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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사 학 위 논 문 고등학교 인권 교육에 관한 연구 - 법과 사회 수업을 위한 사례 개발을 중심으로 - 숙명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일반사회교육전공 오 승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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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 일본 지리지, 수로지 5, 지도 6 등을 함께 검토해야 하지만 여기서는 근대기 일본이 편찬한 조선 지리지와 부속지도만으로 연구대상을 한정하 기로 한다. Ⅱ. 1876~1905년 울릉도 독도 서술의 추이 1. 울릉도 독도 호칭의 혼란과 지도상의 불일치 일본이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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泰 東 古 典 硏 究 第 24 輯 이상적인 정치 사회의 구현 이라는 의미를 가지므로, 따라서 천인 합일론은 가장 적극적인 경세의 이론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권근은 경서의 내용 중에서 현실 정치의 귀감으로 삼을 만한 천인합일의 원칙과 사례들을 발견하고, 이를 연구하여

Transcription:

종교와 인권 : 이슬람과 인권, 기독교와 인권 일 시_ 2010. 6. 29(화) 오후 3시~오후6시 장 소_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센터 별관(10층 배움터) 주 최_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포럼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순서 구 분 순 서 개회 인 사 말 15:00~16:30 주제발제 1부 이슬람과 인권 좌 장 : 심 성 보 (인권교육포럼 공동대표) 이슬람과 인권 이 희 수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토론 김 영 경 (고려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토론 박 현 도 (명지대학교 중동문제연구소 상임연구원) 15:40~18:00 주제발표 2부 기독교와 인권 좌 장 : 오 완 호 (인권교육포럼 공동대표) 한국 그리스도교의 인권담론과 신학적 성찰 김 진 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토론 구 미 정(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 토론 이 춘 선(평화인권기독교교육연구소 연구소장) 종합토론

제1부 이슬람과 인권 이슬람과 인권 3 이 희 수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이슬람과 인권 - 신학적 뿌리, 역사적 결실, 그리고 현실 14 김 영 경 (고려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이슬람과 인권 토론문 34 박 현 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상임연구원) 제2부 기독교와 인권 한국 그리스도교의 인권담론과 신학적 성찰 41 김 진 호(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한국 그리스도교의 인권 담론과 신학적 성찰: 안병문의 신학을 중심으로 를 읽고 58 구 미 정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 기독교와 인권: 한국 그리스도교의 인권담론과 신학적 성찰에 대하여 66 이 춘 선 (평화인권기독교교육연구소 연구소장)

참고자료 Universal Islamic Declaration of Human Rights 83 Cairo Declaration on Human Rights in Islam 101 이슬람과 인권 109 김 영 경 (고려대학교 교양학부) 이슬람 인권사상과 카이로인권선언 114 김 영 경 (고려대학교 교양학부) 바하이교의 역사적 개관 134 김 영 경 (고려대학교 교양학부) 국경들 너머의 짐승들 혹은 인간들 181 김 진 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제1부 이슬람과 인권 1 제1부 이슬람과 인권

제1부 이슬람과 인권 3 주제발표 이슬람과 인권 이 희 수(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이슬람과 인권은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신이 주신 율법과 가르침을 인간이 만든 법적 체제와 규범으로 단죄하거나 그 것의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이 어디까지 유효할까? 유럽 이슬람 평의회가 1981년 파리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1990년 8월 5일 채택된 이슬람의 보편적 인권선 언 에는 두 가지의 분명한 목표와 한계가 잘 설정되어 있다. 첫째, 신의 권리는 인간의 권리에 우선 한다 둘째, 국제인권선언 등의 인권개념들이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이 개념들이 샤 리아(이슬람 법)에 부합하는 한--- 이라는 전제조건을 달았다. 개념부터 정리하자. * 이슬람의 인권 * 무슬림 사회의 인권 * 무슬림 다수 사회의 인권 * 이슬람 사회의 인권 * 무슬림의 인권 아마 여기서 논의하고자 하는 주제는 이슬람에서 보는 인권의 개념과 무슬림 사회가 처하고 있는 현실적인 인권의 실상에 관한 것인 듯싶다.

4 제11차 인권교육포럼 1. 이슬람에서 보는 인권의 개념 이슬람권과 서구가 각각 따로 노는 인권의 문제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한 자리 에서 논의하면서 간극을 메우고 상호이해의 폭을 넓히려는 거국적 시도가 1972년 3월 23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서 사우디 율법학자와 정부대표 대 유 럽 율법학자 대표들 사이에 열렸다. 사우디아라비아-유럽 지성간의 논쟁회의는 1974년 10월 23일 파리회의, 같은 해 10월 25일 바티칸 회의로 이어졌고 지금 논의되고 있는 첨예한 인권문제들이 심도 있게 제기되었다. 이에 대한 이슬람 측 의 공식적인 입장도 확연하게 전달되었다. 이미 36년 전에 제기되었던 문제들은 한 세대기 훨씬 지난 지금까지 한 치의 변화도 없이 그대로 재연되고 있다는 점 에서 서글픔을 느낀다. 1) 평등의 인권 모든 인간은 신 앞에 동등하다. 모든 인간은 신의 피조물로 피부색, 신분, 출신, 언어나 국적 등에 의해 차별받지 아니한다(XLIX,13). 인간은 바로 신의 대리인이 자 종복이다. 따라서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아담의 형상을 빚고 생명을 불어 넣으셨고, 똑같이 이브의 형상을 빚고 생명을 불러 넣으셨다. 남녀가 완벽하게 창 조의 동등성에서 출발한다. 인간의 평등을 실현하는 사회적 기제로 이슬람의 가장 존중받는 덕목이 형제애 이며, 예배를 볼 때도 한 줄로 나란히 본다. 앞의 줄이 채워지지 않는 한, 두 번 째 줄이 형성되지 않고 왕과 거지가 나란히 예배를 보게 된다. 2) 공동체의 이익이 개인이 이익에 우선하는 문화 * 개인의 이익보다는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우선한다. * 나는 존재한다, 우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 세속사회에서의 순기능-공동체에 한 톨의 양식이라도 남아있는 한 굶주리는 자가 있

제1부 이슬람과 인권 5 어서는 안된다 * 세속사회에서의 역기능-명예살인/일벌백계의 처벌/ 살아있는 자의 인권이 더욱 소중 (신체절단형의 폐해) 3) 세계인권선언과의 합치 * 모든 사람은 태어닐 때부터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 서로에게 형제애로 대해 야 한다 꾸란의 정신에 합치(17:70) * 모든 사람은 생명과 신체의 자유와 안전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꾸란에 합치 * 모든 사람은 사회-복지보장을 받을 권리와 동일노동에는 동일한 임금을 받아야 한다 무슬림 사회에서 통용되지 않음 * 모든 사람은 공동체의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꾸란에 합치 * 어느 누구도 고문, 또는 잔혹하거나 비인도적이거나 굴욕적인 처우 또는 형별을 받지 않는다 참수형, 신체절단형, 간통 투석형 등이 이슬람법의 이름으로 일부 국가에서 자행 * 모든 사람은 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개인의 자유보다는 공동체 공동선이 우선됨으로써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 * 모든 사람은 언론과 의견을 말할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인간의 영역에서는 인정되나, 신의 영역에 인간의 무한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무분별하게 적 용될 수없다. 신성불가침의 종교적 영역을 설정한다 무슬림 사회에서는 이집트를 중심으로 18세기말부터 서구식 법체제와 인권의 개념에 대한 실질적인 고뇌가 시작되었다. 1789년 나폴레옹 이집트 침공 이후 이 집트에서 받아들여진 시민과 인간의 권리 선언 은 이러한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종래처럼 7세기 초에 계시된 진 꾸란을 글자그대로 이해해야 하는가? 아니면 시 대적 재해석의 문호를 활짝 열어야 하는가의 본격적인 논쟁이 시작되었다. 결국 1848년경에는 무슬림 사회가 매우 진일보한 형태로 서구 중심의 인권 개 념에 이슬람식 인권개념을 적용시켜 보편적 가치질서에 편입하려는 노력을 보이기

6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시작했다. 많은 부분 세계인권선언은 꾸란의 기본적인 정신과 부합되었지만, 몇 가지 항목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즉, 1948년 12월 10일 유엔 총회 의 보편적 세계인권선언과 1976년 경제적 사회적 권리 시민의 정치적 권리 채택에서 일부 무슬림 국가에서 유보적, 조건적 수용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특히, 3가지 원칙에 대해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 무슬림 여성이 비무슬림 남성과 결혼할 권리(16조) * 꾸란에 의하면 모든 것은 신의 소유이고 인간은 이를 사용할 뿐인데, 소유권을 인정하 고 있는 조항(17조) * 배교행위를 사형에 처할 수 있는 상황에 비추어, 종교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자유와 양 심의 자유(18조)등 이었다. 2. 무슬림 사회에서 인권의 실상과 변화 무슬림 사회의 인권을 논할 때,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 무슬림사회의 인권의 특수성을 어느 정도 인정할 것인가? * 보편적 인권이란 것이 과연 만능일 수 있는가? * 가해자의 인권과 피해자의 인권이 동등하게 보호받아야 할 도덕적 기준은 무엇 인가? * 한 인간에 의해 저질러진 가정의 손상과 공동체의 상처에 대해 법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가? 1) 무슬림 사회에서 사형제 폐지의 논란은? 꾸란에 속한 박해의 영역은 무엇이고 인간의 욕망이나 독재정권의 야욕 에 의해 저질러지는 폭력은 무엇인가? * 너의 형제와 동포를 살해하지 말라 (17-31)

제1부 이슬람과 인권 7 동포를 죽일 수 있는 권리는 탈리온 법(2-178)에 이해 인정되지만 만일 살인자가 피 의보상을 치른다면 희생자의 부모나 형제는 살인자를 용서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살 인자는 처형대신 수감형을 살 수 있다. * 무조건적 사형제 폐지나 피해자의 고통을 감안하지 않은 법률체계의 일방적 결정에 제동. * 도둑들에 대한 손발 절단형 시행에 대한 입장 이 형벌은 너무 가혹하여 무함마드 시 대에도 시행되지 않았다 극소수의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다. 오히려 배고픈 절도죄에 대해서는 범인에게 공동체나 국가가 이를 보살펴주어야 한다(기본 의무). 다른 절도범 도 공동체 존립을 심각하게 훼손하지 않는 한 감금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일부 보수학 파들은 절도범에 대한 감금형과 온건한 처별에 반대한다. * 터키의 사형제 폐지와 일부 무슬림국가에서 사형제 폐지논란이 진행 중 2) 간통죄에 대한 가혹한 돌팔매질 채찍질 100대/ 돌팔매질의 비 꾸란성/ 꾸란 근거성에 대한 논쟁 3) 타 종교의 선교금지와 처벌은? 대부분 무슬림 국가에서 선교는 실정법으로 금지되어있다. 자신의 신앙과 종교 적 행위는 존중받고 보호받지만 강제로 자신의 종교나 신앙을 강제하는 것은 범 죄행위로 간주된다 강제개종을 금지한 꾸란의 가르침에 근거한다(2:256/ 10:99). 4) 여성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 억압의 실상은? 이슬람이 문제인가? 무슬림 사회가 문제인가? 복합적인가? 인류사회의 보편적 발전의 변화의 한 과정인가? * 양성평등의 정신과 현실적 왜곡문제 * 여성 할례 문제 * 일부다처와 남성의 일방적 이혼통고 * 여성의 사회참여제한과 남성 의존

8 제11차 인권교육포럼 * 가부장제, 부계중심, 남아선호 사상이 갖는 여성의 굴레 5) 배교자에 대한 처형의 진위와 시행정도 배교자에 대한 사형 처벌이 어느 정도 사실인가? 왜 배교자에게 그토록 엄격한 처벌을 강제하는가? 6) 히잡의 중층성: 문화적-종교적-사회적-정치적 의미 21세기 히잡은 이미 패션이다 프랑스 유명 브랜드들이 연이어 이슬람 히잡을 명품으로 만들어 팔고, 신여성의 상징이라며 맨 먼저 히잡을 벗어던졌던 이집트 도시여성들은 다시 히잡을 착용하 기 시작했다. 이슬람 국가들마다 멋진 디자인으로 경쟁하는 새로운 히잡 패션이 계절마다 쇼 윈도우를 장식하고 있다. 히잡은 여전히 고약한 여성억압의 상징이다 굳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통치하의 여성 부르카 착용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아직도 무슬림 사회 곳곳에서는 히잡이 여성을 억압하고, 차별하고, 자유를 구속 하는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제다를 출발한 비행기 안에는 얼굴까 지 가린 니깝을 착용한 여성들이 적잖게 탑승하고 있었다. 그러나 비행기가 방콕 공항에 내릴 때쯤에는 검은 차림은 거의 사라지고 최첨단의 패션 모델들이 우루 루 공항을 빠져 나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히잡은 자유와 자기 정체성을 상징하는 현대 여성의 존재가치다. 터키 여대생들은 학교에 갈 때 누구도 히잡을 쓰지 못한다. 자신의 신앙을 지키 고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식 있는 신여성들은 스스로 대학에서 퇴학당하 는 극단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결코 히잡을 벗지 않는다. 히잡을 쓰고 학생들 을 가르치거나 공직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에 힘들게 얻은 직장마저 기꺼이 포기 한다. 그들에게 히잡은 저항의 상징이고 자유와 존재에 대한 강한 확인이다.

