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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70년대 민중운동과 민중 지향 551 여성노동자의 투쟁은 1970년대 말 제2차 오일쇼크로 일자리를 위협 받으면서 격화했고, 이것은 유신 독재의 기초를 무너뜨리는 역할을 했 다. 여성노동운동은 여성운동에 힘을 주고 내용을 채우는 역할을 했다. 동일방직 노조는 여성 조합원 주길자(1972) 이영숙을 지부장으로 선출했다. 대부분 민주노조는 조합원 대다수가 여성이었다. 해태제과 여성노동자의 8시간 노동 쟁취는 6년에 걸친 싸움 끝에 확보한 역사 적 사건이다.(1975~80) YH 사건에서 희생당한 김경숙의 죽음은 유신 체제에 치명타를 입혔다. 콘트롤데이타노조와 삼성제약노조는 여성노동자의 특수 과제를 제 기해 중요한 성과를 거두었다. 콘트롤데이타노조는 생리휴가 확보, 결혼퇴직제 철폐(1977), 남성 관리자들의 성차별적 언행 금지, 산전산 후 휴가의 정착(1980), 생산직 여사원의 승진 승급 쟁취, 결혼휴가 6 일과 축의금 확보 등 여성들의 문제를 해결했다. 삼성제약노조도 비 슷한 성과를 이룩했는데 특히 관행으로 난무하는 성희롱을 없애려고 가해자 해고를 요구하며 적극적으로 교섭해 성희롱을 없앴다. 38) 공장이 아닌 여성노동자로 저임금과 몸 수색 등 인권유린에 시달린 버스 안내양들이 투쟁했다. 1970년 버스 안내양 이란희가 삥땅을 해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했다고 고백했다. 지학순 주교는 생활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삥땅은 정당하다고 했다. 39) 1970년 12월 2 일 서일교통 안내양 30여 명이 체불임금지급과 숙소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했다. 1973년 신촌교통 입석버스 안내양 128명이 지나친 몸 수색 에 항의해 집단행동을 일으키고, 자동차노조도 불법검신의 폐지를 요 구했다. 1978년 10월 7일 부산 대창여객 안내원 36명이 몸 수색에 항 의하며 취업을 거부하고, 광주고속 안내양 120여 명이 남산 야외음악 37) 구해근, 2003 한국노동계급의 형성, 창작과 비평사, 197쪽 38) 유경순, 2005 여성 노동자 투쟁의 역사 노동자의 힘 74호 참조. 39)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한국교회산업선교25주년기념대회, 앞의 책, 101쪽

2 552 김영곤 당에 모여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농성 시위했다. 동부운수 소속 안내 양은 기숙사를 탈출해 노동청 사업소에 몰려가 시위했다.(1976) 1976 년 1월 5일 버스 안내양 이영복은 삥땅 추궁에 시달려 할복 항의해 1 월 17일 계수기를 철거했다. 1970년대 말 실직한 여성노동자들 가운 데 재취업이 안 돼 유흥업소 등에 취업하는 경우도 있었다. 40) 1970년대 여성노동자들은 노동현장을 떠난 뒤 생활현장 속에서 새 로운 민중운동의 사례를 만들었다. 그들은 1970년대를 지나 노동자뿐 아니라 여성으로, 어머니로, 주민으로, 국제 노동공동체의 일원으로 새로운 민중운동의 영역을 개척했다. 이들은 이후에도 권력에 덜 편 입돼 자율적인 사회운동을 계속했다. (5) 노동자의 조직 뿌리가 깊은 한국노총의 어용성은 내적으로 관료화하고 외적으로 독재와 결합하면서 더욱 심해졌다. 한국노총은 유신체제 이전에는 산업선교회, JOC 등 지원 단체들과 비교적 원만한 관계에 있었으나, 1972년 10월유신체제를 지지하고 그 안에 안주하면서 어용성을 더하고 민주노조 활동을 탄압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이런 영향 등이 작용해 1971년 1,656건이던 노동쟁의는 1972년 346건, 1973년 367건으로 급감했다. 조직의 어용성 비판을 의식한 한국노총과 민주노조를 지원하는 종 교계 사이에 비판이 오갔다. 한국노총(위원장 배상호)은 1974년 1월 5 일 산업선교 활동이 종교인의 직분을 망각한 노동조직 침해 행위 라고 비난하고, 12월 9일에는 전국노동자대표 궐기대회를 열어 도시 산업선교회의 노조 조직 침투를 단호히 응징하겠다 는 성명을 채택 했다. 또 1975년 1월 22일에는 가톨릭노동청년회에 공개 경고문을 보 40) 알랭 리피츠, 1994 범세계적인 포디즘을 향하여 현대노동과정론 (허석렬 편), 자작아카데미, 360쪽

3 1970년대 민중운동과 민중 지향 553 냈다. 이에 1월 25일 16개 도시산업선교단체들이 한국노총에게 본연 의 업무에 충실해 관제 어용 노동귀족의 오명을 벗을 수 있도록 노동자를 위해 투쟁할 것 을 권고했다. 3월 10일 한국 노동운동 자율 화추진발기회는 민주 노동운동을 위한 자율화 투쟁 선언문 을 발표 해 한국노총은 노동귀족의 도피처이며 부정부패의 복마전으로 전락 했다 고 비판했다. 41) 섬유노조의 김영태 위원장은 동일방직의 해고노동자 블랙리스트를 전국사업장과 노조에 뿌려 관료화하고 부패한 노총의 모습을 단적으 로 드러냈다. 1970년대 전국섬유노조위원장은 일반 노동자보다 수십 배나 많은 한해 540~600만 원의 임금을 받았다. 42) 독재와 협력한 노 총의 위원장 등 간부 한 두 명은 임기를 마치고 여당 국회의원으로 자리를 옮겨 어용 지도부의 순환구조를 만들었다. 그런 가운데 섬유화학, 금융, 자동차노조 등에서 학생운동 출신 활 동가들이 노동조합 결성에 열중했다. 1970년대에 설립한 노조 수는 2,500여 개였다. 민주노조와 지원활동 1970년대에는 약 2,500개의 새로운 노조를 조직했다. 1970년 11월 청계피복노조, 1973년 신진자동차(현 대우자동차), 원풍모방, 아세아자 동차 노조 결성이 있었고, 삼성재벌 산하 제일제당 김포공장의 노조 결성 투쟁(실패, 1977)도 있었다. 금융노조는 오랜 투쟁 끝에 대리급 의 노조 가입을 실현해 조직을 확대했다.(1973) 1970년대의 민주 노동운동은 자주성과 투쟁성에서 수준이 높았으 며, 연대 의식도 어용노총에 반대하는 연대활동으로 나타났다. 43) 노 41) 이상우, 1986 박 정권 18년:그 권력의 내막, 동아일보사, 366쪽 42) 전태일 여동생 전순옥씨 노조비리에 쓴소리 한겨레 2005년 5월 19일자 43) 반도상사 동일방직 원풍모방 노조의 조직운동은 국제적으로 훌륭한 사례로 소

4 554 김영곤 조민주화 운동은 원풍모방, 동일방직, 반도상사, YH무역, 콘트롤데이 타 코리아, 한일공업, 청계피복 등의 여성노동자를 중심으로 전개했 다. 한국모방 노조는 1973년 회사가 부도가 나고 박용운 사장이 해외 로 달아나자 4개월 동안 회사를 인수하고 자주관리에 들어가 흑자를 내고 임금체불 없이 임금을 35% 인상했다. 회사가 원풍으로 넘어간 뒤 이름을 바꾼 원풍노조는 쉼 없는 조합원 교육과 활발한 소모임 활동으로 조직력이 있고 투쟁성이 강했다. 민주노조들은 조직력을 강화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청계피복노조는 노동교실을 만들어 조합원 교육, 소모임 조합활동을 폈다. 유신 독재 는 1977년 8월 노동교실을 폐쇄하고 실장인 이소선 어머니를 구속시 켰다. 노동조합의 민주성은 원풍모방 등에서 아주 높아 민주노조를 지키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영등포 산선에서는 원풍모방, 해태제과, 롯데제과 등의 노동자들을 회사별, 교대조별로 구성해 소모임 활동을 전개했다. 소모임에서는 근로기준법, 노조활동, 노동운동사, 다른 회 사의 사례 연구 등 노동교육, 여성 건강 상식 노래 부르기 등의 교양 활동, 한자 등의 야학활동, 꽃꽂이 음식 만들기 인형 만들기 등의 취 미활동, 노래반 연극반 풍물반 등의 문화활동, 다람쥐회, 공동구매조 합, 치과진료 건강 상담 등의 의료 활동을 전개했다. 44) 크리스챤 아카데미가 실시한 중간집단 교육(1974~79)은 교회, 여 성, 산업, 청년, 농촌사회 등의 활동가 수십 명이 사회 양극화를 한 국 사회의 핵심 문제 라는 주제를 사나흘씩 함께 먹고 자면서 깊이 있게 논의하는 집단 대화 방식으로 썼다. 이 방식으로 노동 농민운동 활동가들의 조직능력이 발전했다. 개하고 있다.(이광택, 년대 노동운동 평가 나의 청춘 나의 조국, 나남출판, 582쪽) 44) 신철영, 2003 영등포산업선교회 - 70~80년대 노동자들의 보금자리 기억과 전망 겨울호, 184쪽

5 1970년대 민중운동과 민중 지향 555 한국노총이 노동자들에게서 지도력과 신뢰를 잃은 것만큼 민주 노 동단체 종교단체의 지원이 활발했다. 가톨릭노동청년회, 산업선교회,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크리스챤 아카데미 등의 단체들이 노동자들 의 의식 조직 투쟁사업을 지원하거나 노동문제의 사회여론화에 기여 했다. 앞에서 서술한 것처럼 청년 학생들이 노동운동에 기울인 관심 과 지원은 전태일 사건의 진행과 그 이후 현장 투신으로 이어졌다. 45) 또 1970년대 초부터 노동자들이 공장 단위 투쟁에서 연대투쟁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1970년대 후반에는 노동자의 연대를 경인지역으로 확대했다. 한영섬유 김진수가 노조활동과 관련해 회사의 사주를 받은 정진헌 에게 드라이버로 머리를 찍혀 죽자 200여 명이 모여 장례식을 열고 제2의 전태일 사건 이라고 평가했다.(1971) 46) 협신피혁 민종진의 사 망에 항의해 청계피복, 동일방직, 방림방적, 반도상사, 남영나일론, 인 선사 노동자 300여 명이 항의 시위를 했다.(1977) JOC가 주도해 인선 사(이후 삼고사로 개명)의 유령노조와 투쟁하던 노동자들이 해고되자 이들의 복직을 요구하며 전개한 불매운동(1977)을 했다. 동일방직 사 건에 경인지역 노동자 150여 명이 기독교방송 보도국을 찾아가 언론 이 똥물사건을 보도하지 않는 데 항의하고 그 중 10여 명이 생방송 중인 스튜디오를 점거해 방송을 중단시켰다.( ) 동일방직 원 풍모방 삼원섬유 방림방적 등의 6명의 노동자가 남산 야외음악당에 서 열린 부활절 예배에서 노동3권 보장하라, 똥을 먹고 살 수 없다, 동일방직 사건 해결하라, 산업선교회는 빨갱이가 아니다, 방림방적 체불노임 해결하라, 우리도 인간이다. 박 정권 물러가라 는 구호를 외쳤다. 이런 연대투쟁은 정치투쟁의 의미도 가졌다. 47) 45) 정윤광, 2005 저항의 삶, 내가 살아온 역사, 백산서당, 252쪽 46)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한국교회산업선교25주년기념대회, 앞의 책, 657~658쪽 47) 이목희, 월유신과 민주노조운동의 외로운 출발 1970년대 이후 한국

6 556 김영곤 노동자의 연대는 유신체제 몰락 직후 활발해져 노총의 민주화와 섬유노련 김영태 위원장, 금속노련 김병룡 위원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경인지역 노동자들의 연대농성(1980)의 기초가 되었다. 노동자들은 정권의 지원을 받는 대기업 자본에 저항했으나, 정권에 대해 직접적인 투쟁은 거의 없었거나 수위가 낮았다. 그러나 YH 사 건에서 보듯이 대기업을 향한 투쟁이 정권의 기초를 와해해 유신체 제 붕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6) 언론노동자 언론인들은 아직 자신을 노동자라기보다는 언론인의 임무에 치중 하면서도 동아일보, 한국일보 등에서 노조를 결성했다. 자신의 업무 와 관련한 점에서 일종의 사회적 노동으로 본 것이다. 기자들은 기사 삭제에 항의하는 밤샘 농성을 종종 벌였다. 48) 1973 년 가을 유신 독재에 저항해 처음으로 일어난 시위를 보도하지 못하 게 되자 이에 자책감을 느끼고 1973년 10월 경향신문, 11월 동아일 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 기자들이 언론 자유를 선언했다. 1973년 11월 29일 기자협회는 서울대 문리대 학생들의 유신반대 시위(10. 2)를 보도하지 못하자 사실보도를 다짐하는 결의문을 채택했 다. 이어 동아일보( )와 한국일보( )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동아일보 기자 180여 명이 유신체제를 반대하는 자유언론실천선 언 을 발표했다.( ) 정권의 압력으로 광고주들이 광고를 무 더기로 해약하자, 기자들은 광고 탄압에 항의해 광고를 백지로 비워 노동운동사 (한국민주노동자연합 엮음), 동녘, 85쪽 48) 유신 기간에 동아일보의 장봉진 성락오 이부영, 중앙일보의 김인호 이영석, 경 향신문의 윤대종, 동아투위 소속 안종필 장윤환 안성열 등이 반공법, 긴급조치 로 처벌 받았다.

