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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도서관 출판시도서목록(CIP) 일본만화의 폭력성과 우리 청소년 / 청소년위원회 청소년 보호단 매체환경팀 편집. -- 서울:청소년위원회, 2005 p. ; cm. -- (청소년 ; ) ISNB :기타 K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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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낙서


Transcription:

硏 究 論 文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스포츠 열풍과 한국사회 정준영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 부교수, 사회학 전공 junechung@knou.ac.kr I. 머리말 II. 스포츠에 대한 열광 III. 한국사회와 스포츠에 대한 열광 IV. 스포츠 열풍의 이해 V. 맺음말 이 논문은 2010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문화심층연구사업 공동과제로 수행된 연구 이다(AKSR 2010 C04).

I. 머리말 2010년 초 밴쿠버에서 열린 제21회 동계 올림픽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 는 김연아라는 새로운 스포츠 영웅이 탄생했다. 김연아 경기 시간의 텔레비전 중계 시청률은 평소 시청률이 높지 않은 한낮의 시간대였는데도 41.9%를 기록했고, 온라인 중계의 시청률 역시 사상 최고의 기록을 경신했다. 금메달 획득 후 KBS가 특집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편성했고, 신문과 방송에서 그와 관련된 뉴스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2010년 9월에는 17세 이하 여자축구 월드컵에서 한국대표팀이 우승하 는 사건 이 벌어졌다. 김연아 때에 비해 정도는 다소 약했지만 정규 뉴스는 관련 기사로 도배 되었고 대표팀은 귀국하자마자 대통령과의 오찬에 참여해야 했다. 사실 스포츠 영웅의 탄생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가까이로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수영에서 금메달을 딴 박태환이 있으며, 2002년 월드컵의 영웅 히딩크 감독과 박지성이 있고, 바르셀로나올림픽의 영웅 황영조의 기억도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이미 일제 강점기에도 마라톤의 손기정과 사이클의 엄복동 등이 스포츠에서의 활약상을 통해 영웅의 반열에 올라선 바 있다. 과거 스포츠에 대한 열광은 약소민족의식에서 비롯된 대리만족의 추구와 독재정권에 의한 인위적 탈정치화 시도의 결과로 설명되곤 했다. 1) 근자의 올림픽에 대한 열광과 관련해서도 비슷한 요인의 작용을 상정 해볼 수 있으며, 특히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다시금 위에서부터 주도된 스포츠에 대한 과도한 열광 은 스포츠의 정치적 이용에 대한 혐의를 더욱 강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 도 2002년 월드컵의 사례에서 보이듯이 다른 요인의 영향력이 점차 강해지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이를테면 대중매체를 비롯한 상업적 인 요인의 영향력이 강화되고 있으며, 단순 대리만족의 추구에서 벗어나 스포츠를 적극적인 표현의 도구로 사용하는 새로운 조류의 등장 등을 꼽아볼 수 있다. 2) 또 김연아의 경기를 비롯하여 각종 스포츠 경기의 1) 이동연 외, 스포츠, 어떻게 읽을 것인가 (삼인, 1998); 정준영, 열광하는 스포츠, 은폐된 이데올로기 (책세상, 2003). 2) 앨리스 캐시모어 저, 정준영 역, 스포츠 그 열광의 사회학 (한울, 2001), 225쪽. 302 정신문화연구 제34권 제3호

치밀한 분석으로 각광받는 수많은 블로그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맹목적인 열광을 넘어 스포츠 자체에 대한 진지한 관심의 폭이 확대된 것도 분명하다. 그와 더불어 2000년대는 하는 스포츠(participatory sports) 의 열풍이 본격적으로 불어닥친 시기이기도 하다. 건강에 대한 관심의 확산과 궤를 같이했던 하는 스포츠 열풍은 가장 대표적인 종목인 마라톤의 참여 인원을 급격하게 확대시켜 전국적으로 연간 250여 회의 마라톤 대회가 개최되도록 만들었으며, 축구와 야구, 배드민턴 등 갖가지 생활 스포츠 동호회의 폭발적인 성장을 가져오기도 했다. 3) 육체미 도장으로 불리며 극소수 남성의 이용 공간으로 머물렀던 사설 체육 공간이 헬스클 럽이나 피트니스 센터로 이름이 바뀌면서 거대한 산업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이다. 4) 이 글은 스포츠 열풍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그 의미를 해석하고 나아가 우리 사회의 성격을 규명할 실마리를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5) 3) 예를 들어 조기축구회 같은 동호회가 오래전부터 발전한 축구의 경우 생활 스포츠 협회 등록 클럽 수만 전국적으로 6558개에 회원 수는 16만 9253명에 이르는 것으 로 집계되고 있다(http://www.koreasoccer.or.kr/default.jsp). 또 2000년대 들어 급속 하게 동호회가 늘어나기 시작한 야구의 경우 등록팀 수가 2000여 개에 이르며 (http://baseball.sportal.or.kr) 등록되지 않은 팀까지 합하면 3000여 개 이상의 팀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스포츠클럽의 전반적 증가 추세에 대해서는 뒤의 표3을 참조하라. 표3에서 클럽 수가 위의 수치보다 더 많게 나오는 것은 스포츠클럽의 범위에 생활 스포츠에는 포함되지 않는 운동부팀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4) 이를테면 헬스클럽의 프랜차이즈 도입과 매장의 확대가 그 예이다(박영옥, 스포츠산 업의 실태 분석, 국민체육공단 체육과학연구원, 2004, 209쪽). 한편 스포츠 산업의 규모에 대해서는 분류 기준에 따라 다양한 평가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또 통계항 목의 변화에 따라 연도별 규모가 달라지기 때문에 연도별 비교도 그리 쉽지 않다. 하지만 골프장 이용 현황과 같은 특정 지표를 기준으로 판단해보면 2000년대 들어 스포츠 인구가 급격히 늘었고, 그에 따라 스포츠 산업 역시 성장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2000년의 골프장 이용 인원이 1200만 5610명이었던 데 반해 2009년의 이용 인원은 2590만 8986명으로 무려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스포츠 산업을 정의하는 것의 어려움과 규모의 추산에 대해서는 박영옥, 위의 책, 7 10쪽과 문화체육관광부, 2009 체육백서 (2010), 320 322쪽 등을 참조하라. 5) 이 글에서는 열광과 열풍을 다소 구분해서 사용할 것이다. 그 경계를 엄밀하게 구분하 기는 쉽지 않지만, 이를테면 열광은 특정 경기에 대한 열광과 같이 일회적인 성격을 지닌 것이고, 열풍은 이런 열광이 일정 정도의 지속성을 갖게 됨으로써 어느 정도의 분위기를 형성하게 되었을 때를 의미한다. 즉, 열광은 어떤 특정 계기를 기반으로 일회 적 단기적으로 열정의 분출이 일어난 것을 가리키며, 열풍은 특정 계기를 기반으로 한 것은 동일하지만 열정이 반복적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것을 가리킨다. 2002년 월드 컵 때와 같이 일회적인 열광 후에 축구팬의 증가나 축구에 대한 전반적 관심의 증가, 월드컵 개최 때마다 되풀이되는 거리응원과 같이 월드컵 개최 기간 중에 나타났던 특정 분위기가 반복적으로 출현할 때 그것을 열풍이라 할 수 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303

스포츠 스타에 대한 기존의 연구들은 일반적인 연예계 스타와 유사하게 스타의 제조되는 성격을 강조하고 이를 제조하는 측의 의도를 분석하는 것이 주를 이루었다. 6) 하지만 우리 사회의 경우 이러한 관점만으로는 해명할 수 없는 사례가 다수 존재한다. 예를 들어 일제 강점기의 스포츠 영웅들은 그들을 스타로 제조해낼 전형적인 주체와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지 않았는데도 영웅으로 부상된 존재이다. 7) 따라서 이 글에서는 스포츠 스타의 제조되는 측면과 아울러 특정 스포츠 스타가 영웅으로 부상하게 되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또 이 글에서는 2000년대 한국사회에서 과거에 잘 찾아볼 수 없었던 하는 스포츠 열풍이 불어닥친 것의 의미를 탐색해보고자 한다. 과거에도 스포츠 영웅이 탄생했을 때는 그의 종목이 대중적으로 붐을 이룬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붐은 비교적 단기간에 종료되었고, 그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그 당시의 청소년층에 국한되는 사례가 일반적이었 다. 반면 2000년대 이후의 하는 스포츠 열풍은 특정 스포츠 영웅과 연결되어 있지 않고 세대를 아우르고 있으며 상당한 지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차이를 보인다. 이 글에서는 2000년대에 독특하 게 나타나고 있는 하는 스포츠 열풍에 대해 그 의미를 탐색해보고자 한다. 6) 이를 보여주는 예로서는 특히 월터 레이피버 저, 이정엽 역, 마이클 조던, 나이키, 지구 자본주의 (문학과지성사, 2001)를 들 수 있다. 레이피버는 미국 프로농구 스타 마이클 조던이 세계적인 스타로 부상하도록 만든 요인으로 조던의 운동 기술, 마케팅 능력, 나이키와 같은 새로운 유형의 기업, 지구를 하나의 거대한 텔레비전 시청자로 만든 커뮤니케이션 위성과 케이블 같은 테크놀로지 (63쪽)를 설정한다. 여기서 조던의 운동 기술은 그를 스타로 만든 기반으로 인정되지만, 여타 요인이 그를 적절하게 활용 하지 못했다면 조던의 운동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가 세계적 스타가 되지는 못했을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7) 물론 일제 강점기에도 이런 메커니즘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1930년대가 되면 거대 언론사가 각종 스포츠 대회를 후원하거나 스포츠를 주제로 미디어 이벤트를 벌이는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천정환, 조선의 사나이거든 풋뽈을 차라, 푸른역 사, 2010, 252쪽). 하지만 당시 조선의 통치주체였던 일제가 민족적 영웅의 출현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거대 언론사의 역할에는 한계가 존재했다고 할 수 있다. 또 거대 언론사의 역할이 강하지 않았던 1930년대 이전에도 안창남과 같은 민족 적 스포츠 영웅은 여전히 존재했다는 점 역시 지적할 수 있다. 304 정신문화연구 제34권 제3호

