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존경하는 교민 여러분 2006년 병술년도 저물어 가고 있으며, 지난 좋은 여름과 더불어 이 가을도 너무나 좋지 않았나 생각 들며 이 좋았던 계절들을 잘 보내셨으리라 믿습니다. 지금은 많은 눈과 함께 전나무에 눈꽃이 피고 스키의 계절, 흩어졌던 가족들간의 만남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발행인 마무원 발행처 재 발행일 2006년 제6호 11, 12월호 주소 Koreanska Föreningen i Sverige PO Box 645 101 32 Stockholm Sweden 전화 및 팩스 전화 08 21 97 53 팩스 08 21 97 53 E-메일 Info@koreans.se 홈페이지 www.koreans.se 회비납부 Koreanska Föreningen Post Giro 22 94 76-7 원고접수 격월 홀수 달 5일까지 우편 또는 E-메일 문의 및 건의 우편, 전화, 팩스, E-메일 홈페이지 게시판 금년말로 회장임기를 마치게 되면서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점이 많은 제가 감히 엄두를 내 어 이 막중한 중임을 감당한지 어언 2년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많은 친목행사를 하면서 힘닿는 대로 매사에 임하였으나 그래도 부족하고 미흡한 점이 많았습니다. 교민 여러분의 많은 양지하심을 바랍니다. 그러나 이 많은 친목행사를 큰 대과 없이 가질 수 있었던 것 은 교민 여러분들의 지대한 관심, 적극적인 동참과 아울러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 주시고 또한 대사관, 각 교회, 각 상사, 각 회사 등 또 많은 독지가들의 후원으로 인하여 이루어 졌으며 베풀어 주신 후의에 깊은 감사인사 말씀 올립니다. 그리고 2년간에 걸쳐 많은 수고 를 마다하지 않은 임원 여러분들께도 지면을 통하여 진심으로 감사를 표합니다. 이제 병술년을 보내면서 송년회 잔치를 12월 9일 작년과 같은 장소에서 가지면서 여러분 의 빠짐없는 참석과 더불어 즐겁고 좋은 만남의 시간되시길 원합니다. 또한 2007년 1월 13 일(토)에는 정기총회를 갖게 되며 차기 한인회장의 선출도 있습니다.꼭 참석하시어 여러 분의 관심과 조언을 부탁합니다. 즐거운 성탄절과 다가오는 신년에도 여러분 가정마다 풍성한 기쁨 속에 소망하시는 일 모두 성취하시고 행운이 함께하는 한 해가 되시길 기원하며 회장임기를 마치면서 인사말 씀에 대신합니다. 감사합니다. 2006년 11월 한인회장 마 무 원 올림 한인회를 도와주시는 분들 고문 김종배 08 612 41 74 김영호 08 742 33 54 임원 마무원 08 21 97 53 신동규 08 750 49 00 이현경 08 742 65 95 최명숙 08 83 91 97 M. Hubner 08 39 61 97 양새미 08 712 77 78 감사 고인숙 08 406 09 80 최병기 08 776 33 39 협찬 (주)샘터 LG Samsung 스톡홀롬 민박 한국식품(Korea Food) Daewoo JFK Iriver 한인회소식 04 사람 사는 이야기 14 회비 및 협찬 05 문화가 산책 16 한인회 주요 행사안내 06 특집 읽을거리 18 한국학교 알림터 08 전면광고 20 토막소식 10 한인회 정기총회 공고 21 한국 배우기 12 공지사항 22 병술년의 해가 저물어갑니다. 항상 느끼지만 세밑의 아쉬움은 나이가 들어도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이번 호는 Sollentuna 지역의 눈 내린 풍경을 실었습니다. 가을 의 아쉬움을 단번에 앗아버린 첫눈이 서럽기까지 합니다. 이번 호는 제가 여러분과 함께하는 마지막 회보입니다. 많은 우 여곡절이 있었지만, 지난 4년동안 본 회지제작에 도움을 주신 모 든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시고 즐거운 성탄과 희망의 새해 되시기 바랍니다.
4 2006년도 스웨덴 역사 강좌 한인회에서는 2006년도 스웨덴 역사강좌를 지난 1월11일 (토)에 스톡홀롬 한인교회에서 Björn Malmqvist ( 고고학 및 역사학 전공) 강사를 초빙하여 갖었습니다.
회비를 내어 주신 분 <알파벳순> 2006년 11월 10일 기준 An Hee-Ok 300 Carlsson Young-Sook 300 Cha Chang-Sun 300 Chae Kwang-Ung 300 Cho Chang-Huce 300 Cho Choongil 300 Cho Myong-Kyun 300 Cho Sung-Tai 300 Cho Yong-Oh 300 Cho Young-Phil 300 Choe Byung-Tae 300 Choe Yon-Hyok 300 Choi Byung-Eun 300 Choi Byung-Gyoo 300 Choy Byung-Ki 300 Chun Johan 300 Chun Ogi 300 Chun Soon-Ok 300 Chun Suh-Kyung 300 Chung Jung-Duk 300 Chung Se-Hyun 300 Ek Mikael 300 Ekstrand Kyong 300 Engberg Soonae 300 Ericson Yun-Ok 300 Fagerfjäll Young-Sook 150 Fridjonsson Kristjan 300 Gagerman Chun-Ja 300 Grandien Myung-Sook 300 Gunnarson Soon-Joo 300 Gustafson Ki-Ja 300 Gustafsson Susan 300 Ha Sung-Yong 300 Hahn Chungoo 300 Hahn Kee-Sook Julia 150 Hahn Ki-Soon 300 Han Ho-Suk 300 Han In-Ja, Herczegh 300 Han Myung-Hee 300 Han Myung-Soo 300 Han So-Ja 150 Holmberg Sook 300 Huh Dong-Whang 300 Hwang Sun-Joon 300 Hübner Milko 300 Jin Yong-Duk 300 Jonsson Gabriel 300 Joo Kang-Ho 300 Kadoo HB 150 Kang Jin-Jung 300 Kang Kyung 300 Kim Chul-Min 300 Kim Gustafson Haeryun 300 Kim Hyun-Ok 300 Kim Jong-Bae 300 Kim Joong-Bum 300 Kim Jung-Sik 300 Kim Kun-Wan 300 Kim Mi-Jung 300 Kim Mi-Young, Johansson 300 Kim Moon-Hye 300 Kim Moo-Young 300 Kim Myong-Han 300 Kim Nam-Sick 300 Kim Ok-Ji 300 Kim Seung-Hoon 300 Kim Sofia 150 Kim Sook-Hee 300 Kim Soo-Won 300 Kim Sung-Nam 300 Kim Ye-Heung 300 Kim Yoo-Hun 300 Kim Young-Hee 300 Kim Young-Ho 300 Kim Zung Il-Zoo 300 Kim-Björklund 300 Kinnman Myung-Bok 300 Kristensen Jung-Soon 300 Kum Myeong-Ja 150 Kågeman Sun-Ran 300 Larsson Guensoon 300 Larsson Hyang-Mi 150 Lee Bong-Chul 300 Lee Bong-Kyu 300 Lee Chan-Hee 300 Lee Dong-Ja 300 Lee Eui-Kyoon 300 Lee Hi-Chul 300 Lee Hyo-Sik 300 Lee Jong-Ok 150 Lee Kwang-Sup 300 Lee Man-Hi 300 Lee Myung-Kyu 300 Lee Sang-Hon 300 Lee Seung-Seob 300 Lee Si-Chun 300 Lee Sung-Ho 300 Lee Yong 300 Lee Young-Soo 150 Lietonen Hyun-Sook 300 Lim Charles 300 Lim Won-Sup 300 Lindberg Boo-Ja 300 Lindmark Jyni Sofia 300 Lindvall Bojan 300 Ljungström Eun-Ju 300 Ma Moo-Won 300 Murtada Kil-Ok 300 Nakamura Kum-Ju 300 Namn saknas 300 Nordin-Hi-Ja 150 Oh Chung-Ja 300 Oh In-Suk 300 Oh Susan 300 Oh Su-Won 300 Oh Tai-Whan 300 Olsson Sang-Moon 300 Pak Gun-Hong 300 Pak Young-He 300 Palm Miran & Jöran 300 Park Hyun-Sun 300 Park In-Seok 300 Park Kun-Hwa 300 Park Rogin 300 Park Woo-Suck 300 Park Young-Hi 300 Paulsson Keun-Hee 300 Ringholt Sunny 150 Ronquist Chyung-Soon 300 Seo Hyun-Chang 300 Shim Jung-Ja 300 Shin Didi 300 Shin Soo-Young 300 Shin Sung-Jae 300 Skoglund Kim 150 Son Myung-Ja 300 Son Myung-Ja 300 Song Han-Suck 300 Song Hee-Pal 300 Song Kyu-Jin 300 Song Kyu-Whan 300 Song Yo-Seung 300 Sundberg Me-Ea 300 Svensson Rok-joo 300 Särneroth Mee 300 Tholst Jin-Sook 300 Um Sung-Tae 300 Wennergren Young-Sook 300 Wennström Mihn-Cha 150 Wessman Soon-Im 300 Yang Cha-Im 150 Yang Seung-Ju 300 Yi Choong-Ho 300 Yim Ok-Ryoun 300 Yong Jae-Ock 300 Yong Yung-Ja 300 You In-Chik 300 Youn Young-Hee 300 Yu Chul-Yon 300 Yu He-Back 300 Yu Myung-Yon 300 Yu Song-Il 300 Yu Sun-Jong 300 Åsbrink Chun-Yul 150 Åström In-Ja 300 Total: 47 250kr 5 한인회관 건립기금, 광고비 및 찬조금을 보내어 주신 분 <알파벳순> 2006년 11월 10일 기준 Anonym 500 Carlsson Young-Sook 1800 Choi Byung-Eun 500 Chun Soon-Ok 1000 Dae Woo Electronics 6000 Ek Mikael 300 Hahn Chungoo(회관건립기금) 1000 Hahn Kee-Sook Julia 2000 Kia Motors Sweden AB 10000 Kim Chul-Min 500 Kim Jung-Sik 1000 Kim Young-Ho 2000 Kim-Björklund 3000 Koreanska Ambassaden 31163 Lee Jong-Ok 150 LG Electronics Nordic AB 45000 Lim Won-Sup 600 Ma Moo-Won 10000 Park Yim Kyu 703 Rest. Sun-Ran 1500 Ronquist Chyung-Soon 300 Samsung Electronics Nordic AB 65000 Skoglund Kim 2000 Svensson Rok-Joo 300 Total: 186 316kr 회비안내 본 한인회의 회비는 다음과 같습니다. 독신: 150kr, 가족: 300kr 알립니다 본 난에 오기, 누락 등의 오류가 있으시면 한인회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연락처: 이현경 08 742 65 95