7 1970년대 민중운동과 민중 지향 557 둔 채 신문을 발행했다. 곧 전국의 31개 신문, 방송 기자들이 일제히 자유언론수호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조선일보(32명)와 동아일보 (134명)에서 기자 프로듀서 아나운서를 해고했다. 해고된 언론인들은 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를 만들면서 언론 자유수호운동은 민주화운 동으로 발전했다. 동아투위와 조선투위는 1977년 말 민중에게는 자 유를, 민족에게는 통일을 이라는 내용의 민주민족언론 을 발표하고 제도언론을 감시하고 비판했다. 1978년 6월 7일 중앙일보 기자들은 우리의 주장 에서 삼성그룹의 영향에서 탈퇴하고 편집의 자율성을 요구하고, 9월에는 월간중앙 10월호가 정부정책을 비판한 글을 문제 삼아 압수되자 3개월간 자진 휴간했다. 학생 종교단체 등의 지하신문 외에도 국내의 소식을 국외로 알리 는 지하언론이 있었다. 민중운동가들은 1973년부터 1988년까지 지명 관을 통해 한국의 소식을 일본으로 보내고 TK통신 을 발간했다. 1973년 짐 스텐즐(Jim Stentzel)의 제안으로 슈 라이스 부부(Sue and Randy Rice), 루이스 모리스(Louise Morris), 문동환 목사 부부 등은 한국 의 상황을 기록한 팩트 쉬트(Fact Sheet) 를 유신 직후부터 광주민중 항쟁까지 9년 동안 모두 63호를 만들어 미국 캐나다 독일 등에 배포 해 한국 상황을 외국에 알렸다. 이들은 한국의 현실을 세계에 알리는 창구 역할을 했다. 3) 개발에 저항하는 민중 (1) 개발독재와 도시주민 정책 경제개발을 본격화하면서 도시로 들어오는 이농민의 숫자가 크게 늘었다. 서울의 경우 1960년에 240만 명이던 인구가 1980년에는 3.5 배가 넘는 840만 명으로 늘었다. 이 농민들 중 상당수는 안정된 일자

8 558 김영곤 리를 찾지 못하고 변두리의 판자촌에 집단적으로 거주하면서 도시빈 민을 형성했다. 1966년 당시 서울시 인구 380만 명 가운데 1/3에 해 당하는 127만 명이 무허가주택에 거주하였을 정도이다. 무허가 주택이 서울시 전역에 걸쳐 생겨나자 서울시는 본격적인 철거작업에 들어갔다. 1967년 이후 1970년 중반까지 서울에서 14만여 동의 판잣집을 세우고 그 가운데 약 9만 동을 철거했다. 49) 유신 독재 는 도시빈민을 강제로 몰아내고 그 땅에 건물과 아파트를 지어 건설 업자의 이익을 챙겨주는 정책을 폈다. 이런 재개발 정책은 전국에 걸 쳐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서울의 청계천 등에서 밀려난 빈민은 그 뒤 30여 년에 걸쳐 성남 봉천동 목동 안양 수원 등을 거쳐 김포 구 리 오산 등으로 부챗살처럼 퍼져나갔다. 부산 초량의 빈민은 물만골, 사상, 구포 등으로 이주했다. 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서울 부산 등 중 심 도시를 생활근거로 삼고 있다. (2) 도시 빈민 운동 전개 농촌을 떠나 썰물처럼 도시로 밀려온 유리농민 가운데 일부는 도 시 빈민이 되고, 노동자보다 가격이 낮은 노동의 원천을 형성했다. 도시주민 50) 특히 도시빈민은 저임노동의 원천이고 도시 변두리의 부 동산을 재개발하는 과정에서 희생당했다. 이를 바로잡으려는 빈민운 동이 일어났다. 빈민은 1960년대 말, 1970년대 초의 광주대단지 조성 사업계획 에 의한 대단위 강제 철거가 자발적이고 순간적인 폭동 으로 나타나자 당시 전태일 열사 분신 이후 적극화된 민중운동의 열기 속에서 빈민 49)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년대 민주화운동 Ⅰ,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 63~64쪽 50) 1970년대 이후 도시변두리에서 일어난 주민운동을 도시빈민운동으로 불렀는데, 이 글에는 도시빈민운동을 주민운동을 구성하는 일부 개념으로 규정한다. 도시 빈민운동이라는 개념에는 사회병리학적 의미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9 1970년대 민중운동과 민중 지향 559 들을 운동의 주체로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학생, 지식인들이 빈민지역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들은 불만이 있는 곳에 변혁이 있 다 면서 본질 폭로보다 는 승리할 수 있는 작은 싸움 (화장실 짓기, 도 로 포장, 상하수도 시설 확충, 전기 시설 등)을 통해 빈민을 조직하고 의식화사업을 했다. 이들은 미국의 흑인민권운동가 알린스키(S. Alinsky) 의 영향을 받았다. 51) 1971년 9월 1일에 조직한 수도권도시선교위원회는 솔 알린스키(S. Alinsky)의 지역사회 조직이론과 파울로 프레이리(Paulo Freirie)의 민중 교육론 52) 에 따라 활동했던 빈민운동 초기 조직이었다. 53) 전태일 분신 전후에 김진홍, 제정구(1944~99), 이해학 등이 빈민을 민중의 하나로 보고 그 속으로 들어가 생활하기 시작했다. 김진홍은 1970년대 사회적 빈민층이 모여 살던 서울 청계천에서 두레공동체운 동을 시작해 1971년 활빈교회를 세웠다. 제정구는 1972년 야학 교사 로 청계천 판자촌에 들어갔고, 1975년 양평동 뚝방 동네로 이주했다. 양평동에 철거가 시작된 1977년 주민들과 함께 집단 이주를 계획하 고 정일우 신부와 함께 경기도 시흥군 소래면 신천리에 이들의 마을 을 일구었다. 박형규 목사가 지도하는 빈민 선교단체인 수도권특수선 교위원회(KMCO) 실무자로 성남에 파견된 이해학은 1973년 3월 1일 성남에 주민교회를 설립해 성남지역에서 주민운동의 터전을 마련했 다. 허병섭은 1970년대 후반 서울 월곡동에 동월교회를 세우고 빈민 공동체 활동을 전개했다. 51) 양연수, 1990 도시빈민의 태동과 그 발전과정 한국사회운동사 (조희연 편), 죽산, 228쪽 52) 한국천주교평신도협의회가 1979년 번역한 프레이리(Paulo Freire)의 페다고지 (Pedagogy of the Oppressed) 53) 프레이리의 주민공동체 이론은 1980년대 부문운동의 발전으로 소강 상태를 이 루었으나, IMF 통치 뒤 도시빈민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재조명하고 있다.(양재 덕, 2003 필리핀 지역공동체조직 연수보고서, 실업극복국민운동본부 참조)

10 560 김영곤 제2차 오일쇼크 뒤 부산 마산의 저임 노동자와 실업자가 부마항쟁 의 주요한 구성원이었다. 54) (3) 개발에 밀린 도시주민의 저항 도시주민의 저항 개발과 부실공사의 피해를 본 주민들이 저항했다. 1971년 6월 28일 서울 시민아파트 주민 3천여 명이 시청 앞에서 시위했다. 1971년 10 월 6일 천안시 완초동 주민 100여 명이 시청에 몰려가 무허가 건물 강제 철거 뒤 대책을 요구했다. 제주도 용담동 주민 250여 명은 소음 공해와 택지값 저하를 우려해 1972년 4월 28일 제주공항에 몰려가 국제공항 확장 반대 란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국회의원 면담 요청을 하다가 경찰 저지로 해산했다. 1970년 4월 8일 와우아파트가 무너져 33명이 사망했다. 이 사건은 1960년대에 날림공사와 낮은 공사비 책정 때문에 일어났다. 당시 연 세대 도시문제연구소에서 이 사건의 일어날 가능성을 조사한 김혜경 은 제정구 등과 함께 천주교 도시빈민회를 만들어 빈민운동을 하고 철거민 투쟁에 참여했다. 1977년 광주에서 박흥숙은 철거반원이 자신의 무허가 판잣집을 철 거하는 것을 보고 격분해 철거반원 4명을 살해했다. 언론은 그를 무 등산 타잔 이라고 부르며 엽기적으로 보도했지만 사실 그는 도시와 농촌의 격차가 커지던 때 도시빈민층을 형성한 이농민의 전형이었다. 월간 대화 가 이 사건의 본질을 알리는 글을 싣고, 또 1978년 그가 사형판결을 받자 광주에서는 구명운동이 일어났다. 그는 1980년 사형 당하기 직전 최후 변론에서 오갈 데 없는 가난한 자들의 생존권을 짓밟는 국가 권력을 비판했다. 54) 양연수, 앞의 책 참조;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1989 부마민주항쟁10주년 기 념 자료집 참조

11 1970년대 민중운동과 민중 지향 년대 도시 철거 반대 주민투쟁은 청계천과 창신동 현장에서 시작했다. 1969년 2월 27일 창신동 철거투쟁 때 700여 명의 창신동 엄마들이 서울시청에까지 몰려가 경기도 광주로 집단 이주를 거부하 며 시위했다. 이런 노력으로 창신동 철거민 98% 정도가 철거 이후 세운 시민아파트에 입주해 오랜 삶의 터전을 지킬 수 있었다. 55) 1970 년 11월 6일에는 영동포구 사당동 주민 1천여 명과 철거반원이 100 여 명 기동경찰 70여 명과 충돌해 주민 6명이 부상당했다. 56) 광주대단지 주민항쟁 1971년 용두동 마장동 숭인동 등의 집을 뜯고 광주로 사람들을 집 단 이주시켜 광주대단지 사건 의 원인이 되었다. 서울에서 밀려나 광주에 온 광주대단지 주민 3만여 명이 토지불하 가격 문제를 둘러 싸고 주민항쟁을 일으켰다.( ) 이들은 관공서를 습격하고 거 리 시위를 하고 청와대로 진격하려 했다. 이 사건은 노동운동의 전태 일처럼 주민운동에서 일어난 선구적인 사건이다. 57) 부마항쟁 1979년에 일어난 부마항쟁은 가난한 민중이 독재정권에게 저항하 는 측면과 실직한 노동자와 민중의 생활에서 절망을 표현한 두 측면 이 있다. 신민당의 총선 승리, YH 여성노동자의 투쟁, 김영삼 제명이 라는 상황과 결합해 학생운동은 폭발적으로 전개했고, 마침내 10월 15일 부산대에서 시국선언문을 배포한 것을 계기로 16일과 17일 도 55) 조배원, 바람에 눕는 풀 기억과 전망 2003년 겨울호, 172쪽 56) 자유의 종 1970년 11월 12일자 57) 필자가 당시 방문한 광주읍 단대리에서는 배고픔에 지친 아기 어머니가 자신의 아기를 삶아먹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학생들은 이 소문을 한맥 지에 실린 르포기사 광주는 죽지 않았다 를 통해 알렸고, 박정희는 피살당하기 직전까지 이 사건은 학생들이 왜곡한 것이라고 되뇌었다.(신동호, 제4화 고려대 한맥회/ 안암골 전설은 계속된다 뉴스메이커 2004년 1월 6일자)

12 562 김영곤 심지에서 학생들의 선도 아래 노동자, 영세상인, 도시빈민이 가세해 대규모 가두시위를 일으켰다. 부산 시내에서 격렬하게 진행한 이 시 위로 KBS 부산 방송국을 비롯해 세무서와 서대신동 사무소를 파괴, 방화했으며 경찰차량 6대를 전소시키고 12대를 파손했다. 부산의 격 렬한 시위에 놀란 정권은 18일 0시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2개 여단 의 공수부대를 파견해 시위를 진압하고 각 대학에 휴교령을 내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마산의 경남대생들이 시내에 진출해 시민과 합세해 공화당 당사, 방송국, 파출소 등을 파괴했다. 부마항쟁의 파급을 두려 워한 정권은 10월 22일 경북대, 23일 영남대에 휴교령을 내렸다. 그 러나 24일 계명대생 2,000여 명이 시위를 벌여 부마민중항쟁은 전국 적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26일 박정희가 피살돼 유신체제는 무너졌다. 부산의 부마항쟁과 뒤이어 일어난 광주의 5 18 민중항쟁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용솟음을 예고했다. (4) 조세저항 1960년대 이래의 세제는 직접세가 대부분이고 세무 당국이 일방적 으로 과세해 이 과정에서 탈세와 부조리가 심각했다. 세율도 소득세 율 8~70%, 법인세율 27~40%, 물품세는 수십에서 수백%를 매겨 더 이상 세율을 높일 수도 없었다. 1971년 8월 26일 서울 동대문시장 상 인들이 당국의 세금 중과에 항의해 철시했다. 58) 31일 서울 평화통일 상가 상인 1천여 명이 시위했다. 같은 해 9월 27일 대구 서문시장 상 인이 세무서 앞에서 시위했다. 그러자 정부는 조세저항을 피하려고 1977년 조세를 간접세(소비 세:부가가치세, 특별소비세, 주세, 전화세, 인지세, 증권거래세)와 목 적세(교육세, 교통세, 도시계획세, 사업소세) 위주로 조세정책을 바꾸 고, 모두 일률적으로 10%의 세율을 부과하는 부가가치세를 도입했다. 58) 한승헌 외, 앞의 책, 246쪽

13 1970년대 민중운동과 민중 지향 563 가난한 민중에게 중과하는 유리지갑 조세정책의 기조는 이후 30, 40 년간 변함이 없었다. 3. 지식인의 민중 지향과 연대 학생, 교수, 언론인, 종교인 등의 지식인들은 개발독재에 저항했다. 동시에 이들은 개발독재 아래 가장 피해를 받는 민중의 삶을 개선하 기 위해 민중운동을 지원하고, 일부는 스스로 민중 속으로 들어가 삶 을 같이했다. 1) 지식인과 조직 사건의 민중 지향 (1) 청년 학생의 민중 지향 청년 학생들은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선도하는 한편, 민중운동에 대 한 관심은 산업화의 진전에 따라 농촌운동에서 노동운동으로 크게 선회했다. 학생 출신 다수가 민중운동에 투신해 민중운동에 활력을 주었다. 이런 활동가의 공급원은 광주민중항쟁 뒤에 더욱 늘었다가, 1987년 이후 노동운동이 학생운동을 넘어 민중운동의 주류를 형성하 면서 쇠퇴했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자주 통일 평화라는 현안의 비중 이 크기 때문에 NL계 중심으로 학생들의 민중운동 진출은 비록 수적 줄었지만 계속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의 민중운동이 일본과 같은 노 후한 자본주의 국가에 비해 쇠퇴하는 속도가 빠르지 않은 원인이다. 전태일 분신 이후 학생들은 물론 종교계에서 민중운동에 관심이 폭발적으로 커졌다. 전에 볼 수 없을 정도로 민중성을 강화한 것이 다. 학생 신분으로 노동야학과 농촌봉사 활동을 통해 민중운동의 현 장을 익히고 노동자들의 사회적 계급적 각성을 도왔다.

