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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3차 핵실험과 중국의 대북정책 변화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 bkpark555@daum.net Ⅰ. 들어가는 말 북한은 작년 12월 12일 장거리 로켓 발사 실험에 이어 금년 2월 12일 함북 길주군 풍계리 실험장에서 핵실험을 실시했다. 금번 북한의 핵실험은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과 2009년 5월 25일 2차 핵실험에 이은 세 번째 핵실험이다. 북한의 핵실험 직후 국제사회는 유엔(UN)안보 리를 소집해 대응책 논의에 착수했으며, 그 결과 만장일치로 새로운 대북제재 결의안 2094호를 채택했다. 그동안 북한이 핵실험으로 지역의 안정을 위협할 때마다 국제사회는 유엔안보리를 통해 대북제재 결의안(1차-1718호, 2차-1874호)을 채택해 왔다. 그러나 유엔안보리를 통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얼마나 실질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낙관보다도 비관적 전망이 우세한 편이다. 이러한 회의적 시각은 과거 중국의 참여가 적극적이지 않아 대북제재에서 유의미한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중국은 그동안 북한이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등 각종 도발행위를 할 때마다 외교부 성명을 발표해 국제사회의 비난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그러나 실상으로는 북한의 도발을 애써 외면하면서 북한 감싸기 를 계속했고, 한국은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 에서 좌절을 맛보아야만 했다. 이는 중국이 북한을 전략적 자산 으로 간주하면서 북한과 얼굴을 붉힐 수는 있어도 아예 등을 돌릴 수는 없다( 變 臉 不 翻 臉 ). 는 입장을 고수하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중국은 지난 12월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한 조치로 대북제재를 확대 강화하는 유엔 결의안 2087호에 찬성했다. 또한 시진핑( 習 近 平 ) 총서기가 박근혜 당선인 특사 면담 시 한반도의 비핵화를 지지한다. 는 의사를 전달하고 북한의 무력도발 및 국제사회에 대한 14

동향과 분석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중국의 대북정책 변화 도전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대해서도 중국은 단호히 반대한다. 는 입장을 밝힌 뒤, 그 어느 때보다도 적극적으로 대북제재를 위한 유엔안보리 논의에 참가하여 큰 이견 없이 결의안을 만들어 내는 데 일조했다. 뿐만 아니라 결의안 채택 이후에는 각 정부 부문과 지방정부에 지시를 하달하여 대북제재 결의안의 엄정한 집행을 요구하였다. 중국의 이러한 입장과 태도는 시진핑 시대에 들어서 중국의 대북외교가 보다 객관적이고 국제규범과 조응하는 방향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긍정적 기대감을 높이는 부분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시진핑 체제는 북한의 3차 핵실험을 계기로 대북정책의 유의미한 변화 또는 북한에 대한 전략적 노선 변화를 추구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이번에도 표면적으로만 북한을 비난하는 데 그치고 실질적인 대북정책의 변화는 기대하기 어려운 것인가? 만일 북한이 이번에도 기존의 대북정책을 답습할 수밖에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 글은 북한의 3차 핵실험을 계기로 앞에서 제기한 문제들에 대해 북중관계의 차원에서 해답을 추구해 보도록 하겠다. Ⅱ. 중국의 북한에 대한 전략적 가치판단 중국의 북한에 대한 전략적 가치판단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중국의 대북정책이라고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북한에 대한 전략적 가치판단 및 그에 기초한 국가이익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지 일회성 사건에 의해 쉽사리 변질되거나 결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중국의 대외전략문화에 근거해 볼 때 특정 국가에 대한 정책은 상대방이 적대국가의 범주에 들거나 특별한 사정이 발생하지 않는 한 변화 보다는 지속 의 측면이 강하다. 1) 그렇다면 중국은 자국의 국가이익과 관련하여 북한의 전략적 가치(strategic value)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먼저 중국은 전통적으로 북한을 일종의 전략적 자산(strategic assets) 으로 간주하고 있다. 2) 특히 중국은 북한의 존재가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세력과의 대립 및 충돌 시에 자국의 1) 중국의 대외전략문화에 관해서는 Andrew Scobell, China and Strategic Culture, U.S. Army War College Report, May 2002; Huiyun Feng, Chinese Strategic Culture and Foreign Policy Decision-Making, New York: Routledge, 2007 참조. 2) 물론 북한의 핵실험과 군사도발 등 국제규범을 무시한 행동들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입장이 난처해지고 결과적으로 북한에 대한 전략적 부담론(strategic burden) 이 대두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중국 지도부는 북한을 전략적 자산(strategic assets) 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한편 최 근에는 전략적 함정(strategic trap) 개념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기도 한데, 이는 중국이 북한이라는 함정(trap)에 빠져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국제사회에서 이미지 손상의 부담만을 지고 있다는 것이다. 上 海 國 際 問 題 硏 究 院 한반도 전문가 인터뷰( 上 海, 2012. 6. 21). 15

