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peranto kaj mi 철들며 시작된 나의 에스페란토 인생 허 성 (HO Song) / 한국에스페란토협회 부회장 부산에서 에스페란토를 배우다 1973년 봄 어느 날 어느 일간 신문에서 에스페란토에 관한 기사 를 보게 되면서, 나의 에스페란티 스토로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그 기사의 내용은 한국과 일본의 청 년들이 만나서 국제공통어 에스페란토로 대화하며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으로 사진도 실렸는데, 그 지면 이 손바닥만한 정도였다. 그때 나는 그 이상에 공감 하고 에스페란토를 배울 마음을 굳혔다. 간절히 바라 는 일은 이루어진다는 내 생각처럼, 그로부터 몇 달 후 미지의 언어 에스페란토를 배울 기회가 찾아왔다. 그해 1973년에는 나의 삶에 중요한 일들이 많이 있 었다. 나이보다 한 해 늦게나마 동아대학교 국어국문 학과에 입학하였다. 그리고 몇 가지 언어의 공부에 몰두하게 되었다. 그 몇 가지 언어는 중국어, 에스페 란토, 일본어, 영어이다. 먼저 중국어와 일본어를 공 부하는 것이 너무나 즐거워서, 날마다 복습을 되풀이 하며, 교재의 어느 한 부분도 모르는 곳이 없을 정도 로 매우 심취해서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는 중에 또 한 에스페란토를 배우게 되었다. 그런데 에스페란토 공부를 시작할 때는, 처음부터 그 이상에 공감하여 아주 열심히 전파하려는 노력은 많이 했지만, 초급 공부 교재를 달달 읽으며 익히는 따위의 노력은 별로 하지 않았다. 다행히 이웃에 최 진도라는 같은 또래의 에스페란토 동료가 생겼고, 그 친구의 열성 덕분에 나도 그의 대화 상대로서 에스 페란토를 떠듬떠듬하며 언어능력을 높여 나갔다. 처음 에스페란토를 배우는 강습회는 한국에스페란 토청년연합회가 주최 주관하였고, 강사는 서길수 ( 당 시 이름은 서범수 ) 선생이었다. 강습회의 첫날에는 강연자로서 이종률 선생께서도 나오셔서 좋은 말씀 을 해 주셨는데, 지금 그 내용이 기억에 남아있지는 않지만, 내 마음에 쏙~ 드는 훌륭한 말씀이었다. 서길수 선생께서는 자신이 지은 얇은 책을 교재로 4 주 동안 재미있게 가르쳐주고 서울로 돌아가셨다. 그때 같이 강좌를 수강한 박기완 씨와 호형호제하며 중국어로 쓴 엽서를 주고받던 기억이 난다. 그 뒤에는 박기완, 최진도, 이태식, 권흥련 씨 등 과 어울려 비슷한 수준의 에스페란토를 갈고 닦았는 데, 중급교재로서 La Forto de l' Vero를 공부할 때 는 별로 어려운 줄을 몰랐으나, Vivo de Zamenhof 따위를 공부할 때는 어려워서 고생을 많이 했다. 방 학 때마다 거의 매일 모여서 공부를 했다. 에스페란 토라는 언어 공부도 즐거웠고, 다양한 친구들과의 교 제 또한 즐거웠다. 같이 어울려 다니기도 하고, 다락 원이나 바닷가로 공부하는 합숙을 가기도 했다. 간혹 일본 등지로부터 외국 에스페란티스토의 방문이 있 었는데, 다른 에스페란티스토들이 겁을 내고 말을 잘 안하는 바람에 내가 붙어 다니면서 에스페란토로 대 화를 많이 하게 되었다. 부산에서 에스페란토를 가르치고 운동에 참여하다 내가 에스페란토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1974년 대학교 2 학년에 들어가면서 몇 학생들과 어울려 [ 동 아대학교 에스페란토학회 ] 를 창립하고, 교내학생들을 상대로 한 강좌를 담당하면서부터이다. 그 때 배운지 8개월 된 내 에스페란토 능력은 가르치기에는 턱없 이 부족하여서,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했던 것 같다. 배우던 사람들이 갑자기 어떤 어휘나 표현을 질문해 오면 참으로 난감했을 것이다. 또한 시민을 상대로 한 강좌에서도 본의 아니게 종종 가르치게 되었다. 본의 아니게란 말이 무슨 뜻 이냐 하면, 그 때 아무개 고등학교의 수학교사로 있 던 이 아무개란 분이 종종 에스페란토 강좌를 개설 하여 가르쳤는데, 내가 에스페란티스토로서의 호기심 N-ro 253 Marto 2009 3
에 그 강좌를 이틀 사흘이라도 나가다 보면 그 이 아무개란 분이 꼭 아무런 말도 소식도 없이 사라져 서 강좌에 오지를 않는 것이었다. 그러면 나는 그 어 처구니없는 상황에서 수강생들에게 엉뚱한 피해를 주게 하지 않기 위하여 그 강좌를 내가 맡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 저리 한 에스페란토 강좌 지도의 경험 이 지금까지 6~70 회는 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내가 1976년 7월 말부터 1979년 2월 사이에는 군복무를 하고 부산으로 돌아오니, 에스페란토 강좌 나 운동이라는 것이 거의 없는 듯했다. 간혹 같이 공 부하던 친구들을 만나고 하는 차에 서울 건국대학교 에서 공부하던 박기완 씨가 중심이 되어서 시민을 상대로 하는 에스페란토 강좌를 수차례 열게 되었다. 박기완씨는 늘 의욕적으로 운동에 앞장서고, 나는 늘 뭔가 잘못될 일들을 걱정하는 스타일이었다. 1980년 군사독재의 서슬이 시퍼럴 때도 에스페란 토 강좌를 계속할 수는 있었는데, 이때는 주로 부산 YMCA 의 강의실 한 간을 싼값에 빌어 쓰곤 하였다. 그때의 강좌에서 배운 에스페란티스토들의 이름을 들자면, 장정렬, 최향숙, 조일록, 이현우, 정찬종, 박 미숙, 채흥기 등 지금도 찾을 수 있는 사람들이 수십 명이다. 이들은 그때 에스페란토를 굉장히 많이 공부 하고, 에스페란토 책도 많이 읽고, 에스페란토로 대 화하는 능력도 제법 많이 연마하여 실행하였다. 간혹 박기완 씨와 내가 정치적인 신념의 차이로 소리 내어 에스페란토로 논쟁하면, 당시 스무 살 전 후 후배들이 당황스러워 눈치를 보곤 했다. 이런 중 에서도 서길수 선생이 이끌던 에스페란토 합숙 공부 모임에 참가하며, 전국의 많은 에스페란티스토들을 사귀었다. 한국에스페란토대회에 매년 참석하고, 그 러다 아내 이현숙을 사귀어, 1985년 10월 서울예술 고등학교에서 열린 한국에스페란토대회장에서 결혼 식을 올렸다. 부산에서는 에스페란티스토 부부가 많 이 나왔다. 박기완 - 김정미, 허성- 이현숙, 조일록 - 최향숙, 채흥기 - 김덕자, 이계영 - 신창섭, 이현우 -조 희숙, 김정택 - 이선애 등등인데, 지금 에스페란토 별 명만 생각나는 커플도 여럿 있다. 부산에서 에스페란토 운동을 하면서 존경할 만한 에스페란티스토들을 많이 만났다. 특히 이종률, 이종 하, 송정옥, 주중식 선생 이름이 떠오른다. 에스페란 토를 하지는 않았어도 공감하며, 세계관과 이데올로 기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준 이상석 씨, 말없이 많은 영향을 준 일본 에스페란티스토들도 매우 고맙다. 이 분들은 내게, 역사상의 진실과 양심을 모르고 우매하게 지내기 쉬운 삶에서 그렇지 않은 삶으로 옮겨가도록 깨달음을 이끌어주셨다. 나는 또 1982년 부터 일본의 한일청년세미나리오나 일본에스페란토 대회 등 많은 국제 행사에 따른 여행을 하였고, 특히 일본의 많은 훌륭한 에스페란티스토들을 사귀어, 인 종적 국가적인 편견 없이 세계와 내 민족과 내 나라 를 중립적으로 보는 세계관도 가지게 되었다. 서울에서 에스페란토 운동에 참여하고 세계를 돌다 나는 1984 년부터 서울로 삶의 무대를 옮긴 후, 연 세대학교 교육대학원 [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 과 를 다니면서, 한국에스페란토협회에서 이중기 사무국 장과 함께 사무차장으로서 일하게 되었다. 이때 이재 현, 강헌구, 서길수, 안송산, 정원조, 박기완 씨 등과 일상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1985년부터 1988년까지는 매년 여름 서울국제인 형극제에서 통역봉사를 했다. 이때는 주로 한국어 - 일본어 통역을 하였지만 간혹 에스페란토 통역도 하 고, 여기서 일본의 많은 인형극인들도 사귀고, 나중 에는 인형극 관계 일로 종종 일본을 찾으며 일본 에 스페란티스토들을 만나 교류하게 되었다. 그래서 일 본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나중에 일본에 관한 저서나 번역서를 내는데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1986년 12월부터는 외국어 학원의 영어 일본어 강사로서 생계를 꾸리면서, 한 때는 광명시 정원조 한의원 1 층에 거주하였고, 이어서 1988년부터 1992 년까지는 신림동에 있는 제법 넓은 집에서 지내며, 딸 하나를 낳게 되었다. 이때에는 많은 외국 에스페 란티스토들이 며칠씩 또는 몇 달씩 우리 집에서 머 물렀고, 그중에는 그들끼리 결혼을 하는 경우도 생겨 났다. 따라서 국내외의 많은 벗들이 우리 집을 매개 로 모임도 가지고, 서로 사귀기도 하였다. 에스페란토를 통한 중요한 경험을 들라면, 세계에 스페란토대회를 몇 군데 참석하면서 그 주변 나라들 을 여행하고 그 사회를 배운 것을 들겠다. 그 외의 4 La Lanterno Azia
특별한 경험을 들라면, 다음의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1990년대 전반 어느 날 일본 교토의 타히 라 부부가 일제종군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의 공동 생 활터인 [ 나눔의 집] 을 돕기 위한 기금을 일본에서 모금을 해 와 전달하면서 일본어 통역이 아닌 에스 페란토 통역자로서 나를 택하여 하루 유급의 통역을 맡아서 일한 것이고, 또 하나는, 1995년 연말에 일 본 가나자와 에스페란토회로부터 초청을 받아서 가 나자와 여성회관과 가나자와 오오모토 회관에서 낮 과 저녁에 한 주 동안 일본어로 에스페란토를 가르 치는 일을 맡아서 그곳 신문에 나기도 했던 일이다. 가와니시 테추로 씨는 그때 나를 부러워하면서, 나중에 자신도 한국에서 한국어로 에스페란토를 가 르쳐보겠다고 하였다. 이후 열심히 공부하여 그 분의 한국어 실력은 지금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에스페란토를 통하여 세계 각국으로 여행하는 일 이 나에게는 참 멋지고 즐거운 일이었다. 재정이 부 실한지라 많이 다니지는 못했지만, 1988년 7 월~8월 에는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열린 세계에스페란토대 회에 처음으로 참가하면서 서유럽 10여개 나라를 40 여일간 에스페란티스토들을 만나며 여행하게 되었다. 