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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ion

1 종교와 인권 : 이슬람과 인권, 기독교와 인권 일 시_ (화) 오후 3시~오후6시 장 소_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센터 별관(10층 배움터) 주 최_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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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순서 구 분 순 서 개회 인 사 말 15:00~16:30 주제발제 1부 이슬람과 인권 좌 장 : 심 성 보 (인권교육포럼 공동대표) 이슬람과 인권 이 희 수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토론 김 영 경 (고려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토론 박 현 도 (명지대학교 중동문제연구소 상임연구원) 15:40~18:00 주제발표 2부 기독교와 인권 좌 장 : 오 완 호 (인권교육포럼 공동대표) 한국 그리스도교의 인권담론과 신학적 성찰 김 진 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토론 구 미 정(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 토론 이 춘 선(평화인권기독교교육연구소 연구소장) 종합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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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제1부 이슬람과 인권 이슬람과 인권 3 이 희 수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이슬람과 인권 - 신학적 뿌리, 역사적 결실, 그리고 현실 14 김 영 경 (고려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이슬람과 인권 토론문 34 박 현 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상임연구원) 제2부 기독교와 인권 한국 그리스도교의 인권담론과 신학적 성찰 41 김 진 호(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한국 그리스도교의 인권 담론과 신학적 성찰: 안병문의 신학을 중심으로 를 읽고 58 구 미 정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 기독교와 인권: 한국 그리스도교의 인권담론과 신학적 성찰에 대하여 66 이 춘 선 (평화인권기독교교육연구소 연구소장)

6 참고자료 Universal Islamic Declaration of Human Rights 83 Cairo Declaration on Human Rights in Islam 101 이슬람과 인권 109 김 영 경 (고려대학교 교양학부) 이슬람 인권사상과 카이로인권선언 114 김 영 경 (고려대학교 교양학부) 바하이교의 역사적 개관 134 김 영 경 (고려대학교 교양학부) 국경들 너머의 짐승들 혹은 인간들 181 김 진 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7 제1부 이슬람과 인권 1 제1부 이슬람과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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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제1부 이슬람과 인권 3 주제발표 이슬람과 인권 이 희 수(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이슬람과 인권은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신이 주신 율법과 가르침을 인간이 만든 법적 체제와 규범으로 단죄하거나 그 것의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이 어디까지 유효할까? 유럽 이슬람 평의회가 1981년 파리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1990년 8월 5일 채택된 이슬람의 보편적 인권선 언 에는 두 가지의 분명한 목표와 한계가 잘 설정되어 있다. 첫째, 신의 권리는 인간의 권리에 우선 한다 둘째, 국제인권선언 등의 인권개념들이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이 개념들이 샤 리아(이슬람 법)에 부합하는 한--- 이라는 전제조건을 달았다. 개념부터 정리하자. * 이슬람의 인권 * 무슬림 사회의 인권 * 무슬림 다수 사회의 인권 * 이슬람 사회의 인권 * 무슬림의 인권 아마 여기서 논의하고자 하는 주제는 이슬람에서 보는 인권의 개념과 무슬림 사회가 처하고 있는 현실적인 인권의 실상에 관한 것인 듯싶다.

10 4 제11차 인권교육포럼 1. 이슬람에서 보는 인권의 개념 이슬람권과 서구가 각각 따로 노는 인권의 문제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한 자리 에서 논의하면서 간극을 메우고 상호이해의 폭을 넓히려는 거국적 시도가 1972년 3월 23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서 사우디 율법학자와 정부대표 대 유 럽 율법학자 대표들 사이에 열렸다. 사우디아라비아-유럽 지성간의 논쟁회의는 1974년 10월 23일 파리회의, 같은 해 10월 25일 바티칸 회의로 이어졌고 지금 논의되고 있는 첨예한 인권문제들이 심도 있게 제기되었다. 이에 대한 이슬람 측 의 공식적인 입장도 확연하게 전달되었다. 이미 36년 전에 제기되었던 문제들은 한 세대기 훨씬 지난 지금까지 한 치의 변화도 없이 그대로 재연되고 있다는 점 에서 서글픔을 느낀다. 1) 평등의 인권 모든 인간은 신 앞에 동등하다. 모든 인간은 신의 피조물로 피부색, 신분, 출신, 언어나 국적 등에 의해 차별받지 아니한다(XLIX,13). 인간은 바로 신의 대리인이 자 종복이다. 따라서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아담의 형상을 빚고 생명을 불어 넣으셨고, 똑같이 이브의 형상을 빚고 생명을 불러 넣으셨다. 남녀가 완벽하게 창 조의 동등성에서 출발한다. 인간의 평등을 실현하는 사회적 기제로 이슬람의 가장 존중받는 덕목이 형제애 이며, 예배를 볼 때도 한 줄로 나란히 본다. 앞의 줄이 채워지지 않는 한, 두 번 째 줄이 형성되지 않고 왕과 거지가 나란히 예배를 보게 된다. 2) 공동체의 이익이 개인이 이익에 우선하는 문화 * 개인의 이익보다는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우선한다. * 나는 존재한다, 우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 세속사회에서의 순기능-공동체에 한 톨의 양식이라도 남아있는 한 굶주리는 자가 있

11 제1부 이슬람과 인권 5 어서는 안된다 * 세속사회에서의 역기능-명예살인/일벌백계의 처벌/ 살아있는 자의 인권이 더욱 소중 (신체절단형의 폐해) 3) 세계인권선언과의 합치 * 모든 사람은 태어닐 때부터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 서로에게 형제애로 대해 야 한다 꾸란의 정신에 합치(17:70) * 모든 사람은 생명과 신체의 자유와 안전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꾸란에 합치 * 모든 사람은 사회-복지보장을 받을 권리와 동일노동에는 동일한 임금을 받아야 한다 무슬림 사회에서 통용되지 않음 * 모든 사람은 공동체의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꾸란에 합치 * 어느 누구도 고문, 또는 잔혹하거나 비인도적이거나 굴욕적인 처우 또는 형별을 받지 않는다 참수형, 신체절단형, 간통 투석형 등이 이슬람법의 이름으로 일부 국가에서 자행 * 모든 사람은 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개인의 자유보다는 공동체 공동선이 우선됨으로써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 * 모든 사람은 언론과 의견을 말할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인간의 영역에서는 인정되나, 신의 영역에 인간의 무한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무분별하게 적 용될 수없다. 신성불가침의 종교적 영역을 설정한다 무슬림 사회에서는 이집트를 중심으로 18세기말부터 서구식 법체제와 인권의 개념에 대한 실질적인 고뇌가 시작되었다. 1789년 나폴레옹 이집트 침공 이후 이 집트에서 받아들여진 시민과 인간의 권리 선언 은 이러한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종래처럼 7세기 초에 계시된 진 꾸란을 글자그대로 이해해야 하는가? 아니면 시 대적 재해석의 문호를 활짝 열어야 하는가의 본격적인 논쟁이 시작되었다. 결국 1848년경에는 무슬림 사회가 매우 진일보한 형태로 서구 중심의 인권 개 념에 이슬람식 인권개념을 적용시켜 보편적 가치질서에 편입하려는 노력을 보이기

12 6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시작했다. 많은 부분 세계인권선언은 꾸란의 기본적인 정신과 부합되었지만, 몇 가지 항목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즉, 1948년 12월 10일 유엔 총회 의 보편적 세계인권선언과 1976년 경제적 사회적 권리 시민의 정치적 권리 채택에서 일부 무슬림 국가에서 유보적, 조건적 수용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특히, 3가지 원칙에 대해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 무슬림 여성이 비무슬림 남성과 결혼할 권리(16조) * 꾸란에 의하면 모든 것은 신의 소유이고 인간은 이를 사용할 뿐인데, 소유권을 인정하 고 있는 조항(17조) * 배교행위를 사형에 처할 수 있는 상황에 비추어, 종교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자유와 양 심의 자유(18조)등 이었다. 2. 무슬림 사회에서 인권의 실상과 변화 무슬림 사회의 인권을 논할 때,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 무슬림사회의 인권의 특수성을 어느 정도 인정할 것인가? * 보편적 인권이란 것이 과연 만능일 수 있는가? * 가해자의 인권과 피해자의 인권이 동등하게 보호받아야 할 도덕적 기준은 무엇 인가? * 한 인간에 의해 저질러진 가정의 손상과 공동체의 상처에 대해 법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가? 1) 무슬림 사회에서 사형제 폐지의 논란은? 꾸란에 속한 박해의 영역은 무엇이고 인간의 욕망이나 독재정권의 야욕 에 의해 저질러지는 폭력은 무엇인가? * 너의 형제와 동포를 살해하지 말라 (17-31)

13 제1부 이슬람과 인권 7 동포를 죽일 수 있는 권리는 탈리온 법(2-178)에 이해 인정되지만 만일 살인자가 피 의보상을 치른다면 희생자의 부모나 형제는 살인자를 용서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살 인자는 처형대신 수감형을 살 수 있다. * 무조건적 사형제 폐지나 피해자의 고통을 감안하지 않은 법률체계의 일방적 결정에 제동. * 도둑들에 대한 손발 절단형 시행에 대한 입장 이 형벌은 너무 가혹하여 무함마드 시 대에도 시행되지 않았다 극소수의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다. 오히려 배고픈 절도죄에 대해서는 범인에게 공동체나 국가가 이를 보살펴주어야 한다(기본 의무). 다른 절도범 도 공동체 존립을 심각하게 훼손하지 않는 한 감금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일부 보수학 파들은 절도범에 대한 감금형과 온건한 처별에 반대한다. * 터키의 사형제 폐지와 일부 무슬림국가에서 사형제 폐지논란이 진행 중 2) 간통죄에 대한 가혹한 돌팔매질 채찍질 100대/ 돌팔매질의 비 꾸란성/ 꾸란 근거성에 대한 논쟁 3) 타 종교의 선교금지와 처벌은? 대부분 무슬림 국가에서 선교는 실정법으로 금지되어있다. 자신의 신앙과 종교 적 행위는 존중받고 보호받지만 강제로 자신의 종교나 신앙을 강제하는 것은 범 죄행위로 간주된다 강제개종을 금지한 꾸란의 가르침에 근거한다(2:256/ 10:99). 4) 여성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 억압의 실상은? 이슬람이 문제인가? 무슬림 사회가 문제인가? 복합적인가? 인류사회의 보편적 발전의 변화의 한 과정인가? * 양성평등의 정신과 현실적 왜곡문제 * 여성 할례 문제 * 일부다처와 남성의 일방적 이혼통고 * 여성의 사회참여제한과 남성 의존

14 8 제11차 인권교육포럼 * 가부장제, 부계중심, 남아선호 사상이 갖는 여성의 굴레 5) 배교자에 대한 처형의 진위와 시행정도 배교자에 대한 사형 처벌이 어느 정도 사실인가? 왜 배교자에게 그토록 엄격한 처벌을 강제하는가? 6) 히잡의 중층성: 문화적-종교적-사회적-정치적 의미 21세기 히잡은 이미 패션이다 프랑스 유명 브랜드들이 연이어 이슬람 히잡을 명품으로 만들어 팔고, 신여성의 상징이라며 맨 먼저 히잡을 벗어던졌던 이집트 도시여성들은 다시 히잡을 착용하 기 시작했다. 이슬람 국가들마다 멋진 디자인으로 경쟁하는 새로운 히잡 패션이 계절마다 쇼 윈도우를 장식하고 있다. 히잡은 여전히 고약한 여성억압의 상징이다 굳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통치하의 여성 부르카 착용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아직도 무슬림 사회 곳곳에서는 히잡이 여성을 억압하고, 차별하고, 자유를 구속 하는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제다를 출발한 비행기 안에는 얼굴까 지 가린 니깝을 착용한 여성들이 적잖게 탑승하고 있었다. 그러나 비행기가 방콕 공항에 내릴 때쯤에는 검은 차림은 거의 사라지고 최첨단의 패션 모델들이 우루 루 공항을 빠져 나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히잡은 자유와 자기 정체성을 상징하는 현대 여성의 존재가치다. 터키 여대생들은 학교에 갈 때 누구도 히잡을 쓰지 못한다. 자신의 신앙을 지키 고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식 있는 신여성들은 스스로 대학에서 퇴학당하 는 극단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결코 히잡을 벗지 않는다. 히잡을 쓰고 학생들 을 가르치거나 공직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에 힘들게 얻은 직장마저 기꺼이 포기 한다. 그들에게 히잡은 저항의 상징이고 자유와 존재에 대한 강한 확인이다.

15 제1부 이슬람과 인권 9 히잡은 참으로 편리한 실용적 포장이다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직장생활을 하는 도시 무슬림 여성에게 히잡은 실용적이고 유용한 포장의 수단이 된다. 여성들이 매일 부담해야 되는 복장과 패션, 머리 손 질, 화장 등은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히잡을 쓰 면 적어도 매일 옷을 갈아입을 필요도, 매일 머리를 손질할 필요도 없이 자연스럽 게 자신을 포장할 수 있는 매우 실용적인 방편이다. 그래서 이슬람 사회에서 직장 여성들의 히잡 착용률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이슬람 사회의 여성문제는 아직도 서로 다른 상황에서 평행선을 달리는 첨예한 논쟁거리다. 각자의 관점에서 미시적 주장만 난무했지 이슬람 여성문제의 진정한 본질을 꿰뚫는 노력과 다양한 관점, 무엇보다 균형감각을 가질 수 있는 지 성적 담론은 아직도 찾기 힘들다. 7) 절충적 형태 많은 무슬림 국가나 사회에서 이슬람법은 사실상 민법, 가족법, 상속 같은 전통 과 문화적 맥락에서 제한적이고 상징적으로 통용되지만, 형법이나 현실 생활의 잡 다한 행위 규제는 거의 스위스 민법이나 서구식 법체제를 급속히 받아들이고 있 다. 그러면서 서구의 민주주의는 권력이 시민으로부터 나오지만 이슬람에서는 권력 이 신으로부터 나온다 는 논리로 포장한다. 그리고는 우리는 신의 허락과 함께 한 명의 선지자를 보냈으니, 이는 오직 그의 말에 따르기 위함이다 (4-64). 이 구 절은 후대 칼리프들에게 적용되었고 오늘날 이란 최고 지도자나 일부 무슬림 국 가의 수장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꾸란의 가르침들이 현대국가 독재자들 의 권력횡포의 그럴싸한 명분으로 그럴싸하게 포장되고 있는 것이다. 사우디아라 비아는 2005년에야 평민 남자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했다.

16 10 제11차 인권교육포럼 3. 서구식 인권에 대한 반발과 저항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전쟁을 통한 자국이익 극대화 정책을 더욱 노골적으로 실천에 옮기고 있다. 소련이라는 경쟁상대가 사라진 독무대에서 힘의 논리에 입각 한 일방주의는 통제 불능의 상태에 이른 느낌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나 인권 같은 교묘한 명분으로 포장한 거대한 인권말살과 비민주적 침략 이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다는 서글픈 현실이다. 가진 자의 인권은 자유와 평화라는 명품 보자기로 포장되지만 빼앗긴 자의 인권은 쓰레기통에서 먹을 것을 뒤지는 처절한 생존이 연속이다 * 보편적 질서와 합리,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의 어두운 얼굴을 들여다 본 적이 있는가? * 모든 인간은 법 앞에 평등하고 종교마다 모든 인간은 신 앞에 평등하다면서도 언제 한 번 우리가 생명의 무게에 공정한 태도와 똑같은 가치를 준 적이 있는가? 1) 중동민주주의 말살 정책 이슬람운동권의 극히 일부가 서구의 끊임없는 경제적 착취와 이슬람 가치체계에 대한 흠집 내기에 극단적으로 반응하면서 과격주의와 폭력주의가 생겨났다. 이 폭 력주의의 1차적 책임은 서구의 비열한 분열주의와 이중정책, 수단과 방법을 가리 지 않고 자신의 이익보전에만 급급해하는 서구 자신이다. 서구의 가치와 이익만이 지고선이라 생각하는 독선과 패권주의가 바로 이슬람 급진주의의 최대 후원자인 셈이다. 이것은 무슬림 국가내에서도 이슬람적인 요소를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는 국가보다는 이슬람을 철저히 박해하고 있는 곳에서 급진적이고 과격한 이슬람 운 동이 호응을 얻고 있다는 점에서도 명백하다. 걸프해에서 철저한 미국의 경찰국가 로 자처했던 팔레비 샤 정권이 아래로부터의 혁명으로 이란에서 이슬람 정권의 태동을 가능하게 해주었고, 오랜 일당 군부독재와 프랑스의 지원이 알제리에서 FIS(국민구국당)의 집권가능성을 만들어 주었다. 튀니지나 이집트에서 무슬림 형

17 제1부 이슬람과 인권 11 제단이 끈질긴 저항을 계속하는 것도 독재정권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 지원이 배 경에 깔려있다. 무슬림 국가 중에서 서구화와 세속화가 가장 성공했다고 하는 터 키에서조차 1995년 이후 이슬람을 표방하는 정당이 이스탄불과 앙카라등 대도시 의 시장선거를 석권하고, 세속공화국 78년 만에 처음으로 2001년 단독 집권을 경 험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 미국에 의한 중동민주주의 싹이 잘리는 어처구니없는 현실 *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최초의 민주적 선거에 의해 선택된 하마스 정권의 불인정과 테러 조직 규정 * 레바논 남부 주민들의 유일한 정치적 대안이고 국민들의 직접 선거에 의해 선출된 35 명의 국회의원과 내각에 2명의 장관을 가진 레바논 제2의 합법적인 제도 정치정당인 헤지불라를 테러단체로 규정 * 알제리에서의 민주 선거결과 이슬람구국당(FIS)의 압승으로 이슬람정권 등장을 두려워 한 서구의 쿠데타로 군부 독재의 회귀 * 지구상에서 가장 비민주적이고 인권억압의 메카인 사우디아라비아 왕정을 무조건 비호 하는 미국의 이중적인 인권정책 * 독재정권인 이집트 무바라크 정권의 야당 탄압과 인권말살에 대한 미국의 지지 * 터키에서의 군부의 정치개입과 막강한 미국의 영향력 2) 인권의 두 얼굴 미국은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초토화시키고 있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폐허가 직전의 낡은 텐트 위에 첨단 미사일을 퍼붓는다. 군사목표라 지만, 죽어나는 희생자는 무고한 민간일 수밖에 없다. 인류가 수 천 년을 경험한 전쟁의 역사가 그러했고, 바로 20년 전 걸프 전쟁이 그러했듯이. 빵 한 조각을 위 해 생명을 걸어야 하는 그들이 미국 테러와 무슨 관련이 있으며, 신의 이름을 팔 아먹는 극단적 원리주의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들은 '왜'라는 질문에 대한 대 답도 제대로 듣지 못하고 무차별 폭격으로 죽어나갈 것이다. 전쟁이 쓸고 간 뒤에

18 12 제11차 인권교육포럼 남겨진 수많은 어린이들은 또 얼마나 버티며 살아남을 것인지. 지진아가 되어 다 음세대를 이어가야 하는 처참한 문명의 범죄를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이미 우리는 이라크에서 그 참상을 목격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살만큼 살았다. 후세인을 때 려잡아도 좋다. 그러나 어린 아이들만을 살려 달라. 이미 50만 이상이 어린 생명 이 약과 우유가 없어 목숨을 잃었고, 살아남은 우리 아이들도 질병과 영양부족으 로 거의 지진아 상태다" 며 피를 토하던 바그다드 인문대학장 하디스 박사의 절 규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민간인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전쟁만은 안 된다는 인 권단체나 반전그룹의 목소리는 지금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포성에 묻히고 있다. 그리고 이번 전쟁은 테러를 뿌리 뽑겠다며 다른 지역으로 폭격을 확대할 조짐마 저 보인다. 인권은 늘 두 얼굴을 가지고 인류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가진 자의 인권과 빼앗 긴 자의 인권이 그것이다. 가진 자의 인권은 정의와 자유로 포장되어 있지만, 지 구촌 대부분을 차지하는 빼앗긴 자의 인권은 생존에 가려져 있다. 강탈당한 영토 를 되찾고 신이 주신 가치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빼앗긴 자의 절박한 요구는 예나 지금이나 가진 자의 목소리에 가려 있다. 비옥한 땅에서 물 한 모금과 빵 한 조 각을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람들에게 인권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자유와 정의가 과연 생존에 앞선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가진 자의 논리만이 정의라면 약육 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정글과 인류사회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어떤 명분과 이유로도 무고한 시민을 겨냥하는 테러는 정당화될 수 없다. 뉴욕 무역센터의 무너진 잔해 속에서 가족의 시신을 안고 절규하는 미국시민들의 슬픔 에 팔레스타인 아랍인들만큼 그들의 아픔을 잘 이해하는 민족도 없었을 것이다. 1948년 이후 이스라엘의 폭격이나 테러로 숨진 어린 생명과 가족들의 시신을 안 고 통곡하는 일을 일상으로 되풀이해온 그들이기 때문이다. 빼앗긴 자의 저항은 미사일이나 폭격기 대신 온 몸에 폭탄을 감고 적을 향해 목숨을 던져 버리는 것 이다. 이처럼 테러도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다만 가진 자는 그것을 보복공격이 라 부를 뿐이다. 이처럼 자살폭탄공격과 보복공격은 둘 다 선후가 없는 명백한

19 제1부 이슬람과 인권 13 테러이다. 테러의 응징을 위해 저지하려는 또 다른 국가테러가 반복되는 한 이 악 순환의 고리는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러면 가장 확실한 테러응징과 방지는 가 진 자가 빼앗긴 자의 생존에 최소한의 응답을 하는 것이다. 대테러전쟁으로 인 권을 유린하는 전쟁비용의 10분의 1 정도라도 무슬림 사회의 저소득층을 위해 경 제지원을 한다면 지금보다 몇 십 배 효율적인 테러방지효과가 날 것이다. 4. 서로 다른 테러와 평화코드, 그리고 인권 여전히 이슬람 세계는 아직도 평화를 갈구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에서의 이스라 엘과 미군시설에 대한 무장 투쟁을 이슬람 세계는 테러로 보지 않는다. 처절한 생 존투쟁으로 정의롭고 신성한 독립저항으로 본다. 일부 세력들이 이슬람을 들먹이 지만, 테러와 이슬람의 가르침은 별개의 코드다. 그것은 생존투쟁이 만들어내는 현상이고, 약자가 저항하는 기제이며, 부당한 약탈을 전제로 한 서구 강국들이 조 작해 만들어 내는 폭력성이다. 이런 현상을 이슬람의 비평화성과 결부시키는 것은 지나친 사실 왜곡이다. 결국 이것은 인간이 최소한의 존엄성과 자긍심을 갖고 인 간답게 살려고 하는 몸부림이다. 인권의 문제다. 이슬람과 인권은 깊은 상관관계 가 있는 듯하지만 실상은 인권문제가 종교적인 문제라기보다는 무슬림 사회가 안 고 있는 깊은 고뇌의 반응이다. 그것은 인권과 사회발전이라는 3세계의 국가들의 일반적인 변화 발전과 결코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20 14 제11차 인권교육포럼 토론1 이슬람과 인권 - 신학적 뿌리, 역사적 결실, 그리고 현실 - 김 영 경(고려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1. 이희수 교수는 발제의 글에서 이슬람의 인권개념과 오늘날 무슬림 사회가 처해 있는 인권의 실상을 비판적으로 정리해 주었다. 이슬람을 국시로 삼고 있거나 무 슬림이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몇몇 국가의 인권실상을 통렬하게 비판하 는 글 속에는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서 이희수 교수의 열정과 용기가 담겨 있다. 또 미국을 위시한 서구의 패권주의와 이중정책이 폭력적인 이슬람 급진주의의 최대 후원자라는 주장 속에서는 우리나라 무슬림 공동체의 지도자로서 이슬람 세계에 대한 애정과 보다 정의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이 녹아 있어 기쁘고 존경스럽다. 2. injustice anywhere is threat to everywhere : 이희수 교수의 발제에서 크게 문 제 삼거나 이의를 제기할 사항을 발견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필자는 주어진 주제와 관련, 이슬람 인권사상의 신학적 뿌리와 역사적 기여를 설명하고, 오늘날의 현실 로서 일부 이슬람 국가, 특히 이란 이슬람 공화국에서 자행되고 있는 인권유린 실 태를 구체적으로 소개한 다음, 이희수 교수와 이 포럼을 주최한 국가인권위원회, 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분에게 개인적인 제안을 한두 가지 하는 것으로 토론에 임하고자 한다 년 6월 4일 이집트 카이로 대학 : 지난 해 6월 4일, 버락 후세인 오바마

21 제1부 이슬람과 인권 15 미국 대통령은 이집트 카이로 대학 대강당에서 새로운 시작 이란 제목으로 역사 적인 연설을 했다. 이슬람 세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그 연설에서 오바마 대통 령은 테러리즘, 핵문제, 민주주의, 여성 등 7개의 이슈를 다루었다. 폭력적인 극단 주의에 대해 논하는 부분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다음과 꾸란 한 구절을 인용해 청 중으로부터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4. 신성한 꾸란에서는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을 살해한 자는 전 인류를 살해한 것과 같으며, 한 명의 인간을 구한 자는 전 인류를 구한 것과 같다 (5:32)고 가르 치고 있습니다. 5. 이슬람의 자랑스런 전통 - 관용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알 아즈하르 대학과 이집트의 근대화를 상징하는 카이로 대학이 공동으로 주최한 그 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다섯 번째 이슈로 다룬 주제는 종교적 자유였다. 이슬람은 관용이라는 자랑스러운 전통을 지니고 있습니다. (중세 유럽에서 악명 높던) 종교재판이 자행되던 시절, (무슬림들이 지배하던 피레네 산맥 서쪽) 안달루시 아 지방과 코르도바 지방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그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인도네시아에서 저는 국민 대다수가 무슬림인 국가에서 신앙심 깊은 기독교인들이 자유롭게 예배를 드리던 모습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 것이 오늘날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정신입니다. 모든 국가의 국민은 자신의 생각과 마음과 영혼에 깃든 확신에 따라 자신의 믿 음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그에 따라 살 수 있어야 합니다.... 레바논의 마론파 교도이든 이집트의 콥트 교도이든 종교적 다양성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합니다. 종 교의 자유는 여러 민족이 공존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22 16 제11차 인권교육포럼 6. 이슬람 전통의 뿌리, 꾸란과 순나 : 관용 이라는 이슬람의 자랑스러운 전통은 하느님이 계시한 말씀만을 수록한, 그래서 무슬림들이 절대적으로 신성시하는 꾸 란, 그리고 그 계시를 전한 하느님의 사자 무함마드가 남긴 관행, 즉 순나에 뿌리 박고 있다. 꾸란 속에는 인류의 단일성을 위시하여 인권과 직결된 가르침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 가운데 몇 구절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종교에는 강요가 없다 (2:256) - (무함마드여, 성서의 백성들에게 이같이 말하라) 나는 하느님이 내려 보내신 성서들 을 1) 믿는다. 그리고 나는 너희를 정의롭게 대하라 는 명을 받았으니, 하느님은 우리 의 주이며 (동시에) 너희들의 주이기 때문이다.... (42:15) - 사람들이여! 우리는 한 명의 남성과 한 명의 여성으로부터 너희들을 창조했고, 씨족 과 부족을 이루도록 했나니, 이는 너희들이 서로 친히 사귀도록 하기 위함이니라. (그 러니 자신의 혈통을 뽐내며 우쭐거리지 말라!) 하느님의 눈엔 가장 정의로운 사람이 가장 훌륭한 사람이니라. (49:13) 7. 인권이란 주제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순나는 하느님의 사자, 무함마드가 세상 을 떠나기 약 3 개월 전인 632년 성지순례 중에 행한 연설이다. 하느님의 유일성, 인류의 단일성, 생명과 사유재산의 신성함,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등에 대해 언급한 이 연설을 무슬림 학자들은 이슬람 인권사상의 효시로 삼고 있다. 그 가운 데 한 대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2) 여러분, 여러분의 신은 단 한 분이고, 여러분의 조상도 단 한 사람이니 여러분 은 모두 (하느님께서) 진흙으로 빚어 만든 아담의 후손들입니다.... 아랍인은 비아 랍인보다 우월하지 않으며, 비아랍인도 아랍인보다 우월하지 않습니다. 황인도 흑 인보다 우월하지 않으며, 흑인 또한 황인보다 우월하지 않습니다. 우열이 있다면, 1) 모세 5경, 시편. 복음서 등을 의미함. 2) 손주영. 이슬람과 인권. 한국이슬람학회논총 제7집(1997) 34쪽 참조.

23 제1부 이슬람과 인권 17 그것은 오직 신앙심에 달려있습니다. 8. 찬란한 이슬람 문명 : 711년 서고트 왕국을 멸망시키고 스페인을 손에 넣은 무슬 림들이 800년 가까이 그곳을 통치하면서 찬란한 문명을 꽃피울 수 있었던 것도 바 로 그들이 현지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들을 포용하며 이러한 정신에 입각해 정치 를 했기 때문이다. 유럽 대륙이 중세 암흑시대 의 어둠에 싸여 있는 동안 피레네 산맥 서편에서는 헬레니즘을 비롯해 이슬람 세계 각지의 학문을 접목, 발전시킨 수 학, 철학, 의학, 화학, 물리학, 천문학 등 첨단 학문과 문학과 예술이 새로운 상품과 지식을 찾아 라틴 세계에서 온 상인들, 귀족들, 학자들, 유학생들을 매혹시켰다. 9. 인류 문명이 이슬람에 진 빚 : 중동 이슬람 세계를 향해 새로운 관계의 정립을 제안한 오바마 대통령도 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역사학도로서 저는 인류 문명이 이슬람에 진 빚에 대해서도 알고 있습니다. 수 세기에 걸쳐 배움의 빛을 전하고 유럽의 르네상스와 계몽운동이 나아갈 길을 깔 아준 것은 바로 이슬람, 알 아즈하르 대학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대수학( 代 數 學 ), 나침반과 항해 도구, 펜과 제지술, 전염병의 확산 경로와 치료 방법을 알아낸 것 도 무슬림 사회의 혁신 덕분이었습니다. 이슬람 문화로 인해 우리는 웅장한 아치 와 하늘을 향해 치솟은 첨탑, 영원히 남을 시와 소중한 음악, 우아한 서예와 평화 롭게 명상할 수 있는 공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한, 역사적으로 이슬람은 종교적 관용과 인종적 평등의 가능성을 말과 행동을 통해 실천해왔습니다. 10. 서구열강의 부상과 이슬람 세계의 몰락 : 그러나 제행무상! 15, 6세기 전성기를 지나 침체기에 접어든 이슬람 사회는 늙어 있었다. 특히 종교적 자만에 빠진 울라 마(종교지도자)들은, 이조( 李 朝 ) 말 유림( 儒 林 )이 그랬듯이, 시대의 변화, 특히 서 유럽 사회의 비약적인 발전을 백안시했다. 예를 들어, 울라마들은 서구의 인쇄술

24 18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을 비이슬람적인 것으로 규정, 도입을 가로 막았다. 그들은 인쇄술이 학문적 지식 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보급에 활용되기보다는 무지한 사람들에 의해 오용될 위 험이 있으므로 도입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적, 사회적 압력에 밀려 인쇄술 도입을 마지못해 인정한 후에도 그들은 꾸란은 성스러운 책이므로 그 대 상이 아니라고 저항할 정도였다. 철도, 전기, 전신, 의료기술 등 서양에서 발명된 여타 문명의 이기에 대해서도 울라마들은 오랫동안 이와 같은 태도를 견지했다. 결국 개방적이고 진취적이던 이슬람 사회는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사회로 변해갔 고, 이렇게 서서히 활력을 잃은 이슬람 국가는 하나 둘 서구열강의 식민지로 전락 하게 되었다. 11. 터키의 선택과 3가지 종류의 이슬람 :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 서구의 식민지로 전락할 위기에서 그나마 터키민족을 구한 인물은 무스타파 케말 장군이었다. 아타 투르크, 즉 터키민족의 아버지 로 불리게 될 그는 쓰러져가는 오스만 제국을 미 련 없이 버리고 공화주의, 민족주의, 세속주의 등을 국시로 삼아 터키공화국을 수 립했다. 이는 400여 년 간 이슬람 세계의 종주국을 운영했던 민족이 이슬람을 정 치에서 배제했음을 의미했다. 이로 인한 이슬람 세계의 충격은 컸다. 이슬람 문명 의 영광에 미련을 버리지 않았던 사람들은 이슬람이 터키민족을 가장 필요로 할 때, 터키민족이 이슬람을 버렸다고 비난했다. 이러한 비난에 대해 한 터키 지식인 은 다음과 같이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우리 터키인들은 이슬람과 결별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아랍인들의 생 각이죠. 이슬람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정작 그들입니다. 세상에는 세 가 지 종류의 이슬람이 있습니다. 꾸란의 종교로서의 이슬람, 울라마들의 종교로서의 이슬람, 그리고 (무지한) 대중의 종교로서의 이슬람이 그것입니다. 마지막 것은 미 신이자 기복신앙이고 물신숭배에 불과한 것이므로 여기에서 거론할 필요조차 없습 니다. 두 번째 이슬람, 그것은 오늘날 낡아빠진 율법주의, 그 무게 때문에 수렁에 빠진 수레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충치치료를 받기 위해 치과의사에게 가

25 제1부 이슬람과 인권 19 기 전에 먼저 울라마에게 찾아가 파트와 를 3) 써주십사고 해야 한다면, 이게 도대 체 말이 되는 소립니까! 터키가 버린 것은 이 두 번째 이슬람입니다. 그런 이슬람 을 버려야 할 때가 되었고, 그래서 버린 것이죠. 그를 통해 우리는 무슬림 세계를 선도한 것입니다. 이슬람은 개혁을 필요로 합니다. 이 점에 있어서 터키는 여전히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는 국가입니다. 4) 12. 이슬람 세계 정치지도자들의 선택 :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서구 열강의 식민 지배가 물러나는 과정에서 이슬람 세계의 정치적 헤게모니를 장악한 세력은 - 사 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 몇몇 토후국을 제외하곤 - 모두 세속적인 엘리트 집 단, 구체적으로는 터키, 아랍, 이란 등지의 민족주의자들이었다. 이집트, 시리아, 이락 등의 아랍 세계에서도 사회주의적 민족주의 노선을 주창하는 세력이 집권을 했고, 당시 이란을 지배한 팔레비 왕조가 내세운 기치도 옛 이란의 영광, 이슬람 이전에 페르시아가 누렸던 영광을 중흥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렇듯 세속주의자들이 지배한 이슬람 세계에서 이슬람을 선양하는 목소리는 거 의 들리지 않았다. 설사 그런 소리가 있어도, 이미 이슬람 전통에 식상한 대부분 의 무슬림들은 그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러한 정황은 당시 한반도에서 유교 나 불교와 같은 전통종교가 놓여있던 처지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이 슬람은 이제 세상물정 모르는 시골 아낙이나 시대에 뒤떨어진 노인들 외에는 아 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유물처럼 보였다 세기 후반 - 또 다른 이슬람의 출현 : 60년대 말 70년대 초, 해방과 독립, 그리 고 건국에 따른 사회적 흥분이 차츰 식으면서 수십 개 국민국가로 분리된 무슬림들 은 차츰 현실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당시 이집트, 시리아 등 주요 이슬람 국가가 처 해 있던 시대적 정황은 경제적 침체, 정치적 억압, 그리고 대 이스라엘 전쟁에서의 3) 울라마들이 발행하는 법률적 소견서. 4) Wilfred Cantwell Smith, Islam in Modern History, 1957, pp. 176f..

26 20 제11차 인권교육포럼 패배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1973년의 오일쇼크, 즉 대이스라엘 전쟁에서 이스라엘 을 돕는 미국과 서방세계를 견제하기 위해 아랍 산유국들이 취한 석유자원 무기화 정책은 이슬람권 비산유국의 경제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혔다. 이는 역설적으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반체제 운동을 촉진시켰다. 경제적으로는 무능하고 정치적으로 는 억압을 일삼는 정권에 대한 비판과 이상적인 사회적 대안을 제시함에 있어서 이 들보다 더 정교한 이론과 이념을 지닌 그룹은 달리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70년대 중반 80년대 초에 이르러서는 이슬람을 기치로 내 세운 운동조직들이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이슬람 대안 그룹을 통해 마르크스주의자들을 견제하고자 했던 정부의 전략, 전 세계 이슬람 조직에 대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재정지원,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보여준 이중성, 이란 이슬람혁명의 성공, 전 세계 무슬림들의 정서를 크게 자극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그에 이은 공산권의 몰락, 서구 자본주 의 사회가 보여준 쾌락주의적, 물질주의적 경향에 대한 거부감 등이 종합적으로 어울려 큰 역할을 했다. 가까이는 동남아시아의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서부터 멀리는 북아프리카의 모로코, 알제리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이슬람은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금요 집단예배는 물론, 자카트, 즉 종교세와 성지순례에 참여하는 무슬림의 수가 점점 더 많아지고, 수염을 기른 남성, 베일을 쓴 여성이 점점 더 빈번하게 눈에 띠고, 신문, 방송 등 대중언론 매체에서는 이슬람 관련 기사와 기획 프로그램을 대폭 늘 려 편성하고 있다. 이슬람과 현대사회를 주제로 한 학술대회도 더욱 잦아지고, 또 그를 주제로 한 논문이나 교양서적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술, 도박, 매춘 등을 추방하고, 샤리아를 보다 폭넓게 적용하라는 요구의 목소리도 더욱 커지고 있다. 정부 당국도 모스크 건립, 이슬람 교육기관 지원금 증액 등을 통해 무슬림 대중의 호감을 얻으려 노력하고 있다. 자선사업을 통해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시민단체로부터 지하 혁명조직에 이르기

27 제1부 이슬람과 인권 21 까지 오늘날 이슬람 세계에서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조직은 다양하다. 그 가운데 국가와의 전면전까지 불사하는 급진적인 운동을 포함, 이슬람 원리주의 혹 은 이슬람주의로 분류되는 몇몇 주요 조직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레바논의 신 의 당(히즈볼라), 이슬람 희망(이슬람 아말), 하마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알제 리의 이슬람 구국전선, 이슬람의 요람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태어난 알 카에다,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 이슬람해방기구, 지하드 사회, 불신과 이주(타크피르 와 알 히즈라), 신의 군대(준드 알라), 인도의 경건주의자 협회(타블리그), 튀니지의 이슬람 경향운동, 부흥당(엔나흐다), 파키스탄의 이슬람 사회(자마아티 이슬라미). 이들 조직은 범국가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이슬람 세계는 물론 한국을 포함 전 세 계에 흩어져있는 디아스포라 무슬림 공동체에도 크고 작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오늘날 순니파 이슬람 세계에서 이슬람 부흥운동을 이끌고 있는 대부분의 인물 은 전통적인 울라마들이 아니라 교사, 전기기사, 의사, 엔지니어, 학자 등 일반 지 식인들이다. 이들은 꾸란이나 하디스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에 구애됨이 없이 자유 롭게 그를 인용, 자신들의 이념적, 정치적 담론에 활용한다. 사다트 대통령 암살 그룹이 가리워진 명령 이란 제목으로 공포한 성명서가 이러한 경향을 극단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성명서에서 반이슬람적인 권력에 지하드를 선포하기 위 해서는 이슬람 운동 투사들이 울라마들을 대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아파 이슬람 세계, 구체적으로 이란에서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 울라마들 스스로 정권의 주인이 되었다. 즉 1970년대에 걸쳐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적극적 으로 서구화에 박차를 가했던 레자 팔레비 국왕이 급격한 근대화, 산업화에 따른 부작용으로 인하여 야기된 민중봉기를 수습하는데 실패하고 프랑스로 망명의 길을 떠난 뒤, 그를 대신해 정권을 잡은 인물은 아야톨라 호메이니와 그의 추종자들이 었다. 1979년 1월의 일이다. 5) 5) 이 글은 2008년 6월호 불교평론 에 이슬람 신정정치의 이상과 그 변질 이란 제목으로 실린 필자 의 글에서 인용한 것이다.

28 22 제11차 인권교육포럼 년 이란 이슬람 혁명 : 이로써 벨러야테 파키, 즉 이슬람 고위 율법학자, 파키들로 구성된 종교전문가회의에서 선출한 최고지도자가 통치하는 이슬람공화국 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는 시아파 이슬람은 물론 이슬람 정치사를 통틀어 유례가 없는 정교일치체제로서, 여기에서는 최고위 울라마가 국민들이 뽑은 대통령이나 국회보다 더 실질적이고도 강력한 권력을 쥐고 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 정확하게는 이슬람주의자라고 불러야 할 이들의 이슬람 은 하느님의 사자, 무함마드에 의해서 창시된 이슬람,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세 계종교이자 이슬람 문명의 주인이었던 이슬람 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슬람 주의자들의 정치적 이슬람은 그들 에 의해 선별적으로 취합되고, 자의적으로 해석 된 이슬람의 정치적 교의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희수 교수가 발제의 글에서 지적했듯이 그들은 서구의 민주주의는 권력이 시 민으로부터 나오지만 이슬람에서는 권력이 신으로부터 나온다 는 말로 자신의 논리 로 포장한다. 그리고 우리는 신의 허락과 함께 한 명의 선지자를 보냈으니, 이는 오직 그의 말에 따르기 위함이다 (4-64)라는 꾸란 구절, 하느님의 사자 무함마드 이 후로는 초대 칼리프들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논리를 오늘날 이란 최고 지도자나 일부 무슬림 국가의 수장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꾸란의 가르침들이 현대국가 독재자들의 권력횡포의 그럴싸한 명분으로 그럴싸하게 포장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이들은 - 중세 교황청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분을 욕되게 했듯이 - 이슬람의 이름으로 이슬람을 욕되게 하고 있다. 15. 계획적이고도 치밀한 박해와 탄압 : 이슬람을 정치이념으로 내세워 혁명에 성 공, 절대적인 권력을 장악한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혁명정권은 고등교육기관의 이 슬람화를 추진하는 한편, 혁명에 동참했던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들을 일체의 권 력에서 배제시켰다. 혁명 초기 이란 정부는 비이슬람적인 학과와 강좌를 없애고

29 제1부 이슬람과 인권 23 교수들을 숙청하기 위해 대학을 몇 년씩 폐쇄하기까지 했다. 그 결과 좌익성향의 대학생들과 교수들은 모두 대학에서 추방당했다. 특히 이란 내 종교적 소수집단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바하이 공동체에 대한 탄압은 계획적이고도 치밀하게 자행되어, 바하이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대학이나 공직에서 추방되었다. 16. 종교적 탄압의 대상 - 바하이 : 바하이 공동체에 대한 박해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바하이들의 집회는 모두 금지되고, 공동체를 이끄는 조직은 해산되고, 재 산은 몰수되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200여 명의 바하이들이 공개적으로 혹은 은 밀하게 처형을 당했다. 그 가운데는 아이들과 여성도 상당 수 포함되어 있었다. 17. 박해와 탄압으로 점철된 바하이 역사 : 바하이교의 역사는 실은 초창기부터 박 해와 탄압으로 점철되어 있다. 바하이교 출현에 산파역할을 했던 바압은 1850년 26세의 젊은 나이에 공개처형을 당했고, 바하이교의 창시자 바하올라는 평생 수인 ( 囚 人 )의 몸으로 먼 타향에서 귀양살이를 해야 했다. 6) 1844년 세상에 태어난 바하이교 초창기, 이 신교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했던 사람은 2만 명이 넘었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1848년부터 바압이 순교한 1850년까 지 약 3년 사이에 - 단지 새로운 종교에 귀의했다는 이유로 - 목숨을 잃은 사람 이 5천명에 이를 정도이니 그 탄압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7) 년 세계인권선언이 있은 후에도 : 이러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바하이 공동 6) 바하이교에 대해서는 필자의 논문 바하이교의 역사적 개관. 한국이슬람학회논총 제13-1집(2003) 쪽을 참조하라. 7) Die Baha'i in Iran : Dokumentation der Verfolgung einer religioesen Minderheiten. Hrsg. Nationalen Geistigen Rat der Baha'i in Deutschland p.41; Richard, Yann. Shiʾite Islam p.72 참조.