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완충지대(buffer zone) 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본다. 3) 과거 명( 明 )나라가 조선을 도와 임진왜란 에 개입한 것이라든지 또는 청( 淸 )나라가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놓고 일본과 벌인 청일전쟁 그리고 가까이는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의 개입 역시 북한(한반도)이 지니는 완충지대로서의 전략적 자산에 대한 보호를 위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21세기에 들어선 오늘날에도 중국에 있어서 북한이 지니는 전략적 자산으로서의 전통적 가치는 변함이 없으며 그것은 특히 한반도의 고유한 지정학적 위치에 근거한다. 다음으로 중국은 북한의 존재를 미국 등 서구 세력과의 경쟁에서 활용할 수 있는 일종의 전략적 카드(strategic card) 또는 전략적 지렛대(strategic leverage) 의 하나로 판단한다. 개혁 개방 이후 중국의 종합국력이 증대되면서 미국과의 패권경쟁이 치열해지고는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중 미 양국은 지역 및 글로벌 차원의 안보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전략적 협력 을 추구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북한에 대한 영향력 및 특수관계를 미국과의 협상에서 일종의 카드 또는 지렛대 로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일례로 중국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에서의 주도적 역할을 통해 북한(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려 하는 것은 이러한 의도와도 맞물려 있다고 할 것이다. 결국 중국은 북한에 대한 지지와 지원을 통해 영향력을 확보하고 특수관계를 유지함으로써 동아시아 지역의 세력균형에 영향을 미치고 미국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목표 달성에 유리한 수단으로 활용하려 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세 번째로 중국은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이른바 한 미 일 3각 동맹체제 에 대응하기 위한 대항전선의 일원 으로서 북한의 존재를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최근 들어서 중국은 과거 중국, 소련, 북한 등이 유지하던 북방 3각 은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오늘날 한국, 일본, 미국 등의 남방 3각 은 여전히 유지될 뿐 아니라 더욱 강고해지는 것으로 인식한다. 또한 중국은 한 미 일 3국이 최근 들어 북한의 위협을 이유로 동맹관계를 강화할 뿐 아니라 군사력을 증강함으로써 중국에 대한 안보위협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중국의 인식은 과거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및 한미동맹 강화와 한 미 일 안보협력에 대한 우려 및 반발로 나타나기도 했다. 4) 때문에 중국은 냉전의 유산이 지속되고 있는 한반도의 국제정치적 상황을 고려할 때 북중동맹을 개정하거나 폐기하는 것은 시기상조라 고 보고 있다. 5) 3) Shen Dingli, North Korea s Strategic Significance to China, China Security, Autumn 2006, pp.19~21. 4) 이명박 정부의 한미동맹 강화 및 한 미 일 안보협력이 한중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박병광, 한 미 일 안보협력과 한중관계, KDI북 한경제리뷰, 2011년 8월호, pp.21~40 참조. 5) 일례로 2011년 7월 11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후진타오( 胡 錦 濤 ) 주석은 북중동맹 50주년 을 맞아 서로 축전( 祝 電 )을 주고받았으며, 중국의 장더장 ( 張 德 江 ) 부총리와 북한의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부위원장이 이끄는 대표단이 교차방문해 성대한 기념활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16

동향과 분석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중국의 대북정책 변화 끝으로 중국은 북한의 전략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국제정세는 급변하고 있으며 북한의 정세 역시 과거에 비해 불안정성이 증대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특히 북한의 핵개발에 따른 국제사회의 압박과 북한 자체의 폐쇄성 및 경제난의 심화는 북한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증대시키는 요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북한의 불안정사태(contingency) 에 대한 대비를 논의하는 것이 북한 지도자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중국 등 외부세계가 북한에 대해 적대적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는 점을 우려하여 공식적인 언급은 최대한 삼가고 있다. 