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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坦 齋 筆 衡 과 老 學 庵 筆 記 에서는 여요 성립의 계기로 정요백자의 有 芒 을 꼽 았다. 有 芒 의 芒 의 의미에 대해서는 그것이 芒 口 를 가리킨다는 견해와 光 芒 을 가리 킨다는 견해가 있는데, 두 문헌의 기록을 자세히 검토해본 결과 전자가 타당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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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Kyung-Lock : The Publication of Hyangyakjipseongbang and the Chosŏnization of the Chinese medicine 다. 경험방을 두루 채집한다는 것은 고려시대 향약의 전통 지식을 최대한 계 승하겠다는 의지인 반면, 중국 의서를 널리 수집하겠다는 것은 동아시아 의 료의 적극적인 수용을 뜻했다. 중국 의료는 이미 동아시아 의료의 대표성을 획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향약집성방 에는 고유 의료의 자주성과 외래 의 료에의 의존성이 병존하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향약집성방 을 자주적인 의 서라거나 사대적인 의서라고 평가할 수는 없는 이유이다. 중국 의료와 조선 의료가 만나는 접점에 위치한 향약집성방 의 성격과 의료사적인 의의를 다 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향약집성방 연구는 아무래도 의료사에서 관심이 컸다. 1) 물론 한 의학계에서도 그 가치가 중시되어 향약집성방 을 데이터베이스화하거나 수 록 내용의 가치를 문헌상으로 검토하고 임상의 활용 방안을 모색하는 작업들 이 진행되었다. 2) 그리고 한국 고전연구의 일환으로 향약집성방 을 집중 조명 한 학제간 논의들이 있으며, 3) 서지학적인 연구 역시 빠뜨릴 수 없다. 4) 이 글에서는 향약집성방 을 조선 의료이자 중국 의료라는 관점에서 접근 하고자 한다. 중국 의료가 투사된 조선 의료인 동시에 조선 의료의 개별성이 1) 三 木 榮, 朝 鮮 醫 學 史 及 疾 病 史 ( 自 家 出 版, 1963); 三 木 榮, 朝 鮮 醫 書 誌 增 修 版 ( 學 術 圖 書 刊 行 會, 1973); 金 斗 鍾, 世 宗 大 王 의 濟 生 偉 業 과 醫 藥 의 自 主 的 發 展, 서울 大 學 校 論 文 集 人 文 社 會 科 學 篇 5, 1957; 金 斗 鍾, 韓 國 醫 學 史 ( 探 求 堂, 1966); 孫 弘 烈, 麗 末 鮮 初 醫 書 의 編 纂 과 刊 行, 한국과학사학회지 11-1,1989; 孫 弘 烈, 鮮 初 鄕 藥 의 開 發 과 鄕 藥 書 의 編 纂, 重 山 鄭 德 基 博 士 華 甲 紀 念 論 叢 ( 景 仁 文 化 社, 1996); 金 澔, 朝 鮮 前 期 對 民 醫 療 와 醫 書 編 纂, 國 史 館 論 叢 68, 1996; 이경록, 조선 세종대 향약 개발의 두 방향, 泰 東 古 典 硏 究 26, 2010. 2)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는 한의학 고전의 데이터베이스화를 진행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鄕 藥 集 成 方 도 포함되어 있다. 이 외에도 한의학계의 연구 성과는 다음과 같다. 안덕균, 세종 시대의 의학, 세종문화사대계 2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00); 한국한의학연구원, 鄕 藥 集 成 方 의 데이터베이스 구축 (2001); 姜 延 錫, 鄕 藥 集 成 方 의 鄕 藥 醫 學 硏 究 경희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6. 3) 震 檀 學 報 87(1999)의 향약집성방 특집호에 김호의 여말선초 鄕 藥 論 의 형성과 鄕 藥 集 成 方, 이태진의 鄕 藥 集 成 方 편찬의 政 治 思 想 的 배경과 의의, 남풍현의 鄕 藥 集 成 方 의 鄕 名 에 대하여, 김남일의 鄕 藥 集 成 方 의 인용문헌에 대한 연구, 허봉희의 鄕 藥 集 成 方 의 藥 學 的 硏 究 와 DATABASE 化 가 수록되어 있다. 4) 金 聖 洙, 한국의 옛 醫 書, 古 書 硏 究 13, 1996; 김효연, 朝 鮮 朝 醫 書 에 관한 書 誌 的 硏 究,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6; 金 重 權, 朝 鮮 初 鄕 藥 醫 書 에 관한 考 察, 書 誌 學 硏 究 16, 1998; 金 重 權, 鄕 藥 集 成 方 의 引 用 文 獻 分 析, 書 誌 學 硏 究 35, 2006. 226 醫 史 學

이경록 : 향약집성방 의 편찬과 중국 의료의 조선화 확장된 중국 의료라는 점을 염두에 두겠다는 뜻이다. 우선 향약집성방 의 간 행 경위를 정리하면서 조선 의료의 문제의식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특히 근 래에 향약집성방 의 전단계에 해당하는 향약제생집성방 이 발견되었다. 이 글에서는 향약제생집성방 을 적극 활용하여 향약 의서 전승의 실상에 다가 서려고 한다. 그리고 향약집성방 편찬 과정의 이해를 배경으로 삼아 향약집성방 의 편 제를 분석하여 질병이 급증하는 흥미로운 현상을 살펴볼 것이다. 질병 급증은 향약집성방 의 분량이 늘었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었다. 이제껏 무시했던 증후들을 조선 사람들이 질병으로 인식하게 되었으며, 앞으로는 치료를 받아 야 한다는 뜻이었다. 질병의 창출이라고 할 수 있다. 5) 따라서 향약집성방 에 서 질병이 창출되는 방식을 추적함으로써, 중국 의료와 조선 의료의 결합 양 상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게 될 것이다. 시야를 조금 더 넓히자면 이 글은 동아 시아체제 속에서 조선 의료를 이해하려는 작업에 속한다. 2. 향약집성방 의 편찬 과정 1) 향약집성방 의 간행 경위 (1) 중국 방서의 수집 향약집성방 은 세종 13년(1431) 가을 집현전 직제학 유효통( 兪 孝 通 ) 전 의감 정 노중례( 盧 重 禮 ) 전의감 부정 박윤덕( 朴 允 德 ) 등이 왕명으로 편찬을 시작하였다. 세종 15년(1433) 6월에 권채가 그 서문을 써서 완성되었으며, 2 달 뒤인 8월에는 전라도와 강원도에 향약집성방 을 나누어 인쇄할 것을 명 5) 질병은 문화적인 개념이다. 특정한 생리 현상들은 개인에 따라, 시간에 따라, 사회에 따라 질 병으로 규정되기도 하고 무시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수줍음은 사회불안장애(Social Anxiety Disorder)라는 질병으로 창출 된다{크리스토퍼 레인, 이문희 옮김, 만들어진 우울증 (한겨 레출판, 2009) 참고}. 조선 초기에 특정한 증후들이 새롭게 질병이라고 인식되면서 조선 사람 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이 글에서는 질병의 창출이라고 표현한다. 제20권 제2호(통권 제39호) 225-262, 2011년 12월 227

LEE Kyung-Lock : The Publication of Hyangyakjipseongbang and the Chosŏnization of the Chinese medicine 했다. 57병문, 959병증, 10,706처방에 침구법( 鍼 灸 法 ) 1,476조를 별도로 설 정하였으며, 보유( 補 遺 )와 향약본초( 鄕 藥 本 草 )가 추가된 85권의 편제였다. 6) 향약집성방 의 편찬 동기는 그 서문에 가장 잘 나타나있다. 향약집성방 서문에서 권채는 기존 의서인 향약간이방( 鄕 藥 簡 易 方 ) 과 향약제생집성방 ( 鄕 藥 濟 生 集 成 方 ) 의 한계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중국에서 출간된 방서( 方 書 )는 아직도 적고 중국과는 다른 약재 명칭은 꽤 많아서 의술을 업으로 삼는 자들이 (의서로서의-인용자) 미진함을 한탄하는 지경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7) 향약집성방 이전의 의서에서는 두 가지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참고할만 한 중국 방서가 아직 적다는 점과 중국 약재명[ 唐 名 ]과는 다른 토산 약재명[ 鄕 名 ]이 꽤 많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중국 의료를 기준으로 삼았음에도 불구하 고 중국 의서들이 충분하게 확보되지 않아 적절한 치료를 시행할 수가 없고, 무엇보다 향재가 당재와 동일한지를 미처 확신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조선에서 중국 의서에 대한 갈증은 자못 깊었다. 의학도서관에 해당하는 의서방( 醫 書 房 )에서 의서들을 보관하였는데, 8) 충주사고에서 옮겨온 소아소 씨병원후론( 小 兒 巢 氏 病 源 候 論 ) 등은 고려에서 전해진 의서들이었다. 9) 세종 대 의학( 醫 學 ) 취재( 取 才 )에 사용된 25종의 의서 가운데 24종이 중국 방서인 6) 鄕 藥 集 成 方 卷 1, 鄕 藥 集 成 方 序 ( 韓 國 醫 學 大 系, 여강출판사 영인, 1992). 宣 德 辛 亥 秋, 乃 命 集 賢 殿 直 提 學 臣 兪 孝 通, 典 醫 監 正 臣 盧 重 禮, 副 正 臣 朴 允 德 等, 更 取 鄕 藥 方, 徧 會 諸 書, 搜 撿 無 遺, 分 類 增 添, 歲 餘 而 訖. 於 是, 舊 證 三 百 三 十 八, 而 今 爲 九 百 五 十 九, 舊 方 二 千 八 百 三, 而 今 爲 一 萬 七 百 六, 且 附 以 鍼 灸 法 一 千 四 百 七 十 六 條, 鄕 藥 本 草 及 炮 製 法 合 爲 八 十 五 卷, 以 進, 名 曰 鄕 藥 集 成 方, 刊 行, 廣 傳. ; 世 宗 實 錄 卷 60, 세종 15년 6월 11일( 壬 辰 ); 卷 61, 세종 15년 8 월 27일( 丁 未 ). 7) 鄕 藥 集 成 方 卷 1, 鄕 藥 集 成 方 序. 方 書 之 出 於 中 國 者 尙 少, 藥 名 之 異 於 中 國 者 頗 多, 故 業 其 術 者, 未 免 有 不 備 之 嘆. 8) 궁궐 노비들 가운데 의서방을 담당하는 醫 書 房 直 2명이 있다. 世 宗 實 錄 卷 19, 세종 5년 2 월 10일( 辛 酉 ). 9) 太 宗 實 錄 卷 24, 태종 12년 8월 7일( 己 未 ). 金 斗 鍾, 韓 國 醫 學 史 ( 探 求 堂, 1966), 151쪽 참 고. 228 醫 史 學

이경록 : 향약집성방 의 편찬과 중국 의료의 조선화 점도 10) 중국 의서가 조선에서 중시되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중국 의서는 조선의 수요에 비하면 상당히 부족하였다. 전의감은 의생들의 교육도 담당하고 있었는데 직지방( 直 指 方 ) 상한류서( 傷 寒 類 書 ) 의방집성( 醫 方 集 成 ) 보주동인경( 補 註 銅 人 經 ) 등은 1권씩만 있어 서 학습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였다. 11) 이 때문에 조선에서는 성제총록( 聖 濟 總 錄 ) 같은 중국 의서를 수집하도록 각 도에 명을 내리거나 12) 중국에서 의 서를 확보하는 데 열심이었다. 태종대만 하더라도 명에서 의서를 구입하였 으며, 13) 중국 의서의 획득 노력은 그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14) 지방과 중국에 서 수집한 의서들이 향약집성방 의 인용 의서로 활용되었음은 두말할 나위 가 없다. 향약집성방 의 토대가 된 향약제생집성방 은 현재 권4~6의 3권 2책이 전 하는데, 여기에는 내경( 內 經 ) 을 비롯한 중국 의서 49종과 신집어의촬요방 ( 新 集 御 醫 撮 要 方 ) 을 비롯한 향약 의서 5종 등 54종이 인용되어 있다(이경 록, 2010b: 346-9). 향약제생집성방 이 총 30권이라고 해서 인용 문헌이 현 존본 3권의 10배인 540종에 이르지는 않는다. 중요한 의서는 향약제생집성 방 전체에서 반복 인용되며, 병증별로 일부 의서가 추가로 참고되기 때문이 다. 15) 아마도 향약제생집성방 전체의 인용 의서는 70~80종 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향약집성방 에서는 향약제생집성방 보다 더 나아가 중국 의서에 대한 집대성을 강조하였다. 또 향약방을 모으고 여러 의서를 모두 수집하되, 낱낱이 살피면 10) 世 宗 實 錄 卷 47, 세종 12년 3월 18일( 戊 午 ). 11) 世 宗 實 錄 卷 52, 세종 13년 5월 11일( 甲 戌 ). 12) 世 宗 實 錄 卷 108, 세종 27년 4월 26일( 己 巳 ). 13) 太 宗 實 錄 卷 34, 태종 17년 12월 14일( 乙 未 ); 卷 35, 태종 18년 4월 15일( 乙 未 ). 14) 端 宗 實 錄 卷 14, 단종 3년 4월 4일( 己 卯 ). 조선 정부의 서적 확보 정책에 대해서는 김효 연, 朝 鮮 朝 醫 書 에 관한 書 誌 的 硏 究,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6, 7-14쪽 참고. 15) 향약집성방 사례를 참고하자면, 인용 문헌은 308종 가운데 10회 이상 인용된 핵심 의서는 90종에 불과하다고 한다( 金 重 權, 鄕 藥 集 成 方 의 引 用 文 獻 分 析, 書 誌 學 硏 究 35, 2006, 222쪽). 제20권 제2호(통권 제39호) 225-262, 2011년 12월 229