30 24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체는 어느새 이란 내 최대 규모의 종교적 소수집단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탄압은 1948년 세계인권선언이 있은 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정치학적으로 볼 때, 지난 150년 동안 정도를 달리하며 간헐적으로 이루어진 바하이들에 대한 박해는 정치적 목적을 위한 방편으로 어디선가 속죄양을 찾는 집권세력의 농간과 무관하지 않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아무런 힘도 없는 30 만 명 정도의 소수집단, 바하이 공동체에 대한 이란 정부의 탄압이 그를 잘 말해 준다. 19.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종교탄압 : 이란 이슬람 혁명정부에 의해서 자행된 바하 이에 대한 탄압은 UN주재 BIC(바하이국제공동체)의 호소와 엠네스티 인터내셔널, 휴먼 라이트 워치 등 국제적인 인권단체의 관심, 그리고 서방언론의 보도를 통해 차츰 세상에 알려졌고, 유엔, 유럽의회 등에서도 정식의제로 논의가 되었다. 이란 이슬람 공화국 정권에 의한 바하이 탄압은 - 북한 인권문제와 함께 - 매년 제네바에서 개최되는 유엔 인권위원회는 물론 미 국무성에서 발간하는 종교자유보 고서, 인터내셔널 엠네스티에서 발간하는 인권백서 등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어젠 다가 된지 이미 오랜 상황이다. 20. UN 및 국제인권단체의 항의 : 주로 울라마들의 획책과 선동에 의해 간헐적으로 이루어진 바하이들에 대한 박해는 신앙의 자유를 천부인권으로 신성시하는 현대사 회의 규범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한 때 세계를 주도했던 위대한 문명을 일구어 낸 꾸란의 이슬람, 평화와 정의를 지향하는 이슬람 역사상 유래가 없는 현상이다. 국제사회의 여론이 악화되고, 1985년 유엔 총회에서 이에 대한 우려를 공식 표 명한 후 바하이에 대한 처형은 급감했으나, 이란 정부의 차별과 박해는 여전히 계 속되고 있어 세계 각국의 언론과 인권단체가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31 제1부 이슬람과 인권 But Korea... :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이란 이슬람 혁명 이후 아야톨라 호메이니 정권에 의해 자행된 이러한 인권유린을 거의 모르고 있다. 일 체 보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타임지나 뉴스위크지 등 해외에서 직송된 저널들도 가위질을 당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들어 세계일보, 뉴시스 등 몇몇 언론이 외신을 인용, 그에 대한 소식을 간간이 보도하고, 또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국제적인 인터넷 언론매체나 유투브, 또는 관련 단체의 웹사이트를 통해 자유롭게 뉴스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년 바하이 지도자 7명 체포구금 : 다음은 2008년 8월 21일자 세계일보가 워싱턴 포스트지에 실린 니르 봄스, 美 중동 자유센터 부총재의 논평기사 가운데 일부로 지금 이 시각에도 바하이들에 대한 탄압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강경파 대통령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정권을 잡은 이 후 지난 몇 년 동안 이란의 인권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이란 국민 가운데서 인권침해로부터 안전한 계층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30만명이 넘는 바하이 공 동체 같은 소수파 종교집단들은 계속 공격받고 있다.... 지난 (2008년) 5월 테헤 란에 있는 바하이 지도부 인사 7명이 체포되었다. 의도적인 공포 및 협박 운동의 일환으로 이란 전국에서 50명이 추가로 체포되었다. 8)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던 바하이 공동체에 대한 탄압이 재개된 것이다. 이들에 대한 재판은 구금 후 약 20개월이 지난 금년 1월에야 겨우 시작되었다. 변호는 독실한 무슬림으로서 여성과 아동 인권신장에 기여한 공로로 2003년에 노벨평화 8) 세계일보 WP-Iran s blood-drenched mullahs / 국민의 인권을 탄압하는 이란 [WT논평]

32 26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상을 수상했고, 지난해에는 만해평화상을 수상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방문하기도 했던 시린 에바디 여사가 맡고 있다. 그러나 그녀 역시 거의 망명 상태에서 정부 의 철저한 감시와 통제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23. 어떤 근거로, 무슨 이유로?! : 그러면 왜 바하이들은 초창기 이래 종교적 박해 의 대상이 되었을까? 또 지금의 이란 이슬람 정권은 어떤 근거로, 그리고 무슨 이 유로 국제적 비난을 무릅쓰면서까지 바하이들을 탄압하고 있는가? 24. 이슬람의 적이다! : 바하이들에 대한 탄압은 지난 160여 년 간 꾸준히 계속되 었다. 그 동안 이란을 지배한 그 어떤 집권세력도 이 점에서는 예외가 없었다. 처 음 1세기 동안은 주로 종교적, 신학적 이유로 박해를 했다. 바하이는 배교자이고 이교도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 이후엔 그럴듯한 정치적 혐의가 하나 둘 추가되 었다. 바하이 신앙은 제정 러시아 정권의 산물이다. 대영제국 식민주의의 꼭두각 시이다. 미국이 추진하는 패권주의의 앞잡이다. 공산주의와 관련이 있다. 시오니즘 에 의해 조정되고 있는 정치조직이다 등이 그것이다.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 정권이 바하이들에게 들이 댄 혐의는 크게 다섯 가지이 다. 1) 바하이들은 지난 팔레비 정권을 도왔으며, 현 정부에 반대하는 정치조직이 다. 2) 바하이들은 지난 정권의 비밀경찰 SAVAK을 도와 일했다. 3) 바하이들은 이슬람의 적이다. 4) 바하이들은 시오니즘의 앞잡이다. 5) 바하이들은 매춘과 간통 을 범한다. 이러한 주장이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다는 사실은 바하이 신 앙의 주요 가르침에 대해 조금이라도 살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러 나 이러한 혐의가 대중을 선동하는 데는 안성맞춤일 수 있다는 사실을 독재정권 을 체험한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33 제1부 이슬람과 인권 바하이 신앙의 주요 가르침 : 바하이 신앙의 주요 가르침을 대업의 수호자 로 불리는 쇼기 에펜디( )의 글을 통해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바하이 신앙은 하느님의 유일성을 받들고, 하느님의 현시자들의 일체성을 믿으 며, 인류가 전체로서 하나라는 원칙을 고취시킵니다. 바하이 신앙은 인류통합의 필요성과 필연성을 역설하고, 그것이 서서히 실현되고 있음을 확신하며, 다름 아 닌 하느님의 정신이 지닌 변혁의 힘이 이를 기필코 성사시킬 것이라는 사실을 천 명합니다. 더 나아가 바하이 신앙은 추종자들에게 독자적인 진리 탐구라는 기본적 인 의무를 강조하고, 모든 종류의 편견과 미신을 타파하며, 종교의 목적이 우애와 화합의 증진에 있음을 선언하고, 종교와 과학의 본질적인 조화를 선양하며, 또한 종교는 인류사회의 순조로운 발전과 안녕을 위해서 가장 요긴한 것임을 확인합니 다. 바하이 신앙은 권리와 기회와 특권에 있어서 남녀가 동등하다는 원칙을 분명 히 밝히며, 의무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일부일처제를 의무화하며, 이혼을 지양 하고, 자신이 속한 국가에 대한 절대복종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봉사의 정신으로 행한 모든 행위를 예배의 차원으로 높이고, 국제 공통언어의 채택 내지 창제를 독려하며, 인류사회에 보편적인 평화를 수립하고 유지하는데 있어서 필수 불가결 한 각종 제도적 장치의 윤곽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9) 26. Postislamic Islam, Baha'i Faith : 바하이 신앙은 1844년, 이슬람력으로는 1260 년 오늘날의 이란인 페르시아에서 태어났다. 바하이들은 창시자 바하올라의 가르 침에 따라 하느님의 유일성을 믿으며,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은 물론 조로 아스터교와 힌두교와 불교 등 모든 세계종교가 하느님의 점진적인 계시에 의해 태어났고, 또 앞으로도 인류가 지상에 존재하는 한 그럴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 에 따라 바하이들은 무함마드가 그리스도 이후에 출현한 하느님의 사자이듯, 바하 올라가 무함마드 이후 인류에게 보내진 그분의 사자임을 믿는다. 9) Shoghi Effendi. God Passes By pp

34 28 제11차 인권교육포럼 부단한 박해와 탄압에도 불구하고 바하이 신앙은 그 동안 전 세계로 퍼져나가 현 재 그리스도교 다음으로 많은 나라에 전파되어 있는 세계종교로 자리 잡고 있다. 2007년 5월 15일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바하이 교의 신자 증가율은 가장 높은 1.8%인 이슬람에 이어 1.7%로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2가지 사실, 즉 무함마드가 그리스도 이후에 출현한 하느님의 사자이듯, 바하올라가 무함마드 이후 인류에게 보내진 그분의 사자임을 믿는다 는 사실과 이슬람 세계에서 태어난 바하이 공동체가 이슬람 못지않게, 아니 실재로는 그보다 더 빨리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종교지도자나 종교학자가 아니더라도 주 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바하이들이 탄압받는 신학적, 정치적 이유가 있다. 27. 예언자의 인장( 印 章 ) : 바하이 신앙의 창시자 바하올라가 이슬람의 창시자 무 함마드 이후 인류에게 보내진 하느님의 사자라는 바하이들의 믿음은 무함마드가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보낸 최후의 사자( 使 者 ) 라는 이슬람 교리에 정면으로 반하 는 것이다. 무함마드 이후로는 어떤 예언자나 사도도 출현하지 않을 것이고 새로운 믿음도 탄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교리의 근거로 울라마들이 제시하는 것은 꾸란 구절, 카 탐 안 나비나, 즉 무함마드는 예언자들의 인장( 印 章 ) 이라는 계시이다. 더 정확하 게 말하면 11세기 초, 이슬람력으로는 4세기 말, 이슬람 문명의 황금시대를 이끌 었던 선배 울라마들의 이 구절에 대한 끼야스(유추/해석)와 이즈마(합의)가 종결되 었고, 그를 통해 이슬람의 확고한 율법, 샤리아에 새겨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희수 교수가 지적했듯이 이슬람인권카이로선언(Cairo Declaration on Human Rights in Islam)은 모두 샤리아에 준한다(제24조, 25조)는 단서를 달고 있 다. 10)

35 제1부 이슬람과 인권 BCD ㅅㅅㅅ : 영어권에 B와 D 사이에는 C가 있다는 말이 있다. Birth, 즉 태 어나고 Die 죽는 것은 신이 정한 것이나, 그 사이의 일은 C, 즉 인간의 선택에 달렸다는 말이다. 한글로 변환하면 3ㅅ, 곧 생( 生 )과 사( 死 )는 하늘이 정한 것이나 그 사이의 일은 우리의 선택( 選 擇 )에 달려 있다. 꾸란에 단 한 번 등장하는 구절, 카탐 안 나비나 를 마지막 예언자, 최후의 예언자 로만 해석해야 할지, 혹은 그렇게 해석하고 그렇게 결론 내린 중세 울라마 들의 합의를 절대적인 진리로 지킬 것인지는 무슬림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러나 그러한 교리를 근거로 세계인권선언이 선포된 지 60년이 지난 오늘날, 그것도 국제사회가 맨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무고한 바하이들의 인권을 그 토록 유린하는 이란 이슬람 정권의 행태를 그냥 듣고도 못 들은 척, 보고도 못 본 척 할 건지는 우리들 각자의 몫이다. 29. We are ashamed... : 이 문제와 관련하여 최근 대단히 용기 있는 선택을 한 무슬림들이 있어 기쁜 마음으로 여기에 소개한다. 11) 미국, 캐나다, 독일 등 세계 전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군의 이란인 학자, 작가, 예술가, 언론인, 활동가들이 2009년 2월 4일 바하이 공동체에 보낸 공개서한이 그 것이다. We are ashamed!'라는 제목 하에 발표된 이 서한에서 그들은 지난 1세기 반 동안 이란에서 자행된 바하이들에 대한 박해와 탄압에 대해 일체 침묵을 지킨 것 을 대단히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밝힌 다음, 세계인권선언이 정한 모든 권리가 바 10) 카이로 선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논문 이슬람 인권사상과 카이로인권선언 철학논총 제32 집 제2권 pp 을 보라. 11) 출처 :

36 30 제11차 인권교육포럼 하이들에게도 주어지도록 돕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12) CNN을 통해 보도가 되기도 한 이 공개서한의 내용은 유투브를 통해서도 접할 수 있다. 30. The Muslim Network for Baha'i Rights 바하이들의 권리를 위한 무슬림 네트 워크 : 또 하나의 고무적인 사례는 바하이들의 인권신장을 위해 활동하는 무슬림 들의 네트워크이다. 이번엔 이슬람 세계에서 종교간 대화와 협력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젊은 무슬림들이 그 주인공으로, 이란 울라마 정권의 입장에서는 이적행위를 하는 내부고발자로 간주될 수밖에 없는 이들은 주로 인터넷 웹사이트 ( 공간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프랑스에 망명한 이란 여성으로 독특한 애니메이션을 통해 세계적인 명 성을 얻은 마르잔 사트라피(Marjan Satrapi)의 대표작 페르세폴리스(Persepolis)를 각색하여 이란 내 바하이들의 인권유린 실태를 고발하는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슬람 세계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이 외에도 등에서 바하이 인권문제의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바하이 공동체와 무관한 무슬림들의 이니셔티브로 구축, 유지되고 있는 웹사이트이다. 중세 그리스도 교회가 소수의 양심적인 성직자, 학자, 교인들의 피와 땀, 펜과 잉크를 통해 암흑시대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올 수 있었듯이, 독재와 폭정 아래 신 음하는 이슬람 세계도 진정으로 평화와 정의를 사랑하는 이들 용기 있는 무슬림 지식인들, 젊은이들의 노력을 통해 하루빨리 자랑스러운 관용과 포용의 전통을 회 복하길 기대해 본다. 12) 자료 첨부

37 제1부 이슬람과 인권 31 첨부 : We are ashamed! We are ashamed! 출처 : سکوت کافیست enough! Morning Has Broken Silence against Bahais is The following is an open letter from a group of academics, writers, artists, journalists and Iranian activists throughout the world to the Bahai community. This letter has been signed by a large number of the most prominent Iranian intellectuals. We are ashamed! Century and a half of silence towards oppression against Bahais is enough In the name of goodness and beauty, and in the name of humanity and liberty! As Iranian human beings, we are ashamed for what has been perpetrated upon the Bahais in the last century and a half in Iran. We firmly believe that every Iranian, without distinction of any kind, such as, race, color, sex, language, religion, politics or other opinions, and also without regard to ethnic background, social origin, property, birth or other status, is entitled to all the rights and freedoms set forth in the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However, from the very inception of the Bahai Faith, the followers of this religion in Iran have been deprived of many provisions of human rights solely on account of their religious convictions. According to historical documents and evidence, from the commencement of the Babi Movement followed by the appearance of the Bahai Faith, thousands of our countrymen have been slain by the sword of bigotry and superstition only for their religious beliefs. Just in the first decades of its establishment, some twenty thousand of those who stood

38 32 제11차 인권교육포럼 identified with this faith community were savagely killed throughout various regions of Iran. We are ashamed that during that period, no voice of protest against these barbaric murders was registered; We are ashamed that until today the voice of protest against this heinous crime has been infrequent and muted; We are ashamed that in addition to the intense suppression of Bahais during its formative decades, the last century also witnessed periodic episodes of persecution of this group of our countrymen, in which their homes and businesses were set on fire, and their lives, property and families were subjected to brutal persecution but all the while, the intellectual community of Iran remained silent; We are ashamed that during the last thirty years, the killing of Bahais solely on the basis of their religious beliefs has gained legal status and over two-hundred Bahais have been slain on this account; We are ashamed that a group of intellectuals have justified coercion against the Bahai community of Iran; We are ashamed of our silence that after many decades of service to Iran, Bahai retired persons have been deprived of their right to a pension; We are ashamed of our silence that on the account of their fidelity to their religion and truthfulness in stating this conviction, thousands of Bahai youth have been barred from education in universities and other institutions of higher learning in Iran; We are ashamed that because of their parents religious beliefs, Bahai children are subjected to denigration in schools and in public. We are ashamed of our silence over this painful reality that in our nation, Bahais are systematically oppressed and maligned, a number of them are incarcerated because of their religious convictions, their homes and places of business are attacked and destroyed, and periodically their burial places are desecrated;

39 제1부 이슬람과 인권 33 We are ashamed of our silence when confronted with the long, dark and atrocious record that our laws and legal system have marginalized and deprived Bahais of their rights, and the injustice and harassment of both official and unofficial organs of the government towards this group of our countrymen; We are ashamed for all these transgressions and injustices, and we are ashamed for our silence over these deeds. We, the undersigned, asked you, the Bahais, to forgive us for the wrongs committed against the Bahai community of Iran. We will no longer be silent when injustice is visited upon you. We stand by you in achieving all the rights enshrined in the Universal Declaration of the Human Rights. Let us join hands in replacing hatred and ignorance with love and tolerance. 1. Abdolalian, Morteza, Journalist, CJFE Board of Directors - Canada, Oakville 2. Abghari, Shahla, Professor, Life University USA, Atlanta 3. Abghari, Siavash, Professor, University of Georgia USA, Atlanta 4. Ahmadi, Ramin, Professor, Yale University USA, Yale 5. Almasi, Nasrin, Managing editor of Shahrvand- Canada, Toronto 6. Bagherpour, Khosro, Poet /Journalist Germany 7. Baradaran, Monireh, Writer/Human rights activist - Germany 8. Beyzaie, Niloofar, Play writer/theatre Director Germany, Frankfurt And For more Information Please Clik hier :

40 34 제11차 인권교육포럼 토론2 이슬람과 인권 토론문 박현도(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상임연구원) 이슬람과 인권을 다룰 때 어려운 점은 범위규정입니다. 발제자가 발제문 첫 머 리에 언급하였듯, 이슬람의 인권, 무슬림 사회의 인권, 무슬림 다수 사회의 인권 등 개념정의의 문제가 상존하기 때문입니다. 발제자는 이슬람에서 보는 인권의 개념과 무슬림 사회가 처하고 있는 현실적인 인권의 실상에 관한 것 으로 보고 논의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발제자가 논의할 주제를 광범위하게 제시할 뿐, 본인의 견해를 정확히 밝히지 않고 있기에 본 토론자가 동의하거나 반박할 논 점이 없습니다. 아마도 활발한 토론을 위해 논의주제를 다소 넓게 제시한 것이 아 닌가 생각합니다. 다만 마지막 부분에서 발제자가 서구와 이슬람 세계의 인권에 대한 인식 차이 를 정치적 현안과 관련지어 논의한 점을 주목합니다. 발제자는 테러와 이슬람의 가르침은 별개의 코드 라고 하면서 서구의 억압에 대한 방어기제를 이슬람의 비 평화성과 결부시키는 것은 지나친 사실 왜곡이라고 주장합니다. 사실 이슬람과 인 권이라는 이번 종교와 인권 세미나 주제는 세계 정치질서와 맞물려 폭발성을 지 닌 민감한 현안입니다. 그러나 인권을 정치와 연관하여 다루면 단 한발자국도 진 전할 수 없이 악순환의 논리에 빠져들고 맙니다. 정치적 담론을 완전히 배제하기 는 어렵겠지만, 최대한 절제하고 논의의 초점을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이 해석하 는 인권에 초점을 두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발제자가 마지막 부분에 제시한 현실정치와 인권의 문제는 이슬 람과 인권이라는 논의의 초점을 흐린다고 생각합니다. 소수의 폭력성향 무슬림을

41 제1부 이슬람과 인권 35 보고 이슬람을 폭력의 종교로 간단히 규정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이들의 주장과 행동 근거가 이슬람 해석에 근거하고, 또 이슬람 해석은 무슬림마다 다양하기에 이슬람을 마냥 비폭력을 옹호하는 가르침만으로 볼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 리스도교인들처럼 무슬림들 역시 종교의 이름으로 살인, 인권탄압을 해왔기 때문 입니다. 실례로 이슬람법을 근거로 여성, 소수 종파를 탄압하는 파키스탄, 이란, 사우디 아라비아 등의 현실은 단순히 서구의 압박 내지 현대 정치의 산물이라고 보기 어 렵습니다. 또 팔레스타인의 하마스는 비록 민의에 의해 선출된 정권이지만, 무슬 림의 통치만을 인정하고 타 종교인은 보호받을 대상으로 여기는 그들의 행동강령 을 고려할 때 적어도 오늘날 우리 한국인들이 받아들이는 현대적 인권의 개념을 인정하는 열린 정치집단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들의 뿌리가 되는 무슬림 형제 단 역시 그러하고, 이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 이른바 이슬람 근본주의 내 지 정치이슬람주의자들 역시 보편적 인권의식을 지니지 못하고 있는 것은 명확한 사실입니다. 따라서 서구에 대한 투쟁과 인권은 따라서 최대한 분리해서 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무슬림들이 인정하기는 어렵겠지만, 이슬람이 평화와 인권을 가르침에도 불구하 고 오늘날 무슬림이 다수인 국가에서는 현대세계의 보편적 인권 개념에 상치되는 부당한 행위, 특별히 여성 및 비무슬림 종교인, 그리고 성적소수자(동성애자)에 대 한 박해가 이슬람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따라 서 본 토론자는 엄중한 현실을 직시한 채 이슬람과 인권을 추상적이 아니라 현실 적인 관점에서 치열하게 논의할 것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2. 참여자들의 이해와 보다 활발한 논의를 위하여 발제자가 언급한 꾸란을 본문 대로 옮겨봅니다 (한국이슬람교 최영길 선생 번역본). (1) 2쪽 평등의 인권 - 49:13: 사람들이여 하나님이 너희를 창조하사 남성과 여

42 36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성을 두고 종족과 부족을 주었으되 서로가 서로를 알도록 하였노라 하나님 앞에 서 가장 크게 영광을 받을 자는 가장 의로운 자로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며 관 찰하시는 분이시라 ي ا ا ي ه ا الن اس ا ن ا خ ل ق ن اك م م ن ذ ك ر و ا نث ى و ج ع ل ن اك م ش ع وب ا و ق ب اي ل ل ت ع ار ف وا ا ن ا ك ر م ك م ع ند الل ه ا ت ق اك م ا ن الل ه ع ل يم خ ب ير (2) 2쪽 세계인권 선언과 합치 - 17:70: 하나님은 아담의 자손에게 은혜를 베풀 어 육지와 바다에서 그들을 운반하여 주고 그들에게 좋은 양식을 부여하여 하나 님이 창조한 어떤 것보다 그들을 위에 두었노라. ك ر م ن ا ب ن ي ا د م و ح م ل ن اه م ف ي ال ب ر و ال ب ح ر و ر ز ق ن اه م م ن الط ي ب ات و ف ض ل ن اه م ع ل ى ك ث ير م م ن خ ل ق ن ا ت ف ض ي لا (3) 3쪽 사형제 - 17:31: 궁핍의 두려움으로 너희 자손을 살해하지 말라 하나님 이 그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나니 너희에게도 마찬가지라 그럼으로 그들을 살해 하는 것은 큰 죄악이라 و لا ت ق ت ل وا ا و لاد ك م خ ش ي ة ا م لاق ن ح ن ن ر ز ق ه م و ا ي اك م ا ن ق ت ل ه م ك ان خ ط ء ا ك ب ير ا (4) 3쪽 사형제 - 2:178: 믿는 자들이여 살인의 경우 자유인 대 자유인 종복 대 종복 여성 대 여성으로 동등한 처벌규정이 기록되어 있노라 그러나 피해자의 형 제로부터 용서를 받은 자는 감사의 보상을 해야 되나니 보호자는 계율을 따른 것 이라 이것은 너희 주님으로부터 감형과 자비로다 그 후 범행을 범한 자는 고통스 러운 징벌이 그에게 있을 것이라 ي ا ا ي ه ا ال ذ ين ا م ن وا ك ت ب ع ل ي ك م ال ق ص اص ف ي ال ق ت ل ى ال ح ر ب ال ح ر و ال ع ب د ب ال ع ب د و ا لا نث ى ب ا لا نث ى ف م ن ع ف ي ل ه م ن ا خ يه ش ي ء ف ات ب اع ب ال م ع ر وف و ا د اء ا ل ي ه ب ا ح س ان ذ ل ك ت خ ف يف م ن ر ب ك م و ر ح م ة ف م ن اع ت د ى ب ع د ذ ل ك ف ل ه ع ذ اب ا ل يم (5) 4쪽 선교금지 - 2:256: 종교에는 강요가 없나니 진리는 암흑속으로부터 구 별 되니라 사탄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는 자 끊기지 않는 단단한 동아줄을 잡았노 라 하나님은 모든 것을 들으시며 모든 것을 알고 계시니라 لا ا ك ر اه ف ي الد ين ق د ت ب ي ن الر ش د م ن ال غ ي ف م ن ي ك ف ر ب الط اغ وت و ي و م ن ب الل ه ف ق د اس ت م س ك ب ال ع ر و ة ال و ث ق ى لا انف ص ام ل ه ا و الل ه س م يع ع ل يم

43 제1부 이슬람과 인권 37 (6) 4쪽 선교금지 - 10:99: 주님의 뜻이 있었다면 지상에 있는 그들 모두가 믿 음을 가졌을 수도 있었으리라 그대는 강요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믿게 하려 하느 뇨 و ل و ش اء ر ب ك لا م ن م ن ف ي ا لا ر ض ك ل ه م ج م يع ا ا ف ا نت ت ك ر ه الن اس ح ت ى ي ك ون وا م و م ن ين (7) 6쪽 민주주의 - 4:64: 선지자를 보냄은 너희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토록 함이며 이는 하나님의 뜻이었노라 그들 스스로 죄악을 저지르고 그대에게 찾아와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니 선지자가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사 그들은 너그러우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발견하더라 و م ا ا ر س ل ن ا م ن ر س ول ا لا ل ي ط اع ب ا ذ ن الل ه و ل و ا ن ه م ا ذ ظ ل م وا ا نف س ه م ج ا و وك ف اس ت غ ف ر وا الل ه و اس ت غ ف ر ل ه م الر س ول ل و ج د وا الل ه ت و اب ا ر ح يم 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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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제2부 기독교와 인권 39 제2부 기독교와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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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제2부 기독교와 인권 41 주제발표 한국 그리스도교의 인권담론과 신학적 성찰 안병무의 신학을 중심으로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1973년 일본 동경에서 김용복 오재식 지명관 등, 세 사람이 주축이 되어 3개국 언어(한국어, 영어, 일본어)로 작성 발표된 <1973년 한국 그리스도인의 선언> 1) (이 하 <선언>)은 1972년 말에 유신헌법 이 반포됨으로써 성립한 전체주의적 독재체 제에 대한 한국 그리스도교 최초의 본격적인 반대 표명이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 은, <선언>이 유신체제가 모든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체제라는 사 실을 전제하고 있음에도, 국가권력으로부터 특별히 기본권을 박탈당하는 이들( 가 난한 자들, 눌린 자들, 멸시받는 자들 )에 대한 그리스도교회의 방관적 태도를 회 개하고 그들에 대한 돌봄의 책임을 신앙적으로 다짐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즉 국민 으로 주체화된 이들의 기본권이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인 식을 전제하고 있지만, 특별히 비국민화 된 탈주체적 존재들의 박탈당한 기본권의 보장을 신앙 선언의 기조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비록 인권 이라는 명시적 표현이 담겨 있지는 않지만, <선언>은 한국 그리스도교 인권 선언으로서 1) 1987년 2월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가 편찬한 전 3권으로 된 1970년대 민주화운동 의 제1권 에서 수록된 한국 그리스도인의 신앙선언 은, 김흥수 교수에 의하면, 중앙정보부가 영문 텍스트를 번역 출 판한 자료에서 인용한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한국의 그리스도교 인권운동을 좌경 용공 집단으로 몰아가기 위한 고의적인 어휘 등이 선택적으로 사용되었다. 이때 그 영문 대본은 Korean Christian Manifesto, Christianity and Crisis (July 9, 1973). p. 140이나 Theological Declaration by Christian Ministers in the Republic of Korea, 1973, Gerald H. Anderson, ed. Asian Voices in Christian Theology (Maryknoll, New York: Orbis Books, 1976). pp 로 보인다. 그런데 동년 7월에 인권위원회가 8권으로 확대 개정본을 내면서 새 판본인 1973년 한국 그리스도인 선언 을 제1권에 수록했는데, 이는 이 문서가 편찬자 들이 위의 한국 그리스도인의 신앙선언 의 진본이라고 판단한 결과로 보인다. 김흥수, 1973년 한국 그리 스도인 선언>의 작성과 배포 과정 (기독교연구사연구소 제155회 연구모임 자료발표< >). off&keyword=그리스도&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01에서 재인용.

48 42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의 초석이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 문서는 당시 국제적으로 널리 유통되어 한국의 인권 상황에 대한 문제인식 을 전 세계적으로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였지만, 국가의 강력한 통제 아래 있는 국 내에서는 거의 반포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중앙정보부의 왜곡된 번역을 통해 유 통이 주도됨으로서 그것의 공적 사용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인식에 따라 반정부 세력들에 의해서도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않은 측면도 있다. 그러므로 <선언>은 비공식적으로만 제한적으로 수용되었고, 직접적인 영향력은 극히 미미하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선언> 2) 이 있었던 그 해 말인 1973년 11월 23~24일에 한국기독교교회 협의회(KNCC)는 인권협의회를 거쳐 <인권선언>을 발표하였는데, 3) 그 내용은 <선언>의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고, 다만 인권의 관점에서 다듬어진 정도인 것처 럼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바탕 위에서, 그 이듬해인 1974년 11월 18일 66명의 서명자 명 의로 <한국 그리스도인의 신학적 성명>(이하 <성명>)이 발표되었는데, 이것은 본 격적이고 명시적이며 신학적인 최초의 한국 그리스도교 인권 선언 이라고 할 수 있다. 4) 이 문서는 네 개의 소단락으로 나뉘는데, 첫째는 성명을 내게 된 계기에 관한 설명(소제목: 동기 )으로 유신체제하의 국가권력의 과잉으로 인한 신앙적 위 기에 대한 신학적 성찰이 요청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고, 그 이하에는 각각 절대 화된 권력에 대한 신앙의 비판적 개입의 필요성을 신학적으로 역설하고(소제목: 국가와 종교 ), 인간의 기본권을 위해 신학과 신앙이 복무해야 하며(소제목: 인 권 ), 그러한 선교의 자유를 침해받는 것은 신앙의 자유에 대한 침해(소제목: 교 회의 선교 )임을 강변한다. 한편 1987년 초,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는 1970년대 기독교의 민주 화와 인권을 위한 투쟁을 정리하는 책자를 1970년대 민주화운동과 기독교 라는 2) 중앙정보부가 유포한 한글 번역본은 이 문서가 발포된 날짜를 1973년 5월 20일이라고 하고, 한국기독교유 지교역자 일동 이 이 문건의 주체임을 명기하고 있다. 3) 김창락, 민중의 해방투쟁과 민중신학: 1970년대 민중운동, 신학연구 28(1987), 90~91쪽 참조. 이 <인 권 선언>의 전문은 1970년대 민주화운동 의 제1권(1987.2) 299쪽을 보라. 4) 같은 책, 406~407쪽. 이것은 후에 기독교사상 1984년 11월호에 자료 형태로 재게재되었다.

49 제2부 기독교와 인권 43 제목으로 발행했는데, 이 책의 머리글의 역할은 필경 1970년대 기독교 인권운동 을 개략적으로 정리하고 평가하며, 향후 전망을 이야기하는 데 있을 것이다. 안병 무 선생의 글 인권에 대한 신학적 조명 (이하 조명 )이 머리글로서 부여받은 역할은 바로 이것이었다. 이 글은 1970년대의 각종 문서들이나 실천들을 총괄적으로 논하는 대신 위의 <성명>을 상세히 소개하고 그 의의를 논평하는 것으로 맡은 바 과제를 수행한다. 이는 <성명>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1970년대 기독교 인권운동의 지향과 관점 전 체를 잘 요약할 수 있다는 뜻이겠다. 이상의 문서들이 공통으로 담고 있는 인권에 대한 문제의식은 시종일관 국가권 력과의 관계에 맞추어져 있다. 국민의 기본권은 신이 부여한 것이며, 국가는 그러 한 천부인권( 天 賦 人 權 )을 보호하고 지켜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러한 소임에 충실하 지 않고, 국가가 스스로를 절대화하고자 할 때 국민의 기본권은 침해되고, 국가는 불의한 권력이 되고 만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국가 대 국민 의 이원대립구도에서 인권의 주체인 국민은 집합적 성격 을 지닌다. 이것은 당시 한국의 국가주의가 전체주의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과 상응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경제 성장을 위해 자원을 총동원하고자 했 던 정부는 단일한 목적의식으로 통합된 국민을 구성하고자 했고, 이러한 국가적 의제는 기억의 단일성 과 욕망의 단일성 을 지향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제도화되었다. 단일민족 의식이 강화되고, 전쟁의 기억도 단일화하며, 심지어 국민 의 시간 관리 방식조차 단일화하고자 했다. 일어나는 시간, 일하는 시간, 밥 먹는 시간, 국민의례의 시간, 귀가하는 시간 등 전 국민이 공통된 하루하루의 시간표를 따라 삶을 조직하도록 준강제적으로 유인하였던 것이다. 각종 건조물의 방식도 단 일했고, 특히 학교는 의복, 헤어스타일, 전체 건물에서부터 교실에 이르는 공간구 성 양식 등에서 단일하게 학생의 일상을 조직하고자 했다. 한편 국민은 모두 가난 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동일한 욕망의 주체로 호명되었다. 여기서 가난의 기억은 굶주림으로 동일시됐고, 가난 탈출의 내용은 국민소득 1천 불, 마이카 등 획일적 욕구로 구상화되었으며, 특히 국민총생산과 같은 국가 차원의 욕망의 경제가 개인

50 44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의 경제와 모순 없이 조화된다는 의식이 일상화되었다. 실제로 이러한 국가적 이상은 고도성장을 이룩해냈는데 이때 국민의 계층분화는 상당히 억제되는 측면이 있었다. 그럼에도 이농자( 離 農 者 )를 중심으로 국민의 하향 분화가 진행되었는데, 이러한 저소득 계층의 존재는 국가경제 발전의 동력으로 활 용되었으므로, 전체주의적 발전국가는 하향분화한 대중의 현실을 개선하기보다는 은폐하는 것으로 위기상황을 무마하려 했다. 이때 분출한 전태일의 분신 사건은 그러한 은폐된 현실을 폭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사회역사적 맥락에서 인권의 문제는 국민이라는 집합적 공동체 의식이 국민의 사회적 분해 현상과 분열을 이루는 지점에서 발생하였다. 그런 점에서 <선 언>에서 가난한 자들, 눌린 자들, 멸시받는 자들 (<성명>의 가난한 자들, 눌린 자들 )을 망각해왔던 것에 대해 그리스도인으로서 뼈저린 회개를 고백한 것은, 국 민을 도덕공동체 5) 의 확고한 단위로 인식하는 동시대의 감성체계를 신앙적으로 내재화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에 교회는 가난한 자들, 눌린 자들 에 대한 망 각을 제도화한 국가에 저항하겠다는 신앙 선언을 선포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 이다. 안병무 선생은 조명 에서 <성명>의 내용을 소개하면서 이와 동일한 문제의식 을 가지고 1970년대의 그리스도교적 인권 의식을 요약한다. 다만 선생은 여기에 서, 국가가 스스로를 절대화한 결과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되고 특히 가난한 자들 과 눌린 자들 이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을 박탈당했다는 <선언>의 내용을 좀 더 신 학적 개념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공(적인 것)을 사유화 하려는 욕망의 결과가 인 권침해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 용어가 선생에게서 처음 사용된 것은, 이 글이 발표되기 1년 전 전두환 체제가 호헌 을 선언하며 민주화의 요구를 거절하자 이 5) 도덕공동체 개념은 동물해방철학(animal liberation philosophy)의 주창자인 톰 레건(Tom Regan)에게서 차 용한 개념인데, 그는 도덕공동체 외부의 존재인 타자를 그(녀/것)의 고통이 (공동체에 의해) 감정이입되지 않는 존재 로 묘사함으로써, 그(녀/것)의 고통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 내지는 무감각의 폭력을 지적하고 있다. 한편 리처드 로티(Richard Rorty)는 명시적으로 도덕공동체라는 말을 쓰고 있지는 않지만, 세르비아 남성들 이 보스니아 여성들에 대해 저지를 만행의 배후에는 그녀들을 비인간적 존재로 간주함으로써 자신들의 행동 에 대해 죄책감이 생기지 않았던 데서 비롯되었음을 얘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레건의 도덕공동체와 동일한 함의의 공동체 개념을 얘기하고 있다. Tom Regan, The Three Generation: Reflections on the Coming Revolution (Temple University Press, 1991); Richard Rorty, Human Rights, Rationality, and Sentimentality, in Truth and Progres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8) 참조.

51 제2부 기독교와 인권 45 에 전 국민적으로 호헌 철폐 캠페인이 한창 진행되던 1986년 늦은 봄 즈음이다. 선생은, 창세기 2~3장의 선악과 이야기를 알레고리적으로 재해석하여 인간의 원형적 죄를 공( 公 )적인 것을 사유화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하였는데, 이는 전두환 체제가 공을 독점하고 있는 체제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해석이 다. 6) 그리고 조명 이 저술되던 1987년 1월 말 혹은 2월 초 즈음 선생은 이 용 어를 인권 침해 현상에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데 여기서 뜬금없이 선생은 인권에 관한 새로운 문제의식으로 전화될 여지가 있는 논점을 공의 사유화 논의에 결부시키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우선 조명 의 글 구성에 관해 언급할 필요가 있는데, 제1절에서 전태일 분신 사건에서 비롯 된 한국사회의 인권 의식 고양의 계기와 과정을 언급하고, 제2절에서 그것에 대한 신학적 대응을 <선언>의 분석을 통해 살펴본 뒤, 마지막 절에서 서구의 인권 선 언들과 연관시킴으로써 <선언>의 인권에 대한 신학적 문제의식을 보다 성찰적으 로 보완하고자 하였다. 여기서 공의 사유화 논의가 위치한 곳은 제3절의 끝부분 이다. 이는 공의 사유화가 선생 나름의 신학적 성찰의 최종 결과처럼 언급되어 있 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3절의 전반부에서 선생은 서구의 고전적 자유주의 인권 사상의 일반적 함의를 이야기한 뒤에, 그러한 서구적인 인권 논의의 한계지점을 마틴 루터 킹의 옥중서 신을 통해 문제제기하고 있다. 일반적인 천부인권론은, 선생의 표현대로 하면, 기 득권의 보호와 인권보호를 혼용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때 기득권과 인권은 정치적 법률적 개념에 의존한 표현은 아니다. 아마도 국민의 기본권과 비국민화된 존재의 기본권이 상호 갈등적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7) 선생이 인용하는 마틴 루터 킹의 주장과 연계시켜 보면, 미국에서의 인권 담론은 기본적 으로 백인의 기본권에 관한 것이었고, 노예해방과 남북전쟁을 거치면서 점차로 흑 6) 안병무, 하늘도 땅도 공( 公 )이다, 신학사상 53(1986 여름) 참조. 7) 최근 이상훈은 같은 문제의식에서 인권 논의를 역사적으로 물을 필요성을 제기하며, 마르크스적 사회동학을 통해 근대의 고전적 자유주의 인권론이 주장하는 개인의 인권 개념은, 그 일반론적 언술에도 불구하고, 부 르주아 계급의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에 관한 것이고, 근대적 산업 체계의 발전을 거치면서 그러한 인권 담론 의 외연이 확대되면서 노동자의 기본권의 차원까지 포괄하는 인권 개념이 자리잡게 되었음을 논증한다. 이 상훈, 인권 패러다임과 사회 동학, 시대와 철학 16(2005 가을) 참조.

52 46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인의 인권 문제로까지 외연이 확대되었으나, 그러한 외연 확대의 역사적 과정은 두 상이한 주체의 기본권간의 인종 투쟁과 분리할 수 없으며, 현재까지도 비대칭 성과 모순적 갈등 관계는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백인과 흑인의 기본 권은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된 인간의 기본권리라는 보편적 인권논의를 말하는 것으 로 충분히 설명될 수 없는 비대칭적 권력 관계 아래 배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선생의 공 에 관한 해석은 바로 그 다음에 나온다. 그렇다면 여기서 선생은 공의 사유화 문제를 국가 대 국민 이라는 틀로 이해했던 기존의 논의 지평을 스스로 확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즉 여기에는 국민 대 비국민 이라는 새로운 인식틀이 첨부되고 있는 것이다. <선언>에서 <성명>에 이르는 1970년대의 인권논 의가 국민=단일 민족 공동체 라는 동시대의 공통감각에 기반하여 경제발전 과정 에서 비국민화된 경제적 실패자에 대한 배제를 일상화하려는 국가를 반인권적 실 체로 비판하고 있다면, 선생은 조명 에서 공을 사유화하려는 욕구의 주체는 국가 만이 아니라 또한 국민이기도 하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즉 민족 공동체의 분해를 유념하면서 담론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선생은 경제공동체의 분해만이 아니라 도덕공동체의 분해를 유념하면서 인권에 대 해 신학적으로 성찰하고 있다. 선생의 이러한 문제의식은, 그 견해가 제기된 시기와 결부시켜 생각할 때 더욱 의미심장하다. 조명 이 머리글로 실린 1970년대 민주화운동과 기독교 는 1987년 2월에 발간되었고, 그해 8월에 개정증보판이 나왔다. 8) 그 전 해인 1986년 에는 전두환 정부의 초강경 공안정국을 거치면서 많은 이들이 체포되었고, 많은 반정부 민주화운동 조직이 붕괴 직전까지 몰리고 있었다. 그런데 1987년은 연초 부터 박종철 이한열 등 대학생들의 잇따른 치사사건이 벌어지고 이에 분노한 전 국적인 대중의 저항이 수개월 동안 지속되었다. 결국 독재정권은 그해 여름 한 발 짝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이 이 글을 쓰던 때는 바로 그 1987년의 초엽, 아마도 박종철 씨 사망 사 건이 축소 은폐되어 발표된 직후이고, 살벌한 공안 상황 아래 도처에서 불만과 문 8) 2월에 발간된 책자에 실린 <선언>이 중앙정보부 번역본임이 밝혀지자, 편찬자들은 원본을 수소문하여 찾아 내 개정증보판에 수록하였다.

53 제2부 기독교와 인권 47 제제기가 막 표출되고 있던 때인 1월 말 혹은 2월 초였다. 2월 7일 추도식 때 자 동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독재정권에 대한 항의를 우회적으로 표하던 바로 그 어 간이었다. 그로부터 몇 달 후인 7월 9일 이한열 씨의 장례식을 보면서 선생은 흥분하여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죽은 자를 슬퍼하는 행렬만은 아니었다. 아니! 그것은 장 엄한 민족 축제의 행렬이었다.... 환호, 환호, 그것이었다.... 나는 그 대행진에서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동시에 만났다. 또 그 이듬해인 1988년 오공비리청문회와 광주청문회가 한창 진행되던 때, 선생은 김지하로부터 빌어온 단( 斷 ) 이라는 용어 를 철저한 역사청산의 신학적 화두처럼 재해석하여 새로운 시대를 향한 즐거운 상상의 유희를 벌였다. 9) 이와 같은 부활사건의 흥분과 즐거움이 온몸을 뜨겁게 하기 직전, 십자가의 고 통이 최고의 절정에 이르고 있던 때, 그렇기 때문에 임박한 부활에의 소망이 참을 수 없이 치밀어 오르던 그 무렵, 때가 찼다. 하느님의 나라가 곧 올 것이다 라는 야성( 野 聲 )이 울리던 바로 그 때에, 선생은 1970년대의 인권 선언을 분석하고 있 는 것이다. 즉 선생은 1970년대를 보고 있지만, 필경 그 마음속에는 독재 시대의 막바지에서 임박한 그 시대 이후 를 상상하면서 인권에 관한 글을 쓰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했다. 국민 이라는 단일한 도덕공동체 감각은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급속 하게 변화되었다. 집단주의적인 것은 점차 조롱거리가 되어갔고, 주체의식을 둘러 싸고 있던 철옹성 같던 민족적 자존감 이 도처에서 붕괴되고 개체적 자존감 이 라는 새로운 질감의 벽돌이 그 자리를 채워갔다. 이제 대중은 집합적 주체로서의 국민의 일원으로서 국가와 대면하기보다는, 자신의 이해관계 혹은 욕망에 보다 예 민한 감각을 가지고 국가와 마주쳤다. 점차 국민은 국가에 충성하는 대상이 아니 라 거래하는 주체로 변화되어 갔던 것이다. 나는 이러한 충성하는 대상에서 거래 하는 주체로의 변화를 유념하면서, 국민 의 대응 개념으로 시민 이라는 표현을 쓰고자 한다. 하여 기대의 정치학 과 욕망의 정치학 의 관점에서 독재에서 민주 9) 안병무, 단( 斷 )!, 살림 2(1989.1) 참조.

54 48 제11차 인권교육포럼 화로의 이행 과정은 국민의 시민화 를 수반했다. 그리고 급격한 이행을 조절하는 제도가 부재한 상황에서 기대/욕망의 인플레이션이 과잉 작동함으로써 한국의 민 주화는 천민화되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여기에 1988년 올림픽을 거치면서 산업구조상의 소비재 산업의 비중이 현저히 강화되어 이른바 소비사회가 변화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점을 유 념해야 한다. 10) 그리고 주지하듯이, 소비사회화의 속도 또한 대단히 맹렬했다. 그 런데 이 과정은 시민의 자존감을 더욱 예각화했고, 특히 과거엔 피동적 대상이던 여성이나 미성년 계층의 사회적 주체화를 현저히 강화시켰다. 기든스 식으로 말하 면, 소비사회로의 변동이 사회적 성찰을 자극한 것이다. 하여 여성과 미성년은 성 년 남성에 대한 교섭능력이 강화되었고, 이는 여성담론 및 세대담론의 사회구성적 배경으로 작동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도덕공동체로서의 국민의 독보적 위 상은 심각하게 붕괴되었던 것이다. 동시에 다양한 하위집단들이 감성적 결속체로 서의 도덕공동체의 단위로서 부상하게 되었다. 한편 1990년대 초부터 제도화되기 시작하였고, 1997년 IMF 사태 이후 본격화 된 지구화의 폭격은 거의 모든 관계의 장을 시장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국 제 정치경제적 과정은 또 다른 의미에서 민족공동체를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 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도덕공동체의 경계(boundary)에 대한 감각은 매우 급 격하게 요동쳤다. 그리고 이러한 동요의 배후에는 기대의 정치, 나아가 욕망의 정 치가 예각화되면서 나타난 거래관계의 복잡성이 자리잡고 있다. 요컨대 소비사회 화와 지구화는, 도식화하여 말하면, 시장화된 시민 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안병무 선생이 조명 의 결론부에서 다소 모호하게 제기한 문제의 식은 민주화 이후의 인권문제를 향한 일종의 예언자의 야성( 野 聲 )과 같은 것이었 다. 민주적 제도화 과정의 행위자의 두 축인 국가와 시민이 인권 침해의 가능성을 담지한 사회적 주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선생의 문제제기는 인권에 관 한 신학적 인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시사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평가는 아니 다. 그러므로 이제 이상과 같은 시론적 논의를 보충하여, 기독교적인 인권담론의 10) 유철규, 산업화 이후 경제구조의 변화와 산업정책의 함의, 동향과 전망 60(2004 4) 참조.

55 제2부 기독교와 인권 49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체화할만한 요소들을 찾아 좀더 상세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첫 번째로 주목할 것은, <선언>에서 <성명>, 그리고 조명 의 전반부까지를 아 우르는, 인권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라는 통례적인 견해다. 모든 사람은 보 편적 본성으로서 인권을 갖고 있다는 서양 근대의 고전주의적 언명은 그것이 신 에 의해 부여된 권리라는 논리와 결합됨으로써 그 절대적 가치가 보증되었다. 그러나 로티는 이러한 인권론을 플라톤주의의 잔재라고 해석한다. 11) 인권에 대 한 이런 시각은 보편적 본성으로서 인권을 갖고 있지 못한 동물, 아니 동물 내지 는 비인간으로 간주된 대상화된 존재를 향한 폭력을 제약하기는커녕 오히려 정당 화함으로써 파시즘의 논리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보편적 천부인권 담론은, 국가 대 국민 이라는 이항대립적 도식이 인권의 착취 대 보호라는 틀로 양분되어 사유되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유용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가령, 폭압적인 국가권력에 의해서 단일체로서의 국 민이 기본권의 심각한 제약을 받고 있을 때 국민의 기본권을 착취하는 권력에 대 항하기 위한 담론일 경우에만 유용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1970,80년대 권 위주의적 군사정권이 발전주의적 국가 총동원체제를 위해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 였다고 해도, 그것을 단지 약탈의 시각으로만 볼 수는 없다. 거기에는 동시에 포용 의 전략도 활용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12) 그것을 위해 체제는, 보호하고 돌보아주어 야 할 불쌍한 타자를 국민의 하위 범주로 포섭할 뿐 아니라, 동시에 공산주의자, 깡패, 13) 대마초 흡연자 등을 배제될/되어야할 타자로서 생산해 냈던 것이다. 그밖 에 다양한 소수자 범주들이 배제의 대상으로서 타자화됐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므로 국가 대 국민 이라는 이분화된 틀로 사회체제를 설명해왔던 군부독재 11) Richard Rorty, Human Rights, Rationality, and Sentimentality, pp. 168~170 참조. 12) 박정희 체제를 약탈적 국가폭력의 체제로 규정할 것인가 대중적 동의의 체제로 규정할 것인가를 둘러싼 양자택일의 논쟁은 현실을 희화화시킨다. 왜냐하면 어떤 체제도 강제의 전략이나 동의의 전략만으로 사회 적 통합을 실현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양자택일적 물음보다는 두 방식의 통치 양식이 어 떻게 구현되었는지를 묻는 게 보다 유용하다. 서동진, 박정희 체제 어떤 민주주의를 위해 비판할 것인가, 당대비평 28(2004 겨울), 111~112 참조. 13) 5.16쿠데타 직후 박정희 체제는 이승만 정권 시절의 정치깡패들을 배제될 타자로 처벌했으며, 전두환 체제 도 정권 장악 직후 삼청교육대에 많은 사람들을 깡패 혐의로 격리 처벌했고, 6공 체제도 범죄와의 전쟁 을 선포함으로써 또 한번 깡패를 배제될 타자로 생산해내는 정책을 폈다.

56 50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체제의 경우에도 인간의 보편적 권리로서의 천부인권 개념에 기초하여 비판적 인 권 담론을 펴는 것의 유용성은 극히 제한적이다. 더욱이 국가에 의해 하위주체화 된 국민이 아닌, 국가와 교섭하는 주체로서의 시민을 주목하게 되는 민주화 이후 의 사회에서 보편적 인권담론은 시민의 성찰성을 오히려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개연성이 매우 높다. 이런 관점에서 마르코복음 7장 24~30절의 시로페니키아 여인 이야기에 대한 안병무 선생의 독특한 해석은 인권 패러다임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다. 모 종의 위험이 닥친 상황에서 예수 일행이 북쪽 국경을 넘어 페니키아 영역으로 물 러가 띠로 시 인근의 한 시골에 은둔하고 있을 때, 소문을 듣고 시로페니키아 출 신의 한 헬라 여인이 그를 찾아와 악령 들린 딸을 고쳐달라고 부탁한다. 여기서 헬라 여인 이라는 부가어는 그녀의 신분을 시사한다. 곧 그곳 출신 귀부인이 예 수를 찾아와 악령 들린 딸을 고쳐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예수의 대답은 우리를 당황스럽게 한다. 먼저 자녀들이 배불리 먹어 야 하니, 자녀들의 빵을 강아지에게 던져줄 수는 없다. (27절) 게르트 타이쎈(G. Theissen)에 의하면, 이 말의 배후에는 다음과 같은 사정이 있다. 이 지역은 더 견딜 수 없어 팔레스틴을 탈출한 하층민들이 대규모로 정착해 있던 곳으로, 탈주 유대인들은 그 지역 사회의 최저변층을 구성하며 개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14) 그러 니 그 여인의 딸과 유대인은 각각 주인집 자녀와 상 밑의 개와 같은 존재로 비유 될 수 있다. 한편 예수가 나눠주는 하느님나라의 축복은 이러한 일상의 경제를 전 도시킨다. 그에게서 자녀는 착취당하는 유대 출신 이주노동자들이었고, 그 귀부인 과 딸은 그 축복의 상 밑에 있는 강아지에 불과했다. 여기서 선생의 관점으로 돌아가 보자. 선생은 마르코복음 을 민중이 구술한 예 수 텍스트로 이해한다. 그들이 예수를 기억해 낸 내용의 하나가 바로 이 텍스트라 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그 여인이 귀부인이라는 것 외에는 어떠한 사적인 정 보도 없다. 가령, 그녀가 구체적으로 유대인을 착취한 악덕 지주인지 여부는 이 사건의 구술자들에게는 관심이 아니다. 피착취자들인 그들이 예수의 그 복의 수혜 14) 게르트 타이쎈, 시로페니키아 여인 이야기에 나타난 지역적 사회적 특성, 신학사상 51(1985 겨울) 참조.

57 제2부 기독교와 인권 51 자가 민중의 착취자인지 아닌지의 문제는 큰 관심거리일 텐데도 아무런 언급이 없다는 것은, 그녀가 평판 좋은 여인이거나 혹은 그냥 익명의 여인이기 때문일 것 이다. 최소한 대중의 기억 속에 그녀는 단지 익명의 귀부인이었던 것이다. 그럼에 도 예수는 그녀를 대할 때 일상적인 사회적 대립구도를 통해 그녀를 범주화 한 다. 이때 예수의 시선은 그 사회의 지배계급의 시선을 전도시킨 것일 뿐 그 패러 다임은 다르지 않다는 것이 입증된다. 그러한 편견의 틀이 모르는 익명의 여인에 게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어떤 사람이든 귀부인이라는 코드만으 로 예수는 그녀를 판단하고 있다. 이때 여인은 예수의 역설적 대립을 수용한다. 곧 그녀는 유대 출신 이주노동자 들이 자신과 같은 계급의 사람들의 밥상 밑의 개였던 것처럼 자기 자신을 저들과 동일시하는, 자발적 타자화를 실행한다. 그리고 이것은, 안병무 선생에 의하면, 예 수를 부끄럽게 했다. 하여 예수의 편견의 틀은 허물어진다. 동시에 이 이야기를 구술한 대중과, 그것의 문서화된 텍스트인 마르코복음 을 듣는 청중 15) 의 민족주 의적이고 계급적인 편견의 틀이 허물어진다. 예수 자신의 신성이 그 벽을 허물게 한 것이 아니라, 그가 이유 없이 범주적 증오(categorial hatred)를 표했던 한 여인 이 예수로 하여금 그 벽을 허물게 했다는 것이다. 16) 지그문트 바우만(Zygmund Bauman)은 범주화된 집단적 기억 이 가해자로 하여 금 어떤 대상을 향한 인권 침해, 나아가 존재의 파괴를 스스로에게 정당화하는 악의 합리화(rationalization of evil) 의 주된 기재임을 말한다. 하여 그는 홀로코 스트는 그 가해자의 전근대성이 낳은 잔혹한 야만성이 아니라 그네들의 집단적인 범주적 기억이 낳은 악의 합리화 때문에 저질러진 것이라고 본다. 17) 또 로티는 보스니아에서 세르비아 인이 자행한 비인간적 만행도 저들을 비인간적 존재로 범 주화하는 인식의 편견이 자신들의 죄책감을 사면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 고 본다. 18) 이렇게 인권 침해와 폭력은 예수 자신의 인식 속에도 내재해 있었고, 15) 마르코복음 은 독서자를 위한 텍스트가 아니라 청중을 향해 낭송되던 구술적 텍스트이다. 16) 안병무, 갈릴래아의 예수 (한국신학연구소, 1990), 177~78쪽 참조. 17) 바우만 임지현(대담), 악의 평범성 에서 악의 합리성 으로, 당대비평 21(2003 봄) 참조. 18) Richard Rorty, Human Rights, Rationality, and Sentimentality 참조.