6 한인회의 주요행사를 안내합니다. 본 행사 중 구체적 사항이 확정되지 않은 것은 추후 공지할 예 정입니다. 참고 바랍니다. 2006년 송년회 2006년도 송년회를 12월 9일 작년과 동일한 Tensta Träff에서 갖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본 회보 22쪽의 공지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일시: 2006년 12월 9일 (토요일) 17:00~22:00 장소: Tensta Träff, Hagstråket 13, T: Tensta 역 2007년 정기총회 2007년도 정기총회를 다음과 같이 개회합니다. 본 총회에서는 한인회의 행사보고 및 결산보고, 한인회 발전과 운영 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을 토의하며 제32대 한인회장 선출이 있 습니다. 한인회의 발전을 위하여 회원 여러분께서는 공사다망 하 시더라도 필히 참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자세한 사항은 본 회보 21쪽의 공지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일시: 2007년 1월 13일 (토요일) 11:00~13:00 장소: ABF Huset (Sveavägen 41, 1tr Katasalen i Stockholm) 문의전화: 마무원 08 21 97 53 Mobil 0735 099 842 신동규 08 594 635 35 Mobil 0701 422 646 모 TV 프로그램을 통해 고래가 출산 후 미역줄기를 뜯어먹는 걸 보고 산모 에게 미역을 많이 먹게 했더니 산후조 리에도 좋고 젖도 많아졌다 라는 옛문 헌의 기록이 소개 된 바 있다. 이렇게 아기를 낳은 산모가 반드시 섭취해야 할 음식으로 자리매김 해온 미역국 이 실제로도 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역의 칼슘함량은 분유와 맞먹을 정 도. 칼슘은 골격과 치아 형성에 필요한 성분으로 산후에 자궁수축과 지혈 작 용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또 신진 대사가 왕성한 임산부에게 평소보다 많은 양이 필요한 요오드 역시 미역 100g당 100mg이나 들어있다. 산모가 임신 중에 갑상선 호르몬이 태아에게 많이 빼앗기기 때문에 요드를 필요로 하게 되는데 바로 미역에 들어 있는 요드가 이를 보충한다는 것. 이는 갑상선호르몬을 만드는 성분으로 갑성선 호르몬인 티록신은 심 장과 혈관의 활동, 체온과 땀의 조절, 신진 대사를 증진시키는 작용을 하는데, 신진대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게 해 비만의 원인이 되 는 만큼, 요오드의 부족으로 산후 갑자기 체중이 증가하는 산모들도 적지 않다. 뿐만 아니라 미역에는 변비를 원활하게 하는 질 좋은 식이성 섬유 알긴산도 포함돼 있으며, 혈압을 내리게 한다고 알려진 염기성 아미노 산 라미닌도 함유하고 있다. 미역 내 20~30%를 차지하는 식이 섬유 알긴산은 암예방 및 비만억 제 효과는 물론 동맥경화 예방 및 항콜레스테롤성 효과도 지니고 있 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미역 내의 미끈미끈한 점질성분은 장에 서 당물질과 젤을 형성, 당의 흡수를 지연시켜 당뇨병 환자의 혈당조 절에 중요한 도움이 된다. 이런 식이섬유는 소 화흡수가 되지 않고 부피를 증가시켜 포만감과 배변효과도 함께 증가 시키므로 변비예방에도 큰 역할을 한다. 미역의 알긴산은 나트륨, 카드뮴 등 중금속과 결합해 변으로 제거시 키는 능력이 있어 소금 및 중금속 제거에 효과가 있다. 학위 지난 6월 8일 이상훈, 김선옥 회원의 아들 이원형 군이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축하 드립니다. - Master s Degree (Public Health) 8 June 2006 Harvard University, Boston, USA - Medical Doctor - Committee I Fapp (International Federation of association of Pharmaceutical Physicians) 결혼 Ericson, 김연옥 회원의 장녀 Ericson Sara 선옥 양과 Broden Henrik 군의 결혼식이 Dalana 의 Rättvik 교회에서 지난 6월에 있었습니다. 결혼을 축하합니다. 신랑: Broden Henrik 신부: Ericson Sara 선옥 한방에서도 미역은 신장과 간, 비위의 회복을 돕기 때문에 산모에게 특히 필요한 음식이라도 말한다. 또 혈액순환을 돕고 피를 맑게 해 출 산 뒤 몸 안에 고여 있는 죽은피를 풀어줘 산모에게는 최고의 음식이 라는 것. 이는 산모 뿐 아니라 아이에게도 좋은 음식이다. 산모 뿐 아니라 아이의 성장에도 요오드가 필요하기 때문. 요오드를 원료로 하는 갑상선 호르몬은 선천적으로 갑상선 호르몬이 부족한 어 린이에게 흔히 발병하는 육체 정신발육장에 크레틴병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되며, 갑상선 호르몬의 역할로 성장 발육을 촉진시키기도 한다. 노인의 경우도 마찬가지. 요오드의 결핍은 신체의 낡은 세포와 새로 운 세포의 교체를 힘들게 하며, 노화현상을 부추긴다. 뿐만 아니라 신 진대사의 활발한 작용을 막아 체내에 피하지방이 축적 된 비만증에 걸리기 쉽다. 이는 혈중의 콜레스테롤 양을 높여, 동맥경화를 일으키 고, 혈관의 노화를 유발한다. 전문가들은 요오드의 주요 보급원으로 미역을 비롯한 해조류를 꼽으 며, 현실적으로 요오드가 부족한 사람이 증가하는 추세인 만큼 굳이 산모가 아니더라도 미역은 꼭 섭취해야 하는 식품 중 하나라고 조언 한다. 하지만 미역에는 칼슘이나 요오드는 많지만 중요한 단백질이나 비타민 등은 거의 없기 때문에 무엇보다 임신, 출산 또는 수유기에는 단백질 등의 다른 영양분을 동시에 섭취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다.
7 한인회에서는 차기 한인회를 이끌어 나갈 회장 입후보자 신청을 받습니다. 2006년 10월 31일 24:00 까지 회장 입후보 공고를 하였으나 후보자의 신청이 접수 되지 않은 관계로 등록을 아래와 같이 연장합니다. 교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부탁 드립니다. 등록 일시: 2006년 12월 13일 24:00까지 등록 방법: 이메일 또는 우편으로 접수 E-Mail: mamoowon@hotmail.com 우편: Koreanska Föreningen i Sverige PO Box 645, 101 32 Stockholm (등록여부가 불분명한 관계로 전화로는 접수를 받지 않습니다.) 신청양식: 제32대 재 회장 후보 등록 신청서 성명: 주소: 연락처: 서명 및 날짜: 재 회칙에 의거하여 2007년 1월 13일 ABF HUSET (Sveavägen 41, Stockholm)에서 정기 총회가 개회되며, 이 정기총회에서 차기 회장선거가 진행됩니다. (2006년 12월 29일을 기준으로 한인회비 미납부자에 대해서는 투표권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2006년 11월 재 장 마 무 원
8...여기에 실린 그림과 글은 한국학교 학생들의 작품입니다. 순수한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동심으로 들어가 보세요. 아이들은 우리들 마음의 창입니다... 제21회 한국학교의 날 행사를 성황리에 잘 마치다. 지난 10월 28일 한국학교의 날 행사를 한국학교 대강당에서 성황리에 열렸습니다. 본 행사를 위해 수고하여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 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재 스웨덴 한국학교 학생, 교사진, 이사진 일동 협찬 (무순) Daewoo Electronics DiBOSS Nordic AB Euro-Park AB JFK iriver Nordic AB KIA Motors Sweden AB Korean Embassy Korean Food LG Electronics Nordic AB Samsung Electronics Nordic AB The Showroom 찬조금 (무순) 강진중 1000:- 구정미 500:- 김경애 200:- 김현옥 500:- 마무원 1000:- 박영숙 500:- 부산식당 2000:- 송규진 1000:- 송요승 500:- 송희팔 1000:- 임마누엘 교회 1000:- 스웨덴 초대교회 1000:- 스톡홀름 한인교회 2000:- 아리랑식당 2000:- 오인석 500:- 오정자 100:- 유오금 500:- 윤영희 1000:- 이인자 1000:- 임옥련 500:- 주강호 1000:- 천세충 500:- 최영숙 1000:- 최현숙 500:- 하성용 1000:- 한기숙 3000:- 한서협회(Koreanska sällskapet) 2000:- 한인회 2000:- 한정우 1000:- 한정희 2000:- 홍현옥 500:- 한국학교의 날 행사 사진
9
10 스웨덴의 각 정당별 당원 수 사민당: 125,000명 중앙당: 68,200명 보수당: 59,300명 기민당: 24,470명 자유당: 21,780명 좌파당: 11,000명 환경당: 8,000명 2005년 한국으로 부터 104명의 아이가 스웨덴으로 입양되었다. 2005년 스웨덴에서는 44,381쌍이 결혼 을 하였다. 2005년 스웨덴 식당의 총 매출은 560 억kr 이다. 2005년 스웨덴 국민들이 지불한 의료약 품 구입비는 약 350억 kr 이다. 지난번에 7개월 동안 시범 실시한 스톡 홀롬 도심 혼잡세의 징수총액은 약 4억 kr 이었다. 스웨덴 총 기업체수 중 약 25%가 스톡 홀롬 Län에 있다고 한다. 스웨덴의 아이들이 받는 월 평균 용돈 은 다음과 같이 조사되었다. 17세: 868 kr 6세: 약 81kr 스웨덴 가정의 약 93%가 유대전화를 소 유하고 있다. 스톡홀롬에는 약 940여명의 여자 노숙 자가 있다. 스톡홀롬에는 약 98개의 대사관과 영사 관이 있다. 2005년 기준으로 65,229명이 스웨덴으 로 이주하였고 38,118명이 외국으로 이주 하였다. 2005년에 약 20,000쌍이 이혼하였다. 스웨덴 근로자들의 년 근무시간은 약 1,692 시간이다. 2005년 스웨덴 정부는 약 833명의 전화 도청을 하였다. 2005년 스웨덴의 경제지표 GDP: 약 2조6천503 kr 1인당 GDP: 약 288,000 kr 경제성장률: 2.7% 주요금리: 2.5% 국가부채: 1조2천180억 kr 인프레이션율: 1.7% 2006년 2/4분기 현재 스웨덴 국민의 총 자산은 5조9천350억 kr 이고 부채총액은 총자산의 약 1/4이다. 일본 매체 "한국서는 비싸면 잘팔린다" 비아냥... 일본 매체인 J-CAST는 12일 '한국서 일본 차 판매가 늘고 있으며 이는 비싸야 잘 팔리는 한국인의 특이한 소비행동에 기인 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일본 매체는 2005년부터 도요타 렉서 스가 한국내 판매 순위 1위가 되어 2006년 도 무난히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보도하 며, 혼다와 인피니티도 점차 자리를 잡고 있다고 덧붙였다. '렉서스 LS'의 경우 한국의 가격이 미국 가격의 2배 이상이라며 이처럼 '초 고가 격'을 매긴 차가 잘 팔리는 이유는 '한국인 의 자가용차에 대한 특이한 소비 성향'에 기인한 것이라고 했다. 이 매체는 도요타, 인피니티 등 일본차가 한국에 진출할 때 고급차 이미지를 정착하는데 집중하여 현 재 BMW에 비해 많이 팔리고 있다고 했다. 한국 시장이 특이한 점은 '가격이 비싼 최상급 모델이 먼저 팔린다는 점' 이라며 '한국인들은 마사지 기능이나 뒷좌석 냉장 고 등 사용할 일이 전혀 없는 기능까지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고 적었다. 특히 한국에는 IMF의 회복으로 인해 갑 작스레 부자가 된 경우가 많다며 '상급 모 델이 주로 팔리는 이유는 허세 '라는 부 제를 달아 자세히 설명했다. 기사에서는 한국인들의 구매 성향에 대 해 '네 차에 이 장비가 없다니'라며 동료가 놀리는 것에 방어하기 위해서 풀 옵션 승 용차를 구매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과거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일본 자동 차 메이커가 연간 판매량이 4만대 이하 였 던 한국 시장에 적극적으로 매달린 이유 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익율이 매우 높 기 때문이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 일본 매체는 빈부 격차가 현격하게 심한 것이 한국 뿐 아니라 러시아 중국까 지 이어진다며 일본차 메이커는 이런 나 라에서도 판매 확장에 힘쓰고 있다고 기 사를 마무리 지었다. "추정 송대 목판화 진품이면 엄청난 사 건" 中 판화전문가 고판화박물관 소장 아미타래영도 평가 강원 원주시 치악산 명주사 소재 고판화 박물관(관장 한선학)이 소장한 추정 송대 ( 宋 代 ) 목판화인 아미타래영도( 阿 彌 陀 來 迎 圖 )가 진품으로 판정된다면 이는 엄청난 사건이라는 평가가 중국의 고판화 전문가 에게서 나왔다. 17일 고판화박물관이 원주 현지에서 개 최하는 한ㆍ중 고판화 학술대회 참가를 위해 방한한 중국 미술학원 보쏭니엔( 薄 松 年. 74) 미술사 담당 교수는 14일 서울시 내 한 음식점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보 교수는 아직 실물을 검토하지 못한 상태에서 진위 여부를 가릴 수는 없다 면 서도 도판 상태로 보아 (판화 1판만을 제 작한) 독폭( 獨 幅 )인 듯하며, 그림과 선 표 현이 매우 정밀하고 아름다우며 굉장히 유려하다 고 극찬했다. 그는 중국에서도 이런 송대( 宋 代 ) 이전 목판은 없으며, 다만 20세기 초 영국의 탐 험가 스타인이 돈황석굴에서 찾은 것으로 현재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목판 인쇄물 (868년 제작)이 알려져 있고, 일본 (교토 의) 청량사에 중국 저장성에서 제작된 중 국산 목판 인쇄물 4장이 전할 뿐 이라면서 따라서 고판화박물관 소장 아미타래영 도가 진품으로 밝혀진다면 이는 세계사적 사건이 될 것 이라고 예상했다. 이 아미타래영도 목판화는 높이ㆍ너비ㆍ 두께 각각 150cm x 50.5cm x 4.5cm로서 이것 이 제작된 곳으로 가정부 ( 嘉 定 府 )라는 지명이 목판 자체에 등장한다. 가정부란 중국 송나라 때 지금의 중국 쓰촨성( 四 川 省 ) 일대에 설치된 광역 지방 행정구역 중 하나로서, 중국의 4대 불교성 산 중 한 곳인 아미산( 峨 眉 山 )이 위치하고 있는 곳이다. 원( 元 )나라 때 편찬된 송나라 시대의 정 사( 正 史 )인 송사( 宋 史 )의 지리지( 地 理 志 )와 명나라 때 편찬된 원나라 정사인 원사( 元 史 ) 지리지 기록을 참조할 때 가정부라는 행정구역은 남송( 南 宋 )의 영종( 寧 宗 ) 황제 재위 2년째인 경원( 慶 元 ) 2년, 즉 서기 1196년에 설치됐다가 이곳이 원나라 수중 에 들어간 뒤 세조( 世 祖. 쿠빌라이)의 지원 ( 至 元 ) 13년(1277)에 총관부( 總 管 府 )가 설 치되면서 폐지된다.
