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문론총 제61호 한국문학언어학회 2014. 9. 소동파와 송찬호의 시 텍스트에 나타난 1) 내포시인* 김 승 환** 2) <차 례> 1. 서론 - 문제제기와 논점 2. 시 텍스트와 시인의 관계 2.1. 시 텍스트의 내포작가와 내포시인 2.2. <화자유민지회구>와 <복사꽃> 텍스트 구조 비교 3. 내포시인과 시인의 일치와 불일치 3.1. 내포시인과 시인의 일치 - 동파 소식의 <화자유민지회구> 3.2. 내포시인과 시인의 불일치 - 송찬호의 <복사꽃> 4. 고전시가와 현대시의 내포시인 비교 5. 결론 - 시적화자와 내포시인 1. 서론 - 문제제기와 논점 시 장르에서 이야기의 주체를 흔히 시적화자(詩的話者)라고 한다. 화자는 무 엇을 이야기하는 존재이므로 이야기를 전제로 성립하는 개념인데 이야기는 시보 다 소설이나 희곡과 같은 산문양식의 속성이다. 하지만 시에서 시적화자라고 하 * 이 논문은 2013년도 충북대학교 학술연구지원사업의 연구비 지원에 의하여 연구되었 음(This work was supported by the research grant of Chungbuk National University in 2013) **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 / 전자우편 whan642@hanmail.net
276 어문론총 61호 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이고 또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 다. 시의 이야기도 서사적 담화로 보는 관점은 김준오를 비롯한 이론가들에 의 하여 수용1)된 바 있고 시적화자가 이야기를 진행하는 서사의 인물이 될 수 있 다2)는 이론 또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실제로 서정적 화자, 시적화자에서 보 듯이 이미 이런 개념이 시에서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으며 시학이론에서도 시적 화자가 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론적으로 볼 때에도 채트먼은 웨인 부스의 이론을 발전시킨 내러티브이론에서 화자가 다양한 장르와 양식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결론3)을 도출한 바 있다. 그렇다면 화자의 개념을 심화시키면서 포괄하 는 내포시인(內包詩人)의 개념을 서정시에 적용할 수 있을까? 이 논문은 내포시인 이라는 개념을 설정할 경우 텍스트의 해석이 어떻게 달 라지고, 어떻게 새로운 의미를 밝혀낼 수 있는가, 또 소동파와 송찬호의 상호텍 스트성을 밝히는 데 어떤 점에서 기여할 수 있는가 등을 밝히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 위하여 시에 시인이 실재한다고 보는 전통적 관점과 시를 자율적 텍스트로 보는 두 관점을 비교하면서, 실제 시인과 텍스트 안의 내포시인이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대체로 근대시론에서 시적자아(poetic self)4) 또는 서정적 자아(lyric self) 5)라는 개념이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6) 그런데 이 두 개념은 실제 시인과 허구적 화자를 포괄하는 개념이고 시인의 자기탐구적 개 1) 김준오, 시론, 삼지원, 1991. 188쪽. 2) 윤여탁, 현대시의 내포와 외연, 태학사, 2009. 18쪽. 3) Seymour Chatman, Ironic Perspective", New Perspective on Narrative Perspective, edited by Willie Van Peer and Seymour Chatman,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2001), p.117. 4) 시적자아라는 개념은 시론 전문가들이 일반적으로 쓰는 개념이다. 실존하는 실제 시인 의 개성을 중시하는 낭만주의와 주체를 강조하는 합리주의의 영향으로 시인을 포함한 발화의 주체를 강조하는 개념으로 동서양에서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다. 시적자아는 실제 시인일 수도 있고 허구적 존재일 수도 있는데 시의 주체를 강조한 개념이어서 시적화자와는 다르다. 발화와 서술을 강조한 개념이 시적화자다. 5) Kate Hamburger, The Logic of Literaure, trans., Marilynn J. Rose, (Indiana Univ. Press, 1993). p.100. 6) 그 외에도 서정적 주체, 시적 주체 등의 용어가 있지만 윤여탁은 시적화자가 가장 보편적 개념이라고 강조한다. 윤여탁, 서정시와 시적 화자(persona), 유영희 윤여탁 최미숙, 시와 함께 배우는 시론, 태학사, 2001. 127쪽.
소동파와 송찬호의 시 텍스트에 나타난 내포시인ㆍ김승환 277 념 7)이기 때문에 시 작품과 시 텍스트를 구분하지 않는다. 여기서 생기는 문제 는 역사적이고 실존적인 시인의 시적 진술을 자율적이고 중립적인 시적화자의 시적 진술과 혼동하는 것이다. 이 갈래를 혼동하게 되면 시인의 전기적 사실을 말하면서 텍스트 분석을 하는 경우가 생기고, 자율적 텍스트를 분석하면서 시인 의 사상과 감정을 투사하는 경우가 생긴다. 다시 말하면 시 텍스트를 자율적인 것으로 간주하면서도 시인의 자전적 이야기로 읽는 오류8)가 적지 않다. 필자는 이것이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시에 내재한 본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시인을 통해서 시 텍스트를 읽고 시 텍스트를 시 작품이라고 오인하는 것은 이유가 있 을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실제 시인과 시적화자의 관계를 밝혀 야 할 필요가 있다. 시를 텍스트로 간주하는 것은 제라르 주네트나 츠베탕 토도로프와 같은 이론 가들의 텍스트론에 근거한다. 이들에 의하면 시는 하나의 언어적 구조물이고 그 구조물은 과학적 텍스트라는 것이다. 특히 주네트는 픽션과 딕션(diction)의 경 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을 밝혔다.9) 이 이론에서 말하는 텍스트구조란 기호로 구성된 언어적 수사인 동시에 과학적 문법이다. 이 텍스트론에서는 롤랑 바르트 가 말한 저자의 죽음(Death of Author)'10)이 상징하듯이, 작품에서 작가를 배 제하여 객관적 텍스트로 만든 다음, 작품 자체의 문학성을 추출한다. 짧은 에세 이에서 바르트는 저자의 죽음은 현대 텍스트의 특성11)이라고 말한다. 이것을 시 에 적용해 보면 내적 구성 원리를 가진 시 텍스트에서 시적화자는 시인을 대리 7) 정효구, 이승훈의 시와 시론에 나타난 자아탐구의 양상과 그 의미, 어문논총 제7 집, 충북대학교 외국어교육원, 1998.1. 224쪽. 8) 윤지영, 시 연구를 위한 시적 주체(들)의 개념 고찰, 국제어문 39집, 국제어문학 회, 2007.4. 161쪽, 9) Gerard Genette, "Mood, Narrative Discourse, (New York: Cornell University Press, 1980). 10) Roland Barthes, The Death of the Author, Image, Music, Text, 1977. p.142. 11) Roland Barthes, op. cit. p.145. The removal of the Author (one could talk here with Brecht of a veritable distancing, the Author diminishing like a figurine at the far end of the literary stage) is not merely an historical fact or an act of writing; it utterly transforms the modern text (or - which is the same thing - the text is henceforth made and read in such a way that at all its levels the author is absent).
278 어문론총 61호 하여 시를 이야기하는 존재다. 또한 시적화자는 시인이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기 위하여 시 텍스트 안에 설정한 허구적 존재다. 그런데 시인은 시 텍스 트 안으로 들어갈 수 없으므로 자신을 대리하는 존재인 내포시인을 설정하고, 그 내포시인으로 하여금 시적화자가 서술하도록 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내포저 자에 해당하는 내포시인의 존재가 텍스트 이론에서 필요하다는 것이 밝혀진다. 시인은 텍스트 바깥에서 자신이 기획한 창작의도, 시의 구조, 정서와 분위기, 시적거리, 어조(語調)와 톤(tone) 등 표현의 방법을 텍스트 안의 내포시인에게 지 시한다. 이 지시를 받은 내포시인은 시적화자로 하여금 텍스트의 가치(value)와 기준(norm)을 지키면서 시의 문법에 맞게 이야기하도록 한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시를 객관적인 텍스트로만 보면 시인이 배제되고 시인의 사상과 감정 등 원 래 가지고 있던 창작의도가 무시된다. 이 점을 해결하고자 웨인 부스(Wayne C. Booth, 1921~2005)는 텍스트 바깥의 실제 작가와 텍스트 안의 화자/서술자를 연결하는 내포작가라는 존재를 설정하여12) 생산자의 관점에서 내포작가에게 능 동적인 역할을 부여했다. 반면 채트먼은 수용자의 입장에서 내포작가가 수용자의 수용과정에서 형성된 것으로 본다. 이 내포작가는 시인의 주관적 창작의도와 시 의 객관적 표현결과를 이어주고 설명하는데, 시에서는 내포시인으로 명명할 수 있다. 이처럼 시인이 시 텍스트 안에 설정한 존재가 내포시인인데, 이 내포시인의 기능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것이 이 논문의 목적 중 하나다. 시적화자가 시인을 대리하여 시인이 자신의 의도와 세계관을 드러내는 존재로 본 것13)에 반하여 장도준은 김준오의 이론에 근거하여 내포시인을 함축적 시인이 라고 규정하고, 그 함축적 시인이 화자의 어조와 태도를 결정한다고 분석14)한 바 있다. 그런데 어의적으로 보면 함축적 시인과 내포시인은 다르다. 함축적 시인은 영어의 implied를 직역하여 어의적인 뜻을 강조했다면 내포시인은 텍스트에 내재 한 시인의 존재를 지칭하는 개념이다. 특히 내포시인은 시인 내포시인 시적화 12) Wayne C. Booth, The Rhetoric of Fiction,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61), p.71, p.75. 13) 김영철, 현대시론, 건국대학교출판부, 1993. 98쪽. 14) 장도준, 한국현대시의 화자와 시적 근대성, 태학사, 2006. 24-40쪽. 이 책에서 장도준은 표면에 나타나는 화자를 허구적 주체로서의 화자, 시인의 시점을 한 화자, 허구적 객체로서의 화자로 구분한 다음, 표면에 나타나지 않는 화자를 기술 하고 있다.
