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시민사회의 논의는 주로 국내 핵발전소의 안전과 이에 따른 재난으로 논의가 국한되고 있는 측면이 있다. 사고의 파급력과 파괴력은 국내 핵발전소 사고가 더 크겠지 만, 그간 역사를 통해 우리가 경험한 방사능 재난은 이보다 다양하며, 오늘의 논의 과



Similar documents
종사연구자료-이야기방 hwp

인천광역시의회 의원 상해 등 보상금 지급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의안 번호 179 제안연월일 : 제 안 자 :조례정비특별위원회위원장 제안이유 공무상재해인정기준 (총무처훈령 제153호)이 공무원연금법 시행규칙 (행정자치부령 제89호)으로 흡수 전면 개

목 차 국회 1 월 중 제 개정 법령 대통령령 7 건 ( 제정 -, 개정 7, 폐지 -) 1. 댐건설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 1 2. 지방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 1 3. 경력단절여성등의 경제활동 촉진법 시행령 일부개정 2 4. 대

새만금세미나-1101-이양재.hwp

???? 1

장: 200 세외수입 관: 210 경상적세외수입 항: 213 수수료수입 (단위:천원) [ 일반회계 ] 1,405,842 1,399,860 5,982 < 청소행정과 > 1,028,442 1,022,460 5,982 사업장종량제봉투 제작비용(30L) 79.43원*30,00

3) 지은이가 4) ᄀ에 5) 위 어져야 하는 것이야. 5 동원 : 항상 성실한 삶의 자세를 지녀야 해. 에는 민중의 소망과 언어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 입니다. 인간의 가장 위대한 가능성은 이처럼 과거를 뛰어넘고, 사회의 벽을 뛰어넘고, 드디어 자기를 뛰어넘 는

기사스크랩 (160504).hwp

산림병해충 방제규정 4. 신문 방송의 보도내용 등 제6 조( 조사지역) 제5 조에 따른 발생조사는 다음 각 호의 지역으로 구분하여 조사한다. 1. 특정지역 : 명승지 유적지 관광지 공원 유원지 및 고속국도 일반국도 철로변 등 경관보호구역 2. 주요지역 : 병해충별 선단

김기중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인터넷 내용심의의 위헌 여부.hwp


래를 북한에서 영화의 주제곡으로 사용했다든지, 남한의 반체제세력이 애창한다 든지 등등 여타의 이유를 들어 그 가요의 기념곡 지정을 반대한다는 것은 더 이상 용인될 수 없는 반민주적인 행동이 될 것이다. 동시에 그 노래가 두 가지 필요조 건을 충족시키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 1. 법 제34조제1항제3호에 따른 노인전문병원 2. 국민건강보험법 제40조제1항의 규정에 의한 요양기관(약국을 제외한다) 3. 삭제< > 4. 의료급여법 제2조제2호의 규정에 의한 의료급여기관 제9조 (건강진단) 영 제20조제1항의 규

노인복지법 시행규칙

4) 이 이 6) 위 (가) 나는 소백산맥을 바라보다 문득 신라의 삼국 통 일을 못마땅해하던 당신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하나가 되는 것은 더 커지는 것이라는 당신의 말을 생각하면, 대동강 이북의 땅을 당나라에 내주기로 하고 이룩한 통 일은 더 작아진 것이라는 점에서,

6±Ç¸ñÂ÷

교사용지도서_쓰기.hwp

untitled

민주장정-노동운동(분권).indd

0429bodo.hwp


최우석.hwp

과 위 가 오는 경우에는 앞말 받침을 대표음으로 바꾼 [다가페]와 [흐귀 에]가 올바른 발음이 [안자서], [할튼], [업쓰므로], [절믐] 풀이 자음으로 끝나는 말인 앉- 과 핥-, 없-, 젊- 에 각각 모음으로 시작하는 형식형태소인 -아서, -은, -으므로, -음

<C0CEBCE2BABB2D33C2F7BCF6C1A420B1B9BFAAC3D1BCAD203130B1C72E687770>

E1-정답및풀이(1~24)ok

<C1B6BCB1B4EBBCBCBDC3B1E2342DC3D6C1BE2E687770>

伐)이라고 하였는데, 라자(羅字)는 나자(那字)로 쓰기도 하고 야자(耶字)로 쓰기도 한다. 또 서벌(徐伐)이라고도 한다. 세속에서 경자(京字)를 새겨 서벌(徐伐)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또 사라(斯羅)라고 하기도 하고, 또 사로(斯盧)라고 하기도 한다. 재위 기간은 6

<C3D6C1BE5FBBF5B1B9BEEEBBFDC8B0B0DCBFEFC8A C3D6C1BEBABB292E687770>

時 習 說 ) 5), 원호설( 元 昊 說 ) 6) 등이 있다. 7) 이 가운데 임제설에 동의하는바, 상세한 논의는 황패강의 논의로 미루나 그의 논의에 논거로서 빠져 있는 부분을 보강하여 임제설에 대한 변증( 辨 證 )을 덧붙이고자 한다. 우선, 다음의 인용문을 보도록

< BDC3BAB8C1A4B1D4C6C75BC8A3BFDC D2E687770>

초등국어에서 관용표현 지도 방안 연구

cls46-06(심우영).hwp

177

제주어 교육자료(중등)-작업.hwp

¸é¸ñ¼Ò½ÄÁö 63È£_³»Áö ÃÖÁ¾

01Report_210-4.hwp

<C3D1BCB15FC0CCC8C45FBFECB8AE5FB1B3C0B0C0C75FB9E6C7E D352D32315FC5E4292E687770>



교육 과 학기 술부 고 시 제 호 초 중등교육법 제23조 제2항에 의거하여 초 중등학교 교육과정을 다음과 같이 고시합니다. 2011년 8월 9일 교육과학기술부장관 1. 초 중등학교 교육과정 총론은 별책 1 과 같습니다. 2. 초등학교 교육과정은 별책

시험지 출제 양식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아봅시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체험합시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집시다. 5. 우리 옷 한복의 특징 자료 3 참고 남자와 여자가 입는 한복의 종류 가 달랐다는 것을 알려 준다. 85쪽 문제 8, 9 자료

상품 전단지

::: 해당사항이 없을 경우 무 표시하시기 바랍니다. 검토항목 검 토 여 부 ( 표시) 시 민 : 유 ( ) 무 시 민 참 여 고 려 사 항 이 해 당 사 자 : 유 ( ) 무 전 문 가 : 유 ( ) 무 옴 브 즈 만 : 유 ( ) 무 법 령 규 정 : 교통 환경 재

2

DBPIA-NURIMEDIA

화이련(華以戀) hwp

ÆòÈ�´©¸® 94È£ ³»Áö_ÃÖÁ¾

歯1##01.PDF

<5BC1F8C7E0C1DF2D31B1C75D2DBCF6C1A4BABB2E687770>

120229(00)(1~3).indd

Ⅰ. 머리말 각종 기록에 따르면 백제의 초기 도읍은 위례성( 慰 禮 城 )이다. 위례성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세종실록, 동국여지승람 등 많은 책에 실려 있는데, 대부분 조선시대에 편 찬된 것이다. 가장 오래된 사서인 삼국사기 도 백제가 멸망한지