II. 스포츠에 대한 열광 사실 스포츠에 열광하는 현상이 우리 사회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 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인 미식축구의 사례를 보면 프로 미식축구 챔피언 결정전인 슈퍼볼의 시청률이 매년 40%를 상회하며, 경기가 열리는 주에는 대다수 언론의 주요 관심 역시 슈퍼볼에 집중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악명 높은 영국의 축구 훌리건은 영국팀의 경기가 있는 곳이면 세계 어디에나 진출하여 그 존재를 과시하 는데, 이는 스포츠에 대한 열광이 극단적인 폭력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8)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19세기 말에 벌어진 초기 영국 축구 FA컵 결승전이 상대적으로 열악했던 당시의 교통통신 수준에서도 10여만 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 모아 스포츠 이벤트 의 폭발력을 보여준 바 있으며, 1969년에는 월드컵 축구 예선전 경기 결과 때문에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사이에 이른바 5일간의 축구전쟁이 벌어진 적도 있다. 앨런 거트만의 책이나 닉 혼비의 소설 등에서도 스포츠에 대한 열광의 폭과 정도를 보여주는 다양한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9) 하는 스포츠 와 관련한 열광은 보는 스포츠(spectator sports) 와 관련 된 열광보다 오히려 더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흔히 현대 스포츠의 발상지로 일컬어지는 영국의 사례를 보면 초기 스포츠의 보급과 확산에 8) 훌리건의 폭력성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이에 대해서는 앨리스 캐시모어 저, 정준영 역, 앞의 책과 Guillanotti, Richard, Football: A Sociology of the Global Game (Polity, 1999)과 더불어 Murphy, Patrick, John Williams and Eric Dunning (eds.), Football on Trial: Spectator Violence and Development in the Football World (Routledge, 1990)에 실린 여러 논문을 참조하라. 9) Guttmann, Allen, Sports Spectators (Columbia University Press, 1986); Hornby, Nick, Fever Pitch(Riverhead Trade, 1998). 스포츠를 주제로 한 대중문화 산물의 등장은 스포츠에 대한 열광의 정도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10대를 중심으로 농구가 광범위한 인기를 끌었던 1990년대 초반에 농구를 주제로 한 <마지막 승부>(MBC, 1994년)라는 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있으며, 2003년에는 프로야구 를 주제로 작가 박민규가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이라는 소설을 출간하기 도 했다. 어린이를 주요 독자로 삼았던 만화에서는 스포츠를 주제로 한 작품이 훨씬 이전부터 제작되었는데, 이들 만화의 소재는 특정 종목의 인기도를 어느 정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권투가 큰 인기를 끌었을 때 나왔던 이상무의 독고탁 시리즈나 허영만 의 무당거미 시리즈, 프로야구 출범기에 발간되었던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 (1983)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스포츠를 소재로 한 예술작품, 영화 등에 대해서는 앨리스 캐시모어 저, 정준영 역, 앞의 책을 참조하라.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305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퍼블릭 스쿨의 학생들 사이에서 비록 남학생에 국한된 것이기는 했지만 스포츠 참여가 거의 강제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며, 크리스토퍼 라시가 분석했던 1970년대 미국에서의 건강 스포 츠 열풍도 하는 스포츠 와 관련된 것이다. 10) 이 외 전통적인 조직 스포츠 와는 다소 성격이 다르지만 여가의 발전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결합해 전 세계적으로 널리 각광을 받았던 이른바 레저 스포츠의 발전도 들 수 있다. 사실 보는 스포츠 의 속성을 생각해보면 스포츠에 대한 열광은 당연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초기 현대 스포츠가 엘리트가 주축이 된 하는 스포츠 중심이었다면 19세기 말부터 노동계급을 주요 대상으로 하여 발전하기 시작한 보는 스포츠 는 스포츠를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면서 여가사회의 발전과 맞물려 노동 계급의 대표적 여가활동 중 하나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11) 이 과정에서 보는 스포츠 는 지역이나 교구, 공장 등에 대한 노동자들의 애착을 주요 기반으로 삼음으로써 열광이 폭발할 바탕을 마련해주었다. 경쟁적 신체활동인 스포츠가 지역과 계급 등 다양한 형태의 대립구도와 결합될 때 그 대립의식을 표출할 수 있는 창구를 제공해주고 나아가 대립구도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정서적 힘을 더욱 강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시기에 확고한 형태를 갖추어가던 민족국가가 스포츠에 대한 열광을 이용하면서 열광의 폭발력을 더욱 강화시키기도 했다. 주지하듯이 문화적 공동체인 근대 민족국가는 민족 구성원 사이의 공통 문화와 이 공통 문화에 기반을 둔 공통 의식에 근거를 두고 있다. 지역을 넘어 단일한 규칙에 의해 수행되는 현대 조직 스포츠는 공통 문화의 중요한 일부를 형성하면서 같은 민족의 구성원이라는 일체감 형성에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했다. 19세기 말 이래 자리를 잡은 올림픽과 월드컵 등 각종 국제대회가 민족 구성원 사이에 일체감이 형성되도록 만든 주요 기제가 되었다. 원래 각국 엘리트 사이의 교류 수단으로 기획되었고, 국가 간 경쟁의식이 형성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개최국명을 쓰지 않음은 물론 국가 간 순위집계도 하지 않았던 올림픽이 이미 2회 대회부터 10) Mangan, J. A., Atheleticism in the Victorian and Edwardian Public School: The Emergence and Consolidation of an Educational Ideology (Cambridge Univ. Press, 1981); 크리스토퍼 라시 저, 최경도 역, 나르시시즘의 문화 (문학과지성사, 1989). 11) 정준영, 앞의 책, 42쪽. 306 정신문화연구 제34권 제3호

국가대표팀의 선발이 이루어지는 등 국가 간 대결의 장으로 바뀐 것이 이를 보여준다. 여기에 노골적인 국가대항전으로 마련된 월드컵의 출범 은 국가 간 대립의식을 더욱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1936년 올림픽이 국가의식과 스포츠의 결합이 완결되었음을 보여주었다면 냉전체제하에 서 스포츠를 통한 동서대립은 대립의식의 배양장으로서 스포츠의 역할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자연스럽게 대립의 물질적 기반을 지니고 있는 측에게 스포츠에 대한 열광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고 할 수 있다. 12) 결국 서구사회에서 스포츠에 대한 열광은 다양한 집단 간의 대립의식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역이나 교구, 계급, 공장 등의 현실적 대립구도에서 출발했던 이런 대립의식은 민족국가의 강화과정에 서 점차 국가 간의 현실적 가상적 대립의식으로까지 상승되었으며 냉전체제하에서는 체제 간 대립의식으로까지 발전하기도 했다. 구사회주 의권 국가들에서 1950년대 이후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던 엘리트 스포츠에 대한 투자는 소외된 전문가의 양성을 회피하고자 하는 사회주의의 이상에 서 일반 대중의 광범위한 스포츠 참여를 독려했던 것이 하나의 배경이었 지만, 체제 대결에서의 승리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한 의도에 기인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서구 국가들의 경우 엘리트 스포츠에 대한 집착이 약화되면서 국가 간 또는 체제 간 대립의식은 점차 큰 의미를 지니지 12) 냉전체제하에서 스포츠가 열전의 위험성을 감수하지 않고도 대립의식을 표출할 수 있는 수단이었듯이 초기 보는 스포츠 의 발전과정에서도 유사한 측면을 찾아볼 수 있다. 계급이나 지역 등 대립의 물질적 기반을 지니고 있는 집단에게 스포츠는 직접 충돌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성을 감수하지 않으면서도 대립의식을 표출할 훌륭한 장이 되어주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더비 매치로 지칭되는, 지역이나 계급, 종교 등과 관련된 대립에 기반을 두고 있어 가장 큰 열광을 불러일으키는 경기가 바로 이런 전통에 기반 을 두고 있다. 근대 민족국가의 공고화 과정에서 스포츠가 했던 역할에 대해서는 정준 영, 근대 민족국가의 형성과 스포츠, 사회와 역사 84(2009), 75 103쪽을 참조하라. 또 다양한 기반을 지닌 대립의 여러 사례에 대해서는 프랭클린 포어 저, 안명희 역, 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 (말글빛냄, 2005)도 참조하라. 그러나 보는 스포츠 에 대한 열광의 원인을 민족국가의 스포츠 이용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원래 보는 스포츠 자체가 상업적 동기에서 만들어진 것이듯이 자본의 이윤추구 수단으로서 보는 스포츠 의 측면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1960년대 이후 스포츠를 포함한 연예,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대한 투자가 커지면서 스포츠를 둘러싼 경제적 몫의 크기도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텔레비전 스포츠의 확대는 보는 스포츠 에 대한 열광을 더욱 부추기는 기반이 되었다. 이 외에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여가사회 가 성숙하고 보는 스포츠 가 여가활용의 주요 수단 중 하나로 부각되었다는 점 역시 열광의 기반으로 반드시 지적되어야 할 요인이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307

못하게 되었으며, 전통적인 지역 간 대립이 주요한 대립의 형태로 남게 되었다. 13) 또 이 과정에서 스포츠 스타를 상업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면서 특정 스타의 경우 탈지역화를 추구하는 경향도 나타나게 되었다. 시카고의 지역 영웅이 아니라 전 세계의 스타로 재구성 된 마이클 조던이나 세계적으로 다수의 팬을 거느리게 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14) 반면 하는 스포츠 에 대한 열광은 20세기 중반 이후 다소 침체를 겪은 편이다. 영국의 퍼블릭 스쿨에서 스포츠 참가를 강요하고 독일, 스웨덴 등에서 체조운동이 활발히 펼쳐진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민족국가 형성 초기에는 군사적 목적과도 결부되어 하는 스포츠 에 대한 참여가 널리 권장되었으나, 정작 스포츠가 국가 간 대립의 주요 수단 중 하나로 부상된 1950년대 이후 교과교육을 중시하는 교육개혁의 영향으로 일부 엘리트 선수를 제외하고 하는 스포츠 에 대한 대중적 참여는 오히려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하는 스포츠 에 대한 참여가 다시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건강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이다. 그 뒤로 하는 스포츠 는 전통적인 조직 스포츠의 틀에만 머물지 않고 넓은 의미의 신체활동 전반(fitness sports)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15) 1970년대 이후 하는 스포츠 의 붐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현대 스포츠의 발생 초기부터 스포츠 활동에서 배제되었던 여성들의 참여 확대이다. 여성들의 참여 확대는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여성운동의 활성화에 상당 부분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16), 스포츠의 의미가 군사적인 13) 엘리트 스포츠에 대한 집착의 약화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는 서구 국가는 아니지만 일본의 사례를 들 수 있다. 1964년 도쿄올림픽 때까지 엘리트 스포츠에 집중 투자를 했던 일본은 1960년대 말부터 점차 대중 스포츠로 방향을 틀기 시작한 것이다(한태룡, 체육특기자제도의 불편한 진실, 국가인권위원회 외, 제2회 스포츠 인권 정책포럼: 학원 스포츠 정책의 인권친화적 전환 방안, 서울, 2009. 5. 21. 38 50쪽). 이런 초점의 변화는 하는 스포츠 의 기반을 확대하고자 하는 정책으로 연결되었는데, 주요 서구 국가들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도 이런 방향을 취하고 있다. 14) 월터 레이피버 저, 이정엽 역, 앞의 책; 앨리스 캐시모어 저, 정준영 역, 앞의 책. 15) 유럽 국가들의 사례에서 이런 초점의 확대를 전형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서현수, 영국과 유럽의 스포츠 인권 정책 및 사례 연구,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 인권 증진을 위한 해외사례 보고 및 시민사회 공동 워크숍(국가인권위원회, 2009. 11. 2), 25 87쪽을 참조하라. 16) 1972년에 제정된 미국의 타이틀 IX가 대표적이다. 이 규정은 정부의 지원을 받는 모든 교육기관에서 남녀 스포츠에 대한 동등한 투자를 명령한 것이다. 그 결과 여성 스포츠 에 대한 투자가 급증함에 따라 여성들의 스포츠 참여 역시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되었 다. 타이틀 IX에 대해서는 앨리스 캐시모어 저, 정준영 역, 앞의 책, 226쪽을 참조하라. 308 정신문화연구 제34권 제3호