소동파와 송찬호의 시 텍스트에 나타난 내포시인ㆍ김승환 279 자의 텍스트 구조에서 내포시인에 초점을 두면서 그 기능과 역할을 강조하는 어휘 다. 여기서 이 논문의 목적인 내포시인의 개념 성립 여부와 내포시인의 기능을 초 시간적으로 살펴보는 문제가 선명해진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내포시인은 시 텍 스트의 이야기를 강조할 때 문학성을 전경화(fore-grounding)하여 설명할 수 있 는 개념이다. 그런데 의미론적으로 시인과 내포시인의 역할과 기능이 같을 수가 없다. 이것은 시를 대하는 문학관과 세계관의 문제로 환원한다. 필자는 이 문제를 살펴보기 위하여 송( 宋 )의 중세 문인 소동파의 <화자유민지회구>와 한국 현대시인 송찬호의 <복사꽃>을 비교하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산문양식에서의 화자에 대한 이론을 체계화한 웨인 부스(Wayne C. Booth)와 채트먼(S. Chatman)의 내포작가 이론을 토대로 텍스트 구조의 상호텍스트성을 고구할 것이다. 2. 시 텍스트와 시인의 관계 2.1. 시 텍스트의 내포작가와 내포시인 15) 소동파의 <화자유민지회구>에서 날아온 기러기가 눈밭을 밟은 것과 같을 뿐 이다 그리고 송찬호의 <복사꽃>에서 옛말에 꽃싸움에서는 이길 자 없다 했으 니/그런 눈부신 꽃을 만나면 멀리 피해가라 했다 라는 부분이 있다. 여기서 눈을 밟았을 뿐이라고 하는 존재나 멀리 피해가라 했다라고 진술하는 존재는 누구인 가? 이것을 고전시가에서는 시인이 직접 진술 또는 서술하는 것으로 본다. 하지 만 현대 자유시 <복사꽃>에서는 피해가라 했다 로 서술하는 존재를 시인 송찬 호라고 하지 않는다. 시인이 아닌 어떤 존재가 시인의 미적 전략을 대신하여 실 현하면서 발화하는 것이다. 이 텍스트 안의 존재가 바로 내포작가, 시에서는 내 포시인 그리고 서술하는 시적화자다. 이 텍스트 내의 존재인 내포시인과 시적화 자를 아울러 시적자아(poetic self)로 쓰는 경우도 있지만 직접 발화하는 존재는 15) 내포작가(implied author)는 채트먼의 개념으로 텍스트 안에서 작가의 기능을 강조 한 개념이고 내포시인(implied poet)은 채트먼의 개념을 시인에 적용하여 시인의 기능을 강조한 개념이다. 유사한 것 같지만 작가는 논리적 종차에서 부분집합인 시 인을 포함하는 상위의 개념이다.
280 어문론총 61호 시적화자다. 작가의 창작전략을 텍스트 안에서 실현하는 내포작가는 텍스트구조를 전제로 한16) 개념이다. 형식주의, 신비평, 구조주의에서는 작품을 중립적인 공간에 놓 고 작가나 사회와 분리된 객관적인 텍스트구조에 주목했다. 그런데 작품을 텍스 트에 한정하는 것은 작가의 창작의도를 무시하는 문제점이 생긴다. 이 문제점을 웨인 부스(Wayne C. Booth, 1921 ~ 2005)는 허구의 서사(The Rhetoric of Fiction) (1961)에서 내포작가를 통해서 해결하는데, 그는 텍스트 바깥의 실제작 가와 텍스트 안의 화자/서술자를 연결하는 존재를 내포작가라고 처음으로 명명 했다. 그가 보기에 작품에는 작가가 이미 내포되어 있으므로 작품은 가치중립적 일 수가 없다.17) 그런데 내포작가도 작가이기 때문에 이야기를 직접 서술하는 서술자가 될 수 없다. 그래서 내포작가는 다시 화자/서술자(narrator)를 설정하 고 그를 통하여 이야기를 서술하도록 하는 것이다. 내포작가는 작가의 창작의도에 따라서 인물, 화자, 서술의 거리, 시점, 분위기, 준거, 미적 가치 등 이야기의 문법과 텍스트의 정조(text s ethos)를 관장한다. 이처럼 작가는 자기를 대리하는 존재를 텍스트에 매복해 두고 내포작가를 통하 여 서사를 진행한다는 것이 웨인 부스의 이론이다. 그러니까 부스는 형식주의자 나 구조주의자 특히 롤랑 바르트가 말한 저자의 죽음 으로 상징되는 텍스트론과 유사하면서도 다르게 작가의 가치와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웨인 부스의 서사구 조도는 <텍스트 바깥의 작가 텍스트 안의 내포작가 내포작가가 설정한 화자 /서술자 이야기 내포청자가 설정한 서술수용자 - 텍스트 안의 내포청자(독 자) 텍스트 바깥의 독자>로 짜여 있다. 이 서사구조에서는 내포화자를 허구적 16) 시가 작품이고 텍스트인 동시에 이야기라면 그 이야기를 말하는 존재가 필요하다. 그 텍스트 안에서 목소리를 가지고 발화를 하는 존재를 화자라고 하고 펜으로 글을 쓰듯이 무엇을 기술하는 존재를 서술자라고 한다. 그런데 소설이나 희곡과 같은 서 사양식이 서술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서술자라는 용어를 쓰는 것과 구별하여 서정양 식은 발화를 위주로 하므로 시적화자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시적화자는 시 텍스트 안에서 시인을 대리하는 시인의 또 다른 자아라는 의미에서 제2의 자아 (second self)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것을 서정시에 대입하면 서정적 자아가 된다. 따라서 시적화자는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기능을 강조한 개념인 반면 서정적 자아는 서정성과 자아를 강조한 개념이다. 17) Wayne C. Booth, The Rhetoric of Fiction,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61), p.71, p.75.
소동파와 송찬호의 시 텍스트에 나타난 내포시인ㆍ김승환 281 서술자(fictional narrator)라고 하지만 작중 인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웨인 부스에 의하면 작가는 내포작가를 통해서 자기 생각과 다른 인물을 창 조할 수 있고 작품마다 다른 인물을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텍스트 바깥의 실 제작가는 작품을 쓰기는 하지만 텍스트 안의 구조까지 관장할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내포작가는 우리가 읽는 것을 의식 무의식적으로 선택하는 제2의 자아 (second self)다. 우리는 그를 실제작가의 생각에 따라서, 문학적으로, 고안된 존재라고 추론한다. 내포작가는 그가 선택한 것의 총합이다. 18) 이에 대해서 제 라르 주네트(Gérard Genette, 1930 ~ )는 서사담론(Narrative Discourse) (1972)에서 작가와 화자 사이에 내포작가를 설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면서 초 점화(focalization)와 초점화자(focalizer)를 제안했다. 초점화자는 카메라의 렌즈 와 같이 이야기의 초점을 맞춘 화자인데 보는 시점과 말하는 서술을 분리한 개 념이다. 이 주네트의 이론은 주로 산문 양식에 한정되며 서술의 미세한 특질에 관한 것이므로 시를 말하는 경우, 웨인 부스의 견해가 설득력이 있다. 한편 웨인 부스의 이론을 발전시킨 채트먼(S. Chatman)은 내포작가를 내포청 자(독자)와 연결하여 해석하면서 독자가 작품을 읽을 때, 작가라고 느끼는 존재 가 바로 내포작가라고 말한다. 그래서 채트먼은 내포작가를 작중의 인물로 간주 하는 한편 텍스트 안에 존재하는 추론된 작가(inferred author)로 본다. 이처럼 내포작가는 텍스트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가상의 내포독자(implied reader)와 대응되는 개념이다. 따라서 내포작가가 서술자에게 지시하여 기술/서술/진술을 하도록 하여 이야기를 만들면 그 이야기를 서술수용자(narratee)가 수용한 다음 내포독자에게 전달된다.19) 채트먼 역시 텍스트의 안과 바깥을 구분하지만 작가 의 창작의도를 중요하게 여기는 동시에 텍스트를 간접적으로 관장하는 내포작가 에 상당한 의미를 둔다. 시가 작품이고 텍스트인 동시에 이야기라면 그 이야기를 말하는 존재가 필요 하다. 그 텍스트 안에서 목소리를 가지고 발화를 하는 존재를 화자(話者)라고 하 고 펜으로 글을 쓰듯이 무엇을 기술하는 존재를 서술자(敍述者)라고 한다. 그런 데 소설이나 희곡과 같은 서사양식이 서술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서술자라는 용 어를 쓰는 것과 구별하여 서정양식은 이야기를 위주로 하므로 시적화자(詩的話 18) Seymour Chatman, op. cit. p.148. 19) Seymour Chatman, op. cit. p.151.