제1부 이슬람과 인권 9 히잡은 참으로 편리한 실용적 포장이다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직장생활을 하는 도시 무슬림 여성에게 히잡은 실용적이고 유용한 포장의 수단이 된다. 여성들이 매일 부담해야 되는 복장과 패션, 머리 손 질, 화장 등은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히잡을 쓰 면 적어도 매일 옷을 갈아입을 필요도, 매일 머리를 손질할 필요도 없이 자연스럽 게 자신을 포장할 수 있는 매우 실용적인 방편이다. 그래서 이슬람 사회에서 직장 여성들의 히잡 착용률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이슬람 사회의 여성문제는 아직도 서로 다른 상황에서 평행선을 달리는 첨예한 논쟁거리다. 각자의 관점에서 미시적 주장만 난무했지 이슬람 여성문제의 진정한 본질을 꿰뚫는 노력과 다양한 관점, 무엇보다 균형감각을 가질 수 있는 지 성적 담론은 아직도 찾기 힘들다. 7) 절충적 형태 많은 무슬림 국가나 사회에서 이슬람법은 사실상 민법, 가족법, 상속 같은 전통 과 문화적 맥락에서 제한적이고 상징적으로 통용되지만, 형법이나 현실 생활의 잡 다한 행위 규제는 거의 스위스 민법이나 서구식 법체제를 급속히 받아들이고 있 다. 그러면서 서구의 민주주의는 권력이 시민으로부터 나오지만 이슬람에서는 권력 이 신으로부터 나온다 는 논리로 포장한다. 그리고는 우리는 신의 허락과 함께 한 명의 선지자를 보냈으니, 이는 오직 그의 말에 따르기 위함이다 (4-64). 이 구 절은 후대 칼리프들에게 적용되었고 오늘날 이란 최고 지도자나 일부 무슬림 국 가의 수장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꾸란의 가르침들이 현대국가 독재자들 의 권력횡포의 그럴싸한 명분으로 그럴싸하게 포장되고 있는 것이다. 사우디아라 비아는 2005년에야 평민 남자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했다.

10 제11차 인권교육포럼 3. 서구식 인권에 대한 반발과 저항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전쟁을 통한 자국이익 극대화 정책을 더욱 노골적으로 실천에 옮기고 있다. 소련이라는 경쟁상대가 사라진 독무대에서 힘의 논리에 입각 한 일방주의는 통제 불능의 상태에 이른 느낌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나 인권 같은 교묘한 명분으로 포장한 거대한 인권말살과 비민주적 침략 이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다는 서글픈 현실이다. 가진 자의 인권은 자유와 평화라는 명품 보자기로 포장되지만 빼앗긴 자의 인권은 쓰레기통에서 먹을 것을 뒤지는 처절한 생존이 연속이다 * 보편적 질서와 합리,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의 어두운 얼굴을 들여다 본 적이 있는가? * 모든 인간은 법 앞에 평등하고 종교마다 모든 인간은 신 앞에 평등하다면서도 언제 한 번 우리가 생명의 무게에 공정한 태도와 똑같은 가치를 준 적이 있는가? 1) 중동민주주의 말살 정책 이슬람운동권의 극히 일부가 서구의 끊임없는 경제적 착취와 이슬람 가치체계에 대한 흠집 내기에 극단적으로 반응하면서 과격주의와 폭력주의가 생겨났다. 이 폭 력주의의 1차적 책임은 서구의 비열한 분열주의와 이중정책, 수단과 방법을 가리 지 않고 자신의 이익보전에만 급급해하는 서구 자신이다. 서구의 가치와 이익만이 지고선이라 생각하는 독선과 패권주의가 바로 이슬람 급진주의의 최대 후원자인 셈이다. 이것은 무슬림 국가내에서도 이슬람적인 요소를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는 국가보다는 이슬람을 철저히 박해하고 있는 곳에서 급진적이고 과격한 이슬람 운 동이 호응을 얻고 있다는 점에서도 명백하다. 걸프해에서 철저한 미국의 경찰국가 로 자처했던 팔레비 샤 정권이 아래로부터의 혁명으로 이란에서 이슬람 정권의 태동을 가능하게 해주었고, 오랜 일당 군부독재와 프랑스의 지원이 알제리에서 FIS(국민구국당)의 집권가능성을 만들어 주었다. 튀니지나 이집트에서 무슬림 형

제1부 이슬람과 인권 11 제단이 끈질긴 저항을 계속하는 것도 독재정권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 지원이 배 경에 깔려있다. 무슬림 국가 중에서 서구화와 세속화가 가장 성공했다고 하는 터 키에서조차 1995년 이후 이슬람을 표방하는 정당이 이스탄불과 앙카라등 대도시 의 시장선거를 석권하고, 세속공화국 78년 만에 처음으로 2001년 단독 집권을 경 험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 미국에 의한 중동민주주의 싹이 잘리는 어처구니없는 현실 *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최초의 민주적 선거에 의해 선택된 하마스 정권의 불인정과 테러 조직 규정 * 레바논 남부 주민들의 유일한 정치적 대안이고 국민들의 직접 선거에 의해 선출된 35 명의 국회의원과 내각에 2명의 장관을 가진 레바논 제2의 합법적인 제도 정치정당인 헤지불라를 테러단체로 규정 * 알제리에서의 민주 선거결과 이슬람구국당(FIS)의 압승으로 이슬람정권 등장을 두려워 한 서구의 쿠데타로 군부 독재의 회귀 * 지구상에서 가장 비민주적이고 인권억압의 메카인 사우디아라비아 왕정을 무조건 비호 하는 미국의 이중적인 인권정책 * 독재정권인 이집트 무바라크 정권의 야당 탄압과 인권말살에 대한 미국의 지지 * 터키에서의 군부의 정치개입과 막강한 미국의 영향력 2) 인권의 두 얼굴 미국은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초토화시키고 있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폐허가 직전의 낡은 텐트 위에 첨단 미사일을 퍼붓는다. 군사목표라 지만, 죽어나는 희생자는 무고한 민간일 수밖에 없다. 인류가 수 천 년을 경험한 전쟁의 역사가 그러했고, 바로 20년 전 걸프 전쟁이 그러했듯이. 빵 한 조각을 위 해 생명을 걸어야 하는 그들이 미국 테러와 무슨 관련이 있으며, 신의 이름을 팔 아먹는 극단적 원리주의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들은 '왜'라는 질문에 대한 대 답도 제대로 듣지 못하고 무차별 폭격으로 죽어나갈 것이다. 전쟁이 쓸고 간 뒤에

12 제11차 인권교육포럼 남겨진 수많은 어린이들은 또 얼마나 버티며 살아남을 것인지. 지진아가 되어 다 음세대를 이어가야 하는 처참한 문명의 범죄를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이미 우리는 이라크에서 그 참상을 목격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살만큼 살았다. 후세인을 때 려잡아도 좋다. 그러나 어린 아이들만을 살려 달라. 이미 50만 이상이 어린 생명 이 약과 우유가 없어 목숨을 잃었고, 살아남은 우리 아이들도 질병과 영양부족으 로 거의 지진아 상태다" 며 피를 토하던 바그다드 인문대학장 하디스 박사의 절 규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민간인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전쟁만은 안 된다는 인 권단체나 반전그룹의 목소리는 지금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포성에 묻히고 있다. 그리고 이번 전쟁은 테러를 뿌리 뽑겠다며 다른 지역으로 폭격을 확대할 조짐마 저 보인다. 인권은 늘 두 얼굴을 가지고 인류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가진 자의 인권과 빼앗 긴 자의 인권이 그것이다. 가진 자의 인권은 정의와 자유로 포장되어 있지만, 지 구촌 대부분을 차지하는 빼앗긴 자의 인권은 생존에 가려져 있다. 강탈당한 영토 를 되찾고 신이 주신 가치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빼앗긴 자의 절박한 요구는 예나 지금이나 가진 자의 목소리에 가려 있다. 비옥한 땅에서 물 한 모금과 빵 한 조 각을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람들에게 인권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자유와 정의가 과연 생존에 앞선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가진 자의 논리만이 정의라면 약육 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정글과 인류사회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어떤 명분과 이유로도 무고한 시민을 겨냥하는 테러는 정당화될 수 없다. 뉴욕 무역센터의 무너진 잔해 속에서 가족의 시신을 안고 절규하는 미국시민들의 슬픔 에 팔레스타인 아랍인들만큼 그들의 아픔을 잘 이해하는 민족도 없었을 것이다. 1948년 이후 이스라엘의 폭격이나 테러로 숨진 어린 생명과 가족들의 시신을 안 고 통곡하는 일을 일상으로 되풀이해온 그들이기 때문이다. 빼앗긴 자의 저항은 미사일이나 폭격기 대신 온 몸에 폭탄을 감고 적을 향해 목숨을 던져 버리는 것 이다. 이처럼 테러도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다만 가진 자는 그것을 보복공격이 라 부를 뿐이다. 이처럼 자살폭탄공격과 보복공격은 둘 다 선후가 없는 명백한

제1부 이슬람과 인권 13 테러이다. 테러의 응징을 위해 저지하려는 또 다른 국가테러가 반복되는 한 이 악 순환의 고리는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러면 가장 확실한 테러응징과 방지는 가 진 자가 빼앗긴 자의 생존에 최소한의 응답을 하는 것이다. 대테러전쟁으로 인 권을 유린하는 전쟁비용의 10분의 1 정도라도 무슬림 사회의 저소득층을 위해 경 제지원을 한다면 지금보다 몇 십 배 효율적인 테러방지효과가 날 것이다. 4. 서로 다른 테러와 평화코드, 그리고 인권 여전히 이슬람 세계는 아직도 평화를 갈구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에서의 이스라 엘과 미군시설에 대한 무장 투쟁을 이슬람 세계는 테러로 보지 않는다. 처절한 생 존투쟁으로 정의롭고 신성한 독립저항으로 본다. 일부 세력들이 이슬람을 들먹이 지만, 테러와 이슬람의 가르침은 별개의 코드다. 그것은 생존투쟁이 만들어내는 현상이고, 약자가 저항하는 기제이며, 부당한 약탈을 전제로 한 서구 강국들이 조 작해 만들어 내는 폭력성이다. 이런 현상을 이슬람의 비평화성과 결부시키는 것은 지나친 사실 왜곡이다. 결국 이것은 인간이 최소한의 존엄성과 자긍심을 갖고 인 간답게 살려고 하는 몸부림이다. 인권의 문제다. 이슬람과 인권은 깊은 상관관계 가 있는 듯하지만 실상은 인권문제가 종교적인 문제라기보다는 무슬림 사회가 안 고 있는 깊은 고뇌의 반응이다. 그것은 인권과 사회발전이라는 3세계의 국가들의 일반적인 변화 발전과 결코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14 제11차 인권교육포럼 토론1 이슬람과 인권 - 신학적 뿌리, 역사적 결실, 그리고 현실 - 김 영 경(고려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1. 이희수 교수는 발제의 글에서 이슬람의 인권개념과 오늘날 무슬림 사회가 처해 있는 인권의 실상을 비판적으로 정리해 주었다. 이슬람을 국시로 삼고 있거나 무 슬림이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몇몇 국가의 인권실상을 통렬하게 비판하 는 글 속에는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서 이희수 교수의 열정과 용기가 담겨 있다. 또 미국을 위시한 서구의 패권주의와 이중정책이 폭력적인 이슬람 급진주의의 최대 후원자라는 주장 속에서는 우리나라 무슬림 공동체의 지도자로서 이슬람 세계에 대한 애정과 보다 정의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이 녹아 있어 기쁘고 존경스럽다. 2. injustice anywhere is threat to everywhere : 이희수 교수의 발제에서 크게 문 제 삼거나 이의를 제기할 사항을 발견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필자는 주어진 주제와 관련, 이슬람 인권사상의 신학적 뿌리와 역사적 기여를 설명하고, 오늘날의 현실 로서 일부 이슬람 국가, 특히 이란 이슬람 공화국에서 자행되고 있는 인권유린 실 태를 구체적으로 소개한 다음, 이희수 교수와 이 포럼을 주최한 국가인권위원회, 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분에게 개인적인 제안을 한두 가지 하는 것으로 토론에 임하고자 한다. 3. 2009년 6월 4일 이집트 카이로 대학 : 지난 해 6월 4일, 버락 후세인 오바마

