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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2호내지합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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õ 1984년 대구 영신고 졸업 õ 1984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입학 õ 1988년 제30회 사법시험 합격(연수원 20기) õ 1991~1994 육군법무관 õ 1994년 ~ 2005년 대구지법, 고법 판사 õ 2006년 대구지법 부장판사 õ 2006년 일본 동경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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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과정별 개요 과정 내 용 유아 과학놀이 미술 작품으로 배우는 수학 과학! 작품속으로~ 초등과학 첫걸음 실험실의 화가 애니메이션 교실 신나는 과학교실 다빈치 따라잡기 과학 수사대 자유탐구 교실 - 동화책, 음악, 이야기 등을 듣고, 역할놀이나 신체활동을 통해서 상상

세미나 진행 순서 서울중앙지검 검사장 축사(14:00) 제1주제(14:10~15:10):성폭력 피해 유형별 예방책 및 피해자 보호 방안 주제발표 :김진숙(여조부장),최순호(여조부 검사) 지정토론 :이화영(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장),백미순(한국성폭력 상담소장) 별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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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로 공영주차장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대로 189, 지하주차장 4층 D구역 계단실 앞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80-1, 지하주차장 4층 D구역 계단실 앞) 종묘 공영주차장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57, 지하주차장 4층 하층 T구역 (서울특별시 종로구 훈정동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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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 성지순례단 이집트 폭탄 테러 사고 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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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종편 시사토크 출연 `편향성 심각' 친여 64%, 친야 15% 채널A <뉴스스테이션 친여> 83% 본격 선거기간이 시작된 지난 1월 14일(선거 90일전)부터 2 월 13일(선거 60일전)까지 모니터 대상 프로그램에 출연해 정 치 이슈를 다룬 출연자들의 구성을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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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책연구 2000-특-28 지식기반사회의 교육이념과 교육정책 연구책임자 : 정범모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공동연구자 : 박영식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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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1. 탐구주제 2. 탐구동기 3. 탐구절차 및 방법 1)탐구 절차 및 기간 2)탐구 및 실험 방법 3) 실험 준비물 4)선행연구 4. 탐구 및 실험 1)탐구 주제 1의 탐구동기 방법 2)탐구 주제 1의 탐구결과 3)탐구 주제 1의 탐구 결과 및 결론 4)탐구 주

제11회 재외동포 문학상 수상집 재외동포 문학의 창 2009년 11월 30일 발행 발행처 재외동포재단 발행인 권영건 주소 서울시 서초구 서초2동 (외교센터 6층) 전화 (02) 팩스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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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목차 들어가는 말 9 문전성시 문화시장 프로그램 99선 지역 공동체 10 시장 공동체 44 내발적 문화 74 예술의 역할 106 지역활성화 축제 150 여행지로 변신 182 문화중심 216 문화복지 258 문화예술학교 296 새로운 시장 개척 332 마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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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정답 맞추기> ㄱ. (가)는 음식물 속의 큰 영양소를 세포가 사용할 수 있는 작은 크기의 영양소로 소화하고 체내로 흡수하는 작용을 하는 소화계이다. 소화계에서 음식물 속의 영양소 가 소화 효소에 의해 다른 영양소로 분해되는 반응은 물질대사 중 이화 작용에 해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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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004년 4월 1일 말씀 1008호 1면에서 이어짐 두려움은 흠이 있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받아 주시 지 않는다고 믿게 합니 두려움은 삶의 요청들을 채워주질 못합니 두려 움은 우리의 기대들을 충족시켜 주지 못합니 우리는 그분이 쓰러지도록 그냥 버려둔 것처럼 생 각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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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든샘 은 착하고 어진(옛말:이든) 마음이 샘처럼 솟으라는 뜻의 순우리말입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어린이들이 착하고 어진 마음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표지인물 가족 열수력안전연구부에서 근무하는 김종록 선임연구원의 아들 희태(6세

이 지금의 케이팝이죠. SM은 자신들의 독특한 색깔을 SNS로 퍼뜨린 것이고, YG는 솔직히 SNS에 별로 신경 안 쓰다가 가장 이득을 봤죠. 왜냐면 그동안 서구권 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 아할 수 있는 감각을 지금 갖춰버린 것입니다. 강남스타일이 처음 뜨게 된 것이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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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4-6 진실 안전 프로젝트 그날들2 펴내며 전북 도가니, 자림복지재단의 성폭력사건이 드러나다 인강원에 모인 사

Transcription:

루이사 피카레타의 저술에 의거하여 그림과 함께 알기 쉽게 풀어 쓴 하느님의 뜻 영성 입문서 (청소년용 후편) 하느님 뜻의 끝없는 바다에 녹아든 한 방울의 물 이야기Ⅱ 지은이: 세븐드롭스 옮긴이: 박 요한 실비아

2 하느님 뜻의 끝없는 바다에 녹아든 한 방울의 물 이야기Ⅱ 지은이: 세븐드롭스 그린이: 메리(15세) 펴낸이: 쉐인(17세) 옮긴이: 박 요한 실비 아 헬렌과 다른 여러 산 제물인 영혼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이 책은 하느님 뜻의 끝없는 바다에 녹아든 한 방울의 물 이야기 의 후편입니다. 그 목적은 예수님께서 루이사 피카레타를 하느님의 뜻 안으로 더 깊이 끌어당기시려고 주신 권고나 조언 이나 지식을 부각시키는 데에 있습니다. 루이사의 책은 그 권수가 상당히 많은데다 하느님의 뜻에 대한 지식의 보화를 그토록 많은 말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이따금 압박감을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책에서는 예 수님께서 루이사에게 주셨고, 그리하여 우리에게도 주신, 소중한 빛 인 몇몇 구절들을 따로 뽑 아 보았습니다. 이 빛 이 나타내는 것은 한낱 물방울들에 불과한 것이지만, 그것은 값을 매길 수 없도록 귀중 한 물방울들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대한 진리의 끝없는 바다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 빛들이 곧 이 후편에 새로이 등장한 빛의 천사들 의 모습입니다.

3 이를 번호 순의 주( 註 )로 책 말미에 붙였는데, 대부분은 루이사의 책을 영어로 번역한 여러 영역판들 가운데에서 해당 구절을 있는 그대로 옮겨 적거나 선택적으로 뽑아 적었습니다. 아직 루이사의 책 전권( 全 卷 )을 다 읽지 않은 독자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본문의 구절들을 읽다가 보면, 이 한 방울의 물 이야기 는 각 구절에 내포된 진리 에 이제 겨우 접근하기 시작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구절 하나하나에 대해서 한 권 의 책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니 말입니다. (이 한 방울의 물 이야기 에) 소개된 정보는 전편과 마찬가지로 이 후편에서도 어떤 신 학적 이론이 아니라 지은이의 소견 내지 해설에 불과한 것입니다. 모쪼록 하느님 뜻 영성의 빛 에 비추어 읽으시고, 원하는 만큼 많이 구입해서 다른 이들에게도 보내시기 바랍니다. 필자 세븐드롭스 적음

4 여기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거의 한 번도 생각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대가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살면, 목적의식이 뚜렷해질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대의 동참을 허락하시는 계획이 있으니, 이 지상에 그분의 나라를 다시 세우시려는 계획입니다. 그대가 완전히 하느님의 뜻 안에 있으면, 낮이나 밤이나 매 순간이 하느님의 그 계획 달성에 쓰일 것입니다. 한데 그분의 뜻에 완전히 감싸인 상태로 있으려면 많은 희생과 힘든 일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당신의 거룩하신 뜻에 완전히 감싸여 있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오직 이렇게 물으실 뿐입니다. 너는 무엇을 원하느냐?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삶 이라는 이 선물은 그것에 대하여 알면 알수록 그만큼 더 쉽게 그 물음에 대답할 수 있게 합니다. 하느님께서도 이보다 더 큰 선물을 주실 수는 없으리니, 곧 그분 신성의 한 몫을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기 때문입니다!

5 그러면 하느님의 뜻에 대하여 알 필요가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사실 우리는 하느님의 뜻에 대하여 전부를 알 수는 없습니다. 알 필요가 있는 것도 다 알 수는 없고, 영원 속에서 점차 알아갈 따름입니다. 하느님은 무한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디에서부터 출발해야 할까요? 루이사 피카레타는 하느님의 뜻이라는 선물에 대하여 총 36권에 달하는 책을 썼습니다. 여러분이 어느 부분이든 그 책을 읽고, 또 읽고, 다시 읽으면, 그럴수록 하느님의 뜻에 대하여 그만큼 더 많이 알게 될 것입니다. 루이사는 자신의 그 책을, 사람이 바다에서 걸어 나올 때 몸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들 같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물방울들을 하느님 뜻의 끝없는 바다에 대한 진리들에 비유했던 것입니다. 11권 8권 117권 2권 36권 30권 27권 천상의 책 14권 23권 24권 수난의 시간들 천상의 책 7권 31권 천상의 책 1 권 4권

6 하느님의 뜻 안에 성장하려면 이 선물에 대하여 계속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또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하느님 뜻의) 행위와 순례를 계속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행위들과 순례들이 바로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의 활동이니, 이 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하느님 뜻 안에서 산다고 할 수 없습니다. 기껏해야 하느님 뜻의 바다에 발끝만 담그고 있는 격일 것입니다. 그대가 그 활동에 충실하면,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그대를 깨끗하게 만드시어 그분의 거룩하신 뜻 안으로 더 깊이 데려가실 것입니다. 그러니 그대는 하느님의 뜻 안에서 그 행위들과 순례들을 계속해야 합니다. 박해를 받고 있습니까? 그 행위와 순례를 계속하십시오. 병들어 심히 앓고 있습니까? 그 행위와 순례를 계속하십시오. 가정에 문제가 있습니까? 그 행위와 순례를 계속하십시오. 마음속에 의혹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그 행위와 순례를 계속하십시오. 온 세상이 뒤집힌 것처럼 보입니까? 그 행위와 순례를 계속하십시오.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행위와 순례를 계속하십시오. 그러면 드디어 예의 그 일이 성사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정화 작업은 그대 안에서 세속적이고 악마적이고 육적인 것을 제거하는 것이니, 때때로 그대에게 고통스럽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을 신뢰하면서 그대의 그 행위와 순례를 계속하십시오!!! 예수님 이야기 첫째 시기 유다인들의 활동 율법 아래의 의화 (금기 음식 규정, 희생 제사) 예언서와 모세 5경 예수님 인성의 구현 (초림) 둘째 시기 그리스도인들의 활동 성화 (성사들, 기도) 예수님 신성의 구현 두 번째 오심(재림) 첫 번째 오심 은총 셋째 시기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영혼들의 활동 (하느님 뜻 행위들, 순례) 예수님의 인성 + 신성의 구현 오심 하늘의 활동 마지막

7 (하느님 뜻의) 행위와 순례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순례는 (하느님 뜻 안에서 행하는) 그대의 전( 全 ) 활동 중 한 부분으로서, 그대가 예수님을 부르며 그대의 기도 안에서 기도하시도록 청할 때, 그 하느님 뜻에 바치는 간청기도 의 부분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것이 특별한 기도, 곧 예수님의 기도가 되고, 예수님께서 2천여 년 전 지상 생활을 하실 때에 바치신 기도의 연속이 되기도 합니다. 그대가 하는 행위는 예수님께서 지상 생활 동안 하신 행위들의 연속입니다. 하느님 뜻이라는 선물의 본질은 그대의 인간적인 뜻을 매 순간 하느님의 뜻과 하나되게 함으로써 예수님으로 하여금 또 한 번의 지상 생활로 영혼들 안에서 구원 사업과 성화 사업을 계속하시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서 말입니다. 믿기 힘든 사실입니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하느님께서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려고 하시는지 보십시오. 그분께서는 우리가 질서와 본연의 위치와 창조된 목적에로 되돌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 예수님은 여러분 안에서 여러분의 행위들을 하십니다. 우리의 험담 안에서 험담하기 우리의 노래 안에서 노래하기 우리의 고통 안에서 고통받기 우리의 수면 안에서 수면 우리의 근심 안에서 근심하기 우리의 숨쉬기 안에서 숨쉬기 우리의 걸음 안에서 걷기 행위 들 우리의 활동 안에서 우리의 식사 안에서 식사하기 우리의 달리기 안에서 달리기 우리의 담화 안에서 우리의 미소 안에서 미소짓기 우리의 생각 안에서 생각하기 우리의 기도 안에서 기도하기 순 례

8 타락하기 전의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신 목적 안에, 그 질서와 본연의 위치 안에 있었습니다. 그 질서와 위치와 목적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만이 그대가 이 (하느님 뜻) 선물 안에 성장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그대 안에서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더 쉽게 알아볼 수 있고, 어디에서 그것이 끝날지에 대해서도 조금 은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질서와 본연의 위치와 목적을 충분히 이해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그러한 것에 대한 이해와는 거의 담쌓고 지내는 것이 현대 세계의 전형적인 인간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느님을,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일터를 오가는 우리를 감시하는 존재로 여깁니다. 때때로 천사나 은총을 내려 보내고, 또는 기도에 응답하기도 하는 존재 이것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의 하느님관( 觀 )인 것입니다. 하지만 실은 모든 것이 하느님 안에, 하느님께 집중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은 단지 우리를 굽어보기만 하시는 분은 아닙니다. 그분은 참으로 우리 안에 계십니다. 동시에 우리도 그분 안에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기 전에는 하느님께서 그들이 하는 일을 하시며 즐기셨습니다.

그들이 산책을 하면 그들 안에서 산책하며 즐기셨고, 그들이 짐승들과 놀거나 강물 속으로 뛰어들거나 꽃송이들을 따거나 하면 하느님께서도 그들과 함께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아담과 하와가 하는 행동을 보면서 뒤에 앉아 있는 것은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무엇이든지 그들과 함께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 뜻을 선물로 받았고, 하느님의 본질인 그 거룩하신 뜻을 써서 모든 것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 자신의 뜻을 처음으로 쓰자마자 하느님 뜻 선물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하느님께서도 그들 안의 낙원을 더 이상 즐기실 수 없게 되셨고, 오히려 그들의 영혼 이라는 동산에서 (겟세마니에서처럼) 고뇌를 겪게 되셨습니다. 9 하느님께서는 우리네 영혼 안에서 그러한 고뇌를 6천 년 동안 겪어 오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뜻 안에서의 삶을 우리에게 다시 선물로 주심으로써, 기꺼이 이 선물을 받아들여 그 안에 성장하는 영혼들 안에서 다시금 저 낙원을 가지실 수 있게 되셨습니다.

10 천상의 성인들은 모두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살고 있습니 다. 그러니 하느님은 그들 각자 안에서 갖가지 색다른 낙원을 즐기십니다. 그분은 성 프란치스코와 성 바오로 안에서는 말을 타시는 한편, 아브라함과 성 비오 신부 안에서는 산책을 하시 고, 성녀 아녜스와 성 에디트 슈타인 안에서는 노래를 부르시고, 성 요한 바오로 2세와 성녀 파우스티나 수녀 안에서는 (폴란드식 만두인) 피에로기를 즐기시고, 아인슈타인과 엘리아 안에서는 어떤 별의 폭발을 지켜보시고, 복되신 어머니와 마더 데레사 복녀 안에서는 초콜릿을 잡 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과의 이 일치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성 프란치스코와 성 바오로와 아브라함과 여타 모든 이들은 신비로운 방식으로 하느님의 내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태양이 빛을 내게 하고, 행성들이 그들의 위치를 지키게 하는 것 같은 일입니다. 이와 같이 그들은 하느님의 신성에 참여합니다. 그리고 하느님 안에 있기 때문에 서로 안에서도 활동합니다. 성인들의 통공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요 그 질서이며 (우리 본연의) 위치입니다. 즉, 우리는 하느님의 즐거움을 위하여 창조되었으니 그분의 즐거움을 함께 나누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진실로 하느님 사랑의 일부입니다. 이 사랑은 하느님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발하시는 성령과 같이,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넘쳐흐르는 사랑에서 나오는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상징이나 비유로서가 아니라 사실 그대로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이는 교회가 쓰는 하나의 표현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인성인 것입니다.

11 이제 하느님께서는 지상에 있는 우리와도 그 일치가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분께서 루이사 피카레타에게 하느님 뜻 선물을 맡긴 것은 그 때문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만 그 선물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대하여 더 많이 알아 가는 일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뜻의) 행위들과 (영적) 순례 들을 계속하는 것이니, 아주 단순한 일입니다. 그것을 실행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느님께서 그대를 질서와 본연의 위치와 창조된 목적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데에 필요한 일을 다 해 주실 것입니다. 여기 지상에서도 그렇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그대는 천국을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영혼의 활동에 전념하십시오. 그리고 하느님으로 하여금 그대의 영혼 안에서 하시겠다고 루이사에게 약속하신 것을 하시게 하십시오. 하느님의 뜻 계약서 하기 서명자인 본인은 20 년 월 일인 오늘, 하느님께서 저를 창조하신 목적과 질 서와 위치로 되돌아가기 위하여 다음 세 가지를 실 천하기로 약속합니다. 1. 하느님의 뜻에 관하여 더 많이 알아 가기. 2. (하느님 뜻의) 행위들을 하기. 3. (영적) 순례들을 하기. 다음은 하느님의 약속입니다. 1. 그 사람을 속속들이 정화시켜 주리라. 2. 그를 하느님인 나 자신으로 가 득 채우리라. 상기와 하기의 사항들을 이행하기 로 약속하면서

12 루이사가 쓴 36권의 천상의 책 은 완전히 하느님의 뜻 안에 들어가려고 예수님과 함께 순례 여행을 하는 영혼에게는 실로 도로( 道 路 ) 지도와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 가지 실용적인 권고를 루이사에게 주셨는데, 이 권고 말씀들이 우리에게 유익함을 아시기에 무엇 하나 빠뜨리지 않고 다 쓰라고 명하셨습니다. 각 영혼의 여행은 저마다 독특하지만 공통적인 체 험도 많기 때문에 의심이 있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 모두가 공동으로 져야 할 것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갖가지 모양과 크기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대하여 수없이 여러 번 루이사와 토론하곤 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십자가를 체험할 때 올바른 관점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선, 십자가들은 유익합니다. 그리고 강력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선물로 받은 그대가 예수님의 십자가에 그대의 십자가를 합치면, 하느님께서 그것을 엄청난 가치 속으로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게 하십니다. 즉, 그대가 예수님의 제물에 합하여 바친 제물을, 아버지께서 마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영혼들이 몸소 하느님께 바친 제물처럼 보십니다. 하느님 뜻의 능력으로, 제물이 다만 그대에게서만 온 것이 아니라, 수없이 불어나서 모든 영혼 들에게서 온 것처럼 되는 것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세상 모든 사람이 이 순간, 하던 일을 뚝 그치고 무릎을 꿇은 채 십자가와 합쳐진 그대의 고통을,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영혼들의 죄에 대한 보 속으로 아버지께 봉헌헌다면, 얼마나 굉장한 선이 되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그대가 하느님의 뜻 안에서 십자가를 질 때 일 어나는, (또 더 굉장하게 일어날 수 있는) 놀라운 현상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속( 救 贖 ) 사업을 계획하실 때에 하느님의 뜻 안에서 고통받는 것이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니는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지고 가실 십자가를 처음 보신 순간에 오, 사랑스러운 십자가야! 하시며 끌어안으신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이는 그분께서 손과 발에 못이 박히는 것을 좋아하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13 십자가를 사랑하신 것은, 당신의 십자가를 친히 지심으로써 영혼들에게 하늘을 열어 주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여러분이 자신의 십자가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죄에 대한 보속으로 여러분의 고통을 바칠 때 나오는 유익한 결과에 초점을 맞추라는 것입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고 나면 우리도 우리의 일상적인 십자가들 앞에서 불평을 그치고 오, 사랑스러운 십자가야! 하고 외치게 될 때가 올 것입니다. 하기야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행위와 순례들을 계속할 경우,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이루어 주실 변모의 일환이지만 말입니다. (하느님의) 어 좌

14 여러분이 여러분의 십자가를 사랑하는 것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기쁨 하느님의 평화 예수님께서는 신성이 우리의 인성에 접목되는 유일한 길은 우리의 십자가들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루이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그것을 여러 길들 중 하나라고 하시지 않고, 유일한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신성이 여러분의 인성에 접목되었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창조된 목적과 질서와 그 위치로 가는 길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 안에서 이 길을 따라 그분의 지상 생활을 계속하십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십자가를 사랑하십시오! 탐욕 싫증 여러분의 십자가를 사랑 하십시오. 하 느님 의 사랑 인내 일단 접목이 이루어진 뒤에는 성장할 필요가 있습니 다. 예수님은 루이사에게 순명이야말로 영혼 안에 하 느님의 성덕들이 자라나게 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 다. 여기에는 장상에 대한 순명, 부모와 스승과 교회 에 대한 순명이 포함됩니다. 이는 하느님의 뜻에 대 한 순명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지 않으면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은 루이사에게, 참 성덕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고 그분의 거룩하신 의지 안에 사는 것에 있다. 고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텔레비전을 너무 오래 보지 말기를 바라 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말씀을 무시하고 예수님 께, 오셔서 제 안에서 텔레비전을 보셔요. 하고 청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 선물의 힘으로 그분의 뜻을 실행해야 합니다. 순명 분노

15 이따금 루이사도 순명 을 두고 갈등을 겪곤 하였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지만 그래도 어깨를 으쓱하면서 이렇게 말씀드렸다. 그것을 글로 쓰는 것은 저에 게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아무튼, 누가 그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예수님은 미소를 지으시 면서, 네가 죽은 뒤에 내가 연옥에 있는 너의 손에 뜨거운 불 펜을 쥐어 준다면, 그때에는 어떻게 말하겠느냐? 하셨다. 이를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루이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하느님의 뜻에 대한 순명이라는 점을 분 명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여러 방식으로 드러내십니다. 표징이나 장상이나 기도의 응답을 통하여 드러내십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작은 목소리로 귀띔해 주실 때가 대 부분입니다. 그대에게 장상이 있다면, 그 장상이 하라고 하는 것을 하는 것이 그대에 대한 하느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장상이 없다면 하느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여기에는 일상적인 실천과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큰 신뢰가 요구됩니다. 그것은 결국 하느님께서 당신이 사랑 하시는 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시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루이사도, 자기가 현재와 같은 상태로 침상에 붙박인 채 글을 쓰며 살아가는 것이 정말 하느님의 뜻인지 여러 번 되묻곤 하였습니다. 그러한 의문을 품고 있었을 때에 어떤 성인이 나타나서 그녀가 그런 상태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고 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달리 어떤 일을 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명백한 표징을 그분에게서 받았다면, 기꺼이 그렇게 했을 것이니 말입니다. 그 성인의 이 충고는 그대에게도 유익할 것입니다. 그대가 행하고 있는 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그대가 하기를 바라시는 것이라면, 마음 편히 쉴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다른 어떤 일을 하기를 바라신다는 명백한 표징을 그대에게 주셨다면, 그대는 기꺼이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믿음직하게 말씀드릴 수 있었을 것이니 말입니다.

16 하느님께서는 그대가 하느님의 뜻 선물을 가지고 당신의 뜻을 실행하도록, 순명을 통하여 가르침을 주십니다. 하느님의 성덕들이 그대 안에서 성장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설명해 주셨듯이, 하느님께서 그대에게서 인간적인 것을 비우시리니, 모든 것(이신 하느님 자신)으로 충만케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느 님 인간 인간의 뜻 하느님의 뜻 인간의 뜻 하느님의 뜻 느님의 뜻 선물을 여기에 고 가다. 인간의 뜻 하느님의 뜻 선물 무료 이 선 물의 힘으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면서 그것이 모든 영혼들 위로 불어나고 있음을

하느님께서 그대를 정화시키실 때면, 그대의 몸에 배어든 악습이나 이 세상에 대한 집착 때문에 여러 모로 분투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루이사에게 늑장 부리지 말고 (곧바로 대응하라고) 조언하셨습니다. 꾸물거리다 보면 한바탕 싸움판을 벌이는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완전한 모범을 보여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이를테면,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들은 베드로가 주님께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선 안 된다고 만류하자, 예수님은 홱 돌아서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또 사탄 자신이 광야에서 예수님을 유혹했을 때에도 예수님은 성경 말씀을 인용하시며 그자 를 즉각 물리치셨습니다. 그대도 유혹을 당할 때에 늑장 부리지 마십시오. 즉각 대응하여 싸움이 일어나지 않게 하십시오. 우리 마음의 싸움터에 대해서는 이것이 특히 좋은 충고가 될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 이를테면 공포나 걱정이나 증오나 실망이 갑자기 뇌리에 뛰어들어 부산스럽게 굴면 곧바로 물리쳐서 한바탕 싸움판이 벌어지지 않게 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그대의 생각 안에서 그런 부정적인 생각 을 하실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뜻 안에는 그런 것들이 없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루이사에게 보여주신 대로, 거룩한 질서 안에 있지 않은 모든 생각이 저마다 가시가 되어 찌르는 참혹한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그러니 특히 이 마음의 싸움터에서 늑장을 부려, 예수님께 가시관 고통을 더 많이 보태 드리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17

18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빠지기 쉬운 죄들 가운데 하나는 혀로 짓는 죄입니다. 남의 말을 하기를 그치지 못하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대가 하느님의 뜻 안에서 자라나면, 하느님께서 갖가지 상황을 만들어 내시어 그대가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고) 자신의 일에만 전념하도록 가르치실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예수님은 루이사에게 매우 현실적인 조언을 주셨습니다. 네 이웃을 쳐다보지 마라. 그러면 그들을 심판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 선물을 받아 가지고 예수님과 함께 기도할 때에는 단 한 순간도 남을 심판하느라고 허비할 시간이 없을 것입니다. 실행에 옮겨야 할 행위와 순례들이 너무나 많이 있으니까요. 감 자 칩 팝콘 성 인 ( 成 人 ) 영화 개밥 그릇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또 하나의 조언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이 반드시 지녀야 할 심적 태도로서, 아무것도 아닌 자신의 무가치성을 인정하는 것 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구하는 간청기도 가 저희는 아무것도 아니고, 하느님은 모든 것이옵니다. 로 시작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실제로, 하느님께서 이 순간 우리에게서 물러가시면, 우리는 한 줌의 먼지로 남는 것이 아니라 아예 존재 자체가 사라질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은 우리가 숨을 쉴 때마다 그 숨을 매번 천사의 날개에 태워 가져가십니다. 하느님의 뜻이 매 순간 우리 몸의 세포 하나하나의 생명을 존속시키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특히, 아무도 우리에게 겸손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는 곳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그 진리를 받아들이 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알기는 해도 실행에는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19 그 진리를 실행에 옮기려면, 우리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를 그쳐야 할 것입니다. 그대가 오직 하느님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고 하느님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사실을 참으로 인정한다면,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해 무슨 생각을 이어갈 수 있겠습니까? 결국, 생각할 것 역시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론이 여기에 있었다.

20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살아가는 것은 틀림없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하느님의 도움이 없으면 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여기에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가르쳐 주신 방법이 있습니다. 딸아, 영혼이 자기를 잊으려면 그가 하거나 해야 할 필요가 있는 모든 일을 마치 내가 그 영혼 안에서 하기를 원하는 것처럼 해야 한다. 그가 만약 기도하려고 한다면, 예수님께서 기도하고자 하신다. 하고 말할 일이다. 그러면 내가 그와 함께 기도한다. 일을 해야 할 때에도 예수님께서 일하고자 하신다. 하고 말하고,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걷고자 하신다., 예수님께서 식사하고자 하신다., 예수님께서 주무시고자 하신다., 예수님께서 일어나고자 하신다., 예수님께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자 하신다. 등 삶 속의 다른 모든 것에 대해서도 똑같이 할 일이다. 이와 같이 할 때라야 비로소 영혼이 자기 망각을 얻을 수 있다. 무엇이든지 내가 원하기 때문에 하고, 또한 나 자신이 그것을 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그것이 바로 내게 필요하기 때문에 하니 말이다. 이 조언의 의미는 간단명료합니다. 질문은 오직 이것뿐입니다. 그대는 기꺼이 이렇게 하겠습니까? 즉, 예수님께서 식료품상에 가고자 하신다. 예수님께서 약간의 식사를 하고자 하신다. 예수님께서 ( 천상의 책 중) 한 권을 읽고자 하신다. 예수님께서 한두 바퀴 순례를 하고자 하신다. 예수님께서 잠자리에 들고자 하신다. 하고 말하면서 기꺼이 그대의 하루를 보내겠습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좀 바보스러워 보입니까? 그렇더라도 예수님의 이 말씀은 아주 분명한 것입니다.

21 예언자 엘리사는 이교도 군대 장수인 나아만으로 하여금 요르단 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으면 하느님께서 그의 나병을 고쳐 주시리라는 것을 알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아만은 모욕당한 듯 성을 내면서 그렇게 하기를 거부했습니다. 다행히 나아만의 부하들이 나아만을 설득했습니다. 이 예언자가 어려운 일을 시켰다면 하지 않으셨겠습니까? 하면서 말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예언자의 단순 소박한 지시를 무시하지 않고 실행했으며, 마침내 치유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잊고 이 무( 無 ) 의 경지에 이르기를 바라십니까? 그러면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가르쳐 주신 대로 하십시오. (그것이 비록 단순 소박한 지시라고 하더라도) 예수님께서 를 하고자 하신다. 예수님께서 하고 말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라는 것입니다.

22 이 조언은 시험을 받습니다. 그대가 이미 식료품 상점에 들어가 있을 때에는 예수님께서 식료품상에 가시고자 하신다. 고 말하지 마십시오. 또 아이스크림콘 매장 복판에 있을 때에도 예수님께서 아이스크림콘을 드시고자 하신다. 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런 시점에서는 예수님께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멈춰 설 시간을 가지십시오. 예수님이 를 하고자 하신다. 고 말한 뒤, 그분께서 그 다음의 빈 시간을 채우며 그대에게 말씀하시게 하십시오. 그러면 그대가 예수님께서 그대의 삶 안에서 사시도록 허락하면서 진실로 현재의 순간을 사는 것이 됩니다. 그분께서 다음 순간에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지 그대는 알지 못하니 말입니다. 또 그대가 행할 필요를 느끼는 일이 수없이 많을지라도 더 이상은 부담스럽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맡아 해 주실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그 일들이 기적적으로 완수되기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할 일 년 월 일 나환자 10명 치유 물 위를 걷기 빵을 많게 하는 기적 산상설교 나 (곧 주님)의 기도 가르침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기를 원하시는 것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그대는 자주 이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식료품을 사러 가기를 원하신 것은 예수님이시니, 나는 그분과 함께 그것을 사고 있는 중이다.

23 또 반복되는 일상적인 일들을 하는 동안 생각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닐 때에도, 예수님께서 그대에게 속삭이시는 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지금 이 순간에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놓치지 마라. 이보다 더 좋은 삶의 방식은 없습니다. 하루가 평화와 평온 속에 흘러가리니, 그대 가 예수님의 조언을 충실히 따른다면, 마침내 예수님께서 를 하고자 하신다. 고 말하면서 매일 돌아다닐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매 순간 모든 것을 예수님과 함께하고 있음을 의식할 정도로 그분과의 긴밀한 일치를 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질문은 다만 이것입니다. 그대는 기꺼이 자신을 낮추어 예수님의 지시를 따르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아침마다 잠에서 깨어나는 사도들에게 그날의 일정을 일러주 셨을까요?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사도들은 그래서 순간마다 그분을 뒤따라갔습니다. 다음 순간 그들이 무엇을 하게 될지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 우리도 예수님을 뒤따라가고자 합니다. 그분께서 우리의 활동 안에서 활동하시고, 우리의 음성 안에서 말씀하시고, 우리의 기도 안에서 기도하실 때에 말입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것 에 이르게 되고, 예수님으로 하여금 또 하나의 삶을 사시면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게 해 드립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이르는 것 이야말로 하느님의 뜻이라는 선물을 진실로 원하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입니다.

24 나 중심의 세계에서 하느님 중심으로 인식을 바꾸는 것이 성인들이 누리는 지상 천국 을 창조하기 시작하는 일입니다. 사물을 보는 우리의 관점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죄악이 빚어낸 환영( 幻 影 )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그대로의 세계를 보는 것으로서, 아버지께서 이미 성인 들 안에서 누리시는 그분 창조의 은혜로운 결실을 우리 안에서도 누리시기 시작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루이사가 쓴 수많은 책들로, 하느님의 뜻 안에 있는 우리 존재의 진실(한 모습)을 서서히 밝혀 주십니다. 그분은 영혼 안에 그날그날 일어나는 모든 것이 하느님에게서 오는 사랑의 특별한 표현들 이라고 루이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만약 기쁨이라면 예수님께서 그 영혼을 너무나 사랑하시는 나머지 그에게 구체적인 기쁨을 주시 는 것이고, 그것이 만약 고통이라면 그분께서 그 영혼을 너무나 사랑하시는 나머지 그도 당신의 고통을 나누어 가지도록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관점의 변화는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이렇게 설명하실 때에도 계속 이어집니다. 그분의 설명에 의하면, 하느님의 뜻 안에 있는 영혼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이 실제로 예수님에게도 일어납니다. 그대가 예수님 안에 숨은 상태로 그분과 함께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그렇게 관점을 바꾸는 일입니다. 하루에 전개되는 사건들을 우리에게가 아니라 (그분을 동반한 우리와 함께 계신) 예수님에게 실제로 일어나는 것으로 본 다면,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구하는 간청기도 를 참으로 실행에 옮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으로 하여금 우 리의 활동 안에서 활동하시고, 우리의 걸음 안에서 걸으시고, 우리의 음성 안에서 말씀하시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창조된 목적을 향하여, 그 질서와 본연의 위치 쪽으로 움직여 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고자 하신다. 고 말하며 그대의 하루를 지내고, 그렇게 하면서

25 그대의 그 아무것도 아닌 무가치성 속으로 들어가 예수님께서 그대의 활동 속에서 활동하심을 지켜보십시오. 그리고 이제 기억하십시오. 그날그날 일어나는 일들은 그대에게가 아니라 예수님에게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그 모든 것이 예수님께 일어나는 일인데 그대가 거기에 있는 것은, 그분을 위로하고, 계속 동반하며, 그분의 기쁨과 고통을 나누어 가지기 위함인 것입니다.

26 가장 큰 유혹 중의 하나는 그대의 행위와 순례들을 가지고 이렇게 말하면서 하느님을 조종하려고 드는 태도입니다. 내가 내 행위와 순례들을 하고 있으니, 하느님께서 내 삶 안의 모든 것을 잘되게 해 주실 것이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대는 그대의 행위와 순례들을 하면서 좋은 일 궂은 일 할 것 없이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점에 있어서 마리아는 우리의 완전한 모범이십니다. 그분은 바야흐로 세상의 창조주를 낳으시려고 하는 시점에 어째서 당나귀를 타고 베들레헴에 가셔야 하는지, 어째서 여 관에는 묵을 방이 없는지 묻지 않으셨습니다. 그 모든 것에 대해서 다만 피앗. (곧 그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 하셨을 뿐입니다. 그대는 하느님께서 자기를 가혹하게 대하신다고 투덜거리면서 왜 이러십니까? 하고 묻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어떤 상황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하려고 질문하는 것은 괜찮지만, 하느님,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셨습니까? 와 같은 질문은 용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왜? 는 자기 본위의 이기적 성향에서 나오는 것이고, 따라서 지옥에서 시작되어 지옥에 묻히기 마련입니다! 또 다른 유혹은 하느님의 뜻으로부터 휴가 를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오, 그대는 일이 속히 진척되지 않거나 어려움에 처한 시기에는 그대의 행위와 순례에 충실하지만, 세상이 그대에게 오락거리를 제공하거나 그대가 속한 세계의 문제들이 가볍게 풀리면, 수난의 시간들 같은 것은 이전처럼 선반 위에 도로 얹어 둡니다. 하지만 비록 한 달간의 멋진 유럽 여행 중이라 할지라도 그대의 (하느님 뜻) 행위와 순례는 계속하십시오.