282 어문론총 61호 者)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시적화자는 시 텍스트 안에서 시인을 대리하 는 시인의 또 다른 자아라는 의미에서 제2의 자아(second self)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것을 서정시에 대입하면 서정적 자아(lyric self)가 된다. 시를 읽을 때 시적 주체인 나 와 시적 화자, 서정적 자아가 하나의 존재로 읽히는 것20)은 바 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물론 시적화자가 이야기하는 기능을 강조한 개념인 반 면 서정적 자아는 서정성과 자아를 강조한 개념이지만 하나의 존재로 읽힐 수가 있는 것이다. 부스와 채트먼의 내포작가(內包作家)의 개념을 시에 적용해 본다면 내포시인 (內包詩人)이 된다. 그런데 내포시인은 내포작가와 마찬가지로 텍스트 바깥의 작 가를 대리하여 텍스트 안에서 여러 시 창작 과정의 전략을 실행한다. 또한 내포 시인은 시의 정조, 구조, 화법을 결정하고 텍스트 안에서 서술하는 시적화자를 설정하여 그 시적화자로 하여금 이야기를 서술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필자는 서론에서 제기한 문제와 같이 내포작가의 개념을 시 양식에 적용하여 내 포시인을 설정하는 것에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시를 작품으로만 읽는다면 내 포시인의 개념이 적용될 수 없겠으나, 고전시가나 현대시는 작품인 동시에 텍스 트이므로 텍스트 안을 관장하는 존재인 내포시인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2.2. <화자유민지회구>와 <복사꽃> 텍스트 구조 비교 현대비교문학이론에서는 상치되는 것도 비교가능하며, 오히려 상이성에서 문 학성을 추출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동시대의 영향관계를 넘어서 초시대의 상 치관계도 비교가능하다고 본다. 소동파의 <화자유민지회구>와 송찬호의 <복사 꽃>은 텍스트구조의 유사성과 시대적 상이성이라는 두 가지 비교 지점이 생긴 다. 즉 한자문화권 시가 양식의 전형적인 구조 중의 하나인 기승전결(起承轉結) 의 텍스트구조가 9백년의 시간 차이에도 불구하고, 송찬호의 <복사꽃>에 구조 적으로 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소동파의 <화자유민지회구>는 기승전결의 율시 형식인 두련, 함련, 경련, 미련의 확장 텍스트구조이며 송찬호의 <복사꽃> 역시 기승전결과 두함경미의 자유로운 텍스트구조로 짜여 있다. 물론 <복사꽃>은 기 20) 이숭원, 백석 시에 나타난 자아와 대상의 관계, 한국시학회 학술대회 논문집, 한국시학회, 2006. 40쪽.
소동파와 송찬호의 시 텍스트에 나타난 내포시인ㆍ김승환 283 승전결의 텍스트구조로 안 읽을 수도 있으나, 시 텍스트를 분석해 보면 분명히 기승전결의 구조가 보인다. 이것은 의도적 오류(intentional fallacy)일 수도 있 다. 즉, 시인 송찬호가 기승전결의 구조를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텍스트에 구현된 구조가 사단 구성의 구조가 분명하고 또 시상 전개 역시 그렇기 때문이다. 현대시인 송찬호가 자유시 창작의 의도를 가지고 표현했다고 하더라도 그 언 어가 가진 모든 의미를 다 포함하여 표현할 수는 없다. 이 창작과정에서 의도적 오류가 생길 수 있는데 의도적 오류란 작가의 의도와 표현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표현된 결과가 더 객관적이며 보편적이라는 것이다. WK 윔셋과 MC 비어즐리가 제기한 이 이론21)에 의거하여 보면 송찬호는 자유시를 창작한 것이 지, 고전시가의 형식과 구조에 따르고자 한 것은 아니다. 현대시 <복사꽃>에는 운이 없고, 음보에 구애받지 않으며, 단락의 행수도 다른 자유시의 전형적인 예 22)이다. 하지만 <복사꽃>에는 분명히 기승전결 또는 두함경미로 읽을 수 있 는 구조가 있다. 따라서 송찬호의 시와 소동파의 시는 9백년이라는 시간적 편차 에도 불구하고 구조적 동질성이 있는 것이다. 직접적인 영향관계가 없이 구조적 동질성이 나타나는 이유는 시 작품은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이 초시간적 으로 재현되기 때문이다. 절구나 율시 등 전통 한시에서는 형식과 격률이 엄격하기 때문에 시 전체의 유기적 완결성이 특히 중요하다. 따라서 <화자유민지회구>에서 보이듯이 기승전 결의 유기적 결합이 아니면 시의 뜻은 훼손되고 풍격은 떨어진다. 또한 한 곳이 라도 연결이 어색하면 시 전체의 미감이 하락할 뿐 아니라 시가 갖추어야 할 뜻 도 상실한다. 기승전결은 기승전합(起承轉合)이나 기승전락(起承轉落)과 같지만 내용을 종합한다는 기승전결은 합 이나 락 과 달리 결론을 강조한다. 또한 기승 전결은 발단, 전개, 전환, 절정/결말에 비유되는 구조상의 특징이고 구성 원리이 면서 전체를 관류하는 흐름이다. 여기서 유래한 기승전결의 구조는 소설, 희곡, 드라마, 오페라, 교향곡 등 다른 서사양식과 서론, 설명, 증명, 결론의 논문에서 도 찾아볼 수 있다. 21) W.K. Wimsatt, Jr., and Monroe C. Beardsley, THE INTENTIONAL FALLACY(revised), The Verbal Icon: Studies in the Meaning of Poetry, (Lexington: University of Kentucky Press, 1954). 22) 왕력, 중국시율학 4, 송용준옮김, 소명출판, 2005. 214쪽.
284 어문론총 61호 기승전결의 첫째, 기구는 소재와 주제를 살려서 시상을 일으키는 담백한 구 다. 두 작품의 텍스트구조를 비교하면 시상을 전개하는 기는 인생이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비슷한 것 / 날아온 기러기가 눈밭을 밟은 것과 같을 뿐이다 와 옛말에 꽃싸움에서는 이길 자 없다 했으니/그런 눈부신 꽃을 만나면 멀리 피해 가라 했다 / 언덕 너머 복숭아밭께를 지날 때였다. 시상을 심화하는 승은 우연 히 눈밭 위에 새 발자국으로 남을 지 모르지만 / 날아간 기러기가 어찌 동서를 따질 것인가 와 갑자기 울긋불긋 복면을 한 / 나무들이 나타나 / 앞을 가로막았 다, 시상(詩想)의 돈좌를 기하는 전은 늙은 스님은 이미 죽어 새 탑이 만들어졌 고 / 벽은 무너져 옛날 시를 찾을 길 없다 와 바람이 한 번 불자 / 나뭇가지에 서 후드득 후드득, / 꽃의 무사들이 뛰어내려 나를 에워쌌다, 심원한 의미로 결 론을 맺으면서 여운과 심상을 강조하는데 시상을 합하고 시인의 뜻을 맺는 결은 지난날 험한 산골길을 아직도 기억하는가? / 길은 멀고 사람은 지쳤는데 저는 당나귀만 울었지 는 나는 저 앞 곡우(穀雨)의 강을 바삐 건너야 한다고 / 사정 했으나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 그럴 땐 술과 고기와 노래를 바쳐야 하는 데 / 나는 가까스로 시 한 편 내어놓고 물러날 수 있었다 로 같은 텍스트 구조 를 가지고 있다. 결구에 시인의 뜻이 모아지겠지만 가장 어렵고 중요한 것은 전구다. 전구의 변화는 자연스럽게 결구로 가는 과정이기도 한데 앞에서 전개한 시상을 자연스 럽게 이어 받으면서 결구로 이어져야 한다. 이 흐름을 전구 이전과 이후로 나누 어 선경후정(先景後情) 또는 전실후허(前實後虛)라고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 니까 기구와 승구에서 경물을 묘사하여 자연스럽게 흥을 돋우고 부드럽게 시상 을 전개한 후, 전구와 결구에서 시인의 시심을 표현하여 정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세 번째 전구에서 사의(寫意) 사경(寫景) 서사(敍事) 인증(引證) 등 으로 시상의 변화를 주어야 한다. 이 돈좌(頓挫)에서 전구가 명사, 대명사, 수사 와 같이 구체적이면 힘이 있는 실접(實接)이 되고 형용사나 동사와 같이 허구적 이면 주관적인 허접(虛接)이 된다. 기승전결에 관하여 원의 범덕기(范德玑)는 시격(诗格) 에서 네 가지 규칙으 로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기는 평평하게 곧아야 하고, 승은 봄바람 같은 자태 여야 하며, 전은 변화가 있어야 하고, 결은 물 흐르는 듯해야 한다(作诗有四法 起要平直 承要春容 转要变化 合要渊水).23) 그 흐름이 물이나 바람과 같이 경쾌
소동파와 송찬호의 시 텍스트에 나타난 내포시인ㆍ김승환 285 하면서 심원하다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 흐름의 끝에 절정과 결론에 해당하 는 최종의 의미가 부여된다면 더 좋을 것이다. 이처럼 한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 은 전체의 완결성과 유기체적 생명력이다. 그러므로 어휘가 살아있고, 표현이 아 름다우며, 뜻이 심오하다고 해도 전체 작품이 일이관지하지 못하면 좋은 작품이 아니다. 시의 시상을 살리고 시인의 뜻에 공감하게 하는 원리가 바로 기승전결 이다. 구조적으로 분석해 볼 때 두 작품은 분명히 기승전결(起承轉結)의 텍스트구조 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소동파가 전통 한시의 형식에 따라서 텍스트 바깥의 시 인이 텍스트 안을 관장하면서 의도적으로 기승전결 형식을 취했다. 시 텍스트 안과 바깥의 이야기 주체가 동일한 셈이다. 소동파는 당대 근체시의 전통에 따 라서 정교하게 기승전결을 배치하고, 운을 맞추었으며, 대장과 대우를 정연하게 했다. 따라서 시인이 시 작품과 시 텍스트를 절대적으로 지배하면서 기승전결의 구조를 지킨 것이다. 반면 송찬호는 전통 한시의 형식에 따르지 않았지만 결과 적으로 기승전결의 구조를 갖추었다. 이것은 한자문화권의 전통시가양식에 대한 잠재적 구조가 재현되었다고 할 수 있거나, 의도적 오류로 볼 수 있다. 실제 시 인 송찬호는 시 텍스트 안으로 들어갈 수 없고, 들어가서도 안 되므로 기승전결 과 같은 구조를 실행하는 것은 실제 시인 송찬호가 아니다. 이 사단 구성을 실 행하는 것은 시 텍스트 내의 내포시인이고 이야기를 발화하는 것은 시적화자다. 그 결과 <복사꽃>에서는 시인은 텍스트 바깥에 있지만 텍스트 안의 내포시인이 초시간적 영향관계를 무의식적으로 반영하여 기승전결의 텍스트구조를 만들었다 고 보아야 한다. 두 작품은 기승전결의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중세 근체시인 <화자유민지회 구>가 단음사(單音詞)를 바탕으로 하는 정연한 대장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데 반하여 현대 자유시인 <복사꽃>은 대장을 운용하기는 하지만 이에 구애되지 않 는다.24) 그러니까 시의 구조는 고전시가나 현대시가 같을 수 있지만 발화의 방 법은 다르다. 당연한 것 같지만 여기에는 서술과 진술의 구조시학적 방법이 다 23) 범덕기(范德玑), 시격(詩格). 24) 이에 대해서 왕력은 신시가 평측과 대장의 제약을 받지는 않지만 많은 시인들이 융통 성 있게 이를 운용한다고 했다. 왕력, 중국시율학 1, 송용준 옮김, 소명출판, 2005. 25쪽.
