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의 유교국가론과 ꡔ周禮ꡕ* 52)부 남 철** 차 례 Ⅰ. Ⅱ. Ⅲ. Ⅳ. Ⅴ. 서론 유교국가의 정신 仁과 정치의 公共性 총재정치 육전체제 결론 국문초록 이 논문은 유교국가 조선의 정치이념과 통치 구조 형성에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유학자이자 정치가인 三峯 鄭道傳이 ꡔ周禮ꡕ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를 분석한 것이다. ꡔ주례ꡕ는 유학자들이 이상적인 재상으로 평가하는 周公의 작품이기에 고려를 이은 朝鮮을 東周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진 유학자, 정치가에게 이것은 중요한 준거가 되었을 것으로 여겨져왔다. 특히 유학자로서 현실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던 정도전에게 있어서 ꡔ주례ꡕ는 조선을 유교국가로 설계하는데 있어서 적합한 참고서였을 것이다. 그간 학계에서는 이런 정도전의 저술인 조선경국전 과 ꡔ주례ꡕ의 연관성을 인 정하고 있었으나 구체적으로 ꡔ주례ꡕ의 어떤 내용이 참고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연구 과제로 남겨져 있었다. 이 논문에서는 그 점을 분석하였는데, 그 결과 정도전이 조선 경국전, 경제문감 등을 저술함에 있어서 ꡔ주례ꡕ에서 영향 받은 내용 중에서 특히 * 이 논문은 2005년도 정부재원(교육인적자원부 학술연구조성사업비)으로 한국학술진흥 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KRF-2005-041-B00018). ** 영산대학교 학부대학 교수
328 退溪學과 韓國文化 第43號 다음과 같은 3가지 측면을 주목하여 서술하였다. 우선 정도전은 ꡔ주례ꡕ에서 정치의 공공성 측면을 주목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는 국가, 정치, 권력과 같은 것이 사적인 소유물이 아니라 공적인 것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조선에서 표방하는 유교정치에서 그 런 측면을 강조하고 그런 근거와 사례를 ꡔ주례ꡕ에서 찾았다. 그 다음으로 주목한 것은 ꡔ주례ꡕ의 총재 에 관한 것으로, 정도전은 ꡔ주례ꡕ의 천관총재에서 설명된 총재정치론을 전적으로 참고하여 조선경국전 과 경제문감 을 저술하였다. 정도전은 현실적으로 기 존의 정치권위의 존재와 그 의미를 인정하는 한편, 현실적으로 가능한 유교정치의 실 현을 위해 강력한 권력을 갖는 총재정치를 구상하였다. 정도전은 이러한 총재정치에 입각하여 ꡔ주례ꡕ의 기본적인 틀인 天, 地, 春, 夏, 秋, 冬의 육전체제 를 조선경국전 에 도입하면서 조선의 상황에 맞는 유교국가의 통치구조를 설계하였음을 분석하였다. 그러면서 이런 정도전의 정치 구상은 당시의 정치를 이론적으로는 한 단계 공적인 차 원으로 격상시키는 것이지만 또한 현실정치의 차원에서 총재정치론은 그 당시에는 여 전히 이상적인 것이었음을 지적하였다. 주제어 周禮, 총재정치, 유교국가, 육전체제, 정도전 Ⅰ. 서론 유교국가 조선의 설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鄭道傳의 사상적 기반은 무엇인가? 그동안 학계에서는 ꡔ周禮ꡕ가 그것의 하나일 것으로 생각해오고 있 었다. 정도전이 朝鮮經國典 등에서 ꡔ주례ꡕ를 언급했었고, 그의 저작에서 ꡔ주례ꡕ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정도전 이후에 조선은 더욱 유교국가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고, 그런 조선을 만들어갔던 관료, 유학 자들은 이상적인 유교국가로서의 조선의 미래 모습을 늘 東周 라는 상징적 구호로 표현하였다.1) 또한 새로운 제도가 필요할 때 ꡔ주례ꡕ를 그 근거로 인 용하곤 했다.2) 필자가 정도전과 ꡔ주례ꡕ와의 연관성을 주목하는 이유는 ①
정도전의 유교국가론과 ꡔ周禮ꡕ 329 정도전이 저술한 朝鮮經國典 과 經濟文鑑 등은 사실상 조선 최초의 헌법 과 정치구상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조선의 통치구조 형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책이고, ② 그 내용 중에 冢宰정치와 六典체제는 ꡔ주례ꡕ의 특징 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③ ꡔ주례ꡕ는 정도전이 활동했던 여말선 초 뿐만 아니라 조선후기 까지 일관되게 조선의 유학자들이 학습해온 필수적 인 교재로서 관료제도, 일반행정 등에 대한 이론적 모델이었고, 이를 근거로 다수의 논평과 저작들이 나왔고, 조선시대 유교정치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그 사상적 원형으로서 참고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3) 한편, 조선경국전 과 관련하여 그간 학계에서는 ꡔ주례ꡕ뿐만 아니라 또한 ꡔ經世大典ꡕ도 영향을 준 것으로 언급되어왔다.4) 그러나 필자는 다음과 같은 1) 東周 는 공자가 추구한 유교적 이상국가의 상징적인 이름이었는데, 정도전도 朝鮮經國典 서두에서 朝鮮 이라는 국호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東周를 만들겠다고 한 공자의 말을 인용 했다[정도전, ꡔ국역 삼봉집ꡕ 2, 민족문화추진회 역(민족문화추진회, 1977) p.233]. 2) 조선에서 ꡔ周禮ꡕ는 1478년(성종 9년)에 작성된 金宗直의 발문이 붙은 것이 凊道郡에 서 출판되었고, 1648년(인조 26년)에는 趙絅의 발문과 함께 출판되었다. 그리고 1706 년(숙종 32년) 판본이 있고, 이것을 이후에 복사한 여러 종류의 목판본이 있고, 또한 다수의 ꡔ주례ꡕ 필사본이 전해지고 있다. 금속활자본 ꡔ찬도호부 주례ꡕ가 일본에 있는 것 으로 학계에 보고된 바 있다. 현재 학계에서는 학민사에서 2권으로 영인한 ꡔ周禮ꡕ (1997년 간행)를 주로 참고하고 있는데, 이것은 ꡔ周禮ꡕ 원문에 정현의 註 등이 추가된 것이다. 이 책 서두에 金宗直, 趙絅, 金演의 발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책은 1706년 이후의 판본을 복사한 것으로 여겨진다. 최근까지 전해지고 있는 조선시대 목판본 ꡔ周 禮ꡕ는 책판의 크기만 약간 다를 뿐 ꡔ周禮ꡕ원문과 정현의 주를 붙인 것으로 그 내용이 동일하다. 필사본은 ꡔ周禮ꡕ 원문만을 필기한 것에서부터 정현의 주까지 필사한 것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3) 그 중에서 정약용의 ꡔ經世遺表ꡕ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ꡔ邦禮草本ꡕ라고 했던 이 저술은 ꡔ周禮ꡕ가 천자국의 통치에 관한 것임을 비하여 조선과 같은 규모의 국가에 적용될 수 있는 邦禮 를 구상한 것이다. 정도전과 정약용 사이에 시기적으로 상당한 간격이 있었 음에도 정치제도에 관한 한 ꡔ周禮ꡕ를 중시하는 경향은 그대로 유지된 것이다. 이렇게 ꡔ周禮ꡕ는 조선시대 유교국가론을 일관하는 사상적 理念型이었고, 특히 정도전의 그것에 관한 이해와 수용은 조선시대 유교국가론의 시작과 그 특성을 이해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 15세기, 16세기에 조선에서 ꡔ주례ꡕ 활용 사례와 그 이후 유학자들 사이에서의 ꡔ주례ꡕ 논의에 대해서는 이원택, 15-16세기 ꡔ周禮ꡕ이해와 국가경영, 연세대학교 국학 연구원 편,ꡔ한국 중세의 정치사상과 周禮ꡕ(혜안, 2005) pp.119-153 참고.
330 退溪學과 韓國文化 第43號 이유에서 ꡔ경세대전ꡕ보다는 ꡔ주례ꡕ에 주목하게 되었다. 우선 ① 조선경국전 을 비롯한 정도전의 저술에는 ꡔ주례ꡕ에 대한 언급이 있지만 ꡔ경세대전ꡕ에 대 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는 점이다. ② ꡔ주례ꡕ는 비록 저자에 대한 논란 은 있지만 체계적인 저술 형태로 현재까지 남아있지만, ꡔ경세대전ꡕ은 산실되 어 현존하는 책이 없다는 점이다. 물론 進經世大典表 나 經世大典序錄 과 같이 ꡔ경세대전ꡕ의 내용을 개괄적으로 설명하는 자료가 다른 책의 일부에 포 함되어 전해지고 있지만 단독의 연구 주제로 정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 한다.5) 필자는 정도전이 ꡔ주례ꡕ와 ꡔ경세대전ꡕ 중에서 어느 책에 더 영향을 받았는가라는 택일적 관점보다는 ꡔ주례ꡕ는 유교정치와 법전의 理念型이고, 이것의 구체적인 참고 사례의 하나가 ꡔ경세대전ꡕ이고, 또 그 둘을 종합적으 로 참고한 것이 조선경국전 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다만, 본고에서는 연구 주제를 ꡔ주례ꡕ에 집중한 것이고 보완적으로 기존에 남아있는 자료의 범위 내 에서 ꡔ경세대전ꡕ에서 언급할 수 있는 것은 서술 과정에서 참고하려고 한다. 한편, 기존의 정도전에 대한 연구 현황을 보면, 이상백 교수가 1935년 4 월에 ꡔ진단학보ꡕ 제2호에 발표한 三峰 人物考 戊寅難雪冤記를 중심으로 라 는 논문에서, 정도전이 받은 정치적 모함과 攻遼 주장, 그리고 對明 정책을 서술한 것이 그 근대적 연구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6) 본고에서 주목하는 바와 같이 정도전과 ꡔ주례ꡕ를 논의의 대상으로 거론한 연구는, 한영우 교수 의 ꡔ정도전 사상의 연구ꡕ가 선구적이라고 할 수 있다.7) 이 책에는 정도전과 4) 여말선초 유학자들의 ꡔ經世大典ꡕ이해에 대해서는 김인호, 여말선초 육전체제의 성립과 전개, ꡔ동방학지ꡕ 118권, 2002, pp.14-18 참고. 5) ꡔ文淵閣 四庫全書ꡕ(電子版), 元文類, 卷十六, 歐陽玄, 進經世大典表 ; 卷四十, 雜著, 趙 世延等 經世大典序錄. 6) 이상백, 三峯 人物考(1) 戊寅難雪冤記를 중심으로, ꡔ진단학보ꡕ 제2권, 1935년. pp.1-45. 7) 한영우, ꡔ정도전 사상의 연구ꡕ(서울대학교 출판부, 1987), pp.38-40, 125, 230, 244.