LEE Kyung-Lock : The Publication of Hyangyakjipseongbang and the Chosŏnization of the Chinese medicine 서 분류하여 증첨( 增 添 )하였다. 16) 흔히 책의 서문이나 발문에서는 보태고 줄인다는 뜻으로 증삭( 增 削 ) 이라 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여기에서는 남김없이 모아 증첨( 增 添 ) 한다고 표현 하였다. 중국 의서의 역대 처방과 병론을 최대한 수집하려는 편찬 방침은 확 고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향약집성방 에서는 200여종의 의서가 참고 도서 로 활용되었으며, 17) 이 중에 향약 의서는 제중입효방 을 비롯한 10종에 불과 하였다. 그리고 향약제생집성방 과 달리 향약집성방 에서는 성혜방 이 아 주 빈번하게 활용될 뿐만 아니라 의서들의 인용 비중도 변동된다. 요컨대 인 용 의서의 증가에서 보이듯이 향약제생집성방 이 발간된 정종대에서 향약 집성방 이 발간된 세종대 사이에는 중국 의서의 수집과 검토가 활발히 진행 되었던 것이다. (2) 향재 약효의 확인 세종대에는 조선의 향명( 鄕 名 )이 중국의 당명( 唐 名 )과 동일한지를 확인하 는 작업도 병행하였다. 18) 이 작업은 중국 태의원( 太 醫 院 )을 방문하여 약명의 오류를 바로잡는 방식으로 노중례에 의해 진행되었다. 노중례는 당시 의관( 醫 官 )으로서는 유일하게 당상관에 오른 대표적인 의료인이었다. 16) 鄕 藥 集 成 方 卷 1, 鄕 藥 集 成 方 序. 更 取 鄕 藥 方, 徧 會 諸 書, 搜 撿 無 遺, 分 類 增 添. 17) 鄕 藥 集 成 方 의 인용 의서는 정식 명칭과 약칭, 별칭이 혼용되므로 정확한 숫자를 헤아리 기 어렵다. 게다가 처방의 출전이 바뀌거나 생략되기도 해서 인용 의서의 숫자가 정확하 지는 않다. 鄕 藥 集 成 方 의 인용 문헌 수에 대해 김두종은 178종이라고 주장하였고( 金 斗 鍾, 世 宗 大 王 의 濟 生 偉 業 과 醫 藥 의 自 主 的 發 展, 서울 大 學 校 論 文 集 人 文 社 會 科 學 篇 5, 1957, 34쪽), 미키 사카에는 향약 의서 10종, 중국 의서 155종이라고 정리하였다{ 三 木 榮, 朝 鮮 醫 書 誌 增 修 版 ( 學 術 圖 書 刊 行 會, 1973), 31-2쪽}. 김남일은 인용 문헌으로 234종이 등 장하는데, 이 중에 다른 이름으로 표기한 경우를 제외하면 실제로는 200종 정도라고 추측 하였고( 金 南 一, 鄕 藥 集 成 方 의 인용문헌에 대한 연구, 震 檀 學 報 87, 1999, 196쪽) 최근 에 김중권은 308종이라고 밝혔다( 金 重 權, 鄕 藥 集 成 方 의 引 用 文 獻 分 析, 書 誌 學 硏 究 35, 2006, 222쪽). 18) 향약집성방 발문에서는 향명을 검토하여 바로 잡은 것을 향약집성방 의 첫 번째 특징으 로 꼽았다. 鄕 藥 集 成 方 卷 85, 鄕 藥 集 成 方 跋. 世 宗 大 王 始 命 醫 官 攷 正 藥 名, 撰 輯 方 書, 名 曰 鄕 藥 集 成 方. 230 醫 史 學

이경록 : 향약집성방 의 편찬과 중국 의료의 조선화 향약집성방 편찬에 앞서 노중례는 세종 5년(1423)과 12년(1430)에 중국 을 다녀왔다. 그의 임무는 향재가 당재와 동일한지를 문의하는 것이었다. 세 종 5년에는 누로( 漏 蘆 ), 시호( 柴 胡 ), 목통( 木 通 ), 위령선( 葳 靈 仙 ), 백렴( 白 斂 ), 고본( 藁 本 ) 등 6종의 향재가 당재와 일치한다는 인증을 받았다. 반면 당재와 불일치하다고 판정된 단삼( 丹 蔘 ), 방기( 防 己 ), 후박( 厚 朴 ), 자완( 紫 莞 ), 궁궁 ( 芎 藭 ), 통초( 通 草 ), 독활( 獨 活 ), 경삼릉( 京 三 陵 ) 등 8종은 사용을 금지하였 다. 몇 년이 지난 세종 12년에는 향재 10종이 당재와 약효( 藥 效 )가 같다는 평 가를 받았다. 19) 이 기록을 표로 작성하면 다음과 같다. 표 1. 세종 5년과 세종 12년의 향재와 당재 약효 비교표 시기 이미 당재와 일치하는 향재 신규로 당재와 일치하는 향재 세종 5년(1423) 48종(약재명 미상) 6종( 漏 蘆, 柴 胡, 木 通, 葳 靈 仙, 白 斂, 藁 本 ) 세종 12년(1430) 여전히 당재와 불일치하는 향재 총계 8종( 丹 蔘, 防 己, 厚 朴, 紫 莞, 芎 62종 藭, 通 草, 獨 活, 京 三 陵 ) 10종( 赤 石 脂, 厚 朴, 獨 活, 百 10종( 王 不 留 行, 丹 蔘, 紫 莞, 枳 部, 香 薷, 前 胡, 麝 香, 百 花 蛇, 殼, 練 子, 覆 盆 子, 食 茱 萸, 景 20종 烏 蛇, 海 馬 ) 天, 萆 膌 薢, 安 息 香 ) 표에 따르면 당재와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평가된 향재가 세종 5년에는 8 종( 丹 蔘, 防 己, 厚 朴, 紫 莞, 芎 藭, 通 草, 獨 活, 京 三 陵 )이었고 세종 12년에는 10 종( 王 不 留 行, 丹 蔘, 紫 莞, 枳 殼, 練 子, 覆 盆 子, 食 茱 萸, 景 天, 萆 膌 薢, 安 息 香 ) 이었다. 세종 5년의 8종 중 후박과 독활은 세종 12년에 당재와 일치하는 것으 로 다시 판정되었으며, 단삼과 자완은 세종 12년에도 여전히 당재와 일치하 19) 世 宗 實 錄 卷 19, 세종 5년 3월 22일( 癸 卯 ). 大 護 軍 金 乙 玄 司 宰 副 正 盧 仲 禮 前 敎 授 官 朴 堧 等 入 朝, 質 疑 本 國 所 産 藥 材 六 十 二 種 內, 與 中 國 所 産 不 同 丹 參 漏 蘆 柴 胡 防 己 木 通 紫 莞 葳 靈 仙 白 斂 厚 朴 芎 藭 通 草 藁 本 獨 活 京 三 陵 等 十 四 種, 以 唐 藥 比 較, 新 得 眞 者 六 種. 命 與 中 國 所 産 不 同 鄕 藥 丹 參 防 己 厚 朴 紫 莞 芎 藭 通 草 獨 活 京 三 陵, 今 後 勿 用. ; 世 宗 實 錄 卷 48, 세종 12년 4월 21 일( 庚 寅 ). 節 日 使 押 物 盧 重 禮 回 還 啓, 臣 等 狀 于 禮 部 云 今 將 齎 到 本 國 所 産 相 似 藥 名, 開 坐 具 呈, 伏 乞 照 詳, 許 令 明 醫 辨 驗 眞 假. 禮 部 奏 差 大 醫 院 醫 士 周 永 中 高 文 中 等 到 館 辨 驗, 得 堪 中 藥 材 一 十 味, 赤 石 脂 厚 朴 獨 活 百 部 香 薷 前 胡 麝 香 百 花 蛇 烏 蛇 海 馬, 不 識 藥 材 一 十 味, 王 不 留 行 丹 蔘 紫 莞 枳 殼 練 子 覆 盆 子 食 茱 萸 景 天 萆 薢 安 息 香. 제20권 제2호(통권 제39호) 225-262, 2011년 12월 231

LEE Kyung-Lock : The Publication of Hyangyakjipseongbang and the Chosŏnization of the Chinese medicine 지 않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세종 5년에는 8종의 약재 사용을 일단 금지하였 지만, 실제로는 끊임없이 이들 후박, 독활, 단삼, 자완 등을 생산하면서 활용 을 모색했던 것이다. 고려와 조선 사람의 질병은 향재로 충분히 치료할 수 있다는 의토성( 宜 土 性 )에 대한 자각에 비추어보면 향재에 대한 이해를 중국 본초학에 의지한다 는 것은 모순이었다. 향재의 약성( 藥 性 )과 약미( 藥 味 )에 대한 지식을 귀납하 여 조선 본초학의 체계를 구성하는 방식이 아니라, 중국 본초서에 나오는 약 효를 연역적으로 향재에도 부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재와 향재의 약효가 완전히 일치한다는 확신이 뒷받침되어야 중국 의료는 조선에서 통용될 수 있 었다. 따라서 향명과 당명의 대조 작업은 단순히 약재 명칭을 통일하는 것이 아니라 향재와 당재가 동등하다고 인식하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세종 5년 기록에서 주목되는 점은 62종이나 되는 향재를 중국에 문 의하였다는 것이고, 더욱 눈길을 끄는 점은 48종 즉 80%의 향재가 이미 당재 와 동일하였다는 것이다. 신규로 당재와 일치하는 향재 6종을 합하면 54종 즉 90%의 향재가 당재와 일치한다는 결론이었다. 중국에 의관을 연달아 파견하 는 적극성이나 그 성과를 보면 조선 본초학은 자발적으로 중국 본초학에 깊 숙이 편입되고 있었다. 향재가 당재와 다를 바 없다는 세종대의 인식은 향약집성방 의 편찬 과정 에서 더욱 팽배해졌다. 향약채취월령 은 이를 잘 보여준다. 널리 알려진 향 약채취월령 은 향약집성방 편찬 작업의 중간보고서에 해당한다. 세종 13 년(1431) 가을에 향약집성방 이 편찬을 시작하였는데, 향약채취월령 은 그 해 12월에 완료되었다. 향약집성방 과는 편찬자들도 동일하다. 향약집성 방 편찬의 첫 단계가 바로 향약채취월령 에서 향재를 정리하는 것이었다. 전하께서는 이에 집현전 직제학인 신( 臣 ) 유효통( 兪 孝 通 ) 및 전 의감 정인 신 노중례( 盧 重 禮 )와 부정인 신 박윤덕( 朴 允 德 )에게 토 산( 土 產 ) 약재( 藥 材 )를 두루 조사하도록 명하셨다. 총 수백종의 약 재에 대해 첫머리에는 향명( 鄕 名 )을 달고 약미( 藥 味 )와 약성( 藥 性 ) 232 醫 史 學

이경록 : 향약집성방 의 편찬과 중국 의료의 조선화 을 덧붙였으며, 봄가을 채취 시기의 조만( 早 晩 )과 햇볕과 그늘에 서 말리는 경우의 선악( 善 惡 )을 모두 여러 본초서에 근거하여 남 김없이 다듬어 향약채취월령( 鄕 藥 採 取 月 令 ) 1편을 만들었다. 20) 인용문에 보이는 바와 같이 향약채취월령 에서는 여러 본초서를 참고하 고 있다. 참고한 본초서는 당시 사정과 문맥으로 미루어 중국 본초서를 지칭 하는데, 실제로 대조를 해봐도 증류본초 에 크게 의지하였다. 향약채취월 령 에서는 중국 본초학을 기준으로 삼아 154종의 표제어를 당명으로 제시한 후 향명을 덧붙였다. 향약채취월령 과 향약집성방 은 한 호흡으로 진행된 작업이므로 두 자료 에 등장하는 향명( 鄕 名 ) 표기나 어형이 유사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두 자 료의 향재 설명이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향약채취월령 에는 낭독( 狼 毒 ) 의 향명이 오독독지( 吾 獨 毒 只 )라고 표기하였는데, 사실 오독독지( 吾 獨 毒 只 ) 는 여여( 䕡 茹 )의 향명일 뿐이고 낭독과는 관련이 없었다. 그런데 향약채취월 령 편찬시까지는 낭독과 여여를 똑같은 약초로 간주하여 낭독을 오독독지로 잘못 표기하였던 것이다. 낭독과 여여가 다른 약초임이 판명되면서 향약집 성방 에서는 오독독지를 뺐다( 南 豊 鉉, 1999: 186). 이처럼 향약채취월령 간 행 후에도 향재 약효에 대한 지식은 계속 축적되면서 오류를 수정해 갔는데, 향약집성방 에서는 당명으로 표기된 261종의 약재가 향명으로도 정리되었 다( 南 豊 鉉, 1999: 174-83). 약재 명칭의 정리는 당명과 향명의 일치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당재 라고 하더라도 여러 가지 표기방식이 있을 때는 조선 의학자들이 용어를 통일 하였다. 나마( 蘿 藦, 박주가리)의 이명( 異 名 )은 여청( 女 靑 )이다. 동일한 약재 에 대해 상이한 명칭을 쓸 경우에 초래되는 혼란은 명칭을 단일화하여 막을 20) 鄕 藥 採 取 月 令, 跋 文 ( 韓 國 醫 學 大 系, 여강출판사 영인, 1992). 殿 下 於 是, 命 集 賢 殿 直 提 學 臣 兪 孝 通, 及 典 医 監 正 臣 盧 重 禮, 副 正 臣 朴 允 德, 徧 考 土 產 藥 材, 凡 數 百 餘 種, 首 注 鄕 名, 次 以 味 若 性, 春 秋 採 取 之 早 晩, 陰 陽 乾 暴 之 善 惡, 悉 據 本 草 諸 書, 換 剔 無 遺, 修 成 鄕 藥 採 取 月 令 一 萹. 제20권 제2호(통권 제39호) 225-262, 2011년 12월 233

LEE Kyung-Lock : The Publication of Hyangyakjipseongbang and the Chosŏnization of the Chinese medicine 수 있다. 이 때문에 향약집성방 향약본초에서는 표제어를 나마자( 蘿 摩 子, 박주가리의 열매)로 잡고, 설명 부분에서 여청은 별명( 別 名 )이라고 부연하였 다. 이후 조선에서는 이 약재를 나마( 羅 麻, 혹은 蘿 麻 )라고 불렀는데, 세종실 록 지리지의 경우에는 황해도와 평안도의 약재로 조사되어 있다. 21) 하지만 중국 의서에서는 별명인 여청 으로 처방된 경우도 있었다. 이때 조 선에서는 나마라고 설명을 붙여주는 방식으로 용어의 통일을 기하였다. 전염 병을 치료하는 성혜방 의 처방과 이를 인용한 향약집성방 의 처방을 비교 해보면 쉽게 이해된다. 성혜방 에서는 처방되는 약재로 여청 이라고만 적 었을 뿐이나, 향약집성방 에서는 이 처방을 인용하면서 여청(즉 나마) 라고 설명하였다. 22) 약명의 통일은 신중하게 진행된 작업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향 명을 바로잡는 조치는 향재 약성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과정이며, 중국 본 초학이 조선에서 통용 범위를 확장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당재와 약효가 동일하다고 인정받는 향재가 늘어남에 따라 조선에서는 향 재 처방을 확신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향약집성방 에서 수록하는 중국 처 방도 증가할 수 있게 되었다. <표 1>에서 세종 12년에야 당재와 일치하는 것 으로 평가된 독활은 한 예이다. 향약구급방 과 향약제생집성방 에서 이미 처방된 독활은 세종 12년 이후의 자료인 향약채취월령 과 향약집성방 에도 물론 등장한다. 그런데 독활의 향명은 고려의 향약구급방 에서도 호경초( 虎 驚 草 ) 이고 조선의 향약채취월령 에서도 호경초( 虎 驚 艸 ) 였다. 즉 호경초 라고 부르는 동일한 향재가 세종 12년 이전에는 당재와 일치하는지 미심쩍은 상태였다가 세종 12년 이후에는 당재와 동일하다는 인정을 받은 것이다. 이 러한 확증을 거치면서 독활(호경초) 처방에 대한 신뢰는 올라갈 수밖에 없는 21) 世 宗 實 錄 卷 152, 地 理 志 黃 海 道 ; 卷 154, 地 理 志 平 安 道 ; 卷 154, 地 理 志 平 安 道 安 州 牧 慈 山 郡. 22) 太 平 聖 惠 方 卷 16, 治 時 氣 瘴 疫 諸 方 ( 翰 成 社 영인, 1979). 治 時 氣 瘴 疫 單 行 方 又 方. 正 月 上 寅 日, 取 女 靑 擣 羅 爲 末 四 兩, 以 三 角 絳 囊 盛, 繫 戶 上 帳 前. ; 鄕 藥 集 成 方 卷 8, 傷 寒 門 辟 溫 病 方. [ 聖 惠 方 ] 治 時 氣 瘴 疫. 女 靑 ( 卽 蘿 摩 ) 正 月 上 寅 日 取 搗 羅 爲 末, 以 三 角 絳 囊 盛, 繫 戶 上 帳 前. 234 醫 史 學