286 어문론총 61호 르고, 그것은 고전시가와 현대시의 토대나 표현이 다른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 기승전결을 서술하는 실제 존재는 시인이 아니라 시적화자이므로 시인은 텍스트 의 내적 구조에 간여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역시 시인 송찬호의 창작방법으로 볼 수 있으며 단지 표현된 현상이 시인과 시적화자가 분리된 것처 럼 보일 뿐이다. 3. 내포시인과 시인의 일치와 불일치 3.1. 내포시인과 시인의 일치 - 동파 소식의 <화자유민지회구> 시문부사(詩文賦詞)에 일가를 이루었고 서화에도 족적을 남긴 동파(東坡) 소 식(蘇軾 1037~1101)은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한림학사를 지낸 북송의 문 인이자 관리였다. 그는 송대의 시가 중 으뜸이며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25) 시문의 대가였다. 그는 2천 7백여 수의 시를 남겼으며 그의 부친 소순과 그의 동생 소철 역시 당송팔대가로 일가를 이루었다. 소동파의 글은 광활하고 호방한 것으로 정평이 있고 운율의 격조가 높으며 자연경물(自然景物)의 묘사와 연정기 흥(緣情起興)에도 뛰어나다. 그의 시문은 중국은 물론이고 한국이나 일본에도 지 대한 영향을 미쳐서 하나의 시풍을 이루기도 했다. 소동파의 <화자유민지회 구>26)는 자신의 경험과 사유를 바탕으로 무상한 인간존재와 무한한 우주자연을 담백하게 표현한 한시다. 칠언율시인 작품 전문은 다음과 같다. 人生到處知何似 인생이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비슷한 것 應似飛鴻踏雪泥 날아온 기러기가 눈밭을 밟은 것과 같을 뿐이다 泥上偶然留指爪 우연히 눈밭 위에 새 발자국으로 남을지 모르지만 鴻飛哪復計東西 날아간 기러기가 어찌 동서를 따질 것인가 25) 袁行霈 莫砺锋 黄天骥, 中国文学史 第二版.第三卷, 高等教育出版社, 2009. 第五编 第四章. 26) 子由(소식의 아우 소철)의 시 <怀渑池寄子瞻兄>에 화답하여 쓴 시. (민지(澠池) = 하남성의 땅 이름)
소동파와 송찬호의 시 텍스트에 나타난 내포시인ㆍ김승환 287 A僧已死成新塔 늙은 스님은 이미 죽어 새 탑이 만들어졌고 壞壁無由見舊題 벽은 무너져 옛날 시를 찾을 길 없다 往日崎嶇還記否 지난날 험한 산골길을 아직도 기억하는가? D長人困蹇驢嘶 길은 멀고 사람은 지쳤는데 저는 당나귀만 울었지 <화자유민지회구>는 젊은 시절의 소동파가 동생의 시에 화답하여 쓴 칠언율 시(七言律詩)다. 소식과 아우 소철은 1056년, 과거를 보러 하남성 민지를 지날 때 지친 당나귀를 타고 간 적이 있다고 한다. 그날 형제는 절에 묵었고 동생 소 철은 봉한(奉闲)이라는 스님의 방에 시를 썼다. 5년 후인 1061년에 다시 민지의 절을 지나던 소동파는 스님은 죽고 절의 벽은 무너졌으며 아우의 시가 사라진 것을 보았다. 이때 소동파는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생각하면서 과거를 회 상하는 화답의 시를 썼던 것이다. 이 작품에서 소동파는 인생을 기러기가 남긴 눈밭의 새 발자국에 비유했다. 제(齊)로 압운하여 니서제시(泥西題嘶)의 상평성으로 여운을 둔 이 시는 평측 이 격조가 있어 율격미가 뛰어나고 대장(對杖)도 정연하며 비유 또한 심원하다. 특히 두련의 2구에서 비홍(飛鴻), 함련의 2구에서 홍비(鴻飛)로 표현하여 기러기 가 움직이는 형상을 묘사한 것이 압권이다. 날아온 기러기 라는 비홍과 기러기 날아가고 라는 홍비는 단순한 글자의 조합이지만 형상성과 대구, 대우의 묘미를 더해 주는 탁월한 표현이다. 이처럼 소동파는 속기(俗氣)를 벗고 기교나 과장이 없는 완결적인 한시의 형식미를 보여준다. 평운을 쓴 이 시는 아우 소철의 시 <회민지기자담형(怀渑池寄子瞻兄)의 운 (韻)인 니서제시 를 그대로 썼으며 함축미가 풍부하면서도 높고 깊은 사유를 통 하여 인간 존재의 본질을 잘 표현했다. 한시는 반드시 운율과 성조를 고려하여 읽고 비평해야 하는데 이 시는 근체시의 전형적인 상평성의 전범이다. 평평측측 평평측 측측평평측측평 으로 시작하여 측측평평평측측 측측평측측평평 27)으로 끝나는 운격과 율격의 묘미를 잘 살리고 있다. 한편 기구(起句)에 해당하는 두련 에서 인생을 기러기 발자국으로 비유했고, 승구인 함련에서는 인생이 허무하다 는 것을 상기한 다음, 전구인 경련에서는 돈좌(頓挫)하면서 인생무상을 진경의 27) <화자유민지회구>의 평측은 다음과 같다. / / /
288 어문론총 61호 실접으로 담아냈으며, 결구인 미련에서는 회상의 기법으로 사단칠정에 갇힌 인 간 존재의 불완전성을 통찰했다. 이 작품은 인간 존재의 무상함을 다루었지만 애수(哀愁)와 비탄이 아닌 고상 하고 고결한 느낌을 준다. 특히 우주자연의 법칙에 따라서 육신이 변화할 뿐이 라는 교훈을 담음으로써 시가 가져야 하는 뜻[言志]을 잃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시는 사공도(司空圖)가 말한 청신 표일(飄逸)하면서 충담(沖澹)하고 또 전아 (典雅)28)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한시에서는 인간의 내면인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정이라고 하는데, 정은 경과 어울려야만 미학성이 확보된다. 두련과 함련에 서 사실 그대로를 담백하게 그려냄으로써 서경의 심상을 얻은 다음, 경련과 미 련에서는 회상을 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서경을 돋보이도록 배치했다. 또한 이 시 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담아낸 경을 우선하면서 자연스럽게 인간의 마음을 움직 이는 선경후정(先景後情)의 정경이 교직되므로 선경후정 정경교융(情景交融)이라 고 할 만한 가작이다. 현대시와 달리 한시는 시인과 시적 주체와 대상이 일치하는 것을 목표로 했 다. 물아가 구분되지 않으면서 정경이 교융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시의 시인 내포시인 시적화자 - 시 에서 보이는 내포시인이나 시적화자가 없거 나 있다고 하더라도 시인과 일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까 시인 소동파 자신이 내포시인인 동시에 직접 서술하는 시적화자가 된다. 따라서 이 시는 시 인, 내포시인, 시적화자가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시인을 대리하는 내포시인과 시적화자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시인은 절제와 숭고의 미감을 직접 표현할 수 있다. 시 작품 속에 시인 소동파가 내재하면서 시 창작 과정에서 정조, 율격, 상 징, 의상, 의경 등 모든 시 창작의 전략을 직접 실행할 뿐 아니라, 시인의 목소 리로 서술하고 발화한다. 이것이 바로 서구적 의미에서의 자아, 주체, 이성보다 는 인간과 자연의 일치를 지향하면서 무위자연, 물아일체, 천명사상(天命思想)을 추구하는 동양미학의 본질이다. 인간에게 정해진 운명의 길은 오로지 하나, 우주대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 뿐이다. 그런데 인간은 독성(獨醒)을 통해서 불완전한 운명적 존재라는 것을 깨 우칠 수 있다. 소동파는 기러기 발자국을 통하여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사유했는 28) 司空圖, 二十四施詩品.
