 南 發 展 冊 究 院 歷 史 文 化 센터, 2011, r마산 진북 대평리유적.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2012, r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 제 1호분 발굴조사보고서. 김영민, 2011, 고흥 길두리 안동고분의 갑옷과 투구, 고흥 길두리 안동고분의 역사적 성격, 전남대학교박물관. 김낙중, 2012, 한반도에서 본 구주세력과의 교류, r뺀η 島 察 ~Et 九 州 勢 力 η 對 外 交 涉 第 15 回 九 州 前 方 後 門 慣 冊 究 승. 12) 김영민 (2011)은 안동고분의 연대를 5세기말의 정치적 상황과 결부시켜 부장유물의 펀년보다 다소 늦은 5세기 말로 보고 있으나, 피장자가 교역을 위한 거류왜인이라면 유물펀년보다 늦게 볼 필요가 없을 것 같다. 48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50 김창석, 2012, 고대 교역장의 중립성과 연맹의 성립 -3 4세기 가야연맹체를 중심으로, 역사학보 216집. 김혁중, 2012, 한반도 출토 왜계 갑주의 분포와 의미, 중앙고고연구 제 8호. 김현구 외, 2002, 일본서기 한국관계기사 연구( I ), 일지사. 대한문화유산연구센터, 2011, 고흥 장덕리 장동유적. 大 韓 民 國 水 路 局, 1988, 韓 國 핍뿜 水 路 誌 第 2 卷 南 海 뿜 編. 동신대학교 문화박물관, 2011, 안좌면 읍동고분 및 배널리고분 발굴조사 현장설명회자료. 삼강문화재연구원, 2009, 김해 관동리 삼국시대 律 址. 우병철, 2008, 鐵 織 과 鐵 牙 로 본 新 羅, 加 耶 그리고 像, 영남고고학 47 호, 영남고고학회. 하승철, 2006, 巨 濟 長 木 古 慣 에 대한 - 考 察, r 巨 濟 長 木 古 慣,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課 早 頁 人, 2012, 九 州 出 士 φ 馬 具 t 朝 蘇 半 島, 빼/ 島 찢tE.C: 九 州 諸 勢 力 m 村 外 交 涉 第 15 回 九 州 前 方 後 門 境 冊 究 승- _,2010, 海 쪼 據 -:> t:. 騎 馬 文 化, 風 響 삼. 古 代 學 ~Jf 究 會, 1953, rtr/;ji 山 古 慣 φ 冊 究, 古 代 學 盡 刊 第 一 冊. 橋 本 達 - 也, 2012a, 古 境 時 代 甲 뿜 冊 究 m 現 狀, r 圖 立 歷 史 民 洛 博 物 館 冊 究 報 告 第 173 集 b, 優 王 φ 武 裝, 深 黑 m 武 具 白 銀 φ 武 器 第 3 回 百 굵 鳥 古 境 群 講 演 會 發 表 資 料 集, 塊 市. _,1999, 野 毛 大 據 古 境 出 士 甲 뿜 m 意 義, r 野 毛 大 據 古 境. ili 購 便 樹, 2009, 擺 文 時 代 φ 裝 身 具, ψ@ 지:>tJ 考 古 學 財 團 λ 門 講 座 發 表 資 料. 大 野 城 市 敎 育 委 員 승, 1985, r 體 原 古 境, 大 野 城 市 文 化 財 調 훌 報 告 書 第 15 集, 白 石 太 一 郞, 2010, 錄 켜'? F 王 權, 錄 켜'? F 王 權 - 耶 馬 台 國 ψ6 百 굵 鳥 古 市 古 境 群 m 時 代 ], 近? 飛 鳥 博 物 館. 福 問 敎 育 委 員 승, 1989, 老 司 古 樓. t 野 휴 史,20 12, 帶 金 式 甲 뿜 鏡 φ 몹lj 賽, 國 立 歷 史 民 洛 博 物 館 冊 究 報 告 第 173 集, 國 立 歷 史 民 洛 博 物 館. 圓 境 冊 究 會 北 大 九 州 승짧 表 資 料 集, 九 州 前 方 後 圓 樓 冊 究 會. 小 失 홈~ 市 敎 育 委 員 合, 1992, 갑 內 21 뭉 慣. *챔t 市 敎 育 委 員 승, 1965, 隨 魔 古 境. 中 川 正 人, 1999, 懶 m 造 形 -해 生 時 代 φ빼 η 懶 -, 紀 要 第 12 號, 滋 뿔명 文 化 財 保 護 協 會. 重 藏 輝 行, 2007, 理 裵 施 設 -존 φ꽃 化 階 層 性 地 域 性 -, 九 州 t:::::brt 0 中 期 古 慣 φ 再 檢 討. 第 10 回 九 州 前 方 後 圓 樓 冊 究 會 宮 l 倚 大 승 짧 表 資 料 集, 九 州 前 方 後 圓 慣 冊 究 會. 싫 木 -- 有, 百 굵 鳥 古 樓 群 m 武 器 武 具 i~jf0 特 質, 深 黑 φ 武 具 白 銀 φ 武 器, 塊 市. 王 빼 珠, 1985, 三 角 緣 뼈 戰 鏡 m 識, 角 川 書 店. f용끼지머i 敎 育 委 員 승, 1999, 五 f 山 B2뭉 慣. 版 口 英 殺, 1998, 長 方 板 童 線 短 甲 三 角 板 童 쨌 短 甲, 史 林 )\.. 一 卷 五 號. 고흥 야막고분의 연대와 등장배경에 대한 검토 I 49
51 i 바 없 --,;???; γ <"':"::" τ "".,..., - 꺼>v}7 l I i \~,,'.; ιj.i1 꺼 \i1\ ;.. ~j. l '.<,; r. ~-~? ;.,:~:긴 'I' ~t양 {r 뼈 後 쫓 ' -: -- Fν- -- -; ,. : --...T- -,- - i "' ';π.,d;.(-"/ /. 년깔f속f <.'i뇌-j퍼 1 두l}. 간 ;;J::-. ;. ; 인 l., - i - - ' ; 끓 n - 넌~ 권 판덮치 L' E 깐. 피급):;'.::폐 - ",I ι ;! { 농j ~ ;?~tc~~ l,j 폐i;갚끼 1 1.:'. 페 파 F}머~:~편 + f 히녁 핀f원 5 여 ~:''나 깅펀니 펀-;. ;i: ~-} ιl 뜯;;;~ ; \\,::.~~ :::L;폐; J때 ---. ι 내 이 M n u - 서? * 9 셔 H< 때] 1 단0~~~쐐 1 ';~. E꽉;t..:~ υ.,f 끽 1 " t.l t l I, t-tn -i. ~ rf-, L -+- '«'. t껴닝 \.# ~'.-im.rr """" 도면 5. 일본 고분시대 중기를 중심으로 한 갑주와 칠촉의 변천( 橋 本 達 也 2이 ν 大 演 越 古 境 (I뼈 口 英 웠 向 山 1 륨 慣 (I맹 口 英 內 21 륨 境 (왔 木 - 有 2이 2) 도먼 6. 일본 고분시대 중기 갑주 변천 및 야막고분 갑주 비교 50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52 장동유적(대한문화유산연구센타 老 司 五 7 山 82블 慣 도먼 7. 야막고분 철겸 비교 도면 8. 야막고분 출토 왜계 칠촉 고흥 야막고분의 연대와 등장배경에 대한 검토 I 51
53 .~ riiiil'". 사진 1. 야막고분 매장주체부와 출토유물(동경, 곡옥) 52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54 사진 2. 야막고분 출토 갑옷과 투구 고흥 야막고분의 연대와 등장배경에 대한 검토 I 53
55 토 로 고흥 야막고분의 연대와 등장배경에 대한 검토 를 읽고 김 영 민 (울산대학교박물관) 본 발표가 추구하는 목적은 발표문의 머리말에 잘 나타나 있다. 야막고분의 장법과 출토유물로 서 고분의 시기를 짐작하고, 당시 동북아 정세를 파악하여 연안항로상의 왜계 고분 등장의 배경을 검 토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피장자의 출자와 재지세력과의 관계를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다. 발표문에 나타나 있는 발표자의 의중에 대해서, 서남해안지역의 자료를 그다지 많이 접해 보 지 못한 문외한의 입장에서 야막고분과 일련의 왜계 자료에 대한 궁금한 점을 질의해 보고자 한다. 1. 야막고분의 장법과 관련해서는 이미 김닥중선생님도 북구주의 특정유구까지 거론하며 논의 한 바 있다. 그리고 대개의 분위기가 서남해안지역에서 확인된 왜계 분묘의 장법은 북구주와 연관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인 듯하다. 다만 본 발표문의 배널리와 야막의 유물부장방식을 언급 한 도면은 兵 庫 별자료와 周 山 原 자료들을 제시하고 있음이 눈에 띤다, 이와 같은 갑주부장방식을 야 마토 왕권에서 성립하여 확산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러한 갑주부장방식이 야마토 왕권의 영향에 의한 것으로 파악한다면, 다른 유물의 부장방식에서도 야마토 왕권에서 파급된 요소가 있는지 알려 주었으면한다. 그리고 묘제에 있어서 서남해안지역의 왜계 분묘를 북구주에서 5세기대에 유행한 석관계수혈식 석실을 영향으로 규정하였다. 그렇다면 5세기대에 북구주지역을 제외한 일본열도의 원분이나 방대 형분의 묘제는 어떠한 양상인지 상호간 비교하여 유사점과 차이점을 지적해 주었으면 한다. 2. 야막고분의 연대를 결정짓는데 가장 중요한 자료는 갑주자료가 아닌가 한다. 삼각판혁철판갑 가운데서도 이른 시기로 암려진 등각계 판갑과 충각부주가운데서도 이른 시기로 인식되는 단일판의 판철을 갖춘 충각부주는 야막고분의 편년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발표자가 제시하였듯이 동일형식의 복천동 4호 출토품의 연대에 대한 한일연구자들의 연 대관을 한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제시한 표에서 보이듯이 한일연구자의 연대관이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일간의 차이를 떠나 일본 연구자들간에도 차이를 보인다는 점은 의미 심장하다. 본 야막고분 출토의 판갑이 삼각판혁철의 이른 단계라는 전제속에서 5세기 전엽이라는 연 대관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타탕한 것인지에 대한 합리적 의심이 필요하다. 최근 대금식판갑의 출현연대를 5세기 2/4분기 이후로 보는 연구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국내연구성과를 전혀 언급조차하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발표문의 주 10 의 내용은 발표자의 연대관을 잘 보여주고 있다. 왜계 유물이기 때문에 한국측 보고자의 연대관보다 는 일본측의 연대관이 더 타당하다는 결론은 쉬이 수긍하기 어렵다. 54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56 사실 영남지방과 호남지방의 연구자간의 연대관에 대한 괴리는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그리 고 한일연구자간의 연대차 역시 극복되지 않고 있는 난제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지역을 교차하는 교차유물을 놓고서 일방적인 연대관을 적용하게 되면 논의의 접점을 구하기 어려워진다. 최소한 편 년과 관련된 입장의 차이가 있음을 적시하고, 이에 대한 발표자의 취사선택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한다. 3. 연안항로상의 기항지에 기항과 도선을 위한 거류집단의 존재를 야막고분의 등장배경이라고 보고 있다 거류집단의 보위를 위해서 군사력을 가진 세력이 상주하였다는 것으로 보는 입장인데, 야 막고분과 안동고분과의 시간성을 볼 때 한시적이라기 보다는 일정기간 동안 거류집단이 상주한 것으 로 보는 것 같다. 이때 재지세력은 어떠한 존재이고 한성백제와는 어떠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인 가? 그리고 재지세력과 거류집단(또는 왜)과의 관계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인가? 특히 백제의 위 신재를 소유한 안동고분의 피장자의 성격은 또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발표자의 견해를 듣고 싶다. 사실 한일간의 편년상의 문제와 함께 대금식갑주류의 연대관은 실재로 많은 문제를 함축하고 있 다. 따라서 본 발표문의 내용을 떠나서 한일연구자간의 보다 적극적인 의견개진이 필요한 부분이라 고 할 것이다. 이번 발표의 내용으로서 연대관을 극복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다만 발표자가 보 다 폭넓은 시각을 가지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이러한 문제점들을 보다 슬기롭게 극복해 주기를 당부드리고자한다. 아울러 발표자도 지적하였듯이 향후 서남해안지역에서 왜계 자료들이 더 많이 확보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그러므로 새로운 자료들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영남지역의 자료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구사하여 균형 잡힌 시각으로 이들 자료에 접근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須 惠 器 TG232 TK73 TK216 TK208 TK23 TK47 시기 (400) ( ) (450) ( ) B 井 克 也 북천동 4호 욱전응/8호 교동될3호 료 지신E산용동동3rf호 1 도 리 13호 가옥 2호8호 4 혹호전롱 11 2 단계(시기) 中 期 l 中 期 11 中 期 Ill 中 期 I V 中 期 V 中 期 VI 두곡동 1-72호 橋 本 達 也 북헌동4효 도 리1호13호 옥전 68호 외도 須 惠 융용 (370) (390) 두저차연곡산할 여 4사a능3도호윤 동8호 교 지상선봉산동백동동 3리B호~2호 l호 복욱망천전이동산 28성1호 1 2호 TG232 TK73 TK216 TK208 TK23 TK47 단계(시기) 中 期 l 기 中 期 2기 中 期 3기 中 期 4기 '*' 期 5기 中 期 6기 북천동4효 餘 木 - 有 옥전 68호 도항리 1 3호 신상봉백동리B-1호 두전곡연4산3동호 교동 3호 단계(시기) I (5세기 전후) ll( S세기 초 중엽) IIIA (5세기 중엽 6세기 초) 이승일 북헌률4흐 옥전송1-68호 도 리 13호 상가백달4리호 단계 두하연삼산곡정홈 7r8호15호호 교동λ ~ 3호 김혁충 북천동4효 옥전 68호 두곡43호 긴뚫훌 1호 연 1 동8호 도향 1 3호 지잔동32호 lllb 죽 옥망림전이리산 28 U성호-10호 단계 I (5~1 1'1옳) II (5 中 則 ) lll (5 中 後 ) IV(5 後 ~II) V(5 後 後 ) VI( 6 前 前 ) 43동B호 l호 박준현 옥전응 68호 톡 I- ~획i룡τ7 호;f:효 도 리 13호 산동 -옥' 28호 대금식판갑 연구자별 편년관 4호 갚교지동산휩3호 동 리 32호 망이산성 고흥 야막고분의 연대와 등장배경에 대한 검토 I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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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04 영암 속야리 방대형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전용호 이진우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머리말.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의 분구 축조 기술.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의 축조 언대 IV. 4 6서 기 고대 한일의 고분 축조 기술 v. 맺음말.머리말 최근에 영산강유역에서 새로운 방식의 고분 축조 기술로 만들어진 고분들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 다. 이런 고분들은 영산강유역의 마한 사회 를 이해함에 중요한 화두를 던져줄 뿐만 아니라 백제, 가 야, 신라, 왜와의 교류 관계를 설명함에 있어서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여 주고 있다. 특히 영암 옥 야리 방대형고분은 토괴를 활용하여 정연하게 구획하여 고분을 축조한 지망상의 분할성토방식이 확 인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주변 지역과의 교류의 양상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자료로 여겨지고 있다..:합앓,; : ' - ι.,.. ι ι- - r양 < - ~-,,. /ι치 냐 ; / ι; -토괴 활용 분구 축조 기술을 중심으로-.--r- --- λ γ -- - / /..,.,.. ι r 1 '-.@ 1.R. 1 씬언리고흩꿈 엠 2 욕역려뭇모옐찌액묘 3 육역려 남.,유를삼포찌 4 육약랙 남예 : 쭈꺼찌 5 혹 "I랙남매포찌액묘군 6 남예당찌 7 육약랙앤싣고를군 8 육 f럭고분군 9 욕약킥에폰고분군 10 욱악럭 껑률찌석묘 2 11 육약킥 정률찌억묘 1 12 혹역려 방대영고원3호분) 13 욱약력 정를유를선포찌 랩훌14'~훌(톨훨 方 흘X 古 햄 / 天 훔 里 方 훌M 古 형(1 훌용) -- 출!I힘i용용낸1!IJ 第 84;흩 ( I 잊었 02.07) 15 t 天 휩 里 方 훌X 古 월(2활혜 도면 1.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 주변 문화유적 분포도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I 57
59 이에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을 중심으로 하여 4 6세기 한일의 고분을 비교 검토함으로써 당 시 고분 축조기술을 둘러싼 문화교류의 면모를 밝혀보고자 한다. 아울러 토괴를 활용한 분구 축조 기술의 관점에서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의 연대관에 대해서도 한번 쯤 검토할 수 있는 계기로 삼 고자한다..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의 분구 축조 기술 1. 조사개요 영암 옥야리 방대형 고분은 행정구역상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 번지 일원에 위치 한다 장동 마을 뒤편의 해발 15m내외의 나지막한 구릉 정상부에 입지한다. 유적 동편으로는 멀리 월출산이 보이고, 서쪽으로 영산강의 지류인 삼포천이 흐르며, 서편과 남편으로 신계들과 같은 드넓 은 들이 펼쳐져 있다. 유적의 주변에는 내동라 고분군, 옥야라 고분군, 만수리 고분군, 와우리 옹관 묘, 내동리 쌍무텀, 신연라 고분군, 자라봉 고분 등 다수의 고분들이 분포하고 있다.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은 5세기 후반에 영산강 중 하류지역에 조성된 마한( 馬 韓 ) 수장( 首 長 ) 급의 무덤으로 봉분의 규모는 남북 길이 29.9m, 동서 길이 26.3m, 추정 높이 3.7m 인 방대형( 方 臺 形 )을 하고 있다. 분구 중심부에서 석실묘 1기, 분구의 사변을 따라 석곽묘 1 기, 옹관묘 4 기, 목관묘 1기, 매납유구 1기가 확인되었다. 매장시설 및 주구 내부에서는 철갑편 철부 철도자 등의 금속류 와 고배 장경호 유공광구소호 등의 토기류와 함께 다량의 원통형토기가 출토되었다. 2. 분구축조기술 1) 개요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의 분구 축조 기술은 토괴 ( 士 塊 )로 방사선상 및 동심원상으로 구획한 후에 성토 를 하는 지망(빼 網, 거미줄) 형태의 분할성토방식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분구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중심 매 장주제부인 석실묘가 구축 묘광 구조를 하고 있을 뿐 만 아니라 분구와 함께 조성되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독특한 변모를 하고 있다. n c;::::-t \)j!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의 분구 성토는 기존의 영 산강유역 분구 성토와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하고 있 다. 일반적으로 영산강유역 고분에서 분구 성토는 신 / v 촌리 9호분, 나주 복암리 3호분처럼 분구 외연에 단 변 삼각형의 둑을 돌려 쌓고 이 내부를 메워 나가는 방식으로 서일본 공법(춤 木 敬 2009) 과 유사한 제방 8, 엉례 ' - 구 QJ;! 굉 -1띠 엉깨g 를잉얻g 구엌언 1 I 니/ 명이g 구엌씬 1-5 를잉얻g 구의언 2 I 도먼 2.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 조사현황도 58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60 형(토제) 혹은 단면복발형 성토방식으 로 알려져 왔다(오동선 2009). 하지만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은 기본적으로 토괴라는 구획재를 사용하여 분구 평 변을 구획하여 공간을 구분한 후에 성 토가 이루어진다는 점 에서 가야지역에 서 흔히 나타나는 분할 성토 방식을 취 하고있다. 2) 축조 방법 토괴를 2 3단 쌓아 방사상으로 5등분하여 구획하였다. 이 구획에 의 하여 구분된 공간에서 거의 동시에 분 사진 1.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 전경(항공촬영) 구 중심에서 바깥쪽으로 성토가 이루 어졌다. 이때 석실의 묘광에서 분구 외연으로 쌓을 면적을 설정하기 위 하여 묘광에서 분구 외연으로 각각 cm, cm 떨어 진 지 점에 동심원상 구획선을 2개로 설정하 면서 거의 수평에 가깡게 성토가 이루 어진다. 그런데 동심원상 구획선은 방 사상 구획선 내부의 공간을 분구 중심 에서 외연으로 성토하는 경계를 구분 하면서도 성토재가 밀려나가는 것을 방 사진 2.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 전경(북쪽에서) 지하는 역할도 하였다. 이런 이유로 동심원상 구획선은 방사상 구획선에 비하여 토괴가 밀려나거나 움직여서 이탈하는 경향이 발생하여 정연하지 않았다. 한편, 토괴로 사용된 회(갈)색 점토가 일반 성토재에도 사용되면서 구획선을 구분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양상도 확인된다. 이런 양상은 분구 서북편에서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런 점에 분구 서북 편에서 방사상 구획선이 2 3지점 더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5개의 방사상 구획이라는 대구 획 내에서 수평 혹은 수직적으로 부분적으로 소구획에 의하여 작업이 이루어졌을 것을 추정된다, 이 런 양상은 년 분구 조사에서 10개의 방사상 구획이 확인되었는데, 이는 분구 정지층까지 정연하게 확인되지 않았으나 지점별로 소구획에 의한 분할 성토가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I 59
61 사진 3.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 분구성토층(좌 ; 분구 동펀, 우 분구 서펀) 사진 4.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 방사상구획선(좌 ; 분구 서북편, 우 분구 동북펀) 사진 5.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 동심원상구획선(분구 동남부) 도면 3.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 토층단먼도(동-서) 60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62 3) 방사상구획 방사상구획선 l과 2는 약 22.5 떨 어져 있는 채로 확인되었다. 구획은 직 경 10 30cm인 회색 점토 덩어리( 士 塊 )를 최대 loocm 까지 거의 수직에 가깝게 쌓아 만들었다. 동북편 둑 근처 를지나는방사상구획선 1은분구중심 에서 살짝 벌어졌다가 다시 오므라드 는형태를하고있다.토괴가쌓아져있 는 양상은 방사상 구획선5 방향으로 완 만하게 경사져 있었다. 이 경사면에서 는 구획선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지 점 까지 토괴가 쌓아져 있는 양상이 확인 되었다. 방사상구획선 l을기준으로하 사진 6. 방사상 구획선 2 여 좌 우측에서 채워져 있는 성토재 에서 차이가 확인되었다. 방사상 구획 선 1과 구획선 2, 구획선 1과 구획선 5 사 이에 채워져 있는 각각의 성토재는 적 갈색 혹은 황갈색 점토의 함량이나 사 립의 함량에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방사상구획선 1을중심으로좌우측 에서 서로 다른 성토재가 완만하게 경 사져 있는 양상도 관찰되었다. 이런 점 으로 보아 방사상 구획재를 2 3단 정 도쌓은후에 이 좌 우측도거의 통시 사진 7. 방사상 구획선2과 동심원상구획선2 률.월양 *-- 에 쌓아 구획재를 견고하게 쌓아 올리 면서 함께 분할 성토하였을 가능성도 상정하여볼수있다. 방사상 구획선 2는 방사상 구획선 1에서 약 22.5 쩍어져 위치한다. 4개 의 방사상 구획선이 모두 대각선으로 마주하고 있는 반변에 방사상 구획선 2 는 구획선 1에 가까우면서도 좁게 자리 하고 있었다. 그리고 토괴가 비교적 높 사진 8. 방사상 구획선2 토괴 퇴적양상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61
63 헤 게 여 니 며, 펙 외 좀 닫 써 ι t 그 口 서 口 κ 조 중 따 이 가 매 사 O 토 싼 口 양 성 ψ 는 구 - 이 샤 브 L E 재 싼 파 겨 O 고 0 λ ; - L 옆 꿔 가 향 샤 일 바 2 -로 3 선 효 C 선 획 업 팩 싸 랜 바 버 센 야 π 샤 획 을 十 7 거 님 h μ - 이 L ) 자 샤 묘 분 과 점 케 경 를 바 O 선 E, 성 빼 섭 씨 싹토 판 더 뎌여 양 색 끼 내 직 리 다 h 획 $ 서 t t 엔 방 성 린 니 하 야 셔 회 가 는 뱀 않 뮤 있 페 따 써 구 일 픽 작 뻐 껴 서 이 사 꾀 져 측 땀 핸 아 밝 샌 쌀 시 도 에 ; 에 토 - 끄 펜 겨 염 빡 단 뾰 때m 받션 써 뼈퍼 뼈 μ까 따ω 써π 삐 띤때 취 켠 며좌 꽤 서 으 맑 o 3 - 리 라 - 1 거 부 회 권 - 커 샘 여 했 면 점 l 벼 낸 서 마 m 를 일 은 그 - 분 실 하 η - 런 ψ 표 팩 모 을 겨 勳 과 h 작 샤 띈 로 료 까 있 이 마 견 D U ) 쪽 둑 직 μ 냐 에 X 끊 싼 τ샌 찌 이 - ψ 뺑 써 맨새 끼 때 뼈m따 여뽑 샌 얘 따 퍼자 때아 팩 째 % π빽 / 타 료 세 의 동 획 덩 아 m 밀 상 ι 1 를 재 게 나 으 자 광 구 구 토 쌓 m 치 사 과 이 토 사친 9. 방사상 구획선3과 동심원상 구획선 1 2 방사상 구획선 4는 석실의 구축묘 광의 서남쪽 모서리에서 시작하여 분 구 서남쪽 둑을 따라 연결되어 있었다. 구획선은 서남쪽 둑에 포함되어 정확 한 양상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구획선 은 직경 cm 인 회색 점토 덩어 리( 士 塊 )를 1 2단 쌓은 부분만 확인하 였다. 방사상 구획선 5는 직경 cm 인 회색 점토 덩어리( 土 塊 )를 최대 loocm 까지 거의 수직에 가깝게 쌓아 만들었다. 방사상구획선 5는 석실 구축묘광의 서북편 모서리 에서 시작하여 서북쪽 둑에 거의 접하여 분구 외연으로 뻗어져 있었다. 방사상 구획선 5에서 토괴가 사진 10. 방사상 구획선5 쌓아져 있는 양상은 방사상 구획선 1과 거의 동일하였다. 방사션 구획선 5에서 방사성 구획선 l 방향으 로 토괴가 완만하게 경사져 있었다. 마찬가지로 구획선을 기준으로 하여 성토재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었는데, 이런 차이는 황갈색 사질점토의 함량에서 동섬원상구획 망사상 구획 내에서 다시 분구 중심에서 외연으로 각각 cm cm 떨어진 지점 에서 구획선 2개[동심원상 구획선( 同 心 圓 狀 區 劃 線 )1과 2] 가 확인되었다. 기존 조사나 보고서에서 이 런 구획선은 환형( 環 形 ) 구획선 혹은 횡방향 ( 橫 防 向 ) 구획선 이란 용어 를 사용하였다. 이번에는 분 62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64 구 중심에서 거의 일정한 간격으로 위 F'- 치하고 있어 동심원상 구획선 이란 용 18m 1Bm 어를 사용하였다. 이에 대해서 좀더 적 17m 절한 용어에 대해서 검토한 후 향후 보 16m 16m 고서에서 종합적으로 정리할 예정이다. G - 동쪽트렌치 남벽 토층도 G' 동심원상 구획선은 방사상 구획선 1&끼 18m 과 달리 구획션을 기준으로 내 외측 크 차 아르 보이 에서 일반성토재에서 크 중치 에서 D 고 있지 않았다. 또한 분구 회(갈)색 점토가 집중적으로 성토되어 16m 남쪽트렌치 서벅 토총도 도먼 4. 동심원상 구획선 1. 2(분구 동편, 남편) 16rn "" 그 경계가 뚜렷하지 않았고, 일부 결실 되어 있기도하였다. 다만분구동북편에서 동심원상 구 획선 1과 2는 점토 덩어리가 3 4단 이 상으로 거의 수직 방향으로 쌓아져 있 는 지점이 확인되었다. 동심원상 구획 선 2를 기준으로 하여 바깥쪽으로(분구 외연 방향) 성토재로 구획재로 사용된 회(갈)색 점토 덩어리는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이런 측면에서 동심원상 구획 사진 11. 동심원상 구획선 1. 2(분구 동북펀) 선도 일정한 구획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성토재가 미끌어 내리는 것을 방 지함은 물론 방사상 구획선과 서로 맞물려 결구하면서 분구를 더욱 견고하게 쌓아 올리는 기능과도 관련된 것으로 정지층 1 2차 조사에서는 적색 점토층혹 은 풍화암반층 상변에 퇴적된 암갈색 처 토 i 0 口 τ -E 구지표층으로 설정하였고, 다시 이 위에 퇴적된 토층(적갈색 혹은 황갈색 점토와 풍화암반을 혼합함)을 묘역을 조성하기 위한 정지층으로 파 악하였다. 하지만 암갈색 점토층의 아 랫부분에서 인위적으로 지면을 조정하 고서 흙을 채워 넣은 양상이 확인되어 기존에 구지표층으로 설정한 토층도 역 사진 12. 정지층(분구 동남편) 시 묘역의 범위를 설정하기 위한 정지층으로 확인되었다.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63
65 정지층의 상 하면은 상당히 울퉁 불퉁한 양상을 하고 있었다. 특히 상 면이 울퉁불퉁한 요철면(머려 面 )을 형 성하기도 하였는데, 이 요철면에는 상 층에서 퇴적된 흙이 메워져 있기도 하 였다. 이런 현상은 분구 묘역의 범위 를 설정하기 위한 정지층을 조성하면 서 구획재인 회(갈)색 점토 덩어리를 주변 습지에서 채취하여 상당히 불규 칙하게 쌓는 과정에서 공극이 발생하 사진 13. 정지층(분구 서북편) 면서 상층에서 흙이 들어가면서 생긴 것으로추정된다. 분구의 서북편에서 묘역을 조성하 기 위한 1차 정지층은 다른 구간과 달 리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면서 2단으로 꺾어진 계단상을 하고 있었다. 단이 진 부분에서 내 부 퇴적층에서 차이가 없 는 것으로 보아 일시에 퇴적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양상은분구동남편에 서 나타난 것과도 약간 달랐다. 이 상 사진 14. 정지층 상면 노출 상태(분구 서북편) 면은 다른 구간처럼 상당히 울퉁불퉁한 요천변을 이루고 있었다. 이런 양상으로 인하여 분구 축조 이 전에 선대 유구의 존재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실제로 나주 횡산고분의 정지층 하부에서 선대 주거지 가 확인되는 사례가 있었다. 하지만 이 내부에 대한 조사에서 선대 유구와 관련된 자료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는 구지표면을 삭토한 후에 내부를 정지층과 동일한 흙으로 채워 넣은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분구 서북편의 정지층 상면에서는 탄화된 숭이 다량 노출되었다. 이런 양상으로 볼 때, 분 구정지층을조성하면서 상면을단단하게 처리하기 위한불다짐을하였을가능성이 있다. 다만숭이 노출되는 지점이 북구 서북편과 동북편 일부에서 나타나고 있어 전면적으로 불다짐을 하였을 가능성 은 상당히 낮다. 분구 서북편 지역이 분구 성토 과정에서 점토가 밀집되어 있고, 분구 사면의 경사가 심한 점으로 보아 다른 지점과 다른 성토 방법이 필요했을 개연성이 있을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숭 노출면이 분구 정지 작업과 관련한 의례 행위가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하여 가야 지역의 고분에서 정지층을 주술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어 주목된다. 이에 대해서 는 유사한 사례를 찾는 작업을 통하여 다각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것으로 점토밀집 지점 분구 북편에서는 다른 지점과 달리 정지층이나 구획으로 사용된 토괴와 유사한 성질의 점토가 집 중적으로 쌓여 있는 지점들이 형성되어 있었다. 분구 동북편에서는 서쪽 둑에 접한 트렌치에서 남쪽 64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66 으로 약 2m 떨어진 지점에서는 동심원 상구획선 2 바깥쪽으로도 회색 점토 덩 어리가 2 3단 쌓아져 있는 지점이 확 인되었다. 하지만 다른 지점의 방사상 구획선과는 달랐다. 다만 이 지점을 기 준으로 하여 회(갈)색 점토가 성토재에 함유된 양상으로 차이를 보이고 있었 다. 이런 양상은 서쪽 둑 넘어서도 유 사한 양상을 하고 있었다. 사진 15. 점토 밀집 지점(분구 서펀) 분구 서북편에서 주목되는 성토 양상은 서쪽 둑 근처에 점성이 강한 회(갈)색 점토가 상당히 두 럽게 퇴적되어 있다는 점이다. 평면 형태상으로 삼각형에 가까운 부정형을 하고 있었고, 북쪽둑에 형 성된 점토층과 달리 적갈색 혹은 황갈색 사질점토는 거의 없었다. 이 부분은 분구 서남편과도 연결되 었다. 방사상 구획선 4와 방사상 구획선 5 사이의 중간 지점에 점토가 두럽게 쌓여 있는 양상으로 볼 때, 새로운 구획선을 1개 혹은 2개 추가적으로 설정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3. 분구축조단계 영암옥야리 방대형고분(제 l호분)의 분구는장단비가 1:0.87(남북길이 30.0m, 동서길이 26.3m) 인 방대형을 하고 있다, 분구는 크게 5단계 I ) 의 과정을 거쳐서 축조되었다. 1) 1단계(묘역 조성 및 분구 기반 성토) 1단계는 고분의 입지를 선정하고 구지표면을 삭토 혹은 성토하여 묘역을 조성한 후에 분구를 설 치하고자 하는 부분을 약간 높게 토재 등을 이용하여 쌓아 기반을 성토하는 단계이다. 대체적으로 평 평하게 맞추면서도 서쪽 및 북쪽이 살짝 낮은 양상을 하고 있었다. 이 단계에서는 생토층(암갈색 점 토층) 위에 구간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주로 암(적)갈색 점질토나 황갈색 점질토, 회갈색 점질토를 쌓 아 조성하였고, 그 두께는 31 62(cm) 이었다. 이때 묘역을 조성하기 위하여 주구를 굴착하거나 경사 변을 깎아내는 과정에서 발생한 토재가 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본격적인 주구의 굴 착은 2단계에서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정지층을 구성하고 있는 토층에서 생토층인 암갈 색 점토층과 함께 (암)회갈색 점질토 2) 와 황갈색 점질토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암)회갈색 점질토는 2 3단계 성토 단계에서 토괴로 사용된 구획재와 동일하였다. 이런 점에서 정지층에 사용된 흙 중 일 부는 외부에서 반입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1) 기존 보고서에서는 분구 축조 단계를 크게 5단계로 구분하고 본격적인 성토 여부에 따라 정지층-성토1 단겨 -성토2단계 등이란 설명을 덧붙였다(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2012). 본고에서는 기존에 각 단계에서 덧붙여진 설명을 수정하여 분구 축조 작업의 내용 및 성격을 좀 더 부각하였다 2) 고성지역에서 조사된 고분의 경우에 정지토로습지대의 바닥측에서 주로분포하는흑색 또는혹갈색 점질토를사용한다(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2012:352). 이와 관련하여 영암 옥야리 방대헝고분에서도 정지토 뿐만 아니라 토괴로 고분 주변의 습지대에서 채취한 흙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I 65
67 정I 주구굴착 훨꽤 정지작업(분구의 위치를 쟁써 흙으로 --- 알게 깔아놓음) 구지묘상연 주구굴착 훨꽤 성토 1 단겨 I(매장주체부의 기초부를조성하기 --- 위하여 평탄 엽) 분힐성토흥 주구굴착 휠웰I 성토 2단계(매장주체부 내측 목주, --- 외측은 토괴로 구획 후 성토함) 분할성토총 개석 주구굴착 주구굴착 활웰I 성토 2단겨 (매장주체부의 개석 설치, 외측은 토괴로구획 후 성토할) ---- 밀봉토 주구굴칙 멜꽤 성토 3단계(매장주체부 밀봉따토괴로 --- 구획 후 성토할) 주구굴착 볕훌페 분구 피복단계(쁨 피복후 원통헝토71 수립) 도면 5.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 분구 축조 단계 모식도(2012 년) 66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68 2) 2단계(매장주체부 기반 조성 단계) 2단계는 분구의 중심 매장 주체부 보다 약간 넓게 정한 범위에 토재 등을 이용하여 높게 쌓아 매 장주제부의 기반을 조성하는 단계 3) 이다, 2단계는 주로 (암)적갈색 점질토, (명)황색 점질토, 암갈색 사질점토, 황색 혹은 적색 사질토를 사용하여 쌓았고, 그 두께는 73 80(cm) 이었다. 그런데 동서로 는 분구의 가장자리까지 쌓아져 있는 반변에 남북으로는 중앙에 12.92m의 길이로 분구 가장자리에 비하여 약간 높게 사다리몰에 가까운 형태로 쌓아 올려 중앙부가 평평하게 다져 있었다. 이런 형태 는 분구의 중앙이 약간 튀어나온 소구( 小 묘)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특히 평탄한 면의 길이는 약 7m 로 중심 매장주체부인 석실묘의 구축묘광의 남북길이에 비하여 약간 넓었다. 이런 측면에서 분구의 중앙 부분을 남북으로 먼저 매장주제부의 범위에 맞춘 반면에 동서는 대강 쌓았을 가능성이 있다, 한편, 2단계에서 방사상 및 동심원상 구획이 시작되나 본격적으로는 3단계부터 이루어진다. 그리고 다른 단계에 비하여 (암)회갈색 점질토의 함량이 비교적 적고 사질토의 함량이 비교적 많 은 편이었다. 이 단계에서는 주구에 대한 굴착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산출된 토재 와 함께 외부에서 운반해온 흙을 사용하였다. 이런 공정은 매장주체부의 기초를 튼튼하게 할 뿐만 아 니라 구지표면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 판단된다. 특히 제 1단계에서 분구의 서쪽 및 북쪽이 상대적으로 낮은 반면에 2단계에서는 서쪽 및 북쪽 부분을 집중적으로 성토가 이루어지면 서 매장주체부를 위한 평탄면이 거의 완전하게 조성되었다. 3) 3단계(중심 매장 주체부 설치를 위한 성토) 3단계는 분 구 중앙의 매장 주체부를 중심으로 하여 지망상의 분할 성토가 본격적으로 이루어 지면서 중심 매장주체부의 벽석을 쌓는 단계이다. 분구의 평면을 구획재인 토괴(회색 점토 덩어리) 로 분구 중심에서 분구 외연을 향하여 방사상으로 5개의 대구획으로 나누고 다시 분구 중심에서 원 주율과 나란하게 횡방향으로 2 3개의 동심원상 구획으로 나누었다. 이렇게 분구 평면을 토괴로 구 획한 후에 그 내부를 회색 점토 계열의 성토재와 적(황)갈색 사질토 계열의 성토재를 교대로 쌓는 유 사판축으로 조성되었다. 3단계는 주로 (암)적갈색 점질토, 갈색 점질토, 적갈색 사질점토, 황갈색 사 질점토, 적갈색 사질토, 적황색사질점토, 황색 사질토, 적색 사질토를 시용하여 쌓았고, 그 두께는 (cm) 이 었다. 3단계에서는 석실 외연-석실 구축묘광-석실 벽석 및 목주가 동시에 축조한다. 석실의 구축묘 광은 토괴를 상당히 정교하게 쌓았을 뿐만 아니라 토괴열은 구획재로 지그재그선과 같은 양상을 띠 고 있기 때문에 이를 기준으로 내 - 외측의 선후관계를 구분하기 상당히 어려운 측면이 있다. 더군다 나 구축묘광인 토괴열을 기준으로 하여 내외측의 세부퇴적층이 거의 수평에 가깝게 퇴적되어 있는 양상을 하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석실의 구축묘광과 내 외측이 동시에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3) 일반적으로 흙을 쌓아올리는 모든 작업을 성토라 하고, 성토는 봉분의 외형을 조성하기 위하여 흙을 쌓아올리는 것이며, 성토과정은 몇 개의 성토단계로 구분된대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2012:352' 조영현 2003:103).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에서 성토과정은 매장주체부를 조성하기 위하여 기반을 다진 후에 분구 외형을 조성하기 위해 흙을 쌓아 올려 피복하기 전까지의 단계를 말한다 특히 성토1 단계는 가야지역내에서도 지역별로 상당히 차이를 보 01고 있태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2012:353).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I 67
69 4) 4단계(중심 매장 주체부 밀봉을 위한 성토) 4단계는 분구 중앙에 위치한 중심 매장 주체부인 석실을 밀봉하면서 분구를 성토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석실에 시신을 안치한 후에 묘도와 접한 석실 남벽을 쌓으면서 묘도를 먼저 횡방향 구 획을 한 후에 성토재를 이용하여 채워 놓았다. 다음으로 중심 매장 주체부인 석실의 개석을 놓고 주 로 회색 점토로 밀봉하였고, 이를 중심으로 하여 분구 외연으로 방사상 구획과 횡방향 구획을 하여 구역을 구획한 후에 주로 (암)적갈색 점질토, 황갈색 점질토. 적갈색 점질토 등 점성이 강한 성토재 와 (명)적갈색 사질토, 황갈색 사질토 등 사립이 강한 성토재를 교대로 쌓는 유사판축으로 조성하였 다 두께는 61 llo(cm) 이었다. 그런데 분구중심에서 동-남편으로는거의 수평에 가깝게 성토된 지 점이 이전 단계에 비하여 더 넓게 분포되어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분구가 확장되는 양상을 하고 있 었다. 그리고 분구 중심에서 동-남-북편으로는 거의 수평에 가깝게 완만하게 성토가 이루어져 있었 으나 서편으로는 상당히 경사가 심하게 성토되어 있었다. 특히 서편에서는 암적갈색 점질토, 회갈색 점토의 함량이 상당히 높았다. 5) 5단계(분구 피복 및 원통형토기 수립) 5단계는 분구를 피복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방대형 분구를 피복하면서 원통형토기를 분 구 정상의 가장자리에 원통형토기를 일정한 간격으로 수립한다. 일부만이 남아 있어 전체적인 양상 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전체적으로 분구는 적갈색 사질점토 갈색 점질토 등 점성이 강한 토재로 피복되어 있었다. 분구의 동 서 북편의 잔존상태로 볼 때, 방사성 및 횡방향 구획선은 뚜렷하지 않다. 분구의 동 서편에서 분구를 피복하는 양상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분구 서편의 일부에 서는 아래쪽에서부터 3 4지점을 평평하게 컷팅한 후에 토재를 쌓아 성토하였다. 특히 아랫 부분에 서는 회색 점토 알갱이가 포함된 갈색 점질토로 쌓은 반면에 윗부분에서는 적갈색 점질토와 흑갈색 점질토를 교대로 거의 수평에 가깝게 성토하였다. 반면에 분구 동편에서는 적갈색 사질점토와 적갈 색 점질토를 교대로 아주 완만한 경사로 쌓은 후에 분구 외연의 일부분을 평평하게 컷팅한 후에 갈 색 점질토를 쌓았다. 특히 수평으로 것팅한 양상은 분구 서편에서 비교적 뚜렷하게 나타났다. 두께 는 61 80(cm) 이었다. 잔존한 분구 피복층으로 볼 때, 분구 기반 성토층에서 피복층까지의 높이는 370cm로 추정된다. 4. 성토재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제 1호분)의 분구를 쌓는데 사용된 토재는 분구 평면을 일정한 작업 단위 로 구분하기 위하여 방사상 및 횡방향 구획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한 구획재와 이에 의하여 구분된 공 간을 채우기 위한 일반 성토재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옥야리 방대형고분(제 1호분)의 경우, 구획 요소 는 직경이 20 30cm 인 회색 점토 덩어리를 위로 쌓아 올라는 토괴로 볼 수 있다. 토괴는 성토단계 중에서 2 4단계에 걸쳐 구획재로 사용되었다. 토괴로 사용된 회색 점토로 상당히 점성이 강하여 주 구를 굴착하거나 묘역 조성을 위한 구지표를 삭토하는 과정에서 산출된 것이 아니라 고분 주변 습지 에서 운반해 왔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이런 점토를 운반할 때에 주머니나 바구니에 넣거나 들 것 68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70 에 옮겨 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구획재로 사용된 토괴는 분구 중앙에 위치한 중심 매장 주체 부인 석실의 묘광을 조성할 때도 사용되었다.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에서 석실의 묘광은 일반적으 로 분구를 완전하게 성토한 후에 굴광하는 방식이 아니라 석실 묘광 자리를 비워둔 채로 분구를 성토 한 후에 묘광을 토괴로 쌓아 만들거나 분구 성토와 묘광을 동시에 조성하는 구축 묘광 구조 4) 를 하고 있 다. 특히 토괴를 쌓는 양상은 석실의 묘광(구축묘광)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 한편, 토괴에 의한 구획 공간은 분할하여 성토가 분구 중심 에 서 외연으로 비교적 수평상을 이루거 나 경시곡선을 이루어 성토가 이루어졌다. 이 성토에서는 토괴에 사용된 회색 점토뿐만 아니라 다양한 토재가사용되 었다. 이런 분구성토에 사용되는주요한토재로는크게 다음과같이 설정할수 있다. 먼 저 주구를 굴착하는 하는 과정 에서 산출된 토재로는 적갈색 점질토 적갈색 혹은 황갈색 사질토 등이 있고, 구지표를 삭토하여 묘역 지면을 정지하는 과정에서 채취되는 암갈색 점토, 적갈색 점질토, 황갈 색 점질토 등이 있으며, 토괴처럼 구획재로 고분 인근 습지에서 운반해 온 회색 혹은 회갈색 점토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토재는 성토 과정 에 서 단독으로 사용되거나 혹은 혼합하여 사용되었다(표 1 참조). 표 1. 성토단계에 따른 성토재 싫짓영 통편 서펀 남편 북펀 5 단계 적갈색사질토 (적)갈색사질점토 흑갈색점토 회갈색점질토 갈색점질토 갈색점질토 갈색사질점토 암적갈색점질토 황갈색점질토 암적각색점질토 적갈색사질토 (암)적갈색 점질토 4 단계 회색점토 회갈색점토 회색점토 회갈색점질토 황갈색사질토 갈색점질토 암적갈색점질토 3 단계 황갈색점질토 적갈색점질토 (암)적갈색 점질토 회색점질토 적갈색점질토 회색점토 황갈색점질토 암적갈색점질토 적색,황색사질토 명황색 점질토 2 단계 적갈색점질토 갈색점질토 암갈색점질토 1 단계 황갈색점질토 회갈색점토 암갈색점질토 암적갈색점질토 암갈색점질토 황갈색점질토 암갈색점질토 5. 분구 축조 기술의 특정 영암 옥야리 방대 형고분(제 1호분)의 분구 성토방법에서 가장 특징적인 점은 분구에 대한 구획 뿐 만 아니 라 중심 매 장 주제부인 석실의 묘광을 조성하는 과정 에 서 사용된 토괴를 들 수 있다. 영산강 유역의 고분에서 토괴가 확인된 사례에는 나주 장동리고분 복암리 3호분 신촌리 9호분. 무안 고절 리고분, 덕암고분, 영암 자라봉고분, 해남 만의총 3호분 등이 있다. 또한 영산강 유역 이외에 고성 송학동고분, 대구 성하리고분, 부산 연산동고분 등에서도 토괴를 사용한 양상이 확인되었다. 그런데 토괴를 분구 성토를 위한 구획 요소와 함께 묘광을 조성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방식은 기존에 일본에 4) 구축묘광의 축조 시점이 나 방법에 대해서는 분구 축조공정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다각적으로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묘광 및 석실의 규모,나 묘광을 중심으로 한 내 외측 퇴적앙상, 목주의 기능 및 역할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I 69
71 서 발견되었으나 영산강유역에서 최초로 발견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분구 중앙에는 토괴로 구획 하여 분구를 성토하는 과정에서 석실을 축조하고 다시 이를 피복하여 분구 성토를 완료하였다. 반면 에 분구 사면에 조성된 매장시설인 목관묘, 석곽묘, 옹관묘는 추가장으로 분구를 완전하게 성토한 후에 되파기하여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고분 성토방법에서 구획 요소로는 단변의 지그재그 線, 평면상 異 質 士 에 의한 整 然 한 區 域 現 像, 평면과 단변에 흑(갈)색 점토띠의 존재, 봉토내 석열 등이 있다(조영현, 1993). 영암 옥야 리 방대 형고분(제 1호분)의 경우, 평면에서 방사상 및 횡방향의 구획선이 확인되었는데, 이는 단면상 으로 점토괴를 거의 수직에 가깝게 쌓아 올린 형태를 하고 있었다. 또한 이 토괴열을 기준으로 하여 내 외측에서 서로 다른 성토재(황갈색 사질토와 적갈색 사질토)가 사용되는 양상이 확인되었다 이 처럼 토괴는 분구 성토에서 구획 요소로 활용되었다. 한편, 분구 성토 방법으로 분구 중심에서 외곽으로 거의 수평에 가깝거나 아주 완만하게 경사져 (외경사)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부분적으로 분구 중심부를 약간 높게 쌓은 후에 여기에서 분구 가 장자리로 가면서 덧붙여 밖으로 확장하는 방식을 쥐하고 있다 또한 중심 매장 주제부를 피복하는 과 정에서 계단상으로 잘라낸 후에 성토하는 양상도 확인되었다. 기본적으로 성토단위층은 점토와 사 질(점)토를 아주 앓게 번갈아 가면서 쌓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런 방식은 판축층처럼 상당히 정교 하여 유사판축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제 1호분)의 분구 축조 기술은 토괴로 구획하여 분할성토할 뿐만 아니라 분구 중앙에 토괴를 활용한 구축묘광구조를 한 중심 매장 주제부인 석실을 쌓고 피복한 양상 을 하고 있다. 이런 기술은 토괴를 사용한 점에서 영산강유역의 중핵지대에서 5세기 후엽 6세기 전 엽의 고분과 연결되나 토괴에 의한 지망상의 분할성토 구축묘광구조로 보면 상당히 독특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 오히려 이런 양상은 가야 및 신라 일본과도 연결된다. 따라서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 분은 분구 축조 기술의 측면에서 이들 지역과 교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의 축조 연대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제 1호분)은 중심 매장주체부인 석실을 분구와 함께 조성하였다는 점에 서 영산강유역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든 고분이다. 반면에 석곽묘 목관묘 옹관묘는 분구의 가장 자리에서 분구를 되파기하여 만들었다. 이런 점에서 석실 및 분구의 조성시기와 석곽묘 목관묘 옹관묘의 조성시기는 차이가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그 시간적 차이가 얼마인지에 대해서는 유구나 유물을통하여 밝혀내야한다. 분구와 함께 조성된 횡구식 석실묘는 일반적으로 무안 함평 해남 등지에서 횡혈식 석실묘의 퇴화 단계로 나타나는 것과 달랐다. 이는 석실묘가 분구의 중심에 위치한 중심 매장주체부로서 남단 벽의 하단을 다른 벽과 함께 조성하면서 상단을 남겨둔 상태에서 입구로 활용하였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특히 벽석을 쌓는 방식이 상당히 조잡하고 정형화되지 않은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볼 때, 70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72 외부에서 석실 축조 방식이 유입되었으나 모방은 하였으나 아직 내재화되지 못한 초기 단계의 특정 을 엿볼 수 있다. 결국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제 1호분)의 석실묘는 영산강유역에서 거대 분구의 중 심 매장주체부로 석실이 처음 도입되는 단계에서 나타나는 특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석실에 목주가 사용되는 양상은 가야지역 고분에서 나타난다. 그러면서도 가야지역에서 매장주제부에서 목 주를 사용하는 양상과는 다른 점도 확인된다. 아울러 주구 내부에서 다량 출토된 원통형토기는 기존 에 영산강유역에서 자체적으로 발전한 호형 원통형토기 제작 전통뿐만 아니라 4단 구분이나 2 3단 에 위치한 투창 등에서 가야나 왜의 영향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면서도 상당히 다양한 형 태적 특정이 투창에서 보여진다. 따라서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제 1호분)은 자체적으로 거대 분구 를 조성하는 문화 전통에서 주변 지역과의 문화 교류를 통하여 새로운 요소들이 도입되면서도 자기 회를 시도하는 초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석실의 내 외부에 부장되거나 석실과 함께 조성된 주구 내부에서 출토된 단경호, 직구소호, 광 구소호, 유공광구소호는 기존 양산강유역의 고분 출토 토기의 편년안과 비교하면 대체적으로 5세기 중엽을 전후로 하여 위치하고 있다. 일부는 6세기 전반으로 볼 수 있는 여지도 있으나 대부분은 6세 기까지는 내려오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양상은 석실 내부에서 출토된 철갑편, 철촉, 철부 등 에서도나타난다. 다음으로 분구에서 중심 매장주제부 주변에서는 분구를 다시 굴광하여 석곽묘, 목관묘 및 옹관묘 가 조성된다. 이런 매장주체부는 분구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석실묘과 달리 분구의 가장자리에서 일정하지 않은 간격으로 띄엄띄엄 분포되어 있었다. 즉 분구의 북측을 제외하곤 동측(목관묘, 제 3호 옹관묘), 서측(제 1호 옹관묘), 남측(석곽묘 제 2호 옹관묘)에 위치하고 있었다. 석곽묘는 석벽을 쌓는 방식이나 개석을 놓고 밀봉하는 방식에서 석실과 상당히 유사하다, 석곽 외부에 부장된 단경호, 석실 내부에 부장된 직구소호 철촉 등으로 볼 때 석곽 축조 시기는 5세기 후반 5세기 말로 6세기까지 내 려오지는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목관묘는 목관의 네 벽을 황백색 점토로 밀봉하였다는 점에서 나주, 영암 지역의 5세기 전엽 5세기 중엽으로 편년되는 고분들과 비교할 수 있다. 옹관묘는 분구의 가장자리에서 3기가 확인되었는데 제 1호 및 제 3호 옹관묘는 합구식인 반면에 제 1호 옹관묘는 단옹 식 구조를 하고 있다. 3기의 옹관묘는 분구에서의 위치, 묘광의 형태, 옹관의 안지방식이나 조성방식, 주 부옹의 위치 및 조합 관계 옹관과 관외부장유물의 위치 관계 부장유물 등에서 상당히 유사한 양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옹관묘에 사용된 옹관은 영산강유역의 옹관 형식 분류안에 따르면, 반남 식(서성훈 - 성낙준), 血 유형(이정호), Cl 2형식(서현주), 3A형식(김낙중), ill Al형식 옹관(오동선) 으로 넓게 보아 5세기 중엽 6세기 전엽으로 설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주옹과 부옹은 크기[주옹 (loocm 내외), 부옹 (80cm 내외)]나 소성온도[주옹(황백색 혹은 회백색 연질), 부옹(회청색 경질)] 에서 각각 동일하여 정형화되고 규격화된 양상을 하고 있었다. 이런 점을 종합하면, 석실묘 보다 나 중에 만들어진 석곽묘, 목관묘 및 옹관묘의 축조 시기는 5세기 중엽 5세기 후엽 5) 으로 추정된다. 5) 기존 보고서(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2012), 홍보자료에서 옹관묘의 축조 시기는 5세기 중엽 6세기 전엽으로 상당히 넓게 설정하였다. 이에 따라 석실묘의 축조 시기 역시 5세기 중엽 5세기 후엽으로 설정하였었다 하지만 옹관묘에 사용된 옹관의 제작 언대를 6세기까지 내려오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어 기존 연대관을 조정하였다 더군다나 석실묘에서 출토된 부장유물의 연대에 대해서도 좀 더 올려 보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에 대해서는 올해 빌간될 보고서에서 좀 더 명확하게 제시할 예정이다.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I 71
73 .5C 中 쫓 SC 後 쫓 4 호판= 2 호역관 3 효농관 1 호농 ξ 논~ 靜 f 훨 잉 쩌 자훌뚫했 탓픔뽑뀔 도먼 6.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 옹관 변천 모식도 그런데 분구 중앙의 석실묘를 제외한 주변의 매장시설들은 일정하지 않은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 었다. 특히 옹관묘는 동 서 남측에 각각 1기씩 분포하고 있었다 이런 배치 양상으로 볼 때, 석곽 묘, 목관묘, 옹관묘가 한꺼번에 조성된 것이 아니라 조금씩 시차를 두고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도 옹관묘에 사용된 옹관들의 형태나 크기가 각 옹관묘에서 거의 동일한 것으로 볼 때, 3 기 의 옹관묘의 축조 시기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석곽묘, 목관묘, 옹관묘에 부 장된 유물의 시기차도 거의 없었다. 따라서 석실묘를 제외한 분구 매장시설은 분구에서의 분포 양 상으로 볼 때, 시기차는 존재하나 그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분구 중앙 에 위치한 석실묘와 분구 가장자리의 석곽묘, 목관묘, 옹관묘는 다분히 석실의 존재를 인식한 상태 에서 조성되었기 때문에 시기자는 석곽묘-목관묘-옹관묘 사이의 차이보다는 컸을 것을 추정된다. 그런데 석실묘를 제외한 매장시설은 분구에서의 분포 양상으로 볼 때 시차는 존재하나 그 간극 을 그리 크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분구 중앙에 위치한 석실묘와 분구 가장자리의 석곽 묘, 목관묘, 옹관묘는 다분히 석실의 존재를 인식한 상태에서 조성되었기 때문에 시자는 석곽묘-목 관묘-옹관묘 사이의 차이보다는 컸을 것을 추정된다. 따라서 분구 가장자리에 위치한 석곽묘-목관묘-옹관묘가 5세기 중엽 5세기 후엽에 걸쳐 조성 된 것으로 본다면, 분구를 포함하여 분구 중앙의 중심 매장주체부인 석실묘는 5세기 중엽경으로 추 정된다, 이런 양상은 석실묘에서 출토된 삼각판갑, 철촉, 유공광구소호, 기대 등을 통하여 확인된다. 다만 최근에 고흥 야막고분에서 출토된 삼각판갑 철촉과의 비교를 통하여 볼 때, 석실의 축조 시기 를 5세기 중엽 보다 올라갈 수 있는 개연성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좀 더 면밀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할것으로판단된다. 한편,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 원통형토기의 제작 연대는 5세기 중엽 5세기 후엽으로 볼 수 있 다. 그런데 50 년 정도의 시간 폭을 가지고 있고, 분구를 되파기하여 추가 매장시설이 설치되는 과정 72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언대관
74 이 있기 때문에 원통형토기는 최소한 크게 두 시기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즉 분구를 되파기하여 옹관 등 매장시설을 추가적으로 조성한 시점을 기준으로 하여 전기와 후기로 구분된다. IV. 4 6세기 고대 한일의 고분 축조 기술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은 분구를 축조하는 과정에서 토괴를 구획재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백제 의 고분과는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 기존에 영산강유역에서 발굴된 고분에서 토괴, 혹 은 점토 블록, 표토블록, 토냥 등과 같이 일반 성토재와 달리 점성이 강한 재료를 분구 축조 과정에 사용한 사례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그러면서 토괴과 같이 점성이 강한 재료를 분구 축조에 사 용된 방식이 영산강유역 이외에 가야 신라 왜에서 확인되는 고분과의 관련성에 대한 논의가 조금 씩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이런 방식이 아직까지 백제 고분에서 확인되지 않아 백제와는 다른 영산 강유역을 비롯한 한반도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하여 나타나서 고대 건축물의 기초를 다질 때에 사 용되는 북방의 판축, 항토수법과 다른 남방의 초포낭 수법과 관련시켜 놓은 논의도 제기되어 왔다. 이에 영산강유역을 중심으로 하여 가야 신라 왜에서 발견된 점성이 강한 점토를 구획재 혹은 성토재로 확인된 대표적인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과 비교, 검토함으로써 4 6세기대에 고대 한일의 고분 축조 기술의 흐름을 밝혀보고자 한다. 1. 토괴 활용고분대표사례 1) 나주 장동라고분(동신대학교 문화박물관 2008) 나주 장동라고분은 전남 나주시 장동리 68-2 번지 일원에 위치한다. 해발 10 15m의 구릉의 정 상부에 입지한다. 조사결과 도굴된 석곽 1기 옹관 1기 그리고 주구가 확인되었다. 분구의 평면 형 태는원형이었다. 규모는 동서 길이 25m, 남북 길이 18.Sm, 높이 2.5m 이었다. 분구는 구지표 위에 50cm 두께 로 암갈색점질층으로 정지층을 형성한 후에 황갈색 점질층과 후회점질층을 상호 교호하여 쌓았고 다 시 이 위에 적갈색층과 적회색층을 차례로 쌓아 만들었다. 특히 흑회색점질층이 방사상으로 뻗어나 가는 양상이 확인되었다. 분구를 성토한 후에 이를 되파기하여 옹관과 석곽을 만들었다. 주구의 단 면 형태는 U자형이었으나, 그 안쪽이 바깥쪽 보다 더 완만하였다. 주구의 폭은 cm, 깊이 는 20 40cm이 었다. 매장시설에서는 철부, 철검, 삽도, 철겸 등 철제 농공구류가 출토되었다. 고분의 축조 시기는 중 심 매장시설을 통하여 볼 때, 4세기 중 후반 경(옹관), 6세기 중엽 이후(석곽)로 추정된다. 2)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재]대한문화재연구원 2013)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은 전남 나주시 다시면 가흥리 430 번지 일원에 위치한다. 신흥마을 앞 논 가운데에 위치한다. 특히 나주복암리 고분군과 영동라고분사이에 위치한다. 분구의 평면 형태는잔 존 상태, 분구에서 중심매장시설의 위치로 볼 때, 원형 혹은 방형 보다는 전방후원형일 가능성이 높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I 73
75 은 것으로 보고되었다. 하지만 방부와 원부가 만나는 지점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분구의 형태에 대해서는 좀더 검토가 필요하다. 분구의 전체 길이는 31,4m 내외, (추정)원부 직경은 19.7m, 원부 높이는 1.8m, (추정)방부 길이 11.7m, 방부 너비 7.2m 이다. 분형은 원부에 비해 방부의 길이 가짧은편에속한다. 분구는 기존의 낮은 구릉성 지형을 이용하여 원부의 상부는 삭토하여 석곽을 조성하고, 다른 부 분은 성토하여 쌓았다. 이 과정에서 원부의 외연을 따라 둑을 쌓고 중심 매장주체부인 석곽과 이 둑 사이를 채워나가는 방식으로 분구를 쌓았다 (1차 성토), 그리고 이 내측은 암회색 혹은 회색 니질토의 점토블럭을 이용하여 구획한 후에 중심 매장 주체부인 석곽의 벽석을 쌓으면서 동시에 바깥쪽으로 할 석과 구축토(니질의 점토블럭)를 이용하여 재웠다. 이 과정에서 평면상으로 점토 블럭에 의한 방사상 의 구획 성토가 확인되었다. 주구의 단면 형태는 완만한 U자형이다. 너비는 7.20m, 깊이는 1.04m 이었다. 주구에서 유물은 중앙에서 가장 깊은 지점에서 출토되었다. 특히 유물 중에서는 기대, 장란 형토기, 완 이외에 회청색 경질에 역삼각형 투창이 뚫린 원통형토기가 포함되어 있었다. 한편, 분구의 전체 중심에서 한쪽으로 치우친 중심 매장 주제부인 석곽은 시상판석 설치 목주골 조 설치 벽석축조(동 남 북벽) 시상대 설치(잔자갈) 폐쇄석(서벽) 시신안치 개석 폐쇄 순으로 만들었다. 석곽의 평면 형태는 동서장축의 장방형이었다. 규모는 길이 cm, 너비 cm 내외, 높이 140cm이었다. 석곽 내부에서는 단경호, 살포, 대도, 철모, 옥, 조형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고분의 축조 시기는 석곽에서 출토된 유물을 통하여 볼 때 5세기 중반경으로 추정된다. 3) 무안 사창리 덕암고분군(무안군 [재]대한문화재연구원 2012) 무안 사창리 덕암고분군은 전남 무안군 몽탄면 사창리 번지에 위치한다, 농로를 경계 로 하여 2개의 고분이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1호분은 가리비형에 가까운 분형으로 잔존 규모는 직 경 13.8m, 높이 2.2m 이었다. 2호분은 방대형으로 잔존 규모는 남 북 길이 13.5m, 동-서 길이 13.7m이었다. 분구는 점토괴( 土 塊 )를 활용한 방사상의 구획 성토에 의하여 쌓았다. 특히 분구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중심 매장 주체부인 옹관의 묘광은 점토괴에 의한 구축묘광 구조를 하고 있었다. 1호분을 통 하여 본 고분 축조 공정은 크게 4단계로 볼 수 있다. 1단계는 구지표를 정 리한 후에 흑갈색점토로 정 지하는 단계이고, 2단계는 정지층 상부에 구획 성토하여 1차 구축묘광을 완성하는 단계이며, 3단계 는 주매장시설인 2호 옹관을 안치하기 위한 2차 구축묘광을 조성하는 단계이고, 4단계는 2호 옹관 이 안치되고 어느 정도 성토가 이루어진 후에 누층으로 8기의 옹관들이 추가로 안치되는 단계이다. 분구 내에서 여러 기의 옹관이 매장시설로 확인되었다. 이 내부에서는 유공광구소호, 옥, 철기 등 중요 유물이 다량 출토되었다. 고분 축조 시기는 중심 매장시설인 옹관과 공반유물을 통하여 볼 때, 5세기 3/4분기의 이른 시 기로, 2호분이 1호분에 비하여 약간 이른 것으로 보고되었다. 74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76 @ 창녕 교동고분 (1 영암 태간리 자라봉고분 도면 7. 한국 토괴 활용 고분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I 75
77 4) 영암 태간리 자라봉고분([재]대한문화유산연구센터 2011, 임지나 2013) 영암 태간리 자라봉고분은 전남 영암군 시종면 태간리 774 번지에 위치한다, 1991 년에 정신문화 재연구원 (1차), 2011년에 대한문화재연구원 (2채 조사가 이루어졌다. 분구의 평면 형태는 전방후원 형이다. 분구의 전체길이는 37m 내외, 원부 길이는 24m, 원부 너비 24m, 원부 높이 4.6m, 방부길 이는 13m, 방부 너비는 20m, 방부높이 2.4m, 경부 너비는 llm 경부 높이 2.26m이었다. 주구는 단변 형태는 V자형이고, 이 외연의 경사가 심한 편이다. 주구의 폭은 최대 6m, 깊이는 1.8m 이었다. 특히 주구 내부에서 원통형토기. 개배, 병, 단경호, 완 이외에 소위 개형 분주목기로 알려진 제사목 기가 완형으로 2점 출토되었다 고분은 크게 입지선정 평면기획 주구형성 및 분구축조 석실구축 단계를 거쳐 축조된 것으 로 밝혀졌다. 이 과정에서 분구 전체 높이의 중앙지점에 흑회색 니질토의 점토블럭과 황색블럭상의 채토 흙덩이률 이용하여 다짐한 성토층이 확인되었다. 분구는 지점별로 2가지의 성토 방식이 확인되 었다. 먼저 분구는 1차 정지 후 분구 가장자리를 따라 돌아가며 단면 삼각형의 둑처럼 돌려 쌓은 후 안쪽을 차례로 메워가면서 분구를 조성하는 제방형 성토방식이 확인되었다. 다음으로 원부 서쪽 트렌 치와 동쪽 트렌치에서 물성이 전혀 다른 흙을 사용한 부분이 확인되어 일관된 수평성토가 아닌 분할( 구획)성토방식도 일부 확인되었다. 다만 후자의 방식에서는 점성이 강한 구획재는 확인되지 않았다 중심 매장주체부는 수혈식 석곽이다. 석실 내부에서 는 금제귀걸이, 구슬과 대도, 도자, 철모, 절촉, 철부, 철겸, 소호, 호, 대호, 개배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말뼈로추정되는 1개체분의 뼈가수습되었다. 고분의 축조 시기는 매장주체부의 구조와 출토유물을 통하여 볼 때 5세기말 6세기 전반으로 추정된다. 5) 창녕 교동고분군(동아대학교 1992) 창녕 교동고분군은 경남 창녕군 창녕읍 교리 일대에 위치한다. 목마산 구증상에 대소형 고분들이 군을 이루어 분포한다. 동-서쪽을 따라 형성된 경사면인 풍화암반면을 L 자형으로 굴착하여 매장 주제부를 조성하였다. 분형은 장타원형이었다. 봉분 주위에 호석을 둘렀고 이 바깥에는 판축시 판 축틀이나 기둥으로 사용될 것으로 추정되는 직경 20cm 내외의 주혈을 180cm 간격으로 배치하였다. 봉분은 180cm 간격의 판축틀을 세운 후에 구획성토하여 조성하였다. 성토2단계에서는 구획재 로 판축틀을 이용하여 성분이 다른 토양으로 축조하였고 성토 3단계에서는 15(1호분), 17개 이상 (4 호분) 흑색 점토 및 주혈로 구분하여 구획 성토하였다. 매장주제부는횡구식 석실이었다. 특히 3호분의 내부벽석과바닥면에는목곽을조성하였다. 이 목곽의 목주간에는 석벽을 쌓았고, 구간을 분할하여 수직줄을 맞추어 쌓았다. 축조시기는 5세기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상한은 5세기 2/4분기나 그 보다 약간 이른 시기이 고, 하한은 5세기 후엽이나 6세기 1/4분기 정도로 추정된다(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창녕군, 2013). 76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78 6) 고성 송학동 고분군(동아대학교 2005) 고성 송학동 고분군은 경남 고성군 고성읍 송학리 번지 일원에 위치한다. 넓은 대지상에 돌출된 소구릉 상부에 단독으로 입지한다. 봉분의 평변 형태는 타원형 (la호분), 원형 (lb호분)이었 고, lc 1E호분은 알 수 없었다, 봉분이 위치할 주변에 주구를 굴착하여 臺 狀 으로 묘역을 조성한 후 에 흑색 점질토를 다져 정지 작업을 하였다. 본격적인 성토는 작업 구간을 봉분의 중심에서 방사상 으로 구획하고 이를 다시 횡방향으로 재구획하여 쌓아 만들었다. 여기에서 구획재로는 석재, 점토 괴, 판재 등이 사용되었다. 매장 주체부는 수혈식 석곽묘 (la호분), 횡형식 석실묘 (lb호분)이었다. 축조 시기는 5세기 후반 6세기 중반으로 추정된다. 7) 고성 기윌리 1호분([재]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고성군, 2013) 고성 기윌리 1호분은 경남 고성군 기윌리 419-4번지 일원에 위치한다. 봉분을 축조하는 과 정에서 점토괴(암갈색 점질토)를 이용한 평면 방 사상의 구획성토가 확인되었다. 고분 축조 단계 는 묘역조성 및 주구시설 정지작업 성토1 단계(하부 봉분 조성) 개석 밀봉 및 성토 2단계 (상부 봉분 조성) 로 설정하였다. 특히 본격적인 성토 가 이루어지는 성토 1단계에서 길이 20 30cm, 두께 8 locm인 점토괴를 활용하여 8개의 방사상으로, 다 시 이 내부를 횡방향으로 구획하여 성토한 양상이 확 인되었다. 사진 16. 고성 기월리 1호분 전경 매장 주체부는 벽석의 일부만 남아 있어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축조 시기는 5세기 후반 6세 기 전반으로추정된다. 사진 17. 고성 기월리 1호분 구획선 사진 18. 달성 성하리 1호분 구획선 영암 옥야리 벙대형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I 77