것에서 건강 유지로 확대된 것에도 도움을 받았다. 스포츠가 군사적 의미를 강하게 지니고 있었을 때는 군사력의 주축이 되는 남성의 참여가 당연히 강조될 수밖에 없었지만 건강에 대한 관심이 스포츠 활동의 기반을 이루면서 이런 구별의 의미가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여성들 은 넓은 의미의 신체활동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평가되는 데, 1990년대 이후 여러 서구 국가들에서는 여성에게 자신감을 주는 수단이자 자기표현의 도구로서 스포츠에 대한 참여를 널리 권장하고 있다. 17) 보는 스포츠 에 대한 열광이 집단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었다면 하는 스포츠 에 대한 열광은 시기에 따라 초점이 다소 달라진다. 현대 스포츠의 발전 초기에는 보는 스포츠 에서와 마찬가지로 집단에 기반을 둔 경향이 강했지만 1970년대 이후 하는 스포츠 의 새로운 붐에서는 집단과 무관하게 개인적 목적이 전면에 등장했던 것이다. 18) 특히 하는 스포츠 중에서도 전통적인 조직 스포츠가 아니라 건강을 위한 신체활동 이 중시되는 스포츠(fitness sports)가 확산된 것은 하는 스포츠 의 배후에 깔린 핵심 동기가 건강에 대한 고려임을 시사해준다. 19) 여기에 부분적으 로는 X 스포츠에 대한 열광과 같이 청소년 하위문화에 대한 욕구도 일정 부분 하는 스포츠 의 확산에 기여한 요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17) 서현수, 앞의 논문, 45쪽. 18) 물론 이는 지나친 단순화일 수 있다. 현대 스포츠 초기에 하는 스포츠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동기에도 인맥 형성과 같은 개인적 동기가 존재했고, 1990년대 청소년들에게 널리 유행했던 X 스포츠의 경우 하위문화의 형성이라는 집단적 의미의 영향력도 결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스포츠 참여의 주된 동기가 초기에는 집단주의적인 것이었으나 1970년대 이후 개인주의적인 것으로 바뀌어왔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19) 물론 건강에 대한 고려 역시 적정한 몸매를 계층의 표지로 보는 사회적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표면적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기는 하다. 이에 대해서는 정준영, 앞의 책, 169쪽을 참조하라.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309

III. 한국사회와 스포츠에 대한 열광 1. 스포츠에 대한 열광의 주요 계기들 그렇다면 한국사회에서 스포츠에 대한 열광은 어떤 식으로 나타났을 까? 그런데 스포츠에 대한 열광의 일반적 경향이 아니라 열광을 불러일으 켰던 구체적 계기와 그것의 의미를 분석하고자 할 때에는 다소의 난점이 존재한다. 어느 정도의 흥분을 불러일으켰을 때 열광이라고 부를 것인지 와 관련한 기준의 문제가 제기되기 때문이다. 근자의 사건과 관련해서는 텔레비전 시청률이나 언론에서의 노출 빈도와 같은 비교적 단일한 기준을 사용할 수 있다. 이런 기준에서 볼 때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은 김연아나 박태환의 올림픽 금메달 획득에 비해 훨씬 더 열광의 강도가 강했던 계기였으며, 김연아의 금메달 획득은 이를테면 태권도의 금메달 획득에 비해 더욱 열광을 불러일으킨 사건이었다. 하지만 매체환경이 2000년대 와 크게 달랐던 1990년대 황영조의 금메달 획득이나 1970년대 양정모의 금메달 획득, 또는 아예 텔레비전 방송이 존재하지 않았던 1930년대 손기정의 금메달 획득은 박태환의 금메달 획득에 비해 얼마나 더 또는 얼마나 덜 열광을 불러일으켰는가? 게다가 보는 스포츠 와 하는 스포츠 사이의 비교로 넘어가면 기준의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이에리사와 정현숙의 세계탁구 제패가 불러온 탁구 열풍과 2000년대 이후의 마라톤 열풍 중 어느 쪽이 더 큰 것이었으며, 박태환에 대한 열광과 마라톤에 대한 몰입 중에는 어느 것이 더 감정적 흥분을 불러일으켰는가? 이런 난점을 고려할 때 열광을 불러일으킨 계기를 찾는 것은 다소 복합적인 방법을 필요로 한다. 먼저 이미 상당한 시기가 지난 역사적 계기에 대해서는 스포츠사를 다룬 주요 서적을 참고해볼 수 있다. 이를테 면 한국체육백년사편찬회에서 펴낸 한국체육백년사 와 같은 자료에서 주요 계기로 취급한 것을 추출할 수 있다. 이들 자료의 경우 우리 체육계의 특성 때문에 국가주의적 성향을 강하게 지니고 있고, 올림픽 경기 중심으 로 편향되어 있다는 한계는 있지만 주요 역사적 계기를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임은 분명하다. 또 최근의 계기에 대해서는 언론보도 등을 참고하여 다소 직관적으로 주요 계기를 찾을 수 있다. 이 경우 역시 310 정신문화연구 제34권 제3호

언론의 편향성 때문에 다소의 왜곡을 피할 수는 없지만 스포츠에서의 열광을 확산시키는 주요 매체가 언론이라는 점을 고려해볼 때 언론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계기를 주요 계기로 삼더라도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 이렇게 볼 경우 우리 사회에서 스포츠에 대한 열광을 불러일으킨 주요 계기로는 일제 강점기의 엄복동과 손기정, 1960년대의 김기수, 1970년대 의 여자 탁구와 홍수환, 양정모, 차범근, 1980년대의 최윤희와 여자 양궁, 1990년대의 황영조와 박찬호, 박세리, 2000년대의 남자축구, 박지 성, 박태환, 김연아, 그리고 하는 스포츠 로 2000년대의 마라톤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20) 이 각각의 계기를 일일이 검토해보기에는 현실적 인 한계가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이들 계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일반적 특징에 대해서만 분석해보도록 하겠다. 먼저 각 계기의 시기와 내용을 표1 한국 스포츠에서 열광의 주요 계기들 계기, 인물 시기 내용 엄복동 1913 전 조선 자전차경기대회에서 우승 손기정 1936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 김기수 1966 한국 최초 프로권투 세계 챔피언 여자탁구 1973 한국 최초 세계 탁구선수권대회 우승 홍수환 1974 적지에서 최초로 세계 챔피언 획득 양정모 1976 광복 이후 올림픽 최초 금메달 차범근 1970년대 한국 선수 최초로 독일 분데스리가 진출 최윤희 1982 아시안게임 수영 3관왕 여자양궁 1980년대 이후 올림픽에서 주요 금메달 박스로 부상 황영조 1992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금메달 획득 박찬호 1990년대 한국인 선수 최초로 메이저리그 진출 박세리 1990년대 한국인 선수 최초로 LPGA 우승 남자축구 2002 월드컵 4강 진출 박지성 2000년대 한국 선수 최초로 영국 프리미어 리그 진출 박태환 2008 한국 최초 올림픽 수영 금메달 획득 김연아 2010 한국 최초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금메달 획득 마라톤 2000년대 하는 스포츠 의 가장 대표적인 종목으로 부상 20) 여기에 제시된 계기들이 우리 스포츠 역사에서 나타났던 주요 열광의 계기를 모두 포괄한 것은 아니다.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계기의 판단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논자에 따라서는 1970년대 프로레슬링의 영웅이었던 김일이나 수영의 조오 련, 1980년대 아시안게임 여자 육상의 스타였던 임춘애, 서울올림픽 남자탁구 단식 금메달리스트 유남규 등을 포함시킬 수 있고, 야구에서의 선동열이나 이승엽, 골프의 최경주 등도 주요 후보로 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표는 열광의 계기를 모두 포괄한 것이라기보다는 대표적인 사례들을 나열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311

간략히 정리해보면 표1과 같다. 앞에서 스포츠에 대한 열광이 어느 나라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비교적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했지만 위에 나열된 계기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열광에는 다소의 특수성도 존재한다. 먼저 서구 스포츠 선진국에서와 달리 계급이나 지역 등에 기반을 둔 열광은 그리 두드러지지 않는 반면 가장 큰 열광을 불러일으켰던 사례가 대부분 국가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일제 강점기의 경평축구나 1970년대 고교야 구처럼 지역에 기반을 둔 대립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열광을 불러일으 켰던 대다수의 사례는 국내적 대립이라기보다 국제적 대립의 속성을 지닌 스포츠 활동이었다는 것이다. 21) 일제 강점기의 엄복동이 사이클 대회에서 일본인을 누르고 우승을 거둔 것이 영웅으로 부상하는 주요 배경이 되었듯이 그 이후 영웅으로 부상한 존재들도 국제무대에서 한국 최초로 어떤 공훈을 세웠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두 번째로 이와 연관되어 우리 사회에서는 스포츠 스타보다 스포츠 영웅의 대두가 두드러진다. 스포츠 영웅이란 스타와 달리 공훈이 좀 더 강조되고 그가 속한 집단과 관련되어 규정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22) 우리 사회에서 스포츠에 대한 열광의 계기를 이루었던 주요 인물 중 이미지가 더 중시되고 상업적 활용 대상이 된 인물은 1990년대 중반까지는 거의 나타나지 않으며, 상업적으로 활용될 때에도 전형적인 스타에게서 볼 수 있는 이미지 형성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3) 이를테면 그 이미지가 공훈과 전혀 21) 한국체육백년사 의 목차에서 이런 편향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2장과 3장을 각각 세계정상을 정복한 한국 스포츠 와 세계정상에 도전하는 한국 스포츠 로 배치하 고 국내 스포츠는 지역별 스포츠와 학원 스포츠, 실업 스포츠로 나누어 각각 6, 7, 8장에 배치하고 있다. 22) 반면 스타는 어느 정도의 공훈을 전제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이미지가 좀 더 중시되고 집단과의 관련이 큰 의미를 지니지 않는 존재이다. 영웅의 속성에 대해서는 Vande Berg, Leah R., The Sports Hero Meets Mediated Celebrityhood, in Lawrence A. Wenner(ed.), MediaSport (Routledge, 1998), pp. 134 153을 보라. 또 스타의 일반적 인 속성에 대해서는 에드가 모랭 저, 이상률 역, 스타 (문예출판사, 1992)를 보라. 20세기의 가장 대표적인 스포츠 스타 중 한 명이었던 마이클 조던의 공훈과 이미지를 이용한 스타 만들기에 대해서는 월터 레이피버 저, 이정엽 역, 앞의 책을 참조하라. 또 스포츠 영웅과 스포츠 스타의 차이에 대해서는 정준영, 한국 스포츠와 일본, 한국 사회사학회, 서울대 일본연구소 공동학술대회, 한국과 일본 100년, 서울, 2010. 10. 8. 별도원고를 참조하라. 23) 그중 예외적인 존재로 꼽을 수 있는 인물은 홍수환과 최윤희 정도이다. 홍수환의 경우 적지에서 세계 챔피언을 딴 최초의 선수이기도 했지만 헥토르 카라스키야와의 대전에 서 있었던 4전 5기의 신화 가 보여주듯이 이미지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한 인물이었으 312 정신문화연구 제34권 제3호