14 564 김영곤 학생들은 이전의 민족주의 농민문제에서 노동문제로 관심의 중심 을 이동했다. 이런 인식은 서울과 지방의 공업지대에서 선행했다. 대 구나 광주와 같이 농업지역을 배후로 가진 지역의 학생들은 민족주 의와 농민문제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컸다. 1970년 가을 고려대에서 열린 전국대학생학술토론대회에서 경북대생 임구호는 미국과 일본의 신식민주의에 경제적으로 예속 당하는 것을 비판하며 신민족주의 를 주장했다. 노동현장을 거쳐 복학했다가 광주 이후 노동현장으로 다시 간 사 람들도 많았다. 이들은 종교계와 전통적 사회운동의 간접적 영향을 받았는데 편차가 있었다. 전태일의 희생과 1971년 위수령 사태의 학 생 퇴출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노동현장, 공장에 갈 때에는 보일러 냉동 선반 전기 용접 기술 등 을 배우고 자격증을 갖추어 현장으로 갔다. 미숙련 노동자로는 노동 자의 대열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전태일이 처음에 재단사가 되려고 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농촌의 경우는 농 민이 되어 농사를 지었다. 도시빈민운동은 직접 빈민가에 살면서 교 회 주민운동과 복합적으로 결합했다. 서울대의 한국사회연구회 이론경제학회 국제경제학회 후진국경제 학회 후진국사회연구회 문우회 사회법학회 농촌법학회 사회의학연구 회 산업사회연구회, 고려대의 한맥 한국민족사상연구회, 연세대의 한 국문제연구회 통일문제연구회, 이화여대의 새얼, 경북대의 정진회 정 사회, 부산대의 한얼 사회문제비교연구회 등은 유신 독재에 저항하는 동시에 민중운동을 지향한 이념을 가지고 활동했다. 59) 1970년 학생들 59) 1970년대 말 학생운동에서 정치투쟁과 현장 진출의 선택을 놓고 민중무림 진영 은 학생세력을 민중운동의 주도체로 보고 근로대중의 의식화 조직화에 주력해 야 하고, 학림 진영은 학생운동을 민중운동의 선도체로 보았다. 후자는 1980년 8월 드러난 전국민주학생연맹(전민학련)과 전국민주노동자연맹(전민노련)으로 드러났다. 이 논쟁은 1980년대에 C-N-P 논쟁과 NL-PD-CA 논쟁으로 발전

15 1970년대 민중운동과 민중 지향 565 은 전태일 분신을 초래한 현실에 항의하는 행동을 했다. 장기표는 청 계피복 노동자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민청학련의 민중 민족 민주 선언 이 민중의 요구를 내걸었다. 조영래는 전태일평전 을 썼다. 여 정남(1945~75)은 서울에 올라와 신촌 세브란스병원의 인턴 파업현장 을 지지 방문했다.(1971) 지역적으로 부산의 학생들도 거의 비슷하게 움직였다. 60) 유신 독재 에 저항하는 부산의 학생운동과, 부산 양서조합, JOC, 앰네스티 61), YMCA 등이 전개한 사회운동이 결합해 부마항쟁을 기폭시키고 지지 했다. 광주에서도 비슷해 들불야학은 1978년 7월 전남대의 박기순 신 영일 등이 광천동 천주교회 교리실을 학당으로 해 노동자들을 의식 화하고 조직화하려고 만든 노동야학이었다. 윤상원은 다니던 주택은 행을 그만두고 아예 자취방까지 광천동 시민아파트로 옮겨 그곳 주 민들과 함께 생활하였으며, 그곳에서 김영철을 만났다. 62) 1970년대에 많은 대학생들이 농촌 노동 빈민 의료복지 민중예술의 현장으로 이전해 민중운동의 새로운 인적자원이 되었다. 대학생들의 민중 현장 진출에는 전태일의 분신 이외에도 1968년부터 시작한 중 국 문화대혁명 때 전개한 하방운동( 下 方 運 動, 강제 파견)의 영향도 받았다. 1960년대에도 김정강 같은 이가 개별적으로 노동현장에 취업 했다. 전민노련은 1981년 조직구성원이 구속돼 노동운동 조직 결성의 시급함을 제안하는 정도로 활동을 마감했다.(노동자대학 교재편찬위원회, 1990 일하며 배우는 노동운동사, 백산서당, 188쪽) 60) 이런 움직임은 전국적 현상으로 전두환 집권 직후 서울에서는 이른바 학림사 건, 부산에서는 부림사건, 대전에서는 한울회 아람회 금강회, 전주에서는 오송 회 사건으로 드러났다. 61) 앰네스티는 원칙적으로 자국에서 일어난 사건을 지원하지 않았다. 1972년 3월 28일 한국 앰네스티(이사장 김재준 1905~87, 총무 윤현)를 결성했다. 62) 필자는 대한광학을 다니면서 저녁시간에 회사 앞에 있는 은성교회에서 한자를 통해 풀이하는 사회과목과 노동법을 가르치는 노동야학을 운영했다. 김낙중- 민우지 사건으로 수배 당하면서 야학을 중단했다.

16 566 김영곤 했지만, 1970년대 초반부터 집단적으로 공장 빈민촌 농촌의 노동현장 을 향했다. 이런 흐름을 갈수록 확대되어 광주민중항쟁 이후 대학생 출신 1만여 명이 노동현장으로 갔다. 다음은 청년학생 지식인 종교인이 민중운동과 결합한 사람들이다. 노동운동은 필자와 정윤광, 농민운동은 권영근, 의료운동은 양요환의 증언에 따른 것이며, 실제 인원은 더 많으며 노동 농촌 현장에서 스 스로 성장한 사람보다 대학생 출신 활동가에 치중해 조사에 한계가 있다. 63) 1. 노동운동 1 지식인 학생의 노동현장 활동 1960년대:김정강, 손정박 1970년대:김문수, 김삼수, 김수길, 김영곤, 김영준, 김용석, 김일섭, 김화곤, 도천수, 문성현, 양재덕, 장경옥, 정윤광, 최규엽, 함상근, 황인범, 김정길, 박용훈, 송운학, 여익구, 이학영, 임규영, 정진태, 황승주 2 기구 기관 도시산업선교회:김경락, 김근태, 안광수, 이창식, 인명진, 정진동, 조승혁, 조지송, 조화순, 최영희 제일교회:김은예, 박형규 새문안교회:서경석, 윤조덕 크리스챤 아카데미:김세균, 신인령, 장명국 JOC:이창복, 정인숙 고대 노동문제연구소: 권두영, 김낙중, 김윤환, 손정박, 노중선, 이문영 이론:박현채, 박찬일 63) 김영곤, 2005 한국노동사와 미래 2, 선인, 205쪽

17 1970년대 민중운동과 민중 지향 노동조합 청계피복노조:장기표, 조영래 한국노총:김금수, 김성우, 김승호, 노진기, 박찬억, 신금호, 유영표, 이목희, 이원보, 정성진, 조성준, 조춘구, 천영세, 최영주, 피정선 2. 도시빈민운동 김진홍, 허병섭, 제정구, 정일우, 이해학 3. 의료지원 양요환, 고한석, 심재식, 양길승 4. 농민운동 1 한국농업근대화연구회:고현석, 권영근, 권형원, 김경자, 김기영, 김낙중, 김서정, 김영식, 김현식, 노재창, 민인기, 박덕재, 박미숙, 박성자, 박진도, 박현채, 서동우, 신영숙, 양정규, 유영신, 이계천, 이관우, 이범영, 이수구, 이영기, 이우재, 이재오, 임동규, 임수태, 정명옥, 정명채, 정영숙, 조희부, 차성환, 최강호, 최병규, 최석진, 허훈순, 홍갑표, 황민영, 황연수, 황한식 2 크리스챤 아카데미:권영근, 문경식, 민인기, 이우재, 장상환, 황한식 3 학생운동 출신의 현장파:권형원, 김준기, 김현식, 박만수, 임수태, 조희부 4 가톨릭농민회:권종대, 박재일, 서경원, 이길재, 이병철, 정성헌, 정연석, 최병욱 5 농촌현장 출신:권종대, 노금노, 배종열, 송창기, 윤정석,

18 568 김영곤 장영근, 정광훈, 조개선, 홍영표 6 기독교농민회:김기영, 김성순, 나상기, 문경식, 배종열, 윤기현, 정광훈, 정만호, 최종진 7 YMCA:민인기, 이학영, 정찬용, 조희부, 최석진 1970년대 청년단체는 1971년 민주수호청년협의회(민수청), 1978년 민 주청년협의회(민청협) 그리고 기독청년들이 전개한 기청협 등이 있다. 1971년 4 27대선을 앞두고 각계 지식인들과 청년들은 박정희의 장 기 집권을 막는 공동대책을 모색했다. 1971년 4월 19일 학계 언론계 법조계 종교계 문단 등의 각계 인사들이 민주수호국민협의회(민수협, 대표위원 김재준 이병린 천관우)를 결성하자 6 3항쟁에 참여했던 청 년들이 중심이 되어 1971년 2월 결성한 민주청년협의회는 민수협을 결성하자 이를 보조하는 청년단체로 재편하기로 결정하고 4월 21일 민주수호국민협의회(민수청, 초대회장 백기완)로 재탄생했다. 민수청 은 대체로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활동 목표로 삼았으며, 닉슨 독트린 이후 동아시아에서 정치 군사적 영향력 확대를 획책하고 이에 편승 해 박정희 정권이 친일 정책을 노골화하자 배일운동을 편 것이 특징 이다. 민수청은 민수협과 학생운동을 매개해 1970년대 초반 통일전선 운동의 교량 역할을 했다. 유신 반대 운동이 활발한 가운데 민청학련 사건과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옥고를 치른 청년활동가들이 1978년 5월 12일 민주청년인 권협의회(의장 정문화, ~ )를 결성하고 민주회복운 동에 앞장설 것을 밝혔다. 그 뒤 1978년 9월 민주청년인권협의회는 조직 위상을 재정립하고 민주청년협의회(민청협, 의장 조성우)로 새롭 게 탄생했다. 민청협은 민주화운동 이외에도 1979년 8월 도시산업선 교회를 비롯한 종교계, 언론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해직교수협의회 등 재야 세력과 연계하여 YH무역 노동자의 투쟁을 지원했다.

19 1970년대 민중운동과 민중 지향 569 민청협은 민주주의국민연합( )과 민주주의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 )으로 이어진 당시 상층 전선운동을 추진하는 실 무 역할을 했다. 그 뒤 민청협은 1979년 YWCA 사건으로 회원 모두 가 수배되어 조직활동을 중단하고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주요 간부들이 구속되면서 와해되었다. 민수청과 민청협은 민중운동의 입자에서 보면 여러 제약과 한계를 가졌지만 1970년대 상층 재야 운동을 활성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64) 특히 유신체제 말기에 민중운동을 지지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2) 종교계 종교인들은 1970년대에 들어서 레드 콤플렉스에서 비교적 자유스 러운 종교인의 특성과 조직력 자금력을 살려 독재에 항거하고 농민 운동, 노동운동, 빈민운동 등 민중운동을 지원했다. 첫째, 기독교계의 도시산업선교회는 노동자들의 의식화와 조직화에 이바지했다. 산업선교는 1957년 예장 총회 전도부 산하에 산업전도위 원회를 조직하면서 시작했다. 감리교는 1961년 인천산업전도위원회를 조직했다. 1961년 4월 윤창덕 목사가 동일방직주식회사와 한국기계공 업주식회사에서 산업전도를 시작했고, 같은 해 9월 시카고 매코믹 신 학교에서 산업선교 훈련을 받고 교회 중심의 선교활동을 경험한 오 명걸 선교사(조지 오글 목사)가 인천에 부임해 1962년부터 산업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1968년부터 도시산업 선교로 발전했다. 영등포산업선교회(영산)는 소그룹활동 을 통해 산업선교활동을 전개했는데 이 부분이 이후 노 동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독일 교회 등의 지원으로 건립한 영산 의 공간은 1970, 80년대에 노동운동 집회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64) 전상봉, 2004 한국 근현대 청년운동사, 두리 미디어, 229쪽

20 570 김영곤 전태일 분신에 자극을 받아 1971년 1월 한국산업문제협의회를 조 직하고 9월 크리스챤 아카데미를 세웠다. 유신정권은 노조를 지원하 는 도시산업선교를 탄압했고 노총과 언론도 산업선교 관계자를 자생 적 공산주의자로 만들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한국기독교협의회는 산 업선교 수호위원회를 조직하고 1978년 산업선교신학 선언 을 발표했 다. 도시산업선교는 재정을 서유럽 교회에 크게 의존했다. 인천의 조화순 목사는 1966년 당시 최대 규모의 방직공장인 동일 방직에 들어가 노동자 생활을 경험하고, 1971년 인천도시산업선교회 를 세웠다. 1972년 조승혁 목사가 동일방직, 인천중공업, 한국베아링 주식회사의 노동쟁의를 배후 조종한 혐의로 중앙정보부에 연행당해 고문을 받는 등 산업선교가 탄압을 받았다. 1973년 산업선교회 조지 송 김경락 목사를 연행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1979년 기독교 청년학 생들의 모임인 EYC의 민주화선언이 있었다. 청주산업선교회(1972)의 정진동 목사는 1975년 신흥제분 노조를 지키는 과정에서 구속당했다. 그밖에 경수산업선교회, 성수산업선교회, 구미산업선교회가 있었다. 기독교계 민중조직에는 도시산업선교회, 수도권 특수지역선교위원 회(KMCO), NCC 인권위원회 등이 있고, 기존 교회 가운데 서울의 서 울제일교회, 창현교회, 한빛교회, 수도교회, 새문안교회, 동대문감리교 회 등과 지방의 여러 교회가 대학부를 중심으로 민중을 위해 활동했 고, 민중을 위한 교회에는 성남 주민교회(이해학), 사랑방교회(이규상), 활빈교회(김진홍), 형제교회(김동완), 희망교회(정명기), 노동교회(성문밖 교회 조지송), 실로암교회(청계천 뚝방교회, 모갑경), 동월교회(허병섭), 광야교회(인천 백마교회 조화순), 구로동 신명교회 등이 있었다. 65)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1974년 인권위원회를 조직해 목요기도회 를 통해 민중의 소리를 듣고 박해를 고발했다. 한국기독학생연맹은 65) 정상시가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의 제82회 포럼에서 발표한 글 민중교회 운동 소고 ( ) 참조.