79 8) 달성 성하리 1호분([재]대동문화재연구원 이승렬 2013) 달성 성하리 1호분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성 하리 번지 일원에 위치한다. 봉분의 평면 형태는 원형이었고. 규모는 직경 20m이었다 고분 축조 단계 는 점토기반 조성 묘광굴착 석실 하부축조 호석과 제상성토 석실 하부 축조와 밀봉 - 묘도부 조성과 본격적인 성토 의 과정으로 구분하였다. 봉분 축조 과정에서 유기질 흙주머니 안에 흑갈색 점토 등 점성이 강한 흙은 넣은 토낭을 쌓는 방식이 확 인되었다. 호석, t뭉}아 盛 士 층, 본격적인 성토층에서 구 획성토방식이 확인되는데 구획 방향은 방사상이고 구 사진 19. 달성 성하리 1호분 전경 획선상에는 주로 토낭을 두었다. 일부 구획부분에는 호석을 설치하여 짧은 석렬과 토낭의 두 가지 구 획요소가 중첩되어 있었다. 유존범위 안에서 구획 수는 제상성토층에서는 열이지만, 본격적 인 성토층에서는 두 구획선이 합쳐지지는 등 적지 않게 감소한다. 매장 주체부는 횡구식석실이다, 축조시기는 5세기말 6세기초로 추정된다. 9) 六 道 山 古 境 ( 大 和 那 山 市 敎 育 委 월 會 1992) 六 道 山 古 瓚 은 나라현 大 和 那 山 市 에 위치한다. 전체 길이가 loom 인 전방후원분이다. 분구에 대 한 토층단면조사에서 구지표면에서 떼어내어서 토낭으로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점토 덩어리가 확인 되었다. 특히 후원부의 분구 가장자리에서 토냥을 여러 단 쌓은 열이 여러 지점에서 확인되었다 이 런 양상은 藏 t 家 古 慣 처럼 방사상 구획과 관련된 것일 수도 있다. 또한 이런 토낭열 사이를 서로 연결 하는 토낭열도 일부 확인되었기 때문에 동심원상 구획선도 존재할 가능성도 있다. 축조 시기는 5세기말 6세기초로 추정된다. 10) 互 屋 西 古 境 群 0 兵 松 市 敎 育 쫓 員 會 1991) 표 屋 西 古 境 群 은 靜 폐 縣 j 兵 松 버에 위치한다. 이 중에서 B3 C5호분에서 토냥 혹은 토괴를 활용 한 분구 축조 방식이 확인되었다. B3호분은 전체 길이가 28.lm 인 전방후원분이다. 고분 축조 과정 은 다음과 같다. 먼저 후원부에서 구지표층인 흑색토가 혼입된 흙을 쌓아 매장 주제부의 묘광을 만 들었고, 이 외측을 쌓았다. 이런 공정을 4회 정도 반복하여 위로 약 80cm 까지 성토를 하였다. 이 단계에서 묘광과 분구의 반 정도가 완성되었다. 마지막으로 매장 주제부를 구축한 후에 동시에 분 구 성토가 완료되었다. 분구 성토에 사용된 토낭의 크기는 직경 약 40cm, 두께가 약 20cm 이었다. C5호분은 C고분군 중에서 유일한 전방후원분이다, 분구의 길이는 22m 이 었다. C5호분의 후원부 에서 토낭으로 생각되는 암다색토 덩어리가 확인되었는데, 크기는 길이 70cm, 폭 40cm, 높이 locm 이었다. 이는 B3호분에서 확인된 토낭에 비하여 컸다. 특히 토낭은 후원부의 중심에서 1회에 걸쳐 원 주상( 圖 周 狀 )으로 쌓았다. 이런 양상은 藏 隊 古 項 에서 확인된 동심원상의 분구구조와 상당히 유사하다. 축조시기는 MT15 형식단계 (6세기 전반)로 추정된다. 78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80 @ 六 道 山 古 大 門 大 樓 古 慣 늘;~._.. If. 屋 西 古 境 뺏 田 山 古 境 群 (29호분, 30호분) L.앨띄- 0 大 池 東 1 융 慣 도먼 8. 일본토괴활용고분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I 79
81 11) 大 門 大 據 古 境 ( 靜 폐 縣 흉 井 市 敎 育 委 員 會 1987) 大 門 大 據 古 境 은 靜 폐 縣 짧 井 市 에 위치한다. 직경 30m 인 원분이다. 분구의 가장자리뿐만 아니라 중앙에 위치한 석실 주변의 토층에서 단면 타원형의 토냥으로 추정되는 점토 덩어라가 확인되었다, 특히 석실 주변에 토냥이 집중적으로 쌓아져 있는 양상은 분구 중앙의 석실을 구축하기 위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것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분구는 그 가장자리에 토루상의 제방을 쌓은 후에 이 내측을 채워가면서 성토하였다. 매장주제부는 수혈계 횡구식석실이다. 축조 시기는 스에키로 보아 6세기 전반으로 추정된다. 12) 藏 據 古 慣 ([ 財 ] 大 限 府 文 化 財 調 훌 冊 究 七 ') )'- 1998, 江 浦 洋 1998) 魔 據 古 瓚 은 大 吸 府 쐐 鬼 野 市 飛 鳥 大 黑 에 위치한다. 전방후원분이다. 분구는 배 平 되어 일부만 남 아 있었다. 오히려 이로 인하여 고분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가 가능하였고 그 축조기법에 대한 전모 를 밝힐 수 있었다. 특히 원부에서 토낭을 이용한 방사상의 구획 성토 전방부에서 토냥을 활용한 동 심원상의 구획 성토가확인되었다. 분구는 다음과 같이 만들었다. 먼저 후원부의 상단 중심부를 방사상으로 구획한 후에 성토하고, 하단부를 동심원상으로 토낭을 쌓은 후에 덧붙였다. 그리고 이에 덧붙여 전망부를 확대하면서 쌓았 다. 이 때에 전방부의 중심부를 토낭을 활용하여 동심원상으로 구획한 후에 내부를 먼저 쌓고, 다시 외부를 쌓았다. 이런 점에서 볼 때 藏 據 古 境 은 토냥을 활용하여 방사상 동심원상으로 구획한 후에 후원부와 전방부의 중심부를 먼저 쌓고 가장자리를 쌓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선은 중심부와 주변부의 경계를 이루거나 단을 이룬 지점에서 나타난다. 특히 동심원상 구획 매장 주체부는 파괴되어 정확한 양상을 확인할 수 없었다. 축조 시기는 분구 성토층과 해자에서 출토된 스에카와 하니와를 통하여 볼 때 6세기 중엽경으로 추정된다 도면 9. 嚴 隊 古 境 평단먼도 및 토낭 노출 상태 80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82 13) 大 池 東 1뭉 樓 ( 江 浦 洋 1998) 大 池 東 1 號 境 은 愛 援 縣 松 山 市 의 大 峰 J;- 台 구릉에 위치한다 봉분의 형태는 직경 22m인 원분이다. 봉분을 축조하는 과정에서 점토 덩어리를 쌓은 흔적이 확인되었다. 분구 축조 공정은 크게 5단계로 구분된다. 제 1 2공정은 분구 정지작업, 제 3공정은 석실을 굴광하여 구축하는 단계이며, 제 4공정은 석실의 구축과 함께 분구 성토가 이루어지는 단계이다. 제 4공정에서 중심매장주체부인 석실을 중심 으로 하여 직경이 각각 7m, 14m인 원형상의 점토 덩어리를 쌓은 흔적이 나타난다.이 점토 덩어리는 구지표토 부근에서 채취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심 매장 주제부는 횡혈식 석실이다, 14) 血 山 古 樓 群 ( 小 嗚 驚 2013) 血 山 古 樓 群 은 福 固 縣 과 大 分 縣 의 경계에 위치한 山 國 川 의 범람에 의하여 형성된 하안단구상에 위 치하고 있다. 1구역 구릉의 남측에서 해발고도 40 55m의 사면에 5기의 고분이 자리하고 있다. 5기 의 고분은 모두 원분이다. 이 중에서 1호분은 직경이 26m, 잔존높이가 약 5m로 비교적 대형에 속한 다. 특히 주구가 돌려져 있었다. 고분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조성하였다. 먼저 구지표면을 파고 서 매장주체부의 연도부 천정부 높이까지 쌓은 후에 현실의 천정 높이까지 분구를 쌓으면서 동시에 벽석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분구 중앙의 매장 주체부를 중심으로 하여 동심원상으로 적색 점토를 쌓고 그 가장자리에 흑색 혹은 회갈색 점토의 토낭을 쌓은 후에 다시 바깥쪽을 적색 점토로 쌓아 만 들었다. 특히 각각의 성토단위별로 수평적으로 흙을 쌓아 맞춘 후에 위로 쌓아올렸다. 토냥은 흑색 에서 회갈색으로 점차 변화하는 양상이 확인되어 구지표에서 떼어낸 흙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매장 주체부는 횡혈식 석실이고, 축조시기는 고분시대 후기 (6세기대)이다. 사진 20. 血 山 古 慣 群 전경 및 토괴 노출 상태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I 81
83 15) 陳 田 山 古 慣 群 ( 波 江 메 敎 育 委 員 승 編 200이 曉 田 山 古 境 群 은 鳥 取 縣 波 江 메 大 山 메에 위치한다. 이 중에서 호분에서 토냥혹은토 괴로 추정되는 흔적이 확인되었다. 여기에서는 흑색의 탄화물이 포함되어 있었고, 색조가 연해지는 양상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표토에서 뜯어낸 덩어리(표토블록)으로 추정된다. 크기는 평균적으로 길 이 45cm, 너비 36cm, 두께 18cm 이었다. 특히 직경이 약 llm 인 분구를 가진 29호분에서는 토낭이 의 각도로 5 6단 쌓아져 있었다. 이 점토 덩어리가 쌓아져 있는 방식은 藏 據 古 樓 의 원주상 의 토낭열과 유사하였다. 그리고 점토 덩어리 내부의 토층 양상이 구지표면의 표준적인 토층과 역전 되는 양상을 하고 있었다. 이런 양상은 表 士 積 換 工 法 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축조 시기는 고분시대 후기 (6세기 후엽)으로 추정된다. 2. 토괴 활용한 고분 축조 기술의 양상 1) 토괴 형태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에서 구획재로 사용된 점토 멍어리(토괴)는 채취지점, 형태와 색상, 구 성 물질에 따라 점토블록 표토블록 토냥 등으로 구분된다. 이런 토괴의 형태에 대해서는 여러 가 지 측면에서 검토할 수 있다. 먼저 점토 덩어리를 채취한 지점에 대해서 는 크게 고분 축조 당시의 구지표면과 고분 주변의 저 습지로 구분된다. 일반적으로 구지표면에서 채취한 점토 덩어리는 점성이 약하고, 표토층에서 식생 하는 식물이나 유기물에 의한 색조의 변화가 점진적으로 나타난다. 특히 구지표면에서 채취한 점토 덩어라는 상당히 거칠고 점성이 아주 약한 특정도 나타난다. 반면에 저습지에서 채취한 점토 덩어리 는 점성이 아주 강하고 색조의 변화가 거의 없고 일정한 양상을 하고 있다, 다음으로 점토 덩어리를 운반하는 방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점토 덩어리를 채취한 후에 식물 재료를 주머니 형태로 만들어서 담아 운반하는 방식이 있다. 이런 경우에는 토낭, 혹은 초포냥으로 부를 수 있다. 하지만 발굴 과정에서 식물 주머니의 흔적이 확인되기가 상당히 어렵다. 다른 한편으 로는 점토 덩어리를 지게나들것 등과같은도구에 바로 담아서 운반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점토 덩어리가섞여서 굳어버릴 경우에는구획재로사용하기가상당히 어려울것으로추정된다. 이런문제 는주머니를만들경우에도생길수가있다. 전자는점토덩어리가차곡차곡쌓아져 있는경우에생길 수가 있고, 후자는 비교적 넓게 점토 덩어리가 뭉쳐 구획재로 사용할 경우 유용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구지표면이나 저습지에서 채취하여 운반해 온 토괴를 구획재로 쌓아 올릴 때 어떤 상태인 지에 검토도 필요하다. 점토 덩어리가 말랑말랑하면서 습기를 머금고 있는 상태인지, 혹은 딱딱하게 굳어져 있는 상태인가? 전자의 경우에는 차곡차곡 쌓아올리기가 좋지만 주변에 일반 성토재를 쌓을 경우에 형태를 일정하게 유지하기가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후자는 쌓아 올리기가 어렵지 만 주변에 일반 성토재를 쌓을 때에 흐트러지지 않고 형태를 일정하게 유지하기가 쉬웠을 것으로 생 각된다,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에서 사용된 토괴는 둥그스름한 형태도 있는 반면에 옆으로 눌려 넓 적한 형태도 있다. 특히 옆으로 눌려서 넓적한 토괴는 토괴를 쌓을 때 완전히 단단하게 굳어져 있지 않고 약간 말랑말랑한 상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더군다나 토괴를 먼저 2 3단 정도 쌓아 구획한 후 82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84 에 내, 외측을 일반 성토재로 쌓을 경우에는 토괴가 단단한 상태에서 쌓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분 저습지에서 채취한 토괴는 완전하게 굳어진 상태로 사용하지 않는 반변에 표토에서 채취한 토괴는 원래부터 약간 단단하기 때문에 내, 외측과 함께 쌓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2) 토괴 활용방식 현재까지 한국과 일본에서 고분이 대형화되면서 나타나는 시기인 4 6세기대에 토괴를 활용한 고분은 존재 양상과 축조기술에 따라 크게 3가지 유형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째는 토괴가 구획재 가 아니라 일반 성토재로 사용된 유형이다. 둘째는 오로지 토괴 자체만으로 구획재로 사용된 유형이 다. 세 번째는 토괴가 석재, 판재와 함께 구획재로 사용된 유형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유형은 영산 강유역을 중심으로 한 한반도 남부지방에서 계속해서 확인되고 있는 반면에 세 번째 유형은 영산강 유역에서는 아직까지 보고되지 않았고, 가야 신라 지역에서 확인되고 있다. 그런데 점토블록이 확 인된 영암 자라봉고분에서 성질이 다른 흙을 서로 몇갈리게 쌓은 방식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영산강 유역에서도 토괴 이외에 석재나 판재를 구획재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완전하게 배제하기 어렵다.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에서는 정지작업에 구획재로 사용된 토괴가 전면적으로 깔려져 있는 양 상이 확인되었다. 이는 초기에는 구지표면으로 생각되었으나 보완 조사에서 정지층으로 밝혀졌던 부 분이다. 그리고 구획재로 사용된 토괴가 분구 서 북편에서 걸쳐 일반 성토재로 집중적으로 사용된 방식이 확인되었다. 또한 토괴가 고분의 중앙에 위치한 중심 매장 주제부 주변에 집중적으로 일반 성 토재로사용되기도한다, 이런양상은영암옥야리 방대형고분 일본표 屋 西 古 瓚 群 등에서 나타난다. 특히 저습지에서 채취한 토괴는 점성이 강하기 때문에 분구에서 가장 중요한 매장 주체부를 보호하 는데 상당히 유용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토괴는 구획재로의 기능 뿐만 아니라 구획재를 더욱 튼튼하게 하면서 구조적으로 취약한 부분을 보강하는 역할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더군다나 백제의 고대 건축물에서 확인된 판축기법 처럼 점성이 강한 토괴와 사질이 강한 일반 성토재로 교호 성토하는 방식도 영산강유역에서 많이 사용 되고 있다. 이처럼 토괴는 고총 고분의 분구를 높게 쌓을 때에 상당히 쉽게 사용할 수 있으면서도 쉽게 굳어질 수 있고 부서지기 쉬워 다루기 어려운 재료로도 볼 수 있다. 이런 요인으로 인하여 토괴를 활용 한 고분, 제방 축조 기법이 지속적으로 발전하지 않고 특정 시기, 지역에 걸쳐 유행한 방식일 수 있다. 그런데 현재까지 토괴는 백제 중심지역인 한반도 중부 지역의 고분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오 히려 기존에 백제와는 다른 문화적 특정을 6세기 전반에 까지 유지하고 있었던 마한의 영역으로 보 고 있는 영산강유역, 가야와 신라 영역의 보고 있는 낙동강유역 남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분포 되어 있었다. 이처럼 토괴 혹은 토낭을 활용한 수법은 지역 간의 문화적 교류의 양상으로 볼 수 있을 뿐만아니라풍부한강수량과기후와관련하여 각각의 지역에서 채택되어 발달하였을가능성도 있다. 중국 절강성, 산동성 남부 연안지역과 호남성 북부 원강하류지역에서 이르는 넓은 지역에서는 풍 부한 강수량과 남방적 기후대로 잦은 태풍과 홍수 등 자연 재해가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이에 대비하 기 위하여 발달한수법이 초포낭( 草 包 靈 )수법이다. 초포낭수법은대규모토목공사에 입자가치밀한 니질토를 적당한 크기로 포장하여 운반할 수 있도록 점질이 강한 흙을 일정한 규격과 양으로 초본류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I 83
85 을 이용하여 말아서 이동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런 이유로중국고대 건축물의 축조과정에서 북방은판축, 혹은항토수법을, 남방은초포냥수 법이 주로 사용된다. 이런 남방의 건축물 축조 기법은 장강 하류에 분포하는 토돈묘, 지석묘와도 연 결된다. 하지만 중국에서 토낭과 유사한 초포낭을 구획재로 사용하여 토돈묘를 구축하는 사례는 정 확하게 보고되지 않았다. 결국 중국 남방지역, 한국 남부지방, 일본 지역은 토괴를 활용한 토목 건축 기술이라는 요소를 통하여 서로 연결된다. 이런 양상이 다양한 방식으로 문화교류의 산물로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토 괴를 단순한 일반 성토재로 사용하거나, 구획재로도 사용하거나, 다른 재료와 함께 구획재로 사용하 는 방식으로 차이를 보이고 있다. 3) 토괴 활용구획 방식 고분에서 토괴를 구획재로 활용한 방식은 상당히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런 요인은 단단 하게 쉽게 깨지지 않는 석재가 아니기 때문에 상당한 제약으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 토괴를 구획재로 활용하는 방식은 크게 3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토괴를 분구 중심에서 방사상으로 구획 하는 방식이다. 대표적으로 나주 장동리고분, 무안 덕암고분,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 창녕 교동고분 군, 달성 성하리 l호분, 일본 六 道 山 古 慣 등이 해당된다. 두 번째는 분구 중심에서 동심원상, 혹은 원 주상, 혹은 횡방향으로 구획하는 방식이다. 한국에서는 거의 확인되지 않고 일본에서 많이 확인되는 데, 대표적으로 曉 田 山 古 慣 群, 血 山 古 慣 群 이 있다. 세 번째는방사상구획과동심원상구획이 결합된 방식이다. 한국과 일본 모두에서 상당히 드문 방식으로 가장 전형적인 사례로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 분을 들 수 있다 여기에서 약간 변형된 방식이 일본의 藏 據 古 境 에서 확인되었는데, 이는 한 분구내 에서 서로 다른 지점에서 각각 나타나는 양상을 하고 있다. 그런데 토괴를 구획재로 활용하는 방식에서 주목해야할 요소로 고분의 분구 형태를 들 수 있다. 분구의 형태에 따라 토괴 활용 구획 방식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토괴를 활용하여 구획하는 방 식은 대제로 한국, 일본 모두에서 원형 혹은 타원형이나 전방후원형의 평면 형태를 가진 고분에서 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전방후원형의 고분에서도 대개 후원부에서 확인된다. 방대형의 분구 형태 를 가진 고분으로는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에서 토괴를 구획재로 활용한 방식이 확인된다. 또한 일 본의 藏 據 古 樓 에서 후원부에서 시작된 구획선이 전방부로 확대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특히 토괴를 활용하여 동섬원상 구획선을 구축하는 방식은 방형 혹은 방대형에서는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을 제 외하곤 확인되지 않았다. 이처럼 토괴를 활용하여 방사상이나 동심원상으로 구획하는 방식은 방형 보다는 원형에서 적용하기 유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음으로 방사상이나 동심원상으로 구획할 경우에 구획선의 수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영암 옥야 리 방대형고분에서 가장 기본적인 방사상 구획선의 수는 5 개, 무안 사창리 저두고분의 1호분은 5 개, 고성 기윌리 1호분은 8개이다.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의 경우에는 5개의 대 구획내에서 분구 수직 적인 위치에 따라 구획선이 10 11개까지로 확대되기도 한다. 일본에서 분구 전변에 대한 조사가 이 루어지지 않아 구획선의 전체 수를 확인할 수 없다. 다만 후원부의 절반 정도가 남아 있는 일본의 藏 84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86 像 古 챔홀에서는 5개의 구획선이 확인되어 10 11개 정도의 구획선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각각의 구획선 사이의 각도도 대체적으로 동일하면서도 l 2개 정도는 약간 차이를 보이고 있다 영 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의 경우에서는 4개의 구획선이 대각선으로 마주보고 있는 반면에 1개의 구획선 은 아주 가깝게 위치하고 있었다. 이와 비슷하게 무안 사창리 덕암고분의 1호분, 고성 기윌리 1호분에 서도 상대적으로 좁게 위치한 구획선이 확인된다. 이런 부분이 분구 축조 과정에서 작업로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구획선의 수나 간격이 대부분 정연하거나 일정하지 않아 단정하기는 어렵다. 또한, 구획선을 기준으로 내외측, 혹은 좌우 성토 순서에 대해서도 고려할 펼요가 있다 구 획재를 먼저 놓은 후에 이를 기준으로 하여 좌우에서 동시에 일반 성토재를 쌓는지 혹은 한쪽을 먼저 쌓은 후에 다른 쪽을 쌓는지를 확인할 펼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 일분에서 구획재를 기준으로 하여 동시에 성토가 이루어지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일본 藏 據 古 慣 에서도 원부에서 방부로 분구 성토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한쪽을 먼저 쌓은 후에 여기에 덧붙여 다른 쪽을 쌓아 만들었다. 이때에 그 경계가 되는 지점에 토낭을 쌓았다.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에서는 개별적 인 성토단위 내에서 세부 퇴적층이 구획선을 중심으로 일정한 높이로 쌓아져 있었다. 그리고 토 괴로 쌓은 구획선은 아래에서 S자 형태를 띠고 있는 상태로 확인되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토 괴를 쌓은 후에 거의 동시에 성토를 하고 다시 구획하고 동시에 쌓는 방식을 반복한 것으로 추정 된다. 이런 이유로 성토를 하는 과정에서 구획선이 덮어지기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상황은 달성 성하리 1호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의 경우에서는 방사상 및 동심원상 구획선을 기준으로 하여 구획에 사용 된 토괴 이외에 토괴와 거의 동일한 점토 덩어리를 집중적으로 쌓는 방식이 확인된다. 방사상 구획선 1과 구획선 2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토괴를 경사지게 쌓았고, 동심원상 구획선은 중심에서 가장자리 를 향하여 경사져 있었다. 이런 양상으로 보아 동심원상 구획선은 안쪽을 먼저 쌓고 외부로 확장해 나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에 방사상 구획선은 구획선 l과 구획선 2 사이, 구획선 4와 구획선 5 사이를 먼저 쌓고, 다음으로 방사상 구획선 l과 구획선 5 사이, 구획선 2와 구획선 3 사이 를 쌓고, 마지막으로 방사상 구획선 3과 구획선4 사이를 쌍아서 마무리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각각 의 성토 단계는 토괴를 2 3단 높이까지 쌓은 후에 성토가 이루어졌다. 이런 방식은 방사상 구획선 을 중심으로 한 토괴가 집중적으로 쌓아져 있는 양상을 통하여 확인된다. 4) 토괴 활용 구획의 수평, 수직적인 위치양상을 통한 매장시설과의 관계 토괴, 혹은 토냥을 활용하여 구획하는 경우에 구획 방식은 분구의 형태와 상당히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영산강유역에서 고분의 분형은 방형-제형-(장)방대형-원형으로 변천한다(임영진 2002). 방대형의 분구를 가진 고분으로는 나주 대안리 3 9호, 신촌리 9호, 복암리 3호, 함평 금산 리 고분, 무안 사창리 저두고분 고절리 고분 해남 신월리 고분 고창 봉덕리 1호 등으로 30m 이상 거대분구 중 43%를 차지하고 있어 그 비율이 높으며(성낙준 1997), 방대형 고분의 매장주체부는 옹 관, 횡혈식 석실, 석관형 석실 등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의 분구 규모는 구 지표를 기준으로 하여, 동-서 26.3m, 남-북 30.0m의 남북이 약간 긴 방대형으로 잔존높이는 최대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I 85
87 3.3m(구지표 상면 기준이다. 평면형의 장단 비율이 100 : 87 정도 되는 방형으로 영산강 유역에서 는 신촌리 9호분, 금산리 미출고분, 사창리 저두고분이 비슷한 비율을 보인다. 현재 남아있는 주구 의 규모(주구 외곽선 기준)를 포함하면 동-서 40.0m, 남-북 44.92m로 기획되었음을 알 수 있다 1호분은 분구가 정비복원으로 상당부분 훼손되어 정확한 높이를 복원하기는 어렵지만, 현재 남 아있는 분구의 상태로 보았을 때 대략의 높이를 상정할 수 있는데, 현재 남-북사면과 동-서사면의 경사도와 본래 방대형의 분구였음을 염두에 두고 추정해보면 분구의 높이는 3.7m 정도(구지표 상면 기준)로 주구 중앙부에서의 높이는 약 7m 정도로 추정된다. 이러한 분구의 축조기술은 영산강 유역에서 분구의 高 大 化 에 따른 것이다. 분구의 고대화와 확 장은 옹관의 다장 풍습 강화에 따른 것으로 권력기반을 혈연으로 다져가며 계급의 분화로 인한 강력 한 정치집단의 출현과 그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이정호 1997). 나주 복암리 2호분은 사다 리꼴 고분 긴 사다리꼴 고분 방대형고분으로의 분형변화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방대형으로 수 직확장의 예를보여준다(임영진 조진선 - 서현주 1999). 복암리 3호분은선행하던 2 3기의 사다리 꼴 고분을 조정확대하여 방대형분구로 만들었는데 방대형분구 자체는 한 번에 기획, 짧은 시간에 축 조되었지만 선행분구를 조정확대 하였다는 관점에서 넓은 의미의 수직확장으로 보고 있다. 신촌리 9 호분 역시 기존의 분구를 재성토하여 수직확장 하였다(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이는 여전히 집단묘 로서의 성격을 유지하지만 분구 高 大 化 로 피장자집단 자체의 위상을 대내외에 과시하고자 한 의도가 추가된 것으로 보고 있다(국립문화재연구소 전남대학교박물관 나주시 2001). 그러나 옥야리 방대형 1호분의 경우 수평 및 수직으로 확장된 것이 아니라 애초에 분구의 규모 를 기획한 후 축조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집단묘적인 성격의 유지보다는 피장자 위상의 강조가 더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영암옥야리 방대형고분은분구의 수직 혹은수평 확장에 따라거대한방대형 분구를갖 는 나주 신촌리 9호분, 복암리 3호분과 다른 양상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토괴를 활용하여 방사상 및 동심원상구획션을구획하여 견고하게 분구를쌓았다 여기에서 방사상구획선이 자형태로 방 대형 분구의 네 모서리 방향으로향하고 있다. 다만분구동북모서리에 방사상구획선이 하나추가 되어 있었다. 또한 대각선 방향의 방사상 구획선은 구획과 함께 방형 분형의 외곽 혹은 경계를 역할 을 하여 분형을 설정함에 있어 기준이 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처럼 분구와 석실을 동시에 쌓으 면서 방형 분구의 장축 방향과 중심 매장주제부인 석실의 장축 방향이 약간 달랐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중심 매장 주체부인 석실이 분구와 함께 축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중심으로 하여 묘광과 2개의 동심원상 구획선에 의하여 둘러쌓여 있다. 결국 분구의 외형은 방형계인 반면에 방사 성 및 동심원상 구획선은 다분히 원형계를 따르고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방사상 및 동심원상 구획선 은 모두 원형 분구에서 확인되었다. 나주 장동리고분, 무안 덕암리고분 제 1호분, 대구 달성 성하리 1 호분 등 한국에서 방사상 구획선이 확인된 사례는 모두 분구 형태는 원형이거나 이에 가까운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에서 방사상 구획선 혹은 동심원상 구획선이 확인된 사례도 역시 전방후원 분에서 원분, 원형 단독분에서 나타났다. 이처럼 방사상 및 동섬원상 구획선은 원형 분구에 맞는 형 태를 하고 있다. 이처럼 이런 구획이 방형 분구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상당히 특이하다. 이런 방식 86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88 은 거대한 분구를 높게 쌓기 위한 방식일 뿐만 이나라 분구 중앙에 위치한 중심 매장주체부인 석실 을 보호하기 위한 전략으로 채택된 것으로 보인다. 3. 토괴 활용한 고분 축조 기술의 교류와 변천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에서 구획재로 사용된 토괴 혹은 점토블록, 토낭 표토블록과 이를 이용 한 분구 축조 기술에 대해서는 고분 뿐만 아니라 토성 제방 등과 함께 고대 토목 기술의 관점에서 상당히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한국에서는 영산강 유역에서 이러한 토괴가 나타나는 고분으로는 나주 장동리고분(동신대학교 문화박물관, 2008), 복암리 3호분(국립문화재연구소 전남대학교박물관 나주시, 2001), 신촌리 9 호분(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무안 고절리고분(최성락 이정호 윤효남, 2002), 덕암고분(대한문 화재연구원 2012), 영암 자라봉고분(임지나 2013), 해남 만의총 3호분(국립광주박물관, 2009), 나 주 가흥리 신흥고분(대한문화재연구원 2013) 등이 있다. 이 중 해남 만의총 3호분을 제외하고는 모 두 영산강 유역의 중핵지대에 위치하는 고분으로서 그 시기는 4세기 중엽인 나주 장동고분을 제외하 고는 모두 5세기 후엽 6세기 전엽에 해당하는 고분이다. 최근에 조사된 김제 벽골제에서 토괴가 확인되었다. 이 뿐만 아니라 과거에 조사된 4세기대의 영 암 옥야라고분에서도 토괴로 추정되는 요소가 보이고 있어 영산강유역의 많은 고분에서 토괴가 상당 히 일찍부터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영산강 유역 이외에 고성 송학동고분(심봉근 외, 2005), 대구 성하리고분(재)대동문화 재연구원, 2012), 부산 연산동고분(복천박물관, 2011), 고성 기윌리 1호분((재)동아세아문화재연구 원 2013), 고령 지산동 고분군 518호분(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2013) 등에서도 토괴를 사용한 양상 이 확인되는데 모두 비슷한 시기로 판단되어 분구의 축조방법에 있어서도 가야 및 신라와의 교류가 있었을가능성이높다. 일본에서는 토낭, 혹은 토괴 기술이 4세기말인 律 堂 城 山 (츠도시로) 古 樓 外 提, 內 提 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이후로 구와쇼보고분, 모즈오츠카야마고분, 미네가즈타고분의 외제, 쿠라즈카고분 등 古 市 百 톰 鳥 고분군에서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있다(좁 木 敬 2013). 특히 고분시대 후기인 6세기 중엽의 쿠 라츠카고분에서는 종래와는 달리 토낭 및 토괴를 열상, 혹은 방사상으로 쌓아 올라는 방식이 도입되 었다. 이처럼 분구의 골격을 토냥과 토괴로 구축하는 방식은 據 石 을 방사상으로 쌓아 올리는 한반도 고분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좁 木 敬 2013). 현재까지 토괴를 활용하여 분구를 축조하는 방식은 크게 4가지 방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 째는 토괴를 구획재로 사용하지 않고 일반 성토재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영산강유역을 포함하여 한 일의 고분에서 분구 조사는 대부분 트렌치 조사만이 이루어져 토괴를 활용한 구획 양상을 정확하기 알기 어렵다. 실제로 트렌치의 방향에 따라 토괴에 의한 구획 양상이 전혀 확인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토괴가 확인된 고분들 중에서 토괴를 활용한 방사상 구획이 나타날 수 있다. 두 번째는 토괴를 활용하여 방사상으로 구획하여 분구를 성토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나주 장동라고분, 무 안 사창리 덕암고분,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 창녕 교동고분, 대구 달성 성하리 l호분 등에서 확인되 영암 옥야리 방대헝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I 87
89 었다. 일본에서는 藏 據 古 慣 에서 확실하게 확인되었다. 다만 분구에 대한 전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 아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六 道 山 古 境 등에서도 이와 유사한 방식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세 번째 는 토괴를 활용하여 동심원상 혹은 원주상이나 횡방향으로 구획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한국에 서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고. 일본에서는 血 山 古 慣, 표 屋 西 古 增 群 등에서 확인되었다. 그리고 藏 隊 古 慣 의 전방부에서 확인되었고, 大 門 大 隊 古 헬, 陳 田 山 古 慣 群 -등에서 이와유사한방식이 확인되었 다. 네 번째 방식은 토괴를 활용하여 방사상 구획선과 동심원상 구획선이 결합된 방식이다. 한국에 서는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과 고성 기윌리 l호분에서 확인되었다. 이와 유사한 방식이 일본의 藏 隊 古 慣 에서 확인되었다 후원부에서는 방사상 구획선이 나타났고 여기에서 전방부로 연결되는 지점에 서 일부 동심원상 구획선이 발견되었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4세기대부터 토괴 점토 블록 표토 블록. 토냥 등 점토 덩어리를 구획재나 일반 성토재로 활용하여 고분 축조를 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방식은 영산강유역에서는 4세기대부터 나주, 영암 등을 중심으로 하여 시작되어 주로 5세기 중엽 6세기 전엽에 무안, 해남 등 넓은 지역에 걸쳐 나타난다. 가야지역에서는 5세기 후반 6세기 전반에 걸쳐 창녕 교동고분군, 고성 송학동. 기 월리 1호분 등에서 나타난다. 이는 신라지역에서는 5세기말 6세기초에 달성 성하리 1호분에서 확인 된다. 일본에서 토괴를활용한방식은대부분후쿠오카 오사카 나라등서일본지역에서 4세기말부 터 나타나기 시작하고, 6세기 중반이후에 한층 발전된 양상으로 나타난다. 특히 古 市 百 줌 鳥 古 慣 群 에서 토괴를 활용한 방식이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상으로 고분의 분구 축조에 토괴를 활용하는 방식은 한국에서는 영산강유역(영암 시종)과 소 가야지역(고성), 일본에서는 관서지역(오사캐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축조 방식에 따르 면. 한국에서는 방사상 구획 방식이 일본에서는 동심원상 구획 방식이 주를 이루고 있다. 영산강유 역에서는 4세기 5세기 중엽 가야지역에서는 5세기 후반 6세기 전반, 일본에서는 고분시대 후기 인 6세기 중엽 후엽이 중심을 하고 있다. 특히 방사상 구획과 동심원상 구획이 결합된 방식은 영산 강유역에서는 5세기 중엽(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 가야지역서는 5세기 후반 6세기 전반(고성 기 월리 1호분), 일본에서는 6세기 중엽( 藏 t 家 古 廣 )에서 나타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토괴를 고분에 활용하는 방식은 풍부한 강수량과 남방적 기후대로 잦은 태풍과 홍수 등 자연 재해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지역에서는 자연스럽게 나타났을 것으로 보인다. 하 지만 토괴를 방사상 혹은 동심원상으로 구획하여 고분을 축조하는 방식은 상당히 발전된 토괴 활용 방식이다. 이런 벙-식은 백제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마한지역에서 훨씬 더 정교하게 발전되어 나갔다. 그리고 가야. 일본 지역에서도 상당히 독특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가야 지역에서는 토괴와 함께 석 재 목판 등도 활용하여 방사상으로 구획하여 분구 성토가 이루어졌다. 특히 고성 기윌리 l호분에서 는 방사상 구획과 함께 횡방향 구획에 의하여 분구 성토가 이루어졌다. 일본 지역에서는 고분시대 후 기에 방사상 구획 보다는 동심원상 구획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런 양상은 영산강유역-가야지역-일본지역을 통한 활발한 문화교류를 통하여 한층 발전하였 을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이 자리하고 있는 영암 시종일대는 백저1- 서남 해안-왜로 연결되는 해상교통의 요충지에 입지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주변 지역과의 다각적인 문 88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90 화교류를 통하여 기존의 고분 축조 방식과 다른 새로운 고분 축조기술이 창안하였을 것으로 판단 된다. 6C 활 繼 뚫 i훌월 古 il(6c 中 훌) 7흉 古 뭘(SC) fill 山 古 합합(6C~ l 도먼 10. 토괴 활용 분구 축조기술의 교류관계 개넘도 마 縣 購 v. 맺음말 최근에 영산강유역권에서 기존에 보고되지 않았던 새로운 축조 방식의 고분이 확인되고 있다. 그 러면서도 기존에 조사가 되었던 고분 중에서 유사한 방식이 확인됨에 따라 그동안 간과하였던 영산 강유역 고분 축조 기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최근에 영산강유역에 서 새롭게 확인된 고분들은 4 6세기대에 걸쳐 백제 가야 왜 등주변 지역과고분축조를둘러싸고 활발한 문화교류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 토괴를 활용한분구축조 기술이나목주를사용한매장시설의 축조는 영산강유역 자체에서의 자체적인 발전 양상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과의 문화 교류를 통한 변화상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에서 확인된 토괴를 활용한 분구 축조 기술은 4 6세기에 걸쳐 고대 한 일간의 문화교류의 양상을 새롭게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까지 논의를 통 하여 볼 때, 고대 한일간의 고분을 둘러싼 문화 교류는 단선적으로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일방적 으로 주고 받는 관계가 아니라 상당히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분구를 쌓는 과 정에서 토괴를 사용하는 방식은 영산강유역을 비롯하여 한국, 일본에서 4세기대부터 나타난다. 이후 5세기대에 들어서면서 분구를 분할하여 성토하기 위한 구획의 기능 뿐만 아니라 판축기법의 판재처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I 89
91 럼 사용되기도 한다. 특히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에서는 토괴를 활용하여 방사상 및 동심원상 구획 선을 교차로 구획한 후에 성토하는 지망상의 분할성토기법이 등장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백제 중심 지와다른 영산강유역 고대 정치체를특정짓는문화요소일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토괴 활용분구축 조 기술은 기후 환경과도 관련된다. 중국의 남방지역에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북방에서의 판축, 항 토 기법와 달리 점토 덩어리를 건물이나 제방 축조에 사용하여 왔다. 고대부터 중국 남방지역과의 교류를 통하여 토괴를 활용한 토목 기술이 영산강유역에 자연스럽 게 유입되었고, 이를 적극적으로 발전시켜 나간 정치제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정치제도 있었을 것으 로 추정된다. 이 과정에서 각 지역 정치체가 처한 상황이 달랐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영암 옥야리 방대 형고분을 중심으로 한 영암 시종 일대 정치체들은 다른 정치체들이 수펑 성토나 제방상 성토에 토괴를 일부 사용하는 상황에서 토괴를 구획재로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분구 축조 기술을 발 전하여 갔다. 이런 기술은 4 6세기에 걸쳐 가깝게는 다른 영산강유역 정치체, 멀리로는 가야, 일본 지역 정치체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방대형 분구, 목주를 사용한 석실, 원통형 토기의 수립 등에서 보듯이 분구 축조 기술과 밀접하게 관련된 다른 요소에서 주변 문화와의 복잡한 교류가 개입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6세기대에 영산강유역이 백제에 의한 직접 지배 단계에 들어서면 서 토괴를 활용한 분구 축조 기술도 단절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토괴를 활용한 분구 축조 기술은 상당히 번거롭고 다루기 힘든 기술이다. 토괴를 표토 나 저습지에서 채취하여 운반하는 과정이 힘들었울 뿐만 아니라 이를 분구를 쌓을 때 적절한 상태로 유지 및 관리하기가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즉 토괴를 다루기가 어렵다. 무엇보다도 토괴는 분구 축조와 관련한 구획재로 판재 석재에 비하여 운반성이나 강도의 측면에서 큰 약점을 자니고 있다. 하지만 고대 고분, 제방 토성의 축조에서 토괴를 활용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이 많지 않다. 무엇보다도 고대 토목 기술에서 토괴에 관련된 여러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토괴를 운반하는 형태에 대해서 밝힐 수 있는 연구방법론이 좀 더 가다듬어져야 한다. 그리고 토괴를 활용하여 분구를 쌓는 방식 그 자체에 대한 정밀한 조사 및 연구가 필요하다. 현재까지 영산강유역을 비롯하여 고대 한일의 고분에서 분구 축조 기술을 정확하게 밝힐 수 있을 정도로 조사된 고분이 별도 많지 않다. 대부분 몇 개의 트렌치를 넣어 분구 축조 기술을 밝히기는 어렵고 이마저도 여러 상황으 로 인하여 원활하게 하지 못한 사례도 많다. 물론 고분 조사 및 연구에서 매장시설 만큼이나 분구 축 조 기술을 밝히기 위한 관심도 요구된다. 그리고 분구 축조 기술을 고고학적 조사 및 연구 이외에 고 대 토목 기술의 관점에서 건축공학 등 다학문적인 융복합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 여 최근에 고고학에서 시도되는 실험고고학도 분구 축조에도 도입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고대에서 고분 문화를 둘러싼 교류의 모습은 어떠하였을까? 고분 문화에서는 분구 축조, 매장시설의 설치, 시신 안치, 장례 등 상당히 다양한 요소들이 있다. 이런 요소들은 단독으로 혹은 상호 결합하여 아주 복잡하게 얽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복잡하게 섞여 있는 요소 들을 구분하고, 연결지우는 세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90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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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토 론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에 대한 토론 홍보식 (부산박물관)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군의 정밀한 발굴조사 성과는 영산강수계에 분포한 고총고분의 축조기 술의 특정과 계통, 지역간 교류관계 등을 해명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고분의 발굴조사 방법과 성과는 향후 영산강수계에 분포하는 고총고분의 발굴 조사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 대한다. 발표자는 방대형고분의 정밀 조사를 통해 봉분 매장주제시설 주구 등의 조성과정을 크게 5단 계로 분석하고, 각 단계마다의 성토재와 성토방식 및 구축 기술 등을 제시하였는데, 봉분 축족 기술 의 가장 큰 특정으로서 방사상 구획과 동심원상 구획이 결합된 지망식 구축을 제시하고, 매장주체시 설을 횡구식석실로 파악하였다. 이 방대형고분의 축조 시기는 대략 5세기 중엽경으로 설정하였다. 발표 내용의 전반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하지만, 일부 내용에 대해서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1. 발표 내 용에서 사용한 용어에 대한 개념 정리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분할성토와 구획성토 등을 혼용하여 사용하였고 작업로를 설정하기도 하였다. 분할성토와 구획성토의 내용에는 어떤 차 이가 있는지 정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작업로가 봉분 구축과 어떤 연계성이 있으며, 그 기능은 무엇 인지에 대한 설명이 요구된다. 그리고 성토재 단위로서 점토블럭 점토블릭 표토블럭 점토괴 토 낭 등의 용어를 사용하였는데 옥야리 방대형고분의 봉분 구축에 상기의 성토재 단위가 모두 확인되 는지, 확인된다면, 각각의 성토재 단위는 어느 공정의 어떤 부위에 어떻게 사용되었는지에 대한 설 명이 펼요하다. 2. 고분의 축조 시기에 대해서는 5세기 전반 5세기 중엽, 5세기 후반 등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고. 시기에 대한 근거로서 갑주와 철촉의 부장을 들고 있다. 그런데 갑주는 편 일부만 출토되어 정 확한 형태 파악이 어렵고 철촉에 대한 분석도 제시되지 않아 시기를 알 수 있는 근거로서는 부족하 다. 매 장주제시설에서 출토한 토기류의 분석을 통한 역연대 산출이 되면 좋을 것 같다. 옥야리 방대 형고분과 유사한 매장주제시설을 보이는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의 주구에서 출토한 소가야 양식의 발 형기대는 5세기 3 / 4분기로 편년되는 김해 대성동 73호분 출토 소가야 양식 발형기대와 유사하다, 3. 옥야리 방대형고분의 특징적인 봉분 구축 방식으로서 점토괴를 이용한 방사상 구획과 동심원 상 구획을 들고 있다. 봉분 기저부를 설명할 때, 구지표면 또는 정지층 등을 언급하였는데, 정지(표 피층을 삭토) 하였다변 구지표면은 존재하지 않는다. 명확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구지표면을 제 거라거나 다지지 않고 성토를 하면 부동침하가 생겨 붕괴 우려가 상존하므로 암갈색점토층을 구지표 라기보다 구지표를 제거한 생토면이거나 성토층으로 파악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고 정지층의 하 94 I 고문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96 면과 상면이 울퉁불통하였는데, 상면의 요면에 채워진 흙을 퇴적으로 표현하였다. 정지층에 채운 흙 사이변에 퇴적이 되려면 어느 정도 기간은 성토하지 않는 상태가 전제되어야 하지만, 성토공정 단 계에서 그런 언급은 없으므로 퇴적이란 용어는 적절하지 않다. 정지면과 기저부 점토괴 상변에 요철 이 있는 것은 요철면을 만들어 하층이 밀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공법일 가능성은 없는지 검토할 필 요가 있다. 시기는 늦지만 경주 신당리 1호분의 봉분 가장자리 하면에 Q 형으로 지변을 파고 그 안 에 점토를 넣었다. 이것은 봉분 가장자리에 토심을 만들어 봉토가 바깥으로 밀려 나오는 것을 방지 하기 위한공법이다. 점토괴를 사용하여 구획을 하였는데, 점토괴로 구획을 한 성토가 어느 단계에서부터 어느 단계 에까지 하였으며, 각 구획이 동일 단계에서 시작하여 끝나는지, 아니면 성토단계에 따라 구획에 차 이가 있는지 여부가 검토되어야 한다. 설명에 의하면, 구획선의 간격이 일정하지 않고 불규칙적이 고, 상하 상태도 않는 점 등이 있는데, 어느 정도 등간격이지도 않고 규칙적이지 않다면, 구획으로 볼수 없는여지도 있다. 그리고 동심원상 구획의 점토괴가 위로 향하면서 외측으로 기울어져 있는 양상을 토괴가 밀려나 가거나 움직여서 이탈하는 경향이 발생하여 정연하지 않다고 파악하였다. 그런데 동심원상 토괴가 밀렸다면, 동심원상 토괴 안쪽의 봉토가 외측으로 밀려나가 매장주체부에 영향을 주어 매장주체부 가구축상태를유지하기 어렵다. 그런데 매장주체부는거의 밀려나지 않고비교적 정연하다. 따라서 동심원상의 점토괴가 불규칙하고 경사진 것은 밀려난 것이 아니라 당초부터 그렇게 쌓았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상부와 하부의 평면적의 차이에 의한 봉분의 경사도 등과도 밀접한 관련성을 지니고 있 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일하지 않지만 구획축조로 알려진 창녕 교동 3호분의 흑색 점토괴도 수직을 이루지 않고 좌우로 경사지거나 어느 정도 높이에서 사라지고 연결되지 않는 등 불규칙적이다. 달성 성하리고분에서 확인된 점토 덩어리는 불규칙적이어서 토냥으로 보기 어렵고 수직을 이루지도 않고 두께도 규칙적이지 않고 방사상도 아니므로 점토괴에 의한 구획성토로 보기 어렵다 년대 이후에 들어와 고총고분의 봉분을 조사한 결과 구획성토된 사례가 다수 보고되었 지만, 평면과 단면(평면과 직교한 단면) 상태를 명확하게 제시한 사례가 거의 제시되지 않아 문제점 이 있다. 구획이란 봉분 구축 이전부터 봉분을 계획적으로 쌓기 위해 설계도(설계도면 또는 고분 조 영 책임자의 두뇌속에 기억된)에 의해 성토 하부부터 상부에 이르기까지 어느 정도 규칙성을 가지면 서 성토가 이루어진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동일 성토면에서 구분되는 경계는 성토재의 물성 차 이에 의해 나타날 가능성이 있고 그 아래의 성토면 또는 그 위의 성토면의 경계가 동일 지점이 아니 고 좌우로 이동하는 양상이 나타나면(소위 지그재그 양상) 구획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평면뿐만 아 니라평면에서 나타난경계를단면 조사를통해 확인되어야한다. 봉토의 지그재그는 어느부위를조 사해도 나타나는 현상이므로 구획의 근거는 아니다. 특정 높이의 평면에서 나타난 현상을 봉분 전체 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무리이다. 따라서 본 발표에서 구획 사례로서 제시한 몇몇 고분은 구획이 아 닐 가능성이 높다. 5. 각 단계의 성토 높이가 cm로 설정하였는데, 1단계의 성토 높이로는 상당히 높다. 이 높이를 1단계의 성토 공정으로 쌓아 올리게 되면, 한계성토를 초과할 수 도 있다. 특히 기계에 의한 강제다짐 기술이 존재하지 않는 삼국시대의 토목기술로는 어려울 수 있으므로 성토 단계를 세분할 펼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I 95
97 6. 토괴 활용방식의 세 번째 유형으로서 토괴가 석재나 판재와 함께 구획재로 사용한 유형이 신 라 가야의 고총고분에서 확인되었다고 하였는데, 구체 사례가 제시되지 않았다. 사례가 있다면, 흙 을 서로 엇갈리게 쌓은 방식과 석재나 판재를 사용한 것과 어떤 기술적 차이가 있는지 설명이 필요 하다. 7. 방사상이나동심원상으로구획하는방식은봉분이 원형인 고분에 적용하기 유용한것으로 이 해하였다. 동심원상으로 점토괴를 쌓는 기술은 동심원상 구획 내부의 봉토가 외측으로 밀려나가는 현상을 방지하는 목적도 있지만 그보다도 봉분 상부에 구축된 매장주제시설이 봉토의 이완에 의해 붕괴할가능성을미리 차단하기 위한토목공법으로보아야한다. 실제봉분외형이 원형이 많이 조영 된 영남지역의 고총고분에서 동심원상 구획이 된 사례는 거의 확인되지 않았다. 매장주체시설이 지 하 또는 반지하에 구축되었거나 매장주체부를 구축하면서 봉분 심부를 만들어 외연을 확장한 고분에 동심원상 구획은 확인되지 않는다. 고성 기월리고분의 경우 동심원상 구획의 가능성이 있는데 기윌리 고분 역시 봉분 상부에 매장 주제시설이 설치된 구조로 파악된다. 따라서 동심원상 구획은 봉분의 외형과 관련되었다기 보다 매 장주제부의 구축 위치와 깊은 상관성을 지닌다. 고성 송학동 율대리 내산리고분군 등 고성 지역 고총고분의 특징일 가능성이 있다. 8. 옥야리 방대형고분의 축조 단계 설명과 매장주체시설의 구조에서 횡구식석실로 이해하고, 주 검과 부장품을 안치한 후 남쪽 단벽 상부를 쌓고, 개석을 덮고, 개석 위의 상부 봉분을 조성하였을 것 으로 추정하였다. 그리고 남쪽 단벽 앞쪽은 loocm 높이까지 거의 수직으로 구축묘광을 조성한 후 그 위에 길이 300cm, 너 비 167cm, 갚이 70cm로 확인되었고, 이 양상을 묘도로 추정하였다. 유사한 구조 를 한 신흥 고분의 매장 프로세스는 벽석 축조 시상대 설치 폐쇄석 시신안치 개석 폐쇄 순으로 설정하였다. 옥야리 방대형고분과 신흥고분의 매장프로세스가 위와 같다면 일반적인 횡구식석실과 는 매장 프로세스가 이질적이다. 횡구식석실은 봉분을 조성하면서 어느 시점(대개 매장주체시설의 구축 시점)에 묘도를 만들고, 매장주체시설을 구축하면서 횡구부를 만든 후 개석을 덮고 개석 위에 상부 봉분을 조성한 후, 묘도와 횡구부를 통해 주검(또는 주검 안치시설 포함)과 부장품을 들여놓은 후, 횡구부를 돌 또는 돌과 흙을 채워 넣어 막고, 최종적으로 묘도를 메운다. 횡구부는 석실 안쪽에 서 막지 않고 바깥에서 채우기 때문에 채워 넣은 부위의 내면은 석실 안쪽으로 기울지 않고 바깥쪽으 로 기울게 된다. 그런데 옥야리 방대형 고분은 구축 묘광 높이가 바닥에서 묘도 바닥면까지 수직 높 이가 loocm 에 이르러 깊고 횡구부로 파악한 부위의 내면은 북벽과 동일하게 석실 안쪽으로 기울어 져 있는 등 횡구식석실의 특정은 확인하기 어렵다 9. 옥아리 방대형고분과 신흥고분 석실의 공통점은 벽체에 목주를 세운 점이다. 석실 벽체에 목 주를 설치한 것은 석실 구축의 기술적 미비 및 외부로부터의 영향(모방?)의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상 기의 2 기 석실 구축에 사용한 석재는 두께가 앓고, 거의 가공하지 않는 자연석에 가깝다 벽체를 구 축하기 위한 벽석재로서는 좋지 않는 재질이다. 이외에도 벽체에 목주가 설치된 예로는 창녕 교동 3 호분, 달성 성하리고분, 함양 백천리 1-3호분 석곽이 알려져 있다. 교동 3호분과 성하리고분의 석실 벽체에 사용된 석재는 퇴적암으로서 석재가 양호하지 않고 백천리 1-3호 석곽은 뱃돌로서 표면이 매 끄럽다, 3기 모두 벽체 구축에 사용된 석재가 약점을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이 2기는 석재의 96 I 고분을 통해 온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98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목주를 세우고 목주에 횡으로 나무를 걸쳐 架 構 를 만들어 벽체를 구 축한 공통성이 있지만, 기술의 교류로 이해하기는 무리이다. 목주를 세운 사례가 일반적이지 않고, 시기나 분포지역의 공통성은 물론 서로 연계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옥야리 방대형고분과 신 흥고분의 석실 구축에 목주를 세운 것은 이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석재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자 체적인 개발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10. 고총고분의 봉분과 매장주체시설 조성에 적용된 토목 기술과 성토재는 해당 지역의 자연 지질조건(주변의 토양과 석재가 지닌 특성) 봉분 규모와 형태, 매장주체시설의 종류와 구조 및 재 료, 매장주체시설 구축 위치(지하 반지하 지상 등), 매장주제시설과 봉분과의 관계, 당시의 적용 가능한 토목 및 건축기술 조영집단의 매장관념 등 다양한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위의 요소 들을 유기적으로 연계하여 고총고분을 이해하여야 하며 특정 현상이나 요소만을 근거로 정치적 관 계를 연계하는 것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I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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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05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이 영 철 (대한문화재연구원). 머리말 고 분 -황 치 닙 - 조 단 세 죽 씨 고 분 대 v. 맺음말 여 이 커 口 서 켜 ( ) 토 과 대 페 외교 를.머리말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은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가흥리 430 번지 일원에 위치한다. 고분 동쪽 으로는 영산강 본류로 합수하는 문평천이 흐르고 있다. 마을 주민들의 전언에 의하면 신흥고분 주변 에 조산 으로 불리운 7기의 고분이 있었다고 하나 경지정리사업으로 인해 모두 훼손되었고, 가장 큰 조산인 신흥고분만이 암반 기반층이 드러난 연유로 잔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고분이 위치한 구릉은 마을 뒷산에서 바라다 보이는 형세가 마치 자라와 같다고 하여 자라봉 으로도 불리우고 있다 년 나주시 문화유적분포지도 작성과 관련해 실시한 지표조사를 통해 고분 유적으로 보고되었다(목 포대박물관 1988). 보고서 내용을 참고해 보면 북쪽이 방형이고 남쪽은 원형을 띠는 전방후원형 고 분일 가능성이 언급되어 있다. 고분은 이후 2012 년 12월 시굴조사를 통해 매장주제 관련의 할석재가 노출되고, 일정 범위에 서 분구 흔적이 확인하였다. 이를 계기로 2013 년 8월 1차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대한문화재연구원 ). 그러나 1차 발굴조사는 현지 사정으로 인해 분구에 대한 전면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함 으로써 고분 분형에 대한 이견이 제기된 상태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고분 동쪽으로 흐르는 문평천 건너편으로는 복암리고분군 랑동유적 다시들유적 등이 위치하 고 있으며, 상류 북서쪽으로는 영동리고분군이 자리하고 있다. 일찍이 다시면 복암리 일원은 시종 반남 중심이었던 영산강유역 옹관고분사회의 또 하나의 중심지로 알려져 오고 있어 역사적으로도 매 우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1차 발굴조사에서 드러난 주요 성과들은 기존의 일반화된 인식과는 상반된 내용들도 포함되어 있어 신중한 검토를 요구되고 있다. 특히 사적으로 지정(고시)된 복암리 영동리 고분군 집단과 가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I 99
101 흥리 신흥고분 집단 사이에 벌어졌던 관계를 밝히는데 주요한 자료를 제공하였다. 더불어 영산강유 역에 고총고분이 출현하는 5세기 중엽 전후, 지역 단위 간 관계 변화가 어떻게 전개되었는가에 대한 답을 풀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발표자에게 신흥고분의 대외 교류상과 연대관 이라는 주제 를 제시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요구되었다고 본다..고분현황 1차 발굴조사에서는 고분의 일부 분형, 주구, 매장주체부와 더불어 합구식 전용옹관 2기와 수혈 주거지 등이 확인되었다. 조산(자라봉) 으로 부른 구릉 대지상에 가장 선행했던 유구는 수혈주거지 로서 4세기에 축조된 이후 화재로 소실되었다. 분구 기저부에서도 수기의 수혈주거지 윤곽선들이 확 인되고 있어 소규모의 취락이 고분 축조 이전에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후 주거 공간은 5세 기 중엽을 전후해 전방후원분이 축조됨으로써 묘역으로 탈바꿈하였고 전용옹관의 단독묘들이 5세 기 후반까지 들어서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본 장에서는 고분 중심으로 조사 현황을 정리해 보았다. 1. 분형과축조공정 1) 분형에 대한검토 신흥고분의 분형은 조사 이전부터 여러 가지 의견이 제시된 바 있다. 발굴조사가 부분적으로 완 료된 현 시점에서 분형에 대해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1차 발굴조사를 진행하면서 확인된 몇 가 지 내용을 종합해 볼 때 전방후원분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첫째 분구는 조사 이전부터 자리했었던 민가 조성으로 인해 분구 서쪽 부분은 일부 변형된 상태였다. 민가가 조성된 지점은 방 부와 원부가 이어지는 외연 지점인데, 광주 명화동 전방후원분도 이와 유사한 현상이 있어 참조되었 다 둘째, 영산강유역에서 그간 조사된 제형이나 방형, 원형 고분의 경우 매장주체부가 분구 중앙에 위치한데 반면 전방후원분은 중앙의 한쪽으로 치우친 지점에 자리하는 경향을 보인다. 신흥고분도 매장주체부가 분구 중앙에서 서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점에서 상통된다(사진 3). 셋째, 기획 축조된 고분의 1. 2차 구획열의 중심부가 매장주제부 지점이 아닌 북동쪽으로 벗어나 있고, 이 를 기준으로 분형을 복원 시 원부와 방부가 연결되는 중심 지점에 위치한다는 사실이다. 방형이나 제형 분구를 추 정 복원하였을 때는 구획열의 중심지점을 기준으로 여타 분형의 복원이 어렵다. 넷째, 북쪽과 동쪽 일부 지점에서 확인된 주구의 평변형태가 전방후원분의 방부 주구와 동일한 형태를 띠고 있으며, 분 구 내연을 따라 확인된 목주 흔적들도 이를 뒷받침 해주고 있다. 이상의 내용을 근거로 고분의 규모 를 복원해 보면, 분구는 전체길이 31.4m 내외, (추정)원부 직경 19.7m, 원부 높이 1.8m, (추정)방부 길이 11.7m, 방부 너비 7.2m로 원부에 비해 빙-부의 길이가 짧은 편이며, 원부의 동-서 직경보다 방 부의 끝자락 너비(동-서)가 넓은 평변 형태의 분구가 복원된다. 2) 분구축조공정 고분은 6m 높이의 나지막한 단독 구릉 정상에 성토하여 분구의 고대화를 극대화시키려는 의도 100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02 를 두고 축조되었다. 분구 축조 공정 순서는 다음과 가장 높은 지점을 수평으로 절삭 하여 매 장주체부 위치를 선정하였다. 이는 일본의 폐 出 LO 慣 Ji찢 造 와 유사한 방법으로 가야지역 고분 축조에 서도 확인되고 있다, 다만 영산강유역 고분 축조에서는 아직 사례가 평탄 대 지에는 전체적으로 점질이 강한 토괴를 깔아 분구 정지층을 완성하였다. 이후 기획했던 분형의 중 앙 지점을 기준으로 사암재 석재를 주로 이용한 1차 구획열을 완성하고 그 사이를 채우는 방식으로 1 2m 높이 의 17-~ 성토층을 완성하였다(구획성토). 그리고 다시 점토괴와 석재(사암재)를 혼용해 구 획열 (2차)을 설정한 후 2차 구획성토를 진행하였다(사진 1). 이 과정에서 매장주체부가 자리한 절삭 변 부분은 비 워둔 상태로 남겨 두고 외연은 말발굽 모양의 토제 모양으로 성토하였다. 이와 같은 축 조방법은 일본 전방후원분 축조공정과 같다(권오영 2011). 분구 서쪽으로 열린 말발굽 모양의 토제 입구는 횡구부로 시신이 운구되는 묘도 기능의 통로가 되며 성토 작업과정 중에는 작업로로 이용된 다( 俠 山 池 博 物 館 2001). 이 단계는 일종의 구축묘광이라 할 수 있다. 분구 성토재는 대부분 인공토 로 주구와 구릉 아래의 토양을 채토하여 매장주체부를 본격적으로 구축하는 공 정 단계로 시신이 안치될 내부 공간 중심에 대형 판석을 깐 후 장방형의 목곽 골조를 세우고 토제 사 이의 빈 공간은 벽석재와 점토괴를 이용해 이중으로 채움하는 과정이다. 목곽 골조 사이에 쌓아올린 벽석재는 일시에 쌓지 않고 일정 높이의 단위를 두어 진행하였다. 이는 구축묘광과 벽석재 사이의 함 께 채웅한 점토층을 통해 알 수 있다 벽석재 구축은 점토와 동시에 진행함으로써 목곽 골조의 견고 함을 무너짐을 방지하기 위한 공법으로 서쪽 단벽 부분을 남긴 자 형태로 결 구하여 수혈계횡구식 구조를 염두한 기획이 엿보인다. 동쪽 횡구부는 오푼된 상태로 1차 분구를 완 성한 단계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2차 발굴조사에서 확인할 목조 골 조 상단까지 동일 방식으로 쌓아올려 성토부는 말굽형으로 열린 횡구부 쪽의 묘도를 통해 시신을 운 반 안치한 다음 입구를 판석으로 막음한 후 할석을 뒷채움하고 점토괴로 묘도를 봉하는 순으로 진행 되 었다. 동시에 3매의 개석을 목곽 위에 놓은 후 분구를 최종 완성하였다. 사진 1. 분구 구획성토 구획 열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1101
103 3) 성토재 이러한 분구 축조 공정과정은 분구 트렌치 조사 결과를 토대로 복원한 것이다. 트렌치 조사결과, 북쪽트렌치의 중앙지점에 대형 할석과 회백색 점토가 집중되어서 확인되는데 이는 최초 정지층 작업 후 이루어진 구획성토의 기준열에 해당된다. 구획에 사용된 할석은 주구를 굴착하는 과정에서 보이 는 사암재 할석으로 매장주체부의 사용된 벽석재와는 구분된다. 1차 성토층이 진행된 내 측면은 암 회색 또는 회색 니질의 점토브력을 만들어 성토하였는데 이는 분구 외측의 성토재가 내측으로 흘러 내리는 현상을 방지하려는 의도로 판단된다(사진 2). 다만 서쪽 트렌치 상에서는 다른 트렌치와는 달 리 매장주체부와 1차 분구 성토층과의 간격이 좁은 관계로 점토브릭은 사용되지 않았다. 분구에 대 한 부분 조사만이 진행되어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이러한 양상은 매장주체부의 묘도와 관련하여 가장 마지막에 성토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l차 성토층이 완성된 이후 다시 매장주체부 북동쪽 지점을 기준으로 방사선 모양의 구획성토 작 업이 진행된다. 구획열에는 회백색 점토브릭 할석재 점토블럭+석재 등의 다양한성토재를 이용하 였다. 구획열 내부는 암갈색사질토+암반알갱이를 혼용한 점토괴를 만들어 채워나가는 방식으로 성 토하였다(도변 1). 점토괴를 사용해 분구를 축조한 사례는 영암 옥야리 방대형 1호분(사진 5) 태간 리 자라봉 전방후원분, 무안 덕암 1. 2분과 고절리고분, 나주 장동리고분 복암리 3호분 신촌리 9호 분, 해남 만의총고분, 함평 표산 전방후원분, 화순 농소고분 등에서 확인되고 있다. 사진 2. 성토재 2. 매장주체부 구조-수혈계횡구식석실인가, 목곽인가? 매장주제부는 고분의 원부 중앙에서 서쪽으로 약간 치우쳐 위치한다. 축조 순서는 정지층 위에 대형 판석재를 놓고 [ 형태의 목곽 골조를 설치한 다음 골조 바깥쪽과 토제 사이의 빈 공간 을 할석재와 점토괴로 재움하여 목곽의 흐트러짐을 방지한 공정을 마친 후 - 대형 판석재 위에 2점 의 토기를 매납하고 잔자갈로 덮어 시상부를 마련하고 목관을 운반한 후 입구(서벽)를 판석으 로 막음하고 개석을 덮는 순으로 확인되었다 이와 같은 축조 공정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목곽 골조와 골조 외면에 채웅한 벽석재의 기능에 따 라 매장주체부의 구조가 달리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다. 벽석재는 양 장벽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3개의 각주목( 角 柱 木 )을, 동단벽에는 1개의 각주목을 세 1021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04 워 만든 목곽 골조 사이에 덧대어 쌓았다. 벽석재 내면은 어느 정도 고르게 확인되긴 하나 전체적으 로 불규칙한 것으로 보아 목조 골조 내면에 판재를 선 결구한 후 벽석을 축조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 를 전제한다면 일종의 목곽과 같은 판재 뒷면으로 30cm 내외 크기의 할석을 덧대는 방식으로 쌓음 으로써, 벽석재는 석곽의 벽석이 아닌 목곽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물로 해석될 수 있다. 동 남 북 으로 둘려져 쌓아올린 벽석재들은 구축묘광 사이에 채움토된 점질토와 동일하게 분구의 토압으로부 터 목곽을 견고히 보호하기 위한 기능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 공정에서 판석을 세워 막음한 폐쇄석 뒷부분에도 동일한 할석의 벽석재가 채워져 있다는 점에서 석실의 벽석으로 보기는 어렵다. 벽석 내 면이 고르지 않고 불규칙한 상태로 밀려들어와 있다는 점, 개석 위의 성토부가 두럽지 않음에도 불 구하고 반파되어 석실 중앙에 함몰된 점, 개석의 너비가 목주 골조보다 좁다는 점, 바닥의 대형판석 과 개석으로 사용된 판석이 정밀하게 가공된 치석기술을 보유함에도 불구하고 벽석재들은 다듬어지 지 않은 할석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수혈계횡구식석실의 벽석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매장주체부는 목곽 구조로 이해된다(사진 5). 목곽 내부에서 출토된 유물은 잔자갈 시상부에서 단경호 2점, 살포, 대도, 철모, 옥 등이 출토되 었으며, 상당 수의 관못류들도 꺾쇠와 함께 함께 수습되었다. 관못과 꺾쇠는 목관을 결구에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자갈 시상대 퇴적토에서 수습된 단경호 2점은 흐트러진 출토 상태로 보아 관외 부장 토기로 판단된다. 반면 관내에는 살포 대도 철모와 같은 철기류와 시신에 착장된 옥류 만을 부장하 였다. 결국 매장주체부는 목관을 안치한 목곽 구조로 볼 수 있겠다. 한편 조사 당시 여러 이견이 개진되었던 조형토기와 관련해서는 서쪽 단벽에 재굴착된 굴광 내 에서 출토되었다는 점에서 최초 분구 조성 시 매납된 유물이 아님을 밝힌다. 조형토기는 서쪽 단벽 을 막음 폐쇄한 판석 위에 매납된 것으로 파쇄된 수점의 완형토기와 함께 수습되었다 이는 분구 완 성 이후에 행해진 고분 제사 관련의 매납용 토기라 할 수 있다. 3. 주구 주구는 분구의 북쪽과 동쪽 외연에서 확인되었다. 주구는 훼손 상태가 심하고 조사의 한계로 인 해 전면적인 노출이 진행되지 못한 상태이다. 서쪽과 남쪽의 경우도 가능한 범위에서 일부 트렌치 조사만 이루어졌는데, 부분적으로 주구 윤곽선이 확인되었다. 북쪽 주구는 기반암이 노출되는 부분 은 얄게 굴착하고 기반암이 확인되지 않은 부분은 깊게 굴착하는 등 암반층과 같은 토질의 여건에 따 라 깊이를 달리하였다. 주구의 단면형태는 완만한 U 자형으로 너비는 7.2m, 잔존 최대 갚이 104cm 이다. 유물은 잔존하는 주구 중앙의 가장 김은 지점에서 전체적으로 확인된다. 기종은 비교적 단순 한데 대부분 호류가 출토되었으며, 그 외에도 분주토기, 발형기대, 장란형토기, 완형토기 등이다. 북 쪽 주구와 연결되는 동쪽 주구는 역제형에 가깝게 노출되어 전방후원형의 방부 주구와 닮아있다. 이 는 주구 내연을 따라 확인되는 주혈의 방향과도 일치되는 것으로 분형 기획과 관련된 것으로 판단된 다. 이와 유사한 사례가 영암 태간리 자라봉 전방후원분에서 확인된 바 있다.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1103
