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예술의 꽃을 피운 사람들 1 바 흐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독일의 작곡가이자 오르간이스트이다. 바로크 시대의 최후에 위치하는 대 작곡가며, 독일음악의 전통에 깊이 뿌리박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위에 이탈리 아나 프랑스의 양식을 채택하고 그것들을 융합하여 독자적 개성적인 음악을 창조하였다. 그의 수많은 작품은 비 할 데 없는 기술을 토대로 경건한 종교성과 현세적인 생명의 환희를 모두 지니고, 바로크 음악의 통합을 성취함 과 동시에 그 후의 음악의 출발점으로도 되었다. 그러한 뜻에서 '근대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렀으며, 또 베토벤, 브 람스와 나란히 독일 음악의 '3대 B'라고 불리기도 한다. 바흐의 집안은 200년에 걸쳐서 50명 이상의 음악가를 배 출한 일대 음악가계였다. 도서관에서 음악의 전통을 익히다 바흐는 중부 독일 튀링겐 지방의 아이제나흐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다. 바흐 가문은 50명이 넘는 음악가를 배출한 집안이었으므로 튀링겐 지방에서는 바흐 라고 하면 곧 음악가 를 가리키는 말이 되다시피 했다. 바흐는 아홉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다음 해에는 아버지까지 여의 고 말았다. 이에 소년 바흐는 당시 오르트루프의 교회에서 오르간 이스트였던 맏형 요한 크리스토프 밑에서 자라게 되었고, 형에게 오르간과 쳄발로(cembalo)를 배웠다. 바흐는 타고난 재능과 만족할 줄 모르는 호기심으로 빠르게 형이 가르쳐준 곡들을 마스터해갔으며, 자신이 발견한 모든 악보를 연주해 냈다. 14세가 된 바흐는 어려운 형의 생활에 자신이 짐이 된다고 느꼈다. 마침 뤼네부 르크의 성 미카엘 학교에서 가난한 집안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닌 자제들 중 에서 성가대 단원을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350km 넘는 그곳까지 걸어가 성가대 단원이 된다. 성 미카엘 학교에는 음악도서관이 있었다. 이 도서관은 독일에서 가장 큰 음 악도서관 중 하나로 1555년 이후 동판으로 찍어 내거나 필사한 악보들을 모 아 놓았다. 악보들은 대부분 이탈리아와 독일의 대가들 것이었으며, 그 장서는 총 1,102권에 달했다. 뤼네부르크에는 성 미카엘 학교의 음악도서관 외에도 여러 곳에 음악자료가 보관되어 있 었다. 특히 성 요한 성당의 문서보관실은 당대의 가장 위대한 거장들의 오르간 연주용 악보 원본들뿐만 아니라 오래 된 다성음악 성악곡들의 필사본 악보를 상당량 소장하고 있었다. 새 로운 것을 열망하는 오르간 연주자에게 이곳은 가 지천으로 널려 있는 보고였다. 바 흐는 이러한 음악도서관들을 통해서 16, 17세기 개신교 교회음악의 전통을 익힐 수 있었다. 무엇보다 바흐가 이룬 가장 큰 업적은 건반악기의 조율을 시정하여 이른바 평균 을 만들어 악곡을 어떤 조로도 연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만약 서양음악이 일시에 다 없어진다 해도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아 곡집>만 남는다면 다시 일으킬 수 있다고 할 만큼 그의 업적은 음 악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중세 이래의 음악문화를 집대성한 것으로 평가 받는 바흐의 음악은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 벤 등 많은 음악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이런 바흐에 대해 베토벤은 그는 실개천이 아니라 대해이다. 라고 격찬했다. 독일어로 바흐(Bach)는 실개천이라는 뜻이다. 만약 바흐가 도서 관에서 방대한 음악자료를 접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재능이 있었던들 실개천에 머물지 않았 을까? 관련 자료 제목 : 바흐 - 천상의 선율 저자 : 폴 뒤 부셰, 역자:권재우 출판사 :시공사 청구기호 : 082 시15ㅅ [DVD] 제목 : 바흐 서거 250주년 기념 공연 연주 : EuroArts Music international 제작사 : NHK, ZDF, MDR/3sat 제목 : 요한 세바스찬 바흐. 1,2 저자 : 크리스토프 볼프, 역자:변혜련 출판사 : 한양대학교출판부 청구기호 : 670.99 C556jKㅂ [DVD] 제목 : 바흐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Christmas oratorio, Catatas Ⅰ-Ⅵ) (공동)제작 : BBC, EuroArts music international [DVD] 제목 : 브란덴부르크 협주곡(J. S. Bach : Brandenburg concertos) Directed by : Hans Hadulla 인물사진 : 위키백과 http://ko.wikipedia.org/ 인물설명 : 위치백과 http://ko.wikipedia.org/ 내용소개 :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 블로그 http://dlibrary.tistory.com 자료이미지 : 교보문고 http://www.kyobobook.co.kr
도서관에서 예술의 꽃을 피운 사람들 2 김 홍 도 김홍도 ( 金 弘 道, 1745-1306? ) 김홍도( 金 弘 道, 1745년~?)는 조선 후기의 화가이다. 본관은 김해, 자는 사능( 士 能 ), 호는 단원( 檀 園 )이다. 안산시 단원구는 이를 따온 이름이다. 정조 시대 때 문예부흥기의 대표적인 화가로 여겨진다. 산수화, 인물화, 풍속화 등과 주로 서민들의 일상생활 을 그렸으며 서당, 씨름 등을 그린 사람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림만 그린 것은 아니고, 시도 써서 아들 김양기가 출판한 단원유묵 이라는 문집도 있다. 규장각에서 예술적 재능을 마음껏 펼치다 김홍도는 1745년 한양의 중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그림에 천부적 소질을 보여주던 김홍도는 7세 때 당시 시, 서예, 그림을 모두 잘하여 삼절( 三 絶 ) 로 불리던 표암 강세황( 豹 庵 姜 世 晃 )선생으로부터 그림과 글 수업을 받았다. 스 승의 영향으로 김홍도 역시 시, 서예, 그림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이라 불린 이들은 궁궐 밖에서 근무하던 도화서 화원들과 달리 궁중 안에서 국왕을 위한 회 화 활동을 담당하며 특별대우를 받았다. 이 10명에는 김홍도도 포함되어 있었다. 정조는 본인의 회화 실력이 높아 화원들의 그림 내용 하나하나 신경을 써서 방향을 제시할 정도로 까다로운 임금이었다. 이런 정조를 만족시킬 만큼 시, 서예, 그림 모두 뛰어났던 김홍 도는 정조의 총애를 받았다. 특히 김홍도는 규장각이 설립될 당시 <규장각도>를 그려 정조 김홍도는 1765년(영조 41년) 21살의 어린 나이에 그 실력을 인정받아 스승 강세황의 추천으로 조선시대 궁정의 회화를 담당하던 도화서( 圖 畵 署 )의 화원이 되었다. 그는 화원이 되 어 최고의 찬사를 받으며, 영조 임금의 일흔 살 장수를 축하 하는 병풍을 그리는 기회를 얻기도 하였다. 그는 어떤 분야 의 그림이든 매우 높은 수준으로 소화해 냈다. 김홍도는 풍 속화를 잘 그리기로 일반에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남종화, 신선도, 진경산수 화, 초상화 등 전반에 걸쳐 탁월한 기량을 보였다. 에게 바쳤는데, 정조는 이 <규장각도>를 보고 크게 흡족해 했다. 비단에 채색한 이 그림은 중앙에 규장각을 실제보다 크게 강조하여 묘사했고, 그 주위의 부속 건물과 나무들이 규장 각을 호위하듯 에워싸고 있다. 정조의 각별한 배려 속에 김홍도는 규장각에서 예술적 재능을 맘껏 발휘하였다. 그는 세 차 례나 임금의 초상화를 그렸으며, 원행을묘정리의궤( 園 行 乙 卯 整 理 儀 軌 ) 같은 중요한 책의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또한 직접 가서 볼 수 없었던 정조 대신 금강산의 단양팔경( 丹 陽 八 景 ) 을 그려오기도 했다. 영조의 뒤를 이어 임금이 된 정조는 1776년 즉위하자마자 강력한 왕권 정치와 개혁 정치를 주도하기 위해 왕실도서관인 규장각( 奎 章 閣 )을 설치하였다. 정조 는 이 규장각에 도화서 화원 30명 중에서 특히 뛰어난 10명을 뽑아 규장각에 소 이처럼 자신을 아끼던 정조가 1800년 세상을 떠나자 김홍도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 잦은 병치레로 쇠약해진 김홍도는 나무들이 말라버린 나뭇잎 만 간신히 달고 있어 쓸쓸하기 그지없는 <추성부도( 秋 聲 賦 圖 )>를 남기고 1806년 62세 즈음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속되도록 하여 자신의 문화 정치를 돕게 하였다. 자비대령화원( 差 備 待 令 畵 員 ) 관련 자료 제목 : (조선의 풍속을 그린 천재 화가) 김홍도 저자 : 최석태 출판사 : 아이세움, 2001 제목 : 단원 김홍도 저자 : 오주석 출판사 : 열화당, 1998 제목 : 바람의 화원 저자 : 이정명 출판사 : 밀리언 하우스, 2007 청구기호 : 813.6 이74ㅂ 제목 : 단원 김홍도 연구 저자 : 진준현 출판사 : 일지사, 1999 청구기호 : 653.1105 김95진 제목 :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저자 : 오주석 출판사 : 솔, 2003 청구기호 : 653.11 오76ㅎ 인물사진 : 동대문도서관블로그 http://dlibrary.tistory.com 인물설명 : http://ko.wikipedia.org/wiki/ 내용소개 :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 블로그 http://dlibrary.tistory.com 자료이미지 : 교보문고 http://www.kyobobook.co.kr
도서관에서 예술의 꽃을 피운 사람들 3 스티븐 스필버그 스티븐 앨런 스필버그(Steven Allan Spielberg, 1946 ~ ) 스티븐 스필버그는 미국의 영화감독, 각본가, 영화 프로듀서이다. 거의 40년의 경력에 있어, 스필버그의 영화는 많은 주제와 장르를 다뤘다. 스필버그의 초기 SF, 어드벤처 영화는 현재 할리우드 블락버스터 영화 제작의 원형 으로서 보여졌다. 스필버그는 1993년 쉰들러 리스트와 1998년 라이언 일병 구하기 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였다. 타임지는 그를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인물 100인에 올렸다. 도서관에서 영화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얻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1946년 12월 18일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스티븐 스필버그는 키도 작고, 공부도 잘 하지 못하고 몸도 나 약한 어린이였다. 게다가 유대인으로 왕따 를 당하던 그는 모든 면에서 열등감 에 시달렸다. 이 때 그는 부친으로부터 선물 받은 8mm 카메라를 통해 꿈같은 영상을 현실로 만들고자 하는 영화에 대한 꿈을 키우며 열등감을 극복해 갔다. <ET>, <인디아나 존스>, <백 투 더 퓨쳐> 등 훗날 스필버그가 영화감독으로 성공을 거둔 영화들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읽어준 책을 통해 심어진 감성과 상상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12살 때부터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유니버설 영화사에 몰래 들 어가 알프레드 히치콕같은 감독들이 일하는 것을 직접 보면서 감독의 꿈을 키워나갔다. 한편 엉뚱하고 장난기가 심한 아이였던 스필버그는 학교에서 수 업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황당한 질문만 하는 바람에 선생님으 로부터 미움을 사기 일쑤였다. 결국 담임선생님은 그의 어머니에 게 가정교육을 시키든지 특수학교를 보내든지 하라고 말할 정도 였다. 이 이야기를 들은 스필버그의 어머니는 선생님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선생님, 우리 아이가 엉뚱하고 산만한 것이 다른 아이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다 면 기를 꺾지 말아주세요. 엉뚱한 질문을 할 땐 집에 가서 어머니한테 여쭈어보 렴. 이라고만 말해주세요. 그리고 그 애의 질문을 전화로 제게 알려주시면 제가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아 답해주는 데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드디어 감독이 된 스필버그는 영화 <죠스>를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피터 벤철 리의 베스트셀러 소설 죠스 를 읽고 난 뒤 느낀 공포감을 영상 언어 로 바꾸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만든 영화 <죠스>를 "공포와 경악과 불안 의 그림책"이라고 말했다. 이후 상상력이 넘치는 피터팬 으로 불리며 수많 은 히트작을 만든 스필버그의 밑바탕에는 언제나 책이 있었다. <쥬라기 공원>, <우주 전쟁>, <칼라 퍼플> 등의 영화처럼 스필버그는 원작 소설 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거나, 책을 통해 얻은 상상력을 기반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감독으로 성공한 스필버그는 드림웍스(DreamWorks) 본사에 웬만한 대학도서관 못 지 않는 직원용 도서관을 만들어 놓았다. 창의력과 상상력의 원천이 책에 있음을 누구보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아이를 존중하는 교육관을 가졌던 스필버그의 어머니는 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필버그가 어렸을 때, 매일 밤 머리맡에서 잠들 때까지 동화책을 읽어 주었다. 관련 자료 제목 : 스티븐 스필버그 저자 : 프랭크 사넬로 출판사 : 한민사, 1997 제목 : 쉰들러리스트 = xschindler's List 저자 : Thomas Keneally 출판사 : 크리스찬 월드, 1994 청구기호 : 853 크198ㅅ [DVD] 제목 : 인디아나 죤스바람의 화원 감독 : 스티븐 스필버그 제작 : 파라마운틴, 1984 제목 : (C학점의 천재)스티븐 스필버그 저자 : 조셉 맥브라이드, 역자-박선희 출판사 : 자연사랑, 1997 청구기호 : 688.099 S755mKㅂ [DVD] 제목 : 쥬라기 공원(Jurassic park) 감독 : 스티븐 스필버그 제작 : 콜롬비아 트라이스타, 2000 인물사진 : Google http://images.google.co.kr 인물설명 : http://ko.wikipedia.org/wiki/ 내용소개 :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 블로그 http://dlibrary.tistory.com 자료이미지 : 교보문고 http://www.kyobobook.co.kr