소동파와 송찬호의 시 텍스트에 나타난 내포시인ㆍ김승환 289 데 그것이 바로 홀로 고독하게 깨우치는 독성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이 시는 절 제와 응축이라는 한시의 특징을 잘 살리면서 우주자연에 실린 인간존재의 본질 을 잘 담아냈기 때문에 전설적인 명작이 되었다. 서정적인 회고시이지만 정경 묘사도 뛰어나고 감정을 절제하면서도 연정( 緣 情 )이 자연스러운 명작 중의 명작 이다. 이처럼 시인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시인 자신이 텍스트 안에 들어가서 직 접 진술하고 서술한다. 그런데 소동파의 서술방식은 부스와 채트먼이 주장한 내 포작가일 수는 있지만 리먼 캐넌이 말한 것처럼 서술한다는 의식이 없이 29) 서 술을 하는 시적 주체다. 따라서 소동파의 서술방식은 시인, 내포시인, 시적화자 가 일치하고 서정적 자아나 시적자아까지 일치하는 현상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 문에 우리는 텍스트에서 가공된 서술자나 시적화자가 아닌, 시인 소동파의 사상 을 직접 읽을 수 있고 분석할 수 있는 것이다. 고전시가에서는 대체로 허구적인 시적화자를 설정하지 않는다. 가령 위 시는 소동파는 동생과 지났던 옛날 길을 다시 걸으면서 회고한 경험을 직접 진술하고 있다. 시인이 내포시인과 시적화자의 역할과 기능을 겸한다. 서론에서 말한 내포 시인의 존재를 설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런 경우 비평가, 연구자, 독자는 시인의 전기적 사실과 역사사회적 배경으로 시를 해석한다. 하지만 현대의 독자 는 <화자유민지회구>를 시인 소동파의 경험이나 당대의 사실과 별개의 텍스트 로 읽을 수도 있다. 이 경우 현대의 독자는 시인, 내포시인, 시적화자를 분리하 여 인식하게 되고, 각각의 기능을 달리 해석하게 된다. 따라서 시인 소동파라는 저자의 죽음(death of Author)과 독자의 탄생 30) 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중립적 텍스트(neutral text)의 새로운 시지평이 생긴다. 따라서 고전시가로 읽는 <화자 유민지회구>와 현대의 독자가 읽는 <화자유민지회구>는 다른 텍스트다. 29) Shlomith Rimmon-Kenan, Narrative Fiction; Contemporary Poetics, (London and New York: Methuen, 1984). p.89. 30) 텍스트의 주인인 독자는 작가를 죽이고,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작가의 의도에 따르지 않고, 독자가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작품의 텍스트를 해석하고 창의적으로 감상해 야 한다. 이것을 독자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는데 독자는 주체적으로 텍스트의 다양 성을 확장하면서 작품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창의적 존재다. 바르트는 이런 텍스트 읽기를 저자의 의도를 따라서 읽어야 하는 읽기 텍스트(readerly text) 가 아닌 독 자가 능동적으로 읽을 수 있는 쓰기 텍스트(writerly text) 라고 말했다. Roland Barthes, The Pleasure of the Text, (New York: Hill and Wang, 1975). pp. 3-17.
290 어문론총 61호 3.2. 내포시인과 시인의 불일치 - 송찬호의 <복사꽃> 송찬호는 한국현대시사에 길이 남을 명작을 여러 편 생산했다. 초감각적이면 서 난해한 것처럼 보여서 관념의 세계와 삶의 세계를 아우른다는 평가31)를 비 롯하여 많은 평론가들이 그의 작품을 논평하고 분석했거니와 그의 시는 설화적 상상력 또는 산경산수의 서정시 또는 신화적 자연주의라는 비평만으로 해석되지 않는 특별한 점이 있다. 그 특별함은 그가 시를 대하는 태도에서 유래한다. 시를 대하는 그의 순결할 정도의 무구함과 경이로운 경건함은 수도사의 깊은 심연에 이르러 있다. 그 자세야말로 송찬호의 송찬호다운 시가 생산되는 이유일 것이다. 이것은 시인이 시 속에 심어놓은 시적화자와 시적화자가 표현하는 객관적 경물 (景物)의 문제인 객관적 상관물의 문제로 환원한다. 이런 그의 태도가 가장 잘 나타난 시 중의 하나가 <복사꽃>이다. 옛말에 꽃싸움에서는 이길 자 없다 했으니 그런 눈부신 꽃을 만나면 멀리 피해가라 했다 언덕 너머 복숭아밭께를 지날 때였다 갑자기 울긋불긋 복면을 한 나무들이 나타나 앞을 가로막았다 바람이 한 번 불자 나뭇가지에서 후드득 후드득, 꽃의 무사들이 뛰어내려 나를 에워쌌다 나는 저 앞 곡우(穀雨)의 강을 바삐 건너야 한다고 사정했으나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럴 땐 술과 고기와 노래를 바쳐야 하는데 나는 가까스로 시 한 편 내어놓고 물러날 수 있었다 31) 김지선, 송찬호론 1, 시와세계 32, 시와세계사, 2010년 12월. 121쪽.
소동파와 송찬호의 시 텍스트에 나타난 내포시인ㆍ김승환 291 송찬호( 宋 鎬 1959 ~ )의 <복사꽃>은 현대시이면서 고전적이고, 설화적이 면서 사실적이며, 관념적이면서 현실적인 가작이다. 이 시는 한 시인이 자신의 심경을 최고까지 밀고 나간 다음 극적으로 자신을 되찾는다는 이야기구조를 가 지고 있다. 꽃에 취한 한 인간의 황홀경을 이런 언어, 이런 심상, 이런 리듬으로 담아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다. 이야기 구조가 선명한 이 시 에서 곡우의 강을 바삐 건너야 한다고 쓴, 시적화자는 물러날 수 있었다 라고 회고했다. 힘겨운 꽃과의 대결에서 어렵게 놓여난 다음이었다. 물론 '물러났다'는 주체는 시인이 아니라 시적화자이지만 시 한 편을 내어놓고 라는 표현으로 인하 여 시인과 시적화자가 일치하는 것 같은 현상이 생긴다. 이것은 소설가 소설 처 럼 시인 시 라고 불러야 하는 시인을 이야기의 주체로 설정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한 착독( 錯 讀 )이 아니라 시인의 의도된 시적 전략 에 의한 정교한 오인이다. 이 시를 읽으면 텍스트 바깥의 시인이 텍스트 안의 시인과 구별되지 않는 것 같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시인이 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순간, 텍스트 바깥의 독자는 감정이입현상으로 인하여 텍스트 안의 시인과 바깥의 시인을 혼 동하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텍스트 바깥의 시인, 텍스트 안의 내 포시인, 이야기를 서술하는 시적화자가 분리되지 않는 중립적(neutral) 인식 32) 이 성립한다. 대체로 현대시에서는 시인이 직접 시 속에 개입하여 자신의 심경 을 토로하지 않는다. 시의 대상인 경물( 景 物 )과 시인 자신을 분리하고 그 분리된 틈으로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주입시켜서 최대한의 미적 표현을 해야 하기 때문 이다. 그런데도 시인 송찬호는 과감하고도 위험하게 자신이 직접 시 속으로 들 어가 버렸다. 그래서 꽃에 나포( 拿 捕 )된 감성적 시적화자와 시인이 일치하는 것 32) Roland Barthes, The Neutral: Lecture Course at the College de France (1977-1978), trans. Rosalind E. Krauss and Denis Hollier.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5). p.7. the wellspring of meaning; where there is meaning, there is a paradigm, and where there is paradigm (opposition), there is meaning elliptically put:meaning rests on conflict (the choice of one term against another), and all conflict is generative of meaning: to choose one and refuse the other is always a sacrifice made to meaning, to produce meaning, to offer it to be consumed.