105 Ill. 축조 집단의 성격과 대외교류 고분 발굴조사 내용의 정리가 완전하게 마무리되지 않는 상태에서 축조 집단의 성격과 대외교류 관계를 논하는 것이 다소 성급하다는 염려가 있다. 따라서 본 장에서는 앞서 살펴본 고분 현황 내용 에서 드러난 주요 내용과 관련해 구체적 실상을 논하기 보다는 차후 해석적 틀을 마련하기 위한 가 설적 견해를 제시하는 정도로 기술하고자 한다. 1. 지정학적 위치를 통해 본 고분 축조세력의 성격 고분은 영산강 본류로 합수되는 문평천 하류에 위치한다. 현재 문펑천 수계는 하천 정비사업에 따라 물길이 일부 변형되어 과거 물길과는 다르다. 이를 참조할 때 고분이 자리한 지점은 영산강 본 류에서 문평천으로 들어서는 초입부에 위치함을 알 수 있다. 물론 천 건너편 동쪽으로는 다시들유적 과 복암리 고분군이 위치하지만 하류로부터 다시들이 펼쳐진 지금의 복암리 일대에 접근할 때는 가 흥리 일원을 먼저 접하게 된다. 현재까지 조사된 다시들 일원의 유적 분포에서 보면 신흥리 일대와 복암리 일대 그리고 영동리 일대로 나뒤는 세 개의 소지역 집단이 상정된다. 복암리와 영동리 집단 의 성격과 관련해서는 그간 진행된 발굴조사 결과를 통해 3세기부터 주거와 고분이 어우러진 취락이 형성된 후, 5 7세기에 이르러 영산강유역의 중핵거점으로 성장한 세력이 자리했음이 알려져 있다, 가흥리 세력 또한 고분 축조 이전에 존재했던 4세기 취락이 확인되어 복암리 영동리와 동일한 경관 을 갖는 집단의 존재를 읽을 수 있다. 그런데 5세기에 접어들면서 문평천 수계의 자리한 집단 사이에서 차별화된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러한 현상은 고분 자료에서 찾을 수 있는데 복암리나 영동리 집단의 경우 전통적인 제 형 고분을 축조하고 있는데 반해, 가흥리 집단은 전방후원분을 축조하고 있는 것이다, 복암리 일원 의 집단은 복암리고분군과 다시들유적에서 드러나고 있듯이 전통적인 제형 고분들이 3 5세기에 축 조된다. 제형 고분은 복암리 1 2호분 사이에서 조사된 A E호분, 2호분 선행 제형 고분, 3호분 선 행 제형고분, 그리고 다시들유적 2구역 1호분 등으로 분형이 공통된다. 나주문화재연구소에서 조사 한 l 6차 발굴조사 구역에서도 4세기를 전후해 축조된 제형 고분이 5세기 중 후엽까지도 지속됨 이 확인되었다. 제형 고분은 5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점차 방형 고분으로 변형 확장되는 현상이 나타 난다. 영동리 일원의 집단 또한 동일한 양상을 띠는데, 가장 선축된 영동리 4호분이 제형분으로 확 인되고 있다, 4호분은 3세기 후반에서 4세기 전반에 걸쳐 두 차례 확장 축조되었는데, 분형의 확장 축조 현상은 복암리 일원은 물론 영산강유역 제형 고분군에서 일반화된 내용이다. 제형 고분은 다장 전통으로 복수의 매장시설이 분구에 안치되며, 매장주체는 옹관묘와 토광묘이다. 이에 반해 가흥리 일원의 집단은 동일하게 제형 고분을 축조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5세기 중엽에 이르러 전방후원분이 출현한다. 이 시기 복암리 (2. 3호분)와 영동리 (1호분) 집단은 전통적인 제형 고분을 조정 확장해 방 형 고분으로 변모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영산강유역에서 방형 고분의 출현은 5세기 중엽 축조된 영암 옥야리 방대형고분을 시작으로 6세 기 전반까지 확산된다. 반면 전방후원분은 6세기 전반에 동시 다발적으로 출현한 분형으로 알려져 1041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06 왔다. 따라서 가흥리 신흥고분(전방후원분)의 출현은 그간 알려진 내용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것으로 적잖은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 또한 분형에 대한 이견은 차치하고라도 매장주체 구조, 분구 축조와 관련된 토목기술 내용에서 영산강유역 고대사회를 해석하는데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2. 고분 축조에 반영된 토목기술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 발굴조사에서 드러난 분구 축조방법은 철저한 사전 기획을 바탕으로 일정 한 공정 과정으로 진행된 토목기술이 반영되어 절삭하여 분구를 성토함으로써 분 형의 고대화( 高 大 化 )를 염두한 외연에 분형과 관련된 일종의 목주를 세워 평면 형태를 기 획한 분구 중앙지점을 기준으로 할석과 점토괴를 사용해 기준열을 설정한 후 구획성토한 마련한 후 목곽을 보호하기 위해 석재와 점토괴를 이중으로 채웅한 담은 운반구(목관)을 안치한 후 분구를 완성한 할석재가 아닌 정밀한 치석 작업을 통해 대형 판석재를 가공한 점 등은 5세기 중엽 이전까지는 영산강유역 고분 축조기술과 장제풍습에서 보 이지 않던 새로운 요소인 같은 특징은 년 발굴조사 되어 보고된 영암 옥야리 방대형 1호분에서 도 확인된 바 있어 두 고분의 축조기술이 매우 유사함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옥야리 방대형 1호분의 축조기술 또한 그간 이 지역 사회의 고분 축조기술과는 매우 이질적인 요소로서 새로운 선진 토목기 술의 반영 결과물이다. 특히 기반층을 절삭한 공법이나 대형 판석의 치석기술, 목주를 세워 분형의 평면 형태를미리 염두한기획력 등은 일찍이 재지사회에서는찾아볼수 없던 토목기술이다. 전통적 인 제형 고분의 축조기술은 주구에서 채토한 흙을 분구 성토 범위 내에 쌓아올린 단순한 행위로써 상 징성을 갖는 분구의 개념보다는 묘역을 조성하는 수준의 성토 결과에 불과할 수 있다(이영철 2014). 따라서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 축조는 방대형 고총고분의 출현과 더불어 확인되는 새로운 토목기 술의 등장을 의미한다. 5세기 후반에 축조된 방형 고분고총과 전방후원분에서도 동일한 토목기술이 채용된 배경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이는 고분 축조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5세 기 중엽을 전후해 출현한 거점취락에서도 인공 수로와 도로, 수리시설 대형 건축물 등이 새롭게 건 설되며, 광주 동림동 취락과 같이 충적대지를 개척하여 도시 규모의 취락을 건설하는 등 사회 전반 의 경관 변화를 유도한 새로운 토목 기술체계가 확산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3. 목곽의 이해-영암 옥야리 방대형 1호분과의 비교 검토 목곽을 갖춘 고분의 매장주체부는 전용옹관과 목관 중심으로 완성된 다장의 제형 고분과는 다른 구조이다. 이와 가장 유사한 구조는 영암 옥야리 방대형 1호분 석실을 들 수 있는데, 비교 검토해 보 겠다. 1호분 석실은 장벽석 쪽에 세운 각주목과 횡구식 구조를 갖는 점은 일치하나, 바닥석과 개석 은 치석하지 않은 할석재를 사용한 것과 입구 맞은편의 단벽석 쪽에는 목주 흔적이 없는 점은 다르 다. 한편 편평 할석을 이용해 축조한 벽석의 내면이 다소 불규칙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적할 수 있지만, 벽석 바깥의 성토부와 관련해 전면적 조사가 진행되지 않아 동일한 분구 축조 공정이었는지 는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구축묘광과 관련된 점토괴가 석곽 주위로 둘러져 있다는 점에서 나주 가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1105
107 흥리 신흥고분과 같이 구조였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석실 내부에서는 꺾쇠 2점이 출토되었지만, 이를 목관과 관련한 근거로 제시하기는 다소 주저된다. 다만 바닥석에서 주칠 흔적이 횡구부 안쪽 의 일정 범위에서 확인된 현상은 목관이 아니더라도 주칠된 시신 운반구를 놓았을 가능성은 충분하 다. 목관 안치 가능성이 높은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 바닥에 깔린 시상대(소형 천석) 조사과정에서도 주칠 관련의 흔적이 관찰되었다는 점과도 일치한다 두 고분은 운반구의 종류에서 다소 차이가 있었 을지 모르지만 주칠 내지는 관못의 확인 범위에서는 일치되는 부분이 있다. 부장유물에서도 두 고분은 유물의 종류와 성격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바닥면 가까이에서 출 토된 장경호와 유공광구소호가 파쇄된 상태로 수습된 점을 고려할 때 부장유물보다는 공헌 목적의 훼기용 토기로써 시신에 직접 부장한 유물이 아니라는 공통점이 있다. 고분 피장자 성격과 관련해서 는 부장 철기류에서 구분된다.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에서는 일종의 상포가, 영암 옥야리 방대형 l호 분에서는 갑주가 상징적 유물로 출토되어 대조를 이룬다, 매장주체부 내에 목주를 이용한 사례는 그간 가야 신라지역에서 주로 확인되고 있었다. 창녕 교 동 3호분(횡구식석실), 김해 양동리 93(수혈식석곽) 95(수혈식석곽), 대구 성하리 7그리드 2호분 (횡구식석실), 대구 성하리 삼국시대 봉토분(횡구식석실), 함양 백천리 1-3호(수혈식석실) 등이다 이 가운데 목곽을 구축하고 목주 사이에 할석으로 석축 시설한 경우는 창녕 교동 3호분과 대구 성하 리 삼국시대 봉토분으로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과 영암 옥야리 방대형 1호분과 유사한 구조를 띤다. 다만 창녕 교동 3호분과 남원 월산리 5호분과 같이 바닥에 목주를 놓은 구조는 나주 가흥리 신흥고 분에서만 확인되고 있어 차이가 있다 (도면 2-1). 5세기 중엽 가흥리 일원에 출현한 목곽 구조는 영암 옥야리 일원에서 확인되지만, 동일 수계인 문평천 일대의 복암리나 영동리 집단에서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4. 대외교류에 관한 해석적 틀 고고학에서 대외교류와 관련해 검토 대상이 되는 고고 자료는 주로 유구나 유물을 통해 이루어 진다.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은 분형과 축조기술, 매장주체구조, 출토유물 등에서 영산강유역의 전통 적인 제형 고분 내용과는 다른 신문물 요소들이 확인된다. 이를 토대로 대외교류 관계 내용을 살펴 보자면, 백제, 가야, 왜 세력 등의 중앙 혹은 지역 집단과의 관계를 설정할 수 있다. 분형과 관련해 서는 백제, 왜의 중앙이나 지방 세력과의 관계를, 축조기술에서는 백제와 가야, 왜 세력과의 관계를 검토할 수 있다. 그리고 매장주제 구조는 가야지역과 출토유물은 백제, 가야, 왜 등과의 관계 속에 서 검토된다. 다만, 이러한 대외교류 관계 검토는 그 범위가 영산강유역권을 벗어난 지역과의 관계 라는 점에서 광의적 의미의 대외교류에, 내부 지역 단위 간의 관계는 협의적 의미의 대외교류로 구 분할 수 있다. 예를 들변 영산강을 배경으로 성장한 나주 가흥리 집단과 영암 옥야리 집단의 대외교 류관계가해당된다. 그런데 대외교류 관계를 협의적 의미에 한정하거나 광역적 의미로 확대하더라도 공히 주체와 객 체의 관계 설정은 불가피하다. 이는 외부 집단과 관계되는 발굴 자료를 어떤 입장과 시각에서 바라 볼 것인가에 대한 문제와도 직결된다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08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에서 확인된 신문물 요소들 또한 연구자의 출발점이 어느 쪽에서 시작되는 가에 따라 대외교류 관계에 대한 해석이 달리 될 수 있다. 재지 집단의 주체 세력들이 지속해오던 외 부와의 대외관계 속에서 지배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표명하기 위해 수용한 결과물로 해석(내부적 입 장)할 수도 있을 것이며, 외부 세력의 이입과 정착 과정에서 반영된 신문물의 결과로써 해석(외부적 입장)할수도있다. 본 절에서 보고서 작업이 아직 진행 중인 관계로 유구나 유물의 직접적 비교를 통한 대외교류 문 제는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겠다. 다만, 물질자료의 해석과 관련해 접근하는 입장과 시각의 차이에 따 라 결론적 내용이 다르게 드러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 해석적 틀을 살펴보고자 한다. 1) 내부적 입장의 해석적 틀 재지 집단의 주제 세력들이 지배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보다 강화할 목적으로 관계를 유지해오던 외부 집단의 신문물을 수용하였다는 입장에 해당된다. 영산강유역의 경우 마한과 백제의 관계 내용 과 결부되는 것으로, 중앙과 지방이라는 상 하적 입장이 아닌 수평 내지는 독자적 입장에서 해석코 자하는틀에 해당한다. 따라서 백제 중앙보다는지방세력 내지는가야나왜의 지역 집단들과대등한 관계에서 진행된 교류의 산물로 이해하려는 견해들이 제시되고 있다. 또한 고고학적 자료 결과물을 국가나 이에 준한 정치체 영역 속에서 진행된 지배적 관계 속에서만 바라볼 게 아니라 지역 간의 교류 속에서 수용 채택했던 산물로써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주체적 시각도 포함된다. 이 같은 입장은 대 외교류 문제에 있어서 다소 방어적이고 주관적 입장으로만 비춰질 수 있는 해석적 틀이라 할 수 있다. 발표자는 이러한 가설이 전개되기 위해서는 교류 라는 개념과 주제의 정리가 우선될 펼요가 있 으며, 상호 대등한 관계의 충분한 설명 또한 근거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내용 설명이 부 족하다변 신문물의 고고학 자료 출헌을 내부적 입장에서 주장하는 부분은 한계를 갖게 될 것이다.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에서 확인된 신문물 또한 그와 관련된 지식과 경험을 보유한 인물의 존재 를 우선 전제해야 한다. 그 주인공은 신문물이 선행되었던 타 지역과의 교류를 통해 새로운 정보를 인지한 인물이며, 출자 집단의 고분 축조에 이를 반영시킨 주체적 인물일수도 있는데, 이 경우 집단 의 권력을 대표하는 정치적 성격의 우두머리가 필요하다. 반면 고분 축조에 직접 관여한 토목기술자 와 같은 인물을 상정할 수도 있는데, 내부 기술자인 경우는 타 지역 파견 후 귀환이라는 가설이 필요 하며, 외부 기술자와 관련해서는 타 지역과의 관계 성격이 밝혀져야 한다. 다원적 요소를 담고 있는 신흥고분의 경우는특정 지역 집단만을지목하기가쉽지 않다. 따라서 보다광역적인 영역을갖는주 제를 대상으로 한 관계 검토가 필요하다. 출토유물 내용은 우선 배제하더라도 고분의 분형과 축조 치석기술, 목곽 구조와 관련된 다원적 요소를 염두 할 때, 집단을 대표하는 정치적 인물의 주도로 신 문물이 채용되었다고 보기는 쉽지 않다. 즉 백제 중앙 혹은 지역 세력은 물론이고 가야나 왜의 세력 등과 다원적 대외 관계를 전개할 수 있는 인물의 출현을 상정하기 위해서는 문평천 수계에 공존했던 복암리 영동리 집단을 아우르는 대표성이 확인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자료에서 이를 입증 할만한 근거를 제시하기는 어렵다.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1107
109 고분의 분형과 축조에 반영된 토목 치석기술, 목곽 구조와 관련된 내용은 선진적 토목기술이 다. 때문에 선진적 토목기술을 내부적으로 수용하였다면, 지배 집단의 고분 축조에서 확산 발전되 는 것이 당연할 것인데 연속적인 흔적들을 찾을 수 없고 단절된 양상이다. 복암리 96석실이 축조되 기 이전까지 복암리와 영동리 집단에서는 제형 고분이 지속되며 토광과 옹관을 매장주제로 안치하는 다장( 多 홉) 전통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외부적 입장의 해석적 틀 다원적 성격을 보이는 선진적 토목기술의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관련 지역들과 동등 한 대외교류를 전개할 수 있는 내 적 자원(에너지)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특정 지역이 나 국가 수준의 상대와 수평적 관계의 대외교류를 전개할 수 있으며, 사람과 물자, 기술, 정보 등을 전파하거나 상호 교환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이를 설명할 수 있는 내적 자원은 딱히 제시하기가 어 렵다. 옹관고분의 출현이라는 사실만으로 설명하기도 어려우며, 영산강유역은 고래로부터 풍부한 식 자원을 생산할 수 있었다는 가설적 주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5세기 중엽 가흥리 일원에 출현한 신문물이 다원적 정보를 통괄 관장할 수 있는 권력에 의해 주도된 결과물로 인정한다면, 그 주제는 외부적 입장에서 찾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주도 세 력의 주체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가 과제로 남는다. 백제 중앙이나 지방 혹은 가야나 왜 등지에 서 나타나던 요소들이 어우러져 있는 가흥리 신흥고분의 피장자나 축조 세력을 통괄한 인물은 누구 인가의 문제를 풀어내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단정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고분과 동일한 시기에 축 조되고 가장 유사한 면을 찾을 수 있는 영암 옥야리 방대형 1호분과 관련해 검토해볼 만하다. 영암 옥야리 방대형 1호분은 구획성토( 區 뽑 lj 盛 土 )라는 기획 의도 아래 축조된 고총고분으로, 구축 묘광의 마지막 공정에서 매장주제부를 분구와 함께 완성하였다. 이러한 고총고분 신( 新 ) 축조공법은 이전의 재지 사회 고분축조 과정에서는 찾기 어렵다 분구 외연을 따라 재지화된 원통형토기를 수립한 고총고분은 분구의 고대화( 高 大 化 )를 통해 지 배 의 정당성을 극대화시키려는 의도의 건축물이다. 또한 고분의 여러 요소에서 드러나듯이 생전에 다원적 관계를 주도할 수 있었던 피장자의 위상과 역할이 매우 강력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계급의 분화로 인한 강력한 정치집단의 출현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이정호 1997). 특히 고총고 분은 이전 단계의 집단 무덤인 옥야리고분군과는 이격된 새로운 터전에 자리하였는데, 영산강 내해 의 초입부에 위치한 지정학적 공간을 점하고 있다는 점에서 영산강 내륙의 재지세력 전체를 대상으 로 고총고분의 위용과 상징적 메시지를 전달코자 했다. 방형 고분은 한강유역과 금강유역에서 한성 기에 가장 성행하였다. 따라서 방대형 고총고분이 영 산강유역 초입부에 5세기 중엽을 즈음하여 축조되었다는 부분에서는 백제의 중앙이나 지방 세력과 관련지을수 있다. 옥야리 방대형 1호분축조 이래로 영산강유역의 각지역단위에서는중 대형의 방 (대)형분이 축조되기 시작하는데, 매장주체시설의 종류나 부장유물, 여타 부수적 속성에서 다원적 출자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분형에 초점을 두어 살펴보자면, 나주 신촌리 9호분과 복암리 3 호분은 방대형분의 최고 정점에 위치해 있으며 그 다음으로 무안 고절리고분, 함평 중랑고분 등이 1081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10 확인된다. 또한 중 소형급으로는 무안 맥포리고분과 덕암 구산리고분, 나주 대안리 방두 횡산고 분, 장성 야은라고분 등이 위치한다. 이렇듯 뒤이어 축조된 거점취락의 최고 수장들이 앞 다투어 방 대형분을 채택한 이유는 지역단위의 대표들이 영암 옥야리 방대형 1호분 축조를 기점으로 형성된 백 제와의 새로운 관계질서 속에 포함되고자 하는 의도와 더불어 내부 권력을 지속하기 위한 새로운 상 징물로 받아들이면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이즈음에 지역단위 마다 복수의 중 소형급 방형고분이 축 조되면서 내부 사회의 집단별 계층 분화가 진행된다는 주장(이영철 2012)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나주 신촌리 9호분 역시 옥야리 방대형 1호분과 동일하게 재지화된 원통형토기를 분정 외연을 따라 장식하고 있다. 대형의 전용옹관만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과 분정부( 慣 頂 部 )에 한정해 다장 풍 습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옥야리 방대형 1호분과는 차별되지만, 재지화된 원통형토기로 분형을 장식 한 방대형 고총고분이라는 점에서는 분형의 위용을 통해 표방하고자 했던 상징성 표출 의도는 옥야 리 방대형 1호분과 상통된다. 반면 5세기말 방대형분으로 완성되어간 복암리 3호분 경우는 이전 시 기 분형의 외관을 통해 상징성을 표출코자 했던 방식과는 다른 선택을 하고 있다. 즉 96석실 로 익 히 알려진 횡혈식석실의 축조라는 선 택을 통해 축조집단의 상징성을 가시화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4기의 옹관을 추가 매장하면서 나름의 재지적 전통성을 유지코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었다. 그렇다 면 복암리 3호분보다 이른 시기에 축조된 가흥리 신흥고분은 왜 방대형이 아닌 전방후원분의 분형을 갖추었을까? 이에 대한 답을 명확히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피장자의 출자와 관련해 우선 검토해 보 겠다. 영암 옥야리 방대형 1호분 축조 이후 재지 사회는 방형 고분(고총)의 분형을 일반적으로 채택 한다. 반면, 가야나 왜계 고분들은 원형분과 전방후원분을 축조하였다. 5세기 이후 백제 주체의 가 야, 왜의 국제적 교류관계가 보다 활발히 진행되는 정세를 감안할 때, 다원적 출자를 갖는 분형의 출 현은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고분 연구에 있어 피장자의 출자나 축조집단의 지배 정당성과 상정성을 반영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는 분형과 매장주체부 위세품 등에서 찾을 수 있다. 발표자는 영산강유역의 경우 사비 석실이 유입되기 이전까지는 분형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 고총고분의 출현은 단순히 규모의 대소 차 이를 벗어나 지배의 정당성과 상징성을 나타낼 수 있는 권력의 산물인 것이다. 때문에 분구를 완성 해가는 과정에서 의례적 행위를 반복하여 집단의 존엄성을 표출하고 분구 외연을 분주토기로 장식하 는 외형의 화려함을 추구하였던 것이다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 축조 집단 또한 구릉 기반층을 절삭하여 이질적 분형을 축조하고 분주토 기로 분구를 장식함으로써 문평천 재지 사회에 신문물의 우수성을 보여주고자 했을 것이다. 그 주 체는 백제 중앙 세력과 관련된 인물로서 영암 옥야리 방대형 l호분 주인공과도 일련의 관계를 유지 하고있었다 두 고분의 피장자는 각기 철갑과 살포를 지닌 인물로 대비되는데 부장유물과 관련한 피장자의 출자와 성격에 대해서는 차후 검토해 볼만하다. 나주 가흥리 신홍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1109
111 VI. 고분연대검토 고분 연대 문제와 관련해서는 유구와 유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유구는 분구축조와 목곽 구조를 직접적 대상으로 검토하였으며, 후대 매장된 단독 옹관묘의 형식을 통해 보정 자료로 참고 하였다. 유물은 장례 절차 과정 중에 부장되거나 매납 훼기된 단계와 분구 완성 이후에 추가로 매 납 - 훼기된 단계로 구분된다, 1. 유구 자료를 통해 본 연대 검토 1) 목곽 고분 매장주제부는 목곽 구조로서 할석재와 점토괴를 사용해 이중으로 피복 봉합한 형태를 띤 다. 기존 연구자들이 분류한 횡구식석실 내지는 수혈식석곽 가운데 목주시설을 갖춘 구조와 닮은 모 습이다. 영산강유역에서 목주시설이 확인된 예는 영암 옥야리 방대형 1호분이 유일하지만, 가야 신 라지역에서는 여러 고분유적에서 보고되었다. 5세기 전반에 축조된 김해 양동리 수혈식석 곽을 비롯하여, 5세기 후반의 창녕 교동 3호분 횡구식 석실, 함양 백천리 1 3호 수혈식 석실, 6세기 전반의 대구 성하리 삼국시대 봉토분인 횡구식 석실 등이 알려져 있다. 김해 양동리 수혈식 석곽은 목곽에서 석곽으로 이행되는 과도기적 형식으로 벽석의 축조 상태가 불완전하다 이 점은 영 암 옥야리 방대 형 1호분 석실과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의 경우도 유사하다. 다만, 시기적으로 적게는 1/4분기에서 2/4분기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목주시설을 갖춘 구조의 연원은 김해 일원의 가야지역에서 우선 찾아진다. 연구자에 따라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과 영암 옥야리 방대형 1호분의 매장주체시설을 수혈계 횡 구식 석실(석곽)로 볼 것인지, 목곽으로 볼 것인지는 차지하더라도 5세기 중엽에 목주시설을 갖춘 매 장주체부가 출현한 것은 이견이 없을 것이다. 6세기 전후로 보편화되는 석실이나 석곽에서 아직까지 목주시설이 확인되지 않고 있는 점에서 목주의 기능이 석곽(석실)의 불완전한 축조기술을 보완하기 위한 일종의 지주목 역할로 한정시키기에는 관련 자료가 너무 부족한 게 아닌가 싶다. 2) 점토괴를 이용한 구획성토와 구축묘광 기술 도입 고분 분구 축조에 사용된 성토재는 일종의 토낭 점토브릭 표토블럭과 같은 점토괴로 사용하였 고, 구획성토하여 쌓는 구축묘광 축조기술은 제형 고분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토목기술이다. 한강유 역에서는 풍납토성을 비롯하여 길성리토성, 김포 운양동 6호분 등에서 관련 자료들이 확인되고 있는 데 한성백제 1기에 속한다. 한성백제 2 기 이후에는 백제 권역은 물론 가야, 신라지역에서도 통일한 토목기술이 반영된 고분과 산성, 제방 등이 확인된다. 영산강유역에서는 5세기 2/4 3/4분기에 해당하는 영암 옥야리 장동 1호분, 나주 가흥리 신흥 고분에서 초현한 이후, 무안 덕암고분군 1. 2호분, 나주 신촌리 9호분 복암리 3호분, 화순 내평라 고분을 비롯해 전방후원분이 축조되는 6세기 전반까지 지속된다. 이러한 토목기술의 출발은 한성 백 제에서 찾을수있다. 110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12 2. 유물 자료를 통해 본 연대 검토(사진 6) 1) 목곽내 출토유물 CD 유공광구소호(사진 6, 도변 3 4) 유공광구소호는 고분 매장주체부의 판석재 바닥석 위에서 출토되었다. 잔자갈을 이용한 시상대 를 마련하기 앞서 최초로 매납된 의례용 토기라는 점에서 고분 축조시기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유 물이다. 토기는 회청색 경질의 소성품으로 구연부 일부 깨뜨려 매납하였다. 동최대경은 중상위에 위 치하며, 저부는 첨저에 가까운 환저이다. 동제부와 이어지는 경부 폭은 좁으나 넓게 바라진 형태이 다. 경부와 구연부 경계는 1조의 돌선을 표현하였다. 기 내 외면 조정은 회전각기로 마감하였으나, 동제부 하위에는 격자 타날 문양이 남아있다. 저부 내면에는 둥근 봉상구로 눌러 첨저 형태를 갖춘 흔적이 관찰된다. 유공광구소호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근거로 일본 스에키( 須 惠 器 )로 판단된다. 동 체부와 경부의 경계 폭이 좁고 구경부가 넓게 바라진 점 구연부 직경이 동체부 최대경보다 좁다는 점, 동체부 최대경이 중상위에 위치하며 유공 부분에 돌선이 없다는 점, 저부가 첨저에 가깝다는 점, 외면은 타날 후 손으로 눌러 각은 후 물손질 조정한 기법( 十 7''), 저부 내면을 봉상구로 눌러 첨저화 한 점, 유공 내 외변을 매끄럽게 마감한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스에무라( 關 둠) 편년 TK73 TK216 형식에서 나타나는 특정으로 5세기 2/4분기에 해당된다. 일본 이와태현( 岩 手 縣 ) 나카한유( 中 半 入 )유 적, 시가현( 滋 寶 縣 ) 우에( 植 )유적, 오사카부( 大 版 府 ) ON231, 와카야마현( 和 歌 山 縣 ) 요우잔( 陸 山 )고 분, 오사카( 大 ri.&) 나가하라( 長 原 ) 45호분 출토품과 같은 형식이다. 무안 덕암고분 1호분 4호 옹관 출 토품에 앞선 스에키 ( 須 惠 器 )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저부 하위의 타날 문양과 관련해서 재지산일 가능 성을 제기할 수도 있지만, 일본 스에키( 須 惠 器 )에서도 타날 후 소문 처리한 사례들이 TK208 단계까 지도 많다는 점( 木 下 흐 2011)을 참조할 때 재지적 특정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일본 열도에서 제작 된 유공광구소호( 須 惠 器 )가 한반도에서 주로 출토되는 시기는 TK23 MT15 단계에 집중되지만, 전 남 지역 출토품 중에는 이보다 선행하는 TK 형식에 대응하는 것들이 무안 맥포리나 사창 리 덕암고분에서 확인된 바 있다( 木 下 흐 장경 (소)호(사진 6) 장경(소)호는 유공광구소호와 함께 출토된 최초 매납된 의례용 토기이다. 회청색 경질이나 소성 도가 낮은 편이다. 저부에는 방형의 축흔과 이상재가 탄화된 흔적이 관찰된다. 동체부 상위에 위치한 최대경이 구경에 비해 넓고, 전체 높이에서 동체부 비율이 크다. 구경부는 돌선이 없이 기면이 마감 되어 있으며, 저부는 말각을 이룬 평저이다. 서현주 (2006) 분류 안에 따르면 2 기의 Al형에 가까운 형식으로 영암 만수리 1호분 분구 출토품과 유사하다. 돌선이 없고 소성도가 낮은 회청색을 띠고, 저 부가 말각이며 구경 내면이 오목하게 성형된 특징으로 보아 5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살포 살포는 피장자 오른쪽 바닥에서 출토되었다. 장방형의 삽날에 나무 자루를 끼워 만든 철기이다. 현재 보존처리가 진행되고 있어 자세한 기술을 할 수 없지만 전남지역에서 살포가 출토된 예로는 고 흥 길두리 안동고분이 유일하다는 점에서 참고 연대를 제시할 수 있다. 길두리 안동 출토품은 전체길 이가 165.6cm 인데, 신흥고분 목곽 바닥의 길이가 280cm 인 것을 감안하면, 거의 동일한 길이의 나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1111
113 무 자루를 끼운 것으로 짐작된다. 살포는 지역 농업을 관장하는 수장층의 의장용 기물로 보기도 하 며(김재홍 2006), 의례 목적의 위세품으로도 이해하고 있다(김영심 2011). 고흥 길두리 안동고분의 축조 시기가 5세기 전반 (1/4분기 2/4분기)으로 논의되고 있고 백제와 관련된 왜계고분이라는 점 은 신흥고분의 경우가 동일한 현상이다. 2) 분구수립 분주토기 (도면 ) 분주토기는 개석 상면과 주구에서 출토되었다. 통B형(임영진 분류안)의 원통 형식이다. 돌대를 별도 부착하거나 끝을 외반시켜 상단에 점토를 붙인 형식들로 구분되며, 승문 타날 후 투창하였다. 투창은 역삼각형으로 추정된다. 회청색 경질 소성품이다. 이와 동일한 형식의 분주토기가 복암리 16 호 수혈 1층에서 2점 출토되었다. 복암리 출토품은 돌대가 부착된 지점을 경계로 상 - 하 분할 성형 하였다. 성형 방법은 하단 끝을 외반시켜 돌대 효과를 낸 후 상단을 없은 것과 하단과 상단을 결합한 후 돌대를 부착한 것으로 나뀐다. 상 하단을 접합 성형한 다음 돌대 아래에 역삼각형으로 투창한 후 소성하였다, 돌대 하단기면은승문을타날하였으나, 상단기면은소문처리하여 마감하였다. 회청색 경질 소성품이다. 16호 수혈은 복암리 7호분 주구를 파괴하고 굴착된 구덩이로 7호부 관련 분주토기 로 추정된다. 제형을 띠는 7호분은 5세기 후반 이후에 축조된 고분이다, 따라서 신흥고분 분구에 장 식된 분주토기 수립 의례는 5세기 후반까지 복암리 일원에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5세기 중후반 가흥리 집단과 복암리 집단의 관계 규명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3) 발형기대(도면 4. 5) 발형기대는 북쪽 주구에서 출토되었다. 구연과 배신 부분을 의도적으로 파쇄한 후 주구에 훼기하 였다. 소가야계 발형기대로 배신은 넓게 벌어져 올라간 내변에 원심원문의 내박자 흔적이 관찰된다. 대각부는 완만하게 벌어져 내려가며 3조의 돌선 사이에 장방형 투창이 3단으로 구성되었다. 각단에 도 1조의 돌선이 있다. 발형기대는 배신이 김은 것에서 알고 크게 벌어지는 것으로, 대각은 완만하게 벌어지는 것에서 곧게 뻗어 내린 것으로 변화되는데(박천수 201이, 신흥고분 출토품은 대각의 형태 와 배신 최하단의 돌선 위치 등 전체적 형태에서 진주 우수리 18호 목곽묘 부산 복천동 학소대 1구 1호묘 출토품과 가장 닮은 형식이며, 마산 현동 54호와도 비교될 수 있다. 이 가운데 진주 우수리 18 호 목곽묘 출토품은 광주 하남동 9호 구에서 출토된 발형기대와 유사함이 지적된 바 있는데(서현주 2012), 장방형 2단 투창이 뚫여있다. 신흥고분 출토품과도 비교 검토가 요구된다. 신흥고분 출토 발형기대는 연구자에 따라 견해가 다를 수 있으나, 5세기 2/4분기 3/4분기 사 이에서 완형토기(사진 6) 완형토기는 주구에서 3점, 매장주제부에서 5점이 출토되었다. 모두 파쇄되어 훼기 또는 매납되 었다. 서현주 (201이 분류안을 참조해 살펴보면, 외반 구연에 평저의 기미가 뚜렷하지 않고 기고 112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14 동체 벌어짐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외반B형에 모두 해당된다. 영산강유역 출토 외반 B형은 금강 유역권 특히 충청 북부지역의 양상과 상통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영산강유역에서는 영암, 무 안, 나주 등지에서 주로 출토된다. 외반B형 가운데에서도 4단계에 해당하는 완형토기는 정형화된 개배가 아직 나타나지 않은 단계부터 시작되며 5세기 전반의 늦은 시기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알려 져 있다. 신흥고분에서 개배가 1점도 출토되지 않는 점에서 서현주의 분류안은 타당성이 있으며, 5 세기 2/4분기에 장란형토기(사진 6) 장란형토기는 자비용기류로서 주구에서 1점이 출토되었다. 기 외면에 격자문이 타날된 적갈색 연질 제품이다. 동체부 중상위에서 최대경을 갖고 둥그렇게 내만된 후 외반된 구연부를 갖춘 형태이 다. 구연부 아래 경부를 갖지 않는 속성은 5세기 전반까지 유행한 형식으로 중엽 이후에는 경부 형 태가 뚜렷해짐을 감안할 때 신흥고분 장란형토기는 5세기 전반을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 4) 추가 6) 조형토기는 매장주체부를 포함한 분구 축조가 완성된 이후에 매납된 것으로 파쇄된 여러 점의 완형토기와 함께 횡구부 폐쇠석 위에서 출토되었다. 따라서 앞서 살펴본 유물들보다는 늦은 시점에 해당된다. 조형토기는 새나 오리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신호기( 信 號 器 )와 같은 악기의 일종으 로 보거나(최성락 1989), 기름용기로 사용된 토제품(노미선 2012), 제의 관련 기물(이영철 2014) 등 으로 해석되고 있다. 한편 김낙중 (2012)은 호남의 토기 제작기술이나 유형의 변화과정에서 금강유 역을 중심으로 한 중서부지방의 토기 구성과 유사한 범마한양식의 범주에 속한 유물로 이해하였다. 신흥고분 출토품은 평저에서 벌어져 올라가 머리에 해당되는 주출구( 注 出 口 )와 꼬리 부분이 수평 높이로 뾰족하게 성형되었다. 주입구( 注 入 口 )는 둥글며 짧게 외경한다. 이러한 형태는 김영희 (2013) 분류안의 IIB유형에 해당되는데 복암리 랑동 7호 주거지에서도 출토된다. 신흥고분 조형토기와 가 장 유사한 것은 광양 석정 9호 주거지 출토품으로 5세기 전반에 속한다. 이 시기 소가야양식 토기들 이 광양만권 일대에 집중 출토된다는 점에서 앞서 살펴본 발형기대와 더불어 성격 검토가 필요하다. 5) 단독옹관묘 an 2호 옹관(사진 7 도면 7) 고분 남쪽 외 연 (1호)과 북쪽 주구 바깥 (2호)에서 각각 확인되 었다. 1호 옹관은 합구식 전용옹관으로 장방형의 묘광을넓게 굴착한후구연부를약간끼운상태로마감한후점토로 밀봉하였다. 옹관은 대. 소옹의 크기 차이가 있는데, 반남식(서성훈성낙준 1986) 내지는 이정호 (1996) 분류안의 m 형식에 속한 다. 이 형식은무안덕암 1호분 2호옹관, 2호분 2호옹관과같은형식으로 5세기 3 / 4분기에 해당된다. 2호 옹관은 단옹식으로 경부가 거의 퇴화되어 곧게 이어진 형식인데 l호 옹관에 후행한 것으 로 볼 수 있다. 무안 덕암 2호분 옹관 가운데 가장 늦은 3호 대옹과 비교되며 5세기 4 / 4분기를 전후 한형식이다.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1113
115 이상의 편년 관련 자료 검토를 통해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의 연대를 다시 정리해보겠다. 고분은 분구를 최초 완성한 단계와 조형토기를 매납한 단계로 구분되는데, 이와 관련해 주구에 훼기된 유물 또한 여러 시점에 걸쳐 투기되었을 가능성도 염두 되었다. 그러나 주요 출토유물에 대한 검토 결과 5 세기 전반의 2 / 4분기에 집중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조형토기가 매납된 2단계도 2/4분기 내에서 짧은 시간차를 두고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이는 조형토기를 매납하기 위해 재 굴착한 토광의 범위가 좁고, 폐쇄 막음한 서쪽 단벽석의 위치를 정확히 선택하였다는 점에서 이해된다. 또한 분구와 주구 외연에서 확인된 단독 옹관묘가 5세기 후반에 축조된 점도 고분의 축조 연대를 가름하 는데 참고 되었다. 전통적인 제형 고분의 경우 5세기 이후에 축조된 고분에서는 주구에서 누대에 걸 친 의례사용 훼기 유물들이 버려지는 현상과는 달리 신흥고분은 1/4분기 정도의 짧은 시간동안에 한 정되고 있다. 이는 6세기에 축조된 전방후원분에서 드러난 현상들과 일치하는 내용이다. v. 맺음말 이제까지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과 관련해 발표자에게 주어진 축조 집단의 성격에 따른 대외교류 상과 연대관에 관한 내용들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 과정 중임을 이유로 축조 세력의 대외교류 부분은 보다 세부적인 내용을 제시하지 못하였다. 또한 고분의 축조 연대와 관련해 부장 철기류에 대한 검토도 누락되어 있음을 밝힌다. 금번 발표문에서 언급한 견해는 어찌 보면 수정이 불가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은 독자의 이해를 구한다. 더불어 1차 발굴조사가 현지 사정으로 인해 완벽하게 진행되지 못한 상태에 머물고 있어, 조속히 추가적인 조사가 진행되기를 희망한다 이 부분은 전방후원분 가능성을 제시한 조사 단의 입장에서도 분형의 원형을 찾고 싶은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영산강유역 고분고총은 다원적 출처를 같은 요소들이 복합된 경우가 많아 어느 자료를 우선적 으로 채택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적 틀이 제시될 수 있다 그러나 고고학 자료가 일률적 결론을 도출하기는 쉽지 않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되나 보다 객관적 입장에서 최소한의 합의는 꿀어낼 필요 가있을것이다 고분을 통해 몬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16 참고문헌 권오영, 2011, 고대 성토구조물의 성토방식과 재료에 대한 시론, 한강고고 5호, 한강문화재연구원 김낙중, 2009, r영산강유역 고분 연구, 학연문화사. ~ 2012, 영산강유역 고대사회의 성장과 변동과정 -3 6세기 고분자료를 중심으로, 백제와 영산강, 학연문화사. _, 2013, 5 6세기 남해안지역 왜계고분의 특성과 의미, 호남고고학보 45 집, 호남고고학회. 김영희, 2013, 호남지방 조형토기의 성격, r호남고고학보 44 집, 호남고고학회. 박천수, 2010, 가야토기, 진인지. 서현주, 2006, r영산강유역 고분 토기 연구, 학연문화사. _, 2008, 영산강유역권 3-5세기 고분 출토유물의 변천양상, 호남고고학보 28, 호남고고학회. '2010, 완형토기로 본 영산강유역과 백제, 호남고고학보 34, 호남고고학회. ' 2012, 영산강유역의 토기 문화와 백제화 과정, 백제와 영산강, 학연문화사. 이영철, 2011, 호남지역 취락의 변천과 지역정치체의 성장, r호남지역 삼국시대의 취락 유형 제 2 회 한국상고사학회워크숍, 한국상고사학회. ' 2012, 무안 사창리 지역정치체의 계층과 위계 구조, 무안 덕암고분군, 대한문화재연구원, , 거점취락의 변이를 통해 본 영산강유역의 고대사회, 한일취락연구, 서경문화사 , 고대 취락의 제사, 호남지역 선사와 고대 제사, 제 22 회 호남고고학회학술대회, 호남고고학회. '2014, 백제의 지방지배, 2014 백제사 연구 쟁점 대해부, 백제학회 충북대학교박물관. 이정호, 1996, 영산강유역 옹관고분의 분류와 변천과정, 한국상고사학보 22, 한국상고사학회. 임영진, 2002, 韓 國 η 瓚 周 土 器, 東 7ν 7 日 本 η 古 瓚, 同 成 社. - -, 2003, 한국 분주토기의 기원과 변천, 호남고고학보 17, 호남고고학회. - -, 2012, 3 5세기 영산강유역권 마한 세력의 성장배경과 한계, 백제와 영산강,학연문화사. 하승철, 2014, 전남 서해안지역과 가야지역의 교류양상, 전남 서남해지역의 해상 교류와 고대문화, 전라남도 전남문화예술재단 전남문화재연구소. 俠 山 池 博 物 館 2001, 古 代 η 土 木 技 術 開 館 記 念 特 別 展. 木 下 흐 2011, 일본열도 출토 쓰에커 하소우에 대하여, r유공소호, 진인진. 高 田 貴 太, 2014, 5 6세기 백제, 영산가유역과 왜의 교섭, r전남 서남해지역의 해상교류와 고대문화, 전라남도 전남문화예술재단 전남문화재연구소.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1115
117 η 딩 " 도면 1.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 측량도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18 **훨 나무를조) 사진 3.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 매장주체부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1117
119 사진 4.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 구획성토 중심지점과 목곽 위치 사진 5. 영암 옥야리 방대형 1호분 구획성토 중심지점과 석곽 위치 1181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20 뒀 蠻 鐵 繼 쫓한 警 擬 헬혔 - - 廳 앓편=;꿇 )~ n 니 도먼 2. G) 목주시설 확인 나주 복암리 7호분 주구 평 나주 복암리 16호 수혈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 분주토기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1119
121 \\ 사진 6.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 출토 토기류 120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22 i편웰1 폈; 떤7, /렸""컨7., 讓 갖4 i.2 //-펴 k x a ~ - \ -닌.찌 \\ 깐폐1 ( "' 籍?산 책 灣 풋 η i끼'.j 1" 1; 이Li~쿠바 山 뀔힐~ I ;?맴쿠?카현훨푹 땅] E 5 TO Z3Z호 9~ ( 9λ17t쿠 大 않싸] f; 7 T :.1231호 9l { 9 J.17f쿠 大 휩맏l R io : T K73호 9;1; { 9.λ 카루*않때 T K젠호 g;i;: {힐λ 17t부짧11' T K87호 할 J; I[ <?.사카쿠 1:.,짧] 2:l. OI나al 工 F P 뼈환 강판효그흥IJ:i,tt;,![i.J 21 염 ; r써2찌호 요재?λ ~;if루t짧}휴] 도면 3. 일본 출토 유공광구소호( 木 下 를 2011)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11 21
123 시? 룬? 딘. 영산강 훌 i 상류역 렇ξ}강 하휴억 (옵영천, 삼 강 포함),. ι ~ ;, t;' --==--=-- I ~'<끼l v;; ' I 1<., HI' '" "-! "', II,, ~ι, '"' ~ " ',150 -, ~ ,.,. A - cl. ;'"' --.t I r, ι j lfi '" 잉 1 Ill,,, ~ ι, l π ; i 시 이 ;,. 써 1 l f ι j f. δ!i r~ f,;,,,였 II.?꺼.,, "' - - 었 ',,,,, 8 5((1 rτ켠- If! I /,I sci.;.r 1 양 ~'!:; ' "'" ~ '.::'.'. r υ " ~써 1 :rjf ;; 7'' f ; ~ 홉 침!~ ]ιηhi JU, ',i d,,쟁 y j 롤 i,,었 싹.11 / ;;, 키 11 쨌f. 잃,}' ~ < ~,_ ' ' &.ζ ~ 씬.,.,, ;.w생 I ' ' '>.! ' 도면 4. 광주 전남지역의 유공광구소호(박형렬 2이 1) 1221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24 기 흥려 선흉고분 Scm = 욕팩흔책 > 톤르슨= 활 오곡리 19호요 도먼 5. 가야지역 발형기대 비교자료(홍보식 편집도먼 재인용)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1123
125 우수리채집 --=뚫 복천홍 략소대 l구 1호요 10 Scm 우수리 18호묘 도면 6. 가야지역 발형기 대 비교자료(홍보식 편집도먼 재인용) 1241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언대관
126 사진 7.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 1호 옹관 대 A. D ' 호분 짧 - 쨌 r l1 jlj1 4. 미 생 때 냉 4 _;_ 옹간 소옹 및 출토유물 2포분 따 댐 바 따 매 사ν 따 펀깐 l표 바 \ 땀 범 바 川 :.;. 옹깐 2호웅깐 - 펴 며 냉 탬 뮤$ 따 씨 ;;.;_응판 3 _;_ 웅깐 [H 7 _;_ 웅한 더 니 따 냉 도면 7. 무안 덕암고분군 옹관 펀년 안(박형 렬이 2) z효융깐 ~ 썩 ==; - } 경! ; I ? i 훌형 r,.,/. 잭 훌; +;;: μ, 도면 8. 무안 덕암고분군 1호분 2 3호 옹관 출토유물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1125
127 토 로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의 대외 교류상과 연대관 에 대한 토론요지 서 현 주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발표자는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을 발굴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고분의 분형, 축조공정, 매장주 체부 등을 판단하고, 고분의 연대, 축조집단의 성격과 대외교류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결론 적으로 고분은 분형이 전방후원형이며, 구릉을 절삭하여 축조되었는데 할석으로 구획열을 만들고 점 토브릭, 점토괴 등으로 구획성토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그리고 매장주제부는 목곽이며, 구조와 유물 로 보아 고분의 초축 시기는 5세기 2 / 4분기로 추정하였다, 또한 고분은 백제, 가야, 왜 세력과 관계 가 있으며, 고분의 축조는 재지 사회에 신문물의 우수성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으로 그 주체는 백제 중앙세력과 관련된 인물로 보았다. 토론자는고분의 발굴조사가완전하게 이루어지지 않은데다가발굴조사내용에 대해서도자세히 알지 못하여 토론을 하는데 한계가 있다. 발표 내용이 발굴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이에 대해 큰 이견을 말하기 어렵지만, 그 내용 중 아직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부분도 있고 기존의 연구 성과와는 차이가 나는 부분도 있으므로 이에 따른 의문점을 중심으로 질문을 드리고자 고분의 분형과 매장주체부 문제 1. 발표자는 고분의 분형에 대해 분구 중앙에서 서쪽으로 치우쳐 매장주체부가 있다는 점, 기 획 축조된 고분의 1 2차 구획열의 중심부가 매장주체부 지점이 아닌 북동쪽으로 치우쳐 복원 시 원 부와 방부가 연결되는 중심 지점에 위치한다고 본 점 주구의 평변형태가 전방후원분의 방부 주구와 동일하고, 분구 내연을 따라 배치된 목주 흔적들로 볼 때 전방후원분이라고 보고있다. 그런데 분구의 형태(원부 모호), 주구의 형태로 보아 아직 분형이 분명히 드러났다고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고분 남쪽 외연이나 주구 바깥에서 옹관묘도 확인되는 점 등에서 전방후원형의 고분으로 확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되며,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좀더 분명한 발굴결과가 있어야 할 것이다. 오히려 현재의 분구 형태로 보아 방분이나 제분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이 고분의 주변에 7기 의 고분이 더 있었다고 하는데, 이 점 또한 보통의 전방후원분(장고분)과도 다른 점이며, 오히려 인 근의 다른 고분군들과 유사하다. 2. 발표자는 매 장주체부에 대해 목곽 구조로 이해하고 있으며, 영암 옥야리 방대형 1호분도 발 굴 보고서와 달리 거의 비 슷하게 목곽으로 이해하는 듯하다. 그리고 매장주제부에 목주 등을 사용한 사례가 가야 신라지역에서 확인되는데 그 중 창녕 교동 3호분도 비슷한 목곽으로 보고있다. 그런데 교동 3호분은 묘도까지 확인되는 횡구식 구조이고 묘도의 외곽에도 어느정도 석축이 이루어진 점에 서 이를 목곽으로만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발표자는 가흥리 신흥고분이 석실로 보기 어려운 이유 로 바닥석이나 개석 등으로 보아 치석 기술을 가졌는데도 벽석재들이 다듬어지지 않은 할석이며 벽 1261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28 석 내면이 고르지 않는 점 등을 들고 있는데, 당시 큰 석재와 작은 석재가 모두 같을 수는 없으며 벽 석의 모습은 목주의 존재와도 관련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이를 다른 목주를 가진 횡구식석실 들과 구분하여 목곽으로 보아야 할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구조의 매장주체부는 구체적으로 어느 지역의 자료와 관련되는 것으로 보는지 고분 축조집단의 성격 문제 3. 발표자의 의견대로라면 발표자도 지적한 것처럼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 있는 복암리 영동 리 고분군은 제형고분이었다가 방대분 원분으로 변모하는 것과 비교하면 가흥리 신흥고분의 양상은 상당히 이질적이다. 따라서 복암리 영동리 고분군 축조집단과의 관계가 상당히 문제가 된다. 발표 자의 언급처럼 이 고분에서 복암리 영동리고분군 축조집단을 아우를 대표성이 확인되지 않는다면, 신문물을 받아들인 후 가흥리 신흥고분의 축조집단은 이후 어떻게 되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지(특히, 이 일대에 고분이 더 있었다고 하는 점에서) 즉 백제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고 이후 인근 고분군들 에 어떤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아야 하는지도 모호하다. 이에 대해 보완 설명을 해주셨으면 한다. 그 리고 발표자의 의견대로 가흥리 신흥고분을 전방후원분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면 이 곳에 왜계 분형 이 조영되는 계기 또는 배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4. 발표자는 영암 옥야리 방대형 1호분도 5세기 중엽경으로 보고 있어서 거의 비슷한 시기로 보고 있으며, 옥야리 방대형 1호분도 방대형 분구를 쓴 점에서 백제와의 새로운 관계 질서에 의한 것 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옥야리 방대형 1호분과 나주 가흥리 신홍고분은 일련의 관계를 유지했다고 보았는데, 두 고분은 현재까지 드러난 양상으로 보아 각각 백제와 어떤 관계로 보아야 하는지 궁금 하다. 발표자는 영산강유역이 사비기 석실 도입 이전에는 분형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보고 있으므 로 비슷한 시기, 매장주제부를 갖는 고분에서 분형을 달리한 연유는 어느정도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5. 발표자는 이 고분의 피장자를 백제 중앙세력과 관련된다고 보고 있는데, 그렇다면 오히려 백 제 고분과 유사한 분형이어야 할 것으로 추정되며(발표자의 의견처럼 방대분-방대분이 백제와 관련 된다고 보는 데에는 토론자도 동의한다-), 매장주제부라도 백제와 상당히 유사한 부분이 있었을 것 으로 판단된다. 발표자는 점토괴를 사용한 구획성토 등의 토목기술이 새롭게 출현했다고 보면서 이 를 한성백제와 연결시키는 듯하다. 그런 데 이러한 기술은 외형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며, 발표 자가 지적한 것처럼 고분 등에서 확인된 사례가 가야 신라지역에서도 나타나고, 매장주제부도 가야 와 유사하다. 그렇다면 이 요소를 목 한성백제와 연결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따라서 이 고분이 백 제 중앙세력과 관련된다고 볼 수 있는 구체적인 근거가 무엇인지 제시될 필요가 유물의성격문제 6. 발표자는 출토유물 중 조형토기에 대해 광양 석정리유적에서 출토되므로 발형기대와 더불 어 성격 검토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발형기대는 소가야양식토기로 볼 수 있는데 비해 조형토기는 마 한단계에 금강이남지역의 여러 유적들에서 출토된 점에서 마한의 재지적 성격이 늦게까지 이어진 것 으로 보아야 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 시기의 조형토기를 혹시 소가야양식과 관련되는 것으로 보는 지 의문이다. 나주 가흥리 신흘고분의 대외교류상과 연대관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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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06 고창 봉덕리 1호분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이 문 형 (원광대학교 마한 백제문화연구소).머리말.유적개요. 대외교류와연대관 1. 유물로본대외교류 2. 고분구조와 유물로 본 추정연대 IV. 맺음말.머리말 전라북도의 서남단에 위치한 고창은 남쪽으로 전라남도 영광군과 접해 있어 전라북도와 남도를 잇는 접경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일찍이 고창은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이 대규모로 분포한 지역으로 알려져 왔으며, 고고학적 조사 역시 이에 대한 조사가 주를 이루었으며,(김 재원 윤무병 1967, 전영 래 원광대학교박물관 2000) 2000년도에는 강화 화순의 고인돌과 고창 죽림 리 일대의 고인돌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고창지역의 본격적인 고고학적 조사는 서해안고속도로가 개설되면서이다. 이 과정에서 청동기 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생활 생산 분묘유적 등이 조사되어 그동안 상대적으로 고인돌에 가 려져 있던 고창지역에서 선사와 고대문화가 알려지게 되었다. (원광대학교 마한 백제문화연구소 , 전주대학교박물관 2002) 사진 1. 봉덕리 1 2호분전경 고장 봉덕리 1호분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129
131 오늘 소개할 고창 봉덕 리 고분군은 1990 년 전북대학교박물관이 고창 아산면 일원의 지표조사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고분으로 보고된 이래,(윤덕향 1990) 1997 년에는 분구 측량(북분 ;1호분) 및 당 시 정황을 비교적 상세하게 학계에 보고하면서 고분의 존재가 부각되었다.(노기환 1998) 그 후 본 연구소에 의해 고창 관내에 분포하는 17개소의 21기에 대한 분구묘에 대한 측량조사를 실시하였으 며, 봉덕리일대에 모두 4기의 분구묘가존재하고 있음을확인하였다.(원광대학교마한 백제문화연 구소 2000, 조선영 2004) 이 후 고창군과 협의, 분구묘의 정비보존 계립 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가장 상태가 양호한 봉덕리 l호분을 2008년과 2009 년 2차례에 걸쳐 본 연구소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원광대학교 마한. 백제문화연구소 2012) 본 글에서는 유적에 전반적인 내용은 이미 학계에 보고된 바, (원광대학교 마한 백제문화연구 소 2012) 유적 개요와 함께 출토유물을 통해 고창 봉덕리 1호분의 대외교류와 개략적인 연대를 검 토해보고자한다 1)..유적개요 고창 봉덕리고분군은 해발 30 50m 내외의 남-북으로 뻗은 나지막한 구릉상에 남쪽으로부터 호분 순으로 모두 4기가 분포하고 있다. 상대 적으로 4호 -3호분에 비해 1호 - 2호분의 분형 이 육안으로도 뚜렷하게 확인된다. '"' * ~ ~~ 도면 2. 봉덕리 1. 2호분 위치도 l호분과 2호분은 태봉산으로부터 이어지는 구릉의 북동쪽 끝자락에 나란히 위치하고 있으며, 북 1) 본 글에 봉덕리 1호분에 대한 대외교류와 연대관은 발표자의 개인적인 견해임을 미리 밝혀둔다. 130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32 쪽에 것이 1호분, 그 옆이 2호분에 해당한다. 엄밀히 말하면, 1호분이 2호분에 비해 앞으로 튀어나와 있으며, 2호분이 대각선방향으로 뒤에 쳐져있는 배치를 띤다. 동쪽의 저지대에서 1 2호분의 외관을 바라보았을 때 2호분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마치 쌍둥이 형제가 나란하게 서있는 모습과 같으며 마을사람들도 예로부터 쌍나발등 으로 불리면서 무덤의 존 재를인식하고있었다. 봉덕리 고분군을 중심으로 주변 반경 5km 이내에는 다수의 분묘유적이 자리하고 있다. 동쪽 맞은편 구릉에는 고창 만동(호남문화재연구원 2004)과 봉덕유적(호남문화재연구원 2003) 이, 주변 2km이내에 선동(호남문화재연구원 2013), 중윌리(원광대학교 마한, 백제문화연구소 1984), 도산 리(원광대학교 마한 백제문화연구소 2005) 유적 등이 밀집 분포하며 5km이내에 고창 남산리(전 북문화재연구원 2007), 예지리(전주대학교박물관 2002), 증산유적(호남문화재연구원 2009) 등 분 구묘 유적이 다수 분포하고 있다. 특히, 고창 선동과 만동유적에서는 금박유리구슬, 환두대도 등의 위세품이 다수출토되면서, 이 일원이 3-4세기 고창지역의 마한분구묘중심세력이었음을보여주며, 이들 분구묘 축조세력과 봉덕리고분군 축조집단과의 연계성을 추정할 수 있다. 형태와 규모 ; 1호분의 평면형태는 동 서 방향이 긴 장방형으로, 단면형태는 분정이 편평한 제 형을 띠고 있다. 규모는 동-서 길이 약 63m 남-북 길이 약 52m 내외로 일부 후대 묘역으로 인해 조사를 진행하지 못한 부분을 감안하면 동-서 길이는 최대 70m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분정부의 규모는 동-서 약 39m, 남-북 약 20m 내외로 편평한 대지를 이루고 있다. 높이는 최대 8m 정도이 며, 지대가 높은 서쪽에서는 약 5m 내외이나 맞은편 구릉이나 저지대에서 바라보았을 때 1호분은 훨 씬 거대하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기저부 위에 성토된 높이는 서쪽부가 2m, 북쪽과 동쪽부 가 약 4.5m 내외로 확인되었다. 매장시설 : 1호분의 매장시설로는 분구 내부에서 석실 5기 옹관 2기 등 총 7기의 매장시 설이 확 인되었으며, 분구사변과 주구 내에는 후대의 소형석곽 9기(통일신라시대)가 조사되었다. 봉덕리 1호분의 분구 내에서 조사된 석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표 1. 봉덕리 1호분 분구내 매장시설 현황(석실) 호수 "[ T 슛~ 장축 H 1-15' t 규 모 (cm) 펑면비 (면적) 토 흐 7. 1 중요유물 1호 횡혈식 N-1 -w 요실 ;310 x 260 x 100 l,19:1 중앙연도 개배,고배,기대,단경호,직구호, 연도 :120 x (8.06m') 부석시설 금제이식,구슬등 2호? N 74 w 묘광; ? 54?? 개배,유공호,금제이식,구슬 등 3호 횡혈식 N 80 E 묘실 ; :1 중앙연도 개배,완,직구소호,유공광구소호,단경호, 연도; (8.63m') 부석시설 장경호,병,정자,금제이식,구슬 등 4호 수혈식 N 17 E 1. 56:1 묘실 ; (5.0lm') 중앙연도 개배,단경호,청자반구병,소호장식유공호, 기대,금동식리,금제이식,청통탁잔,죽엽형장신 구,대도,도자,철모,성시구, 마구류, 단야구,철겸, 교구,쩍쇠,관정,숫돌,칠기화살통,구슬 등 5호 N-67 -E 요실 ;350 x :1 중앙연도 개배, 2단투창고배,직구호, 금동식리편, 연도 ; (7. 7m') 부석시설 대금구,철부,쩍쇠,관정,구슬 등 고장 봉덕리 1호분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131
133 , \\ \ 1 \ \ 1, \ \ \ \ ei \:\~ 도면 3. 봉덕리 1호분 유구배치도( 1:40이 1321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 대관
134 석실은분정의 중앙에 위치한 5호석실을중심으로동쪽에만집중축조되었으며, 각석실 간의 거 리는 10 12m 내외로 비교적 밀집되어 있다. 옹관 2기는 분정의 북서쪽 공간에 석실과는 일정한 거 리를 두고 위치하고 있으며, 주변을 공터로 남겨놓았던 점은 옹관과 석실은 계획적인 배치에 의해 서 로 다른 공간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석실은 파괴가 심하게 이루어진 2호석실 2) 을 제외한 4기의 석실은 형태 및 구조파악이 가능하다. 1호 - 3호 5호석실은 연도가 개설된 횡혈식의 구조이며 4호는 연도가 없는 수혈식의 구조로 확인 되었다. 평면형태는 4호와 5호석실이 동 서방향을 장축으로 한 장방형을 1호와 3호석실은 방형에 가깝다. 바닥시설은 3호 4호석실은 편평할석을 이용해 전체적으로 깔고 사이 를 잔자갈 및 소할석 으로 채웠으며, 1호 - 5호석실의 경우 바닥까지 도굴에 의한 교란이 이루어졌으나 일정부분 소할석을 이용해 바닥시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연도가 확인된 석실의 경우 연도에서 묘도로 八 자상으로 벌 어지며, 연도는 비교적 길게 시설하였다. 수혈식으로 확인된 4호석실은 양장벽을 상부에서 약간 내겸하면서 축조한 후, 2매의 대형 판석 을 개석으로 사용하였으며, 개석 상부에 2 3단의 할석을 쌓아 밀봉하였다. 이런 연유로 도굴되지 않 은 것으로 판단된다. 4호석실은 분구 내의 타 석실에 비해 축조석재 벽석의 축조 등의 세부기법 등 을 비교해 볼 때 조잡하고 거칠다는 느낌을 받는 동시에 굉장히 급하게 축조한 듯한 느낌이 있다. 이는 벽석에 사용된 석재가 정연하지도 일정하지도 않으며 벽석과 벽석 사이에 보강한 작은 할석은 약간의 충격에도 바로 탈락되는 점 등에서 짐작할 수 있다. B "" "",.,. O써 *.;. '""',,.. "" B. ----,.,.. 1'"" 혹뺑 g 야 에서*--. A " " 10 M -- ' 에..,애 A m ---..,. "'""' l --, r 1., ,.... i...,,.. - * 도면 4. 봉덕리 1호분 토층도 축조과정 ; 분구 내부의 토층 양상으로 축조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자연 구릉을 정지하여 1호분과 2호분을 분리하여 구릉의 사면을 경사지게 깎아 장방형의 묘대를 마련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1호분의 규모는 기저부를 기준으로 동-서 길이 52m, 남-북 길 이 2) 일부 벽석과 함께 금동제 이식과 구슬 등이 출토되어 석실로 구분하였으나, 영확한 형태는 따악하기 어렵다 고장 봉덕리 1호분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133
135 27m 내외이다. 이 후에 회갈색점질토를 전체적으로 깔아 구지표와 기저부를 정지- 5호석실을 축조 하기 위한 기반층인 성토층1-5호석실의 축조와 함께 성토층2를 성토하면서 5호석실을 축조하였다. 성토층2를 기준으로 5호석실의 봉분은 남-북방향으로 직경 25m 내외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거의 유사한 방법으로 중앙의 5호-4호 -1호-3호석실 순으로 축조된 것으로 파악된다. / ;펴 2호 --* 도면 5. 봉덕리 1호분 축조과정 모식도 사진 2. 봉덕리 1호분 조사중 전경(서에서) 주구 ; 주구는 민묘 등 여러 제약으로 인해 서 - 남 북쪽에서 일부 확인하였다. 서쪽주구는 북 쪽에서부터 점차 넓어지다 중앙이 급격히 넓어지는 형태이며, 폭이 넓은 곳은 Sm정도, 김은 곳은 lm 내외이다. 남쪽주구는 1호분과 2호분 사이에 조성되어 서로 공유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토층양상을 통해 2호분과의 조성시점의 선후관계를 파악하려 시도하였으나 확인할 수 없었다. 폭은 약 5 6m정 도, 깊이는 약 2m 이상이다. 퇴적양상은 크게 니질토와 사질토가 교차로 퇴적된 침전층과 그 위로 퇴적된 암갈색사질점토 및 적갈색사질점토층이다. 남쪽주구와 북쪽주구는 1호분이 조성된 이후 상당시간 배수 및 담수의 역할을 담당하였던 것으 로 보이며 이를 위해 주기적으로 정비했을 개연성이 높다. 출토유물 ; 유물은 도굴되지 않은 4호석실 출토품이 봉덕리 l호분의 피장자를 위치를 가장 잘 대 1341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36 변하고 있다. 4호석실과 특징적인 유물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4호석실의 목관 안에 부장된 유물로는 피장자의 관모에 장식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은제장 신구와 영락, 금제이식, 목걸이, 좌우 2점의 대도와 도자, 칠기화살통과 발치의 금통신발이 이에 해 당된다. 석실 내부 유물로는 남동모서리를 시작으로 시계 방향으로 철모-청자반구호-단경호-청동 탁잔-소호장식유공호 배 (18 점) 마구류-단야구-성시구 &. 철겸 순으로 배치되어 확인되었다.(도 6). ( * M 에 l -- l L 훨 깨 빼 폈 뱀 찌 끼 U 빠 뱃 많 l 機 /! L -형 ι μ- 펴 / 샤 긴 -. 혈 짧 F.이 엉 r ~ 칭 9 '7난픽했. t 상선구 긍 "'이삭. \. ". * &--, ~V-1. ~, _.- -..,,:. ~. 구승..,...,., 껴 -- 생 햇 도 지 I 감;:; γ -r !ι/ -- - ( G 도먼 6. 4호석실 유물출토상태 또한 5호석실은 비록 바닥면까지 도굴에 의해 교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금동신발의 바닥편과 금동과대편이 출토되었으며 철부의 경우 4호석실 출토품보다 그 크기가 2배 이상의 것이 출토되어 고창 봉덕리 1호분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135