그 뒤에도 1998 년 프랑스 몽뻴리에, 1999년 독일 베를린, 2001 년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2007년 일본 요코하마의 세계에스페란토대회를 참가하고, 그곳 일 대를 여행하였다. 국내에서 한국에스페란토대회를 준비위원장으로서 치른 것이 1990 년대에 서너 차례는 된다. 대전 신협 연수원이나 청소년회관, 또 서울 동부이촌동의 농업 지도자연수원 등지에서 치렀는데, 소박하나마 재정적 인 적자가 없는 대회를 치렀다. 또 2002년에는 서울에서 아시아에스페란토대회를 사무장 또는 부회장으로서 치렀고, 1994년에는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세계에스페란토대회를 대회장 담당 준비위원으로서 치렀다. 1994년의 세계에스페란토대 회나, 2002년의 아시아에스페란토대회에 대한 국내 외 참석자들의 평가는 매우 좋아서, 내가 나중에 일 본 등지로 가서 에스페란토 행사에 참석하였을 때 많은 환대를 받았다. 1990년 전후로 5, 6년 동안 내가 참여하여 활동 한, 한국에스페란티스토들의 사적인 친목-운동 단체 가 둘 있었는데, 하나는 에스페란토 지도자 모임이라 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론도 환타지아 (Rondo Fantazia) 였다. 에스페란토 지도자 모임이란, 당시 우리나라가 처 한 정치적인 현실에서, 의식의 각성이 필요하다는 생 각에서 바람직한 세계관을 길러보자는 생각으로 전 국 곳곳의 중견 에스페란티스토들이 모여서, 이름을 들면 강헌구, 박정섭, 이현숙, 나영성, 정명희, 이선 애, 최만원 등이 함께 돈을 갹출하여 책을 복사출판 한 적도 있고, 한겨레신문 주주가 되기도 했다 론도 환타지아는 격주 목요일 등 지정한 날 저녁 에 에스페란티스토들끼리 모여서 같이 술과 음식을 먹으며 두어 시간동안 에스페란토로 대화를 하는 모 임이었는데, 그때 여러 해를 같이 한 분들의 이름을 들면, 강헌구, 이임숙, 전유천, 이광미, 장미숙, 장홍 도, 나카다 히사토, 윤병하, 표정선, 김여초 등인데, 잠깐 나온 분들을 포함하면 훨씬 많다. 화가 에스페란티스토로서의 길을 걷게 되다 내가 에스페란티스토로서의 삶을 살아오면서 남들 처럼 확실한 월급이나 연간 소득을 얻는 안정된 직 업을 가지지 못했고, 따라서 재정적으로 아내 이현숙 에게 많이 의지하였다. 의지를 하면 당연히 남자 주 부로서 집안 살림이라도 깨끗이 살아야겠지만, 그러 지도 못했고 여러 가지로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다. 이런 상태로 살아오면서 간혹 잡다한 방법으로 수 입이 좀 있었던 적은 있으나 열거하기에는 가지 수 가 너무 많다. 부산에서 학교 교사를 그만 둔 이후, 학원강사로, 월급을 받는 사무원이나 회사원으로, 번 역자로, 간혹은 여행안내자로, 거리화가로, 책의 저 자로, 그리고 마침내 오늘날에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 로서 명함을 내게 되었지만, 화가로서 그림을 팔아서 먹고 사는 것은 더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미 화가의 길을 가리라고 생각을 굳히게 되었고, 이에 대한 용기를 준 것은 역시 에스페란토 이다. 에스페란토를 이용하여 세계 도처에 나를 홍보 하고 교류할 수가 있다는 점이 눈에 훤~ 히 보인다. 그래서 작년에는 첫 개인전을 하면서 그 도록의 사 용언어로서 에스페란토도 채택하였고, 앞으로도 특별 N-ro 253 Marto 2009 5
한 제약이 없는 한 에스페란토를 계속 사용하고자 한다. 지금 인터넷과 에스페란토를 이용하여 나의 작품 세계를 홍보하고 있다. 최근에 몇 차례 한국에스페란 토대회 등에서 내 그림을 경매에 내어서 에스페란토 운동을 위한 자금으로 쓰라고 낸 적이 있다. 아직 기 껏해야 20 만원대로 팔리지만, 머지않아서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키는 화제의 경매로 끌어갈 것이라는, 아 직은 고요한 꿈을 꾸고 있다. 차차 에스페란토 계를 포함한 여러 곳에서 배고프고 핍박받는 사람들을 위 한 일이나, 인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일에 도움을 줄 작품전시회를 이루고 싶다. 에스페란토 운동에 거는 나의 기대는 크지 않다. 적어도 내 생애 중에 에스페란토가 명실상부한 국제 어로 쓰일 가능성은 작다고 생각한다. 어떤 언어 하 나를 배워서 마음껏 부려 쓸 수 있다는 것이 그다지 만만한 일이 아니고, 이 만만하지 않을 일을 꽤 많은 숫자의 지구인들이 같이 해 줄 때 에스페란토의 이 상이 실현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더욱 나와 같은 작 은 존재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생 각이다. 에스페란티스토들은 흔히 에스페란토를 평화의 언 어, 곧 평화를 이룰 지름길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별로 그렇지도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남북한이 공통 어가 없어서 대치하는 것도 아니고, 이스라엘이 언어 문제로 팔레스타인을 폭격하는 것도 아니다. 탐욕과 욕심을 줄이고, 다투어 많이 가지려 하지 않고, 적은 물질을 가지고서도 생산자의 수고에 고마워하며 평 화롭게 살 수 있는 정신적인 따뜻함을 지니는 것이 평화를 이루는 지름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도 남을 배려하는 에스페란토의 이 상이 더욱 중요하다. 이 언어를 잘 배우고 익히고 가 르쳐서 내 민족과 나라의 욕심을 차리지 않고 서로 를 더욱 잘 이해하려는 생각을 퍼뜨리는데, 내가 가 진 어떤 작은 능력을 모두 쓰고 싶다. 이글의 제목에 맞은 더 많은 이야기를 쓰고 싶지 만, 지면의 제약과 내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만 큼으로 그치고자 한다. 이글을 내 주위의 동료 에스 페란티스토들이 읽을 것이다. 모든 에스페란티스토들 의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빈다. Eklerno de Esperanto: Eklernis Esperanton en la 23a de julio 1973, Busan Koreio. Trovinte raporton pri Esperanto en ĵurnalo, vizitis Ekspozicion por Propagandi Esperanton al Civitanoj, kaj tuj aliĝis al Esperanto-kurso por civitana publiko. Daŭrigo de la lernado de Esperanto: Partoprenadis kelkajn kursojn por komencantoj kaj por progresantoj. Duonjaron post la eklerno de Esperanto instruadis ĝin al studentoj kaj civitanoj. La studado por instruadi Esperanton kaj aktivado en Esperanto-movado men fariĝis mia propra lernometodo de Esperanto. Aktivado en Esperanto-movado: Baldaŭ post la eklerno de Esperanto en Busana Filio de Korea Esperanto-Asocio aktivis ofte kiel ĝia sekretario. Ekde 1984 post la transloĝo al Seulo daŭrigis aktivadon kiel kursgvidanto, sekretario, redakciano, estrarano ktp. En la jaro 1994 estis respondeculo pri la kongresejo de LKK de la 79a UK, kaj en 2002 estis sekretario kaj vicprezidanto de LKK de la 3a Azia Kongreso de Esperanto. Estadis la organizanto de pasporta Servo, kaj estas estrarano pri internaciaj aferoj de Korea Esperanto-Asocio, kaj membro de Lingva Komitato. Kial estas Esperantisto: Por realigi la internan ideon de Esperanto. Kaj por ĝui Esperanto-kulturon kaj amuzi ĝin por internacie amikiĝi kaj ĝin profiti eĉ por ŝpari elspezon de monda vojaĝado kaj interŝanĝado ktp. Kion volas fari per kaj por Esperanto: Amikiĝi, vojaĝi, verkadi, prelegadi, kaj adapti ĝin por profesia internacia agado ktp. Por Esperanto daŭrigos aktivadon de la movado ĉefe per instruado kaj verkado, kaj helpi la movadon per personaj profesiaj talentoj, kaj laŭeble eĉ finance. Aldone: Esperanto ne estas tut-sola ŝlosilo de monda paco, kaj la ideo de Esperanto ne tre baldaŭ realiĝos en mia vivo. Do mi des pli bezonas helpi Esperanto-movadon. 6 La Lanterno Azia
