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儀 禮 의 社 會 的 機 能 과 變 化 71 Ⅰ. 儀 禮 의 意 味 와 變 化 지난 반세기 동안 산업화와 도시화로 지칭되는 급격한 對 內 外 的 社 會 變 動 을 겪는 가운데 家 庭 이라는 制 度 는 크게 변화하였다. 일제시대와 해방 후 서구문화를 접촉하면서 韓 國 人 들의 意 識 또한 크게 변화하여, 일상의 삶에서 聖 의 영역은 점차 종교적이거나 추상적인 믿음으로 이전 하고 현세의 삶을 합리적으로 대응하려고 하는 世 俗 化 의 경향이 강화되 었다. 이러한 家 族 制 度 및 意 識 의 變 化 에 따라 이에 기반을 둔 冠 婚 喪 祭 로 대표되는 儀 禮 의 形 式 및 意 味 또한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본 연구는 지난 반세기의 社 會 變 動 과 관련하여 冠 婚 喪 祭 로 지칭되는 儀 禮 의 變 化 를 검토하고자 한다. 의례의 변화를 검토하는 관점은 다양 하겠으나 여기서는 특히 儀 禮 의 사회적 기능에 초점을 맞추어, 사회 환 경의 변화에 대응하여 의례가 어떻게 변화함으로써 의례의 사회적 기능 을 유지하거나 기능 자체의 변화를 가져왔는가 하는 점을 분석하기로 한다. 과거 전통사회가 가졌던 儀 禮 의 形 式 과 意 味 가 현재의 사회 환경 에서 어떻게 변화하였으며 이러한 변화를 관통하는 윈칙 및 변화의 원 인이 무엇인가 등에 관하여 고찰해 보겠다. 현재의 사회환경에서 과거 의 冠 婚 喪 祭 儀 禮 중 婚 禮 와 喪 禮 만이 儀 禮 로서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므로 본 논문에서는 이 두 儀 禮 에 초점을 맞추어 변화의 과정을 분석하기로 한다. 아울러 이러한 변화에 대한 고찰을 근거로 하 여, 儀 禮 의 변화 방향에 대한 예측과 함께 健 全 儀 禮 의 定 立 을 위하여 그 가능성 및 추진 전략에 대한 논의가 덧붙여질 것이다. 1. 儀 禮 의 意 味 이 세상의 모든 文 化 는 사람이 一 生 을 살아가는 과정의 부분마다 특 정한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상징하는 절차 즉, 儀 禮 를 재확인하는

72 保 健 社 會 硏 究 第 16 卷 第 1 號 過 程 을 포함하고 있다. 儀 禮 는 종류가 다양하고 목적, 형태, 내용에 따 라 여러 가지 분류가 가능하지만 宗 敎 學 이나 人 類 學 에서는 다음의 세가 지 종류로 대별한다. 1년을 주기로 매년 되풀이하여 행하는 年 中 儀 禮 또는 歲 時 儀 禮 (yearly rites), 사람의 一 生 을 주기로 하여 출생부터 죽음 까지 인생의 경과마다 행하는 通 過 儀 禮 (transitional rites), 기우제나 승 전기원제처럼 특별한 목적을 위해 때에 따라 행하는 임시 儀 禮 (contingent rites)이다(van Gennep/전경수 역, 1985). 年 中 儀 禮 는 자연 현상의 주기에 따라 행하는 의례임에 반하여 通 過 儀 禮 는 자연현상과는 무관하게 인위적인 행사를 치루는 儀 禮 이다. 따라서 年 中 儀 禮 는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여 인간의 삶을 확인하고 생활의 율동을 찾는 의례이기 때문에 消 極 的 儀 禮 이며, 通 過 儀 禮 는 인간이 독자적으로 주기와 절차를 만들고 윤리성을 가미하거나 신성을 끌어들여 의미를 부여하는 의례이 기 때문에 積 極 的 儀 禮 라 할 수 있다. 通 過 儀 禮 는 대체로 다음의 세 가지 단계를 포함한다(이광규, 1985). 첫째 단계는 이전에 있었던 상태나 조건을 단절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儀 禮 또는 儀 式 을 통한 위기의 극복이며, 세번째는 새로운 상황 내지는 사회적 범주로의 편입이다. 이러한 세 가지의 儀 禮 段 階 를 통과하면서 의례의 당사자들은 지금까지 지속되어온 日 常 에서 새로운 형태의 日 常 으로 이행하게 된다. 이러한 儀 禮 의 과정을 葬 禮 를 예로 하여 검토하면 다음과 같다. 葬 禮 란 故 人 과 喪 主 間 에 같은 가족으로서 생활을 공유하 던 단계로부터 양자를 분리시키며 일정한 슬픔을 표현하고 주의의 확인 을 받는 의식을 거쳐 喪 主 는 다시 새로운 단계의 日 常 으로 돌아오는 과 정을 의미한다. 이러한 儀 禮 의 過 程 이 의례의 당사자에게 주는 가장 큰 의미는 인생 의 중요한 시점에서 새로운 日 常 으로의 회복을 통한 삶의 활력을 부여 하는 것이다. 또한 儀 禮 는 집단 결속을 강화하는 社 會 的 機 能 을 한다 (Popenoe, 1986). 儀 禮 를 통하여 의례의 참가자들간의 집단 소속감을 확 인하고 결속을 공고히 하며 자신의 집단(in-group)과 타집단(out-group)