이경록 : 향약집성방 의 편찬과 중국 의료의 조선화 데, 실제로 향약집성방 에서는 독활이 널리 활용된다. 이상에서 살핀 바와 같이 향약집성방 의 편찬 과정을 짚어보면 중국 의서 의 광범위한 수집 외에도 중국 본초학에 대한 경도가 두드러졌다. 200종이 넘 는 참고 도서를 검토하여 향약집성방 의 충실함을 꾀하는 동시에 향재 약효 에 대한 신뢰도를 제고하여 처방의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조치였다. 전자가 중국식의 질병체계에 대한 수용이라면, 후자는 중국식의 치료법에 대한 수용 이었다. 향약집성방 에서 중국 의료를 적극 수용했다는 점은 이상에서 확인 되었지만, 향약제생집성방 을 모태로 향약집성방 이 편찬되었다는 점도 그 서문에 나온대로였다. 향약집성방 은 기존 향약 의서들의 연장선상에 서 있 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향약집성방 은 향약제생집성방 과 어떤 관계인 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2) 향약제생집성방 의 전승 (1) 향약제생집성방 의 계승 향약집성방 에서는 고려 이래의 향약 의서에서 상당수의 향약 처방[ 鄕 方 ] 을 채록하였다. 향약집성방 에 실린 향약 의서 10종 가운데 향약집성방 과 가장 밀접한 의서가 바로 향약제생집성방( 鄕 藥 濟 生 集 成 方 ) 이다. 정종 원년 (1399)에 간행된 향약제생집성방 은 여말선초의 향약 의술을 정리한 대표적 인 관찬 의서이다. 향약집성방 의 연원과 관련하여 권근은 향약제생집성방 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일찍이 삼화자향약방 이 있었는데, 이는 자못 간단하게 요령 만 뽑아 놓아, 논병( 論 病 )하는 사람들이 너무 간략함을 결점으로 여겼다. 지난 번에 현재의 판문하( 判 門 下 ) 권중화( 權 仲 和 )가 서찬 ( 徐 贊 )을 시켜 거기에다 수집을 더하여 간이방 ( 향약간이방 -인 용자)을 편저( 編 著 )하였다. 그러나 그 책은 아직도 세상에 널리 퍼 지지 못하였다. 좌정승 평양백( 平 壤 伯 ) 조준( 趙 浚 )과 우정승 상 락백( 上 洛 伯 ) 김사형( 金 士 衡 )이 또 그 방문에 미비한 것이 있을 까 염려하여, 권공( 權 公 )과 함께 관약국( 官 藥 局 ) 관리에게 특별히 제20권 제2호(통권 제39호) 225-262, 2011년 12월 235

LEE Kyung-Lock : The Publication of Hyangyakjipseongbang and the Chosŏnization of the Chinese medicine 명하여 여러 처방을 다시 상고하고, 또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험방 을 채집하여 부문( 部 門 )으로 분류 편집하여 향약제생집성방 이 라 이름하고, 우마의방( 牛 馬 醫 方 ) 을 부록( 附 錄 )하였다. 김사형 [ 金 中 樞 ]이 강원도관찰사로 있을 때 공장( 工 匠 )을 모아 인쇄하여 널리 퍼뜨렸다. 23) 이 글은 권채가 쓴 향약집성방 서문과도 거의 동일하다. 24) 이에 따르면 삼화자향약방 은 너무 간략한 게 단점이었다. 권중화가 서찬을 시켜 수집한 것들을 삼화자향약방 에 추가하여 향약간이방 을 지은 까닭이었다. 하지만 향약간이방 도 널리 활용되지 못하는데다 처방이 미비할까 우려되었다는 것 이다. 이 때문에 조준 등은 권중화와 함께 여러 처방을 검토하고 경험방을 덧 붙여 향약제생집성방 을 간행하였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여말선초의 향약 의서는 삼화자향약방 향약간이방 향약제생집성방 향약집성 방 으로 계통을 이어간 것이다. 그런데 아주 의아한 것은 향약집성방 전체에 향약제생집성방 이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향약집성방 자체가 향약제생집성방 을 저본으로 삼았으므로 별도의 인용 표시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5) 그동 안은 향약제생집성방 과 향약집성방 의 서문을 분석하여 두 의서의 계통을 설명해왔을 뿐인데, 여기에서는 최근 발견된 향약제생집성방 을 활용하여 23) 陽 村 先 生 文 集 卷 17, 序 類 鄕 藥 濟 生 集 成 方 序. 甞 有 三 和 子 鄕 藥 方, 頗 爲 簡 要, 論 者 猶 病 其 畧. 曩 日 今 判 門 下 權 公 [ 仲 和 ], 命 徐 贊 者 尤 加 蒐 輯, 著 簡 易 方, 其 書 尙 未 盛 行 于 世 左 政 丞 平 壤 伯 趙 公 [ 浚 ], 右 政 丞 上 洛 伯 金 公 [ 士 衡 ] 又 患 其 方 有 所 未 備, 乃 與 權 公 特 命 官 藥 局 官 更 考 諸 方, 又 採 東 人 經 驗 者, 分 門 類 編, 名 之 曰 鄕 藥 濟 生 集 成 方, 附 以 牛 馬 醫 方. 而 金 中 樞 觀 察 江 原, 募 工 鋟 梓, 以 廣 其 傳. 24) 鄕 藥 集 成 方 卷 1, 鄕 藥 集 成 方 序. 昔 判 門 下 臣 權 仲 和 嘗 加 採 輯, 著 鄕 藥 簡 易 方. 其 後, 又 與 平 壤 伯 臣 趙 浚 等, 命 官 藥 局, 更 考 諸 方, 又 取 東 人 經 驗 者, 分 門 類 編, 鋟 榟 以 行. 향약집성방 서문을 쓴 權 採 는 향약제생집성방 서문을 쓴 權 近 의 조카이다. 즉 권근의 동생인 權 遇 의 아들이 바로 권채이다{ 太 宗 實 錄 卷 10, 태종 5년 12월 19일( 辛 巳 ); 世 宗 實 錄 卷 81, 세종 20년 5월 10일( 癸 巳 )}. 25) 三 木 榮, 朝 鮮 醫 學 史 及 疾 病 史 ( 自 家 出 版, 1963), 128쪽; 金 斗 鍾, 韓 國 醫 學 史 ( 探 求 堂, 1966), 216쪽; 金 澔, 여말선초 鄕 藥 論 의 형성과 鄕 藥 集 成 方, 震 檀 學 報 87, 1999, 139 쪽. 236 醫 史 學

이경록 : 향약집성방 의 편찬과 중국 의료의 조선화 두 의서의 관계를 계승과 극복의 두 측면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우선 가슴이 그득하고 답답해지는 흉비( 胸 痺 )에 대한 성제총록 (A)과 향약제생집성방 (B)의 처방을 살펴보자. A. 흉비를 치료하는 괄루탕. 괄루실( 栝 樓 實 )[1매를 괄루실 속과 함께 사용한다], 지실( 枳 實 ) [속을 빼고 밀기울에 볶은 것 5매], 반하( 半 夏 )[씻어서 점액질을 제 거한 것 4냥]. 이 세 약재를 마두( 麻 豆 ) 크기로 자른다. 매번 5돈을 백자장( 白 胾 漿 ) 2잔, 해백( 薤 白 ) 1악( 握 ), 자른 생강( 生 薑 ) 1푼과 함께 갈아 1 잔이 되도록 달여 찌꺼기를 버린다. 공복에 낮과 잠자리에 들 무렵 에 한번씩 따뜻하게 복용한다. 26) B. 성제총록 의 흉비 치료법. 지실( 枳 實 )[속을 파내고 밀기울에 볶은 것 반냥], 괄루실( 括 樓 實 )[1매를 괄루실 속과 함께 사용한다], 후박( 厚 朴 )[겉껍질을 버리 고 생강즙에 구운 것 3냥]. 이 약재들을 마두( 麻 豆 ) 크기로 자른다. 매번 5돈을 물 2종지에 넣고 1종지가 되도록 달여 찌꺼기를 버린다. 공복에 아침과 저녁 한 번씩 따뜻하게 복용한다. 27) B에서는 A에서 인용했다고 표시하면서도 반하를 후박으로 바꾸고 백자장, 해백과 생강을 뺐다. 조선 초기에 반하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므로, B의 편 찬자들이 의도적으로 A의 처방을 변형한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향약집성 방 에는 B의 변형 처방이 그대로 수록되어 있다. 28) 지실, 괄루실, 후박이라는 26) 聖 濟 總 錄 卷 61, 胸 痺 門 (대만 新 文 豊 出 版 公 司 영인, 1978). 治 胸 痺 栝 樓 湯 方. 栝 樓 實 [ 一 枚, 幷 瓤 用 ], 枳 實 [ 去 瓤 麩 炒, 五 枚 ], 半 夏 [ 湯 洗 去 滑, 四 兩 ]. 右 三 味 剉 如 麻 豆. 每 服 五 錢 匕, 白 胾 漿 二 盞, 薤 白 一 握, 切 生 薑 一 分, 拍 破 同 煎 至 一 盞, 去 滓. 溫 服, 空 心 日 午 臨 臥 各 一. 27) 鄕 藥 濟 生 集 成 方 卷 4, 胸 痺. 聖 濟 治 胸 痺. 枳 實 [ 去 穰 麩 炒, 半 兩 ], 括 樓 實 [ 壹 枚, 幷 穰 用 ], 厚 朴 [ 去 麤 皮, 生 姜 汁 炙, 三 兩 ]. 右 剉 如 麻 豆 大. 每 服 五 錢, 水 二 鍾, 煎 一 鍾, 去 滓. 溫 服, 空 心 日 晩 各 一. 28) 鄕 藥 集 成 方 卷 23, 心 痛 門 胸 痺. [ 聖 濟 總 錄 ] 治 胸 痺. 枳 實 [ 去 穰 麩 炒, 半 兩 ], 栝 樓 實 [ 一 枚, 幷 穰 用 ], 厚 朴 [ 去 麤 皮, 生 薑 汁 炙, 三 兩 ]. 右 剉 如 麻 豆 大, 每 服 五 分, 水 二 鍾, 煎 一 鍾, 去 滓, 溫 服, 空 心 日 晩 各 一. 제20권 제2호(통권 제39호) 225-262, 2011년 12월 237

LEE Kyung-Lock : The Publication of Hyangyakjipseongbang and the Chosŏnization of the Chinese medicine 약재 나열 순서는 물론 후박 분량이 3냥인 것까지 완전히 동일하다. 향약집 성방 의 편찬자들이 향약제생집성방 (B)을 참고한 것을 넘어서 편찬 저본으 로 삼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눈에 핏발이 설 때의 탕기위( 湯 器 熨 ) 처방을 비교해보면 향약구급방 에서는 심존중양방( 沈 存 中 良 方 ) 을 인용하였다. 29) 책 이름에 들어있는 존중 ( 存 中 )은 송의 의학자인 심괄( 沈 括 )의 자( 字 )이다. 심괄의 양방( 良 方 )은 후대 에 소식( 蘇 軾 )의 저작과 합해져서 소심양방( 蘇 沈 良 方 ) 으로 묶였다. 탕기위 처방에서 심괄은 내가 18세부터 작은 글자를 쓴 탓에 눈병에 걸렸다 고 썼 다. 30) 심존중양방 이 심괄 자신의 체험을 덧붙인 원래 처방에 해당하는 것이 다. 그런데 향약제생집성방 과 향약집성방 에서는 이 처방을 성제총록 에 서 인용하였다. 31) 성제총록 에서는 심괄의 체험 기록을 예전에 어떤 사람이 젊은 시절부터 밤에 작은 글씨를 쓴 탓에 눈병에 걸렸다 고 바꾸었다. 32) 필사 하는 과정에서 문장이 달라진 셈이다. 향약제생집성방 에서는 심존중양방 을 무시하면서 주로 의존하던 성제총록 을 인용하였는데, 향약집성방 에서 는 향약제생집성방 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향약제생집성방 이 향약집성방 으로 계승되는 점은 이같은 처방 문장의 유사성을 넘어 책의 편제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현재 남아있는 향약제생집 성방 권4~6은 음산( 陰 疝 ) 적취심복창만( 積 聚 心 腹 脹 滿 ) 심복통( 心 腹 痛 ) 등으로 병증이 구성되었다. 이 순서는 향약집성방 병문 배치와 일치 하며, 본문 형식도 병론을 제시한 후 처방들을 나열한 점이 똑같다(이경록, 2010b: 340-3). 즉 30권으로 이루어진 향약제생집성방 을 확대한 것이 85권 으로 된 향약집성방 인 것이다. 실제로 조선에서는 향약집성방 이 향약제생집성방 의 증보판으로 이해 되고 있었다. 향약제생집성방 발문 첫부분에서 제생원( 濟 生 院 ) 향약집성방 29) 鄕 藥 救 急 方 中 卷, 眼. 30) 蘇 沈 良 方 卷 6, 治 諸 目 疾 ( 四 庫 全 書 本 ). 予 自 十 八 歲, 因 書 小 字, 病 目 楚 痛. 31) 鄕 藥 濟 生 集 成 方 卷 5, 目 痒 急 及 赤 痛 ; 鄕 藥 集 成 方 卷 30, 眼 門 赤 眼. 32) 聖 濟 總 錄 卷 107, 眼 目 門. 昔 有 人, 因 少 年 夜 書 小 字, 病 目 痛 楚. 238 醫 史 學

