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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2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3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이 발표논문집은 2007년 정부(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 B00013)

4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5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2013년도 제2차 HK국내학술대회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 지배와 저항 사이 일 시 2013년 6월 14일(금) 10:30~18:00 장 소 한양대학교 한양종합기술연구원(HIT) 소회의실(6층) 주 최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APRC) 후 원 한국연구재단

6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7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2013년 6월 14일(금) 제 1세션(10:30~12:30) 사회자: 엄구호(한양대) 발표자: 1. 이형숙(고려대): 제국에 대한 Е. 자먀찐의 역사철학적 사유 희곡 <아틸라>를 중심으로 2. 이규영(성균관대): 소비에트 우상숭배와 유대인 미술의 아이러니 3. 이은경(한국외대): 소비에트 제국의 유대작가들과 예술가들: 유대 르네상스에 대한 향수와 문화정체성 4. 조규연(단국대): 시인과 스탈린: 마야코프스키의 죽음과 복권에 대한 재조명 토론자: 박선영(충북대), 차지원(서울대), 문준일(중앙대), 서광진(서울대) 제 2세션(13:30~15:30) 사회자: 최건영(연세대) 발표자: 1. 백승무(서울대): 불래불거( 不 來 不 去 ): 사라진 과거와 오지 않는 미래 2. 오원교(한양대): A. 플라토노프의 동양 전유: 창조적 사명인가, 식민화의 도구인가 3. 박혜경(한림대): 숄로호프 문학 속의 소비에트 담론 민족성과 이념의 경계 4. 권기배(경상대): 칼미크 민족의 소비에트화 과정연구 토론자: 김혜란(고려대), 송정수(중앙대), 최진석(충북대), 김홍중(중앙대)

8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제 3세션(16:00~18:00) 사회자: 김세일(중앙대) 발표자: 1. 김성일(청주대): 미하일 꼬즈이레프의 <레닌그라드>에 나타난 반유토피아 2. 박미령(청주대): 소비에트 이데올로기의 토착화를 위한 아동문학의 역할 3. 박영은(한양대): 제국주의적 발상인가?: 니콜라이 레리흐의 중앙아시아 원정에 내재된 정치 종교적 함의 4. 이지연(한양대): 응시와 권력: 드미트리 프리고프와 퍼포먼스로서의 텍스트 토론자: 장혜진(한국외대), 김은희(한국외대), 김상현(성균관대), 심지은(한림대)

9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목 차 제 1세션 이형숙 제국에 대한 Е. 자먀찐의 역사철학적 사유 희곡 <아틸라>를 중심으로 11 이규영 소비에트 우상숭배와 유대인 미술의 아이러니 19 이은경 소비에트 제국의 유대작가들과 예술가들: 유대 르네상스에 대한 향수와 문화정체성 27 조규연 시인과 스탈린: 마야코프스키의 죽음과 복권에 대한 재조명 35 제 2세션 백승무 불래불거( 不 來 不 去 ): 사라진 과거와 오지 않는 미래 49 오원교 A. 플라토노프의 동양 전유: 창조적 사명인가, 식민화의 도구인가 61 박혜경 숄로호프 문학 속의 소비에트 담론 민족성과 이념의 경계 69 권기배 칼미크 민족의 소비에트화 과정연구 79 제 3세션 김성일 미하일 꼬즈이레프의 <레닌그라드>에 나타난 반유토피아 87 박미령 소비에트 이데올로기의 토착화를 위한 아동문학의 역할 105 박영은 제국주의적 발상인가?: 니콜라이 레리흐의 중앙아시아 원정에 내재된 정치 종교적 함의 117 이지연 응시와 권력: 드미트리 프리고프와 퍼포먼스로서의 텍스트 127

10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11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제 1세션(10:30~12:30) 사회자: 엄구호(한양대) 발표자: 1. 이형숙(고려대): 제국에 대한 Е. 자먀찐의 역사철학적 사유 희곡 <아틸라>를 중심으로 2. 이규영(성균관대): 소비에트 우상숭배와 유대인 미술의 아이러니 3. 이은경(한국외대): 소비에트 제국의 유대작가들과 예술가들: 유대 르네상스에 대한 향수와 문화정체성 4. 조규연(단국대): 시인과 스탈린: 마야코프스키의 죽음과 복권에 대한 재조명 토론자: 박선영(충북대), 차지원(서울대), 문준일(중앙대), 서광진(서울대)

12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13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11 제국 에 대한 Е. 자먀찐의 역사철학적 사유 - 희곡 아틸라 를 중심으로 이형숙(고려대) 1. 서론 20세기 러시아문단에서 괄목할 만한 작가이자 소비에트시기 새로운 러시아문학의 개척자들 중에서도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자먀찐(Евгений Иванович Замятин, )은 1921년에 완성된 안티유토피아소설 우리들 이 <깃발>(Знамя)지에 게재된 1988년에야 조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독자층에게 그 진면목을 알리게 되었다. 그로부터 4반세기가 흐른 오늘날 유럽과 러 시아에서는 자먀찐의 거의 모든 작품이 출판되었고, 그의 예술가적 개성과 창작세계 연구의 공 백 을 메우려는 전면적인 시도들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국내 러시아학 연 구에서는 자먀찐을 주로 소설 우리들 (Мы, 1921)을 통해 소비에트정권 성립과 함께 태동하 던 전체주의체제에 미적으로 대항한 안티유토피아 작가로, 경고의 목소리 를 전하는 이단아 로 조명해왔다. 자먀찐을 이러한 규정 안에 가둘 경우 뛰어난 산문가이자 미학자로서, 드라마작 가이며 번역가, 문학비평가/시사평론가이자 문학이론가로서 그가 20세기 러시아 문단에 남긴 독 창적인 자취를 정당하게 담아내기 어려울 것이다. 1) 우리 조국의 문학은 늘 유럽문학과 달랐다. 우리나라 문학에는 시종일관된 교육 과 아바쿰 에게서부터 시작된 설교의 원리가 있지만, 형식 에 대해서는 다소 경원시한다. 유럽문학에는 정 교함, 우아함, 독자적인 문체의 장엄함, 그리고 완결성이 있다. 자먀찐은 러시아문학에서 몇 안 되는 유럽적 작가, 지적으로 뛰어난 작가들 중 한 사람이다. 2) 자먀찐 연구자로 널리 알려져 있는 О. 미하일로프의 이 언급은 자먀찐의 모든 창작 유산에 적용할 수 있는 제사( 題 詞 )로서 손색이 없어 보인다. 비극적인 망명시기를 포함하여 그리 길지 않았던 창작생애에서 자먀찐이 소설과 역사적 서사, 단편과 중편, 동화, 희곡, 극장과 시나리오, 에세이, 문학적 초상, 시사평론 등 다채로운 장르들을 통해 남긴 자취에는 대담하면서도 탁마된 고유의 글쓰기 방식, 민족적 테마, 러시아 고전문학의 전통과 서양철학의 발견들을 결합하려는 시도, 신랄한 풍자와 서정, 삶에 대한 뿌리 깊은 애정 등이 그야말로 종합적 으로, 메타적으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필자는 자먀찐에 대한 연구의 시계( 視 界 ) 밖에 놓여있는 많은 문제들 중 작 가의 예술철학과 역사철학에서 하나의 전환적 단계를 보여주는 희곡 아틸라 (Атилла)에 대 한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 10여 년 이상 아틸라의 형상을 조탁( 彫 琢 )하고, 아틸라의 시대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방대한 사료를 연구하여 새롭게 해석하면서 자먀찐이 고대 로 마와 20세기 혁명들의 시대에 대해, 동과 서에 걸쳐 있는 러시아제국과 러시아인의 운명과 나아 갈 길에 대해, 역사를 이끌어 가는 동력으로서 개인과 대중과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 사 1) 최근 들어 독자적인 미학체계로서 자먀찐의 네오리얼리즘과 종합주의 에 대한 연구(김홍중)가 이루어지고 있 다. 2) Михайлов О. Гроссмейстер литературы // Замятин Е. Мы. М., С. 5.

14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12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유하는지 고찰하고자 한다. 2. 아틸라 - 미완의 희곡 자먀찐의 역사적 표상들을 해명하는 과정을 통해 그의 역사철학을 재구성하는 일은 실재했던 역사적 과거를 다룬 이 작품이 완결되지 않았다는 상황으로 인해 복잡해진다. 그러나 아틸 라 ( )는 비록 2막짜리 미완의 드라마이지만, 작가가 죽음을 맞이하는 시기까지 지속 적으로 매달렸던 작품이며( 민족 대이동과 로마 제국의 멸망만큼 자먀찐이 지속적으로 부여잡고 있던 주제는 없다. - 라이네 골트), 역시 미완에 그친 생애 마지막 소설 신의 징벌 (Бич Бо жий, )은 그 과정의 결산으로 평가되고 있다. 아틸라 는 로마제국을 멸망시킨 훈족의 위대한 지도자를 주인공으로 하여 로마 사절단의 음모, 적의 딸 일데곤다와의 비극적 사랑, 카탈루냐 전투에서의 패배와 아틸라의 죽음(복수심으 로 가득 찬 여인에 의한 영웅의 피살) 등을 다루고 있다. 희곡의 슈제트는 비극, 고대 영웅서사 시, 동화, 그리고 유희적 모티프와 장면들로 구성된 다층위적 짜임을 보여준다. 1917년 혁명 이후 광범위한 대중의 문화수준을 고양시키고 새로운 문화건설에 참여시키려는 움직임과 관련하여, 이들이 가장 접근하기 쉬운 예술형태로서 극장 에 각별한 역할이 부여되 었다. 극장이 사회적 선과 악의 능동적 투쟁이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사고가 유행하게 되었고, 따라서 극장예술을 전대미문의 수준으로 고양시키는 것이 혁명의 또 다른 임무가 되었다. 적지 않은 극장활동가들이 대중을 가르치고 계몽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이라 여기고 극장이 볼셰비즘 에 선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소비에트 권력을 인간화할 수 있다는 환상을 품었다. 이런 사회 적 분위기에서 가장 요구되고 환영받는 희곡은 영웅적 인 내용을 담은 것이어야 했다. 또한 국 가의 정신적 개조 라는 과제를 해결하는 첫 걸음은 민중들에게 러시아문학과 세계문학에 담긴 가치들을 알려줄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되었다. 페트로그라드의 <세계문학>출판사 산하에 설치되어 있던 역사적 장면 섹션 (Секция историч еских картин)에서도 광범위한 대중의 계몽을 위한 역사적 주제(인물과 사건)들로 희곡을 창조 하도록 드라마작가들을 각성시키는 과제를 수행할 작가들을 결합시켰다. 고리끼, 블록, 구밀료 프, 추콥스키, 올젠부르그, 자먀찐, 라브레뇨프 등 많은 작가들이 이 임무에 참여했다. 러시아에 정착했던, 그러나 역사가들이 그 흔적을 잃어버린 훈족에 대한 이론을 처음으로 전개한 것은 구 밀료프였다( Совдепы - гунны ). 아틸라라는 영웅적 개인에 대한 자먀찐의 관심은 어느 정도는 이러한 시대적 조류에 의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 듯하다: 거대한 변혁의 시대, 위대한 파괴와 창조의 시대, 희망과 절망의 시대, 인간애와 잔인함의 시대. 실현된 변혁의 지지자들, 혁명으로부터 정화된 혁신을 기대하던 사람들에게 아틸라는 낡은 세계와의 격투에 뛰어든 숙명적 투사 였고, 사회적 격동에 반대하는 이들에게는 파괴자요 야만인이었다. 그러나 당시 많은 예술 활동가들이 5세기와 20세기라는 아 득히 먼 두 시대 간의 유사성에 관심을 표명했다고는 해도 자먀찐만이 비극 아틸라 를 실제 로 쓸 만큼 관심을 기울였고, 몇 년 뒤에 또다시 고대 로마의 멸망이라는 테마로 회귀3)했다는 3) Лядова Е. А. Трагедия "Атилла" в творческой эволюции Е. И. Замятина: Монография. Тамбов: Изд-во ТГУ им. Г.Р. Державина, C 년 7월 4일에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중앙 상연위원회 확대회의에서 이 텍스트가 심의를 거치며 결국 상연목록에서 제외되었다. 랴도바에 따르면, 자먀찐이 지속적 으로 수정한 여러 판본 중 마지막인 다섯 번째 판본이 가장 중요한 작품이며 따라서 상세한 문예학적 분석을