별개로 구성되거나(박태환의 광고 이미지의 사례), 아니면 공훈과 너무 가까이 밀착되어 있는 것이다(박지성의 주요 광고 이미지 사례). 가장 최근의 스포츠 영웅 중 한 명이었던 김연아의 영웅 만들기 를 분석한 한 논문의 제목이 국민 여동생에서 국민 영웅으로 인 것은 이런 의미에서 매우 시사적이다. 24) 즉, 우리 사회에서 계기를 이루었던 대부분의 인물은 스포츠 스타라기보다는 스포츠 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 25) 세 번째로 스포츠 영웅이 대부분 국가와 관련되어 규정되며 국가 차원 이상으로 확대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현대 스포츠의 아마추어리즘에서 전통적으로 강조되어 오던, 인류 자체를 준거집단으로 한 영웅은 존재하지 않고 대부분 우리 민족이나 국가와 관련되어 영웅이 만들어진다. 26) 네 번째로 공훈의 내용과 관련하여 올림픽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큰 편이다. 이는 특히 우리 사회에서 올림픽이 일종의 메타 스포츠 로 되어 있는 것과 큰 관련이 있는 것으로, 올림픽에서의 성공은 곧 그의 공훈이 세계적으로 공식 인정을 받았다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된다. 27) 이는 우리 사회에서 스포츠에 대한 열광이 외부로부터의 인정에 대한 며(홍수환의 활동 시기는 유제두와 박찬희를 비롯해 프로권투 세계챔피언이 쏟아져 나오던 시기였다. 이들 여러 챔피언 중에서도 홍수환이 특히 두드러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대중적으로 형성된 그의 이미지 덕분이었다), 최윤희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떨어지 는 아시안게임에서의 금메달리스트였지만 뛰어난 외모가 뒷받침이 되어 영웅으로 부상 한 사례이다. 하지만 이들의 경우에도 스타성의 도달 범위가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스타와는 구별된다고 할 수 있다. 24) 남상우 김한주 고은하, 국민 여동생에서 국민 영웅으로: 김연아 영웅 만들기와 미디어의 담론 전략, 한국스포츠사회학회지 Vol. 23, No. 2, 61 85쪽. 25) 이 글에서처럼 스타와 영웅의 구분을 꼭 전제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2000년 이후 한국스포츠사회학회지에 수록된 논문의 제목을 살펴보면 스타라는 표현이 들어간 제목 의 논문은 1편인 반면(심지어 이 논문에서도 스포츠 스타의 영웅적 특성 이라는 표현 이 사용되고 있다) 영웅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제목의 논문은 4편에 이르러 2000년대 이후의 우리 스포츠에서도 영웅 담론이 지배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6) 서구의 스포츠에서는 민족의 영웅 못지않게 인류의 영웅을 강조하는 편이다. 이는 스포츠에서의 공훈이 인간의 육체적 한계를 넘어서는 것으로 설정되었던 것과 연관이 있는데 이를테면 맨발의 마라토너 아베베 등이 그런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 농구 스타 마이클 조던을 내세운 운동화 광고에 사용되었던 누가 인간을 날 수 없는 존재라 했는가? 라는 문구도 스포츠 스타나 영웅을 인간의 한계를 돌파하는 존재로 상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근자의 사례로는 고환암을 이기고 투르 드 프랑스 7연속 우승을 이룬 사이클의 랜스 암스트롱을 들 수 있다. 27) 올림픽이 메타 스포츠라는 것은 올림픽 종목이 곧 스포츠란 어떤 것인가를 판단하는 일종의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에 대해서는 김종엽, 쿠베르탱 남작의 현대 올림픽 창설, 이동연 외, 스포츠, 어떻게 읽을 것인가 (삼인, 1998), 29 50쪽을 참조하라.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313

욕구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차범근과 박찬호, 박세리, 박지성 등 올림픽과 관련없이 스포츠 영웅으로 부상한 존재들도 해당 분야에서의 세계적 인정에 등치될 수 있을 공훈과 관련되어 있는 존재들이다. 이는 적어도 보는 스포츠 와 관련한 우리 사회에서의 열광이 국가주의 또는 민족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임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것은 박찬호와 박지성의 인기가 국내 프로야구와 프로축구의 쇠퇴를 가져왔듯이 국내적 대립의식은 오히려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28)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계기가 촉발되었을 시점에서 유사한 정도의 열광을 불러일으킨 것이라 하더라도 그 지속기간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사라예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중국을 이기고 단체전 우승을 이룬 여자탁구는 당시 청소년들 사이에서 탁구 붐을 일으키고 상당한 기간 동안 탁구 인구를 늘리는 데 기여했으며, 박찬호와 박지성 등도 비록 직접 스포츠에 참여하지는 않더라도 메이저리 그 야구나 프리미어리그 축구에 대한 관심이 지속되도록 만들었으나, 양정모나 여자양궁, 최윤희, 황영조, 나아가 박태환과 김연아가 그와 유사한 붐을 만들어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또 같은 축구 종목에 서 세계적인 수준에 올랐으나 차범근으로 인해 촉발된 분데스리가에 대한 관심이 박지성으로 인해 촉발된 프리미어리그에 대한 관심과 비견될 만한 것이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는 열광이 지속되어 열풍으로 발전하 기 위해서는 계기를 뒷받침해줄 다른 요인들이 개입되어야 함을 시사한 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스포츠에 대한 열광의 지속을 만들어낸 주요 요인들은 무엇일까? 그중 한 가지는 종목의 특성이다. 엘리트 스포츠이면서 일상의 여가활 동으로 바로 전환될 수 있는 탁구와 달리 레슬링이나 권투 등의 투기 스포츠나 시설과 장비를 필요로 하는 수영과 피겨스케이팅 등은 일상의 여가활동으로 연결되는 데 여러 난점이 존재한다. 29) 또 매체환경의 28) 물론 여기에는 우리 프로 스포츠의 대립이 아래로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라기보 다 독재정권의 필요에 의해 프로 스포츠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위에서부터 인위적으 로 부과된 성격이 강하다는 점도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1970년대 고교야구의 인기를 등에 업고 대도시 중심으로 팀이 만들어진 프로야구에 비해 중소도시 중심이었 던 프로축구에서 그런 점이 더욱 두드러진다. 하지만 프로야구에서조차 대립의식은 약화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주요 국제경기가 개최될 때마다 프로야구의 관객 수가 큰 타격을 받는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29) 여기서 엘리트 스포츠라는 용어는 생활체육과 대비되어 전문 운동선수에 의해 이루어 314 정신문화연구 제34권 제3호

요소도 생각해볼 수 있다. 대중매체는 스포츠에 대한 열광을 만들고 그것을 지속시키는 데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매개요인이다. 차범근의 경우 전 세계를 포괄하는 매체의 망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시기에 활동함으로써 열광을 지속시킬 지속적인 정보 제공이 힘들었던 사례라 할 수 있다. 반면 케이블과 위성 텔레비전 등 전 세계를 연결할 커뮤니케이 션의 망이 고도로 발달하고 인터넷을 통해 정보의 탐색과 공유도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시대에 활동한 박찬호와 박지성의 경우 열광을 지속시 키기에 좀 더 유리한 환경에 있었던 편이다. 그리고 이는 열광의 지속과정 에서 대중매체뿐 아니라 열광에 참여하는 당사자들 사이의 개인 간 의사소통의 중요성도 시사해준다. 처음 열광의 폭발은 대중매체에 의존 했을지라도 인터넷을 통한 지속적인 정보 교류와 같은 것이 열광의 지속에는 더욱 중요한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점과 관련하여 시즌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가 창출되는 팀스포츠에 비해 간헐적으 로 개최되는 국제대회에 새로운 정보를 의존할 수밖에 없는 개인 스포츠 의 약점도 지적할 수 있다. 하는 스포츠 와 관련하여 유일한 계기라고 할 수 있는 마라톤의 경우 단일 계기이다 보니 특징을 잡아내기가 그리 쉽지 않다. 황영조의 마라톤 금메달 획득 이후에도 오랫동안 침체를 벗어나지 못했던 마라톤 인구가 2000년대 들어 갑자기 폭발한 것을 볼 때 국가주의와도 큰 관련이 없으며, 일반적인 달리기(조깅)가 아니라 마라톤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을 보면 건강이나 다이어트에 대한 관심이 주된 배경이 되었다고 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또 마라톤 열풍에는 직장이나 지역 등 다양한 기반 위에 형성된 동아리의 활동이 큰 몫을 담당했는데, 이는 서구사회에서와 달리 하는 스포츠 에 대한 참여가 개인적 차원의 요인에만 근거를 둔 것이 아니었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2000년대에 들어와 마라톤을 중심으로 갑자기 부상한 하는 스포츠 열풍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를 알기 위해 먼저 보는 스포츠 에 대한 열광의 양상과 그 의미에 대해 좀 더 살펴보기로 하자. 지는 스포츠 활동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때 전문 운동선수는 공식적으로 프로 선수로 분류되는 것과는 무관하게 운동을 직업으로 삼고 있거나 그를 추구하는 학생 선수를 모두 포함한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315

2. 스포츠에 대한 열광의 양상 한국사회에서 보는 스포츠 에 대한 열광의 양상을 보면 2000년대를 전후하여 다소의 변화가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변화는 무엇이었으 며 그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대표적인 몇 가지 계기를 취해 그 계기에 대한 반응이 어떻게 나타났는지 신문기사를 검색해보았다. 여기서 검색 대상으로 삼은 신문기사는 1936년 베를린올 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손기정과 1973년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대 회 여자단체전 우승을 일궈낸 여자탁구 대표팀,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에서 광복 이후 최초의 금메달을 획득한 양정모, 1984년 L.A. 올림픽에서 3개의 금메달을 획득한 여자양궁 대표팀,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수상한 황영조,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에 성공한 축구대표팀, 2010년 토론토 동계 올림픽에서 피겨스케이팅 금메달을 수상한 김연아 등에 대한 기사이다. 계기는 주로 올림픽 금메달 수상을 중심으로 했으며, 여기에 1970년대의 대표적 계기였던 여자탁구 세계선 수권대회 우승과 2000년대 스포츠 열풍의 대표 계기였던 월드컵 4강 진출을 추가했다. 검색 대상 기사는 1936년 올림픽에서 일장기 말소 사진 등재를 통해 화제를 낳았던 동아일보 의 사례를 고려하여 모두 동아일보 기사에서 골랐다. 먼저 일제 강점기에 있었던 손기정의 사례에 대해 살펴보자. 손기정의 경우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동아일보 가 무기정간 처분을 받음으로써 이 계기에 대한 대응을 다룬 직접 기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타 자료를 통해 손기정의 금메달 획득에 대한 뜨거운 반응은 쉽게 확인된다. 예를 들어 1936년 8월 26일 동아일보사가 주최한 올림픽 기록영화 상영회는 불과 10분 남짓의 짧은 분량이었지만 당시 조선에서 가장 큰 극장이었던 부민관의 좌석을 꽉 메운 관객들의 뜨거운 갈채를 받았다. 30) 또 금메달 획득 후 두 달 가까이 지난 후 손기정이 귀국했을 때에도 여러 신문사 주최의 환영행사가 이어졌다. 하지만 총독부가 조선인들의 환영행사를 완전히 차단하지는 않았더라도 가급적 통제하려 했기 때문에 거대한 대중 참여 행사가 마련되기는 힘들었다. 31) 즉, 일제 30) 천정환, 앞의 책, 281쪽. 31) 한국체육백년사편찬위, 앞의 책, 86쪽; 천정환, 위의 책, 301 302쪽. 316 정신문화연구 제34권 제3호