정도전의 유교국가론과 ꡔ周禮ꡕ 331 ꡔ주례ꡕ에 관해 4가지 특징이 지적되어 있다. ① 정도전의 ꡔ주례ꡕ의 영향을 받았으나 그대로 모방한 것이 아니고 현실에 맞게 조정하였다는 점, ② 조 선경국전 은 부분적으로 ꡔ주례ꡕ에서 총재[재상], [과거제도], 삼경제도, 병 농일치제도에 관한 아이디어를 빌려왔다는 것, ③ 그리고 정도전이 교육과 入官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킨 것도 또한 ꡔ주례ꡕ에 의한 것임을 지적한 것이 있다. 이런 연구는 ꡔ주례ꡕ가 정도전의 정치 경제 군사에 대한 개혁사상의 중핵을 이루는 것 8)이라고 보는 관점에서 그 관련성이 있음을 지적한 것이 고, 그 구체적인 내용 분석의 차원으로 서술이 진전된 것은 아니었다. 이외 에 정도전 연구와 관련하여 ꡔ주례ꡕ의 법가적 요소 를 지적한 저술도 있고,9) 정몽주와 정도전을 비교 분석하는 차원에서 조선경국전 의 六典의 기본 원 리는 ꡔ주례ꡕ의 정신을 계승한 것 이라고 지적한 저술도 있다.10) 또한 도현철 교수도 여말선초 개혁사상의 전개와 ꡔ주례ꡕ 라는 논문에서 정도전의 조선경 국전 을 중심으로 ꡔ주례ꡕ의 육전적 정치체제에 대해 서술한 바 있다.11) 그동안 정치학계에서도 여말선초라는 정치적 격동기에 활동했던 정치가로 서 유교국가 운영에 관한 체계적인 저술을 남긴 정도전을 주목해왔다. 그리 고 본고에서 정도전과 ꡔ주례ꡕ를 연결 고리로 주목하고 있는 정치의 공공성 과 총재정치론 에 대해서도 그간 정치학계에서 다양하게 논의되어왔다. 그러 나 정도전의 정치사상과 관련하여 ꡔ주례ꡕ를 통하여 위의 주제를 연결하는 단 독 논문은 아직 없었다. 필자는 정도전에 대한 연구가 정치학계에서 계속 증 가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그의 사상적 원천의 하나로서 그동안 언급되어 왔던 그 ꡔ주례ꡕ의 구체적 내용과 영향이 어떤 것인지를 특히 조선경국전 을 8) 한영우. ꡔ정도전 사상의 연구ꡕ, p.244. 9) 김용옥. ꡔ삼봉 정도전의 건국철학ꡕ(통나무, 2004), p.35. 10) 정성식, ꡔ포은과 삼봉의 정치철학ꡕ(심산, 2003),p.165. 11) 도현철, 여말선초 개혁 사상의 전개와 ꡔ주례ꡕ,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편, ꡔ한국 중 세의 정치사상과 周禮ꡕ, pp.83-114.
332 退溪學과 韓國文化 第43號 통해 살펴보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ꡔ주례ꡕ라는 책이 관직의 명칭 을 나열하고 간략하게 그 직무를 언급한 것이기 때문에 논쟁적으로 논의를 진행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필자는 ꡔ주례ꡕ의 체제, 관직 구성, 관직 명칭을 통하여 그 특징을 해석하는 방식으로 논리를 전개하 려고 한다. 그러면서 정도전이 ꡔ주례ꡕ에서 추출하여 조선의 실정에 맞게 적 용하려고 했던 정치사상적 요소를 서술하는데 초점을 두려고 한다. 그리고 정도전은 ꡔ주례ꡕ를 참고하여 새로운 왕조인 조선의 정치 이념적 목표를 어떻 게 제도를 통하여 구현하려고 했는가라는 문제에 주목하려고 한다. 필자는 정도전의 그러한 정치구상과 제도의 핵심이 조선경국전 에 들어있고 이것은 그가 구상한 유교국가 조선의 설계도라는 관점에서, 그것을 유교국가의 정신 으로서의 ① 仁과 公共性이라는 정치이념적 지향과 ② 冢宰정치와 ③ 六典체 제라는 제도적 측면에서 서술하려고 한다. Ⅱ. 유교국가의 정신 仁과 정치의 公共性 정도전은 ꡔ주례ꡕ에서 무엇을 찾으려고 했는가? 물론 그것은 유교 성리학 의 가치를 구현하려는 제도적 설계였을 것이다. 필자는 ꡔ주례ꡕ가 유교국가 설 계안을 찾았던 정도전에게는 理念型으로서 받아들여졌다는 관점에서 ꡔ주례ꡕ에 내재되어 있는 그리고 조선경국전 에서 유교국가의 정신으로 제시된 것에 대하여 먼저 서술하려고 한다. 이것은 다음 단계로 설명할 제도적 장치로서 의 총재정치와 육관체제에 대한 이념적 기반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ꡔ주례ꡕ에 설치되어 있는 天官, 地官, 春官, 夏官, 秋官, 冬官이라는 6개 부서, 그리고 그 각각에 소속된 관직들의 구성과 배치는,12) 그 명칭에서부터 12) ꡔ纂圖互註 周禮ꡕ(1997년 학민문화사 영인본 乾坤 2권. 이하 ꡔ周禮ꡕ 인용은 이 책을
정도전의 유교국가론과 ꡔ周禮ꡕ 333 짐작할 수 있듯이 자연적 질서 논리에 입각해 있다. 정약용이 ꡔ주례ꡕ의 禮 자를 설명함에 있어서 천리에 비추어 합당하고 인정에 시행해도 화합한 것을 禮라고 하며 13)라고 설명한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리고 王者가 하늘을 본떠서 만물을 다스리는 권한 14)이라고 설명한 것도 ꡔ주례ꡕ가 자연과 인간 에 대한 一元的 理解 라는 관점에서 구성된 작품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 단서 가 된다. ꡔ주례ꡕ에는 천관 지관 춘관 하관 추관 동관이라는 자연현상 을 본뜬 관직 명칭으로 국가의 통치조직이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天 地 春 夏 秋 冬 이라는 자연현상과 그 의미를 인간의 정치세계 운영에 적용 한 것이다. 부연하자면, 천 지 춘 하 추 동에서 그 특성적인 대표 개 념을 상정하고 그것을 그 조직의 목적으로 표방한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부 속 관직의 숫자도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평균적으로 60개씩 정도로 설정함으 로써 천지운행에 관한 숫자에 의도적으로 맞추려고 했다.15) 그리고 그것을 실무적으로 총괄하는 총재와 그 위의 최고 통치자를 설정한 것이다. 이렇게 자연 질서의 원리와 인간의 그것을 일원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은 ꡔ주례ꡕ는 물 론 유교 고전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이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ꡔ주 례ꡕ가 만들어진 시대 이후에도 지속되었고 이후 세련된 논리로 정돈되었다. 특히 신유학 성리학으로 발전된 단계에 있어서 人性에 관한 논의에 이런 논 리가 발전적으로 적용되었다. 정도전 역시 그 시대 학문의 특징에 영향을 받 아 仁, 義, 禮, 智와 같은 四端을 春, 夏, 秋, 冬에 연결시키는 경향에 대해 서, 그리고 그러한 개념의 통합 개념으로 仁을 상정하는 경향에 익숙했던 것 참고) 周禮篇目 天官冢宰, 地官司徒, 春官宗伯, 夏官司馬, 秋官司寇, 冬官考工記 官 職 참고. 13) 정약용, ꡔ경세유표(經世遺表)ꡕⅠ(이익성 옮김)(한길사, 1997), 邦禮草本引, p.73. 14) 정약용, ꡔ경세유표ꡕⅢ(이익성 옮김), 지관수제, 부공제. 염철고 하, p.998. 15) 정약용, ꡔ경세유표ꡕⅠ(이익성 옮김), 천관이조, p.86. ꡔ주례ꡕ 6관에 소속된 것이 각 각 60(小宰의 조문)이다. 정현의 주에는 6관 소속이 360인데 천지, 사시, 일월, 성 신의 도수를 본떠서 천도가 구비되었다.
