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와 혁신으로 성장한 60년의 비상 SK6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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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변화와 혁신으로 성장한 60년의 비상 SK60년사

2 변화와 혁신으로 성장한 60년의 비상 SK60년사

3 기념사 새로운 60년, 더 큰 행복을 만드는 SK가 되겠습니다. SK가 올해로 6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우리는 나이 육십을 환갑 이라고 해서 인생의 중요한 계기로 삼고 있습니다. SK도 지난 60년 동안 지나온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다시 미래를 시작하는 전환점에 서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SK 60년은 우리 나라의 발전사와 맥을 같이해 왔습니다. 대한민국이 전쟁의 상흔을 딛고 일어나 온갖 역경을 극복하며 세계에서 손 꼽히는 경제강국으로 우뚝 서는 동안, SK도 폐허가 된 조그만 직물공장에서 시작해 원사공장으로, 다시 정유공장으로 도약하고, 정보통신과 반도체에 과감히 도전해, 웬만한 개발도상국의 GDP와 맞먹는 연 매출 150조 원 규모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패기와 열정으로 도전하며 성장해 온 자랑스러운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지난 60년 SK 역사 안에는 그늘도 있었습니다. 수 없이 반복되어 온 경제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뼈를 깎는 구조조정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하며 동료들을 떠나 보내야하기도 했습니다. 사회의 공기( 公 器 )로서 기업이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따끔하게 질책을 받으며, 교훈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과거를 답습하는 일을 삼가고, 끊임 없이 더 투명한 기업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또, 기업이 사회를 위해 해야 할 일을 성실히 수행하고자 나름의 노력을 해오면서 사회로부터 격려를 받기도 했지만, 보다 진정성을 가지고 효율적으로 그 일을 해나가야 한다는 가르침도 얻었습니다. 이제 새로운 60년, SK는 자랑스러운 역사와 어려움 속에서 얻은 경험과 가르침을 마음에 담고, 초심으로 돌아가 새로운 시작의 발걸음을 내딛겠습니다. 1970년대 석유파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대한석유공사(현 SK이노베이션)를 인수해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 를 이루어냈듯이, 위기 속에서 도약하는 기회를 찾겠습니다. 재무구조와 사업구조를 끊임 없이 개선해 가면서, 그 힘을 바탕으로 모범적인 기업지배구조를 가다듬어 가겠습니다. 60주년을 맞은 올해, SK는 각 회사의 자율 독립경영 기조를 강화하고자 따로 또 같이 3.0 이라는 새로운 기업지배구조를 정립해 안착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도전과 열정의 원천이자 궁극의 목적은 다름 아닌 행복 입니다. SK 구성원들에게는 더 행복한 우리 모두의 미래를 만들겠다 는 목표와 믿음이 있었기에 순간순간 마주하는 고통과 시련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행복이란, SK 구성원만 기쁘고 보람 있다 해서 가질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더불어 행복하고, 오늘만이 아니라 내일도 그 행복이 이어질 것이란 믿음을 가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참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SK가 사회적 기업이라는 화두에 혼신의 힘을 쏟는 것도 결국 사회와, 또 더 많은 사람들과 지속가능한 행복을 나누고자 하는 바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지난 60년 역사를 통해 SK가 해왔고, 또 앞으로 하려고 하는 것은 바로 사회 구성원 모두의 지속가능한 행복 만들기 입니다. 이를 위해 SK의 모든 구성원은 언제나 사회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기업시민으로서 해나갈, 의미 있는 역할을 찾고자 힘 쓰겠습니다. 물론, 아직은 갈 길이 멀고, 아무리 애써도 또 다른 난관이 나타날 수도 있겠지만 항상 포기하지 않고 끊임 없이 노력하며 도전하겠습니다. SK 60년을 맞이하며, 함께 해주신 고객과 주주를 비롯한 모든 사회 구성원, 그리고 전 현직 구성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013년 4월 SK 회장 최 태 원

4 발간사 고객과 사회로부터 받은 사랑, 자랑스러운 SK로 보답하겠습니다 1953년 수원에서 작은 직물공장으로 출발해 지난60년 동안성장을 거듭해 온 SK는 한국사람들의 의( 衣 )생활을 혁명적으로 바꿔왔고,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원동력이 된 에너지를 만들어 왔으며, 정보화시대에는 IT강국 대한민국을 선도해왔습니다. 이렇게 한국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한편 SK는 나라의 미래를 만들어갈 인재를 키우고, 사회 구성원 모두의 행복을 만들어가려고 노력해왔습니다. 모든 역사는 어제로부터 오늘로, 다시 내일로 이어집니다. 과거로부터 실선으로 이어지는 현재를 알아야 현재로부터 점선으로 이어지는 미래를 내다 볼 수 있습니다. 과거를 돌아보며 미래를 만들어 가기 위해 <SK 60년사>를 발간했습니다. 섬유에서 석유로 거슬러 올라가, 마침내 에너지-화학과 정보통신의 양 날개를 달고 대한민국 대표기업으로 도약하는 과정을 다시 되돌아 보고, 반도체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아 진정한 글로벌 SK 로 비상하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고객과 주주, 그리고 사회구성원과 함께 호흡하며 패기와 열정으로 SK를 일궈 온 구성원의 삶을 되새겨 보았습니다. 그리고 21세기 SK가 명제로 생각하는 행복 과 글로벌리제이션 에 대해서는 별책으로 엮었습니다. 인재보국, 육림보국으로 시작해 사회적 기업 생태계 조성 노력에 이르기까지, SK가 사회적 과제 해결을 위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노력을 해왔으며, 앞으로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에 대해 밝혔습니다. 또한 국내 최초의 섬유수출을 시작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펼쳐온 도전과 패기의 역사를 담으며 따로 또 같이 3.0 을 통해 다시 한번 도약하겠다는 각오도 새롭게 다졌습니다. <SK 60년사>를 책으로 펴내며, 고객과 주주, 사회로부터 받은 사랑, 그리고 수많은 선후배 구성원의 노고와 헌신을 생각했습니다. 사랑과 헌신으로 오늘의 SK를 있게 해주신 모든 분께 머리 숙여 감사 드립니다. SK를 아껴주신 모든 분께 부끄럽지 않게 자랑스러운 미래를 만들어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13년 4월 SUPEX추구협의회 의장 김 창 근

5 SK 60년사 047 패기와 지성의 결합, 잇따른 히트상품 개발(1964) 변화와 혁신으로 성장한 60년의 비상 제1편 산업화의 대동맥, 정보화의 신경망 SK ( ) 선경화섬 설립, 아세테이트 원사 생산에 나서다( ) 폴리에스터 원사 생산의 병행 추진( ) 국내 최초의 섬유기업집단으로 도약하다( ) 058 뼈를 깎는 구조조정( ) 제1장 한국인의 의( 依 )생활을 혁신하다 (1953~1973) 패기와 지성의 만남, 최종건 창업회장과 최종현 선대회장 최종건 창업회장, 맨손으로 선경직물 창업하다( ) 닭표 안감, 도약의 발판이 되다( ) 3공장 건설과 서울연락사무소 개설( ) 사업다각화의 시동, 서해개발 설립과 워커힐 인수( ) 나라에 필요한 인재를 키우는 꿈, 장학퀴즈( ) 최종건 창업회장의 영면( ) 예우를 갖춘 인재 초빙(1957) 혼수감의 대명사, 봉황새 이불감 대 히트( ) 나일론 직물 생산으로 합섬시대 열다( ) 폴리에스터 직물에서 돌파구 찾다( ) 제2장 에너지 화학으로 한국경제의 대동맥 되다 (1974~1991) 최종현 선대회장 체제의 개막( ) 세계적 석학 양성의 원대한 꿈( )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 천명( ) 경영기획실과 선경연수원 설립( ) 037 국내 최초로 인견직물 수출 길을 열다( ) 081 선경 설립, 종합무역상사로 도약하다( ) 039 최악의 경영난 속 최종현 선대회장 합류( ) 085 (주)선경, 중남미 시장 개척의 선봉에 서다( ) 042 공매불 매입으로 자금위기 극복( ) 087 매출 1,000억 원과 수출 2억 달러 시대 열다( ) 044 최종건 창업회장, 국내최초로 금탑산업훈장 수훈( ) 089 선경의 새로운 위상, 기업공개에 나서다( ) 090 선경종합건설 설립, 건설업에 뛰어들다( ) 093 불가능에 도전, 폴리에스터 필름 개발에 성공하다( ) SK 60년사는 제1권, 제2권, 제3권, 제4권으로 구성했다. 제1권은 과거 50년과 최근 10년을 각각 제1편과 제2편으로 나누어 SK의 60년 역사를 담았다. 제2권은 SK 창업 이후 현재까지 행복나눔을 실천한 역사를 다뤘으며, 제3권은 해외진출의 역사를 다뤘다. 제4권은 역사화보집으로 SK의 발자취를 역사 사진과 핵심 키워드 등으로 구성했다. 제1권 변화와 혁신으로 성장한 60년의 비상( 飛 上 ) 은 SK가 지난 60년간 국가경제에 이바지한 모습, 국가경제에 기여한 인재를 양성하는 모습, 사회를 행복하게 하는 모습 등을 담아내고 있다. 제1편은 1953년부터 2002년까지의 역사를 다루며 선경직물로 시작한 SK가 우리나라를 정보통신의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는데 기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제2편은 2003년부터 2013년까지의 역사를 다루며 행복 극대화 에서 따로 또 같이 3.0 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담았다 국내 최대 호텔로 성장한 쉐라톤워커힐( ) 선경합섬, 자체기술로 폴리에스터 수지 개발하다( ) 21세기를 내다보며 SKMS 정립( ) 선경화학, 비디오테이프 개발에 성공하다( ) 10년 공들인 탑, 유공을 인수하다( ) 선경의 품에서 유공으로 재출범( ) 자원수송 전문 해운사 유공해운 설립( ) 무자원 산유국에 도전, 해외 석유자원 개발에 뛰어들다( ) SK그룹 60년사

6 117 계열기업 정리와 석유화학 콤비나트 건설 착수( ) 175 SKC, 글로벌 생산거점체제 구축( ) 120 LPG사업과 LNG사업에 진출하다( ) 177 SK케미칼, 국산 신약 1호 선플라 개발( ) 121 선경인더스트리, 생명과학에 과감히 도전하다( ) 179 SK가스, 해외시장에서 비즈니스 모델 찾다( ) 123 한발 앞선 글로벌리제이션, SUPEX추구(1989) 181 위기를 딛고 일어선 SK증권( ) 126 SKC와 선경매그네틱의 글로벌리제이션(1990) 183 SK텔레콤, 신세기통신 합병으로 도약의 발판 마련( ) 128 국내 기업 최초로 중국에 무역사무소 개설( ) 185 또 하나의 SK를 중국에 만들다( ) 130 울산컴플렉스 합동준공식, 수직계열화를 완성하다( ) 189 국내 대표 포털사이트 브랜드 OK캐쉬백 출범( ) 133 태평양증권 인수, 금융업 진출( ) 191 마케팅전문회사 SK글로벌로 재출범( ) 192 SK건설, 아파트 브랜드 SK VIEW 론칭( ) 제3장 풍요로운 정보통신사회 열어가다 ( ) 정보통신사업 진출 천명( ) 최종현 선대회장, 전경련 회장에 취임하다( ) 한국이동통신 인수, 정보통신사업 진출의 꿈 이루다( ) SKMS와 SUPEX추구의 중국 전파( ) SK해운, 국내 최대 LNG선사로 도약( ) 자원개발 기업의 위상을 높이다( ) NATE 탄생, 멀티미디어 무선통신 시대 개막( ) SK텔레콤, 세계 최초로 3G 이동통신 서비스 개시( ) 147 엔크린과 ZIC 돌풍( ) 203 SK텔레콤, 월드컵 마케팅 신화 창출( ) 149 유공 울산공장, 세계최대 정유공장으로 거듭나다( ) 205 지식경영의 산실 SK경영경제연구소 출범( ) 151 한국이동통신, 세계 최초로 CDMA 상용화( ) 154 선경투자신탁운용과 SK생명 탄생( ) SPEED 011 과 TTL 로 고객 사로잡다( ) 매머드 석유판매회사 SK에너지판매 탄생( ) 그룹 신CI 선포( ) 제2편 따로 또 같이 세상의 행복을 만들어가다 (2003~2013) IMF의 격랑을 넘어서다(1998) SK텔링크 설립, 모바일 국제전화로 시장 선도(1998.4) 재계의 거목 최종현 선대회장 영면( ) 대주주와 전문경영인의 파트너십 경영( ) 제1장 성장과 행복으로 뉴SK 시대 열다 (2003~2006) 이어지는 시련과 대주주의 자기희생( ) 시련을 파고든 투기자본의 비수( ) SK텔레콤, 해외 이동통신 사업의 명암( ) 최태원 회장 체제로 전환하다( ) 169 SK텔레텍 설립, 휴대전화 SKY 출시( ) 221 이사회 중심 투명경영을 선언하다( ) 171 종합정보기술회사 SK C&C 탄생( ) 224 SK자원봉사단 창단, 행복한 세상 만드는 홀씨( ) 173 실질적 국내 첫 지주회사 SK엔론 출범( ) 227 상상이 현실이 되는 W 서울 워커힐 개관( ) SK그룹 60년사

7 행복극대화 위해 SKMS 개정하다( ) SK, 차이나 인사이더 전략 가속화( ) 싸이월드와 네이트, 인터넷 커뮤니티를 선도하다( ) 제2장 제3의 창업,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 (2007~2010) 더 큰 행복 위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 ) 워크아웃 8개월 조기 졸업한 SK네트웍스( ) SK E&S, 해외 도시가스시장 진출( ) 236 TU미디어 설립, 세계 최초로 위성 DMB 방송 개시( ) 291 SK텔레콤, 중국 3G 통신기술 협력( ) 238 SK케미칼, 의약품 해외 수출의 길 열다( ) 294 인등산에 SUPEX 센터 개원( ) 240 SK네트웍스, 고객중심 통합 마케팅회사로 변신( ) 296 SK텔레콤, 플랫폼 사업을 성장동력으로( ) 242 SK건설, 중동에서 신화를 쓰다( ) 299 SK커뮤니케이션즈 통합법인 출범( ) 245 SK(주), 브라질과 페루에서 자원개발 성공( ) 301 글로벌 시장 겨냥한 CIC제도 도입( ) 248 행복 나눔의 계절 선포( ) 303 SK C&C, 중앙아시아시장 개척( ) 251 행복날개 로 날아오르다( ) 305 마케팅 전문회사 SK마케팅앤컴퍼니 출범( ) 254 SK네트웍스, 종합무역상사 최초로 중국지주회사 설립( ) 307 SK 기업문화 발전소 SKMS연구소 개관( ) 256 LNG 지주회사 SK E&S 탄생( ) 309 국내 최초로 그룹단위 상생경영 시스템 마련( ) 258 행복동반자 경영 선언하다( ) 312 SK에너지, 에너지 독립국 꿈 꾸며 제3 고도화시설 준공( ) 260 SKC, 대대적 사업 구조조정에 나서다( ) 314 유선 경쟁력 강화 위해 SK브로드밴드 출범( ) 262 SK(주), 2차전지 사업의 통합 추진( ) 316 SKC, 무기소재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 264 인천정유, SK의 새 가족 되다( ) 318 SK네트웍스, 비석유자원개발 가속 페달 밟다( ) 266 SK케미칼, 수익성 제고 위한 사업구조 재구축( ) 320 경제위기 극복 위한 한마음 한뜻 대선언( ) 268 SK네트웍스, 중고가 패션 브랜드 육성( ) 322 SK건설, 세계적 지하공간 건설사로 성장( ) 270 울산대공원, 시민 1인당 1평 녹지조성( ) 324 SK케미칼, 세계 일류 제약회사로 도약 채비( ) 272 SK텔레콤, 세계 최초로 HSDPA 상용화하다( ) 326 쓰촨 대지진 참사 지역의 희망, 행복소학교 ( ) 273 SK텔레콤, 프리미엄 T 출시( ) 329 SK에너지, 신약 개발 신화, 카리스바메이트 ( ) 275 해운경기 호황과 SK해운의 도약(2006) 331 윤활기유 전문기업 SK루브리컨츠 출범( ) 277 행복나눔재단, 행복도시락을 배달하다( ) 333 SK텔레콤, 하나카드 지분 인수로 모바일 금융시장 진출( ) 279 사상 최초 매출 60조 원, 수출 200억 달러 달성( ) 334 SK네트웍스, 워커힐 합병과 제주 핀크스 인수( ) 335 찾아가는 서민금융 SK미소금융재단 설립( ) 337 SK텔레콤, 스마트시대 개막( ) 339 SKC, 필름사업의 진화( ) SK그룹 60년사

8 341 SK 차이나, 중국 사업 전열 재정비( ) 415 SK임업 40년, 인재 육성의 40년 뜻을 잇다 344 SK에너지, 기술수출의 진화( ) 417 핸드볼을 비롯한 스포츠 진흥에 발벗고 나서다 346 스마트 워크플레이스 toktok 오픈( ) 420 재계 3위의 위상, 수출 600억 달러 매출 150조 원 시대 347 SK네트웍스, 버추얼(Virtual) 철강기업 의 꿈 이루다( ) 422 따로 또 같이 3.0 으로 아무도 가지 않는 길 을 열다 제3장 글로벌 일류기업 향해 SK Way 열어가다 (2011~2013) 사람과 문화 혁신 통해 성장과 행복 추구하다 사회적 기업 생태계조성 SK이노베이션, 글로벌 종합에너지 기업으로 도약 SK에너지, 인천CLX 대규모 설비투자로 미래 대비 SK종합화학, 대표적 수출기업으로 등극하다 SK루브리컨츠, 세계 고급 윤활유 시장 석권 SK케미칼, 환경과 인류의 건강 책임진다 SKC, 글로벌 그린소재 컴퍼니로 진화하다 SK E&S, 토털에너지기업으로 도약하다 SK가스, LPG원료로 석유화학사업에 도전 SK텔레콤, 글로벌 ICT산업을 선도하다 SK C&C, 모바일 커머스 솔루션의 세계 강자로 부상하다 오픈 플랫폼 전문기업 SK플래닛 출범 SK브로드밴드, 글로벌 IDC사업 확대 SK텔레시스, 전기 전력 설비 사업 진출로 신성장 동력 확보 SK텔링크, MVNO 사업 진출 SK네트웍스, 세계일류 통합마케팅회사로 도약하다 SK건설, 유라시아 터널을 뚫다 SK해운, 재도약 기반 완성하다 SK증권, 선진 금융 서비스로 해외 시장 진출 하이닉스 인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다 생명과학전문회사 SK바이오팜 출범 SK그룹 60년사

9 제1편 1953 산업화의대동맥 정보화의신경망 2013년 4월 8일 창립 60주년을 맞이한 SK는 1953년 폐허가 된 조그만 직물공장에서 시작해 국내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하며 우리나라 산업사와 맥을 같이 해왔다. 오늘날의 SK가 있기까지에 최종건 창업회장과 뒤를 이은 최종현 선대회장의 패기와 지성이 절묘한 조화가 있었다. 1960년대 선경직물의 지속적인 성과와 선경화섬, 선경합섬의 설립으로 선경은 국내 최초의 섬유기업집단으로 성장했으며,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를 천명한 후 1980년 SK 유공 인수와 울산컴플렉스 준공으로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또한 2000년대 신규사업으로 정보통신 분야를 설정,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해 세계 최초로 CDMA 상용화하여 급성장했다 SK그룹 60년사

10 제1장 한국인의 의( 依 )생활을 1. 패기와 지성의 만남, 최종건 창업회장과 최종현 선대회장 2. 최종건 창업회장, 맨손으로 선경직물 창업하다 닭표 안감, 도약의 발판이 되다 공장 건설과 서울연락사무소 개설 예우를 갖춘 인재 초빙 혼수감의 대명사, 봉황새 이불감 대 히트 나일론 직물 생산으로 합섬시대 열다 폴리에스터 직물에서 돌파구 찾다 국내 최초로 인견직물 수출 길을 열다 혁신하다 10. 최악의 경영난 속 최종현 선대회장 합류 공매불 매입으로 자금위기 극복 ~ 최종건 창업회장, 국내최초로 금탑산업훈장 수훈 패기와 지성의 결합, 잇따른 히트상품 개발 선경화섬 설립, 아세테이트 원사 생산에 나서다 폴리에스터 원사 생산의 병행 추진 국내 최초의 섬유기업집단으로 도약하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 사업다각화의 시동, 서해개발 설립과 워커힐 인수 나라에 필요한 인재를 키우는 꿈, 장학퀴즈 최종건 창업회장의 영면 패기와 지성의 만남, 최종건 창업회장과 최종현 선대회장 SK가 2013년 4월 8일 창업 60주년을 맞았다. 인생으로 치면 환갑을 맞은 것이다. 인생에서 환갑은 한 갑자를 보내고 새로운 갑자를 시작하는 전환점이기도 하다. 지금 SK는 100년 기업, 영구 존속 발전하는 기업이 되기 위한 중요한 변곡점에 서 있는 셈이다. 1953년 폐허가 된 조그만 직물공장에서 시작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SK의 60년 성장사는 우리나라 산업사와 맥을 같이한다. 6 25전쟁의 상흔을 딛고 일어나 세계적인 무역강국에 오른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SK도 패기와 열정으로 성공의 신화를 창조해냈다. 오늘의 SK는 최종건 창업회장과 뒤를 이은 최종현 선대회장의 패기와 지성의 절묘한 조화를 이뤘기에 가능했다. 세 살 터울의 형제 간이었던 두 회장은 서로 다른 개성으로 하모니를 이루며 완벽한 파트너로서 SK를 키워냈다. 최종건( 崔 鍾 建 ) 창업회장은 1926년 1월 30일 경기도 수원시 평동 7번지에서 부농이었던 부친 최학배( 崔 學 培 ) 공( 公 )과 모친 이동대( 李 同 大 ) 여사의 4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바로 아래 동생인 최종현 선대회장이 출생한 것은 1929년 11월 21일이었다. 유복한 집안의 장손으로서 기대와 사랑을 받으며 자란 덕분인지 최종건 창업회장은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성격이었으며, 리더십이 강해 또래들이 유난히 잘 따랐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형에 비해 조용하면서도 빈틈없는 학생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이치를 따지는 것을 좋아했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어릴 때 조부의 뜻에 따라 동네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고, 열 살이 되던 해에는 소학교에 입학했다. 1944년 경성직업학교 기계과를 졸업한 뒤 선경직물 SK그룹 60년사

11 수원공장에 입사했다. 가동할 정도로 공장은 정상화됐다. 선경직물에서 생산하는 인조견(人造絹; 최종건 창업회장은 선경직물에서 제직기술에 관한 전반적인 지식과 경험을 쌓았다. 인공으로 만든 명주실로 짠 비단) 안감은 주요 수요자였던 양복점에서 인기가 훗날 폐허나 다름없던 선경직물 공장의 직기를 수리, 창업의 기반으로 다질 수 있었던 높았다. 선경직물은 급증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작업반을 주야간으로 편성하고 것은 이때의 기술과 경험에 힘입은 바가 컸다. 공장시설을 24시간 가동시켰다. 그런 가운데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8 15 광복 후의 혼란 속에서 선경치안대를 조직해 공장 보호에 앞장섰던 수립되자 선경직물의 소유권이 미군정에서 대한민국 정부로 이관돼 국무총리 최종건 창업회장은 미군정이 선경직물을 적산(敵産; 일본인 재산)으로 지정해 직속기관인 관재청으로 넘어갔다. 관리인을 위촉하자 공장의 조속한 가동을 설득했다. 선경직물은 최종건 창업회장을 1949년에 들어서면서 최종건 창업회장은 신변에 많은 변화를 겪었다. 4월에 생산부장으로 임명하고 공장의 가동업무를 맡겼다. 노순애(盧順愛) 여사를 아내로 맞아 가정을 꾸렸으나 그해 여름 갑자기 선경직물 최종건 창업회장은 반 년 가까이 방치됐던 직기들을 손수 점검하고 수리해 생산부장직을 사퇴했다. 자신의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청년다운 패기의 발현이었다. 1946년 2월 선경직물의 조업을 재개했다. 1946년 9월에는 직기 100여 대를 전부 최종건 창업회장은 원사 도매업에 뛰어들어 뛰어난 사교성과 수완, 그리고 신용을 바탕으로 상당한 수익을 올렸다. 외상거래가 가능할 만큼 신용이 있었고, 원사의 비수기와 성수기를 꿰뚫어 보는, 다시 말해 시장의 흐름을 파악하는 안목이 있었던 것이다. SK의 모태인 선경직물 수원공장. 한국전쟁 중 불타버린 직기를 재조립해 직물생산을 시작한 선경직물 수원공장의 사무실로 이 건물은 그러던 중 최종건 창업회장은 사업상의 결정적인 기회라고 여겨 자금을 총동원해 지금도 옛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인견사 11고리를 확보하고 서울시 창신동에 있는 창고에 보관했다. 그러나 그날이 1950년 6월 24일, 6 25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바로 하루 전날이었다. 그렇게 잡은 도약의 기회는 하루 뒤에 6 25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말았다. 인민군 치하에서 반동분자 라는 명목으로 체포됐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최종건 창업회장은 창신동 창고에 보관했던 인견사를 판 자금으로 사업을 재개했다. 여러 사업에 손을 댔으나 자신이 모은 자금은 물론 부친이 보태준 사업자금까지 모두 잃는 시련을 겪었다. 부친의 주선으로 정미소에 취직했지만 최종건 창업회장의 마음은 선경직물에 쏠려 있었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의 심정으로 매일같이 폐허가 된 선경직물 공장을 둘러보며 되살릴 방법을 구상했다. 잿더미를 헤치고 폭격으로 녹아내린 직기의 부품을 하나하나 조사해 보기도 했다. 선경직물이 청춘을 바친 삶의 터전이나 마찬가지였던 최종건 창업회장은 마침내 관리인들도 외면해버린 공장을 재건하기로 SK그룹 60년사

12 결심했다. 1953년 3월, 관재청으로부터 매각이 결정된 선경직물의 불하를 추진하면서 동시에 공장재건의 첫 삽을 들었다. 선경직물은 피폭으로 1공장과 2공장이 완파됐고, 기숙사는 반파상태였다. 모여든 종업원들과 함께 인근의 광교천에서 자갈과 모래를 실어와 벽돌을 찍어 기초를 닦고, 철골과 파이프를 자르고 용접해 뼈대를 세워 기숙사 건물을 복구했다. 그런 다음 주위에 흩어져 있던 직기 부속품을 모아 직기를 재조립했다. 그렇게 재조립한 직기 4대를 공장 기숙사에 설치했다. 1953년 5월 초순의 일이었다. 4대의 직기를 돌리는 한편, 흩어져 있던 부품으로 새로 16대의 직기를 재조립해냈다. 1953년 7월 선경직물에는 20대의 직기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최종건 창업회장, 맨손으로 선경직물 창업하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지인의 도움을 받아 공장의 매입을 추진했다. 하지만 연이은 사업 실패로 최종건 창업회장에게는 여유자금이 있을 리 없었다. 부친으로서는 차남 최종현의 유학비용도 고민거리여서 더 이상 지원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1950년 3월 수원농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농화학과에 입학했던 최종현은 1953년 초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부친은 아들 4형제 중 공부를 가장 좋아하는 차남에게 기대를 많이 걸었고, 국내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유학을 가서 넓은 세상에서 공부해 보라고 권했다. 그래서 최종현 선대회장은 수원에 주둔하고 있던 미공군부대에서 통역일을 하며 영어회화를 익혔다. 최종현 선대회장이 영문 성( 性 )을 Chey 로 쓰게 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미군들에게 최 발음에 가장 가까운 표기법을 수없이 물어 얻은 결론이었다. 그런 상황이어서 부친으로서는 차남인 최종현의 유학자금을 마련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겨웠던 것이다. 부친의 마음은 차남의 미국유학을 위해 장남인 최종건의 사업 지원을 희생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이를 안 최종현 선대회장은 자신의 유학을 미루고 형님의 사업을 도와줄 것을 부친에게 간청했다. 유학은 1~2년 뒤에 떠나도 늦지 않지만 형님의 사업비는 당장 필요한 것이라며, 먼저 형의 사업비를 대주어 사업이 잘되면 그때 유학을 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라고 부친을 설득했던 것이다. 장남의 집념과 차남의 우애를 저버릴 수 없었던 부친은 결국 최종건 창업회장에게 사업자금을 지원했다. 1953년 4월 8일 최종건 창업회장은 선경직물 공장부지 3만 SK그룹 60년사

13 9,000여m 2 (1만 2,000평) 중 1만 3,200m 2 (4,000평)을 매입하고 차철순과 공동명의로 귀속재산 선경직물(주) 우선매수원 을 관재청에 제출했다. 선경직물에 뿌리를 두고 성장한 SK그룹은 선경직물의 공장부지를 매입한 4월 8일을 창립일로 정하고 기념해오고 있다. 그로부터 3개월 반 뒤인 7월 27일 최종건 창업회장은 관재청으로부터 선경직물의 귀속재산 매각통지서 를 받아들었다. 매각통지서에는 매각대금이 130만 환으로 기록돼 있었다. 130만 환은 화폐개혁 이전의 1억 3,000만 원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당시로서는 엄청난 거금이었다. 매각대금이 그토록 비싸게 결정된 것은 시가감정이 잘못된 데다가 체납된 임대료가 가산됐기 때문이었다. 최종건 창업회장으로서는 터무니없는 매각대금을 마련하는 것도 고민이었지만 더 큰 문제는 관재청의 매각 결정이 나면 동업한다는 조건으로 사업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던 지인이 약속을 파기한 것이었다. 할 수 없이 혼자서 타개책을 마련해야 했다. 법에는 매수자로 선정된 자는 3주일 이내에 관재청장이 정하는 바에 의해 매수계약을 체결하여야 한다 고 규정하고, 기간 내에 매수계약을 체결하지 아니한 자는 그 권리를 상실한다 고 못 박고 있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매각대금의 10분의 1인 13만 환만을 1차로 납부하면 매수계약이 이루어진다는 점이었다. 13만 환 역시 적은 돈이 아니었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고민 끝에 재조립이 불가능한 직기를 고철로 처분하고 기관실의 보일러와 발전기를 팔기로 결정했다. 그래도 13만 환에는 어림도 없었지만 최종건 창업회장에게는 복안이 있었다. 액면가보다 매우 싼값으로 거래되는 지가증권( 地 價 證 券 ; 해방 후 토지 개혁 때 정부에서 매수한 토지의 보상금으로 지주에게 발행한 유가증권)을 매입해 납부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설비를 처분하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매입하기 전까지는 법률상으로 정부재산인데다 서둘러서 처분할 경우 제값을 받기가 어려웠다. 최종건 창업회장이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인이 소유한 지가증권으로 귀속재산 매수계약금을 우선 납부하고 지가증권 대금은 최종건 창업회장이 1년 이내에 갚기로 합의했다. 지인으로서는 액면가의 절반밖에 받기 어려운 지가증권을 제값에 팔 수 있는 기회였고, 최종건 창업회장으로서는 선경직물의 설비를 계약 후에 처분할 수 있다는 점이 떳떳할 수 있어서 좋았다. 1953년 8월 14일, 최종건 창업회장은 선경직물 매각대금의 10분의 1인 13만 환을 지가증권으로 납부하고, 10년 분납조건으로 선경직물 주식을 지인과 공동명의로 매수한다는 내용의 귀속재산 매수계약을 체결했다. 선경직물 주식 매수계약을 체결했던 8월은 직물업의 비수기였다. 양복의 안감인 인조견을 생산했던 선경직물로서는 운영 면에서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최종건 창업회장은 고철을 처분하는 한편, 원사를 구입해 생산한 인조견을 비축했다. 이 무렵 직기의 잦은 고장으로 최종건 창업회장이 잠시도 공장을 비울 수 없어, 유학을 미루었던 최종현 선대회장이 제품의 출하와 판매를 맡아 형님을 도왔다. 9월에 들어서면서 선경직물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나갔다. 추석을 앞두고 그동안 비축해 둔 인조견 400필을 한꺼번에 출시했다. 당시 한 필당 가격은 900환에 달해서 일시에 36만 환이라는 거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확보한 거금으로 밀린 임금부터 우선 지급했다. 1953년 9월 30일, 최종건 창업회장은 귀속재산 매수계약금으로 납부한 지가증권 13만 환 전액을 갚고 지인으로부터 선경직물 공동매수인 권리 포기각서를 받았다. SK그룹 60년사

14 닭표 안감, 도약의 발판이 되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선경직물 1공장 복구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임시 공장 건물로 이용하고 있던 기숙사에는 더 이상 직기를 들여놓을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1공장 복구공사가 마무리돼 가던 1954년 7월, 직기 60대를 구입하고 직공을 모집해 9월 정상가동에 들어갔다. 이어 1955년 8월에는 2공장 복구를 완료하고 중고직기 50대를 증설했다. 선경직물의 형편이 조금씩 나아지자 최종건 창업회장은 동생의 유학비용을 먼저 떼놓았다. 그리하여 예정보다 1년 늦은 1954년 5월, 최종현 선대회장은 여의도 공항에서 미군 수송기에 몸을 실었다. 입학허가를 받아놓은 위스콘신 주립대 생화학과 3학년에 편입할 예정이었다. 1955년에 들어서면서 국내 직물업계는 극심한 침체국면을 맞았으나 선경직물만은 제품이 창고에 쌓일 틈도 없이 팔려나갔다. 선경직물의 인조견 루스터 (Rooster; 장닭)가 지누시( 地 主 ; 직물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물에 담갔다가 말리는 공정)를 하지 않고도 재단이 가능한 유일한 안감이었기 때문이었다. 좋은 품질의 안감을 생산할 수 있었던 것은 최종건 창업회장의 품질 제일주의 때문이었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선경직물을 국내 제일의 직물공장으로 키우려면 최고 품질의 제품을 생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종건 창업회장의 품질제일주의 는 1955년 10월 1일부터 12월 20일까지 창경원에서 개최된 해방10주년기념 산업박람회 에서 빛을 발했다. 닭표 인조견이 최우수상인 부통령상을 수상한 것이었다. 이는 일개 중소기업에 불과했던 선경직물이 국내 유수 섬유업체와 겨뤄 일궈낸 것으로 발전의 기폭제가 됐다. 그때까지 일부 수요자들 사이에서만 인기를 누려오던 닭표 안감은 부통령상 수상으로 전국적인 브랜드가 됐다. 동대문시장을 찾는 고객들은 안감을 찾으면서 으레 닭표 있어요? 라고 묻곤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동대문시장의 직물 도매상들이 현금을 들고 공장으로 찾아와 제품을 기다리곤 했다. 선경직물은 부통령상 수상의 특전으로 한국산업은행으로부터 기업육성자금 300만 환을 융자받을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그러나 이를 융자받는 과정은 간단치 않았지만 조기에 대부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일의 귀천을 가리지 않았던 최종건 창업회장의 솔선수범 덕분이었다. 공장을 방문한 김일환 상공부장관이 최종건 창업회장의 열정적인 자세에 감명받아 조속한 처리를 지시했던 것이다. 1956년 2월 한국산업은행으로부터 기업육성자금이 융자되자 최종건 창업회장은 선경직물의 매수대금 잔액인 7년 분담금 91만 환을 완납하고 관재청으로부터 소유권 이전을 마쳤다. 이때 선경직물을 상법상의 주식회사로 등기했다. 신규 설립 회사의 사명은 선경 ( 鮮 京 )이었다. 해방 전부터 부르던 이름이라 종업원들 사이에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최종건 창업회장은 鮮 京 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했다. 기존의 鮮 京 은 선만주단과 경도직물이 합쳐지면서 만들어진 이름이었다. 앞으로 태어나는 鮮 京 은 선만주단이나 경도직물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빛날 鮮, 클 京 의 鮮 京 입니다. 鮮 京 그대로 등기하십시오! 최종건 창업회장의 해석처럼 선경직물은 이후 한국 기업사에서 가장 크게 빛나는 기업의 하나로 성장했다. SK그룹의 모태인 선경직물은 그렇게 정식 설립됐다. 1956년 3월 24일의 일이었다. 선경직물의 닭표 안감이 양복 안감의 대명사로 여겨지자 1956년 가을부터 가짜 닭표 안감이 범람하기 시작했다. 동대문시장 직물 도매상들이 가짜 상표의 단속을 요구하자 최종건 창업회장은 고민 끝에 닭표 상표와 함께 鮮 京 織 物 이라고 음각한 마크를 제품에 부착시킬 것을 지시했다. 그래도 가짜 닭표는 줄어들지 않았는데, 이는 선경직물의 인기를 반증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닭표 안감은 가짜의 홍수 속에서도 국내 안감시장을 석권했다. SK그룹 60년사

15 3공장 건설과 서울연락사무소 개설 직기가 늘어나면서 1공장과 2공장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최종건 창업회장은 3공장 신축계획을 세웠다. 그곳에 문직기(Jacquard) 26대와 직기 100대를 설치하기로 했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1956년 3월 3공장 건설에 앞서 문직기 26대를 도입하기 위해 일본 회사와 계약을 맺었다. 문직기 도입은 가격보다 품질을 우위에 두기 시작한 소비자의 기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였고, 갈수록 치열해지는 직물업계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었다. 최종건 창업회장이 구상한 3공장의 규모는 1공장과 2공장을 합한 정도여서 신축공사는 1공장과 2공장의 복구공사와는 차원이 달랐다. 1공장과 2공장의 복구공사는 무너진 벽돌을 쌓아올리고 여기에 지붕을 씌우는 게 전부였지만 3공장의 신축공사는 터를 닦고 기초를 다지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다. 장기간의 공사 기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일이었지만 최종건 창업회장은 문직기를 도입할 예정인 10월 말까지 3공장을 완공시킨다는 목표를 세웠다. 직원들은 쉬는 날에도 나와 공사를 도와야 했다. 월급을 더 받는 것도 아니었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현장에서 직원들보다 더 많은 땀을 흘렸다. 이러한 솔선수범과 통솔력은 직원들에게 몇 푼의 급여보다 더한 믿음을 주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예정보다 2개월을 앞당겨 3공장을 준공했다. 1956년 8월 중순 일본에 발주했던 문직기가 예정보다 일찍 들어와 3공장은 시험가동에 들어갔고, 9월에는 본격적으로 제품에 들어갔다. 1956년 11월 선경직물은 서울시 종로구 연지동에 서울연락사무소를 개설했다. 서울연락사무소를 개설한 목적은 크게 세 가지였다. 원활한 원사 공급을 도모하고, 동대문시장의 직물유통 정보를 정확히 파악해 이를 생산 활동에 반영하며, 폭발하는 자금수요의 일부를 서울의 사채금융시장에서 조달하기 위해서였다. 국내 직물업계는 해마다 원사파동 을 겪고 있었다. 당시 국내에 공급되는 레이온(Rayon) 인견사는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다. 인견사의 수입에 필요한 달러는 ICA(International Cooperation Administration; 국제협력기구) 자금 또는 정부보유불로 조달했는데, 해마다 원사 수입불 배정액이 일정치 않아 원사 가격의 등락 폭이 클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원사의 안정적인 확보는 직물공장의 경영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였다. 선경직물이 서울연락사무소를 개설한 가장 큰 목적 역시 원사의 안정적인 확보에 있었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3공장 가동으로 선경직물의 생산량이 두 배로 늘어나자 원사구입처를 다변화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 주로 현금을 이용하던 종전의 거래 방법을 일부 신용거래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도 절감했다. 게다가 3공장에서 생산하는 본견( 本 絹 ; 다른 실을 섞지 않고 명주실로만 짠 비단) 뉴똥은 인조견 안감과 달리 동대문시장에서 판매실적이 여전히 저조했다. 평직( 平 織 ; 날실과 씨실을 서로 번갈아 가며 짠 직물)이나 능직( 綾 織 ; 날실 또는 씨실로 빗방향의 이랑무늬를 넣어 짠 직물) 제품만 생산해 온 선경직물로서는 문직( 紋 織 ; 무늬가 돋아나오게 짠 직물)에 대한 기술부족과 도안의 미숙으로 고전하고 있었다. 문직은 제직과정이 평직이나 능직보다 복잡하고 까다로웠다. 특히 문양의 경우 수시로 변하는 구매자의 기호와 유행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동대문시장의 포목상들과의 밀접한 정보교환이 절실했기에 서울연락사무소는 이 같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첨병과 같은 조직이었다. SK그룹 60년사

16 예우를 갖춘 인재 초빙 1957 최종건 창업회장은 견직물의 부진이 세련되지 못한 문양과 도안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능력 있는 도안사를 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동대문 시장에서 대단한 평판을 얻고 있던 조용광이라는 젊은 도안사를 만났다. 그는 문직기의 기계적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직물동향에 밝아 소비자의 기호를 담아내는 도안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었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파격적인 대우로 조용광에게 선경직물 도안사로 초빙하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조용광은 당장 선경직물로 옮길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그는 여러 직물회사로부터 1년치 주문을 받아놓은 상태였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최대한 예를 갖추며 조용광을 설득했다. 하지만 조용광이 계속 거절하자 1년 후까지 기다리겠다고 약속하며 일단 다른 도안사를 소개시켜 줄 것을 부탁했다. 말 그대로 삼고초려였다. 인재에 대한 관심은 선경의 초창기부터 기업문화로 자리잡고 있었다. 최종건 창업회장의 열의에 감복한 조용광은 홍익대 미대 출신인 자신의 동생 조용민을 소개했고, 1년 후 자신도 선경직물에 입사했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직물동향에 밝은 조용광에게 공장장직을 맡기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조용광의 영입은 곧 가시적인 성과를 가져왔다. 조용광 공장장은 과다한 재고를 줄이기 위해 60인치 대폭( 大 幅 ) 견직물을 생산할 것을 제안했다. 선경직물은 일본에서 들여온 72인치짜리 대폭 문직기로 30인치 소폭 견직물을 짜고 있었다. 시장이 먼저 대폭 견직물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폭 문직기를 보유하고도 소폭 견직물만 생산해 비효율적이었던 것이다. 60인치짜리 대폭 견직물을 생산하자는 아이디어는 견직물은 소폭이어야 한다는 종래의 고정관념을 깨뜨린 발상의 일대전환이었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조용광의 제의를 흔쾌히 수용해 1957년 여름 대폭 견직물 생산에 착수했다. 안감 성수기인 가을이 되면서 어려웠던 자금사정이 차츰 호전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3공장 신축으로 인한 부채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여름에 생산해놓았던 대폭 견직물의 선전을 기대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60인치 대폭 양단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은 10월 하순이 되면서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팔려나가던 대폭 양단에 대한 입소문이 서서히 퍼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11월에는 동대문시장 이외의 직물 도매상에서도 주문이 쇄도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12월에는 대폭 양단의 재고가 바닥을 드러냈다. SK그룹 60년사

17 혼수감의 대명사, 봉황새 이불감 대 히트 최종건 창업회장은 1958년 5월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봉황새를 수놓은 이불감인 봉황새 이불감 을 출시한 것이었다. 봉황새 이불감은 출시하자마자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이 팔렸다. 철야작업을 하며 시장의 수요를 맞추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봉황새 이불감은 출시 3개월 만에 웃돈이 붙어 거래됐다. 선경직물의 독점상품이었던 봉황새 이불감은 한동안 예비 신부가 꼭 준비해야 할 필수 혼수감이 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선경직물의 두 번째 효자 상품이었던 봉황새 이불감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도전정신이 만들어낸 히트작이었다. 1958년 1월 선경직물은 대폭 견직물의 출시 가격을 다소 인상했지만 인기는 시들지 않았다. 최종건 창업회장과 조용광 공장장은 대폭 견직물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한 작업에 착수, 한 폭짜리 이불감 개발에 들어갔다. 72인치까지 가능한 문직기의 장점을 살려 72인치 이불감을 생산한 뒤 그 양쪽에 10인치씩 색동 끝단을 달았다. 문제는 이불감에 들어갈 도안이었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고민 끝에 이불감에 봉황새를 그려 넣기로 했다. 조용광 공장장은 즉시 봉황 무늬 도안에 착수해 1958년 3월 중순 도안을 완성했다. 그렇게 봉황새를 새긴 이불감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것이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봉황새 이불감이 성공하자 또다시 설비확장을 시도했다. 일본에 문직기 50대와 염색 가공설비를 발주하고 4공장과 염색공장 신축을 서둘렀다. 자금은 한국산업은행에서 대부받은 ICA 산업자금 4만 6,000달러로 충당하기로 했다. 1958년 10월 이 자금으로 문직기 50대를 추가로 도입하고 염색가공설비를 설치했다. 완공을 앞두고 있던 4공장과 염색가공공장에 들어갈 설비였다. 1958년 11월 4공장과 염색가공공장 신축을 끝내고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감으로써 선경직물은 비로소 일관된 생산 공정을 완비했다. 4공장 가동에 따라 문직 생산량은 거의 3배로 증가했다. 선경직물은 닭표 안감의 인조견 분야뿐만 아니라 봉황새 이불감으로 본견 부문에서도 국내 직물업계의 선두로 올라섰다. 닭표 안감과 봉황새 이불감의 선전에 힘입어 양단과 뉴똥의 매출도 급신장했다. 직원 수만 해도 1,000여 명에 이르러 선경직물은 규모 면에서도 당당한 중견기업 반열에 올라서고 있었다. 그럼에도 최종건 창업회장의 생활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는 여전히 회사의 중고 GMC 트럭을 타고 다녔다. SK그룹 60년사

18 나일론 직물 생산으로 합섬시대 열다 년이 저물기 전 최종건 창업회장은 새로운 도전을 감행했다. 11월 새로운 직물로 각광받고 있던 나일론 직물 생산을 개시한 것이었다. 나일론 직물 생산에는 몇 가지 난제가 있었다. 원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공정 환율보다 훨씬 비싼 시중의 암 달러 를 사용할 수밖에 없어 막대한 출혈도 감수해야 했다. 제직상의 기술적인 문제도 나일론 생산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직물은 제직과정에서 실이 끊어지거나 실밥이 생기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날실에 풀을 먹여야 했다. 그런데 나일론 원사는 사이징(Sizing; 풀 먹이기) 작업이 쉽지 않았고, 제직 때 정전기가 발생해 불량이 발생했다. 문제 해결에 나선 선경직물 실무진들은 습기가 정전기를 방지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실무진들은 직기 바닥에 물을 뿌린 거적을 깔아놓고 이를 숯불로 데워 김을 피어오르게 하면서 직물을 짜는 데 성공했다. 이렇듯 원시적인 방법으로 짠 나일론 직물도 만들기가 무섭게 팔려나갔다. 이와 같은 시행착오와 도전을 거쳐 선경직물은 1958년 11월 외제 나일론 직물과 품질이 비슷한 나일론 직물 태피터(Taffeta; 실크나 인조 섬유의 필라멘트사로 짠 가느다란 가로 골이 있는 직물)의 생산에 성공했다. 1959년 3월 선경직물은 한국산업은행으로부터 산업자금을 대부받아 사이징 설비를 설치, 나일론 직물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었다. 1959년에 들어서자 중소 직물업체에서도 앞 다투어 나일론 직물을 생산하기 시작했지만 사이징 설비까지 도입한 선경직물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선경직물의 나일론 직물은 직물업계가 계절을 타기 시작하는 4월에 들어서도 판매 호조를 보였다. 오히려 여름에 매출이 오르는 현상을 나타냈다. 1959년 5월 선경직물은 제작을 의뢰했던 스다고마형 직기 50대를 인수하는 등 설비 증설을 서둘렀다. 호사다마처럼, 재일교포 북송 문제로 한 일 간 외교 분쟁이 일자 우리나라 정부는 1959년 6월 대일통상을 중단했다. 이 조치는 수입 위주의 국내경제에 큰 타격을 주었다. 특히 대일통상 중단 직전에 원사 수입처를 미국에서 일본으로 전환시켰던 직물업계가 받은 충격은 더욱 컸다. 이로 인해 나일론 직물의 대량생산을 계획하고 있었던 선경직물은 심각한 원사난에 봉착, 조업중단이라는 최악의 사태에 빠졌다. 직원들의 임금을 제대로 줄 수가 없었다. 석 달치 임금이 밀린 경우는 선경직물로서도 처음 겪는 시련이었다. 여기에다 1959년 9월 사라호 태풍이 전국을 강타하면서 모든 경제활동이 일시에 위축됐다. 직물업계 역시 불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직물의 최대수요기인 11월에 들어서도 봉황새 이불감조차 재고가 늘어나기만 했다. 태풍 이후에는 나일론 직물조차도 매출이 주춤해졌다. 회사 규모에 비해 그리 심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선경직물의 부채는 늘어갔다. SK그룹 60년사

19 폴리에스터 직물에서 돌파구 찾다 부채 증가라는 위기 속에서 최종건 창업회장은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했다. 폴리에스터 직물에 눈을 돌린 것이었다. 당시 선진국에서는 폴리에스터 섬유가 나일론 섬유보다 각광을 받고 있었다. 나일론 섬유 제직에 국내 업체들이 앞 다투어 뛰어든 상황이어서 나일론만 바라볼 수도 없었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마침내 용단을 내렸다. 1959년 12월 일본의 데이진과 도레이에서 폴리에스터 원사인 데도론(일본 데이진과 도레이가 공통으로 개발한 폴리에스터 직물의 상품명)을 도입하기로 한 것이었다. 선경직물은 폴리에스터 섬유 제직과정에서도 정전기 발생이 문제로 대두됐지만 나일론 직물의 경우를 경험삼아 쉽게 해결했다. 나일론 직물과는 달리 폴리에스터 직물은 120도의 고온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밀폐된 염색탱크를 개발하는 등 온갖 난관을 극복해야 했다. 그렇게 출시된 선경직물의 폴리에스터 직물은 시장에서 호평을 받았다. 선경직물은 데도론 직물의 독점생산으로 직물업계의 불황 속을 견뎌낼 수 있었다. 하지만 1960년에 들어서도 직물업계의 불황은 호전되지 않았다. ICA의 원사 구매자금 감축으로 원사 수급이 악화한 데다 상대적으로 품질이 우수한 밀수품의 범람으로 나일론과 데도론 등을 생산하는 합섬업체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대다수 기업들은 시설투자는커녕 현상유지도 힘겨운 상황이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유독 선경직물만 증설에 증설을 거듭했다. 자금부족에 시달리면서도 품질향상을 위한 시설 도입과 개선에는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최종건 창업회장의 다음 승부수는 곰보 나일론 이었다. 1960년 6월을 시판 디데이로 잡고 엠보싱 캘린더(Embossing Calender; 압형기)를 발주했다. 조용광 공장장이 도안한 돋을무늬가 마치 곰보 같다고 생각한 최종건 창업회장은 제품명을 곰보 나일론 이라고 명명했다. 나일론 엠보싱에 성공한다면 또다시 국내 직물시장을 석권할 수 있고, 또 무난히 불황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확신이었다. 그러나 엠보싱 캘린더가 완성되기도 전에 4 19혁명이 일어났다. 4 19혁명으로 인해 사회 전반의 민주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극심한 경제적 혼란이 야기됐다. 대부분의 기업이 자금난, 판매난, 노사난 등 이른바 3난 을 겪었다. 특히 노사난은 선경직물의 곰보 나일론 시판계획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엠보싱 캘린더 제작을 발주했던 대한기계공작소가 노사분규를 겪으면서 예정된 납품 일정을 맞추지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선경직물은 4 19혁명이 몰고 온 노사분규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았다. 창업 이래로 굳게 다져온 노사간의 가족적인 연대의식과 일체감 덕분이었다. 건강한 노사관계를 유지했던 선경직물은 4 19혁명 이후의 경제적 혼란에도 정상적으로 가동될 수 있었다. 그러나 경제침체로 인한 원사의 수입 부진 때문에 선경직물은 또다시 조업 중단 위기에 직면했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해마다 되풀이되는 원사난을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부심했다. 그 답은 간단했다. 원사를 직접 생산하는 것이었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1958년 한국청년회의소(JC) 회원 자격으로 미국과 일본의 산업시설을 견학한 적이 있었다. 이때 일본의 직물공장과 원사공장을 둘러보면서 직물 생산과 원사 생산의 질적인 차이를 절감했다. 원사 생산은 직물 생산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규모였고, 첨단 기술이 요구되는 산업이었다. 이때 최종건 창업회장은 원사 생산으로 도약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고, 머지 않아 결국 실현해냈다. 1960년 8월 엠보싱 캘린더가 납품돼 선경직물의 곰보 나일론 이 시중에 선을 보였다. 최종건 창업회장의 예상대로 곰보 나일론이 시판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선경직물은 활기를 되찾았다. 때마침 정부의 원사 구매자금이 풀려 일본으로부터 수입된 원사가 직물업계에 밀려왔다. 하지만 자금여력이 없는 영세공장이 대부분이었던 직물업계는 밀려드는 SK그룹 60년사

20 원사를 소화하지 못했다. 시중에 원사가 넘쳐났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원사를 사들였다. 일부 간부의 반대, 일시적인 임금의 체불 등을 감수하고, 때로는 사채를 얻어서라도 원사 비축에 총력을 기울였던 것은 원사난으로 인한 조업중단의 아픔을 맛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선경직물 국내최초로 인견직물 수출 길을 열다 1961년 4월 최종건 창업회장은 서울시 당주동으로 이주, 활동무대를 수원에서 서울로 옮겼다. 그러나 얼마 뒤 일어난 5 16으로 인해 선경직물은 또 다시 내에서도 조업중단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고, 직원들도 일시적인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다. 정부의 임금 체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외환부족으로 인한 원사 수입의 감축, 원사 비축에 나선 선경직물에 뜻밖의 운이 따랐다. 환율의 대폭 인상으로 원자재 시중의 자금경색 등으로 직물업체는 가격이 두 배 이상 폭등하면서 큰 이익을 볼 수 있었고 덕분에 수년 간 누적돼온 심각한 경영난으로 적자가 커져갔다. 부채를 일소할 수 있었다. 직물 성수기인 10월에 들어서도 정상조업을 하지 못했다 이후 정부가 자립경제 기반을 최종건 창업회장은 1961년 10월 구축하기 위해 강력한 수출진흥책 선경직물을 방문한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 의장과 운명적인 만남을 가졌다. 추진을 선언하면서 새로운 돌파구가 열렸다. 수출장려보조금 교부에 관한 이 만남으로 선경직물은 수출 드라이브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됐다. 임시조치법을 제정 공포하고, 수출장려금 교부 규칙을 공포했다. 또 무역법을 개정하고 수출조합법을 제정하는 등 수출 드라이브에 박차를 가했다. 불황 탈출의 돌파구를 수출 드라이브 에서 찾으려던 최종건 창업회장은 1961년 10월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 의장과 운명적으로 만났다. 선경직물이 양심적인 기업인이 이끄는 모범기업 이라는 보고를 받은 박정희 의장이 선경직물을 전격 방문한 것이었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기름때가 낀 작업복 차림으로 박정희 의장을 맞았다. 그의 성실한 모습은 박정희 의장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이 자리에서 박정희 의장으로부터 수출을 독려받은 최종건 창업회장은 수출전선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1961년 11월 서울연락사무소를 서울시 당주동 천일빌딩 5층으로 이전하고 수출업무를 취급하기 위해 선경직물 서울사무소 로 확대 개편했다. 이어 공장의 시설 개선을 통한 품질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 시설자금 융자를 신청했다. 하지만 수출은 쉽지 않았다. 선경직물이 유수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긴 했지만 무역상들은 대기업 계열의 직물회사들도 못하는데 선경직물 같은 중소기업이 무슨 SK그룹 60년사

21 수출이냐? 는 식이었다. 일부 무역상은 선경직물의 안감에 Made in Japan 이라고 표기할 것을 권유할 정도였으나 최종건 창업회장은 이런 제의를 거절했다. 선경직물은 낙담하지 않고 해외 무역회사를 상대로 수출 상담을 직접 추진했다. 일본 이토추( 伊 藤 忠 )상사 한국 지사의 도움을 빌려 홍콩 무역회사 주소록을 확보해 닭표 안감의 견본을 발송했다. 선경직물이 보낸 견본은 전혀 뜻하지 않은 곳에서 반응을 불러왔다. 홍콩에 나가 있던 국내 무역상이 선경직물의 견본을 들고 최종건 창업회장을 찾아와 견본대로 품질이 보장되고 가격만 적정하면 수입을 추진하겠다는 홍콩 거래처의 의사를 전달했다. 다음 날 최종건 창업회장은 수원공장에서 간부회의를 소집했다. 이 자리에서 최종건 창업회장은 세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첫째, 최저 수출원가를 계산해낸다. 둘째, 이익은 없더라도 크게 밑지지만 않는다면 장래를 내다보고 수출상담을 성사시킨다. 셋째, 모든 조건이 합의돼 수출이 실현되는 경우에는 재고품을 수출하지 않고 보다 나은 제품을 새로 생산해 수 출함으로써 선경직물의 해외 신용도를 높인다. 선경직물 직원들이 산출해낸 인견능직의 생산원가와 홍콩무역상이 보내온 최종 오퍼 가격을 비교해보니 351만 환의 손실이 예상됐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신규수출상품에 지급되는 정부의 장려보조금을 고려해 70만 환의 손실을 감수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드디어 1962년 2월 홍콩에서 신용장이 도착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는 1962년 4월 8일 비로소 인견직물 수출국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물론 선경직물이 이뤄낸 결과였다. 선경직물에 의해 우리나라 직물사상 레이온 태피터가 최초로 수출된 후 닭표 안감 은 홍콩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닭표 안감의 인기에 힘입어 선경직물은 곧 홍콩의 바이어들과 직거래를 틀 수 있었다. 1962년 한 해에만 선경직물은 4만 6,000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렸다. 한편 섬유수출에서 자신을 얻은 최종건 창업회장은 1962년 8월 11일 무역업을 목적으로 하는 선경산업을 설립했다. 최악의 경영난 속 최종현 선대회장 합류 자본금을 늘리고 첫 수출을 이뤄냈지만 1962년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선경직물은 창업 이래 가장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했다. 1956년 이전에 설치한 구형 직기 100여 대를 새 직기로 교체하느라 무리를 했고, 직물업계의 유례없는 과열경쟁까지 겹쳐 경영수지가 급격히 악화됐던 것이다. 손해를 감수한 첫 수출로 인한 손실이 적지 않았던 데다 여름 불황이 특히 심각했다. 결국 사채를 빌려야 했고, 동대문 포목상에서 받은 선수금이나 수출대금으로 직원들의 월급을 줄 정도였다. 하반기는 자금사정이 매우 심각해 월급 대신 옷감을 주기도 했는데, 심지어 그것도 주지 못할 때도 있었다. 게다가 1962년 6월 10일 전격 단행된 제2차 화폐개혁은 극도의 경기 위축을 초래했다. 이에 따라 선경직물은 직원들의 임금이 밀리고, 세금 체납으로 일부 직기에 차압 딱지가 붙는 등 여러모로 곤경에 처했다. 경리부장의 주요 일과는 동대문 사채시장에 수표장을 들고 나가 연수표(실제 발행일보다 뒷날을 발행일로 정하는 수표)를 할인, 미리 발행한 연수표가 은행에 돌아오는 것을 결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선경직물이 겪었던 경영난은 질적인 도약을 이루기 위한 성장통이었다. 선경직물은 6 25 한국전쟁의 잿더미로부터 출발해 불과 10여 년 만에 연 매출액 3억 5,000여만 원에 달하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최종건 창업회장의 불굴의 의지가 경이로운 발전을 이뤄낸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고 그때까지 생산, 판매, 인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최종건 창업회장이 혼자서 최종 결정해야만 했다. 하지만 급성장과 함께 운영자금의 규모가 커지면서 최종건 창업회장의 자금조달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범위가 한계에 다다랐다. 최종건 창업회장도 선경직물의 SK그룹 60년사

22 규모가 커지고 모든 업무를 시카고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학위 과정을 마친 최종현 선대회장은 미국에 계속 혼자서 처리하는 데 한계를 머물면서 경제 전문 칼럼니스트가 될 것을 진지하게 고려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느끼기 시작했다. 선경직물이 첫아들이 태어났고, 형님으로부터의 송금이 종종 끊기면서 생활이 어려워졌다. 고민에 질적인 변화를 이루어야 찬 나날을 보내던 중 부친의 귀국 종용에 이어 1962년 10월 3일 부친의 별세 소식을 하는 시점에 와 있다는 것을 전하는 급전을 받아들고는 더 이상 귀국을 미룰 수가 없었다. 고혈압으로 쓰러진 의미했다. 부친은 1962년 10월 2일 서울 성모병원에서 운명했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내심 최종현 선대회장은 유학생활을 정리하고 1962년 11월 4일 귀국했지만 부친의 아우인 최종현 선대회장의 장례식이 한 달 전에 끝난 뒤였다. 귀국을 바라고 있었다. 귀국 다음날 최종현 선대회장은 곧바로 선경직물 부사장으로 취임했다. 선경직물이 1958년 한국청년회의소 회원 직면한 위기는 최종현 선대회장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종업원들의 월급이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4개월째 체불된 상태였다. 선경직물의 부채는 3,200만 원에 달하고 있었다. 3,000만 원 때 최종현 선대회장을 만나 정도에 불과하던 선경직물의 월간 매출액과 대비해 볼 때 너무나 과중했다. 선경직물과 운명을 함께할 최종현 선대회장은 회사 자금을 관장하며 선경직물의 자금사정부터 파악했다.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경리부장으로부터 회사운영 전반에 관한 개략적인 보고를 받으며 선경직물이 처한 선경산업을 설립하면서 상황을 분석, 재평가하는 한편 타개책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최종현 선대회장을 주주 겸 최종현 선대회장은 기업경영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기획(Planning)이라고 생각했다. 이사로 선임한 것도 실은 국가에 경제계획이 있듯이 기업 역시 사업계획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아우의 귀국을 유도하기 위한 배려였다. 미국으로 건너간 최종현 최종현 선대회장은 계획성 없는 과잉투자가 선경직물의 위기를 초래했다고 판단했다 미국 유학을 마친 최종현 선대회장은 임금이 체불되는 상황에서도 시설투자가 계속되고 있는 것을 납득할 수 없었다. 선경직물 부사장으로 취임하며, 본격적으로 경영일선에 뛰어들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의 등장은 최종건 창업회장의 패기(覇氣)와 최종현 선대회장의 선대회장은 위스콘신 주립대 지성(知性)이 비로소 만나게 됐음을 의미했다. 최종건 창업회장의 저돌적인 추진력과 생화학과를 졸업하고 1956년 최종현 선대회장의 치밀한 기획력의 결합은 선경직물에 있어 질적인 도약의 기반이 시카고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해 경제학을 전공했다. 이때 시카고에서 평생의 반려자인 됐다. 기존의 선경직물이 최종건 창업회장의 추진력과 패기에 의해 비약적인 성장을 박계희 여사를 만났다. 박계희 여사는 경기여고를 졸업한 뒤 미국 미시간의 칼라미주 거둘 수 있었다면, 이후의 선경직물은 최종현 선대회장의 치밀한 기획력과 지성이 대학을 졸업하고 시카고에서 응용미술을 공부하고 있었다. 친지의 소개로 만난 두 뒷받침돼 질적인 도약과 변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었다. 사람은 1959년 시카고의 한 교회에서 백년가약을 맺었다. SK그룹 60년사

23 공매불 매입으로 자금위기 극복 최종현 선대회장이 선경직물의 경영합리화를 위해 힘을 쏟긴 했지만 경영합리화만으로는 선경직물의 위기를 타개할 수는 없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이 주목한 것은 인견사 수입공매불(정부나 공공기관이 매각한 달러)이었다. 직물업계의 과잉생산에도 불구하고 고급 합섬직물의 수요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었다. 일부 원사 수입업자들은 정부가 공매하는 원사 도입용 달러를 독점하다시피 했다. 이들의 농간에 의해 국내 원사 가격이 수입원가에 비해 터무니없이 상승했고, 직물업계는 해마다 원사파동을 겪고 있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정부의 인견사 공매불을 매입하기로 하고 면밀한 사전조사를 실시했다. 공매불을 이용하면 국내 수입업자를 거치지 않고 원사를 직수입할 수 있었다. 한편 최종건 창업회장은 선경직물의 제품을 담보로 매입자금을 마련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1962년 12월 최종현 선대회장은 미8군사령부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해 미국의 대외원조기관인 USOM(United States Operations Mission)의 킬렌(Killen) 처장으로부터 귀중한 정보를 얻었다. 킬렌은 미국의 잉여농산물인 면화를 팔아야 할 입장에 있던 USOM의 처장으로, 1963년분 인견사 수입불을 배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방침을 최종현 선대회장에게 귀띔한 것이었다. 킬렌의 말대로 1963년 인견사 수입불이 배정되지 않는다면 위기극복을 위한 선경직물의 비상수단은 완전히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인견사공매불 매입계획 외에 내수생산을 수출생산 위주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공매불 매입이 무산된다면 수출생산 위주로의 전환은커녕 선경직물의 존립 자체가 흔들릴 형국이었다. USOM이 1963년분 인견사 수입불로 이미 확정한 427만 4,000달러는 1962년 인견사 수입불 배정액의 51% 수준으로 인견사 실수요량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원사파동이 아니라 원사 품절현상마저 예상되는 액수였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조업중단 사태를 막기 위해 국내 원사 수입업자들이 보유하고 있던 인견사 공매불을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공매불은 용도가 제한돼 있었다. 따라서 수입품목의 인기도에 따라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되는 것이 당시의 관행이었다.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어 프리미엄이 낮았던 인견사 공매불은 수입업자들이 담합해 적당히 배분하는 형식을 취해 공정 환율에 가까웠다. 따라서 국내 수입업자들이 확보하고 있던 인견사 수입불을 매입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한 달 사이에 국내 수입업자가 보유한 인견사 수입공매불 10만 달러를 매입할 수 있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동시에 정부가 추진하는 원사 도입용 공매불 입찰에 참여, 상반기 전체 공매불의 3분의 1 이상을 낙찰받음으로써 업계를 놀라게 했다. 공매불의 낙찰로 선경의 자금사정이 일시에 호전된 것은 아니었지만 사정에 따라 환차익만 보고 공매불을 매각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선경으로서는 든든한 비상수단을 갖춘 것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일부 간부들은 공매불을 원사 수입업자에게 팔아 자금을 조달하자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신용장 개설 후 원사가 도입되자, 이번에는 원사를 그대로 매각해 운영자금을 마련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도입된 원사를 다시 팔아도 원가의 두 배는 남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종현 선대회장은 자신의 계획대로 직수입한 원사를 직물로 생산함으로써 이윤을 세 배로 늘렸다. 선경직물의 자금사정이 호전되자 최종현 선대회장은 직원들의 체불임금을 최우선으로 지급하도록 했다. 최종현 선대회장을 바라보는 선경직물 직원들의 일시적인 불안은 점차 믿음으로 바뀌어 갔고 최종건, 최종현 두 형제의 결합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SK그룹 60년사

24 최종건 창업회장, 국내최초로 금탑산업훈장 수훈 섬유수출을 위해 설립한 선경산업은 동남아 각국의 무역상들을 상대로 직물 견본을 발송하면서 새로운 거래처 개척에 힘을 쏟았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언어장벽으로 인해 해외 출장은 엄두도 내지 못했고, 견본을 보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1962년 10월 미국의 시애틀에서 개최된 국제 산업박람회에 인견과 본견 등 10여 종의 직물을 출품해 현지 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고, 같은 시기 선경직물이 후원한 한국의 유명 디자이너 노라노의 뉴욕 패션쇼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를 수출로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1963년 1월 5일 정부는 외화수입을 증진시키고 비생산적인 수입을 억제하기 위해 수출실적 링크제 를 발표했다. 수출실적 링크제는 수출하는 만큼 수입을 허가하는 정책으로 수출보다 수입이 많아지는 것을 막기 위한 수출진흥책의 일환이었다. 수출시장 개척의 선봉에 나선 최종현 선대회장은 수출 관련법규를 검토한 다음 홍콩지역의 인견직물 수출 독점권을 정부에 신청했고, 1963년 2월 13일자로 승인 받았다. 그런 다음 홍콩 직물시장의 실정을 파악하기 위해 1963년 3월 홍콩으로 떠났다. 홍콩은 자유중개무역 도시이자 동북아의 무역중심지로 예전부터 국내 무역업자의 발길이 잦은 곳이었지만 그때까지 우리나라는 오징어나 농업 부산물인 목화씨( 棉 實 ) 정도를 수출하는 게 고작이었다. 홍콩에 도착한 최종현 선대회장은 직물 수출 전망이 의외로 밝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당시 홍콩의 직물 수입업자들은 일본 직물업계의 가격횡포에 대항하기 위해 수입처 다변화를 모색하던 중이었다. 1962년 첫 수출로 인해 선경직물 제품에 대한 현지 업자들의 평판도 좋았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한 달 정도 홍콩에 머물면서 현지 수입업자들과 끈질긴 상담을 이어갔고, 마침내 1962년 수출량의 30배인 인견능직 300만 마(직물의 길이 단위, 약 91cm)를 수주하는 데 성공했다. 수출단가 또한 1962년에 비해 높은 가격이었다. 수출계약 총액은 42만 6,000달러로 1962년 실적의 37배가 넘었으며 선경직물로서는 밑지지 않는 최초의 수출계약 이었다. 당시 수출 달러의 프리미엄이 달러당 70~80원까지 오르내리고 있었다. 따라서 42만 6,000달러의 수출계약을 다른 직물업체에 양도하기만 해도 3,000만 원의 프리미엄을 챙길 수가 있었다 최종건 창업회장 금탑산업훈장 수훈. 최종건 창업회장은 국내 직물업계 발전에 기여한 공로와 최초의 직물 수출이라는 업적으로 제18회 광복절 기념식 에서 정부가 수여하는 공업 부문 금탑산업훈장을 국내 최초로 수훈했다. SK그룹 60년사

25 하지만 최종현 선대회장은 정도( 正 道 )를 걸었다. 인견능직 300만 마 전부를 선경직물이 생산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인견사를 확보하기 위해 수출대금 중 15만 달러를 떼어놓은 다음, 나머지 27만 6,000달러를 구상무역(두 나라 사이에 협정을 맺어 일정기간 서로 수출을 균등하게 해 결제자금이 필요 없게 하는 무역, 바터제) 달러로 전용하기로 했다. 수출링크제(수입과 수출을 상호연결시킴으로써 수출입을 장려하거나 억제하는 제도)와 동시에 구상무역제가 실시됨에 따라 수출 달러에 대한 프리미엄이 높아졌고, 특히 구상무역 달러의 경우는 프리미엄이 더욱 컸기 때문에 달러를 수출용으로 보유하기보다는 구상무역용으로 전용하는 것이 이득이 컸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구상무역에 의한 수출입허가방침에 따라 선경산업을 통해 엄청난 수익이 보장되던 나일론 원사에 대한 구상무역 허가를 신청했다. 미국에 견직물 18만 2,000마를 수출한 실적이 있던 조선견직(주)을 제치고 수입허가를 획득해 나일론 원사수입불 9만 달러를 배정받았다. 인견사 수입공매불 10만 달러와 나일론 원사수입불 9만 달러로 선경직물은 일거에 8,000만 원을 벌어들였다. 선경직물은 밀린 임금과 부채를 정리하고 서울 소공동 복창빌딩에 선경산업 서울사무소를 개설했다. 최악의 경영난을 극복하면서 선경에 경사가 이어졌다. 1963년 6월 선경직물은 이른바 5 16혁명 1주년 기념 산업박람회 직물 부문에서 상공부장관상을 수상했고, 1963년 8월 15일 최종건 창업회장은 제18회 광복절 기념식 에서 정부가 수여하는 공업 부문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금탑산업훈장 수훈은 국내 직물업계 발전에 기여한 공로와 최초의 직물 수출을 이뤄낸 업적을 높이 평가받은 결과였다. 대한민국 출범 이후 최초의 금탑산업훈장 수훈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패기와 지성의 결합, 잇따른 히트상품 개발 1964 선경직물의 닭표 안감과 봉황새 이불감, 그리고 곰보 나일론은 1950년대를 휩쓴 히트상품이었지만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경쟁력을 잃어갔다. 새로운 히트 상품 개발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신제품 개발에 골몰하던 최종현 선대회장은 1964년 초 일본 출장에서 폴리에스터 크레퐁 원단이 여성용 블라우스나 원피스에 쓰이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춘추복에 폭넓게 쓰일 수 있는 크레퐁(구불구불한 주름이 있는 직물)은 여름 비수기에 고전하던 선경직물로서는 개발 욕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폴리에스터 크레퐁은 쉽게 짤 수 있는 직물이 아니었다. 폴리에스터 원사 자체가 보통 실이 아닌 연사( 撚 絲 ; 꼬인 실)였고, 직물의 조직이 특수해 서너 개의 직기로 제직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선경직물은 일본 기술자를 초빙해 불과 한 달 만에 크레퐁 시제품을 생산해냈다. 시제품이었지만 품질도 일본 제품에 비해 손색이 없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국내 시판에 앞서 호주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일대에 크레퐁 오퍼를 띄웠다. 첫 반응은 호주에서 왔다. 크레퐁 10만 마(수출금액 3만 6,000달러)를 수주한 것이었다. 1964년 4월 호주에서 수주한 크레퐁 10만 마를 선적하고, 국내시장의 반응을 측정하기 위해 남은 크레퐁 일부를 명동의 유명 양장점에 출시했다. 명동은 선경이 주거래 대상으로 삼았던 동대문시장에 비해 시장규모는 작았지만 유행에는 민감한 곳이었다. 크레퐁은 나일론이나 데도론보다 고급스러운 직물에 속했기 때문에 SK그룹 60년사

26 소비자들의 반응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동대문시장보다는 명동이 적합하다는 것이 최종현 선대회장의 판단이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의 판단은 적중했다. 제품을 출시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명동 양장점의 주인이 수원공장으로 달려와 남아 있던 크레퐁을 모두 실어갔다. 이 바람에 최종건 창업회장은 동대문시장 상인들에게 한바탕 즐거운 곤욕을 치러야 했다. 동대문 상인들은 주거래처인 자신들을 제쳐두고 명동에 먼저 제품을 출시한 선경에 섭섭함을 표출했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국내 사정을 잘 모르는 최종현 부사장의 실수 라며 동대문 상인들을 달래면서도 내심 생산자보다 상인이 우위에 있던 직물업계의 구도를 바꿨다는 데 자긍심을 느꼈다. 크레퐁은 수출과 내수 시장에서 폭발적으로 팔려나갔다. 생산이 미처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였다. 최종현 선대회장 합류 이후 선경은 최종건 창업회장의 추진력과 최종현 선대회장의 기획력이 조화를 이뤄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형제를 선경의 용장( 勇 將 )과 지장( 智 將 ) 혹은 선경의 쌍두마차 라고 했다. 크레퐁의 개발과 판매에 관한 사례는 그 한 예에 불과했다. 1964년 10월에는 또 하나의 히트상품 앙고라 를 개발했다. 폴리에스터 연신사( 延 伸 絲 )로 제직한 원단이었다. 선경직물은 큰 어려움 없이 앙고라 시제품을 개발, 대량생산에 들어갔다. 앙고라 직물은 국내시장을 석권하며 선경직물의 히트상품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더구나 1964년 12월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서독을 공식 방문하면서 서독 국가원수의 영부인에게 줄 선물로 선경직물의 옷감을 가져간 것이 알려지면서 선경직물에 대한 신뢰도가 한층 더 높아졌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1964년 4월 27일 한국직물공업협동조합연합회 이사장에 선출됐다. 직물연합회는 방직협회와 더불어 막강한 조직과 권위를 자랑하던 단체였다. 특히 직물연합회는 정부가 배정한 원사도입불을 업계에 배분하는 일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섬유업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최종건 창업회장에게 실로 막중한 임무가 맡겨진 셈이었다. 최종건 신임회장은 정부로부터 직물연합회를 수출검사법에 의한 수출검사기관으로 지정받게 하는 성과를 이끌어냈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1965년 3월 수원상공회의소 회장에 선출됐고, 7월에는 한국직물수출조합 부이사장에도 선임되는 등 공인으로서의 활동영역을 넓혀나갔다. 선경에게 1964년은 최고의 호황을 누린 해였지만 국내 직물업계는 극심한 불황에 허덕이고 있었다. 하지만 최종현 선대회장에 의해 내수에서 수출 위주로 전환한 선경직물은 직물업계의 불황을 넘어설 수 있었다. 선경직물은 인견능직과 나일론 직물 수출로 1964년 한 해 동안 80여만 달러의 실적을 올렸다. 1965년에는 수출실적이 132만 달러로 껑충 뛰었다. 1965년 선경직물의 하이라이트는 깔깔이 의 개발이었다. 통풍이 잘돼 여름철 모시 대용으로 적격이었지만 선경직물이 제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치마의 원단인 조제트(Geogette)라는 직물은 폴리에스터 가연사( 假 撚 絲 )로 제직된, 특별한 기술이 요구되는 제품이었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크레퐁의 경우처럼 이토추에 기술지원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하고 말았다. 이토추로서는 크레퐁의 전철을 밟으려 하지 않았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일본으로 건너가 가연사를 고압스팀에 찌면 연지( 撚 止 ; twist setting; 실에 건 꼬임을 고정시키는 것)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냈지만 스팀의 압력과 온도 가열시간 가연 횟수 등에 관해서는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수 개월 간의 실험 끝에 1965년 11월 조제트 제직용 가연사를 생산해냈다. 해를 넘겨 조제트를 시장에 출시하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선경직물의 조제트는 닭표 안감, 봉황새 이불감, 곰보 나일론, 크레퐁에 이은 선경 히트직물 의 완결판이었다. 1965년 12월, 선경에 대졸 신입사원 2명이 정식으로 입사했다. 대졸 신입사원의 특채는 선경직물 창업 이래 최초의 일이었다. 이는 미래를 향한 원대한 포석이기도 했다. 당시 최종현 선대회장은 폴리에스터 원사공장 건설을 구상하고 있었고, 이를 담당할 유능한 인재가 필요했다. 두 주인공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ROTC 경리장교로 군복무를 마친 손길승과 이순석이었다. 두 사람은 중소기업에 지나지 않았던 선경직물에 입사, 훗날 선경의 성장과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SK그룹 60년사

27 선경화섬 설립, 아세테이트 원사 생산에 나서다 년대 초반 선경직물은 국내외에서 눈부신 성과를 올리고 있었으나, 당시 최종현 부사장은 직물공장의 성장 한계를 느끼고 원사공장에서 봉제공장에 이르는 수직적 다각 경영을 구상했다. 선경의 궁극적인 목표는 폴리에스터 원사공장 건설이었다. 그러나 직물회사가 공장 건설에 드는 경비를 마련하고 일본 데이진이 독점하고 있던 폴리에스터 원사 생산 기술까지 이전받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디딤돌로 선택한 것이 아세테이트 원사공장 건설이었다. 아세테이트 원사는 국제적으로 사양산업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정부의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목록에 들어 있었다. 1966년 1월 30일 최종건 창업회장과 최종현 선대회장은 임원회의를 소집했다. 이날 최종현 선대회장은 선경 5개년 사업계획 을 발표했다. 아세테이트 원사공장 건설을 시작으로 폴리에스터 원사공장을 건설하고, 수원공장 규모의 제2 직물공장을 증설한 다음 봉제공장을 건설해 섬유산업 종합기업의 기반을 구축하겠다는 것이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의 발표에 임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사업계획이 실현 불가능하고 거창하기만 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당장 그 같은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인력과 재원 문제가 제기됐다. 하지만 아세테이트 사업을 디딤돌로 해 폴리에스터 사업에 진출한다는 최종현 선대회장의 계획은 차근차근 추진됐다. 선경직물이 1965년 8월 14일 신청한 아세테이트 공장 건설 차관 지불보증 승인신청서에 대한 동의안 이 1966년 4월 9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에 앞서 최종건 창업회장은 본격적으로 차관도입에 나섰다. 차관도입을 위해서는 국회의 동의뿐만 아니라 차관에 대한 정부의 지불보증 승인 절차가 남아 있었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아세테이트 공장 건설도 서둘렀다. 공장부지는 수원시 정자동 600번지 일대의 전답으로 결정했다. 울산 공업단지가 입지조건이 낫고 땅값도 훨씬 저렴했지만 자신이 뿌리를 박고 살아온 고향의 발전을 위해 수원을 선택했다. 그의 진솔한 애향심을 이해한 정자동 주민들의 호응에 힘입어 어렵지 않게 공장 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1966년 6월 15일 최종건 창업회장은 아세테이트 공장 건설을 담당할 선경화섬을 설립했다. 선경화섬 설립을 계기로 최종현 선대회장은 우수 인재를 영입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영입 인사를 주축으로 아세테이트 공장 건설을 위한 건설팀을 구성하고 직접 팀장을 맡았다. 1966년 9월 6일 아세테이트 공장 건설 차관에 대한 정부의 지불보증이 정식으로 승인되자 최종건 창업회장은 아세테이트 공장 건설팀을 이끌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대일 상업차관은 한일 양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만 했다. 한국 정부가 통보한 차관 우선순위가 일본 정부의 참고자료에 불과할 뿐, 차관공여의 승인 여부는 전적으로 일본 정부의 재량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최종건 창업회장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 정부의 차관승인을 받아내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일본 정부의 반응은 너무나 냉담했다. 일본 내에서 선경직물의 지명도가 미약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다음해인 1967년 9월에야 차관도입이 어렵사리 성사됐다. 1967년 4월 수원시 정자동 600번지 일대의 공장부지 땅고르기 작업이 시작됐고, 1967년 6월 24일에는 선경화섬 공장의 기공식이 열렸다. SK그룹 60년사

28 폴리에스터 원사 생산의 병행 추진 아세테이트 공장 건설 차관 문제가 답보상태를 보이고 있던 1967년 6월 최종현 선대회장은 건설팀에 폴리에스터 공장 건설을 준비하라는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 아세테이트 공장 건설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지만 여건이 호전되고 있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이 데이진으로부터 폴리에스터 제조기술 이전을 추진하던 1964년 당시에는 폴리에스터 섬유가 데이진의 독점물이었지만 그후 도요보( 東 洋 紡 ), 니치레이, 아사히가세이( 旭 化 成 ) 등이 자체기술로 폴리에스터 원사를 개발해 데이진과 경쟁하고 있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이 1966년 12월부터 데이진 측에 폴리에스터 원사 제조기술 이전을 타진했지만, 데이진은 수익성이 좋은 폴리에스터 원사 제조기술을 한국 기업에 팔고 싶은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이 데이진과의 교섭에서 고전하고 있자 이토추는 도요보의 기술이전을 주선하겠다고 제의했다. 하지만 최종현 선대회장의 의지는 단호했다. 일류기술이 아니라면 기업의 장래도 없다며 제의를 거절했다. 기업의 장래를 생각하고 기술의 수준을 분별해서 선택하려는 최종현 선대회장의 진지한 자세가 데이진의 마음을 움직였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데이진과의 기술도입 협상을 위해 일본을 방문했다. 데이진은 이미 흥한화섬과 전남방직으로부터 폴리에스터 제조기술 이전 제의를 받고 있었다. 이들 회사의 사주( 社 主 )는 최종현 선대회장보다 일본에서 지명도가 높았지만 데이진은 선경을 사업 파트너로 이미 내정한 상태였다. 합작에 관심을 두고 있던 데이진은 기업인으로서 안목을 갖춘 최종현 선대회장이 이끄는 선경과의 합작이 보다 적절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일본에서 귀국하자마자 폴리에스터 원사공장 건설 준비를 건설팀에게 지시했다. 아세테이트와 폴리에스터 사업의 병행추진을 반대하던 최종건 창업회장도 최종현 선대회장과 젊은 엘리트 건설팀원들의 설득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운 자금사정을 생각하면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폴리에스터 사업은 의외로 쉽게 풀렸다. 1967년 7월 정부로부터 폴리에스터 원사공장 건설 내인가가 떨어졌다. 몇몇 회사가 먼저 신청한 건이 미결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선경에 대한 조기승인은 업계에서 뜻밖의 일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최종건 창업회장의 강력한 추진력이 이뤄낸 결과였다. 한편 1967년 9월 아세테이트 공장 건설 차관 550만 달러가 일본 정부에 의해 승인됐다. 선경이 병행추진하고 있던 아세테이트와 폴리에스터 사업의 한 축인 아세테이트 차관 문제가 해결된 것이었다. 선경이 폴리에스터 공장 건설 허가를 받아내자 데이진은 합작투자를 강력히 주장하고 나왔다. 이를 예상하고 있었던 최종현 선대회장은 합작에 대한 장단점을 면밀히 분석하고는 합작도 불리할 것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일본으로 건너가 집요한 협상 끝에 2,600만 달러를 50대 50으로 투자해 하루 7톤 규모의 폴리에스터 원사공장(중합 부문 제외)을 건설한다는 데 의견 접근을 보았다. 기술 부문은 데이진이, 경영은 국내 사정에 밝은 선경이 맡기로 했다. 폴리에스터 합작 계약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남은 것은 공장 건설에 필요한 외자조달 문제였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상공부장관이 정하는 바에 따라 허가된 수출, 가공수출, 또는 외화표시 군납산업 시설재 및 기타 수입대금 에 해당되면 한국외환은행으로부터 융자를 받을 수 있다는 외화대출취급규정에 착안했다. 최종현 선대회장의 보고를 받은 최종건 창업회장은 박정희 대통령을 특별 면담해 사정을 설명했고, 지원을 약속받았다. 이후 1967년 9월 생산품 전량을 수출한다는 조건으로 상공부장관으로부터 폴리에스터 원사공장 건설을 위한 외화융자 추천을 받았다. 정부가 민간기업에 외화자금을 대부한 첫 번째 사례였다. 1968년 3월 18일 선경화섬과 데이진이 폴리에스터 사업 합작투자에 관한 기본협약 을 체결했으며, 3월 25일에는 선경 발전사에 한 획을 긋는 아세테이트 원사공장 기공식이 SK그룹 60년사

29 거행됐다. 6월 10일에는 최종건 창업회장과 최종현 선대회장의 숙원이었던 폴리에스터 원사공장이 착공됐다. 선수를 빼앗긴 관련업계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남은 것은 두 공장 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해 꿈을 현실로 이뤄내는 일이었다. 아세테이트와 폴리에스터 원사공장 건설에 필요한 내자( 內 資 )는 각각 14억 원과 18억 원, 예정공기는 각각 15개월이었다. 예정 공사기간인 15개월 내에 32억 원을 마련해야 했다. 그러자면 매월 2억 원 이상을 동원해야 했는데 당시 선경의 월간 매출액은 2억 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선경의 간부들은 자금 문제에 관한 한 최종현 선대회장을 믿고 있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국내에서 동원해야 할 내자를 일본에서 조달한다는 기발한 발상을 가지고 일본으로 떠났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국내에서 충당해야 할 내자를 데이진으로부터 300만 달러어치 폴리에스터 원사를 외상으로 들여오면서 그 지불보증을 아세테이트 공장 차관 공여자인 이토추에게 맡기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내자 조달 문제를 해결했다. 물론 이 같은 방법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토추를 통해 폴리에스터 원사공장 설비를 도입하기로 미리 데이진과 합의했기 때문이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의 치밀한 계산에 따른 수순이었다. 1968년 12월 25일 예정공기를 6개월이나 앞당겨 아세테이트 원사공장이 준공됐고, 1969년 2월 10일 폴리에스터 원사공장 역시 예정 공기를 6개월 앞당겨 완공됐다. 두 공장의 준공은 단지 선경만의 경사가 아니었다. 국내 원사 생산 능력은 48톤으로 증대됐고, 선경은 국내 원사 생산의 26%를 담당하게 됐다. 생산 원사의 종류도 2종에서 4종으로 늘어났다. 특히 선경은 국내 최초로 폴리에스터 원사와 아세테이트 인견사를 동시에 생산하게 됨으로써 국내 1위 원사 메이커로 도약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평소 선경의 역사에 있어 세 번의 중요한 도약이 있었다고 말하곤 했다. 그 첫째가 폴리에스터 원사 생산이었으며, 두번째가 유공 인수였고, 세 번째가 한국이동통신 인수였다는 것이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의 언급처럼 폴리에스터 원사를 자체 생산함으로써 선경은 국내 최초의 섬유기업집단으로 도약할 수 있었고, 성장가도를 달릴 수 있었다. 국내 최초의 섬유기업집단으로 도약하다 아세테이트와 폴리에스터 원사 생산으로 선경은 명실상부한 섬유기업집단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비록 아세테이트와 폴리에스터 원사공장을 외국 기업과 합작형태로 건설했지만 독자적인 기술 추구와 사업 확장에도 힘을 쏟았다. 선경화섬은 아세테이트 원사사업을 추진할 때부터 아세테이트 토우(Tow)에 관한 기술이전은 고려하지 않았다. 일본으로부터 설비만 도입한 채 독자 기술 개발에 들어가 2년여의 실험 끝에 선경 아세테이트 토우 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선경화섬의 아세테이트 토우는 생산 전량이 전매청에 담배 필터 재료로 납품됐다. 이로써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아세테이트 토우의 수입대체 효과를 거두게 됐다. 스카이론(SKYRON) 이라는 이름으로 생산한 폴리에스터 원사는 품질 면에서 국내외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일본기술원 섬유공업소의 분석에서도 우수성을 인정받았으며, 기술을 제공한 데이진의 제품보다 우수하다는 업계의 호평을 받았다. 선경의 폴리에스터 원사는 우수한 품질로 소비자들의 인기를 끌었다. 스카이론은 선경이 깔깔이, 앙고라, 크레퐁 등으로 개척해 놓은 제직기술 덕분에 다양한 수요처를 확보할 수 있었다. 국내 폴리에스터 원사 수요량은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1967년 1,368톤에 불과하던 수입량은 1968년 2,928톤으로 증가했고, 1969년 예상 수요량은 4,765톤에 이르렀다. 그러나 선경의 폴리에스터 원사 생산 능력이 2,555톤에 달했지만 국내 시판이 금지돼 있었다. 폴리에스터 원사공장 건설을 위한 외화자금 융자조건 중의 하나였던 전량 수출조건 때문이었다. 폴리에스터 원사 수입량이 급증하자 SK그룹 60년사

30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최종건 창업회장과 최종현 선대회장은 원사공장 건립에 전력하는 동안에도 본업인 직물 부문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원사공장 건립을 추진한 것은 원자재에서 완제품에까지 이르는 수직적 기업결합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중간재(직물(織物)) 생산을 기업의 모태로 삼았던 선경이 아세테이트 폴리에스터 공장의 건립을 추진한 것이 원자재(원사(原絲))를 만들기 위한 시도였다면, 1966년 1월에 해외통상을 인수해 상호를 해외섬유로 변경한 것은 완제품(봉제(縫製))을 생산, 수직계열화를 완성하려는 원대한 구상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1968년 8월 최종건 창업회장은 폴리에스터 직물의 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선경직물의 고압염색 설비와 열처리 설비를 증설했다. 원자재와 완제품 생산에 착수한 만큼 중간재 생산을 보강하기 위한 조치였다. 또한 원사공장 건립이 한창이던 1968년 8월 23일 울산직물을 설립하고 10월 울산시 우정동 369번지 일대 4만 평 부지를 확보, 기공식을 가졌다. 울산직물은 일본 차관을 해외섬유의 공장 내부 모습. 도입해 자동직기 800대를 들여왔고, 1970년 3월부터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다. 선경직물은 1966년 1월 해외통상을 울산직물은 특히 가연설비와 염색 가공설비를 완비해 원사 가공에서 부터 제직, 인수한 후 상호를 해외섬유로 변경했다. 이는 완제품(縫製) 후처리에 이르는 일괄 생산이 가능했다. 주 생산품은 폴리에스터 양복지였다. 생산으로 수직계열화를 완성하려는 울산직물은 1971년 9월 9일 상호를 선일섬유로 변경했다. 원대한 구상의 일환이었다. 해외섬유는 선경이 인수한 첫 번째 섬유기업집단 선경을 위한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70년 1월 30일 기업이다. 이토추상사와 의류제품 수출을 위한 합작회사 설립에 관한 기본계약을 체결하고 구미공업단지 내에 5만 평의 부지를 확보해 현대식 봉제공장 건설에 착공했다. 정부가 수출 조건을 해제함으로써 선경은 생산한 원사 전량을 국내에 시판할 수 있게 1970년 9월 21일 합작회사 선산섬유를 설립해, 1971년 5월부터 가동에 들어가 됐다. 운동복 작업복 점퍼 등 월간 6만 타의 각종 봉제품을 생산했다. 나날이 증가하는 폴리에스터 수요에 맞추기 위해 선경화섬과 데이진은 하루 7톤 이러한 노력으로 선경은 주목할 만한 수출 신장세를 이뤄냈다. 선경직물은 1968년과, 규모의 생산시설을 중합 설비와 함께 21톤 규모로 증설한다는 제1차 증설계획에 1969년 수출의 날에 2년 연속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했다. 1968년 360만 달러의 착수했다. 1969년 7월 1일에는 폴리에스터 공장을 선경화섬에서 분리해 합작법인 수출실적을 올렸고, 1969년에는 전년보다 2배가 훨씬넘는 833만 달러어치를 선경합섬을 설립했다. 아세테이트와 폴리에스터 사업의 병행추진이 비로소 수출했다. SK그룹 60년사

31 뼈를 깎는 구조조정 년 가을 최종건 창업회장은 위 수술을 받았다. 처음에는 위암으로 진단받아 주위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으나 개복 결과는 위궤양이었다. 선경직물 창립 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선경의 발전을 위해 매진해 국내 최초의 섬유기업집단으로 올려놓는 과정에서 건강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선경직물은 경쟁업체에 비해 경영여건이 양호한 편이었으나 직물업계의 불황이 깊어진 데다 최종건 창업회장의 수술 소식이 알려지면서 채권자들이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하면서 자금사정이 어려워지고 있었다. 1970년 12월 30일 최종현 선대회장은 선경직물 사장에 취임했다. 선경직물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비상조치였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위기 수습을 위해 선경산업을 선경직물에 흡수, 병합했다. 이로써 선경 계열사의 주요 수출업무는 선경직물이 관장하게 됐다. 1971년 1월 1일에는 창업 이후 최초로 업무 분담을 위한 인사조치를 단행했다. 해외섬유 사장에 김영환, 울산직물 사장에 김덕유를 임명했고, 최종현 선대회장은 선경직물과 선산섬유 사장을 겸임했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선경화섬과 선경합섬의 사장만을 맡고 기타 4개 사의 회장에 취임했다. 선경직물 사장으로 취임한 최종현 선대회장은 기업은 영구히 존속, 발전해야 하며. 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많은 이윤을 내야 하고, 이윤을 내기 위해서는 먼저 손해를 보지 말아야 하며,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손해를 보게 하는 원인부터 과감하게 제거해야 한다 고 생각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이처럼 뚜렷한 기업관을 지니고 선경직물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뼈를 깎는 감원조치를 단행했다. 인력정비위원회를 구성해 2,300명에 달하던 직원을 1,200명으로 줄였다. 이로 인해 30% 이상의 생산성 증대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의 사장 취임으로 선경직물은 새로운 변화를 맞았다. 그는 미국에서 공부한 경제학을 바탕으로 선진 경영기법을 선경직물에 도입했다. 취임 후 첫 번째 가시적인 조치는 생산회의의 주재였다. 생산부서와 판매부서, 그리고 이를 조정하는 관리부서가 머리를 맞대고 생산과 판매에 관한 모든 사항을 합의해야 했지만 최종현 선대회장은 결론을 제대로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 그 이유는 용어의 정의가 서로 다르다는 데 있었다. 이에 따라 선경용어집을 발간하고, 조직운영에 있어서의 조정 (Coordination) 기능의 중요성을 간파해 이를 강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최종현 선대회장의 조정 이론 은 훗날 SKMS정립의 시발점이 됐다. 1971년 4월 2일 뉴욕지사를 설립했다. 국내에서 남아도는 폴리에스터 원사를 미국에 수출해 활로를 개척하기 위함이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적극적인 수출 전략을 수립하고 치밀한 계획 아래 이를 추진해 나갔다.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화학섬유의 본거지인 미국에 폴리에스터 원사를 수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선경합섬의 폴리에스터 원사는 품질과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고 1971년 5월 1,500톤을 수출할 수 있었다. 선경직물은 1971년 한 해 동안 모두 1,807만 달러어치의 폴리에스터 원사를 미국에 수출했다. 1972년 4월에는 런던지사와 시드니지사를 개설했다. 1971년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폴리에스터 경기가 다시 호황을 타기 시작했고 부진했던 선경의 경영실적도 정상궤도에 진입했다. 선경은 원사공장 건립에 따른 후유증을 이겨내고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선경은 폴리에스터 원사를 비롯한 각종 섬유제품 수출에 박차를 가해 1971년에 비해 60%가 증가한 2,898만 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렸다. 이 공로로 선경직물은 제9회 수출의 날에 은탑산업훈장을 수훈했다. 당시 선경직물의 수출 품목은 폴리에스터 직물, 폴리에스터 편물, 각종 봉제품 등이었다. 수출 대상국은 미국, 캐나다, 유럽, 일본, 호주 등 30여 개국에 달했다. SK그룹 60년사

32 사업다각화의 시동, 서해개발 설립과 워커힐 인수 선경은 1972년 11월 2일 조림사업을 위해 서해개발을 설립했다. 최종현 선대회장의 희망이기도 했던 대학원 중심 대학을 설립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선경은 경기도 오산지역 임야 45만여 평과 광덕산지역 임야 62만여 평을 매입해 조림사업의 기반을 다졌다. 또 충북 충주 임야 650만 평에 가래나무 등 150만 그루를 심었다. 조림사업은 국가 경제에 이익이 되고 환경보존에 이바지하는 사업이지만, 신속한 수익이 보장되는 사업은 아니었다. 때문에 조림사업은 사내외의 걱정과 우려를 사기도 했다. 1972년 11월 8일 최종건 창업회장과 최종현 선대회장의 모친 이동대 여사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온히 운명했다. 이동대 여사는 자식들이 큰 부를 일궜음에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까지 텃밭을 일구는 등 근검과 절약 속에서 한 생애를 마쳤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맏상주로서 5일장을 치렀다. 과로한 탓에 독감이 걸린 그는 이후 심한 기침에 시달렸다. 건강이 극도로 나빠지고 있었지만 생애의 마지막 불꽃을 지피고 있었다. 1972년 12월 최종건 창업회장은 정부가 워커힐호텔을 연내에 민간인에게 매각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워커힐은 정부가 추진하는 관광사업의 일환으로 1963년 4월 개관한 국제 수준의 호텔이었다. 워커힐은 개관과 동시에 교통부 산하의 국제관광공사로 이관돼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10년 동안의 누적적자로 경영난을 겪어오던 국제관광공사는 신규사업 재원확보를 위해 워커힐을 민간에 매각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런데 국제관광공사는 1971년 워커힐을 다른 기업에 내정한 상태였다. 내정가격은 19억 5,000만 원이었다. 하지만 워커힐을 인수하기로 결정을 내린 최종건 창업회장은 또다시 특유의 추진력을 발휘했다. 인수가격이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내정된 기업이 국제관광공사에 20년 분할 납부를 요구하고 있는 점을 파고들었다. 정부의 내정 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그것도 일시불로 인수하겠다고 관련부처에 제의했다. 워커힐을 연내에 매각한다는 방침에 쫓기던 교통부장관이 1972년 12월 29일 박정희 대통령에게 선경의 제의를 보고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교통부장관이 들고 온 서류를 뒤적이며 무엇인가 생각하더니 지시를 내렸다. 선경에 매각하시오! 선경의 최종건 회장은 무슨 일이든 성실하게 해낼 사람이오. 그 대신 조건을 하나 붙이시오. 대통령은 결재서류 여백에다가 세계에서 제일가는 호텔로 발전시킬 것 이라고 썼다. 워커힐 인수의 원동력은 다름 아닌 최종건 창업회장의 헌신성과 신뢰성이었다. 선경의 워커힐 인수는 재계에 충격을 던져준 사건이었다. 1973년 3월 16일 선경은 워커힐을 정식 인수했다. 1973년은 최종건 창업회장이 선경직물을 창립한 지 20년이 지난 해였다. 다시 말해 선경이 성년을 맞는 해였고, 1973년을 맞는 최종건 창업회장의 심경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최종건 창업회장의 기업관을 관류한 것은 사명감 이었다. 그는 자신의 세대가 겨레의 장래를 가름할 무거운 사명을 지니고 있다 고 말하곤 했다. 그런 사명감을 바탕으로 뚫지 못할 난관은 없다 고 믿으며 저돌적인 추진력과 정신력으로 일관해왔다. 하지만 최종건 창업회장은 워커힐 인수 직후 뜻밖의 중환을 얻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SK그룹 60년사