58 52 제11차 인권교육포럼 그것은 민족주의적이고 계급적인 편견 속에서 성화된 기억으로 스스로를 정당화하 는 기재로 작용하고 있었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여인과의 관계 속에서 예수는, 신 의 분신인 그는, 아니 신 자신인 그는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동시 에 그것을 이야기하는 대중 또한 그러한 예수의 성찰을 공유하게 된 것이라는 주 장이다. 이런 관점에서 안병무는 천부인권이라는 인권담론의 고전주의적 인식틀 대신 대화적이고 과정적인 성찰이라는 대안적 인식틀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인권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문제의식은 신의 절대성보다는 역사문화적 컨텍스트 속에서의 신의 성찰을 강조하게 되고, 그런 점에서 보편적 규범의 관점에서 인권 을 묻는 전통적 시각을 지양하게 된다. 이와 같이 인권 논의에서 보편성의 기각은 안병무의 새로운 문제의식이 가능성으로 담지하고 있는 또 하나의 인권 패러다임 의 요소이다. 이것은 죄에 대한 그의 해석에서 두드러지게 볼 수 있는데, 19) 그에게 있어서 죄란 지배체제의 신학적이고 규율적인 통제의 기재에 다름 아니다. 다른 말로 하 면 죄란 체제의 형성 논리인 규범적 질서라는 외적 규정성이 존재의 내면을 통제 하는 양식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면성의 다양한 가능성은 제한되고, 죄는 내 면성을 구성하는 주된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20) 이런 맥락에서 선생은 구원이란 죄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죄 의식(죄의 콤플렉 스)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주장한다. 21) 다시 말하면 이른바 죄인을 규범적 질서 속에 재포섭하는 것, 그리하여 존중할 만한 시민 이 되게 하는 것이 구원이 아니 라, 22) 그러한 규범적 질서에 저항하는 주체로의 전향, 바로 그것이 구원인 것이다. 이와 같이 인권 담론에서 보편성을 기각하는 시각은 인권을 박탈당한 이와 체 제 사이의 심미적 관계 양식을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길을 열어 준다. 가령, 국가 19) 이에 대하여는, 안병무, 죄와 체제, 민중신학 이야기 (한국신학연구소, 1990) 참조. 20) 물론 이것은 지배의 정치학이라는 관점에서의 비판적 접근이다. 선생은 저항의 정치라는 차원에서 윤리는 해체의 대상이 아니다. 이에 대하여는 안병무의 윤리에 대한 나의 연구인 엄마의 계보 에 놓은 역사의 천사들 안병무의 민중의 윤리 에 대하여, 죽은 민중의 시대, 안병무를 다시 본다 (삼인, 2006) 참조. 21) 안병무, 죄와 체제, 208쪽. 22) 서동진은 미국 보수주의적 성정치학의 논이를 이와 같이 정리한다. 흥미롭게도 이는 민중신학의 죄론과 지 배의 정치학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과 유사하다. 서동진, 인권, 시민권 그리고 섹슈얼리티 한국의 성적 소수자 운동의 정치학, 경제와 사회 67(2005 가을) 참조.

59 제2부 기독교와 인권 53 나 시민은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인권을 박탈당하고 있는 현실을 자신들의 사회 가 정의롭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여기서 인권 문제는 심미적 문제임이 드러난다. 오히려 저들이 죄인 이기 때문에 그러하 다고 사회는 확신하는 경향이 있다. 한데 더욱 심각한 것은 그러한 죄의 규정은 그 사회에 속한 이들 일반의 내면성의 서사 로 자리잡는다는 데 있다. 물론 이것 은 죄인 으로 규정된 이들의 자기 이해가 되기도 한다. 하여 그들은 자신이 죄 인 이라는 탈주체적 자의식을 내면성의 요소로 받아들이게 되고,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사회 속에서 부적절한 삶의 방식을 수행하게 한다. 다시 말하면 죄인은 그 들의 부적절한 행태 때문에 죄인이 되기도 하지만, 죄인이라는 자존적이지 못한 자의식 때문에 부적절한 행태를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23) 따라서 인권의 박탈은 단순히 기본권의 박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의 자존감의 박탈에까지 이 르므로, 인권 담론은 그 사회의 죄의 메커니즘 자체를 지양하는 데로 나아가야 한 다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탈주체화된 존재에 관한 관심이 인권 담론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는 문제의식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향한 논의에서 반드시 제기되어야 할 것이다. 즉 인권은 인간이 신의 형상을 닮았느니 하는 데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타 자화되고 자존성이 박탈되며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된 존재의 보호 및 자존성의 회복에 관한 문제에 그 핵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세 번째 초점은 시민 중심 적 인권 패러다임에서 비시민 중심적 인권패러다임으로의 전환에 있다. 안병무 선 생의 민중론인 오클로스론은 바로 이 지점을 강조하는 역사문화적 문제설정이다. 마르코복음 의 독특한 어법에서 그 사회학적 함의가 추론된 오클로스는, 이 가 설의 원조격인 다가와 겐조( 田 川 建 三 )에 따르면 세관원, 병자, 죄인, 창녀, 거렁뱅 이 등을 포함하는 천민화된 기층대중이다. 24) 그리고 안병무는 이를 귀속공간의 박 탈이라는 관점으로 재해석하여 타율적 무소속성 의 대중집단으로 규정하였다. 25) 23) 이은주는 IMF 사태 이후 실직한 이들에 대한 연구에서 자존감 여부가 실직자의 회생능력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밝혀냈다. 이은주, 실직자들의 인지된 지지와 정서적 만족감, 사회이론 23(2004) 참조. 24) 田 川 建 三, 김명식 옮김, 마가복음과 민중 해방 원시그리스도교 연구 (사계절, 1983) 참조. 25) 이에 대하여는 나의 글 이름을 불러주기까지 그들은 꽃이 아니었다 안병무의 오클로스론 다시 읽기, 이정희 외, 죽은 민중의 시대, 안병무를 다시 본다 (삼인, 2006) 참조.

60 54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유대-팔레스틴 사회의 웬만한 촌락이면 거의 어디나 세워져 있었던 것으로 보이 는 회당 26) 은 대중의 공적 사적인 일상을 규율하는 사회적 통합의 장치로서 작동 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비록 예수 당시는 유대주의의 명시적인 문어적 지표 가 마련되지는 않았지만, 예루살렘 성전과 촌락 대중 사이에 촌락 회당이 연계고 리의 역할을 함으로써, 촌락 회당에서의 대중의 체험은 하느님이 택한 백성으로서 의 종족적 주체성을 형성하는 직접적인 매개의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마르코복음 에서 오클로스는 예외 없이 회당 밖 에서만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 점이 앞서 말한 타율적 무소속성 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즉 저들은 유대 사회에서 살고 있는 이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존재가 부정된 자들인 것이다. 그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오랜 식민화의 굴욕적 역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유대 종족의 비극의 원흉이고, 그들을 구원해야할 신의 구원 사역은 바로 저들의 존재로 인하여 지속적으로 유보되고 있다는 믿음 이 율법의 체계가 강변하는 유대 신학적 공리인 것이다. 이 텍스트에서 오클로스 가 있는 곳에는 신체 장애, 언어 장애, 시각 장애 등이 늘 나온다는 점은 오클로 스의 존재적 장애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인권의 문제는 이러한 존재적 장애의 장치들과 관련된다는 얘기다. 경계( 境 界 )의 외부로 끊임없이 누군가를 밀어내고, 밀려난 이들의 복권을 가로막는 체계를 문제시한다는 것이다. 국민의 경계 밖, 시민의 경계 밖, 가족의 경계 밖, 노동의 경계 밖, 성( 性 )의 경계 밖 등등. 안병무 식으로 말하면, 그곳은 성문( 城 門 ) 밖 이며, 그 외부에는 오클로스가 있다.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인권에 관한 한 연구논문에는 이렇게 기술되어 있다. 국 민국가가 자국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고안한 이주노동자 제도 에서 이주노동자는 인간 과 국민 (또는 시민 주민)이 아니라 관리 통제 처분의 대상인 노동력 으로 존재한다. 27) 이렇게 경계 밖의 존재로 대상화되는 자는 사회적 필요를 위해 도구 26) 어촌 읍내인 가파르나움 유적지에서 예수 당시의 것으로 보이는 주거지가 발굴되었고, 바로 그 옆에 다소 후대의 것으로 보이는 회당 유적지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아마도 그 회당 자리는 예수 당시의 회당 자리였 던 것으로 많은 학자들은 추정한다. 한편 복음서는 시골 촌락치고는 작고 보잘 것 없었던 나자렛에도 회당 이 있었다고 묘사한다. 가파르나움을 포함한 팔레스틴 촌락의 회당에 관한 고고학적 문헌적 연구로는, Eric M. Meyers & James F. Strange, Archeology, the Rabbis & Early Christianity: The Social and Historical of Palestinian Judaism and Christianity (Abingdon, 1981), pp. 58~61, 140~154 참조.

61 제2부 기독교와 인권 55 화되어야 하지만, 그들은 결코 국민 시민 노동자 등의 사회적 주체일 수 없다. 아 니 사회적 주체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국민 시민 노동자들이 받을 권리가 있는 자원을 잠식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유보하는 논리에는 항상 이러한 자원 잠식의 예감된 위기에 대한 국가 차원의 시민적 안전 망의 고려가 전제되어 있다. 하여 국민 시민 노동자는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인권 침해의 공범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논리는 이주노동자에 한정된 것이 아니 다. 구체적인 설명은 다를 수 있지만, 귀속공간을 박탈당한 이들에 대한 사회적 배제는 그들을 단순히 시민의 일상 공간에서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화하고 도구화하여 포섭한다. 단 이러한 포섭은 그들의 탈주체화를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러므로 안병무 선생의 오클로스론은 인권의 문제를 시민적 공간에서 그 외부 로, 성도의 공간에서 그 외부로 시선을 옮김으로써 구체화되어야 한다는 함의를 갖고 있다. 반복되는 얘기지만, 노파심에서 좀더 부연하면, 이러한 시선의 이동은 오클로스, 그러한 영역 외부의 존재를 단순히 보호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그들을 타자화하는 내면성의 서사 자체를 해체하고 자아의 대본 쓰기를 통해 내면성의 서사를 재구성하는 데로 이르는 일체의 과정을 의미한다. 이 점에 서 마르코복음 을 오클로스의 자아의 대본 쓰기의 결과물로 이해하는 민중신학적 관점은 이 텍스트를 인권에 관한 민중신학적인 성서적 전거로 사용하는 셈이다. 이상에서 나는 안병무에 기초하여 기독교적인 인권 담론의 새로운 패러다임적 문제설정을 세 가지로 이야기하였다. 인권의 문제는, 첫째로 신이 부여한 것이 아 니라 신과 인간 사이의 대화적이고 과정적인 소통을 통해 이해되어야 하고, 둘째 로 보편성을 기각하고 체제와 박탈 대중의 관계, 심지어 심미화된 내면성의 서사 까지 나아가는 반인권적 장치를 비판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 막으로 그러한 시민 중심적 인식틀에서 비시민 중심적 인식틀에로의 전환을 지향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한국기독교의 인권에 관한 논의를, 그러한 문제의식이 태동하기 27) 설동훈, 외국인노동자와 인권 국가의 주권 과 국민의 기본권 및 인간의 기본권 의 상충요소 검토, 민 주주의와 인권 5/2(2005 가을), 69쪽.

62 56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시작한 1970년대 문서들인 <선언>과 <성명> 그리고 1980년대 후반에 나왔지만 <성명>을 해석하는 데 초점이 있었던 안병무의 조명 을 중심으로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조명 에서 인권에 관한 문제의식의 내적 분열을 읽어내고, 그 어간에 저 술된 선생의 다른 글을 통해 인권에 관한 새로운 패러다임적 문제설정을 발견하 려 하였다. 한데 이러한 한국 기독교의 인권 패러다임을 둘러싼 나의 논의는 주로 담론 비평의 차원의 것이고, 특히 인권을 둘러싼 인식론적 지점을 강조하려는 데 초점이 있다. 이러한 강조점은 기존의 기독교적 인권에 관한 논의가 대체로 정치적 법적 수 행성에 과도한 초점을 두어왔던 것을 고려한 것이다. 정치적 법적 제도화에 개입 함으로써 국가나 시장에서의 인권 유린을 방어하는 체제를 구축하려는 이러한 시 도는 대단히 중요하고 또 현대 한국의 역사에서 적지 않은 성과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인권에 대한 신학적 성찰의 밀도는 그 활동력에 비해 상당히 부 족하다. 해서 기독교적 인권이라고 할 만한 논의가 한국 신학계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 이른바 신학이론의 결핍 현상이 심각한 지경이다. 서구의 역사에서 인권의 문제는 기독교 신학 전통 내에서 발전하지 않았다. 아 니 오히려 교회에 반대하는 운동의 맥락과 더 깊이 연루된 채 발전해 왔던 것이 다. 기독교 신학이 인권의 문제를 신학 담론과 접맥해 보려는 시도가 시작된 것은 개신교나 천주교 공히 1948년 이후에 와서다. 28) 그러므로 인권에 관한 밀도 있는 신학적 논의는 그리 깊은 전통을 갖고 있지 못하며, 그나마 이런 논의를 한국의 교회나 신학계가 그다지 잘 수용하지도 못했다. 더구나 인권은 추상적인 철학의 문제가 아니라 구체적인 사회 현실과 연루된 것이므로, 서구의 논의를 수용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보다 깊은 현장 연구 가 뒷받침되어야 하고, 현장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위해 타분야 학문들과의 긴 밀한 공동 작업을 수반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한국의 신학계는 어느 면에서도 그 리 깊은 이해에 도달하지 못하였다. 또 하나 더 언급하자면, 기독교 인권운동은 있되 인권에 관한 한국의 기독교 신 28) 김창락, 인권운동과 그리스도교, 새로운 성서해석과 해방의 실천 (한국신학연구소, 1990) 참조.

63 제2부 기독교와 인권 57 학이 없는 현실은 교회 대중이 없는 기독교 인권운동의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교회가 일상 속에서 반인권적인 행태를 취할 때 이를 문제제기할 인권 담론 이 신학적으로 구비되어 있지 못한 현실도 유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이 글에서 기독교의 인권 담론을 이야기할 때 법적, 제도적 차원 의 논의보다는 신학적이고 인식론적인 문제를 다룬 것은 바로 이러한 현실을 감 안한 것이다. 그리고 신학적 인식론에 관한 서구 신학계의 논의는 우리의 현실에 선 너무 추상적이고 모호해서 한국사회에 관한 성찰적 인권 신학의 여지를 상상 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 글에서는 나름대로 한국의 역사문화적 변화를 유념하면서 인권담론을 신학적으로 모색해 보려는 데 초점을 두었다. 특히 안병무의 논의 속에 산재한 인권에 관한 동시대적인 신학적 담론화의 가능성에 주목함으로써 한국 신학의 전통과 오늘의 인권 상황에 관한 문제의식을 연계시켜 보려 했다. 나는 인권이 시민 혹은 성도라는 민주화된 사회의 주체적 존재의 과잉 기대 혹 은 욕망을 위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 현실을 문제시하면서 이 글을 썼다. 그런데 신이 자아의 주체화를 부정하고 타자적 존재인 사람이 되었다는 것, 그것도 인간 사회의 주인공이 될 만한 존재가 아닌 가장 비천한 이의 얼굴로 세상에 왔다는 것이 기독교 신학의 토대가 되는 요소라고 한다면, 시민/성도의 자아의 대본 쓰기 를 인권에 관한 신학적 신앙적 기조로 활용하는 것은, 내가 보기엔 그다지 기독교 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그러한 담론이 문제의식 없이 유통될 수 있는 배후에는 국 가가 국민 일반을 일정하게 타자화했던 독재시대의 권위주의적 통치가 우리의 기 억 속에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 시대는 국민이 시민화되 고, 더구나 시장화된 시민의 시대가 되면서 시민은 더 이상 인권이 유린되는 대상 화된 존재라기보다는 인권의 유린을 방조 혹은 공모하는 존재로 전화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 신학의 인권 문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청하며, 이러한 문 제의식을 담아낼 만한 신학적 성찰의 흔적을 안병무의 신학 담론에서 발견하고자 했던 것이다.

64 58 제11차 인권교육포럼 토론1 한국 그리스도교의 인권담론과 신학적 성찰: 안병무의 신학을 중심으로 를 읽고 구미정(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겸임교수) 1. 인신매매 가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던 시절, 사람들 사이에 네 몸값은 얼마다 라는 식의 농담(?)이 아무렇지 않은 듯 유통되었었다. 그 무렵, 수업 중에 무서워 서 못 다니겠다 했더니 한 학생이 그런다. 교수님은 인신매매 당해봤자, 식당에 서 양파 까거나 멸치잡이 배에서 밥 해주는 거밖에 못해요. 생각해보니 그의 말 은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나의 인권을 침해했겠다. 하나는 연령차별이고, 다른 하나는 외모차별이다. 소위 천부인권이 추상적인 플라톤주의의 잔재 (5쪽)로만 남 아 있는 사회에서, 이런 식의 인권 침해는 일상화된 삶의 양식처럼 되어 있을 터 이다. 그 후 수업 때마다 계몽적으로 보여주는 영화가 하나 있으니, 바로 <여섯 개의 시선>이다. 이 영화는, 내 기억이 맞는다면, 2003년도에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하 여 여섯 명의 감독이 만든 이른바 인권영화다. 그 중에서 학생들은 특히 박찬욱 감독의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 에 분노하고 경악했었다. 28분짜리 그 영 화는, 고작 라면 값을 내지 못해 경찰서로 넘겨진 뒤, 행려병자로, 정신병자로 내 몰려 6년하고도 4개월씩이나 정신병원을 전전한 네팔 여성 찬드라 꾸마리 구룽의 사례를 통해, 우리네 인권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더듬거리는 한국말 사이사이로 이상한 언어가 튀어나오는 것을, 외국인이라 그 렇다고 단 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고, 그저 미친 시골 아낙네의 횡설수설로 치부

65 제2부 기독교와 인권 59 한 것이야 이해 못할 바가 아니라고 넘어가 주자. 경찰이나 의사들의 증언마따나 구룽 족 의 생김새가 워낙 우리랑 비슷하니까. 어찌어찌 파키스탄 노동자가 그의 이름을 받아 적어 가지고 출입국관리사무소를 찾아갔지만, 구룽 (Gurung)이라는 글자가 고롬 (Gorom)으로 잘못 적힌 바람에 끝내 신원 파악이 안 된 것도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눈 감아 주자. 우리나라 공무원들의 업무량이야 워낙에 과중하 지 않은가. 일일이 여권번호까지 확인할 시간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이해 하기 어려운 게 하나 있다. 우연히 찾아온 네팔 노동자가 찬드라와 첫 대면을 하 는 장면에서 네팔어가 아니라 한국말로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영화 속에서 그도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왜 한국말이 불쑥 튀어나왔는지 모르겠다고. 2. 김진호 목사님(이하 발제자)의 글을 읽노라니, 자꾸만 찬드라 이야기가 겹쳐진 다. 자국/자국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측면에서만 고려되는 이주노동자 제도에서 찬드라와 같은 이주노동자는 당연히 국민 도 시민 도 아니고, 따라서 인간 도 아니다. 그들은 단지 관리ㆍ통제ㆍ처분의 대상인 노동력 (8쪽)일 뿐이다. 발제 자는 안병무의 신학에 터하여 귀속공간을 박탈당한 이들 을 오클로스 로 명명한 다.(7쪽) 오클로스는 마르코복음 에서 세관원, 병자, 죄인, 창녀, 거렁뱅이 등 을 포함하는 천민화된 기층대중 으로서, 타율적 무소속성 이 특징인 대중집단이 다.(7쪽) 오클로스의 문제는, 이들이 분명히 유대 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그들의 존재가 비가시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유대 사회의 중심인 회당 안 에 들어갈 수가 없다. 그들의 자리는 성문 밖 (8쪽)이다. 그들은 국민의 경계 밖, 시민의 경계 밖, 가족의 경계 밖, 노동의 경계 밖, 성( 性 )의 경계 밖 (8쪽)에 존재한다. 다시 말 하면, 그들은 경계 안 에 속한 사람들의 눈에는 절대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투 명인간 이다. 발제자는 인권에 대한 논의가 더 이상 보편적인 천부인권 담론 으로 구렁이 담 넘어 가듯 두루뭉술하게 전개될 수 없음을 분명히 꼬집는 점에서 (적어도 기독교 내부의) 기존 논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다. 누가 어떤 식으로 인권을 유린당

66 60 제11차 인권교육포럼 했다 하면, 인간은 날 때부터 존엄하다, 그것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고귀한 권 리다 는 말로 대충 얼버무리는 식의 만병통치약 같은 천부인권 담론은, 국가 대 국민 의 이항대립적 도식이 유용하던 시절에나 (그나마) 제한적으로 통했던 낡은 인식틀이다.(2, 5쪽 참고) 요컨대, 국가가 폭압과 독재의 기제로써 국민의 기본권 을 심각하게 제약하던 시절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타자화된 사람들(가령, 공산주의 자, 깡패, 대마초 흡연자 등)은 국가의 보호로부터 철저히 배제되어 있었다.(5쪽) 달리 말하면 그들은 국민으로서 보호받을 권리를 박탈당했다. 더욱이 독재에서 민 주화로, 다시 소비사회화와 지구화로 빠르게 이행하는 사회체제를 겪으며, 국민은 시민 으로, 다시 시장화된 시민 으로 정체성의 변화를 겪었는데,(4-5쪽 참고) 이 과정에서 시민은 비시민 의 배제를 제도화하는 일에 국가와 공모하는 인권 침해 의 공범 (8쪽)이 될 수밖에 없다. 발제자는 바로 이 점을 성찰하지 않는 한, 어떠 한 인권 논의도 불충분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발제자는 이 지점에서 도덕공동체 (2, 3쪽)를 문제 삼는다. 우리 의 도덕적 감 수성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 밖 에 위치한 그들 은 쉽사리 짐승 내지 비인간으로 대상화되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폭력마저 부도덕하게 인지되기는커녕 오히려 정 당화된다는 관찰이다. 여기서 그들 은 경제발전 과정에서 비국민화된 경제적 실 패자 (3쪽)를 지칭한다. 그들 은 또한 한낱 노동력 으로만 간주되는 외국인 노동 자와 씨받이 로만 간주되는 결혼이주여성을 포함할 수도 있다. 모두 가난한 사람 들 이다. 그리하여 도덕공동체 는 필연적으로 경제공동체 와 결합한다. 발제자가 (안병무의 조명 에 근거해) 민족공동체의 분해뿐만 아니라 경제공동체와 도덕 공동체의 분해를 주문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여기에 종교라는 변수가 더해지면, 인권 문제는 좀 더 복잡한 양상을 띤다. 예 수 당시 그들 은 유대 민족공동체에 속해 있지 않은 이방인들 이다. 툭하면 율법 을 위반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생계벌이에 종사하는 가난한 사람들 이다. 그리고 죄인들 이다.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바리새인들은, 예컨대 사마리아 사람들이 회당 안 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을 인권 침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이 들 수조차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죄인이니까! 아울러 죄인에 대한 배제와 차별,

67 제2부 기독교와 인권 61 폭력과 처벌은 항시 정당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차피 신의 구원을 받을 수 없을 뿐더러 신의 구원이 이 땅에 보편적으로 임하는 것을 지연시키는 방해물에 불과 하니까! 발제자가 한국 그리스도교의 인권 담론 을 신학적으로 성찰하면서 안병무의 오 클로스론에 기대는 이유는 간단해 보인다. 인권의 문제를 바라볼 때 시민적 공간 에서 그 외부로, 성도의 공간에서 그 외부로 (8쪽) 시선을 옮기자는 것이다. 천부 인권이 어쩌구 하는 보편 담론으로는 해결될 게 거의 없다. 안에서 밖으로 시선을 이동시켜야 구체적인 인권 담론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밖 에 있는 오클로스를 어떻게 보라는 뜻인가? 이러한 시선 이동은 (그들을) 단순히 보호의 대상으로 삼 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그들을 타자화하는 내면성의 서사 자체를 해체하고 자아 의 대본 쓰기를 통해 내면성의 서사를 재구성하는 데로 이르는 일체의 과정을 의 미한다. (8쪽) 풀어 말하면, 타자화된 사람들은 자기를 죄인으로 내몬 외적 규정성 을 내면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른바 죄인으로서의 자기 이해가 내면성의 서사 로 자리 잡으면, 그처럼 자존감이 없는 자의식 때문에 그들은 오히려 부적절한 삶의 방식을 수행할 수 있다. 그래서 구원이란 죄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죄 의식으로 부터의 해방 (7쪽)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죄인을 존중할 만한 시민 이 되 게 하는 게 구원이 아니라, 그러한 규범적 질서에 저항하는 주체 로 전향시키는 게 구원이다.(7쪽) 이런 점에서 발제자는 마르코복음 같은 것이 오클로스의 자아의 대본 쓰기의 결과물 (8쪽)이라고 말한다. 거기서 오클로스는 새롭게 도래 하는 대안질서, 곧 하느님 나라의 담지자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3. 다시 찬드라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정신병원에 감금된 찬드라를 찾아온 네팔 노동자는 왜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을까. 이 물음은, 스스로를 네팔리 라고 주장하 는 찬드라의 말을 번번이 기각하는 사람들(분식집 아주머니, 경찰들, 의사들, 간호 사들 등등; 요컨대 (대한민국) 시민 들)의 심리상태를 묻는 물음과도 통할 것이다. 그들은 왜 찬드라에게 강제로 선미야 라는 이름/정체를 주입하려고 그다지도 안 달을 부린 것일까.

68 62 제11차 인권교육포럼 발제자의 예리한 관찰에 따르면, 그들 에게는 언어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 기들의 말을 가져서는 안 된다. 성서에서, 특히 마르코복음 에서 전매특허처럼 등장하는 오클로스 의 일종인 그들은 거개가 실어증 환자들이다. 입이 있어도 말 을 할 수가 없다. 그들의 목소리는 들려지지 않는다. 그들은 망각된 존재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들이 취하는 전략 중의 하나는 무의식 적으로 기득권자의 언어를 흉내 내는 것이다. 찬드라를 찾아온 네팔 노동자의 입 에서 부지불식간에 한국말 첫인사가 튀어나온 것은 그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다. 발제자는 기독교 인권운동 은 넘쳐나되, 인권에 관한 한국 의 기독교 신학 이 없는 현실을 개탄한다.(9쪽) 그런 연유로 기독교의 인권 담론을 이야기하면서 법 적, 제도적 차원의 논의보다는 신학적이고 인식론적인 문제를 (9쪽) 다루게 되었 다고 한다. 그런데 신학적 인식론이라는 부분에서 서구 신학계의 논의는 한국 의 현실과 동떨어진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안병무를 들여다보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문제의식과 그에 대한 신학적 대응은 매우 타당하며 대단히 설득력이 있 어 보인다. 우리의 우물에서 (예수의 표현대로 하면 내 배에서 ) 나오는 생수가 아니고서는 아무리 마신들 목마름이 가시지 않을 것이다. 발제자의 성실한 연구 작업을 통해 1973년의 <선언>과 1974년의 <성명>, 그리고 1970년대 민주화운 동과 기독교 라는 제목으로 1987년에 발행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의 책자에 실린 안병무의 조명 에 그토록 풍부한 인권에 관한 신학적 담론화 의 가능성 이 산재해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발제자의 선행 작업을 토대로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역시 훌륭한 연구 는 질문을 많이 이끌어내는 법인가 보다. 첫째, 오클로스의 자기 주체화 가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하는 점이다. 둘째, (첫째 물음과 연결된 것으로서) 오클로스의 주체화 과정은 필연적으로 기 득권자들의 회개 혹은 섬김을 요청할 터, 이것은 또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하는 점 이다. 셋째, 마르코복음 에 의하면, 그러니까 유언비어의 형식으로 예수와 오클로스

69 제2부 기독교와 인권 63 사이의 사건들을 증언하고 전달한 마르코복음 에 의하면, 예수는 (거칠게 말해 서) 오클로스의 인권을 옹호하다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유대 사 회의 시민들에 의해서 버림받고 죽어간 것이다. 이러한 사실 이, 혹은 기억 이 이미 기득권과 친화적으로 권력 집단화 된 한국 기독교 안에서 과연 증언되고 전 달될 수 있을까. 넷째, (셋째 물음과 연결된 것으로서) 한국의 자생적 민중신학은 오클로스를 가 시화하고, 그들에게 자기 목소리 를 찾아주려 애썼으며, 지금도 애쓰고 있다는 점 에서 참으로 기독교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리앗처럼 덩치가 커진 수구보수 집단에 의해 줄기차게 주변화되고 이단화되는 수모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러한 신학적ㆍ정치적 권력 불균형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다섯째, (셋째와 넷째 물음의 연속선상에서)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모 기독교보수 단체에서 2007년 10월 인권위원회가 권고한 이른바 차별금지법 의 국회 통과를 저지하는 등 실력 행사를 한 적이 있다. 이러한 모습은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 우파세력이 도덕적 다수당 (Moral Majority)을 결성하여 국가의 법과 정치 및 외 교에 적극 개입하는 행태를 모방한 것인 바, 이와 같이 하나의 종교단체가 막대한 물적ㆍ인적 자원을 등에 업고 국가와 결탁하여 인권 침해의 공범 으로, 혹은 주 범 으로 등장할 때, 과연 신학적이고 인식론적인 접근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여섯째, 발제자가 지적한 것처럼, 한국의 경우 기독교 인권담론이 일천한 것은 고사하고, 겨우 구색만 맞춘 형국인 기독교 인권운동 역시 그 저변 확대가 시급한 현실이다. 기독교 인권운동과 교회 대중 사이의 연결고리를 누가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 일곱째, (여섯째와 연계하여) 시장화된 시민 의 시대에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비시민 (혹은 좁은 의미로 자기 집단에 속하지 않은 사 람들 )의 인권 유린을 방조 혹은 공모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현실에서, 발제자의 제안대로 시민(혹은 성도)이 대화적이고 과정적인 성찰이라는 대안적 인식틀 (6 쪽)을 갖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물론 발제자는 시로페니키아 출신의 한 귀부인과 예수의 만남이라는 사례를 통해 그 모범을 제시하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70 64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이기심(가족이기심과 집단이기심을 포함하여)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든 속인( 俗 人 )에게는 도달하기 어려운 이상이 아닌가 싶은데, 혹시 좀 더 현실적인 제언이 있다면 지혜를 나누어 주시기 바란다. 4. 토론자가 보기에, 기독교의 인권담론 에서 정작 문제는 어떤 기독교인가 하는 것이다. 이 땅의 기독교는 결코 단일하지 않다. 교단의 구분 때문이 아니다. 교회 의 크기, 교회가 지닌 돈과 권력, 교회가 터해 있는 신학에 따라 그 귀속성이 결 정된다. 이미 기득권을 옹호하기로, 기존질서를 지탱하기로 결정하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교회를 든든히 세워가는 것이라고 믿는 교회가 그 구성원들에게 밖 을, 오클로스 를 상기시킬 리 없다. 안 에서 어떤 불편함도 느끼지 않고, 어떤 문 제의식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은 성경 구절 역시 용케 자기들 입맛에 맞는 것들만 편리하게 뽑으며, 불편한 구절들은 마치 성경에 없는 양 간단히 망각해 버린다. 자기들끼리 안 에서 좋아 죽는 사람들에게 밖 을 향하여 시선을 돌리라는 예언 자적 메시지가 과연 들리기나 할 것인가. 부자의 종교 로 전락한 기독교는 가난 한 자에게 복이 있다 는 성경 말씀을 듣고 싶지 않을 것이다. 정치적 권력에 더하 여 도덕적ㆍ영적 오만에 사로잡힌 기독교는 계속해서 권력의 변방에 소외된 소수 자들을 실패자로, 죄인으로 낙인찍으며 그들에 대한 폭력을 아무렇지 않게 자행할 것이다. 그것도 신의 이름을 빌어서. 다시 성경을 펼쳐본다. 내 눈 앞에 펼쳐진 성경은 불편한 진실 이다. 신이 과연 누구를 편드는가 하는. 그 성경을 읽으며 자문해본다. 나는 과연 어떤 기독교인인 가 하고. 나 야훼가 선고한다. 이스라엘이 지은 죄, 그 쌓이고 쌓인 죄 때문에 나는 이스라엘을 벌하고야 말리라. 죄 없는 사람을 빚돈에 종으로 팔아넘기고, 미투리 한 켤레 값에 가난한 사람을 팔아넘긴 죄 때문이다.

71 제2부 기독교와 인권 65 너희는 힘없는 자의 머리를 땅에다 짓이기고 가뜩이나 기를 못 펴는 사람을 길에서 밀쳐 낸다. 아비와 아들이 한 여자에게 드나들어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힌다.( 아모스 2:6-7) 야곱 가문의 어른들이라는 것들아, 이스라엘 가문의 지도자라는 것들아, 정의를 역겨워하고 곧은 것을 구부러뜨리는 것들아, 이 말을 들어라. 너희는 백성의 피를 빨아 시온을 세웠고, 백성의 진액을 짜서 예루살렘을 세웠다. 예루살렘의 어른이라는 것들은 돈에 팔려 재판을 하고 사제라는 것들은 삯을 받고 판결을 내리며 예언자라는 것들은 돈을 보고야 점을 친다. 그러면서도 야훼께 의지하여, 야훼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데, 재앙은 무슨 재앙이냐? 하는구나!( 미가 3:11) 이 사람아, 야훼께서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들어서 알지 않 느냐? 정의를 실천하는 일, 기꺼이 은덕에 보답하는 일, 조심스레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일, 그 일밖에 무엇이 더 있겠느냐? 그의 이름을 어려워하는 자에게 앞길이 열린다. 야훼께서 이 성읍에 외치시는 소리, 유다 지파는 들어라. 이 성읍에서 사는 무리들은 들어라. 남을 등쳐 치부한 것들아, 거짓말만 내뱉는 도시놈들아, 말끝마다 사기를 하는 것들아, 들어라. 천벌 받을 것들, 부정한 되로 부정축재한 것들을 나 어찌 용서하겠느냐? 자루에는 엉터리 추를 넣어 가지고 다니며 맞지도 않는 저울을 쓰는데 어떻게 죄없다고 하겠느냐? 그래서 이제부터 나는 너희를 치리라. 그런 죄를 보고 어찌 멸망시키지 않겠느 냐? ( 미가 6:8-13)

72 66 제11차 인권교육포럼 토론2 기독교와 인권 <한국 그리스도교의 인권담론과 신학적 성찰>에 대하여 이춘선(평화인권기독교 교육연구소 소장) 오늘 발제를 맡아주신 김진호 제 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 연구 실장님께서는 신학적 인식론에 관한 서구 신학계의 논의는 우리의 현실에선 너무 추상적이고 모호해서 한국사회에 관한 성찰적 인권 신학의 여지를 상상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 글에서는 나름대로 한국의 역사 문화적 변화를 유념하면서 인권담론을 신학적으로 모색해 보려는데 초점을 두었다. 특히 안병무의 논의 속에 산재한 인권에 관한 동시대적인 신학적 담론화의 가능성에 주목함으로써 한국 신 학의 전통화 오늘의 인권 상황에 관한 문제의식을 연계시켜 보려했다. 고(9쪽) 발 제문의 성격을 밝혔다. 그래서 발제자는 세계 종교로서의 기독교에 있어서의 인권 을 한국기독교(특히 개신교의 입장에서)에 국한시켜서 다루었고, 그것도 1970년대 한국에서 꽃을 피운 한국에서 만들어진 민중 신학의 창시자 중의 한 사람인 안병 무의 신학 속에서 오늘의 주제인 <기독교와 인권>을 조명했다. 그는 1970년대 유신독재체제가 시작된 직후 생성된 <1973년의 한국 그리스도인의 선언>과 그 이듬해에 발표된 <한국 그리스도인의 신학적 성명>등은 한국 개신교의 인권 담론 의 전형적 특징을 보여준다 고 말하며, 개신교 인권 담론의 전형적 특징이 국가 대 국민 이라는 이항 대립적 틀 속에서 국가에 의해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되는 것으로 인권을 이해하는 것이었는데, 안병무는 국가 대 국민이라는 전통적 인권 담론의 이분도식적인 형태를 국민 내부에서 인권 침해의 가해와 피해의 상황이 새롭게 문제제기 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10쪽)고 발제자는 주장 한다.

73 제2부 기독교와 인권 67 이것은 시민사회가 시민 대 비 시민으로 균열된 과거와는 다른 양식의 인권침 해가 발생하는 오늘 우리의 상황 변화와 상응하는 문제의식 (10쪽)이라고 해석하 며 안병무의 글들을 통해 인권 담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유추하여 3가지로 요약 하였다. 인권의 문제는, 첫째로 신이 부여한 것이 아니라 신과 인간 사이의 대화 적이고 과정적인 소통을 통해 이해되어야 하고, 둘째로 보편성을 기각하고 체제와 박탈 대중의 관계, 심지어 심미화 된 내면성의 서사까지 나아가는 반인권적 장치 를 비판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러한 시민 중심적 인식 틀에서 비 시민 중심적 인식 틀에로의 전환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10 쪽)안병무의 신학에서 인권에 대한 신학적 담론을 어떻게 오늘의 상황과 접목시켜 시사 할 수 있는지를 유추한 것은 발제자의 땀의 결과로 감사드린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기독교와 인권> 이라는 주제를 <안병무 신학을 중심으로 한국 그리스도교의 인권 담론과 신학적 성찰>이라는 제목으로 다루다 보니 발제 문을 통해 숲은 보지 못하고 오직 한 나무만 보도록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 다. 안병무의 신학을 모르는 사람들은, 또는 비전문가들은 이해하기가 무척 어려 운 고도의 전문적인 관점을 다루고 있다는 점도 기독교와 인권을 폭넓게 이해하 는데 어려운 점이 되고 있다. 아마도 오늘의 발제문은 안 병무의 신학을 오랫동 안 연구해온 발제자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글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솔직히 말 하자면 본 토론자는 이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어서 어떤 말로 질문을 하고 어떻 게 발제의 내용을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민주화 시대는 국민이 시민화 되고, 더구나 시장화 된 시민의 시대가 되면서 시민은 더 이상 인 권이 유린되는 대상화된 존재라기보다는 인권의 유린을 방조 혹은 공모하는 존재 로 전환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 신학의 인권 문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 청하며,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아낼 만한 신학적 성찰의 흔적을 안병무의 신학 담 론에서 발견하고자 했던 (9쪽) 발제자의 목표를 논한다는 것은 이 분야의 신학적 지식을 요하는 바이므로 본 토론자로서는 거론하기가 힘들 것 같다. 발제자는 안 병무 신학에서 인권의 논점을 찾는 것으로 발제의 영역을 한계 짓다보니 기독교 의 경전인 성경 안에서 전체적으로 인권을 조명해보는 일을 미처 다루지 못한 것

74 68 제11차 인권교육포럼 같다. 그래서 본 토론자는 기독교와 인권 간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을 근거로 하여 논해보려고 한다. 1. 하나님이 사람이 됨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고 기독교는 가르친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가 성탄절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시고, 인간 의 가치를 얼마나 높게 사셨으면 하나님 스스로가 인간이 되셨을까? 이것은 인간 의 존엄성을 나타내는 기독교의 최고의 가르침 중에 하나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3장 16절): 그(예수)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사람과 같이 되셨다. (빌립보서 2장 7절) 그런데 하나님은 예수를 통해 인간이 되시면서 어른 인간이 되신 것이 아니라 인간 중에는 가장 힘없고, 가진 것 없고, 보잘 것 없고, 무시되기 쉽고, 폭력에 그 대로 희생될 수 밖에 없는 어린이(아기)가 되셨다. 그 어린이도 부모가 권력이 있 거나 돈이 많거나, 지위가 높은 집안의 어린이가 아니라, 하룻밤 잠 잘 방까지 구 하기 힘들었던 부모의 아이로 이 세상에 오셨다. 어린이 중에서도 힘없는 어린이 로 마굿간에서 태어나셨다. 예수는 낮은 자 중의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셨다. 인 권과 관련된 무슨 심오한 뜻이 여기에 담겨 있을까? <하나님이 어린이로 사람이 되셔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기독교의 가르침은 하 나의 혁명적인 선포이다. 왜냐하면 인류가 공식적으로 어린이, 청소년을 <한 사 람>의 온전한 인간으로 인정하자고 공표한 것이 불과 20년 전인 1990년<UN아동 권리협약>을 통해서라고 본다면, 기독교에서는 이미 2000여년 전에 하나님이 어 린이(아기)로 오심으로, 어린이의 존재를 완전한 한 인격체로 인정 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어른들이 공동으로 단합하여 아직 18년을 살지 않은 사람들을 소외, 배제 시키며,<나이를 기득권>으로 하여 주어야 할 것을 주지 않 고, 대신 결정해주고, 성적으로 학대하고, 노동력을 착취해 왔었는데, 이제는 그렇

75 제2부 기독교와 인권 69 게 하면 안 된다고 공식적으로 표명한 것이 고작 20년 전 인데, 지금으로부터 약 1980여년 전에, 아이들은 사람 수에 들어가지도 않던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는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아라 (마가복음 10장 14절)고 말씀하 셨다. 이 말씀을 통해 예수는 어린이를 어른과 똑 같은 사람으로 인정해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제자들이 서로 누가 높으냐? 하고 토론을 벌일 때 예수 께서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가운데 세우시므로, 어린이 존재의 중요성을 인식하 도록 하는 행동을 하셨다(마가복음 9장 36절 참조). 어린이를 한 인격체로 인정하 시고, 그것을 깨닫도록 하신 예수의 이 언행은 과히 오늘날 <UN아동권리협약>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예수는 이제 3년 살은 사람, 이제 10년 살은 사람, 이제 15년 살은 사람을 온 전한 한 사람으로 인정해 주었다. 이와 같은 행위는 1948년<세계인권선언문>제1 조의 모든 사람 속에 아직 18년을 살지 않은 사람들의 존재가 인식되어있지 않 았던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이 사람(어린이)이 되셨다>고 하는 말이 얼마나 엄청 난 말인가를 알 수 있다. 어린이를 삶의 주체로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은 이미 하 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셨다는 말 속에도 들어있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깨달은 기독교인들은 많지 않다. 오늘날 까지도 대부분의 많은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의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이 름으로, 교회의 이름으로 이제 6년 산 사람, 이제 12년 산 사람들에게 교육폭력을 가하는 신앙교육을 하며 그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이야기하며 본 토론자는 우선 먼저 <하나님이 사람이 된 것>, 그 중에서도 어린이의 모습으로 사람이 되신 것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어디서 이 보다 더 큰 인간 존엄성의 상징을 찾을 수 있겠는가? 인간이 신 만큼 소중하고 가치 있다는 것을 신이 사람이 직접 되어서 몸으로 보여준 것 말고 또 무엇으로 알려 줄 수 있을까?

76 70 제11차 인권교육포럼 2. 예수(하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므로 보여주신 인간의 존엄성만큼이나 무게가 큰 것이 예 수(하나님)의 죽음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고 인간의 아들로 남을 위한 삶을 33~34년 정도 사시다가 돌아가셨다. 나 아닌 다른 인간들을 살리 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았다. 자신이 죽음으로 다른 사람들이 살도록 하기 위해 십자가라는 형틀에서 죽임을 당하셨다. 기독교에서는 예수가 나(우리)를 위해 돌아가셨다고 가르친다. 예수(하나님)가 십자가에서 자신의 목숨을 인간을 위해 내 어놓고 죽음으로써, 인간 생명의 고귀함과 인간 그 자체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 주신 것이다.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 주면서 사람들이 생명을 얻기를 바라시는 하 나님을 통해 기독교는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친다. 예수는 우리(인간)가 생명을 얻고 풍성히 얻기를 위해서 (요한복음 10장 10절)이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3. 예수의 부활 하나님은 돌아가심으로 끝을 내지 않으셨다. 다시 사셨다. 기독교의 신앙은 부 활의 신앙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인간이 죽는 것을 원하시지 않으신다. 죽음은 하 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에게는 인간다운 삶을 누릴 만큼 누리는 것 외에는 다른 것이 없다. 삶을 누리고, 또 누리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을 그가 직접 다시 살아나심으로 보여주었다. 죽음을 이겨야 하는 만큼 소중한<삶>, <생 명>의 가치를 예수그리스도가 직접 살아나심으로 보여주시므로 생명의 고귀함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므로 (창세기2장7절) 생 명이 없는 것에서 생명이 있게 해주시고, 죽음을 이긴 부활을 통해 새 힘을 얻어 사람들이 다시 살게 해주시고, 또 살게 해주신다. 하나님은 인간을 흙에서 만드셨 다고 기독교는 가르친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셨다는 것은 인간의 모든 것이 하 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소중 하게,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사유화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하늘을 나누고, 땅

77 제2부 기독교와 인권 71 을 나누고 바다를 나누는 데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삶, 즉 인권은 파괴되고 있 다. 인간의 존엄성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기 때문에, 신성불가침이라는 말이다. 생명만큼은 그 누구도 그 누구의 것을, 그 누구도 그 무엇의 것을 빼앗아가서는 안 되고, 짓밟아서도 안 되고 못살게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어떤 이견 이 있을 수 있겠는가? 안병무도 그의 글<그리스도교와 인권>에서 각종 인권 선 언문들에서 인권은 천부적인 것이다. 존엄하다, 신성하다, 양보할 수 없다고 한 것 을 살펴보았는데 이에 뚜렷한 근거를 성서는 제공해주고 모름지기 이 모든 선언 들은 성서를 바탕으로 해서 천부적이라고 대담하게 선언 할 수 있었고 아무런 다 른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아무리 과학적인 시대라도 왜 천부적이냐고 말하려고는 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독교 사상, 1977, 52쪽)라고 말하고 있다. 4. 하나님의 형상 기독교에서는 모든 인간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고 가르친다. 하나님이 말 씀하시기를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창세기 1장 26~27절)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자신의 모습대로 인간을 만드셨다는 말이다. 그래 서 모든 인간 안에는 하나님의 모습이 들어 있다. 이 말은 하나님과 똑같이 만들 어진 인간을 누구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법으로 정해진 인 권 조항의 그 어떤 것 보다 뛰어난 법 이전의 법 이라고도 말 할 수 있다. 타고난 존엄성 (세계인권선언 머리말), 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존엄성 (유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관한 국제조약머리말), 고유한 존엄성 (세계인권선언 전문), 사람으로서의 존엄함 (대한민국 헌법 제 2장 10조 ), 우리 모두는 자신이 권리 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태어났다. (루마니아 인권교육가의 말) 등으로 표현 되는 <태어날 때부터 알고 있는 존엄성>은 모든 인간 안에 하나님(신)의 형상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78 72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주 하나님, 주께서는 나를 존귀하게 만드셨습니다. (역대상 17장 17절) 주께서는 사람을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지으시고, 그에게 영광과 존귀의 왕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시편 8편 5절) 모든 사람 안에는 하나님의 모습이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똑 같다(평등하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똑같다>는 것이 인권의 기초이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은 똑같다는 기독교의 정신은 근대 인권 개념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사람 은 이성과 양심을 부여 받았으며 서로에게 형제(자매)의 정신으로 대하여야 한 다. (세계 인권 선언 제1조) 여기서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 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는 말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똑같다>는 기 독교의 정신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을 하나님 대하듯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신학을 인간 학 이라고도 한다. 사람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에게로 갈 수 없고, 사람과의 관 계를 좁히지 않고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좁 힐 수 없다고 말한다. 하나님 앞에서와 예수 안에서 모든 사람은 똑같다는 가르침은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종 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 수 안에서 다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26~28절) 창세기 9장 6절에 보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니, 누구든지 사람을 죽인 자는 죽임을 당할 것이다. 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 을 손상시켰기 때문에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뜻이다. 5. 십계명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은 67권의 책으로 되어있는데 그중 첫 번째 5권의 책(창 세기,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은 인간의 도리 를 다루는 율법서이다. 인간이 어떻게 인간답게 살 수 있는가? 인간답게 살려면 지켜야 할 법들이 쓰여 있는데,

79 제2부 기독교와 인권 73 이 책들은 하나님께서 고대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것으로, 이 책에 들어 있는 도덕적, 윤리적 원칙들의 많은 부분이 서구 사회의 법체계의 근간이 되었다. 기독 교의 대표적인 윤리강령 중의 하나인 십계명도 이부분, 즉 성경의 두 번째 책 출 애굽기에 들어 있다. 기독교의 핵심 계명이 담긴 이 십계명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들의 목록을 담 고 있다. 십계명 안에 있는 계명들이 오늘날 인권 선언 안에도 들어와 있다. 예를 들면, 오늘날의 세계 인권 선언 제3조항 생명권에 해당하는 죽여서는 안 된다(제 6계명), 오늘날의 재산을 소유할 권리(제17조)에 해당하는 도적질 하면 안 된 다(제8계명), 네 이웃의 집을 탐내면 안 된다(제10계명) 는 말 등을 들 수 있다. 6. 기독교의 황금률 구약성경에 들어있는 십계명을 두 마디로 요약한 말이 신약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신약성경 첫 번째 책 마태복음 22장 37~40절).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두 마디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기독교는 가르친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처 럼 붙어 있을 때 완성된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 할 줄 모르게 되고 하나님도 사랑할 수 없게 된다는 깊은 뜻도 네 이웃을 <네 몸과>같이 사랑하라 는 말속에 들어 있다. 십계명의 10개 계명이 나를 사랑 할 줄 알고 이웃을 사랑할 줄 알면 하나님을 사랑할 줄 아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십계명을 지킬 수 있는 열쇠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황금률이다. 율법 중에 율법, 황금처럼 귀한 율법이라고 하여 황금률(The Golden Rule)이라는 이름 이 붙여진 것이다. 모든 면에 있어서, 내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고 싶은 대로 다 른 사람들을 대하라는 뜻으로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우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우 하여라 (마태복음7장12절)라고 성경에는 쓰여 있다.