334 退溪學과 韓國文化 第43號 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러면 정도전은 자연현상의 정신을 관직 구상에 어떻게 반영했는가? 이 에 대해서는 정도전이 궁궐내의 건물에 이름을 붙이면서 했던 설명이 참고가 된다. 천지가 만물을 봄에는 생장시키고, 가을에는 성숙시킵니다. 성인은 만 백성을 仁으로 생장시키고 義로 제어합니다. 그리하여 성인이 하늘을 대신하 여 만물을 다스릴 때 그 政令과 施爲를 하나같이 천지의 운행을 본뜹니다. 16) 이런 표현에서 정도전도 ꡔ주례ꡕ에 반영된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일원적 이해의 경향을 수용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그가 조선경국전 을 바치면서 군주에게 하늘의 덕을 본받아 인으로 자리를 지킬 것[守位以 仁] 을 권유한 것을 필자는 그런 논리라고 해석한다.17) 이렇게 四季와 四端 을 연결시키는 논리는 그의 글 전반에서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 그는 봄을 仁으로 가을을 義로 보고, 춘관과 추관이라고 했던 ꡔ주례ꡕ의 관직 명칭을 그 대로 적용하지는 않았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런 정신과 경향을 받아들였다. 그 는 봄에서 仁을 생각하는 바와 같이, 天과 地와 그리고 四季에 하나씩의 개 념을 설정했던 ꡔ주례ꡕ의 논리를 채용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합하는 상위 대 표 개념으로 仁을 설정하였다. 이렇게 天, 地, 春, 夏, 秋, 冬의 자연에서 생 각해낸 덕목의 종합은 곧 하늘의 덕이며 통치자는 그런 덕목을 본받아 仁을 실천해야[體仁] 18) 한다고 군주에게 충고했던 것이다. 이렇게 仁을 정치의 근본적 가치로 제시하는 것은 유교정치의 일반적 경향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정도전은 ꡔ주례ꡕ를 통하여 그런 유교정치의 전통을 계승하여 조선의 유교정 치에 적용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면 정도전이 ꡔ주례ꡕ에서 제도적인 차원에서 특별히 주목했던 정신은 16) ꡔ국역 삼봉집ꡕ1(민족문화추진회 역), 기, 연생전 경성전. p.258. 17) ꡔ三峰集ꡕ, 朝鮮經國典 正寶位(이하 삼봉집 원문인용은 ꡔ국역 삼봉집ꡕ 부록으로 있 는 삼봉집 영인본임). 18) ꡔ국역 삼봉집ꡕ1(민족문화추진회 역), 전. 찬진조선경국전전. p.198.
정도전의 유교국가론과 ꡔ周禮ꡕ 335 무엇인가? 이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지만 필자는 그것은 정치의 공공성 문제라고 생각한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조선시대 정치에 대해, 그리고 군주의 정치권위의 성격에 대해 다양한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군주가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했다거나, 군주는 유학자 관료들의 견제와 여론정치 명 분 때문에 자의적인 통치를 할 수 없었다는 등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시대의 정치를 비판적으로 보는 관점에서는 조선시대에는 단지 사적인, 그리고 권위주의적인 권력만이 존재했었을 뿐이라고 혹평할 수도 있을 것이 다. 필자는 그 시대의 정치에도 나름대로 추구하는 이상과 원칙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정치의 공공성에 대한 인식이었고, 정 도전은 그것을 ꡔ주례ꡕ에 의거해서 제도화시키려고 했다고 생각한다. 정도전은 통치가 있는 곳이지만 공공성이 결여되어 있다면 이는 단지 힘 을 장악한 것일 뿐 정치라고 할 순 없다고 평가했다. 세자를 정할 때, 반드 시 어진 사람으로써 한 것은 덕을 존중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천하 국가를 공적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아님이 없었다 라고19) 한 그의 말에 그런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권력이 사적인 것이라면 그것을 누가 승계해도 상관없지만, 정치는 공공성의 정신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정도전 저술에 일 관하는 정신의 하나는 군주로 하여금 私心을 버리고 공적인 마음을 갖도록 하는 것이었다. 정도전에게 있어서 그것은 곧 제도화된 국가의 정치가들이 필수적으로 구비해야할 덕목이었다. 그리고 정도전이 정치의 공공성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도 있었다. 그는 고려 말기에 權臣 이인임을 비판하다가 유배에 처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다시 제도권 정치의 세계로 돌아올 때 까지 는 10여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그는 복귀 이후에 고려 말기 국가 재정의 문제를 지적한 적이 있었는데, 그 비판의 핵심은 권문세가들에 의해 공공의 토지가 고갈되었다는 것이었다. 이런 정치 역정 속에서 그 자신이 현실 정치 19) ꡔ국역 삼봉집ꡕ2(민족문화추진회 역), 조선경국전, 정국본, p.238.
336 退溪學과 韓國文化 第43號 의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파악한 것이 바로 사유화된 정치권력이었을 것이다. 결국 그는 조선건국이라는 역성혁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고, 그가 이후에 작성한 저술들에 그러한 생각을 담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필자는 그 것이 조선경국전 上 治典 官制의 첫 문장에서 인군은 하늘의 직무를 대신 하여 하늘의 백성을 다스린다[人君代天工治天民] 20)고 했던 것에 압축적으로 표시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백성이 군주 소유물이 아님을 하늘의 백성[天 民] 이라는 표현으로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런 백성을 다스리는 것을 하늘의 정치 라고 할 수 있는 天工 을 대행하는 것으로 규정했다.21) 유학자들에게 있어서 하늘이라고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理와 같은 개념으로 발전되었지만, 보편적, 편재성, 그리고 최종적인 권위와 같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정 도전에게 있어서 인군과 백성을 매개하는 것이 하늘인 것이다. 이처럼 정도 전이 생각하는 인군=하늘=백성, 그리고 하늘=공공성 이라는 논리에서, 정치와 비정치의 구분은 곧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구분인 것이다. 그러면 정도전이 ꡔ주례ꡕ에서 찾은 공공성의 논리는 어떤 것인가? (1) 우선 정도전이 ꡔ주례ꡕ에 근거하여 백성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보자.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정도전은 정치를 설명할 때 天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 였는데, 그가 ꡔ주례ꡕ를 인용하면서 임금이 백성의 숫자가 기록된 문서를 받 을 때 절하면서 받는 것은 그 하늘을 중히 여기는 까닭 22)이라고 한 것도 이 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것을 민본정치의 논리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맹자도 民貴의 개념을 제시하였고,23) 정도전도 ꡔ서경ꡕ에 20) 또한 ꡔ三峰集ꡕ 朝鮮經國典 下, 憲典 職制, 王者代天理物. 21) 고려말 개혁자들이 왕권을 제한하고 정치적 균형을 달성하기 위한 제도 를 정당화하는 이론으로서 하늘을 대신하여 다스린다 는 천위론(天位論)을 공적인 권력의 최종적인 근원으로 파악하고, 천위론의 핵심은 결국 권력의 공공성이었다 고 서술한 김영수, ꡔ건국의 정치ꡕ(이학사, 2006) pp.788-789 참고. 22) ꡔ三峰集ꡕ, 朝鮮經國典, 賦典, 版籍. 故周禮獻民數於王 王拜而受之 所以重其天也 23) ꡔ孟子ꡕ盡心章句下, 孟子曰 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
정도전의 유교국가론과 ꡔ周禮ꡕ 337 나오는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다[民惟邦本] 24)라는 말을 인용했었다. 그렇지 만 이런 해석에서 좀 더 나아가서 보면, 정도전은 왕이 백성의 호적에 절한 다 고 하는 것을 정치의 공공성을 표현하는 행위로 본 측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위의 民爲邦本 이라는 유교정치의 좌표를 실현할 수 있는 이념과 제도적 장치를 고민하고 있었다. 조선경국전 의 첫 부분 正寶位 에서 정도 전은 ꡔ주역ꡕ 繫辭 를 인용하면서 位 의 조건이 바로 仁 이라고 전제하면서, 백성의 마음을 얻어 자리를 지키는 방법은 守位以仁"일 뿐이라고 강조한 했 던 점이 그것이다.25) 이런 것이 그가 지향하는 정치의 방향이었고, 그는 그 다음 단계로 이것을 실천하는 방안과 제도를 고민했다. 이렇게 정도전이 말 한 바, 天, 天民, 그리고 인주가 백성의 호적에 절하는 행위 등과 같은 것은 그가 백성을 정치의 공공성의 차원에서 해석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2) 정도전은 高麗國新作都評議使司廳記 에서 당시의 門下府, 三司, 密直 이 중대 사안에 있어서는 협의할 것을 강조하면서 그런 협력과 통합의 근거 로서 ꡔ주례ꡕ의 정신으로서 官聯 26)이라는 용어를 제시하였다. 관련 이란 관 직이 일종의 기능이기 때문에 그것이 통합적인 맥락에서 유기적으로 작동되 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그가 정치는 혼자서 할 수는 없는 것[不可以獨力 爲之] 27)라고 한 것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에게 있어서 관직을 설치한다는 것은 그 이전의 사적인 또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공적인 영역으로의 전환을 의미하고, 또 관직은 또한 전체의 한 기능으로서 작용하 는 것이다. 24) ꡔ三峰集ꡕ 朝鮮經國典, 下, 憲典, 戶役. 25) ꡔ三峰集ꡕ 朝鮮經國典, 上 正寶位 ꡔ孟子ꡕ 離婁章句上, 孟子曰 三代之得天下也 以仁 其失天下也 以不仁. 본고에서는 정도전이 이런 전거를 단지 구호로서가 아니라 실천 적 좌표로 선언하고 이를 위한 제도적 틀을 구상했다는 점에 초점을 둔다. 26) ꡔ三峰集ꡕ, 記, 高麗國新作都評議使司廳記. 27) ꡔ三峰集ꡕ 朝鮮經國典, 治典, 官制.