농어촌여름휴가페스티벌(1-112)

zb 2) 짜내어 목민관을 살찌운다. 그러니 백성이 과연 목민관을 위해 있는 것일까? 아니다. 그건 아니다. 목민관이 백성 을 위해 있는 것이다. 이정 - ( ᄀ ) - ( ᄂ ) - 국군 - 방백 - 황왕 (나) 옛날에야 백성이 있었을 뿐이지, 무슨 목민관이 있 었던

<C6EDC1FD20B0F8C1F7C0AFB0FCB4DCC3BC20BBE7B1D420B0B3BCB120BFF6C5A9BCF32E687770>

망되지만, 논란은 더욱 증폭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광주지역 민주화 운동 세력 은 5.18기념식을 국가기념일로 지정 받은 데 이어 이 노래까지 공식기념곡으로 만 들어 5.18을 장식하는 마지막 아우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걱정스러운 건 이런 움직임이 이른바 호남정서

<5BC1F8C7E0C1DF2D32B1C75D2DBCF6C1A4BABB2E687770>

<33C6E4C0CCC1F620C1A63139C8A320B8F1C2F72E687770>

2015년 2월 12일 사랑의 동삭교육 제 호 (2월) 년 2월 12일 사랑의 동삭교육 제 호 (2월) 6 겨울이 되면 1-4 박지예 겨울이 되면 난 참 좋아. 겨울이 되면 귀여운 눈사람도 만들고 겨울이 되면 신나는 눈싸움도 하고 겨울이

640..

인천 화교의 어제와 오늘 34 정착부흥기 35 정착부흥기: 1884년 ~ 1940년 이 장에서는 인천 차이나타운에 1884년 청국조계지가 설정된 후로 유입 된 인천 화교들의 생활사에 대한 이야기를 시기별로 정리하였다. 조사팀은 시기를 크게 네 시기로 구분하였다. 첫 번

지 생각하고, 재료를 준비하고,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이 작업을 3번 반복 하는 것만으로 하루가 다 간다. 그들이 제작진에게 투쟁하는 이유는 그들이 원하는 재료를 얻기 위해서다. 그 이상의 생각은 하고 싶어도 할 겨를이 없다. 이 땅은 헬조선이 아니다. 일단


<312E B3E2B5B520BBE7C8B8BAB9C1F6B0FC20BFEEBFB5B0FCB7C320BEF7B9ABC3B3B8AE20BEC8B3BB28B0E1C0E7BABB292DC6EDC1FD2E687770>

대표이사 K, L 4. 주식회사 동진여객 대표이사 M 피고보조참가인들 소송대리인 법무법인(유한) N 법무법인 O 제 1 심 판 결 부산지방법원 선고 2014구합20224 판결 변 론 종 결 판 결 선 고

< B5BFBEC6BDC3BEC6BBE E687770>

194

<3130BAB9BDC428BCF6C1A4292E687770>

11민락초신문4호


삼외구사( 三 畏 九 思 ) 1981년 12월 28일 마산 상덕법단 마산백양진도학생회 회장 김무성 외 29명이 서울 중앙총본부를 방문하였을 때 내려주신 곤수곡인 스승님의 법어 내용입니다. 과거 성인께서 말씀하시길 道 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어울려야만 道 를 배울 수 있

제1절 조선시대 이전의 교육

사진 24 _ 종루지 전경(서북에서) 사진 25 _ 종루지 남측기단(동에서) 사진 26 _ 종루지 북측기단(서에서) 사진 27 _ 종루지 1차 건물지 초석 적심석 사진 28 _ 종루지 중심 방형적심 유 사진 29 _ 종루지 동측 계단석 <경루지> 위 치 탑지의 남북중심

??

652

歯 조선일보.PDF

<33B1C7C3D6C1BEBABB28BCF6C1A42D E687770>

<C1DFB1DE2842C7FC292E687770>

untitled

참여연대 이슈리포트 제 호

96부산연주문화\(김창욱\)

그 여자와 그 남자의 사랑 이야기

2005년 6월 고1 전국연합학력평가

1면~24면

< B3E220BFB5C8ADBCD320C0CEB1C720B5E9BFA9B4D9BAB8B1E22E687770>

정 답 과 해 설 1 (1) 존중하고 배려하는 언어생활 주요 지문 한 번 더 본문 10~12쪽 [예시 답]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한 사 람의 삶을 파괴할 수도 있으며, 사회 전체의 분위기를 해쳐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04 5

<34B1C720C0CEB1C7C4A7C7D828C3D6C1BEC6EDC1FD D28BCF6C1A4292E687770>

행당중학교 감사 7급 ~ 성동구 왕십리로 189-2호선 한양대역 4번출구에서 도보로 3-4분 6721 윤중중학교 감사 7급 ~ 영등포구 여의동로 3길3 용강중학교 일반행정 9급 ~ 1300

160215

<38BFF920BFF8B0ED2DC8F1BFB5BEF6B8B620C6EDC1FDBABB2E687770>

0 한국사능력검정시험대비(/, 목) 쪽 문. 다음 선언문의 필자와 관련된 설명으로 옳은 것은? [ 점][ 회] 내정 독립이나 참정권이나 자치를 운동하는 자 누구이냐? 너희들이 동양 평화, 한국 독립 보전 등을 담보한 맹약이 먹도 마르지 아니하여 삼천리 강토를 집어먹힌

참고 금융분야 개인정보보호 가이드라인 1. 개인정보보호 관계 법령 개인정보 보호법 시행령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령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전자금융거래법 시행령 은행법 시행령 보험업법 시행령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령 자본시장과

<C1D6BFE4BDC7C7D0C0DA5FC6EDC1FDBFCF28B4DCB5B5292E687770>

시편강설-경건회(2011년)-68편.hwp

untitled

정 관

VISION2009사업계획(v5.0)-3월5일 토론용 초안.hwp

hwp

580 인물 강순( 康 純 1390(공양왕 2) 1468(예종 즉위년 ) 조선 초기의 명장.본관은 신천( 信 川 ).자는 태초( 太 初 ).시호는 장민( 莊 愍 ).보령현 지내리( 保 寧 縣 池 內 里,지금의 보령시 주포면 보령리)에서 출생하였다.아버지는 통훈대부 판무

<B3EDBCFABDC7B7C2BDD7B1E22E687770>

Transcription:

< 우리는 원전사고로부터 안전하게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2014.5.21.), 아이들에게 핵없는 세상을 위 한 국회의원연구모임 주최 토론회 토론문> 방사능 재해 대책, 원안위를 뛰어넘는 새로운 종합재난기구가 필요하다. 1) - 후쿠시마 핵사고와 후타바병원 참사를 통해 본 방사능재난과 대책 - 이헌석(에너지정의행동) 1. 방사능 재난, 우리나라의 현황 우리나라에서 방사능 재난을 겪은 적이 있던가? 원자력시설 등의 방호 및 방사능 방재 대책법 (이후 원자력방호방재법)에 따른 정의 2) 와 그간 국가적 대응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아직 방사능 재난을 겪은 적이 없다. 1998년 서울 원자력병 원의 방사성동위원소 309개 도난사고 3), 2000년 울산의 방사성 동위원소 누출사고 4) 와 같은 방 사선 동위원소 사고나 2011년 2월 대전 원자력연구원의 하나로 원자로 백색비상 같은 사고들은 있었으나, 국가적 차원의 대처 가 필요한 재난은 없었다. 사고의 규모와 파급효과 등을 고려할 때, 2011년 3월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국내 대처가 인접 국가 원자력사고 대응 매뉴얼 에 따른 방사능 재난의 하나로 취급되어 대응되어야 함에도 불구 하고 당시 정부는 그와 같은 대처를 하지 않았다. 이처럼 방사능 재난은 단지 국내 핵발전소의 고장, 사고로 인한 것으로 국한되지 않고 방사성 동위원소의 분실, 도난, 핵테러, 인접국 핵발전소의 고장 사고로 인한 재난에 이르기까지 광범 1) 이 글은 졸고, 후쿠시마 핵사고를 통해 본 우리나라 방사능재난 대책의 쟁점과 과제, 에너지정의행동 중 일부를 수정한 것임을 밝힙니다. 2) 원자력방호방재법은 방사선비상과 방사능 재난을 분명히 구분하고 있다. 동법 제2조 7항 "방사선비상"이 란 방사성물질 또는 방사선이 누출되거나 누출될 우려가 있어 긴급한 대응 조치가 필요한 상황을 말한다. / 8항 "방사능재난"이란 방사선비상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 및 환경에 피해를 줄 수 있는 상황으로 확대되 어 국가적 차원의 대처가 필요한 재난을 말한다. 3) 1998년 11월 9일, 서울 원자력병원에서 보관 중이던 세슘원소 17개, 이리듐원소 292개 등 309개의 방사 성 동위원소가 분실되어 경찰에 신고한다. 분실된 방사성동위원소는 하루 만에 이 병원 간호사의 차 트렁 크에서 발견되는데, 이 간호사와 내연관계이던 이 병원 레지던트 최모씨가 애인의 변심에 앙심을 품고 버 린 범죄임이 드러났다. 4) 2000년 11월 22일 울산 남구의 한 비파괴업체에서 비파괴업체를 점검하던 중 장비 장착이 안된다는 이유 로 방사선동위원소가 담긴 장비를 그라인더로 갈아 방사성 이리듐 파편이 튀어 건물전체와 인근 도로까 지 누출된 사고. - 1 -

위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시민사회의 논의는 주로 국내 핵발전소의 안전과 이에 따른 재난으로 논의가 국한되고 있는 측면이 있다. 사고의 파급력과 파괴력은 국내 핵발전소 사고가 더 크겠지 만, 그간 역사를 통해 우리가 경험한 방사능 재난은 이보다 다양하며, 오늘의 논의 과제인 방 사능 재난 의 범위에는 이에 대한 광범위한 검토와 국가 차원의 재난 시나리오가 작성되어야 할 것이다. 5) 1.1. 현재의 방사능 누출사고의 위기 경보 수준 구 분 방사선비상단계 판단 기준 비 고 o 기기 고장, 종사자 실수, 절차의 결함 등으로 인해 운 관심 (Blue) 전요건을 벗어난 비정상적인 상태 발생징후가 있으나 단기간 내에 국가위기로 발전할 가능성이 낮은 상태 (국제원자력안전등급 1등급 수준) 징후활동 감시 주의 (Yellow) o 방사선비상으로 확대 가능성이 있는 계통의 경보 발생 발생징후가 활발하게 탐지되어 국가위기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상태 (국제원자력안전등급 1등급 고장 악화) 협조체제 가동 및 대비계획 점검 경계 (Orange) 백색비상 o 사고야기 및 확대 가능성은 나타나지 않지만 안전 계 통에 심각한 기능 상실 발생징후가 구체적으로 인지되어 국가위기로 발전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태 (국제원자력안전등급 2등급 수준) 대응태세 점검 및 대응체제 가동 심각 (Red) 청색비상 o 사고야기 및 확대 가능성 있는 안전계통에 심각한 기 능 상실 발생징후가 현저하게 임박하여 국가위기로 발전할 가능성이 확실시 되는 상태 (국제원자력안전등급 3등급 수준) 즉각대응 조치시행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현재 우리나라의 방사능 재난은 국내 핵발전소의 방사능 누출에 따른 대응 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상황에서 이것은 매뉴얼에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2011년 2월 대전에서 있었던 하나로 원자로 백색비상 발령사건이다. 2011년 2월 20일. 일요일. 오후 1시 3분즈음. 원자로 수조안에 있어야 할 실리콘 반도체 생산 통이 갑자기 수조 위로 떠올랐다. 이로 인해 원자로내 방사선량은 급증했고, 원자력연구원은 1 시 8분. 원자로가동을 중단했다. 그리고 1시간 29분만인 2시 32분 방사선 백색비상을 발령했다. 5) 관련 자세한 토론은 본 토론문이 아니라, 원문을 참조. - 2 -

국내에서 백색비상이 발령된 것은 2002년 울진 3호기, 2010년 신고리 1호기 등 극히 일부로 손꼽힐 정도였고, 특히 인구밀집지 대전 한가운데 위치한 하나로 원자로에서의 백색비상은 매우 심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언론의 최초보도는 백색비상이 발령되고 2시간 이후인 4시 30분에 나왔다. 방재매뉴얼 상 비상발령시 30분내 언론에 공개해야 하며, 원자력사업자(이경우는 원자력연구원) 홈페이지와 교육과학기술부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되어 있는 원칙은 어느것 하나 지켜지지 않았다. 4시 이 후 백색비상이 내려진 이후 원자력연구원 대표번호는 전화 통화가 되지 않았고, 자연스레 주변 주민들의 불안감은 높아졌다. 더욱 황당한 일은 원자력연구원의 최초 보도자료에서 원자력연구원 부지경제 800m에서 측정한 방사선 값이 0.016 msv/hr (=16μSv/hr) 였다고 발표했다가 저녁 7시경, 단위를 잘못섰다며 실 제 값은 5~0.17μSv/hr 였다고 말을 바꾼 것이다. 후쿠시마 핵사고가 일어나기 약 20여일전. 우리나라의 방사능 재난의 현주소는 이러했다. 1.2. 방사능 재난과 대피는 실제와 많이 다르다. 재난 초기 정보를 어떻게 주민들에게 전달할 건인지에 대해서 일본은 그간 많은 연구를 진행해 왔다. 일본은 지진 발생시 강제로 해당지역 핸드폰에 경고음과 안내 문자를 발송하는 긴급재난 문자 시스템이 이미 도입되어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2005년 해당시스템이 도입되었으나 3G 통신망에서의 호환성 때문에 많은 논란에도 긴급재난문자 가 일률적으로 적용 되지 못하고 2G와 4G에 대해서만 문자가 발송되는 반쪽짜리 시스템을 몇 년째 운영하고 있다. (다행히 4G 보급률이 올라가면서 숫자는 줄어들고 있지만) 이런 시스템이 있으면 주민들은 대피명령과 현 상황에 대해 명확히 이해할 수 있을까? 후쿠시 마의 경우를 보면 그렇지 않다. 실제 대피령이 내렸던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응 답자의 절반 정도는 대피하라는 내용의 지시를 해당지자체를 통해 들었다고 답했다. 동일본 대 지진으로 다수의 이동통신망이 통신불능상황에 빠진 다중 재난 상황에서 주민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은 마을의 방송장비와 차량을 이용한 가두방송이 사실상 유일한 것이었고, 이는 그대 로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 3 -