21 1970년대 민중운동과 민중 지향 571 학생사회봉사개발단을 통해 민중 지향성을 가졌다. 기독교계 농민의 조직은 1970년대 중반부터 농촌 교회의 평신도와 청년 세력 일부가 지역 농민운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면서 태동했는 데, 1978년 전남기독교농민회가 결성된 뒤 전국적으로 조직을 확대해 1982년 한국기독교농민회총연합회를 창립했다. 1965년 설립한 크리스챤 아카데미는 교회 여성 산업 청년 농촌의 영역에서 중간집단 교육 프로그램(1974~79)을 진행했다. 1975년 내 일을 위한 노래집 을 냈다. 1976년 월간 대화 를 창간해 어느 돌멩 이의 외침 무등산 타잔 과 같은 노동현장 생활현장의 목소리를 실 었다. 대화 는 1977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폐간됐다. 크리스챤 아카데미는 1979년 3월 간사 6명이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되고 교육 생 700여 명이 구금 혹은 조사를 받았다. 크리스챤 아카데미의 활동 은 세계교회협의회가 재정적으로 후원했다. 도시빈민 문제를 두고 1968년 미국 연합장로교회 후원으로 연세대 학교에 세운 도시문제연구소에서 도시빈민선교 실무자를 훈련시켰다. 1971년 3천 명의 시민아파트 주민들의 6월 시청 앞 시위와 8월 광주 대단지 주민항쟁을 계기로 이 훈련과정에 참여한 이들이 1971년 수 도권도시선교위원회를 조직했다. 그러나 1972년 10월유신이 선포되자 정치적 민주화가 선행되지 않으면 주민 조직도 불가능하다고 판단하 고 활동을 중단했다. 둘째, 가톨릭에 소속한 농민과 노동자는 가톨릭농민회와 가톨릭노 동청년회(JOC)를 조직했다. JOC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노동자조직으 로 노동현장에서 노동현실에 문제를 제기하고 동일방직 콘트롤데이 타 서울통상 YH무역 등의 현장에서 민주노조 활동을 전개했다. 가톨 릭계의 정의구현사제단( 조직)처럼 종교인 자신을 조직한 경우도 있었다. 1977년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인권회복 기도회를 열 고 77선언을 발표했다.

22 572 김영곤 셋째, 불교계에서는 민중불교를 지향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것은 일제 강점기에서 6 25전쟁 사이에 종교계에 널리 퍼졌던 반민중적 친일의 흐름을 반성하는 행동이었다. 1970년 중반부터 여익구, 고은, 황석영 등이 민중불교 의 실천을 모색했고, 전재성은 민중불교론 을 월간 대화 (1977년 10월)에 실어 이론화를 시도했다. 66) 그러나 1970년대 후반 발전한 노동운동이 독자성을 갖추면서 현장 선교를 중심으로 종교성을 강조하는 종교계와 독자적인 관성을 갖고 자율성을 강조하는 민중운동은 서로 분해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 현 상은 노동운동과 연관이 깊은 산업선교회와 노동운동 사이에 두드러 지게 나타났다. 가톨릭계의 JOC에서도 이런 문제가 있었으나 결국 JOC를 가톨릭 내부의 조직으로 내재화하는 것으로 한정했다. 이런 과정을 거친 원풍모방 등 수도권의 노동자들은 1984년 한국노동자복 지협의회를 조직했다. 67) (3) 교육 법조계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는 1968~72년 노조 간부들과 농민들을 대 상으로 노동교육과정 과, 협동 교육 과정 을 마련하고, 잡지 민주노 동 과 민주농민 을 발간했다. 연세대 도시문제연구소는 지역사회 실 무자 교육과정을 마련하고 창신동 등 철거민들의 투쟁을 지원했다. 1971년 8월 23일 교수 600여 명이 대학자주화선언 을 발표했다. 1973년 서울법대 최종길 교수가 의문사를 당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김찬국과 김동길 교수가 구속당했다. 1975년 유신 독재가 긴급조치 9호를 선포했다. 학도호국단을 결성 66) 여익구는 근본불교=유물론, 대승불교=관념론이라는 도식에 입각해 민중불교 철학은 근본 불교에 근거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조성렬, 민중불교 논쟁 어 디까지 왔나, ) 67)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가 1984년 노동절에 발표한 노동운동의 새로운 출발을 위한 선언 을 참조

23 1970년대 민중운동과 민중 지향 573 해 대학을 병영화하고 대학교수 400여 명을 교단에서 추방했다. 이렇 게 해직된 교수들이 구속 학생과 민주 인사 석방, 해직교수 복직을 요구하는 민주교육선언 을 발표하고(1977), 다음해 해직교수협의회 (회장 성내운)를 결성했다. 연세대 성내운(1926~90)과 송기숙을 중심으로 하는 전남대학교 교 수 12명이 유신 교육의 이념적 기초라고 할 수 있는 국민교육헌장 을 비판하고, 참다운 민주교육, 참다운 인간교육 을 주장하는 우리 의 교육지표 를 발표하여( ) 유신 교육 체제에 정면으로 도 전했다가 모두 교직에서 해직되고 송기숙과 성내운이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1971년 1월 11일 최봉길 판사 등 고법 판사 100여 명이 권력에서 독립하자고 법관 정화 운동을 벌였다. 법원은 1971년 신민당사 농성 사건 피고자 10명 전원과 월간 다리지 사건 피고인 3명 등에게 무 죄를 선고했으며, 이 판결을 내린 목요상은 판사직을 그만 두었다. 6 월에는 대법원이 군인 군속의 손해배상을 제한하는 국가배상법에 대 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 또 이범렬 판사가 국가보안법이나 반공법 위 반 사건에 대해 영장을 기각하자 박정희는 사법권 독립은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고 발끈하고, 검찰은 1971년 7월 28일 그를 제주도 출장 중 의뢰인에게서 술대접을 받은 것을 빌미로 뇌물 수수죄로 기소했다. 이것은 유신체제 선포를 앞두고 법조계를 정비하 는 작업이었다. 이에 유태흥 부장 판사 등 서울형사지법 판사 37명 전원이 집단사표를 냈다. 이튿날 검찰이 다시 영장을 신청하자 전국 판사 415명의 1/3이 넘는 153명이 사표를 내 사법권 수호 투쟁으로 확산했다. 결국 검찰이 강경 방침을 철회하고 대법원장은 박정희와 면담해 사법권 보호에 필요한 사항을 보장받기로 합의하면서 8일 만 에 끝났으나 사법개혁에 이르지는 못했다. 이듬해 유신체제가 들어서 면서 50여 명의 판사들을 재임용에서 탈락시키고, 사법부의 위헌법률

24 574 김영곤 심사권을 박탈하고 국가배상법 위헌에 찬성했던 대법관을 재임용에 서 모두 탈락시켜 법원을 행정부의 시녀로 격하시켰다. 유신 독재 아래 사법부가 권력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과는 달리 이병린(1911~86), 태륜기, 이돈명, 한승헌, 조준희, 홍성우, 황인 철(1940~93), 강신옥, 고영구 등 민권변호사가 민중운동을 법률적으 로 지원했다. 강신옥 변호사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변론하던 중 사법 살인 중단을 요구했다가 재판정에서 구속당했다. 한승헌 역시 인혁당-민청학련 사건을 변호하다가 구속됐다. (4) 문화예술 1970년대에 진보적 이념을 펼치려고 많은 이들이 글을 쓰고 책을 내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연극을 공연했다. 아직 출판(1983) 되지 않은 조영래의 전태일 평전 68) 과 조영래의 장시 노동자의 불 꽃 (당시는 작자 미상)을 등사본으로 노동현장에서 돌려가며 읽었다. 황석영의 객지 삼포 가는 길,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 은 공 (문학과 지성사, 1978), 유동우(본명 유해우, 삼원섬유)의 어느 돌멩이의 외침 (대화출판사, 1978) 등을 자신의 이야기인 것처럼 느끼 며 읽었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은 공단 근처에 사는 노동 자와 빈민 가족이 겪는 저임과 공해를 그렸다. 필자는 인천 대우중공 업에 냉동공으로 근무하며 이 책의 배경이 인천인 것 같다고 생각하 며 읽었는데 실은 구로공단이었다. 이런 문학작품을 노동자 대중 속 에 노동자의 투쟁과 조직을 이해하고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데 크 게 기여했다. 69) 68) 일본 가톨릭정의와 평화 협의회는 전태일평전 을 불꽃이여 나를 태워라( 炎 よ, わたしを つつめ-ある 韓 國 靑 年 勞 働 者 の 生 と 死 ) ( 金 英 琪, 飜 譯 李 浩 培, た いまつ 社, )라는 이름으로 출판했다. 69) 당시 민중운동을 지지하고 실천한 청년학생 지식인들은 일어판 마르크스의 공

25 1970년대 민중운동과 민중 지향 575 농민과 빈민의 현실을 그린 작품에는 황석영의 객지 (창작과 비평 사, 1971), 신경림의 농무 (월간문학사, 1973), 양성우의 겨울공화국 (화다, 1977), 이동철 꼬방동네 사람들 (현암사, 1981), 김현장 무등 산타잔 (월간 대화 1977년 8월호) 등이 있다. 1970년대 노동 현장에서 노래 가사를 바꾸어(노가바) 부르던 것을 모은 노래집 노동과 노래 (허병섭, 1981?)가 있다. 크리스챤 아카데 미에서 연수교육을 받던 참가자들이 당시의 유행가 아 미운 사람들 을 개작해 농민들이 얼마나 농사를 더 져야 아 살 수 있나/우리 모 두 지금까지 피땀 흘려 왔는데 아 슬픈 현실 이란 노가바 를 부른 것이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건의 화근이 되었다. 70) 김민기는 동일방직 사건을 소재로 한 노래굿 공장의 불빛 (1978)을 카세트 테이프에 담 아 전파했다. 민중운동의 정세와 이론에 관한 것은 이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 (1974), 김윤환의 노동문제의 구조 (광민사, 1978), 송건호(1927~2001) 의 해방전후사의 인식 (한길사, 1979), 파울로 프레이리(Paulo Freire) 의 페다고지 (한국천주교평신도회, 1979) 등이 나왔다. 이들은 대부 분 불온 을 이유로 반공법 혹은 긴급조치로 당국의 제재를 받아 금 서목록 54종에 들어갔다. 71) 한승헌 변호사는 여성동아 1975년 3월 호에 기고한 어느 사형수의 죽음 앞에 - 어떤 조사, 이영희 교수는 8억인과의 대화 (창작과 비평사, 1977) 때문에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 당했다. 산당선언 자본론 해설서나 경제학 서적, 중국어판 마오쩌뚱의 모순론 실 천론 등을 돌려 읽고, 국립도서관과 대학도서관 서고에서 먼지를 쓰고 있던 8 15해방 정국에 출판한 신남철의 역사철학 (서울출판사, 1948), 백남운의 조선사회경제사 ( 改 造 社, 1933) 등 사회과학 서적을 찾아 읽으며 민중문제를 해석하려 했다. 70) 임락경, 2005 촌놈 임락경의 그 시절 그 노래 그 사연, 삼인 참조 71) 박원순, 1992 국가보안법연구 2, 역사비평사, 135쪽

26 576 김영곤 창작과 비평 (1966년 창간, 백낙청), 씨 의 소리 (1970년 창간, 함석헌), 월간 대화 (1976년 창간, 크리스챤 아카데미) 등이 유신 독 재를 폭로하고 민중의 현실을 알렸다. 당국은 월간 대화 가 불온 하다는 이유로 폐간시켰다. 광민사(대표 이태복, 1977 설립) 등은 민 중운동에 관한 책을 출판했다. 영인본 출판업체인 진흥문화사의 정성 기는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 을 제작 판매해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72) 김태경은 레닌의 국가와 혁명 을 영인해 배포하고 (1977), 자본론 을 완역하고 정진영과 함께 광화문에 민중서림을 열 어 사회과학서적을 배포했다. 3 1민주구국선언서 등을 제작한 세진 문화사의 강은기(1942~2002)가 구속되었다. 이런 인쇄소에 인쇄물을 맡긴 운동권들은 인쇄한 뒤에 돈이 모자라거나 구속 수배돼 대금을 갚지 못하는 일이 허다했다. 73) (5) 자주 통일 운동 자주 통일운동은 활발한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지배와 대일 경제 예속화 그리고 핵 문제에 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 한미행정협정 발효 4주년인 1971년 한국측이 적발한 미군 범죄는 6,194건인데 재판권을 행사한 것은 4.2%(272건)에 불과하고 실형 확정 은 4건(6명)에 그쳤다. 1970년 5월 20일 파주군 주민이 미군과 투석전 을 벌이고, 9월 7일 서울 이태원 주민 100여 명이 미 헌병과 투석전 을 전개했다. 1971년 평택에서 흑인 병사와 백인 병사의 충돌 과정에 72) 김기선, 인쇄는 나의 힘 강은기 1 희망세상 2005년 5월호 참조 73) 동아일보 기자들이 농성할 때 고은 이호철 신경림 염무웅 황석영 등 진보적 문인들이 모여 1974년 11월 자유실천문인협의회(자실)를 결성하고 문학인 101 인 선언 을 발표해 김지하 양성우 등 구속 시인 석방, 서민대중의 생존권 보장 등을 요구하고, YH 사건 등 시국 현안에 대한 성명을 통해 민중운동을 지지하 는 문학운동을 전개했다. 자실은 1987년 6월항쟁 뒤 민족문학작가회의(민작)로 발전했다.