오히려 중국 지도부는 북한과의 전통우호관계 를 지속하고 전략적 소통 을 강화하는 것이 북한의 안정에 유리한 것으로 본다. 6) 즉, 북한의 핵개발과 군사적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북한과의 전통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고위층 간의 소통을 강화하고 경제 원조를 지속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보는 것이다. 7) 그러나 중국의 이러한 인식과 행동은 국제사회로 하여금 북한의 핵개발과 무력도발에 대해 보다 강력한 제재나 압박을 회피하고 있다는 비판을 야기하기도 한다. Ⅲ. 중국의 대북정책기조에 대한 이해 중국의 대북정책을 이해하는 것은 3차 핵실험을 포함한 북한의 무력도발행위에 대한 중국의 대응행태는 물론이고 향후 북중관계를 파악하는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시진핑 시대의 북중관계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중요한 관전 포인트의 하나는 후진타오( 胡 錦 濤 ) 시기에 형성된 북한에 대한 인식 변화가 과연 유의미한 대북정책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일단 후진타오 시기에 중국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표명된 언술들을 정리할 때, 대북한정책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과의 전통우호협력관계 를 중시하고, 장쩌민( 江 澤 民 )이 제시한 북중관계의 16자방침 을 계승하며, 8) 북중경제관계에 있어서는 후진타오 체제의 12자 원칙 을 근간으로 경제교류와 협력을 증진한다는 것이다. 9) 또한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서는 북한의 합리적 안보우려 해소와 대화를 통한 한반도 비핵화 그리고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에 대한 권리를 6) 2010년 5월 김정일 방중 시 북중 양국 지도부는 이른바 5개 협력방안 에 합의했으며, 그중 하나로서 내정 및 외교문제 등 중요 공동 관심 사안 에 대한 전략적 소통 강화 를 약속한 바 있다( 人 民 日 報, 2010. 5. 7). 7) 林 利 民, 朝 核 危 機 管 理 與 中 國 的 外 交 抉 擇, 現 代 國 際 關 係, 2006 年 8 期, p.38. 8) 중국의 북한에 대한 16자 방침 은 2001년 9월 장쩌민( 江 澤 民 )이 북한을 방문했을 당시 김정일과의 정상회담에서 제시한 것으로서 양국간 전통 계승( 繼 承 傳 統 ), 미래지향( 面 向 未 來 ), 선린우호( 睦 隣 友 好 ), 협력강화( 加 强 合 作 ) 를 내용으로 한다( 人 民 日 報, 2001. 9. 4). 9) 북중 경제협력의 12자 원칙 은 2006년 1월 김정일 방중 시 원자바오( 溫 家 寶 ) 총리가 제시한 것으로서 정부인도( 政 府 引 導 ), 기업참여( 企 業 參 與 ), 시장운용( 市 場 運 作 ) 의 원칙을 중심으로 추진한다는 것이다( 人 民 日 報, 2006. 1. 19). 17

지지하는 한편, 북한의 핵( 核 )무기 보유와 6자회담 탈퇴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와 같은 중국정부의 입장 표명과 대외전략 및 한반도정책을 고려했을 때, 중국의 대북정책은 크게 다음의 몇 가지 핵심 기조를 중심으로 정리될 수 있다. 10) 첫째, 북한체제의 붕괴 방지이다. 중국은 탈냉전기 북한과의 현실적인 관계 변화와는 별개로 북한체제의 붕괴에 대해서는 자국의 근본적 이익 이 걸린 문제로 인식하고 있으며, 북한체제의 안정을 대북정책의 핵심 기조로 두고 있다. 중국이 북한의 붕괴 방지를 추구하는 것은 북한 붕괴에 따른 한반도 불안정이 직접적으로 중국의 국가목표인 지속적 경제발전 과 주변지역 안정 에 부정적 파급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은 전통적으로 북한을 지리적 완충지대 및 일종의 전략적 자산 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안정에 정책의 주안점을 둘 수밖에 없으며, 북한 붕괴 및 체제 혼란에 따른 대규모 난민 유입과 국제개입에 의한 무력충돌에 대해서도 크게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은 북한의 안정과 붕괴 방지를 대북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는 한편 김정은 정권이 안정적으로 구축되어 나가도록 지원하고자 하고 있다. 둘째, 북한의 개혁 개방 유도이다. 중국은 북한이 경제 개혁과 개방을 통해서 경제난을 극복하고 독자적 생존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 장기적으로 북핵문제는 물론 북한문제를 해결하는 선결과제라고 보고 있으며, 이에 따라 북한의 경제 개혁 개방 견인을 주요 정책기조 로 설정하고 있다. 중국의 북한에 대한 경제 개혁 개방 견인은 북한의 안정뿐 아니라 중국 동북지방의 경제발전과도 연계되는 종합적 지역발전전략의 일환이며, 장기적으로는 한반도 통일 이후까지도 고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중국의 대북정책기조가 과거 북한에 대한 전통적 이익, 즉 미국과의 대결구도에서의 적대적 세력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유용성 개념으로 부터 전략적 이익, 즉 중국식 개혁 개방모델의 이식이라는 보다 근원적 장기적 목표로 전환되었음을 보여준다. 셋째, 북한의 각종 군사도발 억제이다. 중국은 2010년 천안함 폭침사건 과 연평도 포격사건 을 통해서 북한의 군사도발이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해칠 뿐 아니라 미국의 강력한 개입을 자연스레 유도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북한의 군사도발과 긴장 고조 억제를 대북정책의 주요 기조로 설정하고 있다. 특히 북한의 군사도발은 남북한관계 자체뿐만 아니라 한중관계 및 미중관계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하며 따라서 중국은 북한의 국제적 고립을 해소하여 대외 군사도발을 일으키지 않도록 의도하고 있다. 때문에 중국 지도부는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핵실험 10) 박병광, 후진타오시기 중국의 대북정책 기조와 북핵 인식, 통일정책연구, 제19권 제1호, 2010, pp.62~70; 金 燦 榮, 東 北 亞 新 變 局 與 後 金 正 日 時 代 的 朝 鮮 半 島, 現 代 國 際 關 係, 2012 年 1 期, pp.3~5 참조. 18