338 退溪學과 韓國文化 第43號 (3) 이런 정치의 공공성 문제와 관련하여 정도전은 공공성에 반하는 관 행 등을 문제로 지적하고 제도적 개선을 생각했었다. 그가 人君에게는 사유 재산은 없다[人君無私藏] 28)고 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였다. 그의 논리에 의 하면 인군은 광대한 토지와 인민을 專有하지만[人君 專土地之廣 人民之衆], 여기에서 나온 賦稅로 국가의 모든 비용을 충당해야 하기 때문에 군주가 사 적으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재산은 없다는 것이다. 군주는 단지 군주라는 역할 을 담당하는 것일 뿐, 국가의 토지와 인민을 소유하는 자가 아님을 말한 것이다. 그는 ꡔ맹자ꡕ 滕文公 上에서 문장을 인용하면서 백성들이 부세를 내 는 것은 통치자를 봉양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였다. 군주는 정치를 하고, 백성들은 생업에 종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농사까지 지을 시간이 없 는 군주를 위해 백성들이 부세를 납부하여 군주를 먹여 살린다는 것이다. 서 로 역할을 분담하는 방식이기에 백성은 군주에게 보답하고, 군주는 백성에게 보답한다는 논리인 것이다.29) 정도전은 이런 논리를 펴면서, 군주와 관리는 私的으로 그리고 사치스런 마음으로 국가의 비용을 쓸 수 없음을 ꡔ주례ꡕ에 있는 제도를 근거로 설명했다.30) Ⅲ. 총재정치 정도전이 위와 같은 유교정치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한 장치로서 ꡔ주례ꡕ에 서 특히 주목한 것은 총재정치였다.31) 이것은 정도전의 정치사상 속에 들어 28) 29) 30) 31) ꡔ三峰集ꡕ 朝鮮經國典 賦典, 上供. ꡔ三峰集ꡕ 朝鮮經國典, 賦典, 賦稅. ꡔ三峰集ꡕ 朝鮮經國典,賦典, 上供. ꡔ三峰集ꡕ에 나오는 宰相 과 冢宰 라는 개념, 또는 용어의 차이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 가 있을 수 있다. 鄭道傳은 經濟文鑑 에서 宰相之職, 朝鮮經國典 에서 宰相年表 와 같은 제목으로 宰相 의 정치적 位相과 役割, 資質에 대해 언급하였다. 冢宰 를 周
정도전의 유교국가론과 ꡔ周禮ꡕ 339 있는 정치권위의 기원, 대권의 계승, 그리고 정치체제 안정 문제까지도 연결 되는 중요 쟁점이기도 한다. 한편, 학계에서도 정도전과 재상 정치에 대해서 연구가 시도되어왔다. 조선시대 君臣 관계의 특성에 대한 연구로부터,32) 조 선시대 군신공치에 관한 연구,33) 조선시대 군주와 재상의 권력관계를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을 사례로 하여 총재정치 관점에서 분석한 것34) 등과 같이 연구의 관점이 다양하다. 조선시대 유교정치에 있어서 군권과 신권이라는 주 제는 고전적이지만 유교정치의 특성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핵심 요소이기 때 문에 앞으로도 다양한 해석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필자는 여기서는 정도 전의 총재정치 구상의 이론적 기초가 되는 ꡔ주례ꡕ와의 연관성에 초점을 두고 서술하려고 한다. (1) 먼저 정도전이 ꡔ주례ꡕ에서 총재정치를 주목한 이유에 대해 살펴본다. 정도전은 군주의 통치와 지적 수준에 관해 帝者의 시대, 王者의 시대, 그 리고 覇者의 시대 로 구분하는 고전적인 분류를 그대로 인용하였다.35) 이것 은 禹, 湯, 文, 武王 이후의 군주는 사실상 군주가 자질에 있어서 신하보다 못한[君不及其臣]36) 시대에 속한다는 견해인 것이다. 그리고 이는 그가 살 32) 33) 34) 35) 代의 宰相이라는 사례로 설명한 것이 있다. 이렇게 본다면, 그에게 있어서 宰相이란 행정 조직을 통솔하면서 군주의 정치를 보좌하는 최고위 정치인 관료이고 冢宰는 한때 있었던 재상의 한 명칭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본고에서는 朝鮮經國典 의 治典에서 그가 冢宰 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그 위상과 역할에 대해 설명한 점과 그러한 그의 사상적 근원이 ꡔ周禮ꡕ의 天官冢宰 라고 보는 관점에서 이를 연결시켜 분석하기 위해 총재정치 라는 용어로 그의 재상에 관한 구상을 서술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필자는 재상정치 라는 용어가 총재정치 보다 넓은 內包를 가진 것으로 생각한다. 김석근, 조선시대 군신관계의 에토스와 그 특성 비교사상적인 관점에서, ꡔ한국정치 학회보ꡕ 29집 1호, 1995, pp.95-124. 최연식, 여말선초의 권력구상 왕권론, 신권론, 군신공치론을 중심으로, ꡔ한국정치학 회보ꡕ 32집 3호, 1998, pp.31-51. 부남철, 정도전의 재상론과 태조, 조선재상들의 제왕만들기, 그 안목과 기술, ꡔ2007 한국정치학회 연례학술회의 논문집ꡕ, 2007, pp.53-69. 帝者의 시대는 堯, 舜, 王者의 시대는 禹王, 湯王, 文王, 武王이 통치하던 시대(ꡔ三峰 集ꡕ 朝鮮經國典 治典摠序 宰相年表).
340 退溪學과 韓國文化 第43號 았던 시대의 군주들에게도 역시 적용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시대의 군주들에게는 有德者君主論이 적용되었던 帝者와 王者의 시대와는 다른 어떤 정당성의 근거가 필요한 것이다. 신하보다 못하면서 단지 기존 군주이기 때 문에 그 권위를 인정해야 하는가? 정도전은 이런 현실을 인정하면서 그런 군 주의 정치 권위의 정당성을 보완하기 위한 2가지 장치를 주목했다. 그 하나 는 고전적으로 강조되어왔던 방식인 바, 군주의 인성을 보완하는 장치인 것 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제도적 장치를 통하여 군주의 정치를 보좌하는 것 이다. 그런 제도적 보완책이 정도전에게 있어서는 바로 총재정치였다. ꡔ주례ꡕ 天官冢宰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왕이 나라를 세우고[惟 王建國] 이에 총재를 세워 나라 다스리는 일을 맡긴다[乃立天官冢宰使帥而掌 邦治]. 37) 총재는 왕을 보좌하면서[佐王] 정치실무인 六典을 총괄하는 위치 에 있는 것이다.ꡔ주례ꡕ의 이 문장에 대한 주석에는 모든 관리는 총재의 지 휘를 받는다 는 설명과 함께 ꡔ논어ꡕ 憲問篇에 나오는 임금이 죽으면 모든 관 리가 자기의 직책을 묶어서 총재에게 명령을 듣는다 38)는 문장도 보충적으로 인용되어 있다. 세습군주제에서 帝者나 王者의 시대에서 나올 수 있는 聖賢의 군주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런 군주의 덕을 보충할 수 있는 인물을 찾아 군주가 하는 역할 일부를 맡기는 방법으로 근거를 찾는 것이다. 군주가 당대 최고 현능자의 능력을 빌리는 방식인 것이다. 현능한 자중에서 선택된다는 점에서 세습에 의한 군주권 계승자보다는 나은 상황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도전이 ꡔ주례ꡕ에서 찾은 총재정치론은 기존 군주 의 정치권위를 보완해주는 장치인 것이다. (2) 그렇다면, 군주는 총재에게 권력을 완전히 위임할 것인가? ꡔ주례ꡕ에 36) ꡔ三峰集ꡕ 朝鮮經國典 治典摠序 宰相年表. 37) ꡔ纂圖互註 周禮ꡕ 天官冢宰. 38) ꡔ纂圖互註 周禮ꡕ 天官冢宰, 註 以佐王邦治六官皆聽於冢宰 故論語曰 君薨百官摠己以聽 於冢宰.
