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2006 _ Vol 76 등록번호 11-1370132-000057-06 ISSN 1739-9599 The National Center for Korean Traditional Performing Arts www.ncktpa.go.kr 2006.08 MONTHLY MAGAZINE
<국악누리>는 그동안 국립국악원 계간지로 발행되었던 <국악소식>이 보다 참신하고 알찬 내용으로 거듭난 월간지이다. 1989년 1월 계간지로 시작된 <국악소식>은 지난 20여년 가까이 국악원내의 공연, 교육 및 연구사업에 관한 내용과 국악계 의 동향을 다루며 전통예술의 우수성을 알리는 역할을 해 왔다. 국악원은 새로운 문화의 세기를 선도할 수 있는 전통음악 지로서의 위상을 담아 보다 다양하고 많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하여 기존의 계간지를 월간지로 탈바꿈시키면서 새로운 마음 가짐으로 <국악누리>를 발간하게 되었다. <국악누리>는 온 누리(세상)에 우리 민족의 정신이요 고유한 무형유산인 국악이 퍼져 나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매월 국악을 아끼며 사랑하는 이들을 찾아갈 것이다. 목차 _ CONTENTS 04 2006년 8월 공연일정 06 공연 미리보기 _ 2006 국립국악원 청소년 특별공연 청소년을 위한 여름 야외 축제 08 공연 미리보기 _ 2006 국립국악원 상설공연 10 여름 특별기획 _ 조상들의 더위 달래기, 부채이야기 12 여름 특별기획 _ 한번쯤은 꼭 가고 싶은 곳, 정선의 구미정 14 국립국악원 _ 2010년 상해 엑스포 개최기념 상해 항주 공연 16 국립민속국악원 _ 박물관 음악회 깨비 깨비 도깨비 17 국립남도국악원 _ 남도국악방송 FM 94.7MHz 개국 18 악기연구소 들여다보기 _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한 악기 연구 20 국악박물관 둘러보기 _ 이왕직아악부의 명인과 명기Ⅰ 장인식과 거문고 22 국악방송 탐방 _ 박상언의 문화사랑방 24 영화로 간 국악 _ 월하의 공동묘지 가야금이 무섭다고? 26 국악기 _ 북한의 개량 관악기 28 전통건축 _ 창녕 관룡사 바위는 극락이며 절집은 우주 32 국악원의 발자취 _ 연주단 이야기로 엮는 국립국악원의 역사 표지그림 설명 _ 모당평생도 김홍도, <모당평생도> 중 <송도유수도임식> 1781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평생도 平 生 圖 는 조선 관리의 일생을 8폭이나 10폭에 나누어 그린 것을 이른다. 김홍도는 34세 때인 1781년에 모당 홍이상 洪 履 祥 의 일생을 8폭의 <모당평생도>에 담았다. 제5면에 해당하는 <송도유 수도임식>은 음악과 춤이 등장하는 그림으로 모당 홍이상이 송도 유수로 부임하는 장면을 담았다. + 더보기_ 42page 등록번호 11-1370132-000057-06 발행처 국립국악원 발행인 김철호 편집인 이영우 편집팀장 박옥진 편집 진행 김혜선 배윤아 박성범 박문희 김재영 전규학 주소 서울특별 시 서초구 서초3동 700번지 국립국악원 기획홍보팀 (우) 137-073 전화 02-580-3397 팩 스 02-580-3395 홈페이지 www.ncktpa.go.kr 디자인 (주)에스앤에이커뮤니케이션즈 인쇄 미르인쇄 <국악누리>는 국립국악원 홈페이지 www.ncktpa.go.kr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에 실린 글의 내용의 일부는 우리원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34 우리문화 우리음악 _ 경기 이북의 재인촌 사람들을 아십니까? 38 예인조명 _ 포장극장의 소년 신동, 김운태 金 雲 泰 42 풍속화 _ 모당평생도 음악으로 축복받는 벼슬자리 46 이달의도서 47 이달의음반 48 국악원 소식 50 국악원 밖 소식 3
공연일정 아래의 일정은 주최측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국립국악원 예악당 국립국악원 우면당 국립국악원 별맞이터 국립민속국악원 예원당 국립남도국악원 진악당 일요일 월요일 화요일 국립국악원에서는 일상에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국 악생활음악을 보급하고 있습 니다. 2006 국립국악원 일요열린 국악무대 우면산자락 초록음악회 19:00 문의 02-580-3300 06 풍경이 있는 소리 제8회 정기연주회 17:00 문의 02-529-9019 경기청소년국악실내악단 느티나무 2006 18:00 문의 031-382-5158 13 소리여울 정기공연 천년의 만남 그 두번째 17:00 문의 02-741-4002 01 07 08 14 15 국립국악원 인터넷 홈페이지 www.ncktpa.go.kr를 통해 무료로 다운로드 받으실 수 있습니다. 휴대폰 벨소리 다양한 용도의 신호음악 애국가 등 의식음악 웰빙음악 등 생활기능음악 20 21 22 제8회 윤봉길의사 추모 음악제 19:30 문의 02-577-9932 제493회 화요상설공연19:30 문의 02-580-3300 27 28 29 4 2006 August Vol.76
2006.08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여성국극 견우와직녀 19:30 문의 02-741-1535 02 여성국극 견우와직녀 19:30 문의 02-741-1535 한불수교 120주년 기념 진보음악콘서트 19:30 문의 02-364-8031 여성국극 견우와직녀 19:30 문의 02-741-1535 국립남도국악원 하계특별공연 19:00 문의 061-540-4033 03 04 05 입추 秋 절기공연 우리가락, 우리 춤 19:00 문의 061-540-4033 토요상설공연 17:00 문의 02-580-3300 토요상설공연 17:00 문의 02-580-3300 2006 서울 가야금 경연대회 10:00 문의 02-581-9712 2006 국립국악원 청소년 특별공연 청소년을 위한 여름 야외축제 19:00 문의 02-580-3300 이춘식 회갑기념 연주회 17:00 문의 011-233-5203 다시 듣는 북녘땅 우리소리 19:30 문의 019-324-9820 09 10 11 12 2006 서울 가야금 경연대회 10:00 문의 02-581-9712 2006 국립국악원 청소년 특별공연 청소년을 위한 여름 야외축제 19:00 문의 02-580-3300 16 17 18 19 2006 온누리비전 국악앙상블 정기공연 19:30 문의 017-626-2848 23 24 25 26 제2회 한국생황연구회 정기연주회 19:30 문의 017-237-7328 제277회 목요상설공연 19:30 문의 02-580-3300 30 31 정대석의 거문고 독주회 19:30 문의 011-753-7339 2006 국립국악원 청소년 특별공연 청소년을 위한 여름 야외축제 19:00 문의 02-580-3300 해외동포 2세들의 전통한마당 19:00 문의 061-540-4033 조주희 해금독주회 19:30 문의 011-9872-0748 이회여자대학교국악과초청공연 19:00 문의 061-540-4033 토요상설공연 17:00 문의 02-580-3300 2006 국립국악원 판소리 한마당 가족이 함께하는 소리마당 20:00 문의 02-580-3300 토요상설공연 17:00 문의 02-580-3300 제1회 이경진의 춤 17:00 문의 010-4758-2848 5
공연 미리보기 2006 국립국악원 청소년 특별공연 청소년을 위한 여름 야외축제 1,500석의 국립국악원 별맞이터를 가득 채운 청소년들, 국악을 전혀 모른다는 그들이 국립국악원 별맞이터를 찾은 까닭은? 매년 여름, 국립국악원은 방학을 맞이한 청소년들에게 우리 전통예술 의 다양한 층위를 선보이고자 특별공연을 열고 있다. 해마다 국립국악원 별맞이터를 가득 채우는 중고교생들. 이들 중 대다수는 여름방학 숙제를 하기 위해 모였을지도 모른다. 그러 나 동기가 무엇이었건 처음엔 다소 무심해 보이던 학생들도 공연이 점차 진행될수록, 그 눈 빛이 살아나면서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답답한 실내공연장이 아닌 저녁바람 시원한 별맞이터에서 만나는 다양한 전통예술의 세계! 따분하기만 할 것이라는 청소년들의 예상과는 달리 그 안에 담긴 우리 선조들의 멋들어진 풍류와 예술에 놀라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도 슬며시 비춰볼 수도 있기에 어느덧 자연스럽게 빠져드는 것은 아닐까. 6 2006 August Vol.76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시원한 우면산 바람을 맞으며, 깊고도 넓은 전통음악의 바다를 만나보자! 올해의 국립국악원 청소년 특별공연에서는 품위 있는 궁중음악과 궁중무용에 서부터 교과서에 수록된 대표적인 민요를 기악곡으로 감상하고 익히며, 소리꾼과 함께 목청 껏 불러 볼 수도 있다. 우리 친구들의 눈높이에 맞춘 다양한 실내악곡과 노래, 누구나 공감 할만한 10대들의 이야기인 창작 판소리 그리고 신명나는 전통연희로 구성된다. 평소 쉽게 볼 수 없기에 신선하지만 우리 것이기에 친근한 내용이 가득한 것이다. 국립국악원 청소년을 위한 특별공연을 보려고 마음먹었다면, 조금 서두르기를 권한다. 본격적인 공연에 앞서 즐길 것들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국립국악원 정악단 민속악 단 무용단 창작악단이 꾸리는 본 공연의 알찬 구성뿐만 아니라 축제 라는 이름에 걸맞 는 여러 가지 판도 벌인다. 국립국악원 예악당 앞에 새롭게 조성된 잔디마당에서는 청소년 동아리들이 문화마당을 펼친다. 서울문화재단의 예술지원사업으로 진행 중인 청소년 문화 벤처단에 선발된 단체 중 탈춤과 풍물 등 전통예술 동아리들이 참여하여 또래들을 위한 잔 치를 공연 전에 자유롭게 펼친다. 한편, 같은 시간 예악당 로비에 설치된 컴퓨터를 통해서는 국립국악원이 만든 핸드폰 벨소리를 무료로 제공한다. 이 날 국립국악원 홈페이지를 통해 국악 핸드폰 벨소리 를 내려받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추후에 추첨하여 도서와 악기 등 특별한 선물도 증정한 다. 어둑어둑 해가 질 무렵, 국립국악원 야외 공연장인 별맞이터에서 시작되는 청소년을 위한 여름 야외축제 ~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시원한 우면산 바람을 맞으며, 깊고도 넓은 전통음악의 바다를 만날 수 있는 잊지 못할 시간이 될 것이다. 일시 2006년 8월 16일 수 ~ 18일 금 오후 7시 장소 국립국악원 별맞이터 관람료 5,000원 출연 국립국악원 정악단 민속악단 무용단 창작악단 외 문의 예매 국립국악원 02-580-3300 티켓링크 1588-7890 공연 내용 행진음악 <대취타> 궁중무용 <처용보등무합설> 민속음악 <아리랑 연곡> 교과서에 실린 우리민요 배우기 <밀양 아리랑> 실내악 <Flowers of K>, <동해바다>, <여름새벽> 창작 판소리 <10대 애로가> 전통연희 <택견과 풍물> 축제 마당 또래 문화 마당18:00~18:30 잔디광장 청소년 전통예술 동아리의 무대 (청소년 문화벤처단 - 탈바라기, 웃도드리) 선물마당18:00~18:30 예악당 로비 국립국악원이 만든 핸드폰 벨소리 내려받기 무료 제공 벨소리 내려받기 행사에 참여한 청소년 중 추첨하여, 국립남도국악원이 엮은 도서 ( 쌍계사 음악기행, 선암사 음악기행 중 택일)와 우리악기 단소 를 드립니다. 7
공연 미리보기 2006 국립국악원 상설공연 화요상설공연 예혼이 숨쉬는 공간 판소리 한마당 소릿길 소리사랑 화요상설공연은 중요무형문화재 전통음악ㆍ무용 부문의 보유 자 및 이수자, 전수자들의 발표 무대로 1979년부터 우리전통 예술의 진흥과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시작되었다. 지난 2003년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세계인의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된 판소리. 국립국악원에서는 매년 판소리 만을 위한 무대 판소리 한마당 을 선보인다. 김미래의 춤 제493회 8월 29일 화 제천무, 춘앵전, 태평무, 승무, 지전씻김굿, 살풀이, 물동이 춤, 장고춤 목요상설공연 젊은감성 열린공간 미래지향적인 한국전통예술의 개발 및 활성화를 위하여 창작 위 주의 악ㆍ가ㆍ무 공연을 선보이고 있는 목요상설공연은 젊은 층 의 기호에 맞는 창작 작품으로 꾸며지고 있다. 문현의 창작시조음악회 시조, 도시를 걷다 Ⅱ 제277회 8월 31일 목 13일에 황성호 곡, 시대병 환자 박 정규 곡, 아침안개 류형선 곡, 선산 을 지키네 류형선 곡, 달시조, 가사 백구사, 피아노 반주의 남창가곡 중 언 롱 이태백의 테너 서동일 피아노 안진실, 전통가곡과 전자음향을 위한 심상 가곡 황성호 곡, 가곡 윤이상 곡, 지구공전 이승순 작시 마쯔다이라 작곡 등 가족이 함께하는 소리마당 - 옛날이야기와 애니판소리 그동안 지역명창전 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꾸며졌던 판소리 한마당은 8 월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애니판소리와 모노 소리극을 중심으로 한 기획 공연 가족이 함께하는 소리마당 을 선보인다. 애니판소리는 재미있는 한국 전통 설화를 담은 애니메이션에 판소리를 입힌 것으로 판소리뮤지컬을 보는 것과 같은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또한 모노 소리극 호랑이를 만난 놀부 는 우리 전래동화에 판소리, 민요, 탈춤을 가미하여 아이들이 보다 다양한 장르의 국악과 친해질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1부 심청가 심청이 임당수 가는 대목부터 소리 김수연, 유미리 2부 고전과 애니메이션, 그리고 판소리의 만남 비가비 명창 권삼득 작사 김상규, 작창 최용석, 소리 윤제원 꼭두쇠 여인 바우덕이 작사 김은경, 작창 남상일, 소리 김경현 너무도 못생긴 춘향 작사 김은경, 작창 남상일, 소리 남상일 3부 모노 소리극 호랑이 만난 놀부 극본/연출 이덕인 일 시 2006년 8월 29일 화, 31일 목 오후 7시 30분 장 소 국립국악원 우면당 관 람 료 일반 8,000원, 할인 4,000원 24세이하, 65세 이상 경로 및 동반자 1인, 장애인 및 동반자 2인 50% 할인 문의 예매 국립국악원 02-580-3300, 티켓링크 1588-7890 일 시 2006년 8월 19일 토 오후 8시 장 소 국립국악원 별맞이터 문 의 국립국악원 02-580-3300 국립국악원을 찾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우천시 예악당에서 공연됩니다. 8 2006 August Vol.76