<후쿠시마 핵사고 당시 피난지시의 정보원> 6) 이를 단지 지진과 쓰나미 상황이라고만 치부하는 것은 곤란하다. 실제로 대형사고 혹은 연말연 시 통신 급증사태때 이동통신망의 불통은 매우 흔히 있는 일이며, 이를 보완하기 위한 방안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은 재난대비의 상식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이러한 정보를 얻은 주민들은 얼마나 빨리 대피했을까? 후쿠시마 핵사고 당시 일본 정부는 3차례에 나눠 3km, 10km, 20km 권역에 주민대피령을 내 렸다. 이미 동일본 대지진으로 재난이 발생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방사능 재 난에 대한 인지는 쉬운 편이었으나, 대피는 그렇지 않았다. 핵밪런소가 위치하고 있던 후타바정( 双 葉 町, 인구 6,198명)과 오쿠마정( 大 熊 町, 인구 10,951명) 주민들의 대피는 대피령이 내리고 거의 10시간 정도 걸렸고, 후타바 병원 환자들의 경우, 4일 이상 소요되었다. 계속되는 여진, 불안정한 도로상황, 이로 인해 차량수배의 어려움 등을 고려 하더라도 수천~수만의 인구가 일률적으로 대피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단적으로 보 여주는 예이다. 6) 東 京 電 力 福 島 原 子 力 発 電 所 事 故 調 査 委 員 会 ( 国 会 事 故 調 ), 国 会 事 故 調 報 告 書, 2012.9. - 4 -

<시간대별 피난주민의 비율> 7)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핵발전소 사고에 대비한 훈련을 정기적으로 진행한다. 그러 나 실제 사고 이후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핵발전소 최인접마을인 후타바정과 오쿠마 정 주민의 12~15% 정도만이 사고를 상정한 대피 훈련을 받았다고 답하고 있다. <사고발생전에 원자력발전소의 사고를 상정한 피난훈련을 받은적이 있다고 응답한 주민의 비율(100%:피난한 주민)> 8) 후쿠시마 핵발전소보다 인구가 더 많은 일본의 다른 지역 대피 시뮬레이션은 더욱 구체적이다. 7) 東 京 電 力 福 島 原 子 力 発 電 所 事 故 調 査 委 員 会 ( 国 会 事 故 調 ), 国 会 事 故 調 報 告 書, 2012.9. 8) 東 京 電 力 福 島 原 子 力 発 電 所 事 故 調 査 委 員 会 ( 国 会 事 故 調 ), 国 会 事 故 調 報 告 書, 2012.9. - 5 -

시가, 나가사키, 후쿠오카 등 규슈지역 3개현이 지난 4월 30일 발표한 규슈전력 겐카이 핵발전 소 중대사고 발생시 주민대피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반경 30km 이내의 주민 약 27만명 이 30km 밖으로 대피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평균 24시간 50분.(최소 9시간, 최대 30시간반) 30km 권내에 있는 섬 주민이 대피하는 데는 최대 5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겐카이 핵발전소 반경 30km 밖으로 대피하는데 걸리는 시간 9) > 이 시뮬레이션은 5km 이내에 사는 약 8천명이 먼저 대피해서 30km 권 밖으로 나온 이후(여기 에 10시간 40분 소요), 5~30km 주민이 대피를 시작하여 단계적으로 대피하는 방법, 대피령이 내려지지 않았으나, 일부 주민이 자발적으로 대피하는 경우, 모든 주민들이 일제히 대피하는 방 법 등 52개 경우의 수를 놓고 계산을 진행했다. 이들 3개현은 이 시뮬레이션 결과를 바탕으로 PAZ와 UPZ를 재검토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와 같은 일본의 예는 최근 예방적보호조치구역(PAZ)와 긴급보호조치계획구역(UPZ) 지정에 대 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그 면적과 실효성에 대해 충분히 지역주민들과 소통하지 않은채 법이 통과된 우리나라의 예와 너무나 다르다. 9) 朝 日 新 聞, 玄 海 原 発 住 民 避 難 に25 時 間 周 辺 3 県 が 事 故 時 想 定, 2014년 5월 1일자 - 6 -

<각 시정촌 주민의 피난횟수(2012년 3월까지)> 10) 이와 함께 잊지 말아야할 것은 방사능 재난의 특성상 대피가 여러번 반복되고 이에 따라 피난 민들의 스트레스와 불안감은 매우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후쿠시마 인근지역인 나미에정, 후타바 정, 오쿠마정의 경우, 피난민의 40% 이상이 5회 이상 피난을 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수차 례 대피구역이 확대되고, 가설주택이 설치되기 전까지 여러 곳을 옮겨다녔던 것이 주요한 요인 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 지진으로 인한 직접 피해 이외에도 지진재해관련사망( 震 災 関 連 死 )을 구분해서 통계 발표하며, 이를 줄이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지진재해관련 사망의 정의 11) "동일본 대지진 관련 자살"은 (1) 에서 (5) 중 하나의 요건에 해당하는 자살 을 말한다. (1) 시신 발견 장소가 대피소, 가설 주택 또는 빈소 인 것. (2) 자살자가 대피소 또는 임시 주택 에 거주하고 있던 사람임이 유족 등 의 진술 기타에 의해 판 명된 경우. (3) 자살자가 재해지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 핵발전소 사고의 피난 구역, 계획적피난구역 또는 긴급피난준비구역을 포함한다.)에서 피난 온 사람임이 유족 등의 진술 등에의해 판명된 경우. (4) 자살자 주거(거주) 지역, 직장 등이 지진이나 쓰나미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것이 유족 등 의 진술 등에 의해 판명된 경우. (5) 기타 자살 "원인 동기 "가 동일본 대지진의 직접적인 영향에 의한 것임이 유족 등의 진술 10) 東 京 電 力 福 島 原 子 力 発 電 所 事 故 調 査 委 員 会 ( 国 会 事 故 調 ), 国 会 事 故 調 報 告 書, 2012.9. - 7 -