이경록 : 향약집성방 의 편찬과 중국 의료의 조선화 ( 鄕 藥 集 成 方 ) 이라고 적은 데서 알 수 있듯이, 33) 향약제생집성방 편찬은 제 생원 사업의 일부였으며, 흔히 향약집성방 이라고 약칭되었다. 예컨대 세종 12년(1430) 3월에 의학( 醫 學 )의 취재( 取 才 ) 의서로 거론한 향약집성방( 鄕 藥 集 成 方 ) 은 34) 향약제생집성방 을 가리키는 게 확실하다. 이 글에서 다루는 향약집성방 은 1년이 지난 세종 13년(1431) 가을에야 편찬을 시작하기 때문 이다. 해동문헌총록 에서 향약제생집성방 을 조준이 편찬한 향약집성방 이라고 설명한 것도 동일한 이해였다. 35) 반면 이 글에서 다루는 세종 15년의 향약집성방 을 해동문헌총록 에서는 신증향약집성방( 新 增 鄕 藥 集 成 方 ) 즉 새로 증보한 향약집성방 이라고 표기하면서 신증집성방( 新 增 集 成 方 ) 으로 도 줄여 불렀다. 36) (2) 향약제생집성방 의 극복 향약집성방 이 편찬된다는 것은 넘어서야 할 향약제생집성방 의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황자후는 향약제생집성방 이 너무 복잡하고 맞지 않는 약이 많으며, 독약( 藥 毒 )의 유무나 대인 소아 노허( 老 虛 )에 따른 복약의 다소를 분별하지 않고, 몇 환( 丸 ) 몇 대접을 똑같이 처방한다고 평가하였다. 37) 한마디 로 향약제생집성방 은 질병 설명이 번잡하고 약재 독성과 환자 상태를 따지 지 않으므로 엉성하다는 비판이었다. 향약제생집성방 을 넘어서는 것이 앞서 서술한 것처럼 인용 의서의 확대 나 분량 증가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었다. 편제와 책자로서의 완성도에서 적 지 않은 변화가 나타났다. 편제에서 보자면 향약집성방 에서는 병문 57개를 신설하고, 병문 아래 병증을 959증으로 세분하며 병론을 강화하였다. 구체적 33) 陽 村 先 生 文 集 卷 22, 跋 語 類 鄕 藥 濟 生 集 成 方 跋. 34) 世 宗 實 錄 卷 47, 세종 12년 3월 18일( 戊 午 ). 35) 海 東 文 獻 總 錄, 醫 藥 類, 新 增 鄕 藥 集 成 方 ( 學 文 閣 영인, 1969). 我 廟 以 權 仲 和 所 著 鄕 藥 簡 易 方 及 趙 浚 所 撰 鄕 藥 集 成 方, 治 法 藥 名 猶 有 未 備 者. 36) 海 東 文 獻 總 錄, 醫 藥 類, 新 增 鄕 藥 集 成 方. 37) 世 宗 實 錄 卷 60, 세종 15년 6월 1일( 壬 午 ). 典 醫 提 調 黃 子 厚 上 言 曰 前 此 集 成 鄕 藥 方 太 繁, 藥 多 不 中, 又 不 分 藥 毒 有 無, 又 不 分 大 人 小 兒 老 虛 病 人 服 藥 多 少, 都 稱 某 病 服 幾 丸 幾 椀. 제20권 제2호(통권 제39호) 225-262, 2011년 12월 239

LEE Kyung-Lock : The Publication of Hyangyakjipseongbang and the Chosŏnization of the Chinese medicine 으로 타혈( 唾 血 ) 항목을 찾아보면, 향약제생집성방 에서는 성제총록 의 병 론을 인용하였고, 성제총록 의 처방 3개를 수록하였다. 38) 반면 향약집성방 에서는 타혈 을 비뉵문( 鼻 衄 門 )의 하부 병증으로 수록하여 체계화시켰다. 39) 병론에서도 향약제생집성방 과 달리 성혜방 을 인용하여 설명하였으며, 처 방으로는 성혜방, 천금방, 성제총록, 직지방, 백일선방, 위생보감, 주씨집험방, 산거사요 에서 처방 13개를 인용하였다. 타혈 항목이 체재, 인 용 의서, 처방 등 모든 면에서 정밀해져 간 것이다. 처방 약재의 숫자에서도 향약집성방 은 향약제생집성방 을 압도한다. 앞 서 분석한 흉비( 胸 痺 )로 돌아가서 처방 약재를 헤아려보면 향약제생집성방 흉비에서는 12개 처방에 30개의 약재가 처방되어 1처방 당 2.5개의 약재가 사용되었다. 반면 향약집성방 에서는 16개 처방에 50개의 약재가 처방되어 1처방당 3.1개의 약재가 사용되었다. 언뜻 보면 처방당 약재수에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많은 차이가 난다. 향약집성방 에서는 향약제생 집성방 의 10개 처방을 그대로 인용한 것 외에도 성혜방, 천금방, 삼인 방, 의방집성, 금궤방 에서 6개 처방에 27개 약재를 새로 추가했다. 향약 집성방 에서 증보된 6개의 신규 처방에서는 1처방당 4.5개나 되는 많은 약재 가 활용된 셈이다. 전반적으로 향약집성방 을 이전 향약 의서들과 비교했을 때 처방 숫자는 말할 것도 없고 처방의 복방화( 複 方 化 )와 처방 약재 수의 증 가 경향이 지속되었다. 모든 사물대신 약재를 주로 활용하고[ 藥 材 爲 藥 論 ] 보 다 많은 약재를 처방하는[ 一 病 多 藥 論 ] 향약제생집성방 의 의술 단계는 더욱 강화되었다(이경록, 2010b). 탕제 치료 외에 침뜸[ 鍼 灸 ] 치료법의 강조는 성혜방 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향약집성방 편제의 특징이기도 하다. 향약집성방 에서는 959개 병증 말미 에 침구법( 鍼 灸 法 ) 구법( 灸 法 ) 이라는 제목으로 침뜸 치료법을 전문화하였 38) 鄕 藥 濟 生 集 成 方 卷 4, 唾 血. 39) 鄕 藥 集 成 方 卷 29, 鼻 衄 門 唾 血. 240 醫 史 學

이경록 : 향약집성방 의 편찬과 중국 의료의 조선화 다. 여기에서는 자생경( 資 生 經 ), 옥룡가( 玉 龍 歌 ), 동인경( 銅 人 經 ), 주후 방( 肘 後 方 ) 등의 침뜸 치료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침뜸 치료법의 독립 외 에도 향약집성방 에서는 도교의학을 소개하기 위해 보유( 補 遺 ) 항목을 별 도로 배정하였다. 도교의학을 향약집성방 에 편입할 필요는 느끼되 정식으 로 설정하는 것은 아직 마땅치 않아서 일종의 외전( 外 傳 )으로 절충한 셈이다. 책자의 측면에서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향약제생집성방 에는 뒷부분에 우마의방( 牛 馬 醫 方 ) 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향약집성방 에서는 수의 학 관련 부분은 모두 삭제하고 사람의 질병에 집중하였다. 특히 향약집성방 의 뒷부분인 권76~85에는 향약본초개론과 향약본초각론을 배치하여 조선 본 초학의 표준을 정립하였다(이경록, 2010c). 향약본초개론에서는 약재 채취 가 중요한 이유를 서술하고, 제품약석포제법도( 諸 品 藥 石 炮 製 法 度 )에서 212 종의 약재를 말 그대로 포제에 초점을 맞춰 설명한다. 향약본초각론에서는 약재 701종의 향명( 鄕 名 ), 약미( 藥 味 ), 약성( 藥 性 ), 독성( 毒 性 ) 유무, 약효( 藥 效 ), 채취법( 採 取 法 ), 별명( 別 名 ), 재배지 등에 대한 다른 의서의 기록, 조선의 산출 여부를 정리하였다. 그리고 앞서 거론한 흉비를 다시 살펴보면 향약제생집성방 흉비 병증에 서는 세 군데로 흩어져 인용된 이간방 처방들을 향약집성방 에서는 한군 데로 묶음으로써 깔끔한 느낌을 준다. 특히 향약집성방 에서는 약성상반( 藥 性 相 反 )이 있어서 향약구급방 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것은 물론, 물성상 반( 物 性 相 反 )을 새로 덧붙여 음식과 질병의 상관관계까지 다룸으로써 의서로 서의 완결성을 기하였다. 40) 이 외에도 향약집성방 에서는 일부 의서명을 비 롯하여 처방명과 침구법 항목을 검은 바탕으로 표시하여 가독성을 높였다. 이상에서 살핀 바와 같이 향약집성방 은 향약제생집성방 을 계승하되 맹 목적으로 따르지는 않았다. 향약집성방 과 향약제생집성방 은 병문의 배치 순서와 본문 형식 등이 유사하고, 처방 문장이 일치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40) 鄕 藥 集 成 方 卷 53, 諸 救 急 門 藥 性 相 反 ; 物 性 相 反. 제20권 제2호(통권 제39호) 225-262, 2011년 12월 241

LEE Kyung-Lock : The Publication of Hyangyakjipseongbang and the Chosŏnization of the Chinese medicine 향약집성방 에서는 향약제생집성방 에 비해 편제가 확장되고 인용 의서가 다양해질 뿐만 아니라 처방 약재 수의 증가 경향이 뚜렷하였다. 여기에 침뜸 치료를 별도 항목으로 제시하고, 도교의학에도 관심을 보였으며, 향약 본초 학에 대한 정리까지 아울렀다. 그리고 향약집성방 이 책자로서의 완성도 역 시 높은 것은 당연하다. 향약제생집성방 의 편찬 경험을 토대로 삼았기 때문 이다. 고려 이래 향약 의서들의 연장선에 위치한 향약집성방 에는 향약제생 집성방 의 계승과 극복이 동시에 들어있는 것이다. 3. 향약집성방 의 체재와 질병의 창출 1) 향약집성방 과 중국 의서들의 편차 향약집성방 85권은 57개 병문( 病 門 ), 보유( 補 遺 ), 향약본초( 鄕 藥 本 草 ) 등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57개 병문은 크게 보아 육기( 六 氣 )(1~7 病 門, 권 1~10), 사기( 邪 氣 )와 몸(8~16 病 門, 권11~16), 내상 즉 오장육부( 五 臟 六 腑 ) (17~31 病 門, 권17~29), 신체부위별 질병(32~40 病 門, 권30~39), 외상(41~43 病 門, 권40~49), 구급(44~46 病 門, 권49~53), 부인과(47~56 病 門, 권54~66), 소아과(57 病 門, 권67~75)로 이루어져 있으며, 양생과 도교의학을 다룬 보유 ( 補 遺 )(권75)와 향약본초( 鄕 藥 本 草 )를 다룬 향약본초개론( 鄕 藥 本 草 槪 論 )(권 76) 및 향약본초각론( 鄕 藥 本 草 各 論 )(권77~85)이 부가된 형식이다. 41) 41) 향약집성방 의 57개 병문을 포함한 전체 편차를 권수와 함께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風 門 (권1~4), 傷 寒 門 (권5~8), 熱 病 門 (권9), 暑 門 (권9), 濕 門 (권9), 積 熱 門 (권10), 瘧 病 門 (권 10), 脚 氣 門 (권11), 腰 痛 門 (권12), 霍 亂 門 (권12~13), 眩 暈 門 (권13), 諸 虛 門 (권14), 驚 悸 門 ( 권15), 虛 損 門 (권15), 勞 瘵 門 (권16), 三 痟 門 (권16), 水 病 門 (권17), 黃 病 門 (권18), 大 小 便 門 ( 권19~20), 諸 淋 門 (권20~21), 諸 疝 門 (권21), 積 聚 門 (권22), 心 痛 門 (권23), 諸 咳 門 (권24~25), 諸 氣 門 (권25), 痰 飮 門 (권25), 嘔 吐 門 (권26), 噎 膈 門 (권26), 脾 胃 門 (권27), 蠱 毒 門 (권27), 鼻 衄 門 (권28~29), 頭 門 (권29~30), 眼 門 (권30~32), 耳 門 (권33), 鼻 門 (권33), 口 舌 門 (권34), 齒 牙 門 (권34~35), 咽 喉 門 (권36), 諸 痢 門 (권37~38), 痔 漏 門 (권39), 癰 疽 瘡 瘍 門 (권40~47), 打 撲 傷 損 門 (권47~48), 諸 損 傷 門 (권48~49), 蟲 獸 傷 門 (권49~51), 中 諸 毒 門 (권51~52), 諸 救 急 門 ( 권53), 調 經 門 (권54), 崩 漏 門 (권54), 婦 人 諸 病 門 (권55~56), 女 陰 門 (권56), 求 嗣 門 (권57), 胎 敎 門 (권57), 姙 娠 疾 病 門 (권58~60), 坐 月 門 (권61), 產 難 門 (권61~62), 產 後 門 (권63~66), 小 兒 門 (권67~75), 補 遺 (권75), 鄕 藥 本 草 槪 論 (권76), 鄕 藥 本 草 各 論 (권77~85). 242 醫 史 學