토요상설공연 우리 음악 우리 춤으로 가꾸는 넉넉한 주말 문화 우면산자락 초록음악회 일요열린 국악무대 토요상설공연은 청소년부터 일반인, 외국인에 이르기까지 국악을 쉽 게 접할 수 있도록 구성, 전통에서 창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우리 음악과 무용을 한 무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우면산자락 초록음악회는 5월부터 10월까지 우면산의 신록이 옷을 갈아입는 계절의 변화로 야외공연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싱그러운 공 기, 바람, 풀내음, 그리고 우리 음악을 만끽할 수 있는 무대이다. 8월 5일 토 종묘제례악 전폐희문, 영 관, 25현금과 대금을 위한 메나리 작곡 박범훈, 시나위, 가사 황계사, 두 대의 가야금과 현악합주를 위한 저녁노래Ⅳ 작곡 이건용, 판소리 심청가, 장구춤 8월 12일 토 푸살, 화운 작곡 한광수, 헌천화 영 산회상 中 세영산, 가락덜이, 상현도드 리, 남도민요 흥타령, 가사 상사별곡, 작법 8월 19일 토 대취타, 대금독주 경풍년, 봉산탈춤, 서도민요 긴난봉가, 자진난 봉가, 병신난봉가, 사설난봉가, 생황 단소 이중주 수룡음, 천장 작곡 원일, 서용 석류 대금산조협주곡편곡 김희조 더위야 물렀거라 국악타악기가 총출동하여 한여름밤의 열대야를 떨칠 시원~한 타악 공연무대 한여름밤, 열대야를 피해 어디로 갈까? 우면산자락 맑은 자연 속에서 우리 음악과 함께 할 수 있는 열린 공간, 별맞이터에서 국악 타악기들이 펼치는 시원~한 무대가 기다리고 있다. 공연사회_김용우 소리꾼 행진음악 대취타 국립국악원 정악단 8월 26일 토 길군악, 길타령, 별우조타령, 군악, 서도잡가 초한가, 현악 3중주 도드리, 처용무, 가야금병창 장부가, 수궁가 中 관대장자, 정취 작곡 백병동, 사물놀이 실내악 판놀음 '너영나영' 통일아리랑 김용우&국립국악 원 창작악단 타악합주 사물과 북모듬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사물놀이 무용 장구춤 국립국악원 무용단 모듬북 마당연주 TAO' 들소리 타악퍼포먼스 타 타 타 전통타악연구소 일 시 2006년 8월 매주 토요일 오후 5시 장 소 국립국악원 예악당 관 람 료 A석 10,000원, B석 8,000원 24세이하, 65세 이상 경로 및 동반자 1인, 장애인 및 동반자 2인 50% 할인 문의 예매 국립국악원 02-580-3300, 티켓링크 1588-7890 일 시 2006년 8월 6일 일 오후 8시 장 소 국립국악원 별맞이터 문 의 국립국악원 02-580-3300 국립국악원을 찾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우천시 예악당에서 공연됩니다. 9
여름 특별기획 선조들의 여름나기 조상들의 더위 달래기, 부채이야기 위에서부터순서대로 사한제 채빙 장빙 글 장장식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 금년도엔 왜 얼음 배급량이 적소? 매일 날씨가 이렇듯 기승을 부리니, 얼음 나가는 곳이 많은 탓이오. 양해해 주시오. 저쪽은 우리보다 많지 않소. 그 곳은 관원이 많기 때문이오. 괜한 트집 잡지 마오. 장빙고의 얼음 배급을 두고 장빙고 관리와 빙표 氷 票 를 들고 찾아온 관리 사이에 일어남 직한 일을 가상해 그려본 것이다. 장빙고 藏 氷 庫 는 얼음을 보관하는 창고를 가리키는데, 서울에는 동빙고와 서빙고가 유명했다. 겨울철에 강에서 얼음을 채취하여 저장창고 인 석빙고에 저장했다가 이듬해 여름철에 꺼내어 썼던 풍습이다. 강 얼음을 잘라 보 관하던 이른바 장빙 藏 氷 제도는 신라 지증왕 6년 505 부터 1898년까지 운용된 긴 역사를 지녔다. 당연히 얼음을 떼어 보관하던 일에 상당한 인력이 차출되었고, 이 때문에 더 러는 얼음 부역을 피해 이사하는 일까지 생겼다. 서울 뿐만 아니라 여러 지방에서도 얼음을 보관하여 임금께 진상하기도 했고, 지역 특산품을 조정으로 운송할 때 장빙고 의 얼음을 냉장재로 쓰기도 했다. 얼음이 귀했기에 겨울철 추위를 기원하는 사한제를 지내기까지 했다. 현대의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일어난 일이었으니, 얼음은 그만큼 귀한 물품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귀한 얼음을 신하들에게 나눠주는 일이었으니, 분 량의 많고 적음에 따라 시비도 일어났으리라. 10 2006 July Vol.75
무더운 여름, 한여름의 날들을 조상들은 어떻게 이겨냈을까. 관에서 지급된 얼음 이야 일반 백성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 이니, 가장 일반적인 피서는 탁족 濯 足 이제 격이었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의 그늘 진 곳을 찾아 온갖 음식과 과일을 갖추어 발을 담그고 소일할 때 천하 없는 복더위 까지도 물러설 수밖에 없으리라. 하지만 세상일이 바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 지다. 그늘진 청량한 곳에 앉아 부채를 들 고 바람을 얻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피서 법이 아닐 수 없다. 더위 달래기 이야기를 하는 데 부채를 꺼내 든 것은 부채야말로 가장 오래된 피서법인 탓이다. 권위를 상징하는부채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인 부채는 옛날로 거슬러 갈수록 선풍 扇 風 보다는 권위와 위엄 을 드러내는 장엄용인 것 같다. 물론 발굴된 유물의 정황을 들어 판단하고, 각종 기록에 등장하는 부채 선물 관습에서도 그렇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왕의 부채로 알 려진 부채가 있다. 이집트 투탄카멘 왕의 묘실에서 발견된 부채인데, 부채의 손잡 이가 황금으로 된 타조깃털 부채이다. 이 쯤 되면 더위를 쫓는 부채라기보다 왕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한 의장용임이 분명하 다. 마찬가지로 우리 나라의 최고 最 古 부채 도 의장용으로 추정된다. 경남 차원 다호 리에서 출토된 부채 2점이 있는데, 아마도 묘주 墓 主 가 생전에 쥐었던 것이 아닌가 한 다. 다호리 유적은 원삼국시대 초기의 것 으로 추정되는 분묘인데, 각종 무기와 함 께 부채가 출토되었다. 부채의 전체 길이 가 무려 33.6센티나 되고, 깃털을 꽂게끔 13개의 구멍이 뚫린 부채이다. 비록 새깃 털은 삭아 없어졌지만 이런 부채를 들었 다는 것은 묘주의 위상이 컸음을 뜻한다. 가장 오래된 부채 그림도 무덤에서 찾을 수 있다. 황해도 안악군에 소재한 안악3호 고분에는 무덤그림이 있는데, 묘주가 깃 털로 만든 부채를 들고 있다. 永 和 13년 10월 이라는 명문으로 보아 357년에 조성 된 무덤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예로 든 부채의 주인공들이 왕이 거나 상당한 실력자임을 감안할 때, 부채 가 권위를 상징하는 장엄용임이 더욱 분 명해진다. 그래서일까, <삼국사기>에는 고려의 태조가 즉위하자 후백제 견훤이 공작선을 축하의 선물로 보냈다 고적고 있다. 많은 선물 가운데 공작선을 보냈다 는 것은 공작이 귀한 새이기도 하지만 귀 한 새깃털로 장식한 부채야말로 황제의 지위에 걸맞은 선물이었음을 암시하는 것 은 아닐까 한다. 부채 중의 으뜸, 접부채 부채는 형태별로 방구부채 쥘부채가 있 고, 재료별로도 여럿이다.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온갖 것을 재료로 삼아 부채를 만 들어 썼다는 말인데, 주목할 만한 것은 우 리만의 것이라 할 수 있는 접부채이다. 송나라 휘종이 고려에 국신사 國 信 使 를보낼 때서긍 徐 兢 이라는 사람이 수행했는데, 송 도에서 보고 들은 것에 그림을 곁들여서 <선화봉사 고려도경>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에 고려인들은 한겨울에도 부채를 들고 다니는데, 접었다 폈다 하는 신기한 것이다. 고 적고 있다. 꽤나 인상적이었기 에 목격담을 기록한 것인데, 기록 내용으 로 보아 선풍용이 아니라 호사치레와 같 은 장신구 구실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런 류의 접부채가 중국에는 없었다는 점 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사신들은 고려 에 올 적마다 접부채에 그림이나 글씨를 넣은 서화선 하나를 얻는 것을 기쁨으로 삼았고, 마침내 중국에 수출까지 했다 한 다. 그리고 중국과 일본에 기술이 이전되 기도 했다. 이쯤 되면 우리의 접부채야말 로 우리의 독창성이 가장 발휘된 발명품 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소리꾼들은 으레 접부채를 든다. 폈다 접 었다 하면서 여러 장면을 극대화한다. 물 론 더위를 쫓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무 더운 여름에 부채 하나를 마련하여 소리 꾼처럼 쥐락펴락한다면 우아한 고전풍을 더하며 더위도 쫓고, 옛 사람이 내세웠던 멋치레를 할 수 있으리라. 이런 점에서 부 채는 여름나기의 으뜸이다. 11
여름 특별기획 추천! 여름 여행지 이번 여름에는 꼭 한번 떠나보자. 바다를 찾아도 좋고, 산과 계곡을 찾아도 좋다. 그러나 잠시 짬을 내어 이 곳을 찾는다면 고풍스러운 멋진 여행이 될 것이다. 풍광이 있어 좋고, 전통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곳, 그러면서도 인생을 새길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이런 조건을 갖춘 곳이 바로 아라리의 고향, 정선 임계 면 봉산리 골미천변에 우뚝 선 구미정 九 美 亭 이다. 한번쯤은꼭가고싶은곳, 정선의 구미정 글 장장식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 익히 아는 바처럼 행세깨나 하는 반촌에서는 기와를 얹은 누정문화가 발달하고, 힘없고 이름없는 농투성이들은 띠를 이은 모정 茅 亭 을 발달시켰 다. 그렇기에 기와와 볏단이 드러내는 겉모습에 이미 양쪽의 이념과 삶의 농도가 짙게 똬리를 틀고 있다. 누정을 보려면 영남 쪽으로 여행하는 것이 좋고, 모정의 맛을 느끼려면 호남으로 내려가는 것이 낫다. 그만큼 조선조 계층간에 이루어졌던 문 화 차이가 영호남을 무대로 뚜렷이 나타난다. 누정 하면, 서울의 세검정이나 광주의 청풍루도 빼어나고, 봉화의 천간정도 좋다. 여주의 청심루 나 파주의 화석정 花 石 亭, 안동의 영호루 映 湖 樓 도 이름나 있고, 의성의 문소루, 전주의 진남루, 제주의 관덕정 등도 빼놓을 수 없다. 모정은 주로 논밭 가운데 있다. 농사를 짓는 데 필요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단칸이기도 하고 여러 칸 넓이를 지니기도 하나 자연히 단촐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처마가 기와지붕처럼 날카롭지 않고 귀도 뾰족하지 않게끔 둥글게 궁굴린다. 이를 방구매기법 이라 한다. 방구매기법이 얼 12 2006 August Vol.76
마나 예뻤는지 기와집을 지으면서 이를 흉내내기도 한다. 청도 선암서당의 득월 정 得 月 亭 이나 달성의 하목정 霞 鶩 亭 이바로그 렇다. 백성의 문화를 양반이 베꼈다는 점 에서 높은 데서 낮은 데로 옮아간다는 문 화전파의 특성상 드문 사례일 성 싶다. 골지천에 우뚝 솟은 구미정, 아홉 가지의 아름다움 구미정을 이야기하는 데 말이 길어졌다. 또 그 많은 누정을 글로 담기엔 시간이 없 다. 그래서 정선 땅의 빼어난 누정을 그리 면서 꼭 한번쯤은 가고 싶은 곳으로 추천 하고 싶다. 남한강 상류에 있는 정선. 정선을 가로지 르는 아우라지를 지나 임계에서 흘러내려 오는 물을 좇아가면 이름도 특이한 골지 천이 나온다. 골지천은 곧이곧대로 하면 백두대간의 허리뼈에서 흘러나오는 진액 을 담고 흐르는 냇물이 된다. 그런 까닭에 이름처럼 아직도 속세의 때가 묻지 않은 원시적 풍광을 맛볼 수 있어 고맙다. 그풍광속에우뚝솟은구미정. 아홉가지 아름다움을 자랑하기에 구미 九 美 라했다. 조선 숙종 때 공조참의를 역임하던 노론 파의 이자가 당파 싸움에 실망과 회의를 느껴 관직을 사직하고 정선에 내려와 은 거생활을 하면서 만든 누정이다. 집마당 에는 수고당을 세우고 문집 편찬으로 소 일하다가 골지천변에 세운 구미정에 나서 풍광을 즐기며 한시를 읊조리던 곳이다. 내력이 제법 소상하고, 풍류를 아는 이의 뜻이 절로 드러난 그런 누정이다. 아홉 가 지의 아름다움을 지닌 누정이란 뜻을 지 닌 구미정, 예사롭지 않은 현판에 절로 눈 길이 간다. 현판에는 이름도 낯선 아홉 가 지 아름다움이 적혀있다. 어량 魚 梁 을비롯 해서 전주 田 疇 반서 盤 嶼 층대 層 臺 석지 石 池 라든가 평암 平 岩 과등담 燈 潭 이며, 취벽 翠 壁 과 열수 岫 다. 그러나 어찌 보는 것에 그치고, 이 때를 놓 치랴. 천렵꾼들은 폭포 위쪽에 삿갓 통발을 말 함을 쳐놓고 쉽사리 고기를 잡았다. 이를 어량이라 했다. 그런데 어찌하여 구미정 의 현액자 顯 額 者 는 어량을 골지천의 첫째가 는 아름다움으로 꼽았을까. 누가 밥으로 써 하늘을 삼는다 以 食 爲 天 고 했던가. 먹는 것을 하늘 삼는다 했으니, 치솟는 고기를 잡는 맛 그리고 이를 먹는 맛을 으뜸으로 친 것은 아닐까. 나머지 팔미 八 美 는 여행을 떠나 직접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끼는 바람에서 감히 생략한다. 그래, 과감히 떠나보자 삶이 비록 세속의 실날 위에 매달린 고난 일지라도 틈틈이 선계 仙 界 를 그리고 안온 한 너럭바위에 앉기를 갈망한다면, 그것 이 곧 불타가 갈파한 극락이요 도연명이 그리고자 했던 무릉도원일지라. 마음 한 풀 걷어내면 날아가는 새 자취를 움켜쥐 고 눈 한번 돌리면 청산이 거기인데, 구미 정에 앉아 아홉 가지 아름다움을 얻을 수 있다면 무엇이 부럽겠는가. 구미 중의 으뜸가는 어량 魚 梁 을 풀어본다. 여기저기 골 깊은 골에서 쉬엄쉬엄 모여 들어 제법 굵다란 물줄기를 이룬 골지천 이 구미정에 이르면 작은 폭포를 이루며 비하 飛 下 한다. 그런데 하류에서 상류로 올 라가려는 물고기들이 폭포를 치받고 올라 가는 차마 혼자 보기 아까운 장관이란다. 누정은 바로 이런 마음을 달래던 자족의 공간이다. 이를테면 풍월주인 風 月 主 人 이거 닐던 자연의 처소다. 누정에 올라 정선아 라리라도 읊조린다면 또다른 멋이 될 것 같다. 이번 여름에는 만사 제쳐놓고 정선 으로 떠나보자. 어디 구미정뿐이랴. 사진제공 정선군청 13