15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제국에 대한 Е. 자먀찐의 역사철학적 사유 희곡 <아틸라>를 중심으로 13 사실을 고려한다면, 이 작품에 담긴 작가의 역사철학적 사유는 일시적인 조류에 따른 것만은 아 님을 알 수 있다. 3. 역사의 순환성과 관련된 개념들과 사유 자먀찐의 역사개념에서 현대 과학주의 이론들(R.마이어의 열역학 제2원칙, 마이어의 이론을 심리와 정신적 삶의 현상들로 확장시킨 빌헬름 오스트발트의 에너지 일원론, 상대성 이론 등) 은 니체와 다닐롑스키, 슈펭글러, 알렉산드르 블록과 안드레이 벨르이, 발레리 브류소프 등 상징 주의자들의 유명한 역사철학적 순환 개념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는 견해가 있다. 철학적, 학 문적 원천들의 통속성이나 진부함은 한편으로 자먀찐의 지적 유연성을 증명하는 것으로 볼 수 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역사개념의 독창성에 의심을 품게 하기도 한다. 자먀찐의 모든 이념들의 이차성을 둘러싸고 고리끼가 그를 향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던 일이나, 자먀찐의 독자성에 대한 서구의 논의를 떠올릴 만하다. 4) 그러나 자먀찐은 역사의 순환성에 대한 자신의 신화를 창조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문화-역사 적, 학문적 이론들은 단지 재료 가, 이 신화를 기술하기 위해 변화되는 언어들이 되고 있다. 현 존하는 이념들이 자먀찐에 의해 재해석되고, 흔히 대비되는 문화-역사적 범주들(자연, 자연력, 동양적인 것/서양적인 것 등)을 작가 고유의 의미와 재료들로 채우는 것이 그 개념의 독창성을 가리키는 지표가 될 수 있다. 역사의 순환 개념은 이 예술가의 신화시학적 표상들로부터 유기적 으로 연원하는 것이지, 니체와 슈펭글러에게서 받아들인 것(동화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 고자 한다. 자먀찐의 창작은 미학과 시학의 여러 단계들을 거치는 과정에서 신화적이며 순환적 인 세계상을 창조하는 총체적인 메타텍스트로 수용되고 있다. 5) 즉, 그의 사유방식 자체는 달라 지지 않고 있으며,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스키타이성 (Скифство)과 이단주의 (Еретичество)라 고 할 수 있다. 홀트와 폴랴코바는 자먀찐에 의해 전유된 동과 서, 스키타이성, 이단주의 등의 문제에 대한 선행하는 철학적 전통을 게르첸, 슬라브주의자, 도스토옙스키, 베르자예프, 블 록, 그리고 슈펭글러의 계보 속에서 제시한다. 6)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유사성이 아니라 (특히 다닐렙스키, 슈펭글러, 블록의 개념들의 유사성), 저자 신화의 독창성을 확인시켜주는 차 이점과 재해석들이다 스키타이성 자먀찐의 창작에서 가장 본질적인 개념들 중 하나인 스키타이 테마가 등장한 것은 혁명 이 나 변화 등의 개념과 연관된 사회문화적 형상으로서 스키타이가 이른바 유목적 원형 이었다는 할 가치가 있다. 4) Геллер Л. Уникальность творческого почерка(?) // Кредо. Ежемесячный научно-популярный и литературно-художественный областной независимый журнал. Тамбов, С ) Хотямова М.А. Творчество Е.И.Замятина в контексте повествовательных стратегий первой тре ти ХХ века: Создание авторского мифа. Томск: Изд-во ТГПУ, С ) Гольдт Р. Мнимая и истинная критика западной цивилизации в творчестве Е. И. Замятина. На блюдения над цензурными искажениями пьесы "Атилла". С ; Полякова Л. В. О "скифс тве" Евгения Замятина. С 홀트는 망명 초기인 1931년 12월에 프라하에서 했던 강연에서 자먀찐 이 슈펭글러를 우리 시대에 가장 멀리 내다보는 햄릿들 중 한 사람 이라고, 현대 세계를 놀라게 했던 경악 시킨 심대한 위기를 처음으로 인식했던 사람들 중 하나 라고 언급했음을 밝혔다.

16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14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점과 관련이 있다고 여겨진다. 주지하다시피, 스키타이주의 이념은 혁명 이후 러시아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7) 스키타 이주의자들 (Скифы)은 사회혁명을 진정한 스키타이적 혁명으로, 정신의 혁명 으로 가는 걸음 으로 받아들였고, 러시아의 메시아적 이며 사회 외적, 역사 외적 운명에 대해 글을 썼다. 손쩨 바(Н. Солнцева)는 스키타이주의자 그룹에 대해, 영원한 러시아의 혁신이 가까워졌다는 느낌, 대지를 삶을 조직하는 원리이자 철학적 범주로 인식, 애국심을 영성( 靈 性 )의 기호로 이해, 영성 자체는 반란성, 진리의 추구, 영원함에의 호소로 이해, 우주론적 철학과 생활양식 - 이 모든 것 이 러시아 소년들의 다면적인 형제애를 하나의 사원의 원형 천정 아래로 이끌었다. 8) 이 그룹 을 흥분시켰던 문제들은 주로 러시아의 특별한 향방과 러시아인의 영혼의 특별한 성품과 관련 된 것이었다. 스키타이주의는 러시아의 일상생활뿐 아니라 예술적 삶의 모든 역겨움들에 대한 (인텔리겐치 야의 지성에) 만족스러운 설명이 되었다. 그것은 수 천 년에 이르는 문명 발전의 순환성 이념들 로,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 으로, 장구한 발전에 지친 문화에 대한 더 건강해지고 새로운 기운을 불어 넣으려는 야만성의 작용 이념들에서 연원했다. 은세기 의 복잡해진 문화 이후에 문화의 간소화, 원시화가 자연스러운 현상이 된 듯하다. 9) 자먀찐이 이해하는 스키타이주의 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던 이런 해석과는 일치하지 않았 다. 그에게 있어 스키타이주의는 동-서 의 대립이나 러시아인의 민족성을 강조하거나 무의미한 야만성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정신적 범주였다. 자먀찐의 스키타이 에는 인간에게 원초적으로 내재하는 개인적 자유의 본능에 대한 가장 높은 정신적 표현이 들어 있다. 해방의 조건은 자신과 주변 존재들에 대한 영원한 불만과 영원한 도달, 앞을 향한 영원한 전진 이다. 그러나 강렬한 자유의지 에 이끌리는 혁명가 자먀찐은 폭력에 대한 권리를 배격한다. 10) 고 켈 드이쉬는 강조한다. 자먀찐에게 있어 스키타이인은 무엇보다도 이단아, 반역자, 오늘 이 시간에 내일을 보는 인간이다. 스키타이적인 방종과 야생적인 에너지는 무한한 자유의지를 즐기려는 것 이 아니라 뭔가 매력적이고 도달하기 어려운, 그래서 더욱 원하게 되는 자유로운 추구들을 향해 있다. 스키타이주의 를 작가는 사유의 형상으로, 영혼의 특정한 상태로 이해하고 있다. 바로 이 런 이유로 자먀찐에게 있어 스키타이인은 거칠게 소리치며 초원을 달리고 자신이 가는 길에 있 는 모든 것을 쳐서 쓰러뜨리는 분별없는 기사( 騎 士 )가 아니라 자신의 꿈을 위해서라면 생명마저 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비극적인 외로운 인간, 편력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키타이인의 정의에는 결코 평온을 찾지 못할 운명을 지닌 영원한 방랑자의 형상이 내포되는 것이다. 자먀찐 의 스키타이인은 결코 평온할 수 없는 영원한 편력의 운명을 지녔지만 그것을 저주로 여기지 않고, 힘들지만 유일하게 가능한 행복이라고 여긴다. 그들은 진정한 낭만주의자들이다. 꿈을 좇 는 러시아인들은 영원한 편력자들이다. 7) 1917년 중반에는 작가들과 예술활 동가 연합의 간행물인 <스키타이인들скифы>이라는 연감이 간행되기 시작 했고, 년 동안 두 권의 문학-시사평론 선집이 출간된다(1918년에 자먀찐의 <섬사람들> 게재). Р. 이 바노프-라줌닉을 이념적 지도자로 활동한 이 그룹에는 안드레이 벨르이, 올가 포르슈, 미하일 프리슈빈, 니콜 라이 클류예프, 세르게이 예세닌 등이 참여하거나 가까이 지냈다. 8) Солнцева Н. М. Китежский павлин: Филологическая проза: Документы. Факты. Версии. М., С ) Жидков В. С. Театр и власть М., С ) Келдыш В. А. Замятин - публицист и критик // Замятин Е. И. Я боюсь. М., С. 9.

17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제국에 대한 Е. 자먀찐의 역사철학적 사유 희곡 <아틸라>를 중심으로 이단주의 스키타이주의 개념에 대한 저자의 규정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이 개념이 이단성 혹은 이단주의에 대한 규정을 통해 제시된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자먀찐의 평가 속에서 모든 스키타이인은 자신 안에 반드시 이단아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 이단주의 테마는 작가의 예술적이며 시사평론적인 유산의 아주 많은 부분에서 어떤 방식으로 든 다루고 있다. 이미 초기 작품들에서 주인공들은 기존 사회 규범들에 맞서 봉기하는 인물, 삶 의 위대한 의미를 찾아 가는 불만스러운 주인공이다. 자먀찐의 아틸라 는 그의 산문의 논리적 연장이라고 볼 수 있다. 아틸라가 이전 작품들의 몇몇 슈제트적 요소와 인물들을 담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 희곡이 자먀찐에 의해 연구되었 던 개인의 자유, 인간-투사, 보편적으로 용인된 도그마들에 저항하고자 하는 이단아 등의 테마 들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창작 생애 전 기간 동안 그를 흥분시켰던 이 테마는 1910년대의 단편과 중편, 소설 아틸라 등에서 추적할 수 있다. 그러나 초기 작품들에서 이 단성 이 속악한 삶과 인간의 자유의 제한에 저항하는 폭동을 연상시켰다면, 희곡 <아틸라>에서 이단아 의 개념은 혁명가 개념에 근접하고 있다. 쾌적한 세계를 뒤흔들고 그 세계를 변화시켜 지상에 젊음을 되돌려줄 수 있는 최초로 길을 걸어간 사람, 꿈꾸는 자 아틸라가 그런 인물이 다. 정의에 대한 자신의 표상들에 따라 사회를 개조하고자 하는 인물이다. 예술가의 존재 의의, 그의 독자성의 척도, 내적 불굴(확고함)을 자먀찐은 다름 아닌 이단주의 이념에 대한 태도를 통해 보여주었다. 중요한 것은, 진정한 문학이란 실무를 집행하거나 사상 적으로 온건한 관리들이 아니라 광인(狂人), 은둔자, 이단아, 몽상가, 반항아, 회의주의자들이 행 하는 곳에서만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11) 스스로를 이단아로 여기고 바로 그 불굴의 태도로 창작에 대한 평가에 접근하면서 자먀찐은 자신의 저작들에서 이 모티프를 상세하고 전면적으로 가다듬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시사평론 논문들에서 그는 붉은 고깔모자를 언제 쓰고 언제 벗 어야 하는지 12)를 아는 문학적 문학적 기회주의자들을 지치지 않고 비난했다. 4. 슈펭글러, 칼라일의 사상과의 교호 슈펭글러의 철학에 대한 심취는 예술가 자먀찐의 역사철학에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 다. 희곡 아틸라 에서 찾을 수 있는 다음의 사유와 관점들은 어느 정도는 슈펭글러의 서 구의 몰락 에서 연원한다: 모든 문화와 문명은 사멸할 운명을 지녔다. 로마문명의 파괴는 역사 적으로 근거를 지닌 것이며 당연한 것이다. 문명 파괴의 시대는 이 시기를 구현한 개인의 성격 (개성)을 이해함으로써 이해될 수 있다. 특정한 단계에서 역사 발전의 완전한 장면을 제시하는 일은 오직 예술가만이 해결할 수 있는 과제이다. 또한 아틸라의 삶을 통해 인류 발전에 있어서 영웅적 개인의 역할에 대한 사유를 제시하는 점은 토머스 칼라일의 사상과 맞닿아 있다. 전 세계의 역사, 인류가 이 세계에서 이루어 놓은 역사는 본질적으로 이곳, 이 지상에서 힘껏 노력한 위대한 사람들의 역사이다. 이 위대한 사람 들이 인류의 영도자였으며, 교육자요 본보기였고, 넓은 의미에서 모든 대중이 이루고자 노력했 던 것, 그들이 도달하고자 했던 모든 것의 피조자였다. 이 세상에서 행해진 모든 것은 본질적으 로 이 세계로 보내진 위대한 인간들이 지녔던 생각들을 실제로 구현한 것, 그 생각들의 물질적 11) Там же. С ) Там же. С. 49, 35.