27 또 저 모든 여름철 모임에 초대를 받았더라도 그대의 그 행위와 순례는 계속하십시오. 또 거금을 벌었기 때문에 청구서들을 두고 걱정할 필요가 없더라도 그대의 행위와 순례는 계속하십시오. 아무것도 그대를 하느님의 뜻에서 떼어 놓지 못하게 하십시오. 예수님은 루이사에게 영혼이 지극히 높은 선 (이신 분께) 이르려면 멈추지 않고 항상 달릴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대 안에서 행동하시는 예수님께 항상 주의를 기울이면서 순례에 충실하십시오. 수 난 의 시 간 제 2권 동정 제 마리아 12권

28 (실천 및 명심해야 할 사항. 일람표) * 순례들을 하라. * 그대의 십자가를 사랑하라. * (하느님의 뜻) 행위들을 하라. * 순명은 성덕을 자라게 한다. * 자신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마라. * 그대는 아무것도 아니고 하느 님은 모든 것이시다. * 하느님께 왜 또는 어째서? 하는 식으로 질문하지 마라. * 한 순간도 자기의 뜻 을 행하느라고 허비하는 일이 없게 하라. * 그날그날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느님 사랑의 특별한 표현들이다. * 이웃을 바라보 하느 님의 뜻 선물 오늘의 특선 메뉴 * 하느님 자신의 거룩한 사랑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라. * 늑장 부리지 마라. 그대가 하느님 뜻에 관련된 책들을 읽으며 순례 활동을 하고 있으면 하느님께서 빛 을 주실 것입니다. 이 빛 은 깨달음의 순간들로, 또는 하느님 뜻의 바다 속에 더욱 깊이 잠기도록 도와주는 진리들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예수님께서 주신 실제적인 조언이 더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루이사에게, 진리들을 받게 된 영혼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빛 이 번개같이 빨리 그들을 떠나게 하기 일쑤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의 설명에 의하면, 그들은 이 빛을 충분히 씹을 필요가 있습니다. 즉,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진리들이 그들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늑장 부리지 마라 그것은 매우 간단한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에 대하여 어떤 것을 가르쳐 주실 때에는, 잊어버리지 말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며 그것을 활용하십시오. 복되신 어머니께서도 당신의 삶 안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며 (마음속에 간직하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은 루이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뜻의 기구( 器 具 )가 너를 잘게 부스러뜨리게 하여, 네 안에 인간적인 것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게 하여라. 그대가 하느님의 뜻에 완전히 감싸이게 되는 데에 필요한 일을 하느님께서 그대 안에서 하시는 동안, 그대는 종종 분쇄기 안에서 가루처럼 부스러지고 있는 느낌이 들 것입니다. 기쁜 소식은 그것에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루이사에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9 내 딸아, 영혼의 주위와 내부에 일어나는 모든 것 비통, 기쁨, 반대, 죽음, 결핍과 만족 등 은 다름 아닌 나의 계속적인 활동이니, 영혼 안에 내 뜻을 펼침으로써 내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 활동이다. 내가 이를 이루면 모든 것이 완수된다. 따라서 모든 것이 평화를 주고, 고통 자체도 그 영혼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하느님의 의지가 고통보다 더 고귀하고, 모든 것을 대신하며, 모든 것을 초월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그대의 내부와 주위에 많은 일이 일어나게 허락하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하느님의 뜻 안에서 완수하게 해 주시려는 것입니다. 그대가 이 선물에 대한 지식을 얻으려고 끈기 있게 노력하면서 그대의 행위와 순례를 계속하고, 그대를 또 다른 예수님으로 변모시키기 위한 하느님의 활동에 마음을 열면, 하느님 뜻의 완수에 이를 것이고, 여기에서는 고통조차 사라질 것입니다. 영혼이 거기에 이르고, 나로 하여금 내 의지의 활동을 완수하게 하려고 모든 것을 활용하면, 그때에는 내가 그를 준비시켜 천국에서 살게 한다. 하느님 의 뜻 탐식 질투 정욕 인 내 심 부 족 나태 허영 교만 남을 심판하 기

30 여기에 하느님께서 모든 영혼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지상 천국 이 있습니다. 영혼이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삶이라는 선물에 완전히 둘러싸이게 된 뒤에도 고통이 계속 이어진다면, 그 고통은 영혼의 정화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정화 작업은 이미 끝난 상태이기에, 영혼이 현재 느끼는 고통은 예수님의 고통입니다. 그분과 함께 하느님의 정의에 배상을 바치기 위하여 자원해서 겪는 고통인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고통을 덜어 드리면서 징벌의 수위를 낮추기 위한 것이고, 또는 영혼들을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루이사가 쓴 책들은 루이사의 진보 과정을 보게 합니다. 심한 투덜거림과 고통과 의심에서부터 (비록 아직도 이따금 고통을 계속 받곤 하지만) 온통 평화가 가득한 지상 천국 에 이르기까지의 진보 과정입니다. 그 평화는 모든 영혼들에게 소용될 수 있는 평화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활동에 마음의 문을 열고, 저 빛들 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며, (곧 잘 씹으며 ) 계속해서 저 행위와 순례 여행을 하십시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그대가 하느님의 뜻 안에 살며 받는 고통은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두 가지 목적이 있다는 것을. 그 하나는 정화를 위한 고통이고, 또 하나는 (예수님처럼) 산 제물 (victim soul)로서 겪는 고통입니다. 그래서 고통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가장 고귀한 선물인 것입니다. 산 제물 인 영혼 에 산 제물인 영혼을 버림 정화를 위한 배반 독감 산 제물인 영혼에 대한 학대 산 제물인 영혼에 대한 무고 두통 위한 정화를 희생을 위한 독감 정화를 위한 배척 정화를 위한 재산상실 박해 영혼에 대한 산 제물인

그대의 행위와 순례를 계속하라. 는 말은 유익한 권고이지만, 그대가 이 행위와 순례란 것이 정녕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면, 별로 유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대의 행위와 순례 또한 배우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충실히 최선을 다해서 하면, 하느님께서 빛 을 주시어 순례 여행을 더 잘할 수 있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대는 예수님을 계속 동반하는 한편, 그대의 기도 안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느끼기 시작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말씀해 주신 그분의 숨은 생활을 (마음의 눈으로) 보고 있으면, (하느님 뜻의) 행위와 순례의 신비 를 밝히는 빛이 발산될 것입니다. 2천여 년 전 예수님의 숨과 심장 박동과 행동과 생각과 말씀은 그 하나하나가 전부 거룩한 행위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거룩하신 뜻으로 행하셨기 때문에 거룩한 행위였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인간적인 뜻도 있었지만 매 순간 그것 을 신적인 뜻에 희생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그분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실행 하는 것에 대한 말씀들이 복음서에도 보이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신적 행위의 중요성을 루이사에게 소상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 신적인 행위들은 인간적인 행위들을 죄다 신성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 결과 모든 세기에 걸친 인간의 모든 행위 가 신적인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곧 예수님의 행위가 됩니다. 그러기에 아버지께서 모든 세기에 걸쳐 수행된 인간의 모 든 행위를 하느님의 뜻을 선물로 받은 영혼들 자신에 의해 수행된 행위들처럼 보시며 영광을 받으십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훨씬 전부터, 즉 마리아 안에 잉태되신 순간부터 구원 사업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분의 첫 심장 박동으로 모든 인간의 심장 박동을 신적인 박동으로 바꾸시면서 말입니다. 31 기원 전(B C) 원년 기원 후(A D)

32 인간의 행위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예수님의 활동은 그대 안에서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분은 그대가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삶이라는 선물을 받아들인 까닭에 그대 안에서 또다시 사시는 것입니다. 그대의 삶 안에서 계속 숨 쉬고 움직이며 생각하고 말씀하시니, 그 모든 거룩한 행위들이 모든 세기의 모든 영혼들에게 불 어나면서 인간적인 뜻으로 행한 행위들을 거룩하게 합니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마땅히 받으셔야 할 사랑과 영광을 계속 받으시게 됩니다. 그러니 첫 사람에서 마지막 사람에 이르기 까지 모든 인간의 행위가 거룩한 행위 거룩하신 하느님께 유일하게 합당한, 거룩한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혼들 역시 그 거룩한 행위들에 응하기로 한다면 그들로부터 유익을 얻게 됩니다. 이 점에 대해서 예수님은 루이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행위는 하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태양처럼 사람들을 내리비추어, 어떤 이들은 아름답게 하고, 어떤 이들은 은총의 열매를 많이 맺게 하고, 어떤 이는 냉혹한 마음을 벗게 하고, 어떤 이는 온유한 마음을 지니게 해 준다. 또 어떤 이들 안에서는 어둠을 흩어 없애고, 어떤 이들에게는 정화와 열정의 은혜를 주어, 그들 각자의 원 의에 따라 크든 작든 그 자신에게 필요한 갖가지 효과를 내게 한다. 따라서 내 의지 안의 행위가 하나씩 더 보태질 때마다 모든 피조물을 내리비추는 태양 역시 하나씩 더 불어난다. 비록 믿을 수 없는 일로 보일지라도, 기억하십시오, 이는 우리가 매 순간 우리의 인간적인 뜻을 하느님의 뜻에 산 제물로 바칠 때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서 하실 수 있는 모든 것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무의미한 순간이란 없습니다. 한때 루이사는 예수님께서 그녀의 일을 하시기를 바라신다는 것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 일인지 의아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손가락이 너의 손가락 안에서 일하고 있다.

내 딸아, 지상 생활을 하는 동안, 나 자신을 낮추어 목재 작업이나 망치로 못을 박으면서 내 양부 요셉을 도왔던 내가 아니냐? 그 일을 하면서 바로 그 손과 손가락으로 영혼들을 창조하는 한편 다른 영혼들은 저승 삶에로 도로 불러가기도 했던 것이다. 나는 인간의 모든 행동을 신성하게 하였다. 모든 행동을 성화하면서 각각의 행동에 신적인 공로를 부여하였다. 내 손가락의 동작으로 네 손가락의 모든 동작들과 다른 사람들의 모든 동작들을 차례차례 불렀다 나는 그들 안에서 (예컨대 루이사의 손가락 안에서) 나의 나자렛 생활을 계속한다 33 내가 나자렛에서 영위했던 숨은 생활을 사람들은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지만, 그것은 실상 나의 수난을 제외하고, 그들을 위해 내가 베풀 수 있었던 가장 큰 선이었다. 하느님 뜻 안의 한 행위

34 그대가 그대의 인간적인 뜻을 씀으로써 저 거룩한 행위의 연속을 중단시킨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이를테면, 그대가 방금 이웃에게 불친절한 말을 했다고 합시다. 그 순간은 거룩하지 않고, 따라서 인간적인 행위를 신적 인 행위로 바꿀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대에게, 나는 거룩한 하느님이니, 네 안에서 그런 행위를 할 수 없다. 하지만 너를 떠나려고 하지는 않 는다. 오히려 네 안에서 내 얼굴에 가해지는 또 하나의 타격을 받을 작정이다. 네가 그 못된 말을 중얼거린 죄에 대한 보 속을 아버지께 바치려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 순간에도 아버지께서는 받아 마땅한 영광을 여전히 받으시지만, 예수님께서 치르신 희생의 대가로 받으십니다. 이 사 실을 늘 염두에 두고 있으면, 한 순간도 그대의 뜻을 써서 허비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거듭거듭 실패하리라는 것과 그래서 당신께서 때때로 우리 모두 안에서 계속 수난 고통을 겪으시리라는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분은 우리를 떠날 마음이 없으십니다. 완성의 길은 멀지만 그 일을 하시는 하느님과 함께라면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종종 실패하더라도 그대에게 는 아직 하느님의 뜻 선물이 있습니다. 그 선물을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 한 말입니다. 물론 그대가 어떤 죄를 끊어 버리기를 거부한다면, 그것은 하느님께 그분의 뜻이 아니라 그대 자신의 뜻을 따르겠다고 선 언하는 셈이고, 따라서 하느님의 뜻 안에서의 삶이라는 선물을 사실은 원하지 않는다는 말이 됩니다. 그대가 그 선물을 원한다면 원하는 사람처럼 행동하면서, 모든 행위가 저마다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걱 정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말 걸음 맞 말 숨 미 소 심 장박 동 생 각 사 랑 걸 음 눈짓( 윙크) 걸 음 어좌로 나아가는 거룩한 행위들의 강 심장고 동 불 평 걸 음 탄 식 미 소 입 맞 말 심사 숙고 사랑 어좌

35 예수님께서 그대의 숨 안에서 숨 쉬실 때에 그대는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거기에 그분과 함께 있으면서 함께 그 행위를 합니다. 앞에서 주신 예수님의 조언으로 돌아가 봅시다. (모든 활동에 앞서) 이렇게 말하며 그대의 하루를 보내라고 하셨지요? 예수님께서 상에 가시고자 하신다. 나는 그분 과 함께 있다. 등등. 이를 계속하는 것이 그대의 이해를 높이는 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대는 예수님 안에 사라 지는 한편, 예수님은 하루 종일 그대의 손을 써서 활동하시고 그대의 걸음 안에서 걸으시고 그대의 숨 안에서 숨 쉬시리 니, 그대는 그것을 느끼고 지켜보며 인식하는 일에 진보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대의 행위 를 하라고 할 때의 그 행위는 정녕 이 인식을 온종일 실행에 옮기는 것입니다. 이는 그대가 다시 그대의 뜻 속으로 들어가 떠다니면서, 예수님께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는 사실을 잊고, 그대 자신의 활 동에 사로잡히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대의 행위를 하는 것 은 그대 안에서 그대와 함께 활동하시는 예수님께 주 의를 집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대는 그러나 내 눈 안에, 내 귀 안에, 내 입 안에, 내 모든 것 안에 예수님께서 흘러드시는 것을 느꼈다. 고 한 루이사처럼 예수님을 느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대가 무슨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어떤 초자연적 체험이라는 위로를 받지 못한 채 하느님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하면, (그런 위로를 받으면서 할 때보다) 공로가 더 크기 마련입니다. 그대가 (보지 않고도 다만) 믿음으로 그대의 행위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너울 뒤 천상 영역에서 그대의 행위들로 무엇을 하실지 마음 쓰지 마십시오. 그분께서는 루이사에게 그녀의 행위들로 무엇을 할 것인지 알려고 하지 말고 그 모든 행위들에 대한 절대적 지배권 을 당신에게 달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그대는 성인들이 천국에서 누리는 하느님과의 일치를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당신

36 창조 사업의 열매를 누리신다는 점입니다. 즉, 하느님께서 그대 안에서 낙원의 한 동산을 즐기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비록 이 동산이 그대의 인간적인 뜻에 의한 행위들로 말미암아 수시로 폐쇄되긴 하지만, 그대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그대가 창조된 목적과 그 질서와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는 중입니다. 하늘과 땅 사이의 신비로운 경계선이 그대 안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순례는 생 각 예수님의 기도의 연속입니다. 이 큰 그림을 보면 말 욕설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담의 죄로부터 시작하여 불평 걱정 호흡 하느님의 뜻 안에서 수행되지 않은 행위들과 죄가 사슬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심장 박동과 같이 그 자체로는 무죄한 것도 더 이상 하느님의 마음에 들지 않게 되었으니, 그것이 인간의 뜻으로 고동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심장 박동 그 연쇄 반응이 수없이 많은 영혼들로 하여금 아버지의 영광을 찬양하지 못하게 하였고, 미소 더욱 나쁘게도 그들의 죄로 하느님을 모욕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 것입니다. 발걸 음 속삭 임 숨 말 눈 짓 심 장 박 동 눈짓 입 맞 춤 말 생 각 37 사람 외에 다른 무죄한 피조물도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사제가 없이는 아버지께 완전한 영광을 드릴 수 없었 기에, 사람이 사제로 활동하면서 그 모든 피조물 안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알아보고,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거룩하게 그 사랑을 그분께 다시 바쳐 드리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정의는 아버지께서 모든 피조물에게서 마땅히 받으셔야 할 영광을 받으시고, 정의에 어긋나는 죄에 대한 보속도 받으시기를 요구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생애는 그 정의를 완성하기 위하여 새로이 연결되기 시작한 사슬이었고, 우 리 안에 계신 그분의 생명은 바로 이 사슬의 연속입니다. 아버지께서 모든 보속과 마땅히 받으셔야 할 영광을 다 받으실 때, 그때에는 구원 사업과 성화 사업도 완성될 것입니다. 즉, 아담의 죄에서 비롯된 연쇄 반응이 역전될 것입니다.

38 주변을 둘러보십시오. 순례해야 할 것이 정말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새들이 날아다니는 것이 보이지요? 하느님께서 새들 안에 넣어 두신 사랑을 인정하고,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그것을 아버지께 다시 봉헌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 선물의 능력으로 그대의 기도 안에서 기도하시기에, 그러한 봉헌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영 혼들의 수만큼 불어나서 그들 모두가 새들 안의 사랑을 아버지께 돌려 드리며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그대의 집 뒤뜰에 있는 것들에 대한 순례 이야기로도 책 한 권을 충분히 채울 수 있을 것입니다. 무죄한 창조물을 순례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여기에 그보다 더 하기 어려운 순례가 있습니다. 두 사람이 그대 집 뒤뜰 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하느님의 잠재적인 낙원들을 복원될 필요성이 있는 낙원들을 상징합니다. 이 말의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은 아직 하느님의 뜻 안에 완전히 들어가 있지는 않아서 아버지께 마땅히 바쳐야 했 으나 바치지 못한 보속과 영광이 있다는 것, 그러니 정의의 요구에 따라 그것을 그분께 바칠 필요가 있다는 말이 아니겠습 니까? 문제는 어디에서 시작하느냐에 있습니다. 아마도 각 사람은 인간적인 뜻의 수십 억 가지 행위와 수천 가지 죄를 상징할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루이사 안에서 하신 모든 일과 그대를 정화시키려고 하시는 중인 모든 활동을 이 두 사람 안에서도 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후라야 그들 영혼의 낙원 안에서 그들의 걸음 안에서 걷기를 즐기실 수 있을 것입니 다. 그 대신 예수님은 현재 각 사람 안의 (겟세마니) 동산에서 고뇌에 잠겨 계십니다. 여기에 아주 놀라운 점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 선물로 말미암아 그대의 순례들이 예수님의 순례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분께서 그대의 목소리 안에서 말씀하시기에 그 말씀에는 창조력 이 있습니다. 그분은 저 두 영혼 안에서도 죄로 황폐한 땅을 뒤엎고 낙원을 창조하실 수 있는 분이시니, 험담이나 교만이나 어둠은 거기에서 가져가시고 사랑과 겸손과 빛 따위 하느님의 다른 모든 속성들은 그 안에 집어넣어 주실 수 있습니다. 천사들은 그분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그대는 그분께서 기도하실 때에 그분과 하나가 됩니다.

게다가 이 기도는 하느님의 기도이기에, 저 두 영혼을 위한 기도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영혼들에게 미칠 만큼 그 수가 불어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물론 각 영혼은 자유 의지가 있어서 천사들이 가져오는 은총이나 빛에 응답할 수 있습니다. 또는 남을 헐뜯으며 교만한 태도로 사랑과 겸손의 은총을 배척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충실한 응답으로 한층 더 깊이 하느님의 낙원으로 변모되어 가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대 안에 하느님의 낙원을 건설하기 위해 할 필요가 있는 일을 하나하나 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모든 영혼들 안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어느 정도 알게 될 것입니다. 각 영혼에게 필요한 것은 분쇄기를 통과하며 잘게 으깨지는 것입니다. 모든 영혼에게서 세속적인 것과 마귀와 육적인 것을 몰아내기 위하여 순례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극히 사소한 죄도 용납해선 안 됩니다. 덕행들마저 그것이 사람의 뜻으로 닦는 것이라면 여기에는 충분히 합당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거룩한 속성들과 거룩한 생명을, 바로 당신의 신성을 나누어 가지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 느 님 의 뜻 39 동시에 아버지의 요구는 우리가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또한 각 영혼 안에서 당신 나라의 (좋은) 것들에 둘러싸여 있기를 원하십니다. 순례는 하느님의 권능을 입고 있기 때문에 각 영혼에게 빛을 가져옵니다. 하느님의 어좌를, 그분 천사들의 합창대를, 천국의 모든 것을, 예수님의 생명과 수난의 행위들을, 복되신 어머니의 신적 인 행위들을, 성인들의 업적들을, 동물들의 사랑을, 하느님의 뜻 안으로 들어온 모든 영혼의 행위들을, 그리고 그분의 모 든 피조물을 각 영혼에게 가져오는 것입니다.

40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이들의 순례(기도)에 응하는 착한 영혼 들 안에 여기 지상에서 시작된 일은 연옥의 세 단계 속에서도 계속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 안에서 당신 창조 사업의 보람 을, 즉, 당신의 성인들 안에서 느끼시는 것을 느끼실 것입니다. 성인들이 지상에 있을 때에는 그들의 영혼 안에서, 마침내 그 영혼들이 천국에 있을 때에는 그들 안에서 느끼시는 것을. 은총에 응답하는 영혼들 가운데에는 지상에 있는 동안에도 하느님의 뜻을 선물로 받는 이들이 더러 있습니다. 루이사는 일찍이 그날 태어난 모든 영혼들이 하느님의 뜻 선물을 받게 되기를 기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순례기도 덕분에 그날 태어난 모든 아기들에게 지역에 따라 시차가 있겠지만 그들의 생애 동안 하느님의 뜻 안 에서 사는 선물을 받을 가능성이 주어진 것입니다. 아주 확실한 것은, 그들 중 상당수가 그 기도에 응하여 숨은 군대의 일부가 되었으며, 하느님의 계획 완수를 위하여 조용하게 (하느님 뜻의) 행위와 순례를 해 왔다는 점입니다. 은총에 응하지 않고 지옥을 택한 까닭에 멸망한 영혼들에 대해서 말하자면, 하느님은 그들에게서 받아 마땅한 영광을 (그러 나 받지 못하신 영광을) 신비로운 방식으로 받으십니다. 모든 행위는 아버지께서 창조하신 것인즉, 멸망한 영혼들도 그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실행하지 않고 차일피일 미룬 것입니다. 그렇게 보류되어 있었던 행위들을 예수님과 복되신 어머니와 루이사가 순 례를 통하여 소유하시고,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그것을 아버지께 바치신 것입니다. 그러한 순례를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이들이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창조 사업과 (예수님의) 수난과 기타 등등에 대한 순례를 계속 반복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이 모든 시대 모든 영혼들의 수만큼 불어난다면 단 한 번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연 옥 환영합 니다 첫째 단계 첫 째 둘째 셋째 단계 단계 단계 정 화 행위들 예수님의 수난 둘째 단계 행위들 예수님의 생애 셋째 단계 천국으로 가는 층 계 41 지 옥 문 연 옥 문 검 문 소 검 문 소 검 문 소 검 문 소 그렇다면 그대는 부모님에게 딱 한 번 사랑합니다. 하고 말씀드린 후 다시는 그 말을 되풀이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부모님과 같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우리의 끊임없는 사랑을 받아 마땅한 분이십니다.

42 순례는 창조된 세계를 넘어 창조되지 않은 세계로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아십니까? 사람이 만약 죄 속에 떨어지지 않았다면, 천사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행성들을 지탱하는 일을 돕고, 새로운 우주를 창조하는 등과 같은 여러 일을 하면서 모두 가 하느님 자신의 신적인 활동에 참여해 왔으리라는 것을? 그것은 하느님께서 도움을 필요로 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당신과 함 께하면서 당신 신성에 참여하도록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모든 영혼은 하느님의 활동에도 참여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더 라도, 영원히 성자를 낳으시는 아버지와 함께 하느님의 계획 한복판에 있었을 것이고, 아버지와 성자 사이의 사랑의 분출에도 참여했을 것입니다. 거기에서 성령께서 발하셨으니 말입니다. 낙태 시술소 낙 태 시 술 소 낙태 시술소 예수님께서는 루이사에게 하느님 뜻의 나라의 자녀들도 위계( 位 階 )가 서로 다 른 구단( 九 段 )의 천사 합창단과 같은 합창단을 이룰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 뜻 안의 천상 영혼들 중 천사들의 최고 계급인 치품천사(Seraphim)처럼 가장 높은 계급을 이루는 영혼들은 지상에서도 하느님의 활동 안을 순례했던 이들입니다. 이들은 하느님과 함께 태양이 빛나게 했고, 천사들에게 은총을 나누어 주도록 지시했으며, 성령과 함께 치유 봉사를 하 러 사람들 안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병을 낫게 하고, 성령 안에서 그들을 쳐서 예언을 하게 했습니다. 또 하느님의 마음을 비통하게 하는 일들에도, 그러니까 징벌을 내리거나 선택적으로 지옥에 가는 영혼을 묵인할 수밖에 없는 경우에도 늘 하 느님을 동반한 이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어려운 일들 속에서 당신을 동반한 이들에게 특별히 고마워하십니다. 그 어려움은 그분께서 영혼들 하나하나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일어나는 어려움이니까요.

루이사의 천상의 책 속의 여러 권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시간들 과 하느님 뜻의 나라의 동정 마리아 및 그녀의 편지들 속에는 예수님의 숨은 생활을 상세히 설명하는 구절들이 있거니와, 그분께서는 숨을 쉬실 때마다 그 하 나하나가 다 나라 를 회복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완전한 영광을 받으시게 하시려는 것이었습 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우리의 삶으로 계속하고자 하시는 것이 바로 그 숨은 생활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성체가 될 수 있고, 이 성체 안에서 예수님께서 활동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승리의 행위 는 복되신 어머니도 더 이상 하실 수 없습니다. 자유 의지를 써서 사람의 행위와 하느님의 행위 중 하나 를 택하는 이 행위는, 아직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이들에게만 예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43 자기 자신의 목숨을 던져, 여기 이 지상에서도 또 다른 예수님으로 변화되게 하는 것 이보다 더 큰 사랑을 그대가 예수님 께 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리하면 예수님께서 하느님 뜻의 자녀들 개개의 영혼 안에 그분의 나라를 세우심에 따라, 나라 가 하느님의 모든 피조물 위에 쏟아져 내릴 것입니다.

44 루이사는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한 광경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그분께서는 땅에서 하늘에 이르는 두 개의 높은 층계를 내게 보여 주셨다. 한쪽 층계에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견고한 황금으로 되어 있는 다른 쪽 층계에는 사람이 몇 명 되지 않았다. 이 소수의 사람들이 그 층계를 올라가고 있었는데, 또 다른 예수님들처럼 보였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예수님인 것이었다. 사람들이 더 많은 쪽 층계는 나무로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 사람들을 식별할 수 있었는데, 대부분이 미천하고 별로 진보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예수님께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딸아, 황금 충계에는 나의 생명을 자기네 생명으로 삼은 이들이 올라가고 있다. 그러니 그들은 내 발이요 손이며 심장이고 내 모든 것이다. 네가 본 대로 그들은 또 다른 나인 것이다. 그들은 완전히 나를 위해 있고, 나는 그들의 생명이다. 그들의 활동은 신적인 활동이므로 모두 황금이며 헤아릴 수 없도록 무한한 가치를 지닌다. 그들이 도달한 높이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은 달리 없다. 그들은 내 안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오직 천국에서만 그들에 대하여 완전히 알게 될 것이다. 나무 층계를 오르는 더 많은 사람들은 덕행의 길을 걷고 있으나 나의 생명과 일치하지 않고 내 뜻과의 지속적인 연결도 없이 걷는 이들이다.

45 그들의 활동은 고작 나무일 따름이다. 나와의 일치만이 황금과도 같은 활동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의 활동은 극히 작은 가치밖에 없다. 그들은 키가 모자라고 거의가 다 허약하다. 선행을 할 때에도 여러 가지 인간적인 목적을 섞어서들 하는데, 그런 목적들은 성장을 가로막는다. 게다가 그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진다. 내 안에 숨어 있지 않고 그들 안에 숨어 있기 때문에 아무도 그들을 덮어 가릴 수 없다. 그들은 그러므로 하늘의 놀라움이 될 수도 없다. 이미 땅에서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런즉 딸아, 나는 네가 네 생명이 아니라 온전히 나의 생명 안에 있기를 바란다. 네가 알고 만나는 이들에게 내 생명의 층계에 굳건하고 항구하게 머물러 있으라고 하여라.

46 하느님의 뜻에 마음이 끌리면서도 멀리 떨어져 표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진해서 하느님 뜻의 활동을 할 생각이 없고, 어떤 이들은 그들 나름의 종교 활동에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이 후자는 바리사이와 아주 비슷한 사람들입니다. 바리사이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새로운 계약에 대해 가르치실 때에 율법 으로 자만에 빠져 있었습니다. 새로운 계약은 곧 율법의 완성이었는데 말입니다. 하느님의 뜻 선물은 새로운 계약의 완성입니다. 그것은 성사들과 여러 신심들, 그리고 지난 2천 년 동안의 교회 모든 활동의 완성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미사에 참례할 필요도, 묵주기도를 바칠 필요도 없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미사 참례든 묵주기도든 하느님의 뜻 선물 안에서 하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각 영혼이 저마다 그렇게 한 것처럼 그 수가 불어납니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는 삶은 따라서 남에게 받기보다 주기를 한층 더 원하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모두 황금 층계를 올라가기를 바라십니다. 하느님의 뜻 선물을 신뢰합시다. 이는 또 하나의 새로운 신심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뜻 안에 숨어서 사는 것보다 더 중차대한 일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루이사에게 그런 영혼들 안에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선교사의 발이 되고, 전도자의 혀가 되고, 약한 자의 힘이 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47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삶이라는 선물은 전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설명하는 한 가지 방법은 우리가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과 함께 모 든 세대의 모든 사람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흡사 공을 던짐과 동시에 받는 것과 같습니다! 그 삶의 절정에서 우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징벌을 내리시는 일을 도우면서 동시에 하늘과 땅 사이에 서서 징벌의 완화를 위해 기도하며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 지상의 모든 영혼 안에서 그들 죄의 얼룩을 빼기 위해 기도하는가 하면, 하느님의 지상 옥좌로서 영혼들을 은총으로 가득 채우는 샘이 되 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는 또 예수님과 함께 서서 아 버지께서 피조물이 끼치는 모욕을 우리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받으시게 함으로써 인류를 덜 엄하게 대하시게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 땅에 있으면서 수난 중이신 예수님께 위로를 드릴 것입니다. 비록 그 사건은 2천 년 전에 일어난 일이지만, 예수님은 지금도 수난 중 이시기 때문입니다.

48 이와 때를 같이하여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하늘과 땅 사이에 서서 또 다른 그리스도로서 새로이 고난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더 이상 그분의 인성으로 고난을 받으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는 무죄한 모든 조물의 사제로서 활동을 계속하고, 모든 세기의 모든 사람의 행위들을 신성하게 하는 활동도 계속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우리는 천사들에게 명령하시는 아버지를 도우면서 창조된 만물을 유지하시고 늘 새롭게 하시 게 할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끊임없이 삼위일체(의 신비)에 점점 더 깊이 끌리면서 바로 하느님 역사( 役 事 )의 전 과정 한복판에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본질인 하느님의 뜻 안으로 사라짐에 따라 모든 것을 얻어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사랑과 영광을 위하여, 예수님과 함께 어디든지 있을 수 있고, 모든 시대에 걸쳐 모든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대는 그대 주위에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이는데 어떻게 지상 천국 에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하고 의아스러 워할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그대는 큰 평화를 느끼고 있지만, 주지하는 바와 같이, 천국은 평화 이상의 것입니다. 적어도 천국에는 더 이상 눈물이나 고통이 없습니다. 세상도 이따금 아름다워 보일 수 있지만, 그래도 지상 천국 으 로 간주하기에는 틀림없이 너무 부족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이 지나간다고 해서, 겨울에도 꽃봉오리들이 그 사람 주변에서 갑자기 툭툭 터지듯 피어나 겠습니까? 아닙니다. 천국은 그런 일이 일어나는 장소라기보다, 하느님을 직접 뵙는 지극히 복된 직관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49 이제 그대의 손을 보십시오. 이것이 세상의 무질서 한복판에서 하느님을 직관하는 한 방식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지막한 소리로 그대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의 손을 움직일 때에 나를 지켜보아라. 세상의 창조자인 내가 여기에 있으면서 너의 손을 움직이고 있다. 네가 내 거룩한 뜻 안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나를 주시하여라. 네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 악행, 혼란, 슬픔 등에는 눈길을 주지 마라. 네가 땅 쪽으로 내려가는 느낌이 들 때마다 네 손을 보고, 네 창조주에 대한 그 지극히 복된 직관에 집중하여라. 내가 여기에 있다. 다시 지상에서, 네 발걸음 안에서 걷고 있다. 나와 함께 이 천상에 머물러 있어라. 그러면 우리는 네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행복할 것이다. 우리 함께 나라 가 오게 하자. 성인들이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네가 네 손을 볼 수 없는 캄캄한 한밤에도, 세상이 너에게 닫혀 있을 때에도, 네 숨 안에서 숨 쉬는 나의 부드러운 숨결에 귀를 기울여라. 내가 약속한다. 세상과 세상의 문제들이 너와 나의 일치의 빛 안에 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하느님을 보든지 세상을 보든지 선택할 권리가 있다. 만약 하느님을 보기로 선택한다면, 천국보다 못한 무엇이 있을 수 있겠느냐? 이것이 너의 지복 직관이고, 이 직관이 바로 너의 지상 천국 을 이루는 것이다.

50 하느님의 뜻에 관해서는 알아 두어야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온 역사가 하느님께서 당신 나라를 다시 세우실 이 순간을 향하여 이어져 왔으니, 이제 그분께서는 그것을 이루기 위하 여 당신 계획의 특정적인 점들을 드러내 보이시는 것입니다. 일단 이 선물을 알게 되면, 성경 말씀이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당신의 뜻을 다시 선물로 주시려는 하느님의 계획에 대한 힌트와 감추인 참고들이 성경 안에 녹아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보십시오. 아버지와 제가 하나이듯이, 이 사람들도 저와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뜻을 공유하는 데서 생겨나는 일치와 정결의 빛 안에서 보면 더 이상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 요한에게 내린 성령의 계시에 의하면,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바오로 사도에게는 이렇게 말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고통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나타내시기를, 곧 하느님 뜻 선물로 살게 된 자녀들을 나타내시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교회의 진리들은 이보다 덜 신비롭습니다. 우리는 마리아께서 온전히 하느님의 뜻 안에서 끊임없이 (이 뜻의) 행위와 순례를 하셨다는 사실에 비추어, 마리아께 서 모든 은총의 샘이며 중개자이신 까닭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고한 신비인 삼위일체의 신비마저 성삼위께서 같 은 뜻을 공유하고 계신다는 계시와 더불어 이해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51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영혼에게는 성인들이 하느님의 모든 선물의 예표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가 누리며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선물의 예표 말입니다. 그러니 두 지점에 동시에 존재하기, 인간의 마음을 읽는 능력, 거룩한 덕행들 같은 선물뿐만 아니라 신비적 혼인 같은 선물마저 다만 하느님 뜻 선물의 풍성함 속으로 뛰어들기 시작하는 출발점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느님 뜻에 대한 인간 뜻의 전적인 일치로서 자고로 영적 체험의 극치로 간주되어 왔던 그 혼인 도 하느님의 뜻을 자기의 것으로 소유하며 실제로 활용하는 이 선물에 비하면 아주 많이 부족한 것입니다. 루카 17, 20-22 하느님 나라의 도래 20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서 하느 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 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나 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21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 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 데에 있다. 2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너 희가 사람의 아들의 날을 하루라도 보려 고 갈망할 때가 오겠지만 보지 못할 것이 다.