도서관에서 발명의 영감을 얻은 사람들 1 앤드류 와일즈 앤드루 존 와일스(Andrew John Wiles, 1953 - ) 앤드루 존 와일스는 영국의 수학자이다. 1974년에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받고 1979년에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프린스턴 대학교의 교수였다. 1994년에 (리처드 테일러의 도움으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했다. 수학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인 필즈 메달은 나이 40세 미만 조건에 걸려 수상하지 못했으나, 대신 국제 수학자 연맹에서 1998년 기념 은판을 제작해 수여하였다. 엄밀히는 필즈 메달 수상자가 아니지만, 기 념 은판을 제작해 수여했다는 사실을 필즈 메달 수상자의 공식 명단에 같이 게재해 주었다. 도서관에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만나다 1963년 당시 열 살배기 소년이었던 앤드류 와일즈는 수학에 매료되어 있었다. 수학을 좋 아해서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서도 수학 문제를 정리하여 제 나름대로의 논리를 만들어 내곤 했다. 와일즈는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밀턴 가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 들 르곤 했다. 대학도서관과 비교하면 형편없이 작은 도서관이었지만 그곳에는 제법 많은 종류의 수학책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도서관에서 책을 뒤적이던 중에 한 권의 책을 발견했다. 그 책에는 문제가 단 한개 밖에 없었고 해답도 적혀 있지 않았다. 그 책은 에릭 템플 벨(Eric Temple Bell)이 저술한 최후의 문제(The Last Problem) 란 책이었다. 떤 운명을 느꼈다. 3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무도 풀지 못한 이 문제를 자신이 풀어내야 한다는 일종 의 의무감마저 들었다. 그날 이후 와일즈의 머릿속에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는 한시도 떠나지 않았 다. 30년이 지난 1993년 6월 23일 와일즈는 케임브리지 대학의 아이작 뉴턴 연구소에서 '모듈 형태, 타원 곡선, 갈루아 표현'이라는 제목으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에 대한 강연을 시작했다. 타니야마-시무라 의 추론 을 통해 와일즈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를 증명해낸 것이다. 와일즈가 증명을 마치고 이쯤 에서 끝내는 게 좋겠습니다. 라고 말했을 때, 강연장을 가득 메운 수학자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며 환호 성을 질렀고 와일즈는 평생의 숙제를 푼 듯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와일즈에게 악몽 같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자신의 증명에 작은 오류가 있음이 발견된 것이다. 이 책에는 17세기 프랑스의 수학자였던 피에르 드 페르마(Pierre de Fermat)가 당대의 수학자들에게 무심코 던졌던 질문 하나가 그 뒤 300 여 년 간 전 세계의 수학자들을 괴롭혀 왔으며, 아직도 해답을 찾지 못 하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페르마가 던진 문제는 유명한 피타고라스의 정의 에서 파생한 문제로 소년 와일즈도 내용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x n +y n =z n : n이 3이상의 정수일 때, 이 방정식을 만족하는 정수해 x, y, z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로부터 14개월이 지난 1994년 9월 와일즈는 증명을 포기하기 직전까지 갔다가 극적으로 자신의 증 명의 오류를 바로 잡았다. 보완된 증명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고, 와일즈의 사진은 <뉴욕 타임즈>의 1 면을 장식했고 수학계의 유명인이 되었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에는 상금이 걸려있었다. 1908년 파울 볼프스켄(Paul Wolfsken)의 유지에 따라 괴팅겐 왕립과학원은 2007년 9월 13일을 기한으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는 사람에게 10만 마르크의 상금을 걸었다. 이것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수많은 사람이 달려들어 잘못된 증명을 쏟아 내게 하는 한편, 대중에게 이 문제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 상금은 결국 1997년 6월 27일 와 일즈에게 수여되었다. 와일즈는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에 대해 강한 호기심과 어 관련 자료 제목 : (쉽게읽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저자 : 아미르 악셀 출판사 : 경문사, 2003 제목 : (아마추어를 위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저자 : Paulo Ribenboim 출판사 : 교우사, 2000 제목 : Fermat's enigma 저자 : Simon Singh 출판사 : Anchor Books, 1998 제목 :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저자 : 사이먼 싱 출판사 : 영림카디널, 1998 청구기호 : 421.9 S617fKㅂ 제목 : Fermat's last theorem for amateurs 저자 : Paulo Ribenboim. 출판사 : Springer, 1999 청구기호 : QA244.R53 1999 인물사진 : Google http://images.google.co.kr 인물설명 : http://ko.wikipedia.org/wiki/ 내용소개 :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 블로그 http://dlibrary.tistory.com 자료이미지 : 교보문고 http://www.kyobobook.co.kr
도서관에서 발명의 영감을 얻은 사람들 2 토마스 에디슨 토머스 앨바 에디슨(Thomas Alva Edison, 1847-1931 ) 토머스 앨바 에디슨은 미국의 발명가 및 사업가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발명을 남긴 사람으로 1,093개의 미국 특허가 에디슨의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다. 도서관을 통째로 읽은 힘으로 발명왕이 되다 세계 최초로 공업용 실험실을 세우고 1,093개의 특허를 얻어 세계 기록을 보유하게 된 에 디슨의 놀라운 힘의 뿌리는 무엇일까? 천재란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뤄진다. 란 말처럼 부단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겠지만, 그보다 더 구체적인 힘은 바로 도서 관의 모든 책을 통째로 읽었던 맹렬한 독서 에 있다. Mines) 이란 책이었다. 실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기술자를 높게 평가한 이 책을 통해 에디슨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발명품을 만드는 발명가 가 될 것을 결심하게 된다. 이 런 경험으로 인해 에디슨은 훗날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는 열차 판 매원 시절이었다. 라고 말했다. 에디슨은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석 달 만에 학교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질문이 많은 그 를 문제아, 열등생으로 취급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 낸시는 에디슨을 열등 아라고 여기지 않았다. 에디슨의 잠재력을 일깨우기 위해 어떤 방법으로 가르칠까 고심 하던 낸시는 책 읽기 교육 을 선택하고 다양한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이에 에디슨은 어려서부터 로마제국흥망사, 영국사 와 같은 역사책부터 셰익스피어 와 찰스 디킨스의 문학작품까지 다양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이처럼 도서관을 통째로 읽어버린 힘 으로 에디슨은 무수한 발명을 하게 된다. 에디슨은 데이비드가 전지로 달리는 전차를 연구했다는 것과 미국의 퍼머라는 사람이 축전기 전차를 만들어내려고 했던 이야기를 디트로이트 도서관에서 읽었던 것을 훗 날 떠올리고, 이를 토대로 전차를 발명하였다. 이 밖에도 전화를 발명할 때는 리처드 파커(Richard Parker)의 자연과 실험철학 개론 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으며, 백열전등을 발명할 때는 가스등에 관한 논문과 보고서를 닥치는 대로 읽었다. 당시 포트 휴런에 살던 에디슨은 어려운 가정 형편으 로 인해 12세 무렵 열차 판매원을 하게 된다. 신문이나 물건을 팔게 된 에디슨은 아침 7시에 열차를 타고 출발 하면 3시간 정도 걸려 디트로이트에 도착했다. 이곳에 서 열차가 포트 휴런으로 돌아갈 때까지 쉰 다음 다시 돌아오면 밤 9시 30분이 넘었다. 에디슨은 어린 나이에 이런 고된 일을 하면서도 디트로이트에서 쉬는 시간을 이용해 디트로이트 시립도서관 에서 책을 읽었다. 그런데 에디슨의 책 읽는 방법은 남달랐다. 책꽂이 맨 아랫단의 책부 터 읽기 시작해 맨 윗줄 오른쪽 책까지 순서대로 책을 읽으며 도서관에 있는 책을 통째 로 읽은 것이다. 에디슨은 이 때 인생을 좌우할만한 책을 만난다. 바로 앤드류 유레 (Andrew Ure)의 기술, 제조업, 광업의 사전(Dictionary of Arts, Manufactures and 에디슨은 자신의 발명의 원동력이 책이고 독서라는 것을 너무 잘 알았기 에 자신의 연구소를 세울 때에도 도서관을 가장 중시하였다. 처음에 세운 멘로파크 연구소에도 커다란 도서관이 있었지만, 이곳이 불에 타자 새로 지은 웨스트오렌지 연구소 내에 더욱 공을 들여 도서관을 만들었다. 1층의 제일 좋은 자리에 도서관을 배치하고, 책장에는 6만 권이나 되는 책을 갖추었으며, 과거 50년에 걸쳐 세계 각국에서 출판된 과학 전문 잡지, 신문은 물론 각 대학에 서 발표된 연구논문이 거의 모두 진열되어 있었다. 훗날 미시간 주 디어본으로 옮겨진 멘로파크 연구소와 웨스트오렌지 연구소는 오늘날 박물관으로 남아 있다. 관련 자료 [e-book] 제목 : Edison, his life and inventions 저자 : Dyer, Frank Lewis. 출판사 : University of Virginia Library URL : http://www.netlibrary.com/ 제목 : 에디슨의 두 개의 책상, 발명과 경영 저자 : 블레인 매코믹 출판사 : 이지북, 2002 제목 : 에디슨은 메모광이었다 저자 : 우에마에 준이치로 출판사 : 사람과 책, 2000 제목 : Thomas Alva Edison 저자 : Louise Egan. 출판사 : Barron's Educ. Series 1987 청구기호 : TK140.E3.E35 1987 제목 : Oxford 위대한 과학자 시리즈 저자 : 진 아데어 출판사 : 바다. 2002 인물사진 : Google http://images.google.co.kr 인물설명 : http://ko.wikipedia.org/wiki/ 내용소개 :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 블로그 http://dlibrary.tistory.com 자료이미지 : 교보문고 http://www.kyobobook.co.kr
도서관에서 발명의 영감을 얻은 사람들 3 정 약 용 정 약 용 ( 丁 若 鏞, 1762-1836) 정약용( 丁 若 鏞, 1762년 음력 6월 16일, 경기도 남양주 ~ 1836년 음력 2월 22일)은 조선 정조 때의 문신으로, 정치가이 자 철학자, 공학자이기도 했다. 본관은 나주, 자는 미용( 美 庸 ), 호는 사암( 俟 菴 ) 탁옹( 籜 翁 ) 태수( 苔 叟 ) 자하도인( 紫 霞 道 人 ) 철마산인( 鐵 馬 山 人 ) 다산( 茶 山 ), 당호는 여유( 與 猶 ) [1] 이며, 천주교 교명은 요안, 시호는 문도( 文 度 )이다. 중농주의 실학자로 전제 개혁을 주장하며 조선 실학을 집대성하였고, 수원 화성 건축 당시 기중가설( 起 重 架 說 )에 따른 활차녹로( 滑 車 轆 轤 : 도르래)를 만들고 그를 이용하여 거중기를 고안하여 건축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또한, 유교 경전 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당대 조선을 지배한 주자학적 세계관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을 시도하였다. 문집으로 유배 생활 중 대부분이 저술된 여유당전서 가 있다. 여유( 與 猶 )는 망설이면서( 與 ), 겨울에 냇물을 건너는 것 같이 주저하면 서( 猶 )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한다. 라는 뜻이다 규장각의 책을 통해 기중기를 발명하다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문신인 정약용은 1762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해 많은 책을 읽었으며, 특히 성호사설( 星 湖 僿 說 ) 의 영 향을 받아 실용적이고 실천적인 사상을 키워나갔다. 1789년 3월 벼슬길에 오른 정약용은 곧바로 초계문신( 抄 啓 文 臣 )으로 뽑혔다. 초계문신이란 젊고 학문의 자질이 뛰어난 관료들 가운데서 선별하여 규장각( 奎 章 閣 )에 소속시키고 학문을 더 깊이 연마할 수 있도록 정조가 사가독서( 賜 暇 讀 書 ) 제도를 변형 강화하여 만든 제도이다. 정약용은 초계문신이 되어 규장각에서 학문연마에 전념하였고, 월과에서 다섯 번이나 수석을 차지하는 등 남다른 실력을 다져나갔다. 명석한 견해와 해박한 지식을 보여준 그는 곧 정조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정약용은 규장각에 있던 기기도설 을 참고하여 기중가도설 ( 起 重 架 圖 說 ) 을 지었고, 이를 바탕으로 현대에 기중기라 불리는 기중가( 起 重 架 ) 를 발명하였다. 이 기중가는 화성 축성의 공사비 용을 줄이고 공사기간을 단축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정조는 화성 축성공사를 마친 다음에 다행히 기중가를 써서 비용 4만 냥을 줄였다. 고 언급하며, 정약용의 공로를 크게 칭찬했다. 정약용의 기중가 발명은 우리의 과학기술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물론 기기도설 에 바탕을 두었지만, 서양의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끌어들여 우리 현실에 적합하 게 설계, 제작하여 실용화하였고, 기중가의 역학 원리를 설명하고 그 효율성을 수리로 계산 하여 제시하였기 때문이다. 정조는 1792년 정약용에게 수원 화성 축성을 위해 설계와 공사 규정을 지어 올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정약용은 명나라의 모원의( 矛 元 儀 )가 병법과 무 예를 집대성한 무비지( 武 備 志 ) 와 윤경의 보약( 保 約 ), 유성룡의 전수기의( 戰 守 機 意 ) 등을 참고하여 축성제도를 연구하였다. 그 성과로 그는 화성을 축성 하기 위한 과제를 8조목으로 분석하여 간추린 <성설 ( 城 說 )>을 정조께 올렸다. 이를 정조는 크게 칭찬하고 더 구체적인 성곽의 설계 와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는 기중의 이론을 빨리 강구하도록 명을 내리고, 규장 각에 소장되어 있는 기기도설( 奇 器 圖 說 ) 을 참고하도록 내려 주었다. 이후 정약용은 규장각의 부사직( 副 司 直 )을 맡고 승지까지 올랐으나 계속되는 모함을 받아 사직과 복직을 되풀이했다. 정조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널리 알려진 것처럼 18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하게 된다. 그는 유배생활 동안에도 학문에 몰두하여 농업기술의 개량, 행정제도 개 선, 의학, 지리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특히 서양의 과학기술이 지닌 합 리성과 효용성을 폭넓게 받아들여 실학적 사유의 새로운 세계관을 정립하였다. 관련 자료 제목 : 다산어록청상 저자 : 정 민 출판사 : 푸르메, 20037 제목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저자 : 정약용 출판사 : 미다스북스, 2001 제목 : ( 茶 山 )정약용 : 실학의 세계 저자 : 금장태 출판사 : 성균관대학교, 1999 청구기호 : B28.K8.유92 V.41 제목 : 뜬 세상의 아름다움 저자 : 정약용 출판사 : 태학사, 2001 청구기호 : 810.81 정63ㅇKㅂ 제목 :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저자 : 박석무 출판사 : 한길사, 2003 청구기호 : 151.58 박54ㄷ 인물사진 : Google http://images.google.co.kr 인물설명 : http://ko.wikipedia.org/wiki/ 내용소개 :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 블로그 http://dlibrary.tistory.com 자료이미지 : 교보문고 http://www.kyobobook.co.kr