137 5호석실의 피장자의 위상를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 토기의 경우 백제의 표식적인 토기인 삼족토기가 출토되지 않은 반면 소위 고창계토기 로 알 려진 多 透 짤 式 고배의 경우 2단 투창의 고배가 가장 빨리 축조된 5호석실 에 서 출토되어 이채롭다. - - 호 서 시 호 석 심 4 - 호 서 시 - L l -- ~즉1 1 - 는괴 -~ -격 ~ τ 프* -~ J ;펀 ( L;) 적{ u 한뀔 선 덧 시 니 닝η ) 많 닛 랜 (._--I _!! 二 1~ ll'- L 주석 1 ~ - - 二 직 5 호 석 실 -커 1 r - "ι L <,],--지!그권? 주 요토기픔 냐 ι} 갖 L 흉 4 석- S - = / / -:노닐끼 ' 퓨끼 도먼 7. 봉덕리 1호분 매장시설 석실 출토 주요 토기류 * ~ ι. / I' / -- { μ야u 니 상 시 ; 익 ζ 켠 폐 펀 / ν j γ ι 봉덕 리 1호분에 서는 이 들 고분 축조 집단의 대 외관계를 살필 수 있는 대 표적 인 유물로는 중국제 청자와 소호장식유공호를 들 수 있다. 먼저 중국제정자는 4호분에서 출토된 완형의 청 자반구호를 제외하고 모두 3개체분의 청자편이 X J 출토되었다. 1호석실에서 저부편, 3호석실과 5호석실 에 서 동일 개체 편 이, 남쪽 주구에 서 한 개 체분 이출토되었다. 한편 백제지역에서 출토된 중국 자기는 20 11년 말까지 최소 1 93 개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 으며, 그 대부분이 육조자기 3)로 알려져 있다.(임영진 2012:5) 과거 육조자기 의 대부분이 월주요에 서 생산된 것으로 파악했으나 최근에는 절강성의 월주요 외 에 덕청요 무안요를 비롯하여 강소성 이나 호남성 등으로 확대 되고 있는 추세이다.(이정인 2001 이 휘달 2005, 임영진 2012) 3) 육조는 현재의 남경을 중심으로 앙자강 중하류지역에서 발전하였던 삼국시대의 동오를 비롯하여 동진(서진포함), 남조의 송 제 여성왕조를 말한다 (임영진 2012:4) 앙 진등 1361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38 먼저 중국에서 육조청자의 발전과정을 간략히 언급하면, 조기 청자의 생산단계를 크게 창시기( 후한) 발전기(동오) - 번영기(서진) -정지기(동진)-저락기(남조)로 인식하고 있다.( 林 土 民 1999, 이 휘달 2005, 임영진 2012) 동오시기에는 반구호, 호자, 양형청자, 계수호, 퇴소관 등 약 30 여종에 달하던 것이 서진대에는 급속히 발달하여 생활자기와 명기가 푸렷하게 구분되어 약 40여종 기종이 확인된다고 한다. 동진대에 들어서면 기종이 20 여종으로 줄어들고 전문적 명기류가 거의 소멸되며, 남조대에는 더욱 줄어들어 연판문 등의 불교적인 요소가 가미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이휘달 2005, 임영진 2012) 고창 봉덕리 출토품 역시 기형이 확실한 4호석실 반구호를 비롯하여 동일한 형 태 의 호편으로 추 정된다. 다만 동체의 형태나 고리( 耳 )의 모양 그리고 동제 연판문 (3호석실) 등으로 볼 때 세부적인 시기차이는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호수 전경 세부 트지 -, 3호석실 녹청색유조. 황갈색불투명박락. 호(병)로추정. 동체;음각연판문. 견부 ;2조의음각선. 4호석실 청녹색유조. 횡방향의고리 6개부착 ; 견부 대칭 ;부착지점 선표시. 높이 ;36.8cm 입지름 ;17.0cm 밑지름 ;17.2cm 주구 (남쪽) 노처새 _Q_~ -, - - 황갈색불투명박락. 호 (병)으로추정. 종방향의고리부착. 도면 8. 봉덕리 1호분 매장시설 석실 출토 주요 토기류 현재까지 백제시대의 지방에서 출토된 중국제자기의 소유 배경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학계에 서는 백제 왕실의 주도 아래 각 지역 유력자에게 사여된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중앙에서 지방의 유 력자에게 하사한 위세품적 성격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와 관련하여 구체적인 도입 방식 에 대해 백제 중국 견사시 지역 세력자들이 왕실의 견사에 펼요한 특산물을 제공함은 물론 견사에도 참여하였고, 중국 현지에서는 백제 왕실의 공식적인 활동과는 별도로 각기 자유로운 상업활동을 통 해 필요한 물품을 선택적으로 구입하였을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임영진 2012:37-38) 발표자 역 시 봉덕리고분 주인공들 역시 이 같은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후술할 소호장식유공호에서 이같 은 정황을 유추할 수 있다. 고창 봉덕 리 1호분의 대외교류와 연 대관 1137
139 중국제청자반구호와 함께 출토된 소호장식유공호( 裝 節 뚫)는 중국은 물론 일본과의 교류를 추정 할 수 있는 유물이다. 출토된 소호장식유공호는 기대와 유공광구호가 하나의 셋트를 이루는 것으로 유공광구호의 주변으로 4개의 작은 항아리를 부착하였으며, 기대의 경우는 대각 안에 2개의 구슬을 들어있는 특이한 형태로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보고된 예가 없다. 또한 기면에 뚜렷한 청녹색의 유 조는 분석 결과 유약의 용융제성분으로 확인되었다. 4) 도면 9. 봉덕리 1호분 4호석실 소호장식유공호 이와 같은 도기나 자기는 중국에서 제작기법상 퇴소관( 堆 밸 鍵 )에 해당하며, 각종 소조상을 덧붙 인 鍵 에 해당한다. 퇴소관은 한(동한) 삼국, 서진시기에 활발하게 제작되었으며, 漢 代 이후 1 享 흉의 장례풍습 유행과 함께 무텀에 부장하기 위한 명기로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오 서진 동진 강소성 金 ti 方 麗 동오묘 永 安 3 年 (260년) 높이 40cm, 밑지름 15.5cm 상주시박물관소장 안휘성?휩 里 西 품 殘 훌 높이 32cm, 믿지름 17cm. 도면 10. 중국 각지 출토 퇴소관 예 복건성 민후( 閔 候 ) 출토 높이 18cm, 밑지름 locm. 복건성박물관소장 4) 소호잠식유공호의 외면에 육안으로도 뚜렷하게 북정색의 유조를 분석한 결과 cao(산화칼슐)의 함량이 높게 검출되어 라임유약(High lime glazes) 계열로 확인되었다 1381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40 주로 중앙 기물( 抽, 鍵 )의 어깨 상단면에 사람, 짐승, 물고기, 거북이, 새, 누각, 增 (비석), 관 등 복 잡한 형상을 빚어 붙이는데, 동체부 중단에도 인물, 불상, 동물 들을 貼 밸하는 경우가 있다.(소 濤 2006) 봉덕리 소호장식유공호는 제작기법상 중국의 퇴소관과 유사하며 형태상 중앙의 權 을 중심으로 네 개의 소형호를 덧붙인 오련관과 흡사하다. 오련관 역시 漢 代 이후 활발하게 제작되며 동진대까지 지속된다 오련관은 단순하게 小 鍵 만을 덧붙이는 것과 오련관을 중심으로 주변에 다양한 소조상을 덧붙이는 것 등 다양하다. 다만 봉덕리 것이 기대를 사용한 점이 차이를 보이는데, 이는 유공호가 원 저이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물론 이와 같은 기형은 일본에서도 출토되고 있다. 주로 규슈지방의 橫 'f\ 式 石 室 에서 출토되는 스에끼의 한 기종으로 유공소호나 개배 등과 함께 출토되고 있다. 특히 % 根 戶 古 瓚 ( 白 石 太 一 郞 1989:164) 에서 출토된 裝 節 뚫와 거의 대동소이하다. 특히 그 형태나 기형에 시문된 문양까지도 매 우 흡사하여 상호 교류 관련성을 짐작하게 한다. 이와같은 장식호는 北 陸 (호쿠리쿠)지방 5 )에서도 九 州 系 橫 大 式 石 室 에서 출현하고 있는데 점차 상부의 호와 하부의 기대가 함께 제작되는 특징을 보 이며, 동물 혹은 사람의 형상이 부착되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예로 복강시 神 奈 備 山 古 慣 ( 宮 元 香 織 2007:233), 獅 子 隊 古 瓚 ( 宮 元 香 織 2007:228) 출토품 등이 있다. 神 奈 備 山 古 慣 王 基 山 古 慣 獅 子 據 古 慣 顆 驚 때볍L 도먼 11. 일본 각지 출토 장식호 예 한편 고창지역은 유공광구소호가 많이 출토되는 지역의 하나로 유공광구소호와 기대가 결합된 대부유공광구소호가 봉덕유적(호남분화재연구원 2003) 등에서 출토되고 있다. 대각이 부착되는 것 은 공헌용기의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보는데(노미선 2011), 봉덕리 유공광구소호와 한 셋트인 기대의 대각 내부에 구슬을 넣은 채 제작한 것으로 보아 소호장식유공호 역시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고창 봉덕리 소호장식유공호가 중국의 오련관을 모방해서 국내에서 생산한 것인지, 아니면 중국에 주문 생산한 것인지 일본에서 제작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다각적인 연구가 진 행되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다만 이러한 유물을 통해 볼 때 고창 봉덕리 축조집단은 중국은 물론 일본과의 상호 교류 여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향후 이에 대한 연구가 진전된다면 한국-중국-일본의 관계속에서 고창 봉덕리 축조집단의 역할 은 좀 더 명확하게 규명될 것으로 기대한다. 5) 일본 열도에서 北 陸 (호쿠리쿠)지방은 나카타 도야마 이시가와 후쿠이지역을 지칭한다 고창 봉덕리 1호분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139
141 2. 고분구조와 유물로 본 추정연대 고분의 축조방법과 석실구조 : 봉덕리 1호분의 축조방법은 매우 이례적이면서도 독특한 형태이 다. 기존 영산강유역을 비롯한 마한 고지의 대형고분 축조는 평탄한 대지 또는 구릉의 정상부를 그 대로 이용하거나 정지한 반면 봉덕리 1호분은 자연 구릉을 분할 삭토하여 기본 분구 틀을 조성하여 그 상부에 매장시설을 축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일정한 기본 분구 틀 내에서 매장시설은 정해 진 규격과 배치 안에서 수평 수직확장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는 영산강유역에서 확인되는 수평확 장(장제형주구), 수직확장(신촌리 9호분), 수직 수평확장(복암리 3호분)과 세부적인 차이는 있으나, 기본적으로 하나의 분구 내에 다장의 전통은 마한이라는 큰 테두리에서 해석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석실의 구조는 횡혈식 (1 3 5호)과 수혈식 (4호)으로 개략적인 시기는 가장 먼저 축조된 5호석 실을 통해 추정할 수 있다. 5호석실은 백제시기의 5세기 초 중엽경으로 편년되는 횡혈식석실분과 매우 유사한 형태이다. 즉 평면 장방형 형태에 중앙연도를 지닌 전형적인 횡혈식석실분으로 할석의 사용, 모서리의 처리 방법, 긴 연도, 바닥시설 등이 그것이다. 평면형태에 있어 차이는 있으나 연기 송원리 KM-016, KM-046 석실분( 韓 國 考 古 環 境 冊 究 所 2010)과 세부방법에 있어 매우 유사하다. 1호석실 3호석실 5호석실 사진 3. 봉덕리 1호분 매장시설(횡혈식석실) 출토유물 ; 먼저 앞 서 전술한 중국제청자는 모두 4개체분이 출토되었다. 4호석실에서 출토된 완 형의 청자반구호를 중심으로 개략적인 연대를 살펴보자. 현재까지 백제지역에서 출토된 완형의 청자반구호는 천안 화성리(국립공주박물관 1969)와 오산 수청동(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재연구원 2012) 유적에서 출토된 바 있다. 6) 전체적인 기형은 화성리출 토품과 유사하나 색조, 동최대경의 위치, 고리의 형태 등에 있어 세부적인 차이를 보인다. 최근 연구 경향에 의하면 화성리출토품의 생산지를 절강성 윌주요(정상기 2013) 구요(성정용 2003) 나 강소성 홍주요( 權 奎 山 2008) 등지에서 생산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그 개략적인 시기는 4세기 중반(정상기 2013:134), 4세기 후반(성정용 2003), 5세기 초엽(임영진 2012:19) 등으로 보고 있다. 봉덕리 반구 호의 경우 특히, 유약의 발색이나 고리의 형태와 부착방식 등으로 볼 때 화성리출토품보다는 시기적 으로 늦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에 대한 세부적인 연대로는 시유상태의 조잡성을 들어 5세기 중엽 6) 백제지역에서 출토된 정자반구호에 대한 검토와 비교자료는 정상기의 논문에 잘 정리되어 있다 2013, 흠 做 鳳 德 里 出 土 줌 磁 盤 口 뚫의 製 作 8촉 期 檢 討 中 國 南 京 市 出 土 品 과 1t 較 檢 討 를 통해, r 東 펄 學 術 論 文 集 第 14 號 140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42 경으로 본 견해(임영진 2012:23-24)와 남경 사가산 6호 사충묘( 永 初 二 年 :421년) 출토 반구호와의 유 사성을 들어 동진말기 혹은 남조초기 인 5세기 초반으로 추정한 견해가 있다. (정상기 2013: ) 중국 동진(남경 상산 9호묘) 천안 화성 리 오산수청동 王 建 之 ; 太 和 6 年 基 (371년) I 녹청색유조. 구연부 철반문. 황갈색유조, 2조의 대칭 고리부착. 2조의 대칭 고리 부착(종방향). 높이 :33.8cm I 높아 37.6cm 입지름 ;16. 5cm I 입지름 ;17.8cm 밑지름 ;13. 5cm I 밑지름 ;13.7cm 황갈색유조. 4조의 고랴 부착(횡방향). 높아 34.5cm 입지름 ;15.9αn 밑지름 :15.2 도면 12. 중국 및 한국 출토 정자반구호 중국제청자의 연대를 추정함에 있어 항상 논의가 되는 것이 전세기간을 상정한 폐기 혹은 부장 연대이다. 이는 중국제청자가 지닌 위세품 성격을 상정하고 전세 가능성에 비중을 두는 견해가 지배 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매장유적에서 출토된 중국제자기는 주로 개인적인 용도의 사용이 높은 기종 을 강조하며(임영진 2012:25-26) 전세론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되고 있다.(임영진 2012, 土 田 純 子 2012a 2012b) 발표자 역시 이 같은 견해에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다. 따라서 봉덕리에서 출토된 청자반구호 (4호)는 동진말기 남조(송) 초기인 5세기초반에서 중엽으 로 추정된다. 다만 남쪽 주구에서 출토된 청자호편은 4호석실 출토 청자반구호보다 약간 빨리 볼 수 있으며, 3호석실 출토된 자기는 동체에 연판문이 시문된 것으로 보아 연판문이 성행한 남조(제)시기 인 5세기 후반 말경으로 판단된다. 금동신발은 4호석실에서 완형에 가까운 1쌍과 5호석실 에 서 바닥편 일부가 출토되었다. 백제시대 의 금동신발은 12개소의 유적 에 서 모두 19점의 출토되었다. 이 중에 서 봉덕리 4호석실 출토품이 가 장 양호한 상태이며, 시문된 문양 또한 가장 화려하다. 측면 바닥 면 도면 13. 봉덕리 4호석실 금동신발 고장 봉덕리 1호분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141
143 4호석실 출토 금동신발은 여타 출토된 금통신발이 양측판 (2 매)과 바닥판 총 3매의 금속판을 결 합하여 제작한 반면, 4호석실 출토품은 양측판 상부(발목깃 ) 에 1매의 금속판을 덧대어 총 4매로 제 작된 점이 가장큰특징이다. 7) 현재 금동신발에 연구는 백제 금속기법(제작)속에서( 周 몇 美 1998, 權 香 阿 2000, 이귀영 2009), 신발 제작기법(이현상 2011), 문양(이송란 2012), 위세품으로서의 중앙과 지방과의 관계(진소영 2008, 이한상 , 이훈 2010) 등의 연구를 들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연구를 통 해 제작기법과 문양의 변천 혹은 출토된 유구의 형식에 따라 개략적인 시기적인 변화상의 흐름은 파 악되고있다. 결국 금속기술과 제작기법의 발전은 금동신발에 시문된 문양과 함께 변화 발전하며 이는 제작 시기와도 밀접한 관련성을 지닌다. 즉, 백제 금동신발은 초기의 단순한 문양의 투조판 결구를 시작 으로 조금기술 8) 의 변화 발전되면서 문양 역시 후대로 갈수록 점차 복잡해지고 섬세해지는 경향으 로 변화한다. 백제 한성시기로 편년되는 금동신발의 선조기법과 문양과의 상관관계를 정리하면 아 래 표 2) 와같다. 표 2. 백제 금동신발의 *없댐? 技 法 및 文 樣 과의 相 關 關 係 遺 物 名 透 흙 點 打 影 技 i 去 잉 願 홈 技 i 去 10) 측판 바닥판 ~~ 바닥판 측판 바닥판 길두리안동고분 T자문 ~ 딩엉""~그 수촌리 II 1호 T자문 능형문 거치문 거치문 수촌리 II 3호 T지문 용문 화염문 화문 수촌리 II 4호 봉덕리 1 4호 거치문 용문 ~zj-~프- (용문등) 용문 0 0 주J,zj-g (용문등) 0 이를 살펴보면 한성시기의 백제 금동신발은 T 자문과 능형문의 투조판으로 결구하여 단순하게 제작되다가, 5세기경에 금동관에 사용된 影 金 技 術 없 廠 技 法 )이 접목된다. 금동신발에 접목된 線 影 技 法 의 點 打 廠 는 테두리나 문양대를 구획하는 외곽선등의 보조문양으로 시문되는 반면, 주 문양의 세부적인 표현은 願 影 기법이 사용된다.(수촌리 II 3호 4호) 이러한 축조기법은 더욱 발전하여 고 창 봉덕리 금동신발에서는 투조된 육각문의 외곽선과 문양대의 구획선에 사용되며, 투조된 주요 문 양의 세부적인 표현은 새로운 음각기법을 적용하여 사실적이면서도 매우 입체감있게 표현되었다. 11) 끼 서산 부장리 6-6호분에서 출토된 금동식리 따펀에서도 봉덕리 4호석실 출토 금동신발의 목깃으로 추정되는 편이 일부 관잘되나 명확하지 않다 8) 影 金 技 法 이란 금속표면을 장식하는 모든 기법을 말하며,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爛 微 法 이다 (이난영 2이2 :50 53) 주로 점으로 연속적으로 표현되어 접열문 또는 열점문으로 불리운다 (이난영 2012:51-52) 9) 끝이 약간 펀평한 공군정 으로 직각에 가끼울 만큼 비스듬히 세워, 가볍게 각을 세우면서 차듯이 두드린다 하여 붙혀진 영칭인데, 삼각형의 10)모앙이 이어져서 선을 만들고 있다 (이난영 2012:53) 11) 문앙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은 차후 다른 지면을 통해 소개할 예정이다 1421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44 따라서 현재 까지 출토된 금동신발 가운데 고창 봉덕리 1호분 4호석실 금동신발은 제작기법상이 나 문양 등으로 볼 때 한성시기 금속기술의 최고의 절정기에 제작되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그 하한연대 는 웅진천도 이전인 475 년으로 설정할 수 있다. 또한 5호석실에서 출토된 금통신발 바닥편은 능형 문이 투조된 것으로 보아 공주 수촌리 JI -1호 출토품과 유사한 것으로 미루어 4호석실 보다는 선행 하는것으로추정된다, 바닥판 사진 4. 봉덕리 1호분 4호석실 금동신발의 축조기 법 세부 龍 文 力 士 文 鬼 面 文 사진 5. 고창 봉덕리 1호분 4호석실 금동신발의 음각기법 세부(바닥판) IV. 맺음말 고창 봉덕리 l호분은 분구의 조성방법과 매장시설의 축조 등을 통해 기존 고창지역의 마한분구 묘의 전통성을 엿 볼 수 있다 즉 매장시설은 백제계 석실로(횡혈식 혹은 수혈식) 변화되지만, 하나의 동일 분구내 에 다장의 전통 옹관의 매장되는 점 등이 그것이다. 또한 마한 전통 주구의 존재와 주구 내부에 있어 제의 행위 등 이러한 일련의 특징은 기존 마한 분구묘의 전통이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는 1호분을 포함한 봉덕리고분군을 축조한 중심세력은 고창지역의 아산면 일원 을 거점으로 성장한 마한 재지세력으로부터 그 명맥이 이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매장시설로 사용된 백제 한성시기의 횡혈식석실분의 존재와 출토유물을 통해 백제와 고창 양 지 역과의 유대관계는 물론 중국제청자- 일본 스에끼 등을 통해 봉덕리고분군 조영집단의 대외교류도 유추할수있다. 봉덕리 1호분의 고분구조와 출토유물 등으로 볼 때 가장 먼저 축조되는 5호석실의 연대는 5세 7 초 중엽경으로, 4호분은 이보다 조금 늦은 5세기 중 후엽경, 그리고 가장 늦게 축조되 는 3호석실 은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반으로 추정하고자 한다. 고창 봉덕 리 1호분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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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토 로 고창 봉덕리 1호분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에 대한 토론요지 성 정용(충북대학교) 년에 조사된 고창 봉덕리 1호분은 전북 남쪽 지역에서 백제 금동신발이 출토된 최초 의 예로서, 여기서 출토된 금통신발의 장식성뿐만 아나라 이 지역과 백제와의 관계 때문에 큰 주목을 받았았다, 봉덕리 1호분에 대한 발표자의 견해는 크게 1) 봉덕리 1호분은 5세기 초 중엽무렵 축조가 시작되어 5세기 말 6세기 초까지 호 매장주체순으로 약 1세기에 걸쳐 축조되었으며, 2) 금동신발은 백제계 위세품으로 l호분 피장자들이 백제 중앙과 깊은 관계를 맺은 지역집단임을 보여 주는 것이지만, 3) 중국자기들은중앙의 하사품이라기보다이 지역 집단이 백제의 중국 견사에 참여 하여 획득한 물품일 가능성이 있으며 4) 소호장식유공호와 스에끼는 왜와의 관계도 시사하는 것으 로서, 결국 1호분을포함한봉덕라고분군을축조한중심세력은고창지역의 아산면 일원을거점으로 성장한 마한 재지세력으로부터 그 명맥이 이어져 온 세력으로서 중국 및 왜와도 대외교류를 한 집단 이다 라는 점 등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4호석곽 1 ) 에서 출토된 금통신발은 透 廠 와 線 廠 기 법을 혼용하여 運 花 와 龍 力 士 등의 다양한 문양을 정밀하고 화려하게 시문하고 있어, 백제 한성기 금속공예술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봉덕리 1호분에 대한 발표자의 연 대관 등에 대해 큰 틀에서 공감하면서 몇 가지 보충질문을 드리고자 한다. 먼저 연대와 관련하여 4호석곽의 경우 청자반구호 등을 통해 5세기 중 후엽경으로 보았는데, 일반적이라면 표현에 문제가 없으나 백제의 경우는 마침 475 년이 한성기와 웅진기를 가르는 큰 획기 여서 자칫 웅진기처럼 보일 수도 있다. 대략 4세기 3/4분기 정도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인지? 토론 자는 화성리와 봉먹리 1호분 4호석곽 반구호가 귀의 수와 형태(화성리 雙 耳 에 둥글고, 봉되리는 각 지고 4 耳 ), 동최대경 위치(화성리가 좀 더 상위에 위치)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전체적인 기형의 차이는 그리 없는 점, 발표자도 예로 든 421년 기년이 있는 남경 司 家 山 謝 流 養 출토품이 봉덕리 것 보다 조금 더 구형에 가까운 점 금동신발의 연화문 모티프가 공주 수촌리 II 3호분 것과 통하는 점 등으로 보아 5세기 중엽 또는 그보다 조금 이르게 보아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토론자가 봉덕리 유물을 구체적으로 실견하지 못하여 확신할 수는 없으나, 4호석곽 須 惠 器 系 杯 가 도면상 구연이 직립하고 그리 깊지 않은 배 신 심도 등으로 보아 TK 형식 사이에 위 치지울 수도 있다고 보이는데 발표자의 견해는 어떠한지? 1) 발표자는 1호분의 주체부를 수혈식과 횡혈식구조와 관계없이 모두 석실로 지칭하고 있는데 아마도 이들의 규모 차이가 없기 때문에 그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室 은 엄밀하게는 현실세계의 밤을 사후세계로 옮겨놀은 것으로서 출입을 위한 문과 길(연도, 묘도)이 있어야만 한다 이 점에서 수혈식은 크기여부와 관계없이 곽 으로 지칭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며, 실상 수혈식에서 곽과 실을 구분한다고 해도 어느 정도 크기를 기준으로 해야할지 정하기가 어렵다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48 다음으로 봉덕리에서 출토된 금통신발을 비롯한 착장형 위세품 및 까 來 系 부장품들을 갖고 있는 인물과 집단의 성격을 과연 어떻게 바라보아야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발표자는 1호분을 포함한 봉 덕라고분군을 축조한 중심세력은 고창지역의 아산변 일원을 거점으로 성장한 마한 재지세력으로부 터 그 명맥이 이어져 온 세력으로서 중국 및 왜와도 대외교류를 한 집단 으로 정의하고 있다. 토착 적 의미를 조금 더 강조하는 듯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미 중앙의 지배하에 들어간 이후에는 지역집 단이라는 용어도 그리 적당한 것은 아닌 듯하다. 국가의 지배체제 아래 들어간 단계에서는 중앙에서 파견했건 혹은 중앙에 출사한 지역세력이던 간에 국가 지배하의 지방의 한 집단으로서 존재할 뿐인 것이다 2). 이와 관련하여 중국 도자가 고창까지 유입된 배경에 대해 백제의 중국 견사시 왕실의 견 사에 필요한 특산물을 지역 세력이 제공함은 물론 견사에도 참여하고, 중국 현지에서는 백제 왕실의 공식적인 활동과는 별도로 각기 자유로운 상업활동을 통해 필요한 물품을 선택적으로 구입하였을 가 능성을 지적 한 임영진 선생님의 견해를 인용하여 봉덕리 고분 축조 집단이 대외 교류에 참여하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이며 지방 지배하에 편입된 세력들도 나름대로 대 외 관계를 가질 수 있으나 만약 직접 참여하였다면 중국 자기 이외에 다른 물품도 유입되어 부장되 었을 여지가 높을 것 같다. 착장형위세품과 중국자기가 공반된 다른 고분군들에서도 그런 예가 보이 지 않는 점에서, 이들은 백제 중앙에서 일괄로 분여한 것으로 보는 것이 좀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한편 발표자는 소호장식유공호의 제작지에 대해 왜의 가능성을 높게 보면서도 중국과 백제 생산 가능성을 모두 열어놓고 있다. 그런데 유공호의 상부에 뚜렷한 청녹색의 유조가 분석 결과 유약의 용융제성분 특히 CaO(산화칼숨)의 함량이 높게 검출되어 라임유약 (High lime glazes) 계열로 확인 되었다고 한다. 발표자의 표현대로라면 인위적으로 유약을 입힌 것처럼 보이는데, 자연유인지 인공 유인지 여부는 이 토기의 계통을 이해하는데 중요하기 때문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좀 더 분명히 하여 주었으면 한다. 5세기 무렵 백제나 왜에서 인공유를 만들 정도로 제도기술 수준이 올라가 있다 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도 1] 1. 南 京 象 山 8호분(367 년) 2. 천안 화성리 3. 고창 봉덕리 1호분 4. 南 京 司 家 山 謝 流 훌(421 년)(축척 不 同 ) 2) 금동관과 신발 등의 최고의 착장형 위세품에 대해 과거 충님 이남 지역에서 주로 출토되어 토착 지역세력에게 권위를 부여하고 복속시키는 물품으로 대개 이해하여 온 듯하다 그런데 近 짧 지역에 해당되는 경기도 華 城 에서도 출토되고 있어 외곽 세력에게만 하사한 것으로 보는 시각은 약간의 수정이 필요할 것 같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논증하기는 어려우나, 한성기 말에 보이는 王 候 號 制 와의 관련성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생각한다 고창 봉덕리 1호분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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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07 日 本 北 部 九 州 l; 원 it~ 古 瓚 時 代 中 期 0)± 里 義 施 設 鋼 鏡 i± 田 淳 - 郞 ( 九 州 大 후).따 L:i~아Z. 古 境 時 代 中 期 ζ$ 付 흥 理 훌 施 設 m쫓훌t 階 홈 性, 古 慣 時 代 뿌 期 ζ힘 付 홀 鋼 鏡 m쫓훌 IV. 結 語.따 lic\i아; 本 짧 表 m 덤 的 따, 主 lζ 日 本 O):Jt 部 九 州 창 村 象 k LT, 5 世 紀 代 창 中 心 k Lt<: 古 慣 m 理 賽 施 設 m쫓 選 :toj:u 鋼 鏡 副 賽 O) ~ 方 창 整 理 #&ζt'"f -@ 되 該 時 期 m 韓 島 南 部 地 域 lζ;toi., -rii, 北 部 九 J ltt 開 連 센 深 v't 想 定 연 tl0 理 賽 拖 設 & 多 敬 確 認 츠 hτ:to~ *ti'.: 鏡 m 出 土 & 多 <JJGtl0 깐 tlgo) 位 置? f창 考 x0 上 '"fo) 參 考 賣 料 창 提 示 캉gζk 창 덤 的 k Lt<:ν 古 慣 時 代 前 期 k 며 期 φ 境 界 센 4 世 紀 代 mε m 時 期 농τ 週 -@ij ζ?ν-rii 現 tf\-r 定,!. ij' tj. < 不 明 τ 0 本 鎬 τ 낭, ill'!헤 鏡 k 須 惠 器 m 年 代 觀 h G, 古 慣 時 代 前 期 前 ~lt3 世 紀 中 葉 末, 前 期 後 ~lt4 世 紀 代, 中 期 前 캉 5 世 紀 前 캉 中 心 t90 時 期, 古 瓚 時 代 中 期 後 찰 5 世 紀 後 末 창 中 心 t90a춤 期 後 期 前 캉 6 世 紀 前 ~tl-r 模 討 창 行 5. 古 慣 時 代 中 期 {ζ힘 付 증 理 훌 施 設 m쫓 運 t 階 層 性 1. 前 期 η뱅 賽 拖 設 ζζτ 'i* 좋 北 部 九 싸 1 0) 前 期 h 5 中 開 lζ:toit0 탤 賽 施 設 m쫓 遭 창 戰 關 Lt<:v 前 期 lζ;toi., -rii, 램 生 時 代 以 宋 m 箱 式 石 相 센 最 & 一 般 的 캉 理 賽 施 設 tlτ 低 壞 묘홍h 8 前 方 後 면 瓚 lζ 至 -@*'"fl끄 採 用 걷 n-rv g 깐 LT 玄 界 離 治 뿜 t 也 域 창 中 心 lζ, 主 { 本 部 ζ 劉 竹 形 木 相. 採 用 #& 古 慣 센 集 造 연 n-ri., g 近 짧 周 i끄m 上 位 層 η 前 方 後 門 慣 깐낭 劉 竹 形 木 植 창 堅 六 式 石 챔lτ 覆 &φ센 主 休 τ 0 센, 北 部 九 州 τ 따 堅 六 式 石 빼찰 採 用 Lt<: 古 項 따 非 常 lζ 限 定 的 τ; 0 ( 抽 鎬 2010) t 位 層 η 理 賽 施 設 따홈 lj 竹 形 木 相 h 主 休 τ -:it<:tjjgn, 箱 式 石 格 에 小 型 m 組 合 式 石 植, 石 蓋 土 購 흉창 下 位 t90 緣 애 h 캉 階 l롭 性 h 認 ~G tl0 日 本 Ul 九 州 t:<t>lt 정 古 增 時 代 中 期 17.>i뿔흉 施 設 銀 鏡 1149
151 2. 初 期 橫 칸과 石 훈 Q 成 立 ε 뽑!협 性 前 期 後 半 末 ζ 찮 0t, 玄 界 i 難 治 품 O){ 左 뿔 原 폼 律 市. 口 古 瓚 ( 前 方 後 F딘 瓚 90m 前 後 )τ 長 持 形 石 相 창 納 fhtc. 堅 六 式 石 챔lO) 短 뿔 lζ 橫 口 部 h 設 置 츠 tl, 初 期 橫 '/\; 式 石 室 센 成 立 90 播 핍!뭘 福 폐 市 老 司 古 瓚 ( 前 方 後 門 瓚 77m)0)3뭔 石 室 τ 낭, 長 L 훌 道 k 閒 塞 石 창{ 橫 7 C 式 石 室 센 藥 h tl, 同 鋼 ~힘 古 慣 ( 前 方 後 F딘 慣 62m) 간때 短 L 漢 道 部 창 設 置 l.jc. 橫 六 式 石 室 센 第 h tl0 ζtlstit- 9tlt 前 期 末 前 後 lζ:to b l, 玄 界 i 難 i심품m 諸 t샌 域 η 最 上 { 立 l휩 lζj::-::i l 採 用 츠 ntc.to) τ 0 系 諸 lζ"':) (; T 따 不 明 강펴센 多 L. 漢 城 周 i끄m 韓 半 島 西 南 部 ζ 求 fhstl0 可 能 性 센 高 L 老 司 古 瓚 τ 따, 3뭉 石 室 以 外 m 主 休 部 {ζ 힘 L l, 木 相 캉 納 {:}) 강 U 堅 7 I 式 石 構 m 短 뿔창 閒 塞 部 k LJc. L # φg 堅 '/\ 系 橫 口 式 石 室 k 呼 tj'tl0 石 室 同 時 lζ 構 葉 츠 tl"lt- g 現 在 τ 낭, 大 型 τ 福 1끄 Q to) 센 初 期 橫 1\ 式 石 室 A 類, 小 型 τ 11 圖 快 0)1b0) 센 fjj 期 橫 ;/\ 式 石 室 B 類 k l"l 分 類 걷 tl"l:tolj, 從 宋 堅 7지 系 橫 口 式 石 室 t~tl"l 쏟 tc. 一 群 따 後 者 lζl줌 90 ( 重 購 2007) ζ nso 初 꽤 橫 六 式 石 室 A 類 B 類 η 閒 塞 施 設 따 追 養 캉 前 提 tltc.to)τ 0 센, 人 骨 m 出 土 강 ε h 5 複 敬 被 養 者 m 理 흉센 確 認 연 tl01 易 合 τ 연 몹 lj 聲 品 m 組 合 괄 Lζ따 時 期 差 센 J:7. Stll;J: t- 場 合 h 多, 園 冠 計 測 {협m 分 析 結 果 h G, 同 世 代 m 추크 r) 갖 -1 창 理 養 90 場 合 센 基 本 τ -::i tc.tjj.gtl0 ( 田 中 ) 농 tζm채 期 橫 치 式 石 室 B 類 k 形 態 애 規 模. 共 通 90 形 τ 木 相 창 伴 h 강 L 小 型 O 堅 六 式 石 챔lh' 菜 h tl0 ζtlgti 一 般 lζ 石 相 系 石 室 (:I꽤 t;ftl"lv g 四 뿔캉좀 IJ 石 τ 第 <1 類 h g, 小 口 部 O)Jj 板 石 캉 立 "l02 類, 四 탤 tti ζ 基 底 石 lζ 板 石 캉 立 "l03 類 lζ쫓 選 ltc.to)t 考 :ZGtl"lv & ( 重 購 2007) 며 期 O)jt 部 九 } Itζ힘 L T 따, 地 域 的 偏 差 찰 含 %??, 上 記 O)J:: 카ζ 成 立 Ltc. 初 期 橫 1\ 式 石 室 A 類. 上 位 tl, 初 期 橫 꺼 式 石 室 B 類 石 相 系 石 室 칼 下 位 t90 績 에 h 효 I뿜}롭 'I 生 센 存 在 캉a re.re_ L 例 外 的 ζ, 福 핍믿 月 폐 古 瓚 O)J:: 허ζ, 며 期 前 半 ;;힘 ν"lt 長 持 形 石 相 + 堅 六 式 石 械 t v )-::> tc. 近 짧 上 位 I룸 η햄 賽 施 設 센 採 用 연 tl0 事 땐1Jt 存 在 90 1tc. 播 폐멍 'r'rmz)휠폐l φ 大 分 }받 上 / 原 橫 1\홍 群 효 Eτ ti, L b~0 찌] 期 橫 치홍h 成 :Ll:90 캉 ε, 며 期 창 通 L:"l 堅 7지 系 理 賽 施 設 h g 橫 '/\ 系 理 養 施 設 ι'-.o)if!i 換 b 進 行 90 tu η 古 瓚 時 代 며 期 m 幕 뿜ljtζ힘 νt 共 通 l "ljj.gtl00)ti, 開 h'tltc. 相 ( 和 田 2003) kν3 特 徵 τ 0 前 期 lζ 힘 νt 낭, 上 位 層 창며 心 lζ 近 짧 懶 戶 內 系 η 木 相 + 堅 六 式 石 構 O J::7 강 閒 츠 츠 tlt.: 相 센 採 用 츠 tl"lv tdj'. 在 ±t!lei얀홍 制 tl "lti 箱 式 石 相 O)J:: 7 tζt면 養 空 間 m 中 lζ 木 相 혼 用 L 캉 直 接 被 聲 者 0))옳{ 本 칼 安 置 90 方 法 센- 般 的 τ -::it.: ζ(η면센며 期 lζ 캉 0t 題 在 化 L 初 期 橫?지 式 石 室 A 類 B 類 엠 石 相 系 石 室 φl 캉 niζ:toν"lt, 木 植 칼 伴 btj:v 開 ij'tlt.: 相 센 基 本 ttj:-::i t.: 3. 北 部 )L 州 멤깨j파l 橫 치 式 石 室 力 g 車 室 / 複 室 ~피빼벨 械 t(j:\fl 室 /\ 깐 m 後, 며 期 後 半 末 以 降 lζ 효 0t, 樞 핍떨짧t 家 古 項 엠 f 左 貨!멀 開 行 :tl 古 慣 lζj:7.gtl0j::7 강, 玄 室 平 面 形 센끼 子 板 型 τ 短 L 옳 道 部 컷E 持? 北 部 九 州 멜 初 期 橫 치 式 Fi 室. 北 部 九 ~ / [O) 上 位 I혐τ ti끄 採 用 연 tl0j::7 ζtj:0 ζo 3!i 짧 據 古 瓚 τ 낭, 錄 fijo) 出 土 b G2황m 木 相 캉쐐 fht.: ζk 센 想 定 연 tl, 開 力 tl t.: 相 力 主 休 O)jt 部 九 1'/'I 0) 橫 1\ 式 石 室 ζ:tov T 따 異 例 tv :Z0 ζη 갖 -17 m 石 室 따, 잦IJ 島 內 τ & 福 井 월 十 善 m 森 古 慣 강 ε τ 第 造 츠 hτ:to I)' 石 室 集 造 技 術 센 遠 隔 t샌 同 土 η 間 깐& 共 有 견 tl 得 t.: ζk창 示 L "lv g 韓 半 島 간따 長 木 古 廣 造 山 古 項 新 德 古 增 강 ε. 類 例 k l"l 想 定 흔 tl0 (째iliR2002) 150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52 ζ-5ltdt 部 九 州 型 初 期 橫 六 式 石 室 창 經 -C, 6 世 紀 初 頭 칼 前 後 #& 時 期 lζ 따, 玄 界 離 治 뿜 地 域 τ 따, 平 面 長 方 形 τ 天 井 센 高 ν 玄 室 창 持 친, 歲 道 部 h 細 長 뼈 lf t:::. 車 室 펴j 抽 型 石 室 센 成 立 90 ~t:::.깐 ntmz 行 L-C 前 室 찰 有 Lt:::. 複 室 펴 抽 型 橫 六 式 石 室 m 形 成 센 始 뚫 g 福 I쾌멀 王 t 家 古 慣 애 箕 田 九 山 古 瓚 따 ξm 先 騙 例 tv?t.0 王 t 家 古 慣 τ 낭 阿 蘇 溶 結 j 疑 아 岩 製 m 石 屋 形 캉 設 置 L, 計 4f; 本 分 η 石 林 창 設 置 L -C:tdlJ, 開 h'nt:::. 相 m 理 聲 空 間 lζ 堅 빼 裝 빼창 施 # 6 世 紀 前 며 葉 m 播!웹 平 野 周 필τ 따, 福 핍 市 東 光 좁햇 lj± 家 古 慣 ( 前 方 後 pj 慣 85m) 에 拍 屋 메 歸 見 域 古 慣 ( 前 方 後 門 慣 80m) 캉 Eτ 阿 蘇 溶 結 j 疑 Ek 岩 製 η 石 屋 形 캉 伴. 複 室 固 抽 型 橫 '}"\. 式 石 室 센 構 葉 연 tl, 理 聲 施 設 m 階 l휩 性 η 最 上 位 lζ 位 置? itgtl0 깐 tlfζ 次 規 模 0)40 60m 級 O 前 方 後 면 慣 τ 따 車 室 固 抽 型 橫 7 C 式 石 室 센 採 用 츠 tl0 ζm 過 程 τ 며 期 以 宋 O):jt 部 九 州 型 初 期 橫 '}"\. 式 石 室 낭윷캉 消 L, 長 L 豪 道 칼 伴 5 後 期 型 φ 橫 7 I 式 石 室 "'t 乾 換 900)τ & 4, 小 結 ζo cl: 히ζ, 5 世 紀 後 葉 h G6 世 紀 前 葉 l뎌 t-r. 北 部 九 州 型 初 期 橫 六 式 石 室 h 5 車 室 펴 抽 型 橫 7 式 石 室 "'tv 5 쫓 選 h dj.gtl0 前 者 b g 後 者 "'O)쫓 選 센 :lt 部 九 } l φ 內 部 lζ힘 it0 同 一 系 諸 內 τ η 型 式 렇 的 쫓 化 tdj.0h 韓 半 島 추 列 島 內 η 他 地 域 to) 交 流 m 所 隆 τ Js07J 따 不 明 강펴 多, 今 後 m 課 題 (! Js0 ζm 時 期 m 中 τ &, 特 lζ5 世 紀 末 6 世 紀 前 -*"f뎌 it-r 韓 島 南 部 간 懷 系 m 橫 六 式 石 室 센 多 敬 構 第 연 tl-cv 0,렘 f;t Gt:::.66-C 注 덤츠 tl0 上 述 Lt:::. 北 部 九 州 ζ힘 it0 理 賽 施 設 m 階 l혐 性 따 ft 域 lζ bt:::.-j t 共 有 츠 tl -Cf;lv 0t0)0), 좋 際 Lζ 序 잣u 化 센강츠hτL 00 따 各 平 野 車 位 강 ε 띠 小 地 域 內 部 간 ds-jt:::.t dj.gtl0 韓 半 島 南 部 τ O){ 委 系 理 養 施 設 따, 野 幕 古 瓚 캉 εm 堅 六 系 理 聲 佈 設 h G, :lt 部 九 州 型 初 期 橫 '}"\. 式 石 室 "'t쫓 選 L-Cv 07J 葉 造 'fj\!_륨짧1! 0i 易 合 h 多, *t:::. 系 諸 센 多 u 皮 lζ bt:::.-j-c:tdl), 韓 半 島 南 部 간띠 階 l휩 生 基 本 的 f c: 在 t샘 O)~ 序 m 中 τ 理 解 츠 tl0 띔 該 時 期 ζ:toit0 半 島 南 部 諸 地 域 k 九 州 諸 地 域 kη 多 元 的 캉 交 流 창 物 I 語 g 資 料 tv 효 J:-5 古 項 時 代 中 期 l;훤 tt0 鋼 鏡 Q 짧뽑 1. 古 煩 時 代 前 期 l;원 tt0 鏡 m 流 通 列 島 古 慣 時 代 η 鏡 η쫓 選 ζ:tdv -C, 中 期 ζ 相 띔 905 世 紀 代 따 大 줄강 乾 換 期 τ 0 :JU 島 τ 따, 3 世 紀 代 창 通 c-r 大 陸 뿌 島 to 처 外 交 涉 lζd::-j-c 多 敬 m 漢 鏡 鍵 품 鏡 센 船 載 츠 tl, *t:::.깐 tl창꾼f lνtl-c 多 種 多 樣 캉{ 委 製 鏡 h 生 塵 연 nt:::. 三 角 緣 뼈협f 鏡 u쫓 製 鏡 센 L bf;f 車 輪 η 피j 輪 l! IJ, { 委 製 鏡 φ 面 怪 m 大 小 lζd::-j-c 明 確 캉 序 列 化 h' 志 向 걷 nt:::. ζtlgf;t 近 幾 中 央 政 權 ζj: I) 管 理 츠 tl, 것u 島 各 地 η 上 位 l룸.ζtl캉 歸 춤 的 ζ 入 手 L, 꾼 二 그거 νrt L (0) 古 慣 "'O) 副 養. 行 btlt:::. 列 島 τ φ 分 布 lζ:tdv -rt. f쫓 製 鏡 m 面 怪 강 E 力 GdJ.t:::.i 易 合, JlI 幾 창 核 t90t 也 f 里 '.&] 配 센 題 著 l! IJ, L * {φg 며 ι 周 i끄 開 係 m 樣 相 캉물90 ζ5 Lt:::. 鏡 m 入 手 使 用 消 費 따, 各 t샌m 上 位 l혐띠 世 代 交 代 ( 代 替 b~ )창찢 機 k L-C 操 I) J율츠 tlt:::.tdj.gtl0 古 瓚 時 代 前 期 φ 店 域 秋 序 낭, ζ L;건 鏡 창따 C66t90 諸 製 品 m 入 手 使 用 消 費 h 各 世 代 ζ to)-t:- 二 그거 νh 造 협 k 不 可 分 lζ 結 lf -:Jv t 行 btlt:::.to)l!jslj, i현 ζ 言 ;tf;f 鏡 캉 t'o) 諸 製 品 m 入 手 에곤 二 그Xνh 造 當 센 敎 世 代 lζ bt:::.-j 日 本 北 뿜 九 州 l 二 <tolh 古 境 B츄 代 中 期 Cl)±뿔흉 施 設 햄 鏡 1151
153 T 織 結 90 ζ t ti 깐 ni풍 ε 一 般 ~C'titJ:h "'J tc. ζ (!)'면깐, 前 期 鋼 鏡 센 示 9 며 心 - 周 i끄 開 係 m 樣 相 따, 近 짧 中 央 政 權 Lζ &파 域 的 地 域 支 配 창 示 9tl -?J:IJ, b bt;fili 離 中 央 政 權 창 中 核 t Ltc.Jt. 域 的 政 治 的 * y J-. tj - '.7-"(f) 參 加 캄 表 象 90t(f)τ lv"'jtc. 前 期 (!)}끄 域 的 t샌 域 間 開 {%에 前 方 後 pj 慣 m 各 地 τ m 展 開 따, ζ;/1,g(f) 各 種 鋼 鏡 강 ε m 生 塵 流 通 창 前 提 tvc 깐깐5 센 授 受 ~;/1 結 t0ζ ttζd:"'jl 維 持 ~;/1-Cl tc. 筆 者 따 ζ5 Ltc. 各 地 m 上 位 l협 η 測 η 參 달센 l양 域 ** 序 再 生 盧 m 原 動 力 τ 0JSIJ 方 창, 人 類 풍 O ;E-7' ;J;;찰캉 照 v::r:j 古 瓚 時 代 前 期 威 信 財 ν.a.-tb./ 求 心 的 鏡 合 開 係 꾼f ;J; k Lτ 位 置? t-cl g (돼 橋 2007) ζ5 Ltc. 鋼 鏡 따, 3 世 紀 代 ζ:jdνt 따, 各 種 漢 鏡 鍵 품 鏡 센 大 I첼추 樂 浪 첩~ 뿜 方 휩~to 交 涉 찰 通 c-c 列 島 lζttc.g~nτ l'tc.tdign0h, 高 句 麗 南 下 l; 伴 年 314 年 η 樂 浪 那 뽑 方 都 η 滅 亡 t3 16 年 η 西 품 滅 亡 lζj: I), 列 島 "'(!) 供 給 따 停 止 Ltc.h 著 L< 減 少 Ltc.t 考 xgti.0 몇 際 lζ 前 期 後 期 lζ:jd!, τ 따, {껴 製 三 角 緣 坤 默 鏡 에 漢 鏡 觀 핍 鏡 m 副 賽 ti*!**종 90t(f)(f), 各 種 { 委 製 鏡 m 生 庫. mt 通 h 主 { 本 τ I)' 前 期 後 半 찰 通 c-c 線 애 力 lζ 1J 볕 化 力 進 行 L, 꽤 質 低 下 #& ζ5 Ltc.짧 遭 칼 經 l, 前 期 末 中 期 初 頭 m 段 階 C', {져 製 三 角 緣 빼 默 鏡 에 各 種 前 期 f쫓 製 鏡 η 生 塵 流 通 센 停 止 L, {쫓 製 鏡 m 生 품 休 뿜 1J t 再 編 成 연 ;/1 tc. t (!) t 考 ;tg;/10 前 期 後 半 τ 따, 中 固 鏡 tl'l 方 格 T 字 鏡 애꼈 頭 龍 文 鏡 η 몹 lj 賽 tl "'Jtc. 小 型 鏡 m 뭄 lj 賽 h 팀 立? 特 lζ 方 格 T 字 鏡 lζ-:ji, lfi 韓 半 島 南 部 地 域 τ 出 土 L-C:JDIJ, 良 洞 里 441 띔 慣 出 土 鏡 ε 播!돼멍 東 흉 方 1 뭉 慣 出 土 鏡 t(f) 間 깐 同 型 η 開 係 確 認 흔hτνg 活 짧효 相 互 交 流 창 示 # 資 料 τ 0h, 副 賽 ζ 至 0*τ m 流 通 m 經 韓 lζ-:ji, τti 複 敬 η 可 能 性 h 存 在 90 ( 上 野 ) 特 lζcti.gh' 先 (!)4 世 紀 初 頭 η 政 治 쫓 動 以 降 lζ 大 쩔τ 生 塵 ;~n. ttc.g 연 ntc. t(f)τ Jb0(J)iJ\ ξh 以 前 lζ필 作 연 ntc. t(f) 센 imζ4t단 紀 初 頭 以 前 lζjij 島 에 島 南 部 τ 入 手 츠 ;/1-Cl tc.(f)ij tl "'Jtc.면따 大 쏟 tj: 課 題 C' 期 前 半 O)~Jl 中 期 前 半 lζ 캉 0t, 것lj 島 內 간따 鏡 m뭄 lj 聲 따 減 少 L, 各 種 錄 製 武 器 類 武 具 類 창 主 { 本 tltc. 生 塵 流 通 -"t 쫓 化 90 眉 lte 付 뿜 衝 角 付 뿜애 三 角 板 휠 繼 短 甲, 銀 留 短 ~p (!) 出 現 따깐 ;/1창 端 的 lζ 象 徵 L'll g L vii' 武 器 武 具 類 창 核 tltc. 며 期 的 威 信 財 ν.a.-tb. "'(f)~i 換 k 考 ;t0ζ th τ 줄 g C(f) 며깐, 鏡 m I감 660 比 重 따 前 期 ε 比 식증 k 相 처 的 lζ 少 강 강 "'Jll g 깐 η 다1 깐, ~p 期 前 ~iζ 따며 E힘 鏡 m 副 賽 센 -- 部 τ JiGti.0 具 f 本 例 tl'l, ζζτ fit붐 핍멍 月!끊l 古 壞 出 土 鏡 群 찰뿔 if tc." 江 戶 時 代 O 짧 見 τ IJ, 現 存 90i뭘 物 따 全 Tτ 따효 L 센, 金 꽤페 裝 m 眉 }표 付 뽑효 ε 창따 t.::66, 多 量 m 武 캄융 武 貝 類 창 含 합 ζkτ 著 名 C' 0h\ Cζτ 따 4 面 φ 鋼 鏡 센 現 存 L'll g ζng 따, 며 固 鏡 1 面 ( 同 向 式 固 象 鏡, 16.3cm)t 며 期 η 優 製 鏡 3 面 ( 默 像 鏡 四 ~L뼈 文 鏡 珠 文 鏡 )간 IJ, 뼈j 象 鏡. 中 型 鏡 깐 0 以 外 따 全 T 小 型 鏡 τ 0 他 lζ C(f)I월 期 lζ 따, 兵 庫 명 宮 山 古 慣 出 土 뼈i 文 뿜 環 tr~l뼈 默 鏡 호 ε, 漢 鏡 띠몹 lj 賽 例 센 知 Gti.0 ζti.g(f) 漢 鏡 lζ-:j" t 따, 後 i힌90 며 期 後 ~(!) 同 型 鏡 群 ttiili:il 孔 形 態 센 異 효 "'J'l:IDIJ, 깐 ;/1 以 前 {ζ 製 作 면 ntc. t(f)τ 0 可 能 性 센 高 L ζngtif쫓η 五 王 η 時 代 m 村 南 朝 遺 使 m 中 τ 列 島 "'o 船 載 센 行 vntc. 可 能 性 h' 0h, 現 i:rc'(f) 賣 *~t+wth Gti, 中 期 前 半 lζ:jd!, τ따깐 Ltc. 中 固 鏡 m 船 載 再 開 h 多 種 多 量 tl "'Jtc. 前 期 ~l'j:t(f)τ 낭강, I뼈 定 的 강 t(f)τ lv"'jtc. ζk 창 示 L'll g *tc. 大 板 府 百 굵 鳥 大 據 山 古 瓚 간따짖IJ 島 τ 1521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54 따 珍 Lv 錄 鏡 h 出 土 vrν& 古 慣 m 案 年 代 k 鏡 η 系 諸 lζ-:jv T따 今 後 η 課 題 τ ltsg 1t.:: 며 期 前 ζtov n후, 前 期 以 宋 m 鏡 h 몹 IJ 賽 연 tlg 事 例 & 多 存 在 9G 例 ;uf 福!웹떻 111뽑 山 古 慣 ( 前 方 後 띤 慣 85m) 따 初 期 橫 六 式 石 室 lζ 箱 形 η 連 接 石 相 창 納 &'JGtO)τ 07'J, ζζh Gti2 面 O)fj쫓 製 鏡 ( 六 默 鏡 二 뼈= 默 鏡 )센 出 土 vn g ν 캉 nt 前 期 中 葉 後 葉 m 製 作 lζ 효 0t0)τ ;:tsf), 六 默 鏡 따 22.lcmO 大 型 鏡 τ 0 뾰 賢 명 橫 田 下 古 瓚 η 初 期 橫 7 C 式 石 室 ζtov -rt 製 作 年 代 센 前 期 lζ뺑 01J 型 η 默 { 象 鏡 b 出 土 Lτνg 初 期 橫 1\ 式 石 室 따 先 述 O)J::-5 tζ 北 部 九 州 τ 따 上 位 l롭간 採 用 면 tl0ζk 센 多 L., 最 新 型 式 O 鏡 f)tζ5 Lt.: 前 期 m 鏡 캉 ε 센 副 賽 흔 tl0 事 { 列 센 多 광 Gtl0 ζtlgo) 鏡 h 在 t 也 τ {급 世 ;~nt.::to) τ lts00) 7'J 近 짧며 央 政 權 下 간 管 理 保 管 연 n-rv t.::t0)7'j ζη 時 期 lζ 入 手 연 nt.::to) τ 'Ji.>00)7'J 때 不 明 τ 07'J, 中 期 前 半 O){쫓 製 鏡 生 塵 h 前 期 ttt이 0t 相 村 的 lζ 低 調 τ ;:ts-:; t.:: ζ t, 1t.:: 鏡 m 入 手 副 賽 h 限 定 흔hτν t.:: 時 期 C' 0ζ tij' 確 認 τ 줄 g 3. 中 期 後 半 φ 鏡 中 期 中 葉 以 降 lζ 캉 0t, ζ-5 Lt.: 中 期 前 ~O) 樣 相 센 大 쏟 樣 쫓 ti~ 90 具 { 本 的 lζ 따, 同 型 鏡 群 m 副 흉 開 始 k깐깐찰꾼f JvtLtd쫓 製 鏡 生 塵 η 活 짧 化 tv 'SBτ 0 同 型 鏡 群 따 主 ζ 後 漢 鏡 창 原 鏡 ε Lτ 路 * 退 LO) 技 術 τ 大 量 生 塵 연 ht.: 鏡 τ j)f) 現 在 約 26 種 130 面 前 後 센 知 Gtl-Cv g ζtlg 따 銀 JLO 製 作 技 術 lζ 힘 L τ, 숲H 座 面 k 一 致 #& 位 置 lζ 大 型 τ 橋 Fl 形 m 中 子 창 用 L t.::~ 면 形 η 銀 孔 창 持 -:Jtv. 特 徵 센, 깐 n 以 前 m 鍵 품 鏡 ( 一 段 高 L 位 置 ζ 長 方 形 m 組 孔 창 持?)애{ 委 製 鏡 m 銀 孔 形 態 ( 銀 座 面 k 一 致 90 位 置 ζ 方 形 η 組 孔 창 持 -:J) tj:ε tt 大 줄 異 캉 -:;-Cv 0( 抽 鎬 2013) 全 f 本 0)7 劉 以 上 센 19cm 以 上 m 大 型 鏡 τ ;:tsf), 中 型 小 型 鏡 & 含 뚫 tl07'j' 全 休 tlτ 大 型 鏡 찰 主 休 t90 一 群 τ & 最 大 O)t0)7'J 千 葉 原 祖 園 大 據 山 古 境 h g 出 土 Lt.: 固 文 뽑 f L 默 鏡 Bτ j)f) 面 怪 30.3cm깐 外 E창 批 大 LJ.: 極 大 鏡 τ g 뚫 t.:: ζη 며간&, 特 ζ 固 文 뿜 同 向 式 坤 默 鏡 Ct 흔 tl0 一 群 따, 同 型 鏡 h 28 面 確 認 연 hτt3f), 現 在 O)t ζδ 突 出 L-C 多 ν 賣 料 τ 0 ζtlgo) 同 型 鏡 群 $, 後 漢 代 φ뼈 默 鏡 에 庫 i 象 鏡 浮 멈Z 式 뽑t뿜 鏡 IJ:(!_'O) 鏡 式 鏡 種 캉 中 心 tl, 大 型 鏡 센 主 { 本 τ 0tv 5 면 ζtov -Ct { 扁 -:>tl: 構 成 k 캉 -:;-Cv g 몹 lj 賽 年 代 φ 上 限 따 須 惠 器 0)0N46 型 式 期 τ ;:tsf), 5 世 紀 中 葉 m 年 代 觀 h 得 Gtl0 現 在, { 委 O)]j_ 王 η 遺 使 lζ 伴 b 南 朝 宋 O 入 手 ;~nt.:: 可 能 性 센 有 力 規 연 n-rν& -- 群 τ j)f) ( 川 西 2004), 筆 者 & 先 lζ J.Jt.:: 銀 孔 形 態 m 技 術 的 特 徵. 鏡 種 창 橫 뻐 L-C 認 &'JGtl0tv -5,~iJ gζo 說 창 支 持 L-Cv & JI[ 西 宏 幸 民 따 438 年 tl<ti451 年 O 遺 使 時 m 入 手 η 可 能 性 창 指 補 L-Cv & ζtlgo) 同 型 鏡 群 따, 基 本 的 ζ 中 期 後 ~O) 早 L 段 階 τ 搬 :Qt 풍 t 全 "[O) 鏡 種 센 出 f 前 -:>-Cv t.::t 考.:tGn, 半 世 紀 tv -:;t.:: 長 期 lζbt.::0 入 手 τ 따효, 短 期 間 캉 ν L 限 5 nt.:: 入 手 機 승τ η 船 載 tv'-5 可 能 性 7'J"-i 農 庫 τ 0 ζ ηi견간 文 帝 O):jtfJ:~ζJ:: I) 南 朝 m 政 治 經 消 h 混 폼L 90 以 前 m 時 期 tv 캉 j년5τ 따 443 年 η 消 ζj::0i 貴 使 時 η 可 能 性 t 0 농 t.:: ζm 同 型 鏡 群 _O) 船 載 창 大 좋강훨 機 k L-C, 깐 tlg~꾼f ;t;tltd 委 製 鏡 η 生 塵 h 活 짧 化 캉& 깐 tlg 따 前 期 {쫓 製 鏡 η 系 語 ~517'J 캉, 新 tdζ 同 型 鏡 群 창 模 做 L-C 生 % 出 흔 nt.::to) τ 0 f:o) 며간 特 ζ 題 著 효 to) 센, 固 文 뿜 村 置 式 챔1 默 鏡 m 默 { 象 창 板 줄 出 L r 構 成 Lt.:t'JJGtl0 旅 回 式 默 { 象 鏡 系 τ ;:tsf), 中 型 鏡 m 主 休 창강 L-Cv g 1t.:: 小 型 鏡 tl -C LI뼈l 文 鏡 系 h 大 量 生 塵 연 n-r힘 f)' 全 fttlτ, 同 型 鏡 群 ( 大 型 主 { 本 ) > 旅 回 式 默 藏 鏡 系 (며 小 型 ) > L뼈I 文 鏡 系 ( 小 型 ) tv 캉 面 怪 Q 序 列 센 明 購 lζ 表 n-rv a ( 上 日 本 北 뿜 九 州 二 i!>ih 古 慣 8츄 代 中 期 <l)i홍쫓 拖 設 k 鋼 鏡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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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a 偶 田 八 l 播 빼 柱 人 物 固 象 鏡 t~:jc, 同 型 鏡 群 η 캉!Jη빼 人 歌 舞 固 象 鏡 창 主 효꾼f ;J;t L:r~ 門 方 形 뽑 k 銘 文 뽑창 複 合 Ltc 鏡 τ (!1)1), 銘 文 b g 武 寧 王 에 細 {:;$:(:0) 開 係 h 想 起 연인g 5 世 紀 末 b G6 世 紀 前 葉 lζ 힘 ~t0}x 方 向 的 강 固 際 開 係 m 所 塵 tl-r 理 解 τ 좋 IV. 結 語 以 上, 列 島 O):Jt 部 九 州 m 樣 相 칼 中 心 lζ, 古 慣 時 代 며 期 U 理 賽 施 設 k 鏡 lζ-:j(., T 輪 討 캉 行 -:Jl 좋 tc 古 慣 時 代 中 期 따 前 期 k 比 이잦 ij 島 諸 地 域 地 域 O)i샘 域 性 h 題 在 化 캉g 時 期 τ (!1)1) ~:Jc 地 域 集 fill 同 士 0 L ii±번 域 集 댐 抽 自 η처 外 交 涉 & 非 常 ζ 活 짧 Lζ 行 btl0 時 期 τ 0 島 南 部 諸 地 域 간 像 系 遺 物 O)Jj.f;r_ g 뚱, t뿜 賽 施 設 에 前 方 後 P3 慣 tv -:Jtd쫓 系 φ 遺 構 센 'J}.Gtl05 世 紀 6 世 紀 代 따, 뚫츠 ζl.o) 時 期 m 多 元 的 τ 活 짧강꼈 方 向 m 交 流 창빼 語 & 賣 料 tv ~J:.:S 九 州 간따, 理 聲 施 設 ζ-:jv -rii, :lt 部 九 州 型 初 期 橫 치 式 石 室 창 上 位 k캉& 續 애 h 강 階 I혐 性 h 存 在 L, 깐 tlij' 中 期 창 通 t.::-r 普 及 LtciJ, 6 世 紀 代 m 後 期 lζ 至 & 過 程 τ 北 部 九 州 型 初 期 橫 六 式 石 室 h 훌 退 L 車 室 固 抽 型 橫 1\ 式 石 室 k 複 室 m 形 成 tv 5 形 깐 再 編 연 tl0 鏡 ζ-:jv τ ii, 깐 5 Ltc 階 I휩 生 tt 0 程 度 連 動 L-:J-:J, 各 地 τ 村 半 島 交 涉 lζ 從 事 90 有 力 者 캉 中 央 政 權 m 組 織 運 當 ζ 取 1))6합 L.t 캉 目 的 0)1-:JtL-r, 同 型 鏡 群 창 iit.::66t90 鏡 η 授 受 센 行 btltc t'j}.gtl0 韓 半 島 간따 特 lζ 旅 回 式 默 像 鏡 系 에 珠 文 鏡 系 창 iil~66t90 中 小 型 O)f 委 製 鏡 m 出 土. 多 L., ζtlgo) 韓 半 島 /\η 流 入 Jv-Hζ-:Jv -rii 不 明 강펴센 多 他 η{쫓 系 遺 物 (:0) 開 係 含 66τ 今 後 m 課 題 깐 0 ζ5 Ltd쫓 系 遺 物 에{쫓 系 遺 構 센, ζm 時 期 η 多 元 的 τ 多 方 向 的 강 相 互 交 땀L(f_ 所 塵 τ 0 J면창 再 度 彈 調 L-:J-:J 爛 筆 Ltc ν [향 考 文 敵 l 上 野 # 史 2000 坤 默 鏡 φ 作 鏡 系 諸 k갇η 盛 哀 史 林 韓 半 島 南 部 出 土 鏡 ζ?νt 固 立 歷 史 民 倚 博 物 館 冊 究 報 告 ~ 金 錫 像 古 慣 出 土 鏡 k 古 瓚 時 代 後 期 η 東 固 柱 승 金 餘 據 古 慣 冊 究 용 lj 刊 탐. 2013a 祖 園 大 隊 山 古 環 η뼈i 文 뽑 1b 默 鏡 同 型 鏡 群 ε 古 瓚 時 代 中 期 祝 園 大 據 山 古 瓚 ts 世 紀 (:!.; 5 時 代, 六 一 書 房. 2013b 萬 義 域 1 띔 慣 出 土 優 鏡 선쫓 韓 η 相 互 交 涉 海 南 玉 果 萬 義 域 古 慣 固 際 字 術 승 議. 間 村 秀 典 1993 後 漢 鏡 m 編 年 固 立 歷 史 民 힘 博 物 館 冊 究 報 告 東 7:/7 情 勢 k 古 慣 文 化 講 座 日 本 띠 考 古 字 古 慣 時 代 ( 上 ), 좁 木 書 店, 小 田 富 士 雄 世 紀 代 北 흠 I) 九 州 m 古 環 文 化 - ε<rζ 構 컨 式 石 室 m 導 入 ε깐m 背 景 古 文 化 談 輩 빼/ 島 察 祝 遺 폐;m 再 輪 討 2 宗 像 뼈/ 島 k 開 連 遺 塵 群 PJf 究 報 告 河 承 哲 2006 五 六 世 紀 lζ힘 i :n) 加 耶 地 域 η 俊 系 遺 物 k 遺 構 - 巨 消 島 長 木 古 慣 창 中 心 ζ 海 창 禮 -:Jtc 日 本 文 化, 월t 마감. 日 本 ~trui 九 州 l 二 <tolh 古 增 8총 代 中 期 η앵쫓 拖 設 영히 鏡 1155
157 川 西 宏 幸 2004 同 型 鏡 ε? 力 갖 -7 Jv, 同 成 柱. 金 洛 中 2012 韓 島 h GJJtc 九 } 諸 勢 力 εm 交 流 뼈/ 島 察 祝 k 九 州 諸 勢 力 m져 外 交 涉 第 15 며 九 州 前 方 後 면 項 冊 究 승 北 九 州 大 용짧 表 要 릅 賣 料 集. 車 뼈 正 彦 編 2002 考 古 資 料 大 觀 5 램 生 古 境 時 代 鏡, 小 字 館 縮 倚 山 古 慣 出 土 m 環 ~*~L뼈 願 鏡. 考 ;{_,Q? 力 갖 -7 ;[; 大 王 k깐φ 時 代, 山 川 出 版 柱. 洪 價 植 2009 韓 半 島 南 部 地 域 m 九 州 系 橫 컨 式 石 室 材 井 健 編 九 州 系 橫 컨 式 石 室 O)fi 播 k 抗 散, 北 九 州 며 固 書 店. 小 林 行 雄 1966 像 η 五 王 O 時 代 ( 古 項 文 化 論 考 (1976, 平 凡 삼) ι 所 뻐) 北 部 九 州 ι 힘 :t0 橫 六 式 石 室 η 展 開 九 Itζ원 i:t0 橫 六 式 石 室 m 導 入 ε 展 開, 九 州 前 方 後 門 慣 冊 究 승 理 賽 施 設 깐φ쫓 化 k 階 層 性 地 域 性 九 州 島 ζ힘 :t0 中 期 古 慣 띠 再 換 討, 九 州 前 方 後 門 慣 冊 究 용 重 購 輝 行 西 健 一 郞 1995 理 賽 빠 設 lζ Jj,Q 古 煩 時 代 北 部 九 까 IO)i번 域 性 tr 階 l휩 性 - 東 部 m 前 期 中 期 古 瓚 창 ffijtlτ 日 本 考 古 字 2. 下 桓 仁 志 2011 古 慣 時 代 띠 王 權 構 造, 吉 川 弘 文 館. 徐 賢 珠 2008 朱 山 江 없 域 ζ힘 i:t0 古 慣 文 化 φ쫓 選 k 百 濟 tt 秀 A 編 百 消 t{쫓 固, 高 志 書 院. 高 田 貴 太 2014 古 慣 時 代 η 日 朝 開 係, 吉 川 弘 文 館. 高 松 雅 文 2011 三 重 原 m 鏡 ( 1 )- 同 型 鏡 群 - 冊 究 紀 要 20. 高 뺨 浩 史 2007 石 相 系 石 室. 有 융& 古 團 考 古 字 冊 究 室 冊 究 報 告 42, 熊 本 大 字 文 字 部 考 古 字 冊 究 室. 田 中 良 之 1995 古 慣 時 代 親 族 構 造 m 冊 究, 拍 書 房 2008 骨 센 語 g 古 代 φ 家 族 - 親 族 k 柱 승, 吉 川 弘 文 館. 효 田 淳 一 郞 2005 破 鏡 O) {:급 世 k 몹 lj 賽 - 穿 孔 事 例 m 題 察 b G- 史 淵 第 142 輯 威 信 財 ν 7.,j-1.:,.0) 成 立 쫓 容 t7-1~t' ν7474 田 中 良 之 Jll 本 芳 昭 編 東 7ν 7 古 代 固 家 論 -7 口 -C?.. 꾼운 Jv 7-1-T νfγj-4-, 9v :hλ좀 鏡 k 初 期 켜1-;"" 政 權, #νhλ 舍 北 部 九 州 η 前 期 古 增 tc:toit0 堅 六 式 石 柳 k 賽 送 { 義 *L 史 淵 第 147 輯, 201 la 鏡 律 屋 m춤 古 慣 群 R, 播 律 市 文 化 財 調 훌 報 告 書 第 4 集. 201 lb 初 期 橫 六 式 石 室 lζ힘 i:t0 連 接 石 格 k깐m 意 義 史 淵 第 148 輯. 201 lc 博 多 펠 治 뿜 地 域 m 古 慣 時 代 後 期 참승 小 戶 1 뭉 慣 η 調 훌 成 果 h G- 新 修 播 옮l 市 史 賣 料 編 考 古 3, 播 돼 市. 201 ld 九 州 ζ원낭g짧 六 系 理 賽 視 設 m 展 開 九 州 흠 ζ;to :t0 古 혐 理 賽 施 設 η 多 樣 性 地 域 性 k 階 層 性 tiε5 理 解 깐줄 0/J, 第 14 回 九 州 前 方 後 門 慣 冊 究 승 宮 N첩 大 승짧 表 要 릅 資 料 集, 2012a 九 州 出 土 m 中 固 鏡 k 村 外 交 涉 - 同 型 鏡 群 창 中 心 lζ- 빼/ 島 察 피et 九 州 諸 勢 力 O)J;f 外 交 涉 第 15 며 九 州 前 方 後 P1 項 冊 究 승 北 九 州 大 용짧 表 要 릅 資 料 集. 2012b 古 慣 文 化 m 多 元 性 ε 一 元 性 一 懶 和 夫 播 永 뼈했 北 條 芳 隆 編 古 慣 時 代 m 考 古 字 7 內 外 η 交 流 k 時 代 0)/ 朝 流, 同 成 감. 2012c 生 盧 ε없 通 鏡 土 生 田 純 之 電 田 修 一 編 古 項 時 代 冊 究 m 現 t!(t 課 題 ( 下 ), 同 成 감 고분을 통해 온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58 - 2012d 像 製 鏡 k 中 固 鏡 -꾼f ;J.;t 깐m 選 tr 考 古 字 :/.y-j-;]; 635. _ 2012e 雄 略 朝 h g 盤 井 m동uζ 至 g 諸 쫓 動 一 般 柱 댐 法 人 日 本 考 古 字 協 승 2012 年 度 福 핍 大 승 冊 究 務 表 寶 料 集, B 本 考 古 字 協 씀 2012 年 度 播 I핍 大 승 案 行 委 員 슴 古 慣 時 代 며 期 lζ힘 it0 同 型 鏡 群 φ 系 諸 k 製 作 技 術 史 淵 鏡 力 G'JJtc. 古 慣 時 代 O)t번 域 間 開 係 k갇m쫓 選 九 州 出 土 資 料 찰 中 心 tlτ- 古 慣 時 代 m 地 域 間 交 流 2, 第 17 回 九 州 前 方 後 띤 慣 冊 究 승 大 分 大 승짧 表 要 릅 資 料 集. 奈 良 原 立 樓 原 考 古 字 冊 究 所 編 次 元 Fν갖 ;J.;7- 力 '11' 古 鏡 絲 賢, 字 生 감. 朴 天 秀 2007 加 耶 k 優, 講 談 柱 選 書 j.'f 工. 橋 本 達 也 餘 木 一 有 2014 古 慣 時 代 甲 쁨 集 成, 大 m~ 大 字 大 字 院 文 字 冊 究 科. 士 生 田 純 之 2006 古 慣 時 代 m 政 治 k 柱 승, 吉 川 弘 文 館. #뭄 永 {법값 2005 νbiφg 織 休 期 lζ;joit 0 威 信 財 쫓 化 k깐m 意 義 井 / 內 챔 倚 隊 古 慣 m 冊 究, 大 m~ 大 字 大 字 院 文 字 tvf 究 科. * 野 敏 典 ( 冊 究 代 表 者 ) 2010 考 古 資 料 ζ원 it0 三 次 元 fy갖 ;J.;7- 力 '11'(]) 活 用 k 展 開, 奈 良 原 立 種 原 考 古 字 퍼f 究 所 森 下 章 司 1991 古 慣 時 代 佑 製 鏡 η쫓 選 k갇 m 特 質 史 林 古 慣 時 代 優 鏡 車 뼈 正 彦 編 考 古 資 料 大 騙 5 해 生 古 慣 時 代 鏡, 小 字 館 뀔 仁 德 埈 古 慣 出 土 鏡 k 東 Tν7 澈 底 分 析 仁 德 天 皇 l 埈 - 巨 大 前 方 後 띤 慣 m 案 像 창 探 &, 塊 市. 柳 tr 一 男 1982 堅 六 系 橫 口 式 石 室 再 考 森 貞 次 郞 博 土 古 輪 記 念 古 文 化 論 集 全 南 地 方 η 果 山 江 型 橫 컨 式 石 室 m 系 諸 k 前 方 後 P3 慣 朝 蘇 字 승 編 前 方 後 P3 慣 k 古 代 日 朝 開 係, 同 成 참 提 ij'ntc. 黃 옳m 世 界 王 隊 古 慣 ν 1)-;l 遺 跳 창 字 $ 010, 新 果 참. 山 中 英 彦 2005 豊 前 地 方 m 堅 섰 系 橫 口 式 石 室 lζj νt 福 童 古 慣 群, 行 橋 市 文 化 財 調 훌 報 告 書 第 32 集. 吉 井 秀 夫 2010 古 代 朝 蘇 慣 흉 lζ카g 固 家 形 成, 京 都 大 字 字 術 出 版 승. 林 永 珍 趙 鎭 先 李 廷 III 或 平 m 古 慣, 全 南 大 字 校 博 物 館. 和 田 H좁콤 2003 植 k 古 慣 察 祝 ( 二 ) 閒 츠 츠 ntc. 相 k 開 b ntc. 相 立 命 館 大 考 古 字 論 集 m. [ 揮 因 出 典 ] 떠 1 ; 1 4 6따 重 購 西 (1995), 깐h 以 外 냥 報 告 書 J: I) 乾 載 因 2: 1 이$ 柳 뻐 (2004)J:I), 깐낀 以 外 따 報 告 書 J: I) 乾 載 1 ; 千 鳥 1 륨 慣, 2: 千 鳥 6뭉 慣, 3; 左 삼 2뭉 瓚, 4; 浦 짝E-3륨 慣, 5; 옳 域 古 瓚, 6; 勝 浦 筆 /;뼈 古 慣, 7: 小 正 西 古 慣 1 뭉 石 室, 8; 짧 據 古 慣, 9: 日 拜 隊 古 慣, 10: 황 命 王 據 古 慣, 11 ; 東 光 츄 劍 域 古 慣 ( 全 t 福 I웹명) 表 1 ; 江 田 (2013) 창 元 lζ 改 쫓 表 2 3: 뇨 田 (2012a), I회 4 ; 江 田 (2012d) 因 5 ; 梅 原 ( 1931 )J:I) 改 쫓 引 用, 댐 6 7; 水 野 編 (2010)J:I) 改 쫓 引 用 日 本 北 部 九 州 t:<tolt'.i 古 慣 時 代 中 期 0±몇흉 施 設 행 鏡 1157
159 2 4 빠 0 빼 ! 4 - -; = L --- i t 느 1 j r - i --; i ; - F V #, - r -; 뿔뿔 - r 7 π / 8 댐 1 古 慣 8총 代 中 期 <7)~뿔흉 拖 設 (1 4 S=l / 80. -t:h. 以 外 Ii S=l / 100) 1581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60 -JS 뻐n --νn -hoo!:< "' b< 9 10 몬?벨책r.,.. 커 떠 2 古 樓 時 代 後 期 m 積 7; 式 E좋 (S=l / 100) 11 日 本 北 部 九 州 l 二 ;JsiH 古 慣 8츄 代 中 理 흉 施 設 t 영히 鏡 1159
161 古 慣 時 代 {=짖 l j 島 ; tt::g 흔 h t:: 完 形 中 固 鏡 꿇웰웰 中 ν 的 系 列 群 大 型 鏡 中 훨 鏡 各 種 大 型 鏡 中 型 鏡 ijjj~o) 大 1J ; ε F혐lj 化 三 角 隊 뼈 歡 鏡 各 系 짖IJG' 1 ) 型 鏡 因 3 古 境 時 代 前 期 f::d:llt~ 鏡 m 序 91Jit ( 注 田 2007 ) 表 l 同 훨 鏡 l!f O) 播 짧& 系 짧 짧 f} fhl::t iliift 펴뻗없** 1명짧 O)~빼 명 >l: :t L;;\filO)'J'.! 作 系 g션 /J'i 作 地 야i 鏡 φ행 ft; lk'i WJ 훌 考 方 ~ 規 똘 四 l>u융 I해 村 分 짧 方 格 없뿔 四 빼짧 \' B'i\:: 섬~ fli5jlll AD IC 中 찢 末 lit$ 王 段 없ijf~눠{;; 값 下 2004) 2 細 線 式 **양짧A !해 村 分 類 細 線 >I: 를Nlifli IV A 式 1Hl5 期 ADIC 中 뺏 末 3 *$ 線 式 를f훔짧B ll'ih 分 짧 細 線 도t용Nii~흉 IV A 式 1찢짧5뼈 새 IC 中 햇 :t- 4 細 없 >l:~f양짧c 20. 3!뼈 村 分 l'fj 細 없 'i\::fi,til)앓iv A 式 i횟훨5 期 ADIC<I' 集 5 細 線 'it 를u홈뚫D 18. I {퍼 村 分 짧 細 線 式!ik혐*융n A'it i찢짧5 期 ADICtP~ ;R 武 $ 王 앉 6 細 線 式 *훔짧E II쩍 村 分 題 細 線 'it!ik혐* π,\ i횟월5뼈, 때 I CtP'!lli 未 7 i:flt'it!ik~양 覆 A II!!쩌 村 分 짧 i'flt 式!ik뿜 鏡 Il 'it i훗 算 5 期 ADIC 中 聚 末 lliie.i[.되 5힘 道 8 浮 It 式!ii; 캠UJ!B IJilJ 村 分 쨌 i추 l'li>l:!ik뺨짧 I ii: I횟짧5뼈 때 IC 中 향 末 litlli 王 ~ 9 i양 lt'it!ik~용짧 IJilJ 村 分 짧 i추뼈z 式!lkllHl! I 式 i옛$l5뼈 써 ICtP~ "" 10 i형&도t힐* 階 鏡 D ii쩌 村 分 짧 浮 影 'it~ 略 짧 I 式 i횟짧5뼈 매 IC 中 짧 ~ II i!flticl:!ik뿜짧e 퍼 村 分 짧 浮 빼~ii:활용양혈 n 式 l찢짧 5ltl! ADIC 中 짜 :t- 12 nrm~ 上 및f 分 題 쩡 式 lb. it 田 8짧 (뺑행 式 ) 外!Kiili 文 *휴 13 빼 Alli!!}용 t퍼용m 上 벚f 分 l.fi7'7 껴 lν/ 찌 rik'it 7'PPB lllil\: 系 ( 江 北 j센 域 ) i횟짧6 7뼈 2C t414: 짧 文 Q-R 14 PfiAllJ;J!rn피~짧 上 와 分 't:li7'71-'" 써 빼!i.t'it 7'PPA 尙 方 합 il'(;f, ( 華 北 ) i찢짧6 7 期 2C fl.흥 앓 文 P 15 PfiA 車 馬 面 象 짧 上 한 分 't:lilt II 式 용 ml;fi (육 f홈 ml. 웠뺑 iiit 域 ) E용짧7 期 銘 文 \ 16 *뿌!ik 車 馬 t밍h: 20. I 上 와 分 짧꿔 ill >\.? i훌짧71쩍 *8 文 X 大 分 훌쏠 古 IJI 17 固 文 뺨몇 :(J(~l>t'!ikmA l:ij!j' 分 IM!:(J(~(TIC?야) t흩 北 싸입1 系 2Ci&f 3C 初 *8 文 A2 天 王 日 져 if) 빼 ~i동 LtJ 18 固 文!l'iJ.t:(J(~L jl!l 혀** B 上 野 分 J;Ji~:t!:~L lll C ;ti!f &*뺑 江 me 域 系 2Ciii 'f. Jcm ~ 文 A3 文 뺨!'1:ti:~Pfi!ikliJlC 21 6 上 영f 分!li~:ti:~ II C σ i!'t 회rn 따 部 系 2Ci&'F 3C채 앓 文 A2 天 王 B 져 m품~ j흩 L 20 固 文 뿜** 置 式 빼~m i 上 한꺼l휩처 置 lll A 7 l!f 長 ii Pi하 域 系 Jcm 3C 第 2 四 'Fltl! 中 흥 짧 文 A2 外 IKflf 草 21 面 文 혐 同 向 式 1>l' 힘~fl!A 上 영f]t!li 同 向 I A φ 야 훌 ~t 東 rm 系 2C 末 3C 第 2 四 半 뼈 中 J1li IA I 銘 文 A2tJ 22 固 文 뿜 同 向 式 예1없 鏡 B 上 野 分 없 同 向 I A?i!'t 흉 itjli:gi; 系 2Col< 3( 第 2 四 期 대1 찢 IB I 銘 文 A2 23 固 文 帶 同 向 'il::jitl!!l:!iic t웅f 分 없 同 向 I A?l!f!{i; 北 따양~ 系 2C..!< JC행2 四!여 中 M IB 2 銘 文 A2 24 1\00.ili ' 山 $tl'<i4a'i\:: (l(~?j.'9.쩔 11111협 It 용 中!해 西 훨 It 25 固 文 뽑 fl!!.0융 A [해 內 꺼짧b717 t흘 河 中 ii!( 域 h 6 長 ii 下 iifclr!i 르며..!<tJ G 西 품 cm'!,엄 26 固 文 없 if.iii;짧 B 뼈 內 分 짧a717 參 考 方 格.IJB 四 # 鏡 18 lili뼈 빼 I Y,18 당JI~ ( 柳 田 20ll) 固 文 혐!'11*~챔l 힘l앓 山 口 땅 J ~St.It (윷 原 文 훔 同 向 'it 후!!);fli 15 宮 ~ 짧 l;j1 古 Ill ( 吉 村 2008) 'KIH훌 1*1:1. 川 西 (2004) :toj:u: 흉 下 (2011) ε Mi 않 E Lτπ f ι Q) (i± 田 2012a) ::.. ii'ii 文 뿜 ιill; 뼈 Bi' 1 面 ;g1ro L.τL 징 ihiffuj 젊않 li(j! 효 的 ;; 허멜짧~ 同 tuj'!' 껴 IH 흉 i!cl.τl 정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62 表 2 同 웹 鏡 群 φ 種 類 鏡 式 4의 面 * 方 格 線 規 式 短 四 빼 鏡 細 혈t 帶 鏡 A 22.3 細 線 式 얹t휴F 鏡 B 23 5 細 線 式 徵 휴 鏡 C 20.3 細 細 浮 m 線 線 式 式 式 앨~1퓨 鏡 D 18. l 행kt퓨 鏡 E 23.6 홈 취 鏡 A 浮 m 式 얹t취 鏡 B 23.2 浮 m 式 협t 帶 鏡 C 浮 影 式 범; 帶 짧D 杓 20.8 i평명z 式 혈R추홉 鏡 E 20.3 盤 龍 鏡 뼈A 龍 虎 固 象 鏡 20.5 *빼A 歌 舞 面 I 象 鏡 20.3 *뿌A 車 馬 固 象 鏡 22.2 *빼엽* 車 馬 펴E 象 鏡 20. I 固 文 뿜짧 ;IX'.1L뼈땀t 鏡 A 빼 文 帶 짧;야중L~뿌용t 鏡 B 固 文 帶 짧 ;!X'.1L빼 默 鏡 C 21 固 文 취 ** 置 式 *$용t 鏡 20.2 固 文 帶 同 向 式 빼합t 鏡 A 빼 文 帶 同 向 式 빼용t 鍵 B 固 文 帶 同 向 :i:\::1$업t 鏡 C 21 固 文 帶 {l. 默 鏡 A 固 文 帶 {l.짧 鏡 B 23.6 흉 鳳 鏡 18.8.g. 힘 面 찢k ll 4 l l 表 3 同 뺑-짧 群 η 面 怪 序 列 鏡 式 名 面 쩔 面 散 面 i 文 햄 {l.뱀;~b ~:{ll 線 式 땅뺨짧E I 쩨 線 式 뺑짜짧B : 浮 影 式 많팎 鏡 B ~ 細 線 式 뺑짜 鏡 A ' 빼 人 事 馬 面 象 鏡 固 文 뿜 {l. 默 鏡 A -- _ 固 文 뿜짧 :tk'.1l:/11' 혐t 鏡 C 21 6 固 文 帶 同 向 式 빼 默 鏡 C 浮 影 式 많 帶 鏡 D 約 l 빼A 縮 虎 固 象 鏡 細 線 式 밟 借 鏡 C l 浮 影 式 없땀짧E 20.3 l 빼 人 歌 舞 固 象 鏡 : 固 文 帶 차 置 式 빼밟 鏡 :/$ 默 iji 馬 面 i 象 鏡 20. l I 固 흩뿔 힘멘효뺀뿔 鍵 IL 9 '!... 4 뺑 鳳 짧 細 級 式 默 帶 鏡 D 18. l l 方 格 規 短 四 빼 鏡 浮 影 式 徵 帶 鏡 C l 7. 6 l 浮 影 式 默 帶 鏡 A 固 文 帶 짧 :tk'.1l뼈 默 鏡 固 文 뺨짧 :tk'.1l P밟 鏡 A 固 文 帶 同 向 式 해3 歡 鏡 A 짧 隨 짧 l l. 6 2 合 計 126 ; J 計 90 1 ) 計 36 大 同 型 鏡 群 댄4 同 휠훌훌 群 cf:쫓 製 짧m 大 혼흔 序 ~lj ( 戰 念 떠 ) 因 5 18 서 JJ.,1)/ 民 혐1훌 物 館 置 固 文 帶 {1.~itB (33.3cm) ιm 에 힘 6 i 中 /릎 21 뭉훌 跳 出 土 浮 影 式 없 帶 錄 A ( 17. 6cm ) 떠 7 推 定 때/홈 21 릉 遺 跳 出 土 浮 影 式 없 帶 鏡 A ( 17. 6cm ) 日 本 北 部 九 州 J:~lt 응 古 境 時 代 中 期 '7)i몇흉 拖 設 銷 鏡 1161