동향과 분석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중국의 대북정책 변화 반대 의사를 전달했으며, 북한 측에 냉정과 자제를 당부하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어느 때보다 중요함을 강조해 왔다. 넷째, 북한에 대한 영향력 유지이다. 중국은 북한에 대한 영향력 강화를 통해 동아시아 역내에서 책임 강대국 의 국가이미지를 창출하기를 원하며 미국, 한국 등과의 협상에서도 유용한 레버리지(leverage)를 확보하고자 의도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 두 차례 북한 핵실험에서 보았듯이 중국의 대북한 영향력은 제한적인 측면이 있으며, 오히려 중국은 북한 핵실험 이후 더욱 대북 영향력 확보에 힘을 기울이는 추세에 있다. 2011년 12월 중국 최고지도부(정치국 상무위원) 전원이 김정일 사후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을 찾아 조의를 표하고, 조선 인민은 김정일 동지의 유지를 계승해 김정은 동지를 지도자로 하는 조선노동당 주위에 단결해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이룩하기 바란다. 는 내용의 조전(12. 19)을 보낸 것도 결국은 북한에 대한 영향력 유지의 일환이었다. 다섯째,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비핵화이다. 중국은 북핵문제로 인한 한반도의 긴장상황이 자국의 한반도정책에서 최우선 목표인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에 근본적으로 위배될 뿐 아니라 주변국들의 핵확산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중국의 안보에도 직접적으로 위협이 된다고 인식한다. 또한 중국은 북핵문제를 방치할 경우 역내 안보위기가 고조될 뿐 아니라 이를 빌미로 동아시아에 서 미국의 군사력이 증강되고 영향력이 확대되어 미국과의 직접적인 대결구도를 피할 수 없게 된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중국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대북 제재나 압박이 오히려 북한의 극단적 조치를 자극하거나 혹은 북한정권의 붕괴를 야기하여 상황을 더욱 불안정하고 불확실하게 만들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때문에 북한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움직임에 대한 중국의 기본 입장은 징벌을 제재의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는 것이며 협상과 대화의 방식에 의한 해결 을 주장해 왔다. 11) 이와 같은 중국의 대북정책기조에서 발견되는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후진타오 집권 초기에 비교적 우선순위에 놓여 있던 북핵문제 해결이 집권 후반기로 가면서 후순위에 놓이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후진타오 시기에 이미 두 차례나 북한의 핵실험이 실시된 상황을 고려한 현실적 대응이라 할 것이다. 결국 이는 중국이 시간이 흐르면서 북핵문제의 해결사 보다는 관리자 의 입장으로 전환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정책기조는 시진핑 시대에 들어서도 큰 변화 없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11) 이러한 중국정부의 입장은 제1차 북한 핵실험 직후 외교부 대변인 브리핑(2006. 10. 12)에서 공개된 이후 지금까지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19

Ⅳ. 시진핑 집권 이후 북중관계 돌아보면 중국 지도부에게 있어서 북한문제로 인한 갈등과 고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2002년 10월 제2차 북핵위기가 불거지고 곧이어 같은 해 11월 제16차 당대회에서 총서기에 오른 후진타오에게 있어서 북핵문제는 집권기간 내내 그를 골치 아프게 만든 외교사안 중 하나였다. 12) 후진타오는 집권 초기부터 북한에 대해 당 대 당 특수관계가 아닌 국가 대 국가 관계라는 정상국가관계 를 강조해 왔으나 이는 북한의 거부로 인해 실현되지 못했다. 무엇보다 후진타오 집권기간 동안 계속된 만류와 설득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두 차례의 핵실험을 단행했으며, 천안함 폭침사건과 연평도 포격도발을 일삼음으로써 중국의 입지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후진타오 집권기간 내에 이루어진 북한의 두 차례에 걸친 핵실험은 중국으로 하여금 직접적인 분노 와 실망 을 표출하게 만든 일대 사건이었다. 2006년 10월 북한이 1차 핵실험을 단행하자 중국정부는 북한이 제멋대로 핵실험을 실시했다. 면서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한편, 대북제재내 용을 담은 유엔안보리 결의안 1718호 통과에 가세했다. 이는 중국이 동맹조약을 맺고 있는 북한에 대해 국제사회에서 공개적으로 강압적 조치에 편승한 첫 사례였으며, 중국은 2009년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와 제2차 핵실험 당시에도 같은 입장을 취하였다. 특히 북한의 2차 핵실험 직후 중국에서는 네티즌을 중심으로 북한에 대한 비판여론이 확산되기 시작했으며, 북한의 핵실험을 중국에 대한 배반 으로 규정하고 북한을 불량배 등의 모욕적인 표현으로 언급하는 사례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러한 중국의 반응은 한반도 비핵화 와 북중 협력관계 의 유지라고 하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한편, 중국은 북한에 대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대북제재에는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한반도의 안정과 사태 악화 방지를 내세우면서 북한을 다독거리는 가운데 대북 영향력 유지에만 매달렸다. 이는 북중관계의 역사성과 북한의 안보적 전략적 가치를 고려할 때, 대북 포용정책의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여전히 중국의 국가이익에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서, 이른바 전통파 와 국제파 의 논쟁 속에서 전통파 의 주장이 힘을 얻은 결과였다. 아울러 이와 같은 중국의 태도는 마치 한 발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흐름에 담그고, 다른 한 발은 궁지에 몰린 북한이 붙잡을 수 있도록 내주어야 했던 후진타오 지도부의 곤혹스런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요컨대 후진타오 시기의 북중관계와 대북정책은 그 이전 시기에 비해 커다란 인식의 변화 는 12) 박병광, 후진타오시기 중국의 대북정책 기조와 북핵 인식, 통일정책연구, 제19권 제1호, 2010, pp.57~58. 20