52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뜻에 대한 진리를 드러내시려고 수천 년을 기다려 오셨습니다. 하느님 뜻의 끝없는 바다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기를 원하는 한 방울의 물인 그대는 이제 여기에서 어디로 가야 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주신 진리들을 (꼭꼭) 씹어 그대 자신의 일부로 만들고, 그것들을 실행에 옮기십시오. 바로 이 순간에도 그대가 이 책을 읽고 있는 행위 안에서 예수님께서 읽고 계시고, 그대가 자리에 앉아 숨 쉬며 생각하고 있는 행위 안에서 예수님께서 앉아 숨 쉬며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대가 동작을 하기 전에 예수님의 손이 이 책을 닫으시면, 그대는 예수님께서 하고자 하신다. 고 말해야 합니다. 그대가 세상을 창조하신 분을 모시고 있고, 그 창조주께서 놀라운 일치로 그대와 함께 계시면서 이 순간을 나누고자 하시 니, 이는 그대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초월하는 일치입니다. 그분께서 그대를 사랑하시고 나라 를 더 성장시키기를 바라시기 때문에 그 모든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저 하느님의 뜻 안에 있을 뿐인 이 순간이, 하느님의 뜻을 선물로 받지 않은 상태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설교를 한 다든가 인간의 뜻 안에서 (대단한 무슨 일을 하는) 그 어떤 순간보다도 강력한 순간입니다. 하느님으로 하여금 지금 이 순간에, 그리고 다음 순간, 또 다음 순간, 또 다음 순간에 이 일치를 이루시게 해 드리는 것 보다 그분을 사랑하는 더 좋은 방식이 없는 것입니다. 친구를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얘야, 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의 숨조차 나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의 행위가 되게 하여라. 그 불티가 확 타오르면서 작은 불꽃을 이루어 네 창조주의 사랑을 위로하게 하여라.

53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을 사랑할 수단을 주셨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영원으로부터 당신을 사랑하게 하시려고 주 신 수단이니, 바로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삶이라는 선물입니다. 신다. 예수님께서 원 하 그대를 그분 거룩하신 의 더 깊이 뜻 안으로 데려가시기를 원하신다. 끝

54 순례에 관하여 앞으로 돌아가서, 예수님으로 하여금 그대의 기도 안에서 기도하실 때에 그 길을 인도하시게 하십시오. 그렇게 하실 시간과 기회를 드리십시오. (그것이 아침기도 시간이든, 밤기도 시간이든, 성탄절 모임에서 하는 일 분 묵 상 시간이든 언제라도 상관없습니다.) 순례의 중심을 이루는 행위들을 (아버지께 바치면서 이렇게 말씀드리십시오.) 아버지, 거룩하신 뜻의 사랑으로 이 행위를 아버지께 바치오니,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영혼들이 바치는 것처럼 받아 주십시오. 그리하여 하느님 뜻의 빛이 인간 뜻의 어둠을 몰아내며 빛나게 하시어, 아버지의 나라가 영혼들 안에, 또 모든 조물 위에 쏟아져 내리게 해 주십시오. 이는 아버지께서 합당한 사랑과 영광을 받으시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낱말을 다 사용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단지 이렇게만 말씀드려도 무방할 것입니다. 아버지, 이 행위를 아버지의 거룩하신 사랑으로 아버지께 바칩니다. 순례 행위는 옳은 길이니 옳지 못한 길이니 하는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쓰고자 하시는 낱말들을 그대에게 주실 것입니다. 정보가 넘치는 이 시대에는 순례할 것이 바닥나는 일이 거의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 어디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 고 있는지 한 순간에 다 알 수 있습니다. 최근에 새로 생긴 별, 심해 생물체의 발견, 디옥시리보 핵산(DNA) 곧 유전자의 본체를 이루는 성분, 폭탄 테러로 죽은 이라크 민간인 수, 수천 마일을 덮친 홍수의 자세한 피해 사항 등 정보가 (수없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성경, 성인들의 전기, 교회의 회칙, 역사서 같은 책에 쉽게 접근할 수도 있습니다. 수도사가 희귀본 성경을 손으로 꼼꼼히 필사하던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나갔으니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계획 에 따라, 영혼들이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공동체 안에 숨어 있으면서) 온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유능하게 (영적) 순례를 할 수 있는 이때,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삶이라는 선물을 그들에게 맡겨 주셨으니, 이는 더할 수 없이 적절한 그분의 타이 밍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순례들을 그대가 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이 순례에 대한 견해를 필자 나름으로 진술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55 1. 수난의 시간들 을 읽을 때에는 고난을 받으시며 기도하 시는 예수님의 행위들을 따라 하십시오. 마리아와 루이사와 하나 되어 계속 예수님을 동반하십시오. 수난의 시간들 은 하느님의 마음에 가장 큰 흐뭇함을 드리는 기도입니다. 2. 여러 권으로 되어 있는 루이사의 천상의 책 한 부분을 읽 을 때에는 모든 영혼들을 대신하여 예수님의 말씀과 루이사의 말을 반복하면서,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그것을 아버지께 바 치십시오. 그리고 이 진리들이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 속에 파 고들도록 기도하십시오. 3. 성경을 읽을 때에는 각 페이지마다 또 하나하나의 말마디마 다 빼놓지 말고, 아브라함, 모세, 에스테르, 성 스테파노 등의 행위들을 하느님의 뜻 안으로 가져오십시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활동 및 마리아와 천사들의 활동을, 성경 속에서 전개되는 대로 되풀이하십시오. 아버지와 함께 홍 해를 양쪽으로 가르고, 성령과 함께 불 혀 모양으로 내려오십 시오. 마리아와 함께 십자가 아래에 서 있으면서 동시에 예수 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위로를 드리 십시오. 이와 같이 성경을 읽는 것이 독서를 계속적인 순례로 만드 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4. 알파벳 순서로 되어 있는 성인들 사전 (John Delency 편 저)을 뒤적이며 5천 명이 넘는 그들의 행위들을 하느님의 뜻 안으로 가져오십시오. 5. 교리서 를 통독하면서 가톨릭 교회의 진리들을 모든 영혼 들 안에 넣으십시오. 6. 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 (National Geographic)이나 파 퓰러 사이언스 (Popular Science)의 페이지를 넘기면서 아버 지의 창조물을 보며 그분께 영광을 드리십시오. 7. 신문을 볼 때에는 (재난과 전쟁과 범죄와 질병으로 나타나 는) 고통을 십자가와 결합되게 하려는 목적으로 보십시오. 8. (보행자 전용의) 상점가 벤치 (같은 것)에 앉으십시오. 자만 심이니 마약이니 담배니 하는 것들일랑은 즉각 끌어내고, 지나 가는 사람들 안에 보이는 그 밖의 나쁜 짓거리들도 끌어내십시 오. 그 영혼들과 모든 영혼들 안에 은총과 덕행들을 넣어 주 십시오. 9. 아버지께서 당신의 조물을 유지하시려고 그대 주위에서 하 시는 일과 성령께서 영혼들을 성화시키려고 하시는 일을 생각 해 보십시오. 그대도 그렇게 활동하고 계시는 그분들과 합류하십시오. 천 국에서 활동 중이신 하느님과 성인들과도 합류하십시오.

56 빛의 천사들 이 빛의 천사들 은 본문 군데군데에 천사 모양으로 나타나 있는 주 ( 註 )들로서 83번까지 있습니다. 한 번호에 ⓵,⓶,⓷ 등의 작은 번호가 더 붙어 있는 것들도 있는데, 해당 번호의 구문을 내포 또는 설명하거나 참고할 수 있는 출처를 가 리킵니다. 루이사의 저술을 영어로 옮긴 책들에서 택한 것인데, 그 영역판이 여 러 가지여서 이미 한국어로 소개된 문장과 뜻이 다소 다른 구절들도 있습니다. 모쪼록 하느님 뜻 영성의 빛에 비추어 읽으십시오. 편의상 천사 1 등등에서 천사 는 생략하고 번호만 적었습니다. 역주 1의 ⓵: 천상의 책 제12권 80,1-26 (1919년 1월 29일) 인류 역사상 세 번째 쇄신의 때와 하느님의 뜻 영성 루이사의 소명 (루이사) 복되신 예수님의 상처들을 경배하고 있었던 나는 이 경배 끝에 사도신경 을 외면서 하느님 뜻의 무한성 안으로 들어갈 작정이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뜻 안에는 피조물의 과거와 현재 와 미래의 모든 행위들이 있고, 그들이 마땅히 해야 했으나 태만 이나 악의 때문에 하지 않았던 행위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 사랑이신 예수님, 저는 당신 뜻 안으로 들어갑니 다. 하고 말씀드렸다. 이 사도신경 으로 사람들이 하지 않았던 모든 신앙 행위들을 다시 행하며, 모든 불신 및 창조주 하느님께 드려 마땅한 흠숭 부족을 보속하려고 합니다. 이 말과 또 다른 말을 하는 사이 나의 지성이 하느님의 뜻 안 에 녹아드는 것을 느꼈는데, 하나의 빛이 나의 지력을 온통 휩싸 고 있었다. 이 빛 안에 다정하신 예수님의 모습이 보였고, 빛이 소 리를 내어 거듭거듭 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누가 그 모든 것을 다 옮길 수 있겠는가? 나로서는 갈 피를 잡을 수 없는 소리만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다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내겐 너무 고역이어서 명령이 그토록 엄하지 않았다면 이처럼 큰 희생을 나 자신에게 강요하지 않았을 성 싶다. 그러나 제 생명이시여, 당신께서 저에게 힘을 주시고, 이 하찮 고 무지한 자를 스스로에게 맡겨 두지 마십시오. 그때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사랑하는 딸아, 너에게 내 섭리의 질서에 대해서 알려 주고 싶다. 나는 이천 년이라는 기간이 지날 때마다 세상을 새롭게 해 왔다. 첫 번째 이천 년이 지난 후에는 홍수로 세상을 정화하였고, 두 번째 이천 년이 지난 후에는 내가 세상에 와서 나의 인성을 드러 냄으로써 그렇게 하였다. 나의 인성으로부터 나의 신성이 마치 수

57 많은 틈새를 통과하는 빛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로부터 이천 년 동안 선한 사람들과 성인들은 내 인성의 열 매들로 살았고, 내 신성은 아주 조금밖에 누리지 못했다. 이제 세 번째 이천 년이 끝나가고 있으니, 세 번째 쇄신이 있을 것이다. 이 런 이유로 혼란이 전반적으로 퍼져 있거니와 이는 이 세 번째 쇄 신에 대한 준비일 따름이다. 두 번째 쇄신에서 나는 내 인성이 행한 일과 겪은 고난을 나타 내 보이면서 내 신성이 행한 일에 대해서는 별로 나타내지 않았지 만, 이제 세 번째 쇄신에서는 우선 땅이 정화되고 현 세대의 대부 분이 멸망한 다음 내가 피조물에게 한층 더 관대해질 것이고, 나 의 신성이 나의 인성 안에서 행한 일을 드러냄으로써 이 쇄신을 완성할 작정이다. 즉, 나의 신적인 뜻이 어떻게 나의 인간적인 뜻과 함께 일했는 지, 모든 것이 어떻게 내 안에 연결되어 있었는지, 내가 모든 것을 어떻게 했으며 또 다시 했는지, 각 피조물의 생각 하나하나를 내 가 어떻게 다시 하면서 내 거룩한 뜻의 인장을 찍었는지를 드러내 겠다는 것이다. 내 사랑은 스스로를 쏟아 내기를 원한다. 피조물을 위하여 내 신성이 내 인성 안에서 극단적인 (사랑으로 행한) 일들을 알리기 를 원한다. 이는 내 인성이 외적으로 드러나게 행한 일들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드러내지 않은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것 에 대해서 너에게 자주 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다른 이들은 고작 내 뜻의 그림자를, 내 뜻을 행하는 것에 내포된 은총 과 감미로움을 알았을 뿐이다. 그러나 내 뜻 안으로 들어가는 것, 그 무한성을 수용하는 것,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나와 함께 불어나서 하늘이건 사람들의 마음속이건 어디든지 파고드는 것, 인간적인 방식을 버리고 신적인 방식으로 일하는 것 이런 것을 아는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이는 적지 않은 이들에게 생소하게 보일 것이고, 진리 의 빛을 향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한마디도 이 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조금씩 길을 열어 가겠다. 내 뜻 안에서의 삶에 대한 진리를 때에 따라 하나씩 드러냄으로써 마침내 그들도 이해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내 뜻 안에서 살도록 (피조물을) 연결하는 첫 번째 고리는 나의 인성이었다. 내 인성이 내 신성과 결합하여 영원 한 뜻 속을 헤엄치듯 나아가면서 인간의 모든 행위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이를 내 인성의 행위들로 삼고 피조물 편에서 아버지께 신 적 영광을 드리기 위함이었고, 영원한 뜻의 진가와 사랑과 입맞춤 을 그들의 모든 행위에 가져다주기 위함이었다. 이 영원한 뜻의 영역 안에서 나는 피조물의 모든 행위를 그 들이 행할 수 있었으나 하지 않았던 행위들을 보았고, 또한 그릇

58 되게 행한 선행들도 보았다. 그래서 내가 그들이 하지 않았던 행 위들을 했으며 그릇되게 했던 행위들을 다시 했던 것이다. 이제 그 행위들은 홀로 나에 의해서만 행해진 채 전부 나의 뜻 안에 보류되어 있다. 그러니 나는 나의 뜻 안에 와서 살면서 내가 행한 것을 이 뜻 안에서 다시 할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내가 너를 내 인성과 연결되는 두 번째 고리로 택한 것은 그 때문이다. 네가 나의 뜻 안에서 살면서 나 자신의 행위들을 거듭 함에 따라 너의 고리가 나의 고리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사랑은 쏟아 낼 배출구 없이 있을 것이 고, 내 신성이 내 인성 안에서 행했던 모든 일에 대한 영광을 피 조물에게서 받지 못할 것이며, 나의 뜻 안에 포함되어 완성되어야 할 창조 사업의 목적도 완전히 이루지 못한 채 있을 것이다. 이는 마치 내가 피란 피를 다 쏟아 내면서 그토록 많은 고난을 받았는데도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던 것과 같다. 그러니 누가 나 를 사랑했겠느냐? 누가 감동을 받았겠느냐? 그런 사람은 하나도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나는 그 누구에게서도 내 구원 사업의 열 매를, 그 영광을 받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예수님의 말씀을 가로막으면서, 제 사랑이시여, 하느님 뜻 안에서의 삶이 그리도 많은 선을 내포한다면, 어찌하여 진작 나타내 보이지 않으셨습니까? 하고 여쭈었다. 그러자 그분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딸아, 내가 먼저 알려야 했던 것은 나의 인성이 외적으로 행한 일과 겪은 고난이었다. 영혼들을 준비시켜 내 신성이 내적으로 행 한 바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다. 피조물은 나의 일을 한꺼번에 다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나 자신을 계속해서 조금 씩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그러면 나의 고리와 연결된 너의 고리에 다른 영혼들의 고리들 도 이어질 터이니, 나는 나의 뜻 안에 살면서 피조물의 모든 행위 를 다시 하게 될 영혼들의 무리를 가지게 될 것이다. 홀로 나에 의해서만 행해진 채 보류되어 있었던 수많은 행위들의 영광을 피 조물에게서도 받게 되리라는 말이다. 이들은 그 신분에 따라 동정녀, 사제, 평신도 등 모든 계층의 사람들로서 더 이상 인간적인 방식으로 활동하지 않을 것이다. 나 의 뜻 안으로 들어옴으로써 온전히 신적인 방식으로 활동하리니, 그들의 행위는 모든 이를 위하여 불어나는 행위가 될 것이다. 나는 그리하여 인간적인 방식으로 집전되고 받거나, 혹은 불경 스럽게, 혹은 사욕으로 더러워진 숱한 성사들 및 내게 영예가 되 기보다는 불명예가 되는 숱한 선행들 대신, 신적인 성사들과 선행 들의 영광을 피조물에게서 받을 것이다. 내가 이때가 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으니, 너도 나와 함께 기 도하며 그것을 열망하여라. 그리고 나의 고리와 연결된 너의 고리 를 이동시키지 말고 첫 번째 고리로서 시작하여라.

59 1의 ⓶: 상동 제12권 153,11-13 (1921년 2월 22일) 하느님의 뜻이 인간을 창조 당초의 본연의 상태로 돌아오게 하시리라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인간 세대는 나의 뜻이 땅에 군림할 때까지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구원 피앗 은 창조 피앗 과 성화 피앗 중간에 위치하지만, 이 셋은 한데 어울려 인간의 성화를 완 성할 것이다. 셋째 피앗 은 인간으로 하여금 원래의 상태를 거의 회복할 정 도로 크나큰 은총을 주리니, 나에게서 나왔을 때와 같은 모습의 인간을 내가 보게 될 때, 그때라야 비로소 나의 사업이 완성될 것 이고, 나는 이 마지막 피앗 안에서 영원히 쉴 것이다. 이처럼 내 의지의 생명만이 인간에게 그 본연의 상태를 되돌려 줄 터인즉, 너는 주의를 집중하여 인간의 성화를 완성하는 일을 나와 함께하며 도와주려무나. 2: 상동 제19권 25,1-4(1926년 5월 31일) 루이사의 저술을 하느님의 뜻에 대한 모든 진리에 비하면? (루이사) 계속 하느님 뜻의 빛에 싸여 있다. 이 빛의 끝없는 바 다에 잠겨 있으면서도 나의 하찮은 지성은 단지 빛의 입자 몇 개 와 작은 불꽃 몇몇을 간신히 건질 수 있을 뿐이다. 영원하신 뜻의 이 끝없는 바다가 품고 있는, 많기도 많은 진리와 지식과 행복들 (의 빛과 불꽃들) 중에서 말이다. 게다가 그렇게 건진 적은 빛에 대해서마저 글로 옮기기에 적절 한 말을 찾아내지 못하기가 일쑤이다. 여기에서 적은 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결국 생략하게 되는 많은 것에 비해서 그렇다는 것이 지, 나의 비천하고 빈약한 지성에게는 넘치도록 가득 차기에 족한 양이다. 그러니 그 나머지에 대해서는 그대로 두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바닷물 속으로 잠수하여 들어간 사람에게도 같은 현상이 일어 난다. 물이 사방에 있어 온몸이 젖고 어쩌면 내장 속까지도 물이 차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바다에서 나왔을 때, 그는 얼마나 많은 물을 몸에 지니고 있겠는가? 아주 적게, 그러니까 바다에 남아 있 는 물에 비하면 거의 없는 양이라고 할 만큼 적게 지니고 있을 것 이다. 그가 바다 속에 있었다고 해서, 물이 얼마나 많은지, 물고기의 종류와 양이 어느 정도로 다양하고 많은지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물론 그렇게 할 수 없다. 자기가 바다에서 본, 얼마 되 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내 하찮은 영혼도 그렇다.

60 3: 하느님의 뜻 기도모음집 145면 하느님의 뜻 호칭기도 참조 4: 천상의 책 제11권 72,1-6 (1914년 3월 24일) 하느님의 뜻 안에 사는 이는 예수님의 인성을 대신한다 (루이사)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있다가 예수님께서 여태 오시지 않았다고 징징거렸더니, 그분께서 오시자마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나의 뜻은 그 자신 안에 나의 인성을 감추곤 한다. 이 런 까닭에 내가 내 뜻에 대해 말하다가도 때때로 너에게 모습을 숨기는 것이다. 너는 빛에 싸여 있음을 느끼고 내 목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나 를 볼 수는 없어지는데, 그것은 내 뜻은 영원하고 무한한 반면 내 인성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내 뜻이 그 내부에 내 인성을 흡수하기 때문이다. 사실 내 인성은 지상 생활 당시에 모든 장소와 시간과 상황을 다 감싸지는 못했다. 내 인성이 갈 수 없는 곳은 내 무한한 뜻이 인성을 대신해서 갔던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온전히 나의 의지로 사는 영혼들을 찾아내면, 그들이 내 인성을 그 시간과 장소와 상황과 심지어 고통도 대 신하게 된다. 나의 의지가 그들 안에 살아 있기에, 내가 내 인성 을 썼던 것과 꼭 같은 모양으로 그들을 쓰기 때문이다. 내 인성은 말하자면 내 뜻을 표현하는 오르간이었다. 내 뜻을 행하는 이들도 그와 같다. 5의 ⓵: 상동 제11권 40,7-14 (1912년 11월 2일) 영혼은 오직 하느님 안에서만 자신을 알아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내 딸아, 나는 여기, 네 안에 있다. 네가 너 자신을 알아보려거든 내 안으로 들어와서 내 안에 있는 너를 보아라. 내 안에 있는 너를 보게 되면 너 자신을 정돈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내 안에서 너의 모습을 내가 나와 비슷하게 만든 너 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고, 이 모습을 보존하며 단장하는 데에 필 요한 모든 것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네가 내 안에 있는 너를 알아보게 됨에 따라 내 안에 있는 너의 이웃도 알아볼 것이고, 내가 얼마나 너를 사랑하며 또 네 이웃을 사랑하는지를 보면서 참된 신적 사랑의 높은 경지에 도 달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네 존재 안팎의 모든 것이 참된 질서를, 곧 신적 질서 를 입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네가 너를 너 자신 안에서 알아보고자 한다면, 첫째, 신 적인 빛이 없으므로 실상 너 자신을 보지 못할 것이고, 둘째, 모든

61 것이, 곧 비참과 나약과 어둠과 격정과 그 밖의 다른 것들이 서로 충돌하며 난잡하게 헝클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네 존재 안팎에서 무질서만 보게 될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너와 맞서 싸움을 일으킬뿐더러, 어느 것이 너를 가장 상하게 할 수 있는지 보려고 저희끼리도 엎치락뒤치락할 것 이다. 그러니 생각해 보아라. 그런 것들이 너와 네 이웃을 어떤 질서 속에 넣어 줄 수 있겠는지를. 나는 네가 내 안에서 너 자신을 알아보기 바란다. 또한 너 자 신을 기억하는 것도 반드시 내 안으로 들어와서 기억하기 바란다. 그러지 않고 나 없이 너 자신을 기억하려고 드는 것은 너에게 백 해무익한 일이 될 것이다. 5의 ⓶: 상동 제19권 51,1-14 (1926년 8월 27일)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에 관한 책의 제목을 정해 주시다 사람을 질서와 그 본연의 위치로 돌아오게 하시는 부르심 (루이사) 내가 여느 때와 같은 상태로 있었을 때에, 언제나 사 랑하올 예수님께서 흠숭하올 하느님의 뜻에 관한 책을 출판하기 위해서 일하게 될 신부님을 보여 주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 사제에게 다가가셔서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아들아, 네가 앞으로 출판하게 될, 나의 뜻에 관한 책에는 제 목을 이렇게 붙여라. 사람들 가운데 이루어질 하느님 뜻의 나라 - 천상의 책 - 사람들로 하여금 질서와 그 본연의 위치와 창조된 목적에로 돌아오게 하시는 부르심 보아라, 나는 책의 제목도 이 위대한 나의 뜻 사업에 일치시키 고자 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정해 주신 자리 는 내 뜻 안에 있는 것임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내 뜻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한 그들 자신의 자리나 질서나 목 적이 없어질 것이니, 아무 권리도 없이 창조된 세계 안에 쳐들어온 침입자가 될 것이고, 따라서 평화가 없을뿐더러 물려받은 재산도 없이 이리저리 떠도는 신세가 될 것이다. 그런 그들을 보며 나는 측은한 마음이 들어 끊임없이 이렇게 부르짖곤 한다. 너희의 자리로 들어오너라. 질서 속으로 오너라. 와서 유산을 상속받고 너희 집에서 살아라. 왜 남의 집에서 살고 자 하느냐? 어찌하여 너희의 소유가 아닌 땅을 차지하려고 하느 냐? 너희 것이 아니니 불행하게 살며, 창조된 만물의 종이요 웃음 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62 나의 지음을 받은 만물은 그들 자신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질 서 속에 있다. 하느님께로부터 부여받은 온갖 충만한 선들과 완전 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너희들만 유독 불행해지고 자 한다. 자원해서 불행해지려고 한다. 그런즉 너희의 자리로 돌 아오너라. 이 자리에서 나는 너희를 부르며 기다리고 있다. 나의 뜻을 알리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내 대변자가 되리니, 나는 내 뜻의 나라의 신비를 그런 이들에게 맡기겠다. 그런 다음 예수님께서는 창조된 세계 전체를 보여 주셨는데, 그 모든 것이 하느님께서 바라신 위치에 있기 때문에 서로 완전한 질 서와 조화 속에 있었다. 일체가 본연의 위치에 있어서 하느님의 지 고하신 뜻이 그들의 전 존재를 아름답고 신선하고 항상 새롭게 보존하시고, 질서가 모두에게 공동의 행복과 보편적인 힘을 가져 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질서와 조화를 보면서 나는 여간 황홀 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을 이으셨다. 딸아, 우리 (성삼위)의 작 품들은 얼마나 아름다우냐! 그들은 우리의 영예요 영원한 영광이 다. 만물이 그들의 위치에 있고, 각각의 조물이 그 자신의 직분을 온전히 다하고 있는 것이다. 오로지 인간만이 우리 창조 사업의 수치이다. 우리의 뜻을 외면 한 채 다리를 하늘로 치켜 올리고 머리를 땅에 댄 자세로 다니기 때문이다. 얼마나 기막힌 무질서냐! 인간이 머리를 아래쪽에 두고 땅을 훑으며 돌아다니다니, 얼마나 역겨운 모습이냐! 온통 전도 ( 顚 倒 )되어 변형되고 말았으니! 발로 걸으며 머리로는 동작을 조절해야 할 인간이 그렇게 거꾸 로 선 자세를 취하고 있으니, 시력이 미칠 수 있는 범위가 좁아졌 을 뿐만 아니라, 공간 속을 누비며 마음껏 움직일 수 없고, 어깨 뒤에 적이 있어도 자신을 방어할 수 없고, 멀리 갈 수도 없어진 것이다. 그런즉 인간이 그 자신의 뜻을 따라 행동하는 것은 참으로 완 전한 추락이며 인류 가족 전체의 무질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이유로 나는 내 뜻을 알리는 일에 큰 관심을 쏟고 있다. 인간이 더 이상 다리를 치켜세우고 머리로 땅을 훑지 않고 발로 걸어서 본래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래야 인 간이 나와 그들의 수치가 아니라 영예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 보아라. 사람이 머리를 땅에 박고 돌아다닌다면 너의 눈에 도 흉해 보이지 않겠느냐? 그토록 전도된 모습을 보면 너 역시 측은함을 느끼지 않겠느냐 말이다? 그때 내 눈에 거꾸로 선 사람들의 머리와 다리가 보였다. 예수 님은 사라지셨고, 인간 세대들의 이 흉한 장면을 보며 나는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분의 뜻이 알려지기를 진심으로 빌면서.

63 6: 상동 제11권 35,2-4 (1912년 9월 6일) 영혼들의 안 과 밖 에 계시는 하느님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딸아, 나는 영혼들과 함께 있고, 그 들의 안팎에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이 현존의 효과를 체험하 겠느냐? 그의 뜻이 나의 뜻과 긴밀히 일치해 있는 사람이다. 나를 부르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나의 능력과 내가 자기에게 베풀 수 있는 선을 아는 사람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자기 집에 물이 있는데도 다가가서 따라 마실 생각은 않고 갈증으로 타는 듯한 고통을 겪는 사람과 같다. 물이 있어도 물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불이 있는데도 다가가서 쬘 생각은 않고 덜덜 떨고 있는 사람 역 시 불과 그 열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다른 모든 것에 대해서도 한가지로 말할 수 있다. 나는 내 은혜를 베풀고 싶은데 받아 누리는 사람이 없다면, 내 마음이 어찌 답답하지 않겠느냐? 7의 ⓵: 상동 제12권 123,2-6 (1920년 1월 24일) 하느님은 당신 피조물과 함께 있고자 하신다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딸아, 피조물이 나와 함께 있는 것을 내가 얼마나 갈망하고 애타게 기다리며 좋아하는지 네가 안다면! 그래서 나는 사람을 창조하면서,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 으니, 그와 비슷한 사람을 하나 더 만들어 함께 지내게 해서 서로 의 기쁨이 되게 하자. 고 했고, 같은 말을 사람을 창조하기 전에 이미 내 사랑에게 하였다. 나는 혼자 있고 싶지 않고, 피조물이 나와 함께 있기를 바란 다. 사람을 지어내어 그와 더불어 즐기며 나를 흐뭇하게 하는 모 든 것을 나누도록 해야겠다. 그와 함께 지내며 사랑으로 나 자신 을 쏟아 부어 주리라. 이것이 내가 인간을 나와 비슷한 모습으로 만든 이유이다. 인 간의 지성이 나에 대해 생각하며 나에게 관심을 가질 때 그가 나 의 지혜와 함께 있는 것이고, 나의 생각이 그의 생각과 함께 있으 니, 우리가 더불어 즐겁게 지내는 것이다. 그의 시선이 사랑하기 위해서 나를 바라보고 조물들을 보면 나 는 그의 시선이 함께 있음을 느낀다. 그의 혀가 기도하거나 선한 것을 가르치면 나는 그의 음성이 함께 있음을 느낀다. 그의 마음 이 나를 사랑하면 나는 그의 사랑이 함께 있음을 느낀다. 다른 모든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사람이 그 반대로 굴면 나는 버림받은 왕과 같이 외로 움을 느낀다. 아아,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혼자 버려 두고 무시하는지!