11 따라서 가정부는 남송시대라는 지극히 한 정된 시기(1119-1277)에만 사용된 지명이 되며, 이런 지명이 확인되는 고판화박물관 소장 아미타래영도는 남송시대 목판화일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된다. 보 교수는 아울러 이번 학술대회 개최에 즈음해 고판화박물관이 공개한 불정심다 라니경( 佛 頂 心 多 羅 尼 經 )이라는 불경 책 또 한 아미타래영도 목판에 못지 않은 세계 적 명품이라고 감정했다. 보 교수에 의하면 이 불정심다라니경은 중국 명( 明 )나라 헌종( 憲 宗 ) 성화( 成 化 ) 13 년(1477)에 중국에서 판각된 것으로, 당시 에 찍어낸 책은 오직 한국의 고판화박물 관에만 전한다. 폭 45.5cm에 전체 길이 16.1m에 육박하 는 불정심다라니경은 조선에 이내 수입돼 판각 8년 뒤인 조선 성종 16년(1485) 성종 의 어머니인 인수대비가 조선에서 번각하 기도 했다. 이렇게 번각한 책이 현재 호림 박물관에 소장돼 있으며 더구나 보물로 지정돼 있다는 점에서 고판화박물관 소장 원본 불정심다라니경은 그에 버금가거나 그것을 뛰어넘는 문화유산적 가치를 지녔 다고 평가된다. 불정심다라니경이란 온 마음으로 읽고 지니면 재앙을 피할 수 있다는 불교신앙 에 의해 널리 유통된 경전이다. 다라니는 지혜와 삼매( 三 昧. 잡념을 버리고 한가지 일에 정신을 집중하는 것)를 성취시켜주 는 힘을 지니고 있는 말씀으로 글자 하나 마다 무한한 의미와 위력을 가지고 있다 고 한다. 이 불경은 본문을 상ㆍ하 2단으로 나눠, 위쪽에는 해당 불경 내용을 요약해 묘사 한 변상도( 變 相 圖 )를 넣었고, 그 아래쪽에 는 불경 본문을 썼다. 17일 고판화 국제학술대회에는 보 교수 를 비롯해 중국 베이징수도도서관 조우신 훼이( 周 心 慧. 57) 부관장, 허베이성 우치앙 ( 武 强 )연화( 年 畵 )박물관 류모( 劉 默 ) 연구원, 남권희(경북대)ㆍ정병모(경주대) 교수 등이 발표자로 나서 한-중 판화문화를 다각도 로 분석한다. 청계천에 '뼈 진동 음악다리' 생긴다 서울시가 내년 3월 청계천에 뼈의 진동을 이용해 음악을 듣는 골전도( 骨 傳 導 ) 음악 다리 를 설치하는 등 관광자원과 서울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 실 현에 나선다. 서울시는 최근 직원들의 시정 아이디어 제안 창구인 상상뱅크 등을 통해 다양한 시정 아이디어를 수렴한 결과 청계천 골 전도 음악다리 설치 등을 추진키로 했다 고 14일 밝혔다. 시는 우선 내년 3월까지 청계천에 난간에 신체(팔꿈치)를 접촉하면 뼈를 통해 음파 가 귀까지 전해지면서 음악이 들리는 골 전도 음악다리 를 설치키로 하고 현재 민 간 전문업체와 세부 내용에 대해 협의중 이다. 골전도 음악다리는 기존의 청계천 다리 중 난간이 쇠로 돼 있어 음파의 전달이 용이한 다리 난간에 진동자와 음향장치 등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시는 현재 청계천 4 5가 방산시장 앞의 새벽다리를 대상 다리로 검토중이다. 시 관계자는 뼈의 진동을 이용해 음악 을 듣을 수 있는 다리는 세계적으로 처 음 이라며 이 다리가 설치되면 청계천이 세계적 관관명소로 거듭나는 데 도움이 될 것 이라고 말했다. 무인도서 150년산 '적하수오' 10여뿌리 신장강화와 강 장제 한약재로 널리 알려진 150 년 이상 된 적하 수오( 赤 何 首 烏 ) 10 여 뿌리(감정 가 1억5천만원)가 전남 목포의 한 무인도에서 채취돼 화제다. 10년째 심마니 생활을 해 오고 있는 김 창남(43.목포시 옥암동)씨는 최근 목포 인근 한 무인도에서 적하수오 군락지를 발견하고 150년 이상된 10여 뿌리를 캤다 고 14일 밝혔다. 김씨가 캔 적하수오는 드물게 나마 발견 되는 백하수오에 비해 매우 희귀한 것으 로 이를 감정한 정형범 한국 전통심마니 협회장은 뿌리 당 무게가 5kg인 이 하수 오는 국내 최초로 1천500만 원을 호가하 는 매우 진귀한 물건 이라고 감탄했다. 지난 4월 신안의 한 섬에서 50년 이상 된 하수오를 캤던 김씨가 이처럼 횡재한 것 은 꿈 속 조상님 덕택. 김씨는 산행 하루 전 꿈에 조상님이 나 타나 한 척의 나룻배를 주며 서쪽으로 가 라는 말씀을 남겨 다음 날 바로 여장을 꾸려 서해안의 무인도를 찾았다 면서 그 러나 무인도에서 산삼 등을 찾아 하루를 꼬박 보냈지만 아무런 소득없이 하산하던 중 하수오를 발견했다 고 말했다. 넝쿨이 커다란 밧줄처럼 뒤엉켜 있는 하 수오를 발견한 김씨는 5시간 동안 비지땀 을 흘리며 캔 것으로 알려졌다. 하수오는 강장과 강정, 감기, 신경쇠약, 관 절염 등의 치료에 쓰이며 술을 담가 먹으 면 흰머리 털을 검게 한다는 자양강장제 로 널리 알려져 있다. 차없는 명동거리 서울 강북의 대표적 상권 인 명동이 내 년 상반기 안 으로 명실상 부한 보행 자 천 국 이 된다. 서울시 는 명동관 광특구 계획 에 따라 차량통행금지 지역을 확대, 대부 분의 거리 골목을 차 없는 거리 로 바 꾸기로 했다. 현재 명동의 차 없는 거리 는 밀리오레 ~오양빌딩간 중앙로를 비롯한 9군데. 그리 고 아바타몰~명동성당간 명동길은 주말에 차가 들어갈 수 없다. 하지만 앞으로는 명 동역~유투존~명동길을 잇는 명례방길을 포함한 8곳이 차 없는 거리 로 추가된다. 매일 오전 11시부터 밤 11시까지다. 명동길 도 주말(토 일)뿐 아니라, 평일에도 차가 다닐 수 없게 된다. 크게 보아, 명동권 전 체 블록의 남북 방향 중심지 대부분이 보행자만의 거리 가 되는 셈이다. 명동 주변에는 횡단보도도 크게 늘어난 다. 롯데백화점에서 명동으로 가려면 지하 도를 이용해야 했다. SK 본사에서 을지로 건너 명동으로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앞 으로는 이런 곳에 횡단보도를 놓는다. 중 앙우체국?신세계백화점, 세종호텔?남산1호 터널 방면 등 4곳에도 횡단보도가 생긴다. 횡단보도와 보행자 전용로 확대는 쾌적하 게 쇼핑과 관광을 즐기게 하기 위한 것이 다. 이는 오세훈( 吳 世 勳 ) 시장이 추진하는 인사동~청계천~명동간 도심 문화 관광 벨트 조성 작업과도 맞물려 있다. 여전히 강북의 중심 상권인 명동에 재활력을 불 어넣자는 뜻도 있다. 다만 횡단보도는 경 찰청과의 협의 문제 등이 있어 구체적으 로 언제 설치할 지는 서울시도 정확히 얘 기하지 못하고 있다. 명동뿐 아니다. 벚꽃길로 유명한 여의도 의 여의서로(770m), 그리고 문구점이 밀 집한 종로구 창신동의 문구길(280m) 등도 일단 주말에는 차 없는 거리 로 바꾸기 로 했다. 서울시는 1996년 중구의 명동길 과 중앙로, 그리고 종로구 관철동길을 차 없는 거리 로 처음 지정했다. 이후 현재까 지 인사동길 청계천길 등 11곳으로 늘려 왔다. 앞으로도 해마다 3군데 정도씩 차 없는 거리 를 늘릴 계획이다.