도서관을 통해 꿈을 이룬 지도자들 1 세 종 대 왕 세종 대왕( 世 宗, 1397-1450) 세종( 世 宗, 1397년 음력 4월 10일 ~ 1450년 음력 4월 8일, 재위 1418년~1450년)은 조선의 제4대 왕이다. 성은 이( 李 ), 휘는 도( 裪 ), 자는 원정( 元 正 )이다. 묘호는 세종, 시호는 장헌영문예무인성명효 대왕. 태종과 원경왕후의 셋째 아들이며, 비는 청천부원군( 靑 川 府 院 君 ) 심온( 沈 溫 )의 딸 소헌왕후 ( 昭 憲 王 后 )이다. 흔히 세종대왕( 世 宗 大 王 )이라 부른다. 세종대왕은 재위 기간 동안 국방과 과학 및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찬란한 업적을 많이 남 겨 위대한 성군으로 추앙받고 있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했고, 오늘날 10월 9일은 한글날로 정 해졌다. 현재 대한민국의 1만 원권 지폐에 그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도서관을 통해 국가 경영의 기틀을 세우다 1397년 태종 이방원의 3남으로 태어난 세종은 몸이 약하여 무예에는 소질이 없 었지만 책 읽기를 좋아하여 어린 나이부터 밤낮으로 책 읽기를 멈추지 않았다. 허약한 몸은 생각지 않고 무리하게 책을 읽다가 병을 앓는 적이 많았는데, 어느 때는 도가 지나쳐 병석에서도 책을 읽는 때가 있었으므로 이를 걱정한 태종이 신하들에게 명하여 세종이 소유한 모든 책을 몰수하라는 명을 내리기까지 하였 다. 그러나 세종은 책을 압수당하여 허탈해하다가 병풍 뒤에 두었던 책을 찾아 내어 다시 책 읽기에 몰두하며 밤을 지새웠다 한다. 태종은 이에 세종의 책 읽기를 말릴 수 없음을 깨달아 모든 책을 다시 돌려주었 고, 세종은 그 이후 더욱 책 읽기에 열중하며 밤낮을 지새웠다. 이런 세종은 1418년 즉위하자마자 경연을 열어 관료들의 학 문적 소양을 기르는 등 누구보다 문치주의를 앞세워 나라를 경 영하기 시작했다. 특히 1420년 인재들을 길러 새로운 유교국 가의 틀을 다지기 위해 집현전( 集 賢 殿 )을 설치하였다. 이 집현 전은 도서관 기능과 연구 기능, 정책 고문 기능 등 크게 세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연구 기관으로서 첫째로 갖추어야 할 것이 도 서관 기능이었기에 세종은 보문각( 普 文 閣 ), 수문각( 修 文 閣 ) 등으로 나뉘어 있던 도서관 기능을 집현전으로 일원화하였으며, 장서를 늘리기 위해 중앙과 지방에 서 책을 사들이고, 서적을 바치는 자에게는 그 희망에 따라 포백( 布 帛 )이나 관 직을 주어 포상을 했다. 또한 세종은 성절사( 聖 節 使 )의 종사관에게 국내에 입수 되지 않은 책을 자세히 조사해 오도록 지시하였고, 국내에 입수되지 않은 책들 은 명나라에 가는 사신들로 하여금 책을 사오게 하였다. 심지어 절판된 책 중 필요한 것은 명나라 황제에게 사신을 통해 편지로 부탁하여 서적을 받아오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세종의 정책으로 집현전 도서관에는 많은 책들이 모여 기존의 시설로는 이를 수 용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에 1429년(세종 11년)에는 궁성 서문 안에 집현전 건물을 새로 짓 고, 그 북쪽에 서고인 장서각( 藏 書 閣 )을 세워 벽마다 서가를 설치하고 경사자집( 經 史 子 集 ) 4 부 분류체계에 의하여 도서를 분류하고 보관했다. 당시 집현전 도서관은 일반에게 공개되지는 않고, 왕을 비롯한 왕족, 관 료들에 한해서만 이용할 수 있었다. 책은 집현전 안에서만 볼 수 있었으나 특별한 경우에는 외부 대출도 허용되었다. 경연에 책을 내갈 때에는 오매부( 烏 梅 符 ), 동궁( 東 宮 )에 책을 내갈 때는 황양부( 黃 楊 符 )라는 도서 대출증이 있어야 했다. 각 관청에서는 부득이하게 책을 빌 려가려면 임금에게 아뢴 다음 사인을 하고 빌려갔다가 반납해야 했다. 그런데 당시에도 빌 려간 책을 반납하지 않는 사례가 많아 3년에 한 번씩 정리하도록 하고, 담당자가 바뀔 때마 다 도서의 수량과 대출 현황 을 문부에 적어 인계하게 했다고 한다. 세종은 이처럼 집현전의 도서관 기능을 바탕으로 학자들의 연구 기능과 정책 고문 기능을 장려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연마된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문물제도를 만드는 데 활용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세종의 모습은 현대로 치면 한 국가의 훌륭한 CIO(Chief Information Officer)였던 셈이다. * 이 글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발행하는 <도서관계 1-2월호>에 실린 글이다. 관련 자료 제목 : 세종대왕과 그의 인재들 저자 : 박영규 출판사 : 들녘, 2002 청구기호 : 911.052 박64ㅅ 제목 : 세종 그가 바로 조선이다. 저자 : 이한우 출판사 : 동방미디어, 2003 청구기호 : 911.052 이92ㅅ 제목 : CEO 세종대왕 인간경영 저자 : 최기억 출판사 : 이지북, 2004984 청구기호 : 325.3 최18ㅅ 제목 : 세종 실록 밖으로 행차하다 저자 : 박현모 출판사 : 푸른역사, 2007 청구기호 : 9113052 박94ㅅ 제목 : 세종처럼 : 소통과 헌신의 리더십 저자 : 박현모 출판사 : 미다스북스, 2008 청구기호 : 325.21 박941ㅅ 인물사진 : Google http://images.google.co.kr 인물설명 : http://ko.wikipedia.org/wiki/ 내용소개 :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 블로그 http://dlibrary.tistory.com
도서관을 통해 꿈을 이룬 지도자들 2 나 폴 레 옹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éon Bonaparte, 1769-1821) 나폴레옹은 프랑스 혁명기의 군인이자 정치가로, 훗날 프랑스 제1제국의 황제 나폴레옹 1세(Napoléon I, 재위 1804년 ~1814년, 1815년)로 즉위한다. 또한, 라인 동맹의 보호자 겸 이탈리아의 왕이기도 하였다. 혁명 시기, 여러 전투와 원정에서 명성을 떨쳐, 당시 총재 정부 시기 유력한 정치군인으로 부상하였으며, 혼란스러웠던 프랑스 혁명 후의 프랑스를 쿠데타를 일으켜 종신집정으로 다스려 안정시킨 후 국민 투표를 통해 군주제로 전환하여, 나폴레옹 전쟁 이라고도 불리는 전 유럽을 상대로 침공하여 제패하려 한 전쟁을 벌이다가 패한 뒤 폐위당하여 유폐되 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였다. 나폴레옹의 가장 큰 업적은 유럽 대륙 전체에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전파한 것이다. 그와 함께 나폴레옹 법전은 세계 각국의 법 체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1798년의 이집트 원정 중에 발견된 로제타석 은 근대 이집트학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가 건설을 명령한 개선문은 에펠탑과 더불어 파리의 가장 유명한 상징 물로 남아있다. 세계 최초로 이동도서관을 생각해내다 지중해의 작은 섬 코르시카에서 태어난 나폴레옹은 9살에 부리엔 사관학교에 입 학했다. 그런데 나폴레옹은 심한 코르시카 사투리로 인해 친구들로부터 촌뜨기, 너절한 촌놈 으로 불리며 놀림을 당했다. 이에 나폴레옹은 친구들과 별로 교제를 하지 않았고, 놀이에 끼어드는 것도 드 물었다. 그 대신 오락 시간이 되면 그는 곧장 부리엔 사관학교의 도서관으로 달 려가 폴리비오스와 플루타르크 역사책을 열심히 읽었다. 나폴레옹은 당시의 외 로움을 책 읽기를 통해 극복했으며, 책 읽기와 도서관은 어린 시절의 안식처 와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어린 시절의 독서를 통해 얻은 다양한 지식과 상상력은 나폴레옹이 훗날 야전사령관으로서의 탁월한 군사적 천재성과 세계적 범위의 정치 역량을 잘 결합시킬 수 있는 힘을 심어주었다. 특히 역사책을 좋아 했던 나폴레옹은 그 속에서 위인들의 결단력과 실천력을 배웠으며 자연스럽게 큰 야망을 키워 나갈 수 있었다. 이렇게 독서광으로 자란 나폴레옹은 심지어 전쟁 중에도 책 읽기를 멈추지 않 았고, 전쟁터를 향할 때에는 항상 책을 가득 실은 도서 마차가 뒤를 따랐다. 1808년의 스페인 침공 때는 약 1천 권의 이동문고를 만들게 하였다. 그 책들의 장정은 모두 값비싸고 귀한 양피지였으며, 도서 운반차 또한 서 재처럼 호화롭게 꾸몄다. 그의 사서들은 책의 선택뿐만 아니라 잘 인쇄된 호화 장정 본을 좋아한 장서가 황제에게도 신경을 써야 했 로 이동도서관(Bookmobile)을 생각해낸 사람이라고 평했다. 나폴레옹은 일찍부터 곁에 사서를 두었고, 전쟁 중에도 사서들을 데리고 다녔다. 몇몇 사서들은 대단한 속독 가였던 나폴레옹을 만 족시키기 위해 전쟁터와 파리를 왔다갔다하며 신작 소설들을 찾아 야만 했다. 나폴레옹은 1812년에 모스크바에 머물면서 사서인 바 르비에에게 재미있는 신간을 보내오도록 여러 차례 독촉하였으나, 책들이 당도하기 전에 패장으로서 폭설을 헤치며 퇴로를 재촉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여러 사서들 중에는 당시 많 은 정기 간행물 중 문학 서적, 특히 그 중에서도 정치적 색깔이 짙은 작품의 초록을 만들 어 나폴레옹에게 제출하는 책임을 지닌 자도 있었다. 나폴레옹은 여론의 동향을 문학 작품을 통해 감지하고자 한 것이었다. 나폴레옹은 재미있는 책 읽는 버릇이 있었는데 말 위에서 책을 읽은 다음에 는, 그 책을 말 뒤로 던져버리는 이상한 버릇이 있었다고 한다. 나폴레옹의 이 괴상한 버릇의 이유는 사실 버려진 책을 누군가 주워 읽고 자신이 받은 감명을 다른 사람들도 느꼈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혹자는 2001년 미국에서 시작된 북 크로싱(Book Crossing) 운동의 효시를 나폴레옹이라 말 하기도 한다. * 이 글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발간하는 <도서관계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다. 이러한 나폴레옹에 대해 폴임은 책 속의 책 에서 세계 최초 관련 자료 제목 : 나폴레옹 저자 : 막스 갈로 출판사 : 문학동네, 1998 청구기호 : 863 G172nKㅇ 제목 : Napoleon 저자 : Leslie McGuire 출판사 : Chelsea House Publishers, 1986 제목 : 나폴레옹, 저자 : 루드비히, 한영순 역 출판사 : 한국출판공사, 1986, 청구기호 : CT203 세14 1985 제목 : 나폴레옹, 저자 : H.A.L. Fisher, 김영한 역 출판사 : 탐구당, 1981, 청구기호 : 990.8 세14 제목 : 나폴레옹의 전쟁 금언 저자 : 나폴레옹 출판사 : 책세상, 1998 제목 : 나폴레옹 평전 저자 : 조르주 보르도노브 출판사 : 열대림, 1986 인물사진 : Google http://images.google.co.kr 인물설명 : http://ko.wikipedia.org/wiki/ 내용소개 :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 블로그 http://dlibrary.tistory.com 자료이미지 : 교보문고 http://www.kyobobook.co.kr
도서관을 통해 꿈을 이룬 지도자들 3 마 르 크 스 마르크스 (Karl Heinrich Marx, 1818-1883) 카를 하인리히 마르크스는 후대에 큰 영향을 끼친 독일 출신의 혁명가, 역사가, 경제학자,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이며, 과학적 공산주의의 창시자이다. 칼 맑스, 칼 마르크스란 표기도 많이 쓰이지만 표준 표기법에 따른 철자는 카를 마르크스 이다. 1847 년 공산주의자동맹을 창건했다. 1847년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공동집필해 이듬해 2월에 발표한 공산 당 선언 과 1867년 초판이 출간된 자본론 의 저자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10월 혁명을 주도한 블라 디미르 레닌은 마르크스를 이론적 기반으로 삼았다. 대영도서관에서 세상을 바꿀 책을 쓰다 사람들은 마르크스를 공산주의 운동의 지도자이자 선동가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실 마르크스는 지도자나 선동가이기보다는 전성기 시절 대영박 물관 도서관에서 하루 16시간씩 연구에 몰두할 정도로 이론가이자 지식인이며, 사상가였다. 1849년 영국 런던으로 망명한 마르크스는 대영박물관 도 서관에 가서 마음껏 연구를 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당시 자 신의 마지막 남은 옷을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빌려야 할 만큼 극심한 가난 속에서 살던 마르크스는 가족들 모두가 굶어 죽 을 판에 도서관에 가서 연구만 할 수는 없었다. 결국 마르크스는 멀리 있는 대영 박물관 도서관을 그저 바라 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 예니가 들어와서 마르크스에게 전당포에 맡겼던 옷을 주 며 그 동안 책을 보지 못해 많이 속상했죠? 자, 여기 옷을 찾아왔으니 도서관 에 가 보세요. 라고 말했다. 가난에 찌든 예니의 얼굴을 애써 외면하며 도서관을 찾은 마르크스는 그토록 가고 싶었던 대영박물관 도서관에 앉았지만 흐르는 눈 물로 책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는 그 때의 고통을 누군가에 털어놓고 싶어 가장 절친한 친구인 엥겔스에게 편지를 썼다. 영국에 온 지 꽤 오래되었지만 대 영박물관을 찾은 것이 오늘이 처음이네. 그런데 처음이 마지막이 될 것 같군. 