292 어문론총 61호 같이 표현한다. 실제로는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거니와 시인 송찬호가 그렇게 보이도록 정교하고 치밀하게 연출을 한 것이야말로 송찬호의 송찬호다운 창작방법론이다. 시인인 텍스트를 대하는 작가는 객관성과 공정 성 33)을 가져야 하지만 시인 자신을 시적화자로 설정함으로써 텍스트 바깥의 시 인과 텍스트 안의 내포시인 그리고 시적화자가 일치하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리하여 꽃의 삼엄한 명령을 수행하는 시인 송찬호는 복사꽃에만 나포된 것이 아니라 자기 시에 나포된 자기포박의 정경을 표현하고 있다. 꽃에 포박된 시인은 선연한 이미지를 만들고, 시인이 꽃에 취해 물아일체가 된 것처럼 독자 역시 시에 취하고 시 속의 꽃에 취하여 물아일체의 황홀한 지경에 이른다. 또한 이 기법은 주 관적 자기, 즉 시인은 황홀한 꽃, 즉 객관적 경물의 향연을 힘겨워하는 자기로 연 출되어 있어서 독자들의 심금(心琴)을 울린다. 한편 뛰어난 비유인 곡우의 강은 주 관적 자기를 최대한 객관화한 시어다. 시적화자는 여전히 자기를 놓지 않고 잃지 않고 있는데도 마치 시인이 꽃과 대결하고, 꽃으로부터 놓여나고, 그래서 곡우의 강을 건넌 것처럼 보인다. 이런 시상(詩想)의 전개는 한시의 기승전결(起承轉結)의 구조와 흡사하며 심상이나 절제 역시 한시와 유사하다. 이 시를 보면 시인이 시 속으로 몰입한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사실 시인은 시 바깥에 객관적으로 위치하고 존재한다. 시인 송찬호는 자기를 대리하는 내포 시인을 시 속에 매복해 놓고 내포시인으로 하여금 시적화자를 움직여서 발화하 도록 조종한다. 그리고 시인 송찬호는 시 바깥에서 꽃과 대결하는 또 다른 자기 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 시에서 꽃싸움을 하는 주체는 시인을 대리 하는 시적화자다. 이와 마찬가지로 내 앞을 가로막았다 에서의 나 는 시인 자신 이 아니라 시인을 대리하는 시적화자다. 하지만 이 꽃싸움에서 이기느냐 지느냐 는 전적으로 시의 바깥에 있는 시인에 의해서 결정된다. 시인의 시창작의 전략 에 의하여 시적화자는 꽃사움에서 패배할 수도 있고, 승리할 수도 있으며, 비길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시인은 꽃싸움에서의 승패를, 아니 승패가 없다고 하 여도 관계는 없으나, 그 승패를 관장하는 절대적인 존재다. 이것은 시인이라는 주체와 시적 대상의 문제로 환원한다. 고전시가나 현대시는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어떻게 표현하는가의 문제로 압 33) Wayne C. Booth, The Rhetoric of Fiction,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61). p.77.
소동파와 송찬호의 시 텍스트에 나타난 내포시인ㆍ김승환 293 축된다. 시인을 아( 我 )라고 하고 표현되는 대상을 물( 物 )이라고 하며 그 광경을 경( 景 )이라고 하고 그것을 느끼는 것을 정( 情 )이라고 한다. 이 시에서 시인과 시 적화자는 아( 我 )이고 꽃은 물( 物 )이며 꽃싸움의 광경은 경( 景 )이며 그것을 느끼 고 애틋해 하는 것은 정( 情 )이다. 이런 절묘한 정경은 시인인 아와 대상인 물의 관계가 팽팽하게 긴장함으로써 증폭되지만 주체와 대상이 하나가 되는 일체감을 느낄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물아일체( 物 我 一 體 )의 지경인 것이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물인 꽃이 아인 나에게로 다가와 있다. 자기화된 세계, 또는 아물일체 ( 我 物 一 體 )의 지경인 것이다. 이것은 고전 한시( 漢 詩 )에서 주체인 내가 물( 物 ) 속 으로 다가가는 것과 반대의 현상이다. 따라서 이 시는 물아일체( 物 我 一 體 )가 아 닌 아물일체로 정경이 교융하게 된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그것은 <시인 송찬호 내포시인 - 시적화자 - 대상인 복사꽃>이 하나인 것 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인과 대상이 하나가 된다면 그것은 내포시인과 시적화자라는 중요한 장치를 상실한 것이고, 시인과 대상의 직접화로 인하여 상 상력이 제한되거나 억제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심경을 간접화시키지 않고 진솔 하게 표현하는 고전 한시의 경우에는 문제가 없으나, 간접화를 통하여 작가의 상상, 사상, 감성을 미학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현대시에서는 문제가 발생한다. 따라서 시인은 완전히 자신을 시 속으로 투사하지 않고, 관조적인 시인으로 시 바깥에 머물면서, 시 안에는 또 다른 자기인 내포시인을 매복하여 자기를 대리 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내포시인이 관장하는 시적화자는 시적자아인데 시 텍스 트 안에서 시가 표현하는 경이나 물을 자기화시키는 기능을 담당한다. 이것이 바로 아물일체의 지경이다. 이렇게 볼 때 송찬호의 기법은 시인이 내포시인 및 시적화자와 일치하는 것으로 읽히면서 동시에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읽히는 열 린 텍스트(open text) 전략이다. 전통적으로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겠거니와 시의 가장 높은 경지는 물아일 체 정경교융( 物 我 一 體 情 景 交 融 )이다. 34) 시인과 시가 분리되지 않고 독자와 시 34) 왕국유( 王 國 維, 1877~1927)는 정경이 잘 짜여야만 최고의 경지에 이른 좋은 작품이 라고 말했다. 자기 내면의 서정과 자기 바깥의 경물이 잘 짜인 정경교직( 情 景 交 織 )은 정경교융의 전제 조건이다. 정과 경이 어울려서 무엇이 정이고 무엇이 경인지 구분 할 수 없는 것이 가장 좋겠으나 정과 경의 순서가 다르고 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정경의 순서는, 정을 앞세운 다음 경을 담아내는 선서정후사경( 先 抒 情 後 寫 景 ) 즉 선 정후경과 경을 앞세운 다음 정을 담아내는 선사경후서정( 先 寫 景 後 抒 情 ) 즉 선경후정
294 어문론총 61호 가 하나가 되면서 무아의 지경으로 이입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예술의 목표일 것인데, 특히 시는 고결한 심성으로 그런 경지를 지향한다. 시인 송찬호의 주관 은 철저하게 객관화되어 있어서 보편의 정신은 추상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헤겔 (G. Hegel)의 절대정신과 같은 지경이다. 송찬호의 시가 난해해 보이고, 추상적 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시인 송찬호가 고결한 절대정신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시인의 주체성조차 사라지고 만 복사꽃의 향연에는 객관적 절대정신이 찬연하게 빛난다. 이 객관적 절대정신의 시혼(詩魂)이 시인, 내포시인, 시적화자가 일치하 기도 하고 일치하지 않기도 하는 근원이다. 4. 고전시가와 현대시의 내포시인 비교 내포시인과 시적화자가 시인과 동일한 존재라고 한다면, 시인은 어떻게 자기 생각을 발화하는가의 문제가 대두한다. 가령, 텍스트내에서 人生到處知何似(인생도처지하사) 인생이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비슷한 것 似飛鴻踏雪泥(응사비홍답설니) 날아온 기러기가 눈밭을 밟은 것과 같을 뿐이다 라고 할 때, 내포시인은 내포청자(독자)에게 대화를 하는 것이고 시적화자는 시적독자에게 대화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포시인과 시적화자의 발화방식은 독자의 존재가 텍스트에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독백처럼 보이기 쉽다. 가령 채트먼의 서사구조도에서는 시인 - 내포시인 - 시적화자 - 시적청자 - 내포청 자(독자) - 독자의 순차적 소통이 진행되지만, 날아온 기러기가 눈밭을 밟은 것 과 같을 뿐이다. 는 독자와 관계없이 시인의 사상과 감정을 내포시인과 시적화자 가 독백으로 재현한 것처럼 보인다. 채트먼에 의하면 내러티브에서 독백은 작가 의 발화와 생각이 결합한 형태35)이므로 독자의 관점에서는 시적화자의 발화가 실제 시인의 발화로 착독될 수 있다. 언뜻 보면 이 시의 화자는 객관적 실재와 거리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있다. 35) Seymour Chatman, op. cit. p.181.