기타 에 의해 판명 한 것. 예를 들면, 1 유서 등에 동일본 대지진 이 있었기 때문에 자살 하면 계정 이있는 경우 2 생전 유족 등에 대하여 동일본 대지진 이 있었기 때문에 자살 하고 싶은 취지 의 발언이 있었던 경우 일본정부의 이와 같은 통계와 별도로 후쿠시마현 20개 시정촌과 일부 언론이 별도로 핵사고관 련사망( 原 発 事 故 関 連 死 )을 구분해서 보도하고 있는데, 도쿄신문은 해당 지자체 집계를 바탕으로 올해 3월 핵사고 관련 사망자 숫자를 1,048명으로 집계해서 발표한 바 있다. 이들 사망자 대부분은 가설주택으로 옮기면서 사망한 고령자와 자살자로 방사능 재해의 유형이 단지 방사능으로 인한 피폭으로 국한되지 않고, 매우 복합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반증하는 사 례이다. 그 가장 좋은 예 중 하나는 후쿠시마 현 후타바 병원에서의 비극이다. 2. 후쿠시마 후타바병원의 비극 12) <후쿠시마 핵발전소 인근 7개 병원의 피난시기와 교통수단에 따른 사망자 숫자> 13) 후쿠시마 핵발전소 인근에는 대략 7개의 병원이 있었다. 14)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에서 4.5km 11) 内 閣 府 自 殺 対 策 推 進 室 등, 東 日 本 大 震 災 に 関 連 する 自 殺 の 実 態 把 握 について, 2011년 6월 12) 자세한 일지는 부록의 정부조사보고서를 참고하기 바란다. 다만, 정부 보고서 특성상 매우 무미건조하 게 쓰여졌으며, 일부 유가족 증언을 기록되지 않았다. 13) 東 京 電 力 福 島 原 子 力 発 電 所 事 故 調 査 委 員 会 ( 国 会 事 故 調 ), 国 会 事 故 調 報 告 書, 2012.9. 14) 표에서 보듯 다른 병원의 경우, 빠른 시간안에 구급차 등 적절한 운송수단을 이용해서 대피하여 큰 피해 가 발생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 8 -

떨어진 후타바병원은 그중에서도 시설이 가장 큰 병원으로 정신병상 350병상을 운영하고 있었 고, 바로 인근에 98명이 입소하고 있던 노인보건시설 도빌 후타바 가 있었다. 후타바 병원은 동일본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하지만, 여진이 며칠동안 계 속되었기에 지진 이후 평온하지 못했고, 전기와 물, 가스 등 주요 인프라는 끊어진 상태였다. 3 월 11일 지진과 함께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상황이 나빠지자, 간 나오토 총리는 3월 11일 21시 23분 1차로 반경 3km 주민대피령을 내리고, 2차로 12일 5시 44분 반경 10km 피난 지시를 내 린다. 반경 4.5km 에 있던 후타바 병원은 이때 대피구역에 포함된다. 12일 12시 긴급히 마련된 버스 5대에 나눠 타고 자력보행이 가능한 209명과 원장을 제외한 직 원이 철수하지만, 병원환자 130명과 도빌 후타바 의 입소자 98명 등은 다음 번 대피를 위해 남 는다. 하지만 1호기 수소폭발과 사령부와 현 재해대책본부의 연락문제 등으로 이들 환자는 이틀 밤을 병원에서 보낸다. 200여명의 환자와 입소자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제대로 돌봐지지 않았 고, 이후 도착한 구조대는 도착했더니 환자들의 분뇨 등으로 인해 병원에서 심한 악취가 났다고 증언하고 있다. 뒤늦게 도착한 구조대는 14일 오전 10시 30분 경, 도빌 후타바 입소자 98명과 후타바병원 환 자 34명을 싣고 출발하지만, 이들 환자가 매우 노쇠하고 심한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은 전달되 지 않는다. 최종목적지까지 직선거리는 70km 밖에 되지 않았지만, 방사능 피폭여부에 대한 심 사와 우회경로 선택으로 결국 10시간 이상 걸려 남쪽 이와키 고요 고등학교에 도착한다. 도착 한 환자들을 본 고요 고등학교 측은 수용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라 환자를 분류하는 등으로 인해 학교에서만 3시간이 수요된다. <후타바병원 환자들의 이송경로> 15) 이 날 후송과정에서 2명이 숨지고, 도착 이후 12명이 숨지는 등 모두 14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15) 毎 日 新 聞, 福 島 第 1 原 発 : 苦 渋 の90 人 放 置 南 西 4キロの 双 葉 病 院. 2012년 4월 26일자 - 9 -

발생한다. 현지 언론은 이날, 도착한 학교 체육관에는 시트나 다다미를 깔고 히터를 켜고 잤으 며, 들것이 없어서 학교책상을 이용해서 환자를 옮겨 환자 이송에만 2시간이 걸렸고, 환자에 대 한 정보는 병명은 물론 이름도 알수 없었다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특히 구호물품이나 의료품은 전혀 공급되지 않아 학교 커튼을 잘라 기저귀로 사용하는 등 최악의 상황이 계속 이어졌다. 이는 남아있었던 100여명의 환자도 마찬가지였다. 14일 3호기가 폭발하자, 같은날 저녁 후타바 경찰서 부서장과 병원장은 위험하니 대피하라 는 명령에 따라 인근 지역으로 대피한다. 수십명 의 환자를 병원장 혼자 돌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사실상 병원의 환자들은 방치된 상황이었 다. 결국 15이리 새벽까지 우여곡절을 겪으며 남은 환자들은 대피를 하지만 440여명의 환자와 입소 자 중 50명이 사망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사망자는 대부분 후타바 병원에 있던 환자들이었고, 그 중 일부는 혼자서 병원밖으로 나갔다가 행방불명된 이도 있었고, 4월초 병원을 수색하던 중 새롭게 발견된 시신도 있었다. 이후 언론의 화살은 후타바병원장에게 집중되었다. 때마침 현 재해대책본부에서는 14일부터 병 원근무자가 모두 대피했다고 밝혀 사실상 환자를 놓아두고 도망간 의사 라는 오명이 따라다녔 고, 이후 병원장은 경찰 지시에 의해 대피한 후 대기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졌으나 이미 뒤 늦은 상태였다. 또한 유가족들은 이후 사망통지서를 받는 과정에서 사망원인으로 **암 이라는 병명이 적힌 진 단서를 받으면서 다시 한 번 분노한다. 이후 후쿠시마 핵사고 조사에서 후타바병원 사례는 중요 한 문제로 제기되었고, 현재 유가족과 병원간에서 지난한 소송이 진행 중에 있다. 3. 소결 : 종합재난기구를 중심으로 방사능재난기구 마련 후타바 병원의 사례는 방사능 재난 이 일반 재난과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위 험성과 공포는 극단에 이르고, 이 과정에서 대책본부간 혼선은 극도로 심해진다. 이러한 측면에서 방사능 재난을 단지 방사능 에 맞춰 준비하는 것은 매우 근시안적인 발상이 다. 일본 사례에서 보듯 군, 경찰, 지자체와 주민의 합일된 움직임 없다면, 얼마든지 2차, 3차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는 성격을 갖고 있다. 후쿠시마의 교훈을 생각할 때, 현재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중심으로 짜여져 있는 우리나라의 방재 시스템은 근본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16) 방사능 재해는 국가의 총력을 기우려야 줄일 16) 이 글에서는 빠져 있지만, 일본의 방사능 재난시스템에서도 총리가 중심이며, 총리관저에 원자력재해대 책본부 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 10 -

수 있는 최대규모의 재난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까지 방사선방재구역의 면적과 역할, 발전소의 상황 복구와 제염을 중심으로 방사능 재난 계획이 짜여졌다면, 이제는 재난 에 방점을 찍고 재난 발생시 대응 체계를 중심으로 관련 논의 를 모아 나가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 11 -