64 7의 ⓶: 상동 제12권 127,2-6 (1920년 4월 3일)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딸아, 인간 창조에서 내가 (의도한) 전적인 뜻은 인간이 모든 일 속에서 나의 뜻을 행하는 것이었다. 인간이 계속해서 나의 뜻을 조금씩 행함에 따라 내가 인간 안에 나의 생명을 완성해 갈 것이었고, 그렇게 인간이 나의 생명을 기 르면서 내 뜻 안에서의 행위를 반복한 뒤에 내가 그에게로 갈 것 이었다. 그리하여 내 생명의 태양이 나와 비슷해진 그를 보고, 즉 내 생명의 태양이 인간 안에 형성된 (또 하나의) 내 생명의 태양을 보고, 그를 내 안에 흡수할 터였다. 그러면 두 개의 태양이 하나 의 태양이 되는 것과 같이 그와 내가 함께 변화될 것이고, 내가 그를 천국의 열락 속으로 데려갈 것이었다. 그런데 피조물이 나의 뜻을 행하지 않거나 가끔씩만 행하면 나 의 생명이 인간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반감( 半 減 )된다. 그러니 하 느님의 생명이 완성될 수 없다. 하느님의 생명이 인간의 행위들로 흐려진 채 생명의 성장에 필 요한 영양을 충분히 받지 못하게 되고, 따라서 영혼이 인간 창조 의 목적에 끊임없이 대립하는 상태에 있게 되는 것이다. 아아! 격정과 죄로 얼룩진 생활을 함으로써 자기 안에 악마의 생명을 키우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8의 ⓵: 상동 제7권 27,3-4 (1906년 7월 3일)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영혼은 하느님의 지상 낙원이다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하느님의 뜻은 땅에 사는 영혼에게 낙원이고,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영혼은 땅에 있는 하느님의 낙원 을 이룬다. 하느님의 뜻은 신적인 신비의 문을 여는 단 하나의 열쇠이다. 이러한 영혼은 하느님의 집 에서 한가족과 같은 친교를 누리게 되므로 마치 그 자신이 집주인인 것처럼 다스리게 된다. 8의 ⓶: 상동 제11권 8,7 (1912년 3월 3일) 그 영혼들 안에 있는 것을 즐기시는 하느님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나는 그들 안에 내 뜻의 하늘을 펼 쳐 놓은 뒤 그들을 나의 진정한 모상으로 만들며, 즐겁게 이 하늘 들 속을 거닐면서 그들과 함께 논다. 9의 ⓵: 상동 제4권 104,3-4 (1902년 1월 26일) 하느님은 인류가 당신 안으로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신다

65 (루이사) 아침에 평소와 같은 상태로 있다가 내 앞에 펼쳐진 끝없는 빛을 보았다. 그리고 이 빛 안에 지존하신 성삼위께서 계 심을 알았다. 동시에 여왕이신 어머니께서도 이 빛 앞에 계심을 보았다. 어머니께서는 성삼위 안에 온전히 흡수되어 계셨는데, 또 한 당신 안으로 성삼위를 온전히 흡수하기도 하셨다. 그래서 어머니 안에는 성삼위의 세 가지 특별한 권능인 능력과 지혜와 사랑이 풍성한 것이었다. 게다가, 성삼위 하느님께서 인류 를 당신의 일부로, 곧 당신 자신에게서 나온 작은 조각으로 사랑 하시기에 당신의 이 분신들이 당신 안으로 돌아오기를 애타게 갈 망하시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여왕이신 어머니께서도 이를 공유 하시며 뜨거운 사랑으로 인류를 사랑하시는 것이었다. 9의 ⓶: 상동 제7권 20,2-5 (1906년 6월 15일) 영혼들을 당신 자신 안에 다시 받아들이기를 바라시는 하느님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딸아, 하느님의 전 생명은 사랑에서 생기를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사랑이 이 신적 생명을 잉태하고 낳 게 하며 창조하고 보존하게 하면서 그 모든 활동에 끊임없이 생기 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적 생명이 사랑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활동하지 않거나 생기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피조물은 바로 하느님이신 사랑의 큰 불에서 나온 불티 들일 따름이다. 따라서 인간의 생명 또한 사랑에서 생기를 받는 다. 그러나 모든 이가 이를 써서 아름답고 선한 것을 사랑하며 움 직이는 것은 아니다. 그 불티를 변질시켜 어떤 이들은 자기 자신을 애착하고, 어떤 이들은 사람을, 어떤 이들은 재산을, 심지어 어떤 이들은 짐승을 애착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큰 불에서 이 불티들을 쏟아 내신 창조주를 더할 수 없이 비통하게 한다. 창조주의 열망은 그들 모두가 그분 의 신적 생명의 모상들로 자라나서 그분 자신에게로 다시 돌아오 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 창조주를 본받아 그분과 같이 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니 얘야, 너는 나를 사랑하여라. 너의 숨마저 내게 대한 끊 임없는 사랑의 행위가 되어 이 불티가 작은 불을 이루게 하여라. 그러면 네 창조주의 사랑에 분출구를 주는 셈이 된다. 9의 ⓷: 상동 제35권 11장 (1937년 10월 19일) 하느님 성삼위께서는 그분 자신들에 대한 사랑 안에서 만물을 창조하셨다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딸아, 놀라지 마라. 내 뜻 안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참사랑은 그 사랑의 주체 자신에게서 시작되 고, 그럴 때에 완전한 사랑이 된다. 이 사랑의 모범은 지극히 거

66 룩하신 삼위일체 하느님이시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당신 자신을 사랑하셨고, 그분의 사랑으로 당신 아들을 낳으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당신 아들 안 에서 당신 자신을 사랑하셨다. 그분의 아들인 나는 아버지 안에서 나 자신을 사랑하였고, 이 사랑으로부터 성령께서 발하셨다. 하늘 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또한 당신 자신에 대한 그 사랑으로 오직 하나의 사랑, 오직 하나의 권능, 성덕 등을 낳으셨고, 성삼위의 결 합을 불가분적 결합이 되게 하셨다. 우리 (성삼위)는 조물들을 창조하면서 우리 자신을 사랑하였다. 하늘을 펼치고 태양을 만들면서 우리 자신을 사랑하였으니, 우리 자신에 대한 우리의 이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에게 합당하고 우리와 떨어질 수 없는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창조하게 한 원동력 이었다. 우리 자신에 대한 사랑이 더욱 강렬해진 것은 사람을 창조했을 때였다. 사람 안에서 우리 자신을 사랑했으므로, 우리의 사랑이 그 영혼 깊은 곳에 우리의 생명과 모상을 낳았던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가 소유한 것만을 줄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 을 사랑했으므로 우리의 사랑은 완전하였고, 따라서 우리 자신에 게서 나온 것과 떨어질 수 없었다. 이제 우리의 뜻은 우리 뜻의 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사람이 우 리의 뜻 안에서 살기를 바라면서 그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 우리 의 뜻이 우리의 뜻 자신을 사랑하면서 이 뜻이 소유한 것을 주려 고 하는 것이다. 우리의 뜻은 우리의 생명을 거듭 낳아 기를 때에 행복을 느끼 기 때문이다. 9의 ⓸: 상동 제35권 2장 (1937년 8월 15일) 내 뜻 안에서 사는 삶이란, 사람은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은 사람 안에서 사시는 삶이다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딸아, 놀라워할 것 없다. 내가 너에 게 말하고 있는 것은 순전한 진실이다. 내 뜻이 모든 것이고, 모 든 것을 할 수 있다. 우리와 같은 조건으로 우리의 뜻 안에 들어 와 살지 않는 사람은 지극히 높은 존재인 우리에게 속할 수 없다. 그런 사람은 기껏해야 본성적으로 하느님인 우리를 볼 수 있을 뿐이지만, 우리의 뜻 안에서 살게 되면 그 자신이 우리의 사랑과 뜻의 표현이요 동참이며 은총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까닭에 내 뜻은 사람이 함께 있기를 원한다. 사람이 우리 의 뜻 안에서 삶으로써 사람의 행위와 우리의 행위가 함께 녹아들 어, 오직 한 목소리로, 오직 하나의 가치와 하나의 사랑으로 울려 퍼지기를 원하는 것이다. 더욱 확실히 말한다면 너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67 뜻 안에서 사는 것은 (우리와 사람 상호간의) 일치를 의미한다. 즉, 사람이 사랑을 할 때에는 하느님께서 언제나 앞장서서 사랑하 신다고 할 정도로 일치하는 것이다. 그러니 하느님의 사랑과 사람 의 사랑이 오직 하나의 사랑이 된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생각에 잠기면 하느님께서 앞장서서 생각에 잠기시는 것이고, 사람이 말을 하면 하느님이 그 말의 근원이시고, 사람이 일을 하면 하느님께서 그의 일 안에서 첫 행위자로 활동하 시는 것이고, 사람이 걸음을 옮기면 하느님께서 그의 걸음을 인도 하신다. 그러므로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은 하느님 안에서 사는 사람의 삶임과 동시에 사람 안에서 사시는 하느님의 삶 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의 사랑, 우리의 권능 및 우리의 행위를 우리의 뜻 안에서 사는 영혼에게서 따로 떼어 놓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다. 뜻이 하나인 이상 나머지 모든 것도 그럴 수밖에 없다. 곧 사 랑의 일치, 활동의 일치, 모든 것의 일치가 있을 따름이다. 이것이 우리의 거룩한 피앗 안에서 살아가는 삶이 가장 큰 기적 중의 기적 일찍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기적인 까닭이다. 우리는 오직 하느님만이 피조물 안에서 행할 수 있는 그 기적 적인 일을 하고자 하였다. 우리의 넘쳐흐르는 사랑을 더 이상 속 에 품고 있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그러나 배은망덕하게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뜻을 바꾸지 않았다. 비록 우리의 사랑이 방해와 억압을 당하는 바람에 안절부절못할 지경이 되곤 했지만, 우리의 넘치는 사랑과 열성적인 노력과 방책을 총동원하여 기어코 우리의 뜻과 피조물의 일치라는 목적을 달성할 작정이다. 10: 상동 제6권 42,1-3 (1904년 6월 6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는 영혼은 지성하신 삼위일체 하느님의 거처가 된다 (루이사) 평소대로 머물러 있노라니 그분께서 나의 내면에서 잠 시 모습을 보여 주셨다. 처음에는 그분만이 보였고, 나중에는 성 삼위 한 분 한 분이 다 보였는데, 모두 깊은 침묵에 잠겨 계셨다. 나는 그분들의 현존 안에서 늘 하던 대로 내적 일을 계속하였다. 그리고 성자께서 나와 일치하시려는 것 같아서 그저 그분을 따 랐을 따름이다. 하지만 일체가 침묵이었고, 이 침묵 속에서 내가 하느님과 하나 되고 있었으니, 내 온 존재가, 내 애정과 심장 박 동과 소망과 호흡이 지엄하신 임금님께 대한 깊은 경배로 바뀌는 것이었다. 이런 상태가 얼마간 지속된 뒤에 그 세 분께서 한꺼번 에 입을 여시는 것 같았는데 그러나 오직 하나의 음성을 이루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68 사랑하는 딸아,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네 안에서 하시는 일을 따르려면 용기와 충실성과 극히 깊은 주의가 필요하다. 네가 하는 모든 일은 네가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네가 하는 것이라고 는 다만 네 영혼을 하느님께 거처로 내어 드리는 것뿐이다. 그러니까 왕이 초라한 오두막을 가지고 있는 가난한 여인에게 그 오두막을 거처로 달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일이 너에게 일어난 다. 그 여인은 왕의 요청대로 그것을 내어 주고 왕이 원하는 것이 라면 무슨 일이든지 다 한다. 그리하여 그 초라한 오두막은 왕이 거처하기에 부와 고상함과 영광과 온갖 좋은 것을 다 내포하게 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누구의 것이겠느냐? 왕의 것이다. 그러니 왕이 거기를 떠난다면 그 가난한 사람에게는 무엇이 남겠느냐? 전과 같이 그 자신의 가 난만 남을 뿐 아니겠느냐? 11: 상동 제1권 6,3 예수님께서 영혼을 조금씩 가르쳐 주시리라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너로서는 그렇게 할 능력이 없다고 속 태우지 마라. 기회가 올 때마다 내가 몸소 그 방법을 조금씩 가르쳐 주겠다. 1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시간들 제18시간 오, 사랑하는 십자가야, (예수님) 오, 사랑하는, 내 열망의 십자가야. 너만이 내 자녀들 을 구원하리니, 내 모든 사랑이 네 안에 모여 있도다. 13: 천상의 책 제4권 59,2-3 (1901년 3월 19일) 가장 쉽고 유익하게 고통을 받는 방법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내 딸아, 고통을 (잘 견디는) 참된 방법은 그것이 누구에게서 오는지 또 어떤 고통인지를 보는 데 있 지 않고 이 고통에서 나오게 될 선을 보는 데 있다. 이것이 내 수 난의 방법이었다. 즉, 사형 집행자들이나 고통들을 보지 않고, 이 고통에 의하여 내게 그것을 끼치는 사람들에게 베풀게 될 선과 인류에게 오게 될 선을 보는 것이었다. 나머지 모든 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 기면서 수난의 전 과정을 온전히 지속시켰던 것이다. 내 딸아, 이것이, 인내심뿐만이 아니라 용감한 불굴의 정신으로 고통받기 위한, 가장 손쉽고 유익한 방법이다.

69 14: 상동 제8권 26,1-2 (1908년 2월 16일) 인내와 자기 포기로 지는 십자가의 열매 (루이사) 여느 때와 같은 상태로 있으면서 어째서 유독 십자가 만이 우리가 주님을 참으로 사랑하는지 어떤지를 알게 하는 것이 될까 하고 생각하였다. 덕행이나 기도나 성사들과 같이 주님께 대 한 사랑 여부를 알게 하는 것은 그 외에도 많이 있지 않겠는 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에 복되신 예수님께서 오시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정말 그렇다. 십자가만이 사람으로 하여금 그가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는지 아닌지를 알게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내와 자 기 포기로 지는 십자가이다. 인내와 자기 포기가 있는 십자가들에 는 하느님의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고통을 싫 어하므로 인내가 있다면 그것은 본성적인 것일 리가 만무하고 신 적인 것이다. 15의 ⓵: 상동 제8권 13,7-8 (1907년 10월 4일) 신성을 인성에 접붙이신 예수님의 십자가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딸아, 십자가는 사람 생명의 일부분 이니, 자기 생명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만이 십자가를 사랑하지 않 는다. 내가 오직 십자가로, 길 잃은 인성에 신성을 접붙였기 때문 이다. 십자가만이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을 신성에 결합시키면서 이 세 상에서 구원 사업을 계속하고 있으므로, 십자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덕행, 완성, 하느님 사랑 및 참생명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 른다는 것을 뜻한다. 15의 ⓶: 상동 제11권 56,7-14 (1913년 8월 20일) 신성을 인성에 접붙이신 예수님의 십자가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딸아, 진실로 내 뜻을 행하는 사람 에게는 접목( 椄 木 )에 일어나는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 나무에 접을 붙일 경우 접지( 椄 枝 )는 그 바탕이 되는 밑나무( 椄 本 )의 생 명을 없애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밑나무가 접지에게, 나도 작으나마 나 자신의 가지 하나는 갖고 싶어. 그러면 열매 몇 개는 맺을 수 있을 테고,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모두에게 알릴 수도 있을 거야. 하고 말 한다면, 접지는 이렇게 응수할 것이다. 네가 내 접( 椄 )을 받아들 이기로 했으니 이제는 너에게 존재 이유가 없다. 생명은 전적으로 나의 것일 뿐이다. 내 뜻을 행하는 영혼도 그와 같이, 내 생명은 끝났다. 나의 일

70 과 생각과 말은 내게서 나오지만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그 뜻이 내 생명인 분의 일이요 생각이며 말씀이다. 하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나는 그런 영혼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가 내 생명이요 내 피며 내 뼈다. 성체성사에서 참되고 실제적인 성변화는 사제가 하는 말의 힘이 아니라 내 뜻의 힘에 의해 일어난다. 영혼이 나의 의지로 살기로 작심하면, 나의 뜻은 그 영혼 안에 곧바로 나 자신을 창조하고, 영혼의 뜻과 일과 발걸음 안으로 흘 러든다. 그러기에 영혼은 나의 창조들을 그 수만큼 다 경험하게 된다. 말하자면 영혼이 성체가 가득 담긴 성합과 같아진다. 각각의 성체가 저마다 다 예수이니 그 수만큼 많은 예수들을 담고 있는 성합 말이다. 이와 같이 영혼은 내 뜻에 의해 자신 존재의 각 부분과 존재 전체 안에 나 자신을 포함할 수 있다. 내 뜻을 행하는 영혼은 참 되고 영속적인 영성체를 완전한 열매가 있는 영성체를 실현하는 것이다. 16의 ⓵: 상동 제4권 28,3-7 (1900년 11월 8일) 순명이 영혼 안에 하느님의 모습을 박아 넣는 이유 (루이사) 예수님께서 순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신 것 같다. 순명은 인간의 격정들을 뿌리째 뽑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토록 찬양된다. 그것은 영혼 속에 있는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모조리 없앤다. 그리하여 매우 영예롭게도 영혼의 원래 상태를 되돌려 준다. 다시 말하자면, 지상 낙원에서 쫓겨나 기 전의 영혼으로, 곧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그대로의 의로움 안에 있는 영혼으로 회복시켜 주는 것이다. 이 고상한 상태에 있는 영혼은 선한 모든 것 쪽으로 강하게 끌 리는 것을 느낀다. 선하고 거룩하고 완전한 모든 것에 동질성을 느끼는 반면, 악에 대해서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하더라도 엄청 난 혐오감을 느낀다. 순명의 기묘한 손에서 받은 이 다행한 본성 으로 그는 이제 아무런 어려움 없이, 받은 명령을 준행한다. 특히, 명령을 내리는 이는 언제나 선한 것을 명할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 이다. 순명은 (그 영혼 안에) 하느님의 모습을 박아 넣는 방법을 알 뿐만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하느님의 본성으로 바꾸기도 한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선하고 거룩하고 지극히 완전하시며 선한 모 든 것에 끌리되 악을 극도로 미워하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순명도 인간 본성을 신성하게 하여 하느님의 특성을 부여할 수 있는 능력 이 있기 때문이다. 영혼이 순명의 기묘한 손이 조종하는 대로 자기를 맡길수록 그

71 만큼 더 그 자신의 존재를 없애고 하느님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순명은 그토록 높이 찬양과 영예를 받는다. 나 자신 이 순명의 지배를 받고, 순명에 의하여 찬양과 영예를 받는다고 할 정도로 말이다. 또한, 내 모든 자녀들이 불순종으로 잃어버렸 던 영예와 영광을, 내가 순명을 통하여 그들에게 돌려주기도 하는 것이다. 16의 ⓶: 상동 제2권 61,1-7 (1899년 8월 17일) 귀부인 순명 은 사람의 모든 악습을 죽인다 (루이사) 오늘 아침 영성체를 한 후 내 사랑하올 예수님께 이 렇게 말씀드리려고 하였다. 이 순명이라는 덕행은 유별날 정도로 대담하고 때로는 그토록 힘이 세기도 하니 어찌 된 일입니까? 그 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귀부인 순명 이 어째서 네가 말하는 그런 덕행인지 알겠느냐? 그것은 순명이 모든 악습을 죽이기 때문이다. 모든 악 습을 죽이려면 당연히 힘이 세고 용맹스러워야 하고, 그렇게 행동 하는 것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면 대담하고 유별난 방식을 동원하 기도 하는 것이다. 이는 연약한 육신을 죽이는 데도 필요한 행동 방식이거든 하물 며 악습과 격정들을 죽이는 데 있어서야 더욱 필요한 것이 아니겠 느냐? 그런 것을 죽이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때때로 죽은 듯하다가도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니 말이다. 그러기에 이 부지런 한 귀부인은 언제나 움직이며 끊임없이 감시한다. 만일 영혼이 그녀가 시킨 것을 행하는 데 있어서 좀이라도 힘겨 워하는 것이 보이면, 어떤 악습이 그 영혼의 마음속에 다시 살아 날까 봐 투쟁을 벌이며 평화를 주지 않는다. 평화는 영혼이 이 귀부인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그녀의 원의를 말없이 받들어 모실 때라야 주어지는 것이다. 그녀가 너의 말처럼 그다지 오만하고 유별나기까지도 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렇다. 순명 없이는 참평화가 없다. 겉보기에 평화로워 보인다 고 하더라도, 그것은 이 덕행과 일치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격정과 한통속이기 때문에 거짓 평화이다. 그러니 그런 영혼은 결 국 멸망에 이르게 된다. 순명과 결별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이 고 상한 덕행의 왕인 나와 결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순명은 사람의 뜻을 죽이고 하느님의 뜻을 강물처럼 풍부하게 쏟아 붓기 때문에, 순명하는 사람은 그 자신의 뜻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뜻으로 산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하느님 의 뜻으로 사는 삶보다 더 아름답고 더 거룩한 삶은 달리 있을 수 없다. 그런즉, 지극히 고상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덕행들에는 자애 심이 끼여 있을 수 있지만 순명에는 결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72 17: 상동 제12권 18,40-44 (1917년 8월 14일) 참성덕은 하느님의 뜻을 행하며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데에 있다 (루이사) 나는 저 가짜 성덕들을 두고 예수님과 함께 울기 위 해서 그분의 눈물이 되고 싶다. 진짜 성덕은 하느님의 뜻을 행하 며 하느님의 의지 안에서 사는 데에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함이다. 이 성덕은 워낙 깊은 데에 뿌리를 박고 있어서 뒤흔들릴 위험이 없다. 왜냐하면 하늘과 땅을 가득 채우며 도처에 버팀목이 있는 성덕이기 때문이다. 이런 영혼은 확고부동하기에 변덕을 부리거나 고의적인 결함에 떨어지지 않는다. 자기 본분에 세심히 주의를 기울이고, 지극히 헌 신적이며, 모든 사람과 사물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있으므로 영 적 지도란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뿌리가 깊기 때문에 아주 높 이 자라나서 꽃과 열매가 하늘에 만발할 정도이다. 그리고 하느님 안에 깊이 숨어 있어서 세상 사람들은 이 영혼 을 거의 혹은 전연 보지 못한다. 하느님의 뜻이 자신 내부에 그를 흡수하고 계시기에 오직 예수님만이 이 부러운 피조물의 주인이요 생명이며 성덕의 형상이 되실 뿐이다. 그는 아무것도 자기 것으로 소유하지 않고 모든 것을 예수님과 공유한다. 그의 정열은 곧 하느님의 뜻이다. 그의 특성도 예수님의 뜻이니, 피앗 이 필생의 지속적인 모토이다. 18: 상동 제11권 83,15 (1914년 11월 20일) 글쓰기를 꺼리는 루이사에게 예수님께서 이르신 말씀 네가 죽은 뒤 연옥에서 내가 불 펜을 손에 쥐어 준다면, 그때 는 어떻게 말하겠느냐? 19의 ⓵: 상동 제36권 14장 (1938년 6월 16일)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라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내 딸아, 내 뜻인 태양은 언제나 말 을 한다. 빛이 침묵하는 법 없이 그 온기와 생산력으로 말을 하면 서 이 뜻 안에서 사는 영혼 안에 다양한 아름다움을 박아 넣는다. 그러면 내가 거기에서 내 뜻의 그 말을 옮겨 나르는 역할을 한 다. 나 자신을 낮추어 사람의 지성에 맞추고 내 피앗 의 빛이 발 하는 말의 높이를 더 쉽고 더 단순한 말로 바꾸어 옮긴다. 내 뜻 은 그러므로 자신이 다스리는 곳에서는 결코 잠자코 있지 않는다. 빛이나 또는 내 말을 통하여 말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네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내가 너에게 말한 것을

73 곱씹어 삼키지 않아 잘 소화할 수가 없다. 그러니 그것을 잊어버 리고,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19의 ⓶: 상동 제36권 15장 (1938년 6월 20일)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이는 하느님과의 지속적인 친교 속에 있다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내 뜻의 작은 딸아. 보아라,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냐! 우리 (성삼위)는 그 사람과 지속적인 친교 속에 있다. 우리는 그가 행하는 새로운 행 위마다 새로운 기쁨을 마련해 주어, 그가 우리의 거처 안에서 점 점 더 행복하게 해 준다. 피앗 안에서 이행된 행동은 언제나 현행 중인 행위로 남고, 우리의 생명은 계속해서 다시 부활하며, 우리의 사랑은 위로 솟아 올라 그 물결로 모든 이를 감싸면서 그 행위 안으로 부른다. 모 두가 그것을 되풀이하게 하려는 것이고, 그리하여 우리에게 사랑 과 영광을 주는 그들의 메아리가 우리의 귀에 울려 퍼지게 하려는 것이다. 천사와 성인들도 모두 주의를 집중하면서 우리의 뜻 안에서 수 행될 그 사람의 행위를 애타게 기다린다. 그 까닭이 무엇인지 알 겠느냐? 그 행위에 의하여 그들이 두 배의 영광을 받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하늘의 영광 및 나의 피앗 안에서 수행된 행위의 새로 운 영광과 기쁨과 행복이다. 그들은 내게 얼마나 깊이 감사하는지, 또한 그들에게 새로운 행 복과 끝없는 기쁨을 배가시킨 이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른다! 19의 ⓷: 상동 제36권 1장 (1938년 4월 2일) 하느님의 뜻 안에 있는 영혼은 하느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그 사람은 신적인 청각을 얻고, 머지 않아 우리가 원하는 것을 듣게 된다. 항상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 이기에, 우리가 원하는 것을 거듭거듭 들려줄 필요가 없다. 하나의 사소한 신호만으로도 충분히 모든 것을 행하는 것이다. 그는 또 신적인 후각을 얻는다. 단지 냄새만 맡고서도 자기 주 위에 있는 것이 선한 것인지, 거룩한 것인지, 우리에게 속한 것인 지 어떤지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사랑과 천상적인 모든 것 을 먹고 포만감을 느낄 정도로 신적인 미각을 얻는다. 끝으로 그는 우리의 뜻 안에서 우리의 촉각을 얻는다. 그래서 모든 것이 순수하고 거룩하며 극히 가벼운 한 줄기 바람도 그를 가릴 염려가 없다. 온전히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귀여운, 내 피 앗 안에서 사는 그 사람을!

74 20: 상동 제8권 34,9-15 (1908년 4월 8일) 기도 중에 불현듯 나타난 한 성인과의 논의 (루이사가 한 성인에게) 저는 저의 이 신분이 하느님의 뜻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무척 두렵습니다. 들어 보십시오. 이 병증이 간격을 두고 때때로 나타났던 초기 몇 년 동안에는 우리 주님께서 산 제물이 되라고 저를 부르신다고 여겼고, 동시에 내적인 고통과 상처들도 받았습니다. 외적으로는 (아무 표시 없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그저 발작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불길한 징후가 생기는 것은 그것이 (순전히) 저의 환상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지는 것입니 다. 그러자 성인은 어떤 처지가 하느님의 뜻인가를 알게 하는 가장 확실한 표는, 그것이 더 이상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영혼이 알게 되면 언제라도 달리 처신할 각오로 있는 것이오. 하였다. 그래도 나는 확신이 서지 않아서 다시 이렇게 덧붙였다. 성인 이시여, 제가 모든 것을 다 말씀드리지는 않았습니다. 저의 이 신분이 하느님의 뜻이 아닐지 모른다는 의구심과 두려움이 엄습하 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성인은 아주 상냥한 어조로 내가 방금 한 말을 되풀이하거니 와, 그대가 하느님의 뜻을 알기만 하면 언제라도 그 뜻대로 행할 각오로 있다면 그렇다면 그대의 그 처지가 바로 하느님의 뜻인 것이오. 하셨다. 이제 나는 속으로 절감하고 있다. 만일 내가 하느님의 뜻을 분 명하게 알기만 하면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 거룩하신 의지를 따 를 각오로 있다는 것을! 그러므로 한결 마음이 차분한 상태로 있게 되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감사를 받으소서! 21의 ⓵: 상동 제8권 17,1-3 (1907년 11월 18일) 영혼은 텅 빈 무가 되어 갈수록 전부이신 분으로 더 차게 된다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평상시와 다름없이 있다가 복되신 예 수님을 잠시 뵈었다. 그분을 뵙자마자 이렇게 말씀드렸다. 제 감미로운 생명이시여, 저는 너무나 좋지 못한 상태가 되어 있습니다! 완전히 무로 돌아간 느낌입니다. 이제는 내적으로 느껴 지는 것이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텅 비어 있습니다. 제 마음이 매혹을 느끼는 것은 단지 한 가지뿐인데 이것으로 저는 당신을 기 다립니다. 당신께서 저를 충만케 해 주시기를 말입니다. 그러나 기 다려 보아도 헛일입니다. 충만은 고사하고 언제나 텅 빈 무로 돌 아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75 그러자 예수님은 아, 딸아! 무로 돌아간 느낌이 들어 괴롭다 고? 하고 반문하셨다. 오히려 나는 너에게 말한다. 인간은 아무것도 없이 텅 빈 무 가 되어 갈수록 전부이신 분으로 더욱 차게 된다고. 티끌만큼이라 도 자기 자신을 남기고 있다면 그 티끌이 나를 가로막아 내 전부 를 완전히 주지는 못하게 하니 말이다. 네가 부단히 무로 돌아가는 것은 하느님을 다시 얻기 위하여 너의 존재가 녹아 없어지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21의 ⓶: 상동 제7권 54,3 (1906년 10월 14일) 전부이신 분으로 가득 차기 위한 비움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전부이신 분 곧 하느님으로 가득 차 기 위해서는 너 자신의 모든 것을 비울 필요가 있다. 네 안에 전 부이신 분을 모시고 있으면 너에게 오는 모든 사람에게 전부이신 분을 줄 것이고, 남들에게 전부이신 분을 줄 때에 네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모든 것을 얻기도 할 것이다. 아무도 너에게 아무것도 거절하지 못하리니, 존경마저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도 인간적인 존경에 그치지 않고 네 안에 계시 는 전부이신 분께 합당한 신적인 존경을 줄 것이다. 21의 ⓷: 상동 제12권 16,8-12 (1917년 7월 25일) 하느님으로 가득 찬 영혼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딸아, 가장 고귀하고 가장 숭고하며 가장 위대하고 영웅적인 행위는 나의 뜻을 행하고 나의 의지 안에 서 움직이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나는 그래서 다른 어떤 것도 필 적할 수 없는 이 행위에 나의 모든 사랑과 관대함을 장려하게 펼 친다. 영혼이 이를 행하기로 결단을 내리면, 나는 그의 뜻과 나의 뜻 이 만나 서로 안에 녹아들어 하나가 되는 동안, 내 의지 안에 그 가 보존되는 영예를 주기 위하여, 그에게 더러운 점이 있으면 깨 끗하게 한다. 또한 그가 본성적인 가시들로 뒤덮여 있으면 내가 그 가시들을 흩어 없애고, 그에게 죄라는 못들이 박혀 있으면 그것들을 부수어 가루로 만든다. 악한 것은 그 무엇도 내 뜻 안에 들어올 수 없는 까닭이다. 더구나 나의 모든 속성들을 옷처럼 입혀 그의 나약을 강함으 로, 무지를 지혜로, 곤궁을 풍요로 바꾸어 준다. 기타 모든 것에 대해서도 그렇게 한다. 사람이 나의 뜻 안에서 하지 않은 행위들 속에는 늘 그의 무엇 인가가 남아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의 뜻 안에서 행한 행위들

76 속에는 그 자신이 완전히 비어 있으니, 내가 나 자신으로 그를 가 득 채우는 것이다. 22: 상동 제8권 21,8-9 (1908년 1월 23일) 우물쭈물 늑장부리지 마라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결단력이 없는 사람은 우물쭈물하다 가 원수들에게 싸움을 벌일 시간과 장소를 제공하고 만다. 반면 에, 원수들에게 틈을 주지 않고 단호하고 확고부동한 모습을 보 이면 그들이 들어올 문이 잠기게 되므로, 치고받고 하는 싸움터에 몸담을 필요가 없는 이점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가 목표점에 신속히 이르고자 한다면 그 방법 역시 신속히 행동하는 것이다. 또 내가 그와 함께 있을 터인즉 그는 승 리를 거두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그를 가장 반대한 사람들 이 가장 든든한 지지자가 될 것이다. 23: 루카 4,1-14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다 마르 8,33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24의 ⓵: 수난의 시간들 제17시간 (오전 9시-10시) 인간의 사악한 생각들에 대한 보속으로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 (예수님) 이 가시관은 사람들이 생각으로 짓는 많은 죄들에 대하여 내 아버지 대전에서 바치는 보속이 되고, 용서의 음성이 될 것이다. 24의 ⓶: 천상의 책 제11권 90,1-9 (1915년 4월 24일) 예수님의 거룩한 생각과 연결되어 있는 인간의 사악한 생각 (루이사) 평소와 다름없이 있으면서, 가시관이 들씌워졌을 때 복되신 예수님께서 얼마나 큰 고통을 겪으셨을까 하는 생각을 하 고 있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당신 모습을 보여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내가 겪었던 그 고통은 피조물의 정신으로는 도저히 이 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저 가시들보다 한층 더 고통스럽게 내 마음을 찔렀던 것은 피 조물의 모든 사악한 생각들이었으니, 이 생각들 중 어느 하나도 내 안으로 느껴지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니 나는 단지 가시들만이 아니고 가시들이 내 머리에 박아

77 넣는 역겹기 짝이 없는 죄들도 고스란히 다 느꼈던 것이다. 사랑하올 예수님을 바라보니, 예수님 안에서 나온 가시들이 둥 근 테를 이루어 그분의 거룩하신 머리를 두르고 있는 것이 보였 다. 피조물의 모든 생각들이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이었다. 이 생각들이 예수님으로부터 그들 안으로, 그들에게서 예수님께 로 흘러가는 품이 마치 함께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오, 예수 님께서 얼마나 괴로워하셨는지! 그때 그분께서 이렇게 덧붙여 말씀하셨다. 딸아, 오로지 내 뜻 안에서 사는 영혼들만이 내게 참된 보속 을 줄 수 있고 이토록 날카로운 가시들로 인한 고통을 덜어 줄 수도 있다. 사실, 이 영혼들은 내 뜻 안에 살고 있고 내 뜻은 모든 곳에 있기 때문에, 그들은 내 안에 있으며 또한 모든 사람들 안에도 있 다. 피조물 속으로 내려가고 나에게로 올라오곤 하면서 내게 모든 보속과 위로를 가져오는 한편, 피조물의 마음속에서는 어둠을 빛 으로 바꾸는 것이다. 25의 ⓵: 상동 제2권 50,2 (1899년 7월 30일) 이웃을 보지 마라 그러면 그들을 판단하지 않게 된다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이웃에 대하여 올바르게 행동하는 가장 안전한 길은 그가 하는 행위를 아예 보지 않는 것이다. 보는 것, 그것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 판단하는 것 이는 다 같은 것 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네 이웃을 봄으로써 너 자신의 영혼을 속이게 되고, 따 라서 너 자신에게도 네 이웃에게도 또 하느님께도 올바른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25의 ⓶: 상동 제2권 50,2 (1899년 8월 12일) 예수님께서 이웃에 대해서 말하는 법을 가르쳐 주시다 (루이사가 예수님께) 사랑하올 예수님, 저는 온통 비참한 것 투성이임을 아는지라, 선을 행하기보다 당신 은총들을 악용할까 봐 심히 두렵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저를 두렵게 하는 것은 저의 혀입니다. 이것이 종종 저를 넘어지게 하여 이웃 사랑을 거스 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웃에 대해서 말할 때 네가 어떠해야 하는 지를 가르쳐 주마. 첫째로, 어떤 사람이 네 이웃에 대해서 네게 무슨 말을 할 때 면 우선 너 자신을 보아라. 너도 같은 결점을 가지고 있지 않은

78 지, 잘못을 고쳐 주려는 것이 나를 노엽게 하고 이웃을 분개시키 는 것은 아닌지를 생각해야 한다. 둘째로, 그 결점이 네게는 없다고 여겨지면, 일어나서 내가 했 을 것과 같은 말을 하도록 힘써야 한다. 그렇게 나 자신의 혀로 말하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면 이웃 사랑에 결함이 없을 것이고, 오히려 너의 담화로 너 자신과 네 이웃에게는 선행을 하고 나에게는 영예와 영광을 주게 될 것이다. 26: 상동 제6권 110,2-3 (1905년 5월 23일) 아무것도 아닌 피조물이 이루는 모든 것인 분과의 일치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나는 모든 것이다. 이 말씀을 듣고 나는 이렇게 화답하였다. 저는 아무것도 아닙 니다. 보십시오, 주님, 아무것도 아닌 이것은 모든 것인 분과 결합되 어 있어야 한다는 제 말씀이 얼마나 맞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바 람에 흩어지는 한줌의 먼지와 같을 테니까요. 27의 ⓵: 상동 제7권 52,1-6 (1906년 10월 10일) 인간 행위의 생명은 하느님에게서 온다 (루이사) 오늘 아침에는 복되신 예수님께서 도도하게 쏟아져 내리는 빛 안에 계신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 빛에 잠겨 있었는데, 그들의 모든 행동이 이 빛으로부터 그 내적 자세를 받는 모습이었다. 내가 그 광경을 보고 있었을 때 복되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나는 인간의 지극히 사소한 모든 행위에, 이를테면 하나 의 생각, 한 번의 호흡, 하나의 동작도 끊임없이 함께하고 있다. 그렇지만 인간은 그들에 대한 나의 이 자세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일을 나를 위해서 하지 않을뿐더러 하지만 그들의 행동 자체가 나로부터 생명을 받는다 그들이 행하는 바를 자기네 것 으로 돌리기도 한다. 오! 그들이 그들에 대한 나의 이 지속적인 자세를 생각만 해도 나의 영광과 그들의 선익을 훼손하면서 나의 것을 강탈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에게 마땅한 자세는 모든 일을 나를 위해서 하고 그것을 나에게 주는 것이다. 나를 위해서 행한 일은 무엇이든지 내 안에 들어올 수 있으므로, 내가 이를 간직했다가 후세에 그들에게 돌려 주니 말이다. 반면에 나를 위해서 행하지 않은 일은 내게 합당한 일이 아니 기 때문에 내 안에 들어올 수 없다. 내가 그것에 역겨움을 느끼기

79 에 내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7의 ⓶: 상동 제12권 8,2-9 (1917년 5월 10일) 모든 이에게 생명과 활기를 주시는 예수님의 숨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딸아, 피조물은 다름 아닌 나의 숨이 다. 내가 숨을 내쉬면서 모든 것에 생명을 주니 말이다. 모든 생명은 숨을 쉬는 동안 지속된다. 숨이 멎으면, 더 이상 심장이 뛰지 않고 피가 흐르지 않으며 손이 미동도 하지 않고 정 신도 지성의 죽음을 감지한다. 다른 모든 것도 그렇다. 그러므로 인간의 온 생명이 이 숨을 받고 주는 것에 있다. 하지만 나는 내 숨으로 모든 피조물에게 생명과 활기를 주고, 내 거룩한 숨으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고 사랑하며 아름다움과 부 와 같은 온갖 좋은 것을 다 주고자 하는 반면, 그들은 나에게 모 욕, 반역, 배은망덕, 신성모독, 거부 따위 그런 모든 것을 숨에 담 아 보낸다. 나는 깨끗한 숨기를 보내건만 내게 오는 것은 더러운 숨기이 고, 나는 이를 축복하며 보내건만 내게 오는 것은 저주가 붙은 숨 기이고, 나는 온전히 사랑으로 보내건만 내게 오는 것은 내 마음 가장 깊은 데를 모욕하는 숨기이다. 그럼에도 사랑으로 말미암아 나는 내 숨을 계속 내보낸다. 인 간 생명의 이 기관( 氣 管 )들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내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들은 더 이상 기능을 하지 못할 것이고 결국 파괴 되어 없어지고 말 것이다. 아, 딸아, 너는 인간 생명이 어떻게 유지되는지 들은 적이 있느 냐? (내가 방금 말했듯이) 바로 나의 숨에 의해 유지된다. 그러므로 나를 사랑하는 영혼을 보면 그의 숨결이 얼마나 감미 롭게 느껴지는지, 그가 나를 얼마나 즐겁게 하는지, 나는 기운이 나는 것을 느낀다. 나와 그 영혼 사이에 일치의 화음이 메아리치 고, 이는 다른 사람들과 구분되는 독특한 것이니 하늘에서도 그러 하기 마련이다. 딸아, (내 안에 녹아들려는 너를 내가 방해한 것은) 내 사랑을 억누를 길 없어서였다. 너한테 나 자신을 쏟아부어 주고 싶었거 든. 28: 상동 제11권 39,1-6 (1912년 11월 1일) 너 자신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마라 (루이사) 흠숭하올 내 예수님의 부재로 말미암아 괴롭기 짝이 없는 상태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며 보속을 바치고 있었다. 그러나 괴로움이 극에 이르자 나 자신에게로 생각을 돌리며 이 렇게 혼잣말을 하였다.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이 영혼을 용서