儀 禮 의 社 會 的 機 能 과 變 化 73 의 구분을 분명히 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儀 禮 體 系 는 사회전체의 統 合 을 위하여 중요한 機 能 을 한다(전병재, 1989). 전통에 뿌리를 둔 문화의 수용과 변용을 매개해 주는 禮 는 법률이 추구 하는 공식적이며 기능적인 統 合 을 보완하는 기제로서 개인에 내재하여 象 徵 的 準 據 基 準 으로 작용한다. 禮 가 儀 禮 로 現 在 化 하여 각 사회구성원 들의 行 爲 規 範 으로서 內 在 化 됨으로써 개인적 차원의 행동이 사회적 차 원의 통합에 기여하도록 內 在 的 統 制 의 機 能 을 한다. 2. 儀 禮 의 變 化 조선왕조는 禮 治 主 義 를 표방하고 가족 단위를 대상으로 하여 通 過 儀 禮 인 冠 婚 喪 祭 를 朱 子 家 禮 라 하여 교화의 수단으로 수용하였다. 조선왕 조 이전부터 한국의 전통사회는 農 耕 文 化 圈 이었으므로 가족을 떠난 개 인의 존재가 인정되지 않았다. 따라서 가족의 행사는 가족내 구성원들 에게 강한 구속력을 가지게 되며, 조선왕조는 가족을 교화의 장으로 하여 冠 婚 喪 祭 를 철저히 실행할 수 있었다. 가정에서 행하는 冠 婚 喪 祭 즉, 私 的 儀 禮 行 爲 를 公 法 으로 간섭한 것이 조선시대의 儀 禮 制 度 라고 할 수 있다. 유교에 기반을 둔 家 庭 儀 禮 가 그 힘을 잃기 시작한 것은 조선조 말 천주교와 개신교의 전래 등과 함께 밀려 들어온 서구의 신문화와 일본 제국주의의 여파로 傳 統 的 儀 禮 가 금지당하게 되면서부터이다. 먼저 일 본 제국주의의 영향을 검토하면 다음과 같다. 1895년의 단발령을 시작 으로 하여 喪 禮 에 관한 1912년의 묘지 화장장 매장 및 화장취체 규칙이 조선총독부령으로 발포됨으로써 공동묘지와 화장장의 개설을 비롯한 埋 火 葬 관행의 변화는 정부에 의하여 강제적으로 유도되었다(장철수, 1995). 1934년 家 庭 儀 禮 準 則 制 定 으로 儀 禮 의 簡 素 化 를 인위적으로 유도 하는 법률이 공포되어 조선시대의 朱 子 家 禮 를 대치하는 새로운 행정력 에 의한 의례형식의 보급이 추진되었다.

74 保 健 社 會 硏 究 第 16 卷 第 1 號 해방 이후 1956년 國 民 再 建 運 動 本 部 는 일제시대의 가정의례준칙에서 한 단계 더 간소화를 요점으로 하는 標 準 儀 禮 를 제정하였다. 그 후 保 健 社 會 部 에서 1961년 기존의 표준의례와 유사한 내용으로 標 準 儀 禮 를 제정하였으며, 이어서 1969년 현재 실행되고 있는 ' 家 庭 儀 禮 準 則 '이 새 로이 공포되었다. 이와 같이 일본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儀 禮 의 내 용에 있어 간소화가 현저히 진행되었으며, 조선시대의 경우와 마찬가지 로 私 的 儀 禮 行 爲 를 公 法 으로 강제하는 전통 또한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지금까지도 계승되고 있다. 儀 禮 의 내용에 있어서 簡 素 化 가 반드시 일본 제국주의의 영향에 힘 입은 것만은 아니다. 우리나라 전통신앙의 세속주의적 요소가 기독교의 합리주의적인 요소 및 서구문화의 물질주의와 쉽게 결합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儀 禮 에 있어서의 급속한 간소화가 가능할 수 있었다. 과 거의 전통사회에서도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민간의 신앙은 현세중 심적인 세속주의에 근거하고 있었다(최길성, 1991). 조선조의 지배층이 신봉하던 朱 子 家 禮 가 체면적 명분주의에 의한 뒷받침으로 지지될 수 있 었던 반면(장철수, 1995:254~296), 민간의 儀 禮 行 爲 는 현세중심적인 세 계관에 뿌리를 둔 실질적 합리주의가 지배하였다. 이러한 전래의 세속 적 의식 기반은 서구의 기독교 교리 중 합리적인 부분만을 선택적으로 수용 결합하는 결과를 낳았다. 정진홍의 연구(1984)에 따르면 한국인에 게 수용된 개신교의 喪 祭 禮 모두가 한결같이 지금, 이곳의 인간을 향해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고 한다. 喪 祭 禮 의 경우를 예로 들면 개신교의 儀 禮 는 편의, 위생학적 배려, 위로, 권면, 사회 윤리적 요청에의 부응 등 합리적 사고관을 儀 禮 의 준거틀로 삼는 것으로 밝혀진다. 즉 개신교 儀 禮 가 한국인의 전통적인 제례의 형식성을 타파하고 세속적 합리성을 확 립하는 데 이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산업화와 도시화는 儀 禮 에 대한 또다른 변화의 압력으로 작용하였다. 과거 농경사회에서 친족 및 지역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사람들의 결속은

儀 禮 의 社 會 的 機 能 과 變 化 75 산업화 및 도시화에 따라 친족 및 가족제도의 원리가 핵가족 중심 및 나아가 개개인의 성취 중심으로 변화함으로써 과거 가족제도에 기반을 둔 集 團 主 義 的 儀 禮 制 度 에 큰 변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현대 서구 의 지배적 이념인 개인주의 및 부부중심의 핵가족주의는 감정의 관리를 전적으로 개인 및 가족의 범위에서 통제하기를 요구하며, 타인과의 관 계는 功 利 主 義 的 契 約 關 係 로 맺어지기를 요구한다. 따라서 변화된 형태 의 儀 禮 에서 참가자들 사이의 감정적인 교환의 부분은 축소 내지는 소 멸되며, 반면 계약적인 거래의 관계가 지배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儀 禮 의 간소화 추세는 功 利 主 義 的 思 考 方 式 에 기반을 둔 便 宜 主 義 의 發 顯 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Ⅱ. 儀 禮 慣 行 의 變 化 에 관한 經 驗 的 考 察 冠 婚 喪 祭 란 冠 禮, 婚 禮, 喪 禮, 祭 禮 를 포함하여 四 禮 라고 하며 가족 내에서 행하여지므로 家 禮 라고도 한다. 한국의 冠 婚 喪 祭 는 인류학자들 이 말하는 通 過 儀 禮 와는 목적과 형태에서 차이가 있다(이광규, 1985). 通 過 儀 禮 에는 출생의례, 관례, 혼례, 회갑례, 상례가 있으며 제례가 포함 되지 않는다. 반면에 冠 婚 喪 祭 에는 출생의례와 회갑의례가 제외되고 제 례가 포함된다. 그 이유는 한국의 冠 婚 喪 祭 가 祖 上 崇 拜 와 祈 福 思 想 을 목적으로 한 의례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중요 한 의례로서 인식되고 있는 婚 禮 와 喪 禮 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1. 婚 禮 유교의 영향을 받기 이전의 한국 전통사회의 婚 禮 慣 行 은 엄격한 의례 절차를 갖추지 않고 신부집에서 잔치를 벌이는 것이 중심이었다. 혼인 후 사위가 신부집에 체류하면서 아이가 클 때까지 처가와 본가를 왕래