<부록> 일본 후쿠시마현 후타바 병원의 피난 상황 17) (a) 3월 12일부터 14일 구출까지 3월 12일 새벽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에서 반경 10km 이내에 있는 주민 등에 대한 대피 지시 (상기 (1) a 참조)를 받아 오쿠마정( 大 熊 町 ) 소재의 후타바병원( 双 葉 病 院 )에서도 12일 12시경 피난용으로 수배된 대형버스 5 대에 자력 보행이 가능한 환자 209 명과 스즈키 이치로( 鈴 木 市 郎 ) 후타바 병원 원장(이하 "스즈키 원장"이라한다)을 제외한 모든 병원 직원이 탑승. 당일 14시경 철수를 시작했지 만, 이 시점에서 후타바병원 환자 약 130 명과 스즈키 원장, 같은 오쿠마정 소재의 후타바병원 계열 의 개호( 介 護 )노인보건시설 도빌 후타바 ( 이하 "도빌 후타바"이라 한다)의 입소자 98 명과 이 시 설 직원 2 명이 남는다. 18). 그러나 오쿠마정은 이때 사용한 버스 5대를 후타바병원을 위해 준비했기 때문에 후타바병원 철수는 완료한 것으로 생각하고 이후 피난 상황을 확인하는 등 별도의 도치를 취하지 않았다. 한편 이날 15시경 육상자위대 제12여단 수송지원대는 피난구역 안에 남아있는 사람을 대피시키기 위해 고리야마( 郡 山 )에서 오프사이트센터로 출발했다. 그러나 이 수송지원대는 오프사이트센터를 발 견하지 못했고,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1호기에서 수소폭발이 있었다는 소식을 라디오로 듣고 고리야 마로 돌아왔다. 19) 이에 따라 후타바병원의 환자 구출은 다음날 이후로 미뤄졌다. 후쿠시마현 재해대책본부(이후 현 재해대책본부)는 3월 13일 오전 오프사이트센터에서 "후타바 병원 등 환자가 잔류하고 있다. 현재해대책본부에서 지원해줬으면 좋겠다"라는 의뢰를 받는다. 13일 13시 경 현재해대책본부에 파견된 육상자위대 연락관(liaison)에 그 구조와 후송을 요청한다. 20) 해당 요청 을 받아 제12여단 수송지원대는 14일 자정 무렵, 대형버스 3대와 미니 버스 6대로 고리야마 주둔지 에서 출발 21) 했다. 수송지원대는 이날 4시경 도빌 후타바 와 후타바 병원에 도착했다. 요청에서 출발까지 약 한나절이 걸렸다. 이렇게 시간이 걸린 것은 제12여단 사령부와 육상자위대 동 17) 東 京 電 力 福 島 原 子 力 発 電 所 における 事 故 調 査 検 証 委 員 会, 最 終 報 告, 2012년 7월 23일 / 용어와 표현이 낯선 것들은 의미 전달을 위해 최대한 의역했음을 밝힙니다. 18) 남겨진 후타바병원 환자의 대부분은 치매와 노쇠한 상태였으며, 말기암을 함께 앓고 있는 환자도 있었다. 이후 후타바병원에 남은 환자 약 130명 중 4명이 병원에서 사망했고(3월 13일에 2명. 14일에 2명의 사망 확인) 하고 1명은 병원밖으로 나와 행방 불명되었다. 19) 원전 주변은 휴대 전화가 거의 연결되지 않는 상태이며, 또한 자위대 무선은 당시 중계소가 설치되어 있 지 않았던 것으로부터 통신 영역이 제한적이고, 제 12 여단 수송 지원 대는 동 사령부에 문의 을 취하는 수단을 갖고 있지 않았다 20) 한편, 후타바 경찰서는 관내에 남아있던 주민을 파악하고 피난 유도 활동을 실시했다. 3월 13일 저녁 무 렵, 후타바병원에 스즈키 원장과 환자가 남아있는지를 파악하고 후타바 경찰서장이 후타바 병원으로 향한 것과 동시에 후쿠시마현 경찰본부 재해경비본부에 다수의 노쇠 환자가 후타바 병원에 남아있다는 취지의 정보를 전했다. 또한 재해경비본부는 현재해대책본부에 파견한 후쿠시마현 경찰본부 경찰에도 함께 정보 를 전달했다. 이 경찰관은 현재해대책본부 직원과 함께 정보를 전하고 구조 후송을 조정할 것을 요구했지 만 이 정보는 현재해대책본부에 공유되지 않았다. 21) 이때 제 12여단 사령부에 잔류 환자 중 다수가 노쇠한 상태라고 정보는 포함되지 않았고, 이에 따라 대 형버스로 후송하더라도 견딜 수 있다고 판단했다. - 12 -

북 총감부와 조정을 위해서였다. 22) 오프사이트 센터의 의뢰에 따라, 현 재해대책본부는 13일 21시 40분경까지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에서 반경 20km 내에있는 병원과 잔류자 목록을 만들고 현재해대 책본부 구조반이 이 목록을 기초로 심사(スクリーニング) 장소 23) 나 피난처의 조정을 시작하였다. 24). 심사 장소는 목록에 있는 병원이 소소( 相 双 ) 지역에 위치하기 때문에 소소지구를 소관하는 소소 보 건소로 결정되었다. 대피소에 관해서는 현내 병원을 요청했으나, 수용가능하다는 답변을 어디서도 받을 수 없었다. 또한 후타바 병원 환자의 대부분이 노쇠하다는 정보는 현재해책본부에 공유되지 않 았고, 현 재해대책본부는 후타바 병원이 정신과 병원이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문제가 있는 환자는 적 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수용 요청에 따라 이와키 고요( 光 洋 ) 고등학교를 피난처로 선정하고 해당 고 등학교에 연락했다. 25) (b) 3월 14일 구출 상황 3월 14일 오전 4시경에 후타바 병원 등에 도착한 제12여단 수송지원대는 후타바 병원에 주재하고 있던 후타바 경찰서장 등 경찰관과 함께 스즈키 원장 등의 지시에 따라 이날 10시 30 분경까지 도 빌 후타바 에 잔류하고 있던 모든 입소자 98 명과 후타바 병원에 잔류하고 있던 환자 중 34명을 차 량에 실어 소소 보건소를 향해 출발했다. 26) 이 날 12시경, 수송지원대에는 소소 보건소에 도착해 환자들의 심사를 시작했다. 27) 소소 보건소장은 이송 된 환자의 상태를 보고 심사장에 와 있던 민간 버스에 환승은 곤란하다고 생각하고 수송지원 대에 이와키 고요 고등학교까지 자위대 차량으로 후송할 것을 요청했다. 22) 제 12 여단 사령부는 지연 이유 등에 대해 "후타바 병원 등의 구조에있어서 동북 방면 총감부와 연계하 여 실시하는 것을 생각했지만 결국 연락이되지 않고 제 12 여단 수송 지원 대 만으로 대응하기로 결정했 다 "취지 설명하고있다 23) 이 시점에서 이미 피난처가 된 시설은 현재해대책본부가 피난민의 심사 제염을 수용조건으로 했기 때문 에 심사를 먼저 진행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외 심사의 의미에 대해서는 이후 4 (5) a를 참조하 세요. 24) 후쿠시마현 지역방재계획에 피해주민대피 (피난시의 식료 등의 제공 및 의료 제공 등을 제외한다) 에 관한 것은 주민 피난 안전반이 대응하기로 되어 있지만 대피소 등의 개설, 운영 및 재해시 중요 원호자 ( 援 護 者 ) 대책 에 관한 것은 구호반이 대응하게 되어있다. 따라서 주민 피난 안전반은 입원 환자 등의 재 해시 중요 원호자의 피난은 구호반 사무로 인식하고 있으며, 다른 구호반은 이 때까지 입원 환자 등의 재 해시 중요 원호자 피난이 자신의 소관이다는 인식을 하지 않았다. 25) 육상자위대 연락관은 구조를 수행해야하는 병원과 환자가 다수에 이르는 반면, 자위대가 보유하는 후송 차량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자위대에 의한 후송은 병원에서 심사 장소까지로 하고 그 왕복수송(피스톤 수 송)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심사 장소까지의 후송은 자위대가 실시하므로, 심사장소에서 대피소 까지의 후송은 현재해대책본부에 조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현재해대책본부는 구조반이 도착해 있던 후타바병원 환자의 대부분이 노쇠하다는 경찰정부가 현 재해대책본부에 공유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러한 환승을 통한 환자 후송이 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자위대 요구를 인정하여 심사 장소에서 대피소까지 의 후송을 위해 주민피난 안전반이 민간 버스를 빌리는 등 준비했다. 26) 제12여단 수송지원대는 지리에 익숙 않았기 때문에, 후타바 병원에 주재하고 있던 후타바 경찰서 경찰 차량이 소소 보건소로 길을 안내했다. 또한 후송된 후타바 병원 환자 34명 중 4명은 경찰차량으로 후송했 다. 27) 심사를 담당 한 소소 보건소 직원은 후타바 병원에서 이송 된 환자 34명 중 상태가 악화되어 후송을 견 딜 수 없다고 판단한 4명의 환자를, 미나미소마 시내 병원으로 이송했다. - 13 -