80 해 주소서! 당신의 피, 당신의 고통 이는 또한 저의 것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저를 별로 생각해 주지 않는 듯 합니까? 내가 그러고 있노라니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 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런, 딸아, 어찌하여 네 생각을 하면서 그러 고 있는 거냐? 너는 지금 주인의 신분에서 뭔가를 애걸하는 비참 한 신분으로 추락하고 있다! 딱하게도 너 자신을 생각함으로써 가난해지고 있는 것이다. 나 의 뜻 안에서는 네가 주인이어서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가질 수 있는데도 말이다! 나의 뜻 안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기 도하고 보속하는 일뿐이다. 29: 상동 제11권 28,2-14 (1912년 8월 14일) 자기 망각에 이르는 방법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딸아, 영혼이 자기를 잊으려면 그가 하거나 해야 할 필요가 있는 모든 일을 마치 내가 그 영혼 안에 서 하기를 원하는 것처럼 해야 한다. 만약 기도하려고 한다면, 예수님께서 기도하고자 하신다. 하 고 말할 일이다. 그러면 내가 그와 함께 기도한다. 일을 해야 할 때에도 예수님께서 일하고자 하신다. 하고 말하고,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걷고자 하신다., 예수님께서 식사하고자 하신다., 예수님께서 주무시고자 하신다., 예수님께서 일어나고자 하신 다., 예수님께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자 하신다. 등 삶 속의 다른 모든 것에 대해서도 똑같이 할 일이다. 이와 같이 할 때라야 비로소 영혼이 자기 망각을 얻을 수 있 다. 무엇이든지 내가 원하기 때문에 하고, 또한 나 자신이 그것을 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그것이 바로 내게 필요하기 때문에 하니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일을 하다 보니 혼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가 일하는 동안 내 안의 예수님께서 일하시고, 또한 그분께서 이 일을 하시고 싶어 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것일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나 자신이 나의 손가락이 너의 손가락 안에서 일하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내 딸아, 지상 생활을 하는 동안, 나 자신을 낮추어 목재 작업이나 망치로 못을 박으면 서 내 양부 요셉을 도왔던 내가 아니냐? 그 일을 하면서 바로 그 손과 손가락으로 영혼들을 창조하는 한편 다른 영혼들은 저승 삶에로 도로 불러가기도 했던 것이다. 나는 인간의 모든 행동을 신성하게 하였다. 모든 행동을 성화 하면서 각각의 행동에 신적인 공로를 부여하였다. 내 손가락의 동 작으로 네 손가락의 모든 동작들과 다른 사람들의 모든 동작들을

81 차례차례 불렀다. 그들이 나를 위해서 행동하거나 내가 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행동하는 것을 보면, 나는 그들 안에서 나의 나자렛 생활을 계속 하곤 하였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 내 숨은 생활의 희생과 수모에 대한 위로를 받는 듯 느끼면서 바로 내 생활의 공로를 그들에게 주었던 것이다. 딸아, 내가 나자렛에서 영위했던 숨은 생활을 사람들은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지만, 그것은 실상 나의 수난을 제외하고, 그들 을 위해 내가 베풀 수 있었던 가장 큰 선이었다. 사람이 일상생활 중에 하는 모든 행위들, 이를테면 먹고 자고 마시고 일하고 불을 켜고 잠을 자는 등 누구든지 행하는 모든 사 소한 행위로 나 자신을 낮춤으로써 그들의 손에 무한한 가치를 지닌 신성한 주화 한 닢을 쥐어 준 것이다. 나의 수난이 사람들을 구속( 救 贖 )했다면, 나의 숨은 생활은 그 들의 모든 행위에, 극히 사소한 행위들에도, 신적인 공로와 무한 한 가치를 부여했던 것이다. 이제 알겠느냐? 네가 일하는 동안, 즉 내가 하고 싶어 하기 때 문에 네가 일하는 동안, 나의 손가락들이 너의 손가락들 안에 있 고, 내가 네 안에서 일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 내가 내 창조적 인 손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다는 것을? 얼 마나 많은 사람들을 도로 불러가며,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성 화하고 바로잡아 주며 책벌하는 등의 일을 하겠느냐? 그러니 너도 나와 함께 있으면서 창조하고 부르며 바로잡아 주 는 등의 일을 하게 된다. 네가 혼자서 일하지 않는 것과 같이 나 역시 혼자서 일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너에게 이보다 더 큰 영예 를 안겨 줄 수 있겠느냐? 30: 2열왕 5,14-15 나아만이 요르단 강물에 몸을 씻다 31: 천상의 책 제7권 74,1-7 (1907년 1월 5일) 진정한 성덕을 이루는 것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그 모든 것을 하느님 사랑의 특별 선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루이사) 툭하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무엇이나 죄가 될까 봐 두려워하는 어떤 영혼에 대한 책을 읽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 다. 그런데 나는? 나는 그 점에서 너무 느슨하게 긴장이 풀려 있 지 않은가? 나 역시 모든 것이 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래야 주님께 죄를 짓지 않으려고 더 세심히 주의를 기울일 것이 아닌가. 그 무렵 복되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그건 터무니없는 소리다. 그럼에도 그 영혼은 성덕의 길

82 이란 것에 아주 열중해 있지만 말이다. 참되고 견실한 성덕을 이 루는 것은 자기에게 일어날 가능성이 있거나 행하고 있는 일이 무 엇이든지 극히 사소한 것까지도 하느님 사랑의 특별 선물로 받아 들이는 것이다. 이는 자기가 즐기는 음식이나 진절머리가 나도록 싫어하는 음식을 볼 때도 적용된다. 즐기는 음식일 경우에는 그 음식 안에 유쾌한 맛이 생기게 하 는 이는 예수라고 생각하고 그분이 물질적인 것을 통해서도 기쁨 을 줄 정도로 자기를 사랑하신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사랑의 특별 선물로 보일 것이다. 또 진절머리가 나도록 싫은 음식일 경우에는 그분께서 자기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나머지 이 진절머리 나는 맛이 생기게 하여 자 기로 하여금 극기를 통하여 그분 자신과 닮게 하면서 그분에게 바칠 수 있는 주화 한 닢을 몸소 챙겨 주신다고 생각하면, 그것 역시 사랑의 특별 선물로 보일 것이다. 이와 같이 하면, 망신을 당하건 칭찬을 받건, 건강하건 병약하 건, 가난하건 부유하건 다 하느님 사랑의 특별 선물로 보일 것이 고, 숨 쉬고 한숨짓고 말하는 것까지 일체 모든 것이 하느님 사랑 의 특별 선물로 보일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하느님 사랑의 특별 선물로 받아들이듯이, 그 모든 것을 자기 사랑의 특별 선물로 하느님께 도로 바쳐 드리 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 사랑의 물결을 받아들이면서 자기 사랑의 물결을 하느님께 드리게 되니, 오, 이 사랑의 물결이 얼마 나 영혼을 거룩하게 하는 목욕물이 되겠느냐! 이 물이 그를 씻으며 성화하여 그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성덕에 진보하게 한다. 이는 그러니 지상적인 삶이라기보 다는 천상적인 삶이요, 바로 내가 너에게 바라는 것이다. 그러므 로 죄 또는 죄에 대한 일말의 생각도 네 안에 있어선 안 되는 것 이다. 32의 ⓵: 상동 제11권 67,19-24 (1914년 3월 8일)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영혼이 겪는 모든 것은 그의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계신 예수님의 것이다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딸아, 참으로 나의 뜻을 행하는 사 람은, 영혼이건 육신이건 자기 안에 일어나는 모든 것 자기가 느끼며 겪는 모든 것 속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괴 로워하신다. 예수님의 마음이 무겁다. 이는 사람들이 내게 행하는 모든 것이 내 뜻을 행하는 영혼 안 에 거처하는 나에게까지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사람들 의 차디찬 마음 때문에 괴로워하면 내 뜻이 이를 느끼고, 내 뜻은 그 영혼의 생명이므로 그도 그것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사람들의 냉정함을 자기 자신의 것인 양 괴로워하는 대

83 신, 그는 내 곁에 머물러 나를 위로하면서 그들이 내게 내보이는 그 냉정함을 보속할 일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정신이 산만해지거나 무거운 중압감을 느끼거 나 또 다른 무엇을 느끼든지 그는 언제나 내 곁에 머물면서 나를 위로하고 내게 보상을 바칠 일이다. 그런 것들이 자기 것이 아니 고 나의 것인 것처럼 말이다. 내 뜻으로 사는 영혼은 따라서 사람들이 나를 거슬러 저지르는 죄들에 따라 여러 가지 고통을 많이 겪기 마련이고, 그것도 갑자 기 거의 뜻밖의 순간에 겪게 된다. 이에 반해서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그 런즉 첫째 경우에는 나를 위로하며 보속할 일이고, 그다음 경우, 곧 기쁨과 만족 속에서는 그 자신도 이를 즐길 일이다. 32의 ⓶: 상동 제11권 96,10-13 (1915년 7월 9일) 예수님의 인성으로 쓰이는 영혼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이제 내 인성은 더 이상 고통을 받 을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내 뜻을 행하는 사람 안에서 산다. 이 사람이 내 인성으로 쓰이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그는 한편으로 사랑과 평화와 선에 항구함과 굳셈 등을 느끼고, 한편으로 냉담과 성가심과 지겨움 등을 느낀다. 만일 그가 온전히 내 뜻 안에 머물러 있으면서 이 모든 것을 자기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겪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용기를 잃지 않고 나를 측은히 여길 것이며, 내 고통에 참여하는 영예를 누릴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다만 나를 덮어 가리는 막에 불과하기 때문이 다. 그러니 가시와 냉기의 성가심을 느낄 뿐이지만, 그런 것이 깊 이 와 박히는 곳은 내 안이요, 내 심장인 것이다. 32의 ⓷: 상동 제11권 4,10-13 (1912년 2월 18일) 예수님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영혼에게는 살고 있는 것이 그가 아니라 예수님이다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사랑하는 딸아, 너는 내 생명으로 살고 있으니 네 삶은 끝났다. 너는 더 이상 살아 있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네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기 때문에, 마음을 기쁘게 하건 언짢게 하건 저 사람들이 너에게 행하는 모든 것을 나는 내게 직접 행하는 것처럼 고스란히 받게 된다. 이는 그들이 너에게 어떻게 하건, 기쁘게 하건 언짢게 하건, 네 가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아서도 알 수 있는 일 이다.

84 그것은 그런 기쁨이나 언짢음을 느끼는 다른 어떤 이가 틀림없 이 있음을 뜻한다. 바로 네 안에서 살면서 너를 너무너무 사랑하 는 나 자신이 아니라면 달리 누구이겠느냐? 33: 상동 제12권 105,4-5 (1919년 5월 24일) 예수님께서 내재하시는 영혼이 느끼는 것들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내 사랑의 딸아, 너는 내가 너를 통 해 세상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려고 들질 않는구나. 내가 네 안에서 살기 때문에 세상이 내게 보내는 것들을, 곧 그 완고함과 어둠과 죄를, 그리고 정의의 격노 등을 네가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거다. 그러니 너는 나의 부재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고, 사람들이 내 게 보내는 죄악들로부터 어떻게 나를 지키며 내 정의의 격노를 부 술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너의 보호를 받으며 네 안에 있을 수 있고, 사람들도 그만큼 타격을 덜 받게 될 것이다. 34: 상동 제8권 64,3-4 (1909년 1월 30일) 왜? 의 정체와 역사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딸아, 사람들은 사건이 일어날 때마 다, 왜? 왜? 왜?. 왜 이런 병이?. 왜 이런 내적 상태 가?. 왜 이런 징벌이?. 하는 말을 거의 언제나 되풀이하 고, 또 다른 왜를 수없이 반복하곤 한다. 이 왜에 대한 설명은 땅 이 아니라 하늘에 적혀 있어서, 하늘에서는 모두가 그것을 읽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왜의 정체가 무엇인지 너는 알겠느냐? 그것은 자애 심에 끊임없이 양식을 대는 이기주의이다. 너는 이 왜가 어디서 만 들어졌는지 알겠느냐? 지옥이다. 누가 맨 먼저 그 말을 썼겠느냐? 악마다. 그 첫 왜가 발설된 결과는 에덴 동산의 순결의 상실이요, 걷잡 을 수 없는 격정과의 싸움이요, 수많은 영혼들의 멸망과 치명적인 죄악들이었다. 그러니 왜의 역사는 아주 길다. 이 세상에 왜라는 표를 달고 있지 않은 악은 없다고 말하는 것으로 넉넉할 것이다. 이 왜는 영혼 안에서 하느님의 지혜를 파괴한다. 이것이 어디에 파묻히게 될지 너는 알겠느냐? 지옥이다. 그리하여 멸망한 모든 영혼에게 평화를 주지 않고 영원히 쉬지 못하게 할 것이다. 안식 을 주지 않고 영혼들과 전쟁을 일으키는 것에 이 왜의 간교함이 있는 것이다. 35: 상동 제7권 36,3-4 (1906년 8월 8일)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려야 하는 까닭

85 (루이사) 복되신 예수님께서 잠깐 오셨던 오늘 아침, 그분의 부 재 (고통으)로 내가 몹시 지쳐 있어선지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영혼이 자기의 중심점에 도달하려면 멈추지 않고 계속 달릴 필요가 있다. 달리다 보면 길이 더 평탄해지고, 계속 달림에 따라 자신의 중심을 찾기 위하여 도달해야 하는 지점이 나타난다. 그리고 길을 따라가노라면 그의 여정에 필요한 은총이 주어지고, 이 은총의 도움으로 고달픔이나 삶의 무게를 느끼지 않게 된다. 하지만 걸어가다가 멈추다가 하는 사람에게는 그 반대의 현상 이 일어난다. 그저 멈추기만 해도 이미 걸어온 걸음 전체의 피로가 엄습하므로 여정을 계속할 힘이 없어진다. 걷지 않고 있으니 상당 히 높은 곳에 있는 지점을 볼 수가 없고 그것에 마음이 끌리지도 않는다. 또 그가 달리는 것이 보이지 않으니, 은총도 쓸데없이 스 스로를 내어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의 삶은 견딜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빈둥거리는 게으름에서 따분함과 골칫거리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36: 상동 제7권 5,7-8 (1906년 2월 28일) 저 진리들을 음식처럼 잘 씹어 삼켜라 (예수님에게서 나온 빛이 루이사에게) 은총은 영혼을 앞질러 와 서 자극하지만, 영혼 편에서 저 진리들을 음식처럼 잘 씹어 가슴 깊이 삼킨 뒤에야 은총 자신을 내어 주며 그 영혼 안으로 들어가 서 그를 소유한다. 이것이, 내가 위에서 설명한 효과를 모든 이가 다 받지는 못하 는 까닭이다. 못 받는 이들은 저 진리들로 하여금 번개같이 빠르 게 지나가게 할 뿐 그들이 머물 자리를 마음속에 마련해 두지 않 기 때문이다. 37: 루카 1,29; 2,19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38: 천상의 책 제12권 45,4-5 (1918년 5월 7일) 인간적인 것을 부수어 가루로 만드는 제분기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나의 뜻이 모든 것을 보상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 뜻 안에서는 인간적인 것이 잘게 부수어져 가루가 되 고, 그러면 내가 꽃과 열매를, 곧 내 뜻의 작품을 뽑아내어 나와 함께 공동의 삶을 살도록 배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것은 밀기울처럼 분리되어 바깥에 버려진다. 그러니 내 뜻이라는 제분기가 너를 철저히 빻게 하여 인간적인 것은 아무것도 네 안에 남아 있지 않게 하여라.

86 39: 상동 제11권 61,2-5 (1913년 9월 20일) 영혼 주위와 안에 일어나는 모든 것의 의미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딸아, 영혼의 주위와 안에서 일어나 는 모든 것, 곧 비통, 기쁨, 반대, 죽음, 상실, 만족 및 다른 모든 것은 나의 뜻이 그 영혼 안에 성취되고 수행되게 하기 위한 내 계 속적인 작업의 소산이다. 고통마저 그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기를 원하는 것처럼 보이 는 것은, 하느님의 의지가 고통보다 더 위대하다는 것과 모든 것 을 능가하는 이 의지가 그 영혼 안에서 일체를 대신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또한, 만물이 이 영혼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 자신도, 영혼이 모든 것을 활용하여 나로 하여금 내 뜻의 작업을 성취하게 하는 단계에 도달할 무렵, 그러니까 내 뜻이 다 이루어질 무렵, 그에게 천국에 들어갈 준비를 시킨다. 40: 상동 제8권 35,2-6 (1908년 5월 3일) 지상적이라기보다 천상적인 삶을 사는 영혼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딸아, 나의 뜻을 준행하는 사람에게 는, 피가 몸속에서 순환하는 것과 같이, 내 뜻이 그의 전 존재 속 에서 순환한다. 그러므로 그는 나와 줄곧 접촉하고, 나의 능력과 지혜와 사랑 및 나의 아름다움과 줄곧 접촉하면서 내 소유인 이 모든 것에 참여한다. 그는 이제 그 자신의 의지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의 의지 가 나의 의지 안에 살아 있다. 그러니 나의 뜻이 그의 뜻 안에서 순환하듯이 그의 뜻도 나의 전 존재 안에서 순환하고, 내가 줄곧 그와 접촉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가 줄곧 나를 어루만지고 있음을 느끼기에 너는 이 를 이해할 수 없겠지만 내가 그에 대해 얼마나 큰 사랑을 느끼 는지, 얼마나 많은 은혜를 베풀며 내게 청하는 모든 것을 다 들어 주고 싶은지 모른다! 만일 그것을 거절한다면 내가 나 자신에게 거절하는 셈이 될 터이니 말이다. 게다가 어떤 면에서 살펴보건, 그는 내 뜻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오로지 내가 원하는 것만을 청하기 마련이다. 이것이 그가 바라는 것이요, 이것만이 그를 행복하게, 또 다른 이들도 행복하 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삶이 지상보다는 천상에 있는 까 닭이다. 이와 같이 그로 하여금 천상 복락을 미리 누리게 하는 것 이 것이 바로 내 뜻이 맺는 열매이기도 하다.

87 41의 ⓵: 상동 제7권 81,1-5 (1907년 3월 2일) 산 제물인 영혼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자진하여 받는 고통보다 더 가치 있는 고통은 없다 (루이사) 여느 때와 같이 머물러 있던 중 우리 고장에 독감이 두루 만연하고 있고 다른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으므로, 많은 희생자들이 생기지 않도록 저로 하여금 고통을 받게 해 주십시오. 하고 주님께 간청하였다. 당신께서 (당신과 함께) 저에게서 고통까지도 가져가셨기 때문 에 요즘에는 고통이 조금밖에 없거나 하나도 없는 상태로 있었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분께서 내 내면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나에 대해서 온 백성을 구하기 위해서 한 사람이 죽을 필요가 있다(요한 11,50 참조 - 역주). 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그것은 사실이었지만 그 당시 (그렇게 말한 자는 자기가 뱉은 말 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모든 시대에 걸쳐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면해 주 기 위해서 고통받는 사람이 있을 필요가 있다. 이 사람은 스스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 자진하여 그 자신을 바치기 마련인데, 그것도 다만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고통 받기 위 해서 바치고,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이들이 구함을 받게 한다. 그런즉, 다른 모든 사람의 고통을 합친다고 해도 이런 사람의 고통과 대등할 수 없다. 그 뛰어난 가치에 필적할 만한 것이 없다 는 말이다. 너는 네 고통의 공백이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하지만 아직 완전한 공백은 아니다. 내가 만일 네 고통을 완전히 정지시킨다면 사람들은 어떤 처지로 끝장이 나겠느냐? 아아, 슬프 다! 슬프다! 사태가 이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41의 ⓶: 상동 제11권 91,10-12 (1915년 5월 2일) 예수님의 인성과 가장 근접해 있는 영혼들 그들은 모든 사람들 안에서 모두의 선익을 위해서 산다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그러니 내 뜻 안에서 사는 영혼들은 내 인성과 가장 근접해 있다. 내 인성을 자기 것으로 삼고 왜냐 하면 내가 내 인성을 그들에게 주니까 이를 옷 입듯 입은 채 또 다른 나처럼 하느님 앞에 나가 하느님의 정의를 무력하게 하 면서 타락한 피조물의 죄를 용서하는 문서를 얻어 낼 수 있는 것 이다. 그런 이들은 내 뜻 안에서 살기에 내 안에서 산다. 그런데 나 는 모든 사람들 안에 있다. 그러므로 그들 역시 모든 사람들 안 에서 모두의 선익을 위해서 산다.

88 그들은 떠오른 태양처럼 공중에서 산다. 그들의 기도, 행위, 보 속 따위 그들이 행하는 모든 것은 만인의 선익을 위하여 그들에게 서 내려오는 빛살과도 같다. 42: 상동 제6권 27,8 (1904년 3월 16일) 십자가는 가장 값진 선물이다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십자가는 가장 값지고 그 무엇보다 도 고상한 선물인데다 존재하는 사람들 중 유일하고 더할 나위 없이 위대한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에, 다른 어느 선물보다 도 더 즐거운 축제이고 더 큰 기쁨을 주는 것이다. 있었을 때에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내 뜻을 행하는 영혼과 내가 얼마나 하나로 융합되어 있는지 보아라. 내 뜻이 이 영혼의 안팎에 있으므로 나 자신이 바 로 그의 생명이 된다. 이 뜻은 그가 숨 쉬는 공기와 같아서 그의 안에 있는 모든 것 에 생명을 주는 것이다. 그러니 모든 것을 보고 깨닫게 하는 빛과 같고, 모든 것을 따 뜻하게 하고 비옥하게 하며 자라게 하는 열과 같다. 그것은 또한 고동치는 심장이요, 일하는 손이며, 걸어다니는 발이다. 인간의 뜻이 나의 뜻과 하나가 되면 나의 생명이 그 영혼 안에 형성되는 것이다. 43의 ⓵: 상동 제11권 64,10-12 (1913년 10월 2일) 예수님의 뜻과 하나가 된 영혼 안에 형성되는 예수님의 생명 (루이사) 평소의 상태대로 머물러 있노라니, 복되신 예수님께서 나의 내부에 계신 당신의 모습을 보도록 해 주셨다. 그런데 그분께서 얼마나 나와 하나로 결합되어 계신지, 나의 눈 속에서 그분의 눈을, 나의 입 속에서 그분의 입을, 마찬가지로 그 분의 온몸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이와 같은 그분의 모습을 보고 43의 ⓶: 상동 제7권 69,1-6 (1906년 11월 28일) 예수님과 긴밀한 일치 속에 있었던 루이사는 자기의 숨 안에서 숨 쉬는 예수님의 숨을 느낄 수 있었다 신적 행위를 이루는 것 (루이사) 앞서 말한 상태로 계속 머물러 있다가 복되신 예수님 을 뵈었는데 그 즉시 그분께서 완전히 내 안에 포함된 모습으로 바뀌신 것 같았다. 예컨대 내가 숨을 쉬면 내 숨 안에 그분의 숨 이 느껴지고, 한쪽 팔을 움직이면 내 팔 안에서 움직이는 그분의

89 팔이 느껴지는 식이었다. 이는 내가 무엇을 할 때나 마찬가지였 다. 그렇게 하시면서 그분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딸아, 내가 얼마나 긴밀한 일치를 이루며 너와 함께 있는지 이제 알겠느냐? 이와 같이 너도 나와 긴밀히 일치하기 바 란다. 하지만 오직 기도할 때나 고통을 받을 때만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오히려 언제나, 언제나 그렇게 하여라. 네가 움직이고 숨 쉬고 일하고 먹고 자고 하는 모든 것 이 모든 것을 나의 인성 안에서 하는 것처럼 하고 다 내게서 오는 것 처럼 행함으로써 너는 다만 조가비같이 되어야 한다. 너의 행위라 는 이 조가비를 쪼개면 신적인 행위의 결실인 속살이 나타나 보이 도록 말이다. 너는 온 인류의 선익을 위하여 내 인성이 현존하듯이 그렇게 하 여라. 마치 내가 사람들 가운데 살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왜냐하 면 네가 나에게서 생명을 받겠다는 지향으로 극히 하찮고 사소한 행위까지 모든 것을 행하면, 그 모든 행위가 내 인성의 공로를 입 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이었지만 또 하느님이었기에 나 자신 안에 모든 것을 담고 있었으니 말이다. 즉, 내 숨 안에 모든 사람의 숨을 담고 있 었고, 나의 동작 안에 모든 사람의 동작을, 나의 생각 안에 모든 사람의 생각을 담고 있었다. 따라서 나는 그들을 성화하며 신화 ( 神 化 )하였고 그들의 죄를 보상하였다. 그러니 네가 내게서 너의 행위 전부를 받으면서 모든 일을 한 다면, 그것으로 인해 너 역시 네 안에 모든 사람을 수용하게 되 고, 너의 행위가 모든 이의 선익을 위하여 두루 퍼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아무것도 받지 못하더라도 너 에게서 모든 것을 받게 될 것이다. 43의 ⓷: 상동 제11권 80,6-14 (1914년 10월 29일) 하느님 뜻과 일치된 행위는 그 하나의 행위로도 천 개의 세상을 창조할 수 있을 만큼 완전무결하다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딸아, 마음을 가라앉혀라. 내가 여기 있다. 너는 내가 내 마음에서 너를 내쫓았다는 말로 나를 모욕하 는구나. 오히려 나는 내 마음 깊숙이 너를 간직하고 있다. 얼마나 꽉 붙안고 있는지 나의 온 존재가 네 안으로 흘러들고 네 온 존재도 내 안으로 흘러들 정도다. 그러니 네 안으로 흘러드는 내 존재의 그 무엇도 놓치지 않도 록 주의하면서 너의 행위들 하나하나가 나의 뜻과 일치되게 하여 라. 나의 뜻은 완전한 행위들을 내포하니 말이다. 사실 내 뜻의 행위는 전부 흠이 없고 완전한 것이기에 그 하나 의 행위로도 천 개의 세상을 창조하기에 족하다. 게다가 다른 어

90 떤 행위도 수반시킬 필요가 없다. 하나의 행위가 족히 모든 것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네가 나의 뜻과 일치하면 극히 단순한 행위를 할 때에 도 나에게 완전한 행위를, 즉 사랑과 찬미와 감사와 보속의 행위 를 주게 된다. 요컨대 나를 위하여 이 행위 안에 모든 것을 포함 시킨다. 더군다나 나 자신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그리하여 네가 나 자신을 나에게 주는 셈이 된다. 아, 그렇다! 나의 뜻과 일치된 그런 행위들만이 내 앞에 설 수 있다. 왜냐하면 흠 없고 완전한 행위들만이 불완전한 행위를 할 줄 모르는 완전한 존재에게 영예와 만족을 줄 수 있는데, 피조물 이 그처럼 완전하고 흠 없는 행위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의 뜻 안에서일 뿐이기 때문이다. 나의 뜻을 벗어나서 행해진 것은 그것이 얼마나 선한 행위이건 언제나 불완전하기 마련이다. 설사 그럭저럭 처리해 간다고 하더 라도 하나의 일을 완성하려면 뒤를 잇는 행위들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피조물이 내 뜻 밖에서 행하는 것이라면 무엇이 든지 하찮은 것으로 본다. 그런즉 나의 뜻이 너의 생명, 너의 규범, 너의 모든 것이 되게 하여라. 이와 같이 나의 뜻을 네 안에 지니고 있으면, 너는 내 안 에 있고 나는 네 안에 있게 된다. 앞으로는 십분 조심하여 내가 너를 내 마음에서 내쫓았다는 말 을 다시는 입 밖에 내지 마라. 44: 상동 제12권 103,8-11 (1919년 5월 16일) 하느님 뜻 안에서 수행되는 행위의 효과와 태양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그런데 태양은 하나이지만 높이 떠 있기 때문에, 따라서 그 아래에 살고 있는 모든 창조물의 생명이 되기 때문에 그런 작용을 할 수 있다면, 하물며 내 뜻 안에서 수 행되는 행위들이야 얼마나 더욱더 그러하겠느냐? 영혼이 내 안으 로 올라와서 내 뜻의 정상에서 활동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런 영혼들은 태양 이상으로 모든 피조물을 지키는 파수꾼으 로 자리하면서 그들에게 생명을 준다. 행위는 하나이지만 태양처 럼 모든 피조물 위에 빛살을 퍼뜨려 어떤 것은 아름답게 하고 어 떤 것은 은총으로 비옥하게 한다. 또한 얼어 있는 마음들은 녹이고, 굳은 마음들은 부드럽게 하 고, 어떤 이들에게서는 어둠을 몰아내고, 다른 이들은 깨끗이 정 화하며 불태운다. 이처럼 하나인 행위가 각자에게 요구되는 다양 한 효과를 내는데, 각자의 마음 바탕이 준비된 정도에 따라 효과 의 크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같은 현상이 지평선 위에서 빛나는 태양에게도 일어난다. 태양 은 땅이 메마른 곳이라면 식물을 제대로 자라게 할 수 없고, 꽃씨

91 가 없는 곳이라면 태양 자신의 빛과 열을 다 주어도 싹을 틔울 수 없고, 사람이 스스로 일하기 시작한 곳이 아니라면 무엇 하나 거 두어들이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태양은 땅의 비옥성과 인간의 자세 여하에 따라 창조된 만물 안에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45의 ⓵: 상동 제11권 28,5-15 (1912년 8월 14일) 나의 손가락이 너의 손가락 안에서 일하고 있다. (루이사) 그런데 어느 날 일을 하다 보니 혼자 이런 생각이 들 었다. 내가 일하는 동안 내 안의 예수님께서 일하시고, 또한 그 분께서 이 일을 하시고 싶어 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것일 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나 자신이 나의 손가락이 너의 손가락 안에서 일하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내 딸아, 지상 생활을 하는 동안, 나 자신을 낮추어 목재 작업이나 망치로 못을 박으면 서 내 양부 요셉을 도왔던 내가 아니냐? 그 일을 하면서 바로 그 손과 손가락으로 영혼들을 창조하는 한편 다른 영혼들은 저승 삶에로 도로 불러가기도 했던 것이다. 나는 인간의 모든 행동을 신성하게 하였다. 모든 행동을 성화 하면서 각각의 행동에 신적인 공로를 부여하였다. 내 손가락의 동 작으로 네 손가락의 모든 동작들과 다른 사람들의 모든 동작들을 차례차례 불렀다. 그들이 나를 위해서 행동하거나 내가 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행동하는 것을 보면, 나는 그들 안에서 나의 나자렛 생활을 계속 하곤 하였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 내 숨은 생활의 희생과 수모에 대한 위로를 받는 듯 느끼면서 바로 내 생활의 공로를 그들에게 주었던 것이다. 딸아, 내가 나자렛에서 영위했던 숨은 생활을 사람들은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지만, 그것은 실상 나의 수난을 제외하고, 그들 을 위해 내가 베풀 수 있었던 가장 큰 선이었다. 사람이 일상 생활 중에 하는 모든 행위들, 이를테면 먹고 자고 마시고 일하고 불을 켜고 잠을 자는 등 누구든지 행하는 모든 사 소한 행위로 나 자신을 낮춤으로써 그들의 손에 무한한 가치를 지닌 신성한 주화 한 닢을 쥐어 준 것이다. 나의 수난이 사람들을 구속( 救 贖 )했다면, 나의 숨은 생활은 그 들의 모든 행위에, 극히 사소한 행위들에도, 신적인 공로와 무한 한 가치를 부여했던 것이다. 이제 알겠느냐? 네가 일하는 동안, 즉 내가 하고 싶어 하기 때 문에 네가 일하는 동안, 나의 손가락들이 너의 손가락들 안에 있 고, 내가 네 안에서 일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 내가 내 창조적 인 손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다는 것을? 얼

92 마나 많은 사람들을 도로 불러가며,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성 화하고 바로잡아 주며 책벌하는 등의 일을 하겠느냐? 그러니 너도 나와 함께 있으면서 창조하고 부르며 바로잡아 주 는 등의 일을 하게 된다. 네가 혼자서 일하지 않는 것과 같이 나 역시 혼자서 일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너에게 이보다 더 큰 영예 를 안겨 줄 수 있겠느냐? 그러나 내가 이해한 것, 곧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서 하고 싶어 하시는 일들을 함으로써 우리가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선 익을 베풀 수 있다는 것 이를 누가 제대로 표현할 수 있겠는 가? 내 정신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으니 이쯤에서 그치겠다. 45의 ⓶: 상동 제12권 30,2-9 (1917년 12월 28일) 사람의 사소한 행위도 예수님의 행위와 결합되면 위대한 것이 된다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딸아, 너는 그 이유를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설명해 주마. 나의 인 성은 휴식을 취하지 않았다. 잠자는 동안에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그것은 내가 만인과 만물에게 생명을 주면서 모든 것을 내 안 에서 다시 해야 했기에 한 순간도 중단 없이 일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생명을 주어야 하는 이는 마땅히 계속적인 활동과 부단 한 행위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피조물의 생명들을 내게서 나가게 하고 또 받아들이는 행위를 계속하였다. 만일 내가 쉬기를 원했다면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내게서 나갈 수 없었겠느냐? 나의 계속적인 행위가 없었다면 얼마나 많은 생명 이 진보하지 못한 채 시들어 버렸겠느냐? 유일하게 생명을 줄 수 있는 내 생명의 행위가 없었다면 얼마나 많은 생명이 내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겠느냐? 한데 딸아, 너는 나와 함께 내 뜻 안에 있으니 내가 너의 계속 적인 행위를 원하고 있다. 그러므로 너의 말똥말똥한 정신이 바로 행위이고, 웅얼웅얼 기도하는 소리도 행위이고, 손의 움직임, 심장 박동, 시선의 움직임도 행위들이다. 이는 사소한 것들이지만 상관 없다. 움직임과 그 씨앗만 있어도 나는 그것을 내 행위들과 결합 시켜 위대한 행위들이 되게 하고, 이들에게 생명을 낳는 힘을 주 기 때문이다. 나의 행위들도 외관상 전부가 위대한 행위들은 아니었다. 특히 유아기에는 칭칭거리며 엄마 젖을 빨곤 했고, 뽀뽀를 하거나 엄마 를 만지작만지작하거나 내 조그만 손가락을 엄마의 손가락과 얽 히게 하면서 노는 것이 고작이었다. 좀 더 자란 뒤에는 꽃을 꺾거 나 물을 길어 오는 따위 동작을 했을 뿐이다. 전부가 그렇게 작은 행위들이었지만, 내 뜻 안에, 내 신성 안에