33 나라에필요한 인재를 키우는 꿈, 장학퀴즈 년 2월 18일 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장학퀴즈 후원이라고 할 수 있다. 퀴즈 프로그램 장학퀴즈가 MBC에서 첫 이후 장학퀴즈는 MBC의 인기 장수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았고, SK의 기업 전파를 탔다. 방영 직전 이 프로그램은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96년 10월 MBC의 프로그램 개편에 의해 후원자를 찾는 데 애를 먹었다. 종영된 장학퀴즈는 1997년 1월부터 EBS 교육방송을 통해 EBS 장학퀴즈로 변신, 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어서 현재까지도 방영되고 있다. 광고 효과가 없을 것으로 판단한 SK가 동일한 프로그램을 40년간 단독 후원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 위주의 경영 을 대기업들이 선뜻 스폰서를 맡으려 최우선 경영원칙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배출된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누구도 이 인재들이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해 역량 있는 일꾼으로 일하고 있다는 점이 국가뿐만 프로그램이 이후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니라 기업의 사회공헌이란 측면에서 볼 때 보람된 일이기 때문이었다. 이어지게 될지 알지 못했고, 장학퀴즈는 2000년 1월 중국에도 진출했다. SK는 SK장웬방(壯元榜) 을 북경TV와 이 프로그램에 대한 국민의 엄청난 공동으로 제작, 2000년 1월 1일부터 주말 고정 프로그램으로 방영하고 있다. 호응을 예상하지 못했다. SK장웬방 은 단순한 문답식 퀴즈를 지양하고 출연자의 창의력을 유도하고 팀워크를 하지만 텔레비전을 통해 광고할 최종 소비제품이 없었음에도 최종현 선대회장은 MBC의 스폰서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이는 결단을 내렸다. 인재양성의 꿈을 갖고 있던 최종현 선대회장으로서는 당연한 결정일지도 몰랐다. SK 사회공헌 활동의 출발점은 SK장웬방 방송 장면. SK장웬방은 SK 고유의 인재양성 정신을 중국에 심고자 십년수목, 백년수인 (十年樹木, 百年樹人; 10년 앞을 내다보고 나무를 심고, 100년 앞을 내다보고 사람을 키운다)의 뜻을 담고 중국 대륙에 소개됐다 선경이 스폰서를 맡은 MBC 장학퀴즈의 한 장면. 최종현 선대회장은 텔레비전을 통해 광고할 최종 소비제품이 없음에도 MBC의 스폰서 제의를 받아들였다. 장학퀴즈는 SK 사회공헌활동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SK그룹 60년사

34 개발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진행해 중국 내에서 좋은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10년 이상을 내다 본 장기적인 차원에서 기획된 SK장웬방 은 SK 고유의 인재양성 정신을 중국에 심고 있다. 이 과정에서 중국과의 자연스러운 문화적 인적 교류가 이루어졌음은 물론이다. SK장웬방 은 십년수목, 백년수인 ( 十 年 樹 木, 百 年 樹 人 ; 10년 앞을 내다보고 나무를 심고, 100년 앞을 내다보고 사람을 키운다)의 뜻을 담고 중국 대륙에 소개됐다. SK장웬방 을 통해 배출해낸 학생들이 중국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인재들이라는 점에서 이 프로그램은 한국과 중국 양국 간의 교류증진 및 우호증진에 크게 기여해오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 장학퀴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SK는 SK장웬방 프로그램의 전후에 내보내는 공익광고로 중국 사회의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SK는 공익광고에서 패기 의 정신을 비롯, 선의의 경쟁, 책임과 권한, 시기와 질투 등 중국의 청소년들이 갖추어야 할 자질에 대해 주로 다루었다. SK의 공익광고는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청소년 캠페인이 전무한 중국 사회에서 올바른 공중의식과 청소년의 인성교육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참신한 광고라는 평을 받았다. 장학퀴즈는 2013년 2월로 방송 4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1,950회 방송됐으며, 출연학생은 1만 6,000여 명에 달했다. 중국의 장학퀴즈인 SK장웬방은 650여 회가 방송됐으며, 출연학생이 3,400여 명, 출연희망자가 10여 만 명에 이르고 있다. 최종건 창업회장의 영면 년 들어 선경은 그룹의 사활을 걸고 정유사업과 폴리에스터 섬유의 원료인 DMT(Dimethyl Terephthalate)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었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병마와 싸우는 와중에도 틈틈이 정유사업 추진을 지휘하는 투혼을 발휘해 보는 이에게 크나큰 감명을 주었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폐암 진단을 받은 상태였지만 마지막까지 투혼과 추진력을 발휘했다. 정부와의 재교섭을 통해 워커힐의 인수가격 가운데 10억 원만을 일시불로 납입하고 나머지 금액은 10년 간 분할 납부한다는 조정안을 이끌어 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는 정부와의 조정 직후 최종현 선대회장의 권유에 따라 건강진단을 위해 서울대학병원에 입원했다. 폐암일지도 모른다는 주치의의 말에 최종현 선대회장은 최종건 창업회장에게 미국에 가서 치료를 받을 것을 강권했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정확한 진단과 신병 치료를 위해 1973년 4월 초 미국으로 건너갔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미국 보스턴의 월터리드 육군병원에 입원해 정확한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현지 의료진으로부터 자신의 병명을 듣게 되자 일단 치료를 거부하고 귀국을 서둘렀다. 선경의 산적한 현안을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뿐이었다. 귀국 후 최종건 창업회장은 자신의 병을 감추기 위해 예전보다 더욱 쾌활한 표정을 보여 주었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1973년 5월 선경유화 설립과 DMT공장 건설계획을 마지막으로 지휘하고는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서 코발트 광선 치료를 받았지만 그에게 남은 건 6개월의 시한부 인생이었다. 미국에 간 지 20일도 안 돼 귀국을 결정했다. 그는 직접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1973년 7월 1일 선경화섬 창립 7주년 및 선경합섬 창립 SK그룹 60년사

35 4주년 기념사를 남기는 것을 끝으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최종건 창업회장의 건강은 죽마고우의 부음을 전해들은 이후 극도로 악화됐다. 1973년 9월 중순 최종건 창업회장은 주치의의 강력한 권유로 서울대학병원에 다시 입원했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생의 남은 기간을 자신의 피땀이 밴 선경의 사업장을 둘러보며 선경인들을 독려하는 데 썼다. 1973년 11월 15일 밤 9시 55분 최종건 창업회장은 가족들이 임종을 지키는 가운데 향년 48세의 일기로 서울대학교 부속병원에서 영면했다. 최종건 창업회장의 타계는 1만여 선경인 뿐만 아니라 사회 각계각층의 많은 인사들을 비탄에 잠기게 했다. 1973년 11월 16일 아침 최종건 창업회장의 부음이 전해지자 서울시 삼청동 자택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에는 각계각층의 조문객들이 줄을 이었다. 장례는 5일장으로 치러졌다. 고인의 유해는 1973년 11월 19일 오전 9시, 자택에서 간소한 발인제를 마친 다음 수원의 선경합섬에 마련된 영결식장으로 운구됐다. 오전 10시에 거행된 영결식에는 수많은 조문객들이 운집해 선경인과 함께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영결식이 끝난 후 최종건 창업회장의 유해가 실린 운구차는 선경합섬을 떠나 고인의 피와 땀이 서린 수원시 평동 선경직물에 도착했다. 도열한 선경직물 종업원들의 묵념을 뒤로하고 다시 고인의 생가에 들른 운구차는 간단한 의식을 마치고 오후 2시 30분 장지인 경기도 화성군 봉담면 상리의 선영으로 향했다. 고인의 유해는 유족과 친지들의 마지막 분향을 받은 후 선경 임원들에 의해 운구돼 부친의 묘소 아래 마련된 유택에 안치됐다. 최종건 창업회장과 최종현 선대회장은 참으로 우애깊은 형제였고, 손발이 잘 맞는 사업 파트너였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어떤 일에나 자신의 판단이 애매할 때면 주저하지 않고 동생의 자문을 구했고, 밖에서 들은 이야기 중 정보가 될만한 것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동생에게 들려주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그런 형을 마음 속 깊이 존경하고 받들었다. 형의 그늘에 숨어서 조용히 일을 준비하고 추진하되 생색을 내지 않았으며 잘못된 결과는 스스로 책임지고 공은 전부 형에게 돌렸다. 그런 형제 사이였으므로 최종건 창업회장은 유언을 따로 남기지 않았다. 모든 것을 동생 최종현에게 일임했으며, 병상에서 만나는 모든 지인에게 동생 최종현을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돌봐주기를 당부했다. 최종현 선대회장 역시 형을 잃은 후 신문에 기고한 에세이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사적인 세계에서 형님은 어디까지나 나의 그지없는 형님이었고, 특히 부모님이 돌아가신 다음에는 형님은 우리 집안의 총사였으며 그의 말은 우리 집안에 거의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사적인 세계를 벗어나 사업관계에 들어오면 공적 입장에서 상호 의견을 존중하는데 노력해왔고, 기탄없는 의논으로 서로 신뢰를 얻어 형제간에 남달리 힘을 얻었다고 자부한다. 형님과 나와는 비슷한 성격이면서도 여러 모로 달랐다. 그리고 각자의 장단점이 서로 잘 보완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이상적인 파트너라고 주위 사람들이 말한다. 형님이 살아 계실 때 이상으로 잘해서 주위사람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 형님의 유훈이라고 믿고 있다. 최종건 창업회장이 살아온 길 최학배 공과 이동대 여사의 4남4녀 중 장남으로 출생 수원 신풍소학교 졸업 경성직업학교 기계과 졸업 선경직물 입사 노순애 여사와 결혼 귀속재산인 선경직물 공장부지 매입 귀속재산 선경직물 매수 완료 수원상공회의소 부회장 피선 제18회 광복절 기념식에서 건국 후 최초의 금탑산업훈장 수훈 한국직물공업협동조합 연합회 회장 피선 한국직물원사수출조합 부이사장 피선 수원상공회의소 회장 피선 선경산업을 선경직물에 합병, 선경그룹 회장 취임 향년 48세로 영면 SK그룹 60년사

36 제2장 에너지 화학으로 1. 최종현 선대회장 체제의 개막 세계적 석학 양성의 원대한 꿈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 천명 경영기획실과 선경연수원 설립 (주)선경 설립, 종합무역상사로 도약하다 (주)선경, 중남미 시장 개척의 선봉에 서다 매출 1,000억 원과 수출 2억 달러 시대 열다 선경의 새로운 위상, 기업공개에 나서다 선경종합건설 설립, 건설업에 뛰어들다 한국경제의 대동맥 되다 10. 불가능에 도전, 폴리에스터 필름 개발에 성공하다 국내 최대 호텔로 성장한 쉐라톤워커힐 선경합섬, 자체기술로 폴리에스터 수지 개발하다 세기를 내다보며 SKMS 정립 선경화학, 비디오테이프 개발에 성공하다 년 공들인 탑, 유공을 인수하다 선경의 품에서 유공으로 재출범 자원수송 전문 해운사 유공해운 설립 무자원 산유국에 도전, 해외 석유자원 개발에 뛰어들다 계열기업 정리와 석유화학 콤비나트 건설 착수 LPG사업과 LNG사업에 진출하다 선경인더스트리, 생명과학에 과감히 도전하다 한발 앞선 글로벌리제이션, SUPEX추구 SKC와 선경매그네틱의 글로벌리제이션 국내 기업 최초로 중국에 무역사무소 개설 울산컴플렉스 합동준공식, 수직계열화를 완성하다 태평양증권 인수, 금융업 진출 ~1991 최종현 선대회장 체제의 개막 최종건 창업회장의 서거에 따라 동생인 최종현 선대회장이 선경을 이끌게 됐다. 1973년 11월 24일 최종현 선대회장이 선경직물에 이어 선경화섬과 선경합섬의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선경의 경영권을 정식으로 승계한 것이었다. 이 같은 경영권의 승계는 재계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후에도 선경은 경영권 승계를 두고 세인의 입방아에 오르내리지 않는 전통을 쌓아갔다. 1973년 11월 30일 최종현 선대회장은 경제인으로서는 최고의 영예인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했다. 안팎으로 시련이 많았음에도 꾸준히 수출에 진력한 결과였다. 최종건 창업회장에 이어 최종현 선대회장이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함으로써 형제가 모두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하는 영예를 안았다. 영광도 잠시, 최종현 선대회장은 선경을 혼자 이끌어가야 하는 막중한 책무를 짊어져야 했다. 최종건 창업회장의 타계로 인한 경영 공백을 메우고 자신의 경영 능력을 대내외에 보여줘야 했고, 석유파동이 몰고 온 세계 경제의 불황을 타개해야 했다. 최종현 선대회장의 경영 능력을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밖으로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 최종현 선대회장의 성격상 어쩌면 당연한 의구심일 수도 있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이들의 의심어린 시선을 불식하고 자신의 소신과 경영관을 바탕으로 선경을 새롭게 이끌어나갔다. 그 첫 단추가 1974년 신년사였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신년사에서 1974년의 목표를 생산성 향상 조직의 탄력적 재정비 기존 추진사업의 적극적인 추진 석유화학사업 등 설정된 좌표를 향한 성실하고 과감한 매진 등 네 가지로 정리했다. SK그룹 60년사

37 이후 최종현 선대회장은 선경의 경영방식을 서서히 바꾸기 시작했다. 그룹의 모든 결정권이 최종건 창업회장에게 집중돼 있었고, 최종건 창업회장은 모든 사항을 일일이 챙겼다. 규모가 작았을 때는 의사결정이 빠르고 효율적인 경영방식이었다. 그러나 회사가 크게 성장한 시점에서는 새로운 경영방식이 요구됐다. 석유파동으로 세계 경제의 경기변동이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절감한 선경으로서는 국제화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경영방식을 모색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따라 최종현 선대회장은 위임관리제를 실시했다. 먼저 계열사의 사장에게 각사 경영권을 위임했으며, 계열사 사장들에게 관리권을 임원에게 위임할 것과, 임원들은 다시 부장들에게 권한을 위임할 것을 당부했다. 인사권까지도 중간 관리층에 일임했다. 사원의 능력이나 성품은 직속 상사가 가장 잘 알고 있다는 것이 최종현 선대회장의 판단이었다. 석유파동의 충격은 선경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단지 개발계획과 폴리에스터 원재료인 DMT 공장 건설계획을 일단 유보하고 불황극복 대책을 마련했다. 1974년 6월 현금증자 등을 통해 선경직물의 자본금을 증자했고, 두 차례에 걸쳐 선경합섬의 자본금도 늘렸다. 석유파동으로 격감된 수출을 늘리기 위해 선경직물의 무역부를 확대개편했다. 1974년 7월에는 선경직물 수출부로부터 합섬무역부를 독립시키고 10월에는 독일에 프랑크푸르트 지사를 개설했다. 1974년 선경은 8,643만 4,000달러를 수출, 국제적인 불황에도 전년보다 70.8% 증가한 실적을 올렸다. 선경은 석유파동 와중에도 선경합섬 수원공장을 증설하고 울산공장을 준공하는 등 증설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특히 울산 폴리에스터 스테이플 파이버 공장은 하루 100톤 규모의 생산 능력을 보유한 동양 최대의 단일 섬유공장이었다. 선경은 울산공장의 준공으로 석유화학산업 진출의 첫발을 내딛게 됐다. 1974년 9월 21일에는 경영원칙 을 발표했다. 최종현 선대회장이 기획실원들과 격의 없는 토론을 거쳐 정립한 경영원칙은 SKMS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경영원칙에서 1960년대는 설비경쟁의 시대였으며, 1970년대는 경영경쟁의 시대 라고 전제한 뒤, 1970년대의 시대적인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경영관리 능력을 끊임없이 키워나가야 하며, 이 길만이 타 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지름길이 될 것 이라고 밝혔다. SK그룹 60년사

38 세계적 석학 양성의 원대한 꿈 대내외적인 경영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어려운 시기에도 최종현 선대회장은 1974년 11월 14일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했다. 이는 세계적으로 손색없는 아카데미 설립을 평생의 꿈으로 삼아오던 최종현 선대회장의 집념을 구현한 것이었다. 한국고등교육재단의 목적은 사회과학, 순수자연과학, 동양학 등에서 고등교육 증진에 기여할 우수한 학자를 양성해 학문 발전에 기여하고 국가 및 사회 발전에 공헌하는 데 있었다. 이에 따라 한국고등교육재단은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우리나라의 젊은 인재들을 선발, 해외 명문대학원에 유학시켜 각 분야의 박사 학위를 취득하도록 지원하는 해외유학장학사업을 시작했다.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600여 명의 학자를 비롯해 3,000여 명의 인재를 배출했다. 이와 더불어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이를 발전시키기 위해 3년 간 한문교육을 집중 지도하는 한학 연수 프로그램과, 이들이 박사학위를 취득하도록 지원하는 동양학 연구 장학사업을 실시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1970년대 초에 이미 대학 설립을 위한 20년 계획을 마련하고 적당한 시기에 선경의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서 대학 설립에 전념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최종건 창업회장이 뜻하지 않게 별세하자 대학 설립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뜻을 되살리기 위해 사재를 출연해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해 우리나라 학문 발전에 기여한 것이다. 한국고등교육재단의 장학 사업은 남다른 특징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기업이 제공하는 장학금에는 대개 조건이 붙게 마련이지만, 한국고등교육재단이 제공하는 장학금 수혜자의 의무는 단 한 가지뿐이었다. 일체의 부업을 갖지 않고 학업에 전념할 것 이었다. 이렇게 학자적 소양과 자질을 갖춘 인재를 선발해 학업에 전념토록 한 이유는 한국고등교육재단이 중점 지원하는 학문 분야에서 더욱 명확히 드러났다. 한국고등교육재단은 국내에서 비교적 낙후된 학문 분야인 사회과학분야, 순수자연과학 분야 및 국학분야를 중점 지원했다. 사회과학과 순수자연과학 분야는 학문의 균형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반임에도 불구하고 사회로부터의 관심이나 지원이 인색한 분야였다. 한국고등교육재단은 이러한 분야의 학문을 집중 육성함으로써 학문의 균형적 발전을 도모함은 물론 사회발전에 기여할 고급인력을 양성하는 데 목표를 두었다. 또 동양의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동양학 연구를 하기 원하는 우수한 대학생을 선발해 한학의 주요 전적에 대한 소정의 학습과정을 이수하게 한 후, 국내 및 해외에서의 박사과정을 지원하는 장학사업을 실시했다. 특히 1997년부터는 미래 한국고등교육재단 설립. 한국고등교육재단은 사회과학, 순수자연과학, 동양학 등에서 대학 수준 이상의 고등교육 증진에 기여할 우수한 학자를 양성해 학문 발전에 기여하고 국가 및 사회발전에 공헌하고자 설립됐다. SK그룹 60년사

39 정보통신 분야의 학문 및 산업발전을 선도할 최우수 교육인력, 기술인력, 정책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정보통신 공학 분야 및 정책 분야에서 장학생을 선발해 국내 학부과정과 대학원 석 박사과정 및 해외 박사과정을 지원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아시아 학자들의 학문교류와 연구협력을 활성화해 아시아의 학문발전과 상호 이해를 증진하도록 국제학술교류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아시아 각국의 젊고 우수한 학자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한국 내 대학 및 연구기관에서 국내학자들과 협력해 연구를 진행하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 천명 제1차 석유파동이 몰고 온 불황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던 상황에서 최종현 선대회장은 1975년 신년사를 통해 근본적인 도약을 불러올 원대한 구상을 발표했다. 나는 선경을 국제적 차원의 기업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두 가지 명제를 분명히 제시해 여러분이 적극적으로 실천해 줄 것을 당부하고자 합니다. 첫째 명제는 석유로부터 섬유에 이르는 산업의 완전계열화를 확립시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섬유산업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석유화학공업에의 진출이 불가피한 것이며, 더 나아가 석유정제사업까지도 성취시켜야 하겠습니다. 둘째 명제는 기업 확장과 더불어 경영 능력을 배양시키는 것입니다. 섬유공업에서 석유정제사업에 이르는 방대한 규모를 성취해 나가는 데에는 수억 달러에 달하는 자본력과 고도의 전문지식과 기술이 필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국제적 기업으로서 손색없는 경영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경을 국제적 차원의 기업으로 부각시키기 위한 구체적 목표를 제시한 것은 새로운 창업선언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최종현 선대회장의 1975년 신년사는 오늘날의 SK를 있게 만든 제2창업선언 으로 불리고 있다. 최종현 선대회장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목표는 두 가지에 겨누어져 있었다. 석유에서 섬유까지의 완전계열화 가 그룹 하드웨어의 도약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 경영 능력의 배양 은 기업을 운영하는 소프트웨어 의 정립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신년사에서 밝힌 최종현 선대회장의 구상은 하드웨어적인 면에서는 1991년 울산컴플렉스의 완성으로, 소프트웨어적인 면에서는 1979년 SKMS 정립 및 1989년 SUPEX추구법 도입으로 달성됐고, 선경이 훗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일류기업으로 SK그룹 60년사

40 도약하는 데 결정적인 초석이 됐다. 최종현 선대회장이 수직계열화와 경영능력 배양을 구상하게 된 것은 선경이 겪고 있었던 본질적인 변화와 관련이 있었다. 최종건 창업회장의 타계와 최종현 선대회장의 등장은 단순한 인적 교체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선경은 10대 기업으로의 도약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이에 따라 경영방식을 기업 규모에 맞게 바꿔야 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창업( 創 業 )보다 수성( 守 成 )이 어렵다는 말도 있듯이 최종현 선대회장은 최종건 창업회장의 유지를 지키고 이어나가야 할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수성 을 위해 경영방식의 질적인 변화가 요구된다고 보았다. 경영방식의 시스템화를 구상하게 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이 신년사에서 발표한 그룹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수립계획은 여느 경영자들의 일반적인 인식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당시 정부는 중화학공업 육성시책을 정책적으로 추진하고 있었고, 다수 대기업들이 불황에도 중화학공업 진출을 시도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최종현 선대회장은 선경이 당장 조선이나 제철 같은 중공업에 진출하기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했다. 섬유기업으로 성장해온 선경으로서는 중화학공업에 대한 축적된 기술도 없었고 경험도 전무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심사숙고를 거듭한 끝에 선경의 섬유산업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석유 및 석유화학사업으로의 진출이 불가피하다는 결단을 내렸다. 최종현 선대회장의 수직계열화는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것 이었다. 따라서 수직계열화의 실체조차 파악하지 못한 임원들도 상당수였고,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는 대다수의 임원들이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최고경영자로서 고독한 길을 걸어가야 했다. 선경의 석유화학사업 추진이 유공을 인수한 이후의 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최종현 선대회장은 1972년 석유에서 섬유까지의 수직계열화를 구상한 이후 지속적으로 이를 추진했다. 최종현 선대회장이 선언한 수직계열화의 핵심은 원료로부터 최종제품 생산에 이르는 전공정을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는 것이었다. 원사업자의 농간에 고전하던 선경이 결국 원사공장을 준공하고, 폴리에스터 원사의 원료인 DMT 가격이 제1차 석유파동으로 폭등하자 다시 DMT공장 건설을 추진한 것은 이를 위해서였다. 1973년 5월 10일에는 선경유화를 설립하고 일산 350톤 규모의 DMT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5월 20일에는 울산시 황성동 해안 30만평 부지에 DMT공장과 함께 폴리에스터 스테이플 파이버 공장을 건설하기 위한 개토식을 거행하기도 했으나 추진을 훗날로 미뤄야 했다. 일본의 이토추 및 데이진과 공동투자해 일산 15만 배럴 규모의 정유공장을 설립하기로 하고 정부로부터 경남 울주군 온산 일대 100만 평 규모의 석유사업단지 조성 내인가를 받아낸 다음 1973년 7월 1일 선경석유를 설립했다. 이와 더불어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1일 15만 배럴의 원유공급 확약을 받아냈다. 그러나 선경의 계획은 1973년 말 발발한 제1차 석유파동으로 인해 무산되고 말았다. 상황이 돌변하자 선경의 합작 파트너였던 이토추와 데이진은 선경에 사정을 구하며 철수를 선언했다. 선경에 남은 것은 엄청난 손해와 공장부지 30여 만 평뿐이었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협약은 완전히 파기되지는 않았고 원유 가격만 안정되면 다시 석유사업을 추진할 계획이었다. 1974년 7월에는 3개국 6개사와 합작해 사우디아라비아에 석유화학공장을 건설하기로 합의했다. 불포화 폴리에스터 수지 생산 공장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Jedda)에 건설하기로 합의하고 관계국 정부의 승인을 추진했지만 선경의 구상은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혀 실현하지 못했다. 이처럼 선경의 수직계열화는 최종현 선대회장이 치밀한 계획 아래 1970년대 초부터 추진한 의욕적인 사업이었다. 훗날 대한석유공사 인수전에서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선경이 유공을 인수하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선경은 이미 1972년부터 석유에서 섬유까지의 수직계열화를 일관되게 추구해 왔고 그 결과가 유공 인수로 나타났던 것이다. SK그룹 60년사

41 경영기획실과 선경연수원 설립 최종현 선대회장은 1975년 신년사에서 밝힌 두 가지 목표를 점진적으로 추진해 나갔다. 1974년 4월 1일 선경의 경영이념 정립을 주도한 경영기획실을 설립했다. 경영기획실은 회장 직속기관으로 최종현 선대회장이 설립에 직접 관여했다. 그룹 차원의 경영전략, 장기경영 기획 등 기업경영의 본질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였다. 종전의 기획부서가 사업계획을 수립, 점검하는 정도의 기능을 수행했다면, 경영기획실은 최종현 선대회장 자신의 경영이념을 체계적으로 실현해 나가는 구심점 역할을 했다. 최종현 선대회장이 그룹 차원의 전문 스태프 기구로서 경영기획실을 만든 이유는 그룹 내 각 관계사 간의 코디네이터 역할을 맡기기 위해서였다. 최초의 경영기획실은 경영관리반 기획조사반 재정반 홍보반 등 4개 반으로 편성, 운영됐으며, 1975년 2월 사무전산화 업무를 개발하기 위해 전산반을 추가로 설치했다. 1976년 12월 경영기획실은 관계사에서 선발한 구성원을 대폭 보강해 조직을 확대개편했고 한층 더 강력한 기능을 부여받았다. 제1차 석유파동의 여파로 그룹 각 사에서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고, 더불어 관계사가 늘어나면서 더욱 적극적이고 체계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일종의 관제탑(Control Tower)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경영기획실은 그룹 관계사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종합적 전문 스태프 기구로서 회장의 업무를 보좌하는 기능도 가졌다. 이후 경영기획실은 1990년대의 구조조정 추세에 맞춰 1994년 조직을 축소할 때까지 그룹의 안정과 성장을 이루는 조타실 역할을 했다. 하지만 IMF관리체제를 맞아 1998년 5월 구조조정을 본격화하기 위해 한시조직인 구조조정추진본부를 신설하면서 폐지됐다. 1975년에는 선경운영위원회를 설치했다. 선경의 관계사는 서로 완전히 독립된 운영체계를 갖고 있었지만 종합적인 운영에 관한 기본방침의 협의가 필요할 때도 있고, 회장의 경영 의사결정에 계열사의 보좌가 요구될 때도 있었다. 이러한 필요성에 의해 특별기관으로 설치된 선경운영위원회는 관계사 최고경영자들의 코디네이션 기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1978년 8월 1일 선경운영위원회의 운용을 효율화하고 강화하기 위해 규정을 제정하고 정식으로 회장 직속의 그룹경영 최고협의기구로 발족시켰다. 운영위원회의 운영은 경영기획실장이 관장했으며, 운영위원회의 위원은 회장과 회장이 지명하는 관계사의 임원으로 구성됐다. 수직계열화의 본격적인 추진과 동시에 1975년 3월 7일 선경연수원을 설립했다. 선경연수원은 국내 최초의 기업 연수원이었다. 선경연수원 설립은 신년사에서 밝힌 두 가지 목표 중 하나인 경영 능력의 배양을 위해 구성원들을 교육시키기 위한 조치였으며, 경영경쟁 시대에 대비한 전략적 대책이었다. 워커힐호텔 내에 들어선 선경연수원은 250여 명이 숙식하며 교육받을 수 있는 시설이었다. 개원 첫 해 선경연수원에서는 5,094명의 임직원이 교육을 받았으며, 이에 소요된 교육시간은 선경 내 3급 이상 전 구성원의 통상 근무시간의 1.7%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선경연수원은 선경의 경영이념 가운데 하나인 인간 위주의 경영 을 위한 도장이었다. 선경의 경영이념 은 1974년 9월 21일 경영원칙 으로 정리한 후 1975년 신년사를 통해 사내에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선경의 경영이념은 이후 인간 위주의 경영, 합리적인 경영, 현실을 인식한 경영 이라는 SKMS의 경영원칙 으로 정립됐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선경의 경영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관리자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것은 가시적이고 외형적인 것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 였다. 그 예로 최종현 선대회장은 Coordination 과 Cooperation 관리 의 용어 정의를 통일할 것을 특히 강조했다. 이 두 개념 모두 SKMS 동적 요소의 근간을 SK그룹 60년사

42 이루었다. 선경연수원은 1998년 SK아카데미로 명칭을 바꾸고 SK의 가치(Values)와 전략(Strategy)을 창출하고, 이를 공유할 수 있는 인재를 키우는 도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나가고 있다. 이후 SK아카데미는 2001년 12월 워커힐에서 경기도 용인으로 이전했으며 신축 건물은 주변경관이 뛰어나고, 규모와 수용시설 면에서 그룹 구성원의 역량개발을 위한 시설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교육 및 숙박을 위한 수용인원이 기존에 비해 2배로 늘어남에 따라 3~4개의 교육과정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교육과정의 다양화와 교육과정 선택의 기회를 대폭 확대 할 수 있었다. 선경연수원 연혁 선경연수원 개원(서울 성동구 광장동 소재) 경영자질향상계획에 의거 SK 밸류 확산교육, 직위 직급별 기본교육 시행 SKMS 정립 및 전 구성원 전파확산 교육 심신수련 교육과정 실시 SUPEX추구법 도입에 따라 SUPEX 추구법 확산교육 실시 EMD(Executive Management Development) 체계 수립 초중급경영자 육성체계(JEMD) 수립 SK그룹연수원으로 명칭 변경 Learn PLUS 오픈(온라인 교육 실시) SK아카데미로 조직명 변경 필요 역량에 따라 역량교육 실시 SK아카데미 이전(경기도 용인시 소재) 개정 SKMS 전파 확산 교육 실시 SK경영관 증축 선경 설립, 종합무역상사로 도약하다 년 1월 1일 선경직물은 같은 선경 계열사인 선일섬유를 흡수합병하고 상호를 (주)선경으로 변경했다. 섬유기업 선경이 종합무역상사로 탈바꿈하기 위한 첫 조치였다.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펼치고 있던 정부는 각종 유인책으로 종합무역상사 설립을 유도했다. 수출 증대를 위한 새로운 전략이었다. 1960년대부터 정부는 수출을 통한 경제발전을 추구해 왔으나 1970년대 중반까지의 수출실적은 단순한 외화획득을 목적으로 한 양적 확대에 기댄 것이었다. 이러한 수출활동이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 한계에 다다르자 정부는 종합무역상사를 통한 국제화를 시도함으로써 능동적인 해외 진출을 모색했다. 한국의 종합무역상사는 수출성장이라는 국가적 사명을 위해 정부에서 인위적으로 창조해낸 기업 형태였다. 1975년 4월 정부에서 발표한 종합무역상사 육성방안에는 정부가 원하는 방향대로 각종 요건이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자본금 10억 원 이상 연간 수출실적 5,000만 달러 이상 해외 지사 수 10개 이상 종합무역상사로 지정된 날로부터 1년 이내에 기업공개 등을 내세웠다. 이러한 자격요건을 충족시키는 기업에 대해 정부는 국제입찰 경합시 우선 지원 원자재수입요건 개방 완제품 비축구매를 위한 로컬 L/C(국내 신용장) 개설 허용 및 수출금융 지원 외국환은행 다수거래 허용 보증신용장의 회전사용 허용 해외 지사의 등급 외환관리법상 특종으로 분류해 50만 달러 이상의 해외 지사 외환자금 보유 허용 수출조합 및 협회의 가입조건 완화, 가입비 경감 등의 혜택을 제공하기로 했다. SK그룹 60년사

43 정부의 지원제도가 주는 혜택은 컸다. 정부가 정한 요건을 갖춰 종합무역상사로 지정되는 것은 재정적인 유리함을 얻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정부가 정한 까다로운 요건을 충족시켰다는 것 자체가 기업의 이미지를 고양시켰고, 나아가 국제경쟁력 강화에도 큰 도움이 됐다. 국내 대기업들은 정부의 시책에 부응하기 위해 종합무역상사 설립을 앞다투어 추진했고, 1975년에만 삼성물산, 대우실업, 한일합섬, 국제화학, 쌍용 등 5개사가 종합무역상사로 지정됐다. 하지만 최종현 선대회장은 이왕이면 실질적인 종합무역상사를 설립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신중한 검토 끝에 종합무역상사 설립을 결의한 선경은 종합무역상사 자격취득 요건을 갖추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종합무역상사에 어울리지 않는 선경직물의 사명을 1976년 1월 1일자로(주)선경으로 변경함과 동시에 자본금을 20억 6,800만 원으로 늘렸다. 또 (주)선경을 건실한 종합무역상사로 발전시키기 위한 5개년계획을 수립하고 1차년도인 1976년에는 자금력 확보와 종합무역상사로 지정받기 위해 필요한 요건 충족에 총력을 다하기로 했다. 1976년에는 1975년에 비해 종합무역상사 지정요건이 더욱 까다로워졌다. 또 특수지역 수출조건이 추가됐는데, 수출실적 가운데 중동 15%, 중남미 3%, 아프리카가 3% 이상이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선경은 18개 나라에 100만 달러 이상을 수출한 실적을 갖고 있었다. 다만 두 가지 난제가 있었다. 100만 달러 이상 수출하는 품목이 15개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과, 중남미, 아프리카, 중동 등지에 대한 수출을 적극 권장하려는 당국의 의지를 담고 있는 항목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76년 (주)선경은 완구, 운동용구, 가정용 통신기기, 동식물성 원재료, 기계부품 생산업체 등을 계열화해 가면서 적극적으로 상품 다양화를 꾀했다. 인수 및 신설기업으로는 선경기계와 선경금속이, 계열화기업으로는 경성고무와 영남방적이 있었다. 6개였던 해외 지사망도 16개로 확장하고 총력전을 펼쳐 나갔다. 1976년 11월 22일 각고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주)선경은 종합무역상사로 지정받았다. 1975년 11월 1일부터 1976년 10월 말까지 (주)선경은 1억 1,337만 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렸고, 섬유 직물 등 10개 품목을 각각 100만 달러 이상씩 수출했으며, 해외 지사 16개, 100만 달러 이상 수출국가 18개국으로 종합무역상사 지정요건을 갖추었다. 1976년 새롭게 (주)선경을 비롯해 6개사가 지정받음으로써 종합무역상사는 11개로 늘어났으며, 1976년 우리나라 전체 수출실적의 20%를 담당해내는 성과를 올렸다. (주)선경은 종합무역상사로 지정받은 데 이어 1976년 11월 30일 열린 수출의 날에 1억 달러 수출탑 을 수상하는 겹경사를 맞았다. 또 선경합섬도 해외시장 여건의 악화에도 불구하고 1975년보다 30% 가량 증가된 8,226만 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림으로써 수출유공 대통령기를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종합무역상사들이 지속적인 수출증대에 기여함으로써 우리 경제의 고도성장을 위한 절대적인 지렛대 역할을 담당해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관주도형 고도성장 정책 아래 탄생됐다는 점에서 당초에 예기치 못했던 여러 가지 부작용들을 파생시켰다. 정부는 종합무역상사의 육성을 위해 수출증대를 기본목표로 설정한 반면 이에 수반되는 제약조건, 특히 한계수출 및 한계점 이하의 수출에 따르는 수익성의 악화라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종합상사들은 실적에 급급해 지나친 판매경쟁을 벌여 나갔고. 급기야는 덤핑수출도 마다하지 않았다. 출혈수출 경쟁은 종합무역상사들의 경영체질을 약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매출이익 하락으로 인한 경영수지 악화까지 초래했다. 9개 종합무역상사의 1979년 총매출액은 2조 7,426억 원으로 전년 대비 60.3%가 증가했으나, 매출이익률은 전년보다 0.4% 하락해 정상수출 마진 2%를 잠식하고 있었다. 게다가 1979년 하반기에 들어서는 제2차 석유파동의 영향으로 국내 경기가 급격한 하강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를 호전시키려는 정부의 강력한 경기부양책에도 아랑곳없이 경기는 악화일로로 치달았고, 제1차 석유파동 이후 1976년부터 1978년 사이 안정세를 회복해가던 우리 경제는 또다시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이션에 휘말리기 시작했다. (주)선경도 예외는 아니었다. 1979년대 후반 (주)선경은 외형적으로는 크게 성장했으나 SK그룹 60년사

44 재무구조는 취약한 편이었다. 1977년도의 부채비율이 918%였으며, 1978년에는 자본금 50억 원을 75억 원으로 증자해 부채비율을 751%로 낮췄으나 1979년에는 다시 938%로 늘어났다. 특히 1980년에는 자본금을 또다시 종전의 두 배나 되는 150억 원으로 증자했지만 부채비율은 1,507%로 더욱 상승했다. 이때 잉태된 (주)선경의 부실문제는 결국 2003년 SK글로벌 사태 로 이어졌다. 강화된 종합무역상사 지정 요건 항목 1975년 1976년 수출실적 5,000만 달러 이상 1억 달러 이상 자본금 10억 원 15억 원 수출품목 7개 이상 10개 이상 품목별최저액 50만 달러 이상 100만 달러 이상 수출국 수 10개국 이상 15개국 이상 국가별최저액 100만 달러 이상 100만 달러 이상 해외지사 수 10개 이상 15개 이상 특수지역수출 - 중동 15%, 중남미 3%, 아프리카 3% (수출실적기준) (주)선경, 중남미 시장 개척의 선봉에 서다 종합무역상사 제도가 도입되면서 비단 선경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계 전반에 걸쳐 다각화 열풍이 일어났다. 정부는 100억 달러 수출목표를 내세웠고, 업계에서는 이에 호응하기 위해 종합무역상사를 확장시켜 나가야만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다각화 전략은 종합무역상사의 수익성을 제고시키고 성장과 안정을 지속시킬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 됐다. 당시 종합무역상사의 현상유지는 정체 내지는 퇴보를 의미했기에 성장을 위해서는 기업 확장과 계열화가 불가피했다. 이 시기에 (주)선경이 계열화한 기업으로는 선경기계, 경성고무, 크로바상사, 영태전자공업 등이 있었다. (주)선경은 계열화기업 외에 수출품목 다양화 및 수출증진을 위해 선경머린, 선경식품, 선경반도체, 선경금속, 선경종합건설, 선경목재 등을 설립했다. (주)선경은 세계 어느 지역보다 중남미 시장 개척에 공을 들였다. 중남미는 자원이 매우 풍부한 지역이어서 당시 우리나라로서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개척해 나가야 할 보고였다. 다만 단기적으로 볼 때는 적잖은 난제가 도사리고 있는 지역이었다. 하지만 종합무역상사로 지정되기 위해서는 중남미지역 수출실적이 전체의 3% 이상 되어야 했기 때문에 이 지역을 주목했던 것이다. (주)선경은 중남미 시장 개척을 위해 1977년 2월 중남미사업본부를 신설했으며, 4월에는 중남미 공략 전진기지 겸 사령탑 역할을 맡기기 위해 미국 마이애미에 지사를 개설했다. 마이애미지사는 기존의 카라카스 지사, 부에노스아이레스 지사와 제휴해 적극적인 시장개척 활동을 전개했다. 그리하여 아르헨티나 및 칠레와 손잡고 SK그룹 60년사

45 현지합작법인 파고니아를 설립하고 칠레에서 도로 항만 공항 아파트 건설에 진출했다. 1978년 1월에는 독자 개발한 아세테이트 토우 제조기술을 남미에서 가장 큰 담배회사에 수출했다. 아르헨티나에 직물 원단 600만 달러어치를 수출하는 등 1979년에는 1,000만 달러가 넘는 수출실적을 올렸다. (주)선경은 중남미 시장 진출을 위해 해당국가와의 다양한 경제협력 활동을 전개했다. 1976년 5월 우리나라와 브라질이 무역확대, 합작투자 증진, 플랜트 수출, 건설 전자 농업 섬유 및 수산업 협력 등을 증진시키기 위해 한 브라질 경제협력위원회가 발족하면서 최종현 선대회장이 한국 측 대표로 선임됐고, 1977년 4월에는 위원장을 맡아 양국간의 경제협력에 기여했다. 또 1978년 말 콜롬비아 정부로부터 명예영사로 추대됐고, 1979년 7월 26일 우리나라 정부로부터 콜롬비아 영사인가장( 領 事 認 可 狀 )을 받았다. 그리고 1984년 12월에는 콜롬비아 정부로부터 양국 간의 관계 증진에 이바지한 공로로 공로훈장 코멘다더 를 받았다. 이 지역과의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져 최신원 SKC회장이 한국-브라질 소사이어티(KOBRAS) 회장과 브라질 명예영사를 맡고 있다. 또 SKC는 2012년 12월 SKC-브라질 인턴십 프로그램 협약을 체결하고 2013년부터 2014년까지 2년간 브라질 유학생들을 SKC 인턴사원으로 채용해 6주간 연구활동에 참여시킬 예정이다. 브라질 정부가 인재양성 계획으로 추진하고 있는 국경 없는 과학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한국에 유학하고 있는 이공계 분야 석사와 박사과정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매출 1,000억 원과 수출 2억 달러 시대 열다 최종현 선대회장이 제2의 창업 을 선언했던 1975년 하반기부터 우리나라 수출이 회복세를 찾고, 강력한 소비억제 정책에 힘입어 수입이 안정됨으로써 국제수지 압력이 감소되기에 이르렀다. 침체된 불황국면도 점차 회복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안정 기반 위에 올라섰다. 경기가 회복국면에 접어들자 선경의 경영실적도 호전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선경은 각 부문별로 눈에 띄게 매출실적이 향상되기 시작했다. 결국 선경은 불황을 극복하고 1975년 직물 부문에서 5,400만 원, 원사 부문에서 11억 8,200만 원의 흑자를 기록, 1974년에 비해 178% 증가한 경영실적을 올렸다. 게다가 선경직물은 1975년 상반기에 1,763만 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려 국내 직물업체 중에서 수출랭킹 1위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회복세는 다음해까지 계속 이어져 1976년 선경의 주력기업 매출총액은 1,160억 6,000만 원을 기록, 창업 이래 처음으로 1,000억 원대를 돌파했다. 이와 더불어 수출 실적도 급신장했다. 1977년 (주)선경은 해외 지사 24개, 수출대상 국가는 80여 개국에 달했다. 수출 취약지역으로서 다른 종합무역상사들이 경시해 오던 중동지역에서는 180%의 높은 수출신장률을 기록했으며, 중남미지역에서는 698%, 그리고 아프리카지역에서는 74%의 신장률을 기록함으로써 업계를 놀라게 했다. 수출구성비 역시 1976년에 비해 경공업제품 수출비중이 크게 줄고 중화학공업제품의 수출비중이 증대돼 수출전도를 밝게 했다. 이로써 1977년 (주)선경은 1976년 대비 89% 증가한 2억 1,469만 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렸고, 제14회 수출의 날에는 2억 달러 수출탑 을 수상했다. 1977년 12월 22일 장충체육관에서 거행된 이 기념식은 사상 첫 수출 100억 달러 달성을 기념하기 위해 SK그룹 60년사

46 100억 불 수출의 날 행사로 치러져 더욱 뜻 깊었다. (주)선경은 1977년 2억 달러 수출탑 을 수상한 데 이어 1979년에는 3억 2,900만 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려 3억 달러 수출탑 을 수상했다. 특히 우리나라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1980년에는 4억 3,000만 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림으로써 전체 수출총액 175억 달러의 40분의 1을 담당해 수출입국에 기여했다. 1976년 6월 선경은 창립 23년 만에 자체 사옥을 마련했다. 1956년 종로구 연지동에 선경직물(주) 서울연락사무소를 개설한 이래 그동안 선경은 당주동, 소공동, 을지로, 견지동 등지로 옮겨 다녔다. 제조업이 주업종이었던 선경의 특성상 생산설비 투자에 치중하면서 자체 사옥의 필요성이 절실하지 않았다. 여기에 외형보다 내실을 중요시한 최종건 창업회장과 최종현 선대회장의 실용주의도 큰 이유였다. 그런데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모든 직원을 수용할 만한 빌딩을 임차하기가 어려워졌고, 사내에서도 사옥 건축을 희망하는 사원들의 목소리도 높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을지로 입구에 위치한 동화빌딩을 구입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섬유기업임에도 사가( 社 歌 )가 없다는 사원들의 지적에 따라 1977년 1월 11일 선경의 노래 를 제정, 발표했다. 선경의 노래 는 기업은 영구히 존속 발전해야 한다 는 선경의 기업관을 표현해낸 곡으로 참신하고 발전적인 선경상을 심어주고 일체감을 형성시키고자 하는 뜻을 담고 있었다. (주)선경의 수출신장률 (단위: 천 달러) 내역 수출실적 113, , , , ,247 수출신장률 100% 89% 37% 12% 30% 당기순익 654 1,945 2,992 4,753 2,753 순익신장률 100% 202% 50% 63% -26% 선경의 새로운 위상, 기업공개에 나서다 (주)선경은 1977년의 기본목표로 기업공개 등 8개 항목을 설정했다. 특히 1977년 선경의 기본 목표 가운데 기업공개는 새로 추가된 종합무역상사 요건의 하나로 반드시 해결해내야 할 과제였다. (주)선경은 6월 20일과 21일 이틀 동안 신주(공모주) 및 구주(매출주) 400만 주에 대한 청약을 접수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주)선경의 주식청약 비율은 51.4대 1이었으며, 구주 청약은 18.2대 1의 경쟁을 보였다. 청약 접수를 마친 (주)선경은 6월 30일에는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신규로 상장했다. (주)선경은 기업공개에 앞서 사원 369명으로 구성된 우리사주조합 을 발족시켰다. 우리사주조합의 목적은 자사주 보유를 통한 애사심 함양, 노사협조, 사원복지 향상, 사원 지주를 통한 주가안정 등에 있었다. 관계사의 기업공개도 이어졌다. (주)선경에 앞서 1975년 12월에는 해외섬유가 기명식 우선주를 공개했다. 선경 계열사의 기업공개로는 첫 번째 사례였다. 1976년 6월에는 선경합섬이 기업공개를 단행했다. 이에 앞서 최종현 선대회장은 선경합섬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1976년 2월 25일 선경합섬과 선경화섬을 합병했다. 양사의 합병은 선경합섬이 선경화섬을 흡수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선경합섬은 일본 데이진과의 합작회사였기 때문에 기업공개촉진법상 굳이 기업공개를 하지 않아도 됐다. 데이진은 기업공개에 따르는 지분율 감소로 인한 경영 참여권 약화를 우려했다. 그러나 선경은 기업공개촉진법의 시행으로 비공개기업보다는 공개기업이 기업경영상 유리할 뿐 아니라 기업발전이라는 장기적 안목에서도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데이진을 설득했고, 데이진은 결국 이에 동의했다. SK그룹 60년사

47 선경종합건설 설립, 건설업에 뛰어들다 년대 중반 이후 중동 특수가 일면서 우리나라는 중동의 오일머니를 잡기 위해 너나할 것 없이 중동 건설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해외건설업 진출을 검토하고 있던 (주)선경은 1977년 6월 건설회사 설립을 추진했다. 플랜트 수출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였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이미 1977년 5월 사우디아라비아 기업인들과 자본금 200만 달러 규모의 현지합작 건설사 설립에 합의한 상태였다. 선경이 40%의 지분을 갖고 사우디아라비아의 4개 업체가 60%를 부담하기로 했다. 다만 경영은 최종현 선대회장이 맡는다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정부로부터 건설업 허가를 받는 일은 쉽지 않았다. 중동 건설붐에 따른 건설회사의 난립에 따라 정부가 신규면허 허가를 억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10억 달러 규모의 석유화학 플랜트 건설과 3억 달러 규모의 리야드시 조경공사 및 3억 달러 규모의 제다 하수로 공사에 관한 오퍼를 받은 상태였기에 건설회사 설립을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합작 건설사 설립이 어려워지자 1977년 8월 1일 협우산업을 인수하고 상호를 선경종합건설로 변경했다. 새 회사의 명칭에 종합 이라는 단어를 붙인 이유는 토목 건축 등 일반적인 건설업종뿐만 아니라 플랜트 건설 등 특수건설과 엔지니어링에 이르기까지 모든 건설업종을 폭넓게 추진하기 위해서였다. 선경종합건설은 1977년 12월 31일 토목 건축 면허업체인 삼덕산업을 흡수합병해 규모를 키웠다. 그러나 선경종합건설은 출범 6개월이 지나지 않아 시련을 겪었다. 때마침 불기 시작한 부동산 과열경기에 대한 정부의 규제조치로 민간 부문 건설이 위축된 데다가 인플레 억제를 위한 금융긴축으로 업계의 자금사정은 더욱 나빠졌다. 정부에서는 공공 부문의 공사발주조차도 제한했고, 국내 기업 간 과당경쟁으로 해외에서 출혈공사의 폐단이 발생함에 따라 이를 막기 위해 수주제한조치를 발동했다. 선경종합건설이 부딪힌 또 하나의 벽은 수주 자격 문제였다. 이미 어떠한 대규모 공사도 맡을 수 있는 시공 능력은 갖추고 있었지만 협우산업 및 삼덕산업으로부터 승계한 공사실적 자체가 미미했기 때문에 일정규모의 실적을 요구하는 공공공사에 응할 자격이 없었다. 이러한 어려움은 해외 건설시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국내 건설업체의 해외 진출은 1965년부터 시작됐다. 따라서 1977년에 해외 진출을 시도한 선경종합건설은 12년이라는 핸디캡을 절감해야만 했다. 선경종합건설은 건설실적을 쌓기 위해 워커힐아파트를 비롯해 그룹 내 자체공사를 맡아 시공했다. 1978년 9월 아시아에서 최초로 열린 세계사격선수권대회 선수촌으로 건설된 워커힐아파트 11개 동(432세대) 건설공사는 선경종합건설이 건설회사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다지는 계기가 됐다. 이 공사에서 선경종합건설은 공사 능력을 십분 발휘해 기업 이미지를 크게 높였다. 선경종합건설은 이 외에도 선경화학공장 선경합섬공장 용수비축탱크 선경배구단 체육관 (주)선경 부산 보세창고 등 그룹 내 공사를 맡았다. 충주-이천 간 IBRD차관 도로공사, 제천-영월 간 도로개수 및 포장공사, 괴산 지구 저수지 공사 등을 수행해 1977년 한 해 동안 총 100여억 원의 공사실적을 쌓았다. 선경종합건설은 1977년 12월 7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 1978년에는 수도 리야드에 지사를 개설하고 수주활동을 전개했지만 실적은 미미했다. 그럼에도 1979년 7월 사우디아라비아 황태자궁의 냉방 환기 시설공사에 이어, 1980년 9월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위원회가 발주한 주베일 남부지역 3번 해수로 공사 등 중소규모 공사를 수주해 실적을 쌓아나갔다. 선경종합건설은 1984년 3월 1일 상호를 선경건설로 변경하고 1984년 8월에는 엔지니어링 부서를 신설했다. 이후 선경건설은 유공, 선경합섬, 선경화학 등 그룹 내 SK그룹 60년사

48 플랜트 발주공사를 맡으면서 안정적인 성장 기반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까지 도급공사의 대부분이 그룹 내의 발주공사에 치우치는 문제점을 해결하고 글로벌리제이션 시대에 부응하기 위해 선경건설은 부설 연구소를 설립하면서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말레이시아(1983년 7월)와 인도네시아(1987년 3월)에의 성공적인 진출을 발판삼은 선경건설은 1991년 5월 미국 진출에 성공했다. 미국의 백텔사와 독일의 짐머사를 제치고 이스트만코닥사가 발주한 PET 플랜트를 턴키 베이스로 수주한 것이었다. 1991년 9월에는 태국 국영석유공사(PTT)와 석유터미널 확장공사 계약을 체결했다. 선경건설의 잇따른 해외 대형공사 수주는 기본설계와 상세설계는 물론 기자재 공급과 시공까지 일괄하는 턴키 베이스 방식이라는 점과 세계 유수의 건설업체를 따돌리고 수주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80년대 선경건설은 국내 터널공사에서 확실한 이미지를 심어갔다. 1990년에 참여한 창원터널 공사에서 선경건설은 당시로서는 국내 최장(2,340m)의 터널을 NATM(굴착식) 공법으로 시공함으로써 터널공사에 관한 한 최고의 실력을 갖춘 업체로 부상했다. 1987년 시공한 부산 구서동 2차 아파트는 반주문식 아파트 (Easy Oder System)를 도입, 입주자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성과에 힘입어 선경건설은 1991년 국내 도급순위 9위를 차지, 마침내 10위권에 진입했다. 1981년 국내 도급순위 50위에서부터 이룩해낸 도약이었다. 불가능에 도전, 폴리에스터 필름 개발에 성공하다 선경화학에서 이름을 바꾼 SKC의 폴리에스터 필름은 한때 세계 150여 개 국으로 수출되면서 세계 수요의 10% 이상을 충당할 정도였다. SKC가 폴리에스터 필름의 선두기업으로 자리잡기까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낸 열정과 땀이 곳곳에 배어 있었다. 폴리에스터 필름 개발은 폴리에스터 원사공장 건설 못지않은 난제의 연속이었기 때문이었다. 폴리에스터 필름은 우수한 물리적, 화학적 특성을 지니고 있어 다양한 용도의 제품원료로 사용되는 고부가가치 상품이었다. 컴퓨터와 오디오의 자기테이프, 콘덴서, 엑스레이 필름, 마이크로필름, 항공사진용 필름 등 용도가 매우 다양했다. 1970년대 말 폴리에스터 필름의 세계 수요가 급증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선경화학이 폴리에스터 필름을 생산하기 전까지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다. 게다가 당시 폴리에스터 필름의 제조기술은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의 7개 회사가 독점하고 있었다. 폴리에스터 필름의 사업성을 간파한 선경은 1973년 석유화학공업 진출을 시도하면서 기술보유 업체들과 기술협력을 타진했으나 반응은 냉담했다. 정밀기술을 필요로 하는 폴리에스터 필름을 한국이 생산하기에는 무리라는 이유를 내세웠다. 이때부터 폴리에스터 필름 개발의 대장정이 시작됐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폴리에스터 필름 개발을 추진하는 동시에 우선 대규모 매그네틱테이프 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폴리에스터 필름 개발에 따르는 위험부담을 줄이려는 위험회피 전략의 일환이었다. 선경의 오디오테이프는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첫 수출에 성공했다. 폴리에스터 필름 독자개발이라는 최종현 선대회장의 결단에 반대의견이 분분했다. SK그룹 60년사

49 그러나 최종현 선대회장은 비싼 돈으로 기술을 들여와 선진업체의 뒤만 따라갈 수는 없다는 뼈저린 자각에서 자체 개발에 박차를 가하도록 지시했다. 폴리에스터 필름 개발은 선경합섬이 담당했으나 일본 합작투자회사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연구개발에 적지 않은 난점이 있어 1976년 12월 16일 선경석유의 사명을 선경화학으로 변경하고 이를 맡겼다. 선경화학은 1976년 12월 KIST와 연구계약을 체결하고 개발에 박차를 가했지만 개발과정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어려웠다. 기술 개발에 착수한 지 1년이 지났음에도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자금사정마저 여의치 않아 최고경영진은 자금조달을 위해 매일처럼 대책회의를 열었다. 그럼에도 최종현 선대회장과 개발팀, 현장 기술진들은 폴리에스터 필름을 반드시 개발해 내겠다는 일념으로 크고 작은 어려움을 헤쳐 나갔다. 마침내 스케일업 칩(Scale-up Chip)의 필름 압출에 성공하고 파일럿 및 풀 스케일 테스트에도 성공하자 1977년 10월 연산 900톤 규모의 폴리에스터 필름 생산공장 건설에 착공했다. 1977년 12월 시제품 생산에 성공하자 최종현 선대회장과 개발에 관여했던 관계자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시제품은 시장이 요구하는 품질 수준에는 다소 미치지 못했지만 완제품 생산에 한발 더 다가선 셈이었다. 하지만 시제품 생산의 감격과 환희는 잠시였다. 선경화학의 앞길에는 폴리에스터 필름 개발과 관련된 길고 긴 싸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선경화학이 파일럿 및 풀 스케일 테스트에 성공했다는 정보를 입수한 데이진은 태도를 바꿔 한국의 수출경쟁국인 대만에 기술을 제공하기로 결정하는 한편, 한국측 합작회사인 제일합섬과 기술공여계약을 체결했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제일합섬의 기술도입이 실현된다면 선경화학이 쏟은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될 것이 분명했다. 1978년 1월 선경화학은 폴리에스터 필름 개발과정과 성공 사실을 처음으로 언론에 공개했다. 일종의 정면 돌파이자 반격이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폴리에스터 필름 제조업이 수출산업으로서의 국제경쟁력을 갖도록 하기 위해 당분간 외국기술 도입을 허가해서는 안 된다며 정부에 합당한 조처를 강력히 건의했다. 그러자 제일합섬은 경제성 관점에서 고려해야 할 사항이라며 경제기획원에 기술도입 신청서를 제출했다. 선경도 물러서지 않고 정부에 진정서를 내는 한편, 언론과 국민을 상대로 정당성을 설득해 나갔다. 선경화학은 1978년 2월 정부에 국산 기술제품에 대한 보호조치를 요청했다. 물론 제일합섬과의 싸움은 기업의 사활이 걸린 중대한 사안이긴 했지만 선경은 국내 기술개발의 육성과 보호라는 명분을 지니고 있었기에 당연한 요청이었다. 선경화학과 제일합섬의 사활을 건 싸움이 계속됐고, 제일합섬은 선경화학이 생산하는 폴리에스터 필름이 오징어 포장용으로밖에 쓸 수 없는 조악품 이라고 주장하는 등 노골적인 비방도 서슴지 않았다. 제일합섬의 비방을 불식시키기 위해 선경화학은 수원공장을 완공하고 1978년 6월 국제 수준의 폴리에스터 필름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국제 규격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제품이었다. 국제 수준의 폴리에스터 필름을 생산해내자 선경화학의 기술보호 요청을 검토해 오던 정부는 최종심사 결정을 내렸다. 선경화학이 개발한 폴리에스터 필름이 국내에서 개발한 신기술이 확실하며 기술 경제적 파급 효과가 매우 높고 선경화학이 오는 1979년까지 국제 가격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3,900톤의 생산시설을 갖출 수 있다고 인정했다. 또 향후 4년 동안 선경화학의 기술을 보호한다고 결정했다. 그후에도 공방이 계속되다가 여론과 언론에 밀린 상공부가 폴리에스터 필름 국산 신기술제품 보호 결정 재검토 요청을 철회함으로써 10여 개월을 끌어온 폴리에스터 필름 기술보호 시비가 일단락됐다. 선경화학의 정도와 명분이 승리를 거두는 순간이었다. 선경화학의 폴리에스터 필름은 향후 4년 동안 기술보호조치를 받게 됐다. 이 조치로 제일합섬이 추진해 온 고밀도 필름 제조기술의 도입은 불가능해졌다. 선경화학은 전자제품 신모델 및 개발품 경진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할 만큼 우수한 폴리에스터 필름을 생산하고 있었다. 또 더욱 높은 수준의 기술이 요구되는 5마이크론의 초박 폴리에스터 필름 시험생산을 마치고 양산 단계에 들어간 상태였다. SK그룹 60년사

50 따라서 선경화학의 폴리에스터 필름에 대한 기술보호 결정은 당연한 조치였다.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이뤄졌지만 선경화학에 대한 정부의 기술보호조치는 선경에 큰 힘이 됐다. 폴리에스터 개발로 축적된 자금은 이후 선경이 유공 인수자금으로 사용하는 등 선경의 시드 머니 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폴리에스터 필름 개발은 선경에 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선경화학의 폴리에스터 필름 개발은 또한 산학협동 모범 사례의 하나로 높이 평가되었다. 폴리에스터 필름의 핵심 칩(Chip)은 KIST가 개발해냈고, 선경은 이 칩을 원료로 해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폴리에스터 필름 연신공정에 성공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필름 개발에 따르는 위기와 난관에도 불구하고 KIST와 필름 개발팀에 대한 신뢰를 거두지 않았다. 1978년 12월 최종현 선대회장은 폴리에스터 필름 공동 개발에 공헌한 KIST의 노고를 위로하고 산학협동에 의한 기초기술 개발을 독려하는 뜻에서 기술 개발 연구기금 10억 원을 KIST에 출연했다. 한편 최종현 선대회장은 1980년 5월 1일 한국경영대상 시상식에서 한국의 경영자상 을 수상했다. 한국능률협회가 1969년에 제정한 한국경영대상은 기업의 국제경쟁력 배양을 촉진, 독려하기 위해 경영 교육 등 10개 부문에 걸쳐 시상하고 있었다. 선경은 이미 1978년에 교육대상을 받은 바 있었다. 폴리에스터 필름의 용도 산업이 고도화되고 소재기술이 발전하면서 폴리에스터 필름의 용도도 매우 다양해 졌다. 과거 비디오테이프 등 자기기록 용도에서 광학용, 태양광용, 산업용, 포장용 등의 핵심소재로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광학용: LCD(Liquid Crystal Display), PDP(Plasma Display Panel) 등 평판디스플레이(Flat Panel Display)의 핵심 소재용으로 사용 -태양광용: 태양전지의 내구성을 높이고 효율을 극대화하는 태양소재 -산업용: 콘덴서용, 전기절연용, 레이블용 기재, 카드용 기재 등 -포장용: 스낵포장용, 용기 라벨용 등으로 사용. 특히 높은 회수율로 재활용이 잘 되는 열수축필름과 매립하면 흙으로 돌아가는 생분해필름은 친환경 첨단제품 국내 최대 호텔로 성장한 쉐라톤워커힐 년 3월 워커힐 인수 당시 선경은 1973년이 저물기 전에 객실 500실 이상의 신규호텔을 착공하겠다고 정부와 약속했다. 워커힐을 세계적인 호텔로 성장시켜 우리나라의 관광산업을 이끌겠다는 야심 찬 포부였다. 선경은 워커힐 인수 후 워커힐 개발계획 이라는 마스터플랜을 수립했다. 신규호텔 건립과 더불어 종합휴양센터를 건립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호텔 인수금의 네 배가 넘는 자금을 투자하기로 했다. 선경은 신규호텔 공사를 1975년 5월까지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1973년 12월 20일 기공식을 가졌다. 그러나 착공 시점에 터진 제1차 석유파동이 몰고 온 국내외 경제불황과 최종건 창업회장의 타계라는 내환으로 인해 공사 일정을 미루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 인수 당시 1등급이었던 워커힐호텔은 꾸준한 시설 확충과 영업실적 향상으로 1975년 3월 26일 특급호텔로 승격됐다. 국내경기가 회복되고 외래 관광객이 증가하자 워커힐은 1976년 10월 15일 신규호텔 기공식을 다시 갖고 공사를 재개, 고객 수용 능력을 세 배 정도 늘렸다. 규모의 확대에 따라 서비스의 향상과 더불어 국제적 호텔로서 갖춰야 할 판매망 확산, 서비스체계 정립, 홍보체계 구축 등 경영기술의 개선 또한 시급한 문제였다. 이에 워커힐은 신규호텔 개관 전에 외국 일류 호텔체인의 경영기술을 도입하기로 하고 1977년 11월 호텔 쉐라톤(Sheraton International Inc.)과 프랜차이즈 형태의 기술제휴 계약을 체결했다. 미국 보스턴에 본부를 둔 쉐라톤은 당시 세계 40개국에 430여 개의 체인망을 갖고 있었다. SK그룹 60년사

51 1978년 7월 12일 180억 원의 공사비가 투입된 워커힐 신규호텔을 22개월 만에 완공하고 명칭을 워커힐에서 쉐라톤워커힐 로 변경했다. 신규호텔은 지하 4층, 지상 18층 연건평 1만 5,900평의 국내 최대 규모이자 국제적 매머드 호텔이었다. 객실이 538개에 달했고, 대규모 극장식당과 카지노, 각국 요리 식당 등 세계 정상급의 시설을 갖췄다. 신관 개관으로 쉐라톤워커힐은 객실 수가 806개로 늘어났다. 쉐라톤워커힐은 1978년 9월 서울에서 개최된 제42회 세계 사격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임원과 선수들에게 신관 객실을 숙소로 제공했다. 이에 따라 관광호텔로서의 이미지를 국제적으로 알릴 수 있었다. 이어 1979년 4월에는 PATA(태평양지역관광협회) 총회 를 유치했다. 쉐라톤워커힐은 모든 회의 일정을 무난히 마침으로써 다시 한 번 국제적으로 인지도를 높였다. 이 외에도 1983년 5월 납치된 중국 민항기가 서울에 불시착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민항기의 승객과 승무원이 투숙했고, 9월에는 제53차 ASTA(미주지역여행협의회)가 열렸다. ASTA 서울 총회는 당시까지 우리나라에서 열렸던 국제회의 중 가장 규모가 켰다. 이밖에 83미스 영 인터내셔널대회 를 비롯해 태평양지역 육군 세미나, 한중경제각료회의, 의료보험장학회 세미나, 국제금융 세미나, 아시아지역방송협의회의, 국제무역사무국회의 등 비중 있는 국제 행사가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잇달아 열렸다. 특히 쉐라톤워커힐은 대북 관련 행사장으로서 위상을 더욱 드높였다. 1985년 두 차례(8차 10차)의 남북적십자회담을 개최한 것을 시작으로 남북이산가족 상봉, 남북총리회담, 남북예술단, 남북청소년축구단, 평양농구단, 평양교예단 등 총 9차례의 대북관련 행사를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2000년 11월에는 면세점 사업에 진출했으며, 12월에는 국내 최고의 시설과 전망을 갖춘 고급 맨션인 애스톤하우스를 오픈했다. 선경합섬, 자체기술로 폴리에스터 수지 개발하다 선경합섬이 1969년 국내 최초로 폴리에스터 원사를 생산하기 시작한 이후 10년이 지나는 사이 우리나라는 세계 10대 폴리에스터 섬유 생산국 대열에 올라섰다. 선경합섬은 과감한 연구개발 투자로 고섬광성( 高 閃 光 性 ) 필라멘트사, 카티온 다이어블(Cation Dyeable)사, 옥타로발사, 제전성( 制 電 性 ) 폴리에스터 섬유, 난연성( 難 燃 性 ) 폴리에스터 섬유 등을 개발하면서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선경합섬은 일본 주간 경제지 다이아몬드에서 선정하는 산업별 세계 50대 기업 가운데 합섬 부문에서 1978년에 42위에 랭크된 데 이어, 1979년에는 34위를 기록했다. 선경합섬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설비확장으로 사업영역을 넓혀나갔다. 당시 선진국 화섬업계에서는 품질이 우수한 고순도 PTA(Purified Terephthalic Acid)로의 원료 전환이 시작되고 있었다.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선경합섬도 PTA로의 전환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DMT를 PTA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생산설비의 개선과 교체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과 고도의 기술이 뒤따라야 했다. 선경합섬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77년 2월부터 울산공장의 각 부문별 생산라인을 한 개씩 PTA 시스템으로 바꾸어 시험가동에 들어갔다. 그 후 반 년 만에 울산공장의 모든 생산라인을 PTA 시스템으로 전환한 데 이어 같은 해 12월에는 수원공장의 모든 생산공정을 PTA로 전환하기에 이르렀다. 1년 6개월 만에 독자적으로 해결해낸 것이었다. 선경합섬은 연간 5,000여 톤의 DMT를 PTA로 대체함으로써 원가절감 효과를 얻었다. PTA 전환작업은 선경합섬이 첨단섬유 분야에서 세계 일류기업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SK그룹 60년사

52 1989년 9월에는 폴리에스터의 원료인 DMT/PTA 병산공장을 완공했다. 울산 DMT/PTA 공장은 연간 DMT 10만 톤, PTA 16만 톤 규모였다. DMT는 폴리에스터 필름, 폴리에스터 특수사, 접착제 등 고부가가치 상품에 쓰이는 원료였고 PTA는 일반 폴리에스터에 사용되는 원료였다.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던 DMT/PTA 병산으로 선경합섬은 수입대체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됐다. 경영 파트너였던 데이진이 1978년 8월 철수한 후 선경합섬은 자체 기술로 폴리에스터 수지 개발에 나서 1978년 10월 상압용( 常 壓 用 ) 폴리에스터 수지, 1979년 3월에는 내압용기용( 耐 壓 容 器 用 ) 고점도( 高 粘 度 ) 폴리에스터 수지 개발에 성공했다. 폴리에스터 수지는 유리병을 대체할 수 있는 무독성 식품용기 원료로서, 상압용 수지는 간장 식용유 등의 용기를, 내압 고점도 수지는 콜라나 사이다 같은 탄산음료용 용기를 만드는 데 사용됐다. 우리나라 화섬업계에서는 1978년 11월부터 폴리에스터 병 개발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불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뒤늦게 비섬유제품에 눈을 돌린 것이었다. 선경합섬은 우리나라 화섬업계의 흐름보다 한발 앞서 청량음료 및 간장 등 식품업계가 유리병 확보난으로 자주 정상가동에 지장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착안, 1978년 10월 폴리에스터 병을 개발해냈다. 1978년 국내기관 검사에서 식품 용기로 적합하다는 적격 판정을 받았고, 일본 후생성 산하의 식품위생협회에서도 공인을 받았다. 1980년 7월에는 미국 FDA(식품의약청)로부터 식품 용기로서 인체에 무해하다는 판정을 받았고, 세계 최대 탄산음료 회사인 코카콜라로부터도 품질이 우수해 코카콜라 병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판정을 받았다. 세계 몇 개의 회사만이 제조기술을 갖고 있던 상황에서 폴리에스터 병에 대한 테스트 결과가 코카콜라 본사가 규정하고 있던 기준치보다 훨씬 양호한 품질로 판정받은 것은 국내 기술진의 개가였다. 1978년 8월에는 경영파트너였던 데이진이 선경합섬의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뗌에 따라 선경의 단독경영 체제로 바뀌었다. 이후 선경합섬은 기업 변신을 위해 상호까지 변경했다. 1988년 5월 1일 상호를 주식회사 선경인더스트리로 바꾸었으며, 1998년에 다시 SK케미칼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1세기를 내다보며 SKMS 정립 선경이 다른 기업과 다른 특징 중의 하나는 선경만의 독특한 매뉴얼, 특유의 경영관리 체계가 있다는 점이었다. 경영관리 체계가 있는 기업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었다. 선경은 1970년대 중반부터 구체화시켜 왔던 경영이념과 경영기법을 1979년 집대성해 SKMS(선경경영관리체계; Sunkyong Management System)를 완성했다. 1979년 3월 15일부터 3박 4일 동안 관계사 모든 임원이 참석한 세미나에서 난상토론을 거쳐 선경의 경영관리 지침을 확정했는데, 이것이 곧 SKMS였다. SKMS 정립의 첫걸음은 1975년 경영기획실이 경영관리 체계를 수립하라는 최종현 선대회장의 지시에 따라 경영 기본이념과 경영관리 각 요소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체계화하는 작업에 들어가면서였다. 경영기획실은 수년간의 연구와 토론과정을 거쳐 선경의 경영관리 체계 를 정리해냈다. 하지만 최종현 선대회장은 경영기획실의 정리 내용이 너무 이론에 치우쳐 있다고 판단하고 이를 수정하도록 했다. 경영기획실은 최종현 선대회장의 실제 기업경영을 통해 얻은 경험을 접목시켜 1979년 SKMS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SKMS의 가장 큰 바탕은 역시 최종현 선대회장의 경영철학이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SKMS를 정립한 것은 자신이 체험한 경영현실을 후배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라고 분명히 밝혔다. SKMS의 핵심은 사람을 활용하는 문제 에 겨눠져 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21세기에 선경이 서구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그들이 이미 경쟁우위를 확보하고 있는 마케팅, 재무, R&D가 아니라 지난 300년 동안 서구의 경제학이 해결하지 못한 SK그룹 60년사

53 부서장이 활용할 수 있는 관리법을 보급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 실제 경영에는 경영학에서 미처 다루지 못했거나 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 가운데 경영활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요소들이 있었다. 이 요소들은 주로 사람의 속이나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기 때문에 겉으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사람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는 데는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이 점을 중요하게 여겼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SKMS는 서양식 경영모델과 동양식 경영모델을 사람에 중점을 두어서 혼종시킨 것 이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덕으로써 인간의 보이지 않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는 인간의 마음과 두뇌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또한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을 매니저로 만드는 것이 SK의 철학이라고 했다. (송병락 서울대 교수의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가 되는 법 에서) 선경은 1979년 3월 15일 관계사 모든 임원이 참석한 세미나에서 난상토론을 거쳐 1970년대 중반부터 구체화시켜 온 경영이념과 경영기법을 집대성해 SKMS를 완성했다. 문제 중 하나인 사람의 능력을 활용하는 문제라고 인식하고, SKMS를 통해 이를 선경의 핵심 경쟁우위 요소로 삼으려 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사람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 를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동적 요소 라고 전제하고 이와 상반되는 개념인 정적 요소 를 관리하는 것만으로는 경쟁우위를 점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경쟁우위에 서려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정적 요소로만 경영(최종현 선대회장은 Conventional Management라고 정의)을 해서는 불가능하다. 사람 속에 들어 있는 생산적 자질, 이것을 캐내어 활용해야 경쟁우위에 설 수 있다. 이것이 동적 요소 관리이며, 동적 요소 관리는 인사 부서에서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매일 접하는 SK그룹 60년사

54 선경화학, 비디오테이프 개발에 성공하다 폴리에스터 필름 개발에 성공한 선경화학은 비디오테이프로 눈길을 돌렸다. 하지만 비디오테이프 역시 어느 선진업체도 기술을 이전해주려 하지 않았다. 선경화학은 폴리에스터 필름 개발 때와 마찬가지로 독자 개발로 방향을 잡았다. 비디오테이프 또한 폴리에스터 필름 못지않은 시행착오와 좌절 끝에 1980년 12월 5년간의 연구개발 끝에 마침내 개발에 성공했다. 미국 서독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컬러 비디오테이프를 개발하는 개가를 거둔 것이다. 선경화학은 컬러 비디오테이프 개발과 동시에 동남아시아 시장에 시험 수출해 호평을 받았으며, 뒤이어 미국 수출의 물꼬를 텄다. 선경화학의 컬러 비디오테이프 개발 소식은 국내 시판을 앞둔 1981년 2월 말 무렵에야 국내 언론에 알려졌다. 선경화학의 비디오테이프는 해외시장에서의 좋은 반응에 힘입어 1981년 3월 국내 시판에 들어갔다. 선경화학은 1981년 8월 컴퓨터용 기록매체인 플로피디스크 개발에도 성공, 본격 생산에 들어갔으며, 컴퓨터용 테이프 개발에도 성공해 1983년부터 시험생산에 들어갔다. 이와 더불어 천안 비디오테이프 공장을 두 차례에 걸쳐 증설해 1984년에 연산 2,400만 개의 세계 굴지 비디오테이프 생산공장으로 발전시켰다. 1983년 4월 선경화학은 일본의 소니와 JVC 두 회사로부터 각각 베타(Beta)형과 VHS형 비디오테이프 판매 라이선스를 획득했다. 이들 라이선스를 획득하지 못하면 비록 비디오테이프 개발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세계 시장으로의 수출은 불가능했다. 1983년 4월까지 소니와 JVC로부터 비디오테이프 판매에 대한 라이선스를 획득한 나라는 미국 서독에 이어 우리나라가 세 번째였다. 선경화학의 비디오테이프 라이선스 획득은 폴리에스터 필름 개발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었다. 이로써 선경화학은 폴리에스터 베이스필름에서부터 비디오테이프, 플로피디스크에 이르기까지 일괄 생산이 가능해졌다. 세계 수준의 정밀화학 제품 메이커로서 선진 메이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었다. 선경화학의 비디오테이프는 2001년에 정부로부터 세계 일류상품으로 선정되기도 했고, 2005년에는 세계 4위의 위상을 자랑하기도 했다. 한편 선경화학의 폴리에스터 필름 개발에 따르는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 1976년 11월 17일 설립했던 선경매그네틱은 오디오 카세트테이프를 생산해 인기를 끌었다. 1979년에는 세계적 음반 메이커인 덴마크의 필립스사와 오디오 카세트테이프 수출계약을 체결함으로써 국내외에 제품의 우수성을 입증해 보였다. 선경매그네틱의 수출규모는 연평균 68%의 성장률을 보였다. 2000년대에는 선경매그네틱 제품이 전 세계 시장의 30%를 점유하기에 이르렀다. 1980년도 선경그룹 주력기업 재무 현황 (단위: 천 원) 회사 매출총액 부채총계 자본총계 부채비율 (주)선경 653,033, ,376,746 27,480,585 1,507% 선경합섬 138,499, ,328,357 17,312, % 선경화학 7,387,831 34,543,931 3,241,297-1,066% 선경매그네틱 5,457,927 4,189, , % 선경종합건설 11,804,968 17,193,249 2,371, % (주)워커힐 10,925,879 33,789, ,746 7,087% 계 827,109, ,422,074 45,369,875 1,367% SK그룹 60년사

55 10년 공들인 탑, 유공을 인수하다 년 8월 19일 대한석유공사(이하 유공)의 경영 주체였던 미국의 걸프(Gulf)가 보유 지분 50% 전부를 양도하고 철수함으로써 유공의 민영화가 재계 최대의 현안으로 부상했다. 1962년 설립 당시부터 지분 참여한 걸프는 유공의 주식 50%를 확보, 사실상 경영권을 행사해왔으나 1978년말 제2차 석유파동이 발발하면서 전략을 변경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걸프가 유공의 경영에 참여하게 된 것은 잉여 원유를 한국에 공급, 이익을 확대하기 위한 경영전략의 일환이었다. 때문에 걸프는 정유사업에만 전력을 기울였고, 1970년대 중 후반부터 유망사업으로 부상하고 있던 석유화학사업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걸프의 태도는 유공 석유화학팀과 갈등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또 1970년대 후반 정유산업에 대한 정부의 규제 강화에 따른 유공의 수익성 악화로 걸프는 그동안 누려왔던 양호한 투자수익 확보를 기대할 수 없게 됐다. 또한 적정이익 보장 등에 대해서도 정부와의 견해차로 빈번하게 마찰을 빚곤 했다. 게다가 걸프는 유공에 투자했던 약 3,000만 달러의 1.7배에 해당하는 5,100만 달러를 이미 벌어들여, 2차 주식인수 계약 때 명시한 주식이양 조건을 이행해야 할 시기를 맞고 있었다. 당시 걸프가 약속한 주식이양 조건이란 1974년 이후 배당금과 유보이익이 2차 투자액의 150%에 도달할 때까지만 유공의 주식 50%와 경영권을 보유하고, 그 이후에는 25%를 한국 정부에 이양한다는 협약이었다. 따라서 걸프로서는 어차피 지분 50% 가운데 25%를 한국 정부에 이양해야 할 입장이었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요인들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걸프는 유공 지분 50%에 대한 1980년 당시의 평가액 9,300만 달러를 회수하기로 결정하고 1980년 8월 19일 유공에 투자한 지 17년 만에 공식적으로 철수했다. 정부는 걸프 소유의 유공 지분 50%를 국영기업체인 석유개발공사에 매각하려 했으나 5 17계엄확대조치 이후 들어선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유공의 민영화 문제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원유의 거래 형태가 복잡하게 되면서 국영기업의 관료적 경영체제로는 원유확보가 어려워졌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정부 간의 공식거래를 진행하다가 거래 내용을 공개했다는 이유로 원유공급이 단절된 사례가 보도되기도 했다. 결국 세계적인 추세를 따를 수밖에 없었던 정부는 민간기업의 유연성을 원유도입에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원유수급에 더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걸프 소유 지분을 능력 있고 책임경영이 가능한 민간기업에 직접 양도하기로 결정하고 1980년 10월 유공의 민영화 방침을 발표했다. 소요 원유의 장기적 안정적 확보 능력 증설 및 비축사업을 계획 기간 안에 완공시킬 수 있는 자금조달 능력 산유국에 대한 투자유치 능력 정유회사의 경영관리 능력 국가 기간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기업의 성실성 산유국과의 교섭 능력과 실적을 인수자격 기준으로 제시했다. 정부의 발표로 인해 재계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국내 대기업들은 정부의 발표가 떨어지자마자 유공 인수를 위해 각축전을 벌였다. 선경을 비롯해 삼성, 남방개발, 현대, 효성, 동아건설, 대한항공, 코오롱 등이 뛰어들었고, 특히 삼성과 남방개발이 가장 적극적이었다. 유공의 인수 문제는 어느 기업이 인수하느냐에 따라 재계의 판도가 바뀌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1979년 매출액이 1조 1,208억 원에 달했던 유공은 국내 기업 최초로 매출액 1조 원대를 돌파한 유일한 기업이었다. 이런 초우량기업을 두고 재계가 경합을 벌이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유공을 선경이 인수한 것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인수를 위해서는 약 9,300만 달러의 자금이 필요했는데, 선경에게 그만한 자금 동원 능력이 없다는 것이 재계의 일반적인 평가였다. 하지만 1980년 11월 28일 당시 박봉환 동력자원부 장관은 재계를 SK그룹 60년사

56 경악과 충격에 빠뜨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유공의 지분 50%를 (주)선경에 매각해 국영기업체인 유공을 민영화시켰다는 것이었다. 선경의 유공 인수는 재계의 판도를 바꾼 일대 사건이었다. 유공 인수에 따라 1979년 재계 10위 안팎을 맴돌던 선경은 일약 재계 5위로 부상했다. 유공 인수는 선경의 오랜 숙원이었던 수직계열화의 실질적 완성을 의미하기도 했다. 1973년 석유에서 섬유까지 라는 수직계열화를 처음으로 천명한 이후 7년 만에 유공을 인수함으로써 선경은 비로소 석유 라는 한 축을 거머쥐게 됐다. 수직계열화의 완전한 완성은 1991년 울산컴플렉스의 준공으로 달성되지만 유공을 인수하지 못했다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선경의 유공 인수는 10년 적공( 積 功 )의 결과였다. 선경은 1973년 이미 경남 울주군 온산읍 일대에 15만 배럴 규모의 정유공장 설립을 추진한 바 있었다. 일본의 이토추 및 데이진과 합의해 성사 직전까지 갔던 정유공장 설립계획은 갑작스러운 제1차 석유파동으로 무기한 보류되고 말았다. 그러나 수직계열화에 대한 선경의 의지마저 꺾인 것은 아니었다. 정유공장 설립이 보류되자 최종현 선대회장은 중동 최대의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로 눈을 돌렸다. 수직계열화 완성과 정유회사 설립에의 의지를 버리지 않았던 최종현 선대회장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세심한 공을 들였다. 특히 야마니 석유상과는 깊은 유대관계를 맺기에 이르렀다. 이 같은 그의 노력이 빛을 본 것은 1차 석유파동 때였다. 아랍국 중심으로 결성된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아랍의 적대국인 이스라이엘과의 관계를 이유로 한국을 석유 금수국으로 분류, 석유 수출량을 50% 삭감하고 나머지도 10개월 안에 끊겠다고 통고했다. 석유가 산업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감안할 때, 이는 우리 경제에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다급한 상황이었다. 난국 타개에 고심하던 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 왕가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최종현 선대회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비공식 정부사절 자격으로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석유공급 재개의 물꼬를 텄다. 최종현 선대회장의 노력으로 우리나라는 1973년 12월부터 종전대로 원유 전량을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공급받게 됐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이후에도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외교 의 특사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1975년 최종현 선대회장은 다시 한 번 수직계열화를 위해 석유화학 사업에 도전했다. 1975년 5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화학공사(NCI)가 추진하는 연산 1만 톤 규모의 플라스틱 공장 건설계획에 10%를 투자하기로 합작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사정으로 중도에서 좌초되고 말았다. 거듭되는 좌절에도 석유에서 섬유까지 의 수직계열화를 이루기 위한 최종현 선대회장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1976년 (주)선경을 종합무역상사로 출범시킨 최종현 선대회장은 사우디아라비아 왕실 측근인사와 현지 대리인 계약을 맺고 현지 수출대금의 일부를 대리인 수수료로 지급했다.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자를 우리나라에 초청해 선경의 관계회사를 소개하는 등 다각적인 우호관계를 다져나갔다. 이런 가운데 최종현 선대회장은 1977년 10월 야마니 석유상의 초청을 받았다. 민간인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상의 공식초청을 받는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야마니 석유상은 최종현 선대회장에게 두 가지를 약속했다. 한국이 필요로 하는 만큼의 원유를 더 증량 공급해 주겠다는 약속 은 1980년 11월 선경이 유공을 인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야마니 석유상으로부터 선경이 정유사업을 하게 되면 상당량의 원유를 공급하겠다는 언질까지 받아냈던 것이다. 또 한국이 원유도입을 전담할 민간회사를 설립하고 민간 베이스의 원유도입을 교섭해 오면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는 약속 은 한국 정부가 한국석유개발공사(현 한국석유공사)를 설립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야마니 석유상이 민간회사를 설립하도록 종용한 것은 커미션이 관례화된 사우디아라비아의 거래관습을 염두에 둔 것으로 커미션 지불이 어려운 한국 정부의 입장을 배려한 행동이었다. 1980년 초 다시 원유수급 위기를 맞은 정부는 석유수급조절명령 을 발동했다. 석유수급조절명령의 핵심 내용은 정유회사가 스스로 원유를 도입하게 하는 한편, 국내 종합상사의 원유도입을 허용하며, 이에 필요한 자금은 정부가 지원한다는 것이었다. 정부의 석유수급조절명령 발동에 따라 효성, 현대양행, 동아건설, 대한항공, SK그룹 60년사

57 원유도입 교섭을 벌였지만 어느 기업도 선경을 따라올 수는 없었다. 선경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돈독한 관계를 바탕으로 장기 원유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1980년 7월 17일부터 국내 정유업계에 도입 원유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주)선경과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광물공사가 맺은 장기 원유공급 계약은 1980년에는 하루 5만 배럴, 1981년에는 하루 7만 배럴, 1982년에는 하루 10만 배럴을 공급받기로 돼 있었다. 5만 배럴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규모였다. 최규하 대통령이 1980년 5월 산유국을 찾아가 석유도입 외교를 벌였지만, 어느 나라도 원유를 공급해 주겠다는 확약을 해주지 않을 정도였다. 정부의 석유수급조정명령에 의해 삼성물산, 남방개발 등이 1일 5,000배럴 정도의 원유를 도입한 것도 큰 성과로 여겨지던 시기였다.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장기 원유공급 계약은 선경이 유공을 인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정부가 유공의 인수자로 선경을 선정한 이유에 대해 우리나라 민간종합상사로서는 처음으로 하루 상당량의 원유를 유공에 공급하고 있고, 앞으로도 원유 추가확보의 잠재 능력이 비교적 양호한 편이며, 산유국과의 친분관계도 두터워 오일머니의 유치 능력이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고 한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었다. 또한 장기 원유공급 계획에 의해 선경은 알 사우디 은행 을 통해 1억 달러의 차관을 끌어올 수 있었다. 유공 인수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자금 문제를 오일머니 로 해결하게 된 셈이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의 차관 주선은 정부 당국자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차관도입 당시 정부의 외환보유고는 거의 바닥을 드러낸 상태였고, 정부가 나서서 차관을 도입하려 해도 5 18 광주민주화운동 이후의 정국 불안으로 차관을 주겠다는 나라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최종현 선대회장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돈독한 인연을 바탕으로 알 사우디 은행으로부터 1억 달러의 차관을 들여왔다. 이처럼 선경이 원유도입 인수자금 문제를 일시에 해결하고 유공을 인수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히 사전준비를 완료하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사실 최종현 선대회장은 걸프가 철수하기 2년 전인 1978년 이미 이 같은 움직임을 사전에 감지하고 있었다. 걸프의 철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었던 최종현 선대회장은 자신을 팀장으로 하고 손길승 김항덕 이사를 팀원으로 하는 태스크포스 를 구성하고 인수준비를 진행시켜 갔다. 인수작업은 정보전을 방불케 했다. 세 명의 인수팀원 외에 어느 누구도 인수작업에 대해 눈치조차 채지 못할 정도였다. 철저한 사전예측과 준비를 하고 있었던 만큼 선경으로서는 유공 인수가 당연한 귀결이었다. 하지만 선경의 인수를 두고 특혜 라고 폄훼하는 소리가 흘러나온 것은 이같은 사전준비를 알지 못했했기 때문이다. 한편 선경은 유공의 인수와 함께 주식회사 흥국상사도 인수했다. 유류제품 판매와 수송이 주업종이었던 흥국상사는 휘발유 경유 등유(이상 경질유), 벙커C유 벙커A유 중유(이상 중질유), 글리스 윤활유 아스팔트 LPG 등 유류제품과 타이어 배터리 등을 취급하고 있었다. 선경 인수까지 유공 연혁 대한석유공사 설립 제1상압증류시설 가동(일산 3만 5,000배럴) 제1상압증류시설 확장(일산 5만 5,000배럴) 제2상압증류시설 가동(일산 6만 배럴) 윤활유 배합공장 가동(일산 550배럴) 방향족 제조공장 가동 (연산 21만 6,000톤) 걸프사가 대한석유공사 주식 50% 및 경영권 인수 울산~대구간 장거리 송유관 부설공사 완공 제3상압증류시설 가동(일산 10만 5,000배럴) 나프타 분해센터 가동(에틸렌 기준 연산 10만 톤) 제2상압증류시설 확장(일산 11만 배럴) 한국산업은행 소유주식을 대한석유지주 주식회사에 매각, 대한 석유지주 주식회사 주식 일부를 일반에게 공개 나프타 분해센터 확장(에틸렌 기준 연산 15만 5,000톤) 윤활유 배합공장 확장 대한석유지주 주식회사가 걸프사 소유주식 50% 인수 정부의 민영화 방침에 따라 선경그룹이 경영권 인수 SK그룹 60년사

58 선경의품에서 유공으로 재출범 년 12월 23일 (주)선경과 변경했다. 상호 변경의 필요성은 선경이 유공을 인수할 때부터 제기돼 왔지만 최종현 대한석유지주 사이에 유공 선대회장은 갑작스러운 상호 변경으로 인한 부작용을 막기 위해 유보해왔다. 매매계약이 체결됐다. 같은 날 소집된 대한석유공사가 일반인들에게 유공 으로 지칭되어 왔다는 점을 고려해 최종현 임시주주총회에서는 유공의 새로운 선대회장은 새 상호를 주식회사 유공 으로 결정했다. 대표이사에 최종현 선대회장을 상호만 변경된 것이 아니라 유공은 선경에 인수된 후부터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선임했다. 이 날 오후 거행된 취임식에서 있었다. 1980년 인수 당시에 1,160%에 달하던 부채비율은 1983년 391%로 크게 최종현 선대회장은 유공의 경영을 개선됐고, 1980년 1조 9,676억 원에 머물렀던 매출액도 1983년 2조 7,252억 원으로 필생의 사업으로 생각하고 신명을 늘어 38%가 증가했다. 당기순이익 또한 1980년의 적자를 극복하고 1983년에는 197억 바쳐서 국가와 사회에 봉사할 것이며, 원의 흑자를 시현했다. 선경의 유공 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심혈을 기울여 유공 경영에 임할 각오 라고 말하며 임직원들의 사명감 확립을 강조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기자회견을 통해서도 대한석유공사에 임하는 각오를 밝히고 다음 1980년대 초. 선경 인수 무렵의 대한석유공사 울산정유공장 세 가지 사항을 국민에게 약속했다. 전경. 1980년 12월 23일 선경과 대한석유지주 사이에 첫째, 석유의 안정공급을 위해서 선경이 갖고 있는 힘을 다해 경영에 임하겠다. 둘째, 매매계약이 체결됐다. 이어 최종현 선대회장은 1982년 7월 1일 대한석유공사의 상호를 유공으로 변경했다. 정부에서 제시한 일곱 가지의 인수조건에 대해 심혈을 기울여 충실히 이행할 것이다. 셋째, 이를 이행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유공 주식 전부를 정부에 반납하고, 선경의 경영에서도 손을 뗄 각오다. 1980년 12월 27일과 28일 김항덕 수석부사장을 비롯한 전 임원과 각 부장, 영업소장 등 간부 60여 명이 선경연수원에 입소해 최종현 선대회장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최종현 선대회장은 선경과 유공과의 관계, 기업확장, 기술개발 등 모두 9개항의 경영방침에 대해 간부들에게 설명했다. 또 선경과 유공은 별도로 운영할 것이라며 인원조정 과 권한 위양 항목과 관련해 임직원 모두가 향후 자신의 거취에 대해 아무런 불안도 갖지 말 것을 당부하고 과감한 권한 위양을 실시할 계획이므로 관리역량을 부단히 키워나갈 것을 주문했다. 1982년 7월 1일 최종현 선대회장은 대한석유공사의 상호를 주식회사 유공으로 SK그룹 60년사

59 자원수송 전문 해운사 유공해운설립 유공 인수 후에 취해진 또 하나의 조치는 유공의 원유를 수송할 전담회사의 설립이었다. 1982년 1월 28일 원유 및 기타 유류의 안정적인 수급 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유공해운을 설립했다. 유공해운은 원유수송을 위해 1982년 6월과 7월 파나마로부터 국적취득조건부 나( 裸 )용선 두 척을 도입했다. 25만DWT급의 대형 유조선 두 척은 각각 유공리더호와 유공파이어니어호로 명명됐다. 유공리더호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원유를 선적하고 1982년 7월 28일 울산항에 입항했고, 8월 9일에는 유공파이어니어호가 울산항에 입항했다. 유공해운은 같은 해 7월 아세아상선(현 현대상선)으로부터 26만DWT급의 초대형 유조선 코리아스타호를 2년 계약으로 용선해 원유수송에 투입하기도 했다. 1985년 12월 LPG(액화석유가스) 수입회사인 유공가스의 설립과 때를 같이 해 유공해운은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수송 서비스를 제공하게 됐다. 유공해운은 이에 앞서 인천항의 LPG 전용터미널을 확장했고, 대한조선공사에 LPG선 3척을 발주했다. 그리하여 1988년 1월 울산가스호, 1989년 1월 인천가스호, 1990년 1월 서울가스호를 LPG 수송사업에 투입했다. 그럼에도 LPG 수송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자 1989년 12월 일본 신쿠루시마조선소에 LPG선 2척을 발주하고 각각 1991년 4월과 1992년 2월에 인수했다. 유공해운은 주업종인 원유수송 사업에도 박차를 가했다. 1986년 12월 현대중공업에 3척의 대형 유조선을 발주했다. 우리나라의 해운회사가 우리나라 조선사에 초대형 유조선을 발주한 것은 유공해운이 최초였다. 무자원 산유국에 도전, 해외 석유자원 개발에 뛰어들다 년 최종현 선대회장은 유공의 사업 비전을 석유정제업에서 종합에너지기업 으로 설정하고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해외 석유개발 사업을 제시했다. 이른바 무자원 산유국 프로젝트 를 내세우고 원유 한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도 산유국이 될 수 있다 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었다. 하지만 회사 안팎의 시선은 차가웠다. 해외 유전개발은 성공률이 5%에 불과한데다 고도의 기술과 대규모 자본투자가 요구되기 때문에 회사 경영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최종현 선대회장은 원유를 확보할 수 있는 강력한 조직과 유능한 사람의 확보가 시급하다며 해외 자원개발 담당부서인 자원개발실을 설치하는 등 과감하게 밀어붙였다. 선경이 다른 기업보다 적극적으로 해외 유전개발에 나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최종현 선대회장의 열정이 있었다. 그 첫걸음은 1983년 4월 미국의 코노코(Conoco)사와 공동으로 인도네시아 카리문 광구 석유 개발에 지분 5%를 투자한 것이었다. 우리나라 자원개발 1호 기업의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었다. 8개월에 걸쳐 8개의 탐사정을 시추했지만 미미한 유징( 油 徵 )을 발견하는 데 그쳐 1984년 1월 개발권을 인도네시아 정부에 반납하고 말았다. 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카리문 광구 개발의 지분참여는 유공의 해외 석유개발 사업의 첫 단추로서 의의가 컸다. 1984년에도 미국의 옥스코(OXCO)사와 공동으로 아프리카 모리타니아 육상블록 제9광구 개발에 25%의 지분을 투자했지만 유징을 발견하지 못하고 개발권을 모리타니아 정부에 반환하고 철수했다. 그러나 최종현 선대회장은 실패에 실망하고 있던 임직원들에게 유전개발 사업이란 SK그룹 60년사