국립국악원 국립국악원의 상해 항주공연 성공리에 마쳐 2010년 상해세계엑스포 개최기념 상해 항주 공연 국립국악원은 한 중 양국간 우의와 문화적 이 해의 폭을 넓히기 위한 중국공연 을7월8일 토 상해 이하이극장과, 7월 11일 화 항주 홍성대극장에서 개최했다. 전통문화예술의 교류로 한국문화를 깊 이 이해하고 친한적인 이미지 구축을 위해 마련한 이번 공연은 41명으로 공 연단을 구성, 與 民 同 여민동락 을주제 로 하여 궁중음악과 무용 그리고 민속 풍물놀이 등으로 약 80분간 공연하였 다. 프로그램은 학 연화대무, 춘앵전, 대금독주, 부채춤, 살풀이, 강강술래, 풍물놀이 순으로 진행되었다. 세계적인 경제중심 도시로 부상한 상해, 호수와 숲 등 전원적이며 관광 도시인 항주에서 국립국악 원이 처음 개최한 공연이었다. 도착 첫날 상해 푸동 공항에 공연단이 도착하자마자 쉽게 적응하기 어려운 섭씨 40 에 육박하는 무더운 날씨만큼 그 관심과 반응 또한 뜨거웠다. 김양 揚 상해 총영사의 만찬 환담 및 상해공연 상해도착후7월7일저녁김양상해총영사가공연단 을 대표한 원장과 진흥과장, 송인길, 김영희 예술감독에게 상해시의 현황 그리고 현지 외교관으로서 의 임무를 설명해 주었다. 김양 총영사는 김구 선생님의 친손자로 나라사랑의 마음과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상해는 기아, LG 등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많이 진출하여 활발한 경제 활동을 하는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이번 공연은 친한적 분위기 조성과 경제외교 활동에도 큰 보탬이 될 것이라 는 이야기를 듣고 공연 준비에 대한 보람과 더불어 사명감도 함께 느꼈다. 공연장인 상해 이하이 극장은 약 1,000석 규모의 다목적 공연장이나 조명 장비 등의 노후와 기본적 인 설비가 미비하여 공연 장비를 조정하여 설치해야 하였으며 관련규정도 복잡하고 까다로워 아직 도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하였다. 충분한 사전 협의 등을 통해 공연 준비에 차질이 없었던 것이 무척 다행스러웠다. 상해에서의 첫 번째 공연은 시작 전 일부 빈자리가 있었으나 시작 후 좌석을 완전히 메웠으며, 80%이상이 중국인이며 나머지는 상해 주재 58개국의 총영사 부부 등 외교관과 한국기업체 관계자 및 교민대표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춘앵전, 대금독주 등 궁중무용 및 음악에 이어 부채춤, 살풀이, 풍물놀이 등 아름답고 화려한 의상 과 한국적인 춤사위, 특히 신명나는 민속무용은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외국의 총영사들도 원더 풀, 테러픽 이라는 말을 김양 총영사에게 연발할 정도로 공연은 호평을 받았으며, 중국 관객들의 뜨거운 환호속에서 성황리에 끝났다. 14 2006 July Vol.75
김철호 원장의 상해음악원 방문 환담 공연에 앞서 김철호 원장과 김진호 진흥과장은 상해음악원을 방문하여 상해음악원 부원장 및 민족음악과장 등과 음악원의 현황 설명을 듣고 상해와 우리원과의 학술자료 및 협연 등 상호관심사에 대해 논의하였다. 교류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교환과 함께 추후 교류창구는 하현봉 상해문화원장이 하기로 하였다. 스텝진을 제외한 공연단은 상해 임시정부를 방 문하여 자주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선대들의 우국충정과 고귀한 애국애족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현지 대표적인 주요 언론 보도 소주 항주의 아름다움 항주시 당국의 환대 특히 소주와 항주는 上 有 天 堂 下 有 蘇 杭 하 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라는 글귀 가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 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공연단은 동양의 베 니스 소주 蘇 州 를 경유, 항주시청 협명 부서 기장이 주재한 환영만찬에 참석하여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 공연단을 성대하게 맞이하여 주었다. 또 한 공연 전 항주 홍성대극장 귀빈실에서 항주방송국과 도시쾌보 등 여러 언론매체에서 김철호 원장 의 인터뷰와 공연내용 보도 등 한국 전통문화에 많은 관심을 갖고 취재하였다. 7월 9일 문회보 공연 기사 내용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음악기관으로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국립국악원 의 <여민동락> 공연이 어제 밤 이하 이 극장에서 그 막을 올렸다. 한국 국립국악원 예술가들은 이번 공 연을 통하여 진정한 고려 전통문화의 풍미와 정서를 보여주었다. 공연 준비시의 어려움과 현지 반응 항주 공연은 공연 시작 4시간 전 연습 때 강풍과 폭우로 무대지 붕 덮개가 날아가 무대로 빗물이 흘러 무대가 일부 침수되고 감전사고 등의 염려로 연습이 잠시 중 단되어 예상치 못했던 해외공연 초유의 어려움에 봉착하였으나, 김진호 진흥과장의 진두 아래 조명, 음향시스템의 안전사고 여부 점검과 현지 극장관계자와 스탭들의 복구 노력으로 공연준비에 만전을 기할 수 있었다. 한국 전통문화공연에 대한 많은 기대감으로 공연 시작 전 이미 빈 좌석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관객 대부분 대중문화 한류와 또 다른 전통문화의 정신과 역사를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는 것에 대 한 부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일부 관객은 분장실까지 찾아와 부채춤과 같은 아름다움 및 풍류의 멋 과 흥을 보여준 공연단에 감사의 말을 전하기도 하였다. 2010년 상해세계엑스포 개최기념 국립국악원의 상해 항주공연은 대한민국 최고의 출연진들로 우 리 전통예술의 정수를 선보임으로써 전통예술에 대한 이해와 호평 속에 한류 확대로의 가능성을 타 진하고, 또한 현지 언론과 중국 문화애호가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는 점에서 문화한국 의 이미지 제고 및 문화교류 증진 기여 등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전반부 템포가 느리고 생소한 우리 궁중음악과 무용에 대해 다소 지루한 느낌이 든다는 지적은 수요자의 입장에서 향후 공연시 참고할 만한 사항이라 생각된다. 7월 9일 해방일보 공연 기사 내용 드라마 가수 등 대중문화로 <한류>열 풍을 일으킨 한국은 어제 저녁 상해 관중들에게 진정한 한국 전통예술을 보여 주었다. 중국 상해지역 첫 방문 인 한국 국립국악원은 상해 이하이 극장에서 많은 관중들의 호응 아래 성공적으로 마쳤다. 한국 국립국악원은 한국 정부에서 한 국 전통예술 발전을 위하여 설립한 기관이며 이번 공연에 41명의 예술가 들이 7가지의 한국 전통예술을 대표 할 만한 멋진 공연을 보여주었다. 15
국립민속국악원 도깨비,박물관에 가다 박물관 음악회 깨비 깨비 도깨비 최근 주5일 근무제의 영향으로 온 가족이 함께 주말 여가를 보내는데 많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가족 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들이 풍요롭지 못한 환경에서, 건전한 여가문화는 모두가 함께 고민해 봐야 할 부분이다. 이에 국립민속국악원에서는 건전여가문화 활성화의 초석을 마련하기 위해 2005년부터 많은 공연 및 프 로그램을 기획해 오고 있다. 2005년에는 <국악과 함께 즐거운 문화산책>, <모셔오는 국악문화가족>, <박 물관 음악회> 및 <숲속음악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사업별 횟수를 정리해 보면, <국악과 함 께 즐거운 문화산책> 8회, <모셔오는 국악문화가족> 9회, <박물관 음악회> 1회, <숲속 음악회> 3회로 총 20여회에 달한다. 올해에도 현재까지 <국악과 함께 즐거운 문화산책> 3회, <모셔오는 국악문화가족> 2 회, <박물관 음악회> 3회를 개최하였으며, 앞으로도 많은 활동이 준비되어 있다. 일시 2006. 8. 2 수 ~ 8. 4 금 오후 5시 장소 국립광주박물관 관 람 료 무료 문 의 국립광주박물관 관리과 김영은 062-570-7010 국립민속국악원 장악과 김일규 063-620-2323 올 봄 <외국인과 함께 하는 박물관 음악회>에 이어 두 번째 국립광주박물관에서 개최되는 <박물관 음악 회>는 국립민속국악원이 제작한 어린이를 위한 창작창극 깨비 깨비 도깨비 로 꾸며진다. 국립경주박물 관, 청주박물관에 이어 세 번째 <박물관 음악회>에 오르는 깨비 깨비 도깨비 는 전래동화에 흔히 등장하 며 즐거움을 주기도 하고 두려움을 주기도 하는 친숙하면서도 무서운 도깨비를 주인공으로 풀어나간다. 흥미진진한 전래동화인 혹부리 영감 이야기에 판소리, 국악가요, 꼭두각시놀음 등을 현대 음악과 결합한 본 작품은 탄탄한 구성력을 인정받아 매 공연 만원사례를 기록하며 연장공연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번 공연과 같이 어린이들의 감수성에 맞는 친근한 창작 국악공연을 통해 우리 문화와 예술에 대한 관 심이 모아지기를 기대해보며, 온 가족이 함께 옛이야기와 우리노래가 있는 넉넉하고 여유로운 주말을 보 내는 건 어떨까? 16 2006 July Vol.75
국립남도국악원 국립남도국악원 국악방송 전국화를 기대하며 남도국악방송 FM 94.7MHz 개국 7월 6일 오후 2시 전남권역에 아름다운 우리소리를 전파할 남도국악방송이 개국했다. 또한 이 여세를 몰아 국악방송의 전국화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반만년 역사의 예술적 우수성을 갖춘 우리민족의 문화역량은 국제사회 어느 국가와의 경쟁에서도 결코 뒤쳐지지 않을 것이다. 특히 음악과 관련된 다양성과 개연성은 언어 혹은 표현 방식에 구애됨 없이 우수 하다고 평가받고 있다. 물론 이러한 외적 경쟁력 및 내적 우수성은 선결과제들이 해결된 연후에야 빛을 발할 것이다. 선결과제 그 첫 번째는 일상생활에서의 전통문화 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특히 대중이 쉽 고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대중 매체의 전통문화에 대한 공적 역할이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많 은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수도권 혹은 대도시에만 대중 문화매체, 방송이 밀집해 있어 지방은 거의 배려 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예를 들면 민속음악의 산실인 남도의 경우에도 방송 프로그램 중 국악 관련 프로그램이 일주일에 겨우 1시간 정도 전국방송 형태로 편성되어 있다. 하물며 가청권에서 벗어난 도서지역이나 산간 오지 등 난청지역은 더욱더 열악한 상황이다. 또한 가장 대중적이라는 TV 프로그램 의 경우에도 남도 지역은 여러 제약으로 인해 국악프로그램의 시청이 거의 불가능하다고할수있다. 해 당 방송 시간대에 남도 지역 대다수 주민들은 선상 작업 중이거나, 해변, 조간대 등의 작업 현장에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악방송은 국악의 전 장르를 다루는 기획으로 편성되어 송출되어 왔다. 그러나 수도권 일부와 남원의 가청권 일부만 청취할 수 있었다. 주 생활현장이 도서산간지역인 지방거주민들과 IT문화에 익숙 하지 않은 노령인구가 많은 농어촌지역 주민들에게는 FM의 맑고 고운 국악방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번 남도국악방송의 개국으로 남도지역, 전국적으로 섬의 62%가 몰려 있어 해양음악 문화의 발상지이 자 국악의 최대 수요지라 할 수 있는 전남지역 주민들의 국악에 대한 갈증이 다소 해소되고, 국악방송을 통해 국악방송의 음원 音 源 을 활용한 다양한 국악감상의 기회가 제공될 것으로 기대된다. 앞으로도 국악방 송이 지방 거주 국민들에게 공익적 차원에서 최고의 문화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음을 인식하여 빠른 시 일 안에 국악방송의 전국화가 실현되기를 기대해 본다. 남도국악방송 (재)국악방송은 전남 진도군 임회면 소재 국립남도국악원에 중계국을 설치하고 지난 7월 6일 목 오후 2시 남도국악방송을 개국하였다. 주파수 FM 94.7MHz 로 5월 29일부터 시험방송을, 가청 권역별 방송수신 상태를 점검하여 7월 6일 목 을 기해 본방송을 송출하였다. 24시간본방송 18시간, 재 방송 6시간전문 국악방송인 남도국악방송은 전남의 진도, 해남, 완도, 강진, 목포권무안, 신안, 함평, 영광, 영암 등 일부지역에서 청취가 가능하다. 17