본래대로라면 수송지원대에서는 후타바병원과 심사장 사이에서 환자를 실어 왕복수송할 예정이었지 만, 이 요청을 받아 이와키 고요 고등학교까지의 후송을 결정하고, 제12여단 사령부에 해당 계획을 연락한 후 15 시경 이와키 고요 고교로 출발했다. 28) 이 때, 길 안내를 위해 소소 보건소 직원 1 명 이 동행했다. 이즈음 정신과 병원을 담당하는 후쿠시마현 보건복지부 장애복지과는 현 재해대책본부와 별도로, 후 타바병원 환자들의 피난처가 이와키 고요 고등학교가 되었다는 정보를 얻고 최종 후송처로 병원을 찾아야한다는 판단을 한다. 후쿠시마현립 의과대학 부속 병원, 후쿠시마 현립 아이즈( 会 津 )병원, 타 케다( 竹 田 ) 종합병원, 아이즈니시( 会 津 西 ) 병원에서 총 82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승낙을 얻었다. 하 지만 벌써 후타바병원 환자를 태운 버스가 이미 피난처인 이와키 고요고등학교로 출발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와키 고요 고등학교에 수용대상인원을 82명으로 조정할 수 있다고 연락했을 뿐 현 재해대책본부에는 별도로 연락하지 않았다. 제12여단 수송지원대에는 소소 보건소에서 이와키 고요고등학교를 향해 출발하기에 앞서 이날 11시 경 후쿠시마 제1 핵발전소 3호기가 수소 폭발했다는 정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수송지원대는 토 호쿠 자동차도로 고리야마IC를 통해 이와키시로 향하는 경로를 사용하기로 한다. 그러나 지진으로 도로가 영향을 받아 고속도로에서도 속도를 높일 수 없어 소소 보건소를 출발한지 약 5 시간 후인 같은 날 20시경 이와키 고요 고등학교에 도착했다. 이와키 고요 고등학교는 환자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는 현 재해대책본부에서 연락을 받고 알고 있었지만, 많은 환자가 노쇠한 상태라는 정보를 알고 있지는 않았다. 도착 이후 환자의 상태를 보 고, 의사의 관리없이 의료 시설도 없는 체육관에서 환자를 받기 어렵다고 생각하여 수용을 거부했 다. 29) 그러다가 이와키 카이세이( 開 成 )병원 30) 이 이와키 고요고등학교 의사 등을 파견할 것을 약속하 고 이에 따라 이와키 고요 고등학교가 환자 수용을 수락하여 3월 14일 21시 35분경부터, 환자를 버 스에서 내리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 때 후타바 병원에서 온 환자 30 명 중 8 명의 사망이 확인되 었다. (c) 3월 15일 구조 전까지 한편, 제 12 여단 사령부는 3월 14일 13시 30분경 소소 보건소에 도착한 제12여단 수송 지원대에 서 후타바 병원 등에 남은 환자 대다수가 노쇠 환자이고 환자의 버스 탑승이 어려웠다는 것을 보고 받는다. 이에 추가 구조부대를 구급차를 중심으로 편제하고 의사를 동승시키는 것으로 했으나, 이 28) 이 수송지원대 차량에는 무선통신장비가 적재되지 않았고, 휴대전화가 사용이 어려워 수송지원대 차량은 소소 보건소에서 연락한 이후, 이와키 고요 고등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제12여단 사령부에 연락을 취할 수 없으며, 제12 여단사령부도 수송지원대에 연락을 취할 수 없었다. 29) 이와키 고요고등학교에서의 요청을 받아 후쿠시마 현 보건복지부 장애복지과는 당시 현 재해대책본부에 파견되어 재해파견의료팀(DMAT)의 의사들과 상담하여 의사들이 스스로 이와키 고요 고등학교에 가서 3 월 15일 새벽에서 환자를 우선 선별했다. 30) 3 월 12일에 후타바 병원에서 피난 한 207 명을 3 월 13 일의 시점에서 수락했다 - 14 -