80 74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이 말은 오늘날 인권선언이 실현될 수 있는 열쇠가 되는 말이 되기도 한다고 본 토론자는 생각한다. 인권은 서로존중이고 상호인정이다. 내가 대우 받고 싶은 대 로 남을 대우 하는 것 에서 인권은 존중된다는 가르침이 기독교의 황금률이다. 기독교의 이 진리는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수정되고 보완되고 바뀔 수 있는 오늘날의 인권선언과는 달리 불변의 인권정신의 기초가 된다고 생각한다. 7. 하나님 나라: 인권의 완전한 실현 전 세계 기독교인들은 거의 대부분이 일주일에 한번씩은 <주기도>(예수가 가르 쳐준 기도)를 외운다. 이 주기도문에 그 나라를 오게 하여 주시며, 그 뜻을 하 늘에서 이루심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주십시오 (마태복음 6장 10절)라는 말이 들 어있다. 그 나라를 오게 하여 주시며 는 하나님 나라가 오게 해 달라는 것이다. 하나님나라가 이 땅 위에 오게 해달라는 말이다. 이 땅위에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는 인권의 침해가 없는 아름다운 상태의 나라이다. 인권이 완전히 실현되는 나라가 바로 하나님 나라이다. 기독교는 이 하나님 나라가 오기를 간절히 구하고, 자유가 억압되는 일이 없는 하나님 나라가 이 땅위에 이루어지도록 목숨 바쳐서 투쟁해 왔고 또 오늘도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가 오게 할 책임이 기독교인들 각각에게 있다 는 뜻이다. 모든 피조물에 대한 책임이 인간에게 있으며, 모든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인간답게 더불어 함께 살 수 있는 하나의 정의로운 세계(하나님나라) 를 실현시킬 책임을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 인권이 보장된 평화롭 고 정의로운 세상을 이루는 일은 기독교인의 의무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인간에게 생명과 자유와 인간답게 살 권리를 주신 것은 곧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주어야 할 것 들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함이고 그것은 권리이자 의무 이기 때문이다.

81 제2부 기독교와 인권 예수 그리스도의 삶 예수 그리스도는 인권을 유린당한 사람들의 인권을 회복 해주는 삶을 사셨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자유를, 눈먼 사람들에게 다시 보게 함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 을 풀어 주고,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누가복음 4장 17~19절) 는 말처럼 예수는 가난한 자들, 힘없는 자들, 병자들 소외된 사람들 즉,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시는 일을 하셨다. 여성도 사 람 수에 들어가지 않던 시대에 예수는 평등한 위치에서 여성을 대해주고 여성들 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셨다(요한복음 4장 1~26절 참조,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여성신학자들은 예수의 말과 행동, 그의 삶을 통해 여성의 해방 과 여성인권의 의미를 발견하였다. 9. 세계인권선언문과 기독교 경전의 대비 세계인권 선언문 <세계인권선언문 제1조>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 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사람은 이성 과 양심을 부여받았으며 서로에게 형제의 정 신으로 대하여야 한다. 성경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 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 셨다. (창세기 1장 27절) 육친의 사랑으로 서로 다정하게 대하며, 존 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십시오.(로마서 12장 10절) 너희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 지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찾아다니지 않겠느냐? (누가복음 15장 4절)

82 76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세계인권 선언문 <세계인권선언문 제 2조>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그 밖의 견해, 민족적 또는 사 회적 출신, 재산, 출생, 기타의 지위 등에 따 른 어떠한 종류의 구별도 없이, 이 선언에 제시된 모든 권리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 다. 나아가 개인이 속한 나라나 영역이 독립국이 든 신탁통치지역이든, 비자치지역이든 또는 그 밖의 다른 주권상의 제한을 받고 있는 지 역이든, 그 나라나 영역의 정치적, 사법적, 국제적 지위를 근거로 차별이 행하여져서는 아니된다. <세계인권선언문 제3조> 모든 사람은 생명권과 신체의 자유와 안전을 누릴 권리가 있다. 성경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종이나 자 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28 절) 살인하지 못한다. (출애굽기 20장 13절) 옛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살인하지 말아라. 누구든지 살인하는 사람은 재판을 받을 것이 다 한 것을 너희가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 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성내 는 사람은, 누구나 심판을 받는다. (마태복음 5장 21~22절)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일곱 갑절로 벌을 받을 것이다. 주께서는 가인에게 표를 찍어 주셔 서, 어느 누가 그를 만나더라도,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셨다.(창세기4장15절)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니, 누구든지 사람을 죽인 자는 죽임을 당할 것 이다. (창세기 9장 6절)

83 제2부 기독교와 인권 77 세계인권 선언문 <세계인권선언문 제 4조> 어느 누구도 노예나 예속상태에 놓여지지 아 니한다. 모든 형태의 노예제도 및 노예매매 는 금지된다. 성경 이제부터 그는 종으로서가 아니라, 종 이상 으로, 곧 사랑받는 형제로 그대의 곁에 있을 것입니다. 특히 그가 나에게 그렇다면, 그대 에게는 육신으로나 주 안에서나, 더욱 그렇 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대가 나를 동지 로 생각하면, 나를 맞이하는 것과 같이, 그를 맞아 주십시오. (빌레몬서 1장16~19절)<도 망간 노예 오네시모를 주인 빌레몬에게 보내 며 종으로가 아니라 동지로 맞아 주기를 부 탁하는 글> 지금도 이스라엘 자손이 부르짖는 소리가 나 에게 들린다. 이집트 사람들이 그들을 학대 하는 것도 보인다. 이제 나는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나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 에서 이끌어 내게 하겠다." (출애굽기 3장 9 절~10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셔서, 자유 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 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갈라디아서 5장 1절) <세계인권선언문 제 5조> 어느 누구도 고문이나, 잔혹하거나, 비인도 적이거나, 모욕적인 취급 또는 형벌을 받지 아니한다. <세계인권선언문 제6조> 모든 사람은 어디에서나 법 앞에 인간으로서 인정받을 권리를 가진다. <제7조>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고, 어떠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을 부러워하지 말고, 그의 행위는 그 어떤 것이든 따르지 말아라. (잠언 3장 31절) 너희는 가난한 사람의 송사라고 해서, 그에 게 불리한 판결을 내려서는 안 된다. (출애굽기 23장 6절)

84 78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세계인권 선언문 한 차별도 없이 법의 평등한 보호를 받을 권 리를 가진다. 모든 사람은 이 선언을 위반하 는 어떠한 차별에 대하여도, 또한 어떠한 차 별의 선동에 대하여도 평등한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제8조>모든 사람은 헌법 또는 법률이 부여 하는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대하여 담당 국가법원에 의하여 효과적인 구제를 받을 권 리를 가진다. <제10조>모든 사람은 자신의 권리와 의무, 그리고 자신에 대한 형사상의 혐의를 결정함 에 있어서, 독립적이고 편견 없는 법정에서 공정하고도 공개적인 심문을 전적으로 평등 하게 받을 권리를 가진다. <제11조>형사범죄로 소추당한 모든 사람은 자신의 변호를 위하여 필요한 모든 장치를 갖춘 공개된 재판에서 법률에 따라 유죄로 입증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받을 권리를 가진 다. 성경 너희는 뇌물을 받아서는 안 된다. 뇌물은 사 람의 눈을 멀게 하고, 의로운 사람의 말을 왜곡시킨다. 너희는 너희에게 몸붙여 사는 나그네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 너희도 이집 트 땅에서 나그네로 몸붙여 살았으니, 나그 네의 서러움을 잘 알 것이다. (출애굽기23장 8~9절) 재판할 때에는 공정하지 못한 재판을 해서는 안 된다. 가난한 사람이라고 하여 두둔하거 나, 세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여 편들어서 는 안 된다. 이웃을 재판할 때에는 오로지 공정하게 하여라. (레위기 19장 15절) 너는 벙어리처럼 할 말을 못하는 사람과 더 불어,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의 송사를 변호 하여 입을 열어라. 너는 공의로운 재판을 하 고, 입을 열어, 억눌린 사람과 궁핍한 사람들 의 판결을 바로 하여라. (잠언 31장8~9절)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밤낮으로 부르짖는, 택 하신 백성의 권리를 찾아 주지 않으시고, 모 른 체하고 오래 그들을 내버려 두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얼른 그들의 권리를 찾아 주실 것이다. (누가복음 18장 7-8절) <세계인권선언문 제13조> 1.모든 사람은 각국의 영역 내에서 이전과 거주의 자유에 관한 권리를 가진다. 2. 모든 사람은 자국을 포함한 어떤 나라로 부터도 출국할 권리가 있으며, 또한 자국으 너희는 너희에게 몸붙여 사는 나그네를 학대 하거나 억압해서는 안 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몸붙여 살던 나그네였다. 너희는 과 부나 고아를 괴롭히면 안 된다.

85 제2부 기독교와 인권 79 세계인권 선언문 로 돌아올 권리를 가진다. <제14조> 1. 모든 사람은 박해를 피하여 타국에서 피 난처를 구하고 비호를 향유할 권리를 가진 다. 2. 이 권리는 비정치적인 범죄 또는 국제연 합의 목적과 원칙에 반하는 행위만으로 인하 여 제기된 소추의 경우에는 활용될 수 없다. <세계인권 선언문제17조> 1. 모든 사람은 단독으로는 물론 타인과 공 동으로 자신의 재산을 소유할 권리를 가진 다. 2. 어느 누구도 자신의 재산을 자의적으로 박탈당하지 아니한다. <세계인권 선언문 제19조> 모든 사람은 의견과 표현의 자유에 관한 권 리를 가진다. 이 권리는 간섭받지 않고 의견 을 가질 자유와 모든 매체를 통하여 국경에 관계없이 정보와 사상을 추구하고, 접수하 고, 전달하는 자유를 포함한다. <세계인권선언문 제22조> 모든 사람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보장제 도에 관한 권리를 가지며, 국가적 노력과 국 제적 협력을 통하여 그리고 각국의 조직과 자원에 따라 자신의 존엄성과 인격의 자유로 운 발전을 위하여 불가결한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의 실현에 관한 권리를 가진 다. 성경 (출애굽기22장21~22절) 너희는 너희에게 몸 붙여 사는 나그네를 억 압해서는 안 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나 그네로 몸 붙여 살았으니, 나그네의 서러움 을 잘 알 것이다." (출애굽기 23장 9절)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였다. "제가 조상의 유 산을 임금님께 드리는 일은, 주께서 금하시 는 불경한 일입니다." (열왕기상 21장 3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마가복음 10장 36절) "내가 네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그 가 말하였다. "주님, 내가 다시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누가복음 18장 41절) 너는 여섯 해 동안은 너의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고 일곱째 해에는 갈지 말고 묵 혀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들이 먹게 하 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네 포도 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지니라 (출애굽기 23장 10~11절)

86 80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세계인권 선언문 <세계인권선언문 제23조> 1. 모든 사람은 근로의 권리, 자유로운 직업 선택권, 공정하고 유리한 근로조건에 관한 권리 및 실업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 다. 2. 모든 사람은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고 동 등한 노동에 대하여 동등한 보수를 받을 권 리를 가진다. 3. 모든 근로자는 자신과 가족에게 인간적 존엄에 합당한 생활을 보장하여 주며, 필요 할 경우 다른 사회적 보호의 수단에 의하여 보완되는, 정당하고 유리한 보수를 받을 권 리를 가진다. 4.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 하여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가입할 권리를 가진다. <제24조> 모든 사람은 근로시간의 합리적 제한과 정기 적인 유급휴일을 포함한 휴식과 여가에 관한 권리를 가진다. 성경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희 하나님의 안식일이 니, 너희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너희 와, 너희의 아들이나 딸이나, 너희의 남종이 나 여종만이 아니라, 너희 집짐승이나, 너희 의 집에 머무르는 나그네라도,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출애굽기 20장 10절) 너희는 엿새 동안 일을 하고, 이렛날에는 쉬 어야 한다. 그래야 너희의 소와 나귀도 쉴 수 있을 것이며, 너희 여종의 아들과 몸붙여 사는 나그네도 숨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출애굽기 23장 12절) 너희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 이것은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한 것이다. 너희는 엿새 동안 모든 일을 힘써 하여라.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희 하나님의 안식일이 니, 너희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너나, 너의 아들이나 딸이나, 너희의 남종이나 여 종뿐만 아니라, 너희의 소나 나귀나, 그 밖에 모든 집짐승이나, 너희의 집안에 머무르는 식객이라도,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너희의 남 종이나 여종도 너와 똑같이 쉬게 하여야 한 다. 너희는 기억하여라. 너희가 이집트 땅에 서 종살이를 하고 있을 때에, 주 너희의 하 나님이 강한 손과 편 팔로 너희를 거기에서 이끌어 내었으므로,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 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한다. (신명기 5 장 12절~16절)

87 참 고 자 료

88

89 참고자료 83 Universal Islamic Declaration of Human Rights Contents 21 Dhul Qaidah September 1981 Foreword Preamble Ⅰ Right to Life Ⅱ Right to Freedom Ⅲ Right to Equality and Prohibition Against Impermissible Discrimination Ⅳ Right to Justice Ⅴ Right to Fair Trial Ⅵ Right to Protection Against Abuse of Power Ⅶ Right to Protection Against Torture Ⅷ Right to Protection of Honour and Reputation Ⅸ Right to Asylum Ⅹ Rights of Minorities Ⅺ Right and Obligation to Participate in the Conduct and Management of Public Affairs Ⅻ Right to Freedom of Belief, Thought and Speech ⅩⅢ Right to Freedom of Religion ⅩⅣ Right to Free Association ⅩⅤ The Economic Order and the Rights Evolving Therefrom ⅩⅥ Right to Protection of Property ⅩⅦ Status and Dignity of Workers ⅩⅧ Right to Social Security ⅩⅨ Right to Found a Family and Related Matters ⅩⅩ Rights of Married Women ⅩⅩⅠ Right to Education ⅩⅩⅡ Right of Privacy ⅩⅩⅢ Right to Freedom of Movement and Residence Explanatory Notes Glossary of Arabic Terms References

90 84 제11차 인권교육포럼 This is a declaration for mankind, a guidance and instruction to those who fear God.(Al Qur'an, Al-Imran 3:138) Foreword Islam gave to mankind an ideal code of human rights fourteen centuries ago. These rights aim at conferring honour and dignity on mankind and eliminating exploitation, oppression and injustice. Human rights in Islam are firmly rooted in the belief that God, and God alone, is the Law Giver and the Source of all human rights. Due to their Divine origin, no ruler, government, assembly or authority can curtail or violate in any way the human rights conferred by God, nor can they be surrendered. Human rights in Islam are an integral part of the overall Islamic order and it is obligatory on all Muslim governments andorgans of society to implement them in letter and in spirit within the framework of that order. It is unfortunate that human rights are being trampled upon with impunity in many countries of the world, including some Muslim countries. Such violations are a matter of serious concern and are arousing the conscience of more and more people throughout the world. I sincerely hope that this Declaration of Human Rights will give a powerful impetus to the Muslim peoples to stand firm and defend resolutely and courageously the rights conferred on them by God. This Declaration of Human Rights is the second fundamental document proclaimed by the Islamic Council to mark the beginning of the 15th Century of the Islamic era, the first being the Universal Islamic Declarationannounced at the International Conference on The Prophet Muhammad (peace and blessings be upon him) and his Message, held in London from 12 to 15 April 1980.

91 참고자료 85 The Universal Islamic Declaration of Human Rights is based on the Qur'an and the Sunnah and has been compiled by eminent Muslim scholars, jurists and representatives of Islamic movements and thought. May God reward them all for their efforts and guide us along the right path. Paris 21 Dhul Qaidah 1401 Salem Azzam19th September 1981 Secretary General O men! Behold, We have created you all out of a male and a female, and have made you into nations and tribes, so that you might come to know one another. Verily, the noblest of you in the sight of God is the one who is most deeply conscious of Him. Behold, God is all-knowing, all aware.(al Qur'an, Al-Hujurat 49:13) Preamble WHEREAS the age-old human aspiration for a just world order wherein people could live, develop and prosper in an environment free from fear, oppression, exploitation and deprivation, remains largely unfulfilled; WHEREAS the Divine Mercy unto mankind reflected in its having been endowed with super-abundant economic sustenance is being wasted, or unfairly or unjustly withheld from the inhabitants of the earth; WHEREAS Allah (God) has given mankind through His revelations in the Holy Qur'an and the Sunnah of His Blessed Prophet Muhammad an abiding legal and moral framework within which to establish and regulate human institutions and relationships; WHEREAS the human rights decreed by the Divine Law aim at conferring dignity and honour on mankind and are designed to eliminate oppression and injustice;

92 86 제11차 인권교육포럼 WHEREAS by virtue of their Divine source and sanction these rights can neither be curtailed, abrogated or disregarded by authorities, assemblies or other institutions, nor can they be surrendered or alienated; Therefore we, as Muslims, who believe a) in God, the Beneficent and Merciful, the Creator, the Sustainer, the Sovereign, the sole Guide of mankind and the Source of all Law; b) in the Vicegerency (Khilafah) of man who has been created to fulfill the Will of God on earth; c) in the wisdom of Divine guidance brought by the Prophets, whose mission found its culmination in the final Divine message that was conveyed by the Prophet Muhammad (Peace be upon him) to all mankind; d) that rationality by itself without the light of revelation from God can neither be a sure guide in the affairs of mankind nor provide spiritual nourishment to the human soul, and, knowing that the teachings of Islam represent the quintessence of Divine guidance in its final and perfect form, feel duty-bound to remind man of the high status and dignity bestowed on him by God; e) in inviting all mankind to the message of Islam; f) that by the terms of our primevalcovenant with God our duties and obligations have priority over our rights, and that each one of us is under a bounden duty to spread the teachings of Islam by word, deed, and indeed in all gentle ways, and to make them effective not only in our individual lives but also in the society around us; g) in our obligation to establish an Islamic order: i) wherein all human beings shall be equal and none shall enjoy a privilege or suffer a disadvantage or discrimination by reason of race, colour, sex, origin or language; ii) wherein all human beings are born free;

93 참고자료 87 iii) wherein slavery and forced labour are abhorred; iv) wherein conditions shall be established such that the institution of family shall be preserved, protected and honoured as the basis of all social life; v) wherein the rulers and the ruled alike are subject to, and equal before, the Law; vi) wherein obedience shall be rendered only to those commands that are in consonance with the Law; vii) wherein all worldly power shall be considered as a sacredtrust, to be exercised within the limits prescribed by the Law and in a manner approved by it, and with due regard for the priorities fixed by it; viii) wherein all economic resources shall be treated as Divine blessings bestowed upon mankind, to be enjoyed by all in accordance with the rules and the values set out in the Qur'an and the Sunnah; ix) wherein all public affairs shall be determined and conducted, and the authority to administer them shall be exercised after mutual consultation (Shura) between the believers qualified to contribute to a decision which would accord well with the Law and the public good; x) wherein everyone shall undertake obligations proportionate to his capacity and shall be held responsible pro rata for his deeds; xi) wherein everyone shall, in case of an infringement of his rights, be assured of appropriate remedial measures in accordance with the Law; xii) wherein no one shall be deprived of the rights assured to him by the Law except by its authority and to the extent permitted by it; xiii) wherein every individual shall have the right to bring legal action against anyone who commits a crime against society as a whole or against any of its members; xiv) wherein every effort shall be made to (a) secure unto mankind deliverance from every type of exploitation, injustice and oppression, (b) ensure to everyone security, dignity and liberty in terms set out and by

94 88 제11차 인권교육포럼 methods approved and within the limits set by the Law; Do hereby, as servants of Allah and as members of the Universal Brotherhood of Islam, at the beginning of the Fifteenth Century of the Islamic Era, affirm our commitment to uphold the following inviolable and inalienable human rights that we consider are enjoined by Islam. I Right to Life a) Human life is sacred and inviolable and every effort shall be made to protect it. In particular no one shall be exposed to injury or death, except under the authority of the Law. b) Just as in life, so also after death, the sanctity of a person's body shall be inviolable. It is the obligation of believers to see that a deceased person's body is handled with due solemnity. II Right to Freedom a) Man is born free. No inroads shall be made on his right to liberty except under the authority and in due process of the Law. b) Every individual and every people has the inalienable right to freedom in all its forms¾ physical, cultural, economic and political and shall be entitled to struggle by all available means against any infringement or abrogation of this right; and every oppressed individual or people has a legitimate claim to the support of other individuals and/or peoples in such a struggle. III Right to Equality and Prohibition Against Impermissible Discrimination a) All persons are equal before the Law and are entitled to equal opportunities and protection of the Law. b) All persons shall be entitled to equal wage for equal work. c) No person shall be denied the opportunity to work or be discriminated against in any manner or exposed to greater physical risk by reason of religious belief, colour, race, origin, sex or language.

95 참고자료 89 IV Right to Justice a) Every person has the right to be treated in accordance with the Law, and only in accordance with the Law. b) Every person has not only the right but also the obligation to protestagainst injustice; to recourse to remedies provided by the Law in respect of any unwarranted personal injury or loss; to self-defence against any charges that are preferred against him and to obtain fair adjudication before an independent judicial tribunal in any dispute with public authorities or any other person. c) It is the right and duty of every person to defend the rights of any other person and the community in general (Hisbah). d) No person shall be discriminated against while seeking to defend private and public rights. e) It is the right and duty of every Muslim to refuse to obey any command which is contrary to the Law, no matter by whom it may be issued. V Right to Fair Trial a) No person shall be adjudged guilty of an offence and made liable to punishment except after proof of his guilt before an independent judicial tribunal. b) No person shall be adjudged guilty except after a fair trial and after reasonable opportunity for defence has been provided to him. c) Punishment shall be awarded in accordance with the Law, in proportion to the seriousness of the offence and with due consideration of the circumstances under which it was committed. d) No act shall be considered a crime unless it is stipulated as such in the clear wording of the Law. e) Every individual is responsible for his actions. Responsibility for a crime cannot be vicariously extended to other members of his family or group, who are not otherwise directly or indirectly involved in the commission of the crime in question.

96 90 제11차 인권교육포럼 VI Right to Protection Against Abuse of Power Every person has the right to protection against harassment by official agencies. He is not liable to account for himself except for making a defence to the charges made against him or where he is found in a situation wherein a question regarding suspicion of his involvement in a crime could be reasonably raised VII Right to Protection Against Torture No person shall be subjected to torture in mind or body, or degraded, or threatened with injury either to himself or to anyone related to or held dear by him, or forcibly made to confess to the commission of a crime, or forced to consent to an act which is injurious to his interests. VIII Right to Protection of Honour and Reputation Every person has the right to protect his honour and reputation against calumnies, groundless charges or deliberate attempts at defamation and blackmail. IX Right to Asylum a) Every persecuted or oppressed person has the right to seek refuge and asylum. This right is guaranteed to every human being irrespective of race, religion, colour and sex. b) Al Masjid Al Haram (the sacred house of Allah) in Mecca is a sanctuary for all Muslims. X Rights of Minorities a) The Qur'anic principle "There is no compulsion in religion" shall govern the religious rights of non-muslim minorities. b) In a Muslim country religious minorities shall have the choice to be governed in respect of their civil and personal matters by Islamic Law, or by their own laws.

97 참고자료 91 XI Right and Obligation to Participate in the Conduct and Management of Public Affairs a) Subject to the Law, every individual in the community (Ummah) is entitled to assume public office. b) Process of free consultation (Shura) is the basis of the administrative relationship between the government and the people. People also have the right to choose and remove their rulers in accordance with this principle. XII Right to Freedom of Belief, Thought and Speech a) Every person has the right to express his thoughts and beliefs so long as he remains within the limits prescribed by the Law. No one, however, is entitled to disseminate falsehood or to circulate reports which may outrage public decency, or to indulge in slander, innuendo or to cast defamatory aspersions on other persons. b) Pursuit of knowledge and search after truth is not only a right but a duty of every Muslim. c) It is the right and duty of every Muslim to protest and strive (within the limits set out by the Law) against oppression even if it involves challenging the highest authority in the state. d) There shall be no bar on the dissemination of information provided it does not endanger the security of the society or the state and is confined within the limits imposed by the Law. e) No one shall hold in contempt or ridicule the religious beliefs of others or incite public hostility against them; respect for the religious feelings of others is obligatory on all Muslims. XIII Right to Freedom of Religion Every person has the right to freedom of conscience and worship in accordance with his religious beliefs. XIV Right to Free Association a) Every person is entitled to participate individually and collectively in the

98 92 제11차 인권교육포럼 religious, social, cultural and political life of his community and to establish institutions and agencies meant to enjoin what is right (ma'roof) and to prevent what is wrong (munkar). b) Every person is entitled to strive for the establishment of institutions whereunder an enjoyment of these rights would be made possible. Collectively, the community is obliged to establish conditions so as to allow its members full development of their personalities. XV The Economic Order and the Rights Evolving Therefrom a) In their economic pursuits, all persons are entitled to the full benefits of nature and all its resources. These are blessings bestowed by God for the benefit of mankind as a whole. b) All human beings are entitled to earn their living according to the Law. c) Every person is entitled to own property individually or in association with others. State ownership of certain economic resources in the public interest is legitimate. d) The poor have the right to a prescribed share in the wealth of the rich, as fixed by Zakah, levied and collected in accordance with the Law. e) All means of production shall be utilised in the interest of the community (Ummah) as a whole, and may not be neglected or misused. f) In order to promote the development of a balanced economy and to protect society from exploitation, Islamic Law forbids monopolies, unreasonable restrictive trade practices, usury, the use of coercion in the making of contracts and the publication of misleading advertisements. g) All economic activities are permitted provided they are not detrimental to the interests of the community(ummah) and do not violate Islamic laws and values. XVI Right to Protection of Property No property may be expropriated except in the public interest and on payment of fair and adequate compensation.

99 참고자료 93 XVII Status and Dignity of Workers Islam honours work and the worker and enjoins Muslims notonly to treat the worker justly but also generously. He is not only to be paid his earned wages promptly, but is also entitled to adequate rest and leisure. XVIII Right to Social Security Every person has the right to food, shelter, clothing, education and medical care consistent with the resources of the community. This obligation of the community extends in particular to all individuals who cannot take care of themselves due to some temporary or permanent disability. XIX Right to Found a Family and Related Matters a) Every person is entitled to marry, to found a family and to bring up children in conformity with his religion, traditions and culture. Every spouse is entitled to such rights and privileges and carries such obligations as are stipulated by the Law. b) Each of the partners in a marriage is entitled to respect and consideration from the other. c) Every husband is obligated to maintain his wife and children according to his means. d) Every child has the right to be maintained and properly brought up by its parents, it being forbidden that children are made to work at an early age or that any burden is put on them which would arrest or harm their natural development. e) If parents are for some reason unable to discharge their obligations towards a child it becomes the responsibility of the community to fulfill these obligations at public expense. f) Every person is entitled to material support, as well as care and protection, from his family during his childhood, old age or incapacity. Parents areentitled to material support as well as care and protection from their children.

100 94 제11차 인권교육포럼 g) Motherhood is entitled to special respect, care and assistance on the part of the family and the public organs of the community (Ummah). h) Within the family, men and women are to share in their obligations and responsibilities according to their sex, their natural endowments, talents and inclinations, bearing in mind their common responsibilities toward their progeny and their relatives. i) No person may be married against his or her will, or lose or suffer dimunition of legal personality on account of marriage. XX Rights of Married Women Every married woman is entitled to: a) live in the house in which her husband lives; b) receive the means necessary for maintaining a standard of living which is not inferior to that of her spouse, and, in the event of divorce, receive during the statutory period of waiting (iddah) means of maintenance commensurate with her husband's resources, for herself as well as for the children she nurses or keeps, irrespective of her own financial status, earnings, or property that she may hold in her own rights; c) seek and obtain dissolution of marriage (Khul'a)in accordance with the terms of the Law. This right is in addition to her right to seek divorce through the courts. d) inherit from her husband, her parents, her children and other relatives according to the Law; e) strict confidentiality from her spouse, or ex-spouse if divorced, with regard to any information that he may have obtained about her, the disclosure of which could prove detrimental to her interests. A similar responsibility rests upon her in respect of her spouse or ex-spouse. XXI Right to Education a) Every person is entitled to receive education in accordance with his natural capabilities.

101 참고자료 95 b) Every person is entitled to a free choice of profession and career and to the opportunity for the full development of his natural endowments. XXII Right of Privacy Every person is entitled to the protection of his privacy. XXIII Right to Freedom of Movement and Residence a) In view of the fact that the World of Islam is veritably Ummah Islamia, every Muslim shall have the right to freely move in and out of any Muslim country. b) No one shall be forced to leave the country of his residence, or be arbitrarily deported therefrom without recourse to due process of Law. Explanatory Notes 1 In the above formulation of Human Rights, unless the context provides otherwise: a) the term 'person' refers to both the male and female sexes. b) the term 'Law' denotes the Shari'ah, i.e. the totality of ordinances derived from the Qur'an and the Sunnah and any other laws that are deduced from these two sources by methods considered valid in Islamic jurisprudence. 2 Each one of the Human Rights enunciated in this declaration carries a corresponding duty. 3 In the exercise and enjoyment of the rights referred to above every person shall be subject only to such limitations as are enjoined by the Law for the purpose of securing the due recognition of, and respect for, the rights and the freedom of others and of meeting the just requirements of morality, public order and the general welfare of the Community (Ummah). The Arabic text of this Declaration is the original.

102 96 제11차 인권교육포럼 Glossary of Arabic Terms SUNNAH - The example or way of life of the Prophet (peace be upon him), embracing what he said, did or agreed to. KHALIFAH - The vicegerency of man on earth or succession to the Prophet, transliterated into English as the Caliphate. HISBAH- Public vigilance, an institution of the Islamic State enjoined to observe and facilitate the fulfillment of right norms of public behaviour. The "Hisbah" consists in public vigilance as well as an opportunity to private individuals to seek redress through it. MA'ROOF - Good act. MUNKAR - Reprehensible deed. ZAKAH - The 'purifying' tax on wealth, one of the five pillars of Islam obligatory on Muslims. 'IDDAH - The waiting period of a widowed or divorced woman during which she is not to re-marry. KHUL'A - Divorce a woman obtains at her own request. UMMAH ISLAMIA - World Muslim community. SHARI'AH - Islamic law. References Note: The Roman numerals refer to the topics in the text. The Arabic numerals refer to the Chapter and the Verse of the Qur'an, i.e. 5:32 means Chapter 5, Verse 32.

103 참고자료 97 I. 1 Qur'an Al-Maidah 5:32 2 Hadith narrated by Muslim, Abu Daud,Tirmidhi, Nasai 3 Hadith narrated by Bukhari II. 4 Hadith narrated by Bukhari, Muslim 5 Sayings of Caliph Umar 6 Qur'an As-Shura 42:41 7 Qur'an Al-Hajj 22:41 III. 8 From the Prophet's address 9 Hadith narrated by Bukhari, Muslim, Abu Daud, Tirmidhi, Nasai 10 From the address of Caliph Abu Bakr 11 From the Prophet's farewell address 12 Qur'an Al-Ahqaf 46:19 13 Hadith narrated by Ahmad 14 Qur'an Al-Mulk 67:15 15 Qur'an Al-Zalzalah 99:7-8 IV. 16 Qur'an An-Nisa 4:59 17 Qur 'an Al-Maidah 5:49 18 Qur'an An-Nisa 4: Hadith narrated by Bukhari, Muslim, Tirmidhi 20 Hadith narrated by Bukhari, Muslim 2l Hadith narrated by Muslim, Abu Daud, Tirmdhi, Nasai 22 Hadith narrated by Bukhari, Muslim, Abu Daud, Tirmidhi, Nasai 23 Hadith narrated by Abu Daud, Tirmidhi 24 Hadith narrated by Bukhari, Muslim, Abu Daud, Tirmidhi, Nasai 25 Hadith narrated by Bukhari V. 26 Hadith narrated by Bukhari, Muslim 27 Qur'an Al-Isra 17:15 28 Qur'an Al-Ahzab 33:5 29 Qur'an Al-Hujurat 49:6 30 Qur'an An-Najm 53:28 31 Qur'an Al Baqarah 2: Hadith narrated by Al Baihaki, Hakim

104 98 제11차 인권교육포럼 33 Qur'an Al-Isra 17:15 34 Qur'an At-Tur 52:21 35 Qur'an Yusuf 12:79 VI. 36Qur'an Al Ahzab 33:58 VII. 37Hadith narrated by Bukhari, Muslim, Abu Daud, Tirmidhi, Nasai 38.Hadith narrated by Ibn Majah VIII. 39 From the Prophet's farewell address 40 Qur'an Al-Hujurat 49:12 41 Qur'an Al-Hujurat 49:11 IX. 42 Qur'an At-Tawba 9:6 43 Qur'an Al-Imran 3:97 44 Qur'an Al-Baqarah 2: Qur'an Al-Hajj 22:25 X. 46 Qur'an Al Baqarah 2: Qur'an Al-Maidah 5:42 48 Qur'an Al-Maidah 5:43 49 Qur'an Al-Maidah 5:47 XI. 50 Qur'an As-Shura 42:38 51 Hadith narated by Ahmad 52 From the address of Caliph Abu Bakr XII 53 Qur'an Al-Ahzab 33: Qur'an Saba 34:46 55 Hadith narrated by Tirmidhi, Nasai 56 Qur'an An-Nisa 4:83 57 Qur'an Al-Anam 6:108 XIII 58 Qur'an Al Kafirun 109:6 XIV 59 Qur'an Yusuf 12: Qur'an Al-Imran 3: Qur'an Al-Maidah 5:2 62 Hadith narrated by Abu Daud, Tirmidhi,Nasai, Ibn Majah XV. 63 Qur'an Al-Maidah 5: Qur'an Al-Jathiyah 45:13

105 참고자료 Qur'an Ash-Shuara 26: Qur'an Al-Isra 17:20 67 Qur'an Hud 11:6 68 Qur'an Al-Mulk 67:15 69 Qur'an An-Najm 53:48 70 Qur'an Al-Hashr 59:9 71 Qur'an Al-Maarij 70: Sayings of Caliph Abu Bakr 73 Hadith narrated by Bukhari, Muslim 74 Hadith narrated by Muslim 75 Hadith narrated by Muslim, Abu Daud,Tirmidhi, Nasai 76 Hadith narrated by Bukhari, Muslim, Abu Daud, Tirmidhi, Nasai 77 Qur'an Al-Mutaffifin 83: Hadith narrated by Muslim 79 Qur'an Al-Baqarah 2: Hadith narrated by Bukhari, Muslim,Abu Daud, Tirmidhi, Nasai XVI. 81 Qur'an Al Baqarah 2: Hadith narrated by Bukhari 83 Hadith narrated by Muslim 84 Hadith narrated by Muslim, Tirmidhi XVII. 85 Qur'an At-Tawbah 9: Hadith narrated by Abu Yala¾ Majma Al Zawaid 87 Hadith narrated by Ibn Majah 88 Qur'an Al-Ahqaf 46:19 89 Qur'an At-Tawbah 9: Hadith narrated by Tabarani¾ Majma Al Zawaid 91 Hadith narrated by Bukhari XVIII. 92 Qur'an Al-Ahzab 33:6 XIX. 93 Qur'an An-Nisa 4:1 94 Qur'an Al-Baqarah 2: Hadith narrated by Bukhari, Muslim,Abu Daud, Tirmidhi, Nasai 96 Qur'an Ar-Rum 30:21

106 100 제11차 인권교육포럼 97 Qur'an At-Talaq 65:7 98 Qur'an Al-Isra 17:24 99 Hadith narrated by Bukhari, Muslim,Abu Daud, Tirmidhi 100 Hadith narrated by Abu Daud 101 Hadith narrated by Bukhari, Muslim 102 Hadith narrated by Abu Daud, Tirmidhi 103 Hadith narrated by Ahmad, Abu Daud XX. 104 Qur'an At-Talaq 65:6 105 Qur'an An-Nisa 4: Qur'an At-Talaq 65:6 107 Qur'an AtTalaq 65:6 108 Qur'an Al-Baqarah 2: Qur'an An-Nisa 4: Qur'an Al-Baqarah 2:237 XXI. 111 Qur'an Al-Isra 17: Hadith narrated by Ibn Majah 113 Qur'an Al-Imran 3: From the Prophet's farewell address 115 Hadith narrated by Bukhari, Muslim 116 Hadith narrated by Bukhari, Muslim,Abu Daud, Tirmidhi XXII. 117 Hadith narrated by Muslim 118 Qur'an Al-Hujurat 49: Hadith narrated by Abu Daud, Tirmidhi XXIII. 120 Qur'an Al-Mulk 67: Qur'an Al-Anam 6: Qur'an An-Nisa 4: Qur'an Al-Baqarah 2: Qur'an Al-Hashr 59:9 Published by: Islamic Council, 16 Grosvenor Crescent, London SW1Telephone: Telex: ISLAMI GCables: ISLAMIAH London, SWI

107 참고자료 101 Cairo Declaration on Human Rights in Islam The Member States of the Organization of the Islamic Conference, Reaffirming the civilizing and historical role of the Islamic Ummah which God made the best nation that has given mankind a universal and well-balanced civilization in which harmony is established between this life and the hereafter and knowledge is combined with spiritual faith; and the role that this Ummah should play to guide a humanity confused by competing trends and ideologies and to provide solutions to the chronic problems of this materialistic civilization. Wishing to contribute to the efforts of mankind to assert human rights, to protect man from exploitation and persecution, and to affirm his freedom and right to a dignified life in accordance with the Islamic Shari'ah. Convinced that mankind which has reached an advanced stage in materialistic science is still, and shall remain, in dire need of faith to support its civilization and of a self motivating force to guard its rights. Believing that fundamental rights and universal freedoms in Islam are an integral part of the Islamic religion and that no one as a matter of principle has the right to suspend them in whole or in part or violate or ignore them in as much as they are binding divine commandments, which are contained in the Revealed Books of God and were sent through the last of His Prophets to complete the preceding divine messages thereby making their observance and act of worship and their neglect or violation an abominable sin, and accordingly every person is individually responsible -and the Ummah collectively responsible- for their safeguard.

108 102 제11차 인권교육포럼 Proceeding from the above-mentioned principles, Declare the following : ARTICLE 1 : a) All human beings form one family whose membersare united by submission to God and descent from Adam. All men are equal in terms of basic human dignity and basic obligations and responsibilities, without any discrimination on the grounds of race, colour, language, sex, religious belief, political affiliation, social status or other conside-rations. True faith is the guarantee for enhancing such dignity along the path to human perfection. b) All human beings are God's subjects, and the most loved by Him are those who are most useful to the rest of His subjects, and no one has superiority over another except on the basis of piety and good deeds. ARTICLE 2 : a) Life is a God-given gift and the right to life is guaranteed to every human being. It is the duty of individuals, societies and states to protect this right from any violation, and it is prohibited to take away life except for a Shari'ah prescribed reason. b) It is forbidden to resort to such means as may result in the genocidal annihilation of mankind. c) The preservation of human life throughout the term of time willed by God is a duty prescribed by Shari'ah. d) Safety from bodily harm is a guaranteed right. It is the duty of the State to safeguard it, and it is prohibited to breach it without a Shari'ah prescribed reason. ARTICLE 3 : a) In the event of the use of force and in case of armed conflict, it is not permissible to kill non-belligerents such as old men, women and children.

109 참고자료 103 The wounded and the sick shall have the right to medical treatment; and prisoners of war shall have the right to be fed, sheltered and clothed. It is prohibited to mutilate dead bodies. It is a duty to exchange prisoners of war and to arrange visits or reunions of the families separated by the circumstances of war. b) It is prohibited to fell trees, to damage crops or livestock, and to destroy the enemy's civilian buildings and instal-lations by shelling, blasting or any other means. ARTICLE 4 : Every human being is entitled to the inviolability and the protection of his good name and honour during his life and after his death. The State and Society shall protect his remains and burial place. ARTICLE 5 : a) The family is the foundation of society, and marriage is the basis of its formation. Men and women have the right to marriage, and no restrictions stemming from race, colour or nationality shall prevent them from enjoying this right. b) Society and the State shall remove all obstacles to marriage and shall facilitate marital procedure. They shall ensure family protection and welfare. ARTICLE 6 : a) Woman isequal to man in human dignity, and has rights to enjoy as well as duties to perform; she has her own civil entity and financial independence, and the right to retain her name and lineage. b) The husband is responsible for the support and welfare of the family. ARTICLE 7 : a) As of the moment of birth, every child has rights due from the parents, Society and the State to be accorded proper nursing, education and material, hygienic and moral care. Both the fetus and the mother must be

110 104 제11차 인권교육포럼 protected and accorded special care. b) Parents and those in such like capacity have the right to choose the type of education they desire for their children, provided they take into consideration the interest and future of the children in accordance with ethical values and the principles of the Shari'ah. c) Both parents are entitled to certain rights from their children, and relatives are entitled to rights from their kin, in accordance with the tenets of the Shari'ah. ARTICLE 8 : Every human being has the right to enjoy his legal capacity in terms of both obligation and commitment, should this capacity be lost or impaired, he shall be represented by his guardian. ARTICLE 9 : a) The question for knowledge is an obligation and the provision of education is a duty for Society and the State. The State shall ensure the availability of ways and means to acquire education and shall guarantee educational diver-sity in the interest of Society so as to enable man to be acquainted with the religion of Islam and the facts of the Universe for the benefit of mankind. b) Every human being has the right to receive both religious and worldly education from the various institutions of, education and guidance, including the family, the school, the university, the media, etc., and in such and integrated and balanced manner as to develop his personality, stren-gthen his faith in God and promote his respect for and defence of both rights and obligations. ARTICLE 10 : Islam is the religion of unspoiled nature. It is prohibited to exercise anyform of compulsion on man or to exploit his poverty or ignorance in order to convert him to another religion or to atheism.

111 참고자료 105 ARTICLE 11 : a) Human beings are born free, and no one has the right to enslave, humiliate, oppress or exploit them, and there can be no subjugation but to God the Most-High. b) Colonialism of all types being one of the most evil forms of enslavement is totally prohibited. Peoples suffering from colonialism have the full right to freedom and self-determination. It is the duty of all states and peoples to support the struggle of colonized peoples from the liqui-dation of all forms of colonialism and occupation, and all states and peoples have the right to preserve their independent identity and exercise control over their wealth and natural resources. ARTICLE 12 : Every man shall have the right, within the framework of Shari'ah, to free movement and to select his place of residence whether inside or outside his country and if persecuted, is entitled to seek asylum in another country. The country of refuge shall ensure his protection until he reaches safety, unless asylum is motivated by an act which Shari'ah regards as a crime. ARTICLE 13 : Work is a right guaranteed by the State and Society for each person able to work. Everyone shall be free to choose the work that suits him best and which serves his interests and those of Society. The employee shall have the right to safety and security as well as to all other social guarantees. He may neither be assigned work beyond his capacitynor be subjected to compulsion or exploited or harmed in any way. He shall be entitled without any discrimination between males and females - to fair wages for his work without delay, as well as to the holidays allowances and promotions which he deserves.for his part, he shall be required to be dedicated and meticulous in his work. Should workers and employers disagree on any matter, the State shall intervene to settle the dispute and have the grievances redressed, the rights confirmed and justice enforced without bias.

112 106 제11차 인권교육포럼 ARTICLE 14 : Everyone shall have the right to legitimate gains without monopolization, deceit or harm to oneself or to others. Usury (riba) is absolutely prohibited. ARTICLE 15 : a) Everyone shall have the right to own property acquiredin a legitimate way, and shall be entitled to the rights of ownership, without prejudice to oneself, others or to society in general. Expropriation is not permissible except for the requirements of public interest and upon payment of immediate and fair compensation. b) Confiscation and seizure of property is prohibited except for a necessity dictated by law. ARTICLE 16 : Everyone shall have the right to enjoy the fruits of his scientific, literary, artistic or technical production and the right to protect the moral and material interest stemming therefrom, provided that such production is not contrary to the principles of Shari'ah. ARTICLE 17 : a) Everyone shall have the right to live in a clean environment, away from vice and moral corruption, an environment that would foster his self-development and it is incumbent upon the State and Society in general to afford that right. b) Everyone shall have the right to medical and social care, and to all public amenities provided by Society and the State within the limits of their available resources. c) The State shall ensure the right of the individual to a decent living which will enable him to meet all his requirements and those of his dependents, including food, clothing, housing, education, medical care and all other basic needs.

113 참고자료 107 ARTICLE 18 : a) Everyone shall have the right to live in security for himself, his religion, his dependents, his honour and his property. b) Everyone shall have the right to privacy in the conduct of his private affairs, in his home, among his family, with regard to his property and his relationships. It is not permitted to spy on him, to place him under surveillance or to besmirch his good name. The State shall protect him from arbitrary interference. c) A private residence is inviolable in all cases. It will not be entered without permission from its inhabitants or in any unlawful manner, nor shall it be demolished or confiscated and its dwellers evicted. ARTICLE 19 : a) All individuals are equal before the law, without distinction between ruler and ruled. b) The right to resort to justice is guaranteed to everyone. c) Liability is in essence personal. d) There shall be no crime or punishment except as provided for in the Shari'ah. e) A defendant is innocent until his guilt is proven in a fair trial in which he shall be given all the guarantees of defence. ARTICLE 20 : It is not permitted without legitimate reason to arrest an individual, restrict his freedom, to exile or to punish him. It is not permitted to subject him to physical or psychological torture or to any form of humiliation, cruelty or indignity. Nor is it permitted to subject an individual to medical or scientific experimentation without his consent or at the risk of his health or of his life. Nor is it permitted to promulgate emergency laws that would provide executive authority for such actions.

114 108 제11차 인권교육포럼 ARTICLE 21 : Taking hostages under any form or for any purpose is expressly forbidden. ARTICLE 22 : a) Everyone shall have the right to express his opinion freely in such manner as would not be contrary to the principles of the Shari'ah. b) Everyone shall have the right to advocate what is right, and propagate what is good, and warn against what is wrong and evil according to the norms of Islamic Shari'ah. c) Information is a vital necessity to Society. It may not be exploited or misused in such a way as may violate sanctities and the dignity of Prophets, undermine moral and ethical values or disintegrate, corrupt or harm Society or weaken its faith. d) It is not permitted to arouse nationalistic or doctrinal hatred or to do anything that may be an incitement to any form of racial discrimination. ARTICLE 23 : a) Authority is a trust; and abuse or malicious exploitation thereof is absolutely prohibited, so that fundamental human rights may be guaranteed. b) Everyone shall have the right to participate directly or indirectly in the administration of his country's public affairs. He shall also have the right to assume public office in accordance with the provisions of Shari'ah. ARTICLE 24 : All the rights and freedoms stipulated in this Declaration are subject to the Islamic Shari'ah. ARTICLE 25 : The Islamic Shari'ah is the only source of reference for the explanation or clarification of any of the articles of this Declaration.

115 참고자료 109 김 영 경 (고려대학교 교양학부)

116 110 제11차 인권교육포럼

117 참고자료 111

118 112 제11차 인권교육포럼

119 참고자료 113

120 114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이슬람 인권사상과 카이로인권선언 - 그 신학적, 역사적 배경과 쟁점 - 김영경* 1. 서론 1) 1948년 12월 10일 파리 국제연합 총회에서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될 당시 이에 반대한 국가는 없었다. 그러나 총회에 참석한 56개국 대표 중 8개국 대표는 기권 을 했다. 기권자 명단 속에는 이슬람 국가로는 유일하게 사우디아라비아가 포함되 어 있었다. 1) 그로부터 42년이 지난 1990년 이슬람회의기구(OIC)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주축이 되어 이슬람인권선언을 채택했다. 이른바 카이로(인권)선언 이 그것이다. 2) 이슬람 회의기구가 국제사회에서 지니고 있는 위상 3), 전 세계 인구의 5분의 1 정도가 이 슬람 세계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 그 중에도 젊은이의 구성비율이 눈에 띠게 높 다는 인구학적 특징 4), 그리고 지난 해 9 11 테러를 통해 표출된 이슬람주의의 역 * 고려대학교 교양학부. 이 글은 보편윤리와 전통문화 를 주제로 2002년 11월 경상대학교에서 개최된 제15회 한국철학자대회에서 발표된 원고로 새한철학회 논문집 철학논총 제32집 2003 제2권 쪽에 실려 있다. 1)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엮음. 인권이란 무엇인가 - 유네스코와 세계인권선언의 발전과 역사 쪽. 2) Sulieman Abdul Rahman Al Hageel, Human Rights in Islam and Refutation of the Misconceived Allegations Associated with these Rights, 1999, pp. 48f. 이 책은 카이로인권선언에 대한 대내외적인 비 판에 반론을 제기한 책이다. 내용의 중복과 편집상의 오류가 적잖긴 하나, 저자가 사우디아라비아 Imam Muhammad bin Saud Islamic 국립대학의 교수이고, 서문을 쓴 Dr. Abdulla bin Abdul Mohsin al Turki가 Islamic Affairs, Wakfs, Call and Guidances의 장관이며, Prince Sultan ibn Abdul-Aziz Al-Saud의 후원을 받은 저작이라는 점에서 인권문제에 대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입장을 보다 구체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자료이 다; 이보다 앞선 1981년 영국에 본부를 둔 유럽이슬람협의회(Islamic Council of Europe)가 유사한 내용의 이슬람인권선언(Universal Islamic Declaration of Human Rights)을 채택한 적이 있다. 이 선언의 뒤에는 사 우디아라비아, 이집트, 파키스탄 정부가 있었다. (Mahmood Monshipouri, Islamism, Secularism, and Human Rights in the Middle East, 1998, p. 99, fn. 83) 3) 이슬람회의기구는 회원국 사이의 유대를 증진시키고 경제, 사회, 문화, 과학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1971년 창설된 국제기구로서 2002년 현재 56개의 회원국을 거느리고 있다. 카이로인권선언이 채 택되던 1990년 회원국 수는 44개국이었다. 4) 새뮤얼 헌팅턴, 이희재 옮김. 문명의 충동 , 360쪽 참조; 그러나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은 논리 적인 결함도 결함이려니와, 실용적 차원에서도 미국의 패권을 위한 전략적 구상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세

121 참고자료 115 동성 등을 감안할 때, 이 인권선언은 소홀히 다루어서는 안 될 문건이다. 카이로 선언은 특히 세계인권선언과 상충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눈길을 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선언은 국제적으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먼저 카이로인권선언의 배경이 된 이슬람 인권사상의 신학적, 역사 적 배경을 정리한 후 카이로선언의 내용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세계인 권선언과 비교한 다음, 그 사이에 놓여있는 쟁점을 조명해 보고, 끝으로 앞에서 제기된 쟁점이 해결될 수 있는 길은 없는지, 그 길을 찾아 소개하고자 한다. 2. 이슬람 인권사상의 신학적, 역사적 배경 한 사회가 구성원의 어떤 권리를 어느 수준까지 인정하는지의 문제는 그 사회 를 지배하고 있는 세력의 이념에 달려있다. 이슬람 사회의 지배적 이념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이슬람이다. 지금으로부터 1400여 년 전, 지리적으로는 물론 문화적으 로도 황량하기 그지없던 땅, 아라비아 반도에서 태어나, 한 때는 세계사의 주역으 로 인류문명의 진화를 이끌었던 이슬람은 꾸란의 가르침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꾸란에 따르면, 이 세상은 지고한 존재, 하느님이 창조했다. 삼라만상을 창조하 고 대자연의 운행을 주관하는 절대자로서 그분은 전지전능하고 무궁무진한 존재이 며, 언젠가 있을 최후 심판의 날엔 자신의 보좌에 앉아 모든 인간을 (그 행실에 따라) 심판할 것이다. 5) 인류 탄생의 내역은 꾸란 속에 신화적인 언어로 기록되어 있다. 하느님이 인간 을 창조한 것은 그들을 지상에서의 자신의 칼리프 곧 대리자로 삼고자 함이었다. 하느님이 이 뜻을 천사들에게 전하자 그들은 이를 말리려 했다. 인간이 창조되면 피비린내 나는 분란( 紛 亂 )이나 일으킬 것이라는 게 천사들의 우려였다. 그러자 하 느님은 나는 너희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느니라 6) 라는 말로 그를 일축하고 최 계평화와 인류의 공존을 지향한다면 경계를 해야할 이론이다. 이에 대해서는 하랄트 뮐러의 반( 反 ) 헌팅턴 구상, 문명의 공존 을 보라. 5) 꾸란 21:30-33, 57:2-6, 56:51-74, 64:17-18, 6:103, 14:42-52; 하느님의 속성에 대해서는 김영경. 이슬람의 신관. 종교신학연구 제9집(1996) 쪽 참조. 6) 꾸란 2:30.