60 1~2년 내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므로 10년이고 20년이고 꾸준히 노력해야만 성과를 얻을 수 있다. 경상이익금의 일정부분을 무조건 석유개발에 투자하기로 회사 차원에서 결정해야 하며, 실패했다고 해서 참여한 사람을 문책해서는 안 된다. 특히 실패에 대해 거론하지 못하게 하는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며 격려했다. 치밀한 준비 끝에 국내 기업 최초로 원유를 발견한 것이 마리브(Marib) 유전이었다. 1984년 2월 29일 삼환기업, 현대, 한국석유개발공사 등과 북예멘 유전 개발 컨소시엄 을 구성해 마리브 광구의 탐사개발권을 보유하고 있던 미국의 헌트오일(HuntOil)로부터 지분 24.5%를 인수했다. 24.5%의 지분 가운데 유공의 지분은 65%였다. 그런데 인수 5개월만인 1984년 7월 시추정에서 원유를 발견하였고, 1985년 11월 사업성을 공식 확인했다. 세 번째 도전에서 거둔 성공이었다. 1987년 12월 13일 마리브 알리프(Alif)정( 井 )에서 하루 15만 배럴의 원유가 생산되기 시작했다. 하루 생산량 5,000배럴이면 경제성을 인정받던 시절이었다. 마리브 유전 개발은 첫 발견에서 본격 생산까지 40개월이 소요됐는데 이는 석유 개발사업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단기간의 성과였다. 1987년 12월 24일 유공해운 소속 Y위너호는 마리브 유전 원유 가운데 1차 국내도입분 35만 배럴을 북예멘에서 선적하고 1988년 1월 20일 울산항에 입항했다. 우리나라가 준산유국 대열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유공의 개발원유 도입으로 우리나라는 당시 하루 평균 원유도입량의 약 4%에 달하는 원유를 장기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게 됐을 뿐 아니라 국제수지 개선에도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1988년 2월 8일 최종현 선대회장은 북예멘 개발원유 도입을 기념하기 위한 자축연을 열고 석유개발 사업에 관계해온 임직원들의 노고를 위로했다. 마리브유전은 개발 성공 20주년을 맞은 2003년 말까지 총 9억 20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했으며, 2004년 8월까지 SK 를 포함한 한국 컨소시엄은 총 9,700만 배럴의 원유를 분배받았다. 계열기업 정리와 석유화학 콤비나트 건설 착수 정부의 계열기업 정리 조치에 따라 선경은 1983년까지 모두 11개 기업을 정리함으로써 계열사 수를 22개에서 11개로 줄였다. 이는 수직계열화를 통해 기업의 변신을 이룩하고자 한 최종현 선대회장의 의지였고, 이후 신규사업 진출을 위한 자금 확보 방안의 일환이기도 했다. 선경그룹의 이러한 조치는 1980년 9월 27일 정부의 기업체질 강화대책, 이른바 9 27조치 에 대응한 측면이 적지 않았다. 9 27조치는 기업의 재무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해 기업군의 주력업종을 선정하고, 해당 주력기업의 전문화를 유도한다는 방침이었다. 선경으로서는 처분해야 할 비업무용 부동산은 물론이고 정리해야 할 계열기업도 별로 없었지만 11개 기업을 정리했던 것이다. 정부의 조치가 아니더라도 수직계열화를 심화시키기 위해서는 비주력 기업이나 비정책 사업은 과감히 정리해야 할 입장이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비주력 계열기업을 정리하는 한편, 기업 변신을 위한 경영전략의 일환으로 장기 경영계획을 세워 집행할 것을 각 계열사에 지시했다. 선경의 성장과 발전의 비결은 유공처럼 우량하거나 유망한 기업을 인수했다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인수한 기업을 종전보다 더욱 발전, 성장시켰다는 데 있었다. 이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세계경제의 흐름에 맞춰 끊임없는 변신을 추구했기에 가능했다. 이러한 변신을 위한 노력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장기 경영계획 수립이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선경합섬의 폴리에스터 섬유 사업을 예로 들며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이미 10년 전에 차근차근 계획했던 일들 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장기 경영계획 구상에 따라 최종현 선대회장은 1984년부터 수직계열화의 심화를 SK그룹 60년사

61 선경그룹의 계열기업 정리 현황(1983년 말 기준) 원유에서 제품까지 정리기업 방법 정리일자 존속기업 비고 1 선경식품 매각 (주)선경 2 워커힐여행사 매각 선경합섬 3 영남방직 매각 선경화학 유조선 부이 원유탱크 L.S.R 메록스시설 수첨탈황시설 가스회수시설 접촉개질시설 프로판 부탄 나프타 4 선경반도체 해산 선경매그네틱 상압증류시설 휘발유 5 선경유화 매각 선경건설 S.B 메록스시설 솔벤트 6 워커힐교통 매각 (주)워커힐 수첨탈황시설 제트유(JP-A) 7 선경복장 해산 선경금속 수첨탈황시설 등유 Jet A-1 8 선경기계 매각 선경창고 경유 9 선경머린 매각 선산섬유 10 해외섬유 해산 경성고무 11 선경목재 매각 서해개발 12 (주)유공 인수 감압증류시설 중질유수첨분해시설 중질유탈황시설 아스팔트 산화시설 벙커A유 중유 벙커C유 아스팔트 13 흥국상사 인수 14 유공해운 설립 유공의 방향족 공장은 착공 18개월 만에 완공돼 1985년 12월 6일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유공의 방향족 생산규모는 70만 톤 규모로 늘어났다. 위해 석유화학 사업에 대한 대단위 투자를 확대해 나갔다. 이는 곧 최종현 선대회장이 강조한 유공의 중장기 전략이었고 유공이 종합에너지 석유화학 기업으로 거듭나게 됨을 의미했다. 1980년 12월 유공을 인수한 이후 이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자신감도 최종현 선대회장이 수직계열화의 완성에 대한 의지를 더욱 굳게 다지게 하는 계기가 됐다. 선경의 수직계열화를 막고 있던 시대적인 상황도 석유화학육성법 의 폐지로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유공은 원유를 분해하는 과정에서 생산되는 나프타를 원료로 전략적 수직계열화, 즉 석유화학 사업 추진에 유리한 입장이었다. 유공은 1984년 3월 23일 신규 방향족 공장 건설에 착공함으로써 울산 석유화학 콤비나트 건설의 첫발을 내디뎠다. 유공은 이미 1972년 나프타 분해시설을 갖추고 벤젠 톨루엔 자일렌 등 방향족을 생산해 오고 1986년 유공은 본격적인 석유화학 사업 추진을 위해 화학사업추진부 를 신설하고, 1987년 10월에는 석유화학의 핵심사업인 에틸렌 폴리올레핀 공장 건설에 들어가는 등 석유화학 콤비나트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유공은 1987년 6월 미국의 아코화학(ARCO Chemical Co.)과 50대 50으로 합작투자계약을 체결하고 1987년 9월 17일 유공아코화학을 설립했다. 아코화학과의 합작은 프로필렌옥사이드(PO)와 스티렌모노모(SM)를 병산하기 위한 조치였다. 유공아코화학은 1988년 6월 기공식을 갖고 3,000억 원을 투자해 울산 컴플렉스 내에 대규모 PO/SM 생산시설 건설에 들어가 1991년 1월부터 연산 10만 톤의 PO와 22만 5,000톤의 SM을 상업생산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유공아코화학은 연산 2만 5,000톤의 프로필렌 글리콜 및 2만 톤의 폴리프로필렌 글리콜의 생산도 개시했다. 있었다. SK그룹 60년사

62 LPG사업과 LNG사업에 진출하다 유공은 1984년 6월 수도권 강원도 충청도 일원에 안정적으로 LPG를 공급하기 위해 인천 LPG저장소를 건설했다. LPG의 수요는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두고 폭발적인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었다. 유공은 1985년 12월 20일 LPG의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 LPG 수입회사인 주식회사 유공가스를 설립했다. LPG 도입사업을 단독으로 추진하려 했지만 정부의 제2 LPG 공동수입회사 설립방침 에 따라 다른 정유사와 공동으로 유공가스를 출범시킨 것이었다. 유공의 출자비율은 55.6%였다. 유공가스는 설립과 동시에 울산 LPG기지를 착공했다. 1987년 12월 완공된 울산 LPG기지는 지하 암반을 뚫어 만든 50만m 3 규모의 지하 공동( 空 洞 ) 저장소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지하 공동저장소는 같은 규모의 지상 냉동저장 탱크에 비해 건설비 운전비 보수비가 훨씬 저렴하고 안정성 면에서도 이점이 많았다. 울산 LPG기지의 완공으로 유공은 372만5,000배럴(인천 7만 5,000배럴, 울산 365만 배럴)의 LPG 저장 능력을 갖추게 됐고, 연간 700만 배럴 이상의 LPG 물량을 취급할 수 있게 됐다. 한편 유공은 1986년 3월 구미도시가스를 설립하면서 LNG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1987년 8월에는 청주도시가스를 설립했고, 1989년 3월에는 포항도시가스를 설립해 포항공단과 포항시 일원에 가정용 산업용 가스연료를 공급했다. 이와 같이 구미 청주 포항지역의 도시가스 사업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유공은 1990년 1월 국내 최대의 도시가스 회사인 대한도시가스의 지분 50%를 인수해 경인지역에도 진출했다. 또한 1992년 6월 중부도시가스를 설립해 천안지역에도 도시가스를 공급했다. 선경인더스트리, 생명과학에 과감히 도전하다 정밀화학 기업으로의 변신을 도모하던 선경인더스트리는 1987년 7월 의약사업 진출을 결정하고 생명과학연구소를 발족시켰다. 선경인더스트리가 의약사업 진출을 시도하며 천연물 아이템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주목한 것은 은행잎이었다. 은행잎은 성인병, 천식 등에 효과가 인정되고 있었고, 은행잎 제품의 시장 규모도 급격하게 증가하는 상황이었다. 선경인더스트리는 천연물연구개발팀을 구성하고 은행잎 연구개발에 착수해 1988년 3월 고품질 고순도의 은행잎 추출물을 높은 수율로 생산할 수 있는 제조 방법을 개발하고 특허를 출원했다. 이어 서울대 수의과대학에 은행잎 추출물의 독성실험을 의뢰, 유해성이 없음을 확인받았고 서울대 생약연구소와 공동으로 은행잎의 유효성분 및 분석 방법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 징코라이드(Ginkgolide) 추출에 성공했다. 징코라이드는 혈액의 응고를 막아 혈액순환을 촉진시키는 효능이 있는 성분이었다. 선경인더스트리는 이와 더불어 1987년 12월 경기도 안산시 소재 삼신제약을 인수, 1990년 2월 선경제약으로 상호를 바꾸고 정제 캡슐제 연고제 주사제 등 30여 개의 의약품을 제조 판매하기 시작했다. 선경인더스트리와 선경제약은 은행잎 추출물 원료 및 완제품에 대한 제조품목 허가를 1991년 9월 보건사회부로부터 획득했다. 이어 12월 은행잎 의약품을 최초로 개발한 독일로 수출했고, 1992년 1월에는 은행잎 추출물로 만든 혈액순환개선제 기넥신 F40mg 정을 시판했다. 1992년 2월에는 선경제약이 국내 제약업체로는 최초로 징코라이드에 대한 미국 특허를 받았다. SK그룹 60년사

63 이에 앞서 선경인더스트리는 1990년 국내 최초로 비마약성 진통제인 염산 트라마돌(Tramadol HDI) 개발에 성공해 원료의약품 국산화의 성과를 올렸다. 인체의 중추신경에 작용해 통증을 억제하는 진통제로 중독성은 없는 반면 마약성 진통제에 버금가는 효과가 있었다. 선경인더스트리가 일궈낸 최대 성과는 항암제의 개발이었다. 선경인더스트리는 1988년부터 신약 및 원료의약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1991년 5월까지 81개에 이르는 신물질 합성에 성공한 끝에 제3세대 백금착체( 白 金 錯 體 ; 분자구조 내에 백금을 함유시킨 물체) 개발에 성공했다. 한발 앞선 글로벌리제이션, SUPEX추구 년대 중반 최종현 선대회장은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깨닫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사업구상과 경영기법 수립에 부심했다. 수직계열화의 실현을 목전에 두고 최종현 선대회장이 고민했던 새로운 시대란 글로벌리제이션(Globalization) 즉, 세계화였다. 글로벌리제이션에서는 세계의 선진기업들과 어떤 보호막도 없이 무한경쟁을 벌여야 한다. 따라서 우리 기업은 모든 나라와 전면적인 무한경쟁을 하루빨리 대비해야 한다. 기술, 자금, 마케팅, 그리고 경영관리 등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최종현 선대회장의 이러한 인식은 글로벌리제이션에 대비하기 위한 새로운 경영기법의 수립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글로벌리제이션은 최종현 선대회장이 SUPEX추구법을 구상하게 된 시대적 배경이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이 SUPEX추구법을 구상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SKMS의 효율적인 추구를 위해서였다. SKMS를 제정한 궁극적인 목적은 선경을 세계 일류기업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데 있었다. SKMS를 만든 지 10년이 지난 1989년, 최종현 선대회장은 SKMS를 통한 그동안의 성과를 되돌아보았다. 구성원의 경영지식이 많이 올라가고, 경영의 각 분야에서의 명확한 정의를 통해 경영의 기본 개념에 대한 혼란이 줄어들어 구성원간의 커뮤니케이션이 향상됐으며, 노사관계의 안정화를 이루는 등 SKMS의 성과는 상당한 것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이윤극대화 측면에서의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SKMS를 정립하고 이를 실행하면 이윤이 극대화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현실에서는 기업 SK그룹 60년사

64 구성원들이 실제 업무에서 SKMS를 실천하는 것을 어려워했고, 이에 따라SKMS가 높은 경영성과로 연결되지는 못했던 것이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이러한 평가를 통해 경영성과가 예상만큼 오르지 않는 이유는 SKMS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개념 위주로 만들어진 SKMS를 경영자가 제대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방법이 필요하다는 점에 착안했다. 그리하여 최종현 선대회장은 SKMS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SUPEX추구법을 제안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글로벌리제이션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선 선경이 세계적인 일류기업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고, 이를 위해서는 인간의 능력으로 해낼 수 있는 최상의 수준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SKMS의 가장 효율적인 실천 방법론 이 SUPEX추구법이였고, 최종현 선대회장이 1962년 선경직물의 부사장으로 경영을 맡아온 이래 1980년대 후반까지 자신이 추구하고 실천해온 경영법이었다. 1989년 정립된 SUPEX추구법 또한 SKMS와 비슷한 과정을 밟았다. SUPEX는 Super Excellent 라는 두 낱말을 합성한 조어로서 Super Excellent 수준 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가장 핵심적인 업무처리 과정과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성과 수준을 3단계로 구분해 통상적으로 경영에서 나타난 세계 일류 수준을 Very Good 세계 일류 수준보다 한 단계 높은 탁월한 수준을 Excellent 인간의 능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수준을 Super Excellent라고 정의했다. 이때 Super Excellent 가 SUPEX이며, 이는 곧 인간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수준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SUPEX추구 에서는 캔미팅을 조직 구성원들이 수시로 일상의 업무 활동과 차단된 장소에서 정해진 경영 과제에 대해 격의 없이 자유롭게 논의하는 회합 으로 정의하고 있다. 1984년부터 도입된 캔미팅은 처음에는 상사에 대한 성토의 자리 쯤으로 이해됐으나 점차 건설적인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정착됐고, 효과적인 경영도구로서 사내외의 주목을 받았다. SUPEX를 위한 또 다른 지원도구인 SUPEX추구 리더십 은 구성원들이 자발적 의욕적으로 SUPEX를 추구 하도록 부서장이 Lead Help Check 하는 것을 말했다. Profit Sharing System 은 구성원들의 SUPEX추구 노력으로 회사가 이익을 더 많이 냈을 때 그 이익의 일부를 특별 상여금이나 특별 포상의 형태로 구성원들이 나누어 갖는 제도 를 일컬었다. 1994년 한국이동통신 인수에 성공한 최종현 선대회장은 공사석에서 선경의 세 번의 도약은 모두 SUPEX추구의 산물 이라고 강조하며 구성원의 SUPEX추구를 당부했다. 세 번의 도약은 폴리에스터 원사생산회사로서의 도약,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의 완성, 정보통신산업으로의 진출이었다. 이는 모두가 한결같이 불가능하다고 했던 목표에 도전해 성공한 최종현 선대회장 자신의 SUPEX추구 경험이있었다. SK그룹 60년사

65 SKC와 선경매그네틱의 글로벌리제이션 년대 중반 선경의 계열사는 변해 가는 세계 경제 환경 즉, 글로벌리제이션에 대비하기 위해 변신과 모색을 준비했다. 그 첫 테이프는 선경화학이 끊었다. 선경화학은 세계 일류 수준의 제품 개발을 위해 1985년 4월 선경화학연구소를 짓고 신제품 개발을 서둘렀다. 성과는 곧 나타났다. 1985년 5월 하이그레이드 비디오테이프와 마이크로 플로피디스크를 개발한 데 이어 1986년에는 꿈의 오디오 라 불리는 컴팩트디스크를 개발했다. 선경화학은 네덜란드의 필립스(Philips)와 라이선스 계약을, 폴리그램(Polygram)도 기술계약을 맺어 1986년 11월 국내 최초로 컴팩트디스크 공장을 준공했다. 연간 750만 개의 생산 능력을 갖춘 컴팩트디스크 공장의 준공으로 선경화학은 비로소 광메모리 사업이라는 최첨단 분야에 진출했다. 1987년 1월 1일 선경화학은 사명을 주식회사 SKC로 변경하면서 세계시장 진출을 위한 의지를 밝혔다. 선경화학은 1983년부터 비디오 오디오 테이프, 플로피디스크, 컴팩트디스크 등 광( 光 ), 자기( 磁 氣 ) 기록매체의 종합상표를 SKC로 정하고 해외광고를 통해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선경화학의 사명 변경은 국제적으로 지명도가 높아진 종합상표 SKC 를 사명과 일치시킴으로써 브랜드 이미지를 더욱 효율적으로 심화해 SKC 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우려는 글로벌리제이션 전략의 일환이었다. SKC는 SKC 브랜드를 소련, 중국, 헝가리, 루마니아 등 공산권을 포함한 140개국에 상표등록을 마치고 본격적인 브랜드 가치 제고에 나섰다. SKC가 내세운 기치는 세계화였다. SKC는 세계 속의 SKC 를 모토로 세계시장을 공략해 나갔다. 1989년 7월 금속가공 폴리에스터 필름을 생산하는 아메리카 현지공장을 미국 뉴저지주에 준공했다. SKC는 세계시장에 통할만한 첨단제품의 개발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1990년 7월 미국 일본 독일에 이어 광자기 디스크(Magneto-Optical Disk) 개발에 성공해 시험 생산에 들어갔다. 당시 세계에서 5개 업체만이 생산할 수 있었던 광자기 디스크는 개당 단가가 200달러를 상회하던 고부가가치 제품이었다. SMAT 로 대표되는 오디오테이프 메이커 선경매그네틱 또한 글로벌리제이션 전략에 부응, 수출활동에 주력했다. 1980년대 초부터 필립스, 3M, 메모렉스 등에 OEM 방식으로 수출해오던 선경매그네틱은 1987년 SKC 브랜드로 유럽시장에 진출했고, 동시에 오디오카세트의 본산인 일본시장에도 성공적으로 진출했다. 선경매그네틱은 1976년 회사 설립 이후 연평균 30%의 수출신장률을 기록했고, 1987년 무역의 날에 5,000만 달러 수출탑을 수상했다. 오디오테이프 단일품목으로만 기록한 선경매그네틱의 수출실적은 국내 오디오테이프 수출의 50%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2년 후인 1989년 1억 달러 수출탑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미국 진출 초기 세계 유수의 오디오테이프 생산업체의 독과점에 고전했던 선경매그네틱은 불과 7년만에 BASF를 2위로 따돌리고 시장점유율 30%를 차지했다. 선경매그네틱의 또 다른 글로벌 전략은 생산과 판매의 현지화였다. 선경매그네틱은 유럽의 통합에 따른 무역장벽에 대처하기 위해 EC 투자계획 을 수립, 1991년 7월 (주)선경의 유럽 현지법인인 SKE와 선경매그네틱유럽(SKME)을 설립했다. 이어 영국 런던에 스리팅 공장 건설에 착수하는 한편, 1991년 10월에는 홍콩의 한니(Hanny)사와 오디오테이프 조립생산 및 제품 판매를 위한 합작회사를 중국에 설립하기도 했다. SK그룹 60년사

66 국내 기업 최초로 중국에 무역사무소 개설 선경은 1991년 2월 1일 국내 대기업으로는 최초로 중국 베이징에 무역사무소를 개설했다. 1991년은 한 중 수교 전이였다. 이는 새로운 시장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던 공산권 국가에의 진출 즉, 북방교역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온 선경그룹의 발 빠른 행보를 보여주는 일대 사건이었다. 1980년대 중반 (주)선경은 의류, 생활용품 등 경쟁력을 상실한 사업부문의 과감한 통폐합, 복합상품 거래(Package Deal), 브랜드 비즈니스 등 고부가가치 상품에 역점을 두고 시장점유율을 확대해 갔다. 특히 북방교역, 즉 특수지역 시장 진출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주)선경의 북방교역은 1989년 7월 모스크바 엑스포센터에서 열린 한국상품 전시회에서 싹을 틔웠다. 국내 12개 업체와 함께 참가해 현지 소비자의 호응을 얻었으며, 1991년 1월 개최된 모스크바 박람회에도 참가해 4,600만 달러의 상담실적을 올렸다. 1990년 10월 15일 (주)선경은 마침내 모스크바 지사를 개설하고 북방교역의 물꼬를 텄다. 지사 개설과 함께 16일부터 19일까지 단독 전시회를 개최했다. 이 전시회에서 의류, 신발, 전자제품, 테이프류 및 화학플랜트 등 선경 계열사의 생산품을 비롯해 국내 수출유망 품목이 망라된 소비재 상품을 소개했다. 이를 통해 직거래처를 개척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얻는 한편 선경의 이미지를 크게 제고했다. 무엇보다 의미가 큰 것은 국내 기업 최초로 중국에 무역사무소를 개설한 것이었다. (주)선경의 베이징사무소 개설은 단순한 경제적 성과가 아닌, 한중 관계에 중요한 전기를 마련한 의미 있는 사건으로 평가받았다. 베이징사무소 개설은 중국에 대한 지속적인 접촉과 지원이 중국 정부에 의해 인정을 받은 결과였다. (주)선경은 1989년 7월 베이징 국제박람회에 참가해 호평을 받은 바 있었고,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등 각종 체육행사를 지원해 중국 각계각층에 우호적인 기업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주)선경의 이순석 사장은 중국 고위층과 유대관계를 쌓을 수 있었고, 한국기업 최초의 중국사무소 개설이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주)선경은 중국 정부의 인적 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해 1992년 한중수교 체결의 막후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공로로 이순석 사장은 1992년 11월 우리나라 정부로부터 수교훈장 숭례장을 수훈하기도 했다. (주)선경은 베이징에 이어 1991년 7월 3일 다렌( 大 連 )에도 사무소를 개설했고, 상하이와 칭다오( 靑 島 )에도 무역사무소를 개설, 4개 사무소를 거점으로 중국과의 본격적인 교역확대를 추진했다. 유공은 1993년 8월 유화업계 최초로 베이징에 지사를 설치했으며, 이후 중국 기업과의 합작과 제휴를 통해 중국 시장 진출을 가시화해 나갔다. (주)선경은 1991년 12월 18일 호치민 지사를 개설해 베트남에도 진출했다. (주)선경은 1997년 7월 14일 중국기술진출구총공사( 中 國 技 術 進 出 口 總 公 司, 이하 중기 로 칭함)와 합작으로 중기-선경무역유한공사 (CNTIC-SK TRADING CO.,LTD.)를 상하이에 설립했다. 중국 최초의 합작 종합무역상사였다. 1991년 국내 기업 최초로 중국에 무역사무소를 개설한 이후 지속적으로 중국사업을 전개해오던 (주)선경의 행보가 한단계 진화하는 순간이었다. 한편 종합무역상사로서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해오던 (주)선경은 국내 유통시장에도 진출했다. 1989년 11월 유통팀을 발족시킨 데 이어 1990년 1월 1일 주식회사 선경유통을 설립한 것이었다. 1993년 국내 유통시장 개방을 앞두고 선진 유통 기법의 습득과 해외 유통시장 진출을 위해서였다. SK그룹 60년사

67 울산컴플렉스 합동준공식, 수직계열화를 완성하다 년 6월 15일 유공 울산컴플렉스에서 9개 신규공장의 합동준공식을 열었다. 이 날 준공된 신규공장은 제4정유시설, 신규 휘발유 제조시설, 제2에틸렌 생산시설, 제2부타디엔 추출시설, 폴리에틸렌/폴리프로필렌 제조시설, 파라자일렌 제조시설, MTBE/부텐-1 제조시설, 제2시클로헥산 제조시설 등이었다. 9개 신규공장 건설에 투입된 공사비는 총 1조 5,000억 원, 건설 기간은 짧게는 1년 11개월, 길게는 3년이 소요됐다. 9개 공장의 준공으로 유공은 휘발유와 기초 유분(溜分)에서부터 신규공장 합동 준공식. 울산컴플렉스에서는 9개의 신규공장 합동준공식이 합성고무 합성섬유의 원료에 이르기까지 석유화학의 필수제품을 위한 생산시설을 열렸다. 제4정유시설, 신규 휘발유 제조시설 등 9개의 신규공장 건설해 완전히 갖췄다. 특히 DMT/PTA의 원료인 파라자일렌 제조시설의 준공은 선경이 휘발유와 기초 유분에서부터 합성고무 합성섬유 원료에 이르기까지 석유화학의 필수제품을 위한 생산시설을 완전히 갖췄다. 원유개발에서 정유, 석유화학, 필름, 원사, 섬유, 봉제에 이르는 완전 수직계열화를 이루는 데 마침표를 찍었음을 의미했다. 이로써 선경은 석유화학 산업의 가장 기본이 되는 원유개발(유공)에서 출발, 공사비가 투입됐다. 국내 최초 사례인 유공의 중질유 분해시설 및 탈황시설은 각각 폴리에스터 섬유와 필름(선경인더스트리, SKC)을 거쳐, 원유정제 제품 및 석유화학 일산 3만 배럴 규모로 동일 공정으로서는 세계 최대의 처리용량을 자랑했다. 제품(유공, 유공아코화학)에 이르기까지 석유화학 산업의 전 공정에 걸친 원료 및 유공은 울산 컴플렉스 건설과 함께 글로벌화에도 힘을 기울였다. 1988년 10월 완제품을 생산하게 됐다. 선경과 최종현 선대회장의 19년 숙원이 마침내 달성된 이탈리아 몬테디페(Montedipe)사, 중국 CITIC(중국 국제투자신탁공사)와 함께 홍콩 것이었다. 이는 선경의 역사에서만이 아니라 한국 산업사에서도 하나의 금자탑이라 석유화학유한공사(Hongkong Petrochemical Ltd.)를 설립했다. 유공은 수직계열화의 할 수 있었다. 완성과 심화에 전력하면서도 사업영역 확대와 해외사업 진출을 위해 회사의 역량을 한편 유공은 1990년 6월 중질유 분해시설 및 탈황시설 기공식을 갖고 본격적인 기울였는데, 홍콩 석유화학유한공사의 설립은 특히 석유화학사업의 글로벌화를 위한 공사에 착수했다. 중질유와 경질유 사이의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고, 유황이 적고 조치였다. 품질이 높은 연료를 공급한다는 목표 아래 추진된 이 공사에는 모두 4,500억 원의 세 회사는 홍콩 현지에 연산 7만 5,000톤 규모의 폴리스티렌(Polystyrene; 스티렌의 SK그룹 60년사

68 라디칼 중합으로 얻어지는 비결정성의 고분자로, 무색 투명한 열가소성 수지) 공장을 완공하고 1992년 10월 생산을 개시했다. 합작회사 가동으로 유공은 홍콩, 중국, 동남아시아 지역에 폴리스티렌을 수출할 수 있었고, 유공아코화학에서 생산하는 스티렌모노머(Styrene Monomer; SM, 방향족의 벤젠계에 속하는 중간 원료)의 안정적인 수요처를 확보하게 됐다. 유공은 1989년 12월 터키 최대의 광물생산회사인 에게메탈(Ege Metal Endustri A S)사와 합작사업 계약을 맺고 크롬광산 개발 및 페로크롬 사업에 진출했다. 유공은 (주)선경, 대한광업진흥사와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에게메탈사의 지분 50%를 인수했다. 유공은 에게메탈사와의 합작을 통해 크롬광산을 개발하고, 크롬을 가공해 페로크롬을 생산하기로 했다. 1990년 4월에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오크브리지사와 유연탄광 개발 합작계약을 체결하고 해외 석탄 개발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생산량의 대부분을 우리나라에 도입하거나 일본으로 수출하기 위한 것이었다. 1989년 5월에는 에틸렌프로필렌고무(EPDM)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일본 스미토모화학과 합작회사를 설립했다. 유공과 스미토모화학은 70대 30의 투자비율로 유공에라스토머를 설립하고, 울산컴플렉스 내에 EPDM 공장을 건설했다. 수직계열화 체계도 광메모리 필름원료 베이스필름 자기메모리 석유개발 석유정제 석유화학 섬유원료 정밀화학 신소재 섬유 생명과학 프로판 태평양증권 인수, 금융업 진출 선경은 1991년 12월 태평양증권을 인수, 금융업에 진출했다. 태평양증권이 경영난에 봉착하자 모기업인 태평양화학은 기존의 제조업 분야에 전념하기 위해 이를 매각하기로 하고 인수기업을 물색했다. 그러던 중 선경이 과거 유공 인수 시 구성원 전원을 승계한 전례가 있는 점, 수년 간 노사분규가 없는 유일한 기업으로서 기업 이미지가 좋은 점 등을 높이 사 태평양증권의 인수를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당시 31개 증권사 중 영업실적 기준 11위였던 태평양증권은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고, 여러 가지 부실요인을 안고 있었다. 하지만 선경 또한 오래 전부터 증권업 진출을 계획해 오던 터였기 때문에 태평양증권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선경은 1991년 12월 10일 태평양증권 주식 51%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으며, 13일 증권관리위원회의 승인을 받은 후 주식을 장외시장에서 넘겨받았다. 이어 1992년 3월 1일자로 상호를 선경증권주식회사 로 변경했다. 선경증권은 SKMS 및 SUPEX추구를 활용, 2000년대 세계일류 수준의 종합금융회사로 발전한다는 장기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영업력 강화, 전문인력 양성, 수익 기반 다각화 등을 경영의 핵심과제로 설정, 전구성원의 영업사원화, 업무영역 및 취급상품의 확대, 고객 서비스의 질 향상 등을 적극 실행해 나갔다. 선경증권은 국내외적 경제 환경 악화에도 불구하고 인수 후 1년 동안 경영성과에서 두드러진 개선을 이뤄냈다. 1992년 12월 말 기준으로 근로자 주식저축에서 업계 5위권에 진입했으며, 12월 중 주식약정에서도 10위권에 진입하는 등의 성과를 기록했다. SK그룹 60년사

69 제3장 풍요로운 정보통신사회 1. 정보통신사업 진출 천명 최종현 선대회장, 전경련 회장에 취임하다 한국이동통신 인수, 정보통신사업 진출의 꿈 이루다 SKMS와 SUPEX추구의 중국 전파 엔크린과 ZIC 돌풍 유공 울산공장, 세계최대 정유공장으로 거듭나다 한국이동통신, 세계 최초로 CDMA 상용화 선경투자신탁운용과 SK생명 탄생 SPEED 011 과 TTL 로 고객 사로잡다 열어가다 10. 매머드 석유판매회사 SK에너지판매 탄생 그룹 신CI 선포 IMF의 격랑을 넘어서다 SK텔링크 설립, 모바일 국제전화로 시장 선도 재계의 거목 최종현 선대회장 영면 대주주와 전문경영인의 파트너십 경영 SK텔레텍 설립, 휴대전화 SKY 출시 종합정보기술회사 SK C&C 탄생 실질적 국내 첫 지주회사 SK엔론 출범 SKC, 글로벌 생산거점체제 구축 SK케미칼, 국산 신약 1호 선플라 개발 SK가스, 해외시장에서 비즈니스 모델 찾다 위기를 딛고 일어선 SK증권 SK텔레콤, 신세기통신 합병으로 도약의 발판 마련 또 하나의 SK를 중국에 만들다 국내 대표 포털사이트 브랜드 OK캐쉬백 출범 마케팅전문회사 SK글로벌로 재출범 SK건설, 아파트 브랜드 SK VIEW 론칭 SK해운, 국내 최대 LNG선사로 도약 자원개발 기업의 위상을 높이다 NATE 탄생, 멀티미디어 무선통신 시대 개막 SK텔레콤, 세계 최초로 3G 이동통신 서비스 개시 SK텔레콤, 월드컵 마케팅 신화 창출 지식경영의 산실 SK경영경제연구소 출범 ~2002 정보통신사업 진출 천명 선경이 2000년대 세계 일류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정보통신 사업에 진출할 필요가 있습니다. 2000년대 신규사업으로 자동차 가전제품 중공업 등의 분야를 검토했으나 이들 업종은 이미 국내에 경쟁체제가 이루어져 선경이 참여할 경우 불필요한 경쟁을 유발, 국가 경제적 낭비를 초래할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이에 성장잠재력이 가장 크고 기존 업계와의 경쟁이 가장 적은 정보통신 분야를 그룹의 중점사업분야로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1992년 1월 3일 서울 워커힐에서 열린 신년교례회에서 제2이동통신 사업참여를 공식 선언하고, 정보통신 사업 진출 원년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했다. 발표가 나오자 각 언론은 이를 크게 보도하고 선경의 제2이동통신 사업 진출을 기정사실화했다. 선경은 이보다 앞선 1980년대 중반부터 정보통신 사업 진출을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장기 경영목표였던 석유에서 섬유까지 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초반, 최종현 선대회장은 선경의 차세대 성장사업으로 정보통신 사업으로 정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정보통신 분야에 대한 법적, 제도적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였다. 선경은 정보통신 사업 선진국인 미국이 보유한 정보와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1984년 텔레커뮤니케이션팀을 신설했다. 텔레커뮤니케이션팀은 정보통신 우수인력 확보, 해외투자 기회 포착 등 정보통신 사업 진입을 준비했다. 1989년 10월 24일에는 미국 뉴저지주에 현지법인 유크로닉스(Yukronics)사를 설립, 정보통신 사업 진출의 교두보로 삼았다. 유크로닉스는 미국 내 정보통신 관련 SK그룹 60년사

70 기술조사와 용역제공을 담당했다. 유크로닉스는 단기적으로 기술집약적인 기업에 대한 지분투자를 통해 핵심기술을 확보하고, 장기적으로는 확보한 기술과 인력을 바탕으로 유망 정보통신 사업 분야에 성공적으로 진입한다는 전략을 세워 추진했다. 1990년 5월에는 미국의 CSC사와 합작으로 선경정보시스템을 설립했다. 시스템통합, 정보통신 서비스(VAN), 정보처리 서비스, 소프트웨어 개발 판매 등을 주 사업으로 하는 선경정보시스템 역시 정보통신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려는 의지의 산물이었다. 이어서 1990년 10월 YC&C를 설립했다. 1991년 4월에는 한발 더 나아가 선경텔레콤을 설립했다. 정보통신 사업 진출의 초석역할을 한 선경텔레콤은 정보통신 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사용역, 교육훈련, 경영진단, 컨설팅사업 등을 벌였다. 1992년 6월 10일에는 대한텔레콤으로 상호를 변경, 제2이통통신 사업권 획득에 참여했다. 체신부는 1990년 7월 12일 이동통신 분야의 경쟁체제 도입을 주요 골자로 하는 통신사업 구조조정계획 을 발표했다. 이동통신 사업을 둘러싸고 재계의 지각변동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체신부의 발표는 공기업인 한국이동통신과 경쟁할 민간 사업자, 다시 말해 제2이동통신 사업자를 선정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체신부가 1992년 4월 14일 제2이동통신 허가신청을 공고하면서 이동전화사업권 획득을 위한 재계의 경쟁은 불이 붙었다. 언론매체들이 이동통신 사업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 또는 6공 최대의 이권사업 이라고 논평하자 국민들의 관심은 제2이동통신 쪽으로 쏠렸다. 현대 삼성 금성 대우 등 설비제조업체의 참여는 원칙적으로 배제됐다. 선경을 비롯한 포항제철(현 POSCO) 코오롱 동양 쌍용 동부그룹 등 6개 기업이 사업자 선정경쟁에 뛰어들었다. 재계에서 제2이동통신 사업자 획득은 재계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중대한 사안으로 여겨졌다. 사업자 선정과 관련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하지만 선경은 자신감에 충만해 있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정보통신 산업 진출을 착실하게 준비해왔기 때문이었다. 제2이동통신 사업권 획득을 위해 출사표를 던진 선경은 다른 어떤 경쟁업체보다도 1980년대 말 선경그룹의 정보통신 관계회사 회사명 자본금(선경지분) 설립일자 사업내용 YUKRONIS, Inc US 235만(100%) 해외기술 습득 및 유망사업 발굴 선경정보시스템 10억 원(70%) Workstation사업, 시스템 통합사업 YC&C 8억 원(100%) 시스템 통합사업 및 정보통신사업 등 선경텔레콤 100억 원(100%) 정보통신 서비스업 및 관련 조사용역업 테네시 RSA#6B Inc. US 1,024만(20%) 이동통신 관련사업 확신을 가지고 사업계획서를 치밀하게 작성해 나갔다. 다른 컨소시엄은 외국 파트너에 사업계획서 작성을 맡겼지만 선경 컨소시엄은 선경이 주도적으로 사업계획서를 작성해나갔다. 1992년 6월 26일 선경은 총 20만 쪽에 달하는 제2이동통신 사업계획서를 체신부에 제출했다. 같은 날 포항제철 코오롱 쌍용 동양 동부 등 5개 컨소시엄도 체신부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다. 7월 29일 체신부의 1차 심사발표에서 선경의 대한텔레콤은 총점 8,127점을 얻어 1위로 1차 관문을 통과했다. 코오롱(7,783점)과 포항제철의 신세기이동통신(7,711점)이 2, 3위로 뒤를 이었다. 일부 언론에서 선경의 우세설 이 단편적으로 흘러나오긴 했지만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선경의 압도적인 우위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1차 발표 이후 이른바 선경 봐주기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작업을 노태우 대통령 이후의 다음 정권으로 미루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선경에 불리한 소문과 주장이 잇따랐던 것은 사업권 획득에 뛰어든 기업들의 경쟁이 과열됐음을 뜻했다. 당시 떠돌았던 유언비어는 음해성 소문들이 대부분이었다. 사업자 선정을 다음 정권으로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갈수록 세를 불려갔지만 정부는 1992년 8월 20일 2차 심사발표를 강행했다. 결과는 선경이 다시 압도적인 차이로 최고점수를 획득, 제2이동전화사업 최종 허가대상 법인으로 선정됐다. 체신부 발표가 나자 현직 대통령의 인척 기업에 엄청난 이권이 걸린 사업을 허가한 SK그룹 60년사

71 것은 잘못이라는 식의 언론보도가 잇따랐다. 이에 최종현 선대회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선경의 사업권 획득이 정당한 노력의 결실임을 강조했다. 컨소시엄에 참여한 국내 기업들과 주식지분을 국민주 형태로 공개하는 데 합의했으며, 유공의 경우 최고 30%까지 주식을 내놓을 방침이라고 밝히며 특혜 의혹을 불식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일단 하나의 방향으로 쏠려버린 여론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대통령 선거를 의식한 집권당 대표의 반발은 매우 거셌다. 대선을 앞두고 여론을 의식한 김영삼 대표는 제2이동통신 사업권의 선경 불가 주장을 집요하게 펼쳤다. 결국 최종현 선대회장은 통한의 결단을 내렸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눈물을 머금고 선경의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포기하고 다음 정권에서 제2이동통신사업을 재추진하기로 결심했다. 최종현 선대회장의 이러한 결단은 1992년 8월 27일, 대한텔레콤 손길승 사장이 기자회견을 갖고 세상에 알렸다. 그러나 오해를 받을 우려가 없는 다음 정부에서 실력을 객관적으로 인정받아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체신부도 다음날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문제를 차기 정권에 이양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로써 사업자 선정은 백지화되고 말았다. 최종현 선대회장, 전경련 회장에 취임하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1993년 2월 12일 제21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으로 공식 추대됐다. 전경련이 1993년 1월 27일 회장단회의를 열어 최종현 선대회장을 만장일치로 추대했고 최종현 선대회장이 이를 수락한 것이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취임 기자회견장에서 경제계도 과거처럼 정부에 의뢰하고 지도나 규제를 바랄 것이 아니라, 자립체계로 나가야 한다. 정부도 때마침 문민시대로 접어드는데 경제계도 국민의 신뢰받는 기업상, 경제인상을 만들어야 한다 고 강조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기자회견에서 밝힌 신뢰받는 기업상 을 구축하기 위해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하지만 최종현 선대회장은 당시 신경제 5개년계획 을 추진했던 문민정부와 관계가 좋지 않았다. 발단은 전경련 회장에 선출되기 직전인 1993년 2월 최종현 선대회장이 정부에 제출한 보고서였다. 경제계가 바라는 새 정부의 국가경영 이라는 보고서에서 작은 정부 와 자유경제체제의 확립 을 강조했는데 정부는 이를 곱지 않게 받아들인 것이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철저한 시장주의자였다. 그는 시장의 자율성을 저해하는 정부정책에 대해 비판을 주저하지 않았다. 전경련은 1993년 4월 정부의 신경제계획 작성지침(안) 을 검토해 시장경제 창달에 대한 의지가 결여된 점 등의 문제점과 보완점을 정부에 제시했다. 하지만 전경련의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문민정부는 강경한 자세로 재벌 길들이기 에 나섰다. 정부는 1993년 5월 8일 예정된 경제장관과 경제5단체장과의 회동을 일방적으로 취소했고, 5월 14일 베트남 총리 환영오찬과 5월 17일 신경제 100일 계획 중간점검회의에 최종현 선대회장을 SK그룹 60년사

72 초청하지 않았다. 경제관련 주요 회동에서 전경련 회장을 잇달아 제외시킨 것은 일종의 경고 메시지 라는 것이 언론의 지배적인 분석이었다. 하지만 최종현 선대회장은 재계 지도자로서의 소임을 포기하지 않았다. 1993년 8월 2일 금융실명제가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전격 시행되자 전경련은 금융실명제 시행에 따른 기업의 시설투자 동향과 애로사항, 금융실명제 조기정착을 위한 보완과제 등을 정부에 제시했다. 1994년에도 규제완화와 국가경쟁력 강화사업을 계속 펼쳐나갔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1995년 2월 14일 전경련 회장에 재선임됐다. 같은 날 연임기념 기자회견에서 최종현 선대회장은 정부의 재벌정책과 금리정책 등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콜금리 25%는 어느 나라에도 없다. 국경 없는 무한경쟁시대를 맞아 세계화에 대비해야 한다. 소유분산, 문어발 억제, 업종전문화 등을 따질 여유가 없다 고 주장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이후에도 거침없는 언행으로 주목을 받았다. 대표적인 예가 쌀 개방과 노동법 개정안 관련 발언이었다. 1993년 2월 최종현 선대회장은 두 차례에 걸친 기자회견에서 쌀시장 개방 문제는 거시적인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20만 평만 산업화해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 고 말하며 쌀시장 개방에 찬성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1996년 말 노동법 개정 관련 발언도 마찬가지 경우였다. 당시 정 재계는 노동법 개정안을 두고 극도의 혼란을 보였다. 1996년 12월 3일 정리해고제 변형근로제의 도입, 복수노조의 허용 등을 주요 골자로 하는 정부의 노동법 개정안이 15개 부처 장관으로 구성된 노사관계개혁추진위원회에서 의결되자 최종현 선대회장은 이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결국 김영삼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걸고서라도 막겠다던 쌀 개방은 1993년 12월 결정됐고, 최종현 선대회장의 주장은 미래를 예측한 선견지명으로 받아들여졌다. 노동법 개정도 IMF 외환위기가 터지자 많은 사람이 최종현 선대회장의 주장에 공감했다. 최종현 선대회장의 발언이 있은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우리나라는 IMF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위기에 직면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1990년대 중반부터 경제위기에 대해 경고했고 주위를 환기시켜 왔다. 특히 금리와 관련된 그의 지론은 IMF 외환위기의 원인을 그대로 짚어낸 것이어서 그의 주장이 관철됐더라면 하는 안타까움마저 자아냈다. 극심한 갈등을 빚어낸 노동법 개정안이 1996년 12월 26일 마침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 국회통과는 노동계 총파업으로 이어져 벽두부터 온 나라가 들끓었다. 1997년은 또한 대기업의 신화가 무너지고 경제계가 재편된 해이기도 했다. 이러한 경제적 위기를 앞두고 최종현 선대회장은 1997년 2월 19일 전경련 회장에 재추대됐다. 그에겐 풀어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었고 그에 대한 재계의 기대 또한 매우 높았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1997년 4월 11일 전경련 429개 전회원사에 이례적으로 서한을 보내 경제난국 극복을 위한 경영혁신 운동에 적극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그는 이어 기술 개발, 마케팅 능력배양, 경비절감, 생산성 제고 등을 위한 투자확대와 경영혁신 등 4개 사항을 촉구했다. 이처럼 최종현 선대회장은 자신의 경제관과 소신을 굽히지 않으며 강단 있는 재계의 지도자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SK그룹 60년사

73 한국이동통신 인수, 정보통신사업 진출의 꿈 이루다 년 8월 선경이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획득했다가 정치논리에 밀려 반납한 사건은 1992년의 10대 뉴스가 될 만큼 국내외에 파장을 일으켰다. 1992년 12월 대선에서 민주자유당 김영삼 후보가 당선됐고, 이듬해 2월 25일 문민정부가 출범했다.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문제도 문민정부의 손으로 넘어갔다. 취임 직후 김영삼 대통령은 사업자 선정 문제에 직접 관여했다. 10여 개월 뒤인 1993년 12월 10일, 체신부는 2차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방식을 발표했다. 발표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였다.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방법을 민간자율에 의한 단일 컨소시엄 방식으로 확정하고 컨소시엄 구성을 두 달의 시한을 두고 전경련이 결정하기로 한 것이었다. 아울러 한국통신이 보유하고 있던 한국이동통신의 주식 지분(64%) 가운데 민간업체가 경영권을 획득하는데 충분한 규모의 주식(45% 내외)을 매각해 이동전화사업 신규허가와 한국이동통신 민영화를 연계 추진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1984년에 한국통신에서 분리돼 자회사로 설립된 한국이동통신은 우리나라 유일의 무선통신 회사였다. 설립 후 차량용 무선통신과 무선호출 업무를 시작해 1988년 7월에는 무선전화 사업으로 보폭을 넓혔다. 이후 시장의 성장에 힙입어 1991년 12월 총가입자가 100만 명(이동전화 16만 명, 무선호출 84만 명)을 넘어섰으며, 1993년 7월 무선호출 가입자만 해도 200만 명을 돌파할 정도로 급성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전경련은 2개월 이내에 어떤 식으로든 하나의 컨소시엄을 만들어 체신부에 사업허가를 신청해야 했다. 전경련의 고민을 가중시킨 것은 사업자 선정 문제가 1992년의 경우처럼 1차 방정식 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1992년 사업자 선정 때에는 제2이동통신 사업자만 결정하면 됐지만 이번에는 한국이동통신의 민영화 문제까지 걸려 있었다. 전경련 회장이었던 최종현 선대회장은 참으로 난감한 위치에 있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1992년 사업권 반납 결정에 이어 다시 한 번 대승적 차원의 결단을 내렸다. 전경련 회장단은 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1994년 1월 15일에서 2월 23일까지 6차례에 걸친 회동을 가졌다. 그리하여 최종현 선대회장은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포기하고 3,500억 원 내외의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전경련 회장으로서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두고 포항제철이나 코오롱 등과 다시 경쟁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전경련 회장단의 대다수가 최종현 선대회장의 대승적 결정을 환영하고 치하를 마다하지 않았다. 사업권 경쟁에 참여한 한 그룹은 최종현 선대회장의 결단에 경의를 표한다 는 논평을 내기도 했다. 전경련 회장단은 이에 그치지 않고 선경의 한국이동통신 인수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수년 동안 사업권 획득을 위해 준비해 오다가 최종현 선대회장의 결정으로 한국이동통신 인수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선경의 분위기는 침통할 수밖에 없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의 결단으로 나머지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렸다. 약간의 정치적인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전경련은 1994년 2월 14일 사업계획서를 접수한 포항제철 코오롱 금호그룹을 대상으로 합동 면접심사를 실시했다. 1994년 2월 28일에는 포철을 1대주주(주도 사업자)로 결정하고, 코오롱을 2대주주(제2사업자)로 선정한 결과를 체신부에 통보했다. 이로써 1990년 7월 이동통신 사업의 경쟁체제 도입이 발표된 후 4년여를 끌어오던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이 비로소 일단락됐다. 한편 체신부의 한국이동통신 민영화 방침에 따라 1994년 1월 24일부터 25일까지 주식 공개매각이 실시되자 선경은 여기에 참여했다. 선경은 한국이동통신 주식의 23%인 127만 5,000주를 시가보다 훨씬 높은 가격인 주당 33만 5,000원에 인수했다. 인수자금은 4,271억 원이었다. 1994년 3월 16일 선경은 주식매입금 납입을 완료했다. 하지만 한국통신이 소유하고 있던 나머지 33%의 주식 매각이 유찰을 거듭함에 따라 한동안 선경보다 지분이 많은 SK그룹 60년사

74 한국통신이 대주주 권리를 행사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1994년 6월 2일 한국통신은 한국이통통신의 보유주식 중 20%만 남기고 나머지를 증권시장에서 모두 매각했다. 이로써 한국이동통신의 지분은 선경 23%, 한국통신 20%가 돼 선경이 1대주주로 올라섰다. 마침내 1994년 7월 7일 한국이동통신 임시 주총에서 선경은 경영권을 획득했다. 선경과 최종현 선대회장이 그토록 염원한 정보통신 사업의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반납한 지 20개월만의 감격이었다. 한국이동통신 연혁(1984~1993) 한국이동통신서비스주식회사 설립 차량전화 업무 인수 무선호출 업무 인수 전화번호 표시 방식 무선호출 서비스 개시 공중 전기통신 사업자 지정 한국이동통신주식회사로 상호 변경 휴대전화 업무 개시 기업공개(64억 원 공모증자) 무선호출 전용교환망(식별번호 012) 개통 가입자 100만 명 돌파(이동전화 16만, 무선호출 84만) 이동전화, 무선호출 서비스 74개 시 확대 무선호출 가입자 100만 명 돌파 무선호출 전용교환기(TDX-PS) 개발 무선호출 200만 가입자 돌파 무선호출 집중운용보전 시스템 설치 운영 이동통신기술개발사업관리단 발족 SKMS와 SUPEX추구의 중국 전파 최종현 선대회장은 굴지의 대기업을 경영한 기업가이자 시카고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과정을 마친 학구파답게 SKMS와 SUPEX추구법을 창시한 경영이론가였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1992년부터 1995년까지 관계사를 다니며 SUPEX추구 현황을 보고받는 등 SUPEX를 현장에서 직접 챙겼다. 1993년 12월 3일 서울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열린 93 SUPEX추구 촉진대회 에서는 확고한 경쟁력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다가오는 세계화 시대에 대비해서 성공할 수 있는 기업경영을 설계해야 하는 것 이라고 말하며 SKMS와 SUPEX추구에 대한 의지와 열정을 드러냈다. 이 때 최종현 선대회장은 세 가지를 강조했다. 첫째, 그룹에서 다루는 상품들이 빠른 시일 내에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모든 상품에 대해 SUPEX추구를 하고, 상품 하나하나에 회사의 전 조직이 달라붙는 전방위 경영체제(All Court Pressing Management)로 가야 한다. 둘째, 앞으로 SKMS와 SUPEX추구의 실천은 사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앞장서서 끌고 가야 한다. 임원이 SKMS와 SUPEX추구를 실천한다는 것은 상품 하나하나에 대한 SUPEX추구를 임원회의에 올려 책임지고 상품별 SUPEX추구를 성공시키도록 하는 것이다. 셋째, 지금까지 SUPEX추구는 이해와 납득을 위한 실행의 의미가 많았기 때문에 회장이 직접 앞에 서서 각사의 SUPEX추구를 Lead, Help하는데 중점을 두고 추진해 왔으나, 이제는 장애요인을 하나하나 제거해 나가는 실천단계이므로 Lead, Help는 물론 Check도 철저히 해나가야 한다. SK그룹 60년사

75 최종현 선대회장은 1994년을 2000년대를 대비한 SKMS 실천의 원년으로 정했다. 1994년 1월 3일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열린 신년교례회에서 그는 1994년은 국제적으로나 우리나라로서도 중요한 해이지만 우리 선경에 있어서도 21세기를 대비함에 있어 SKMS 실행 첫 해 라고 규정하면서 세계 일류상품 개발을 위한 MPR/ S/T 강화를 당부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1994년 3월 한중 경제협력을 위해 4박 5일의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시노펙(SINOPEC)의 총경리가 주최한 초청만찬에 참석한 최종현 선대회장은 SKMS와 SUPEX를 중국에 전파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그의 의사 표명은 곧 실현됐다. 1994년 11월 손길승 경영기획실장을 비롯한 10여 명의 강사진이 선경의 SKMS와 SUPEX 추구법을 전수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했다. 선경의 경영기법 전수는 사이노펙의 요청과 중국 장쩌민 주석의 재가로 성사된 것이었다. 손길승 실장 일행은 시노펙 국장급 이상 150명을 대상으로 SKMS와 SUPEX추구법 및 사례를 강의했다. SKMS와 SUPEX추구법을 세계에 확산시키기 위해 경영기획실은 1996년 1월 SKMS 중국어판, 2월 일본어판을 발간한데 이어 3월에는 영어판과 SUPEX추구 해설서를 발간했다. 엔크린과 ZIC 돌풍 유공은 1995년 10월 최고 점도의 윤활유인 ZIC를 개발, 시판에 들어갔다. 21C를 의미하는 ZIC는 출시되자마자 선풍을 일으키며 자타가 인정하는 최고의 윤활유로 자리매김했다. 국내시장을 장악한 ZIC는 세계시장으로 뻗어나갔다. 한편 이 시기에는 국내 최초로 브랜드 휘발유인 엔크린을 출시, 휘발유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유공의 신제품 개발은 대덕기술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대전시 대덕구에 위치한 대덕기술원은 1992년 4월 공사에 착수해 1993년 8월 1차 준공했다. 1993년 12월 연구 지원시설의 준공으로 대덕연구소에서 대덕기술원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1995년 5월 25일 최종 준공됐다. 유공은 국내 최초로 선박용 엔진오일 슈퍼마(Supermar)의 자체개발에 성공, 1992년 7월부터 시판했다. 슈퍼마는 1986년부터 1991년까지 6년간의 연구를 거쳐 개발된 것으로 선박용 엔진오일이 갖춰야 할 기능이 극대화된 제품이었다. 세계적인 선박 엔진제조회사인 독일의 만(Man B&W), 프랑스의 필스틱(Pielstic)사의 OEM 승인을 얻는 등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1993년 8월에는 2년여의 연구 끝에 첨단 SH급 엔진오일 하이플로골드를 출시했다. 하이플로골드는 국내 최초로 API 도너츠 마크와 ILSAC(국제윤활유규격승인위원회) 스타버스트 마크를 동시에 획득했다. 유공의 윤활유 개발은 YUBASE와 ZIC에 이르러 정점에 달했다. 1995년 1월 유공은 레이시온사와 세계 최초로 공동개발한 초고점도지수 윤활기유 생산공정의 공동판매 계약을 체결, 기술소유권을 확보했다. 이어 유공은 초고점도지수 윤활기유로 만든 윤활유를 개발, 1995년 10월 시판에 SK그룹 60년사

76 들어갔다. 이것이 바로 현재까지 최고의 윤활유로 자타가 인정하는 ZIC다. 아울러 윤활기유 YUBASE는 품질규격이 까다롭기로 소문난 유럽과 일본시장에도 국내 최초로 진출했다. 유공은 1996년 4월 1일 미국 ESSO사와 1986년 체결한 기술 및 상표사용 계약을 해지함으로써 윤활유사업의 명실상부한 기술자립 시대를 열었다. ESSO사와의 기술계약 종료는 유공이 1963년 윤활유사업을 시작한 이래 지속돼온 해외 윤활유 메이저와의 관계를 청산하는 것을 의미했다. 계약 종료로 기술 및 상표사용료를 절감하고 수출시 독자 브랜드를 사용할 수 있게 된 유공은 ZIC를 주력상품으로 내수판매를 강화하는 한편, ZIC 브랜드의 세계화를 위해 광고 마케팅에 주력했다. 유공은 국내 최초로 휘발유 브랜드 엔크린을 출시, 휘발유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그 시작은 유공이 종전까지 수입에 의존해왔던 연료유 첨가제 2종을 국내 최초로 개발한 것에서 비롯됐다. 유공 울산연구소는 1993년 하반기 연료유 첨가제 개발을 완료, 6건의 물질특허와 1건의 제조공정특허를 출원했다. 1994년 2월에는 국내외 7개국에 특허출원을 신청, 1995년 11월 미국과 프랑스 등으로부터 특허권을 획득했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유공은 1995년 10월 엔크린(Enclean)이라는 브랜드로 고청정 휘발유 신제품을 출시했다. 엔크린은 엔진과 환경을 보호하는 깨끗한 에너지(Engine Clean, Environment Clean, Energy Clean)라는 의미를 지녔다. 세계 유수 엔진실험기관인 리카도(Ricardo)와 SwRI로부터 선진국의 청정제보다도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은 엔크린이 휘발유시장에 돌풍을 일으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엔크린은 1996년 3월 국내 최초로 일본에 수출되기도 했다. 유공은 1996년 1월 15일 경유 신제품 파워디젤을 출시함으로써 경유시장에도 브랜드시대를 열었다. 파워디젤은 엔진 세척 연료산화 방지 녹 생성방지 등의 기능이 있는 다목적 첨가제를 사용, 엔진출력을 대폭 향상시킨 경유다. 불순물을 제거해 엔진출력을 대폭 높인 파워디젤은 매연감소 소음방지 연비개선의 효과도 발휘했다. 유공 울산공장, 세계최대 정유공장으로 거듭나다 유공은 1996년 9월 울산컴플렉스 내 1만 평 부지에 제5 석유정제시설을 완공하고 10월부터 본격 가동했다. 하루 20만 배럴의 정제능력을 갖춘 이 시설의 가동으로 원유정제 능력은 일산 81만 배럴로 늘어나 세계 최대의 정유공장으로 부상했다. 약 9,500억 원이 투입된 FCC사업은 유공 창사 이래 최대 투자규모의 핵심 투자사업이었다. 일산 20만 배럴 규모의 제5정유공정 사업은 유공이 세계 최대의 원유처리 기업으로 올라서기 위한 행보였다. 제5 석유정제 시설은 하루 20만 배럴의 상업정제, 6만 배럴 규모의 등 경유 수첨탈황, 100톤 규모의 유황 회수시설 등으로 이뤄졌다. 특히 등 경유 수첨 탈황시설의 가동으로 초저유황 0.05경유를 생산, 환경오염 저감에 획기적으로 기여했다. 1997년 1월에는 제2중질유 탈황 분해시설을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했다. 이 시설은 일산 6만 배럴 규모의 탈황시설과 5만 배럴 규모의 분해시설이었다. 하루 6만 배럴의 고유황 벙커C유를 탈황, 분해공정을 거쳐 휘발유 유분 4만 배럴, 저공해 경유 2만 배럴, 프로필렌 3,500배럴을 생산하는 시설도 갖췄다. 이에 따라 유공의 하루 휘발유 생산량은 기존 5만 배럴에서 9만 배럴로 증가했다. 특히 휘발유 유분 중 알킬레이트는 국내 최초로 생산되는 저공해로 인체에 유해한 방향족 함량이 전혀 없었다. 1997년 3월에는 1995년 3월부터 제2 합성수지(PE/PP) 제조시설을 완공했다. 이로써 기존의 35만 톤과 함께 모두 63만 5,000톤의 폴리에틸렌과 폴리프로필렌을 생산하게 돼 연간 1,900억 원 이상의 매출증대 효과를 거뒀다. 같은 달 유공은 제2파라자일렌(PX) 생산능력을 35만 톤에서 65만 톤으로 늘려 본격 가동에 SK그룹 60년사

77 들어갔다. 이 시설의 가동으로 유공은 국내 최대 파라자일렌 생산업체로 부상했다. 한편 유공은 1993년 11월 25일 영국의 로이드선급협회 심사기관(LRQA)으로부터 정유, 윤활유, 석유화학 등 국내 모든 제조 저장설비를 비롯한 관련 설계 서비스에 대해 ISO 9001 인증을 획득했다. 이에 따라 유공은 NACCB(영국 국가인증기관), RVC(네덜란드 국가인증기관), DAA(독일 국가인증기관) 등 3개국 인증기관에 모두 등록한 세계 최초의 종합에너지 화학기업으로 이름을 올렸다. 한국이동통신, 세계 최초로 CDMA 상용화 한국이동통신은 1994년 11월 18일 이동통신 원천기술인 CDMA(Code Division Multiple Access; 코드분할다중접속) 방식 시스템 운용시험에 성공했다. 이를 기반으로 1995년 12월 31일에는 상용화를 위한 시험통화에 성공했다. 세계 최초로 CDMA 상용화의 서막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단군 이래 가장 큰소리칠 만한 기술 이라고 표현되는 CDMA 상용화는 우리나라가 정보통신 강국으로 부상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체신부는 1992년 12월 3일 이동통신의 원천기술을 CDMA로 단일 표준화했다. 1989년 국책사업으로 선정한 디지털 이동통신 시스템 개발 의 방향을 정한 것이었다. 개발 초기 TDMA(Time Division Multiple Access; 시간 분할 다중접속)와 CDMA 방식이 치열한 각축을 벌였지만 결국 주파수 부족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CDMA 방식을 표준으로 채택했다. 그러나 상용화까지는 갈 길이 멀었다. 체신부는 1993년 9월 이동통신 기술개발 사업관리단 을 한국이동통신 내에 발족시키고 서정욱 단장을 임명했다. 서정욱 단장은 CDMA 시스템 개발을 위해 업체 간 경쟁을 유도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LG 삼성 현대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등이 개발을 서두르기 시작했고, 선경도 한국이동통신 주식을 인수해 CDMA 개발에 참여했다. 108가지 예비시험을 거쳐 여기에 합격한 개발업체를 대상으로 또다시 1,000가지 상용시험을 실시했다. 예비시험을 통과한 장비로 시험을 거듭한 결과, 한국이동통신은 1994년 11월 18일 대전시 유성구 대덕 중앙연구소에서 CDMA 방식 SK그룹 60년사

78 시스템 운용시험에 성공했다. 1995년 3월 18일 한국이동통신 사장에 서정욱 단장이 취임하면서 CDMA 상용화에 가속도가 붙었다. 상용화는 교환기 단말기의 개발, 기지국의 최적화, 시스템의 완벽한 구축이 함께 이루어져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었다. 이에 따라 한국이동통신은 1995년 한 해 동안 사용자 요구사항을 통해 개발업체들을 지도, 독려하는 한편, 서울 시내 기지국을 대상으로 최적화 작업을 실시했다. 이 시기에 한국이동통신은 한국통신과의 기술표준 주도권 싸움을 벌여야 했다. 당시 세계 이동통신업계는 PCS(Personal Communication Services; 개인휴대통신) 기술표준을 두고 활발한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우리나라 역시 PCS 사업자 선정 문제가 정보통신업계의 최대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한국이동통신을 선경에 넘겨준 한국통신은 PCS 사업권을 획득한다는 방침 아래 PCS 기술표준 문제를 검토하고 있었다. 이동통신 시장의 재진입을 노리고 있던 한국통신은 TDMA 방식의 GSM 도입을 검토했다. 이는 한국이동통신에게는 절체절명의 위기라 할 수 있었다. 한국통신이 CDMA 상용화 기념 사은회. 한국이동통신은 1994년 11월 18일 이동통신 원천기술인 CDMA 방식 시스템 운용시험에 성공에 이어 1995년 12월 31일에는 상용화를 위한 시험통화에 성공했으며, 1996년 1월 1일에는 인천과 부천지역에서 디지털 이동전화 서비스를 세계 최초로 개시했다. TDMA 방식을 도입하게 되면 한국이동통신은 CDMA 상용화 여부에 관계없이 시장을 빼앗기게 되는 셈이었다. 1995년 5월 한국통신이 PCS의 무선접속기술을 TDMA 방식으로 개발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한국이동통신과 한국통신 간 사활을 건 싸움으로 비화됐다. 치밀한 준비를 거친 한국이동통신은 1995년 6월 12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CDMA시연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CDMA 상용화 경쟁에서 기선을 확실하게 제압한 한국이동통신은 사운을 건 PCS 기술표준 전쟁을 치렀다. 결국 정보통신부는 1995년 10월 20일 통신사업자 허가신청요령 2차 시안 을 발표하면서 PCS 무선접속방식을 CDMA 방식으로 단일화했다. 기술표준 싸움에서 국익을 앞세운 한국이동통신이 승리를 거둔 것이었다. PCS 기술표준 시비에서 승리한 한국이동통신은 1996년 1월로 예정된 CDMA 상용화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1995년 12월 세계 최초 CDMA 통화 테스트를 모두 성공리에 마치고, 상용화의 서막을 열었다. 한국이동통신은 1996년 1월 1일 인천 부천 지역에서 CDMA 방식의 디지털 이동전화 서비스를 세계 최초로 개시했다. 언론들도 CDMA 개발성공 소식을 앞다투어 전했다. 1996년 4월 12일에는 서비스 지역을 서울 등 수도권지역으로 확대했다. 서비스 확대 2개월 만인 6월 11일 가입자 5만 명을 돌파했다. 이때부터 한국이동통신은 CDMA 서비스를 전국적으로 확대했다. 7월 울산, 8월 대구 경북 지역에 디지털 이동전화 서비스를 개시했고 9월 2일에는 부산 경남 지역, 9월 11일에는 광주 전남 지역 개통식을 가졌다. 이로써 한국이동통신은 CDMA 상용화 9개월 만에 전국 주요 도시에 이동전화 서비스를 개통했다. SK그룹 60년사

79 선경투자신탁운용과 SK생명 탄생 선경증권 설립으로 금융업에 진출한 선경은 1996년 12월 11일, 신흥증권과 합작으로 선경투자신탁운용(주)을 설립하고 투자신탁업으로 보폭을 넓혔다. 선경증권과 신흥증권이 각각 30% 지분을 가졌으며, 한미은행 대구은행 경기은행 등이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했다. 선경투자신탁운용은 전문기관에 의한 투자운용과 세계 유수의 투자신탁회사와 업무제휴를 맺어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해 설립됐다. 선경은 1997년 9월 대전에 본사를 둔 중앙생명을 인수했다. 중앙생명의 실권주를 190억 원에 취득함으로써 지급여력 부족분을 해결한다는 조건이었다. 다음달 11일 중앙생명은 사명을 SK생명으로 바꾸고 선경의 가족으로 새 출발했다. SK생명은 1997년 당시 22개 영업국 223개 영업소의 전국 점포망과 구성원 800여 명, 생활설계사 3,000여 명의 조직을 갖추고 있었다. SK생명은 이후 국민생명과 한덕생명을 인수해 몸집을 키우면서 2000년 7월 1일부로 새롭게 태어났다. 세 회사의 합병에 따라 SK생명은 업계 6위의 위상을 확보했다. 새로운 신규시장 진출,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한 질 좋은 서비스 제공으로 21세기 세계 최고의 종합금융회사를 향한 첫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SK생명은 대주주이던 SK네트웍스가 경영 자구계획의 일환으로 2005년 5월 12일 지분을 미래에셋에 매각함으로써 SK그룹의 품을 떠나갔다. SK생명은 업계 5위 생명보험사로서 매각되기 전까지 3년 연속 흑자를 달성했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상당히 아쉬운 매각으로 평가받았다. SPEED 011 과 TTL 로 고객 사로잡다 SK텔레콤은 1997년 하반기 PCS 3사와 광고전쟁을 치렀다. 1996년 6월 10일 정보통신부에 의해 한국통신 LG 한솔그룹이 PCS 사업자로 선정되자 CDMA와 PCS 방식 간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PCS 3사는 한결같이 PCS 서비스가 신기술이라고 선전했다. 하지만 PCS 서비스도 CDMA 기술을 사용했으며, 오히려 더높은 대역의 주파수를 이용함으로써 통화품질이 떨어졌다. 1997년 하반기 PCS 3사는 일제히 상용화 서비스를 개시했고 이동통신 시장은 본격적인 경쟁체제로 들어섰다. 이에 따라 SK텔레콤은 1997년 10월 1일 기존 브랜드인 디지털 011을 SPEED 011로 교체했다. 이는 차세대 종합 멀티미디어 통신 채널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었다. SK텔레콤은 고객서비스 확대를 위해 CDMA시스템의 음질을 개선한 EVRC(Enhan- ced Variable Rate Coder; 통화음질 최적화 코더)의 본격 서비스를 실시했다. 통신사업자로서는 국내 최초로 고객상담 및 애프터서비스 분야에서 국제 표준인 ISO 9002 인증도 획득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SK텔레콤의 이동전화 가입자수는 1998년 5월 CDMA 상용화 3년 만에 500만 명을 돌파했다. 이는 당시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1%에 해당하는 수치로 SK텔레콤은 명실상부한 전국민의 이동전화 서비스 업체로 위상을 굳혔다. SK텔레콤의 브랜드 변경은 이후 SPEED 011 신화를 창조하는 계기가 됐다. SK텔레콤의 이동전화 서비스는 이동전화 부문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2012년까지 15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SPEED 011의 성공적인 론칭으로 SK텔레콤은 세계 8위의 초우량 이동전화 사업자로 부상했다. SK그룹 60년사

80 그러나 SPEED 011 브랜드로 국내에서 이동전화 시장을 석권하고 있던 SK텔레콤은 PCS의 등장으로 위기상황을 맞았다. 젊은 층이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고 신세대 기호에 맞춰진 PCS 상품을 선호해 SK텔레콤의 고객 신규가입률은 곤두박질쳤고, 특히 20대의 시장점유율이 20% 수준에 불과했다. 이전까지 독보적 존재를 과시하던 011 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10대 후반부터 20대까지의 고객유치가 관건이었다. 이들 연령층은 당장의 고객이기도 하지만 미래의 주 소비층이기도 했다. 결국 이들을 놓친다는 것은 미래를 장담할 수 없게 됨을 의미했다. SK텔레콤으로서는 보다 공격적이고 파격적인 마케팅과 함께 미래지향적인 이미지 변신이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등장한 것이 미래 고객이 될 신세대를 위한 신개념의 이동전화 브랜드 TTL이었다. 1999년 7월 론칭한 TTL은 무명의 신인모델 임은경이 등장한 광고에서부터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TTL은 20대의 라이프스타일과 감각에 맞는 서비스를 상품으로 구성해 만든 브랜드였다. TTL은 신세대 통화패턴에 맞춘 TTL요금제 20대의 기호에 맞춘 감각적인 디자인과 기능을 갖춘 전용 단말기 TTL 멤버십카드 문화공간 TTL 존 20대가 주로 이용하는 부가서비스 폰메일 벨소리의 무료제공 등으로 구성했다. TTL은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TTL 가입자 수는 6개월 만에 100만, 30개월 만에 300만 명을 돌파했다. SK텔레콤은 TTL의 성공에 힘입어 1999년 12월 24일 이동전화 가입고객 수 1,000만 명을 돌파했다. TTL의 성공 이후 SK텔레콤은 특정 세대를 타깃으로 하는 세분화 마케팅을 더욱 확대해 2001년 8월에는 10대 전용 이동전화 서비스 ting을, 10월에는 25~35세를 대상으로 한 UTO를 내놓았으며, 이듬해 8월에는 기혼 여성을 위한 이동전화 서비스 CARA를 잇달아 출시하며 시장을 석권했다. 고객들의 니즈를 정확히 간파하고 다양한 요구를 반영한 것이 성공의 중요한 요인이었다. TTL 브랜드 출시는 국내 통신업계 전체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다. 각 이동통신사들은 기존 장려금 지급 위주의 출혈 경쟁에서 벗어나, 상품 개발력 및 고객 서비스 중심의 창의적 마케팅으로 시장전략을 바꾸기 시작했다. 매머드 석유판매회사 SK에너지판매 탄생 년대 중반 정유업계는 무한경쟁 시대를 맞았다. 1995년 11월 15일 서울, 부산 등 6대 도시에 국한됐던 주유소 간 거리제한 철폐가 전국으로 확대됐다. 이는 주유소 점유율에서 선두를 점하고 있던 유공에게는 위기였고 후발 경쟁사에게는 열세를 만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완전 자유경쟁에 따라 주유소 허가를 선점하기 위한 정유사들의 경쟁이 불붙었다. 유공은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하고 전국의 지사조직을 총 동원해 주유소 신규허가의 45%를 유치함으로써 계속해서 시장에서 선두를 지켰다. 하지만 유공은 정유업의 무한경쟁에 대해 좀 더 근본적으로 대처하기로 했다. 유공은 석유시장 자유화에 대비하고, 대형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를 위해 1997년 5월 16일 자사계열의 7개 석유대리점을 통합했다. 이로써 전국에 산재돼 있던 유통망이 하나로 합쳐져 SK에너지판매주식회사가 탄생했다. 1997년 매출액 7조 원으로 단숨에 국내 10위권 기업에 진입했다. 유공은 과거 유공이 지니고 있던 시장운영에 대한 권한을 상당부분 대리점으로 이양, 정유업계의 무한경쟁에 대비했다. 유공은 1993년 7월 업계 최초로 BC카드와 제휴카드를 발행하고, 마케팅개발원을 설립하는 등 마케팅컴퍼니로 거듭났다. 1997년 1월에는 엔크린보너스카드를 발행해 고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이 카드는 훗날 OK캐쉬백 사업의 탄생 계기가 됐다. SK그룹 60년사

81 그룹 신CI 선포 선경은 1998년 1월 5일 쉐라톤워커힐에서 최종현 선대회장을 비롯한 관계사 구성원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신 CI 선포식 및 경영혁신 결의대회를 갖고 SK로의 새 출발을 다짐했다. 임직원들은 우리의 다짐 을 통해 진정한 SUPEX추구로 글로벌 시대 세계 초일류기업을 향해 고객이 OK할 때까지, 세계가 OK할 때까지 SK라는 이름으로 21세기를 열어나갈 것을 결의했다. 이러한 사명변경은 단순히 하나로 화합한다는 의미를 뛰어넘어 당면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반드시 세계 일류가 되겠다는 비장한 각오의 표현이기도 했다. 따라서 고객의 기대를 앞서가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고, 기업 이미지 뿐만 아니라 마음가짐과 행동양식까지도 변화시켜 세계일류 수준의 SK 라는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섬유 중심으로 성장한 선경 의 이미지를 미래의 유망산업인 에너지와 정보통신의 SK 로 재구성해 다가오는 21세기 무한경쟁 시대에 세계 일류기업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다짐이기도 했다. 사명 개정작업은 3단계를 거쳤다. 정보통신의 리더인 SK텔레콤과 에너지 화학의 일등기업인 SK주식회사를 전면에 내세워 기업의 이미지를 미래지향적이며 강하고 패기 있는 회사로 느껴지도록 했다. 이 같은 전략에 의해 한국이동통신을 1997년 3월 24일 SK텔레콤으로 변경했다. 이어서 10월 1일에는 유공을 비롯한 에너지 관련 5개사를 SK주식회사 등으로 사명을 바꿨다. 이로써 유공은 SK주식회사로, 유공해운, 흥국상사, 유공가스, 유공옥시케미칼은 각각 SK해운, SK에너지판매, SK가스, SK옥시케미칼로 이름을 바꿨다. 마지막 3단계로 1998년 1월 (주)선경을 SK상사로, 선경인더스트리를 SK케미칼로, 선경건설을 SK건설로, 선경증권을 SK증권으로 사명을 변경함으로써 전 관계사가 SK 라는 통일된 이미지를 구축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SK주식회사는 그룹의 대표 기업으로 앞으로 사업영역 확장과 다각화를 고려, 사명에 업종을 표시하지 않았다 고 밝혀 SK주식회사를 그룹의 대표 기업으로 키워나갈 방침임을 천명했다. 이로써 과거 50년여 년 동안 써온 선경 이라는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SK가 역사의 전면에 나섰다. SK그룹 60년사

82 IMF의 격랑을 넘어서다 년 11월 22일 IMF 외환위기가 발생했다. 국가의 외환보유고가 바닥나 국가부도 위기에 몰리게 되자 국제통화기금(IMF)에 자금지원을 요청하게 된 것이었다. IMF 외환위기는 국가 전체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수많은 기업이 도산하고, 엄청난 수의 실업자가 발생했다. 그나마 존립하는 기업들도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에 돌입해야 했다. 1998년 우리 경제의 화두는 IMF체제 극복이었다. IMF 관리체제가 본격화한 1998년 우리나라는 극심한 불황을 겪으면서 18년만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1998년 벽두부터 터져 나온 빅딜(대규모 사업 교환) 파문은 시간이 갈수록 증폭돼 1년 내내 정부와 기업, 금융기관을 강타했다. 전 국민적으로 금 모으기 운동이 대대적으로 펼쳐졌고, 정부와 재계는 강력한 구조조정을 전개했다. SK그룹은 기업은행과 손잡고 1998년 1월 15일부터 한 달간 그룹 구성원을 비롯한 전국민을 대상으로 나라사랑 금모으기 운동을 전개했다. 그 결과 모두 2톤의 금을 모아 이 중 1.7톤을 해외로 수출해 1,600만 달러의 외화를 획득했다. 이와 관련해 구성원들의 나라사랑 금모으기 운동도 관계사 별로 펼쳐졌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1998년 1월 김대중 대통령과 재계총수 간의 대기업 구조조정 5대 과제 합의 후 구조조정 작업을 추진했다. 그리하여 5월 7일 2~3개 계열사 지분 해외매각과 핵심사업의 투자유치를 통한 20억 달러 규모의 외자유치 4억 달러 상당의 비핵심사업 및 자산매각 추진 주요 회사 합병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구조조정 실천현황 및 계획을 발표했다. 이와 더불어 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와 상호지급보증의 1999년 완전해소, 재무구조의 획기적 개선, 지배주주의 책임강화 등의 조치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SK그룹은 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와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조조정 실천계획의 일환으로 한시조직인 구조조정추진본부를 설치했다. 이와 더불어 그룹 경영기획실 해체, 사장단회의 폐지, 관계사 별 자율 책임경영체제 확립 등을 골자로 하는 경영구조 개편안을 확정하고 1998년 5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때 SKMS와 SUPEX추구에 따른 정보교류를 위해 SUPEX 추구협의회 를 설치 했다. 의장을 최종현 선대회장이 맡음으로써 관계사 사장으로 구성된 SUPEX 추구협의회는 그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자리 잡았다. SK주식회사도 IMF 환란으로 인한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에 들어갔다. 그 첫 단추는 고객 서비스 강화 였다. 정유업계 최초로 전국적인 고객 서비스망을 구축하고 고객이 OK할 때까지 뛰겠다는 OK! SK 실천에 착수했다. 전국 각 지역 별로 총 25개의 고객센터를 설치한 SK주식회사는 권역 별로 고객 서비스를 책임 관리하도록 했다. SK주식회사는 고객 서비스 강화와 함께 지속적인 구조조정 노력을 기울였다. 1998년 5월 7일 주요 계열사 지분 해외 매각 해외투자 유치 비핵심 자산 매각 추진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그룹 차원의 구조조정 계획이 발표된 후 SK주식회사는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이처럼 SK주식회사는 고객 서비스를 강화하고 구조조정을 실시해 IMF 환란 이후의 경기 침체 속에서도 내실있는 경영성과를 다져갔다. 그 결과 1998년 10월 SK주식회사는 미국의 포천지가 뽑은 세계에서 가장 신망받는 기업 의 하나로 선정되면서 경제위기 속에서도 안정된 기업의 이미지를 고객에게 각인시켰다. 미국의 경제전문 격주간지인 포천은 1998년 10월 26일 21개 산업부문에서 신망받는 278개 기업을 선정, 발표하면서 SK주식회사를 포함시켰다. SK주식회사는 정유부문에서 14위를 기록했다. SK그룹 60년사

83 SK텔링크 설립, 모바일 국제전화로 시장 선도 SK텔레콤은 통신시장의 개방화 국제화 시대를 맞아 저렴하고 편리한 통신 서비스로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1998년 4월 9일 SK텔링크를 설립했다. 설립당시 15명의 적은 인원으로 출범한 SK텔링크는 짧은 기간 내에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1998년 7월 세계 최대의 통신사업자인 미국의 AT&T사와 MCI사, 일본의 KDD사 등과 제휴해 세계 223개 지역을 연결하는 SK국제전화 서비스를 시작했다 은 서비스 개시 6개월 만인 1998년 12월, 기간사업자들을 제치고 51%의 통화량을 확보하는 성과를 올렸다. 1999년에는 국제전화 총 통화량이 별정사업자 중에서 유일하게 1억 분을 돌파하면서 국내 전체 국제전화 시장의 5% 이상을 점유해 기간사업자들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SK텔링크는 휴대폰에서만 이용이 가능하다는 제약조건을 역으로 이용해 국제전화 시장 내에서 휴대폰 국제전화 라는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냈다. 국제전화를 이용할 때 유선전화로 세 자리 번호를 사용하던 당시 풍토에서, 휴대폰 국제전화 00700의 저렴한 가격과 편리함을 강조함으로써 휴대폰 국제전화 분야의 선도적인 위치를 확보한 것이었다. 또한 서비스 초기 011 고객을 대상으로 SK텔레콤과의 공동 마케팅을 통해 SK의 브랜드 파워를 적극 활용한 점도 성공의 주요인이었다 은 011에서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모든 이동전화사업자와 제휴해 016, 017, 018, 019의 고객까지 서비스 대상에 포함시켰다. 이를 바탕으로 2001년 당시 15개의 브랜드가 난립하고 있던 휴대폰 국제전화 시장에서 00700은 통화량 기준으로 약 40%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함으로써 1위 별정통신사업자로서 지위를 확고히 했다. 2003년에는 국제전화 기간통신면허를 획득하며 기간통신사업자로서 유선시장으로까지 서비스 영역을 확대할 수 있었다. 2006년부터는 국가고객만족도, 국가브랜드경쟁력지수 등 내로라하는 국내서비스만족지수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또한 2010년에 상반기에는 통화량 뿐 아니라 매출액 부문에서도 1위 사업자였던 KT를 앞서 서비스 시작 12년 만에 명실상부한 국제전화 1위 사업자로 굳건히 자리매김했다. 스마트폰으로 이동통신 시장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던 2012년 3월부터는 국제전화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해 급변하는 모바일 통신 환경에 걸맞은 서비스를 제공하며 시장주도적 사업자로써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SK그룹 60년사

84 재계의 거목 최종현 선대회장 영면 IMF 외환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온 나라가 신음하고 있던 1998년의 그 뜨거운 여름, 재계는 물론 나라 전체를 충격에 빠뜨린 비보가 전해졌다. SK그룹의 회장이자 전경련 회장이었던 최종현 선대회장의 타계 소식이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이 1998년 8월 26일 오전 7시 40분 서울 광장동 워커힐 자택에서 유명을 달리한 것이었다. 향년 69세로 사인은 폐암이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1997년 6월 초 서울대병원에서 폐암진단을 받았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폐전문병원으로 유명한 뉴욕의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병원에서 폐암수술을 받았다. 초기에 암을 발견한데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 건강을 회복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그런데 최종현 선대회장의 병이 밝혀진 직후인 1997년 6월 20일 부인 박계희 여사가 먼저 별세해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박계희 여사는 최종현 선대회장의 간호에 열중하다 과로 끝에 심장마비를 일으켰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계희 여사의 영결식은 1997년 6월 24일 미국 뉴욕 현지에서 거행됐으며, 한국으로 운구됐다. 폐암 수술을 받은 최종현 선대회장은 수술 후 외부 공기로 부터의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된 상태였고 부인의 별세 소식을 모르고 있었다. 박계희 여사는 최종현 선대회장이 지켜보지도 못한 채 1997년 6월 28일 경기도 화성의 가족묘지에 안장됐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암과 싸우는 와중에도 SK그룹과 한국경제를 위해 마지막 남은 열정을 불살랐다. 1997년 7월 4일 퇴원한 최종현 선대회장은 요양 중인 미국에서 그룹의 업무보고를 받고 경제가 어려울수록 당초 계획대로 투자사업을 집행하라 고 독려했다. 9월 17일 귀국한 최종현 선대회장은 부인의 묘소를 찾아 애도했다. 이후 전경련 정례회의를 주재하는 등 활동을 계속했다. IMF 외환위기가 터진 후에는 한국경제의 회생을 위해 많은 일을 했다. 그러나 이미 진행된 암을 물리치지는 못했다. 타계 직전 최종현 선대회장은 입원을 권하는 주위의 요청을 모두 물리쳤다. 건강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지 결코 오래 사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병원에 갇혀 꼼짝 못하다가 마지막을 맞고 싶지 않다 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최종현 선대회장의 타계를 애석해했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1998년 8월 28일자 중앙일보를 통해 우리 경제 수호신으로 길이 머무소서 라는 제목의 추도문을 발표했다. 최종현 선대회장의 장례는 회사장으로 치러졌다. 유가족은 전경련이 제의한 전경련장을 극구 사양하며 가족장을 고집했으나 결국 회사 측의 권유를 받아들여 SK장 으로 치렀다. 1998년 8월 30일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에서 최종현 선대회장의 영결식이 거행됐다. 김대중 대통령이 조의를 표했으며, 김우중 전경련 회장대행, 도요타 쇼이치로 일본 경단련 명예회장, 노태우 전 대통령 내외, 방일영 조선일보 고문을 비롯한 각계인사 700여 명이 참석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영결식이 끝난 뒤 최종현 선대회장의 영정은 SK상사 7층 고인의 집무실과 여의도 전경련 회장실, 수원 SK케미칼, SKC 공장에 들러 고인이 평소 일하던 사무실과 공장을 돌아보았다. 이어 운구차는 수원시 평동 고인의 생가를 들렀고, 이웃 주민들과 친척 친지들이 참석한 가운데 노제가 치러졌다. 최종현 선대회장의 유언대로 고인의 유해는 부인 박계희 여사의 유해와 함께 경기도 고양시 벽제화장터에서 화장돼 경기도 화성의 가족묘지에 합장됐다. 9월 28일에는 고인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됐다. 1주기가 지난 후 최종현 선대회장의 유고집 2권이 출간돼, 봉정됐다. 하나는 21세기 일등국가가 되는 길 로 새로운 세기에 우리나라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한 정책 제언집이었다. 또 한권은 마음을 다스리고 몸을 움직여라 로 타계 직전까지 관심을 SK그룹 60년사

85 기울이며 스스로 창안했던 심기신( 心 氣 身 ) 수련에 관한 것이었다. 2001년 8월 26일 3주기 추모식에서는 최종현 선대회장의 경영철학과 SK의 성장과 발전 등을 조명한 논문집 SK그룹 최종현 연구 (한국경영사학회)가 발간, 봉헌됐다. 최종현 선대회장이 살아온 길 경기도 수원에서 최학배 공과 이동대 여사의 4남 4녀 중 차남으로 출생 수원농림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농화학과 입학( ~ ) 미 위스콘신 대학 생화학과 졸업 미 시카고 대학 대학원 경제학 석사학위 취득 박계희 여사와 결혼 선경직물(주) 부사장으로 취임 폴리에스터 원사 공장 건설 수출 유공으로 은탑산업훈장 수상 선경그룹 회장 취임 인재양성을 위한 한국고등교육재단 설립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 선포로 제2 창업 선언 SK의 고유 경영 기법인 SKMS 정립 대한석유공사 인수 후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 ) SK의 정보통신 분야로의 진출 선언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취임( ~ ) 영면 대주주와 전문경영인의 파트너십 경영 년 9월 1일 세간의 예상과는 달리 손길승 부회장이 SK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으며, 장남 최태원은 신일고, 고려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선친이 다녔던 시카고대학에서 경제학석사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돌아와 SK(주) 부사장으로 신규사업을 주도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다른 대기업의 사례를 따르지 않고 전문경영인을 그룹의 회장에 추대했다. SK만의 전통인 대주주와 전문경영인의 파트너십 경영이 더욱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이 타계하자 SK는 1998년 8월 31일 주요 관계사 사장들로 구성된 SUPEX추구협의회를 개최하고, 어려운 경영환경과 구조조정 추진업무의 지속성을 고려해 손길승 부회장을 SUPEX추구협의회 의장으로 선임했다. 최종현 선대회장 타계 후, 대주주 가족회의를 통해 대주주들의 대표권을 위임받은 최태원 회장은 SUPEX추구협의회에서 대주주와 전문경영인이 항상 힘을 합쳐 경영해야 한다는 선대 회장의 유지를 전했다. 이어 지금 같은 어려운 경영환경 아래에서는 내부의 힘을 결집해 난관을 극복하는 것이 시급하다 고 말하고 SK 주요 관계사를 대표할 회장을 전문경영인 중에서 선임해줄 것을 제안했다. SUPEX추구협의회는 만장일치로 손길승 부회장을 최종현 선대회장의 역할을 승계할 SUPEX추구협의회 의장으로 선임하고, 김항덕 부회장을 회장대우 상임고문으로 추대했다. 손길승 회장은 대주주와 호흡을 맞춰 SK의 기업문화를 공유하는 회사들의 구조조정을 더욱 가속화시켜 나가고 최종현 선대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SK를 세계 일류기업으로 더욱 발전시켜 나가겠다 고 말했다. SK그룹 60년사

86 이어 SK텔레콤등은 이사회를 열고 손길승 부회장을 대표이사 회장에 선임하는 한편, 최태원 부사장을 SK주식회사 대표이사 회장에, 최윤원 부회장을 SK케미칼 대표이사 회장에 선임하는 등 최고경영층의 인사를 의결했다. 이에 따라 손길승 회장은 그룹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게 됐고, 최태원 회장은 대내 경영업무를, 최윤원 회장은 가족의 구심점 역할을 맡았다. SK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전문경영인이 그룹 회장을 맞는 신 경영체제를 확립함으로써 재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당초 최태원 회장의 단독 회장체제를 예상하고 있던 언론은 SK의 발표에 대해 매우 놀라운 결정으로 평가했으며, 전문경영인과 대주주의 조화를 중시하는 SK의 경영원칙과 기업문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도했다. 손길승 회장은 최종현 선대회장의 뒤를 이어 제가 그룹을 총괄하고 대외적으로 대표하지만 최태원 회장이 당분간 그룹 내 경영에 주력하면서 빠른 시일 내에 회장 역할을 승계하도록 돕는 것이 내 역할 이라고 선언했다. 이어 그는 앞으로 10년간은 에너지 화학이 그룹을 밑받침할 것이고, 그 사이 정보통신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나갈 것이며, 다음 사업으로 바이오테크놀로지를 준비할 것 이라고 향후 주력사업에 대한 구상을 밝혔다 최태원 회장은 SK주식회사의 대주주로 경영에 임하고 손길승 회장은 SUPEX추구협의회 의장이 되어 SK의 전통인 대주주와 전문경영인의 파트너십 경영이 더욱 빛을 발하게 됐다. SK텔레텍 설립, 휴대전화 SKY 출시 SK텔레콤은 1998년 10월 1일 일본 교세라와 공동 출자해 휴대전화 제조업체 SK텔레텍을 설립했다. 이는 SK텔레콤의 첫 제조업 진출이었다. SK텔레텍은 상품기획, 디자인 개발 및 국내외 시장개척을 담당하기로 했으며 교세라는 기술개발, 휴대전화 생산, 품질관리를 맡기로 했다. SK텔레콤은 1995년 초 MOVE21 선포를 통해 21세기 초 세계일류 종합 정보통신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휴대전화 제조사업 진출을 결정했다. 1998년 4월 10일 임원 캔미팅에서는 1998년 성공시켜야 할 핵심과제로 선정해 이를 다시 한 번 구체화했다. SK텔레텍이 설립될 당시 국내 휴대전화 제조시장은 선발 대기업들이 이미 시장을 선점하고 있었고, 시장 자체가 성숙기에 접어들어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SK텔레콤이 정보통신 서비스와 기술의 진화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자체 휴대전화 제조가 필수적이었다. 그때까지 휴대전화 제조시장은 생산량 기능 디자인이 생산업체 위주로 돼 있어 서비스사의 개선요구가 잘 반영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SK텔레콤은 부가 서비스 시스템을 설치하고도 휴대전화 출시가 늦어져 효과적으로 시장경쟁을 주도하는 데 애를 먹기도 했다. 나아가 향후 서비스하게 될 IMT-2000을 대비한 휴대전화 기술확보도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SK텔레텍은 휴대전화 개발에 착수한 지 10개월 만인 1998년 12월 최초의 제품 IM-700 이동전화 단말기를 SKY 라는 브랜드명으로 내놓았다. 기존 이동전화 단말기의 성능을 한 번에 크게 향상시킨 SKY는 획기적인 디자인 및 다양한 기능으로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후 SK텔레텍은 계속해서 향상된 기능의 SKY SK그룹 60년사

87 시리즈 단말기를 선보였다. 무엇보다도 SKY 의 가장 큰 특징은 스피드011 서비스에 가장 잘 맞는 이동전화 단말기라는 점이었다. 2001년 3월에는 이스라엘과 CDMA 단말기 10만대 수출계약을 맺어 해외시장을 개척했다. 2002년 1월에는 중국에서 최초로 이동전화 단말기 CDMA 인증을 받았다. SK텔레텍은 이를 바탕으로 2002년 중국시장에 본격 진출해 1억 달러의 수출실적을 달성하기도 했다. 2002년 10월에는 중국 최대 CMDA 서비스 사업자인 차이나유니콤과 2003년까지 100만 대의 CMDA2000 1x 단말기를 공급하기로 협의하고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는 국내 기업의 휴대전화 중국 수출 단일물량 중 사상 최대 규모였다. SKY 단말기에는 또한 늘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었다. 1990년대 후반 블랙 컬러 일색이던 휴대폰 시장에 화이트 컬러를 도입했고, 휴대폰을 단순한 통화도구에서 명품 액세서리로까지 영역을 넓히며 SKY 신화의 서막을 열었다. 이어 국내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폰을 출시했고, 역시 국내 최초로 슬라이드폰을 생산했다. 또 돌출돼 있던 안테나를 과감하게 없애고 양면 인몰드(in-mold)를 국내 최초로 적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SK텔레콤은 2005년 9월 팬텍앤큐리텔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보유 중인 SK텔레텍의 주식 675만 주 가운데 454만 주를 매각했다. PCS시장 진출 등 내수시장 확대 및 글로벌 시장 진출에 따른 리스크 등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조기에 규모의 경제와 필요역량을 확보할 수 있도록 우호적 파트너와의 전략적 제휴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SK텔레콤의 시장점유율 제한에 따른 규제 리스크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육지책의 일환이었다. 종합정보기술회사 SK C&C 탄생 SK는 1998년 12월 1일 대한텔레콤과 SK컴퓨터통신을 합병해 IT서비스 전문회사인 SK C&C를 공식 출범시켰다. 이동통신사업 진출을 주도했던 대한텔레콤은 IT서비스를 중심축으로 성장해오고 있었다. SK컴퓨터통신은 유공이 1990년 10월 설립한 YC&C 를 모태로 워크스테이션 사업과 소프트웨어 개발 판매, 전산망사업과 PC제조업을 영위하다 1996년 7월 상호를 바꾸고 1996년 12월 선경정보시스템을 합병했다. 1998년 1월부터 선경 을 SK 로 바꾸는 기업 이미지 통합전략을 전개, 기업 이미지 전환을 통한 혁신 분위기가 무르익던 상황에서 SK C&C의 출범은 한 관계사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넘어 그룹의 IT역량 강화를 위한 사업 구조조정을 비로소 완성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SK C&C는 1998년 12월 그룹 12개 관계사를 대상으로 시스템 전반에 대한 아웃소싱 서비스 계약을 체결하면서 새롭게 출범했다. 정보기술과 통신기술을 융합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한다는 전략에 따라 출범한 SK C&C는 울산컴플렉스의 통합 생산관리 시스템인 Yield Accounting 시스템 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정유 및 석유화학공장 대상의 대규모 프로젝트는 국내에서 SK C&C가 최초로 구축하는 것이었다. 정유 석유화학산업 등 고도 산업시설에 대한 국내의 각종 프로젝트 수행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한 SK C&C는 2001년 6월 호남석유화학으로부터 공정정보(RTDB; Real Time Database)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이후 SK C&C는 HP, 미국 최대 CRM 솔루션 공급업체인 Siebel, 한국 Data General 등 세계 유수 IT업체와 협력관계를 맺어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SK그룹 60년사

88 펼쳤다. 그 결과 1999년 10월 서울시 내부 순환도로 교통관리 시스템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이는 당시까지 국내 ITS프로젝트 사상 최대 규모였다. 이처럼 SK C&C는 짧은 시간 내에 GIS(Geographic Information System; 지리정보시스템 )와 ITS(Intelligent Transport system; 지능형 교통시스템)분야의 선두업체로 부상했다. SK C&C는 2000년 2월 세계적 규모의 원격 네트워크조정센터 CCC(Command & Control Center)를 설치해 첨단 IT 아웃소싱 서비스를 본격화했다. 2000년 하반기에는 재해복구 시스템을 구축하고 2001년 6월 한국은행의 전산 재해복구시스템 구축사업 을 수주했다. SK C&C는 2000년 하반기 중국, 몽골 등으로 진출했다. 중국에서는 SI 및 엔지니어링 전문회사 Talent사와 전략적 제휴를 맺었고, 북경우전전화설비공장과 ITS사업을 위한 협력의향서를 체결했다. 몽골에서는 제2이동통신 사업자인 스카이텔에 대한 선불카드시스템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나아가 2002년 2월에는 몽골 최초의 인터넷 국제전화 서비스 World Call 002 서비스를 개시했다. SK C&C는 전자개표시스템에서도 진가를 발휘했다. 2002년 6월 13일치러진 지방선거에 선거사상 처음으로 도입된 전자개표시스템 운영을 성공리에 수행해냈다. 이 시스템은 2002년 16대 대통령선거 개표에서도 성가를 올렸다. 투표지 분류 및 계수의 자동화 등 개표과정을 전산화한 SK C&C의 전자개표 시스템을 통해 방송3사는 개표 개시 세 시간 반 만에 당선확정 보도를 내보낼 수 있었다. 실질적 국내 첫 지주회사 SK엔론 출범 년 1월 13일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손길승 회장 최태원 SK(주) 회장, 테리톤 엔론 수석부사장, 박태영 산업부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가스전문회사 SK엔론 설립기념식이 열렸다. 이는 한 합작회사의 출범이기 전에 우리나라 최초로 지주회사 요건을 갖춘 기업의 탄생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1999년 11월 공정거래위원회는 SK엔론을 지주회사의 까다로운 법적 자격요건을 갖춘 실질적인 지주회사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SK엔론은 SK(주)가 5개 도시가스사의 주식을 현물 출자하고, 엔론은 같은 액수의 현금을 출자해 설립됐다. 엔론의 1차 출자액은 2억 4,300만 달러였으며, SK(주)와 엔론이 공동경영권을 행사하기로 했다. SK엔론의 설립은 외국 투자자본 유치라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IMF외환위기 이후 국민의 정부 는 외자유치를 특히 강조했다. IMF 체제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기 위해서 외자유치가 중요하다는 것이 정부의 논리였다. 정부의 논리에 수긍했던 많은 기업들이 외자를 도입하기 위해 골몰했고, SK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가운데 SK는 미국 유수의 에너지 기업인 엔론사로부터 3억 달러를 유치, SK엔론이라는 합작회사를 설립함으로써 외자유치의 모범답안을 제시했다. 1998년 5월 SK 구조조정추진본부는 그룹의 구조조정 추진실적 및 계획을 천명하면서 외자 유치 계획을 발표했다. 2~3개 주요 관계회사의 지분 매각을 통해 5억 달러 내외의 외자를 조달하고, 핵심 사업에 대해 외국 선진기업으로부터 15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계획은 1998년 12월 자산규모 5,000여억 원의 합작 가스회사를 설립하기로 합의함으로써 첫 단추를 꿰게 됐던 것이다. SK그룹 60년사