76 保 健 社 會 硏 究 第 16 卷 第 1 號 하는 胥 留 婦 家 婚 이 1) 행해졌는데 이는 부계사회의 이념과는 상반된 특 성을 띠고 있었다. 조선 초기 朱 子 家 禮 의 도입 이후 六 禮 또는 四 禮 와 같이 家 禮 의 準 則 이 婚 禮 規 範 으로 제시되었다. 四 禮 의 절차를 보면 議 婚 (중매를 통하여 신부측의 허락을 받아냄), 納 采 (신랑측이 신부집에 청혼서식을 보냄), 納 幣 (신랑측이 신부측에게 혼례증표와 폐백을 전달함), 親 迎 (신랑이 신부 를 맞이함)이다. 이 중 일부 의례는 왕실과 사대부층에서만 일부 행해지 고 보편화되지 못하였다. 16세기 이후 실제 민간에서 행해지던 舊 式 婚 禮 의 2) 절차를 살펴보면 朱 子 家 禮 의 영향으로 그 형식이 매우 복잡하여 크게 準 備 儀 禮, 大 禮, 後 續 儀 禮 로 나누어진다. 준비의례는 婚 談, 四 星, 擇 日, 函 이고, 대례는 初 行 과 相 見 交 拜 이며, 후속의례로는 新 行, 현구고례, 近 親 으로 구성되었다. 현구고례는 후일 幣 帛 이라는 말로 바뀌었다. 특히 조선후기에 변화를 보인 것이 거주규정인데 유교적인 영향하에 가부장제 사회에서 신혼부부의 거주가 夫 處 制 을 취하게 되었다. 근대화 와 서구화 과정에서 신식혼례가 확산되면서 신혼부부의 거주규정은 해 묵이, 달묵이, 3일 신행, 당일 新 行 3) 등으로 변모하다가 현대사회에서 1) 胥 留 婦 家 婚 이란 선모처제를 의미하는 전통 혼례관행이었다. 한국 전통사회는 강 한 부계사회였지만 일찍부터 부처제가 아닌 선모처-후부처제를 취하였다. 유교 의 영향으로 四 禮 가 보편화됨에 따라 婚 禮 의 절차가 복잡해지고 전통혼례가 가 진 소박한 정신은 사라졌어도 胥 留 婦 家 婚 의 잔재는 조선후기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나 점차 胥 留 婦 家 婚 의 성격이 약해지면서 신행하는 시기가 점점 짧아지게 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전통혼례에 관한 내용은 박혜인(1991)의 연구를 참 조할 것. 2) 일제가 우리 文 化 의 傳 統 性 을 말살하고 지역공동체의 結 束 을 와해시키려는 식 민지 정책의 일환으로 婚 禮 의 간소화를 표방하면서 儀 禮 準 則 을 제정하였다. 일 제가 표방한 儀 禮 準 則 에 준거하여 간소화되고 서구문화의 영향을 받아 변모된 혼례를 新 式 婚 禮 라 하고 전통혼례를 舊 式 婚 禮 라고 하였다. 조선시대 婚 禮 가 변천된 계기에 관하여는 장철수(1995)의 연구를 참조할 것. 3) 혼례식 후 新 婦 가 처가에서 해를 넘기고 새해에 媤 家 에 신행하는 것을 해묵이 라고 하고, 봄에 혼례를 올리고 그 해 가을에 신행하는 것을 달묵이 라고 한다. 해묵이의 경우 한 해만이 아니고 여러 해를 묵혀 신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媤 家

儀 禮 의 社 會 的 機 能 과 變 化 77 신혼여행을 마치고 신부집에서 하룻밤 머무는 형태로 바뀌어 그 맥을 유지하고 있다. 대표적인 現 代 婚 禮 慣 行 의 양상은 과거 혼인이 가문 대 가문의 결합 이던 것이 차츰 본인 대 본인 위주의 결합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대가족적 親 族 主 義 理 念 에 따라 개인이 가족의 하위개념이었던 전 통사회와 비견하면 뚜렷한 변화를 보여 준다. 여전히 가문의식, 체면의 식의 영향이 남아 있으나 연령이 저하할수록 婚 禮 에 대한 個 人 的 思 考 의 개입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배우자의 선택권이 결혼 당사자에게 이양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최근의 결혼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유형 인 선본인결정, 후부모승락형태의 경우 1940년대 이전에 2퍼센트 미만 이던 것이 1980년대에는 약 3분의 2 정도에 이른다. 반면 1930년대 이 전에는 대부분 부모에 의한 결정이 이루어졌으나, 1980년대에 이르러서 는 1퍼센트 정도밖에 나타나지 않는다(공세권 외, 1990). 傳 統 儀 禮 의 요소는 몇 가지의 방식으로 현재의 한국사회에서 변화 수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傳 統 儀 禮 의 形 式 과 內 容 및 이를 뒷받 침하는 象 徵 的 意 味 의 요소까지 계승된 婚 禮 의 절차는 현재의 시점에서 는 발견하기 힘들다. 가장 흔한 경우로서 전통의식이 형식에 있어 큰 변화없이 남아있는 반면 의식을 뒷받침하는 의미 혹은 상징적 요소가 상당 부분 퇴색 혹은 상실된 경우를 들 수 있다. 函 및 幣 帛 이 이러한 사례의 대표적인 경우이다. 함들이의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인 四 柱 單 子 를 뒷받침하고 있던 민간신앙의 요소는 현재의 한국사회에서 그 세력이 현저히 약화되었다. 新 郞 家 에 공식적인 첫인사로서의 폐백 또한 친족공 동체 의식의 소멸 및 혼례장소 변화 등의 요인으로 첫인사로서의 상징 적 의미가 상당부분 변모된 경우이다. 이와 같이 의미가 상실되거나 변 모된 채 형식만 남아있는 경우는 儀 禮 合 理 化 라는 추세에 비추어 볼 때 와 親 庭 의 형편과 처지에 따라 3일 신행이나 당일 신행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이 모두가 전통혼례의 胥 留 婦 家 婚 의 잔재라고 해석할 수 있다(박혜인, 1991:46 ~47).