이경록 : 향약집성방 의 편찬과 중국 의료의 조선화 향약집성방 의 체재가 갖는 특성을 가늠하기 위해서는 가장 크게 의지하 는 성혜방 및 성제총록 의 편차와 비교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흔히 성혜 방 으로 약칭하는 태평성혜방( 太 平 聖 惠 方 ) 은 992년(고려 성종 11년, 송 태 종 순화 3년)에 간행되었다. 송의 왕회은( 王 懷 隱 ) 등이 민간 처방과 옛 방서 를 토대로 100권으로 편찬하였다(홍원식 윤창열, 2001: 250-1). 성혜방 은 대체로 진단과 치료법 총론 사기( 邪 氣 )로 인한 질병 부위에 따른 질병 증상에 따른 질병 응급 및 외상에 따른 질병 부인과 소아과 도 교와 양생 침구법으로 구성된다. 42) 그리고 성제총록( 聖 濟 總 錄 ) 은 송 휘종의 정화( 政 和 ) 연간(1111~1117년) 에 간행되었다. 천하의 방술( 方 術 )을 수집하고 어부( 御 府 )의 장서를 토대로 삼아 200권 분량에 20,000처방을 수록하였는데, 질병별로 병문을 나누고 병 문마다 병론을 두었다. 43) 그 후 금( 金 ) 대정( 大 定 ) 연간과 원( 元 ) 대덕( 大 德 ) 연간에 각각 중간되었다(홍원식 윤창열, 2001: 252-3). 성제총록 은 병인과 치료 이론 사기( 邪 氣 )로 인한 질병 내상과 증상에 따른 질병 부위에 따른 질병 응급 및 외상에 따른 질병 부인과 소아과 침구법 도 교의학으로 짜여져 있다. 44) 42) 성혜방 의 목차를 권별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診 脈 法 (권1), 用 藥 法 (권2), 肝 心 脾 肺 腎 의 五 臟 질병(권3~7), 傷 寒 (권8~14), 時 氣 (권15~16), 熱 病 (권17~18), 中 風 (권19~25), 虛 勞 (권 26~31), 眼 (권32~33), 齒 (권34), 咽 喉 (권35), 口 舌 (권36), 耳 (권36), 鼻 衄 (권37), 吐 血 (권37), 乳 石 (권38), 中 毒 (권39), 頭 痛 (권40), 髮 (권41), 上 氣 (권42), 胸 痺 (권42), 心 腹 痛 (권43), 腰 痛 (권44), 陰 㿗 (권44), 脚 氣 (권45), 咳 嗽 (권46), 霍 亂 (권47), 三 焦 (권47), 積 聚 (권48), 諸 疝 (권 48), 痃 癖 (권49), 噎 膈 (권50), 痰 飮 (권51), 瘧 病 (권52), 三 痟 (권53), 水 病 (권54), 黃 病 (권55), 諸 尸 蠱 毒 卒 死 등 應 急 (권56), 諸 蟲 (권57), 諸 淋 (권58), 諸 痢 (권59), 諸 痔 (권60), 癰 疽 發 背 (권61~63), 腫 瘡 (권64), 癬 疥 (권65), 瘰 癧 (권66), 傷 折 (권67), 金 瘡 (권68), 婦 人 (권69~81), 小 兒 (권82~93), 神 仙 方 (권94), 丹 藥 藥 酒 (권95), 食 治 (권96~97), 補 益 方 (권98), 針 經 (권99), 明 堂 (권100). 미키 사카에는 조선질병사 에서 향약집성방 이 성혜방 의 목차를 따라 배 열했다고 주장하였다{ 三 木 榮, 朝 鮮 醫 學 史 及 疾 病 史 ( 自 家 出 版, 1963), 123쪽}. 43) 聖 濟 總 錄, 政 和 聖 濟 總 錄 序. 萬 機 之 餘, 著 書 四 十 二 章, 發 明 内 經 之 妙, 曰 聖 濟 經. 其 意 精 微, 其 旨 邁 遠, 其 所 言 在 理, 所 以 探 天 下 之 至 賾. 亦 詔 天 下 以 方 術 來 上, 幷 御 府 所 藏 颁 之, 爲 補 遺 一 卷, 治 法 一 卷, 卷 凡 二 百, 方 幾 二 萬, 以 病 分 門, 門 各 有 論, 而 叙 統 附 焉. 首 之 以 風 疾 之 變 動, 終 之 以 神 仙 之 服 餌, 詳 至 於 兪 穴 經 絡, 祝 由 符 禁, 無 不 悉 備, 名 之 曰 政 和 聖 濟 總 錄. 44) 성제총록 의 목차를 권별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運 氣 (권1~2), 敍 例 (권3), 補 遺 (권3), 治 法 (권4), 諸 風 門 (권5~18), 諸 痺 門 (권19~20), 傷 寒 門 (권21~33), 中 暍 門 (권34), 瘧 病 門 (권 제20권 제2호(통권 제39호) 225-262, 2011년 12월 243

LEE Kyung-Lock : The Publication of Hyangyakjipseongbang and the Chosŏnization of the Chinese medicine 향약집성방 을 성혜방 및 성제총록 과 비교해보면 사기로 인한 질병, 증상이나 부위별로 구분된 내과, 응급을 포함한 외과, 부인과, 소아과 등 중 국 의서에서 다루는 모든 과가 포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부인과 와 소아과를 마지막에 부가하거나 도교의학과 침구법까지 포함되어 있는 점 에서도 성혜방 과 성제총록 의 영향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향약 집성방 에서는 중국의 풍토병까지도 수록한다. 성혜방 을 인용하여 중국 강 남의 사공( 射 工 )이라는 독충( 毒 蟲 )의 치료법을 다루기도 하고, 45) 안휘성을 비 롯한 중국 남부의 수독병( 水 毒 病 )까지 다루기도 한다. 46) 이처럼 향약집성방 은 당시 조선인들이 보고 들었던 모든 질병을 아우름으로써 종합의서의 면 모를 갖추었다. 종합의서 편제가 향약집성방 에서 처음으로 확립된 것이라고 단정할 수 는 없다. 현존하는 향약제생집성방 에서도 이미 종합의서의 흔적이 엿보인 다. 향약 의서들이 모두 남아있지 않은 현재로서는 여말선초에 향약 의서들 이 종합의서 편제로 변화하는데 향약집성방 과 의방유취 는 그 연장선상 에 있으며, 이러한 변화에는 중국 의료의 영향이 컸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좋 을 것 같다. 그런데 향약집성방, 성혜방, 성제총록 의 체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34~37), 霍 亂 門 (권38~40), 肝 藏 門 (권41~42), 膽 門 (권42), 心 藏 門 (권43), 小 腸 門 (권43), 脾 藏 門 (권44~46), 胃 門 (권47), 肺 藏 門 (권48~50), 大 腸 門 (권50), 腎 藏 門 (권51~53), 膀 胱 門 (권 53), 三 焦 門 (권54), 心 痛 門 (권55~56), 心 腹 門 (권57), 消 渴 門 (권58~59), 黃 病 門 (권60~61), 胸 痺 門 (권61), 膈 氣 門 (권62), 嘔 吐 門 (권63), 痰 飮 門 (권63~64), 欬 嗽 門 (권65~66), 諸 氣 門 (권67), 吐 血 門 (권68~69), 鼻 衄 門 (권70), 積 聚 門 (권71~73), 泄 痢 門 (권74~78), 水 病 門 (권 79~80), 脚 氣 門 (권81~84), 腰 痛 門 (권85), 虛 勞 門 (권86~92), 骨 蒸 傳 尸 門 (권93), 諸 疝 門 (권 94), 陰 疝 門 (권94), 大 小 便 門 (권95~97), 諸 淋 門 (권98), 九 蟲 門 (권99), 諸 尸 門 (권100), 諸 注 門 (권100), 面 體 門 (권101), 髭 髮 門 (권101), 眼 門 (권102~113), 耳 門 (권114~115), 鼻 門 ( 권116), 口 齒 門 (권117~121), 咽 喉 門 (권122~124), 癭 瘤 門 (권125), 瘰 癧 門 (권126~127), 癰 疽 門 (권128~131), 瘡 腫 門 (권132~138), 金 瘡 門 (권139~140), 痔 瘻 門 (권141~143), 傷 折 門 (권144~145), 雜 瘵 門 (권146~149), 婦 人 門 (권150~166), 小 兒 門 (권167~182), 乳 石 發 動 門 (권183~184), 補 益 門 (권185~187), 食 治 門 (권188~190), 鍼 灸 門 (권191~194), 符 禁 門 (권 195~197), 神 仙 服 餌 門 (권198~200). 45) 鄕 藥 集 成 方 卷 50, 蟲 獸 傷 門 射 工 中 人 瘡. 46) 鄕 藥 集 成 方 卷 51, 中 諸 毒 門 解 水 毒. 244 醫 史 學

이경록 : 향약집성방 의 편찬과 중국 의료의 조선화 상이한 점들이 눈에 띈다. 향약집성방 에서는 본문 첫머리에 풍문( 風 門 ) 즉 중풍( 中 風 )을 배치하였다. 성혜방 과는 다르고 성제총록 과는 비슷해 보인 다. 하지만 풍문 다음의 배치를 살펴보면 향약집성방 은 성제총록 과도 다 른 독특한 편차를 구성하였다. 향약집성방 에서는 풍문( 風 門 ), 상한문( 傷 寒 門 ), 열병문( 熱 病 門 ), 서문( 暑 門 ), 습문( 濕 門 ), 적열문( 積 熱 門 ), 학병문( 瘧 病 門 )을 배치한 것이다. 이것은 의학이론 가운데 육기( 六 氣 ) 즉 풍( 風 ), 한( 寒 ), 서( 暑 ), 습( 濕 ), 조( 燥 ), 화( 火 )를 의식한 편제로서, 간심비폐신( 肝 心 脾 肺 腎 )의 오장( 五 臟 ) 질병을 앞세운 성혜방 이나 사기( 邪 氣 ) 관련 질병만을 앞부분에 배치한 성제총록 보다 진전된 방식이었다. 향약집성방 에서 풍문( 風 門 )을 앞세운 것은 단순히 성제총록 을 본받은 것이 아니라 향약집성방 편찬자 들의 구상이었던 것이다. 풍문( 風 門 )이 향약집성방 에서 맨 앞에 배치된 것은 노중례 등이 중풍을 가장 심각한 질병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세종이 즉위할 무렵에는 요사이 중풍으로 갑자기 죽은 사람이 20여 인이나 된다 고 태종이 지적할 정도였 다. 47) 고위 관료들에 제한된 기록이므로 실제로는 훨씬 많은 삶을 위협한 질 병이 중풍이었을 것이다. 이미 고려에서 중풍은 위험한 질병이었다. 신집어 의촬요방 에서는 중풍 처방이 19건으로 질병 가운데 가장 많은데다 묘지명 에 보이는 많은 사인 역시 중풍이었다(이경록, 2010a: 270). 곧 다룰 <표 2> 에서도 중풍을 치료하는 재래의 향방( 鄕 方 )이 많았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병증의 배치와 설명에서도 향약집성방 은 나름의 합리를 추구하였다. 내 상 관련 병증의 배치를 보면 향약집성방 은 신체 부위를 각기( 脚 氣 ) 요통 ( 腰 痛 ) 현훈( 眩 暈 ), 두( 頭 ) 안( 眼 ) 이( 耳 ) 비( 鼻 ) 구설( 口 舌 ) 치아( 齒 牙 ) 인후( 咽 喉 ) 등 한 방향으로 정리하고 있다. 얼굴 부위의 설명 이 안( 眼 ) 치( 齒 ) 인후( 咽 喉 ) 구설( 口 舌 ) 이( 耳 ) 비뉵( 鼻 衄 ) 등 으로 오락가락하는 성혜방 이나 오장육부 등이 혼재되어 배치된 성제총록 47) 世 宗 實 錄 卷 2, 세종 즉위년 11월 5일( 辛 亥 ). 總 制 李 春 生 中 風, 絶 而 復 蘇. 上 王 曰, 近 日 中 風 暴 死 者, 幾 二 十 餘 人. 須 令 寫 備 急 方, 牓 于 殿 內 及 兵 曹. 제20권 제2호(통권 제39호) 225-262, 2011년 12월 245

LEE Kyung-Lock : The Publication of Hyangyakjipseongbang and the Chosŏnization of the Chinese medicine 보다는 정리된 느낌을 준다. 그리고 향약집성방 의 병증 구성은 대체로 증 상과 치료원리 설명(병론) 중국 의서 인용 노인 관련 의서 인용 향약 의서 인용 침구법의 순서로 짜여 있다. 향약집성방 편찬자들은 중국 의 료 정리에 가장 적합한 방식을 고안하여 조선식의 의서 체재를 갖춘 것이다. 처방의 배치도 향약집성방 편찬자들의 견해였다. 향약제생집성방 과 같 은 향약 의서에서 이미 다뤘다고 해서 향약집성방 에서 그대로 추종하는 것 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향약제생집성방 과 향약집성방 에는 가슴 부위의 통증에 관한 기록이 있다. 향약제생집성방 의 심복통 에서는 의서 12종의 처방을 인용한 반면, 48) 향약집성방 에서는 이 처방들을 두 군데 즉 권23 심 통문 내의 심통( 心 痛 ) 과 심복통( 心 腹 痛 ) 으로 나누어 재배치하였다. 49) 향 약제생집성방 에서는 심복통 으로 뭉쳐 처리했던 처방들을 가슴과 복부로 세분한 것이다. 향약집성방 의 확장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조선 의학자들 의 몫이었다. 이 때문에 향약집성방 본문에서 편찬자들의 언급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 다. 천금방 의 처방을 인용하면서도 향약집성방 에서는 이제는 1냥 분량을 물 2종지가 1종지가 되도록 달인 후 찌꺼기를 버리고 따뜻하게 복용해도 좋 다 라고 추가로 언급하였으며, 50) 다른 곳에서는 조선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도 록 괄호 안에 발음을 달아주고 설명을 덧붙였다. 51) 노중례 등의 편찬자들은 향약집성방 본문에서 자신들의 의견을 분명히 표시하였던 것이다. 성혜방 및 성제총록 과 비교했을 때 향약집성방 의 체재에서 마지막으 로 눈에 띄는 점은 10권이나 되는 향약본초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향약본 48) 鄕 藥 濟 生 集 成 方 卷 4, 心 腹 痛. 49) 鄕 藥 集 成 方 卷 23, 心 痛 門 心 痛 ; 心 腹 痛. 50) 備 急 千 金 要 方 卷 32, 傷 寒 方 傷 寒 雜 病 第 十 ( 四 庫 全 書 本 ). 苦 參 湯 治 熱 病 五 六 日 已 上 方. 苦 參 ( 三 兩 ). 黃 芩 ( 二 兩 ). 生 地 黃 ( 八 兩 ). 右 三 味 㕮 咀, 以 水 八 升, 煎 取 二 升, 適 寒 溫 服 一 升, 日 再. ; 鄕 藥 集 成 方 卷 9, 熱 病 門 熱 病 頭 痛. [ 千 金 方 ] 治 熱 病 五 六 日 已 上. 苦 參 三 兩. 黃 芩 二 兩. 生 地 黃 八 兩. 右 㕮 咀, 以 水 八 升, 煎 取 二 升, 適 寒 溫 服 一 升, 日 再 ( 今 每 服 一 兩, 水 二 鍾, 煎 至 一 鍾, 去 滓, 溫 服 可 ). 51) 太 平 聖 惠 方 卷 49, 治 樍 年 厭 食 癥 塊 諸 方. 治 久 厭 食, 令 自 消 化 ; 鄕 藥 集 成 方 卷 27, 脾 胃 門 宿 食 不 消. [ 聖 惠 方 ] 治 久 厭 ( 於 葉 反, 厭 伏 也 ) 食, 令 自 消 化. 246 醫 史 學