경우 제12여단만으로는 대응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동북총감부에 지원을 요청했다. 동북 총감부는 이 요청을 받아 동북대대 직할 부대인 동북 위생대 (의사, 간호사 등을 포함한다) 등 으로 이루어진 통합임무부대 31) 의 파견을 결정하고, 통합임무부대는 3월 15일 1시30 분경 구급차 5 대, 대형 버스 2대 와 미니 버스 1대 편제로 고리야마 주둔지를 통해 후타바 병원으로 향했다. 한편 제12여단 사령부는 3월 14일 저녁 무렵 제12여단 위생대에 대해 후타바 병원 환자 구조를 지 시하고 위생대 구급차 4대 편제를 후타바 병원을 향해 고리야마 주둔지에서 출발시켰다. 그러나 제 12 여단 사령부는 3월 14일 20시경부터 보도 등을 통해 핵발전소가 위험한 상태이다. 라는 정보를 일시적으로 얻어, 21시 15분경 제12여단의 전체 대대에 대해 임시 대피하라 는 지시를 내렸다. 32) 이에 따라 이미 후타바 병원으로 출발했던 제12 여단 위생대는 고리야마 주둔지에 돌아왔다. 그 후, 제12 여단사령부는 15일 새벽, 같은 위생대에 대해 다시 구호할 것을 지시했다. 한편, 후타바 병원에 있던 후타바 경찰서 부서장은 3월 14일 21시 58분, 센다이촌( 川 内 村 ) 사무소 에 설치된 후타바경찰서 긴급 대책실에서 원자로가 위험한 상태이기 때문에 현장에서 임시 이탈 하라 는 무선 지시 33) 를 받아 스즈키 원장 등을 경찰 차량에 실어 센다이촌에 있는 와리야마( 割 山 ) 고개까지 대피시켰다. 이날 22시 10분 후쿠시마현 경찰본부 재해경비본부 ( 이하 경찰경비본부 라 한다) 에서 현재 비상위험은 아니기 때문에, 구조 활동을 계속 하라 고 지시가 있었기 때문에, 후타 바경찰서 부서장은 후타바 병원 부근에 돌아 왔다. 하지만, 오쿠마정 안에는 자위대 차량이 없고 근처의 상황이 좋지 못해 오쿠마정에 머무는 것이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다시 와리야마 고개로 대피 했다. 다시 후퇴한 이후, 후타바 경찰부서장은 경찰경비본부에 와리야마 고개 부근에서 대기하고 후타바 병원 구조 자위대를 기다린다 고 연락했다. 경찰경비본부는 현 재해대책본부에 파견되어있던 경찰연락관에게 같은 내용을 전달했다. 그러나 이 정보는 현 재해대책본부에서 공유되지 않고 육상 자위대 연락관에게 전해지지 않았기 34) 때문에 후타바 경찰서 부서장, 스즈키 원장은 후타바 병원으 로 향한 통합임무부대나 제12여단 위생대에 합류할 수 없었다. (d) 3월 15일의 구출 상황 상기 (c)대로 3월 15일 오전 1시 30분경에 후타바병원으로 향했던 통합임무부대는 같은 날 9 시경 후타바병원에 도착해 환자의 구조 이송 활동을 실시했지만, 활동 중 휴대하고 있던 선량계의 경보 가 연속하여 울렸다. 통합임무부대는 여성 간호사 5명을 동행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여성의 선량한 도 (5mSv)에서 더 이상 활동을 계속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따라 47명에 대한 구조 만을 진행하고 구조를 중단, 11시경 이 47명의 후송을 시작한다. 35) 31) 재해 대응을 위해 임시로 편성 된 부대로 동북총감을 지휘관으로하는 부대이다 32) 그 후 안전이 확인되어 3월 15일 자정 무렵, 전부대에 대해 보통 태세로 돌아설 것을 지시했다 33) 소방의 정보에 따라 카와 우치 면사무소에 설치된 후타바 서 긴급 대책 실 재량에 지시했다 34) 본 위원회는 이 원인에 대해 조사했지만, 해명을 듣지 못했다. 35) 15일 오전에 통합임무부대가 실시한 환자 구출시 오프사이트센터 주민안전반 반원( 班 員 ) 몇 명이 함께 하였다. 통합임무부대는 이들이 일부 환자를 구출하고 출발할 것을 바랬으나, 그 반원들은 다음 구조부대 - 15 -

제12 여단 위생대는 상기 (c) 과 15일 아침 다시 구조를 지시받아 구급차 4 대로 후타바 병원에 가 서 이날 11시 30분경부터 병원에 남아 있던 환자 중 7명을 구조 했다. 그 무렵 이 병원 별채에 35 명의 환자가 더 남아 있었지만, 위생대는 먼저 도착했던 통합임무부대와 합류하여 정보를 교환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구출을 끝냈다. 12시 15 분경 이 7명만이 후송되기 시작했다. 36) 위생대는 운송 중 휴대전화가 가능한 지역에서 제 12 여단 사령부에 후타바 병원 구조는 끝났다 는 보고를 하고 제12여단 사령부는 그 내용을 현 재해대책본부의 육상 자위대 연락관에 연락했다. 그러나 제12여단 위생대의 부대장은 고리야마 주둔지에 돌아가오는 길, 대원에게서 "심사장에서 통 합임무부대의 의사에게서 후타바 병원 별채에 아직 환자가 남아있다는 정보를 들었다 는 보고를 받 고 다시 남은 환자의 구조를 위해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내용을 제12여단장에게 보고했 다. 제12 여단 사령부는 구조를 위해 수송지원대 대형버스 1대, 마이크로 버스 2대, 위생대 등 구급차 7대를 갖춘 혼성부대를 편성하고 21시 15분경 후타바 병원을 향해 출발해 3월 16일 0시 35 분께 병원 별관에서 잔류 환자 35명 구조를 시작했다. 37) (e) 3월 17일 홍보 상황 3월 17일 아침 무렵 일부 언론사가 같은 달 14 일 이와키 고요 고등학교에 후송된 후타바 병원 환 자의 상황에 대해 보도한다. 다른 언론사들은 현 재해대책본부에 현황설명을 요구한다. 구조반은 17 일 16시경, 지금까지 수집한 정보에 따라 후타바 병원 구출상황 등에 대해 3월 14일부터 16일까지 구출했지만, 병원 관계자는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았다. 는 취지의 내용을 발표한다. 그러나 위의 (b) 및 (c)에서 보듯 스즈키 원장은 3월 14일 오전 구출시 입회해 반송을 지휘했고, 또 14일 22시 이후에도 자위대와의 합류를 위해 와리야마 고개 부근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 내용은 마치 14일 이후 병원 관계자가 일체 구조에 참가하지 않고, 병원을 포기하고 도망가 버린 듯한 것으로 부정확 또는 잘못된 내용이었다. 이는 위의 상황이 현 재해대책본부에서 공유되지 않은 등 구호반이 충분히 상황 파악을 하지 않은 것에 의한 것으로 생각된다. 38) 인 제12여단 위생대가 도착하기 직전(11시30분전 쯤) 환자를 남긴채 후타바병원을 떠났다. 당시 오프사이 트센터가 후쿠시마 현청으로 이전을 시작하고 있었을 때라 그대로 후쿠시마 현청으로 떠났다. 36) 통합임무부대 및 제12여단 위생대가 후송한 총 54명의 환자는 심사 후 현 재해대책본부가 준비한 민간 버스로 후쿠시마현립 의과대학 부속 병원으로 향했지만, 수용을 거부당해 16일 1시경 다테시 교류센터( 伊 達 ふれあいセンター)로 이송되었다. 이 때 2 명의 사망이 확인되었다. 37) 심사 후 현 재해대책본부가 부대를 조정했다. 조정 후 민간 버스 등으로 카수미가지오( 霞 ヶ 城 ) 공원 및 아즈마 종합운동공원으로 후송되었다. 5명 사망이 확인 되었다. 38) 그 후, 현 재해대책본부는 스즈키 원장의 말을 통해 그가 3월 14일까지 병원에 있으며, 그 후 자위대와 의 합류를 위해 와리야마 고개에서 대기하고 있었다는 내용의 정정보도를 내었다. - 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