Raporto pri vintra kurso de KEA 2009 전국 겨울강좌 전국 에스페란토 겨울강좌가 지난 2월 14일(토) 15(일)에 대전 유성 유스호스텔에서 총 49명(청 년18명 포함)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이번 강 좌에는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초급, 중급회화, 독 해, Nur Esperante 반으로 구성되었다. 한국에스페 란토청년회(KEJ)가 다소 활발해 진 것과 아울러, 청 년들의 에스페란토 교육을 후원하는 계기로 해서 청 년들의 참가가 상대적으로 늘었다. 초급 문법 (강사 박용승, 교재: 강사준비 자료 인 쇄물) : 14명이 참관한 이 반은 다양한 자료를 통해 에스페란토 입문자들에게 흥미를 끌었다. 학습자는 양진형, 정은경, 김영웅, 하유경, 이지은, 옥다정, 남 현, 성지은, 이주한, 안진, 배은연, 이은지, 최은희, 김영민. 우수학습자 : 하유경. 중급 회화 (강사 이중기, 교재 Esperanto Tiel Parolata) : 인터넷의 활용 등으로 세계에스페란토대 회장에서의 여러 상황에 대한 대화를 중심으로 한 회화 강좌였다. 참가자는 Supren, Brilegoo, Gravo, Resta, Belina, Miela, Benita 등 7명. 우수 학습자 : Miela(김지혜), Gravo(손중찬). 독해(강사 허 성, 교재: Vage tra La Dimensioj): 총 77쪽의 교재에서 29쪽까지 읽고 해석(총 7개의 공상소설 중 3개를 독해). 김영명 지도위원, 곽종훈 대의원회 의장, 오순모, 김주, 이홍진, 김진호, 박종 영 씨 등이 참석하였고, 우수 학습자 : 김영명 지도 위원이 선정되었다. Nur Esperante (강사 송호영, 교재 : Ridante Lernu, 이종영 편저) : 김우선, 김영옥, 노승임, 오종 석, 장정렬, 제경호, 김혜진, 이현숙 등 9명 참가. 우 수학습자 : 노승임. 에스페란토로만 진행되었다. 유 머 모음으로 된 교재의 각 과목마다 만들어진 네 개 씩의 질문에 참가자들이 재치 있게 답변해 웃음(?) 을 배웠는지 에스페란토로 대화하기를 배웠는지 모 를 정도였다. 특별 강연 (나 병도, 제목 : 캠 핑카 등을 이용한 유럽여행) : 캠핑 카 자전거 등을 이용해 유럽과 아 시아 지역을 탐방 하고, 현지 에스 페란티스토들과 초급 문법반 (지도 박용승) 독해반 (지도 허성) 교류를 한 사진들 을 보면서, 당시 여행의 일정 및 느낌 등을 소개 하였다. 둘째 날의 두 줄 대화 는 배려 중급 회화반 (지도 이중기) N-ro 253 Marto 2009 Nur Esperante (지도 송호영) 와 연습의 시간 이었다. 에스페란 토 입문 3~5년차 이상인 줄과 그 7
이하인 줄로 나누어 서로 마주보고 대화함으로써 표 현 방법과 회화를 배우고 익혔으며, 그동안 여러 강 의실에서 그룹별로 나누어 공부하던 참가자들에게 에스페란토를 실습할 수 있고, 친교의 시간으로 활용 되었다. 우수학습자 시상 외에 이번 강좌에서는 안진, 이 은지, 배은연 ( 연세대 에스페란티스토 ) 과 허민혁 ( 고등 학생) 에게도 참석을 기념하여 에스페란토 책을 선물 로 주었다. 이번 겨울강좌 행사를 위해 협회장님은 손수 준비해 오신 포항에서 가장 유명한 회와 준비 해 오신 맛있는 배로 참가자들을 즐겁게 해 주셨고, 김영명 지도위원은 책 15 권을, 박종영 이사는 호두 과자 2 통을 후원하셨다. 시간을 내어 겨울강좌에 함께한 모든 참가자들에 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009 겨울강좌 수지 내역 < 장정렬 / KEA 교육이사 > Raporto pri KEA-deputitara kunveno 1) 일시 : 2월 14 일( 토) 오후10 시~10:50 분 2) 장소 : 대전 유성유스호스텔 ( 겨울강좌행사장 ) 3) 대의원 출석 현황 : 총 20 명의 대의원 중, 참석 7 명, 위임 11 명, 불참 2 명. 재적 대의원 과반수이 상 출석으로 의결 정족수 충족. 4) 심의 사항 : 2008 년도 결산, 2009년도 사업 계 획과 예산 심의 및 통과. 5) 안건 발의 및 결의 1 발의: 교사들에게 에스페란토 보급을 위해 에스페 란토 협회를 교사 여름 방학 연수 프로그램의 연 수 기관으로 지정 신청. 결의: 협회에서는 교직에 종사하고 있는 에스페란 티스토들과 협력하여 구체적인 사항을 검토하기로 하다. 참가비 후원비 박화종 김우선 이홍진 수입 1,272,500 원 100,000 원 10,100 원 10,000 원 숙식비 강당대여 다과준비 운송료 기타 지출 966,000 원 50,000 원 85,410 원 25,000 원 42,100 원 2 발의: 협회 재정 확보를 위해 법인회원 제도 등을 두는 것과 협회를 지정기부금 대상 단체로 신청. 결의: 재정 후원을 위한 법인회원 제도를 위해서 는 협회 정관의 수정이 필요하므로 이사회에서 검 토하기로 하고, 회원들이 협회에 기부한 금액을 세금공제 받도록, 관계 기관에 문의하여 지정기부 금 대상 단체 신청을 하기로 하다. 계: 1,392,600 원 계: 1,168,510 원 수지차 : 224,090 원 3 발의: 회원 회비를 통한 협회 재정 안정을 기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 강구 필요. 결의: 이사회에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강구하여 실행에 옮기기로 하다. 겨울강좌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박화종 : 현금 10만원 30만원 상당의 생선회 및 음료 김영명: 도서 15권 기증 여명의소리 1, 2 ( 각 5 권) 지구어 에스페란토 (5 권) 박종영: 간식 ( 호도과자 ) 4 발의: 매년 행사 및 사업 계획의 정체성에 대한 변화 필요. 결의: 지적대로 이사회에 논의하여 사업 계획의 구체화를 기할 것이며, 내년부터 협회에서 아시아 대회와 한일 공동 에스페란토대회 개최를 위한 구 체적인 사안이 들어가도록 하여 더욱 발전적인 예 산을 계획하기로 하다. < 곽종훈 / 대의원의장 > 8 La Lanterno Azia
Bilanco 2008 kaj buĝeto 2009 de KEA KEA 2008 년 재정 결산 보고 및 2009 년 예산안 ( 후원 내역 및 기금 현황) 임원회비 계정과목 회장단 이사 비상임이사 감사 회원회비 일반 청년 가족 학생 평생회비 후원회비 특별후원 일반후원 잡수입 이자수입 행사수입 기타 도서판매비 가수입 (2008년 1월 1일 12월 31 일/ 2009년 1월 1 일 ~ 12월 31 일, 단위: 원) 수 입 지 출 2008 결 산 2009 예 산 계정과목 2008 결 산 2009 예 산 4,590,000 3,620,000 1,860,000-3,47,5000 240,000 250,000 280,000 400,000 15,148,000 13,790,000 5,837,336 738,270 473,547 2,598,700 26,288,173 4,800,000 5,040,000 3,960,000 720,000 5,100,000-375,000 360,000-3,300,000 11,400,000 3,000,000 15,000,000 1,200,000 5,000,000 운영비 제세공과금 건물관리비 전화통신료 우편료 소모품비 비품구입비 교통출장비 운영전도금 UEA국가지부회원비 기관지발행비 편집비 도서구입비 지원비 행사비 기금적립금 잡비 잡비 기타 예비비 563,990 3,642,750 757,380 4,024,080 3,199,130 1,752,050 396,550 14,000,000-7,540,000 2,200,000 715,500 1,726,800 10,059,560 11,500,000 1,009,950 20,790,306 600,000 4,000,000 900,000 4,500,000 3,000,000 3,000,000 400,000 14,000,000 500,000 7,500,000 2,200,000 5,000,000 4,000,000 12,000,000-1,200,000 2,863,395 전기 이월금 10,697,415 6,408,395 차기 이월금 6,408,395 총수입계 90,286,441 65,663,395 총지출계 83,878,046 65,663,395 u 임원회비 내역 단위 : 원 1. 임원회비 현금 내역( 합계 10,070,000 원) 회장단 ( 합계 4,440,000 원) 박화종 1,200,000 원 강헌구 720,000 원 김우선 720,000 원 박종국 360,000 원 이홍진 720,000 원 허 성 720,000 원 상임이사 ( 합계 3,770,000 원) 김 주 360,000 원 김영옥 390,000 원 박수현 240,000 원 박찬복 260,000 원 배종태 300,000 원 오순모 360,000 원 유영애 360,000 원 이남행 360,000 원 장정렬 60,000 원 정현주 360,000 원 조명자 360,000 원 최유식 360,000 원 비상임이사 ( 합계 1,860,000 원) 곽종훈 360,000 원 김시헌 150,000 원 민정진 270,000 원 박종영 360,000 원 이여환 360,000 원 장기수 360,000 원 N-ro 253 Marto 2009 9
u 후원회비 내역 단위 : 원 1. 일반후원 ( 합계 13,790,000 원) 김 주 500,000 원 김영명 600,000 원 김진호 1,000,000 원 박용승 50,000 원 박화종 10,800,000 원 이영구 300,000 원 이용대 200,000 원 이종영 50,000 원 이현희 50,000 원 한무협 200,000 원 박종영 ( 박미숙, 배종태 ) 40,000 원 2. 특별후원 ( 합계 15,148,000 원) 1) 기관지발행후원 ( 합계 3,600,000 원) 김영명 300,000 원 마영태 300,000 원 박정욱 300,000 원 박화종 300,000 원 서길수 300,000 원 서진수 300,000 원 이종영 300,000 원 이홍진 300,000 원 정원조 300,000 원 홍성조 300,000 원 원불교에스페란토회 300,000 원 2) 비품구매 ( 냉난방기 ) 후원 ( 합계 1,760,000 원) : 박화종 1,600,000 원 이용대 100,000 원 임한우 60,000 원 3) 기타 ( 합계 10,088,000 원) : 누리집 관리 박찬복 88,000 원 UEA 후원( 고 이종영 명예회장 유족 ) 10,000,000 원 3. 행사후원 ( 합계 4,530,200 원) : 결산집계의 행사수입 계정과목에 포함된 내역. 1) 여름강좌 ( 합계 160,000 원) 박화종 100,000 원 김우선 60,000 원 2) 겨울강좌 ( 합계 494,400 원) 박화종 494,400 원 3) 한국대회후원 ( 합계 3,875,800 원) 김우선 100,000 원 마영태 100,000 원 박종영 100,000 원 박화종 1,500,000 원 배종태 100,000 원 송호영 30,000 원 양옥남 50,000 원 이영구 100,000 원 이홍진 100,000 원 익산지회 200,000 원 임성택 100,000 원 정명희 50,000 원 정상섭 100,000 원 정원조 200,000 원 정현주 100,000 원 조명자 50,000 원 조성호 100,000 원 최상범 100,000 원 한영성 150,000 원 홍성조 50,000 원 강헌구 100,000 원 민정진 95,800 원 조원석 100,000 원 임한우 100,000 원 서울에스페란토문화원 100,000 원 u 기금 현황 (2008년 1월 1일 - 12월 31 일, 단위 : 원) 구분 전기 이월 07.12.31 이자 지출 2008년 잔액 08.12.31 지출내역 / 비고 향촌 기금 1 44,796,272 2,228,064 2,228,064 44,796,272 협회 경상비 향촌 기금 2 - - - 10,000,000 고 이종영 명예 회장유가족후원 협회 기금 10,000,000 432,890 432,890 10,000,000 협회 경상비 이종영 기금 10,000,000 490,200 490,200 10,000,000 에스페로상금 평생회원 기금 13,959,313 603,710 571,020 13,992,003 평생회원 1명 증가 해평 기금 2,743,565 175,168 24,520 3,141,263 해평 기금 이자 246,924 174 247,050 51 이재현사전기금 홍보시디 기금 659,398 656-660,054 기관지발행 기금 10,933,754 775,766 20,694,035 11,000,920 협회도서발행 기금 - 1,796-1,796,006 기 금 합 계 93,339,226 4,708,424 24,687,779 105,386,569 이 자료는 2009년 2월 11일 실시한 2008년도 감사결과와 2009년 2월 14일 유성 유스호스텔에서 있었던 KEA 대의원 정기총회에서 승인된 내용입니다. < 민현경 / KEA 사무국장 > 10 La Lanterno Azia