163 07 번역문 H 本 北 部 九 州 의 古 瓚 時 代 中 期 t 里 義 施 設 과 鋼 鏡 츠지타 준이치로 (큐슈대학).머리말. 고분시대중기의 매장시설 변천과 계층성 Ill. 古 t흉 時 代 中 期 의 동경의 변천 IV. 결어.머리말 본 발표의 목적은 주로 일본 북부큐슈를 대상으로 하여, 5세기대를 중심으로 한 고분의 매장시 설 변천 및 鋼 鏡 의 부장양상을정리하는것이다. 해당시기의 한반도남부지역은북부큐슈와도관계 가 갚은 것으로 상정되는 매장시설도 다수 확인되고 있으며, 鏡 의 출토도 많이 보인다. 이들의 위치 를 설정함에 있어 참고 자료를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자 한다. 고분시대전기와 중기의 경계가 4세기대의 어느 시기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현재 상황으로 정점이 없으며 불명확하다. 본고에서는 鋼 鏡 과 須 惠 器 의 연대관에서 고분시대 전기전반을 3세기중엽 말, 전기후반을 4세기대, 중기전반을 5세기전반을 중심으로 하는 시기, 고분시대중기후반을 5세기후반 말을 중심으로 하는 시기, 후기전반을 6세기전반으로 하여 검토를 진행한다.. 고분시대중기의 매장시설 변천과 계층성 1. 전기의 매장시 설 여기서는 먼저 북부큐슈의 전기에서 중기의 매장시설 변천을 개관하고자 한다, 전기에는 야요 이시대랬 生 時 代 이래의 상식석관 箱 式 石 相 이 가장 일반적인 매장시설로서 저분구묘에서 전방후원분 에 이르기까지 넓게 채용되고 있다, 그리고 현해탄 연안지역을 중심으로 주체부에 할죽형목관 劉 竹 形 木 相 을 채용하는 고분이 축조되고 있다. 近 雖 주변의 상위층 전방후원분에서는 할죽형목관 劉 竹 形 木 相 을 수혈식석곽 堅 六 式 石 漸 으로 덮는 것이 주를 이루지만 북부큐슈에서는 수혈식석곽 堅 六 式 石 漸 을 채용한 고분은 상당히 한정적이다(뾰 鎬 2010). 상위층의 매장시설은 할죽형목관 劉 竹 形 木 相 이 주를 162 I 고분을 통해 온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64 이루었다고 보고 있으며 상식석관 箱 式 石 植 이나 소형의 조합식석관 組 合 式 石 相, 석개토광묘 石 蓋 士 據 基 를 하위로 하는 개략적 계층성이 확인되고 있다. 2. 초기횡혈식석실의 성립과 계층성 전기후반 말이 되면 현해탄 연안의 사가현뾰 賢 멀 카라츠시 庸 律 市 타니구치 各 口 고분(전방후원 분 90m전후)에 장지형석관 長 持 形 石 相 을 매납한 수혈식석곽 堅 六 式 石 鄭 의 단벽에 橫 口 部 가 설치되 는 초기횡혈식석실 初 期 橫 六 式 石 室 이 성립된다. 후쿠오카현 福 問 옐 후쿠오카시 福 問 市 로지 老 司 고분 (전방후원분 77m) 의 3호 석실에서는 긴 묘도와 폐쇄석이 동반되는 횡혈식석실이 축조된다. 또한 같은 지역에 위치하는 스키사커 鋼 ill좁고분(전방후원분 62m) 에서도 짧은 연도부를 설치한 횡혈식석 실이 축조된다. 이들 모두 전기 말 전후에 현해탄 연안 여러 지역의 최상위층에 의해 채용된 것이다. 계보에 대해서는 불분명한 점이 많지만 한성 주변의 한반도 서남부에서 그 계보를 찾을 수 있는 가 능성이높다. 로지 老 司 고분에서는 3호 석실 이외의 주체부에서 목관을 매납하지 않는 수혈식석곽의 단축을 폐 쇄부로 하는, 흔히 말하는 수혈계횡구식석실 堅 六 系 橫 口 式 石 室 로 불리는 석실도 동시대에 구축된다. 현재로서는 대형으로 폭이 넓은 것이 초기 횡혈식석실 A유형, 소형으로 폭이 좁은 것이 초기횡혈식 석실 B유형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종래 수혈계횡구식석실 堅 六 系 橫 口 式 石 室 로 불리었던 것들은 후자 에 속한다( 重 購 2007). 이들 초기횡혈식석실 A유형 B유형의 폐쇄시설은 추가장을 전제로 한 것이 지만, 인골 출토 등에서 여러 피장자의 매장이 확인되는 경우에도 부장품의 조합으로 보아 시기 차 가 확인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屬 冠 계측치의 분석 결과. 동 세대의 형제를 매장하는 경우가 기본이 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田 中 ). 또한 이 초기횡혈식석실 B유형과 형태나 규모가 공통되는 형태로 목관을 동반하지 않는 소형 수 혈식석곽이 구축된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석관계석실 石 相 系 石 室 로 불리고 있다. 네 벽을 할석으로 축조하는 1유형에서, 小 口 部 만 판석을 세우는 2유형, 네 벽과 함께 基 底 石 에 판석을 세우는 3유형으 로 변천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重 藏 2007). 중기 북부큐슈에서는지역적인 편차를포함하면서 위와같이 성립한초기횡혈식석실 A유형을상 위로 하고, 초기횡혈식석실 B유형 석관계석실을 하위로 하는 개략적 계층성이 존재한다. 단 예외적 으로 후쿠오카현 福 웹멀 츠키오카 月 固 고분처럼 중기전반에도 長 持 形 石 格 +뿔 六 式 石 漸 이라는 킨키 상 위층의 매장시설이 채용되는 사례도 존재한다. 또한 후쿠오카현 福 固 떻 타케나미 竹 뾰유적이나 오이 타현 大 分 떻 우에노하루 上 / 原 횡혈묘군 등에서는 흔히 말하는 초기횡혈묘가 성립하는 등 중기를 지 나면서 수혈계 매장시설에서 횡혈계 매장시설로의 전환이 진행된다. 큐슈의 고분시대중기 묘제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열린 相 ( 和 田 2003) 이라는 특정이다. 전기 에도 상위층을 중심으로 近 離 懶 戶 內 계의 목관+수혈식석곽 과 같은 닫힌 相 이 채용되었으나, 재 지적 묘제로서는 箱 式 石 相 과 같이 매장 공간 사이에 목관을 이용하지 않고 직접 피장자의 유체를 안 치하는 방법이 일반적이었다. 이 점이 중기가 되면 표면화되고, 초기 횡혈식석실 A유형, B유형이나 石 格 系 石 室 모두 목관을 동반하지 않는 열린 相 이 기본이 되었다. B 本 ~tfl~ 九 州 1:s1t~ 古 增 時 代 中 期 0±뿔쫓 拖 設 t 행짧 1163
165 3. 北 部 九 써 型 初 期 橫 썼 式 石 室 에 서 單 室 / 複 室 兩 抽 型 橫 '/( 式 石 室 로 그 후 중기후반 말 이후가 되면, 후쿠오카현 福 問 떻 반즈카짧 據 고분이나 사가현뾰 賢 原 세키죠마 루 開 行 九 고분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현실 평면형태가 역사다리꼴로 짧은 연도부를 가진 北 部 九 州 型 初 期 橫 六 式 石 室 이 북부큐슈의 상위층에서도 넓게 사용된다. 이 가운데 반즈카짧 隊 고분에서는 철정이 출토되고 2기의 목관을 매납한 것으로 상정되어 열린 相 이 주체였던 北 部 九 州 橫 六 式 石 室 에서는 다 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타입의 석실은 열도 내에서도 후쿠이현 福 井 떻 쥬젠노모리 十 善 φ 森 고분 등 에서도 축조되었으며, 석실 축조 기술이 원격지 사이에서도 공유되고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한반 도에서는 장목고분, 조산고분, 신덕고분 등이 그 유례으로서 상정되었다( 柳 況 2002). 이러한 北 部 九 州 型 初 期 橫 六 式 石 室 을 거쳐, 6세기 초두를 전후로 한 시기 현해탄 연안지역에서는 평면장방형으로 천정이 높은 현실을 가지며, 연도부가 세장하게 뻗은 單 室 兩 抽 型 橫 六 式 石 室 이 성립 된다. 또한 이와 병행하여 전실을 가진 複 室 兩 抽 型 橫 六 式 石 室 의 형성이 시작된다. 후쿠이현 福 井 原 오 오츠카 王 據 고분이나 미다마루야마 箕 田 九 山 고분은 그 선구적 예라고 할 수 있다. 오오츠카 王 據 고분에 서는 아소 阿 蘇 용결응회암제의 석실형과 계 4체 분의 석침을 설치하여 열린 相 의 매장 공간에 벽화 장식을 하였다. 6세기 전 중엽의 후쿠오카평야 주변에서는 후쿠오카시 福 固 市 토코우지켄즈카 東 光 휴 劍 據 고분(전방후원분 85m) 나 카스야효 拍 屋 때 츠루미즈카 關 見 據 고분(전방후원분 80m) 등으로 아소 阿 蘇 용결응회암제의 석실형을 통반하는 複 室 兩 組 l 型 橫 六 式 石 室 이 구축되어, 매장 시설의 계층성 의 최상위로 설정할 수 있다. 그 다음 규모의 40 60m급 전방후원분에서는 單 室 兩 抽 型 橫 六 式 石 室 이 채용된다, 그 과정에서 중기 이래의 北 部 九 州 型 初 期 橫 六 式 石 室 은 모습을 감추게 되며, 긴 연도를 가 진 후기형의 횡혈식석실로 전환하게 된다. 4. 소결 이처럼 5세기 후엽에서 6세기 전엽에 걸쳐 北 部 九 州 型 初 期 橫 六 式 石 室 에서 單 室 兩 抽 型 橫 六 式 石 室 로의 변천이 확인된다. 전자에서 후자로의 변천이 북부큐슈 내부의 동일 계보 내에서 이루어진 형 식학적인 변화로 볼 것인지 한반도나 열도 내의 타 지역과의 교류의 소산인지에 대해서는 불분명한 점도 많은데 이는 앞으로의 과제이다. 이 시기 가운데에서도 특히 5세기 말 6세기 전반에 걸쳐 한 반도 남부에서 優 系 의 횡혈식석실이 다수 구축되는 것이 새롭게 주목되고 있다. 앞에서 서술한 북부 큐슈의 매장 시설의 계층성은 넓은 지역에 걸쳐 공유되고 있었는데, 실제로 서열화가 이루어진 것은 각 평야 단위 등의 소지역 내부였다고 보고 있다. 한반도 남부에서의 優 系 매장시설은 야막고분 등 의 수혈계 매 장시설에서 北 部 九 州 型 初 期 橫 六 式 石 室 로 변천하고 있지만 축조가 단발성인 예가 많다. 또한 계보가 여러 갈래에 걸쳐 있으며 한반도 남부에서의 계층성도 기본적으로 재지의 질서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해당 시기의 반도 남부 여러 지역과 큐슈 여러 지역과의 다원적인 교류를 이야기하 는 자료라고 말할 수 있다, 1641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66 . 古 壞 時 代 中 期 의 동경의 변천 1. 고분시 대 전기의 鏡 의 유통 열도 고분시대의 鏡 의 변천에 있어서 중기에 해당하는 5세기대는 큰 전환기이다. 열도에서는 3 세기 대 를 통해 대륙 반도와의 대외 교섭에 의해 다수의 漢 鏡 觀 音 鏡 이 船 載 되고 그것을 모넬로 한 다양한 優 製 鏡 이 생산된다. 三 角 緣 뼈 戰 鏡 과 優 製 鏡 이 말하자면 수레바퀴의 양쪽 바퀴이며, f 委 製 鏡 의 面 經 의 크고 작음에 따라 명확한 서열화가 지향된다. 이것들은 近 嚴 중앙 정권에 의해 관리되어 열도 각지의 상위층이 이를 경쟁적으로 입수하고, 기 념물로서 고분에 부장이 이루어졌다. 열도에서의 분포에 있어서도 俊 製 鏡 의 변경 등으로 볼 경우, 近 離 를 핵으로 하는 지리적 기울기가 현저하며 흔히 말하는 중심-주변 관계의 양상을 띤다. 이러한 鏡 의 입수 사용 소비는 각지 상위층의 세대 교대(대물림)을 계기로 하여 반복되었다고 보고 있다. 고분시대전기의 광역 질서는 이러한 鏡 을 시작으로 하는 여러 제품의 입수 사용 소비가 각 세대마 다의 기념물 조영과 불가분한 관계로 묶여 이루어졌으며 반대로 말하면 鏡 등의 여러 제품의 입수 나 기념물 조영이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된다는 것은 그만큼 일반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전기 동경이 나타내는 중심-주변 관계의 양상은 近 離 중앙 정권에 의한 광역적 지역 지배를 나타낸 다는 것보다 近 離 중앙 정권을 중핵으로 한 광역적 정치적 네트워크로의 참가를 표현한다는 것이었 다. 전기의 광역적 지역 간의 관계나 전방후원분의 각지에서의 전개는 각종 동경 등의 생산 유통을 전제로 하여 이들이 계속적으로 주고받음에 의해 유지되고 있었다. 펼자는 이러한 각지 상위층 측의 참여가 광역 질서 재생산의 원동력인 양상을 인류학적 모댈을 참조하면서 고분시대전기 위신재 시 스탱/구심적 경합 관계 모댈 로 설정하였다(쐐 橋 2007). 이러한 동경은 3세기대에는 각종 漢 鏡 觀 팝 鏡 이 대륙이나 낙랑군 대방군과의 교섭을 통하여 열도에도 전해졌다고 보고 있으나, 고구려 남하와 동반하는 313 년. 314년의 닥랑군 대방군의 멸망 과 316년의 西 팝 멸망에 의해 열도로의 공급은 정지했거나 현저하게 감소했다고 생각된다. 실제로 전기후반기에는 댄 製 三 角 緣 빼 默 鏡 이나 漢 鏡 觀 音 鏡 의 부장은 계속되었지만, 각종 優 製 鏡 의 생산 유통이 주제이며, 전기 후반을 통해 조용하게 소형화가 진행되고 鋼 質 도 저하한다. 이러한 변천을 거 쳐 전기말 중기 초두 단계에서 {jj 製 三 角 緣 빼 戰 鏡 이나 각종 전기 { 委 製 鏡 의 생산 유통이 정지되고, 優 製 鏡 의 생산 체제도 재편되었다고 생각된다. 전기 후반에는 中 國 鏡 으로서 方 格 T 字 鏡 이나 雙 頭 龍 文 鏡 의 부장이라는 小 型 鏡 의 부장이 눈에 띈 다, 특히 方 格 T 字 鏡 에 대해서는 한반도 남부지역에서도 출토되고 있으며 양동리 441호분 출토 鏡 과 후쿠오카현 福 間 떻 히가시마가타에 東 頁 方 1호분 출토 鏡 과의 사이에서 同 型 의 관계도 확인되고 있다. 활발한 상호 교류를 나타내는 자료이지만, 부장에 이르기까지의 유통 경위에 대해서는 여러 가능성 이 존재한다( 上 野 2004). 특히 이들이 앞의 4세기 초두의 정치 변동 이후에 대륙에서 생산되어 전해 진 것인지, 그 이전에 제작된 것이 이미 4세기 초두 이전에 열도나 반도 남부에 입수되었는지에 대 한점은큰과제이다. B 本 ~t'w 九 州 l : <l;lt 죠 古 增 時 代 中 理 흉 施 設 햄 鏡 1165
167 2. 중기전반의 鏡 중기전반이 되면 열도 내에서는 鏡 의 부장은 감소하고 각종 철제 무기류 무구류를 주제로 한 생산 유통으로 변화한다. 眉 따 付 뿜 衝 角 付 뿜나 三 角 板 章 짧 短 留 短 甲 의 출현은 그것을 단적으 로 상정하고 있다. 말하자면 무기 무구류를 핵으로 한 중기적 위신재 시스빔 으로의 전환으로 생각 할 수 있다. 그 가운데 鏡 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기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적어진다. 그리고 그 가운 데 중기전반에는 中 國 鏡 의 부장이 일부 확인된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여기서는 후쿠오카현 福 固 멀 츠키오카 月 固 고분의 예를 들고자 한다. 에도시대 江 戶 時 代 의 발견되어 현존하는 유물 전부는 아니 지만 금동장식의 眉 파 付 뿜 등을 시작으로 다량의 무기 무구류를 포함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여기서 는 4변의 동경이 현재 잔존하고 있다 이것들은 中 國 鏡 l면( 同 向 式 畵 象 鏡, 16. 3cm)과 중기의 委 製 鏡 3 면( 戰 像 鏡 四 좋L뼈 文 鏡 珠 文 鏡 )이며, 畵 像 鏡 이 中 型 鏡 이라는 것 이외에는 모두 小 型 鏡 이다. 그 밖 에도 이 시기에는 효고현 兵 庫 떻 미야야마 宮 山 고분 출토 파 文 뿜 環 ;tft L빼 歡 鏡 등 漢 鏡 의 부장 예가 알 려져 있다. 이들의 漢 鏡 에 대해서는 뒤에서 서술할 중기 후반의 同 型 鏡 군과는 뉴공 형태가 다르며 그 이전에 제작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이것들은 優 의 오왕시대의 對 南 朝 遺 使 가운데서 열도로 船 載 가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있지만 현 자료의 상황으로 중기전반에는 그러한 중국경의 船 載 재개가 다종 다량이라는 前 期 的 인것은없고 한정적인것이었다는것을나타내고있다 또한오사카부 大 쨌 府 모 즈오오츠카야마 百 굵 鳥 大 隊 山 고분에서는 열도에서는 보기 힘든 鐵 鏡 이 출토되었다. 고분의 실연대와 鏡 의 계보에 대해서는 앞으로의 과제이다. 또한 중기전반에는 전기이래의 경이 부장되는 사례도 많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후쿠오카현 福 固 멍 마루쿠마야마}L 願 山 고분(전방후원분 85m)은 初 期 橫 六 式 石 室 에 상자형의 연접 석관 을 매납하 는 것인데, 여기서는 2 면의 優 製 鏡 ( 六 戰 鏡 二 뼈 二 戰 鏡 )이 출토되고 있다. 모두 전기중엽 후엽에 제 작된 것이며, 六 默 鏡 은 22.lcm의 大 型 鏡 이다. 사가현뾰쩔 原 요코타시모 橫 田 下 고분의 初 期 橫 六 式 石 室 에서도 제작 연대가 전기로 올라가는 小 型 默 像 鏡 이 출토되었다. 初 期 橫 앙 式 石 室 은 앞에서 서술한 것처럼 北 部 九 州 에서는 상위층에서 채용된 것이 많은데 최신 형식의 鏡 보다도 이러한 전기의 鏡 등 이 부장되는 사례가 많이 확인된다. 이들 鏡 이 재지에서 傳 世 되는 것인지 近 離 중앙 정권 아래에서 관리 보관된 것이 이 시기에 입수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중기전반의 優 製 鏡 생산이 전 기와비교하면상대적으로저조했던것 또한 鏡 의입수 부장이한정된시기였음을확인할수있다. 3. 중기후반의 鏡 중기후엽 이후가 되면 이러한 중기 전반의 양상이 크게 변화한다. 구체적으로는 同 型 鏡 群 의 부장 개시와 그것을 모델로 한 優 製 鏡 생산의 활발화라는 점이다. 同 型 鏡 群 은 주로 後 漢 鏡 을 原 鏡 으로 하 여 반복된 기술로 대량 생산된 鏡 이며, 현재 약 26종 130 면 전후가 알려져 있다. 이것들은 뉴공의 제 작 기술에 있어서 짧 座 面 과 일치하는 위치에 대형으로 타원형의 중심을 이용한 반원형의 뉴공을 가 진다는 특정이 있다. 그 이전의 鍵 팝 鏡 (일단 높은 위치에 장방형의 뉴공을 가짐)이나 像 製 鏡 의 뉴공 형태( 銀 座 面 과 일치하는 위치에 방형의 뉴공을 가짐) 등과 함께 크게 다르다(쐐 橋 2013). 전체의 7할 이상이 19cm 이상의 大 型 鏡 이며 中 型 小 型 鏡 도 포함하면 전체적으로 大 型 鏡 을 주제로 하는 一 群 이 1661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68 다. 가장 큰 것이 치바현 千 葉 原 기온오오츠카야마 把 園 大 행 山 고분에서 출토된 畵 文 帶 佛 默 鏡 B이며, 면 경 30.3cm로 外 區 를 확대한 가장 큰 鏡 이다. 또한 이 가운데에서도 특히 畵 文 帶 同 向 式 빼 戰 鏡 C라 불 리는 一 群 은 同 型 鏡 이 28 면 확인되었으며, 현재 도출된 많은 자료가 있다. 이들 同 型 鏡 群 은 後 漢 代 의 뼈 戰 鏡 이나 畵 像 鏡, 浮 影 式 戰 帶 鏡 등의 鏡 式 鏡 種 을 중심으로 하여, 大 型 鏡 이 주체였다는 점에서도 편중된 구성을 보인다. 부장 연대의 상한은 스에커의 ON46형식기이며, 5세기 중엽의 연대관으로 볼 수 있다. 현재 優 오왕의 慣 使 와 함께 南 朝 宋 에서 입수되었을 가능성이 유력시되고 있는 一 群 이며 ( 川 西 2004), 필자도 앞에서 본 뉴공 형태의 기술적 특정이 鏡 種 을 횡단하여 인정된다는 점에서 이 설을 지지하고 있다. 카와니시 히로유커 川 西 宏 幸 씨는 438 년 혹은 451년의 遺 使 당시 입수했을 가 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이들 同 型 鏡 群 은 기본적으로 중기후반의 빠른 단계에서 대체로 거의 모든 동 경이 나오고 있었다고 생각되며, 반세기라는 장기간에 걸쳐 입수한 것이 아니라 단기간 혹은 한정된 기간의 입수 기회로 船 載 했을 것이라는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점에서 文 帝 의 북벌에 의해 남조의 정 치 경제가 혼란스럽기 이전의 시기라는 점에서는 443 년의 濟 에 의한 道 使 당시의 가능성도 있다. 또한 이 同 型 鏡 群 의 船 載 를 큰 계기로 하여 이들을 모댈로 한 優 製 鏡 의 생산이 활발하게 된다. 이 들은 전기 f 委 製 鏡 의 계보를 잇지 않고, 새롭게 同 型 鏡 群 을 모방하여 생산한 것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현저하게 보이는 것이 畵 文 帶 對 置 式 빼 戰 鏡 의 빼 像 을 제외하고 구성하였다고 보는 旅 回 式 歡 像 鏡 系 이며, 中 型 鏡 의 주제를 이루고 있다. 또한 소형경으로서!JiL빼 文 鏡 系 가 대량 생산되며, 전체적으로 同 型 鏡 群 (대형 주체) > 旅 回 式 歡 像 鏡 系 (중 소형) )!JiL뼈l 文 鏡 系 (소형)라는 변경의 서열이 명확하게 표 현된다( 上 野 2004). 중기전반과 비교해서 확연하게 鏡 의 종류가 다양해지며, 對 南 朝 造 使 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前 期 的 인 鏡 의 질서의 再 興 을 꾀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단지 최상위에 가장 큰 像 製 鏡 을 부 여하지 않고 또한 內 行 花 文 鏡 이 포함되지 않는 대형 초대형의 빼 戰 鏡 佛 戰 鏡 이 최상위에 부여되었 다는 점 등이 전기와는 크게 다르다. 同 型 鏡 群 은 중기후반 후기에 걸쳐 열도 각지에 넓게 확산되지만 전기와는 다르게 특정 지역에 서 편중되어 출토된다는 특정이 있다. 열도 전체에서는 특히 칸토우 開 東 와 큐슈에 집중되고 있으며, 큐슈 안에서도 무나가타 宗 像 지역이나 스오우나다 周 防 離 연안 지역 반드시 전기에 鏡 의 출토가 많았 던 지역이 아닌, 대형전방후원분에서 출토가 한정되지 않는 점에서 전기와는 다른 주고받음의 양상 이 상정된다. 구체적으로는 중앙 정권의 활동에 실제로 참가 관여했던 인물이나 각지의 중소 유력 자를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형태로 증여했다고 보고 있으며 보다 정치적인 이유가 짙어졌다 고말할수있다. 큐슈에서는 쿠마모토현 熊 本 原 에다후나야마 江 田 船 山 고분에서 5 면의 同 型 鏡 群 이 한데 모여 출토 된 것 이외에도 후쿠오카현 福 剛 原 카츠우라미네노하타 勝 浦 뿔/뼈고분에서는 대형의 3 면 同 型 鏡 ( 細 線 式 戰 帶 鏡 畵 文 帶 同 向 式 빼 戰 鏡 C 2 면)과 旅 回 式 默 像 鏡 系 를 포함하는 5면의 { 委 製 鏡 이 출토되고 있다. 카츠우라미네노하타고분은 무나가타지역에 5세기 후엽에 축조된 loom의 전방후원분이며, 이 이후 에 계속되는 무나가타 츠야사키 律 屋 ili춤지역의 대형고분군의 효시가 되는 고분이다. 또한 鏡 의 내용 이 오커노시마빼/ 島 21호 유적과 공통되는( 畵 文 帶 同 向 式 빼 戰 鏡 C 등) 것에서 오커노시마 제사에 직 접 관여했다는 무나가타씨뼈 眉 民 의 시조 적 존재였을 가능성도 있다( 小 田 2012 ; }냄 橋 2012). 이들 B 本 ~tffil 九 州 l : <!OIH> 古 項 8홈 代 中 期 C7)i뿔쫓 拖 設 鋼 鏡 1167
169 同 型 鏡 群 은 단독으로 부장되는 것이 많고 앞에서 서술한 旅 回 式 默 像 鏡 系 등과 부장되는 사례는 카츠 우라미 네 노하타고분과 같이 존재하는 것은 많지는 않다. 필자는 이 러한 同 型 鏡 群 은 출토 고분의 연대관과 내용에서 다음과 같이 크게 3단계 가운데 각지 에 확산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抽 精 2014) : 1 단계 ; 5세기 중엽 (ON46 TK208) 2 단계 : 5세기 후엽 (TK23 47) 3 단계 ; 6세기 전엽 (MT15 TKl이 먼저 1단계는 치바현 기온오오츠카야마고분의 外 區 확대의 초대형 鏡 과 금동제갑주와의 공반이 나 각지의 대형고분에서의 출토가 주체이다(예 ; 카츠우라미네노하타고분), 이것은 대외교섭과 부관제 적 질서 지향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2단계는 同 型 鏡 群 부장의 절정으로 胡 錄 金 具 나 주조 철부, 대금구 등 반도계 유물과의 공반 사례가 많으며(예 ; 후쿠오카현 福 問 原 야마노카미 山 φ빼고분. 쿠마모토현 熊 本 멍 에다후나야마 江 田 船 山 고분. 사이타마현 倚 玉 原 이나라야마햄 倚 山 고분), 대형고분 뿐만아니라중소규모고분에서의 출토도많아 鏡 의 변경의 크고작음과고분의 규모가반드시 대응 하지는 않는다. 각 지역 집단의 반도 교섭과 중앙 정권으로의 참가라는 점에 따라 특정지을 수 있다. 3단계는 중기적인 지역 간 관계가 재편성되어, 새로운 同 型 鏡 群 委 製 鏡 의 주고받음이 이루어지는 시기이다. 쿠마모토현 熊 本 原 쿠니고시 固 越 고분. 미에현 三 重 떻 이다가와차우스야마 井 田 川 茶 터 山 고분 등을 사례로서 들 수 있다 킨커 주변에서는 維 休 정권과 관계가 깊은 지역에서 출토되는 것으로 알 려져 있어. 2단계의 雄 略 정권까지의 그 틀이나 器 物 을 계승 하면서 각 지역과의 정치적 관계를 쇄신 하고자 하는 중앙 정권의 전략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同 型 鏡 群 은 한반도 에서도 무령왕릉에서 3 면이 출토되었으며( 方 格 規 短 四 짜I 鏡 細 線 式 默 뿜 鏡 D 浮 } 形 式 散 뿜 鏡 B), 전 경 상남도 출토 鏡 ( 浮 影 式 밟뽑 鏡 A) 이 존재한다, 무령왕릉 출토 鏡 은 금송제 목관 등과 함께, 짧#정권 과의 밀접한 관계를 엿볼 수 있다. 偶 田 )\1 播 빼 柱 人 物 퍼 象 鏡 또한 同 型 鏡 群 가운데 째 人 歌 舞 빼 象 鏡 을 주된 모텔로 하여 반원방형대와 명문대를 복합시킨 鏡 이며, 명문에서 무령왕이나 織 休 와의 관계가 상기된다. 5세기 말에서 6세기 전엽의 쌍방향적인 국제 관계의 소산으로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IV. 결어 이상 열도의 북부큐슈의 양상을 중심으로 고분시대중기의 매장시설과 鏡 에 대한 검토를 진행하 였다. 고분시대중기는 전기와 비교하여 열도 여러 지역의 지역성이 표면화 되는 시기이며, 지역 집 단 간 혹은 지역 집단 독자의 대외 교섭도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시기이다. 반도 남부 여러 지역에서 { 委 系 유물뿐만 아니라 매장 시설이나 전방후원분이라는 優 系 의 유구 가확인되는 5세기 6세기대는확실히 이 시기의 다원적으로활발한쌍방항의 교류를 이야기하는자 료라고 할 수 있다. 큐슈에서는 매장시설에 대해 北 部 九 州 型 初 期 橫 六 式 石 室 을 상위로 하는 개략적 계 층성 이 존재하고 그것이 중기를 지나면서 보급되었지만, 6세기대의 후기 에 이르는 과정에서 北 部 九 州 型 初 期 橫 六 式 石 室 이 쇠퇴하여 單 室 兩 抽 型 橫 六 式 石 室 과 複 室 의 형상이라는 형태로 재편된다. 鏡 에 1681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70 대해서는 그러한 계층성과도 어느 정도 연동하면서 각지에서 반도 교섭에 종사하는 유력자를 중앙 정권의 조직군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하나의 목적으로 하여 同 型 鏡 群 을 시작으로 하는 鏡 의 주고받 음이 이루어졌다고 보고 있다. 한반도에서는 특히 旅 回 式 散 像 鏡 계나 珠 文 鏡 계를 시작으로 하는 중 소형의 優 製 鏡 의 출토가 많지만, 이것들이 한반도로의 유입 루트에 대해서는 불분명한 점이 많으며, 다른 便 系 유물과의 관계도 포함하여 앞으로의 과제가 될 것이다. 이 러한 像 系 유물이나 優 系 유구 가 이 시기의 다원적으로 쌍방향적인 상호 교류의 소산인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이 글을 정리 하고자한다. I흉 考 文 敵 l 上 野 # 史 2000 빼 默 鏡 m 作 鏡 系 諸 k깐m 盛 훌 史 林 韓 島 南 部 出 士 鏡 Lζ?νT 固 立 歷 史 民 힘 博 物 館 冊 究 報 告 金 餘 域 古 慣 出 土 鏡 k 古 增 時 代 後 期 O 東 固 참승 金 餘 域 古 慣 冊 究 홈 lj 刊 띔. 2013a 祝 園 大 隊 山 古 瓚 m 固 文 뿜 {L. 默 鏡 - 同 型 鏡 群 k 古 慣 時 代 中 期 - 祝 園 大 域 山 古 慣 t5 世 紀 tv. 時 代, 六 一 書 房. 2013b 萬 義 據 1 띔 增 出 土 優 鏡 t{ 委 韓 m 相 互 交 涉 海 南 玉 果 萬 義 據 古 慣 固 際 字 術 슴 議. 웹 村 秀 典 1993 後 漢 鏡 η 編 年 固 立 歷 史 民 倚 博 物 館 冊 究 報 告 東 7:/7 情 勢 k 古 慣 文 化 講 座 日 本 m 考 古 字 古 慣 時 代 ( 上 ), 좁 木 書 店. 小 田 富 士 雄 世 紀 代 北 部 九 州 m 古 慣 文 化 - t 이ζ 橫 六 式 石 室 m 導 入 k깐m 背 景 古 文 化 談 蕭 펴I/ 島 察 祝 遺 跳 m 再 樓 討 2 宗 像 빼/ 島 k 開 連 遺 塵 群 冊 究 報 告 II -1. 河 承 哲 2006 五 六 t딴라ζ힘 10 加 耶 地 域 O){쫓 系 遺 物 It 遺 構 - 巨 消 島 長 木 古 慣 창 中 心 lζ 海 창 禮 -:>t::. 日 本 文 化, 월tij야 t±. 川 西 宏 幸 2004 同 型 鏡 tr; 力 갖 'Tψ, 同 成 찬. 金 洛 中 2012 韓 島 b G'Jf t::. 九 州 諸 勢 力 to) 交 流 빼/ 島 察 피et 九 까 諸 勢 力 η 村 外 交 涉 第 15 回 九 州 前 方 後 門 慣 冊 究 승 北 九 州 大 용짧 表 要 릅 資 料 集. 車 ~휩 正 彦 編 2002 考 古 資 料 大 騙 5 램 生 古 項 時 代 鏡, 小 풍 館 福 倚 山 古 慣 出 士 m 環 狀 ~L뼈펌 鏡 찰 考.:Z0 r; 力 갖 'TJv 大 王 ε깐m 時 代, 山 川 出 版 柱. 洪 惜 植 2009 韓 島 南 部 地 域 m 九 州 系 橫 7 C 式 石 室 彩 井 健 編 九 州 系 橫 六 式 石 室 O) {i 播 k 批 散, 北 九 州 中 固 書 店. 小 林 行 雄 1966 援 m 五 王 m 時 代 ( 古 項 文 化 論 考 (1976, 平 凡 삼)ι pft~)l) 北 部 九 州 lζ힘 i10 橫 六 式 石 室 m 展 開 九 州 ζ힘 i10 橫 六 式 石 室 m 導 入 ε 展 開, 九 州 前 方 後 門 慣 冊 究 승 팽 賽 빠 設 -깐m쫓 化 k 階 I휩 生 地 域 性 - 九 州 島 lζ힘 i10 며 期 古 慣 η 再 檢 討, 九 州 前 方 後 면 慣 liff 究 승 B 本 ~trui 九 Ml=~IH 古 境 뼈 代 中 理 흉 施 設 銷 鏡 1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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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j l 1 l 7 π // 講. =. 8 도먼 1. 고분시대 중기의 매장시설 (1 4 S=1/80, 그 이외는 S=1/10[])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74 -35α>n -3300m -,uoo ~- ~ s "' 9 10 누- 카 11 도면 2. 고분시대 후기의 횡혈식석실 (8=1/10[]) 日 本 北 뿜 九 州 { 二 ;!olh 古 慣 8츄 代 中 廠 設 銀 鏡 1173
175 고분시대 열도에전해진 완형 中 國 鏡 끊웰웰 A 연경의 대소에 의한 서열화 三 角 緣 뼈 歡 鏡 각계열의소형 鏡 도면 3. 고분시대 전기의 鏡 의 서열화 (츠지타2007) 表 l 同 옐짧 BfO)JlUU:: 系 염 짧딩 fil~~;t, ildll 同 엔 fill& Lil\짧m 候 補 엔 A:;t, hj(~o)월f i 系 ;~/ 製 fl' 地!ii\ 鏡 O)~jf 時 뼈 움~ 方 r&ju~ 四 Jilifft 예 H 分 짧 方 l'tl:j.ll.~ 四 Jill짧 VM ;옛짧5뼈 때 letj.l~흥 A< ilt:+' 王 탱. 11/iJfP묶게; (ti\ f2qq:!l 2 細 線 式!**홈짧A ll'jh 分 짧~ 線 'it 틴klli'짧JV A,t:: ;홍짧5 期 ADIC 띠흉 * 3 細 없 r\~#h흉b I쩌 村 分 짧빼없T\lll:I유 鏡 IV Art i옛 鏡 5 期 : ADIC 냐1짜 k 4 *뻐---빼;*양짧C R에 村 分 m 뼈 線 ι.\:l!j: 엠양 鏡 ll' A>\ i옛짧3뼈 ADIC 냐I쨌 A< 5 細 쩡 A:!lkl* 鏡 D 18. I n에 f 分 Ill 細 線 ιt!ik뿜짧 IV A t ~ 鏡 5 期 ADICψ햇 A< '*훨 王 탱 6 細 짧 A:!iH양짧E {에 村 分 짧 細 없 式!!!:*짧 IV 式 ~짧5빼 ADIC'P 윷 太 I 1후내;A:!1H홉짧A II 써 村 分 짧 i쭈um~혐; a 式?찢 fi!5jui ADIC'l' 찢 ;f; Iii졸펴 iyiili 8 i'l 쩌Z 式!!H홈 鏡 B !머 f 分 짧 i'(wi 式 핑뿜 鏡 I A: 1훗월5 期 ADIι띠쨌 * iltli' 土 段 9 i' 1.t>t 등R I/짧 I l폐 H 分 m; ;ii.t 式!i!:I휴쩔!JO\: i엇월5뼈,\djc 냐>!;; 10 (푸써;A:!lkl!HliD "빼 H 分 뼈다!tr\!!(혐 鏡 I,\ i훗 援 5WI ADlCψ윷 A< 11 i!f대i:ittto홈짧e J펴 村 分 짧 j'fwj'i\!11;~뷰 1 a 式 i찢 jii5jlll ADIC 이l 葉 未 12 ~U~fll. II. 6 2 上 If 分 m윌 式 IB i!:lllb없 (뼈 頭 式 ) 外 l즈 llilffl 文 빼 人 nft~[iiij~m 上 확 分 m f7 */νx l>i' 임~'it. 7'1$B ~~1u uai엔t렛) i횟흉6 7뼈 2C flfl ill 文 Q+R 14 l>i' 人 몫~뼈i혔짧 上 野 分 짧 7'7-j /ν 거 1$iil 式 7'1깨A 尙 方 룹앓 系 (]흩 ~t) i훗 鏡 6 7 期 : 2C 'f!.f.. 짧 文 P 15 빼/ 피Z 馬 뻐it!짧 쉰 l!ll 系 i.:fimllll 앓i함f[ii![l!ji) 1l: 分 分 -행 l'ji~ D A: - 원생 짧홍\ 16 않훨짧흉챔 r빼l 1$!!J:q<.~i힘i 象 짧 20. I rn.it? 짧 文 \ 大 分 훌쏠 tfl!lt_ 17 퍼 文 써l~:ti:명L1'11ft!;fl!A 上 몽f 分 mra:tt;1l( uc. '/~) 야 1tlfl 염;;g 2C 찢 f 3Cl!J 짧 文 AZ 天 王 日 月 IT) 빼 i동 Lil 文 /if없 lk휩l 미없;월 B ;~f 分 tmuk~l UI C 才 야 &~뺑 i iii[ij/( 系 2CiH 30TI ill 文 A3 19 퍼 文 유Hlill 11. 뼈!R짧 C 21.~ 훨 ~tji[유u 系 r탱t; 野 fit 分 휠Ill웰M웬!fl: 원ii All r ;~행 뜨3C쩔쩌j ; 안_m ill 文 A2 天 王 므땀건~?빼2훤lι 20 뼈 文 뿜M 置.it빼!Mli 표뜨뾰jft[IJ/(~ JC뿔2 四 j':jtllfit! 짧 文 A2? 外 g - 21 固 文 뿜머 向 i\1'111iu~a 上 lf m 同 向 I A φ ~f. in 에l:lCif- 2C 末 3C 第 2 四.tJ!Jlrp 황 IA I 짧 文 A2 fj> 22 固 文 뺨 同 向 i\1'1111.i!fl!b 19..J.J 上 봐 分 짧 同 向 I A?U 꺼~1tU; 系 2C 末 3C 第 21!!1 f 期 中 훗 IB-1 짧 文 A2 23 固 文 뺨 同 向 ;\1'!ik황 C 上 If 分 쟁 同 向 I A?양!!1t 束 iic 系 2C.t 3C 第 2 四 半 期 中 혔 lb-2 짧 文 AZ 24 JUN.짧 If}( 山 分 햄에ιt II (었?ll'J.짧 ~ψ 뼈 i'ilm!ii옳, 可 낼ψL에k ~7) ':ikiil' 써tll>x 25 어i 文 챔 ι!i,t;짧 A [헤 內 ',t!'iib?'-17 三 며,ti) ':ii' ' 깝 0)8~)이 26 固 文 *%ιii.o풍 B [lilj 內 'r}l.'liaji 17 $'!안 方 格,명w: 四 빼행 18 넓 l뼈 #!C:,18융 ilill (예버 2011) 固 文 협 lthk왜 J>jl!!;짧 山 디 빨 /I{ 古 없 (찢 原 1988) 땐i 文 {얀 同 向 >ti뿌핑;* 15 官 뼈 洛 t홍 古 벚 (건 村 2008) * 차료집성은 카와니시 (200 4 ) 빛 모리시타 (2011)플 기초로 한 것(츠지타2012a) 에 값 文 뿜폐M짧B룹 l연 주가한 것혀다 각차료희 펀겸흔 변의적으로 꾀p엔짧람의 펑균치를 효7 1하효줬다 1741 고분을 통해 온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76 表 2 同 型 鏡 群 η 種 類 鏡 도\:::15 面 쩔 面 數 方 格 規 短 四 빼 鏡 ~ 細 線 式 협t 帶 鏡 A 細 l 線 式 혐t 帶 鏡 B 細 線 式 댐t 帶 鏡 C 細 線 式 협t 帶 鏡 D 細 線 式 협t 帶 鏡 鏡 ; l j후 影 式 용t첨 ~~ : ~ 1 l 浮 1 影 式 합t 帶 鏡 B 浮 周 Z 式 합t염주 鏡 C 浮 影 式 협t추휴 鏡 D 約 20.8 l 浮 影 式 歌 혐 鏡 E 盤 龍 鏡 *매 A 龍 虎 固 象 鏡 **빼:~ 敵 馬 歌 車 固 車 象 舞 固 鏡 象 鏡 22. i 3 馬 固 象 20 빼 文 帶 環 :tk~l뼈없 鏡 A 固 文 帶 覆 ;l*~ L빼홈t 鏡 B 面 文 뿜 帶 帶 짧차 同 ;l*~l 神 默 鏡 C 21 6 固 文 置 式 뼈홉t 鏡 鏡 A 固 文 向 式 式 빼 神 默 固 文 帶 同 向 밟 鏡 B 固 文 帶 同 向 式 뼈웰t 鏡 C 固 固 흉흉 鳳 文 文 鏡 帶 帶 μ fl. 戰 默 鏡 A B 合 計 126 表 3 同 쩔j 鏡 群 m 面 쩔 序 ~lj 鏡 式 ::15 面 쩔 面 數 固 文 帶 {L. 默 鏡 B 細 線 式 행t 帶 鏡 E 細 線 式 默 추홉 鏡 B 浮 쩌Z 式 협t 帶 鏡 B 細 線 式 홉* 帶 鏡 A 22 ~γ 神 人 車 馬 固 象 鏡 固 文 帶 {L. 휩t 鏡 A 固 文 휴용 覆 ;κ~l빼협t 鏡 C 6 直 i 文 帶 同 向 式 빼 默 鏡 C 28 浮 影 式 혐 帶 鏡 D 約 20.8 l *빼A홉흩 虎 뼈 象 鏡 細 線 式 용R 帶 鏡 C { 댐Z 式 협k 帶 鏡 E 20 1 神 A 歌 帶 舞 ** 固 象 鏡 i회 文 置 式 뼈혐t 鏡 20 4 뼈 默 車 馬 固 象 鏡 20. l 11 ;J 計 앓옳옳믿멘훨뺀웰 鍵 후----- ~ -.느----- 걱 細 線 式 행; 帶 鏡 D 18. l 1 方 格 規 短 四 뼈 鏡 1 7김6 2 浮 周 2 式 휩t 帶 鏡 C 17 l? 影 式 혐t 帶 鏡 A l 7. 5, ll 固 文 帶 없;야 ~L뼈혈t 鐘 B 固 文 춰 짧 ;κ~l:fill 용t 鏡 A 9 固 文 帶 同 向 式 빼 軟 鐘 A 21 ; J 計 盤 龍 鏡 rr훔 2 36 合 計 126 ~~ 大 샤 도먼 4. 同 型 鏡 群 과 {쫓 製 鏡 의 크기와 서열(개염도) 도면 5. 舊 베를린 민속박물관 소장, 畵 文 帶 佛 默 鏡 B (33.3cm) ~I,!"""!, -- lmm,-.. :--.. J""".,,,, 도먼 6. 오키노시마 21호 유적 출토 浮 影 式 歡 帶 鏡 A (17.6cm) 도면 7. 추정 오키노시마 21호 유적 출토 浮 影 式 歡 帶 鏡 A (17.6cm) 日 本 北 郭 九 州 l : <lolt :Q 古 慣 8휴 代 中 期 17.l i몇흉 施 設 鋼 鏡 1175
177 토론 日 本 北 部 九 까 ι 함 ~t 0 古 瓚 時 代 中 期 0)± 里 義 施 設 鋼 鏡 에 대한 討 論 慶 北 大 考 古 A 類 學 科 朴 天 秀 J± 田 淳 一 郞 先 生 은 古 瓚 時 代 網 鏡 과 함께 九 州 地 域 古 慣 을 통하여 日 本 古 代 國 家 形 成 過 程 을 연구하 고있다. 본 토론에서는 현재 湖 南 地 域 에서 확인되고 있는 優 系 古 樓 과 그 副 賽 品 인 網 鏡 의 문제를 중심으 로진행하고자한다. 1. 토론자는 5세기 전엽 湖 南 南 海 뿜일대에서 축조된 高 興 鄭 吉 頭 里 雅 洞 古 樓, 新 安 那 배널리 古 境, 高 興 都 野 幕 古 境 의 被 賽 者 를 { 委 A으로 본다. 그 이유는 九 州 系 理 賽 主 體 部, 日 本 列 島 塵 甲 뿜, 歡 食 物 을 責 敵 하지 않는 賽 送 {옳 禮 와 함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토론자가 이미 지적한바와 같이 榮 山 江 流 域 前 方 後 圓 境 을 비롯한 優 系 古 境 과 같이 累 世 帶 的 으로 葉 造 되지 않고 單 獨 樓 으로 出 現 하는 점을 들고 자 한다. 더욱이 r 三 固 史 記 聊 支 王 1년 (405 년)의 f쫓에 帶 在 하던 뺑 支 王 이 歸 國 할 때 軍 士 100 인이 護 衛 하였다는 기 록에 서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시기 優 系 古 瓚 의 理 賽 主 體 部 와 九 州 地 域 과의 관련성 나아가 그 被 賽 者 상에 대한 의견 을듣고자한다. 2. 5세기 후반 九 州 계 橫 t 式 E 室 이 西 日 本 각지에 축조된다. 이는 西 日 本 地 域 의 豪 族 뿜 力 과 九 州 地 域 勢 力 과의 地 域 間 交 流 에 의한 橫 六 式 石 室 의 傳 播 로 보고 있다. 한국내에 서도 이와 관련하여 6세기 초를 전후하여 축조된 榮 山 江 流 域 前 方 後 圓 瓚 을 비롯한 { 委 系 古 樓 의 被 賽 者 를 在 地 勢 力 으로 보고 地 域 間 交 流 에 의해 基 制 가 導 入 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한편 토론자는 西 日 本 地 域 의 九 州 계 橫 六 式 石 室 은 累 世 帶 的 으로 형성된 首 長 基 域 에 專 入 되나, 榮 山 江 流 域 前 方 後 圓 樓 을 비롯한 { 委 系 古 樓 은 累 世 帶 的 으로 藥 造 되지 않고 單 獨 樓 으로 出 現 하는 점을 根 據 로 그 被 裵 者 를 在 地 勢 力 으로 보지 않는다. 이 시기 榮 山 江 流 域 前 方 後 圓 樓 을 비롯한 俊 系 古 瓚 의 理 賽 主 體 部 와 九 州 地 域 과의 관련성, 나아가 被 賽 者 상에 대한 의견을 듣고자한다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78 3. 高 興 那 吉 頭 里 確 洞 古 境, 高 興 那 野 幕 古 慣 에서는 中 國 鏡 이 출토되었다. 양 고분 출토 鏡 의 同 型 鏡 과 移 入 背 景 에 대한 의견을 듣고자 한다. 이와 함께 海 南 컴~ 萬 義 據 1호분에서는 { 委 鏡 이 출토되었다. 그 同 型 鏡 과 移 入 背 景 에 대한 견해를 듣고자 한다. 4. 토론자는 高 興 那 吉 頭 里 雅 洞 古 樓 을 비롯한 남해안 일대의 왜계고분은 아직도 그 피장자상에 대해 논란이 되고 있는 榮 山 江 流 域 前 方 後 圓 慣 의 이해에 단서를 제공한다고 본다. 특히 최근 확인된 6세기 중엽 에 축조된 南 海 那 南 ill폼 里 古 慣 에서는 百 濟 官 A 이 著 裝 하는 銀 花 冠 節 이 北 部 九 州 系 橫 六 式 石 室 에서 확인됨으로서, 그 이전 시기 優 系 古 樓 의 被 聲 者 상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토론자는 5세기 초, 5세기 말, 6세기 중엽 백제와의 관계속에서 九 州 地 域 의 像 A 이 영산강유역과 남해안일대에서 활동한 것은 각 시기 百 濟 가 처한 政 治 的 狀 況 을 그 歷 史 的 背 景 으로 본다. 5세기 초는 高 句 麗 의 慢 攻, 5세기 말은 漢 城 階 落 6세기 중엽은 任 那 四 縣 을 비롯한 南 海 뿜 攻 略 등을들수있다. 이와 관련하여 5-6세기대 九 州 地 域 豪 族 勢 力 과 優 王 權 百 濟 王 權 在 地 勢 力 과의 關 係 에 대한 견 해를듣고자한다, 日 本 北 部 九 州 t:aolh 古 增 時 代 中 期 φ 理 裵 拖 設 웹 鏡 1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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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08 百 佛 故 地 出 士 中 固 六 朝 좁쩔 的 年 代 和 意 X 李 R뿔 효 ( 中 固 所 江 省 文 物 考 古 冊 究 所 副 Uf 究 텀) 쉽 迷 中 固 六 朝 춤뚫 的 年 代 序 列. 百 ;휴 故 地 出 土 的 六 朝 좁뜸 的 햄 美 딛 年 代. 各 쫓좁츰 的 功 能 IV. i 式 if: 六 朝 좁츰 在 百 ;휴 故 地 的 輪 λ딛 f놓 播 近 凡 十 年 來, 在 韓 固 i후 多 地 方 出 土 了 껴 敬 可 짜 的 中 固 六 朝 좁쯤 器 就 地 域 而 즙, :i3: 些 器 物 主 要 出 土 手 三 固 밤 期 的 百 將 固 쨌 域 內, 其 中 以 普 앉 分 別 作 껴 百 홉 都 城 的 首 껴; 公 州 和 技 金, 以 及 西 南 海 뿜 的 全 몇 南 北 道 等 地 最 껴 突 出 lfx>jj;츠 些 器 物 年 代 性 mt 等 方 面 的 冊 究, 훨휩 E뢰렇 者 提 出 了 i후 多 重 要 的 m 解 I ) 不 tt, 由 手 冊 究 者 ff] 的 柳 角 不 同, X>J :i3: 些 資 料 的 掌 握 和 理 解 ill 各 有 心 得, 因 而 得 出 的 옳i상 差 昇 甚 大 本 文 Hxt:i츠 些 器 物, 사 中 固 固 內 有 明 E댐건 年 的 養 賽 찢 料 中 收 集 整 理 出 - 批 되 之 相 X>f Jiil 的 六 朝 좁좀, 通 파 lt 較, 推 뼈~'t fj'j 具 本 的 生 F노 或 使 用 年 代 同 며, 씀 合 中 固 文 敵 及 其 강 相 失 資 料, 就 :i3: 쫓 器 物 的 性 屆 和 功 能 做 出 判 뼈, 由 此 쏠 ii\ 探 ii:i츠쫓 器 物 f슐λ 百 홉 的 월Vt 和 at 1폐, it!: 而 採 ii'tfl ] 在 百 溶 固 內 流 通 1t 散 的 原 因 所 i뽑 六 朝 좁쯤, 在 中 固 一 向 有 特 定 的 界 限 六 朝, 사 JJj 史 렇 的 角 度 而 즙, 좋 指 建 都 手 南 京 的 三 固 롯 (229 28이 末 音 ( ) 南 朝 宋 ( ) 츄 ( ) 梁 ( ) l 洙 ( ) 六 南 方 王 朝 六 朝 考 古 的 冊 究 져 象, 原 째 上 filfj(ftx>jj;츠 六 王 朝 而 즙, 井 不 涉 及 同 at 期 的 中 固 北 方 地 E 而 사 三 固 flj 昊 갯 亡 到 末 音 建 固 之 l버 的 三 十 七 年, 江 南 地 E 統 l 量 手 西 普, ~ 子 六 朝 史 좋 搬 念 上 的 폐뻐 期 只 是, 담뻐 昊 延 짧 下 來 的 江 南 文 化 佳 統 井 未 因 1) 權 五 榮. (4C 백제의 지방통제방식 일려 -동진정자의 유입경위를 중심으로), (한국사론) 18, 1988 年. (백제의 대중교섭의 전개와 그 성격 ), (고대 동아시아와 삼한, 삼국의 교섭 ), 2002 年. {백제의 대중교섭의 진전과 문화변동), {강좌 한국고대사) 4, 2003 年 成 正 觸 ; (잭제와 중국의 무역도자), (백제연구 ) 38, 2003 年. 李 廷 仁 (중국 동진정자 연구-4C 백제지역 출토품과 관련하여 ), 잦 花 女 子 大 풍뼈 士 렇 位 끊 文, 20이 年. 林 永 珍 ; (한성기 중국과의 문물교류), (백제의 문울교류), 2007 年. (문물교류로 본 백제의 대외관계 }, (백제논총 ) 8, 2009 年. ( 中 國 六 朝 磁 器 의 百 濟 導 A 背 景 ), (훨 固 考 古 렇 根 ) 83 輯, 韓 固 考 古 풍응 2012 年 百 흙 故 ill! 出 土 中 固 六 朝 좁앓 的 年 代 和 意 X 1179
181 政 治 的 짧 化 而 天 折 加 上 西 普 統 治 파 子 短 暫, 中 原 文 化 井 未 來 得 及 全 面 影 n폐 和 改 造 江 南 原 有 士 著 文 化 換 흠 之, i효 三 十 七 年 때 的 江 南 文 化, 在 相 핍 程 度 上 依 然 是 % 昊 文 化 的 延 짧 因 此 사 考 古 풍 的 角 度 宋 i#, 西 팝 at 期 的 江 南 臺 疑 可 ill$: 被 때 入 六 朝 考 古 的 泡 略 如 此 一 來, 六 朝 좁좀 的 懶 念 ill 就 相 핍 明 觸 r 담 三 固 的 J1~ 昊 到 南 朝 的 I 洙, ~ 期 때 南 方 生 F노 的 좁좀 F노 品 息 利 껴 六 朝 좁좀 在 j츠 些 tc 品 中, 最 具 代 表 性 的 빼쫓 有 堆 題 體 ( 或 利 ; 塊 臨 ) 盤 口 盡 꿔 首 옮 n 畢 盡 施 薰 策 房 屋 模 型 三 足 柳 等 띔 然, 在 iir상 六 朝 좁좀 的 同 at) fil7g 法 忽 땐핍 Ht* 然 大 量 存 在 的 普 通 I짧 器 特 別 是 施 抽 關 器 ( ilf 多 풍 者 也 府 강 l ]떠 入 좁좀 的 泡 略 ) 所 以 本 文 將 要 涉 及 的, 除 r 上 迷 各 뼈 典 型 的 六 朝 좁좀 之 外, i죠 包 括 了 되 韓 圖 出 士 品 相 失 的 됐 文 購 等 器 物, 而 되 之 at 期 相 핍 的 北 朝!짧좀 器 때 不 在 ii it휩 固. 個 迷 中 固 六 朝 좁츰 的 年 代 序 列 되 百 溶 故 地 出 士 的 器 物 同 美 型 的 六 朝 좁좀, 在 中 固 本 土 的 編 年 序 列 較 껴 淸 뼈, 월 者 xt 此 也 曾 有 놓 l ] 的 it:! 不 파, 通 i파효 凡 年 的 工 作, 좋 者 i:a ;껴 此 前 的 分 期 뻐 代 及 其 依 提 或 多 或 少 均 存 在 l 可 觀, 因 此 文 中 將 在 原 有 分 期 廠 代 的 基 쐐 上, Hxt뻐 代 依 提 和 分 期 ;fjf,(옮 等 何 題 再 (jz~ 故 - 些 採 ii 和 修 正 一 般 i:a 껴, 六 朝 좁좀 盤 口 童 和 X멜 首 盡 最 突 出 的 풋 化 超 勢 就 是 由 樓 到 高 由 뺨 到 擾 풍 者 通 j::1: 掌 握 的 건 年 基 出 士 資 料 뿔 行 排 It, 得 出 的 型 式 演 짧 序 列, 基 本 符 合 ~ 一 推 it 깅 (댐) 不 파, 大 量 的 出 士 핏 物 땐 明, ~{)l {5l 是 --빼휠 化 超 勢, 井 不 具 짧 精 觸 的 빼 代 意 X 如 南 京 末 善 析 )'A 凰 三 年 末 昊 基, 包 含 r 三 검 年 資 料 其 中, 뼈뽑 ~~:l폐 樓 上 有 '!ffi되 六 年 五 月 內 午 胡 二 十 日 造 的 짧 文, 明 觸 其 制 作 年 代 껴 公 元 244 年 而 i켰 基 所 用 華 破 上 X 出 꽤 兩 年 %, 一 껴 ffel 凰 元 年 ( 公 元 272 年 ), 一 껴 때 凰 三 年 ( 公 元 274 年 ) % 友 抽 者 也 擔 此 推 빼 此 基 的 建 짧 完 成 年 代 껴 ffel 凰 三 年 如 此 一 來, 基 內 的 隨 賽 器 物 되 基 的 建 짧 年 代, {5l 可 知 的 就 相 距 整 整 三 十 年 而 j츠 一 年 싸껴 末 昊 最 信 的 皇 帝 J1~ 晧 的 年 융, 下 距 昊 固 f 亡 {5l 六 年 也 就 是 i삶, 同 基 所 出 的 좁좀 x.x 系 鍵 셨 堆 행 鍵 等 器 物 的 使 用 上 限 年 代, 至 JgE,쩔 到 了 末 昊 末 期 再 如 南 京 象 山 1 융 幕, 三 1-~c 年 찢 料 均 出 手 養 室 前 端 的 一 方 石 廣 基 志 上 志 石 一 面 刻 男 姓 基 主 志 文, 中 有 1 或 康 六 年 十 月 十 A 터쭈, 以 七 年 七 月 tr 六 H 藝 的 ic ;꿇; 而 되 一 面 刻 女 性 養 主 志 文, 其 쭈 賽 年 代 均 껴 永 和 四 年 4 ) 1 或 康 七 年 꺼 公 元 341 年, 永 和 四 年 껴 公 元 348 年, 相 去 七 年, 井 不 算 久 近 基 中 出 土 的 좁좀 器 明 뭘 分 成 뼈 組, *{J]l ~ ~Ji 的 盤 口 盡 器 身 高 大, 西 째 一 짧 的 盤 口 盡 떼 器 身 殘 뺨, 器 型 差 昇 相 띔 明 밟 ~p 便 因 껴 此 基 닮껴 二 {j(~뿔 賽, 器 型 高 大 的 盤 口 盡 可 能 꺼 永 和 四 年 理 λ 基 內, 但 강 仍 l 日 比 밤 代 稍 陳 的 有 明 觸 검 年 的 基 聲 中 出 土 的 盤 口 畵 更 뭘 高 大 5 ) 효패 明 r 隔 可 웰, 1- 是 早 期 器 型 的 핍 用 年 代 比 預 想 中 的 要 -K, 二 是 在 新 器 型 出 現 며, l 日 的 器 型 井 2) 훗 千 器 型 演 쭉 及 年 代 何 題, 具 # 的 if:i초m홍 者 뼈 士 않 文 中 國 과 百 濟 出 土 六 朝 줌흙의 tt 較 檢 討 和 中 國 六 朝 좁앓의 年 代 와 性 格 ( 湖 南 文 1.t 財 ~~if: 文 集 第 9륨, 2이 O 年 ), 文 中 不 再 整 i초 3) 南 京 市 博 物 렵 江 수용 博 物 렵 南 京 市 후 善 析 ffel 凰 三 年 *뭉훌, 文 物 1999 年 第 4 期 4) 南 京 市 文 物 保 管 委 텃용 南 京 市 人 台 山 *품; 之 夫 떠흉윷뾰 根 告, 文 物 1965 年 第 6 期 5) 如 漸 江 省 黃 岩 秀 ~ 水 庫 44륭훌 ( 永 和 十 年, 상 元 355 年 ) 짧 口 꿇 뼈 江 省 fl)쫓줌. 山 23륭훌 ( 太 元 十 六 年, 公 元 391 年 ) 짧 口 뚫, 在 器 型 上 更 接 i 互 前 期 的 f없쫓 型 짧 口 꿇 180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82 未 立 刻 消 亡 可 파, ~p 便 基 賽 抽 有 明 觸 的 검 年 찢 料, 但 記 年 所 表 꽤 的 at1때 意 X 井 不 完 全 相 同 ~c 年 碼 代 表 的 是 基 賽 的 짧 造 年 代 ( 因 켜 秘 模 較 大 的 破 室 基 井 非 - 年 &P 可 埈 工, 所 以 破 上 的 記 年 ill 井 不 完 全 是 基 賽 修 짧 完 成 的 年 { 分, 횟 l젠 可 能 승 略 有 偏 差 ), 記 年 器 物 代 表 的 께 {Jl. {Jl. 是 ~ 器 物 담 身 的 制 造 年 代, i츠되 基 賽 年 代 以 及 同 基 其 강 器 物 的 制 造 年 代 井 不 能 체 等 융 :i3: 也 是 本 文 根 握 캠 年 華 윗 料 排 列 出 的 좁좀 演 쫓 序 列, 出 꽤 交 又 倒 置 孤 象 的 主 要 原 因 짧 文 鍵 갱um 的 敬 量 相 m 較 少, 目 前 推 뻐 其 制 作 及 流 行 年 代 젠 在 三 固 뻐 昊 至 末 팝 at 期 根 提 出 土 的 꽂 例, 中 圖 렇 者 꼈궁웹~m~ 文 鍵 的 年 代 되 型 式 훗 化 避 行 系 統 地 떠빼 사됐 文 角 度 而 즙, 他 i:a 꺼 五 珠 錢 文 出 孤 最 早, 핍 用 맴 폐 最 -K, 大 致 由 西 v.. 簡 期 至 西 普 ; 其 次 째 是 三 固 末 昊 和 西 普 at 期 盛 行 的 大 果 五 十 大 果 五 百 和 大 果 필 千 等 ; 而 훗 形 짧 文 째 由 三 固 -- 頁 延 建 到 r 末 팝 器 型 方 面, 째 是 口 핍 由 高 到 低 器 身 由 樓 到 高, 拍 印 錢 文 的 뭉 敬 也 由 下 往 上 i쪼 步 減 少 6) (댐) 琮 合 以 上 찌 察 不 唯 友 꽤, xt강 何 f뿌 器 物, 均 有 一 定 的 存 在 at 段, &P 便 是 材 댄 較 脫 弱 的 춤 器, 仍 有 較 * 的 使 用 和 保 存 年 限 而 隨 賽 的 器 物 井 非 必 須 是 핍 年 制 造 的 행 莫 器, 因 此 同 一 基 賽 中 共 存 的 器 物, 在 at 代 序 列 上 是 可 以 存 在 著 較 明 밟 的 差 別 的 而 효 正 是 本 文 져 韓 固 出 土 的 六 朝 좁좀 的 具 # 年 代 避 行 重 新 軍 꽤 的 出 갖면. 百 휴 故 地 出 土 的 六 朝 좁뚱 的 뼈 美 딛 年 代 百 波 故 地 出 土 的 六 朝 좁춤, 保 存 ;바 況 大 多 不 甚 理 想 &P 便 如 此, 我 { ] 依 然 可 以 사 中 辦 핑 出 it 多 典 型 的 器 物, 如 技 文 鍵 좁춤을F 黑 細 X힘 首 盡 좁좀 盤 口 盡 頁 口 鍵 破 多 足 짜 等 7 ) 琮 合 E 友 表 的 材 料, }쯤 i츠 批 器 物 的 主 要 器 型 和 出 土 /떤 避 行 떠왜, 基 本 情 況 &P 如 < 表 -> 所 示 表 - 百 퓨 故 地 六 朝 좁쯤 主 要 出 土 器 型 及 地 힘 主 要 器 型 主 要 出 土 地 현 됐 文 鍵 遭 口 꿇 首 거X창 村 土 城 JXl쐐 上 城 ; * 城 뼈깎 城 한-거 상 村 土 城 JXl쩨 t 城 里, 公 }! 武 수 王 隆 ; 快 P: 낀-휴? 同 ; i힘 i 放 ~ 德 및 石 村 洞 古 챙 群,되 山 ;j( 情 洞, 天 安 花 城 X완 首 ~ 휴l/J\!Xl때 土 ; 城.fi:. 安 )ti않 _!Il_; 公 州 水 村 里 ; 南 原 서 山 ~ %훌 碼 多 足 찌l 좁숱E후 首 거;창 村 土 ; 城 JXl쩨 = 城 石 씨 洞 古 :f;)( 群 ; 公 州 武 수 :E l찢 ;j( 村 里, 益 山 싶 l펀 里 首 j; 楚 村 土 城, 大 강 )ti핸 _I], 公 ) 水 村 里 ; 17( 奈 示 힘필 首 示 창 村 土 城, A.송 技 차 山 城,젊 山 王 宮 및 原 州 法 良 里 6) 윗E짧..표 ifu!r 出 土 早 期 옳얹 隔 흙 器 的 lijf 究, 考 古 딛 文 物 2008 年 第 2 期 i갖 文 最 初 友 表 千 똥표 考 古 얘±~ 第 二 輯, 흉 固 忠 淸 文 化 財 lijf 究 院, 2006 年 7) 具 # 材 料 除 散 m 千 相 훗 的 考 古 根 告 外, 표 集 中 m 子 뽑 固 出 土 外 來 i옳 흙 固 文 化 財 뼈졸 冊 왔취l훗까승2011 年, 文 中 不 再 注 * 出 il_t, 百 하 故 地 出 土 中 固 六 朝 좁앓 的 年 代 和 意 X 1181
183 ftxfj;츠 些 器 物, 갚흩 者 以 上 迷 中 固 同 쫓 器 物 的 具 休 年 代 꺼 依 提, Xf'tflJ 的 相 쳐 使 用 年 代 作 了 如 下 的 分 析 1.짧 口 虛 根 提 上 文 失 手 六 朝 盤 口 옮 的 編 年, JXl빼 土 城 孤 代 願 合 住 휠 出 土 的 좁좀 盤 口 盡 殘 器, 器 身 修 *' 細 不 及 底, 커 有 J.J_ 耳 됐 片 (댐) 효 些 됐 器 的 形 짚되 天 安 花 城 里 友 現 的 좁좀 盤 口 옮 基 本 相 似 而 花 城 里 盤 口 盡 整 本 器 形 較 高, 器 高 되 器 身 最 大 往 tti훌 較 大, 形 쪼 되 象 山 1 융 幕 的 曉 期 件 式 的 盤 口 옮 相 似, 故 流 行 年 代 EY: 在 * 普 中 期 南 南 朝 宋 早 期, &P4 世 검 中 期 至 5 世 검 上 半 Qf 되 山 水 淸 洞 25뭉 基 出 土 的 /\ 系 좁좀 盤 口 굶 ( [최), 形 制 되 南 京 司 家 山 6융 基 ( 永 初 二 年, 公 元 421 年 ) 出 土 的 A 系 盤 口 童 基 本 相 同, 6힘 細 方 式 也 同 껴 器 身 抽 提 此 推 廠 水 淸 洞 盤 口 옮 流 行 年 代 션 在 5 世 짧 初 的 末 音 末 至 南 朝 初 期 公 州 水 村 里 的 黑 細 盤 口 옮, 器 型 較 小,되 常 파짧 口 畵 有 所 差 別 (탬) 孩 器 拖 빼 方 式 抽 色 材 屆 均 닫 共 出 的 黑 빼 X힘 首 꿇 相 美, 年 代 EY:i킹 也 基 本 相 近 武 수 王 埈 的 情 況 l:t 較 明 7 由 手 武 수 王 的 쭈 年 明 觸 ( 公 元 523 年 ), 可 以 握 此 뻐 定 基 中 出 士 的 六 朝 좁쯤 的 年 代 不 파, 基 內 出 土 的 짧 口 옮, 행 部 佈 J.Y-8 校 帶, 四 4 析 形 系 集 中 分 布 在 행 部 四 周, 口?삼 高 而 外 觀, i츠 是 南 朝 中 期 以 텀 盤 口 畵 的 特 펴 (많I) 提 此 分 析, 此 盡 딩 武 수 王 的 下 賽 年 代 마 十 分 接 近, 甚 至 可 能 是 武 수 王 去 世 팀 梁 朝 皇 帝 的 輔 階 品 ik 安 竹 幕 洞 察 1Ej옳 址 出 土 的 좁좀 盤 口 盡 됐 器, 盤 口 뿔 高, 眉 部 佈 四 져 六 析 形 系 (탬) 효채 高 盤 口 析 形 多 系 盤 口 굶, 最 早 出 꽤 子 末 팝 陳 期, 延 建 至 南 朝 at 期 2.꿔 首 盡 韓 固 出 土 的 맴 首 盡, 有 좁 細 和 黑 抽 뼈뼈, 器 型 差 別 不 大, 通 파되 中 固 的 천 年 윗 料 的 l:t 較, 可 推 뻐 出 相 xtr옮 觸 的 使 用 年 代 尤 院 里 9융 基 出 土 的 黑 抽 맴 首 굶 (댐), 整 休 器 型 됨 南 京 司 家 山 5융 養 (건 年 X 熙 二 年, 公 元 406 年 ) 멕 件 엠 首 盡 十 分 相 近, 司 家 山 6융 基 c~c 年 永 初 二 年, 公 元 421 年 ) 的 X원 首 뚫 的 器 型 也 大 致 相 同 不 :i:tbu뻐휴 上 看, 5뭉 基 的 一 件 쩌 首 童 的 把 手 素 面 양 佈, 而 링 一 件 되 6뭉 基 엠 首 굶 的 把 手 퍼 口 핍끊 接 야 均 作 Jt 首 ; 代 ~f뿌 ft 首 炳 X편 首 굶 出 꽤 手 St!Hc 初 左 右, &P 末 音 末 南 朝 宋 初, 井 i쪼 漸 取 代 把 手 얹 的 器 型 所 以, ft 院 里 9륭 基 的 X원 首 굶 的 使 用 年 代 EY: 孩 在 4 世 건 l즙 半 Qf 至 St!Hc 前 期 公 州 水 村 里 的 黑 細 엠 首 盡 各 方 面 特 펴 均 딩 之 相 似, 制 作 和 使 用 年 代 也 EY:되 之 大 致 相 同 (멤) 뭘 有 兩 件 出 土 地 펴 不 明 的 完 整 쩌 首 옮 ( -- 件 꽤 藏 固 光 大 풍 博 物 짧, 一 件 藏 固 立 中 央 博 物 館 ), 器 身 펌 首 及 把 手 形 쪼 均 되 :Ji; 院 里 的 黑 觸 꽤 首 옮 相 似, 但 뼈떼 附 耳 껴 末 팝 前 期 流 行 的 篇 平 VF 耳, 而 非 硬 析 形 耳, 推 뻐 而 器 行 用 年 代 相 佑, EY: 在 4 世 검 中 期 左 右 ( 園 )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84 3. 鍵 사 息 {후 的 器 型 演 휠 末 看, 좁쯤E 鍵 也 同 件 앉 JJjJ 由 樓 M 向 高 倚 形 훨 化 的 파 程 如 창 村 士 城 第 一 t'lz i)웹흉 Ht 在 3뭉 隨 藏 玩 友 現 的 좀 鍵 됐 片 (탬), 量 i보됐 存 部 { 分 級 小, 但 仍 可 看 出 是 一 件 眉 部 貼 揮 索 形 橫 系 的 頁 口 옮, 可 惜 器 身 形 짚 完 全 不 淸 楚 i츠f뿌 頁 口 ~ 橫 系 的 器 型 特 펴, 사 西 音 E 期 핍 用 至 末 普 中 담 期 只 是 西 팝밤 期 器 型 扁 圖, I렵 部 佈 各 뼈 凡 何 얹 桂 帶, 而 사 西 팝 末 升 始, 眉 部 었 佈 或 佈 倚 單 的 꿇양, 至 4 世 캔 末 升 始 析 形 耳 也 升 始 Ell 用 在 좀 鍵 上 握 此 推 때, 창 村 3뭉 隨 藏 玩 的 i츠 件 좀 鍵 됐 片, 大 致 Ell꺼4 世 검 Ht 期 (~p 末 音 早 中 期 ) 的 制 品 石 村 洞 8붕 基 出 土 的 四 耳 盧 基 本 完 好 (댐), 失 手 강 的 年 代 有 설 凡 햄 推 廠 根 提 강 的 析 形 耳 特 fil 和 高 倚 形 器 身 分 析, i츠 業 器 物 最 早 Ell 出 꽤 手 4ilHc 陳 期, 頁 至 5 世 건 中 바, 仍 可 兄 到 쫓 似 的 器 型 益 山 효 店 里 1 뭉 基 出 土 的 四 耳 鍵 保 存 十 分 完 好 (댐) 短 頁 口 X>tf$ 四 橫 耳 責 뼈 不 及 底, 器 身 最 大 往 位 手 眉 部 上 下, 整 休 器 型 偏 手 癡 高, 되 漸 江 省 黃 岩 秀 ili송 水 庫 45융 幕 (검 年 太 和 四 年, 公 元 369 年 ) 出 土 的 帶 蓋 좁좀 鍵 基 本 相 同 同 며, 再 져 比 器 耳 和 器 身 的 形 志 組 合 來 看, 효 店 里 좁좀 鍵 的 年 代 Ell~녘 略 早 手 石 村 洞 的 좁좀 鍵, 大 致 相 띔 手 4 世 건 中 탑 期 公 州 水 村 里 1 뭉 養 出 土 的 四 耳 좁춤 鍵 (댐), 器 型 特 펴되삶 店 里 四 耳 鍵 相 近, 但 四 系 처 橫 며 式 析 形 耳, 故 而 推 빼암 的 年 代 되 石 村 洞 的 硬 析 形 耳 四 系 鍵 相 fjj' 검 前 期 젠 相 핍 子 南 朝 宋 初 期 的 公 元 5 世 而 武 宇 王 慶 出 土 的 閒 件 帶 蓋 좁줌 鍵, 器 身 基 本 皇 球 ; 代, 器 身 中 훌~ 佈 覆 違 購 얹, 形 制 和 얹 佈 特 J떤되 六 朝 좀 器 差 別 較 大 꺼, ~;선 同 Bt 期 典 型 的 北 朝 좁좀 (댐), 年 代 쩍 在 6 世 記 中 rit 4 施 施 的 敬 量 較 大, 延 짧 年 代 也 最 * :xr1:~ 中 固 記 年 基 的 出 土 品, 훨휩 固 出 土 的 六 朝 좁좀 碼 年 代 相 월 手 末 팝 初 的 4ilHc 至 南 朝 末 期 的 6 世 검 中 期 以 탐 可 推 빼꺼 末 팝 器 物 的 핏 例 有 法 果 里 古 tt 창 村 土 城 出 土 品 (댐) ' :11: 院 里 素 面 좁쯤 破 at 代 째쩍띔 末 普 末 至 南 朝 早 期 (탬) JXl빼 土 城 197짧 地 38융뿔 六 中 出 士 的 逢 離 얹 磁 (댐), 器 型 和 꼈 佈 JXl 格 되 南 京 南 朝 찌 宋 明 블 熺 基 出 土 좀 碼 基 本 相 同 i겼 基 理 賽 年 代 껴 公 元 475 年, 可 밍 此 美 器 型 最 Jg 在 St핸cfil 半 段 ~p 已 出 꽤 轉 固 其 강 地 펴 出 土 的 違 離 致 좁좀 確 基 本 均 ml옳 手 南 朝 St딸C.J즙 段 至 南 朝 末 年 的 器 型 (댐) 5.빠 台 根 握 目 前 E 出 土 的 中 固 좁좀 柳 未 看, 團 팝 Bt 期 的 器 物 均 껴 三 足 式, 內 ]힐 元 抽 且 有 明 昆 支 打 浪 i교 西 音 的 좀꽤 如 元 康 西 年 器, 三 足 有 뽑 首 形 象, 而 末 팝 的 柳 足 { 又 作 功 物 碼 足, 修 佈 頁 至 南 朝 中 E 期, :;f)쪼 步 友 展 出 了 器 底 密 布 歸 足 的 多 足 柳 提 此, 公 州 公 山 城 出 土 的 三 足 關 꽤, 器 身 較 * 且 隨, 歸 足 形 象 退 化, 整 # 形 象 更 接 近 南 朝 中 E 期 器 型, 但 仍 Ell 早 手 曉 期 的 多 足 꽤 (댐) 而 :ff(~ :fj(-w, 山 쳐 出 土 的 좁좀꽤됐 器, E보 有 六 歸 足, 是!:~ 較 典 型 的 南 朝 陳 期 뚱 柳, mm 是 百 溶 地 E 出 土 的 六 朝 좁좀 中 at 代 最 陳 的 핏 例 之 - (댐) 百 깨 故 ifu 出 土 中 固 六 朝 좁 資 的 年 代 和 意 X i 183
185 6.좁츰추 原 州 法 果 里 的 좁좀후 保 存 相 띔 完 好, 一 般 ia ;져 Ell 是 公 元 4 世 記 &P 末 팝 Bt 期 的 制 品 (댐) 根 握 中 固 出 土 的 器 物 來 看, 좁쯤후 形 器 的 流 {슐매 페 It 較 *' 早 期 的 후 形 器 똥 部 較 *' 후 角 쩔 曲 度 不 明 닮, 同 at, 器 身 較 *' 整 休 器 型 핏. 上 되 虎 子 며 形 器 等 基 本 相 同, 部 分 尾 ; i훨 入 末 音 以 듭, 운후 的 器 身 i쪼 步 옮 得 小 巧, 失 部 후 角 팔 曲 明 밟, 下 關 做 胡 須 狀, ~~ 佈 尾 巴 法 果 里 후 形 器 되 南 京 象 山 七 뭉 養 出 士 的 좀후 器 型 特 펴 基 本 相 同, 年 代 Ell 基 本 相 近 因 此, 推 廠 강꺼 末 普 Bt 期 器 物 Ell~ 是 l:t 較 可 훌훌 的 7. 錢 文 鍵 及 其 암 抽 泡 器 錢 文 鍵 等 抽 F훼 器 的 年 代, 基 本 系 用 7 원공휩} 先 生 的 찌펴 他 ia ;껴 JXl뺑 土 城 出 土 的 짧 文 關 片 (댐) {후꽤 出 짧 文 f콩 敬 較 少 分 布 手 眉 部 以 上 的 陳 期 特 떤, 同 Bt 창 村 士 城 JXl ~께 土 城 和 뼈깜 城 等 地 出 土 的 훗 形 짧 文!짧 片 ( 困 ),m되 末 팝 Bt 期 짧 文 鍵 的 特 펴 相 符, 因 此 推 빼 百 將 地 E 的 :I! 些 錢 文 體 SJ옳 末 普 Bt 期 遺 物 8) 헬 合 以 上 材 料, 基 本 上 可 以 判 뻐 韓 固 百 淸 地 E 出 土 的 中 固 六 朝 좁좀, 年 代 路 度 껴 末 音 南 朝, &P 公 元 4 世 컴 初 至 6 世 검 末 其 中 首 낌 地 E 的 器 業 最 껴추 富 Bt 代 뽑 度 最 大, 사짧 致 鍵 좁낌E 盤 口 畵 黑 抽 X힘 首 옮 좁쯤후, 頁 至 南 朝 中 E 期 的 違 離 얹 施, 凡 乎 所 不 包 可 밍, 首 거; 地 E 在 百 倚 Bt 期 一 頁 是 中 固 六 朝 좁줌 一 1- 最 主 要 的 輸 λ 地 E 되 此 同 Bt, 公 州 技 金 及 西 南 海 뿜 地 E 的 六 朝 좁좀, 初 現 年 代 相 처 略 陳 手 J.. 城 地 lr' 但 此 E 的 器 物 뼈 美 和 年 代 째 未 有 明 뭘 的 差 別 出 쩌 :I! -- 孤 象 的 原 因 較 껴 夏 꽁, 本 文 {용웰 合 第 三 部 分 中 將 要 迷 及 的 六 朝 좁좀 的 功 能 何 웰, 폴 i 式 著 推 빼 六 朝 좁좀 最 初 輪 入 的 휠m 以 及 강 ] 在 百 佛 境 內 流 通 的 功 因. 各 쫓좁앓 的 功 能 X>J 手 上 迷 各 쫓좁좀 功 能 的 ia Ut - 般 都 ~ 是 停 留 在 文 軟 考 調 되핏 用 推 뻐 上 如 盤 口 盡 되 X힘 首 '.illl, 最 倚 車 而 훌 接 的 看 法 是, ia ;처~ l ] 是 盛 裝 酒 水 的 容 器 좁쯤후째 因 껴 南 京 地 E 出 土 的 -- 件 좁 츰후 內 됐 存 有 錯 빽, 而 被 빼 定 꺼;뺑 台 在 中 固 根 告 中 林 껴 蓋 的 小 磁, 因 껴 常 m 子 南 朝 破 室 基 的 뿔흉 內 或 附 近, ill 常 被 推 뼈껴n 蓋 至 手 硬 꽤 等 器 型 的 功 能, 깨 更 疑 X 在 효 里, 쫓 者 首 先 }쯤 根 提 담 己 近 年 來 友 펴 :i:1: 程 中 찌 察 到 的 - 些 孤 象 以 及 其 강 地 E 新 出 햇 的 友 抱 % 料, tfx.jj츠 JL쫓 좁좀 的 功 能 提 出 담 己 的 看 法 井 且, 효 些 器 物 的 功 能 可 能 훌 接 影 n때 了 효 ] 的 져 外 輪 出 1.짧 文 鍵 就 짧 文 鍵 的 器 型 來 看, B 크 yj.. 代 以 來 江 南 地 E 流 行 的 印 얹 硬 짧 壘 ( 大 효) 校 껴 相 似 所 不 同 者, R 代 I짧 壘 通 # 以 快 狀 印 模 拍 印 各 業 凡 何 形 양 佈, 但 未 兄 有 拍 印 錢 꼈 yj.. 養 中 的 짧 屬 基 本 成 X>J 隨 賽, 且 { 本 量 在 陣 賽 品 中 最 大, -- 般 推 때꺼 陣 賽 各 物 的 容 器 末 昊 西 音 Bt 期 出 쩌 的 j츠쫓 錢 文 鍵, 1*liR 上 1J.. 相 핍 手 yj.. 屬 中 的 中 型 器, 基 賽 內 隨 賽 敬 亦 不 固 定 末 팝원 個 的 賽 쯤 利 ;; 其 8) 폈동 觀 1t<JE±ttl1R 出 土 早 期 뚫얹 關 짧 器 的 :fill 究, 考 古 딛 文 物 2008 年 第 2 期 9) [ 庸 ] 삼 佑 通 典 卷 第 /\ 十 六 f용 im 四 所 51~ 宿 賽 쯤 奈 文, 中 if:.연 局 1988 年 1841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86 明 器 폼 凡 --, 酒 옮 二, 深 뽑 )XL-, 三 갑 三 器 --- 文 中 列 후 了 多 뼈 隨 賽 器 物, 其 中 되 錢 文 體 i츠 美 器 物 存 在 較 明 ~ii:* 系 的 EY:~P 所 i몹 的 三 各 三 器 也 就 是 핸, 一 般 情 況 下, 陣 賽 r 三 빼 各 物, 而 짧 文 鍵 可 能 就 是 盛 裝 효 三 빼짝 物 的 三 器 之 一 2. 盤 口 옮 上 文 提 到, 盤 口 童 通 常 情 況 下 被 i:a껴 是 酒 水 的 容 器 作 껴 酒 器 的 功 能, 在 各 빼it~ 中 多 有 考 i 正, 在 此 不 再 -- 寶 迷 而 有 字 者 根 握 i 折 江 滅 용 出 土 的 一 件 庸 代 盤 口 옮 上 的 路 文, i:a;껴 此 業 器 物 EY:f$ ;# 根 뽑 或 單 利 ; 짧 10) 효 一 펴, 狼 多 冊 究 者 EY:* 都 E 有 所 了 解 짧 作 껴 器 物 名 利 ; 由 來 E 久, 至 少 在 1J.. 代 就 E쯤 是 一 뼈 常 파 的 容 器 名 林 如 在 末 찌 崔 훌 的 四 民 月 송 中, 所 提 及 的 容 器 {)( 有 짧 一 뼈, 只 是 有 大 小 之 別 11 ) 효 詳 的 名 秋 핍 用 到 庸 代 中 rit' E 是 一 뼈 彼 廳 rz 的 職 ;송;, 有 如 쟁 在 常 때 的 容 器 一 i꾀 횟 I젠 上, t~* 器 更 曉 的 -- 些 路 文 器 上, i죠 有 담 名 꺼 食 臨 的 1 2) ' 只 不 파효 名 秋 不 觸 古 雅, 被 冊 究 者 λ 껴 地 忽 略 T 而 E 更 何 況 at 代 不 同, 同 件 的 名 利 ; 所 指 代 的 器 物 也 不. 相 同, 因 此 以 康 代 出 孤 的 名 秋 來 給 六 朝 盤 口 옮 下 定 'X., ~ 然 是 不 흉 的 盡 作 껴 一 뼈 器 物, )Git 是 否 盤 口, EY:*i보 作 껴 --빼 容 器 是 庸 置 疑 的, 可 題 在 手 강 是 否 {)( {)( 是 --햄 淑 { 本 容 器 近 年 來 월 者 在 漸 江 北 숍~ 地 E 參 되 友 抽 了 -야 重 要 的 띠 代 基 賽 群, 先 h긍 隔 次 在 友 抽 出 的 硬 關 做 口 盡 內 友 햇 了 大 量 的 I지 亮 1 3) 可 파, i츠 業 器 物 作 껴 容 器 的 功 能 井 不 單 --, 강 的 造 用 泡 固 퍼 是 十 分 끊 的 此 外, 除 了 作 껴 容 器, 六 朝 B;f 期 的 盤 口 옮 可 能 i진 存 在 者 링 外 一 뼈 功 能 ; 供 臨 在 南 京 地 IZJ호 孤 的 六 朝 碼 室 基 中, 出 土 r 大 量 的 模 印 빼 像 碼 其 中 在 퍼 佛 敎 文 化 相 失 的 빼 像 碼 上 有 一 뺨 播 r 違 花 的 供 臨, 사 外 形 上 看 딩띔 at 減 行 的 盤 口 옮 級 껴 相 似 14) (탬) 近 年 來 抗 州 市 했 的 小 橫 山 末 팝 南 朝 基 賽 群 慶 圖 上 也 友 꽤 了 相 似 的 圖 像, ~J댐 根 告 中 f $ 之 껴 'i: 視 違 1 5) (댐) 由 此 可 以 看 出, 盤 口 盧 甚 至 被 괴 慣 林 껴 n 重 童 的 低 樓 盤 口 옮, 至 少 在 佛 敎 文 化 盛 行 的 南 朝 at 期, 可 能 휩쩔 被 普 遍 作 껴 抽 花 供 佛 的 器 具 使 用 j:j: 的 尤 其 是 我 11 ] 前 面 E앉 提 到, 隨 者 B;f 代 的 훨 i 王, 盤 口 盡 的 器 身 日 漸 훗 高, 最 찢 在 南 朝 atjl 乎 풋 成 * 倚 形 :i3:f뿌 形 {후 上 的 풋 化, 可 能 퍼강{ ] 被 大 量 作 껴 播 花 的 供 臨 使 用 有 頁 接 的 失 系 10) 孩 器 옮1 隨 年 代 켜 公 元.819 年, 짧 文 켜 U 元 따음않 年 四 月 - 日 i울 此 짧fftm- 千 文, 引 自 林 土 資 딛 越 짧 P231, 上 海 古 籍 出 版 柱 1999 年 11) [ J :j.ji. ] 崔 홀 四 民 月., 中 쩔휩 局 2이 3 年 12) 孩 器 制 造 年 代 켜상 元 900 年, 出 自 * 跳 上 林 湖 짧 址, 器 身 짧 文 食 搬 - 口 光 化 三 年 十 月 十 - 日 造, 引 自 X 游 江 ;c 年 資, 文 物 出 版 柱 2000 年 13) 關 器 所 在 的 뼈 座 훌 賽 均 켜 西 ;31. 土 빠훌, i뚫!ji:±생현켜뻐 江 省 湖 州 市 初 家 t훌흉흉 群, 찾혐 根 告 꽤 正 由 좋 者 fi'j.1륜 整 理 14) 냥쫓휩 像 在 南 京 六 朝 훌흉 中 多 有 友 펠, 唯 以 -- 列 홍, 如 南 京 市 博 物 볍; 南 京 市 雨 it 台 E 南 朝 圖 像 E훌훌, 考 古 2008 年 第 6 期 ; 南 京 市 1 專 物 뿜 南 京 油 해 析 ~~- 座 南 朝 휩 像 옳흉 i, 考 古 1990 年 第 10 期 15) 抗 州 市 ~miz 小 橫 山 六 朝 흉 的 찢 料 更 꺼후 富 和 集 中, 如 M7 M93 Ml08 等 南 朝 훌 圖 像 않 上 均 可 兄 호빼홉 it~ 案, i후m 根 告 ~m 小 橫 山 *품 南 朝 흉 ( 文 物 出 版 柱, 2013 年 ) 16) i효빼떠쫓 方 式 目 前 仍 켜 大 部 分 렇훔 所 複 受, 在 - 些 博 物 t힘 除 列 中, R원 首 뚫 的 第 -뼈쫓 型 仍 是 i효 fljlt(jj 有 ~ 首 或 鷹 首 的 훌 口 或 敵 口 좁좀 鍵, 퍼쫓 最 重 要 的 젠;옳 是 器 眉 是 否 有 훗 似 的 샘 首. 좋 者 在 樓 닫뼈 土 i-0: :X:l!J 1'F * 用 i츠# 意 m 百 깨 故 it!! 出 土 中 固 六 朝 좁쯤 的 年 代 和 意 X J 185