12 하게 죽어버린 것이다. 그 사공의 이름이 손돌이었다. 그래서 그 손돌이 죽은 곳을 손돌목이라 하고 지나갈 때 조심한다. 해 마다 그날이면 강풍이 불고 날씨가 찬데, 이는 손돌의 억울하게 죽은 원혼 때문이 라고 한다. 특히, 강화에서는 이날 뱃길을 금한다. 겨울의 의미 겨울 ' 冬 '의 의미는 본래 끈을 묶은 모양 으로 계절의 끝인 겨울을 상징하다가 추 위의 표현인 얼음 빙{ 氷 }의 의미를 넣어서 만든 글자이다. 죽음과 암흑의 상징이면서 도 역시 새로운 생명의 잉태를 암시해 주 고 있다. 겨울의 추위는 다음해 농사의 풍흉( 豊 凶 ) 을 점치고{삼한 사온( 三 寒 四 溫 )이면 풍년, 이상 난동( 暖 冬 )이면 흉년}, 조상에게 묘제 ( 墓 祭 )를 올리는 시향( 時 享 )을 지내는 시 기이기도 하다. '송구영신( 送 舊 迎 新 )'의 의 미로 겨울을 표현하는데, 묵은 것은 버리 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통과의례로 겨 울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이다. 겨울은 오 행( 五 行 )의 수( 水 ), 방위는 북( 北 ), 오색( 五 色 )은 흑( 黑 )에 해당된다. 입동( 立 冬 ) 상강과 소설 사이에 들며, 음력 10월, 양 력 11월 8일경으로, 태양의 황경이 225 에 이를 때이다. 입동을 특별히 절일( 節 日 )로 여기지는 않지만 우리의 겨울 생활과 상 당히 밀접한 관계에 있다. 겨울 동안의 김 치를 장만하는 김장은 입동을 기준해서 하기 때문이다. 김장은 입동 전 혹은 입동 직후에 하여 야 제 맛이 난다. 입동이 지난 지가 오래 면 얼어붙고, 싱싱한 재료가 없으며, 일하 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때가 되면 시장에는 무, 배추가 가득 쌓이고, 또한 옛 날에는 냇가에서 부녀자들의 무, 배추 씻 는 풍경이 장관을 이루기도 하였다. 전라 남도 지방에서는 입동의 날씨를 보아 그 해 겨울 날씨를 점친다. 즉, 입동날 추우면 그 해 겨울은 몹시 춥다고 한다. 경상남도 도서지방에서는 입동에 갈가마 귀가 날아 온다고 하며, 밀양지방에서는 갈가마귀의 배에 흰색의 부분이 보이면 이듬해에 목화가 잘 된다고 한다. 제주도 에서는 입동 날씨점을 본다. 즉, 입동에 날 씨가 따뜻하지 않으면 그 해 바람이 독하 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10월 10일에서 30일 사이에 이른바 고사를 지낸다. 그 해의 새 곡식으로 시루떡을 만들어 토광, 터줏단지, 씨나락섬에 가져다 놓았다가 먹고, 농사에 애쓴 소에게도 가져다 주며, 이웃집과도 나누어 먹는다. 소설( 小 雪 ) 입동과 대설 사이에 들며, 음력 10월, 양 력 11월 22일이나 23일경이다. 태양의 황경 이 240 에 오는 때이다. 이때부터 살얼음이 잡히고 땅이 얼기 시작하여 점차 겨울 기 분이 든다고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직 따뜻한 햇볕이 간간이 내리쬐어 소춘 이 라고도 불린다. 옛날부터 중국사람들은 소설로부터 대설 까지의 기간을 5일씩 삼후( 三 候 )로 구분하 여, 초후( 初 候 )에는 무지개가 걷혀서 나타 나지 않고, 중후( 中 候 )에는 천기가 올라가 고 지기가 내리며, 말후( 末 候 )에는 폐색되 어 겨울이 된다고 하였다. 소설 무렵, 대개 음력 10월 20일께는 관례적으로 심한 바람 이 불고 날씨가 차갑다. 이날은 손돌이 죽 던 날이라 하고 그 바람을 손돌바람이라 해서, 외출을 삼가고 특히 뱃길을 조심한 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고려시대에 왕이 배를 타 고 통진과 강 화 사이를 지 나는데 갑자 기 풍랑이 일 어 배가 심하 게 흔들렸다. 왕은 사공이 고의로 배를 흔 들어 그런 것이라고 호령을 하고 사공의 목을 베었다. 사공은 아무 죄도 없이 억울 대설( 大 雪 ) 소설과 동지 사이에 들며, 음력 11월, 양 력 12월 7, 8일경이다. 태양의 황경이 225 에 도달한 때이다. 이 시기에 눈이 많이 내린다는 뜻에서 대설이라는 이름을 붙였 는데, 이것은 원래 재래 역법의 발생지이 며 기준지점인 중국의 화북지방의 상황을 반영하여 붙여진 것이다. 그러므로 꼭 이 시기에 적설량이 많다고는 볼 수 없다. 중국에서는 대설로부터 동지까지의 기간 을 다시 5일씩 삼후( 三 候 )로 나누어서, 초 후( 初 候 )에는 산박쥐가 울지 않고, 중후( 中 候 )에는 범이 교미하여 새끼 치며, 말후( 末 候 )에는 여지(여주)가 돋아난다고 하였다. 한편, 이날 눈이 많이 오면 다음해 풍년이 들고 푸근한 겨울을 난다는 믿음이 전해 진다. 동지( 冬 至 ) 일년 중에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하지로부터 차츰 낮이 짧아 지고 밤이 길어지기 시작하여 동짓날에 이르러 극에 도달하고, 다음날부터는 차츰 밤이 짧아지고 낮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고대인들은 이날을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생각하고 축제를 벌여 태 양신에 대한 제사를 올렸다. 중국 주( 周 )나라에서 동지를 설로 삼은 것도 이날을 생명력과 광명의 부활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며, 역경의 복괘( 復 卦 )를 11월, 즉 자월( 子 月 )이라 해서 동짓달부터 시작한 것도 동지와 부활이 같은 의미를 지닌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동짓날 에 천지신과 조상의 영을 제사하고 신하 의 조하( 朝 賀 )를 받고 군신의 연예를 받기 도 하였다. 동국세시기 에 의하면, 동짓날을 아세 ( 亞 歲 ) 라 했고, 민간에서는 흔히 작은 설 이라 하였다고 한다. 태양의 부활을 뜻 하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설 다음 가는 작은 설의 대접을 받은 것이다. 그 유풍은 오늘날에도 여전해서 동지를 지 나야 한살 더 먹는다. 또는 '동지팥죽을 먹 어야 진짜 나이를 한살 더 먹는다'는 말을 하고 있다. 동짓날에는 동지팥죽 또는 동지두죽( 冬 至 豆 粥 ), 동지시식( 冬 至 時 食 )이라는 오랜 관습이 있는데, 팥을 고아 죽을 만들고 여 기에 찹쌀로 단자( 團 子 )를 만들어 넣어 끓 인다. 단자는 새알만큼 한 크기로 만들기 때문에 새알심 이라 부른다.
13 팥죽을 다 만들면 먼저 사당에 올리고 각 방과 장독, 헛간 등 집안의 여러 곳에 담 아 놓았다가 식은 다음에 식구들이 모여 서 먹는다. 동짓날의 팥죽은 시절식( 時 節 食 )의 하나 이면서 신앙적인 뜻을 지니고 있다. 즉, 팥 죽에는 축귀( 逐 鬼 )하는 기능이 있다고 보 았으니, 집안의 여러 곳에 놓는 것은 집안 에 있는 악귀를 모조리 쫓아내기 위한 것 이고, 사당에 놓는 것은 천신( 薦 新 )의 뜻이 있다. 팥은 색이 붉어 양색( 陽 色 )이므로 음 귀( 陰 鬼 )를 쫓는 데에 효과가 있다고 믿었 으며 민속적으로 널리 활용되었다. 전염병이 유행할 때에 우물에 팥을 넣으 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진다고 하 며 사람이 죽으면 팥죽을 쑤어 상가에 보 내는 관습이 있는데 이는 상가에서 악귀 를 쫓기 위한 것이며, 동짓날에 팥죽을 쑤 어 사람이 드나드는 대문이나 문 근처의 벽에 뿌리는 것 역시 악귀를 쫓는 주술행 위의 일종이다.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나 재앙이 있을 때에도 팥죽, 팥떡, 팥밥을 하는 것은 모두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동짓날에도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 는 것으로 되어 있다. 동짓달에 동지가 초 승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 믐께 들면 노동지라고 한다. 동지팥죽은 이웃에 돌려가며 서로 나누어 먹기도 한 다. 동짓날 팥죽을 쑤게 된 유래는, 중국의 형초세시기 荊 楚 歲 時 記 에 의하면, 공공 씨( 共 工 氏 )의 망나니 아들이 동짓날에 죽 어서 역신( 疫 神 )이 되었다고 한다. 그 아들이 평상시에 팥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역신을 쫓기 위하여 동 짓날 팥죽을 쑤어 악귀를 쫓았다는 것이 다. 동짓날에 궁 안에 있는 내의원( 內 醫 院 ) 에서는 소의 다리를 고아, 여기에 백강, 정 향( 丁 香 ), 계심( 桂 心 ), 청밀( 淸 蜜 ) 등을 넣어 서 약을 만들어 올렸다. 이 약은 악귀를 물리치고 추위에 몸을 보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 동짓날에는 관상감( 觀 象 監 )에서 새해 의 달력을 만들어 궁에 바치면 나라에서 는 동문지보 라는 어새( 御 璽 : 옥새)를 찍 어 백관에게 나누어주었다. 각사( 各 司 )의 관리들은 서로 달력을 선물하였으며, 이조 ( 吏 曹 )에서는 지방 수령들에게 표지가 파 란 달력을 선사하였다. 동짓날이 부흥을 뜻하고 이날부터 태양 이 점점 오래 머물게 되어 날이 길어지므 로 한 해의 시작으로 보고 새 달력을 만 들어 가졌던 것이다. 매년 동지 무렵이 되 면 제주목사는 특산물로서 귤을 상감에게 진상하였다. 궁에서는 진상 받은 귤을 대 묘( 大 廟 )에 올린 다음에 여러 신하에게 나 누어주었고, 멀리에서 바다를 건너 귤을 가지고 상경한 섬사람에게는 그 공로를 위로하는 사찬( 賜 餐 )이 있었으며, 또 포백 ( 布 帛 ) 등을 하사하였다. 멀리에서 왕은에 감화되어 진기한 과일 을 가져온 것을 기쁘게 여겨 임시로 과거 를 실시해서 사람을 등용하는 일이 있었 는데, 이것을 황감제( 黃 柑 製 )라 하였다. 동 짓날 부적으로 뱀 사( 蛇 ) 자를 써서 벽이 나 기둥에 거꾸로 붙이면 악귀가 들어오 지 못한다고도 전해지고 있으며, 또 동짓 날 일기가 온화하면 다음해에 질병이 많 아 사람이 죽는다고 하며, 눈이 많이 오고 날씨가 추우면 풍년이 들 징조라고 전한 다. 소한( 小 寒 ) 입춘과 경칩 사이에 있으며, 입춘 15일 후인 양력 2월 19일 또는 20일이 된다. 흔 히 양력 3월에 꽃샘추위라 하여 매서운 추 위가 잠시 기승을 부리지만, 이맘때면 날 씨가 많이 풀리고 봄기운이 돋고 초목이 싹튼다. 예로부터 우수, 경칩에 대동강 물 이 풀린다. 라는 말이 있다. 태양의 황경이 330 에 올 때 우수 입기 일( 入 氣 日 )이 되는데, 음력으로는 정월 중 기이다. 옛날 중국사 람들은 우수입기일 이후 15일 동안의 기 간을 삼후( 三 候 )로 5 일간씩 세분하여 그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즉 첫 5일간은 수달 이 물고기를 잡아다 늘어놓고, 다음 5일간 은 기러기가 북쪽으로 날아가며, 마지막 5 일간은 초목에 싹이 튼다고 하였다. 한편, 우수 무렵이 되면 수달은 그동안 얼었던 강이 풀림과 동시에 물 위로 올라오는 물 고기를 잡아 먹이를 마련한다. 원래 추운 지방의 새인 기러기는 봄기운을 피하여 다시 추운 북쪽으로 날아간다. 그렇게 되 면 봄은 어느새 완연하여 마지막 5일간 즉 말후( 末 候 )에는 풀과 나무가 싹이 튼다. 대한( 大 寒 ) 24절기의 마지막 절후( 節 候 ). 양력 1월 20 일경이며, 태양의 황경이 300 되는 날이다. 대한은 음력 섣달로 매듭을 짓는 절후이 다. 원래 겨울철 추위는 입동에서 시작하 여 소한으로 갈수록 추워지며 대한에 이 르러서 최고에 이른다고 하지만, 이는 중 국의 경험에 입각한 것이고 우리나라에서 는 1년 중 가장 추운 시기가 1월 15일께이 므로 다소 사정이 다르다. 그래서 '춥지 않 은 소한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 없다', 대한이 소한의 집에 가서 얼어 죽었다', '소한의 얼음 대한에 녹는다'라는 속담도 있다. 즉 소한 무렵이 대한 때보다 훨씬 춥다는 뜻이다. 제주도에서는 이사나 집수리 따위를 비 롯한 집안 손질은 언제나 신구간에 하는 것이 관습화되어 있다. 이때의 신구간은 대한 후 5일에서 입춘 전 3일간을 말하는 것으로 보통 1주일이 된다고 한다. 제석의 유래 1년의 마지막 날인 섣달 그믐날 밤을 제 석( 除 夕 ) 혹은 제야( 除 夜 )라고 하는데, 이는 한 해를 마감하는 마지막 밤이라는 뜻이 다. 제석의 풍속 제석의 풍속으로는 먼저 궁궐에서 지내 는 '연종제( 年 終 祭 )'와 '묵은해 문안', 그리고 민간에서 행하는 '묵은해 세배' '수세( 守 歲 )' '세찬( 歲 饌 )' 등이 있다. (1) 연종제와 묵은해 문안 연종제란 궁중에서 한 해가 끝남을 기념 하여 지내는 의식으로, 조선조 말기까지 궁중에서 이 연종제 행사를 행하여 왔다. 이때 악귀를 쫓는다고 하여 여러 가지 가 면을 쓰고 제금과 북을 울리면서 궁 안으 로 두루두루 돌아다니는데, 이를 나례( 儺 禮 )라고 한다. (2) 묵은세배 섣달 그믐날 저녁에 사당에 절하고 설날 세배를 하듯 어른들에게 절을 하는데 이 를 '묵은세배'라 한다. 그런데 이 묵은세배 는 가까운 사이에만 할 수 있다. 제주도에 서는 시집간 딸들 이 친정 부모나 친척집 에 가서 세배를 하는 것을 '망년과세( 忘 年 過 歲 )'라고 한다. 전라도 진도 지 방에서는 설을 앞두고 '몇뱃기'라 하여 자손들이 시 부모나 친정 부모에게 음식을 차려 가지 고 ' 名 日 이바지'를 한다. (3) 수세( 守 歲 ) 이 날 밤에 방, 뜰, 부엌, 곳간, 변소 할 것 없이 집안 구석구석에 불을 밝혀 놓고 잠 을 자지 않는 것을 수세라 한다. 이는 잡 귀의 출입을 막기 위한 것이며, 부뚜막 솥 위에 불을 밝히는 것은 조왕신을 위한 것 이다. 이 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 고 하여 밤새도록 윷놀이를 하거나 재미 있는 이야기를 하며 밤을 새운다. 충북에 서는 한 해가 마지막 가는 밤이니 집에서 는 저녁밥을 남기지 않고 다 먹으며, 바느 질하던 것도 해를 넘기지 않게 한다. 전북에서는 이 날 밤에 잠을 자면 굼벵 이가 된다고도 하며, 시루 떡을 해서 방안 에 놓고 밥그릇에 쌀을 담아서 등잔불을 켜 놓아 불똥 앉는 것을 보며 재수를 본 다. 또 샘에다 바가지에 참기름 불을 만들 어 띄운다.