제1부 이슬람과 인권 15 미국 대통령은 이집트 카이로 대학 대강당에서 새로운 시작 이란 제목으로 역사 적인 연설을 했다. 이슬람 세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그 연설에서 오바마 대통 령은 테러리즘, 핵문제, 민주주의, 여성 등 7개의 이슈를 다루었다. 폭력적인 극단 주의에 대해 논하는 부분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다음과 꾸란 한 구절을 인용해 청 중으로부터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4. 신성한 꾸란에서는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을 살해한 자는 전 인류를 살해한 것과 같으며, 한 명의 인간을 구한 자는 전 인류를 구한 것과 같다 (5:32)고 가르 치고 있습니다. 5. 이슬람의 자랑스런 전통 - 관용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알 아즈하르 대학과 이집트의 근대화를 상징하는 카이로 대학이 공동으로 주최한 그 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다섯 번째 이슈로 다룬 주제는 종교적 자유였다. 이슬람은 관용이라는 자랑스러운 전통을 지니고 있습니다. (중세 유럽에서 악명 높던) 종교재판이 자행되던 시절, (무슬림들이 지배하던 피레네 산맥 서쪽) 안달루시 아 지방과 코르도바 지방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그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인도네시아에서 저는 국민 대다수가 무슬림인 국가에서 신앙심 깊은 기독교인들이 자유롭게 예배를 드리던 모습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 것이 오늘날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정신입니다. 모든 국가의 국민은 자신의 생각과 마음과 영혼에 깃든 확신에 따라 자신의 믿 음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그에 따라 살 수 있어야 합니다.... 레바논의 마론파 교도이든 이집트의 콥트 교도이든 종교적 다양성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합니다. 종 교의 자유는 여러 민족이 공존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16 제11차 인권교육포럼 6. 이슬람 전통의 뿌리, 꾸란과 순나 : 관용 이라는 이슬람의 자랑스러운 전통은 하느님이 계시한 말씀만을 수록한, 그래서 무슬림들이 절대적으로 신성시하는 꾸 란, 그리고 그 계시를 전한 하느님의 사자 무함마드가 남긴 관행, 즉 순나에 뿌리 박고 있다. 꾸란 속에는 인류의 단일성을 위시하여 인권과 직결된 가르침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 가운데 몇 구절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종교에는 강요가 없다 (2:256) - (무함마드여, 성서의 백성들에게 이같이 말하라) 나는 하느님이 내려 보내신 성서들 을 1) 믿는다. 그리고 나는 너희를 정의롭게 대하라 는 명을 받았으니, 하느님은 우리 의 주이며 (동시에) 너희들의 주이기 때문이다.... (42:15) - 사람들이여! 우리는 한 명의 남성과 한 명의 여성으로부터 너희들을 창조했고, 씨족 과 부족을 이루도록 했나니, 이는 너희들이 서로 친히 사귀도록 하기 위함이니라. (그 러니 자신의 혈통을 뽐내며 우쭐거리지 말라!) 하느님의 눈엔 가장 정의로운 사람이 가장 훌륭한 사람이니라. (49:13) 7. 인권이란 주제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순나는 하느님의 사자, 무함마드가 세상 을 떠나기 약 3 개월 전인 632년 성지순례 중에 행한 연설이다. 하느님의 유일성, 인류의 단일성, 생명과 사유재산의 신성함,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등에 대해 언급한 이 연설을 무슬림 학자들은 이슬람 인권사상의 효시로 삼고 있다. 그 가운 데 한 대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2) 여러분, 여러분의 신은 단 한 분이고, 여러분의 조상도 단 한 사람이니 여러분 은 모두 (하느님께서) 진흙으로 빚어 만든 아담의 후손들입니다.... 아랍인은 비아 랍인보다 우월하지 않으며, 비아랍인도 아랍인보다 우월하지 않습니다. 황인도 흑 인보다 우월하지 않으며, 흑인 또한 황인보다 우월하지 않습니다. 우열이 있다면, 1) 모세 5경, 시편. 복음서 등을 의미함. 2) 손주영. 이슬람과 인권. 한국이슬람학회논총 제7집(1997) 34쪽 참조.

제1부 이슬람과 인권 17 그것은 오직 신앙심에 달려있습니다. 8. 찬란한 이슬람 문명 : 711년 서고트 왕국을 멸망시키고 스페인을 손에 넣은 무슬 림들이 800년 가까이 그곳을 통치하면서 찬란한 문명을 꽃피울 수 있었던 것도 바 로 그들이 현지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들을 포용하며 이러한 정신에 입각해 정치 를 했기 때문이다. 유럽 대륙이 중세 암흑시대 의 어둠에 싸여 있는 동안 피레네 산맥 서편에서는 헬레니즘을 비롯해 이슬람 세계 각지의 학문을 접목, 발전시킨 수 학, 철학, 의학, 화학, 물리학, 천문학 등 첨단 학문과 문학과 예술이 새로운 상품과 지식을 찾아 라틴 세계에서 온 상인들, 귀족들, 학자들, 유학생들을 매혹시켰다. 9. 인류 문명이 이슬람에 진 빚 : 중동 이슬람 세계를 향해 새로운 관계의 정립을 제안한 오바마 대통령도 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역사학도로서 저는 인류 문명이 이슬람에 진 빚에 대해서도 알고 있습니다. 수 세기에 걸쳐 배움의 빛을 전하고 유럽의 르네상스와 계몽운동이 나아갈 길을 깔 아준 것은 바로 이슬람, 알 아즈하르 대학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대수학( 代 數 學 ), 나침반과 항해 도구, 펜과 제지술, 전염병의 확산 경로와 치료 방법을 알아낸 것 도 무슬림 사회의 혁신 덕분이었습니다. 이슬람 문화로 인해 우리는 웅장한 아치 와 하늘을 향해 치솟은 첨탑, 영원히 남을 시와 소중한 음악, 우아한 서예와 평화 롭게 명상할 수 있는 공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한, 역사적으로 이슬람은 종교적 관용과 인종적 평등의 가능성을 말과 행동을 통해 실천해왔습니다. 10. 서구열강의 부상과 이슬람 세계의 몰락 : 그러나 제행무상! 15, 6세기 전성기를 지나 침체기에 접어든 이슬람 사회는 늙어 있었다. 특히 종교적 자만에 빠진 울라 마(종교지도자)들은, 이조( 李 朝 ) 말 유림( 儒 林 )이 그랬듯이, 시대의 변화, 특히 서 유럽 사회의 비약적인 발전을 백안시했다. 예를 들어, 울라마들은 서구의 인쇄술

18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을 비이슬람적인 것으로 규정, 도입을 가로 막았다. 그들은 인쇄술이 학문적 지식 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보급에 활용되기보다는 무지한 사람들에 의해 오용될 위 험이 있으므로 도입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적, 사회적 압력에 밀려 인쇄술 도입을 마지못해 인정한 후에도 그들은 꾸란은 성스러운 책이므로 그 대 상이 아니라고 저항할 정도였다. 철도, 전기, 전신, 의료기술 등 서양에서 발명된 여타 문명의 이기에 대해서도 울라마들은 오랫동안 이와 같은 태도를 견지했다. 결국 개방적이고 진취적이던 이슬람 사회는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사회로 변해갔 고, 이렇게 서서히 활력을 잃은 이슬람 국가는 하나 둘 서구열강의 식민지로 전락 하게 되었다. 11. 터키의 선택과 3가지 종류의 이슬람 :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 서구의 식민지로 전락할 위기에서 그나마 터키민족을 구한 인물은 무스타파 케말 장군이었다. 아타 투르크, 즉 터키민족의 아버지 로 불리게 될 그는 쓰러져가는 오스만 제국을 미 련 없이 버리고 공화주의, 민족주의, 세속주의 등을 국시로 삼아 터키공화국을 수 립했다. 이는 400여 년 간 이슬람 세계의 종주국을 운영했던 민족이 이슬람을 정 치에서 배제했음을 의미했다. 이로 인한 이슬람 세계의 충격은 컸다. 이슬람 문명 의 영광에 미련을 버리지 않았던 사람들은 이슬람이 터키민족을 가장 필요로 할 때, 터키민족이 이슬람을 버렸다고 비난했다. 이러한 비난에 대해 한 터키 지식인 은 다음과 같이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우리 터키인들은 이슬람과 결별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아랍인들의 생 각이죠. 이슬람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정작 그들입니다. 세상에는 세 가 지 종류의 이슬람이 있습니다. 꾸란의 종교로서의 이슬람, 울라마들의 종교로서의 이슬람, 그리고 (무지한) 대중의 종교로서의 이슬람이 그것입니다. 마지막 것은 미 신이자 기복신앙이고 물신숭배에 불과한 것이므로 여기에서 거론할 필요조차 없습 니다. 두 번째 이슬람, 그것은 오늘날 낡아빠진 율법주의, 그 무게 때문에 수렁에 빠진 수레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충치치료를 받기 위해 치과의사에게 가

제1부 이슬람과 인권 19 기 전에 먼저 울라마에게 찾아가 파트와 를 3) 써주십사고 해야 한다면, 이게 도대 체 말이 되는 소립니까! 터키가 버린 것은 이 두 번째 이슬람입니다. 그런 이슬람 을 버려야 할 때가 되었고, 그래서 버린 것이죠. 그를 통해 우리는 무슬림 세계를 선도한 것입니다. 이슬람은 개혁을 필요로 합니다. 이 점에 있어서 터키는 여전히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는 국가입니다. 4) 12. 이슬람 세계 정치지도자들의 선택 :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서구 열강의 식민 지배가 물러나는 과정에서 이슬람 세계의 정치적 헤게모니를 장악한 세력은 - 사 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 몇몇 토후국을 제외하곤 - 모두 세속적인 엘리트 집 단, 구체적으로는 터키, 아랍, 이란 등지의 민족주의자들이었다. 이집트, 시리아, 이락 등의 아랍 세계에서도 사회주의적 민족주의 노선을 주창하는 세력이 집권을 했고, 당시 이란을 지배한 팔레비 왕조가 내세운 기치도 옛 이란의 영광, 이슬람 이전에 페르시아가 누렸던 영광을 중흥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렇듯 세속주의자들이 지배한 이슬람 세계에서 이슬람을 선양하는 목소리는 거 의 들리지 않았다. 설사 그런 소리가 있어도, 이미 이슬람 전통에 식상한 대부분 의 무슬림들은 그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러한 정황은 당시 한반도에서 유교 나 불교와 같은 전통종교가 놓여있던 처지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이 슬람은 이제 세상물정 모르는 시골 아낙이나 시대에 뒤떨어진 노인들 외에는 아 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유물처럼 보였다. 13. 20세기 후반 - 또 다른 이슬람의 출현 : 60년대 말 70년대 초, 해방과 독립, 그리 고 건국에 따른 사회적 흥분이 차츰 식으면서 수십 개 국민국가로 분리된 무슬림들 은 차츰 현실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당시 이집트, 시리아 등 주요 이슬람 국가가 처 해 있던 시대적 정황은 경제적 침체, 정치적 억압, 그리고 대 이스라엘 전쟁에서의 3) 울라마들이 발행하는 법률적 소견서. 4) Wilfred Cantwell Smith, Islam in Modern History, 1957, pp. 176f..

20 제11차 인권교육포럼 패배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1973년의 오일쇼크, 즉 대이스라엘 전쟁에서 이스라엘 을 돕는 미국과 서방세계를 견제하기 위해 아랍 산유국들이 취한 석유자원 무기화 정책은 이슬람권 비산유국의 경제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혔다. 이는 역설적으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반체제 운동을 촉진시켰다. 경제적으로는 무능하고 정치적으로 는 억압을 일삼는 정권에 대한 비판과 이상적인 사회적 대안을 제시함에 있어서 이 들보다 더 정교한 이론과 이념을 지닌 그룹은 달리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70년대 중반 80년대 초에 이르러서는 이슬람을 기치로 내 세운 운동조직들이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이슬람 대안 그룹을 통해 마르크스주의자들을 견제하고자 했던 정부의 전략, 전 세계 이슬람 조직에 대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재정지원,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보여준 이중성, 이란 이슬람혁명의 성공, 전 세계 무슬림들의 정서를 크게 자극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그에 이은 공산권의 몰락, 서구 자본주 의 사회가 보여준 쾌락주의적, 물질주의적 경향에 대한 거부감 등이 종합적으로 어울려 큰 역할을 했다. 가까이는 동남아시아의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서부터 멀리는 북아프리카의 모로코, 알제리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이슬람은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금요 집단예배는 물론, 자카트, 즉 종교세와 성지순례에 참여하는 무슬림의 수가 점점 더 많아지고, 수염을 기른 남성, 베일을 쓴 여성이 점점 더 빈번하게 눈에 띠고, 신문, 방송 등 대중언론 매체에서는 이슬람 관련 기사와 기획 프로그램을 대폭 늘 려 편성하고 있다. 이슬람과 현대사회를 주제로 한 학술대회도 더욱 잦아지고, 또 그를 주제로 한 논문이나 교양서적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술, 도박, 매춘 등을 추방하고, 샤리아를 보다 폭넓게 적용하라는 요구의 목소리도 더욱 커지고 있다. 정부 당국도 모스크 건립, 이슬람 교육기관 지원금 증액 등을 통해 무슬림 대중의 호감을 얻으려 노력하고 있다. 자선사업을 통해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시민단체로부터 지하 혁명조직에 이르기

제1부 이슬람과 인권 21 까지 오늘날 이슬람 세계에서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조직은 다양하다. 그 가운데 국가와의 전면전까지 불사하는 급진적인 운동을 포함, 이슬람 원리주의 혹 은 이슬람주의로 분류되는 몇몇 주요 조직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레바논의 신 의 당(히즈볼라), 이슬람 희망(이슬람 아말), 하마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알제 리의 이슬람 구국전선, 이슬람의 요람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태어난 알 카에다,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 이슬람해방기구, 지하드 사회, 불신과 이주(타크피르 와 알 히즈라), 신의 군대(준드 알라), 인도의 경건주의자 협회(타블리그), 튀니지의 이슬람 경향운동, 부흥당(엔나흐다), 파키스탄의 이슬람 사회(자마아티 이슬라미). 이들 조직은 범국가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이슬람 세계는 물론 한국을 포함 전 세 계에 흩어져있는 디아스포라 무슬림 공동체에도 크고 작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오늘날 순니파 이슬람 세계에서 이슬람 부흥운동을 이끌고 있는 대부분의 인물 은 전통적인 울라마들이 아니라 교사, 전기기사, 의사, 엔지니어, 학자 등 일반 지 식인들이다. 이들은 꾸란이나 하디스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에 구애됨이 없이 자유 롭게 그를 인용, 자신들의 이념적, 정치적 담론에 활용한다. 사다트 대통령 암살 그룹이 가리워진 명령 이란 제목으로 공포한 성명서가 이러한 경향을 극단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성명서에서 반이슬람적인 권력에 지하드를 선포하기 위 해서는 이슬람 운동 투사들이 울라마들을 대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아파 이슬람 세계, 구체적으로 이란에서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 울라마들 스스로 정권의 주인이 되었다. 즉 1970년대에 걸쳐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적극적 으로 서구화에 박차를 가했던 레자 팔레비 국왕이 급격한 근대화, 산업화에 따른 부작용으로 인하여 야기된 민중봉기를 수습하는데 실패하고 프랑스로 망명의 길을 떠난 뒤, 그를 대신해 정권을 잡은 인물은 아야톨라 호메이니와 그의 추종자들이 었다. 1979년 1월의 일이다. 5) 5) 이 글은 2008년 6월호 불교평론 에 이슬람 신정정치의 이상과 그 변질 이란 제목으로 실린 필자 의 글에서 인용한 것이다.