89 SK엔론은 1999년 12월 벽산그룹으로부터 전남도시가스 강원도시가스 익산도시가 스 익산에너지 등 4개 지방 도시가스 회사를 인수했고, 2000년 2월에는 충남도시가스를 인수했다. 이로써 SK엔론의 자회사는 기존자회사인 대한도시가스 부산도시가스 구미도시가스 청주도시가스 포항도시가스를 포함해 10개사로 늘어났다. SK엔론은 2001년 8월에 본사 및 부산 청주 구미 포항도시가스를 대상으로 업계 최초로 ERP시스템을 도입했다. 특히 2000년 11월에는 도시가스사 배관용 기자재의 통합구매 입찰을 실시해 지주회사로서의 장점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한편 SK엔론의 합작 파트너였던 미국의 엔론이 파산하면서 합작 파트너가 프리즈마 에너지로 바뀌었다. 2006년에는 호주의 맥쿼리 펀드가 프리즈마의 지분을 인수해 새로운 파트너가 됐다. SKC, 글로벌 생산거점체제 구축 SKC는 1999년 10월 28일 미국 조지아주 커밍턴시에서 폴리에스터 필름 공장 준공식을 가졌다. 1997년 10월 착공해 2년 6개월간 2억 5000만 달러가 투자된 조지아공장은 36만 5,000평의 부지에 연산 5만 6,000톤의 3개 생산라인을 갖추었다. SKC가 조지아공장을 건설한 것은 폴리에스터 필름사업의 생산거점을 다각화하고, 시장점유율을 세계 1위로 끌어올린다는 전략에 따른 것이었다. SKC는 수원공장에서 11만 톤의 폴리에스터 필름을 생산하면서 세계시장 점유율 10%의 세계 4위 업체였으나 조지아공장의 본격 가동에 따라 세계시장 점유율을 15%로 높이면서 세계 3위로 올라섰다.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유지해오던 SKC의 폴리에스터 필름 사업은 1990년대 말부터 공급과잉으로 인한 가격경쟁 심화, 원재료 가격급등으로 인한 매출정체 등으로 인해 사업성이 악화되고 있었다. 이러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SKC는 고부가가치 필름 개발과 글로벌 생산거점 구축에서 활로를 찾고자 했다. 이에 따라 SKC 수원공장은 1998년 11월 5일 고강도 고기능성인 PEN(Polyethylene Naphtalene) 필름을 시험 출시하고, 4년 뒤인 2002년 하반기에 품질을 더욱 향상시킨 고기능성 PEN 필름 을 개발해 세계 두 번째로 양산에 들어갔다. 이 제품을 SKY nex 라 명명하고 국내외 시장을 적극 공략해 나갔다. 한편 1990년 11월 중국 푸젠성( 福 建 省 )에 합작투자 형태로 비디오테이프 공장을 설립한 SKC는 생산능력을 확대해 중국 최대의 비디오테이프 생산업체로 부상했다. SKC는 1995년 12월 15일 광둥성에 이스턴테크놀로지와 합작해 월 100만 장의 플로피디스크 공장을 신설하기도 했다. SK그룹 60년사

90 SKC는 중국시장이 크게 성장함에 따라 중국 내에서 가공필름 1위 기업으로 발돋움한다는 전략을 추진했다. 2002년 8월 중국 쑤저우 인근 우장( 江 )시에 IT용 가공필름 공장 건설에 착수해 2003년부터 TFT-LCD용 확산필름과 FFC, H/C, NECO 등 IT용 가공필름을 연간 1,000만SQM씩 생산하기 시작했다. SKC는 2001년 11월 30일 SK에버텍을 합병했다. 세계 일류의 정보통신 전자소재 및 정밀화학 전문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조처였다. 유공아코화학은 합작 파트너였던 미국 아코화학이 1992년 8월 철수함에 따라 유공의 100% 자회사로 바뀌었다. 유공아코화학은 1992년 10월 유공옥시케미칼로, 1997년 10월 SK옥시케미칼로 사명이 변경됐다가 2000년 6월 신 CI를 선포하며 다시 SK에버텍으로 변경됐다. SK에버텍은 2001년 6월 한국BASF에 연산 32만 톤 규모의 제2SM 공장을 매각하고 폴리우레탄 등 고부가가치 핵심사업에 주력해오다 SKC에 합병됐다. SK케미칼, 국산 신약 1호 선플라 개발 SK케미칼은 국산 신약 1호인 항암제 선플라 를 개발해 1999년 7월 14일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최종 발매허가를 획득했다. 이에 따라 한국은 근대 제약사가 시작된 지 1백년 만에 신약개발국이 됐다. SK케미칼 생명과학연구소 신약개발팀이 서울대학교 병원 김노경 교수팀 등 연구진과 함께 1990년 5월부터 9년간의 연구개발을 거쳐 탄생시킨 백금착체 항암제 선플라는 기존 약보다 치료효과가 탁월하면서도 부작용이 적다는 평가를 받았다. 선플라 개발은 2002년 발행된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 세계로 뻗어가는 우리 경제 항목에 한국산 신약1호 로 소개되기도 했다. SK는 그룹의 성장엔진인 에너지 화학과 정보통신 사업이 본궤도에 올라서면서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생명과학 사업을 선정했다. 이에 따라 SK는 연구개발을 기초로 한 신약개발을 목표로 1987년 생명과학연구실을 설립했으며, 1988년 삼신제약을 인수하고 선보제약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1989년에는 생명과학연구동을 완공함으로써 고유기술의 신상품과 세계적인 신약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의약품 연구개발은 SK(주)와 SK케미칼이, 결과물의 생산과 마케팅은 선보제약에서 이름을 바꾼 SK제약과 동신제약이 담당했다. SK(주)는 중추신경계, 항암제 계통의 의약품 개발에 중점을 두었고, SK케미칼은 천연물, 합성의약 등의 전통의약 분야를 주로 연구개발했다. 첨단 생명공학 분야는 인투젠(In2Gen)과 생물공학 관련 혈액제품 전문회사인 동신제약을 중심으로 집중 육성했다. SK케미칼의 바이오벤처 1호이기도 한 인투젠은 이지바이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SK그룹 60년사

91 암연구소 등과 함께 2000년 7월 13일 설립한 생명공학 벤처회사였다. 인투젠은 인간의 유전정보를 해석하고 진단 시스템 개발과 의약품 단백질의 약품 개발을 수행했다. 나아가 SK(주)는 한 미 중 삼각 네트워크로 신약개발 역량을 극대화해 나간다는 전략 아래 2002년 11월 28일 중국 상하이에 SK 상해신약개발연구소 를 설립했다. 의약사업 중국 진출과 중약 개발을 뒷받침하기 위해 중약 개발 바이오펀드 도 구성했다. 생명과학에 대한 SK의 지속적인 투자와 연구개발은 기넥신, 오메드, 트라스트, 선플라, 조인스 정 등 우수한 약품을 개발하는 성과를 창출했다. SK케미칼은 1994년 위궤양 치료제 오메드를 출시했다. 1996년에는 5년여의 연구 끝에 세계 최초의 경피투여 패치제인 트라스트 개발에 성공했다. 트라스트는 출시 3개월 만에 판매량 100만 개를 돌파하고, 발매 첫해 100억 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연구성과는 천연물 신약 개발로 이어졌다. SK케미칼과 SK제약은 7년의 연구 끝에 기존 소염진통제와 효과는 동등하면서 높은 안전성을 나타냄은 물론 면역 조절, 혈행 개선, 관절보호 효과까지 겸비한 국내 천연물 신약 1호인 조인스 정의 개발에 성공했다. 조인스 정은 2000년 7월 시판허가를 획득함으로서 선플라 개발에 이어 다시 국내 신약개발을 선도하는 기업의 위상을 굳혔다. 조인스 정은 의약 선진국인 독일을 비롯한 EU시장과 사우디 인도 싱가포르 베트남 호주 뉴질랜드 등으로 수출됐다. SK가스, 해외시장에서 비즈니스 모델 찾다 년 8월 기업공개를 단행하고, 10월 1일 그룹의 CI 통합 방침에 따라 사명을 변경한 SK가스는 국내 최초로 이동형 부탄히터를 아르헨티나에 수출하는 등 가스 관련사업을 충실히 전개해 나갔다. 한편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던 중국 LPG 시장을 주목하고 진출을 지속적으로 모색했다. 1996년 중국 텐진에 합작법인을 설립해 LPG 터미널을 건설을 추진했으나 IMF 사태 발발로 전면 중단되고 말았다. SK가스는 중국시장 진출이 주요 현안으로 계속 대두되자 1999년 5월부터 구체적인 검토작업에 들어갔다. 시장조사 결과 중국 동북지역 진출로 방향을 잡고 창춘( 長 春 )과 선양( 瀋 陽 )에 충전소를 세우기로 했다. SK가스의 중국진출 계획은 최태원 회장이 베이징 CEO 세미나( )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지속적인 추진을 강조하자 탄력이 붙었다. 그리하여 2000년 7월 창춘충전소를, 9월 선양충전소를 각각 개소했다. 이로써 SK가스 최초의 해외 현지 투자사업이 막을 올렸다. 이후 합작사업으로 선양에서 4개 충전소 건설에 들어가 2004년 2월 2개 충전소를 개소했고, 나머지 2개도 2004년 말 모두 개소했다. SK가스는 중국사업과 더불어 기존사업의 내실화에도 힘을 기울였다. 그 방법은 수출확대와 LPG기지 건설이었다. 수출 분야에서는 1999년 7월 2일 국내 최초로 필리핀 LPG 판매업체인 리퀴가스사와 연간 10만 톤 규모의 LPG 수출계약을 체결했다. 수출계약은 SK가스가 동남아시아에서 LPG를 구매해 리퀴가스사에 인도하는 방식으로 추진했다. 1999년 10월에는 경기도 평택시 포승면에 18만 톤 저장규모의 저장기지를 준공하고 SK그룹 60년사

92 본격적인 수도권 공급에 들어갔다. 평택기지에는 운영의 효율성을 꾀할 수 있도록 원양 연안선 겸용의 7만DWT급 입출하 전용부두도 신설했다. 2001년 6월에는 SK(주)로부터 LPG충전소 28개소의 임차운영권을 획득했다. 이에 따라 SK가스의 LPG 민수시장 점유율은 25.6%로 올라섰다. 1988년 최초로 산매시장에 진입한 SK가스는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도 산매시장 진출을 꾸준히 추구한 결과, LPG 민수시장 점유율을 1990년 6.6%에서 2000년 14.3%로 높였다. SK가스의 LPG 충전소 임차운영은 LPG 수입사의 본격적인 LPG 시장 전담을 촉발시켰고, 시장구조 개선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위기를 딛고 일어선 SK증권 년 11월 21일 금융감독위원회는 SK증권의 경영개선 명령을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1998년 8월 21일 SK증권에 경영개선 명령을 내렸던 금융감독위원회는 SK증권이 경영개선계획 이행기간 종료 시점인 1999년 9월 30일까지 계획의 주요 사항을 충실히 이행해 주요 재무 건전성 비율이 기준을 넘어서는 등 경영정상화를 달성함에 따라 경영개선 명령 해제를 의결했다 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SK증권은 경영정상화를 이뤘음을 인정받았으며, 이는 외환위기 이후 금융감독위원회의 경영개선 명령을 받은 금융기관 가운데 처음이었다. 1998년은 SK증권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았던 고난의 한 해였다. 금융감독위원회는 증권회사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SK증권에게 경영개선계획서 제출을 요구했으며, SK증권은 이를 승인받아 퇴출위기에서 벗어났다. 이어 5,000억 원의 자기자본을 확충해 1998년 말에는 경영정상화 초입에 들어섰다. SK증권은 1999년 들어 경영정상화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2월 책임경영체제 구현과 고객만족 경영을 골자로 하는 대규모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본부제를 도입했고, 고객만족경영팀을 신설했다. 6월에는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2500억 원 이상의 대규모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또 1999년 10월 JP모건과의 분쟁이 완전 타결됨에 따라 영업용 순자본비율 350%를 달성했다. 경영정상화를 달성한 SK증권은 신뢰와 전문성을 바탕으로 뉴밀레니엄의 디지털 경제를 선도하는 종합금융회사 로 성장한다는 중장기 비전을 세우고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경영을 펼쳐나갔다. SK그룹 60년사

93 SK증권은 2001년 11월 PDA를 통해 증권거래를 할 수 있는 모바일로 서비스를 개시하면서 무선 증권거래 시대를 연 데 이어 2002년 9월 증권업계 최초 유무선 통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차세대 HTS(Home Trading System; 가정에서 주식을 매매 할 수 있는 시스템) SK Enstock 을 출시했다. 이를 계기로 SK증권은 HTS의 수준을 단숨에 업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림과 동시에 모바일로 서비스를 조기에 정착시킴으로써 명실공히 유무선 통합 증권거래 서비스의 대표 증권사로 발돋움했다. SK증권은 2003년 휴대폰 증권거래 서비스에 진출한 데 이어 2004년에는 국내 최초로 IC-칩 기반의 증권 서비스인 SK텔레콤용 mstock를, 2005년에는 KTF용 K-Stock를 오픈했으며, 모바일 클럽 서비스도 선보이는 등 무선증권 서비스 시장을 선도했다. SK텔레콤, 신세기통신 합병으로 도약의 발판 마련 년대 중반 제2이동통신의 출범과 3개 PCS사업자의 출현으로 춘추전국시대에 들어갔던 이동통신 시장은 치열한 경쟁의 시대를 거쳐 합종연횡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PCS사업자이던 한솔텔레콤이 한국통신프리텔에 합병되고, 2002년에는 제2이동통신 사업자이던 신세기통신이 SK텔레콤에 합병됨으로써 3강구조로 재편됐다. SK와 포스코(옛 포항제철)는 1999년 12월 20일 정보통신의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공동 노력할 것에 합의하고, 포스코가 보유하고 있던 신세기통신 지분과 SK텔레콤 지분을 교환하는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업계 자율로 정보통신 분야의 구조조정을 이루어내고자 했던 포스코, 1999년까지 구조조정을 완료해야 하는 코오롱 및 이동통신 분야를 강화하고자 했던 SK 등 3자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것이었다. 처음에는 SK 내부에서도 신세기통신과의 합병에 대해서 반대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손길승 회장은 1등만이 살아남는다 는 신념으로 신세기통신과의 합병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SK텔레콤은 1999년 12월 24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세기통신의 지분 51.9%를 기존 대주주인 포스코와 코오롱으로부터 인수한다는 기업결합 신고서를 제출했다. SK텔레콤이 신세기통신과 합병할 경우 시장점유율은 57%에 달했다. 1개사의 시장점유율이 50% 이상인 경우 독과점으로 규정, 기업결합을 금지하는 공정거래법 조항에 배치될 우려가 있었으나 경쟁제한성이 있더라도 독과점의 폐해보다 구조조정으로 인한 산업합리화 효과가 더 클 경우에는 기업결합이 허용될 수 있었다. SK그룹 60년사

94 SK텔레콤은 통신망이 국가 기간 인프라에 관련되는 것인 만큼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통신업계의 자율적인 구조조정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반해 후발업체인 PCS 3사는 SK텔레콤과 신세기통신의 합병에 거세게 반발, 공동 대응에 나섰다. 양측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자 공정거래위원회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공정거래위원회는 2000년 4월 26일 2001년 6월까지 시장점유율을 50% 이하로 낮추고, SK텔레텍 단말기 생산 대수를 2005년까지 연간 120만 대 이하로 유지한다는 조건을 달아 SK텔레콤과 신세기통신의 기업결합을 허용했다. 정부의 조건부 허가방침에 따라 SK텔레콤은 불량가입자 정리, 신규가입 불허, LG텔레콤의 가입 대행 등을 통해 2001년 6월 시장점유율 50%를 달성해냈다. 하지만 상반기 매출액은 오히려 전년 동기대비 1% 증가한 2조 9,156억 원, 세후순이익은 70.4% 증가한 6,323억 원으로 사상 최대의 실적을 기록했다. 신세기통신은 2001년 4월 SK텔레콤과의 기업결합 이후 신세기통신이 SK의 일원임을 인식하고 SK의 인지도 및 강한 이미지를 CI에 도입할 목적으로, 사명을 신세기통신 에서 SK신세기통신 으로 바꿨다. 이어 정보통신부의 승인을 얻어 2002년 1월 13일 합병을 완료했다. SK신세기통신은 2001년 말 당시 330만 명의 가입자와 11.4%의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었다. 두 회사의 합병에 따라 SK텔레콤은 그동안 각 사별로 운영돼 왔던 고객우대 프로그램을 통합해 2002년 3월부터 리더스클럽 멤버십 프로그램으로 바꾸어 운영했다. SK텔레콤은 신세기통신과의 합병을 통해 강력한 경쟁력을 가지게 됐으며 1위 사업자의 위치를 더욱 확고하게 굳혔다. 또 하나의 SK를 중국에 만들다 년 12월 6일, 중국 베이징 차이나 월드 호텔에 손길승 회장과 최태원 SK(주) 회장을 비롯한 15개 주요 관계사 최고경영진 21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효율적인 중국사업 추진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CEO세미나 자리였다. 세미나는 크게 세 가지 결론을 도출했다. 우선 중국사업의 성공을 통해 세계 일류기업으로 도약한다는 기본원칙에 모든 CEO들이 합의했다. 중국 사업을 위해 그룹의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불확실한 중국 시장의 상황을 고려해 각종 위협요인에 대한 철저한 대비를 결의했다. 중국 기업 SK 를 만들기 위한 초안을 마련한 것이었다. 세미나 이후 SK는 그룹 구조조정본부 산하에 중국사업팀을 만들었다. 중국사업팀은 베이징사무실에 벤처팀 IT인터넷팀 생명과학팀 PR인프라팀 R&C(Reserch&Con sulting)팀 등 5개 팀을 발족시켰다. 이에 따라 SK상사가 1991년 2월 중국사무소를 개소하면서 중국 진출의 물꼬를 튼 뒤 관계사 별로 산발적으로 이루어지던 중국사업을 그룹 차원에서 통일된 방향으로 추진하게 됐다. SK가 중국에 일찍 눈을 뜬 것은 최고경영자의 선견지명에 힘입은 바 컸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생전에 중국의 중요성을 간파, 중국과의 관계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반드시 긴밀한 사이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고 방향을 제시한 바 있었고, 손길승 회장 또한 본사를 중국으로 이전할지도 모른다 고 언급할 만큼 중국을 중시했다. 최태원 회장은 일찍부터 세계 경제의 두 축이 미국과 중국으로 모아지고 있으므로 우리는 차이나 인사이더(China Insider)가 되어야 한다 고 말해왔다. 이러한 인식은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세계 경제의 중심축이 중국으로 이동하고 SK그룹 60년사

95 있었고, 세계적 기업들이 중국시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국내 기업들의 중국행도 거센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나라 무역액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989년의 1.7%에서 1993년 5.5%, 2002년엔 14.4%로 높아져 미국에 이은 제2의 교역국으로 부상했다. 그런 중국시장에의 진출을 머뭇거리다가는 글로벌 경제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었다. SK의 대중국 전략은 이후 최고경영진이 동북아시아 국가 간 경제협력을 강조함에 따라 동북아 공동번영론 으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손길승 회장은 2001년 6월 제주도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주평화포럼에서 동북아 경제 협력과 공동 번영 이란 주제로 강연을 했다. Globalization과 Regionalism의 도전 속에서 동북아 지역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서로간의 협력과 시장통합이 절실하다고 강조한 것이었다. 최태원 회장도 같은 생각이었다. 중국과 일본, 아시아에서 우리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그 역할이 저절로 주어질 리는 없으므로 중국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고 피력했다. 최고경영진의 이러한 구상 하에 SK는 2010년까지 한국 내의 SK에 버금가는 또 하나의 SK 를 중국에 만든다는 차이나 인사이더(China Insider) 프로젝트를 세웠다. 차이나 인사이더는 국내 기업문화와 비즈니스 모델은 공유하지만 철저하게 현지에서 만들어져 현지인들에 의해 운영되는 완벽한 중국기업을 의미했다. SK의 이같은 중국전략은 국내시장의 구조적 한계성을 극복하고, 동북아 마켓리더로서 지위를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주자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차이나 인사이더를 달성하기 위한 세부계획도 마련했다. 글로벌리제이션 시대를 맞아 서구의 지역연합과 대등한 위치에서 세계경제의 중심에 서기 위해서는 동북아 3국의 지역연대가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중국이 발전해야 한다는 기본 인식 아래 중국 내에서 낸 이익을 중국에 계속적으로 재투자해 중국의 경제발전에 기여하고, 중국과 더불어 발전해 나감으로써 동북아 3국 연대 구축에 앞장선다는 것이었다. SK주식회사는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중국에 단순한 투자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 기업, 중국 속의 SK 를 설립한다는 기본적인 목표를 세웠다. 중국 기업 이란 중국 현지에서 중국인을 고객으로 중국 사람이 원하는 가치를 제공하는, 중국인들이 직접 경영하는 기업을 뜻했다. 2001년 7월 국내 비즈니스 모델의 중국 이식은 물론, 중국 내 모든 사업을 책임지고 운영해 나갈 현지법인의 대표로 중국인 사업가를 채용했다. 중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이 현지법인을 운영해 나갈 책임자로 현지인을 대표로 채용한 것은 SK가 처음이었다. 아울러 중국에서 우수한 인력을 확보, 국내 사업장에서 수년 간 근무케 한 뒤 중국 현지에서 근무하는 교차근무 형태의 채용 방식 을 도입했다. 이 같은 전략에 따라 중국 현지는 물론 국내 유학 중인 우수인력을 대상으로 2001년 40여 명, 2002년 150명을 현지에서 채용, 기업문화를 체득하게 했다. SK의 중국사업에서 가장 특이하고 주목해야 할 것은 한중 인적 교류 프로그램이었다. 이는 철저히 현지인을 통해 시장에 접근하는 방식 으로 SK의 특성이 묻어나는 독특한 사업전략을 펼쳐나갔다. SK차이나 설립 1주년이 되던 2002년 11월에는 중국사업 1년을 결산하고 2003년 계획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중국 3대 전략사업(정보통신, 생명과학, 에너지 화학)을 확장하기 위해 2003년에 1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그동안 정보통신 분야의 융복합, 생명과학 사업의 밸류체인, 도로 및 자동차 유관사업의 전방위 등 사업 별로 전략을 확정하고 본격 추진해왔으며, 중국 전역에 13개의 지사를 설립하고 2억 달러를 투자해 29개 법인을 운영하고 있었다. SK그룹 60년사

96 SK의 중국투자 및 사업진출 현황 (2001년 기준) 투자회사 사업 및 회사명 업종 및 주요제품 투자규모 및 지분 사업개시 SK(주) SK상사 SKC 선전 태양전지 태양전지 제조 투자 500만 달러, 지분 35% 1992년 동지나해 26/24광구 유전개발 원유생산 지분 27.5% 1994년 HongKong Petrochemical Co., Ltd. GPPS 6만 4000톤 HIPS 7만 3000톤 CNTIC-SK TRADING 종합상사 Co., Ltd. (유화 철강 플랜트기술) Indesen Fujian Magnetics Co.,Ltd. 비디오 컴팩트 제조 자본금 48억 7700만 홍콩달러(SK 95.96%) 자본금 1250만 달러(SK 49%, 중국기술 진출구총공사 51%) 자본금 600만 달러(SKC 43.8%, 인데센 56.2%) 1988년 1997년 1995년 Easterm Technology 플로피디스크 등 제조 123만 달러 투자(지분 35%) 1996년 Development Co,Ltd. Global Recording Media Co., Ltd. 천진성문전자유한공사 비디오 컴팩트 제조 ACME 1997년 PET 및 PP필름 후가공 및 판매 성문전자 1997년 SK해운 대련경곡연화유한공사 LPG 수출 보관 판매 자산 261억 원(SK해운 51.0%) 1998년 SK의 중국 지사 및 법인 현황 (2001년 기준) 구분 지사/사무소 투자법인 계 SK차이나 SK주식회사 SK글로벌 SK케미칼 1 1 SKC 3 3 SK가스 4 4 SK해운 1 1 SK에버텍 2 2 계 국내 대표 포털사이트 브랜드 OK캐쉬백 출범 IMF 외환위기와 함께 출범한 김대중정부는 IT산업과 벤처산업을 외환위기 극복의 신성장동력으로 삼았다. 이에 따라 1998년 중반부터 인터넷 붐과 벤처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SK(주) 역시 인터넷 사업과 벤처 지원사업에 뛰어들었다. 그 가시적인 성과는 2000년 1월 온라인 서비스를 시작한 OK캐쉬백이었다. OK캐쉬백은 1993년 3월 오프라인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적립식 할인 서비스인 OK캐쉬백은 가맹점에서 제품을 살 때 OK캐쉬백 카드를 내면 사용금액의 일정액을 포인트로 적립하는 마일리지 서비스였다. 이 서비스는 1999년 11월 엔크린보너스카드 포인트와 OK캐쉬백 포인트를 통합하면서 확산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2000년 1월 1일 온라인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캐쉬백서비스와 인터넷 정자상거래 사이트가 결합한 국내 최초의 신개념 인터넷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OK Cashbag 사이트는 전자상거래와 OK캐쉬백 서비스가 접목된 신개념의 사이트였다. 쇼핑 지역정보 리빙 레포츠 교육 음악 건강 여행 게임 등 9개의 주제 별 사이트를 링크시켜 풍부한 콘텐츠를 제공했다. OK캐쉬백은 다양한 콘텐츠 구축과 명실상부한 허브 역할을 위해 신세계, 외환카드, 서울 힐튼호텔 등 많은 기업과 서비스 제휴를 맺었다. 또한 국내 전자지불 시스템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던 (주)이니시스와 전략적 제휴를 체결, 온라인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로써 OK캐쉬백은 국내 최초로 온 오프라인에서 동시에 적립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가 됐다. 막강한 콘텐츠와 많은 가맹점, 높은 포인트의 적립 서비스는 소비자들을 파고들어 단숨에 마일리지 서비스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으며, SK(주)의 SK그룹 60년사

97 대표브랜드가 됐다. 이후 SK(주)는 온라인여행사이트 TravelOK, 금융포털사이트 FinanceOK, 종합 생활정보거래망 리빙OK, 중고차 쇼핑몰 엔카, 트럭운전자를 위한 운송물류정보서비스 내트럭 등을 잇달아 오픈해 인터넷 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갔다. 엔카(Encar)와 내트럭(Netruck) 서비스는 2001년 12월 텔레매틱스 시범 서비스를 개시했다. SK(주)는 B2B(기업 간 거래) 사업도 추진했다. 2000년 하반기와 2001년 상반기에 3개의 B2B 사이트를 잇달아 개설했다. 2000년 7월 1일에는 실시간 제품 배송정보와 고객 채권정보를 제공하는 화학제품 B2B 사이트 SK켐닷컴( 국내 화학제품 생산자로는 최초로 출범시켰다. 한편 SK(주)는 2000년 초반부터 벤처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사업을 벌이거나 제휴사업을 벌여나갔다. 2000년 2월 22일 SK(주)는 SK옥시케미칼, 메디슨, 무한기술투자와 함께 총 110억 원 규모의 생명과학 투자전문 벤처투자조합을 결성했다. 2000년 6월 20일에는 안철수연구소 등 4개사와 함께 무선인터넷 보안솔루션 전문회사인 (주)IA시큐리티 를 설립해 국내 무선인터넷 보안시장에 진출했다. 마케팅전문회사 SK글로벌로 재출범 SK상사는 2000년 5월 17일 SK에너지판매 합병 계약서 승인 및 상호변경 등과 관련해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7월 31일 SK글로벌로 공식 출범했다. 1999년 12월 31일 합병한 SK유통과 SK상사, SK에너지판매 등 3개 회사가 한데 뭉쳐 자산 8조 원 규모의 마케팅 전문회사로 탄생한 것이었다. 인터넷 기반의 지식, 정보기업으로의 변신을 도모하고 있던 SK상사는 SK에너지판매의 방대한 주유소 채널을 통합, 매출액 16조 원 규모의 초대형 회사로 태어났다. 국내 및 해외 시장에서의 시너지와 보다 강력한 마케팅 능력을 기반으로 SK의 핵심사업인 에너지 화학 분야에서 국제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SK유통의 합병으로 011대리점 및 주유소 채널을 활용, 정보통신 및 인터넷과 연계해 고객의 생활편의를 도모하는 다양한 부가 서비스가 가능하게 됐다. SK글로벌 출범은 글로벌 네트워크, 정보통신 유통망, 주유소 채널을 통합한 거대 네트워크의 구성이라는 점에 의의가 있었다. 인터넷 시대의 급변하는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다양하고 폭넓은 네트워크의 확보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SK글로벌은 각종 사업을 활발하게 펼쳐나갔다. 2000년 8월에는 LG상사, 세계무역센터(WTC) 임포텍 등과 함께 인터넷 기반 무역업무 대행 합작회사인 Trade Card Korea 를 설립, 국내 사업을 개시했다. 9월에는 신개념의 청소년 커뮤니티인 RtoD.net을 오픈하고 본격적인 온라인 교육문화 사업을 전개했다. 2001년 2월에는 해외 온라인 쇼핑을 가능하게 해주는 위즈위드 사업을, 6월에는 인터넷 기반의 KM 시스템을 새롭게 오픈했다. 12월 20일에는 글로벌 밀레니엄 1호 벤처펀드를 결성해 본격적인 벤처지원 사업을 전개했다. SK그룹 60년사

98 SK건설, 아파트 브랜드 SK VIEW 론칭 SK건설은 아파트 브랜드 SK VIEW 의 성공적인 론칭에 이어 소형 주상복합아파트와 오피스텔에 사용하는 브랜드인 SK HUB를 개발해 주택시장의 강자로 커 나갔다. SK건설은 국내 건설업계 처음으로 BI(Brand Identity)를 시도했다. 아파트 분양이 호조를 띤 1990년대 초 SK건설은 아파트 시장의 새로운 마케팅 수단으로 브랜드에 주목하고 1993년 HOMEX라는 브랜드를 개발했다. 이후 HOMEX는 수도권 및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SK건설이 분양하는 아파트에 도입돼 소비자의 주목을 끌었다. SK건설은 HOMEX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2000년에 SK VIEW라는 아파트 브랜드를 개발했다. SK VIEW는 건축미와 공간미가 있는 아파트를 상징했다. 특히 SK VIEW는 수요자들의 아파트 선택 요인 가운데 1위를 차지하고 있던 전망에 대한 해결방법을 모색했다는 점이 관심을 끌었다. SK VIEW는 소비자들의 높은 관심 속에 연이어 100% 가까운 계약률을 기록해 부동산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2002년 4월 개발을 완료한 오피스텔 소형 주상복합 브랜드인 SK HUB 도 브랜드화 전략의 일환이었다. HUB라는 단어가 지닌 뜻대로 생활과 비즈니스 활동의 중심축이 되는 효율적인 주거공간을 의미했다. SK건설은 2002년 5월 선릉 SK HUB Blue를 시작으로 6월 강남역 SK HUB Blue, 10월 마포 SK HUB green 등의 분양을 완료해 서울지역에서 인지도를 높였다. 부산에서도 해운대구 좌동에 주거용 오피스텔 SK HUB Olive을 분양해 호평을 얻었다. 2003년에는 부산 최고 높이의 49층 쌍둥이 빌딩인 부산 온천동 SK HUB Sky를 분양해 부산의 명물로 탄생시켰다. SK건설은 이후에도 시대적 요구에 민첩하게 대응해 다양한 기능의 브랜드로 주택사업을 펼쳤다. 2004년 7월에는 고령화 사회의 진전이라는 시대상황을 반영해 SK 그레이스 힐 브랜드로 실버주택 사업을 의욕적으로 론칭했다. 2007년 6월에는 아파트의 편리함, 단독주택의 쾌적함과 독립성을 갖춘 타운하우스가 주목을 끌자 아펠바움 이라는 브랜드를 도입하고 타운하우스 시장을 주도해 나갔다. 특히 아파트에도 고객 맞춤 서비스를 도입해 만족도를 높여나갔다. 아파트의 경우 분양과 입주 사이의 기간이 길어 분양 때의 상품설계가 입주 때의 트렌드에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수주 분양 입주 입주후 등 각 단계에 따라 새로운 트렌드와 패션을 감안해 고객의 요구를 적극 반영했다. SK건설은 2002년 7월 한국주택문화상 단일단지 부문 종합대상을 수상했다. SK그룹 60년사

99 SK해운, 국내 최대 LNG선사로 도약 SK해운은 자원수송 전문기업을 표방하며 원유에 이어 LPG, 벌크로 사업영역을 넓혀 왔으며, 1990년 11월 LNG 운송시장에 진출하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했다. SK해운의 LNG사업은 지속적으로 성장해 2001년 1월 한국가스공사가 실시한 신규 LNG선 용선 입찰에서 최종 사업자로 선정됨으로써 여섯 번째 장기운영 LNG선을 보유해 국내 최대의 LNG선사로 도약했다. SK해운은 1990년 11월 정부와 1994년부터 20년 동안 연간 100만 톤의 LNG를 운송하는 장기계약을 맺었다. 이로써 SK해운은 설립 10년도 채 되지 않아 대규모 국책사업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개가를 올렸다. SK해운은 이를 위해 1994년 12월 YK 소버린호를 인수하고 1995년부터 운항에 들어감으로써 LNG 운송역사의 첫 장을 열었다. 이후 LNG 수요의 폭발적 증가에 따라 정부의 운송발주가 늘어나면서 SK해운은 4차에 걸친 LNG선 입찰과정에서 연속으로 불패신화를 이어갔으며, 5척의 LNG선을 확보함으로써 1997년 7월까지 모두 7척에 이르는 LNG선을 보유하면서 메이저 LNG 수송선사로 도약했다. IMF 사태 이후에는 다른 선사와 마찬가지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LNG선박 건조자금을 해외 금융단으로부터 유치하면서 해결해 나갔다. 1999년 2월 SK해운은 국적 LNG 16호선의 건조자금 조달을 위해 일본 측과 합작해 스텔라해운을 설립했다. 이 회사를 통해 2억 5000만 달러의 건조자금을 이토추 상사가 주축이 된 금융단으로부터 조달했다. 자원개발 기업의 위상을 높이다 예멘 마리브 광구의 성공에 힘입은 SK(주)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유전개발에 뛰어들어 이집트, 리비아, 호주, 페루, 코트디부아르, 미국, 베트남 등을 종횡무진으로 누볐다. 특히 베트남에서는 4억 2,000만 배럴의 대규모 가채 매장량을 확인, 2001년 8월 상업성을 선언하고 채굴에 들어감으로써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SK(주)가 두 번째로 유전개발에 성공한 곳은 이집트였다. 1989년 6월 이집트 국영석유회사와 석유탐사 및 개발계약을 체결하고 25%의 지분율로 참여한 북자라파나(North Zaafarana) 광구에서 1990년 11월 석유 발견에 성공한 것이었다. 이후 1994년까지 4년여에 걸쳐 광구평가 및 개발작업을 벌여 1994년 11월 생산설비 준공식을 거행하고 본격적인 원유생산에 돌입했다. 유전개발 사업은 1994년 상반기 현대정유와 럭키금성상사 등과 손잡고 참여한 리비아 광구에서 원유발견에 성공함으로써 더욱 박차를 가했다. 1992년부터 벨기에 FINA사 등과 유전개발 사업을 벌여온 끝에 원유발견이라는 성과를 거둔 것이었다. 1996년 3월에는 호주의 파커 앤 파슬리사와 공동으로 호주 북서부 해상 AC95- 광구 의 유전개발 탐사권을 획득했다. 호주 유전개발사업에는 SK(주) 등 3개사가 각각 33.3%의 동일지분으로 참여했다. 1996년 7월에는 페루 8광구에서 개발한 원유를 상업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는 페루 국영석유회사인 페트로페루의 민영화계획에 따른 공개입찰에서 육상 2개광구에 대한 탐사 생산권을 획득한데 따른 결과였다. SK(주)는 1997년 상반기에 아르헨티나 플러스페트롤사로부터 지분을 매입, 아프리카 SK그룹 60년사

100 중서부 코트디부아르 해상 2개 광구 유전개발 사업에 참여했다. SK(주)가 참여한 2개 North) 유연탄 광구탐사권을 낙찰받았다. 면적 475km2, 추정매장량 7억 광구 가운데 하나는 하루 1만 7,000 배럴의 원유와 6,000만 입방피트의 천연가스를 7,000만 톤 규모의 이 광구는 국내 기업이 해외개발에 참여한 유연탄광 중 최대 생산하는 광구로 1993년부터 탐사작업을 시작, 원유발견에 성공함으로써 1995년 규모였다. 광구 탐사에는 SK(주)를 간사회사로 하는 한국기업 컨소시엄과 호주의 5월부터 상업생산을 개시했다. 코트디부아르 광구개발로 SK(주)는 예멘 마리브 광구, 새비지리소시스(Savage Resources Pty., Ltd.)사, 일본의 미쓰이 광산이 각각 3분의 이집트 북자파라나 광구, 페루 8광구에 이어 4개의 원유생산 광구를 보유하게 됐다. 1씩의 지분으로 참여했다. 1997년 6월에는 미국 만티(Manti)사와 총 5개 생산광구에 대한 지분매입 계약을 체결했다. 유전개발의 본고장인 미국 휴스턴에 유전개발 전문 현지법인 SK E&P사를 설립하고 만티사와의 프로젝트를 추진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텍사스지역 3개 광구 지분의 49%, 루이지애나 지역 2개 광구 지분의 60%를 매입했다. 이들 5개 광구의 총 매장량은 원유환산 1,100만 배럴로 하루 평균 3,200배럴의 원유 및 가스를 생산했다. 유공은 SK E&P사 운영에서 얻은 수익 전체를 현지에 재투자해 추가적인 지분 매입활동을 벌이는 한편, 독자적으로 광구를 개발하는 수준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이집트 북자파라나 유전 모습. SK 는 1989년 6월 SK(주)는 IMF 외환위기 이후 수익성이 없는 해외 석유개발 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사업성이 더욱 유망한 베트남과 호주 유전의 탐사권을 확보하는 등 IMF형 투자전략을 이집트 국영석유회사와 석유탐사 및 개발계획을 체결하고 1990년 북자라파나 광구에서 석유 발견에 성공했다. 이어 1994년 11월 생산설비 준공식을 거행하고 본격적인 원유생산에 돌입했다. 추진했다. 베트남 해상 15-1광구 원유개발 사업에는 1998년 9월 한국석유개발공사와 공동으로 9%의 지분율로 참여했다. 베트남 해상 15-1광구에서는 2000년 1차 탐사정에서 원유를 발견한 후 2001년 평가시추를 통해 약 4억 2,000만 배럴의 대규모 가채 매장량을 확인했다. 이는 2000년 4월 이후 전 세계에서 발견된 유전 중 최대 규모였다. 이에 따라 2001년 8월 8일 베트남 해상 15-1광구의 상업성을 선언하고 2003년 말 생산개시를 목표로 채굴에 들어갔다. 이어 호주의 3개 해상광구 탐사권도 획득했다. 미국 오릭스사와 공동으로 호주 북서부 티머해 지역의 3개 해상광구 입찰에 성공한 것이었다. SK(주)는 여기에 10%의 지분을 투자했다. SK(주)는 1994년 1월 호주 핀드랜드 브웬 분지 내에 위치한 토가라 노스(Togara SK그룹 60년사

101 NATE 탄생, 멀티미디어 무선통신 시대 개막 년 10월 17일 국내 최초로 유 무선을 통합한 신개념의 인터넷 서비스 NATE가 탄생했다. 8개월 간의 준비 끝에 탄생한 NATE는 PC, 이동전화, PDA, VMT(Vehicle Mounted Terminal; 차량장착 단말기) 등 각종 유무선 단말로 인터넷에 접속해 개인화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차세대 멀티인터넷 서비스였다. 이동통신 분야는 진화를 거듭해 음성 위주에서 데이터 중심으로 변화됐다. 이러한 변화를 감지한 SK텔레콤은 우수 컨텐츠 및 애플리케이션을 확보해 선도적으로 사업기반을 구축하고 무선데이터 사업에 뛰어들었다. 1999년부터 초보적 데이터통신 서비스를 하나하나 선보이다가 8월에 IS-95B 서비스를 세계 최초로 제공하고, 무선데이터 종합브랜드인 ntop(엔탑)을 출시하는 등 본격적으로 서비스 강화에 나섰다. 2000년 10월에는 TV, 영화, 전자상거래 등 다양한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수용할 수 있는 cdma2000 1x 상용서비스를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국내 최초로 유무선 통합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하드웨어 기반을 마련한 것이었다. SK텔레콤은 무선 인터넷 조기 활성화를 선도하기 위해 콘텐츠 제공업체에 대한 기술개발과 마케팅 지원, 무선인터넷 기업에 대한 자금지원 등의 준비를 거쳐 NATE를 세상에 내놓았다. SK텔레콤은 PC포털인 NATE.com과 무선인터넷 포털 n.top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NATE을 오픈한데 이어, 2001년 11월 1일 PDA 및 VMT용 NATE 서비스를 시작해 유무선통합 서비스 기반을 마련했다. 네이트닷컴( 2002년 10월 8일 대규모 개편작업을 단행해 명실상부한 포털사이트의 면모를 갖췄다. 당시 인터넷 비즈니스의 지평을 열려는 노력은 세계적 기업들 사이에서도 경쟁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MS는 유무선 인터넷서비스 업체로의 변신을 시도하고 있었고, AOL과 NTT도코모 등도 유무선 통합 인터넷서비스 제공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세계적 기업들에 앞서 단말기와 장소의 제약을 벗어난 신개념의 NATE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SK텔레콤은 차세대 인터넷서비스를 선도할 수 있게 됐다. SK텔레콤은 NATE 서비스 개시 전인 2000년 8월 유선 인터넷과 컨텐츠 커뮤니티 분야를 담당하던 정보사업부를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주)넷츠고로 분사했다. 한편 SK텔레콤은 2002년 인터넷 포털 서비스 기업인 라이코스코리아를 인수했으며, 11월 11일 라이코스코리아와 넷츠고를 통합해 (주)SK커뮤니케이션즈를 출범시켰다. SK커뮤니케이션즈는 PC통신(넷츠고) 및 대형 포털(라이코스) 등 유선 기반의 온라인 서비스를 운영한 노하우를 십분 발휘해 모회사이자 최강의 무선 통신사업자인 SK텔레콤과 긴밀하고 유기적인 사업을 진행해 유무선 간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게 했다. SK그룹 60년사

102 SK텔레콤, 세계 최초로 3G 이동통신 서비스 개시 SK텔레콤은 2002년 1월 28일 세계 최초로 동기식 IMT-2000(CDMA2000 1x EV-DO)시대, 즉 3세대(3G) 이동통신 시대를 열었다. 이로써 SK텔레콤은 1996년 1월 CDMA 이동전화 서비스, 1999년 8월 IS-95B 개발, 2000년 10월 CDMA2000 1x 서비스 등에 이어 또 하나의 세계 최초 상용화라는 타이틀을 추가하면서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주목 받는 통신대국으로 부상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CDMA2000 1x EV-DO 서비스는 전송속도가 CDMA2000 1x망의 144Kbps에 비해 16배 이상 빠른 최고 2.4Mbps로서 이동 중에도 고속의 인터넷 검색은 물론 쌍방향 데이터 전송까지 가능한 서비스이다. 이동 중에도 자연스러운 동영상 서비스가 가능해졌으며, 고해상도 화상전화는 물론 포토메일 서비스 등도 가능해졌다. IMT-2000은 공중 주파수 사용과 단일 기술표준으로 세계 어느 곳에서도 단말기 하나로 음성, 데이터, 동영상 등 고속의 멀티미디어 통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차세대 이동통신이었다. SK텔레콤이 IMT-2000 개발에 나선 것은 CDMA가 상용화하기 전인 1994년이었다. 이후 광대역 CDMA(WCDMA) 핵심기술을 개발해 1998년 대통령 취임 행사에서 IMT 시연회를 가지기도 했다. 또 1998년 6월 IMT-2000 단말기의 핵심 칩 개발에 성공해 소형, 경량화한 단말기를 보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SK텔레콤은 1999년 6월 국내 이동전화업체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IMT-2000 개발추진본부를 발족시키고 사업권 확보를 위한 준비를 본격화했다. 2000년 1월에는 일본 최대의 이동통신 업체인 NTT도코모와의 영상 시험통화에 성공했다. 이동환경에서의 국가간 IMT-2000 시험통화를 성공시킨 세계 최초의 업체로 기록된 것이었다. IMT-2000사업을 준비하는 과정 중에 가장 커다란 이슈가 됐던 문제는 기술표준을 유럽의 비동기식 방식(WCDMA)으로 할 것인가, 미국의 동기식 방식(CDMA2000)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었다. SK텔레콤은 두 가지 방식의 장단점을 분석, 검토하고 있었다. CDMA방식의 이동전화 서비스 제공 후 축적해온 동기방식의 서비스 운영 노하우와 국내 장비 제조업체의 기술우위성을 고려할 경우 동기방식에서 유리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손길승 회장과 SK텔레콤 임원, 네트워크와 R&D부문에 이르기까지 모두 함께 논의한 결과 결론은 비동기 쪽으로 매듭지어졌다. 세계시장의 80% 가량이 비동기식으로 사업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글로벌 로밍의 우수성 및 장비 확보의 경제성, 그리고 동북아 주요 사업자 간의 협력 등 미래 지향적인 측면을 고려할 때 비동기방식이 유리하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SK텔레콤의 비동기식 기술 채택이 CDMA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간 축적한 CDMA 기술의 90% 가량이 비동기 방식에도 적용될 수 있었다. SK텔레콤의 IMT-2000사업추진단은 7개월 간의 작업 끝에 완성한 사업계획서를 제출해 높은 점수를 받아 2000년 12월 15일 사업권을 획득했다. 사업권 획득으로 21세기 국가 전략산업인 통신시장에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으며, 동시에 21세기 SK를 이끌어 갈 도약대를 다짐으로써 최첨단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한 발짝 다가서게 된 것이었다. SK텔레콤은 비동기식 IMT-2000(WCDMA) 개발과 병행해 2.5G 수준에 올라와 있던 기존의 CDMA 기술의 업그레이드에도 박차를 가했다. 그리하여 2000년 10월 세계 최초로 CDMA2000 1x 서비스를 개시했으며, 2002년 1월 28일에 인천지역에서 CDMA20001x EV-DO 서비스를 개시함으로써 세계 최초로 동기식 IMT-2000시대를 열었던 것이었다. 이어 2월부터 서비스 지역을 서울지역으로 확대했고, 4월부터는 2002 월드컵이 개최되는 전국 10개 도시를 포함 총 26개시에서 서비스를 제공했다. 2003년 SK그룹 60년사

103 6월에는 세계 최초로 동기식 기반의 화상전화 서비스를 상용화함으로써, 진정한 IMT- 2000서비스를 완성하며 3G서비스에서의 선도적 위치를 확고히 했다. SK텔레콤은 비동기식 IMT-2000 서비스를 위해 2001년 3월 5일 SK IMT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IMT-2000 서비스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2002년 4월에는 GSM협회에 가입해 글로벌 로밍을 위한 협의 기반을 마련했다. 그러나 출범 당시 모았던 기대와는 달리 장비제조업체의 제품개발 지연과 시장 여건의 미성숙으로 추진이 지연됐다. 이에 따라 SK텔레콤은 상용 서비스의 연기에 따른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2003년 2월 SK IMT를 합병했다. 이러한 노력 끝에 SK텔레콤은 시험 서비스를 거쳐 2003년 12월 29일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비동기식 IMT-2000 상용서비스를 개시했다. 한편 SK텔레콤은 3G 이동통신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브랜드인 June(준)을 론칭했다. June은 서비스 8개월만인 2002년 8월 세계 최초로 가입자 100만 명을 돌파했다. SK텔레콤, 월드컵 마케팅 신화 창출 전 세계적인 스포츠 행사인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우리는 인류의 제전 이라 부른다. 대회가 개최되는 동안 전 지구인의 눈과 귀를 모으며 기쁨과 환희, 탄식과 슬픔에 빠지게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스포츠 제전은 기업들에게는 총성 없는 마케팅 전장이기도 하다. SK텔레콤은 2002 한일월드컵 기간 동안 마케팅 역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성공적인 마케팅활동을 펼쳤다. 2001년 12월 2002 월드컵 대진표가 확정된 것을 기점으로 국내기업들의 마케팅 활동도 본격화됐다. 특히 월드컵 공식 후원업체로 선정된 현대자동차와 KT를 비롯해 아디다스 코카콜라 버드와이저 야후 등 국내외 총 15개 업체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전개했다. 공식 후원업체가 아닌 국내기업들도 막대한 경제적 효과를 유발하는 월드컵 마케팅에 전력을 기울였다. 경쟁사인 KT가 공식 후원업체로서 대대적인 마케팅을 전개하는데 비해 SK텔레콤은 월드컵과 관련된 공식 마케팅 활동을 전개할 수가 없었다. 공식적인 마케팅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일회성 이벤트 중심의 단기적인 대응이 아니라 축구를 중심으로 지속적이고 일관된 캠페인을 전개하기로 하고 SK텔레콤만의 차별화된 테마를 찾는 데 주력했다. 이 과정에서 SK텔레콤은 국가대표팀 공식응원단인 붉은악마 와 제휴하는 데 성공했다. SK텔레콤은 2001년 10월 10일 붉은악마와 Be the Reds 공동 캠페인 조인식을 갖고 각종 프로모션 활동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2001년 10월부터 월드컵 기간이 종료되는 2002년 7월까지 3단계에 걸친 월드컵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고 각종 광고와 SK그룹 60년사

104 프로모션 활동에 돌입했다. SK텔레콤은 붉은악마의 비상업성과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회원 모집, 응원도구 공급, 한국 경기 단체 응원의 기회를 만들어 주는데 주력했다. 특히 2002년 6월 10일에는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거리응원 축제를 개최하고 붉은악마와 일반시민 약 10만 명이 참여하는 온국민 응원 페스티벌-한국 축구에 힘을 이라는 행사를 개최함으로써 월드컵 열기에 불을 붙였다. 이 행사를 위해 SK텔레콤은 3대의 대형 LED전광판과 최신 음향시설을 시청앞 광장에 설치하는 등 최적의 관람환경을 제공했으며, 식전후 행사와 본 행사에서 윤도현 밴드 등의 다채로운 공연을 펼쳐 축제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또한 참가한 시민들에게 Be the Reds 티셔츠를 무료로 배포해 시청 앞 광장이 온통 붉은 색 물결로 넘치는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다. 6월 14일에는 포르투갈과의 조 예선 마지막 경기를 맞아 시청앞 광장에서 두 번째 온 국민 페스티벌 행사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를 통해 SK텔레콤은 국민에게 월드컵을 이끌어가는 대표기업의 이미지를 뚜렷이 각인시킬 수 있었다. SK텔레콤은 월드컵 마케팅 성공을 계기로 월드컵 관련기업 인지도 및 광고 인지도에서 1위를 차지해 기업 이미지를 크게 높였다 한 일 월드컵이 끝나고 알려진 사실이지만 SK는 이 기간동안 기업의 브랜드 인지도나 선호도면에서 단연 1위였다. 이것은 공식후원사가 치러야 했던 비용 대비 효과와 비교하면 대성공을 거둔 결과였다.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거리응원은 응원문화에 있어 새바람을 일으켰다. 단군 이래 최초로 온 국민이 한 목소리로 대한민국 을 외친 것이었다. 이는 SUPEX 추구라는 SK의 독특한 경영철학이 이뤄낸 국가 차원의 사회통합이라 할 수 있었다. 지식경영의 산실, SK경영경제연구소 출범 SK는 에너지 화학과 정보통신, 생명과학 분야의 지식 시너지를 높이고 세계 일류수준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2002년 6월 SK경영경제연구소를 발족했다. SK증권에 두었던 SK경제연구소를 확대 개편해 그룹 조직으로 흡수한 것으로, 그룹 핵심 브레인 기능을 담당하게 했다. SK경영경제연구소는 독립법인이 아닌 사내부서 형태였으며, 질 높은 경영경제 연구 서비스를 제공하는 단계로 출발했다. SUPEX 2000이라는 새로운 경영전략을 통해 2002년 초 각사별 투비모델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SK는 SK경영경제연구소 기능 구축으로 고유의 경영철학과 전략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면서 현실경영을 반영, 발전시켜 나가는 소프트웨어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게 됐다. SK는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거시경제에 대한 연구 및 정보제공 보다도 산업과 기업 측면에서의 정보에 대한 니즈가 매우 강하게 나타남에 따라 산업연구(개별산업 트렌드 경제구조 분석 신규사업 기회) 선진기업 연구(선진경영기법 벤치마킹) 경영연구(SKMS KPI 경영신기법)의 3대 분야를 중심으로 운영해 나가기로 했다. 이를 위해 SK는 우선 그룹 경영경제 연구 부서를 만들어 경영 실무적인 측면에서 연구와 지원기능을 수행하다가, 장기적으로는 그룹과 관계사의 대형 프로젝트 등을 수행하고 컨설팅할 수 있는 조직으로 확대한다는 전략을 추진해나갔다. 2002년 10월 정보통신연구실을 신설한 것을 비롯해 2007년 1월 산업연구실, 2007년 8월 기업분석실, 2012년 전자산업연구실과 사회적기업연구실을 신설하는 등 조직과 기능을 확대해왔다. SK그룹 60년사

105 SK는 에너지 화학과 정보통신, 생명과학 분야의 지식 시너지를 높이고 세계 제2편 따로 또 같이 일류수준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2002년 6월 SK경영경제연구소를 발족했다. SK증권에 세상의행복을 만들어가다 최근 10년간 SK의가장 큰 화두는 행복 이었다. 2004년 2003 이사회중심경영에 이어2007년 지주회사체제전환으로 지배구조를 두었던 SK경제연구소를 확대 개편해 그룹 조직으로 흡수한 것으로, 그룹 핵심 브레인 획기적으로 개선 하는 한편 SKMS를 개정해이윤극대화 기업이념을 넘어 기능을 담당하게 했다. 행복극대화로 진화해나갔다. 새로운 기업이념에맞게2005년 9월 신로고 행복날개 를 SK경영경제연구소는 독립법인이 아닌 사내부서 형태였으며, 질 높은 경영경제 연구 서비스를 제공하는 단계로 출발했다. SUPEX 2000이라는 새로운 경영전략을 통해 2002년 초 각사별 투비모델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SK는 SK경영경제연구소 기능 구축으로 고유의 경영철학과 전략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면서 현실경영을 반영, 발전시켜 나가는 소프트웨어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게 됐다. 발표하고 행복기업 을 향한 비상을 시작했다.이를 위해행복나눔재단 설립, SK 상생협력및공정거래협약 선포식개최, 사회봉사단 창단, 사회적기업생태계조성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글로벌 시장 진출에도 박차를 가해 중국 중심의글로벌리제이션 활동을 위해 SK차이나를 재정비했으며, 중동과 중남미를 비롯한 전략거점지역을 대상으로 따로 또 같이 경영을 펼쳐온 결과, SK는 2012년에최대 규모의수출실적을 올리며사상 SK는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거시경제에 대한 연구 및 정보제공 처음으로 연간 수출규모 600억달러를 달성했다. 보다도 산업과 기업 측면에서의 정보에 대한 니즈가 매우 강하게 나타남에 따라 산업연구(개별산업 트렌드 경제구조 분석 신규사업 기회) 선진기업 연구(선진경영기법 벤치마킹) 경영연구(SKMS KPI 경영신기법)의 3대 분야를 중심으로 운영해 나가기로 했다. 이를 위해 SK는 우선 그룹 경영경제 연구 부서를 만들어 경영 실무적인 측면에서 연구와 지원기능을 수행하다가, 장기적으로는 그룹과 관계사의 대형 프로젝트 등을 수행하고 컨설팅할 수 있는 조직으로 확대한다는 전략을 추진해나갔다. 2002년 10월 정보통신연구실을 신설한 것을 비롯해 2007년 1월 산업연구실, 2007년 8월 기업분석실, 2012년 전자산업연구실과 사회적기업연구실을 신설하는 등 조직과 기능을 확대해왔다. SK그룹 60년사

106 제1장 성장과 행복으로 1. 이어지는 시련과 대주주의 자기희생 시련을 파고든 투기자본의 비수 SK텔레콤, 해외 이동통신사업의 명암 최태원 회장 체제로 전환하다 이사회 중심 투명경영을 선언하다 SK자원봉사단 창단, 행복한 세상 만드는 홀씨 상상이 현실이 되는 W 서울 워커힐 개관 행복극대화 위해 SKMS 개정하다 SK, 차이나 인사이더 전략 가속화 뉴SK 시대 열다 10. 싸이월드와 네이트, 인터넷 커뮤니티를 선도하다 TU미디어 설립, 세계 최초로 위성DMB 방송 개시 SK케미칼, 의약품 해외 수출의 길 열다 SK네트웍스, 고객중심 통합 마케팅회사로 변신 SK건설, 중동에서 신화를 쓰다 SK(주), 브라질과 페루에서 자원개발 성공 행복 나눔의 계절 선포 행복날개 로 날아오르다 SK네트웍스, 종합무역상사 최초로 중국지주회사 설립 LNG 지주회사 SK E&S 탄생 행복동반자 경영 선언하다 SKC, 대대적 사업 구조조정에 나서다 SK(주), 2차전지 사업의 통합 추진 인천정유, SK의 새 가족 되다 SK케미칼, 수익성 제고 위한 사업 재구축 SK네트웍스, 중고가 패션 브랜드 육성 울산대공원, 시민 1인당 1평 녹지를 조성 SK텔레콤, 세계 최초로 HSDPA 상용화하다 SK텔레콤, 프리미엄 T 출시 해운경기 호황과 SK해운의 도약 행복나눔재단, 행복도시락을 배달하다 사상 최초 매출 60조 원, 수출 200억 달러 달성 ~2006 이어지는 시련과 대주주의 자기희생 년은 SK그룹이 창업 5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였다. 향후 2~3년 내에 달성해야 할 기업의 모습을 그린 To-be Model을 처음으로 추진하는 해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최종건 창업회장의 시대와 최종현 선대회장의 시대에 이어 최태원 회장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어가는 시기이기도 했다. 이에 앞서 SK는 2002년 10월 제주 CEO 세미나에서 2005년까지 생존하지 못하는 사업은 통폐합하겠다는 제주선언 을 채택하고 새로운 50년을 위한 사업구조 개혁을 천명했었다. 그런 희망찬 분위기 속에서 2003년을 열면서 손길승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SUPEX 2000 본격 실행을 통한 생존조건의 확보, SUPEX 2000 실행 가속화 및 To-be Model 달성을 위한 책임경영 확립, 성장을 위한 미래준비 등을 강조했다. 최태원 SK(주) 회장은 새해 경영방침으로 전방위 생존전략 수립과 이의 강력한 추진, SUPEX 2000 실천에 에너지 결집, 중국을 포함한 글로벌 사업과 신규 사업의 성과 가시화를 통한 미래 준비 를 제시했다. 새로운 50년을 준비하며 힘차게 2003년을 시작했지만, 2월 17일 청천벽력과도 같은 돌발사태에 직면했다. SK의 몇몇 관계사가 압수수색을 받았고 최태원 회장과 몇몇 임원의 소환 통보까지 이어졌다. 최태원 회장은 2월 19일 검찰의 소환에 응하면서 물의를 일으켜 국민들에게 죄송하다 고 밝히고 좀 더 좋은 지배구조를 갖는 회사를 만들겠다. 기업을 운영할 사람이 남아 있어야 하니 다른 구성원들은 다치지 않게 해 달라 고 말했다. 그는 구속 전 자기변론이 가능한 영장실질심사도 스스로 포기했다. SK는 2월 22일 긴급 SK그룹 60년사

107 사장단 회의를 갖고 검찰 수사와 관련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으로 거듭날 것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SK글로벌은 정상화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됐다. 천명하는 등 경영진 공백의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조치를 신속하게 취했다. SK(주) 이사회의 출자전환 승인으로 정상화의 계기를 잡은 그룹과 SK글로벌은 그런데 2월에서 3월로 넘어가는 사이 SK사건의 내용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른바 이후 말 그대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이행했다. SK는 6월 18일 계열사 별 이사회 SK글로벌 분식회계 건이 추가되면서 부당 내부거래와 분식회계라는 쪽으로 선회했다. 중심의 독립경영 체제 정착을 가속화하는 기업구조조정 개혁방안 을 발표했다. 사실 종합무역상사의 부실문제는 압축발전 과정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었으며, 이 사업구조를 에너지 화학과 정보통신 중심으로 개선하고, 구조조정과 자산매각을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직접 당사자도 아닌 최태원 회장 한 사람에게만 지우는 것은 통해 2007년까지 부채비율을 120%로 낮추기로 했으며, 구조조정본부 해체, 계열사 가혹한 측면이 있었다. 별 이사회 중심의 전문경영인 체제 구축 등을 골자로 한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밝혔다. SK글로벌은 자구노력을 통해 5년 내에 현금창출 1조 2,000억 원 등을 목표로 제시하고, 부채를 5년 안에 2조 3,000억 원까지 축소, 부채비율 100%대의 우량한 재무구조를 갖춘 회사로 탈바꿈시키겠다고 선언했다. SK그룹도 4월 15일 SK글로벌 정상화 추진본부 를 발족시키고 채권단의 공동관리를 받고 있던 SK글로벌의 제주 CEO 세미나 개최. SK는 2003년 창업 50주년을 경영정상화를 그룹 차원에서 추진하기로 했다. 앞두고 2002년 10월 제주 CEO 세미나를 열고, 2005년까지 생존하지 최태원 회장 부재에 따른 경영위기를 최소화하기 위한 관계사 별 비상경영과 그룹 못하는 사업은 통폐합하겠다는 제주선언 을 채택했다. 차원의 지원은 시련에 빠져 있던 SK글로벌 구성원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SK글로벌은 6월 3일 채권단과 협의 하에 우량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자체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자구노력과 영업수익성의 획기적 제고로 에너지 정보통신 마케팅 전문기업으로 변신하겠다는 것이었다. SK글로벌의 자체 구조조정 계획에 포함된 SK(주) 매출채권 8,500억 원의 출자전환에 대해 소버린 자산운용과 참여연대 등이 반대했지만, 주채권은행인 하나은행과 SK그룹은 SK(주)가 SK글로벌에 출자전환을 하는 것은 철저히 상업적 판단에 따른 것 이라고 반박했다. SK(주)는 6월 15일 이사회를 열어 SK글로벌에 대한 8,500억 원의 출자전환 안을 통과시키는 한편 SK글로벌로부터 매입한 주유소 및 충전소 지분 원상복귀, SK글로벌과의 기존 거래관계 유지, 지배구조 개선 등 SK글로벌 정상화 방안을 논의했다. SK(주) 이사회에서 출자전환 안건이 통과되자 SK글로벌 채권단은 6월 17일 채권단협의회를 열고 SK글로벌에 대한 출자전환과 채권만기 연장 등 채무재조정안을 SK그룹 60년사

108 이를 위해 그동안 활발하게 투자해오던 벤처사업 상당 부분과 공기업 민영화 참여 등 확장 지향적인 투자를 축소하고, 저수익 사업의 정리와 운영효율 개선 등을 통해 9,000억 원 규모의 비용절감 노력도 경주하기로 했다. SK 구조조정추진본부는 해체 방안 발표 후 9일 만인 6월 27일 공식 해산했다. 이 같은 개혁방안에 따라 SK는 전문경영인이 회사의 생존조건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갖고 주주 이익에 입각한 이사회 중심의 독립기업으로 탈바꿈하게 됐다. 관계사 간의 관계는 상호 윈윈하는 밸류 체인이자 브랜드와 기업문화를 공유하는 네트워크 라는 새로운 개념의 기업결합 모델로 변모했다. SK글로벌은 자구안에 따라 2003년 3월 말 2,702명이던 직원의 28%인 750여명을 연말까지 단계적으로 줄이기로 했다. 이와 함께 23개국 39개에 이르는 해외 법인 및 지사는 미주 유럽 아시아지역 등 거점지역에 18개만을 남기고 대부분 폐쇄하고, 본사의 지사는 22개에서 14개로, 해외법인은 8개에서 3개로, 법인의 지사는 9개에서 1개로 대폭 간소화하기로 했다.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였지만 구조조정추진본부를 해체하고 주요 계열사 별 독립경영 체제를 구축한 SK그룹의 기업구조 개선 노력은 언론 등 세간의 비상의 관심을 모으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시련을 파고든 투기자본의 비수 년 4월 3일 외국계 펀드인 크레스트 시큐리티즈(Crest Securities; 이하 크레스트)가 SK(주) 지분 8.64% 취득 사실을 금융감독원에 신고했다. 이는 당시까지 SK(주)의 1대 주주였던 SK C&C의 지분을 웃도는 것이었다. 크레스트는 이후에도 SK(주) 지분 매입을 계속해 4월 10일 12.39%, 16일에는 14.99%를 매입했다고 공시했다. 크레스트의 SK(주) 지분 매입은 SK글로벌 사태로 최태원 회장이 자신의 계열사 지분을 채권단에 모두 담보로 내놓으며 시작된 SK(주)의 경영권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적대적 인수합병 논의와 함께 재계와 정부, 시민단체 사이에서는 경영권 방어와 출자총액제한제도의 관계를 놓고 갑론을박이 계속됐다. 크레스트 측은 공시를 통해 수익창출이 목표 라고 밝혔으나 출자총액제한에 의한 의결권 제한으로 경영권 방어에 동원할 수 있는 SK(주)의 지분을 능가하기 때문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4월 13일 외국 동일인(크레스트) 지분이 10%를 넘어섰기 때문에 SK(주)는 외국인투자기업으로 분류돼 출자총액제한의 예외가 적용된다 는 유권해석을 내려 상황이 반전되는 듯 했다. 그러나 소버린측은 SK(주)를 기업지배구조의 모델기업으로 변모시키기 위해 SK 경영진과 건설적으로 작업하겠다 고 밝혀 지분만큼의 경영권 참여나 기업지배구조 개선 요구가 있을 것임을 예고했다. SK(주)의 경영권 문제는 SK텔레콤과 관련해 재연될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었다. 크레스트의 SK(주) 보유지분이 전기통신사업법 상 외국인으로 간주되는 15%에 육박해 SK(주)가 가지고 있는 SK텔레콤 지분(20.85%)에 대한 의결권이 절반 이하로 SK그룹 60년사

109 떨어져 SK텔레콤에 대한 지배력을 잃을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었다. 지배력 유지를 원하는 SK(주)에 크레스트가 지분을 비싸게 되팔 가능성이 새롭게 제기됐다. SK(주)의 최대주주가 크레스트로 바뀌고 SK(주)에 대한 인수합병 문제가 떠오르면서 SK글로벌의 경영정상화도 또 다른 국면을 맞았다. 채권단은 그동안 SK글로벌의 경영정상화 조건으로 SK(주)를 비롯한 그룹의 지원을 요청하고 있었다. 그러나 SK(주)의 최대주주가 크레스트로 바뀌면서 계열사 지원이 사실상 어려워졌다. 크레스트의 모회사인 소버린 자산운용은 4월 14일 발표한 성명에서 소버린의 목표는 주주가치의 확립 이라고 밝혔다. SK(주)의 기업 가치를 낮출 수 있는 부실 계열사에 대한 지원에 반대한다는 의사였다. SK글로벌은 4월 15일까지 제출하기로 했던 2차 자구계획안 제출을 연기했다. 소버린 측의 입장 표명으로 자구안의 핵심인 SK(주)에 대한 주유소 매각과 대주주 출자 등에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되자 채권단의 분위기는 채권단만 손해볼 수 없다 는 쪽으로 흘러갔다. SK 계열사의 지원이 없다면 은행만 손해를 감수하면서 SK글로벌을 살릴 이유가 없다고 보고 있었다. 이에 따라 자신이 보유했던 전 계열사의 주식을 채권단에 SK글로벌 정상화의 담보로 잡힌 최태원 회장이 주식을 되찾을 가능성도 희박해졌다. 이처럼 크레스트는 SK(주) 지분을 매입하면서 단순 투자 라고 말해놓고 SK글로벌 정상화를 위한 SK(주)의 지원이 가시화되자 주주 이익에 반한다 는 명분을 걸고 반대의 뜻을 밝히며 서서히 경영 간섭을 노골화했다. 2004년 초 이후 소버린은 주주 제안을 통해 이사후보 5명 추천과 정관 개정안 제안(1월 29일), 최태원 회장 퇴진 요구(2월 24일), 소버린 대표에 의한 SK(주) 노조 및 소액주주 접촉(3월 3일), 자신들이 추천한 이사후보 및 소액주주 대상 설명회 개최(3월 6일), 임시주총 소집 요구(10월 25일)와 이것이 성사되지 않자 법원에 SK(주) 임시주총 소집허가 신청 제출(11월 9일), 법원이 소버린 임시주총 허가 신청을 기각(12월 15일)하자 다시 항고(12월 22일)하는 등 집요하게 경영 간섭을 했다. 결국 2004년과 2005년 두 차례의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려다가 여의치 않게 되자 2005년 6월 20일 투자목적을 경영참가에서 단순투자로 변경하고, 7월 18일에는 지분 매각을 공식 발표했다. 정체불명의 해외투자자로 한국에 들어온 소버린은 SK(주)의 주식 매입과 경영간섭을 통해 SK의 경영권을 위협했으며, 결국 9,000억 원 이상의 시세차익을 남기고 떠났다. 이는 SK글로벌 사태의 이해당사자들뿐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계의 미래상과 연계된 중요한 화두를 던졌다. 출자총액제한제도에 의한 국내 산업자본의 역차별 논란과 대주주 역할론이 그것인데, 대주주의 경영권을 담보해주고 채권을 회수하며, 궁극적으로 기업도 살린 대주주 역할론 이 옳았다는 평가다. 한편 채권현금 매입(CBO)비율을 놓고 대립해오던 국내 채권단과 해외 채권단이 2003년 7월 30일 극적으로 합의함으로써 SK글로벌은 법정관리가 아닌 채권단 공동관리의 길을 가게 됐다. 이후 SK글로벌의 정상화 행보는 속도감 있게 진행됐다. SK글로벌은 8월 22일 이사회를 열고 10월 10일을 기준으로 최태원 회장 등 대주주와 특수 관계인 지분은 완전 소각하고 소액주주 지분은 7대 1로 줄이는 안을 의결했다. 그리고 2003년 9월 9일 열린 임시주주총회에서 회사명을 SK네트웍스로 변경했다. SK그룹 60년사

110 SK텔레콤, 해외 이동통신사업의 명암 글로벌 사태로 인해 그룹이 우울한 분위기에 빠져 있었지만 SK텔레콤은 글로벌 시장 공략의 이정표가 될 의미 있는 사업을 벌이고 있었다. 글로벌 경영의 일환으로 2003년 7월 베트남에 진출해 S-fone 이라는 브랜드로 차별화된 마케팅과 서비스를 제공하며 베트남 이동통신 시장의 지각변동을 일으킨 것이었다. S-fone은 2006년 9월 가입자 100만 명을 돌파하며, 본격 성장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는 한편, 글로벌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했다. 2006년에는 이동통신의 본고장인 미국에도 진출해 이동전화 서비스 사업을 전개했다. SK텔레콤은 1990년대 중반부터 국경을 초월한 세계 통신시장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해외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1995년 10월 인도 델리에서 무선호출 사업을 시작하면서 해외시장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1996년 태국, 1998년 브라질 등지에서 이동전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활발히 해외로 진출했다. 1999년 4월에는 몽골의 제2이동전화 사업자인 스카이텔(SkyTel)사에 현물출자 방식으로 진출, 7월부터 아날로그 방식으로 이동전화 서비스를 시작했다. 2000년 11월에는 거대한 성장잠재력을 가진 러시아 및 CIS 이동전화 시장에도 진출해 다케스탄 자치공화국에서 2000년 11월부터 서비스를 개시했다. 그러나 SK텔레콤이 어느 나라보다 공을 들인 곳은 베트남이었다. SK텔레콤은 베트남에서 CDMA의 우수성을 지속적으로 홍보했고, 결국 베트남 정부는 1997년 CDMA 이동전화 서비스 도입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베트남 진출을 위해 2000년 4월 LG전자, 동아일렉콤과 함께 싱가포르에 SLD텔레콤을 설립하고, 2000년 10월 베트남 제2이동통신사업자인 SPT사와 BCC(Business Cooperation Contract; 경영협력계약) 형태로 베트남 CDMA 이동전화 사업에 진출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2001년 8월에 베트남 정부로부터 CDMA 이동통신 사업 투자승인을 획득하고, 2001년 9월 베트남 현지에 S-텔레콤을 설립했다. 그 후 2년여의 치밀한 준비 끝에 2003년 7월 1일부터 호치민과 하노이를 포함한 13개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S-fone 이라는 브랜드로 베트남 최초의 CDMA 이동전화 서비스를 개시했다. S-fone은 베트남 현지 경쟁사들의 견제 속에서도 출발부터 파격적인 요금제와 부가 서비스 등으로 차별화 전략을 펼쳤다. 2004년 7월부터 시작한 단말기 임대제는 S-fone의 시장 안착에 가장 크게 기여했다. S-fone은 서비스 개시 3년 3개월 만인 2006년 9월 가입자 100만 명을 돌파하며, 본격 성장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그동안 다각도로 추진해온 글로벌 사업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 것이었다. 각국이 기간산업인 통신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해외 사업자에게 차별적 장벽을 치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거둔 성과여서 해외시장 개척의 모범사례라 부르기에 충분했다. S-fone이 2009년까지 가입자 700만 명을 확보하며 베트남 4위 이동통신 사업자로 자리 잡았지만 SK텔레콤은 2010년 5월 사업에서 철수했다. 파트너사인 SPT가 3G사업권 획득에 실패한 데다 경쟁사들과의 경쟁력 격차로 수익을 기대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베트남에 진출해 이동통신 사업을 전개했던 SK텔레콤은 이동통신의 본고장인 미국에도 진출했다. 힐리오(HELIO)를 설립하고 2006년 5월부터 미국 전역에서 MVNO(Mobile Virtual Network Operator; 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방식으로 이동전화 서비스를 시작했다. SK텔레콤의 미국시장 진출은 SK텔레콤이 2004년 선포한 신가치경영의 큰 축인 글로벌 사업을 본격 추진한 지 불과 10개월 만에 이루어낸 성과였으며, 새로운 성장엔진을 갈망하던 한국 IT업계에 새로운 수출시장 개척이라는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SK텔레콤은 미국 진출을 위해 2005년 1월 미국 ISP업체인 어스링크(EarthLink)와 SK그룹 60년사

111 조인트벤처를 설립하고, 아시아 네트워크 운용사업자(MNO)로서는 최초로 미국 전역을 대상으로 하는 이동통신 서비스 시장 진출의 시동을 걸었다. 이어 같은 해 10월에는 조인트벤처의 명칭과 신규 브랜드명을 힐리오로 확정하고 상용화를 위한 본격 채비에 나섰다. SK텔레콤은 한국이 전 세계적으로 선도하고 있던 멀티미디어 무선 인터넷 서비스 및 모바일 블로그 등을 적극 활용해 이를 힐리오의 서비스로 제공함으로써 기존 MVNO 사업자와의 차별화에 역점을 두었다. 힐리오는 사업 초기에 어려움이 없지 않았지만 공격적 마케팅보다는 브랜드를 알리고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의 인지도 확산 및 신뢰도 확보에 중점을 둔 마케팅 전략을 구사했다. 그 결실로 서비스 개시 8개월 만인 2006년 말 가입자 7만 명을 확보하는 등 선전했다. 특히 무선 인터넷 ARPU(Average Revenue Per User; 가입자당 평균 매출액) 비중이 약 25%에 달해 차별적인 무선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고가의 ARPU시장을 공략하겠다는 힐리오의 전략이 성공을 거두는 듯했다. 그러나 이동통신사 간 M&A이 열풍이 불면서 MVNO사업이 위축됐고, 가입자 모집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다가 2008년 6월 힐리오를 매각하고 철수했다. 잇따른 해외사업 실패에도 불구하고 SK텔레콤은 이를 미래를 위한 소중한 경험으로 삼았다. SK의 역사 자체가 끊임없는 도전을 통해 실패를 딛고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왔기 때문이었다. 최태원 회장 체제로 전환하다 년 9월 22일, 최태원 회장은 7개월 만에 경영에 복귀했다. 이에 앞서 금융감독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8월 20일 SK해운이 회계처리 기준 등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손길승 회장이 SK글로벌 및 SK해운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권고했다. 손길승 회장은 10월 30일 2003년 2월 취임했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직을 사임했다. 최태원 회장이 경영일선에 복귀함에 따라 그동안 흐트러졌던 경영체제를 재정립하고 경영정상화를 가속화시켜야 한다는 기대도 높아졌다. 앞에 놓인 현안은 적지 않았다. 소버린 문제와 SK네트웍스 경영정상화, 중국 사업을 비롯한 전략적 투자에 대한 의사결정 등이 최태원 회장의 결심과 판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SK(주)가 SK네트웍스 유상증자에 참여함에 따라 SK네트웍스는 10월 27일 경영정상화의 길로 들어섰다. 해를 넘겨 2004년 1월 8일, 손길승 회장은 대선자금을 수사 중이던 대검 중앙수사부의 소환에 응해, 검찰에 출두했고 이튿날 구속 수감됐다. 이어 2월 25일 경영일선에서 퇴진하면서 최태원 회장이 그룹을 대표하게 됐다. 1998년 최종현 선대회장의 타계 이후 손길승 회장은 그룹 총괄, 최태원 회장은 대내 업무 경영을 하는 대주주와 전문경영인의 파트너십 체제를 구축한 지 6년여 만에 최태원 회장 체제로 전환한 것이었다. 최태원 회장은 1998년 9월 1일 최종현 선대회장의 뒤를 이어 SK(주)의 회장에 취임했다. 당시 혁신적인 변화를 할 것이냐(Deep Change), 천천히 사라질 것이냐(Slow Death) 를 일성으로, 변화의 화두를 던진 최태원 회장은 그룹 전반의 SK그룹 60년사

112 체질을 바꾸는 데 주력했다. SK(주)는 최 회장 취임 이후 해외시장 개척, 수출 드라이브 등을 통해 내수기업으로 인식되던 기업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2002년 최태원 회장은 따로 또 같이 경영을 선언하면서 그룹 지배구조의 변화를 선언했다. 각 계열사와 그룹의 관계가 지배관계 대신 SK라는 브랜드와 기업문화를 공유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나아가 SK글로벌 사건과 소버린 사태 등 그룹의 존립 자체를 뒤흔들어 놓을 정도의 시련 속에서 SK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이사회 중심의 투명경영을 통한 지배 재무 사업구조 모두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선진형 기업으로의 탈바꿈해나갔다. 이사회 중심 투명경영을 선언하다 악몽과도 같던 2003년이 지나고 2004년이 밝아오자 SK는 몸을 추스르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준비를 차근차근 전개해나갔다. SK(주)는 2대 주주인 소버린 자산운용의 경영권 장악 움직임에 관계없이 1월 30일 획기적인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발표했다. 이어 2월 22일 열린 이사회에서 사외이사 비중 70% 확대, 신임 이사후보 선정, 투명경영위원회 신설을 위한 정관변경 등 2004년 정기 주총 관련 의안을 의결했다. 1월 말 사외이사 비중을 2004년 과반수로, 2006년부터 70% 이상으로 확대하기로 하는 지배구조 개선안을 발표했으나, 최태원 회장이 이사회에서 2006년까지 미룰 것 없이 당장 올해부터 실시해서 세계 일류 수준의 독립적이고 효율적인 이사회를 만들어보자 고 제안, 다른 이사들도 적극 찬성하면서 사외이사 70%안을 2년 앞당겨 시행하기로 전격 결정했다. 사외이사 비중 70%는 국내 최고 수준이었다. 2월 24일 열린 SK텔레콤 이사회에서 최태원 회장 스스로 이사직을 사임함으로써 지배구조의 개선과 이사회 중심의 투명경영에 대한 의지를 실천했다. 2004년 3월 12일 열린 SK(주) 제42차 정기 주주총회는 2대 주주 소버린 자산운용과의 경영권 문제로 사회적 관심이 집중됐지만 결과는 SK의 압승이었다. 외국인 투자가와 소액주주의 상당수가 SK측의 사외이사를 지지해 양측의 표 차이는 거의 20%포인트에 육박했다. 같은 날 열린 SK텔레콤 제20기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사내이사 4명과 사외이사 4명으로 구성된 이사회가 새롭게 출범, 사외이사 비중 50%를 현실화했다. 또 그룹의 핵심 경영 사안을 결정하기 위해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SK(주)의 최태원 회장과 신헌철 사장, SK텔레콤의 조정남 부회장과 김신배 사장 등 SK그룹 60년사

113 4명으로 이루어진 SK경영협의회 를 새롭게 구성했다. SK경영협의회 를 중심으로 SK 브랜드와 문화를 공유하는 네트워크 체제 를 꾸려가기 위한 구도였다. SK(주)는 2004년 3월 25일 이사회를 열어 이사회 내에 기존 2개의 위원회 외에 투명경영위원회 제도개선위원회 전략위원회 인사위원회 등 4개의 새로운 전문위원회를 신설, 운영할 것을 결의했다. 이들 전문위원회는 사외이사가 주축이 되며, 이사회의 주요 의사결정을 지원해 이사회 운영의 활성화 및 실질적 기능 강화를 도모하고자 했다. 이는 보고 받고 도장 찍어주는 이사회가 아니라 일하는 이사회 즉, Working BOD 를 만들겠다는 최태원 회장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SK(주)는 독립적이고 투명하며, 적극적으로 경영 현안을 챙기고 판단하는 워킹 BOD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2004년 4월 22일 창사 이래 최초로 울산컴플렉스에서 이사회를 개최했다. 이사진들의 현장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이 같은 시도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사업장으로까지 확대됐다. 또 이사회 중심의 투명경영 에 한층 더 박차를 가하기 위해 2004년 5월 4일 사외이사들이 출근해 업무를 볼 수 있는 사무실을 설치하고 개소식을 가졌다. 2005년 3월에는 국내 기업 중 최초로 이사회 활동을 총결산하는 이사회 백서를 발간했다. 그룹 차원의 지배구조 개선에 이어 각 사별 이사회 중심의 독립경영 시스템 구축 을 위해 2005년 3월 CEO 세미나가 열렸다. 최태원 회장은 이날 세미나에서 SK의 지배구조 개선과 이사회 중심의 투명경영 시스템 구축은 기업구조 변화에 중요한 변곡점이 되고 있다 며 각 관계사의 시스템 개선에도 적극 반영해 지배구조 개선의 모델을 만들자 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SK텔레콤, SK네트웍스, SK케미칼 등 주요 상장사가 사외이사 50% 이상의 이사회를 구축했으며, 이 제도는 비상장사로까지 확대됐다. 2005년 9월 SK C&C는 임시주주총회에서 3명의 사외이사를 추가로 선임해 사외이사의 비율을 50%로 높였다. 이는 비상장사로서는 국내 최초의 사례로 SK그룹의 투명경영 의지가 상장 계열사뿐만 아니라 비상장 계열사로까지 확대된 것임을 의미했다. 이사회 중심의 투명경영을 향한 이 같은 행보는 그룹 전체의 기업 이미지 상승은 물론 실제적인 경영성과의 개선으로 이어졌다. SK(주)의 경우 이사회 중심 투명경영의 원년인 2004년 순이익 1조 6,448억 원을 기록, 국내 정유화학회사로서는 최초로 순이익 1조 원 시대를 열었으며, 전년도 A+였던 신용등급도 AA-로 한 단계 끌어올렸다. 외부에서의 호평도 이어졌다. 2005년 6월 23일 SK(주)와 SK텔레콤이 기업지배구조개선센터가 선정한 지배구조 우수기업으로 선정됐으며, 9월 23일에는 SK(주)가 한국상장회사협의회와 한국공인회계사회가 공동으로 시상하는 제6회 감사대상 상장법인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잇따른 수상은 사외이사들이 자체적으로 나서 사외이사 윤리강령 을 제정 및 선포한 점, 웹사이트 등을 통한 공개추천제 등을 도입해 사외이사 선임 과정에 객관성을 높인 점 등에 대한 높은 평가가 반영된 것이었다. 1998년 그룹명을 선경에서 SK로 변경하고 종로구 서린동 SK빌딩에 새 터전을 마련했다 SK그룹 60년사

114 SK자원봉사단 창단, 행복한 세상 만드는 홀씨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려는 SK그룹은 그 일환으로 사회공헌 활동을 본격화했다. 2004년 7월 자원봉사단을 창단하는 등 대대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며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 우리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열어가고자 한 것이다. SK그룹은 2004년도 신입사원 437명을 대상으로 1월 5일부터 2월 5일까지 SK아카데미에서 교육을 진행하면서 사회봉사 활동을 도입, 제도화했다. 신입사원 교육과정을 사회적 기업인을 양성하는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최고경영진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었다. 최태원 회장은 2004년 4월 27일 열린 SUPEX추구협의회에서 북한 용천역 열차사고로 불의의 피해를 당한 북한 동포들의 고통에 깊은 위로와 애도의 뜻을 전한다 고 말하고 기업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에 SK 관계사들이 다같이 동참하자 고 당부했다. 이에 따라 SK는 북한 용천역 열차폭발 참사 지원을 위해 한끼 금식 캠페인 을 펼쳐 1인당 5,000원의 성금을 적립하는 한편, 각 관계사에서 자체적으로 모은 성금 10억 원을 내기로 했다. 이어 그해 5월 16일 열린 울산대공원 2차 기공식에서 최태원 회장은 사회공헌을 통한 사회 전체의 행복 극대화 라는 기업이념의 실천을 약속하며 이제는 기업이 사회를 따뜻하게 만들고, 행복하게 만드는 변화의 원동력이 돼야 하는 시기이며, SK그룹이 앞장서 나가자 고 말했다. SK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SUPEX추구협의회도 기업이 사회를 따뜻하게 만들고 행복하게 만드는 변화의 원동력이 돼야 하는 시기 라고 SK의 시대적 소명 을 밝힌 터였다. 지난 10여 년 간 유지해온 OK! SK! 가 고객지상주의 경영을 표방한 것이었다면 뉴 SK 는 사회 전반의 행복 극대화 를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었다. 뉴 SK의 기업이념으로 천명한 행복 극대화 실천 노력은 2004년 7월 22일 SK자원봉사단 창단으로 이어졌다. SK자원봉사단은 자원봉사를 통해 국민과 고객, 우리 모두의 삶의 가치를 높여 가는데 노력할 것 이라고 다짐하며 세 가지를 선서했다. 투철한 책임의식과 즐거운 마음으로 소외된 이웃과 함께 하는 마음으로 자원봉사를 통해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개인의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것이었다. 13개 주력 관계사 전체 구성원의 5분의 1에 달하는 6,000여 명으로 구성된 SK자원봉사단은 2004년 한 해 동안 연인원 3만 5,000여 명이 활동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후 SK는 다양한 사회봉사활동을 펼쳤다. 8월 한국 사랑의 집짓기(Habitat) 2004 행사에 건축 후원기금을 전달하고, 최태원 회장을 비롯한 SK 구성원 70여 명이 자원봉사활동을 펼쳤다. 2004년 12월 10일 용산 KTX역사에서 열린 사랑나누기 기쁨 더하기 사랑의 바자회에는 최태원 회장을 비롯한 각 관계사 구성원들이 참여해 SK 관계사에서 4만 6,149점의 물품을 시민들에게 판매했다. 바자회 이후에도 SK그룹 13개 관계사 자원봉사단 6,600여 명은 12월 31일까지 전국 100여 곳의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해 현장 속의 봉사 활동을 펼쳤다. 12월 4일부터 SK자원봉사단은 발족 후 사랑의 집짓기 2004 에서 집없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직접 신축한 집과 함께 희망을 전달해 주었다. 최태원 회장 역시 구성원들과 함께 행사에 참여해 현장에서따뜻한 사회 만들기에 앞장섰다. SK그룹 60년사

115 24일까지는 SK 13개 관계사 사업장에 구세군 자선냄비를 설치해 사회봉사 활동에 대한 열의를 보였다. SK의 사회공헌 활동 사회봉사 활동은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사업자나 관련 사업자, 그리고 상대적 약자인 중소협력업체, 일반시민에 대한 배려로까지 확대됐다. SK텔레콤은 삼성전자와 공동으로 2월 2일부터 3월 14일까지 2004 대한민국 희망 프로젝트 를 실시해 총 2억 원의 창업자금을 지원했다. SK는 투자확대를 통한 고용창출에도 나섰다. SK(주)를 비롯한 관계사들은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에 적극 호응해 미래 성장기반 확보 차원에서 대졸 신입사원 1,000여 명을 포함해 총 2,000여 명을 채용하기로 했다. 또 중소기업 협력업체들의 추석 연휴 및 추석 이후 결제분을 연휴 이전에 조기 결제하고, 전자어음도 조기 발행하기로 결정하는 등 상생경영을 적극 실천했다. 주력 관계사들을 중심으로 시행 중인 중소기업 협력업체 지원방안을 재점검하고, 행복경영 차원에서 중소기업 협력업체들이 실질적인 사업 파트너로서 함께 발전해 나갈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지속적으로 마련해 나가기로 했다 SK는 행복 극대화의 실천 노력으로 SK자원봉사단을 창단했다. SK자원봉사단 단장인 조정남 부회장을 비롯한 관계사 CEO와 구성원들은 공식행사를 마치고 곧바로 긴급재난 구호활동을 펼쳤다. 상상이 현실이 되는 W 서울 워커힐 개관 년 8월 20일 SK는 또 하나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세계적인 브랜드의 6성급 최고급 호텔인 W 서울 워커힐 이 문을 연 것이었다. W 서울 워커힐 은 기존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서울 호텔건물 바로 옆에 들어섰으며, 14개 층에 253개의 객실을 갖추었다. W 서울 워커힐 은 트렌드 리더들의 사랑을 받아온 호텔 브랜드로서 도시적인 감성과 독특한 디자인을 선보이며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했고, 미디어는 이를 관심 있게 다루었다. W 서울 워커힐 의 설립은 2001년 4월 뉴 타워 라는 이름으로 기공식을 가지면서였다. 워커힐은 세계 일류 수준의 도심 속 리조트 호텔로 거듭나기 위해 2001년 12월 세계적 호텔체인인 스타우드와 W호텔 도입계약을 체결했으며, 2002년 11월에는 기존 호텔을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서울 로 명칭을 변경하는 한편, 전면적인 리노베이션을 단행했다. 한편 워커힐은 2001년 3월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 4층 면세구역 내에 에어가든 호텔을 오픈했다. 국내에서 처음 시도한 환승호텔로, 싱가포르의 창이국제공항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선보인 결과였다. 워커힐은 호텔 운영에서 축적한 전문 경영기법과 다년간의 외부사업장 운영기술을 활용해 에어가든 호텔과 제주 핀크스의 포도호텔, 그리고 일동GC, 청주그랜드CC, 인천그랜드CC 3곳의 골프장 클럽하우스 위탁경영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여기에 2011년 6월 삼성동에 위치한 코엑스 컨벤션의 케이터링 서비스 및 F&B 시설 운영 계약을 맺으면서,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만의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는 G20, 핵안보정상회의 등 국내외 최정상의 행사 유치 등 오랜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한 SK그룹 60년사

116 일이었다. 여기에 청와대 만찬, G20 등 국빈 만찬 행사를 통해 실력을 인정 받은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셰프들이 한식, 중식, 양식, 뷔페 메뉴로 선보이는 다이닝과 수준 높은 전문가들의 스타일링을 통해 격조 높은 웨딩을 제공했다. 이와 함께 2011년 9월 8일 워커힐F&D사업부는 코엑스 컨벤션 내에 도심 속 휴식 공간이자 복합 문화 공간을 모토로 한 펍&레스토랑 위즈윗(WIZWIT), 프리미엄 라이브 뷔페 비자비(VIZAVI)를 오픈했으며, 2012년 7월에는 중구 미래에셋 센터원 빌딩에 일식과 중식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스카이 라운지 레스토랑인 파로그랜드 (Faro Grand)를 오픈해 운영 중에 있다. 워커힐은 현재 인천공항에 환승 호텔과 9개의 F&B 영업장 외에도 클럽하우스 및 레스토랑을 운영 중이다. 행복극대화 위해 SKMS 개정하다 SK그룹의 경영관리 체계이자 경영철학인 SKMS의 특징은 고착화된 것이 아니라 시대상황과 SK의 의지를 반영해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살아 움직이는 유기물이어야 한다는 것이 SKMS의 창시자인 최종현 선대회장의 뜻이기도 했다. 이에 따라 SK그룹은 1979년 SKMS 제정 이후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쳐 늘 시대를 앞서가는 내용을 담고자 했다. 최태원 회장을 비롯한 20여 명의 SK 관계사 CEO들은 2004년 10월 18일부터 20일까지 제주 파라다이스호텔에서 CEO 세미나 를 열었다. 세미나의 핵심은 기업이념을 이윤 극대화 에서 행복 극대화 로 변경한 것이었다. 복잡다단해진 사회에서는 기업이 이윤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회사와 고객, 구성원, 주주, 사회 등 기업을 둘러싼 전체 이해관계자의 행복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철학이었다. 이와 함께 강한 기업, 신뢰받는 기업, 행복한 사회 등을 3대 추구가치로 설정했다. SKMS는 1979년 3월 정립 이후 모두 12번의 개정작업을 거쳤다. SKMS가 화석화한 경영이념이 돼선 안 되며 경영환경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최적화되는, 살아있는 경영 시스템이어야 한다 는 원칙에 따른 것이었다. 새로운 SKMS의 틀은 기업의 존재 가치는 이윤 극대화 라는 기존의 경영이념을 대폭 수정, 보완했지만, 최태원 회장과 구성원들의 열띤 토론을 통해 구체화했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었다. SKMS의 변화 가능성, SK의 지배구조 개선에 대해 최태원 회장은 2000년 5월 카이스트 강연, 2002년 5월 서울대 대학원 공개강의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거론해 왔다. 신임 임원과의 대화나 관계사 전 임원 대상 SK경영 워크숍, 최고경영자와의 대화 등에서 최태원 회장은 뉴 SK 50년을 위한 시스템경영 과 SKMS SK그룹 60년사

117 실천의 솔선수범, 그리고 내가곧 회사라는 생각으로 계속 진화할 것 을 강조했다. 2004년 10월 제주 CEO 세미나에서 개정된 SKMS는 그동안 치열하게 논의된 토론의 열매들이었다. 진화된 SKMS는 기업이념을 이윤극대화에서 이해관계자(고객-구성원- 주주-사회) 행복극대화로 바꾸고 기업문화와 브랜드를 공유하는 네트워크 로 정하는 등 크게 바뀌었다. 토론을 통해 진화하고 시스템으로 구축된 SKMS는 어느 한 개인의 경영법이 아니라 기업의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다른 기업과 차별화되기도 했다. SKMS는 회사와 주주 등의 구성원 모두를 위한 경영 시스템이기 때문에 회사가 존재하는 한 존속되는 경영법이다. 많은 사람들은 SK가 위기를 딛고 최단기간에 정상을 찾을 수 있었던 저력으로 SKMS를 꼽고 있다.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 시스템 개선으로 사별 독립경영 체제를 구축하면서 최태원 회장은 관계사의 독립경영을 자식의 독립 에 비유하며 독자적으로 경영하더라도 SK의 기업문화와 브랜드를 공유하면 여전히 SK가족 이라고 정의했다. 개정된 SKMS는 SK가족을 묶는 매개로서 역할이 더욱 강화됐다. 2005년 1월 3일 최태원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2005년 3대 경영방침으로 강한 기업, 신뢰받는 SK, 행복한 사회 추구 를 제시하고, 이를 위해 SKMS를 진정으로 실천하자고 강조했다. 이어 각사와 사업이 SKMS 실천을 통해 지속적인 생존조건을 확보해 나가도록 노력하자고 당부했다. SK는 개정 SKMS의 실천을 다짐하는 SKMS 실천결의문 을 채택하고 신년교례회 행사장에서 최태원 회장을 비롯한 주요 관계사 CEO가 3만 명의 구성원을 대표해 결의문에 서명했다. 2008년 SKMS는 다시 한 번 진화의 발걸음을 내디뎠다. SKMS의 12번째 개정안을 발표한 것이었다. 개정된 SKMS 서문에서는 SKMS에 근간한 기업문화와 브랜드 등을 공유하는 기업 경영에 합의한 기업들로 구성된다 고 그룹을 규정했다. 이는 기업문화와 브랜드를 공유하는 이란 2004년도 SKMS의 그룹 규정에서 한 발 더 나간 것이었다. 서로의 생존과 발전에 도움이 되는 영역에 대해 자발적으로로 공유하고 협력하며, 기업문화와 브랜드를 더욱 더 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했다. 행복경영에 대한 실천방안도 한층 구체화했다. 기존의 이해관계자의 행복추구 의 개념을 유지하되 보다 장기적이고 균형적인 실천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2010년 6월에는 30년 만에 SKMS를 대폭 손질한 뉴SKMS를 선언했다. 그동안 그룹 차원에서 경영철학을 만들어 전 관계사가 공유했던 것을 앞으로는 관계사 별로 SKMS를 개발하고 실천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관계사가 많아지고 새로운 관계사가 생겨나고 있어 그룹 경영방식을 전 관계사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그동안 SKMS는 꾸준히 진화해왔지만 뉴SKMS는 관계사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파격적이라 할 수 있었다. 이후 주요 관계사는 뉴SKMS의 구체적 실행방법을 도출해나갔다. SK그룹 60년사