악기연구소 들여다보기 컴퓨터 시뮬레이션 악기 연구 computer simulation 을 통한 글 조영재 국립국악원 악기연구소 연구원(음향학 박사) 국립국악원은 지난 3월 29일에 국악기 정통성 회복과 과학적 연구를 통한 창의적인 미 래음악 창출을 목표로 악기연구소의 문을 열었다. 이에 국악누리 에서는 7월부터 12 월까지 6개월 동안 악기연구소에서 진행 중인 사업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컴퓨터를 이용한 시뮬레이션은 우리 일상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시뮬레이션 의 세계에서는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 없다. 10살짜리 아들이 전문 골프 선수인 아빠와 골프 를 쳐서 이기는 것도 가능하고, 부상당할 위험부담 없이도 마이클 슈마허 같은 F1 드라이버 가 되어 시속 300km의 짜릿함을 맛볼 수도 있다. 대규모 공연장을 만들 때에도 설계도면에 따라 미리 그 공연장에서의 음향을 예상하는 시뮬레이션 작업을 할 수 있다.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형태의 시뮬레이션이면서도 일상생활에서 가장 자주 접하는 것은 일기예보이다. 시뮬레이션이라는 용어의 일반적인 뜻은, 흉내, 속이기 등이지만 과학적으로 사 용되는 시뮬레이션의 의미는 모의실험 이다. 전쟁을 하기 전에도 미리 시뮬레이션을 해 보 고 승산이 있어야 한다.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분쟁에 대해서 미 국방부에서 행한 시뮬레이션 이 있다. 중 러 국경분쟁으로 인해 전쟁이 발발하면 국경선에 쫙 늘어서 있던 중국 군인들 이 일시에 국경선을 넘어서서 러시아에 항복하게 되고, 러시아는 포로들을 먹여 살릴 수가 없어서 전쟁그만하자 는 제안을 하게 된다는 것이 시뮬레이션 결과이다. 코미디처럼 여겨 질 수도 있지만, 전쟁은 현실의 일부이고, 코미디도 현실이다.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모든 것을 다 해석할 수 있 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오만에 불과하다. 인간은 아직 아 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 시뮬레이션이라는 것은 이상적인 조건 하에서 아는 것만을 이용해서 모르는 것을 인간의 오감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해 주는 작업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시뮬레이션은 속이기 가 분명하다. 그러나 7월 국악과 완전음정 8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한 악기 연구 9월 악기 물성 연구 - 생황 제작 10월 고악기 복원 - 비파와 월금 11월 25현 가야금의 음향과 재질 개선 12월 국악기 산업기반 18 2006 August Vol.76
는 복합적인 모드를 가지면서 진동하며, 복잡한 형상의 물체일수록 진동모드의 갯수는 증가한다. 그림 1은 컴퓨터 시뮬레이션 작업을 통하여 25현금의 울림통이 가지는 진동모드를 1차 모드부터 6차 모드까지 나타낸 것이다. <표1> 25현금울림통의고유진동수 (1차~ 6차) 제1차 악기제작시연회, 7월 19일 국립국악원 우면당 시뮬레이션이 가지고 있는 이런 제한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시뮬레 이션은 우리 생활에서 굉장히 유용하고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만들 때 시뮬레이션 작업은 필수적이다. 수많 은 구성품이 서로 역학적 관계를 맺으면서 하나의 완성체를 이루고 있는 자동차, 비행기, 여객선 등의 구조적 안정성을 예측하고자 할 때는 아주 유용하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국악기의 최적화된 형상에 대해 연구하는 것 역시 이와 비슷한 작업이다. 이번에 시도된 시뮬 레이션 연구는 25현금의 형상에 관한 것이다. 25현금은 12현금에 비해 길이가 7cm 정도 길고, 폭이 17cm 정도 넓다. 음역은, 평균율 로 표현했을 때, 12현금이 대략 G2~D5 b 정도이고, 25현금의 음역은 더 넓어서 E2 b ~A5 b 정도이다. 시뮬레이션 작업의 첫 악기로 25현금 을 선택한 이유는 제작 역사가 짧은 25현금의 형상이 아직은 최적 화된 형상으로 자리 잡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5현금의 음역이 12현금에 비해 넓어진 것은 분명하지만 울림통의 크기가 커졌는데도 음량이 12현금에 비해 크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 연주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또한 "연주의 맛"이 12 현금보다 못 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 이번에 진행되고 있는 시뮬레이션은 바로 이런 문제점에 대해 살펴보고 연구하는 것을 목 적으로 하고 있다. 모든 물체는 물성과 형상에 따른 고유한 진동모드를 가지 고 있으며, 각각의 진동모드에 해당하는 고유진동수를 가지고 있 다. 진동모드라는 것은 특정 진동수에 해당하는 만큼만 진동하는 물체의 진동형상을 수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진동체 진동수/모드 1차 모드 2차 모드 3차 모드 4차 모드 5차 모드 6차 모드 고유진동수(Hz ) 82.0 140.1 146.5 167.3 207.9 220.6 1 Step 2 Step 3 Step 6 Step 5 Step 4 Step <그림1> 25현금울림통의진동모드 (1차~ 6차) 25현금 울림통이 82Hz로 진동할 때는, 그림 1의 1차 모드 에서 보는 것처럼 울림통의 가운데 부분이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진 동하게 된다. 만약 이 울림통이 220.6Hz로 진동한다면, 6차 모드 에서 보는 것처럼 울림통이 좌우로 벌어지면서 진동하게 되는 것이 다 그림 1에서 보는 25현금의 왼쪽이 현침부분이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한 국악기 연구는 이런 식으로 이 루어지며, 이를 통해 얻어진 자료는 실험적 검증을 거쳐 교정 작업 으로 이어진다. 25현금처럼 판이 울려서 소리를 내는 악기의 경우 에, 시뮬레이션을 통한 고유진동수의 예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 소는 해당 물체를 구성하는 재료의 탄성계수이다. 탄성계수는 악기 의 음색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이다. 25현금 울림통의 재료인 오 동나무의 탄성계수를 나무의 수령이나 건조기간에 따라 정확히 파 악하여 자료화하는 것이 25현금뿐만 아니라 12현금류의 연구에 중 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9월호에는 악기 물성 연구 - 생황 제작 이 소개됩니다. 19
국악박물관 둘러보기 1월 전통예술의 소통 창구, 국악박물관 2월 궁중음악의 멋을 담은 악보, 대악후보 3월 과학과 예술의 결합, 편경 4월 춤과 잔치의 화려함을 되살리는 의궤 5월 명무의 숨결을 부르는 옷자락 6월 우리음악 지침서의 결정 結 晶, 악학궤범 7월 이왕직아악부를 세상에 드러낸 음반 조선아악정수 8월 이왕직아악부의 명인 名 人 과명기 名 器 -1 9월 이왕직아악부의 명인 名 人 과 명기 名 器 -2 10월 이왕직아악부의 명인 名 人 과 명기 名 器 -3 11월 고금 古 今 의 음악을 연결해주는 근대 악보 12월 민속음악을 풍요롭게 한 한일섭의 산조아쟁 국악박물관 중앙홀에 전시되어 있는 이수경이 제작하고 장인식이 연주하던 거문고 이왕직아악부의 명인과 명기 Ⅰ 장인식 張 寅 湜 과 거문고 글 박정경 국립민속국악원 학예연구사 장인식 張 寅 湜, 초명 初 名 은 丁 鳳, 1908-1980 은 이왕직아악부원 양성소 2기로 입사하여 거문고를 전 공하였다. 함화진과 이수경을 사사하여 거문고 연주자의 선두로 활약하였고 제4기생 부 터 후진을 지도하기 시작하면서 교육자로 많은 후학들에게 귀감이 된 전통음악계의 큰 스승이다. 이수경이 제작하고 장인식이 연주하던 거문고가 현재 국악박물관 중앙홀에 전시되어 있다. 이왕직아악부원 양성소에서 배출된 신예 新 藝 들 조선조의 장악원이 고종 34년에 교방사 로, 순종 원년에 장악과로 축소될 무렵까 지 궁중음악 연주자들은 세습에 의해 양 성되었다. 악사나 악생, 악공이 아들을 얻 으면 으레 악원촌 樂 院 村 에서 키웠고 악원촌 의 남자아이들은 7~8세 무렵부터 실기교 육을 받았다. 이어서 장래방 將 來 房 과 성재방 成 才 房 의 과정을 거쳐 음악에 일가를 이루면 비로소 연주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들 은 태어날 때부터 숨을 거둘 때까지, 도달 하기 어려운 예술의 완성을 향해 정진을 거듭하며 일생을 음악과 더불어 살았다. 그러나 근대사회로 접어들면서 궁중 악 사들의 세습 전통은 서서히 약해졌다. 음 악인의 집안에서 명인이 배출되는 것은 오늘날까지도 종종 이어지는 것이지만 직 업을 바꾸기 어려웠던 과거와는 달리, 많 은 신세대들은 가업을 버리고 자신의 장 기를 찾아 미래를 설계하게 된 것이다. 한 편으로는 재능과 취향에 따라 음악을 접 하여 악사의 꿈을 키우는 경우도 생겨났 다. 장인식도 그 중 하나였다. 이왕직아악부원 양성소 제1기에는 피리 의 이봉기 수석을 비롯하여 대금에 김계 선 등이 맹할약을 하였고 학생을 일반에 서 공모하였지만 여전히 아악부 아악수들 의 자제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제2기생 중에도 여러 사람이 음악인 집안 출신이 었지만 장인식은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중 퇴하고 1922년 이왕직아악부원 양성소 제2기 후기생으로 입학한 비개비 출신 이었다. 그는 이왕직아악부의 거문고 가 락을 올곧게 전수받아 양성소 출신의 첫 거문고 악사가 된다. 20 2006 July Vol.75
거문고 여섯 줄에 예 藝 와덕 德 을담아 장인식은 거문고 전공에 피리를 부전공으 로 하였는데, 머리가 좋고 매우 성실하여 학과 성적으로는 수석이었으나 그의 재능 은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피리를 전공하고 거문고를 부전공한 동기 생 박성재가 졸업시험 거문고 부문에서 장인식보다 오히려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것도 그가 처음부터 연주에 두각을 나타 내지는 못했다는 점을 말해준다. 대신에 그는 철저한 기본기와 끊임없는 노력을 바탕으로 무르익은 대기만성의 인 재였다. 장인식이 조광 朝 光 제7집 1941년 2월 에게재 한 나와 현금 에서, 거문고에 대한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누가 나에게 현금 의묘제 妙 濟 를 묻는다면, 서슴지 않고 현금 은 그 기술보다도 그 인격이라고 대답하 겠다 는 구절은 음악으로서 예도를 실천 하는 옛 선비들의 자세 그대로다. 그에게 거문고는 수양의 도구이자 대상이었다. 거문고를 탈 때, 그리고 거문고를 가르칠 때 보여준 흔들림 없는 품성은 거문고와 만난 인연때문에 더욱 굳어진 것이 분명 하다. 이왕직아악부원 양성소를 제3기생으로 졸업한 성경린은 음악세계 1979년 3월호 에1 기 선배인 장인식을 생생하게 회고하였 다. 장인식은 3살 차이의 한 기 선배였음 에도 불구하고 언행이 근엄하고 점잖아 항상 어려웠고 그만큼 많은 존경을 받았 다고 한다. 장인식의 성품은 거문고에 그 대로 투영되어 곧은 자세와 정확한 탄법, 그리고 안정된 수법으로 후학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고 하였다. 4기생 거문고반 수업. 안경 쓴 이가 이수경, 맨오른쪽에서거문고를연주하는이가 장인식이다 아악부원 양성소의 학생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 맨 위에서 네번째 안경을 쓴 이가 장인식이다 이수경이 낳고 장인식이 다듬은 이왕직아악부의 명금 名 琴 장인식은 자신이 함화진의 제자이면서도 이수경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함화진 은 2대 국악사장이며 초대 아악사장을 지낸 함재운의 자제로 이병문에게 거문 고를, 명완벽에게 가야금을 수학한 연주 자이자 이론가였다. 또한 이수경은 피리 의 명인 이인식의 손자로 이병문과 함재 운에게 수학하였으며 특히 영산회상에 능하였다. 함화진도 장인식을 가르칠 때, 영산회상만큼은 이수경의 탄법을 참고하 라고 할 정도였다. 그는 다른 명인들과는 달리, 이왕직아 악부에서의 활동이외에 정악전습소나 기 타 외부 단체에서는 거의 활동하지 않았 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장인식은 이왕직아악부의 비전 가락을 고스란히 오늘날에 전해주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발한다. 그가 남긴 거문고의 예술 은 안정된 자세와 야무진 탄법, 대점과 소점, 싸랭과 뜰 등 강약의 대비가 분명 한 구성이 특징이다. 그가 스스로의 능력 에 도취되어 자신만의 음악세계로 빠져 들었다면 이왕직아악부만의 특색과 전통 이 우러나는 거문고 음악은 사라졌을지 도 모를 일이다. 이에 스승 이수경은 자신이 손수 만든 거문고를 장인식에게 주었고, 장인식은 그 거문고 속에 스승의 가락과 자신의 예 혼 藝 魂 을 불어넣어 국립국악원에 전했다. 고풍스러운 거문고에서는 견고함과 함께 세련된 기품이 묻어난다. 단 한 대의 악기 를 완성하기 위해 수개월을 나무와, 그리 고 거친 명주실과 씨름했던 노 악사. 그리 고악기속에깃든예악 樂 의 숨결을 찾아 내기 위해 일생을 바쳤던 한 제자의 진지 한 고뇌는 오늘날 찾기 힘든 옛 향기로 승 화되어 그 자리를 감싸고 돈다. 9월호에는 이왕직아악부의 명인과 명기 Ⅱ 가 소개됩니다. 21
국악방송 탐방 국악방송은 오직- 국악만 전한다? 아니다! 국악방송은 문화를 전한다! 문화사랑방은 국악방송이 단순하게 우리음악만을 전하는 방송이 아닌 문화를 전달하는 방송임을 대변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지난 4월, 봄 부분개편과 함께 진행자가 교체되면서 제2의 문화프 로그램으로 그 모습을 만들어 가고 있는 문화사랑방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에 걸쳐 다양하고 생생한 문화이야기들을 전합니다. 매일 함께 하게 되는 꼭지인 문화소식시간은 그 날의 중 요한 문화정보를 뉴스형식으로 전달하고 그 중에서 좀 더 자세한 이야기가 필요한 이야기 거리는 소식의 주인공과 전화연결을 해 자 세하게 들어봅니다. 곧 우리나라의 문화소식뿐만 아니라 세계의 문 화소식을 전하기 위해 준비 중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박상언의 문화사랑방입니다! 글 최유이 국악방송 PD 오후 6시 정각이 되면 턱수염이 인상적인 이의 편안한 인 사가 살갑게 다가옵니다. 문화사랑방이 시작됩니다. 스튜디오 안의 이는 의미심장한 얼굴로 마이크와 대화를 합니다. 그 대화는 곧 듣 는 이와의 대화가 됩니다. 이내 그 경직된 얼굴은 아기의 미소를 안 은 얼굴이 되어 갑니다. 그는 이야기합니다. 자기는 4살짜리 방송인 이라고요.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감과 동시에 그의 방송나이도 함께 먹어 갈 겁니다. 그 나이 먹음이 얼마나 그 깊이를 더해갈지.... 그 자리에 여러분이 동행이 되는 겁니다. 월요일, 한 주를 시작하는 이 날은 문화캐스터 서주희씨가 문화 현장을 찾아가 현장의 소리와 소식을 담아옵니다. 서주희의 문화 현장 속으로, 이 꼭지는 목요일에도 만나실 수 있는데요. 생생한 문화현장을 전한다는 의미에서 준비되는 시간입니다. 이어지는 꼭 지는 우리음악의 다양한 소재들을 끄집어내 다양한 문화와의 만남 을 시도하는 시간으로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위철이 함께하 는 위철의 우리음악 아우르기 입니다. 화요일, 진행자 박상언의 색깔이 느껴지는 숫자로 풀어보는 문화이야기 가 준비됩니다. 이 시간에는 진행자 박상언이 숫자와 문화를 직접 엮어 나갑니다. 이어지는 시간은 탈장르, 탈연령, 탈인 종, 탈성별의 문화예술인을 만나보는 화요문화초대석 입니다. 이 시간은 국악방송 홈페이지를 통해 동영상으로 다시 만나실 수 있습 니다. 수요일에는 방송작가이자 음악평론가인 김영준이 전하는 우리 나라 가요80년 과 함께 우리의 그늘이 되고 있는 생활 속 건축들 을 찾아보는 시간, 건축평론가 함성호의 생활 속 건축이야기 가함 께 합니다. 22 2006 August Vol.76