78 保 健 社 會 硏 究 第 16 卷 第 1 號 앞으로 점차 소멸될 것으로 판단된다. 다음으로 傳 統 儀 式 의 節 次 는 남아 있으나 형식 및 내용이 변화한 경 우를 들 수 있다. 禮 物 및 婚 禮 式 이 그것이다. 과거 전통 혼례에서 예물 은 주로 新 郞 家 에서 新 婦 家 로의 물건 전달이 주를 이루었으나 현재 한 국사회에서 예물이라 하면 新 婦 家 에서 新 郞 家 로의 물건 전달이 주종을 차지하게 되었다. 婚 禮 式 의 경우 전통 혼례의식은 일제시대에 서구식 의 혼인식으로 변형되었다. 이 과정에서 婚 禮 式 場 所 및 婚 禮 의 節 次 가 과거의 혼례와는 완전히 단절된 형태로 새로운 모습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러한 儀 禮 內 容 에 있어 변화의 방향은 한편으로는 사회환경에의 적 응이란 관점에서 해석될 수도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物 質 主 義 의 확 대에 따라 절차 및 내용이 보다 복잡해지는 방향으로 진전된 경우도 관 찰된다. 근래에 들어올수록 더욱 높아지는 豪 華 婚 需 및 豪 華 結 婚 式 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婚 禮 式 에서 대규모 하객동원을 통하여 집단 소속의 확인을 추 구하는 것은 앞에서 지적한 儀 禮 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社 會 的 統 合 의 機 能 을 여전히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대규모 豪 華 婚 禮 가 사회적으로 문제시되고 있음에도 이러한 의례 형식이 계속 유지되고 있는 이면에는 이러한 儀 禮 를 통하여 참여자 집단들에게 중요 한 기능이 충족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4) 전반적으로 지금까지의 혼 례의 변화 방향은 상징적인 요소의 탈색과 함께 그 자리에 儀 禮 의 變 形 을 통해 사회적 기능이 계속 유지되는 형태인 것으로 판단된다. 2. 喪 禮 喪 禮 는 冠 婚 喪 祭 가운데 한국인의 생활에서 가장 중요시 여기는 의례 4) 현행 婚 禮 의 問 題 點 에 관하여는 이현송 배화옥(1995)과 김모란(1994)의 연구를 參 照 할 것.

儀 禮 의 社 會 的 機 能 과 變 化 79 이며 生 死 觀 에 뿌리를 두고 있는 儀 禮 로서 慣 習 의 規 制 또한 다른 어느 儀 禮 보다도 강하다. 상례의 주요 부분을 분석적으로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5) 첫째, 생명체로서의 離 別 段 階 로 물리적, 생물학적 현상이 종결 된 사실을 知 的 으로 認 知 한다. 대부분 노환이나 만성질환자가 임종 순 간이 다가오면 자손들이 모여 임종 순간을 死 者 와 함께 한다. 임종 순 간은 자손들이 부모에게 현세에 효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 하며, 임종에 참여하지 못함은 不 孝 로 여기고 死 者 에게는 恨 을 남길 가 능성이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 둘째는 觀 念 的 인 離 別 로 初 終 이 끝나고 시신을 입관한 후 生 者 와 死 者 가 구분됨을 깨닫는다. 부모의 죽음을 감 정적으로나 관념적으로 직접 경험하는 것은 殮 襲 (시신을 목욕시키고 수 의로 갈아 입힘)하고 입관하는 때부터이다. 셋째 단계는 感 情 的 인 離 別 의 단계이다. 三 虞 祭 를 포함하여 初 喪 이 끝난 3개월 후 卒 哭 祭 와 1년 후의 小 喪 을 통해 사회적으로 탈상으로 규정하여 애도과정이 끝나고 새 로운 일상으로 復 歸 한다(박종한, 1990). 과거 전통사회에서는 민간신앙 및 유교 규범의 영향을 크게 받아 喪 葬 禮 의 의례절차는 매우 복잡하였으며 마을 사람들에게 큰 행사의 하나 로 받아들여졌다. 喪 葬 禮 에 유교적 의례절차가 도입된 것은 조선조에 들어와 朱 子 家 禮 가 양반 사회에서 禮 의 표준으로 받들어지면서부터이 다. 유교식의 喪 葬 禮 에서의 喪 葬 과 절차는 喪 을 당한 사람들의 슬픈 감 정과 孝 의 관념뿐만 아니라 本 宗 위주의 친족관계 등 유교에서 지향하 는 사회질서 내용을 담고 있다. 전통적 유교사상에 의하면 사람이 죽으 면 魂 氣 는 하늘로 올라가고, 形 魄 은 땅으로 돌아가므로 정성을 다하여 모시면 魂 魄 은 합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死 者 의 존재 유무나 형체 유무 보다는 자손으로서 선조에게 인간의 도리를 다하여 엄숙한 분위기에서 정성을 다하여 시신을 모심을 중요시한다. 예로부터 시행해 오던 儒 敎 式 喪 禮 는 지나친 형식성과 복잡성으로 인 5) 각 구성부분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이현송 이필도(1995)를 參 照 할 것.