이경록 : 향약집성방 의 편찬과 중국 의료의 조선화 초는 향약제생집성방 과도 구분되는 향약집성방 만의 특색이기도 하다. 반 면 중국 의서에서는 진맥, 용약, 운기, 치법 등 이론을 앞에 배치했지만, 향약 집성방 에서는 여기에 해당하는 처방과 복약법이 권76의 지남총론( 指 南 總 論 ) 에 간략히 실려 있다. 이처럼 향약집성방 에서는 소아과와 부인과를 포함한 종합의서 체재를 구 축하였는데, 성혜방 과 성제총록 의 큰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중국 의서의 편제를 빠뜨림 없이 수용함으로써 당시 세상의 모든 질병 즉 동아시아의 모든 질병을 조선에서 채용한 것이다. 향약집성방 에서는 중국의 풍토병까지 수 집할 정도였다. 그러나 병문 및 병증의 배치, 처방의 분류, 향약 본초학의 정 리 등에서 향약집성방 은 중국 의서와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 당연하게도 중국 의료는 노중례를 비롯한 조선 의학자들의 판단을 거쳐 조선에 유입되었 기 때문이다. 조선에서 전개되는 중국 의료의 구체적인 모습이었다. 2) 향약집성방 과 질병의 창출 향약집성방 에서는 기존 향약 의서들의 처방을 가급적 널리 수집하였으므 로 향약집성방 에 수록된 향방( 鄕 方 )의 분포는 고려와 조선 의료에서 관심을 갖던 질병의 분포를 보여준다. 다시 말해 향약집성방 에 인용된 향방은 고려 와 조선에서 질병으로 간주된 증후들을 표시한다. 반면 향약집성방 의 57병 문 959병증 체재는 향약집성방 이 편찬되던 세종 15년의 질병체계이다. 따 라서 인용된 향방의 분포를 향약집성방 체재와 비교하면 여말선초 질병의 변화 양상을 분석할 수 있다. 향약집성방 에서는 제중입효방 등 10개 의서에서 총 550개의 향방을 인 용하였다. 인용빈도별로는 삼화자향약방( 三 和 子 鄕 藥 方 ) 242방, 본조경험 방( 本 朝 經 驗 方 ) 137방, 향약간이방( 鄕 藥 簡 易 方 ) 60방, 향약구급방( 鄕 藥 救 急 方 ) 45방, 향약혜민방( 鄕 藥 惠 民 方 ) 30방, 신집어의촬요방( 新 集 御 醫 撮 要 方 ) 13방, 동인경험방( 東 人 經 驗 方 ) 8방, 비예백요방( 備 預 百 要 方 ) 7 제20권 제2호(통권 제39호) 225-262, 2011년 12월 247

LEE Kyung-Lock : The Publication of Hyangyakjipseongbang and the Chosŏnization of the Chinese medicine 방, 향약고방( 鄕 藥 古 方 ) 7방, 제중입효방( 濟 衆 立 效 方 ) 1방이다. 52) 이 처방 을 57개 병문과 함께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52) 향약집성방 에 인용된 향약 의서로 김두종은 9종 즉 三 和 子 鄕 藥 方, 鄕 藥 易 簡 方, 鄕 藥 惠 民 方, 東 人 經 驗 方, 濟 衆 立 效 方, 本 朝 經 驗 方, 鄕 藥 救 急 方, 御 醫 撮 要 方, 鄕 藥 古 方 이라고 정리하였는데( 金 斗 鍾, 世 宗 大 王 의 濟 生 偉 業 과 醫 藥 의 自 主 的 發 展, 서울 大 學 校 論 文 集 人 文 社 會 科 學 篇 5, 1957, 34쪽), 미키 사카에는 여기에 鄕 藥 濟 生 集 成 方 을 더 해 10종이라고 꼽았고{ 三 木 榮, 朝 鮮 醫 學 史 及 疾 病 史 ( 自 家 出 版, 1963), 129쪽}, 김남일은 本 朝 經 驗 方 을 제외하여 8종이라고 주장하였다( 金 南 一, 鄕 藥 集 成 方 의 인용문헌에 대한 연구, 震 檀 學 報 87, 1999, 208-11쪽). 9종의 의서는 별다른 문제가 없으나, 미키 사카에 는 향약제생집성방 도 향약집성방 에서 인용되었다고 판단하였다. 향약집성방 에는 鄕 藥 濟 生 集 成 方 이라는 표현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다만 集 成 方 으로 표기된 의서가 병론 을 포함한 몇 군데에서 등장하는데, 미키 사카에는 이 集 成 方 을 향약제생집성방 의 약 칭으로 간주한 듯하다{ 三 木 榮, 朝 鮮 醫 書 誌 增 修 版 ( 學 術 圖 書 刊 行 會, 1973), 33쪽}. 김중 권도 集 成 方 이 향약제생집성방 이라고 추측하였다( 金 重 權, 朝 鮮 初 鄕 藥 醫 書 에 관한 考 察, 書 誌 學 硏 究 16, 1998, 144쪽). 이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두 의서의 동일한 항목을 비 교해볼 필요가 있다. 향약집성방 諸 痢 의 병론은 집성방 에서 인용하였는데( 鄕 藥 集 成 方 卷 37, 諸 痢 門 諸 痢 ), 향약제생집성방 諸 痢 論 의 문장과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鄕 藥 濟 生 集 成 方 卷 6, 諸 痢 論 ). 이 集 成 方 은 醫 方 集 成 方 과 동일한 문헌으로 생각된다. 향 약집성방 에는 醫 方 集 成 方 이라는 의서가 보인다( 鄕 藥 集 成 方 卷 12, 腰 痛 門 腰 痛 強 直 不 能 俛 仰 ). 최근에 비예백요방 이 향약 의서로 판명되었으므로(안상우, 고려의서 비예백 요방 의 고증, 韓 國 醫 史 學 會 誌 13-2, 2000), 이 글에서는 <표 2>와 같이 향약 의서가 10 종이라고 판단하였다. 248 醫 史 學

이경록 : 향약집성방 의 편찬과 중국 의료의 조선화 표 2. 향약집성방 체재와 향방 일람표 53) 번호 질병 구분 병문 1 4 풍한서습조화의 六 氣 개별 暑 門 0 0 0 0 1 0 0 0 0 1 2 濟 衆 立 效 方 新 集 御 醫 撮 要 方 鄕 藥 救 急 方 備 預 百 要 方 三 和 子 鄕 藥 方 鄕 藥 古 方 東 人 經 驗 方 鄕 藥 惠 民 方 鄕 藥 簡 易 方 本 朝 經 驗 方 風 門 1 0 1 0 30 1 0 1 2 4 40 2 傷 寒 門 0 0 0 0 0 0 0 1 0 1 2 3 熱 病 門 0 0 0 0 1 0 0 0 0 0 1 5 濕 門 0 0 0 0 0 0 0 0 0 2 2 6 積 熱 門 0 0 0 0 3 0 0 0 1 0 4 7 瘧 病 門 0 0 1 0 3 0 1 2 1 0 8 소계 7개 병문 1 0 2 0 38 1 1 4 4 8 59 8 脚 氣 門 0 0 1 0 4 0 0 0 5 6 16 9 腰 痛 門 0 0 0 0 2 0 1 1 3 0 7 10 霍 亂 門 0 0 1 0 6 0 1 0 1 1 10 11 眩 暈 門 0 0 0 0 0 0 0 0 0 0 0 12 邪 氣 와 몸 諸 虛 門 0 0 0 0 0 0 0 0 0 1 1 13 驚 悸 門 0 2 0 0 0 0 0 0 0 0 2 14 虛 損 門 0 0 0 0 0 0 3 0 0 1 4 15 勞 瘵 門 0 0 0 0 0 0 0 0 0 0 0 16 三 痟 門 0 0 1 0 1 0 0 1 0 1 4 소계 9개 병문 0 2 3 0 13 0 5 2 9 10 44 17 水 病 門 0 1 1 0 2 0 0 0 0 3 7 18 黃 病 門 0 0 0 0 0 0 0 0 0 0 0 19 大 小 便 門 0 0 2 0 10 0 0 0 0 1 13 20 諸 淋 門 0 0 2 0 12 0 0 0 0 1 15 내상 즉 오장육부 21 諸 疝 門 0 0 1 0 0 0 0 0 0 3 4 22 積 聚 門 0 0 0 0 3 0 0 0 0 0 3 23 心 痛 門 0 1 2 1 8 0 0 4 0 3 19 24 諸 咳 門 0 2 1 0 0 3 0 3 0 2 11 합 계 53) 기존 연구들에서도 향약집성방 의 인용 의서와 인용 횟수를 정리한 적이 있는데, 동일한 의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여러 처방이 인용된 경우라도 한 조문으로 정리했으므로 인용 횟수가 <표 2>보다 적게 나타난다( 金 澔, 여말선초 鄕 藥 論 의 형성과 鄕 藥 集 成 方, 震 檀 學 報 87, 1999, 147-8쪽; 金 南 一, 鄕 藥 集 成 方 의 인용문헌에 대한 연구, 震 檀 學 報 87, 1999, 196쪽). 제20권 제2호(통권 제39호) 225-262, 2011년 12월 249

LEE Kyung-Lock : The Publication of Hyangyakjipseongbang and the Chosŏnization of the Chinese medicine 25 諸 氣 門 0 0 0 0 0 0 0 0 2 0 2 26 痰 飮 門 0 0 0 0 0 0 0 0 0 0 0 27 嘔 吐 門 0 0 0 0 8 0 1 0 0 0 9 28 내상 즉 오장육부 噎 隔 門 0 0 2 0 5 0 0 0 0 1 8 29 脾 胃 門 0 1 0 0 0 0 0 0 0 0 1 30 蠱 毒 門 0 0 0 0 0 0 0 0 0 0 0 31 鼻 衄 門 0 1 2 0 1 0 0 1 0 0 5 소계 15개 병문 0 6 13 1 49 3 1 8 2 14 97 32 頭 門 0 0 1 0 2 0 0 1 0 0 4 33 眼 門 0 0 3 2 7 0 0 1 0 10 23 34 耳 門 0 0 0 0 5 0 0 0 0 0 5 35 鼻 門 0 0 0 0 0 0 0 0 0 0 0 36 신체부위별 질병 口 舌 門 0 0 0 2 4 0 0 0 0 0 6 37 齒 牙 門 0 1 0 0 4 0 0 0 1 5 11 38 咽 喉 門 0 0 3 0 0 0 0 1 0 5 9 39 諸 痢 門 0 3 0 0 10 3 0 2 0 4 22 40 痔 漏 門 0 0 0 0 7 0 1 0 0 11 19 소계 9개 병문 0 4 7 4 39 3 1 5 1 35 99 41 癰 疽 瘡 瘍 門 0 0 5 0 49 0 0 11 7 31 103 42 외상 打 撲 傷 損 門 0 0 1 0 4 0 0 0 1 5 11 43 諸 損 傷 門 0 0 0 2 10 0 0 0 2 10 24 소계 3개 병문 0 0 6 2 63 0 0 11 10 46 138 44 蟲 獸 傷 門 0 0 0 0 4 0 0 0 0 14 18 45 구급 中 諸 毒 門 0 0 2 0 0 0 0 0 3 3 8 46 諸 救 急 門 0 0 0 0 0 0 0 0 2 1 3 소계 3개 병문 0 0 2 0 4 0 0 0 5 18 29 47 調 經 門 0 0 0 0 0 0 0 0 1 0 1 48 崩 漏 門 0 0 0 0 2 0 0 0 0 0 2 49 婦 人 諸 病 門 0 0 0 0 0 0 0 0 0 0 0 50 女 陰 門 0 0 1 0 4 0 0 0 0 0 5 51 求 嗣 門 0 0 0 0 0 0 0 0 0 0 0 부인과 52 胎 敎 門 0 0 0 0 0 0 0 0 0 0 0 53 姙 娠 疾 病 門 0 0 0 0 3 0 0 0 0 1 4 54 坐 月 門 0 0 0 0 0 0 0 0 0 0 0 55 產 難 門 0 0 6 0 1 0 0 0 2 0 9 56 產 後 門 0 1 0 0 6 0 0 0 8 4 19 소계 10개 병문 0 1 7 0 16 0 0 0 11 5 40 57 소아과 小 兒 門 0 0 5 0 20 0 0 0 18 1 44 소계 1개 병문 0 0 5 0 20 0 0 0 18 1 44 합계 57개 병문 1 13 45 7 242 7 8 30 60 137 550 250 醫 史 學

이경록 : 향약집성방 의 편찬과 중국 의료의 조선화 표에 나오는 숫자는 노중례를 비롯한 향약집성방 편찬자들이 선택하여 57개 병문에 배정한 향방이다. 따라서 이 향방들이 고려와 조선에서 존재하 던 모든 처방은 아니다. 인용된 숫자가 적은 의서일 경우에는 깊게 분석하기 도 어렵다. 하지만 향약집성방 이전의 전반적인 질병 추세는 이 표에서 읽 을 수 있다. 5개 이상의 향약 의서에서 공통된 질병을 꼽자면 중풍[ 風 門 ], 학질[ 瘧 病 門 ], 토사곽란[ 霍 亂 門 ], 심복통[ 心 痛 門 ], 해수[ 諸 咳 門 ], 눈병[ 眼 門 ], 이질[ 諸 痢 門 ], 종 기[ 癰 疽 瘡 瘍 門 ] 등이다. 여러 종류의 향약 의서에서 다루고 있다는 것은 이 질병들이 고려시대부터 이미 일상 속에 자리잡은 질병들이었음을 의미한다. 550개 향방을 57개 병문별로 따져보면 옹저창양문( 癰 疽 瘡 瘍 門, 103), 소아문 ( 小 兒 門, 44), 풍문( 風 門, 40), 제손상문( 諸 損 傷 門, 24), 안문( 眼 門, 23), 제리 문( 諸 痢 門, 22), 심통문( 心 痛 門, 19), 치루문( 痔 漏 門, 19), 산후문( 產 後 門, 19), 충수상문( 蟲 獸 傷 門, 18), 각기문( 脚 氣 門, 16), 제림문( 諸 淋 門, 15), 대소변문 ( 大 小 便 門, 13), 제해문( 諸 咳 門, 11), 치아문( 齒 牙 門, 11), 타박상손문( 打 撲 傷 損 門, 11), 곽란문( 霍 亂 門, 10)의 순으로 나타난다. 외과, 소아과, 중풍에 향방 의 숫자가 크게 몰리는 것으로 미루어, 이들이 고려 이래로 심각하다고 느낀 질병군임을 알 수 있다. 의서별로 살피자면, 고려의 향약구급방 은 제목 그대로 구급에 초점을 맞 춘 의서이지만, 54) 신집어의촬요방 은 내과에 초점을 맞춘 의서이다. 특이하 게도 향약간이방 은 60개 처방 중 소아과 18개, 부인과 11개여서, 소아와 여 성 치료에 강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삼화자향약방 과 본조경험방 의 향방은 각각 242개와 137개가 수록되어 있다. 이 정도면 통계적인 신뢰도를 상당히 가지므로, 처방 개수를 감안하여 두 의서의 상대적인 특성을 비교해 볼 수 있다. 삼화자향약방 은 풍한서습조 54) <표 2>에서는 향약구급방 의 성격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 구급의서가 분명하다( 申 榮 日, 鄕 藥 救 急 方 에 對 한 硏 究, 경희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4 참고). 향약구급방 의 체재에 대 해서는 이경록, 고려시대 의료의 형성과 발전 (혜안, 2010), 291-3쪽 참고. 제20권 제2호(통권 제39호) 225-262, 2011년 12월 251