18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16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결과이다. 이 위대한 인간들의 역사가 전 세계 역사의 진정한 영혼을 구성하는 것이다. ( 영웅 숭배론 ) 아틸라 의 근간에는 로마제국의 파멸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제시하고, 이 사건을 조직하고 이끌었던 위대한 역사적 개인의 성격을 분석하려는 시도가 놓여있다. 작가가 위대한 개인의 성격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희곡에는 집단이 등장하거나 전투하는 장면이 실질적으로 부재하다. 민중들은 주요 등장인물인 사령관, 지도자이자 폭군인 아틸라가 선명하게 앞으로 나 서는 무대의 배경 역할만을 하고 있다. 5. 결론 지금까지 개략적으로 고찰해본 희곡 아틸라 에는 혁명, 스키타이성과 이단주의, 러시아 영 혼에서 그것들의 근원 추구, 역사에서 개인의 위대한 역할에 대한 인식, 러시아와 러시아인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특별한 임무에 대한 믿음 등, 작가의 창작과 세계관의 많은 계보들이 교차하 고 있다. 이 작품에는 19세기말~20세기 초에 널리 확산되어 있던 철학과 인류학 개념들이 반영 되어 있기 때문에 자먀찐이 적극적으로 제기했던, 향후 러시아와 인류의 가능한 발전 경로들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해준다. 러시아와 유럽의 인텔리겐차에 의해 제기된 개인과 사 회의 상호작용 이라는 근본 문제에 주목하면서 자먀찐은 유럽 문명의 파멸, 문화의 쇠퇴 등을 비관적으로 예언했던 슈펭글러와 달리, 역사적 선결성에 회의를 품고 자유로운 개인의 의지를 가장 전면에 제기했다. 그러나 자먀찐이 위대한 정복자의 과업을 인정하고 찬양하면서 아틸라로부터 이상적 주인공(영 웅)을 만들어낸 동시에 이 형상의 도움으로 현존하는 정권의 전제정치를 폭로하고자 했다고 해석 하는 것에 대해서는 더 많은 고찰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이 작품이 자기 시대의 전체주의적이고 야만적인 구조들을 폭로할 목적으로 역사적 교차점들의 단계를 이용한 최초의 시도라거나, 은연중 에 드러나는 슈제트 속에서 저자가 러시아 혁명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등 다양하고 모순된 해석들 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희곡의 상연을 반대하며, 어떤 관료는 자먀찐은 강하고, 똑똑하며, 재능 있는 적(敵)이다. 자먀찐은 충심으로 서구와 함께 한다(영혼까지도 서구적이다). 그는 볼셰비키-야 만인들에게 진심으로 반대하며, 그의 희곡은 파멸해가는 서구에 대한 애수로 가득하다. 라고 했지 만, 그 말이 곧 자먀찐이 진정으로 소비에트 권력의 적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틸라가 저자에 의해 거대한 개인 (титаническая личность)으로 제시되었다는 것은 말할 나 위가 없다. 이와 더불어, 희곡의 결말에서 주인공의 파멸, 잔혹하고 때로는 저속하고 파렴치한 폭군-해방가로서 스키타이인의 묘사, 문화의 파괴를 보여주는 장면들, 아틸라에 대립하는 이상적 주인공-로마인 아에티우스 등 - 이 모든 것이 일의미적 결론을 내리는 것을 주저하게 만든다. 그러나 스키타이주의 를 이단주의와 반항적 행동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경우, 미완의 희곡 아 틸라 와 미완의 소설 신의 징벌 이 작가의 예술적 유산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단서라 고 생각할 수 있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바로 이 작품들에 자먀찐이 그의 창작 생애 전체에 걸쳐 고민하고 발전시킨 이념들이 가장 명확하게 구현되어 있다. 그러므로 훈족 지도자 아틸라의 테 마는 다 년 간에 거친 작업의 대단원의 명장면이자 독창적인 결말이 된다. 다름 아닌 아틸라의 형상 속에 자유를 위한 영원한 스키타이적 열망과 정신적 해방, 세계변혁을 향한 이단아적 노 력, 그리고 권력에 복무하는(권력의 시녀로서의) 예술 테마가 가장 유기적으로 종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19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제국에 대한 Е. 자먀찐의 역사철학적 사유 희곡 <아틸라>를 중심으로 17 참고문헌 Замятин Е. И. Сочинения. Том первый. Редакция Евг. Жиглевич. A. NEIMANIS BUCHVERTRIEB UND VERLAG, Замятин Е. И. Избранные произведения. Повести. Рассказы. Сказки. Роман. Пьесы. Сост. А. Ю. Галушкин. М.: Советский писатель, Замятин Е. И. Избранные произведения. Сост. Е. Б. Скороспелова. М.: Советская Россия, Замятин Е. И. Избранные произведения в двух томах. Сост. О. Михайлов. М.: Художествен ная литература, Замятин, Е.И. Атилла // Е.И. Замятин. Собр. соч.: в 5т. Т. 3. М.: Русская книга, 나병철. 소설과 서사문화. 서울: 소명출판, 니콜라스 르제프스키 엮음/ 최진석 외 옮김. 러시아 문화사 강의. 키예프 루시부터 포스트소비에 트까지. 서울: 그린비, Белая Г. А. Дон Кихоты революции - опыт побед и поражений. М.: РГГУ, Бердяев Н.А. Русская идея// О России и русской философской культуре. Философы русског о послеоктябрьского зарубежья. М., С Бердяев Н.А. Судьба России. Опыты по психологии войны и национальности. М., Голдт Р. Мнимая и истинная критика западной цивилизации в творчестве Е.И.Замятина. На блюдения над цензурными искажениями пьесы "Атилла"// Russian Studies. Ежекварт альник русской филологии и культуры Т.II. N 2. С Голубков М. М. Русская литература ХХ в. После раскола. М.: Аспент Пресс, Гумилёв, Л.Н. Ритмы Евразии: эпохи и цивилизации. СПБ.: СЗКЭО, ООО «Издательский До м «Кристалл»», Давыдова Т. Т. Творческая эволюция Евгения Замятина в контексте русской литературы пер евой трети ХХ века. М.: МГУП, Давыдова Т. Т. Русский неореализм. Идеология, поэтика, творческая эволюция. Учеб. пособ ие. М.: Флинта, Наука, Замятинская энциклопедия - Лебедянский контекст. Тамбов-Елец, Кдырбаева Б. А. История и личность в творчестве писателей х годов. Дисс. на сои скание уч. степ. доктора филол. наук. М., Кевин М. Ф. Платт. История в гротескном ключе. Русская литература и идея революции. С Пб.: Академический проект, Лядова Е. А. Трагедия "Атилла" в творческой эволюции Е. И. Замятина: Монография. Тамб ов: Изд-во ТГУ им. Г.Р. Державина, Михайлов О. Гроссмейстер литературы// Замятин Е. Мы. М., С Опыт неосознанного поражения. Модели революционной культуры 20-х веков. Сос т. Г. Белая. М.: РГГУ, // Панов А. Традиции евразийской историософии: евразийство и теория этногенеза Л.Н.Гумилё ва в свете трагедии Е.И.Замятина «Атилла»

20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18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Слободнюк С. А. К вопросу о гностическом элементе в творчестве А. Блока, Е. Замятина, А. Толстого ( ) // Русская литература. СПб., С Хэ Фан. Евразийство и русская литература х годов XX века. Дисс. на соискание уч. степ. кандидата филол. наук. М., Хотямова М.А. Творчество Е.И.Замятина в контексте повествовательных стратегий первой т рети ХХ века: Создание авторского мифа. Томск: Изд-во ТГПУ, 2006.

21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19 소비에트 우상숭배와 유대인 미술의 아이러니 이규영(성균관대) Ⅰ. 사회주의 리얼리즘 예술이 소비에트 사상과 이념의 구상화 도구로 전락한 것은 널리 알려진 것이다. 1920년대 말부터 1934년 사이 소련의 유일한 공식 예술이었던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1934년 이후로 실질적으로 스탈린 예술로 변모하는데, 러시아 아방가르드들이 지향했던 미학의 정치화는 스탈린의 종교적 우상화로 변질되었다. 내용이 형식을 결정하고 그 형식은 이동파 화 가들의 리얼리즘에서 유래한 사회주의 리얼리즘 예술은 소련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는 책 표지, 선전 포스터, 기념비적인 건축 양식, 회화들로 가득 채워졌다. 그러나 이것들은 사회주의 리얼리 즘의 이데올로기를 너무 노골적이고 직설적으로 드러내어 전형화 될 수밖에 없었고, 마치 공장 에서 반복적으로 대량생산된 것 같은 상투성은 오히려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정치적 키치로 전 락시켰다. 이에 대해 보리스 그로이스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단조로운 음조와 유희의 부재, 대중들의 실생활과 동떨어진 점들은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에 뒤지지 않을 정도다. 라고 평 가한다. 13) 신고전주의 양식을 답습하듯 스탈린 형상은 신고전주의 초상화에 등장하는 영웅, 왕족, 귀족처 럼 영웅적이고 권위적인 모습으로 정면을 응시한다. 그리고 러시아 성화(Икона)의 성인 모습처 럼 무표정하고 엄숙한 자태로 관람자들에게 존경심을 넘어 신성함을 유발하려고 한다. 해서 스 탈린의 초상화는 인물의 특징을 주로 두부를 통하여 전하고 인간의 모습을 성화의 인물처럼 평 면적으로 그리는 17세기 파르수니(parsuny) 기법 14) 을 연상하게끔 한다. 살아있는 스탈린의 권력 과 존엄을 신성함의 상징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달리 말해 스탈린의 형상은 언제나 신성하고 동요 없는 초시간적 기념비 15) 로 대중들이 인식하게끔 하는 것이다. 그림 1 미하일 로샬, 석탄을 초과 달성하자! 파르수니 기법으로 소비에트와 종교의 연관성을 패러디한 작품(필자 주). 13) Борис Гройс, Искусство утопии (М.: Худржественный журнал, 2003), С ) 정교회 이콘의 전형적인 화법과 서양의 초상화 기법이 합성되었던 17세기 러시아 초상화 양식으로서 이콘보 다는 서구의 초상화에 더 가까웠다. 17세기 이콘 화가였던 시몬 우샤코프(Семен Ушаков)도 알렉세이 미하 일로비치 등 황제의 초상화를 파르수니 기법으로 그렸다. A. I. 조토프, 이건수 옮김, 러시아 미술사 (동문

22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20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이러한 스탈린의 아이러니한 우상화, 즉 종교를 부정하면서도 스스로는 신적인 영광을 후광으로 얻고자 하는 이중적 태도는 당시 러시아 대중들에게 하나의 은폐된 이데올로기로서 신화로 작 용하였음을 볼 수 있다. 당시 소련 대중들에게 스탈린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우상으로 존 재하였으며 스탈린의 초상화는 러시아 대중들에게 성화처럼 보존되었기 때문이다. 일례로, 스탈 린의 초상화와 이반 뇌제(Иван Грозный)의 성화가 함께 있는 사진 1은 당시 러시아 정교회 신 사진 1 사제 바실리 세카쵸프, 스탈린 초상화와 성 이반 뇌제 이콘 자들 집에서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교회사가인 사제장 게오르기 미트로파노브(протоие рей, Георгий Митрофанов)는 아직도 러시아 역사에서 혹독한 독재자의 전횡을 은폐하고 강력 한 애국, 민족주의를 부각시켜 추앙하는 현대 러시아 일부 대중들을 개탄하면서, 2차 세계 대전 때 독일군이 러시아 교회를 폭파, 폐쇄한 것을 스탈린이 복원( 년)했다는 이야기는 사실 에 근거한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반가톨릭, 반서구 정책의 일환으로 정교회가 이용당한 것이었 을 뿐, 이러한 정책이 실패하자, 스탈린은 다시 정교회 성당을 폐쇄하고 혹독한 정책을 이어갔 다는 것이다. 16) 즉 러시아 정교가 지향하는 천상의 왕국을 지상의 유토피아로 대체하고 신을 대 신하여 스스로 신적 반열에 오르려했던 스탈린 형상은 강력한 권력과 힘에 대한 향수로 아직도 러시아 일부 대중들에게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널리 알려진 대로 이러한 스탈린 신화는 이미 탈신화 되고도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림 2처럼 스탈린의 절대적이고 성스러운 상징성은 오늘날 러시아 다수의 대중들에게 더 이상 존재 하지 않으며 단지 성화의 껍데기만을 입은 인물로 풍자와 조롱의 대상일 뿐인 것이다. 17) 스탈린 그림 2 성스러운 지도자 스탈린 선, 1996), 117 쪽. 15) 이지연, 기념비와 스탈린 신화: 권력의 재현적 공간으로서의 소비에트 예술과 삶, 러시아어문학연구논 집 제29집, 2008, 344 쪽. 16) 이러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회고함에 있어, 러시아에 널리 퍼져 있는 것 중 하나가 스탈린과 정교에 관한 것이다. 스탈린은 1943년부터 대외 정책의 일환으로 부분적으로 교회 보존을 실시하는데, 주로 외국 정교회 신자들의 노력과 압력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1948년 서방에서 소련 정부를 인정하기 시작하자 스탈린은 다시 교회 억압 정책을 이어갔다. 당시 14,500개 교회 가운데 1,000개가 문을 닫았고 1988년에는 6천500개 만 남았다. 참조.