22 제11차 인권교육포럼 14.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 : 이로써 벨러야테 파키, 즉 이슬람 고위 율법학자, 파키들로 구성된 종교전문가회의에서 선출한 최고지도자가 통치하는 이슬람공화국 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는 시아파 이슬람은 물론 이슬람 정치사를 통틀어 유례가 없는 정교일치체제로서, 여기에서는 최고위 울라마가 국민들이 뽑은 대통령이나 국회보다 더 실질적이고도 강력한 권력을 쥐고 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 정확하게는 이슬람주의자라고 불러야 할 이들의 이슬람 은 하느님의 사자, 무함마드에 의해서 창시된 이슬람,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세 계종교이자 이슬람 문명의 주인이었던 이슬람 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슬람 주의자들의 정치적 이슬람은 그들 에 의해 선별적으로 취합되고, 자의적으로 해석 된 이슬람의 정치적 교의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희수 교수가 발제의 글에서 지적했듯이 그들은 서구의 민주주의는 권력이 시 민으로부터 나오지만 이슬람에서는 권력이 신으로부터 나온다 는 말로 자신의 논리 로 포장한다. 그리고 우리는 신의 허락과 함께 한 명의 선지자를 보냈으니, 이는 오직 그의 말에 따르기 위함이다 (4-64)라는 꾸란 구절, 하느님의 사자 무함마드 이 후로는 초대 칼리프들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논리를 오늘날 이란 최고 지도자나 일부 무슬림 국가의 수장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꾸란의 가르침들이 현대국가 독재자들의 권력횡포의 그럴싸한 명분으로 그럴싸하게 포장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이들은 - 중세 교황청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분을 욕되게 했듯이 - 이슬람의 이름으로 이슬람을 욕되게 하고 있다. 15. 계획적이고도 치밀한 박해와 탄압 : 이슬람을 정치이념으로 내세워 혁명에 성 공, 절대적인 권력을 장악한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혁명정권은 고등교육기관의 이 슬람화를 추진하는 한편, 혁명에 동참했던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들을 일체의 권 력에서 배제시켰다. 혁명 초기 이란 정부는 비이슬람적인 학과와 강좌를 없애고

제1부 이슬람과 인권 23 교수들을 숙청하기 위해 대학을 몇 년씩 폐쇄하기까지 했다. 그 결과 좌익성향의 대학생들과 교수들은 모두 대학에서 추방당했다. 특히 이란 내 종교적 소수집단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바하이 공동체에 대한 탄압은 계획적이고도 치밀하게 자행되어, 바하이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대학이나 공직에서 추방되었다. 16. 종교적 탄압의 대상 - 바하이 : 바하이 공동체에 대한 박해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바하이들의 집회는 모두 금지되고, 공동체를 이끄는 조직은 해산되고, 재 산은 몰수되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200여 명의 바하이들이 공개적으로 혹은 은 밀하게 처형을 당했다. 그 가운데는 아이들과 여성도 상당 수 포함되어 있었다. 17. 박해와 탄압으로 점철된 바하이 역사 : 바하이교의 역사는 실은 초창기부터 박 해와 탄압으로 점철되어 있다. 바하이교 출현에 산파역할을 했던 바압은 1850년 26세의 젊은 나이에 공개처형을 당했고, 바하이교의 창시자 바하올라는 평생 수인 ( 囚 人 )의 몸으로 먼 타향에서 귀양살이를 해야 했다. 6) 1844년 세상에 태어난 바하이교 초창기, 이 신교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했던 사람은 2만 명이 넘었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1848년부터 바압이 순교한 1850년까 지 약 3년 사이에 - 단지 새로운 종교에 귀의했다는 이유로 - 목숨을 잃은 사람 이 5천명에 이를 정도이니 그 탄압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7) 18. 1948년 세계인권선언이 있은 후에도 : 이러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바하이 공동 6) 바하이교에 대해서는 필자의 논문 바하이교의 역사적 개관. 한국이슬람학회논총 제13-1집(2003) 69-108쪽을 참조하라. 7) Die Baha'i in Iran : Dokumentation der Verfolgung einer religioesen Minderheiten. Hrsg. Nationalen Geistigen Rat der Baha'i in Deutschland. 1985. p.41; Richard, Yann. Shiʾite Islam. 1995. p.72 참조.

24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체는 어느새 이란 내 최대 규모의 종교적 소수집단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탄압은 1948년 세계인권선언이 있은 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정치학적으로 볼 때, 지난 150년 동안 정도를 달리하며 간헐적으로 이루어진 바하이들에 대한 박해는 정치적 목적을 위한 방편으로 어디선가 속죄양을 찾는 집권세력의 농간과 무관하지 않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아무런 힘도 없는 30 만 명 정도의 소수집단, 바하이 공동체에 대한 이란 정부의 탄압이 그를 잘 말해 준다. 19.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종교탄압 : 이란 이슬람 혁명정부에 의해서 자행된 바하 이에 대한 탄압은 UN주재 BIC(바하이국제공동체)의 호소와 엠네스티 인터내셔널, 휴먼 라이트 워치 등 국제적인 인권단체의 관심, 그리고 서방언론의 보도를 통해 차츰 세상에 알려졌고, 유엔, 유럽의회 등에서도 정식의제로 논의가 되었다. 이란 이슬람 공화국 정권에 의한 바하이 탄압은 - 북한 인권문제와 함께 - 매년 제네바에서 개최되는 유엔 인권위원회는 물론 미 국무성에서 발간하는 종교자유보 고서, 인터내셔널 엠네스티에서 발간하는 인권백서 등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어젠 다가 된지 이미 오랜 상황이다. 20. UN 및 국제인권단체의 항의 : 주로 울라마들의 획책과 선동에 의해 간헐적으로 이루어진 바하이들에 대한 박해는 신앙의 자유를 천부인권으로 신성시하는 현대사 회의 규범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한 때 세계를 주도했던 위대한 문명을 일구어 낸 꾸란의 이슬람, 평화와 정의를 지향하는 이슬람 역사상 유래가 없는 현상이다. 국제사회의 여론이 악화되고, 1985년 유엔 총회에서 이에 대한 우려를 공식 표 명한 후 바하이에 대한 처형은 급감했으나, 이란 정부의 차별과 박해는 여전히 계 속되고 있어 세계 각국의 언론과 인권단체가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제1부 이슬람과 인권 25 21. But Korea... :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이란 이슬람 혁명 이후 아야톨라 호메이니 정권에 의해 자행된 이러한 인권유린을 거의 모르고 있다. 일 체 보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타임지나 뉴스위크지 등 해외에서 직송된 저널들도 가위질을 당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들어 세계일보, 뉴시스 등 몇몇 언론이 외신을 인용, 그에 대한 소식을 간간이 보도하고, 또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국제적인 인터넷 언론매체나 유투브, 또는 관련 단체의 웹사이트를 통해 자유롭게 뉴스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22. 2008년 바하이 지도자 7명 체포구금 : 다음은 2008년 8월 21일자 세계일보가 워싱턴 포스트지에 실린 니르 봄스, 美 중동 자유센터 부총재의 논평기사 가운데 일부로 지금 이 시각에도 바하이들에 대한 탄압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강경파 대통령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정권을 잡은 이 후 지난 몇 년 동안 이란의 인권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이란 국민 가운데서 인권침해로부터 안전한 계층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30만명이 넘는 바하이 공 동체 같은 소수파 종교집단들은 계속 공격받고 있다.... 지난 (2008년) 5월 테헤 란에 있는 바하이 지도부 인사 7명이 체포되었다. 의도적인 공포 및 협박 운동의 일환으로 이란 전국에서 50명이 추가로 체포되었다. 8)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던 바하이 공동체에 대한 탄압이 재개된 것이다. 이들에 대한 재판은 구금 후 약 20개월이 지난 금년 1월에야 겨우 시작되었다. 변호는 독실한 무슬림으로서 여성과 아동 인권신장에 기여한 공로로 2003년에 노벨평화 8) 세계일보 2008-08-21 WP-Iran s blood-drenched mullahs / 국민의 인권을 탄압하는 이란 [WT논평]

26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상을 수상했고, 지난해에는 만해평화상을 수상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방문하기도 했던 시린 에바디 여사가 맡고 있다. 그러나 그녀 역시 거의 망명 상태에서 정부 의 철저한 감시와 통제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23. 어떤 근거로, 무슨 이유로?! : 그러면 왜 바하이들은 초창기 이래 종교적 박해 의 대상이 되었을까? 또 지금의 이란 이슬람 정권은 어떤 근거로, 그리고 무슨 이 유로 국제적 비난을 무릅쓰면서까지 바하이들을 탄압하고 있는가? 24. 이슬람의 적이다! : 바하이들에 대한 탄압은 지난 160여 년 간 꾸준히 계속되 었다. 그 동안 이란을 지배한 그 어떤 집권세력도 이 점에서는 예외가 없었다. 처 음 1세기 동안은 주로 종교적, 신학적 이유로 박해를 했다. 바하이는 배교자이고 이교도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 이후엔 그럴듯한 정치적 혐의가 하나 둘 추가되 었다. 바하이 신앙은 제정 러시아 정권의 산물이다. 대영제국 식민주의의 꼭두각 시이다. 미국이 추진하는 패권주의의 앞잡이다. 공산주의와 관련이 있다. 시오니즘 에 의해 조정되고 있는 정치조직이다 등이 그것이다.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 정권이 바하이들에게 들이 댄 혐의는 크게 다섯 가지이 다. 1) 바하이들은 지난 팔레비 정권을 도왔으며, 현 정부에 반대하는 정치조직이 다. 2) 바하이들은 지난 정권의 비밀경찰 SAVAK을 도와 일했다. 3) 바하이들은 이슬람의 적이다. 4) 바하이들은 시오니즘의 앞잡이다. 5) 바하이들은 매춘과 간통 을 범한다. 이러한 주장이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다는 사실은 바하이 신 앙의 주요 가르침에 대해 조금이라도 살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러 나 이러한 혐의가 대중을 선동하는 데는 안성맞춤일 수 있다는 사실을 독재정권 을 체험한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제1부 이슬람과 인권 27 25. 바하이 신앙의 주요 가르침 : 바하이 신앙의 주요 가르침을 대업의 수호자 로 불리는 쇼기 에펜디(1897-1957)의 글을 통해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바하이 신앙은 하느님의 유일성을 받들고, 하느님의 현시자들의 일체성을 믿으 며, 인류가 전체로서 하나라는 원칙을 고취시킵니다. 바하이 신앙은 인류통합의 필요성과 필연성을 역설하고, 그것이 서서히 실현되고 있음을 확신하며, 다름 아 닌 하느님의 정신이 지닌 변혁의 힘이 이를 기필코 성사시킬 것이라는 사실을 천 명합니다. 더 나아가 바하이 신앙은 추종자들에게 독자적인 진리 탐구라는 기본적 인 의무를 강조하고, 모든 종류의 편견과 미신을 타파하며, 종교의 목적이 우애와 화합의 증진에 있음을 선언하고, 종교와 과학의 본질적인 조화를 선양하며, 또한 종교는 인류사회의 순조로운 발전과 안녕을 위해서 가장 요긴한 것임을 확인합니 다. 바하이 신앙은 권리와 기회와 특권에 있어서 남녀가 동등하다는 원칙을 분명 히 밝히며, 의무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일부일처제를 의무화하며, 이혼을 지양 하고, 자신이 속한 국가에 대한 절대복종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봉사의 정신으로 행한 모든 행위를 예배의 차원으로 높이고, 국제 공통언어의 채택 내지 창제를 독려하며, 인류사회에 보편적인 평화를 수립하고 유지하는데 있어서 필수 불가결 한 각종 제도적 장치의 윤곽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9) 26. Postislamic Islam, Baha'i Faith : 바하이 신앙은 1844년, 이슬람력으로는 1260 년 오늘날의 이란인 페르시아에서 태어났다. 바하이들은 창시자 바하올라의 가르 침에 따라 하느님의 유일성을 믿으며,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은 물론 조로 아스터교와 힌두교와 불교 등 모든 세계종교가 하느님의 점진적인 계시에 의해 태어났고, 또 앞으로도 인류가 지상에 존재하는 한 그럴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 에 따라 바하이들은 무함마드가 그리스도 이후에 출현한 하느님의 사자이듯, 바하 올라가 무함마드 이후 인류에게 보내진 그분의 사자임을 믿는다. 9) Shoghi Effendi. God Passes By. 1979. pp. 281-282.