118 SK, 차이나 인사이더 전략 가속화 SK(주)는 2004년 10월 28일 중국 베이징에서 SK중국투자유한공사 를 설립하고 2010년까지 중국에서 매출 5조 원과 20여 개의 현지법인을 보유한 에너지 화학그룹을 육성한다는 중국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SK중국투자유한공사를 통해 중국시장 진출을 가속화하고 신규사업 진입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함으로써 아 태지역 에너지화학 메이저 로 도약한다는 계획이었다. 특히 중국 매출 5조 원 중 60% 이상을 현지법인을 통해 달성하기로 했다. 2003년 SK(주) 전체 매출(13조 7,889억 원)에서 중국 현지법인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2%에 불과한 실정이어서 SK(주)의 중국사업 전략을 수출 중심 에서 현지화를 통한 안정화 로 전환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SK중국투자유한공사는 중국에서 석유, 화학, 윤활유, 아스팔트 4개 사업분야를 중점 육성하기로 했다. 석유사업은 화동과 화북 지역을 중심으로 도소매망 진출을 추진하고, 화학사업은 기존 생산설비를 확장하고 생산 제품 범위를 확대해 유통 판매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하기로 했다. 윤활유사업은 현지 생산체제를 갖추고 판매망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고, 아스팔트 사업은 현지에서 R&D 생산 물류까지 포괄하는 인프라를 구축하기로 했다. SK중국투자유한공사는 현지 투자법인 관리지원을 목적으로 설립된 지주회사로, SK(주)는 향후 이 회사를 중국사업 전체를 관장하는 독립지역본부로 육성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SK는 한 중 수교 이전인 1991년에 SK그룹이 한국기업 최초로 베이징사무소를 개설한 후 SK(주)는 1993년 진출해 태양전지, 정유 플랜트 프로젝트 등 다양한 에너지 사업을 추진해 왔다. 1998년 최태원 회장이 취임한 이래 세계 경제의 축, 성장의 대안 으로 중국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고, 2001년 상하이 CEO 세미나에서 SK그룹의 중국사업 전략을 발표하면서 SK(주)도 사업 분야를 확대하고 추진속도를 가속화해 신약개발, 특수 폴리머, 윤활유 수입 판매, 특수 용기 등의 사업을 가시화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SK(주)는 2004년말 5개 현지 법인(상하이의약연구소, 상하이폴리머, 광둥특수폴리머, 텐진윤활유, 항저우노트란), 3개 지사(베이징, 상하이, 광저우)를 운영하고 있었다. SK(주)는 중국 현지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중국에 제2의 SK 건설 을 선언한 이후 잇달아 두 개의 현지법인을 설립하는 등 중국 진출 및 현지화 경영에 박차를 가했다. 11월에 중국 최대 에너지 화학 기업인 시노펙( 中 國 石 油 化 工 集 團 公 司 ) 산하의 까오차오석유화학( 高 橋 石 化 )과 합작해 상하이에 친환경 용제(Solvent) 생산 마케팅 법인을 설립했으며, 급증하고 있던 중국 아스팔트 수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저장성( 浙 江 省 ) 닝보( 寧 波 )에 아스팔트 물류기지도 현지 업체와 합작해 설립하는 등 중국사업을 확대해나갔다. SK그룹 60년사

119 싸이월드와 네이트, 인터넷 커뮤니티를 선도하다 년 SK커뮤니케이션즈의 메신저 네이트온이 2000년 이후 국내 메신저 시장에서 독보적 입지를 지켜왔던 MSN(Microsoft Network) 메신저를 누르고 국내 메신저 시장 1위에 등극했다. 네이트온의 메신저 시장 1위 등극은 전 세계적으로 윈도 독점력을 기반으로 한 MSN 메신저를 누르고 자국 서비스가 1위로 올라선 선례가 없었던 만큼 매우 큰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당시 국내 언론들은 토종 메신저, MSN 눌렀다, 네이트온, MSN 앞서 등의 제목으로 이 사실을 앞다퉈 보도했다. 네이트온이 MSN 메신저를 누를 수 있었던 것은 20대 중심의 탄탄한 사용자 기반을 보유하고 있던 싸이월드가 네이트온과 연계되면서 싸이월드의 커뮤니케이션 창구가 네이트온으로 확장, 기존 MSN 메신저 이용자들의 네이트온 전환 트렌드를 이끌었기 때문이었다. 2004년 12월 15일 동아일보는 2004년도 인터넷의 최대 화두는 싸이질 이었다 고 보도했다. 싸이질 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싸이월드(cyworld.nate.com)에 미니홈피(홈페이지)인 블로그(blog)를 만들어 글과 사진을 올리거나 타인의 미니 홈피를 방문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해 9월 가입자 수 1,000만 명을 돌파한 싸이월드는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장을 만들었다는 평을 들었다. 올해의 10대 히트상품 으로 선정됐고, 싸이질 과 싸이폐인 (싸이월드에 중독된 사람) 등의 신조어를 유행시키며 감성소비와 또래문화 심취 경향을 대변했다. 네이트닷컴은 2002년 12월 라이코스코리아와의 통합을 완료함으로써 국내 최고의 포털사이트로 자리 잡았다. 네이트닷컴을 운영하던 SK커뮤니케이션즈는 2003년 8월 (주)싸이월드를 합병했다. SK커뮤니케이션즈의 자금력 등 풍부한 자원과 벤처기업 특유의 혁신적인 서비스가 만나 폭발적인 성장 동력을 갖추게 된 것이었다. 합병 이후에도 메신저 기능을 주로 하는 네이트온과 블로그 기능을 주로 하는 싸이월드는 발전을 거듭했다. 네이트닷컴은 블로그 서비스(blog.nate.com)를 오픈했고, 네이트온(nateon.nate.com) 2.0 버전을 출시했다. 싸이월드는 4.0 버전과 폰 폴더 서비스를 오픈했다. 싸이월드의 약진 못지않게 네이트닷컴 네이트온도 새로운 서비스 오픈이나 기록경신, 수상 등을 통해 SK커뮤니케이션즈의 영예를 드높였다. SK커뮤니케이션즈는 게임포털 땅콩( 을, 네이트온은 일정관리 서비스 메모짱(memozzang.nate.com) 을 론칭하거나 오픈했다. 네이트닷컴은 인터넷 포털업계 주간 페이지뷰(Page View) 1위 달성(메트릭스 집계)에 이어 인터넷 포털업계 주간 페이지뷰 10주 연속 1위(코리안 클릭 집계)에 올라 수위의 자리를 지켰다. 2004년 네이트닷컴은 정통부 후원 인터넷그랑프리 대상을, SK커뮤니케이션즈는 제5회 올해의 인터넷 기업상 대상 을 수상했다. 2005년에 네이트닷컴이 관심과 정보 중심 네트워크 통( 론칭한 데 이어, 네이트온은 3월 말 기준으로 메신저 시장 1위로 등극했다. 싸이월드는 해외시장으로도 보폭을 넓혔다. 2005년을 해외 진출 원년으로 삼아 6월 중국 서비스를 공식 오픈한 것을 시작으로 12월에는 1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일본에서 미니홈피 서비스를 개시했다. 2006년 8월에는 인터넷의 본고장이자 세계 최대시장인 미국에서 서비스를 공식 오픈했으며 대만에서도 서비스를 시작했다. 2006년 6월 독일 진출을 위해 합작법인 설립 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8월에는 베트남 진출을 위해 합작법인 설립 계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싸이월드는 국내 인터넷포털서비스로는 유일하게 중국을 시작으로 일본, 미국, 대만, 독일에 이어 베트남까지 진출, IT강국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인터넷서비스로의 행보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SK그룹 60년사

120 TU미디어 설립, 세계 최초로 위성DMB 방송 개시 년 4월 27일 신라호텔에서 각계인사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잔치가 열렸다. SK텔레콤이 차세대 성장동력의 하나로 추진해온 위성 DMB 사업을 본격적으로 담당할 TU미디어가 위성DMB 본방송 개국행사를 가진 것이었다. 이날 TU미디어는 이동 휴대방송 개념을 새롭게 브랜드화 한 테이크아웃 TV 라는 슬로건을 발표했다. 이어 5월 1일 사업착수 이래 4년간의 준비 끝에 본방송을 개시함으로써 세계 최초로 이동 휴대방송 테이크아웃 TV를 세상에 알렸다. 위성DMB서비스는 개인 휴대용 수신기나 차량용 수신기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다채널 멀티미디어 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신개념의 위성방송 서비스였다. SK텔레콤은 위성DMB 사업을 위해 2001년 초 사업성 검토에 들어가 일본 위성DMB사업자인 MBCO사와 사업협력 계약을 체결하고 차세대 방송 서비스인 위성DMB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기로 했다. 2003년 12월 위성DMB 관련 업체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했으며, 2004년 3월에는 DMB용 위성 한별 을 미국 플로리다주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쏘아 올렸다. 한별의 발사는 세계 최초의 위성DMB사업으로 전 세계 위성 및 IT업체가 많은 관심을 보였고, 세계 최초 실시를 위한 한 일 양국의 자존심 대결과 시장 선점 주도권 확보라는 데 의의가 있었다. 이후 사업은 차질없이 진행돼 2004년 12월 TU미디어가 위성 DMB 단독 사업자로 선정됐고, 방송국 허가를 받아 2005년 1월 10일부터 시험방송에 들어갔다. 2005년 5월 1일 드디어 TU미디어는 모바일 전용 자체채널 채널블루 를 포함해 비디오 채널 7개, 오디오 채널 20개로 DMB 방송을 개시했다. TU미디어는 위성 DMB의 고품질 서비스 실력을 2005년 11월 부산에서 열린 APEC정상회의에서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행사기간 동안 영어방송 채널인 아리랑TV를 통해 APEC 관련소식 등 주요 뉴스를 실시간 생중계해 각국 참가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TU미디어가 기울인 이런 노력의 결과, 위성DMB 방송 개시 8개월 만인 2005년 말 가입자가 37만 명을 넘어섰다. 휴대전화 겸용 단말기에 의한 위성DMB방송 자체가 세계 최초일 뿐 아니라 이동방송을 지향하고 있던 세계 방송 발전사에 큰 획을 긋는 획기적 사건으로 간주됐다. 때문에 방송 개시 후 서비스 현황을 체험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방송통신 관계자들이 TU미디어를 방문했다. 또 2005년 한국 신문방송의 10대 사건 중 두 번째로 꼽히기도 했다. 2006년 12월에는 가입자 100만 명을 돌파했으며, 2009년 11월에는 200만 명을 돌파했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보급 등으로 가입자가 줄어들면서 적자가 심화되자 2010년 11월 TU미디어는 SK텔링크에 합병됐다. 그 후에도 위성DMB사업은 부진을 면치 못하다가 2012년 8월 31일 서비스를 중단했다. SK그룹 60년사

121 SK케미칼, 의약품 해외 수출의 길 열다 년 4월 1일 SK케미칼은 SK제약을 합병해 SK케미칼 생명과학 부문으로 출범시켰다. SK케미칼과 SK제약의 합병은 생명과학 분야 및 제약사업 부문의 역량 강화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차원에서 단행된 것이었다. 이로써 SK케미칼은 연매출 1조 6,000억 원에 이르는 생명과학 전문기업으로 거듭났으며, R&D 생산 마케팅의 통합 수행을 통한 시너지 제고로 생명과학 분야의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1986년 선경합섬연구소 의약연구팀으로 출발, 1988년 설립된 SK제약은 1991년 GMP(Good Manufacturing Practice; 우수 의약품 제조관리 기준) 승인 획득을 시작으로, 국산 은행잎 제제로 만든 혈액순환 개선제 기넥신, 제재 특허를 획득한 위궤양 치료제 오메드, 세계최초 관절염 패취제 트라스트, 국내신약 1호 항암제 선플라, 국내 천연물 신약 1호 관절염 치료제 조인스 등 우수 의약품의 개발에 잇달아 성공함으로써 국내는 물론 세계시장에서도 인정받는 제약업계의 글로벌 플레이어로 꾸준한 성장을 거듭해왔다. 특히 글로벌 마케팅 컴퍼니로 도약하기 위한 전략적 미션의 일환으로 수출에 주력함으로써 의미 깊은 성과를 만들어낸 바 있었다. 위궤양 치료제 오메드는 1999년 국내 완제의약품 최초로 독일 및 아일랜드로 수출을 시작한 이래, 2002년에는 아이슬란드 영국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로 수출영역을 확장했다. 또 2003년 호주 미국, 2004년에는 3월 대만, 4월 캐나다 수출계약을 각각 체결한 데 이어 2004년 4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7개국과 수출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오메드는 일약 SK제약은 물론 한국의 제약업계를 대표하는 의약 수출품으로 떠올랐다. 2001년에는 동양의약 원리로 재해석하고 현대의학으로 입증해낸 관절염 치료제 조인스의 발매를 통해 퇴행성질환인 관절염 치료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조인스는 2002년 6월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에 한국의 대표적인 천연물 신약으로 소개돼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SK제약의 이름을 세계시장에 알렸다. 국내 시장점유율 1위의 관절염 치료제 트라스트 또한 2001년 말 필리핀 식약청으로부터 의약품 현지 판매 허가를 획득하고 현지에 완제품 수출을 시작했다. SK제약이 기반을 마련한 세계 제약시장에서의 성과는 SK케미칼로 날개를 바꿔달면서 더욱 극대화됐다. 2005년 4월 혈액순환 개선제 기넥신에프40mg(이하 기넥신)을 EU시장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기넥신의 EU시장 진출은 우수한 제품력과 강력한 시장지배력을 갖고 있던 개발사들의 견제를 뚫고 이뤄낸 성과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SK케미칼로의 합병을 계기로 한층 강화된 브랜드파워로 새로운 시장을 공략한 첫 사례로 기록됐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기세를 이어 SK케미칼은 2006년 11월 계열사인 동신제약을 합병함으로써 정밀화학 부문과 함께 양대 핵심 성장동력으로 성장한 생명과학 부문의 시너지 효과를 한층 제고했다. 이로써 SK케미칼 생명과학 부문은 연매출 4000억 원대의 국내 8위 생명과학 기업으로 떠올랐으며, 순환기 소화기 분야와 혈액제 백신제 분야의 마케팅 시너지와 함께 전방위적인 R&D 포트폴리오 구성이 가능해졌다. 세계 유수의 생명과학기업들과 정면승부를 펼칠 수 있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플레이어로서의 완벽한 진용을 구축하게 된 것이었다. 2007년 7월에는 강력한 발기효과를 나타내면서도 기존 발기부전 치료제의 부작용을 최소화한 신약 엠빅스 의 품목허가를 획득했다. 엠빅스는 SK케미칼(당시 SK제약)과 바이오벤처 인투젠이 공동으로 개발한 국내 13번째 신약으로, SK케미칼로서는 국산 신약 1호로 기록된 선플라 와 천연물 신약 1호인 조인스 에 이은 세 번째 신약이었다. 1998년 최초 개발에 들어간 엠빅스는 2003년부터 전임상시험을 시작, 2006년 3월까지 총 3차례에 걸친 본임상시험을 성공리에 마치고 2008년 11월부터 판매에 들어갔다. SK그룹 60년사

122 SK네트웍스, 고객중심 통합 마케팅회사로 변신 SK네트웍스의 주식은 2005년 4월 1일부로 관리종목에서 벗어났다. 그 해 3월 말 거래소에 제출한 SK네트웍스 2004년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자본잠식 상태를 완전히 벗어났다. SK네트웍스의 관리종목 탈피는 2003년 4월 자본잠식을 사유로 관리종목으로 편입된 지 2년 만이었다. SK네트웍스는 2007년 말까지 달성하기로 약속한 채권단과의 약속을 2004년 1년 만에 80% 가량 달성해 조기졸업을 위한 자구계획 관련요건을 충족한 바 있었다. 채권단과의 약속은 별도로 자체적인 비영업용 자산 매각작업 진행 등 자구계획을 성실히 이행해왔다. 사업 인력초과 해외지사에 대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잠재적 부실요인을 말끔히 제거하고, 고수익 사업구조로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루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17개 해외법인과 지사를 정리했고, 786명의 인력과 14개 조직을 축소했다. SK네트웍스는 2003년 3분기부터 2004년 4분기까지 6분기 연속 어닝 서프라이즈 라는 실적 고공행진을 펼쳤다. 이 같은 실적호조는 채권단 공동관리 기업은 물론 정상 기업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었다. 2004년 SK네트웍스는 연간 매출액 13조 6,148억 원, 경상이익 4,212억 원을 달성, 전년 대비 매출 7.6%, 경상이익 466%가 상승하는 실적을 보였다. SK네트웍스는 비즈니스 실적 외에 이사회 중심경영에 대한 의지도 관철시켰다. 2005년 4월 12일 SK네트웍스는 이사회 및 사외이사 활동에 대한 지원업무 강화를 위해 이사회 사무국을 신설했다. 한 달 전인 3월 11일 정기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 비중을 반수 이상(사외이사 4, 사내이사 3)으로 확대했던 SK네트웍스가 이사회 사무국을 신설, 운영하기로 한 것은 지배구조 개선과 투명경영에 대한 확고한 실천의지를 보여준 것이었다. SK네트웍스는 실적호조와 국내 최고수준의 기업지배구조 및 경영투명성을 확보했다는 자신감을 근거로 국가경제에 크게 기여하는 세계적인 기업이 될 것을 선언하고, 2005년 4월 구체적인 청사진인 비전2010 을 발표했다. 이날 발표한 실적에 의하면 SK네트웍스는 1분기에 1,209억 원의 에비타(EBITDA; 법인세 이자 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를 달성해 전년 동기 대비 200억 원 이상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나 전년도의 호조를 이어갔다. 양호한 경영실적을 감안할 때 SK네트웍스는 이미 정상기업의 수준을 넘어 우량기업의 대열에 들어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SK네트웍스는 전체 국내 상장기업 가운데 매출 8위, 당기순이익 22위를 기록하고 있었으며, 국내 종합상사들 가운데 수출실적 매출 순이익 등에서 단연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SK네트웍스는 지속적인 실적호조 위에 장기적인 플랜을 구체화하는 한편, 채권단과 약속한 자구계획도 착실히 실천에 옮겼다. SK생명의 대주주인 SK네트웍스는 2005년 5월 12일, SK관계사가 보유 중인 SK생명 지분 중 51%를 미래에셋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미래에셋은 SK생명의 고용을 승계하고 일정기간 고용을 보장하기로 했다. 매각된 SK생명은 업계 5위 생명보험사로서 매각되기 전까지 3년 연속 흑자를 달성했으며, 특히 2004년에는 당기순이익 400억 원을 달성한 우량기업이었다. SK생명 지분 74.3%를 보유한 SK네트웍스는 SK생명 매각으로 1,200억 원 가량의 자금을 확보했다. SK그룹 60년사

123 SK건설, 중동에서 신화를 쓰다 국내시장에서 성장을 거듭해오던 SK건설은 해외시장으로 도약해 나갔다. 중동의 플랜트 시장을 중심으로 세계 곳곳에서 SK의 이름을 드날린 것이었다. 2000년대 들어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제2의 중동 붐이 일기 시작했다. 1970년대 제1차중동 붐이 일 때 특수를 누렸던 국내 건설업계는 제2 중동특수를 누리기 위해 중동 건설시장 공략에 뛰어들었다. 그 선봉에 SK건설이 서 있었다. 중동지역에서의 한국 건설업체들의 대형 공사 수주가 잇따르는 가운데 SK건설은 2005년 5월 쿠웨이트에서 12억 2,100만 달러 규모의 초대형 플랜트 공사를 수주하면서 제2 중동특수의 불꽃을 피워 올렸다. 계약금액 기준으로 볼 때 당시까지 국내 업체가 단독으로 해외 공사에서 수주한 공사로는 최대 금액이었다. 쿠웨이트 국영석유회사인 KOC로부터 원유집하시설 및 가압장 시설개선을 위한 FUP(Facility Upgrade Project) 공사를 수주한 것이었다. SK건설이 1994년 쿠웨이트에 진출한 이후 총 8억 달러 규모의 공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높은 평가를 받은 결실이 있었다. SK건설은 액화프로판가스 저장탱크 건설 공사로 SK건설의 이름을 알린 데 이어 연료가스탈황시설 공사(AGRP), 항공유탈황시설 공사(ATK Merox), 2건의 아흐마디 정유공장 화재복구 공사 등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쿠웨이트에서 한국 건설업체 중 1위의 신뢰도와 인지도를 얻었다. 쿠웨이트 신화는 계속 이어졌다. 2006년 1월에는 국영석유화학회사인 PIC로부터 10억 달러가 넘는 규모의 방향족 제품 생산 플랜트(Aromatics Complex Project) 공사를 수주하면서 SK그룹이 2006년 핵심경영과제로 추진하고 있던 글로벌리제이션을 통한 성장동력 마련 의 전기를 마련했다. 2007년 4월에는 국영석유회사인 KOC가 발주한 원유집하시설 신설 공사, 2007년 11월에는 국영정유회사인 KNPC가 발주한 가스처리 시설 건설 공사를 단독으로 수주했다. 2008년 5월에도 KNPC가 발주한 20억 6,000만 달러 규모의 정유공장 프로세스 시설 건설 공사를 단독으로 수주해 경쟁사들의 부러움을 샀다. SK건설은 석유화학 플랜트 건설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시공능력을 갖고 있었지만 잇달아 쿠웨이트에서 초대형 공사를 수주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SK그룹의 따로 또 같이 경영의 힘이 있었다. SK(주)가 1962년 정유공장을 짓고 공장 가동을 위해 최초로 들여온 원유가 쿠웨이트산이었고, 1991년 걸프전 종전 후에는 쿠웨이트 원유를 가장 먼저 구매해 주는 등 긴밀한 신뢰관계를 구축해 왔다. 특히 최태원 회장이 에너지 자원개발 민간외교를 통해 구축해온 쿠웨이트 정부 및 KOC 관계자와의 인연이 공사 수주에 큰 역할을 했다. 10여년 동안 쿠웨이트에서 입증한 SK건설의 우수한 시공능력과 40여년에 걸친 원유공급을 통해 형성된 SK에 대한 쿠웨이트의 신뢰와 최태원 회장과의 각별한 인연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 것이었다. SK건설은 쿠웨이트에서의 성공신화를 바탕으로 주변 국가로 시장을 넓혀갔다. 2009년 3월에는 UAE 아부다비에서 복합단지 건축공사와 가스 압축 플랜트 공사를 수주했다. 이어 11월에는 21억 1,700만 달러 규모의 초대형 플랜트 공사도 단독으로 수주했다. 이로써 SK건설은 아부다비에서 30억 달러 이상을 수주하며 아부다비 건설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발돋움했다. 특히 31층에서 51층 높이의 건물 4개 동을 건설하는 건축공사는 SK건설이 건축 분야에서 20년 만에 처음으로 해외 진출에 성공한 것이며, 국내 건설업계 최초로 아부다비 건축시장에 진출한 사례이기도 했다. 이로써 SK건설은 플랜트, 토목에 이어 건축에 이르기까지 모든 건설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춘 해외 건설업의 진정한 선도기업으로 부상했다. SK건설의 중동 신화는 이후에도 이어져 2009년 7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정유 플랜트를, 12월에는 쿠웨이트에서 플랜트 공사를 단독으로 수주했다. SK건설은 2009년 한해동안 해외 수주액 48억 달러를 기록했으며, 8개 국가에서 총 10개 SK그룹 60년사

124 프로젝트를 수주하며 국가 다변화를 이뤄냈다. 2010년 4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건축공사를, 2011년 2월에는 19억 달러 규모의 가스플랜트 신설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3년 동안 대형 프로젝트를 꾸준히 수주, 4개 프로젝트 총 33억 달러 규모 공사를 동시에 수행하게 됨으로써 사우디아라비아 시장에서도 강자로 부상했다. 특히 기존에 강점을 지니고 있던 정유와 석유화학 플랜트 및 발전 플랜트에 이어 가스 플랜트로의 성공적인 진출도 이뤄내 사업 포트폴리오를 더욱 강화했다. SK건설의 행보는 동남아 지역으로 확대됐다. 2006년 6월 태국에서 아로마틱 공장 건설공사 수주를 시작으로 2007년 9월에는 정유공장 시설고도화사업을, 한달 뒤인 10월에는 폴리프로필렌 공장 건설 공사를, 2009년 8월에는 정유공장 디젤 탈황설비 공사를, 2011년 3월에는 가스플랜트 공사를 수주했다. 이로써 1991년 태국 진출 이래 총 15억 달러 규모의 공사 수행 실적을 기록했다. 2007년 10월에는 한국기업이 싱가포르에 진출한 이래 최대규모인 9억 달러 규모의 아로마틱 플랜트 건설공사를 수주했다. 태국과 쿠웨이트에서 아로마틱 플랜트를 건설 중에 있던 SK건설로서는 국내외에서 총 30억 달러 규모의 동일 공종 공사를 수행하게 돼 이 분야에서 명실공히 세계 최고 수준의 실적과 기술력을 보유하게 됐다. 한편 SK건설은 원전 건설시장에도 진출해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뒀다. 2003년에 신고리 원전 1 2호기 건설공사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2007년에는 신고리 원전 3 4호기 주설비 공사를 수주했다. 이어 2010년 3월에는 신울진 원전 1 2호기 주설비 공사를 수주하는 3연타석 홈런을 날렸다. SK(주), 브라질과 페루에서 자원개발 성공 SK(주)는 1983년 석유개발에 진출해 16개국 26개 광구에서 원유 및 천연가스를 생산 및 탐사하고 있다. 2005년 베트남, 카자흐스탄, 남미 및 러시아 등을 해외 유전가스전 개발을 위한 전략지역으로 선정하고, 신규광구 개발에 1,630억 원을 투자해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키운다는 방침을 정했다. 2005년 하반기 들어서면서 그동안 SK(주)가 쏟은 땀이 해외유전 또는 가스전에서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2005년 7월 국내 최초로 브라질 유전개발에 성공했다. 상업성을 확인하고 개발단계에 진입한 브라질 BM-C-8 광구는 추정 매장량이 5,000만 배럴에 달했다. SK(주)는 이 광구에 4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추정 매장량 중 약 2,000만 배럴을 SK(주) 몫으로 확보했다. 브라질 BM-C-8 광구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동쪽 250km 해상에 위치하며, 2000년 9월 미국의 석유개발 전문기업인 데본 에너지(Devon Energy; 지분율 60%)와 함께 광권을 취득해 탐사 및 개발을 진행해왔다. 양사는 3개의 탐사정과 2개의 평가정 시추를 통해 탐사 및 평가 작업을 진행해 상업성을 확인하고 2007년 하반기부터 상업생산에 돌입했다. 이로써 향후 27년 간 원유를 개발, 생산할 수 있게 됐다. SK(주)는 이외에 BM-C-30 및 32 광구 개발 프로젝트에도 미국의 데본 에너지 등과 함께 참여하고 있어 추가적인 브라질 유전개발 성공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2005년 8월에는 페루 88광구(카미시아)와 56광구에서 개발하는 대규모 LNG의 판로 확보에 성공했다. SK(주)는 2003년 미국의 헌트오일사 등과 구성한 컨소시엄을 통해 페루 정부로부터 남아메리카 최대의 천연가스 개발권과 생산권을 획득했었다. SK그룹 60년사

125 현지에 수직계열 생산체계를 완성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었다. 기존의 사업이 탐사 광구 확보 및 개발에 집중됐다면 페루 LNG 플랜트 건설로 SK이노베이션은 제품 생산, 수송, 수출로까지 이어지는 완벽한 가스사업 가치사슬(Value Chain)을 완성했다. 2005년 9월 SK(주)는 한국석유공사와 함께 원유를 생산하고 있던 베트남 15-1광구의 수투노 (Su Tu Nau; 갈색 사자) 구조에서 1억 배럴 이상의 추가유전을 발견하는 성과를 올렸다. 수투노 구조는 추정 매장량이 1억 2,000만 배럴 규모로 시추 결과 하루 평균 9,197배럴의 원유가 산출됐다. 경제성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인 5,000배럴을 크게 웃도는 것이었다. 이 광구의 컨소시엄 지분율은 석유공사와 SK(주)가 각각 14.25%와 9%였다. SK(주)는 다른 회사와 공동으로 유전개발에 나선 것 외에 운영권자 자격으로 유전개발에 나서기도 했다. SK(주)는 2005년 10월 미국 현지법인인 SK E&P컴퍼니를 통해 지분 70%와 운영권을 보유하고 있던 미국 루이지애나주 북이베리아(Iberia North)광구의 탐사정 시추를 개시했다. SK E&P컴퍼니는 2004년 10월 북이베리아 SK(주)는 2005년 8월에 페루 88광구(카미시아)와 56광구에서 광구의 지분을 획득했으며, 파트너는 미국의 독립 석유개발전문기업인 진저 오일 개발하는 LNG의 판로 확보에 성공, 2009년부터 연간 420만 톤의 LNG를 (Ginger Oil; 지분 12.5%)사와 일본의 리갈 체인(Regal Chain; 지분 17.5%)사였다. 멕시코 및 미국 서부지역에 18년 6개월 동안 공급하게 됐다. 이로써 SK(주)는 1994년 이후 11년 만에 북이베리아 광구의 운영권 전반을 획득했다. 이것은 일반기업으로 치자면 대주주로서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과 유사한 것으로 SK(주)와 미국 헌트 오일이 주주로 참여하고 있던 LNG컴퍼니와 스페인 석유회사인 단순 지분참여와 비교해 국제 석유업계에서 명실상부하게 전문기술력을 보유한 렙솔-YPF가 LNG 매매계약을 정식 체결함에 따라 렙솔을 통해 2009년 하반기부터 석유회사로 인정받는다는 데 의의가 있었다. 연간 420만 톤의 LNG를 멕시코 및 미국 서부지역에 18년 6개월 동안 공급하게 된 것이었다. 이 계약에 따라 2006년부터 페루 수도 리마 남부해안에 위치한 팜파 멜초리타(Pampa Melchorita)지역에 천연가스를 수송이 용이한 액체상태(LNG)로 바꾸는 대규모 LNG 플랜트 건설에 들어가 2010년 준공했다. LNG공장 준공은 SK이노베이션이 기존 원유 및 천연가스 광구 투자와 함께 대규모 수송을 위한 파이프라인 구축에 이어 가스 액화 및 수출까지 전 과정에 참여해 페루 SK그룹 60년사

126 행복 나눔의 계절 선포 최태원 회장은 2005년 신년사에서 3대 경영방침으로 강한 기업 신뢰받는 SK 행복한 사회 추구 등을 제시하고 2005년에는 성과를 창출한다는 생각 대신 우리가 행복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하고, 행복을 더 많이 만들어 다수의 이해관계자와 나눌 것 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SK는 2005년을 기점으로 사회적 약자와의 행복나누기 상대적 약자인 중소협력업체 지원과 상생협력 소외계층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한 행복나누기를 대대적으로 전개해나갔다. 2005년 3월부터 범국가적으로 투명사회 협약을 맺어나가면서, 사회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사회공헌을 대폭 강화하기로 하고 소외계층의 일자리 창출을 구체적인 방안으로 수립했다. 정부의 5대 추진전략 중 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영역을 자활지원, 직접 고용, 사회적 기업, 사회적 일자리로 한정하고 정부 및 NGO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구체적으로 실천해 나가기로 했다. SK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자리 창출을 통해 소외계층 스스로가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2005년 5월 3년간 약 500억 원을 투입해 총 4,230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나가기로 하는 한편 소외계층의 자활 및 사회통합 지원 사회분야별 지역별 균형발전 추구 사회구성원의 자원봉사 문화 확산 등의 3대 사회공헌 방향과 소외계층 일자리 창출 사회복지 환경문제 해결 교육 장학 문화 예술 장려 지역사회 지원 구성원 자원봉사의 7개 중점 추진과제를 중심으로 한 사회공헌 로드맵을 완성하고, 향후 3년에 걸쳐 3,1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행복도시락 급식센터 저소득층 보육시설 지원 장애통합 교육보조원 파견사업 1318 해피존 스피드메이트 저소득 청소년 프로그램 장애인 무료 IT 교육원 새터민을 위한 박스 제조공장 메자닌 아이팩 사업 등 7개의 행복 일자리 창출사업을 통해 일시적인 도움이 아닌 일자리를 통한 자립 기반을 제공했다. 단순히 돈과 몸으로만 하는 사회공헌이 아닌 어려운 이웃이 자립하고 성공할 수 있도록 기업- 정부-시민단체의 3개축이 상호 보완하면서 진행하는 사회적 기업 모델 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간 것이었다. 2005년 9월 13일에는 연말까지를 행복 나눔의 계절 로 선포하고, 소외계층의 일자리 창출과 자원봉사를 한층 확대했다. 최태원 회장은 행복 나눔의 계절 선포는 우리 그룹의 사회적 상생경영 이념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전 구성원이 뜻을 함께 모은 것으로,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참여해 행복을 키워나가자 고 당부했다. 이 같은 활동을 통해 SK는 2010년 7월까지 무려 6,000여 개에 달하는 사회적 일자리를 만들었다. 사회공헌 로드맵을 완성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지 만 5년 만에 거둔 성과였다. 2011년 1월 20일에는 사회적 기업 일자리 및 미소금융 확대 계획 을 발표하고 2013년까지 사회적 기업 설립 지원을 통해 4,000여 개의 일자리를 추가로 만들어나가기로 했다. 이를 위해 1지자체 1사회적 기업 설립 1관계사 1사회적 기업 설립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혁신형 사회적 기업 설립을 3대 중점 추진 사업으로 정하고 추진에 들어갔다. 한편 전 구성원의 자원봉사활동 참여와 사회적 분위기 조성을 위해 2005년 10월을 자원봉사의 달로 정하고, 13개 주요관계사 280여 개 자원봉사팀 9,000여 명은 물론, 전 구성원이 10월 한 달 동안 봉사팀 및 각 사업부서 단위의 결연기관과 시설에서 1회 이상씩 봉사활동을 하도록 독려했다. 최태원 회장도 10월 25일 SK(주) 등 에너지 관련 4개사 구성원 160여 명과 서울 종로구 신교동과 청운동 일대에서 연탄배달 자원봉사에 나서기도 했다. SK그룹의 자원봉사 활동은 2004년 7월 출범한 SK자원봉사단이 중심이 됐다. SK그룹 60년사

127 48개 자원봉사팀 1,290명으로 시작한 SK자원봉사단은 출범 1년여 만에 260여 개 자원봉사팀, 단원수 8,500여 명을 헤아릴 정도로 급성장했다. 이 기간 동안 SK 전체 구성원의 30%가 넘는 인원이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해 17만 인시( 人 時 )의 봉사활동을 기록했으며, 사회공헌 활동으로 집행한 비용만 1,000억 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이밖에도 SK그룹은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고통 받는 이웃들에게 집을 지어서 공급하는 국제적 NGO활동인 해비타트(Habitat)에도 활발하게 참여했다. 2005년 3월 15일 무주택 소외계층을 위한 해비타트-SK행복마을 을 조성하기로 하고 경기도 수원시청에서 SK자원봉사단장인 SK텔레콤 조정남 부회장, 정근모 한국해비타트 이사장, 김용서 수원시장이 참석한 가운데 협약식을 가졌다. 이전에도 여러 기업이 사랑의 집짓기 해비타트 활동에 동참한 바 있었지만, 이처럼 마을이름을 붙일 정도로 대규모로 사업을 진행한 것은 SK가 처음이었다. SK그룹은 주택 건설에 소요되는 부지와 건설자재 구입비, 그리고 실제 건설에 필요한 자금 전액을 지원하고 해비타트 측은 부지 확보 및 개발, 건축시행, 사후 관리를, 수원시는 행정적 지원을 담당했다. 이 같은 SK그룹의 적극적인 사회공헌 활동은 국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07년 2월 10일과 11일 양일 간에 걸쳐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열린 2007 하버드 아시아 비즈니스 콘퍼런스 (2007 Harvard Asia Business Conference)에서 기업 사회공헌 활동의 우수사례로 발표됐다. 2월 22일에는 SK그룹의 행복도시락 사업이 노무현 대통령과 10개 부처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사회 서비스 창출 성과 보고회 에서 우수사례로 선정되기도 했다. 행복날개 로 날아오르다 SK그룹은 2005년 9월 13일 신로고 행복날개 를 발표하고, 50여 년간 지켜온 기업문화의 힘을 바탕으로 행복기업 을 향한 비상을 시작했다. SK그룹은 창사 이래 1980년대 초반까지 선경 이라는 로고를 사용하며 대한민국 중견기업으로서의 기틀을 다져왔으며,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떠오르는 태양의 이미지 위에 영문 표기 로고를 사용해 섬유에서 석유에 이르는 에너지 화학의 수직계열화의 꿈을 완성했다. 1997년부터는 선경 유공 한국이동통신으로 나뉘어 있던 기업 브랜드를 SK 로 통합해 비즈니스 간 시너지를 추구하면서 에너지 화학과 정보통신의 대표기업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생존을 넘어 행복을 위한 경영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브랜드와 기업문화를 공유하는 네트워크 라는 새로운 경영체제를 출범시켰다. 이에 따라 뉴 SK의 가치와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상징적으로 구현하고 글로벌 시장 확대에 따른 SK 브랜드의 법적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2005년 4월 로고 개발에 들어갔다. SK 전 사업부문에 걸친 공유가치와 강한 에너지, 그리고 잠재력에 주목해 10여 개의 디자인을 개발해 사내 외는 물론, 미국과 중국에서 고객반응 조사를 실시하면서 법적 보호가능성도 함께 검토했다. 이 같은 장기간의 검토와 협의를 거친 끝에 마침내 2005년 9월 13일, SUPEX추구협의회에서 SK의 행복날개 를 처음 발표했으며, 같은 해 11월 중국 항저우( 杭 州 )에서 진행된 CEO세미나에서 공식 채택했다. 행복날개 는 연 통신위성 등을 주요 모티프로 디자인됐다. SK그룹의 두 성장 축인 에너지 화학과 정보통신의 비상하는 모습을 두 날개의 형상으로 표현함으로써 진취적이고 높이 비상하는 SK의 글로벌 의지를 반영했다. 날개 사이를 가르는 금빛 SK그룹 60년사

128 SK CI 또한 SK가 추구하는 행복 이미지의 극대화를 위해 로고의 전체 윤곽을 부드럽게 디자인하고, 그에 맞춰 SK의 타이포그래피도 기존보다 유연한 서체를 채택했다. 서체뿐 아니라 색상에도 남다른 의미를 담았다. 패기와 열정 등 SK의 자부심을 표현하는 역동적이고 생명력 넘치는 기존의 적색을 기본 색으로 사용하고, 여기에 행복 따뜻함 매력을 의미하는 주황색을 새롭게 추가했다. SK의 새로운 로고 행복날개 는 SK가 표방하는 행복추구 를 상징하고 있다. 고객에게 행복을 전달하는 것 을 기업의 궁극적인 추구가치이자 브랜드 에센스로 삼고 있는 SK는 변경된 로고를 통해 행복경영 의지를 더욱 확고히 표현했다. 행복날개 는 관계사 간의 시너지 제고의 의지도 반영했다. SK는 공통의 경영이념과 문화를 기반으로 관계사 간 시너지를 창출해 모든 이해관계자의 행복을 추구하는 한편, 주요 관계사들이 모두 통일된 로고를 통해 비주얼 아이덴티티(Visual Identity)를 유지함으로써 관계사 간 시너지를 높이고자했다. 행복날개 의 발표와 함께 SK는 통해 글로벌 시장으로의 진출에 한층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글로벌 시장으로의 사업영역 확대를 추진하는 데 있어 새로운 로고는 확고한 SK 이미지 구축과 커뮤니케이션 활성화를 이끌 것으로 기대됐다. SK브랜드의 법적인 보호장치를 강화할 수 있게 된 것도 큰 이점이었다. 유사상표로부터 SK 브랜드를 보호하고 상표권 침해에 대한 대응력을 키울 수 있게 된 것이었다. 2006년 1월 20일 최태원 회장은 신입사원 연수 중 회장과의 대화 시간에 SK의 심벌 마크인 행복날개 는 궁극적으로 SK란 로고 없이도 세계에서 사용될 수 있는 날이 와야 한다 면서 행복날개 의 의의와 미래에 관해 밝혔다. 국가대표 축구팀 유니폼이나 세계적 골프선수의 모자에 행복날개 를 달았을 때, 모든 세계인이 SK 를 떠올리는 수준으로까지 행복날개 의 인지도를 올려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를 경영에 반영하기 위해 SK(주), SK텔레콤, SK네트웍스 등 주요 11개 계열사 임원들로 구성된 브랜드 관리위원회 를 통해 SK의 새로운 정체성을 정립하고 브랜드의 핵심가치를 유지,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또 행복날개 에 담은 뜻 그대로 국민경제 기여도 제고와 사회적 상생정책 실천 등 행복극대화의 경영이념을 경영에 적극 반영하기 시작했다 최태원 회장은 신입사원 연수 중 회장과의 대화 시간에 SK의 신로고인 행복날개의 의미에 대해 행복날개는 SK란 로고 없이 세계에서 사용될 수 있는 날이 와야 한다 고 밝혔다. SK그룹 60년사

129 SK네트웍스, 종합무역상사 최초로 중국지주회사 설립 년 9월 SK네트웍스의 중국 지주회사인 SK Networks China Holdings Co., Ltd. 가 현지 사무실이 위치해 있던 동북3성의 핵심도시인 선양시에서 현판식을 갖고 공식 출범했다. SK네트웍스의 중국 지주회사 출범은 국내 종합무역상사로서는 처음 있는 일로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중국 지주회사는 중국 내 복합주유소, 복합터미널, 스피드메이트, 패션사업 등을 전개해나가는 것은 물론, 신규 사업의 개발 및 지원, 투자관련 업무까지 다양한 임무를 맡아 수행하기로 했다. B2B 위주의 트레이딩 사업을 전개하고 있던 다른 종합무역상사와는 달리 다양한 B2C사업을 기반으로 하는 통합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던 SK네트웍스로서는 중국 내 다수의 투자 법인들에 대한 효율적인 관리와 중국 현지 내수 사업에 적합한 보다 체계적이고 현지화된 조직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주회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SK네트웍스가 중국 지주회사 설립과 함께 가장 활발하게 펼친 사업은 선양시로부터 수주한 복합주유소와 복합터미널 사업이었다. 중국 동북3성의 핵심도시로 급성장을 꾀하고 있던 선양시는 세계 유명 대기업을 대상으로 사업제휴를 검토해오던 중 SK네트웍스에 최초로 복합주유소, 복합터미널 등 정부 기간산업을 허가했다. 선양시가 요구하는 조건에 SK네트웍스의 사업모델이 가장 적합한 것으로 판단됐기 때문이었다. 실제 SK네트웍스는 주유소, 충전소, 자동차 정비(스피드메이트), 편의점(OK마트), 디지털인화(스코피), 패션(아이겐포스트) 등 선진화된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 제공을 통해 지역밀착형 사업을 펼쳐왔다. SK네트웍스가 2005년 6월 중국 현지 유력업체를 물리치고 선양시로부터 최종 낙찰자로 선정된 복합주유소 사업은 2005년 말까지 선양에 SK 브랜드를 사용하는 총 12개소의 복합주유소(주유소+충전소)를 건설하기로 한 사업이었다. 이와 더불어 9월 20일에는 단둥시와도 복합주유소 건설 프로젝트 및 장기 우호합작관계 구축에 관한 의향서를 체결했다. 이에 따라 SK네트웍스는 중국 경제의 요충지인 랴오닝성은 물론이고 선양시에 이어 단둥시에도 복합주유소를 건설했다. 복합주유소 건설사업 및 향후 신규 사업의 효율적이고 신속한 추진을 위해 단둥시 SKN 에너지유한공사 를 설립했다. SK네트웍스의 중국 복합주유소 사업진출은 최종소비자 대상의 사업을 통해 중국 현지고객의 데이터베이스를 수집, 이를 활용한 데이터베이스 마케팅을 펼칠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복합주유소 외에도 2007년 5월 동북 3성의 핵심도시인 선양시의 대표적 랜드마크가 될 지상 24층 규모의 상가 오피스 복합 버스터미널 건설공사에도 착수했다. 중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한국의 센트럴시티 식 버스터미널로, 버스터미널(1~2층)과 상가(1~4층), 오피스(5~24층)가 하나의 구조로 이어진 원스톱 교통 쇼핑 생활공간으로 탄생시킨다는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SK네트웍스는 선양SK버스터미널의 지분 70%를 확보하고 건설에서부터 사업운영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프로젝트를 주도해나갔다. SK네트웍스는 국내 휴대폰 유통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듦에 따라 해외 진출을 통한 시장 확대를 도모했다. 특히 세계 최대 시장 중국을 제2의 내수시장으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을 세웠다. SK네트웍스는 2006년 9월 디지털 트렌드라는 의미를 담은 브랜드인 SK슈샹 ( 數 尙 )을 론칭하고 중국 이동전화 유통시장에 진출해 2007년 11월까지 49개 매장을 운영할 만큼 성장을 거듭했다. 2007년 8월에는 1만 900대를 판매해 월 판매량 1만 대를 돌파했다. SK네트웍스는 중국 휴대폰 유통 시장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멕시코 시장에 진출해 글로벌 휴대폰 유통시장 개척에 가속도를 냈다. 2008년 2월 중남미 14개국에서 이동통신사업을 전개하고 있던 멕시코 제1의 이동통신사업자인 텔셀사와 휴대폰 유통 및 AS 사업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2008년 5월 1호 매장을 개점했다. 이후 5개월여 만에 20여 개의 매장을 개점하며 지속적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SK그룹 60년사

130 LNG 지주회사 SK E&S 탄생 SK(주)는 2005년 9월 7일 엔론의 뒤를 이은 합작 파트너 프라즈마 에너지가 보유하고 있던 지분 50% 중 1%를 인수해 지분율을 51%로 높였다. 이에 따라 지배주주가 된 SK(주)는 10월 28일 SK엔론의 사명을 SK E&S로 바꿨다. LNG, LPG 등 청정에너지 사업과 종합 에너지 서비스를 의미하는 새로운 사명은 이러한 가스사업 지주회사로서의 사업내용과 영역을 잘 정의하고 있으며, 에너지 공급뿐만 아니라 관련된 일체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기업의 목표를 담고 있었다. SK E&S는 11개 자회사를 거느린 지주회사로 산하에 LPG 회사인 SK가스, 도시가스회사인 대한도시가스, 부산도시가스 등 9개 도시가스사, 열병합 발전회사인 익산에너지를 두었다. 2009년 10월에는 맥쿼리 펀드가 보유하고 있던 SK E&S의 주식 49% 중 절반을 SK E&S가 인수 후 소각( 消 却 )하고, 나머지 절반은 SK C&C가 인수했다. 이에 따라 SK E&S가 SK그룹의 지주회사인 SK(주)와 SK C&C의 100% 자회사로 바뀌었다. SK그룹 지배구조의 틀이 완전히 확립되는 셈이었다. 맥쿼리 지분 인수로 SK그룹의 지주회사 전환 속도가 더욱 빨라졌으며, 경영 투명성을 높였다. SK E&S로의 사명변경 후 종합에너지 전문기업으로의 성장엔진 발굴에 적극 나섰다. SK E&S는 2006년 4월 최재원 부회장이 취임한 후 사업다각화에 가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모기업인 SK(주)가 영위하는 석유제품 사업을 제외한 모든 에너지원 사업에 진출한다는 전략이었다. 도시가스 중심의 사업 모델에서 해외 자원개발 등 에너지 관련 사업의 수직계열화 연료전지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 해외 도시가스 시장 진출 등을 더해 4대 성장 모델로 다변화하기로 했다. 주요사업인 도시가스는 2007년 전국의 약 300만여 세대에 청정연료를 공급하면서 시장점유율 25%로 업계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LNG 사업의 안정적인 확대를 위해 해외 가스전 개발부터 직도입, 터미널 건설 등을 통해 LNG 사업의 수직계열화에 나서기로 했다. 이를 위해 자회사인 SK가스는 2006년 3월 24일 주주총회에서 원유나 천연가스 등 국내외 자원의 탐사 및 개발사업 참여, 에너지 관련 제품의 수출입과 제조 저장 및 판매 등의 새로운 사업목적을 정관에 추가했다. 한국석유공사 등과 함께 러시아 캄차카 반도의 2억 5,000만 배럴 규모의 매장량이 예상되는 2개 광구탐사 사업에 15% 지분율로 참여하기로 했다. SK E&S는 또 LNG 복합 발전 사업과 풍력 및 연료전지와 같은 신재생 에너지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한편 SK E&S 계열 도시가스사들의 변신이 이어졌다. 2007년에 들어 상호 변경 을 통해 회사의 이미지 변신과 사업다각화를 꾀했다. 구미, 청주, 익산 등 3개 도시가스사는 SK E&S와 계열사 간의 사업특성과 지역 특성에 맞는 상호 변경 을 추진했다. 구미도시가스는 영남에너지서비스로, 청주도시가스는 충청에너지서비스로, 익산도시가스는 전북에너지서비스로 각각 사명을 변경했다. 이러한 사명변경은 사업다각화 와 도시가스라는 국한된 회사의 이미지 탈피 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것이었다. 지방으로 확대되고 있던 집단에너지 사업에의 능동적인 참여와 전기사업 부문에 대한 도전 등을 통해 기업의 경쟁력 강화는 물론이고, 쓰레기 분리 등 환경과 관련된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기존에 특정 지역의 이름을 따서 만든 회사 이미지로는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공급권역인 충남, 전북, 영남 등의 모든 지역을 대변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상호변경 을 추진하게 된 한 요인이었다. 청주도시가스의 경우만 해도 2005년 음성군에 도시가스를 공급한데 이어 2007년 제천시와 진천군에 가스공급을 앞두고 있었던 만큼 회사명이 현재의 공급권역에도 맞지 않다는 것이었다. SK그룹 60년사

131 행복동반자 경영 선언하다 SK는 2005년 5월 24일 국내 대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중소협력업체 상생경영 마스터 플랜 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협력업체 경쟁력 강화를 위한 프로세스 개선 적극적 정보 공개 협력업체 애로사항 지원 등 중소협력업체 지원 3대 상생원칙을 바탕으로 9개 실천과제를 수립, 행복경영을 확대해나갔다. 아울러 각 관계사 별로 협력업체 간담회를 열어 구체적 실행과제를 도출했으며, 9월에는 협력업체를 직접 찾아가 현장 생상경영을 펼치는 찾아가는 상생경영 제도를 도입했다. 찾아가는 상생경영의 도입은 그룹 전체적으로 20여 회 이상의 협력업체 간담회를 실시하고, 현금결제 및 결제일 단축 등 전사적 차원의 상생경영 외에도 현장의 소리를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이에 따라 2005년 9월 SK케미칼 김창근 부회장의 충남 예산시 소재 협력사 방문을 시작으로 계열사 CEO들의 릴레이 방문 이 시작됐다. 2005년 10월 SK텔레콤은 협력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6,600억 원에 달하는 자금을 지원하는 획기적인 중소기업 상생방안을 발표했다. SK텔레콤과 거래하는 협력 중소기업이 하나은행에서 편리하게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신용보증기금에 특별출연을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SK텔레콤의 상생경영을 위한 노력은 2005년 11월 정보통신부가 수여하는 올해의 정보통신 중소기업상 의 공로부문 단체상을 수상하는 쾌거로 이어졌다. 이밖에도 SK텔레콤은 2006년 5월 청와대에서 열린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간담회 에서 대중소기업 상생경영을 적극 실천한 모범기업으로 선정돼 대중소기업 협력대상 단체부문 대통령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2005년 11월 30일에는 그룹 차원에서 협력업체와의 행복동반자 경영 을 선언했다. 협력업체와 상생하지 못하면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이어나갈 수 없다는 인식 아래 협력 의 개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동반해 함께 나아간다는 의미의 선언이었다. 이를 위해 SK는 경쟁력을 보유한 비즈니스 파트너 상호정보의 공유가 가능한 비즈니스 파트너 경영문제의 공동해결을 위해 상호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비즈니스 파트너를 행복동반자 로 명명했다. 행복동반자 경영을 선언하면서 최태원 회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수직관계라는 기존의 틀을 깨고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이제는 협력 의 개념을 넘어서 동반 의 개념으로 발전시켜 서로 동반성장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SK(주)는 2006년 6월 중소기업청에서 주최한 제1회 아름다운 동행상 에서 산업자원부장관 표창과 중소기업청장 표창 등 2개 부문을 수상했다. 평소 최태원 회장은 협력사와의 1회성, 물질적 상생 프로그램도 중요하지만 협력사의 경쟁력을 본질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고 강조해왔다. 이에 SK는 2006년 10월 20일 노동부와 공동으로 SK남산빌딩에 상생아카데미를 오픈했다. 상생아카데미는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한 직접 교육과 온라인 교육 등 체계적인 교육을 실시해 협력업체의 역량을 향상시키기 위한 상생경영 활동으로 1회에 150명, 연간 3만여 명이 다양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재무, 인사, 조직 등 협력업체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커리큘럼을 운영했으며, 2007년 5월부터는 협력회사의 CEO로까지 교육대상을 확대하고 장기적인 기업경영을 위한 경영 트렌드와 경제동향을 제공했다. SK그룹 60년사

132 SKC, 대대적 사업 구조조정에 나서다 년대 후반 위기를 맞은 SKC는 2000년대 들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대대적인 사업구조 개편에 나섰다. 2005년 11월 쇠퇴기 사업인 매그네틱 미디어사업(비디오테이프 제조사업)과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2차전지 사업을 분사했다. 2006년 6월에는 휴대전화 조립사업을 과감히 정리했다. 이러한 사업 구조조정은 폴리에스터 필름, 기초화학원료 등 주력 사업부문을 더욱 안정적으로 영위하는 한편, 비주력 부문을 독립법인으로 분리시켜 경영효율성 및 전문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었다. 기존 사업이 사라진 자리는 필름과 화학 분야 핵심 사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로 빠르게 채워 나갔다. SKC는 2005년 TFT-LCD의 컬러를 구현하는 컬러 밀베이스(Millbase) 개발에 성공, 국내 컬러 포토레지스트 업체에 공급을 시작함으로서 일본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밀베이스 양산 국가 대열에 합류했다. 화학부문은 주력제품인 프로필렌옥사이드(Propylene Oxide) 생산규모 확대사업을 완료하고 2009년 8월 울산에서 준공식을 가졌다. 특히 새로 준공된 프로필렌옥사이드 공장은 과산화수소를 이용한 친환경공법을 적용했으며, 세계최초로 상업생산에 성공하며 SKC의 공정기술과 운전능력을 과시하였다. 이로써 SKC의 PO생산능력은 연산 18만 톤에서 28만 톤으로 늘어 국내 수요량을 충족시키며 수입을 대체하게 됐다. 유망 소재사업의 경우 합작을 통한 경쟁력 제고로 글로벌 메이저 도약을 도모했다. SKC는 2007년 11월 롬앤하스와 합작으로 디스플레이소재 전문 합작법인 SKC하스(SKC Haas Display Film)를 설립했다. 세계 1위의 LCD용 광학필름 생산, 마케팅 능력에다 롬앤하스의 광학소재기술, 케미칼 소재의 원천기술을 추가함으로써 조기에 세계 일류 수준의 디스플레이 소재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복안이었다. 합작법인은 1차로 SKC가 가공필름, 광학필터, 밀베이스 등을 생산(천안공장)하는 디스플레이소재사업 부문을 물적 분할해 법인을 신설하고, 이어 롬앤하스가 신설법인에 최대 1억 9,000달러까지 직접투자함으로써 설립됐다. 특히 롬앤하스가 인수한 코닥(Kodak)의 라이트 매니지먼트 필름(Light Management Film)사업을 합작회사로 이양해 천안공장에서 생산, 디스플레이 소재분야에서 다양한 제품 포트폴리오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2008년 6월에는 코오롱과 합작으로 세계 3위의 PI(Polyimide; 폴리이미드)필름 제조사인 SKC KOLON PI 를 설립했다. 이는 미국과 일본의 3사가 과점 체제를 형성(세계시장의 70% 점유)하면서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PI 필름 사업에 SKC와 코오롱이 진입해 경쟁자로서 시장을 공략해 왔으나 경쟁우위를 확보하기가 어려워 손을 잡은 것이었다. SKC는 또 안정적인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추기 위해 2007년 6월 일본의 글로벌 산업가스회사인 태양일본산소(Taiyo Nippon sanso)와 합작회사 SKC에어가스를 설립하고 산업용 가스시장에 진출했다. SK그룹 60년사

133 SK(주), 2차전지 사업의 통합 추진 SK(주)는 2005년 12월 리튬폴리머전지 제조업체인 SK모바일에너지(SKME)의 지분 90%를 인수했다. SKME는 리튬폴리머전지(LPB) 제조업체로 월 175만 셀의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는 그룹 차원에서 2차전지 사업 통합을 의미했다. SKME는 2005년 11월 SKC의 리튬폴리머전지 사업부가 물적 분할 형식으로 분리돼 설립된 신규법인이었다. SKME 인수로 SK(주)는 하이브리드 전기 자동차용 배터리 개발 등 차세대 에너지 사업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SKC가 2차전지 사업에 진출한 것은 1996년이었다. 리튬이온전지(LIB) 제조기술의 핵심은 코팅과 조립기술로, 제조공정이 비디오테이프 생산공정과 거의 일치했다. 때문에 20년 간 비디오테이프 제조를 통해 세계 최고 수준 기술을 축적한 SKC는 리튬이온전지 사업화를 위한 설비투자와 양산기술 확보 측면에서 다른 업체보다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SKC는 미국 뉴저지와 천안공장 내에 리튬폴리머전지만을 전담하는 R&D센터를 설치,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해 1998년 8월 리튬이온전지 개발에 성공했다. 2002년 3월 천안공장에 월 25만 셀 규모의 리튬폴리머전지 조립생산설비를 갖추고, 본격적인 양산을 시작했다. 2003년 9월에는 천안공장의 생산능력을 125만셀로 늘리고 생산체제에 돌입했으며, 2005년까지 생산능력을 300만셀로 늘리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2002년 5월에는 2차 전지 제품 중 세계 최초로 리튬폴리머전지에 대한 미 국방성 제품 승인을 획득했다. 이를 계기로 세계 최초로 미 국방부의 2차 전지 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됐다. 그러나 SKC는 2005년 들어 대대적인 사업 구조조정을 벌이는 과정에서 물적 분할을 통해 SKME를 설립했으며, 한달 뒤에 SK(주)가 이를 인수함으로써 그룹 차원에서 사업의 통합 추진이 가능해진 것이었다. 이에 앞서 SK(주)는 2004년 12월 국내 최초, 세계 세 번째로 리튬이온전지의 핵심소재인 세퍼레이터(Separator)를 독자 개발하고 사업화에 본격 착수했다. 2차전지란 한 번 쓰고 버리는 전지가 아니라 충전을 통해 반복 사용이 가능한 전지를 총칭하며, 이 중 리튬이온전지는 휴대전화와 노트북 PC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2차전지다. 리튬이온전지는 크게 음극재, 양극재, 전해액, 세퍼레이터로 구성됐다. 세퍼레이터는 리튬이온전지의 양극과 음극의 접촉을 막고 수십 나노미터 크기의 기공을 통해 전해질 이온은 통과할 수 있게 하는 박막으로 전지의 안전성을 부여하는 리튬이온전지의 핵심소재다. 리튬이온전지의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세퍼레이터의 국산화는 물론 안정적인 공급물량 확대가 시급한 실정이었다. SK(주)는 40여 년 간 축적해 온 화학기술과 최첨단 나노(nano; 10억분의 1) 테크놀로지를 적용해 2003년부터 개발에 들어가 독자 개발에 성공했다. 단기간에 게발할 수 있었던 것은 국내 최대 에너지 화학기업으로서 세퍼레이터 개발에 필수적인 폴리머 제조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던 점, 그리고 통상적인 연구개발 과정 대신 실험실 단계의 연구와 동시에 시험생산설비 및 양산체제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등 과감한 R&D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었다. SK(주)는 시험생산설비를 기초로 양산체제를 구축하고, 2005년 양산제품을 시장에 공급했다. 또한 개발 기술이 일본의 기술과는 차별화된 기술인 점을 감안해 국내외 특허도 출원했다. 이를 바탕으로 SK(주)는 SKME의 리튬이온폴리머전지(LiPB) 기술력을 결합해 HEV(하이브리드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개발 등 차세대 에너지 사업에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2006년 3월 하이브리드 자동차용 배터리 개발에 성공한 데 이어 같은 해 9월 미국에서 실차 탑재시험도 성공리에 끝마쳤다. 이로써 일본의 독주체제를 견제하고 세계 배터리 시장에 국내 업체가 진입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SK그룹 60년사

134 인천정유, SK의 새 가족 되다 SK(주)는 2005년 12월 16일 인천정유 인수계약을 체결했다. SK(주)는 2005년 9월 양해각서 체결 이후 정밀실사 등을 거쳐 1조 6,000억 원의 유상증자 참여 및 1조 4,400억 원의 회사채 인수를 최종 확정하고 인수계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SK(주)는 하루 정제능력이 84만 배럴에서 111만 5,000배럴로 늘어나 2위 업체인 GS칼텍스(65만 배럴)와의 격차를 더욱 벌였다. 뿐만 아니라 아태지역 정유업체 중 4위로 올라섰다. 또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고 있던 중국 수출의 교두보도 구축할 수 있었다. 1969년 유니온 오일(Union Oil)과 합작해 대한민국 3번째 정유회사로 탄생한 인천정유(설립당시 경인에너지)는 일일 원유정제 능력 27만 5,000배럴, BTX 연산 74만 톤 생산규모의 정유 및 석유화학회사로 성장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석유산업에 대한 일련의 자유화 조치에 따른 석유수입사의 증가와 IMF 외환위기에 따른 수요의 감소가 맞물려 수익성이 크게 악화됐다. 결국 2001년 9월 부도를 내고 2003년 3월 회사정리계획안을 인가 받음으로써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법정관리 기간 중 회사의 조기 정상화를 위해 신규자본 유치를 지속적으로 추진한 결과 SK(주)에 인수됨으로써 2006년 3월에 법정관리를 졸업하고, SK의 새로운 일원으로 거듭났다. 인천정유는 법정관리 졸업에 따라 2006년 3월 7일 SK인천정유 로 사명을 변경하고 SK의 일원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SK인천정유는 출범과 함께 기업가치를 지속적으로 창출하는 아 태지역 최고효율의 정유회사 달성 이라는 비전과 2008년 말까지 생존 조건 확보를 위한 1차 투비 목표를 수립해 추진했다. SKMS를 근간으로 자발적이고 의욕적인 SUPEX 추구와 SKMS의 강력한 실천을 통해 SK문화 정착과 성장기반을 구축했으며, 노사관계에 있어서도 신뢰를 바탕으로 괄목할 만한 결실을 거뒀다. 업계 내에서도 전례가 드문 노동조합의 무교섭 무분규 및 임 단협 회사측으로의 위임 선언, 퇴직금 누진제의 단수제로의 전환을 이뤄냈다. 또 사업경쟁력 확보를 위해 독자적인 VI 디자인 개발과 SK인천정유보너스카드 출시, 고객상담센터 운영 등 고객만족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공정 가동능력 확보, 생산효율 증대 및 품질강화 대응 을 목표로 3개년에 걸친 공장정상화 마스터플랜을 수립해 2006년 3월부터 약 160억 원을 투입, 제1 CDU공정 재가동을 위한 시설 개 보수작업에 착수했다. 2007년 4월까지 최적의 시설보완을 위해 사업타당성 조사와 기본 상세설계를 실시한 후 6월 말까지 시설 개 보수에 완벽을 기했다. 마침내 2007년 7월 12일 성공적인 정상가동을 이뤄내며 7월 25일에는 설계 최대 하루 정제능력인 7만 5,000배럴을 달성했다. 이와 더불어 제1 CDU와 함께 운휴 중이었던 제1 SRP(유황회수공정)을 재가동하고, 제2 CDU 공정 및 제2 KGHT(경유 탈황공정) 시설보완, 제2 KERO Merox 공정(항공유 생산) 신설, 제1 KGHT(등유 탈황시설) 시설보완을 계속 추진했다. SK(주)는 SK인천정유가 생산효율성 향상, 영업망 강화, 고도화설비 투자 등 꾸준히 경영정상화 작업을 진행해 가시적인 경영성과를 나타내자 인수 2년 만인 2008년 2월 이를 합병했다. 이로써 SK(주)는 기존 울산공장과 더불어 인천지역에도 생산기지를 확보, 국내 최초 다지역 정제 시스템(Multi Refinery System) 을 기반으로 한 중국 중심의 글로벌 사업 확대에 중요한 분기점을 마련했다. 인천정유 합병은 핵심사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와 잠재적인 시너지효과를 감안해 차이나 인사이더를 기치로 내걸고, 중국 중심의 글로벌 경영에 속도를 높여온 최태원 회장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었다. SK그룹 60년사

135 SK케미칼, 수익성 제고 위한 사업구조 재구축 년 12월 1일 SK케미칼은 유화사업을 분리, SK유화를 설립하고 독립적인 경영제체를 구축했다. 독자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유화사업의 경쟁력을 한층 강화하는 한편, 새로운 성장동력에 역량을 집중함으로써 보다 높은 경영 효율을 기하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이로써 SK케미칼은 정밀화학 사업과 생명과학 사업의 두 축을 중심으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SK케미칼의 변신은 한때 주력사업이었던 화학섬유 사업의 퇴조에서 비롯됐다. 한국을 대표하는 산업으로 1970~80년대 한국 경제의 기록적인 성장을 이끌었던 화학섬유 산업이 값싼 노동력을 앞세운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경쟁에서 밀리면서 점차 사양세로 접어들자, SK케미칼은 근본적인 변신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섬유관련 매출을 5% 이하로 낮추는 반면 정밀화학과 생명과학이라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이에 집중했다. 시대를 앞서간 SK케미칼의 노력은 주효했다. SK케미칼과 자웅을 겨뤘던 국내의 대형 화학섬유회사들이 은행관리나 파산절차를 밟고 역사에서 사라져간 사이 미래를 향해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완벽한 변신에 성공했다. 특히 이러한 변신은 2005년 SK제약의 합병과 함께 본격 진출을 선언한 생명과학 분야보다 정밀화학 분야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2004년 1월 26일 미국 하니웰사와 협약을 체결하고 하니웰의 기술력을 기반으로 고순도 솔벤트를 생산, SK케미칼과 하니웰 브랜드로 아시아 지역에 공급했다. 솔벤트는 기기분석용, 전자용의 고순도 용매로 사용되는 정밀화학 제품으로 이전까지는 전량 수입에 의존해왔다. SK케미칼은 2004년 7월부터 고순도 솔벤트의 생산에 들어가 국내외 300여 개 연구소에 관련제품을 공급했다. 2005년 6월에는 석유화학 관련제품 생산법인 SK유로켐(SK Eurochem)의 공장 준공식을 폴란드 버츄와벡에서 갖고 본격적인 유럽시장 공략에 들어갔다. SK유로켐은 국내 업체가 유럽 현지에 플라스틱 병의 주원료가 되는 PET칩 생산거점을 확보한 첫 사례로, 연간 12만 톤 규모의 PET칩을 생산해 폴란드 등 동구 지역에 공급하는 그룹 최초의 유럽생산기지 역할을 수행했다. 국내 화학업계 최초의 폴란드 진출로 SK케미칼은 국내 22만 톤, 인도네시아 8만 톤을 합쳐 42만 톤의 PET 생산능력을 확보함으로써 이 분야 글로벌 기업으로 등장했다. 이밖에 SK케미칼은 2002년 미국 뉴저지에 광통신부품회사 SKOE(SK Opto- Electronics)를 설립하고 광통신부품 사업에 본격 진출했으며, 2005년 4월에는 신소재 벤처기업인 SK유티스(SK Utis)를 설립하고 IT소재 사업에 박차를 가해나갔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감광성필름(DFR)을 비롯, 다양한 IT소재 개발에 성공한 SK케미칼은 2006년 3월 전도성고분자 개발에도 성공했다. 2009년에는 친환경연료인 바이오디젤 사업에도 신규 진출했다. 국내 업계 최초로 유화설비(DMT)를 활용한 바이오디젤 생산기술 개발에 성공한 SK케미칼은 3월 6일 연산 12만 톤에 달하는 바이오디젤 생산 설비 준공식을 갖고 본격적인 생산에 나섰다. 바이오디젤은 식물성 기름을 메탄올과 반응시켜 기존 경유 엔진에 사용 가능한 기름 형태로 만든 것으로 연소 효율이 높고 황화합물 배출이 없는 대표적 친환경연료로 꼽힌다. SK케미칼은 연산 30톤 규모의 PPS 파일럿 생산설비 완공식도 함께 갖고 PPS사업에도 진출했다. SK케미칼의 미래를 담보할 신성장동력으로 야심찬 첫발을 뗀 PPS(Poly Phenylene Sulfide)는 수퍼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의 일종으로 섭씨 200도의 장기고열 환경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난연성, 절연성, 내화학성, 강도가 뛰어나 금속재료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신소재로 각광받고 있었다. 바이오디젤과 PPS 생산설비의 동시 준공은 친환경 그린 케미칼 을 신성장동력의 핵심으로 선언한 SK케미칼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었다. 이에 따라 SK케미칼만의 독자기술을 기반으로 세계시장을 선도해나갈 수 있게 됐다. SK그룹 60년사

136 SK네트웍스, 중고가 패션 브랜드 육성 SK네트웍스는 2006년 2월 28일 패션사업의 중고가 브랜드화 전략의 일환으로 세계적인 패션하우스 도나 카란(Donna Karan)의 DKNY 및 Donna Karan Collection 브랜드 도입을 위한 론칭 쇼를 개최했다. 이와 더불어 2008년까지 DKNY Jeans, DKNY Kids, DKNY Bag & Shoes 등 DKNY 의류 카테고리의 전 라인을 순차적으로 도입, 총 50여개의 매장에서 5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달성하고, 100억 원 이상을 직매장 확보와 마케팅에 투자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DKNY는 브랜드 론칭 후 폭발적인 매출호조를 보였다. DKNY가 높은 판매성과를 보인 것은 2001년 DKNY가 루이비통, 지방시 등 세계 최정상급 명품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던 LVMH에 인수된 이후 명품 이미지와 노하우가 자연스럽게 스며들면서 품질개선과 함께 상품의 고급화가 이뤄짐에 따라 품질과 디자인에 대한 고객만족도가 크게 향상됐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SK네트웍스는 DKNY 브랜드 도입을 통해 중저가의 볼륨 존(Volume Zone) 브랜드에는 카스포 코너스, 아이겐포스트 등의 자체 브랜드를, 고급 라인에는 DKNY, 타미힐피거(Tommy Hilfiger), 엑조(EKJO) 등 자체 브랜드와 수입 브랜드를 조화시켜 패션브랜드 포트폴리오를 완성, 글로벌 패션브랜드 사업을 본격 추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SK네트웍스의 패션사업 진출은 2003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SK네트웍스는 수입판매업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패션 브랜드 라인선싱 사업에 뛰어들었다. 미국의 유명 패션브랜드인 타미힐피거 (Tommy Hilfiger)와 국내 독점 수입에 관한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국내 판매를 개시한 것이었다. SK네트웍스는 이어 2005년 8월 한국 출신의 프랑스 정상급 디자이너 조은경의 여성복 브랜드 엑조 (EKJO)를 전격 인수하면서 글로벌 패션브랜드 사업을 본격화했다. 엑조는 세계 패션의 본고장인 프랑스 파리에서 크게 호평 받고 있던 여성복 브랜드였다. 엑조의 전격적인 인수는 통합 마케팅을 지향하는 SK네트웍스의 글로벌 브랜드 육성계획을 본격적으로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같은 해 9월에는 아이겐포스트를 앞세워 중국진출에 성공했다. SK네트웍스는 중국 내 주요 백화점에 30여개의 점포를 오픈, 아이겐포스트를 중국 캐쥬얼 명품 브랜드로 육성해나간다는 방침을 세우고 중국 패션시장 공략을 가속화했다. 2007년 1월에는 세계 유수의 패션 브랜드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리차드 최(Richard Chai)와 파트너십을 체결, RICHARD CHAI 의 글로벌 패션 브랜드 사업에 박차를 가했다. 이는 글로벌 시장에서의 판매채널 개발과 마케팅 전략 추진에 역점을 둔 포석으로서 감성과 지성의 결합을 통해 RIDHARD CHAI 를 명실상부한 글로벌 럭셔리 패션 브랜드로 성장시킨다는 전략의 일환이었다. 이와 더불어 같은 해 8월에는 캐나다 프리미엄 캐쥬얼 브랜드인 루츠 (Roots)를 국내시장에 선보이면서 캐쥬얼 브랜드를 비롯해 명품 여성복에 이르기까지 패션 브랜드의 포트폴리오를 완성했다. 이를 바탕으로 국내 패션 고객들의 니즈에 부응하는 한편, 세계적인 패션기업과의 폭넓은 협력관계를 기반으로 한 선진 패션사업 노하우를 습득함으로써 자체 글로벌 패션 브랜드 육성에도 힘을 기울였다. SK네크웍스는 2007년 11월 국내 패션 전문기업인 (주)오브제를 인수해 글로벌 진입에 성공한 2개의 브랜드(Y&Kei, Hanni Y) 및 3개의 국내 고급 여성브랜드(Obzee, O 2nd, Club Monaco)를 확보함과 동시에 국내 최정상급 패션 디자이너인 강진영, 윤한희 부부를 영입해 디자인 역량을 한층 강화했다. 뿐만 아니라 이듬해인 2008년 4월에도 타미힐피거, 루츠, DKNY 도입에 이어 전 세계 여성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던 글로벌 명품 브랜드인 엘리 타하리 를 국내 시장에 선보이면서 패션사업 규모의 확장은 물론 패션 비즈니스의 세계화를 위한 포트폴리오를 더욱더 견고히 했다. SK그룹 60년사

137 울산대공원, 시민1인당 1평녹지 조성 SK(주)가 지난 40여년 동안 회사 발전의 터전이 돼온 울산지역의 성장과 시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1995년부터 조성에 들어간 울산대공원이10여년에걸친 대역사 끝에 2006년 4월 13일 준공됐다. 울산대공원은 1995년 11월 SK(주)와 울산시가 울산대공원 조성사업 수행을 위한 기본약정을 체결한 후, 1997년 1월 SK(주)와 울산시가 1995년 울산광역시 남구 공업 탑 로터리 주변 11월 울산대공원 조성사업 수행을 위한 신정동과 옥동 일대의 부지에 공사를 기본약정을 체결한 후 10여년 만인 2006년 4월 13일에 준공된 울산대공원은 SK(주)의 착수한 바 있었다. 발전 터전이 되어 온 울산지역의 성장과 2002년 4월 1차 개장에 들어간 시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것이었다. 울산대공원은 실내외 4계절 워터파크형 수영장, 2km에 달하는 느티나무 산책로, 2,500여명이 동시에 관람할 수 있는 옥외공연장 등을 갖추고 생태를 반영한 자연친화형 이룬 장미계곡, 테마식물원 도 가족단위 휴식공간으로 꾸며졌다. 이밖에도 환경관과 공원으로 울산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에너지관이 들어섰으며, 사계절 썰매장, 파크골프장, 길거리 농구장도 갖췄다. 이어 2006년 4월에는 2차 개장이 이뤄지면서 울산대공원은 총 10년간에 달하는 모든 울산대공원은 건강 배움 창조 사랑 기(氣) 라는 조성원칙을 유지하는 한편 공사를 마무리하고 명실상부 국내 최고 시설을 갖춘 도심 속 자연테마공원으로 유희시설 동식물 자연경관의 3요소가 복합된 형태로 조성돼온 기존의 공원에서 완성됐다. 완전히 탈피함으로써 선진공원의 발전 모델인 학습과 자연에 중점을 두었다. 공사기간 동안 매년 100여 억 원씩 들어간 조성 공사비는 전액 SK(주)가 부담했고, SK는 10여 년에 걸쳐 총 1,020억 원의 예산을 투자, 울산대공원 조성사업을 부지 매입비는 울산광역시가 부담했다. SK는 완공 후 공원시설 전체를 울산광역시에 성공적으로 완료함으로써 지역사회와 기업이 협력, 상생하는 대표적 모범사례를 기증했다.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울산대공원은 시민 1인당 최소 1평의 녹지공간을 제공한다는 목표로 총 110만 평 중 86만 평에 인공을 최소화한 자연 생태공원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1차 시설지구에는 수생식물 생태학습장인 생태연못과 느티나무 산책로, 자연학습장 등이 자리잡았다. 2차 시설지구는 건강하고 밝은 어린이 를 테마로 한 생태체험 놀이공간으로 꾸며졌다. 잔디밭과 인공 실개천이 어우러진 가족소풍 놀이마당, 2만 송이 장미가 꽃대궐을 SK그룹 60년사

138 SK텔레콤, 세계 최초로 HSDPA 상용화하다 세계 최초로 3G 이동통신 서비스를 개시했던 SK텔레콤이 2006년 5월, 다시 세계 최초로 HSDPA 상용서비스를 시작함으로써 3세대 이동전화 기술에서도 한국이 최강국임을 입증했다. 또 HSDPA 서비스가 고객에게 보다 편하게 다가설 수 있도록 3G+ 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출시했다. HSDPA(High Speed Downlink Packet Access; 고속하향패킷접속)는 3세대 이동전화 기술인 WCDMA를 한 단계 진화시킨 것이었다. 세계 최초 HSDPA 상용화는 국내에서는 고속 데이터 서비스에 기반한 새로운 서비스를 시작함으로써 가입자 경쟁이 아닌 서비스 경쟁으로 시장을 전환시켜 나가고, 해외에서는 WCDMA가 3세대 이동전화 기술의 주류를 이루고 있던 상황에서 HSDPA 시장의 선점을 통해 해외시장 진출을 더욱 가속화 할 수 있게 됐음을 의미했다. SK텔레콤은 HSDPA 서비스 상용화 이후 지속적으로 전국망 구축을 추진해 2007년 3월 이를 완성했다. 이에 따라 상용화 당시 25개 주요 도시에서만 가능했던 서비스를 2007년 3월에는 전국으로 넓혔다. SK텔레콤은 HSDPA 상용서비스 1주년을 맞아 2009년까지 대용량 데이터 전송이 가능한 HSUPA(High Speed Uplink Packet Access; 고속상향패킷접속) 네트워크를 전국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HSUPA는 3.5세대 이동 전화 기술인 HSDPA네트워크보다 최대 5.76Mbps속도로 상향 데이터 전송이 향상돼 고속의 대용량 데이터 통신이 가능한 글로벌 표준 기술로서 복합망 사업을 위한 SK텔레콤의 차세대 네트워크로 자리매김해 나갔다. SK텔레콤, 프리미엄 T 출시 SK텔레콤은 국내 최대 이동통신 사업자에서 글로벌 컨버전스 기업으로 도약의 기반을 마련한 것을 계기로 이동통신 서비스 분야에서 획기적인 경쟁력 강화를 선언했다. 이를 위해 2006년 8월부터 이동통신 서비스의 대표 브랜드 T 를 론칭했다. T 는 통신(Telecom), 기술(Technology), 최고(Top), 신뢰(Trust) 등의 개념을 근간으로 하고 있으며, 최고의 기술로 고객들에게 신뢰 받는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었다. SK텔레콤은 새 브랜드 T 론칭을 계기로 단순한 가격경쟁보다는 고도화된 기술력과 차별화된 서비스 경쟁력에 바탕을 둔 고객가치 중심의 전략을 추진해 나갔다. 이를 위해 서비스 요소별 경쟁력 강화를 추진해 T 브랜드로 통합했다. SK텔레콤의 새로운 브랜드 T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대상과 접촉해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는 유비쿼터스 네트워크 였다. 이를 위해 지속적으로 진보하고 있던 이동통신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하고, 본격적으로 전개될 컨버전스 시대에서도 새롭고 다양한 서비스를 주도적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기술력과 서비스들을 고객들이 실생활에서 직접 활용할 수 있는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함으로써 단순한 브랜드 출시가 아닌 고객 가치의 실질적인 제고를 위한 SK텔레콤의 자기혁신 의지를 대외적으로 표명한 것이기도 했다. SK텔레콤이 전격적으로 T를 론칭한 것은 이동통신 시장의 환경변화를 반영한 결과였다. 2006년 들어 국내 이동통신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신규 가입 고객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드는 성장 정체 상태에 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시행된 번호이동 SK그룹 60년사

139 제도는 파워 브랜드로 군림해오던 SPEED 011 을 위협했고, 가입자를 서로 뺏고 뺏기는 치열한 마케팅 경쟁이 전개되면서 더욱더 강력한 브랜드 대응이 필요하게 되자 T를 탄생시킨 것이었다. 한편 T는 지속적으로 진화해 2008년 2월에는 긍정의 힘을 담은 되고송 으로 전국민의 사랑을 받았으며, 5월에는 T 로고 개정을 기념해 제작했던 브랜드북 이 세계 3대 디자인상으로 손꼽히는 2008 레드닷 어워드의 디자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SK텔레콤은 개정된 T로고를 모티프로 다양한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한편, 전국의 SK텔레콤 매장을 T 월드 간판으로 교체하며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했다. 되고송 에 이어 2009년에는 고객의 생각이 실현되기를 기원하는 비비디바비디부 캠페인 을 전개해 호평을 받았다. 이처럼 T 브랜드가 이동통신 분야를 보증하는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으면서 기업 브랜드인 SK텔레콤 은 이동통신을 넘어 컨버전스(Convergence)를 비롯한 새로운 비즈니스와 해외 사업, CSR 등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사업 영역에 걸쳐 큰 우산 역할을 하는 확장성과 유연성을 가진 브랜드로 성장했다. 해운경기 호황과 SK해운의 도약 년 우리나라 해운업계는 고유가에 힘입어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고유가임에도 유류 소비량이 줄지 않는데다 국제경기 활황에 따른 화물량 증가, 그리고 중국특수까지 겹쳐 컨테이너, 유조선, 벌크선 등 3개 해운분야가 모두 호황을 맞는 트리플 호황 이 이어졌다. 그 영향으로 SK해운도 흑자경영과 함께 놀라운 경영실적을 달성했다. 호황 국면은 2005년에도 이어졌다. 유례없는 해운호황과 함께 오픈 영업을 주축으로 벌크, 원유, 석유제품 등에서 양호한 영업성과를 달성했다. 시장상황이 그만큼 받쳐주었고, SK해운 전 조직에 상황을 활용할 줄 아는 지혜와 기회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에 따라 힘입어 SK해운은 지속적인 생존조건 확보를 위한 선순환 구조를 갖추기로 하고 최소 필수선대(800만DWT) 구축을 목표로 내세웠다. 당시 SK해운은 26척에 317만DWT를 갖추고 있었다. 이에 SK해운은 필수선대 구축을 위해 VLCC 9척을 포함해 전 선형에 걸쳐 총 14척에 이르는 창사 이래 최대 신조 발주를 단행했다. 해운경기 호황과 도약 과정에서 SK해운은 유조선, 가스선, 벌크선, 벙커링선 등 전 분야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는데, 벌크선과 벙커링선 부문에서 특히 의미 있는 실적을 올렸다. 일반화물선 영업은 극동-미주 노선을 중심으로 동남아 수송을 확대했으며, 새롭게 중동과 유럽 노선을 개발했다. 유럽 노선은 현대제철, 포스코 등 국내외 화주의 유럽향 물량을 확보하면서 시장개척을 본격화했다. 철강재 중심에서 벗어나 합판 수송을 재개하기도 했다. SK그룹 60년사

140 바다에서 어선들에게 연료를 판매하는 독특한 영업방식인 벙커링은 2000년대 중반 전 세계를 상대로 시장점유율 1위를 달성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 벙커링은 어획량 감소와 경쟁심화, 그리고 어장별 규제 강화 등의 영향으로 기나긴 조정기를 거쳤다. 이 기간에 SK해운은 생존기반 확보와 시장지배력 확대를 위해 고군분투했다. 해외고객 확보에 매진했으며,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신규 비즈니스 개발에 열정을 쏟았다. 무엇보다 SK해운의 벙커링이 세계 일류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지속적인 해외고객 개발을 통한 시장지배력의 확대였다. 이 시기 SK해운은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 등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중국, 대만, 일본 등의 주요 수산사들을 고객으로 확보했다. 특히 대만 최대의 수산사인 FCF는 전 어장에서 화물량에 대한 지배력이 막강했다. SK해운은 FCF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전 어장에서 안정적 물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 또 전통적으로 일본의 벙커링 사업을 지배하고 있던 일본 참치협회와도 전략적 제휴를 통해 시장지배력을 강화했다. 행복나눔재단, 행복도시락을 배달하다 년 11월 14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서 행복을 나누는 도시락센터를 관리, 운영하는 행복나눔재단 개소식이 열렸다. 행복나눔재단을 설립한 것은 2006년 초부터 SK와 실업극복국민재단이 전국의 걸식이웃을 돕기 위해 추진해왔던 행복도시락을 더욱 체계적이고 독립적으로 사업을 운영하기 위함이었다. 이를 위해 SK텔레콤과 SK케미칼, SKC 등 6개사가 행복나눔재단에 130억 원의 기금을 출연하고, 14개점인 도시락센터를 2007년까지 48개점으로 늘려 행복도시락 사업을 확대하기로 했다. 행복도시락 사업은 2006년 2월 그룹의 핵심 경영과제인 행복나눔 확산 차원에서 시작한 결식이웃 무료도시락 지원사업으로 NGO가 운영지도 및 감독을, 정부가 수혜자 선정 및 인건비 지원을, 지역사회단체가 자원봉사를 맡고 SK가 사업비를 지원해 진행됐다. 결식이웃에게 도시락을 전달하는 것은 물론, 소외계층의 실직자들에게는 급식센터에서 영양사, 조리사, 배달원 등의 업무를 익히도록 해 자활의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적 일자리 창출 사업으로 빠르게 자리매김했다. 행복도시락 사업은 전문가에 의해 관리되는 식단 운영과 2시간 내 배달이 가능한 국내 최고 수준의 급식 인프라를 구축함으로써 2006년 한 해 동안 총 36만 식의 급식 서비스를 제공했다. 특히 행복도시락센터에 취업한 인력의 50.5%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여성 가장으로 대부분 2년 이상의 오랜 실업이나 비정규직의 열악한 환경에서 일해본 경험을 갖고 있었다. 행복도시락센터는 이들로 하여금 필요한 교육훈련을 이수하도록 한 후 상시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SK그룹 60년사

141 행복나눔재단 설립은 행복도시락 사업을 더욱 안정적으로 진행하는 한편. 사업적 영속성을 담보하기 위해 이뤄졌으며, 이로써 사업이 더욱 확대됐다. 2006년 36만 식을 제공한 이래 2007년 8월까지 행복나눔재단은 1만 1,500여 명의 대상자에게 총 161만 3,000식을 제공했다. 행복도시락센터도 경기지역 5개 지점, 강원지역 3개 지점, 전남지역 2개 지점, 부산지역 2개 지점 등 전국 27개점으로 확대했다. 행복나눔재단의 행복도시락 사업은 2007년 2월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글로벌 기업들의 경영진과 사회공헌 관련 교수진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아시아 비즈니스 콘퍼런스 에서 기업 사회공헌 활동의 선도 모델로 소개됐으며, 같은 해 정부가 개최한 사회 서비스 창출 성과 보고회 에서 우수사례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후에도 SK그룹은 행복나눔재단을 통해 단순히 행복도시락센터를 양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도시락센터가 독립된 회사 형태로 운영될 수 있도록 자립하는 데 초점을 맞춤으로써 이웃돕기와 사회적 일자리 창출이라는 두 가지 목표 달성을 지속적으로 도모했다. 사상 최초 매출 60조 원, 수출 200억 달러 달성 SK는 2005년 주력 계열사인 SK(주)와 SK텔레콤의 실적 호조에 힘입어 사상 최초로 매출 60조 원을 넘어섰다. 2006년에는 71조 원을 돌파했다. 수출도 크게 증가했다. 2005년에 201억 달러의 수출 실적을 달성해 사상 최초로 수출 200억 달러를 돌파했다. 2006년에는 목표치인 210억 달러를 훨씬 웃도는 230억 달러(국내 전체 수출의 5.6%) 규모의 수출 실적을 올렸다. 2005년 매출 60조 1,000억 원은 2004년 실적 56조 1,000억 원보다 9% 늘어난 것으로 2005년 초 목표액 57조 원을 3조 원가량 초과 달성한 액수였다. 이 중 SK(주)는 2005년 매출 21조 9,205억 원에 영업이익 1조 2,076억 원, 당기순이익 1조 6,902억 원의 실적을 올려 매출과 당기순이익에서 사상 최대를 기록하며 국내 정유사 중 처음으로 매출 20조 원대 시대를 열었다. SK텔레콤은 매출 10조 1,611억 원, 영업이익 2조 6,536억 원, 당기순이익 1조 8,714억 원의 실적을 올려 사상 최초로 매출 10조 원을 돌파했다. SK텔레콤은 무디스 S&P와 함께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인 피치(Fitch)사로부터 2005년 6월 중순 국가신용등급과 동일한 신용등급 A(안정적)를 부여받았다. 이는 금융기관을 제외하고는 SK텔레콤이 국내 최초였다. 2005년 200억 달러 수출 돌파는 여러모로 의미가 깊었다. 2004년의 131억 달러보다 약 53%나 크게 늘어난 것이면서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의 약 7%에 해당하는 규모로, SK가 명실상부한 수출기업 으로 자리매김했음을 의미했다. 수출비중도 34%에 달해 전년도 29%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업종 별로 보면 에너지 화학 분야와 건설 및 물류서비스 분야의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SK건설은 2005년 5월 쿠웨이트 프로젝트를 수주한 데 이어 7월에는 GS건설과 공동 수주한 태국 맙타풋 산업단지의 6억 6,000만 달러 규모 SK그룹 60년사

142 플랜트공사의 지분 63%를 확보하는 등 초대형 프로젝트를 연달아 수주했다. 3분기까지 SK건설의 해외플랜트 수주누계 금액은 19억 달러를 넘어섰다. 특히 SK(주)는 수출이 전체 매출의 절반을 넘어서면서 국내 대표 수출기업으로 변신했다. 수출비중이 높은 벙커C유 등 중질유의 국제가격 상승도 큰 영향을 미쳤지만, 고도화시설 투자의 효과로 경유와 항공유 등 경질유 수출도 늘어나 수출채산성도 큰 폭의 개선이 이뤄졌다. SK케미칼도 그룹 최초의 유럽 생산기지인 폴란드 유로켐 공장의 준공으로 유럽지역 수출이 늘어나면서 호조세를 이어갔다. SK케미칼의 매출액 대비 수출비중은 그룹 내에서 최고 수준인 70%를 넘어섰다. 종합상사 부문의 글로벌 네트워크 재구축과 함께 중국사업이 본격화되면서 SK네트웍스도 국내 종합상사 중 매출과 수출실적에서 2년 연속 1위를 기록했다. SK가 이처럼 2005년 사상 최초로 매출 60조 원과 수출 200억 달러를 달성한 것은 설비투자와 연구개발, 지배구조 개선 등 경영체질 강화 노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SK의 2005년 총 투자비는 22%, 시설투자는 21%, 연구개발은 33%나 증가했다. 총 투자비 5조 원 중에서 설비투자 등에는 4조 6,000억 원, 연구개발비는 4,000억 원이 투입됐다. 또 SK그룹은 2003년 글로벌 사태 이후 구조조정 추진본부를 해체하면서 발표했던 지배구조 사업구조 재무구조 등 3대 기업구조 개혁의 로드 맵을 당초 목표보다 초과 달성했다. 2004년 SK(주)는 사외이사 비중을 70%로 확대하면서 일하는 이사회 시스템을 구축했고, 2005년 SK텔레콤과 SK네트웍스 등 주요 상장사들은 사외이사 비중을 50% 이상으로 높였다. SK그룹은 이와 함께 2년 동안 관계사 수를 60개에서 50개로 줄이는 강도 높은 사업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이 같은 SK의 투명경영을 위한 노력은 해외에서도 크게 평가받았다. 2005년 5월 23일자 영문판 <뉴스위크>는 연고 자본주의를 탈피하고 서구식 경영 시스템을 도입해 성공을 이루고 있는 한국 기업들을 소개하는 기사에서 SK(주)를 한국 자본주의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언급했다. 유럽의 경제전문지 <유로머니>의 자매지인 <아시아머니>도 2005년 2월 실시한 주요 기업의 지배구조 평가에서 SK(주)를 소수주주권 인식 제고 및 IR 향상을 위해 가장 노력한 기업 중 아시아 1위로 선정했다 최태원 회장은 부산 APEC 개막과 함께 글로벌비즈니스 활동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 일환으로 2005년 11월 17일 후진타오 중국 주석과 회동을 갖고 양국 경제협력 증진 방안 및 SK의 중국사업 등에 대해 환담을 나눴다. SK그룹 60년사

143 제2장 제3의 창업, 2007~ 더 큰 행복 위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다 워크아웃 8개월 조기 졸업한 SK네트웍스 SK E&S, 중국 도시가스시장 진출 SK텔레콤, 중국 3G 통신기술 협력 인등산에 SUPEX 센터 개원 SK텔레콤, 플랫폼 사업을 성장동력으로 SK커뮤니케이션즈 통합법인 출범 글로벌 시장 겨냥한 CIC제도 도입 SK C&C, 중앙아시아시장 개척 마케팅 전문회사 SK마케팅앤컴퍼니 출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 11. SK 기업문화 발전소 SKMS연구소 개관 국내 최초로 그룹단위 상생경영 시스템 마련 SK에너지, 에너지 독립국 꿈 꾸며 제3 고도화시설 준공 유선경쟁력 강화 위해 SK브로드밴드 출범 SKC, 무기소재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SK네트웍스, 비석유자원개발 가속 페달 밟다 경제 위기 극복 위한 노사 한마음 한뜻 대선언 SK건설,세계적 지하공간 건설사로 성장 SK케미칼, 세계 일류 제약회사로 도약 채비 쓰촨 대지진 참사 지역의 희망, 행복소학교 SK에너지, 신약 개발 신화, 카리스바메이트 윤활기유 전문기업 SK루브리컨츠 출범 SK텔레콤, 하나카드 인수로 모바일 금융시장 진출 SK네트웍스, 워커힐 합병과 제주 핀크스 인수 찾아가는 서민금융 SK미소금융재단 설립 SK텔레콤, 스마트시대 개막 SKC, 필름사업의 진화 SK차이나, 중국 사업 전열 재정비 SK에너지, 기술수출의 진화 스마트 워크플레이스 toktok 오픈 SK네트웍스, 버추얼(Virtual) 철강기업 의 꿈 이루다 더 큰 행복 위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다 년 4월 11일 SK(주) 이사회에서 회사분할 안건을 의결함에 따라 SK는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대내외에 천명했다. SK(주)를 지주회사와 사업자회사로 분할해 단순하고 투명한 기업 지배구조를 확립하기로 한 것이었다. 2004년 이후 이사회 중심의 투명경영 체제를 확립하고, 이사회 내 감사위원회 멤버를 전원 사외이사로 배치하는 등 국내 지배구조 개선의 모범사례를 일궈온 SK(주)는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통해 기업 지배구조 개선 노력의 결실을 맺었다. 특히 한층 개선된 기업 지배구조를 통해 자회사들의 독립 경영으로 경영효율성을 높이는 한편, 이를 통한 주주가치 제고를 도모했다. 이밖에도 지분구조 단순화 과정에서 효율적인 자회사 지분 정리로 재무구조 건전성을 제고하는 기회를 얻었으며, 보다 투명한 기업 지배구조를 확립해 정부와 시장의 기대에 부응했다. SK(주)는 2007년 4월 30일 정기이사회를 개최, 회사분할에 따른 주요 경영안건을 의결했다. 지주회사는 SK주식회사(영문명 SK holdings Co., Ltd.), 사업자회사는 SK에너지(주) (영문명 SK energy Co., Ltd.)로 결정했다. 존속법인인 지주회사는 기존 SK(주)의 사명을 그대로 승계하고, 신설법인인 사업자회사는 고유 사업영역을 명확하고 간결하게 드러낼 수 있는 사명을 선택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2007년 7월 1일 기존의 SK(주)가 존속법인인 지주회사 SK(주)와 신설법인인 사업자회사 SK에너지로 분할되면서 지주회사 체제의 SK그룹이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이날 이사회를 통해 SK(주)는 최태원 회장과 박영호 사장을, SK에너지는 최태원 회장과 신헌철 사장을 각각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SK그룹 60년사

144 통해서도 지주회사 체제 전환의 의미를 강조하기도 했다. 최태원 회장은 SK그룹의 지주회사 전환은 선진 지배구조를 향한 변화의 첫발을 내디딘 것 이라면서 앞으로 SK가 보다 선진적인 지배구조, 보다 경쟁력 있는 사업구조, 튼튼한 재무구조로 더 큰 행복을 만들어 더 많은 사람과 나누도록 하겠다 고 밝혔다. 또 SK가 지주회사 체제의 출범을 의결해 50년을 이어온 SK역사에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면서 1970년대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 선언, 1990년대 정보통신산업 진출이 SK의 사업구조에서 큰 획을 그었던 것처럼 지주회사 전환도 SK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결단이 될 것 이라고 강조했다. 경영적인 측면에서도 투자부문과 사업부문의 분리로 사업구조가 명확해지고 사업부문의 전문역량 강화로 경영효율성이 높아져 결과적으로 기업가치와 대외신인도 상승을 기대할 수 있을 것 이라면서 시장과 정책의 기대에 부응하고 보다 선진화된 지배구조를 갖춤으로써 글로벌 경영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고 지주회사 체제전환의 의미를 설명했다 최태원 회장은 2007 CEO 세미나에서 SK가 영구히 존속,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주회사 체제 SK그룹의 지주회사 체제전환을 두고 주요 일간지를 비롯한 각 언론매체들은 전환을 계기로 가치창출을 가속화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면서 이 같은 조건이 선행되어야만 경영투명성을 높인 제3의 창업이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러면서 국내 행복을 지속적으로 창출할 수 있고, 이해관계자들과의 행복에도 기여할 수 있다 고 밝혔다. 다수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편 움직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신용평가회사와 주식시장 반응도 환영 일색이었다. 지주회사 전환 발표 이후 SK(주)는 CEO 산하에 윤리경영실, 기획실, 사업지원실, 재무실, 인력실, 브랜드관리실, 피치(Pitch)는 BBB- 에 머물러 있던 SK(주)의 장기 신용등급과 선순위 무담보채권 SKMS실천센터 등 6실 1센터를 두었다. 소수정예 인력 원칙에 따라 지주회사 업무를 등급을 긍정적 관찰 대상에 올렸으며, 무디스(Moody s) 또한 Baa3 인 SK(주)의 장기 수행하는 70여 명으로 인력을 배치했으며, 미래 성장동력 발굴 및 육성을 위해 신용등급을 상향조정 검토 대상에 등록했다. 국내 증권사들은 일제히 SK(주)의 생명과학(Life Science)사업본부를 별도로 운영하기로 했다. 신규사업의 인큐베이팅이 지주회사 전환을 긍정적으로 분석하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SK의 지주회사 체제 지주회사 본연의 임무에 부합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렀다. 전환은 우리 기업들의 적극적 전략변화의 신호탄과 같은 의미, 다시 말해 단순한 최태원 회장은 이날 사내방송(SK gbs)을 통해 지주회사 전환은 우리에게 또 다른 구조혁신이라는 차원을 넘어 적극적 성장전략을 위한 시동을 걸었다는 의미를 부여할 도전과 변화를 의미한다 고 말하고 사업회사의 성장 없이 지주회사의 성장도 없는 수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만큼 지주회사는 사업회사의 성장을 위해 잠재력이 있는 곳에 계속 투자할 것이며,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통해 SK(주)는 지주회사와 사업자회사가 선순환적으로 글로벌 포트폴리오도 추진할 것 이라고 강조했다. 가치를 창출해 동반 성장하는 SK식 지주회사 모델을 제시함으로써더 큰 행복으로 이에 앞서 최태원 회장은 그룹사보인 SK Management 6월호에 게재된 특별 메시지를 사회 경제적으로 존경받는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나갔다. SK그룹 60년사