122 116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초의 인간, 아담을 창조했다. 이어 아담과 아담의 배우자가 왜 낙원에서 추방을 당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창세기의 그것과 대동소이하다. 7) 하느님의 명령을 어기고 금단의 열매를 따먹었다 는 것이다. 인권문제와 관련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교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슬람에서도 인류가 하느님의 피조물로서 모두 평등하고, 아담의 후예로서 한 겨 레라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꾸란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람들이여! 우리는 한 명의 남성과 한 명의 여성으로부터 너희들을 창조했고, 씨족과 부족을 이루도록 했나니, 이는 너희들이 서로 친히 사귀도록 하기 위함이니라. (그러니 자신의 혈통을 뽐내며 우쭐거리지 말라!) 하느님의 눈엔 가장 정의로운 사람이 가장 훌륭한 사람이니라. 8) 그리고 현대 인권사상의 핵심인 인간의 천부적인 존엄성에 대해 꾸란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는 아담의 자녀들을 명예롭게 했느니라. 9) 한편 꾸란은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가 낙원에서 추방당할 당시의 정황과 그 이후의 역사에 대해 성경에는 없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10) 성약( 聖 約 )에 관한 이야기가 그것이다. 즉 하느님은 지상으로 추방을 당하게 된 인간과 다음과 같은 약속을 주고받았다: 너희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내가 서책이나 지혜를 내려줄 것이다. 그리고 그 서책에 7) 꾸란 2:35-36, 7: ) 꾸란 49:13; 세상을 떠나기 몇 개월 전인 632년 무함마드는 성지순례 중 역사적인 연설을 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인권과 관련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여러분, 여러분의 신은 단 한 분이고, 여러분의 조상도 단 한 사람이니 여러분은 모두 (하느님께서) 진흙으로 빚어 만든 아담의 후손들입니다.... 아랍인은 비아랍인 보다 우월하지 않으며, 비아랍인도 아랍인보다 우월하지 않습니다. 황인도 흑인보다 우월하지 않으며, 흑인 또한 황인보다 우월하지 않습니다. 우열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신앙심에 달려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담 고 있는 무함마드의 고별의 연설 을 무슬림 학자들은 이슬람 인권사상의 효시로 삼고 있다; 손주영. 이슬 람과 인권. 한국이슬람학회논총 제7집(1997) 34쪽 참조. 9) 꾸란 17:70. 꾸란에서 인류 전체를 지칭할 때는 7:26, 27, 31, 36:60에서처럼 흔히 아담의 자녀들 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 10)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에도 하느님이 인간과 맺은 성약에 대한 기록이 다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창세 6:18, 17:4, 여호 24:25, 히브 6:8 등에서 보듯이 하느님이 개별 선지자, 그들의 추종자 혹은 특정민족과 맺 은 성약이다. 여기에서처럼 인류 전체를 대상으로 한 성약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123 참고자료 117 예언된 조건을 충족시키는 나의 심부름꾼 이 너희들 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러면 너희들은 그를 믿고 도와야 하느니라.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하겠느냐? 이 질문에 대해 인류를 대신 해서 하느님의 사자들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알겠나이다! 알았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약 속을 해라! 내가 너희들과 함께 증인이 되리라. 11) 이렇게 해서 하느님과 인류 사이에는 성스러운 약속, 미사크 가 맺어졌다. 당 시 하느님과 인류 사이에 맺어진 성약의 내용을 정리하면, 우선 하느님은 지상으 로 추방된 인류에게 서책이나 지혜, 그리고 그 속에 예언된 심부름꾼 을 보내 계속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단 구원은 자신이 보낸 사자를 믿고 돕는 사람들에게만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인류는 (비록 하느님의 사자들이 대신하기는 했지만) 그분이 보낸 사자가 출현하면 그를 믿고 도울 것이라고 약속 했다. 그렇지 않아 그릇된 길로 빠질 경우,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인간 자신에게 있다. 12) 이러한 가르침에 따르면, 인류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은 하느님의 사자가 출 현했을 때, 그를 믿고 돕는 것이다. 아담 이후 하느님은 수없이 많은 사자를 보냈 다. 그 중에는 인류사에 이름만 남긴 사자가 있는가 하면, 모세나 예수처럼 독자 적인 경전과 공동체를 남긴 사자도 있었다. 신학적으로 볼 때, 어떤 사자든 하느 님이 보낸 사자를 통해 그분에게 복종, 평화를 얻은 사람은 모두 무슬림 이고, 그 들을 그러한 길로 인도하는 종교는 모두 이슬람 이다. 13) 이는 원론적으로 말해,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면 무슨 종교를 따르든 모두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 다. 14) 그렇긴 하나 무함마드를 통해 이슬람에 귀의한 무슬림들은 자신들의 종교전 통에 대해 남다른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것은 무함마드가 하느님이 보낸 마지막 11) 꾸란 3:81. 2:37-40 참조. 12) 하느님의 사자가 나타나 사전( 事 前 )에 이러한 사실을 알려주고 경고를 하지 않은 경우, 그 사람들에 대해 서는 하느님이 벌을 내리지 않는다는 꾸란의 언급도(17:15)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Kim Young-Kyung, Die Identitätsfrage der Muslime in der Diaspora, 1994, S 참조. 13) 아랍어 이슬람 의 언어학적 의미는 복종하다, 항복하다 이고, 무슬림은 복종, 항복한 사람 을 말한다. 이러 한 맥락에서 괴테는 동 서양의 디반 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어리석긴, 각자 자신의 우물 속에서 자신의 각별한 생각을 찬양하고 있다니! 이슬람이 하느님께 복종함을 의미한다면, 우리가 모두 이슬람 속에서 살 고 이슬람 속에서 죽는 것을. 14) 꾸란 5:69, 3:84-85.

124 118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사자 로서 이전의 사자들이 펼친 성스러운 사업을 완성시켰으며, 최후심판의 날까 지는 다른 사자가 출현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15) 꾸란은 무함마드를 통해 22년 간 계시된 하느님의 가르침을 담아놓은 성서이다. 그 속에는 앞에서 소개한 성약 외에도 하느님, 천사, 사후의 세계, 심판 등에 관 한 신학적 가르침과 일반적인 윤리규범, 그리고 절도, 간음, 전쟁, 상속 등 인간의 현실적 삶과 관련된 법규범이 실려 있다. 그리고 무함마드는 바로 그러한 가르침 에 근거해 몸소 메디나 도시국가를 운영했으며, 그의 후계자들 역시 꾸란과 그가 남긴 규범적인 언행, 순나에 의거해 백성을 통치했다. 여기에서 잠시 이슬람 초창 기의 일화를 하나 소개한다. 어느 날 무함마드는 무아드라는 젊은 장수를 예멘지역 총독으로 임명했다. 무아드를 임지로 보내기에 앞서 무함마드는 그에게 물었다. 주요 사안에 대해 어떻게 결정하겠느냐? 하느님의 성서에 적혀있는 대로 결정하겠습니다. 그러자 그는 다시 물었다. 하느님의 성서에 적혀있지 않으면 어떻게 결정하겠느냐? 하오면, 하느님의 사자께서 보여주신 길, 순나에 따라 결정하겠습니다. 하느님의 사자가 보여준 길에도 답이 없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하오면, 소인이 스스로 판단을 해 결정토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무함마드는 흡족한 표정으로 하늘을 우러러보며 외쳤다. 하느님의 사자에게 승리를 주신 분, 당신에게 찬양을 올리나이다! 16) 이는 이슬람 초기, 국가운영의 경험이 전무하다시피 한 군사령관들이 정복지의 국정을 어떠한 원칙에 따라 운영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로서 무슬림 학자들은 이 15) 이 믿음은 꾸란 33:40과 몇 편의 하디스에 근거를 두고 있다. Hammudah Abdalati, Islam in Focus, Islamic Teaching Center, pp 참조; 꾸란에는 정확하게 사자들의 봉인( 封 印 ) 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16) Das Lutherische Kirchenamt der Vereinigten Evangelisch-Lutherischen Kirche Deutschlands und das Kirchenamt des Evangelischen Kirche in Deutschland ed., Was jeder vom Islam wissen muss, 1991, S. 49.

125 참고자료 119 규범에 따라 이슬람 고유의 율법체계, 샤리아를 완성시켰다. 17) 샤리아는 국정 운 영에 관한 규범은 물론 재산의 상속, 상거래, 민 형사상의 문제, 심지어 부부의 성 생활처럼 극히 사적인 영역에 이르기까지 실로 인간사 전반에 걸쳐 무슬림들이 지켜야 할 올바른 규범이 어떤 것인지를 규정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무슬림 공동체, 움마는 단순한 신앙공동체가 아니라 일종의 율법공동 체 내지 국가 이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생업에 힘써 가족을 부양하고, 정해진 규범에 따라 예배를 올리고, 단식을 지키고, 순례를 행하고, 부역이나 병역 에 동원되고, 정치적인 권위에 복종하는 등의 일이 무슬림에게는 모두 종교적인 행위이다. 통치자는 통치자대로, 자유민은 자유민대로, 그리고 노예는 노예대로 샤 리아가 제시한 바른 길 을 충실히 쫓아가는 삶, 이슬람은 무슬림들에게 그 이상 도 그 이하도 바라지 않는다. 각별한 선행이나 희생을 하지 않아도 이 길에서 벗 어나지만 않으면 그는 사후에 하느님의 영원한 축복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벗어난 무슬림은 샤리아가 정한대로, 사안에 따라, 최고 사형까지의 처벌을 감수 해야 하고, 죽어서도 지옥의 형벌을 두려워하며 심판을 기다려야 한다. 이러한 이슬람 율법체계의 주역은 헌신적인 학자집단, 울라마들이었다. 이들은 지상에 출현한 공동체 중에서 무슬림 공동체가 가장 훌륭한 공동체 라는 꾸란의 언질에 고무되었으며, 그에 부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18) 이들 무슬림 엘리 트들은 한편으론 샤리아에 대한 전문지식, 다른 한편으론 종교적 이상주의와 도덕 적 청렴성으로 무장, 일반 대중으로부터 절대적인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어떠한 위정자도 백성의 지지가 없이는 나라를 통치할 수 없는 법, 자연히 위정자들은 율 법학자들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울라마들 역시 위정자 들이 이슬람의 근본정신을 크게 거스르지 않는 한, 그들을 도와 사회의 안정과 번 17) 꾸란은 무함마드 사후 곧 정리되었다. 공식적인 필사본이 완성되어 각지로 배포된 것은 653년의 일이다. 순나의 정리가 완성된 것은 이슬람력 2세기 경, 그러므로 샤리아가 확고하게 정립된 것은 그 이후이다. 샤 리아의 신성함과 완벽함에 대한 울라마들의 믿음은 이슬람력 4세기, 서력으로는 11세기 경 절정에 달해 이즈티하드의 문 즉, 법원에 대한 이성적인 탐구의 문 은 이제 닫혔다 는 교리 아닌 교리를 낳았다. 이는 꾸란과 순나, 그리고 합의(이즈마)의 권위에 입각해 울라마들이 한번 결정한 것은 영원히 유효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샤리아와 국가의 관계에 대해서는 손주영. 이슬람 칼리파 制 史 쪽 참조. 18) 꾸란 3:110.

126 120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영을 도모했다. 물론 그들은 통치자들로부터 일정한 안전거리 를 확보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인접한 유럽사회가 중세의 어둠 속에 갇혀있는 동안 이슬 람 세계가 찬란한 문명의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들이 빛과 소금 의 역할을 한 덕분이었다. 19) 그러나 무슬림공동체, 움마도 역사의 질곡( 桎 梏 )으로부터는 자유로울 수가 없었 다. 초기에는 정통칼리프 시대가 그 때문에 일찍 막을 내려야 했고, 전성기에조차 칼리프가 몽골군에 의해 처형되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동로마제국의 천년사직에 종지부를 찍고 그 위에 세계 대제국을 건설했던 오스만제국도 영고성쇠라는 역사 의 철칙 앞에서는 무릎을 꿇어야 했다. 구체적으로는 1529년 서유럽의 심장부였 던 오스트리아 수도 비엔나 공략이 실패로 끝나고, 이어 1571년 레판토 해전에서 스페인 베니스 연합함대에게 무참히 패하면서 오스만제국은 쇠퇴국면에 접어들었 다. 오스만제국과 더불어 이슬람 세계의 3대 강국이었던 이란의 사파위조( 朝 )와 인도의 무굴제국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이슬람 사회에서 지주( 支 柱 ) 역할을 했던 울라마들의 신 학적 자만이었다. 그들은 이조( 李 朝 ) 말 유림들이 그랬듯이 시대의 변화, 특히 서 구 열강의 비약적인 발전을 백안시했다. 이러한 태도의 기저에는 그들이 확보한 정치적, 경제적 기득권에 대한 애착이 숨어있었다. 자연 민심은 그들을 떠났고, 비 판적인 지식인들은 이슬람 사회가 쇠퇴한 원인을 그들의 시대착오적인 완고함에서 찾았다. 무슬림 대중과 지식인들이 울라마들로부터 등을 돌린다는 것은 곧 샤리아 로부터 등을 돌린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798년에 있었던 나폴 레옹의 이집트 정복은 이슬람 세계의 몰락이 역사적 현실임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이를 전후하여 이슬람 세계는 차츰 그들의 식민치하에 놓이게 되었 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이슬람 세계가 자신의 종교전통에 대 19) 인류역사상 지상에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려는 열정과 추진력에 있어서 이들과 비견할 수 있는 집단이 있다면 초기 공산주의자들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신의 존재와 내세를 믿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 슬림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부류의 세력이었다. 이슬람의 역사관에 대해서는 Wilfred Cantwell Smith, Islam in Modern History, 1957, pp. 3-40을 보시오. 스미스는 특히 pp 에서 이슬람의 역사관을 그리스도교, 힌두교, 마르크스주의의 역사관과 대비시키는 방식으로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127 참고자료 121 해 본격적인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1960, 70년대에 이르러서의 일이다. 20) 이를 계기로 흔히 이슬람 원리주의 혹은 근본주의라고 일컫는 이슬람주의가 이슬 람 세계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수단의 이슬람화와 이란의 이슬람혁명은 그 결실이 었다. 21) 카이로인권선언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채택되었다. 3. 카이로인권선언 카이로선언은 서문과 25개의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문은 무슬림 국가 의 문명사적 역할을 강조하는 말로 시작하고 있다. 22) 그에 따르면 무슬림 국가는 하 느님에 의해 수립된 가장 훌륭한 국가 이며, 하느님은 이를 통해 이 세상에서의 삶과 저 세상에서의 삶에 대한 믿음, 그리고 과학과 신앙이 잘 조화를 이룬 보편 적인 문명의 모델을 인류에게 보여주었다. 오늘날에도 무슬림 국가는 다양한 사상 과 이념이 각축을 벌이고 있으며, 물질문명의 만성적인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인 류사회에 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23) 20) Kevin Dwyer, Arab Voices: The human rights debate in the Middle East, 1991, p. 37에 소개된 한 모로코 대학교수의 고백은 이러한 변화를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이삼십 년 전만 해도 대학사회에서 지 배적인 이념은 세속적인 혹은 좌파적인 이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이 찾고 있는 대안은 이슬람의 형태를 띤 이념입니다. 수년 전까지도 내 밑에서 공부를 하려는 학생이 대단히 많았습니다. 기본적으로 합 리적인 관점에서 주어진 문제에 접근하는 훈련을 원하는 학생들이었죠. 그러나 이제 제 곁에 남은 학생은 단 두 명밖에 없습니다. 다른 학생들은 대부분 나의 강의를 외면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희는 문제를 제기하는데 그치는, 그런 것을 더 이상 원하지 않습니다. 저희가 원하는 것은 답을 줄 수 있는 것 입니다. 그러니 저희들을 그냥 지켜만 봐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만, 우리 세대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종교를 깡그리 무시했다는 점입니다. 종교는 이제 낡아빠져 못쓰게 되었다, 이렇 게 생각을 한 것이죠. 진화론적인 틀에 따라 생각을 했다고나 할까요. 종교가 마치 공룡의 한 종류가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약간의 화석이 아직은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곧 멸종할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이런 식이었죠. 그래서 우리가 종교를 그렇게 무시한 것입니다. 실은 그것이 우리 사회에 정 당성을 부여하는 핵심적인 요소 중의 하나였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십 니까? 우리가 그것을 방치했기 때문에, 그것은 위정자들의 수중에 들어갔습니다. 그런가 하면, 예전에도 그랬듯이, 사기꾼들의 손에 들어가 (무식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상품으로 전락을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나마 고무적인 조짐이 있다면, 그것은 종교적인 언어, 형이상학적인 개념을 구사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그것을 자신의 정치적, 사회적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 즉 정치적인 언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21) 김영경. 이슬람 근본주의의 역사적 배경과 그 전망. 사회과학연구 제37집(1998) 쪽 참조. 22) 여기에서 말하는 무슬림 국가 란 무슬림 공동체, 움마를 말한다. 움마는 이슬람을 국시로 삼고 있는 국 가들의 총합보다 넓은 개념이다. 디아스포라 지역의 무슬림들까지 모두 포함하기 때문이다. 한편 이슬람 국가 는 비무슬림 주민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슬림 국가 와는 외연을 달리하는 개념이다.

128 122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서문은 또한 카이로인권선언의 기저에 깔린 믿음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슬람에서 인간의 기본권과 자유는 무슬림들의 신앙의 한 부분으로서 아무도 그 일부나 전체를 유보시키거나 폐기시키거나 침해하거나 무시할 수 없다. 이슬람에 서 보장한 인간의 기본권과 자유는 최후의 사자, 무함마드를 통해 하느님이 당 신의 서책들 속에 명시한 신성하고도 의무적인 규정으로서, 하느님은 그를 통해 그 이전에 보낸 사자들의 가르침을 완성시켰다. 그러므로 이들 권리와 자유를 지 키는 것은 하느님께 올리는 예배이자 봉사이고, 그것을 침해하는 것은 종교적인 율법을 범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이 권리를 지켜야 하며, 국가는 그들을 대신 해서 홀로 혹은 연합해 그것을 지킬 의무를 짊어지고 있다. 24) 카이로선언은 세계인권선언처럼 각종 시민적, 정치적 권리를 비롯하여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대한 규정을 담고 있다. 이를 개괄적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시민적, 정치적 권리로서 인간은 하느님의 자녀이자 아담의 후예로서 출신, 피 부색, 언어, 성, 신앙, 정파, 계층 등에 상관없이 평등하다(1조). 인간은 생명과 신 체의 보존(2, 3, 4조), 사생활(18조), 결혼과 가족(5, 6조), 사유재산(15조), 집회(22 조b항), 공무( 公 務 )(23조b항)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다. 또한 인간은 법 앞에 평등 하고(8, 19조), 임의적인 체포, 구금, 추방을 당하지 않으며(20조), 고문이나 임상 실험(20조), 노예나 강제노역(11조)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신앙(10조), 거주이전과 망명(12조), 의사 표현(22조a항)의 권리를 갖고 있다. 경제적, 사회적 권리로서 인간은 근로와 직업선택, 정당한 노동조건(13조), 물질 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쾌적한 환경, 의료혜택, 의식주(17조) 등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다. 또한 인간은 교육, 특히 이슬람 교육(9, 7조)과 문화생활을 향유하고 각종 저작권을 보호받을(16조) 문화적 권리를 갖고 있다. 23) Sulieman Abdul Rahman Al Hageel 앞의 책 p ) 앞의 책 p. 49f.

129 참고자료 카이로인권선언과 세계인권선언의 차이와 쟁점 일견 카이로선언의 내용은 세계인권선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자 세히 비교해 보면 곧 여러 가지 차이가 발견된다. 우선 세계인권선언에는 포함되 어 있으나 카이로선언에는 언급되지 않은 권리조항이 있다. 국적을 바꿀 수 있는 권리(15조2항), 종교 또는 신념을 바꿀 수 있는 권리(18조)가 그것이다. 또한 집회 의 자유(20조)는 극히 제한적이고 25), 노동조합을 비롯하여 결사의 권리에 대한 규 정은 보이지 않는다. 한편 카이로선언은 세계인권선언이 언급하지 않은 다음과 같은 인권조항을 포함 하고 있다. 전시 비전투원 살상금지와 포로에 대한 대우, 적의 재물 파괴금지(3조 a항), 사체의 수습과 장례에 대한 의무(4조), 남편의 가족부양권(6조b항), 이슬람 교육의 의무(9조), 식민지배 금지와 국가주의(11조b항), 인간에 대한 자의적인 임 상실험 금지(20조), 인질 금지(21조), 언론을 통한 신성모독 금지(22조c항), 위정자 의 권위(23조a항), 샤리아의 특수한 지위(24, 25조) 등이 그것이다. 26) 여기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대목은 선언문에 명시된 모든 인권조항이 샤리아의 제약을 받으며(24조), 모든 조항의 해석과 부연설명 역시 오직 샤리아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25조) 한 마지막 부분의 규정이다. 이로써 카이로선언은 세계 인권선언과의 근본적인 차이를 분명히 밝힌 셈이다. 27) 현대 서구문명의 기조인 세속주의적 인본주의 및 민주주의에 기초하고 있는 세 계인권선언과는 달리 카이로선언의 바닥에는 유신론 내지 이슬람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주권은 오직 하느님에게만 있다! 서구 민주주의 원칙을 정면으로 반박하 기 위해 무슬림형제단이 애용하는 이 구호는 기실 이슬람의 핵심사상을 담고 있 25) 카이로인권선언 22조b항에도 집회의 자유 를 의미하는 규정이 있으나 파사현정( 破 邪 顯 正 )을 위한 부름에 응할 권리를 샤리아 법규범에 따라 갖는다는 단서를 붙이고 있다. 26) Sulieman Abdul Rahman Al Hageel은 앞의 책 pp 에서 이슬람 인권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슬람 인권사상은 세계인권선언을 낳은 세속적 인권사상보다 시대적으로 앞서고 더 포괄적이며, 구속력이나 실질적인 면에 있어서도 더 우수하다; 사우디아라비아에 본부를 두고 있는 World Assembly of Muslim Youth(WAMY)의 선교용 팜플렛 WAMY Series on ISLAM No.10 Human Rights in Islam"의 기조와 내용도 그와 대동소이하다; 이슬람에서 존중하는 인권의 내용에 대해서는 손주영. 이슬람 과 인권 쪽을 보라. 27) Sulieman Abdul Rahman Al Hageel 앞의 책 pp. 56f.

130 124 제11차 인권교육포럼 다. 무슬림들이 하루에도 수없이 반복하는 신앙고백의 첫마디 하느님 외에는 다 른 신이 없습니다 가 말해주듯 이슬람 사상의 근본은 유일신의 주권에 대한 믿음 이다. 28) 카이로인권선언이 제1조에서 인류는 하느님께 올리는 봉사 를 통해 연 결된 하나의 가족 이라고 한 것도 바로 이러한 사실을 천명한 것이다. 인권이 샤리아의 하위규범임을 말해주는 규정은 실제로 카이로선언문 도처에 보 인다. 모든 사람이 이슬람교에 접할 수 있도록 교육적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책임 이 국가에 있고(9조a항), 가정, 학교, 대학, 언론 등의 교육매체는 일반적인 교육과 함께 하느님에 대한 믿음 을 고취시켜야 하며(9조b항), 언론의 자유도 샤리아에 준하는 범위 내에서만 인정되고, 언론매체는 하느님의 사자의 명예나 신성한 것들 을 오용하거나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고 못박은 규정(22조) 29) 등이 그것이다. 이 말 속에는 무슬림 국가에서 여성의 사회적 활동을 제한하는 것이 여권론자 들의 비위를 거스르고, 샤리아에 따라 절도범의 손목을 자르고, 간통한 무슬림을 돌로 때려죽이는 것이 비인도적인 형벌을 금지한 세계인권선언에 반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그쪽 사정 이고, 이슬람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의미가 함축되 어 있다. 30) 하긴 개고기의 식용을 둘러싼 논쟁에서 찬성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문화적, 신학적 배경을 달리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설혹 그러한 차별, 그러한 형벌 이 끔찍해 보일지 모르나, 그런 이유로 무슬림들의 자결권을 문제 삼아서는 안 될 수도 있다. 31) 어차피 카이로인권선언은 무슬림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고, 세계인권 선언에서도 종교의 자유와 함께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 않은가! 32) 28) Mahmood Monshipouri 앞의 책 p. 19, 72 참조. 29)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살만 루시디에게 사형선고와 다름없는 파트와(법률적 소견서)를 발행한 이유가 이 때 문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문제는 이란의 최고통치자가 영국 국적을 지닌 무슬림 작가에 대해 사법 권을 행사했다는 점이다. 이는 샤리아가 국가의 권위를 앞선다는 이슬람적 세계관을 분명히 보여준 일화였 다. 그에 따르면 국가는 이슬람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Mahmood Monshipouri 앞의 책 p. 68 참조. 30) 샤리아는 인간의 범죄를 두 가지 범주로 분류하고 있다. 꾸란에 그 내용과 처벌의 형태가 명시된 범죄와 그렇지 않은 범죄가 그것이다. 전자의 범주에 속하는 범죄를 샤리아에서는 후두드 라고 부른다. 절도, 간 음, 간음과 관련된 모함, 음주 등이 그것이다. 샤리아에 따르면, 후두드 범죄는 꾸란에 명시된 범죄이므로 인간적 이성이나 사회적 정서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31) 이와 관련이 있는 말로서 이슬람에서의 인권문제 를 주제로 한 공개토론회에서 무라니(Muranyi)가 한 냉소 적인 말이 인상적이다. 극적으로 표현한다면, 절도범의 손목을 자르는 것이 무슬림들의 마음에 든다면, 그 들은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Gerhard Schult Hrsg., Islam: Herausforderung an West und Ost, 1982, S. 91.

131 참고자료 125 그러면 이로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인가? 자결권 존중이라는 원칙이 정해졌으 니 이젠 각각의 공동체가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두면 된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무슬림 국가의 사법적 자결권 차원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는 무슬림 국가의 국민으로 살아가는 비무슬림들의 지위문제이다. 샤리 아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이나 유대인들은 아흘 알-키탑, 즉 성서의 백성 으로서 종교적 자율권과 함께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받는다. 하지만 사회적, 정치적 으로는 딤미 곧 피보호민 신분으로 만족해야 한다. 피보호민에게는 병역의 의무 가 면제되는 대신 인두세가 부과된다. 33) 또한 공산주의 국가의 비당원들처럼 국정 에도 참여를 할 수가 없다. 일종의 이등국민 혹은 이방인인 셈이다. 이는 일체의 인위적인 차별을 금지한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에 위배되는 규범이다. 다른 문제는 배우자의 종교에 대한 제약이다. 샤리아에 따르면 남성이든 여성이 든 우선 무슬림은 무신론자를 배우자로 맞을 수 없다. 또 그리스도인이나 유대인 들처럼 유일신을 믿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무슬림 남성은 그를 배우자로 맞을 수 있으나, 무슬림 여성은 그럴 수 없다. 34) 이는 성년에 이른 남녀는 인종, 국적 또 는 종교에 따른 어떠한 제한도 받지 않고 혼인하여 가정을 이룰 권리를 가진다 는 세계인권선언 16조 1항에 명시된 권리에 배치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울라마들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35) 그리스도교나 유대교에 속한 여성 은 무슬림을 남편으로 맞아들여도 자신의 믿음을 지키고 실천하는데 아무런 제약 을 받지 않는다. 이슬람에서는 모세와 예수를 하느님의 사자로 믿기 때문이다. 그 러나 무슬림 여성이 그리스도인이나 유대인을 남편으로 맞게 되면 심각한 문제가 32) 결사의 자유 내지 권리는 국제인권협약을 구성하는 두 개의 협약,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 협약 (A협약)과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 (B협약) 제1조에서 자결권을 명시함으로써 더 구체 화되었다. 이 두 협약은 1966년 국제연맹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제정되었고, 1976년 35개국이 비준절차를 마침으로써 국제법적 효력을 갖게 되었다. 33) 역사적으로 무슬림과 비무슬림과의 관계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앤 램톤, 김정위 옮김, 중세 이슬람의 국가와 정부 1992, 쪽 참조. 34) 이는 기혼자에게도 해당한다. 일 예로 무슬림이 아니었던 한 이란 여성이 이슬람으로 개종을 했다. 이에 이슬람법정은 즉시 그녀의 결혼을 무효화했다. 무슬림 여성이 비무슬림을 남편으로 둘 수 없기 때문이다. 샤리아에 따라 이들의 가족은 해체되었고, 자녀는 자동적으로 무슬림, 즉 부인에게 돌아갔다. Gerhard Schult Hrsg., Islam: Herausforderung an West und Ost, 1981, S ) "Über die Islamische Gesetzgebung und die Rechte des Menschen im Islam" 1972, pp ; Sulieman Abdul Rahman Al Hageel 앞의 책 pp. 161f.

132 126 제11차 인권교육포럼 발생한다. 왜냐하면 남편이 속한 종교공동체는 무함마드를 하느님의 사자로 인정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비방을 일삼기 때문이다. 자연히 비무슬림과 결혼한 여성 은 가정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사 전에 봉쇄하기 위해 무슬림 여성이 비무슬림 남성과 결혼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 이다. 무슬림 국가의 사법적 자결권 밖에 있는 문제로서 카이로선언과 세계인권선언 사이에 놓여있는 가장 심각한 쟁점은 릿다, 즉 배교 의 문제이다. 무슬림은 율법 적으로 자신의 종교를 버리거나 다른 종교로 개종을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샤 리아가 배교자를 사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36) 실제 1979년에 있 은 이슬람혁명 이후 이란에서는 이백 여 명에 달하는 바하이들이 이로 인해 처형 을 당했다. 37) 이는 세계인권선언 18조에 명시된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 사건으로, 이란 정부는 그로 인해 오늘날까지도 국제사회와 인권단체로부터 비난을 면치 못 하고 있다. 배교자를 극형에 처하는 율법의 근거에 대한 울라마들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이슬람 초기 배교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신생 무슬림 국가의 존망이 걸린 중 대한 문제였다. 적에게 무슬림 공동체 내부의 비밀을 알려줌으로써 치명적인 피해 를 입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종교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논리적인 사고 의 귀결이라기보다 지상에 악을 퍼뜨리고자 하는 음모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확 신에 근거하고 있다. 이 문제는 순수하게 이슬람적인 해석 이즈티하드, 즉 법원 ( 法 源 )에 대한 독자적인 탐구 에 따른 결정이다. 그리고 (울라마들의 이즈마, 합 의 를 통해 한번 옳은 것으로 인정된) 이즈티하드는 다른 이즈티하드에 의해 번복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각각의 결정은 나름대로의 이유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36) Mahmood Monshipouri 앞의 책 p. 73, ) 19세기 중엽 이란에서 발생한 바하이교는 유일신에 대한 믿음에 뿌리를 두고있으나 그 존재 자체가 이슬 람의 주요 교리, 즉 무함마드가 최후의 사자 라는 교리를 무효화시키는 것이므로 그 이전에도 수시로 박해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등지에서는 바하이교를 이슬람의 이단( 異 端 )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집트 최고재판소에서는 1925년 바하이교를 이교( 異 敎 )로 규정한바 있다. 한편 터키에서는 바하이 공동체가 완전한 종교적 자유를 누리고 있다; Gerhard Schult Hrsg., Islam: Herausforderung an West und Ost, 1982, S ; 이슬람과 바하이교의 관계에 대해서는 Peter Smith, The Babi and Bahaʾi Religion, Cambridge Uni. Press, 1987; 김영경. 바하이교의 역사적 개관 (미발표 논문) 참조.

133 참고자료 127 결정 역시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한 이유를 갖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 어 떤 사람도 진심에서 우러나지 않는 한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있 다. 38) 이러한 설명은 세상을 선과 악, 인류사회를 아군 아니면 적군으로 분류하여 재 단하던 중세적 사고방식을 연상시킨다. 그러면 오늘날에도 무슬림의 개종이 무슬 림 공동체, 혹은 이슬람 국가의 안위에 치명적이란 말인가? 종교에는 강제가 없 다 는 39) 꾸란의 가르침은 그럼 이 경우엔 해당이 되지 않는단 말인가? 여기에서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것은 결론 부분의 논의를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고자 함이 다. 5. 결론 지금까지 이슬람 인권사상의 신학적, 역사적 배경과 카이로인권선언의 내용을 살펴보고 그것을 세계인권선언과 비교, 그 차이와 쟁점을 조명해 보았다. 끝으로 앞에서 제기된 카이로선언의 문제점이 해결될 수 있는 길은 없는지, 그 길을 모색 해 본다. 카이로선언 중 문제가 되는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하나는 비 록 세계인권선언의 인권규정과 상충하기는 하나 종교공동체의 자결권에 속한 것이 고, 다른 하나는 그러한 차원을 벗어나는 문제이다. 여성의 사회적 권리, 노동자의 권리, 언론의 자유에 대한 제한규정과 비인도적 인 처벌규정 등은 전자에 속한다. 이들 문제는 무슬림 국가 내부의 문제이므로 일단 그들의 손에 맡길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개인의 권리가 존중되는 것과 마찬 가지로 그들이 모여 이루어진 공동체의 자결권도 존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40) 그러나 앞에서 지적한 비무슬림의 사회적, 정치적 차별, 배우자의 종교에 대한 38) "Über die Islamische Gesetzgebung und die Rechte des Menschen im Islam". pp. 38f.; Sulieman Abdul Rahman Al Hageel 앞의 책 pp. 157f.. 39) 꾸란 2: ) 이는 국제협약, 종교공동체 사이의 협약 차원에서는 다른 도리가 없다는 말이다. 신학적, 철학적 혹은 윤리 학적 차원에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논의를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 것이다.

134 128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제약, 그리고 개종자에 대한 처벌의 문제는 무슬림 국가의 위정자들이나 울라마들 의 결정에만 맡길 수 있는 성격의 사안이 아니다. 이슬람 사회가 이 문제를 스스 로 해결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이 바람직한 일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무슬림 공동 체는 그에 따른 갈등과 고통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사상적, 종교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다원주의적 국제질서를,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 를 보장하는 세계시민사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인류사의 동력이 그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몇몇 방안이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이미 제 시되어 있다. 그를 향해 가장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인 것은 오스만제국에 대한 미 련을 떨쳐버리고 1923년 터키공화국을 세운 케말 아타튀르크 정권이었다. 터키는 건국 이래 세속주의 를 국시의 하나로 삼고 있다. 41) 여기에서 말하는 세속주의는 물론 무신론과는 거리가 멀다. 만성적인 종파갈등, 종교전쟁의 악순환으로부터 벗 어나기 위해 이 이념을 처음 채택한 서구에서처럼 특정 종교나 종파의 간섭을 배 제한 정치, 또 무엇을 믿고, 어떤 종교집단에 속했든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한 시민사회를 구현하겠다는 뜻이다. 종교적 다수집단으로서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세 속주의를 택한 터키 무슬림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우리 터키인들은 이슬람과 결별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아랍인들의 생각이죠. 이슬람 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정작 그들입니다.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이슬람이 있습 니다. 꾸란의 종교로서의 이슬람, 울라마들의 종교로서의 이슬람, 그리고 (무지한) 대중의 종 교로서의 이슬람이 그것입니다. 마지막 것은 미신이자 기복신앙이고 물신숭배에 불과한 것 이므로 여기에서 거론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두 번째 이슬람, 그것은 오늘날 낡아빠진 율법 주의, 그 무게 때문에 수렁에 빠진 수레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충치치료를 받기 위 해 치과의사에게 가기 전에 먼저 울라마에게 찾아가 파트와 를 42) 써주십사고 해야 한다면,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립니까! 터키가 버린 것은 이 두 번째 이슬람입니다. 그런 이슬람 41) Karl Binswanger, "Die politische Rolle des Islams in der Gegenwart: 2. Tükei" in Ende, Werner, and Udo Steinbach Hsg., Der Islam in der Gegenwart, 1989, S ; 손주영 이슬람 칼리파 制 史 549쪽 참조. 42) 울라마들이 발행하는 법률적 소견서.

135 참고자료 129 을 버려야 할 때가 되었고, 그래서 버린 것이죠. 그를 통해 우리는 무슬림 세계를 선도한 것입니다. 이슬람은 개혁을 필요로 합니다. 이 점에 있어서 터키는 여전히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는 국가입니다. 43) 세계인권선언문의 채택여부를 묻는 투표를 앞두고 진행된 논의에서 파키스탄 대 표가 취한 입장도 이와 관련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개종의 권리를 규정한 것이 이 슬람 계율에 위배되지 않겠느냐는 엘리노어 루스벨트 인권위원회 위원장의 개인적 인 우려에 대해 파키스탄 수석대표 모하메드 자프룰라 칸 경은 그러한 견해가 자구( 字 句 )적으로 옳다 해도 꾸란은 위선을 더 심각한 죄악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고 말했다. 44) 그는 총회에서도 믿기를 원하는 사람은 믿게 하고, 믿기를 원치 않 는 사람은 믿지 않게 내버려 두라 45) 는 꾸란 구절을 인용, 자신의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는 샤리아의 법원( 法 源 )에 대한 해석학적 재고, 혹은 이슬람식 의 종교개혁 을 통해서도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46) 사실 기독교권에서 세계인권선언을 수용하게 된 것도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였 다. 한 예로 1950년에 채택된 인권에 관한 유럽협약 이 그 효력을 발생하게 되자 스웨덴 정부는 그리스도교 이외의 종교로 개종하는 것을 금지한 법규를 철폐함으 로써 개종과 관련된 제한규정을 완전히 없앴다. 47) 지난 1965년 가톨릭 교회가 내 린 결정도 하나의 귀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가톨릭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 회를 통해 타종교에 대해 기존의 배타적인 입장을 청산했다. 특히 지난 천년 이상 43) Wilfred Cantwell Smith 앞의 책 pp. 176f.. 44)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엮음. 앞의 책 45쪽. 각주 43 참조. 45) 꾸란 18:29. 46) 무슬림들 사이에서 그러한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일부 지식인들에 국한된 일이어서 현실 적인 힘을 발휘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더구나 전투적인 이슬람주의가 고개를 드는 상황에서 그러한 주장은 자칫 반동 으로 몰려 탄압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수단의 개혁주의자 Mahmoud Taha는 바로 그러한 이유로 1985년 처형됐다. Bassam Tibi, The Challenge of Fundamentalism: Political Islam and the New World Disorder, Uni. of California Press, 1998, pp. 31, 173, 를 보시오. Abdullah Ahmed An-Na im, "Human Rights in the Muslim World", in International Human Rights in Context, Henry J. Steiner and Philip Alston, 1996, p. 213 참조. 47) 스웨덴은 1781년 종교관용론 을 채택, 국교회(루터교)를 떠나 다른 교파로 개종하는 것을 허락한 바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이외의 종교로 개종하는 것은 여전히 금지된 상태였다. 한편 노르웨이 정부도 예수회에 대한 기존의 금지령을 철폐했다.

136 130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적대시해 온 이슬람 세계에 대해 전향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 것은 획기적인 사건 이었다. 교회는 또한 무슬림들을 존경하고 있다 라는 말로 시작한 공의회의 비 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 은 신학적 이견에 대해선 짧은 언급에 그친 반면, 그동안 무시했거나 인정하려하지 않았던 사실 즉, 두 종교가 공유하고 있는 믿음을 확인 했다. 인류의 역사 속에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느님, 아브라함과 예수의 신성함, 부 활과 심판에 대한 종말론적 기대감, 윤리적이고 경건한 삶의 이상( 理 想 ) 등이 그 것이다. 더 나아가 교회는 무슬림들에게 과거의 적대감을 청산하고 사회정의와 윤리적 선, 그리고 더 나아가 평화와 자유 를 옹호하고 촉진시키는데 있어서 함께 노력하자고 제안했다. 48) 이러한 결정은 교회의 핵심적인 교리일지라도 신학적인 재고를 통해 수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49) 단일 국가로서는 무슬림 인구가 가장 많은 인도네시아에서도 최근 고무적인 결 정이 내려졌다. 수하르토 대통령이 권좌에서 축출된 이후 인도네시아 정부가 취한 일련의 정책 속에는 종교적 소수집단에 대한 것도 있었다. 특히 지난 수십 년 동 안 공식적인 활동이 금지되었던 신종교에 대한 제한조처가 해제되었다. 정치적 상 황이 매우 유동적이고, 이질적인 종교집단들 사이의 충돌 가능성이 여전히 잠복해 있는 현 상황을 놓고 볼 때, 이슬람 이후에 출현한 종교공동체의 활동을 허용한 정부의 이번 결정이 과연 항구적인 것이 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정부의 이번 조처가 향후 이슬람세계 전체의 인권문제에도 영향을 미 칠 수 있는 의미심장한 결정인 점만은 분명하다. 인권문제와 관련된 터키공화국의 결단, 파키스탄 대표의 견해, 그리고 최근에 내려진 인도네시아 정부의 조처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슬람 인권 사상에 뿌리를 둔 인권선언이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 글에서 주제로 삼은 카이로인권선언처럼 보수적인 세력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권선 48) 김영경.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교회의 이슬람관( 觀 ) 변천사 (미발표 논문) 12쪽 참조. 49)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또한 사목 헌장 29조를 통해 다음과 같이 세계인권선언에 부응하는 규정을 명문화 했다. 인간 기본권에서 모든 형태의 차별, 사회적이든 문화적이든, 또는 성별, 인종, 피부색, 사회적 신분, 언어, 종교에서 기인하는 차별은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므로 제거되어야 한다. 비록 가톨릭 교회보 다 한발 늦었고 소극적이긴 하나 개신교와 동방 정교회 측에서도 세계교회협의회(WCC)를 통해 무슬림들 과의 관계 증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137 참고자료 131 언이 있을 수 있고, 개혁적인 진영의 취향에 맞는 인권선언도 있을 수 있다. 또 세속주의적인 터키 무슬림들이 주장하듯 샤리아의 멍에를 벗어 던진 이슬람 인권 선언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슬람 세계에서 인간의 어떤 권리가 어느 수준까지 보장될지, 그것 은 무슬림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움마 내부의 사정뿐만 아니라 대외적인 여건, 특히 서방세계의 태도에 의해서도 크게 좌우될 것이다. 이런 관점 에서 한편으로는 보다 정의로운 국제질서, 다른 한편으로는 보다 설득력 있는 이 슬람 인권선언, 즉 울라마들이 주장하는 후꾸끄 알라, 하느님의 권리 를 두려워하 면서도 동시에 이성과 자유의지의 주인공인 인간의 권리, 후꾸끄 아담을 전적으 로 보장하는 인권선언이 하루속히 등장하기를, 더 나아가 그런 선언이 강제력을 지니게 되어 여하한 권력집단, 집권세력의 종교적 독선으로부터도 개인의 천부적 인 권리가 보호받는 시민사회가 이슬람 세계에서도 출현하기를 기대해 본다. [ ]

138 132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참 고 문 헌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이창영 신부 번역. 인권과 사 목: 인권 신장을 위한 세계 회의(로마, 1998년 7월 1-4일) 한국천주교중앙 협의회 국제연합공보국. 국제사면위원회 편역. 유엔과 인권: 인권에 관한 50문답 분도 출판사 김영경. 이슬람의 신관. 종교신학연구 제9집(1996) 서강대학교 종교신학연구 소 쪽. 김영경. 이슬람 근본주의의 역사적 배경과 그 전망. 사회과학연구 제37집 (1998) 강원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쪽. 김영경.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교회의 이슬람관( 觀 ) 변천사 (미발표 논문). 김정위. 중동사 한국교과서주식회사 버나드 루이스. 이희수 옮김. 중동의 역사 까치 새뮤얼 헌팅턴. 이희재 옮김. 문명의 충돌 김영사 손주영. 이슬람 칼리파 制 史 민음사 손주영. 이슬람과 인권. 한국이슬람학회논총 제7집(1997) 한국이슬람학회 쪽. 안네마리 쉼멜. 김영경 역. 이슬람의 이해 분도출판사 앤 램톤, 김정위 옮김. 중세 이슬람의 국가와 정부 민음사 양승윤. 인도네시아에서의 정치와 종교의 논쟁. 한국이슬람학회논총 제2집 (1992) 한국이슬람학회 쪽.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엮음. 인권이란 무엇인가 - 유네스코와 세계인권선언의 발전 과 역사 하랄트 뮐러. 이영희 옮김. 문명의 공존 푸른숲 Babara Huber, Der Islam: Einfürung in Glauben, Gesetz und Geschichte, Frankfurt, CIBEDO, Bassam Tibi, The Challenge of Fundamentalism: Political Islam and the New World Disorder, Uni. of California Press, 1998.

139 참고자료 133 Gehard Schult Hrsg., Islam: Herausforderung an West und Ost, Verlag für Christlich-Islamisches Schrifttum, Hammudah Abdalati, Islam in Focus, Islamic Teaching Center. Henry J. Steiner and Philip Alston, International Human Rights in Context: Law, Plitics, Morals, Clarendon Press, Kevin Dwyer, Arab Voices: The human rights debate in the Middle East, Uni. of California Press, Kim Young-Kyung, Die Identitätsfrage der Muslime in der Diaspora Olms, Islamic Council of Europe, Universal Islamic Declaration of Human Rights, Das Lutherische Kirchenamt der Vereinigten Evangelisch-Lutherischen Kirche Deutschlands und das Kirchenamt des Evangelischen Kirche in Deutschland ed., Was jeder vom Islam wissen muss, Gerd Mohn, Gütersloher Verlagshaus, 3rd ed., Mahmood Monshipouri, Islamism, Secularism, and Human Rights in the Middle East, Lynne Rienner Publisher, Sulieman Abdul Rahman Al Hageel, Human Rights in Islam and Refutation of the Misconceived Allegations Associated with these Rights, 1999/1420. Über die Islamische Gesetzgebung und die Rechte des Menschen im Islam, Dar al-kitab Allubnani, Lebanon, (1972년 3월 22일 사우디아라비아 리 야드에서 개최된 한 학술회의의 프로토콜, 이 회의에는 사우디아라비아 학 자 8명과 유럽 학자 4명이 참석했다) Werner Ende and Udo Steinbach Hrsg., Der Islam in der Gegenwart, 2nd ed. C. H. Beck'schen Verl., Wilfred Cantwell Smith, Islam in Modern History, Princeton Univ. Press Princeton, 1957.