14 양부모 또는 양어머니가 되려면 여러 가 지 복잡하고 시일이 걸리는 과정이 있고 그리고 입양허가도 받아야 한다. 이러한 수고스러운 신청과정도 있고 경제적인 부 담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이들은 아이 를 갖고 싶어하나? 더욱이 인종이 틀리는 다른 나라에서? 이 의문은 실화를 읽으면 이해하게 된다. 18 가정이 공통적으로 진술한 인생관은 사랑을 주고받는 화목한 가정을 갖고 싶 은 것이다. 실화기록선집 實 話 記 錄 選 集 한 순 주 각 양자 뒤에는 숨어있는 비참한 비운이 있다. 그 비운 때문에 아이를 가질 수 있 는 기회가 생겼다. 비행장에서 아기가 품 안에 안겼을 때 그 순간 황홀한 기쁨 때 문에 눈물이 흘렀다. 이 아기는 하나님이 주신 보배라고 느꼈다. 이렇게 진심으로 쓴 어머니도 있다. 근래에 와서 입양자들이 심리문제에 관 해서 매스미디어에 종종 나왔다. 성인이 된 그들은 이곳에서 깊은 사랑을 받고 안 전한 생활을 하고 있으나 출생에 대한 의 문이 가슴속 깊이 잠재하고 있었다. 나의 어머니는 왜 나를 버렸을까? 이다.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서 출생지인 한국에 가서 수색하고 조사해서 다행이 생 엄마 를 찾은 사람도 있고, 빈손으로 효과 없이 귀국한 사람도 있다. 입양자가 느끼고 경험한 것을 쓴 책은 서점과 도서실에서 구해서 읽을 수 있다. 매스미디어는 일반인 반응과 관심을 끌었 다. 그 반면 양부모에 대해서는 섭섭하게 도 묵인해 버렸다. 정신요법 의사이고 정 신분석 전문의사인 Kim Skoglund씨는 입 양자 중점으로 보도되는 미디어와 정반대 로 18가정 양부모가 겪어 온 실화를 편집 했다. 부모들이 체험한 기쁜 일, 슬픈 일, 속을 태우는 걱정한 마음 등 각자가 경험한 감 정을 숨기지 않고 간단하면서도 선명하게 쓴 실화는 독자에게 새로운 문을 열어 준 다. 국경과 인종의 선이 없는 사랑은 부모 의 사랑이라는 것을 인식하게끔 밝혀준다. 한국으로부터 맨 처음 입양이 시작한 해 인 1958년 이후 30년 동안 많은 사람이 양부모가 되었다. 18 가족이 쓴 실화의 내 용은 어떻게 아이를 받았으며, 부모가 아 이에게 적응하려고 주야로 노력한 과정은 칭찬할 만 하다. Camia, 1950년 생 그리고 Jonas, 1954년 생 두 형제는 여덟 살과 네 살 때 스웨덴 에 왔다. 그 때가 1958년이었다. 그러니 6 25 전쟁 전후로 자랐으니 굶어서 겨우 살아 왔다는 사실이다. 두 아이는 영양부 족으로 지병을 갖고 있었다. Camia는 폐 가 나빴고 Jonas는 굶은 아이의 특징인 풍선 같은 배를 갖고 있었다. 두 형제는 오랫동안 먹는데 만 중점이어 서 두 아이를 위해서 거의 주야로 음식을 만들었다. 청소를 하면 으레 소시지나 빵 조각이 소파나 피아노에 숨겨있었다. 그것 을 치운다면 큰 방한소리가 났다. Camia 와 Jonas는 음식을 어디다 숨겼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Jonas는 감자를 쥐고 자는 것을 보고 살며시 손에 쥔 감자를 뺏다. 그러나 곧바로 깨서 큰 소리로 울기 때문 에 할 수 없이 감자를 손에 쥐어주었다. Jonas는 곧 울음을 그치고 고요히 잠이 들었다. 이 장면은 6 25 전쟁 후 대다수의 한국국 민이 굶어가며 살았다는 현실을 새삼스레 읽었다. 1964년 간호원 MC가 서울국립중앙의료 원에 근무할 당시 갑자기 엄마가 된 묘사 는 인간애가 넘쳐 흐른다. 생활난에 애기 키울 능력이 거의 없는 여인이 해산시켜 준 MC에게 애기를 맡기는 과정은 놀라움 과 비애가 섞였다. 부친 D의 진심으로 우러나온 말은 여러 사람께 동감되는 의견이다. 그는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애를 위해서 라던가 또는 애정을 받고 싶다던 가, 하는 타산과 이성에서 떠나서 오로지 아빠와 엄마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 이 생존할 수 있는 근본일 것이다. 내가 받은 선물에는 책임이 있다. 눈부신 순간 적 행복, 그 반대의 슬픔과 실망, 속을 태 우는 걱정, 이 모든 일은 우리가 살아 가 는데 인생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딸이 자 주 보내는 편지에 세계에서 제일 좋은 아 버지께 라고 써 있으니 이 표현은 부녀간 사이가 좋다는 증거일 것이다. 친부모나 양부모나 걸어야 할 길은 길고 장애물도 많다. 더욱이 입양자의 경우는 간단하지 않다. 언어 갖고 표현 못하는 마 음의 상처가 잠재의식 속에 깊이 묻혀있 다. 환경이 바꾸어진 혼돈상태 등, 이러한 과거의 잠재의식이 사춘기에 영향을 주는 경우도 생긴다. 딸이 어머니 존재를 거부하고 과거의 일 을 공격하고 냉정한 딸에게 쓴 하소연도 있다. 너는 귀여움 받고 기다렸던 아이 다. 지금 너는 35살이고 두 사내아이의 엄 마다. 나는 애들의 할머니가 되고 싶고 만 나고 싶을 때 왜 너는 방해하느냐? 너는 내 딸이다. 나의 단 하나의 원은 네가 내 게 돌아오는 것이다. 내가 너를 구박했다 고 하나 너는 나를 거부하는 것이 아닌 가? 너는 내 사랑을 찢어 버렸다. 그것은 엷은 거미줄이다. 그러나 거미줄은 질기고 강하다. 나는 참고 너를 기다린다. 어제 네가 전화 걸었지. 네 음성은 잔잔 하고 기뻤다. 네 생일 날 오라고 초대했으 니 나는 갈 것이다. 아마도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이 가까이 오고 또 우리가 재출발 할 날이 올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바다같이 깊고 넓다는 것이 사실이다. 가슴이 찔리는 하소연이다.
15 열 여덟 실화의 부모들이 이구동성으로 원한 것은 사랑을 줄 수 있는 화목한 가 정을 갖는 것이다. 그들은 인간이 존재하 는데 근본적인 가치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Efterlängtad는 젊은이들이 읽으면 어버이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일반인에게는 동 감을 느끼게 하는 실화이다. 수 많은 양부 모들이 민간문화교류에 이바지 한 힘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자녀를 위해서 아이의 출생 국 한국을 방문하고 또 한국 의 전통과 문화에 대해서 음으로 양으로 힘 쓰는 분 들이다. 실화기록선집 편집자: Kim Skoglund Efterlängtad (간절히 기다린 아이 필자 번역) Adoptivföräldrar berättar 출판사: MARELD 편집자 주 Adoptivföräldrar berättar Kim Skoglund Efterlängtad vänder sig till adoptivföräldrar, även blivande, och till adopterade. Författarna är föräldrar som öppet och generöst har delat med sig av både ljusa och svåra situationer och hoppas att andra ska kunna ha nytta av deras erfarenheter. Den är givetvis aktuell även för alla som möter adopterade eller deras familjemedlemmar i sitt arbete eller i sin egen vardag. Boken innehåller 18 berättelser av föräldrar med adoptivbarn från olika världsdelar. Det gemensamma för de medverkande i antologin är att de har vuxna barn, eftersom bokens syfte är att belysa adoption i ett längre tidsperspektiv. Eftersom boken spänner över flera decennier speglar den också förändringar i samhället, både utvecklingen i givarländerna och förändringar i synen på adoption i vårt samhälle, inte minst att kunskapen om de speciella dragen i uppväxtsituationen för adopterade har ökat. En av föräldrarna i boken skriver: Därför är denna bok inte bara en bok om adoptivbarn och adoptivföräldrar. Det är en bok som frågar oss som läser den, hur förhåller vi oss till själva livet, till våra egna liv, till våra drömmar och förhoppningar, besvikelser och kriser? Kim Skoglund är psykiater och psykoanalytiker, invandrad till Sverige från Korea 1962. Hon har under 30 års tid haft kontakt med adoptionsfrågor, både som psykoterapeut och som föreläsare på talrika kurser för adoptivfamiljer. 자랑스러운 딱지 대장 울 공방에 5학년인 콩알만한 김x희라는 녀석이 있다. 그 녀석은 1학년 때 왔는데, 엄청 울보였다. 한 번 울면 선생 퇴근할 때까지 계속 울었다. 거 의 통곡에 가까웠다. 철없이 매로 애만 잡는 형 같은 아버지와 역시 철없는 20살짜리 새엄마와 살면서 엄청 맘 고생 이 심한 녀석이었다. 덕분에 우리도 참으로 맘 고생 많이 했던, 지금도 하고 있는 녀석이다. 녀석의 특기는 '딱지'를 엄청 잘한다는 거다. 1학 년 때부터 책가방 속에는 딱지만 한 가득 이다. 딱지 하느라고 하도 공부방을 안 와서 전문 상 담가를 붙여서 쫓아다니게까지 하기도 했다. 네모난 딱지, 똥그란 딱지, 고무 딱지, 병뚜껑으 로 만든 딱지... 참으로 딱지의 종류도 많기도 하지. 우리 공부방에서는 3대 딱지 대장이 있는데, 그 녀석이 단연코 넘버원이다. 조그마한 손에 차마 다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딱지를 가지고 나타나는 그 녀석의 모습은 진짜 도박판에서 큰 판이라도 걸린 사람 모양 너무나 당당하고 뿌듯하였다. 하지만, 딱지를 향한 그 녀석의 인생엔 고난이 많았다. 일단 아빠한테 딱지 때문에 엄청 많이 맞았다는 것이다. 매를 맞고 나면 아빠는 그 피 와 살과 같은 그 딱지를 버려버렸다. 그러면 이 녀석은 어디서 딱지 한 장을 구해선 또 한가득 을 만들어 놓고, 또 맞고 버리고...아빠와 싸우 기 위해 딱지를 하는 놈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러던 녀석이 어제 딱지 때문에 행복했다. 어제 인천대공원에서 '동화 읽는 어른의 모임'에 서 축제를 했다. 자원봉사자가 그곳에서 활동하 는 관계로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토우 만들기, 나무 목걸이 만들기 등등의 많은 활동이 있었는 데, 갑자기 무대에서 '딱지 따먹기 대회'를 한다는 거다. 이 소식을 들은 그 녀석은 흥분하기 시작 했다. 주최측에서 나눠 준 종이로 딱지를 두 장씩 접 어서 다섯 명씩 딱지를 했다. 이 녀석 순식간에 한 손 가득 딱지를 먹었다. 곱 게 만 자란듯한 아이들은 앉아서 내리치기만 하 는데, 이 녀석은 일어나서 온 몸을 이용해서 팔 을 휘둘러 내리친다. 소리도 위협적이다. 다른 아이들은 "딱"인데, 이 녀석은 "퍽, 뚝..." 정말 소리 자체가 다르다. 다른 아이들은 아무리 해도 뒤집어 지지 않는데, 이 녀석은 두 번만 내리치면 뒤집어진다. 딱지가 넘어갈 때마다 나와 울 공부방 아이들 은 "나이스!" 하며 박수와 함성을 지르고, 다른 어 른들은 '와...', 딱지를 잃은 아이들은 아쉬운 표정 으로... 남자 어른들은 기특한 듯이 "저 녀석 딱 지 제대로 할 줄 아는구먼" 하며 감탄 어린 눈으 로 바라본다. 나중에는 이 녀석이 '한판 하자'고 하면 모두 고 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시간이 다 되어 다섯 장 이상 모은 어린이들은 시상을 한다고 했다. 다른 아이들은 고작 해서 3 장 정도인데, 이 녀석은 무려 19장을 모아 '사 탕'을 상으로 10개나 받았다. "우리 x희, 최고다" 하며 모처럼 나도 칭찬을 잔뜩, 다른 아이들은 한 손에 가득 인 '사탕'이 부러워 하나 얻어먹었 으면 하는 눈치다. 하지만, 그 녀석이 딱지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안 나는 "다른 애들 주지 말고, 아빠한테 보여드리고, 하루에 하나씩 먹어라" 했다. 미친 듯이 하더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비록 아이들 장난에 불과한 '딱지 따먹기' 였지 만, 나도 기분 좋았다. x희도 행복했겠지? <원고: 한인회장 제공> 스톡홀름 시내와 Kista Centrum 에 민박 1, 2호 점이 영업 중에 있습니다. 조용하고 넓은 방과 편리한 교통 등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스톡홀름을 대표하는 한인민박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저희를 사랑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여러 분들께 이 작은 지면을 빌어 감사를 드립니다. 청결하고 편리한 주방 홈페이지 www.stockholmminbak.se 이메일 ysc@stockholmminbak.se / ysc5310@hanmail.net 전화 + 46 (0)8 34 20 21 모빌 +46 (0)73 975 0765 넓고 쾌적하며 조용한 침실