27 1970년대 민중운동과 민중 지향 577 서 피해를 입은 주민 2천여 명이 흑인은 이제 필요 없다. 목화밭으 로 돌아가라 고 시위했다. 74) 한편 1971년 1월 5일 흑인 병사 600여 명 이 38선 부근의 제2사단 제1휴양소에 모여 인종 차별에 반대해 시위 했다. 같은 해 5월 17일에는 사복 미군 31명이 서울 중심가에서 반전 시위를 했다. 75) 1971년 6월 서울대에서 사또 일본 수상의 방한을 반대해 성토대회 를 열고 전국학생연맹이 사또 수상의 방한은 정치 군사적으로 지배 하려는 포석이라는 성명을 냈다. 대학생들은 1974년 3 1절에 일제상 품 소각 운동을 전개했다. 통일문제연구협의회 사건으로 최덕길과 이 경식이 구속됐다.(1976) 임종국(1929~89)은 한일협정의 왜곡에 충격을 받고 친일문학론(1966) 을 낸 데 이어 1970년대에 연구범위를 넓혀 10권으로 된 친일파 총 서를 준비해 1980년대 들어 일제침략과 친일파 (1983), 밤의 일제침 략사 (1984), 일제하의 사상탄압 (1985), 친일논설전집 (1987)을 냈다. 이 연구는 민족문제연구소 건립과 친일 잔재 청산작업의 기초가 되 었다. 한편 유신 독재는 베트남전쟁에 개입하고 전쟁이 끝났지만 전쟁 과정에서 사망 실종한 5,100명의 한국군, 파병 군인들이 겪은 고엽제 피해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80여 건 9천여 명의 베트남 양 민학살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반핵 문제 자주 통일 평화는 민중운동에게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은 영역이었 으나 6 25전쟁의 폐해와 독재의 영향으로 단절되다시피 했다. 그러던 것이 1971년 오키나와의 미군 핵무기를 한국으로 일부 이전하면서 76) 74) 청사편집부, 1984 칠십년대 한국일지, 청사, 63쪽 75) 청사편집부, 위의 책, 55쪽 76) 청사편집부, 앞의 책, 59쪽

28 578 김영곤 이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 한국교회여성연합회는 1974년부터 한국 원폭 피해자를 지원했다. 북한은 1976년 8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국문제 긴급 국제회의 에 서 한반도 비핵 평화지대화 를 처음으로 제기했다. 소설가 표문태(1914~ )는 1969년 랩(Ralph E. Lapp)의 핵전쟁:무 서운 핵전쟁의 내막(Kill and Overkill:the strategy of annihilation) (현암 사, 1979)을 번역 출간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고리 원자력발전소를 준 공(1978)했지만 반핵의 의미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는 1983년 일본에서 열린 아시아 반핵 문학가회의에 참석했다. 그 때 발표한 주 제문은 마굿간의 진실 이라는 에세이집 안에 아시아의 등불에 빛 을 이란 제목으로 수록했다. 이 글에서 그는 약소국의 희생을 가볍 게 보는 미국의 에고이즘이 세계 다른 지역보다 한국에 깊이 작용하 고 또 강대국의 개입을 갈망하는 무리가 한국에서 각계각층의 주도 권을 쥐고 있어서 핵폭탄이 투하될 위험이 가장 높다 고 했다. 77) (6) 조직 사건 유신 독재 아래 조직 사건은 주로 공안 당국이 조작한 사건으로 당장 정적을 배제하고 여론을 반전시킬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사회 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인적 자원을 죽이거나 그 주변과 새로운 세대 에게 공포심을 주어 민주주의와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인적 자원을 청소하는 정책이었다. 4 3에서 조봉암의 간첩 조작과 사형, 민족일보 조용수 사형, 민족주의비교연구소 사건을 거쳐 광주로 이어지는 제노 사이드(genocide, 집단학살)의 한 부분이다. 인적 자원은 적어도 해방 이후 형성된 인적 자원이 조직 사건으로 파괴되었지만 인적 단절이 민중운동에게 주는 피해는 통시대적으로 77) 김승국, 1989 겨레의 칠성판, 황토, 169쪽

29 1970년대 민중운동과 민중 지향 579 영향을 미쳤다. 또 여기에서 비롯한 레드 콤플렉스는 사건의 당사자 에게나 민중운동에 참여하려는 이들에게 죽음과 고통의 공포로 다가 왔다. 이에 비해 종교계는 유물론을 부정하는 종교의 일반적 속성과 국제적 연계 때문에 레드 콤플렉스가 덜했다. 박정희의 유신 독재와 그에 앞선 이승만의 극우 독재의 차이는 후 자가 일정하게 진보당 등 혁신계의 정치활동을 용인했지만 박정희 통치시기에는 혁신계가 철저한 탄압으로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 을 하지 못하게 한 차이점이 있다. 78) 유신 독재 아래 여러 건의 조직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들은 대체 로 성장하는 민중운동과 확산된 사회운동을 통일적으로 지도하고 하 는 움직임을 반영했다. 79) 그 가운데 공안기관이 조직한 조직, 자생적 인 조직, 느슨한 인적 연계의 형태 등이 있었다. 그 구성원들은 대체 로 정치와 사회 민주화를 요구하고 나아가 사회 변혁을 지향했고, 80) 사업 내용은 전위적인 반독재 민주화운동이 주된 것이었다. 정치노선 에서 대부분 전통적인 혁명노선을 걸었고 일부가 친북적 경향을 띠 었다. 전반적으로 대중과 연결이 약했지만 유신체제 후반으로 갈수록 대중과 결합하는 정도가 높았다. 81) 민가협의 조사에 따르면 1970년 이전에는 남파 간첩 이외 유형의 78) 1961~80년 국가보안법, 반공법, 정치활동 정화법, 사회안전법, 집시법, 비상사 태 특별조치법, 국가보위 특별조치법, 긴급조치 등으로 검거한 인원은 모두 11,384명(1972~79년 3,814명)이다.(박원순, 앞의 책, 31쪽) 79) 부경역사연구소, 2003 한국사와 한국인 근현대편, 선인, 181쪽 80) 이런 점 때문에 사회변혁 또는 혁명을 지향하는 단체를 전위조직 사건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전위조직 사건의 명칭은 대부분 그 구성원 스스로가 아닌 독재 의 공안기관이 붙였다. 81) 조직 사건은 현재 그것이 북한과 관련된 것이라 해도 장기수 문제의 처리에서 보듯이 인권문제 차원의 검토를 하는 단계이다. 조직 사건의 역사적 평가는 남 의 입장에서, 북의 입장에서, 남북 공동의 입장에서 재평가하는 과정을 거처야 할 것이다.

30 580 김영곤 간첩사건은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또 1960년대 말 북한이 민주기지 론을 버리고 남북이 7 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한 뒤에는 간첩 남파가 거의 종식되었다. 그런데도 1970년 이후 재일동포, 납북 어부와 국내 민중운동가들을 이용한 조작 간첩 사건이 늘어난 것은 정권에게 간 첩 사건이 계속 필요한 존재였음을 말한다. 82) 1970년대 일어난 사건을 서술하기 앞서 먼저 1960년대 후반에 일 어난 사건을 열거해 서술의 연결성을 갖고자 한다. 1967년 윤이상 이 응로 등 예술가 학자 학생들을 간첩으로 몰아 200여 명을 검거하는 동베를린공작단 사건이 일어났다. 불법 납치로 한 독간에 외교분쟁이 일어나고 유신정권은 국제적으로 고립 당했다. 이 사건으로 화가 이 응로와 작곡가 윤이상 등은 오랜 망명생활을 했다. 윤이상(1917~95) 이 망명 기간에 작곡한 예악( 禮 樂 ) 은 오케스트라로 연주되는 궁중 아악, 제례음악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송두율은 남북 사이를 잇 는 경계인 역할을 하다가 노무현 정권 때 귀국해 구속됐다. 1968년 8월 24일 중앙정보부는 통일혁명당 사건을 발표하고 관련 자 158명을 검거하고 73명을 송치했다. 결국 김종태(1926~69), 이문 규, 김질락 세 명이 사형 당하고, 최영도가 검거 과정에서 사망하고, 박성준 신영복 등이 중형을 받았다. 이들은 북한한테 받은 자금으로 청맥 지와 학사주점을 운영했다고 한다. 또 1968년 8월 중앙정보부는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을 발표하고 권재혁(1927~ ) 이일재 이형 이강복 등을 구속했다. 이 사건은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서클 수준의 모임이었으나 중앙정보부가 권재 혁의 논문 남조선 해방의 전략과 전술 이라는 논문에서 이름을 따 와 조작한 것이다. 권재혁이 사형 당했다. 중앙정보부는 1971년 호남 재건 통혁당 간첩단 사건, 통혁당 조직 82) 민주화가족실천협의회 양심수후원회, 1989 장기복역양심수실태보고서, 3쪽

31 1970년대 민중운동과 민중 지향 581 및 사회혼란 사건 발표, 재일교포 간첩단 사건을 기획해 발표했다. 이들 사건에는 3선개헌 반대 학생 시위를 약화시키려는 의도가 작용 했다. 1974년 울릉도 거점 통혁당 경북위원회 사건이 일어났다 년 통혁당 재건 기도 사건(임동규 간첩 사건)을 만들어 임동규와 박 현채 등을 구속했다. 재일동포를 이용한 간첩 조작 사건이 많았다. 서승 서준식 형제 사 건(1971), 재일교포 강석만 간첩단 사건(1971), 고려대 부산대 한신대 서울의대 학생을 구속한 학원간첩단 사건(1975), 한민통 사건과 연결 한 김정사 사건(1977) 등이다. 1973년 김낙중-민우지 사건을 발표했다. 이 사건은 학생들이 유신 독재를 비판하는 민우 지를 배포하는 행위를 탄압하고 아울러 고려 대 노동문제연구소가 노동자 농민과 결합하는 것을 막으려고 이미 법원의 판결을 받은 김낙중의 월북 사실을 간첩단 사건으로 조작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한국모방의 여성 노동자 일부가 이 사건에 연 루되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통을 받았다. 1964년 1차 인혁당 사건은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혐의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찾지 못해 사건을 맡은 서울지검 공안부가 기소할 가치 가 없다 고 기소를 거부해 흐지부지됐다. 그런데도 중앙정보부는 1974년 4월 3일 민청학련 사건을 발표한 데 이어 5월 27일 2차 인혁 당 사건 관련자를 기소했다. 모두 24명을 구속한 인혁당 재건위 사건 은 내란 예비음모 및 내란 선동이라는 혐의로 기소돼 군사재판에서 8명이 사형선고를 받았고, 진술할 기회를 한 번 갖지 못한 채 이듬해 인 19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선고를 받고 다음날인 9일 바로 사형을 집행했다. 스위스 제네바의 국제법학자협회는 이 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 로 규정하고, 앰네스티는 야만적 살인행위 로 규정했다. 83) 인혁당 재건위(2차 인혁당)는 강령과 규약을 채택한 적이 없는 당

32 582 김영곤 수준에 이르지 못한 서클 형태로 84) 민청학련 사건의 배후조종 세력 으로 중앙정보부가 조작한 사건이다. 학생들의 민주화 요구를 탄압하 는 데 민청학련과는 직접적 연관이 없는 이들을 이용한 것이다. 당시 학생들을 직접적으로 지원한 윤보선 지학순 박형규 김지하 등은 국 제적 연관이 있어 정권에게 부담되므로 치지 못하고 국제적 연결이 없고 혁신적 성향을 가진 영남지역 인혁당 관련자들에게 혐의를 씌 워 희생시켰다. 85) 인혁당 사건과 뒤의 남민전 사건으로 영남권에서 진보적 인사들의 상당 부분이 희생당했다. 영남지역은 6 25전쟁을 거 치면서도 보존하고, 대구는 이승만 정권시절 섬유도시로 개발해 도시 노동계급이 일찍 형성되고 인근 지역에서 들어온 이농민과 빈민층이 운집해 도시 하층민이 집중했고, 이들은 4 19 이후 대중운동의 동력 으로 작용했다. 인혁당 관련자 가운데 일부는 4 19혁명 때부터 한일 협정 반대와 반유신 투쟁을 한 민주화운동의 헌신자였다. 서도원은 1973년 대구 11 5시위 때 사용한 반독재민주국 선언문 을 작성했 다. 86) 필자는 민청학련 관련자 가운데 경북대생 여정남을 사형시킨 것에는 이와 같은 배경이 작용한 것으로 본다. 인혁당 사건 관련자의 희생은 독재가 반독재 저항 세력을 예비 검속해 민족민주운동의 잠 83) 한국역사연구회 현대사연구반은 인혁당 사건은 4 19 전후 활동했던 혁신세력들 이 5 16 이후 합법활동에 한계를 느끼고 전국 규모의 비합법 지하운동 조직 건 설을 시도하다 공안 당국에 적발된 것"이며 북한에서 주장한 반제반봉건 민주 주의 혁명 과 상당부분 일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 분석했다. 또 인혁당 관련자 들이 당을 결성하기 위해 당명과 강령을 언급한 적이 있으나 실제 당 으로서의 조직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고 이 때문에 이들을 기소 재판하는 과정에서 많은 무리가 따랐다 고 보았다.(한국역사연구회 현대사연구반, 년대 공 안사건 의 전개양상과 평가 한국현대사 3, 풀빛, 176~182쪽) 84) 국가정보원 과거사 진상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의 기자회견( 한겨레 2005년 12월 8일자) 85) 지승호, 75년 4월 9일, 그 미망의 기억 기억과 전망 2005년 봄호, 184쪽 86) 신동호, 인혁당 실체, 이제 말한다 뉴스메이커 2005년 8월 2일자

33 1970년대 민중운동과 민중 지향 583 재력을 말살해 장래 민주화운동과 민중운동의 지도력을 상실하게 하 는 인적 상실이었다. 87) 1979년 10월 9일 내무부는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남민전, 73명) 사건을 발표했다. 남민전은 유신 독재를 타도할 목적으로 1976년 2월 29일 신향식 이재문 김병권 등이 민족문제 88) 에 주안점을 두고, 유신체제 말기에 탄압이 극심한 상황에서 지하조직 방식으로 조직했다. 남민전은 전위조직을 지향해 노동자 농민 대중과 결합을 시도했으나 당시 상당히 발전한 노동조합 농민회 빈민운동 등 공개 적인 대중조직과 결합한 정도는 높지 않았다. 동시에 동아그룹 회장 최원석의 집을 터는 계획을 세우는 것과 같은 테러활동도 계획했는 데, 이것은 갑오농민 전쟁이 패배한 뒤 활빈당 영학당 등이 했던 방 식과 유사하다. 박현채는 통혁당이나 남민전의 도시게릴라 시도가 아 직 불가능하다고 평가했다. 89) 이 사건으로 이재문이 옥사하고(1981) 신향식은 사형당하고(1982) 전수진은 병보석 뒤 병사했다. 1979년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건이 일어났다. 크리스챤 아카데미는 노동자 농민과 결합해 이전의 조직이나 사건에 비해 민중과 결합 정 도가 높았다. 1965년 설립한 크리스챤 아카데미는 1960, 70년대 산업 화 도시화 과정에서 소외된 노동자 농민 여성 등을 대상으로 중간집 단 이론 강의를 통해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에 참여케 했다. 1979년 87) 정화영의 증언( , 인천) 88) 남민전은 잠정강령 제1항에서 미 일을 비롯한 국제 제국주의의 일체의 식민지 체제와 그들의 앞잡이인 박정희 유신 독재 정권을 타도하고 민족자주적이고 민 주적인 연합정권을 세운다 고 민족모순의 해결에 주안점을 두고, 남베트남민족 해방전선과 보조를 맞추려 했다.(김정남, 앞의 책, 270쪽) 89) 박현채는 전위당을 통한 혁명이 현실적이 아니라고 판단해 통혁당이나 남민전 에 비판적이었다. 10대에 빨치산 활동을 한 그는 1978년 2월 남민전을 하던 임 동규가 그에게 한국의 현 시점에서 도시 게릴라가 가능하나 라는 질문을 했을 때 아직 안 돼, 배겨나지 못해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경제학자여, 잠에서 깨 민중의 삶을 보라 프레시안 2005년 5월 2일자)