에스페란토로 한 중앙아메리카 여행 Raporto de vojaĝo en Meza Ameriko (2) SO Gilsu ( 서길수 ) / konsilano de KEA 1) ADO bushaltejo por aĉeti la busbileton por morgaŭ, kio estis neatendita granda helpo. Leandro planas okazigi e-kurson en sia loko, kaj li volas ricevi diversajn helpojn de Martin, Meksikurbo. tranokti en Villahermosa (Olmeca Plaza Hotel) La vidaĵo de Palenque Dec. 19(mer) Oaxaca - Villahermosa Oaxaca(11:50)-MX216-MEX(13:00/14:00)-MX 7705-VSA(15:20) (G.) s-ro Leandro Garcia Rodrguez(1973) Ĉar rekta flugo inter Oaxaca kaj Villahermosa ne troviĝas, mi flugis tra Meksikurbo. Urbo Villahermosa estis atakita de inundo, kaj ankoraŭ ne plene rekonstruiĝis. Leandro, la frato de Aurora ne povas akompani nin pro lia laboro, sed invitis nin gasti ĉe li en Paraiso situanta 1 horon fore de la urbo. Sed mi preferis hotelon, ĉar morgaŭ mi havas planon viziti mallonge Olmeca Parkmuzeon, kaj foriri frue al sekvanta celo Palenque. Je la 10a nokte gesinjoroj Leandro Garcia Rodrguez vizitis mian hotelon, kaj kune iris al 1) prof. d-ro de Seokyeong Universitato. Dec. 20(ĵaŭ) viziti turismajn lokojn en Villahermosa. atm : Parque-Museo de la Venta ptm : Museo Regional de Atropologia, CICOM iri al Palenque tranokti en Palenque(Lacandoni Hotel) Dec. 21(ven) viziti Maja-Ruinon Palenque tranokti en Palenque(Lacandoni Hotel) Dec. 22(sab) Palenque - Yaxchilán - Bonampak - Flores tranokti en Lacanja Chansayab Dec. 23(dim) alveni al Flores, Gvatemalo tranokti en Flores(Peten Esplendido au Sabana) Dec. 24(lun) viziti Tikal Maja-Ruinon tranokti en Flores(Santana Hotel) Dec. 25(mar) Flores(05:00/07:30)-internacia aŭtobuso-sanignacio viziti Maja-Ruinojn : Cahal Pech, Xunantunich, Belizo N-ro 253 Marto 2009 11
tranokti en San Ignacio(Venus Hotel) Dec. 26(mer) viziti Caracol Archaeological Site tranokti en Beliza Urbo(Mopan Hotel) Dec. 27(ĵaŭ) viziti Maja-Ruinojn : Lamanai, Altan Ha tranokti en Beliza Urbo(Mopan Hotel) Dec. 28(ven) turismi en Belizo(muzeo kaj aliaj) Belize City(17:20)-TA411-SanSalvador(18:20) (D) Eduardo adam Navas Lopez(studento) Kiam ni alvenis al la flughaveno de San Salvador, Eduardo bonvenigis min kun ŝildo 'Esperanto'. Ĉar li venis kun la aŭtomobilo de sia frato, ni povis senprobleme atingi al hotelo. Eduardo elgradiĝis universitaton, kaj de printempo li instruos en sia universitato komputilon, kio multe helpos por nia movado. Li planas e-kurson en sia universitato ekde la venonta semestro. Li eklernis Espernaton antaŭ 3 jaroj sen iu ajn gvidanto, kaj praktikis pere de interreto. Li tamen sufiĉe bone regas Esperanton, kaj havas pli maturan agon kaj pensmanieron ol lia aĝo. tranokti en SanSalvador (San Carlos Hotel - Tikabus) Dec. 29(sab) turismi en Salvador viziti Museo Nacional de Antropologia, turismi Phillipe kaj lernantoj, Alexander kaj Reina en Majaa Ruinoj : Joya de Ceréen, San Andrés Tutan tagon ni ekskursis kvarope(ni, Eduardo kaj sia patrino), kaj vespere ni renkontis kun s-ro Phillipe Chavignon, kiu loĝas en Gvatemalo dum ĉiu decembro kaj januaro. Dum la vespermanĝo ni havis tre interesan diskuton pri taoismo kun 4 neesperantistaj taoistoj akompanataj de Phillipe. Eduardo malfacile, sed tre sukcese interpretis nian interparoladon en Esperanto. tranokti ĉe Eduardo Dec. 30(dim) turismi en Majaa Ruino : Tazumal - Panajachel. Majaa ruino en Tazumal Antaŭtagmeze ni kvarope ekskursis en antikva Majaa ruino Tazumal. Eduardo aranĝis perfekte por nia ekskurso, lia patrino luis aŭtomobilon kontraŭ tre modesta pago. Post la tagmezo ni renkontiĝis kun s-ro Phillipe Chavignon en la urbo Santa Ana, tre proksima de Tazumal. Hodiaŭ mia celo estis atingi al la domo de Phillipe, kaj li nun estas revenanta per sia propra aŭtomobilo al sia domo, kio solvis nian grandan problemon, transporto. Ni ekiris de Santa Ana je la 1a kaj 40 minutoj, kaj alvenis al lia domo en Panjachel, Gvatemalo je la 8a kaj 50 minutoj. Nia vojaĝo daŭris pli ol 7 horoj trans la landlimo de Salvadoro kaj Gvatemalo. Lia domo en montaro altas je 2,144m, kaj temperaturo subite saltis de 30 al 6, kio igis nin tre malvarmaj. 12 La Lanterno Azia