16 낮은 곳에 찾아온 성탄절 김 홍 술 / 사회복지사 작년 성탄절 전날, 알뜰하기 짝이 없는 김창진(63세, 가명) 형제가 아침 일찍부터 창고를 뒤지더니 종이 상자 두 개를 꺼냈다. 거기엔 반짝이 사슬과 깜박등 그리고 별 모양 산타클로스 장식품 등이 가득 들어 있었다. 김 형제는 그것을 하나하나 손질하더니 다른 형제들의 도움을 받아 부활의 집 입구부터 장식하기 시작했다. 깜박등과 반짝이 사슬로 나무와 나무 사이를 연결하고 처마 밑과 기둥 주변을 솜씨 있게 꾸몄다. 깜박등의 작은 전구가 절반은 망가진 모양이다. 나머지 성한 것을 옮겨 끼워가며 재활용하는 김 형제의 알뜰함은 아무도 따르지 못한다. 김 형제는 음식 찌꺼기도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그냥 넣지 않는다. 꼭꼭 짜서 햇볕에 말린 다음 부피를 줄여서 봉투에 넣는다. 저녁때가 되니 부랑인, 노숙자가 함께 살고 있는 이 곳 부활의 집 에 아름다운 성탄 전경이 펼쳐졌다. 커다란 나무들에 묻힌 낡은 기와집으로 이사 온 후 처음 으로 맞는 성탄절이다. 꼬마 장식등이 깜박이는 동안 자동으로 흘러나오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점점 늘어 지는 소리를 내며 밤새도록 울린다. 그래도 우리 집 가족들은 아무도 개의치 않는다. 많은 사람의 왕래는 없지만 어두 컴컴한 산기슭 아래 반짝이는 우리 집과 성탄을 기다리는 이 밤은 아름답기 그지 없다. 사실 난 성탄절에 엄청나게 많은 돈을 들여 장식하고 행사를 준비하는 일에 대해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집의 50, 60 대 형제들은 자신의 가난한 용돈을 거출하여 스스로 꾸미고 기뻐하니, 그 소박하고 순진한 모습은 전혀 나쁘게 보이지 않는다. 드디어 찾아온 성탄절 새벽. 부활의 집 에서 성탄절 새벽 행사를 한 지도 9년이 넘었다. 우리 가족 17명 전원이 촛불과 성경 그리고 따뜻한 차를 준비하고서 어둠을 헤치며 부산구치소 앞으로 간다. 첫해, 둘째 해는 구치소 경비 직원들이 당황하고 경계했지만 이젠 그들과도 많이 친해졌다. 우리 가족 다수가 절룩거리고 행색도 남루하여 처음 보는 이는 경계할 만도 했다. 우리는 꽁꽁 언 손을 호호 불면서 빈 종이컵에 양초를 끼워 불을 밝히고 교도소를 향해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찬송을 부른다. 그리고 갇힌 자를 위해 함께 기도를 한 다음 직원들과 차 한 잔을 나누고 돌아온다. 저녁 6시에는 지극히 작은 자들과 함께 하는 성탄 만찬회 가 부산 연산동 로터 리의 해암뷔페 에서 열렸다. 해마다 늘 그랬듯이 저녁 5시도 못 되어 노숙자 손님 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노숙자를 후원하는 분들을 모시고 노숙자 들을 초청하여 대접하는 예수님 생신 큰 잔치이다. 그런데 매년 후원자는 20~30 명뿐인데, 노숙자는 150명씩 찾아온다. 행사에 대해 노숙자 사이에 소문만 났을 뿐 세상의 시선은 냉담하기 그지없다. 아니나 다를까 올해도 찾아온 노숙자는 200명이 넘었는데, 함께하겠다는 후원자는 15명이 전부다. 아뿔싸! 이럴 수가. 게다가 예수님 생신 잔치에 오신 손님 들은 역한 냄새와 추태로 실내를 가득 오염시키고 있다. 어떤 이는 이미 어디서 술 한잔 걸치고 왔는지 행사장 입구에서부터 시비조로 나오며 소란스럽다. 그리고 서로 좋은 자리에 앉겠다며 다투는 이들로 인해 고함소리가 나고 욕지거리가 들리며 우격다짐이 벌어진다. 어떤 분은 물병에 소주를 넣어오는가 하면, 어떤 분은 먹기도 전에 음식을 비닐봉지에 슬금슬금 담아 챙긴다. 그래도 오늘은 축복 가득한 성탄절이라 그들의 냄새가 향기롭게 느껴지고 그들의 행태가 귀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경비 결산 때는 인간적인 저울질을 하게 된다. 결국 아홉 번째로 치른 행사는 처음으로 큰 적자를 기록 했다. 아, 그런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세미한 음성. 그 적자가 네게 남는 축복이니라. 이젠 빈 자리가 없네요 김 성 란 / 주부 21개월 된 아들을 데리고 부산의 친정에 내려갔다가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침부터 아이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지만, 기차표를 예매해 둔 터라 큰 탈은 아니겠거니 생각하며 예정대로 기차에 올랐다. 처음 부산역에서 기차를 탔을 때는 차내에 승객이 드문드문 앉아 있었다. 기차가 막 출발하려는 순간, 30대로 보이는 한 남자가 급히 기차에 올라 타더니 두리번거리면서 우리 자리 쪽으로 다가왔다. 우리 옆자리인가? 하며 쳐다보았는데, 그는 우리를 지나쳐 대각선 앞쪽의 자리에 앉았다. 아이 표를 따로 사지 않아서 아이를 내 무릎 위에 앉혔는데, 기차가 출발해도 옆자리에 사람이 오지 않기에 아이를 일단 옆자리에 내려놓았다. 그 자리의 주인이 탈 때까지는 조금 편히 가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서 아이가 갑자기 울기 시작하더니 아침에 먹은 것을 다 토해 버리는 게 아닌가. 토한 양이 많아서 가지고 있던 휴지로는 모자라 안절부절하고 있는데, 대각선 앞에 앉아 있던 그 남자가 자기 가방에서 커 다란 수건을 꺼내 주었다. 그 수건으로 아이와 자리, 바닥까지 깨끗이 닦을 수 있었다. 고마운 마음에 캔 커피를 하나 사서 그에게 건넸더니 웃으며 사양하기에 억지로 던져 주다시피 했다. 조금 진정이 된 아이와 함께 깜빡 잠들 었다가 깨어 보니 기차는 대구를 지나고 있었다. 그 사이 사람이 많이 타서 빈 자 리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유독 내 옆자리에만 사람이 타지 않았기에 나는 속으로 참 재수가 좋은 날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오지 않는 옆자리의 누군가 덕분에 아이와 함께 줄곧 편안하게 앉아서 기차 여행을 하고 있는데, 기차가 대전을 한참 지났을 무렵 아까 수건을 빌려 주었던 남자가 저쪽에서 다가오더니 겸연쩍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이젠 빈 자리가 없네요. 알고 보니 그 사람의 원래 자리는 바로 내 옆자리였던 것이다. 그는 아이를 데리고 있는 나를 배려해서
17 지금껏 여기저기 좌석을 옮겨 다니다가 더 이상 빈 자리가 없자 그제야 자기 자리로 돌아온 것이었다.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아이를 데리고 기차를 타면 별로 좋지 않은 기색을 보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아이가 움직이거나 울면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고 불편하니 그러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런데 처음 보는 사람을 위해서 그 긴 시간 동안 멀쩡한 자기 자리를 놔두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다니! 하지만 나는 그토록 고마운 사람에게 인사도 변변히 하지 못했다. 그저 종착 역에서 내리는 그의 등 뒤에 대고 고맙습니다 라고 말한 게 전부였다. 그 뒤로 기차만 타면 이름도 모르는 그 사람이 생각난다. 그리고 내게 친절을 베풀어 준 그 사람에게 직접 보답하지는 못했지만, 기회가 되면 내가 그 사람에게 서 받았던 친절을 다른 이에게 꼭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 사람이 베푼 따뜻한 배려는 이처럼 점점 많은 이에게로 퍼져나가는 것인가 보다. 어둠 속의 작은 빛 강 수 연 / 대학생 내가 어릴 때부터 맞벌이를 하신 부모 님의 빈 자리는 많은 책으로 채워졌다. 다량의 독서로 학창 시절 나는 교내외 글짓기 상을 독차지했다. 내가 있는 자리는 늘 빛이 찬란했다. 그래서 이름값을 한다는 얘기도 자주 들었다. 그러나 사람의 일은 누구도 예측할 수도, 단언할 수도 없다. 열다섯 살이던 어느 날이었다. 눈 앞이 흐릿해지면서 글씨가 잘 안 보였다. 아빠 앞이 흐리게 보여요, 책을 읽을 수가 없다니까요. 아빠가 내 말을 믿지 않자 옆에서 조용히 대화를 듣던 엄마가 말했다. 빛나 아빠! 얘 병원에 가 봐야 겠어요. 요즘 이상해. 의료파업으로 어렵사리 찾은 병원에서는 CT촬영을 해야 한다고 했다. 급한 마음에 그 날 밤, 모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수많은 검사 후 늦은 밤 의사 선생님은 시신경염 이라며 1주일간 입원하라고 했다. 병원 생활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지내고 있을 무렵 등교 길을 나서다가 나는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눈을 떴을 때, 엄마가 보였다. 엄마, 여기가 어디야? 음 병원. 빛나가 시신경염이 아니라 뇌종양이었대. 감기도 잘 걸리지 않을 정도로 건강한 나에게 뇌종양 은 큰 병으로 들렸다. 생을 마감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부랴부랴 수술을 받았지만 후유증으로 실어증이 왔다. 한 달 이상을 누워 있던 탓에 모든 근육과 관절이 굳어 버리고, 소뇌 종양 때문에 균형감각도 잃고, 시신경도 많이 손상되어 시력까지 급격히 나빠졌다. 혼자서 앉을 수도 없고 목을 가누기조차 힘들었다. 이렇게 어머니가 주시는 음식이나 받아먹고 살아야 한다니 기가 막혔다. 그 시점에서 내가 안정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신 부모님은 서둘러 자퇴를 시키셨다. 그런 상태로 학교에 다니기는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학교를 그만둔 뒤 재활만을 열심히 하기로 했다.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라 할까. 아버지께서는 23년간 다니시던 직장도 그만두신 채, 나의 재활에 온갖 정성을 쏟으셨다. 스포츠 마사지, 기 수련, 좋다는 병원을 찾아 다니며 치료를 받았다. 정말 죽음을 생각하게 할 정도로 힘든 치료 시간도 많았지만, 나는 아 하고 외마디 비명만 지를 뿐 치료를 거부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도 한 가지 불만이 있었다. 친구들은 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나는 중학교 중퇴자로 머물러 있는 현실이었다. 다시 학교에 다니고 싶어서 서울과 수도 권의 장애학교에 연락도 해 보고, 방문도 해 보았지만 나에게 맞는 장애학교는 없었다. 고민 끝에 작년 3월부터 고입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부모님께서 처음에는 몸도 성치 않은데 웬 공부냐며 반대가 심하셨지만 정말 절실하게 새벽까지 공부하는 나의 모습을 보신 후에는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셨다.