소동파와 송찬호의 시 텍스트에 나타난 내포시인ㆍ김승환 295 사실은 반대다. 즉, 시인 소동파는 주관적 자기의 심정을 객관화시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시인이 직접 시 속에 들어가서 시적화자가 되어 진술하고 서술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그래서 시인은 자기 내면의 과거와 미래 그 리고 현재를 시간구조 속에서 재현해 낼 수 있다. 동시에 시인은 객관적 어법으 로 경물을 표현하면서 자신의 의경( 意 境 ) 36) 을 담는다. 가령, 인생이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비슷한 것 이라고 표현한 것은 인생을 관조하는 객관적 서술자 또는 화자로 설정되어 의상과 의경을 깊게 한다. 그런데 이 서술자/화자는 시인 소동파 자신이다. 같은 것 이라고 말하여 가치를 판단한 주체는 어법상 시적화 자이지만 그 시적화자는 시인 소동파다. 그러니까 이 시에서 소동파는 내포시인 이나 시적화자를 별도로 설정하지 않고 시인, 내포시인, 시적화자의 역할을 겸한 다. 그러므로 시적화자가 독백으로 자기 내면을 진술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시인 소동파가 직접 자기 목소리로 자기 사상과 감정을 진술하는 셈이다. 이렇 게 볼 때 <시인 소동파 - 표상된 시>는 간접화되지 않고 직접화되어 있다. 시 인, 내포시인, 시적화자, 시적자아, 서정적자아가 일치하는 이 현상이 바로 고전 시가의 일반적인 특성이고 구조다. 고전시가와 현대시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시적화자의 유무 또는 내포시인 의 기능이다. 중세 이전의 시인들은 자기 자신의 심경을 직접 표현했다. 시인과 시적화자를 구분하지 않거나 구분한다고 하더라도 거의 일치하는 존재였다. 왜 냐하면 시인이 시적자아와 시적화자 그리고 서정적자아가 되기 때문 37) 이다. 반 면 근대 이후의 시인들은 시인 자신과 시적화자를 구분한다. 시인 자신이 서술 36) 한시에서는 심원한 넓이의 의상( 意 象 )과 함께 심원한 깊이의 의경( 意 境 )을 중요시하 는데, 의상이 함축적인 심상이나 상상이라면 의경은 예술가의 주관과 경물의 객관이 조화하는 경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의경은 주관적으로 묘사하는 것도 아니고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아니다. 뜻으로만 보면 의경은 예술작품이 가진 경계 또 는 범위를 말하고 그 경계와 범위는 예술가의 상상력과 창의성에서 나온다. 사공도 ( 司 空 圖, 837 ~ 908)는 의경을 표면적인 것보다 깊은 상외지상( 象 外 之 象 )과 보는 것보다 넓은 경외지경( 景 外 之 景 )의 경지라고 정의했다. 그러므로 높은 의경의 경지 에 이르면 내가 존재하는 유아지경( 有 我 之 境 )을 넘어서 내가 존재하지 않거나 대상 과 혼융되는 무아지경( 無 我 之 境 )과 물아일체( 物 我 一 體 )로 나간다. 37) 대체로 시적자아, 시적화자, 서정적자아가 같은 개념으로 보지만 시적자아는 시의 자아(self)로 시인과 시적화자 중 자아의 개념을 강조한 것이다. 따라서 시적자아는 시를 텍스트로 읽지 않아도 설정할 수 있다.
296 어문론총 61호 자처럼 보이는 시도 있기는 하지만, 그 서술자는 시인 자신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근현대의 시인은 시 바깥에 있는 것이고, 시인을 대리하는 내포시인이 시 텍스 트 안에서 시적화자를 설정하면 그 시적화자가 시 안에서 서술하는 것이며, 그 시적화자는 시라는 텍스트 안에서 시적자아가 된다. 다시 말하면 시인은 시 바 깥에 위치하면서 자신을 대리하는 내포시인을 설정하고 그 내포시인으로 하여금 시적화자를 재설정하게 하여 자신의 심경을 간접화시켜서 표현한다. 예를 들면 송찬호 시인의 <복사꽃>이라는 시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나는 저 앞 곡우(穀雨)의 강을 바삐 건너야 한다고 사정했으나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럴 땐 술과 고기와 노래를 바쳐야 하는데 나는 가까스로 시 한 편 내어놓고 물러날 수 있었다 여기서 물러나는 주체는 나 다. 꽃싸움이라는 황홀한 상황에 처한 나 가 시를 한 편 내어놓고 물러났다는 것이다. 여기서 물러났다는 주체인 나 는 시적자아 인 동시에 시인 송찬호인 것 같은 착독 현상이 일어난다. 이 역시 앞에서 본 소 동파의 시와 마찬가지로 시인의 독백이 시 텍스트 안에서 실현되기 때문에 생기 는 현상이다. 또한 시인을 시적화자로 설정했기 때문에 시인, 내포시인, 시적화 자가 동일한 존재이며 시인의 발화와 생각이 하나 38)의 목소리를 내면서 독백 (soliloquy)의 통일성으로 드러난다. 아울러 그 시적화자의 독백은 독자를 가정 하지 않는 내적독백(interior monologue)이고 무대의 인물이 발화하는 극적독백 (dramatic monologue)과 다르다.39) 이처럼 독백으로 보이는 이유는 텍스트 바 깥의 시인이 아닌, 텍스트 내의 시적화자가 자기 내면을 진술하는 것처럼 보이 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인(詩人) 송찬호와 물러난 나 는 다른 존재다. 즉, 물러난 나 를 나 라고 기술하는 주체가 시인이라면 물러난 나 는 시인이 시 속에 설정한 시적화 자다. 그러니까 자유시의 시인은 자신의 심경과 사상을 시 속에 담아내지 않고, 자신을 대리하는 내포시인과 시적화자를 통하여 자신의 심경을 표현하도록 하는 38) Seymour Chatman, op. cit. p.181. 39) Seymour Chatman, op. cit. p.182.
소동파와 송찬호의 시 텍스트에 나타난 내포시인ㆍ김승환 297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 텍스트에는 <시인 송찬호 - 송찬호를 대리하는 내포시 인 시를 서술하는 시적화자>라는 삼원적 구조가 있다. 이것이 현대시의 일반 적인 특성이고 구조다. 이 구조가 읽힐 때는 <시인 송찬호 - 시적화자 - 대상 인 복사꽃>이 하나의 서정층위를 이룸으로써, 높은 경지인 물아일체를 완성하게 된다. 동양의 고전시가는 시인이 직접 시에 들어가서, 우주자연을 지향하는 것이 일 반적이다. 이것을 흔히 물아일체(物我一體)라고 한다.40) 물을 우선하고 내가 그 물 속으로 동화되는 것이다. 반면 현대시에서는 시인이 간접화되어 있고 시 바 깥에 위치하면서 문학적 표현을 하기 때문에 물과 시인은 객관화된다. 하지만 내포시인을 관장하는 시인이 시의 주체로 설정되기 때문에 아물일체(我物一體) 와 같은 현상이 발생한다. 정경교융이라는 최종의 미학적 경지를 지향하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물아일체인가 아물일체인가로 인하여 고전시가와 현대시가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 차이는 고전시가와 현대시의 특징과 본질을 보여주는 지점이다. 소동파의 시에서 보듯이 고전시가는 시인이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통하여 직접 발화한다. 그러니까 시에 드러난 시인의 인격과 일상에서의 인격이 일치하는 것이다. 반면 현대시에서는 시인의 인격과 일상에서의 인격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시의 장르적 특성상, 시인과 시적화자가 일치한다면 좋겠으나 그렇지 않더라도 큰 문 제가 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현대시에서는 자유로운 감성을 표현하기 위하여 시인과 시적화자를 분리하여 해석할 필요가 있다. 이것을 시적 간접화라고 할 40) 독자의 물아일체 현상 때문에 이 시의 시인 송찬호가 이야기를 발화한 것으로 읽힌 다. 물아일체는 자기와 자기 바깥의 물(物)이 하나가 되는 것이지만 주체와 객체, 정신과 물질이 하나가 된다는 뜻도 있다. 그렇다면 자기는 무엇이고 물은 무엇인가? 인식의 주체인 자기는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의미하며 인식의 대상인 물은 사물, 경관, 타자 등을 포함한 우주 전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물아일체는 자기와 자기 바깥 의 구분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물아일체를 자기가 물(物) 속으로 들어가 는 것[物我一体即推己及物]이라고 보는데 이와 유사한 개념으로 물심일여, 순응자 연, 천인합일(天人合一) 등이 있다. 물아일체는 동양의 자연관, 우주관, 인간관에서 파생된 독특한 개념이고 음양이론, 심성론, 성정론 등 동양의 인식체계를 토대로 한 다. 자기를 잃어버리고 무엇에 몰두한다 는 이 개념은 자기와 경물의 완벽한 일치를 지향한다. 김승환, 인문천문목요학습 문학예술미학, 문화예술연구소, 2014. 176쪽.