23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소비에트 제국의 유대작가들과 예술가들: 유대 르네상스에 대한 향수와 문화정체성 21 사후 해빙기에 들어서면서 소련 대중들은 스탈린 시대 유토피아의 꿈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 는 허망한 환상이었음을 깨달았으며, 이러한 시대적 자각은 1950년대 말, 60년대 비공식 미술과 일부분 공식 미술에서도 표현되었으며, 1970년대 초 소츠 아트(Соц-арт)와 모스크바 개념주의(К онцептуализм) 작품들 속에 본격적으로 반영되었다. 18)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진부하고 상투적인 표현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소츠 아트는 러시아적 개념 미술로 분류되거나 키치 아트로도 일컬 어진다. 1950년대 말 비공식 미술과도 일정 부분 관련이 있으나 비공식 미술과 달리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이데올로기를 직접적인 예술적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19) 소츠 아트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공식적 강령에서 벗어나 서구의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대중 예술 기법을 흡수하여 소비에트의 이데올로기를 패러디, 뒤틀기, 해체하는 방식으로 탈소비에트를 추구했다 는 특성을 가진다. 흥미로운 점은 소츠 아트의 창시자인 코마르(Виталий Комар)와 멜라미드(Александр Мелами д) 20) 가 유대계 러시아인이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상숭배를 거부하고 신적인 형상의 재현을 거부했던 유대인들이 예술 장르 가운데서도 가장 우상화의 늪에 빠지기 쉬운 회화를 통해 종교 적인 주제를 다룬 것은 미술사에서 찾아보기 힘들며, 유대인으로서 화가 스스로도 많은 환경적 인 제약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샤갈(М. Шагал) 역시 유대인이 부정하였던 예수를 그림의 소재로 한 후 비난을 감내해야 했다. 물론 엄격한 층위에서 코마르와 멜라미드가 종교화를 그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회화적 대상과 주제는 좁게는 기독교 회화, 넓게는 종교적인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글에서는 코마르와 멜라미드를 비롯한 유대계 러시아인들의 미술과 소비에트 우상 숭배와 의 관계성을 살펴보고 그 속에 담긴 종교적 함의를 고찰하고자 한다. 우선, 유대인 미술과 우상 에 대해 살펴본다. Ⅱ. 우상과 유대인 미술 우상(idol, 偶 像 )은 대상의 본질을 지각하고 인식하는 데 매개하는 어떤 상( 像 )으로서 플라톤 철학에서는 선입견의 의미로, 종교적으로는 어떤 물질에 신적인 것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그것 을 기념하고 숭배하는 우상숭배의 의미로 자주 이해된다. 우상은 한자 뜻풀이에서 알 수 있듯이 본원적인 의미로는 대상의 본질과 짝을 이루는 또는 본질과 닮은 모양을 의미하는 것임에도 불 구하고, 철학, 종교의 영역에서 대상의 본질에 대한 오판의 개념으로 통용되고 있다. 우상이라는 17) 그림 참조. 18) 소련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첫 글자와 미국의 팝 아트의 첫 글자를 따서 합성한 것으로 블라디미르 파페르늬 (Владимир Паперный)가 1972년 당시 러시아 회화적 경향을 지적하자 코마르와 멜라미드가 고안한 용어 다. 개념주의 예술은 마르셀 뒤샹이 그의 작품 <샘>을 통해서 보여주었듯이, 예술의 실체보다 개념을 중요시 하는, 즉 예술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개념 자체가 중요한 것이라는 회화 경향이다. 서구의 개념주의가 포스 트모더니즘적인 경향에서 예술을 정의하는 하나의 관점이라면, 소비에트 개념주의는 소비에트 이데올로기를 반영한 상투적인 문구, 그림 속에는 허상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예술적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덕형, 천년의 울림 (성균관대출판부, 2001), 452 쪽 참조. 19) 권정임,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한 신화해체 : 러시아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에 대하여, 문예미학 제 6호, 1999, 497 쪽. 20) 1965년부터 공동 작업을 한 두 화가는 1970년대 초 소츠 아트 시리즈를 발표하고 1970년대 말 이스라엘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한다. 망명 후 1980년대 중반 <향수어린 사회주의 리얼리즘 연작>을 발표한다. 소츠 아트 의 형성과 발생과정에 대한 사항은 이지연, 해체와 노스탤지어 : 소츠 아트(Соц-Арт)와 소비에트 문화, 러시아어문학연구논집 제21집, 2006, 98쪽. 참조.

24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22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용어는 본질을 재현 또는 표현할 수밖에 없는 회화의 영역에서도 부정적 의미로 쓰인다. 유대교와 우상의 관계는 기독교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유대교는 구약의 성서 구절(출 애굽기 20장 등)과 십계명에 따라서 신적인 것의 형상을 일체 허용하지 않고 우상으로 규정하 였다. 기독교와의 정체성 문제에서 더욱 신적 형상에 대해 엄격함을 요구했다. 이러한 형상의 거부, 반감은 유대인들에게 시각 예술 활동의 위축을 초래했다. 결과적으로, 신적인 형상의 오판 에 대해 절충적인 태도를 가졌던 기독교 미술은 우상숭배를 교묘히 우회하는 방식으로 독자적 인 공간을 확보한 반면 유대인 미술은 어떤 수단, 방법도 찾지 못하고 공간을 확보하지 못했 다. 21) 비록 시나고그(synagogue) 유적 발굴을 통해서 기독교 초기 시절 유대인들도 성서도해, 벽화, 모자이크를 만들었음이 밝혀졌으나, 19세기 전까지 유대 미술은 예술사에 주목할 만한 화 가나 결과물을 남기지 못했다. 이는 유물론적 관점에서 일정 정도 히브리 환경 때문이기도 하다. 지리적으로 사막, 유목 지역 에 위치한 히브리 민족에게 시각적인 정보는 청각적인 것에 비해 강조되지 않았고, 현재 머무는 곳은 언제나 떠나야 할 곳으로 직선적인 세계관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세계관은 종교와 예술관 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는데, 히브리의 신은 결코 시각적으로 계시하지 않으며 음성이나 상징, 우회적인 방법으로 계시하였으며, 회화, 조각 등 조형예술이 발달한 그리스 지역에 비해 히브리 예술에서는 언어적인 것이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진리가 언어의 산물이고 언어 역시 일종의 형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유대 전통에서 언어(신의 언어)는 세상을 창조한 이치이 고 역으로 신은 언어로만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언어는 기표와 기의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호성을 배제함으로써 어떤 사물을 표현한 그림이 그 사물 자체로 혼동할 수 있는 위 험성이 언어에는 없다 는 관점이 유대 전통인 것이다. 22) 이렇게 시각미술의 발전이 저해될 수밖에 없었던 종교, 지정학적 환경에서 근현대 미술사에 괄 목할 만한 샤갈, 수틴(Chaim Soutine), 뉴먼(Barnett Newman)과 로스코(Mark Rothko), 코마르와 멜라미드 등 유대계 화가와 비평가들이 탄생한 것은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근현대 미술계가 유 대계 화가들에게 관심을 보였던 이유 중 하나는 그들 예술의 추상성 때문이었다. 즉 구상 회화 에서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던 유대 미술이 추상 미술을 대표할 만한 작품들을 쏟아낸 것이 다. 여기서 주시할 점은 유대계 화가들의 작품 형식이 구상이든 추상이든 광의적 의미에서 종교 적인 것과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유대계 화가들의 작품이 그러한 것은 아 니겠지만, 많은 유대계 화가들의 작품에는 종교적인 주제와 특징이 있다. 구상화 가운데 대표적 유대계 화가인 샤갈의 작품에는 하시디즘, 유대인, 랍비 등의 유대인 전 통뿐 아니라 스테인드글라스, 판화 등 그의 후기 작품은 대부분 종교적인 것들로 채워져 있다. 추상표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로서 뉴먼의 경우, 종교적 주제나 모티프가 구상화처럼 확연히 등 장하지는 않으나, 그의 작품의 숭고미는 때로 종교적인 것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일례로 그의 연작 시리즈인 <십자가의 길>은 겟세마네 동산에서부터 십자가 책형,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리 스도의 고뇌를 성서적 관점에서의 재현이 아닌 관람자 스스로가 그들의 지성과 감성을 통해 어 떤 편견 없이 수용하기를 바라는 작품으로 해석하곤 한다. 달리 말해 그의 예술이 기독교적인 정체성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적어도 기독교와 부차적인 관계는 있다고 할 것이다. 소츠 아트의 대표자들인 코마르와 멜라미드, 그로브만 등의 유대계 러시아인들의 그림 역시 기독교 21) 앤소니 줄리어스, 박진아 옮김, 미술과 우상 (서울: 조형교육, 2003), 14 쪽. 22) 위의 책, 51쪽. 시각적인 사고를 중요시하는 동양인에게는 언뜻 이해하기 힘든 이러한 견해는 신이 인간 앞 에 현존하는 순간은 바로 지상의 종말, 즉 유토피아가 실현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는 일면 타당성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25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소비에트 제국의 유대작가들과 예술가들: 유대 르네상스에 대한 향수와 문화정체성 23 미술과 관련이 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기독교 미술과 연관성이 있듯이 소츠 아트 역시 기독 교 미술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소비에트 생활을 재현하고, 혁명을 영광화 하고, 공산주 의 이상을 전파하려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실천 강령은 그리스도의 업적을 재현하고, 그리스도의 죽음을 영광화 하고, 기독교 이상을 전파하려는 기독교 주제와도 일맥상통한다. 그 속에서 공산 당 서기장은 신성을, 중앙 위원회 위원들은 성인 또는 제자들인 것 이다. 23) 소비에트가 기독교 미술을 리얼리즘 형식으로 차용했다면 소츠 아트는 충실하게 실제를 모사하는 동일한 형식으로 그것을 전복시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근현대 유대계 미술을 기독교 문명에 동화되어 기독교 미학 원리에 입각한 것 들로 평가하기도 한다. 24) 즉 미술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끈 유대 계 미술의 특징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기독교 문명과 관련을 맺고 있다는 아이러니다. 이 에 대해 줄리어스는 다소 자의적이지만 기독교 미술과 진정한 유대인 미술을 구분하는 흥미로 운 기준을 제시한다. 유대인 미술은 십계명 제 2조항처럼 우상 숭배를 배격해야 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데, 유대인 미술의 유형을 우상 미술(iconic art), 무우상적 미술(aniconic art), 우상파괴 적 미술(iconoclastic art)로 구분한다. 우상미술은 유대인 성전인 시나고그 벽면을 장식하는 그림, 종교 의식을 꾸미고 정치적 영웅을 칭송하는 것들이고, 무우상적 미술은 우상을 배격하고 무한 과 숭고함을 추구하는 것이며, 우상파괴적 미술은 우상을 파괴하고 공격하며 전복시키는 것 들 이다. 25) 우상 미술에는 대개 구상화로서 재현 방식을 채택한 것들이 속하는데, 랍비나 이스라엘 풍경 화,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들, 유대인 학살을 묘사하는 것들, 기독교의 주제를 그린 것들로서 샤 걀의 그림도 여기에 속한다. 무우상적 미술은 동방정교회 부정신학의 인식론적 개념과 동일하게 재현한 작품을 통해서 재현 불가능한 것을 확인 하는 것이 목표다. 유대의 신은 정형화할 수 없으므로 재현할 수 없음, 즉 인간의 표현의 무력감을 통해 신의 무한함, 숭고함을 깨닫게 하는 것이 무우상적 미술의 특징이다. 이런 관점에서 줄리어스는 미술계에서 언급하는 뉴먼과 로스 코의 숭고 미학은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과 마찬가지로 무우상적 미술이 아니라고 단언한 다. 뉴먼의 <십자가의 길> 연작은 무한함을 추구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에는 예수의 고난 과정 을 되새길 수밖에 없게 함으로써 우상을 재창조한다는 것이다. 26) 우상파괴주의적 미술의 궁극 적인 목적은 우상을 파괴, 모욕함으로써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화가로는 코마르 와 멜라미드가 있는데, 그들은 우상파괴적인 전형적 방법과 달리 우상을 파괴하는 동시에 아이 러니하게 우상을 부활시킨다. 소련의 정치적 우상들을 해체시키는 코마르와 멜라미드, 순도코 프(Алесей сундуков), 그로브만(Михаил гробман), 부루스킨(гриша брускин) 등이 우상파괴주의 적인 미술의 화가로 분류된다. 27) 이러한 구분은 재현 예술이 우상숭배라는 관점에서 비롯한 것인데, 여기서 우상의 개념은, 유 대교 신 이외 신적인 것이라는 협의의 개념에서 벗어나, 절대자의 무한한 힘과 존엄성을 인간, 자연, 학문, 예술, 국가 등에 부여한 것으로 종국에는 절대자를 대체할 수 없는 것이라는 확장 23) 위의 책, 28 쪽. 24) 변호사이자 미술 비평가인 영국계 유대인 앤소니 줄리어스, 유대계 미술사학자인 에른스트 곰브리치(Ernst Gombrich)의 견해임. 위의 책, 193 쪽. 역자의 글 참조. 25) 위의 책, 쪽. 26) 위의 책, 쪽. 말레비치가 우상적인 것을 부정함으로써 구상의 극단에 위치하는 것은 맞으나 동시에 우상을 재창조 한다는 것이다. 말레비치가 <검은 사각형>을 아름다운 구석에 배치한 것은 분명 이러한 해석 을 가능하게 한다. 27) 위의 책, 쪽.