정도전의 유교국가론과 ꡔ周禮ꡕ 341 는 물론 정도전의 저술에도 총재정치와 관련하여 권력의 移轉 과 같은 의미 로 서술된 부분은 없다. 총재의 역할에 대해 정도전은 相 이라는 용어를 사 용하고 이를 輔相 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총재는 군주를 도와주는 역할 이라는 것이다. ꡔ주례ꡕ에는 천관총재를 세워서 그 소속부서를 관리하게 하고 나라의 다스림을 주관하여 왕의 나라 다스림을 돕는다[乃立天官冢宰帥其屬而 掌邦治以佐王均邦國] 에서 佐 의 의미는 그 주석에 助 로 해석되어 있다.39) 정도전도 총재라는 것은 위로는 군부를 받들고 밑으로는 백관을 통솔하며 만 민을 다스리는 것 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총재의 宰 자를 宰制 한다는 뜻 으로 해석하면서, 이는 백관과 만민에게 적합한 역할을 부여하고 관리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40) 이는 관리, 또는 경영의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총재는 군주에 대해서는 相 의 개념을, 백관과 백성에 대해서는 宰 의 개념을 적용할 수 있는 존재였다. 이런 총재의 역할을 정도전은 "大治 와 小治 로 구분하여 설명하였다. 대치는 군주와 함께 하는 정치이고, 소치는 군주로부터 위임받은 일반 행정을 관리하는 것이다. 대치는 군주+총재 의 정치영역이고, 소치는 총재만의 영역인 것이다. 경제문감 에, 나라의 큰 일 은 임금이 裁決하고, 작은 일은 총재가 전담해서 다스린다 는41) 부분이 있 다. 그 작은 일이 소치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王者가 廟堂에 앉아서 제후의 조회를 받는 것은 그 일이 매우 크므로, 태재는 감히 그 정사 에 간여하지 못하고, 다만 임금의 聽治를 도울 따름이다 라는42) 문장이 있 다. 이런 부분도 총재가 담당하는 小治 에 관한 일이다.43) 이렇게 정도전의 39) ꡔ纂圖互註 周禮ꡕ天官冢宰 ꡔ三峰集ꡕ 經濟文鑑 上 宰相, 周官大宰之職 掌建邦治以佐 王治邦國. 40) ꡔ三峰集ꡕ 朝鮮經國典 治典, 故曰相也輔相之義也 故曰宰也宰制之義也 41) ꡔ三峰集ꡕ 經濟文鑑 上 宰相, 大治王與大宰共之也 42) ꡔ국역 삼봉집ꡕ2(민족문화추진회 역), 경제문감 상, 재상, p.25. 43) ꡔ三峰集ꡕ, 經濟文鑑 上, 宰相之職.
342 退溪學과 韓國文化 第43號 총재정치라는 것은 군주 권력의 移轉이나 군주를 대리한다는 의미로 서술하 기에는 과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보다는 좀 더 낮은 단계의 권력 위 임 또는 군주와의 역할 분담 정도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면 총재의 군주에 대한 도움 또는 보좌라고 할 수 있는 相 은 구체적 으로 어떤 일인가? ꡔ주례ꡕ 첫 문장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총재에게 맡겨진 일인 바 각 행정부서를 총괄 관리하면서 나라의 정치를 맡는 것[帥其屬而掌 邦治]이 相 의 주된 임무라고 할 수 있다. 정도전은 군주에 관해서 인주의 아름다움은 순종하지만 나쁜 점은 바로 잡으며, 옳은 일은 받들고 옳지 않은 일은 막아서 인주로 하여금 大中의 지경에 들게 해야 한다 고 하였다. 핵심은 군주의 잘못을 바로 잡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것을 어떻게 바로 잡을 것인 가? 이에 대해 정도전은 正己格君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오직 자신의 정성을 쌓아서 인주를 감동시켜야 하고, 자기 자신을 바루고 인주를 바루어 야 할 뿐이다 라는 뜻이다.44) 그리고 정도전은 ꡔ주례ꡕ에 의거하여 총재가 군 주에게 관련된 일을 하는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였다. 그것은 군주가 사용하는 비용 지출을 총재가 관리한다는 것이다. 총재는 군주의 사치와 비 용의 낭비, 또는 군주의 명령을 빙자한 관리들의 부정을 방지하기 위해서 경 비 지출을 관리한다는 것이다.45) 그리고 군주를 보좌하는 사람들에 관한 지 극히 사소한 일이라도 총재가 다 알고 관할하게 하였다.46) 위와 같은 논리를 보면, 정도전이 생각한 총재의 군주에 대한 관계와 역 할이라는 것은 군주와 총재가 대립하면서 견제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백관을 통솔하는 역할은 존재하지만, 그리고 군주 권력의 사적인 행사를 제 44) ꡔ국역 삼봉집ꡕ2, (민족문화추진회 역) 조선경국전 치전, 총서, p.238. 45) ꡔ三峰集ꡕ 朝鮮經國典 上供, 46) 궁중의 비밀이나 빈첩들이 왕을 모시는 일, 내시들의 집무 상황, 왕이 타고 다니는 수레나 말, 의복과 장식, 그리고 왕의 먹는 음식에 이르기까지도 오직 총재만은 알아 야 한다. ꡔ국역 삼봉집ꡕ2(민족문화추진회 역), 조선경국전 치천, 총서, p.237.
정도전의 유교국가론과 ꡔ周禮ꡕ 343 어하는 임무를 맡았지만, 군주로부터 독립적인 권력을 위임받은 존재는 아니 었다. 또한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권력이 없는 존재도 아니었다. 정도전이 구상한 정치의 세계에서 군주는 그 자체로는 부족한 존재인 것이다. 그리고 총재는 독립적인 존재일 수 없는 것이다. 총재는 군주를 제대로 만나야 그 자신이 추구하는 도를 군주를 통해 실현할 수 있고 혜택이 백성에게 미칠 수 있다고 정도전이 말한 것이 이런 의미인 것이다. 결국 군주와 총재의 진정한 만남이 완벽한 정치를 구축할 수 있는 조건인 것이다. 이를 정도전은 군신이 서로 만날 수 있는 것은 자고로 어려운 일이다 라는 말로 설명하였다.47) 이 런 점에서 정도전이 생각했던 총재는 군주의 정신적 분신이라는 역할을 부여 받은 존재인 것이다. 그러면서 정치실무를 총괄하는 관리자였던 것이다. (3) 한편, 이상과 같이 총재라는 제도적 장치를 통하여 그 덕을 보완받는 방식이외에 군주 자신의 노력에 의해 덕이 보완될 수 있는 방안을 정도전은 어떻게 생각했는가? 유교정치론에서는 오래된 전통이지만 군주의 마음에 호 소하는 방식이 강조되어 왔다. 군주로 하여금 어진 마음으로 백성을 사랑하 고, 현인을 알아보고, 신료들의 충고를 흔쾌하게 수용하라는 것이다. 물론 정 도전도 이런 방식의 군주를 위한 報德 또는 輔仁에 대한 구상을 갖고 있었다. 經筵과 諫官에 대해 언급한 것이 그것이다. 그렇지만 정도전은 이렇게 군주 의 마음에 호소하는 바와 같은 방식을 인정하지만 중점을 둔 것은 총재정치 와 같은 제도적 장치였다. 정도전 이후 조선에서는 경연 제도가 활성화되었 다. 군주에 대한 학습을 통하여 기존의 군주를 유덕자로 만드는 장치였던 것 이다. 군주가 경연에 참여할수록 그의 지성이 보강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 것이고 그것은 또한 그의 정치권위를 보강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도전은 경연에 대해 비중을 두지 않았다. 그의 저술 조선경국전 이나 경제문감 에 서 경연에 관해 언급한 부분은 극히 적다. 기존의 군주를 교육해서 정치를 47) ꡔ국역 삼봉집ꡕ2(민족문화추진회 역), 조선경국전 재상의 연표, p.240.
344 退溪學과 韓國文化 第43號 잘하게 하는 방식보다는 총재라는 인물과의 역할 분담을 통해 군주의 정치권 위를 보강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정도전이 구상하는 바와 같이 군주의 덕을 보완하는 기능자로서의 총재의 존재보다는 어쨌든 기 존 군주를 유덕자로 만드는 경향으로 발전했다. 이런 선택 또는 방향 전환에 의해 조선에서 정도전이 제안한 총재정치론은 발전하지 못했다.48) 그리고 실 무적으로 백관을 통솔하는 존재로서의 총재를 용납할 수 있는 정치적 환경도 마련되지 못했다. 총재를 군주에 대한 잠재적 위협 세력으로 파악하는 경향 이 나올 만한 상황이었다. 군주들에게 이런 종류의 불안감이 존재하는 한, 그리고 정치의 공공성이라고 하는 理想보다는 권력 장악과 유지에 더 관심이 있었을 군주들이 권력을 승계하는 것이 현실인 정치무대에서 정도전이 구상 한 총재정치는 理想的인 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도전 이 굳이 세습군주제를 붙들고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4) 정도전은 세습군주제를 부인하지 않았다. 다만 우려한 것은 세습되는 군주들의 자질 문제였다. 그것에 대한 보완책으로 구상한 것이 총재정치였다. 능력있는 인사를 선택하여 업무를 맡길 수 있기 때문에 군주에 대한 輔德의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한편으로 정도전이 세습군주제에서 찾은 긍정적 요소 는 정치적 안정 측면이었다. 그가 조선경국전 定國本 부분에서 왕위계승에 관해 논한 것으로, 그는 대권 경쟁으로 인한 정치불안정 문제를 극복하기 위 해서라도 대권 계승 또는 승계의 안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세습군주제에 48) 필자는 정도전의 총재정치론이 현실정치의 세계를 냉정하게 분석한 바탕 위에서 구상 된 것이라고 보다는 유교정치의 理想을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본 논문은 그러 한 정도전의 유교정치 구상을 ꡔ周禮ꡕ와의 연관성에 초점을 두고 서술한 것이다. 冢宰 또는 宰相의 위상과 관련하여 정도전 사후에 조선의 현실 정치에서 전개된 議政府와 六曹의 정치적 위상의 변화에 대해서는 별도의 사례 분석이 필요하다. 또한 이러한 정 치제도에 대한 조명과 함께 당시 군주의 정치적 목표와 성향도 의정부의 정치적 위상 과 정책결정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 그리고 국내외 정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 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도전의 유교국가론과 ꡔ周禮ꡕ 345 서는 대권에 대한 쟁투가 줄어들게 되어 정치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 다. 堯, 舜, 禹가 했던 바와 같은 有德者君主論은 이상적인 목표인 것이다. 현실의 정치에서는 최강자가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고 그 권력은 그것을 지지 하는 장치에 의해 상속되고 있었다. 정도전은 그런 세습군주제에서는 대권의 계승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쟁취하기 위한 경쟁은 줄어든다고 본 것이다. 이렇게 세습 군주제에서는 정치적 안정이라는 장점을 취하고 한편으 로는 축소된 형태의, 또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유덕자군주론이라고 할 수 있 는 총재정치론을 구상한 것이다. 총재는 선발할 수 있고 또 그 정치의 결과 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Ⅳ. 육전체제 그러면 정도전이 조선경국전 을 저술함에 있어서 ꡔ주례ꡕ를 참고하여 구 상한 관직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육전체제에 관한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지 만,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이전에, ꡔ經世大典ꡕ에도 이와 관련된 부분이 있어 미리 설명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경세대전 에 대해서는 본고에 서는 상술하지 않았지만, 이것에는 육전을 위주로 구성되어 있는 ꡔ주례ꡕ에는 없는 것으로서 帝號, 帝訓, 帝制, 帝系 에 관해 언급되어 있다.49) 조선경국 전 에도 國號, 定國本, 世系 등이 언급되어 있어 구성상 유사점이 있다.50) 다만, 현재 참고할 수 있는 ꡔ경세대전ꡕ이 다른 문서에 그 목차와 내용이 간 략하게 설명되어 있을 뿐이기 때문에 유사성을 심도있게 분석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조선경국전 에서도 국호, 왕위, 그리고 그 계승에 대해 서술한 49) ꡔ文淵閣 四庫全書ꡕ(電子版), 元文類, 卷四十, 趙世延等 經世大典序錄. 50) ꡔ三峰集ꡕ 朝鮮經國典 正寶位 國號 定國本 世系.