그러나 이처럼 극도로 피폐한 생활 속에서도 예니의 배려로 1850년 가을부터 마르크스는 대영박물관 도서관을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할 수 있었다. 1851년 에는 미국의 세계적인 신문 뉴욕 데일리 트리뷴 지에 고정 기사를 쓰게 되면 서 조금이나마 생활비를 벌 수 있게 되었고, 더욱 도서관에서 연구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그는 아침마다 일찍 도서관에 가서 늘 같은 자리에 앉아 화폐, 임금, 자본, 투자, 노동자들의 생활 조건 등을 연구하고 저녁 7시까지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높다란 둥근 천장으로 뒤덮 은 원형 열람실에서 책을 마주하며, 그는 자신의 비좁은 집에는 결여된 조용함과 따뜻함을 누렸다. 또한 도서관에서 프랑스 혁명사 를 쓴 루이 블랑처럼 세계의 운명을 바꾸게 될 책 을 쓰기 위해 자료들을 찾고 있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다. 마르크스가 대영박물관 도서관에서 매일같이 연구에 몰두했던 것 역시 세계의 운명을 바꾸 기 위한 책을 쓰기 위해서였다. 바로 자본론 의 저술을 위한 방대한 자료를 모으기 위해 마 르크스는 대영박물관 도서관에서 하루에 16시간씩 연구에 몰입했던 것이다. 다른 활동에 보 낸 시간과 아파서 연구를 하지 못한 시간을 제외하면 자료를 모으는 시간만 18년 이상이 소 요되었다고 한다. 특히 대영박물관 도서관에서 얻었던 이코노미스트 지의 경제란이나 경제사에 관한 저술 들, 정부 보고서에서 얻었던 자료들은 자본론에서 가장 훌륭하고 가장 독창적인 장들을 구성 하고 있는 상세한 사회적, 역사적 연구들의 근거가 되었다. 또한 그의 도서관에서의 자료탐 색의 열정은 다른 사람이 눈여겨보지 않는 문헌에까지 미쳤고, 잉여가치학설사 를 저술하 는데 큰 영향을 끼친 익명의 40페이지짜리 팜플렛 을 찾아내기도 했다. 대영박물관 도서관에서 방대한 자료들을 수집, 분석한 마르크스는 1867년에 드 디어 자본론 1권 을 출간하였다. 이처럼 마르크스의 강렬한 열정과 헌신으로 태어난 자본론 은 이후 자본주의를 가장 탁월하게 분석한 고전이자 세상을 바 꾸는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한 책으로 평가 받고 있다. 관련 자료 제목 : 30분에 읽는 마르크스 저자 : 질핸즈, 이근영 역 출판사 : 중앙 M&B, 2003 제목 : 칼 마르크스: 그의 생애, 그의시대 저자 : Berlin, Isaiah, 안규남 역 출판사 : 미다스북스, 2001 청구기호 : 301.52099 M382bKㅇ 제목 : 마르크스 레닌주의 그 진실을 찾아 60년 저자 : 윤원구 출판사 : 현대사상연구원, 2007 제목 : 마르크스 평전 저자 : 프랜시스윈, 정영목 역 출판사 : 푸른 숲, 2001 청구기호 : 320.17 W566kKㅈ 제목 : 마르크스의 복수 저자 : 메그나드 데사이, 김종원 역 출판사 : 아침이슬, 2003 청구기호 : 320.904 D441mKㄱ 인물사진 : Google http://images.google.co.kr 인물설명 : http://ko.wikipedia.org/wiki/ 내용소개 :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 블로그 http://dlibrary.tistory.com 자료이미지 : 교보문고 http://www.kyobobook.co.kr
도서관을 통해 나눔을 실천한 사람들 1 헬 렌 켈 러 헬렌 애덤스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1968) 헬렌 애덤스 켈러는 시각과 청각 장애가 있는 미국의 작가 겸 활동가 겸 교육가이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시각 청각 장애인은 아니었다. 생후 19개월 후 당시 성홍열이나 수막염이라 생각되는 병을 앓아 위장과 뇌에 심한 출 혈이 생겼다. 병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그 결과 시각과 청각을 잃고 말았다. 7살까지는 약 60개가 넘는 수화를 만들어 가족과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 시각 장애를 가진 졸업생 앤 설리번을 특수교육 선생님으로 맞이하게 됨으로써 헬렌 켈러와 설리번의 49년간의 관계의 시작이었다. 시각장애인 특수학교인 보스턴 퍼킨스 학교와 뉴욕 라이트-휴머슨 학교에 졸업한 헬렌은 16세의 나이에 래드클리프 대학교에 입학했다. 1904년 대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독일어를 비롯해 5개의 언어를 구사했으며, 미국 역사 최초로 학사학위를 취득한 시청각 장애인이 되었다. 헬렌 켈러라고 하면 흔히 설리번 선생의 인내와 사랑으로 장애를 극복한 장애인 여성으로 생각하지만, 역사 속의 헬렌은 진보적 사회운동 을 실천한 사회주의 지식인이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도서관을 짓다 1880년 미국 앨라배마 주에서 태어난 헬렌 켈러는 1882년 지독한 열병을 앓은 후 듣지 도, 말하지도, 보지도 못하는 장애를 갖게 되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큰 고통에 어린 헬렌은 마음의 문을 닫고 괴팍한 어린이로 변해 갔다. 그러던 중 애니 설리번 선생 님을 만나게 되고, 그녀의 열정적인 가르침으로 헬렌은 마음의 문을 열고 장애를 하나씩 극복해 나간다. 렌은 읽고 또 읽었다고 한다. 낱말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헬렌의 마음을 잡아 끈 것이었다. 이처럼 퍼 킨스 학교의 도서관에서 많은 책을 읽으면서 독서의 매력에 푹 빠진 헬렌은 후에 수필집 사흘만 볼 수 있다면 에서 기쁨이나 지혜는 물론이요,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을 통하여 나는 그들이 쌓 은 지식을 책을 통해 건네 받았다. 책이 내가 받은 교육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말하라면 다른 누구보다 더욱 크다고 하겠다. 고 말했다. 특히 헬렌은 설리번 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라 손가락 끝으로 1887년 5월 7살 때 처음으로 이야기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책을 통해 세상을 느끼고 배워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집에는 몇 권의 점자책 밖에 없었다. 초보자를 위한 독본 이나 이야기책, 그리고 우리 사는 세상 이라는 지구에 관 이처럼 독서를 통해 자신의 삶을 의미 있는 것으로 변화시켜 나갔던 헬렌은 자신과 같이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이에 1893년 12살의 어린 나이에 헬렌은 모금 운동을 벌여 자신 의 출생지인 앨라배마 주 터스컴비아에 어려운 사람들이 무료로 책을 읽을 수 있는 도서관을 세웠다. 헬렌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저술활동, 신문 잡지에 대한 투고, 순회강연 등을 통해 기금을 모금하여 장 애인을 위한 학교나 도서관, 병원을 건립하는데 기부를 하는 등 적극적으로 자선사업을 펼쳤다. 한 책 정도였다. 이 책들이 전부였지만, 헬렌은 점자가 닳아서 잃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 기까지 반복해서 읽었다. 이 밖에도 1931년 4월에 헬렌은 뉴욕에서 세계 32개국의 대표들이 참석한 제1회 세계 시각장애인 회 의에서 표준 점자를 호소하여 브라유 점자 가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세계 표준이 되는데 기여했다. 또 헬렌이 본격적으로 독서를 시작하게 된 것은 1888년 시각장애인 학교인 보스턴의 퍼킨 스 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였다. 퍼킨스 학교의 도서관에는 수많은 점자책들이 있었다. 헬렌은 날마다 일정한 시간에 학교도서관에 가서 서가의 책을 읽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이 서가에서 저 서가로 종횡무진하며 손에 닿는 책을 마음껏 꺼내 읽기 시작했다. 한 미국 의회에서 헬렌이 한 첫 연설의 결과로 프랫-스무츠 법안(Pratt-Smoot Act)' 이 입법화되어 미 국 의회 도서관의 지휘에 따라 전국적으로 시각장애인 도서관 체제가 생겨났다. 이처럼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활동으로 존경 받던 헬렌은 1968년, 7년 동안 앓아오던 병으로 점점 쇠약해져 숨을 거두었다. 열 마디 중에서 한 마디밖에 몰라도, 혹은 한 페이지 가운데에서 단어 둘밖에 몰라도 헬 관련 자료 제목 : 헬렌켈러-A Life: 고요한 밤의 빛이 된 여인 저자 : 도로시 허먼 출판사 : 미다스북스, 2001 청구기호 : 990.94 K29hKㅇ 제목 : 사흘만 볼 수 있다면 저자 : 헬렌켈러 출판사 : 산해, 2008 청구기호 : 990.94 K29sKㅇ 제목 : 독서불패(위대한 독서광들의 성공스토리) 저자 : 김정진 출판사 : 새성, 2005 제목 : 헨렌켈러 자서전 저자 : 헬렌켈러 출판사 : 문예출판사, 2009 제목 : 헨렌켈러 자서전 저자 : 헬렌켈러, 박에스더 역 출판사 : 산행, 2008 인물사진 : Google http://images.google.co.kr 인물설명 : http://ko.wikipedia.org/wiki/ 내용소개 :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 블로그 http://dlibrary.tistory.com 자료이미지 : 교보문고 http://www.kyobobook.co.kr
도서관을 통해 나눔을 실천한 사람들 2 카 네 기 앤드루 카네기 (Andrew Carnegie, 1935-1919) 앤드루 카네기 (Andrew Carnegie,1835년 11월 25일 ~ 1919년 8월 11일)는 미국의 철강 재벌이다. 2008년 현재 세계적인 철강회사인 US 스틸은 카네기의 철강회사를 투자자인 JP 모건이 합병을 통해 설립한 회사 이다. 1902년 1월 29일 당시로서는 천문학적 액수인 2천5백만 달러를 기부하여 공공도서관 건립을 지원하는 워 싱턴 카네기협회를 설립했다. 미국 전역에 2500개의 도서관을 지었다. 카네기는 그 밖에도 카네기회관, 카 네기 공과대학, 카네기 교육진흥재단 등 교육 문화 분야에 3억 달러 이상을 기증했다.[2] 현재 국제사법재 판소의 건물인 평화궁을 지었으며, 카네기멜론 대학교를 설립했다. 2,509개의 도서관을 지은 도서관의 수호신 세계 최대의 철강회사를 설립하여 최고의 부를 쌓은 카네기는 회사를 떠난 후, 교육과 문화를 위해 재산의 90%를 기부하였다. 특히 미국을 비롯하여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에 6,000만 달 러 이상을 기부하여 2,509개의 공공도서관을 건립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카네기의 이 같은 기부활동으로 인해 사람들은 그를 도서관의 수호신(Patron Saint of Libraries)'으로 기억 한다. 이처럼 카네기가 유독 공공도서관에 대한 기부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어릴 적 이용했 던 시골의 한 작은 도서관 때문이다. 되었다. 그리고 당시 2달러나 되는 돈을 내고 책을 빌려야 했던 많은 사람들로부터 카네기는 칭찬을 받았다. 카네기는 도서관에서 찰스 램의 수필과 역사책, 밴크로프트의 미국사 등을 읽으며 독서에 푹 빠졌다. 앤 더슨 대령의 도서관에 새로 들어오는 책은 빠지지 않고 모조리 빌려 읽었다. 훗날 카네기는 자서전을 통해 이 도서관이 아니었다면 삶은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앤더슨 대령의 선물은 우리로 하여금 비속한 무리 들과 어울리지 않고 나쁜 습관에 물들지 않게 해주었다 고 회고했다. 카네기의 가족은 카네기가 13살 되던 해 미국 필라델피아로 이민 온 스코틀랜드인 이었다. 가 난한 이민자의 아들이었던 그는 어려서부터 베틀에 실을 감는 얼레잡이부터 기관차 조수, 전 신 기사, 전보 배달부 등의 여러 직업에 종사했다. 이틀에 한 번 꼴로 야근을 해야 하던 몹시 힘든 전보 배달 일을 하면서도 마음 깊이 배움에 대한 열망을 간직하고 있던 어린 카네기에게 어느 날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제임스 앤더슨이라는 한 사람이 만든 시골의 작은 도서관은 책을 살 돈도, 읽을 시간도 없었던 어린 카네 기에게 문학에 대한 사랑을 심어 주었고 독학의 기회를 제공했다. 또한 카네기의 성공에 소중한 자양분이 되 었다. 사업가로서 성공한 카네기는 어린 시절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자질과 재능과 야망을 지닌 소년소녀를 돕는 방법으로 공공도서관을 널리 지어 이용하게 하는 것 이상 좋은 일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서부 펜실베이니아에 여러 개의 무료 도서관을 지었던 제임스 앤더 슨 대령이 소장하고 있던 400여 권의 책을 모아 도서관을 열고, 일하 는 소년들을 위해 매주 토요일마다 책을 빌려갈 수 있게 했기 때문이 다. 그러나 이 도서관은 기술공과 견습공을 위한 도서관이었기 때문 에 전보 전달하는 소년들은 책을 빌릴 자격이 없었다. 이 말에 카네기 는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그러나 어린 카네기는 책을 읽고 싶은 열망을 접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피츠버그 디스패치 >라는 지방신문에 특권은 없지만 노동하는 소년 이라고 자신을 밝히고, 모든 근로 소년들은 도서관의 즐거움을 누릴 권리가 있으며, 전보 배달 소년들도 근로 소년이기 때문에 배제해서 는 안 된다는 글을 기고했다. 이 글은 앤더슨 대령의 마음을 변화시켰고, 그는 곧바로 도서관 이용에 관한 자격 기준을 넓혔다. 이로 인해 카네기는 달리 구할 수 없는 책들을 읽을 수 있게 이에 1881년 자신의 고향 스코틀랜드 덤펌린에 도서관 건물을 기부한 것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 2,509개의 공공도서관을 건립하는 데 자신의 재산을 기부하였다. 미국의 대표적인 공공도서관인 뉴욕공공도서관도 1901년 카네기가 기부한 520만 달러가 본격적인 발전의 밑거름이었다. 이처럼 수많은 도서관에 기부하면서 카네기가 지킨 한 가지 원칙이 있었다. 그것은 도서관 건축비를 자신이 부담하지만, 나머지 도서관에 대한 모든 사항은 지역 사 회에 맡긴다는 것을 것이었다. 부자로 죽는 것은 불명예 라고 생각했던 카네기가 무엇보다 자신의 부를 나누고 싶었던 곳은 도서관이었 기에 지금까지 사람들은 그를 도서관의 수호신 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카네기의 나눔의 정신은 끊이지 않고 이어져, 오늘날에도 미국의 많은 기업과 부자들은 도서관을 통해 부의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관련 자료 제목 : 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 저자 : 최정태 출판사 : 한길사, 2006 제목 : 카네기 자서전 저자 : 앤드류 카네기 출판사 : 미래경제연구소, 2005 제목 :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라 : 카네기 인간관계론 저자 : 데일 카네기 출판사 : 고려원, 1992 청구기호 : 331.18 최15ㅇ 제목 : 카네기 인간관계론 저자 : 데일 카네기 출판사 : 씨앗을 뿌리는 사람, 2004 청구기호 : 199.1 C289hKㅊ 제목 : 카네기 인간경영 리더십 저자 : 최염순 출판사 : 씨앗을 뿌리는 사람. 2005 인물사진 : Google http://images.google.co.kr 인물설명 : http://ko.wikipedia.org/wiki/ 내용소개 :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 블로그 http://dlibrary.tistory.com 자료이미지 : 교보문고 http://www.kyobobook.co.kr