26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24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개념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재현 예술은 물론 추상, 기하학, 무의식의 세계 등 현대 미술이 추구하는 것 역시 우상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고, 뉴먼의 <십자가의 길> 연작은 물 론이며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 역시 재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닌 재현의 모든 가능성들의 이 미지, 즉 카오스의 세계가 질서의 세계로 전환되기 바로 이전의 팽팽한 긴장감, 그리고 동시에 아직 텅 빈 무의 세계가 담지하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아우라는 또 다른 우상의 시발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Ⅲ. 유대계 러시아인 미술과 소비에트 우상숭배 앞에서 살펴본 유대 전통에 따른 우상과 예술의 관점에서 가장 유대적인 러시아 화가들 가운 데 코마르와 멜라미드는, 소비에트 예술이 정치적 우상들을 그대로 모사, 베끼는 것에서 시작하 였듯이, 그들 역시 그것들을 충실하게 재현하되 그 속에 내재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우상)를 베 끼어 낸다. 이전부터 전해오던 우상파괴적 예술, 즉 기독교 우상파괴와 같은 직접적 행위(그림을 파괴하거나 덧칠하는 등)가 아닌 아이러니, 조롱, 풍자의 기법을 통해 소비에트 우상을 다시 부 활하지 못할 수밖에 없는 키치로 전락시켜 버린 것이다. 소비에트 우상숭배를 의식적으로 뒤틀 기 하는 코마르와 멜라미드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그림 3은 뮤즈가 스탈린 그림자를 그리듯 이 사회주의 리얼리즘 강령 역시 스탈린의 그림자만을 생산할 뿐임을 암시한다. 뮤즈가 오른손 으로 스탈린의 턱을 만지고 왼손으로 그의 그림자 형상을 따라 초상화를 그리는 것은 미술의 기원 에 관한 신화 가운데 하나인 부타데스 이야기를 패러디 한 것이지만, 턱을 쓰다듬는 도상 그림 3 코마르와 멜라미드, 에두아르트 다에게,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기원, 1982 회화의 발명, 1832 은 아기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관계를 표현하는 전형적인 방법이다. 28) 나무의 배경이 스탈린 양식의 기념비적 건축물로, 자연의 빛이 횃불의 인공조명으로, 나체의 젊은 그리스 영웅이 스탈 린으로 바뀌었고 사랑의 행위가 전혀 다른 의미를 탈바꿈 된 것이다. 29) 스토이치타(Victor Stoichita)에 따르면, 이 그림에는 소비에트 시대를 살았던 예술가들의 언어 코드를 암시하는 것 이 있는데, 스탈린 그림자를 그리는 뮤즈의 손이 역전된 점이다. 왼손으로 칠하고 그리고 쓰는 것은 완성된 작품에 어떤 미학적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거나, 왼손이 좌파 예술을 실천할 뿐 아니라 사물의 진정한 본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해석 할 수 있다는 것이다.30) 달리 말해, 소 련을 떠난 두 화가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소비에트 예술가들의 언어 코드로 소비에트의 새로운 28) 위의 책, 25 쪽. 29) 빅토르 스토이치타, 이윤희 옮김, 그림자의 짧은 역사 (서울: 현실문화연구, 2006), 188 쪽. 30) 위의 책, 쪽.

27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소비에트 제국의 유대작가들과 예술가들: 유대 르네상스에 대한 향수와 문화정체성 25 예술가들에게 어떤 암시를 주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그림은 러시아에서 주목을 받지 못 했다. 이 그림은 코마르와 멜라미드가 1970년 초에 소츠 아트 시리즈를 발표하고 70년대 이스라엘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한 후 1980년대 중반 발표한 <향수어린 사회주의 리얼리즘 연작> 가운데 하 나다. 당시 두 화가는 이미 과거가 된 스탈린 시대와 재건, 개방의 물결이 밀려오던 소비에트의 새로운 예술가들과 거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시대 변화뿐 아니라 유대인으로서의 숙명적인 정체성은 과거의 소비에트 우상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 의 정체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러시아에서의 삶은 유대인이었기에 진정한 러시아인이 될 수 없었고 미국으로 망명 후에는 이주자로서 미국인들과 동화되어 살 수 없었다." 31) 그들의 작품은 분명 소비에트 우상을 파괴하고 있으나 유대인으로서 그들이 회상하는 소비에 트 시절은 사뭇 다르다. 1992년 5월 미술 잡지 <아트 포럼>에 기고한 기념비적 프로퍼갠더에 대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제목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린 시절 소련에서 보았던 곳곳에 넘쳐나는 스탈린 초상화와 조각상을 회고할 때 그것이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라 예술 자체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스탈린을 우상숭배하거나 평가 절하할 생각은 없고 단 지 창조적인 작품 활동을 할뿐이다. 32) 그들은 연작의 제목이 암시하듯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일종의 향수로 보는 것이다. 33) 스탈린 우 상숭배를 아이러니하게 탈신화, 탈코드화 했던 것들을 소비에트 이후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것 으로 재코드화 되기를 바라는, 즉 다가올 러시아 미래를 겨냥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유대 계 러시아인이었던 그들의 민족 역사의 반복 학습에서 어느 정도 비롯한다고 할 수 있다. 러시 아의 경우만을 보더라도 러시아 혁명 당시 모든 당에는 유대인이 1/4에서 1/3을 차지했고, 심 지어 혁명가들의 절반이 유대인이었다. 34) 그러나 내전 당시 백군에게 학살당했던 러시아계 유 대인은 레닌의 중립적이고 애매모호한 태도, 스탈린의 숙청과 학살을 통해 자신들이 영원한 타 자로서 살 수밖에 없음을 자각했다. 이러한 교훈을 통해서, 과거의 기독교가 우상을 파괴한 것처럼 스탈린 동상이나 초상화를 파괴 하는 것은 역사의 반복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기에 그들은 과거의 우상이 다시 부활하지 못하 도록 무력해진 상태로 회화의 대상으로 소비에트 우상을 존속시키고자 했다. 이렇게 객관적으로 과거를 회상하는 그들의 예술적 태도는 우상파괴이지만 폭력성이 없다는 점과 고대 그리스로마 영웅을 르네상스 시대 재현 예술가들이 다시 부활시킨 것처럼 우상을 재창조하지 않았다는 측 면에서 코마르와 멜라미드를 진정한 유대인 화가로 간주할 수도 있는 것이다. 35) 이어서 소련의 정치적 우상들의 초상화와 구체적인 윤곽 없는 백지 얼굴의 대중들의 모습을 31) Rateliff. Carter, Komar & Melamid (Client Distribution Service, 2007), p. 14. 서아란, 러시아 현대 미 술과 소츠 아트(Sots Art) 2008, 홍익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재인용. 32) 앤소니 줄리어스, 위의 책, 100 쪽. 33) 이지연, 해체와 노스탤지어 : 소츠 아트(Соц-Арт)와 소비에트 문화, 러시아어문학연구논집 제21집, 2006, 쪽. 참조. 34) 고가영, 러시아 혁명기 유대인 사회주의 운동: 붙트를 중심으로, 역사와 문화 Vol. 23, 2012, 207 쪽. 35) 앤소니 줄리어스, 위의 책, 쪽.

28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26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그림 3 코마르와 멜라미드, 이중의 자화상, 1972년 미하일 그로브만, 우리의 힘은 시온주의에,1996 그리샤 부루스킨 알레프벳-렉시콘 I (Alefbet-Lexicon I) 대조한 순두코프(Алесей сундуков), 공산당 중앙 위원회 위원들 사진을 패러디한 그로브만(Ми хаил гробман)과 부루스킨(гриша брускин)의 그림을 살펴보고자 한다.

29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27 소비에트 제국의 유대작가들과 예술가들 : 유대 르네상스에 대한 향수와 문화정체성 이은경(한국외대) 19세기 말 유대 작가와 예술가들은 키예프, 오데사, 빌뉴스, 비텝스크를 중심으로 활발한 활 동을 펼치며 러시아 문학 및 문화계를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민족적, 인종적 차이의 예술 표현을 적극적으로 권장했던 블라디미르 스타소프(Владимир Стасов)의 발언은 다 양한 민족예술들이 꽃피우고 공존하는 러시아를 가능케 했다. 그 가운데서도 유대예술가들의 역 할은 단연코 돋보였다. 그러나 20세기 초까지 러시아 문학과 문화에 풍요롭고 다채로운 색채를 부여하면서 황금기를 이어나갔던 유대 예술가들은 소비에트의 등장과 더불어 역사에서 빠르게 잊혀져 갔다. 제정 러시아 말, 대외적 상황에 지쳐있던 민중들은 혁명을 열렬히 환영했다. 피압박민족의 해 방운동이 극에 달았던 상황에서 혁명은 소수민족들을 기대감에 가득 차게 만들었고, 유대 예술 가들 역시 새로운 예술의 실현과 가능성을 기대하였다. 그러나 새로운 인간에 의한 새로운 국 가 건설 이라는 소비에트 정부의 강력한 의지는 이들을 혁명국가에 걸림돌이 되는 구시대의 잔 재로 간주하였다. 소비에트 내에서 다양성에 대한 기대를 바랄 수가 없게 된 많은 유대 작가들 과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창작적 자유가 보장되는 곳을 찾아 떠났고, 이로 인해 대거 망명사태가 발생한다. 포그롬(погром)과 제 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유대인 탄압이 계속되었고, 혁명은 또 한 번 소비에트 내의 유대인들을 대거 정리하는 사건이 되었다. 촉망받던 화가 하임 수틴(Хаим Сутин)이 1913년 프랑스로 떠난 데 이어 샤갈(Марк Шагал)이 1922년 파리로 망명했다. 유대문학의 아버지인 숄롬 알레이헴(Шолом Алейхем)은 1905년 포그롬을 피해 스위스로 갔다가 다시 독일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미국에 정착했다. 고리끼(Максим Горький)가 망명으로 살아남은 재능있는 시인 중 한 사람 이라고 칭한 돈 아미나도(Дон Аминадо)는 전쟁을 피해 1919년부터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했으며, 저널리스트로 유명했던 폴랴코프(Александр Поляков)는 1920년에 망명하여 파리를 거쳐 미국으로 갔고, 시온주의의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자보틴스키(Владимир Жаботинский)는 1910년부터 시온주의 운동을 시작하여 1923년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했다가 1940년 뉴욕에서 사망했다. 러시아 유대문학의 대표자라 할 수 있는 세묜 유슈케비치(Семён Юшкевич)는 1920년 파리로 망명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역사적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비에트 내에 수많은 유대인 작가와 예술가들이 남아 있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정 러시아 시기보다 상대적으로 그 수는 적었지만, 유대인 작가와 예술가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예술 활동이 보장되지 않고 더 이상 희망적이지도 않은 소비에트 제국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들의 이 같은 결정은 단순히 낯선 땅에서의 정착에 대한 두려움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그들 나름의 조국 개념, 즉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정의와 인식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유대인들은 일찍이 특정한 국가 또는 문화권의 소유물로 귀속될 수 없는 모호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본디 작가와 예술가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만큼 이러한 속성이 더