tranokti en SanSalvador(3) Dec. 31(lun) S-ro Phillipe Chavignon(1958) La domo de Phillipe, ŝipo(konsruita ŝipoforme) estas apenaŭ finkonstruita, kaj Phillipe planas utiligi la konstruaĵon por movado de Esperanto kaj por indiĝenaj aferoj. Li partoprenis en UEA-projekto, per kiu oni povas helpi komunikadon inter indiĝenaj gentoj per Esperanto. Li jam instruis al kelkaj indiĝenoj Esperanton, kaj hodiaŭ mi vizitis kelkajn el ili. Unue mi vizitis la domon de knabo Benjamin, kies familio ĉiuj klopodas lerni Esperanton. Sekvis la vizito al Alexander Perez kaj Reina Elizabet, el kiuj Alexander relative bone parolas Esperanton, ĉar li vizitis Francujon helpe de Phillipe. ptm. Mi ekskursis al San Pedra, kiu situas trans la bela lago Atitlan. Bela lago Atitlan, Phillipe kaj Benjamin Min gvidis komencantoj Benjamin kaj lia bofrato. Vespere mi pasigis lastajn momentojn de la jaro 2007, ĉe la domo de Benjamin. Ili preparis speciale tipan manĝaĵon. Mi pasigis tre rememorindan vesperon kun pli ol 10 familianoj de Benjamin. tranokti en Panajachel, gastis ĉe Phillipe. Jan. 1(mar) Ruinas de Iximché, veni al Gvatemalurbo (D) S-ro Edgar Augusto Oliva M. Por hodiaŭa ekskurso, paĉjo de Benjamin apenaŭ balbutanta Espernaton mem ŝoforis, kaj Benjamin estas ĉiĉerono en Majaa ruino Iximche. Okaze de la jarkomenco kelkcentoj da indiĝenoj (Kaqchikel) amasiĝis ĉe la ruino de siaj prapatroj. S-ro Edgar Augusto Oliva M. venis al la ruino por veturigi nin al Gvatemalurbo kun sia propra aŭtomobilo, kun veterana espernatisto Julio Roberto. Dank' al la memŝoforado de Edgar, mi povis multe interparoli kun la veterana esperantisto, kaj sekure alvenis al la domo de iu koreo, kiel mi tranoktis. tranokti en Gvatemala Urbo(domo de koreo) Jan. 2(mer) ekstari viziti al Maja-Ruino Copan(Onduro) Rubén A. Ortiz Hernández, Marco Tulio Carrillo Leiva, Hodiaŭ ni ekskursas al la ruino Kopan de Onduro. La ekskurson aranĝas indiĝena turismagentejo, kies estro(rubén A. Ortiz Hernández) parolas esperanton. Survoje al la ruino aldoniĝis alia izolita esperantisto Marco Tulio Carrillo Leiva en Chikimula. Ni povis viziti najbaran landon Onduro, same kiel viziti urbon en sama lando sen vizo. tranokti en Rio Hondo aŭ Quirigua Jan. 3(ĵaŭ) reveni el Maja-Ruino Kopan Hodiaŭ la kvaropo daŭrigis la ekskurson en Qirigua, Gvatemalo. Ruben kun sia filo entuziasme gvidis nin al ruinoj, dum Marko ĉiam kun gaja interparolado nin ĝojigis. Vespere ni alvenis al Antigua, kie ni havis renkontiĝon kun lokaj esperantistoj kaj aliaj francaj esperantistoj, kiuj ĵus alvenis de Francujo. tranokti en ANTIGUA "Casa Florencia" Jan. 4(ven) turismi en Gvatemala Urbo : N-ro 253 Marto 2009 13
Museo Nacional de Arqueologia y Etnologia, renkontas 2 tre bazajn problemojn. Kiam li Museo Popol Vuh, okazigas kursojn, venas ne malmultaj studentoj, Sitio arqueológico de Kaminal Juyú kaj aliaj. sed poste iom post iom malaperas lernantoj pro la Tutan tagon Edgar gvidis kaj memŝoforis en obstinaj intervenoj de gepatroj. Ĉefaj argumentoj Gvatemalurbo. Dank' al lia perfekta gvido kaj de gepatroj estas jenaj 2 puntktoj : unue, ŝoforado, ni povis vidi ĉiujn vidindajn lokojn, eĉ plian, kiu ne aperas en gvidlibro. Li ĉiam atentigis espernanto estas la religio kiu neas dion, due, angla lingvo estas internacia lingvo. min enmeti fotilon en tornistron, kaj tiel ni Mi komprenis duan kialon, ke angla lingvo estas sendanĝere povis fini tutan ekskurson. tranokti en Gvatemala Urbo(domo de koreo) internacia lingvo, ĉar tio okazas en ĉiuj landoj, sed mi ne povis kompreni, ke esperanto estas relegio, kiu neas dion. En Nikaragvo plejparte oni Jan. 5(sab) Gvatemala Urbo(0632) - CM710 kredas je katolika eklezio, kaj la misfamo estas - Managua(0748) granda malhelpo. Ni interparolas pri katolika (G) s-ro Eddy antonio Silva Molina(1976) sinteno pri Esperanto kaj efiko por lerni alian studento, turismi la urbon lingvon. tranokti en Managua(Royal Inn) Li eklernis anataŭ 14 jaroj por kolekti poŝtmarkojn. Li memlernis sen gvidanto, sed li Jan. 6(dim) turismeti mamtene la urbon, kaj havas sufiĉan kapablon diskuti ĉiujn temojn en foriri al Kostariko Esperanto. En 1996 li klopodis ĉeesti E-kurson Ĉar hieraŭ s-ro Eddy antonio Silva en San Fransisco por altigi E- kapablon, sed li Molina(1976) estis okupita, hodiaŭ apenaŭ ni ne povis enmanigi enirvizon de Usono, kaj mi pensis, ke estus bone, se iu loko en Meza Ameriko oni okazigus tiel similan kurson. Eddy 32-jara, baldaŭ elgradiĝos universitaton. Post la elgradiĝo li fariĝos instruisto aŭ ŝtat- oficisto, aŭ pli studos anglan lingvon, kio garantias pli bonan salajron. Li ne havas Vespermanĝo kun francaj esperantistoj propran komputilon, kaj li povis uzi nur 2 horojn havis tempon paroli dum tagmanĝo antaŭ foriro. semajne en univiersitato. Li tamen perdos la En Mangua nun troviĝas pli malpli 10 privilegion, kiam en printempo li elgradiĝos esperantistoj, el kiuj li havas 4 adresojn. Li universitaton. Malgraŭ la malfacilaĵoj li planas tamen estas sola, kiu efektive aktivas por okazigi E-kurson en Politeknika Universitato, kie esperanto-movado. Dum la esperanto movado li lia amikino laboras, kaj helpos lin. (Daŭrigota) 14 La Lanterno Azia
Nova Esperantisto 에스페란토를 익히는 기쁨 손 중 찬 / 단국대학교 3년 고도 에스페란토를 접한 지 1년 하 7 개월이 지났다. 이중기 교 수님께서 강의하시는 서울 에스 페란토 문화원의 초급강좌를 불 과 12시간 정도면 끝마칠 수 있 다는 것을 감안할 때, 나는 벌써 유창하게 에스페란토를 구사할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1년이라 는 길다고 하면 꽤 긴 시간동안 에스페란토와 멀리 떨어져 있음을 택했던 탓에 나는 여전히 Mi estas ankoraŭ komencanto. ( 나는 아직도 초보자에요 ) 라 는 말로 에스페란토 대화의 첫 마디를 시작하는 에 스페란티스토이다. 에스페란토를 처음 접한 것은 군 휴학기간이 끝나 갈 무렵인 2007년 7 월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무렵 대학교 복학을 눈앞에 두고 집에서 재빠르게 눈을 굴리며 뭐 즐길 것 없나 하고 여기저기를 뒤적 이던 예리한 나의 눈동자에 포착된 것은 너무도 손 쉽게 익힐 수 있다 는 에스페란토에 대한 깜짝 정보 였다. 그렇게 나는 Kurso de Esperanto 인터넷 사 이트의 주옥같은 학습 프로그램과 lernu.net 등의 사 이트들을 접하게 되었다. 나는 잠깐 에스페란토에 대 한 정보를 읽어 본 것만으로도 깊이 매료되었는데, 유독 눈길을 끌었던 것은 너무나도 간단한 에스페란 토의 문법이었다. 언어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언어 를 익히는데, 그 나라의 문화를 공부하는 것 또한 매 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간단한 문법체계를 지닌 기발한 언어가 나타난 것이었다. 내 가 이 언어를 재빨리 숙지하여 친구들을 많이 사귀 고 그들의 다양한 문화를 체험해 본 후 그 친구들의 모국어까지 일거에 꿰뚫어 버리자는 발칙한 (?) 계산 까지 머릿속에 스쳐 갔다. 다운받은 Kurso de Esperanto 프로그램은 13.6 메가바이트의 작지만 너무도 알찬, 알짜배기 독학 프 로그램이었다. 