국악방송 프로그램 편성표 서울, 경기 지역 99.1Mhz, 남원 지역 95.9Mhz 인터넷 www.gugakfm.co.kr에서도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 방송시간 월 화 수 목 금 토 일 05:04~07:00 솔바람 물소리 진행 _ 윤서연 07:00~09:00 창호에 드린 햇살 진행 _ 구영희 09:00~11:00 음악 감상실 진행 _ 유은선 유영대의 판소리 여행 진행_ 유영대 11:00~12:00 국악이 좋아요 진행 _ 유경화 전통의 향기 진행_ 박칼린 12:00~14:00 우면골 상사디야 진행 _ 김종엽 김영화 이정일의 우면골 일요마당 진행_ 이정일 14:00~16:00 우리마음 우리음악 진행 _ 최영미 김호성의 음악박물관 진행_ 김호성 16:00~18:00 이 땅의 오늘 음악 윤중강입니다 진행 _ 윤중강 국악은 내 친구 진행_ 박경호 18:00~19:30 박상언의 문화 사랑방 진행 _ 박상언 김일륜의 우리소리 사랑방 진행_ 김일륜 19:30~21:00 FM 국악당 진행 _ 현경채 21:00~22:00 FM 국악특강 진행 _ 국악 전문가 22:00~23:00 이금희의 음악 편지 진행 _ 이금희 23:00~01:00 이 땅의 오늘 음악 윤중강입니다 진행 _ 윤중강 이정일의 우면골 일요마당 진행_ 이정일 01:00~03:00 음악 감상실 진행 _ 유은선 유영대의 판소리여행 진행_ 유영대 03:00~05:00 우리마음 우리음악 진행 _ 최영미 김호성의 음악박물관 진행_ 김호성 재방송 목요일이요? 네..목요일은 월요일에 만난 문화캐스터 서주희 의 문화현장 속으로 와 문화를 말한다 가 준비됩니다. 문화를 말 한다 는 4가지의 주제가 돌아가게 되는데요. 먼저 문학이야기는 얌 전하고 차분한 문학평론가 강경희씨가, 영화이야기는 멋스러운 여 성 영화평론가 강유정씨가, 미술이야기는 문화멋쟁이 사비나미술 관 이명옥 관장이, 음식이야기는 음식을 너무 사랑하고 잘생긴 푸 드코디네이터 정신우씨가 함께 합니다. 금요일입니다. 이 날은 문화담론과 문화플러스가 필요에 따라 배치되는데요. 중요한 문화이슈나 현안을 전문가들을 모시고 조명 하고 그 대안을 모색해보는 문화담론과 문화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 는 문화플러스(+)는 그때 그때 달라요~ 풀어놓고 보니 5일 안에 참 많은 것들이 함께 하고 있네요. 여러분 께 문화사랑방과 함께 문화의 흐름을 담아보실 것을 제안합니다. 라디오는 참 신기한 매체입니다. 소리로 모든 것이 보입 니다. 진행자와 출연자의 사랑정도가 보이고, 심지어는 스튜디오 밖 연출팀의 열정까지 함께 보이니까요. 거기다가 청취자의 관심정 도까지 보입니다. 혹자는 텔레비전이 출연함과 동시에 라디오는 사 라질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그 예언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라디오는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몇몇 이들 은 국악, 우리음악이 곧 사라지고 박물관으로 갈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국악방송은 그 이야기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전통의 우리음악과 새로운 우리음악을 함께 만들어 갑니다. 마음이 보이는 라디오! 사람이 보이는 라디오! 그리고 우 리음악과 문화가 보이는 라디오! 사람이 문화를 만들어 갑 니다. 그만큼 사람이 중요한 프로그램! 그래서 <박상언의 문화사랑방>은 여러분이 더없이 중요하고 소중한 프로그 램입니다. 국악방송의 <박상언의 문화 사랑방>을 듣고 계신 청취자 여러 분, 늘 고맙습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도 저 참 많이 서툴죠! 사 실 서툴 뿐 아니라 많이 걱정도 됩니다. 하지만 문화예술의 생생 한 현장을 여러분들께 펼쳐 보여 드려야겠다는 분에 넘치는 다 짐만으로 용감하게 이 프로그램을 맡았습니다. 앞으로 문화예술 현장을 늘 따뜻하게 감싸 안으면서, 그러나 때로는 따끔하게 꼬 집는 것도 잊지 않으면서 우리 문화예술을 조금이나마 풍성하게 하고 싶은 게 저의 바람입니다. 처음 떼는 걸음이라 실수도 많고 우여곡절도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저만의 색깔을 가진 프로그램으로 꾸며 갈게요. 앞으로 <박상언의 문화 사랑방>, 많이 사랑해 주세요...^.~... - 박상언 두손 모음 9월호에는 FM 국악당 이 소개됩니다. 연출 : 최유이 진행 : 박상언 기술 : 박은규 작가 : 서주원, 윤연지 시간 : 월~금오후6시~ 7시30분 23
영화로 간 국악 월하의 공동묘지 가야금 伽 倻 琴 이 무섭다고? 글 윤중강 음악평론가 여름에는 공포영화가 좋다. 월하의 공동묘지 1967년, 권철휘 감독, 김용만 음악 는 지금도 호러무비 마 니아 사이에 회자되는 작품. 1960년대 영화로선 이례적으로 DVD까지 출시됐다. 보는 시각 에 따라 그저 잠시 잠깐 보는 납량물로 취급될 수도 있지만, 뜯어보면 문학-연행-음악적으 로 독특한 매력이 있다. 구전민담을 바탕으로 변사의 해설을 통해 전개되며, 가야금을 비롯 한 국악기를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변사는 권철휘 감독이 직접 연기한다. 박동진 명창이 부르는 성주풀이 낙양성 십리하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며 절세가인이 그 누구냐 우리네 인생 한번 가면 저 모양이 될 터이니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여 영화가 시작되면, 기생 월향지묘 라는 글씨가 크게 나타난다. 카메라는 공동묘지를 먼발치에서 훑는다. 배경음악은 남도민요 성주풀이, 영화제목에 공동묘지가 들어가고, 이 영화의 시작과 끝이 모두 무덤 장 면이기에, 성주풀이를 택했을 게다. 더불어 덧없는 인생, 착하게 살자 는 뜻을 담고 싶었을 게다. 월하의 공동묘지 는 억울하게 죽은 기생이 원수를 갚는 내용. 착한 명선은 기생 월향 강미애 이된다. 일제 강점기 학생운동을 한 오빠 춘식 황해 과애인한수 박노식 를 구하기 위함이다. 오빠는 모든 죄를 다 뒤집어쓰 고, 여동생의 애인을 석방시킨다. 결국 한수와 월향은 광산으로 성공해 부를 축적한다. 하지만 월향은 늘 오빠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결국 건강이 나빠져 눕고, 집안일을 돕기 위해 찬모 난주 도금봉 가 들어온다. 24 2006 July Vol.75
그녀는 월향이 회복되면 일자리를 잃게 된다는 강박으로 월향의 음식에 가짜 약을 넣는다. 월향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고, 난주는 급기야 한수를 유혹해 안방까지 차지한다. 월향은 자신의 슬픈 운명을 가야금으로 달랜 다. 월향은 난주에 의해 딴 남자와 내통을 하고 있다는 누명을 쓰고, 결국 자살에 이른다. 이제 난주는 월향의 아들까지 죽이려 하는데, 월향은 귀신 이 되어 아들을 지킨다. 아랑 vs 월향 모함과 누명으로 억울하게 죽은 여인이 귀신으로 나타난다는 건, 한국적 공포물의 전형이다. 이런 영화의 귀신은 무섭지만, 아름답다. 월향은 여귀 의 원형이라 할 아랑과 비교된다. 아랑은 꽃 같은 처녀의 이야기다. 한 남 성 때문에 생긴 한을 또 다른 남성의 도움으로 푸는 얘기다. 그러나 월향 은 애정보다 모성에 무게중심을 두며, 어떤 남성의 도움 없이 스스로가 아 이를 지킨다는 점이 다르다. 가야금소리는 모성 母 性 의노래 영화에 월향이 가야금을 타는 장면이 있다. 남편에게 오해를 산 그녀가 혼자서 외롭게 가야금을 탄다. 영화의 주요장면에선 가야금 소리가 들린다. 월향이 타 는 가야금 소리를, 남편은 청승맞은 소리 라 한다. 난주는 저주 받은 가야금 소리 라 한다. 월향의 어린 아들마저 독살하려는 난주는, 아닌 밤중에 들리는 가야금 소리, 그 환청에 시달린다. 이런 장면과 대사는 가야금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 일단 기분 나쁘고 참기 힘들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것은 도덕적으 로 문제 있는 사람들의 귀에 들리는 가야금소리가 그렇게 왜곡될 뿐이다. 제3자의 입장에서 이 영화의 맥을 짚어주는 변사의 내레이션의 배경음악도 가 야금산조. 영화는 해피엔딩. 난주와 그를 사주했던 가짜 의사 허장강 는서로복수 심에 불타 자멸한다. 남편이 무덤에 와 참회를 하고 아이를 잘 보살피겠다는 말을 듣고, 월향의 영혼은 승천한다. 카메오로 출연한 한농선 명창 국악애호가들이 이 영화를 보며 놓치지 말아야 할 장면이 있다. 자살한 월향 의 관 앞에 하얀 옷을 입은 여인들이 앉아 있다. 예전 월향과 함께 한 기생 들이다. 그중의 한 사람이 월향의 유서를 펼쳐들고, 그것을 판소리처럼 노래 한다. 평생의 한을 두고 이렇게 죽으니 원통합니다. 허구 많은 누명 중에 간통이라니 웬 말이요... 어린 자식 저리 두고 황천길을 떠나오니 한이로다 한이로다... 월하의 공동묘지는 오래됐지만, 볼 만하다. 테크놀로지에 기대서 공포를 만들어 내는 것에 식상했다면, 이 단순하지만 직접적으로 공포를 만들어내는 방식이 오 히려 더 재밌다. 이런 장면이 있다. 월향의 아들을 독살하려는데 실패한 난주와 그녀의 어머니는, 또다시 아들 영진을 죽이려 한다. 이 때 비바람이 몹시 불고, 갑자기 창문이 열린다. 그리고 어디선가 가야금산조의 휘모리의 급박한 선율이 들린다. 모녀는 가야금소리를 들으면서 공포에 벌벌 떤다. 그러다가 갑자기 가 야금소리가 멈춘다. 지금 들으신 곡은 조금란 씨가 연주한 가야금 독주였습니 다. 라디오 진행자의 멘트가 들린다. 두 사람은 그 가야금소리가 라디오에서 나 오는 소리였음을 확인한다. "저 빌어먹을 라디오. 왜 하필 이 때 가야금이람 이 런 장면에선 정말 무서워해야할지 웃어야할지 대략 난감(?)이다. 이 노래를 부른 분이 한농선 명창. 6,70년대 몇몇 한국영화에 배우로 출연했 다. 1960년대 라디오 드라마 주제곡을 판소리식으로 불렀다. 1990년대 중반 에는 댄스그룹 한국사람 의 한국사람 이란 노래의 도입부에서 무반주로 판 소리를 불렀다. 2002년 2월,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흥보가 예능보유자로 지 정됐으나, 그해 4월 8일 타계했다. 향년 68세. 좀 더 사셨으면 좋았을 것을. 혹시 대한민국에서 가야금소리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죄 많이 지은 사람이다. 영화 보며 반성하시라. 가야금소리는 어떤 뜻을 담고 있을까? 이 영 화에서 들리는 가야금소리는, 아이를 사랑하는 이 땅의 어머니의 노래인지 모른 다. 이 영화는 가야금을 공포의 코드 code 로 사용하고 있지만, 결국 가야금소리 는 사랑하는 사람끼리 통하는 코드 chord 인 것이다. 25
국악기 어렸을 적 들판이나 산을 뛰 놀며 산열매를 따먹기도 하고 나뭇가지로 새 총을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잎사귀를 포개어 삐~삐 소리를 내었던 기억 이 나의 마음 상자에 담겨 있다. 당시를 돌아보면 연주를 했다 라기 보다 북한의 개량 관악기 는 장난을 쳤다 라는 표현이 더욱 맞을 것 같은데, 만약 그 장난이라도 쳐보지 못했다면 풀피리는 나의 심상에 또렷이 조각되지 못했을 것이다. 문학에 조금 눈이 뜨일 무렵 서정적이며 때로는 아련한 사랑, 외로움이 풀 피리로 환치되면 이내 한 폭의 그림이 머리에 떠올려진다. 그 그림속의 장 면이 실제 소리로 들리지는 않지만 풀피리 하면 떠올려지는 나의 도식圖式 이 내게는 아주 소중한 보석 중에 하나이다. 글 주재근 국립국악원 학예연구사 소 簫/횡적 橫笛, 오회분 4호묘, 6세기 초 우리 음악을 전공으로 하게 되면서 악기에 대한 머리 속의 인식 체계가 박 혀 버려 더 이상 마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없을 것만 같은데... 영화를 보 거나 책을 읽거나, 관광을 하거나 사람을 만날 때 그때 그 내음이 있어 간 혹 그 내음이 떠올려지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악학궤범 향부악기도설에 소개된 풀피리 음악 또한 마찬가지여서 그 음악을 들었을 때의 날씨, 공간, 자신의 기분 상태에 따라 자신이 좋아하는 음빛깔, 음진행, 음길이에 맞는 음악을 좋아 하게 되며 이러한 점이 음악을 더욱 즐기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26 2006 August Vol.76 7월 북한의 개량 현악기 그런데 만약 이러한 느낌을 철저하게 유린당한 채 반강제적으로 귀속으로 8월 북한의 개량 관악기 파고든다면 그 느낌은 어떠할까? 지금 면발이 먹고 싶은데 매일같이 밥알 9월 북한의 개량 타악기 이 입속으로 들어간다면 거의 내가 왜 살고 있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 10월 조선 통신사와 길을 함께 한 악기 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근본적 물음에 대한 생각을 원천적으로 막아 버리 11월 조선 왕가의 거문고, 희녕군 어사금 고, 주면 주는 대로, 들려주면 들려주는 대로 하라는 것이 오늘날 북한 사 12월 우리 악기에 새겨진 문양 회이다.