동향과 분석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중국의 대북정책 변화 있었으나 의미 있는 정책의 변화 로는 연결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13) 따라서 향후 북중관계를 관찰할 때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 중 하나는, 시진핑 시대의 북중관계가 대북인식의 변화 를 뛰어넘어 유의미한 대북정책 변화 의 시대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시진핑은 2012년 11월에 개최된 중국공산당 제18차 당대회에서 후진타오의 뒤를 이어 당 총서기로 선출되었으며, 금년 3월에 개최된 제12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국가주석에 임명되면서 중국의 당 정 군을 통솔하는 최고 지도자 지위에 올랐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시진핑이 중국공산당의 최고 지도자에 오르자마자 2012년 12월 북한은 장거리 로켓 발사로 동북아의 안보를 흔들었다. 또한 3월 시진핑의 국가주석 취임을 앞둔 2월에는 3차 핵실험을 실시하여 중국의 체면을 여지없이 구겨버렸다. 북한의 연이은 도발행위와 국제사회에 대한 도전은 국제무대에서 다시 한 번 중국의 대북 외교력을 시험하고 있다.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시진핑은 후진타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집권 초기부터 북한문제로 인한 곤경에 빠져들게 되었다. 시진핑으로서는 정권 출범 초기라는 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안정적인 주변국 정세가 긴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한반도와 지역의 안정을 뒤흔드는 북한의 핵실험은 시진핑 체제의 출범에 찬물을 끼얹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에 뒤이은 3차 핵실험은 아시아로의 귀환(Return to Asia) 을 외치고 있는 미국에 동북아 지역에 대한 개입 빌미를 제공함으로써 중국의 전략적 이익에 심대한 손상을 입힐 수도 있다. 때문에 중국 내에서는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급성장을 거듭하면서 몇 년 안에 미국을 따라잡을 수도 있는데, 이웃한 북한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따라서 시진핑 지도부로서는 북한의 3차 핵실험을 계기로 기존의 북중관계를 재검토하고 대북정책 전환에 대해 재고( 再 考 )할 개연성이 상당히 높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북한 핵실험 직후 발표된 미외교협회(CFR)의 한 보고서는 북한 핵실험 이후 북한에 대한 중국의 인내심이 소진되고 있으며 북중관계가 복잡해지고 있다. 고 진단했다. 또한 새로 표면화한 긴장관계로 중국 새 지도부의 대외정책 결정이 어려워지고, 2012년 12월 이후 북중 고위급 협의가 정체상태에 빠졌다. 고 지적했다. 나아가 이 보고서는 핵실험 등으로 북중관계가 악화될 것이고, 중국의 새 지도부는 북한에 보다 강력하게 대응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고 밝혔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은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고 한국과 일본이 핵무장에 나서지 않도록 차단해야 하는 공동의 이해관계가 있으며, 이 때문에 동북아에서 미국과 중국이 동참하는 지역협의체를 가동하는 게 최상의 수단이라고 주장하고 13) Ibid., p.76. 21

있다. 14)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이를 비난하고 대북정책의 조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중국 내에서도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일었다. 중국의 소셜미디어 사용자들은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을 미친 개 에 비유하면서 미온적 반응을 보인 중국당국을 비난하기도 했다. 중국의 소셜미디어 사용자 들은 중국을 무시한 북한에 대해 결연히 반대한다. 는 외교부 성명만 반복할 것이 아니라 보복 이나 제재 를 언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15) 중국의 네티즌들 역시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중국은 북한을 버려야 한다. 북한의 핵실험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이다. 