28 제11차 인권교육포럼 부단한 박해와 탄압에도 불구하고 바하이 신앙은 그 동안 전 세계로 퍼져나가 현 재 그리스도교 다음으로 많은 나라에 전파되어 있는 세계종교로 자리 잡고 있다. 2007년 5월 15일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바하이 교의 신자 증가율은 가장 높은 1.8%인 이슬람에 이어 1.7%로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2가지 사실, 즉 무함마드가 그리스도 이후에 출현한 하느님의 사자이듯, 바하올라가 무함마드 이후 인류에게 보내진 그분의 사자임을 믿는다 는 사실과 이슬람 세계에서 태어난 바하이 공동체가 이슬람 못지않게, 아니 실재로는 그보다 더 빨리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종교지도자나 종교학자가 아니더라도 주 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바하이들이 탄압받는 신학적, 정치적 이유가 있다. 27. 예언자의 인장( 印 章 ) : 바하이 신앙의 창시자 바하올라가 이슬람의 창시자 무 함마드 이후 인류에게 보내진 하느님의 사자라는 바하이들의 믿음은 무함마드가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보낸 최후의 사자( 使 者 ) 라는 이슬람 교리에 정면으로 반하 는 것이다. 무함마드 이후로는 어떤 예언자나 사도도 출현하지 않을 것이고 새로운 믿음도 탄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교리의 근거로 울라마들이 제시하는 것은 꾸란 구절, 카 탐 안 나비나, 즉 무함마드는 예언자들의 인장( 印 章 ) 이라는 계시이다. 더 정확하 게 말하면 11세기 초, 이슬람력으로는 4세기 말, 이슬람 문명의 황금시대를 이끌 었던 선배 울라마들의 이 구절에 대한 끼야스(유추/해석)와 이즈마(합의)가 종결되 었고, 그를 통해 이슬람의 확고한 율법, 샤리아에 새겨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희수 교수가 지적했듯이 이슬람인권카이로선언(Cairo Declaration on Human Rights in Islam)은 모두 샤리아에 준한다(제24조, 25조)는 단서를 달고 있 다. 10)

제1부 이슬람과 인권 29 28. BCD ㅅㅅㅅ : 영어권에 B와 D 사이에는 C가 있다는 말이 있다. Birth, 즉 태 어나고 Die 죽는 것은 신이 정한 것이나, 그 사이의 일은 C, 즉 인간의 선택에 달렸다는 말이다. 한글로 변환하면 3ㅅ, 곧 생( 生 )과 사( 死 )는 하늘이 정한 것이나 그 사이의 일은 우리의 선택( 選 擇 )에 달려 있다. 꾸란에 단 한 번 등장하는 구절, 카탐 안 나비나 를 마지막 예언자, 최후의 예언자 로만 해석해야 할지, 혹은 그렇게 해석하고 그렇게 결론 내린 중세 울라마 들의 합의를 절대적인 진리로 지킬 것인지는 무슬림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러나 그러한 교리를 근거로 세계인권선언이 선포된 지 60년이 지난 오늘날, 그것도 국제사회가 맨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무고한 바하이들의 인권을 그 토록 유린하는 이란 이슬람 정권의 행태를 그냥 듣고도 못 들은 척, 보고도 못 본 척 할 건지는 우리들 각자의 몫이다. 29. We are ashamed... : 이 문제와 관련하여 최근 대단히 용기 있는 선택을 한 무슬림들이 있어 기쁜 마음으로 여기에 소개한다. 11) 미국, 캐나다, 독일 등 세계 전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군의 이란인 학자, 작가, 예술가, 언론인, 활동가들이 2009년 2월 4일 바하이 공동체에 보낸 공개서한이 그 것이다. We are ashamed!'라는 제목 하에 발표된 이 서한에서 그들은 지난 1세기 반 동안 이란에서 자행된 바하이들에 대한 박해와 탄압에 대해 일체 침묵을 지킨 것 을 대단히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밝힌 다음, 세계인권선언이 정한 모든 권리가 바 10) 카이로 선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논문 이슬람 인권사상과 카이로인권선언 철학논총 제32 집 제2권 pp.291-310을 보라. 11) 출처 : http://www.youtube.com/watch?v=exoyndhp_wa

30 제11차 인권교육포럼 하이들에게도 주어지도록 돕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12) CNN을 통해 보도가 되기도 한 이 공개서한의 내용은 유투브를 통해서도 접할 수 있다. 30. The Muslim Network for Baha'i Rights 바하이들의 권리를 위한 무슬림 네트 워크 : 또 하나의 고무적인 사례는 바하이들의 인권신장을 위해 활동하는 무슬림 들의 네트워크이다. 이번엔 이슬람 세계에서 종교간 대화와 협력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젊은 무슬림들이 그 주인공으로, 이란 울라마 정권의 입장에서는 이적행위를 하는 내부고발자로 간주될 수밖에 없는 이들은 주로 인터넷 웹사이트 (www.bahairights.org) 공간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프랑스에 망명한 이란 여성으로 독특한 애니메이션을 통해 세계적인 명 성을 얻은 마르잔 사트라피(Marjan Satrapi)의 대표작 페르세폴리스(Persepolis)를 각색하여 이란 내 바하이들의 인권유린 실태를 고발하는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슬람 세계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이 외에도 http://www.mideastyouth.com/censeo/, http://www.iranpresswatch.org/ 등에서 바하이 인권문제의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바하이 공동체와 무관한 무슬림들의 이니셔티브로 구축, 유지되고 있는 웹사이트이다. 중세 그리스도 교회가 소수의 양심적인 성직자, 학자, 교인들의 피와 땀, 펜과 잉크를 통해 암흑시대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올 수 있었듯이, 독재와 폭정 아래 신 음하는 이슬람 세계도 진정으로 평화와 정의를 사랑하는 이들 용기 있는 무슬림 지식인들, 젊은이들의 노력을 통해 하루빨리 자랑스러운 관용과 포용의 전통을 회 복하길 기대해 본다. 12) 자료 첨부

제1부 이슬람과 인권 31 첨부 : We are ashamed! We are ashamed! 출처 : http://www.youtube.com/watch?v=exoyndhp_wa! سکوت کافیست enough! Morning Has Broken Silence against Bahais is http://www.iranpresswatch.org/2009/02... http://www.asre-nou.net/php/view_prin... The following is an open letter from a group of academics, writers, artists, journalists and Iranian activists throughout the world to the Bahai community. This letter has been signed by a large number of the most prominent Iranian intellectuals. We are ashamed! Century and a half of silence towards oppression against Bahais is enough In the name of goodness and beauty, and in the name of humanity and liberty! As Iranian human beings, we are ashamed for what has been perpetrated upon the Bahais in the last century and a half in Iran. We firmly believe that every Iranian, without distinction of any kind, such as, race, color, sex, language, religion, politics or other opinions, and also without regard to ethnic background, social origin, property, birth or other status, is entitled to all the rights and freedoms set forth in the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However, from the very inception of the Bahai Faith, the followers of this religion in Iran have been deprived of many provisions of human rights solely on account of their religious convictions. According to historical documents and evidence, from the commencement of the Babi Movement followed by the appearance of the Bahai Faith, thousands of our countrymen have been slain by the sword of bigotry and superstition only for their religious beliefs. Just in the first decades of its establishment, some twenty thousand of those who stood

32 제11차 인권교육포럼 identified with this faith community were savagely killed throughout various regions of Iran. We are ashamed that during that period, no voice of protest against these barbaric murders was registered; We are ashamed that until today the voice of protest against this heinous crime has been infrequent and muted; We are ashamed that in addition to the intense suppression of Bahais during its formative decades, the last century also witnessed periodic episodes of persecution of this group of our countrymen, in which their homes and businesses were set on fire, and their lives, property and families were subjected to brutal persecution but all the while, the intellectual community of Iran remained silent; We are ashamed that during the last thirty years, the killing of Bahais solely on the basis of their religious beliefs has gained legal status and over two-hundred Bahais have been slain on this account; We are ashamed that a group of intellectuals have justified coercion against the Bahai community of Iran; We are ashamed of our silence that after many decades of service to Iran, Bahai retired persons have been deprived of their right to a pension; We are ashamed of our silence that on the account of their fidelity to their religion and truthfulness in stating this conviction, thousands of Bahai youth have been barred from education in universities and other institutions of higher learning in Iran; We are ashamed that because of their parents religious beliefs, Bahai children are subjected to denigration in schools and in public. We are ashamed of our silence over this painful reality that in our nation, Bahais are systematically oppressed and maligned, a number of them are incarcerated because of their religious convictions, their homes and places of business are attacked and destroyed, and periodically their burial places are desecrated;

제1부 이슬람과 인권 33 We are ashamed of our silence when confronted with the long, dark and atrocious record that our laws and legal system have marginalized and deprived Bahais of their rights, and the injustice and harassment of both official and unofficial organs of the government towards this group of our countrymen; We are ashamed for all these transgressions and injustices, and we are ashamed for our silence over these deeds. We, the undersigned, asked you, the Bahais, to forgive us for the wrongs committed against the Bahai community of Iran. We will no longer be silent when injustice is visited upon you. We stand by you in achieving all the rights enshrined in the Universal Declaration of the Human Rights. Let us join hands in replacing hatred and ignorance with love and tolerance. 1. Abdolalian, Morteza, Journalist, CJFE Board of Directors - Canada, Oakville 2. Abghari, Shahla, Professor, Life University USA, Atlanta 3. Abghari, Siavash, Professor, University of Georgia USA, Atlanta 4. Ahmadi, Ramin, Professor, Yale University USA, Yale 5. Almasi, Nasrin, Managing editor of Shahrvand- Canada, Toronto 6. Bagherpour, Khosro, Poet /Journalist Germany 7. Baradaran, Monireh, Writer/Human rights activist - Germany 8. Beyzaie, Niloofar, Play writer/theatre Director Germany, Frankfurt And For more Information Please Clik hier : http://www.iranpresswatch.org

34 제11차 인권교육포럼 토론2 이슬람과 인권 토론문 박현도(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상임연구원) 이슬람과 인권을 다룰 때 어려운 점은 범위규정입니다. 발제자가 발제문 첫 머 리에 언급하였듯, 이슬람의 인권, 무슬림 사회의 인권, 무슬림 다수 사회의 인권 등 개념정의의 문제가 상존하기 때문입니다. 발제자는 이슬람에서 보는 인권의 개념과 무슬림 사회가 처하고 있는 현실적인 인권의 실상에 관한 것 으로 보고 논의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발제자가 논의할 주제를 광범위하게 제시할 뿐, 본인의 견해를 정확히 밝히지 않고 있기에 본 토론자가 동의하거나 반박할 논 점이 없습니다. 아마도 활발한 토론을 위해 논의주제를 다소 넓게 제시한 것이 아 닌가 생각합니다. 다만 마지막 부분에서 발제자가 서구와 이슬람 세계의 인권에 대한 인식 차이 를 정치적 현안과 관련지어 논의한 점을 주목합니다. 발제자는 테러와 이슬람의 가르침은 별개의 코드 라고 하면서 서구의 억압에 대한 방어기제를 이슬람의 비 평화성과 결부시키는 것은 지나친 사실 왜곡이라고 주장합니다. 사실 이슬람과 인 권이라는 이번 종교와 인권 세미나 주제는 세계 정치질서와 맞물려 폭발성을 지 닌 민감한 현안입니다. 그러나 인권을 정치와 연관하여 다루면 단 한발자국도 진 전할 수 없이 악순환의 논리에 빠져들고 맙니다. 정치적 담론을 완전히 배제하기 는 어렵겠지만, 최대한 절제하고 논의의 초점을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이 해석하 는 인권에 초점을 두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발제자가 마지막 부분에 제시한 현실정치와 인권의 문제는 이슬 람과 인권이라는 논의의 초점을 흐린다고 생각합니다. 소수의 폭력성향 무슬림을