강점기에 스포츠에 대한 열광은 강력한 기반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외적 표출 창구를 제대로 찾지 못한 채 내연의 상태로 머물렀다고 할 수 있다. 광복 이후 그동안 억압되었던 열광은 밖으로 표출될 기회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신문 기사를 참조해볼 때 1970년대부터 주요 열광의 계기에 대한 반응은 거의 동일한 형태를 띠었음을 알 수 있다. 선수단이 개선하면 공항에서의 환영행사 후 카퍼레이드를 벌이고 환영대회에 참여하는 수순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1973년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 권대회 여자단체전 우승팀이 귀국했을 때의 상황을 묘사한 다음 기사가 전형적이다. 대한항공 502기가 도착, 기수 강문수 선수를 선두로 김창원 단장과 임원들 그리고 정현숙, 박미라, 나인숙, 이에리사, 김순옥 등의 차례로 선수단이 우렁찬 개선행진곡의 선율 속에 트랩을 내려오자 송영대를 메운 환영객석에서는 만세소리 가 터져 나왔다. 천영석 코치에 의해 높이 추켜올려진 코르비용컵. 짙은 초록색 유니폼으로 단장한 선수들의 가슴에 빛나는 금메달이 유난히도 번쩍였다. 서울시연도: 공항램프를 나온 19명의 선수단은 5019부대 무개차 12대에 분승, 김포공항을 출발하여 제2한강교 영등포구청 한강인도교 삼각지 서울역 시청 앞 소공동을 거쳐 국민환영대회장인 시청앞 광장에 이르는 카퍼레이드에 들어갔다. 시청 앞 국민환영대회: 오후 1시 정각 육군 브라스 밴드가 개선의 팡파르가 울리고 오색의 곤페티 가 하늘을 뒤덮자 국민환영식이 시작됐다. 광장을 메운 시민 학생들은 모두 뜨거운 마음으로 김창원 단장의 귀국보고를 들었으며 이광호 감독이 선수를 소개할 때 박수소리는 4월의 하늘에 메아리쳤다. 32) 국내에서 개최되어 별도의 개선행사가 없었던 2002년 월드컵에서도 유사한 상황을 찾아볼 수 있다. 월드컵이 끝난 후 2002년 7월 2일에 국민대축제가 개최되어 23만여 명의 서울시민이 참여했으며, 선수단은 이전의 계기에서와 마찬가지로 축하공연에 참여하고 카퍼레이드를 벌였 던 것이다. 33) 조사 대상이 되었던 계기들 가운데 환영대회와 카퍼레이드 가 없었던 유일한 계기는 김연아가 금메달을 획득한 2010년 동계 올림픽 32) 동아일보, 1973년 4월 23일자. 33) 동아일보, 2002년 7월 3일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317

뿐이었다. 동계 올림픽 선수단은 귀국하는 공항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후 바로 태릉선수촌으로 이동했으며, 그 후의 공식행사도 대통령과의 오찬이 전부였던 것으로 되어 있다. 34) 그러나 동일한 형식 속에서도 2002년 월드컵과 그 이전의 계기들 사이에는 하나의 중요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 이전까지는 열광에 동참했 던 시민들이 카퍼레이드가 벌어지는 길의 연도에서 국기를 흔들거나 박수를 치고 소리를 지르는 등의 수동적 태도를 보여주고 환영식에서도 단순히 구경꾼으로 머물렀다면 2002년 월드컵에서는 이 수동적 태도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선수단에게 다가가려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 6시 30분부터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몰에서 시작된 카퍼레이드는 밀려드는 인파를 뚫지 못해 선수들은 30분 만에 대표팀 버스로 갈아타고 시청 앞 광장으로 이동했다 는 보도가 이를 보여준다. 35) 이런 경향은 2010년 김연아를 비롯한 동계 올림픽 선수단의 귀국 기자회 견에서도 되풀이되어 팬들은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세계 신기록을 갈아 치우며 여왕에 등극한 그녀의 모습을 보기 위해 치열한 자리싸움을 벌였다. 그녀의 얼굴을 담기 위해 팬들이 터뜨린 휴대전화 카메라 세례는 사진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거나 기자회견장으 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선수단을 둘러싼 수백 명의 경호진은 몰려드는 인파 때문에 진땀을 뺐다 는 언급이 나타나는 것이다. 36) 이는 2000년대를 기점으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스포츠에 대한 열광이 좀 더 표출적인 형태로 바뀌었음을 시사한다. 37) 34) 동아일보, 2010년 3월 3일자. 동계 올림픽 선수단의 귀국 시 카퍼레이드가 빠졌던 것이 3월의 쌀쌀한 날씨 때문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점은 한여름에 귀국한 2008년 베이징올림픽 선수단이 공항에서의 기자회 견 후 곧바로 세종문화회관으로 이동해 해단식을 갖고, 이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환영 국민대회 에 참여하기 위해 세종문화회관에서 서울광장까지의 짧은 거리를 도보로 이 동했을 뿐이라는 것에서 확인된다( 세계일보, 2008년 8월 26일자). 게다가 과거 유사 한 행사가 개최되었을 때와 달리 동아일보 는 관련 기사를 아예 게재하지 않았으며 행사가 끝난 열흘 후 기자의 칼럼으로 행사 내용을 비판하는 기사를 실었다( 동아일 보, 2008년 9월 5일자 메달리스트만의 잔치 올림픽 선수단 환영식, 2008년 9월 5일자). 35) 동아일보, 2002년 7월 3일자. 36) 동아일보, 2010년 3월 3일자. 37) 물론 이런 경향이 2000년대에 처음 나타난 것은 아니다. 황영조가 금메달을 획득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선수단의 개선행사에서도 공덕동 로터리 등 여러 곳에서는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으로 선수단 퍼레이드가 잠시 지체되기도 했다 ( 동아일보, 1992년 8월 13일자)는 언급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때까지는 아직 표출적 318 정신문화연구 제34권 제3호

결국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열광의 표현 방식이 좀 더 표출적인 것으로 바뀌었고, 2000년대 말의 어느 시점에서 스포츠에 대한 열광의 형태가 환영대회와 같은 집단적인 것에서 탈피하여 기자회견장에 참여하는 것과 같은 개인적 형태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의 의미는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IV. 스포츠 열풍의 이해 1. 스포츠 영웅과 민족주의 스포츠에 대한 열광의 기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좀 더 일반적으로 군중의 열광 현상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고전적 군중론의 저자인 르봉은 군중이 보여주는 열광의 기반으로서 집합적 무의식을 상정한다. 그에 따르면 군중이 보여주는 공통적인 인성의 일반적인 자질들은 한 민족을 이루는 정상인들이라면 대부분 비슷한 정도로 지니는 것으로 서, 무의식에 의해 조종되며 군중 안에 공통적으로 자리 잡는다. 38) 그렇다면 이러한 집합적 무의식의 기반은 무엇일까? 르봉에 따르면 우리의 의식적 행위들은 무엇보다 유전적 영향 아래 만들어진 무의식적 토대로부터 파생된다. 이 토대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며 민족의 영혼을 구성하는 무수한 잔재들을 포함한다. 39) 여기에서 르봉은 유전적 요인과 같은 자연적 요소를 좀 더 강조하고 교육은 오히려 개인 간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요소로 생각한다. 하지만 상상의 공동체 라 할 수 있는 민족에게 이처럼 공통된 유전적 속성이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 다. 40) 그럼에도 군중의 행위를 틀 지우는 집합적 무의식의 존재라는 르봉의 가정은 일정한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 민족의 구성원이 공통된 행위가 공식 행사의 틀을 방해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이는 표출적 행위가 1990년대 이후 서서히 발전되어오다가 2000년대 이후 폭발한 것임을 시사한다. 38) 귀스타브 르봉 저, 차예진 역, 군중심리 (W미디어, 2008), 28쪽. 39) 위의 책, 27쪽. 40) 홉스보옴, 랑거 편, 최석영 역, 전통의 날조와 창조 (서경문화사, 1996); 베네딕트 앤더슨 저, 윤형숙 역, 상상의 공동체: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에 대한 성찰 (나남출 판, 2002).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319

유전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근대 민족국가에서의 공통 교육과 같이 그들에게 공통성을 제공해줄 수 있는 어떤 요인이 존재한다면 이 요인이 집합적 행동의 기반이 될 수 있으리라는 점에서이 다. 즉, 가정이나 학교에서의 공통 교육을 통해 스포츠에 대한 일정한 태도를 배양받는다면 이것이 무의식처럼 침잠되어 있다가 올림픽 금메달 획득과 같이 스포츠와 관련한 특정한 계기가 주어졌을 때 특정한 형태의 반응, 말하자면 스포츠에 대한 열광으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결국 군중의 열광의 기반이 되는 집합적 무의식은 어릴 때부터의 공식 비공식 교육과 문화적 환경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 살펴보아야 할 요소는 우리 사회의 교육이 어떻게 우리 사회 구성원들로 하여금 스포츠에 열광하도록 만들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스포츠는 이미 일제 강점기부터 민족주의를 담지하 는 역할을 담당해왔으며 영웅 배출의 산실 역할을 해왔음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다음 질문은 여러 영역 중 왜 스포츠가 이런 중심적 역할을 수행해왔는가가 될 것이다.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사회가 경험한 식민지적 전통이다. 사실 식민지의 상황에서 민족주의적 영웅 배출의 가장 전형적인 영역인 정치 부문의 역할은 극도로 축소될 수밖에 없다. 식민모국이 식민지에서 의 지배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 영웅의 출현을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이 다. 이처럼 여타 영역에서 민족주의의 표출과 영웅 배출이 제한된 상황에 서 스포츠 영역은 그나마 이것이 가능한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일제의 지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도입된 스포츠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민족주의적 영웅을 배출할 기반으로 작용했는데, 이들 영웅 이 어느 정도의 활동기반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식민모국의 입장에서 볼 때 이것마저 억압하기에는 지배를 위한 스포츠의 순기능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41) 물론 일제는 식민지적 지배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스포츠 활동과 그 의미를 가능한 한 축소하고자 노력했지만 스포츠 41) 일제는 1911년 교육칙령과 총독부령 등을 통해 보통학교와 고등보통학교의 교육규칙을 제정했는데 이를 통해 학교교육에서 체조교육을 중요 부문으로 설정하고 있다. 여기에 서 공히 체조교육의 목적은 신체의 각부를 고르게 하여 자세를 단정히 하고 정신을 쾌활하게 하며, 아울러 규율을 지키고 절제를 숭상하는 습관을 기름 으로 설정되어 있어 일제의 지배에 순응하는 인물을 양성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오동섭 편저, 근대체육사 (형설출판사, 1992), 262 263쪽. 320 정신문화연구 제34권 제3호