LEE Kyung-Lock : The Publication of Hyangyakjipseongbang and the Chosŏnization of the Chinese medicine 화의 육기( 六 氣 ) 개별, 내상, 부인과, 소아과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표 2>에서 다른 향약 의서들의 분포를 검토하면, 육기( 六 氣 )나 사기( 邪 氣 )를 이 론적 배경으로 하는 질병 구분은 고려 말의 의서인 삼화자향약방 에서야 본 격적으로 주목됨을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본조경험방 은 신체부위별 질병과 구급 같은 데에 주의를 쏟는다. 책 이름처럼 당시의 경험방을 수집하기 위해 편찬되었으므로 일상의 질병, 특히 구급 상황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이다. 이 처럼 의서별로 살펴보면 향약집성방 편찬 이전에도 향약 의서들이 간행을 거듭하면서 수록 질병의 범위가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중풍[ 風 門 ]이나 학질[ 瘧 病 門 ]처럼 고려시대부터 관심이 지속된 병 문이 있는 반면에 향방이 하나도 들어있지 않은 병문도 57개 가운데 10개나 된다. 현훈문( 眩 暈 門 ), 노채문( 勞 瘵 門 ), 황병문( 黃 病 門 ), 담음문( 痰 飮 門 ), 고 독문( 蠱 毒 門 ), 비문( 鼻 門 ), 부인제병문( 婦 人 諸 病 門 ), 구사문( 求 嗣 門 ), 태교문 ( 胎 敎 門 ), 좌월문( 坐 月 門 )이 그것이다. 물론 그 이전의 향약 의서라고 해서 비 문( 鼻 門 )이나 부인제병문( 婦 人 諸 病 門 ), 즉 콧병이나 여성 질환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향약집성방 의 10개 병문에 향약 의서가 전혀 인용되 어 있지 않다는 것은 이 병문들의 질병이 조선 초까지도 주목받지 못하거나 기존 향약 의서에서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영역이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달 리 말하면 10개 병문은 향약집성방 편찬과 함께 새로 부각된 질병군들이다. 10개 병문 가운데 황병문( 黃 病 門 )의 황달을 사례로 살펴보자. 황달은 고려의 향약구급방 에서는 백반증, 기미, 여드름, 액취, 사마귀 치 료법과 함께 잡방( 雜 方 ) 이라는 제목으로 묶여 있으며, 55) 1건의 치료법만 보 일 뿐이다. 질병으로 수록하지만 중요하지는 않다는 의미였다. 현존하는 신 집어의촬요방 처방에는 황달 치료법이 아예 보이지 않는다. 반면 향약집성 방 에서는 권18 황병문 전체를 황달에 할애하고 있다. 병인의 측면에서 황달 은 열이 음식물과 어울려 비위( 脾 胃 )에 몰려있을 때 풍습( 風 濕 )의 사기( 邪 氣 ) 55) 鄕 藥 救 急 方 下 卷, 雜 方. 雜 方 理 諸 黃 病, 取 大 麥 苗 [ 鄕 名 包 衣 ] 汁, 服 之. 252 醫 史 學

이경록 : 향약집성방 의 편찬과 중국 의료의 조선화 를 받아 열기가 훈증하면서 생긴다고 설명한다. 56) 황달 증상으로는 급황( 急 黃 )에서 흑달( 黑 疸 )까지 26종으로 구분하여 증상과 치료법을 조목조목 제시 하고 있다. 고려에서는 사소하게 여겨졌던 황달이 조선에 들어서는 심각한 질 병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향약집성방 에서는 향약구급방 의 황달 처방 1건마저도 인용하 지 않으며, 중국 처방만을 인용하였다. 게다가 어혈( 瘀 血 )이 뭉쳐 노랗게 되 는 전형적인 황달 외에도 향약집성방 에서는 음식 냄새를 맡기만 해도 구 역질이 나는 식황( 食 黃 ), 과음했을 때의 술병에 해당하는 주달( 酒 疸 ), 갑자 기 과식한 탓에 생기는 곡달( 穀 疸 ) 등도 황병으로 취급하였다. 중국 의서에 서 설명하는 다양한 증후들이 향약집성방 에 수록됨으로써 황달로 인식되 었던 것이다. 향약집성방 의 상한병( 傷 寒 病 ) 역시 조선 사람들이 질병에 포섭되는 양상 을 잘 보여준다. 상한은 중국 의료에서 예전부터 중시한 질병이었으며, 고려 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향약집성방 에서도 상한을 다루는데 그 자세함 에서는 이전의 향약 의서를 능가하였다. 향약집성방 에서는 상한문이 권5~8 까지 4권이나 배정될 정도로 비중이 확대되었으며, 풍문에 이어 두 번째 병문 으로 위치할 만큼 중시되었다. 하지만 <표 2>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향약집 성방 상한문 전체의 향방은 향약혜민방 1건과 본조경험방 1건 등 2건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전부 중국 처방으로 채워졌다. 뿐만 아니라 향약집성방 에서는 상한 때 구토하는 증상[ 傷 寒 嘔 吐 ], 상한 때 코피가 나는 증상[ 傷 寒 鼻 衄 ], 상한 때 토혈하는 증상[ 傷 寒 吐 血 ], 상한 때 농혈이 나오는 이질 증상[ 傷 寒 下 膿 血 痢 ] 등등 59개 병증으로 세분하였다. 기존 향약 의서는 이들 상한 합병 증까지 다룰 만큼 치밀하지 않았던 것인데, 향약집성방 에 들어 상한으로 인 한 각종 증상을 최대한 다루려고 했던 것이다. 황달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조 선에서 질병으로 간주되는 증후군이 확대되는 과정이었다. 심지어 향약집성 56) 鄕 藥 集 成 方 卷 18, 黃 病 門 黃 疸. 제20권 제2호(통권 제39호) 225-262, 2011년 12월 253

LEE Kyung-Lock : The Publication of Hyangyakjipseongbang and the Chosŏnization of the Chinese medicine 방 에서는 귀지가 뭉치거나 콧물이 계속 흐르는 증상도 병증으로 간주하며, 어린이가 놀라거나 코가 막히는 것도 질병이 되었다. 57) 질병은 치료하는 것이 당연하다. 전근대 의서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향약 집성방 에서도 질병을 죄악시한다. 풍문에서는 대풍라( 大 風 癩 ) 즉 나병은 악 병( 惡 風 )이며 해로운 것을 금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하여 질병을 악행의 응보라고 규정하고 있다. 58) 향약집성방 에 새로 등재된 질병에 걸린 조선 사람들은 이제 치료될 필요가 있었다. 중국 의료가 향약집성방 을 통해 조선에 투사된 것이다. 하지만 중국 의료의 질병체계가 일방적으로 조선에서 통용된 것은 아니었 다. 향약집성방 의 수록 질병과 처방은 당시 조선 사회의 요구와 상응한 결 과였다. 대표적인 예로는 전염병에 대한 조선의 대응과 향약집성방 으로의 수렴을 들 수 있다. 세종대에 들어 승마갈근탕( 升 麻 葛 根 湯 )은 전염병 치료에 널리 활용되었다. 세종 원년(1419)과 세종 6년(1424)에는 각도에 역질( 疫 疾 ) 이 성행하였다. 세종은 지방관들에게 구료( 救 療 )를 독려하면서 승마갈근탕 등을 각도의 감사에게 내려보냈다. 59) 승마갈근탕에 들어가는 승마는 원래 고려에서는 풍병, 인후 치료에 가끔씩 사용되었으며, 60) 조선에 와서는 고독, 눈, 치아, 인후 치료에도 활용되었다. 61) 갈근 즉 칡뿌리는 눈, 설사 치료에 사용하였고 62) 칡꽃은 술독 해소에, 칡잎은 쇠붙이로 인한 상처 치료에 쓰이는 정도에 불과하였다. 63) 그런데 세종대 무렵에 들어 간이방 과 같은 중국 의서에서 승마갈근탕이 57) 鄕 藥 集 成 方 卷 33, 耳 門 耵 聹 ; 卷 33, 鼻 門 鼻 流 淸 涕 ; 卷 70, 小 兒 門 小 兒 急 驚 風 ; 卷 72, 小 兒 門 小 兒 鼻 塞. 58) 鄕 藥 集 成 方 卷 3, 風 門 大 風 癩. 59) 世 宗 實 錄 卷 4, 세종 원년 5월 1일( 乙 巳 ); 卷 23, 세종 6년 2월 30일( 丙 子 ). 60) 醫 方 類 聚 卷 24, 諸 風 門 12 御 醫 撮 要 防 風 浴 湯 ; 卷 75, 咽 喉 門 3 聖 濟 總 錄 咽 喉 馬 喉 痺 龍 腦 丹 砂 丸 方 ; 鄕 藥 救 急 方 上 卷, 喉 痺. 61) 鄕 藥 濟 生 集 成 方 卷 4, 蠱 毒 ; 卷 5, 目 澁 痛 ; 五 藏 風 熱 眼 ; 時 氣 後 患 目 ; 目 暈 ; 牙 齒 動 搖 ; 牙 齒 不 生 ; 揩 齒 ; 咽 喉 閉 塞 不 通. 62) 鄕 藥 濟 生 集 成 方 卷 5, 五 藏 風 熱 眼 ; 卷 6, 熱 痢. 63) 鄕 藥 救 急 方 下 卷, 方 中 鄕 藥 目 草 部. 254 醫 史 學

이경록 : 향약집성방 의 편찬과 중국 의료의 조선화 전염병에 효과가 있으며, 증류본초 와 같은 중국 본초서에서는 승마에 전염 병 치료 효능이 있다는 것이 주목되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세종은 승마갈근 탕을 널리 활용하였던 것인데, 이 처방은 향약집성방 에 그대로 수록되어 있 다. 간이방[승마갈근탕]. 어른이나 어린이가 전염병으로 머리가 아 프고 열이 나며 사지가 몹시 아픈 증상과 창진( 瘡 疹 )이 돋았거나 돋지 않았거나 돋으려고 하는 증상에 모두 복용하면 좋다. 승마( 升 麻 ), 백작약( 白 芍 藥 ) 각 10냥, 갈근( 葛 根 ) 15냥. 이 약재들을 잘게 썰어서 매번 3돈을 물 1종지 반( 半 )에 넣고 1 종지가 되도록 달여 찌꺼기를 버린다. 병이 풀리고 몸이 청량해질 때까지 1일 2~3회 수시로 뜨겁게 복용한다. 어린이는 양을 조절하 여 복용한다. 64) 약효에 대한 이해에서도 향약집성방 향약본초에서는 승마가 온역( 溫 疫 ) 이나 장기( 瘴 氣 )를 예방하고 시기독려( 時 氣 毒 癘 ) 등을 치료한다고 설명하였 다. 65) 전염병의 예방과 치료라는 당시 조선의 요구에 맞춰 중국의 승마갈근탕 은 향약집성방 에 수록되면서 실생활에 기여하였던 것이다. 전염병이 조선에서는 큰 사회문제였기 때문에 향약집성방 에는 전염병만 을 다루는 벽온병방( 辟 溫 病 方 ) 이 별도의 병증으로 배치되었다. 66) 노중례 등 은 상한류요( 傷 寒 類 要 ), 주후방( 肘 後 方 ), 천금방( 千 金 方 ), 성혜방( 聖 惠 方 ), 경험양방( 經 驗 良 方 ), 당본주( 唐 本 註 ), 병부수집( 兵 部 手 集 ), 용어 하도( 龍 魚 河 圖 ), 신선교자법( 神 仙 敎 子 法 ), 식의심경( 食 醫 心 鏡 ) 에서 조선 에 적합한 전염병 처방을 골라서 벽온병방 에 수록하였는데, 향약집성방 64) 鄕 藥 集 成 方 卷 5, 傷 寒 門 傷 寒 時 氣. 簡 易 方 [ 升 麻 葛 根 湯 ]. 治 大 人 小 兒 時 氣 溫 疫 頭 痛 發 熱 肢 體 煩 痛 及 瘡 疹 已 發 未 發 疑 二 之 間 並 宜 服 之. 升 麻, 白 芍 藥, 各 十 兩, 葛 根 十 五 兩. 右 㕮 咀, 每 服 三 錢, 水 一 鍾 半, 煎 至 一 鍾, 去 滓. 熱 服, 不 計 時, 日 二 三 服, 以 病 氣 去 身 淸 涼 爲 度. 小 兒 量 力 服 之. 65) 鄕 藥 集 成 方 卷 78, 鄕 藥 本 草 各 論 本 草 草 部 上 品 之 上 升 麻. 66) 鄕 藥 集 成 方 卷 8, 傷 寒 門 辟 溫 病 方. 제20권 제2호(통권 제39호) 225-262, 2011년 12월 255