총 12과로 이루어져 있고 학습자가 혼자서도 잘 내용을 습득할 수 있도록 시청각적으로 도 잘 구성되어 있다. 또한 학습 시 지치거나 지루해 할 수도 있을 경우를 대비하여 외국 에스페란티스토 가수들의 노래도 들을 수가 있다. 당시 이 노래들은 내가 자주 접해왔던 노래들과는 많이 다른 스타일이 었기에 애써 여러 번 들어보면서 음악에 대한 감흥 을 의도적으로 느껴보려고도 했었다. 게임하듯 여유 롭게 그 학습프로그램을 공부하면서 에스페란토를 접한 지 겨우 2시간 만에 외국인과 에스페란토로 채 팅을 하게 된 것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프로그램을 잠시 써 본 후 곧장 lernu.net 사이트에 접속하여 더 재미난 무언가를 찾아 둘러 볼 참이었는데 둘러보기 도 전에 내 눈에 띈 것은 lernu.net 첫 페이지의 우 측 하단에 있는 부분이었다. 그 곳에는 즉시 메시지 보내기 도구 라는 부분이 있었고 한 번 클릭하자, 이 부분이 곧 여러 사용자들이 서로 채팅을 나눌 수 있 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lernu.net 이나 Kurso de Esperanto 학습 프로그램 등에는 어색하게 번역된 한글 표현들이 많다. 가끔 그러한 부분이 쏠쏠한 재미를 주기도 했다.) 몇몇 사용자가 아주 친밀한 듯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잠시 보고 있던 나는 망설이다 그들 사이로 끼 어들기로 했다. 시작이 반이라 했던가,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Saluton! ( 안녕하세요!) 을 적었고, 바로 Saluton! 으로 화답하는 상대방의 따뜻한 인사에 힘을 얻어 어설픈 실력으로나마 통성명과 간단한 대 화까지 나눌 수가 있었다. 뒤이어 나의 느린 이야기 를 오랜 시간 기다려주며 잘 받아주었던 따뜻한 사 용자 한 분을 MSN 메신저에서 친구로 추가하게 되 면서 1:1 대화를 나누는 절호의 찬스까지 잡게 되었 다. 나중에 이중기 교수님께 그 분 성함을 말씀드렸 N-ro 253 Marto 2009 15
더니 에스페란토 사회에서 잘 알려진 중책을 맡고 계신 분이라는 말씀을 듣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잠시 채팅을 했던 나는 내 방에서 홀로 학습하는 것보단 에스페란토를 가르쳐 주는 곳으로 직접 찾아 가, 선생님께 지도받는 것이 여러모로 낫겠다는 판단 을 하였고, 강의를 받을 수 있는 장소를 물색하기 시 작했다. 사실 이 무렵 나는 두 가지 염려가 있었는 데, 하나는, 에스페란토 문화원 사이트에서 보았던 이중기 교수님은 사진과 프로필을 봤을 때 많은 국 제 행사에 참여한 에스페란토 고수이신데 과연 나 같은 왕초보를 상대해주실까 하는 염려와 다른 하나 는 곧 학교에 복학해야 하는데 과연 이 에스페란토 수업과 학교 수업을 병행할 수 있을지가 염려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정말 놀랍고 또한 반갑게 도 학교 교양 과목으로 이미 이중기 교수님의 에스 페란토 강의가 개설되어 있었던 것이다! 휴학 전에 같이 몰려 다녔던 학과 동기들은 아직 제대 전이거나 한 학기 정도 복학을 미룬다고 하여 나 홀로 학교를 찾아가야 해서 약간 쓸쓸한 마음과 엇 학기로 복학하는 것이어서 모두들 친밀해져 있을 학생들 틈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조금 어색하게 여겨 졌으나 에스페란토가 있었기에 오랜만에 혼자 찾아 간 학교라도 외롭지 않았다. 그 후 나는 학교의 에스페란토 교양 수업과 2007 년 남강에스페란토학교 가을 학기에 참가했고, 그 해 12 월엔 한중일 청년 세미나리오에 참가하는 등 두 개의 에스페란토 행사를 경험했다. 1년이라는 공백 기를 지나 올해 2 월, 대전 유성유스호스텔 합숙 강 좌에 참가하였다. 이번 겨울 강좌에는 색다른 재미가 있었다. 2007 년 가을의 남강학교 때에 비해, 현격히 많은 수의 청 년들이 참여했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얼굴들을 만나 반갑고 즐거웠다. 밤을 새워 이야기를 나누고 윷놀 이도 했다. 새벽엔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Nema ( 박용승 ) 선생님의 배려로 밤을 함께 지새웠던 사람 들과 나가서 맛있는 해장국을 먹기도 했다. 결국 한 숨도 못 자고 밤을 샜는데 다음 날 졸지 않고 공부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오랜만에 뵈었던 이중기 교 수님도 여전히 활기찬 모습 그대로이셨다. 나는 이번 강좌 때 나 혼자 뒤쳐질 것을 염려해 두 과 정도를 미리 예습을 해서인지 수업은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교수님께서 순간적으로 옆 사람에게 질문하 거나 대화해 보라고 하실 때는 좀 어려웠다. 남강 때 에는 쉬운 단어를 이용해 재빨리 간단한 말을 할 수 있었던 반면에, 이번 대전 강좌 때는 교수님이 시키 셨을 때 머릿속에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이는 곧 실력 저하의 증거라 여겨졌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스페란토는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제일 빠른 길이지만, 학교를 다녀야 하는 학생들의 경우엔 쉽지 않다. 따라서 일상생활에서 에스페란토 를 지속적으로 접하는 것이 중요한데, 나의 경우엔 에스페란토 관련 사이트로부터 몇몇 에스페란토 친 구의 주소를 얻었고 지금은 서로 메일을 주고받고 있다. 아직 단어실력이 모자라서 메일을 쓰거나 읽을 때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지만, 종종 나도 모르게 외운 표현들이 튀어나올 때 짜릿함을 맛보기도 한다. 이제는 조만간 인터넷 통신인 에도 도전해 볼 참이다. Skype 로 대화하는 것 2009년 KEA 회비 납부 안내 KEA( 한국에스페란토협회 ) 에 보내주신 회원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에 항상 감사드리며, 2009 년도 연회비 납부에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2009년 협회 연회비 일반회원 50,000 원 가족회원 25,000 원( 일반회원의 가족인 경우) 학생회원 20,000 원( 초등학생포함, 대학원생제외 ) 평생회원 750,000 원 납부: 국민은행 031-01-0365-220 ( 예금주 : 한국에스페란토협회 ) 회비 유효기간 : 2009년 1년 KEA 회원으로 가입하시면 매달 기관지 La Lanterno Azia를 보내 드리고, KEA의 각종 행 사에 참가비 할인 혜택을 드립니다. - 박화종 / KEA 회장 - 16 La Lanterno Azia
Literaturo Raporto pri Vojaĝo al Mujin (6) La sireno de elirmalpermeso sonis, ĝuste tiam, kiam mi kuŝiĝis sub litaĵon. La sono estis neatendite brua, kaj longe eltirita. Ĉiuj aĵoj kaj pensadoj estis sorbataj en la sirenon. Nur la sireno restis en la mondo. Ŝajnis al mi, kvazaŭ la sireno daŭrus tiel longe, ke mi ne plu povus senti ĝin. Tiam subite la sireno, perdante sian forton, velkis, kaj longe ĝemante malaperis. Nur mia penso revenis. Mi provis denove pensi la konversacion, kiun ŝi kaj mi interŝanĝis ĝis iom antaŭe. Verŝajne ni interparolis pri multaj aferoj, sed nur kelkaj eroj restis en miaj oreloj. Poste, kiam tempo plu pasos, la aferoj, kiujn ni parolis, moviĝos de miaj oreloj al mia kapo kaj ankoraŭ de mia kapo al mia koro, eble pli da aferoj malaperos. Efektive ĉiuj, kiujn mi scias, fine malaperos. Mi pensu malrapide. Ŝi diris ke ŝi volas iri Seulon. Ŝi parolis pri tio kun korŝira voĉo. Mi subite estis kaptita de impulso por preni la virinon en miajn brakojn. Kaj... ne, tiu impulso estis la nura afero, kiu povas resti en mia koro. Sed eĉ tio forviŝiĝus de mia koro iam, kiam mi lasas Mujin. verkis KIM Seung-ok tradukis CHOE Youngsuk Mi ne povis endormiĝi. La siesto en tiu posttagmezo estis parto de la kaŭzo. Mi fumis cigaredon en la mallumo. Mi furioze rigardis la vestojn pendantajn sur la muro, kiuj malsuprenrigardis min kiel malgajaj fantomoj. Mi forbrosis la cindron de mia cigaredo en oportuna loko apud mia kapo, kie mi povos purigi per viŝtuko en la mateno. Grakado de ranoj, kiuj kvakas post noktomezo, aŭdiĝis malklare. Mi aŭdis sonoron de horloĝo, kiu ie montras la 1-an horon. Mi aŭdis sonoron de horloĝo, kiu ie montras la 2-an horon. Mi aŭdis sonoron de horloĝo, kiu ie montras la 3-an horon. Mi aŭdis sonoron de horloĝo, kiu ie montras la 4-an horon. Iom poste la sireno kriegis