346 退溪學과 韓國文化 第43號 부분이 있으나 육전에 관한 부분에 비해서 소략하다. 조선경국전 이 유교국 가의 설계안이라고 한다면 국가의 통치의 이념과 그 근본정신에 대한 설명은 필요불가결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경국전 서두에 표방된 통치의 목 적과 정신으로서의 仁, 朝鮮 이라는 국호, 東周라는 용어로 표현한 유교국 가로의 지향성, 대권의 계승 에 대한 것은 국가의 大體에 관한 것으로써 행 정실무인 육전의 체제 이전에 먼저 제시되어야 할 요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간 학계에서는 정도전이 조선경국전 에서 관직을 6가지로 분류한 것 을 ꡔ주례ꡕ에 연관시켜 설명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ꡔ주례ꡕ의 天官과 治 典은 조선경국전 의 治典, 地官과 敎典은 賦典, 春官과 禮典은 禮典, 夏官과 政典은 政典, 秋官과 刑典은 憲典, 그리고 冬官과 事典은 工典으로 연결하여 이해하였다.51) 다만, 조선경국전 은 서술방식에 있어서 정도전이 태조 이성 계에게 유교국가의 설계 방향을 제안한 것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관직 명칭 보다는 담당 직무와 역할 위주로 설명한 것이고 ꡔ주례ꡕ는 관직의 명칭과 역 할을 설명한 것이기 때문에 그 제작 의도와 완성도에 있어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미 인용했던 經世大典序錄 을 보면, ꡔ경세대전ꡕ에도 정도전이 조선경국전 에서 했던 바와 같이 직무와 역할 위주로 육전의 내용이 일부 설명되어 있다. 관련된 부분은 이하 육전에 관해 서술하면서 설명한다. (1) ꡔ주례ꡕ의 天官은 주로 冢宰와 그 소속 관직에 대해 설명한 것이 다.52) 이 부분은 주로 총재에 해당하는 大宰에53) 집중되어있는데, 그 임무 51) 한영우, ꡔ정도전사상의 연구ꡕ p.38 각주 60번. ꡔ주례ꡕ의 六典體制와 朝鮮經國典 의 그것을 비교 설명한 부분 또한 김용옥 p.34 참고 정약용은 에서 天官 吏曹, 地官 戶曹, 夏官 兵曹, 秋官 刑曹, 冬官 工曹로 분류하면서, ꡔ주례ꡕ는 천자의 예이고, 우리 나라는 제후의 나라이니 제도를 작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설명하였다. ꡔ경세유표ꡕ Ⅰ(이익성 역), 天官 吏曹제1, pp.85-86. 52) ꡔ纂圖互註 周禮ꡕ 天官冢宰. 53) 민족문화추진회 ꡔ국역 삼봉집ꡕ에는 경제문감 부분에는 大宰 가 태재 로 되어 있으 나 조선경국전 부분에는 대재 로 되어 있다. ꡔ실록ꡕ에도 태재, 대재가 함께 사용되 고 있다. 최근에 나온 ꡔ주례ꡕ번역본(2002년 지재희 역)도 대재 로 기술되어 있다.
정도전의 유교국가론과 ꡔ周禮ꡕ 347 는 六典을 통솔하고, 공직자의 인사고과를 담당하고, 재정 지출과 궁정에 관 한 일을 감독하는 것이다. 정도전은 총재의 업무에 대해서 ꡔ주례ꡕ에 있는 내 용을 경제문감 上 宰相 周官 大宰의 직 부분에서 그대로 인용하였다.54) 그 리고 이런 총재, 태재의 업무에 대해 周의 총재의 직은 거느리지 않는 것이 없었다[無不通] 라고 총평하였다. 그 이외에 총재가 궁중의 환관, 경위, 빈 어, 요리, 경비 업무도 관할함으로써 왕의 의도를 왜곡하여 전달하거나 왕의 권위를 등에 업고 부정을 행하는 일을 방지하게 하는 바와 같이 ꡔ주례ꡕ와 조선경국전 에서 총재의 역할은 거의 동일한 것이었다. 조선경국전 에서 총재는 ꡔ주례ꡕ의 총재와 태재와 마찬가지로 행정의 총괄 책임자일 뿐만 아니 라 궁중의 또는 왕의 생활과 그 측근을 관리 지휘하는 위치에 있었다. 한편 經世大典序錄 에 의하면, ꡔ경세대전ꡕ 치전에도 총재가 나라의 다스림을 맡 는다[冢宰掌邦治] 고 되어 있다.55) 이것은 ꡔ주례ꡕ 천관에서 총재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는 첫 문장에 나오는 掌邦治 라는 말과56) 동일한 맥락에서 사용 된 것이다. 이외에 ꡔ경세대전ꡕ에도 宰臣年表, 入官 에 관한 부분이 있는데 조선경국전 에도 宰相年表 가 있는 바와 같이57) 臣 과 相 한 글자가 다르 지만 같은 맥락에서 서술된 것이다. 이렇게 총재에 관한 부분은 ꡔ주례ꡕ와 조선경국전 이 동일한 경향에 있 54) 55) 56) 57) 이에 대해서는 ꡔ纂圖互註 周禮ꡕ에 있는 정현의 註를 참고하여 大宰 부분에서, 大의 音 이 泰라고 하는 설명을 참고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ꡔ국역 삼봉집ꡕ2(민족문화추진회 역), 경제문감 상,15-22( ① 육전(六典)을 주관하 여 왕치(王治)를 보좌한다, ② 팔법으로 관부(官府)를 다스린다, ③ 팔칙(八則)으로 수도와 지방을 다스린다, ④ 팔병(八柄)으로 왕에게 보고하고 군신(群臣)을 부린다, ⑤ 팔통(八統)으로 왕에게 보고하고 만민을 부린다는 것, ⑥ 구직(九職)으로 만민을 일자리를 만든다, ⑦ 구부(九賦)로서 재물을 거둔다, ⑧ 구식(九式)으로서 재용(財 用)을 균등하게 하고 절약한다, ⑨ 구공(九貢)으로서 필요한 곳에 공물(貢物)을 사용 한다, ⑩ 구량(九兩)으로서 백성들의 마음을 얻는다 ). 趙世延,等 經世大典序錄, 治典總叙, 宰臣年表 入官. ꡔ纂圖互註 周禮ꡕ 天官冢宰乃立天官冢宰使帥其屬而掌邦治以佐王均邦國. ꡔ三峰集ꡕ 朝鮮經國典 治典, 宰相年表.