80 保 健 社 會 硏 究 第 16 卷 第 1 號 해 시대의 변화에 따라 비유교적 요소들이 결합되어 실용적이며 단순화 하는 양상을 띠게 되었다(정승모, 1990). 우리 나라의 전통적 喪 禮 는 禮 書 의 절차를 기준으로 臨 終 에 대한 준비인 初 終 에서부터 吉 祭 를 지낼 때까지 주요 절차만도 19단계에 이른다. 禮 書 에 나타난 喪 禮 節 次 는 매 우 복잡하고 까다로우며, 현재 실행되고 있는 喪 禮 節 次 는 전통적 喪 禮 가 간소화된 형태로 남아 있다. 특히 祭 와 관련된 부분이 많이 생략되 었다. 成 服 祭, 慰 靈 祭, 三 虞 祭 를 제외하면 다른 모든 절차는 상례의 現 世 的 實 用 的 機 能, 즉 시신의 처리와 社 會 共 同 體 의 결속 확인 부분에 치중되어 있다. 喪 禮 의 유교적 요소는 세속적인 가치관의 도입과 함께 변하여 앞으로 더욱더 禮 의 形 式 性 은 사라지고 실용적인 부분의 儀 禮 만 남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인들에게 있어 이러한 종교적인 理 念 體 系 에 뒷받침한 형식의 중요성은 점차로 탈색되어 가는 대신, 죽음 및 亡 者 와 관련된 감정적 부분의 관리는 개인 및 부부 중심의 가족에게 맡겨지는 방향으로 형식의 簡 素 化 傾 向 을 읽을 수 있다. 葬 禮 와 관련된 변화 중 가장 특이한 현상으로 근래에 들어와 급속하 게 확산된 병원 영안실에서의 葬 禮 慣 行 을 지적할 수 있다. 1980년대 중반 이래 대도시 中 上 流 層 을 중심으로 병원의 영안실을 이용하여 葬 禮 를 치루는 경향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과거 집 밖에서의 사망은 소위 客 死 라 하여 정상적인 죽음의 범주로 분류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집 밖에서 부모를 葬 禮 지내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금기 사항이었다. 병원 영안실 사용은 1950년의 전쟁에서 유래한다. 전쟁으로 일시에 사 망자가 대량으로 발생한 반면, 장례를 치룰 적당한 居 住 空 間 이 없는 많 은 사람들에게 병원의 시신안치실은 죽은 자를 哀 悼 하는 절차를 수행하 는 간이시설로 이용되었다. 그 이후로 병원의 시신안치실은 병원에서 사망한 환자, 행려병자, 사고사 등으로 객지에서 죽은 자들 이들은 주 로 집에서 장례를 치룰 경제적 공간적 여유가 없는 階 層 의 사람들임 에게 이용되던 葬 禮 場 所 였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까지도 병원의 시신 안치실은 엄밀한 의미에서 격식을 갖춘 사회적으로 용인된 장례장소로

儀 禮 의 社 會 的 機 能 과 變 化 81 서의 기능을 수행하지 않았다. 6) 그러나 意 識 및 社 會 環 境 의 變 化 는 葬 禮 의 영역에서도 과거에 금기 시하였던 집 밖에서의 葬 禮 를 과거 10여 년 사이에 당연스러운 社 會 慣 行 의 하나로 자리잡게 하였다. 한 조사(이현송 이필도, 1995: 33~34)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중상류층 사이에서 자택 이외의 장소 (대부분은 병 원 영안실)에서 葬 禮 를 치루는 비율이 1985년에는 약 25%에 불과하였 으나 1995년 현재 60%를 넘어선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급속한 변화 의 원인으로는 의료시설의 증가 및 의료보험제도의 전면 확대로 병원에 서 치료 도중 사망 비율이 증가했다는 점, 도시화 특히 공동주택의 확 산으로 인한 거주환경의 변화, 핵가족 이념의 확산, 세속주의 및 편의주 의의 확산 등을 들 수 있다. Ⅲ. 健 全 儀 禮 의 定 着 可 能 性 에 관한 檢 討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의 社 會 變 化 를 산업화와 도시화로 요약한다면 이에 대응하는 儀 禮 의 변화를 簡 素 化 및 合 理 化 라고 지적할 수 있다. 또한 같은 기간의 문화 및 사회의식의 변화를 世 俗 化 와 個 人 主 義 의 확 대로 이해한다면 이에 대응하는 儀 禮 의 변화를 象 徵 的 意 味 의 脫 色 및 의례 행위에 있어 功 利 的 要 素 의 확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본 논 문에서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중요한 儀 禮 로서 자리잡고 있는 婚 禮 와 喪 禮 를 예로 하여 이러한 변화의 양태 및 방향을 검토하였다. 婚 禮 의 경우 個 人 主 義 的 思 考 의 개입이 배우자 선택의 과정에서 뚜 렷이 나타나는 것을 살펴보았으며, 일부 절차에 있어 의미가 퇴색된 채 절차만이 남겨진 형태로 유지되는 경우 및 절차의 내용이 변질하여 傳 統 婚 禮 와는 크게 다른 모습으로 儀 禮 가 유지되고 있는 경우를 살펴보 6) 병원 영안실의 이용 확산과 관련된 자세한 논의는 이현송 이필도(1995)를 참조 할 것.

82 保 健 社 會 硏 究 第 16 卷 第 1 號 았다. 喪 禮 의 경우 儀 禮 절차의 간소화가 婚 禮 의 경우보다 더욱 뚜렷이 진행된 점을 관찰할 수 있으며, 특이한 현상으로 과거에는 금기시되었 으나 지난 10여 년 사이에 급속히 확산된 행위 양식으로서 병원 영안실 에서의 葬 禮 慣 行 을 검토하였다. 이러한 儀 禮 의 변화 추이를 검토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점은 의례의 변화에 정부 즉, 공권력이 개입하여 儀 禮 라는 私 的 領 域 을 통제하여 왔 다는 점이다. 이는 조선시대의 통치관행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나, 일제 식민지시대 및 해방 이후 오늘날의 家 庭 儀 禮 에 관한 法 律 에 이르기까 지 일관되게 지속되는 또 하나의 전통이기도 하다. 한편 과거에도 그러하였지만 儀 禮 의 규모 및 절차와 관련하여 豪 華 儀 禮 및 형식적인 낭비라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면서 健 全 儀 禮 를 定 立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여기서 이러한 비판의 목소 리는 어제 오늘에 새로이 제기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 다. 신문 및 기타 자료를 검토해 보면 일제시대는 물론이고 50년대, 60 년대, 70년대, 80년대 및 90년대인 오늘날에 있어서도 豪 華 儀 禮 의 문제 점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지 않은 시기가 없으며 비판의 내용 및 강도에 있어 큰 변화가 없다. 그렇다면 왜 그러한 사회적 비판이 계속됨에도 豪 華 儀 禮 慣 行 또는 不 健 全 한 儀 禮 行 爲 가 지속되는 것일까. 本 節 에서는 이러한 의문에 대한 검토와 함께 健 全 儀 禮 가 어떻게 사회적으로 定 立 될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하여 논의해 보기로 한다.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을 발견하는 일은 상당히 복잡한 듯하다. 제 기된 의문에 대하여 우선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답변은 豪 華 儀 禮 를 선호하는 階 層 과 이에 대한 비판을 하는 階 層 이 구분되어 있기 때문 일 것이라는 지적이다. 家 庭 儀 禮 에 관한 法 律 에 대한 여론 조사 결과 에 따르면(조남훈 외 1993; 國 立 女 性 福 祉 院, 1983), 이러한 가설의 일부 는 옳으나 또한 동시에 그릇된 측면도 있음을 알 수 있다. 國 立 女 性 福 祉 院 (1983)의 조사에 따르면 대표적인 豪 華 儀 禮 의 항목인 喪 禮 時 10개 이상의 화환 금지 규정에 대한 태도에 있어 이를 자유의사에 맡기도록