등의 목소리로 인터넷을 달군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일단의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항의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시위는 광저우( 廣 州 ), 선양( 瀋 陽 ), 베이징( 北 京 ) 등 중국의 남부에서 북부까지 폭넓은 지역에서 이루어졌으며, 선양의 북한 총영사관과 베이징의 북한대사관 앞에서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16) 비록 시위의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피로 맺어진( 鮮 血 凝 成 ) 북중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이는 매우 충격적이고 이례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북한 핵실험 이후 중국의 반응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또 하나의 사실은 중국공산당 고위 간부를 양성하는 중앙당교의 한 재직자가 해외 유수 잡지에 기고문을 통해서 북한을 비판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중앙당교가 발행하는 학습시보( 學 習 時 報 ) 의 덩위원( 鄧 聿 文 ) 부편심( 副 編 審 )은 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 기고문을 통해서 북한의 3차 핵실험을 계기로 중국은 북한을 포기하고 한반도 통일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정은 정권은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지 않겠지만 일단 문이 열리면 정권은 전복될 것 이라면서 조만간 실패할 정권과 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느냐 고 했다. 17) 시진핑 총서기가 국가부주석 시절 중앙당교 교장을 지냈고 중앙당교가 당 간부들을 위한 교육기관이라는 점에서 덩위원의 주장은 중국의 대북정책 변화 가능성과 관련하여 미묘한 파장을 낳았다. 그러나 중국의 적잖은 전문가들은 이를 중국 내 비중 있는 인사의 입장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무리이며, 그의 기고문은 당교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라기보다는 개인의 주장을 개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18) 그러나 중앙당교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국가기관이고, 여기에 종사하는 자로서 외국의 언론에 기고하려면 반드시 내부 심사와 허가를 받아야만 한다. 적어도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외국의 유수 언론에 기고된 14) 자세한 내용은 Jayshree Bajoria and Beina Xu, The China-North Korea Relationship, CFR Report, 2013. 2. 21을 참조.. 15) South China Morning Post, 2013. 2. 13. 16) 연합뉴스, 2013. 2. 19. 17) Deng Yuwen, China Should Abandon North Korea, Financial Times, 2013. 2. 27. 18) 경향신문, 2013. 3. 1. 22

동향과 분석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중국의 대북정책 변화 문장이라면 이는 중국정부의 의중과 묵인이 어느 정도 작용한 결과로 보아야 옳지 않을까? 필자의 판단에 따르면 중국정부는 대내외적 파문을 일으킬 수 있는 주장을 통제 하지 않고 오히려 자유롭게 방치 하여 외부에 흘려보냄으로써 북한에 대한 압력의 일환으로 활용하고 자 의도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덩위원의 기고문은 북한 핵실험 이후 어느 특정 세력의 주장이 대북정책에 관한 의견을 주도하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어쩌면 비주류 의견이 개진될 수 있는 공간이 일시적으로 넓어진 결과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덩위원의 주장과 중국정부의 입장을 기계적으로 등치시키는 것은 분명 무리가 따른다고 하겠다. 즉, 3차 핵실험 이후 중국의 대북정책 전환에 관한 다양한 요구와 의견들이 개진되고는 있지만 덩위원의 기고문과 같은 일회적 사건에 의존해서 중국의 대북정책 변화를 예단하는 것은 경솔하고 성급한 판단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중국에서 흘러나오는 시그널은 상당히 다양하고 혼란스러운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중국 교통운수부는 작년 12월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제재 결의안 2087호를 포함하여 3차 핵실험 이후 채택된 결의안 2094호에 대해서도 엄격히 집행하라는 지시를 각 부문과 지방정부에 내려보낸 바 있다. 또한 리바오둥( 李 保 東 ) 유엔 주재 중국대사는 대북제재 결의안 2094호가 채택된 이후 결의안의 완전한 실행이 중요하다. 면서 제재를 철저히 이행하겠다. 는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관영언론 인 환구시보( 環 球 時 報 ) 역시 북한 핵이 중국의 이익을 해치는 세 가지 이유를 설명하면서 북한정권의 붕괴 를 거론하기도 했다. 19) 그러나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은 제12기 전국인민대표 대회 기간 중 열린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제재는 북핵문제 해결의 근본적인 방법이 아니다 라며 당사국들은 냉정과 절제를 유지해야 한다. 고 말했다. 20)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 는 이를 받아서 중국은 절대로 북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해석하였다. 21) 한편, 최근의 동향을 제외하더라도 시진핑의 집권을 전후한 시기에 북중관계는 그다지 원만한 발전단계를 거친 것으로 보기 어렵다. 대표적으로 2012년 7월 캄보디아 프놈펜의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기간 중 열린 북중 외무장관 회담에서 북한의 박의춘 외상은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에게 환보시구 의 북한 핵보유 명시화 반대 사설(2007. 7. 2) 게재와 관련하여 고성을 지르며 항의하는 등 양측의 접촉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종료된 바 있다. 또한 북한은 작년 한 해 최고위급 관리들이 인도네시아,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등 동남아 국가를 잇달아 방문하면서 관계 개선과 외교적 고립에서 탈피하기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19) 環 球 時 報, 2013. 3. 9. 20) 자세한 내용은 다음 웹사이트를 참조하라: http://www.fmprc.gov.cn/mfa_chn/zyxw_602251/t1019938.shtml. 21) China Says It Won t Forsake North Korea, Despite Support for U.N. Sanctions, The New York Times, 2013. 3. 9. 23