LEE Kyung-Lock : The Publication of Hyangyakjipseongbang and the Chosŏnization of the Chinese medicine 이 간행되자마자 이 치료법들은 전국에서 실용되었다. 즉 세종 16년(1434)에 는 전염병 치료법을 방문( 方 文 )으로 써서 지방에 널리 알리도록 하였다. 지방 의료수준이 낮아서 천금방, 성혜방, 경험양방 에서 단방( 單 方 )에 가까운 처방을 간추려 보급하는 조치였는데, 67) 이들 치료법은 전해에 간행된 향약집 성방 벽온병방 에 모두 실려 있었다. 향약집성방 의 수록 질병이 조선의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고 있다는 다른 사례로는 삼소문( 三 痟 門 )을 들 수 있다. 삼소문에 실린 이 질병들은 소갈( 消 渴 ) 즉 현재의 당뇨병이나 신장의 허열( 虛 熱 )에 해당한다. 대개 음식은 음( 陰 )으로 들어가고 양( 陽 )에서 기( 氣 )를 영양한 다. 기름지고 맛좋은 것을 과식하면 속에 열이 나면서 그득하게 되 니, 양기( 陽 氣 )만 성한 것이다. 양( 陽 )만이 홀로[ 單 ] 남기 때문에 단 ( 癉 )이라고 했는데, 그 증상은 입이 달다[ 甘 ]. 오랫동안 치료하지 않으면 점차 소갈이 된다. 68) 소갈 발생이 기름진 음식 때문이며 영양상태가 좋은 계층이 소갈에 걸릴 확 률이 높음을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향약집성방 에서는 소갈 치료 처방이 엄 청나게 급증한다. 69) 반면 <표 2>에서 보이는 것처럼 기존의 향약 의서는 4건 만 인용되며, 소중의 증상[ 消 中 ], 소신의 증상[ 痟 腎 ], 비단의 증상[ 脾 癉 ], 소 갈 후 수병( 水 病 )이 생긴 증상[ 痟 渴 後 成 水 病 ], 막외기의 증상[ 膜 外 氣 ] 병증에 는 향방이 하나도 없다. 고려에서는 소갈이 중대한 질병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고 추론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조선에 들어 식생활 개선과 영양상태 고도화 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서 소갈의 위험성이 증대함에 따라 향약집성방 에서 는 소갈 증상과 치료법의 서술을 강화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조선에서 향약집성방 에 담긴 질병은 얼마나 증가하였을 67) 世 宗 實 錄 卷 64, 세종 16년 6월 5일( 庚 戌 ). 68) 鄕 藥 集 成 方 卷 16, 三 痟 門 脾 癉. 夫 食 入 於 陰, 長 氣 於 陽. 肥 甘 之 過, 令 人 內 熱 而 中 滿, 則 陽 氣 盛 矣. 故 單 陽 爲 癉, 其 證 口 甘. 久 而 弗 治, 轉 爲 消 渴. 69) 鄕 藥 集 成 方 卷 16, 三 痟 門 消 渴. 256 醫 史 學

이경록 : 향약집성방 의 편찬과 중국 의료의 조선화 까? 정종 원년(1399)에 간행된 향약제생집성방 에는 338병증에 2,803처방 이 수록되었는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세종 15년(1433)에 간행된 향약집성 방 에는 959병증에 10,706처방이 수록되었다. 향약제생집성방 과 비교해서 향약집성방 의 병증과 처방이 3배가량 폭발하였던 것이다. 불과 30년만의 일이었다. 요컨대 중국 의서를 본받아 향약집성방 이 종합의서로 편제되면서 조선 에서는 질병의 범위가 확장되었다. 새로운 질병의 창출이었다. 급증한 질병 에는 중국의 풍토병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조선에서 현안으로 떠오르던 역질, 소갈 등도 포괄되어 있었다. 이른바 새로운 질병은 조선에서 창궐하는 전염 병이나 사회경제적 발전과 관련된 질병들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조선 사회의 요구와 조응하면서 중국 의료가 조선에서 뿌리내리고 있었다. 4. 맺음말 이 글에서는 향약집성방 을 조선에서 펼쳐진 중국 의료라는 관점에서 살 펴보았다. 향약집성방 의 간행 경위, 향약 의서의 전승, 편제, 질병과 처방 등에 나타난 중국 의료와 조선 의료의 구체적인 결합 양상을 이해하고자 한 것이다. 향약집성방 은 책 이름 그대로 향약으로 모든 질병을 치료하려는 종합의 서였다. 하지만 향약집성방 은 재래의 향약 처방[ 鄕 方 ]만을 담고 있지는 않 으며, 중국 의서를 훨씬 많이 인용하였다. 향약집성방 에서는 중국 의료에 기대어 질병의 종류, 질병의 원인과 기전을 이해하였으며, 치료 약재를 정리 한 향약본초 역시 중국 본초학에 의존하고 있었다. 중국 의서를 널리 수집하 고 향명을 당명과 일치시켜 향약집성방 을 간행한 결과였다. 하지만 향약제생집성방 의 증보판이라고 이해될 만큼 향약집성방 은 향 약 의서들을 전승하고 있었다. 향약집성방 은 향약제생집성방 을 저본으로 제20권 제2호(통권 제39호) 225-262, 2011년 12월 257

LEE Kyung-Lock : The Publication of Hyangyakjipseongbang and the Chosŏnization of the Chinese medicine 삼았으므로 병문의 배치 순서나 본문 형식이 유사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일부 문장이 동일할 정도였다. 향약제생집성방 의 편찬 경험이 있었기에 향약집 성방 은 책자로서의 완성도를 포함하여 인용 의서의 다양화, 처방 약재의 증 가, 침뜸 치료의 전문화, 향약 본초학의 정리 등에서 한결 진전된 모습을 보였 다. 한마디로 향약집성방 은 향약 의서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중국 의료를 적 극 수용하고자 편찬되었다. 부인과와 소아과까지 포괄하면서 중국 의료의 질병체계를 채용함에 따라 향약집성방 은 중국 의서와 구별되지 않는 면모를 지니게 되었다. 종합의서 인 향약집성방 에 질병이 새로 수록된다는 것은 조선 의학자들도 성혜방 이 나 성제총록 에 수록된 증후들을 질병으로 인식한다는 뜻이었다. 이전에는 질병으로 간주되지 않던 증후들, 예를 들면 다양한 황달 증세나 상한 합병증 등이 질병이라고 규정되었다. 심지어 귀지가 뭉치거나 콧물이 흐르는 것도 이 제는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 되었다. 향약집성방 편찬을 계기로 새로운 질병 들이 창출된 것이다. 조선 사람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질병에의 포섭이었다. 물론 중국 의료가 무차별적으로 수입된 것은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향약 집성방 은 중국 의서의 편제를 준수하였지만, 조선 의학자들이 향약집성방 의 병문 순서와 본문 형식 등을 결정하였다. 향약집성방 의 수록 질병은 조 선에서 창궐하는 전염병이나 소갈처럼 사회경제적 변화와 관련되기도 하였 다. 질병이 창출되어 조선이 중국 의료의 질병체계에 포섭되면서도 조선인 들의 수용 욕구에 의해 질병이 선택되는 것, 이것이 중국 의료가 조선화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향약집성방 에서는 꽤 많은 향방이 중국 처방들과 어울리게 되었 다. 병증과 처방 내의 배치에서 조선의 향방은 중국 처방의 하부로 편입되면 서 중국 의료를 풍부하게 만들었다. 동아시아 의료 전체로 본다면 조선 의료 가 새로운 치료법을 창출하는 양상이었다. 반면 향약 본초학은 전통 향약 지 식보다는 중국 본초학에 의지하는 경향이 특히 강하였다. 하지만 향재 활용의 실상을 추적해보면, 당재와 약효가 일치하지 않더라도 향재의 효능을 독자적 258 醫 史 學

이경록 : 향약집성방 의 편찬과 중국 의료의 조선화 으로 인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향재가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향 약집성방 편찬을 통해 향방과 향약본초가 온전하게 자리를 잡음으로써 조선 의료 역시 동아시아화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지면 관계상 이러한 조선 의 료의 동아시아화는 다른 원고에서 다룰 주제이다(이경록, 2011). 색인어 : 조선( 朝 鮮 ), 의료, 향약( 鄕 藥 ), 향약집성방( 鄕 藥 集 成 方 ), 향약 제생집성방( 鄕 藥 濟 生 集 成 方 ), 동아시아 의료, 중국 의료, 조선화 ( 朝 鮮 化 ) 투고일 2011. 10. 11. 심사일 2011. 10. 12. 게재확정일 2011. 12. 1. 참고문헌 <자료> 鄕 藥 救 急 方, 鄕 藥 濟 生 集 成 方, 鄕 藥 採 取 月 令, 鄕 藥 集 成 方, 醫 方 類 聚. 太 宗 實 錄, 世 宗 實 錄, 端 宗 實 錄, 陽 村 先 生 文 集, 海 東 文 獻 總 錄. 備 急 千 金 要 方, 蘇 沈 良 方, 聖 惠 方, 聖 濟 總 錄. <연구논저> 姜 延 錫, 鄕 藥 集 成 方 의 鄕 藥 醫 學 硏 究, 경희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6. 金 南 一, 鄕 藥 集 成 方 의 인용문헌에 대한 연구, 震 檀 學 報 87집, 1999. 金 斗 鍾, 世 宗 大 王 의 濟 生 偉 業 과 醫 藥 의 自 主 的 發 展, 서울 大 學 校 論 文 集 人 文 社 會 科 學 篇 5집, 1957. 金 斗 鍾, 韓 國 醫 學 史 ( 探 求 堂, 1966). 金 聖 洙, 한국의 옛 醫 書, 古 書 硏 究 13, 1996. 金 重 權, 朝 鮮 初 鄕 藥 醫 書 에 관한 考 察, 書 誌 學 硏 究 16, 1998. 金 重 權, 鄕 藥 集 成 方 의 引 用 文 獻 分 析, 書 誌 學 硏 究 35, 2006. 金 澔, 朝 鮮 前 期 對 民 醫 療 와 醫 書 編 纂, 國 史 館 論 叢 68, 1996. 金 澔, 여말선초 鄕 藥 論 의 형성과 鄕 藥 集 成 方, 震 檀 學 報 87, 1999. 제20권 제2호(통권 제39호) 225-262, 2011년 12월 259

LEE Kyung-Lock : The Publication of Hyangyakjipseongbang and the Chosŏnization of the Chinese medicine 김효연, 朝 鮮 朝 醫 書 에 관한 書 誌 的 硏 究,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6. 南 豊 鉉, 鄕 藥 集 成 方 의 鄕 名 에 대하여, 震 檀 學 報 87, 1999. 孫 弘 烈, 麗 末 鮮 初 醫 書 의 編 纂 과 刊 行, 한국과학사학회지 11-1, 1989. 孫 弘 烈, 鮮 初 鄕 藥 의 開 發 과 鄕 藥 書 의 編 纂, 重 山 鄭 德 基 博 士 華 甲 紀 念 論 叢 ( 景 仁 文 化 社, 1996). 申 榮 日, 鄕 藥 救 急 方 에 對 한 硏 究, 경희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4. 안덕균, 세종 시대의 의학, 세종문화사대계 2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00). 안상우, 고려의서 비예백요방 의 고증, 韓 國 醫 史 學 會 誌 13-2, 2000. 이경록, 고려시대 의료의 형성과 발전 (혜안, 2010a). 이경록, 조선초기 鄕 藥 濟 生 集 成 方 의 간행과 향약의 발전, 東 方 學 志 149집, 2010b. 이경록, 조선 세종대 향약 개발의 두 방향, 泰 東 古 典 硏 究 26, 2010c. 이경록, 鄕 藥 에서 東 醫 로 : 향약집성방 의 의학이론과 고유 의술, 歷 史 學 報 212, 2011. 크리스토퍼 레인, 이문희 옮김, 만들어진 우울증 (한겨레출판, 2009). 한국한의학연구원, 鄕 藥 集 成 方 의 데이터베이스 구축 (2001). 홍원식 윤창열 편저, 증보 중국의학사 ( 一 中 社, 2001). 三 木 榮, 朝 鮮 醫 學 史 及 疾 病 史 ( 自 家 出 版, 1963). 三 木 榮, 朝 鮮 醫 書 誌 增 修 版 ( 學 術 圖 書 刊 行 會, 1973). 260 醫 史 學

이경록 : 향약집성방 의 편찬과 중국 의료의 조선화 -Abstract- The Publication of Hyangyakjipseongbang ( 鄕 藥 集 成 方 ) and the Chosŏnization of the Chinese medicine LEE Kyung-Lock* This article explores the Hyangyakjipseongbang ( 鄕 藥 集 成 方 ), which was published in 1433, in view of the Chosŏnization( 朝 鮮 化 ) of the Chinese medicine. This study discusses the structure of combination between the Chosŏn medicine and the Chinese medicine by analyzing the process of publication, the transmission of the Korean traditional medical books, the diseases and the prescriptions of Hyangyakjipseongbang. Most prescriptions of Hyangyakjipseongbang had been collected from the Chinese medical books. And the editors of Hyangyakjipseongbang, Chosŏn medical scientists, made an intensive investigation into the Chinese medicine and reconciled the official names of the Hyangyak( 鄕 藥, Korean traditional herbs) with the Chinese herbs. With the acception of the Chinese disease system including gynecology and pediatrics, Hyangyakjipseongbang was similar to the Chinese medical books such as Seonghyebang ( 聖 惠 方 ) and Seongjechongrok ( 聖 濟 總 錄 ). So Hyangyakjipseongbang became a general medical book which aimed to treat all kind of the East Asian diseases with the Hyangyak. * Handok museum of medicine and pharmacy, 37 Daepung-ri, Daeso-myeon, Eumseonggun, Chungcheongbuk-do, 369-821, Korea Tel : 82-43-530-1005 / Fax : 82-43-530-1018 / E-mail : kyunglock.lee@handok.com 제20권 제2호(통권 제39호) 225-262, 2011년 12월 261

LEE Kyung-Lock : The Publication of Hyangyakjipseongbang and the Chosŏnization of the Chinese medicine However Hyangyakjipseongbang was one of the famous Chosŏn medical books. This book was regarded as the revised edition of Hyangyakjesaengjipseongbang ( 鄕 藥 濟 生 集 成 方 ), which was published in 1399. The list of chapters, formation of texts of Hyangyakjipseongbang and Hyangyakjesaengjipseongbang were much alike, besides some sentences of two books were coincided. An important point is that new diseases were created with the Publication of Hyangyakjipseongbang. Various symptoms like jaundice and nonstop runny nose of the Chinese medicine were recognized as the diseases in Chosŏn, and the proper treatments should be needed. Even though the formation of Hyangyakjipseongbang complied with that of the Chinese medical books on the whole, Chosŏn medical scientists chosen the prescriptions and decided the chapter order. And some diseases of Hyangyakjipseongbang were related with the infectious diseases and diabetes which were rampant in the late Koryŏ period and the early Chosŏn period. It's certain that the Chinese medicine was adopted in accordance with the real state and demand of the Chosŏn society. So it can be said that new diseases had been created with the acception of the Chinese medicine and chosen with the circumstances of the Chosŏn society. It was the way of the Chosŏnization of the Chinese medicine. Key Words : Chosŏn( 朝 鮮 ), medicine, Hyangyak( 鄕 藥, Korean traditional herbs), Hyangyakjipseongbang ( 鄕 藥 集 成 方 ), Hyangyakjesaengjipseonbang ( 鄕 藥 濟 生 集 成 方 ), East Asian medicine, Chinese medicine, Chosŏnization ( 朝 鮮 化 ) 262 醫 史 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