34 584 김영곤 크리스챤 아카데미 간사 이우재 한명숙 황한식 장상환 신인령 김세 균 등 6명과 한양대 정창렬 교수를 불법 지하 용공 서클을 구성해 중간 집단교육을 통해 사회주의 실현을 획책하는 혐의를 씌워 남한 체제 전복을 위한 6인 서클 구성 이란 사건으로 구속했다. 유신 독재는 1965년부터 본격화한 비전향 장기수 1천여 명의 사상 전향 공작을 고문 폭행 회유의 방법을 써서 계속했다. 1973년 전향공 작반을 만들고, 1975년 사회안전법을 날치기 통과시켜 이 법에 따라 이미 출소한 150여 명의 비전향 장기수에게 보호감호 처분을 내려 다시 옥에 가두었다. 1978년 서준식은 7년의 형기를 마친 뒤 유신 독 재의 전향 강요를 거부해 10년을 추가로 보호감호소에 갇혔다. 전향 을 거부하던 손윤규(1976년 강제 급식 과정에서 숨짐, 53세), 최석기 (1974년 타살, 42세), 박융서(타살, 53세), 최한석(타살), 김규호(자살), 이용훈(자살), 황필규(자살), 탁혜섭, 신춘복, 변치수, 송순형, 송기숙, 노동운, 김홍직 등 적어도 79명이 교도소 안에서 숨졌다. 90) 이들은 대부분 북한의 대남공작 차원에서 남으로 온 사람으로 민족해방 민 중해방과 민주주의에 소신을 가졌다. 91) 유신체제 아래의 조직 사건의 인적 청소와 그 뒤도 계속 국가보안 법을 민중운동 탄압에 적용한 결과로 사회변혁을 요구하는 인자가 줄어들고 자본주의를 용인하는 시민사회적 인자를 늘리는 후과를 가 져왔다. 또 미래 지도력 상실은 대중투쟁의 조직적 추진을 어렵게 했 다. 이런 흐름은 1987년 이후 사회운동이 국가보안법의 규제 대상이 되는 위험한 민중운동보다 노동조합 농민회 등 대중조직과 합법적 정당 활동을 우선하는 이른바 양날개론에 치중하게 했다. 그러나 21 90) 김석형 구술, 이향규 녹취 정리, 2001 나는 조선노동당원이오!, 선인, 613쪽 ; 김정남, 앞의 책, 609쪽 91) 노무현 정권 시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한상범)는 공산주의자도 인간 이라는 기조를 갖고 손윤규 최석기 박융서를 최종길 교수와 함께 의문사로 인 정했다.

35 1970년대 민중운동과 민중 지향 585 세기에 들어와 합법적이고 대중의 경제적 요구의 수렴에 치중하는 조합주의 의회주의의 문제가 드러나면서 대중운동의 필요성을 다시 논의하기 시작했다. 2) 민중운동의 연대 (1) 연대조직 민중운동의 연대조직은 6 25전쟁 뒤 철저히 무너지고 4 19의 공간 에서 잠시 등장했다. 5 16군사 쿠데타 이후의 연대조직은 전혀 새롭 게 조직해야 하는 과제였다. 국내에서 노동자나 농민의 투쟁을 지원 하고 연대하는 흐름을 형성했지만 아직 통일전선 조직을 만든 것은 아니었다.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은 노동자와 농민 사이에 저임과 저곡 가라는 연결고리가 있다는 인식하거나 연대하는 데까지 나가지는 못 했다. 재야조직은 반독재 민주화를 요구하는 활동에 그쳤으며, 비합 법 전위조직은 준비 단계에서 탄압을 받아 대중운동과 연결하지 못 했다. 그런 가운데 민주주의를 향한 민중의 연대조직이 발전했다. 1971년 민주수호국민협의회 결성하고, 이 단체는 1973년 유신 독재를 규탄하 는 성명을 발표했다. 1974년 구속자가족협의회를 결성하고, 같은 해 11월 18일 민주회복국민회의를 발족했다. 1977년 12월 29일 20여 개 단체가 한국인권운동협의회를 발족했다. 1978년 민주주의국민연합을 결성했다. 1979년 3월 1일 민주주의와민족통일을위한국민연합을 결성 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 대통령 선출 저지를 위한 국민대회를 개최했 으며, 카터 방한 반대 시위를 했다. 잇따른 긴급조치의 폭압 속에서도 산발적이고 비조직적으로 저항 해왔던 각 부문운동들은 1979년에 들어서면서 연합의 형태를 만들었 으며, 이렇게 고양된 민중의 역량은 부마항쟁으로 발전했고 이러한

36 586 김영곤 총체적 투쟁의 결과로 10 26사건을 유발했다. 92) 민중운동은 농민 노동 등 부문 내부의 연대가 형성되기 시작했으 나 부문을 넘은 연대는 거의 없었다. 아직 비공개적이고 비공식적인 연계가 있었을 뿐이다. 민중운동은 민중의 생활과 권익을 위한 움직임인 동시에 반유신 민 주주의 운동의 성격을 겸했다. 기층민중의 경제적 요구와 반독재 운동 이 민주화운동의 저변을 형성했다. 각 부문에서 축적한 민중운동은 YH 사건, 부마항쟁을 일으켜 개발독재가 붕괴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조직된 연대조직 재야 93) 는 처음에는 민주화운 동을 위한 것이었으나 나중에는 YH 사건 등 민중운동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개발독재 과정에서 사회와 가족 안에서는 경쟁에서 희 생당한 약자를 불쌍하다, 도와주자 는 생각을 당연시했다. 재야의 민중운동에 대한 지지 지원은 1970년대 말 종교계와 신민당의 YH 사건 개입으로 절정을 이루었다. 신민당과 김영삼이 YH 사건이 일어 나자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했다. 이것은 신민당의 정치적 지위 향 상에 도움이 되었다. 그렇다고 야당과 재야의 민주주의 운동이 민중 운동을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2) 국제연대 이주민정책 외국으로 노동자를 이주시키면서 국내에서는 혼혈인과 중국인을 배제하는 이중 정책을 썼다. 미국과 일본의 제국주의에는 종속하면서 도 국내외의 이민자들에게는 배타적으로 행동하는 쇼비니스트적 민 족주의의 정책과 타자를 배려하지 않는 비철학적인 정책의 기조가 92) 소준섭, 긴급조치 9호 시기의 민주화운동 희망세상 2005년 5월호, 21쪽 93) 재야 는 제도권 정치과 민중운동 현장의 중간에 위치해 민주주의와 민중문제 현안을 다루는 집단을 말하며 1970년대를 특징짓는 용어이다.

37 1970년대 민중운동과 민중 지향 587 만든 결과이다. 유신 독재는 한국적 민족주의 라는 유사 민족주의를 표방하고 단 일 혈통 을 주장하는 배타적 인종주의 정책을 폈다. 그리고 유신정권 은 국제적으로 약자들에게 제국주의적 배제 정책을 썼다. 이것은 현 재 영호남 지역 갈등이나 국내 조선족 동포 및 탈북인 차별 등과 같 이 종족적 이질화에 의한 타자화 의 특징이다. 이런 모습은 생활 영 역에 들어온 외국인을 배척하는 단일 혈통 을 강조하는 전통적이고 폐쇄적인 풍토에 기인한다. 다문화 가족을 배제하는 정책이었다. 정부는 1960, 70년대에 베트남 중동 독일 미국에 적극적으로 노동 력을 수출하거나 이민을 보내는 정책을 폈다. 고아와 가정형편이 어 려운 어린이, 혼혈아를 미국 북유럽 등지에 홀트재단을 통해 내보냈 다. 미국 측의 노동력 수요와 한국의 혈통주의 호주제의 관습에 따른 입양 기피 때문이었다. 이렇게 외국에 정착한 한국 이주민은 주로 3D업종에 종사했다. 국내에서 중국 이민자들에게 참정권, 공무원 임용권, 영주권 일체 를 배제하고 2, 3배의 높은 세금을 매겨 화교 94) 들은 절반 정도가 해 외로 다시 이주했다. 이런 모습은 한국 사회가 다른 나라의 피지배 국가이면서도 동시에 제3, 4세계에 대해 아류 제국주의, 국수주의, 소 지배자 노릇을 하는 태도이다 95). 94) 1884년 인천항의 북성동 선린동이 청국의 치외법권 지역으로 체결되면서 화교들 이 몰려들어왔다. 1949년 중국혁명과 한국전쟁 시기에 급격히 늘어났으나 해방 직후부터 이어진 한국 정부의 각종 화교 차별 정책으로 한국 화교는 이민의 길 로 나갔다. 1970년대 유신정권의 외국인 토지 취득 및 관리에 관한 법 에서 같이 토지 소유를 제한하는 법 시행과 화교 학교 학력 불인정해 발생한 교육 문제는 한국 화교들이 미국 대만 일본 캐나다 호주로 이주하는 원인이 되었다. 1960년 대 4만여 명이던 화교는 1970년대에 그 절반으로 줄었으며, 1980, 90년대에도 약 6천명이 해외로 빠져나갔다. 한국을 떠난 한화들은 미국에 1만 5천여 명, 대만에 1만여 명, 일본에 6천여 명이 살며 본적지인 산동 다음으로 한국을 제2의 고향으 로 여기고 있다.(한국중화총상회 홈페이지 )

38 588 김영곤 해외 한국인의 활동과 국내 민중운동 지원 해외에 나가 자유로운 공기를 마신 동포들은 국내 민주화운동을 지원했다. 알리고 항의하고 재정적으로 지원했다. 더러는 국내에 끌 어와 사법 처리의 대상이 되었다. 일부는 망명했다. 독일을 중심으로 파견된 광산 노동자, 간호사 그리고 유학생 등은 독일 회사의 부당한 국내 송환에 항의해 싸웠고 96), 고국에서 박정희 정권이 영구 집권을 선포하고 민주화운동을 탄압하자 해외에서 유신 독재에 맞서 싸웠다. 독일에서 이영빈 송두율 윤이상 등이 1974년 민주사회건설협의회 (민건)를 결성하고, 1979년에는 한국의 민주화를 요구하며 한국대사관 점거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베를린 노동교실(회장 윤운섭), 전태일기념사업회 유럽 본부 (대표 김대천) 등을 결성하고, 원풍모방 동일방직 투쟁을 지켜본 재 독한인여성모임 회원들은 한국여성노동자 지원에 힘을 쏟았다. 이 95) 그러나 고려시대에는 내자불거( 來 者 不 拒 ) 즉 오는 자는 거절하지 않는다 는 포용책을 펴 많은 외래인을 귀화시키고 우월한 고려 문화의 용광로 속에 녹여 서 문화 단일민족의 구성원으로 만든 것은 역사에서 보기 드문 지혜의 소산이 다.(정수일, 긴 여정을 마치며 한겨레 2005년 5월 10일자) 96) 파독 노동자들은 재독한인노동자연맹(노연, 1975, 이후 노동교실로 바뀜)과 재 독 민주사회건설협의회를 조직했다. 광산 노동자들은 독일 자본과 한국 대사관 이 야합해 이주노동자를 차별하는 것에 항의 하였는데, 이는 제2의 동백림사건 으로 불리는 발지움 사건 (1974)으로 비화되어 다수 노동자들이 귀국하지 못했 다. 이들은 또 독일의 민주주의와 국내의 독재를 비교하며 사회정의에 눈을 뜨 게 되면서 국내의 3선개헌과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민주사회를 위한 공동성명 서 ( )를 발표하고 노동열사 합동추모제 (1989)를 여는 등 국내의 민주 화운동을 지원했다. 박정희 유신 독재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빨갱이 라는 누명 을 씌웠기 때문에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면서 고향을 못 본다 고 각오하거나 독 일에 정치적으로 망명했다.(강무의, 1998, 발지움사건과 나 분단을 딪고 (이 한경 선생 회갑기념 논문집), 67쪽) 이들은 조국통일해외기독자회(기통회, 1976) 를 조직해 북한 바로알기 운동 등 통일운동을 전개하고, 1989년 독일통일 과정 을 지켜보면서 한반도의 통일문제에 대한 인식을 심화시키고 1990년 범민족대 회 추진과정에서 남북한과 독일 일본 미국 등의 통일운동 단체들을 매개했다. (재독한인노동자연맹 강무의의 증언, , 서울)

39 1970년대 민중운동과 민중 지향 589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한국 정부에게서 반체제 인사 친북 인사 심 지어 북한 공작원 이란 낙인을 찍히고, 결국 정치망명의 길을 걸었 다. 97) 재일동포들은 유신 독재의 탄압과 맞물려 수많은 간첩단 사건을 일으키는 쪽으로 악용 당했다. 1971년 4월 박정희와 김대중이 맞붙은 대선을 한 달 앞두고 재일교포 출신 학생인 서승 서준식 형제를 간 첩사건으로 구속했는데, 고문 의혹이 제기되면서 서씨 형제를 고문하 지 말고 사면하라는 시위를 일본을 중심으로 벌여 한 일간에 외교문 제가 되었다. 1972년 10월유신 쿠데타 당시 해외에 머물고 있던 김대중은 1973 년 7월 6일 미국 워싱턴 한민통(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을 조 직한데 이어, 한국의 민주화를 염원하는 재일동포를 규합해 한국민주 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한민통, 1989년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 한통련 으로 바뀜, 의장 곽동의)를 결성하기로 했다. 한민통의 결성식을 앞두 고 중앙정보부는 1973년 8월 8일 김대중 납치 사건을 일으켰다. 한민 통은 김대중 구명 운동을 벌였고, 8월 15일 한민통을 결성했다 년 국내에서 민주구국헌장 을 발표한 뒤 한민통의 제의로 유럽 미국 동포사회의 지도자들이 도쿄에 모여 해외한국민주운동대표자회의 를 열고 민주민족통일해외한국인연합 (한민련)을 결성해 전세계의 반유 신 운동을 하나로 모았다. 미국의 김순경 김응택 이정식 등은 1974년 필라델피아 인터내셔날 하우스에서 한국수난자가족돕기회(임창영 목사, L.A.)를 결성했다. 이 모임은 1974년부터 1984년까지 한국의 현황을 알리는 강연회와 좌담 회를 열고 간행물을 발간하고 약 44,500달러의 지원금을 한국으로 송 97) 당시 유럽동포들은 이제 초로가 되었지만 젊은 시절 번 돈을 모두 조국 민주화 운동에 쏟아 붓는 바람에 경제적으로 다들 힘든 상태에 있다.( 유럽동포운동이 걸어온 길, 한민족유럽연대 -kr.htm, )