145 워크아웃 8개월 조기 졸업한 SK네트웍스 년 4월 또 하나의 의미 있고, 반가운 일이 있었다. SK네트웍스가 2003년 9월 채권단과 경영정상화 이행약정을 체결한 지 3년 6개월 만에 워크아웃을 조기 졸업한 것이었다. 이는 당초 예상보다 8개월이나 빠른 것이었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 등으로 구성된 SK네트웍스의 채권단은 2007년 4월 채권단 회의를 열고 96.06%의 동의를 얻어 SK네트웍스의 워크아웃 조기졸업을 확정지었다. 채권단은 SK네트웍스가 2006년 사상 최대 수준인 3,882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등 워크아웃 졸업여건을 갖춘 데다 최태원 회장이 워커힐호텔 지분 40.69%를 SK네트웍스에 무상 출연하면서 마지막 걸림돌이 해소됐다 고 밝혔다. SK네트웍스가 워크아웃이라는 어두운 터널로 들어가게 된 것은 2002년 10월부터 시작된 SK글로벌 사태가 발단이었다. 수십 년간 쌓여온 부실과 분석회계가 드러난 때문이었다. 당시 SK네트웍스에 돈을 빌려줬던 채권단은 일시에 차입금 상환을 요구했고, 결국 SK네트웍스는 채권단의 공동관리(워크아웃)를 받게 됐다. 청산이 아닌 워크아웃을 선택한 것은 SK네트웍스의 현금창출 능력을 높이 산 결정이었지만, SK그룹 계열사 전체에 미칠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었다. 또 사업구조상 당분간 SK(주)나 SK텔레콤 등 주력 계열사와의 협력관계가 필요했던 것도 이 같은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채권단은 SK(주)가 갖고 있던 매출채권을 출자전환할 것을 요구했고, 우여곡절 끝에 채권단과 SK네트웍스가 출자전환에 합의했다. 그 뒤에 남은 것은 SK네트웍스의 뼈를 깎는 자구 노력과 인고의 세월뿐이었다. 2,700여명 가운데 750명의 구성원을 구조조정하는 것으로 시작된 SK네트웍스의 경영정상화 노력은 매년 목표 이상의 영업성과를 일궈내면서 분전을 거듭했다. SK네트웍스는 채권단이 제시한 에비타(EBITDA) 목표를 2003년부터 4년 동안 매년 초과 달성했다. CBO(신규차환유동화증권)도 1년 만에 상환했다. 당시 국내 채권단은 받을 돈의 30%, 해외채권단은 받을 돈의 43%를 상환받기로 합의했었는데 이 돈을 1년 만에 자체자금으로 갚은 것이었다. 경영목표(EBITDA) 4년 연속 초과달성 (단위: 억 원) 구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목표 2,066 3,994 4,573 5,042 실적 2,792 4,488 4,722 5,261 SK네트웍스는 경영정상화를 위해 채권단으로부터 1조 원 가량을 조달하면서 발행한 상환우선주도 70% 가량을 갚았고, 자산매각을 통해 조달하기로 했던 1조원의 자금도 목표액을 훨씬 넘겨 1조 2,000억 원을 만들어냈다. 워크아웃 상태에서 자체 신용만으로 외국계 은행으로부터 2,500만 달러가량의 크레딧 라인(신용거래한도)을 받아낸 일은 SK네트웍스가 내실에 있어서는 이미 오래 전에 상처를 회복했다는 반증이었다. 워크아웃에 돌입할 2003년 당시 SK네트웍스는 채권단과 자구계획 이행에 관한 7가지의 약속을 했고, 그중 4가지 이상을 이뤄낼 경우 워크아웃에서 조기 졸업한다는 데 합의했다. 2003년부터 SK네트웍스는 자구계획 이행에 박차를 가해 이 가운데 5가지를 모두 충족시켰고, 상환우선주도 70% 가량을 상환했다. 채권단에 담보로 제공했던 최태원 회장의 워커힐 호텔 지분 역시 SK네트웍스에 무상 증여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워크아웃 조기 졸업에 성공한 SK네트웍스는 워크아웃 졸업을 계기로 제3의 창업 에 나선다는 각오로 2007년 7월 1일부로 지주회사체제로 전환, 지배구조 논란과 분식회계 등 과거 유산을 완전히 청산하고 책임경영과 글로벌 경쟁력 SK그룹 60년사

146 확보에 주력했다. 이와 관련하여 최태원 회장은 구성원들에게 SK네트웍스의 워크아웃 졸업과 지주회사 체제 전환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해 우리 모두 변해야 하며 변화된 조건에 적응해 어떠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아야 한다 고 당부했다. SK네트웍스 워크아웃 종결요건과 현황(2007년 4월 기준) MOU상 조기졸업 충족요건 자구계획 이행 충족여부 1 주요 경영목표 2년 이상 달성 및 달성 기조 지속 2003~2005년 연속 MOU목표 초과달성 충족 2 재무구조 개선 및 자체 신용으로 정상적인 자금조달 2005년 신규 L/C 개설 시작 충족 3 2년 연속 실질경상이익 실현 및 순이익 실현기조 예상 2004년 4,600억 원, 2006년 4,584억 원의 충족 순이익 달성 4 사업구조조정 완료 및 과거 경영실패 요소의 해소 2003년 사업/조직/인력 구조조정 실시 충족 5 6 정상화계획기간의 1/2기간 이내 총자구목표의 50%이상 달성 졸업 이후의 잔여채무에 대한 구체적인 상환일정 제시 2006년 말 100% 초과 실행 2007년 상환우선주 상환계획 발표 충족 진행중 7 부채비율 200% 이하 단기 달성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 미충족 SK E&S, 해외 도시가스시장 진출 중국시장이 점점 커지면서 중국 진출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전형적인 내수산업이었던 도시가스업을 영위하던 SK E&S로서도 그런 열풍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글로벌화 되어가고 있던 세계경제에서 해외시장 개척은 생존의 조건으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SK E&S는 2007년 3월 13일 중국 3대 도시가스회사 중 하나인 차이나가스홀딩스(China Gas Holdings)와 합작회사 설립계약을 체결하고 중국 도시가스 진출의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합작회사의 이름은 차이나가스-SK에너지홀딩스 (China Gas-SK Energy Holdings; 약칭 CSEH)였다. 2007년 8월 합작사는 중국 저장성( 浙 江 省 ) 타이저우시( 台 州 市 )에 도시가스를 공급하고 있던 타이저우가스공사( 台 州 燃 气 公 司 )와도 합자회사를 설립 계약을 체결했다. 이 계약은 CSEH가 타이저우가스공사 주식의 50%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이뤄졌으며, 사명은 타이저저우차이나가스-SK도시가스발전유한공사( 台 州 中 燃 - SK 城 市 燃 气 展 有 限 公 司 ) 였다. 이의 설립은 CSEH 출범 이후 첫 번째 공동 프로젝트라는 데 의미가 있었다. 2007년 11월 4일에는 부산도시가스와 합작으로 홍콩에 SK E&S 홍콩을 세웠다. SK E&S 홍콩은 중국 내에서 도시가스 사업을 하고 있던 싸이뤄의 지분 49%를 인수함으로써 공동경영권을 획득했다. 싸이뤄는 중국 후베이성을 중심으로 5개성 17개 도시가스 공급권역의 특허 경영권을 보유하고 있던 회사로서, 도시가스 공급과 도시간 배관 부설 위주로 운영되던 회사였다. SK E&S의 해외 도시가스시장 진출은 중국을 넘어 인도네시아로까지 확대됐다. SK그룹 60년사

147 2010년 7월 인도네시아 국영 가스회사인 페르타가스사와 중부 자바(Java) 지역의 도시가스 사업 개발을 위한 사업협력(공동 수요조사) 양해각서를 체결해 인도네시아 도시가스 사업의 진출 발판을 마련했다. 2012년 4월 합작법인 설립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한 데 이어 2013년 1월 합작법인 설립을 위한 기본계약(Head of Agreement)을 체결했다. 또 2013년 1월 인도네시아 국영 석유 가스회사인 페르타미나사와 가스, 발전, 신재생에너지 사업분야에서의 포괄적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함으로써 인도네시아에서 가스사업뿐만 아니라 에너지 사업으로 진출할 수 있는 천연가스 사업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했다. SK텔레콤, 중국 3G 통신기술 협력 SK텔레콤은 중국정부와 손잡고 중국 3G 통신 기술 협력을 본격화했다. 2007년 4월 10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 소재 SK텔레콤 액세스연구원에서 중국 원자바오 국무원 총리, 정보통신부 노준형 장관, 최태원 회장 등 양국 주요 관계자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TD-SCDMA 테스트베드(Test-bed) 개통식을 가졌다. TD-SCDMA 테스트베드 구축은 SK텔레콤이 2006년 8월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와 TD-SCDMA 개발협력 양해각서(MOU) 체결에 대한 후속조치였다. 양측은 기술협력을 진행하기 위해 2007년 2월 북경에 TD-SCDMA 연합서비스개발센터 를 설립하고 망 운영 기술, 3G 서비스, 단말 플랫폼 등에 대한 연구 등을 진행해 왔으며, 3G 후속기술 및 4G 기술에 대한 공동 연구도 진행하기로 했었다. SK텔레콤은 TD-SCDMA 테스트베드 구축으로 중국에 설립한 연합개발센터와의 연계를 통해 중국에서 3G 서비스 활성화와 TD-SCDMA 경쟁력 강화에 큰 역할을 수행하게 됐다. 이를 통해 양국간 상호 협력의 모델로도 활용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향후 4년간 중국의 3G 관련 투자가 1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돼 단말기, 콘텐츠, 장비 등 국내 IT업계 전반에 걸친 동반진출 기회가 마련될 수도 있었다. SK텔레콤은 CDMA, WCDMA 및 TD-SCDMA 등 중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던 모든 3세대 통신기술에 대한 운영 노하우 및 개발 경험을 보유하고 있어 향후 중국 통신시장 발전은 물론, TD-SCDMA가 세계적인 기술로 발전해 나가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SK그룹 60년사

148 중국은 2006년 11월 베이징과 상하이 등 5개 도시에 TD-SCDMA 네트워크를 구축해 시범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2007년 톈진과 광저우 등 5개 도시에 추가로 네트워크를 설치해 총 10개 도시에서 시범 서비스를 실시하기로 했다. TD-SCDMA 개통식은 첨단 통신 기술력 증진을 위한 중국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한국의 우수한 기술력이 상호 결합돼 이루어낸 첫 번째 결실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향후 차세대 이동통신 분야에서도 지속적인 양국 협력을 통해 아시아를 넘어 세계 이동통신 산업을 선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2008년 5월 28일에는 베이징에 위치한 한중 이동통신서비스개발센터 를 이명박 대통령이 방문해 중국의 독자적인 3G 표준 서비스를 체험하고 한중 양국 연구개발자들을 격려했다. 2007년 4월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경기도 분당에 위치한 TD-SCDMA 테스트베드 센터를 방문한 데 이어, 이명박 대통령이 베이징의 한중 이동통신서비스 개발센터를 각각 교차 방문함으로써 양국 정상이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더 나아가 이동통신 분야 협력이 양국의 주요 경제현안으로 떠오르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은 최초로 시연한 CDMA망과 TD-SCDMA망 간의 영상통화를 통해 한국의 태릉선수촌에서 베이징 올림픽 출전을 위해 훈련 중인 국가대표 선수를 격려하기도 했다. 이종망 간 영상통화는 기술적인 성과뿐 아니라, 한국이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CDMA와 중국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3세대 기술표준인 TD-SCDMA 등 양국의 대표 이동통신 기술을 통해 두 나라를 연결했다는 점에서 양국간 통신 분야 협력을 상징하기도 했다. SK텔레콤은 이 외에도 2006년 6월에 차이나유니콤에 10억 달러를 투자하고 2007년 7월 중국지주회사인 SK텔레콤 차이나 홀딩스 를 설립했으며, 8월에는 차이나유니콤의 전환사채 10억 달러를 주식으로 전환해 2대 주주에 올랐다. 이렇게 장기간에 걸쳐 중국 내 사업자 및 정부와의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등 중국 통신시장 진출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중국 텔레매틱스 시장 진출을 위해 중국 GPS업체를 인수했으며, 중국 TR 뮤직에 투자해 중국 음악시장에도 진출했다. 2009년 4월에는 국내 인터넷 오픈 마켓 11번가 의 성공을 기반으로 중국에 온라인 패션 전문 쇼핑몰 치앤쉰닷컴 ( 공식 오픈하고 인터넷 쇼핑몰 사업에 뛰어들기도 했다. SK텔레콤은 중국사업이 이처럼 확대됨에 따라 2009년 11월 사업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차이나유니콤의 지분 전량을 매각하고, 이를 재무구조 건실화, 중국 컨버전스 사업 재투자 및 신규사업 발굴, ICT 경쟁력 확보를 위한 중장기 R&D 재원으로 활용했다. SK텔레콤과 차이나유니콤은 지분 매각 이후에도 파트너십을 유지하며 협력 관계를 지속해 나갔다. SK그룹 60년사

149 인등산에 SUPEX 센터 개원 년 6월 19일 최태원 회장과 관계사 CEO들이 참석한 가운데 충북 충주 인등산에서 SUPEX센터 개원식을 가졌다. SK 기업문화의 상징인 인등산에 SUPEX센터를 개원함에 따라 인재양성을 통한 미래 개척 및 사회적 상생경영의 기업문화를 더욱 발전시킬 토대를 마련했다. SUPEX센터가 위치한 인등산은 최종현 선대회장이 나무를 심듯 인재를 심고, 인재를 심듯 나무를 심는다 는 정신 아래 1972년 조림사업을 시작한 곳이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인등산 외에도 황무지였던 충북 영동과 충남 천안지역에도 인재양성을 위한 조림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최종현 선대회장은 이왕 산을 매입할 거면 수도권 주변의 산을 사라 는 말에 내가 땅 장사인 줄 아느냐, 수도권 주변에 산림을 조성하면 오랜 세월 정성들여 가꾼 조림지가 훼손될 수 있다 고 잘라 말하고 개발대상에서 거리가 먼 인등산 등을 조림지로 결정했다. SUPEX센터 개원식에서 최태원 회장은 인등산 숲에는 사람이 자원인 나라, 그 사람을 키우는 기업이라는 SK의 인재관 국가관 기업관이 깃들어 있다 고 말하고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지 않고, 나라와 미래를 생각하며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뜻을 세우고 올곧게 실천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선대회장의 철학이자 SK의 가치 라고 시설의 의미를 설명했다. SUPEX센터에는 최종현 선대회장의 인재양성과 사회공헌에 대한 철학과 신념, 황무지가 인재의 숲으로 변신하는 과정이 전시돼 있다. 또 실제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시설로 활용할 수 있는 연수시설도 같이 만들었다. 특히 전시실의 철학과 신념 그 단단한 뿌리 편에는 최종현 선대회장이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림사업을 시작한 일화가 소개돼 있다. 선대회장은 조림사업은 투자 회수기간이 길고 수익이 불분명하다는 회의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헐벗은 산에 나무를 심어 지역주민을 살리고, 인재를 키우는 것이 나라를 살리는 길 이라며 조림사업을 강행했다. 기업의 사회공헌 이라는 용어가 낯설던 1970년대에 이미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무를 심는다 며 회의론을 제기한 사람들을 설득한 것이었다. 최태원 회장은 사람을 키우듯 나무를 키워야 한다 는 선대회장의 뜻을 이어받아 대를 이어 나무사랑을 줄곧 실천해왔다. 국내 대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조림을 전문으로 하는 사업을 40년간 지속했다. 1972년 국내 최초의 임업 전문 회사인 서해개발 로 시작해 1998년 SK임업으로 이름을 바꾸어 지속해온 조림사업의 결과 여의도 면적의 15배에 달하는 조림지에서 380만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다. 최태원 회장은 2006년 말 최종현 선대회장을 대신해 제1회 녹색대상 을 수상하며 우리가 숲을 가꾸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경제적으로 유무형의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고 말하며 선대회장의 철학을 되새겼다. SK그룹 60년사

150 SK텔레콤, 플랫폼 사업을 성장동력으로 SK텔레콤은 국내 1위 이동통신사답게 다양한 플랫폼 사업을 전개했다. 2004년에 새로운 방식의 음악 포털사이트인 멜론 을 론칭한 것을 비롯해 2007년 7월 다양한 위치정보 서비스를 대표하는 통합 브랜드 T 맵 을 내놓았다. 2008년 2월에는 새로운 개념의 온라인 오픈 마켓인 11번가 를 선보였으며, 2009년 9월에는 국내 최초로 모바일 콘텐츠를 사고 팔 수 있는 모바일 오픈마켓 T스토어 를 오픈하고 국내 모바일 생태계 조성을 주도해 나갔다. SK텔레콤의 플랫폼 사업의 첫 단추는 멜론이었다. 2004년 11월 론칭한 멜론은 새로운 방식의 음악 포털사이트로 음악 마니아들에게 신선한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때와 장소, 기기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유비쿼터스 개념의 음악 포털인 멜론은 음성적인 콘텐츠가 대세였던 음악 포털시장의 체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디지털 음악의 이용을 유료화하고 DRM 기술을 통해 음악의 사용기간이 끝남과 동시에 사용을 자동적으로 제한해 불법복제와 전송 등 무료 음악 서비스로 인해 피해를 봐왔던 음원업계의 권리를 보호한 것이었다. 멜론은 임대 서비스 개념의 요금제를 도입해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임대형 음악 서비스는 항상 새로운 음악을 듣고 싶어 하는 음악 마니아들의 욕구를 반영하고 소유개념이 약한 디지털 음악의 특징을 살려 세계 최초로 시도한 것으로서, 국내에서보다 세계의 관심을 더 집중시켰다. SK텔레콤은 멜론에 이어 2007년 7월 네이트 드라이브, 친구찾기 등 다양한 위치기반 서비스(LBS; Location Based Service)를 하나로 통합한 신규 브랜드 T맵을 출시했다. 이에 따라 T맵은 길 안내, 안심 안전, 여행 및 지역정보, 교통정보 등 SK텔레콤의 다양한 위치정보 서비스를 대표하는 통합 브랜드로 등장했다. T맵의 등장으로 본격화된 텔레매틱스는 자동차산업과 통신산업이 결합한 컨버전스 솔루션으로 IT 분야 신 성장동력의 핵심 서비스로 자리매김했을 뿐만 아니라 자동차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단말기 관련 산업의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했다. 2007년 7월 새롭게 단장한 T맵은 이전보다 더욱 강력해진 모습으로 고객들에게 다가섰다. 그 결실로 2011년 10월 모바일 내비게이션 서비스로는 국내 처음으로 가입자 1,000만 명을 돌파했다. 특히 SK텔레콤이 서비스플랫폼 부문을 독립해 SK플래닛을 설립한 직후여서 의미가 더욱 컸다. 유사 서비스를 압도하는 T맵의 서비스 경쟁력은 10년 간 축적된 방대한 교통 정보와 시간, 날씨 등의 상황 까지 고려한 독보적인 경로 추천 알고리즘 으로, 가장 빠른 길과 오차범위 5분 내외의 예상 도착 시간을 제공하는 서비스에 기반하고 있었다. 이러한 편리함 때문에 스마트폰 보급이 확대되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해 나갔다. SK텔레콤은 유무선을 통한 상품 구매는 물론 재미와 쇼핑정보 공유까지 가능한 새로운 개념의 온라인 오픈 마켓, 11번가 를 2008년 2월 론칭했다. 국내 1위 이동통신 사업자로서 축적된 다양한 유통 채널과 노하우를 기반으로 유무선 인터넷 사업의 리더십을 강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미래성장을 주도할 글로벌 스케일의 컨버전스 사업을 발굴하려는 계획의 일환이었다. 11번가는 단순히 가격을 비교하고 검색하고 구매하는 과정이 아니라, 듣고 얘기하고 즐기는 취미생활로서의 재미있는 쇼핑을 지향했다. 즉 구매의 편리함을 넘어선 그 이상의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기존에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롭고 미래지향적인 쇼핑을 선사하겠다는 것이 론칭 의도였다. 이에 걸맞게 11번가에서는 놀이 공간의 개념을 도입하고, 유무선을 연계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정보공유가 가능한 기술을 구현해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 자유롭게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놀이터(Playground) 형 오픈 마켓을 지향했다. SK텔레콤은 2009년 9월 국내 최초로 모바일 콘텐츠를 마음대로 사고 팔 수 있는 SK그룹 60년사

151 모바일 오픈마켓 T스토어 를 정식 오픈하고 국내 모바일 생태계 조성을 주도해 나갔다. T스토어는 일반인, 개인 개발자, 전문개발업체 등 누구나 자신이 개발한 콘텐츠를 자유롭게 판매할 수 있고, 사용자는 판매자가 등록한 게임, 폰꾸미기, 방송, 만화 등의 콘텐츠를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개방형 콘텐츠 거래장터였다. T스토어는 오픈 당시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국내 모바일 생태계 발전의 선순환 구조를 이끌며, 오픈 1년 만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대표 앱스토어 로 성장했다. T스토어는 국내 성공을 기반으로 해외시장으로 진출했다. 2010년 11월 중국 레노보가 제조하는 스마트폰에 T스토어의 우수 콘텐츠를 공급했으며, 2011년 6월에는 대만 시장에 최적화된 T스토어 서비스를 론칭했다. 7월에는 세계 최대 이동통신사인 차이나모바일의 앱 장터 모바일 마켓 에 숍인숍(Shop-in-shop) 형태로 진출하게 됨에 따라 중국 소비자들도 T스토어의 우수 앱을 즐길 수 있게 됐다. 2011년 10월에는 한게임과 손잡고 일본시장에도 진출했다. 이로써 T스토어는 국내를 넘어 아시아를 아우르는 T스토어 벨트 를 구축했다. 2012년 10월 현재 T스토어에는 국내외 3만 3,000여 명의 개발자와 비즈니스 파트너가 등록돼 있고, 그들이 매일 500여 개의 콘텐츠를 등록하고 있다. 1,670만 명의 가입자가 앱, 게임, VOD, 전자책, 음악, 쇼핑쿠폰 등 35만여 건의 콘텐츠를 거래하는 종합 모바일 콘텐츠 백화점으로 성장했다. SK커뮤니케이션즈 통합법인 출범 SK커뮤니케이션즈는 2007년 11월 검색 포털 기업 엠파스를 합병해 새롭게 태어났다. 통합법인의 사명은 종전 그대로 SK커뮤니케이션즈 를 사용하기로 했다. 합병으로 네이트닷컴, 싸이월드, 엠파스의 트래픽이 모두 합쳐질 경우, 코리안 클릭 기준으로 전체 순방문자 수는 3위, 전체 페이지뷰는 다음을 제치고 2위를 차지하게 돼 인터넷 업계의 판도변화가 예상됐다. SK커뮤니케이션즈는 단순 트래픽 비교를 떠나 전 세계적으로 떠오르고 있던 SNS 싸이월드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검증된 SNS 수익모델을 갖추고 있었으며, MSN의 3배에 달하는 순방문자를 보유하고 있던 국내 1위 메신저(네이트온)를 보유 중이어서 이들 서비스가 엠파스의 포털 서비스와 연동될 경우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통합법인 출범 후인 2007년 10월 기업용 사내 메신저 전문업체 이지닉스와 제휴해 네이트온 기업용 메신저서비스 를 제공한 데 이어 2008년 2월 하나TV를 운영 중이던 하나로미디어와 IPTV 관련 서비스 개발 및 운영, 기술 교류에 관한 전략적 사업제휴(MOU)를 체결, IPTV사업 본격 참여를 선언했다. 2009년 3월에는 엠파스와 네이트닷컴을 통합한 새로운 검색포털 서비스 네이트( 오픈했다. 새로운 네이트는 엠파스와 코난테크놀로지의 검색기술에 싸이월드와 네이트온을 결합시켜 기존 포털에서는 경험치 못했던 새로운 서비스들을 선보였다. SK커뮤니케이션즈는 네이트 오픈을 필두로 기술기반 검색 서비스 시장을 새롭게 키워 나간다는 방침을 세우고 2009년 3월 싸이월드클럽과 네이트온 미니클럽 SK그룹 60년사

152 연동 서비스를 개시했다. 이를 통해 커뮤니티 이용자들의 보다 빠른 정보 공유가 가능해졌다. 미니클럽은 네이트온 4.0에서 새롭게 선보인 메신저 속 커뮤니티 서비스로 메신저 상에서 다수의 지인들과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었다. 2009년 7월 1일에는 오픈정책을 기반으로 서비스 간 연계를 강화한 새로운 네이트( 서비스를 시작했다. 개편의 핵심은 외부 사이트와 네이트를 연결시켜 하나의 서비스처럼 사용할 수 있는 네이트커넥트와 D검색과 메일, 뉴스 등 포털 핵심 서비스를 다양한 영역에서 쉽고 빠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사용자의 편의성을 높여 SK커뮤니케이션즈만의 차별화된 서비스를 선보였다는 점이었다. SK커뮤니케이션즈는 2009년 9월 세계 최초로 문장 분석 시맨틱 검색을 포털에 상용화하기로 결정하고 2010년 8월 네이트의 통합검색을 전면 개편했다. 글로벌 시장 겨냥한 CIC제도 도입 년 1월 SK는 SK에너지, SK텔레콤, SK네트웍스 등 3개 사에 사내 독립기업제를 의미하는 CIC(Company in Company)제를 도입하고 전사적인 관리 하에 있던 권한과 책임을 각 CIC에 총체적으로 이양했다. CIC는 사업조직이 사업수행에 필요한 권한을 충분히 보유한 가운데 독립적인 경영을 통해 성과를 창출하며, 성과에 따른 보상과 책임이 연계되는 조직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부문제 와는 완전히 다른 성격을 띠었다. 이로써 CIC제도를 도입한 3사는 마케팅(Markrting), 서비스 생산(Production), 연구개발(Reaserch & Development), 지원(Support) 등 이른바 기업의 MPRS 기능을 모두 보유한 자기완결형 조직으로 거듭났으며, 스스로 전략과 운영에 대한 의사결정 권한을 지니게 됐다. SK가 CIC제도를 도입한 가장 큰 이유는 방대한 규모와 복잡한 그룹 내의 전체조직을 마치 소규모 신생기업처럼 최대한 효율적이고도 신속하게 경영하고자 하는 데 있었다. 즉 전체 조직 내에서 개별 사업단위들이 독립적인 의사결정 시스템을 갖춘 상황에서 전략적 마인드를 갖고 업무를 추진함으로써, 전체 조직의 경영성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창조적인 조직변화 전략을 지향한 것이었다. CIC제도의 도입으로 각 사는 CEO의 책임과 권한 아래 각 사업조직과 지원부서를 여러 개의 CIC로 나눠 운영할 수 있게 됐으며, 각 CIC장은 해당 CIC를 독립된 회사처럼 직접 경영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각 사의 CEO는 전사를 대표하며, CIC장에 대한 평가와 인사권을 갖고 각 CIC 간의 이해관계 조정 및 시너지 창출 역할과 함께 전사 차원의 성장과 글로벌 SK그룹 60년사

153 경영에 중점을 두게 됐다. 반면 CIC장은 해당 CIC를 대표하며 자기완결적인 사업 운영과 함께 산하 구성원에 대한 평가와 인사권을 갖게 됐으며, CIC 차원의 성장 경영에 대한 책임과 권한도 갖게 됐다. 한편 SK는 CIC제도 도입과 함께 과거 직위 연공 등의 인사관행에서 과감히 벗어나, 일을 중심으로 한 직무 및 직책 중심의 인력제도를 시행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부사장 전무 상무와 같은 직위가 폐지됐으며 대표이사 사장, CIC사장, 부문장, 실 본부장과 같은 직책 중심으로 호칭을 변경하고 이에 맞춰 역할과 책임을 부여했다. 또한 임원의 승진 및 성과보상도 직위가 아닌 직책을 기준으로 결정하도록 했다. CIC제도의 도입을 위해 SK에너지는 기존의 모든 조직을 통합, 분리해 R&M(Refining & Marketing) R&C(Resources & Chemicals) P&T(Corporate Planning & Global Technology) CMS(Corporate Management Service) 등 총 4개의 CIC로 재편했다. SK텔레콤 또한 기존 1총괄 8부문 73실 본부 사업부 그룹에서 4CIC 5부문 77실 본부 그룹으로 조직을 개편하고, 전사 역량을 성장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회사의 사업구조를 MNO Biz. 글로벌 Biz., C&I Biz., CMS 등의 4개 CIC로 개편했다. SK네트웍스는 기존 6부문 36본부에서 4컴퍼니 6부문 36본부로 조직을 개편하고, 사업별 자율책임 경영체계를 가속화하기 위해 정보통신 컴퍼니 상사 컴퍼니 에너지마케팅 컴퍼니 경영서비스 컴퍼니 등 4개 컴퍼니를 신설했다. CIC제도 도입의 후속조치로 SK에너지와 SK텔레콤은 톱팀코디네이터(Top Team Coordinator)제도 를 도입했다. 톱팀코디네이터는 CEO 직속으로 편제돼 CEO와 CIC 사장들의 회의를 정기적으로 주관하면서 신속한 의사결정을 유도 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SK C&C, 중앙아시아시장 개척 SK C&C는 2008년 5월 카자흐스탄 우편물류정보시스템 프로젝트의 국제경쟁 입찰에 참여해 현지 업체를 제치고 우선사업자로 선정된 데 이어, 또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인 아제르바이잔에서도 국내 IT서비스기업이 수출한 단일 시스템으로는 최대 규모인 바쿠시 ITS시스템 구축사업을 수주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SK C&C는 2000년대 초반부터 글로벌 영업에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규모가 작았을 뿐더러 후속 사업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이후 몇 년은 세계시장으로 눈을 돌릴 여유 없이 역량강화, 사업구조 고도화 등 모든 활동을 국내시장 중심으로 전개했다. 당시에는 회사의 총체적 역량이 세계 굴지의 업체와 글로벌 경쟁을 본격화할 만큼 충분하지 못했고, 무엇보다도 국내시장에서의 경쟁력 강화에 집중하느라 경영여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SK C&C는 중앙아시아의 성장잠재력에 주목, 이 지역의 시장개척을 위해 여러 경로로 마케팅 활동을 벌여왔다. 중앙아시아는 유럽 북미 동남아에 비해 IT서비스 발전이 낙후됐으나, 2000년대 들어 경제개발 추진과 함께 기간산업 현대화가 진행되면서 빠른 속도로 IT서비스 시장이 확대되고 있었다. SK C&C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공공분야 사업이 글로벌 비즈니스 모델로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아래 이 지역 국가에 IT서비스 도입에 대한 제안과 설명을 통한 교류를 꾸준히 전개했다. 카자흐스탄의 경우 우편물류사업이라는 새로운 분야에서 그것도 국외시장 도전이라는 약점을 극복하는 길은 오로지 전문역량 확보에 달려 있었다. 이에 따라 SK그룹 60년사

154 SK C&C는 글로벌 사업인력의 역량강화에 힘쓰는 한편, 우정물류 사업에서 경험이 있는 인재를 영입하는 등 사업추진을 통해 경쟁력을 높여 나갔다. 이렇게 몇 년 동안 이어진 노력의 결과가 마침내 2008년에 나타났다. 카자흐스탄 우편물류 현대화 사업을 수주한 데 이어 당초 7,650만 달러 규모였으나 2011년 1억 3,800만 달러로 확대된 아제르바이잔 바쿠시 ITS 구축사업을 수주하는 데도 성공한 것이다. 또 같은 해 12월에는 몽골 울란바토르 ITS구축 사업을 수주해 카자흐스탄과 아제르바이잔에 이은 또 하나의 대형프로젝트 수출성과를 달성했다. 2009년 1월부터 2010년 6월까지 추진된 몽골 울란바토르 ITS구축사업은 몽골과 대한민국 간의 차관계약에 따른 EDCF(대외경제협력기금) 자금으로 진행된 프로젝트였다. 2008년의 성과를 발판으로 SK C&C는 몽골과 중국, 중앙아시아와 인도, 서아시아 아랍권을 잇는 새로운 IT서비스 수출의 비단길 을 개척하면서 ITS와 u시티, 통신부가 서비스, 관세행정 시스템, 우편물류 시스템, 조기재해정보 시스템 등 한국의 대표 IT서비스 성공모델 수출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이밖에도 SK C&C는 2007년 4월 중국 베이징에 현지법인인 SK C&C Systems와 GDC(Global Delivery Center)를 설립해 중국 IT시장공략에 나서는 한편, 11월에는 인도 현지법인 SK C&C India를 설립해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기반을 다져나갔다. 그 결과 2009년 9월 SK텔레콤과 함께 인도의 대형 이동통신 사업자인 릴라이언스로부터 3G 이전 전략컨설팅 사업을 수주한 데 이어 2010년 9월에는 중국 선전시로부터 종합 ITS설계 사업을 수주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 SK C&C의 기술력은 2012년 1월 수주한 아제르바이잔 정부의 주소등록정보시스템 구축 사업 에서도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동안 토지 중심으로 만들어진 지번 주소를 사용해온 우리나라의 주소등록 시스템을 도로 이름과 건물 번호를 사용하는 새 주소체제로 개편하면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해외로까지 수출하는 개가를 올린 것이었다. 마케팅 전문회사 SK마케팅앤컴퍼니 출범 년 4월 7일 통합 마케팅 전문회사 를 표방하며 SK마케팅앤컴퍼니가 설립됐다. SK텔레콤과 SK에너지의 공동출자로 출범한 SK마케팅앤컴퍼니는 SK의 마케팅 역량을 결집해 마케팅 전문회사로의 도약을 목표로 했다. OK캐쉬백의 3,000만 회원과 SK텔레콤의 2,200만 가입자를 아우르는 폭넓은 고객기반, 그리고 이로부터 축적된 고객의 소비생활에 대한 방대한 지식기반을 마케팅에 접목하고, 여기에 SK그룹의 다양한 마케팅 역량을 통합, 활용함으로써 기업의 마케팅 성과 극대화와 소비자의 소비효용 극대화를 동시에 달성하는 마케팅 전문회사로 발돋움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SK텔레콤 마케팅 인력과 SK에너지 OK캐쉬백사업 인력, TU미디어 SK네트웍스 SK커뮤니케이션즈의 인력 등 그룹 내 마케팅 인력을 규합했다. SK마케팅앤컴퍼니는 기업과 소비자, 양측 모두를 고객으로 삼고 소비자와 제휴사의 가치 있는 파트너로 자리매김해 나갔다. 특히 기업 마케팅의 3가지 핵심축인 제휴마케팅 사업 광고 사업 시장조사 및 마케팅 컨설팅 위주로 사업을 추진했다. 제휴마케팅 사업은 SK에너지로부터 OK캐쉬백 사업을 2008년 5월부터 양수해온 오프라인 연계 사업을 더욱 강화하고, 그룹 내 다양한 제휴 네트워크 및 수익 프로그램 등과 연계했다. 또 대형 제휴사의 상품을 활용한 OK캐쉬백 적립 기회 확대로 고객 활성화율을 끌어올렸다. 광고사업은 각 기업이 필요로 하는 차별화되고 통합된 광고 커뮤니케이션 서비스를 SK그룹 60년사

155 제공해 영업개시 6개월 만에 2008년 방송광고 취급액 업계 3위를 달성했다. 외부 광고주 유지에 전력을 기울여 2009년 12월 소니코리아를 시작으로 2010년 1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3월 쌍용자동차, 통계청 2010 인구주택총조사, 키자니아, 청호나이스등 정부 광고를 비롯한 IT와 자동차 등 주요 분야의 광고를 잇달아 수주하는 데 성공했다. 신생 광고 회사가 출범 이후 정착기에 이르기까지 평균 3~4년의 시간이 걸리는 데 비해 SK마케팅앤컴퍼니는 2년이 안 되는 짧은 기간 안에 광고업계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했다. 시장조사 및 컨설팅 사업은 광범위한 OK캐쉬백 고객과 제휴사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차별적인 시장조사 및 마케팅 컨설팅 서비스를 다양한 고객들에게 제공했다. 자발적으로 참여한 OK캐쉬백 고객 패널에게 설문조사를 시행하는 MRS(Mobile Research System) 등 첨단 조사 방법을 개발해 다른 리서치 회사와의 차별성을 구축했다. 이 외에도 SK마케팅앤컴퍼니는 해외 진출과 내비게이션 등 신사업도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2009년 1월 중국 E-eye와의 합작투자회사인 조이나브 (JOYNAV)를 설립하고, 중국에서의 교통 정보 내비게이션 솔루션 제공 및 텔레매틱스 사업을 전개하며 해외 시장 사업을 확대했다. 7월에는 내비게이션 엔나비 S100 을 출시, 국내에서 유일하게 교통 정보, 전자지도, 내비게이션 소프트웨어, 내비게이션 단말기까지 내비게이션 제작과 관련한 모든 영역을 동시에 수행해 보다 완성도 높은 내비게이션을 제공했다. 이처럼 SK마케팅앤컴퍼니는 OK캐쉬백 고객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한 타사와 차별화된 커뮤니케이션 솔루션으로 통합 마케팅의 새로운 장을 열어 나갔다. SK 기업문화 발전소 SKMS연구소 개관 최종현 선대회장의 10주기가 되는 2008년, SK는 세계일류기업을 향한 선대회장의 의지를 기리며 SKMS 연구소를 개관했다. 자연지형과 땅의 기운을 최대한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된 SKMS연구소는 2007년 11월부터 약 10개월에 걸쳐 공사를 진행했다. 최태원 회장은 8월 28일 열린 개관식에서 기념사를 통해 SK의 사업과 시장이 어떻게 변화, 성장해 갈지라도 우리를 유지, 존속, 발전시킬 수 있는 힘은 결국 SK문화, 그 중에서도 SKMS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고 강조하고 이곳에서 세계 일류기업을 꿈꾸셨던 선대회장의 바람을 현실로 만들어낼 우리의 힘과 혼이 길러지고 활짝 피어오르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고 밝혔다. SK만의 독특한 경영관리 체계인 SKMS는 1979년 정립된 이후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는 경영철학과 의사결정 기준을 담은 체계로 발전해 12차례의 진화를 거듭하면서 구체화, 체계화됐다. SKMS는 마케팅 생산 연구개발 등에 관한 정적요소와 의욕 일처리역량 커뮤니케이션 코디네이션 SK-맨십 등 동적 요소로 나눌 수 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특히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동적요소를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강화했다. 이는 곧 패기 라는 한 단어로 집약됐으며, 인간의 두뇌역량을 최대화시켜 사람과 사람이 만나 더 큰 에너지를 발휘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SKMS와 SUPEX로 이뤄낸 성과를 크게 세 가지로 정의했다. 첫째는 서구식 경영법이 300년간 해결하지 못한 노사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이었다. 회사의 정책결정에서부터 작은 문제의 해결에 이르기까지 전 구성원이 함께 SK그룹 60년사

156 토의하면서 단 한 번도 노사대립을 겪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는 부서 이기주의가 사라졌다고 판단했다. 조직 간의 벽이 사라지면서 회사 전체에 함께 일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것이 최종현 선대회장의 진단이었다. 셋째는 조직운영의 집권화와 분권화가 조성됐다고 보았다. SUPEX를 통해 불가능하게 보이던 집권화와 분권화를 동시에 이뤄낸 강한 조직을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기업환경이 변하고 시대적 요구가 증가할 때마다 새로운 항목을 추가, 보완하고 구성원들 간의 합의를 이끌어낸 SKMS의 정립과정 자체가 SK그룹의 독특한 미래지향적 기업문화의 산물이었다. SKMS연구소의 개관을 통해 SK는 SKMS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최종현 회장 10주기 추모식 사진전에 전시된 최종현 선대회장과 박계희 여사, 게리 베커 박사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진. 국내 최초로 그룹단위 상생경영 시스템 마련 년 9월 25일 SK는 계열사 대표와 협력업체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SK 상생협력 및 공정거래 협약 선포식 을 갖고 상생경영을 통한 행복나눔의 확대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국내 최초의 그룹단위 상생경영 시스템으로 기록된 SK 상생협력 및 공정거래 협약 은 취임 이후 기업의 존재 목적을 모든 이해관계자의 행복 으로 규정하고 행복 나눔에 힘을 쏟아온 최태원 회장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2008년 9월 1일 취임 10주년을 맞아 최태원 회장은 구성원에게 보내는 기념 메시지를 통해 앞으로의 50년을 패기 있게 도전하기 위해 우리가 강점을 가지는 분야에서 성장기회를 현실화해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글로벌 수준을 높여가는 한편, SK 브랜드를 공유하는 회사들이 스스로 생존기반을 확보함과 동시에 함께 발전하는 방법을 모색함으로써 따로 또 같이 를 강화해 나가겠다 고 밝혔다. 새롭게 마련된 상생경영 시스템에서 SK그룹은 협력업체와의 공정거래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시한 공정한 계약체결 공정한 협력업체 선정 운용 불공정한 거래의 사전예방 등 3대 가이드라인을 주요한 원칙으로 채택했다. 또한 1차 협력업체가 2차 협력업체와의 상생협력 의무를 준수할 수 있도록 명문화함으로써 SK그룹의 상생경영이 1차 협력업체뿐 아니라 2 3차 협력업체에도 파급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SK그룹은 주요 16개사의 전체 협력업체 5,679개 사에 대한 자금 금융 지원, 100% 현금성 결제 등 대금 지급조건 개선, SK상생아카데미를 통한 교육 및 기술지원 등 철저하고 지속적인 상생경영을 추진해나갔다. 특히 전체 협력업체 가운데 하도급 SK그룹 60년사

157 거래업체인 124개사에 대해서는 구두발주 금지 합리적인 하도급 대금 결정 투입해 IT 관련 중소기업의 사업 기술 상용화 지원 1인 창조지원 창업지원 부당한 감액행위 금지 등의 하도급 공정거래를 철저히 준수했다. 공동 사업화 개방형 모바일 플랫폼 구축 등을 지원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 2009년 6월에는 자금난을 겪고 있는 협력업체에 자금지원을 해주는 상생펀드 도 운영에 들어갔다. 또 중소기업 생태계의 건전성을 강화하기 위해 2차 협력업체에도 마련했다. IBK기업은행에 예치한 자금을 재원으로 중소기업의 대출 지원과 이자 상생펀드와 상생 아카데미를 개방하기로 하고 이를 위한 상생펀드도 1,500억 원 부담을 덜어주는 금융지원 프로그램 상생펀드 는 협력업체들이 최대 30억 원, 최고 규모로 확대했다. 2.4%의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2012년 9월에는 협력업체의 본원적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교육 기술 자금 등 3대 또한 그룹 차원의 상생경영을 지속적으로 실천해나갈 수 있도록 SK상생경영위원회 를 분야의 동반성장 경영을 크게 확대했다. 우선 협력업체 임직원의 역량개발을 신설하고 2005년 4월 9일 제1차 회의를 개최했다. SK상생경영위원회는 중소기업과의 지원하는 SK동반성장아카데미에 해외연수 과정을 신설했다. SK동반성장아카데미는 지속적인 상생협력을 통해 그룹의 경쟁력을 높이고, SK의 기업문화를 실천, 2006년 국내 대기업 최초로 개설한 중소 협력업체 인재양성 프로그램으로 2012년 확산함으로써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발전하고 성장해 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설치됐다. 9월까지 최고경영자(CEO) 세미나, MDP, e-러닝 등 3개 과정을 더해 1 2차 협력사 김창근 SK케미칼 부회장을 위원장으로 15개 관계사 위원들로 구성했다. 임직원 7만여 명이 수강했다. 상생경영을 위한 SK의 노력은 이후에도 꾸준히 계속됐다. 2010년 9월 상생-일자리- 중소 협력업체에 대한 자금지원도 확대했다. 금융기관과 연계해 협력사에 저리로 나눔 등 종합대책 을 발표하고 한층 강화된 상생경영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이에 대출자금을 지원하는 동반성장 펀드 규모를 3210억 원까지 늘렸다. 2010년 최초 따라 국가적 성장동력인 IT 분야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총 500억 원을 설정한 1,500억 원 대비 배 이상 늘어난 금액이었다. 이 펀드를 통해 2011년까지 400여개 협력업체가 총 1,826억 원을 대출 받았다 SK는 계열사 대표와 협력업체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국내 최초 그룹단위의 상생경영 시스템인 SK 상생협력 및 공정거래 협약 선포식을 가졌다. SK그룹 60년사

158 SK에너지, 에너지 독립국 꿈 꾸며 제3 고도화시설 준공 SK에너지는 제3기 고도화설비인 New FCC(중질유 분해시설)를 완공함에 따라 2008년 9월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SK에너지 울산CLX에서 준공식을 거행했다. 고도화시설은 원유 정제과정에서 생산된 벙커C유 등 가격이 저렴한 중질유를 촉매로 휘발유와 경유 경질 올레핀 등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으로 바꾸는 설비였다. 흔히 지상유전 ( 地 上 油 田 )이라고 불릴 정도로 정유사의 수익성 개선에 기여하는 시설이었다. 석유자원의 재처리 측면에서 중요성을 갖고 있는 고도화시설의 비율은 때때로 국가경쟁력을 평가하는 척도 중 하나로 활용되기도 하는데, 2007년 1월 기준으로 고도화 비율이 미국 55.8%, 독일 36.7%, 이탈리아 46.9%, 일본 24.6%에 달했다. 벙커C유가 원유 정제량의 절반 가까이 나온다는 점에서 이들 국가는 사실상 자국에서 생산되는 벙커C유 전부를 재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2008년 5월 기준으로 18.2%에 머물렀다. SK에너지는 기존에 FCC(Fluidized Catalytic Cracking, 하루 생산량 5만 7,000배럴) 1기와 HOU(Heavy Oil Up-grading, 하루 생산량 4만 5,000배럴) 1기 등 2기의 고도화시설을 울산CLX에 보유하고 있었다. 제3 고도화시설(하루 생산량 6만 배럴)을 준공함에 따라 고도화설비 생산량이 하루 16만 2,000배럴로 확대됐다. 이는 국내 정유사 최대 생산능력으로, 고도화비율은 기존 9%대에서 14.5%까지 상승했다. 특히 제3기 고도화설비의 중질유 탈황공정(RHDS)은 고도화시설에 원료가 주입되는 전 단계 공정으로, 중질유에 함유돼 있는 황성분을 빼내는 친환경 설비였다. 이 공정으로 SK에너지는 제3기 고도화설비인 New FCC와 제2기 중질유 탈황공정(RHDS, Residue Hydro- DeSulfurization Unit)을 완공,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준공식을 거행했다. 하루 620톤(연간 23만 톤)의 유황성분을 원천 제거해 대기환경 개선효과를 통한 석유자원의 녹색에너지화를 기대할 수 있게 했다. 제3기 고도화설비 가동으로 SK에너지는 연간 3조 4,000억 원의 원유도입 비용 절감효과 및 연간 4조 원의 석유류 제품 수출증대가 가능해져 연간 약 7조원 이상의 국제수지 개선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2008년 3월 완공한 제3기 고도화설비 건설공사는 창사 이래 최대인 2조 원이 투자된 초대형 플랜트였다. 그럼에도 15개월이라는 세계적으로도 최단기간 건설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더불어 통상 3개월 이상이 소요되는 시운전을 2개월 만에 완료하는 한편, 시운전 기간 동안 단 한 건의 공정 이상이나 사고 없이 공사를 완벽하게 수행해 SK에너지의 우수한 공정운영 능력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또 건설과정에 연인원 127만여 명이 참여했음에도 무재해 1,600만 인시( 人 時 )를 달성해냄으로써 국내 정유시설 공사 중 최고기록을 세웠다. SK에너지는 제3 고도화시설 건설 이라는 위업 달성과 함께 급변하는 세계 석유류 제품 시장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공급능력과 품질경쟁력을 확보, 에너지 독립국을 향한 꿈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서는 전기를 마련했다. SK그룹 60년사

159 유선 경쟁력 강화 위해 SK브로드밴드 출범 SK브로드밴드는 2008년 3월, SK텔레콤이 SK브로드밴드의 전신인 하나로텔레콤의 최대주주로 등극하면서 SK에 합류했다. 국내 1위 무선통신사업자인 SK텔레콤의 하나로텔레콤 인수는 본격적인 통신 3사(SK KT LG)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유 무선 결합상품 시장 본격화와 컨버전스 시대 개막을 알린 신호탄인 동시에, 대한민국의 통신 복지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2008년 SK브로드밴드는 네트워크 커버리지 확대 및 고객가치 제고 등 경쟁력기반조성에 주력했고, 2009년에는 중장기 성장을 위해 가입자 기반 및 SK텔레콤과의 시너지 확대에 집중했다. 실시간 IPTV 방송 개시와 유무선 결합상품 강화 등을 추진했으며, 같은 해 10월에는 그룹 통신 계열사 간 기업사업 구조 조정을 통한 실질적인 시너지 제고 전략의 일환으로 SK네트웍스의 인터넷전화 사업을 인수했다. 그룹 통신 계열사간 사업 조정은 계열사 간 네트워크 설비 공동 사용을 통한 CAPEX 절감과 더불어, SK텔레콤과의 B2B 사업협력 확대 등을 통해 현재까지 기업사업 분야 성장세를 지속 확대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2010년 새로운 유선 대표 브랜드 B 를 론칭했으며, 지속적인 생존확보와 성장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2년 간의 자체 Revitalization Plan 을 수립해 사업 포트폴리오 및 일련의 수익구조 개선 노력, SK텔레콤의 유선상품 재판매, B2B 사업협력 등 협업 강화로 흑자 전환했다. 2011년은 유무선 결합상품 활성화를 통한 안정적인 가입자 성장, 기업사업 매출 증대를 통해 당기순이익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Revitalization Plan 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SK브로드밴드는 2012년 4월 IPTV 서비스의 자체 브랜드인 B tv 가입자 100만 명을 달성하고, 7월 B tv 모바일 (모바일 IPTV) 서비스를 론칭하는 한편, 초고속사업 유통역량 강화 등 본원적 경쟁력을 지속 제고했다. 이를 통해 IPTV를 포함한 매스 가입자 기반 확대, 서비스 품질 경쟁력 제고 및 기업사업의 안정적인 성장을 지속해 마침내 연결기준 당기 순이익 흑자전환에도 성공했다. SK브로드밴드는 2013년 3월 현재 150만 가입자를 돌파한 IPTV와 유선 기업사업 분야 성장세를 확대하고, 흑자 경영과 본격적인 성장 및 가속화에 집중해, SK 통신사업자 군의 미디어 시장 내 위상 및 유선 경쟁력 강화를 지속 견인하고 있다. SK그룹 60년사

160 SKC, 무기소재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핵심사업을 강화하고 기존사업의 전략적 제휴를 마무리하면서 SKC는 무기소재사업을 새로운 신성장동력으로 선정하고 신규사업 진출을 가시화했다. 2009년 2월에는 태양전지의 핵심소재로 사용되는 불소필름과 EVA시트를 동시에 개발 완료하고 생산을 시작했다. 이로써 이미 대량 생산하고 있던 기존의 태양전지용 폴리에스터필름(Back Sheet용)에 이어 불소필름, EVA시트까지 공급할 수 있는 기술과 생산설비를 갖추게 됐다. SKC는 태양전지에 들어가는 3가지 종류의 모든 필름소재를 공급하는 세계 첫 번째 메이커가 되면서, 세계 일류 필름메이커로서의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2007년 11월 국내 반도체구조세라믹 분야에서 국내 1위 기업인 솔믹스를 인수했다. 이로써 SKC는 필름사업과 화학사업에 종합세라믹사업을 추가해 3축의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수 있게 됐다. SKC는 또 미래 성장동력으로 LED 조명사업을 비롯해 근거리통신(NFC) 핵심소재와 방열시트를 개발해 사업활성화를 도모했다. 일반 조명기업 섬레이 와 국내 안정기 생산 1위 기업 두영 을 인수, 통합해 2011년 9월 SKC라이팅 을 출범, LED사업을 본격화했다. 전 세계 LED조명시장은 연평균 32%의 고성장이 예상되고 있어 SKC는 SKC라이팅을 통해 LED사업을 역점적으로 추진했다. SKC는 2012년 10cm 내의 근거리통신용 핵심소재인 페라이트 시트 (Ferrite Sheet)개발에 성공, 기존의 필름기술에 무기소재기술의 융합을 통한 새로운 사업기회를 창출했다. 페라이트시트 를 장착한 NFC휴대전화 등의 전자기기 보급률이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에 발맞춰 일본제품이 독점하고 있던 페라이트 시트 시장에서 지속적인 기술개발로 국내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로 한 것이다. SKC는 NFC 핵심소재 개발에 이어 2012년 휴대전화, LCD TV 등 전자기기의 발열문제를 해결해 주는 고효율 방열( 放 熱 )시트 개발에 성공했다. SKC가 개발에 성공한 방열시트는 전자기기 고장 또는 오작동의 주요 원인인 발열문제를 해결해 주는 제품으로 미국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던 글로벌 방열시트시장에서 수입대체 효과를 거두며 국내 글로벌기업과의 고객밀착 서비스를 통해 다양한 제품 개발을 촉진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SK그룹 60년사

161 SK네트웍스, 비석유자원개발 가속 페달 밟다 해외 자원 확보를 통한 미래 성장동력 구축을 천명하고 나선 SK네트웍스가 2009년 3월 5일 인도네시아 고무 플랜테이션 사업을 위한 산림개발 허가권을 획득해 글로벌 플랜테이션 사업의 첫발을 내디뎠다. SK네트웍스는 5년에 걸친 조림사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해 2013년까지 연간 2만 4,000톤 규모의 천연고무 생산 및 가공설비를 갖춘다는 것이었다. SK네트웍스는 이 같은 인도네시아 고무 플랜테이션 사업을 연평균 매출액 4,300만 달러 수준의 대규모 사업으로 육성해나가기로 했다. 인도네시아 플랜테이션 사업은 현지 투자법인 PT 인니조아 의 지분 90%를 인수해 경영권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경영권 인수 전 철저한 현지 실사 등을 거쳐 사업 추진을 준비해왔다. PT 인니조아 는 인도네시아 남부 칼리만탄 지역에 서울의 절반 크기에 달하는 약 2만 8,000ha 규모의 토지를 보유하고 있으며, 해당 지역에는 고무뿐 아니라 대리석 석탄 철광석 등 풍부한 광물자원의 매장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됐다. SK네트웍스는 고무 플랜테이션과 병행해 광물자원 및 원목 개발, 옥수수 등의 곡물류 간작 등 추가적인 사업 기회도 적극적으로 모색해나가기로 했다. SK네트웍스가 인도네시아 플랜테이션 사업을 통해 생산하게 될 천연고무의 양은 국내 타이어 업체들이 해외에서 수입하는 타이어용 천연고무 수입량의 7%인 2만 4,000톤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생산한 천연고무는 한국을 비롯해 자동차 타이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던 중국과 인도 시장 등에 공급해 높은 수익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SK네트웍스는 막대한 양의 고무 자원을 확보한 것 외에도 자원의 보고로 통하는 동남아시아의 플랜테이션 사업에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게 됐다. 더불어 고무 플랜테이션을 통해 얻은 사업 노하우를 팜 자트로파 홍조류 등 다양한 플랜테이션 사업에 접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글로벌 플랜테이션 사업에 필요한 핵심적인 성공 역량 체계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SK네트웍스는 2019년까지 20만ha의 조림지를 확보해 플랜테이션 사업을 자원개발 사업과 더불어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해나기로 했다. SK네트웍스의 이같은 전략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는 글로벌 자원 무기화 경쟁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종합무역상사로서 국가 산업 경쟁력의 근간이 되는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함으로써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SK네트웍스는 2009년 하반기부터 밀림 정지작업에 착수해 2011년까지 170만 그루의 고무나무를 식재했으며, 2013년까지 700만 그루의 고무나무 식재 계획을 진행시켜 나가고 있다. SK그룹 60년사

162 경제위기 극복 위한 한마음 한뜻 대선언 SK는 2009년 4월 8일 경기도 용인 SK아카데미에서 SK 한마음 한뜻 대선언식 을 열고 구성원은 회사가 어려울 때 고통을 분담하고, 회사는 고용안정에 최대한 노력해 위기를 극복한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그동안 개별 기업 노사가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평화선언을 한 적은 있었지만 그룹 단위의 노사 전체가 고통 분담과 고용 안정에 합의한 것은 SK가 처음이었다. 말 그대로 새로운 노사 상생의 모델이 탄생한 것이었다. 이 날 선언식에서 최태원 회장은 격려사를 통해 한마음 한뜻 대선언을 통해 우리 모두의 지속 가능한 행복을 만들게 됐고, 위기를 기회로 살리는 힘을 키우게 됐다 면서 이제 그 힘과 믿음으로 더 자랑스럽고 행복한 SK를 만들어갈 것이며, 구성원에게 더 큰 행복으로 보답하겠다 고 다짐했다. 2008년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SK는 2009년 2월부터 경영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위기 극복을 다짐하는 의미에서 구성원들이 급여의 일부를 반납해 마련한 100억 원 재원으로 그룹 협력업체의 상생 인턴 1,800명을 선발 운영하기도 했다. 이어 범국가적으로 처한 경제 위기를 한마음 한뜻 으로 극복하겠다는 내용의 노사합의안을 의결하면서 위기 극복 및 구성원 행복 극대화를 위한 고통 분담과 고용안정 추구 등의 큰 원칙과 방향에 합의하는 성과를 이끌어낸 것이었다. SK 노사가 합의한 사항은 일자리 창출 유지를 통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완수 이해관계자의 행복을 나누기 위한 기업 가치의 지속적 창출 성과에 따른 합리적 보상으로 업무 몰입 여건 조성 노조 구성원의 고통 분담 및 회사의 고용 안정 노력 성숙한 노사관계의 SK 기업문화 정착 발전 등 5개 조항이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의 한솥밥 한식구론 정신을 이어받은 한마음 한뜻 선언에 따라 SK는 구성원 고용 안정에 노력하는 한편, 구성원 또한 임금인상 자제 등 고통 분담에 적극 동참하기로 했다. 구성원과 회사가 함께 창출한 성과를 바탕으로 성과가 많으면 많이 나누고, 적으면 적게 나눈다는 대원칙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었다. SK는 창립이래 지속돼온 무분규의 노사화합정신을 SK의 기업문화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SK그룹 60년사

163 SK건설, 세계적 지하공간 건설사로 성장 SK건설은 관계사들이 발주한 지하비축기지 건설 등의 경험을 바탕으로 터널과 지하공간 설계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보유했다. 이런 기술력은 SK건설이 고속철도 분야에서 최대 실적을 거두는 탄탄한 기초가 됐다. 우리나라의 지형적 특성상 고속철도인 KTX 선로는 수많은 장대터널로 이루어져 있어 SK건설이 기술력을 발휘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SK건설의 기술력은 해외 시장에서 더욱 각광 받았다. SK건설이 개발한 지하굴착 공법인 수펙스컷(SUPEX-CUT) 공법 은 효율성이 뛰어나 기존 공법보다 훨씬 경제적이며, 진동과 소음을 줄여 친환경적이었다. 수펙스컷 공법은 국내는 물론 일본을 비롯해 미국과 영국, 호주 등 해외에서도 특허를 획득하는 등 세계 최고 수준의 터널 발파 기술로 인정받았다. SK건설은 유럽과 일본 등 일부 국가만이 보유하고 있던 TBM 공법에서도 많은 실적과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러한 기술력이 TBM 공법으로 진행되는 각종 지하굴착 공사를 수주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SK건설은 그동안 축적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해외시장을 공략해 꾸준한 성과를 거뒀다. 2009년 4월 인도에서 망갈로르 원유비축기지 공사를 수주한데 이어 2010년 1월 파두르 원유비축기지 공사를 수주했다 월 수주한 라오스 수력발전소 건설공사와 같은 해 12월에 수주한 12억 달러 규모의 터키 해저터널 프로젝트 사업권 획득도 이런 기술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이처럼 SK건설은 플랜트뿐만 아니라 해외 토목 분야에서도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2011년 3월 착공한 유럽과 아시아를 해저 터널로 잇는 유라시아 터널 공사는 사업규모가 10억 달러에 달해, 국내 업체가 해외에서 수주한 토목 공사로는 리비아 대수로 공사 이후 최대 규모였다. 유라시아 터널 공사의 경우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해저터널 분야에서 국내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해외에 진출해 한국 건설업체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과거 국내 업체들이 저렴한 임금과 우수한 노동력을 경쟁력으로 삼아 해외 토목 공사를 수행해왔으나 자본력과 더불어 세계에서 몇 개국만이 보유한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토목사업의 해외 진출 역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터키와 인도 지역 진출을 가능하게 한 SK건설의 토목 기술력은 싱가포르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2009년 6월 싱가포르 지하철 공사를 수주하며 싱가포르 토목 건설시장에 처음 진출했다. 지하철(MRT) 도심선 2단계 공사 중 915공구를 단독으로 수주한 것이었다. 이어 2011년 4월 싱가포르 육상교통국이 발주한 지하철 도심선 3단계 공사 가운데 930공구 공사를 단독 수주했다. 싱가포르 시장에 진출한 지 2년 만에 2건의 지하철 공사를 수행하게 된 SK건설은 터널과 지하공간 분야 뿐만 아니라 대형 도로공사를 수주하며 싱가포르 토목공사 시장의 강자로 떠올랐다. 2011년 5월 싱가포르 육상교통국(LTA)이 발주한 1170억 원 규모의 터널 및 지하 도로공사를 수주했다. 싱가포르에서의 수주신화는 2012년에도 이어져 9월에 대형 토목공사 2건을 한꺼번에 수주하는 쾌거를 이뤘다. 싱가포르 민간 전력회사인 SP파워에셋이 발주한 지하전력구 터널 6개 공구 입찰에서 2개 공구를 수주한 것이었다. SK건설의 터널 굴착 기술력과 현장관리 능력이 다시 한번 싱가포르에서 인정받은 것이었다. SK그룹 60년사

164 SK케미칼, 세계 일류 제약회사로 도약 채비 년 7월 1일 SK케미칼 생명과학 부문은 청주공장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중장기 통합 생산기지로 성장할 청주공장의 가동으로 SK케미칼은 세계 일류 제약회사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섰다. 국내 제약업계 1위 기업을 향한 염원이 담긴 청주공장은 2년여 동안의 철저한 준비를 거쳐 모습을 드러냈다. 이로써 SK케미칼은 주요 의약품을 생산하는 청주공장을 비롯해 패치제 및 내용고형제를 생산하는 안산공장, 혈액제와 백신제를 생산하는 오산공장의 3개 공장 체제를 구축했다. 2005년 SK제약의 합병과 SK유화의 분리 등을 통해 생명과학과 정밀화학 중심의 성장 체제로 전환한 SK케미칼은 지속적인 사업구조 고도화를 통해 기업가치를 높여나갔다. 이후 SK케미칼의 생명과학 부문은 국내 톱10의 생명과학 기업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했으며, 세계 유수의 생명과학 기업들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글로벌 플레이어로 성장했다. 이 같은 글로벌 역량을 바탕으로 SK케미칼은 세계적 기업들과의 공동 마케팅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해나갔다. 2007년 4월에는 세계적 제약기업인 머크사의 한국법인인 한국MSD와 백신영업 마케팅을 위한 전략적 제휴를 체결했다. 머크사의 모든 백신제품에 대해 국내 제약회사와 파트너십을 맺은 것은 SK케미칼이 처음이었다. 2009년 6월에는 다국적 바이오 의약품 전문기업인 호주 CSL사와 신물질 SK- NBP601의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SK케미칼은 열악한 국내 신약 개발 여건 속에서도 2007년 항암제 개량신약 기술수출에 성공한 데 이어 SK-NBP601 초대형 기술수출에 잇달아 성공함으로써 R&D를 통한 회사의 글로벌 성장을 한층 가속화했다. 2009년 8월 SK케미칼의 항암제 개량신약인 SID530가 미국 FDA로부터 IND(임상시험계획승인신청제도) 허가를 획득했다. IND는 의약품의 시판허가에 앞서 실시되는 임상시험 승인을 신청하는 과정으로 SID530은 미국 현지에서 임상시험을 실시하는 한편, 이듬해부터 미국 내 의약품 허가를 진행했다. SK케미칼의 FDA IND 승인은 현지 업무 파트너를 두지 않고 SK케미칼이 미국 내 임상 대행사를 활용해 직접 모든 과정을 진행함으로써 한층 진보된 시스템 하에서 세계 최대시장인 미국 진출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SK케미칼은 2009년 12월 천연물 천식치료 신약인 SOTB-07 개발에 성공, 식약청의 임상시험 승인을 획득하고 국내 임상시험 2상에 돌입했다. 2012년 3월에는 치매 치료 패치인 SID710 이 유럽 내 판매허가 신청을 완료하고 EU 12개 주요 제약사들과 판권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SID710 은 간편하게 부착해 사용하는 패치 치료제로 24시간 효과가 지속되는 장점이 있어 치매를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획기적인 치료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SK그룹 60년사

165 쓰촨 대지진 참사 지역의희망, 행복소학교 년 9월 1일 SK그룹은 중국 약속한 후 그 학교를 행복소학교라 이름 붙였다 (중략) 쓰촨성(四川省) 펑저우시(彭州市) 중국 오지의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심는 SK의 희망 프로젝트 는 SK에너지 신헌철 통치현에 행복소학교 를 개교했다. 사장의 빈곤층 어린이 돕기에서부터 시작됐다. 2005년 9월 SK주유소 사장단과 함께 이는 쓰촨 대지진 직후인 2008년 5월, 중국 서부지역의 우루무치(烏魯木齊)를 방문한 신헌철 사장은 성금 1만 달러를 구호활동 지원차 해외 기업인으로는 기부하고 지속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이후 신헌철 사장은 직접 마라톤을 뛰며 제일 먼저 통치현 재해 현장을 찾은 모금에 나섰으며, 회사 또한 매칭그랜트(Mantching Grant) 방식을 통해 같은 금액을 최태원 회장이 임시로 마련된 천막에서 후원했다. 수업을 받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고 이후 희망 프로젝트는 그룹 전체로 확산됐다. 2006년 4월에는 그룹의 글로벌위원회가 즉석에서 학교 건립을 약속한 지 1년여 중국 선양에서 2만 달러를 기부했으며, 그해 5월 SK텔레콤 중국 우루무치 현지법인인 만에 이뤄진 것이었다. SK모바일도 10만 위안을 기부했다. SK텔레콤은 2007년 5월에도 82만 위안을 9월 4일 열린 기증식에서 최태원 회장은 SK가 학교 건설을 약속한 것은 그 SK는 중국 쓰촨성(四川省) 펑저우시(彭州市) 통치현에 행복소학교 를 개교했다. 이는 최태원 어떤 고난과 슬픔 속에서도 어린 꿈나무들이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회장이 쓰촨 대지진 직후인 2008년 5월 재해현장을 찾아 임시 천막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어린이들의 때문 이라며 행복소학교가 이름 그대로 학생과 시민 모두에게 행복한 미래를 향한 모습을 보고 즉석해서 학교 건립을 약속한 지 1년여 만에 이뤄진 것이었다. 희망의 상징이 되길 기원한다 고 말했다. 행복소학교는 SK건설이 최고 수준의 내진 설계와 친환경 공법을 적용해 시공했다. 총 300여 명의 학생을 수용할 수 있으며, 천문대와 에너지 정보통신 교육관 등 첨단 교육시설과 함께 각종 편의시설을 갖췄다. SK는 학교 건립에 그치지 않고 SK차이나 구성원 자원봉사단과 행복소학교 학생이 1대 1 결연을 맺도록 해 장학금을 지원하는 등 SK 행복 파트너 계획 을 마련해 지속적인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 행복소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은 행복소학교 건립을 기념해 준공 기념비를 세움으로써 SK와 최태원 회장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표시했다. 강물이 마르고 산이 무너져도 희망이 있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했다. 옛날 어려운 시기에 덕망 높은 상인이 있어 금전을 아끼지 않고 세상을 도왔다고 한다. 한국의 SK와 최태원 회장은 먼 길을 달려 쓰촨을 직접 찾았고,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천막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고 감동해 학교를 재건해주리라 SK그룹 60년사

166 전달했다. SK의 조건 없는 기부는 점차 중국 내에서 진정성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2006년 10월 중국 우루무치시가 희망공정 ( 希 望 工 程 )에 의해 새로 설립된 학교의 이름을 SK의 이름을 따 SK애심소학교 ( 愛 心 小 學 校 )로 명명했다. 외국기업의 투자가 활발한 동부 해안 지역과는 달리 서부지역에 속한 우루무치에서 특정 외국기업의 이름을 딴 소학교가 세워진 것은 SK애심소학교 가 처음이었다. 국경을 넘어 대륙을 향해 뻗어가기 시작한 SK의 사회공헌은 교육을 넘어 환경사업으로 이어졌다. 중국의 황사 발원지 녹색사업 지원에도 앞장선 것이었다. SK(주)는 2007년 5월 3일 한-중 우호 녹색만리장성 사업을 위한 3억 원 전달식을 갖고 중국 내 황사방지를 위한 방풍림( 防 風 林 ) 조성을 약속했다. 이에 따라 2007년 중국 네이멍구( 內 蒙 古 ) 사막지역 2.7km 2 내에 총 20만 그루의 SK우호림 을 조성했다. 이후 SK(주)에서 SK에너지로 이름을 바꾼 뒤에도 2009년까지 총 7억 5,000만 원을 지원, 226만 그루의 방사림 조성사업을 펼침으로써 친환경 기업 이미지를 높이는 한편, 환경문제 해결에 모범적인 선례를 만들었다. 이밖에도 2001년부터 후원을 시작한 중국판 장학퀴즈인 SK장웬방 은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 중 최고의 인지도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1974년 SK가 자금을 출연해 설립한 한국고등교육재단은 베이징포럼과 상하이포럼 등의 다양한 학술 교류를 지원하고 있다. 이같은 활동을 통해 SK는 중국 내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2010년에는 중국인 마음 속 글로벌 기업 3위에 선정되기도 했는데, 이는 IBM, 애플, 마이크로소프트보다도 높은 순위로 한국으로는 유일하게 10위권 안에 들었다. 현지화의 차원에서 행해지는 일회성 기부가 아닌 마음으로부터 다가가는 SK의 사회공헌 활동이 중국인들에게 인정받은 결과였다. SK에너지, 신약 개발 신화, 카리스바메이트 SK에너지가 1999년 독자 개발한 뒤 10년간의 임상실험을 마친 간질 치료제 카리스바메이트 의 신약 판매허가를 2009년 10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신청했다. 1993년부터 시작한 SK에너지의 신약 개발 프로젝트가 마침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SK에너지는 1992년 차기 성장 사업군 도출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출범시켰다. 그룹차원에서 이동통신에 이은 차기 성장사업군이 바로 정밀화학이었다. 그중에서도 의약사업은 성공하면 고부가가치 기술로 이어지지만 실패에 대한 부담 또한 매우 높은 분야였다. 1992년 당시 백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국내 제약업계에 신약 개발 실적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만 봐도 SK의 제약산업 진출은 쉽지 않은 길 임에 분명했다. SK에너지는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신약 개발 의 신화창조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1993년 P-프로젝트 (Pharmaceutical-Project)를 출범시킨 SK는 글로벌 수준의 R&D를 위해 세계 신약의 최전선 으로 통하던 미국 뉴저지 주에 미주임상센터부터 구축했다. 울산에도 국내 연구팀을 설치했다. P-프로젝트팀은 첫 번째 연구 과제로 간질, 우울증 같은 중추신경계 질환을 선정했다. 빠르게 늘고 있는 시장 수요에 비해 아직 개척되지 않은 블루오션인 까닭이었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연구개발 과정 때문에 다른 제약업체들은 엄두도 못 내던 시절이었다. 첫 번째 목표로 미국 신약 개발 승인인 IND 의 획득을 추진했다. IND를 획득하면 임상실험을 할 수 있는데, 중추신경계 신약 개발에 있어 IND는 혹시 있을지도 모를 부작용을 최소화해 신약의 정확성과 안전성을 입증하는 중요한 관문이었다. SK그룹 60년사

167 그러나 고비는 예외 없이 찾아왔다. Pro-drug형 간질 치료제 개발 과제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유사한 계열의 간질 치료제인 펠바메이트 (Felbamate)가 소아 골수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로 시장에서 퇴출된 것이었다. 여기저기서 간질 치료제 개발에 대한 의문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위기 상황에 대비한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으로 준비해오던 우울증 치료제로 신약 개발은 다시 점화됐다. 그 결과 우울증 치료제 YKP10A 로 1996년 SK 최초의 IND 승인을 받았다. 단순히 SK 최초를 넘어 국내 제약업계 백년 역사상 최초의 IND 승인을 기록한 순간이었다. 여세를 몰아 1998년 간질 치료제 YKP 509 로 2년 만에 2번째 IND 승인 획득에 성공했다. 1999년 YKP 509 의 임상실험에 필요한 천문학적 비용을 고민하던 SK는 문제의 해답을 다국적 제약사 존슨앤존슨 과의 전략적 제휴에서 찾았다. 임상1상 단계까지 마친 YKP 509 의 라이선스를 존슨앤존슨에 주고, YKP 509 가 출시됐을 때 판매액의 일정 부분을 로열티로 받는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2008년 간질 환자를 대상으로 대규모 임상2상 및 임상3상 시험을 마친 존슨앤존슨은 YKP 509 를 카리스바메이트 라 이름 짓고 2008년 10월 마침내 미국 FDA에 신약 판매 허가 신청을 냈다. 카리스바메이트 의 세계 제약 무대 데뷔가 바로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FDA에 신약 판매 허가를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앞서 SK(주)는 2003년에 정신분열증 치료제 YKP 1358 로 우울증 치료제, 간질 치료제에 이어 세 번째로 미국 FDA의 임상시험 허가를 받는 쾌거를 이뤘다. 3회 연속 성공적으로 미국 FDA 임상시험 허가를 얻은 경우는 국내에서 SK에너지가 처음이었다. 특히 그 어떤 기업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분야인 중추신경계 질환에서의 성공 신화를 쓴 것이었다. 윤활기유 전문기업 SK루브리컨츠 출범 년 10월 1일 SK에너지는 윤할유사업을 전격 분할, SK루브리컨츠를 출범시켰다.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의 생존 여력 확보와 이후 경제회복기에 지속가능한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추진한 SK루브리컨츠 설립은 윤활유 사업에서 보다 전문적인 경영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세계 최고 수준의 기유 윤활유 업체로 성장할 수 있는 모멘텀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이로써 SK에너지는 사업구조의 유연성을 확보하게 된 한편, SK루브리컨츠의 기업가치 상승에 따라 투자지분의 가치가 함께 오르는 상호 윈윈 의 기업가치 제고도 가능하게 됐다. SK루브리컨츠는 기유와 완제품인 윤활유를 생산 판매하게 됐으며, SK에너지가 보유하고 있던 윤활유제품 브랜드 지크와 전 세계 고급기유(Group Ⅲ)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던 시장지배력을 기반으로 한층 공격적인 사업을 펼쳐나갈 수 있게 됐다. SK루브리컨츠의 질주는 출범과 동시에 곧바로 시작됐다. 출범 후 불과 3개월이 지난 시점인 2010년 1월 글로벌 메이저 자동차그룹인 GM의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 북미지역 본부에 이어 호주 법인인 GM 홀덴 (GM Holden)과 잇달아 지크의 단독 공급 계약을 맺었다. 이로써 GM이 생산하는 자동변속기유에 SK루브리컨츠의 윤활유를 탑재, 북미지역의 자동차 소비자들에게 판매함으로써 SK루브리컨츠는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의 최대 격전지인 북미시장에서의 마케팅을 한층 강화하는 효과를 얻었다. GM과의 계약을 통해 SK루브리컨츠가 공급한 윤활유는 연간 6,000여만 달러에 SK그룹 60년사

168 달했으며, 이는 연평균 400만 대 이상의 물량으로 미국 시장에서 판매되는 모든 GM자동차에 탑재되는 규모였다. GM의 독자 브랜드인 덱스론VI (DEXRON VI)에 공급할 수 있는 자동변속기유 생산업체는 전 세계적으로 SK루브리컨츠 외 1개 업체가 유일했다. 2010년 3월에는 러시아 최고 권위의 자동차 전문 잡지인 자룰롬(Za Ruleum)과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이 공동 조사한 윤활유 제품 평가에서 SK루브리컨츠의 ZIC A+ 가 최고 제품에 선정됐다. SK루브리컨츠는 2010년 11월 스페인의 다국적 에너지 기업인 렙솔(Repsol)과 함께 스페인 남동부해안의 카르타헤나에 Group Ⅲ 윤활기유 공장을 건설하기로 하고, 주요 조건에 대한 합의서 (HOA; Heads of Agreement)를 교환했다. SK루브리컨츠의 네 번째 생산기지가 될 스페인 공장은 1일 1만 3,300배럴의 생산 규모로 국내의 제1, 2 윤활기유 공장 및 인도네시아의 윤활기유 공장에서 생산하는 윤활기유의 절반에 가까운 규모였다. 또한 국내 정유회사 중 최초로 유럽에 건설하는 윤활기유 공장으로 SK루브리컨츠의 가장 큰 해외시장인 유럽에 생산기지를 확보한다는 의미와 함께, 글로벌 공급망의 강화로 미국 및 유럽시장을 확대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SK텔레콤, 하나카드 지분 인수로 모바일 금융시장 진출 SK텔레콤은 2009년 12월 이사회에서 하나카드 지분 49%를 신주인수 방식으로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SK텔레콤은 지분 51%를 보유한 하나금융 지주에 이어 하나카드의 2대 주주 지위를 확보하고, 모바일 금융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SK텔레콤은 하나카드 지분 취득을 계기로 T 캐시등 기존 모바일 결제 사업에 더해 커머스(Commerce) 시장에서 ICT역량을 활용한 새로운 차원의 고도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또 하나카드의 기존 플라스틱 카드 사업 외에 모바일 신용카드를 중심으로 한 차세대 결제 서비스를 추진해 통신-금융 컨버전스 서비스 시장을 본격 활성화한다는 구상이었다. SK텔레콤은 하나카드 주식인수를 계기로 이와 같은 모바일 신용카드 및 스마트 페이먼트 서비스를 본격화했다. 특히 고객 혜택 증대를 위해 기존 OK캐시백과 SK텔레콤 멤버십 프로그램과의 협력도 다양하게 추진했다. SK텔레콤은 이에 앞서 최첨단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해 모바일 금융서비스 시장에 진출했다. 2008년 3월 세계적인 금융기관인 그룹과 공동으로 조인트벤처 형태의 모바일 금융 플랫폼 서비스 회사인 모바일머니벤쳐스를 설립했다. 휴대전화 등 다양한 모바일 디바이스를 활용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였다. 2008년 하반기에 아시아와 미국 일부 대도시에서 시범 서비스를 시작해, 2009년부터는 서비스 지역과 대상을 확대해 상용화했다. SK그룹 60년사

169 SK네트웍스, 워커힐 합병과 제주 핀크스 인수 SK네트웍스는 2009년 12월 정기이사회를 열고 자회사인 워커힐을 흡수합병하기로 결의했다. 호텔시설 개선 및 확장, 신규 사업 추진 등 투자관련 의사결정의 신속성과 효율성을 확보해 워커힐의 추가 성장을 가속화함으로써 투자 수익성을 증대시키기 위함이었다. SK네트웍스는 워커힐 호텔 합병과 함께 2010년 9월에는 제주 핀크스 리조트를 인수해 부동산 통합법인인 SK핀크스 (SK Pinx)를 출범시켰다. 이로써 SK네트웍스는 국내는 물론 중국 및 아시아 VVIP 고객을 대상으로 글로벌 레저 관광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SK네트웍스가 인수한 핀크스 리조트는 약 192만m²(58만 평)의 부지 위에 타운하우스, 빌라 등 최고급 주거시설과 커뮤니티센터(피트니스센터, 수영장, 온천탕, 레스토랑) 및 생태공원, 미술관, 부티크형 호텔, 골프코스 등 복합 휴양시설을 보유하고 있었다. SK네트웍스는 천혜의 관광지 제주의 자연경관과 더불어 세계적인 건축가와 설계가가 참여해 만든 명품 휴양시설을 갖춘 제주 핀크스 리조트 인수와 워커힐 합병으로 차별적 테마를 갖춘 리조트 시설과 SK네트웍스가 전개하고 있던 패션, 와인, 한식 등 프레스티지 상품 서비스의 연계가 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휴양형 해양형 도심형 리조트 시설을 기반으로 최고급 주거상품을 비롯한 프레스티지 라이프스타일을 충족시킬 수 있는 글로벌 레저 관광사업 모델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찾아가는 서민금융 SK미소금융재단 설립 SK는 2009년 12월 23일 서울 영등포구 극동빌딩 2층 SK미소금융재단 본점에서 SK미소금융재단 현판식을 갖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개시했다. 미소금융은 정부의 친서민정책의 핵심사업 중 하나로 서민을 대상으로 한 소액신용대출(Micro Credit)사업을 말한다. 아름다운 소액대출 이라는 의미에서 미소( 美 少 ) 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 제도권 금융을 이용하기 어려운 취약계층을 위해 은행 문턱을 낮추고 이들이 사회,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기 위해 설립했다. 정부가 설립한 미소금융중앙재단을 중심으로 SK를 비롯한 6개 민간기업과 5대 은행이 각각 재단을 설립해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미소금융은 신용등급 7등급 이하의 저신용층, 영세사업자,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며 대출한도는 최대 5,000만 원이다. 이자는 연 2%~4.5%로 제도권 금융회사보다 낮으며, 대출자는 대출을 받은 뒤 5년 동안 원리금 균등으로 대출금을 나누어 상환할 수 있다. SK가 미소금융에 참여한 것은 2009년 10월 미소금융중앙재단과 미소금융사업 공동지원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면서부터였다. 이 협약을 통해 SK는 이후 10년 동안 매년 200억 원씩 총 2,000억 원의 자금을 기부하기로 약속하고, 미소금융 활성화를 통해 서민경제의 안정에 기여하기로 했다. SK미소금융의 활동이 다른 미소금융과 차별화됐던 점은 찾아가는 서민금융 이다. SK미소금융재단은 생업이 바쁘고, 정보 접근성이 떨어져 미소금융의 혜택이 절실히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지점을 찾지 못하는 서민들을 위해 현장을 찾아가 고객과 SK그룹 60년사

170 상담하는 찾아가는 미소금융 서비스를 최초로 운영했다. 뿐만 아니라 차량을 이용한 순회상담소를 운영함으로써 가까운 곳에 미소금융 지점이 없는 소외지역의 서민들에게까지 미소금융의 혜택이 골고루 미칠 수 있도록 했다. SK미소금융은 프랜차이즈 창업자금, 창업임차자금, 운영자금, 시설개선자금, 무등록사업자 지원자금 등의 다양한 대출상품을 개발했다. 이 중 용달사업자, 봉제사업자, 여성가장 등 사회적 취약계층을 위해 특화된 상품들은 서민 생활의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대출 외에도 SK미소금융은 앞서 출범한 전문 자원봉사단 SK프로보노와 협력해 미소희망봉사단 을 조직하고 창업에 나선 고객들에게 전문적인 경영 컨설팅을 함께 제공했다. 미소희망봉사단의 이 같은 활동은 저소득층과 저신용층이 실질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데 큰 보탬이 됐다. 이 같은 노력을 인정받아 SK미소금융은 2010년 12월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사업 규모도 꾸준히 성장해 출범 후 1년 반 만인 2011년 7월까지 총 2,025명을 대상으로 222억 원을 대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2012년 말 기준 SK미소금융은 전국 13개 지점과 출장소 9군데를 운영하고 있으며, 대출자 수는 2012년 5월 3,500여 명에서 빠르게 늘어 2012년 12월 10일에는 5,000호 대출자가 탄생했다. SK텔레콤, 스마트시대 개막 스마트폰의 등장은 이동통신 시장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었다. SK텔레콤은 가장 개방적이며, 다양성을 보장하는 모바일 운영체제 라는 평가를 받고 있던 안드로이드 도입을 주도해 스마트폰 혁명을 앞당겼다. SK텔레콤은 2010년 2월 국내 최초로 안드로이드OS를 탑재한 모토로라의 스마트폰 모토로이 를 독점 출시했다. 이와 함께 삼성전자의 갤럭시A, 팬택의 실리우스 등 국내 제조사들이 생산한 안드로이드 기반의 스마트폰도 론칭하며 라인업을 갖추었다. SK텔레콤은 이미 2007년 삼성전자의 블랙잭 출시로 스마트폰 개념을 알린 바 있었으며, 2008년에는 삼성전자의 T옴니아 를 출시해 국내 시장에서 스마트폰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어 12월에는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대표적 단말기 중 하나인 RIM의 블랙베리 를 도입했고, 2009년에는 소니에릭슨의 엑스페리아, HTC의 터치 다이아몬드 등 다양한 해외 스마트폰을 론칭해 본격적인 스마트폰시대를 예고한 바 있었다. SK텔레콤이 주도한 안드로이드OS의 스마트폰 시대의 도래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다가왔다. 2003년 국내 첫 스마트폰인 삼성전자의 미츠 PDA 를 론칭한 이후 2010년 5월에는 국내 이동통신사 가운데 처음으로 100만 번째 스마트폰 가입고객이 탄생했는데, 2009년 12월 이후 6개월 간의 가입자가 70만 명에 달했다. 특히 2010년 6월에 출시한 갤럭시S 는 연일 판매 기록을 갱신하며 불과 닷새 만에 10만 가입자를 돌파했다. 갤럭시S의 놀라운 판매효과와 맞물려 토종 대표 앱스토어인 T 스토어 도 활기를 띠는 등 안드로이드OS를 중심으로 한 국내 SK그룹 60년사

171 무선인터넷 생태계가 급속하게 진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SK텔레콤이 주도하는 신기록 행진이 계속됐다. 2010년 8월에는 안드로이드폰 사용자가 100만 명을 돌파했고, SK텔레콤의 스마트폰 가입고객도 국내 통신사 최초로 200만 명을 돌파했다. 또 2010년 9월에는 갤럭시S가 불과 79일만에 100만 가입자를 돌파하며 국민 스마트폰으로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SK텔레콤이 도입한 안드로이드OS는 도입 1년이 채 되지 않아 가입고객 500만 명을 확보하며, 선발 OS인 아이폰, 윈도우모바일, 블랙베리 등을 누르고 명실상부 스마트폰의 대표 운영체제로 자리매김했다. SK텔레콤은 2011년 3월 국내 이동통신사 중 처음으로 스마트폰 500만 고객을 돌파 했다. 2010년 5월 국내 최초로 스마트폰 100만 가입 고객을 돌파한지 불과 1년이 되지 않아 이루어낸 성과였다. 한편 SK텔레콤은 안드로이드OS를 기반으로 국민 스마트폰 시대를 이끈 여세를 몰아, 2011년 3월에는 아이폰4를 출시해 고객들의 니즈에 부응했다. SK텔레콤은 안드로이드폰과 아이폰의 양대 OS를 모두 갖추고 명실상부 국내 최대의 이동통신회사로서 스마트폰 시대를 이끌었다. SKC, 필름사업의 진화 SKC는 2010년 6월 전 세계 광학용 PET 필름시장의 25%를 점유하며 글로벌 선두 주자로 우뚝 섰다. LCD TV나 모니터는 서로 기능이 다른 필름들을 겹쳐 만드는데, 광학용 PET필름은 LCD에 들어가는 필름의 원단이라고 할 수 있다. 2006년부터 LCD와 PDP TV가 빠르게 보급되자 SKC는 광학용 PET필름 생산 증설로 세계시장에 빠르게 뻗어나갔다. 사실 2006년 중후반까지 SKC는 국내 광학용 PET필름 시장에서 독점적인 위치였지만, 당시 SKC가 보유한 기술은 LCD나 PDP TV용보다 품질 수준이 낮은 산업용 고투명 디스플레이 필름이었다. 때문에 LCD TV 시장이 2006년 하반기부터 확대되기 시작하자 국내시장을 공략해 들어오는 일본 필름업체들의 공세에 밀려 판매량이 떨어지는 위기에 처했다. SKC는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광학소재 MPR SUPEX팀 을 구성해 Global NO.1 전략을 수립했다. 문제는 얼마나 빨리 생산 능력을 확보하느냐였다. 엄청난 시간과 자금이 투자되는 신규설비 도입은 시간적인 면에서나 원가경쟁력 면에서 무리가 아닐 수 없었다. SKC는 수원공장의 산업용 필름 생산라인 13기 중 2기를 고급 광학용으로 개조하기로 했다. 전 세계 PET필름 역사상 전례가 없는 도전이었다. 전용 설비 발주보다 시장 대응은 10개월이나 앞당기고, 비용은 480억 원이나 절약하는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하지만 감가상각 기간마저 끝나가는 14년 묵은 기계를 개조한다고해서 과연 최고 품질의 광학용 필름을 생산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는 남았다. 2009년 9월 개조 공사를 마치고 드디어 시험생산에 돌입했다. 첫 생산 제품은 SK그룹 60년사

172 참담했지만 외관, 코팅, 이물 등 핵심 품질 요소를 하나하나 개선하면서 생산은 점차 안정을 찾아나갔다. 개조된 생산라인은 광학용 전용설비보다 25%나 높은 생산 능력을 갖추며 전 세계 PET필름업체들이 엄두조차 내지 못한 역사를 창조했다. 그로부터 1년 뒤 LCD 시장이 폭풍 성장하면서 SKC는 생산능력을 앞세워 시장 공략에 나섰다. 하지만 이내 품질 이라는 거대한 벽에 가로막혔다. 고객이 막대한 불량 보상금을 청구하는가 하면, 노무라연구소는 일본 경쟁사에 비해 품질만큼은 여전히 열세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이에 따라 품질보증, 생산, 기술, 연구소, 설비 관련 팀장으로 구성된 협의체가 매일 아침 머리를 맞대고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그 결과 자체개발한 실시간 측정기로 필름 1m 2 당 이물 수준을 수만 개에서 수십 개로 줄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SKC는 세계 최대의 생산능력을 갖춘 광학용 필름업체로 거듭났다. SKC는 필름사업의 확대에 발맞춰 글로벌 생산체제를 더욱 강화했다. 2007년 6월 폴란드 남서부에 위치한 브로츠와프(Wroclaw)에 광학용필름공장(법인명 SKC eurodisplay) 착공식을 갖고 유럽 진출의 첫발을 내디뎠다. 2008년 4월 완공된 폴란드 광학용필름공장은 SKC가 세계시장 점유율 1위인 LCD TV용 광학용필름(확산판, 반사판)을 생산하고 있다. 2010년 10월 25일에는 중국 상해 인근 장쑤( 江 蘇 )성 난퉁( 南 通 )시에 PET필름 합작공장(법인명 SKC Jiangsu Hightech Plastics) 착공식을 거행, 세계 최대 PET필름시장인 중국에 진출했다. 2010년 8월 중국에 법인설립을 완료했으며, 10만 평 부지에 2012년 말 PET필름 2개 라인을 신설했다. 이로써 SKC는 중국시장을 선점하고 고기능 PET필름시장에서 세계 1위의 점유율을 더욱 확고히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SK 차이나, 중국 사업 전열 재정비 년 7월 SK 차이나가 중국 내 사업 및 조직 정비를 모두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중국 중심 글로벌리제이션 활동에 들어갔다. SK 차이나의 역사적인 출범을 맞아 최태원 회장은 베이징은 서울과 더불어 SK그룹의 헤드쿼터 기능을 맡게 될 것 이라고 밝히고 SK 차이나는 중국을 한국과 더불어 우리의 내수시장, 또 하나의 국내시장으로 보는 도전적인 시각으로 전 세계를 향한 글로벌리제이션에 나서야 한다 고 강조했다. SK 차이나의 조직은 박영호 SK(주) 사장을 총괄사장으로 한 CIC 형태로 구성됐다. 이에 따라 에너지CIC, 화학CIC, G&I(정보통신 및 신사업 개발) CIC, 유통물류 HQ가 중국 내 사업을 담당하게 됐으며, 기술개발은 TIC, 경영지원 및 전사 기능은 CMS CIC가 각각 담당하게 됐다. SK 차이나가 CIC의 형태를 띠게 된 것은 중국 중심 글로벌리제이션의 최전선에서 존경받는 진정한 중국 기업, SK 를 목표로 전 그룹의 자원과 역량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서였다. 이로써 SK 차이나는 관계사 별로 분산돼 있던 중국 사업의 역량과 자원을 효율적으로 결집해 보다 높은 중국 중심 글로벌리제이션의 성과를 창출하는 막중한 역할을 짊어지게 됐다. SK는 SK 차이나의 출범에 맞춰 GSC(Global Service Center; 글로벌 통합재무관리센터)의 구축했다. 프로젝트는 중국 내에 산재해 있던 총 36개의 SK에너지, SK텔레콤, SK네트웍스, SK China 현지법인을 대상으로 2009년 6월부터 2010년 8월까지 총 15개월에 진행됐다. GSC의 구축은 체계적인 리스크 관리와 지속적인 비즈니스 성장 지원 등 SK의 중국 지역 경영관리 수준이 한 단계 SK그룹 60년사

173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됐으며, SK의 모든 글로벌 사업장에서 IFRS(국제회계기준) 등의 글로벌스탠더드에 입각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재무 인프라를 갖추게 됐다. 본격적인 출범 이후 SK 차이나는 현지화 현장화 현실화를 통해 글로벌리제이션의 실행력을 높여나갔다. 대부분의 의사결정을 중국 현지에서 완결되는 시스템을 갖춰 사업 추진에 걸리는 시간을 대폭 단축시켰으며, 사업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는 중국 전문가의 견해와 통찰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철저하게 현지화했다. 뿐만 아니라 베이징 상하이 청두 선양 등에 지역별 헤드쿼터를 설립해 실제 사업이 이뤄지는 현장에서 사업 기회 포착과 역량 결집을 진두지휘하게 했다. 또한 오픈 비즈 플랫폼으로서 그룹의 제반 사업 수행 역량과 함께 글로벌 비즈 네트워크를 결집하는 방식으로 그룹이 가진 모든 글로벌 역량을 모아 중국 사업의 성공 확률을 높였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SK 차이나는 출범 첫해부터 놀라운 성장을 했다. SK차이나 원년인 2010년에 달성한 매출은 230억 위안(한화 약 4조 원)으로 전년 대비 15% 이상이 향상된 실적이었다. 특히 아스팔트 사업의 경우 개질 아스팔트 생산 및 판매액이 불과 1년 만에 4.5배 증가했다. 이밖에도 2009년에 설립한 아로마틱 조인트벤처의 매출이 3배 이상 증가했고, 텔레매틱스 사업도 2009년 대비 약 46%의 성장을 기록했다. 2009년 본격 추진에 들어간 패션사업은 1년여 만에 15개 도시에 점포를 개설하기도 했다. 기존 사업뿐 아니라 SK 차이나는 신규사업 부문에서도 혁혁한 성과를 달성했다. 특히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던 도시화 추세에 발맞춰 도시개발, 환경, 인프라 구축 등의 사업 기회를 발굴해냈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쓰촨성 청두시에서 진행되고 있는 미디어 클러스터 조성사업을 꼽을 수 있다. 중국 서부를 대표하는 문화창의산업단지로 조성되는 청두 미디어 클러스터에는 중국, 한국, 세계를 대표하는 문화, 연예, 방송 콘텐츠 제작사들이 들어설 예정이며, 도시개발의 필수 인프라인 수처리 및 폐기물 처리, 토양 정화 등 환경 사업 진출도 함께 추진이 진행되고 있다. 이밖에 청두시와의 전략적 협력 MOU 체결을 통해 중국 내에서도 성장 가능성이 높은 서부 내륙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으며, 랴오닝성 선양시의 버스터미널 인허가를 획득하고 상가 및 오피스텔 등 유통 물류산업에도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SK 차이나의 중국 내에서의 활약은 비단 사업적 성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CCTV가 선정한 중국인 눈에 비친 글로벌기업 3위, 남방주말 글로벌 500대 기업 CSR(사회공헌) 6위에 랭크되면서 SK가 중국의 기업시민, 진정한 차이나 인사이더로 자리매김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차이나 인사이더로서의 SK의 입지 강화는 중국 진출 이래 최대의 성과로 결실을 맺었다. SK그룹은 2013년 2월 중국의 국영 석유기업인 시노펙과 부탄디올(BDO) 합작공장 설립계약을 체결한 것이었다. 2015년 말까지 연산 20만 톤 규모의 부탄디올 플랜트를 건설 및 운영하는 것으로, 2013년 하반기 충칭의 창쇼우( 長 壽 ) 경제기술개발구에 착공될 이 플랜트는 중국 내 부탄디올 생산공장 중 최대 규모다. 이 사업은 SK종합화학과 시노펙, 영국 석유 메이저인 BP 등 3사가 협력해, 천연가스를 원료로 부탄디올과 초산을 동시 생산할 수 있는 컴플렉스를 조성하는 충칭 부탄디올-초산 일체화 프로젝트 의 일환이었다. 최태원 회장은 2011년 12월 중국을 방문해 시노펙 왕티엔푸 총경리와 석유화학 공장건설과 기술 교류 등 포괄적인 협력 추진에 합의한 후 2012년 2월 충칭에서 부탄디올 합작사업을 위한 양해각서 체결을 이끌어냈다. 이 프로젝트는 SK의 중국 내 사업 확장에 다시금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SK그룹 60년사

174 SK에너지, 기술수출의 진화 SK에너지는 1998년 대만 포모사(Formosa)사를 시작으로 2008년까지 동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에 이르는 16개국에서 신규 공장의 시운전 지원, 현장 교육, 정비 기술 및 시스템 구축 등 66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등 해외 기술사업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구가해왔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석유화학업계 대규모 프로젝트의 취소 순연, 사내 신증설에 따른 가용자원의 제한, 경쟁력 있는 기술상품의 지속적인 발굴 어려움 등으로 한계에 봉착하기도 했지만 2007년 인도네시아 페르타미나사, 싱가포르 JAC사와 O&M(Operation & Maintenance) 서비스 계약등 대규모 프로젝트 수주를 통해 다시 확대되기 시작했다. 특히 일본 타이요오일(Taiyo Oil)사 기술자 10명이 울산컴플렉스에서 고도화 시설 관련 기술 교육을 받는 등 SK에너지 해외 기술사업은 동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중심에서 선진국으로 영역을 넓혀갔다. 그리고 2009년 9월 베트남 최초의 정유공장 BSR사와 공장 운영 및 유지 보수 서비스(O&M) 계약을 체결, 기술수출 기업으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창사 초기 미국 걸프사에서 어렵사리 기술을 전수받은 기술수입 기업 SK에너지가 47년 만에 다른 나라의 정유공장을 움직이는 기술 수출기업으로 발돋움한 것이었다. BSR O&M 프로젝트는 SK에너지가 47년 동안 쌓아온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운영 지식, 노하우 등의 무형자산이 바탕이 된 성과로, 지난 10년간의 기술사업 성과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프로제트였다. 그때까지의 해외 기술사업이 고객 회사의 특정 공정에 대한 O&M 서비스 수행에 그쳤다면, BSR O&M 프로젝트의 경우 SK에너지가 정유공장(Refinery) 운전, 설비 및 안전 관리에 대한 모든 권한과 책임을 갖고 공장을 직접 운영하게 됐다. SK에너지의 정유공장 운영 능력을 글로벌 현장에서 직접 검증해 보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10개월 동안 베트남 최초의 정유공장 운영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SK에너지는 2010년 7월 베트남 BSR사의 요청으로 신규 합성수지(PP)공장에 대한 공장 운영 및 유지보수(O&M)서비스 관련 계약을 맺었다. SK에너지의 기술수출은 O&M 부문뿐 아니라 전방위적으로 이뤄졌다. 2003년 8월 중국 베이징에서 화베이( 華 北 )석화와 정유 석유화학 공장의 주요 운영기술 중 하나인 설비 위험도 검사 (RBI)기술판매 계약을 체결하고 생산 기술 노하우를 업계 처음으로 중국에 판매했다. 2005년 7월 6일에는 세계 최초로 개발한 APU기술 (열분해 가솔린 최적 활용기술) 수출을 위한 사업협력 계약을 프랑스 악센스(Axens)사와 체결했다. 세계적인 촉매공정 기술판매 회사인 악센스사는 전 세계 석유화학공장에 SK(주)가 개발한 APU 공정과 촉매를 판매하고, SK(주)는 악센스사로부터 기술판매 로열티와 함께 촉매공급에 따른 촉매 판매수익을 받게 됐다. SK그룹 60년사