儀 禮 의 社 會 的 機 能 과 變 化 83 해야 한다는 의견은 상위 소득계층의 경우 34.5%가 지지한 반면, 중위 소득계층의 경우 20.2%이며, 하위 소득계층의 경우 16.1%가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소득이 높을수록 豪 華 儀 禮 에 대한 금지 규정에 대하여 보다 허용하는 입장을 취하는 것이 사실 이나, 계층간의 차이는 일반적으로 추측하는 것처럼 그렇게 크지 않다 는 점이다. 조남훈 외(1993)의 연구는 이러한 경향을 재확인시켜 준다. 또다른 豪 華 儀 禮 에 관련된 사항인 호텔에서의 婚 禮 금지규정에 대하여, 소득이 높을수록 호텔에서의 결혼식을 치룬 경우가 많으나 막상 호텔에서의 結 婚 式 을 금지하는 조항에 대한 허용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는 소득이 유의미한 차이를 가져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해석 해 보면 상류층 사이에서도 남이 하기 때문에 사회적인 체면을 위하여 豪 華 結 婚 式 을 행하는 것이기는 하나 이것이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생각 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여기서 분명하지 않은 점은 그들이 豪 華 儀 禮 行 爲 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豪 華 儀 禮 가 사회 전반 에 확산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으나, 능력이 있는 상류층의 경우에는 그 범주에 해당하지 않는다 고 생각하는 것인지, 혹은 상류층도 포함하 여 사회 전반적으로 豪 華 儀 禮 가 확산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 고 생 각하는지의 여부이다. 지금까지의 연구에서 이러한 점이 경험적으로 구분되어 검토되지 않 았으므로 여기서 섣불리 어느 것이 맞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단지 상류층 사이에서도 豪 華 儀 禮 行 爲 를 경쟁적으로 지향함으로써 상호간 에 의도하지 않았던 손실을 서로가 입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 이다. 소위 경제학에서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 라고 하여 상호간에 서로의 행위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상호 모두가 손실을 입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이러한 上 流 層 서로간의 경쟁적 豪 華 儀 禮 로 인한 손실 및 여타 階 層 이 가지는 違 和 感 과 모방 행위에 따른 손실을 방지하는 길은

84 保 健 社 會 硏 究 第 16 卷 第 1 號 어디에 있을까. 이는 어떠한 형태로든 사회 구성원 서로간의 경쟁적 豪 華 儀 禮 를 지양하는 制 度 的 혹은 非 制 度 的 機 制 (mechanism)를 통하여, 상대가 일정 규모 이상의 儀 禮 婚 禮 이든 혹은 喪 禮 이든 行 爲 를 하 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분명한 情 報 혹은 確 信 이 제공되어야 할 것이 다. 문제는 이러한 確 信 과 情 報 를 사회구성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안 정되며, 사회구성원의 대다수가 合 意 하는 機 制 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점에 관하여 더 논의를 진행하기에 앞서 간단히 社 會 慣 行 의 전파 방식에 관하여 검토할 필요가 있다. 사회학자 및 문화인류학자들의 연 구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社 會 慣 行 들이 상류층에서 시작되어 사회의 다른 계층에 의하여 모방됨으로써 慣 行 의 擴 散 을 가져오는 경향 이 있다(Popenoe, 1986). 7) 일단 어떤 慣 行 이 일부 상류층에 의하여 채 택될 경우, 상류층에서도 집단내부적으로는 지위의 확인 및 여타 집단에 대하여 과시의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이는 展 示 效 果 (demonstration effect)를 발휘하여 다른 階 層 에까지 이러한 慣 行 의 확산을 가져오게 된 다. 반면 상류층은 그들의 관행을 중하류층의 모방과 差 別 化 하려는 노 력을 보일 것이며 이는 그들의 慣 行 에 있어 高 級 化 傾 向 으로 나타날 것 이다. 豪 華 儀 禮 의 경우가 이러한 전파 과정을 답습하는 대표적인 사례 이다. 따라서 이러한 확산 과정을 막는 출발점 또한 사회의 상류층에 맞추어져야 한다. 다음에서는 우리나라의 현 상황에서 상류층에서부터 豪 華 儀 禮 를 자제하도록 하는 기제가 가능할 것인가에 논의를 집중하기 로 한다. 앞의 儀 禮 의 변화에 대한 분석에서 논의하였듯이 우리나라의 儀 禮 와 관련하여 오늘날까지도 지속되는 전통 중의 하나가 私 的 儀 禮 의 영역을 公 的 行 政 力 으로 規 制 하는 발상이다. 과거 儒 敎 의 전통이 지배하였던 7 ) 물론 社 會 의 下 層 으로부터 출발하여 사회전반으로 퍼지는 慣 行 또한 다수 존재 하나 위로부터 아래로 전파되는 慣 行 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소수이다. 前 者 의 대표적인 例 로 청바지 혹은 재즈의 流 行 을 들 수 있다.