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한 후 공부에 재미가 붙었다. 이번엔 대입 검정고시에 도전했다. 지체 장애로 학원에 다니기 불편해 고입검정고시 때처럼 동영상 강의를 많이 듣고 확대경을 이용해 공부에 열중했다. 작년 8월 말, 시험에 합격한 나는 대학 진학까지 꿈꾸게 되었다. 하지만 지체 장애와 시각 장애를 가진 나로서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신문을 보시던 아버지의 추천으로 알게 된 모 사이버 대학교의 문예창작학과에 진학 하게 됐다.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대학원에 다니던 중 루게릭병에 걸려 전신마비의 중증장애를 안고도 큰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처럼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몸이 온전치 않은 상태로 사회에 발을 내딛는다는 게 쑥스럽기도 했지만, 사이버 대학교에서 나의 장애는 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2년 전부터 나는 매일 오후를 운동으로 보낸다. 헬스 세 시간과 수영 한 시간을 통해 완전한 사회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요즘 들어 고등학교 3학년인 동창들의 대학 수시 합격 소식을 들을 때마다 친구들보다 1년 빠른 삶이 더 나은 삶이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을 반성한다. 가끔은 내가 더 어려운 길로 돌아가는 것 같아 조급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한 마리의 은빛 연어처럼 더 높고 더 밝은 미래를 위해 지금의 고통쯤은 거뜬히 이겨 낼 것이다. 지루한 장마 끝의 밝은 빛을 보기 위해
18 제 6 부 21. 말타의 매 The Maltese Falcon (1941) 감독: 존 휴스톤 필름 누아르는 일 본이 진주만을 기 습하던 41년 존 휴 스턴 감독의 <말타 의 매>와 함께 태 어났다. 프랑스의 범죄소설 을 지칭하는 세리 누아르에서 가져온 이 말은 하드보일 드풍의 펄프 픽션 이야기 구조와 사립탐 정, 어두운 세트 공간의 빛과 그림자가 교 차하는 속에서 벌어지는 범죄를 그려내면 서 2차 세계대전과 냉전시대에 절정기를 맞이하였다. 분명했던 기승전결은 범죄의 욕망 속에서 헝크러지기 시작했고, 얌전했 던 여주인공들은 요부로 변신하였으며, 남 자 주인공은 사방이 악으로 둘러싸인 함 정 속에서 배신당하며 허우적거리기 시작 했다. 필름 누아르는 할리우드의 모든 장르 중 에서 가장 음울하고 비관적인 기분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지키는 파수병이었다. 그 리고 <말타의 매>에는 그 모든 것이 거의 완전한 원형으로 보존되어 있다. 존 휴스턴(1906 1987)은 윌리엄 와일러 와 하워드 혹스 밑에서 연출 수업을 받았 으며, 그 스스로 고백하듯 평생 제임스 조 이스의 열렬한 독자였다. 그는 여러 장르 의 영화를 찍었으나 자신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필름 누아르로의 복귀'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말해왔다. 그는 빔 벤더스와 존 밀리어스, 로만 폴란 스키, 오우삼 그리고 퀜틴 타란티노의 우 상이었으며 또한 프랑스 카이에 뒤 시네 마 비평가들에 의해 이류 감독(!)으로 낙 인 찍힌 연출자이기도 했다. < 말타의 매>는 하드보일드 소설가 새뮤 얼 대시엘 해밋 원작의 세번째 영화화이 다. 사립탐정 샘 스페이드(험프리 보가트) 는 브리지드라는 미스테리한 여성의 방문 과 함께 동료를 살해당한다. 그는 사건을 뒤쫓으면서 사방에서 자기를 죽이려는 음 모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음험한 사내 카이로(페터 로레)와 그 뒤에 있는 '뚱보' 굿맨은 그에게 ' 말타의 매'라는 조각을 요구한다. 그 속에는 보석이 들어 있다는 단서와 함께 음모와 허무로 가득 찬 하드보일드 소설을 어둠과 욕망의 영 화로 옮겨놓은 것은 전적으로 존 휴스턴 의 뛰어난 각색과 연출이다. 그는 영화 전 편을 세트에서 촬영하면서 실내 공간을 밀폐공포증의 노이로제와도 같은 상황으 로 만들어 놓았다. 등장인물들은 예외없이 운명의 덫에 빠져든 것처럼 꼼짝 못하고, 영화는 이야기가 한단계 진전될 때마다 매번 같은 공간으로 돌아와 이야기 구조 속에서 플롯을 발전시킨다. 그것은 반복이 면서 또한 차이의 효과를 만들어내면서 프레임과 사운드의 관계를 새롭게 발전시 켰다. 그 관계는 끝이 없을 것 같은 쇼트 와 상대 쇼트의 반복 속에서 두 사람만이 있는 미디엄 쇼트(프랑스어에서 '아메리칸 쇼트'라고 번역하는!)의 새로운 세계를 만 들어냈으며, 거기서 할리우드는 고전적인 프레임의 공간을 완성하였다. 웨스턴의 올 쇼트, 뮤지컬의 풀 쇼트, 갱스 터 영화의 편집, 멜로드라마의 클로즈업에 이어 필름 누아르는 할리우드 장르 영화 의 새로운 신화적 공간을 만들어냈으며, < 말타의 매>는 바로 그 입구이다. <필자: 정성일/영화평론가> 22. 인생유전 Les Enfants du Paradis (1945) 감독: 마르셀 까르네 2 차대전이 발발하자 30년대 프랑스의 시 적 사실주의를 주도하던 중요한 작가들은 프랑스를 떠났다. 장 르누아르와 줄리앙 뒤비비에는 미국으로 건너갔고 자크 페데 는 스위스로 피난갔다. 그들이 프랑스를 비운 사이 이미 <안개 낀 부두>로 명성을 떨치던 마르셀 카르네만이 파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느 평론가는 "비시 정권이 패배 한다면 그것은 <안개 낀 부두>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그 염세적이며 패배감에 찬 성향이 문제라는 것이다. 카르네는 1840년대 루이 필립 치하의 파 리 극장가 블르바르 뒤탕플을 무대로 인 간극을 연출했다. 극장과 나이트 클럽이 줄지어 서 있던 환락가이자 범죄의 거리 인 이곳에서 팬터마임 연기자 바티스트 뒤브로아주는 스테이지에서 나체춤을 추 는 가랑스와의 애정을 축으로 장장 3시간 35분의 인간 드라마를 만들어낸 것이다. 가랑스를 둘러싼 뒤브로, 극작가 피에르 라스네르, 연극배우 프레데리크 르메트르 등은 실존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낭 만적인 사랑은 가상적인 것이었다. 우리들에겐 샹송 <고엽>의 작사자로 더 알려진 시인 자크 프레베르가 시나리오와 대사를 담당했다. 나치 점령하의 파리에서 3년3개월간의 제작 끝에 이뤄진 작품이다. 예술을 사랑하는 서민들의 기질과 사랑의 끈질긴 근성을 보여줌으로써 나치에 대한 저항으로 평가되었던 <인생유전>에는 수 많은 프랑스인들이 갈채를 보냈다. 카르네 는 프랑스가 해방되고 다시 이 영화를 상 영했을 때 의상제작자 제리코 역의 로베 르 비강이 나치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피 에르 르누아르로 교체시켰다. 모두 2부로 구성된 이 작품은 1부 <범죄의 거리> 2부 <하얀 남자>이다. 장 루이 바로의 섬세하면서도 강인한 사 랑과 팬터마임 연기. 당대의 명배우 피에 르 브라쇠르, 마르셀 에랑, 마리아 카르레 스와 무엇보다 여주인공인 아를레티 등의 불꽃튀는 열연으로 발자크의 인간극장을 연상케 한다. < 세계 영화전사>를 쓴 프랑스의 영화사 가 조루주 사들은 이 작품을 카르네의 대 표작으로 꼽는다. '뒤브로의 사랑. 팬터마임. 발자크적인 여인 아를레티와 정숙한 아내 마리아 카자레스와의 대비, 보헤미안적인 배우 브라쇠르, 무정부주의적인 암살자 에 를랑. 그리고 대중연극과 범죄의 거리의 풍속도 등은 예술과 현실 사이를 넘나드 는 걸작이다. 멜로드라마, 비극, 팬터마임 등의 묘미가 섞여 있다. 이 작품이 나치 치하의 파리에서 상영되 기 시작했을 때 연합군은 이미 이탈리아 제노아에 막 상륙했다. 또한 프랑스 정부 는 한편에 2천7백50미터 이상의 필름을 사용하지 못하게 모든 제작사에 명령했지 만 이 작품은 5천미터나 되는 필름을 사용 했다. 원제목을 직역하면 <천국의 아이들>이지 만 'paradis'라는 뜻은 극장 3층의 가장 값 이 싼 자리를 일컫기도 하나, 프레베르는 서민과 연극배우를 통틀어 그렇게 부른 것이다. < 인생유전>은 나치에 저항하는 프랑스 서민들의 예술기질과 사랑의 대서사시이 다. 즉 프랑스 서민과 민중을 대변하는 민 족적인 영화인 것이다. <필자: 안병섭/영화평론가 단국대 교수> 23. 무방비 도시 Roma, Citt Aperta (1945) 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 사회현실과 역사를 충실히 기록함으로 써 관객의 의식을 변화시키려는 영화 의 시작은 아마도 네오리얼리즘일 것 이다. 이야기 속에 서 아이러니를 느 끼게 하고, 열린 결 말을 추구하는 모
19 더니즘 영화의 본격적인 시작도 네오리얼 리즘 영화였다. <무방비도시>는 네오리얼 리즘의 서장을 장식한 영화이며 그 방법 론과 실제를 구체화한 로셀리니의 전쟁 3 부작 중 하나다. 2 차대전중 독일 점령하에서 비밀리에 기 획된 이 영화는 연합군이 상륙한 직후 촬 영이 시작되었다. 연합군은 기록영화에만 제작허가를 내주었으나 로셀리니는 이를 장편극영화로 만들어 종전 직후 완성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동시녹음을 위한 필 름과 기자재는 엄두도 못낼 만큼 비쌌고 촬영할 스튜디오도 구할 수 없었다. 그 결 과 <무방비도시>는 각기 다른 종류의 자 투리 필름으로 찍혀 화면은 다양한 질감 을 갖게 되었고 로케이션 촬영이 돋보이 는 기록영화적 분위기를 한껏 자아냈다. 게다가 느슨한 플롯과 열린 결말의 이야 기에 가미된 감상적 멜로드라마는 네오리 얼리즘 영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독일군에게 살해된 한 신부의 실화를 근 거로 만든 <무방비도시>는 이야기의 전개 가 매우 완만하다. 영화를 시종 이끄는 인 물은 레지스탕스 요원 맨프레디지만 이야 기의 중심은 그가 피신하는 행로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있다. 먼저 그의 동료 의 약혼녀 피나가 있다. 이미 아들이 하나 있는 그는 독일군들이 약혼자를 붙잡아가 는 것을 뒤따르다 결혼식날 무참하게 총 살당한다. 피나의 결혼을 주례할 돈 피에 트로 신부는 레지스탕스의 자금을 운반해 주고 맨프레디와 동료를 수도원에 숨기려 다 체포된다. 맨프레디의 옛 정부는 그를 하룻밤 피신 시켜주나 그로부터 경멸을 받는다. 그리고 는 마약과 사치품, 변태적인 애정행위에 팔려 그를 독일군에게 밀고한다. 맨프레디 는 모진 고문에도 입을 열지 않고 영웅적 인 죽음을 맞으며, 같이 체포된 신부도 결 국 총살당한다. 그밖에도 전쟁이 싫어 탈주했으나 체포돼 감방에서 목매는 오스트리아 군인이, 또 게슈타포지만 나치이념에 냉소적이고 결 국은 그 이념이 실패하리라 확신하는 술 취한 장교가 이야기에 양념을 얹어준다. 로셀리니는 이들을 공 평하게 자유롭게 그러나 아주 강렬하게 그린다. 주인공은 하나가 아니며 중심이 되는 사건도 없 다. 억압적인 나치 파시 즘 아래서 모든 인물들 이 겪는 사건들은 그 자 체로 강렬하다. 로셀리니는 이들을 통해 독일 점령하의 이탈리아에서, 로마의 골목 길에서 벌어졌을 일들, 일상 속에 스며들 어 있는 레지스탕스 정신 혹은 그에 반하 는 타락의 모습을 훑어줄 뿐이다. 그 모습 들은 하나하나가 멜로드라마다. 그래서 영 화는 여러 겹의 멜로드라마가 된다. 이 감상적인 비극에 희극적 요소들을 삽 입하는 로셀리니는 관조적이고 희망적이 다. 맨프레디를 쫓던 독일군들은 여자들의 치마밑 풍경을 보느라 그를 놓치는가 하 면, 동네아이들은 어디엔가 폭약을 설치하 고 늦게 집으로 와 부모에게 야단맞으며 끌려들어간다. 그리고 신부는 병자성사를 위장하기 위해 멀쩡한 노인을 프라이팬으 로 때려 눕힌다. 로셀리니는 그 신부가 총 살당하는 마지막 장면에 아이들로 하여금 레지스탕스의 휘파람을 불게 함으로써 희 망을 준다. 전후 이탈리아인들의 도덕성과 심리적 분 위기를 즉각적으로 표출한 이 영화는 당 시 이탈리아 영화가 지향할 것을 보여주 고 있었다. 현실도피적 환상을 부추겨온 전쟁전 부르주아 영화를 벗어나, 세계를 왜곡시키지 않은 채 그대로 보여주는 영 화가 곧 그것이었다. 