187 3.x원 首 뚫 X원 首 5W. 的 器 型 和 Bt 代 特 狂 的 짧 化, 되 盤 口 뚫 的 情 形 最 껴 接 近 i쑤 多 풍 者 在 껴 X편 首 5W. 做 쫓 型 렇 分 析 at) 將 三 固 꽤 昊 Bt 期 常 m 的 --뼈좁좀 鍵 柳 껴 X띄 首 '.illi 的 租 型 i츠f뿌좁쯤e 購 作 훌 口 或 大 敵 口, 器 身 低 樓, 眉 部 貼 佈 X편 首 或 健 首, 外 뿔 刻 체 x~~갱얹 桂 1 6) 0 通 파 x.m 察 我 { ] 不 唯 友 孤, 如 果 去 掉 i츠쫓 器 物 的 X멜 首 貼 佈, 'tf ] 的 基 本 器 型 핏 l젠 上 되 同 Bt 期 的 좁좀 四 系 鍵 更 相 似 而 成 熟 的 팎 首 옮 除 去 把 手 和 챔 首 貼 佈, 器 型 째되 末 音 及 其 之 E 的 盤 口 옮 更 相 近 也 就 是 i삶, X힘 首 W.$: 只 是 盤 口 盡 的 一 分 支, 되 三 固 西 普 at 期 的 왜 首 鍵 失 系 井 不 累 密 也 正 因 껴 如 此, X원 首 5W. 的 整 本 器 型 的 훗 化 基 本 上 -- 頁 累 隨 盤 口 畵 的 步 代 所 不 同 的 是, 강 增 加 了 一 깨 的 把 手 和 폈 --떼 的 엠 首 貼 佈 1 7) 至 手 X평 首 5W. 的 功 能, 월 者 普 Hxtx원 首 上 況 孔 되 器 身 是 否 貴 通 的 何 題 作 了 - 些 까 察, 友 꽤 南 朝 的 X원 首 多 敬 頁 接 作 솟 嘴 ; 代, 根 本 不 存 在 流 孔 的 可 웰 而 at 代 稍 早 的 it 多 맴 口 作 圓 孔 狀 的 5W.) 流 孔 되 器 身 或 相 通 或 不 相 通, 쨌 不 固 定 也 就 是 뼈, 圖 孔 X띄 首 作 꺼 材 L 盡 減 口 的 功 能 井 不 穩 定, 甚 至 可 有 可 因 此, 就 目 前 掌 握 的 찢 料 而 즙, 法 빼 然 {장X띄 首 盡 的 功 能 되듭 世 的 좁쯤 ta ~옮 等 同 起 未 강 除 了 不 兄 手 違 花 멸 臨 的 固 像 外, 其 강 功 能 되 盤 口 옮 Ell 띔 是 大 致 相 同 的 4.후 形 器 失 手 후 形 器 的 功 能, 大 致 有 뼈채 看 法 其 --, 就 是 뺑 台 其 二, 때 是 文 房 用 品 中 的 水 注 就 뺑 台 而 즙, 六 朝 幕 中 有 一 빼좁좀 獅 形 器, 功 能 似 更 明 밟 獅 形 器 背 部 附 固 管, 管 口 되 器 碩 i훈 通 ( 댐) 되 之 器 型 相 近 的 후 形 器 亦 偶 有 友 꽤 (댐) 而 本 文 中 所 提 到 的, 7Git 是 法 果 里 2뭉 基 出 土 的 좁좀후, i죠 是 中 固 境 內 友 孤 的 美 似 器 物, 圖 孔 位 子 후 的 失 部 正 上 方, 周 j끄 也 不 像 上 器 物 有 管 狀 附 件 相 似 的 {J.fil. 是 器 身 的 造 型, 功 能 上 왜 未 必 相 同 就 水 注 的 功 能 而 즙, 主 要 ill{)( 是 依 擔 器 物 的 形 잖 推 삐 的 옮 果 不 :ct 根 調 南 京 象 山 七 융 基 根 告 介 紹 的 陣 聲 品 擇 放 失 系 來 看, i~ 基 賽 中 후 形 器 되쯤~~.m 共 置 手 一 案 上, El껴 有 意 成 套 供 奉 就 功 能 來 供, Ell 可 推 때강껴 文 房 用 品 中 的 一 빼 5. 其 강 器 美 除 了 上 迷 四 쫓 器 物 外, 其 강 的 如 좁좀꽤 硬 蓋 等, 器 型 倚 單, 功 能 lt 較 明 觸, {)( 是 陣 者 at 代 的 推 移, 在 形 制 上 出 꽤T 一 些 훗 化, 此 야 不 再 盤 迷 IV. i 式 끊 六 朝 좁뚫 在 百 퓨 故 地 的 輸 λ딩 흥 播 琮 合 上 迷 六 朝 좁홈 的 年 代 及 其 功 能 的 ii;j것, 文 章 的 最 E 部 分 將 쳐 六 朝 좁쯤 的 輪 入 及 其 在 百 溶 固 內 的 佳 播 作 一 짧 採 ii 17) 本 文 中 좋 者 只 iiit~딩 首 뚫 的 何 題, 쫓빠 上 同 쫓 器 物 的 貼 till. 除 了 평 首 之 外, 常 m~ 有 후 首 獅 首 虎 首 等, 由 千 出 ;t 校 'faj 좋 散, 級 少 mt휩 根 告 l!i 期 將 要 出 版 的 游 江 上 盧 E 尼 站 婆 山 *품 南 朝 충 ±11:.~J몽 根 告, 처 相 훗 器 物 챔응 有 tt 較 i.i~m 的 介 ;lj 1861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88 1. 輸 入 百 홉 首 先 要 指 出, 六 朝 좁좀 作 껴 基 內 隨 賽 品, 是 在 三 固 費 觀 Bt 期 起 升 始 的 構 賽 JXl 톡 的 背 景 下 盛 行 起 未 的 在 相 失 的 文 敵 中, 효 美 器 物 被 通 利 ;껴 PG 器 也 就 是 땐, j츠 一 at 期 的 좁춤 器 血 i죠파파 迷 不 到 료 木 品 的 뭉~' 在 핍 Bt) 眼 中 강 111 不 설 是 - 些 恨 普 通 的 器 具 而 且 在 基 賽 中, 효 些 器 liii. 本 身 也 不 是 隨 舞 品 的 主 本, 性 갑 酒 以 及 衣 物 貴 重 的 金 짧 器 等, 才 是 子 11MIJ 供 奉 給 E 遊 * 輩 的 敵 聚 品, 大 部 分 좁좀 器 只 是 其 中 某 些 陣 賽 찢 品 的 容 器 而 E 井 且, 根 握 上 文 提 到 J1 的 隨 賽 좁좀 器 在 制 作 年 代 上 的 差 륨, 可 以 推 뼈 i츠쫓 器 物 是 日 常 生 活 中 * 期 使 用 店 再 被 理 入 基 中 的 普 通 횟 用 器 同 며, :i2s: 業 器 物 出 쩌 在 大 海 之 末 的 百 溶 故 地, 其 原 因 大 致 不 外 乎 뼈뺑, -- 是 원 易, 二 是 陽 予 如 果 作 껴윗 易 商 品, i츠 些 在 本 固 內 敬 量 巨 大 級 其 乎 常 的 器 血, 在 xt 外 輪 出 팀, 'tfl ] 的 功 能 핍 不 至 子 욕 生 太 大 的 짧 化 而 且 作 껴 減 通 的 商 品, if 存 在 뼈빼 可 能, ~p~ 是 좁좀 本 身 作 껴 商 品 輪 出, 二 是 多 敬 좁좀 是 作 껴 其 강 物 品 的 容 器 而 -- 同 出 口 的 如 是 前 一 뼈, 那 좁츰 尙 是 윗 易 的 主 #, 如 是 E 一 채, 끼 U햄 然 只 是 원 易 的 附 )훌 品 而 E 至 子 作 껴 陽 予 品, 其 꽃 也 藏 具 上 迷 兩 뺨 性 屆 朝 릿, 是 古 代 中 固 젤 近 各 固 퍼 中 固 王 朝 之 l폐 避 行 合 法 交 流 的 最 常 規 方 式 在 :i2s:뼈 交 游 活 功 中, 中 固 王 朝 的 帝 王 ] 往 往 將 담 己 擇 在 r 高 高 在 t 的 中 心 位 置, 願 予 各 固 的 物 品 ~p 카] 陽 予 品, 反 之, 各 固 願 予 中 固 帝 王 的 物 品 째 被 柳 껴힌 品 方 固 未 朝 是 中 固 帝 王 fl ]밟 示 其 짧 治 正 統 性 的 一 빼 重 要 依 握, 同 at 也 打 造 r 政 板 緊 盛 的 景 象, 因 此 受 到 껴 代 帝 王 111 的 重 柳 在 i츠 1- 基 뻐 上, 朝 힌윗 易 핏 l젠 上 存 在 著 防 뱀 不 平 等 第 --, 是 中 固 王 朝 져 젤 近 各 固 在 政 治 上 的 高 高 在 上 ; 第 二, 是 젤 近 各 固 只 需 擇 出 朝 힌 的 架 勢, ~p 可 以 級 小 的 代 까 換 來 敬 量 和 댄 量 近 高 手 핏 品 的 陽 予 品, 甚 至 if 有 中 固 式 的 王 候 封 융 六 朝 at 期 的 朝 헛윗 易 就 是 在 i츠빼 樞 架 下 展 升 的 如 此, 再 重 新 軍 짜 作 껴 陽 予 品 輪 λ 百 溶 固 內 的 六 朝 좁춤 器, 떼강{ ] 在 中 固 固 內 完 全 只 是 日 常 用 的 PG 器, 不 足 以 杓 成 담 命 不 凡 的 帝 王 fl ]훤 陽 짧 j2f 方 朝 헛 者 的 tl 物 的 主 # 可 以 짜꺼, 띔 at 有 if 多 좁쯤 器 是 陣 著 中 固 的 -- 些 特 tr. 品, 如 酒 갑 物 甚 至 판행 等, 一 起 作 껴 陽 予 品 輸 λ 百 洛 地 E 的 1 8) 2 百 溶 固 內 的 佳 播 中 固 的 六 朝 좁춤 在 百 j휴 固 內 的 f흥 播, 是 - 更 夏 뽕 的 l 可 웰 此 前, ~ 些 츰 器 被 柳 꺼 象 f 正 身 f 分 的 威 勢 品, 由 此 被 付 되 了 彼 高 的 政 治 意 X 臺 疑 l폐, 能 略 作 껴 威 勢 品 J!i 띔 薦 具 珍 貴 性 和 政 治 性 j츠뼈펴 如 韓 固 固 內 古 基 賽 中 多 次 友 現 的 金 꽤 冠 和 金 鋼 훨~' 'tfl] 一 方 面 是 珍 貴 的 配 佈 品, 월 一 方 面 X 是 板 力 的 象 狂, j츠 件 的 器 物 利 ; 之 껴 威 勢 品 是 빠 有 何 題 的 失 健 在 手, 來 담 中 固 的 六 朝 좁춤 是 否 具 有 同 휴 的 特 펴 如 前 所 迷, 六 朝 좁쯤 在 中 固 固 內 {)( 是 作 껴 一 般 器 血 使 用, 其 珍 貴 程 度 뀔 不 及 貴 金 屬 옆 石 制 18) 홍 子 朝 뭇 活 해 中 的 陽 予 品, 三 固 志 洋 細 tc. 載 了 費 鍵 올 帝 염f쫓 王 的 :fl 物 文 없 三 IZ!;, 때 班 $ 園 五 %, 白 웹 五 十 IZ!;, 金 /\ 西, 五 R 刀 二 口, 웹뚫 百 校, 頁 珠 짧퓨 各 E 十 ff 而 且 皆 封 흉 付 짧 升 米 牛 利 if 到 꿇 受 ( 原 文 밍 三 固 志 卷 三 十 되치활뿔*훗 f좋 ) i효 具 中 頁 珠 和 짧판i효 些 顆 함;I* 物 品 的 封 흉 ' 7C 疑 是 需 要 좋 用 容 器 的 同 휴, 在 百 洛 딛 南 方 六 朝 的 朝 뭇 活 해 中, 王 疑 m 용 出 돼쫓 似 的 團 陽 行 T-1 i효 也 是 월 者 i.\ 켜 南 方 的 六 朝 좁흙 是 以 附 屬 容 器 的 身 f 分 輪 A 百 % 的 主 要 原 困 之 - 百 ;휴 故 ifu 出 土 中 固 六 朝 좁짧 的 年 代 和 意 X 1187
189 品 和 쏟 網 等 甚 至, 可 能 尙 不 如 좁좀 器 血 中 盛 裝 的 物 品 重 要 i츠 -- 펴, 將 在 恨 大 程 度 上 훌 接 影 n폐 강 ] 在 百 佛 固 內 流 通 at 所 具 짧 的 性 멋 和 意 X 以 往 的 威 勢 品 一 째, 主 要 是 依 握 中 韓 而 固 古 代 文 敵 洛 料 所 蒼 造 出 的 百 淸 中 央 되 地 方 j효뺨 政 治 格 局 而 提 出 的, 후 現 的 是 百 佛 中 央 져 地 方 政 板 的 支 配 方 式 { 就 中 固 的 古 文 敵 來 看, J3: 桂 的 i 己 ;끊 是 ~t 校 片 面 的 由 手 百 溶 是 옮 西 南 洛 政 板 中 最 早 퍼 中 固 王 朝 取 得 政 治 願 系 的 固 家, 1견 被 中 固 王 朝 ta 可 껴 i겼 地 E 的 唯 一 合 法 政 板 i츠사 中 方 ic;끊 的 끊 西 南 i 者 固 的 固 名 就 可 밍- 現 中 固 的 文 敵 里 一 方 面 ta꺼 百 倚 出 덤되 韓 i 者 固, 웠 -- 方 面 在 ic;꿇 各 固 固 名 B;J, 곽 韓 i뽑 小 固 的 固 名 千 奇 百 怪, 而 百 溶 的 固 名 돼 是 典 型 찌 式 的 可 以 뼈, 中 固 王 朝 將 百 홉 默 ta ;처 半 l않 西 南 i 者 固 的 最 高 統 治 者, 其 金 各 固 被 一 懶 作 껴 其 }옳 固 看 待 1 9) 如 此 一 末, 就 朝 릿윗 易 而 즙, ~ 然 只 能 出 쩌 在 中 固 王 朝 되 百 洗 固 之 때, 其 金 西 南 곽 轉 i 者 固 是 i표 入 不 了 :i2s: 交 易 # 系 中 的 因 此, 之 前 一 般 싸꺼 的 百 倚 通 파 朝 굵 活 功 사 中 固 輪 入 좁좀 等 特 tr 品, E보 i짖 是 成 立 的 핍 然, :13:-ill. 井 不 完 全 排 除 存 在 看 非 官 方 交 易 的 可 能 其 金 i 者 固 由 手 被 百 洛 據 足 先 登, 사 而 失 去 了 避 行 合 法 的 朝 헛윗 易 的 m승 那 4 出 現 在 非 百 將 훌 接 統 精 地 的 i츠 些 六 朝 좁좀, 其 未 源 就 不 外 乎 園 햄, 一 ~p 是 末 담 百 佛 王 室, 二 때 是 通 j호 非 官 方 交 易 頁 接 由 中 固 輸 λ 其 핏, 就 目 前 掌 握 的 폈 料 而 즙, w;jf뿌 可 能 均 是 存 在 的 我 ] 知 道, 在 轉 半 ffii 西 南 部 有 i쑤 多 {jt 良 的 港 口, 其 中 如 群 山 技 安 等 地 t 甚 fj\xf쩔 海 上 交 減 的 重 要 口 뿜 如 在 械 海 技 겨t Brt 較 友 첼 的 北 宋 末 期, 사 南 方 수 波 港 出 友 往 高 꽤 的 宋 朝 使 댐, 到 迷 高 R피햇 域 內 第 一 1- 華 뿜 的 重 要 港 口 ~p ;처 全 州 屬 下 的 群 山, 井 在 *~ 接 受 全 } "'* 官 的 接 待 2이 B;J 代 t 相 去 E 較 렐, 但 사 一 째 面 때 明, 來 담 中 固 南 方 的 船 只 最 先 接 近 的 J}L띔 是 更 젤 近 的 西 南 i 者 훤 或 港 口, 而 非 更 幕 近 北 部 的 首 거; 或 公 州 -- 帶 所 以 째, 轉 半 웹 中 西 南 部 地 E 出 土 的 六 朝 좁좀, l 治 好 反 映 了 公 元 3 至 7 世 검효-- 地 E 되 中 固 大 細 尤 其 是 江 南 地 E 的 交 流 活 功, i캘 j캘 超 出 了 文 敵 i2 ;뿔 的 웹 購 此 at 的 百 뽑되 中 固 大 뼈 一 件, BY: 不 如 文 敵 所 示 的 那 般 統 --, 尤 其 是 在 百 淸 的 X 城 期, 政 송 所 及 的 웹 固 可 能 相 띔 有 限, 散 布 在 境 內 各 야 的 효 些 中 固 船 來 品, l 治 治 닮 示 出 了 各 地 方 政 板 的 抽 立 性 되 彈 勢 빼 升 中 轉 古 文 敵 짧 我 fl ] 造 成 的 百 淸 中 央 되 地 方 的 擺 念 的 束 轉, 或 i짜 更 有 助 手 我 fl ] 去 理 解 i츠 些 船 來 品 的 意 X 和 띔 at 的 * 土 승 面 鏡 19) 同 휴 的 情 況 也 出 R 在 i츠 -l!j 期 的 中 日 外 交 上 1쫓 ~)'. 固 是 最 早 援 受 中 固.I. 朝 冊 封 的 固 家, 子 是 tl1, 被 훌 援 i.\ 定 켜 日 本 列 固 的 最 高 統 治 者, 具 *t 者 固 基 本 被 i.\ 可 켜 f쫓m휩 的 I롭 固, 딘 {fl 的 固 名 也 同 휴 千 奇 百 怪 正 始 )\ 年, 醫 鍵 中 央 흡 至 켜 了 推 쉬~.i월랬 呼 系 在 日 本 的 얹 治 地 位, 윷 出 'ib~훌 接 面 주핸 了 f 委 w. 固 틈 狗 쨌 固 的 훔 端 fd] 題, i후m 三 固 志 卷 三 十 되 :tl 解 뿔*몇 f총 2이 [ 北 宋 ] 徐 歸 宣 和 奉 使 高 兩 ~~죠 卷 三 十 六 載 六 日 丁 갖--- 至 群 山 협빼 )ll 同 接 伴 金 富 웹 知 숲 州 윷 俊 和 i훌 使 來 投 mill! 狀 ---, m 숲 宋 좋 ic. 第 三 짧 第 )\ 冊, 大 象 出 版 柱 2008 年 1881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90 08 번역문 百 濟 團 域 출토 中 國 六 朝 毒 蓋 의 연대와 성격 李 H 單 達 ( 中 國 ; 折 江 省 文 物 考 古 돼 究 所 副.jjJf 究 員 ).머리말.육조청자의연대 I. 백제 권역 육조청자의 종류와 연대 IV. 육조청자의기능 v. 결론-백제지역 육조청자의 수입과 전파.머리말 지난 몇 십 년 동안 한국에서는 상당량의 중국 六 朝 춤좀가 출토되었다. 중국 육조청자는 주로 삼국시대의 백제권역에 분포한다. 이 가운데 백제 수도인 서울, 공주와 부여, 그리고 서남해안의 전 라도지방에 가장 많이 보인다. 이들 중국 도자기의 연대와 성격에 대한 연구( 權 五 榮 1988, 2002, 2003, 成 正 鋼 2003, 李 廷 仁 2001, 林 永 珍 2007' 2009' 2012) 가 많지만 연구자의 시각, 자료에 대 한 이해 때문에 해석상의 차이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본고는 중국 기년명 고분에서 나온 육조청자를 통해 한국에서 출토된 육조청자의 정확한 연대를 추정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중국 문헌자료를 통해 중국 청자의 용도를 알아보고, 백제에 수입되는 배 경과 시간을 파악하여 백제 권역 내에서의 유통과 확산의 배경을 살펴보고자 한다. 六 朝 춤쯤란 중국 학계의 특정용어이다. 문헌사적으로 六 朝 는 三 國 의 吳 (서기 년), 東 품 ( 년), 南 朝 의 宋 ( 년), 齊 ( ), 梁 ( ), 陳 ( ) 6개의 南 京 을 중심으로 한 중국 南 方 왕조이다. 육조고고학의 연구대상도 이상 6개의 왕조이고 그 당시의 중국 북 방지역은제외된다. 중국강남지역은 吳 나라가멸망한서기 280 년부터 東 륨이 건국되는서기 317년 까지 西 폴의 영역에 포함된다. 하지만 吳 나라로부터 이어져온 문화계통이 중단되지 않고 西 를도 오 래 지 않아 멸망되기 때문에 강남지역의 토착문화에는 큰 변화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37년 동안의 강남문화도 吳 문화 계통을 이어 중국 육조 고고학의 연구대상에 속한다. 따라서 육조정자란 역사적으로 삼국시대의 吳 나라에서 남조의 陳 나라까지 중국 남쪽에서 생산된 청자를 말한다. 본고 에서 다룰 육조청자는 堆 밸 權, 盤 口 뚫, 親 首 뚫, n 壘 뚫, 破, 香 薰, 벼루, 집 모형 등과 같은 대표기종과 함께 시유토기(주로 전문관)를 포한한다. 이외 동시기의 북조자기는 다루지 않는다. 百 }유 故 t뼈 出 土 qi 固 六 朝 좁앓 的 年 代 和 意 X 1189
191 .중국육조청자의연대 중국의 육조청자는 이미 뚜렷한 편년이 나와 있다. 필자도 이에 대한 편년안을 제시한 바가 있 다. 지난 몇 년 간의 발굴결과 확인된 육조정자의 편년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다. 본고에서 는 기존 편년안의 기초 위에 편년의 표준과 근거에 대해 다시 살펴보겠다. 밟 種 U'j싸\ 盤 니 훨 찢양협김눌 l,jt E행 lijl f~lti'.후 ~ I.뺨.륨 X그는R 뿔짧 폼 뽑 c:l켠 響 뽑=옳 좀4엉 녕 ill 텀 멍 힐흩 뽕 폼연 폼$ CD 1 I _.-vr'!힘 I 뽑 C용 j 쯤휠 꿰 I I mf 짧7 도면 1. 중국 육조청자의 편년 육조청자 중 시기에 따른 변화가 가장 큰 기종은 반구호와 계수호이다, 일반적으로 초기에는 작 고 풍만하며, 그 다음에 길고 가늘어 진다. 필자가 중국 紀 年 고분에서 나온 자료를 토대로 육조청 자의 형식 변천을 검토해본 결과 위의 변천 규칙과 일치한다( 李 H 軍 達 2005, 2010). 다만 많은 유물 의 출토 양상으로 보아 이러한 변천 규칙은 큰 흐름을 말하는 것이고 더 세밀한 편년 근거로 이용하 기는어렵다. 190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92 예를 들어 남경시 東 善 橋 鳳 凰 三 年 吳 나라 고분에서 기년명 자료가 3건이 나왔다. 하나는 동경 명문인 * 烏 六 年 五 月 因 午 湖 二 十 日 造 이다. 이 명문에 의해 동경의 확실한 제작 연대는 서기 244년 이다, 다른 2건의 기년명은 벽돌에 있고 風 凰 元 年 (서기 272 년)과 鳳 凰 르 年 (서기 274 년)이다( 南 京 市 博 物 館 江 寧 縣 博 物 館 1999). 발굴자가 가장 늦은 기년명 벽돌을 근거로 이 고분의 완성 연대는 鳳 凰 三 年 으로 추정했다. 그렇다면 이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과 고분 자체의 연대 차이는 적어도 30 년이다. 鳳 凰 三 年 은 吳 나라 만기의 연호이고 오나라 멸망하기 전의 6년 뿐이다. 따라서 이 고분에 서 출토된 청자관, 부뚜막, 퇴소관 등은 오나라 전기부터 말기까지 수용된 것으로 추정될 수가 있다. 그리고 남경 象 山 1호분에서는 3개의 기년명이 동일한 묘지 비석에서 보인다. 비석 한 변은 남성 피장자의 묘지로 매장 시기는 威 康 六 年 十 月 十 八 日 후, 以 七 年 七 月 什 六 日 裵 이라고 기록된다. 반대 면은 여성 피장자의 묘지로 연대는 永 和 四 年 으로 기록된다( 南 京 市 文 物 保 管 委 員 會 1965). 威 康 七 年 은 서기 341년이고 永 和 四 年 은 348년이다. 이 두 기년의 차이는 7년에 지나지 않는다. 무덤에서 출토된 청자가 동서 2군으로 나누어진다. 동쪽의 반구호가 높고 가는 반면 서쪽의 것은 낮고 풍만하 다. 두 유물의 양식이 뚜렷하게 다른 것이다. 이 고분은 2차장 때문에 동쪽 높은 반구호가 늦은 편의 永 和 四 年 의 것으로 추정될 수가 있지만 사실 다른 기년명 시기가 더 늦은 고분에서 나온 반구호보다 더 높고 가늘다 1). 따라서 일상용기는 빠른 시기의 형식이 생각보다 훨씬 늦게까지 사용되고 새로운 형식이 나타난 후에 이전의 기형은 곧바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 시기 고분에서 기년명 자료가 많지만 각각의 의미가 모두 동일한 것은 아니다. 기년명 벽돌은 고분의 축조연대를 의미했다. (하지만 큰 벽돌 고분은 짧은 시간에 완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 기 때문에 벽돌을 만든 연대와 무덤의 최종 완성연대는 일정한 시차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유물에 있는 기년은 유물 자체의 제작 연대일 뿐이다. 이것은 무덤이나 다른 공반유물의 연대와 완전히 일 치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본고에서 기년명 고분에 의해 정리한 육조청자의 변천 과정 중 유물 의 연대순이 반대로 보인 것도 있다. 고분 출토 유물은 부장되기 전 일정한 사용 시간을 거쳤다, 재질이 약한 도자기도 어느 정도 기 간은 보존되고 사용해온다. 육조청자는 부장을 위해서 만든 순수한 莫 器 가 아니다. 그래서 같은 고 분에서 나온 것도 연대 차이가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한국에서 출토된 육조청자 의 연대를 다시 살펴보기로 한다.. 백제 권역 육조청자의 종류와 연대 백제권역에서 출토된 육조청자는 대부분 잔존상태가 좋지 않지만 다양한 기종이 확인된다. 예 를들어 錢 文 鍵, 춤풍E후, 혹유 鎬 首 끓, 청유 또는 흑유 盤 口 盡, 直 口 鍵, 施, 청자 벼루 등이 있다 2). 표 1) 은 현재까지 확인된 백제권역의 육조청자를 중심으로 주요 기형과 출토 지점을 정리한 것이다. 1) 예컨대 절강성 黃 岩 秀 짧댐 44호분에서 출토된 반구호( 永 和 十 - 年, 서기 355 년)와 짚쫓 쫓 頭 山 23호분에서 출토된 반구호가 이른 앙식과 비슷하다. 2) 이와 관련된 자료는 각 보고서에서 찾을 수 있고 한국문화재연구기관협회 2011 년, r한국출토 외래유물l 에도 많이 수집 되어 있다 본고에는 각각의 침고문헌은 표시하지 않았다 百 i츄 故 地 出 土 中 固 六 朝 좁짧 的 年 代 和 意 X 1191
193 아래에서는 중국에서 출토된 백제권역과 동일한 육조청자의 연대를 토대로 한국 출토품의 구체 적인 사용 연대를 비정해 보기로 한다. 표 1. 백제 권역 출토 육조정자의 주요 기형과 출토유적 기 형 출토유적 전문과 반구호 서울 풍납토성, 몽촌토성, 홍성 신금성 서울 몽촌토성, 풍납토성, 석촌동 고분군, 오산 수청통, 천안 화성리, 공주무령왕릉, 부안죽막동, 고창봉덕리 계수호 서울 풍납토성. 천안 용원리, 공주 수촌리, 남원 월산리 관 완 벼루 정자양 서울몽촌토성, 풍납토성, 석촌동고분군. 공주무령왕릉. 수촌리, 익산입점리 서울몽촌토성, 천안용원리, 공주수촌리, 부여 동남리 서울몽촌토성, 부여 부소산성. 익산왕궁리 원주법천리 1. 반구호 앞에서 언급한 청자 반구호의 편년을 기준으로 보면 풍납토성 현 대연합주택부지에서 출토된 청자 반구호는 몸체가 높고, 유약을 저부까지 바르지 않 / 짧 [ 았으며, 두 개의 귀 흔적이 남아 있다(도면 2-1). 이 런 형식은 천안 화성리에서 나온 완형의 청자반구 호와 비슷하다. 그리고 화성리의 반구호는 기고가 높고, 높이와 동체 최대경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크 다. 이것은 남경 象 山 l호분 硬 期 양식의 반구호와 유사해서 사용 연대가 대체로 동진 중기에서 남조 송나라초기, 즉서기 4세기 중반 5세기 전반에 해 당한다고볼수있다. 오산 수청동 25호 고분에서 출토된 八 耳 盤 口 끓는(도면 2 2) 남경 司 家 山 6호분(기 년 永 初 二 年, 즉 서기 421 년)에서 나온 팔이반구호와 기형이 비 슷하고 시유방식도 거의 동일하다. 따라서 수청동 반구호의 사용 연대는 서기 5세기 말의 동진 말기부 터 남조초기까지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파츠g 一 도면 2-1 도면 2-2 \\\ 1921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94 공주 수촌리의 혹유반구호는 크기가 작아 일반 반구호와 다르다(도면 2-3). 이 반구호의 태토, 시유방식 그리고 유약 의 색깔은 같이 나온 흑유계수호와 유사해서 연대도 가깝다 고보고있다. r펀 μ } ; I[ ~ 강- ~ - 1 )핵 무령왕흥의 상황은 더욱 뚜렷하다. 무령왕이 서거한 서기 523 년을 하한으로 무덤에서 출토된 육조청자와 다른 유물의 연대를 쉽게 알 수 있다. 여기서 나옹 반구호의 경우는 구연 이 높고 밖으로 꺾이고, 경부에는 2조 돌선으로 장식된다. 주 변에는 4개의 다리 모양의 고리가 붙어있다(도면 2 4). 이런 양식은 남조 중기 이후 반구호의 가장 일반적인 특정이다. 그 래서 이 반구호의 제작과 사용연대는 무령왕의 매장연대와 가깝다. 이로보아 무령왕릉에 부장된 반구호는 무령왕이 죽은 후에 양나라 황 제가기증한물품이었을가능성이 높다. 부안 죽막동 제사유적에서는 청자반구호의 파편이 출토된다. 이 반구호는 구연부가 높고 어깨에 6개의 다리형 고리를 4지점에 붙였 다. 한 지점에 2개씩 대칭으로 위치한다(도면 2-5). 이런 양식의 반 구호는 최초 동진말기(서기 5세기 초)에 나타났고 남조 시기에 지속 적으로 유행하였다. \. 도면 / \ 2. 계수호 도면 2-4 한국에서 출토된 계수호는 청유와 흑유의 2종류로 나누어지는데 기형에 있어서 차이가 거의 없다. 중국의 기년자료를 통해 계수호의 상대적인 유행 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 천안 용원리 9호분에서 출토된 혹유계수호가 남경시 司 家 山 5호 분(서기 406 년)의 계수호 2점과 전체적으로 매우 비슷하고, 司 家 山 6호분(서기 421 년)의 출토품과 비교해도 거의 동일하다(도면 2 6). 도면 2-5 3,향t! i ' // 도먼 2-6 도언 2-7 百 % 故 뼈 出 土 中 固 六 朝 좁앓 的 年 代 和 意 X 1193
195 세부를 보면 사가산 5호분 계수호 중에 하나는 용원리 출토품처럼 파수에 문양이 없고, 또 하나는 6 호분 출토품과 같이 파수가 구연과 연결한 부분에 龍 머리 모양으로 만들었다. 이런 龍 首 모양의 파 수가 있는 계수호가 5세기 전기 즉 동진 말에서 남조 송나라 초에 나타난 후에 점차 무문 파수 계수 호를 대체한다. 따라서 천안 용원리 9호분 계수호의 연대는 대체로 4세기 후반부터 5세기 전기로 비 정될 수 있다. 공주 수촌리 흑유계수호도 용원리 것과 특정이 매우 비슷해서 사용연대도 가깝다고 본다(도변 2-7). 한편 국립중앙방물관과 원광대학교박물관에는 출토지 미상의 완벽한 청자계수호가 한 점씩 있 다. 두 유물의 동제와 계수 그리고 파수 등은 그 특정이 천안 용원리 흑유계수호와 비슷하지만 어깨에 붙인 고리가 동진대 전반에 유행했던 평평하고 원만한 곡선으로 된 양식이며 딱딱 한 사다리꼴 고리보다 빠른 것이다. 두 유물은 서로 큰 차이가 없고 유행연대는 4세기 중기로 추정된다. 도먼 관(호) 크게 보면 청자관도 반구호와 계수호처럼 작고 풍만한 형 태에서 높고 가늘어 진 것으로 변한다. 예를들변 몽촌토성 제 l차 조사시 3호 수혈에서 육조청자 파편이 출토되었다(도면 2 8). 파편이 너무 작지만 어깨에서 가로로 맛줄형 고리를 붙인 直 口 醒 인 것을 알 수 있다. 구연이 곧고 횡으로 맛줄형 고리 한 쌍을 붙인 양석은 서진대 후기부 터 동진대 후반까지 유행한 특정이다 다만 서진대 양식은 몽 체가 넓적하고 둥글며 어깨에는 문양띠로 장식된다. 서진 말 부터 어깨 부분의 장식이 점차 간략화되어 무문화 된다. 그리 고 4세기 말부터 각진 다리형 고리도 청자관 어깨에 장식된다. 도먼 慧 프 도면 2-10 도면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96 이어서 몽촌토성 3호 수혈의 출토품은 대체로 4세기 즉 동진대 조기나 중기의 제품이다. 석촌동 8호 고분에서 출토된 사이호는 거의 완형으로 나왔다(도면 2 9). 이전에 이 유물의 연대 에 대해서는몇 가지 추론이 있었다. 가장중요한특징인다리형 고리와높은통형의 몸체를보면 이 런 양식의 청자관은 최초 4세기 만기에 나타났고 5세기 중엽까지도 지속된다. 익산 입점리 l호분의 사이호도 완벽하게 나왔다(도변 2-1이. 이 사이호는 구연부가 곧고 짧으며, 4개의 고리가 가로로 대칭적으로 배열된다. 동최대경이 어깨부분에 있고 전체적으로 높고 가늘며 유약이 바닥까지 미치지 않는다. 절강성 황암 수령 댐 45호분에서 출토된 청자관은 이와 비슷하고 연 대가 太 和 四 年 즉서기 369년으로알려져 있다. 그리고고리와몽체 형태로 비교하면 입점리 청자사 이호가 석촌동 것보다 약간 빠른 것으로 보여서 대제로 4세기 중반 이후에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공주 수촌리 1호분에서 출토된 청자 사이호는 주요 특정이 입점리 것과 비슷하지만, 4개의 다리 형 고리가 가로로 장식된 것으로 보아 그 연대가 석촌동 사이호와 더 가깝고 동진 후기 남조 송나라 초기의 서기 4세기 후반 5세기 전반에 해당된다(도변 2-11). 4 완 청자완은 양이 많고 유행시간도 길다. 중국 기년자료와 비교해서 한국에서 출토된 육조청자 완은 대체로 동진 초기의 서기 4세기부터 남조 말의 6세기 중반 이후까지 생산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동진대로 비정할 수 있는 것은 품납토성 197 번지 가 l호 수혈에서 출토된 것이다(도면 2 12). 천안 용원리의 무문 청자완은 대제로 동진 말 남조 조기에 해당한다(도면 2-13). 도면 2-12 도면 2-13 도먼 2-14 풍납토성 197 번지 38호 수혈에서 출토된 연꽃문완은 기형과 장식문양이 남경시 남조 송나라 明 옳 熺 고분 출토품과 거의 동일하다(도면 2-14). 明 옳 熺 고분의 매장연대는 서기 475 년으로 확인할 수 가 있어서 이런 양식의 완은 늦어도 5세기 후반에 이미 나타났고 물론 그 이후 상당 기간 계속 유행 했다. 따라서 한국 다른 지방에서 출토된 청자 연꽃문완은 기본적으로 남조 중후기 즉 5세기 후반 6세기 말에 해당한다. 5. 벼루 지금까지 중국에서 출토된 청자 벼루는 서진과 동진 대에 기본적으로 삼족만 있고 바닥 내변에 유약이 없고 받침( 支 웹)의 흔적이 뚜렷하다. 서진 元 康 四 年 의 벼루는 삼족과 봄체의 연결 부분에 짐 百 i휴 故 地 出 土 中 固 六 朝 좁앓 的 年 代 和 意 X 1195
197 승 머리가장식된다. 동진 대에 벼루는삼족이 짐승의 다리만표현되고 머리 모양장식이 없다. 남조 중후기에 와서야 점차 多 足 硬 이 나타난다. 공주 공산성에서 출토된 삼족 토기 벼루는 약간 투박하고 짐승 다리의 형태가 잘 남아 있지 않다. 전체적으로 남조 중후기의 기형으로 볼 수 있다(도면 2-15). 하지만 다족연보다는 빠른 편이다. 부여 부소산광장에서 출토된 청자 파편은 다리가 6개 있는 벼루였 을 것이고 남조 만기의 양식이고 백제 권역에서 출토된 육조청자 중에 가장 늦은 예이다(도면 2-16). 료꿇; I I : T킹? 도면 2-15 도먼 청자양 원주 법천리에서 출토된 청자양은 일반적으로 서기 4세기 동진대의 제 품으로 보고 있다(도면 2-17). 청자양은 중국에서 상당히 오랫동안 유행 했다. 초기의 정자양은 머리가 길고 뿔이 S자형으로 휘어있지 않다. 그리 고 붐체도 길고 꼬리가 없는 것도 있어 사실은 같은 시기의 虎 子 와 獅 子 랑 거의 같다. 동진 대에 들어간 후에 청자양은 점차 작아지고 정교하고, 뿔 이 구부러지며, 턱에서 수염을 붙이고, 영멍이에는 꼬리도 붙어 있다. 법 천리의 청자양은 남경 상산 7호분 청자양과 비슷하고 연대가 가까워 동진 대의 유물로 봐도 타당하다. 7. 전문토기와 다른 시유 토기 도면 2-17 전문토기는 중국에서 발견된 예도 그렇게 많지 않다. 현재 이런 유물의 연대는 주로 삼국 오나라부터 동진 대까 지로 추정된다. 중국 학자 貨 雲 웹가 출토된 전문관의 연대 와 형식 변천에 대해서 계통적으로 연구한 적이 있다. 화 폐 문양에 따라 五 錄 錢 무늬가 가장 빠르고 대체로 前 漢 말 부터 나타났다가 西 팝까지 오랫동안 유행했다. 그 다음은 삼국 오나라와 서진대에 大 果 五 十, 大 果 五 百, 大 果 當 千 등 문양이 성행했다. 그리고 變 形 錢 文 이 오나라에서 동진 대 까지 지속됐다. 기형의 특정을 보면 전문관은 구연이 점차 낮아지고 봄체가 높아지고 화폐 문양의 밀집도가 바닥부 터 어깨까지만 시문되어 줄어든다. 따라서 寶 雲 웹는 풍납 도먼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198 토성에서 출토된 전문관 파편은 어깨부분에 분포된 문양의 밀집도가 낮은 점으로 보아 늦은 시기의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리고 몽촌토성, 풍납토성, 신금성에서 출토된 변형전문 토기편(도면 2-18)도 동진시기의 것과 비슷해서 동진의 유물로 추론했다( 寶 雲 웹 2008). 총괄적으로 정리하면 한국 백제권역에서 출토된 중국 육조청자는 동진 남조 즉 서기 4세기 6 세기 말에 해당한다. 이 가운데 서울지역의 출토품은 전문관, 청자반구호, 혹유계수호, 청자양, 그리 고 남조의 연꽃문 완 등이 포함되고 종류가 가장 많고 유행시기가 가장 오래 된다. 그래서 서울지역 은 처음부터 끝까지 육조청자의 주요 수입 권역이다. 그리고 공주, 부여, 서남해안 등 권역에서 중국 육조청자가 처음 나타난 시기는 서울지역 보다 약간 늦은 편이지만 육조청자가 출현하기 시작한 후 에 기종과유행 기간에 있어서 별로큰차이가없다 이런현상이 나타난배경은상당히 복잡하다. 따 라서 다음 장에서는 육조정자의 기능에 관한 문제를 논하고 나서 종합적으로 육조청자가 한국에 수 입되고 백제권역에서 유행한 이유를 살펴보겠다. IV. 육조정자의기능 앞에서 언급한 육조정자의 기능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문헌기록과 상식에 따라 추정한다. 예컨대 반구호와 계수호는 주로 술이나 물을 담은 용기로 생각된다, 그리고 남경에서 출토된 어떤 청자양의 구멍에는 양초가 남아 있어서 현재 대부분의 청자양은 춧대로 보고 있다. 중국 보고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蓋 이란 것은 항상 벽돌 무덤의 뭘 罷 내이나 그 근처에 확인되기 때문에 燈 蓋 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완과 벼루의 기능은 특별히 설명할 필요가 없다. 본고에서 펼자가 근년에 직접 현장 조사시 본 현상과 다른 지역의 발굴조사 자료를 토대로 몇 가지 육조청자의 기능에 대해서 다시 살펴보겠다. 유물의 기능과 대외 수출은 큰 관련성이 있다. 1. 전문관 기형을 보면 전문관이 漢 나라 이래 유행했던 타날문 경질토기 대옹과 비슷한다. 다만 일반적인 한대의 경질토기 대옹은 여러 가지 격자문으로 장식될 뿐 화폐로 문양을 찍지는 않는다. 한대 고분 에서 나온 대옹은 기본적으로 한 두 쌍으로 부장되고 사이즈도 모든 부장품 중 가장 크다. 그리고 주 로 삼 物 을 담은 용기로 추정된다. 삼국 오나라와 서진대 나타난 전문관이 상대적으로 작고 무덤에 부장된 수량도 일정하지 않다. 동진 賢 個 의 r 賽 經 에서 其 明 器, 湮 幾 -, 酒 옳 二, 深 뽑 風 一, 三 敎 三 器 ( 柱 佑 1988) 란 기록이 있다. 이 문헌에서는 여러 가지의 부장품 이름이 소개되는데 전문관과 연결될 수 있는 것이 바로 [ 三 敎 三 器 ]란 부장품이다. 한편 무덤에는 3 가지의 곡물을 부장하기 때문 에 전문관은이 가운데 한가지의 곡물을담은용기일 가능성이 있다. 百 깨 故 ii!! 出 土 中 固 六 朝 좁앓 的 年 代 和 意 X 1197
199 2. 반구호 반구호는 일반적으로 술이나 물을 담는 용기로 추정되며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논의되었기 때문 에 여기서는 주로 다른 용도를 검토한다. 일부 학자가 절강성 a맺 縣 에서 출토된 당나라의 반구호에 있는 명문을 근거로 이런 반구호를 다 隨 醒 이나 뿜이라고 부른다( 林 士 民 1999) 31. 사실은 짧이란 이름은 오랫동안 사용되고 늦어도 한나라 부터 흔히 쓰인 기종이다. 예컨대 後 漢 崔 훌의 [ 四 民 月 송]이란 문헌에서 언급한 모든 용기는 이름이 [ 짧] 하나 밖에 없고 다만 부피에 따라 큰 것과 작은 것에 차이가 있다([ 後 漢 ] 崔 홈 2013). 이런 명칭은 당나라 중엽까지 사용돼왔고, 넓은 의미를 가지고 거의 [용기]란 단어와 같은 의미다. 그리고 더 늦은 시기의 반구호 위에 食 抽 이란 명문도 나왔다 4 ). 하지만 이러한 이름은 연구자들에게 크게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 그리고 시대 차이가 분명하고 똑같은 이름으로 부르는 유물들도 꼭 같은 것이 아니다. 따라서 당나라 유물에 나타난 명문으로 육조시기의 유물을 명명하려면 문제가 있다. 호는 항아리라는 뭇으로 저장 용기이다. 문제는 이런 용기가 액제만 담은 것일까? 펼자가 근년 에 절강지역 漢 代 고분군에 대해 조사했는데 무텀에서 출토된 경질 토기 호 내부에서 조개를 발견한 경우가 두 차례 있었다 5) 이로보아 호나 반구호의 기능은 단순하지 않고 다양한 용도로 쓰였던 것 으로보인다. 한편 육조시기의 반구호는 용기 외에 불교의 공양 도구인 供 抽 으로도 사용된다. 남경지역 육조 시기의 博 室 瓚 에서 벽돌에 냄 像 이 많이 확인되었다. 이 가운데 불교문화와 관련된 그림에는 연꽃을 꽂은 화병이 바로 당시에 유행하고 있었던 반구호(도면 3-1)와 매우 유사하다 61 ( 南 京 市 博 物 館 1990, 南 京 市 博 物 館, 2008). 근년에 항주 교외에 위치한 小 橫 山 동진 남조 고분군에서도 비슷한 벽돌 무 늬가 발견되었고 보고서에서 寶 抽 運 (도면 3-2) 이라고 부른다 7). 따라서 반구호는 불교문화가 발탈 한 남조시기에 공양을 위한 화병으로 쓰였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시기에 따라 반구호는 점차 높아지고 남조까지 완전히 長 倚 形 으로 변했다. 이러한 형태 변화도 반구호가 공양용 화병으로 쓰인 것과 관계가 있을 수 있다. 3. 계수호 계수호의 형태적 특정과 변천 추세는 반구호와 흡사하다. 중국 학자들이 계수호의 분류에 대해 서 연구할 때 항상 삼국 吳 나라 시기의 계수를 붙인 청자관을 계수호의 원시형태로 생각한다. 이런 청자관은 구연이 곧고 크게 외반하며 몸체가 높지 않고, 어깨에 닭이나 매의 머리가 붙고, 동체는 날 개문양으로 장식된다 81. 자세히 관찰하면 이런 청자관은 조류 머리를 빼고 청자직구관과 거의 비슷 한다. 한편 동진의 청자 혹은 흑유 계수호는 파수와 계수를 빼고 동시기의 반구호와 별로 차이가 없 3) 이 반구호의 영문은 元 和 씹앓 年 四 月 - 日 造 此 뽕 價 個 - 千 文 이고 제작 연대가 서기 819년으로 판단된다- 4) * 跳 上 林 湖 도자기 가마에서 출토된 반구호 위에 [ 食 뼈- 口 光 化 三 年 + 月 十 -B 造 ]란 영문이 새겨져 있어 그 제작 언대는 서기 900년이다 5) 이들 유물은 절강성 호주시 楊 家 꿇고분군 전한대 토광묘에서 출토됐다 지금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6) 이런 화상은 남경지역에서 많이 발견되었다 끼 항주시 소횡산 육조고분군의 자료가 더욱 풍부하다 예를들면 7호, 93호, 108호 고분의 벽돌 위에 寶 뼈 違 그림이 잘 보인다. 8) 대부분 학자들이 이런 분류 방법을 인정하고 박물관에서 전시할 때도 이런 순서로 진열한다. 띨자가 석사학위논문 을 때도 이 분류안을 채택했다, 1981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200 다. 사실 계수호는 반구호의 또 다른 형태일 뿐이며 삼국과 서진대의 계수직구관과 계승관계가 분명 하지 않다. 그래서 계수호는 기형 변화 추세에 있어서도 반구호와 거의 일치하고 몽체에 파수와 닭 머리가 있는 점만 반구호와 다르다 9). 3-1 南 京 油 껴 橋 3-2 抗 州 餘 抗 小 橫 山 7호, 93 호, 108호분 畵 像 짧 南 朝 흉 畵 { 象 b훨 도먼 3. 도면 4. 따라서 계수호의 기능도 반구호와 별 차이가 없다. 필자는 닭머리의 입에 구멍이 있는지 없는지 를 자세히 관찰했다. 남조 시기의 계수호는 입이 뾰족하고 구멍이 없다. 시기가 빠른 것은 입에 구멍 이 있지만 호 내부까지 관통되는지 여부는 일정하지 않다. 따라서 계수가 꼭 주전자의 주둥이로 쓰 인 것은 아니고 주로 장식으로 쓰인다. 현재 파악한 자료에 의해 계수호를 바로 후대의 청자 주전자 와 연결하기는 어렵다. 계수호가 벽돌 그림에 안 보여 運 花 寶 抽 처럼 공양기구로 사용하지 않지만 나 머지 기능은 반구호와 비슷한 것이다. 4. 청자양 청자양의 기능에 대해 대체로 두 가지의 견해가 있다. 하나는 춧대, 또 하나는 문방도구인 주자 이다. 춧대로 보는 견해는 주로 육조무덤에서 출토된 청자사자에 춧대의 기능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청자사자의 등에 동그란 管 이 세로로 나와 있고 구멍으로 사자 내부까지 관통된다(도면 4). 이 와 비슷한 청자양도 볼 수 있다. 법천리 청자양과 중국에서 출토된 일부 청자양은, 양 머리 정상부 에 구멍이 있지만 청자 사자처럼 등에 관이 세워져 있는 것이 아니다. 같은 동물형 도자기라도 기능 이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없다. 물론 문방도구인 주자의 기능도 외형에 의해 판단된 젓이다. 하지만 남경 상산 7호분 보고서에 따르면 청자양이 벼루 등 문방도구와 같은 탁자 위에 세트로 배열되어서 문방도구의 가능성이 높다. 5. 다른기종 다른 청자의 기종, 예를 들어 벼루와 완은 기능이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사 용해왔으며 시기에 따라 형식 변화만 보이기 때문에 다시 검토하지 않는다. 9) 본고에서 계수호와 관련된 자료만 토론한다 사실은 같은 형식의 유물에 닭 머리 외에 앙, 사자, 호랑이 등의 머리로 잠식된 것도 있다 상관 유물은 보고서에 많이 발표되어 있지 않고 최근 작성하고 있는 절강성 上 盧 尼 뾰 婆 山 동진남조 도자기 가마 보고서에 많이 들어 있다 百 }휴 故 뼈 出 土 中 固 六 朝 좁앓 的 年 代 和 意 X 1199
201 v. 결론-백제지역 육조정자의 수입과 전파 이상과 같은 육조 청자의 연대와 기능을 총괄적으로 논하며 최종적으로 육조청자의 수입 및 백 제 지역으로의 전파에 대해서 논하기로 한다. 1. 백제의 수입 우선, 육조 청자는 무덤내의 부장품으로서 삼국 조위시기에 시작한 博 賽 풍습으로 시작된 것이 다. 문헌에서 이들 유물은 [와기]라고 한다. 즉 당시에 이런 청자는 예술품, 고급용기, 위세품과는 차 원이 다른 일상용품이다. 무덤에서 이들 용기는 부장품이 아니다. 權 性, 곡물, 술, 옷, 귀금속이야말 로 자손들이 돌아가신 연장자께 드린 공양품이며 대부분 청자는 그런 제사품을 담는 용기일 뿐이다. 그리고 위에 언급한 봐와 같이 부장된 청자의 연대차이가 많다는 것으로 보아 이들 용기는 일상생활 중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사용된 후 부장된 실용품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이러한 육조청자가 바다를 건너 백제에 나타나는 원인은 두 가지 밖에 없다. 하나는 무 역, 또 하나는 陽 與 로 볼 수 있다. 무역상품일 경우 원산지의 일상용품은 수입된 뒤에도 기능에 있어 서 큰 변화가 없다. 그리고 유통상품이었을 경우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한 가지는 청자 자체를 상 품으로 수출한 것이며, 또 한가지는 다른 상품의 용기로 수출한 것이다, 차이점은 전자의 경우에 청 자가 무역의 주체이고 후자의 경우에 청자가 무역의 부속품이라는 점이다. 陽 與 의 경우는 사실 무역의 성격이 포함돼있다. 朝 責 이란 중국 주변 국가가 중국과 교류하기 위 한 가장 합법적이고 일반적인 방식이다. 이런 교류 중 중국의 제왕들은 자신을 높은 중심 지위에 두 고 주변국가에 물건을 사여하고 아울러 주변국가가 주는 물건을 공품으로 삼는다. [ 萬 國 來 朝 ]는 중 국제왕들이 자신의 통치가 합리적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이고 정권의 번성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서 중국 역대 제왕들이 중요시 해 왔다. 이러한 조공무역의 기초아래 중국 정부가 주변국가에 비해 정치상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고, 주변국가는 [조공]의 명의로 소수 조공품으로 질과 양이 좋은 사 여품을 얻어 왕후 封 號 까지 따올 수 있다. 육조시기의 조공무역은 바로 이러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사여품으로서 백제에서 수입한 육조청자를 다시 분석하면 우선 이들 청자는 중국내에서 는 일상용 [와기]이며 제왕들이 조공자에게 사여하는 선물의 주체라고 하기 어렵다. 정자는 당시의 특산물 에를들면 술이나 보물, 심지어 升 藥 등과 같이 사여품을 넣는 용기로서 백제에 함께 수입되 었다 11) 2. 백제 내의 전파 중국 육조청자의 백제권 내부에서의 전파는 더 복잡한 문제이다. 전에 이들 자기는 신분의 상징 10) 조공활동 중에 사여품에 대해서, 르 國 志 제 30권 烏 九 蘇 뿔 東 훗 傳 에 文 鎬 三 ~. 細 班 華 爾 五 랬, 日 뽑 五 十 ~. 金 /\뼈, 五 R7J 二 디, 빼 積 百 校, 頁 珠 E\A 各 五 十 Fr)이란 기록이 있다 그리고 닮 封 훌 付 難 升 米 牛 利 i조 到 끊 受 란 기록도 있다 이 가운데 진주와 딘g떨 담으려면 전용용기를 띨요하다 마찬가지로 백제가중국 님방 육조와교류할 때 이런 사여품도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일부 육조정자가 사여품의 부조 용기로 백제에 수입된다고 생각한다. 200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202 물 [위세품]로 보고 높은 정치적 의미가 부여되었다. 물론 위세품은 귀하고 높은 정치적 의미를 가지 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 무덤에서 발견된 금동관이나 금동신발 등은 귀한 장신구 외에 권력의 상징 으로서 [위세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 온 육조청자도 과연 이러한 성격이 있었는지 는 재고해 볼 펼요가 있다.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육조청자는 중국내에서는 일반용기로 사용하고 귀금속이나 보석제품, 비단 등과 같은 귀중품과는 비교할 수 없다. 청자 자체는 이러한 귀중품을 담는 용기로서 그 가치는 더 높지 않을 수 도 있다. 이런 성격은 청자의 백제 국내 유통 당시에 그 의미가 결정된다. 기존에 [위세품]이란 관점은 주로 백제가 중앙으로서 지방을 지배하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중국 의 문헌으로 보아 이러한 기록은 충분하지 않다. 백제는 한반도 서남부 여러 정권 중 가장 일찍이 중 국과 통교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중국에 의해 이 지역 유일의 합법정권으로 인정된다. 국가 이름으로 봐도 백제는 마한 제국의 이름이 다양하고 특이한데 백제만 전형적인 漢 式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중국은 백제가 한반도 서남 제국의 최고 통치자이고 다른 각국은 다 백제의 소속국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되면 조공무역은 백제와 중국 사이에만 할 수 있으나 다른 마한 제국이 이런 교역 체계 에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기존에 논의된 백제가 조공무역을 통해 중국에서 청자와 같은 제품을 수 입했다는 관점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런 체계 외에 비공식적인 무역이 존재할 가능성을 배제 할수없다. 다른 제국은 백제와 중국과 조공관계가 확립되어 무역기회를 놓친다. 그럼 백제 직접 통치 지역 이외에서 육조청자가 나타나 원인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백제의 왕실이 준 것이고, 또 하나는 비 공식적인 무역으로 중국에서 직접 수입한다는 것이다. 사실 현재까지 파악한 자료로 보면 두 가지 경 우가 모두 가능하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반도 서남부에는 많은 항구가 있다. 그중 군산, 부안 등 은 대중국 교류의 중요 항구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항해기술이 발달한 송나라 시기에 남부 영 파항에서 출발한 사신단이 고려에 도착하는 첫번째 항구는 전주 아래의 군산이고 거기서 전주 관리 의 초대를받았다 11) 시기적으로 떨어져 있지만중국 남부지역의 배는상대적으로북쪽의 서울과공 주보다는 우선 더욱 인접한 한반도 서남부의 도서나 항구를 기항지로 삼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한반도 중, 서남부 지역에서 출토된 육조 청자는 기원 3 7세기 이 지역과 중국 대륙, 특 히 강남지역 간의 교류를 반영하고 있다. 당시의 백제는 중국 대륙과 같이 직접적인 지방지배에 한 계가 있는 상황이었다. 특히 백제의 한성시대는 행정명령이 통용되는 범위가 상당히 제한된다. 따라 서 백제권 내에 분포하는 중국 수입품은 각지 정권의 독립성과 강세를 보여준다. 중국과 한국의 문 헌에 의한 [중앙]과 [지방]이란 개념을 포기해야 이들 수입품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당시 사 회의 양상을알수 있다. 11) [ 北 宋 ] 徐 觸,r 宣 和 奉 使 흠 麗 圖 經 꺼 136권에 六 日 丁 묘 至 群 山 잎빼 ;a... 同 接 伴 金 富 $$ m숲 'I'M윷 俊 和 遺 使 央 投 近 迎 狀 이란 기록이 있다 百 흙 故 ii!! 出 土 中 固 六 朝 좁좀 的 年 代 和 意 X 1201
203 참고문헌 權 五 榮, 1988, 4세기 백제의 지방통제방식 일례-동진청자의 유입경위를 중심으로, 한국사론 18,. 2002, 백제의 대중교섭의 전개와 그 성격, r고대 동아시아와 삼한, 삼국의 교섭 , 백제의 대중교섭의 진전과문화변동, r강좌한국고대사 4. 成 正 觸, 2003, 백제와 중국의 무역도자, 백제연구 38. 李 廷 仁, 2001, 중국 동진청자 연구-4C 백제지 역 출토품과 관련하여,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林 永 珍, 2007, 한성기 중국과의 문물교류, r백제의 문물교류 , 문물교류를 본 백제의 대외관계 r백제논총 , 中 國 六 朝 磁 器 의 百 濟 펄 入 背 景, 韓 댐 考 古 學 햄 83. 李 H 軍 達, 2005, 中 國 과 百 濟 出 土 六 朝 줌효의 比 較 檢 討, 전남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 中 國 六 朝 춤춤의 年 代 와 性 格, r호남문화재연구논문집 9. 南 京 市 뻗 物 館 江 寧 縣 博 物 館, 1999 南 京 市 東 善 橋 鳳 凰 三 年 東 吳 흉, 文 物 제 4 기. 南 京 市 文 物 保 管 委 員 會, 1965, 南 京 市 A 台 山 東 팝 興 之 夫 챔훌 發 握 행 告, 文 物 저167]. 賢 雲 웹, 2008, 東 亞 地 區 出 土 早 期 錢 文 關 좀 器 的 빠 究, 考 古 與 文 物 제 2 기. th 右, 1988, 通 典 저186 권, y밟 lj 四, 中 華 書 局. 林 士 民, 1999 좁좀 與 따뿔, 上 海 古 籍 出 版 社. p231. [ 後 漢 ] 崔 是, r 四 民 月 令, 中 華 書 局. 文 物 出 版 社, 2000, r 1 折 江 紀 年 좀. ' 2013, 솟 抗 小 橫 山 東 팝 南 朝 흉. 南 京 市 博 物 館, 1990, 南 京 패 t)j 橋 發 現 一 座 南 朝 畵 像 t뽑옳, r 考 古 '2008, 南 京 市 雨 花 臺 區 南 朝 畵 像 博 基, 考 古 6기. 大 象 出 版 社, 2008, 全 宋 筆 듬E 제 3 編 제 8 권. [ 北 宋 ] 徐 鏡, r 宣 和 奉 使 高 麗 圖 *핍저136 권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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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 토 론 백제권역 출토 중국 육조청자의 연대와 성격 에 대한 토론문 權 표 榮 (한신대학교) 육조 청자 생산의 중심지인 중국 절강성 에 서 오신 李 陣 達 선생님의 발표는 백제권역에서 출토되 는 중국 청자를 통한 백제고고학 연구에 귀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토론자도 이번 기회에 많은 공부를 하게 되었고 李 선생님의 견해 에 대부분 동감하고 있다. 다만 궁금한 점, 그리고 약간의 이견 이 있을 수 있는 부분에 대해 몇가지 질문을 드리고자 한다. 1. 짧 풍납토성 에 서 출토된 청자 완 중에는 무문에 구경 이 넓고 기고가 낮은 것과 연화문이 새겨지고 기고에 비해 구경이 작은 것이 공존한다. 李 선생님은 전자를 동진에, 후자를 明 옳 熺 基 (475 년 )를 예 로 들어 5세기 후반에 위치지웠다. 풍납토성 에 서 출토된 백제, 중국 기물의 연대를 475 년 이전에 국한시키는 견해와 그 이후에 해 당되는 유물도 존재한다는 견해가 양립하는 현실에서 공교롭게도 475 년에 매장이 이루어진 明 활 喜 養 출토 청자 완과 비교되는 유물이 풍납토성에서 출토된 것이다. 이 점에서 劉 宋 代 청자 완에 대한 보다 상세한 설명을 듣고 싶다. 2. 벼루의 문제 李 선생님은 백제지역 출토 중국 청자 벼루에 대한 설명에서 콩주와 부여에서 출토된 벼루에 대 해 언급하면서 남조 벼루와 비 교하고 있다. 하지만 남조의 多 足 現 戰 足 現 水 鴻 現 이전의 청자 벼루 가 서울 몽촌토성에서 출토된 바 있다 I). 이에 대한 언급이 없으신데 이 유물을 청자벼루로 인정하지 않아서 누락시킨 것인지 확인하고 싶다. 3. 전문도기 연대 토론자 역시 발표자의 견해와 마찬가지로 중국 전문도기의 중심 연대가 東 吳 에서 東 플 代 라는 주 장에 동의 하고 있다. 하지만 前 漢 代 로 소급되는 전문도기가 南 越 國 에서 출토되고 있는 점, 최근 들 어 南 京 師 範 大 學 王 志 高 선생이 주장하듯이 남조대에 해당되는 전문도기가 남경시내에서 발견되고 있는 점 에 주목하여야 할 것 같다. 1) 한성백제박물관이 진행한 최근의 발굴조사에서도 또 한 점의 정자 벼루가 출토되었다 2041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206 백제권역에서도 종전에 단순히 흑유로 판단했던 유물 중 일부가 전문도(자)기로 판명되고 있다 공주 수촌리 4호분의 흑유호, 부안 죽막동유적 출토품이 그 예이다. 게다가 한반도 서남부의 전방 후원분에서도 전문도기가 출토됨으로써 전문도기의 사용과 부장이 6세기 대까지 이어짐을 알게 되 었다. 따라서 백제에 중국의 전문도기가 수입되는 시간대는 매우 넓어졌고 그 계기도 단일하지 않을 것이다. 한성시대에서부터 웅진시대에 걸친 백제 왕실의 전문도기 수입과 지방 분배의 목적은 무엇 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4. 기능 반구호를 寶 抽 으로 본 견해는 무령왕비 冠 節 의 寶 抽 文 을 볼 때 토론자도 찬동을 표하고 싶다. 청 자 등의 자기류는 일상 생활용기이므로 용기 자체가 선물이나 사여물이라기 보다는 그 내용물이 더 중요하다는 견해에도 동의한다. 다만 중국에서 청자가 일상 용기로 사용되고 상대적으로 흔하였다는 사실이 백제에도 동일하게 적용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백제에서는 중국 청자나 흑자가 왕릉(서울 석촌동고분군, 공주 무 령왕릉)이나 지방수장묘 왕성(풍납토성 몽촌토성 사비도성)이나 지방의 거점 취락(포천 자작리유 적, 용인 고림동유적, 홍성 신금성유적)에 한정되어 출토되고 있다. 그리고 전체 수량 자체가 중국 에 비할바없이 적다. 塵 地 에서 대량 생산된 일상기물, 혹은 저가품이 원거 리를 이동하면서 위세품으로 전환되는 사례 는 인도-동남아시아산 유리구슬 서역산 유리용기가 한반도에 들어온 이후의 양상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따라서 중국에서 반입될 때에는 귀중한 물품을 담는 용기에 불과하였더라도, 백제 권역에서 는 청자와 흑자 그 자체가 일종의 위세품으로 취급되었을 가능성은 여전히 부정하기 어렵다고 본다. 百 휴 故 ill! 出 土 中 固 六 朝 좁홈 的 年 代 和 意 X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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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09 Lo~i hinh m() chum Vi~t Nam qua nghien ciru cac giai do~n phat tri하l Va khu VlfC phan ho Ph6 giao su, Tien sibui Van Liem Th~c si Hoang Thuy Quynh (Vi~n Khao cδ hoc Vi~t Nam) I. Mc} chum giai do~n h흉u ky da m6'i- sα ky kim khi II. Mc} chum giai do~n d이1g thau ly Vi~t Nam ill. M() chum trong giai do~n sat s6'm ly Vi~t Nam IV. M()t vai nh~n thirc Truyen thong SU dt.mg do gom lam quan tai chem cat ngtreri chet dtrσc su dt,mg tu s&m & Viet Nam. Trong qua trlnh phat tri하1 c6 nhiing chuy징1 bien Va SI! da d~ng gt다a cac vung mien. Trong bai viet nay, khai niem mi) chum dung de chi cac lo~i do gom c6 hlnh dang va kfch co khac nhau du<;> C su di,mg de ch[ra dvng hai cot hung tang ho~c di tang nhtr nh다ng quan tai. Gom cac lo~i mi) noi, VO, blnh, chum gom chem dung ho~c n~m ngang. Trong meli giai do~n phat tri하1 va tren m6i dia ban khac nhau thl kie'u dang lo~i hlnh va kfch cδ lo~i do gom nay l~i c6 nhiing khac biet da d~ng t~o nen nhiing d~c trnng trong m6i van h6a. I. M() chum giai do~n h흉u ky da mcyi- sα ky kim khi Mi) VO xua t hi en s&m nha t δ Vi송t Nam la tu trong van h6a Bau Tr6, thui)c giai do~n h~u ky da m&i, sσ ky kim khf (Ngo Sy Hong 1988), phan bo tren dai dong b~ng ven bie'n δ vung b~c Trung Bi). Trong giai do~n nay, mi) VO ci:ing chtra phδ bien, mδi chi duαc tlm thay trong 3 di tfch Den Doi va Con Neb, Th~ch Lam- dc di tfch thui)c giai do~n cuoi. Mi) VO la 2 chiec noi gom up mieng vao nhau chon dung, trong so d6 chi c6 mi) VO & Den Doi c6 chila XtrO'ng cot tre em chon hung tang. Kie'u dang cua VO mi) Bau Tr6 tuσng doi thong nhat va thui)c lo~i c6 kfch cδ nh6. Vo c6 day tron, phan vai n& cong tron roi thuon da'n vεphfa day, M9 VO Co'n Ne'n ( Phqm Thi Ninh) Lo~i lllnh mi) chum V핏l Nam qua nghien cfru I 207 CaC giai OOan phat trien vii khu V\fC phan bo
209 mi~ng VO loe mep cong uon ra ngoai ho~c mi~ng dung. Toan b9 pha'n than ben ngoai du'q'c phu mot l&p a mau d6, hoa van trang trf tren vai mo tfp kh~c v~ch miet lang t~o thanh cac du'erng cong khep kfn ho~c toan than Ia van thung. Nap d~y la mot VO khac kie'u than cong tron up d~y Jen. II. Mc) chum giai do~n dδng than (y Vi~t Nam 1. M9 chum giai do~n d 0ng thau 6' miεn Trung Lo~i hlnh quan tai gom tiep t1,1c xuat hi~n pho bien ho n trong giai do~n dong thau 6' miεn Trung Vi~t Nam. Theri ky dong thau 6' miεn Trung v~n con nhi 하l khoang trong, hi~n t~i, CclC nha nghien ClrU da tll'σng doi thong nhat theri ky nay gom cac van h6a, cac nh6m di tfch nhll': van h6a X6m Con, giai do~n Long Th~nh, giai do~n Blnh Chau. Trong giai do~n Long Th~nh ( c6 nien d~i Sα ky dong thau phan bo 6' tren cac con cat ven bt징1 vung Trung Trung B9), lo~i hlnh m9 n oi vo up nhau ch6n dung vfo tie p t1,1c phat tri하1 ben c~nh d6 la SI! xuat hi~n cua lo~i hlnh m9 chum c6 kfch thll'δc l&n. Lo~i hlnh quan tai gom thu nhat la lo~i m9 11 oi VO up nhau. Lo~i m9 noi vo up nhau dl!'q'c tlm thay trong cac di tfch: VU'ern Dinh - Khue B~c, Bau Tram, D~m Thuy Bac, Truong Xe, Long Th~nh. M9 n oi VO up nhau thll'crllg la 11 oi VO l&n 6' du'δi n~p d~y la m9t 11 oi VO 암lclC nho hσn, trong khi mot so m9 noi VO khac c6 nap d~y d?ng bat/mam bong. Xung quanh m9 noi VO c6 khi dll'9 C chen nhi!ng vien cu9i nhll' m9 Bai Ong, m9 Truong Xe. Than tro d6i luc dll'αc phat hi~n xung quanh m9 noi ho~c n~m ben trong m9 noi up nhau nhll' VLl'ern Dinh - Khue B~c, m9 D?m Thuy Bk Do tuy tang d~t phfa ngoai va trong m9. M9 n oi cua cac di tfch giai do?n nay dεu la lo?i 11 oi c6 than hlnh ca'u ho~c ga'n hlnh cau. Vo hlnh ca'u cδ vo ho'i b6p l?i, mi~ng Joe r9ng, kfch thu'&c trung blnh, cao khoang 0,4-0,5cm; r9ng b1,1ng 0,4-0,5cm; dll'erng kfnh mieng 0,3cm- 0,4cm (Ngo Sy Hong 1988). Noi tren c디 ng d?ng hinh cau, kfch thll'cyc nho ho n noi du'δi va dll'erng nhll' vanh mi~ng cua n oi up tren da bi ghe di nen hau het trong cac m9 n oi VO 니p nhau noi tren de u bi mat vanh mieng. Lo?i hlnh quan tai go m thu hai trong giai do?n Long Th?nh la m9 chum l&n. Lo?i hlnh nay m&i chi dll'q C phat hien trong di tfch Long Th?nh. C6 the n6i Long Th?nh la di tfch s&m nhat phat hien dll'αc lo?i hlnh quan tai gom c6 kfch thll'6 c l&n- chum hlnh trung. Do tuy tang gom do gom, do da thll'erng du'σc d~t trong m9 chum, va c6 mot do tuy tang dll'σc d~t d tren n~p m9 Chum c6 dang hlnh trung day tron, vai 116', mieng ho i Joe. M~t ngoai trang trf van thung d~p toan b9 bε m~t. Nap d~y la nhi!ng chiec bat n6ng long ho~c mam bong, rla mep c6 khac rang CU'a each quang. M~t ngoai trang trf hoa van khac V?Ch, rang so, Vo m9 Vlf&n Dinh- Khue Bae (Lam Thi My Dung)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210 t6 chl lam nen cho nhiing dai hoa van hlnh hqc. G om c6 2 lo~i chum hlnh trung cao va chum hlnh tr[mg thap. Lo:;ii chum c6 than cao, day sau, mi~ng ho i loe, vai n&. Cao trung blnh 0,7m, than r9ng trung blnh 0,6m, mi~ng r9ng 0,45m. Lo:;ii chum c6 than tron, tha p, b1,1ng n& tron. Kich thu&c nh6 hσn lo:;ii 1. Lo:;ii hlnh m9 n oi VO 디p nhau trong giai do:;in Long Th:;inh fa ke thtra ttr trong cac di tfch giai do:;in mu9n cua van h6a Bau Tr6 da dασc nhi 하j nha nghien cuu th[ra nh~n (Ngo Sy Hong 1988, Lam My Dung 2001). Ben c:;inh truye'n thong nay, trong giai do:;in Long Th:;inh bat dau xuat hi~n lo:;ii hlnh chum gom l&n. D~c bi~t n~p d~y cua chum dtrσc lam v&i cht'.rc rieng bi~t cht'.r khong phai la m9t vo khac [!p Jen va pha'n n~p d119 C trang trf rat c au ky. Cung giong nhu cac di tfch dong thau s6 m, cac di tfch giai do:;in dong thau mu9n - giai do:;in Blnh Chau- C디ng phan bo δ vung con/go cat ven bie'n va tren dao δ vung Trung Trung B9. Cac di tfch giai do:;in nay chtra phat hi~n dα0 c nhi 힌j va chu yeu v~n tren dia ban dnh Quang Nam, Quang Ngai. Nhtr v~y c6 the'thay dia ban sinh song cua Ctr dan giai do:;in dong thau mu9n kha trung khδp v&i giai do:;in s&m. Cac di tfch trong theri ky nay hau het la cac di tich etr tn1 - m9 tang. Tuy nhien, c6 di tfch m9 tang d119 C ch on trong khu Ctr tn1 nhtr X6m Oc xong c디 ng c6 di tich khu m9 tang va rn tn1 dm;rc tach bi~t nhau. Da phan trong cac m9 chl c6 do tuy tang, ctat cat, kh6ng c6 di cot ngtreri. Tuy nhien c디 ng da phat hi~n Xllαng cot trong m9t so m9 n oi VO Blnh Chau II, va trong ca m9 VO n oi X6m Oc (l&p dtr6 i) c6 mo ng cot trong VO. Theo ket qua nghien ClrU thl d6 deli la cac di cot cua tre em. Lo:;ii hlnh m9 quan tai gom trong giai do:;in Bl띠1 Chau khong phδ bien nhtr trong giai do:;in Long Th:;inh, chu yeu v~n la m9 dat. Lo:;ii hlnh quan tai gom trong giai do:;in Blnh Chau d빼 la cac lo:;ii VO, n oi kich thtr&c nh6, n~p d~y la d:;ing bat/mam bong, m9t VO khac up Jen tren ho~c khong (c6) con nap nhtr di tfch Blnh Chau, 6'vung Nam Trung B9, trong giai do:;in mu9n cua van h6a X6m Con, da b~t dau xuat hi~n lo:;ii hlnh m9 quan tai gom d:;ing n oi VO. Lo:;ii hlnh m9 tang nay mδi chl d119 C phat hi~n trong di tfch Vlnh Yen. Lo:;ii hinh VO mi~ng Joe, than hlnh ca'u, phu kfn van chai ky thu~t, day tron, dtrerng kfnh dao d9ng trong khoang ti! 35-40cm. Vo m9 ch6n th~ng 뼈ng, tat ca de'u kh6ng c6 n~p d~y. Trong VO chi c6 lδp cat den th~m, thuan nhat, nhtr cat trong tang van h6a nhtrng khong c6 l~n hi~n v~t, khong thay dau hi~u cua di cot ngtreri. 2. M9 chum theri d:;ii kim khf 6' Tay Nguyen Tay Nguyen la vung nui- cao nguyen n5m phfa tay va ch:;iy d<;>c vung duyen hai mi 하1 Trung. Trong nhiing nam ga'n day, hang tram di tfch khao cδ, nien d:;ii h~u ky Da mσi-sσ kykim l에 i da duσc phat hi~n δ Tay Nguyen, xac l~p SlJ hi~n di~n cua m9t so van hoa kha cδ, trong d6 c6 van hoa Bie'n Ho va van hoa Lung Leng, no i tlm thay hang tram m9 quan tai gom. Neu nhtr SlJ xuat hi~n cua cac m9 quan tai gom trong van h6a Bie'n Ho rat le te thl trong van h6a Lung Leng ma die'n hlnh la di tfch Lung Leng va cac tfch long ho thuy di~n Plei Krong da phat hi~n d119 C hang tram m9 quan tai gom. Cach tht'.rc mai tang, cach su d1,1ng quan tai gom va m9t so do gom Lung Leng phang phat phong each Sa Huynh va ti en Sa Huynh. Lo~i hlnh mi) chum V앤t Nam qua nghien cuu I 209 cac giai <loan pha!!ne'n Va khu V\)'C phan bo