개량단소, 경북대학교박물관 소장 우리 악기 가운데 관악기를 셈해보면 퉁소 할아버지들의 관악기의 공통 대명사, 피리 한국의 대표 관악기, 좀더 전문적이면 향피리, 당피리, 세피리까지, 대금 한때 담배 표지로 유명했던, 좀더 전문적이면 중금, 소금까지, 단소 초등학생의 필수 악기, 생황 국내 유일의 화음악기, 태평소 우리 관악기 중에 제일 소리가 크며 서태지 음악에 사용된 악기 등을 꼽을 수 있다. 비교적 다양한 남한의 관악기에 비하여 북한은 네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데 모두 개량된 악기이다. 즉, 개량 피리 대피리, 저피리, 개량저대 고음저대 중음저대 저대, 개량단소, 장새납의 네 가지가 현재 북한을 대표하는 관악기이다. 1960년대 초반 북한에서 인식한 종래의 피리는 소리가 맑지 못한 생소리에 가까운 탁한 소리이며 맨 위의 음 과 맨 아래 사이의 음 간격이 좁고 5음 음계의 음악에만 사용할 수 밖에 없다는 점과 참대나무로 울림통을 만 들기 때문에 음정과 음색이 통일할 수 없어 합주음악에 부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피리 재료는 단단한 재질인 박달나무로 하며 그 크기를 규격화시키고 지공을 늘리고 누르개를 부착하여 12반음계를 자유자재로 연 주할 수 있게 대피리를 만들었다. 개량저대, 경북대학교박물관 소장 장새납, 경북대학교박물관 소장 대피리보다 한옥타브 낮게 만든 것이 저피리인데 두드러진 차이는 두 개의 관을 나란히 연결하였으며 모든 지 공을 누르개를 짚도록 한 것이다. 개량저대 또한 개량피리와 같이 재료와 규격을 통일시키고 누르개를 부착하 며 12반음계를 연주할 수 있게 만들었다. 성부에 따라 고음저대, 중음저대, 저대로 나누어 연주할 수 있게 만들 었다. 장새납은 1960년대 중반 무렵 기존 태평소 새납 보다 길게 하고 지공을 더 뚫고 누르개를 설치하여 12반음 체계로 조율하도록 만들어 졌는데 음량면에서는 기존 태평소보다 작은 것이 특징이다. 개량단소 또한 장새납, 개량피리나 개량저대와 거의 같은 목적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것인데 민족악기라고는 하 지만 민족적 색채를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이밖에 1960년대 금관악기를 새로 만들었는데 악기명칭은 소라 중 라 대라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금관악기들이 만들어지면서 서양 관악기의 합주형태인 금관합주나 중주가 가능하게 되었다. 북한의 사상체계하면 주체사상, 주체주의 이듯이 북한의 음악은 주체음악이라 할 수 있다. 주체음악의 안을 들 여다 보면 인민을 위한 민족음악이 되어야 하며 당을 위한 혁명음악이 되어야 하는데 예술성과 사상성이 뒷받 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예술성과 사상성이 모든 북한 대중들의 심상에서 합의된 것이 아니라 김일 성, 김정일의 교시와 당지도부의 몇몇 간부들에 의한 인위적이었다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그러한 점 때문에 그 산물인 개량피리와 같은 악기로 연주되는 북한 음악을 들어 보면 느끼함도 아닌 닭살 돋는 것도 아닌 아주 묘 한 느낌이 든다. 국립국악원 악기연구소에서는 현재 생황을 중점적으로 연구 진행하고 있는데 형태, 음색, 연주법 등 한국식의 생황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여하튼, 북한에서 이미 반세기동안 연구한 개량 관악기들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연구 성과가 무엇이었는지 되새겨 본다면 우리식의 악기개발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 본다. 검은 뿔나팔, 무용총, 4세기말~ 5세기 초 9월호에는 북한의 개량 타악기 가 소개됩니다. 27
전통건축 _ 사찰 5월 서산 개심사 말을 접고 마음을 여는 곳 6월 충주 미륵대원 폐허에서 최초의 힘을 만나다 7월 지리산 실상사 천년 사랑의 터전 8월 창녕 관룡사 바위는 극락이며 절집은 우주 바위는 극락이며 절집은 우주 글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 문화재위원 용선대 석불좌상 28 2006 August Vol.76
경상도 창녕 땅에 험준한 바위산이 솟아있다. 꽃 중의 왕 이라는 뜻의 화왕산이다. 이 산은 겉보기와는 달리 산 위에 넓은 평원을 가지고 있고, 4월이면 붉은 철쭉이 마 치 화염을 방불케 가득 피는 곳으로 유명하다. 화왕산 분지에서 동쪽으로 뻗어나간 산맥은 다시 깎아 지른 듯 절벽을 형성하며, 일대에서는 이를 병풍바위 라 부른다. 거의 수직으로 선 바위들이 마치 병풍같이 펼쳐져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절 벽을 병풍삼아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절이 아래쪽에 앉았으니, 바로 관룡사이다. 스스로 깨달아 부처가 되어 영원한 해탈을 이루어라. 석가모니는 이 렇게 가르쳤고, 그래서 불교를 자성의 종교라 부른다. 그러나 석가 모니 자신도 구도의 열망과 희생으로 가득한 삶을 수백 번이나 윤회 한 끝에 비로소 해탈에 이르렀을 정도로, 해탈이란 보통 사람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경지였다. 인간은 윤회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유 한한 존재. 어차피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면, 생로병사의 고통으로 가득한 이 세상이 아니라, 아픔도 죽음도 없이 즐거움과 행복만으로 가득한 세상에 태어나면 좋겠다. 어디 그런 세상이 없을까? 그런 곳이 바로 극락세계이고, 이 세상으로부터 서쪽으로 십만 억 불국토를 지나면 있다. 한 불국토는 하나의 우주를 뜻하며, 십만 억 개의 은하계를 지나 저 우주의 머나먼 서쪽에 있다는 것이다. 어쩌 면 극락은 더럽고 고통스러운 이 세상이 반대로 비추어진 거울이기 도 하다. 그곳은 모든 대지가 평탄하여 굴곡이 없고, 지옥도 아귀도 축생도 없어 인간보다 못한 존재가 없으며, 가로수는 일곱 가지 보 석으로 장식되어 늘 밝고 찬란하며, 인간의 수명은 무수겁이고 온 몸이 금빛으로 빛나며 용모가 한결같이 단정하여 평등한 곳이다. 이 세상에서 극복되지 못한 모든 것들이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극 락이다. 경상도 창녕 땅에 험준한 바위산이 솟아있다. 꽃 중의 왕 이라는 뜻의 화왕산이다. 이 산은 겉보기와는 달리 산 위에 넓은 평원을 가 지고 있고, 4월이면 붉은 철쭉이 마치 화염을 방불케 가득 피는 곳 으로 유명하다. 화왕산 분지에서 동쪽으로 뻗어나간 산맥은 다시 깎아 지른 듯 절벽을 형성하며, 일대에서는 이를 병풍바위 라부 른다. 거의 수직으로 선 바위들이 마치 병풍같이 펼쳐져 있기 때문 에 붙여진 이름이다. 절벽을 병풍삼아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절이 아 래쪽에 앉았으니, 바로 관룡사이다. 29
이 절은 583년 창건되어 후일 원효대사가 을 떠나 극락세계에 왕생할 때 그 무한한 화엄학을 강설한 곳으로 유명해졌다 한 시공간의 바다를 건너 극락으로 태워가는 다. 원효가 여기에 머무를 때, 화왕산 꼭 배가 바로 반야용선이다. 극락왕생에는 9 대기에 있는 월영지 연못에서 아홉 마리 단계의 등급이 있는데, 평생 최고의 공덕 의 용이 오색구름을 타고 등천하는 것을 을 쌓은 이들은 가장 높은 상생상품 의 보았다. 그리하여 절 이름을 관룡사 로 등급이 된다. 이들은 반야용선으로 타고 바꾸었고, 용들이 등천한 예의 병풍바위 극락세계의 주인인 아미타불의 직접 안내 산으로 일컬어 관룡산이라 하였다. 를 받으며 극락세계로 간다. 용선대는 바 로 그 반야용선이고, 그 위의 부처님은 곧 급한 경사지에 자리 잡았기 때문에 가람 아미타불인 셈이다. 그렇게 본다면 용선 의 터는 그다지 크지 않다. 그러나 대지를 대가 향하고 있는 허공은 무한한 바다요, 잘 이용하여 많은 전각들을 배열하였고, 그 너머 어딘가에 극락이 있는 것이다. 황 주된 영역인 대웅전 일곽과 그 앞 한 구석 동규 시인은 이 용선대와 불상을 소재로 에 자리 잡은 약사전으로 구성된다. 대웅 시를 남겼다. 전과 명부전 사이의 등산로를 따라 한 20 분 오르면 용선대 라는 이름의 큰 바위에 저 아래 새들이 날고 이른다. 하나의 바위가 마치 큰 배 모양으 그 밑에 바위 그림자 가라앉을 때 로 생겼고, 그 위에 당당한 부처님보물 295호 등 뒤에서 태양이 머뭇거릴 때 한분을 모시고 있다. 마치 부처의 지휘로 늦가을 산정 바람 예리한 칼끝은 허공을 향해 나아가는 배의 형상이다. 줄곧 옷가슴을 들치며 심장이 여기지. 여기지. 묻는다. 용선 이란 반야용선 의 준말이다. 이승 30 2006 August Vol.76 황동규, <허공의 불타>에서
대웅전 약사여래 약사전 관룡사 약사전 보물 212호 은사방한칸규모의 최소 건물이지만, 건물의 지붕은 맞배지붕 으로 양 옆으로 처마가 길게 나와 매우 특별 한 모양을 갖는다. 약사전을 맞뒤집어 놓으 면마치배가될것같아, 맞배 지붕이란 이런 모습이라고 예시하는 것 같다. 고려 말 혹은 늦어도 조선 초기에 만들어져 현존하 는 몇 안 되는 건물 중 하나이다. 약사전은 약사여래를 모신 불전이니, 그 안의 돌부처 님 보물 519호 은 물론 약사여래일 것이다. 약사 여래는 중생들의 병을 고쳐주는 특별한 가 피를 가진 부처로서 정유리정토의 주인이 며, 이 세상에서 동쪽을 십만 억 불국토를 지난 곳에 계시다. 이 세계는 온 대지가 유 리로 덮여있어 일절 먼지가 없는 청정한 곳 이고, 극락과 마찬가지로 밤과 고통이 없는 광명한 세상이다. 서쪽 무한대에 있는 세계 가 극락정토라면, 대칭적으로 동쪽 무한대 에 있는 곳이 정유리정토다. 대웅전은 원래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건물 이지만, 관룡사 대웅전 보물 212호 에 모셔진 부처님은 비로자나 삼존불이다. 비로자나 불은 화엄세계의 중심부처로서 가히 부 처중의부처 라고할수있는분이다. 화 엄교학에 따르면 모든 부처는 곧 비로자 나불이고, 비로자나불은 곧 모든 부처라 고한다. 전체가 하나이고, 하나가 곧 전 체 라는 화엄사상의 핵심적 내용이다. 그 래서 비로자나불은 모든 불보살의 배열 가운데 항상 중심에 위치한다. 비로자나불의 정토를 연화장세계라고 하 는데, 무수한 꽃잎들이 모여 하나의 연꽃 을 형성하는 것 같이, 무수한 불국토가 결 국은 하나의 불국토로 통합되는 걸 뜻한 다. 이 모습을 평면적으로 도상화한 그림 이 바로 화엄 만다라이다. 화엄 만다라의 중심에는 비로자나불이 위치하고 이를 중 심으로 사방팔방으로 무수한 불보살들이 펼쳐진다. 교리적으로 관룡사를 바라본다면, 위로는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용선대가 위치하고 아래로는 정유리정토를 뜻하는 약사전이 놓여졌다. 그 가운데 대웅전에는 화엄의 세계, 연화장정토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 이 위치한다. 관룡사 안에는 극락정토와 정유리정토가 동시에 존재하며, 이를 다 시 연화장세계가 하나로 통합하고 있는 것이다. 이 조그마한 절에 이처럼 광대한 세계들이 존재하고 있으니, 관룡사는 절 이라기보다는 무한한 우주인 셈이다. 관 룡사를 감싸고 있는 병풍바위와 화왕산은 거대한 만다라의 세계이며, 그 자체로서 완결된 우주공간이 된다. 극락이 어디에 있는가? 서쪽 무한한 끝에 실체로서 존재한다고도 하고, 이 세상이 곧 극락이라고도 한다. 또는 각자의 마음 안에 극락이 있는데 엉뚱한 곳에서 찾는 다고도 한다. 그러나 분명 관룡사에는 극 락세계가 있다. 무거운 바위로 만든 배도 가라앉지 않고 허공을 향해 떠가는 곳- 그곳이 극락이 아니면 어디일까? 9월호에는 전통건축 - 한옥 편이 소개됩니다. 31
국악원의 발자취 국 립 국 악 원 의 역 사 연 주 단 이 야 기 로 엮 는 국립국악원의 탄생과 함께 했던 13명의 단원들은 악사 樂 士 라고 불렸지만 예술사 藝 術 士 라는 직명을 가진 공무원이었다. 국립국악원의 연주단은 현재 정악단과 민 속악단, 무용단, 그리고 탄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창작악단의 4개 단체로 구성 되어 있다. 13명의 예술사로 시작한 연주단의 인원은 현재 국립민속국악원과 국 립남도국악원의 단원을 합쳐 모두 356명에 이른다. 연주단의 신분변화와 계약 및 보직제도 개원 당시 부여된 예술사라 는 직명은 1954년 이후 국악사로 바뀌었 고, 1961년 이후 국악사와 국악사보를 거 쳐 1966년 국악관, 국악관보, 국악사, 국악 사보, 국악원, 국악원보 등으로 세분되었 다. 그 후 1971년 5월 28일자로 국악관, 국 악관보 등은 일반직 공무원이었던 신분에 서 별정직 공무원으로 직제 변경이 되었고 악사인 연주원은 1년 단위의 계약직으로 바뀌었다. 글 김경희 국립국악원 학예연구관 약직으로 바뀌게 되었다. 또한 1981년부터는 연주단 내에 예술감독, 지도위원, 악장, 수석, 부수석, 총무 등 여 러 보직이 만들어졌다. 그밖에 자문위원도 있었는데, 이 자리는 1981년 노악사 성경 린, 김천흥, 김성진, 김태섭을 위촉하면서 신설했고 1985년 원로사범 으로 명칭을 바꿔 현재에 이르고 있다. 1월 건원 建 院 1,400년의 의미 2월 이왕직아악부의 활동 3월 아악원 국영에 관한 청원과 국립국악원 개원 4월 운니동 청사와 국악기 개량 5월 장충동 청사와 완창 完 唱 완주 完 奏 전통 6월 예악당 우면당 별맞이터 7월 공연으로 풀어보는 국립국악원의 역사 8월 연주단 이야기로 엮는 국립국악원의 역사 9월 한국음악 관련 자료 발간 10월 국립민속국악원 11월 국립남도국악원 12월 국립국악원이 열어갈 미래 이렇게 계약직으로 바뀌면서 1975년 원장 김 기수, 악사장 김용부터는 악사들의 예능에 대해 등급 제도를 도입했다. 심사를 통하여 단 원들을 1급 갑, 1급 을, 2급 갑, 2급 을 등 으로 평가하고 이를 바탕으로 재계약을 진 행했던 것이다. 이후 1985년원장 한만영, 장악과장 박일훈부터 본격적으로 단원 예능도 평가를 도입하면서 계약의 방식도 변경했다. 단원 의 예능도를 5등급으로 구분하여 1등급은 3년, 2~3등급은 2년, 4~5등급은 1년 단위 로 각각 계약했고,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다시 예능도 심사를 통해 등급을 정했다. 따라서 4~5등급의 단원들은 재계약을 위 한 심사를 해마다 받아야 하는 고충을 겪 었다. 이런 방식의 단원 계약 제도는 10여 년간 지속되었지만 단원들의 불만이 누적 되어 결국 1997년부터 모든 단원이 2년 계 정악단 정악단은 국립국악원 연주단의 창단멤버였던 13명의 예술사로부터 출발 했다. 이들은 대부분 이왕직아악부원 양 성소 출신으로, 김천흥, 김만흥, 박영복 이상 2기, 김보남, 김영윤 이상 3기, 김성진, 김준현, 이덕환 이상 4기, 김태섭, 홍원기 이상 5기, 김상 건 민속가야금, 이창배 민요, 김상기였다. 이 가 운데 김상기는 성경린 3기 선생과 사돈 관계 였는데, 취미로 거문고를 배우기 시작하 여 악사로 임명되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 자였다. 그는 1957년부터 1965년까지 국 악사양성소에서 학생들을 지도했고, 따라 서 국악사양성소의 거문고 연주계보는 김 상기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32 2006 July Vol.75