儀 禮 의 社 會 的 機 能 과 變 化 85 시기에는 이러한 규제에 대한 사회구성원의 저항이 심하지 않았을 것이 다. 왜냐 하면 儒 敎 그 자체가 儀 禮 節 次 에 의하여 구성되어 있으므로 사회의 지도층이 儒 敎 를 신봉하고 이를 여타 계층에 대하여 교화의 수 단으로 이용하는 한, 지도층간에 儀 禮 의 내용 및 적정 규모에 대한 합 의가 이루어져 있어,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상류층내에서 경쟁적 호 화 행위를 추구하여 죄수의 딜레마 와 같은 현상을 초래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시대의 신분제도가 중하류층에 의하여 이러 한 상류층의 儀 禮 慣 行 을 모방하는 것을 엄격히 제한하였을 것이므로 豪 華 儀 禮 의 확산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근대화되면서 상류층의 慣 行 이 사회 전반으로 확 산되고, 상류층내에서 적정한 儀 禮 節 次 및 規 模 에 관한 합의된 정보가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경쟁적인 高 級 化 傾 向 을 나타내고 이것이 다시 중 하층에 모방되는 악순환을 거듭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한편으로 한국사 회가 민주화됨에 따라 과거 신분제 사회의 굴레로부터 해방된 부작용이 기도 하며, 일제시대와 1950년대의 전쟁을 치르면서 과거 家 族 主 義 的 價 値 에 근거를 둔 보편적으로 합의된 사회 질서가 무너져버린 대신 그 에 대신할 만한 社 會 倫 理 가 설정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김태길, 1990). 豪 華 儀 禮 의 주요 기능이 상류층의 경우 자신들의 집단적 차별성을 과시하고 집단내의 결속력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豪 華 儀 禮 를 제한하려고 하는 시도 또한 이러한 儀 禮 의 機 能 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려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해결점을 발견하기 어려울 것 이다. 본 논문의 서두에서 논의하였듯이 현대로 들어올수록 儀 禮 의 象 徵 的 인 意 味 는 탈색되고 사회적인 기능만이 남게 되므로 儀 禮 라는 행위 양식이 존재하는 한, 상류층의 儀 禮 를 통한 集 團 維 持 機 能 을 근본적으 로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단지 상류층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절제 를 요구함으로써 상류층내에서의 소모적 경쟁을 배제하고 타계층과의 社 會 的 違 和 感 을 적정수준으로 낮출 수 있을 뿐이다. 또한 앞에서 지적

86 保 健 社 會 硏 究 第 16 卷 第 1 號 하였듯이 사회관습의 확산 방식을 고려할 때 상류층의 절제가 중하층의 절제를 유도하게 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효하게 上 流 層 의 節 制 를 유도할 수 있는 방안은 국가의 최고 수반에서부터 상위직 공무원, 예컨대 사무관급 이상의 公 務 員 에 대하여 예외 없이 健 全 儀 禮 를 勸 獎 하는 政 策 을 강력히 추진하 는 방법일 것이다. 이것이 가장 유효할 수 있는 방안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우선 民 間 에 대하여 행정력을 통한 儀 禮 規 範 의 강제는 적절치 못하다고 판단된다. 서구의 개인주의 가치체계가 전사회적으로 침투되 어 있는 상황에서 개인의 私 的 領 域 에 속하는 儀 禮 規 範 에 대하여 法 規 範 이나 기타 간접적인 규제 방식을 통한 행정력의 동원은 민간의 반 발을 살 것이며 선거를 의식해야 하는 民 主 主 義 政 治 體 制 에서 일반에게 인기있는 방법으로 실행되기 어렵다. 반면 公 共 部 門 의 경우 그 절대적 숫자에 있어서도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거니와 현재 전국의 근로자 중 10명에 1명 이상이 公 共 部 門 에 고용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남 정부 주 도의 경제개발 정책의 결과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정부의 행태가 사회 일반에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크다. 또한 정부 부문의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 현재 한국사회에 있어서 공식적 및 비공식적으로 상류층 집단 및 기타 사회 계층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당하다. 公 共 部 門 의 健 全 儀 禮 를 유도하기 위한 전략에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점은 공공 부문의 高 位 層 에 대하여 개선의 노력이 집중되어야 한다 는 것이다. 이는 고위층 사람들이 우리사회의 상류층에 속해 있기 때문 이라는 소극적인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上 下 의 位 階 體 系 가 분명한 官 僚 制 의 속성상 상위층이 솔선할 경우 하위층이 따라가지 않을 수 없 으며 이는 별도의 법 규정으로 강제함이 없이도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이 유 때문이다. 私 的 領 域 에 속하는 儀 禮 規 範 을 公 共 部 門 內 에서 확산시 키기 위하여, 강제적인 규정에 의한 유도는 실효성을 얻을 수 없는 반 면 上 位 者 의 행위를 통한 솔선 수범은 쉽게 下 位 者 의 동의를 얻을 수 있다는 점 또한 公 共 部 門 에서의 健 全 儀 禮 확산이 가장 유효한 전략이

儀 禮 의 社 會 的 機 能 과 變 化 87 될 수 있는 근거이다. 資 本 主 義 市 民 社 會 의 이념상 民 間 部 門 과 비교할 때 公 共 部 門 은 건전한 사회를 유도할 도덕적 역할이 더 강조될 수 있으 므로 이러한 조직의 책임을 맡고 있는 고위직에 대하여 儀 禮 規 範 의 개 선을 강요할 정당성이 더욱 많다는 점 또한 儀 禮 에 관한 한 公 共 部 門 이 개혁의 우선 순위에 위치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 健 全 儀 禮 를 목적으로 하는 家 庭 儀 禮 에 관한 法 律 은 실효성이 없을 수밖에 없다. 健 全 儀 禮 의 보급은 보편적인 일 반인이 아닌 일부 상류층에게 절제를 요구하는 것이 사회 전반에 대 하여 요구하는 것보다 실효성이 있으나, 계층간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 은 法 規 範 은 集 團 差 別 性 및 結 束 確 認 이라는 儀 禮 의 근본적 기능에 도 배제되므로 특정 법 규정의 설정은 물론이고 이를 실행하는 데 있 어서도 제약이 많다. 현재 家 庭 儀 禮 法 律 의 많은 規 定 이 死 文 化 되고 있 는 이유도 여기에서 찿을 수 있을 것이다. 儀 禮 에 관한 규정이 유효하기 위하여는 상류층의 儀 禮 慣 行 에 대하여 적정 수준을 제시하고 이를 상류층이 엄격히 지키도록 강제할 수 있도 록 우리사회의 상류층이 합의하는 儀 禮 規 定 을 만들어야 할 것이나, 이 는 우리사회의 일부 계층에 한정된 事 案 이므로 법 규정으로 강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즉 法 規 範 에서 계층별로 적정 의례 규모를 설 정한다는 것은 法 의 普 遍 性 原 則 에 위배되므로 근본적으로 法 規 範 을 통한 儀 禮 의 건전화 노력은 실효성이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왜냐 하면 儀 禮 의 규모를 엄격히 제한할 경우 상류층의 동의를 도출하기 힘들 것 이므로 이를 강제하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이며, 그렇다고 儀 禮 의 규모 를 상류층의 생활양식에 맞추어 관대히 설정할 경우 여타 계층의 반발 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본 논문에서의 논의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즉, 지난 반 세기 동안 한국사회의 급격한 社 會 變 動 과 價 値 觀 의 변화로 儀 禮 에 있어 서도 큰 변화를 초래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上 流 層 의 集 團 差 別 性 을 확 보하기 위한 의도에서 儀 禮 를 점차로 고급화해가는 악순환이 초래되었