175 스마트 워크플레이스 toktok 오픈 년 8월 23일 SK그룹은 그룹 공통 모바일 포털 톡톡(toktok) 을 1차 오픈하고 본격 스마트 오피스 시대를 선언했다. SK(주)와 SK C&C에서 첫선을 보인 톡톡 은 이후 8월 말까지 순차적으로 SK그룹 전 계열사로 확산됐으며, 메신저 등 업무 특화 서비스를 계획된 단계에 따라 차례로 오픈했다. 이로써 SK그룹 구성원이라면 스마트폰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개인업무는 물론 협업까지 가능한 내 손안의 사무실 을 구현할 수 있게 됐다. 톡톡 의 본격 오픈에 앞선 7월부터 SK그룹은 구성원을 대상으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갤럭시S를 보급함으로써 모바일 오피스 시대를 준비했다. SK그룹의 모바일 오피스는 크게 제약 없는 업무 환경 커뮤니케이션 스피드 혁신 협업을 통한 시너지 제고를 목표로 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컴퓨터 등의 모바일 단말기 솔루션, 이동통신망을 활용해 언제 어디서나 업무 처리가 가능한 연속적인 업무 환경을 제공하고, 관계사 간 벽을 허문 실시간 소통으로 조직의 속도를 높이며, 이를 바탕으로 원활한 협업을 이뤄 그룹 전체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었다. 2010년 5월 SK텔레콤은 톡톡 의 오픈에 앞서 스마트폰 기반의 업무포털 T 오피스 를 구축하고 그룹 내에서 가장 먼저 모바일 오피스 시대를 열었다. T 오피스 구축으로 평균 10시간 정도 소요됐던 전자결재 승인시간이 한 시간 이상 단축됐고, 전체 이메일 가운데 43%를 업무시간 뒤나 휴일에 처리하게 됨으로써 전체적인 업무 효율성이 5.10% 가량 높아졌다. 모바일 오피스가 업무 효율성 향상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력이 여실히 증명된 셈이었다. SK네트웍스, 버추얼(Virtual) 철강기업 의 꿈 이루다 SK네트웍스는 원자재 형태의 상품을 해외 현지 바이어에 수출하던 전통적인 무역방식을 업그레이드해 최종고객이 원하는 맞춤형 상품형태로 가공해 현지시장에 직접 판매하는 고객 중심의 마케팅 무역 서비스 를 실현함으로써 철강 무역사업의 경쟁력을 높여나갔다. SK네트웍스는 이러한 무역 혁신전략 하에 세계 최고의 철강회사인 포스코와 합작으로 중국 저장성 핑후( 平 湖 )시에 철강가공센터인 SK- POSCO핑후강철유한공사(POSK- PPC)를 완공, 2007년 10월 준공식을 갖고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양사의 합작투자는 국내 최대 종합상사인 SK네트웍스와 세계 최고 철강 메이커인 포스코가 해외시장의 공동 공략을 위해 손을 잡았다는 점에서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국내기업 간 사업 협력 모델로서 의미가 있었다. 2008년 5월에는 중국 5대 동( 銅 )복합기업인 북방동업 지분 39%를 인수, 경영에 본격 참여했다. 이는 중국의 자원 보호주의가 강화되고, 전 세계적으로도 자원확보 경쟁이 심화되고 있던 가운데 일구어 낸 성과로 의미가 남달랐다. 북방동업 지분 인수는 국내기업의 해외금속 복합기업 지분 인수 가운데 최대규모였다. 국내 최대 규모 비석유 자원개발 전문가를 보유한 SK네트웍스는 이들을 북방동업 등 투자기업에 적극 파견해 자원개발 사업역량을 체계적으로 습득하게 했다. SK네트웍스는 당시 검토 또는 추진 중인 프로젝트만 30여 개에 달하고 이 가운데 카자흐스탄,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추진 중인 광물자원 관련 대형 프로젝트에서도 조만간 추가성과를 낼 것으로 알려져 있는 등 자원개발 분야의 새로운 강자로 급부상하고 있었다. SK네트웍스가 이처럼 광물자원 개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SK그룹 60년사

176 있었던 것은 경영층의 확고한 사업의지와 지원, 전 세계에 걸친 지사망을 통한 신속한 정보력, 현지 정부 등 관련기관과의 관계 구축, 지속적인 실적호조에 따른 풍부한 자금력, 전사 차원의 리스크 매니지먼트 강화 등 사업추진에 필요한 전반적인 요건이 시너지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SK네트웍스는 2010년 1월 캐나다 CLM사와 자동차 600만 대 생산분량의 대규모 철광석 장기구매 계약을 성사시키며 글로벌 유력 철강기업을 향한 성공적인 첫걸음을 힘차게 내뎠다. 이 계약은 한국 중국 비중국시장에서 자원개발, 토탈카라이프, 소비재 사업 등 3대 사업을 집중 육성해 글로벌 리딩 컴퍼니로 도약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비전2020을 발표한 이후 이루어낸 첫 번째 성과였다. 이로써 SK네트웍스는 철광석 및 철강생산용 원료탄(Coking Coal)의 개발 확보 및 운송, 블렌딩, 완제품 가공 유통 트레이딩 등 조강을 제외한 철강 관련 전 영역에서의 밸류체인(Value Chain)을 갖춘 기업을 의미하는 SK네트웍스만의 독자적인 버추얼 철강기업 비즈모델을 구축, 글로벌 유력 철강기업이 되겠다는 비전에 한걸음 다가서게 됐다. 철강사업을 향한 SK네트웍스의 행보는 2010년 9월 초대규모 철광석 프로젝트에 투자하면서 더욱 빨라졌다. 브라질의 대표적 철광석 업체인 MMX사가 발행할 예정이던 21억 5,000만 달러 규모의 신주 가운데 7억 달러 규모를 인수하는 구속력없는 MOU를 체결한 것이다. 우리나라 철광석 자원개발 역사상 최대 규모의 프로젝트 투자로 20년 이상 매년 900만 톤의 철광석을 확보하게 됐다.프로젝트 투자로 20년 이상 매년 900만 톤의 철광석을 확보했다. SK그룹 60년사 - 348

177 제3장 2011~2013 글로벌 일류기업 향해 1. 사람과 문화 혁신 통해 성장과 행복 추구하다 2. 사회적 기업 생태계조성 3. SK이노베이션, 글로벌 종합에너지 기업으로 도약 4. SK에너지, 인천CLX 대규모 설비투자로 미래 대비 5. SK종합화학, 대표적 수출기업으로 등극하다 6. SK루브리컨츠, 세계 고급 윤활유 시장 석권 7. SK케미칼, 환경과 인류 건강 책임진다 8. SKC, 글로벌 그린소재 컴퍼니로 진화하다 9. SK E&S, 토털에너지기업으로 도약하다 SK Way 열어가다 10. SK가스, LPG원료로 석유화학사업에 도전 11. SK텔레콤, 글로벌 ICT산업을 선도하다 12. SK C&C, 모바일 커머스 솔루션의 세계 강자로 부상하다 13. 오픈 플랫폼 전문기업 SK플래닛 출범 14. SK브로드밴드, 글로벌 IDC 사업 확대 15. SK텔레시스, 전기 전력 설비 사업 진출로 신성장 동력 확보 16. SK텔링크, MVNO 사업 진출 17. SK네트웍스, 세계일류 통합마케팅회사로 도약하다 18. SK건설, 유라시아 터널을 뚫다 19. SK해운, 재도약 기반 완성하다 20. SK증권, 선진 금융 서비스로 해외 시장 진출 21. 하이닉스 인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다 22. 생명과학전문회사 SK바이오팜 출범 23. SK임업 40년, 인재 육성의 40년 뜻을 잇다 24. 핸드볼을 비롯한 스포츠 진흥에 적극 나서다 25. 재계 3위의 위상, 수출 600억 달러 매출 150조 원 시대 26. 따로 또 같이 3.0 으로 아무도 가지 않는 길 을 열다 사람과 문화 혁신 통해 성장과 행복 추구하다 SK그룹은 사람 과 문화 를 화두로 2011년을 시작했다. 사람과, 그 사람을 한 방향으로 모아낼 문화가 우리의 미래 성장동력이라는 뜻에서였다. 사람과 문화의 혁신은 사람의 창의력과 패기, 열정을 끌어올리기 위한 고민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사람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사람의 가능성을 믿고, 또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발적 의욕적으로 두뇌활용을 할 때, 또 그런 조직문화가 우리 고유의 것으로 자리 잡아 나갈 때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도 더 커지게 될 것이라는 신념이다. 2010년 10월 제주에서 CEO세미나 가 열렸다. 글로벌 경제위기 뒤로 확 바뀐 경영 환경에서 그룹 차원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CEO들의 열띤 논의가 이어졌다. CEO들은 인재 와 기업문화 가 그룹의 성장과 발전을 이룰 핵심 자산이라는 점에 공감했다. 이를 위해 재무적인 목표 외에도 인재와 기업문화, 사업 모델을 모두 아우르는 실행력 강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최태원 회장은 이 자리에서 기업의 전략 과 실행력, 문화 의 중심에는 사람 이 있으며, 모든 성과는 사람을 통해 창출되는 것이므로 성과 창출을 위해서는 사람 간, 사람과 조직 간 생길 수 있는 이슈들을 제도(Ruie) 가 아니라 문화 로 풀어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며 미래 성장 동력으로서의 인재와 기업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SK가 글로벌 기업으로 진화, 발전해 갈수록 더욱 더 중요한 화두라 할 수 있었다. 2011년의 SKMS 토론회에서도 최태원 회장은 구성원의 참여를 통한 사람 문화 혁신으로 지속가능한 성장과 행복 추구를 강조했다.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조직이 안정과 생존을 위해 룰을 만들면 구성원은 SK그룹 60년사

178 왜 생겼는지도 모르는 룰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데, 세상의 변화 속도에 대응하지 못하는 룰은 일의 효율성과 구성원의 행복을 떨어뜨려 조직의 지속 성장에 문제를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CEO라 하더라도 지금 룰의 어떤 부분을 어떻게 고쳐야 현재 상황에 맞는 룰이 될지 판단하기는 어렵고, 결국 개별 조직 스스로가 의견을 모으지 않으면 아무리 CEO라고 해도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동기부여(Motivation)와 희생(Sacrifice)에 기반한 트레이드오프(Trade-off)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진정한 문화의 변화를 위해서는 스스로 변화해서 적응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룰 가운데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바꿀 수 있어야 하며, 같은 자원으로 더 큰 행복을 얻으려면 다른 무언가를 포기할 수도 있어야 한다 는 뜻이라고 말했다. 트레이드오프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개별 조직 안에서의 활발한 공유와 토론으로 조직 별로 개성에 맞게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아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속가능하지 않다면 그것은 행복이 아니고 언제나 계속되는 변화 속에서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거듭해 탄탄한 내부의 문화로 자리매김함으로써 지속가능한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최태원 회장은 1998년 취임 이후 SK그룹의 변화와 혁신을 주도하며 재계 3위의 그룹으로 성장시켰다. 최태원 회장의 경영성과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지배구조 개선이었다. 이사회 중심의 경영체제와 CIC제도를 도입했다. 이어 과감하게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으며, 2002년부터 따로 또 같이 를 시행했다. 2012년 말에는 관계사 자율경영을 핵심으로 하는 따로 또 같이 3.0 을 제시했다. 둘째는 사업구조 개선이었다. SK이노베이션의 4사 체제 출범을 통한 에너지 화학의 전문화, SK텔레콤과 SK플래닛의 분사를 통한 정보통신의 전문화를 도모했다. 이어 2013년에는 SK플래닛과 SK마케팅앤컴퍼니를 합병하는 등 사업구조 개선을 계속하고 있다. 셋째는 기업문화 혁신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2011년부터 시작한 사람과 문화의 혁신이었다. 한편 SK그룹은 2011년말 최고경영자들로 구성된 그룹 부회장단 을 신설했다. 이들의 회사 경영에 관한 경험과 지식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경영 현안을 해결하는 새로운 거버넌스(Governance)체제를 운용하기로 한 것이다. 부회장단은 최고경영자의 경영활동을 보좌하고 지원하는 최정예 브레인 집단으로서 직접적인 경영활동 외에도 후계자 발굴과 양성 등 기업 경영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해 나갔다. 부회장단 산하에는 G&G추진단과 기술혁신센터(TIC)를 배치한 뒤 사장급 조직으로 격상시켰다. G&G추진단과 기술혁신센터(TIC)는 그룹 차원은 물론 각 관계사의 신성장사업과 기술혁신과제를 선도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SK그룹 60년사

179 사회적 기업 생태계조성 SK는 2012년 3월 국내 최대 규모의 사회적 기업 행복나래 를 출범시켰다. 일감 몰아주기와 중소기업 영역 침해 논란을 빚 던 소모성 자재구매 대행기업인 MRO코리아 를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한 것이었다. 연매출이 1,200억 원에 달하는 대규모 사회적 기업의 설립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담한 결정이었다. SK의 행복나래 출범은 국내 다른 기업들의 행보와 비교했을 때 더욱 큰 빛을 발했다. 2011년을 기점으로 대기업들의 소모성 자재구매대행 사업, 즉 MRO에 대한 사회의 비난이 쏟아지자 대부분의 기업들은 서둘러 이들 회사의 매각을 추진했다. 큰 이익을 남기지 못하는 사업으로 사회의 비난을 받을 이유가 없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였다. 그러나 SK의 결정은 달랐다. 최태원 회장은 사회적 기업 전환에 대해 직접 아이디어를 냈을 뿐 아니라, 전면에 나서서 실질적인 산파역을 수행했다. 소모성 자재구매대행 사업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자고 제안한 뒤 다양한 모델을 검토한 끝에 사회적 기업화 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와 관련해 최태원 회장은 행복나래가 우리 사회의 행복을 키워나가는 행복 플랫폼 이 되기를 바란다 고 말했다. 일반 기업이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데 비해 사회적 기업은 사회 서비스 제공과 취약계층 일자리 창출 등 공익적 목적을 최우선으로 한 사업으로, 거둔 이익을 주주가 가져가지 않고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일반 기업들과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사회적 기업의 활동으로 얻어진 수익은 자연스럽게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데 재투자했다. 행복나래의 설립은 우리 사회에서 꾸준하게 사회적 기업의 역할을 확대시켜온 SK의 의지가 일궈낸 또 하나의 큰 성과였다. 국내 최대 규모의 사회적 기업인 행복나래 출범은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기업을 확산시키는 분기점이 됐다. 행복나래는 정관에 연간 수익금의 3분의 2 이상을 사회적 목적을 위해 사용한다 고 명시하는 한편, 정관에 따라 2011년 한 해 동안 MRO코리아가 거둬들인 수익금 가운데 5억 7,000여만 원을 사회에 기부했다. 뿐만 아니라 전체 이사 7명 가운데 4명의 사외이사를 사회적 기업 분야 전문가 출신으로 선임했다. 행복나래가 사회적 기업으로 지속 성장할 수 있도록 경영체계부터 완벽하게 정리한 것이었다. 행복나래는 협력업체 선정에서도 시장 경쟁력이 떨어지는 중소 사회적 기업에 가산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구매 우선순위를 높이는 사회적 기업 및 사회적 약자기업 우선 구매 제도를 도입했다. 행복나래는 취약계층 일자리 창출을 위해 한 부모 가정, 고령자, 국제결혼 이주여성 등을 신규 채용했다. 행복나래는 이처럼 취약계층 채용 인원을 계속 늘려 나감으로써 사회적 기업 매출 증대 수익창출 고용확대 지속경영 의 밸류 체인(Value Chain)과 사회적 기업의 선순환 구조를 조성한다는 원대한 계획을 추진해나갔다. SK의 사회적 기업에 대한 관심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5년 5월 SK는 일자리 창출 로드맵 을 발표하고 일찌감치 취약계층의 자립과 자활에 두 팔 걷고 나섰다. 장애인 무료 IT 교육, 스피드메이트 저소득 청소년 교육, 저소득층 보육시설 지원 등의 사업을 통해 창출한 일자리만 2009년까지 4834개에 달했다 이 같은 성과와 자신감을 바탕으로 2009년 8월 대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사회적 기업 설립과 육성에 대한 총체적인 계획을 발표했다. 사회적 기업에 대한 SK의 한 발 앞선 관심과 집중은 그룹의 인재경영 철학 및 행복 극대화의 사명과 뿌리를 같이 하는 것이었다. SK가 직접 설립했거나 설립을 지원한 사회적 기업만 해도 방과 후 학교 사회적 기업인 행복한 학교, 도서관 분야 최초의 사회적 기업인 행복한 도서관, 출소자의 사회 적응을 돕기 위한 행복한 뉴라이프, 조경 및 재활용 사업을 통해 취약계층 일자리 창출을 유도하는 행복한 농원 과 행복한 녹색재생 등 수십 개에 달했다. SK그룹 60년사

180 SK는 사회적 기업의 설립과 운영뿐 아니라, 우리사회에 잘 뿌리내릴 수 있도록 인프라 구축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사회적 기업에 필요한 전문가 육성을 위해 2006년 국내 최초로 사회적기업가 아카데미 를 개설, 경제 경영 등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 데 이어 2009년 9월에는 대기업 최초로 사회적 기업 전문 봉사단인 SK프로보노 를 발족시켰다. 기부의 수준을 넘어 보다 적극적인 사회 투자 를 실천하는 기업 사회공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프로보노(Pro bono)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전문성을 활용해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을 돕는 활동 전반을 의미한다. SK프로보노 또한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 자격을 갖춘 SK그룹의 구성원들이 사회적 기업이과 단체를 지원하는 전문 자원봉사단으로서의 성격을 지녔다. 사회적기업지원네트워크(SESNET)와 파트너십을 맺고 전문 컨설팅 등 도움이 손길이 필요한 곳에 자원봉사자들을 효율적으로 연계시켰다. 2009년 11월에는 사회적 기업 지원 전문 웹사이트 세상 ( 오픈, 민 관 연의 역량을 결집하는 집단 지성 네트워크 구축을 추진했다. 행복나눔재단 산하에 사회적기업사업단 을 출범시키고, 540억 원의 기금을 조성해 사회적 기업 창업 지원과 예비 사업가 육성 등의 재원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2012년 9월에는 대구에 청소년 진로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사회적 기업 대구행복한미래재단 을 설립했다. 2010년 소외 계층 자녀의 사교육비 문제 해결을 위해 서울 부산 대구 울산 등에 세운 행복한 학교 에 이어 교육 분야에서 두 번째로 선보이는 사회적 기업 모델이었다. 10월에는 사회적 기업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KAIST 경영대학 내에 국내 최초로 사회적 기업 MBA를 개설해 2013년 2월부터 석사급 인재를 양성하기로 하고 이를 실행할 SK 사회적기업가센터 를 발족시켰다. SK가 설립한 사회적 기업들은 일자리 창출에도 톡톡히 한몫 했다. 2010년 이후 설립한 13개 사회적 기업을 통해 2012년 상반기까지 1,007명을 고용한 것이었다. SK이노베이션, 글로벌 종합에너지 기업으로 도약 SK이노베이션은 1962년 대한석유공사로 시작해 네 차례의 사명변경을 거쳐 오늘의 사명으로 거듭났다. 1980년 SK그룹에 인수되면서 (주)유공으로 새롭게 출발했으며, 1997년 10월 그룹명이 선경에서 SK로 바뀜에 따라 SK주식회사로 바뀌었다. 2007년 7월에는 그룹의 지주회사제 도입에 따라 원래 이름을 지주회사에 넘겨주고 SK에너지로 면모를 일신했다. 이뿐만 아니었다. 2009년 10월 윤활유 사업을 분사한 데 이어 2011년 1월에는 사업 독립경영 체제를 도입하기 위해 SK이노베이션으로 다시 이름을 바꾸고 기술개발 및 자원개발 사업을 담당하는 한편, 석유 및 화학사업의 물적 분할을 단행했다. 이노베이션 에너지 종합화학의 독자경영 체제 출범 기존 SK에너지로부터 석유사업과 화학사업을 분사해 독자 경영하기로 하고 2011년 1월 3일 SK이노베이션과 그 자회사인 SK에너지 SK종합화학 등 3개사의 출범식을 가졌다. 이에 따라 SK이노베이션은 기술개발 및 자원개발 사업을 중심으로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 추진하는 동시에 석유사업을 담당하는 SK에너지, 화학사업을 담당하는 SK종합화학, 윤활유사업을 담당하는 SK루브리컨츠 등 3개 자회사를 거느리게 됐다. 석유사업과 화학산업의 독자경영 체제는 도입 첫해부터 성공을 거두며 성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SK이노베이션과 3개 자회사는 매출 68조 3,721억 원과 영업이익 2조 8,424억 원(이상 연결 기준)을 기록하며 사상최고의 이익을 시현했다. 이는 전년도에 비해 매출 27%, 영업이익 50%가 각각 증가한 수치로, 독자경영 체제의 SK그룹 60년사

181 성공적 안착을 통해 각 사별 시장 상황에 맞는 빠른 의사 결정과 사업 유연성을 제고한 데서 기인한 것으로 평가됐다. 특히 SK이노베이션의 석유개발 사업은 매출액 1조 359억 원, 영업이익 4,941억 원을 기록해 역대 최고 실적을 갈아치우면서 영업이익률 48%를 기록했다. 이는 2008년 처음으로 매출액 5,000억 원을 돌파 한 이래 불과 3년 만에 매출액을 2배로 끌어올린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 자원개발 사업의 새로운 패러다임 제시 SK이노베이션은 2011년 7월 브라질 광구 매각으로 우리나라 해외 자원개발 역사에 다시 한 번 큰 획을 그었다. 국내 민간 기업이 보유한 생산 탐사 광구를 글로벌 메이저 석유개발 기업에 성공적으로 매각한 첫 사례였다. 매각 대금은 24억 달러로 국내 민간기업이 거둔 자원개발 성과 가운데 전무후무한 금액이며 가장 성공적인 SK는 SK에너지로부터 석유사업과 화학사업을 분사해 SK이노베이션과 자회사인 SK에너지, SK종합화학 등 3개사의 출범식을 갖고 독자경영 체제의 출범식을 가졌다. 계약이었다.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과 유가 상승에 따른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짐에 따라 정부와 많은 국내 기업들도 석유개발 사업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으나, 사업의 특성상 섬유탐사 성공률이 매우 낮고 장기간 투자와 고도의 기술과 노하우가 필요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료하기가 쉽지 않았다. 보유 광구 자산에 대한 정확한 가치 평가가 어려워 매각이나 매입과 같은 계약이 쉽게 이뤄지기도 어려웠다. 이러한 가운데 SK이노베이션은 보유 광구에 대한 적정한 가치 평가를 통해 성공적으로 매각해 지금까지 이뤄온 석유개발 사업의 포트폴리오를 재정립하는 전환점을 만들어내며 사업 패러다임의 이노베이션 을 이룩했다. SK이노베이션의 석유개발 사업 순항은 고스란히 실적으로 반영돼 SK이노베이션의 독자경영 체제의 안정적 정착과 향후 성장발전 가능성의 밑거름이 됐다. 2011년에는 국내 민간기업 최초로 석유개발 사업에서 매출 1조원, 영업이익 5,000억 원을 돌파했다. 외형적인 성과 못지않게 석유개발 사업의 내실은 더욱 알찼다. 2011년 석유개발 영업이익률은 49%로 SK이노베이션의 2011년 연결기준 영업이익률 4.2%의 10배를 넘어섰다. 또한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5%임에도 불구하고 전체 영업이익에서 석유개발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8.1%로 회사 내 수익 사업으로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음을 입증했다. SK이노베이션은 2012년 말 현재 16개국에서 26개 광구 및 4개 LNG 프로젝트를 통해 활발한 석유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페루, 베트남 등 생산광구에서는 우리나라 전체가 약 8개월가량 쓸 수 있는 5억 600만 배럴의 지분 원유를 확보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2020년까지 지분원유 보유량을 10억 배럴까지 늘릴 계획이다. 10억 배럴은 우리나라 전체가 1년 4개월 동안 사용할 수 있는 규모다. SK이노베이션의 일일 지분 원유 생산량 역시 비약적으로 증가해 2005년 2만 4000배럴에 불과했으나 2012년에는 6만 3,000배럴 증가해 5년 새 3배 가까이 증가했다. SK그룹 60년사

182 SK이노베이션 연도별 일일 지분원유 생산량 (단위: 배럴/일) SK이노베이션 LNG 개발현황 연도 Q 구분 국가 광구 계약년도 생산량 24,000 20,000 22,000 35,000 42,000 59,000 63,000 63,000 SK이노베이션 석유개발 현황 LNG 프로젝트 오만 오만LNG 1996 예맨 예맨LNG 1997 카타르 Ras Laffan LNG 1999 페루 페루LNG 2003 구분 국가 광구 계약년월 이집트 North Zaafarana Block 페루 Block 88(Camisea) Block 생산 코트디부아르 CI 리비아 NC 베트남 01월 15일 알제리 Issaouane Block D 탐사 적도기니 Block S 코트디부아르 CI 인도네시아 North Madura I WA34R 호주 WA-425-P WA-431-P 미국 Iberia Dome North 마다가스카르 Majunga 그린에너지 사업에 박차 SK이노베이션은 2004년 국내 최초, 세계에서 3번째로 핵심 소재인 LiBS 개발에 성공하며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시장에 진출했다. 이후 투자와 연구개발을 지속해 2009년 10월 독일 다임러그룹 계열인 미쓰비시 후소사의 하이브리드 상용차에 장착할 리튬이온 배터리 공급 계약을 맺었다. 이로써 SK이노베이션은 세계 자동차 배터리 시장 공략에서 유리한 위치했다. 이는 국내는 물론 일본 배터리 업체들과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이룬 성과였다. 2009년 이후 현대기아차그룹의 첫 순수 전기차인 i10 블루온 모델과 기아차 레이의 배터리 공급 계약을 잇달아 체결했으며, 2010년 2월에는 국내외 경쟁 업체를 따돌리고 다임러그룹의 메르세데스-벤츠가 출시할 최첨단 전기 슈퍼카 SLS AMG E-CELL 의 배터리 공급업체로 공식 선정됐다. 이로써 SK이노베이션은 하이브리드차와 순수전기차에 이어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전기 슈퍼카로 범위를 넓히며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 안착했다. 유럽시장 공략과 글로벌 자동차 업체의 추가 카자흐스탄 zhambyl 베트남 페루 Z CPE SSJN 콜롬비아 CPO VIM SSJS 년 8월 28일 SK는 저탄소 경영체제 로의 변신을 본격 선언했다. 이와 관련해 SK에너지는 하이브리드카의 핵심기술인 배터리 기술 개발에 투자해 상용화를 달성한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최태원 회장의 SK에너지 하이브리드카 테스트 장면. SK그룹 60년사

183 확보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2012년 7월 23일 SK이노베이션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콘티넨탈사 본사에서 전기차 배터리 공동개발을 위한 합작법인 설립 계약을 체결했다. 합작법인은 SK이노베이션에서 배터리 셀을 공급받고, 콘티넨탈사에서 BMS를 공급받아 세계 최고 수준의 배터리 팩 시스템의 개발 및 생산에 들어가기로 했다. 글로벌 메이저 종합 자동차 부품회사인 콘티넨탈사와의 전기차용 배터리 팩 솔루션 공급을 위한 합작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이처럼 전기자용 배터리 사업이 크게 활성화되면서 SK이노베이션은 2012년 9월 충남 서산에 200MWh 규모의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을 준공했다. 이에 따라 서산(베터리)- 증평(LiBS)-대전(연구개발)에 배터리 삼각 벨트를 구축하며 연구 개발부터 독자 개발한 배터리 핵심 소재인 리튬전지용 분리막과 완제품까지 생산하는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SK이노베이션은 서산공장 준공과 함께 이를 중심으로 전 세계 각지에 전기차용 배터리 양산 체제를 구축해 2020년까지 명실상부한 전기차 배터리분야의 SK이노베이션은 충남 서산에 배터리 서산공장 준공식을 거행했다. 서산공장 준공으로 SK이노베이션은 서산-증평-대전에 배터리 삼각벨트를 구축, 배터리 핵심소재인 리튬전지용 분리막과 완제품까지 생산이 가능한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메이저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SK이노베이션은 서산 배터리 공장과 더불어 LiBS 생산설비인 증평공장을 2010년 10월에 준공하고 4~5호 라인의 양산체제에 돌입했다. 이에 따라 연간 1억 600만m 2 의 LiBS 생산 규모를 확보하는 한편, 2012년 10월에는 증평공장에 6~7호 라인을 건설해 총 1억 5,400만m 2 의 대규모 생산체제를 갖췄다. 이를 통해 LiBS의 글로벌 톱3의 위치를 더욱 확고히 하고, 리튬이온전지의 핵심소재인 LiBS와 완제품인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까지 이어지는 안정적인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한편 SK이노베이션은 2010년 12월 대만 최대 기업이자 아시아 최대 민간 석유화학그룹인 포모사 그룹과 손잡고 차세대 에너지 기술로 손꼽히는 에너지 저장용 배터리 사업에 나섰다. 정보전자소재 사업 본격 추진 SK이노베이션은 2012년 10월 31일 충청북도 증평 산업단지에서 연성회로기판 소재인 FCCL(Flexible Copper Clad Laminate), 광학필름인 TAC(Tri-Acetyl Cellulose) 생산라인 등 정보전자소재 공장 준공식을 가졌다. 이때 LiBS 6~7호기 공장 준공식도 같이 거행했다. 정보전자소재 공장 내에 세워진 FCCL 생산공장은 IT기기의 첨단소재로 주목받고 있던 FCCL을 연간 350만m 2 생산할 수 있는 규모였다. 또 LCD 패널의 구성요소인 편광판의 핵심 소재인 TAC 생산공장은 42인치 TV 약 1억 대를 생산할 수 있는 연간 5,400만m 2 의 생산능력을 갖춰, SK이노베이션은 명실상부한 정보전자 소재 기업으로 거듭났다. SK그룹 60년사

184 SK에너지, 인천CLX 대규모 설비투자로 미래 대비 석유사업 전담회사로 새롭게 출범한 SK에너지는 울산광역시와 인천광역시에 대단위 컴플렉스를 두고 있다. 1964년 역사적인 석유류 제품 국내 첫 생산을 개시한 울산 컴플렉스는 5개 정유공장에서 국내 최대규모인 하루 84만 배럴의 원유를 처리해 각종 석유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1972년에 가동을 시작한 인천정유 (설립당시 명칭은 경인에너지)를 2005년 12월 인수해 2008년 2월 합병한 인천 컴플렉스는 하루 27만 5,000배럴의 원유정제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에 따라 SK에너지의 하루 원유정제 능력은 111만 5,000배럴에 달해 아태지역 정유업체 중 4위에 자리하고 있다. SK에너지는 인천 컴플렉스에 대규모 설비투자를 단행해 획기적인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SK에너지 이사회는 2012년 인천 컴플렉스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1조 6,000억 원 규모의 신규 설비 투자계획을 의결했다. 이 투자를 통해 인천 컴플렉스는 연산 130만톤 규모의 파라자일렌 생산시설을 갖춘 대규모 공장으로 거듭나게 된다. 신규 설비는 2014년 하반기 상업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인천 컴플렉스는 중국과의 접근성이 뛰어난 이점을 활용해 최대 PX(Paraxylene; 파라자일렌) 시장인 중국 진출을 강화하고, 나아가 아시아 시장 전역으로 사업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신규 PX 설비가 완공되는 2014년이 되면 SK에너지는 기존 울산 컴플렉스의 PX 80만 톤, 일본 JX에너지와 합작해 건설 중인 설비의 50만 톤 및 싱가포르 주롱아로마틱스의 22만 톤을 추가해 세계 5번째 규모의 PX 생산설비를 갖추게 된다. SK종합화학, 대표적 수출기업으로 등극하다 1970년대 초 국내 최초로 방향족제조공장(1970년)과 나프타분해공장(1972년)을 가동해 우리나라 석유화학 산업발전을 선도한 SK종합화학은 제2, 3, 4방향족제조공장, 제2나프타 분해공장, 제1, 2파라자일렌 제조공장, 싸이클로핵산 제조공장을 단계적으로 가동해 연간 450만 톤의 올레핀, 아로마틱 제품과 약 70여종의 용제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SK종합화학이 생산하는 제품들은 자동차, 전자, 통신의 첨단 소재에서부터 페인트, 볼펜, 콘택트렌즈, 화장품, 세제 등의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산업 영역에서 필수적인 원 부자재로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SK종합화학은 끊임없는 시설 투자와 연구개발, 기술 축적을 통해 국내 화학산업의 발전을 주도하며 선도기업의 위치를 확고하게 지켜오고 있다. SK종합화학은 출범 후 대대적인 설비확장으로 선도기업의 위치를 더욱 굳건히 했다 년 울산 컴플렉스에 착공한 연산 23만 톤 규모의 넥슬렌(Nexlene; 고성능폴리에틸렌) 공장은 2013년말 상업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넥슬렌은 SK종합화학이 2010년 말 촉매 공정 제품 등 전 과정을 100% 자체 기술로 개발한 고성능폴리에틸렌이었다. 일부 메이저 화학회사가 독점 생산하고 있던 고부가가치 제품이기도 했다. 2011년 9월 착공한 싱가포르 석유화학 합작공장은 연산 400만톤 규모의 석유화학제품(파라자일렌 벤젠 등 화학제품 140만 톤, 항공유 경유 나프타 LPG 등 석유제품 260만 톤)을 2014년 3분기부터 생산할 계획이다. SK종합화학은 이 공장에서 생산되는 화학제품 중 파라자일렌 22만 톤, 벤젠 12만 톤(연간 기준) 등을 확보해 SK그룹 60년사

185 아시아 시장에서의 트레이딩 사업 확대에 주력할 계획이다. SK종합화학은 2012년 12월에 열린 무역의 날 행사에서 60억 달러 수출탑을 수상할 정도로 수출기업으로서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SK종합화학은 2012년에 전년보다 무려 132% 증가한 63억 912만 달러의 수출 실적을 올리며 대표 수출기업 반열의 올랐다. SK이노베이션과 사업분할을 통해 새롭게 출발하면서 화학 전문 글로벌 기업으로의 아이덴티티를 재정립한 결과 사업분할 2년만에 2배 이상의 수출 실적을 올리며 60억 달러 수출탑을 수상한 것이었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외국시장 확대를 통한 수출 다변화와 글로벌화는 SK종합화학의 가장 큰 목표이자 사업 방향이었다. 2000년대 초반 본격적으로 중국 사업을 시작한 이래 석유화학회사로서 확고한 입지를 확보했다. 항저우 노트란JV, 상하이 고교석화 용제JV 등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으며, 현지 마케팅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2002년 상하이에 판매법인을 설립하는 등 중국 현지에서 적극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면서 중국을 제2의 내수시장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사업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이밖에도 휴스턴 지사와 콜롬비아 보고타 지사를 통해 북미와 남미 시장을 공략하고 있으며, 2010년 두바이에 지사를 설립해 중동, 아프리카 및 유럽 시장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SK종합화학은 이에 안주하지 않고 인도네시아 시장을 적극 공략하기 위해 인도네시아에 대규모 석유화학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 JX NOE(옛 신일본석유)와 손잡고 생산설비를 건설하고 있다. SK루브리컨츠, 세계 고급 윤활유 시장 석권 1968년 12월 윤활유 배합공장을 준공하면서 시작된 SK의 윤활유 사업은 1995년 울산 제1기유공장, 2004년 울산 제2기유공장을 준공해 하루 2만 4300배럴의 고점도지수 기유인 유베를 생산하고 있다. 기유공장의 UCO 고부가화 기술은 세계 21개국에서 특허를 취득했다. 1990년대초 당시에는 불완전한 기술로 취급되던 그룹III 제조공정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고, 전세계 고객들에게 충분한 고급기유 윤활유 물량을 안정적이고 저렴하게 공급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글로벌 현지생산 물류 서비스 인프라를 확장했다. 그리하여 10년동안 고급 윤활기유 시장의 세계 1위를 굳게 지켜오고 있다. SK루브리컨츠는 수출 중심의 사업구조를 강화하기 위해 해외 현지생산에 나서 2008년 인도네시아 두마이 기유공장을 준공해 API Group III 기유 중 최고 품질의 프리미엄 기유인 유베이스 플러스를 생산하고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수요에 대비해 스페인에 기유공장을 건설을 진행하며 또 한 번의 비상을 꿈꾸고 있다. 2009년 10월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로 공식 출범한 SK루브리컨츠는 2012년 10월 28일 스페인 카르타헤나 윤활기유 공장 현장에서 윤활기유 공장 기공식을 가졌다. 카르타헤나 윤활기유 공장은 스페인 기업인 렙솔(Repsol)과 손잡고 고급 윤활유의 원료인 Group III 윤활기유를 하루 1만 3,300배럴 생산할 수 있는 규모로 건설하고 있다. 2014년 하반기에 완공할 예정이다. 합작 공장 건설은 윤활기유 사업의 글로벌화를 향한 최태원 회장의 집념으로 SK그룹 60년사

186 성사됐다. SK는 지난 1995년과 2004년 독자 개발한 제조공정으로 울산에 GroupⅢ 윤활기유 제1공장과 제2공장을 짓고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국내에 윤활기유 원재료가 부족해 사업이 정체될 위기에 처했다. 결국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파트너를 찾아 해외에 공장을 짓는 것이었다. 최태원 회장은 2005년 11월 부산 APEC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한 유도유노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개별 면담을 갖고 윤활기유 공장 건설을 제안했다. 최태원 회장은 이후에도 인도네시아의 정 재계 인사들을 수시로 만나면서 윤활기유 공장을 직접 진두지휘해 마침내 2008년 인도네시아 현지에 윤활기유 공장을 완공했다. 렙솔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2011년 11월 최태원 회장이 직접 렙솔 본사를 방문해 안토니오 브루파우 니우보 회장을 만나 윤활기유 합작공장 등 다수 협력을 논의하며, SK루브리컨츠의 글로벌 전진기지 구축을 이끌어 냈다. 이에 따라 2008년 인도네시아 두마이 공장 완공으로 시작된 글로벌 영토를 유럽으로 더욱 확장할 수 있게 됐다. 이에 힘입어 2001년 3,418억 원에 불과했던 윤활유 매출은 2011년에 2조 원을 넘어서며 10년 만에 6배 가까운 성장을 기록하는 성과를 거뒀다. 게다가 세계 고급 윤활유 시장 점유율은 50%를 넘어섰다. 이에 힘입어 SK루브리컨츠는 2012년 12월에 열린 무역의 날에 10억 달러 수출탑을 받았다.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 시장의 수요가 증대되고 연비절감 고효율 윤활유에 대한 관심이 커짐에 따라 고급 윤활기유에 대한 시장의 수요도 확대되고 있어, 전 세계 그룹 III 윤활기유 시장의 독보적 리더인 SK루브리컨츠의 위상도 한 단계 상승할 것이다. SK케미칼, 환경과 인류 건강 책임진다 1969년 설립된 선경합섬을 뿌리로 성장해온 SK케미칼은 창립 이래 지속적인 변화와 혁신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화학기업으로 성장해왔다. 친환경 소재 솔루션을 제공하는 그린 케미칼 사업과 국내 신약사업을 이끌어가고 있는 라이프 사이언스 사업을 양대 축으로 미래에 도전하고 있다. 그린 케미칼 사업은 40년간 축적된 기술역량을 바탕으로 PET수지, 고기능성 PEGT수지, 탄소섬유 프리프레그(Prepreg), 접착제용 폴리에스터수지, 친환경 바이오에너지 등 다양하고 우수한 친환경 화학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라이프 사이언스 사업은 국내 최초의 신약인 항암제 선플라, 천연물 신약 1호 관절염치료제인 조인스, 발기부전 치료 신약 엠빅스 등 3개의 신약개발에 성공한 R&D 역량을 바탕으로 합성, 천연물, 개량신약, 백신-바이오신약 등 다양한 제품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다. 그린 케미칼 사업의 선봉장은 에코젠(ECOZEN)이었다. SK케미칼은 2010년 12월 친환경 투명 플라스틱 에코젠을 세계 최초로 개발, 대한민국 10대 기술상 과 대한민국 기술 대상 은상 을 동시에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투명 플라스틱 원료 중 아크릴은 투명성은 뛰어나지만 쉽게 깨지는 단점이 있고, PC(폴리카보네이트)는 단단한 대신 비스페놀A(Bispenol A)라는 유해물질이 포함돼 있어 식품용기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PC보다 친환경적이고 아크릴보다 견고하다는 점에서 PETG가 투명 플라스틱의 대표 소재로 떠올랐으나 이전 소재들에 비해 널리 쓰이지는 못했다. 열에 약한 성질 때문이었다. 2006년 친환경 고내열 투명 플라스틱 개발에 뛰어 든 지 4년 만에 개발한 에코젠은 SK그룹 60년사

187 옥수수에서 추출한 천연 바이오 원료를 첨가함으로써 PETG의 내열성을 크게 향상시킨 제품이었다. 기계적 물성이 떨어지고 색도 진한 갈색을 띄는 약점이 있었지만, 기존 연구개발의 틀을 깬 수천 번의 시도 끝에 끝내 가장 친환경적인 투명 플라스틱 개발의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2011년 10월 에코젠은 국내에서 개발된 화학물질 최초로 미국 FDA로부터 FCN(Food Contact Notification)을 획득했다. 이에 따라 에코젠은 친환경 기준에 부합하는 전자소재, 식품용기, 건축 소재 등으로 용도를 더욱더 다변화할 수 있게 됐다. 한편 SK케미칼은 슈퍼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상업 생산을 위해 대규모 설비 투자에 나섰다. 울산에 폴리페닐린설파이드(PPS) 생산 설비를 건설하기로 한 것이다. PPS는 고내열성, 내화학성 등을 지닌 슈퍼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의 일종으로, 금속 대체 등의 목적으로 사용이 확대되고 있다. 생산 규모는 1만 2,000톤으로 SK케미칼은 2015년 상업화를 시작으로 2017년 1,400억 원의 매출을 달성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SK케미칼의 라이프 사이언스 사업은 세포배양 인플루엔자 백신 개발과 안동백신공장 건설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2012년 7월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동물세포 배양기술을 이용해 개발에 성공한 세포배양 인플루엔자 백신(Cell CultureInfluenza Vaccine)의 임상시험 계획을 승인받은 것이다. 앞으로 진행될 임상시험에서 SK케미칼은 신종인 플루엔자 범부처사업단과 공동으로 개발한 세포배양 인플루엔자 백신의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될 경우 국산 백신의 신속한 생산 능력 구축이 가능해 백신 주권 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국내 백신 판매 1위 기업인 SK케미칼은 인플루엔자에 대비해 앞으로도 선도적인 대응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각 분야별 연구과제 수행에 적극 노력할 계획이다. SK케미칼은 2012년 1월 경북 안동시와 투자협정을 체결하고 경북바이오산업단지에 세포배양 방식의 인플루엔자 백신 생산 설비를 구축하고 있다. 2013년까지 1단계 공사를 마무리할 계획이며, 2014년 하반기부터는 연간 1억 4000만 도즈(1도즈는 1회 접종 단위) 규모의 백신을 생산하게 된다. 이어 2020년까지 2단계 공사를 완료해 안동백신공장을 한국 바이오산업의 메카로 만들 계획이다. SKC, 글로벌 그린소재 컴퍼니로 진화하다 SKC는 1976년 선경화학으로 설립돼 폴리에스터 필름의 국내 최초 개발로 사업을 시작했다. SKC는 R&D의 경쟁력을 기반으로 인간과 환경을 생각하는 산업의 트렌드에 맞게 상품을 개발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다. 국내 최초로 개발한 폴리에스터 필름을 기반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디스플레이 광학용, 태양전지용, 친환경 제품을 생산하는 필름사업과 대규모 PO/SM 공장을 국내 최초로 가동하고, 세계 최초로 친환경 HPPO 공법을 적용해 아시아 폴리우레탄 산업의 리더로 발돋움하고 있는 화학사업을 핵심사업으로 지속적으로 사업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태양전지 소재 및 LED 소재, 차세대 파워반도체 및 2차전지 등 친환경 무기소재 사업을 새로운 성장축으로 하는 중장기 성장 전략을 실행하며 도전과 혁신을 이어나가고 있다. 범세계적 화두로 떠오른 저탄소 녹색성장 의 기치 아래 태양전지 산업은 세계 유수 기업의 글로벌 신성장 에너지로 각광받았다. 태양전지 산업의 발전에 힘입어 태양전지용 필름시장의 규모 역시 한 해 평균 30% 이상 고속 성장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에 따라 SKC는 2008년 1월부터 연구개발에 착수, 2009년부터 EVA 시트의 본격적인 상품화를 시작했다. 2009년 10월 국내 및 해외 공인 인증을 취득한 데 이어 태양전지 셀과 모듈 메이커로 세계 1, 2위를 다투는 일본 샤프로 부터 EVA 시트의 품질 인증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태양전지에는 불소필름, EVA시트, PET 필름이 핵심 소재로 사용되는데, SKC가 2009년 세계 4대 PET필름 업체로서의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불소필름과 SK그룹 60년사

188 SKC는 2010년 3월 수원공장에 연간 6,000톤 규모의 EVA시트 생산라인을 완공한 데 이어 진천공장에 태양전지용 EVA시트 생산설비 3개 라인 증설에 들어가 2011년 4월 15일 준공식을 가졌다. 태양전지용 EVA시트와 백시트는 태양전지 모듈에 사용되는 핵심소재로 각각 태양전지 양측을 밀봉해 주고 모듈 후면에서 셀을 보호해 태양전지가 장기간 안정된 태양광 발전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기능을 갖고 있었다. 또 충북 진천에 PET필름 공장을 신설하고 2012년 10월부터 태양광용과 광학용의 고부가 필름 양산에 나섰다. SKC는 고부가 필름인 태양광, 광학용, 열수축 필름 분야에서 이미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진천공장의 신축으로 고부가 필름 글로벌 넘버원의 입지를 더욱 강화하게 됐다. EVA시트 생산으로 SKC는 기존의 생산규모와 함께 2만 4,000톤의 생산규모를 보유하게 됐다. 이와 더불어 2011년 3월 태양전지용 불소필름의 2,800톤 추가증설을 결정, 2012년까지 4,000톤의 생산규모를 확보해 급성장이 예상되는 불소시장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SKC는 세계 최초로 친환경 HPPO공법을 적용한 PO공장을 건설해 PO 상용화에 돌입했다. 이를 통해 SKC는 아시아 폴리우레탄 산업의 리더로 발돋움하고 있는 화학사업을 핵심사업으로 삼아 2011년 4월 충북 진천에 태양전지소재공장 준공에 이어 SKC는 그해 5월 미국 조지아공장에서 EVA시트 공장을 준공했다. SKC는 1999년부터 폴리에스터필름을 지속적으로 사업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생산해온 조지아공장을 복합소재단지로 확장해 북미지역의 글로벌 거점으로 만든다는 전략을 수립하고 1단계로 2009년 5월 25일 폴리우레탄시스템하우스 공장을 준공했으며, 동시에 태양전지소재공장을 착공해 1년여 만에 준공한 것이었다. EVA시트 개발에 동시 성공하며 태양전지 필름소재를 모두 국산화해 국내 태양전지 태양전지용 EVA시트공장 준공으로 SKC 조지아 공장은 폴리에스터 필름과 산업의 경쟁력을 크게 강화했다. 폴리우레탄 원료에 이어 태양전지 소재에 이르는 복합소재단지로서의 모습을 갖추고 태양전지 소재 전문 기업을 향한 SKC의 도전은 필름을 넘어 가공용 제2의 도약을 본격화했다. 또 SKC는 조지아공장의 EVA시트 2개 라인 준공으로 1만 백시트(Back Sheet)로 이어졌다. 2009년 11월 세계적인 백시트 생산 기업인 일본 2000톤의 생산규모를 확보하게 되면서 기존 수원공장 및 진천공장과 함께 총 6개 게이와(Keiwa)사와 합작해 태양전지용 백시트 사업에 진출한 것이었다. 이로써 생산라인에서 3만 6,000톤의 생산체제를 갖추었다. 태양전지 생산에 필요한 모든 필름 소재에서부터 가공을 위한 백시트에 이르기까지 한편 2010년 9월 SKC솔믹스가 R&D용 사파이어 잉곳(Ingot) 라인에 투자하기로 하고 일괄 생산의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자회사인 SKC솔믹스는 2010년 2월 태양전지용 경기 평택시 장당공단 내에 LED용 사파이어 웨이퍼 사업부지를 매입했으며, 2011년 실리콘웨이퍼 사업에 진출하기로 하고 2010년 말 평택공장에 50MW 규모의 9월 7일 자회사 SKC라이팅 을 출범시켜 LED사업을 본격화했다. 일반 조명 기업 생산라인을 완공했다. 섬레이 와 국내 안정기 생산 1위 기업 두영, 두 회사를 통합해 탄생한 SKC라이팅은 SK그룹 60년사

189 LED 밸류체인(Value Chain) 중에서도 핵심부품인 SMPS(Switched-Mode Power Supply), 방열소재, 렌즈 등 핵심소재의 사업화에 역점을 두고 차별화된 LED조명 제품의 설계와 디자인으로 전 세계 시장 공략에 나섰다. SKC는 첨단소재의 개발로 글로벌 그린소재 컴퍼니를 향한 대장정을 멈추지 않고 있다. 2012년 10cm 내의 근거리통신용 핵심소재인 페라이트 시트 (Ferrite Sheet) 개발에 성공했다. 페라이트 시트는 NFC(근거리 무선통신) 휴대전화 등에 장착돼 안정적인 통신이 가능하게 하는 일종의 세라믹 소재였다. SKC는 35년이 넘는 필름기술과 무기소재기술의 기술융합을 통해 1년 만에 세계 최고 수준의 제품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다. 특히 SKC 제품은 두께를 타사에 비해 무려 10% 이상 줄인 세계에서 가장 얇은 제품이며, 줄어든 두께만큼 원가경쟁력도 확보했다. 2012년 6월에는 핸드폰, LCD TV 등 전자기기의 발열문제를 해결해 주는 고효율 방열( 放 熱 )시트 개발에 성공했다. SKC가 개발한 방열시트는 고농축 탄소나노튜브(CNT Carbon Nano Tube)를 적용한 제품으로 열 방출 방향성과 효율성에 있어 세계적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대부분의 기존 제품들은 수평방향으로만 방열이 가능한 반면 SKC 제품은 수평과 수직 모두 열 방출이 가능하면서도 방열효율은 세계적 제품과 동등한 수준이었다. SKC 제품의 핵심 원료인 CNT는 응집력이 강한 특성으로 인해 CNT를 고르게 분산시키는 것이 어려운데 SKC는 통상적 수준의 2배가 넘는 고농축 CNT를 분산시키는 데 성공하며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SK E&S, 토털에너지기업으로 도약하다 SK E&S는 7개의 도시가스 사업 자회사와 3개의 집단에너지 자회사, LNG 트레이딩 컴퍼니를 포함한 11개의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해외에 3개의 조인트벤처를 운영하고 있다. 도시가스 사업은 전국 346만 세대에 도시가스를 공급하면서 업계 1위를 지키고 있다. 도시가스 사업에서 쌓은 역량과 LNG 도입판매 및 발전사업과의 시너지, 자회사의 사업경험을 활용해 집단에너지 사업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집단에너지 사업은 5개 지역에서 성공적으로 열과 전기를 공급하고 있으며, 10건의 사업권을 추가로 확보해 사업확장의 기반을 마련해 놓고 있다. 발전사업으로는 광양천연가스발전소를 운영 중이며, 2013년 운영을 목표로 오성천연가스발전소를 건설하고 있다. LNG 수직계열화로 미래 성장 주도 SK E&S는 2011년 8월 케이파워를 합병했다. 이는 SK E&S를 지주회사로 하는 LNG 사업의 수직계열화의 시작을 의미했다. 석유화학 부문의 수직계열화를 통해 사업적 성과를 극대화시켰던 SK는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던 LNG 부문의 수직계열화에도 도전함으로써 발전사업 분야의 시너지 창출은 물론, 경쟁력 있는 가스전 확보, LNG 플랜트 투자, LNG 발전 및 집단에너지사업 확대, 해외 도시가스 및 발전사업 추진 등 신규 성장사업을 한층 가속화시킬 수 있게 됐다. SK는 LNG사업을 미래 핵심사업으로 키우기 위해 2010년 말부터 SK에너지와 SK E&S, SK해운, SK건설 등 계열사 별로 나눠 추진하던 LNG사업의 통합에 나섰다. SK(주)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아 LNG 사업의 투자비를 책정, 배분하고 종합적으로 SK그룹 60년사

190 관리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석유 중심의 에너지 사업 구조를 유망 분야인 LNG 분야로 넓혀 성장 잠재력을 확충한다는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에 따라 LNG 생산 및 판매(SK이노베이션)부터 LNG 처리 저장 및 복합화력 발전용 인프라 구축(SK건설), 제품 운송(SK해운), LNG를 이용한 발전사업(SK E&S)에 이르기까지 LNG 밸류체인의 수직계열화를 이뤘다. 이처럼 그룹 차원에서 LNG 사업 강화에 나선 것은 확장을 거듭하고 있던 LNG 사업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했기 때문이었다. LNG는 친환경 연료로 주목받으면서 중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수요가 늘어나 전 세계적으로 매년 연평균 6%의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었다. 한편 케이파워와의 통합을 통해 LNG사업 수직계열화의 중심에 서게 된 SK E&S는 2012년 5월 SK가스가 보유하고 있던 차이나가스홀딩스의 지분 9,846만 주(7.16%)를 매입했다. 이로써 SK E&S는 차이나가스홀딩스의 3대 주주로 올라섰다. 대규모 LNG가스전 확보에도 나섰다. 2012년 7월 3억 달러를 투자해 호주 바로사- 깔디따(Barossa-Caldita)가스전 지분 37.5%를 확보한 것이다. 이로써 SK E&S는 2004년 인도네시아 탕구 가스전과의 장기 LNG 공급 체결을 통해 국내 민간발전 사업자 최초로 LNG 직도입을 시작한 이래 보다 안정적이고 저렴한 LNG 공급선을 확보함으로써 경쟁사 대비 높은 원가경쟁력 향상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SK는 2012년말 현재 호주 바로사-깔디따(Barossa-Caldita)가스전 외 페루 예멘 카타르 오만 등 4곳에서 LNG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비율로 공동출자해 설립하면서 본격화했다. 집단에너지 사업이란 대규모 지구의 전체세대에 난방열을 일괄 공급하는 사업으로서 개별난방이나 소규모 집단난방에 비해 열효율이 뛰어나 국가적으로 장려하고 있었다. 집단에너지 사업의 진출을 위한 SK E&S의 노력은 2010년 2월 한국남부발전과 손잡고 부산 명지지구의 사업 허가를 따내면서 가속도가 붙었다. 부산 명지지구의 도시개발이 완료되는 2013년부터 열 공급을 시작할 계획이다. 이어 코오롱건설과 공동으로 김천산업단지 집단에너지 사업을 수주해 2011년 3월 10일 열병합발전소의 기공식을 갖고 건설에 착수했다. 이 사업은 2013년 6월말 상업운전을 목표로 순조롭게 진척되고 있다. 2012년 2월에는 경기도 양주시와 양주지역 에너지사업 추진을 위한 양해각서 협약 을 체결했으며, 6월 이후 충북 오창산업단지의 집단에너지 사업권 획득을 위해 노력 중이다. SK E&S의 자회사들도 집단에너지 사업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2011년 12월 문정도시개발구역 집단에너지 사업권을 획득한 대한도시가스는 코원에너지서비스로 사명을 변경한 후 2012년 1월 하남감일지구의 집단에너지 사업권까지 잇달아 확보함으로써 토털에너지기업으로서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마련했다. 코원에너지서비스에 이어 전북에너지서비스, 평택에너지서비스, 부산도시가스 등도 집단에너지 사업에 진출함으로써 SK E&S는 총 10개의 지역냉난방 사업 및 산업단지 집단에너지 사업을 운영 또는 추진하고 있다. 집단에너지사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SK E&S는 친환경 고효율 에너지를 공급하는 집단에너지 사업을 미래성장 사업 중 하나로 선정해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그 첫걸음은 2008년 4월 수도권 내 최대 규모의 집단에너지 사업인 위례신도시 집단에너지 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한국지역난방공사와 손잡고 사업허가신청서를 제출한 것이었다. 4개월 뒤인 8월에 사업자로 선정됐으나 위례신도시 조성사업 추진이 늦어짐에 따라 진척을 보지 못하다가 2012년 7월 위례에너지서비스(주) 를 SK E&S 71%, 한국지역난방공사 29% 국내에서 해외로 민자발전사업 확대 SK E&S는 2009년 3월 경기도 평택시 오성천연가스발전소 건설사업을 승인 받음으로써 민자발전 사업에 진출했다. 오성천연가스 발전사업은 평택시 오성면 안화리 일대에 800MW급 친환경 천연가스발전소를 건설, 운영하는 사업이었다. SK E&S는 2010년 10월 발전소 건설에 들어갔으며, 2013년 1월에 공사를 완료했다. SK E&S가 집단에너지 사업과 발전 분야로 관심을 돌리게 된 것은 점차 정체기에 접어들고 있는 도시가스 사업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이에 따라 SK그룹 60년사

191 집단에너지 발전사업 분야의 네트워크를 확대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발전원료로 사용하는 LNG의 가격 경쟁력 확보에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케이파워 주식 인수도 이런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SK(주)는 케이파워 주식의 65%를 보유, 1대 주주로서 경영권을 행사해왔으나 2대 주주인 BP로부터 나머지 35% 지분을 인수해 전량을 확보했다. 케이파워는 광양지역에 1074MW 규모의 LNG 복합화력발전소를 보유하고 있는 국내 최초의 민간 상업발전회사였다. 특히 민간발전사업자로서는 최초로 LNG를 직도입해 원료로 사용하면서 높은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한편 2013년 2월 정부가 발표한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SK E&S가 신청한 여주복합화력 건설사업이 포함됨에 따라 2017년까지 950MW의 천연가스발전소를 건설해 운영할 계획이다. 국내 민간발전 사업에서 자신감과 경험을 축적한 SK E&S는 해외 발전사업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2012년 2월에 한국남동발전과 함께 터키의 국영 전력회사인 EUAS사와 압신-엘비스탄 지역에 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사업의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가동이 중단된 1,355MW 규모의 발전소 4기에 대한 개 보수 사업과 700MW급의 신규 발전소 2기(700MW)를 건설하는 프로젝트였다. SK가스, LPG원료로 석유화학사업에 도전 국내 LPG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1985년 설립된 SK가스는 국내 LPG 업계의 선두 주자로서 중추적 역할을 수행해왔다. 또 축적된 노하우와 탁월한 시장 경쟁력을 기반으로 국내 LPG 시장점유율 1위의 위치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으며, 안정적인 경영성과를 바탕으로 끊임없는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SK가스는 전국 500여개 충전소를 통해 가정 상업용 차량용 LPG를 공급하고 있다. 또한 국내 정유사와 석유화학사 등의 대형 고객을 비롯해 철강 제지업 등 주요 산업체에 연료 및 원료용 LPG를 공급하고 있다. 기존 LPG 사업에 새로운 기술을 결합한 새로운 사업모델을 발굴함으로써 새로운 수요와 가치를 창출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다. 2012년에 LPG를 원료로 하는 석유화학사업 진출을 선언한 것이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SK가스는 프로판 탈수소화 과정(PDH)을 통한 프로필렌 생산사업 진출을 추진하기로 하고 울산에 연산 60만 톤 규모의 프로필렌 생산 공장을 설립할 계획을 세웠다. SK가스의 석유화학 사업 진출은 프로필렌 생산을 통한 사업영역 확장과 기존 액화석유가스(LPG) 사업과의 시너지 창출에 목적이 있었다. SK가스가 석유화학사업에 발을 들여놓기로 한 것은 LPG 수입업만으론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이었다. LPG는 가정용 난방이나 택시연료 등으로 쓰이는데, 국내 수요가 정체되고 있었다. 2011년 국내 전체 LPG 수요는 863만 4,000 톤으로, 전년의 844만 톤에 비해 2.3% 늘었지만 주력시장인 가정 상업용 및 수송용은 줄어들고 있었다. 이에 따라 SK가스는 2008년부터 신규사업본부와 자원개발본부를 두고 신성장동력 SK그룹 60년사

192 발굴에 노력을 기울였다. 해양심층수 사업을 추진하기도 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중국 LNG 사업의 성장성을 보고 관계사인 SK E&S와 함께 차이나가스홀딩스에 투자했지만 SK E&S에 지분을 매각하고 소액주주(2.25%)로 남게 됐다. SK가스는 셰일가스 가격혁명에 힘입어 LPG를 원료로 프로필렌을 제조하는 석유화학 사업에 진출하기로 했다. 2015년 매출액 10조, 영업이익 1조 원을 달성, 글로벌 친환경에너지 기업으로 우뚝 서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세웠다. 프로필렌은 타이어나 패트병 등의 기초원료로 쓰이는 석유화학제품으로 2016년에는 아시아에서만 연간 약 1,000만 톤 규모의 공급 부족현상이 빚어질 것으로 전망되었다. 프로필렌은 주로 나프타를 분해해 에틸렌을 얻는 나프타 분해공정(NCC), 중질유를 나눠 가솔린을 추출하는 중질유 분해시설(FCC)공정에서 부산물로 나왔다. NCC와 FCC 공정은 에틸렌 공급 증대와 휘발유 시장의 성장성 한계 탓에 프로필렌 수요를 충족시키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와 달리 가스 기반의 PDH 공정을 활용하면 원가경쟁력이 우수한 프로필렌을 생산할 수 있었다. 이런 시점에서 PDH 공정이 셰일가스 등의 증산으로 프로필렌 공급 부족을 메울 수 있는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앞서 SK가스는 2011년 11월 미국 실리콘벨리 소재 연구개발회사인 PARC(Palo Alto Research Center)와 포괄적 기술협력 각서를 체결했다. SK가스는 PARC가 보유한 기술을 바탕으로 LPG를 활용한 석유화학제품의 제조 및 전환가능 신재생에너지 관련 기술을 확보하기로 했다. SK가스는 울산지역에 세계 최대 규모인 27만 톤의 LPG 저장시설을 보유하고 있는데다 사업부지와 부두 등 필요한 기반시설을 갖고 있어 초기 투자비를 대폭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울산에 이어 평택에 20만 톤 규모의 저장기지를 추가로 건설해 수도권과 중부지방의 원활한 LPG 공급을 담당하고 있다. SK텔레콤, 글로벌 ICT산업을 선도하다 SK텔레콤은 고객의 스마트 라이프 실현에 앞장서기 위해 고객 개개인의 편의와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혁신적이고 세분화된 서비스로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또 고객가치 향상을 위해 변함없는 노력을 지속해 2012년 국내 3대 고객만족도지수인 NCSI(국가고객만족도)와 KCSI(한국산업의 고객만족도)에서 15년, KS-SQI(한국서비스 품질지수)에서 13년 연속 1위를 수상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SK텔레콤은 정보통신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최고의 음성 문자 서비스, 솔루션 제공하고 있다. 이를 통해 모든 산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전 세계인의 커뮤니케이션과 정보 이용을 편리하게 하고 있다. SK텔레콤은 비즈니스 파트너와의 동반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상생경영을 추진하고, 국내 협업을 기반으로 에코시스템을 만들고 글로벌 무대로 동반 진출하는 ICT리더를 꿈꾸고 있다. 국내 최초 LTE 상용화로 4G 시대 열다 우리나라 이동통신 사업을 이끌어 온 SK텔레콤은 2011년 7월 국내 최초로 LTE(Long Term Evolution) 상용화를 시작하며 4G시대를 열었다. LTE는 기존 3세대 WCDMA망(HSUPA) 대비 하향 5배, 상향 7배 빠른 차세대 네트워크이다. SK텔레콤은 LTE 상용화 이후 고도화에 힘써 세계 최초로 SCAN(Smart Cloud Access Network) 기술을 LTE망에 적용함으로써 경쟁사보다 속도 및 커버리지 면에서 질 높은 LTE 서비스를 제공했다. 11월에는 시범망을 통해 세계 최초로 클라우드를 활용한 LTE 구축인 스마트 클라우드 기지국 을 선보였다. 12월에는 LTE와 Wi- SK그룹 60년사

193 Fi 서비스를 하나의 장비에서 제공하는 Wi-Fi 통합형 LTE 펨토셀 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고 이를 LTE망에 적용해 나갔다. 2012년에도 SK텔레콤의 LTE 혁신이 이어졌다. 5월에는 850MHz 및 1.8GHz 주파수를 모두 LTE로 사용해 2배 용량의 LTE 네트워크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멀티캐리어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며 다양한 모바일 혁신과 진화를 이끌었다. LTE 상용화 1년 만인 2012년 6월말 읍면 단위까지 촘촘한 LTE전국망을 구축하며 커버리지를 완비했고, 전파가 닿기 힘든 실내와 지하공간에 LTE펨토셀과 기지국 용량을 늘리는 테트라셀 등을 잇달아 구축해 세계 최고 수준의 LTE품질을 완성했다. SK텔레콤의 이러한 끊임없는 노력에 힘입어 2012년 12월에 가입자 700만 명을 돌파했다. 국내 최초 LTE 상용화, 세계 최초 LTE 멀티캐리어 구축 등 LTE 성장을 주도해 CDMA, WCDMA에 이어 LTE 네트워크에서도 독보적인 국내 1위를 유지했으며, 버라이즌, NTT도코모와 함께 세계 3대 LTE사업자의 위상도 굳건히 했다. 2013년 3월에는 스페인에서 열린 MWC(Mobile World Congress)에서 최고의 LTE공헌상을 수상했다. 2013년에 신설된 이 상은 통신, 장비, 솔루션 및 플랫폼 등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 전 분야를 대상으로 LTE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한 기업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스마트러닝 사업, 국내를 넘어 해외로 SK텔레콤은 최고 수준의 최첨단 ICT를 교육분야와 융합한 스마트러닝(Smart Learning)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2011년 6월 교육업체인 대교와 고객 서비스 혁신을 위한 스마트 모바일 도입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SK텔레콤은 장애학생을 위한 스마트 학습지원에도 앞장섰다. 2012년 4월 교육과학기술부가 장애학생의 교육차별 해소 및 학습권 보장을 위해 추진하는 장애학생 스마트 러닝 지원사업 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스마트폰 전용 음성 콘텐츠 서비스인 행복을 들려주는 도서관 을 운영하는 등 다양한 장애학생 학습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장애인의 학습편의 증대 및 권익향상에도 앞장섰다. SK텔레콤은 스마트러닝 사업을 글로벌 사업으로 확장했다. 2012년 5월 인도네시아 최대 통신사업자인 텔콤(Telkom)과 영어 교육용 스마트러닝 서비스인 잉글리시 빈 (English Bean)을 론칭했다. SK텔레콤이 해외시장에 처음으로 소개한 잉글리시 빈 은 웹과 모바일은 물론 페이스북과 유선 전화 등의 다채로운 방식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영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신개념의 영어 학습 프로그램이다. 또 2012년 5월에는 미국 최대 교육 사업자인 Houghton Mifflin Harcourt와 손잡고 국내 스마트 러닝 시장 강화와 글로벌 스마트러닝 시장 공략에도 나섰다. 2012년 10월에는 터키를 대표하는 가전업체인 베스텔(VESTEL) 과 손잡고 유라시아 지역 스마트 교육시장에 진출하기도 했다. 최태원 회장이 2012년 3월 서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에참석한 터키 레제프 에르도안(Resep Tayyip Erdogan) 총리와의 단독면담에서 사업협력 방안으로 논의한 것이 결실을 맺은 것이었다. 이러한 해외시장 진출은 스마트러닝에 쏟아온 SK텔레콤의 노력이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SK텔레콤은 2010년부터 장애인 스마트러닝 프로그램, 클라우드 교육기반조성 정보화 전략계획 등의 정부 프로그램 주간사로 지정되는 등 스마트러닝 시장의 확산을 위해 많은 정성을 기울였다. 또 다양한 스마트 기기들을 활용해 교육을 할 수 있는 스마트러닝 플랫폼 T스마트러닝 을 2011년 7월 출시했다. 이에 앞서 6월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스마트러닝 활성화를 위한 협약을 체결하는 등 국내 스마트러닝 생태계 조성에 힘써왔다. 헬스케어 ICT 사업으로 인류의 건강 책임진다 SK텔레콤은 최고 수준의 최첨단 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해 의료기관과 공동으로 헬스케어 ICT사업을 추진함으로써 인류의 건강한 미래를 책임지는 데도 선도적으로 발벗고 나섰다. SK텔레콤은 서울대학교병원과 손잡고 2012년 1월 정보통신 기술과 의료가 SK그룹 60년사

194 접목된 융합형 헬스케어 합작투자회사 헬스커넥트주식회사를 공식 출범시켰다. 헬스커넥트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환자, 의료진, 가족 등 의료 서비스의 모든 이해 당사자와 첨단 헬스케어 장비 및 시스템을 연결하는 스마트 모바일 헬스를 지향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헬스커넥트는 모바일 기반의 자가 및 일상 건강관리 모델 및 서비스 개발 ICT 기반의 디지털병원 해외 진출 대한민국 헬스케어산업 발전을 위한 통합 R&D체계 구축이라는 3개의 큰 축을 중심으로 사업을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헬스커넥트의 출범은 치료 중심의 의학에서 예방의학 차원으로 의료의 패러다임이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 ICT를 기반으로 한 개인 맞춤형 예방 관리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국민 건강 증진을 통한 의료 만족도 향상과 의료비 절감, 치료의 질 극대화를 이끌어 국가 경쟁력 제고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됐다. 또 글로벌 트렌드에 발맞춘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기술과 ICT 역량의 결합으로 헬스케어 산업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큰 행보이기도 했다. SK텔레콤은 헬스커넥트 출범 외에도 최첨단 ICT를 활용해 모바일 의료 솔루션을 도입하거나 스마트 호스피탈 과 스마트 간호 (Smart Nurse), 스마트 전자동의서, 스마트 메디페이 (Smart Medipay) 등을 구축해 의료서비스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했다. 이를 위해 삼성의료원, 고려대병원, 충남대병원, 경북대병원, 고신대병원, 조선대병원 등 주요 병원들과 MOU를 체결하고, 지속적으로 협력해 나가고 있다. SK C&C, 모바일 커머스 솔루션의 세계 강자로 부상하다 SK C&C는 1991년 설립 이래 공공, 금융, 통신 미디어, 에너지 화학, 물류 서비스 등 전 산업영역에 걸쳐 IT컨설팅과 아웃소싱, 시스템 구축 및 유지보수 등을 제공해온 토털 IT 서비스 업체이다. 특히 금융, 통신, 에너지 분야 시스템 구축 역량 및 솔루션은 업계 최고로 인정받고 있으며, 최근에는 공공분야의 대규모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에서도 두드러진 성과를 내고 있다. 2010년 이후 SK C&C가 역량을 결집하고 있는 분야는 모바일 커머스 솔루션 분야이다. 이를 위해 2010년 미국법인을 설립하며 미주지역 진출을 모색했다. 가시적인 첫 성과는 2010년 9월 미국결제시장의 40%를 점유하는 세계 최대 전자 지불 결제서비스 업체인 퍼스트데이터 코퍼레이션(FDC) 와 손잡고 북미지역 모바일 커머스 시장에 진출하기로 한 것이었다. 양사는 북미지역 TSM 종합서비스 공동제공계약 을 체결하고 세계 최초로 TSM(Trusted Service Manager) 및 m-월릿 사업을 개시했다. 이는 SK C&C가 국내시장에서 축적한 탄탄한 기술력을 토대로 미국 IT서비스시장은 물론 미국 모바일 커머스시장에서 글로벌 리더로 발돋움할 것이라는 기대를 높인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SK C&C와 FDC는 사업 협력 7개월 만에 북미지역 모바일 커머스 서비스 상용화를 선언했고, 2011년 5월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종합 모듈형 커머스 솔루션 브랜드인 코어파이어 (CorFire)를 선보였다. 코어파이어는 SK C&C가 글로벌 모바일 커머스 시장 공략을 위해 개발해온 신뢰기반서비스관리(CorTSM)와 전자지갑(CorPay) 솔루션, 모바일 마케팅(Cor360) 솔루션 등을 담은 종합 모듈형 M-커머스 솔루션 브랜드였다. SK C&C는 특히 자체 SK그룹 60년사

195 보유한 사용자 소프트웨어 OTA(Over The Air) 프럭시(Proxy)를 통해 어떠한 통신 네트워크 환경에서도 신뢰기반서비스관리(TSM) 서버와 단말기 간 거래, 승인정보를 동기화시킴으로써 기술 신뢰성을 제고했다. 이 같은 기술 강점을 바탕으로 SK C&C와 FDC는 2011년 6월 구글이 추진하는 모바일 결제서비스 구글 월릿에 기반기술인 신뢰기반서비스관리 솔루션을 공급했다. 이 솔루션은 통신사와 금융사, 도 소매점 등 모든 모바일 결제서비스 참여업체들이 고객정보 기밀을 유지하면서도 전자지갑으로 신용카드, 선불카드, 쿠폰, 기프트카드 등 각종 모바일 전자상거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SK C&C는 기술력과 그동안의 운영 경험을 앞세워 미국 던킨도너츠에 코어파이어 공급업체로 선정되는 성과를 올렸다. 구글에 이어 던킨도너츠로부터도 모바일 결제 기술을 인정받은 셈이었다. 던킨도너츠와 SK C&C 북미법인은 2012년 4월 내부 테스트를 거쳐 같은 해 8월 미국 6,000여 개 던킨도너츠 매장에 선불카드 개념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코어파이어를 동시에 적용했다. 오픈 플랫폼 전문기업 SK플래닛 출범 SK텔레콤은 2011년 10월 플랫폼 사업을 담당할 새로운 자회사로 SK플래닛을 출범시키고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로의 힘찬 도약을 시작했다. SK텔레콤이 SK플래닛을 출범시키고 서비스플랫폼 사업을 본격화한 것은 미래 성장가능성뿐만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성장동력 창출 및 중소 협력사와의 동반성장을 통해 국가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적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SK텔레콤이 국내 최고 최대의 이동통신사로서 보조금 중심의 마케팅 경쟁구도에서 벗어나 거시적인 차원에서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의지였다. 서비스 플랫폼은 단순히 콘텐츠, 서비스, 애플리케이션 등을 고객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개발자와 협력하는 개방성과 확장성을 가지고 있다. 페이스북, 구글 맵스, 애플의 아이튠스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SK텔레콤은 기존의 T맵, T스토어, 문자서비스 등을 서비스플랫폼으로 발전시킨다는 구상으로 이 서비스들의 기반기술(API)을 공개해 글로벌 서비스플랫폼으로 키워 가겠다는 것이었다. SK플래닛의 회사명은 행성을 뜻하는 플래닛 (Planet)이기도 하며, 동시에 플랫폼(Platform)과 네트워킹(Networking)이 결합도 의미했다. 즉 새로움이 넘치고 미지의 꿈이 담긴 커다란 세상을 의미하며, 플랫폼을 기반으로 상생의 에코시스템(Eco system)을 통해 새로운 개인적인 관계, 새로운 거래관계, 새로운 사회적인 관계를 만들어 가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었다. 회사명에 담긴 회사의 비전은 상상의 공간에서 플랫폼 사업의 무한한 가능성을 실현하는 세상을 만들어 가겠다는 진취적인 철학도 담겼다. SK그룹 60년사

196 SK텔레콤의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 도약 비전은 이미 2010년 10월 상생혁신센터 개소식에서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 로 도약하겠다는 성장전략을 제시하면서 분명해졌다. SK텔레콤은 이날 개소식에서 7대 조기 육성 플랫폼군 으로 LBS, Commerce, Messaging, Contents 유통, SNS, B2B, 범용 플랫폼 등을 제시했다. SK텔레콤의 이러한 구상은 플랫폼사업을 담당할 자회사 출범으로 구체화됐다. 즉 회사를 통신 영역과 플랫폼 영역으로 사업을 분할해 각자의 비전과 성장에 최적화된 2개의 독립 사업구조로 개편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결실이 바로 SK플래닛의 탄생이었다. SK플래닛은 플랫폼사업의 성패를 가를 수 있는 신속한 의사결정 문화를 통해 변화하는 고객의 요구와 시장의 트렌드에 한발 빠르게 반응함으로써 혁신적 서비스를 선점해 나간다는 전략이었다. 또한 자유로운 운영 시스템과 변화와 도전을 통해 혁신을 창조하는 조직 문화를 만들어 단기적인 수익성보다는 중장기적인 성장성을 추구해 나간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SK플래닛은 출범에 즈음해 개방과 혁신, 상생협력을 통해 글로벌 플랫폼 이노베이터 (Global Platform Innovator)로 도약해 5년 뒤에는 기업가치 5조 원의 아시아 최고의 플랫폼 회사가 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SK플래닛은 보다 혁신적인 경영 시스템과 차별적인 기술력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T스토어, T맵 등의 플랫폼과 뉴미디어(호핀), 커머스(11번가), 미래유통망(이매진) 등의 플랫폼을 중심으로 사업 혁신 및 신규 개발에 주력해 나갔다. 2011년 10월에는 모바일 네트워크 게임을 쉽게 만들고 쉽게 즐길 수 있는 오픈 API 기반의 T스토어 게임센터 를 선보였고, 미국 ViKi의 지분 참여를 통해 글로벌 영상플랫폼 시장에도 본격 진출했다. 대한민국 대표 앱스토어 T스토어 는 일본에서 안드로이드 앱스토어 킵 (qiip)을 론칭하며 일본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또한 국내 최대 모바일 지갑 서비스인 스마트월릿 은 SK플래닛이 사업을 승계한 이후 2011년 11월에 종이쿠폰을 대체하는 새로운 개념의 스탬프 모바일 멤버십을 출시하는 등의 노력에 힘입어 서비스 출시 2년 만인 2012년 6월 가입자 500만 명을 돌파했다. 여러 기업들이 고객 서비스 강화 차원에서 유사 전자지갑 서비스에 뛰어들고 있지만 대부분 가입자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스마트월릿의 이러한 성과는 대한민국 모바일 지갑 서비스 대표주자로서 위상을 굳건히 하기에 충분했다. SK플래닛은 또 2012년 7월 NFC 토털 솔루션 개발을 완료하고, NFC 기술기반의 다양한 서비스 개발 경험과 국내시장에서 축적한 운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글로벌 NFC 시장으로 본격 진출했다. SK플래닛은 솔루션 개발 단계에서부터 인도네시아의 단말기 사업자, 태국의 이동통신 사업자와 협의를 진행 중이며, 동남아시아 시장을 시작으로 글로벌 NFC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계획을 수립했다. SK플래닛은 국내 시장 활성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는 한편 글로벌 NFC 사업의 리더로서 글로벌 NFC생태계 구축의 주도적인 역할을 해 나간다는 포부다. 이를 위해 유수의 NFC 업체들과 NFC비즈 파트너 그룹 을 출범시키는 등 인프라 확대와 외부 파트너 및 개발자와의 상생협력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출범 이후 성장가도를 이어가던 SK플래닛은 2013년 2월 1일, SK마케팅앤컴퍼니와의 합병을 통해 모바일과 온오프라인 마케팅을 아우르는 통합 플랫폼 전문기업으로 거듭났다. 새롭게 탄생한 SK플래닛은 디지털 콘텐츠(Digital Contents), 뉴 커머스(New Commerce), 마케팅 커뮤니케이션(Marketing Communication) 등을 중심으로 합병에 따른 시너지를 창출하고,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신성장 동력을 적극적으로 발굴한다는 계획을 수립해 추진하고 있다. SK그룹 60년사

197 SK브로드밴드, 글로벌 IDC사업 확대 SK브로드밴드는 1997년 설립된 하나로텔레콤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나로텔레콤은 국내 시내전화 시장의 경쟁시대 개막을 알리며 제2시내전화 사업자로 출범했으며, 세계 최초의 ADSL 상용화, 국내 최초 초고속 무선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해 대한민국이 IT강국으로 부상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특히 사업영역을 기존 음성 위주에서 초고속 데이터통신, 영상전화 등 멀티미디어 통신서비스는 물론, TV 포털서비스 상용화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확장하며 국내 정보통신업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도해왔다. 2008년 유무선, 미디어 컨버전스 시대를 이끌 SK브로드밴드로 새롭게 태어나 브로드밴드 기반의 컨버전스 트렌드를 창조해나가고 있다. 미래에 큰 흐름이 될 IPTV, VoIP 등 유무선, 방통융합은 통신시장의 자연스러운 진화라 할 수 있다. SK브로드밴드는 이런 진화의 흐름 속에 초고속 인터넷을 기반으로 유선 서비스 뿐 아니라 유무선결합, 방통융합 등 다양한 컨버전스 서비스를 제공해 고객이 더욱 편리한 세상을 열어가게 했다. SK브로드밴드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글로벌 시장에 뛰어들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고자 했다. 2011년 7월 세계 1위 전자지불결제업체인 퍼스트데이터와 손잡고 재난복구센터 구축과 전자지불결제 서비스시장 확대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양사는 전자지불결제시스템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재난복구센터를 SK브로드밴드의 인터넷데이터센터(IDC)에 구축하기로 합의했다. 또 고객 맞춤형 패키지 서비스인 B큐브 특화 서비스를 전자지불결제 시스템 분야로 확대하고, 퍼스트데이터와 전자지불결제 서비스의 신기술 개발 및 시장 개발 등을 협력하기로 했다. 이로써 SK브로드밴드는 글로벌 IDC 사업 확대 기반을 마련하고, 전자지불결제 시장 진출을 위한 전문 기술 및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었다. 2011년 9월에는 차이나유니콤 홍콩(CUHK)과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 협약을 통해 차이나유니콤과 한중 간 직접루트 및 홍콩 경유 백업루트를 확대해 중국 인터넷 접속 품질을 보다 향상시킬 수 있게 됐다. 또 기업전용망 연동과 함께 다양한 루트의 해저케이블을 연동함으로써 보다 안정적인 국제전용회선 서비스가 가능하게 했다. 이로써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 뿐만 아니라 한국에 진출한 중국기업들이 다양한 통신 서비스를 안정적이고 경제적인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을 뿐만 아니라 향후 한국, 중국, 홍콩의 IDC를 연동해 공동영업을 추진할 수 있게 했다. 중국 차이나유니콤과의 제휴에 이어 2012년 1월에는 대만 최대통신사업자인 청화텔레콤(CHT)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범 중화권으로 시장을 넓혀나갔다. 2012년 5월에는 해외 기업시장 공략을 위해 미국 서부 LA의 3곳에 IDC를 구축, LA의 원 월쉬어빌딩(One wilshire Bld.)에서 글로벌 IDC 개소식을 가졌다. SK브로드밴드는 해외 현지 IDC 안에 설비를 마련하고 상면(Co-location), 네트워크(Internet Access), 서버운영 대행(Server Operation) 및 유지보수(Maintenance) 등을 제공하는 글로벌 IDC 서비스 제공했다. SK브로드밴드는 가장 먼저 한국기업 및 교민이 가장 많이 진출한 미국 서부의 LA에 3곳의 글로벌 IDC를 구축하고 서비스를 개시하는 한편, 미국 LA 현지 3곳의 IDC에 한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지원하는 운용센터를 두고 고객사의 해외설비 운영부담을 최소화하는 등 서비스 장애 때에 신속하게 대응하도록 했다. 이렇듯 SK브로드밴드의 글로벌 IDC 서비스 진출은 국내 e-biz 사업자들이 해외에서 서버의 운영 및 유지보수 등에 큰 도움이 됐을 뿐만 아니라 SK브로드밴드의 국제 비즈니스 영역 다변화 및 국제사업 경쟁력을 한층 더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SK그룹 60년사

198 SK텔레시스, 전기 전력 설비 사업 진출로 신성장 동력 확보 SK텔레시스는 최신 통신기술인 4G LTE를 비롯해 중계기, 전송장비, 와이브로 등을 공급하는 국내 최고의 통신장비 전문업체이다. 1997년 중계기, 전송장비 등 B2B 기반의 통신 기본 인프라 구축사업으로 출발해 차별화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통신 사업자에 최적화된 솔루션을 제공해오고 있으며, 세계에서 두 번째로 와이브로 WAVE1 시스템을 상용화하는 등 통신장비 전문업체로서의 역량을 늘려나가고 있다. 국방통신장비 사업 분야에 진출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첨단 스마트 기능을 접목해 장비의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R&D 역량과 고객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2009년 국내기업 중 최초로 중동 요르단에 와이브로 상용장비를 수출했고, 인도네시아 경찰청 PPC 구축 프로젝트를 비롯하여 국내 최고 수준의 기술을 기반으로 한 해외네트워크 구축 관련 사업에 역량을 인정받고 있다. SK텔레시스는 사업 다양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를 위해 건축, 통신, 산업용 전기전력설비 장비 유통 사업에 진출했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전력 설비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던 상황에서 본격적인 전기 전력 설비 원스톱 솔루션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것이었다. SK텔레시스는 2012년부터 건축, 통신 및 산업용 전기 전력 설비 사업 진출을 위해 국내외 제조사와 손잡고 본격적인 사업화를 추진 중이다. SK텔레시스는 IDC, 기지국 등 통신용 전기설비를 시작으로 반도체, 플랜트 등에 필요한 산업용 전기 전력 설비로 제품 라인업을 확장해 매출을 높이고 인력과 시설을 확보하는 등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개발, 제조, 생산, 설계, 시공 등의 역량을 갖춘 전기 전력 설비 원스톱 솔루션 기업으로 시장에서 입지를 다질 예정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적 수준의 전력 통신 인프라를 갖췄으며 2005년부터 전력 IT 개발을 선제적으로 추진해오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태풍 등 자연재해로 인한 대규모 정전 등 전력난이 이슈화되면서 이로 인한 산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전력 설비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었다. 이에 SK텔레시스는 고도의 IT를 바탕으로 위기 상황에서도 원활하게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제품들을 개발 생산하기로 한 것이다. 또 2012년부터 시행된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화 제도 에 발맞춰 에너지의 효율적인 분배와 손실 방지를 위해 IT와 결합된 안정적인 기능형 장비들을 개발, 생산할 예정이다. SK텔레시스는 이외에도 친환경 에너지와 신재생에너지 관련 인프라를 구축하는 등 지속적으로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상해 국내 최고의 통신장비 제조 기업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새로운 사업 분야에서도 최고의 품질과 기술력을 인정받아 기업 경쟁력을 점차 강화해나갈 계획이다. SK그룹 60년사

199 SK텔링크, MVNO 사업 진출 SK텔링크는 1998년 설립 이래 국제전화사업의 지속적인 성장과 신규 서비스들의 성공적인 진입으로 명실상부한 종합 기간통신사업자로 성장했다. 현재 SK텔링크는 국제전화, 인터넷전화를 비롯해 Express, 시내전화부가서비스, SMS 등 고객의 다양한 니즈를 충족시키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유무선 통합, 신규서비스 개발과 해외시장 개척에도 적극 투자해 국내 통신시장을 이끌어가고 있다. 또 유무선 통합을 실현하는 FMC(Fixed Mobile Convergence) 서비스로 한단계 높은 통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010년대 들어 4세대 이동통신과 스마트폰이 통신 시장의 키워드로 부각되면서 상대적으로 관심권에서 멀어졌던 국제전화, 주파수공용통신(TRS) 등 틈새 사업자들이 신사업으로 분위기 반전에 나섰다. 유무선 간, 방송통신 간 융합 환경에 대응하면서 신시장 공략, 신사업 추진으로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정부는 2011년 7월 MVNO 사업 도입을 통해 이동통신시장 규모의 확대와 활성화를 꾀했다. SK텔링크도 MVNO 시장 진출을 통한 신사업 개척 의지를 다졌지만, 정부가 기존 이동통신계열사의 MVNO 시장 진입을 허가하지 않으면서 난항을 겪었다. 하지만 SK텔링크는 시장 진출 당위성과 활성화 의지를 바탕으로 전방위로 정부를 설득하여 사업권을 획득했다. SK텔링크는 2012년 6월 MVNO 서비스인 세븐모바일 (7mobile)을 론칭하고 본격적인 서비스에 들어갔다. MVNO는 SK텔레콤, KT 등 기존 이동통신사의 통신망을 빌려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알뜰폰 사업을 뜻했다. 세븐모바일은 SK텔링크를 대표하는 서비스인 국제전화 처럼 또 하나의 대표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의지와 숫자 7 이 뜻하는 행운의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SK텔링크는 다른 MVNO사업자보다 늦게 출발했지만 다양한 요금제로 2월까지 누적가입자수 16만 명을 기록하며 단기간에 MVNO 시장의 강자로 떠올랐다. 기존 이동통신요금에 비해 최대 33% 저렴한 선불상품을 시작으로, 2013년 1월에는 타겟 층에 맞춘 후불 상품을 출시해 사용자가 통화 패턴에 맞춰 합리적으로 요금제를 선택할 수 있게 했다. 또 2012년 3월에는 플랫폼기반서비스 확충과 대 중소기업 상생협력의 일환으로 동영상 애플리케이션 제작업체 아이디미디어와 사업 제휴를 체결하고 '아이디벨 서비스'를 제공했다. 아이디벨은 '동영상 컬러링', '동영상 벨소리' 앱으로 불리며 론칭 1주만에 5만 다운로드를 돌파했고, 2013년 3월 현재 38만 다운로드를 넘어섰다. 6월에 로엔과의 뮤직비디오 콘텐츠 제휴에 이어 11월에는 아이디벨 앱에 국내 최대 음원 유통사 중 하나인 KMP홀딩스의 K-POP 최신 뮤직비디오 콘텐츠를 추가로 제공했다. 이에 따라 싸이, 빅뱅, 소녀시대 등 국내 정상급 뮤지션들의 최신 뮤직비디오를 아이디벨 이용자들에게 더욱 폭넓게 제공할 수 있게 됐다. SK텔링크는 이밖에 2012년 5월 클라우드 기반의 영상회의 서비스 VaaS (Video as a Service)를 출시하는 등 유선과 무선, B2C와 B2B, 통신과 솔루션을 망라하는 종합 ICT 서비스 기업으로서의 위상을 굳건히 해 나가고 있다. SK그룹 60년사

200 SK네트웍스, 세계일류 통합마케팅회사로 도약하다 SK그룹의 모태인 선경직물에 뿌리를 두고 있는 SK네트웍스는 무역, 정보통신 사업, 에너지유통 사업, 소비재 사업에서 혁신적인 성과를 이어왔다. SK네트웍스는 기존 사업의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한편, 패션, 자동차, 자원개발, 부동산, 와인, NCD(New Concept Distribution)의 6대 신 성장축 육성에 집중하고, 전세계 20개국 74개 글로벌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세계시장에서 지속적인 성공 스토리를 써 내려왔다. 미래 성장전략을 밝힌 바 있었다. 이후 비석유 자원개발 사상 최대인 브라질 MMX 철광석에 7억 달러를 투자하고, 제주 핀크스 리조트 인수 및 부동산 통합법인 출범, 와인사업 소더비 크리스티 최고경매가 경신 등 공격적이고 스피디한 행보를 통해 지속적인 성과를 창출해 왔다. 이에 더해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석탄광물 사업을 양도받음으로써 6대 신성장축 전반에 걸쳐 확고한 육성기반을 마련해 재계의 이목을 끌었다. SK네트웍스는 성공적으로 구축한 성장기반을 바탕으로 2011년부터 본격적인 성장을 위해 전사적 역량을 집중해 나갔다. 그 결과 2012년 4월 중국 푸젠성 샤먼시에 연산 12만 톤 규모의 철강 가공센터인 SK네트웍스(샤먼)철강유한공사 를 완공했다. 이에 따라 철광석 개발에서 철강제품 가공 및 유통에 이르기까지 조강을 제외한 철강사업 관련 전후방 밸류체인 을 모두 아우르는 SK네트웍스만의 버추얼 철강기업 (제철소 없는 철강기업) 사업모델 완성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국내대표 광물자원 기업으로 도약 스마트 카라이프 시대 활짝 열다 SK네트웍스는 2011년 2월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석탄광물 사업을 인수했다. 2010년 사상 최대의 철광석 광산을 확보하는 등 철강자원 개발을 신성장동력으로 키워가고 있던 SK네트웍스가 석탄광물 사업까지 확보함에 따라 우리나라 대표 광물자원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석유자원을 담당하는 SK이노베이션과 함께 SK그룹의 양대 자원기업으로서의 위상을 강화했으며, 자원개발 사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양사의 광물자원 개발사업이 결합할 경우 자원개발 프로젝트가 11개에서 23개로 2배 이상 늘어나 사업 포트폴리오가 대폭 보강하게 됐다. 또 일시에 확보한 석탄 생산광구 4개를 바탕으로 관련 트레이딩을 확대할 경우 안정적인 수익기반 확보도 기대할 수 있었다. SK네트웍스는 2009년 8월 중기경영계획(3rd To-be Model)을 수립하면서 철광석 석탄(비철) 자동차 패션 부동산 와인 등 6대 신성장축을 중점 육성한다는 SK네트웍스는 2011년 2월 국내 최초로 첨단 텔레매틱스(Telematics; 자동차와 무선통신을 결합한 새로운 개념의 차량 무선인터넷 서비스) 기술과 렌터카 운행관리 정비 사고관리 카셰어링 서비스를 결합해 법인 및 영업용 차량을 스마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스피드메이트 법인차량 관리서비스 를 새롭게 출시했다. SK네트웍스는 2004년 2월 국내 최초 LBS기반의 긴급출동 서비스 시스템을 개발한 데 이어 2006년 9월 업계 최초로 멤버십 서비스 를 개시한 바 있었다. 2007년 9월에는 세계 최초 온 오프라인은 물론 모바일을 통합한 카라이프 포털사이트 구축을 완료하고 본격적인 서비스를 개시했다. 이를 통해 SK네트웍스는 고객과의 다양한 커뮤이케이션 채널은 물론 그간의 정비 서비스 중심의 이미지에서 탈피해 카라이프 토털서비스 브랜드로 탈바꿈했다. SK네트웍스는 2008년 6월 중고차 사업에도 뛰어들었으며, 2009년 1월 본격적인 자동차 원격진단 서비스 를 상용화한 데 이어 같은 해 3월과 11월 각각 국내 최초 SK그룹 60년사

201 법인차량 관리서비스인 FMS (Fleet Management System)와 개인 장기렌탈 서비스인 베네카 를 론칭, 첨단 기술력과 인프라를 두루 갖춘 토털 카라이프 사업자로서의 위상을 한층 강화해왔다. 패션사업의 글로벌리제이션 가속화 중국과 미국 패션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해 매년 100%에 이르는 성장세를 이어온 오즈세컨은 2012년 9월 유럽 및 아시아 대륙 진출을 본격 선언하고 글로벌 패션사업에 한층 박차를 가했다. 10월부터 순차적으로 영국의 최고급 백화점 하비 니콜스(Harvey Nichols)를 비롯해 그동안 한국 브랜드에 벽이 높았던 일본, 미국, 터키, 싱가포르의 글로벌 유명 백화점 및 멀티숍 8곳에 오즈세컨을 선보였다. 이로써 오즈세컨은 중국, 미국, 영국, 일본, 싱가폴, 터키 등 패션 사업의 성장 가능성이 높은 6개국을 중심으로 주요 상권에 채널을 확보함으로써 글로벌 패션 기업으로의 도약을 위한 기반을 더욱 견고히 다졌다. SK네트웍스는 글로벌 패션 사업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믿음을 갖고 있었기에 글로벌 사업 착수 3년 만에 국내 여성복 브랜드 사상 최대 글로벌 시장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향후 자체 브랜드의 디자인 역량 및 해외 진출을 강화하고, 해외 유명 브랜드와의 전략적 제휴 등을 통해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를 발굴, 육성하는 선도기업으로 진화함으로써 2015년까지 매출 1조 5,000억 원을 달성할 계획이다. 한편 SK네트웍스는 오즈세컨에 이어 2010년 하니와이 등 자체 브랜드의 중국시장 진출로 축적한 사업역량과 성공경험을 바탕으로 2011년 8월 국내 정상급 패션 전문기업인 한섬 과의 중국 독점판매권 계약을 체결했다. 이를 계기로 글로벌 패션기업으로의 도약을 선언한 SK네트웍스는 2012년 6월 베이징 신광티엔디, 상하이 메이롱쩐 등 중국의 주요 도시 최고급 백화점에 한섬의 브랜드인 시스템(System), SJSJ 매장을 나란히 입점시키는 등 총 10개 매장을 확보함으로써 중국 내 메이저 패션기업으로의 도약에 박차를 가했다. 그룹 모태 학생복 사업과 국내 와인사업 철수 SK네트웍스는 그룹의 모태 사업인 학생복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2012년 11월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을 위해 스마트(SMART) 학생복 사업을 유통망 및 협력업체들로 구성된 스마트F&D 에 양도한 것이다. 학생복 사업이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 더 적합하다는 여론과 대기업의 중소기업 상생실천을 강조하는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를 고려해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 SK그룹의 모태인 선경직물은 1970년부터 학생복 원단을 포함한 원단사업을 시작했으며, 원단생산 중단 후에도 1990년부터 스마트 브랜드로 직접 교복을 만들어왔다. 스마트는 국내 3대 브랜드로 자리 잡고 연간 1000억원 정도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었다. 여전히 안정적인 매출을 올렸지만 그룹의 주력 사업이 에너지와 화학, 통신 등으로 바뀌며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아졌다. 그동안 중소기업이 해야 할 업종을 대기업이 한다는 지적을 받아왔지만 학생복 사업을 수익보다는 그룹 모태 사업이라는 상징성에 의미를 두고 유지해왔다. 한편 SK네트웍스는 와인 유통 자회사인 WS통상 을 2012년 12월 제3자에게 매각 완료했다. WS통상은 2006년에 설립된 외국산 주류 수입 판매업체로, 2008년 9월 SK네트웍스가 100% 지분 인수해 자회사로 운영해 왔다. SK네트웍스는 대기업의 중소상생 실천이 강조되는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와 와인 유통업이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 더 적합하다는 여론을 반영해 이와 같은 결정을 내렸다. SK네트웍스는 국내 유통 사업을 매각하고 중국 등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글로벌 와인 유통 사업에 더욱 집중하기로 했다. SK그룹 60년사