정악단 연주에 사용하는 악기로 대금, 피 리, 해금, 가야금, 거문고의 주요 5종 이외 에 아쟁, 타악, 소금, 양금 등을 별도로 구 분하여 선발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 근의 일이다. 이전에는 국악사양성소와 국립국악고등학교에서도 이들 악기를 따 로 전공으로 두어 지도하지 않고 겸무 제 도를 두어 자신의 전공 이외의 다른 악기 를 연주하게 했는데, 이같은 전통이 국립 국악원 정악단에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그러다가 기타 악기를 전문으로 연주하는 연주자의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겸무 제도 는 사라지게 되었다. 1992년 타악과 아쟁 연주자를 따로 뽑았고, 이후 양금과 소금 연주자도 따로 선발했다. 또한 창작관현악 의 연주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1990년 지 휘 겸무가 상임지휘자로 별도 임명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1985년 48명이었 던 정악단의 인원은 이후에 꾸준히 늘어나 현재는 71명에 이른다. 민속악단 1979년 8월 1일 원장 송방송, 악사장 김용, 국립국악원은 무형문화재 특별연주 단 이라는 이름으로 서용석, 박양덕, 이봉 려, 박승률, 한상일, 이길선, 노용해, 김무 길, 지미자, 유연숙, 심상남, 이생길, 안영 진, 안옥선 등 14명을 임명했다. 그 이후 민속악단은 차츰 정식 연주단으로 자리매 김하게 되었는데, 1981년부터 정악단과 무용단은 제1계열로, 민속악단은 제2계열 로 분리시켜 운영하기 시작했다. 1981년 은 최초로 민속음악연주회가 열린 해였 다. 이틀에 걸친 이 연주회를 주도했던 서 용석은 <산조합주>를 처음으로 무대에 올 려 호평을 받았다. 이렇게 14명으로 출발 한 민속악단은 1980년 장덕화, 김공복, 이 철주, 조경희, 김용배를 임명했고, 1990년 이후 대폭 확대되어 현재 79명의 단원으 로 구성되었다. 무용단 1958년 KBS방송국이 전속 국 악연구생을 뽑아 교육하고 소정 과정 이 수자들을 전속 국악사로 채용했다. 이들 은 1959년 6월부터 국립국악원이 주최한 국악감상회에 참여하여 무용 공연을 선보 였는데, 이렇게 국립국악원의 공연에 무 용단이 출현하게 된 것을 계기로 1961년 22명이 국립국악원 전속연주단에 임명되 었다. 이들의 직명은 국악사가 아닌 국악 생으로, 발령사항은 국악연구원에 임함 이었다. 그 뒤에도 오랫동안 무용단은 별 도의 조직으로 분류되지 못하고 정악단에 속해 있다가 1986년 비로소 국립국악원 무용단으로 정식 출범하게 되었다. 현재 의 무용단은 1986년부터 선발된 남자단원 을 포함하여 모두 48명으로 구성되었다. 창작악단 2004년 11월 4일 창작악단 이 탄생했다. 그 동안은 정악단이 전통음 악과 창작음악을 모두 연주했는데, 그로 인해 발생했던 문제점들을 해소하고 아울 러 오늘의 창작이 내일의 전통이라는 역 사적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서였다. 창단 당시에는 정규 연주단원이 아닌 임시 계 약직 형태로 근무하였으나 현재는 46명 의 단원이 창작악단에 소속되어 활발한 연주활동을 벌이고 있다. 9월호에는 한국음악 관련 자료 발간 이 소개됩니다. 33
우리문화 우리음악 평양감사 환영연도 중 <광대 전도> 경기 이북의 재인촌 사람들을 아십니까? 글 손태도 문화재 전문위원 34 2006 July Vol.75
판소리, 기악 연주, 전문적인 농악, 심지어는 민속 무용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민속 예 술의 대부분을 이른바 경기 이남의 세습무 집안 남자들이 담당해 왔다는 것은 1930년대 의 무속 조사 이래 현재까지도 꾸준히 확인되는 바이다. 지금도 경기 이남의 전문적 민속 예능을 하고 있는 그 누구를 만나 조사하여도 조사 대상 바로 그 사람이든, 그 1대 위의 사람이든, 2대 위의 사람이든 그 분야의 대가는 모두 세습무 집안 사람들이다. 세습무 집 안의 남자들인, 이른바 화랑이 집단 사람들이 관청에 악공과 광대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는 것은 조선 후기의 문헌 기록들과 오늘날의 조사들만으로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경 기 이남에서는 이들 세습무 집안의 남자들이 경기 이남의 광대 집단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광대 집단으로서의 경기 이남 세습무 집안 남자들은 그 자체 필연적으로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세습무가 없는 경기 이북에는 누가 광대가 되었느냐는 것이다. 우리나 라의 무속은 경기 이남의 세습무권과 경기 이북의 강신무권으로 대별되어 경기 이북에 는 세습무가 없기 때문이다. 경기 이북에도 고려 이래 서경인 평양에서 산대희 등이 동 원되는 팔관회가 매년 열렸고, 조선 시대에는 이 지역이 중국 사신이 오는 길목이었기에 중국 사신이 올 경우에는 평안도 평양, 황해도 황주 등에는 사신맞이류의 대규모 산대희 들이 열리곤 했다. 경기 이북에도 경기 이남에 못지 않은 광대 문화가 일찍부터 발달되 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이 지역에는 어떤 사람들이 광대 집단의 역할을 하였을까? 1950년대 북한학자 김일출은 당시 봉산탈춤이나 강령탈춤의 반주 악사들이 그 지역에서 대대로 악공의 역 을 세습해 왔던 재인촌 사람들이었음을 조사하였다. 그리고 봉산 관아에서는 섣달 그믐 날이면 이 곳 재인촌 사람들이 세 명쯤 가서 한 명은 가면을 쓰고 매귀 곧 잡귀잡신을 쫓는 구나 의식인 연말 나례를 하였던 것도 보고하였다. 이 중 재인촌 사람들이 봉산 관 아와 같은 지방 관아에 들어가 연말 나례 의식을 하였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사실이 다. 경기 이남에서도 지방 관아에서 연말 나례를 할 때는 광대 집단의 사람들이 동원되 었기 때문이다. 이들 경기 이북의 재인촌 사람들을 경기 이북의 광대 집단으로 바라볼 여지가 충분했던 것이다. 그러나 김일출은 기본적으로 이들을 탈춤의 악사로만 보았기 에 이들을 경기 이북의 광대 집단으로 보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강령탈춤 악사 보유자였던 박동신, 사진 정범태 1960년대 북한학자 박은용에 의해서도 경기 이북의 재인촌에 대한 조사 보고가 있었다. 이들 재인촌은 평안도 지역에서도 곳곳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재인들은 일반 사람들과 같은 마을에서 함께 살 수 없었다는 것이다. 북한에서의 경기 이북의 재인촌에 대한 조사는 더 이상 알려진 것이 없다. 남한에서도 1970년대 당시 문화재 전문위원이었던 이보형이 당시 강령 탈춤의 악사로 지정된 박동신 1909~1991 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황해도 곳곳에서는 재인촌 사람들이 있었 는데, 이 재인촌 사람들이 삼현육각과 같은 악기 연주는 물론 줄타기와 땅재주 같은 기 예도 했으며, 정초에는 서낭대를 들고 집집을 돌며 성주 고사를 지냈다는 사실을 조사하 35
였다. 이러한 이보형의 조사를 통해서도 이들 경기 이북의 재인촌 사람들이 경기 이북의 광대 집단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은율탈춤 악사 보유자였던 김영택, 사진 노재명 1998년 12월 필자는 동료인 이자균의 소개로 당시 은율탈춤의 피리 악사로 지정되어 있 던 김영택 1920~2000, 황해도 은율군 장룡리 출생 을 만났다. 그는 자신이 재인촌 출신이란 것을 끝까 지 숨긴 박동신과 달리 자신의 출신을 숨기지 않았고 오히려 출신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는 자신의 조부가 먼저 줄타기꾼이었음을 자랑했다. 그리고 이보형이 조사한 관청에 서 필요한 삼현육각과 같은 악기 연주, 정초의 집돌이 등을 소개했고, <배뱅이굿> <장끼 타령> <개타령> 등과 같은 재담 소리들을 비롯한 각종 소리들에도 그들이 능했음을 자 랑했다. 그에 따르면 재인촌은 광대촌 이라고도 불렸는데, 이러한 재인촌은 황해도의 경우 각 군마다 있었고, 평안도, 함경도에도 있었다 한다. 재인촌에 살던 사람들을 일반 사람들은 재인 광대 경잔이 등으로 불렀다. 자신들은 스스로를 사니 라 부르고 자신들 이외의 사람들을 비가비 라 불렀다. 이것은 경기 이남의 광대들이 스스로를 사 니 라 하고 그 외의 사람들을 비가비 라한것과같다. 사니 란 이들의 은어이고, 비 가비 는 비갑 非 甲 곧동갑 同 甲 이 아니란 뜻으로 자기들과 같은 광대 집단 사람이 아니란 뜻이다. 화랑이 란 말은 자기들과는 무관한데 남자 무당인 박수를 뜻한다 했다. 그에 의해 경기 이북의 재인촌 사람들이 경기 이북의 광대 집단임이 분명히 드러나는 순간이 었다. 이들 재인촌 사람들이야말로 관청에 악공과 광대의 역할과 같은 광대 집단의 역할 을 대대로 해왔던 경기 이북의 광대 집단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이들 경기 이북의 광대 집단 사람들인 재인촌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성립되었을 까? 다음과 같은 기록들에서 그 단서를 잡고자 한다. 악공으로서 세 아들 또는 네 아들이 있는 자는 그 한 아들이 아버지의 직업을 계승한다. 고려사, 선거, 문종 7년 1053 기생의 아들을 고작 故 作 이라 한다. 악공 또한 고작 故 作 이라 한다. 기생의 아들이 많이 악공이 된다. 손목 孫 穆 계림유사, 1103 악공은 특수 집단이기에 이미 고려 중기부터 세습제가 마련되어 있었고, 역시 이 무렵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에 왔던 손목은 당시 기생의 아들이 많이 악공이 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기생의 아들이 악공이 많이 되는 것은 중국에서도 그러했는데 우리나라에 서도 이를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 신라 화랑에서부터 내려왔을지도 모르는 경기 이남의 세습무 집안의 남자들인 화랑이 집단 사람들은, 고려 말 무당 집안의 남자들이 악공이 되는 과정에서 제도적으로 그 집단의 성격을 보다 분명히 했는데, 이는 우리나라 의 특수성으로 보인다. 중국에서도 그러했듯, 관청의 입장에서는 악공 집단이 광대 집단의 역할을 겸했기에, 우 리나라에서의 광대 집단은 어떤 사람들이 악공 집단이 되었느냐가 중요하다. 경기 이남 36 2006 July Vol.75
평양감사 환영연도 중 <기생과 광대> 의 광대 집단인 화랑이 집단은 고려 말 무당 집안의 남자들이 악공이 되는 과정을 통 해 제도적으로 그 집단의 존재를 보다 분명히 했기에, 고려의 수도인 개성에 와서 기 생의 아들이 악공이 많이 된다는 위의 송나라 사신 손목의 언급은 경기 이북의 악공 집단을 말하는 것이 되고 이는 또한 경기 이북의 광대 집단에 대해 말한 것도 된다. 이러한 기생의 아들 계통에서 나온 악공들이 광대 집단의 역할도 겸하며 경기 이북 의 광대 집단 사람들이 살았던 경기 이북의 재인촌을 성립시켰던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들 경기 이북의 재인촌 사람들은 무속과는 관계가 없이 관청에서 필요한 악공이나 광대의 역할 정도를 하였기에 예술적으로 열악하여, 조선 후기에 판소리나 산조 같은 수준 높은 공연물들을 가지지 못하고, 근대 무렵에도 그들만의 단체도 가지지 못한 채 경기 이남 의 광대 집단 사람들보다 일찍 민속 예술의 영역에서 사라졌다. 평양감사 환영연도 중 <광대 땅재주> 37
예인조명 _ 무용 김운태 金 雲 泰 순회와 회전의 역사 글 진옥섭 무용평론가 사진 박상윤 김운태는 1963년 전북 완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김칠선은 호남여성농악단을 구성하여 전 국을 순회하는 중이었다. 여섯 살, 기억이 생길 무렵엔 여자애처럼 분칠하고 바람처럼 자반 뒤집기 를 돌고 있었다. 구슬과 딱지를 몰랐고 나이가 차도 학교에 가지 못했다. 포장극장의 소년신동이요 흥행의 핵이었기 때문이다. 누나들이 한글을 가르쳐줬고 구구단을 외게 했다. 돌고 도는 순회에서 돌고 도는 회전이 소년의 일상이고 전부였다. 여성농악단, 보릿고개의 배고픔이 시퍼렇게 살았던 1960-70년대에 밥을 찾아 이동한 마지 막 유랑단체였다. 봄이 오면 구례의 곡우제를 시작으로 진해 군항제, 남원 춘향제, 강릉 단 오제, 부여 백제예술제, 밀양 아랑제, 경주 신라문화제, 진주 개천예술제, 갈봄 여름 없이 포 장을 치고 풍물을 울리는 축제의 나그네였다. 열두 살 무렵, 교사인 둘째 매형이 책 한 권을 외라더니 재직하던 초등학교로 데려갔다. 5학년 38 2006 August Vol.76