211 Loc;ii hlnh quan tai gom & Lung Leng c디 ng rat da dc;ing: gδm loc;ii chum c6 kfch thtr&c l&n, chum hlnh cau, chum day nh9n, n oi, blnh. Loc;ii do gom c6 kfch thtr&c l&n la chum hlnh tnrng, chum than hlnh tr9, chum hlnh ca'u, chum day nh9n. - Loc;ii m9 chum than hlnh tnrng, kha phδ bien. Mi~ng Joe xien, than phlnh nhv ho~c thuon dan Vε day, day cong I oi de'u. Thanh gom day den rat day, trang trf van chai ho~c de' trσn. Hoa van thtrerng dtrαc trang trf phfa trong vanh mieng. Kfch thtr&c: dtrerng kfnh rnieng 60-75cm; cao khoang 80cm. Kie'u dang chum hlnh tnrng va nt'ra tr[mg nay mang dang dflp cua chum tie'n Sa Huynh- Long Thc;inh va chum Sa Huynh- Go Ma Yoi - Loc;ii than hlnh tr9: than hlnh tr9 ho~c gan tr9, vai nσ, than thang va thu dan vε day. Nap d~y ia day cua chum khac ho~c nap cong khum. Kfch thtr&c: cao khoang ti! 60-92; dtrerng kfnh than khoang 50-60cm - Chum day nhon c6 hai kie'u, loc;ii tht! nhat la kie'u chum day nhon c6 than thu dan vεday, mieng loe, mep mieng c6 ger phfa trong. Khong c6 SI! phan biet gi 안a mieng va than. Mieng r9ng, than thuon thu gon dan vεphfa day, day nh9n. Kfch thu&c: cao khoang 64-80cm; duo ng kfnh mieng t다 73-85cm. Loc;ii tht! hai la loc;ii chum day nhon phlnh r9ng & gi 암a than, mieng loe, co that, tren vai c6 ger dap day. Than phlnh r9ng 6 g1다a va thu da'n vεday, day nh911. Tren vai d~p ger kha day, tren than dtr&i ger phu hoa van thi!ng. Dk rnieng khoang gan 40cm, dk than 66, cao 6lcm. - Chum hlnh ca'u: so lααng ft. Than hlnh cau, day cong I oi, vanh mieng bi ghe v6'. Kfch thtr6 c: duerng kfnh mieng tu 60-70cm; cao 60-70cm. Loc;ii do gom c6 kfch thα&c nh6: VO hlnh cau, noi VO up nhau, noi blnh [1p nhau - Vo noi hlnh cau kha phobien. Loc;ii nay thtrerng dααc up b~ng mqt n oi VO khac, phan rnieng c디a ca VO tren va dαδi thuerng bi ghe vo Kfch thtr&c m9 n oi vo: dtrerng kfnh mieng 32,3cm; dtrerng kfnh than 42,lcm; cao 40,2cm - M9 n oi blnh up nhau: blnh δ du&i c6 than cong tron, phlnh & gili'a. chan de cao, dung. Noi c6 dang hlnh ca'u, day tron, mieng Joe xien, than phlnh, day tron, trang trf van thi!ng. Mieng n oi va blnh d해 bi VO mat. Ill. M() chum trong giai do~n sat s6m (J Vi~t Nam 1. M9 chum trong van h6a Dong So n Dong So n la m9t van h6a theri dc;ti s~t s&m phat tn하1 r11c r& & miεn B~c Viet Nam. Tang tl)c chu yeu cua w dan Dong SO'n la m9 dat va m9 than cay khoet r6ng. Tuy nhien ben cc;inh d6, loc;ii hlnh m9 quan tai gom ding ton tc;ii d~c biet phδ bien & loc;ii hlnh song Ma va song Cc!. [ Yloc;ii hlnh song Hong, m9 VO mδi chi dtrq C tlm tha y trong cac di tfch α Phu Tho nhtr Go De, Lang ca. Loc;ii hlnh m9 VO δ day de'u dc;ing mieng loe, than n& r9ng, day bang, dtrq C phu van tht!ng. Kfch thtr&c 210 I 고분을 통해 온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212 cao 때 ocing tu 42-50cm; dtrcmg kfnh mieng tu 33 den 60cm. Chua tlm tmy nap. Vo dtrq C chem dung. Do kfch c& cua VO khong du l&n de chon nguyen xac, va m9t so khong tha y df( u vet than tro nen lo~i VO m9 nay dtrq'c cho la m9 VO cai tang. Phong tυc mai tang trong cac m9 vo/ n oi go m C디 ng xuat hien trong hau het cac di tfch Dong So n & vung song Ma. D~ng m9 n oi VO up nhau c6 m~t trong hau het cac di tfch Ctr tr[l m9 tang. Day la m9t kie'u tang t9c 암la d~c tnrng cua vung nay. D6 la cac VO m9 chon dung, c6 the [1p mieng vao nhau, c6 khi do n tang, c6 khi song tang. D~ng m9 noi/ VO gom nay thtrerng chon xen ke cung cac m9 dat. Daso la m9 noi VO up nhau, ben c~nh lo~i m9 VO. Dang chu y t~i di tfch Nui va Den Dong Coda phat hien dtrq C di tfch m9 noi 4 chiec up nhau n~m ngang. M9 gom 4 noi gom xep ngang lien tiep, trong d6 c6 ba noi xep chong day Jen nhau, chiec con l~i d~t quay ngtrσc v&i 3 chiec trα&c, mi~ng [!p vao mi~ng chiec tren cung. Vεkie'u dang, noi VO tang Dong So n vεhlnh dang cσ ban Ia giong nhau: mieng vo h<';p, vain& r9ng (than hinh cau ho~c ca'u d<';t) va thuon da'n vεday, mep mieng Joe, cδ ng~n, day cong dvt ho~c c6 chan cte tha p. Than ben ngoai phu van thtrng. Kfch thtr&c khong l&n, n oi thtrerng c6 kfch thtr6 C duerng kfnh mieng 암10ang 30cm, cao 때ocing 29cm. Vo tang c6 chie'u dai khoang 0,6-0,8m; r9ng 0,4-0,6cm. (Dong Ngam, Hoang Lf, Nui va Den Dong Co), hien ttrαng nhieu VO up mi~ng va day vao nhau, trong d6 c6 khi day cua m9t so VO bi d~p thung de up khft mi~ng m9t ho~c nhi 때 VO 뼈 ac vao. Nhii'ng VO up them khong bao gi(y cung lo~i hlnh, kie'u dang v&i hai VO tang chfnh up m퍼ng vao nhau. Truy 한1 thong m9 n oi VO cua van h6a Dong Sαn lo~i hlnh song Ma c6 le dα0 c ke thua tu trong giai do~n tie'n Dong So n ngay t~i ltru Vl!C song Ma. Trong ha'u het cac di tfch m9 tang giai do~n Dong So n d때 c6 l&p van h6a thu9c giai do~n s&m ho n va ciing c6 lo~i hinh m9 VO T~i ltru Vl!C song Ca, Lo~i hlnh m9 VO n oi gom cua ltru Yl!C song Ca rat da d~ng, ben c~nh lo~i m9 noi/ VO chon dung giong nhtr cua vung song Ma con c6 lo~i m9 noi/ VO hai, ba chiec up nhau chon n~m ngang. Lo~i hinh m9 VO vung song Ca, gom c6 2 lo~i: n~p chon dung. Vo c6 mi~ng loe, cδ th~t, vai phlnh rat r9ng va thu da'n vε phfa day, chan cte tha p Joe choai, doi khi tren chan cte c6 16. Tren than d~p van thung. Nap c6 vanh mi~ng khum, dlnh nap hoi nhc;m. M9 vo up 띠mu: thtrerng la 2 vo c6 hlnh dang tuαng m9 up mi~ng vao nhau chon n&m ngang va m9 c6 /τ느여 ll! nhau up mi~ng vao nhau, trong d6 1 VO bi d~p v& mi~ng dε up l<;>t vao trong VO kia. Vo Dong S0'11 lo~i hlnh Lang V ~c c6 kfch thtr&c l&n ho n lo~i hlnh ---찮잖꾀 { song Hong va song Ma. Chum cao 빼oang tlr 42 den 48cm. dα0-ng kfnh than r9ng nha t l&n ho'n chiεu cao. Loqi hinh chum m(j Lang Vqc (Ke 니i Imamura, CM Van Tan 20여) Tang tυc m9 n oi/ VO go m ch on d[rng kha phδ bien trong cac di tfch Dong So n δ ltru Vl!C song Ma va cling xua t hi~n & di tfch Lang Ca, Go De cua lo~i hlnh song H 0ng va la d~c tnrng cua van h6a Sa Huynh δ Lo~i hlnh mi) chum V맺t Nam qua nghien ctru I 211 cac giai doan phat trie'n vi\ 닝rn v11c phan bo
213 mi 하1 Trung va Nam B9. Song tang t1,1c m9 VO [1p nhau ch6n n~m ngang chl m&i dtr9 C biet den 당 lo<;ti hlnh Dong So n vung song Ca ma cυ thε la t<;ti di tfch Lang V<;tc va m9t so 6' lo<;ti hlnh song Ma. Tang t1,1c nay C디 ng du9 C biet den 6' trong m9t so di tfch m9 tang giai do<;tn sσ ky s~t 6' Thai Lan (Bui Van Liem 2010). Nhu v~y, lo<;ti hlnh m9 quan tai gom trong van h6a Dong chu yeu c6 kfch thu&c nh6, kh6ng c6 SI! khac bi~t vεki하 dang so vδi cac do gia d1,1ng. Hinh dang da d<;tng, tang tυc da d<;tng. Trong m9t so mo tlm du9 c Xlfαng cot tre con, ho~c kh6ng thay dau vet tro cot. M~c khac kfch thtr&c nh6, do d6 lo<;ti m9 VO 6' trong van h6a Dong So n duσc cho la m9 di tang ngueri lδn ho~c ch6n tre con, song chua c6 bang cht!ng cho vi~c d6 2. M9 chum trong van h6a Sa Huynh Theo thong ke, den nay so luαng cac dja die'm van h6a Sa Huynh da dtr<)'c phat hien khoang ga'n 90 dia die'm phan bo r9ng va da d<;tng tren ha'u kh~p cac d<;tng dja hlnh: vung mi 하1 nui, vung dong b~ng, vung hai da δ mien Trung Vi하 Nam. Hau het cac di tfch van h6a Sa Huynh dtr9 C biet den de'u la cac dja die'm m9 tang, da u vet Clf tr니 phat hien dα0 C rat ft. Trong cac khu m9 tang gom pha'n l&n la cac di tfch m() quan tai gom, ben C<;tnh d6 c6 xen ke m9t so m9 dat. Tang tl,ic m9 chum trong van h6a Sa Huynh rat da d<;tng, c6 chum do n, chum I ong, cac m9 n~m thanh tung c1,1m, th~ng hang, ho~c 6 ban CCr. Nhiing m9 tang nay cht!a xασng cot di tang, h6a tang ho~c hung tang v&i nhiing do tuy tang nhtr do gom, do sat, do dong va do trang s[rc b~ng thuy tinh hay da quy. Chum gom trong van h6a Sa Huynh ding rat da d<;tng giiia cac vung miεn. M9t so nha 암lclo cδda chia Sa Huy며1 g om c6 2 lo<;ti hlnh d!a phtrσng: lo<;ti hlnh Sa Huynh bac phan bo δ vung Trung trung b9 va Sa Huynh nam phan bo 6' Nam Trung Bo. rli - - 끼 J S \깅? 시 i r \, L 까 건 1 1 안 f / / A\ / ( / J - - ι 악 - -ῑ 환. J 파 끼\ s1 빅i Li w f r j - iu υ a 펴 ι f. BIEN DONG r t - -.i...,i,.. f,. = ---ι---- R -...,r""f Bdn do phiin b6 cac di tfch tie'n Sa Hi씨nh vd Sa Huynh 6- mien Trung Vift Nam Trtrδc het vεquan tai gom δ vung Trung Trung Bo, day la nhiing do gom c6 kfch thtrδc lδn, lo<;ti hlnh quan tai kha da d<;tng, die'n hlnh nhat la kie'u chum hlnh tr1,1 v&i n~p d~y hlnh n6n c1,1t. Kie'u chum nay chiem ty 1e l&n, c6 kha nhi 하l bien the khac nhau, c6 m~t trong hau het cac dja die'm mo tang Sa Huynh. Chum c6 mieng Joe, than ttro'ng doi thang, day cong tron ho~c d~t, thuerng du9 c d~p tht!ng tren than va day. Kfch thu&c l&n, da so chum cao khoang tu 70cm- l locm, duerng kf따1 mieng 40cm- 60cm, chiec lδn nha t c6 kfch thu&c cao l 35cm (chum Go Dua), chiec nh6 nh3 t 6' An Bang kfch thu&c cao 42cm va duerng kfnh mieng 46.Scm. N~p chum thtrerng dtr<)'c trang trf ca'u ky cac mo tf p khac V<;tch ket hαp v&i to mau t<;to nen cac mo tfp hlnh h<:>c va cac dαerng uon lααn. Kie'u chum tht! hai la chum hlnh trt!ng, ki하j nay ding c6 nh 다ng bien the' khac nhau, xuat hien tlr 2121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214 trong giai do~n ti en Sa Huynh nhu Long Th~nh. Chum hlnh trung C디 ng c6 kfch thuδc l&n, trung blnh cao khoang 60cm - 70cm, than hσi cong that & phan cova day, c6 trong mot so dja die'm nhtr Con Rang, Go Ma Voi, Go Mieu Ong, H~u xa, Th~ch Bfch. Ki하 thlr ba la d~ng n oil VO, so v&i nhfrng ki하 quan tai tren thl kich thu&c 따16 be hσn han trung blnh cao 때oang 20cm- 40cm. D~ng quan tai nay rat da d~ng vεki하j dang va kich thtr6 c, gi 다a cac dia die'm khong giong nhau, nap d~y d~ng hlnh n6n c1,1t, ho~c d~ng noi nong long... Quan tai d~ng vo/noi luon ton t~i xen ke trong cac khu mo quan tai hlnh tr1,1 ho~c hlnh trung c6 m~t trong ha'u het cac dja die'm. Ki하 th[r tu la quan tai d~ng chum hlnh cau bien the' (con dtrq c gqi la chum hlnh trai dao), ki때 nay m&i chi duσc phat hi~n & Go Ma Voi. Nhln chung, hlnh dang quan tai d~ng hl따1 tr1,1 va hlnh tri!ng c6 nap hlnh n6n q1t rat quy chuan, kich c& va ki해 dang thong nhat gifra cac dja diem trong mot khong gian rong. Ki하j thu tu ta d~ng blnh vo [lp 띠mu, lo~i hlnh nay m&i chi du9 c tlm thay & di tfch Bai C9i (qrc bac cua van h6a Sa Huynh)- mot di tfch the hi 송n SI! giao thoa rat d~m net vδi van h6a Dong Sσn. Bl따1 gom c6 chan de cao xoe rong 6 phfa duo i, noi gom up δ tren' mi~ng n oi trum xuo ng t~n vai cua blnh go m. Trong lo~i hlnh chum gom & vung Nam Trung Bo, chu yeu la cac lo~i chum nho ho n hlnh cau, C디 ng kha da d~ng. Lo~i hlnh quan tai gom dtrq'c chia lam hai kie'u chfnh. Kie'u thtr nhat, rat phδbien, la quan tai d~ng chum/ VO hlnh ca'u vanh mi~ng thu6'ng bi ghe vδ va dtrq C mai c6 chu y. D~ng chum hlnh ca'u, than cong tron, trang trf van thung/chai chat lieu tho, do va lo~i chat lieu tho day mau xam. Kfch thu&c cua tat iu h l q mn tai gum Sa Huynh h{i, "I<\ h, 4ua11 tai giim Sa Huynh 11 - ι~ ; 鍵 體 똥폼훨. C풀 짧 괜 1 擊 쫓흐 G >/ f / - / 없호 0쩔찢f Cdc loq.i hinh chum VO gom trong van h6a Sa Huynh Lo~i hlnh m\> chum Vi~t Nam qua nghien ct!u I 213 cac giai do~n phat tnεn Va khu V\J'C phi\n bo
215 ca cac VO nay trung blnh dtrerng kinh than khoang 45cm 75cm, cao 20cm- 60cm (Bui Chf Hoang va nnk 2008: 126). Khai qu~t Hoa Diem Ian thtr nhat va trong di tfch Go B9ng Dau c디 ng da phat hi~n duσc m9t so manh mi~ng ma thl!c chat la nhfrng manh vai cua chum VO da bi ghe b6 vanh mi~ng di. Lo~i nay c디 ng kha giong chum 6' vung Can Gier. Ki때 tht! hai (hiem g~p), chum c6 g& gay g6c ngang than, vai xu6i, day hlnh ca'u, lo~i nay gom c6 hai d~ng. Chum c6 vanh m퍼ng r9ng Joe xien nhy, trang trf hoa van in cham tren vanh mi~ng va cδ. Nap d~y cua lo~i chum nay la chiec bat bong chan de cao, trang trf hoa van in cha m (Yamagata Mar o 2008). Chum c6 vanh mi~ng hαi loe nhy, c6 g& gay g~p g1다a vanh m퍼 ng, tren d6 trang trf hoa van kh~c v~ch ket hσp in mep so. N~p lδn, cong khum, vanh mi~ng n~p khum g~p va t~o g& gay g6c dtrαc trang trf bang khac v~ch ch fr S kha cau ky, tren dlnh c6 m9t n[jill lδn. Hai lo~i chum nay mδi chl phat hi~n dtrq c δ Hoa Diem. Kfch thαδc trung blnh cua chum: cao khoang 40cm- 45cm, duerng kfnh mi~ng 30cm- 40cm, du'erng krnh b~ng tu 50cm- 70cm. Nhtr v~y, d~ng chum vo than hlnh ca'u ghe mi~ng la d~ng quan tai d~c trnng cua Sa Huynh nam. C6 the' tha y r~ng quan tai d~ng vo δ nam Trung b9 ma d<:!i di~n la Hoa Diem gom nhfrng kie'u nhat djnh, thong nhat ho'n h~n d<:!ng quan tai n oi/ YO cua vung trung Trung b9. 3. M9 chum trong cac van h6a theri sat s&m 6' Dong Nam B M9 chum t':li Dong Nai: Suoi Chon, Dau Giay, Phu Hoa, Hang Gon 9 duσc phan bo kha deu, each nhau tu 5 den 15km quanh thi tran Xuan L9c, Dong Nai. Cac di tfch phan bo tren cac doi dat d6 bazan Cac lo':li hlnh chum gom tlm duαc trong cac di tfch nay gom c6 chum hlnh trt!ng, chum hlnh ca'u, noi gay g6c ngang than. Chum hlnh trt!ng, c6 trong cac dja die'm Dau Giay, PhU Hoa, Hang Gon. Chum c6 cδ th~t, vai hyp, day tron loi. Tren vai thu'erng trang trf cac bang khac v':lch. Tr숭n than phu van tht!ng. Kfch thα&c : cao 65cm, dαerng kinh mieng 30cm, dk than r9ng nhat 50cm. Lo':li chum than hlnh ca'u, c6 trong cac dja di뻐 Suoi Ch on, Hang Gon (Hoa Vinh). Vanh mieng loe cao, co that, than hlnh cau, day tron. Hinh dang tu'σng doi giong lo':li chum hlnh ca'u trong van h6a Sa Huynh 6' vung Trung Trung b9 song kfch thtr&c l&n. Kfch thα&c: cao 50, dk mieng tu 45 50cm, dk than r9ng 60cm. Chum thuerng c6 bang hoa van kh~c Y':!Ch δ vai. Lo':li n oi lδn gay g6c δ ngang than, c6 trong cac dja diem Phu Hoa, Hang Gon. Chum c6 vanh mieng Joe r9ng, cδ that, tlr vai xuong than thing t':!o ger gay g6c 6' phan than gan day, day tron dyt. Kfch thu'erc: cao khoang 30, dk mieng 45cm, dk than l&n nhat 40cm. Cac lo':li chum nay del chu'a tlm dtrq C nap d~y. Nh 앙ng ket qua Cl4 da cho thay nh6m di tfch nay c6 nien d<:!i so' ky s~t. C6 y kien cho r~ng nh6m di tfch nay thu9c van h6a Sa Huynh 6' mi 하1 trung (Vii Cong Quy 1990), song m9t so khac l':li cho r~ng nh6m nay thu9c giai do':ln phat trie'n cua van h6a Doc Chua 6' Dong Nam B Can Gier m9t pha'n cua tam giac chau Dong Nai, dtrq'c t':!o thanh do he thong dong chay cua hai song Dong Nai va Sai Gon, vung dat nay mang ban chat cua m9t dong b5ng slnh lay miεn Dong Nam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216 B9, l~m song nhi 하I l~ch, khf h~u nhi~t d&i va c~n nhi~t d&i. T~i Can Gier da ton t~i den hσn 100 gi0ng da t ma tren d6 da c6 ft nha t 30 gi ong di( t do tlm tha y da u vet tfch ti,! cua van h6a khao cδ (Nguy~n Kim Dung 1993). Trong nh6m di tfch Can Gio, hai di tfch Gi ong Ca Vo va Gi ong Ph~t Ia d~c tmng nhff t cho vung nay. L혐 0 21km Chum m9 fqi qun di tfch 6' Bδng Nai (Fontaine; Vu Cong Quy) Chum m9 fqi Cl'in Gi& (Nguyen Thi Hf!u) Trong cac di tfch Gi ong Ca Vo, Gi δng Ph~t da phat hi~n dtr9 C m9t so ltrq ng l&n cac di tfch m9 chum vδi m~t d9 d~m d~c. Phan lδn chum c6 hlnh cau, mi~ng got ho i khum, day tron, phan vanh mi~ng da bi ghe b6. Chiem so lα0 ng ft ho n Ia chum hlnh cft'u day ho n nhqn, mi 송 ng khum vt!a, mep mi~ng thuerng duσc ghe b~ng. Chiεu cao trung blnh cua chum tu 60-70cm, dk b1,mg ttrαng dtrαng v&i chie'u cao. Ngoai m~t chum thtrerng phu kfn van thung tho, phu ben ngoai van d~p tht!ng con c6 nhi!ng van chai cheo ho~c ngang than b~ng m9t lo~i que nhi 하j rang. Chtra tlm thay n~p d~y. Chum dtrq C lam tu dat set pha nhiεu cat tho c6 Ian nhisu ba thl!c v~t trong set lam cho xασng gom co mau den, xop va kha b&. Nhiel manh than chum c6 m9t lδp men m6ng bi chay. Ao gom c6 mau xam, dtrq'c trang trf van chai cheo ho~c th~ng tren ne'n van thifng dtrq c d~p vong quanh than. Ngoai ra con lo~i chum hlnh tr!} tha p, vanh mi~ng g~p xien vao trong, than th~ng, day hlnh cau d응t. Tren than dασc phu van thifng. Dtrerng kfnh m댄ng khoang 24cm, cao khoang 25-50cm. Lo~i nay c6 kfch thtr&c nh6 ho n chum hlnh cau va C디 ng chtra tlm dtrq C nap d~y. Nien d~i cua di chl Gi ong Ph~t, Gi ong Ca Vo 암10ang BP, trong d6 l&p m9 c6 nien d~i ttrσng dtrσng nh6m mi) chum Phu Hoa (Dong Nai) khoang BP (Nguy~n Thi H~u 2008:33) Giong Lδn (Ba Ria- V디 ng Tau) Di tfch Giong L&n doi di~n v&i Can Gier qua vinh Ge'nh Rai thui)c thanh pho Yung Tau. Qua 2 Ian khai qu~t v&i tren 500m2' t~i Gi ong L&n da phat hi~n di( u tfch cua 80 mi) tang trong d6 c6 9 mi) n oi VO gom. Lo~i hlnh noi/ VO tang cung cat mi~ng va dtrq c mai giong Gi ong Ca Vo. Cac mi) n oi & day c6 lach thtr&c nh6 ho n so v&i chum & Gi ong Ca Vo. Dtrerng kf nh than tu 35-50cm, than xuoi ho~c gay c6 de hlnh cau, tren than van tht!ng ho~c van khac v~ch. Ao gom mau trang bi bong nhi 하j ch6 khac v&i chum gom Giong Ca Vo c6 xααng gom cung chac. Nien d~i cua di tfch Gi ong L&n thu('>c giai do~n s&m cua van h6a Oc Eo, khoang 2000 BP (V디 Quoc Hien va nnk 2003) Lo~i hlnh m(> chum \;'.!하 Nam qua nghien ct!u I 215 cac giai doan phal tnen vi\ khu V\J'C phi\n bo
217 A M < O d m 뼈 h m. 때 4.1. Quan dao Con Da (Ba Ria- V디ng Tau) Con Dao la m()t huy~n dao, thu()c tinh Ba Ria- V디ng Tau, trong d6 nhfrng dja die'rn c6 da u vet mo quan tai gom la Con Hai Dang, va Con Mieu Ba (cu tru- mo tang), hai dja die'rn nay each nhau khoang 600m. Con Mieu Ba nien d~i the ky IV- V dεn II- II BP (Nguy~n Trung Chien va nnk 2003). Cac VO mo kha thong nhat v&i nhau vε mau s~c, chat li~u, do day, ki때 dang than cilng nhu duerng kinh ngang than. Phδ bien Ia Io~i vo cδ that mi~ng ho i loe xien, vai xuoi, bi,mg no day tron ho~c ho i IOi, mau VO nau do do c6 lδp a tho hoang & ca m~t trong va m~t ngoai (xong hay bi bong tr6c). Dk than r()ng nha t khoang 40-46cm, dk mi~ng trong khoang 13-33cm, chi 하l cao 암1oang 32-45cm. Xασng gom set rnn nhie'u tinh thε cat mau trang hong nga xam. Do nung 낭1a cao nhung khong de'u. Chum m(j hinh calt tc;i Con Mieu Ba (Nguyln Trung Chien) Gorn dασc n~n b~ng tay, cta u vet ban ke kha r6 & ben trong. Dau vet d~p hay chai tung do~n ng~n 때a mer nh~t & ben ngoai. Lo~i thil hai: vo c6 nu송ng r()ng, mep mi~ng gap c[1p vao trong, m~t c~t hlnh ch다 Vn~m, VO cang tron khong phan bi~t r6 vai- than, day tron IOi, XU'σng va bεm~t gom mau xam den. - Lo?i hlnh VO mo d?ng VO blnh c6 chan de. D~c diem chung cua ca nh6m binh VO Ia binh c6 vai xuoi gay, ger vai va vanh mi~ng c6 hang van an khfa each d해, t바 vai than thu nh6 dan vεday. Day hinh dau trilng, chan de choai tha p dαq'c gan va sau. nhfrng chiec blnh vai gay, mep mi송ng va vai d해 c6 ger, trang trf van an khfa, t?o ve ran roi cung cap. Duerng kfnh mi~ng tu 12cm- 14cm, duerng kinh r()ng nhflt 6' vai tu 2lcm- 26cm, chi 징j cao t바 14cm- 15cm. + Nap VO mo g om 3 kie'u dang chfnh: Nap c6 dang l δng ban c6 mim cam, nap up kin mi~ng cherm sang ca mot pha'n vai VO. Nap d?ng cmu hay bat l&n c6 chan de. Nap d~y d?ng ang hay c6ng nhtr & VO mo, lo?i nap nay khong c6 num cam. Mo tang Con Hai Dang c6 tfnh thong nmt vεki장l dang va kfch thu&c cua VO m(). LO?i VO mo hinh ca'u, than cong de'u & CδnHai Dang c디ng ton t?i trong nhi 히l dja di하n cua van h6a Sa Huynh nhtr Go Ma Voi, Con Rang, H~u Xa, Tien Lanh, Blnh Yen, X6m Oc, Suoi Chlnh, Hoa Diem... N~p d~y vo m() 암1a giong ki하 dang cua cac lo?i bat mam bong nhtrng pha'n chan de rat ngan, duerng kfnh r()ng va tr& thanh n[im cam. Vi~c to mau do ben ngoai cac quan tai gom δ Con Hai Dang c디ng da c6 trong nhi 하l dja die'm cua van h6a Sa Huynh, dien hlnh la D()ng Cuerm Mo chum tren dao Thδ Chu (PhU Quoc- Kien Giang) Quan dao Thδ Chu nay la xa Thδ Chau, huy~n PhU Quoc, ti따1 Kien Giang. Cach quan dao Phu Quoc 115km vεphfa tay nam, each ber bien Kien Giang chung 170km vεphia tay. T?i dia die'm Bai Dong, da 2161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218 phat hi~n va dao chfra chay mo chum, nam each mep mr&c bi하 cht!ng loom, cao ho n cht!ng 3,2m. Mo tang nay gom mot phffn mo chum hlnh tn'.rng bi mat phffn tren con cao 40cm va rong 47,5cm va mo hlnh ca'u day tron, mep day mau den dtrerng kinh mi~ng 26cm, ger ml송ng day 2,5cm, than n& tron deu dtrerng kfnh 55cm. Qua cac di tfch, di v~t, lo':li hlnh chum mo gom tren cac dao ven ber, c6 the'thay chung c6 mot so die'm tuσng dong v&i van h6a Sa Huynh va khu VIJC Dong Nam A hai dao. Van dεnay can tiep t1,1c dtr9 c nghien c[ru sau ho'n trong ttrσng lai. IV. M()t vai nh~n thrrc I. Do gom bat da'u duσc SU d1,1ng lam do cht'.ra dt,rng hai cot mai tang xuat hi~n t[r trong h~u ky theri da m&i- sσ ky kim khf Vi~t Nam,. Tuy nhien trong giai do':ln nay lo':li hlnh mo n oi VO gom con rat ft, chu yeu v~n la mo dat. Kie'u dang VO gom ciing giong nhtr nh 다ng do gia d1,1ng hang ngay va c6 kfch c& nho, thuoc lo':li n oi VO [lp nhau chon dung. Sang den theri dong thau, mo chum VO gom dtrσc tlm tha y trong cac di tfch ti 한I Sa Huynh- Sa Huynh & ven bi하 mi 해 Trung Vi~t Nam va Tay Nguyen. Trong cac giai do<:in Long Th<:inh, Blnh Chau mo chum VO gom xuat hi~n kha nhi 하l. LO<:li hlnh mo n oi VO up nhau tu trong giai do<:io SCrm V~n t 011 t':li Va phat tn하1. Trong hffu het cac di tfch thuoc cac giai do':ln nay deu tlm tha y lo':li hlnh mo n oi VO up nhau VO i so ltrσng nhieu ho n trong giai do':ln Bau Tr6. Ben C<:lnh d6 trong giai do<:in Long Th<:inh, xuat hi~n lo':li hlnh mo chum c6 kfch thtr&c lδn, c6 nap d~y dtr9 C trang trf ca u ky. Lo':li h1nh mo chum nay ch~c h~n dtr9 c san xuat rieng bi~t ph1,1c VJ,1 cho vi~c mai tang. any Nguyen, mo noi VO xuat hi~n trong cac di tfch giai do<:in van h6a Lung Leng. Cac lo':li hlnh chum VO da d<:!ng va nhi 하l ki하 dang chum vo kha gffn gui v&i van h6a Sa Huynh & mi 한1 Trung, the hi 송n moi quan h~ ngu on goc va giao ltru van h6a gi 다a cac cong dong Ctr dan & cac vung nay. Den theri S~t s&m, do gom s다 d1,1ng lam do cht'.ra dt,rng xtrσng cot ngtreri chet phat tri하1 rong 상l~p Vi~t Nam, trong van h6a Dong So n & phfa bac, trong van h6a Sa Huynh & miεn Trung, trong cac van h6a theri d<:ii sat s&m 6 Dong Nam Bo, dao ven ber va Tay Nguyen. Tuy nhien, mo chum VO tro thanh d~c trαng die'n hlnh nhat, d~m d~c va da d<:mg nhat v~n la trong van h6a Sa Huynh & 미a ban mi 하1 Trung Vi~t Nam. 2. Dt,ra vao dja ban phan bo, nh 다ng tασng dong gifra lo':li hlnh do gom quan tai, c6 st,r phat trien tu van h6a Bau Tr6 len de giai do':ln Long Th<:lnh- Blnh Chau- Sa Huynh & mi 하1 Trung Vi~t Nam. Mi)t con dtrerng phat tn징1 khac ta tu cac di tfch theri d Ong thau δ Tay Nguyen g6p phan hlnh thanh nen truy 하1 thong mi) quan tai gom & Sa Huynh St,r phat tri하1 ID':lnh me cua lo':li hlnh mo chum cua van h6a Sa Huynh vao theri ky d 0 s~t C디ng c6 SIJ Ian toa m':lnh me ra cac vung tan C<:lnh nhtr van h6a Dong So n & ltru VIJC song Ca, nh6m cac di tfch & vung Dong Nam Bova vung dao ven ber. Lo':li hlnh chum vo gom Sa Huynh & phfa B~c anh htrδng den van h6adong So n lo':li hlnh Lang Y<:ic, trong khi lo':li hlnh chum vo gom Sa Huynh & phfa Nam thεhi~n nhi 히j Lo~i hlnh m\> chum ".'.i~t Nam qua nghien cuu I 217 cac giai OO~n phat tnen Va khu V\fC phan bo
219 die'm tuσng dong v&i cac lo~i hlnh chum m9 & Dong Nam B9 va vung hai dao. Tren m9t so dao ven ber & mi en Trung va mi 하1 Nam da tlm duαc cac m9 n oi. Cac dao la vung vanh dai tren tu yen duerng giao luu gi 당a cac cα dan Sa Huynh δ mi 하1 Trung va ctr dan theri d~i s~t sδm & Dong Nam B9 v&i khu VlJC Dong Nam A hai dao. 3. Trong cac van h6a xuat hi~n m9 chum gom δ Vi~t Nam, c6 thεtha y cu dan Sa Huynh thεhi~n kha ro moi quan M giao tuu trao d야 v&i cac ctr dan vung Dong Nam A hai dao. Chung ct! the hi~n moi quan h~ nay bie'u hi~n tren m9t so lci하 dang, hoa van tren do gom va m9t so lcie'u dang chum gom. 4. Truy 히1 thong tang tl,lc dung m9 chum vo gom la m9t hi~n tασng xuat hi 송n & nhi 하l n[ri tren the gtδl trong giai do~n sδm nhat la h~u ky da m&i- sσ ky kim khf. a khu VlJC Dong A, m9 chum VO gom dtr9 C tlm thfly & Nh~t, Han Quoc, Trung Quoc T~i Dong Nam A m9 chum xuat hi~n & mi 하l b~c Luzon va Palawan (Philippines), hang Niah (Malaysia), Indonesia, Thung Kla (Thai Lan). T~i Vi~t Nam truy 하1 thong tang tvc m9 chum VO cling xuat hi~n tlr giai do~n h~u ky da m&i- SO' ky kim khf & mi 하l Trung va Tay Nguyen, M~c du c6 cling tang tl,lc m9 chum vo gom, xong each thilc xu ly cua m6i nh6m cu dan & m6i l~i khac nhau, r6 r~t nhat la lo~i hlnh va trang trf tren chum VO gom, each tht!c chon cat, each s~p xep do tuy tang... Nhling d~c die'm tang tl,ic nay du9 c hlnh thanh b&i cac ye u to moi truerng dia I y, tδcht!c xa h9i va tfn nguo ng cua m6i c()ng dong ctr dan khac nhau. Tai li~u tham kh3 I. Bui Chf Hoang, Yamagata Mariko, Nguyen Kim Dung Khai qu~t Hoa Diem Khanh Hoa, thang 1/2007. Trong NPHMKCH nam Nxb T바 Die'n Bach Khoa. Trl Bui Van Liem Danh gia gia tri ljch su -van h6a cac di tich th&i dai Sat s&m m&i phat hi~n va nghien cli'u & B~c Vi송t Nam ti! nam 1998 den Bεtai khoa hoc dip Bo, Tu li~u Vi~n Khao cδ hoc. 3. Bui Van Liem Nghien cuu, danh gia gia tri lich su van h6a Vi~t Nam qua cac di tich khao cδ th&i SO' su duo C phat hi~n & miεn Trung va Tay Nguyen tu nam 1998 oen Bεtai cap Bi), Ttr li~u Vi~n Kha cδhoc. 4. Keiji Imamura, Chu Van Tan The Lang Vac sites. The Vietnam- Japan joint Archaeological research team. 5. Lam Thi My Dung Ve' tiεn Sa Huynh & Trung Truog B9 Vi~t Nam. Trong M9t the ky khao cδ hoc 6. Ngo Sy Hong M9 vo 6 Vi~t Nam- Ttr li~u va nh~n thli'c. Tap chf Khao cδhoc so 3: Nguyen Kim Dung Bao cao khai qu~t di chi Gi ong Ph~t. Bao cao 때ai qu~t, Tα li~u Vi~n Khao cδhoc 2181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220 8. Nguy6n Thi H~u Van h6a m9 chum" trong theri d~i kim khf Viet Nam va Dong Sσn. T~p chf Khao co hoc so 4: Nguy6n Trung Chien, Dao Quy Canh Ghi chu vεm9t lo~i hlnh vo tang m&i δ dia die'm Con Mieu Ba, huyen Con Dao, Ba Ria- Viing Tau. NPHMVKCH, Nxb KHXH, Ha N9i: Vii Cong Quy Van h6a Sa Huynh. Nxb Van h6a Dan t9c, Ha N9i 11. V디 Qu6c Hien, Chu Van ve, Le Van Chien Ket qua khai qu~t di chl Giong L&n (Viing Tau). Trong NPHMVKCH nam 2003: Yamagata Mariko (2008). Archaeological Reseach on the Prehistoric Interrelations beyond the South China Sea. Report of Grant- in-aid for Scientific Reseach (C) ( No ). Waseda University Lo~i hlnh m(j chum Yi히 Nam qua nghien c~u I 219 cac giai doan phat tn하1 va khu V\fC phan bo
221 220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222 09 번역문 베트남옹관의 면모 -발전과정 및 분포지 역 연구- 부이 반 리엠부소장 황튀 꾸인 석사 (베트남 고고학연구원 ). 신석기시대 후기와 청동기시대 초기 베트남옹관의면모 II. 청동시대 베트남 옹관의 면모 Ill. 철기시대 초기 베트남 옹관의 면모 IV. 결론 베트남에서는 일찍부터 토기를 매장용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옹관의 개 념은 냄비형 토기나 단지, 병, 옹기 등이 세로 혹은 가로로 매장된 각종 토기 유형을 가리키는 것이 다. 이러한 옹관은 발전과정과 사용지역에 따라 다양성을 가지면서 지역문화의 특징을 상징하기 때 문에큰의의가있다.. 신석기시대 후기와 청동기시대 초기 베트남 옹관의 먼모 베트남에서 큰 단지를 사용하는 관(이하 단지관이라고 함)이 처음 출토된 것은 신석기시대 후기 에서 청동기시대 초기이다. 베트남 북중부 연해의 평지에 형성된 바오 쪼 (Bau Tr6) 문화에 해당하는 유적에서 발굴된 것이다 (Ngo Sy Hong, 1988). 이 시기에는단지관의 사용 빈도가높지 않았으며 덴 도이 (D 때 Doi), 관넨 (Con N 해)과 타익 럼 (Th~ch Lam) 3개의 유적에서만 발굴되었다. 단지관은 두 개의 단지를 이어 붙인 것이며 세로로 매장되었다. 발굴된 3개의 단지관 가운데 댄 도이 단지관에서 는유아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바오 쪼 (Bau Tr6) 문화의 단지관은 대부분 크 기가 작고 동일한 모양으로 출토되었다. 단지의 밑바닥은 동그란 모양이 있으며 단지는 견부가 넓다가 저부 쪽으로 갈수록 더 작아지는 것이다. 단지의 외면에는 적 색으로 염색되며 맛줄무늬가 장식돼있다. 푸껑은 주로 둥근 모양의 작은 단지 로사용하였다. 사진 1. 곤넨에서 출토된 단지관 (사진 핍티닌 (Ph~m Thj Ninh)) Lo~i hlnh m(\ chum Viet Nam qua nghien cuu I 221 CaC giai OO~n phat trie'n Va khu V\fC phan bδ
223 . 청동시대 베트남 옹관의 면모 1. 베트남 중부지방 청동시대 옹관의 면모 베트남 옹관은 청동시대 중부지방에서 사용빈도가 점 차 많아졌다. 베트남 중부지방의 청동시기에 대한 연구 는 아직 미흡하지만 연구자들의 보편적인 입장에 따르면 중부지방 청동시대에는 씀 콘 (X6m Con) 문화가 있으며 롱 타인 (Long Th;;mh) 시 기와 빙 쩌오 (Bl nh Chau) 시 기 로 구별된다. 롱 타인 시기는 청동시대 초기부터 베트남 중부 연해 지역에서 형성된 것이며 이시기의 옹관은 주로 큰 단지 위에 냄비를 이어서 붙이며 세로로 매장된 것이었다. 이 시기에 옹관이 대형화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단지-냄비 옹관은 주로 브언 명 퀘 박 (Y U'O>n Dlnh-Khue B~c), 바오 짱 (B a u Tram), 땀 튀 박 (D~m Thuy B~c), 쭈엉 새 (Truong, - 도면 1 브언 띨-퀘 박(Vll'O>n Dlnh-Khue Bae) 유적지에서 발굴된 단지형 옹관 (럼 티 미 중(Lam Thi My Dung)의 사진) Xe), 롱 타인 (Long Th~nh) 유적에서 발굴되었다. 단지- 냄비 결합형 옹관의 경우 옹관의 통은 큰 단지로, 옹관의 뚜껑은 둥근 냄비 모양으로 만들어져 사용 되 었다. 바이 옹 (Bai Ong) 유적이나 쭈영 째 (Truong Xe) 유적에서 발굴된 이 런 단지 -냄비형 옹관 은 옹관 주변에 잔돌을 끼워 놓였으며 브언 명-퀘 박 유적 또는 땀 튀 박 유적의 경우는 관 안쪽과 바깥쪽에 숭과 부장품도 발견되었다. 이 시기 옹관의 모양은 대부분 원형으로 제작되었으며 높이는 40 50cm, 가장 큰 몸통부분의 넓이는 40 50cm, 구연부 직경은 30 40cm 이다. 냄비형 뚜껑도 원 형으로 제작되었으면서 대부분 테가 없는 것으로 출토되었다. 롱 타인 (Long Thanh) 시기의 2 번째 옹관유형은 롱 타인 유적에서만 발굴된 대형 옹관이다. 이 러한 형태의 옹관은 이롱 타인유적지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부장품은 토기나 돌로 만든 가구 등이 옹 관 안쪽에 놓였있으며 옹관 뚜껑 위에 놓인 부장품 하나가 출토되었다. 이 대형옹관은 밑바닥이 둥글며 동제부 보다 어깨 부분이 더 불룩한 형태이다. 구연 부분이 약 간 나팔모양과 비슷하다. 바깥쪽에는 조개와 다양한 무늬가 새겨있었다 이 대형 옹관은 높이가 큰 타원형 옹관 및 작은 타원형 옹관의 2가지 종류로 나윈다. 타원형 옹관의 평균 높이는 70cm, 동체부 의 평균 넓이는 60cm, 구연부의 넓이는 45cm. 롱 타인시기에서 출토된 단지와 냄비를 이어붙이는 옹 관은 바오 쪼 문화 시기의 옹관전통을 계승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베트남 연구자들이 동일한 견해를 갖고 있다 (Ngo Sy Hong, 1988 ; Lam Thi My Dung, 2001) 이런 옹관전통 외에 롱 타인 문화에서 뚜껑 이 단순한 덮개가 아니고 세밀하게 장식되어 자체적인 기능을 갖는 대형 옹관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다른 청동기시대 초기의 유적과 같이 청동기 시대 후기인 빙 쩌오 (Blnh Chau) 시기 유적들이 베트남 중부 연해지역의 모래언덕이나 섬에서 분포되어 있었는데 주로 광남 (Quang Nam) 성과 광 응아이 (Quang N gai) 성에서 가장 많이 발굴되었다. 따라서 청동기시대 초기 주민의 거주 지역이 청동기시 2221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224 대 후기 주민의 거주 지역과 동일하게 나타났다. 옹관매장지는 쏟옥(Xom Oc) 유적의 경우바로 거주 지역에서 발굴되었으며 또는 거주지역과 별도로 매장된 유적도 발굴되었다. 발굴된 무 덤에서 주로 부장품과 모래만 남아있었으며 유골이 출토된 것이 거의 없었다, 다만 빙 쩌오 (Binh 초며) II 및 쏟 옥(Xom Oc) 유 적의 경우는 단지와 냄비를 이어 붙인 옹관에서 사람의 유골이 발굴되었다. 유골 확인 결과 모두 유아로 판명되었다. 빙 쩌오 시기의 옹관은 널리 분포된 롱 타인 (Long Thanh) 시기의 옹관과 달리 보편적이지 않았으며 옹관의 유형이 주로 작은 단지, 토기냄비이었으며 뚜껑이 없거나 큰 그릇 또한 작은 단지로 이어붙인 것으로 출토되었다. 베트남 남부지역의 경우 씀 몬(Xom Con)문화 후기에 단 사진 2. 지-냄비 결합된 옹관이 출현하기 시작하였는데 빙 이엔 (Vinh Yen )유적지에서만 발굴되었다. 옹관 의 입구부분이 나팔모양과 같으며 몸통부분이 원형으로 전면이 줄기무늬로 장식되었다. 옹관 밑바닥 의 직경이 평균 35 40cm 이며 세로로 매장되었는데 부장품이나 유골이 없으며 흑색 모래만 있었다. 2. 베트남 떠이 응웬 (Tay Nguyen) 고원지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의 옹관 떠이 응웬은베트남중부서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부연해를따라뻗어있는산지지역이다. 최 근에 떠이 응웬 지역에서 수백여 곳의 고고유적이 발견되었으며 발굴된 유물들로 볼 때 주로 신석기 시대 후기부터 청동기시대 초기까지의 유적들이다. 특히 변 호 (Bi e n Ho)와 롱랭 (Lung Leng) 유적 에서는 수백 개의 도자기 옹관이 발굴되었다. 변호 유적에서 발굴된 옹관의 수는 약간 적지만 롱랭 유적 및 프레이 크롱 (Plei Krong) 수력발전소의 호수 바닥에서 발굴된 토기 옹관의 수는 수백 개가 있었다. 발굴된 옹관의 매장형식 및 도자기를 옹관으로 사용하는 습관을 볼 때 싸 후인 (Sa Huynh) 문화시기 및 前 싸 후인 문화시기의 사용습관과 같다고 본다. 롱랭의 옹관유형이 매우 다양하며 대형옹관도 원형옹관, 뾰쪽한 바닥 옹관, 냄비형, 단지형 옹 관 등이 있다. 대형옹관의 유형은 타원형옹관, 원통형 옹관, 원형옹관, 뾰쪽한 바닥 옹관 등이 있다. 타원형 옹관은 보편적인 옹관유형인데 구연부가 나팔모양과 같으며 어깨부분이 불룩하고 바닥으 로 갈수록 작아지는 것이다. 바닥이 약간 구부러지면서 불룩한 모양인데 동체부의 두께가 매우 두꺼 우며 무늬가 없거나 줄무늬로 장식되었다. 옹관의 무늬는 입구 안쪽에 장식되어있으며 입구의 직경 은 60 75cm, 높이는 SO cm 정도이다. 이런 타원형 및 반 타원형 옹관은 싸 후인 롱 타인 (S a Huynh - Long Thanh) 옹관 및 싸 후인-꼬 마 보이 (Go Ma Voi) 의 옹관과 비슷해 보인다. 원통형 옹관은 몽통이 원통형과 비슷하며 어깨부분이 불룩하면서 바닥 쪽으로 갈수록 몽통이 좁 아지는것이다. 원통형 옹관의 뚜껑은다른옹기의 밑바닥이나불룩한둥근뚜껑이 별도로사용되기 도 하였다. 원통형 옹관의 높이는 60 90cm, 몽통의 직경은 50 60cm 정도이다. 뾰쪽한 바닥이 있는 옹관은 다시 2가지 형식으로 나눌 수 있다. 1형식은 옹관의 몸통과 입구가 넓 Loai hlnh rn(\ churn Viet Nam qua nghien cuu I 223 cac giai cloan phat trie n Va khu V\fC phan bo
225 으면서 서로 구별되지 않는다. 구연부와 동체부는 저부로 갈수록 직경이 작아지며 좁아든다. 원통형 옹관의 규격은높이가 60 80cm, 입구직경이 cm. 2형식은바닥이 뾰쪽하고몸통중간부분이 불룩하다. 구연부가 나팔모양이며 견부에는 두꺼운 장치가 있다. 동체 하부에는 줄무늬 장식이 있어 서 구연직경이 약 40cm, 동체부 직경 66cm, 옹관의 전체 높이는 60cm로 확인되었다. 원헝 옹관 ; 원형옹관의 수량은 적다. 몸통이 원형으로 밑바닥이 약간 불룩해 보인다 구연부는 깨졌으며 구경은 60 70cm 이며 높이는 60 70cm 이다. 작은 규격의 도자기 ; 원형단지, 合 口 式 단지와 냄비, 합구식 냄비와 큰 병이 있다. 원형 단지와 냄비가 합구되는 옹관은 상당히 보편적이다. 아랫 단지 및 윗 냄비의 구연부는 대부 분 깨뜨렸다. 이 옹관의 규격은 구경 32.3cm, 동체부 직경 42. lcm 이며 높이는 40.2cm 이다. 단지-냄비 합구식 옹관 : 아래쪽 단지는 몸통 중간 부분이 불룩해지며 바닥의 받침대가 높고 세 로로 세워진 것이다. 위쪽 냄비는 원형으로 보이며 동근 바닥과 나팔모양의 입구가 있다. 냄비의 몸 통에는 줄무늬 장식이 있다 단지와 냄비의 구연부는 깨진 상태로 출토되었다.. 철기시대 초기의 베트남 옹관 1. 동 선 (Dong Son) 문화의 베트남 옹관 동 선 문화는 베트남 철기시대 초기 무렴 베트남 북부지방에서 고도로 발전된 고대문화이다. 동 선 문화 주민들의 매장 습관은 땅에 바로 묻는 토광묘 (m9 dat - 땅무덤) 혹은 나무관(큰 나무통을 그 대로 이용하여 시신이 들어갈수 있도록 빈 공간을뚫는 것)으로 매장하였지만쏟마강 (Song Ma- 馬 江 ) 및 쏟 까(Song Ca) 강 유역에서는 옹관으로 매장하는 습관이 보편적으로 확인된다. 쏟 홍강( 紅 河 Song Hong) 유역의 경우는 단지관이 푸 토 (Phu Th이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꼬 째 (Go De) 유적과 랑 까(Lang Ca) 유적에서만 발굴되었다. 이 지역의 단지관은 나팔모양의 구연부, 평평한 저부 및 불룩한 동체에 줄기무늬가 새겨있다. 전체 높이는 42 50cm, 구경은 33 60cm 이며 뚜껑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 단지관은 세로로 매장되었다. 이런 단지-냄비식 옹관의 매장 습관은 동 선 문화 유적이나 쏟 마강 유역의 유적에서도 확인된 다. 냄비와 단지를 이어 붙인 옹관은 동 선 문화 및 쏟 마강 문화의 대표적인 특정이며 모든 매장유 적에서 발견되었다. 윗부분이 아랫부분과 合 口 되며 세로로 매장되면서 단독적으로 매장되거나 땅무 덤과 함께 부가적으로 매장되거나 한 쌍으로 같이 매장된 경우도 확인된다. 대부분이 단지와 냄비를 이어 붙인 옹관이다 특히 누이 (Nui) 유적과 멘 똥 꼬 (Den Dong Co) 유적에서 4개의 냄비가 입구 와 바닥을 나란히 이어 붙인 것이며 맨 끝에 있는 냄비는 옆 냄비와 합구식으로 출토되었다. 동 선 문화 냄비관의 모양은 좁은 입구, 짧은 목, 불룩한 어깨 그리고 바닥 쪽으로 원통형의 몸통이 작아지 면서 앓은 받침대 등으로 대부분 비슷하게 보인다. 바깥에는 줄기무늬가 있으며 옹관의 평균 크기가 작다. 구경은 약 30cm, 높이는 29cm 이다. 단지관의 경우 똥 응엄 (Dong Ngam), 황 리 (Hoang Li) 및 펜 똥 꼬 (Den Dong Co) 유적에서 발굴된 단지관은 길이가 약 60 80cm, 넓이는 cm 이며 합구식이나 아래 단지의 입구가 위의 단지 바닥을 이여 붙인 형식이 보편적이다. 특히 위의 단지 바 2241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226 닥이 아래 단지 입구에 알맞게 연결할 수 있도록 윗 단지의 받침대를 깨뜨린 경우도 있다. 보통 세 번째로 연결된 단지는 기존 2개의 단지와 다른 종류를 쓰이게 출토되었다, 동 선 문화와 쏟 마 문화 의 냄비-단지형 옹관은 쏟 마 지역에서 형성되었던 前 동 선 문화의 전통을 계승되는 것으로 추정된 다. 동 선 문화 시기의 매장 유적에서 발굴된 결과를 보변 동 선 문화 보다 더 일찍 형성된 문화흔적 과 前 동 선 문화의 옹관이 존재하고 있다. 쏟 까(Song Ca)강 유역에서 발굴된 냄비-단지 연결된 옹관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게 나타났다. 다른 지역과 같이 세로로 매장된 냄비-단지가 연결된 옹관이 존재하지만 세 개의 냄비-단지를 나 란히 연결되며 가로로 매장된 것도 출토되었다. 쏟 까강 지역의 옹관 유형은 2가지가 있는데 가로 로 매장된 합구식 옹관 및 뚜껑이 있고 세로로 매장된 단독 옹관이 있다. 옹관의 입구부분이 나팔모 양과 같으며 목 부분이 줄로 묶을 수 있도록 비좁게 제작되었으며 어깨가 넓게 불룩하면서 바닥 쪽 으로 좁아지며 받침대에는 더러 구멍이 있는 것이 있다. 옹관의 몸통에는 줄기무늬가 있으며 뚜껑은 약간뾰쪽한모양이다. 단지와 단지를 이어 붙인 옹관의 경우는 2개의 비슷한 단지로 합구식으로 연결되어 있었지만 윗 단지의 입구를 아랫단지의 입구에 알맞게 투입하여 연결할 수 있도록 맨 위에 있는 부분을 깨뜨렸다. 도 선 문화의 옹관 가운데 랑 박 (Lang Vac) 에서 발굴된 옹관이 쏟 홍강 문화와 쏟 마강 문화의 옹 관 보다 크기가 더 큰 것으로 확인됐다. 옹관의 높이는 42 48cm 이며 몸통의 가장 넓은 부분이 옹관 의 높이보다 더 큰 것이다. 냄비와 단지모양 토기를 이 어 붙인 옹관으로 세로로 매장한 습관은 쏟 마 (Song Ma) 강 유역 /따느펴 에서 형성된 동 선 유적이나 쏟 홍 (Song 성된 랑 가 (Lang 째 (Go Hong)강 유역에서 형 Ca) 유적, 꼬 De) 유적의 매우 보편적 인 현상이다. 특히 이런 습관은 베트남 중부 및 남부 지역에서 형성된 싸 후인 (Sa Huynh) 문 화의 매장 특정이 되었다, 그러 r \ ) / / π 나 단지와 단지를 이어 연결되며 가로로 매장된 옹관은 쏟 까(Song Ca) 유역에서 형성된 동 선문화 유형에 부속한 랑 1:l 도먼 2. 랑 박(Lang Vac)의 옹관(Keiji Imamura. Chu Van Tan 2004) (Lang Vac)유적지 및 쏟 마 (Song Ma) 강 유역에서만 발굴되었다. 이런 매장습 관이 태국의 철기 시대 초기에 형성된 유적에서도 발굴되었다 (Bui Van Liem 2010). 결론은 선문화 옹관의 규격이 대부분 일반 도자기 가구와 비슷하게 출토되었으며 종류 및 매장 형식이 다양하다는 점이다. 발굴된 옹관들이 더러 어린이의 유골이나 유골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여 서 이런 옹관종류는 주로 이장(개장)이나 어린이의 묘지라고 침작했지만 명확한 근거가 아직 없다, Lo~i hlnh m9 chum Y!하 Nam qua nghien c;,t!u I 225 cac giai doan phat trien va khu V\l'C phan bo
227 2. 싸 후인 (Sa Huynh) 문화의 옹관 현재까지의 확인된 바에 따르면 싸 후인 문화에 속한 발굴된 유적지는 약 90 개가 있으며 베트남 중부지방의 산지, 평지, 연해, 섬 등의 다양한 지형에 분포한다 싸 후인 문화의 유적지는 주로 매장 유구이며 생활유적(주거지)에서 발굴된 사례는 드물다. 매장유구에서 발굴된 것은 대부분 옹관이며 더 러 토광묘와 함께 확인되기도 한다. 옹관으로 매장하는 싸 후인문화의 습관은 매우 다양하다. 단독 옹관이 매장되거나 두 개의 옹관을 합구한 옹관도 출토되었다. 여러 옹관들이 나란히 매장되거나 장 기판처럼 안치된옹관무리도 있다. 이런옹관무덤들이 이장된유골, 화장된재 또는일반적인옹관 의 유골이 확인된다. 부장품은 주로 토기 철기 청동기 및 수정이나 구슬로 만든 장식품들이 있다. 싸후인 문화의 옹관은 지역에 따라다양한종류가 있지만 베트남고고학자에 따라서 중중부지역의 싸 후인 문화 옹관 및 남중부지역의 싸 후인 문화 옹관의 2가지 종류로 대별된다. 첫 번째 옹관종류 - 중중부지 역의 싸 후인 문화 옹관 이 종류는 크기가 크고 다양한 형태로 발굴되었으며 대표적인 옹관의 형태는 둔각 삼각형 뚜껑 이 있는 원통형 옹관이다. 이런 종류의 수량이 많으며 변형된 것도 많기 때문에 싸 후인 문화의 모든 매장유구에서 발굴되었다 이 옹관의 종류는 나팔모양 구연부와 수직형 동체 그리고 불룩하거나 평 평한 바닥이 있다. 크기는 높이는 70 llocm 구경은 40 60cm 이다. 꼬 즈어 (Go Dua) 유적에서 출 토된 옹관은 지금까지 확인된 옹관 중 가장 큰 옹관이며 높이는 135cm 이다. 안 방 (An Bang) 유적에 서 확인된 안 방 옹관의 경우 높이는 42cm 구경은 46.6cm 로 가장 작은 옹관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은 옹관종류의 뚜껑에는 줄기무늬와 다양한 색깔로 장식되어 있다 두 번째 옹관종류 - 남중부지역의 싸후인 문화옹관 이 종류는 타원형으로 많은 변형이 있는데 前 싸 후인 문화 지 역 인 롱 타인 (Long Thanh) 유적에 서 가장 많이 출토되었다 이 타원형 옹관의 평균높이는 60 70cm 이며 몸통이 불룩해서 끈 랑 (Con Rang), 꼬 마 보이 (Go Ma Voi), 꼬 묘 옹 (Go Mieu Ong), 허우 싸(Hau Xa), 타익 빅 (Thach Bich) 등의 유적에서 발굴되었다. 세 번째 옹관종류 - 냄비와단지 합구식 옹관 이 옹관종류는 위에 언급한 2가지의 종류와 비교하면 그 규격이 상당히 작은 편이다. 평균 높이 는 20 40cm 이다. 이 종류의 규격과 모양이 매우 다양하며 지방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으며 뚜껑모 양이 알은 둔각삼각형과 같다. 이런 냄비-단지 합구식 옹관 종류는 원통형옹관 및 타원형 옹관과 같 은 매장유구에서 출토되었다. 네 번째 옹관종류 원통형의 변형된 옹관(복숭아형 옹관이라고도 함). 이 종류는 꼬 마 보이 (Go Ma Voi) 에서만 확인된다 얄은 둔각삼각형모양의 뚜껑이 있는 타원형 옹관및 원통형 옹관의 규격과모양이 발굴조사지역마다거의 비슷하게 보인다 고분을 통해 온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228 , ;. ι,r. BIEN DONG j "'~ )" " ' - ( 니 h니 chkh Tr lff>ch 씨 kf i 찌 f ; ( ~c di ti<h S l fl u} h ν v 삐 사 r C;iL 나l 11d1T1"C u. Huy1써 IJ 11'~ lm 도먼 3. 베트남중부의 前 싸 후인문화 유적 분포지도 Lo~ i hlnh mo chum \'.)하 Nam qua ngh ien cu-u I 227 cac gia i do~n phat tne'n vii khu V\f"C phiin bo
229 다섯 번째 옹관종류 - 병과 단지 합구식 옹관 이 종류는 바이 꼬이 (Bai Coi) 유적에서만 확인된다. 바이 꼬이 유적은 싸 후인 문화의 맨 북쪽 지역에 위치하기 때문에 동 선 (Dong Son) 문화의 영향이 가장 많이 보인다. 토기 병은 높고 넓게 펴 지는 받침대가 있으며 병의 입구 위에 토기 냄비가 아랫 병의 어깨 부분까지 덮어 붙였다. 베트남 남중부지역 대부분의 옹관은 크기가 작고 원형과 비슷하며 다양하게 제작되었다 옹관의 종류는 기본적으로 2가지가 있다. 첫 번째 종류는 원형 옹기 또는 단지로 사용된 옹관인데 구연부분 을 고의적으로 갈거나 깨뜨렸다. 이 원형옹관의 불룩한 몸통에 회색 줄기무늬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동체부의 평균 직경은 45 75cm 이며 높이는 20 60cm 이다 (Bui Chf Hoang, 2008).,,; l1<}p 니 an ili gom S Huynh hfr Ii> h l 1u: 111 ai S ) 111 Sa lluynh '" 쫓 I ζ= "-!d 4 훌 n 鐵 짧 -휩 f j 괜 끼/ ) 짝많 션편 繼 f / >/ 도먼 4. 싸 후인문화의 단지와 옹기 종류 繼 聽 똥륜훌론 -// μ그흔호i /ι쩔황판 화 찌엄 (Ho a Diem) 유적과 꼬 봉 쩌우 (Go Bong Dau) 유적에서는 어깨부분을 깨뜨린 옹관 조 각이 발굴되었는데 이 옹관의 형태는 건 저 (Can Gi이 지역에서 발굴된 옹관과 비슷하다. 두 번째 종류는 옹관의 몸통 중간 부분이 휘어져 있고 바닥은 원형이다 이 옹관은 2가지 유형 이 있는데 1유형은 넓고 외반하는 구연부, 구연부에 알락무늬가 그려져 있다. 뚜껑으로 사용된 토기 는 높은 받침대가 있는 토기인데 전변에 알락무늬가 있다 (Yamagata Mariko, 2008). 2유형은 나팔모 양의 입구에 조개무늬 및 줄기무늬가 그려져 있으며 크고 약간 구부린 뚜껑에 S자의 섬세한 무늬도 그려져 있다. 뚜껑 위에는 큰 손잡이가 있다. 이 두 개의 옹관 유형은 화 찌엄 유적에서만 발굴된다. 크기는 높이 40 45cm, 구경 30 40cm, 동체 직경 50 70cm 이다 고문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230 정리하면 남부 싸 후인 문화 옹관의 가장 큰 특정은 몽통이 원형으로 제작되며 구연부를 깨뜨린 다는 점이다. 화 찌엄 지역의 옹관은 베트남 남부지역의 경우 단지를 옹관으로 사용하는 반면 중부 지역은냄비를옹관으로사용한전통이 있다. 3. 베트남 동남부지역의 철 기시대 초기 의 옹관 1) 동나이지역의 옹관 동 나이 (Dong Nai) 성에 위치하고 있는 쑤원 록 (Xuan Loe)읍 주변에 5 15km거 리로 위치하는 쑤오이 곤 (Suoi Con), 쩌우 쩌이 (Dau Giay), 푸화(Phu Hoa), 항 몬(Hang Gon) 유적지들에서 옹 관이 발굴되었는데 이 유적들은 대부분 황토언덕에 위치한다. 이 유적에서 발굴된 옹관은 타원형 원형 몸통부분이 휘어있는 냄비형 옹관 등이 있다. 타원형 옹관은 쩌우 쩌이 유적 푸 화 유적 항 관 유적에서 발굴되었다. 이 타원형 옹관은 좁은 목과 어깨 가 있으며 바닥이 둥글고 불룩한 형태이다. 어깨부분과 몽통에 줄기무늬가 그려져 있다. 규격은 높 이 65cm, 구연직경 30cm, 동체직경 50cm 이다. 원형옹관의 경우는쑤오이 꽁유적 항몬유적에서 발굴되었다. 원형옹관의 특징은 넓게 바라지 는구연부, 좁은목, 원형의 몸통, 둥근바닥등이다. 이 지역의 원형옹관의 형태는중부지방의 싸후 인 문화의 원형옹관과 비슷하지만 규격이 중부지방 옹관보다 더 크다. 구체적인 규격은 높이 50cm, 구연직경 45 50cm, 동체직경 60cm 이다. 어깨부분에는 줄기무늬가 그려져 있다. 냄비형 옹관의 특정은 넓게 바라지는 구연 좁은 목 어깨와 몸통이 앓고 편평한 둥근 바닥 쪽 으로 갈수록 더 넓어지는 직선과 같다. 이 옹관의 종류는 푸 화 유적, 항 곤 유적에서 발굴되었다. 규격은 높이 약 30cm, 구연직경 45cm, 동체직경 40cm 이다. 옹관의 푸껑은 모두 확인되지 않았다. 방사성탄소연대에 따른 결과를 볼 때 이 유적들은 철기시대 초기에 형성되었지만 어떤 연구자는 이지역의 유적지들이 베트남중부의 싸후인문화에 속한다는 의견이 있다 (Y 디 Cong Quy, 199이. 또한 베트남 동남부지역에서 형성된 쪽 쭈아 (Doc Chua) 문화에 속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 O 20cm 도면 5. 동 나 O l(dong Nai)지역 유적지의 옹관(Vu Cong Quy의 그림) Lo~i hlnh m('> chum ~!et Nam qua nghien ct!u I 229 coc giai OOall phat tneh va khu V\fC phan bo