202 SK건설, 유라시아 터널을 뚫다 SK건설은 토목, 건축, 플랜트 등 전반에 걸쳐 뛰어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거듭해왔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기술력과 시공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SK건설은 토목분야에서 도로, 철도, 항만 등의 국가기간산업과 건축분야에서 다양한 주거공간의 창출 및 대형 개발사업 참여로 국내에서 입지를 굳건히 하고 있다. 특히 플랜트분야에서는 지구촌 곳곳 대형 석유화학 및 발전시설의 수주와 성공적인 시공으로 세계적인 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플레이어로서 업계를 선도해 가고 있다. 글로벌화 및 플랜트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던 SK건설이 새로운 시장 개척에 또다시 성공했다. 2010년 11월 터키에서 발전소 건설 사업을 수주하며 첫 해외 화력발전 시장에도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었다. 갈탄을 주원료로 사용하는 150MW급 화력발전소 3기를 신설하는 투판벨리 프로젝트는 사업규모가 9억 5,000만 달러에 달했다. SK건설이 2015년 2월 준공을 목표로 2011년 3월 발전소 건설에 들어가면서 이 프로젝트가 세계적으로 이목을 끌었다. 세계 최초의 저칼로리 갈탄화력발전소라는 점에서였다. SK건설은 특별히 보강한 석탄이송설비와 순환유동층 방식의 최첨단 연소기술을 사용해 해외 선진업체들이 연소가 불가능하다 고 두 손을 든 저칼로리 갈탄을 연소시키는 실험에 성공했다. SK건설은 세계 최초란 수식어가 붙는 투판벨리 프로젝트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저칼로리 갈탄화력발전소 건설 성공은 향후 발칸반도와 동유럽 등에 산재한 갈탄산지를 갈탄화력발전소로 바꿔놓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발전 전문기업들조차 건설을 포기했던 기술적 어려움이 있는 투판벨리 프로젝트 를 SK건설이 성공적으로 수행 중인 것을 계기로, SK그룹은 2012년 2월 터키 국영전력회사인 EUAS와 20억 달러 규모의 화력발전 건설사업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성과를 거뒀다. 한편 SK건설은 라오스에서 수력발전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한국서부발전과 컨소시엄을 구성, 2008년 11월 라오스 정부와 수력발전 사업 개발에 대한 PDA(Project Development Agreement)를 체결했다. 세남노이(Xe-Namnoy) 수력발전 프로젝트는 국내 최초로 해외에서 추진된 민관합동 사업이었다. BOT(Build, Operate and Transfer) 방식으로 추진되는 이 사업은 재원조달에서부터 시공 및 운영까지 약 30년간의 양허를 획득해 추진되며 사업 규모가 10억 달러에 달했다. SK건설은 발전소 시공을, 한국서부발전은 발전소 운영 및 관리를 담당하게 된다. 라오스를 흐르는 메콩강 지류를 막아 3개 댐을 쌓고 낙차가 큰 지하수로와 발전소를 건설하는 이 프로젝트는 발전용량이 410MW로 국내 최대 규모의 충주댐과 맞먹는 초대형 규모이다. 2013년 5월 착공에 들어가 2018년 준공한 후 생산한 전력을 대부분 태국으로 수출할 예정이다. SK건설은 라오스에 이어 동유럽 국가인 그루지야에서도 수력발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전력과 손잡고 2009년 12월에 수주한 나마크바니 수력발전 사업은 흑해로 흘러들어가는 리오니강에 3개소의 댐을 설치하는 프로젝트로 발전 규모는 총 450MW이며 사업비는 10억 달러 규모였다. BOO(Build, Own, Operate) 형태로 진행되는 사업에 SK건설은 13%의 지분으로 참여해 시공을 담당하기로 했다. 한편 SK건설은 한국남동발전과 손잡고 3조 원 규모의 신( 新 )삼천포 친환경 화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신삼천포 화력발전소는 삼천포화력 인근 부지에 1,000MW급 화력발전설비 2기를 건설하는 공사이다. 정부가 2013년 2월 발표한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신삼천포 화력발전사업이 채택됨으로써 2013년부터 투자자 모집 등 사업활동에 착수하게 된다. 2014년 6월에 발전소 건설에 들어가 2018년 SK그룹 60년사

203 연말까지 1호기를, 2019년 연말까지 2호기를 준공한다는 계획이다. 향후 SK건설은 EPC(설계 구매 시공)를 담당하고, 한국남동발전은 운영 및 관리에 참여하게 된다. SK건설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초대형 해저터널 공사에도 참여했다. 2013년 1월 착공했한 이 프로젝트는 SK건설을 포함한 SK그룹 계열사와 터키 기업인 야피메르케지가 각각 50%씩 지분을 투자한 총 사업비 12억 4,000만 달러 규모의 초대형 토목공사이다. 유라시아 터널 프로젝트는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가르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5.4km 복층 해저터널로 연결하는 사업이다. 해저터널의 접속도로를 포함한 공사 연장이 14.6km, 총 사업비가 12억 4000만 달러에 달해 리비아 대수로 공사 이후 한국기업이 해외에서 벌인 최대 토목 공사로 꼽힌다. 공사기간은 총 52개월로 2017년 4월 개통 예정이며, 유지보수 및 운영기간은 공사 완료 후 26년 2개월이었다. 시공은 SK건설과 터키 대형 건설사인 야피메르케지가 공동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SK건설은 일본과 프랑스 등 선진국들이 주로 실적을 보유한 해저터널 사업에 국내기업으로는 최초로 해외진출에 성공했다. 여기에 초대형 해외 개발사업으로는 드물게 프로젝트 발굴에서 운영까지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는 BOT(건설 운영 양도) 방식으로 추진돼 주목을 받았다. 특히 유라시아 터널 프로젝트는 금융약정의 핵심인 터키 정부의 채무인수보증이 있는 터키 최초의 민관협력사업(PPP)으로 SK건설과 터키 정부가 긴밀하게 협력하며 사업을 추진해 의미가 남달랐다. SK해운, 재도약 기반 완성하다 SK해운은 탱커, 가스선, 벌크선, 벙커링의 기본 4대 사업을 중심으로 1982년 창립 이래 다양한 해상수송 경험과 역량을 축적해오면서 세계적인 자원수송 전문회사로 성장했다. 탱크선 사업은 동북아시아 최고의 원유수송 회사로서 아시아 메이저 규모의 선대를 바탕으로 국내 원유도입 물량의 1/3을 수송하고 있다. 가스선 사업은 6척의 LNG선으로 안정적인 LNG 수송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벌크선 사업은 대형화주 대상의 전용선 사업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한 Semi Liner 사업을 통해 고객가치를 높여가고 있다. 세계 1위 위상을 지켜가고 있는 벙커링 사업은 해상에서 조업하는 원양어선을 대상으로 고품질의 연료유와 다양한 용품, 부대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해오던 SK해운에게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창립 이후 최대의 위기였다. SK해운은 이를 극복을 위해 서바이벌 전략을 구사하는 동시에 SK해운은 재도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3rd To-be 모델을 설정했다. 핵심은 사업구조 혁신, 지배구조 혁신, 기업문화 혁신이었다. 사업구조 혁신을 위해 전용선 사업 등 안정된 비즈니스를 구조적으로 확대하고, Open 선대의 원가경쟁력을 높임으로써 재도약 기반을 완성하기로 했다. SK해운은 사업구조 혁신 전략에 따라 2010년부터 구체적인 성과를 달성하기 시작했다. SK가스용 VLGC 1척과 SK네트웍스 철광석 수송용 케이프 2척을 신조 발주했다. 벙커링사업의 안정된 비즈니스를 위해 4척의 사선을 도입했으며, 벌크선에서는 현대글로비스와 장기계약을 체결하고 초대형 철광석운반선 VLOC 1척을 신조 발주했다. SK그룹 60년사

204 VLCC 3척과 수프라막스 벌크선 4척 등 총 7척의 신조선을 인수했으며, 남부발전과 동서발전용 파나막스, 케이프를 각각 1척씩 도입했다. 신조 계획으로는 유조선과 벌크선 등 15척에 이르는 선박을 발주했다. 이는 2010년도 해운업계 신조선 최고 발주 기록이었다. 2011년에는 SK가스용 VLGC 2척을 신조 발주했으며, SK에너지와는 CVC 계약을 체결하고 소형 LPG선 1척을 도입했다. 벌크 비즈니스의 안정화 과정에서는 중부발전과 장기계약을 체결하고 케이프 1척을 도입했으며, 벙커링사업의 안정화를 위해서도 벙커링선 1척을 도입했다. 오픈 마켓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케이프 1척과 수프라막스 1척을 각각 확보했다. 그 외 신조선으로 벌크선 5척과 VLGC 1척 등 총 6척을 인수했다. 사업구조 혁신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얻은 SK해운은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2011년 1월 Beyond Great Shipping Company 를 회사의 새로운 장기 비전으로 선포했다. 비전 달성의 사업목표로는 전략을 내세웠다. 이는 2020년까지 연평균 20%씩 성장하여 기업가치 20조 원의 회사로 만든다는 전략이었다. 장기 비전 선포에 이어 SK해운은 지배구조 혁신에 박차를 가했다. 지배구조 혁신은 기존의 사업부문을 독립회사로 분사시켜 사업별 전문성과 자율성을 강화함으로써 SK해운 전체의 미래 전략 실행의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무엇보다 전문화와 집중화, 사업 포트폴리오의 단순화를 통해 기업가치를 획기적으로 증대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사업부문 분사는 벙커링, 벌크, 탱커, 선박관리 등 부문별 상황에 맞게 순차적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먼저 회계를 비롯해 평가 및 보상시스템 등 관리시스템을 분리하고, 독립채산제를 갖춘 다음, 사업부문을 독립 자회사로 분사하는 내용이었다. 2011년 7월 1일 선박관리 부문을 처음으로 분사하면서 SK해운은 지주회사 전환의 첫발을 내디뎠다. 첫 독립 자회사의 사명은 SK에스엠 이었다. 사업구조 및 지배구조 혁신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해운시황의 회복은 세계 경기 침체 및 금융환경 악화 등의 이유로 계속 지연되고 있었다. 이에 SK해운은 저시황 환경에서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글로벌 해운산업의 환경변화에 따른 새로운 기회를 선점하고자 4th To-Be를 수립했다. 내부 성장 측면에서는 새로운 안정적 비즈니스를 확보하고, 선대구성 및 운영의 최적화 등 기존 사업전략을 업그레이드함으로써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을 강화하기로 했다. 외부 성장 측면에서는 신규 해운 비즈니스 역량 확보가 가능한 타깃을 M&A해서 성장 전략 추진은 물론, 가치 제고를 가속화하기로 했다. 아울러 재무구조 측면에서는 다양한 Option 중에 하나로 벙커링 사업의 선제적 분리 준비 및 투자 Vehicle의 설립을 통한 외부 투자 유치 등을 추진하고, 조인트 벤처 및 제휴 등 Off-balance가 가능한 구조를 통해 내부 및 외부 성장 기반을 만들어나가기로 했다. 3rd To-Be 추진 기간 중 Value Innovation 진행과정에서 2012년 10월 벙커링 사업본부를 분사했다. 싱가포르에 SK B&T를 설립하고 본사의 벙커링 사업부문을 양도한 것이다. 독립 이후 SK B&T는 세계 벙커링 시장 점유율 1위의 위상을 바탕으로 더욱 시장지배력을 공고히 다져 나가고 있다. SK그룹 60년사

205 SK증권, 선진 금융 서비스로 해외 시장 진출 SK증권은 1955년에 설립된 전문 금융 투자 회사로 창립 이래 지속적인 혁신을 이어오면서 대한민국 자본 시장과 증권 산업 발전에 기여했으며, 1991년 SK그룹의 일원이 됐다. 최고의 금융 인재들이 본사 및 9PIB센터, 38지점, 26PIB영업팀, 1해외사무소 등을 통해 개인 및 법인 고객의 다양한 금융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 차별화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고객을 위한 더욱 발전된 서비스를 위해 업계 최고 수준의 리서치 역량을 확보해 고객별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체계적인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바탕으로 새로운 금융 투자 상품을 개발해 더욱 발전된 금융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SK증권은 우수한 금융 컨설팅 역량을 기반으로 2010년 국내채권 인수 1위, PEF 운용 규모 3위 등을 달성해 IB 시장에서 SK 브랜드를 구축하고 있다. 2011년 ETF LP 업무 등 신규 사업 발굴과 SF ABCP 영업 강화, 장외 파생상품 발행 등을 통해 추가적 수익을 창출하고 5000억 원 규모의 PEF를 신규로 설립했으며, 홍콩 현지법인 설립과 자산운용사 인수를 통해 해외사업 수행 기반을 확보했다.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SK증권의 노력은 2011년 8월 홍콩 내 자산운용사인 PCM(태자자본관리유한공사)의 지분 100%를 인수함으로써 결실을 맺었다. SK증권의 홍콩 금융시장 진출은 지난 2월 SK증권 인베스트먼트 아시아(SKSIA)를 홍콩에 설립하면서부터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홍콩사무소 설립에 이어 금융투자상품 전문가 중심으로 인력을 영입한 SK증권은 8월 19일 자산운용업 라이선스를 보유한 PCM을 인수했다. 이로써 SK증권은 홍콩을 기반으로 중국을 포함한 범 아시아시장에서 글로벌 금융정보에 뒤처지지 않는 다양한 투자 상품을 적기에 제공할 수 있게 됐다. SK증권은 자산운용업 진출에 성공한 뒤에도 향후 아시아 자산운용업과의 시너지 창출을 극대화하기 위해 홍콩 현지법인인 SK증권 홍콩 (SKS HK)을 통해 2012년 1월 홍콩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증권업 라이선스를 취득했다. 이로써 홍콩에서의 유가증권 거래와 기업들의 자금조달 및 인수합병 등에 관한 금융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된 SKS HK는 PCM이 운용하는 대안 투자펀드에서 부가적으로 발생되는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자산운용사와의 시너지 창출을 극대화할 수 있게 됐다. SK증권이 홍콩 진출에 공을 들인 것은 중국을 포함한 범 아시아시장에서의 사업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었다. 홍콩에서 아시아와 중국 본토를 향한 금융사업 교두보를 마련하고 글로벌 IB의 선진 금융 투자기법을 습득하기 위함이었다. 홍콩 진출에 앞서 중국 충칭시로부터 적격외국인유한책임사원(QFLP) 외화투자한도(FX Quota)를 할당 받은 홍콩 및 싱가포르 소재 투자전문회사인 액티스캐피털과 중국 사업에 대한 MOU를 체결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SK증권은 국내에서도 신시장에 진출하면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2010년 11월에는 금리 통화 상품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국내 선물업 본인가를 받았다. 이에 따라 코스피200 선물 옵션 등 주권을 기초로 한 선물업 외에 과거 선물회사들의 사업영역이었던 금리 통화 상품(미니금 금 돈육선물) 등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선물옵션상품 거래를 할 수 있게 됐다. 2011년 3월에는 금융투자업 변경인가를 받았다. 변경인가를 통해 추가로 인가 받은 금융투자업의 종류는 신탁업이며, 취급하는 금융투자상품의 유형은 금전, 증권, 금전채권, 동산, 부동산 등 종합재산신탁이었다. 이에 따라 SK증권은 투자매매업, 투자중개업, 투자일임업, 투자자문업 등 기존 업무영역에 신탁업을 더해 명실상부한 종합금융투자회사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했다. 이에 따라 SK증권은 채권형신탁, ELS신탁, 자사주신탁 등 특정금전신탁 중심의 업무를 도입하고, 증권신탁, 부동산신탁 등 재산신탁 업무로 영역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SK그룹 60년사

206 하이닉스 인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다 SK하이닉스는 1983년 설립된 반도체 전문회사로 메모리 반도체인 D램과 낸드 플래시를 주력으로 생산하고 있다. 또 디지털카메라의 필름 역할을 하는 CIS(COMS Image Sensor) 등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도 진출해 종합반도체 회사로 성장하기 위한 기반을 다져나가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업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 및 고부가가치 제품 포트폴리오를 바탕으로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2위의 위상을 지켜나가고 있다. 또 매출의 95% 이상을 수출하는 등 국가경제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SK그룹의 새로운 가족이 된 SK하이닉스는 전세계 17개국의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축적해온 해외사업 역량과, SK의 차별화된 모바일 사업역량을 더해 ICT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분리돼 채권단공동관리(워크아웃) 체제로 전환했다. 채권단은 출자 금액 회수를 위해 여러 차례 매각을 시도했지만 수조 원에 이르는 인수 대금 때문에 번번이 무산되다가 SK가 하이닉스를 품에 안았다. 하이닉스의 사업 부문도 이 과정을 거치면서 바뀌었다. 2000년까지만 해도 하이닉스는 종합 전자회사로서 TV와 백색가전을 제외한 전자제품 대부분을 생산했다. 하지만 2000년 이후 모니터사업부와 통신사업부 등을 하나 둘 다른 곳에 매각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메모리반도체 중심의 사업구조를 갖추게 됐다. 하이닉스는 이후 우리나라 대기업의 발전 경로에 비춰볼 때 매우 독특하면서도 성공적인 길을 걸어왔다. 주요 대기업들이 강력한 오너 리더십을 바탕으로 빠르게 SK텔레콤은 2011년 11월 14일 하이닉스 반도체 채권단 및 하이닉스반도체와 지분인수계약을 맺고, 조인식을 개최했다. 이듬해 하이닉스는 SK 하이닉스라는 사명으로 SK의 새 가족이 되었다. SK 가족으로 다시 태어나다 SK텔레콤은 2011년 11월 하이닉스 지분을 인수했다. SK텔레콤은 2011년 7월 인수의향서(LOI)를 제출한 이후 예비실사와 본 입찰 참여를 거쳐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데 이어 지분인수 계약을 체결해 하이닉스 인수를 사실상 완료했다. 1983년 설립된 하이닉스는 SK에 인수되기까지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는 등 어느 회사보다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설립 당시에는 현대그룹 계열사로 사명도 현대전자산업주식회사였다. 1999년에는 정부의 빅딜 정책에 따라 LG반도체를 흡수 합병했다. 이후 현대그룹이 외환위기 영향 등으로 위기를 맞으면서 2001년 현대그룹에서 계열 SK그룹 60년사

207 성장해온 데 반해 하이닉스는 대주주가 없는 상태로 10년 가까이 지내오면서도 꾸준히 경쟁력을 유지해왔다. 시장 1위 삼성전자를 추격해야 하는 2위 사업자로서, 또 언제든지 치고 올라올 수 있는 일본과 대만 업체의 추격을 따돌려야 하는 입장에서 하이닉스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형성해온 자율적인 기업문화 덕분이었다. 여느 기업보다 투명한 것으로 평가받는 하이닉스의 의사결정 구조도 자율적인 기업문화를 형성하는 밑바탕이 됐다. 하이닉스는 그간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를 분리하고 독립된 감사위원회 운영을 통해 견제와 균형이 조화를 이루는 지배구조를 갖췄다. 2012년 2월 하이닉스 임시주총과 이사회 등 인수 작업을 마무리한 뒤 첫 행보에 나선 최태원 회장은 하이닉스 이천공장과 청주공장을 잇달아 방문해 하이닉스가 행복할 때까지 어떤 역할도 마다하지 않고 직접 뛰겠다 면서 한마음 한뜻으로 함께 성장해나가자고 했다. 최태원 회장의 이러한 행보는 반도체를 통해 글로벌 성공 스토리로 만들어 내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었다. SK는 R&D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와 인재확보는 물론, 동반성장 경영을 통해 하이닉스를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만들어 나가기로 했다. 행복날개 달고 제3의 비상 시작하다 SK하이닉스는 2012년 3월 SK 행복날개 를 달고 SK그룹의 일원으로 공식 출범했다. SK하이닉스는 경기도 이천 본사에서 최태원 회장과 권오철 사장 등 2,000여 명의 구성원이 참석한 가운데 출범식을 열고 세계 최고 통합반도체 회사 로 도약하기 위한 새 출발을 선언했다. SK는 기존 에너지 화학과 정보통신이라는 양대 축에 하이닉스 인수를 통해 반도체라는 새로운 날개를 달면서 제3의 퀀텀 점프 를 위한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1980년 대한석유공사 인수와 1994년 한국이동통신 인수라는 두 번의 대도약을 통해 성장동력을 확보한 것처럼 하이닉스 인수가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SK에게 있어 하이닉스 인수는 단순한 인수합병이 아니었다. 그룹의 사업체질을 글로벌화해 또 다른 성공스토리를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SK가 새로운 성장축으로 하이닉스를 선택한 것은 기술 과 글로벌 이라는 양 날개를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이닉스 인수를 통해 ICT산업의 핵심 트렌드로 자리잡은 융합과 혁신 을 위한 사업다각화를 이루고, 중장기적으로 ICT 서비스업과 반도체 제조업간의 융합형 사업기회를 찾겠다는 복안이었다. 이와 함께 SK는 하이닉스 인수를 통해 그룹의 체질변화도 도모할수 있게 됐다. 하이닉스 인수는 SK가 명실상부한 수출지향형 기업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실제로 SK그룹은 수출비중이 95%가 넘는 하이닉스 인수를 통해 제조업의 수출비중이 단숨에 70%를 넘어섰다. 한편 SK하이닉스는 SK그룹 합류로 메모리 반도체를 넘어 종합반도체회사로 영역을 확대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특히 PC기반에서 모바일 중심으로 급격히 옮겨 가는 IT산업의 변화에 발맞춰 모바일 D램과 낸드플래시, CIS 등 모바일 솔루션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했다. 또 그룹 차원의 차이나 인사이더 (China Insider)전략을 바탕으로 세계 최대 반도체 시장인 중국에서 선두업체로서의 영향력을 더욱 강화하고, 시스템 반도체 사업역량 강화 및 인재 경쟁력 확보에 집중하는 등 중장기 발전을 위한 전략도 세웠다. 새로운 사명으로 거듭난 SK하이닉스는 이후 2012년 4월 3일 미국 스팬션과 양사 특허 사용에 대한 크로스 라이선스 및 SLC 낸드플래시 제품의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별도의 로열티 없이 양사의 특허에 대해 상호 라이선스 허용을 포괄하는 것으로 SK하이닉스는 이를 통해 글로벌 특허분쟁의 가능성을 줄여 경영불확실성을 해소시켰다. 5월에는 노사공동실천선언문을 채택했다. SK의 일원으로서 새롭게 출범한 2012년을 노사가 함께하는 행복 추구의 원년으로 삼아 세계 최고의 반도체 회사로의 도약과 SK하이닉스 구성원을 포함한 이해관계자 모두의 행복을 위해 노사가 한솥밥 한 식구 의 마음으로 적극 협력하기로 한 것이었다. SK그룹 60년사

208 6월에는 미국 IBM과 차세대 메모리 제품인 PC램 공동개발 및 기술 라이선스에 관한 전략적 제휴를 통해 PC램 상용화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함과 동시에 이를 미래사업 역량을 확충하는 계기로 삼았다. 뿐만 아니라 최태원 회장의 글로벌 R&D 역량강화 에 대한 의지를 반영해 이탈리아 낸드플래시 개발업체 아이디어플래시(Ideaflash S.rl)를 인수한 다음 유럽 기술센터인 SK Hynix Italy S.r.l(이탈리아 기술센터) 로 전환한 데 이어 미국 컨트롤러 업체인 LAMD 인수를 위한 본 계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SK하이닉스는 북미, 아시아, 유럽 3개 대륙에 총 4개의 글로벌 R&D 거점을 확보함과 동시에 낸드플래시 부문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하게 됐다. SK하이닉스는 또 6월 29일 청주 M12 라인의 준공식을 거행하고 세계 최고의 반도체 회사로 도약하기 위한 힘찬 발걸음을 시작했다. 300mm 웨이퍼 기준으로 월 4만 장 규모의 생산이 가능한 M12 라인 준공으로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빠르게 대처하기 위해 고부가가치 메모리 반도체를 중심으로 생산 규모를 지속적으로 확대해나가고 있다. 생명과학전문회사 SK바이오팜 출범 SK는 2011년 4월 1일 SK(주)의 라이프사이언스 사업 관련 자산 일체를 분리해 SK바이오팜을 설립했다. SK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육성해온 생명과학 사업의 역량을 계승한 SK바이오팜은 신약 연구개발과 CMS(Custom Manufacturing Service 의약중간체)로 축적한 역량을 바탕으로 생명과학 전문기업으로 출범했다. SK바이오팜은 출범과 함께 생명과학계의 강자로 떠올랐다. 신약개발 사업은 그동안 매년 1개 이상의 신규 임상물질을 만들어내고 있었으며,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승인받은 임상시험 건수가 국내 최고인 13개에 달했다. 해외 임상을 포함한 연구개발 역량은 세계 일류 수준에 올라있는 것으로 평가 받고 있었다. 원료의약품 생산을 담당하는 CMS사업은 AIDS치료제 중간체, 심혈관치료제 중간체 등 40여 종을 생산해 대부분을 화이자 등 세계 10대 제약회사에 판매하고 있었다. 고객으로부터 공정기술 및 촉매기술에서 차별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공급업체로 인정받은 결과였다. 2010년 10월에는 세계 최초로 연속공정이 가능한 원료의약품(API) 공장을 준공해 국제 수준의 제조 및 품질관리기준(cGMP)에 맞는 원료의약품을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이런 역량을 보유한 SK바이오팜이 출범함에 따라 대전 대덕의 신약개발연구소와 미국 뉴저지의 임상개발센터를 중심으로 간질, 신경병성통증, 우울증, 과민성대장증후군과 만성변비, 파킨슨병 치료제 등 혁신적 신약 후보물질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SK그룹 60년사

209 SK바이오팜은 설립 이후 굵직굵직한 성과를 일궈내며 세계적 생명과학회사로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2011년 9월에는 미국 메이요 클리닉(Mayo Clinic)과 루게릭병의 근본적 치료 신약을 공동 연구하기로 협약을 체결했다. 2011년 10월에는 독자 개발한 우울증, 조울증 등 정신질환 치료제를 중국 생명과학 전문기업에 수출하기로 했다. 2012년 2월에는 독자 개발한 신경병증성 통증 치료제가 미국 식품의약국으로부터 임상계획서를 승인받아 미국에서 2상 임상시험을 개시했다. 같은 달에는 간질(뇌전증) 치료제 YKP3089 가 범부처 전주기 신약개발사업 과제에 선정됐다. 이후 임상3상 시험에 성공하면 2017년경 제품 출시가 가능할 것이다. 한 달 뒤인 3월에는 독자 개발한 기능성 위장간 질환 치료제인 YKP10811 의 2상 임상시험을 미국에서 시작했다. 2상 임상시험을 완료하고 3상 임상시험이 모두 성공하면 이르면 2016년께 시장 판매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4월에는 응급형 비강분무 간질 치료제를 국내와 중국에 판매하기 위해 한미약품과 전략적 제휴를 체결했다. 이에 따라 한미약품으로부터 초기 계약금과 상업화 단계별 실시료를 받게 되며, 시판 이후 매출액에 따라 로열티 수익을 올리게 된다. 이르면 2014년에 국내, 2015년에 중국에서 각각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며, 향후 10년간 2000억 원 이상의 판매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12월에는 기능성 위장관 질환 치료제 YKP10811이 범부처 전주기 신약개발사업 과제로 선정됐다. 연구비를 지원받아 만성 변비 환자를 대상으로 YKP10811의 약효 검증을 위한 임상2상 후기 시험을 미국을 중심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YKP10811의 임상2상 후기시험과 임상3상 시험이 모두 성공하는 경우 빠르면 2016년경 제품 출시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SK임업 40년, 인재 육성의 40년 뜻을 잇다 산림보국 실현과 인재 양성을 위한 백년지대계 의 외길을 걸어온 SK임업이 2012년 11월 창립 40주년을 맞았다. 기업, 사회, 국가를 일류로 만들기 위해서는 인재 육성이 필요하다 며 인재 사랑이 남달랐던 최종현 선대회장은 1974년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세우기에 앞서 1972년 11월 재단의 재원 조달을 위해 SK임업(구 서해개발)을 설립했다. 나무를 키우는 것이 나라를 사랑하는 것 이라는 신념을 마음에 품고 있던 최종현 선대회장은 산림학자들과 함께 벌거숭이 민둥산에 오르며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친환경 복합 임업 기업으로 성장한 SK임업이 전국에 보유한 조림지는 4,100여 ha(약 1,200만 평)규모로 남산 13개 또는 여의도의 5배에 달하는 면적이다. 이들 임야에는 고급 수종인 자작나무를 비롯해 조림수 40여 종, 조경수 80여 종 등 380만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다. 높이 30cm의 나무는 인간의 정성과 기업의 혼이 깃들어 높이 30m 아름드리로 자랐다. 그리고 최종현 선대회장의 한결같은 나무와 숲 사랑을 거름 삼아 자라난 나무들은 울창한 숲을 이뤘다. SK임업은 1980년대부터 시작한 조경사업에서 단순 공사뿐 아니라 설계 및 유지관리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종합조경업체로 발돋움했다. 종합조경업체로서 SK그룹이 조성한 뒤 울산시에 무상 기증한 울산대공원의 설계, 시공을 맡기도 했다. SK임업은 국내 유일의 복합 임업기업에서 탄소배출권 조림사업, 신재생에너지 개발과 공급 등 환경을 보전하면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혁신형 기업으로 발전해 왔으며 해외 산림자원 개발까지 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차세대 친환경 청정 연료인 우드펠릿(Wood Pellet; 목재 부산물 등으로 생산하는 SK그룹 60년사

210 청정연료) 생산을 위해 2009년에는 국내 최초로 전남 화순에 우드펠릿 공장을 지어 신재생에너지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2010년 개원한 수페아이(Supe-i) 숲학교에서는 녹색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올바른 숲 교육에 힘쓰고 있다. 2011년에는 그간 축적한 조림사업 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산림청 산하 녹색사업단과 함께 캄보디아 씨엠립 산림 황폐지 복구사업을 수주했다. SK임업이 4,000여ha를 조림하면서 쌓아온 노하우를 처음으로 해외에 전수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컸다. 2012년 1월부터 강원도 고성에서 A/R CDM사업(탄소배출권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이 사업은 신규조림 또는 재조림을 통해 심은 나무가 성장하면서 흡수하는 온실가스(탄소) 절감량을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SK임업은 이어 UN기후변화협약(UNFCCC)에 A/R CDM사업 등록을 추진하고 있다. UN 등록이 완료되면 조림사업을 통해 국제적으로 거래할 수 있는 탄소배출권을 보유하는 국내 1호 기업이 된다. 2012년 6월 SK임업은 SK건설의 사업부문에서 다시 독립해 지주회사인 SK(주)의 자회사가 됐다. 선대회장의 유지인 인재보국 과 산림보국 을 계승하고 친환경사업을 확장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핸드볼을 비롯한 스포츠 진흥에 적극 나서다 최태원 회장은 2008년 12월 대한핸드볼협회장에 취임(2013년 2월 연임)하면서,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린 효자종목이면서도 국내에서 외면을 면치 못하던 핸드볼의 중흥을 적극 도모했다. 2009년 핸드볼 발전과 우수 꿈나무 육성을 위해 핸드볼발전재단을 설립하는 한편, 2011년 10월에는 총 434억 원의 공사비를 들여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내에 핸드볼전용경기장을 건립해 기부했다. 붐 조성에 앞서 인프라 강화를 통해 국내 핸드볼의 열악한 기반을 개선하는 것이 보다 시급하다는 판단에서였다. 핸드볼전용경기장의 건립은 최태원 회장이 협회장에 취임하면서 제시한 공약 사항이기도 했다. 2011년 6월, 용인시청 핸드볼팀이 예산 부족으로 해체를 선언했다는 소식을 들은 최태원 회장은 핸드볼에 청춘을 바친 선수들이 어떤 경우에도 코트를 떠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며 협회에 대책 마련을 당부했다. 결국 SK루브리컨츠가 용인 시청팀을 인수해 여자핸드볼팀을 창단하게 됐다. SK루브리컨츠는 2009년 SK에너지에서 분리된 윤활기유 전문기업으로 전체 구성원이 300여 명 규모에 불과했지만, 매년 5,000억 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낼 정도로 재정 상태가 탄탄했다. 유럽에서 인기 스포츠로 자리를 굳히고 있는 핸드볼팀을 창단할 경우 SK루브리컨츠의 가장 큰 해외시장인 유럽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크게 향상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해체의 위기를 딛고 2012년 2월 10일 새롭게 출범한 SK루브리컨츠 여자 핸드볼팀 슈가글라이더즈 는 2월 14일부터 열린 2012 SK핸드볼코리아리그에 참가해 SK그룹 60년사

211 신생팀으로서 패기 넘치는 플레이를 선보였다. 프로농구단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프로야구단 SK와이번스는 창단 3년만인 2007년에 전용경기장 건설과 인프라 구축, 팀 창단 등 최태원 회장과 SK의 직 간접적인 지원에 첫우승을 했으며, 그후 6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서 세 번이나 우승컵을 힘입어 한국의 핸드볼은 각종 국제대회에서 잇달아 굵직굵직한 성과를 거둬들이기 들어올렸다. 시작했다. 2010년 베이징아시안게임에서 각각 금메달(남자)과 동메달(여자)를 SK는 체육단체 회장사로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최태원 회장이 대한핸드볼협회 걷어올린 남녀 국가대표팀은 2012년 런던올림픽에도 나란히 본선 진출권을 획득하며 회장을 맡아 우생순 신화 재현에 힘을 쏟고 있는 것을 비롯해 손길승 SK텔레콤 기세를 올렸다. 특히 남자대표팀은 2012년 2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제15회 명예회장이 대한펜싱협회 회장으로 비인기종목인 펜싱을 지원해 2012년 8월에 열린 아시아핸드볼선수권대회에 참가. 6전 전승의 성적을 거둠으로써 3연속 우승의 대업을 런던 올림픽에서 역대 최고인 금 2, 은 1, 동 3의 놀라운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작성하며 통산 9번째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뿐만 아니라 수영 박태환 선수를 후원해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 수영사상 SK는 핸드볼뿐만 아니라 많은 스포츠단을 운영하며 스포츠 진흥에 기여 했다. 최초로 금메달을 수확하는 값진 성과를 거뒀다. 그밖에도 골프의 최경주와 최나연을 여자배구단과 여자농구단을 운영했으며, 지금은 프로야구단과 프로축구단, 그리고 후원해 우리나라 골프가 세계무대에서 이름을 드높이는데 일조하고 있다. 2014년에 열리는 인천아시아경기도 후원하고 있다. 2012년 11월 파트너급 후원계약을 맺고 향후 2년간 SK텔레콤은 통신분야, SK이노베이션은 에너지분야 공식후원사로 최태원 회장은 2011년 10월 23일 올림픽공원 내 핸드볼 전용 활동하게 된다. 경기장인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을 건립하고 이를 대한핸드볼협회에 기부했다. 이날 최태원 회장은 개관기념으로 열린 한일전에서 시투를 했다. SK그룹 60년사

212 재계 3위의 위상, 수출 600억 달러 매출 150조 원 시대 SK는 세계적인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연간 수출규모 600억 달러를 돌파할 것이 확실시돼 사상 최고를 기록할 전망이다. 이는 매출 대비 수출 비중 역시 74%에 달한다. SK의 수출 실적 600억 달러는 2012년 한해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5,950억 달러)의 10%가 넘는 수치이기도 하다. 2011년의 수출액 450억 달러(한화 약 48조 6,000억 원)와 수출 비중 67.2%에 비해 괄목할만한 실적이다. SK이노베이션과 3개 자회사인 SK에너지, SK종합화학, SK루브리컨츠의 경우 세계 최고의 품질경쟁력을 가진 석유제품 수출 확대와 해외 석유개발 등을 통해 2012년 한해 수출실적이 53조 원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12년 12월에 열린 무역의 날에 SK에너지가 200억 달러 수출탑을 받은 것을 비롯해 SK종합화학이 60억 달러 수출탑을, SK루브리컨츠가 10억 달러 수출탑을 받는 기염을 토했다. 세 회사의 수출실적을 합치면 국내 에너지 화학 기업 중에서는 최고의 실적이다. SK케미칼과 SKC 등 화학계열은 고부가가치 석유화학제품 및 PET필름 등에 힘입어 1조 3,000억 원 규모의 실적을 기록했고, SK하이닉스 역시 반도체 부진에도 불구 전년과 비슷한 규모의 수출실적을 올렸다. 2013년에도 이어질 모바일 수요의 급성장과 마이크론, 엘피다 합병이 완료되면 메모리 수급 부문에서도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특히 석유제품은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올해 조선 자동차 반도체를 제치고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에서 처음으로 1위를 차지하며 우리나라 수출 1등 공신으로 우뚝 섰다. 또한 석유제품에서 파생된 석유화학제품도 수출이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다. 제조부문의 수출은 지주회사가 출범한 5년 전인 2007년 23조원을 기록한 이후 꾸준히 증가해 2012년은 64조 원을 넘어섰다. 특히 최태원 회장 취임 전인 1997년 SK의 수출비중은 30.8%에 그쳤으나 최 회장의 글로벌 전략이 본격화하면서 취임 10주년이던 2008년 수출 비중은 71.2%에 달했다. SK그룹의 매출은 2003년 약 50조 원에 불과했으나 2008년 100조 원을 돌파했으며, 2011년에는 155조 원을 달성했다. 주요 관계사 별 2012년 국제회계기준 연결재무제표 잠정 매출은 SK이노베이션인 73조 3,304억 원에 달할 전망이며, SK네트웍스 27조 9,450억 원, SK텔레콤 16조 3,005억 원, SK하이닉스 10조 1,620억 원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지주회사 출범 후 6년간 수출추이 수출액(조 원) 수출비중(%) SK그룹 60년사

213 따로 또 같이 3.0 으로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을 열다 SK는 2012년 11월 26일 워커힐에서 주요 관계사의 CEO와 사외이사 등이 참여한 가운데 2차 2012 CEO 세미나를 열고, 9월부터 논의해온 그룹의 새로운 운영방식인 따로 또 같이 3.0 을 2013년 1월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각 관계사는 기업가치 300조 원 규모의 글로벌 성장을 위해 따로 또 같이 3.0 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각 사의 이사회 사전 승인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실행안인 상호 협력방안 실행을 위한 협약서 를 채택했다. SK의 따로 또 같이 3.0 은 관계사 별 자율 책임경영을 전제로 관계사가 자사 이익을 기준으로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위원회를 중심으로 그룹 차원의 글로벌 공동 성장을 추진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이에 따라 각 사의 CEO와 이사회는 자사 경영에 대해 자율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게 된다. 즉 그 동안 그룹 역할을 해 온 지주회사와 협의를 해왔으나, 앞으로는 이사회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이에 대해 최태원 회장은 한달 전인 10월에 열린 1차 세미나에서 앞으로 자기 회사의 일을 지주회사에 물어보지도, 가져오지도 말아야 한다 며, 그 취지를 설명한 바 있었다. 이제부터 지주회사인 SK주식회사는 각 관계사의 자율적인 독립경영을 위해 각 사의 의사결정에 일체 관여하지 않고, 글로벌 신성장 투자, 신규사업 개발 등 자체의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업무 중심으로 업무 영역을 재편하기로 했다. 다만 그간 해오던 일 중에서 포트폴리오 관점의 경영실적 평가는 계속 수행하기로 했다. 지주회사의 큰 역할이던 각 관계사 CEO 및 주요 임원에 대한 인사도 각 사들이 참여하는 위원회에 SK는 2012년 11월 26일에 열린 CEO 세미나에서 글로벌 성장을 위한 새로운 그룹 경영방식인 따로 또 같이 3.0 도입을 논의하고 2013년부터 시행할 것을 합의했다. 넘기기로 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CEO 평가 등의 인사는 인재육성위원회가 검토해 각 사의 이사회에 전달, 각 사 이사회가 최종 확정하는 구조로 완전히 바꾸기로 했다. 이와 함께 각 관계사는 각 관계사의 성장 방법의 일환으로 시너지 창출 등 그룹 운영의 객관적인 장점만을 살리는 또 같이 전략도 대폭 강화해 그룹 단위의 운영은 관계사 CEO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각 위원회가 전담하기로 했다. 이 같은 차원에서 SK는 2007년 이후 운영해온 전략위원회, 글로벌성장위원회 및 동반성장위원회 등 3개 위원회 외에 2012년 5월부터 시험 운영해 온 인재육성위원회, 윤리경영위원회, 커뮤니케이션위원회 등의 3개 위원회를 추가했다. SK는 각 사의 위원회 참가 여부도 각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며, 각 사 이사회 별로 2~3개의 위원회에 가입하기로 했다. SK는 또 위원회에 참여하기로 한 각 관계사가 위원장 추천(결정은 SK그룹 60년사

214 SUPEX추구협의회) 위원회 안건 상정 상정된 안건에 동참여부 결정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각 위원회의 실질적인 운영도 책임지기로 했다. 이로써 SK가 2002년 각 사의 독자적인 생존 방안 확보 중심의 제주 선언과 2005년의 각 사 이사회 중심 경영을 주 내용으로 시작한 독자적인 그룹 운용 방식인 따로 또 같이 경영 은 2007년 지주회사 출범을 거쳐 3.0 경영으로 진화했다. 한편 따로 또 같이 3.0 체제를 도입하면서 최태원 회장은 글로벌 성장전략, 차세대 사업 개발, 글로벌 네트워킹 등 그룹 차원의 성장, 발전 역할을 중심으로 한 전략적 대주주 로 서의 역할을 강화하기로 했다. 최 회장은 세미나에서 따로 또 같이 3.0 체제는 아무도 해보지 않은 시도여서 쉽지는 않겠지만 더 큰 행복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가야만 하는 길이라고 전제하고, 이 변화를 통해 좋은 지배구조로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도록 모두가 믿음과 자신감을 가지고 추진해 나가자 고 당부했다. SK는 구체적인 조치로 2012년 12월 18일 17개 주요사 CEO가 참석한 가운데 SUPEX추구협의회 를 개최하고 차기 의장에 김창근 SK케미칼 부회장을 선임했다. 이에 따라 김창근 부회장은 최태원 회장에 이어 대내외적으로 SK그룹을 대표하게 됐다. 2013년 2월에는 따로 또 같이 3.0 체제의 첫 조직개편 및 임원인사를 마무리했다. 그룹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SUPEX추구협의회 의장에 최태원 회장을 대신해 선임된 김창근 의장이 SUPEX추구협의회 산하 인재육성위원회 위원장을 겸임한 가운데, 전략위원회 위원장에 하성민 사장(SK텔레콤 대표이사 겸직), 글로벌성장위원회 위원장에 구자영 부회장(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 겸직), 커뮤니케이션위원회 위원장에 김영태 사장, 윤리경영위원회 위원장에 정철길 사장(SK C&C 대표이사 겸직),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에 김재열 부회장을 각각 선임함으로써 따로 또 같이 3.0 을 실현하기 위한 체제를 갖췄다. 따로 또 같이 3.0 의 원년이자 창업 60주년을 맞이한 2013년. SK는 기업가치 300조원을 넘어, 더 많은 사람들과 지속가능한 행복을 만들고 나누는 진정한 세계일류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다. SK그룹 60년사

215 SK 60년 1953~2013

216 연혁도 선경직물 창립 선경직물 설립 등기 선경산업 설립 합병 울산직물 설립 선산섬유 설립 선경합섬 설립 선경화섬 설립 해외통상인수, 해외섬유로 사명 변경 구미도시가스 설립 청주도시가스 설립 포항도시가스 설립 대한도시가스 계열 편입 대구전력 부산도시가스 계열 편입 SK전력 영남ES 충청ES 합병 케이파워 SK엔론 출범 SK E&S DOP설립 전남 강원 도시가스 인수 익산 익산E 인수 익산E 합병 충남 도시가스 인수 코원ES 합병 평택ES 전북ES 계열분리 선일섬유 영남ES 충청ES 코원ES 부산도시가스 SK E&S 평택ES 전남 강원도시가스 전북ES 극동창고 인수 선경개발 설립 선경유화 설립 선경석유 설립 서해개발 설립 선경창고 워커힐호텔 인수 (주)선경 합병 선경금속 설립 합병 선경화학 수원전자 설립 쉐라톤워커힐 협우산업 인수, 선경종합건설 선경매그네틱 선경반도체 설립 삼덕산업 합병 흥국상사 인수 매각 대한석유공사 인수 유공 해산 유공해운 해산 선경건설 유공가스 설립 화인 삼신제약 인수 SKC 유공아코화학 설립 매각 선경인더스트리 선보제약 선경유통 선경제약 유공옥시케미칼 SKM 계열분리 선경텔레콤 설립 대한텔레콤 YC&C 설립 선경정보시스템 설립 태평양증권 인수 선경증권 한국이동통신 경영참여 SK컴퓨터통신 합병 SK에너지 판매 SK주식회사 SK가스 SK해운 SK상사 SK유통 합병 SK창고 합병 SK케미칼 SK제약 SK옥시케미칼 SK건설 SK임업 중앙생명 인수 SK텔레콤 SK텔레텍 설립 SK텔링크 설립 SK C&C 합병 SK증권 SK생명 스피드메이트 합병 스텔라해운 설립 신세기통신 지분인수 국민생명, 한덕생명 합병 SK글로벌 합병 인투젠 설립 동신제약 인수 SK네트웍스 합병 SK에버텍 합병 NSI테크놀로지 인수 SK신세기통신 정통부 합병 승인 SK커뮤니케이션즈 설립 합병 SK유화 설립 인천정유 인수 SK텔레시스 합병 매각 매각 SK인천정유 합병 지주회사 SK주식회사 출범(존속법인) SK에너지 출범(신설법인) 합병 하나로텔레콤 인수 합병 SK이노베이션 SK에너지 출범 SK종합화학 출범 SK루브리컨츠 출범 SK네트웍스 SK케미칼 SK유화 SK주식회사 SK이노베이션 SK에너지 SK종합화학 SK루브리컨츠 SKC SK텔레시스 SK건설 SK임업 분사 SK임업 하이닉스 인수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 SK브로드밴드 SK브로드밴드 SK텔레콤 SK마케팅 앤 컴퍼니 SK바이오팜 출범 SK플래닛 출범 SK가스 SK해운 SK플래닛 SK텔링크 합병 SK커뮤니케이션즈 SK C&C SK증권

217 연표 최종건 창업회장, 경기도 수원시 평동 7번지에서 최학배 옹과 이동대 여사의 장남으로 출생 최종현 선대회장, 차남으로 출생 1939 조선의 선만주단과 일본의 경도직물이 조선에 합작회사 선경직물을 설립하기로 합의 선경직물 수원 공장 공무과 견습기사로 입사 선경직물 공장,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정부귀속재산으로 관리받음 최종현 선대회장, 수원농고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농화학과에 입학 한국전쟁 전란 중 피폭으로 선경직물 공장 완파 최종건 창업회장, 선경직물 공장 복구에 착수 선경직물 창립일로 선포 최종건 창업회장, 선경직물 공장 부지 1만 2,000평 중 4,000평을 매입, 차철순과 공동명의로 귀속재산 선경직물 우선매수원을 관재국에 제출 07. 재조립기계 20대로 Rayon 직물생산 개시 최종현 선대회장, 미국 위스콘신대학으로 유학 07. 선경 인조견 안감에 닭표 상표를 붙이기 시작 선경직물주식회사 설립등기 자본금 500만 환, 대표이사 최종건 06. 최종현 선대회장, 위스콘신대학 졸업 후 시카고대학원에 진학 08. 제3공장 시험가동, 본견양단 생산 개시 11. 서울시 종로구 연지동에 선경직물 서울연락사무소 신설 조용광 공장장 부임, 72인치짜리 대폭 문직 생산 본견 봉황새 이불감 판매 개시 화섬직물(나일론)양산체제 갖춤 05. 최종현 선대회장, 시카고대학원 졸업 엠보싱 캘린더 개발로 곰보나일론 생산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선경직물 공장 시찰 국내 최초로 인견직물(Rayon Twil) 10만 마를 홍콩 광홍공사에 수출 무역업을 목적으로 하는 선경산업 설립, 선경직물 서울사무소 폐쇄하고 동대문 연락사무소 신설 창업주 부친 최학배 옹 별세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최종현 선대회장, 선경직물 부사장으로 취임 홍콩지역 인견능직물 독점수출권 획득(상공부고시 제2929호) 선경직물, 5 16혁명 1주년기념 산업박람회 직물 부문에서 상공부장관 수상 04. 홍콩에 인견능직물 300만 마 수출 (수출금액 42만 6,000달러) 최종건 창업회장, 제18회 광복절기념식 석상에서 건국 후 최초의 금탑산업훈장 수훈 선경직물, 크레퐁(Crepon) 직물 개발 10. 선경직물 앙고라(Angora) 직물 개발 직물수출실적 80여 만 달러로 제1회 수출의 날 에 상공부장관 표창 선경직물, 깔깔이(Georgette)직물 개발 아세테이트 공장 건설 차관에 대한 정부지불보증 승인 해외통상 인수, 해외섬유주식회사로 상호 변경 선경화섬 설립 선경직물, 대통령 표창 수상 (수출증대 183만 5,000달러) 선경화섬, 아세테이트 공장 착공 폴리에스터 원사 공장 착공 울산직물주식회사 설립 아세테이트 공장 준공 및 원사생산 개시 폴리에스터 공장 준공 및 원사생산 개시 알본 데이진사와의 합작법인 선경합섬 설립 08. 일본과 서독에 폴리에스터 원사 첫 수출 (월 30톤) 선경합섬 여자배구단 창단 선산섬유주식회사 설립 선경직물, 선경산업 흡수병합 (자본금 4억 원으로 증가) 최종건 창업회장 취임, 최종현 선대회장 선경직물, 선산섬유 사장 겸직 취임 선산직물, 선일섬유로 상호 변경 대연각 화재로 선경직물, 선경화섬, 선경합섬, 선일섬유 등 서울사무소 기록장부 일체 소실 미국에 폴리에스터 원사 수출 서해개발 설립 창업주 모친 전주 이동대 여사 별세 선경유화 설립 선경개발 설립 선경직물, 인천 소재 극동창고 인수 선경이 스폰서가 된 MBC TV 장학퀴즈 프로그램 첫 방영 선경개발, 관광호텔 워커힐 인수 스카이메리트 설립 선경석유 설립 최종건 창업회장 숙환으로 영면 최종현 선대회장, 선경직물 회장 및 선경화섬, 선경합섬 사장에 취임 최종현 선대회장, 수출증대에 기여한 공로로 금탑산업훈장 수훈 서해개발, 오산 천안 중원사업소 설치 극동창고, 선경창고주식회사로 상호 변경 회장 직속 기획실 창설 07. 선경합섬 울산 공장 준공 최종현 선대회장, 경영원칙(SKMS원전) 발표 10. 선경직물, 프랑크푸르트 지사 설치 최종현 선대회장, 장학법인 한국고등교육재단 설립 최종현 선대회장, 그룹사보 창간호에서 석유에서 섬유까지 의 제2창업 발표 선경합섬, 아세테이트 토우 증산시설 완공 (일산 10만 톤 규모) 선경직물 여자농구단 창단 선경연수원 개원 선경직물, 베이루트 지사 설치 선경직물 수원 공장, 종합나염 공장 준공 선경, 부에노스아이래스 지사 설치 선경석유, 선경화학으로 상호 변경 선경직물, 선일섬유를 흡수 합병하고 상호를 선경으로 변경 선경합섬, 선경화섬을 흡수 합병 선경합섬, 기업 공개(660만 주 공모) 06. 최종현 선대회장, 한 브라질 경제협력위원회 한국 측 회장 선임 선경, 비엔나 지사 설치 볼트 너트 제조업체인 신생 공업 을 인수, 선경기계 설립 선경, 종합무역상사로 지정 자전거 제조업체인 신원을 인수, 선경금속 설립 오디오테이프 제조판매를 목적으로 수원전자 주식회사 설립 선경, 1억불 수출탑 수상 회장 직속기관인 기획실을 경영기획실로 확대 개편 선경, 쿠웨이트 지사 설치 03. 선경금속, 스마트 자전거 출하 개시 선경, 나이로비 라고스 다카르 시카고 파나마 지사 설치 선경종합건설, 삼덕산업 을 흡수합병하고 자본금을 8억 5,000만 원으로 증자 01. 선경합섬, 폴리에스터 기초원료인 DMT를 PTA로 전환 선경합섬 수원 공장 연구 설비 완공 선경, 중남미시장 진출기지로 미국에 마이애미 지사 설치 선경, 스카이벽지 개발 05. 수원전자, SECA로 명명된 오디오카세트 테이프 시판 개시 선경 기업 공개(주식청약비율 51.4대1) 요트 제조업체인 선경머린 설립 수원합섬, 스카이로브 로 명명된 옥타로발사(Octalobal Yarn) 시판 개시 협우산업 인수, 선경종합건설로 상호 변경 08. 수원전자, 마그네틱테이프 공장 준공 SK그룹 60년사

218 09. 선경화학, 폴리에스터 필름 Pilot Full Scale Test 성공 워커힐교통 설립 최종현 선대회장, 콜롬비아 명예총영사 임명 08. 선경화학, 폴리에스터 필름공장 (연산 5,400톤 규모) 준공 06. 선경화학, 플로피디스크 개발 06. 유공해운, 탱커영업 개시(yukong Leader호, Yukong Pioneer호 인수) 05. 선경화학, 초고화질 하이그레이드 비디오 테이프 개발 05. 유공, 대한석유지주주식회사 합병 선경합섬, 제전성 폴리에스터 섬유 난연성 폴리에스터 섬유를 국내 최초로 개발 선경, 수출의 날 기념식에서 2억불 수출탑 수상 선경화학, 폴리에스터 필름 제조설비 설치 선경합섬, 한국직물원사수출조합으로부터 1977년도 최고수출실적상 수상 09. 선경종합건설, 워커힐아파트 (사격대회선수촌) 준공 최종현 선대회장, 폴리에스터 필름 제조기술 개발 완료 공표 선경화학,과학기술처에 폴리에스터 필름제조 기술을 기술개발촉진법에 의한 국산 기술로 보호해 줄 것을 요청 합판 제조업체인 대교산업 을 인수, 선경목재 주식회사로 상호 변경 02. 선경합섬, 탄소필터용 아세테이트 토우 개발 수원전자, 선경매그네틱으로 상호 변경 산양여행사 를 인수, 워커힐여행사로 상호 변경 선경화학, 폴리에스터 필름 출하 개시 선경식품주식회사 설립 워커힐, 신규 호텔(536객실) 개관, 쉐라톤 워커힐로 상호 변경 07. 선경화학, 알루미늄증착필름 개발 08. 선경매그네틱, 120분용 녹음테이프 개발 선경매그네틱, 선경화학의 폴리에스터 베이스필름으로 오디오테이프 생산 과학기술처, 선경화학이 개발한 폴리에스터 필름제조기술을 국산기술로 보호 (1982년 10월 말까지)키로 결정 10. 선경반도체주식회사 설립 12. 선경화학, 콘덴서용 폴리에스터 필름 개발 선경화학, 수원공장 준공 선경화학, 제도용 폴리에스터 필름 개발 선경합섬, 국내 최초로 무독성 폴리에스터 수지(식품용기용) 개발 08. 선경화학, 스탬핑 포일(Stamping Foil) 개발 10. 선경목재, 인도네시아와 합작으로 현지합판 공장(일산 1,000매 규모) 건설 선경종합건설, 대한석유공사가 발주한 솔벤트 플랜트 완공 선경합섬연구소 개소 서해개발, 조림유공으로 산림청장 표창 최종현 선대회장, 한국능률협회로부터 한국의 경영자상 수상 선경합섬이 개발한 폴리에스터 병, 미국 FDA 및 코카콜라사로부터 무해식품 용기 판정 선경, 인도네시아에 합작회사 PT. RIMBA 설립하고 합판 플랜트 수출(선경목재 시공) 09. 선경종합건설, 사우디왕실위원회가 발주한 쥬베일 해수로공사를 3,360만 달러에 낙찰 선경식품 매각처분 흥국상사 인수 선경, 대한석유공사 인수 (주식 50%; 671억 7,800만 원) 워커힐여행사 매각처분 최종현 선대회장, 대한석유공사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 12. 선경화학, 미국 독일 일본에 이어 세계 4번째, 국내 최초로 비디오테이프 개발 성공 12. 선경화학, PET 필름 미국 UL사 인증 선경합섬, 국내 최초로 이염성 폴리에스터 섬유 및 Spun-like사 개발 성경합섬, 식품포장용 플리에스터 시트 시판 개시 선경반도체 해산 선경유화 매각처분 워커힐교통 매각처분 서해개발, 조림유공으로 국민포장 수훈 선경목재, 말레이시아에 합작 그린 베니어 공장 건설 유공해운 설립 대한석유공사, 유공으로 상호 변경 쉐라톤 워커힐 호텔 컨벤션센터 개관 유공 프로축구단 출범 최종현 선대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에 선임 선경합섬 수원공장, 제10회 상공인의 날 및 공장 새마을운동경진대회에서 대기업 부문 최우수업체로 선정되어 대통령기 수상 03. 선경화학 PET 필름, 1만 톤 출하 달성 04. 선경화학 컬러 비디오테이프, SONY사와 JVC사로부터 B형 VHS형 라이선스 획득 해외섬유 해산 05. 선경종합건설, 쿠알라룸푸르의 복합상사 20층 빌딩 건축공사 수주 09. 유공해운, 벌크선사업 개시(K.CHALLENGER호 인수) 11. 유공 기술지원연구소 설립 선경마린 매각 처분 선경목재, 매각처분 유공, 북예멘 유전 개발을 위한 국내 컨소시엄 결성 01. 선경합섬 국내 최초로 개발한 폴리에스터태세사 시판 개시 유공, 북예멘 마리브광구 석유 개발 참여 계약 체결 유공, 신규 방향족 공장 (연산 벤젠, 톨루엔, 자이렌 등 40만톤 규모) 착공 북예멘 마리브광구 알리프정에서 석유 발견 유공, 대한석유특수 를 합병, 계약 체결 10. 선경화학 PET필름, FDA 공인 유공. 한국증권거래소에 상장 11. 선경화학, 3.5인치 플로피디스크 개발 12. 선경화학, 8mm 비디오테이프 개발 선경화학, 천안공장 내 선경화학연구소 (2층 374평 규모) 개소 수원직물 공장을 선경으로부터 분리하여 선경합섬에 인수 유공기술지원연구소 준공 북예멘 정부, 마리브정유에 대한 상업성을 공식으로 확인 11. 유공 상압증류시설 개조로 정유 능력 확대 (일간 34만 5,000배럴) 최종현 선대회장, 콜롬비아공화국으로부터 국가유공훈장 수훈 유공가스 설립 12. 유공, 신규 방향족 추출 공장 가동(연산 40만톤) 선경합섬 합작 파트너 데이진사 철수 선경 창립기념일을 종전의 10월 1일에서 4월 8일로 변경 06. 선경합섬, 탄소석유 중간제품인 프리프레이크제조 공장 기공 PO/SM 병산 공장 기공 PG 및 PPG 공장 기공 선경 스포츠단 발족 선경금속 매각처분 08. 선경화학, 미국 뉴저지사무소를 현지법인 SKC America Inc.로 확대 개편 선경, 종합무역상사로 출범한 지 10년 만에 수출 실적 11억 2,880만 달러를 기록 10억불 수출탑 수상 선경화학, SKC로 상호 변경 01. 선경합섬연구소,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세번째로 제직용 접착제 개발 선경매그네틱 SMAT 오디오테이프에 대한 품질 및 생산공정 심사에 업계 최초로 KS 마크 획득 03. 유공, 국내 최초로 자동변속기유 개발 유공 AFT Dexron-11 이라는 자가 브랜드로 시판 개시 유공, PO/SM 합작투자계약 체결(ARCO) 06. 유공해운, 벙커링사업 개시 SK그룹 60년사

219 08.10 선경인더스트리, 선경 UCB 설립 청주도시가스 설립 미국 아코화학사와의 합작회사인 유공아코화학 설립 11. 선경, 인도네시아 현지합작회사 인니어패럴우타마사설립 12. 선경합섬, 폴리에스터 접착제 SKY BON100 개발 시판 12. 선경합섬, 삼신제약 인수 북예멘 마리브유전 개발원유 1차 국내도입분 35만 배럴을 선적한 Y-Winner호 울산항에 첫 입항 01. SKC, VHS-C 개발 및 생산 01. 유공해운, 가스선사업(LPG수송 서비스) 개시 흥국상사, Car-Life사업 개시 02. 선경합섬, 염색성 폴리에스터사를 개발하고 SILMOA 상표로 시판 개시 동방투자자문 설립 05. SKC, S-VHS 신제품 개발 05. 선경합섬, 선경인더스트리로 상호 변경 삼신제약을 선보제약으로 상호 변경 유공, PX/OX 병산 공장 기공 선경 UCB, 분체도료용 폴리에스터 수지 공장(연산 2,000톤 규모) 준공 08. SKC, 중앙연구소 신설 유공, 국내 최초로 사계절용 전천후 디젤 엔지 오일을 개발하고 SD-5000 이라는 자가 브랜드로 시판 개시 구미도시가스 공장 준공 유공, EPDM 사업 관련 합작투자계약 체결 유공아코화학, 갑류무역입허가 취득 SKC, 수원 공장 폴리에스터 필름 10만톤 출하 포항도시가스 설립 04. 유공, 국내 최초로 중국산 원유 도입 유공, 합작법인 유공에라스토머 설립 유공가스, 가스직판 개시 선경인더스트리, 수원 공장 폴리에스터 원사 생산설비 완공 SKC, 아메리카 현지 공장 준공 07. 선경인더스트리, 생명과학연구소 준공 09. 선경인더스트리, DMT/PTA 병산 공장 준공 유공, 미얀마 블록 C광구 유전 개발권 획득 유공 미국현지법인 YUCRONICKS 설립 유공, 대한도시가스 주식 50% 인수하고 경영에 참여 11. 유공, MTBE/부텐-1공장 준공 유공, 미국 코네티컷주에 동부 R&D 센터 설립 유공, 인천에 합성수지 개발지원센터 및 고분자 기술 연구소 개소 선경사이클을 선경유통으로 상호 변경하고 유통업 진출 구미도시가스 공장 준공 SUNKYONG U.S.A inc. 설립 12. 청주도시가스 공장 준공 12. SKC, 광자기디스크 개발 선보제약을 선경제약으로 상호 변경 선경인더스트리, TPU공장 준공 선경정보시스템주식회사 설립 05. 유공, 파라자일렌, 울소자일렌 제조시설 가동 최종현 선대회장, 한국경영학회 제정 한국 경영대상 수상 07. 선경인더스트리, 고성능 폴리에스터 섬유를 개발하고 NETIA 상표로 시판 개시 최종현 선대회장, 서해개발 조림지 3억 4,000만 평을 충남대학교 농과대학 연습림으로 기증 그룹홍보실, 대학생을 상대로 하는 격월간지 지성과 패기 창간 최종현 선대회장, 서울대학교에 선경경영과 건립 기증 10. 주식회사 YC&C 설립 11. SKC, 중국 복건성 비디오테이프 합작 공장 준공 11. 선경건설, 미국 최초 진출(PET Project) 12. 유공아코화학, PO/SM병산 공장 준공 선경, 국내 최초로 중국에 북경사무소 개설 선경인더스트리, 은행잎 의약품의 본산인 독일에 국내 최초로 은행잎 엑기스 수출 03. 인도네시아 현지투자법인 SK끄리스 설립 선경텔레콤 설립 유공아코화학, PO/SM 컴플렉스 준공식 선경 UCB 자외선경화수지 공장 준공 04. 선경인더스트리, 국내 최초로 중공사한외여과막 개발 04. 선경인더스트리, 중앙연구소 기공 유공, 울산컴플렉스 9개 공장 종합준공식 06. 유공, 신규 휘발유 공장 준공 선경인더스트리 생명과학연구소, 제3세대 백금착제 항암제 개발 발표 선경건설, 태국국영석유공사(PAT)로부터 석유터미널 확장공사 수주 09. 선경인더스트리, 고속방사법에 의한 영구제전 폴리에스터 원사 개발 09. SKC, 이미지필름(IMF) 개발 선경매그네틱, 중국에서의 오디오테이프 생산을 위한 합작회사 선흥실업유한공사 설립 선경, 태평양증권 인수로 금융업 진출 선경제약, 국내 최초로 은행잎 엑기스 독일 수출 선경매그네틱, SKM으로 상호 변경 선경건설, 가이아나 유류저장탱크공사 (100억 원 규모) 수주 및 기공 SKM, 선경그룹으로부터 계열 분리 동방투자전문, 선경투자자문으로 상호 변경 선경제약, 혈액순환개선제 기넥신F40mg정 시판 개시 SKM, 쉐라톤 워커힐 호텔 내 면세점 개점 태평양증권, 선경증권으로 상호 변경 선경인터스트리, 섬유연구소 신축성 폴리에스터 섬유(PEY)개발, 판매 개시 선경컴플라자 POS팀, 국내 최초 서적관리 시스템 개발 대덕단지 내 선경그룹종합연구소 기공 04. 선경인더스트리, 수축성 폴리에스터 섬유 개발 선경인터스트리, 국내 최초 ALC전용 마감재 개발 유공 울산컴플렉스, 국내 정유사 중 최초 종합폐수처리시설 완공 선경텔레콤, 대한텔레콤으로 상호 변경 대한텔레콤, 제2이동통신 이동전화 부문 사업허가 신청 06. 중부도시가스 설립 06. 유공, 중질유분해 및 탈황시설 완공 07. 유공, 국내 최초로 선박엔진오일 개발 SKC, 혐기성 접착제사업 개시 선경인더스트리 연구소, 시트 필름용 TPU 개발 대한텔레콤, 제2사업자 선정 대한텔레콤, 신규 이동전화 사업권 자진 포기 09. 유공에라스토머, EPDM 공장 준공 유공아코화학, 유공옥시케미칼로 상호 변경 유공, 홍콩 PS 공장 준공식 선경인더스트리, 세계에서 두번째로 산업용 살균제 바이오사이드 개발 SKC 중앙연구소 준공 11. SKC, 증착강도를 향상한 폴리에스터 필름 개발 11. 유공, 제1중질유 탈황 분해시설 가동 SKC중앙연구소, 열접착성 필름 개발 성공 12. 선경건설, 멕시코 최초 진출(MTBE Project) SKC, Capacitor용 열접착성 필름 개발 선경인더스트리와 선경제약 국내 제약업계 최초로 신약(항암제) 개발 임상시험 허가 신청 유공, 썩는 플라스틱 개발 선경인더스트리, 세계 두번째로 생분해성 플라스틱 개발 SKC 중앙연구소, 백색 폴리에스터 필름 개발 성공 선경제약, 기넥신-F 연질 캡슐 발매 선경, 수원시 선경도서관 기공식 선경제약, 제3세대 백금착체 함암제 제조품목허가 승인 대전 엑스포 선경 이미지네이션관 개관식 대한텔레콤, 세계 최초로 CDMA 전용 플래닝 툴 개발 유공, 연료류 첨가제 국내 최초 개발 SK그룹 60년사

220 08.26 선경인더스트리, 백금착체 항암제로 뉴질랜드서 첫 특허 획득 유공 팡이제로, 국내 최초로 IGA 품질인증 획득 선경, 가이아나 합판 공장 개업 선경, 국내 최초로 중국 철도차량 시장 진출 한국이동통신, 인천과 부천지역에서 세계 최초로 CDMA 상용 서비스 개시 선경그룹 인터넷홈페이지( 개설 04. 한국이동통신, 서울지역 CDMA디지털 이동전화 상용 서비스 개시 YC&C, 그룹 전산조직 통합 운영 08. 유공해운, 한국가스공사 LNGC 운영권 획득 SK텔레콤, 일본 이동전화 로밍 서비스, 단문메시지 서비스 개시 SK텔레콤, 청주 SK나이츠 농구단 창단식 신CI선포식(SK주식회사, SK해운, SK에너지판매, SK가스, SK옥시케미칼) SK텔레콤, 몽골 이동전화사업 진출 SK주식회사, SBS 개질아스팔트 공장 준공 SKC, 국내 최초 환경친화성 열수축 필름 양산 성공 SK텔레콤, 몽골 SKYTel아날로그 이동전화 서비스 개시 선경, 한국이동통신 지배주주로 확정 선경인더스트리, 스카이플렉스 개발, 시판 선경인더스트리, 스카이그린 으로 투명성 필름 개발 최종현 회장, 장쩌민 국가주석 예방 선경인더스트리, 생분해성 수지 스카이그린 시판 선경, 한국이동통신 경영참여 개시 SKC 천안공장, 폴리에스터 가공필름 공장 준공 손길승 경영기획실장, 한국이동통신 부회장 취임 선경인더스트리 생명과학연구소, AIDS 치료제 개발 성공 09. SKC, 국내 최초로 미니디스크 개발 선경, 중국 SINOPEC에 SKMS 및 SUPEX 추구 기법 전수 11. 유공, 이집트 북자파라나광구 개발원유 도입 개시 유공해운, K-포춘호, 유공-네비게이터호, 유공-플래너호, 유공-어처버호 명명식 최종현 선대회장, 전경련 22대 회장에 재선임 02. 한국이동통신, 21세기 비전 Move 21 선포 SKC, 국내 최초로 생산설비를 이용한 PEN(폴리에틸렌나이프탈레이트) 필름 생산 성공 발표 수원 선경도서관 개관, 수원시에 기증 유공 대덕기술원 준공식 최종현 선대회장, 시카고대 동문 대상 수상 10. 유공, 윤활기유 공장 가동 유공, 고청정휘발유 신제품 엔크린 출시 최종현 선대회장, 국제경영학회 주관 95 국제경영인상 수상 선경증권, 주가지수 선물 거래 업무 개시 06. 선경인더스트리, 메틸아세테이트 가수분해 공정 개발 06. 선경건설 수펙스-컷, 미국 유럽에서 특허 획득 YC&C, SK컴퓨터통신으로 사명 변경 07. 유공, 페루 8광구 개발원유 상업생산 개시 08. 유공해운, 한국가스공사 LNGC 운영권 획득 선경, 한국 중국 합작 중국 최초의 종합상사 설립 MBC 장학퀴즈 1,162회로 종영 11. 한국이동통신 사내방송 gbs, 무궁화 위성이용해 전국 방송 개시 12. SK컴퓨터통신, 선경정보시스템 합병 선경증권, 신흥증권과 합작으로 선경투자 신탁운용 설립 02. 선경제약, 세계 최초 관절염 치료 패치제 개발, 트라스트 라는 제품명으로 시판 장학퀴즈, EBS에서 첫 방송 한국이동통신 무궁화위성 이용 서비스 개시 유공, 우울증 치료제 개발 발표 01. SK주식회사, 울산컴플렉스 내에 연산 13만 5,000톤 규모의 폴리에틸렌 공장과 15만 톤 규모의 폴리프로필렌 공장 완공 본격 가동 01. 선경인더스트리, 미국 Shell사와 PTT섬유 공동개발 01. 유공, 제2중질유 탈황 분해시설 가동 SK Japan 창립 최종현 선대회장, 전경련 회장 3기 연임 한국이동통신, SK텔레콤으로 신CI 선포 06. 유공, 유전 개발 현지법인(SK E&P) 설립 07. 유공해운, SK해운으로 사명 변경 SK텔레콤, 넷츠고 서비스 개시 SK주식회사, 울산대공원 기공식 선경건설, 멕시코 국영 석유공사로부터 25억 달러 규모의 초대형 해외프로젝트 수주 그룹 신CI선포식 SK텔레콤, 세계 최초로 EVRC 상용화 및 본격 서비스 돌입 SKC제약, 기넥신 80mg정 발매 SK주식회사, 제4세대 우울증 치료제 국내 최초로 미국 내 임상실험 성공 02. SK케미칼, SK NJC 설립 SK텔레콤, SK경제연구소 통폐합 리서치팀 신설 SK제약, 트라스트 패치 완제품 유럽 수출 계약 SK텔레톰, 무선 데이터 서비스 개시 최종현 선대회장 영면 SK텔레텍 창립 SK주식회사, 포춘사 세계에서 신망받는 기업 에 선정 SK텔레콤, 이리듐 상용 서비스 시행 SK유통, SK창고 인수 합병 11. SKC, 고용량 리튬배터리(LIB) 원통형 1만 8,650cell 개발 완료 대한텔레콤 SK컴퓨터통신 합병, SKC&C로 사명 변경 SK주식회사, 미국 엔론사로부터 3억 달러 외자 유치 12. SK텔레텍, 이동전화 단말기 SKY 출시 한미 합작 가스전문회사 SK엔론 설립 SK에너지판매, 스피드메이트 합병 03. SK주식회사, OK Cashbag 서비스 개시 03. SK해운, 스텔라해운 설립 SKC, 국내 최초로 1,4미크론 초극박 폴리에스터 필름 양산 SK제약, 국내 최초로 완제의약품 오메드 유럽 수출 국내 최초 신양 1호 선플라 식품의약안전청으로부터 최종 발매 허가 획득 07. SK텔레콤, 신세대 맞춤 이동전화 서비스 TTL 탄생 SK제약 선플라 시판 SK텔레콤, 아날로그 서비스 중단 SK가스, 평택기지 LPG기지 준공 SKC, 미국조지아주 폴리에스터 필름 공장 준공식 SK주식회사, 국내 최초로 기초유분 제조용 촉매 개발 SK주식회사, SK서린동 빌딩으로 이전 SK가스, 국내 최초로 중국 LPG충전 사업 진출 SK케미칼 선플라, 한국산업기술대전서 대통령상 수상 11. SKC&C, 통합 데이터센터 구축 SK에너지판매, 주유소 병설 편의점 OK MART 도입 SK엔론, 전남도시가스, 강원도도시가스, 익산도시가스, 익산에너지 인수 SK텔레콤, 신세기통신 지분 인수 SK상사, SK유통 합병 SK텔레콤, 고객 1,000만 명 돌파 SK장웬방 첫 방영 SK주식회사, SK케미칼, SKT-901, 선플라, 1999년 10대 신기술에 선정 SK텔레콤, 한 일 간 IMT-2000 영상통화 첫 성공 SKC, TFT-LCD용 소재 국산화 SK엔론, 충남도시가스 인수 SK텔레콤, 차이나유니콤과 포괄적 통신협력 체결 SK그룹 60년사

221 03.08 SK주식회사, 인터넷 벤처기업 1호 아이윙즈 설립 SK텔레콤, 이리듐 서비스 중단 SK텔레콤, IMT-2000 핵심장비 세계 최초 개발 SK텔레콤, SK와이번스 프로야구단 창단 SK텔레콤과 신세기통신의 결합, 공정위원회 에서 조건부 승인 SK생명, 한덕생명 인수 본계약 체결 SK E&S, 국내 최초 순수지주회사로 전환 SK옥시케미칼, SK에버텍 신CI 선포 SK주식회사, 무선인터넷 보안기업 IA 시큐리티 설립 SK케미칼, 삼양사와 폴리에스터사업 부문 통합 조인식 SK생명, 국민 한덕생명과 합병 SK케미칼, 바이오벤처 인투젠(In2Gen) 설립 SK가스, 국내 최초로 중국에 충전소 오픈 SK텔레콤, CDMA X 세계 최초로 시범 서비스 SK텔레콤 정보사업부, 넷츠고 로 분사 SK케미칼, 최윤원 회장 별세 SK텔레콤, CDMA X 상용서비스 개시 SK텔레콤, 베트남 이동통신시장 진출 SK건설, 25억 달러 규모 까데레이타프로젝트 준공 SK케미칼, 삼양사 통합법인 휴비스 공식 출범 SK글로벌, 리튬전지사업 진출 쉐라톤 워커힐, 면세점사업 진출 11. SK건설, SK아파트 브랜드 SK VIEW 론칭 SK텔레콤, IMT-2000 비동기 방식 사업권 획득 아트센터 나비 개관 SK텔레콤, 국제위성 서비스사업 진출 SK텔레콤, 몽골 CDMA 서비스 개시 SK텔레콤, SK IMT 법인 공인 출범 SK텔레콤, SKY 이스라엘 수출로 해외시장 첫 수출 쉐라톤 워커힐, 인천 국제공항 내 에어가든 호텔 오픈 SK케미칼, 동신제약 지분 인수 03. SK주식회사, 대만 가나 쿠웨이트에 공장운영기술 판매 03. SK케미칼, 환경친화 고기능 수지 스카이그린 상업생산 시작 SK케미칼, 스카이그린 PETG 수출 개시 SK주식회사, 세계 최초 코크저감기술 상용화 05. SK주식회사, 베트남 15-1에서 대형 유전 발견 고 최종현 선대회장, 뉴밀레니엄 대상 수상 SK제약, 생약복합 천연물 신약 1호 조인스정 개발 07. SKC 천안공장, 2차전지(리튬폴리머) 전극 생산라인 준공 SK텔레콤, 세계 최초로 CDMA 방식 로밍 서비스 제공 SK, 국내 기업 최초로 중국 현지서 공채 실시 SK텔레콤, 유무선 통합 포털 NATE 오픈 SK C&C, 국내 최대 규모의 대덕 데이터센터 준공 SK텔레콤, 세계 최초 동기식 3G (1x EV-DO) 서비스 개시 SKC SK에버텍 합병신주 상장 SK주식회사, 세계 최초로 수분감지장치 개발 SK주식회사, SMB&PXE공정 합동 준공식 정보통신부, 신세기통신과 SK텔레콤 합병 승인 SKC&C, 몽골 최초의 인터넷 국제전화 서비스 개시 SK주식회사 최태원 회장, 서울대 겸임교수로 서울공대 강의 SK케미칼 친환경소재 SKYPET, 코카콜라사와 공급계약 체결 SK주식회사, 울산대공원 개장 SK C&C, 지방선거에서 사상 첫 전자개표 시스템 운영 SK건설, 2,300만 달러 태국 석유화학 공장 증설공장 수주 SK주식회사 최태원 회장, WEF지역회의 공동의장 선임 09. SKC, 리튬폴리머 2차전지, 미국 국방성 제품 승인 SKC&C 인포섹, 정보보호전문업체로 지정 SK글로벌, 세계물산 인수 본계약 체결 10. SK건설, 멕시코 마데로 정유 공장 준공 SK글로벌, 두루넷 전용회선망사업 개시 SK케미칼, 화학업계 최초로 폴란드 진출 SK주식회사 우울증 치료제, 미국 존슨앤존슨 임상물질로 선정 SK텔레콤, KT와 보유지분 상호매매 합의서 체결 SKC, 리튬폴리머 전지 첫 출하식 SK건설, 가나 정유 공장 준공 쉐라톤 워커힐,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서울 로 새 출범 SK, 상해 신약연구소 개설 SK텔레콤, 모바일 멀티미디어 서비스 준(June) 출시 SK글로벌, 정상화추진본부 발족 (본부장 정만원 대표) 동신제약, SK계열사에 편입 SK텔레콤, 중국 최초 통신 서비스 합자기업 설립 손길승 회장, 제28대 전경련 회장 취임 SK IMT, SK텔레콤과 합병 승인 SK글로벌 정상화추진본부, 자체구조조정계획 발표 SK글로벌 채권단, 채무조정안 최종 합의 SK, 브랜드와 기업문화 공유하는 네트워크 로 변신 발표-이사회 중심의 전문경영인체제 SK텔레콤, 위성 DMB사업 본격 추진 06. SK주식회사, 세계 두 번째로 고부가 신소제 PE-RT 독자개발 성공 SK텔레콤ㆍSKC&C, 베트남 CDMA 상용 서비스 개시 및 전산시스템 구축 SK글로벌, 임시주총서 SK네트웍스로 회사명 변경(정만원 대표이사 선임) 손길승 회장, 전경련 회장직 사임(02.07 취임) SK주식회사, 베트남 15-1광구 석유생산 기념식 SK케미칼, 유럽현지법인 SK유로케미칼 설립(폴란드 브어츄와벡 2만 4,000평에 연산 12만 톤 규모의 PET칩 생산) SK차이나, 중국서 병원사업 개시-아이캉 병원 SK텔레콤, 중국 차이나유니콤과 합자기업 설립을 위한 계약 체결 SK, 관계사 신입사원 교육에 사회봉사활동 과정 도입 SK SUPEX추구협의회, CEO 5인 중심으로 SK경영협의회 구성(최태원 회장, 조정남 SK텔레콤 부회장, 황두열 SK주식회사 부회장, 김창근 SK주식회사 사장, 표문수 SK텔레콤 사장) 및 흔들림 없는 경영 선언 SKC, 리튬 이온 폴리머 전지로 산업자원부가 선정한 대한민국 10대 신기술상 수상 SK주식회사 이사회, 국내 최고 수준의 지배구조 도입(사외이사 비중 70%) SK텔레콤, DMB용 위성 한별 발사 SK텔레콤과 차이나유니콤 합작법인 UNISK 공식 출범 SK 창립 51주년 기념식(SK아카데미)에서 최태원 회장, 새로운 SK 향한 재도약 선언, 행복극대화를 위한 SK의 새로운 50년 강조 SK텔레콤, 2005년 말까지 시장점유율 52.3% 이하 유지하기로 결정 SK주식회사, 페루-SK우정의 날 행사 개최- 민간에너지외교 기회 SK자원봉사단(단장ㆍ조정만 SK텔레콤 부회장) 발족 SK주식회사, 페루 카미시아 유전 및 가스전 생산 개시 아시아 최초의 W호텔 W서울 워커힐 오픈- 14층, 253개 객실 최고급 호텔 SK주식회사 조준 사외이사 등 7명, 상장기업 최초로 사외이사 윤리강령 선포 제1회 베이징 포럼 개막식-최태원 회장 화해와 공존 역설 10.18~ 제주CEO세미나, 이사회 중심의 독립경영체제, 뉴SK추구가치 설정, SKMS 개정, To-be Model 경영체제 강화하기로 결정 SK그룹 60년사

222 10.28 SK주식회사, 중국 베이징에서 중국지주회사인 SK중국투자유한공사 (SK China Holding Co., Ltd) 설립 서울지법, 소버린의 SK주식회사 임시주총 허가신청(11.16) 기각 SK주식회사, 세계 세 번째로 리튬이온 전자 핵심 소재 Separator 개발, 사업화 착수 SK 관계사들, 사상 최초 수출 100억 달러 돌파 및 신용등급 급속 회복 최태원 회장, 전경련 부회장으로 선임 SK, 60억 원+자원봉사로 SK행복마을 조성 협약-한국 해비타트ㆍ수원시 공동 SK커뮤니케이션즈 NATE ON, 메신저시장 1위 등극-세계 최초 MSN 추월 SK케미칼, SK제약과 합병-생명과학 전문회사로 새 출발 SK네트웍스, 관리종목 탈피 SK네트웍스, 이사회 활동 강화 위한 이사회 사무국 신설 SK텔레콤과 TU미디어, 위성 DMB본방송 실시 세계 최초 이동휴대방송 SK네트웍스, SK생명 지분 미래에셋에 매각 본계약 체결 한국고등교육재단 중국 복단대 공동주관 제1회 상하이포럼 개최 최태원 회장, SK건설 쿠웨이트 플랜트공사 현장 방문 및 12억 달러 규모 공사 수주 05. SK주식회사 SK텔레콤 등 SK 관계사들 중소기업 지원 3대 상생경영 마스터플랜 발표 BR, 간담회 등 3대 상생원칙 및 9대 실천과제 도입 SK텔레콤, 한일 간 최초 영상통화 개시 SK커뮤니테이션즈 싸이월드, 중국 서비스 오픈 SK케미칼, 폴란드 현지법인 SK유로켐 본격 가동 06. SK주식회사, 국내 최초 브라질 유전 개발 성공 SK네트웍스, 국내 최초 중국 복합주유소 사업 진출 SK생명 계열 제외(미래에셋으로 매각) SK네트웍스, 중국 지주회사 SK네트웍스 중국기업연합회 출범 SK C&C, 국내 비상장사 중 최초로 사외이사 50% 도입 SUPEX추구협의회 연말까지 행복 나눔의 계절 선포 SK의 신로고 행복날개 발표 SK텔레텍, 계열 제외(팬택 계열 경영권 매각) 09. SK네트웍스, 스피드메이트 및 패션브랜드 아이겐포스트 중국 1호점 오픈 SK엔론, SK E&S로 사명 변경 결정 (11월 11일 주총 승인) 10.30~ ~ 19 SK, 중국 항주서 CEO세미나- 글로벌 SK 전략 구체화 최태원 회장, APEC 최고경영자회의서 활발한 민간외교활동 SK, 협력업체와의 행복동반자 경영 선언 SK 관계사들, 수출 200억 달러 돌파 12. SK그룹, 행복도시락 지원사업 본격화 SK주식회사, 폐루정부와 LNG 투자협정 체결 SK건설, 쿠웨이트 PIC로부터 1조 2,500억 원 규모의 방향족 제품 생산 플랜트 공사 수주 행복날개 연날리기 축제 개최 행복도시락 1호점 개점 SK인천정유, 출범식 SK주식회사, 제주 유나이티드 FC축구단 출범 및 개막전 SK네트웍스, 상환우선주 2,618억 원 조기 상환 SK주식회사, 인도네시아 기유공장 설립 및 합작법인 설립 SK텔레콤의 힐리오, 이동통신 미국 진출 SKC, 독일데구사, 우데사로부터 HPPO생산기술 도입하기로 한 HPPO조인식 거행. 연산 10만 톤 규모의 신규 PO공장 울산에 건설 SK텔레콤, 세계 최초 HSDPA 상용 서비스 개시 SK텔레콤, 차이나유니콤과 전략적 제휴 SK건설, 쿠웨이트서 약 12억 달러 유화플랜트 공사 계약 소외계층 청소년을 위한 1318 해피존 설립 협약식 SK네트웍스, 중국 둥관에 철강 가공공장 설립 SK텔레콤, 새 이동통신 브랜드 T 출시 SK주식회사 케이파워, 광양 복합화력 발전소 종합 준공식 SK네트웍스, 중국 선양에 휴대폰 매장 1호 개점 SKC 국내 최초 나노적층필름 팬시라이트 개발 SK E&S 익산도시가스와 익산에너지 합병 협력업체 교육전문 상생아카데미 오픈 고 최종현 선대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충남 연기군 행정복합도시에 500억 원 규모의 은하수장례센터 건설해 무상 기증 행복 도시락 전담 행복나눔재단 설립 SK텔레콤, 사회적 기업가 아카데미 개설 SKC, ITO필름 양산 성공, 첫 제품 출하 SK주식회사, 베트남 신규 탐사광구 참여 SK E&S, China Gas Holding와 합작회사 설립 SK그룹, 사우디 국영투자청장과 U-City 양해각서 체결 SK텔레콤, 원자바오 중국 총리 TD-SCDMA 테스트센터 방문 SK텔레콤, 국내 최초 고객정보 보호센터 설립 SK네트웍스, 워크아웃 조기 졸업 SK주식회사, 중국 황사피해 진원지에 SK우호림 조성 SK텔레콤, UN글로벌컴팩트 가입 SKC, Air Gas 합작회사 설립 재단법인 행복날개 수련원 오픈 SKC, 폴란드에 광학용필름공장 착공 SKC, 노사 항구적 무분규 선언 SK텔레콤, 전 세계 로밍 공조체제 구축 인등산에 SUPEX 센터 개원 SK커뮤니케이션즈, 엠파스와 최종 합병 결정 SK텔레콤, 베트남 u-city 사업협력 양해각서 체결 지주회사 체제 공식 출범 SK SK에너지로 분할 SK에너지, 국내 최초 TAC필름 실증공장 준공 SK텔레콤, 차이나유니콤 2대 주주 지위 확보 SK E&S, 익산도시가스 전북에너지서비스 로 사명 변경 최태원 회장, 남북정상회담 대통령 수행 SKC, 수원공장, PE보호필름 첫 출하 최태원 회장, 페루 대통렁과 만나 자원개발 힙력 논의 SK 커뮤니케이션즈, 엠파스 통합 법인 출범 SK 건설, 쿠웨이트서 7억 달러 가스플랜트공사 단독 수주 SKC, 구조세라믹 분야 국내 1위 솔믹스 인수 SK텔레콤, 하나로텔레콤 조건부 인수 계약 SK네트웍스,호주 시드니 코일센터 준공식 우한시 에틸렌공장 착공식 SK 에너지, 4개 CIC 신설 R&M R&C P&T CMS SK텔레콤, 하나로텔레콤 조건부 인수 계약 SKC, 솔믹스 인수 통한 세라믹사업 진출 SK에너지, SK 인천정유 합병 완료 SK 텔레콤, 신개념 차세대 오픈마켓 11번가 론칭 SK주식회사, SK E&S가 보유한 SK가스 지분 인수 SK텔레콤, 하나로텔레콤 인수 완료 SK마케팅앤컴퍼니 공식 출범 최태원 회장, UNGC 이사 선임 SK 주식회사, 통증 치료제 미 FDA 임상시험 승인 SK에너지, 석유화학 부산물 고부가화 기술 세계 최초 개발 SK에너지, 제3기 고도화시설 시운전 완료, 본격 상업생산 개시 SK 커뮤니케이션즈, 네이트온, 회원 2,500만 명 돌파 최태원 회장, UN 글로벌 콤팩트 총회서 폐막 연설 SK그룹 60년사

223 06.23 SKC KOLONPI, 창립기념식 개최 워커힐, SUPEX 김치, 국내 호텔업계 최초로 HACCP 통과 SKC, 세계 최초 HPPO공법으로 PO 상업생산 SKC, 솔믹스 잉곳사업 본격 시동 故 최종현 회장 10주기 추모식 거행 故 최종현 회장 10주기 추모. SKMS연구소 개관 및 경영학술 세미나 SK에너지, 제3 고도화시설 준공식 국내 최초로 그룹단위 상생경영 시스템 마련 SK텔레콤, 모바일 체험관 티움(T.um) 오픈 SK E&S, 영남에너지서비스와 포항도시가스 합병 SK C&C, 성남 판교지구 u-city 구축사업 수주 故 최종건 회장 35주기 추모식 SK에너지, 150억 달러 수출탑 수상 SK케미칼, 바이오 디젤 생산 설비 준공식 SK건설, 에콰도르 정유공장 보수공사 프로젝트 수주 SK네트웍스, 인도네시아 고무 플랜테이션 사업권 획득 SKMS 30주년 기념식 한마음 한 뜻 대선언 SK건설, 인도 망갈로르 원유지하비축기지 건설공사 수주 SK텔레시스, 요르단 와이브로 개통식 SK건설, 싱가포르 지하철 도심선 915 공구 수주 SK, 핸드볼 경기장 조성 위한 MOU 체결 SK 최태원 회장, 중국 쓰촨성 행복 소학교 기증식 참석 SK텔레콤, T스토어 오픈 SK루브리컨츠 출범식 최태원 회장, UN글로벌콤팩트 한ㆍ중ㆍ일 라운드테이블 참석 SKC, 섬레이 인수하여 LED조명사업 본격 진출 고 최종현 선대회장, 기업인 최초 숲의 명예전당 헌정 SK E&S, 오성복합발전사업 EPC 계약 서명식 SK에너지, 페루 LNG공장 준공 SK C&C, 몽골 최초 울란바토르시 ITS 구축 성공( 수주) SK China 출범 SKC솔믹스, 태양전지 이어 LED 소재사업 진출 SK 건설, 태국전력공사와 세남노이 수력발전사업 전력판매가격 MOU 체결 SK네트웍스, 핀크스리조트 인수 및 SK핀크스 출범 SK네트웍스, MMX사와 철광석 자원개발 계약 체결(7억 달러 규모 투자) SK에너지,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이사회에서 석유사업ㆍ화학사업 분할 의결 SK텔링크-TU미디어 합병 법인 출범식 개최 SK텔레콤, E-MIV 브랜드로 중국에서 MIV(Mobile In Vehicle) 최초 상용화 SK텔레콤, 세계 이동통신업계 최초로 기반기술(API) 외부 개발자에 개방 SK텔레콤, 멜론 인도네시아 론칭 SK케미칼, 인도네시아 법인 SK끄리스, 폴란드 법인 SK유로켐 지분 태국 인도라마그룹에 전량 매각 SK케미칼, 친환경 플라스틱 소재 ECOZEN 대한민국 10대 신기술 선정 SK주식회사, SK(주) 보유 SK가스 지분 45.5% 전량 SK케미칼에 매각 이사회 의결 SK이노베이션, 4사 체제 출범(SK이노베이션, SK에너지, SK종합화학, SK루브리컨츠) SK케미칼, 경북 안동시와 백신공장 건설 MOU 체결 SK텔레콤, N스크린 서비스, 호핀 출시 SK건설,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ARAMCO)사가 발주한 19억 달러 규모의 와싯 가스플랜트 신설 프로젝트 가운데 3개 패키지 단독 수주 SKC, 새한미디어(주)와 MLCC용 필름 개발 및 전략적 Biz. 추진 MOU 체결 SK네트웍스, SK 최초 해외 연수원 SK네트웍스 단동 행복연수원 개원 SK텔레콤, 국내 이동통신사 최초로 스마트폰 고객 500만 명 돌파 SK, SK주식회사에서 분사한 글로벌 R&D 중심 생명과학 전문회사 SK바이오팜 출범 SK건설, 1,400억 원 규모 싱가포르 지하철 930공구 공사 단독 수주 SK텔레콤, 4세대 네트워크 LTE 국내 최초 시연 SK텔링크, 이동통신재판매(Mobile Virtual Network Operator, MVNO)사업을 위한 별정 통신 4호 사업권 획득 SK C&C, 글로벌 시장 겨냥한 종합 모듈형 m-commerce 솔루션 브랜드 CorFire 론칭 SKC SKC솔믹스, 태양광소재 공장 준공식 거행 SK, 8억 원 들여 어린이 정원 조성해 국립수목원에 기증, 최종현 선대회장 유지 계승 SK, 고용노동부 추진 국내 첫 사회적기업 지원 전문 펀드에 대기업 최초로 참여, 5억 원 출자 SK, 법무부와 출소자 고용형 사회적기업 행복한뉴라이프재단 설립 협약식, 투자 운영비 12억 원 전액 출연 SK텔레콤, 차세대 네트워크 4G LTE 상용화 시작 SK E&S, SK E&S K-Power 합병 기념식 SK텔레콤, 독자 분할 플랫폼 회사 사명 SK플래닛 확정, 미지의 꿈이 담긴 세상 을 향해 플랫폼 무한 가능성 실현 의미 SK텔레콤 기본료 월 1,000원 인하와 SMS 월 50건 무료 제공 시작, 통신요금 인하 종합 방안 적용 완료 SKC, 미국 조지아주 EVA시트 공장 준공식 SK바이오팜, 독자 개발 우울증 조울증 치료제 기술, 중국 최고 수준의 생명과학기업 상하이 메디실론(Shanghai Medicilon)사에 수출 SK이노베이션, 세계 최초로 개발한 나프타 촉매 분해 공정기술 중국 옌창( 延 )석유화학 에 첫 해외 수출 SK, 설계 공사비 434억 원 들인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 준공 SK E&S 전북에너지서비스, 전북지역 최초 지역난방 공급 개통식 SK커뮤니케이션즈, 글로벌 싸이월드 서비스 출시, 세계 시장 진출 도약 SK텔레콤, 하이닉스 반도체 총 21.1% 지분인수 계약 체결, 정밀 실사와 인허가 절차 거쳐 2012년 1분기 인수 완료 예정 대한도시가스에서 코원에너지서비스로 사명 변경하고 새로운 CI 선포 SK텔레콤, 세계 최초로 LTE 상용망에 기지국 간 신호 간섭 제어해 통화 품질 현격하게 높이는 Advanced-SCAN 기술 적용 SK이노베이션, 세계 최대 자동차 부품 업체 중 하나인 콘티넨탈(Continental)사와 배터리 공동 개발 생산 합작법인 설립을 위한 HOA(Head of Agreement) 체결 SK텔레콤-서울대학병원 헬스케어 조인트벤처 헬스커넥트주식회사 공식 출범 SK텔레콤, 차세대 비디오 압축 기술인 HEVC 원천기술 개발 완료 SK루브리컨츠, 여자핸드볼 선수단 창단 SK하이닉스, DDR 3램, 저탄소 제품 인증 획득 SK, 국내 최대 규모 사회적기업 행복나래 공식 출범 잉락 친나왓 태국 총리 및 태국정부 고위 관료 SK하이닉스 이천 본사 방문 하이닉스, SK하이닉스로 사명 변경하고 공식 출범 SK플래닛, 모바일 소셜 서비스 틱톡 개발사 매드스마트 인수 SK C&C, 여수 u-엑스포 통합정보시스템 및 IT인프라 구축 완료 SK텔레콤, 국내 최초 협력사 대금 지급 보장하는 동반성장 종합 지원시스템 윙크(WinC) 도입 SK텔레콤, 실내 및 지하에 LTE 서비스 제공하는 초소형 기지국 LTE 팸토셀 상용화 최태원 회장, 브라질서 열린 UN주관 '리오+20 기업지속가능성 포럼'에서 전 세계 사회적기업 플랫폼 공식제안(SK와 UNGC 공동투자 사전 합의 완료) SK하이닉스, 낸드플래시 사업 강화 위해 미국 컨트롤러 업체 LAMD인수 본계약 체결 SK그룹 60년사

224 06.29 SK하이닉스 청주 M12 준공식 SK텔레콤, 일산에 국내 최초의 클라우드 전용 통합관제센터 구축 SK텔레콤, 세계 최초 3D 방송 LTE로 송출 시연 SK C&C 투자회사 TELSK, Bizen 으로 사명 변경 SK텔레콤, SAP Hosting Service 인증 국내 최초 취득 SK건설, 부산시민공원 재정비촉진지구 촉진3구역 재개발 사업 수주 SK, 콘티넨탈사와 전기차 배터리 공동개발 위한 합작법인 설립 계약 체결 SK텔레콤, 세계 최초 HD Voice(VoLTE) 상용화 SK텔레콤, 기지국 경계 지역 품질 향상 펨토셀 간섭제어기술 세계 최초 개발 SK텔레콤, LTE 가입 고객 500만 명 돌파 SK, 사회적기업가 센터 개소 (KAIST 서울캠퍼스 내) SK, 차 CEO세미나, 따로 또 같이 3.0 체제 확정 SUPEX추구협의회 의장에 김창근 SK케미칼 부회장 선임 년 연간 수출 규모 600억불, 수출비중 74% 달성 발표 SK플래닛, 일본 내 최초 NFC존 구축 SK이노베이션-콘티넨탈 합작사 SK콘티넨탈 E-Motion 출범(전기차 배터리 생산) 최태원 회장, 다보스포럼서 사회적기업 투자 활성화 위한 사회적 가치 보상권 제시 SK건설, 베트남 최대 규모의 응이손사와 10억 5,000만 달러 규모의 정유 석유화학 플랜트 공사계약 체결 SK플래닛, SK마케팅앤컴퍼니와 합병한 통합법인 출범 SK케미칼, 패치형 치매약 SID710 세계 최초 EU 판매허가 획득 SK종합화학, 중국 시노펙과 충칭 부탄디올(BDO) 합작법인 설립 계약 체결 SK건설, UAE 첫 진출, 8억 2,000만 달러 규모의 가스 압축 플랜트 준공 SK그룹 60년사 - 446

225 제작에 도움을 주신 분들 기획 제작 (주)사사연 원고 집필 장형규, 오명근 디자인 총괄 (주)디자인소호 이인기 기획 총괄 이언배 기획 진행 김영학, 김민환, 황선경 편집디자인 김봉재, 방성현, 최보미, 이진아, 김재윤 일러스트 박상철 인쇄 제작 넥스트프레스(주)

226 SK 60년사 1953~2013 인쇄 발행 발행인 발행처 비매품 2013년 3월 27일 2013년 4월 8일 김창근 SK 서울시 중구 서린동 99 SK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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