제1부 이슬람과 인권 35 보고 이슬람을 폭력의 종교로 간단히 규정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이들의 주장과 행동 근거가 이슬람 해석에 근거하고, 또 이슬람 해석은 무슬림마다 다양하기에 이슬람을 마냥 비폭력을 옹호하는 가르침만으로 볼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 리스도교인들처럼 무슬림들 역시 종교의 이름으로 살인, 인권탄압을 해왔기 때문 입니다. 실례로 이슬람법을 근거로 여성, 소수 종파를 탄압하는 파키스탄, 이란, 사우디 아라비아 등의 현실은 단순히 서구의 압박 내지 현대 정치의 산물이라고 보기 어 렵습니다. 또 팔레스타인의 하마스는 비록 민의에 의해 선출된 정권이지만, 무슬 림의 통치만을 인정하고 타 종교인은 보호받을 대상으로 여기는 그들의 행동강령 을 고려할 때 적어도 오늘날 우리 한국인들이 받아들이는 현대적 인권의 개념을 인정하는 열린 정치집단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들의 뿌리가 되는 무슬림 형제 단 역시 그러하고, 이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 이른바 이슬람 근본주의 내 지 정치이슬람주의자들 역시 보편적 인권의식을 지니지 못하고 있는 것은 명확한 사실입니다. 따라서 서구에 대한 투쟁과 인권은 따라서 최대한 분리해서 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무슬림들이 인정하기는 어렵겠지만, 이슬람이 평화와 인권을 가르침에도 불구하 고 오늘날 무슬림이 다수인 국가에서는 현대세계의 보편적 인권 개념에 상치되는 부당한 행위, 특별히 여성 및 비무슬림 종교인, 그리고 성적소수자(동성애자)에 대 한 박해가 이슬람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따라 서 본 토론자는 엄중한 현실을 직시한 채 이슬람과 인권을 추상적이 아니라 현실 적인 관점에서 치열하게 논의할 것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2. 참여자들의 이해와 보다 활발한 논의를 위하여 발제자가 언급한 꾸란을 본문 대로 옮겨봅니다 (한국이슬람교 최영길 선생 번역본). (1) 2쪽 평등의 인권 - 49:13: 사람들이여 하나님이 너희를 창조하사 남성과 여

36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성을 두고 종족과 부족을 주었으되 서로가 서로를 알도록 하였노라 하나님 앞에 서 가장 크게 영광을 받을 자는 가장 의로운 자로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며 관 찰하시는 분이시라 ي ا ا ي ه ا الن اس ا ن ا خ ل ق ن اك م م ن ذ ك ر و ا نث ى و ج ع ل ن اك م ش ع وب ا و ق ب اي ل ل ت ع ار ف وا ا ن ا ك ر م ك م ع ند الل ه ا ت ق اك م ا ن الل ه ع ل يم خ ب ير (2) 2쪽 세계인권 선언과 합치 - 17:70: 하나님은 아담의 자손에게 은혜를 베풀 어 육지와 바다에서 그들을 운반하여 주고 그들에게 좋은 양식을 부여하여 하나 님이 창조한 어떤 것보다 그들을 위에 두었노라. ك ر م ن ا ب ن ي ا د م و ح م ل ن اه م ف ي ال ب ر و ال ب ح ر و ر ز ق ن اه م م ن الط ي ب ات و ف ض ل ن اه م ع ل ى ك ث ير م م ن خ ل ق ن ا ت ف ض ي لا (3) 3쪽 사형제 - 17:31: 궁핍의 두려움으로 너희 자손을 살해하지 말라 하나님 이 그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나니 너희에게도 마찬가지라 그럼으로 그들을 살해 하는 것은 큰 죄악이라 و لا ت ق ت ل وا ا و لاد ك م خ ش ي ة ا م لاق ن ح ن ن ر ز ق ه م و ا ي اك م ا ن ق ت ل ه م ك ان خ ط ء ا ك ب ير ا (4) 3쪽 사형제 - 2:178: 믿는 자들이여 살인의 경우 자유인 대 자유인 종복 대 종복 여성 대 여성으로 동등한 처벌규정이 기록되어 있노라 그러나 피해자의 형 제로부터 용서를 받은 자는 감사의 보상을 해야 되나니 보호자는 계율을 따른 것 이라 이것은 너희 주님으로부터 감형과 자비로다 그 후 범행을 범한 자는 고통스 러운 징벌이 그에게 있을 것이라 ي ا ا ي ه ا ال ذ ين ا م ن وا ك ت ب ع ل ي ك م ال ق ص اص ف ي ال ق ت ل ى ال ح ر ب ال ح ر و ال ع ب د ب ال ع ب د و ا لا نث ى ب ا لا نث ى ف م ن ع ف ي ل ه م ن ا خ يه ش ي ء ف ات ب اع ب ال م ع ر وف و ا د اء ا ل ي ه ب ا ح س ان ذ ل ك ت خ ف يف م ن ر ب ك م و ر ح م ة ف م ن اع ت د ى ب ع د ذ ل ك ف ل ه ع ذ اب ا ل يم (5) 4쪽 선교금지 - 2:256: 종교에는 강요가 없나니 진리는 암흑속으로부터 구 별 되니라 사탄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는 자 끊기지 않는 단단한 동아줄을 잡았노 라 하나님은 모든 것을 들으시며 모든 것을 알고 계시니라 لا ا ك ر اه ف ي الد ين ق د ت ب ي ن الر ش د م ن ال غ ي ف م ن ي ك ف ر ب الط اغ وت و ي و م ن ب الل ه ف ق د اس ت م س ك ب ال ع ر و ة ال و ث ق ى لا انف ص ام ل ه ا و الل ه س م يع ع ل يم

제1부 이슬람과 인권 37 (6) 4쪽 선교금지 - 10:99: 주님의 뜻이 있었다면 지상에 있는 그들 모두가 믿 음을 가졌을 수도 있었으리라 그대는 강요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믿게 하려 하느 뇨 و ل و ش اء ر ب ك لا م ن م ن ف ي ا لا ر ض ك ل ه م ج م يع ا ا ف ا نت ت ك ر ه الن اس ح ت ى ي ك ون وا م و م ن ين (7) 6쪽 민주주의 - 4:64: 선지자를 보냄은 너희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토록 함이며 이는 하나님의 뜻이었노라 그들 스스로 죄악을 저지르고 그대에게 찾아와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니 선지자가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사 그들은 너그러우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발견하더라 و م ا ا ر س ل ن ا م ن ر س ول ا لا ل ي ط اع ب ا ذ ن الل ه و ل و ا ن ه م ا ذ ظ ل م وا ا نف س ه م ج ا و وك ف اس ت غ ف ر وا الل ه و اس ت غ ف ر ل ه م الر س ول ل و ج د وا الل ه ت و اب ا ر ح يم ا

제2부 기독교와 인권 39 제2부 기독교와 인권

제2부 기독교와 인권 41 주제발표 한국 그리스도교의 인권담론과 신학적 성찰 안병무의 신학을 중심으로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1973년 일본 동경에서 김용복 오재식 지명관 등, 세 사람이 주축이 되어 3개국 언어(한국어, 영어, 일본어)로 작성 발표된 <1973년 한국 그리스도인의 선언> 1) (이 하 <선언>)은 1972년 말에 유신헌법 이 반포됨으로써 성립한 전체주의적 독재체 제에 대한 한국 그리스도교 최초의 본격적인 반대 표명이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 은, <선언>이 유신체제가 모든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체제라는 사 실을 전제하고 있음에도, 국가권력으로부터 특별히 기본권을 박탈당하는 이들( 가 난한 자들, 눌린 자들, 멸시받는 자들 )에 대한 그리스도교회의 방관적 태도를 회 개하고 그들에 대한 돌봄의 책임을 신앙적으로 다짐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즉 국민 으로 주체화된 이들의 기본권이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인 식을 전제하고 있지만, 특별히 비국민화 된 탈주체적 존재들의 박탈당한 기본권의 보장을 신앙 선언의 기조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비록 인권 이라는 명시적 표현이 담겨 있지는 않지만, <선언>은 한국 그리스도교 인권 선언으로서 1) 1987년 2월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가 편찬한 전 3권으로 된 1970년대 민주화운동 의 제1권 에서 수록된 한국 그리스도인의 신앙선언 은, 김흥수 교수에 의하면, 중앙정보부가 영문 텍스트를 번역 출 판한 자료에서 인용한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한국의 그리스도교 인권운동을 좌경 용공 집단으로 몰아가기 위한 고의적인 어휘 등이 선택적으로 사용되었다. 이때 그 영문 대본은 Korean Christian Manifesto, Christianity and Crisis (July 9, 1973). p. 140이나 Theological Declaration by Christian Ministers in the Republic of Korea, 1973, Gerald H. Anderson, ed. Asian Voices in Christian Theology (Maryknoll, New York: Orbis Books, 1976). pp. 241 245로 보인다. 그런데 동년 7월에 인권위원회가 8권으로 확대 개정본을 내면서 새 판본인 1973년 한국 그리스도인 선언 을 제1권에 수록했는데, 이는 이 문서가 편찬자 들이 위의 한국 그리스도인의 신앙선언 의 진본이라고 판단한 결과로 보인다. 김흥수, 1973년 한국 그리 스도인 선언>의 작성과 배포 과정 (기독교연구사연구소 제155회 연구모임 자료발표<1998.1.10>). http://www.salrim.net/bbs/view.php?id=salrimbiblestudy&page=1&sn1=&divpage=1&sn=off&ss=on&sc= off&keyword=그리스도&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01에서 재인용.

42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의 초석이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 문서는 당시 국제적으로 널리 유통되어 한국의 인권 상황에 대한 문제인식 을 전 세계적으로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였지만, 국가의 강력한 통제 아래 있는 국 내에서는 거의 반포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중앙정보부의 왜곡된 번역을 통해 유 통이 주도됨으로서 그것의 공적 사용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인식에 따라 반정부 세력들에 의해서도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않은 측면도 있다. 그러므로 <선언>은 비공식적으로만 제한적으로 수용되었고, 직접적인 영향력은 극히 미미하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선언> 2) 이 있었던 그 해 말인 1973년 11월 23~24일에 한국기독교교회 협의회(KNCC)는 인권협의회를 거쳐 <인권선언>을 발표하였는데, 3) 그 내용은 <선언>의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고, 다만 인권의 관점에서 다듬어진 정도인 것처 럼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바탕 위에서, 그 이듬해인 1974년 11월 18일 66명의 서명자 명 의로 <한국 그리스도인의 신학적 성명>(이하 <성명>)이 발표되었는데, 이것은 본 격적이고 명시적이며 신학적인 최초의 한국 그리스도교 인권 선언 이라고 할 수 있다. 4) 이 문서는 네 개의 소단락으로 나뉘는데, 첫째는 성명을 내게 된 계기에 관한 설명(소제목: 동기 )으로 유신체제하의 국가권력의 과잉으로 인한 신앙적 위 기에 대한 신학적 성찰이 요청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고, 그 이하에는 각각 절대 화된 권력에 대한 신앙의 비판적 개입의 필요성을 신학적으로 역설하고(소제목: 국가와 종교 ), 인간의 기본권을 위해 신학과 신앙이 복무해야 하며(소제목: 인 권 ), 그러한 선교의 자유를 침해받는 것은 신앙의 자유에 대한 침해(소제목: 교 회의 선교 )임을 강변한다. 한편 1987년 초,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는 1970년대 기독교의 민주 화와 인권을 위한 투쟁을 정리하는 책자를 1970년대 민주화운동과 기독교 라는 2) 중앙정보부가 유포한 한글 번역본은 이 문서가 발포된 날짜를 1973년 5월 20일이라고 하고, 한국기독교유 지교역자 일동 이 이 문건의 주체임을 명기하고 있다. 3) 김창락, 민중의 해방투쟁과 민중신학: 1970년대 민중운동, 신학연구 28(1987), 90~91쪽 참조. 이 <인 권 선언>의 전문은 1970년대 민주화운동 의 제1권(1987.2) 299쪽을 보라. 4) 같은 책, 406~407쪽. 이것은 후에 기독교사상 1984년 11월호에 자료 형태로 재게재되었다.