140 134 제11차 인권교육포럼 바하이교의 역사적 개관 19세기 중동에서 태어나 세계종교 가 되기까지* 김영경** 1. 들어가는 말 1984년 탁명환은 현대종교 에 실린 한국 속의 외래 신흥종교 - 바하이교 편 을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했다. 뉴욕 타임즈지에 이슬람교도들에 의한 바하이 교도들의 학살 이란 제목의 기사가 보도된 적이 있다. 아직껏 지구상에 한 종교가 또 다른 종교를 탄압하는 현상이 자행되고 있다는 실증을 보여준 보도였다. 그것 은 바하이 교가 이슬람교 입장에서 볼 적에 이단아로서 지탄받고 탄압 받아야 한다는 이유에서 자행된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면 바하이 는 도대체 어떤 종교인 가? 1) 이 논문은 그가 던진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으로서, 여기에서는 1844년 이란에서 태어나 19세기 중동을 배경으로 성장, 오늘날에는 세계적인 종교로 2) 성 장한 바하이교의 역사적 배경과 추이를 주요인물과 사건 중심으로 엮었다. 바하이교를 국내에 최초로 소개한 글은 1921년 9월 1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신 종교 바하이 운동 이라는 짧은 기사였다. 3) 6.25 전쟁 이후 바하이공동체가 형성되 면서 1955년 한글로 된 최초의 바하이 소책자, 현대의 신앙 서울 바하이 그 룹 에 의해 발간되었다. 4) 그 이래 각종 백과사전류를 비롯하여 중동 관련 역사서, 1) 현대종교. 1984년 7 8월호. 44; 전문은 탁명환. 한국 신흥종교의 실상. 국제종교문제연구소 에도 그대로 실려있다. 2) 이 논문의 부제에서 세계종교 라고 한 것이나 여기에서 세계적인 종교 라고 한 것은 바하이공동체의 지역 적, 인종적 분포를 기준으로 한 표현이다. 바하이공동체의 지역적, 인종적 분포에 대해서는 아래 4항 나가 는 말 을 보라. 3) 엄밀하게 말하면 이보다 이틀 앞선 1921년 8월 30일 영자신문 The Seoul Press가 Bahai Teaching: What It Is 을 실었다. 한국바하이 전국정신회. 바하이교 한국전래 70주년 ; Sims, Barbara R.. Raising the Banner in Korea p. 4. 참조. 4) 한국바하이 전국정신회. 바하이교 한국전래 70주년 에는 현대신앙 으로 소개하고 있으나 Sims, Barbara R.. Raising the Banner in Korea: An Early Baháʾí History p. 16에 실린 표지 사진에는 현대의 신앙 으로 되어 있다. 또 이 책에서는 출판년도를 1955년으로 적고 있으며, 김원배가 일본어로 된

141 참고자료 135 종교학이나 이슬람 관련 서적, 특히 번역서 속에 바하이교에 대한 언급이 간헐적 으로 발견되고, 또 앞에서 소개한 것처럼 외래 신흥종교 혹은 이슬람교에 속한 하나의 종파로 소개한 단편적인 글은 몇 편 있으나 바하이교를 독립적인 종교로 소개한 논문은 전무하다. 5) 바하이교에 대한 서구 학자들의 관심은 1880년대부터 1910년대까지 나름대로 활 발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후 소강상태에 접어들어 간헐적인 연구물 밖에 없다 가 1970년대에 이르러 다시 관심이 상승하고 있다. 6) 바하이교에 대한 관심이 상승 한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바하이공동체의 양적, 질적 성장이 학자들의 눈에 띄게 된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바하이공동체 내부에서 학문적인 역량을 갖춘 학자들이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1974년 결성된 캐나다 바하 이 학회(The Canadian Association for Bahaʾi Studies)가 이를 반영하고 있다. 앞 에서 탁명환이 언급했듯이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과 더불어 재개된 종교적 박 해도 바하이교에 대한 외부 세계의 관심을 높이는데 일조를 했다. 2. 종교사적 배경 19세기는 종교적으로 유달리 다사다난했던 시기였다. 종교적 지각변동이 이처럼 동시다발적으로,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시기는 유사이래 없을 것이다. 유럽에서는 중세 봉건사회의 대들보 역할을 했던 그리스도교가 새로 부상한 세 속적 인본주의에 밀려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신은 죽었다. 라고 외친 프리드리 책을 번역한 것으로 되어있다. (16쪽 사진 설명에는 Kim Wong Be라고 잘못 표기되어 있다) 바바라 심스에 의하면 이 소책자의 번역문은 오상순에 의해서도 review 가 되었다고 한다. (같은 책 15쪽) 5) 탁명환의 글 외에 노스, J. B.. 윤이흠 역. 세계종교사. 상권, 서울: 현음사, ; 노길명. 한국 의 신흥종교. (가톨릭신문사. 1988) ; 스미드, 휴스톤. 이종찬 역. 세계의 종교. 서울: 은성, ; 김정위. 중동사 ; 쉼멜, 안네마리. 김영경 역. 이슬람의 이해 ; 황병 하. 이슬람 군소 종파와 신학파의 형성과 소멸 (김정위 외. 이슬람 사상의 형성과 발전 ) 등; 한국종교문화사전(1991), 브리태니커세계대백과사전(1993), 학원세계대백과사전 (1993), 두산세계대백과사전(1996), Pascal세계대백과사전(1999) 등의 사전류 관련 항목엔 내용상 오류가 적지 않다. 한국 바하이공동체가 제공한 글을 통해 바하이교가 소개된 글로는 건강단학 여름호 , 한국관광뉴스 Korea Travel News 등이 있다. 바하이교의 독립성 에 대해서 는 아래 3.5항을 보라. 6) Smith, Peter. The Babi and Bahaʾi Religions p. xiii.

142 136 제11차 인권교육포럼 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가 태어난 해인 1844년 칼 마르크스(Karl Marx )는 다음과 같은 글을 발표했다. 독일에서는 종교비판이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고 종교비판은 모든 다른 비판에 선행한다. 이때 그가 염 두에 둔 인물은 저 절대적인 존재, 인간의 하느님은 바로 인간 자신이다 라고 주 장한 루드비히 포이어바하(Ludwig Feuerbach )였다. 마르크스는 그를 가리켜 우리들의 위대한 예언자 이며, 불[포이어]의 개울[바하]을 거치지 않고 진리에 이를 수 있는 길은 없다 고 극찬을 했다. 이들의 뒤를 이어 종교비판의 새 로운 지평을 연 사람은 지그문트 프로이드(Sigmund Freud )였다. 인간 의 신앙은 정신병리학적 현상에 불과하며, 종교의 본질은 대자연의 위용 앞에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던 원시인들의 심리적 자기방어 장치에 불과한 것이므로 현 대인에게는 극복되어야 할 대상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7) 이후 기라성같은 철학자, 사상가, 과학자, 그리고 심지어는 신학자들까지 가세한 종교비판의 풍조는 서진동점의 조류를 타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이 물결에 편 승한 구미 그리스도교 교회의 해외 선교활동은 현지 주민들의 눈에 선진 서구문 명의 동반자처럼 비쳤으나 실은 일종의 인지적( 認 知 的 ) 피난민 이었다. 서구 열강에 의한 침략과 식민지배로 봉건질서의 몰락이 가속화되고 있던 당시 중국, 인도, 중동 등지의 지식인들이나 독립운동가들이 부여잡은 화두도 기존의 전통종교에 기반을 둔 이념이 아니라 민주주의, 민족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세 속주의 등 서구에서 유입된 세속적, 인본주의적 정치사상이었다. 종교의 종말 이 공공연하게 거론되고 있던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지역에서도 전통적인 종교는 문자 그대로 서구 과학기술문명의 위용 앞에 전전긍긍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세계종교들이 수세에 몰린 19세 기, 다른 한편에서는 이에 아랑곳없이 수많은 종교운동이 새롭게 출현해 각기 크 고 작은 반향을 일으켰다. 19세기 중에 일어난 이들 새로운 종교운동의 가장 큰 특징은 한결같이 메시아 사상 혹은 천년왕국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는 사실 이다. 심지어 무신론적인 사상까지도 천년왕국의 옷을 입고 세계사의 무대에 자신 7) Weger, Karl-Heinz ed. Religionskritik von der Aufklärung bis zur Gegenwart

143 참고자료 137 을 드러냈다. 유물사관에 입각한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운동도 그것이 추구한 이상 이나, 추종자들의 종교적 열정, 그리고 그것이 전개된 역사적 양상을 놓고 볼 때, 여타의 천년왕국 운동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8)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공산 주의 운동이 기존의 종교전통을 일체 부정한데 반해 새로운 종교운동은 바로 그 곳에 신학적 뿌리를 두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중 일부는 단순한 종파운동에 머물렀으나, 다른 일부는 혁명적 정치운동으로 발전해 국가권력을 뒤흔드는 등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1830년 대와 1840년대 미국 전역을 들끓게 했던 천년왕국운동은 전자에 속한다. 여기에 불을 당긴 사람은 군 경력을 지닌 농부, 윌리엄 밀러(William Miller ) 였다. 회의론자였던 그는 회심 뒤 면밀한 성서연구와 종교적 영감을 통해 그리스 도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9) 이러한 그의 믿음은 곧 적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긍정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1843년 3월 21일에서 1844 년 3월 21일 사이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을 것이라는 그의 예언은 빗나갔고, 두 번째 재림일로 예견된 1844년 10월 22일도 불발로 끝나고 말았다. 비록 빗나가긴 했으나 그가 불러일으킨 성서연구와 그리스도 재림에 대한 열기는 직 간접적으로 수많은 종파를 탄생시키는 촉진제 역할을 했다. 10) 모르몬교도 19세기 초 미국에 불어 닥쳤던 천년왕국의 열망을 반영하고 있다. 조지프 스미스 2세(Joseph Smith Jr )가 모르몬교를 세운 지역은 부흥 운동의 열기가 뜨겁던 뉴욕주였다. 여러 교파가 난립해 각자 자신들의 주장만이 진리라고 말하는 가운데 그는 직접 하느님에게 인도를 구하는 기도를 올려 이미 14세에 불기둥과 두 명의 천사를 만나는 신비체험을 했다. 기존의 교회를 멀리하 8) 김균진. 종말론 , ; 이원규. 천년왕국운동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 한국종교연구. 제2집(2000). 6; K. Loewith. Weltgeschichte und Heilsgeschehen: Die theologischen Voraussetzungen der Geschichtsphilosophie 참조. 9) 화잇, 엘렌 지. 역사와 예언 ) 복음주의 재림교회(1845), 그리스도 재림교회(1861), 생명과 재림연합(1862), 제7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1863), 하느님의 교회(1866), 여호와의 증인(1872), 늦은 비 부흥운동(1886), 하느님의 교회 총회(1888) 등의 교회가 그것이다; 국내에서 보수적으로 분류되는 교파가 뿌리를 두고 있는 근본주의 신학도 당시 미 국 사회를 들끓게 했던 천년왕국 운동에 정립된 것이다. 또 하나의 신학적 주류인 세대주의 신학도 이 시 기에 태어난 것이다. 목창균. 현대신학논쟁 참조; 김균진. 종말론 에는 유럽 대륙의 예가 소개되어 있다.

144 138 제11차 인권교육포럼 고 홀로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던 중 그는 천사 모로니에게서 금판을 받아 이를 번역, 모르몬경(Book of Mormon)을 세상에 내놓았다. 금판과 천사 모로니를 보 았다고 증언한 3명의 동료와 함께 그는 1830년 새로운 교회를 설립했다. 개종자 들 중에도 유사한 환상과 계시를 접했다는 증언이 뒤따르면서 공동체는 꾸준히 성장, 지금은 세계적인 공동체로 성장했다. 모르몬교는 말일 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 혹은 복원 예수 그리스도 교회 등의 이름을 갖고 있으나 신학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기존의 그리스도교와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성격으로 인해 종교의 자유를 기본이념으로 하는 미국에서 태어났으며, 도덕적으로도 모범적인 삶을 추구했으나 초창기엔 주위로부터 박해를 감수해야 했다. 조지프 스미스 2세 는 1844년 6월 4일 민병대에 의해 살해되었다. 11) 천년왕국 사상에 입각한 종교운동으로서 기존의 정치질서에 가장 위협적이었던 운동은 의외로 중국에서 일어났다. 청대( 淸 代 /12) 말기에 해당하는 1846년 배상제회( 拜 上 帝 會 )라는 이름의 비밀결사가 주축이 되었던 태평천국운동 ( )이 그것이다. 배상제회의 창시자는 중국 광둥성[ 廣 東 省 ] 출신의 홍수 전( 洪 秀 全 )이다. 그는 4차례나 과거시험에 낙방, 그로 인한 실의 속에 서 병까지 얻게 되었다. 병상에 누워있던 홍수전은 비몽사몽 중에 환상을 보는 등 종교적인 신비체험을 했다. 하루는 꿈속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웅장한 궁전으로 인도되었다. 그곳 에서 그는 금발에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을 만났다. 노인은 홍수전을 보자마자 눈물 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천하의 모든 인간은 내가 낳고 길렀다. 사람들은 모두 내 양식을 먹고, 내 의복을 입고 있 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누구하나 나를 기억하거나 존경하는 자가 없다. 더욱 나쁜 것은 내 가 준 물건을 악마에게 바치면서 그들을 섬기는 것이다. 그들은 일부러 나를 등지고 나를 괴롭히고 있다. 너는 그들을 본받아서는 안 된다. 말이 끝나자 노인은 보검 한 자루를 홍수전에게 주면서 이것으로 악마들을 제 11) Bitton, Davis. Historical Dictionary of Mormonism

145 참고자료 139 거하되 형제자매를 살해해서는 안 된다 고 명했다. 또 사신( 邪 神 )을 굴복시키는데 쓰도록 인새( 印 璽 )와 황금빛 과일을 한 개 주었다. 과일은 먹어보니 맛이 감미로 웠다. 12) 그는 이를 통해 자신이 천부( 天 父 ) 상제( 上 帝 ) 즉, 하느님의 둘째 아들이자 그리 스도의 아우로서 중국을 구제하고 천하만국( 天 下 萬 國 )의 진주( 眞 主 )가 되라는 명령 을 받았다고 믿었다. 13) 홍수전이 이끈 태평천국군은 부패하고 무능한 관군을 무찌 르며 파죽지세로 북상, 1853년 난징[ 南 京 ]을 함락하고, 그 곳을 태평천국의 수도 로 삼아 티엔징[ 天 京 ]이라고 명명했다. 자칫 중국 역사는 물론 세계종교사의 판도 를 바꿀 수도 있었던 이 운동은 그러나 내분과 서구열강의 개입으로 1864년 7월 몰락했다. 최후의 순간까지 상제의 도움을 확신했던 홍수전은 난징이 함락되기 1 개월 전 지병을 비관해 자살했다. 사회학적으로는 청대 말기 기존 정치질서의 붕 괴, 그리고 외세의 침략으로 인한 사회 불안으로 인해 촉발된 혁명적 농민운동으 로 분류되는 이 종교운동으로 말미암아 희생된 사람의 수는 무려 2천만 명이 넘 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국대륙이 태평천국운동으로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던 시기, 인접한 한반도에 서는 천주교인들에 대한 박해가 한창이었다. 이러한 와중에 최제우( )는 1860년 4월 5일 자신의 고향인 경주 용담에서 명상을 하던 중 갑자기 몸이 떨리 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가운데 공중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소리를 들었다. 저어하지 말고 무서워하지 말라. 세상사람이 다 나를 상제( 上 帝 )라 하여 높이 절하고 정성으 로 섬기거늘... 개벽 후 오만년에 내 또한 공이 없었도다. 그러므로 너를 세상에 나게 하여 이 법을 가르치게 하노니 의심말고 다시 의심말라. 14) 이러한 신비체험을 시작으로 전개된 그의 종교운동은 봉건사회를 개혁하려는 일 군의 혁명적 지식인들이 합류하면서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크게 바꾸어 놓은 정 12) 고지마 신지. 최진규 옮김. 홍수전 ) 홍수전이 꿈속에서 종교적인 신비체험을 한 것은 사실이나 여기에 소개된 통설은 혁명을 수행하는 과정에 서 그에 의해 윤색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고지마 신지. 최진규 옮김. 홍수전 참조. 14) 오익제 편. 천도교 입문. 포덕 121년. 20.

146 140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치적 혁명운동으로 발전했다. 1894년 1월 고부( 古 阜 )봉기를 시작으로 촉발된 동학 운동의 성격은 분석의 초점을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규정될 수 있을 것이다. 종교학적으로 볼 때, 최제우가 내세운 시천주( 侍 天 主 ) 사상이나 유교, 불 교 등 기존의 종교전통이 운을 다했다는 그의 인식, 그리고 머지않아 지상천국이 건설될 것이라는 후천개벽( 後 天 開 闢 ) 사상은 여타의 천년왕국운동과 궤를 같이하 고 있다. 15) 19세기에 몰아 닥친 전 세계적인 메시아운동, 천년왕국운동의 열기는 이슬람 세 계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구미대륙의 근본주의자들처럼 자신의 종교전통을 복구 하려는 원리주의적인 운동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이슬람 세계 일각에서 진행 하고 있는 동안 16), 기존의 사회체제를 해체시키고 새로운 세계를 구현하려는 크고 작은 종교운동이 이 지역에서도 일어나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태평천국운동처럼 극적인 성과를 거두었으나 역시 단명으로 끝난 것은 수단의 마흐디 운동( )이다. 이 운동의 창시자는 무함마드 아흐마드(Muḥammad Aḥmad )이다. 율법학자이자 사마니야 수피형제단(Sammániyya)의 지도 자로 활동하던 그는 신비체험을 통해 자신이 대망의 마흐디(Mahdí)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17) 1881년 6월 29일 무함마드 아흐마드는 이 사실을 대외적으로 선언했 다. 당시 수단은 이집트 터키의 수중에 놓여 있었다. 그의 종교적 열정과 이슬람 정신을 회복하고 외세의 지배를 벗어나 자유와 독립을 쟁취하자는 정치적 대의는 점차 설득력을 얻어 오합지졸로 흩어져 있던 부족들을 하나 둘 규합하기에 이르 렀다. 마흐디의 추종세력이 커 가는 것을 간과할 수 없었던 수단 정부는 군대를 동원해 진압하려 했다. 무함마드 아흐마드도 이에 대항해 성전( 聖 戰 )을 선포했다. 1881년 8월 마흐디군은 첫 승리를 거두었다. 이에 고무된 마흐디 운동은 창시 자의 종교적 카리스마에 힘입어 수단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다음해 이집트는 오라 15) 강영한. 신종교 배상제교와 동학의 비교. 한국사회학 제31집(봄호, 1997) 에는 배상제교와 동학 운동에 대한 종교사회학적 분석이 실려있다. 16) 김영경. 이슬람 근본주의의 역사적 배경과 그 전망. 강원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간 사회과학연구 제37집 (1998) ; 김정위. 이슬람 원리주의. 한국이슬람학회논총 제3집(1993) ; 황병하. 이슬 람 원리주의의 등장에 이슬람 종파가 끼친 영향. 한국이슬람학회논총 제7집(1997) 참조. 17) 마흐디에 대해서는 아래 3.1.1항 참조.

147 참고자료 141 비 혁명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완전히 영국군의 보호 아래 들어갔다. 1877년에 이어 1881년 재차 수단 총독으로 임명된 찰스 조지 고든(Charles George Gordon ) 장군은 무함마드 아흐마디에게 카르디판(Kardifan) 지역의 통치권을 주겠다고 제의했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나의 마흐디 지위는 하느님과 예언자에게 부여받은 것이다. 나는 왕도, 어떤 관직도 원치 않는다. 나는 속세의 물질이나 영화를 원하지 않는다. 18) 고든은 전략을 바꿔 무력으로 마흐디 운동을 진압하려 했으나, 오히려 1885년 1월 수도 카르툼을 마흐디군에 내어주어야 했고, 그 해 6월 26일 처형되었다. 이 로써 수단 전역의 부족들을 역사상 처음으로 국가적인 세력으로 결집시킨 마흐디 운동은 항구적인 성공을 거두는 듯 했다. 그러나 동학운동이 그랬듯이 상대는 현 대식 병기와 신식 군대를 갖춘 외세였다. 1899년 9월 마흐디 운동은 정예 영국군 에 의해 섬멸되었다. 무함마드 아흐마드는 이보다 앞서 1885년 한 전투에서 전사 했다고 한다. 19) 무갈제국의 멸망과 함께 영국 지배 하에 놓였던 인도에서도 이와 비슷한 시기 에 아흐마디야(Aḥmadiyya)라고 불리는 메시아 운동이 일어났다. 이슬람 부흥운동 으로 시작된 이 운동의 창시자는 펀잡지방 출신의 저술가 미르자 굴람 아흐마드 (Mirzá Gulám Aḥmad )이다. 그는 현지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의 공격적 인 선교활동에 자극받아 이슬람을 방어하고 선양하는데 전력을 기울여 상당한 수 의 추종자를 얻었다. 경건한 신학자로서 신비주의적인 기질까지 겸비했던 미르자 굴람 아흐마드는 1889년, 자신이 이슬람교를 승리로 이끌 마흐디라고 밝혔다. 이 어 그는 자신이 크리슈나의 화신이자, 재림 예수로서 인류 전체의 구원을 위해 선 택된 하느님의 사자라고 선언했다. 1914년 그의 후계자 사후 아흐마디야 운동은 창시자의 지위와 관련 추종자들 18) Muḥammad Ibrāhim Salīm. Man-Shũrāt al-mahadiyya (Bayrũt: Manshũrāt Dar al-ḥayāt, 1969). p 손주영. 오늘날 이슬람 사상의 동향. (김정위 외. 이슬람 사상의 형성과 발전. 2000) 320에서 재인용. 19) Theobald, A. B.. The Hahdīya: a history of the Anglo-Egyptian Sudan, London. 1951; 손주영. 오늘날 이슬람 사상의 동향. (김정위 외. 이슬람 사상의 형성과 발전. 2000) 참조.

148 142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사이에 이견이 생겨 큰 타격을 입었다. 아흐마디야 운동의 핵심적 참모들은 그를 단순히 이슬람의 개혁자로, 자기 자신들은 이슬람 세계의 엘리트 무슬림으로 보았 다. 소수파를 이룬 이들은 라호레(Lahore)로 근거지를 옮겨 이슬람의 전파를 위한 활동을 계속했으나 곧 쇠퇴하고 말았다. 한편 미르자 굴람 아흐마드의 아들, 하드 라트 미르자 바시르 앗-딘 마흐무드 아흐마드(Ḥaḍrat Mīrzā Bashīr ad-dīn Maḥmūd Aḥmad)를 칼리파 즉, 창시자의 후계자로서 추종하는 다수파는 계속 까 디아니(Qadiani)에 남아 활동했다. 오늘날 아흐마디야 운동이라 함은 대부분 이들 을 일컫는 말이다. 1947년 파키스탄의 수립과 함께 이들은 까디아니에서 파키스 탄 라브와(Rabwah)로 본부를 옮겼다. 아흐마디야 운동은 인도, 파키스탄 지역 외에도 동남아시아, 서아프리카, 유럽, 미국 등지에 이슬람을 전파하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선교전략도 그리스도교 교회의 그것과 다름없이 적극적이고 체계적이어서 세계 각국어로 꾸란을 번역하 고 20), 모스크를 세우고, 학교와 병원을 설립하는 등 지역적으로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대부분의 일반 무슬림들이 독립, 건국 또는, 민족주의, 사회주의 등 다 른 이념에 열을 올리는 동안 아흐마디야 운동은 이슬람 부흥운동과 포교활동에 촉매제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들은 또 파키스탄 건국에 있어서도 건국 내각에 진 출하는 등 주목할 만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는 오히려 무슬림 다수집 단을 자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렇지 않아도 순니 정통파에선 그들을 신학적으 로 이단시하던 참이었다. 1953년 이들에 대한 조직적인 박해와 폭력사태가 발생 했을 때 정부는 계엄령을 선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긴장관계는 미르자 굴람 아흐마드의 손자로서 영국에서 교육을 받은 제 3대 메시아의 칼리파 미르자 나시르 아흐마드(Mīrzā Nāṣir Aḥmad) 대에 이르 러 더욱 고조되었다. 다수집단과의 갈등은 단순히 신학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사회적인 차원에서 진행되었다. 그 배후에는 파키스탄의 또 다른 이슬람 부 흥운동으로서 정계에도 진출하여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자마아티 이슬라 미(Jamāʿat-i islāmī)가 있었다. 신학적, 정치적 불화는 현실정치의 구도 변화와 맞 20) 아흐마디야에서는 그동안 꾸란을 50여 개국 국어로 번역했다. 국내 꾸란 번역본 중 안동훈, 박병현, 성하 창이 번역, 1988년 이슬람 국제출판국에서 펴낸 코란은 그중 하나이다.

149 참고자료 143 물려 급기야 파문 으로 이어졌다. 1970년 대선에서 아흐마디야는 집권 부토 정권 을 적극 지지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도 울라마들의 반 아흐마디야 캠페인을 막 을 수는 없었다. 1974년 파키스탄 국회는 아흐마디야 운동은 이슬람에 속하지 않는다 는 결정을 내렸다. 이로 인해 더욱 심해진 박해의 대상이 된 아흐마디야 무슬림들은 상당수 해외로 이주했다. 특히 캐나다는 교육 수준이 높은 이들을 환 영했다. 1984년엔 본부도 영국으로 옮겨갔다. 21) 3. 바하이교 앞에서 살펴본 19세기 종교사의 흐름과 맥을 같이하고 있는 종교운동은 시아파 가 절대다수인 페르시아(오늘날의 이란)에서도 발생했다. 바하이교가 그것이다. 바 하이교의 창시자는 미르자 후세인 알리 누리(Mírzá Ḥusayn ʿAlí Núrí, )이다. 22) 그를 부르는 일반적인 명칭은 바하올라(Baháʾuʾlláh)이 다. 바하올라는 하느님의 영광 이란 뜻이다. 바하올라의 추종자들은 바하올라를 따르는 사람들 이란 의미에서 바하이(Baháʾ í) 라고 부른다. 바하이교라는 명칭도 여기에서 유래한다. 23) 바하이는 또한 바하 이교 의 형용사형으로 바하이 경전, 바하이 기구( 機 構 ), 바하이 성지( 聖 地 ) 등으로 쓰인다. 새로운 종교의 창시자로서 바하올라가 내세운 주장은 자신이 신 구약 성경과 꾸 란을 비롯한 모든 세계종교의 경전에 예언된 메시아적 존재라는 것이다. 그는 자 21) Khálid, Durán. Die Stellung des Islam und des islamischen Rechts in ausgewählten Staaten: Pakistan und Bangladesh. (Werner Ende & Udo Steinbach ed. Der Islam in der Gegenwart. 1989) S ; Schmucker, Werner. Sekten und Sondergruppen. (같은 책) S ; Hübsch, Hadayatullah. Der Weg Mohammeds S ; 깁, H. A. R.. 이슬람: 그 역사적 고찰. 최준식 이희수 공역 ; 황병하. 이슬람 군소 종파와 신학파의 형성과 소멸. (김정위 외. 이슬람 사상의 형성과 발전. 2000) 참조. 22) 아랍어와 이란어의 로마자 전서에 있어서 장모음은 á, í, ú 로 적었다. 이는 바하이 문헌이 쫓고 있는 전서 용례를 따른 것이다. 이란 출신의 인명인 경우 현지 발음에 준하거나 바하이 문헌의 표기법을 따랐기 때문 에 로마자 전서와 다소 차이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23) 영어권 바하이들은 학술적인 용도로 주조된 Bahaism이라는 개념보다는 Baháʾí Faith 또는 Baháʾí Religion 이란 개념을 사용한다.

150 144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신의 출현으로 인류사에 새로운 장이 열렸으며, 머지않아 인류의 융합이라는 반석 위에 최대의 평화 가 수립될 것이고, 이어 인류 역사의 황금기가 펼쳐질 것이라 고 예언했다. 바하올라 자신의 주장이나 바하이들이 믿는 바에 의하면, 유대인들 이 열망하는 만군의 주, 그리스도인들이 고대하는 재림 예수, 무슬림들이 기다리 는 위대한 선언, 힌두교인들에 있어서는 브라흐만의 열 번째 아바타, 불교도들이 염원하는 미륵불, 조로아스터교인들의 메시아인 샤 바흐람이 바로 바하올라를 통 해 출현한 것이다. 24) 3.1 역사적 배경 바하이교의 역사는 바비교의 역사와 하나로 얽혀져 있다. 25) 바비교는 1844년 세이예드 알리 무함마드(Siyyid ʿAlí Muḥammad, )에 26) 의해 역시 오늘 날의 이란 땅에서 태어났다. 세이예드 알리 무함마드는 자신을 바압(Báb)이라고 불렀다. 바압은 아랍어로 문 을 의미하며, 바비교라는 명칭은 여기에서 유래한다. 바압의 추종자들은 바비(Bábí)라고 부른다. 초창기 바압을 따른 사람들은 종말론 적, 신비주의적 경향을 띤 세이키(Shaykhí) 즉, 세이크 학파의 추종자들이었다. 세 이크 학파는 시아파, 그 중에서도 이스나 아샤리야(Ithná-ʿAsharíyyih) 곧, 열두이 맘파를 배경으로 형성된 학파 중 하나였다 이슬람 종말론 무슬림 공동체는 632년 창시자 무함마드가 세상을 떠나자마자 혹독한 시련 속 에 빠져들었다. 시련의 원인은 후계자 문제였다. 이제 계시는 막을 내렸지만 종교 적, 정치적 지도자로서 그가 행했던 역할은 누군가 이어 받아야 했다. 그러나 무 함마드는 후계자를 임명하지 않은 채 숨을 거두었다. 알리를 비롯한 무함마드의 24) Vahman, Fereydun. Baha'ismus in Theologische Realenzyklopädie. Bd. V S. 115; Shoghi Effendi. God Passes By p ) 이 두 종교 사이의 관계는 세례 요한의 메시아 운동, 그리고 그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그리스도교 사 이의 관계와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바하이교와 이슬람과의 관계는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혹은 힌두 교와 불교와의 관계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26) 사이드 알리 무함마드(Sayyid ʿAli Muḥammad)라고 표기하기도 함.

151 참고자료 145 친인척들이 장례식을 준비하고 있는 와중에 다른 한편에서 초대 칼리파로 선출된 인물은 아부 바크르(Abú Bakr )였다. 칼리파 보위는 이후 우마르(ʿUmar ), 우스만(ʿUthmán ), 그리고 알리(ʿAlí ibn Abí-Ṭálib )에 게 차례로 계승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무슬림들의 손에 암살이 되는 비운을 맞았고, 급기야 보위가 메카의 호족으로서 무함마드와 그의 추종자들을 가혹하게 박해한 바 있는 우마이야(Umayyah)가에 돌아갔다. 이러한 시련 속에서 수많은 정 파 내지 종파가 태어나 각축을 했다. 27) 정치적 승리는 주어진 정치적 현실을 인정, 다분히 현실주의적인 노선을 취한 다수집단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스스로를 순나 즉, 전통 내지 관행의 추종자라는 의미에서 순니(Sunní) 라고 불렀다. 순니 무슬림들은 정통 칼리파들은 물론 그 뒤 를 이은 칼리파조( 朝 )들의 정통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들과는 견해를 달리한 소 수파들이 있었다. 그 중 가장 유력한 소수파는 예언자의 진정한 후계자는 역대 칼 리파들이 아니라 그의 후손들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믿음은 이미 초대 칼리파 아부 바크르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아부 바크르의 칼리파 선출이 부당하 다고 생각한 무슬림 중에는 시아트 알리(Shíʿat ʿAlí) 즉, 알리파 혹은 알리의 무 리, 줄여서 시아(Shíʿah)라고 분류된 일군의 무슬림이 있었다. 이들은 무함마드의 사촌동생이자 사위로서 후에 제4대 칼리파로 선출이 되기도 했던 알리가 무함마 드의 진정한 후계자이며 첫 번째 이맘 곧, 정신적 인도자라고 믿었다. 이들의 주 장에 따르면, 비록 공식적인 유서는 남기지 않았으나 무함마드는 생전에 여러 차 례에 걸쳐 알리가 자신의 계승자임을 분명히 했다. 무함마드의 후계자 건은 선출 과 충성의 서약을 통해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28) 시아파 무슬림들은 알리가 피살된 후 이맘위( 位 )가 그의 후손, 특히 알리와 무 함마드의 딸 파티마(Fáṭima) 사이에서 태어난 하산(Ḥasan)과 후세인(Ḥusayn)의 혈통을 통해 계승되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시아파는 역대 이맘의 사후 계속 후계 자 문제로 사분오열 되는 양상을 보였다. 시아파 중 가장 대표적인 열두이맘파는 27)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는 Balyuzi, H. M.. Muḥammad and the Course of Islám pp ; Momen, Moojan. An Introduction to Shʿi Islam pp. 1-22; 김영경. 종파 형성 배경과 정치적 갈 등. (김정위 외. 이슬람 사상의 형성과 발전. 2000) 참조. 28) Momen, Moojan. An Introduction to Shʿi Islam pp

152 146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주로 이란 땅에 뿌리를 내렸으며, 1500년 경 사파위조( )에 의해 국교로 정해진 이래 오늘날까지 가장 확고한 기반을 갖고 있다. 열두이맘파는 이 명칭이 말해주듯 모두 12명의 이맘을 무함마드의 진정한 후계 자로 인정하고 있다. 제11대 이맘 하산 알 아스카리(Ḥasan al-ʿaskarí)는 이슬람력 으로 260년, 서력으로는 873년 세상을 떠났다. 그가 사망한 직후 추종자들은 또 다시 후계자 문제를 놓고 진통을 겪어야 했다. 이번에는 문제가 이전보다 더욱 미 묘했다. 하산에게 이맘위을 계승할 아들이 과연 있는지, 그 여부부터가 쟁점으로 등장했던 것이다. 후계자 문제를 놓고 서로 견해를 달리한 집단이 적어도 14개, 많게는 20개에 이르렀다는 기록은 당시의 혼미상을 잘 말해주고 있다. 29) 이렇게 혼란스럽고 베일에 쌓인 상황 속에서 오늘날 쉬아파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열두 이맘파의 주장이 점차 설득력을 얻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30) 그에 따르면, 하산 알-이스카리에게는 당시 5살이던 아들 무함마드 알-마흐디 (Muḥammad al-mahdí 869-?)가 있어 이맘위를 계승했다. 그러나 그는 이 세상에 자신을 나타내 보이지 않고, 대신 중계자들을 통해 추종자들과 교류했다. 4번째 중계자가 불과 3년여의 임기를 끝으로 941년 세상을 떠나자 제12대 이맘 무함마 드 알-마흐디는 이후 어떠한 형태의 교류도 끊고 가이바(Ghaiba) 즉,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로 접어들었다. 이맘의 정신적 인도가 결여된 이 기간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말세까지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불의가 난무하게 될 그 때가 되면, 알 문타자르(al-Muntaẓar), 대망( 大 望 )의 그분 하산 알 아스카 리의 아들 무함마드 알-마흐디가 하느님의 사자 무함마드가 예언한 바르게 인도 될 분 즉 마흐디 이자, (대업을 위해) 궐기할 분, 까임(Qáʾim)으로서 이 세상에 돌아와 악을 쳐부수고 정의를 실현할 것이다. 31) 그러면 이어 카르발라에서 순교한 이맘 후세인과 72명의 추종자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학수고대하는 예수를 비 29) Balyuzi, H. M.. Muḥammad and the Course of Islám p. 256; Momen, Moojan. An Introduction to Shʿi Islam pp ) Balyuzi, H. M.. Muḥammad and the Course of Islám. Oxford: Geroge Ronald, pp ; Momen, Moojan. An Introduction to Shʿi Islam pp 참조. 31) Ameer Ali, Syed. The Spirit of Islam p. 123; Momen, Moojan. An Introduction to Shʿi Islam pp

153 참고자료 147 롯하여 예전에 활동했던 하느님의 사자들과 이맘들이 돌아올 것이다. 32) 말세가 되면 예언자의 후손으로서 마흐디라고 불릴 한 인물이 나타나 정의를 복원할 것이라는 믿음은 순니파에도 있다. 이븐 할둔(Ibn Khaldun )은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말세가 되면 필히 (예언자의) 가문에서 한 분이 나타나셔서 이슬람을 강건하게 하고 정의를 확립하리라는 것은 모든 시 대, 모든 무슬림들에게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무슬림들은 그 분을 따를 것이며, 그 분은 무슬림 세계를 통치하시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그 분을 마흐디라고 부를 것 이다. 그리고 이어, (하디스에) 명시되어 있듯이, 적그리스도가 (최후의 심판의) 시 각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각종 징조와 함께 출현할 것이다. 33) 마흐디에 이어 예수 가 재림할 것이라는 믿음 역시 순니파와 시아파 무슬림들이 공유하고 있다. 34) 세이키 운동 세이키 운동은 이러한 이슬람적 메시아론을 배경으로 19세기 초 이란에서 태어 났다. 창시자는 아라비아 반도 북쪽 해안지방에 위치한 아흐사(Aḥsá) 출신의 시아 파 학자, 세이크 아흐마드(Shaykh Aḥmad )였다. 이라크 지방의 유명 울라마들로부터 수학한 그는 1820년대 초 이란에서 학문적 일가를 이루게 되었다. 세이크 아흐마드는 경건하고 금욕적인 삶으로 주위의 존경을 받았으며, 자주 까 임의 출현과 관련된 종교적인 환상을 체험했다. 그는 까임의 출현과 관련된 전승 자료를 은유적으로 해석, 그 종말론적 사건이 임박했다고 가르쳤다. 그의 가르침 은 당대 시아파 주류( 主 流 )인 우술리 학파로부터 이단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35) 그러나 물라 아흐마드 나라끼(Mullá Aḥamad Naráqí) 등 당대 최고의 학자들은 32) Momen, Moojan. An Introduction to Shʿi Islam pp ; Sachedina, Abdulaziz Abdulhussein. Islamic Messianism pp ; Ṭabāṭabāʾī, ʿAllāmah Sayyid Muḥammad Husayn. Shiʿite Islam p ; Richard, Yann. Shiʾite Islam p ) Ibn Khaldun. The Muqaddima. trans. by F. Rosenthal. 2nd ed :156, Sachedina, Abdulaziz Abdulhussein. Islamic Messianism: The Idea of the Mahdi in Twelver Shʿism p. 4에서 재인용. 34) Momen, Moojan. An Introduction to Shʿi Islam p ) Momen, Moojan. An Introduction to Shʿi Islam pp. 136, ; 김정위. 쉬아파의 형성과 발전 과정 연구. (김정위 외. 이슬람 사상의 형성과 발전. 2000) 182; 김정위. 이슬람사상사 참조.

154 148 제11차 인권교육포럼 모두 이에 대해 침묵했으며 그의 후원자 중에는 파트 알리 샤(Fath-ʿAlí Sháh )와 황태자 무함마드 알리(Muḥammad ʿAlí) 등의 유력자가 있어 박해를 받지는 않았다. 세상을 떠나기 전 세이크 아흐마드는 자신이 가장 촉망하던 제자, 세이예드 카짐(Siyyid Káẓim )을 후계자로 임명했다. 36) 세이예드 카짐은 시아파 최대의 성지인 카르발라에서 스승의 가르침을 폈다. 1843년 12월 31일/1844년 1월 1일 임종에 이르러 그는 후계자를 지명하는 대신, 때 가 임박했으니 전국으로 흩어져 약속된 분, 진정한 이맘 을 찾도록 하라는 지시를 측근의 제자들에게 남겼다. 37) 스승의 유훈에 따라 약속된 분 을 찾아 나 선 세이키들은 그에 앞서 단식과 명상을 통해 신성한 인도가 있기를 기원했다. 38) 그러나 전국에 흩어져 있던 여타의 세이키들은 세이예드 카짐이 죽은 후 구심점 을 잃고 카르발라, 타브리즈, 키르만 등지의 지역 원로들을 중심으로 각각 자신들 의 학맥을 이어갔다. 39) 1844년은 이슬람력으로 1260년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이 해는 12대 이맘이 가 이바 즉, 은폐 상태로 들어간지 꼭 1000년이 되는 해였다. 또 경전 속에도, 해 석하기에 따라서는, 무함마드의 주기가 1000년 간 지속될 것이라는 암시가 있 어 40) 세이키들 외에 여타 무슬림들 사이에도 숨은 이맘 의 출현에 대한 기대가 무르익어 있었다. 41) 3.2 바압 세이예드 카짐의 수제자 중의 한 사람인 물라 후세인(Mullá Husayn)이 찾아간 곳은 한때 잔드 왕조(Zand )의 수도였던 고도( 古 都 ) 시라즈였다. 그는 36) Momen, Moojan. An Introduction to Shʿi Islam p. 229; Smith, Peter. The Babi and Bahaʾi Religions pp ) Nabil, Muḥammad Zarandí. The Dawn-Breakers pp ) Nabil, Muḥammad Zarandí. The Dawn-Breakers pp ) Momen, Moojan. An Introduction to Shʿi Islam pp ) 예를 들어 꾸란 32:5, 22:47, 70:4를 보라. 또한 꾸란에 의하면 모든 움마(Umma), 즉 공동체에는 각각 한치도 줄이거나 연장할 수 있는 아잘(Ajal), 기한( 期 限 ) 이 정해져 있다. 7:34, 10:49, 15:5, 23:43, 또 다 른 의미에서 기한 을 말하고 있는 구절로 13:38가 있다. 41) Momen, Moojan. An Introduction to Shʿi Islam p. 231.

155 참고자료 149 성문 입구에서 자신을 세이예드 알리 무함마드라고 소개한 한 젊은이를 만났다. 생면부지의 젊은이는 물라 후세인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그 날 저녁 두 사람 은 단둘이 마주앉아 신학적인 담론을 나누었다. 초면의 집주인은 세이예드 카짐이 제자들에게 일러준 약속된 분 의 징표가 어떤 것인지를 물었다. 그리고 물라 후 세인의 입에서 대답이 나오기가 무섭게 자신이 바로 그 징표의 주인공이라고 했 다. 이어 그는 비의적( 秘 意 的 )인 내용이 담긴 수라툴 요셉 즉, 꾸란의 12번째 수 라인 요셉 장( 章 )에 대한 주석을 거침없이 써내려 갔다. 까유물-아스마(Qayyūmuʾ l-asmá), 명칭을 부활시키는 분 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주석에서 세이예드 알리 무함마드는 자신이 바로 지난날 예언자들이 약속했던 하느님의 사자이며, 동시에 머지 않아 나타날, 자신보다 훨씬 더 위대한 분을 준비할 소명을 받았다고 선언했 다. 그는 이 자리에서 자신을 바압(Báb)이라고 불렀다. 1844년 5월 23일 밤 시라 즈에서 있었던 일이다. 42) 그날 밤 물라 후세인은 바압의 제자가 되었다. 바압은 첫 번째 제자에게 바불- 바압(Bábuʾl-Báb)이란 명칭을 수여했다. 이어 17명의 세이키들이 각자 자신의 직 관력에 의지해 바압을 찾아와 제자가 되었다. 바압이 후루프을-하이(Ḥurúfʾ l-ḥayy), 생명의 문자들 이라고 칭한 이들 18명의 제자 중 마지막으로 바압을 따 르게 된 인물은 인편으로 서신을 보내 자신의 믿음을 전했다. 생명의 문자들 중 유일하게 여성이었던 이 사람은 파티미 움 살라미(Fáṭimih Umm-Salamih )로서 스승인 세이예드 카짐이 꾸라툴-아인(Qurratʿl-ʿAyn), 두 눈의 위 안 이라는 명칭을 붙여줄 정도로 총애한 시인이었다. 바압은 그녀를 타헤레 (Ṭáhirih), 순결한 영혼 이라고 불렀다. 43) 바비교의 창시자 세이예드 알리 무함마드는 1819년 10월 20일 시라즈에서 태어 났다. 44) 상업을 가업으로 하는 유복한 집안에 태어났으나 부친이 일찍 세상을 떠 나 그는 친척의 돌봄을 받으며 성장했다. 세이예드 알리 무함마드는 몇몇 교사로 42) Shoghi Effendi. God Passes By pp ) Nabil, Muḥammad Zarandí. The Dawn-Breakers pp ; 쉼멜, 안네마리. 김영경 역. 이슬 람의 이해 ) 바압의 출생과 유년시절에 대해서는 Nabil, Muḥammad Zarandí. The Dawn-Breakers pp 를 보라.

156 150 제11차 인권교육포럼 부터 약간의 기초적인 교육을 받았다. 그들은 어린 제자의 남다른 직관력에 놀라 곤 했다. 15세가 되던 해 그는 부시르로 갔다. 페르시아만에 위치한 이 항구도시 에서 그는 친척들과 함께 상업에 종사하는 한편 종교적인 탐구와 명상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1841년 초, 세이예드 알리 무함마드는 이락 지방으로 여행을 했 다. 시아파 이맘들의 성지를 순례하기 위해서였다. 카르발라에 머무는 동안 세이 크 학파의 지도자 세이예드 카짐은 그를 찾아와 이례적인 예우를 했다. 45) 25세가 되던 1844년, 앞에서 소개한 것처럼 자신의 소명을 천명한 바압은 18명 의 생명의 문자들 로 하여금 전국 방방곡곡으로 흩어져 복음을 전하도록 했다. 이때 바불-바압, 물라 후세인에게는 각별한 임무가 주어졌다. 수도 테헤란으로 가 서 무함마드 샤(Muḥammad Sháh )와, 현지 주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한 인물을 찾아내 그 사람에게 자신의 서한을 전달하라는 것이었다. 샤와의 면담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물라 후세인이 또다시 영감에 의지해 찾은 제2의 인물은 유서 깊은 가문의 후예로서 가난한 사람들의 아버지 라는 별명으 로 주위의 칭송을 받고 있던 미르자 후세인 알리였다. 후에 바하올라라는 명칭으 로 불리게 될 그는 물라 후세인으로부터 바압의 서한과 복음을 전해 듣는 즉시 새로운 신앙을 받아 들였다. 물라 후세인으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들은 바압은 생명의 문자들 중 가장 나이 가 어린 제자 꾸두스(Qudús)와 함께 부시르를 경유해 메카, 메디나로 순례의 길 에 떠났다. 바압은 성지에서 자신의 소명을 공개적으로 알렸다. 그러나 그곳에서 는 아무런 반향도 얻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46) 그 사이 시라즈에서는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의 수가 급증해 종교지도자들과 행 정당국을 긴장시켰다. 1845년 초 성지로부터 고향으로 돌아오던 바압은 주지사가 보낸 기마병들에 의해 곧장 자택으로 호송되어 연금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추종자 들과의 내왕을 차단함으로써 사태의 악화를 막고자 한 당국의 조치 때문이었다. 바비운동 초기 까자르조(Qájár ) 정부는 이 새로운 종교운동에 대해 중 립적인 자세를 취했다. 지방에 따라서도 주지사나 지역 원로들의 성향에 따라 반 45) Vahman, Fereydun. Baha'ismus in Theologische Realenzyklopädie. Bd. V S ) Nabil, Muḥammad Zarandí. The Dawn-Breakers pp

157 참고자료 151 응이 달랐다. 그러나 울라마들의 반대가 거세지면서 상황은 차츰 악화되었다. 새 로운 종교운동과 관련된 사회역학 관계가 의례 그렇듯이 이는 곧 소수집단에 대 한 탄압을 의미했다. 갖가지 형태의 압력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바비운동은 급속히 번져나갔다. 급기 야 무함마드 샤도 이를 간과할 수 없기에 이르렀다. 그는 자신이 신임하는 측근 각료 중 학문으로도 이름이 높던 세이예드 야야이-다라비(Siyyid Yaḥyáy-i-Dárábí), 일명 바히드(Vaḥíd)를 시라즈로 보내 바압에 대해 조사하도록 했다. 47) 바히드는 세 차례에 걸쳐 바압을 만났다. 그러나 바압의 거침없는 논증과 종교적 카리스마에 압도되어 오히려 그의 추종자가 되고 말았다. 황제에게는 짧막 한 보고서를 띄운 뒤 바히드는 새로운 신앙을 전파하는데 자신의 남은 삶을 바쳤 다. 48) 1846년 9월 바압은 이스파한으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주지사인 마누키흐르 칸 (Manúchihr Khán) 49) 등 우호적인 지역 유지들의 저택에 머물면서 잠시 조용히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주지사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상황은 돌변했다. 주지사의 주선으로 거의 성사단계에 접어들었던 샤와의 만남도 총리대신 하지 미르자 아까 시(Ḥájí Mírzá Aqásí)의 개입으로 무산되었다. 하긴 호기심 많은 황제가 이 범상 치 않은 젊은이를 면담하는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었 다. 결국 바압은 테헤란으로 가는 도중 아자르바이잔 지방으로 압송되어, 그곳에 서도 가장 외곽에 위치한 마쿠(Máh-Kú) 산성에 유폐되었다. 터키, 러시아 국경이 멀지 않은 이 성채에 바압이 유폐된 것은 1847년 여름의 일이다. 50) 바압은 외부 와의 연락이 두절된 채 혹독한 추위와 엄중한 감시 속에서 그 해 겨울을 나야 했 다. 그러나 그의 인간적, 종교적 매력이 적대적이던 성주와 주민들의 가슴을 녹이 47) Shoghi Effendi. God Passes By pp , 43, ) Nabil, Muḥammad Zarandí. The Dawn-Breakers pp 신흥종교 의 추종자들은 사회적 인 소외계층이거나 정치적으로 불만이 있는 자들이라는 종교사회학의 단골 명제는 바비운동에는 해당 하지 않는다. 바비운동의 추종자들은 당시 이란 사회의 모든 계층을 망라했다. 최고위급 종교지도자로부터 황실의 친인척, 정계의 거물, 바자르의 거상( 巨 商 )에 이르기까지 상류계층의 인사들도 상당수에 이르렀다. Smith, Peter. The Babi and Bahaʾi Religions pp 참조. 49) 그는 그리스도인이었다. 50) Nabil, Muḥammad Zarandí. The Dawn-Breakers pp

158 152 제11차 인권교육포럼 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를 알게 된 정부 당국은 더욱 엄중한 감시 하에 두기 위해 그를 이란 동북부에 위치한 키흐리끄(Chihríq) 성채로 이송 시켰다. 51) 1848년 7월 바압은 타브리즈로 호송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종교지도자들의 심 문을 받았다. 심문은 공개적으로 이루어졌다. 주지사를 비롯해 머지않아 샤로 등 극하게 될 나시룻딘 미르자(Náṣiriʾd-Dín Mírzá) 등 정계 실력자들도 배석한 자리 에서 바압은 자신의 신원을 밝히라는 질문에 대해 의연한 자세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는, 나는 그대들이 천년 동안 그 이름을 불렀고, 일찍이 그대들이 그 이름을 들어 궐기했으며, 또 그대들이 자신의 눈으로 직접 뵐 수 있기를 그토록 갈망했고, 한시라도 빨 리 출현토록 해 달라고 하느님께 기원했던 바로 그 약속된 인물입니다! 실로 내가 엄숙히 말하노니, 양( 洋 )의 동서를 불문하고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마땅히 나의 말에 복종해야 할 것 이며, 내 앞에 충성을 맹세해야 할 것입니다. 52) 공개석상에서 바압을 이단자로 낙인찍고, 이를 통해 그가 이끄는 새로운 종교운 동을 종식시키려는 목적으로 개최되었던 모임은 오히려 그에게 자신이 대망의 까 임(Qáʾim)임을 선포하는 극적인 기회를 제공했던 것이다. 바압의 당당한 기세에 혹 분개하기도 하고 혹 주눅이 들기도 한 울라마들은 각자 의견도 분분해서 어떠 한 신학적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 다만 그를 태형으로 다스리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바압은 태형을 당한 뒤 다시 키흐리끄로 압송되었다. 53) 이와 비슷한 시기 마잔다란 지방 바다시트(Badasht)에서는 일군의 바비들이 모 여 획기적인 대회를 개최했다. 이슬람 전통과의 결별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던 것이 다. 타헤레는 이 대회에 베일을 걷고 나타나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행동으로 보여 주었다. 54) 바압의 승인 하에 이루어진 이 대회를 기점으로 바비운동은 이른바 돌 51) Nabil, Muḥammad Zarandí. The Dawn-Breakers pp , ) Nabil, Muḥammad Zarandí. The Dawn-Breakers pp ; Shoghi Effendi. God Passes By p ) Nabil, Muḥammad Zarandí. The Dawn-Breakers pp ; Shoghi Effendi. God Passes By p ) Nabil, Muḥammad Zarandí. The Dawn-Breakers pp ; Smith, Peter. The Babi and

159 참고자료 153 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고, 이는 기존의 전통을 지키려는 울라마들의 탄압을 피 할 수 없게 되었음을 의미했다. 1848년 9월 4일 무함마드 샤가 세상을 떠났다. 앞서 언급한 나시룻딘 샤(Náṣiri ʾd-Dín Sháh )가 그 다음달 등극했으나 정권교체에 따른 사회적 혼란이 심했다. 이러한 와중에 키흐리끄에 감금된 바압을 구출하려는 바비들이 마잔다란 지방의 세이크 타바르시(Shaykh Ṭabarsí), 나이리즈(Nayríz)에서 정부군과 무력으 로 대치한 사건이 벌어졌다. 55) 수개월에 걸친 저항 끝에 그들은 모두 전사하거나 체포되어 일부는 처형되고 나머지는 노예로 매매되었다. 이와 함께 바비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시작됐다. 1850년 7월 9일 결국 바압도 타브리스 병영광장에서 만여 명의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처형되었다. 56) 6년여의 짧은 활동기간 중 바압은 상당한 분량의 글을 남겼다. 그중 가장 중요 한 것은 페르시아어로 된 바얀(Bayán)이다. 마쿠에 유폐되어 있을 때 계시된 이 글은 이슬람과 구분되는 바비교 고유의 율법적 가르침을 담고 있다. 57) 그 속에는 여성에게 더 이상 베일 착용의 의무가 없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앞서 언급한 바다 시트 대회에서 타헤레가 베일로 얼굴을 가리지 않은 상태로 공식석상에 나타난 것도 이에 준한 것이었다. 바압의 가르침 중에서 가장 특기할 만한 것은 자신에 이어 만유즈히루훌라 Bahaʾi Religions pp ; Balyuzi, H. M.. Baháʾuʾlláh Der Herr der Herrlichkeit S ) Nabil, Muḥammad Zarandí. The Dawn-Breakers pp , ; Momen, Moojan. An Introduction to Shʿi Islam p. 141; Smith, Peter. The Babi and Bahaʾi Religions pp , ) Nabil, Muḥammad Zarandí. The Dawn-Breakers pp ; Shoghi Effendi. God Passes By pp 년부터 1850년 사이 목숨을 잃은 바비는 약 5천명으로 추정된다 (Richard, Yann. Shiʾite Islam p. 72); 바압의 유해는 우여곡절 끝에 팔레스타인의 항구도시 하이파로 이송되 어 1909년 카르멜 산 산록에 마련된 성묘에 안장되었다. 오늘날 그의 성묘를 장식하고 있는 금빛 돔은 1953년에 이르러 증축된 것이다. 바압이 자신의 소명을 선언한 날로부터 158주년이 되는 2001년 5월 22 일 저녁, 그의 성묘를 중심으로 카르멜 산록에 조성된 총 19개의 계단식 정원 공식 기공식이 있을 예정이 다. ( The Mount Carmel Terraces Official Opening". Bahá í World Centre. Haifa, Israel May 2001; The Korea Herald. 9. April p. 16 참조) 57) 계시는 아랍어와 페르시아어로 이루어졌다. 바얀 이란 이름을 지닌 책은 아랍어로 된 바얀과 페르시아어로 된 바얀 두 종류가 있다. 페르시아어로 된 바얀에 따르면, 바압을 통해 계시된 글은 약 50만 소절이었고, 이 중 약 10만 소절은 추종자들 사이에 유통되었다. 참고로 무함마드를 통해 22년 간 계시된 꾸란의 분량 은 약 6천 소절이다.