la finon de elirmalpermeso. Aŭ la horloĝo aŭ la sireno estis neekzakta. La sono estis neatendite brua, kaj longe eltirita. Ĉiuj aĵoj kaj pensadoj estis sorbataj en la sirenon. Nur la sireno restis en la mondo. Ŝajnis al mi, kvazaŭ la sireni daŭrus tiel longe, ke mi ne plu povus senti ĝin. Tiam subite la sireno, perdante sian forton, velkis, kaj longe ĝemante malaperis. Ie edzo kaj edzino amorus. Ne, ne edzo kaj edzino, sed iu prostituino kaj ŝia vizitanto. Mi ne povis scii, kial mi pensas tiel eksterordinaran aferon. Iom poste mi trankvile ekdormis. Longa Digvojo Etendinta en la Maron Pluvo falis nebule en la mateno. Antaŭ matenmanĝo mi kun ombrelo vizitis tombon de mia patrino, kiu troviĝas sur monteto proksima de la urbeto. Mi aliris al la tombo, volvis mian pantalonon ĝis genuo, kaj vizaĝaltere riverencis en pluvo. Pluvo faris min bonege obeema filo. Per unu mano, mi tiris longajn herbojn sur la tombo. Kiam mi tiras herbojn, mi imagis mian maljunan bopatron, kiu kun larĝa ridego vizito rondeiras por renkonti homojn, rilatataj al elekto de ĉefdirektoro, por fari min ĉefdirektoro de la farmacia kompanio. Kaj tuj mi mem volis eniri en la tombon. Sur la revenvojo mi decidis piediri sur la digvojo kovrita per belaj herboj, kvankam ĝi estis iom pli longa. Nebuleta pluvo blanke fluis en la vento. La pejzaĝoj ondumis kun la pluvo. Mi faldis la ombrelon. Marŝante laŭ la digvojo, mi vidis lernantojn amasiĝintajn, piede de la digvojo sur N-ro 253 Marto 2009 17
herbejo ĉe la akvrando, kiuj venis por ĉeesti lernejon en la urbeto de la fora vilaĝo. Inter ili, kelkaj maljunulinoj troviĝis, kaj unu polico en pluvvesto kaŭris sur deklivo de la digvojo. Li fumis rigardante malproksimen. Unu maljunulino elvenis inter la lernantoj, kaj klaketante sian langon, lasis. Mi malsupreniris la deklivon de digvojo. Kiam mi pasis apud la policon, mi demandis. Kio okazis? Kadavro de sinmortiginto. la polico respondis per seninteresa akcento. Kiu ĝi estas? Virino en drinkejo en la urbeto. En ĉiu frua somero, kelkaj el ili sin mortigas. Ĉu vere? Mi neniam pensis ke ŝi sinmortigos, ĉar ŝi estis maldelikata. Verŝajne ankaŭ ŝi estis unu el ordinaraj homoj. Mi vidas. Mi malsupreniris al la akvrando, kaj stariĝis inter la lernantoj. Mi ne povis vidi vizaĝon de la kadavro, ĉar ĝi estis turnita al la akvo. Ŝiaj haroj estis konstante frizitaj. La brakoj kaj kruroj estis blankaj kaj dikaj. Ŝi estis vestita en malpeza ĵerzo ruĝa, kaj blanka jupo. Ŝajne estus malvarme, fine de lasta nokto, aŭ tiuj vestoj plaĉus al ŝi. Ŝia kapo estis apogita sur blankaj kaŭĉukŝuoj kun desegnoj per bluaj floroj. Iom distance de ŝia neglekte etendita mano, kuŝis blanka poŝtuko kun io envolvita en ĝi. La blanka poŝtuko malsekiĝinta en pluvo tute ne flirtis, eĉ kiam la vento blovis. Multaj lernantoj vadis en la akvo de digo por vidi vizaĝon de la kadavro. Ili staris tie, fronte al ŝia vizaĝo. Iliaj bluaj uniformoj reflektiĝis inversigite en la akvo. Bluaj flagoj estis gardantaj la kadvron. Mi strange sentis al ŝi bolan karnan deziron. Mi haste forlasis tiun lokon. Mi ne scias, kian medikamenton ŝi prenis. Sed mi scivolas, ĉu eĉ nun en malfrua, io... al polico mi diris. Tiaj virinoj prenas cianidon. Ili ne prenas kelkajn pilolojn da dormigilo, kvazaŭ tiuj en vulgaraj bruaj teatraĵoj. Almenaŭ tio estas dankinda afero. Mi rememoris la fantazion, kiun mi supozis en la buso al Mujin, ke mi faros kaj vendos dormigan pilolon. T.e. se mi povus fari dormigilon per la tri ingrediencoj la freŝa heleco de la sunbrilo; tiom da malvarmeteco en la aero, kiu donas elastecon al la haŭto; kaj tiom da odoro kaj sento de salo, kiuj estis miksita en la brizo de maro... Sed efektive, mi supozas ke tiu ĉi dormigilo estas jam farita. Subite venis al mi la ideo, ĉu lastanokte, kiam mi sur la lito ĵetis min tien kaj reen, nepovante ekdormi, estus gardstaro por la horo de ŝia morto? Eble, kiam la sireno blovis por la fino de elirmalpermeso, ŝi prenus la venenon, kaj mi finfine trankvile endormiĝus. Subite mi sentis, kvazaŭ tiu ĉi virino estus parto el mi. Mi forskuis la pluvon kolektitan sur mia faldita ombrelo kaj revenis al la domo. En la domo atendis unu slipo, kiun sendis Jo, la estro de imposto-oficejo. Se vi ne havas specialan laboron, venu al imposto-oficejo. Humura ĵo (daŭrigota) Strikta instruisto kaj strikta lernanto Nova instruisto sin prezentis al la klasanoj: "Mi estas strikta, kaj por ŝpari tempon mi ne parolos nenecese. Ekzemple, kiam mi indikas per mia fingro iun lernanton kaj skuas ĝin, la indikita lernanto devas respondi al mia demando. Ĉu vi komprenas?" Tomaso rapide respondis: "Jes, mi bone komprenas. Se mi kapskuas, tio signifas, ke mi ne scias kaj ne respondas." < El Amuze Lernu> 18 La Lanterno Azia
회장: 송호영 (대외관계, 조직) 부회장1: 장미희 (교육, 청년후원제도 관리) 부회장2: 김대군 (조직, 청년회지 편집) 총무: 남 현 (재정) Enlande 국내소식 2009년 2 KEA 이사회의록 대구지부 일시 : 2월 15(일) 오전 9시 장소 : 겨울강좌 행사장(유성유스호스텔) 참석임원: 박화종, 김우선, 김영옥, 김 주, 장정렬, 오순모, 이성우, 이홍진, 위임임원: 강헌구, 박종국, 박수현, 박찬복, 유영애, 이남행, 정현주, 조명자, 기록 : 민현경 사무국장 나병도, 허 성 배종태, 최유식, 대구지부는 3월 7일(토), 2009년 겨울무료강습회 (1월 17일~3월 7일) 수료식을 지부사무실에서 가졌 다. 2명 수료(박현주, 짱꾸이찡). <나의석 / 대구지부 총무> [보고 사항] 1. 2009년 1월 재정. 2. 2009년 겨울강좌 : 2월14~15일, 유성유스호스텔, 49명 참가. 3. 2009년 대의원 총회 : 2월 14일, 오후 10시, 참 석대의원 7명, 위임대의원 12명, 불참대의원 1명. 4. 제41차 한국에스페란토대회 진행 상황. 5. 2011년 한ㆍ일 에스페란토 합동 대회장소 부산으 로 확정. 3. 제11회 [선구자의 날] 장소 섭외를 위해 숙명여 대에 공문 발송 준비. 부산ㆍ경남지부 [의결 사항] 부산경남지부는 2월 17일(화) 40계단 문화관에서 시민 대상의 에스페란토 초급 강의 개회식을 열었다. 대구지부 겨울강좌 수료식 (3월 7일) 1. KEA 누리집에 인터넷 도서판매 기능을 도입하기 로 하다. 2. Zamenhof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는 에스페란토 홍보 활동을 이성우 홍보이사를 중심으로 전개하 기로 하다. 3. 협회 지도위원들에게 협회 재정 확충을 위하여 기여를 요청하기로 하다. 4. 협회 비상임이사를 정비하고 확충하기로 하다. KEJ 신임 임원진 한국에스페란토청년회는 다음과 같이 신임 임원진 을 발표하였다. N-ro 253 Marto 2009 부산 시민대상 에스페란토 초급강의 (2월 17일) 19