348 退溪學과 韓國文化 第43號 고 그것의 핵심은 위에서 설명했던 바, 정치의 제도적인 공적인 운영을 총재 가 책임지고 하는 정치 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정도전 이후에 조선의 정치에 서는 그가 구상했던 바와 같은 그런 총재의 위상과 역할을 가졌던 재상은 사 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실제의 정치세계에서 총재 는 곧 이조판서 를 의미하 는 정도로 이해되었다.58) 이렇게 조선경국전 치전 부분은 ꡔ주례ꡕ의 천관 총재와 동일 맥락에서 서술되었고 총재 이하 관직의 업무와 역할에 대해서는 주제별로 설명하였기 때문에 구체적인 직책의 명칭에 대해서는 언급하지는 않았다. (2) ꡔ주례ꡕ의 地官大司徒는 백성들의 생업과 교육, 토지관리 업무를 관장 하게 되어 있다.59) 백성들에게 토지를 분배하고, 가축을 기르게 하며, 농업 기술을 교육하고, 상거래와 유통을 원활하게 하며, 씨앗과 가축을 공급하여 백성들을 부유하게 하는 임무인 것이다. 그리고 인구를 파악하고, 세금을 부 과하고 백성을 부역에 동원시킨다. 또한 백성을 교육키는 일을 맡는데, 교육 해야 할 가치로서 제시된 것은 분수와 공경, 친목과 화합, 사회질서에 대한 이해, 중용과 절약, 직업에 대한 만족감 등으로 다양하다. 제사도 일종의 교 육에 해당되기 때문에, 犧牲을 마련하는 것, 북치는 법, 춤추는 법도 교육 내 용에 포함되었다. 이런 지관사도 이하의 관직은 위와 같은 업무가 세분된 인 데, 그 중에서 保氏라는 관직은 왕의 나쁜 점을 諫 하는 역할도 담당한다.60) 58) 정도전은 경제문감 上에서 중국과 조선의 재상 명칭과 역할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 였다. 周대에는 冢宰, 秦대에는 丞相, 漢대에는 丞相을 2명으로 늘려 左右 丞相을 두 었고, 唐,宋 시대에는 侍中 등의 명칭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고려조에는 門下侍中, 政丞 등의 명칭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조선에 들어와서 侍中을 고쳐서 政丞이라 하였다 고 한다( 경제문감 상 재상). 이후 조선에서 冢宰 는 차츰 이조판서 의 별칭 으로 불리워졌고 이는 文衡이라는 별칭의 大提學과 함께 조선시대에 있어서 권력과 명 예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총재에 있어서는 정도전이 구상했던 바와 같은 그러 한 위상과 그에 따르는 권한과 책임을 지는 존재가 아니라 이조판서라는 단지 기능적 차원의 한 부서 책임자로 약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59) ꡔ纂圖互註 周禮ꡕ 地官司徒.
정도전의 유교국가론과 ꡔ周禮ꡕ 349 특이하게도 백성들 사이에서 원수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화해시키는 調人, 그리고 백성의 짝을 찾아주는 媒氏라는 직책도 있다. 한편, ꡔ경세대전ꡕ 賦典 을 설명한 자료에는 조선경국전 과 마찬가지로 직책보다는 직무와 역할에 대해 소개되어있는데, 版籍, 經理, 農桑, 賦稅 는 조선경국전 부전에서 제시된 것과 동일한 것이다.61) 정도전이 조선경국전 賦典에서 서술한 것은 위의 ꡔ경세대전ꡕ에서 소개 한 바와 같은 것인데, 인구 토지 조사, 예산의 수입과 지출, 조운, 소금생산, 광업, 선박 등 세금을 부과하는 부서에 관한 내용에 집중되어 있다.62) 그래 서 행정구역과 호적 관리와 收稅를 위한 관직에 대한 설명이 위주로 되어 있 다. 그리고 이런 예산 사용 분야와 지불 방법이 상술되어 있다. 지출 분야는 주로 국방비, 관리들의 녹봉, 의창과 복지비용 등인데, 특히 군주가 사용하는 비용을 上供 이라는 항목으로 총재가 관리하게 하면서 사치와 사적인 사용을 엄금하고 있다.63) 이런 부전의 담당 업무는 ꡔ주례ꡕ지관사도 부분에서 토지 분배, 인구조사, 과세, 교육, 경비지출에 관한 관직의 담당 업무를 준거로 한 것이다. 다만, 조선경국전 부전에는 ꡔ주례ꡕ와 달리 교육 문제에 대해선 禮 典에 언급되어 있다. ꡔ경세대전ꡕ에서는 교육에 대해서는 치전에서 儒學敎官 이라는 제목으로 유학과 蒙古의 글 교육에 대해 언급한 것이 있다.64) (3) ꡔ주례ꡕ의 春官大宗伯은 禮를 관장한다. 천신과 지신, 인간의 신을 위 한 제사, 외교 예절, 음악과 악기, 무당과 점치는 일, 기록 관리와 문서 보관 업무를 총괄한다.65) 이런 대종백을 보좌하는 소종백이 있고, 음악을 관장하 60) 61) 62) 63) 64) 65) ꡔ纂圖互註 周禮ꡕ 地官司徒, 保氏掌諫王,惡. 趙世延,等 經世大典序錄 賦典總序. ꡔ三峰集ꡕ 朝鮮經國典 賦典摠序. ꡔ三峰集ꡕ 朝鮮經國典 賦典摠序 上供. 趙世延等 經世大典序錄, 治典總叙, 儒學敎官. ꡔ纂圖互註 周禮ꡕ 春官大宗伯.
350 退溪學과 韓國文化 第43號 는 대사가 있고, 각종 제사를 관장하는 대축이 있다. 구체적으로는 제기 세 척과 관리, 제주 제조, 희생 닭 제공, 제사 때 입는 옷 관리, 군주와 국가의 묘지 관리를 맡은 관리들이 있다. 그리고 대사악은 음악과 덕으로서 교육하 는 일을 담당한다. 그 외에 각종의 악기를 연주하고 악기를 보관하고 춤출 때 사용하는 각종 도구를 관리하는 관직이 있다. 정도전은 禮의 핵심을 질서 라고 생각했다.66) 朝會 때 황제의 궁궐을 향 해 하례를 행하는 것도 국제관계에서 행하는 예의 일부이고, 종묘, 社稷, 인 민을 위하여 복을 구하는 각종의 제사, 그리고 각종의 관혼상제가 결국은 禮 이고 그 정신은 질서라는 것이다. 그는 또한 예전에서 군주를 교육하는 經筵 제도,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고 추천하는 제도, 그리고 군주에 대한 충고의 말을 구하는 제도에 대해 언급했다. 이렇게 예전 역시 전체적으로 ꡔ주례ꡕ와 추구하는 바가 동일하다. (4) ꡔ주례ꡕ의 夏官大司馬는 군대에 관한 업무를 맡는다. 군비를 감시하 고, 군제를 편성하여 훈련시키고, 공로를 평가하고, 군마를 관리하고, 성곽을 구축하고, 兵舍를 건설하는 바와 같이 군대에 관한 일을 하는 부서로 하관이 구성되어 있다.67) 구체적으로는 불, 성곽과 해자, 연못, 울타리, 도랑, 군사 용 도로를 관리하고, 맹수를 길들이고 새를 잡는 관직도 있다. 왕이 출병할 때 호위하고 왕의 전차를 에워싸고, 왕이 입는 옷의 격식과 서는 위치를 바 로 잡고, 왕의 소소한 명령을 관장하는 관직도 있다. 이렇게 주로 군대에 관 한 업무가 하관에 속해 있는데, 특이하게도 司士 라는 직책은 신하의 호적을 관장하고 신하의 공적과 과오, 진급과 감원에 대한 서류를 왕에게 아뢰는 일 을 담당하는 것으로 되어있다.68) 66) ꡔ三峰集ꡕ 朝鮮經國典 禮典摠序 禮之爲說雖多其實不過曰序而已 67) ꡔ纂圖互註 周禮ꡕ 夏官司馬 68) ꡔ纂圖互註 周禮ꡕ夏官司馬, 司士掌群臣之版以治其政令歲登下其損益之數辨其年歲與其貴賤
정도전의 유교국가론과 ꡔ周禮ꡕ 351 조선경국전 政典에서 정도전이 정전 의 의미를 설명한 것이 특이하다. 육전이 모두 政 에 관한 것인데, 유독 군대에 관한 업무를 政典이라고 한 이 유는 이 업무에서 특히 바를 正 자를 강조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69) 그러 면서 軍制에 있어서는 周나라의 병농일치 제도를 언급하면서 이것은 유사시 에 대처하기에 좋은 장점이 있다고 소개하였다. 그리고 대사마가 사냥을 통 하여 군사 훈련을 겸했던 사례를 인용하고, 무사를 강습하고 병기를 점검하 고 엄하게 상벌을 부과하는 것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였다. 또한 임금이 거 처하는 궁궐의 숙위. 외적방위. 군사용 토목공사와 말의 관리에 대해서도 언 급하였다. 이렇게 조선경국전 정전 역시 ꡔ주례ꡕ의 하관사마 관직에서 담당 하는 군대조직, 지휘, 관리, 왕의 호위, 군비유지와 같은 종류의 업무라고 할 수 있다. (5) ꡔ주례ꡕ의 秋官大司寇는 법을 관장한다. 법 집행에 있어서는 국가의 규모와 백성들의 상황에 따라 형벌의 강도와 내용을 조절한다. 그리고 법의 보호에서 방치된 백성들을 보호하고 반성 정도에 따라 처벌 방법을 달리한다. 이런 대사구에는 제후국 사이의 분쟁을 조정하고, 백성들 사이의 계약을 관 리하고, 도둑의 장물을 회수하고, 백성을 괴롭힌 자를 교육하고, 감옥을 관리 하고, 형을 집행하고, 법률을 고시하고, 살육하는 자를 살피고, 폭행, 사기, 허위사실 유포를 금지시키는 바와 같이 일반적인 법률 집행을 담당하는 관직 이 설명되어있다.70) 도로 소통을 관리하고, 연못과 도랑과 같은 위험한 곳의 출입을 통제하고 방범을 담당하는 관직도 있다. 전반적으로 추관은 법 집행 을 담당하는 관직으로 구성되어 있다. 좀 특별하게는 이런 대사구를 보좌하 는 소사구는 형벌을 집행하는 일 이외에도 국가의 수도를 옮기는 일과 군주 의 후계자를 도모하는 일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69) ꡔ三峰集ꡕ 朝鮮經國典 政典摠序 六典皆政也獨於兵典言政者所以正人之不正也 70) ꡔ纂圖互註 周禮ꡕ 秋官大司寇.