솟음벅구, 경기자진가락 휘모리 장단 위에서 솟구치며 벅구 소고 를치는춤이다. 이때상모를한박 에 좌우로 두 번 돌리는 양상 을 친다. 솟음벅구 와 양상, 한 몸의 일을 두 이름 부르듯, 위아래 가 따로따로 부산한 번갯불에 콩 굽는 일이다. 결국 착지의 순간을 줄이고 체공의 시간을 늘려야 했다. 중력과 부력의 교섭 끝에 이루어진 정점의 체공, 과학적으로는 영 이지만 예술에서는 영원 永 遠 이 존재했 다. 스스로가 깃털로 둥둥 떠 흰 수레바퀴를 쏟아냈다. 떠돎이 인으로 박힌 청년 김운태, 마침내 호남, 영남, 웃다리를 통합해 장쾌한채상소고춤을 내었다. 으로 등교한 첫날 일제고사를 치러 제일 꼴지가 되었다. 며칠 그 학교에 출연 하다가 다른 학 교로 전학 보내졌다. 엉성하던 시절 그렇게 입학세탁 을 하여 대충 학생이 되었다. 물론 학기 중엔 학생, 방학 중엔 떠도는 연예인이 되었다. 중학교 1학년 가을에 리틀엔젤스 에 발탁되어 영국왕실공연을 위한 연습에 들어갔다. 그런데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의 좌익 전 과 때문에 비자를 받지 못했다. 세계를 돌지 못하는 예술은 예술이 아닐 듯 했다. 2학년 겨울 부터 춤을 접고 공부에 전념했다. 흥행이 막바지에 도달한 1979년, 대부분의 여성농악단이 유랑을 멈췄고, 서커스와 합하여 마 지막 흥행을 꿈꾸던 호남여성농악단도 파산했다. 아버지는 그 충격으로 세상을 뜨고, 당장 다 음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가세가 기울었다. 대학진학보다 식구들을 건사할 일이 급선무였다. 1982년에는 서울에서 이광수가 불렀다. 호남여성농악단에서 같이 떠돌며 음악을 가르쳐준 스승이자 형님이었다. 그 무렵 김덕수, 김용배, 최종실과 함께 사물놀이로 세계를 휘어잡고 있었다. 그런데 점차 김덕수와 김용배 사이에 골이 깊어졌고 김용배가 빠질 것을 예상한 이 광수가 미리 김운태를 불러들인 것이다. 마포에 있던 사물놀이 사무실에 출근했고 김용배가 39
빠진 공연에 대신 서며 다시 판에 들어섰다. 대학을 진학하지 않았기에 곧바로 영장이 나왔다. 제대 후에는 김덕수, 이광수, 최 종실, 강민석으로 사물놀이 가 구성되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사물놀이 2진을 만 들어 몇 차례의 공연을 하다 가 그만 두고 가족들의 호구 를 위해 이일 저일을 전전했 다. 1989년 최종실이 중앙 대학교로 가면서 결원이 생 겨 다시 사물놀이와 함께해 야 했다. 미주순회공연, 유럽 8개국 순회공연, 평양에서 열린 범민 족 음악대회에도 갔다. 연좌제의 그늘에서 우울했던 젊음이 세계를 떠돌아 여권에 도장을 더 박을 여백이 없었다. 1992년 사물놀이를 나왔고 일 년 후 이광수도 나왔다. 원하던 바가 아니었지만, 두 사람을 따르는 이들 때문에 팀이 결성되고 말았다. 이광수가 민족음악원의 대표가 되고 자신은 민족음악원의 연구의 성과물을 연주하는 노름마치 사물놀이의 단장이 되었다. 1995년 4 월에 호암아트홀에서 <노름마치 창단공연>을 하였다. 사물놀이의 새바람으로 모든 기대가 모아졌다. 연이어 대학로에 신축한 빌딩 지하 640평을 임대해 1995년 12월 서울두레극장으로 개관하였다. 발표공연이 아닌 장기공연으로 생활과 예술을 만족시킬 수 있는 극 장이 필요했던 것이다. 유년시절, 비새는 포장극장에서 꿈꾸던 비 안 새는 극장이었다. 개관공연부터 빅히트를 하였다. <여기 심청이 있다>로 전승되는 갖 가지 심청을 올렸고, <이 땅의 사람들>로 전라도 각지의 씻김굿을 하루 8시간씩 완판을 공연했다. 공옥진 장기공연에는 암표를 팔지 않는다고 직원이 뺨을 맞는 사태도 속출했다. 그러나 340평이나 되는 부대시설의 운영이 미숙했다. 애초에 극장 공간 300평만 임 대하려 했으나 분할임대가 되지 않아 더 넓은 공간을 덤으로 안았 었다. 결국 2년 만에 총 30억을 쏟은 채 부도를 냈다. 1999년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다. 철창 속 에서 성경을 읽고 탄원서를 썼다. 쓰고 보니 떠돌던 가족사였고 국 악 흥행의 흥망사였다. 마지막엔 또다시 이 곤경에 처하더라도 나 가면 다시 하겠다고 썼다. 2심 재판에서 이례적으로 선고유예가 내 려져 무죄가 되었다. 인간의 심장으로 구동한 백색 알피엠 그가 춤꾼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부도로 도피하던 중에 열렸던 1998년 명무초청공연에서였다. 풍물판에서의 자자한 명성이 있었 지만 춤꾼으로 알려지기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2002년 <남무 춤추 는 처용아비들>, 2003년 <춤을 부르는 소리>에 섰다. 사실상 나서 자마자 김운태류 채상소고춤 이 되어 있었다. 40 2006 August Vol.76
유랑, 밥을 향한 이동이었다. 하루 5회가 넘는 공연을 할 때면 비계가 뜬 고깃국 을 먹을 수 있었다. 소년은 판굿의 소고꾼으로 뛰었고, 개인놀이 때에 채상소고춤을 추었다. 온 몸을 공중에 던져 도는 자반뒤집기, 평균 잡아 1회 공연에 200회전 정도를 했으니 5회면 1000회전이었다. 큰 대야에 소금과 설탕을 타놓고 짬짬이 마셔 탈수를 방지했다. 때로는 너무 어지러워 아까운 고깃국을 토하기도 했다. 그래도 10회 정도를 공연할 수 있는 큰 축제를 기다렸다. 몇 사람에 한 마리 꼴로 삶은 닭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무용단의 내한 공연이 있을 때, 그들과의 파티에서도 언 제나 김운태를 불렀다. 프랑스의 필립 드쿠플레, 독일의 수잔 링케, 피나 바우쉬, 스페인의 호아킨 코르테스. 내로라는 세계 무용의 축들은 그의 춤에 엄지손을 내밀었다. 느림보다 더 느린, 빠름보다 더 빠른 속도의 옥타브, 그 지독한 편차와 조율에 탄성을 터트린 것 이다. 첫 스승은 채상소고춤의 명인 백남윤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스 승은 떠돎이었다. 숱한 명인들을 만나 그들의 노른자위를 습합한 것이다. 그런즉, 그에게 춤은 배움이 아니라 겪음이었다. 그래서 굿 거리, 자진모리, 경기자진가락, 오방진, 휘몰이 순으로 노는 가락도 남다르다. 굿거리와 자진모리는 호남 장구 라 하듯 호남우도 풍물 의 장구가락에 맞춘다. 자신이 곧 뮤지션이기도 해서 반주자와 속 박자를 나누는데, 느리고 질퍽하게 추어 한 발짝 떼면 깊이 눌린 발 자국에 흥이 흥건히 괸다. 그리고 소고도 악기이기에 울려냄을 중 시한다. 연주의 필연성이 몸짓을 가다듬어 춤보다 더 절실한 춤이 되는 것이다. 경기자진가락이 나오면 양상 을 치며 솟음벅구 를 시작한다. 사 물놀이에 입단해서 새벽같이 출근해서 밤늦은 시간가지 연마한 대 목인데, 웃다리 쇠 라 하듯 갠지갯지 로 나는 매끈한 소리 위에서 치솟는다. 연주자들이 오방진 장단을 내어 놓고 점차 장단이 휘몰 이로 빨라지면 영남 벅구 라고 말하듯 경상도의 고난도의 기예인 자반뒤집기 를 뛴다. 팽이처럼 세워 도는 것이 연풍대, 사십 오 도로 기울여 도는 자반뒤집기, 발끝을 떼고 궁중에서 도는 두루 걸이, 이 세 기법을 기어 변속하듯 삼단뛰기 로 회전하며 급커브 를 도는 것이다. 회전이 멈추면 무릎을 접고 번개상 을 돌린다. 그 간 모든 회전을 모아 이루는 회전, 그만 심장이 뛰어넘어와 입안에 꽉 물릴 때까지 인간의 심장으로 구동한 백색 알피엠을 쏟아낸다. 그 현란한 원이 관객의 가시권을 한데 당겨 시간의 소실점을 만드 는 것이다. 김운태의 춤, 이미 특별한 기호다. 몇 년 간 몇 차례의 춤이었지만, 알아챈 이들은 그때그때의 버전에 열광한다. 언제나 새롭게 벌이는 즉흥에 대한 찬사다. 비결은 공연 전에 연습하지 않는 것이다. 익을 대로 익었지만 무대 위에서 신선한 몰두를 만끽하고픈 까닭이다. 춤으로부터 낯설어지기가 즉흥의 비결인 셈이다. 연습 대신에 오토 바이를 탄다. 승차감으로 무대감을 구상한다. 속도 위의 심상을 무 대 위의 형상으로 전환하는 이미지 트레이닝인 것이다. 풍경을 질주하며 쉼 없이 가상해 본 정신의 스파링, 그렇게 가뿐히 계체량을 통과해 무대에 선다. 그래서 극장 앞에 오토바이가 멈출 때, 그 날렵한 기마자세는 아직 멈추지 않은 유랑인을 목도케 한다. 오늘 모든 춤이 예술 이란 이름으로 정형화되어 정착했지만, 아직 도 길을 찾아 연마 중인 떠도는 춤, 떠돎의 마지막 증인 김운태의 채상소고춤이다. 9월호에는 예인조명 _ 민요 편이 소개됩니다. 41
풍속화 도1 김홍도, <모당평생도> 중 <송도유수도임식>, 1781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음악으로 축복받는 벼슬자리 글 정병모 경주대학교 문화재학부 교수 조선 관리의 일생을 8폭이나 10폭의 그림에 나누어 그리는 그 림, 우리는 이를 평생도 平 生 圖 라 부른다. 첫 폭에는 돌잔치로부터 시작하 여 혼인식, 과거급제, 평생 이룬 여러 벼슬자리, 그리고 회혼례로 마무리 짓는다. 한 사람의 다큐멘터리를 이처럼 단계적으로 묘사한 까닭은 후손 들이 훌륭한 선조의 행적을 본받아 나라의 인재로 성장하기를 바라기 때 문이다. 마치 사당에 집안을 빛낸 조상의 신주나 초상을 모신 것과 같은 개념이다. 이런 멋진 아이디어는 18세기 후반 김홍도의 그림에서 시작된 다. 김홍도의 창안인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으나, 김홍도의 작품이 평생도 역사의 첫머리를 장식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김홍도가 34세 때인 1781년에 그린 모당 홍이상 洪 履 祥 의 일생을 그린 8폭의 <모당평생도> 국립중앙 박물관 소장가 가장 이른 예이다. 이 평생도 중에서 음악과 춤이 등장하는 그 림은 과거급제 장면과 송도유수로 부임하는 장면이다. 둘 다 행차를 돋보 이게 하는 행진 음악이다. 42 2006 August Vol.76
` 조선의 선비로서 가장 어려운 출세 관 문인 과거급제를 뚫은 젊은 홍이상은 임금님이 나누어준 어사화를 모자에 꽂고 관청인 사복시 에서 준 백마를 타고 악공과 광대들을 앞세워 풍 악을 잡히며 시내 행진을 벌인다. 이것을 유가遊 街 라 한다. 대개 사흘 동안 다니며 과거 시험관 인 좌주座主, 어른, 친척들 찾아다니며 인사를 드 라고도 부른다. 호수 갓 렸기에 삼일유가三日遊街 을 높이 쓰고 화려한 옷을 갖추어 입은 광대들이 춤과 재주를 보이고 있다. 그 앞에는 해금, 피리, 대금, 북, 장고로 이루어진 삼현육각의 길군악의 연주가 유가의 분위기를 돋우고 있다. 앞에는 백 패와 홍패를 가슴에 품고 있는 가도呵導들이 에 에, 물렀거라, 나있거라! 하고 호기 넘치는 권마 성 소리를 지른다. 유가행렬이 이처럼 장황하니, 백마를 타고 있는 급제자의 가슴은 더욱 앞을 향 하고 고개는 뒤로 젖혀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동네 꼬마아이가 급제자보다 더 신나는 모습으 로 다리를 건너는 이 행렬을 이끌고 있다. 이 모 습이 유가행렬의 흥겨움을 배가시키고 있다. 송도유사로 부임하는 행렬은 유가행 렬보다 훨씬 거창해진다. 관리와 군졸들이 호위 하는 쌍교를 타고 가는 유사의 모습부터 다르다. 쌍교 앞에는 나발을 불고 북을 치는 대취타의 악 수들과 사령기를 비롯한 여러 깃발을 높이 들고 가는 군졸들이 청각과 시각적으로 송도유사의 행차를 널리 알리고 있다. 그리고 선두에는 말을 타고 선두를 이끄는 비장과 교서와 유서를 메고 가는 관리들이 앞서고 있다. 이 행차의 음악은 유가행렬의 음악처럼 신나는 것이 아니라 위엄 과 권위를 드높이는 장엄한 것이다. 도2 <모당평생도> 중 <응방식>, 1781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43
음악으로 축복받는 유가행렬과 부임행차를 경험하려면, 뼈를 깎는 공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조선시대 과거는 하늘의 별따기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특히 문과 의 급제는 3년에 한 번씩 치러지는데다 겨우 33인만 뽑는다. 1년에 11인인 셈이다. 공 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지만, 민화의 주술적인 힘에 기대어 수 험자의 불안한 심리를 조금이나마 잠재우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다. <약리도 躍 鯉 圖 >가 출세를 염원하는 대표적인 민화이다. 이 그림을 공부방에 걸어놓으면 제격이다. 도3 <약리도>, 19세기 삼성미술관 Leeum 소장, 민화걸작전중에서 이 그림은 원래 중국의 어변성룡 魚 變 成 龍 혹은 등용문 登 門 의 고사에서 비롯 된 것이다. 등용문의 고사는 황하의 하류에서 시작된다. 360마리의 잉어가 황하를 거 슬러 올라와 용문산 아래에 다다랐을 때, 새끼를 낳아 3600여 마리가 된다. 그러나 그 가운데 가장 용감하고 신령스러움을 갖춘 한 마리 잉어만이 용문을 뛰어 오를 수 있 다. 용문에 오른 잉어는 잇몸 아래쪽에 36장의 비늘이 거꾸로 돋으며, 몸을 흔들어 용 으로 변하는데, 어떠한 물건이라도 그 거꾸로 선 비늘에 한번 닿기만 하면 곧 부셔져 버린다고 한다. 그리고 용문에 오르지 못한 잉어는 이마 위에 흑점이 찍히게 되면, 그 해에는 다시 도전할 수 없게 된다. 재수의 낙인 인 것이다. 그런데 조선민화에서는 이러한 등용문의 고사가 약간 변용된다. 중국의 민화에서는 잉어가 용문으로 들어가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반면, 조선 민화에서는 잉어가 여의주 를 물으려는 모습으로 바뀐다. 조선인은 잉어가 용문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잉어가 여 의주를 무는 모습을 선호하였다. 후자를 어변성룡 魚 變 成 龍 에 대한 직설적인 표현으로 인 식한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민화 약리도에서는 잉어가 물에서 솟구쳐 올라 위에 떠 있는 여의주를 물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애를 쓰고 공을 들인 공부는 과거장에서 결판이 난다. 김홍도가 그린 <봄날 새벽의 과거장 貢 院 春 曉 > 패트릭 페터슨 소장 은 300년이나 지난 조선시대 과거장의 모습을 우리 에게 실감나게 전하고 있다. 과거를 보기 위해 설치한 일산들이 화면에 꽉 들어차 있 다. 화면 아래에도 일산들이 가려져 있는데, 그 사이에 비로소 과거를 보는 사람들이 모습이 보인다. 아뿔싸! 이게 웬일인가. 그렇게 애를 쓰고 준비한 과거시험인데 그만 쏟아지는 잠을 못 이겨 조는 이가 있는 것이다. 당시 화단의 총수인 강세황은 이 장면 을 놓치지 않고 다음과 같이 과거장의 표정을 하나하나 새기듯이 묘사하고 있다. 44 2006 August Vol.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