도서관을 통해 나눔을 실천한 사람들 3 존 우 드 존 우드 ( John Wood, 1963 - ) Microsoft 사의 마케팅 이사로 일하던 존 우드는 히말라야를 관광하다 우연히 네 팔의 초등학교의 텅빈 도서관 본 것을 계기로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제 3세 계에 학교와 도서관을 지는 자선 활동을 하고 있다 스타벅스가 6년 동안 500개의 매장을 열었다면 그는 3,000개의 도서관을 지었다. "10년 전에는 빌 게이츠와 일하고 지금은 빌 클린턴과 함께 일하는 사회기업가!" 제3세계 나라에 3천개의 도서관을 지은 사나이 세계 굴지의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호주 및 중국의 마케팅 이사로 일하던 존 우드. 그는 1998년 휴가를 얻어 히말라야-네팔 트레킹을 하게 된다. 히말라야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아름답다. 는 여행사 직원의 말처럼 히말라야는 아름다 웠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네팔의 초등학교를 방문하게 되면서 네팔의 진정한 모습을 보게 된다. 초등학교의 열악한 시설과 여행객들이 버린 보잘 것 없는 책들 외엔 텅 빈 도 서관을 만난 그는 자신과 달리 교육과 독서의 기회를 전혀 가지지 못하는 네팔의 어린 이들의 모습에 마음이 흔들린다. 존 우드는 어려서부터 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던 공 공도서관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서 책을 읽던 즐거움을 맛보며 자랐다. 그에게 책은 새 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런데 그런 즐거움을 누릴 수 없는 지구 한 쪽의 어린이들을 만나보니 삶의 일부가 비어 있는 아이들을 본 느낌이었다. 그는 책을 보내달라는 초등학교 교사들의 절실한 부탁에 학교에 책을 보내줄 것을 약속 하게 되고, 이 일을 계기로 그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그는 약속대로 네팔에 책을 보내 주었다. 그러나 그는 이 오지의 아이들에게 책을 전달하는 것에 큰 보람을 느꼈고, 한번 으로 끝맺지 않았다. 삶의 목표를 찾지 못하고 마이크로소프트사에 이끌려가는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낀 그 는 본격적으로 네팔의 어린이들에게 책을 보내고, 도서관을 지어주는 삶을 살 것을 고 민한다. 결국 고민 끝에 그는 연봉 100만 달러를 받던 직장을 그만두고 1999년 '북스 포 네팔(Books for Nepal)'이란 자선단체를 만든다. 그의 이런 결정을 사람들은 비웃었고, 여 자 친구마저 이해하지 못하고 떠나고 말았다. 그의 꿈은 누구에게나 무모해 보였던 것이 다. 그러나 그는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기부금 유치를 위해 적극 활동하였고, 이 뜻에 함께하는 사람들의 기부를 받아 네팔에 도서관과 학교, 컴퓨터 교실을 짓고 여학생을 위 한 장기 장학금을 지급하는 활동들을 펼쳤다. 존 우드의 지원활동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협동투자 모델 이었다. 일방적으로 지 원을 하고 지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지원받는 지역 공동체와 함께 사업을 펼쳐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역주민들이 적은 돈이나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은 유지한 이유는 사람들이 자신의 소유라고 느끼지 못하면 오랜 기간 동안 유지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어진 도서관, 학교가 자신의 소유라고 느끼게 하는 것. 그것이 존 우드가 진행한 이 도서관 프로젝트의 핵심이었다. 2000년 존 우드는 이 단체를 룸 투 리드(Room To Read) 란 이 름으로 바꾸었다. 네팔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로 이 활동을 확 대하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01년 네팔에서의 지원사업이 정상궤도에 들어서자 이 활동은 베트남을 시작해 스리랑카, 인도를 거쳐서 라오스, 캄보디아, 남아프리 카공화국, 잠비아까지 확대되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그는 3,000개가 넘는 도서관을 지었으며, 150 만 권의 도서를 기증하였다. 현재 그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만든 재단과 손잡고 일을 진행 중이다. 그는 2010년까지 도서관, 학교, 컴퓨터실을 1만개 짓는 것이며, 2018년까지 도서관 2만개를 짓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것 이 이뤄진다면 천만 명의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제3세계 도서관 보급의 카네기 를 꿈꾸며 도서관을 통해 세상을 바꿔보려는 사나이 존 우드. 그는 지금도 책 읽기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세계의 어린이들에게 도서관을 안겨주기 위해 한 해 평균 500번의 인터뷰와 기부금 유치를 위한 프레젠테이션을 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관련 자료 제목 : 히말라야 도서관 / 저자 : 존 우드 출판사 : 세종서적, 2000 / 청구기호 : 844 W876LKㅇ 목 차 1부 네팔의 선물 Chap. 1. 히말라야 도서관엔 책이 없다 / Chap. 2. 최악의 선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 Chap. 3. 책이 몰려온다 Chap. 4. 당신은 미래를 주신 겁니다 / Chap. 5. 이제 한 걸음을 뗐을 뿐 / Chap. 6. 대도시에서 외로움을 마주하다 Chap. 7. 빌 게이츠의 방문으로 알게 된 것 / Chap. 8. 새로운 시작을 위해 떠나기 2부 세상 끝의 아이들 Chap. 9. 움직이는 물체는 움직일 때만 가치있다 / Chap. 10. 그가 누구를 돕고 있는지 알게하라 / Chap. 11. 베트남을 보여준 청년 Chap. 12. 나는 후원금, 당신은 벽돌 / Chap. 13. 부사령관이 없으면 사령관도 없다 / Chap. 14. 9월 11일 Chap. 15. 비영리 마이크로소프트 / Chap. 16. 네트워크는 힘이 세다 / Chap. 17. 삶은 엉망진창이지만 꿈은 명확하다 3부 끝나지 않는 희망 Chap. 18. 엄마 될 사람이 배워야 한다 / Chap. 19. 드라이아이스에 넣어 간직하고픈 순간 Chap. 20. 공부하게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 Chap. 21. 가속도가 붙다 Chap. 22. 인도 아이들은 포기를 모른다 / Chap. 23. 쓰나미가 빼앗지 못한 것 / Chap. 24. 백만 권 째 희망 [신문기사] 동아일보, 2008-01-04 [신년 인터뷰] 제3세계 책 보내기 운동하는 美 NGO리더 존 우드 잘나가던 자리를 던져 버린 게 8년 전이다. 오늘날의 모습에 만족하는가. [Ans] 정보기술(IT) 금융 분야에서 성공한 친구들은 돈을 많이 벌었어도 삶의 목표가 뭔 지를 끊임없이 묻고 있다. 암스테르담이나 밴쿠버, 홍콩, 런던에서 끊임없이 돕고 싶다. 방법을 알려 달라 는 연락이 온다. 콜로라도 주에 베일(Vail)이라는 부촌이 있다. 그곳에서 은퇴자들이 가장 많이 복용하는 약이 뭔지 아나? 우울증 약이다. 부를 축적했어도 공허 함은 채울 수 없다. 나는 남을 위한 일에 골몰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고 있다. 네팔에서 뭘 봤기에 인생을 바꿨나. [Ans] 난 책과 함께 자랐다. 먼 마을 도서관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서 책을 빌려 한 권씩 읽던 즐거움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런데 지구 한쪽의 어린이들에게는 그런 즐거움이 없 다니. 삶의 일부가 비어 있는 아이들을 본 느낌이었다. 당시 텅 빈 도서관 은 한 장의 스 틸사진처럼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그래도 30대 후반 때의 백만장자 생활이 그립지 않나. 결혼도 아직 안 했고 집도 없는 데. [Ans] 지구상 95%의 사람보다 내 삶이 편하다. 세상이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를 생각했 다. 미국에도 도시 빈민 문제가 있는데 왜 남의 나라 어린이의 앞날을 걱정하나. [Ans] 난 부유한 나라 기업인을 만날 때마다 책임감 을 강조한다. 한국의 경우 그동안 얼 마나 선진국에 근접했는가. 삼성 현대 대우와 같은 한국 기업은 글로벌 경영을 한다. 그런 데도 왜 도움의 손길은 국경선에서 멈춰야 하나. 베트남에 출장가면 한국 기업 간판과 홍 보물이 넘쳐 난다. 도서관에 책도 보급하는데, 어떤 책을 선택하는가. [Ans] 영어 책도 주지만 현지 언어를 쓰는 작가와 현지 화가를 선발해 현지화를 위해 노력한다. 삽화도 다시 그리고, 본문도 현지어로 다시 쓴다. 이렇게 만든 책이 250종이다. 문화적 충돌이 생길 수 있는 책은 포함시키 지 않는다.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는 미국에 도서관 2500개를 세웠다. 제3세계 도서관 보급의 카네기 가 꿈이라고 들었 는데, 10년 뒤 자신의 모습을 그려 본다면. [Ans] 2010년이면 도서관 학교 컴퓨터실을 1만 개 짓게 된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만든 재단과 손잡고 이 일을 진행 중이다. 2018년이면 학교 2000개, 도서관 2만 개를 짓는다. 800만 명의 어린이가 학교와 도서관을 매일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피곤이 가시지 않아 보였던 그의 입가에 비로소 미소가 번졌다. 샌프란시스코=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인물사진 : Google http://images.google.co.kr 인물설명 : http://ko.wikipedia.org/wiki/ 내용소개 :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 블로그 http://dlibrary.tistory.com 자료이미지 : 교보문고 http://www.kyobobook.co.kr
도서관에서 역사를 만든 사람들 2 신채호 [ 申 采 浩, 1880.12.8-1936.2.21] 충남 대덕군 산내면(현재 대전시 중구 어남동) 출생의 한국의 독립운동가, 사학자이다. 본관은 고령, 호는 단재( 丹 齋 ) 일편단생( 一 片 丹 生 ) 단생( 丹 生 )이다. 필명은 금협산인 무애생 열혈생 한놈 검심 적심 연시몽인이며, 유맹원 박철 옥조숭 윤인원 등을 가명으로 사용하였다. 마을서당 훈장인 할아버지에게 어린 시절부터 한문을 배웠는데, 덕분에 단재 선생은 청년시기에 다양한 학문을 접할 수 있었다. 1930년 5월 유가증권위조 및 동행사, 치안유지법위반 혐의로 10년형을 선고 받고, 1936년 2월 21일 여순감옥에서 뇌일혈로 옥사하였다. "왜놈이 만든 호적에 이름을 올릴 수 없다"며 스스로 무국적자가 되었는데, 2009년 3월1일 97년만에 가족등록부에 올림으로서 국적을 회복 하였다. 민족의 독립을 위해 도서관에서 역사를 연구하다 [그림] 성균관 도서관 존경각 일찍부터 역사에 눈을 뜬 그는 1898년 가장 권위 있 는 고등교육 기관인 성균관에 입학하면서 역사에 대해 더 크게 눈을 뜨게 되었다. 시골에서는 볼 수 없었던 풍부한 자료들을 성균관의 도서관에 서 접할 수 있 었기 때문이다. 그는 성균관 도서관에서 우리나라의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사에 관한 책들을 모조리 읽어 나갔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신채호는 우리 역사를 민중들에게 가르치고 깨우치는 것 이 외세에 의해 병들어가는 나라를 일으키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이에 그는 성균관을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가 문동 학 원을 세우고 애국 계몽운동을 펼쳐 나갔다. 그러나 나 라를 팔아먹으려는 친일파 무리들이 갈수록 판을 치 자 1905년 위암 장지연의 권유로 황성신문 에서 언 론활동을 펼치게 된다. 그러나 장지연의 시일야방성 대곡 이 문제가 되어 황성신문 이 무기 정간되자, 이듬해 대한매일신보 로 자리를 옮겨 언론 활동을 [그림] 시일야방성대곡 원문 계속했다. 1908년에는 대한매일신보 에 한국 고대사 연구의 방향과 관점을 새롭게 제 시한 최초의 글인 독사신론( 讀 史 新 論 ) 을 연재했다. 그는 독사신론 에서 그동안 중국 위주로 쓰여 왔던 역사를 완전히 뒤엎고, 민족주의 사관에 입각하여 역사를 새로 정리했 다. 이처럼 그는 민중들에게 역사를 통해 애국심을 북돋워줌으로써 나라를 지키고자 했 다. 그러나 결국 1910년 한일합방이 이뤄지자, 안정복이 고조선부터 고려까지 다룬 역사 책 동사강목( 東 史 綱 目 ) 을 품에 안고 중국으로 망명했다. 그 뒤 연해주로 거처를 옮긴 그는 해조신문, 권업신문 등에서 언론활동을 재개했다. 권업신문 이 문을 닫게 되자 신채호는 1914년 만주 지방을 돌면서 고구려와 발해의 유 적, 유물을 답사하며 민족사학의 실증적 토대를 마련했다. 1915년에는 베이징으로 옮겨 신한 혁명당에 참가해 독립운동을 펼치며 본격적으로 조선사 저술에 착수하였다. 이 때 자료 부 족을 겪던 그는 베이징대학 도서관을 이용하며 집필 자료를 얻었다. 1919 년에는 상하이 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활동을 했으나, 곧 실망을 하고 정치운동이 능사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의 사명이 굳건한 민족사를 쓰는 것이며, 역사 연구야말로 정치운동, 무장운동 못지않은 중요한 독립운동임을 확신했다. 이후 다시 베이징으로 돌아온 그는 조선사 집필 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이 때도 베이징대학 도서관을 이용하였고, 리스청( 李 石 曾 ) 교수의 협조로 베이징 대학도서관의 사고전서( 四 庫 全 書 ) 를 비롯하여 우리나라 역사와 관계된 수많은 중국서적을 섭렵할 수 있었다. 신채호의 국사연구에서 보이는 100여종이 넘는 수천 권의 참고문헌들은 대부분 베이징 대학도서관에서 읽었던 것이다. 이처럼 도서관의 자 료를 바탕으로 국사연구에 몰입했던 신채호는 결국 우리나라의 고대사 연구의 새로운 방향 을 제시한 조선상고사( 朝 鮮 上 古 史 ), 조선상고문화사( 朝 鮮 上 古 文 化 史 ), 조선사연구초( 朝 鮮 史 硏 究 草 ) 등을 저술해 냈다. 당시만 해도 조선의 고대사 연구가 빈약했고, 조선사 연구 자 체가 일제에 의해 백안시 당하고 있던 때였기에, 풍부한 자료 와 새로운 이론으로 저술된 그의 글은 큰 충격을 주었다. 이처럼 나라가 있으면 반드시 역사가 있고, 정신이 생동하는 역사가 있으면 그 나라는 일어서게 된다는 것을 굳게 믿었던 사학의 선구자였던 단재 신채호는 1928년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려다 일경에 체포되고 말았고, 뤼순감옥에서 8년의 옥 고를 치루다 돌연 뇌일혈로 의식을 읽고 결국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타국 땅에서 옥사하고 말았다. 제목: 단재 신채호 전집 저자: 단재 신채호선생 기념사업회 [편] 출판사: (주)디자인인트로 청구기호: 911.066 단74 제목: 단재 신채호의 천고 저자: 최광식 역주 출판사: 아연출판부 [DVD] 제목: 역사스페셜 연출: 류지열 외 출판사: KBS미디어, 2005 (98편 역사만이 희망이다, 단재 신채호) 제목: (인터넷 세계화시대 다시 부각되는) 민족지성 신채호 저자: 신충우 출판사: 한림원 ISBN: 8957081046 청구기호: DS916.5.A1.신86 2006 제목: 조선상고사 저자: 신채호 출판사: 비봉출판사 ISBN: 9788937603488 청구기호: 911.05 신82ㅈ 인물사진: 위키피디아 http://ko.wikipedia.org 인물설명: 위키피디아 http://ko.wikipedia.org 내용설명: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 http://dlibrary.tistory.com 자료이미지: 교보문고 http://kyobobook.co.kr