30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28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강하게 마련이므로, 유대인 작가들과 예술가들의 정체성이란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소비에트의 유대인 작가들과 예술가들은 유대인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느끼면서 그들만의 결속력을 보여주려 하거나 또는 소비에트로부터 완전히 구별되어 독립 체제를 인정받으려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유대문화의 풍요로움을 간직한 채 소비에트라는 거대 문화권 안으로 들어가 자신들의 재능을 발휘하고자 했다. 이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러시아 역사에 편승되어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 보여주었던 모습이었다. 자신들만의 생활양식과 종교를 고수하던 정통파 유대인들과 달리, 러시아 유대인들은 하시디즘(Hasidism) 1) 의 영향을 받아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운 성속일여( 聖 俗 一 如 )를 주장했다. 이것은 그들의 삶의 모든 영역에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이질적인 민족의 일원으로서 유대인들이 선택할 수 있었던 융화의 한 방법이 바로 이러한 세속적 삶이었다. 유대인 작가들과 예술가들의 창작에서도 하시디즘의 영향, 세속 유대인들의 양상들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마르크 샤갈이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염소와 닭, 말을 비롯한 수많은 동물들은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친숙한 존재인 동시에 인간의 영혼이 깃든 존재이다. 샤갈의 기독교적 요소 역시 이런 일면으로 볼 수 있다. 유대식 교육을 받고 자란 샤갈은 <흰 십자가(Белое распятие)>(1938), <십자가에서 내려진 그리스도(Снятие со креста)>(1941), <황색 십자가(Жёлтое распятие)>(1943), <십자가에 못박힌 자(Распятие на кресте)>(1944) 등의 연작들을 통해 고통받는 그리스도를 그려내었다. 샤갈의 그리스도는 독특하게도 슈테틀을 배경으로 서 있기도 하고, 심지어 십자가형을 묘사한 그림에서는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INRI) 이란 패 대신 샤갈의 이름인 Marc Ch 로 대체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샤갈에게서 그리스도의 이미지는 유대교의 그리고 기독교의 그것도 아니다. 그는 핍박당하는 유대인의 이미지를 그리스도와 일체화시켰고, 또 이것을 자신의 삶에 투영시켰다. 이것은 정통파 유대인으로서가 아니라 세속화된 유대인으로서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Борис Пастернак)의 닥터 지바고(Доктор Живаго) 역시 러시아 유대인들의 사고에서 유대인들과 고통받는 그리스도의 이미지의 결부가 낯선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유대인 작가들과 예술가들의 예술적 실천에서 보이는 모순된 사고들, 즉 유대적 정서가 아니면서 동시에 유대적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아이러니들은 이율배반적이지만 한편으로 이들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작은 단서가 되고 있다. 소비에트 제국이라는 거대한 틀 안에서 유대인들의 삶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어디서나 기회주의와 민족주의는 존재하게 마련이지만, 특히 소비에트 내에서 유대인들의 행보는 남달랐다. 그 어떤 소수민족보다도 강한 연대감, 그리고 사회 각계각층에서 두각을 나타낸 유대인들의 숫자가 인구대비로 보았을 때 가장 많았다는 점도 소비에트 정부에게는 위협이 될 수밖에 없었다. 스탈린이 집권하면서부터 유대인들에 대한 탄압은 더욱 심해졌고, 그런 만큼 유대인 작가들의 목숨도 풍전등화와 같을 수밖에 없었다. 스탈린 시기, 가장 강력한 반유대주의 정서가 지배적이던 당시 소비에트 문단에서 두각을 1) 하시디즘은 유대교의 신비적 가르침 카발라(Kabbalah) 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감정에 대한 측면을 중시하 며 창조된 모든 만물에 애정을 품는다. 이 사상은 모든 피조물에 신의 불꽃이 내재한다는 범신론적 사상과 인 간과 신과의 결합사상으로 나뉜다. 하시디즘에 따르면 인간은 사물과의 거룩한 접촉을 통하여 그들 속에 갇혀 있는 거룩한 실재를 깨우치는 우주적 중재자로서 부름을 받았다. 인간은 거룩한 불꽃을 광물에서 식물과 동물 로, 그리고 동물에서 말을 사용하는 생물로 상향시키고 순화시켜야 하며, 경건함과 헌신을 통해 그들을 본래 의 자리로 들어갈 수 있게 한다. 신은 개개의 사물 속에 보여질 수 있으며 순수행위에 의해 포착될 수 있다. 세상에 가장 하찮은 것도 신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신이 자신을 보여주는 통로로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31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소비에트 제국의 유대작가들과 예술가들: 유대 르네상스에 대한 향수와 문화정체성 29 내던 작가들도, 그리고 전면에서 활동하던 작가들 역시 공교롭게도 유대인들이었다. 이들 유대인 작가들의 문학적 성향과 지향하는 바는 표면적으로 각기 달랐지만, 그 이면에 내재한 유대 개성에 대한 존중과 러시아 문화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소비에트라는 새로운 삶에 적응하려는 부단한 노력 등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중에서 오시쁘 만젤쉬땀(Осип Мандельштам, 1891~1938), 보리스 파스테르나크(Борис Пастернак, 1890~1960), 일리야 에렌부르그(Илья Эренбург, 1897~1967), 바실리 그로스만(Василий Гроссман, 1905~1964)등은 소비에트 문단의 굵직한 유대 작가들로서 당시 유대인들의 삶을 대변하는 각각의 노선을 취했다. 이들은 비록 유대 혈통이라는 한 가지에서 나왔지만, 주변 상황에 대응하는 방법은 각기 달랐다. 소비에트 유대인들은 어떤 경우는 극도의 민족주의자로, 혹은 인터내셔널로, 혹은 코스모폴리탄으로, 또는 주머니 유대인(Карманный еврей) 2) 으로 살아갔다. 작가들 역시 소비에트 체제에 순응하거나 완전히 반대 노선에 서서 강하게 비판하던 부류로 나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모두는 소비에트 제국의 일원으로서 살아가기를 원했고, 제국이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러한 기대의 기저에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러시아문학과 문화를 이끌었던 유대 작가와 예술가들에 의한 유대 르네상스에 대한 향수가 놓여있다. 그들은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던 대제국으로서의 러시아를 기억하고 있었으며, 소비에트에서도 반드시 그러한 시대가 도래하리라 믿고 있었다. 어찌 보면 이것은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이었다기보다는 그들의 기억 속에 내재한 유대 르네상스와 찬란한 러시아 문화가 새롭게 부활할 가능성, 즉 그들의 창작을 통해 재탄생되리라는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만젤쉬땀은 이러한 가능성을 뻬쩨르부르그의 형상에서 찾아내려 했다. 만젤쉬땀은 1916년 이뽀끄레나(Ипокрена) 誌 에 <뻬뜨로뽈(Петрополь)>이라는 제목의 시 3편을 발표하였다. 이 시들에서 그는 그리스로마의 도시 페트로폴리스와 러시아의 뻬뜨로뽈이라는 과거와 현재의 두 도시 공간의 합일을 통해 문화의 영원성을 언급하고 있다. 1916년~1918년까지 만젤쉬땀의 시에서 뻬뜨로뽈 로 지칭되던 뻬쩨르부르그는 종말을 맞이하고 만다. 만젤쉬땀에게서 뻬뜨로뽈은 그리스 로마의 문화의 빛이 꺼지지 않는 희망의 공간이었지만, 그러나 뻬쩨르부르그는 그의 희망을 뒤엎는 반전으로 고대의 사멸한 도시 페트로폴리스의 운명을 따라간다. 그리하여 만젤쉬땀에게 두 도시는 동일한 운명의 공간으로 인식된다. 10월 혁명이후 뻬쩨르부르그에서 문인들의 활동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대다수가 망명하였고, 제 1차 세계대전과 혁명을 겪으면서 예술은 소멸되기 직전에 놓여있었다. 이런 상실의 시대에 만젤쉬땀은 뻬쩨르부르그를 인간의 삶이 시작되고 그 삶의 종말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사멸한 도시 페트로폴리스이자, 고대 그리스 로마의 문화가 다시 부활되는 영원한 도시 이며, 죽음과 삶의 근원이자 정신적 지주로 인식한다. 만젤쉬땀의 시적 이상 속에서 뻬쩨르부르그는 그리스 로마의 문화와 러시아 문화가 합일을 이루는 장소이자 러시아 유대인이라는 자신의 존재적 이중성을 포용할 수 있는 곳이며, 그래서 그의 존재가 다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곳인 동시에 영원한 정신적 문화의 지주로서 영원한 예술을 실현할 수 있는 장소이다. 그가 살았던 삶의 터전인 뻬쩨르부르그는 사멸했지만, 그의 기억의 공간 속에서 뻬쩨르부르그는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다시 태어나며 잊혀질 수 없는 영원성을 획득하게 된다. 과거와 현재, 시공의 조합(панхроническое время и синхронное пространство)은 만젤쉬땀의 시학의 특징으로 개인 내면의 심리적 공간과 이상 세계 또는 죽음의 세계를 종합시켜 회상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2) 소비에트 시기 반시온주의 또는 반이스라엘 노선을 표명하고 지지하기 위해 동원된 유대인 출신 명사들을 풍 자하는 용어

32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30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종합하는 방법이다. 즉, 양극적 공간이 함께 공존하면서 상호 작용하여 결합하며 새로운 의미적 공간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것은 소비에트 현실의 공간이자 시인의 내적 심리의 공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만젤쉬땀의 공간은 유대적 사고에 입각한 베르그송의 통일성 법칙을 따르고 있다. 베르그송은 현상이 시간의 연속성 법칙에 종속되어 있기보다는 공간의 연장 법칙을 따른다고 보았다. 그는 현상들 간의 내적관련성에 관심을 가지면서 현상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별도로 받아들인다. 내적으로 연결된 현상들은 시간에 따라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지나, 지적으로 이해가능한 총체성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3) 고대 그리스 로마의 모티브가 현대의 뻬쩨르부르그와 연결되는 것은 두 도시의 내적 연관성에 따라 공시적 선상에 동일하게 놓이기 때문이다. 만젤쉬땀은 문체적인 면에서 이삭 바벨(Исаак Бабель)을 모델로 삼았다. 이삭 바벨은 유대 르네상스가 가장 정점에 달했을 때 등장했으며, 유대 문화의 진수를 보여준 작가였다. 만젤쉬땀은 바벨에게서 유대적 표현과 화려함을 발견하였고, 그렇게 존경했던 작가의 삶처럼 자신도 소비에트 정부의 숙청 대상이 되고 말았다. 만젤쉬땀은 살아있는 시대적 양심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 표현의 자유가 부재해진 소비에트와 그러한 소비에트를 만들어낸 스탈린에 대한 강한 적개심과 반발심을 강도높게 비판한다. Мы живём, под собою не чуя страны, Наши речи за десять шагов не слышны, А где хватит на полразговорца - Там помянут кремлевского горца. Его толстые пальцы, как черви, жирны, А слова, как пудовые гири, верны. Тараканьи смеются усища И сияют его голенища. А вокруг его сброд тонкшеих вождей, Он играет услугами полулюдей. Кто мячнут, кто плачет, кто хнычет, Лишь один он бабачит и тычет. Как подковы кует за указом указ - Кому в пах, кому в лоб, кому в бровь, кому в глаз. Что ни казнь у него, - то малина, И широкая грудь осетина.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 발아래 놓인 나라를 감지하지 못하며 열 발자국 거리의 우리말은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저 몇 마디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도 저 높은 곳 크렘린 사람들을 추앙한다. 3) О. Мандельштам, О природе слова

33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소비에트 제국의 유대작가들과 예술가들: 유대 르네상스에 대한 향수와 문화정체성 31 그의 손가락은 살찐 굼벵이 처럼 통통하고 그의 입술에서는 납처럼 무거운 말들이 떨어진다. 그의 바퀴벌레 같은 수염이 추파를 던지고 그의 구두코가 반짝인다. 그를 둘러싸고 목을 길게 빼고 아첨을 떠는 지도자들, 그가 가지고 노는 반푼 어치도 안되는 오합지졸들 그가 떠들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대로 말처럼 힝힝거리고 고양이처럼 갸르랑 소리를 내며 개처럼 깨깽거린다 그가 말굽처럼 탕탕 쳐서 명령을 만들어 머리에, 눈에, 사타구니에 던진다. 살인도 모두의 큰 기쁨 가슴이 넓은 오세티아 사람에게는 비밀 모임에서 이 시를 발표했던 만젤쉬땀은 밀고자에 의해 스탈린을 비판했다는 혐의로 체포되고, 육체적, 정신적 고통으로 미쳐가며 강제수용소에서 생을 마친다. 유대인 혐오증이 심했던 스탈린에게 있어 만젤쉬땀의 존재는 눈엣가시였다. 그는 만젤쉬땀을 바로 없애버리고 싶었지만, 그를 아끼는사람들 때문에 수용소로 보내는 차선책을 택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젤쉬땀은 비록 이스라엘이 건국되기(1948년) 전에 이미 사망하고 말았지만, 파스테르나크가 거의 작가로서의 글쓰기를 박탈당하는 상태에 놓이면서도, 심지어 노벨상 수상과 관련하여서 까지도 소비에트 제국을 떠나지 않은 것은 상당히 이해 불가한 일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파스테르나크의 아버지 레오니드 파스테르나크(Леонид Пастернак, 1862~1945)는 리투아니아 출신으로 당대 최고의 화가였고, 어머니 로자 카우프만(Роза Кауфман, 1868~1938)는 유명 피아니스트였다. 예술가문으로 명성을 날렸던 이들조차도 1921년 러시아를 떠났다가, 귀국길에 오르지 못한 채 망명해야만 했다. 부모들과 누이들이 다 망명한 상태에서 소비에트에 남겨진 파스테르나크의 운명은 가혹했다. 파스테르나크는 1910년대 미래주의 문학그룹의 일원으로 데뷔하면서 내일의 시인 이라는 찬사와 더불어 문단의 주목을 받았고, 1930년대 초, 중반까지 왕성한 작업을 하며 매년 시집을 발간하고 1934년 부하린의 연설에서 소비에트 최고의 시인 이라는 칭찬을 들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시기 혁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작가 라는 비난과 더불어 스탈린 사후 때까지 침묵을 강요당하면서, 작가로서의 역량을 펼칠 수 없는 최악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아무리 재능있는 시인이라 할지라도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앞두고 여전히 개인적이고 서정적 영역에만 머물러 있으려하던 파스테르나크에게 소비에트가 냉담하게 돌아선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스테르나크가 소비에트 정부에 보여주었던 충성심은 이 모든 것을 뒤엎을 만한 소비에트 작가로서의 전면적 변신이 되지 못했던 것 같다. 잘 알려져 있듯이, 파스테르나크는 1936년 스탈린을 찬양하는 시를 썼으며, 스탈린이 파스테르나크에게 직접 전화해 만젤쉬땀에 대해 물은 사건은 유명하다. 당시 부하린(Николай Бухарин)만이 유일하게 만젤쉬땀을 변호해 무거운 형량을 피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작 당시 스탈린의 총애를 받고 있던 파스테르나크는 동족이었던