교육을 완전히 포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민족주의적 영웅이 나타날 기회는 언제나 존재했다. 일제 강점기의 대표적 스포츠 영웅인 엄복동과 손기정은 이런 배경하에서 출현했다고 할 수 있다. 42) 광복 이후에는 분단의 현실이 스포츠 영웅에 대한 집착을 지속시킨 기반이었다. 분단의 현실은 민족에 앞서 이념이 영웅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도록 만들었으며, 특히 민족과 관련하여 약점을 지니고 있던 남한의 정치 지도자들은 정치와 연관하여 민족주의의 표출을 오히려 억압하는 정책을 폈다. 43) 그 결과 여타 구식민지 국가들과 달리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 지도자가 민족의 상징으로서 영웅이 되는 데 한계가 있었으며, 이런 상황에서 과거 민족주의적 영웅의 산실이었던 스포츠에 대한 기대가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자신의 경력이 지닌 약점 때문에 민족주의의 전치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할 수밖에 없었던 박정희 정권에서 스포츠 민족주의의 강조, 스포츠의 정치적 이용의 증대가 이루어졌던 점은 의미 심장하다. 마지막으로 지난 세기까지 한국이라는 국가가 세계체제상에서 볼 때 약소국에 머물러 있었고 그 결과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다수가 약소국 의식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약소국의 경우 정치적 영웅을 제외하고 영웅을 배출하는 데 한계가 있다. 학문이나 예술, 심지어 대중문 화의 영역에서도 영웅이 배출되려면 어느 정도의 사회적 기반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약소국 의식을 지니고 있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분단의 현실 때문에 정치적 영웅 배출이 억제되었던 현실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영웅에 대한 갈망이 매우 강했던 편이다. 매년 발표되 는 노벨상 수상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과도한 관심과 정경화, 정명훈과 조치훈 등 예능 영역에서의 영웅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과도한 열광이 모두 이런 현실과 연결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과거 김대중 대통령의 평화상 수상 이전까지 노벨상 수상은 계속 실패를 겪었으며, 주로 외국을 활동 공간으로 삼고 있는 예능 분야의 영웅들은 42) 일제 강점기의 우리 사회에서 스포츠가 지녔던 의미와 주요 스포츠 영웅에 대해서는 천정환, 앞의 책을 참조하라. 43) 독재정권에서 민족보다 이념을 앞세웠던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는 1986년 당시 신민당 국회의원이었던 유성환 의원이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대한민국 국시는 반공보다는 통일이어야 한다 는 발언을 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던 사건 을 꼽을 수 있다. 이 사건은 독재정권이 자주 동원했던 민족이 단순한 수사적 용어였음 을 보여준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321

우리 사회 구성원들과의 일상적 접촉이 제한되어 열광의 기반으로서는 한계가 존재했던 편이다. 반면 영웅 배출의 산실로서 스포츠는 여타 영역에 비해 여러 가지 이점을 지니고 있다. 우선 정의상 스포츠는 이념과 전혀 무관한 순수한 영역으로 상정되어 있어 이념적 지향과 무관하게 누구나 수용할 수 있다. 44) 월드컵이나 마라톤의 상황에서 볼 수 있듯이 스포츠는 약소국에 서도 일정하게 성과를 올릴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또 스포츠는 예능 영역과 달리 업적 산정의 기준이 명확하다는 이점도 지니고 있다. 정명훈의 콩쿠르에서의 입상이 콩쿠르 자체 위상에 대해 보통 사람들이 거의 이해하기 힘든 보충설명을 필요로 하는 것과 달리 올림픽이나 월드컵에서 거둔 업적에 대해서는 거의 그런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45) 마지막으로 스포츠는 사회적 열망 수준의 발전 정도에 맞추어 영웅의 지역적 기준을 확대하기에도 용이하다. 말하자면 처음부 터 세계적 수준에 집착할 필요 없이 동남아시아 수준, 아시아 수준, 세계 수준으로의 기준 확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46) 결국 이상의 요인에 힘입어 스포츠는 우리 사회에서 민족주의와 결합하기에 유리한 환경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스포츠가 군중의 열광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유리한 기반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특정 시기에 그 열광이 폭발되려면 특정한 촉발요인이 필요하다. 군중의 심리학을 의도하는 르봉은 이를 피암시성 이라는 용어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의 관점은 군중을 지나치게 수동적이고 44)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박정희 정권에서 학원 스포츠 선수의 전문화를 강화하고 학습 기회를 박탈한 것은 스포츠 영웅을 빨리 배출해야 한다는 강박과 아울러 스포츠의 탈이념화를 더욱 강화하려 했던 맥락에서도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45) 1974년 정명훈이 구소련에서 열린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2위로 입상한 것은 민족적 쾌거 로 설명되며, 카퍼레이드와 같은 열광을 불러일으킨 사건이었다. 하지만 차이코프 스키 콩쿠르가 과연 어느 정도의 국제적 위상을 지니고 있고 거기에서 입상한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명확히 이해한 사람은 극소수였다고 할 수 있다. 46)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스포츠 영웅은 아시아 수준에서 세계 수준으로 그 범위가 확산되 어온 것을 볼 수 있다. 1970년대까지 동남아시아권에서의 성적만으로도 높은 인기를 누린 축구 대표팀이나 국제 수준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음에도 아시아권의 성적만으 로 높은 인기를 누린 농구의 신동파의 사례가 그를 보여준다. 반면 올림픽에서의 금메 달 획득이 일상화되었던 1980년대 중반 이후 아시아권에서의 성적만으로 그런 열광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종목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아시안게임에 서의 금메달로 대중적 인기를 누렸던 임춘애와 최윤희의 사례는 전형적인 1980년대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322 정신문화연구 제34권 제3호

비논리적인 존재로 보는, 과도하게 부정적인 시각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지니고 있다. 르봉의 시각에서 보자면 군중이란 사전에 형성된 집합적 무의식에 의해 일정한 정향을 지니게 된 존재로서 특정한 시기에 적절한 암시가 이루어지면 이런 정향을 폭발적으로 표출하는 존재이기 때문이 다. 그의 시각이 군중 현상의 중요한 한 측면을 포착하고 있기는 하지만 군중을 지나치게 동질적인 존재로 본다는 점도 분명하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 시기에 그에 열광했던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 대한 분석에서 볼 수 있듯이 군중은 매우 다양한 욕망을 지니고 있으며, 독특한 의미를 지닌 채 군중 현상에 참여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47) 여기서 군중의 자발성을 포섭하기 위해서는 조지 레이코프가 제시하는 프레임의 개념이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레이코프는 각 민족이나 사회에 특유한 은유의 체계를 상정하면서 특정한 계기로 인해 이 은유의 체계가 동원되도록 격발되면 문화적 환경 속에서 오랫동안 이 은유의 체계를 내재화한 사람들은 그 계기에 대해 이 은유의 체계가 이끄는 대로 판단을 내리게 된다고 한다. 48) 특히 레이코프는 이 은유의 체계가 완벽한 통일성 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어서 촉발 계기가 어떤 식으로 주어지는가에 따라 서로 다른 은유의 연쇄를 이끌어낼 수 있고 그 결과 계기에 대한 판단도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는 계기에 대한 판단은 설사 비논리적 성격을 지니고 있더라도 내적으로는 47) 2002년 월드컵에 열광했던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성에 대해서는 안민석 정준영 편, 월드컵, 그 열정의 사회학 (한울, 2002)을 참조하라. 군중과 다소 성격이 다르기는 하지만 대중매체 수용자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욕구는 1980년대 이후 문화연구 에서 주요 주제로 부상한 바 있다. 이에 대해서는 Morley, David, Television Audiences & Cultural Studies(Routledge, 1992)를 참조하라. 48) 프레임 개념에 대해 가장 명시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책으로는 조지 레이코프 저, 유나영 역,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삼인, 2006)를 보라. 또 프레임 개념이 도출될 수 있도록 해준, 은유에 대한 레이코프의 이론적 설명을 담고 있는 책으로는 G. 레이코프 M. 존슨 저, 노양진 나익주 역, 삶으로서의 은유 (도서출판 박이정, 2006)와 Lakoff, George, Women, Fire, and Dangerous Things: What Categories Reveal About The Mind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7) 등을 참조하라. 한편 세계를 특정한 틀에서 보도록 만들어주는 관점으로서의 프레임 개념은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개념과도 일정 한 연결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개념이 과학과의 엄밀한 대비를 상정하고 허위의 의미를 담지하고 있는 것과 달리 레이코프의 프레임 개념은 좀 더 중립적이어서 프레임을 만들어내는 주체의 의도성을 가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을 지니고 있다. 물론 레이코프 자신은 정치적 프레임과 관련하여 의도성을 가정하 고 있지만 은유에 대한 일반적 논의는 반드시 의도성을 전제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323

논리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인지되는데, 이처럼 은유의 연쇄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군중 속의 각 개인이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인식은 군중을 지나치게 수동적으로 파악할 위험성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들어줄 수 있다. 또 레이코프의 프레임 개념은 프레임의 문화적 구성을 전제하고 있어 프레임을 의도적으로 만드는 주체를 반드시 상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 역시 지니고 있다. 이때 프레임을 환기시키는 촉발요인은 시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현대사회에서 대표적인 촉발요인으로는 역시 대중매체를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과거 우리 사회에서 열광의 폭발이 일어났을 때에도 언론이 수행했던 중요한 역할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점과 연관하여 2000년대 우리 사회에 존재했던 스포츠에 대한 열광의 대표적 사례, 즉 2002년 월드컵에서의 열광과 그 전 시기의 스포츠에 대한 열광의 차이를 찾아볼 수 있다. 먼저 2002 월드컵에서의 열광은 그 전 시기와 주도세력에서 다소 차이를 지니고 있다. 열광의 주체가 군중이라고 한다면 그 군중의 주요 구성원들이 과거와 차이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과거 군중의 중심에 상대적으로 기성세 대, 그중에서도 성인 남성이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고 청소년은 관제적으로 동원되는 대상이었다면 2002 월드컵에서는 관제적 동원의 성격이 거의 사라지고 자발적으로 참여한 청소년과 여성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49) 두 번째로 열광의 표출 방법에 대해 지적할 수 있다. 권위주의 정권하에 서 주로 사용되었던 열광의 표출 방법이 카퍼레이드를 펼치는 스포츠 영웅을 보며 인도에서 국기를 흔들거나 박수를 치는 것이었다면, 2002년 월드컵에서는 거리로 쏟아져 나와 온 몸을 사용해 열광을 표출하는 방법이 각광을 받았다. 차도와 인도로 구획된 경계의 바깥에서 열광을 표출하던 과거의 방법이 소극적이고 절제된 방법이었다면, 2002년 이후 에는 이 경계를 허무는 적극적이고 표출적인 방법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는 것이다. 50) 49) 2002년 월드컵에서 청소년과 여성이 열광의 주요 주체가 된 배경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분석이 이루어진 바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안민석 정준영 편, 앞의 책에 실린 여러 논문을 참조하라. 50) 이런 열광의 표출 방법은 대중문화 스타에 대한 팬 집단의 태도와 상당한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는 2002년 월드컵에서 각광을 받았던 열광의 주요 주체로서 청소년과 여성이 팬 집단의 주요 구성원이기도 하다는 점과 연관을 지니고 있다. 324 정신문화연구 제34권 제3호