도서관에서 역사를 만든 사람들 1 빈켈만 [Johann Joachim Winckelmann, 1717.12.9~1768.6.8] 독일 북부의 슈텐달 출생. 매우 가난하여 고학으로 할레대학교 예나대학교 등에 다녔으며, 귀족의 도서실 사서( 司 書 )로 일하면서 고대 그리스 문 화를 연구하였다. 드레스덴으로 옮긴 후에 회화 및 조각에 있어서의 그리스 미술품의 모방에 관한 고찰 (1755)을 출판하여, 그 당시 일고 있던 고전 주의( 古 典 主 義 ) 사상의 선구자로서 인정을 받게 되었다. 같은 해 로마로 간 뒤부터는 그곳에 수집되어 있던 고대 유품( 遺 品 )과 각지의 유적에 대한 조사연구 및 저술 활동에 전념하면서, 그 동안에 바티칸 도 서관 서기, 고미술 보존감독관으로 일하기도 하였다. 1764년에 주요 저서 고대예술사 를 출판하였으며 1768년에 독일을 여행하던 중 트리에스테에 서 강도의 칼에 쓰러졌다. 도서관에서 근대 미술사학을 개척하다 그리스 미술의 최고 해석자이자 근대 미술사학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빈켈만은 1717 년 북부 독일의 작은 도시 슈텐달에서 태어났다. 그는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 나, 가업을 전하려는 부모의 의도와 달리 학문에 뜻을 두었다. 빈켈만은 1735년 베를린의 쾰른 고등학교를 거쳐 1736년 잘츠베델에 있는 프란체스코 교단의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호메로스, 헤시오도스, 에우리피데스, 아리 스토텔레스 등의 저술을 접하며 그리스 문화에 대한 관심을 키워갔다. 이후 할레 대학과 예나대학에서 공부를 계속하였다. 1742년 대학생활을 마친 그는 이후 5년간 제하우젠의 라틴어 학교에서 교사로 일을 하 며 그리스 정신의 본질에 대한 독특한 견해 와 그리스 문학에 관한 지식을 확립 하였다. 교사라는 안정된 직업 덕분에 그리스 문학 연구에 열중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이다. 라고 말했다. 그는 이 시절 새로운 역사학은 서술의 간결성과 관찰의 정확성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 소논문인 새로운 일반 역사학의 강연 에 관한 고찰 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미술사학의 시작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책 으로 평가되고 있는 그리스 미술 모방론 을 발간함으로써 서양 예술에서의 고전적 이상을 제시했고, 이는 독일 고전주의 미학의 원천이 되었다. 빈켈만은 그리스 미술 모방론 을 발간한 이후 호평을 받았고, 왕실로부터 연금을 받아 이 탈리아로 가서 본격적으로 미술사를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과 교우하면서 자신의 체계적인 미술사 연구를 가다듬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고대미술 전문가 인 알바니 추기경의 개인 도서관 사서로 일하게 되면서 귀하고 값진 책과 미술품들을 접 할 수 있었다. 또한 1763년 최고의 학자로 인정받는 바티칸 도서관의 필사자가 되어 미술 사 연구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이처럼 그리스 정신을 동경하던 빈켈만은 1748년 제하 우젠을 떠나 드레스덴 지방의 뇌테니츠에 위치한 뷔나우 백작의 도서관 사서로 일을 하였다. 빈켈만이 여기서 보낸 6년간은 그의 미술사관을 형성하는데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그는 여기에서 사료 정리와 문헌 수집 및 장서 목록을 작성했다. 뿐만 아니라 정치가이자 역사가였던 백작을 도와 독일 황제와 독일의 역사 의 편찬 작업에 종사했다. 일은 힘들었지만 많은 장서를 자유롭게 접하 고 읽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그는 많은 역사 서를 읽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미술사관을 형성하게 되었다. 또 때때로 드레스 덴으로 가서 미술관을 방문하거나 화가, 미술연구가, 수집가 등 미술계 인사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빈켈만은 훗날 이 시절을 지금이 나의 생애 가운데 가장 평온한 시기이다. 나는 아무런 걱정없는 만족한 생활을 하고 있다. 적어도 자유롭게 생각 그리고 결국 빈켈만은 1764년 고대미술사 를 완성하였다. 이 책을 통해 그는 기존의 단순 한 지식의 나열에 불과하던 미술사를 탈피하여 하나의 맥락으로서 미술의 역사적 차원을 제 시하고 학문으로서의 미술사를 개척하였다. 이로 인해 그는 당시 사람들에게 고대미술사 는 무로부터의 창조 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후 빈켈만은 고대미술사 에 대한 개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고대미술사에 관한 주석 을 비롯해 고고학적 방법론의 선구적인 저서라 할 수 있는 발표되지 않은 고대 미술작품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이러한 빈켈만의 활동은 유럽 지식인들에게 비상한 관심을 받았고 그를 미의 역사적 형이상학자 라 부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빈켈만은 1768년 여행을 마치고 로마 로 돌아오던 중 여관에서 한 괴한에 의해 칼에 찔려 임종을 지켜보는 사람도 없이 51세의 나 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제목: 빈켈만 미학과 그리스 미술 저자: 기정희 출판사: 서광사 인물사진: 위키피디아 http://ko.wikipedia.org 인물설명: 위키피디아 http://ko.wikipedia.org 내용설명: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 http://dlibrary.tistory.com 자료이미지: 교보문고 http://kyobobook.co.kr ISBN: 9788930662147 제목: 그리스 미술 모방론 저자: 요한요아힘빈켈만 출판사: 이론과 실천 ISBN: 9788931310047 청구기호: 610 빈874ㄱ Portrait of Johann Joachim Winckelmann, Anton von Maron 1768 Kulturstiftung DessauWörlitz Photo: Heinz Fräßdorf
도서관에서 역사를 만든 사람들 3 데이비드 흄 [David Hume, 1711.4.26~1776.8.25] 영국의 공리주의적 철학자로 국무차관, 프랑스 대사의 비서관, 에든버러 변호사회 도서관 사서를 지냈다. 에든버러대학교 법학부 학사. 그의 인식론( 認 識 論 ) 은, J.로크에서 비롯된 '내재적 인식비판'의 입장과 I.뉴턴 자연학의 실험 관찰의 방법을 응용했다. 인간본성 및 그 근본법칙과 그것에 의존하는 여러 학문의 근거를 해명하는 일이었다. 홉스의 계약설을 비판하고 공리주의를 지향한다. 도서관 장서의 도움으로 영국사를 완성하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현 시대의 가장 뛰어난 철학자 라고 말했던 철학자 데이비드 흄. 그러나 그는 당시 철학자보다 역사가로서 더욱 유명했다. 흄은 1711년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서 법률가 가문의 둘째로 태어났다. 두 살 때 아버 지를 여읜 탓에 그의 어린 시절은 넉넉지 않았다. 이에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은 안정된 삶을 위해 흄이 법률가가 되기를 원했고, 그는 12살 때 에든버러 대학에 입학하여 법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법률가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학자로서 명예로운 삶을 누리고 싶었다. 이에 3년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이후 수년간 집에서 혼자 공부하기 시작했다. 마침 흄의 집의 서재에는 꽤나 괜찮은 서적들이 소장되어 있었고, 그는 이곳 에서 키케로와 베르길리우스를 비롯하여 성경 및 종교에 관한 문헌들 나아가 라틴어, 희랍어, 프랑스어 고전들까지 읽어나가며 공부하였다. 1729년 흄은 어려운 가정형편과 지나친 독서로 인하여 심신이 극도로 피폐해졌다. 이 에 독서시간을 줄이고 적절한 음식과 야외 활동으로 건강을 회복했으나, 다시 우울증에 빠졌다. 이에 1734년 잠시 공부를 중단하고 생활방식을 바꿀 겸 브리스톨에 있는 한 작은 회사에 취직했다. 그러나 그는 직장의 일보다는 글을 쓰는데 더 정열을 기울였으며, 틈만 나면 서점과 도서관을 찾아가 공부하였다. 결국 4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둔 흄은 오직 학문에만 전념하기 위해 프랑스로 건너갔다. 그는 프랑스에서 3년의 노력 끝에 철학 사상 절되었다. 1752년 흄은 글래스고우 대학의 논리학 교수에 추천되었으나, 또 다시 흄의 무신론을 들 먹이는 자들의 반대로 인하여 그는 취임하지 못했다. 이때 그는 이미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문제는 돈이 아니라 책이었다. 그리하여 글래스고우 대학의 소장 도서를 마음대로 보지 못하게 된 대신에 그는 에든버러 변호사 협회 부속 도서관의 사서로 취 직하였다. 흄은 이 도서관의 장서를 바탕으로 기원전 55년의 줄리어스 시저부터 1688 년 영국 혁명에 이르는 영국사 를 집필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적이 없지 는 않아서, 1754년에 흄이 주문한 라퐁텐의 콩트집 등을 "점잖지 못하여 지성인의 도 서관에 비치할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큐레이터가 기각하는 일이 있었다. 이 일 이후로 흄은 그때까지 받던 연 40파운드의 급료마저 거절한 채, 1757 년까지 사서로 일했다. 모든 것이 무려 30,000권에 달하는 이 도서관의 장서 때문이었다. 결국 흄은 도서관 장서의 도움 으로 영국사 를 집필하여 출간하였다. 볼 테르가 "아마도 언어로 쓰인 것 중에서 최고일 것"이라고 극찬한 이 책은 1762년에 6권으로 완성되었다. 이 책을 통해 가장 중요한 책 가운데 하나로 평가 받는 인성론 을 완성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 원고를 흄은 문필가로서 영국의 가장 위대한 저술가 라는 평을 받을 [1754년의 데이비드 흄] 들고 귀국했으나 출판에 나서는 출판사가 없어 원고를 썩히고 있다가 2년 만에야 간신히 출간하였고, 출간 후에도 매우 냉소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계속 글을 써 나갔으며, 1741년에 도덕과 정치에 관한 평론집 으로 문필가로서 이름을 날리 게 되었다. 이에 고무된 흄은 1744년에 에든버러 대학의 윤리학 및 정신철학 교수직에 지 원하였으나 인성론 이 무신론을 함축하고 있다고 간주한 광신자들이 반대함으로써 좌 만큼 크게 명성을 얻게 되었다. 또한 이후 1천 파운드의 연봉까지 받게 되어 부유한 여생 을 꾸려갈 수 있었다. 이 영국사 는 흄이 죽은 뒤에도 거의 100년간 베스트셀러이자 역사서로서 권위를 누렸 다. 이런 흄의 업적으로 인해 오늘날에도 영국 도서관에서는 흄은 철학자가 아니라 역사학 자로 분류되어 있다. 제목: 기적에 관하여 저자: 데이비드 흄 출판사: 책세상 ISBN: 8970134042 제목: 오성에 관하여 저자: 데이비드 흄 출판사: 서광사 ISBN: 8930610226 제목: 정념에 관하여 저자: 데이비드 흄 ISBN: 8930610242 출판사: 서광사 제목: 도덕에 관하여 저자: 데이비드 흄 출판사: 서광사 ISBN: 8930610323 제목: 종교의 자연사 저자: 데이비드 흄 출판사: 아카넷 ISBN: 8957330240 청구기호: 201 h921nkㅇ 인물사진: 위키피디아 http://ko.wikipedia.org 인물설명: 위키피디아 http://ko.wikipedia.org 내용설명: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 http://dlibrary.tistory.com 자료이미지: 교보문고 http://kyobobook.co.kr
도서관에서 사랑을 만난 사람들 1 카사노바 [Giovanni Giacomo Casanova, 1725.4.2~1798.6.4] 1725년 4월 2일 베네치아에서 출생하였다. 생갈트의 기사(Chevalier de Seingalt) 라는 이름은 그가 자칭한 것이다. 처음에는 성직자 군인 바이올리니스트 등으로 입 신하려 하였으나, 추문( 醜 聞 )으로 투옥되었다. 1756년 탈옥한 이후부터 생애의 3분의 2를 여행으로 유럽 전토를 편력하였다. 재치와 폭넓은 교양을 구사하여 외교관 재 무관 스파이 등 여러 직업을 갖기도 하고, 감옥에 투옥당하는 등 그의 삶은 변화무쌍하였다. 그 동안 여러 계층의 사람들( 君 侯 귀족 문학가 과학자 예술가 희극배우 귀부 인 천민 사기꾼 방탕아)과 두루 사귀었고 계몽주의 사상에도 접하며 파란만장한 생애를 보냈다. 그는 보헤미아 둑스의 성에서 발트슈타인 백작의 사서( 司 書 )로 쓸쓸히 죽었으나, 그의 저술가로서의 명성은 이 성에서 지루한 나날을 달래기 위해 쓴 회상록 Histoire de ma vie (12권, 1826 1838) 때문이다. 이것은 18세기 유럽의 사회 풍속을 아는 데 귀중한 기록이 되었다. 또한 5부로 된 공상소설 20일 이야기 Icosameron (1888) 는 쥘 베른의 지저( 地 底 ) 여행 의 선구적 작품이라 일컬어진다. 도서관에서 여인들과의 사랑을 추억하다 카사노바 하면 모두들 떠올리는 것은 그의 화려한 여성편력이다. 평생 1천명이 넘는 여성들과 관계를 맺었다고 하니 누구도 따라가기 힘든 난봉꾼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카사노바가 난 봉꾼 외에도 다채로운 이력을 가지고 있음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활기찼던 젊은 시절을 다시 만날 수 있게 해 주었다. 특히 뜨겁고 자신만만하게 사랑했던 여인 들과의 사랑을 추억할 때면 카사노바는 어느 때보다 행복했다. 그는 사랑을 나눴던 여인들에 대 한 모든 걸 생생히 기억했고, 무얼 먹었는지 까지 확연히 기억해 냈다. 카사노바는 성직자, 바이올린 연주자, 군인, 외교관, 연극 연출자, 배우, 댄서, 관료, 비단제조업 자, 사기꾼, 스파이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무엇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카사노바가 누구보다 열렬히 책을 사랑했으며, 다양한 책을 저술한 저술가라는 사실이다. 그는 기구한 삶 을 살면서도 항상 여성과 함께 있었듯이, 항상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카사노바는 하루에 12시간 동안 글을 쓸 만큼 열정적으로 글을 썼으며, 이것은 무려 4,545장, 모두 12권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의 회고록 <내 삶의 이야기(Histoire de ma vie)>로 탄생했다. 