34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32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만젤쉬땀을 철저하게 외면하였다. 만젤쉬땀의 재능이 뛰어난지 여부를 묻는 스탈린에게 파스테르나크는 그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한다는 애매모호한 답변을 내놓는다. 4) 이와 같은 파스테르나크의 이중성은 비난의 소지가 있지만, 작가로서는 어느 정도의 신뢰를 얻고 있으나 적어도 유대인 신분인 자신이 스탈린의 치하에서 언제든 숙청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체포될 것인지 친구가 수용소로 갈 것인가에 대해 순간적으로 결정을 해야 했으며, 그 결과는 자신을 옹호하는 것이었다. 이 때 스탈린은 내 동무가 체포되었다면, 난 내 몸을 던져 구했을 텐데(Если бы у меня арнстовали товарища, я бы лез на стенку) 라고 비꼬며 말한다. 스탈린의 이와 같은 말은 파스테르나크를 완전히 신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만젤쉬땀과 마찬가지로 유대인이면서 어떤 의도에서 그를 변호하지 않는지를 잘 알고 있던 스탈린이었기에, 파스테르나크 역시 충성심을 보인다하더라도 그의 근본에 대한 의심은 멈출 수 없는 것이었다. 파스테르나크 역시 스탈린 정부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계속 소비에트에 남고자 했던 것은 러시아 문화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었다. 그는 러시아라는 풍요로운 문화의 공간을 버릴 수가 없었다. 이러한 결론은 닥터 지바고(Доктор Живаго) 의 마지막 부분에 러시아인들보다 시와 시인을 사랑하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라는 말로 설명된다. 지바고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삶과 사랑을 희생해야 했고, 모든 것을 상실해가는 속에서도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문학과 예술에 대한 열정과 그 열정을 불러일으키며 시적 영감을 준 라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닥터 지바고 는 파스테르나크 자신의 이야기이다. 지바고가 사랑했던 러시아, 시와 시인을 사랑하는 나라, 예술의 가능성이 실현되는 곳이야말로 파스테르나크에게 있어 존재의 이유인 것이다. 소비에트 문학과 정치사에서 괄목할 만한 업적으로 남긴 유대인 작가들 가운데 만젤쉬땀과 더불어 동시대에서 크게 활약하던 에렌부르그(Илья Эренбург)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에렌부르그는 흐루쇼프(Хрущёв)의 해빙기를 상징하는 신호탄 해빙((оттепель)의 작가이자, 보다 적극적인 정치행보로 소비에트에 족적을 남긴 이였다. 그가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극명하게 드러낸 행동은 바로 그로스만(В. Гроссман)과 함께 집필한 흑서(Чёрная книга) (1946)의 출간이었다. 이 책은 홀로코스트의 목격자들과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의 저항을 다룬 것으로, 뉴욕에서 최초로, 그 이후 소련을 제외한 여러 나라에서 발간되어 이목을 이끌었던 것이었다. 이처럼 유대인들의 피해와 인권에 대한 경각심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에렌부르그였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소련 정부에 대한 그의 충성심은 유대 국가에 대한 거부를 의미하는 것이기에 이중적 모습에 대한 흥미로운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정작 이스라엘 정부가 탄생되고 많은 유대인들이 본토를 찾아 떠나고 있을 무렵, 유대인들의 대거 유출을 두려워하던 소비에트 정부는 에렌부르그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유대인들의 집단행동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동요를 즉각 소요시키기 위한 자구책을 내놓게 된다. 에렌부르그는 소련을 반유대주의가 사라진 세계 유일의 국가로 언급하면서, 이스라엘에 대해 관심을 돌리지 말 것을 경고한다. 이처럼 철저하게 소비에트 정부의 편에 서 있었던 에렌부르그는 전형적인 주머니 유대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한 마디로 그는 영원한 카멜레온 같은 사람이었다. 에렌부르그는 데카르트의 명제를 나는 존재한다. 고로 생각한다 라고 바꿔 인용하기 좋아했다. 이 말은 그가 소비에트로 돌아오면서 스페인에서 했던 자신의 보고서에 대한 검열과 왜곡을 받아들이고, 스탈린의 테러에 대해 외국에 침묵하며 제2차 세계대전 기간과 이후의 기간 동안 소비에트의 선전 도구로 사용되는 데 동의하게 되는 의식있는 결정으로 작용되었다. 4)

35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소비에트 제국의 유대작가들과 예술가들: 유대 르네상스에 대한 향수와 문화정체성 33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렌부르그의 글에 나타나는 유대적 특성, 그것은 그가 뿌리 속까지 유대인임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에렌부르그의 글쓰기에는 뼛속까지 유대인이었던 만젤쉬땀과의 유사성이 아주 잘 드러난다. 두 사람은 일단 정치적인 면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에렌부르그는 대체로 독학에 의존하였으며, 정치에 대한 관심을 평생 버리지 않았다. 만젤쉬땀은 페트로그라드 대학의 학위를 받은 후 비록 산발적이기는 했지만 역시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 점에서 대다수의 유대인들이 동화의 명목으로 자신들이 살고 있던 국가에 가장 강렬한 소속감을 드러내는 한 방법으로 정치성을 적극 활용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이 둘을 잇는 또 하나의 공통점은 바로 종교적 행보에서 드러나는 부분들이다. 만젤쉬땀은 수도권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방편으로 1911년 프로테스탄티즘을 받아들였다. 에렌부르그 역시 같은 해 베네딕트 수도회에 입문했던 바 있다. 이것은 물론 일종의 실험과도 같은 것이었고, 에렌부르그의 성격을 고려해볼 때 얼마가지 않아 그만두었다는 것도 납득이 가는 부분이었다. 이것은 당시 그들과 같은 환경의 젊은이들에게 있어 전형적인 시작이었다. 그런 다음 모두들 전형적이라기보다는 심각한 개인주의적 본성을 따르게 되고, 그 차이는, 문학적 재능의 크기라든지 삶에 대한 확고부동함에서 더욱 더 크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에는 문학적 그리고 사적인 관련과 만남의 구상, 소비에트에서의 만젤쉬땀의 시를 부활시키기 위한 투쟁 등의 오랜 결과와 관련된 슈제트들이 공존한다. 사실 만젤쉬땀은 유대 문학의 정수라 일컫는 바벨과 달리 유대적 경험의 색채가 중심에 위치해 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서 바벨과의 유사성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바벨에게서 엿보이는 네오아크메이스트적 시도는, 그가 만젤쉬땀처럼 아크메이즘적 요소를 지니고 있었음을 입증한다. 만젤쉬땀은 자전적 이야기를 쓰지 않는 대신, 자아(свой)과 타자( чужой)간의 영역에 대해 계속적으로 주목한다. 이 부분은 기병대(Конармия) 에서 바벨이 주로 드러내던 글쓰기 방식과 유사하다. 바벨로부터 시작된 유대문학의 정수는 만젤쉬땀, 파스테르나크, 에렌부르그 등으로 이어지면서 유대적 뿌리와 경험들에서 비롯된 공통점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삶과 운명(Жизнь и судьба) 의 작가 그로스만 또한 소비에트 정부에 대한 독특한 입장을 드러낸 유대인 작가였다. 그는 유대인들과 소비에트, 그리고 나치 간의 이야기들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볼셰비키 또는 나치든 간에 전체주의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기 위해 전략적인 평행선에서 보완적인 에피소드들을 배열하면서 유일하게 허가된 담론인 소비에트 프로파간다 담론을 전복시키기 위해 당 이데올로기의 모순을 극적으로 표현하였다. 소비에트 정부의 지지를 이끌어내던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대인 작가들과 예술가들은 소비에트 정부의 목적에 위배되었을 때는 가차 없이 버려졌고 소비에트의 적대적 세력으로 몰아세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어떻게 해서든 러시아내에서 살아남기를 원했고, 가능하다면 그곳에 자신들만의 공간을 만들어나가기를 원했다.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그러나 유대 혈통으로 연결되는 이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은 바로 러시아라는 찬란한 예술의 공간을 택했다는 것이다. 샤갈의 후기 작업은 러시아 유대인들의 가치관을 명확히 엿볼 수 있게 한다. 샤갈은 종교적으로나 감성적으로는 유대인 회당이 그에게 가까웠지만, 인생의 후반으로 갈수록 오히려 기독교와 연결된 작업을 더 적극적으로 해나갔다. 즉, 자신의 예술적 실천을 위해서는 보다 영원하고 가치있는 장소들을 택했다. 예술을 위해서라면 그는 모든 게 가능했다. 샤갈의 작업에서 제1차 순위는 늘 창작에 대한 목마름과 그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는 장소였다. 그와 더불어 그에게 지속적인 영감의 원천은 유대적 뿌리였다. 이 두 개의 모순되면서도 조화된 공존이야말로 샤갈에게 가장

36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34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안정적인 작업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모순 속에서의 합일은 만젤쉬땀에게, 파스테르나크에게, 그리고 에렌부르그와 그로스만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획일만이 유일한 소비에트 현실에서 유대인 작가와 예술가들의 삶은 가혹하기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꿈꾸는 다양한 문화와 풍성한 삶의 양상들이 존재하는 공간은 기억 속의 러시아, 러시아 문화의 뿌리를 담고 있는 소비에트일 수밖에 없었다. 다른 그 어디에서도 그들에게 이러한 예술적 깊이를 찾을 수가 없었다. 샤갈 역시 자발적이기보다는 여러 복합적 상황에 떠밀려 망명을 택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역시 자신을 최고로 대우해주던 미국이 아닌 프랑스를 최종적으로 택한 것도 그곳이 자신의 고향과 닮아 있었다는 점, 그리고 당시 예술의 최고 집결지였기 때문이었다. 정체성이란 누구인가 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어떠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가 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유대인들은 소비에트 내에서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하는가를 누구보다도 고민했던 사람들이다. 러시아 유대인들은 다른 나라의 유대인들과 비교했을 때 유대인 공동체의 정치적 연대성, 문화적 자율성을 찾기 위한 전투적 이데올로기로서의 유대성이 상대적으로 덜했다. 오랜 세월동안 유대인들은 국가 없이 떠돌면서 유대교로서 그들의 정체성을 확인해왔다. 강한 결속력의 종교공동체로서 살아왔던 그들이었지만, 러시아에서 그것은 기독교와 결합되면서, 또 러시아문화에 대한 동경과 애정으로 인해 희석되어가면서 오히려 러시아 유대인으로서의 자긍심이 강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이스라엘 건국이후 다양한 곳에서 몰려든 유대인들은 더 이상 유대교로 자신들이 하나가 될 수 없음을 인식하고 있다. 각기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오고 세속화된 그들에게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고취시키는 작업이 새로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언어적 측면으로, 히브리어를 사용함으로써 이들은 이스라엘 시민으로서 귀속감과 단결을 얻어내는 것이다. 현대 이스라엘이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정체성을 획득해나가고 있다는 점에 비춰볼 때 일찍이 소비에트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정의할 수 있는 결속감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소비에트 유대인들은 이민족이지만 러시아 문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담당했던 유대 르네상스를 기억하며 자신들만의 결속을 다지고 러시아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이어나가고자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이중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데, 즉 유대적 민족성에 대한 강한 인식, 그리고 문화 대국으로서의 러시아에 거주하는 시민이자 그곳에 철저하게 동화되고자 하는 노력이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르게 발현되는 것이다. 어느 한 곳에 귀속되지 않는 유대인들의 루프트멘슈(Luftmensch) 5) 적 기질은 소비에트 제국 내에서 이처럼 각기 다른 삶의 모습들로 존재하고 있었다. 5) 이디시어로 루프트멘슈(Luftmensch)는 공기같은 인간 이다. 루프트멘슈는 중세 박해 받던 유대인들이 사용한 용어로, 무엇이든 기회가 있으면 달려들어 조금의 틈이라도 생기면 공기처럼 스며든다는 절박함의 표현이다. 김욱, 유대인의 모든 것 (서울: 지훈, 2005), 36쪽.

37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35 시인과 스탈린: - 마야코프스키 죽음과 복권에 대한 재조명 조규연(단국대) 1. 예술 정치 혹은 정치 예술 문학과 정치의 문제는 삶과 예술의 경계에 대한 근원적 인식과 관련, 미래주의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이르기까지 소비에트에 문화에서 전면화된 화두였다. 러시아 미래주의는 예술로부터 기인된 자신들의 창조열망을 이 세계의 차원으로 전이하여 현실의 재창조와 새로운 건설을 요 구했으며, 2차 미래주의 라 불리는 소비에트 아방가르드 또한 대중문화의 질료들을 예술작품에 포섭하거나 특정 정치 프로그램에 개입하고 앞장섬으로써 예술과 삶의 구분을 철폐하려 했다. 삶의 창조(жизнетворчестсво), 삶의 건설(жизнестроение) 기획 하에 20세기 초반 러시아 문화사에 있어서 독자적 흐름을 형성했던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혁명과의 이념적 관계, 그 사회적 맥락이라는 특성상 정치성을 배제하고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아방가르드의 방향은 기존질서 타파와 새로움의 창조라는 모토를 기반으로 공산주의적 혁명 분위기의 일환으로 끌어들이려던 당국의 의도에 부응하여 진행되었던 까닭이다. 예술과 예술가의 역할에 대한 철학, 또한 그 연장선상에서의 맑스주의적 생산의 형식으로서의 예술 에 대한 미학 사상이었던 아방가르드에 있어 예술은 삶의 재현 이라기보다는 삶의 창조, 삶의 건설 의 근본적인 수단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이스(Б. Гройс)가 아방가르드 예술에 있어서 질료의 점유의지와 그 예술가에 의해 확립된 법칙에 따른 예술의 구조는 권력의지와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드러내는 것이며, 이는 예술가의 사회와의 갈등에 근원으로 작용했던 것 1) 이라 했듯이, 예술로부터 유래한 이들의 아방가르드적 요청은 낡은 사회구조와의 투쟁이며, 예술내의 독재를 넘어서 새로운 일상의 창조라는 현실적 독재의 무한권력으로 비춰지기 충분했던 것이다. 이에 대다수의 연구가들은 아방가르드의 형성에 있어서의 좌파 성향의 예술가들, 특히 혁명적 분위기 속에서 예술이 삶을 변화시키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유토피아 개념을 소유했던 미래주의자들에게서 그 결정적 근원과 역할을 발견해내고자 했던 것이다. 삶의 재현 이 아닌 삶의 건설 경향으로서의 아방가르드를 맑스주의 혁명이론과 세계변혁에 대한 사상과의 연관 하에 자연스럽게 발생한 하나의 예술적 현상으로 본다면, (특히 서구의 연 구가들에 의하면) 아방가르드주의자들에게 있어 현실과 세계는 자신들의 예술적 기획의 근본적 인 질료로 인식이다. 러시아 미래주의 시인 흘례브니코프(В. Хлебников)의 필명 Велимир 에서 도 드러나듯, 아방가르드는 그 자체로 세계 권력에 대한 요구를 함축하고 있다. 이렇듯, 아방가르드는 삶의 변화에 대한 정치적인 욕망의 반영으로서의 순수예술 과 특수한 형식미에 대한 예술적 지향의 반영으로서의 정치적 급진주의 가 교차하며 수많은 정치 미학적 해석을 낳게 된다. 그로이스와 균터(Х. Гюнтер)의 해석에 따르면, 일상과의 투쟁에 있어서 대중 과 괴리된 채 자신만의 예술작품 속에서 독재자로 남겨졌던 대다수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스탈린은 세계가 예술적 진료로 인식했던 예술가의 또 다른 이름이다. 따라서 스탈 1) Гройс Б. Утопия и обмен. М., С. 14.