93 결합되는 것으로 넉넉했으니, 셀 수 없이 많은 생명을 창조할 수 있을 정도로 위대한 행위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칭칭거릴 때면 이 보채는 소리로부터 피조물의 생명들이 나갔고, 젖을 빨거나 뽀뽀를 하거나 엄마를 만지작거리 고 있어도 생명들이 나가고 있었으며, 엄마의 손과 얽혀 있는 내 손가락들 사이로 영혼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꽃을 꺾거 나 물을 길어 올 때에는 창조되지 않은 내 심장의 고동으로부터 영혼들이 나오고 있었고 또 그 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와 같 이 내 활동이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네가 계속 깨어 있는 이유이다. 네가 내 뜻 안에서 행 하는 동작과 행위들이 보이면 나는 그것들을 내 옆에 둘 때도 있 고, 내 손과 내 음성과 내 정신 안에, 또는 내 마음 안에 흘러들 게 할 때도 있다. 이를 만인을 위한 행위들로 만드는 것이니, 즉 내 뜻 안에서 그 각 행위에 생명을 주고 내 행위들의 능력도 부여 하여 모든 이의 구원과 유익을 위하여 달리게 하는 것이다. 45의 ⓷: 상동 제12권 28,4-15 (1917년 12월 6일) 지극히 사소한 행위 속에서도 모든 피조물을 싸안으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딸아, 나의 뜻 안에 있는 영혼을 보 고 느끼는 것이 내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모르겠구나! 이 영혼 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이 세상에 있었을 때 했던 행위와 기도와 그 방식과 같은 높이에 도달해 있다. 나와 거의 같은 수준 에 있는 것이다. 사실 나는 지극히 사소한 행위 속에서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피조물을 싸안았다. 모든 피조물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완전 한 행위들을 봉헌하기 위함이었다. 피조물의 단 한 번의 숨도 내 안에 포함되지 않은 것이 없었고 내게서 빠져나간 것도 없었다. 만일 그러했다면, 아버지께서 피조 물과 그들의 모든 행위들을 보시면서 예외들을 찾아내셨을 것이 다. 나에 의해 행해지지 않아서 나의 바깥에 나가 있는 행위들을 말이다. 그러면 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을지 모른다. 너는 모든 사 람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하지는 않았다. 그러니 너의 업적은 완 전하지 못하다. 네가 너 자신 안에 모두를 다 싸안지는 않았으니 나도 그들 전부를 다 인정할 수는 없다. 오직 네가 행한 것만을 인정하련다. 그러므로 나는 내 뜻과 내 사랑과 내 능력의 무한성 안에서 모 든 이를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하였다. 그러니 얼마나 훌륭한 것이건 내 뜻을 벗어난 행위들이 어떻게 내 마음에 들 수 있겠느냐? 그것은 항상 천박하고 인간적이며 유

94 한한 행위들이다. 반면에 내 뜻 안에서 행해지는 행위들은 나의 뜻만큼이나 고상 하고 신성하며 끝없고 무한하다. 그러한 행위들은 나의 행위들과 유사하므로 나는 나의 행위들과 같은 가치와 사랑과 능력을 부여 한다. 또한 그것을 모든 사람 안에 불어나게 하고, 모든 세대와 시대 를 통하여 확장시킨다. 사소한 행위라 하더라도 상관없다. 내 행 위들이 반복되고 있으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더욱이 그러한 영혼은 겸손이 아니라 왜냐하면 겸손 속에서 는 항상 자기 자신의 뭔가를 느끼니까 자신의 진정한 허무 속에 위치한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서 전부인 존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는 자기를 온전히 비운 채, 나와 함께, 내 안에서, 나처럼 활동한다. 공로나 사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기쁘게 하는 것에만 온전히 집중하면서 자신의 모든 행위에 대한 절대적 지배권을 내게 넘겨주고, 내가 그 행위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이 그를 사로잡고 있다. 바로 나의 뜻 안 에서 사는 것이니, 이 영예를 달라고 나에게 간청할 따름이다. 그 런 까닭에 나는 그를 무척 사랑한다. 나의 모든 총애와 사랑이 내 뜻 안에서 사는 이 영혼에게 쏠리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들도 사랑하는 것은 이 영혼에 대한 나 의 사랑과 그에게서 나오는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이는 아버 지께서 나에 대한 사랑으로 피조물을 사랑하시는 것과 같다. 46: 수난의 시간들 제10시간 (오전 2시-3시) 한나스의 한 종에게 뺨을 맞으신 예수님 불평을 포함하여 여러 죄들을 보속하시다 47: 천상의 책 제11권 67,16-17 (1914년 3월 8일) 하느님의 뜻 안에 머물러 있는 한 순간의 가치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딸아, 근심하지 마라. 그저 나의 뜻 안에 너 자신을 맡기고 머물러 있는 것에나 마음을 써라. 그러면 내가 너를 위하여 모든 일을 다 하겠다. 나의 뜻 안에 있는 단 한 순간이, 네가 평생토록 할 수 있는 모든 선행보다 더 값진 것이니 말이다. 48의 ⓵: 상동 제11권 119,2-4 (1916년 4월 15일) 영혼 안에서 활동하시는 예수님을 느끼며 뵙다 (루이사) 오늘 아침에는 나의 온 존재가 예수님 안에 있었는데,

95 마치 내 최상선이신 분의 무한성 안에 잠겨 있는 것 같았다. 문득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니 여기에 예수님이 보였고, 그분의 온몸이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즉, 그분의 발과 손과 심장과 입이, 요컨대 모든 것이 목소리인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놀랍게도 그 목소리들이 각 피조물을 위하여 무 수히 불어나고 있었다. 예수님의 발이 피조물의 발과 그 하나하나 의 걸음에 말씀을 하시고, 예수님의 손이 그들의 활동에, 예수님 의 눈이 그들의 눈길에, 예수님의 생각이 그들의 생각 하나하나에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얼마나 아름다운 조화가 흐르는지! 얼 마나 황홀한 광경인지! 얼마나 놀라운 사랑인지! 그러나 슬프게 도! (이 모든 조화가 피조물의 배은망덕과 죄로 말미암아 깨어지 고, 사랑은 모욕으로 갚음을 받고 있었다.) 48의 ⓶: 상동 제11권 68,1-8 (1914년 3월 14일) 영혼 안에 실제로 살아 계신 예수님 다. 그 어조가 또한 너무나 부드럽고 감동적이어서 내 변변찮은 가슴이 뻐개지는 느낌이었다. 딸아, 내 뜻을 행하는 사람을 만족시키지 않기가 내게는 너무 힘든 일이다. 그러니 네가 보다시피 나는 손도 발도 심장도 눈도 입도 없다. 내 것으로 남겨 놓은 것이 하나도 없다. 네가 내 뜻을 소유했고 이 뜻 안에 모든 것을 소유했기에 내게 남은 것이 없다는 말이다. 이런 이유로, 이 땅에 수많은 중죄가 넘쳐흐르고 있는데도 받아 마땅한 징벌이 쏟아지지 않고 있다. 내 가 너를 만족시키지 않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게 손이 없는데 네가 이 손을 주지 않는다면 내가 어 떻게 징벌을 내릴 수 있겠느냐? 꼭 필요하다면 너에게서 훔치거나 너를 설득하여 그걸 내게 주도록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어렵 다, 정말 어렵다, 내가 내 뜻을 행하는 사람을 불만스럽게 하기 가! 그렇게 하면 나 자신도 불만스러워질 테니까.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나는 놀랐다. 뿐만 아니라 내가 실제 로 예수님의 손과 발과 눈을 가지고 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루이사) 오늘은 나 자신 전체가 예수님 안에 녹아들고 있었는 데 어찌나 긴밀한 결합인지 내 안에 예수님 전체가 참으로 생생하 게 살아 계신 것 같았다. 내가 그런 그분을 느끼고 있었을 때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 48의 ⓷: 상동 제8권 48,3-5 (1908년 9월 5일) 나의 온 존재가 그의 내부로 흘러든다. (루이사) 낮 동안 묵상 중에 있을 때에 그분께서 잠시 오셔서

96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네가 제대로 말했다. 나는 변함이 없지만 인간 편에서 내 현존을 다르게 느끼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한결같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나의 온 존재가 그의 내부로 흘러들어 바로 그의 생명을 이룬다면, 나를 사랑하는 그가 어떻게 나를 무서워할 수 있겠느냐? 또 성덕 자체에 참여하는 영혼이라면 어떻게 나의 성덕 을 무서워하겠느냐? 그리고 내 마음을 기쁘게 하며 나와 같이 되 려고 한층 더 아름다워지기 위해 노력하는 영혼이라면 어떻게 나 의 아름다움을 부끄러워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다. 아, 딸아, 죄가 인간 속에 너무도 큰 혼란을 던져 넣어 자기 자 신을 죽이면서까지 나의 현존을 견디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50: 상동 제12권 28,13-14 (1917년 12월 6일) 자기의 행위들에 대한 절대적 지배권을 예수님께 넘겨 드리는 영혼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여기에서 그는 자기를 온전히 비운 채, 나와 함께, 내 안에서, 나처럼 활동한다. 공로나 사욕에는 아 랑곳하지 않고 나를 기쁘게 하는 것에만 온전히 집중하면서 자신 의 모든 행위에 대한 절대적 지배권을 내게 넘겨주고, 내가 그 행 위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이 그를 사로잡고 있다. 바로 나의 뜻 안 에서 사는 것이니, 이 영예를 달라고 나에게 간청할 따름이다. 49: 상동 제11권 73,1-2 (1914년 4월 5일) 빛이신 예수님이 루이사의 귀와 눈과 입 따위 모든 것 속에 흘러드시다 51의 ⓵: 상동 제11권 74,7-10 (1914년 4월 10일) 하느님의 뜻 안에 있는 영혼은 그분의 지상 중심이며 옥좌이다 (루이사) 보통 때와 같은 상태로 있노라니 흠숭하올 예수님께 서 무한한 빛 안에 계신 모습을 보여 주셨다. 나도 이 빛 안에 잠 겨 있어서 빛이 귀와 눈과 입 따위 내 모든 것 속에 흘러드는 것 을 느낄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딸아, 지상의 내 중심은 내 뜻을 행 하는 영혼이다. 보아라, 해는 지상 모든 곳에 빛을 퍼뜨리지만 그 자신의 중심 을 보존하고 있다. 천상에 있는 나는 복된 이들 저마다의 생명이 지만 그래도 나의 중심, 나의 어좌를 가지고 있다.

97 이와 한가지로 나는 지상 어디에나 있는데, 그래도 나의 중심 내가 다스리려고 어좌를 세우는 곳, 나의 은사들, 나의 만족, 나의 승리, 바로 고동치는 내 심장이 있는 곳, 곧 내 온 존재가 있는 곳은, 내 지극히 거룩한 뜻을 자기 자신의 중심으로 삼고 그 안에 있으면서 이를 행하는 영혼이다. 이러한 영혼은 나와 깊이 일치해 있기 때문에 나에게서 떨어져 나갈 수 없고, 내 모든 지혜와 능력도 나를 그에게서 떼어 놓을 추호의 방도도 찾아내지 못한다. 51의 ⓶: 상동 제11권 118,5 (1916년 4월 1일) 지상 삶보다는 천상 삶을 살아야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딸아, 내 심장 박동의 메아리가 되려 면, 얼마나 철저한 이탈이 필요한지 모른다! 지상 삶보다는 천상 삶을 살고, 인간적인 삶보다는 신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52의 ⓵: 상동 제11권 132,2-6 (1916년 10월 13일) 천사들이 예수님의 활동들을 아버지께 가져가다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딸아, 내가 지상 생활을 하는 동안 수천 수만의 천사들이 내 인성을 수행하면서 내가 행하는 모든 것 을 모아들였다. 즉, 나의 발걸음과 활동과 말을, 심지어 나의 탄 식과 고통과 내 핏방울들을 요컨대 모든 것을 다 모아들였던 것이다. 그들은 나를 보호할 책임을 맡고 나를 흠숭하며 내 모든 지시 에 따르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들이었으니, 내가 행하는 모든 것을 아버지께 가져가려고 하늘로 오르락내리락 하곤 하였다. 그런데 이 천사들은 지금도 특별한 임무를 띠고 있어서, 어떤 사람이 내 생애와 내 수난과 내 피와 내 상처와 내 기도를 기억 하고 있으면 그 사람 주위를 에워싸러 온다. 그의 말과 기도, 나 에 대한 동정심, 그의 눈물과 예물을 모아서 나의 것들과 합하여 내 어좌 앞으로 가져옴으로써 나 자신이 지상에서 보낸 생애의 영 광을 새로이 하려는 것이다. 이 천사들은 매우 큰 기쁨에 싸여 그 사람의 기도 소리를 들으 려고 공손하게 기다리며 함께 기도한다. 그러므로 이 시간들 을 기도하는 사람은 마음을 집중하여 경건하게 기도해야 한다. 천사 들이 그를 따라 하려고 그의 입술에 주의를 쏟고 있다는 것을 생 각하면서 말이다. 그러고 나서 그분은 이렇게 덧붙이셨다. 이 시간들 은 사람들 에게서 쓰디쓴 괴로움을 많이도 받고 있는 나에게 달콤한 음료 몇 모금을 주는 것과 같다. 그러나 내가 받는 저 쓰디쓴 물의 엄 청난 양에 비하면 이 단물은 너무나 적다. 그러니까 이 기도를 더

98 널리 전파해야 한다. 더 널리! 52의 ⓶: 상동 제12권 27,14-15 (1917년 11월 27일) 마침내 완성될 지상 천국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아! 딸아, 현 세대는 전멸되어도 싸 다. 내가 이들 중 소수의 사람들을 살아남도록 허락하는 것은 오 로지 내 뜻 안에서의 삶이라는 성덕의 태양들을 기르기 위함이다. 이 태양들은 나의 모범을 따라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피조물이 내게 빚져 있는 모든 것을 갚을 것이다. 그러면 땅이 나 에게 참된 영광을 안겨 주리니,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라고 한 나의 피앗 이 완성되고 실현될 것 이다. 않았다. 그것은 내가 모든 피조물을 대신해서 아버지께 완전한 영 광과 사랑과 보속을 드려야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다만 한 가지 차이점만 있을 뿐이다. 즉, 창조주께 대 한 본분을 그럭저럭 채운 영혼들은 거의 아무도 모든 것을 완전 히 다 채우기에 이르지는 못하지만 그들의 영광을 나의 영광에 결합시키고 그들이 행한 모든 것이 나의 행위들 속에 접( 接 )붙인 듯 남아 있게 되는 반면, 멸망한 영혼들은 바싹 마른 가지들처럼 생명의 수액( 樹 液 )이 없기 때문에 내가 그들 대신 행한 선의 접을 받아들일 수 없고 단지 영원한 불 속에서 타는 것에나 적합하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나의 인성은 피조물과 창조주 사이의 깨어진 조화를 회복하였고, 피와 전대미문의 고통의 대가로 그것에 도장을 찍었 던 것이다. 52의 ⓷: 상동 제12권 99,5-8 (1919년 4월 19일) 아버지께 완전한 영광과 사랑과 보속을 드린 예수님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딸아, 내 인성은 창조주와 피조물 사 이의 하모니를 다시 정돈한 오직 하나의 오르간이었다. 나는 각 영혼을 대신하여 그들이 자기네 창조주께 행하기로 되 어 있었던 모든 것을 행하였고, 멸망한 영혼들의 것도 제외하지 52의 4: 상동 제12권 117,2-7 (1919년 12월 6일) 첫 사람에서부터 마지막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대신하여 바치는 배상과 보속과 사랑 (루이사가 예수님께) 제 사랑이시여, 당신의 뜻 안에서 저는 모든 세대들을 봅니다. 온 인류 가족의 이름으로 당신께 경배하고 입맞춤을 드리며 모든 이를 대신해서 보속합니다. 모두가 구원을

99 얻을 수 있도록 당신의 상처들과 피를 그들에게 줍니다. 그러나 멸망한 영혼들은 당신 성혈로부터 아무런 은혜를 받을 수 없을뿐더러 당신을 사랑할 수도 없으니, 그들이 해야 했으나 하지 않았던 것을 하기 위해서 제가 대신 받겠습니다. 저는 당신의 사랑이 피조물에 의해 기만당한 상태로 있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기에, 첫 사람에서부터 맨 나중에 존재할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를 대신해서 당신께 배상과 보속을 바치며 당 신을 사랑하고자 합니다. 그런 말로 또 다른 말로도 기도하고 있었을 때, 다정하신 예수 님께서 팔을 뻗쳐 내 목 언저리에 놓으시더니 힘주어 온몸을 껴안 으시며 말씀하셨다. 내 딸아, 내 생명의 메아리야, 네가 그렇게 기도하는 동안 나 의 자비는 부드러워지고 나의 정의는 그 날카로움을 잃고 있었다. 지금만이 아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나의 뜻 안에서는 너 의 기도가 늘 현행 중인 것으로 있기 때문이다. 그 기도의 힘으로 나의 부드러워진 자비가 더욱더 풍성하게 흘러내리고 나의 정의는 그 엄격함이 덜해질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고 멸망한 영혼들의 사랑 노래도 들리니, 내 마 음이 너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느끼게 된다. 이 영혼들이 내게 빚 져 있는 사랑을 네 안에서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을 위하여 예비했던 은총들을 네 안에 쏟아 붓게 된다. 52의 5: 상동 제12권 121,9-15 (1920년 1월 9일) 모든 이의 이름으로, 모든 것에 대해, 내게 흠숭과 사랑과 보답하는 마음과 감사의 정을 표해 주려무나.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과연, 딸아, 내 사랑이 개개의 조물 안에서 인간을 향해 억수같이 쏟아져 나갔다. 내가 다른 데서 이 미 말했고 지금 또 확실히 말하지만, 나의 창조되지 않은 사랑은 태양을 창조하면서 태양 안에 사랑의 바다를 넣어 두었다. 내 사랑이 인간의 눈과 걸음과 손과 다른 모든 것을 잠글 빛의 입자 하나하나 안에서 인간을 향해 달렸으니, 그의 눈과 손과 걸 음과 입을 부드럽게 거의 두드리다시피 하면서 나의 영원한 입맞 춤으로 이 사랑을 펼쳐 준 것이다. 빛과 함께 열도 달리면서 좀 더 세게 인간을 두드리고, 나는 인간의 사랑을 애타게 기다리면서 연달아 칠 정도로 너를 사랑한 다. 를, 나의 이 영원한 말을 더욱 뜨겁게 반복해 왔다. 그러니 태양이 그 빛과 열로 식물을 풍성하게 한다면, 내 사랑 은 인간을 먹여 기르기 위해 달리는 것이다. 또 내가 별이 총총 박힌 하늘을 인간의 머리 위에 펼쳤다면, 내 사랑은 밤에도 인간 의 눈을 즐겁게 하기를 바라면서 별이 반짝반짝 빛날 때마다 너 를 사랑한다. 를 반복하는 것이다.

100 이와 같이 모든 조물이 제각기 내 사랑을 인간에게 펼쳐 준다. 그렇지 않다면 천지창조의 목적이 없어지는데, 나는 목적 없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일체 만물이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한데 인간은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인간이 내게 비통으 로 변하고 말았다. 그런즉 딸아, 네가 내 비통을 숙지게 하고자 한다면, 자주 내 뜻 안으로 와서, 모든 이의 이름으로, 모든 것에 대해, 내게 흠숭 과 사랑과 보답하는 마음과 감사의 정을 표해 주려무나. 53: 상동 제11권 119,8-10 (1916년 4월 15일) 예수님과 함께 죄인들을 따라다니며 보상을 바치는 영혼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하지만 너는 알아야 한다. 나와 하 나 되어 내 의지로 살며 나의 무한성 안에 잠겨 있는 영혼 역시 나와 함께 온통 목소리가 된다는 것을. 그러므로 그가 길을 걸으면 그 걸음들이 말을 하면서 죄인들을 따라다니고, 그의 생각들은 사람들의 정신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 가 된다. 다른 모든 것도 그와 같다. 오직 그런 영혼들에게서만 내가 창조 사업의 보답을 받는 셈이다. 또한, 그들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내 사랑에 일치하여 나와의 조화를 유지할 능력이 없으므로 내 뜻 안으로 들어와 이 뜻을 자 기 것으로 삼고 신적인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보면, 내 사랑은 비로소 분출구를 만나게 된다. 내가 다른 모든 피조물보다 그들 을 더욱 사랑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54의 ⓵: 상동 제11권 125,2-16 (1916년 6월 15일) 가장 강력한 기도는 예수님께서 행하고 겪으신 모든 것을 옷 입듯 입고 지존하신 하느님의 어좌 앞으로 가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딸아, 나에게 완전한 보속을 주기 위 해서 너 자신을 내 뜻 안에 쏟아 부어라. (즉, 내 뜻 안으로 흘러 들어오너라). 나의 사랑이 억누를 수 없도록 그러한 보속을 필요 로 하고 있다. 피조물에게서 하고많은 모욕을 받다 보니, 나와 그들 사이에 위치하면서 내게는 완전한 보속을 주고 모든 사람에게는 사랑을 주는 사람이, 그리하여 모든 이를 위한 은총을 내게서 끌어내는 사람이 적어도 하나는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너는 오직 내 뜻 안에서만 그렇게 할 수 있다. 여기서 만 나와 모든 피조물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오! 네가 내 뜻 안으로 들어오기를 얼마나 큰 열망으로 기다리 고 있는지! 그것은 내가 네 안에서 모든 이의 보속과 배상을 찾아 얻기 위함이다.

101 오직 내 뜻 안에서만 너는 항시 현행 중인 만물을 발견할 것이 다. 내가 만물을 움직이는 원동력이요, 행위자이며 또한 관람자이 기 때문이다. 그분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동안 나는 그분의 뜻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러나 그 안에서 내가 본 것을 누가 다 말할 수 있겠 는가? 생명이 하느님에게서 온 피조물의 모든 생각들이 저마다 나 자 신과 맞닿아 있었고, 그분의 뜻 안에서 그 각각의 생각 안에 내 존재가 증식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분 뜻의 거룩함으로 모든 것 을 보속하고, 모든 이를 대신한 감사합니다. 를, 모든 이를 대신 한 사랑을 가지게 되었다. 그다음에는 모든 눈길 안에, 모든 말 안에, 그리고 다른 모든 것들 안에 내가 증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말할 수 있는 사 람은 없으리라. 나로서는 표현할 말이 없다. 천사들마저 말을 더 듬거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쯤에서 그만 멈추련다. 그렇게 예수님의 뜻 안에서 그분과 함께 온 밤을 보냈다. 그 뒤 여왕이신 엄마께서 가까이 계시는 것이 느껴지더니, 딸아, 기 도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내가, 엄마, 함께 기도해요. 저 혼자서는 어떻게 기도 해야 할지 모르니까요. 하자 그분은 이렇게 덧붙여 말씀하셨다. 내 아들의 마음에 가장 힘 있는 기도, 그분을 가장 감동시키 는 기도는 그분께서 행하시고 겪으신 모든 것을 옷 입듯 입는 것 이다. 그분께서 그 모든 것을 피조물에게 선물로 주셨기 때문이다. 그런즉 딸아, 너의 머리를 예수님의 가시들로 덮어씌우고, 너의 눈을 그분의 눈물로 구슬 장식하듯 꾸미고, 너의 혀에 그분께서 맛보신 쓴 것이 가득 스며들게 하고, 너의 영혼에 그분의 피를 입 히고, 네 온몸을 그분의 상처들로 단장하고, 너의 손발을 그분의 못으로 박아라. 그런 다음 또 하나의 그리스도인 양 그분 하느님의 어좌 앞으 로 가거라. 이 광경이 그분의 마음을 움직일 것이다. 온통 당신 자신의 표지를 입고 있는 영혼에게 아무것도 거절하지 못하실 정 도로 말이다. 그렇지만 오, 사람들은 너무나 모르고 있다. 내 아들이 저희에 게 준 선물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이와 같이 행한 것이 지상에 있는 동안의 내 기도였고, 천상에 있는 지금도 내 기도이다. 54의 ⓶: 상동 제11권 122,1-15 (1916년 5월 3일) 예수님의 삶을 살면서 그분과 함께 기도하기 (루이사) 기도 중에 있는데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오셔서 내 곁 에 자리하셨다. 그분께서도 기도하시는 소리가 들리기에 귀를 기

102 울이기 시작하였다. 그런 후 그분은, 딸아, 기도하여라. 그러나 내가 기도하는 것처럼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다시 말하자면, 내 뜻 안에 너 자신 전체를 쏟아 부어라. 그 러면 네가 이 뜻 안에서 하느님과 모든 피조물을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의 모든 것을 너 자신의 것으로 삼아서 마치 한 사람의 것인 양 하느님께 바쳐라. 하느님의 의지가 그 모두의 주인이시니 말이다. 그런 다음 너는 하느님의 발치에 선행들을 두어 그분께 영예를 드리고, 악행들을 두어 아무것도 빠져나갈 수 없는 하느님 뜻의 거룩함과 능력과 무한성으로 그것들을 보속하여라. 이렇게 한 것 이 내 인성의 지상 생활이었다. 내 인성의 거룩함에도 불구하고 내게 이 하느님의 의지가 필요 했던 것은, 아버지께 완전한 보속을 드림으로써 인류를 속량하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이 하느님의 의지 안에서만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세대를, 동시에 그들의 모든 행위와 생각과 말 따위 를 현행 중인 것처럼 찾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 거룩한 뜻 안에서 인간의 모든 생각을 나의 정신 속에 담고 그 중 하나도 나를 피해 달아나지 못하게 한 채, 지존하신 하느님 대전으로 나가서 이 생각들 하나하나에 대하여 보속을 바쳤다. 또한 나는 바로 이 뜻 안에서 피조물 각자의 정신 속으로 내려 가서 그들의 이해력을 돕기 위하여 내가 얻어 낸 선을 주기도 하 였다. 그러니 나의 눈길 안에 모든 사람의 눈을 담고, 나의 음성 안 에 그들의 말을, 나의 동작 안에 그들의 동작을, 나의 손안에 그 들의 일을, 나의 마음 안에 그들의 애정과 갈망을, 나의 발 안에 그들의 발걸음을 담았다. 나의 인성이 이 모든 것을 하느님의 거룩하신 의지 안에서 나의 것으로 삼고, 아버지께는 보속을 드리고 가련한 피조물에게는 구 원을 확보해 주었다. 거룩하신 아버지께서 이 보속을 받아들이시 고 흐뭇해하셨다. 아버지께서는 당신 자신이 바로 거룩하신 의지이시기 때문에 나 를 물리치실 수 없으셨다. 그분께서 그분 자신을 물리치실 수 있 었겠느냐? 물론 그렇게 하실 수 없으셨다! 더군다나 아버지께서는 나의 이 행위들 안에서 완전한 거룩함, 가까이 하기 어려운 황홀한 아름다움, 지고한 사랑, 무한하고 영 원한 행위들 및 무적의 힘을 보셨던 것이다. 이것이 잉태의 첫 순간부터 마지막 숨을 거두기까지 내 인성의 지상 생활이었고, 그 후에도 하늘과 복된 성사 안에서 연장되고 있는 생활이다. 너도 그렇게 하지 못할 까닭이 없지 않겠느냐?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 말이다. 나와 하나 되어, 나의 뜻 안에서, 너의 생각 안에 모든 사람의

103 생각을 담고, 너의 눈 안에 모든 사람의 눈길을 담고, 너의 말과 동작과 애정과 갈망 안에 네 형제자매들의 그 모든 것을 담아, 지존하신 하느님 대전으로 가져가거라. 그 모든 행위들을 보속하 면서 그들에게 빛과 은총과 사랑을 얻어 주기 위함이다. 너는 나의 뜻 안에서 내 안과 모든 사람들 안에 있는 너를 보 게 되리니, 나의 삶을 살면서 나와 함께 기도할 것이다. 그러면 거 룩하신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것이고, 천국의 모든 주민들은, 누가 땅에서 우리를 부르고 있는 것일까? 이 거룩하신 뜻을 우리 모두 와 아울러 자기 안에 싸안고자 하는 이가 대체 누구일까? 하고 말할 것이다. 그러니 땅이 하늘로 하여금 스스로 위에 내려오게 함으로써 얼 마나 많은 선을 얻게 되겠느냐! 과 눈과 그 밖의 모든 것 안에 있으면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을 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예수님과 함께라면 한 사람도 빠뜨리지 않고 모든 이를 싸안을 수 있는 것이었다! 나중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덧붙이셨다. 나의 뜻 안에 있는 사람은 일체를 싸안고 모든 이를 위하여 기도와 보상을 바치면서 모든 사람에 대한 나의 사랑을 자기 안 에 받아들인다. 이와 같이 그는 홀로 그 자신 안에 내가 모든 사 람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랑을 품게 되는 것이다. 내가 그를 사랑하는 만큼 그는 내게 소중하고 그만큼 아름다 운 사람이기 때문이니, 그는 모든 이들을 자기 뒤에 남아 있게 하 는 것이다. 54의 ⓷: 상동 제11권 42,4-9 (1912년 12월 14일) 모든 이 안에서 기도하며 보상을 바치다 (루이사) 예수님께서 나를 묶고 계시는 동안, 나는 내 인자하신 그분 뜻의 끝없는 바다 속에, 따라서 모든 피조물 속에 몸담고 있 음을 알았다. 그리하여 내가 예수님의 정신과 예수님의 눈과 그분의 입과 그 분의 마음 안에 계속 들어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정신 54의 ⓸: 상동 제11권 62,2-13 (1913년 9월 21일) 예수님의 뜻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하는 모든 것은 그분과 같은 특성, 같은 생명, 같은 가치를 얻는다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사랑하는 딸아, 영혼이 나의 뜻 안 에서 나와 함께하는 모든 것, 곧 기도, 행동, 발걸음 등등은 나와 같은 특성, 같은 생명, 같은 가치를 얻는다. 내가 지상 생활 동안 행한 모든 것을 보아라. 그 기도와 고통

104 과 행적이 이를 원하는 사람의 선익을 위해서 지금도 고스란히 수 행되고 있고 앞으로도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나의 행위는 피조물의 행위와 다르다. 나는 내 안에 창조력을 지니고 있어서 내가 말하면 창조가 일어난다. 이는 어느날 내가 말로 해를 창조한 것과 같다. 이 해는 또한 언제나 빛과 열이 가득하다. 마치 나로부터 계속 적인 창조를 받고 있는 것처럼 언제나 줄어들 줄 모르는 빛과 열 을 준다. 그러한 것이 내가 지상에서 행한 일이었다. 내 안에 창조 능력 이 있어서 기도며 발걸음이며 내가 행한 일들과 흘린 피가, 해가 계속 빛을 주고 있는 것과 같이, 여전히 기도와 활동과 걸음을 옮 기는 등의 행위를 계속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의 기도는 계속되고 있다. 영혼들을 구하려고 뒤쫓 아 다니는 나의 걸음도 여전히 늘 계속되고 있고, 여타 모든 것도 계속되고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나의 행위와 성인들의 행위 사이에 어떤 큰 차이가 있겠느냐? 이제 딸아, 들어 보아라. 아름답고도 아름다운 일 아직까지 어떤 피조물도 깨닫지 못한 일이 있다. 이는 영혼이 나와 함께, 내 뜻 안에서 행하는 모든 것은, 나의 것임과 마찬가지로 그의 것 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나의 뜻과 결속하여 나와 함께하는 행위는 나와 똑같은 창조 능력에도 참여하는 까닭이다. 그 말씀에 나는 넋이 빠진 듯 억제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면 서, 오, 예수님, 이 모든 것이 어찌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하 고 외쳤다. 그러자 그분께서는, 이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나를 안다고 할 수 없다. 하셨다. 그리고 모습을 감추셨다. 54의 ⓹: 상동 제11권 112,7-11 (1915년 12월 10일) 그대의 기도를 예수님의 기도 안에 흘러들게 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딸아, 용기를 내어라. 나는 너를 떠 나지 않는다. 네가 늘 나를 보지는 못해도 나는 네 안에 있다. 그 러니 언제나 나와 일치하여라. 기도할 때면 너의 기도를 나의 기도 안에 흘러들게 하여 이를 너의 것으로 삼아라. 이와 같이 하면, 기도와 아울러 내가 행한 모든 것을 너도 하게 되리니, 내가 아버지께 드린 영광을 드리고, 내가 모든 이를 위하여 얻어 낸 선을 얻어 낼 것이다. 일할 때면 너의 일을 나의 일 안에 흘러들게 하여 이를 너의 것 으로 삼아라. 이와 같이 하면, 내 인성이 행한 모든 선을, 만물을 성화 신화시킨 모든 선을 네 손안에 넣게 될 것이다. 고통을 받을 때면 너의 고통을 나의 고통 안에 흘러들게 하여 이를 너의 것으로 삼아라. 이와 같이 하면, 내가 구원 사업 안에

105 서 행한 모든 선을 네 손안에 넣게 될 것이다. 이로 인해 너는 내 삶의 중심을 이룬 세 가지 점을 소유하게 된다. 그리고 네가 그렇게 함에 따라서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은총 의 바다들이 너에게서 흘러나와 만인의 선익을 위해 쏟아 부어지 리니, 나는 너의 삶을 너의 삶으로 여기지 않고 나 자신의 삶으로 여길 것이다. 54의 ⓺: 상동 제12권 76,7-12 (1919년 1월 4일) 천사들과 성인들도 합세하여 영혼들을 청하며 외친다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내 딸이며 피난처인 얘야, 너의 고통 이 오늘 내 뜻 안에서 얼마나 아름다운 해조( 諧 調 )를 이루었는지 모른다! 나의 뜻은 하늘에 있었고 너의 고통은 내 뜻 안에 있었으니, 너 의 고통이 고운 음색으로 하늘에 울려 퍼지면서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느님께 그 흐느낌으로 영혼들을 청하고 있었다. 나의 뜻은 천사들과 성인들 안에 흐르고 있었으니, 너의 고통이 그들에게도 영혼들을 청하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너의 아름다운 소리에 감동되어 너의 고통과 함께 내 어좌 앞에서 영혼들, 영혼 들! 하며 외치고 있었다. 나의 뜻은 모든 피조물 안에서 흐르고 있었고, 너의 고통은 모 든 마음들을 감동시키며 그들 모두에게 여러분의 영혼을 구하십 시오, 영혼을 구하십시오! 하고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나의 뜻은 네 안에 집중되어 있었고, 찬란한 태양처럼 모든 이 를 보살피며 지키는 자리를 점하고 있었다. 그들을 회개시키기 위 함이었다. 보아라, 얼마나 위대한 선이냐! 하지만 누가 내 뜻의 진가를, 그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알려고 애쓰고 있느냐? 55: 상동 제12권 47,2-6 (1918년 5월 23일) 하느님은 영혼이 (당신 뜻 안을 날아다니면서) 접촉하는 마음들을 보시고, 중단하지 말라고 하신다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내 비둘기야, 네가 내 의지 안을 날 아다니는 것, 네가 두루 돌아다니는 우주 공간과 마시는 공기에 대해서 누가 말할 수 있겠느냐? 아무도, 아무도 말할 수 없고, 너 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오직, 오직 나만이 그것을 말할 수 있다. 나만이 그 힘의 강도 를 잴 수 있고, 네 생각과 심장 박동의 비상을 낱낱이 헤아릴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네가 날아다니는 동안 접촉하는 마음들을 본다. 멈추지 마라. 더 많은 마음들에게로 날아가거라. 가서 두드려라.