세 번째로 대중매체의 역할이 두드러졌다는 점이 지적된다. 영웅의 창출에서 대중매체의 역할은 언제나 적지 않은 것이었지만 2002년 월드컵 에서는 대중매체가 열광의 표출 방법이 확산되는 데에도 큰 기여를 했다는 점에서 이전과 차이를 보였다. 2002년 월드컵에서 가장 각광을 받았던 이른바 거리 응원의 참여자 수의 변화가 이를 보여준다. 첫 번째 경기였던 폴란드전까지만 하더라도 축구 국가대표팀 팬클럽인 붉은 악마를 중심으로 상대적으로 그리 규모가 크지 않았던 거리 응원단 은 대회가 진행되고 대중매체가 이를 집중조명하면서 폭발적으로 늘어나 기 시작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군중의 자발성을 담아낼 틀로서 인터넷을 비롯한 다양한 뉴미디어가 발전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그 이전까지 스포츠에 열광했던 군중이 동원된 군중을 제외하면 서로 간의 소통이 많지 않았던 일종의 우연적 군중 이었다면, 2002년 월드컵에서는 다양한 통로를 통해 서로 간에 활발한 소통을 주고받으며 함께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군중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특히 인터넷은 과거의 대중매체가 일회적 보도로 그쳤던 것과 달리 지속적으로 관련 소식을 전달할 뿐 아니라, 열광을 공유할 장까지 제공해주었다는 점에서 열광의 폭발력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2. 개인주의적 욕구의 대두 위의 분석이 보여주듯이 우리 스포츠는 오랫동안 민족주의적 영웅을 창출하는 통로로 기능해왔고 그를 통해 대중의 열광을 유도했다. 하지만 1990년대 말 이후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스포츠와 관련하여 이제껏 억눌려왔던 새로운 욕구가 분출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개인의 표현 수단으로 스포츠를 이용하고자 하는 욕구였다. 과거 우리 스포츠가 집단주의적 열광의 통로였다는 점에 대비하여 이를 스포츠의 개인화라고 부를 수 있다. 스포츠의 개인화가 발전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배경이 존재한다. 먼저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민족주의적 의식 자체가 약화된 점을 꼽을 수 있다. 서세동점의 압박에 의한 강제적 개방과 그에 뒤이은 근대화 과정을 거치며 약소국 의식을 깊이 내면화했던 우리 사회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325

구성원들에게 민족주의는 집단적으로 이를 극복할 통로였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의 급속한 산업화 덕분에 약소국 의식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게 되고 독재정권이 민족주의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에 대한 반성이 이루어지면서 민족주의적 의식도 서서히 약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스포츠 분야에서는 1984년 L.A. 올림픽을 기점으로 올림픽에서의 뛰어난 성과가 일상화되고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의 정치적 성격에 대한 성찰이 광범위하게 확산되면서 그런 경향이 더욱 강해졌다. 산업화 이후 성장하여 약소국 의식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청소년 층을 중심으로 스포츠에 대한 비교적 순수한 열광이 출현하게 된 것은 이런 배경에서이다. 51) 1990년대 이후 여러 조사에서 통일 비용 등에 대한 관심이 대두하면서 통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증가한 것은 민족주 의의 약화를 암시하는 대표적 지표라 할 수 있다. 스포츠에서 이는 한일 간 대결의 중요성이 약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52) 두 번째로 IMF 환란의 영향을 꼽을 수 있다. 환란의 과정에서 강제적으 로 이루어진 구조조정으로 인해 산업화 과정에서 허구적이나마 어느 정도 유지되었던 집단적 보살핌의 체제가 무너지고 개인이 스스로를 보살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집단주의적 열광의 기반이 훼손되도록 만들었다. 세 번째로 공동체의 약화라는 요인도 빼놓을 수 없다. 보는 스포츠 에 대한 열광이 집단주의적 성향을 지니고 있었듯이 그런 열광이 지속되려면 일정한 집단의 기반이 존재해야 한다. 프로야구나 과거 고교야구 또는 학원 스포츠 등에서 볼 수 있는 지연과 학연에 기반한 열광은 그 대표적 사례이다. 하지만 산업화 과정에서 이동이 잦아지고 수도권 중심성이 심화되면서 이런 집단의 기반은 급속히 약화될 수밖에 없었으며, 여러 자료에서 보이듯이 핵가족 중심성이 강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51) 이런 순수한 열광은 1980년대 말 이후 배구와 농구의 인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 종목의 국내 리그가 청소년들에게 광범위한 인기를 끈 것은 국제대회 중심이었던 우리 스포츠에 대한 주목의 경향과 크게 달라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이들 스포츠의 인기는 뛰어난 용모를 지닌 스타 선수 중심으로 이루어짐으로써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던 1980년대 프로야구의 인기와도 차별성을 지닌다. 52) 2010년 동계 올림픽 피겨스케이팅에서 한일 간 대결을 벌였던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경기에 대한 반응이 대표적이다. 과거 우리 스포츠에서 일본은 대표적인 적대국가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김연아에 대한 압도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아사다 마오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그리 두드러지지 않았던 것이다. 스포츠에서 일본에 대한 의식의 변화에 대해서는 정준영, 앞의 논문을 참조하라. 326 정신문화연구 제34권 제3호

근자에 들어와 인터넷이 집단을 형성하는 기반으로 새로이 대두하고 있으나 지역과 세대를 아우르는 인터넷의 특성 때문에 그 결집력은 과거의 집단에 비해 약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상의 요인으로 2000년대 우리 사회에서는 스포츠의 개인화가 두드러지게 되었다. 이는 스포츠에 대한 집단적 열광이 나타나더라도 그런 집단성이 과거와 같이 비교적 동질적인 욕망에 근거한 것이라기보다 분화된 욕망이 표현 형태만 동일한 모습으로 표출된 결과일 가능성을 시사해준다. 53) 즉, 일제 강점기부터 지속된 교육과 스포츠 영웅을 만들어 냈던 문화적 전통에 의해 스포츠를 바라보는 특정한 프레임이 설정되어 있어 이 프레임에 입각하여 스포츠에 대한 개인적 욕망을 재조직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각 개인이 지닌 욕망에는 서로 차이가 있더라도 프레임의 작용에 의해 욕망이 표출되는 형식에는 유사성이 존재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욕망의 분화를 반영하여 표출 형식의 제일성은 과거에 비해 약화된다. 2000년대 이후 카퍼레이드와 환영축제 같은 집단성의 표현 형태가 약화되고 열광의 표현에서 표출적인 경향이 두드러 지게 되었다는 점은 이런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욕망의 분화와 표출 형식의 동일성 사이의 모순은 불가피하게 욕망의 불충분한 충족이라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리고 이는 욕망을 더 잘 충족시킬 수 있는 대안적 표출 형태를 추구하도록 만든다. 2002년 월드컵에서 심지어 시합과 무관하게 거의 일탈적인 수준의 표출적 행위가 출현했던 것은 이 대안적 표출 형태의 모색 결과라 할 수 있다. 나아가 이런 변화는 본질적으로 집단주의적 기반을 전제하는 보는 스포츠 의 틀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스포츠에 대한 열광을 담아낼 틀로서 더 이상 충분한 적합성을 지니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2000년대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은 보는 스포츠 와 다른 형태로 열광을 담아낼 틀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53) 분화된 욕망의 표출 형태가 동일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이유로는 상이한 표출 형태를 발달시킬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지 않고 뒤에서 보게 되듯이 집단주의적 잔재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이 시기의 열광을 이끌었던 주요 집단인 청소년과 여성이 모두 상대적으로 자원이 부족한 집단이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327

3. 스포츠의 개인화와 하는 스포츠 열풍 2002년 월드컵은 한국사회에서 보는 스포츠 에 대한 열광이 가장 고조되도록 만든 계기였다. TV 시청률은 60%를 넘나들었고 대중매체 추산 700여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거리응원에 동참했다. 54) 일부의 사람을 제외하고 거의 전 국민이 월드컵의 분위기에 휩쓸림으로써 그야말 로 열풍이라고 부를 수 있는 현상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은 과거의 열광이 새로운 형태로 바뀌는 분기점이 되기도 했다. 민족적 영웅에 대한 환호는 동일하게 유지되었으나 그를 표현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해졌으며, 여성과 청소년의 적극적 참여와 같이 열광의 주체에서도 변화가 나타났고,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자발성 의 표출이 두드러졌다는 점에서이다. 그리고 이 자발성의 표출에 대한 욕구는 보는 스포츠 에서 한계를 느끼고 여가사회의 발전 등 다른 요인들 의 도움에 힘입어 하는 스포츠 열풍을 만들어내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2000년대에 폭발한 마라톤 열풍은 바로 그런 변화의 결과였다. 중산층을 중심으로 1980년대부터 시기별로 각광을 받았던 테니스와 볼링, 스키, 골프 등에 대한 참여 경험이 더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일정 시점에서 폭발되었을 때 마라톤 열풍을 낳게 되었다는 것이다. 표2에서 드러나듯이 지난 10여 년간 생활체육 동호인 클럽과 회원 수는 꾸준히 증가했으나 2002년과 2003년 사이에 가장 큰 폭의 신장세를 보였던 점이 이를 보여준 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여러 스포츠 종목 중 마라톤이 하는 스포츠 열풍을 주도하는 대표적 종목으로 부상한 데에는 크게 세 가지 요인이 결합된 것으로 보인다. 먼저 마라톤 자체가 지닌 속성을 꼽을 수 있다. 마라톤은 계절이나 장비, 함께 참여할 동반자 등이 참여의 제한요인으로 작용하는 여타 종목에 비해 언제 어느 때나 참여가 용이하며, 경비의 지출도 거의 요구하지 않아 비교적 경제적인 종목이다. 그리고 이는 54) 2002년 월드컵의 시청률은 이탈리아전 66.7%, 폴란드전 66.1%, 스페인전 65.5%, 독일 전 64.8%, 포르투갈전 59.4%, 터키전 56.1% 등이었다. 월드컵에서 시청률이 가장 높았던 경기는 2006년 독일월드컵 토고전(방송 3사 합계 73.7%)이었으며 SBS TV가 단독 중계한 남아공월드컵에서는 아르헨티나전 51.5%, 그리스전 48.4%, 우루과이전 47.5%, 나이지리아전 40.9%를 기록했다( 뉴시스, 2010년 6월 27일자,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00627_0005531577&cid=10513&pid=10500). 여기에서 보듯이 수치상으로는 2006년 월드컵에서의 시청률이 가장 높았지만 2002년 월드컵에 서 거리 응원이 없었다면 시청률은 훨씬 더 높았을 것이다. 328 정신문화연구 제34권 제3호

표2 생활체육 동호인 클럽 및 등록회원 증가 추이 구분 클럽 수(개) 등록회원 수(명) 인구 대비(%) 1998년 31,257 1,173,837 2.7 1999년 36,904 1,322,476 2.9 2000년 41,986 1,442,145 3.0 2001년 46,051 1,559,242 3.4 2002년 52,020 1,776,604 3.7 2003년 64,665 2,176,221 4.5 2004년 73,802 2,449,948 5.1 2005년 77,452 2,556,737 5.3 2006년 82,781 2,701,736 5.6 2007년 92,688 2,913,806 6.0 2008년 95,075 2,985,253 6.2 2009년 97,697 3,081,436 6.3 자료: 스포츠서울, 2010년 11월 29일자 (http://news.sportsseoul.com/read/life/900421.htm). 마라톤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주관적 욕구와도 일정한 적합성을 지니는 요인이기도 하다. 초기 마라톤 참여자의 주요 구성원은 직장에 다니는 성인 남성이었는데, 이들이 마라톤에 참여한 시기는 이른바 IMF 환란 직후로 경제적인 불안과 고용안정성에 대한 불안이 밀려오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마라톤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를 들 수 있다. 마라톤 의 발생을 설명하는 신화에서 보이듯이 마라톤은 흔히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극기의 스포츠로 간주된다. 결국 IMF 환란 이후에 밀어닥쳤던 불안정한 상황에서 개인, 나아가 인간의 한계를 돌파하는 것으로 상정되 었던 마라톤의 이미지와 경비가 거의 들지 않는 마라톤의 특성은 금욕적 인 자기 극복을 추구했던 참여자들의 욕망과 잘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55) 요약하자면 2000년대의 마라톤 열풍은 스포츠의 개인화로 인한 하는 스포츠 에 대한 욕구의 증대가 마라톤이라는 종목의 특성과 결합되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마라톤 열풍의 겉모습은 과거 보는 스포츠 에 대한 열광과 유사한 형태를 보이더라도 그 배경은 큰 차이를 지닌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우리 사회에서 2000년대의 첫 55) 왜 일반적인 달리기가 아니라 굳이 마라톤이었는가는 마라톤에 대한 이런 대중적 이미 지가 그 배경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마라톤 열풍에 대한 하나의 분석으로는 정준영, 앞의 책을 참조하라.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329