160 154 제11차 인권교육포럼 (Manyuẓhiruhuʾlláh) 곧, 하느님께서 현시( 顯 示 )하실 분 이 머지않아 출현할 것이 라는 예언이다. 바얀을 비롯해 그가 남긴 서한과 기도문 속에도 이 구세주의 출현 에 대한 간구( 懇 求 )가 곳곳에 실려있다. 바압은 자신의 소명이 이 만유즈히루훌라 (Manyuẓhiruhuʾlláh)의 길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며,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치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바압은 후계자를 임명하지 않았다. 자신이 남긴 가르침에 대해 유권해석을 내릴 수 있는 장치도 마련하지 않았다. 그 대신 정치적 상황을 고려한 몇몇 측근의 제 언을 받아들여 명목상의 지도자를 임명했다. 바비 공동체의 지도자로 임명된 사람 은 바하올라의 이복동생인 미르자 야야(Mírzá Yaḥyá )였다. 58) 바압은 그에게 수브히 알잘(Ṣubḥ-i Azal), 영원의 새벽 이라고 불렀다. 3.3 바하올라 바하올라의 속명( 俗 名 )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미르자 후세인 알리 누리이 다. 그는 1817년 11월 12일 테헤란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마잔다란 지방 누르 (Núr)에 근거를 둔 부유한 명문( 名 門 )으로서, 멀리 사산(Sadanid) 제국의 마지막 황제 야즈디지르드(Yazdigird) 3세로 거슬러 올라가는 유서깊은 가문이었다. 59) 부 친 미르자 압바스 부주르끼 누리(Mírzá ʿAbbás Buzurq-i-Núrí)는 파트 알리 샤 재 임시 각료로 재직하기도 했다. 1839년 부친이 세상을 떠났을 때, 바하올라도 관직을 제의 받았으나 그는 이를 사양했다. 그 대신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영지( 領 地 )를 관리하며 종교적인 탐구와 자선활동의 길을 선택했다. 1840년대 초 그는 앞에서 소개했듯이 가난한 사람들 의 아버지 라고 불리기도 했다. 물라 후세인을 만나 즉석에서 바압을 따르기로 한 다음부터는 새로운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이로 인해 이란 사회의 특권층으로서 자신이 누리던 부와 명예를 모두 잃게 되었으나 그에게는 다른 운 58) ʿAbduʾl-Bahá. A Travellers's Narrative: Written to illustrate the episode of the Báb. transl. by Edward G. Brown. A new and corrected ed pp ; Vahman, Fereydun. Baha'ismus in Theologische Realenzyklopädie. Bd. V S ) 바하올라의 가계에 대해서는 Balyuzi, H. M.. Baháʾuʾlláh Der Herr der Herrlichkeit S 을 보라.

161 참고자료 155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하올라는 바압을 직접 만난 적이 없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신왕래를 통해 긴 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바압은 순교를 당하기 전 자신의 반지와 필기구, 그리고 몇몇 서류를 바하올라에게 보냈다. 1848년 7월 바다쉬트에서 개최된 대회를 주관 한 사람도 바하올라였다. 당시 그는 81명의 바비들을 초청, 새로운 현시자의 출현 으로 기존의 이슬람 율법이 그 효력을 상실했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그러나 바비 공동체는 초창기이래 항상 느슨한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바압이 연금 내지 감금상태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공동체는 지역적인 원로들을 중심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제각기 적대적인 환경에 대응해야 했다. 종교적 신념을 위해서는 부귀영화를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는 이상주의자, 새로운 세상을 도모하려는 혁 명가, 현실 세계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모험가, 영웅주의에 사로잡힌 광신자 등 개별 바비들의 개인적인 성향도 다양했으리라는 사실은 시대적 정황이나 바비운동 의 성격을 감안하면 쉽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창 시자의 죽음으로 쇠약해진 공동체를 더욱 궁지에 몰아넣은 사건이 발생했다. 바압 이 처형을 당하고 약 2년이 흐른 뒤인 1852년 8월 15일 두 명의 젊은 바비가 어 설픈 권총으로 행차중인 나시룻딘 샤를 저격한 사건이 그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샤는 얼굴에 가벼운 상처를 입었다. 60) 일부 무모한 바비들에 의해 계획된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다시 무차별적인 박 해가 전국을 휩쓸었다. 일반 바비들은 말할 것도 없고 타헤레를 비롯하여 이때 목 숨을 잃은 지도자급 바비만 삼사십 명에 이르렀다. 바하올라도 이번에는 박해를 피할 수 없었다. 그나마 측근 유력 인사들과 러시아 공사의 구명운동으로 처형은 면하고 다른 바비들과 함께 시야찰(Síyáh Chál), 칠흑 구덩이 라고 불린 테헤란의 한 지하감옥에 투옥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61) 60) Nabil, Muḥammad Zarandí. The Dawn-Breakers pp ; Balyuzi, H. M.. Baháʾuʾlláh Der Herr der Herrlichkeit S ; Shoghi Effendi. God Passes By pp ) 당시 총리대신이던 미르자 아까 칸(Mírzá Áqá Khán)은 바하올라와 동향인 누리 출신으로 그의 먼 친척이 었다. 저격사건이 있던 시각에도 바하올라는 총리대신의 형제와 함께 있었다. 한편 그의 매제였던 미르자 마지디 아히(Mírzá Majíd-i Áhí)는 러시아 공사의 서기관으로 일하고 있었다. Smith, Peter. The Babi and Bahaʾi Religions p. 58; Balyuzi, H. M.. Baháʾuʾlláh Der Herr der Herrlichkeit S. 99.

162 156 제11차 인권교육포럼 바하올라가 하느님의 사자( 使 者 )로서 부름을 받은 것은 바로 이 지하감옥에서였 다. 지하 저수 시설을 개조해서 만든 어두운 감옥 속엔 구속된 바비들과 더불어 150여 명의 잡범들이 함께 갇혀 있었다. 당시 그의 발목엔 족쇄가 채여 있었고, 목과 어깨에도 무거운 쇠사슬이 내리 누르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자신에 게 닥쳤던 일을 바하올라는 만년에 이르러 이렇게 기록했다. 테헤란 감옥에 갇혀 있을 당시, 살을 파고드는 쇠사슬의 무게와 악취 때문에 나는 거의 잠 을 이룰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어쩌다 깜빡 선잠이 들면, 마치 높은 산정으로부터 계곡바 닥으로 떨어지는 거대한 폭포수 같은 그 어떤 것이 정수리로부터 가슴 위로 흘러내리는 것 을 느꼈습니다. 그러면 몸은 사지가 모두 활활 타오르는 듯했고, 내 입에선 아무도 알아들 을 수 없는 소리가 흘러 나왔습니다. 62) 그러던 어느 날 바하올라는 또 다음과 같은 신비체험을 했다. 어느 날 밤 꿈속에서 고귀한 말씀이 사방으로부터 들려 왔습니다. 진실로 이르노니, 우리는 그대가 그대 자신과 그대의 붓에 의지해 승리를 하도록 하리라. 그대에게 닥친 일로 인해 슬퍼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지니 그대는 안전할 것이니라. 머지않아 하느님께서 지상에 있는 귀한 사람들로 하여금 궐기토록 할 것이니, 그들이 그대와 그대의 이름을 빌어 그대를 도울 것이니라. 하느님께서는 그대의 이름을 통해 당신을 알아 본 사람들의 가슴을 소생시킬 것 이니라. 63) 조사과정에서 무혐의가 입증되어 바하올라는 4 개월 후 석방되었다. 그러나 즉 시 국외로 떠나라는 단서가 붙어 있었다. 그의 재산은 이미 몰수된 상태였다. 바 하올라는 1853년 1월 12일 가족과 함께 테헤란을 떠났다. 그로부터 3개월 후인 4 월 8일 바하올라 일행은 바그다드에 도착, 그 곳에 짐을 풀었다. 64) 62) Baháʾuʾlláh. Brief an den Sohn des Wolfes S. 35; 바하이국제공동체 공보처. 김명정 역. 바하올 라 ; 당시의 정황에 대해서는 Shoghi Effendi. God Passes By p. 101; Balyuzi, H. M.. Baháʾuʾlláh Der Herr der Herrlichkeit S ; Taherzadeh, Adib. Die Offenbarung Baháʾuʾ lláh. Bd. 1, S 을 보라. 63) Baháʾuʾlláh. Brief an den Sohn des Wolfes S. 34; 바하이국제공동체 공보처. 김명정 역. 바하올 라

163 참고자료 157 당시 바비 공동체는 창시자와 함께 대부분의 지도자급 인물을 잃은 채 침체의 늪에 빠져 있었다. 바그다드에서 바하올라는 이러한 공동체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 했으나 공동체 내부의 알력, 특히 미르자 야야의 견제와 방해로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다. 소심한 성격의 미르자 야야를 배후에서 조정한 인물은 이스파한 출신의 세이예드 무함마드(Siyyid Muḥammad)였다. 권모술수에 능한 그는 두 사람 사이 를 이간질시켰으며, 미르자 야야를 바압이 예언한 인물이라고 부추기기도 했다. 1854년 4월 10일 바하올라는 가족들에게도 행선지를 알리지 않은 채 바그다드 를 떠났다. 그가 찾아간 곳은 멀리 이라크 북쪽 쿠르디스탄 산악 지방이었다. 그 는 사르 갈루(Sar-Galú)라는 이름의 산 속에서 조용히 홀로 지냈다. 외부와의 접 촉을 극히 제한했으나 얼마 있지 않아 한 수피 형제단 지도자가 그의 인간적인 매력에 반하게 되었다. 바하올라는 그의 간청으로 술라이마니야(Sulaymáníyyih)로 거처를 옮겼다. 비록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는 했으나 그의 명성은 곧 주위의 저명 인사들은 물론 지역주민들에게도 퍼졌나갔다. 그러는 사이 바비 공동체는 재기의 전기를 찾지 못한 채 서서히 스러져갔다. 사 회학적 차원에서는 만약 그가 쿠르디스탄 산악지방에 그대로 머물렀다면, 그는 그 지역 수피 성인 중의 한 사람으로 남았을 것이며, 바비 공동체는 여타의 천년왕국 운동처럼 소멸했거나 아니면, 보잘것없는 군소 종파로 이란과 이란 인근 지역에서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바하올라의 명성 이 바그다드에까지 전해지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그의 거처를 수소문하던 가족과 측근 바비들은 쿠르디스탄 산악 지방에서 명성이 자자한 무함마디 이라니 (Muḥammad-i-Írání)라는 이름의 한 데르비쉬가 바로 자신들이 찾고있는 인물이라 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들은 바하올라에게 사람을 보내 돌아 올 것을 간청했다. 1856년 3월 바하올라는 바그다드로 돌아왔다. 65) 이후 바하올라는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했다. 그의 영향력은 곧 이란으로도 뻗어 가 바비들 사이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부상했다. 바하올라의 집은 바비 공동 64) Nabil, Muḥammad Zarandí. The Dawn-Breakers pp ) 바하올라의 당시의 행적에 대해서는 Taherzadeh, Adib. Die Offenbarung Baháʾuʾlláh. Bd. 1, S ; Balyuzi, H. M.. Baháʾuʾlláh Der Herr der Herrlichkeit S

164 158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체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라크 지방에 산재한 시아파 성지 를 찾는 무수한 순례객들과 현지 페르시아 교민들도 즐겨 찾는 만남과 사교의 장 이 되었다. 주지사를 비롯해 정부 관리들 중에도 바하올라와의 교분을 자랑스러워 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66) 바하올라는 바비들에게 정부에 복종할 것, 일체의 정 치적, 정파적 행위를 멀리할 것, 그 대신 각자 자신의 정신적, 윤리적 덕목을 함 양하는데 힘쓸 것을 촉구했다. 67) 이 기간 중 그는 바비들에게 보낸 상당한 분량 의 서한 외에도 주로 개인적, 정신적인 덕목을 담은 숨겨진 말씀 68), 구도자가 거쳐야 할 정신적 단계를 신비주의적으로 묘사한 일곱 골짜기, 네 골짜기 69), 점진적 계시 등 바하이 신학의 요체를 담은 키타비 이깐(Kitáb-i-Īqán 확신의 서) 을 남겼다. 70) 바그다드 주재 페르시아 영사관에서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특히 미르자 부 주르그 칸(Mírzá Buzurg Khán)이라는 한 신임 영사의 눈에는 이러한 변화가 자 국의 이익을 해치는 적신호로 여겨졌다. 그는 이러한 사실, 특히 누가 변화의 중 심에 있는지를 본국에 보고했다. 바그다드를 방문한 울라마들의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갔다. 까자르 정부는 외교적인 경로를 통해 이스탄불 당국을 움직였다. 그러 나 그러한 노력은 절반의 성과를 올리는데 그쳤다. 바하올라를 본국으로 환송해 주거나 터키 땅에서 추방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오스만 정부는 그를 이스탄불로 초청했다. 테헤란 당국으로선 아무튼 바하올라가 페르시아 국경에서 멀지 않은 바 그다드를 떠나는 것이니 만족할만한 성과였다. 71) 66) Balyuzi, H. M.. Baháʾuʾlláh Der Herr der Herrlichkeit S ) 이는 정부군과의 무력충돌을 불사했던 기존의 바비 노선이나 미르자 야야의 노선과 상이한 것으로, 새로운 공동체의 탄생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68) 원래는 파티마의 숨겨진 서책 이라는 제목을 지닌 소책자로서, 아랍어로 된 전반부 71개의 구문과 페르시 아어로 된 후반부 82 개의 구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최초의 영어 번역본 (The Hidden Words)은 1932년 영국에서 출판되었다. 한글 번역본은 1967년 초판이 나왔다. 69) 영어 번역본은 이 두 작품을 하나로 묶어 The Seven Valleys and The Four Valleys란 제목으로 출판되 었으며 1945년에 초판이 나왔다. 70) Shoghi Effendi. God Passes By pp ) 당시 바그다드 주재 영국 영사로 있던 아놀드 켐벨(Arnold B. Kemball) 대령은 바하올라에게 영연방 내 원하는 곳 어디든 망명을 주선하겠다고 제의하기도 했다. Shoghi Effendi. God Passes By p. 131 참조.

165 참고자료 159 바그다드를 떠나기에 앞서 1863년 4월 22일부터 2주 동안 바하올라는 성 밖에 위치한 한 장원( 莊 園 )에서 지냈다. 주지사 나집 파샤(Najíb Páshá)가 빌려준 이 장 원에서 그는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주지사와 무프티(Muftí)를 비롯해 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와 이별을 아쉬워했다. 이러한 공개적인 모임과 함께 이 장원에서는 바비 바하이 역사에 있어서 또 하나의 획을 긋는 사건이 있었다. 장원 에서 지내게 된 첫날 바하올라가 몇몇 선별된 측근 바비들에게 자신이 바로 바압 이 약속했던 만유즈히루훌라, 하느님께서 현시( 顯 示 )하실 분 이자, 바압 이전의 사자( 使 者 )들이 예언했던 하느님의 보편적 현시자 임을 알렸던 것이다. 바하올라 는 이 사건을 신화적인 표현을 빌려 모든 피조물들이 정화의 바다에 잠겨 세례 를 받은 하느님의 축제 이자 축제의 제왕 이며, 유사이래 가장 위대한 지상 최대의 축제 라고 불렀다. 이 축제가 열렸던 장원은 레즈완(Riḍván), 낙원 이라 고 명명되었다. 72) 혹한 속에 떠나야 했던 첫 번째 유배길에 비해 바하올라의 두 번째 여정은 순 조로와 보였다. 가는 길목마다 지방 관리들이 환대하는 등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오스만 정부내 정치적 기류의 변화로 말미암아 이번에도 바압이 샤의 초 청으로 테헤란을 향해 가던 때와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다. 바하올라는 4개월 여 이스탄불에 머문 뒤, 1863년 12월 다시 혹한 속에서 발칸 반도에 위치한 아드리 아노플(오늘날의 에디르네)로 유배되었다. 한편 바그다드를 떠나 이스탄불로 향한 바하올라의 대상( 隊 商 ) 속에는 미르자 야야도 끼여 있었다. 그는 대상이 이라크 북서부에 위치한 모술(Mosul)에 이르렀 을 때 그곳에서 일행과 합류했으나 아드리아노플에 도착해서야 자신의 신분을 밝 혔다. 73) 그는 바비들 사이에서 바하올라가 누리는 존경과 영향력을 여전히 시기하 고 있었다. 자신이 바로 바압이 예언한 인물이라는 바하올라의 주장을 그는 인정 하지 않았다. 74) 이러한 알력과 갈등이 계속되던 중, 미르자 야야가 권한 차를 마 시고 바하올라가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원인은 차에 녹아있던 독이었다. 이 72) Taherzadeh, Adib. Die Offenbarung Baháʾuʾlláh. Bd. 1, S ) Balyuzi, H. M.. Baháʾuʾlláh Der Herr der Herrlichkeit S ) Taherzadeh, Adib. Die Offenbarung Baháʾuʾlláh. Bd. 2, S

166 160 제11차 인권교육포럼 로 인해 바하올라는 사경을 헤매야 했다. 다행히 생명은 건졌으나 이후 그는 평생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75) 이 사건을 계기로 바하올라의 추종자들은 자신을 바 하이 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는 기존의 바비나 아잘리 추종자들과의 결별을 의 미했다. 한편 오스만 정부 당국은 바하올라를 만나기 위해 페르시아로부터 몰려드는 수 많은 순례객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바하올라가 불가리아 혁명세력을 끌어들여 터키 정부를 전복할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투서는, 비록 터 무니없는 주장이었으나, 조사를 필요로 하는 사안이었다. 외무대신 푸아드 파샤 (Fuʾád Pashá)는 아드리아노플로 직접 찾아와 조사를 하기도 했다. 현지 바비공동 체와 바하올라에 대한 관계자들의 증언은 호의적이었다. 에디르네주 주지사 메흐 메트 호로쉬드 파샤(Mehmet Khurshíd Pashá)도 바하올라를 돕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이스탄불에선 총리대신 알리 파샤(ʿAlí Pashá), 외무대신 푸아드 파샤, 페르시아 대사 하지 미르자 후세인 칸 무쉬루드-다울리(Ḥájí Mírzá Ḥusayn Khán Mushíruʾd-Dawlih)가 힘을 합쳐 바하올라의 추방을 추진하고 있었다 년 7월 26일 술탄 압둘-아지즈(ʿAbduʾl-ʿAzíz)는 바하올라를 팔레스타인 아카(ʿ Akká) 성채에 종신토록 유폐시킨다는 칙령에 도장을 찍었다. 76) 미르자 야야에게 는 키프로스 섬의 파마구스타(Famagasta)가 새로운 유배지로 정해졌다. 77) 75) Balyuzi, H. M.. Baháʾuʾlláh Der Herr der Herrlichkeit S 이로 인해 바하올라는 글을 쓸 수 없게 되었다. Taherzadeh, Adib. Die Offenbarung Baháʾuʾlláh. Bd. 2, S. 2에는 바하올라가 병상 에서 일어나 미르자 야야에게 직접 쓴 글이 실려 있다. 이를 Taherzadeh, Adib. Die Offenbarung Baháʾuʾ lláh. Bd. 1, S. 422에 실린 이전의 필체와 비교하면 이미 손이 떨리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후 그 가 남긴 글은 비서들의 손을 거쳐 작성된 것이다. 바하올라의 글은 특유한 종교현상인 계시 에 의한 것으 로, 이를 비서들이 속기록에 담았다가 정서를 했다. 일례로 Baháʾí International Community. The Baháʾís p. 24에는 당시 그의 비서 중 한 명이었던 Mírzá Aáq Ján이 남긴 속기록 사진이 실려 있다. (Taherzadeh, Adib. Die Offenbarung Baháʾuʾlláh. Bd. 1, S 에는 실제 크기의 속기록이 실려있다) 속기록을 근거로 정서가 된 계시록은 바하올라 자신이 그 내용을 확인한 후 인장을 찍었다. 계 시는 아랍어와 페르시아어로 이루어졌다. 76) Taherzadeh, Adib. Die Offenbarung Baháʾuʾlláh. Bd. 2, S 아카는 고대에는 프톨레마 이스, 십자군 점령시에는 세인트 잔 다크(St. Jean d Acre), 지금은 아코(ʿAkko), 혹은 아크레(Acre)라고 불리는 고도( 古 都 ). 77) 오스만 정부가 최종목적지를 사전에 알려주지 않았으므로 이들은 자신들이 어디로 유배되는지를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몰랐다. 바하올라를 따라갈 일행과 수브히 아잘을 따라갈 일행을 나누는 과정에서 오스만 정 부는 서로 다른 편의 추종자들을 몇몇씩 편입시켰다. 일종의 내부 고발자를 두어 이들을 감시하고자 함이 었다. 이들의 운명에 대해서는 Edward G. Browne. BĀB, BĀBĪS. in Encyclopedia of Religion and

167 참고자료 년 8월 31일 바하올라와 70여 명의 일행은 갈리폴리, 알렉산드리아, 하이 파를 거쳐 아카에 도착했다. 아카에 도착한 바하올라 일행은 엄중한 감시 하에 성 채에 갇혀 지내야 했다. 바하올라는 이 성채 감옥을 (지상에서) 가장 참혹한 감 옥 이라고 불렀다. 1870년 11월에 접어들어 여건이 다소 완화되었다. 그로부터 7 년 후에는 도시 외곽 마즈라이(Mazraʿih)에 있는 한 저택을 얻어 이사를 할 수 있 었다. 이는 바하이들을 비롯한 외부 방문객들이 바하올라와 자유롭게 접촉할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얼마 후 바하올라는 다시 인근 바지(Bahjí)에 있는 대저 택으로 거처를 옮겨 만년을 보냈다. 78) 1890년 4월 15일부터 5일간 이 바지 저택에 머물면서 서양학자로서는 유일하게 바하올라를 만난 인물이 있다. 캠브리지 대학의 동양학 교수 에드워드 그랜빌 브 라운(Edward Granville Browne)이 그 사람이다. 브라운은 바하올라로부터 받은 첫인상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내가 본 그분의 얼굴은 무어라 적절히 표현할 수는 없으나 결코 잊을 수 없는 그런 모습이 었다. 빛나는 두 눈은 인간의 영혼을 꿰뚫어 보는 듯 했고, 넓은 이마엔 권능과 위엄이 서 려 있었다.... 그분에게 허리를 굽히는 순간 나는 내가 지금 누구 앞에 서 있는지 물을 필 요가 없었다. 왕들이 질투하고, 황제들도 헛되이 부러워하는 사랑과 헌신의 목표, 바로 그분 이었다! 79) 한편 페르시아에서는 바비에 이어 바하이에 대한 박해가 끊이지 않았다. 정치 사 회적인 여건과 맞물려 간헐적으로 이어진 박해로 인해 바하이들은 재산과 목숨을 잃곤 했다. 80) 더욱이 죽이기보다는 차라리 죽임을 당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는 바하올라의 가르침이 있었으므로 종교적, 정치적, 혹은 그 어떤 다른 이유에서든 Ethics. Vol.II p. 302를 보라. 1890년 브라운이 키프로스로 수브히 아잘을 방문했을 때 그로부터 받은 인상을 적은 글은 같은 책 303을 보라; Bahíyyih Nakhjavání. Four on an Island(1983)는 수브히 아잘과 함께 키프로스로 유배된 4명의 바하이들의 행적을 다루고 있다. 78) Balyuzi, H. M.. Baháʾuʾlláh Der Herr der Herrlichkeit S ) Browne, Edward G.. A Travellers's Narrative: Written to illustrate the episode of the Báb p. xxxix-xl; 바하이국제공동체 공보처. 김명정 역. 바하올라 ) Momen, Moojan. An Introduction to Shʿi Islam pp. 141, 237.

168 162 제11차 인권교육포럼 바하이들을 탄압하고자 한 사람들에게 그것은 손쉬운 일이었다. 81) 그러나 바하올 라를 중심으로 새롭게 태어난 공동체는 꾸준히 성장했다. 1880년 대 이란의 바하 이 숫자는 약 10만 명에 이르렀을 것이라는 보고가 있다. 이는 전체 인구의 1퍼 센트를 약간 초과하는 규모였다. 82) 바하올라는 수많은 서한을 추종자들에게 보내 자신의 가르침을 펼쳤다. 그가 남 긴 글은 세 가지 종류로 분류될 수 있다. 선언적인 내용을 담은 글, 사회적 율법 에 해당하는 글, 그리고 형이상학적, 신학적인 근본 원리와 윤리적 가르침을 담은 글이 그것이다. 바하올라가 남긴 글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율법을 담은 키타비 악다스(Kitáb-i-Aqdas 지성서 至 聖 書 ), 이다. 아랍어로 된 이 계시록 속에는 특히 자신의 후계자 압돌바하의 지위, 그 후계자에 대한 암시, 그리고 바하이공동체를 이끌어 갈 행정기구의 성격과 기능 등이 명시되어 있다. 83) 이 외에도 바하올라는 이스탄불에 머무는 동안 오스만제국의 술탄 압둘 아지즈 (ʿAbduʾl-ʿAzíz)에게 보낸 서한을 위시하여 당대의 정치적, 정신적 지도자들에게도 강력한 경고 내지 권고의 내용이 담긴 서한을 보냈다. 아드리아노플에서 그가 서 한을 보낸 군주는 페르시아의 나시룻딘 샤,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였다. 나시 룻딘 샤에게 보낸 글 속에는 앞에서 소개한 시아찰 감옥에서의 신비체험이 언급 되어 있다. 바하올라의 서한을 샤에게 직접 전달한 사람은 바디(Badí)라는 이름의 젊은이였다. 그는 임무를 마친 후 참혹한 처형을 당했다. 성채 감옥에 갇혔던 아 카시절 초기에도 바하올라는 제왕들에게 서한을 보냈다. 독일 황제 빌헬름 1세, 오스트리아 헝가리 황제 프란츠 요셉, 제정 러시아 황제 알렉산더 2세, 대영 제국 의 빅토리아 여왕이 그들이다. 그는 교황 피우스 9세 등 종교적 지도자들에게도 선언적인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당대 세계 최강국이던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 에게는 이 시절 또 한 통의 서한을 보내 자신의 소명을 알리고 군비축소, 세계평 81) Edward G. Browne. BĀB, BĀBĪS. in Encyclopedia of Religion and Ethics. Vol.II p. 303; Vahman, Fereydun. Baha'ismus in Theologische Realenzyklopädie. Bd. V S ) Smith, Peter. The Babi and Bahaʾi Religions pp ) 1992년 바하올라 서거 100주년에 즈음하여 Questions and Answers 등 관련자료를 포함한 키타비 악 다스 의 공식적인 영어 번역본(Baháʾuʾlláh. The Kitáb-i-Aqdas: The Most Holy Book. Haifa: Baháʾí World Centre, 1992)이 나왔다; Miller, William McElwee. The Baha'i Faith: Its History and Teachings Appendix 1에는 Earl E. Elder와 William McE. Miller의 번역본이 실려있다.

169 참고자료 163 화 등을 위해 진력할 것을 촉구했다. 빌헬름 1세에게 보낸 서한 속에는 다음과 같은 예언이 적혀있다. 라인강변이여, 우리는 그대가 보복의 칼날로 인해 피로 물드는 것을 본다. 그것도 한 번 이 아니라 두 번씩이나. 또한 우리는 베를린이 통곡하는 소리를 듣는다. 비록 지금은 화 려한 번영을 구가하고 있지만. 84) 임종을 앞두고 바하올라는 하느님의 사자로서의 자신의 일생을 되돌아보며 다음 과 같은 말을 남겼다. 전능하신 분, 삼라만상이 모두 엎드려 찬양을 올리는 분, 하느님께서 나에게 명하신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그 분의 말씀에 따를 것을) 그들에게 촉구함에 있어 우리는 실로 우리 의 책무를 결코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고 변명 할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단 말인가? 강력한 권좌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맹세하거니와, 그런 사람은 결코 없을 것이다. 나의 증적이 지구 전체를 휘감았으며, 나의 권능이 모든 인류를 감싸안았거늘. 85) 1892년 5월 29일 바하올라는 바지 저택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는 키타비 아흐 드(Kiáb-i-ʿAhd 성약( 聖 約 )의 서),라는 제목의 유서에서 장남 압바스(ʿAbbás)를 성약의 중심 즉, 자신이 계시한 가르침에 대해 유권해석을 내릴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임명했다. 압바스는 압돌바하(ʿAbduʾl-Bahá)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져 있다. 84) Baháʾuʾlláh. The Proclamation of Baháʾuʾlláh p. 39; 바하이국제공동체 공보처. 김명정 역. 바하올 라 ; 존 호그는 The Millennium Book of Prophecy(1997)에서 바하올라와 압돌바하를 예언자로 소개하고 있다. 붓다, 예수, 무함마드를 비롯하여 총 89명의 예언자 와 그들의 예언 을 정리한 이 책에 실린 바하올라에 대한 소개의 글은 오류가 많다. (밀레니엄의 대예언. 최환 옮김. 서울: 물병자리, 권, 523, ) 85) Shoghi Effendi. God Passes By p. 220.

170 164 제11차 인권교육포럼 3.4 압돌바하 압돌바하는 테헤란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것은 1844년 5월 23일 밤 즉, 바압이 물라 후세인에게 자신의 예언자적 소명을 밝힌 바로 그 날 밤이었다. 압돌 바하는 어린 시절부터 부친을 따라 유배지를 전전했다. 당국의 감시와 통제가 항 상 엄중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의 삶은 자유롭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어 난 학식과 덕을 겸비해 바하이들로부터 완벽한 스승의 완벽한 제자 라는 칭송을 들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압돌바하 즉, 바하의 시종 이라고 불렀다. 한편 바하 올라는 바하이들의 표상이며 계시의 빛이 반사하는 깨끗한 거울이라는 의미에서 그에게 시르룰라(Sirruʾlláh), 하느님의 비밀 이라는 명칭을 주었다. 이보다 더 잘 알려진 명칭으로 아까(áqá), 선생님 혹은 사부님 이 있다. 이 역시 바하올라가 붙여준 명칭이다. 바하올라의 국외 추방은 역설적으로 바하이공동체가 해외로 뻗어나가는데 일조 를 했다. 비록 규모는 적으나 이락, 터키, 이집트, 인도, 수단, 버마(오늘날은 미얀 마) 지역에서도 개종이 이루어졌다. 압돌바하가 공동체를 이끌게 될 즈음 바하이 교는 북미와 유럽 대륙에도 전파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첫 개종이 이루어진 것 은 1894년의 일이다. 이어 프랑스에서도 바하이로 개종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1898년 12월엔 미국 바하이 성지순례단이 처음으로 아카에 도착했다. 독일에서 최초의 바하이가 태어난 것은 1904년의 일이다. 86) 한편 압돌바하가 부친의 유훈을 쫓아 팔레스타인에서 추진한 사업 중하나는 하 이파 카르멜 산록에 바압의 성묘( 聖 廟 )를 건립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공사와 관련 압돌바하의 동생 무함마드 알리(Muḥammad ʿAlí)의 모함이 있었다. 그는 일 부 측근 바하이들과 함께 압돌바하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갖가지 방법으로 공동체 의 분열을 조장했다. 1901년 술탄 압둘 하미드(Sulṭán ʿAbduʾl-Ḥamíd) 2세는 공사 를 중지시키고 압돌바하에게는 아카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조처를 내렸다. 그 로부터 7년 후인 1908년 오스만제국의 정권은 혁명을 성공시킨 청년터키당의 수 중에 들어갔다. 87) 이 여파로 모든 정치범과 사상범이 사면조치를 받았다. 이에 따 86) Smith, Peter. The Babi and Bahaʾi Religions pp

171 참고자료 165 라 압돌바하도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그는 다음해 성묘를 완공시켜 바압의 유해 를 안치시켰다. 88) 압돌바하는 1911년부터 1913년 사이, 2차례에 걸쳐 유럽, 북미대륙으로 선교여 행을 했다. 이미 60을 넘긴 나이였으나 그는 런던, 파리, 슈투트가르트, 부다페스 트, 비엔나, 보스턴 등지의 교회, 시나고그, 대학, 시민 사회단체, 그리고 이제 막 형성되기 시작한 바하이공동체에서 강연을 했다. 공개적인 강연 외에도 그는 크고 작은 각종 모임을 주재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동안 압돌바하는 일리노이주 윌멧 에 건립될 바하이 사원의 초석을 놓기도 했다. 89) 당시 그가 행한 강연은 상당 부분 채록되어 책으로 나왔다. 그 중에서 가장 대 표적인 것은 1912년에 출판된 파리강연집(Paris Talks) 이다. 90) 이와 유사한 책 으로 1908년 영국에서 출판된 질의응답록(Some Answered Questions) 이 있 다. 91) 이 책은 1904년부터 2년 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팔레스타인으로 압돌바하 를 방문해 다양한 질문을 던진 영국인 로우라 클리포드 바니가 그의 답변 내용을 주제별로 편집한 것이다. 압돌바하가 직접 남긴 글로는 길손이 들려준 이야기(A Travellers s Narrative) 92), 신앙의 선구자들(Memorials of the Faithful), 신성 87) 김정위. 중동사 ) Shoghi Effendi. God Passes By pp ) Shoghi Effendi. God Passes By pp ; 당시 그의 활동을 조명해 주는 책으로 아이브스, 하워드 콜비. 김영숙 편역. 자유에 이르는 문(1984)이 있다. 유니테리언파 교회의 목회자로 활동하던 저자 가 압돌바하를 만난 후, 그가 미국을 떠날 때까지 자신이 보고 느낀 점을 엮은 책이다; 압돌바하가 미국에 체재하는 동안 그를 독대( 獨 對 )한 유일한 인물이 있다. 국내에도 시집 예언자로 잘 알려진 칼릴 지브란이 그 주인공이다. 압돌바하로부터 깊은 인상을 받은 칼릴 지브란은 자청하여 그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 S. 부쉬루이, J. 젠킨스. 이창희 역. 칼릴 지브란 - 아름다운 영혼의 순례자. 두레 참조. 90) 사라 루이자 블럼피일드 외 3명이 엮은 이 책은 1912년 영국에서 출판됐다. 최초의 한글번역본은 1957년 서의돈이 번역, 동북아세아 전국정신회에서 출판했다. 이어 1983년 박삼봉이 재번역하고 한국 바하이 전국 정신회가 출판한 2차본이 나왔다. 3차 교정본은 김선녀, 정하택의 수정을 거쳐 1992년 압돌바하의 파리강 연집이라는 제목으로 바하이교 한국정신회가 출판했다; 압돌바하의 런던 행적을 엮은 책으로는 ʿAbduʾ l-bahá in London이 있다. 91) 한글번역본 질의응답록 (1964. 한국바하이 전국 정신회) 속에는 1958년 런던에서 처음 출판된 것으로 소 개되고 있으나 Momen, Wendi ed. A Basic Baháʾí Dictionary. (1996), Some Answered Questions 항목에는 1908년으로 되어있다. 92) Written to illustrate the episode of the Báb 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1890년 바하올라를 방문한 E. G. Browne에게 전달되었다. 당시 정치적 정황이 고려되어 저자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는 이 책 을 방대한 양의 주석, 그리고 원문과 함께 1891년 영국에서 출판했다. ʿAbduʾl-Bahá. A Travellers's Narrative: Written to illustrate the episode of the Báb. (transl. by Edward G. Brown. A new and

172 166 제11차 인권교육포럼 한 문명의 비밀(The Secret of Devine Civilization), 그리고 바하이들에게 보낸 수많은 서한이 있다. 일반인들의 접촉이 금지되거나 제한되었던 바압이나 바하올라와는 달리 압돌바 하는 항상 그들 가까이에 있었다. 그를 찾아와 자문을 구한 사람은 바하이들 외에 도 오스만제국,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팔레스타인 지역을 통치했던 대영제국의 정부 관료들도 있었다. 압돌바하는 지역주민들의 복지를 위해서도 헌신적인 노력 을 했다. 그의 일과 중 하나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인근 지역의 환자를 돌보는 일이었다. 그는 또한 세계정세의 추이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압돌바하는 이를 감지하고 티베리아스호 인근에 대규모 밀농사를 지 어 식량을 비축하도록 했다. 1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는 중 압돌바하는 북미 대륙의 신자들에게 바하이교의 전파를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하는 일련의 서한을 보냈다. 이 중에는 한국, 일본, 중국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1918년 늦은 여름 하이파에 진군한 알렌비(Allenby) 장군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전문을 런던으로 타전했다. 금일 팔레스타인 접수. 압돌바하 안전함! 전쟁 중 압돌바하는 비축해 두었던 식 량을 풀어 수많은 사람을 기아에서 구했다. 영국 황실은 이 인도적인 공로를 기려 1920년 그에게 나이트작을 수여했다. 93) 압돌바하는 1921년 11월 28일 하이파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시신은 바압의 성묘 내부에 안장되었다. 압돌바하의 장례식은 바하이교가 추구하는 인류의 융합 을 보여준 행사가 되었다. 종교와 종파, 민족과 국적을 초월해 일찍이 유례가 없 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장례행렬을 따랐다. 쇼기 에펜디는 압돌바하의 서거와 함 께 바하이 역사의 영웅기 가 끝나고, 그와 동시에 형성기 가 시작했으며, 머지 않아 그 뒤를 이어 인류사의 황금기 가 도래할 것이라고 적었다. 94) 3.5 쇼기 에펜디와 그 이후 압돌바하는 유서를 통해 자신의 외장손인 쇼기 랍바니 에펜디(Shoghi Rabbání corrected ed. Wilmette, Illinois: Baháʾí Publishing Trust, 1980)은 원문만을 실고 있다. 93) Shoghi Effendi. God Passes By pp ) Shoghi Effendi. God Passes By pp

173 참고자료 167 Effendi)를 발리예아므룰라(Valíy-i-Amruʾlláh), 하느님의 대업의 수호자 로 임명했 다. 그는 1897년 3월 1일 아카에서 태어났으므로 당시 나이, 약관 24세의 젊은이 로서 영국 옥스포드 대학에 재학 중이었다. 처음 몇 년간 그는 자신에게 지워진 막중한 책무와 내부적인 시련을 피해 가끔, 가톨릭 용어를 빌리면, 피정을 떠나기 도 했다. 이 시기에 그를 확고하게 지켜주고 도와준 사람은 압돌바하의 누이동생 이자 자신의 왕고모인 바히예 카눔(Bahíyyih Khánum ) 이었다. 쇼기 에펜디는 바하올라와 압돌바하가 남긴 주요 경전을 유려한 영문으로 번역 했다. 그는 또한 바비, 바하이 초기 역사를 다룬 나빌(Nabíl)의 역작 여명의 개척 자(The Dawn-Breakers) 를 면밀한 역사적 검증을 거쳐 번역했으며, 이 외에도 세 계사의 추이에 대한 직관력과 학문적 감각이 돋보이는 많은 글을 남겼다. 1936년 쇼기 에펜디는 캐나다 출신의 메리 맥스웰과 결혼했다. 아마톨바하 루히야 카눔 (Amatuʾl-Bahá Rúḥíyyih Khánum -2000)으로 불리게 된 그녀는 외국어에도 능통 한 재원( 才 媛 )으로서 쇼기 에펜디를 측근에서 보좌했다. 쇼기 에펜디가 자신의 재임초기에 남긴 업적 중 하나는 바하올라가 제시했고, 압돌바하가 그 틀을 만든 바하이공동체 고유의 행정체제를 확립시킨 것이다. 이 시기에 그는 바하이 역사와 관련된 주요 유적지 내지 성지를 확보했다. 이즈음 종 교사적으로 대단히 의미 있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1925년 5월 혼인문제로 제기된 한 소송에서 이집트 최고 종교재판소가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내린 것이다. 바하이 신앙은 이슬람의 가르침과 원리와 율법에서 벗어나 있으며, 또 이들과 양립할 수 도 없는 독자적인 가르침과 원리와 율법을 지닌 새롭고도 독립적인 종교이다. 그 러므로 불교도나 힌두교도나 그리스도교도가 무슬림일 수 없고, 그 역도 성립될 수 없듯이, 바하이도 무슬림일 수 없고, 또 그 역도 성립되지 않는다. 95) 이는 바 하이들이 줄곧 주장해온 내용이었으며, 종교현상학적으로도 합당한 판결이었다. 쇼기 에펜디의 다양했던 활동시기 중 1930년부터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는 제2기에 해당한다. 그는 이 기간 중 바하이 세계 공동체, 특히 서구에 자리잡 95) Shoghi Effendi. God Passes By p. 365; 이 주제에 관해서는 Momen, Moojan. An Introduction to Shʿi Islam p. 232; Richard, Yann. Shiʾite Islam p. 72; Ṭabāṭabāʾī, ʿAllāmah Sayyid Muḥammad Husayn. Shiʿite Islam p. 76 참조.

174 168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은 공동체를 보다 성숙한 공동체로 끌어올리는 일에 주력했다. 96) 이 작업은 바하 올라가 내다본 새로운 세계질서를 주요 골자로 하는 일련의 교서 를 통해 이루어 졌다. 후에 바하올라의 세계질서(The World Order of Baháʾuʾlláh) 라는 책으로 엮어진 그 내용을 일부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바하이 신앙은 하느님의 유일성을 받들고, 하느님의 현시자들의 일체성을 믿으며, 인류가 전 체로서 하나라는 원칙을 고취시킵니다. 바하이 신앙은 인류통합의 필요성과 필연성을 역설 하고, 그것이 서서히 실현되고 있음을 확신하며, 다름 아닌 하느님의 정신이 지닌 변혁의 힘이 이를 기필코 성사시킬 것이라는 사실을 천명합니다. 더 나아가 바하이 신앙은 추종자 들에게 독자적인 진리 탐구라는 기본적인 의무를 강조하고, 모든 종류의 편견과 미신을 타 파하며, 종교의 목적이 우애와 화합의 증진에 있음을 선언하고, 종교와 과학의 본질적인 조 화를 선양하며, 또한 종교는 인류사회의 순조로운 발전과 안녕을 위해서 가장 요긴한 것임 을 확인합니다. 바하이 신앙은 권리와 기회와 특권에 있어서 남녀가 동등하다는 원칙을 분 명히 밝히며, 의무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일부일처제를 의무화하며, 이혼을 지양하고, 자 신이 속한 국가에 대한 절대복종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봉사의 정신으로 행한 모든 행위를 예배의 차원으로 높이고, 국제 공통언어의 채택 내지 창제를 독려하며, 인류사회에 보편적인 평화를 수립하고 유지하는데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각종 제도적 장치의 윤곽을 제시하고 있 습니다. 97) 이러한 일련의 노력을 통해 그는 공동체를 보다 체계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기초를 다졌다. 이전까지 선교나 홍보활동은 주로 타고난 재능과 헌신적인 열정을 지닌 일부 신자들에 의해 개인적으로 이루어졌다. 그 대표적인 예는 미국 여성 마 사 루트(Martha Root )이다. 그녀는 전 세계를 무대로 바하이교를 알렸 으며, 특히 루마니아 왕비 메리(Queen Marie )의 개종에 결정적인 역할 을 하기도 했다. 98) 또 다른 예는 1914년부터 30여 년 동안 일본에서 활약했던 미 국 여성 아그네스 알렉산더(Agnes B. Alexander )이다. 99) 그녀는 ) Smith, Peter. The Babi and Bahaʾi Religions pp ) Shoghi Effendi. God Passes By pp ) Garis, M. G.. Martha Root: Lioness at the Threshold pp

175 참고자료 169 년 도쿄에서 당시 일본에 유학 중이던 오상순( )과 긴밀히 지냈으며 100), 1921년 8월 말에는 직접 한국을 방문, 신문지상에 바하이교를 처음으로 알린 인 물이기도 하다. 101) 약속된 시대의 도래(The Promised Day is Come) (1941)에서 쇼기 에펜디는 양차 세계대전을 세속주의에 물든 현대 문명에 대한 하느님의 응징으로 규정했다. 정치적 지도자들이 인류의 융합과 세계평화라는 보다 높은 차원의 목표는 저버리 고 자국의 이익에 혈안이 된 데에 따른 응분의 천벌 이라는 것이다. 1944년 그는 바하이 역사 100주년을 기념하여 하느님 다녀가시다(God Passes By) 를 펴냈다. 이 책은 바하이공동체의 역사적 발자취와 성과를 정리한 것이다. 1951년부터 1957년 사이에 쇼기 에펜디는 모두 31명의 성업선양자( 聖 業 宣 揚 者 Hands of the Cause)를 임명, 신앙의 전파와 공동체 보호라는 두 분야에서 각각 주어진 역할을 해줄 것을 위촉했다. 쇼기 에펜디는 1957년 11월 4일 유럽여행 중 런던에서 돌연히 세상을 떠났다. 이러한 사태를 예기치 못했는지 그는 유서를 남 기지 않았다. 자연히 후계자 문제가 대두되었으나 성업선양자들로 구성된 협의기 구가 과도기적으로 그 기능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6년 후인 1963년 4월 21 일, 바하올라가 바그다드에서 자신의 소명을 밝힌 지 꼭 100주년이 되는 날, 전 세계의 국성회 의원들이 하이파에 모여, 쇼기 에펜디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계류 중이던 세계정의원( 世 界 正 義 院 Universal House of Justice)을 선출했다. 이후 바 하이 세계 공동체는 9인으로 구성된 이 기구에 의해 통솔되고 있다. 102) 99) 아그네스 알렉산더의 일본에서의 활동에 대해서는 Sims, Barbara R.. Raising the Banner in Korea(1996) 를 보라. 100) Sims, Barbara R.. Raising the Banner in Korea pp. 2-6; 한국바하이 전국정신회. 바하이교 한 국전래 70주년 참조. 당시 아그네스 알렉산더는 에스페란토 운동에도 관여하고 있어 그를 통해서도 한국 유학생들과 접촉했다. 그녀가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오상순은 강연회와 모임을 주선해 주기도 했다. 이 후에도 그는 아그네스 알렉산더를 비롯해 바하이들과 교류했으나 깊이 관여하지는 않았 다. 그러나 오상순의 종교 편력은 바하이와의 만남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공초( 空 超 )라는 필명으로 더 잘 알려진 오상순은 1912년 일본으로 건너가 1918년 도시샤대학[ 同 志 社 大 學 ]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이 듬해 귀국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오상순 ). 구상 편. 공초 오상순 평전. 자유문학사 에 실린 연보에 따르면 오상순은 1918년 同 志 社 大 學 졸업후 귀국하여 1920년 폐허 동인으로 국내에서 활동했다. 그러므로 아그네스 알렉산더가 오상순을 처음 만난 것은 몇 년 앞선 일일 수 있다. 101) Sims, Barbara R.. Raising the Banner in Korea pp ) 이 기구는 국가 단위 및 지방 단위의 행정기구와 함께 바하이교 특유의 행정체계를 구성하고 있다. 바하 이 행정체계는 바하올라가 기초했고 압돌바하가 구체화시켰으며 쇼기 에펜디 시절 본격적으로 구축되기

176 170 제11차 인권교육포럼 바하이교에는 성직자나 출가 사문과 같은 별도의 종교인이 없다. 지방 단위, 국 가 단위 공동체는 세계정의원처럼 민주적으로 선출된 9명의 의원들에 의해 통솔 된다. 103) 세계정의원은 하이파에 자리잡고 있다. 의원의 임기는 5년이다. 지방 단 위, 국가 단위 공동체를 통솔하는 행정기구는 각각 지성회( 地 聖 會 Local Spiritual Assembly), 국성회( 國 聖 會 National Spiritual Assembly)라 불리며 의원의 임기는 1년이다. 1967년 세계정의원의 이름으로 140개국의 국가수반에게 한 권의 책이 증정되었다. 100여 년 전 바하올라가 세계 열강의 통치자들과 종교지도자들에게 보냈던 서한을 엮은 바하올라의 선언(The Proclamation of Baháʾuʾlláh) 이 그것 이다. 그 속에는 앞서 언급된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들에게 보낸 글뿐만 아니라 미국 대통령, 국민의 대표로 선출된 의원들, 종교인들, 그리고 인류 전체를 대상으 로 한 글도 실려 있다. 국민의 대표로 선출된 의원들을 향해 작성된 글을 일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국민의 대표로서 선출된 모든 나라의 의원 여러분! 함께 협의를 하십시오. 인류에게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으로 그들이 처한 상황을 개선시킬 것인지에 대해서만 마음을 쏟도록 하십시오.... 이 세계( 世 界 )를 한 인간( 人 間 )의 육체( 肉 體 )와도 같다고 생각해 보십시 오. 세상에 태어났을 때, 그는 본래 건강하고 완벽했지만, 지금은 갖가지 문제로 인해 심한 장애와 질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단 하루도 고통 없이 지내는 날이 없습니다. 아니 오히 려 개인적인 욕망을 쫓으며, 심각한 오류에 빠져있는 무지한 의사들의 손에 맡겨져 상태가 점점 더 악화되고 있습니다. 행여 어떤 명의( 名 醫 )의 용의주도한 노력으로 몸의 한 부위가 치유된다 할 지라고, 나머지 부위는 여전히 예전과 같은 고통 속에 있습니다. 이는 전지 하 시고 지극히 지혜로우신 분이 여러분에게 주는 가르침입니다. 104) 바하이공동체의 확장과 공고화는 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함께 본격적으로 이루 시작했다. Baháʾí International Community. The Baháʾís pp 참조. 103) 9명으로 구성된 이 기구를 영어로는 Local Spiritual Assembly, National Spiritual Assembly라 부른다. 현재 국내 바하이공동체에서 사용하는 공식 명칭은 각각 지방신성회( 地 方 神 聖 會 ), 국가신성회( 國 家 神 聖 會 )이며, 일반적으로는 지성회( 地 聖 會 ), 국성회( 國 聖 會 )라는 약칭을 사용한다. 한동안 지방 정신회( 地 方 精 神 會 ), 전국정신회( 國 家 精 神 會 ), 약칭으로는 지정회( 地 精 會 ), 국정회( 國 精 會 )라고 부르기도 했다. 지역 및 국가단위 바하이 행정기구에 선출된 의원의 임기는 1년이다. 104) Universal House of Justice. The Proclamation of Bahá u lláh p. 67.