기울였다. 그러나 중국에 대해서는 작년 8월 장성택의 베이징 방문 이외에는 별다른 고위급 교류가 없었으며, 더욱이 김정은은 최고 지도자 지위에 오른 이후 현재까지도 중국을 방문하지 않고 있다. 이는 김정은 체제 등장 이후 북한이 중국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서기보다는 오히려 외교행보를 다변화하고 중국에 대한 의존도 심화를 탈피하려는 노력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부분이다. 아울러 이러한 북중관계가 지속된다면 양측의 불통 이 심화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하겠다. 중국은 3차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지는 않을 것이며, 여전히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북한 감싸기라는 양쪽 모두에 발을 담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중 장기 적으로 중국의 관리자 역할과 대북 포용정책에도 불구하고 양국의 전략적 이해의 완전한 수렴은 북핵 문제로 인해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다. 그 이유는, 첫째 북한은 결코 핵보유국 의지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둘째 이 과정에서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보상황은 언제든 위기에 봉착할 것이며, 셋째 북핵문제와 별개로 북한이 개혁 개방에 있어서도 의미 있는 진전을 보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Ⅴ. 맺음말: 중국의 대북정책은 변화할 것인가? 북한의 3차 핵실험은 단지 한국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미국과 중국을 동시에 겨냥한 것이었다. 북한의 핵실험은 한국, 미국, 중국의 새 지도자들을 향한 무력도발이었던 셈이다. 때문에 한 미 중 3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신속하고 협조적으로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 도출에 합의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과거의 사례를 볼 때, 중국이 과연 얼마나 지속적이고 실효적인 조치를 취할 것인가는 좀 더 시간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중국은 그동안 대북제재 결의안 채택에는 동참해 왔지만 그것을 이행하는 데에는 언제나 미온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중국사회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비판과 주장은 중국의 북한에 대한 태도 변화와 관련하여 기대를 높이는 부분이다. 북한의 무력도발과 지역 안정을 위협하는 행위가 지속될수록 중국 내의 반( 反 )북한 정서와 대북정책 조정에 대한 요구는 갈수록 증대될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중국정부는 북중관계를 다루는 데 있어서 이데올로기 와 전략적 이익 이라는 기존의 잣대뿐만 아니라 민심( 民 心 ) 이라고 하는 새로운 요소를 고려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가시적인 대북정책의 전환을 촉진하는 요소로 작용할 24

동향과 분석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중국의 대북정책 변화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중국 지도부의 본심이 어디에 치우쳐 있는지 명확하지가 않다. 중국의 새 지도부가 대북정책을 대대적으로 전환할지는 아직은 미지수에 가까운 것이다. 중국내에서 발견되는 북한에 대한 다양한 반응과 주장들은 중국 지도부 내에서 대북정책 조정과 관련하여 아직까지 어떠한 결정도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22) 따라서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현재까지의 상황만을 놓고 보자면 중국이 대북정책을 바꾸어 나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상당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오히려 필자는 3차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대북정책은 변화 보다는 지속 의 가능성이 더욱 높을 것으로 판단한다. 왜냐하면 중국의 대북정책 변화를 기대하기에는 아직도 변화의 임계점 을 돌파할 만한 충분조건 에 다다르지 못했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당분간 현재와 같은 대북정책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보는 판단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의 3차 핵실험이 중국 지도부와 민중의 분노를 산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대북정책기조를 완전히 뒤바꿀 정도로 충격(impact)적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북한의 핵실험이 계속될수록 중국이 받는 놀라움과 충격 자체에는 한계효용체감 의 법칙이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중국은 이미 북한의 1, 2차 핵실험 이후 북핵문제에 대한 해결사 가 아니라 관리자 의 입장에 선다는 내부 정책합의를 이룬 상태이며 세 번째 핵실험을 했다고 해서 이러한 기조가 쉽사리 바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중국은 북한이 이미 핵무기를 보유했고 그것을 포기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북중관계 관리에 치중하는 대응정책을 마련해 나갈 가능성이 높다고 보아야 한다. 