10년은 스포츠에 대한 열광과 관련해 전환이 일어난 시기이다. 동시에 이 시기는 2개의 경향이 교차하는 과정에서 전환기의 특징인 공통점이 엿보인 시기이기도 하다. 보는 스포츠 에 대한 열광이 집단주의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반면, 하는 스포츠 에 대한 열광은 개인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이 시기에는 아직 그 차이가 그리 두드러지지 않게 만드는 측면이 존재했다는 점에서이다. 그것은 하는 스포츠의 개인화가 충분히 철저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인데 그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동호회 활동, 그중에서도 마라톤 동호회 활동이다. 연간 개최되는 수많은 마라톤 대회 참가자 중에는 동호회를 중심으로 한 집단의 참여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실제로 표3을 보면 클럽 및 회원의 수가 많은 주요 종목 중 개인 스포츠는 육상/마라톤과 수영, 인라인스케이팅 등에 불과하며, 그중 육상/마라톤의 클럽 수가 압도적임 을 알 수 있다. 56) 사실 스포츠 활동, 특히 팀스포츠 활동에서 동호회 참여는 불가피한 일이다. 팀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의 사람이 필요한데, 동호회는 이를 공급하기 위한 효과적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라톤과 같은 개인화된 스포츠에서 동호회가 활성화되어 있는 것과 관련해서는 별도의 설명이 필요하다. 조지 쉬언이 고백하는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람마다 페이스가 다른 마라톤의 성격을 고려해볼 때 함께 뛰는 것이 지니는 이점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57) 이처럼 마라톤이 지닌 성격에도 불구하고 동호회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스포츠에 대한 열광이 지닌 집단주 의적 잔재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58) 즉, 마라톤 동호회는 전반적으 로 스포츠에 대한 열광이 개인화되는 속에서도 집단주의에 대한 향수 또는 관행이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말이다. 사실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개인화된 열광이 열풍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처럼 집단주의의 56) 등산 역시 개인적인 활동이라 할 수 있으나 등산은 스포츠라기보다 일반적인 여가활동 에 더 가까우며 전통적으로 등산회와 같은 집단적 모임이 발전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마라톤과 차이가 있다. 57) 조지 쉬언 저, 김연수 역, 달리기와 존재하기 (한문화, 2003), 187 193쪽. 58) 물론 동호회 가입이 스포츠 참여에 일종의 집단적 강제를 부과함으로써 참여를 용이하 게 만들어준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개인적 욕망의 실현을 위해 하는 스포츠 활동에 이처럼 집단적 강제가 필요하다는 점 자체가 개인화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330 정신문화연구 제34권 제3호

표3 주요 종목의 클럽 및 회원 현황(118개 종목 중 상위 20개) 순위 종목 클럽 수 회원 수 1 축구 14,855 488,489 2 테니스 7,990 229,656 3 볼링 9,925 223,466 4 등산 3,527 186,196 5 생활체조 3,362 178,614 6 배드민턴 4,406 163,682 7 태권도 2,655 160,110 8 게이트볼 6,421 120,331 9 탁구 3,689 81,933 10 보디빌딩 1,259 72,197 11 족구 4,056 68,158 12 야구 2,965 65,133 13 합기도 1,376 63,796 14 검도 1,438 62,696 15 에어로빅 1,355 60,917 16 국학기공 1,645 58,332 17 육상/마라톤 1,989 56,330 18 수영 1,339 54,396 19 배구 2,473 54,049 20 인라인스케이팅 617 52,915 자료: 스포츠서울, 2010년 11월 29일자 (http://news.sportsseoul.com/read/life/900421.htm). 관행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 할 수도 있다. 즉, 동호회와 같은 집단주의의 잔재는 개인화된 선택이 집단적으로 나타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V. 맺음말 이제까지 특히 2000년대를 중심으로 한국사회에서 스포츠에 대한 열광의 의미에 대해 탐색해보았다. 이를 통해 나타난 결과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보는 스포츠 에 대한 열광과 하는 스포츠 에 대한 열광은 그 배경과 양상에서 서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보는 스포츠 또는 스포츠 영웅에 대한 열광은 현대 스포츠가 정착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331

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현상이며 사이클 영웅 엄복동과 마라톤의 손기정은 그 대표적 사례이다. 이런 영웅은 그 후 지속적으로 재생산되었는데, 단순한 스포츠 스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열풍이라 고 부를 수 있을 만큼 대중의 추앙을 받을 수 있으려면 스포츠 경기에서 그의 업적이 국제대회에서 입증된 것이어야 한다. 특히 일종의 메타 스포츠라 할 수 있을 올림픽에서의 성적이 높은 평가를 받는 편이다. 반면 하는 스포츠 에 대한 열광은 2000년대에 와서야 두드러지는 현상이 었다. 두 번째로 보는 스포츠 에 대한 열광의 형태는 외견상 유사해 보이지만 시기에 따라 다소 차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2000년대까지의 열광이 집단적 열광의 분위기 속에서 개인 욕망의 표출을 자제하는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면 2000년대 이후에는 좀 더 표출적인 열광의 형태가 두드러지게 발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세 번째로 보는 스포츠 에 대한 열광과 하는 스포츠 에 대한 열광 사이에는 종목 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음이 드러났다. 하는 스포츠 열풍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달리기나 헬스, 기타 피트니스 종목은 일부 연관이 있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보는 스포츠 와 별 관련이 없는 것들이다. 네 번째로 이 두 형태의 열풍 사이의 차이는 열풍을 만들어낸 원인과 메커니즘의 차이에 기인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보는 스포츠 의 열풍이 국가의 위신과 같은 좀 더 사회적인 차원에 원인을 지니고 있고 열풍의 주된 전파 기제가 대중매체라고 한다면, 하는 스포츠 의 열풍을 만들어낸 원인은 건강이나 몸매에 대한 관심 또는 참여의 욕망과 같이 좀 더 개인적인 차원과 관련이 있으며, 열풍의 전파 기제도 개인적인 의사소통 에 좀 더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섯 번째로 이 차이와 열광이 나타난 시기를 결합시켜볼 때 보는 스포츠 에서 열광의 형태의 변화, 그리고 하는 스포츠 에 대한 열광의 출현은 스포츠의 개인화와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스포츠를 개인의 표출적 도구로 사용하고자 하는 경향이 충분히 성숙되었 을 때 보는 스포츠 는 그 한계를 드러내게 되었으며, 그 결과 하는 스포츠 에 대한 열광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2000년대의 첫 10년 동안 스포츠의 개인화는 충분히 332 정신문화연구 제34권 제3호

성숙되지 않아 집단주의와 공존하는 형태를 지니고 있음이 드러났다. 2000년대 하는 스포츠 열풍의 대표적 종목이었던 마라톤이 종목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동호회라는 집단적 형태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보여준다. 2002년 월드컵이 계기가 되었던 열풍은 집단주의적 스포츠와 스포츠의 개인화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스포츠에 대한 집단주의적 열광이 마지막 불꽃을 피워 올린 것이라 할 수 있다. 59) 그 후 21세기의 첫 10년 동안 이 2개의 경향 사이에 치열한 힘겨루기가 벌어졌다. 박지성 박태환 김 연아 등 스포츠 영웅을 만들어내고, 그에 열광하는 기조가 꾸준히 지속되 는 가운데 마라톤을 비롯한 각종 생활 스포츠 동호회와 같이 영웅의 창출과 아무런 관련을 맺고 있지 않으면서 스포츠 활동에 대한 개인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경향도 급속히 발전한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보는 스포츠 에 대한 열광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2002년 월드컵에서 나타났던 것과 같은 열풍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은 반면, 하는 스포츠 의 경우 아직 전반적인 참여율이 낮은 편이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열풍의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 60) 하지만 하는 스포츠 의 경우 열풍 현상이 생기더라도 그 참여 자체가 개인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 보는 스포츠 에 대한 열풍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표출적 욕구가 강해질수록 스포츠의 개인화는 더욱 강화될 것이고 그 결과 열풍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집단적 현상의 빈도는 점차 줄어들 것이다. 여기에 맞추어 과거 우리 스포츠의 특징이었 던 민족적 영웅의 출현 빈도도 훨씬 줄어들 것이다. 스포츠 영웅은 과거 그들이 수행했던 역할을 다하고 이제 서서히 역사의 뒤편으로 물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라톤의 사례에서 드러나듯이 이 과정이 점진적인 것인 한 앞으로도 열풍의 출현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해볼 수 있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스포츠 활동 참여율이 아직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하는 스포츠 에서 이런 열풍이 더 자주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런 예상은 약소국 의식이 재환기되지 않을 만큼 59) 물론 이때 마지막 이라는 표현에는 현재의 경향이 지속될 때 라는 단서가 붙어 있는 것이다. 60) 2009년 현재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생활체육 참가자 비율은 6.3%로서 주요 선진국의 30% 수준에 비해 현저히 낮은 편이다. 스포츠서울, 2010년 11월 29일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333

우리 사회의 발전이 지속될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앞으로 스포츠 개인화의 전개과정 및 그에 영향을 미치는 세부적 요인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연구가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334 정신문화연구 제34권 제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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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요약 스포츠에 대한 열광은 많은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비교적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한국사회에서의 열광에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다소의 특수성도 존재한다. 열광을 불러일으켰던 대다수의 사례는 국내적 대립 이라기보다 국제적 대립의 속성을 지닌 스포츠 활동이었고, 스포츠 스타 보다 스포츠 영웅의 대두가 두드러지며, 스포츠 영웅이 대부분 국가와 관련되어 규정될 뿐 국가 차원 이상으로 확대되지 않고, 스포츠 영웅의 공훈 내용과 관련하여 올림픽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큰 편이라는 점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한국사회에서 스포츠에 대한 열광의 양상에는 다소의 변화가 감지된다. 열광의 표출 방법에서 그 이전까지의 수동적 태도가 약화되고 적극적이며 표출적인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는 한국사회에서 스포츠의 집단주의적 의미가 약화되고 개인화가 진척되어간 것과 연관이 있는데, 2000년대 들어 폭발하기 시작한 하는 스포츠 열풍은 집단주의적 스포츠가 개인의 표출적 욕망을 충분히 담아 내지 못하게 됨에 따라 나타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아직은 이 변화가 완결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운데 하는 스포츠 와 관련하여 동아리 활동이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이런 과도기적 측면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앞으로 한국사회에서 스포츠에 대한 열광의 빈도는 줄어들 가능성이 높지만 스포츠의 개인화가 점진적으 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염두에 둘 때 특히 하는 스포츠 와 관련하여 열풍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투고일 2011. 7. 7. 수정일 2011. 8. 5. 게재 확정일 2011. 8. 16. 주제어(keyword) 스포츠 열풍(sports enthusiasm), 스포츠 영웅(sports hero), 스포츠 스타 (sports star), 민족주의(nationalism), 집단주의(collectivism), 스포츠의 개인화(individualization of sports), 스포츠 동호회(sports club), 보는 스포츠(spectator sports), 하는 스포츠(participatory spor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