177 참고자료 171 어졌다. 국제적인 공동체로 성장하면서 바하이교는 국제적인 협의기구에 많은 관 심을 쏟고 있다. 앞에서 인용한 바하올라의 글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바하이들 이 추구하는 이상은 인류통합과 세계평화이며, 이는 어느 이념집단의 혁명이나 강 대국에 의한 세계제패를 통해서가 아니라 국제적인 협의기구를 통해서 점진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바하이국제공동체(BIC)는 유엔 설립 초창기부터 그와 관계를 맺고 있다. 바하이 국제공동체는 1947년 유엔으로부터 국제적인 비정부기구(NGO)로 인정을 받아 그 활동을 돕고 있다. 일례로 바하이국제공동체는 유엔헌장, 세계인권선언 등 국제적 인 협약의 제정에 있어서 건설적인 제언을 하기도 했다. 현재 바하이국제공동체는 유엔 공공정보기구(DPI)의 정회원이고, 경제사회이사회(ECOSOC)와 국제아동보호 기금(UNICEF)의 자문역을 맡고 있으며, 세계보건기구(WHO)와는 실무적인 관계 를, 유엔환경계획(UNEP)과는 제휴관계를 맺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유엔여성개발 기금(UNIFEM), 국제아동보호기금(UNICEF)과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바하이국제공동체는 뉴욕을 비롯해 제네바, 파리, 홍콩, 런던 등지에도 대표단을 상주시키고 있으며, 환경, 인구, 식량, 여성, 인권, 범죄, 빈곤, 세계평화 등 오늘날 국제사회가 안고 있는 현안문제를 다루는 유엔의 각종 국제대회에 대표단을 파견 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105) 바하이국제공동체는 이 외에도 세계야생생물기금(WWF), 세계종교평화협의회(WCRP) 등 다른 NGO들과 도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자체적으로는 2000년 현재 7개의 라디오 방송국, 741 개의 학교, 1,300여 개의 사회경제개발 프로젝트를 주로 저개발 지역에서 추진하 고 있다. 106) 105) 1999년 10월 11일부터 15일까지 서울에서 개최된 1999서울NGO세계대회 에는 BIC의 테체스트 애더롬 (Techeste Ahderom)이 2000 밀레니엄 NGO 포럼 공동의장 의 자격으로 참여했다. (1999 서울 NGO 세계대회 조직위원회 서울 NGO 세계대회 백서 ; , 502 참조) 106) Baháʾí International Community. The Baháʾís pp ; 참조.

178 172 제11차 인권교육포럼 4. 나가는 말 19세기는 세계적인 변혁의 기운이 더욱 빠른 급류를 탄 세기였다. 정치, 경제적 으로 뿐만이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천년 이상을 버텨온 기존의 질서가 허물어지며 새로운 판도가 짜여진 이 시기의 특징 중 하나는 천년왕국운동의 열기였다. 비록 세부적인 내용이나 형태는 각각 달랐으나 각종 천년왕국운동은 한반도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그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동시다발적으 로 발생했다. 이러한 시대를 배경으로 1844년 이란에서 태어나 중동 지역에서 성 장한 바하이교는 19세기, 20세기를 거치면서 세계적인 공동체로 성장, 국제적인 NGO로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압돌바하가 세상을 뜬 1921년 바하이의 숫자는 100,000명 정도에 불과했다. 그 것도 이란과 그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이란인이 절대다수를 점했으며, 나머지는 인도, 유럽, 북미 등 35개국에 산재해 있는 정도였다. 쇼기 에펜디의 임기가 끝난 1957년엔 전 세계적으로 250개의 국가 내지 자치령에 약 400,000명의 바하이가 있었다. 107) 1982년에 발간된 세계 기독교 백과사전(World Christian Encyclopedia)과 108) 1992/1997년 판 브리태니커 연감에 따르면, 바하이교는 그리 스도교에 이어 가장 많은 나라에 퍼져있는 종교이다. 109) 2001년 현재 235개의 국 가 및 자치령에 행정기구가 설립되어 있으며, 지역 공동체는 전 세계적으로 116,000여 개에 이른다. 5백만 내지 6백만 정도로 추정되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인종적, 종교적 배경은 전 세계 어떤 종교공동체에도 뒤지지 않는 다양성을 보여 주고 있다. 단일 국가로서 바하이가 가장 많은 나라는 인도다. 인도에서보다 조금 늦게 뿌 리를 내리긴 했으나 북미와 유럽 지역에서는 비교적 오래된 공동체가 활동하고 있다. 동구권이 무너진 이후 러시아, 루마니아, 알바니아 등을 비롯한 옛 공산권 국가에서도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편 규모적인 면에서 이들을 능가하는 107) Baháʾí International Community. The Baháʾís pp ) World Christian Encyclopedia. Oxford a.a.: Oxford Uni. Press, p ) Baháʾí International Community. The Baháʾís p. 14.

179 참고자료 173 공동체가 최근 아프리카, 아시아, 태평양 지역과 북미의 원주민들 사이에 성장하 고 있다. 바하이공동체의 성장은 일반적으로 선진국보다는 개발도상국에서 빠른 확장을 보여주고 있다. 35만여 명에 달하는 이란 내 바하이는 수적으로 유대교, 그리스도교, 조로아스 터교인에 앞서 종교적 소수집단으로는 가장 큰 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이란은 바 하이교의 발상지로서 그동안 수만 명의 순교자를 배출 했다. 앞에서 탁명환이 소 개한 최근의 박해는 이슬람 혁명 전야인 1978년 여름부터 시작되었다. 혁명 직후 바하이공동체는 종교공동체가 아니라 반혁명적이고 반정부적인 정치조직 으로 분 류되어 재산은 몰수되고 행정기구는 해산하는 등 경제적, 사회적 기반을 상실했 다. 개인 바하이들도 공직에서 축출되었으며 직장에서도 설자리를 잃었다. 자녀들 은 대학진학을 금지 당하는 등 교육의 기회에 있어서도 제한을 받았다. 이 와중에 수많은 바하이들이 공개적으로 혹은 은밀하게 살해되었다. 국제사회의 여론이 악 화되고, 특히 1985년 유엔 총회에서 이에 대한 우려를 공식 표명한 후 바하이에 대한 처형은 급감했다. 그러나 이란 정부의 탄압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어 세계 언 론과 인권단체의 주목을 받고 있다. 110) 혁명 이후 처형되거나 살해된 바하이는 200여 명에 이른다. 111) 한국인들에게 바하이교가 처음으로 소개된 것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1920년대의 일이다. 그러나 바하이교가 국내에 뿌리내린 것은 6.25 전쟁 당시 유엔군으로 참 전했던 몇몇 미군과 그 가족들의 노력을 통해 이루어졌다. 특히 윌리엄 맥스웰 110) 이란 정부는 2001년 2월 18일 테헤란에서 문명간의 대화 를 주제로 한 국제대회를 개최했다. 이어 19 일부터 21일까지는 같은 장소에서 유엔, 정확하게는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United Nations Office of the High Commissioner for Human Rights)이 주최한 The World Conference against Racism, Racial Discrimination, Xenophobia and Related Intolerance'를 위한 아시아지역 준비대회가 개최되었다. 아시 아 지역 40개국 정부대표를 비롯하여 150개 NGO 대표단이 참여한 이 국제대회의 개막연설에서도 이란 이슬람 공화국 외상 캐말 하라지(Kamal Kharazi)는 문명간 대화 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이란 정부는 참가를 희망한 단체 중 유일하게 바하이국제공동체(BIC) 대표단의 입국을 허용하지 않았다. United Nations Office of the High Commissioner for Human Rights 2001년 2월 21일자 테헤란발 Press Release 참조. ( 111) Momen, Moojan. An Introduction to Shʿi Islam pp. 253, , , 294; Smith, Peter. The Babi and Bahaʾi Religions pp ; 이란 바하이들에 대한 탄압 실태, 그 신 학적, 역사적, 사회적 배경, 그리고 최근의 박해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에 대해서는 Nationaler Geistiger Rat der Baháʾí in Deutschland. Die Baháʾí im Iran: Dokumentation der Verfolgung einer religiösen Minderheit. 1985을 보라.

180 174 제11차 인권교육포럼 (William Maxwell), 윌리엄 스미츠(William Smits) 등은 퇴역 후에도 계속 한국 에 머물면서 한국 최초의 바하이인 김창진, 미국 유학 중 바하이가 되어 귀국한 서의돈, 한글로 된 최초의 바하이 소책자 현대의 신앙 을 번역한 김원배 등과 함께 바하이교를 국내에 전파시켰다. 지성회( 地 聖 會 )가 국내에 최초로 결성된 것은 1956년 광주에서의 일이다. 곧이어 서울, 대구 등지에서도 지성회가 결성되었고, 1964년에는 국성회( 國 聖 會 )가 결성되었다. 112) 국성회의 대외적인 공식 명칭은 바 하이한국중앙회 이며 재단법인으로서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하고 있다. 112) 한국 바하이공동체의 역사에 대해서는 한국바하이 전국정신회. 바하이교 한국전래 70주년(1991), Sims, Barbara R.. Raising the Banner in Korea(1996)를 보라.

181 참고자료 175 참고문헌 사전류 동서문화 편. 바하이교. Pascal세계대백과사전. 11권 동아출판사 편. 바하이교. 동아원색세계대백과사전. 13권 두산동아 편. 바브교. 두산세계대백과사전 ; 바하알라, 바하이교 장병길 편. 바하이교. 대세계백과사전. 12권(종교) 한국브리태니커사 편. 바브, 바브교. 브리태니커세계대백과사전. 8권 ; 바하울라, 바하이교, 바하이 사원 한국사전연구사. 바하이교. 종교학대사전 학원출판공사사전편집국 편. 바하이교. 학원세계대백과사전 ; 바브교. 한국종교사회연구소 편. 바하이교. 한국종교문화사전 Bausani, A.. BAHĀʾĪS in The Encyclopedia of Islam. New ed. Leiden a.a.: E. J. Brill, Vol pp Bausani, Alessandro. BAHĀʾĪS in The Encyclopedia of Religion. Mircea Eliade ed. Vol pp Brown, Edward G.. BĀB, BĀBĪS in Encyclopedia of Religion and Ethics. Vol. II pp C. J. A.. BAHA I FAITH in Encyclopædia Britanica. Vol p Hitti, P. K.. BABISM in New Catholic Encyclopedia. Vol. II pp Kazemzadeh, Firuz. 바하 알라. 기독교대백과사전편찬위원회 편. 기독교대백과사 전. 7권 ; 바하이교 ; 김동일. 바하이교, 한국. 83. Kritzeck, J.. BAHA ISM in New Catholic Encyclopedia. Vol. II pp Momen, Wendi ed. A Basic Baháʾí Dictionary. Oxford: George Ronald, (1989)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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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참고자료 181 국경들 너머의 짐승들 혹은 인간들 오늘의 인권 문제와 비판신학 1: 내셔널리티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전제된 문제의식 지난해 말 전국이 대선국면 으로 온통 들썩거리던 상황에서 조용하지만 진지한 문제제기가 일각에서 있었다. 법무부가 2007년 10월 초에 입법 예고하고 11월 초 에 국회 법사위에 제출한 이른바 차별금지법안 이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정부 에 제출한 입법 권고안으로부터 후퇴하고 있는 것에 대한 인권단체, 소수자운동단 체, 그리고 비판적 기독교단체 등이 주도한 일련의 논점들이 잔잔하지만 의미 있 는 파장을 일으킨 것이다. 대선이 끝나기 얼마 전 이 법안은 국회 법사위를 통과하여, 새로운 법률로 제정 될 가능성이 매우 높게 되었다. 이제 차별금지법의 법제화를 둘러싼 논란은 새로 운 국면에 접어들게 된 것이다. 그것은 실효성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은 법률안에 대한 법제화 저지 투쟁의 차원을 넘어서 우리 사회의 차별과 배제 에 관한 보다 깊은 인식론적 성찰과, 대안적 제도화를 향한 보다 전문적이고 보다 현실적인 실 천에 관한 성찰을 요청한다. 이러한 성찰들이 수반되지 않는 한, 법률안 상정을 둘러싼 국면에서 일시적으로 유효했던 비판적 문제제기는 그 의의를 상실하게 될 수도 있다. 나는 바로 이 차별과 배제의 정치를 둘러싼 비판적 문제제기를 오늘 우리 사회 의 인권 이라는 관점에서 논하고자 한다. 그것은 인권을 국민의 기본권과 관련시 켜 이해했던 종래의 관점과는 어느 정도 구별되는 시각이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서 좀 더 자세히 논하겠지만, 이러한 인권에 대한 인식론적 논점은 2001년 정부 조직으로 설립된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몇 년간의 조사와 연구를 통해 준비한 차별금지에 관한 입법 권고안 속에 전제된 시각이다. 또한 이러한 민중신학자 안

188 182 제11차 인권교육포럼 병무가 이미 1987년에 제기한 논점이기도 하다. 나는 한국종교문화연구소가 주관 한 심포지움 <종교와 인권>( )에서 한국 그리스도교의 인권담론과 신 학적 성찰 안병무의 신학을 중심으로 1) 에서 민중신학의 인권신학에 대해 논한 바 있는데, 이러한 문제의식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제기했던 애초의 차별금지법 권 고안을 바라보는 이 글의 시선적 기조다. 인권을 논하는 새로운 패러다임 위에서 간략히 논한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안 사태 는 오늘의 인권 문제를 논하 는 데 있어서 두 가지 점에서 주목을 끈다. 첫째, 국가기구들 간에 인권에 관한 태도의 불일치가 드러났다는 점이다. 즉 정부는 더 이상 단일주체가 아니라는 것 이다. 특히 국가기구들 간의 상이한 태도 이면에는 시민사회의 비명시적이거나 명 시적인 압력이 있었다. 2) 시민사회 내의 일부 유력한 압력집단들의 의제 형성 능 력과 국가기구들의 태도는 서로 상응하는 양상을 띠었던 것이다. 둘째로 주목할 것은 시민사회는 인권에 관한 서로 다른 관점으로 국가와 교섭하고 거래하는 다 중적 주체로서 드러났다는 점이다. 이 두 요소는 종래의 양상과는 사뭇 다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권위주의시대와 민주적 제도화시대, 이 두 시대 사이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의 시대에 인권 의 문제는 국민의 기본권이 국가에 의해 심각하게 침탈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법 률적/정치적, 도덕적 이의제기와 관련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 시대는 국가 대 국 민 이라는 이분법적 인식을 통해 인권 논의가 다루어졌고, 국가나 국민은 각기 집합적 단수 (collective singularity)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오늘의 시대에 인권의 문제는 더 이상 국가에 의한 국민의 기본권 제약 의 상황으로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3) 앞서 시사했던 것처럼 국가기구들 간에는 1) 종교문화비평 12(2007.9). 2) 법무부는 2007년 10월에 입법 예고를 할 때에 시민사회 일각의 비판을 미리 예상하여 법률안을 1차 후퇴 시켰고, 11월 법사위에 법률안을 제출할 때에는 주류 기독교계와 대기업의 명시적 압력에 의해 2차 후퇴한 법안을 상정했다. 3) 안병무, 인권에 대한 신학적 조명, 1970년대 민주화운동과 기독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1987). 이 글

189 참고자료 183 사회적이거나 법적인, 혹은 정치적 태도를 구성함에 있어 보다 친화적인 사회적 집단 내지는 압력단체들과 각기 다르게 연계되어 있음으로써, 국가의 다중적 주체 들과 시민사회의 다중적 주체들 간의 복잡한 교섭과 거래를 통해 상이한, 심지어 는 갈등적 의제들이 제도화를 위한 자원으로 사회적으로 제기된다. 4) 이때 제도화 과정은 상충하는 제도적 자원들의 헤게모니적 접속을 통해 수행된다. 여기서 헤게 모니적 접속이라는 것은 상이하고 나아가 충돌하기까지 하는 여러 제도적 자원들 이 비대칭적/불균형적으로 작동하여 제도화가 실행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여기서 기독교의 주류집단은 시민사회 내의 강력한 의제집단이라는 점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특히 최근 보수파 기독교 주류세력들이 정치세력화를 향한 드라이브를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인권 문제의 제도화는 기독교적 태도와 긴밀히 연루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법무부가 입법 예고한 것에서 후퇴한 법률안을 국회 에 제출한 것은 보수적인 기독교 다수파의 압력을 고려한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비판신학적인 논의가 매우 중요하다. 이때 비판신학의 주된 과제는 한국 기독교 주류세력의 인권에 관한 개입의 메커니즘을 읽어내고, 신앙제도 속의 그 맥락을 조명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여기서 인권 문제가 종교에 한정된 범주가 아닌 것처 럼, 신학적인 비판적 분석 또한 세속성과 이분법적으로 변별된 종교성에 국한된 것일 수는 없다. 종교성과 세속성이라는 이분법은 정교분리라는 서양 근대의 위선 적인 담론적 장치의 산물에 다름 아니다. 권위주의시대 집합단수로서의 국가 대 국민 민주적 제도화의 시대 국가의 다중적 주체들과 시민사회의 다중적 주 체 간의 복잡한 교섭과 거래 은 1987년 초, 아직 민주적 제도화의 시대라고 할 수 없던 시절에 집필된 것인데, 여기에서 인권 이해에 관한 안병무의 인식론적 분열을 읽어내고, 그 속에서 민주화시대의 인권에 관한 새로운 문제제기를 추론해 낸 나의 글 한국 그리스도교의 인권 담론과 신학적 성찰 참조. 4) 서구에서 민주적 제도화가 상당히 진척된 1960년대 이후의 국가에 관한 연구들, 기능주의 국가론, 신마르크 스주의 국가론, 신제도주의 국가론 등은 서로 다른 입론을 논쟁적으로 펴고 있음에도 이와 같이 국가를 다 중인격체로 이해하고, 정책 형성이 국가기구들과 시민사회 각 세력 간의 각기 다른 조합이 상호갈등적 조율 을 통해서 수행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전반적인 합의가 있다. 신제도주의적 관점에서 기능주의 이후의 국가론 간의 논점을 정리한 안희남, 국가 개념의 역사적 성격: 국가에 대한 신제도주의 접근, 복지행정 학 논총 12/2( ) 참조.

190 184 제11차 인권교육포럼 나아가 비판신학은 신학의 비판적 전략 자체를 문제시하는 데에까지 나아갈 필 요가 있다. 그것은 신학이 (교회 순응적 태도가 아니라) 교회 비판적 기능을 수행 하고 있을 때조차 인권의 제도화에 관한 시대의 변화된 양상을 읽어내는 데 실패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신학의 비판적 개입의 빈곤이 초래되었다고 자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인권을 논하는 데 있어 우리가 주지해야 할 또 한 가지 요소가 있는데, 많은 경우 인권의 침해는, 가해자의 입장에서 볼 때, 특정 범주의 인간 을 향한 배제라기보다는 비인간 (inhuman) 혹은 의사인간 (psudohuman)으로 간주된 대상 에 대한 배제라는 점이다. 이것은 리차드 로티(Richard Rorty)가 주장한 인권에 관한 문제의식의 요체인데, 인간의 기본권 침해의 관점에서 인권을 논해온 형이상 학적 인권 개념이 인권 침해의 현장을 잘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에 대한 신 랄한 비판을 담고 있다. 실제로 로티가 예로 들고 있는 보스니아인에 대한 인종청 소를 자행한 세르비아인의 만행은 그들이 보스니아인을 동물처럼 간주하였던 집단 적인 편견, 그러한 감성(sentimentality)의 산물이지, 저들을 제거하는 것이 자신에 게 유리하다는 합리적 판단에 따른 인권 유보의 상황은 아닌 것이다. 5) 이 주장은, 인권을 유린하는 가해자 범주가 생각하는 우리 라는 자기 귀속 공동체에 대한 도 덕적 의식이 작동하지 않는 영역, 즉 공동체의 경계 외부에 저들 비인간/의사인간 적 대상들이 배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함축한다. 가령, 예수시대에 나병환자들은 촌락공동체 외부로 밀려나 살아야 했으며, 촌락 내부인과 마주쳐 사람들을 부정 타게 하지 않아야 했다. 이러한 사회적 배치와 그 것에 준거한 사회 각 행위자들의 실천이 명백한 인권 유린임에도 불구하고, 사람 들은 그것이 인권에 대한 침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면, 사람들은 저들을 사 람이 아닌 짐승 같은 존재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는 인권의 문제를 논하는 데 있어, 도덕의식이 작동하는 공동체, 즉 도덕공동체(moral community)의 문제를 고 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근대 이후 도덕공동체의 가장 대표적인 범주가 국민국 5) Richard Rorty, Human Rights, Rationality, and Sentimentality, Truth and Progress(Cambridge Univ., 1998).

191 참고자료 185 가 (nation state)라는 점에 주목한다. 그렇다면 내셔널리티의 관점에서 인권을 논 하는 데 있어, 도덕공동체로서의 국민국가가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형성되었고 전 개되었는지에 대한 고찰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한국사회에서 도덕 공동체로서의 국민국가의 형성과 전개를 개략적으로 살피면서 인권 문제의 제도화 가 이와 어떻게 연계되는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아울러 이러한 과정에 한국 교 회가 어떻게 개입되었는지를 비판적으로 조명하고자 한다. 한국사회의 근대적 도덕공동체 형성의 요소들 제도화의 관점에서 한국사회가 전근대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계기적 시점은 일제 식민지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우리는 두 가지 제도화의 요소가 근대적 도덕공동체의 범주 형성에 관여되어 있다고 이해한다. 하나는 근대적인 교통, 통 신의 제도화이다. 전근대시대에 공간적으로 국가 차원의 결속은 추상적이었던 반 면, 6) 이러한 근대적인 교통과 통신의 제도화로 인해 광역공간으로서의 국가 차원 의 경험적 결속이 가능해졌다고 할 수 있다. 7) 다른 하나는 식민지에 대한 제국주 의적 착취의 제도화 문제인데, 이는 독립을 향한 꿈의 민족적 공유 (꿈의 공유 I) 를 가능하게 했다. 8) 그런데 해방 직후부터 계속된 이념적 분단과 갈등, 그리고 한국전쟁이라는, 세 계사적으로 전례 없이 치열했던 국지전의 체험은, 거의 정신병적이라고 할 만큼 강한 이념적 결속을 통한 제도화의 경험적 배후 로 작동하였다. 그리고 이후 형 성된 분단국가의 반공규율체제는 이념적 결속의 해석적 배후 로 작동한다. 마지막 으로 하나 더 언급하면, 1960년대 이후 군사정권에 의해 강력하게 추진된 돌진적 근대화 (rush-to modernization)는 가난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꿈의 민족적 공유 (꿈의 공유 Ⅱ)를 통해 국민국가라는 근대적 도덕공동체의 제도화를 추동했다고 할 수 있다. 6) 전근대시대에 구체적 체험이 이뤄지는 공간은 주로 혈연성과 지연성을 통해 설명될 수 있는데, 이것은 마을 공동체와 같은 협역공동체(local community)가 주된 체험의 공간임을 의미한다. 7) 한만수, 식민지 시기 근대기술(철도, 통신)과 인쇄술 검열, 한국문학연구 32(2007.6) 참조. 8) 신기욱, 한국의 식민지 근대성 (삼인, 2006) 참조.

192 186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이렇게 식민지시대 이후 군부 권위주의체제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에서 근대적 도덕공동체로서의 내셔널리티의 형성은 반공이념을 통한 대단히 획일적인 강력한 결속, 그리고 식민지와 가난이라는 치욕적이고 고통스런 체험으로부터 탈출하려는 강력한 염원에 의한 결속 등에 영향받아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식민지시대 한국전쟁 반공규율사회 돌진적 근대화 1 근대적인 교통 통신의 제도화 (광역공간으로서의 국가 차원의 경험적 결속) 2 착취의 제도화: 독립을 향한 꿈의 민족적 공유 (꿈의공유 I) 이념적 결속의 경험적 배후 이념적 결속의 해석적 배후 가난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꿈의 민족적 공유 (꿈의 공유 II) 한국 교회와 도덕공동체로서의 국민국가, 그 참을 수 없는 감성체계의 친화성 그렇다면 이렇게 이념과 꿈을 공유함으로써 결속된 강한 도덕공동체로서의 민족 과 국민국가의 형성에 교회는 어떻게 관여되어 있었을까?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한국 교회의 공통감각(common sense)의 형성과 전개에 관한 것이다. 주지하 듯이 한국 기독교는 교파분열의 관점에서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 큼 분열적 인 반면, 신앙내용이나 형식에 있어서 또한 유례없이 통합적 이다. 이 것은 교파 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공통감각이 한국 기독교의 신앙적 정 체성의 이면에 견고히 깔려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공통감각 형성의 계기를 나는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에서 찾은 바 있 다. 9)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러한 공통감각이 한국 근대국가의 형성 및 전개와 맞 물려 서로를 강화하면서 발전했다는 데 있다. 이러한 상응과정을 통해 한국 교회 9) 김진호, 성령의 도구화: 평양대부흥운동의 영 대 성서의 영, 최형묵 백찬홍 김진호 공저, 무례한 자들의 크리스마스 (서울: 평사리, 2007).

193 참고자료 187 는 한국사회의 근대화과정에서 가장 급성장한 사회적 범주의 하나가 되었다. 요컨 대 이러한 상응을 통한 발전과정에서 교회의 공통감각은 더욱 강화되었고, 기독교 는 거대한 사회 세력으로 급성장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한국의 국민국가적 도덕공동체의 형성과 교회의 공통감각이 서 로 상응할 수 있었을까? 10) 여기서 평양대부흥운동 이후 한국 교회의 공통감각의 주된 요소의 하나가 근본주의적 신앙이라는 점을 주지하라. 이렇게 근본주의적으 로 내면화된 신앙적 신념은 식민지 말기 전시체제하의 신사참배 국면에서 식민지 당국과 충돌한다. 한국 교회의 절대다수가 신사참배를 수용하였다. 신념을 정치화 하고 저항의 자원으로 활용한 경험이 결핍된 식민지시대 교회로선 당연한 귀결이 다. 하지만 그러한 굴복의 주체가 바로 철저한 근본주의 신앙으로 내면화된 이들 이었기에, 그것은 신사참배를 수행한 사회의 다른 주체들보다 훨씬 더 큰 상처로 남는다. 권력으로 인해 결코 해소되지 못한 상처는 내면으로 숨어버리고 트라우마로 몸 에 새겨지곤 한다. 트라우마는 상처의 원인이 망각되고, 대신 다른 병리적 증상으 로 고통을 표출하는 정신적 질환을 가리킨다. 나는 이것을 한국 초기 기독교의 집단적 우울증상 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개체의 우울증상은 기억력 감퇴를 수반하 곤 한다. 또한 공격성을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무의식 속에서 상처를 다 른 것으로 전이시켜, 그 다른 것을 공격하는 증상으로 나타난다. 이는 크게 두 가 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타인을 공격하 는 것이다. 전자의 극단적 사례가 자살이라면, 후자의 전형적 양상은 분노의 전가 이며, 많은 경우 테러리즘의 정신병리적 배후에 이러한 집단 우울증상이 놓여 있 다. 11) 이런 생각의 연장에서 나는 한국 교회의 우울증상은 공격할/해도 좋은 타자 를 통해 표현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10) 이러한 상응의 역사적 실례의 하나로 나는 신사참배의 트라우마와 그 병리적 반응으로서의 공격적 반공주 의 를 논한 바 있는데, 이하의 내용은 나의 글 한국 개신교의 미국주의, 그 식민지적 무의식에 대하여, 역 사비평 70(2005 봄)를 요약 재정리한 것이다. 11) 이에 대하여는 나의 글 테러리즘, 복수의 정치학, 그리고 거래되는 고통, 아부 그라이브에서 김선일까지 (생각의 나무, 2004)와 고통의 치환, 그 가학성의 근거에 대하여, 불안의 시대 고통의 한복판에서 (생각 의 나무, 2005) 참조.

194 188 제11차 인권교육포럼 빨갱이에 대한 적개심 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물론 기독교신앙과 마르크스주의 사이의 추상적 적대감 과 해방 후 북한에서의 경험에 의한 체험적 적대감 이 겹 쳐지면서 형성된 것이겠다. 하여 해방 이후 남한사회에서 가장 강한 반공주의세력 이 교회였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다. 빨갱이에 대한 교회의 과도한 적대감은 반공 주의적 체험의 격렬함 과, 근본주의라는 체험을 해석하는 체계의 격렬성 이 상호 작용하면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교회는 이러한 강력한 반공주의적 공통 감각을 통해 해방 이후 한국사회의 반공규율체제의 형성에 가장 강력한 추동세력 이 되었고, 반공규율체제로 남한 사회가 안정화되는 것과 이 시기 교회가 사회적 세력으로 급부상하는 것은 정비례 관계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반공규율체제라는 도덕공동체를 구성하는 적대감이라는 요소를 산업화의 자원으로 전환시켜 형성된 돌진적 산업화체제는 반공주의적 적대감 외에 최소한 다음 세 가지 감성적 요소를 통해 구성된다. 강력한 카리스마적 지도력을 향한 지 향성, 강한 목적지향성(성공주의), 강한 공동체주의(배타성)가 그것이다. 한데 이는 내가 앞에서 언급한 평양대부흥운동을 다룬 글에서 한국 교회의 공통감각의 요소 로 언급했던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즉 평양대부흥운동 이후 한국 교회는 미국계 근본주의적 선교사들의 지도력에 의해 획일적으로 통합되는데, 여기에 성령이 개 입함으로써 카리스마적 지도력이 신앙의 제도화의 핵심동력이 되었으며, 위기를 교회의 성장이라는 물량적 성공으로 대체한 성공주의, 교회 안과 밖, 신앙의 안과 밖에 대한 극단적 이분법이 지배적 심성구조로 재편되었다고 보았던 것이다. 12) 이렇게 교회의 공통감각과 한국사회의 반공규율체제나 돌진적 근대화의 심성구 조는 서로 친화성이 있고, 또한 같은 시기에 한국사회와 교회가 체제의 안정화를 이룩했으며 공히 양적인 급성장을 거듭했다면, 한국사회의 도덕공동체 형성과 교 회의 신앙제도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형성되었다고 가정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12) 이에 대한 보다 상세한 논의는 나의 글 민주화시대의 미학화된 기독교 와 한국 보수주의, 당대비평 편집 위원회 엮음, 더 작은 민주주의를 상상한다: 민주화는 실패한 기획인가, 87년 이후 한국사회에 대한 성찰 (웅진 지식하우스, 2007) 참조.

195 참고자료 년 이후의 민주적 제도화 1987년 한국사회의 민주화가 근대국가로서 한국을 내적으로 시기 구분하는 계 기라는 점은 이미 많은 이들에 의해 지적된 바 있다. 그런데 1987년 이후의 시대, 곧 민주화는 동시에 소비사회화 과정과 맞물리면서 전개되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한 199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하고 1997년 급속하게 휘몰 아쳐온 지구화의 체험 역시 민주적 제도화의 시대를 구성하는 내적 요소로 정의 할 수 있다. 즉 한국사회의 민주적 제도화의 3대 요소는 민주화, 소비사회화, 지 구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는 내가 다른 글 13) 에서 주장한 바 있듯이 국민의 시민화를 낳았고, 또한 시민의 시장화로 이어졌다. 여기서 내가 사용한 국민 이라는 용어는 국가의 욕망과 스스로의 욕망을 동일 시하는 존재, 즉 국가의 발전이 곧 자기 자신의 발전이라고 생각하는 존재를 가리 킨다. 특히 강한 국가, 강한 카리스마적 지도력에 의해 추동되는 국가의 국민은 국가의 하위주체(subaltern)로서 사회적으로 존재한다. 바로 반공규율체제와 돌진적 산업화시대 한국사회에서 국민이 그렇다. 반면 시민 은, 나의 용어에 따르면, 국 가와 거래/교섭하는 존재다. 그런 점에서 민주화는 국민이 시민으로, 국가의 하위 주체에서 능동적인 계급적 주체로 부상하는 과정과 맞물린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소비사회화는 시장적 감각을 통해 그 주체가 자신의 취향과 욕구를 구성하도록 자극한다. 이렇게 시민은 시장화된 것이다. 여기에 지구화는 무한경쟁의 정글로 사회를 급속하게 변모시켜 가고 있다. 이렇게 민주적 제도화과정의 한국사회는 급속하게 변형되고 있다. 그것은 물론 도덕공동체의 급속한 변형을 내포한다. 도덕공동체의 경계 / 국경 (boundary)의 관 점에서 이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민주화 이전의 사회적 결속이 국민 단위로 이 루어졌다면, 이후엔 시민이 결속의 단위이다. 그것은 사회적 배제가 작동하는 대 상을 각각 비국민과 비시민이라고 규정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인권의 관점에서 문제는 바로 이 비국민 혹은 비시민의 사회적 체험과 관련되는데, 이에 대하여는 다음 두 절에서 논하겠다. 13) 같은 글 참조.

196 190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앞에서 국민을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하위주체로 규정하였는데, 그러므로 국민은 비국민을 배제하는 주체가 아니다. 그보다는 국가의 배제의 체제에 수동적 으로 흡수되어 있을 뿐이다. 반면 시민은 자신의 이해를 가지고 국가와 거래/교섭 하는데, 이는 시민이 비시민의 배제를 제도화하는 데 국가와 공모하는 존재임을 의미한다. 한편 권위주의시대의 배제는 격리의 양식을 취했다. 그것은 국민의 일 상공간에서 제거됨을 의미한다. 반면 민주화시대에는 일상공간 내부에서 배제를 실행한다. 배제는 일상에 널려있는데, 다만 국가와 시민은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하 도록 배제는 교묘해지고 심미화된다. 하여 이러한 사회에서 배제의 제도는 망각을 통해 수행된다. 이를 도표화하면 아래와 같다. 이전 민주화 이후 국민 단위의 결속 비국민의 배제 배제의 주체: 국가 국민은 배제의 수동적 동맹자 격리의 제도화 비국민을 비일상의 공간으로 격리 시민 단위의 결속 비시민의 배제 배제의 주체: 국가와 시민 시민은 배제의 적극적 공모자 망각의 제도화 비시민을 일상의 공간 속에서 배제 하나의 국경에서 다중의 국경 들 로 이러한 도덕공동체의 변형과정을 국경 개념을 중심으로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때 국경은 외적 국경과 내적 국경으로 나누어 이야기할 수 있는데, 외적 국경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국경이라면, 내적 국경은 사람들의 내면에서 작 동하는 집합적 감각으로서의 국경을 뜻한다. 14) 민주화시대 이전에 내적 국경은 단지 하나였다. 혹은 하나의 거대한 국경 속에 다른 것이 하위에 편입되어 있다. 이때 그 하나의 개념이 이념을 중심으로 하는 것임은 이론의 여지없다. 반공규율체제라는 규정은 바로 그것을 이야기한다. 반면 14) 이 용어는 강상중, 내적 국경과 래디컬 데모크라시: 재일 의 시점에서,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 (이산, 1997)에서 빌어온 것이다.

197 참고자료 191 민주화 이후에는 내적 국경이 다중화/복잡화된다. 하나가 다른 것들을 하위로 포 섭하지 않고, 서로 난삽하게 얽히거나 분리되어 있는 양상이다. 바로 이 국경들이 도덕공동체의 경계이기도 하다는 점을 주지하라. 그것은 그 외부에 대해서 사람들은 도덕감정을 덜 느낀다는 것이다. 요컨대 그 외부로 내몰 린 이들을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동류의 인간으로 느끼는 감정이 퇴화한다. 주지 하듯이 바로 인권의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데 민주화 이전 시대에는 국가만이 비국민을 국경 외부로 배제하는 주체였 다. 이는 과거 권위주의시대에 비국민의 현실, 그들의 인권 유린에 대해 사람들이 잘 알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태일 사건이 많은 국민으로 하여금 바깥에 대 한 새삼스런 각성의 계기로 작용하였다는 것이나, 그리고 가난에 대해 사회가 따 뜻한 감성을 가졌다는 것 등은 바로 이 시대의 도덕감정의 특징을 보여준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에는 대다수가 이농자들, 혹은 그런 가족을 두고 있었기에 주로 이 농자들인 극빈자들을 비인간적 대상으로 타자화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반면 민주화 이후에 내적 국경이 다중화/복잡화되었다는 것은 격리로서의 배제 의 메커니즘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다중화/복 잡화된 사회에서 너무나 비효율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이 시기에는 일상 속 에서 수많은 내적 국경들이 산재한다. 너무 복잡하고 다중적이어서 하나의 준거로 이해하기도 어렵다. 하여 내적 국경은 사람들에게서 무감각화된다. 즉 망각이 제 도화되는 것이다. 요컨대 이 시대에 인권 문제는 망각 속에서 발생한다. 사람들은 감각이 마비된 상황에서 배제된 숱한 사람들을 무심코 바라보면서 저들과 공존하 는 것이다. 망각의 제도화, 그 두 양식. 인권 유린의 두 유형 민주화시대의 망각의 제도화가 인권 유린을 낳는 양상은 크게 두 양식으로 나 누어 생각할 수 있다. 나는 이를 착취의 양식 과 호혜의 양식 으로 분류한다. 착 취의 양식은 이해관계의 충돌이 발생하는 지점에서 일어난다. 특히 비시민적 하위

198 192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집단 간의 이해 충돌이 일어날 때 인권 유린의 망각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전 민주화 이후 내적 국경은 단지 하나 혹은 거대 국경 과 그것 하위의 국경들 국가만이 비국민을 국경 외부로 배제하 는 주체. 따라서 국민은 비국민 에 대 해 도덕감정을 유지하고 있음. 내적 국경의 다중화/복잡화 내적 국경은 사람들에게 무감각해 짐(망각의 제도화) 가령, 잘 알려져 있듯이 민주화가 노동자들의 시민화를 수반하여 임금 상승을 가져왔고, 이는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국내 유입의 배경이 되었다. 이들 이주노동 자의 유입이 생산비용의 절감을 가져오고 이는 결과적으로 노동자의 임금 상승에 도 불구하고 시민의 생활비용의 상승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한데 이주노동자의 유입이 대량화되면 노동시장의 위기를 초래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주노동자의 유입은 노동자계층과의 이해관계와 갈등을 내장한다. 이때 이주노동자에 대한 관 리정책은 시민 대 노동자 대 이주노동자의 삼자갈등을 고려한 것이기보다는 노동 자 대 이주노동자의 이자갈등을 전제로 제도화된다. 즉 하위 계층 간의 이해충돌 이 관리정책의 주된 배경이 되는 것이다. 이때 국가와 시민사회는 이해갈등의 거 중조정자처럼 행세한다. 한편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하위 집단 간을 거중조정하는 정책은 대체로 하위 집단 중 보다 타자화된 대중, 의지를 정치화할 가능성이 보다 약한 대중에게 불리 하게 구성되기 마련이다. 바로 여기에서 인권을 침해하는 제도적 장치가 구체화된 다. 그럼에도 국가나 시민사회는 갈등을 거중조정하는 존재처럼 스스로를 인식함 으로써 자신이 인권 침해의 가해자라는 인식에 이르지 못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서 하위주체에 대한 인권 침해는 망각되는 것이다. 두 번째로 호혜의 양식은 비시민적 하위 집단의 복지/후원의 영역에서 일어난 다. 주로 복지/후원의 절차에서 수혜자를 탈주체화 혹은 종속적 주체화함으로써 인권 침해가 제도화되는 것이다. 가령, 빈곤층에 대한 복지정책인 생활보호대상자

199 참고자료 193 제도는, 후보자로 하여금 자신이 가족도 가진 것도 능력도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 명하게 함으로써 수혜자를 선정한다. 이것은 자기가 무슨 무슨 자격이 있고, 외국 어를 할 줄 알고, 어느 학교를 나왔고 등등을 입증하게 함으로써 더 많은 기회를 누릴 수 있는 시민의 생존전략과 정반대이다. 요컨대 복지/후원의 제도적 장치들 은 그 유용성을 실행시키기 위해 대상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종속적으로 주체화함 으로써 결국 무능력화를 낳는 장치로 작동되기도 한다. 이런 체계를 통해 빈곤층 같은 복지적 수혜의 대상인 하위 계층은 보다 의존성이 강한 무능력자가 되어 자 기상승의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들게 된다. 바로 이러한 과정은 시민사회로 하여 금, 수혜자가 되기 위해 무능력해지는 복지/후원의 시스템보다는 무능력자여서 수 혜자가 되었다는 편견적 인식에만 일방적으로 몰입하게 한다. 이는 무능력자가 마 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생각하는 사회적 관행과 제도를 낳는다. 그리고 이는 무능력자 자신의 자의식으로 자리잡는다. 이렇게 인권 유린의 장치에 대한 망각은 제도화되는 것이다. 이러한 민주적 제도화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배제의 장치를 혹자는 은폐된 배제 의 체계 라고 부른다. 15) 바로 이러한 은폐의 영역이 바로 인권이 유린되는 오늘의 현장인 것이다. 이렇게 내셔널리티는 통상 생각하듯이 외적 국경의 문제만이 아니 다. 수많은 인식상의 국경, 곧 내적 국경을 만들며, 그 속에서 수많은 배제와 인 권 유린이 실행되고, 그러한 일상 속의 배제와 차별의 장치를 시민사회로 하여금 망각하게 한다. 후발대형교회와 배제의 체계 말했듯이 한국 교회의 공통감각은 민주화 이전 시대의 도덕공동체 형성논리와 친화적이었다. 그런데 민주화는 이러한 구시대의 감각논리를 청산하는 과정을 통 해 수행된다. 그런 점에서 민주화는 교회의 공통감각이 이제는 낡고 추한 폐습으 15) 심창학, 사회적 배제 개념의 의미와 정책적 함의: 비교 관점에서의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국사회복지학 44(2001 3); 이영자, 프랑스의 좌익 근대화 와 배제의 사회, 현상과 인식 26(2002 겨울); 그리고 나 의 글 카인 콤플렉스와 무능력자 담론, 당대비평 23(2003 가을) 참조.

200 194 제11차 인권교육포럼 로만 각인되는 시대이기도 하다. 교회의 선교의 위기는 바로 이러한 사회적 감각 의 이동과 맞물려 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면서 새로운 발전전략을 펴는 교회들이 등장 했고, 그중 몇몇 교회들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사실 많은 대형교회들이 속속 강남(권)으로 이주했고, 또 그곳에서 신흥 대형교회들이 탄생했다. 이는 과거 농촌 에서 이주한 이들을 자원삼아 성장했던 선발대형교회들과는 다른 양상으로 오늘의 교회의 신앙이 제도적 변형을 모색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이러한 변형의 모범형으로 이른바 후발대형교회들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후발대형교회들은 품격 있는 성공 을 지향한다. 어느 정도 자본주 의의 폭력성에 상처 입은 자들을 위로하는 신앙의 장치로서 성장했던 선발대형교 회들은 한편으로는 적극적인 물질주의를 추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기도원으 로 상징되는 현실도피의 종교적 공간을 발명해냈다. 반면 후발대형교회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물질주의와 만난다. 이들에게 자본주의는 그다지 두려운 대상이 아니 다. 다만 야곱처럼 생존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을 추구하기보다는 보다 품격 있는 삶의 양식을 통해 성공을 모색한다. 물론 이러한 명품 물질주의적 성공주의의 추구는 실패자에 대한 잔혹한 배제를 실행에 옮기는 자본주의의 가혹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럼에도 교회의 호 혜성은 그러한 잔혹성을 세탁하는 신앙의 장치로서 기능한다. 위에서 언급한 후원 의 양식을 가장 활발하게 펴는 사회적 범주가 다름 아닌 교회라는 사실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호혜성 속에 감추어진 배제의 메커니즘이 후발대형교회의 신앙적 체 계 속에 내장되어 있는 것이다. 배제와 차별, 교회적 신앙, 그리고 비판적 이론/신학 이상에서 나는 오늘 우리 시대의 도덕공동체의 재구조화 과정을 내셔널리티에 초점을 두면서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배제와 차별의 은폐된 메커니즘을 읽어보려 하였다. 수많은 내적 국경들은 더 이상 외국인 대 내국인, 국민 대 비국

201 참고자료 195 민이라는 단순도식으로 인권 문제를 현상하지 않는다. 바로 이런 민주적 제도화과 정이 내장하는 새로운 인권 유린의 장치, 그 망각의 체계는 시민사회가 적극적으 로 공모하여 만들어가는 은폐된 가학성의 체계인 것이다. 그 일상 속에 산재한 국 경들 밖에는 무능력화된 비인간 아니 짐승들 이 내몰려 있다. 아니 인간임이 망 각된 무능력화된 존재들이 의미를 상실한 채 부유하고 있다. 바로 이 망각의 논 리, 그것의 배제와 차별의 일상적 메커니즘을 읽어내고 폭로하는 것이 오늘의 인 권의 문제를 담당하고자 하는 비판이론이 담당해야 하는 주요 과제다. 이 글은 그 러한 과제를 수행하려는 데 하나의 목적이 있다. 한편 교회는 민주화시대 이전과 이후를 가로지르면서 사회의 변형과정과 맞물리 는 신앙제도를 형성 변형시키고 있다. 특히 오늘의 시대에 교회는 은폐된 배제의 장치를 통해 인권 유린의 일상공간을 세탁하는 사회적 장치 만들기에 가담하고 있다. 비판신학으로서의 이 글의 과제는 바로 이러한 사회적 공조의 논리 속에 배 제와 차별의 메커니즘을 읽어내고, 그것이 반( 反 )예수적이고 반신적인 신앙의 제도 화임을 폭로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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