로셀리니를 세계적 감독으로 만든 이 영화는 영화의 사회변 혁기능을 실천한 많은 영화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필자: 주진숙/영화평론가> 24. 품행 제로 Zero de Conduite (1933 감독: 장 비고 최초의 사운드 영화라 는 <재즈 싱어>가 1929 년 프랑스에서 개봉되 면서 아벨 강스와 마르 셀 레르비에가 이끌던 20년대 프랑스 무성영 화는 심각한 도전에 직 면하게 된다. 할리우드와 경쟁할 만 한 음향기술 시스템도 미처 갖추지 못한 프랑스 영화계가 곤혹스러워 하고 있는 동안 <재즈 싱어>는 그 당시 50만의 관객 을 불러모았다. 즉시 미국과 독일의 음향기술이 프랑스 영화계에 도입되었고 제작비는 3배로 치 솟았다. 경쟁은 치열해졌고, 아벨 강스는 자신의 성공작 <나폴레옹>을 음향을 입혀 다시 제작했다가 실패한다. 이제 무성영화 의 대감독들은 연이어 몇 편의 실패작들 을 남긴 채 황혼의 전사로 사라져갔다. 1930 년 초 프랑스 영화계는 <파리의 지붕 밑>(1930년)이라는 영화를 만든 르네 클 레르와 함께 <품행 제로>의 감독 장 비고 의 시대였다. 장 비고는 전기작가들이 군 침을 흘리며 달려들 만한 모든 요소들을 갖춘 예술가였다. 우선 아버지는 당대의 이름난 무정부주의자여서 감옥을 빈번하 게 드나들었고, 자신의 이름마저도 '똥이나 먹어라'식으로 개명할 만큼 파격적인 사람 이었다. 아버지가 감옥에서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 을 때 비고는 12살의 병약하고 조숙한 소 년이었고 이미 반카톨릭적인 자유주의자 였다. '반역자'의 아들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이 소년은 학교 기숙사에서 영화 <품 행 제로>에 실명 그대로 등장하는 문제아 들을 만나 그야말로 성적표의 품행란에 영점을 기록하며 십대를 보낸다. 결핵을 앓기도 하던 20대, 그는 마침내 전 설적인 소련 다큐멘터리스트 지가 베르토 프의 아우인 보리스 카프만을 만나게 된 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도시 다큐멘터리 <니스에 관하여>라는 걸작이다. 1932 년과 33년 사이에 만든 <품행 제로> 는 여름방학을 집에서 지낸 두명의 소년 코사와 브루엘이 학교 기숙사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시작한다. 담배연기와 증기기차의 수증기가 어우러 진 기차 안은 초현실주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아이들은 악몽으로 끌려들어 가듯 학교로 돌아간다. 곧 그들은 '마른 방 귀'라는 별명을 가진 기숙사 사감에게 처 벌당하는데, 교장을 비롯한 교사들은 이 영화에서 작은 폭군들인 양 희화적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위게라는 젊은 교사는 찰리 채플 린의 흉내를 내고 만화를 그려주기도 하 면서 학생들의 숨통을 터준다. 이 선량한 선생님과 아이들이 마을로 소풍나가 떼지 어 한 숙녀를 따라가는 장면과 그것과 교 차되는 난쟁이 교장의 음모 장면은 슬랩 스틱 코미디와 다큐멘터리를 혼합한 것 같은 이 영화의 특성을 잘 드러낸다. 교장과 교사들의 규율과 처벌에 맞서 코 사 일행은 일대 소동을 일으키는데 바로 이때 베개와 침대보에서 터져나온 하얀 오리털이 폭설처럼 방안을 가득 채우는 세계 영화사의 환상적인 명장면 하나가 탄생한다. 느린 속도로 촬영된 이 부분은 사실 미적이면서 가치전복적이고 현실적 이면서도 초현실적이다. 마침내 마지막 시퀀스의 학교 축제를 맞 아 국가, 종교, 군대를 대변하는 세명의 손 님이 도착하자, 코사 일당은 지붕 위에서 책과 돌, 신발 등을 던지며 이들을 마음껏 조롱한다. 그리고 학생들은 마침내 프랑스 국기를 내려버리고 자신들의 혁명기를 올 린다. 그리고 지붕 위를 걸어가며 하늘을 향해 노래한다. < 품행 제로>는 종교와 교육제도에 대한 신랄한 조롱 때문에 "사회질서 를 교란시킨다"는 이유 로 그 당시엔 상영금지 를 당하기도 했다. 다큐 멘터리적인 요소들과 풍 자 코미디 그리고 초현 실주의의 영향이 보이는 이 실험성 높은 영화는 오히려 미래를 위해 만들어진 듯 보인다. 프랑스 누벨 바그의 악동 트뤼포의 <400 번의 구타>나 영국 프리 시네마의 기수인 린지 앤더슨의 <만약에> 등과 같은 제도교 육의 모순을 다룬 영화들은 사실 모두 이 영화에 빚지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 김소영/영화평론가>
20 찾아 오시는 길 : Luntmakargatan 76 T-bana: Rådmansgatan Tel: 08 545 938 16 Fax: 08 545 941 27 Öppet Mån-Fre 11:00~18:00 Lör: 11:00~15:00 Sön & Helg: Stängt E-Mail: korean.food@telia.com Japanska och andra asiatiska Matvaror, porslin & köksutensilier Öppetider Vardagar 11:00~19:00 Lördagar 10:00~16:00 日 本 韓 國 食 品 한국 교민 여러분 항상 최선을 다해서 모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T: Medborgarplatsen (Gröna Linjen) Mariatorget )Röda Linjen P: Stockholms södra Utgång mot Swedenborgsgatan och gå till höger 20m Swedenborgsgatan 28, 118 27 Stockholm Telefon: 08 34 38 15 Hemsida: www.japanfood.se 8, 114 29 Stockholm, Sweden
21 2007년도 재 정기총회를 회칙에 따라 다음과 같이 개회하오니 공사다망 하시 더라도 필히 참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일시: 2007년 1월 13일 (토) 11:00-13:00 * 장소: ABF Huset (Sveavägen 41, 1tr Katasalen i Stockholm) Rådmansgatan역과 Hötorget역의 중간 주요의제 1. 2006년도 행사 및 결산보고 2. 제32대 한인회장 선출 3. 기타 한인회 발전과 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 토의 총회관련 문의 마무원: 08-219753, 073-5099842 신동규: 08-4777200, 070-1422646 이현경: 08-7426595 최명숙: 08-839197 Milko Hubner: 08-396197 2006년 11월 일 재 장 마 무 원 ABF Huset Sveavägen 41, 1tr Katasalen i Stockholm 여기 Rådmansgatan역과 Hötorget역의 중간 지점에 위치함
22 2007 서울모터쇼 참가안내 1. 서울모터쇼조직위원회는 국내자동차산업을 육성.발전시키고, 소비자에게 미래자동차의 트렌드를 제시할 목적으로 2007.4.5-4.15까지 2007 서울모터쇼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2. 서울모터쇼는 OICA(세계자동차공업협회)가 공인한 국내유일의 국제모터쇼로서 총 15개국 210여 업체가 참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약 1만명의 바이어가 참가하여 수출상담이 기대되는 등 자동차 축제의 장이 될 것으로 생각되오니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3. 자세한 사항은 동 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www.motorshow.or.kr) Korean.net 신규사업 소개 및 안내 <이산가족찾기: http://family.korean.net/kor> 남 북 이산가족 및 해외 이주로 인해 헤어진 이산가족을 유관기관 및 국내외 언론사 각 국 한인회 등과 연계 협조하여 서비스하게 됩니다. 재외동포가 Korean.net에 회원가입을 하고 이산가족 찾기 신청을 하시면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으며, 검색을 통해서 직접 찾고자 하는 분의 검색도 가능한 서비스입니다. <처녀 총각중매사업: http://matching.korean.net/kor/> Korean.net을 통하여 무료로 제공되는 재외동포 간의 결혼 매칭 서비스입니다. 재외동포 미혼이면 누구나 참여 가능하며, Korean.net에 회원가입을 하고 자기프로필 작성 후 이상형 찾기 가족 찾기 신청을 하시면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인구직: http://job.korean.net/> Korean.net 에서 재외동포의 관심사인 전문 취업 정보제공 및 매칭서비스이며, 재외동포들의 우수한 인재의 국내 취업과 한상을 통해 국내 인재들의 해외 진출의 기회도 마련되는 채널로 재외동포사회에서 차세대 등 재외동포 인재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본 한인회에서는 2006년 병술년을 보내는 송년잔치를 다음 과 같이 갖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참석을 바라오며 즐거운 시간 되시길 기원합니다. * 일시: 2006년 12월 9일 (토) 17:00-22:00 * 장소: Tensta Träff (Hagstråket 13) T: Tensta (약도 참조) * 입장료: 회원 무료(초대장 지참) 회원이 아닌 경우: 성인 및 청소년: 100kr (경품복권1장: 25kr 상당포함) 어린이: 만7세-만12세: 50kr * 차량을 가지고 오신 분께서는 특히 주차장 이용규칙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1월 정기총회에서 가결된 바에 의하여 10월 31일까지 회비를 납 부한 회원에게는 초대장을 한인회보에 동봉 발송하며 회비를 미납하 신 분은 행사당일 행사장 입구 접수처에 납부하여 주시면 감사하겠 습니다. 회비 납부 명단은 본 회보 5쪽에 있습니다. 확인 하시어 행사 참여에 차질이 없도록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초대장을 받지 못한 분들 은 아래 한인회의 문의처로 연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주요 행사안내 1부: 만찬 2부: 노래자랑(장기자랑) 3부: 경품행사 행사문의 마무원: 08-219753, 073-5099842 신동규: 08-4777200, 070-1422646 이현경: 08-7426595 최명숙: 08-839197 Milko Hubner: 08-396197 한인회 홈페이지 홈페이지에 가시면 보다 자세한 한인회의 소식과 회원상호간의 다양한 정보공유를 보실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 www.koreans.se 메일: info@koreans.se 한인회비 납부안내 한인회비를 납부하실때 표기하고자 하는 정확한 성명과 주소를 기입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간혹 성명착오로 인하여 입금 확인이 잘못 될 수 있습니다. <회비 납부> Koreanska Föreningen / Post Giro: 22 94 76-7 여기 한인회보 원고는 항상 접수하고 있습니다. 한인회보에서는 여러분의 원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원고는 홀수달 5일까지 접수되어야 해당 짝수월에 실릴 수 있습니다. 우편 또는 메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원고의 내용은 구분을 하지 않습니다. 단, 본 한인회보의 발행 목적에 부합되지 않을경우 통보없이 임의로 게제하지 않을 수도 있사오니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보내신 원고는 반환 하지 않습니다. <보내실 곳> 우편: Koreanska Föreningen i Sverige PO Box 645, 101 32 Stockholm
RETURADRESS: KOREANSKA FÖRENINGEN I SVERIGE / BOX 645 SVERIGE PORTO BETALT B FÖRENINGSBREV 101 32 STOCKHOL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