40 590 김영곤 금해 모국의 구속자와 그 가족을 도왔다. 강연과 좌담에는 제임스 시 노트, 패리스 하비, 문동환, 함석헌, 문익환(1918~94) 등이 참가했다. 1977년 북미한국민주화운동연합을 발족했다. 세계민중의 지원 세계의 민중운동과 서유럽 미국 일본 등의 활동가들은 한국의 민 주화운동을 연대 지원하고, 자국 정부의 독재 지원을 비판했다. 지원 의 내용은 독재 비판, 단체와 독재 피해자 자신과 가족에 대한 재정 지원 등이었다. 이런 지원은 그 나라의 오랜 민중운동의 경험과 양심 그리고 68혁명 이후 제3세계 민중운동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했다. 미국 독일 등의 민중운동가들이 한국의 민중운동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호주의 활동가들이 영등포산업선교회와 상호 교류하며 한 국의 민중운동을 지원했다. 98) 호주의 딕 우튼 목사 등이 1960~80년 대에 주로 영등포산업선교회를 통해 한국의 민중운동을 지원했다. 딕 우튼은 나중에 호주 멜버른에 호주 아시아 노동자연대 Australian Asian Workers' Link (AAWL)를 조직해 연대활동을 전개했다. 영등포산 선 동역자인 호주인 스티븐 라벤다(Stephen V. Lavender)가 재일교포가 운영하는 방림방적의 상품 불매운동을 일본 여성단체와 추진하다가 추방당했다.(1978)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건을 비판한 일본인 사와 마 사히코( 澤 正 彦 ) 목사도 추방당했다.(1979) 유신 독재가 일본에게서 메이지유신의 국민동원 체제를 모방하고 박정희 김종필 박태준 등이 인적으로 기시 노브스게( 岸 信 介 ), 세지마 류조( 瀨 島 龍 三 ), 고다마 요시오( 兒 玉 擧 大 夫 ) 등에게 지원 받는 것과는 반대로 일본의 민중운동이 한국의 민중운동을 지원했다. 1970년대는 일본 민중운동이 노농 대중운동에서 신사회운동으로 전환하는 과도 기로 일본의 민중운동가들은 한국의 반독재 민주화운동과 민중운동 98) 신준식의 증언( , 서울)

41 1970년대 민중운동과 민중 지향 591 의 성장에 관심이 깊었다. 일본의 지식인들은 1973년 한국 정부의 김 대중 납치 사건을 해명하고 한일관계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했다. 일본 민중운동은 한일 경제협력이 한국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고 일본 환 경 공해를 한국에 수출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와타 하루키( 和 田 春 樹 )는 일본에서 한국 민중의 이해를 대변했다. 주간현대 기자 다찌가와 마사끼( 太 刀 川 正 樹 )와 하야가와는 이철 유인 태에게 학생운동을 취재하고 약간의 사례금을 지급한 것이 민청학련 에 일본 좌익 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조작 구속당해 징역을 20년씩 받았다. 일본 오사카의 츠네나리 카츠코( 恒 成 和 子 ), 오쿠다 아에코( 奧 田 八 重 子 )는 김지하 민청학련 사건을 지원했다. 1977년 유신 독재는 일본 요미우리신문 지국장의 평양 발언을 문제 삼아 서울지국을 폐 쇄했다. 일본인 목사 쇼지 츠토무( 東 海 林 勤 )는 서승 서준식 형제가 재일동 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되자 구명활동을 벌였다. 일본인 안 도 이사무 신부와 독일인 폴 슈나이스(Schneiss) 목사는 유신정권의 민 중운동을 탄압을 세계에 폭로했다. 일본인 아리모토 모토코는 1978년 동일방직 노동자를 지원했다. 일본인 무토 이치요는 전후 반세기 동안 아시아 민중의 저항과 함 께 했다. 그는 일본프레스서비 기자로 베트남전쟁, 한국의 유신 반대 와 광주항쟁, 필리핀의 민중항쟁 등 아시아 각 지역의 민중과 시민의 행동을 다른 나라에 알리고 연대했다. 미국인 목사 조지 오글(George Orgle)은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설립을 돕고 인혁당 사건이 고문으로 조작한 것임을 폭로해 결국 추방당했 다.(1974) 신부 제임스 시노트(James Sinnot) 역시 인혁당 사건을 폭로 하고 동아투위의 해직 언론인과 시위를 같이하다가 추방당했다. 목사 패리스 하비(Paris Harvey)는 민청학련 사건을 지원하다가 추방당했다. 린다 존스와 데이비드 존스 부부는 1972년부터 한국기독학생연맹

42 592 김영곤 (KSCF), 영등포 청주 도시산업선교회에서 일하고, 귀국한 뒤에는 아시 아인권교회위원회(CCHRA)에서 일했다. 세계 민중운동 기구의 지원이 있었다. 앰네스티 일본지부의 쓰네나 리 가즈코 등은 197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국제 앰네스티 세계 총회에서 윤현 한국지부 대표를 만나 민청학련을 비롯한 민주화 인 사를 도왔다. 이들은 1974년 민청학련 이후 7년간 모금과 자선 바자 회를 통해 600만 엔을 모아 한국의 양심수를 지원했다. 최열은 쓰네 나리가 보낸 환경 관련 책들을 보며 환경문제에 눈을 떴다. 세계기독교협의회(WCC)의 크리스챤 아카데미 지원이 있었다. 일본 의 오에 겐자부로( 大 江 健 三 郞 ) 등 세계 문인들이 김지하의 석방을 요 구했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소속 문인들이 1979년 서울에서 연 제4 차 세계시인대회에서 세계문학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를 배포하다가 연행 당했다. 반면 미국의 AFL-CIO는 미국의 해외개발지원금의 도움을 받아 1972년 아시아 아프리카 자유노동기구(AAFLI)를 설립하고 한국노총을 지원해 결과적으로 유신체제의 노동자 탄압을 간접적으로 지원했 다. 99) 미국 노총의 행위는 자국 자본이 저지른 문제를 은폐하고 자국 의 노동조건 저하를 막으려는 정책에서 비롯한 것으로 본다. 한국노총과 고대 노동문제연구소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던 서독 사 회민주당 계열의 프리드리히 에버트(Friedrich-Ebert)재단의 한국 주재 대표인 홀체(Holze)는 유신 독재가 들어서고 민중운동 탄압이 강화되 자 한국에서 철수했다. 100) 해외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던 인사들은 정부의 탄압이 미치자 프랑 스, 독일, 미국, 일본 등에 망명 신청을 하고 그 나라 정부가 이를 받 99) 윤영모, 한국 노동운동의 국제연대 현장에서 미래를 1997년 5월호 참조 100)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편, 1998 고대 노연30년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212쪽

43 1970년대 민중운동과 민중 지향 593 아들여 해외에서 민주화운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한국 민중운동을 지원하는 움직임은 1970년대 초기의 주로 종교적 인 것에서 후기의 민중운동적인 것으로 다양화했다. 한편 이런 지원 이 제국주의가 제3세계의 민중운동을 체제내화 하려는 의도로 돕는 것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세계 민중의 민중적 연대와 정치 경제적 영 향력을 크게 하려는 의도를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민중운동은 미국 등 선진국의 영향력으로 독재를 약화시키려는 희망에 따라 미국이라 는 존재에 대한 인식이 결여돼 대미 의존성을 극복하지 못했으며 동 시에 민중 지향성이 취약했다. 이는 5 18광주민중항쟁의 경험을 토대 로 1980년대에 가서야 극복했다. 101) 한국의 민중운동은 외세에 대한 저항의 역사, 높은 대중투쟁의 전통 그리고 1970년대 이후 국제 민중운동의 지원에 힘입어 크게 발전했으 며, 이것이 태국 등 다른 나라의 민주화운동을 자극했다. 김지하의 오 적 과 비어 는 민주화운동의 내용을 민중의 구술 언어로 서술한 것으 로, 아프리카 케냐의 작가 은구기 와 시옹오(1938~ ) 등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는 영어가 아닌 모국어인 기쿠유어로 케냐의 독립 이후 탈식 민지의 탈을 쓴 식민지의 탈을 아프리카에서 유구한 전통을 가진 구술 문학의 형식을 빌어 소설 십자가 위의 악마 를 지었다. 102) 3) 민중운동의 사상과 이론 독재와 자본의 이데올로기 유신 독재는 개발독재 이래 써온 기존의 불균형성장이론, 비교우위 론, 파이이론의 경제이론과 독재 군사주의에 민족주의를 덧붙였다. 101) 소준섭, 앞의 책, 21쪽 102) 케냐 응구기 와 시옹오 김지하 오적에 큰 감동 경향신문 2005년 5월 25 일자

44 594 김영곤 민족주의를 덧붙인 것은 베트남전쟁 종전 이후 미국 일본이 중국과 수교하면서 군사적 사상적 대립만으로는 독재를 합리화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종필은 베트남전쟁이 끝난 뒤 외자 기업의 보호를 말하 면서 한국에 들어와 있는 기업 1개가 미군 1개 사단의 한국 주둔과 맞먹는 안보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1970년대가 경제적으로 미국 일본 경제에 종속되어 103) 한국 사회가 경제적으로 종속되었지만 정권 안보 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었다. 7 4남북공동성명도 대외적으로 민족의 자주와 단결을 말했지만 내부적으로는 권력강화의 수단이 되었다. 위와 같은 내용들을 결합해 하나로 표현한 것이 한국적 민족주의 이다. 한국적 민족주의는 내부적으로 독재, 대외적으로는 군사 경제 적 종속을 결합한 표현이다. 유신체제가 군사 정치 경제 인적으로 친 미 친일 구조인 점을 고려하면 한국적 민족주의는 주로 내부 단속을 겨냥한 이데올로기이다. 유신체제는 국내적으로 민족적 민주주의를 내세웠는데, 대미 종속, 외자 의존 정책과 비교할 때 사실 대중을 향 해 독재를 합리화시키는 거짓 민족주의에 불과했다.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한국적 민족주의는 독재의 방편인 동시에 우리 민족 우선주의 로 민중 속에 고착되고 그 결과 민중운동조차 우리 민족 이기주의 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자본은 착취와 자본의 축적, 부의 독점을 파이이론 등으로 정당화 했다. 먼저 파이를 크게 키운 다음에 나누자, 나중에 보자 라는 논 리였다. 민중을 돌보지 말고 고속성장하자는 논리였다. 개발독재는 1960년대에는 저임을 인내하라며 1970년대는 소비가 미덕인 사회 가 올 것이라고 말했지만, 정작 1970년대가 되어 민중의 분배 실현 요구 를 외면하고 탄압했다. 거대 재벌이 되어버린 자본은 파이를 나눌 것을 요구하는 노동자 103) 곽태영은 이를 친일독재라고 불렀다.( 수유리 묘역에서 짓밟힌 박근혜 화환 한겨레 2005년 4월 20일자)

45 1970년대 민중운동과 민중 지향 595 에게 효, 가족의 이데올로기를 써서 무력화하려고 했다. 정권과 대기 업주들은 충효를 유난히 강조하며 노동자의 단결권, 소비자의 권리, 중소기업 등 하위 관련자를 무시했다. 대우그룹의 김우중은 대우그룹 산하의 노동자를 대우가족 이라고 불렀는데 정작 노동자들은 자신들 이 대우가축 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가족이라는 말 속에는 기업 안 의 노사는 동일체이며 경영이 잘되면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지불 할 터이니 충성하고 만족하라는 기업별주의의 논리가 숨었다. 삼성의 이건희도 제일제당 노조를 해체하는 과정을 기업주는 부모와 같은 존재인데 노조는 안 된다 는 말로 합리화했다. 104) 노사 관계에서 민중의 평등과 노동자의 단결을 주장하는 노동자와 주장을 빨갱이, 기업을 도산시키는 도산 세력 이라고 매도했다. 그 래도 저항하는 여성노동자에게는 군사주의를 들이대고 이데올로기적 으로 압제하고 군인과 경찰을 동원해 탄압했다. 군사주의가 강해지면 서 군사화된 민족주의가 커지고 여성의 가난이 심해지고 억압적 통 제가 강화되었다. 군사문화는 반여성의 기조를 가졌으며 이는 여성, 여성노동과 대립했다. 사학자 이선근(1905~83)은 신라 통일을 뒷받침한 화랑정신 과 10 월유신의 정신 을 연결했고, 철학자 박종홍(1903~76)은 국민교육헌장 의 저자이며 박정희의 보좌관으로 동양적 사유 와 유일한 참된 것 인 민족의 얼 을 끌어들이고 긍정과 건설 의 논리로 지식인들에게 유신 지지를 호소했다. 헌법학자 한태연 갈봉근 박일경은 유신헌법을 만드는 데 앞장섰다. 법학자 함병춘은 주미대사로서 박동선 스캔들 을 잠재우고 한국적 민주주의 의 정당성을 설명해 유신체제를 옹호 했다. 한국적 민족주의를 선전하려고 1974년에 국민윤리, 국사, 한문, 교 104) 구영식, 납치, 미행, 매수, 유령노조 공포의 무노조전략 말 2000년 9월 호, 103쪽

46 596 김영곤 련 등을 새 학과로 독립시켜 이데올로기 교육을 강화했다. 또 유신 독재를 지지하는 이데올로기 창출 기관으로 한국정신문화연구원(한국 학중앙연구원의 전신)을 설립했다.(1978) 1975년 학교에 학도호국단을, 사회에 민방위대를 결성해 모든 사람 을 준군사적 조직에 편입시켜 사회를 병영으로 만들었다. 군인을 중 심으로 하는 병영국가에서 국적을 신성시해 국적 있는 교육 국적 있는 문학 국적 있는 역사학 을 유도했다. 또 대학에서는 독재를 반대하고 진보적인 교수를 제거하고 그 자 리에 미국 박사들을 대거 고용해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확산해 대 학의 역할을 테크노크라트의 산실로 국한하게 했다. 105) 윤천주(서울 대) 이종우(고려대) 이인기(숙명여대) 총장 등은 유신을 지지하고 앞 장섰다. 남덕우 이승윤 등 서강대 교수 중심의 경제학자들은 이른바 서강학파를 형성해 유신체제의 경제정책 입안을 뒷받침했다. 해방 민주 민중 내재적 발전 분단 극복 의 이론 민중의 투쟁은 민중 자신의 기본권을 신장시키고 민주적 사고와 행동의 수준을 높였으며, 이것은 사상과 이론 부문에서 현저하게 나 타났다. 민중의 사상 이론 작업은 민중 스스로의 인식 발전에서 비롯 하는 것이지만 1970년대에 해직돼 독재의 탄압과 가난에 시달린 해 직교수 문화예술인 등 지식인들의 노력도 사상 이론의 발전에 큰 역 할을 담당했다. 이런 이론작업은 식민사관을 넘어 한국 사회가 독자 적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입증했다. 105) 유신체제의 이데올로기는 독재 외세의존 착취가 결합한 이데올로기였다. 그 러나 상호간에 모순이 있었다. 박정희 피살은 상호 모순 속에서 발생한 사건 이라고 할 수 있다. 박정희 정권의 반공안보가 만든 레드 콤플렉스, 스포츠 애 국주의 수출의 종교화, 승자독식 사회, 국가 경쟁력주의 등은 식민적 사회진화 론의 계보에 속해 있다.( 사회진화론에 비춘 한국적 생존경쟁 한겨레 2005년 4월 23일자)