352 退溪學과 韓國文化 第43號 ꡔ주례ꡕ 추관에 있는 관직을 정도전은 조선경국전 憲典에서 그대로 사 용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취지를 반영하여 이 부서의 특징을 가을의 義 氣 라는 말로 설명하면서 聖人이 형벌을 만든 것은 형벌을 씀으로써 오히려 형벌을 쓰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강조하였다.71) 형벌은 단지 정치의 보좌 일 뿐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도전은 명분을 바루게 하는 것, 법 적용을 일정하고 분명하게 하는 일에 대해 설명하였다. 이런 점에서 조선경국전 헌전 역시 ꡔ주례ꡕ의 추관사도가 담당하는 법 집행 과 계약관리, 치안유지 등에 관한 직무와 동일한 종류를 업무별로 제시한 것 이라고 할 수 있다. (6) ꡔ주례ꡕ 冬官考工記에는 각종의 기능직 기술자에 관한 직무가 서술되 어 있다.72) 수레바퀴를 만드는 기술자로부터 쇠, 창칼, 화살촉, 검, 종, 도 량형 용기, 갑옷, 가죽, 염색 등과 같은 일에 대해 설명되어 있다. 이것들은 국가 운영과 생활에 필요한 제품의 생산에 관한 기술자들에 관한 것이다. 그 리고 큰 규모의 일로서는 수도와 궁궐을 건설하고 국토를 측량하고 용수로를 건설하는 匠人에 대해서도 설명이 되어 있다. 정도전은 조선경국전 工典 서 두에서도 백성을 위한 節用而愛民 을 강조하였다.73) 그러면서 백공에 관한 일은 검박을 숭상해야 하며 공공건물을 건축하는데 있어서는 백성의 노역을 최소화하는데 신경을 써야 함을 강조하였다.74) 그렇다고 해서 조정의 권위를 상징하는 궁궐을 초라하게 할 수는 없지만 백성 동원에 관한 일 만큼은 신중 하게 처리할 것을 말한 것이다. 이렇게 ① 정도전은 조선경국전 에서 六典에 관해 부서별 담당 직무를 71) 72) 73) 74) ꡔ三峰集ꡕ 朝鮮經國典 憲典摠序 秋在天地爲義氣 ꡔ纂圖互註 周禮ꡕ冬官考工記. ꡔ三峰集ꡕ 朝鮮經國典 工典摠序 國家者不可不節用而愛民 ꡔ三峰集ꡕ 朝鮮經國典 工典總序. 爲國家者不可不節用而愛民 故百工之事當崇儉朴而 戒奢縱也
정도전의 유교국가론과 ꡔ周禮ꡕ 353 주제별로 설명하였다. 그는 ꡔ주례ꡕ에 나오는 관직명을 동일하게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ꡔ주례ꡕ에서 표방한 것을 받아들였다. 필요에 따 라서는 이론적 근거로서 ꡔ주례ꡕ에 나오는 관직을 인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조선경국전 은 조선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조선의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다. ② 정도전은 또한 조선경국전 의 육전 체제에서 그 부서 나름대로의 정신이 나 특징을 강조하였다. 이런 서술 경향이나 추구하는 정신은 ꡔ주례ꡕ, ꡔ경세 대전ꡕ, 그리고 조선경국전 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③ 그리고 조선경국전 은 공식적인 법전이라기보다는 군주의 이해를 돕기 위한 또는 설득하기 위한 일종의 정책 제안서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관직 명칭과 직무에 대한 설명보다 는 그 목적과 역할을 위주로 설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총이 조선경국 전 서문에 사용했던 乙覽 이라는 용어와 같이 왕이 정무를 마친 뒤 취침하 기 전에 보는 글 75)에 적합한 형식인 것이다. 조선경국전 은 군주가 여가가 있을 때 참고하는 글이라는 것이다. Ⅴ. 결론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ꡔ주례ꡕ는 정도전에게 있어서 유교국가 설계 의 모델이었다. 그는 ꡔ주례ꡕ에서 자연과 인간의 일원적인 인식과 정치의 최 상위 개념으로서 仁을 강조하는 정신을 취했다. 그리고 그러한 이해에 입각 하여 제도를 통해 질서화 된 유교국가를 구상했다. 그런 제도의 핵심은 군주 와 총재의 관계이고, 군주의 실무 정치 영역을 과감하게 위임받는 총재정치 였다. 그에게 있어서 총재정치는 세습군주제 하에서 부족한 군주의 정치적 75) ꡔ국역 삼봉집ꡕ2(민족문화추진회 역), 조선경국전 하, 鄭憁의 서문에 관한 각주 번 호 25 참고, p.324.
354 退溪學과 韓國文化 第43號 권위의 정당성을 보완하는 중요한 장치였다. 총재정치에 관해서 그는 ꡔ주례ꡕ 라는 이론적 근거뿐만 아니라 실존의 모범적 사례를 통하여 그 정신을 조선 에 도입하려고 했다. 이러한 총재정치는 기존의 세습군주제를 인정하면서 또 한 그것에서 부족한 지성을 보완하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처방이었다. 그러나 정도전이 구상했던 총재정치는 조선에서 실현되지 않았다. 실제의 군주들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여전히 기존의 군주에게 권력이 집중된 형태의 정 치가 지속되었고 다만 군주의 지성을 보완하는 장치들, 예를 들면, 경연, 구 언, 납간과 같은 온건한 제도가 강조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유학자 관료들은 군주의 마음이야말로 바른 권력이 나오는 원천이라고 하면서 군주에게 좋은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마음 다스리는 수양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정도전이 총재정치라는 제도를 통해 구현하려고 했던 구상이 군주의 마음에 의존하는 극히 변덕스러운 방식으로 옮겨간 것이다. 이러한 정치는 현군이 나오면 더 욱 좋아질 수 있으나 폭군이 등장하면 최악의 상황으로 돌변할 수 있는 가변 적인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유교정치의 언로, 여론중시의 정서 등 이 작용하면서 권력의 일탈을 막았다. 정도전은 정치의 세계에서 그것의 공 공성을 강조함으로써 국가와 정치가 사적 소유와 사적인 활동이 아닌 공공의 영역임을 역설하였다. 이러한 논리를 전개함에 있어서 그는 유교에서 궁극적 인 권위의 상징인 하늘 개념을 동원했다. 그러면서 그는 ꡔ주례ꡕ의 정신을 반 영하는 그리고 그 제도를 본받는 조선경국전 을 작성하였다. 이렇게 정도전이 구상한 유교국가는 세습군주제이고, 총재정치이고, 육전 체제를 특징으로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정도전의 구상은 실현 가능한 설계 였지만 현실의 정치에서는 이상주의적인 것이었다. 현실의 정치에서는 仁과 義의 구현, 정치의 공공성 문제 이전에 누가 어떻게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 는가에 더 관심이 쏠려 있었다. 정도전이 조선경국전 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ꡔ주례ꡕ의 세계는 뒤로 밀려난 과제였다. 군주들은 권력을 총재에게 맡
정도전의 유교국가론과 ꡔ周禮ꡕ 355 기지 않았다. 권력은 여전히 힘을 장악한 자의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 정도전의 유교국가를 위한 설계도는 그런 이상을 공감하는 유학자 관료들과 군주들에게 여전히 목표로 남아 있었다. 제한적인 성과이지만, 그가 육전체제를 통해 제시한 관직 구상은 그 이후 유교국가 조선의 법제 설계에 참고가 되었다. 그리고 군주의 덕치와 보덕, 경연, 집단적 여론에 의한 정치, 정밀한 관료제, 修己治人의 정치관 등이 제도로서 정착되는데 기여하였다. 이 런 점에서 정도전은 조선 건국초기에 ꡔ주례ꡕ를 참고하여 조선경국전 이라는 유교국가 설계도를 제시한 공헌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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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의 유교국가론과 ꡔ 周 禮 ꡕ 357 Abstract The Structure of Confucian Political System of Jeong Do-jeon and ꡔZhou-li( 周 禮 )ꡕ Pu, Nam-Chul The Chosŏn Dynasty has been known as a confucian State. In this paper I studied the origins of confucian political thought of Jeong Do-jeon who had been a political advisor to the first king of Chosŏn Dynasty. Jeong Do-jeon also had wrote ꡔCode of Administration of the Chosŏn Dynastyꡕ and ꡔMirror for Governanceꡕ. These two books were about new constitution and the structure of government of Chosŏn Dynasty. In doing that, he had studied ꡔZhou-liꡕ, the oldest Chinese book about confucian law and government structure and office names. In this paper I found that Jeong Do-jeon had refered ꡔZholi-liꡕ so much and he had adapted the basic ideas of ꡔZhou-liꡕ. Among that I think that following 2 points were really impressive ideas to Jeong Do-jeon in his thinking about Chosŏn Dynasty new constitution and government structure. The one of that was about the politics of confucian Prime minister who has strong political power almost same to King, but he had to be responsible to the his politics. Jeong Do-jeon also had adapted ideas about the six codes of public administration system. Unfortunately he had executed by court Coud'etat leaders. But his contributions of providing the legal foundations for the new dynasty's government was so great. But his ideas about the prime minister politics was a little idealistic so that late Chosŏn Kings did not developed that idea. But other his suggestion of building confucian state had been adapted in making Chosŏn Dynasty constitution and public administration.
358 退 溪 學 과 韓 國 文 化 第 43 號 Key W ord ꡔZhou-liꡕ, the politics of prime minister, confucian state, the six codes of public administration system, Jeong Do-jeon 논문투고일:2008.6.13. 심사시작일:2008.7.14. 심사완료일:2008.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