에스페란티스토인 중구 문화관광시설 관리사업소 김 순배 소장, 배종태 지부장, 장정렬 강사(KEA 이사) 의 소개 및 인사가 있었다. 지부회원들인 백순조 부 지부장, 박미숙, 김성일 님 등이 행사에 참여하였다. 강의 참가자들에게 에스페란토 소개 CD를 나누어 주었고 문화관에 학습에 필요한 교재들을 기증하였 다. < 백순조 / 부산경남지부부지부장 > 서울지부 서울지부는 2월 12 일( 매월 둘째 목요일 ) 오후 7 시 무교동 유림낙지에서 월례회를 갖고 2009-2010 년 대의원을 발표하고 금년 한국에스페란토대회에 대해 논의하였다 (8 명 참가). 강원지부 < 임한우 / 서울지부장 > 강원지부는 2월 25일부터 다음과 같이 에스페란 토 초급 강좌를 시작하였다. 일시: 매주 금요일 오후 7:30~9:00 장소: 광장서적 북카페 ( 춘천 효자동 지점) 교재: ' 에스페란토의 빠른길 ' ( 이종영 저) 강사: 최영숙 강원지부장 수원지회 < 최영숙 / 강원지부장 > 수원지회는 경기도 평생교육학습관에서 회원들이 에스페란토 공부하고 강좌도 열 수 있는 동아리방 신청을 위해 자료를 준비하고 있다. 양평지회 < 김영호 / 수원지회장 > 양평지회는 2월 23일 오후 6시 홍춘관에서 열린 월례회에서 17기 초급강좌 수료식과 지회 창립 10주 년을 기념하였다. 4 명 수료( 이샛별, 이기백, 이경신, 이지혜 ). 또한 지부의 임원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정 리하였다. 회장 용경자, 부회장 이재열, 총무 허희정, 문화예술담당 김청조, 기획교육 민정진, 홍보 최두회 성순복. 3월 월례회는 3월 9일 오후 6시 30분 김청조 시 인 댁에서 열렸다. 인천지부 < 용경자 / 양평지회장 > 인천지부는 2월 27 일( 목) 오후 7시 문일여고에서 월례 모임이 있었고, 회원들이 돌아가며 자기의 관심 주제를 에스페란토로 발표하는 순서에서는 조성호 교수가 자신의 북한 방문기를 참석자들에게 사진과 함께 발표하였다. Espera Monto < 조명자 / 인천지부장 > 산행 보고 및 안내 에스페라 몬토는 2월 22일 양평 지회 회원들과 양평 운길산에 올랐다 (7 명( 양평지회 회원 2명 포 함)). 3월 산행은 3월 15 일 수리산에 오르며, 4월 이후는 3 월 산행 시 결정한다. 에스페란티스토들의 많은 관심과 동참을 바란다. < 김진영 / 에스페라몬토 총무> 연세대 원주캠퍼스 에스페란토동아리 연세대 원주캠퍼스 에스페란토 동아리는 허 성 (KEA 부회장 ) 을 매주 1회 초청하여 2009년 1학기 에스페란토 강의를 계획하고 있다. 교재로는 KEA에 서 20 권 기증받은 에스페란토 기초강습서 ( 조성호 저) 를 이용한다. < 안 진 / 연세대 원주캠퍼스 에스페란토동아리 > 에스페란토문화원 서울에스페란토문화원에서는 아래와 같이 폴란드 에스페란티스토 Roman Dobrzynski 시간을 마련하오니 많은 참석 바랍니다. 1. 일시 : 3월 27( 금) 오후 6 시 ~9시 2. 장소 : 서울에스페란토문화원 ( 명동) 3. Roman Dobrzynski 님의 약력 - 전 세계 에스페란토 협회 부회장 씨와의 만남의 20 La Lanterno Azia
- 전 폴란드 에스페란토 협회장 - 폴란드 국영 방송 기자 4. 기타 : 만남의 시간 후 식사( 식대 만원) 장 소 예약을 위해 3월 25( 수) 일까지 참석 여부를 알려 주십시오 ( 연락처 010-3340-5936). < 이중기 / 서울에스페란토문화원장 > 이종세 선생님 초급 강좌 KEA 어학위원인 이종세 선생님이 아래와 같이 초 급강좌를 개설하였다. 일시 : 2월 6일부터 매주 금요일 오후 6-7시 장소 : 마포구 노고산동 33-1 3층 " 라오 샹하이 " ( 중국 문화 카페) 강사 : 이종세 (KEA 어학위원 ) 교재 문의 : 첫걸음에스페란토 ( 마영태 저) : 박주홍 (016-395-6396, 02-715-1542) < 이종세 / KEA 어학위원 > 세계에스페란토교육자연맹 한국 지부 이중기 ILEI 한국지부장은 2월 15 일( 일) 겨울강 좌 행사장에서 ILEI 국 지부 임원 선출 및 한국 지부 모임을 소집하여 한 ILEI 회원 가입 방법을 소개 하였다. 부지부장은 김진호 ( 대구지부 부지부장, 교 사), 총무는 공길윤 ( 전 부산경남지부 부지부장 ) 을 선 임하였다. ILEI 가입은 UEA 누리집 www.uea.org에 서 가능하다. 현재 교육 분야에 종사하는 분, 에스페란토 교육 에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지원을 바란다. 회원 동정 < 이중기 / ILEI 한국지부장 > ㆍ오순모 (KEA 이사) : 서울 수송초등학교로 전근. ㆍ 옥다정 (KEJ, 부산경남지부 ) : 독일 헤르츠베르그 에스페란토 어학 연수 차 3월 10 일 출국(3 개월 과 정), 2008 년 김철식손경여 씨 부부와 김태우 군이 에스페란토 도시 헤르츠베르그 에스페란토 어학연수 에 참여한 바 있다. ㆍ이현희 ( 양평지회 ) : 장남( 준배 군) 결혼. 3월 14 일( 토) 오전 11 시 강남웨딩컨벤션. 신입 회원 ㆍ이종권 ( 일반, 강원지부 ) - 최영숙 추천 에스페란토 보도기사 일 KBS 한민족 방송 : SEK 이중기 원장은 3월 4~5 KBS 한민족 방송의 프로그램인 나의 삶 나의 보 람 에 출연하였다. 세계 에스페란토협회 아시아위원 장인 이중기 서울에스페란토문화원 원장을 자비로 에스페란토 운동을 하는 에스페란토 골수라고 소개 하며 2009년은 에스페란토 150주년으로 세계적인 기념이벤트가 에스페란토 발원지 폴란드 비알리스토 크에서 열린다는 등의 소개를 했다. Korea Esperanto-movado en februaro, 2009 Korea filio de ILEI reorganizigxis la 15an de feb. en Yuseong Junulara Gastejo en Daejeon : prez. LEE Jung-kee, vicprez. KIM Jin-ho, sekretario KONG Kil-yoon. Novaj estraranoj de Korea Esperanto-Junularo (prez. SONG Ho-young) : vicprez. KIM De-gun, JANG Mi Hee, sek. NAM Hyeon. Busana Filio en la 17a de feb. komencis bazan kurson de Esperanto por busancivitanoj en la '40-ŝtuparo' kulturcentro de Jung-gu, Busan. JANG Jeong-Ryeol gvidas ĝin.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민정진 한무협 50,000 원 100,000 원 <HONG Sungcho> N-ro 253 Marto 2009 21
Eksterlande 국외소식 제92주년 자멘호프 추모제 제94차 세계에스페란토대회 참가자 2월 중순 UEA의 집계에 따르면 폴란드 비알리스 토크에서 열릴 제94차 UK(2009 년 7월 25 일~8월 1 일) 에 59개국 1,275 명이 참가 신청을 하였다. 지난해 대회에는 1,845 명이 등록하였다. 폴란드 참가자가 219명으로 가장 많고 다음이 프랑스 192 명이다. 참가자가 100 명이 넘는 나라는 독일, 일본이 며, 30 명 이상 등록한 나라는 네덜란드, 이탈리아, 체코, 벨기에, 러시아, 브라질, 리투아니아 순이다. 비알리스토크 세계대회의 대회대학 제94차 UK 의 대회대학 (Internacia Kongresa Universitato) 에 62 개의 강연 신청이 접수되었다. 이 는 이례적인 현상으로 금년 UEA는 30개 제안을 수 용하였다. 지난해 대회에선 약 20 개였다. 제안된 주 제는 천문학, 풍속학, 경제학, 교육, 역사, 통역, 통 신, 언어학, 문학, 수학, 음악, 종교, 관광, 에스페란 토학, 자멘호프학 등으로 주제의 다양성이란 점도 큰 수확이다. 3월말까지 선정된 강연 요악자료들은 UEA 누리 집에 게시되며 기존 자료도 누리집에서 검색 가능하 다(http://uea.org/dokumentoj/IKU). 제 2차 중동 에스페란토 대회 UEA 중동북아프리카 위원회에서는 요르단 암만 에서 2008년 4월의 1차 대회 이후 금년 4월 3 일~6 일 터키 최한다. Iznik에서 제2차 중동 에스페란토 대회를 개 대회 프로그램으로는 토의, 강연, 전시회, 여행이 있으며, 반일 관광은 Iznik 시 둘러보기, 전일 관광은 이웃 도시인 Bursa 로 떠난다. 대회 후 관광으로는 가파도기아와 이스탄불 일정이 있다. 상세 문의 : mezorienta.kunveno@gmail.com. 일시: 2009년 4월 11( 토) 오후 6시 장소: 한국에스페란토협회 사무실 문의: 협회 사무국 / 02-717-6974 2009년은 자멘호프 박사 서거 91년이 되 는 해입니다. 언어의 평등을 소망한 에스페 란토 창안자 자멘호프 박사는 1917년 4월 14일 서거하였고 그 정신은 오늘날까지 이어 오고 있습니다. 에스페란티스토 여러분이 모 여 거장의 인류애 정신을 되새기는 자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많은 참석 바랍니다. - 한국에스페란토협회 회장 박화종 - Amikoj de Zamenhof (1구좌 50 만원) 1998 년: 김영명 (2) 최홍두 (2) 이종영 (1) 정원조 (1) 박화종 (1) 최영달 (1) 조성호 (1) 김우선 (1) 양옥남 (1) 박강문 (1) 마영태 (1) 자멘호프클루보(1) 2000 년: 론도아만타(1) 2003 년: 김영옥 (1) 안낙천 (1, 고 안송산님 장손) 2004 년: 김영명 (2) 김해동 (1) 이영구 (1) 이종영 (1) 외대 에스페란토 동문회 (1) 2005 년: 김영명 (2) 이영구 (2) 2006 년: 김영명(2) 이영구(2) 한무협(2) 2007 년: 박화종 (5) 김영명 (2) 조성호 (2) 장충식(2) 이종영(1) 2008 년: 박화종 (20) 이영구 (3) 김진호 ( 대구)(2) 김영명 (1) 김 주(1) 2009 년: 박화종 (2), 김영명 ( 분납2 회), 김헌준 ( 분납1 회) 22 La Lanterno Az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