88 保 健 社 會 硏 究 第 16 卷 第 1 號 다. 이러한 악순환에 대한 대응으로서 보편적인 法 規 範 을 통한 개선은 불가능하며, 상류층에 한정된 儀 禮 의 健 全 化 誘 導 를 통하여 상류층내의 경쟁을 통한 손실 및 이에 대한 여타 계층의 모방을 통한 손실을 막아 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건전화 정착을 위한 가장 유 효한 전략은 대통령부터 상위직에 포함된 公 共 部 門 의 피고용자들이 健 全 儀 禮 를 실행하도록 하는 전략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 논문의 한계점으로 의례의 변화를 사회적 기능에 초 점을 맞추어 분석함으로써 의례의 여타 측면, 즉 삶의 의미를 확인하고 일상으로 회복을 돕는 측면 등의 文 化 人 類 學 的 側 面 을 깊이 검토하지 못하였다는 점을 지적해야 하겠다. 參 考 文 獻 공세권 외, ꡔ 韓 國 家 族 의 機 能 과 役 割 變 化 ꡕ, 韓 國 保 健 社 會 硏 究 院, 1990. 국립여성복지원, ꡔ 家 庭 儀 禮 에 관한 國 民 意 識 調 査 報 告 書 ꡕ, 國 立 女 性 福 祉 院, 1983. 김모란, 한국사회의 혼인거래관행에 대한 연구, 이화여대 박사학 위 논문, 1994. 김태길, 한국사회의 사회윤리, 무엇이 문제인가, 아산사회복지재 단, ꡔ 現 代 韓 國 의 社 會 倫 理 ꡕ, 제1회 사회윤리 심포지엄, 1990. 김형석, ꡔ 現 代 社 會 와 禮 ꡕ, 탐구당, 1989. 박종한, 한국장례의식의 정신분석학적 고찰, ꡔ최신의학ꡕ, 제22권 제7호, 1990. 박혜인, 한국 전통혼례의 연속과 단절, 이효재 외, ꡔ자본주의 시 장경제와 혼인ꡕ, 또하나의 문화, 1991, pp.17~74. 이광규, ꡔ한국인의 일생ꡕ, 형설출판사, 1985.

儀 禮 의 社 會 的 機 能 과 變 化 89 이현송 배화옥, ꡔ 婚 禮 文 化 의 問 題 點 과 政 策 課 題 健 全 婚 禮 모델의 開 發 을 中 心 으로 ꡕ, 韓 國 保 健 社 會 硏 究 院, 1996. 이현송 이필도, ꡔ 葬 儀 制 度 의 現 況 과 發 展 方 向 ꡕ, 韓 國 保 健 社 會 硏 究 院, 1995. 장철수, ꡔ 韓 國 傳 統 社 會 의 冠 婚 喪 祭 ꡕ, 집문당, 1995. 전경수 역(A. Van Gennep 著 ), ꡔ 通 過 儀 禮 ꡕ, 을유문화사, 1985. 전병재, 예의 사회적 기능, ꡔ 現 代 社 會 와 禮 ꡕ, 탐구당, 1989, pp.285 ~320. 정승모, 상,장제도의 역사와 사회적 기능 - 신유학적 가례체계를 중심으로, 국립민속박물관, ꡔ 韓 國 喪 葬 禮 ꡕ, 미진사, 1990, pp.173~186. 정진홍, 개신교의 冠 婚 喪 祭 의식 박근원 편, ꡔ기독교와 冠 婚 喪 祭 ꡕ, 전망사, 1984, pp.51~77 조남훈 외, ꡔ 家 庭 儀 禮 에 관한 意 識 行 態 調 査 結 果 ꡕ, 韓 國 保 健 社 會 硏 究 院, 1993. 최길성, ꡔ한국의 조상숭배ꡕ, 예전사, 1991. Popenoe, David, Sociology, Prentice Hall, 1986 (6th ed.).

90 保 健 社 會 硏 究 第 16 卷 第 1 號 Summary 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 Change and Social Function of Ceremonies in Korea Hyun-Song Lee Hwa-Ok Bae 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ꠚ In Korea, rapid changes in social dynamics and values have brought about a great transformation of ceremonies over the past half century. In connection with the rapid industrialization and urbanization of Korean society, ceremonies have been rationalized and simplified. During the same period, Korean culture and social idealogy have undergone a diffusion of secularization and individualism, while ceremonies have experienced the loss of symbolic meaning and the expansion of utilitarianism. This study reviewed the changes and the social function of Korean ceremonies using weddings and funerals, which are regarded as important rituals in Korean society, as its primary exemplars. Wedding and funeral ceremonies have changed drastically in terms of components and procedure. The two ceremonies became simplified and rationalized in the process of changing social dynam ics. A s people in the increasing ly industrialized and urbanized society prioritized convenience and gave utility to traditional virtues, the symbolic meanings embedded with the rituals gradually became distorted. The problem is, the upper class in Korean society has been trying to secure the distinction of the classes through rituals. The upper class has tried to differentiate itself from other classes by investing much in ceremonies and by disclosing ostentation, which has corrupted the virtues of the traditional ceremonial culture.

儀 禮 의 社 會 的 機 能 과 變 化 91 In response to the currently corrupted ceremonial attitudes, appropriate measures should be designed to obtain a more wholesome ceremonial culture from the upper class. This kind of effort will reduce economic losses, which result from the overly competitive ostentation of the upper class and from the imitation by other classes. For securing a wholesome ceremonial culture, the most effective strategy will be governmental regulations for highly ranked public officials including the president, to practice and further diffuse it into the society at lar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