이 책은 그가 49세 되던 1774년까지의 삶을 기록한 책으로 18세기 유럽 상류사회의 생활상과 풍속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 받고 있다. 카사노바는 1783년 베네치아에서 추방된 이후 여러 나라를 방황하며 일자리를 찾았으나, 어디 에서도 신용을 얻지 못하고 방황하게 된다. 이때 그의 인품에 매혹된 발트슈타인 백작의 권유로 백작의 성에서 도서관 사서로 일하게 된다. 보헤미아(현 체코)의 둑스에 자리한 발트슈타인 백작의 성은 로코코 양식의 호화로운 궁전으로 베르사유 궁전을 연상시켰다. 이 성의 도서관 에는 무려 4만 권의 장서가 있었다. 그러나 카사노바는 둑스에서의 생활에서 신체적 노쇠와 함께 고립감으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 렸다. 그는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프라하, 빈, 드레스덴, 라이프치히를 여행하며 옛 친구들을 만나고, 과학자나 문인들과 소식을 교환했다. 그럼에도 우울증이 심해지자 카사노바는 도서관 에서 자신의 지난 삶을 회상하는 글을 쓰며 우울증을 치료했다. 과거로의 여행은 카사노바에게 도서관 사서로 일하면서 카사노바는 회고록뿐만 아니라 다양한 책을 펴냈다. 베네치아의 납 감옥에서 탈출한 이야기를 쓴 <피옴비 탈옥기>, 프랑스의 소설가 쥘 베른의 <땅 속 여행>에 많은 영향을 끼친 공상소설 <20일 이야기> 등을 써냈으며, 각종 비평, 일화, 풍자글 등 40여 편 의 작품을 남겼다. 이처럼 말년에 도서관에서 사랑을 추억하고 다양한 저술활동을 펼친 카사 노바는 나는 내 생의 마지막에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다. 그곳은 오직 도 서관밖에 없다. 라고 말했다. 이러한 카사노바에 대해 20세기 최고의 전기작가 중 한명인 슈테판 츠바이크는 당대뿐만 아니 라 현재에 이르기까지 카사노바가 경험했던 것보다 더 다양한 상황을 창조한 작가는 발자크를 빼고는 단 한 사람도 없다고 평가했다. [DVD] 제목: 카사노바 감독: 라세 할스트롬 출연자: 히스 레저, 시에나 밀러 외 제작사: 브에나비스타 레이블 브에나비스타 제목: (감각의 순례자) 카사노바 저자: 김준목 출판사: 시공사 ISBN: 9788952731128 제목: 카사노바 나의 편력 저자: 카사노바 출판사: 한길사 ISBN : 893565826X 청구기호 : 860 C335hKㄱ 제목: 카사노바는 책을 더 사랑했다. 저자: 존 맥스웰 해밀턴 출판사: 열림책들 ISBN: 9788932906140 제목: 불멸의 유혹 : 카사노바 자서전 저자: 조반니 자코모 지롤라모 카사노바 출판사: 휴먼앤북스 ISBN: 9788990287601 청구기호: 992.8 C335hKㅂ 인물사진: 위키피디아 http://ko.wikipedia.org 인물설명: 네이버 백과사전 http://100.naver.com/100.nhn?docid=150244 내용소개: 동대문구 정보화 도서관 http://dlibrary.tistory.com/221 자료이미지: 교보문고 http://kyobook.co.kr
도서관에서 사랑을 만난 사람들 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8.28 1832.3.22] 독일의 작가이자, 철학자, 과학자이며 한때는 바이마르 공국의 재상이었다. 독일 고전주의의 대표자로서 세계적인 문학가인 괴테는 1749년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괴테는 법률가인 아버지에게서 지적이고 도덕적인 엄격성을,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인 어머니로부터는 자유분방한 예술적 감수성을 물려받았다. 도서관에서 금지된 사랑을 키우다 그 는 1765년 라이프치히 대학에 들어가 법률을 공부하며 비교적 자유분방한 생활을 보 냈고, 1771년 변호사가 되어 고향에서 변호사 일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괴테는 법률보다 는 문학에 대한 욕구가 더 강렬했다. 그러던 차에 1772년 제국 고등법원의 실습생으로서 몇 달 동안 베츨러에 머물게 되었다. 이때 약혼자가 있는 샤를로테 부프라는 처녀와의 슬 픈 사랑을 겪고 1774년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을 썼으며, 이 작품으로 일약 유명작가 가 되었다. 이처럼 일약 유명작가가 된 괴테는 1775년 작센 바이마르 공화국의 칼 아우구스트 공의 초청으로 바이마르를 방문하게 된다. 이처럼 칼 아우구스트 공이 괴테를 바이마르로 초 청하게 된 것은 어머니 안나 아말리아 공작부인의 영향 때문이었다. 안나 아말리아는 작 고한 공작의 유서에 따라 어린 아들을 대신하여 작센 공화국을 통치해 왔다. 그녀는 학문 과 예술에 조예가 깊어, 통치기간동안 학문과 예술의 발전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772년에는 당시 가장 명망 있던 작가인 빌란트를 초빙해 옴으로써, 바이마르 궁정은 독 일 문화를 대표하는 곳이 되었다. 아 공작부인과의 사랑은 사회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룰 수 없는 금지된 사랑 이 었기에 괴테와 안나 아말리아는 남들의 눈을 피해 사랑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괴테는 안 나 아말리아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 의 관장을 맡아 그녀를 위해 최고 의 도서관으로 키워 나갔다. 또한 도서관에서 그녀에 대한 금지된 사랑을 글과 시로 써냈 다. 그렇기에 괴테의 문학작품에는 고귀하여 도달할 수 없는 여인에 대한 금지된 사랑이라는 주제가 반복되는 것이 많다고 한다. 이처럼 괴테와 공작부인의 금지된 사랑 은 1807년 안나 아말리아 공작부인이 죽었을 때까지 이어졌다. 이후에도 괴테는 그녀가 남긴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의 관장으로 적극 활동했으 며,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이 독일 최고의 고전주의 중심 도서관 으로 평가 받는데 결정적 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괴테는 파우스트 원본 등 5,424권의 책을 안나 아말리아 도서 관에 남겼으며, 이곳에서 지내던 시절을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기간 이라고 말했다. 바이마르에 방문한 괴테는 처음에는 얼마간 머물다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괴테는 칼 아우구스트 공과 안나 아말리아 공작부인과 교류를 즐기면서 그 인품에 반하게 되었 고, 바이마르에 계속 머무르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괴테와 안나 아말리아 공작부인은 서로 자유롭게 교류를 가지면 서 둘 사이에 사랑의 감정을 싹틔운 것이다. 그러나 당시 시민계급인 괴테와 안나 아말리 [그림: 괴테가 관장으로 있던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 18세기말부터 19세기 초 뛰어난 문화수준으로 괴테, 실러를 비롯한 많은 작가와 학자 들이 모여들었던 바이마르지역(Classical Weimar)은 높은 수준의 건축물과 경관으로 지 난 199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나, 그 일부였던 안나 아말리아 도서 관은 2004년 안타까운 화재로 괴테의 작품을 비롯한 많은 장서와 건물을 태우는 등의 아픔을 겪고 2007년 다시 개관하였다. 제목: 파우스트 제목: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제목: 괴테의 프랑스 기행 제목: 즐거운 괴테 저자: 요한볼프강폰 괴테 저자: 요한볼프강폰 괴테 저자: 요한볼프강폰 괴테 저자: 요한볼프강폰 괴테 출판사: 민음사 출판사: 민음사 출판사: 민음사 출판사: 민음사 ISBN: 8937460211 ISBN: 8937460238 ISBN: 8937460211 ISBN: 8988803205 청구기호: 808 세14ㅁ 청구기호: 808 세14ㅁ 청구기호: PT2178.G6.G63 1999 제목: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제목: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제목: 괴테에게 길을 묻다 제목: 친화력 저자: 요한볼프강폰 괴테 저자: 요한볼프강폰 괴테 저자: 요한볼프강폰 괴테 저자: 요한볼프강폰 괴테 출판사: 정음사 출판사: 민음사 출판사: 석필 출판사: 독서당 ISBN: 8937460254 ISBN: 8937460211 ISBN: 8980370539 ISBN: 청구기호: 808 세14ㅁ 청구기호: 853 괴884ㅊ 제목: 이탈리아 기행 제목: 이피게니에, 스텔라 제목: 서동시집 인물사진: 위키피디아 http://ko.wikipedia.org 저자: 요한볼프강폰 괴테 저자: 요한볼프강폰 괴테 저자: 요한볼프강폰 괴테 인물설명: 네이버 인물사전 http:///www.naver.com 출판사: 민음사 출판사: 민음사 출판사: 시와진실 내용소개: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 http://dlibrary.tistory.com ISBN: 8937461056 ISBN: 8937460262 ISBN: 8995174633 자료이미지: 교보문고 http://kyobobook.co.kr 청구기호: 856 괴884ㄱ 청구기호: 808 세14ㅁ 도서관이미지: 플리커 http://flickr.com
도서관에서 사랑을 만난 사람들 3 칸트 [Immanuel Kant, 1724.4.22~1804.2.12] 독일의 철학자. 서유럽 근세철학의 전통을 집대성하고, 전통적 형이상학을 비판하며 비판철학을 탄생시킨 철학자 칸트는 프로이센의 상업도시 쾨니히스베르크(현재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에서 1724년 태어났다. 서유럽 근세철학의 전통을 집대성하고, 전통적 형이상학을 비판하며 비판철학을 탄생시켰다. 저서에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 등이 있다. 활동분야: 철학 출생지: 독일 쾨니히스베르크(지금의 칼리닌그라드) 주요저서 순수이성비판 (1781) 도서관에서 사랑을 놓치다.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에 결혼을 해야겠다고 결정했다. 왜냐하면 결혼을 해야 하는 이유가 하지 말아야 어린 시절 집안의 일과에 따라 움직이며 자유롭게 자라던 칸트는 학교에 갈 나이가 되자 사학교 프 리데리키아눔에 입학하였다. 칸트는 학교에서 다양한 지식을 쌓아갈 수 있었으나, 경건주의를 강조 하며 종교적인 학교생활 속에서 일종의 정신적 노예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런 교육을 받은 칸트는 1940년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 진학했으나 자기 자신을 어디로 이끌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때 칸트는 자신에게 큰 영향을 미친 마르틴 크누첸(Martin Knutzen)을 만나게 되었다. 대학의 젊 은 교수였던 크누첸의 논리적이고 철학적인 성찰, 수학적인 증명과 박물학적인 탐구에 칸트는 큰 매 력을 느꼈으며, 한번도 빠지지 않고 크누첸의 강의와 토론에 참여했다. 크누첸은 이런 칸트의 뛰어 난 재능을 발견하였고, 개인적인 지도를 통해 칸트를 이끌어 주었다. 특히 크누첸은 훌륭하고 풍부 한 양의 책이 소장되어 있는 자신의 도서관을 칸트에게 공개하고, 어떤 책이라도 칸트가 원할 때 빌려주었다. 이에 칸트는 크누첸의 도서관을 누비며 자신이 구하던 거의 모든 것을 찾을 수 있 었다. 이때부터 칸트는 책을 통해 스스로 하는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책을 자신의 선생으로 삼 게 되었다. 이런 독서 체험은 그가 더 넓은 정신적 발전을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칸트는 1744년에 대학을 잠시 중단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가정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가정교사 생활을 하던 중 칸트에게 결혼할 기회가 찾아왔다. 한 여성이 칸트에게 청혼을 한 것이다. 당시 관례 에 따르면 청혼은 남자가 하는 것이었으나, 우물쭈물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는 칸트를 기다릴 수 없어 그 여인이 먼저 청혼한 것이다. 그 여인의 청혼에 칸트는 내게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라고 하는 이유보다 네 가지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마침내 칸트는 그 여인에게 청혼하기 위해 그녀의 집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그 여인의 아버 지가 나와서 말했다. 내 딸은 이미 결혼했다네. 게다가 지금은 아이가 둘이나 있다네. 칸트가 다시 찾 아갔을 때는 청혼을 받은 지 7년이 흐른 후였다. 결국 칸트는 도서관에서 사랑을 확인하려다 사랑을 놓쳐 버린 것이다. 칸트는 1755년, 가정교사 생활을 마치고 대학으로 돌아와 교수자격을 취득하고 사강사 생활을 시작한 다. 그 뒤 쾨니히스베르크의 철학 교수가 되기 위해 지원을 했으나, 두 번이나 좌절을 겪었다. 1766년 2 월부터는 쾨니히스베르크 성 도서관의 부사서로서 일을 시작했다. 이를 통해 칸트는 생활고를 해 결할 수 있었고, 자신의 연구를 위해 책을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는 기쁨까지 덤으로 누릴 수 있었다. 도서관 사서로 일하던 1970년 드디어 칸트는 괴니히스베르크 대학의 논리학 형이상학 정교수로 임명되었다. 1972년에는 지식욕에 불타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을 돌봐야 된다는 것 에 지쳐 도서 관 사서를 그만두었다. 이후 그는 교수로서 연구에만 매진한 결과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 <판단력비판> 등을 발표하였고 이를 통해 비판철학의 체계를 완성하였다. 도서관에서 사랑을 놓치고 평생 독신으로 살며 산책과 커피, 담배를 즐겼던 칸트는 1804년 8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좋아(Es ist gut)"라고 전해진다. 말하곤 곧장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는 도서관에 가서 사랑과 결혼에 대한 책을 모조리 찾아 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노트에 결혼에 찬성하는 의견과 반대하는 의견을 모두 적었다. 그리고 그는 제목: 순수이성비판 제목: 도덕 형이상학을 위한 기초 놓기 제목: 윤리형이상학 정초 제목: 감성계와 지성계의 형식과 원리들 저자: 임마누엘 칸트 저자: 임마누엘 칸트 저자: 임마누엘 칸트 저자: 임마누엘 칸트 외 출판사: 아카넷 출판사: 책세상 출판사: 아카넷 출판사: 이제이북스 ISBN: 9788957330838 ISBN: 897013364X ISBN: 9788957330647 ISBN: 9788956440927 청구기호: 165.21 K16kKㅂ 제목: 실천이성비판 제목: 별이 총총한 하늘 아래 약동하는 제목: 아름다움과 숭고함의 감정에 대한 제목: 칸트의 역사철학 저자: 임마누엘 칸트 자유 고찰 저자: 임마누엘 칸트 출판사: 아카넷 저자: 임마누엘 칸트 저자: 임마누엘 칸트 출판사: 서광사 ISBN: 9788989103820 출판사: 이학사 (8987350401) 출판사: 책세상 ISBN: 9788930610209 청구기호: 165.21 K16kKㅅ ISBN: 9788970135182 제목: 판단력비판 저자: 임마누엘 칸트 출판사: 박영사 ISBN: 2002453015271 청구기호: B2783.K8 이54 1974 제목: 칸트의 교육학 강의 저자: 임마누엘 칸트 출판사: 철학과 현실사 ISBN: 8977753546 청구기호: 370.1 K16eKㅈ [e-book] 제목: 영구 평화론: 하나의 철학적 기획 저자: 임마누엘 칸트 출판사: 서광사 ISBN: 9788930610438 Url: http://ebook.yjc.ac.kr 인물사진: 위키피디아 http://ko.wikipedia.org 인물설명: 네이버 백과사전 http://100.naver.com 내용소개: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 http://dlibrary.tistory.com 자료이미지: 교보문고 http://kyobobook.co.kr