둘째, 북한이 3차 핵실험을 실시했다고 해서 중국이 바라보는 북한의 전략적 가치 에 근본적 변화가 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현재의 미중 대결구도가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서구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완충지대, 전략적 카드 등으로서의 북한의 가치는 큰 변화가 있을 수 없다. 물론 중국은 대북정책의 변화를 통해 김정은 정권의 변화(regime change)를 시도할 수 있지만 이 역시 미국과 중국 사이에 확고한 신뢰구조가 확립되지 못한 상황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선택이다. 결국 시진핑 지도부로서는 대북정책의 급격한 변화에 따르는 전략적 자산의 상실 가능성을 감수하기보다는 일단 김정은 체제를 다독이면서 양국 신지도부 간 유대 강화에 주력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볼 수 있다. 22)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ABC방송에 출연해(2013. 3. 13) 중국이 이전까지는 북한 정권의 붕괴를 우려해 지지를 계속해 왔지만 조금씩 생각이 바뀌고 있다며 매우 긍정적이라고 평가하는 한편, 중국이 북한에 대해 이제 손쓸 수 없게 됐다. 고 말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자신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바마의 이러한 평가는 다분히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에 가깝거나 또는 중국의 대북정책 전환을 압박하기 위한 의도로 분 석된다. 25

셋째, 중국은 기존의 대북정책 전환에 따른 대북영향력 상실 을 심각히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이 북핵문제의 악화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한 유화정책을 지속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의 경험에서 터득한 학습효과(learning effect) 의 측면이 작용한다. 즉, 중국은 2006년 7월 북한의 장거리 로켓(대포동 2호) 시험발사 이후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하는 한편 유엔안보리 결의안(1695호) 통과를 지지했고, 9월에는 북한의 생명선이라 할 수 있는 원유공급을 일시적으로 제한하기도 했다. 23) 그러나 북한은 중국의 의도와 달리 핵실험을 강행했으며, 이는 북중관계의 심각한 훼손으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중국은 대북 영향력의 위기는 물론이고 국제사회에서 체면이 구겨지는 수모를 맛보아야 했으며, 이를 수습하기 위해 원자바오( 溫 家 寶 ) 총리가 그해 10월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중국 지도부의 입장에서 3차 핵실험을 이유로 대북 영향력 상실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북한정책의 전환을 시도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넷째, 시진핑 지도부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과제는 부패 척결 등 대내문제의 해결이 우선적이 다. 때문에 18차 중국공산당대회와 12기 전국인민대표대회의 정부공작보고에서도 대부분의 강조점과 향후 과제는 국내문제에 집중되어 있었으며 외교에 관한 사항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특히 한반도문제에 관한 내용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을 정도이다. 따라서 중국의 새로운 지도부가 굳이 대북정책의 조정에 따른 북중관계의 불안정을 초래함으로써 주변국관계를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당분간은 내치에 집중하면서 불안정한 경제문제를 해소하고 대외관계에 있어서도 대미관계와 대일관계 그리고 남중국해에서의 영유 권 분쟁 등 핵심이익과 관련된 우선사항의 처리를 대외정책 어젠다의 우선순위에 놓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중국의 대북정책 조정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까지나 요원하기만 한 것인가? 그렇지 는 않다고 본다. 현 단계는 중국과 북한 사이의 상호 갈등과 모순이 축적되는 시기 라고 규정할 수 있다. 금번 3차 핵실험은 이러한 모순의 축적을 심화시키는 촉매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북중 양국 간의 모순 축적이 고착화 되고 추세화 된다면 결국 멀지 않은 장래에 중국의 대북정책은 변곡점에 다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북정책의 조정은 중국 지도부에게 있어서 일종의 결단을 필요로 하는 사안이다. 만일 앞에서 전제로 한 조건이 충족될 경우, 시진핑 지도체제가 공고화되고 독자적 정책결정권과 자율성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는 집권 2기에는 대북정책의 유의미한 변화가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23) 박병광, 후진타오시기 중국의 대북정책 기조와 북핵 인식, 통일정책연구, 제19권 제1호, 2010, p.67.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