제2부 기독교와 인권 43 제목으로 발행했는데, 이 책의 머리글의 역할은 필경 1970년대 기독교 인권운동 을 개략적으로 정리하고 평가하며, 향후 전망을 이야기하는 데 있을 것이다. 안병 무 선생의 글 인권에 대한 신학적 조명 (이하 조명 )이 머리글로서 부여받은 역할은 바로 이것이었다. 이 글은 1970년대의 각종 문서들이나 실천들을 총괄적으로 논하는 대신 위의 <성명>을 상세히 소개하고 그 의의를 논평하는 것으로 맡은 바 과제를 수행한다. 이는 <성명>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1970년대 기독교 인권운동의 지향과 관점 전 체를 잘 요약할 수 있다는 뜻이겠다. 이상의 문서들이 공통으로 담고 있는 인권에 대한 문제의식은 시종일관 국가권 력과의 관계에 맞추어져 있다. 국민의 기본권은 신이 부여한 것이며, 국가는 그러 한 천부인권( 天 賦 人 權 )을 보호하고 지켜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러한 소임에 충실하 지 않고, 국가가 스스로를 절대화하고자 할 때 국민의 기본권은 침해되고, 국가는 불의한 권력이 되고 만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국가 대 국민 의 이원대립구도에서 인권의 주체인 국민은 집합적 성격 을 지닌다. 이것은 당시 한국의 국가주의가 전체주의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과 상응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경제 성장을 위해 자원을 총동원하고자 했 던 정부는 단일한 목적의식으로 통합된 국민을 구성하고자 했고, 이러한 국가적 의제는 기억의 단일성 과 욕망의 단일성 을 지향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제도화되었다. 단일민족 의식이 강화되고, 전쟁의 기억도 단일화하며, 심지어 국민 의 시간 관리 방식조차 단일화하고자 했다. 일어나는 시간, 일하는 시간, 밥 먹는 시간, 국민의례의 시간, 귀가하는 시간 등 전 국민이 공통된 하루하루의 시간표를 따라 삶을 조직하도록 준강제적으로 유인하였던 것이다. 각종 건조물의 방식도 단 일했고, 특히 학교는 의복, 헤어스타일, 전체 건물에서부터 교실에 이르는 공간구 성 양식 등에서 단일하게 학생의 일상을 조직하고자 했다. 한편 국민은 모두 가난 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동일한 욕망의 주체로 호명되었다. 여기서 가난의 기억은 굶주림으로 동일시됐고, 가난 탈출의 내용은 국민소득 1천 불, 마이카 등 획일적 욕구로 구상화되었으며, 특히 국민총생산과 같은 국가 차원의 욕망의 경제가 개인

44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의 경제와 모순 없이 조화된다는 의식이 일상화되었다. 실제로 이러한 국가적 이상은 고도성장을 이룩해냈는데 이때 국민의 계층분화는 상당히 억제되는 측면이 있었다. 그럼에도 이농자( 離 農 者 )를 중심으로 국민의 하향 분화가 진행되었는데, 이러한 저소득 계층의 존재는 국가경제 발전의 동력으로 활 용되었으므로, 전체주의적 발전국가는 하향분화한 대중의 현실을 개선하기보다는 은폐하는 것으로 위기상황을 무마하려 했다. 이때 분출한 전태일의 분신 사건은 그러한 은폐된 현실을 폭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사회역사적 맥락에서 인권의 문제는 국민이라는 집합적 공동체 의식이 국민의 사회적 분해 현상과 분열을 이루는 지점에서 발생하였다. 그런 점에서 <선 언>에서 가난한 자들, 눌린 자들, 멸시받는 자들 (<성명>의 가난한 자들, 눌린 자들 )을 망각해왔던 것에 대해 그리스도인으로서 뼈저린 회개를 고백한 것은, 국 민을 도덕공동체 5) 의 확고한 단위로 인식하는 동시대의 감성체계를 신앙적으로 내재화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에 교회는 가난한 자들, 눌린 자들 에 대한 망 각을 제도화한 국가에 저항하겠다는 신앙 선언을 선포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 이다. 안병무 선생은 조명 에서 <성명>의 내용을 소개하면서 이와 동일한 문제의식 을 가지고 1970년대의 그리스도교적 인권 의식을 요약한다. 다만 선생은 여기에 서, 국가가 스스로를 절대화한 결과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되고 특히 가난한 자들 과 눌린 자들 이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을 박탈당했다는 <선언>의 내용을 좀 더 신 학적 개념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공(적인 것)을 사유화 하려는 욕망의 결과가 인 권침해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 용어가 선생에게서 처음 사용된 것은, 이 글이 발표되기 1년 전 전두환 체제가 호헌 을 선언하며 민주화의 요구를 거절하자 이 5) 도덕공동체 개념은 동물해방철학(animal liberation philosophy)의 주창자인 톰 레건(Tom Regan)에게서 차 용한 개념인데, 그는 도덕공동체 외부의 존재인 타자를 그(녀/것)의 고통이 (공동체에 의해) 감정이입되지 않는 존재 로 묘사함으로써, 그(녀/것)의 고통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 내지는 무감각의 폭력을 지적하고 있다. 한편 리처드 로티(Richard Rorty)는 명시적으로 도덕공동체라는 말을 쓰고 있지는 않지만, 세르비아 남성들 이 보스니아 여성들에 대해 저지를 만행의 배후에는 그녀들을 비인간적 존재로 간주함으로써 자신들의 행동 에 대해 죄책감이 생기지 않았던 데서 비롯되었음을 얘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레건의 도덕공동체와 동일한 함의의 공동체 개념을 얘기하고 있다. Tom Regan, The Three Generation: Reflections on the Coming Revolution (Temple University Press, 1991); Richard Rorty, Human Rights, Rationality, and Sentimentality, in Truth and Progres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8) 참조.

제2부 기독교와 인권 45 에 전 국민적으로 호헌 철폐 캠페인이 한창 진행되던 1986년 늦은 봄 즈음이다. 선생은, 창세기 2~3장의 선악과 이야기를 알레고리적으로 재해석하여 인간의 원형적 죄를 공( 公 )적인 것을 사유화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하였는데, 이는 전두환 체제가 공을 독점하고 있는 체제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해석이 다. 6) 그리고 조명 이 저술되던 1987년 1월 말 혹은 2월 초 즈음 선생은 이 용 어를 인권 침해 현상에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데 여기서 뜬금없이 선생은 인권에 관한 새로운 문제의식으로 전화될 여지가 있는 논점을 공의 사유화 논의에 결부시키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우선 조명 의 글 구성에 관해 언급할 필요가 있는데, 제1절에서 전태일 분신 사건에서 비롯 된 한국사회의 인권 의식 고양의 계기와 과정을 언급하고, 제2절에서 그것에 대한 신학적 대응을 <선언>의 분석을 통해 살펴본 뒤, 마지막 절에서 서구의 인권 선 언들과 연관시킴으로써 <선언>의 인권에 대한 신학적 문제의식을 보다 성찰적으 로 보완하고자 하였다. 여기서 공의 사유화 논의가 위치한 곳은 제3절의 끝부분 이다. 이는 공의 사유화가 선생 나름의 신학적 성찰의 최종 결과처럼 언급되어 있 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3절의 전반부에서 선생은 서구의 고전적 자유주의 인권 사상의 일반적 함의를 이야기한 뒤에, 그러한 서구적인 인권 논의의 한계지점을 마틴 루터 킹의 옥중서 신을 통해 문제제기하고 있다. 일반적인 천부인권론은, 선생의 표현대로 하면, 기 득권의 보호와 인권보호를 혼용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때 기득권과 인권은 정치적 법률적 개념에 의존한 표현은 아니다. 아마도 국민의 기본권과 비국민화된 존재의 기본권이 상호 갈등적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7) 선생이 인용하는 마틴 루터 킹의 주장과 연계시켜 보면, 미국에서의 인권 담론은 기본적 으로 백인의 기본권에 관한 것이었고, 노예해방과 남북전쟁을 거치면서 점차로 흑 6) 안병무, 하늘도 땅도 공( 公 )이다, 신학사상 53(1986 여름) 참조. 7) 최근 이상훈은 같은 문제의식에서 인권 논의를 역사적으로 물을 필요성을 제기하며, 마르크스적 사회동학을 통해 근대의 고전적 자유주의 인권론이 주장하는 개인의 인권 개념은, 그 일반론적 언술에도 불구하고, 부 르주아 계급의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에 관한 것이고, 근대적 산업 체계의 발전을 거치면서 그러한 인권 담론 의 외연이 확대되면서 노동자의 기본권의 차원까지 포괄하는 인권 개념이 자리잡게 되었음을 논증한다. 이 상훈, 인권 패러다임과 사회 동학, 시대와 철학 16(2005 가을) 참조.

46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인의 인권 문제로까지 외연이 확대되었으나, 그러한 외연 확대의 역사적 과정은 두 상이한 주체의 기본권간의 인종 투쟁과 분리할 수 없으며, 현재까지도 비대칭 성과 모순적 갈등 관계는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백인과 흑인의 기본 권은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된 인간의 기본권리라는 보편적 인권논의를 말하는 것으 로 충분히 설명될 수 없는 비대칭적 권력 관계 아래 배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선생의 공 에 관한 해석은 바로 그 다음에 나온다. 그렇다면 여기서 선생은 공의 사유화 문제를 국가 대 국민 이라는 틀로 이해했던 기존의 논의 지평을 스스로 확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즉 여기에는 국민 대 비국민 이라는 새로운 인식틀이 첨부되고 있는 것이다. <선언>에서 <성명>에 이르는 1970년대의 인권논 의가 국민=단일 민족 공동체 라는 동시대의 공통감각에 기반하여 경제발전 과정 에서 비국민화된 경제적 실패자에 대한 배제를 일상화하려는 국가를 반인권적 실 체로 비판하고 있다면, 선생은 조명 에서 공을 사유화하려는 욕구의 주체는 국가 만이 아니라 또한 국민이기도 하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즉 민족 공동체의 분해를 유념하면서 담론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선생은 경제공동체의 분해만이 아니라 도덕공동체의 분해를 유념하면서 인권에 대 해 신학적으로 성찰하고 있다. 선생의 이러한 문제의식은, 그 견해가 제기된 시기와 결부시켜 생각할 때 더욱 의미심장하다. 조명 이 머리글로 실린 1970년대 민주화운동과 기독교 는 1987년 2월에 발간되었고, 그해 8월에 개정증보판이 나왔다. 8) 그 전 해인 1986년 에는 전두환 정부의 초강경 공안정국을 거치면서 많은 이들이 체포되었고, 많은 반정부 민주화운동 조직이 붕괴 직전까지 몰리고 있었다. 그런데 1987년은 연초 부터 박종철 이한열 등 대학생들의 잇따른 치사사건이 벌어지고 이에 분노한 전 국적인 대중의 저항이 수개월 동안 지속되었다. 결국 독재정권은 그해 여름 한 발 짝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이 이 글을 쓰던 때는 바로 그 1987년의 초엽, 아마도 박종철 씨 사망 사 건이 축소 은폐되어 발표된 직후이고, 살벌한 공안 상황 아래 도처에서 불만과 문 8) 2월에 발간된 책자에 실린 <선언>이 중앙정보부 번역본임이 밝혀지자, 편찬자들은 원본을 수소문하여 찾아 내 개정증보판에 수록하였다.

제2부 기독교와 인권 47 제제기가 막 표출되고 있던 때인 1월 말 혹은 2월 초였다. 2월 7일 추도식 때 자 동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독재정권에 대한 항의를 우회적으로 표하던 바로 그 어 간이었다. 그로부터 몇 달 후인 7월 9일 이한열 씨의 장례식을 보면서 선생은 흥분하여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죽은 자를 슬퍼하는 행렬만은 아니었다. 아니! 그것은 장 엄한 민족 축제의 행렬이었다.... 환호, 환호, 그것이었다.... 나는 그 대행진에서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동시에 만났다. 또 그 이듬해인 1988년 오공비리청문회와 광주청문회가 한창 진행되던 때, 선생은 김지하로부터 빌어온 단( 斷 ) 이라는 용어 를 철저한 역사청산의 신학적 화두처럼 재해석하여 새로운 시대를 향한 즐거운 상상의 유희를 벌였다. 9) 이와 같은 부활사건의 흥분과 즐거움이 온몸을 뜨겁게 하기 직전, 십자가의 고 통이 최고의 절정에 이르고 있던 때, 그렇기 때문에 임박한 부활에의 소망이 참을 수 없이 치밀어 오르던 그 무렵, 때가 찼다. 하느님의 나라가 곧 올 것이다 라는 야성( 野 聲 )이 울리던 바로 그 때에, 선생은 1970년대의 인권 선언을 분석하고 있 는 것이다. 즉 선생은 1970년대를 보고 있지만, 필경 그 마음속에는 독재 시대의 막바지에서 임박한 그 시대 이후 를 상상하면서 인권에 관한 글을 쓰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했다. 국민 이라는 단일한 도덕공동체 감각은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급속 하게 변화되었다. 집단주의적인 것은 점차 조롱거리가 되어갔고, 주체의식을 둘러 싸고 있던 철옹성 같던 민족적 자존감 이 도처에서 붕괴되고 개체적 자존감 이 라는 새로운 질감의 벽돌이 그 자리를 채워갔다. 이제 대중은 집합적 주체로서의 국민의 일원으로서 국가와 대면하기보다는, 자신의 이해관계 혹은 욕망에 보다 예 민한 감각을 가지고 국가와 마주쳤다. 점차 국민은 국가에 충성하는 대상이 아니 라 거래하는 주체로 변화되어 갔던 것이다. 나는 이러한 충성하는 대상에서 거래 하는 주체로의 변화를 유념하면서, 국민 의 대응 개념으로 시민 이라는 표현을 쓰고자 한다. 하여 기대의 정치학 과 욕망의 정치학 의 관점에서 독재에서 민주 9) 안병무, 단( 斷 )!, 살림 2(1989.1) 참조.