106 두드리고 또 두드려라. 그리고 거듭 다시 날아다니면서 나의 너 를 사랑한다. 를 네 날개에 실어 더 많은 마음들에게 가져다주어 라. 그리하여 내가 그들의 사랑을 받게 하여라. 그런 다음 한 번의 비상으로 내 성심에 날아와서 원기를 회복 하여라. 그리고 다시 출발하기를 반복하면서 더욱 빠르게 날아다 녀라. 나는 내 비둘기와 즐겁게 놀며, 천사들과 내 사랑하올 엄마 도 불러 나랑 같이 놀자고 하련다. 한데 너는 아느냐? 내가 너에게 지금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나머지는 천국에서 말해 주마. 오, 그때에는 네가 얼마나 놀라운 일들을 많이 듣게 될지! 56: 상동 제36권 1장 (1938년 4월 12일) 루이사가 한번은 오늘 태어나는 모든 아기들에게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은혜를 베풀어 주십사고 청한 적이 있었다 (루이사) 나의 정신이 거룩하신 피앗 안에 잠겨 있었을 때에,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내 작은 영혼을 찾아오셔서 말로 표현할 수 없도록 자애로운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뜻의 복된 딸아, 내 뜻은 사람이 내 뜻에게 첫자리를 내주 고 마음대로 활동할 전적인 자유를 주기만 하면, 그 사람 안에서 놀라운 일을 얼마나 많이 할 수 있는지 모른다! (이를테면,) 내 뜻이 그 사람의 의지와 그가 하려는 말과 행위를 내 뜻 자신의 일 부로 삼고, 내 뜻의 창조 능력으로 그를 덮으면서 그 안에서 내 뜻 자신의 피앗 을 발하여, 존재하는 창조물의 수와 같은 수의 생명을 만들어 낸다. 너는 내 뜻 안에서 나에게, 오늘 세상에 태어날 모든 아기들에 게 세례를 주시고 내 뜻의 생명이 일생토록 그 아기들을 다스리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그러자 내 뜻은 한 순간도 미적거리지 않 고 즉시 피앗을 발하여 여기 네 안에서 수많은 생명을 창조하여 같은 수의 아기들이 태어나게 하였다. 그리고 네가 바랐던 것처럼 내 뜻의 첫 빛으로 아기들에게 세례를 준 다음 한 아기씩 한 아 기씩 모두에게 내 뜻의 생명을 주었다. 이 신생아들이 무지한 탓에 우리의 생명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 다면, 그렇더라도 그 생명은 우리에게 머물러 있다. 그러니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사랑하듯이 우리를 사랑하고 영광스럽게 하며 찬미하 는 신적인 생명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신적인 생명들은 우리의 가장 큰 영광이다. 그들은 그러나 곧 태어날 아기들을 위하여 그토록 많은 생명을 창조할 기회를 우리의 피앗 에게 준 사람을 제쳐 두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람 을 자기들 안에 숨겨 자기들이 사랑할 때 그가 사랑하게 하고 자 기들이 행동할 때 그가 행동하게 한다. 또한 그들은 신생아들도 제쳐 두지 않는다. 아기들의 영혼을

107 다스릴 수 있도록 빈틈없이 주의를 기울이며 살피고 수호하는 것 이다. 57의 ⓵: 상동 제12권 41,1-11 (1918년 4월 8일)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것은 영원하신 분의 전능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루이사) 하느님의 의지 안에서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 가서 나는 그것이 하느님과 결합된 상태로 사는 것이라는 말을 들 었다. 그런데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오시자마자, 딸아, 나 와 결합되어 사는 것과 내 의지 안에서 사는 것은 큰 차이가 있 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그분은 내 쪽으로 두 팔을 뻗치시면서, 단 한 순간 만이라도 내 의지 안으로 들어와 보아라. 그러면 네가 그 큰 차이 를 알게 될 것이다. 하셨다. 그러자 나는 예수님 안에 있었다. 작디작은 티끌에 불과한 내 가 그분의 영원한 의지 안에 잠겨 있었다. 그런데 이 영원한 의지 는 단 하나의 행위 안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행위들을 내 포하고 있으므로, 나는 피조물로서 가능한 정도만큼 모든 행위들 을 내포하는 그 단 하나의 행위에 참여하였다. 또한, 아직은 존재하지 않으나 하느님이 하느님이신 한 세기의 종말까지 존재하게 될 모든 행위들에도 참여하였다. 그리고 이 모 든 행위들을 위해서도 그분께 사랑과 감사와 찬미 등을 드렸다. 내게서 빠져나가는 행위는 하나도 없었다. 나는 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사랑을 내 것으로 삼았고, 마찬 가지로 이 성삼위의 뜻도 내 것으로 삼았다. 그리고 마치 나 자신 의 것인 양 이 뜻을 그분들께 드렸다. 그분들 자신의 사랑도 내 것인 양 드릴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쁘던지! 그러자 그분들은 나에게서 당신들 자신의 사랑을 받으시면서 흡사 나의 사랑을 받기나 하시는 것처럼 너무나 충일한 만족과 완전한 사랑의 분출을 보시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누가 다 말할 수 있으랴? 나로서는 표현 할 재간이 없다. 그때 복되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의지 안에서 사는 것이 무엇인지 보았느냐? 그것은 사라져서 영원의 영역 속으 로 들어가는 것이다. 영원한 분의 전능 속으로, 창조되지 않은 그 정신 속으로 들어가서, 피조물로서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에 참여 하고 각각의 신적 행위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것은 지상에 있는 동안에도 신적인 모든 속성들을 누리는 것 이고, 신적인 방식으로 악을 미워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지치지 않고 자기 자신을 모든 이에게 확장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피 조물에게 생기를 주는 뜻이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108 그리고 그것은 이제껏 알려지지 않았으나 내가 앞으로 알릴 성 덕이다. 이 성덕은 다른 모든 성덕들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고 가 장 빛나는 마지막 장식물을 (인간에게) 달아 줄 것이다. 그것은 다른 모든 성덕들의 완성이요 승리의 화관이 될 것이다. 그런데 나와 결합되어 사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두 존 재가 함께 있음이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는 사람은 영원 속으로 들어가서 신적인 모든 행위에 참여할 수 없다. 곰곰 이 생각해 보아라. 그러면 네가 그 큰 차이를 알게 될 것이다. 57의 ⓶: 상동 제11권 69,1-12 (1914년 3월 17일) 하느님 뜻을 행하는 영혼은 성삼위 하느님의 내적 활동에도 참여한다 (루이사) 평소대로 머물러 있노라니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나의 온 존재 안에 계신 모습을 보게 해 주셨다. 그것은 내가 그분의 모든 지체들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분께서는 크게 기뻐하시는 것 같았고, 이 기쁨을 억누를 수 없어지신 듯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딸아, 나의 뜻을 행하는 영혼은 성삼위 하느님의 내적 (ad intra) 활동에 참여한다. 이 특별한 은혜는 오직 나의 의지를 이 루는 영혼을 위하여 예비되어 있는 것으로서, 우리 성삼위의 모든 외적 (ad extra) 활동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이 외적 활동에서 내적 활동으로 넘어가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내 의지로 사는 사람을 만족시켜 주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혼은 나의 뜻 안에 있으므로 우리 성삼위의 마음과 열망과 애정과 생각의 내밀한 곳에 있는 것이고, 그러니 그의 심 장 박동과 호흡이 우리와 하나인 것이다. 따라서 그가 우리에게 주는 만족과 기쁨과 영광과 사랑은 모두 무한한 성질을 띠고 있어서 우리 자신의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고 그만큼 수없이 많기 때문에, 영원한 사랑 안에서 서로를 황홀하게 하며 서로의 기쁨을 이루는 우리 성삼위가 이 사랑과 기쁨을 억제 할 길 없어 번번이 외적 활동으로 나가는 것과 흡사하다. 이와 같이 우리의 뜻을 행하는 영혼으로 말미암아 황홀한 기쁨 속에 있게 되는 우리가, 그토록 우리를 기쁘게 하는 영혼을 어떻 게 만족시키지 않을 수 있겠느냐? 또한, 우리 자신과 같은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는 그를 우리 가 어떻게 다른 피조물을 사랑하듯 사랑할 수 있겠느냐? 바로 우리 성삼위가 서로를 사랑하듯 사랑하지 않겠느냐? 이 영혼과 우리 사이에는 막으로 가릴 비밀이 없다. 모든 것을 우리와 공유 하는 영혼이기에 우리 것 이니 네 것 이니 하는 구분이 없는 것 이다. 그리고 죄를 지을 수 없는 본성, 거룩한 본성 등 본성적으

109 로 하느님인 우리는 우리와 이 영혼 사이에 서로 다른 점이 없도 록 은총에 의하여 그를 신화( 神 化 )한다. 또 우리가 우리의 사랑을 억제할 길 없어 외적 사업들로 나가 는 것과 같이, 우리의 뜻을 행하는 이 영혼의 사랑도 억제할 길 없어 그로 하여금 우리 자신 밖으로 나가게 한다. 그리하여 그를 우리의 사랑을 받는 사람, 우리의 총애를 받는 사람으로 사람들 에게 가리켜 보인다. 우리가 땅 위에 좋은 것들을 내려 보내는 것은 오로지 이 영혼 과 이와 비슷한 영혼들 때문이다. 오로지 이들에 대한 사랑 때문 에 땅을 보존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우리는 즐기기 위하여 그를 우리 안에 들어오도록 한다. 하느님 성삼위가 나뉠 수 없는 한 분이듯이, 우리의 뜻을 행하는 영혼도 우리와 나뉠 수 없는 것이다. 58: 상동 23권 40,5 (1928년 2월 28일) 거룩한 피앗의 나라의 자녀들의 위계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딸아, 내가 위계( 位 階 )가 서로 다른 아홉 개의 천사 합창단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이, 장차 그렇게 위 계가 서 있는 내 거룩한 피앗의 나라의 자녀단도 가지게 될 것이 다. 이 자녀들 역시 구단( 九 段 )의 합창단을 이룰 것인데, 이들은 내 피앗에 관한 지식의 다소에 따른 다양한 아름다움의 획득에 의해 서로 구별될 것이다. 59: 상동 9권 52,2-7 (1910년 11월 1일) 하느님의 뜻과 인간의 뜻이 이루는 지고한 일치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딸아, 지고한 일치는 영혼 자신의 뜻 이 조금도 없을 정도로 나의 뜻과 긴밀히 하나를 이루는 것, 그래 서 어느 것이 나의 뜻이고 어느 것이 그의 뜻인지 구분이 되지 않 을 정도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내 뜻이 이 영혼의 생명이 되기에, 그에 대해서건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건, 내 뜻이 무엇을 안배하든지, 그는 모든 것 안 에서 기쁨을 느끼게 된다. 죽음, 삶, 십자가, 가난 등 모든 것을 자기에게 합당한 것으로 여기고,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자기의 생명 유지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본다. 그러한 경지에 이르기에 그는 징벌들마저 무서워하지 않고, 모 든 것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보며 기뻐한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것이면 자기도 원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이면 주님도 원하신다고 여기며, 자기가 원하는 것은 내가 행하고 내가 원하는 것은 자기 가 행한다고 여긴다. 이것이 너의 뜻이 나의 뜻 안에 완전히 소멸되는 마지막 숨이

110 다. 이는 내가 너에게 번번이 요구한 것이지만, 너는 순명과 이웃 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었고, 그래서 내가 몇 번이 나 네게 져서 (사람들에게) 징벌을 내리지 않곤 하였다. 그래도 너는 내게 양보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서, 정의로 말미 암아 어쩔 수 없을 때에, 곧 사람들이 나로 하여금 결국 징벌의 채찍을 손에 들도록 할 때에, 내가 너에게서 숨어 있어야 자유로 이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지 않고 징벌을 내리는 행위를 하는 중에 너를 나와 함께, 내 뜻과 함께 있도록 했다면, 나는 아마도 필요에 미치지 못할 정 도로 그것을 대폭 줄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 뜻 안에 전적으로 완전히 사라진 영혼보다 더 큰 힘을 가지는 것은 하늘이나 땅이나 그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이 영혼은 그가 원하는 대로 나를 약하게 할 수 있고 내 노여움 을 가시게 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것이 지고한 일치이다. 그 다음에 이보다도 열등한 일치가 있다. 이 일치 안에서도 영 혼이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단계의) 영혼은 내가 안배하는 것들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자신의 생명으로 보지 못하 고, 나의 뜻 안에서 기뻐한다든가 나의 뜻 안에 자신의 뜻을 녹아 들게 하지도 못한다. 나는 물론 그를 바라본다. 그러나 그는 나를 매료시키지 못한 다. 나로 하여금 지고한 일치 안에 사는 영혼에게 하듯이 그에게 열중하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60: 상동 12권 72,1-8 (1918년 12월 10일) 예수님의 숨은 생활을 반복하는 영혼 (루이사) 다정하신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보십시오, 저 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를뿐더러 아무것도 당신께 드릴 것이 없으 니, 하찮은 것들을 드리고자 합니다. 저의 이 하찮은 것들을, 사실 그대로 모든 것이신 당신께 결합시키면서 영혼들을 청하는 것입 니다. 그러므로 제가 숨 쉴 때마다 이 숨이 당신께 영혼들을 청합니 다. 저의 심장 박동이 끊임없는 외침으로 영혼들을 청합니다. 제 팔의 동작이, 제 안을 순환하는 피가, 제 눈꺼풀의 깜박임이, 제 입술의 움직임이 다 제가 당신께 청하는 영혼들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를 당신과 당신의 사랑과 하나 되어 당신 뜻 안 에서 청합니다. 당신 안에서 언제나 영혼들을 청하는 저의 끊임없 는 외침을 모든 사람들이 듣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말씀드리고 그 밖의 다른 말씀도 드리고 있노라니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나오시며 딸아, 나하고 친밀 한 영혼들의 기도는 내게 얼마나 감미롭고 흐뭇하게 들리는지! 나 자렛의 내 숨은 생활이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 느낌이다! 하셨다.

111 나자렛에서의 내 생활은 밖으로 드러나는 면이 없었고 사람들 과의 어떤 모임도 없었으며 윙윙 울리는 종소리도 없었다. 외부 사 람들의 주의가 전혀 쏠리지 않는 고독한 생활이었으므로 나를 아 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나는 하늘과 땅 사이에 일어나서 계속 영혼들을 청하고 있었 다. 숨 한 번, 심장 박동 하나도 영혼들을 청하지 않는 것이 없었 다. 이와 같이 하는 동안 나의 소리가 하늘에 윙윙 울리면서 아버 지의 사랑을 끌어당겨 내게 영혼들을 주시게 했던 것이다. 같은 소리가 피조물의 마음들 안에도 영혼들! 을 외치면서 윙 윙 우렁차게 울리고 있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와 땅에 계신 내 어머니만이 아시는 나의 숨은 생활 동안, 그러니 내가 놀랍고 도 놀라운 일들을 얼마나 많이 행했겠느냐! 숨어 지내며 나와 친밀한 관계 속에 있는 영혼에게도 같은 일 이 일어난다. 이 영혼이 기도할 때면 비록 그 기도가 땅에서는 들 리지 않더라도 하늘에서는 종소리처럼 윙윙 울려, 하늘의 모든 주 민들을 자기와 하나 되도록 부르고 자비가 땅에 내려오게 할 정 도가 된다. 그것이 피조물의 귀가 아니라 마음에 울리면서 그들을 회개시키 게 하려는 것이다. 61: 상동 11권 84,1-7. 16-18 (1914년 12월 17일) 하느님 뜻 안의 살아 있는 성체 (루이사) 평소대로 머물러 있었지만 예수님의 부재로 마음이 무 척 괴로웠다. 오래오래 기다린 후에 마침내 그분께서 오셨는데, 볼품없는 나의 온몸 안쪽에 당신 자신을 나타내 보이셨다. 그래서 내가 그분을 둘러싼 겉옷처럼 보였다. 그때 그분은 침묵을 깨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너도 성체의 형상을 이루어 이를 거룩하게 할 수 있다. 이 성사 안의 나를 덮고 있는 옷이 보이지? 이는 성체를 이루는 부수적 요소인 빵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성체 안에 존재하는 생명은 바로 나의 몸과 피와 신 성이다. 그리고 이 생명을 내포하는 원동력이 내 지고한 뜻이다. 이 뜻이 사랑과 보속과 희생 및 성체성사 안에서 내가 행하는 여타의 것들을 수행하는데, 이 모든 것은 내 의지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않는다. 내게서 나오는 것 치고 내 의지의 인도를 받지 않는 것은 도무지 없는 것이다. 너도 성체의 형상을 이룰 수 방법이 여기에 있다. 즉, 이 형상 을 이루는 빵은 물질적이며 온전히 인간적인 것이고, 너 역시 물질 적인 몸과 인간적인 뜻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너의 이 몸과 뜻이 깨끗하고 올곧으며 죄의 그림자도 없도록

112 보존되면 바로 내가 나 자신을 축성하여 네 안에서 숨어 살 수 있게 하는 부수적인 요소, 곧 나를 덮어 가리는 천이 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족하지 않다. 아직은 축성되지 않은 빵과 같은 상태일 터이니 내 생명이 필요한 것이다. 내 생명은 거룩함 과 사랑과 지혜와 능력 등등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 모든 것의 원동력은 나의 뜻이다. 생명은 양식을 필요로 하기에 이 성사 안의 나는 양식을 원하 는데, 바로 나 자신의 양식을 원한다. 그런데 이 양식은 영혼이 나의 뜻과 기도와 보속과 희생을 그 자신의 것으로 삼고, 이 모두 가 마치 자기의 소유인 양 나에게 주는 것, 그래서 내가 먹게 될 양식이다. 그런 영혼은 나와 일치해서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주의를 기울 이며 나와 함께 그것을 행할 것이고, 나 자신의 행위를 거듭함으 로써 내게 양식을 대어 나를 행복하게 할 것이다. 이 살아 있는 성체들 안에서만, 내가 감실들 안에서 겪는 고독 과 굶주림과 기타 모든 것에 대한 보상을 얻게 될 것이다. 62: 상동 36권 2장 (1938년 4월 15일) 승리의 행위를 이루는 자유 의지 (루이사) 내 보잘것없는 정신이 하느님의 뜻 안에서 달리며 그 중심을 향해 날아간다. 쉬기 위해서, 즉 내 정신에 남아 있는 (과 거의) 잔재를 버리는 대신, 그 교환으로 하느님 뜻의 빛을 옷처럼 입고, 그 숨으로 숨 쉬고, 그 심장 박동으로 고동치고, 그 활동으 로 활동하기 위해서다. 이는 만물 안에서 움직이며 만물에게 생명 을 주는 활동이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거룩하신 피앗 의 기쁨의 바다에 잠겨 있 었을 때에, 언제나 흠숭하올 예수님께서 잠시 찾아오시어 더할 수 없이 정겨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뜻의 작은 딸아,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냐! 영혼이 내 뜻 안으로 들어와서 우리 (성삼위)의 숨으로 숨 쉬고, 우리의 심장 고동으로 고동치고, 우리의 움직임 안에서 움직일 때에, 그는 만인과의 친교 속에서 천사들과 성인들과 모든 피조물이 행하는 것을 하고, 그 모두로 하여금 자기가 행하는 것 을 하게 한다. 우리의 뜻 안에 있는 기적적인 것들은 놀라움을 자아낸다. 그것 들이 전개되는 광경은 너무나 감동적이고 독특하여 모든 이의 주 목을 끌며 그 마음들을 사로잡는다. 그들이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그 영혼에게서 그토록 진귀하고 즐거운 광경을 보며 즐기기 위해서 무엇을 하고자 할지 누가 알겠느냐? 이제 너는, 영혼이 내 거룩한 뜻 안으로 들어와서 숨 쉬고 고 동치며 우리의 활동 안에서 활동하더라도 그 자신의 숨과 심장 고

113 동과 활동을 잃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의 숨과 심장 고동과 활동들이 우리의 그것들에서 따로 떨어져 나가는 일은 결 코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우리의 뜻은 어디든지 있고 모든 이의 숨과 심장 고동 과 활동 이상으로 두루 순환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일이 일어 나겠느냐? 천사들과 성인들과 바로 우리의 신성이, 그리고 온 피조물이 내 뜻과 함께, 그 영혼의 숨과 심장 고동과 활동을 내적으로 느끼게 된다. 모두가 내적으로 마음 한가운데로 그의 움직임을 느끼고, 행복감과 형언할 수 없는 새로운 기쁨으로 충만해지는데, 이는 순 례 중인 그 영혼이 복된 이들 각자에게 가져다주는 것들이다. 그는 즐긴다기보다 자신의 자유 의지로 고통을 받으며 승리를 거두고 있다. 그런데 그가 언제나 내 뜻과 일치하여 그 자신의 숨 으로 숨 쉬면서 늘 새로운 기쁨을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은 단지 충 만한 기쁨 속에서 숨 쉬고 고동치며 활동함에 의해서다. 게다가 자유 의지가 그 승리의 행위를 이루기 때문에 그가 나에게 이 새 로운 승리의 맛을 안겨 주는 것이다. 오, (천상의) 복된 이들과 우리 자신의 신성과 온 피조물이 얼 마나 행복한 상태로 있는지! 그러니 이들은 가득한 기쁨 속에서 사랑을 힘주어 말하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 안에서 숨 쉬고 고동치며 움직이는 이 사람은 누구입니 까? 순수한 기쁨의 새로운 사랑의 이 승리의 행위를 땅에서 가 져오는 이 사람은? 이는 우리가 하늘에서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 로서 우리 안에 서로 주고받는 사랑을 증대시키면서 우리를 이토 록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모두가 입을 모아 그 사람은 땅에서 하느님의 뜻 안에 사는 영혼입니다. 하고 외친다. 얼마나 굉장한 일인지! 얼마나 큰 기적인지! 얼마나 매력적인 광경인지! 모든 사람 안에서 숨 쉬고, 자신의 창조주 안에서도 숨 쉬는 숨이, 하늘과 별들과 태양과 공기와 바람과 바다 속에서, 곧 모든 것 속에서 활동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 자신의 활동으로 모든 것을 손안에 넣고, 모든 이가 마땅히 드려야 했으나 드리지 않은 사랑과 흠숭을 하느님께 드린 다. 그리고 그 자신의 하느님을 그분의 사랑과 의지를 모든 이 에게 준다. 즉, 하느님께는 모든 것을 가져오고, 모든 이에게는 하느님을 모셔오는 것이다. 비록 모든 이가 우리를 맞아들이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우리는 똑같이 사랑과 영광을 받는다. 왜냐하면 내 뜻 안에서 행해지는 하나의 행위, 하나의 활동은 그 자체로 완전히 충분한 것이어서 (우리를 맞아들이지 않는 이들을 다 모아도) 끝없이 큰 바다 앞의 작은 물방울들이요, 큰 빛인 태양 앞의 작은 불빛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114 그러므로 그가 우리의 뜻 안에서 하는 이 활동이, 숨쉬기와 심 장 박동과 더불어 모든 이 안에 풍부하게 있다. 그것이 영원을 끌어안는 것이다. 그리하여 태양들과 바다들이 형성되는데, 어찌나 한없이 광대한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줄 수 있다. 비록 이 생명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이 있더라도, 이들은 너무 작아서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오, 내 뜻아! 너는 얼마나 감탄스럽고 강력하며 반할 만한지! 네 안에 있는 사람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줄 수 있고, 우리도 그 에게 모든 것을 줄 수 있다. 그는 만물과 만인을 감싼다. 그 자신 의 사랑으로 사랑이 솟아나게 하여 모든 이를 대신해서 우리에게 그 사랑을 준다. 우리는 그가 우리에게 참된 배상을 바친다고 말할 수 있다. 사 람들이 죄를 지어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하면, 그가 자기의 사랑 안에 우리를 숨기며 사랑하고, 그의 빛 안에 우리를 보호하며, 우 리에게 상처를 입히려는 자들을 그의 빛으로 몰아낼 수 있음을 우 리가 알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너는 항상 우리의 뜻 안에서 살 것을 마음속 깊이 새 겨 두어야 한다. 63: 상동 11권 109,3-8 (1915년 11월 11일) 땅에 있는 또 다른 그리스도들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딸아, 사람을 내쫓으면서, 사람에 대 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나의 신성이 나 자신의 사랑에 의해 상처 를 입은 듯한 상태가 되었다. 이 상처가 나로 하여금 하늘에서 땅 으로 내려오게 했고 눈물과 피를 흘리게 했으며 내가 행한 그 모 든 것을 하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내 뜻 안에서 사는 영혼은 나의 이 상처를 자기 자신의 것인 양 생생하게 느낀다. 그래서 눈물을 쏟으며 기도하고, 가련 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고통이건 다 겪고 싶어 함으 로써 내 사랑의 상처가 사람들의 죄로 인해 더 악화되지 않도록 한다. 아, 딸아, 이러한 눈물과 기도와 고통과 보속이 내 상처를 달 래고, 빛나는 보석들처럼 숱하게 내 가슴에 몰려든다. 나는 이 보 석들을 가슴에 지니고 있음을 자랑삼아 내 아버지께 보여 드린다. 아버지께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그런 영혼들과 나 사이에는 신적인 피가 오르락내리 락 하면서 그들의 인간적인 피를 태워 없앤다. 또한 나의 상처와 생명에 참여하면 할수록 이 신적인 핏줄이 그들에게 더욱더 널리 퍼진다. 어찌나 널리 퍼지는지 이윽고 그들이 또 다른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아버지께, 저는 하늘에 있지만, 땅에도 다른 그리 스도들이 있습니다. 저와 같은 상처로 아파하고 저와 같이 눈물

115 흘리며 고통받고 기도하는 등등의 일을 하는 이들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자비를 땅에 쏟아 부어야 합니다. 하고 거듭 말씀드린다. 아, 내 의지 안에 살면서 내 상처를 나누는 이 사람들만이 땅 에서 나와 비슷하고, 하늘에서도 내 인성과 같은 영광을 나누며 나와 비슷하게 될 것이다. 64: 상동 11권 41,19-28 (1912년 11월 25일) 땅에서 하늘로 솟은 두 종류의 층층대 (루이사) 그 뒤 그분께서 내게 땅에서 하늘로 솟은 두 개의 층 층대를 보여 주셨다. 한 층층대에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다른 쪽에는 사람 수가 얼마 되지 않았다. 이 소수의 사람들이 있는 층 층대는 견고한 금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이를 올라가는 이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또 한 분의 예수님으로 보였다. 사람들이 더 많이 있는 층층대는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고, 이를 올라가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단박 식별할 수 있었다. 거의 모두가 키가 작고 발육 상태가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황금 층층대를 올라가 는 이들은 내 생명 안에서 삶을 살아 온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들이 내 발이고 내 손이며 내 심장이다. 나 자신 전체 다. 하고 말할 수 있다. 네가 알아보았듯이 그들은 또 하나의 나다. 모두가 나를 위해 있으며 내가 그들의 생명이다. 그들의 행위는 신적인 것이기에 모 두가 금으로 되어 있으며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아무도 그들이 도달한 높이에 이를 수 없다. 그들은 바로 나 자신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사람들에게 알 려지지 않은 채 있다. 그들이 내 안에 숨어 있는 까닭이다. 오직 천국에서만 그들도 완전히 알려지게 될 것이다. 나무 층층대에는 사람들이 더 많이 있다. 이들은, 그렇다, 이들 역시 덕행의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내 생명과 하 나 되지 않고 내 뜻과의 지속적인 결합 없이 걷는 사람들이다. 그 들의 행위는 나무로 되어 있어서 그 가치가 극히 작다. 이 영혼들은 선행들 속에도 인간적인 목적을 숱하게 섞어 넣기 때문에 키가 작고 앙상하게 마른 왜소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인간 적인 목적이라는 것이 발육부진을 일으키는 까닭이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다. 내 안이 아니라 그들 자신 안에 숨어 있어서 아무도 가려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들은 땅에서 이미 그렇게 널리 알려졌으니, 천국에서는 아무런 경탄도 자아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딸아, 네가 완전한 모양으로 내 생명 안에 있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너의 생명 안에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말이다. 그러면 네가 알고 또 보게 될 사람들을 내가 너에게 맡기겠다. 이

116 사람들이 내 생명의 층층대를 힘차고 항구하게 올라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65: 상동 12권 18,32-39 (1917년 8월 14일) 사람의 뜻이 예수님과 일치하지 않은 경우의 가짜 성덕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루이사의 설명) 하느님의 뜻 안에서는 덕행들이 신적 질서 속에 자리를 잡는다. 반면에 그것이 이 뜻을 벗어나 인간적 질서 속에 있게 되면 자만과 허영과 격정의 지배를 받게 된다. 오, 얼마나 많은 선행이, 잦은 성사 참여들이 하느님 대전에 개 탄할 만한 보속거리가 되는지! 그것은 그런 행위들에 하느님의 의 지가 비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런 결실도 내지 못하는 것 이다. 하늘의 뜻은 모든 사람이 진정한 성덕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 를 알게 되면, 오, 다른 모든 것은 사라질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성덕의 길을 걷고 있다. 경건한 신심 실천에 성덕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이들을 움직 이는 사람들은 불행하다. 너무나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그들의 의지가 예수님과 하나 되어 그분 안에서 변화되지 않는다면 이 변화에 이르는 과정이야말로 끊임없는 기도이기에 그들의 성덕은 그 모든 독실한 실천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것이 다. 이는 그런 영혼들이 그렇게 경건한 신심 행위를 하다가도 얼 마나 쉽사리 결점이나 오락에 빠지고 불일치의 씨앗을 뿌리는 등 의 짓거리를 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는 점이다. 이런 부류의 성덕 은, 그러니 얼마나 수치스러운 성덕인가! 또 어떤 이들은 성당에 가는 것, 모든 전례에 참여하는 것에 성 덕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의 의지는 예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 이는 이 영혼들이 스스로의 본분에 얼마나 등한한지를 보면 알 수 있는 점이다. 가는 걸음을 막는 무엇이 있으면 벌컥 화를 내고, 그들의 성덕이 허공 속으로 사라진 듯 울부짖으니, 그 불평 과 불순종으로 가족들의 상처가 되기 십상이다. 이 얼마나 맹랑한 성덕인가! 또 다른 이들은 자주 고해성사를 받고 꼼꼼하게 영적 지도를 받으며 모든 것에 대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에 성덕이 있다 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의 의지가 예수님의 의지와 일치하지 않 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을 반박 하는 사람들이 되레 불행하다(고 여길 따름이다)! 이런 영혼들은 부푼 풍선과 같아서 작은 구멍만 있어도 바람이 빠진다. 즉, 그들 의 성덕이란 것이 연기처럼 공중으로 흩어져 오르다가 땅에 떨어 진다. 이 가련한 풍선들은 언제나 할 말이 있고 너무나 쉽사리 슬픔

117 에 잠기며 줄곧 의혹 속에서 산다. 그러니 아주 작은 일에서도 지 도와 조언을 아끼지 않고 평화와 위로를 줄 사람을 가지게 되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전보다도 더 심란한 상태가 되고 만다. 이 얼마나 딱한 가짜 성덕인가! 66: 상동 11권 110,32-39 (1915년 11월 13일) 받아 모신 성체를 잘 봉헌하는 방법 (루이사) 성체를 받아 모신 뒤, 예수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면 이를 어떻게 봉헌해야 할까? 하고 속으로 생각하였다. 그러자 언 제나 친절하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네가 나를 기쁘게 하려거든, 바로 내 인성이 했던 것처 럼 봉헌하여라. 나는 다른 이들에게 성체를 나누어 주기 전에 나 자신에게 먼저 주었다. 내가 그렇게 하고자 한 것은 사람들의 모 든 영성체의 완전한 영광을 아버지께 드리기 위함이었고, 내가 이 성사 안에서 받는 모든 모독과 모욕에 대한 모든 보속을 내 안에 넣어 두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내 인성은 하느님의 뜻을 포함하고 있었으므로 모든 시 대의 모든 보속을 다 담고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나 자신 을 영했으므로 합당하게 영할 수 있었다. 또한 사람들의 모든 일 은 나의 인성에 의해 신성하게 되었으므로 나의 영성체로 그들의 영성체에 도장을 찍어 주고 싶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피조물이 어떻게 하느님을 영할 수 있었겠느 냐? 나의 인성이 피조물에게 이 문을 열어 주면서 나를 영할 자격 을 얻어 주었던 것이다. 그러니 딸아, 너도 내 뜻 안에서 내 인성과 하나 되어 그것을 행하여라. 그렇게 하면 너는 모든 것을 내포하게 되고, 나는 네 안에서 모든 이에 대한 보속과 모든 것에 대한 배상 및 나의 보 속을 보게 될 것이다. 더군다나 또 하나의 나를 네 안에서 보게 될 것이다. 67: 상동 11권 58,1-11 (1913년 9월 3일) 하느님 뜻 안에 있는 영혼은 받기보다는 주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루이사) 기도 중이었는데 (하지만 나 자신을 어떻게 표현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나에 대해서건 내 큰 비참에 대해서건 전혀 생각하지 않고, 언제나 죄인들과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보속 하고 예수님을 위로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 여기에 어쩌면 나 의 미묘한 자부심이 깃들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기도 전에 그렇게 하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없다마다! 뭐랄까, 기도를 시작하기만 하면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118 이 점에 대해 마음을 쓰면서 염려하고 있노라니 언제나 사랑하 올 예수님께서 오시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무슨 소리냐? 그렇게 되는 것이 염려스럽다는 거냐? 알 아들어라. 내가 영혼을 내 뜻 안에 두면 그는 내 의지 안에서 안 정된 거처를 잡게 된다. 그런데 내 뜻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선을 포함하고 있다. 영 혼은 그러므로 모든 것이 풍부함을 느껴 알고, 나와 같은 상태에 있게 된다. 즉, 받기보다는 주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무엇이든지 원하기만 하면 청하지 않아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그 자신은 아 무것도 아쉽지 않다는 점을 아는 것이다. 그처럼 주고 싶어 하는 힘을 억누를 수 없는 힘을 지니고 있 는 것이 내 뜻이니까, 그는 오직 줄 때에만 행복감을 느낀다. 또 한, 주면 줄수록 더 주고 싶은 목마름을 느낀다. 그토록 주고 싶 은데 주어야 할 사람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얼마나 심한 압박감 에 시달리겠느냐! 딸아, 나는 내 뜻을 행하는 영혼을 나와 같은 상태에 있게 한 다. 나의 큰 기쁨과 괴로움을 나와 함께 나누게 하는 것이다. 그 러니 그런 영혼이 행하는 모든 것에는 아무런 사욕이 없음을 확증 하는 도장이 찍힌다. 과연 그렇다! 내 뜻을 행하는 영혼은 만물에게 빛과 열을 주는 진정한 태양이요, 이 빛과 열을 줄 필요를 느끼기도 하는 태양 이다. 그리고 이는 모두에게 빛과 열을 주기만 할 뿐 누구에게서 무 언가를 받는 일이 도무지 없는 태양이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만 물을 능가하므로, 그가 지닌 빛과 위대한 불에 있어서 그와 맞설 수 있는 존재가 지상 어디에도 없는 까닭이다. 아! 사람들이 내 뜻을 행하는 영혼을 볼 수 있다면, 모두에게 좋은 일을 하는 그의 행위를 보고 그를 찬란한 태양 보다 더욱 찬란한 태양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더욱이 이 태양 안에 있는 나 를 알아보게 될 것이다. 따라서 영혼이 내 뜻을 이룰 정도로 높은 경지에 도달해 있음 을 나타내는 표징은, 그 자신이 베푸는 상태에 있음을 스스로도 감지하게 되는 것이다. 알아들었느냐? 68: 상동 11권 11,1-11 (1912년 3월 15일) 하느님의 뜻은 거룩함 중의 거룩함이다 (루이사) 여느 때처럼 머물러 있다가 복되신 예수님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을 행하고 싶은 큰 열망을 느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나의 뜻은 거룩함 중의 거룩함이다. 내 뜻을 행하는 영 혼은, 얼마나 보잘것없고 무지하고 이름 없는 사람이건, 다른 모

119 든 성인들을 능가한다. 비록 비범한 재능과 두드러진 말솜씨와 기 적을 행한 성인들이라고 해도 말이다. 비하건대, 나의 뜻을 행하는 영혼들이 여왕이라면 다른 사람들 은 모두 이 여왕을 섬기는 종들과 같다. 나의 뜻을 행하는 영혼들은 겉보기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모든 일을 다 한다. 나의 뜻 안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하느님처럼 은밀하고 놀라운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그들은 빛을 비추는 등불이요, 깨끗하게 하는 바람이며, 태우는 불꽃이고, 다른 이들로 하여금 기적을 행하게 하는 놀라운 사람들 이다. 기적을 행하는 사람들이 통로에 불과한 반면에, 내 뜻을 행 하는 그들 안에는 기적을 행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선교사의 발이 되고, 설교자의 혀가 되고, 나 약한 이들의 힘이 되고, 병든 이들의 참을성이 되고, 윗사람들의 지배력과 아랫사람들의 순종이 되고, 모함을 받은 자들의 관용이 되고, 위험에 처해 있는 이에게는 굳건함이 되고, 용사들의 장함 이, 순교자들의 용기가, 성인들의 성덕이 되고, 여타 모든 것에 대 해서도 그러하다. 나의 뜻 안에 있음으로 하여, 하늘과 땅에 있을 수 있는 모든 선에 참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그들을 참된 성체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성체들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성체를 이루는 비본질적 부속물은 생명이 가득하지 않아서 내 게 아무 영향도 끼치지 못하지만, 영혼은 생명이 가득하기에 나의 뜻을 행함으로써 내가 행하는 모든 것에 영향을 주며 그 모든 것 에 참여하는 까닭이다. 내 뜻으로 축성된 이 성체들이 성사적 성체들보다 내게 더욱 소중한 것은 그 때문이다. 내가 성사적 성체 안에 실재하는 이유 는 바로 내 뜻의 성체들을 기르기 위함이다. 딸아, 나 자신의 뜻에서 내가 얻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누군 가가 내 뜻에 관해 말하는 소리만 들어도 기쁨이 북받쳐서 천국의 모든 주민을 불러 잔치를 열게 할 정도이다. 하물며 내 뜻을 행하는 영혼들에 대해서야 어떠하겠는지 상상 해 보아라. 나는 그들에게서 모든 기쁨을 얻으며 그들에게 모든 기쁨을 준다. 그들의 삶은 천상의 복된 이들의 삶이다. 그들이 소중히 여기고 바라며 열망하는 것은 오직 두 가지뿐이니 곧 나의 뜻과 사랑이 다. 그러기에 별로 하는 일이 없어 보이건만 정작은 모든 일을 다 하는 것이다. 덕행들 자체도 나의 뜻과 사랑 안에 흡수되어 있으므로 그들은 이제 그것들과도 무관한 셈이다. 나의 뜻이 거룩하고 무한하며 끝 이 없는 방식으로 일체를 내포하고 소유하며 흡수하고 있기 때문 이다. 이것이 다름 아닌 복된 이들의 삶이다.