38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36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린주의의 본질은 아방가르드적 미학의 정치화 가 변형적 계승된 정치의 미학화 이며, 그 안에 서 예술은 현실을 미학화시키는 수단으로 변질된다는 것이다. 2) 순수 예술 기획으로서 아방가르드의 정치성의 문제는 서구의 연구가들에 의해 꾸준히 사용됐 던 테마 중 하나이다. 결국, 20세기 초반 모더니즘적 흐름과 함께 러시아 문학사에 있어서 독자 적 흐름을 형성했던 러시아 미래주의는 상징주의의 그 거대함에 가려져 그 의미가 축소되어왔 고, 연구가들은 그들의 정치참여만을 주목하여 정치권력으로의 변질, 또는 정치권력과의 대결에 서의 패배라는 면을 참작했을 뿐이다. 이러한 해석은 미래주의와 아방가르드를 대표했던 마야코 프스키의 삶과 창작에 대한 평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 시인의 위기, 예술의 위기 마야코프스키는 소비에트 혁명사의 산 증인이자 그 짧은 삶 자체가 러시아 혁명의 연대기 라 할 만큼 20세기 소비에트 문화와 그 평가에 있어서 한 축으로 자리매김한다. 그의 삶과 창작에 대한 비평은 미래주의와 아방가르드가 그랬듯, 문학 분과 뿐 아니라 사회 문화적 영역에 있어서 도 시인과 권력, 예술과 정치 식의 딜레마의 연속이었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평가에 있어 서 극단적인 이분법적 상황이 지속되어 왔다. 미래주의 순수미학으로부터 일탈을 통한 시적목소리의 변화와 장르적 변질, 그리고 정치적 영 합에 대한 비판은 마야코프스키의 동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문학과 정치적 맥락을 관통 하며 지속된다. 마야코프스키에 대한 이러한 혐의의 중심에는 혁명과 레프(ЛЕФ)가 있다. 혁명 이전 마야코프스키의 창작의 특징은 과장된 서정성, 또는 주체의 시학으로 귀결된다. 극 대화된 서정적 나 는 진정한 대화상대를 상실한 채 홀로 존재한다. 여타의 미래주의자들과는 달리 근본적으로 대중과의 소통을 지향했던 시인은 진정한 대화상대로서의 당신들 을 갈구하지 만, 이는 호소가 아닌 창조적 능력을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시인인 나 와 무능력한 당신들 에 대한 자기규정일 뿐이다. 러시아의 자라투스트라 를 자처하는 시인은 기존의 예술형식과 가치 에 이미 익숙해진 대중에게 무례하리만큼 새로운 가치를 요구하면서도 결국 그리스도신화를 찬 탈하며 십자가에 못 박히고 피투성이의 짓밟힌 자신의 영혼을 세인들에게 깃발처럼 건네주는 희생자가 되기를 마다치 않는다. 그럼에도 창조주-시인으로서의 자신을 이해 못하는 대중들과의 화해 의도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바로 이 점, 미래주의적 오만함이나 허무주의적 반미학성이 볼셰비키에 의해 정치적 해악으로 간주되는 일차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결국 대중과 유리된 나 는 작품의 주를 이루는 희생, 사랑, 자살 모티브와 관련하여 더욱 비대한 자아로 발전하며 끊임없는 나 의 분신들을 생성하고, 현실에 대한 아이러니는 극대화된다. 이 점을 들어 피얀느 이흐(М. Пьяных)는 혁명 이전 시기를 마야코프스키 삶이라는 전체 비극의 에필로그 부분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3) 마야코프스키 창작의 분기점으로서의 혁명 이후 마야코프스키의 창작은 정치적 색채를 띠면 서도 실제적이고 기능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이러한 특징을 규정하는 것이 바로 마야코프스키 에 의해 결성된 단체 레프 이다. 레프 미학의 반서정성과 반시학성, 저널리즘에 대한 지향에 그로이스와 균터는 파시즘에 흔히 나타나는 현상으로 정치의 미학화 를 규정하는 벤야민의 용어를 들어 아방가르드와 스탈린주의의 관계와 사상적 본질을 설명한다 См Гюнтер Х Тоталитарное государство как синтез искусств Соцреалистический канон СПб С Гройс Б Указ соч С Пьяных М. Трагический ХХ век в зеркале русской литературы. СПб., С 참조.

39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시인과 스탈린: 마야코프스키의 죽음과 복권에 대한 재조명 37 서 기인한 선동, 사회 정치 평론 등 사실의 문학 은 흘례브니코프와 크루쵸늬흐(А. Крученых) 등 미래주의자들의 진지한 시학적 의미로서의 그 자체로서의 말 에 전적으로 반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선동시, 포스터와 광고작업은 동시대인들 뿐 아니라 많은 연구가들에 의해 문 학적 측면에서 마야코프스키 후기창작의 시학적 변질이 이야기되는 본질적인 부분이다. 혁명 이후, 특히 1920년대 마야코프스키 창작의 또 다른 형식은 바로 풍자였다. 소시민과 관 료주의라는 소비에트의 견고한 일상의 체계에 대한 노골적인 풍자, 그리고 그로 인한 프롤레타 리아 작가동맹(РАПП) 의 비판은 마야코프스키와 당국간의 불화와 고립을 가속화시켰다. 특히 마야코프스키의 1930년 풍자극 목욕탕 (Баня) 상연의 실패는 마야코프스키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결정적인 요인 중 하나로 평가되어왔다. 풍자의 대상이 모호하면서도 소시민들의 부르주아적 근성에 대해 한바탕 웃을 터뜨릴 수 있었던 1929년 풍자극 빈대 (Клоп)와는 달리, 목욕탕 에 서는 관료주의에 대한 조롱이 현정부 자체에 대한 노골적인 부정이었고, 그 풍자의 대상이 너무 도 명백했기에 관객들은 마음 놓고 웃을 수 없었던 것이다. 거센 비판의 목소리 역시 라프 의 몫이었으며, 그 리더였던 리베진스키(Ю. Либединский)는 당기관의 관료주의에 대한 극단적인 과장,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가능한 위험성을 그 이유로 들었다. 결국 마야코프스키의 라프 가 입은 미래주의적 보헤미안 시인과 정권의 신임장 을 소유한 소비에트 시인 사이의 존재론적 본 질에서 오는 극단적 딜레마의 결과였다. 마야코프스키의 오랜 지인인 예술가 안넨코프(Ю. Анне нков)는 1929년 파리 여행길에서 있었던 그와의 마지막 대화를 이렇게 회상한다 4) : 마야코프스키는 내게 언제 모스크바로 돌아갈 것인지를 물었다. 난 예술가로 남고 싶기에 그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대답했다. 마야코프스키는 내 어깨를 툭 쳤고, 갑자기 우 울한 얼굴을 하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돌아갈 거야... 난 이미 시인이기를 포기했으니까. 그 리고 나서 실로 극적인 장면이 벌어졌다. 마야코프스키는 울음을 터뜨리고 겨우 들릴 정도의 목소 리로 말했다. 이제 난... 관리일 뿐. 5) 마야코프스키의 삶과 창작에서 보듯 그는 소비에트 정권을 무조건적 인정한 것도 아니었으며 정권의 충복도 아니었으며, 흔히 혁명 시인 으로 유명한 마야코프스키가 볼셰비즘을 무조건적 으로 수용한 것도 아니었다: Принимать или не принимать? Такого вопроса для меня (и для других москвичей-футуристов) не было. Моя революция.(1: 25) 수용하느냐 마느냐? 그런 질문은 내겐(모스크바 미래주의자들에게는) 불필요한 것이었다. 그것은 나 의 혁명일 뿐이다. 레닌이나 트로츠키, 루나차르스키 등 당대의 정치 인사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시인을 정치로 끌어들이려고 했고, 이에 정치와의 관계에서 능숙할 수 없었던 마야코프스키는 결코 정치를 향 유한 것이 아닌 정치적 배역에 의해 과도하게 이끌렸던 것이다. 역시 레닌에 대한 서사시 블라 지미르 일리치 레닌 (Владимир Ильич Ленин)은 권력자의 사후에 발표됐으며, 이오십 비사리 오노비치 스탈린 또한 결코 쓰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를 반증한다. 년 이미 소비에트 문학의 헤게모니는 라프 에게 있었고 이러한 종속적 문학상황에서 마야코프스키기 해외 여행을 자주했음은 우연이 아니다 Константинов С. Отвергнутый футурист: Почему погиб В. Маяковский // Независимая газета, 2000, 15 апрел я, C. 11.

40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38 소비에트 제국의 문화 역학: 지배와 저항 사이 3. 죽음 - 우연성과 합법성의 경계에서 1930년 4월 한 발의 총성이 러시아 문화사에서 지니는 의미는 꾸준히 언급되어왔다. 이는 시 인으로서의 존재론적 가치와 정권의 하수로서의 시인의 실존 사이에서 천재적 개인은 결국 자 신의 재능을 재물로 국가권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암울한 소비에트 시대상에 대한 증명이 며, 문화적으로는 아방가르드의 종말임과 동시에 러시아 문화의 공백이자 오명으로 자주 평가받 아왔던 '소비에트 리얼리즘'의 개막을 알린 총성이라 하겠다. 릴리 브릭은 마야코프스키가 두 번에 걸쳐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음을 밝히며, 그의 자살을 가장 좋지 못한 조건 하에 닥쳐온 만성병 6)이라 규정한다 년에 이르는 마야코프스키의 초기작품 등골의 플루트 (Флейта-позвоночник)와 인간 (Человек)에서는 이미 자살을 예견하 는 시구는 몇차례 발견된다: Все чаще думаю - / не поставить ли лучше / точку пули в своем конце. / Сегодня я / на всякий случай / даю прощальный концерт.(1: 199) 자주 이런 생각이 든다. / 나의 말년에 총알의 마침표를 / 찍는 것이 낫지 않을까. / 오늘 나는 /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 고별연주회를 제공할 것이다. А сердце рвется к выстрелу,/а горло бредит бритовою.(1: 255) 심장은 총알을 향해 달려 나가고, / 목구멍은 면도날에 몰두한다. «Она Маяковского тысячи лет: / он здесь застрелился у двери любимой». / Кто, / я застрелился? / Такое загнут!(1: 269) 천여 년간 마야코프스키 거리였습니다. 그는 연인의 문 앞에서 권총으로 자살했어요. 누가? 내가 권총자살을? 그런 엉터리같은 소리를! 권총자살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 외에도 마야코프스키 창작에서 죽음의 모티브는 비대화된 서 정적 자아의 내면의 중심에 놓인다. 나 와 대중, 예술과 삶의 경계에서 여일하게 지속되는 아이 러니와의 자살의 유희 7)는 어찌 보면 시인의 존재와 시의 탄생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도구였 다. 한계에 다다른 주체의 자기 파괴이자, 이는 신을 상실한 세계에서 가장 고귀한 자유 8)로서 의 극단적 아이러니는 시인을 삶의 시학화 과정, 즉 자발적 죽음으로 이끈다. 이는 작품과 작 가의 관계에 있어 작품의 영원성을 위해 자신의 작가를 살해할 권리를 획득하는 창작물 9)과 독자의 탄생을 위해 작가의 죽음으로 지불하는 10) 예술가와 창작에 관한 포스트모던적 사유와 도 맞닿아있다. 시와 일상의 경계를 제거하여 자신의 삶을 시화하고 시인으로서 자신에 대한 기 념비를 남기려했던 시인에게 있어서 과대한 서정성과, 그로인한 비극성, 자살 자체가 근본적 인 시적 도구였다. 개혁, 개방 이후 마야코프스키의 개인적 삶과 창조적 위기, 그리고 죽음에 관련된 동시대인들 Брик Л. Пристрастные рассказы. М., С Чхартишвили Г. Писатель и самоубийство. М., С Цит по Зенкин С Вступительная заметка к переводу Г Бергельсоном книги Д Лукача Теория романа НЛО С Фуко М Что такое автор Воля к истине по ту сторону знания власти и сексуальности М С Барт Р. Избранные работы: Семиотика. Поэтика. М., С. 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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