231 2) 건 쩌 (Can Gio) 지역의 옹관 건 쩌 지역은 동 나이 (Dong Nai) 강과 싸이 곤 (Sai Gon) 강이 합류된 곳에서 형성된 동 나이 삼 각주의 일부 지역이다. 따라서 건 쩌 지역은 강과 습지가 많은 베트남 동남부 지방의 특정을 가지면 서 열대기후 혹은 아열대 기후를 보인다. Kirn Dung, 1993). 건 쩌 지역에는 30 여 개의 발굴조사 지역이 있다 (Ng u y~ n 건 쩌 유적의 특정을 대표하는 곳은 종 까 보(Giong Ca Vo)와 종 렛 (Giong Phet) 유적이다. 종 까 보 유적과 종 렛 유적에서는 옹관의 수량이 많고 높은 밀집도를 보이며 발굴되었다. 이 지역 대 부 분의 옹관 형태는 원형이며 좁은 구연, 둥근 바닥이며, 특히 구연부는 깨뜨려져 있다. 옹관의 평균높 이는 60 70cm 이며 몽통 직경은 60 70cm 이다. 옹관 외변에 줄기무늬 또는 빗살무늬가 있으며 뚜 껑을 찾지 못했다. 이 옹관의 비짐은 찰흙과 모래에 다량의 식물껍데기가 섞여 있다. 옹관의 표면색 은 흑색이 있으며 매우 부드러운 편이다. 옹관 조각도 많이 출토되는데 불에 탄 앓은 법량이 보인다. 그 외에 원통형 옹관도 출토되었는데, 이 원통형 옹관의 높이는 상당히 작으며 구연부가 내만하며 앓 고 둥근 바닥이 있다 옹관 몸통에 줄기무늬가 그려져 있으며 구경은 24cm, 높이는 25 50cm 이다. 이 옹관종류는 타원형옹관보다 작으며 푸껑은 찾지 못했다 종 멧 유적과 종 까 보 유적의 연대는 BP 이다. 그 중에 푸 화(Phu Hoa - 동 나 이지역) 유적에서 발굴된 옹관과 같은 연대 ( BP) 로 발굴된 옹관 무리가 있다 (Nguy~ n Thi H~u, 2008).,,.- ι; 20cm 도면 6. 건 저 (Can Gio)지역의 옹관 (Nguy~n Thi H~u 의 그림 ) 3) 종 런 (Giong Lon - 빠 리 어 붕 따우 (Ba Ria Vung Tau) 지 역)의 옹관 종 런 유적은 짜이 (Genh Rai) 만을 건너 건 쩌 유적을 마주보고 있으며 붕 따우 (Vung Tau) 시에 위치한다, 종 런 유적은 500m' 규모로 두 차례의 발굴을 통해 80 여 개의 옹관이 출토되었다. 그 중 에 9개의 옹관이 냄비-단지를 이어붙인 옹관이다. 이런 냄비-단지 옹관도 종 까 보유적지에서 발굴 된 옹관과 같이 입구부분을 갈거나 깨뜨렸다, 그러나 규격이 쯤 까 보유적지의 옹관 보다 더 작은 편 이며 동체직경은 35 50cm 이다. 바닥은 원형이며 몸통에 줄기무늬 또는 빗살무늬가 있다. 옹관 외 230 I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232 변에 흰색 법랑이 있지만 쯤 까 보 유적의 옹관보다 튼튼하지 않다. 종 런유적의 연대는 옥 애오 (Oc Eo) 문화의 초기인데 연대는 약 2000BP 이다 (Vu Quoc Hi 째 Chu Van v~, Le Van Chien, 2003). 4. 海 島 지역의옹관 1) 몬 따오 (Con Dao) 군도의 옹관 몬 따오 군도는 빠 리어 붕 따우 성에 속한 행정구역이다. 곤 따오 군도에서 옹관이 발굴된 유적 은 곤 하이 땅 (Con Hai Dang) 및 본 묘 빠(Con Mieu Ba) 유적이 있다. 이 두 유적간의 거 리는 약 600m이다. 곤 묘 빠 유적에서 발굴된 옹관 몬 묘 빠의 연대는 BP 4 2세기이다 (Nguy~n Trung Chien Dao Quy Canh, 2003). 관 묘 빠 옹관 의 색, 제작원료, 몽통의 두께, 모양 등은 모두 동일하다. 가장 보편적인 옹관의 형태는 좁은 목과 나 팔모양의 구연부, 그리고 몽통부분이 불룩하며 바닥이 둥글거나 약간 불룩한 것이 그 특정이다. 옹 관의 색갈이 붉은 갈색을 보이며 옹관 안쪽과 바깥쪽 표면에 붙인 황토 껍데기가 있다. 옹관의 규격 은 몸통직경 40 46cm, 구연직경 13 33cm, 높이 32 45cm 이다. 옹관제작 원료는 점토와 분홍색 모 래가 섞여있으며 손으로 빚은 흔적이 옹관 안쪽표변에 남아있다. 옹관의 구운 온도는 높지만 고르게 소성되지 않았다. 두 번째 옹관종류는 구연부가 넓으며 구연 가장자리가 안쪽으로 구부려져 있다. 옹 관 전체 기형은 원통형으로 어깨와 붐통이 서로 구별되지 않는다. 둥근 바닥은 약간 불룩하며 바깥 표면에 흑색 법랑이 있다. 받침대가 있는 단지형 옹관 이 종류에 해당하는 옹관의 공통점은 견부가 꺾여있으며 어깨와 입구의 가장자리에 문자무늬가 연속된다. 어깨부분에서 바닥까지의 직경이 점차줄어들면서 타원형을보이며 바닥에는낮은받침대 가 있다. 옹관의 크기는 구경 12 15cm, 동최대경은 21 26cm 높이는 14 15cm 이다. 옹관의 뚜껑은 3가지 유형이 있다. 손잡이가 있는 접시덮개 모양의 뚜껑(이 푸껑은 옹관의 입구 뿐만 아니라 어깨까지 덮어썼다.), 받침대 있는 큰 그릇모양의 뚜껑, 흠통모양의 뚜껑(이 뚜껑종류 는 손잡이가 없다,)이 있다. 곤 하이 땅 유적에서 발굴된 옹관 곤 하이 땅 유적에서 발굴된 옹관 들의 크기와 형태는 동일하다. 곤 하이 땅 유적의 옹관모양은 원형이며 몸통부 분이 고르게 불룩한다. 이 옹관의 종류 는 싸후인 문화에 속한 꼬 마 보이 (Go Ma Voi) 유적, 끈 랑 (Con Rang) 유 적, 허우 싸(Hau Xa) 유적, 띠엔 라인 (Tien Lanh) 유적, 빙 이 엔 (Binh Yen) 유적, 씀 옥(Xom Oc) 유적, 쑤어 쩡 사진 3. 곤 묘 빠유적지에서 발굴된 타원형옹관 (Nguy~n Trung Chien)의 사진 그림 Loai hlnh me) chum Viet Nam qua nghien c~u I 231 CaC giai OOan phat trien Va khu V\l'C phan bi)
233 (Suoi Chinh) 유적, 화 찌엠 (Hoa Diem) 등의 유적에서 발굴된 옹관과 비슷하다. 이 옹관들의 뚜 껑 은 받침대가 있는 불룩한 대형그릇과 같지만 받침대가 더 짧아 보인다. 끈 하이 땅 유적의 옹관들이 바깥쪽에 붉은 색깔로 장식된 것도 싸 후인 문화의 많은 유적에서도 출토되었다.(대표적인 유적지는 똥 끄엄 (Dong Cuom) 유적이 있다.) 2) 토 쭈 (Tho Chu) 島 의 옹관 토 쭈 섬은 베트남 남부 견 짱 (Kien Giang) 성 푸 꾸억 (Phu Quoc) 현에 부속되 있는데 푸 꾸억 (Phu Quoc) 섬에서 서남쪽으로 115km, 견 짱성 바닷가에서 서쪽으로 약 179 떨어져있는 섬이다. 이 섬에 있는 빠이 종 (Bai Dong) 에서 한기의 옹관을 발굴했다. 발굴 장소는 바다에서 약 loom 안쪽 으로 떨어져있으며 해발에 32m 정도로 높다 발굴된 옹관은 둥근 저부에 전체 기형은 타원형이다 옹관의 윗부분은 없어졌으며 남아있는부분의 규격은높이 40cm. 직경 47.5cm 이다. 옹관의 구연직 경은 26cm 이다. 구연부 두께는 2.5cm 이며 동체직경은 55cm 이다. 현재까지 발굴된 유구와 유물을 보면 베트남의 연해 섬 지역에서 출토된 옹관은 싸 후인 문화 및 동남아 연해지역에서 발굴된 옹관과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지속적으 로연구될것이다. IV. 결론 1. 베트남에서 토기가 매장용으로 사용된 것은 신석기시대의 후기부터 청동기시대 초기에 시작 되었다 그러나 시작 시기에는 옹관의 출현빈도가 낮으며 대부분은 관이 없는 상태로 매장된 모 떳 (Mo Dat - 땅무덤) 이었다. 사용된 옹관들은 일반 주거공간에서 사용되는 토기의 규격과 비슷하며 주로 냄비와 단지를 합구식으로 이어붙이며 세로로 매장된 옹관들이었다 청동기 시대로 들어서는 前 싸후인 문화나싸후인 문화에 속한 베트남중부 연해지역 및 중부고원지역에서 옹관사용풍습이 보급되었다. 롱 타인 (Long Thanh) 시기와 빙 쩌우 (Binh Chau) 시기에는 옹관이 많이 보급되었지 만 전기의 냄비-단지 합구식 옹관이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빠오 쪼 (Bau Tro) 유적에서 이러 한 옹관의 종류가 많이 발굴되었다. 롱 타인시기에는 매장을 위한 전용 옹관으로 크게 제작되며 세 밀하게 장식된 옹관이 등장한다. 베트남 중부 고원지인 떠이 응웬 (Tay Nguyen) 지역에서는 롱 랭 (Lung Leng)문화시기가존재하였으며 이 시기의 냄비-단지 옹관이 발굴되었다. 옹관의 모양과규 격은 매우 다양하며 중부지방의 싸 후인 문화와 공통점을 많이 갖고 있다. 이것은 두 지역 간의 문화 교류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칠기시대 초기에 들어서 토기를 옹관으로 사용하는 것이 베트남 전국에 성행한다 북부지역에 는 동 선 (Dong Son) 문화가 형성되었으며 중부 및 남부 지역들에는 싸 후인 문화가 형성되었다. 그 러나 옹기-단지를 옹관으로 사용하는 습관은 베트남 중부지역의 싸 후인 문화에만 대표적인 특정으 로형성되었다 2321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234 2. 분포지도에 따라 싸 후인 문화의 형성과정은 바오 쪼 (BauTro) 문화에서 시작되며 롱 타인 (Long Thanh) 시기, 빙 쩌우 (Binh Chau) 시기를 걸쳐서 형성된 것으로 생각된다. 떠이 응웬 지역의 청동기시대 문화도 싸 후인 문화 형성과정에 큰 역할을 했다는 다른 의견도 있다. 싸 후인 문화의 옹관은 철기시대에 가장 크게 발전되었다. 북쪽의 동 선 문화나 쏟 까강 유역 문 화 및 주변 지역들에서는 싸 후인 옹관의 영향을 많이 받이들였다. 3. 싸 후인 문화의 옹관은 베트남 국내에서만 교류된 것이 아니라 동남아시아 지역과도 많은 교 류가 있었다. 이러한 문화교류의 흔적은 싸 후인 문화의 옹관에 그려져 있는 그림과 옹관의 모양, 유 형등을보면알수있다. 4. 옹관에 시신을 안치하는 습관은 세계적으로 보면 신석기시대 후기에서 청동기시대 사이에 많이 형성되었다 동아시아 지역의 경우 한국을 비롯하여 일본, 중국에서 확인된다. 동남아시아지역 의 경우에는 베트남을 비롯하여 필리핀(북Luzon 및 Pala wan지역), 말레이시아( Niah동굴), 인도 네시아, 태국 (Thung Kla) 등에서 확인된다. 옹관을 이용한 시신 안치라는 동일한 문화를 공유하고 는 있었지만 각 지역마다 종교 신앙 사회 및 거주환경에 따라 나름대로 매장형식이나 옹관장식 그 리고 부장품 등에서는 차이가 있다. 참고문헌 (Tai li송u tham kha이 l. Bui Chf Hoang, Yamagata Mariko, Nguyen Kim Dung Khai qu~t Hoa Diem Khanh Hoa, thang l/2007. Trong NPHMKCH nam Nxb Tu Di해 Bach Khoa. Trl Bui Van Liem Danh gia gia trj lich su -van h6a cac di tfch theri d~i Sat s&m mo i phat hi~n va nghien cuu δ Bae Vi~t Namtt!naml998den2008.D 하aikhoah9cca pbt),ttrli~u Vi~nKhaoco'h9c. 3. Bui Van Liem Nghien cuu, danh gia gia trj ljch su van h6a Vi~t Namquacacditfchkhaoc하heriS 0 SUOl!Q cphathi~n&miεntrungvataynguyentt!nam l 998den20 I O.D하aicf( pbt),ttrli~u Vi~nKhaoco'h9c. 4. Keiji Imamura, Chu Van Tan The Lang Vac sites. The Vietnam- Japan joint Archaeological research team. 5. Lam Thi My Dung Ve'ti 해 Sa Huynh & Trung Trung Bt) Vi?t Nam.TrongMt)tthekykhaoco'h9c. Loai hlnh m(l chum ~!~t Nam qua nghien 띠u 1233 cac giai doan phat tnen va khu V\J'C phan bo
235 6. Ngo Sy Hong M9 vo 6' Vi~t Nam- Ttr li~u va nh~n tht'.rc. T\lp chf Khao cδhoc so 3: Nguy~n Kim Dung Bao cao khai qu~t di chi Gi ong Phet. Bao cao khai qu~t, Ttr lieu Vien Khao coh9c 8. Nguyen Thi H~u Van h6a mo chum" trong tho i d\li kim khf Viet NamvaD6ngSo n. T\lpchfKhaoc뻐9cs04: Nguy~n Trung Chien, Da Quy Canh Ghi chu vεmot IO\li hlnh VO tang m&i (y dja die'm con Mieu Ba, huyen Con Dao, Ba Ria- Yung Tau. NPHMVKCH, Nxb KHXH, Ha N9i: Vu Cong Quy Yan h6a Sa Huynh. Nxb Van h6a Dan t9c, Ha N9i 11. V디 Quoc Hien, Chu Van ve, Le Van Chien Ket qua khai qu~t di chi Giang L&n (V 디 ng Tau). Trong NPHMVKCH nam 2003: Yamagata Mariko (2008). Archaeological Reseach on the P1하listoric Interrelationsbeyond the South China Sea. Reportof Grant-in-Aid for Scientific Reseach(C)( No.l ). Waseda University 2341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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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 토 론 베 트남 옹관의 면모 에 대한 토론요지 이 동 흐 (순천 대학교 박물관) 이 글은 베트남의 신석기시대 후기부터 칠기시대 초기까지의 옹관묘 변천과 특정을 잘 정리하고 있다. 한국과 비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자료이다. 베트남 고고학과 옹관묘에 대해서 몇 가지 질의코자 한다. 1. 한국 연구자에게 있어 베트남고고학은 아직은 생소하다. 베트남옹관묘의 이해를 위해, 먼저 베트남 고고학의 시대구분(구석기 철기시대)과 구체적인 연대에 대해 먼저 정리해 주셨으면 한다. 2. 동남아시아에서 옹관묘는 베트남 외에도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등에서 확인 된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자바, 발리, 술라웨시, 숨바 등지에서 옹관묘가 발견되는데, 유적의 입지 가 대부분 해안부에 자리한다. 인도네시아 고고학계에서는 토기의 모양이나 제작기법상, 중부 베트 남이나 필리핀의 토기문화와 관련짓고 동남아시아의 연안을 묶는 공통의 해양문화가 널리 퍼져 있었 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동남아시아의 옹관묘 문화의 기원이 특정한 곳인지, 아니면 개 별적으로 기원했는지 여부에 대해서 여춰보고 싶다. 3. 발표자는 옹관 출현기(신석기시대 후기 청동기시대 초기)에 옹관의 빈도가 낮고 대부분은 토 광묘로 보고 있다. 즉, 옹관 출현기에는 옹관은 토광묘에 비해 희소한 무덤으로 볼 수 있다. 이렇듯, 옹관 초현기에 옹관이 사용되게 된 특수한 배경이 있는지? 예컨대 자연환경적인 문제나 어린아이만 을 묻는 경우에만 옹관을 사용하게 되었는지? 4. 베트남에는 옹관묘가 축조되는 무렵에 토광묘 소수의 지석묘(고인돌,dolmen) 등이 함께 축 조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무덤들과 옹관묘와의 상호관계, 특히 편년, 지역성, 계층성에 대해 견해를 밝혀 주셨으면 한다. 그리고, 철기시대 초기에 베트남 중남부지역의 싸 후인 문화에서는 옹 관이 대표적인 무덤이지만 동시기 베트남 북부의 동선문화에서는 옹관이 희소하다. 이러한 차이점 에 대해서도 답변을 바란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동일 공동체에 있어 지배층은 옹관묘에, 일반인들 은 토광묘에 매장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2361 고분을 통해 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238 5. 베트남의 옹관의 모양과 규격은 매우 다양하다. 청동기시대 롱 타인시기에는 매장을 위한 전 용옹관으로 크게 제작되며 세밀하게 장식된 옹관이 등장한다. 한국에서는 청동기시대(후기)이후에 계층화의 진전 모습이 확인된다. 베트남에서 전용옹관의 축조와 계층화는 어떤 연관관계가 보이는 가? 6. 베트남 옹관묘의 발전과정상에서 흥 法 (1 次 藝 과 2 次 쫓[ 洗 骨 쫓])상의 변화도 보이는가? 그리고 베트남에서도 옹관내에 화장된 인골이 확인되고 있는데 화장의 시작연대나 그 비율은 어 떠한지 여춰보고 싶다. 한국에서는 신석기시대(기원전 2,500년경)에 진주 상촌리 옹관묘에서 화장 흔적이 최초로 보이고 있다. 7. 베트남의 옹관내에서는주로 어린아이 뼈가주로확인된다. 이것이 일관된 것인지, 성인의 뼈 도 확인되는지 여부를 알고 싶다. 8. 한국에서는 신석기(후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까지는 옹관을 세로로 안치하고( 直 置 ), 철기시 대이후에는 대부분 가로로 안치( 橫 置 )한다. 베트남 옹관묘에서도 이러한 시대적인 변천상이 보이는 가? 9. 발표자는 싸 후인 문화 옹관의 가장 큰 특정은 몸통이 원형으로 제작되며 구연부를 깨트린 다는 점 으로 보고 있다. 옹관의 구연부를 깨트리는 행위를 베트남 고고학에서는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 Lo~i hlnh m(> chum Y!힘 Nam qua nghien cuu I 237 cac giai <loan phat trie'n Va khu V\!C phan bo
239 저 11 회 고대 고분 국제학술대회 고분을통해본 호남지역의 대외교류와 연대관 인쇄 발행 펀 집 발 행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주 소 전라남도 나주시 영산포로 전 화 홈 페 이 지 제 작 디자인 후 (Design Who)
I. 현대적 명승의 개념 및 관련 법규 01. 문화재보호법과 명승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문화재관광학과 대학원장 김창규 - -------........... 7 02. 명승의 개넘과 용어해설 흔μ국전통문화대학교문화재관광학과대학원장 - 김호딴 ----- ---- --- -----------------...... 13 03. 명승관련법규의 적용과 해석 한국전통문화대학교문화재관광학과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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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푼화재 제 7 호 / 2014 E조 -, 차 [기획논문] α8 고려로 유입된 중국 동전의 기능과 용도 - 원재료의 활용을 중심으로 - / 임태경 079 I 수중 발굴을 통해 본 고려시대 금속제 생활용품 / 주경미 135 I 태안 마도 3호선 출수 정동유물의 금속학적 연구 / 강승희 [일반논문] 161 I 마도 1 호선 발굴선빅 복원과 고려시대 조운선 /
握 t H I K 재적경제잉작과 귀하 본 보고서를 r 국제금융거래를 통한 자금세닥 유 형 및 대처방안 연구 에 관한 연구용역의 최종보고 서로 제출한니다. 2 0 0 2 년 9 월 홈흩 를툴 E임 훌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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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韓 國 人 의 이름의 變 選 南 豊 鉉 (단국대 학교 교수. 국어 학) I. 序 韓 國 에서 人 名 이라고 하연 여러 종류를 생각할 수 있으냐 우선 제 1 감 으로 떠오르는 것은 性 과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姓 의 기원이나 변천에 대해서는 따로 논의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여기서는 이름의 變 遭 만을 논의 의 대상으로 삼기로 한다. 사랍의 이릅은 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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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12 1 2 ± KOTRA KOTRA 1 2,, 3 ) /, KOTRA δ 1 x 1 ζ y 1 ε 1 δ 2 x 2 η = βξ + ζ y 2 ε 2 x x x δ 3 1 2 3 x 3 λ 1 δ = λ 2 ξ + δ λ 3 δ 1 2 3 y 3 ε 3 Interaction W 1 W 2 W 3 ISSUE
5. 회 의내용 < 제 1호 안 : 2011학년도 법 안 회 제 철 산(안 )> 법인 사무국장의 성왼 보고에 이이 의장이 이사회 개회 용 선언하고 회계판려부장에 게 제 l 호 안인 20 11 학년도 입인 회계 결산(안)에 대한 성명융 지시함 회계판리부장이 2011 학년
학교법언한성학원 2012학년도 제 2차 이사 회 회 의 록 구 ss 01 사 감사 일원징수 8인 2인 재적잉윈 7인 2인 참석잉원 5인 인 1. 연 시 : 2012년 5월 22일(화) 10:30 11:10 (회의소집 상보일 : 2012.5.10.) 2. 장 소 경성대학교 정보판 10충 회의실 3. 엄원 출 결 사항 참석임웬 (5명) : 김대성, 이동철, 김순칭,
<2> 2014 년 11 월 25일 -LI훌톨흘클--- 드프 ι셔끼 AI c::::i O......, 술킬수없는체납액, 끝까지 추적한다! 지방세 세외수입 체납액 정수대책 보고회 개최 이학재 부군수주재로각실과소읍면장등관계자들이 체납액 징수 방안에 대해 논의 지방재정의 자
~ /ι - * \ Lg EUMSEONG NEWS --ε흩l해ξ크뜯씹률틀잠- 2014년 11 월 25일 발행인 음성문수 편집 음성소식편집위원회 구독문의 O쩨 871-3051-5 홈페이지 빼 es21.go.kr I 사랑의 김장으로 따뜻한 겨울을 음성군여성단체협의회(회장 윤효숙) 회원 40명이 참여한 독거노인을 위한 김장담그기 행사가 지난 13일 여성회표뻐 서
354 한국문학논총 제 61집 둘째 fí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의 제 1판에 와서 제목을 부여하려는 시 도가 나타났다. ( 序 詩 ) 라 하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라는 부제를 달 았다. 하지만 점션을 둘러놓음으로써 본문의 시들과는 구별했다. 셋째, 제 2판에 와서
한국문학논총 제 61 집 (2012. 8) 353385쪽 윤동주의 이 른바 서시 의 제목 문제 이 복 규 * I 여는말 차 려 m 출판본 하늘과바람과별과시 에서 II. r윤동주 자필 시고전집 에서의 이른바 서시 제목의 원형 1. 이른바 서시 제목의 원형 2 이른바 서시 에 제목이 없는 현 의 이른바 서시 의 변형 1. 정음사본 제 1 판에서 제4판까지의 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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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이름의 종류 박 현 A 눈 (민족운화추진회 전운위원) 1. 머 리 말 오늘날은 보통 한 사랍이 하나의 이름을 가지고 살아간다. 문학이나 서 에 둥파 같은 예숭 활동올 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더러 本 名 이외의 다른 이름이나 號 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양과 名 만을 사용 한다. 漢 字 로 운자 생활을 하였던 우리의 조상들윤 일생 동안에 여러
발 간 등 록 번 호 11-1550110-000022-01 제6회 고대옹관 국제학술심포지엄 대형옹관생산과유통연구의현황과과제 Naju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제 6 회 고 대 옹 관 국 세 학 술 심 포 지 엄 대 형 옹 관 생 산 과 유 통 연 구 의 현 황 과 과 제 2 0 1 3 52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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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l 폭발하면 엄청난 방사능 낙선이 떤어져 혈단도안지나서 지구표면은달표연차펌 황폐해져버렐 겁니다! (-- ) 제정선 박힌 사랍이라면 반사시젠 리가 없지요. 그래서 이 둠스데이 마신은 자동 발사되도록 션겨l 뇌어 있습니다.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또는 나는 어휠게 걱정을 멈추고 폭탄을 시효념}게 되었는기 에서 소련 대사사데스키기 한 밀 -- 슬. ;: 경제학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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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1, 2월호 진행상황부터 말씀드릴게요 1, 2월호는 기존 판형을 그 대로 유지하면서 신설된 코너툴올 추가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했어 요 보시연 아시겠지만 현장 이야기들이 굉장히 많이 들어갔어요 간담 회 행식이 아니라 전부 수다회 형식으로 바꿨구요 연집위원들의 수
편집위원들의 수다2 님 성뉴.!L돔 을 님 ~2~~ 는 ^H.î.눈 f t 언제 2010년 2011 년 1 월 18일 λ 컨 어디서 샌터회의실 수다칭석자 김진억 편집위원 깅순천 연집위원 편집위원, 이윤아편집위원 이류효용편집위원, 이님신 샌터소장 김4* 정책부장 연집부장 춘상월이 눈암이다 주위는 눈치 었이 계속되고 있지안, 연정위앤들의 논의는 그에 아랑 곳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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口 특집/한국의 속담 韓 톰f칸줬썩R협 係 論 著 目 錄 現 在 (연도순)- - 成 現 : ij홉뿜 藏 옮. (14잃"'1뼈) 李 陣 光 : 효 峰 類 說 卷 16. (læg,... l없) 魚 꿨 權 : 釋 官 廳 G. (16 世 紀 ) 尹 所 : 漢 鷹 뺑 擊, 洪 萬 宗 : 李 훌 : 李 德 흉 : 뺑l 上 方 룹(좁짧없초올) (100 句 ). (1껴 1"'1뺑)
일에 매이지 않고 벗어날 수만 었다면 대개 인간은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 사람들이 하려고만 든다면, 할 일은 많다. 1931년 3월, 헨리 포드24
일에 매이지 않고 벗어날 수만 었다면 대개 인간은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 사람들이 하려고만 든다면, 할 일은 많다. 1931년 3월, 헨리 포드24 0 삼! ;; 실업이 뭐 복잡할게 있나요? 실업은경제의 가장기본적인 문제 중하나입니다. 그래도가장기 초적인 경제학 개념 중 하나인 수요와 공급 을 통해 실업의 문제 에 접근한다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이론적으로는
률멸 M 선 Mirror 집 이윤정 선배를 만나다-송지선/박새봄 선배를 만나다-김특영 /검민선 선배를 만나다 김태형/글쓰기 1 무 / 장-김나연 / 口 록보살-엄경석/개새끼 / 사팅_01 가연 / 병적 / 굶주림-이유리/그리움-정종욱/극직 습 1 장면 쓰기-오제호/장면 쓰기-이명연/인물 만들기-지강숙/인물 만들기-초 은0 1 /극작연습 3 미 인괴 공사 권지혜
270 國 樂 l핸 詞 文 集 第 loi rt융 연구를 再 開 하였다. 팽과리는 현재 제작되고 있는 악기 가운데 가장 성능편차가 심한 악기로 알 려져 있다. 팽과리 공장에서는 포대 단위로 포장을 하고 한 포대에 약 507H 의 팽과리를 담는데, 그 가운데 연주자가 원하
국악기 제작의 과학화 연구 사업 팽과리 합성 조형의 변형과 제작의 기계화 랭과리 음향 선호도 조사 보고서 검 경 희 * 목차 1. 서 론 1 연구배경 2. 조사방법 ll. 본론 1. 음향 선호도 2. 팽과리채 선호도 3. 금죄,은쇠 선호도 4. 숫쇠와 암쇠의 구분 5 악기 제작자에 대한 선호도 ill. 결론 대담내용 채록자료 1. 서론 l. 연구 배경 국악연구실에서는
2 ㆍ 大 韓 政 治 學 會 報 ( 第 20輯 1 號 ) 도에서는 고려 말에 주자학을 받아들인 사대부들을 중심으로 보급되기 시작하였고,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국가적인 정책을 통해 민간에까지 보급되면서 주자 성리학의 심 화에 커다란 역할을 담당하였다. 1) 조선시대
대한정치학회보 20집 1호 2012년 6월: 77~99 세종과 소학( 小 學 ) : 민풍( 民 風 ) 과 사풍( 士 風 ) 의 교화* 1) 박홍규 ㆍ송재혁 고려대학교 요 약 2 기존 소학 에 대한 연구들은 주로 중종( 中 宗 ) 시대 사림( 士 林 ) 과의 연관선상에서 소학 의 의미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소학 에 대한 존숭 의식은 이미 조선 전기 관학파들도
목 차 I. 서 론 I I. 미국과 북한의 입장 차이 I I I. 핵 문제 해결의 모델 I V. 향후 북핵문제 전개 전망 V. 대웅방안 부록1 : 1, 2 차 북핵문제의 전개과정 부록 2 : 우크라이나의 N P T 가입에 따른 안전보장 각서
0 4 정잭연구과제 제 2 7 1 부시행경부 타의 뷰탄 핵틀체 전앙과 대응방안 2 0 0 4 e 1 2. 연구 찌 연 - - 0 F 이 n 원 교 교 교 T A T s 허 깅 홍 남 얼 성 서 효A f - - T 국방대학교 안보를제연구소 목 차 I. 서 론 I I. 미국과 북한의 입장 차이 I I I. 핵 문제 해결의 모델 I V. 향후 북핵문제 전개 전망
종사연구자료-이야기방2014 7 18.hwp
차례 1~3쪽 머리말 4 1. 계대 연구자료 7 가. 증 문하시랑동평장사 하공진공 사적기 7 나. 족보 변천사항 9 1) 1416년 진양부원군 신도비 음기(陰記)상의 자손록 9 2) 1605년 을사보 9 3) 1698년 무인 중수보 9 4) 1719년 기해보 10 5) 1999년 판윤공 파보 10 - 계대 10 - 근거 사서 11 (1) 고려사 척록(高麗史摭錄)
목 차 국회 1 월 중 제 개정 법령 대통령령 7 건 ( 제정 -, 개정 7, 폐지 -) 1. 댐건설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 1 2. 지방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 1 3. 경력단절여성등의 경제활동 촉진법 시행령 일부개정 2 4. 대
목 차 국회 1 월 중 제 개정 법령 대통령령 7 건 ( 제정 -, 개정 7, 폐지 -) 1. 댐건설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 1 2. 지방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 1 3. 경력단절여성등의 경제활동 촉진법 시행령 일부개정 2 4. 대도시권 광역교통관리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 일부개정 3 5. 영유아보육법 시행령 일부개정 4
인천광역시의회 의원 상해 등 보상금 지급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의안 번호 179 제안연월일 : 2007. 4. 제 안 자 :조례정비특별위원회위원장 제안이유 공무상재해인정기준 (총무처훈령 제153호)이 공무원연금법 시행규칙 (행정자치부령 제89호)으로 흡수 전면 개
인천광역시의회 의원 상해 등 보상금 지급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인 천 광 역 시 의 회 인천광역시의회 의원 상해 등 보상금 지급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의안 번호 179 제안연월일 : 2007. 4. 제 안 자 :조례정비특별위원회위원장 제안이유 공무상재해인정기준 (총무처훈령 제153호)이 공무원연금법 시행규칙 (행정자치부령 제89호)으로 흡수 전면
빈면
용역보고서 2 0 0 4-0 3 한국의 스수자집단의 사회경제적 싱태와 복지증진방안 연구 최협 정근식 윤형숙 검은실 서통진 김철주 김형수 이태진 김찬호 오정진 보 건 복 지 부 한국문화인류학회 빈면 머리맏 지난 수십년간 한국사회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급속한 변화를 경험하였 다 국내적으로는 1 9 6 0 년대 이후 수출주도형 경제개발정책이 추진되면서 숨가쁜
- 目 次 I. 서 론 - - - & - - 1 R. 투 기적 공격 의 메커니즘 3 1. 현물환시 장의 이용 3 가. 약세 통화 차업 3 나. 약세통화표시 유가증권 매각 4 2. 파생금융상품시장의 이용 5.. 가 통화선물환 매각 5 나 통화옵션 거래전략 : S t r
외환 긍응시작의 묘니터링체제 종합적언 구축 2 0 0 1. 9. 7 차백인 f 장원창 I 김용환 빼 警 I쏟뿔빨쫓뿔 - 目 次 I. 서 론 - - - & - - 1 R. 투 기적 공격 의 메커니즘 3 1. 현물환시 장의 이용 3 가. 약세 통화 차업 3 나. 약세통화표시 유가증권 매각 4 2. 파생금융상품시장의 이용 5.. 가 통화선물환 매각 5 나 통화옵션
사진 24 _ 종루지 전경(서북에서) 사진 25 _ 종루지 남측기단(동에서) 사진 26 _ 종루지 북측기단(서에서) 사진 27 _ 종루지 1차 건물지 초석 적심석 사진 28 _ 종루지 중심 방형적심 유 사진 29 _ 종루지 동측 계단석 <경루지> 위 치 탑지의 남북중심
하 출 입 시 설 형태 및 특징 제2차 시기 : 건물 4면 중앙에 각각 1개소씩 존재 - 남, 서, 북면의 기단 중앙에서는 계단지의 흔적이 뚜렷이 나타났으며 전면과 측면의 중앙칸에 위치 - 동서 기단 중앙에서는 계단 유인 계단우석( 階 段 隅 石 ) 받침지대석이 발견 - 계단너비는 동측면에서 발견된 계단우석 지대석의 크기와 위치를 근거로 약 2.06m - 면석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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檀 國 大 學 校 第 二 十 八 回 학 술 발 표 第 二 十 九 回 특 별 전 경기도 파주 出 土 성주이씨( 星 州 李 氏 ) 형보( 衡 輔 )의 부인 해평윤씨( 海 平 尹 氏 1660~1701) 服 飾 학술발표:2010. 11. 5(금) 13:00 ~ 17:30 단국대학교 인문관 소극장(210호) 특 별 전:2010. 11. 5(금) ~ 2010. 11.
이용자를 위하여 1. 본 보고서의 각종 지표는 강원도, 정부 각부처, 기타 국내 주요 기관에서 생산 한 통계를 이용하여 작성한 것으로서 각 통계표마다 그 출처를 주기하였음. 2. 일부 자료수치는 세목과 합계가 각각 반올림되었으므로 세목의 합이 합계와 일 치되지 않는 경우도 있음. 3. 통계표 및 도표의 내용 중에서 전년도판 수치와 일치되지 않는 것은 최근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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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항공사와 어린이재단이 함께하는 제2회 다문화가정 생활수기 공모전 수기집 대한민국 다문화가정의 행복과 사랑을 함께 만들어 갑니다. Contents 02 04 06 07 08 10 14 16 20 22 25 28 29 30 31 4 5 6 7 8 9 10 11 12 13 15 14 17 16 19 18 21 20 23 22 24 25 26 27 29 28
1 수사 경과 수사 착수 배경 신용카드 및 현금영수증 결제승인 대행 서비스업체인 밴사와 대형 가맹점 간의 리베이트 수사 과정에서,밴 수수료로 창출되는 막대한 이익을 둘러싸고 밴 업계의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는 점에 착안 관련 비리를 집중 내사한 결과,밴 사업자 선정을 위
이 보도자료는 2013. 12. 30.(월) 조간부터 보도하여 주시고, 공개되는 범죄사실은 재판에 의하여 확정된 사실이 아님을 유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서울서부지방검찰청 보 도 자 료 2013.12.27.(금) 제 목 공보담당관 차장검사 윤웅걸 전화 02-706-1692 / 팩스 02-3270-4240 자료문의 : 형사5부 부부장실 전화번호 : 02-3270-4492
Ⅰ. 머리말 각종 기록에 따르면 백제의 초기 도읍은 위례성( 慰 禮 城 )이다. 위례성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세종실록, 동국여지승람 등 많은 책에 실려 있는데, 대부분 조선시대에 편 찬된 것이다. 가장 오래된 사서인 삼국사기 도 백제가 멸망한지
고대 동아시아의 왕성과 풍납토성 - 풍납토성의 성격 규명을 위한 학술세미나 - pp. 46-67 한국의 고대 왕성과 풍납토성 김기섭(한성백제박물관) 목차 Ⅰ. 머리말 Ⅱ. 한국 고대의 왕성 1. 평양 낙랑토성 2. 집안 국내성 3. 경주 월성 4. 한국 고대 왕성의 특징 Ⅲ. 풍납토성과 백제의 한성 1. 풍납토성의 현황 2. 한성의 풍경 Ⅰ. 머리말 각종 기록에
北 韓 및 共 産 圈 接 觸 交 流 를 通 한 政 治 心 理 의 展 關 方 向 國 土 統 - 綜 이 報 告 書 는 國 土 統 一 院 73 年 度 下 半 類 學 術 f 役 에 關 한 畢. 終 報 告 書 로 理 出 합니다 l 9 7 3 년 il원 긴 硏 究 機 關 京 鄕 諒 間 社 安 保 統 - 硏 究 委 員 會 硏 漆 養 員 責 任 者 : 료 國 植 委 員
2 ^ 文 科 學 1iff 究 論 鍵 第 6 號 이기도 하다. 그 러 므로 都 會 의 성격변화를 究 明 해 보는 것 또한 學 堂 生 들의 교과운영을 이 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敎 官 에 대 한 檢 察 之 法 은 學 堂 敎 育 이 지향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朝 蘇 前 期 學 堂 敎 育 의 敎 科 運 營 에 대 한 짧 究 申 千 i 是 * 1. 머리말 II. 學 堂 과 小 學 敎 育... ( 目 次 ).... N. 學 堂 都 會 之 法 V. 敎 官 檢 察 之 法 rn. 敎 科 의 運 營 및 許 價 VI. 맺음말............. 1 머 리 얄 본고는 朝 蘇 前 期 學 堂 의 교육운영을 교육과정의 측면에서 파악해
국통 7 3-6 - 47 南 北 韓 數 學 敎 科 書 撚 較 分 析 國 土 統 - 院 차 a l l 터 리 말 l 2 교과서 의 중 별 2 가 학 린및 종록 2 f 학는시 간수 : G 라 교과서의 체제 L 5 (l) 피형적 인 향대 5 州 내부적인 헝 태 f#t # 7 3 교 과 서 의 내유 9 가 수 학 류 터 # f 9 (l) 인역어가 라 른 경우 ~
128 ^ 文 科 學 쩌 究 論 靈 第 二 +:n 號 였다. 목은은 당시 사회에 학문적 정신적 지주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가학의 발전에도 크 게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가정에서는 자상한 아버지이면서 자제들을 엄격하게 훈도하 였다. 그는 아버지 곡의 가르침을 평생의 지침으
~t 隱 家 學 의 成 立 과 理 念 - 種 德 種 學 種 홈의 生 ;훌와 活 動 올 中 心 으로 - 申 千 混. 목 차 I. 머리말 11. 秋 隊 의 家 學 理 ;융: m. 救 隨 家 쩔의 成 立 N 맺옴말 1. 머리말 收 隱 李 짧은 고려말의 대석학으로써 당시 사회에서 橋 宗 으로 존숭을 받았다. 그는 緣 亨 李 짧의 아틀로 1353 년(공민왕 2)에 李
사상체질의학회지
사상의학회지 1 o f C o r n t M o o o l 1 0 N o 2 1 9 9 8 四 象 人 耳 目 壘 口 의 퓨Z 態 學 的 特 徵 짧 究 洪 錫 喆 高 炳 熙 宋 - 炳 A M o r p h o r l o g i c a l S t u d y o f E a r, E y e, N o s e a n d M o u t h a c c o r d i n g
프랑스의 영화 첼르부르외 우산 은 빗소리 같이 7r슴을 적시는 첫사량의 진한 of픔을 람람하게 담고있다. -본문중에서 - 명화와 고활흘 찾아서 크라운판.252먼 / 값 10, 000원 이 동 걸 지음 11 신지서원 이 책의 특정은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점보다 는 가능하면
져13 호 고구력 밀4 며 112001년(엉략 1611년) 팔1메토대왕 유쩍 답1\t 11 념 특핍호 e( 시론) 영락회 발전을 위한 제언... 조영섭 1)특집) 고구려 및 광개토대왕 유적 답사기 l 광개토대왕의 얼을 찾아서... (김영조) 광개토대왕의 기상을 다시 꿈꾸며... (지우효) 만주벌판을 달리고 싶은 젊은 영 락의 꿈.. (성윤수) 영락회 영락연구소
50 새국어생활 제8권 제 1호 ('98년 봄) 한다. a 풍샤의 판단 2.1. 자렵명샤가 의존척 기능을 하는 갱우 의존명사의 품사를 판단하는 문제의 어려움은 한글 과 금성 에 각각 등재된 의존명사의 수를 비교해 보아도 엿볼 수 있다". <한글 에는 740여 개, 금성
랩 샌 펀찬에 대한 국어학적 껍근 의존명사의 사전적 처리 채 완 동되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1. 셔론 사전에서 의존명사를 기술할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문법 정보 즉 품 사를 결정하여 표시해 주는 일일 것이다. 실제로 기존 사전들을 비교해 보면 의존명사의 품사 처리가 상당히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편찬 중 인 국립국어연구원의 표준국어대사전
51 메 도1\ 1 nt펀껴 도로 현활 맞 I탤빽방향얘 l 판한 1111 언 2000.12 도시연대 시민교통환경센터 후원-행정자치부 목 차 I. 서 론... 3 II. 지역별 자전거 이용환경 실태조사 결과... 5 1. 안산시.............................. 5 2 춘천시..............................................
나다 하 o. 2013년 05월 21 일 화요일 AOl 면 종합 벼떠 2Aλ 동아일보-채널 A- 딜로이드 대학명가 굉운대 우송대 한국산업기술대를 포힘한 25개 대학이 취업 또는 칭업 프로그랩을 동아일보와 채덜 A가 딜로이트컨설팅과 함께 실시한 명가는 대학생에게 초점을
2013년 05월 22 일 수요일 A03면 기 획 TI 닙 '~I i.그..., 0 c::: 웹 앓J3i협캘등뭘찮밝 (2) 취업률 뺀 인프라만 살펴보니 취업 역링 영가 항목별 순위 -총장님까지 발로 띔니다 현장에선 허리를 속 였습니다 학교 간판 이 빛나지 않아 학생이 취 업 시ε뻐 서 눈물 흥리지 않게 만들겠다고 지방대 교직원의 일이다 총장을 중심으로 졸 업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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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 2016.05.03(화) "갈등없는 성과연봉제 도입" 홍보하던 동서발전, 부당노동행위 정황 성과연봉제 노사합의안 찬반투표 당시 동서발전 울산화력본부 기표소 모습 공기업 발전회사 중 처음으로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에 대한 노사합의가 이뤄진 한국동서발전이 직원 들의 찬성 투표를 유도하기 위해 부당노동행위를 벌인 복수의 정황이 나왔다. 직원들에게 동의서를
산림병해충 방제규정 4. 신문 방송의 보도내용 등 제6 조( 조사지역) 제5 조에 따른 발생조사는 다음 각 호의 지역으로 구분하여 조사한다. 1. 특정지역 : 명승지 유적지 관광지 공원 유원지 및 고속국도 일반국도 철로변 등 경관보호구역 2. 주요지역 : 병해충별 선단
산림병해충 방제규정 산림병해충 방제규정 [ 시행 2015.9.9] [ 산림청훈령 제1262 호, 2015.9.9, 일부개정] 산림청( 산림병해충과), 042-481-4038 제1장 총칙 제1 조( 목적) 이 규정은 산림보호법 제3 장 " 산림병해충의 예찰 방제 에서 위임된 사항과 산림병해충( 이하 " 병 해충 이라 한다) 의 예방 구제를 위하여 병해충의 발생조사와
김기중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인터넷 내용심의의 위헌 여부.hwp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인터넷 내용심의와 그 위헌 여부에 관한 소론 - 서울고등법원 2011.2.1.자 2010아189 위헌법률심판제청결정을 중심으로 한국정보법학회 2011년 5월 사례연구회 2011. 5. 17.발표 변호사 김기중 미완성 원고임 1. 서론 헌법재판소는 2002. 6. 27. 99헌마480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등 위헌확인사건에 서 불온통신 의 단속에
단위: 환경정책 형산강살리기 수중정화활동 지원 10,000,000원*90%<절감> 형산강살리기 환경정화 및 감시활동 5,000,000원*90%<절감> 9,000 4,500 04 민간행사보조 9,000 10,000 1,000 자연보호기념식 및 백일장(사생,서예)대회 10
2013년도 본예산 일반회계 환경위생과 ~ 환경위생과 세 출 예 산 사 업 명 세 서 부서: 환경위생과 단위: 환경정책 환경위생과 8,231,353 3,622,660 4,608,693 국 2,472,543 기 144,000 도 976,102 시 4,638,708 자연환경보호(환경보호/환경보호일반) 5,910,247 1,462,545 4,447,702 국 1,817,800
호랑이 턱걸이 바위
호랑이 턱걸이 바위 임공이산 소개글 반성문 거울 앞에 마주앉은 중늙은이가 힐책한다 허송해버린 시간들을 어찌 할거나 반성하라 한발자국도 전진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일삼는 자신이 부끄럽지 않느냐 고인물은 썩나니 발전은 커녕 현상유지에도 급급한 못난위인이여 한심하다 한심하다 호랑이 턱걸이 바위! 이처럼 기막힌 이름을 붙이신 옛 선조들의 해학에 감탄하며 절로 고개가
Ⅰ- 1 Ⅰ- 2 Ⅰ- 3 Ⅰ- 4 Ⅰ- 5 Ⅰ- 6 Ⅰ- 7 Ⅰ- 8 Ⅰ- 9 Ⅰ- 10 Ⅰ- 11 Ⅰ- 12 Ⅰ- 13 Ⅰ- 14 Ⅰ- 15 Ⅰ- 16 Ⅰ- 17 Ⅰ- 18 Ⅰ- 19 Ⅰ- 20 Ⅰ- 21 Ⅰ- 22 Ⅰ- 23 Ⅰ- 24 Ⅰ- 25 Ⅰ- 26 Ⅰ- 27 Ⅰ- 28 Ⅰ- 29 Ⅰ- 30 Ⅰ- 31 Ⅰ- 32 Ⅰ- 33 Ⅰ- 34 Ⅰ-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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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ine과 Off-line의 결합, 과연 정답인가?* M λ T 버 口 카 효 요 양 ; 해 닭 팩 도 교 수 학교 에 킨 강세 디 궤 학교 에 J1 래 겨 켜 장세진 영 학과 신나영 혀 학과 1, 사례에 들어가며.., 1) 이슈 본 팀의 주제는, 인터넷 벤처 기업에게 있어서의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결합 이라는 요즘의 트랜드 에서부터 시작한다 많은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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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 부 보고서 Ⅰ. 조사 개요 1. 조사 배경 및 목적 o 문화적 여유가 생기면서 만화영화 주인공이나 연예인 등의 캐릭터를 넣어 개발한 캐 릭터상품이 어린이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데, 앞으로 도 계속해서 신세대의 소비문화 를 창출해 나갈 것으로 예상됨. - 그동안 어린이들 사이에 유행했던 캐릭터로는 미키마우스, 세일러문, 아기공룡 둘 리, 바비, 헬로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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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어르신 생활문화전승프로그램 柯 亭 里 義 兵 마을 백년터울 더듬어 가정리 길을 걷는다 주관 춘천문화원 후원 한국문화원 연합회 문화체육관광부 -차 례- 제1장 구술 자료의 가치 1. 역사적 측면 2. 문화적 측면 3. 미래 삶의 터전 제2장 지명으로 전하는 생활문화전승 제3장 구술로 전하는 생활문화전승 1. 의암제를 준비하는 사람 류연창 2. 고흥 류
주지스님의 이 달의 법문 성철 큰스님 기념관 불사를 회향하면서 20여 년 전 성철 큰스님 사리탑을 건립하려고 중국 석굴답사 연구팀을 따라 중국 불교성지를 탐방하였습 니다. 대동의 운강석굴, 용문석굴, 공의석굴, 맥적산석 굴, 대족석굴, 티벳 라싸의 포탈라궁과 주변의 큰
불교학과반(1년 과정) 기초교리반(6개월 과정)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매주 목요일 오후 2시 / 저녁 7시 5월 5일 5월 12일 5월 19일 5월 26일 어린이날 휴강 인도불교사 2 / 이거룡 교수님 인도불교사 3 / 이거룡 교수님 중국불교사 1 / 이덕진 교수님 5월 7일 5월 14일 5월 21일 5월 28일 백련암 예불의식 및 기도법 / 총무스님 성철
006 007 007 009 012 012 012 013 013 013 018 019 033 045 051 052 060 066 067 077 083 084 099 108 117 118 122 135 140 141 141 142 143 143 145 148 154 01 006 007 007 009 " # $ % 02 012 012 012 013 013 013
래를 북한에서 영화의 주제곡으로 사용했다든지, 남한의 반체제세력이 애창한다 든지 등등 여타의 이유를 들어 그 가요의 기념곡 지정을 반대한다는 것은 더 이상 용인될 수 없는 반민주적인 행동이 될 것이다. 동시에 그 노래가 두 가지 필요조 건을 충족시키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제2 발제문 임을 위한 행진곡 의 문제점 임 과 새 날 의 의미를 중심으로 양 동 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1. 머리말 어떤 노래가 정부가 주관하는 국가기념식의 기념곡으로 지정되려면(혹은 지정 되지 않고 제창되려면) 두 가지 필요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하나는 그 가요(특히 가사)에 내포된 메시지가 기념하려는 사건의 정신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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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2003. 12. . 1 1. 1 2. 2 3. 2 4. 2. 3 1. 3 2. TV3 3. TV 4 4. 4. 9 1. 9 2. 9 3. 13 . TV 17 1. 17 2. TV 19 3. TV 20. 32 1. 32 2. 33 3. TV 34. 36 1. 36 2. 36 3. 36 1. 37 2. 38 . 1. 1995 8 TVTV.,,,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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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시장 그리고 형평성 허가형*... < 目 次 1. 들어가는 글 11. 기후변화와 시장 IV. 기후변화와 개도국 V 나가며 11 1. 기후변화와 형평성 1. 들어가는 글 환경자원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냉정하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재화가 아니기 때문에 가격 을 매길 수 없고 가격이 없기 때문에 시장에서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환 경자원의
북한이탈주민 법률상담 사례집 (S) 통 o l u ; T 齒 트 料 産 f 經 트괴트 八 t협호i 안 내 문 북한이랄주민들은 일반적으로 우리사회에 정착한 후 남북한 장제도 체제 차이로 인한 이해부족 등으로 인해 일상생활에서 많은 어려움 (채무, 브로커 문제, 결혼, 가족입국 문제, 부당해고, 사기, 폭행 천 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부와 대한변호사협회는
2008.3.3> 1. 법 제34조제1항제3호에 따른 노인전문병원 2. 국민건강보험법 제40조제1항의 규정에 의한 요양기관(약국을 제외한다) 3. 삭제<2001.2.10> 4. 의료급여법 제2조제2호의 규정에 의한 의료급여기관 제9조 (건강진단) 영 제20조제1항의 규
노인복지법 시행규칙 [시행 2010. 3. 1] [보건복지가족부령 제161호, 2010. 2.24, 일 보건복지가족부 (노인정책과) 02-2023-85 제1조 (목적) 이 규칙은 노인복지법 및 동법시행령에서 위임된 사항과 그 시행에 관하여 필요한 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1조의2 (노인실태조사) 1 노인복지법 (이하 "법"이라 한다)
노인복지법 시행규칙
노인복지법 시행규칙 [시행 2012.2.5] [보건복지부령 제106호, 2012.2.3, 타법개정] 제1조(목적) 이 규칙은 노인복지법 및 동법시행령에서 위임된 사항과 그 시행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 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1조의2(노인실태조사) 1 노인복지법 (이하 "법"이라 한다) 제5조에 따른 노인실태조사의 내용은 다음 각
제 - 줄 픔 외교통상부 장관 귀하 본 연구보고서를 용역과제언 환경관켠 국제무역규제 가 국내 산업에 마치는 엉향 및 대응 전략 즈사 왜 칙종 보고서로 제출합니다. 연구 책염자 : 연구 창여자 : 한거주 연구위원 앙몽숭 연구위원 2 8 0 φ 4. 산업연구원강
흐 l 흩보펙 환경관련 국에딛역규씨가 국내 $ 이시는 영양 때응 서략 죄 } - 다자간 흔병혐약 밍 흔H경관련 무역 규제를 증싱으로 - 2 0 0 4. 4. 측? 쫓 ; N S T l 쫓O R l 켰 f A L E 뚱 I C S 한E 제 - 줄 픔 외교통상부 장관 귀하 본 연구보고서를 용역과제언 환경관켠 국제무역규제 가 국내 산업에 마치는 엉향 및 대응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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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소외계층 독서 인문학 프로그램 결과보고서 - 2 - 2013 소외계층 독서 인문학 프로그램 결과보고서 c o n t e n t s 5 22 44 58 84 108 126 146 168 186 206 220 231 268 296 316 꽃바위 작은 도서관 꿈이 자라는 책 마을 기적의 도서관 남부 도서관 농소 1동 도서관 농소 3동 도서관 동부 도서관
중 국 6 대 패 션 시 장 조 사 보 고 서 < 2004 년 상 해 10 대 매 장 10대 패 션 제 품 의 브 랜 드 시 장 점 유 뮬 > 제 품 브 랜 드 시 장 점 유 율 제 품 브 랜 드 시 장 점유 율 C O N C H 19 9 9 6 P LA Y B O Y
한국섬유 산업연합 회(KO F ㄲ) 도 표 로 보 면 매 년 1월 은 판 매 성 수 기 로 30592. 43 만 元 의 신 기륵 을 달성하 였 다.중국 전통 영절인 춘절이 여전히 사 람들의 구 매욕 을 자극하였 고, 판 매 업 체 가 갖 가 지 묘 안을 짜 내었 다. 2월 의 판 매 액 은 1월 의 추 세 를 잇 지 못하고 대폭 하락하였다.3,4,5월은 그다지
입장
[입장] 20대 총선 여성 비정규직 청년정책 평가 여성 정책 평가: 다시 봐도 변함없다 (p.2-p.4) 비정규직 정책 평가: 사이비에 속지 말자 (p.5-p.7) 청년 일자리 정책 평가: 취업준비생과 노동자의 분열로 미래를 논할 순 없다 (p.8-p.11) 2016년 4월 8일 [여성 정책 평가] 다시 봐도 변함없다 이번 20대 총선 만큼 정책 없고,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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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권 제67호 대구공동육아협동조합 http://cafe.gongdong.or.kr/siksikan 함께 크는 우리 아이 여는 글/03 교육평가 및 교육계획/05 터전소식/38 몸살림 체조 강좌 후기/43 단오행사 후기/44 게릴라 인터뷰/46 책 읽어주는 방법 찾기/50 특별기고/52 맛있는 인문학/55 편집후기/58 2010. 8 함께 크는 아이, 더불어
z - 객펀!l. 켈풀 Il 한국애출종합합교 영상원 영확과 D믿 The Korean National University of Arts -, School offilm and Multi-MediajDept. Film Making 큐f 줬! 훌훌 정선주 1971 년 서울 출생 1994 년 숙명여대 행정학과 졸업 2000 년 영상원 시나리오 예술전문사 2JI 입학
<C1A4C3A5BFACB1B82031312D3420C1A4BDC5C1FAC8AFC0DAC0C720C6EDB0DFC7D8BCD220B9D720C0CEBDC4B0B3BCB1C0BB20C0A7C7D120B4EBBBF3BAB020C0CEB1C720B1B3C0B020C7C1B7CEB1D7B7A520B0B3B9DF20BAB8B0EDBCAD28C7A5C1F6C0AF292E687770>
제 출 문 보건복지부장관 귀 하 이 보고서를 정신질환자의 편견 해소 및 인식 개선을 위한 대상별 인권 교육프로그램 개발 연구의 결과보고서로 제출합니다 주관연구기관명 서울여자간호대학 산학협력단 연 구 책 임 자 김 경 희 연 구 원 김 계 하 문 용 훈 염 형 국 오 영 아 윤 희 상 이 명 수 홍 선 미 연 구 보 조 원 임 주 리 보 조 원 이 난 희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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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문화연구 2001 겨울호 제24권 제4호(통권 85호) pp. 75 96 企劃論文 退溪學派의 經濟的 基 : 財産 形成과 所有 規模를 중심으로 1) Ⅰ. 머리말 Ⅱ. 財産 形成 문 숙 자* Ⅲ. 財産 所有 規模 Ⅳ. 맺음말 Ⅰ. 머리말 退溪學派 는 지역, 당색, 학문상의 이론적 배경 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 용어이 며, 시기에 따라서 지칭하는 의미에 차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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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울산학연구논총 ISSN 1979-9355 제 8호 Part.1 Part.2 Part.3 Part.4 울산의 공단 인접지역 자연마을의 변화상 - 울주군 청량면 화창마을을 중심으로 - 울산의 민속놀이 실태조사 울산광역시 지하보도, 문화창작공간으로서의 활용방안 연구 - 지하보도 문화와 예술을 입고 소통의 길을 찾다 - 울주 사찰 문헌자료의 조사연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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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전시 북한문학 도서전시회를 열기까지 류 η o τ 주 (중앙도서관 수서정리과) < 프E -, 차 > 1. 머리말 VII. 북한문학도서 전시회 개최 1. 김학렬 박사 프로필 II. 북한문학도서 입수 경위 1. 입수경위 2. 진행과정 ill. 북한문학 기증자료 1. 기증자료 처리현황 2. 처리기준 3. 등록 및 정리업무 4. 등록정리 후 특수자료 관리번호 부여
AAI 조섬대학교~..., 2010 I May NO.178 04 특집 1 1 세종한국어학당 07 언론인이 본 조선대 안현주 뉴시스통신사 기자 08 핫뉴스 2010 PRIDE CHOSUN 교육역량강화사업 추진 한국고전번역 기획사업 단 호남권 거점연구소에 선정 치과병원 리
AAI 조섬대학교~..., 2010 I May NO.178 04 특집 1 1 세종한국어학당 07 언론인이 본 조선대 안현주 뉴시스통신사 기자 08 핫뉴스 2010 PRIDE CHOSUN 교육역량강화사업 추진 한국고전번역 기획사업 단 호남권 거점연구소에 선정 치과병원 리모덜링 완공식 성료 치과병원 한국 자가치아 뼈은행 및 가족치아 뼈은행 개설 학생 처 MT문화
4) 이 이 6) 위 (가) 나는 소백산맥을 바라보다 문득 신라의 삼국 통 일을 못마땅해하던 당신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하나가 되는 것은 더 커지는 것이라는 당신의 말을 생각하면, 대동강 이북의 땅을 당나라에 내주기로 하고 이룩한 통 일은 더 작아진 것이라는 점에서,
1) ᄀ 2) 지은이가 3) (라)에서 학년 고사종류 과목 과목코드번호 성명 3 2009 2학기 기말고사 대비 국어 101 ( ) 일신여자중 ꋯ먼저 답안지에 성명,학년,계열,과목코드를 기입하십시오. ꋯ문항을 읽고 맞는 답을 답란에 표시하십시오. ꋯ문항배점은 문항위에 표시된 배점표를 참고하십시오. (가) ᄀ환도를 하고 폐허가 된 서울에 사람들의 모습 이 등장하던
채. : : : : ; ; z : ;. 뜯를 환경부창관 귀하 본 보고서를 광역소각시설 설치 확대 방안에 관한 연구 의 최종보고서로 제출합니다. 2 0 0 2 년 1 0 월 일 여 ι 여 U 여 니 - l 기 구책 구 기 관자원 엄 사단법 인 한국소각기 술협 의회 채재우
환경부 정책언구개발사업 훌 g1 훌 룰 l I 헤 를I I 헤 2 0 2. 1 0 앙텀휴 } 노 : : 1 " " " : - 각지 %끼 b O b 채. : : : : ; ; z : ;. 뜯를 환경부창관 귀하 본 보고서를 광역소각시설 설치 확대 방안에 관한 연구 의 최종보고서로 제출합니다. 2 0 0 2 년 1 0 월 일 여 ι 여 U 여 니 - l 기 구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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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자 명단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ㅊ ㅋ ㅌ ㅍ ㅎ 이 명단은 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자의 후손 또는 연고자로부터 이의신청을 받기 위해 작성 되었습니다. 이 인물정보를 무단 복사하여 유포하거나 인터넷을 통해 전 파하는일체의행위는법에저촉될수있습니다. 주요 훈포상 약어 1. 병합기념장 2. 대정대례기념장 3. 소화대례기념장
伐)이라고 하였는데, 라자(羅字)는 나자(那字)로 쓰기도 하고 야자(耶字)로 쓰기도 한다. 또 서벌(徐伐)이라고도 한다. 세속에서 경자(京字)를 새겨 서벌(徐伐)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또 사라(斯羅)라고 하기도 하고, 또 사로(斯盧)라고 하기도 한다. 재위 기간은 6
동경잡기東京雜記 권1 진한기辰韓紀 경상도는 본래 진한(辰韓)의 땅인데, 뒤에 신라(新羅)의 소유가 되었다. 여지승 람(輿地勝覽) 에 나온다. 진한은 마한(馬韓)의 동쪽에 있다. 스스로 말하기를, 망 명한 진(秦)나라 사람이 난리를 피하여 한(韓)으로 들어오니 한이 동쪽 경계를 분할 하여 주었으므로 성책(城栅)을 세웠다. 하였다. 그 언어가 진나라 사람과 비슷하다.
時 習 說 ) 5), 원호설( 元 昊 說 ) 6) 등이 있다. 7) 이 가운데 임제설에 동의하는바, 상세한 논의는 황패강의 논의로 미루나 그의 논의에 논거로서 빠져 있는 부분을 보강하여 임제설에 대한 변증( 辨 證 )을 덧붙이고자 한다. 우선, 다음의 인용문을 보도록
과 임제 신해진(전남대) 1. 머리말 세조의 왕위찬탈과 단종복위 과정에서의 사육신을 소재로 한 작품은 남효온( 南 孝 溫 )의 (1492년 직전?), 임제( 林 悌 )의 (1576?), 김수민( 金 壽 民 )의 (1757) 등이 있다. 1) 첫 작품은 집전( 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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蘇 州 원림의 景 名 연구 * 用 典 한 경명을 중심으로 1)심우영 ** 목 차 Ⅰ. 서론 Ⅱ. 기존의 경명 命 名 法 Ⅲ. 귀납적 결과에 따른 경명 분류 1. 신화전설 역사고사 2. 文 辭, 詩 句 Ⅳ. 결론 Ⅰ. 서론 景 名 이란 景 觀 題 名 (경관에 붙인 이름) 의 준말로, 볼만한 경치 지구와 경치 지 점 그리고 경치 지구 내 세워진 인공물에 붙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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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 詩 源 < 顔 延 之 > 篇 譯 註 * 崔 宇 錫 1) 1. 序 文 2. 古 詩 源 < 顔 延 之 > 篇 譯 註 3. 結 語 1. 序 文 沈 德 潛 (1673-1769)의 字 는 確 士 이고 號 는 歸 愚 이다. 江 南 長 洲 (현재의 江 蘇 省 蘇 州 ) 사람으로 淸 代 聖 祖, 世 宗, 高 宗 삼대를 모두 거쳤다. 특히 시를 몹 시 좋아한
교사용지도서_쓰기.hwp
1. 재미있는 글자 단원의 구성 의도 이 단원은 도비와 깨비가 길을 잃고 헤매다 글자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고 글자 공부를 하게 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자칫 지겨울 수 있는 쓰기 공부를 다양한 놀이 위주의 활동으로 구성하였고, 학습자 주변의 다양한 자료들을 활용함으로써 학습에 대한 흥미를 갖고 활동할 수 있게 하였다. 각 단계의 학습을 마칠 때마다 도깨비 연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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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례 익산시 조례 제1220호 익산시 주민감사 청구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 1 익산시 조례 제1221호 익산시 제안제도 운영조례 일부개정조례 3 익산시 조례 제1222호 익산시 시채에 관한 조례 폐지조례 12 익산시 조례 제1223호 익산시 시세 감면 조례 전부개정조례 13 익산시 조례 제1224호 익산시 행정기구설치조례 19 익산시 조례 제1225호 익산시
E1-정답및풀이(1~24)ok
초등 2 학년 1주 2 2주 7 3주 12 4주 17 부록` 국어 능력 인증 시험 22 1주 1. 느낌을 말해요 1 ⑴ ᄂ ⑵ ᄀ 1 8~13쪽 듣기 말하기/쓰기 1 ` 2 ` 3 참고 ` 4 5 5 5 ` 6 4 ` 7 참고 ` 8 일기 ` 9 5 10 1 11, 3 [1~3] 들려줄 내용 옛날 옛날, 깊은 산골짜기에 큰 호랑이 한 마리가 살고 있었습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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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2 동경잡기 東京雜記 동경잡기 173 권2 불우 佛宇 영묘사(靈妙寺) 부(府)의 서쪽 5리(里)에 있다. 당 나라 정관(貞觀) 6년(632) 에 신라의 선덕왕(善德王)이 창건하였다. 불전(佛殿)은 3층인데 체제가 특이하다. 속설에 절터는 본래 큰 연못이었는데, 두두리(豆豆里) 사람들이 하룻밤 만에 메 우고 드디어 이 불전을 세웠다. 고 전한다. 지금은
조선왕조 능 원 묘 기본 사료집 -부록 : 능 원 묘의 현대적 명칭표기 기준안 차 례 서 장 : 조선왕실의 능 원 묘 제도 11 제 1부 능 원 묘 기본 사료 Ⅰ. 능호( 陵 號 ) 및 묘호( 廟 號 )를 결정한 유래 1. 건원릉( 健 元 陵 ) 21 2. 정릉( 貞 陵 ) 22 3. 헌릉( 獻 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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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면양행견일기 沔 陽 行 遣 日 記 이 자료는 한말의 개화파 관료, 김윤식 金 允 植 (1835~1922)이 충청도 면천 沔 川 에 유배하면서 동학농민혁명 시기에 전문 傳 聞 한 것을 일일이 기록한 일기책 이다. 수록한 부분은 속음청사 續 陰 晴 史 의 권 7로 내제 內 題 가 면양행견일기 沔 陽 行 遣 日 記 로 되어 있는 부분 가운데 계사년 癸 巳 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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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장정 100년, 광주 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노동운동사 정 호 기 농민운동 1 목 차 제1장 연구 배경과 방법 07 1. 문제제기 2. 기존 연구의 검토 3. 연구 대상의 특성과 변화 4. 연구 자료와 연구 방법 07 10 12 16 제2장 이승만 정부 시대의 노동조합운동 19 1. 이승만 정부의 노동정책과 대한노총 1) 노동 관련 법률들의 제정과 광주
과 위 가 오는 경우에는 앞말 받침을 대표음으로 바꾼 [다가페]와 [흐귀 에]가 올바른 발음이 [안자서], [할튼], [업쓰므로], [절믐] 풀이 자음으로 끝나는 말인 앉- 과 핥-, 없-, 젊- 에 각각 모음으로 시작하는 형식형태소인 -아서, -은, -으므로, -음
. 음운 [ㄱ] [국], [박], [부억], [안팍] 받침의 발음 [ㄷ] [곧], [믿], [낟], [빋], [옫], [갇따], [히읃] [ㅂ] [숩], [입], [무릅] [ㄴ],[ㄹ],[ㅁ],[ㅇ] [간], [말], [섬], [공] 찾아보기. 음절 끝소리 규칙 (p. 6) [ㄱ] [넉], [목], [삭] [ㄴ] [안따], [안꼬] [ㄹ] [외골], [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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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과천심상소학교 졸업증서(문헌번호 03-004) 일제강점기 과천초등학교의 유일한 한국인 교장이었던 맹준섭임을 알 수 있다.
<C3D6C1BE5FBBF5B1B9BEEEBBFDC8B0B0DCBFEFC8A32831333031323120C3D6C1BEBABB292E687770>
우리 시의 향기 사랑하는 일과 닭고기를 씹는 일 최승자, 유 준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강사/문학평론가 한 숟갈의 밥, 한 방울의 눈물로 무엇을 채울 것인가, 밥을 눈물에 말아먹는다 한들. 그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해도 혹은 내가 아무리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 나는 오늘의 닭고기를 씹어야 하고 나는 오늘의 눈물을 삼켜야 한다.
초등국어에서 관용표현 지도 방안 연구
80 < 관용 표현 인지도> 남 여 70 60 50 40 30 20 10 0 1 2 3 4 5 6 70 < 관용 표현 사용 정도> 남 여 60 50 40 30 20 10 0 4학년 가끔쓴다 써본적있다 전혀안쓴다 5학년 가끔쓴다 써본적있다 전혀안쓴다 6학년 가끔쓴다 써본적있다 전혀안쓴다 70 < 속담 인지도> 남 여 60 50 40 30 20 10 0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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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나눔 섭이와 함께하는 여행 임강섭 복지과 과장 여름이다. 휴가철이다. 다 들 어디론가 떠날 준비에 마음 이 들떠 있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 여행 매니아까지는 아니 지만, 나름 여행을 즐기는 사 람으로서 가족들과 신나는 휴 가를 보낼 계획에 살짝 들떠 있는 나에게 혼자만 신나지 말 고 같이 좀 신났으면 좋겠다며 가족들과 같이 가면 좋은 여행 눈이 시리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