120 평상시와 같은 상태로 있는데 복되신 예수님께서 무척 괴로워 하시는 모습으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나는 더 이상 이 세상을 참을 수 없다. 네가 모든 이를 위해서 나를 위로해 다오. 나로 하여금 너의 심장 안에서 고동치게 하여라. 그러면 내가 모든 이의 심장 박동을 너의 심장을 통해 느끼기에, 죄가 내게 직 접 이르지 않고 네 심장을 통해 간접적으로 오게 된다. 그러지 않 고서는 내 정의가 일찍이 일어난 적 없는 모든 징벌을 쏟아 낼 것 이다. 그분은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당신 심장을 나의 심장과 일치시키 시어, 나로 하여금 그 박동을 느끼게 하셨다. 하지만 내가 느낀 것을 어떻게 다 말할 수 있으랴? 죄들이 화살처럼 그분의 심장에 상처를 내고 있었고, 내가 이를 나눔에 따라 예수님은 위로를 얻 으셨다. 그때 나는 나 자신이 그분과 온전히 하나가 되는 것을 느꼈는 데, 그분의 지성과 손과 발과 나머지 모든 것이 내 안에 있는 것 같았으니, 피조물의 감각 기관 하나하나가 여기에 끼치는 모든 모 욕을 그분과 함께 다 받을 수 있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어나고 있었는지 아무도 말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덧붙이셨다. 내 고난을 함께하는 것이 내게 더할 나위 없는 위로가 된다. 내 거룩하신 아버지께서 나의 강생 이후 세상을 가차 없이 대 하시지 않고 보다 부드럽게 대하신 것도 이 때문이니, 끊임없이 방패 노릇을 한 내 인성을 통하여 모욕을 직접 받지 않으시고 간 접적으로 받으셨기 때문이다. 나는 나와 피조물 사이에 이와 같은 모양으로 자리할 영혼들을 계속 찾고 있는 중이다. 그런 이들이 없다면 내가 세상을 잿더미 로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69의 ⓶: 상동 12권 22,1-4 (1917년 10월 8일) 하늘에서 고통을 받을 수 없는 예수님 인성을 땅에서 대리하는 영혼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딸아, 내가 행한 모든 것은 영원히 지속된다. 나의 인성은 일정 기간만이 아니라 세상이 세상인 동안 고통을 받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하늘에 있는 내 인성은 고통 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을 쓴다. 그들로 하여금 내 고통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내 인성이 땅에서 도 지속되게 하는 것이다. 이는 의로운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땅 에 있었을 때 모든 피조물을 안전하게 지키고자 내 안에 품어 안 고 있었으며 그들을 위해 모든 것을 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타락한 영혼들의 선익을 위해서 저들 특히 나를 사

121 랑하는 이들 안에서 내 인성과 내 고통과 내가 행한 모든 것을 널리 퍼뜨리고 있다. 아버지께, 저의 인성은 하늘에 있지만 또한 땅에도 있습니다. 저를 사랑하며 고통받는 영혼들 안에 있습니 다. 하고 말씀드리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내 보속은 언제나 완전하고 내 고통도 언제나 현행 중이다. 나를 사랑하는 영혼들이 나를 대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너는 고통 중에 있을 때 네 마음을 스스로 위로하여라. 나를 대리 하는 영예를 얻은 것이니 말이다. 69의 ⓷: 상동 11권 97,4-7 (1915년 7월 25일) 하느님의 의노가 피조물을 내려치는 시기에 위로를 주기보다는 받기를 원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아아! 모든 불행이 내 마음을 짓누 르며 찔러 댄다. 게다가 이 모든 불행 앞에 있는 내 눈에 하느님 의 정의가 피조물에게 더욱더 격노를 터뜨리고자 하는 것이 보인 다. 불행히도 반항적이며 배은망덕한 피조물에게! 그런데다 사랑에서도 내가 얼마나 불운아인지, 누가 너에게 말 해 줄 수 있으랴? 아아! 피조물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내 크 나큰 사랑이, 거듭되는 모욕들로 갚음을 받고 있을 뿐이다. 내 딸아, 이 숱한 불행들 가운데 있는 나는 위로를 주기보다는 받기를 원한다. 나를 사랑하는 영혼들이 나를 에워싸고 충실한 동 반자가 되기를, 그리고 내 불행에 대한 위로로 자기네 고통을 내 게 주면서 가련한 불운아들에게 은총을 얻어 주기를 원한다. 이 재앙과 불행의 시대에 내게 충실한 영혼들에게 내가 의지하 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의노가 풀린 뒤에는, 내 불행에 참 여하며 내게 충실했던 영혼들에게 상급을 줄 작정이다. 70: 상동 12권 15,2-12 (1917년 7월 18일) 예수님은 어디서든지 그 영혼을 느끼신다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딸아, 영혼이 내 뜻 안에서 살고 모 든 것을 내 의지 안에서 행하면, 나는 어디서든지 그 영혼을 느낀다. 우선 나의 정신 안에서 그를 느낀다. 그의 생각들이 나의 생각 들 안으로 흘러드는 것이다. 내가 피조물 안에 지성의 생명인 (나 를) 널리 퍼뜨림에 따라 그도 나와 함께 그들의 정신 안에 그 자 신을 널리 퍼뜨리고, 내가 모욕을 당하는 것을 보면 그도 나의 고 통을 느낀다. 나는 내 심장 박동 안에서 그를 느낀다. 그것도 내 심장 안에 서 둘의 심장 박동이 하나가 되어 고동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내 사랑이 피조물 속으로 스스로를 쏟아 부음에 따라 그도 나와 함께 스스로를 쏟아 부으며 함께 사랑한다. 그러니 내가 사랑받

122 지 못하고 있으면 그가 모든 이를 대신한 사랑으로 내게 보답하 려고 나를 사랑하며 위로한다. 나는 또 내 갈망 속에서 내 뜻 안에서 사는 영혼의 갈망을 느 낀다. 나의 활동 속에서 그의 활동을 느끼고, 다른 모든 것 속에 서도 그를 느낀다. 그러므로 그는 나로, 나만으로 산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예수님께, 제 사랑이시여, 당신은 홀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으시니 피조물이 필요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들이 당신 뜻 안에서, 당신 뜻으로 살아가는 것을 그토록 좋아 하십니까? 하고 여쭈었다. 예수님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과연 나는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나 혼자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은 생명을 지 니기 위해서 스스로를 쏟아 내기를 원한다. 태양을 생각해 보아라. 그것은 다른 빛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 자신이나 다른 존재들을 위해 충분한 빛을 소유하고 있기 때 문이다. 그러나 다른 작은 빛물체들이 있는 이상 태양은 이들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도 다만 함께 있으려고 자신 내부에 소유하기를 원 한다. 이 작은 빛들에게 자신을 쏟아 부어 그들을 더 크게 해 주 려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그 작은 빛들이 태양을 배척한다면, 큰 잘못을 범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과연 딸아, 뜻이 홀로 있을 때에는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한다. 홀로 남은 사랑이 쇠약해져서 결국 죽고 만다. 그런데 나는 피조 물을 매우 사랑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나의 뜻과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 그들의 마음을 비옥하게 하여 사랑의 생명을 주려는 것 이다. 그리고 나는 내 사랑을 쏟아 낼 배출구를 발견한다. 내 사랑을 쏟아부어 주려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피조물을 창조했으니 말 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내가 전념하고 있는 유일한 일이다. 71의 ⓵: 상동 12권 111,2-7 (1919년 9월 3일) 예수님과 하나 되어 하늘과 땅 사이에 일어서서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네 삶의 목적은 내가 아는 것이지 네가 그것을 알려고 애쓸 일이 아니다. 하지만 네가 날마다, 하루 에도 몇 번이나, 그저 내 안에 녹아드는 것만으로도 모든 보속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에 유익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오직 한 사람이 내 안으로 들어와서 그가 행하는 모 든 것의 시작을 내게서 취하기만 해도 모든 사람과 모든 것에 대 한 보속의 균형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는 피조물이 아 버지께 드려야 하는 영광의 균형도 맞출 수 있다. 그것은 영원

123 한 시작과 영원한 뜻이 내 안에 있어서 내가 모든 것, 곧 모든 사 람 편에서 보상과 보속 및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완전한 영광을 드리는 일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까닭이다. 따라서 네가 내 안으로 들어오면 모든 보속과 영원하신 임금님 의 영광의 균형을 새로이 잡게 된다. 이것이 하찮은 일로 여겨지 느냐? 네가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지낼 수 없다는 것을, 또한 나의 각 지체 안에 녹아드는 너를 보기 전에는 내가 가만두지 않는다 는 것을 여실히 느끼지 않았더냐? 내가 그러는 것은 네가 온 인류 가족의 이름으로 대신 행하기에, 너에게서 모든 보속의 균형을 받 아 내려는 것이다. 모든 것에 대해서 나에게 되도록 많이 보상하려고 노력하여라. 한 영혼이 아무런 사욕 없이 다만 나에 대한 사랑 때문에 하늘과 땅 사이에 일어서서, 나와 하나 되어 모든 것에 대한 보속의 균형 을 잡고 있으면, 세상이 얼마나 많은 선익을 받게 되는지를 네가 안다면! 71의 ⓶: 상동 12권 134,2-8 (1920년 6월 10일) 하늘과 땅 사이 공중에서 예수님과 함께 사는 영혼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딸아, 지상 생활을 하는 동안 내 인 성은 하늘과 땅 사이의 중간에 매달려 살았다. 온 땅을 내 아래 두고 온 하늘을 내 위에 둔 채 그렇게 공중에서 살면서, 온 땅과 온 하늘을 내 안에 끌어들여 오직 하나가 되게 하려고 했던 것 이다. 내가 만일 땅 위에서 곧 땅과 같은 높이에서 살기를 원했다면, 모든 것을 내 안에 끌어들이지 못했을 것이고, 기껏해야 몇 군데 만 끌어들이는 것이 고작이었을 것이다. 사실 공중에 매달려 사는 것은 큰 희생이 요구되는 일이었다. 기댈 곳도 기댈 사람도 없었고, 가장 긴요한 것만이 내 인성에 제 공되고 있었다. 그 나머지 것들로 말하자면, 나는 언제나 혼자였 고 아무런 위안거리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필요한 일이었다. 그 이유는 첫째, 내 인격의 고상한 품위 때문이었다. 미천하고 그릇된 인간적 의짓거리를 가지 고 이 아래에서 사는 것이 내게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둘째, 구원 사업이라는 중대한 사명 때문이었으니 이 사업이 무 엇보다도 최상위에 있어야 했다. 따라서 내가 높이, 모든 사람 위 에서 사는 것이 합당했던 것이다. 나는 그래서 나의 모상이 되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내 인성이 처했던 것과 같은 상황에 있게 한다. 그러므로 내가 너의 지주이 다. 나 자신의 팔이 너를 지탱한다. 내가 너를 안아 공중에 매달 고 내 팔 안에서 살게 하므로 가장 긴요한 것만 네게 닿을 수 있

124 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서 벗어나 온전히 나를 위해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천박한 것이고, 그의 고상한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어쩌다 인간적인 의짓거리가 주어지면, 그는 인간적인 것의 악취를 맡고 멀리 치워 버리기 마련이다. 72: 상동 12권 161,2-6 (1921년 4월 26일) 세상을 보지 마라 하느님 뜻 안의 행위들이 새 시대를 가져올 것이다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딸아, 한 번 더 말한다. 세상을 바라 보지 마라. 원하는 대로 하게 내버려두어라. 그들은 전쟁을 걸고 자 한다. 암, 그렇게 할지어다. 그들이 그것에 지칠 무렵이면 나도 전쟁을 걸겠다. 악에 물리고 환멸을 느끼며 망상에서 깨어나 상실의 고통을 겪다 보면 그들도 나의 전쟁을 받아들일 태세가 될 것이다. 내 전쟁은 사랑의 전쟁 이리니, 내 의지가 하늘에서 그들 가운데로 내려올 것이다. 내 의지 안에서 행해진 너의 모든 행위와 다른 이들의 행위들이 사람들과 전쟁을 벌일 터인데, 그것은 피를 흘려 가며 벌일 싸움 이 아니다. 사랑을 무기로 쓸 싸움이니 그들에게 선물과 은총과 평화를 줄 것이다. 배은망덕한 인간이 깜짝 놀랄 정도로 놀라운 것들을 말이다. 나의 이 뜻은 하늘의 군대로서 거룩한 무기로 인간을 어리둥절 하게 하고 압도하면서 빛을 줄 것이다. 이 빛은 내가 인간을 부유 하게 하고자 줄 선물과 재보들을 보기 위한 것이지, 악을 보기 위 한 빛이 아니다. 내 의지 안에서 수행된 행위들은 그 내부에 창조력을 지니고 있어서 인간의 새로운 구원이 될 것이고, 하늘에서 내려오면서 온 갖 좋은 것들을 땅에 가져올 것이다. 새 시대를, 인간의 악에 대 한 승리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그런 무기와 선물과 은총들을 이룰 내 뜻 안의 행위들을 더욱더 많아지게 하여라. 사람들 가운데로 내려와서 그 들과 사랑의 전쟁을 벌일 수 있도록 말이다. 73: 상동 12권 8,10 (1917년 5월 10일) 예수님의 숨에 열중한 상태로 있는 것 (루이사) 나는 오늘 예수님 안에 녹아들 수 없었다. 그분께서 몸소 나를 당신 숨에 열중한 상태로 있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 동 안 아주 많은 사실을 깨달았지만 제대로 표현할 재간이 없으니 그만 쓰겠다.

125 74: 요한 17,21-23 그들도 우리 안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76: 1요한 3,2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 (예수님)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 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 에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영광을 저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우 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는 제 안에 계십니다. 이는 그들이 완 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시고, 또 저를 사랑하셨듯이 그들 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75: 마태 5,48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 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성 요한)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 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 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77: 로마 8,18-19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 바오로)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 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피 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78: 천상의 책 제11권 52,1-14 (1913년 5월 9일) 예수님과 그분 엄마의 불가분적 관계 그분과 나는 서로 안에 함께 녹아들어 있었다. (루이사) 기도 중에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에 들어가시기 전

126 지극히 거룩하신 어머니께 작별 인사를 하신 순간을 생각하면서, 예수님께서 당신 엄마와 어떻게 헤어지실 수 있었을까? 어머니께 서는 또 어떻게 예수님과 헤어지실 수 있었을까? 하고 혼자 중얼 거렸다. 그러자 복되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확실히 나와 내 자애로우신 엄마 사이에는 이별이란 것이 있을 수 없었 다. 단지 외견상의 이별이 있었을 뿐이다. 그분과 나는 서로 안에 함께 녹아들어 있었고, 이는 너무나 강 렬한 융합이어서 나는 그분과 함께 남아 있었고 그분은 나와 함 께 가셨을 정도였다. 그러니 그것은 두 장소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bilocation)과 같은 현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영혼들이 진실로 나와 하나 되어 있을 때에도 일어난다. 이들이 기도하면서 기도가 생명이 되어 자기네 영혼 속 으로 들어가게 한다면 일종의 융합 내지 두 장소 동시 공존 현상 이 일어나는 것이다. 내가 어디에 있든지 내가 있는 곳에 그들을 데려가고, 또한 내가 그들과 함께 남아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딸아, 내 사랑하올 엄마가 내게 어떤 존재였는가를 네가 완전 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땅 위에 내려와서도 하늘이 없 었다면 지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늘이 있었다. 내 엄마가 바로 내 하늘이었다. 내 엄마와 나 사이에는 강한 전류가 흐르고 있었으니, 그분께 서 단 하나의 생각도 내 마음에서 당신께로 끌어당기지 않고 그 냥 놓쳐 버리신 일이 없었을 정도였다. 내 말과 의지와 열망과 행위와 발걸음, 요컨대 내 모든 것을 나에게서 끌어당기는 그 행위가 이 하늘의 태양과 별들과 달을 이 루었고, 동시에 한 피조물이 나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기쁨을 이루 었으며, 이는 그분 자신도 누릴 수 있는 기쁨이었다. 오, 이 하늘 안에서 나는 얼마나 즐거웠는지! 오, 얼마나 큰 위 로와 보상을 모든 것에 대한 보상을 받았는지! 내게 해 주신 엄마의 입맞춤들마저 온 인류의 입맞춤을 포함하고 있어서 그것이 모든 피조물의 입맞춤을 내게 돌려주는 것이었다. 나는 어디서든지 내 다정하신 엄마를 느꼈다. 나 자신의 숨결 속에서 그분을 느꼈으니, 그것이 가쁜 숨결일 때에는 그분께서 고르게 해 주시곤 하였다. 내 마음속에서도 그분 을 느꼈으니, 그것이 쓰디쓴 상태일 때는 그분께서 감미롭게 해 주시곤 하였다. 내 발걸음 속에서도 그분을 느꼈으니, 그것이 지친 발걸음일 때는 그분께서 활기와 안식을 주시곤 하였다. 내 수난 중에도 내가 얼마나 많이 그분을 느꼈는지, 누가 너에 게 말해 줄 수 있으랴? 그 모든 채찍질과 가시들과 상처들마다, 내 피의 모든 방울마다, 도처에서 나는 그분을 느꼈다. 내 참어머 니로서 당신의 소임을 다하고 계신 그분을. 아아, 영혼들이 그렇게 나와 일치한다면, 나에게서 모든 것을

127 끌어당긴다면, 내가 땅에서도 얼마나 많은 하늘들과 어머니들을 가지게 되랴! 79: 상동 제11권 86,14-23 (1915년 2월 8일) 뜻의 일치가 성삼위의 모든 완전성을 이룬다 이는 또한 창조주와 인간 사이를 잇는 첫 연결고리이다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딸아, 우리의 뜻은 서로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일치해 있다. 이 뜻의 일치가 바로 성삼위의 모든 완 전성을 이룬다. 우리가 한뜻으로 있기 때문에 이 균일성에서 거룩 함과 지혜와 아름다움의 균일성, 능력과 사랑 및 우리 존재의 다 른 모든 것의 균일성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서로서로 반영하고, 서로를 바 라보는 데서 오는 만족감이 우리를 완전히 행복하게 할 정도로 크다. 이처럼 우리의 각 위격이 저마다 다른 위격 안에 반영되고, 위 격마다 모든 신적 특성을 다른 위격 안에 쏟아 붓는데, 이 특성들 은 다양한 기쁨의 끝없는 바다들과도 같다. 만일 우리 삼위 사이 에 뭔가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는 완전하지 못한 존재일 것이고, 완전히 행복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을 창조하면서 우리는 우리와 비슷한 모습을 인간 안에 불어넣었다. 우리의 행복으로 인간을 압도하면서 우리의 모 습이 인간 안에 반영되는 즐거움을 누리기 위함이었다. 인간은 그러나 인간과 창조주 사이를 잇는 첫 연결고리, 곧 뜻 의 일치를 끊어 버렸고, 진정한 행복을 잃어버렸다. 더욱이 온갖 악이 인간을 덮쳤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 안에 우리의 모습을 반 영할 수 없고 즐거움을 누릴 수도 없게 된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것 속에서 오직 우리의 뜻을 이루는 영혼 안에서이고, 이런 영혼 안에서만 우리 창조 사 업의 완전한 열매를 즐길 수 있다. 사실 어떤 덕행들을 갖추고 있고 기도를 바치며 제( 諸 ) 성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우리의 뜻에 일치하지 않는 이들 이라면 우리 자신을 그들 안에 반영할 수 없다. 그들의 뜻이 우리 의 뜻과 단절되어 있어서 일체가 무질서하고 전복된 상태로 있기 때문이다. 아, 딸아, 환영받아 마땅한 것은 오직 우리의 뜻뿐이다. 이 뜻 만이 질서를 회복시키고 인간을 행복하게 하며 그 자신과 함께 모 든 선을 가져오는 까닭이다. 그러니 너는 언제나 모든 일 속에서 내 뜻을 행하고, 다른 것 에 대해서는 아무 신경도 쓰지 마라.

128 80: 요한 15,13 가장 큰 사랑 (예수님)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 은 없다. 81의 ⓵: 천상의 책 제8권 29,4-8 (1908년 3월 15일) 하느님으로 가득 찬 이는 폭풍이 닥쳐도 심해처럼 평온하다 그렇지 않은 이는 물이 얕은 여울처럼 폭풍에 온통 뒤흔들린다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딸아, 공연히 걱정할 것 없다. 바다 에 폭풍이 밀어닥칠 때 그것이 사나운 기세를 떨치는 것은 바다 깊은 곳이 아니라 수면 쪽일 뿐이다. 심해는 더할 수 없이 고요하 고 물이 잔잔해서 폭풍을 감지한 물고기들은 깃들일 곳을 찾아 점점 더 깊이 내려간다. 깊을수록 더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폭풍이 세력을 온전히 떨치는 곳은 바닷물의 양이 매우 적은 곳이 다. 물이 적기 때문에 수면에서 밑바닥까지 통째로 뒤흔들뿐더러 바다의 다른 지점들에도 뻗어갈 힘이 있는 것이다. 사람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하느님으로 가득 차서 밖으로 넘 쳐흐를 정도가 될 때면 폭풍은 그들을 뒤흔들 힘이 조금도 없다. 하느님과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이란 없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표 면적으로 그것이 느껴질 따름이다. 더군다나 그런 영혼이 폭풍을 감지하면 덕행들을 정연하게 배치하면서 하느님의 가장 깊은 곳으 로 가서 둥지를 튼다. 그러므로 외견상 폭풍이 일어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전혀 그렇 지 않다. 그럴 때 오히려 바다의 품속에 있는 물고기들과 같이 하 느님의 품속에서 더 큰 평화와 안식과 고요를 누리는 것이다. 하느님을 전혀 소유하지 않거나 조금밖에 소유하지 않은 사람 들에게는 이와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난다. 폭풍이 그들을 온통 뒤 흔들어 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조금 소유한 이들은 그 조금마저 몽땅 잃고 만다. 사실, 이런 이들을 뒤흔드는 데에는 강 력한 폭풍이 필요하지도 않다. 아주 약한 바람도 그들에게서 덕행 들을 다 날려 버리기에 넉넉한 것이다. 더군다나 앞서 말한 저 영혼들에게는 거룩한 일들이 기름진 목 장처럼 되어 그 안에서 한껏 영양을 취하며 즐기건만, 이 영혼들 에게는 그 거룩한 일들마저 폭풍으로 변질되고 만다. 이들은 말하 자면 온갖 종류의 바람에 두들겨 맞는 것이다. 그러니 사방 어느 쪽에서도 깊은 고요를 만나지 못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하느님이 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곳에는 평화라는 유산이 있을 수 없기 때 문이다.

129 81의 ⓶: 상동 제12권 17,2-4 (1917년 8월 6일) 더할 수 없이 드센 폭풍 속에서도 행복한 영혼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딸아, 힘내고, 지나치게 낙담하지 마라. 더할 수 없이 드센 폭풍 속에서도 내 뜻은 영혼을 행복하게 한다. 그런데다 영혼이 아주 높이 올라가 있기 때문에, 비록 폭 풍의 모습이 보이고 소리가 들릴지라도, 폭풍은 그를 건드릴 수 없다. 영혼이 머물러 있는 곳은 폭풍의 지배를 받지 않는, 언제나 고 요하고 태양이 빛나는 곳이다. 영혼의 기원이 하늘에 있고 그의 고귀함은 신적인 것이며 그의 거룩함은 하느님 안에 있기 때문이 니, 여기에서 그는 하느님 자신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나는 내 뜻 안에서 사는 영혼의 거룩함을 세심히 지키며 내 마 음 가장 깊은 곳에 간직한 채, 아무도 이 영혼에 손댈 수 없다. 내 뜻은 만질 수 없고 거룩한 것이니 누구든지 이를 공경해야 한 다. 하고 말한다. 82의 ⓵: 상동 제7권 63,2-5 (1906년 11월 9일)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끊임없는 묵상은 예수님을 기쁘게 함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딸아, 내 수난에 대하여 끊임없이 묵 상하며 가슴 아파 하고 나를 측은히 여기는 사람은 내 마음을 무 척 기쁘게 하기에 내가 수난의 전 과정을 통해 겪었던 모든 것에 대해서 위로를 받는 느낌이 된다. 그리고 언제나 그것을 묵상함으 로 인해 영혼은 늘 음식을 마련할 수 있게 되는데, 이 음식에는 여러 가지 양념과 맛이 있어서 다양한 효과를 낸다. 이를테면, 내 수난 중에 저들은 밧줄과 사슬로 나를 묶었지만 이 영혼은 나를 풀어 자유롭게 해 주고, 저들은 나를 업신여기며 침을 뱉고 모욕했지만 이 영혼은 내게 감사하며 침을 깨끗이 씻어 주고 나를 공경한다. 또한, 저들은 내게 가시관을 씌우며 왕이라고 놀리고 내 입에 쓸개즙을 갖다 대며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이 영혼은 나의 모든 고통을 묵상하면서 내게 영광과 영예의 관을 씌워 자기의 왕 으로 공경하고, 내 입 안 가득 단맛이 퍼지도록 더없이 맛있는 음 식을 먹여 준다. 이 음식은 바로 나 자신의 업적에 대한 기억이거니와, 그러고 나서 이 영혼은 내게 박힌 못을 뽑고 십자가에서 나를 빼내어 자 기의 마음 안에서 부활하게 한다. 그리고 그 영혼이 그렇게 할 때마다 나는 그에게 은총의 새 생 명을 상급으로 준다. 그런 영혼이 나의 음식이고 나 역시 그의 지 속적인 음식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나를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은

130 끊임없이 내 수난에 대하여 묵상하는 일이다. 82의 ⓶: 상동 제11권 81,2-5 (1914년 11월 4일) 수난의 시간들 기도를 반복해야 하는 이유 하지만 내가 너에게 새로운 빛과 새로운 은총으로 풍부하게 보 답해 주리라는 점도 알아 두어라. 네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사람 들이 땅에서 내 수난의 시간들 을 바칠 때마다 내가 하늘에 있는 너를 늘 새로운 빛과 영광으로 옷 입혀 줄 작정이다. (루이사) 수난의 시간들 기도를 바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매 우 기뻐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네가 내 수난의 시간들 을 반복하는 것을 보면서 느끼 는 내 기쁨이 얼마나 큰지 네가 알면 참 좋겠다. 게다가 너도 늘 이 기도를 반복하다 보면 기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사실, 내 성인들은 내 수난을 묵상하면서 내가 얼마나 극심한 고난을 받았는지를 깨달았고, 너무나 측은해서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였으며, 내 고통에 대한 사랑으로 온 몸이 불타는 듯한 체험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이 기도처럼 순서에 따라 지속적으로 반복된 것 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너야말로 내 생애와 내가 겪은 것의 편린 ( 片 鱗 )들을 시시각각 너 자신 안에 보존함으로써 이리도 크고 특 별한 기쁨을 내게 주는 첫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너에게 나는 매우 강하게 끌림을 느끼기에 시시각각 그것 을 음식으로 주고, 같은 음식을 너와 함께 먹으며, 네가 하는 일 을 함께 한다. 82의 ⓷: 상동 제11권 82,2-8 (1914년 11월 6일) 이 기도를 바치는 이들과 접촉하면 못들이 뽑히고 가시들이 흩어져 사라지며 상처들이 아물고 침이 다 닦인 느낌이 든다.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딸아, 세상은 내 수난을 초래한 행 위들을 끊임없이 새로이 하고 있다. 나의 무한성은 인간 안팎의 모든 것을 휩싸고 있기에 이들과의 접촉으로 말미암아 내가 수난 중에 겪은 것들, 곧 못질과 가시관과 채찍질과 멸시와 침 뱉음과 여타 모든 것을 다시 겪지 않을 수 없으며, 그것도 그때보다 한층 더 심하게 겪고 있다. 그런데 이 수난의 시간들 기도를 실행하고 있는 영혼들과 접 촉하면 못들이 뽑히고 가시들이 흩어져 사라지며 상처들이 아물고 침이 다 닦인 느낌이 든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내게 저지르는 악이 선으로 보상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나는 그들과의 접촉이 나를 해치기는커녕 도움이 된다는 것을

131 알기 때문에 내 수난의 시간들 로 기도하는 사람들을 언제나 더 욱더 의지하게 된다. 이 밖에도 복되신 예수님은 이 수난의 시간들 에 대하여 또 이 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영혼이 이 시간들 을 실행하면 나의 생 각을 취하여 자기 것으로 삼게 된다. 나의 보속과 기도와 열망과 애정을, 심지어 내 가장 내적인 기질까지도 자기의 것으로 삼게 된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 사이에 우뚝 서서 나와 같은 사명을 수행 한다. 공동 구속자로서, 나와 함께, 하느님, 당신 뜻을 이루려고 제가 왔으니, 저를 보내 주십시오(Ecce ego, mitte me).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당신께 보상하며 응답하고, 모든 사람의 선익을 위하여 당신께 간구하나이다. 하고 말한다. 83: 상동 제11권 86,1-6 (1915년 2월 8일) 자기를 잊고 영혼들의 구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하지 않고 자기 걱정만 하는 나약한 영혼들의 미숙한 치기( 稚 氣 ) 이다. 이런 영혼들은 마땅히 해야 할 일보다는 제 기분이 어떤가를 생각하는 이들이니 내게 인간적인 냄새를 풍기고, 따라서 내가 믿 을 수 없는 이들이다. 너에게서 내가 기대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고, 자기를 잊고 오직 내 걱정만 하면서 나와 일치하여 내 자녀들의 구원을 위해 전념하는 영혼들의 장한 기백이다. 악마가 온갖 속임수를 쓰면서 내게서 자녀들을 앗아 가려고 기를 쓰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암담하고 때로는 비참한 이 시대 에 적응하면서 피조물의 무분별을 놓고 나와 함께 기도하며 울 일 이니, 나의 전 생명이 너를 가득 채우도록 네 생명은 사라져야 한다. 이와 같이 하면 내가 네 안에서 내 신성의 향기를 맡게 될 것 이고, 이 통탄할 시대에도 너를 믿을 수 있을 것이다. (루이사)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나를 대하시는 방식으로 인해 무척 괴로운 나날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 신 뜻에 온전히 맡기고 있는 중이다. 그분의 부재와 침묵을 두고 내가 우는소리를 하면 이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그런 것은, 내 걱정은

루이사 피카레타의 저술에 의거하여 그림과 함께 알기 쉽게 풀어 쓴 하느님의 뜻 영성 입문서 (청소년용 후편) 하느님 뜻의 끝없는 바다에 녹아든 한 방울의 물 이야기Ⅱ 발행일 2014년 9월 8일 펴낸곳 하느님의 뜻 영성 봉사회 취급처 하느님의 뜻 영성 봉사회, 불모임 교재 연구실 주소 서울 중구 명동길 74(명동2가) 가톨릭회관 315호 Tel 02)2272-5336 Fax 02)2275-4336 E-mail bulmoim@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