47 1970년대 민중운동과 민중 지향 597 첫째, 1970년대를 시작하면서 전태일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인 간 이라고 선언하며, 노동해방 을 주장했다. 그는 민족해방운동 8 15해방 에서 쓰던 해방 을 잠시 잊었던 민중에게 해방 이라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해방이라는 말은 노동이든 사회든 이념이든 통 제 질곡을 벗어나 자기 것을 자율로 한다는 의미로 1970년대 민중운 동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청계피복노조의 농성장에서는 노동해방 이라는 말이 나왔고 106) 1980년대에 해방 은 대중의 과제가 되었다. 둘째, 민주는 1970년대를 일관한 화두였다. 1970년대의 민주는 1960 년대의 정치적 민주주의를 넘어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로 의미가 넓 어졌다. 직장, 노동조합, 가정에서의 민주주의 실현을 의미했다. 셋째, 민중의 개념은 저항하는 인민을 의미하며 민주화운동 속에서 정착했다. 민중(minjung)은 한국의 민중운동이 만든 세계적인 개념이 다. 민중은 원래 신채호 한용운 등이 중생 구제를 앞세워 민중불교를 주창하며 제기한 개념이다. 1970년대에 민중 개념이 널리 퍼져 민중 경제론 민중사회학 민중사학 민중문학이 등장했다. 민청학련은 1974년 민중 민족 민주선언 에서 민중 민족 민주 를 이념으로 표방했다. 독립운동가 출신으로 일본군 장교 출신인 박정희 와 대척점에 서서 유신 독재 타도 활동을 하다가 의문을 죽음을 당 한 장준하(1918~75)는 민중운동을 특히 민족화해를 담당할 민중적 지반 107) 이라고 하며 민중운동을 민주주의와 통일운동의 바탕이 된 다고 이해했다. 진보적 신학자들은 민중신학의 개념을 발전시켰고, 이것은 1970년 대 진보교회 사회참여 해방신학과 연결된다. 서남동(1918~84) 안병무 (1922~96) 현영학(1921~2004) 등 신학자들은 민중신학론을 제기했다. 106) 김환기, 2005 그 때 그 이야기-이승철의 이야기 마당 (13), 박정희 정권과 청 계피복노동조합 사람세상 98호(전태일기념사업회), 13쪽 107) 백범사상연구소, 1974 민족주의자의 길-장준하 선생 추모 문집, 33쪽

48 598 김영곤 서남동은 1973년 기독교사상 4월호에서 민중신학을 정신적 심령 적 구원보다는 역사적 정치적 구원을 지향하고 있다 고 해 그리스도 교 민중사와 한국민중사를 신의 선교에 합류시켰다. 안병무는 마르 코의 복음서 를 연구해 성서의 민중적 성격을 찾고, 예수의 복음이 민중을 수용했으며 예수 속에서 민중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정창렬은 백성의식 평민의식 민중의식 ( 역사와 인간, 두레, 1982) 에서 지배계층의 권위에 복속되어 순종만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권리 를 획득하려고 싸우는 인민이 민중이라는 동태적 개념을 제시했다. 한 완상은 민중과 사회 (1980)에서 민중을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소 외된 자로 규정하고 민중을 역사와 사회의 주체로 보았다. 108) 1970년대 민중이라는 개념은 분화와 통합의 과제를 안고 있는 아 직은 초보적인 수준이었다.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의 표현이 막히면 서 민중이라는 용어를 더욱 널리 사용했고, 민중 개념이 상징성에 비 해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있었다. 민중 운동은 1980년대에 들어서 기층 대중운동과 시민운동이 분화하는 과정을 겪었다. 이 분 화가 확산돼 2000년대 들어와서는 각 부문운동이 분과해 상호 배제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원인은 1970년대 임노동 농업노동 도시 빈민이 타자를 희생시켜 각자의 이익을 얻는 경제지배구조에 뿌리를 두고 있다. 기층 대중운동과 시민운동은 자본주의의 존폐 시장경제 의 효용성 을 두고 서로 대립했으나, 다수의 민중이 자본주의 발전의 피해 당사자라는 점에서 새로운 민중 의 개념은 이 두 가지 문제를 포괄, 용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넷째, 1960년대 이래 발전한 내재적 발전, 내포적 발전의 이론을 형성했다. 박현채(1934~1995) 유인호 주종환 등은 개발독재에 대립해 내포적 경제발전의 민족경제론을 주창했다. 내재적 발전의 인식은 108) 한완상의 민중사회학 교수신문 2002년 7월 9일자

49 1970년대 민중운동과 민중 지향 년대 국가독점자본주의 논쟁으로 발전했다. 박현채는 1970년대에 개발독재에 대응해 수출주도형 경제개발에서 내포형 공업화로 가자 고 주장하며 민주주의, 민중론, 민족경제론 의 사상 개념을 형성 했다. 박현채는 민중적 삶, 중소기업의 중요성, 민족경제 등의 개념을 담은 민족경제론 (1978)을 펴냈고, 그는 김병태와 함께 사용자보다는 노동자의 권익을 우선해 빈부격차를 줄이자는 내용의 김대중씨의 대중경제 100문 100답 (대중경제연구소편, 범우사, 1971)의 집필에 직 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109) 민족경제론의 구성은 일본 오쓰카 히사오 ( 大 塚 久 雄, 大 塚 史 學 )의 비교경제사학에서 영향을 받았다. 110) 민족경 제론은 이후 경제문제의 왜곡을 예견하고 한국의 지식인 운동가들에 게 민주화와 자주화, 통일의 과제가 지닌 중요성을 제시하고 특히 노 동자 계급과 민중에게 변혁을 위한 무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선진 적이다. 111) 주종환은 한국의 재벌구조가 가지는 문제를 지적하고 토 지공개념을 제기했다. 1970년대 활발했던 실학 연구와 더불어 김용섭, 강만길, 김영호 112) 등은 한국 역사에서 자본주의 맹아를 찾아 사회의 내재적 발전 과 정을 밝혀 민중사학의 출발점을 만들었다. 재일동포 역사학자 역시 한국사 복원과 일제 강점기에 강제 징용 당 한 당사자 혹은 2, 3세인 재일동포의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했다. 김달 수(1919~97)는 1972~1991년 사이에 일본 속의 조선문화( 日 本 の 中 の 109) 박승옥, DJ 대중경제론 은 박현채 작품 프레시안 2005년 7월 12일자 110) 타키자와 히데키, 2002 한국의 민족경제론 과 일본의 비교경제사학 (제1회 세계한국학대회 기조보고, ) 111) 윤건차, 2003 현대 한국의 사상 흐름, 당대, 63쪽 112) 이에 관한 저서는 다음 것이 있다. 김용섭, 1975 한국근대농업사연구 상 하, 일조각;강만길, 1973 조선후기 상업자본의 발달, 고려대학교 출판부;김영 호, 1968 조선후기에 있어서의 도시상업의 새로운 전개 한국사연구 2, 한 국사연구회

50 600 김영곤 朝 鮮 文 化 ) 전 12권( 講 談 社 )을 집필 간행했다. 박경식(1922~ )은 조 선인 강제연행의 기록( 朝 鮮 人 强 制 連 行 の 記 錄 ) ( 未 來 社, 1969), 일본제 국주의의 조선지배( 日 本 帝 國 主 義 の 朝 鮮 支 配 ) ( 靑 木 書 店, 1973), 재일 조선인운동사( 在 日 朝 鮮 人 運 動 史 ) ( 三 一 書 房, 1979)를 저술해 일본의 조 선 재침략을 경계했다. 강재언(1926~)은 조선근대사연구( 朝 鮮 近 代 史 硏 究 ) ( 日 本 評 論 社, 1970)에서 갑오농민전쟁의 혁명사를 역사로 복원하고 재일동포의 지위 향상에 기여했다. 이진희(1929~)는 광개토왕비 탁본 을 분석해 광개토왕비의 연구( 廣 開 土 王 碑 の 硏 究 ) ( 吉 川 弘 文 館, 1972)를 저술해 임나일본부설을 뒤집었다. 강덕상은 관동대지진을 연구해 재일 조선인의 고통스런 삶을 밝혔다. 113) 한국경제가 저개발과 대미채무 증가가 악순환하는 남미형으로 갈 가능성을 두고 제3세계와 종속이론 (염홍철 편저, 한길사, 1980), 제3 세계의 경제발전 : 저개발과 종속 (변형윤 김대환 공편역, 까치, 1980), 제3세계연구 1 2(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2) 등의 종속이론을 소개하 는 책을 발간했다. 사미르 아민(Samir Amin), 프랑크(A. G. Frank), 월러 스틴 등이 전개한 종속이론은 산업화 과정에서 나타난 대외의존 종속 의 심화와 극심한 빈부격차를 반영해 나타났지만 한국에서는 내재적 발전론과 경합해 널리 퍼지지는 못했다. 다섯째, 동아시아에서 냉전의 후퇴와 베트남 통일, 동서독의 교섭 특 히 7 4공동성명의 충격은 통일문제 인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강만길 114) 은 분단시대의 역사, 백낙청은 분단체제 와 백낙청 115) 등의 개념을 제시해 남북을 아우르는 한반도 전체를 인식지평으로 끌어들였다. 여섯째, 문예 이론 부문에서도 큰 발전이 있어 백낙청 염무웅은 민 113) 강덕상 지음(홍진희 역), 1995 조선인의 죽음:관동대지진과 조선인 대학살의 진상, 동쪽나라 참조. 114) 강만길, 1978 분단시대의 역사인식, 창작과 비평사 참조 115) 백낙청, 1994 분단체제 변혁의 공부길, 창작과 비평사 참조

51 1970년대 민중운동과 민중 지향 601 족문학론을 전개했다. 민중의 기본권 회복, 민족통일 실현을 과제로 삼았다. 독재와 자본의 천민성 잔혹성 폭력성에 저항하는 민중문학론 이 나와 민중의 현실을 형상화했다. 한편 조정환은 1970년대의 민족 문학론이 가진 이념적 총체성과 객관성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민중 성을 추상적으로 이해하고 계급적 시각을 결여해 시민적 헤게모니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평가했다. 116) 이런 이론은 서서히 또는 급격히 민중에게 사회 현실에 눈을 뜨게 하고 권리, 단결, 저항 의 의미를 알게 했다. 유신체제 아래 민중 운동이 형성한 해방, 민주, 민중, 내재적 발전, 분단 극복 의 개 념은 이후 발전을 계속했다 년대에 나타난 민중운동 영역의 확장 유신 독재 시기에는 산업사회의 변화에 따라 공해 반대 운동, 도시 주민운동, 성 평등 여성운동, 환경농업과 도시 농촌의 협력과 같은 새로운 민중운동 분야가 생겼다. 그러나 장애인, 동성애자, 희귀병 환 자와 같은 소수자의 운동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이것은 1970년대 운동가들이 이후 계속해 나중에는 운동 분야로 발전한 부분이다. 민 중운동의 미래를 가늠하게 하는 지표이다. 주민운동 개발독재가 민중의 생활을 파괴한 것 가운데 하나가 공동체와 그 관념의 파괴이다. 농촌에서는 새마을운동을 내세우며 전통적인 단결 과 관용의 개념인 두레, 굿, 서리 등을 파괴하고 모든 것을 행정조직, 농협 등의 동원 체제로 흡수했다. 주민운동은 이에 대한 저항으로 농 116) 강만길, 1997 고쳐 쓴 한국현대사, 창작과 비평사, 402쪽

52 602 김영곤 촌보다 도시에서 먼저 일어났다. 도시빈민운동에서 출발해 주민 일반 의 운동으로 발전했다. 도시빈민을 중심으로 농촌의 공동체처럼 도시 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일구려는 협동운동, 주민운동이 일어났다. 서울 난곡의 주민들은 자립적 주민공동체를 지향해 1976년 난곡희 망의료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성남 주민교회의 이해학과 주민들이 만 든 주민신용협동조합(1979)은 고리채 안쓰기와 월세를 전세로 바꾸기 운동을 폈다. 영등포산업선교회는 1974년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신용 협동조합을 조직했으며 1979년 정부의 설립인가 취소로 다람쥐 로 개칭했다. 농촌에서 관 주도로 새마을문고를 설립한 것과 달리 도시에서는 민중이 도서운동을 전개했다. 부산에서 김형기는 당시 한국의 신용협 동조합 운동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코디(Moses Coady) 신부의 안 티고니쉬 운동(Antigonish Movement)의 철학과 전략 을 읽고 캐나다 동 부 연안의 노바스코샤주의 안티고니쉬 지방에서 전개한 협동조합운 동에서 양서조합을 구상했다. 그의 제안으로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중 부교회 신자들이 회원 개개인의 출자금으로 양서를 확보해 돌려보고 협동조합을 지향하는 독서클럽을 추진했다. 1978년 4월 부산양서판매 이용협동조합(이사장 이흥록)을 설립했다. 그 뒤 마산, 대구, 울산, 서 울, 수원, 광주 등 여러 도시로 전파돼 대부분 부마항쟁과 5 18항쟁 을 거치면서 해산했고 가장 오래 존속한 서울 양서협동조합도 1982 년 해산했다. 양서조합 회원들은 부마항쟁과 광주민중항쟁의 주체로 활동했고, 117) 부림사건(1981) 부산미국문화원방화사건(1982)으로 이어 져 수십 명이 구속당했다. 광주의 녹두서점 은 유신체제 말기에 민주 청년 학생들이 모여 시 국토론을 벌이던 곳이다. 1980년 5월 17일 밤 전국에 경찰이 전국에서 117) 차성환, 양서협동조합운동의 재조명 1 기억과 전망 2004년 가을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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