48 제11차 인권교육포럼 화로의 이행 과정은 국민의 시민화 를 수반했다. 그리고 급격한 이행을 조절하는 제도가 부재한 상황에서 기대/욕망의 인플레이션이 과잉 작동함으로써 한국의 민 주화는 천민화되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여기에 1988년 올림픽을 거치면서 산업구조상의 소비재 산업의 비중이 현저히 강화되어 이른바 소비사회가 변화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점을 유 념해야 한다. 10) 그리고 주지하듯이, 소비사회화의 속도 또한 대단히 맹렬했다. 그 런데 이 과정은 시민의 자존감을 더욱 예각화했고, 특히 과거엔 피동적 대상이던 여성이나 미성년 계층의 사회적 주체화를 현저히 강화시켰다. 기든스 식으로 말하 면, 소비사회로의 변동이 사회적 성찰을 자극한 것이다. 하여 여성과 미성년은 성 년 남성에 대한 교섭능력이 강화되었고, 이는 여성담론 및 세대담론의 사회구성적 배경으로 작동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도덕공동체로서의 국민의 독보적 위 상은 심각하게 붕괴되었던 것이다. 동시에 다양한 하위집단들이 감성적 결속체로 서의 도덕공동체의 단위로서 부상하게 되었다. 한편 1990년대 초부터 제도화되기 시작하였고, 1997년 IMF 사태 이후 본격화 된 지구화의 폭격은 거의 모든 관계의 장을 시장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국 제 정치경제적 과정은 또 다른 의미에서 민족공동체를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 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도덕공동체의 경계(boundary)에 대한 감각은 매우 급 격하게 요동쳤다. 그리고 이러한 동요의 배후에는 기대의 정치, 나아가 욕망의 정 치가 예각화되면서 나타난 거래관계의 복잡성이 자리잡고 있다. 요컨대 소비사회 화와 지구화는, 도식화하여 말하면, 시장화된 시민 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안병무 선생이 조명 의 결론부에서 다소 모호하게 제기한 문제의 식은 민주화 이후의 인권문제를 향한 일종의 예언자의 야성( 野 聲 )과 같은 것이었 다. 민주적 제도화 과정의 행위자의 두 축인 국가와 시민이 인권 침해의 가능성을 담지한 사회적 주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선생의 문제제기는 인권에 관 한 신학적 인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시사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평가는 아니 다. 그러므로 이제 이상과 같은 시론적 논의를 보충하여, 기독교적인 인권담론의 10) 유철규, 산업화 이후 경제구조의 변화와 산업정책의 함의, 동향과 전망 60(2004 4) 참조.

제2부 기독교와 인권 49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체화할만한 요소들을 찾아 좀더 상세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첫 번째로 주목할 것은, <선언>에서 <성명>, 그리고 조명 의 전반부까지를 아 우르는, 인권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라는 통례적인 견해다. 모든 사람은 보 편적 본성으로서 인권을 갖고 있다는 서양 근대의 고전주의적 언명은 그것이 신 에 의해 부여된 권리라는 논리와 결합됨으로써 그 절대적 가치가 보증되었다. 그러나 로티는 이러한 인권론을 플라톤주의의 잔재라고 해석한다. 11) 인권에 대 한 이런 시각은 보편적 본성으로서 인권을 갖고 있지 못한 동물, 아니 동물 내지 는 비인간으로 간주된 대상화된 존재를 향한 폭력을 제약하기는커녕 오히려 정당 화함으로써 파시즘의 논리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보편적 천부인권 담론은, 국가 대 국민 이라는 이항대립적 도식이 인권의 착취 대 보호라는 틀로 양분되어 사유되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유용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가령, 폭압적인 국가권력에 의해서 단일체로서의 국 민이 기본권의 심각한 제약을 받고 있을 때 국민의 기본권을 착취하는 권력에 대 항하기 위한 담론일 경우에만 유용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1970,80년대 권 위주의적 군사정권이 발전주의적 국가 총동원체제를 위해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 였다고 해도, 그것을 단지 약탈의 시각으로만 볼 수는 없다. 거기에는 동시에 포용 의 전략도 활용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12) 그것을 위해 체제는, 보호하고 돌보아주어 야 할 불쌍한 타자를 국민의 하위 범주로 포섭할 뿐 아니라, 동시에 공산주의자, 깡패, 13) 대마초 흡연자 등을 배제될/되어야할 타자로서 생산해 냈던 것이다. 그밖 에 다양한 소수자 범주들이 배제의 대상으로서 타자화됐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므로 국가 대 국민 이라는 이분화된 틀로 사회체제를 설명해왔던 군부독재 11) Richard Rorty, Human Rights, Rationality, and Sentimentality, pp. 168~170 참조. 12) 박정희 체제를 약탈적 국가폭력의 체제로 규정할 것인가 대중적 동의의 체제로 규정할 것인가를 둘러싼 양자택일의 논쟁은 현실을 희화화시킨다. 왜냐하면 어떤 체제도 강제의 전략이나 동의의 전략만으로 사회 적 통합을 실현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양자택일적 물음보다는 두 방식의 통치 양식이 어 떻게 구현되었는지를 묻는 게 보다 유용하다. 서동진, 박정희 체제 어떤 민주주의를 위해 비판할 것인가, 당대비평 28(2004 겨울), 111~112 참조. 13) 5.16쿠데타 직후 박정희 체제는 이승만 정권 시절의 정치깡패들을 배제될 타자로 처벌했으며, 전두환 체제 도 정권 장악 직후 삼청교육대에 많은 사람들을 깡패 혐의로 격리 처벌했고, 6공 체제도 범죄와의 전쟁 을 선포함으로써 또 한번 깡패를 배제될 타자로 생산해내는 정책을 폈다.

50 제11차 인권교육포럼 체제의 경우에도 인간의 보편적 권리로서의 천부인권 개념에 기초하여 비판적 인 권 담론을 펴는 것의 유용성은 극히 제한적이다. 더욱이 국가에 의해 하위주체화 된 국민이 아닌, 국가와 교섭하는 주체로서의 시민을 주목하게 되는 민주화 이후 의 사회에서 보편적 인권담론은 시민의 성찰성을 오히려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개연성이 매우 높다. 이런 관점에서 마르코복음 7장 24~30절의 시로페니키아 여인 이야기에 대한 안병무 선생의 독특한 해석은 인권 패러다임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다. 모 종의 위험이 닥친 상황에서 예수 일행이 북쪽 국경을 넘어 페니키아 영역으로 물 러가 띠로 시 인근의 한 시골에 은둔하고 있을 때, 소문을 듣고 시로페니키아 출 신의 한 헬라 여인이 그를 찾아와 악령 들린 딸을 고쳐달라고 부탁한다. 여기서 헬라 여인 이라는 부가어는 그녀의 신분을 시사한다. 곧 그곳 출신 귀부인이 예 수를 찾아와 악령 들린 딸을 고쳐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예수의 대답은 우리를 당황스럽게 한다. 먼저 자녀들이 배불리 먹어 야 하니, 자녀들의 빵을 강아지에게 던져줄 수는 없다. (27절) 게르트 타이쎈(G. Theissen)에 의하면, 이 말의 배후에는 다음과 같은 사정이 있다. 이 지역은 더 견딜 수 없어 팔레스틴을 탈출한 하층민들이 대규모로 정착해 있던 곳으로, 탈주 유대인들은 그 지역 사회의 최저변층을 구성하며 개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14) 그러 니 그 여인의 딸과 유대인은 각각 주인집 자녀와 상 밑의 개와 같은 존재로 비유 될 수 있다. 한편 예수가 나눠주는 하느님나라의 축복은 이러한 일상의 경제를 전 도시킨다. 그에게서 자녀는 착취당하는 유대 출신 이주노동자들이었고, 그 귀부인 과 딸은 그 축복의 상 밑에 있는 강아지에 불과했다. 여기서 선생의 관점으로 돌아가 보자. 선생은 마르코복음 을 민중이 구술한 예 수 텍스트로 이해한다. 그들이 예수를 기억해 낸 내용의 하나가 바로 이 텍스트라 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그 여인이 귀부인이라는 것 외에는 어떠한 사적인 정 보도 없다. 가령, 그녀가 구체적으로 유대인을 착취한 악덕 지주인지 여부는 이 사건의 구술자들에게는 관심이 아니다. 피착취자들인 그들이 예수의 그 복의 수혜 14) 게르트 타이쎈, 시로페니키아 여인 이야기에 나타난 지역적 사회적 특성, 신학사상 51(1985 겨울) 참조.

제2부 기독교와 인권 51 자가 민중의 착취자인지 아닌지의 문제는 큰 관심거리일 텐데도 아무런 언급이 없다는 것은, 그녀가 평판 좋은 여인이거나 혹은 그냥 익명의 여인이기 때문일 것 이다. 최소한 대중의 기억 속에 그녀는 단지 익명의 귀부인이었던 것이다. 그럼에 도 예수는 그녀를 대할 때 일상적인 사회적 대립구도를 통해 그녀를 범주화 한 다. 이때 예수의 시선은 그 사회의 지배계급의 시선을 전도시킨 것일 뿐 그 패러 다임은 다르지 않다는 것이 입증된다. 그러한 편견의 틀이 모르는 익명의 여인에 게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어떤 사람이든 귀부인이라는 코드만으 로 예수는 그녀를 판단하고 있다. 이때 여인은 예수의 역설적 대립을 수용한다. 곧 그녀는 유대 출신 이주노동자 들이 자신과 같은 계급의 사람들의 밥상 밑의 개였던 것처럼 자기 자신을 저들과 동일시하는, 자발적 타자화를 실행한다. 그리고 이것은, 안병무 선생에 의하면, 예 수를 부끄럽게 했다. 하여 예수의 편견의 틀은 허물어진다. 동시에 이 이야기를 구술한 대중과, 그것의 문서화된 텍스트인 마르코복음 을 듣는 청중 15) 의 민족주 의적이고 계급적인 편견의 틀이 허물어진다. 예수 자신의 신성이 그 벽을 허물게 한 것이 아니라, 그가 이유 없이 범주적 증오(categorial hatred)를 표했던 한 여인 이 예수로 하여금 그 벽을 허물게 했다는 것이다. 16) 지그문트 바우만(Zygmund Bauman)은 범주화된 집단적 기억 이 가해자로 하여 금 어떤 대상을 향한 인권 침해, 나아가 존재의 파괴를 스스로에게 정당화하는 악의 합리화(rationalization of evil) 의 주된 기재임을 말한다. 하여 그는 홀로코 스트는 그 가해자의 전근대성이 낳은 잔혹한 야만성이 아니라 그네들의 집단적인 범주적 기억이 낳은 악의 합리화 때문에 저질러진 것이라고 본다. 17) 또 로티는 보스니아에서 세르비아 인이 자행한 비인간적 만행도 저들을 비인간적 존재로 범 주화하는 인식의 편견이 자신들의 죄책감을 사면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 고 본다. 18) 이렇게 인권 침해와 폭력은 예수 자신의 인식 속에도 내재해 있었고, 15) 마르코복음 은 독서자를 위한 텍스트가 아니라 청중을 향해 낭송되던 구술적 텍스트이다. 16) 안병무, 갈릴래아의 예수 (한국신학연구소, 1990), 177~78쪽 참조. 17) 바우만 임지현(대담), 악의 평범성 에서 악의 합리성 으로, 당대비평 21(2003 봄) 참조. 18) Richard Rorty, Human Rights, Rationality, and Sentimentality 참조.

52 제11차 인권교육포럼 그것은 민족주의적이고 계급적인 편견 속에서 성화된 기억으로 스스로를 정당화하 는 기재로 작용하고 있었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여인과의 관계 속에서 예수는, 신 의 분신인 그는, 아니 신 자신인 그는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동시 에 그것을 이야기하는 대중 또한 그러한 예수의 성찰을 공유하게 된 것이라는 주 장이다. 이런 관점에서 안병무는 천부인권이라는 인권담론의 고전주의적 인식틀 대신 대화적이고 과정적인 성찰이라는 대안적 인식틀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인권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문제의식은 신의 절대성보다는 역사문화적 컨텍스트 속에서의 신의 성찰을 강조하게 되고, 그런 점에서 보편적 규범의 관점에서 인권 을 묻는 전통적 시각을 지양하게 된다. 이와 같이 인권 논의에서 보편성의 기각은 안병무의 새로운 문제의식이 가능성으로 담지하고 있는 또 하나의 인권 패러다임 의 요소이다. 이것은 죄에 대한 그의 해석에서 두드러지게 볼 수 있는데, 19) 그에게 있어서 죄란 지배체제의 신학적이고 규율적인 통제의 기재에 다름 아니다. 다른 말로 하 면 죄란 체제의 형성 논리인 규범적 질서라는 외적 규정성이 존재의 내면을 통제 하는 양식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면성의 다양한 가능성은 제한되고, 죄는 내 면성을 구성하는 주된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20) 이런 맥락에서 선생은 구원이란 죄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죄 의식(죄의 콤플렉 스)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주장한다. 21) 다시 말하면 이른바 죄인을 규범적 질서 속에 재포섭하는 것, 그리하여 존중할 만한 시민 이 되게 하는 것이 구원이 아니 라, 22) 그러한 규범적 질서에 저항하는 주체로의 전향, 바로 그것이 구원인 것이다. 이와 같이 인권 담론에서 보편성을 기각하는 시각은 인권을 박탈당한 이와 체 제 사이의 심미적 관계 양식을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길을 열어 준다. 가령, 국가 19) 이에 대하여는, 안병무, 죄와 체제, 민중신학 이야기 (한국신학연구소, 1990) 참조. 20) 물론 이것은 지배의 정치학이라는 관점에서의 비판적 접근이다. 선생은 저항의 정치라는 차원에서 윤리는 해체의 대상이 아니다. 이에 대하여는 안병무의 윤리에 대한 나의 연구인 엄마의 계보 에 놓은 역사의 천사들 안병무의 민중의 윤리 에 대하여, 죽은 민중의 시대, 안병무를 다시 본다 (삼인, 2006) 참조. 21) 안병무, 죄와 체제, 208쪽. 22) 서동진은 미국 보수주의적 성정치학의 논이를 이와 같이 정리한다. 흥미롭게도 이는 민중신학의 죄론과 지 배의 정치학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과 유사하다. 서동진, 인권, 시민권 그리고 섹슈얼리티 한국의 성적 소수자 운동의 정치학, 경제와 사회 67(2005 가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