도서관에서 사랑을 만난 사람들 4 스티븐 킹 [Stephen Edwin King 1947.9.21 ] 스티븐 킹(Stephen Edwin King, 1947년 9월 21일 ~ )은 미국의 작가, 극작가, 음악가, 칼럼니스트, 배우, 영화제작자, 감독이다. 호러 소 설로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3억 5천만 부가 넘는 판매부수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호러소설 전문이며 그 역사에 정통하지만 SF, 판타지, 단편소설, 논픽션, 연극대본등도 많이 썼다. 많은 소설이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 만화등 다른 미디어에 채용되었다. 리처드 버크먼 (Richard Bachman)이라는 필명으로도 많은 책을 썼으며, 존 스위든(John Swithen)이라는 이름도 한 번 사용했다. 도서관의 근로장학생으로 일하며 사랑을 만나다 <미저리>, <쇼생크 탈출> 등으로 세계적인 인기작가인 스티븐 킹은 1947년 메인 주에 있는 포틀랜 드에서 태어났다. 스티븐이 갓난아기 일 때 그의 부모님은 이혼을 했고, 그와 형은 어머니에 의해 키 워졌다. 아 버지가 사라지는 바람에 경제적인 어려움에 부딪히게 된 스티븐의 어머니는 두 아들을 키우기 위해 친척들의 도움을 받으며, 이곳저곳을 떠돌며 생계를 유지했다. 자연히 모자가 함께 하는 시간 은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스티븐은 늘 고독할 수밖에 없었고, 내성적인 아이로 자랐다. 그는 혼자서 라디오를 듣고, 만화나 잡지를 읽으며 영화 보는 것을 즐겼다. 특히 공포와 별난 과학 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했다. 이때 그가 읽고, 보고, 들은 내용들은 이후 그가 소설을 쓰는 데 밑거름 으로 작용했다. 그러던 어느 날 스티븐은 우연히 아버지가 만든 판타스틱 공포 소설집을 발견하게 되었다. 자신과 아버지의 관심분야가 같고, 아버지가 글을 썼다는 것에 용기를 얻은 스티븐은 이후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65년 스티븐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메인 주립대의 장학생으로 입학해 영어를 전공했다. 대학을 다니면서 미스터리 소설을 비롯해 대학 신문 주간칼럼을 담당하는 등 활발한 글쓰기 작업을 펼쳤다. 또한 생활고로 단편소설을 잡지에 투고하기도 했다. 스티븐은 1969년 여름에 메인 주립대 도서관에서 근로 장학생으로 일했다. 이때 스티븐은 평생 을 같이 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1969년 6월 말의 어느 날, 스티븐 킹을 비롯해 도서관 에서 일하던 근로 장학생들은 구내 서점 뒤쪽의 잔디밭에 모여 점심을 먹었다. 그때 그는 웃음소리 가 요란하고 머리가 붉은색인 한 날씬한 여자를 눈여겨보았다. 짧은 노란색 스커트 밑으로 활짝 드 비사 제인 스프루스(Tabitha Jane Spruce)였다. 스티븐은 그녀에게 끌리기 시작했다. 결국 도서관에서 일하며 만난 둘은 사랑에 빠졌고, 1971년 결혼에 성공했다. 결혼 후 스티븐은 메인 주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저녁과 주말엔 글을 쓰면서 집필 작업 을 계속 했다. 태비타도 역시 작가로 활동했다. 둘은 이름없는 작가로 전화조차 없을 만큼 가난했지만 함 께할 수 있다는 것에 행복했다. 그러던 중 스티븐은 <캐리>란 소설을 썼다. 그러나 그는 아무도 그 작품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 각하고, 그 원고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태비타는 그가 버린 원고를 쓰레기 더미에서 찾아냈다. 그녀는 이 이야기를 무척 좋아했고 다른 사람들 역시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스티븐에게 책을 내자고 설득했고, 스티븐은 원고를 완성해 더블데이 출판사(Doubleday&Company)에 보냈다. 그리고 킹 은 출판사로부터 전보를 받고 놀랐다. 그들이 <캐리>를 발행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1974년에 발행된 공 포소설 <캐리>는 양장본으로만 1만 3천부가 팔렸으며, 페이퍼백으로 출판됐을 땐 무려 2백 50만부가 넘 게 팔리며 대성공을 거뒀다. 1976년 <캐리>는 영화로도 제작되면서 스티븐은 스타 작가로 떠올랐다. 이후 스티븐 킹은 쓰는 작품마다 인기를 얻었으며, 그의 소설들은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전 세계 33개국에서 번역되어 3억 권 이상의 판매부수를 기록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했다. 또한 많은 작품 들이 영화화 되었는데 대표적인 작품으로 <미저리>, <쇼생크탈출>, <샤이닝>, <돌로레스 클레이븐> 등 이 있다. 이처럼 스티븐이 세계적인 작가가 되는 데는 아내인 태비타의 역할이 컸다. 메인대학 도서관에서 태 비타를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도 지금의 스티븐 킹은 존재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러난 다리가 예쁜 그녀는 엘드리지 클리버의 저서 <감금된 영혼>을 들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태 [DVD] 제목: 유혹하는 글쓰기 스티븐 킹의 창작론 제목: 셀 제목: 쇼생크 탈출 제목: 잇 저자: 스티븐 킹 저자: 스티븐 킹 감독: 프랭크 다라본트 저자: 스티븐 킹 출판사: 김영사 출판사: 황금가지 출연자: 팀 로빈스, 모건 프리먼 출판사: 다모아 ISBN: 8934908858 ISBN: 8982739610 제작사: 워너브러더스픽쳐스 ISBN: 청구기호: 802 K54wKㄱ 청구기호: 843 K54cKㅈ 청구기호: 843 K54iKㄴ [MOVIE] 제목: 리시 이야기 제목: 자루속의 뼈 제목: 미져리 제목: 듀마 키 저자: 스티븐 킹 저자: 스티븐 킹 감독: 롭 라이너 저자: 스티븐 킹 출판사: 황금가지 출판사: 대산출판사 출연자: 제임스 칸, 케시 베이츠 출판사: 황금가지 ISBN: 9788960171206 ISBN: 8937206374 제작사: 20세기 폭스 ISBN: 9788960171404 청구기호: 843 \S828dKㅈ 제목: 애완동물 공공묘지 저자: 스티븐 킹 출판사: 황금가지 ISBN: 8982738002 V.1-V.2 제목: 스탠드 저자: 스티븐 킹 출판사: 황금가지 ISBN: 9788960171282 청구기호: 843 K54sKㅈ [DVD] 제목: 샤이닝 감독: 스탠리 큐브릭 출연자: 잭 니콜슨, 셜리 두발 제작사: 워너브러더스픽쳐스 인물사진: 위키피디아 http://ko.wikipedia.org 인물정보: 네이버 인물 http://people.naver.com 본문내용: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 http://dlibrary.tistory.com/234 자료이미지: 교보문고 http://www.kyobobook.co.kr
도서관에서 사랑을 만난 사람들 5 힐러리 로댐 클린턴 [[Hillary Diane Rodham 1947.10.26 ] 출생 : 1947년 10월 26일 출생지 : 미국 직업 : 국외정치인, 전 변호사 소속 : 미국 국무장관 성공한 변호사이며 8년간 백악관을 지킨 퍼스트 레이디, 그리고 현 상원의원인 힐러리 로댐 클린턴은 1947년 시카고 근교에서 태어나 웰즐리 대학(1969)과 예일 대 로스쿨(1973)을 졸업했다. 1971년 예일대 로스쿨 재학 때 아칸소 주 출신의 빌 클린턴을 만나 그의 유머 감각과 낙천성에 반해 1975년 결혼을 한 후 30년 동안 인생의 동반자이며 정치 파트너로 지내고 있다. 1991년 미국의 가장 힘있는 변호사 100명에 선정되었고, 1992년과 1996년 대선에서 선거운동을 실질적으로 지휘 하여 남편 클린턴을 당선시키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백악관을 나온 후 2000년 뉴욕에서 연방 상원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저서로는 '백악관으로의 초대','사랑 하는 삭스, 사랑하는 버디','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 등이 있다. 현재 뉴욕 주 채퍼콰에 살고 있다. 도서관에서 세상을 바꿀 힘을 가진 남자를 만나다 1947년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서 힐러리는 태어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힐러리의 집은 시카고 교외의 파크리지로 옮겼고, 그녀는 그곳에서 두 남동생과 함께 성장하였다. 적 가능성을 이끌어낼 영향력과 능력이 내재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고, 둘의 관계는 더 깊어지게 되었다. 특히 힐러리는 클린턴을 만나기 전까지 세상을 변화시킬 본인의 능력 에만 관심이 있었는데, 클린턴과 교제하기 시작하며 그에게 세상을 바꿀 힘 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힐러리는 파크리지의 메인사우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5년 웰즐리 여대에 입학하여 정치학을 전공하였다. 여기에서 청년 공화당 단체에 잠시 몸담았으나 당시 민권운동과 베트남 전쟁의 영향으 로 탈퇴하였다. 이후 유진 매카시의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을 지원하였고 웰즐리 대학 학생회 회장으 로 당선되었다. 1969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여 졸업식 때 대표 연설을 하였는데, 이때 언론의 주 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 들은 뉴헤이븐에서 같이 살기 시작했으며 힐러리는 1973년 학위를 받은 이후에도 클린턴이 졸업할 때까지 1년간 같이 지냈다. 그 사이에 클린턴은 힐러리에게 계속 청혼을 했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과 미 래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던 힐러리는 아니, 지금은 안돼 라며 그때마다 거절했다. 그러나 일단 목표를 세우면 끝까지 추구하는 클린턴의 계속된 청혼에 결국 1975년 힐러리는 결혼을 승낙했고, 1975년 10월 11일에 결혼하였다. 그녀는 결혼 후에도 중간이름을 로댐으로 계속 쓰기로 하였다. 졸업 후 1970년 힐러리는 예일 법학대학원에 입학하였다. 변호사라는 직업이 세상을 바꿀 힘이 있 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해 가을 예일 법대에는 2년 동안 옥스퍼드에서 지내고 돌아온 빌 클린턴이 란 장학생이 들어왔다. 얼굴은 적갈색 턱수염과 갈기같은 고수머리에 덮여 있었지만, 그 아래 어딘 가에 잘생긴 얼굴이 숨어있는 훤칠한 미남이었던 클린턴을 힐러리는 눈여겨보았다. 이후 힐러리와 클린턴은 캠퍼스 여기저기에서 마주치곤 했지만, 정말로 만난 것은 1971년 어느 봄날 예일 법대 도 서관에서였다. 힐러리는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고, 클린턴은 복도에서 한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 다. 그런데 클린턴은 대화 중에 계속 힐러리를 쳐다보았다. 클린턴은 지나치게 힐러리를 쳐다봤고, 이후 힐러리는 변호사로 성공하여 미국 변호사협회의 여성회원 회장을 지냈으며,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변호사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리고 클린턴이 주지사와 대통령에 당선되는데 적극적으로 지원 하였으며, 1993년 그녀는 미합중국의 최초의 석사학위 이상을 가진 퍼스트레이디이자 엘리노어 루스벨 트 이후 가장 영향력있는 퍼스트레이디가 되었다. 1998 년 르윈스키와 클린턴의 혼외정사로 결혼에 위기가 찾아왔으나, 힐러리는 "빌처럼 나를 웃게 만들 고 이해하는 사람은 이제껏 없었다. 그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그는 내가 만나본 사람 중에서 가장 흥미로 우며 정력적이고 활발한 사람이었다."라고 밝히며 결혼을 계속 유지하였다. 이를 곧 알아차린 힐러리는 책상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네가 계속 나를 그렇게 쳐다 보겠다면 나도 너를 계속 쳐다볼 거야. 어쨌든 우리 통성명을 하는게 낫겠다. 나는 힐러리 로댐이야. 너는? 빌은 깜짝 놀라서 일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간신히 입을 떼고 자신의 이름을 말했고, 둘 은 몇 마디를 더 나눈 뒤에 헤어졌다. 그 뒤부터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힐러리와 클린턴은 사귀면서 서로에게 무한한 정치 이후 힐러리는 2000년 상원의원이 되어 본격적인 정치를 하기 시작했으며 2008년 미합중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꿈꾸며 버락 오바마와 함께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기 위해 선거전을 펼치기도 하였으나 경선에 패하였다. 제목: 살아있는 역사 저자: 힐러리 로뎀 클린턴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 ISBN: 8901042185 청구기호: 340.99 C641lKㄱ 제목: 힐러리처럼 일하고 콘디처럼 승리하라 저자: 강인선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 ISBN: 8901042185 청구기호: 189 강68ㅎ 제목: 힐러리의 선택 저자: 게일 쉬이 출판사: 한국방송출판 ISBN: 8972001120 제목: 여자라면 힐러리처럼 저자: 이지성 출판사: 다산북스 ISBN: 9788992555531 청구기호: 340.99 이78ㅇ 제목: 힐러리의 삶 저자: 칼 번스타인 출판사: 현문미디어 ISBN: 9788992751339 청구기호: 340.99 B531wKㅈ 인물사진: 위키피디아 http://ko.wikipedia.org 인물정보: 네이버 인물 http://people.naver.com 본문내용: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 http://dlibrary.tistory.com/231 자료이미지: 교보문고 http://www.kyobob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