298 어문론총 61호 수 있는데 이 간접화의 과정에서 현대시의 특징인 심상, 상징, 은유를 포함한 각 종 비유가 다양하게 쓰인다. 하지만 현대시에서도 독자는 시의 이야기를 시인의 진술로 오인하여 시인이 꽃싸움에서 져서 물러나는 것으로 읽듯이 꽃이라는 물 과 읽는 자신을 일치시키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것은 시인, 내포시인, 시적화자 가 일치하는 것으로 오인하게 만드는 시인의 창작전략에 기인한다. 이것은 시인 송찬호가 그런 시적상황을 연출한 것일 뿐, 실제로는 시인은 시 텍스트에서 서 술을 할 수가 없다. 5. 결론 시적화자와 내포시인 이 논문은 시에서 내포시인 이라는 개념을 설정한다면 텍스트 해석이 어떻게 달라지고, 어떻게 새로운 의미를 밝혀낼 수 있는가, 또 소동파와 송찬호의 상호 텍스트성을 밝히는 데 어떤 점에서 기여할 수 있는가 등을 밝히는 것이 목적이 다. 이를 위하여 필자는 소동파의 칠언율시 <화자유민지회구>와 송찬호의 자유 시 <복사꽃>의 텍스트구조를 웨인 부스와 채트먼의 내포저자 이론에 근거하여 내포시인(implied poet)의 기능을 분석했다. 아울러 시에 시인이 실존한다고 보 는 전통적 관점과 시를 자율적 텍스트로 보는 관점을 비교하면서, 시 작품의 실 제 시인과 시 텍스트 안의 내포시인이 어떤 관계인가를 고구해 보았다. 기존에 시학계에서 쓰고 있는 함축적 시인은 영어의 implied를 직역하여 어의적인 뜻을 강조했다면 내포시인은 텍스트에 내재한 시인의 존재를 강조한 개념이므로 다르 다. 여기서 이 논문의 목적인 내포시인의 개념 성립 여부와 내포시인의 기능을 초시간적으로 살펴보는 문제가 선명해진다. 내포시인은 시인을 대리하여 시 텍스트 안에 내재하면서 시적화자를 통하여 시의 이야기를 서술하도록 하는 존재다. 대체로 시적자아(poetic self)에 화자의 성격이 있다고 하여 시적화자(poetic narrator)라는 개념을 쓰지만 그 시적화자 를 설정하는 내포시인의 존재를 독립시키는 것은 무리하지 않다. 만약 시 텍스 트에 내포시인이 없다면 텍스트 바깥의 시인이 시 텍스트 안에 내재하면서 시적 화자를 직접 관장하게 된다. 이 경우 시인은 직설적 발화의 주체가 되는 것이므 로 시의 텍스트성(textuality)을 밝히기 아렵다. 간단히 말해서 내포시인은 시 텍
소동파와 송찬호의 시 텍스트에 나타난 내포시인ㆍ김승환 299 스트 안에서 시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시적화자와 시 텍스트 바깥의 실제 시인 을 연결하는 매개적 기능을 한다. 이렇게 볼 때 시 텍스트는 시인 - 내포시인 - 시적화자 - 텍스트/이야기 - 시적청자 - 내포청자(독자) - 독자의 순차로 정렬 된다. 현대시는 허구와 상상으로 설정된 서술주체가 시의 이야기를 전개한다. 가령 송찬호의 <복사꽃>에서 보듯이 현대시의 시인은 시 바깥에 있는 것이고, 시인을 대리하는 내포시인이 시적화자를 설정하면 시적화자가 시 안에서 이야기를 진행 한다. 한편 실제 시인 송찬호는 상상력과 허구를 통하여 시 작품을 쓰는 것인 반면 시의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은 시 텍스트 안에 있는 시적화자다. 이 두 존 재를 매개하는 것이 내포시인이다. 그러므로 작품으로서의 시와 텍스트로서의 시를 구분할 수 있고, 시 텍스트에는 시인과 다른 내포시인과 내포화자가 존재 한다고 할 수 있다. 한 작품은 실제 작가가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이입하여 생 산한 결과이면서 작가와 별개로 독립성을 가진 문학적 장치 즉, 문학텍스트다. 따라서 시 텍스트 바깥의 시인과 시 텍스트 안의 내포시인은 일치할 수도 있고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은 시를 작품으로 볼 것인가, 텍스트로 볼 것인 가? 를 먼저 결정한 다음 시(poem) 또는 시텍스트(poetic text)를 분석할 필요 가 있음을 반증한다. 시인의 허구와 상상을 위주로 하는 현대시에서는 내포시인과 시적화자가 분 명하게 드러나지만 고전시가에서는 실제 시인이 내포시인과 시적화자를 겸한다. 소동파의 <화자유민지회구>에서 보듯이 고전시가의 경우, 시인과 시적화자의 미 분리로 인하여 시 텍스트 바깥과 안에서 모두 시인이 시의 주체가 된다. 따라서 시인 내포시인 시적화자가 일치하므로 시인의 경험을 토대로 창의적 상상력 이 시에 투영되고 독자 또한 그렇게 읽는 것이 보통이다. 만약 독자가 소동파의 <화자유민지회구>를 단지 한시( 漢 詩 )로 읽으면 시인과 내포시인은 일치하는 것 이고 시( 詩 ) 텍스트로 읽으면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고전시가도 시 텍스 트로 읽을 수 있고 현대의 독자가 고전시가를 하나의 시 텍스트 구조로 이해한 다면 시인과 시적화자는 다른 존재일 수 있다. 롤랑 바르트가 말한 저자의 죽음 (Death of Author) 과 독자의 탄생이라는 관점에서 텍스트를 중립적으로 읽는다 면, 고전시가도 시인, 내포시인, 시적화자가 분리될 수 있다.
300 어문론총 61호 주제어 내포화자, 내포시인, 시적화자, 텍스트구조, 시 텍스트 참고문헌 김영철, 현대시론, 건국대학교출판부, 1993. 김준오, 시론, 삼지원, 1991. 김지선, 송찬호론 1, 시와세계 32, 시와세계사, 2010년 12월. 범덕기(范德玑), 시격(詩格). 왕 력, 중국시율학 1, 송용준옮김, 소명출판, 2005. 왕 력, 중국시율학 4, 송용준옮김, 소명출판, 2005. 袁行霈 莫砺锋 黄天骥, 中国文学史 第二版.第三卷, 高等教育出版社, 2009. 第五编第四章. 윤여탁, 서정시와 시적 화자(persona), 유영희 윤여탁 최미숙, 시와 함께 배우는 시론, 태학사, 2001. 116 131쪽. 윤여탁, 현대시의 내포와 외연, 태학사, 2009. 윤지영, 시 연구를 위한 시적 주체(들)의 개념 고찰, 국제어문 39집, 국제어문학회, 2007.4. 142 165쪽. 이숭원, 백석 시에 나타난 자아와 대상의 관계, 한국시학회 학술대회 논문집, 한국시 학회, 2006. 25 42쪽. 장도준, 한국현대시의 화자와 시적 근대성, 태학사, 2006. 정효구, 이승훈의 시와 시론에 나타난 자아탐구의 양상과 그 의미, 어문논총 제7집, 충북대학교 외국어교육원, 1998.1. 204 227쪽. Barthes, Roland, The Death of the Author, Image, Music, Text, 1977. Barthes, Roland, The Neutral: Lecture Course at the College de France (1977-1978), trans. Rosalind E. Krauss and Denis Hollier.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5). Barthes, Roland, The Pleasure of the Text, (New York: Hill and Wang, 1975). Booth, Wayne C., The Rhetoric of Fiction,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61). Chatman, Seymour, Ironic Perspective", New Perspective on Narrative Perspective, edited by Willie Van Peer and Seymour Chatman,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2001). Chatman, Seymour, Story and Discourse, (Ithaca and London: Cornell University Press, 1978). Genette, Gerard, "Mood", Narrative Discourse, (New York: Cornell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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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 어문론총 61호 Abstract Implied Poet in the Poetic Text of Su Shi and Song Chan-Ho Kim, Seung-hwan In this essay, I analyze the text structure of Sushi s and Song s and adjust the implied author with the Wayne C. Booth and Chatmann s perspective. If some poem has its own story line, there is text structure. It might be arranged as ; real poet implied poet poetic narrator poetic text poetic reader implied reader real reader. As we can see in Song s peach blossom, real poet is residing out of the text and poetic narrator residing in the text narrates. This poetic narrator is poetic self in the text. In this perspective, we can differentiate poetic text from poem. Implied poet can exist in the poetic text and implied poet narrates poetic story as a implied narrator. The poet and poetic narrator are different, but they can be paradoxically congruous or incongruous. Poetry is not only dictation by a poet but also narration by a poetic narrator. According to the long held theory, the poet and poetic narrator can not be divided due to the congruity of their two existences. Does the poet reside inside or outside poetry? There are two possible forms. Firstly, there is congruity between the poet and poetic narrator, as seen in Chinese classical poems. However, there is incongruity between the poet and poetic narrator, as seen in most modern poems. In the case of the second form, modern poems can be divided into several styles: long distance, middle distance and short distance between the poet and poetic narrator. The first form of congruity minimizes the imagination of the poet because of the empirical facts, but it can deepen the empirical truth. The second form of incongruity can maximize imagination, but it becomes more distant from the empirical facts and empirical truth. The narrator of Chinese poet Su Shi's poetry is himself. Su Shi(蘇軾
소동파와 송찬호의 시 텍스트에 나타난 내포시인ㆍ김승환 303 1037~1101) is congruous with the poetic self inside the text and narrates by himself in and outside the poetry. The poetic self narrates the poet's thoughts and emotions according to the classical form of Chinese poetry. This narrator is not representative of Su Shi alone but Su Shi himself as a poet and the poetic self simultaneously. Poet Su Shi and this poetry are directly juxtaposed in the text. There is no poetic self as in modern poetry. The narrator of Song's poetry is not Song Chan-Ho(1959 ~ ) himself but a narrator invented by him. Korean poet Song and the poetic self of the text are different. The poetic self narrates the thought and emotion according to the modern poetic free form. The narrator is embedded in the text as a representative of the poet, Song. He is an imagined narrator who is alive inside the poetic text instead of the poet himself. Once poetry has been released from the poet and been pressed into the written text, the poetic self as a narrator is an independent self with their own voice. This is a distinctive characteristic of modern poetry. We might define it as incongruity between the poet and poetic narrator. For this reason, modern poetry has been, and must be, interpreted with and without the poet himself. Keyword Implied poet, Poetic Self, Poetic narrator, Text structure, Text of poem. 접 수 일 : 2014년 8월 10일 심사기간 : 2014년 8월 18일 ~ 8월 30일 게재결정 : 2014년 9월 18일 (편집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