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 주제와 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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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클래식 - 주제와 변주 문학수 / Woodstock

2 소개글 경향신문 문학수 기자님의 클래식 음악의 세계

3 목차 1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클래식, 그 은밀한 삶과 치욕스런 죽음 베를린필이 눈감은 나치의 추억 171

4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48 [당신의 클래식] 쇼스타코비치 재즈모음곡 2번 어떻게 해야 클래식과 친해질 수 있나요? 당신은 자꾸 그렇게 물어요. 그럴 때마다 제 대답은 늘상 같 지요. 당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반복해 들으세요. 그러다보면 그 음악의 구조 가 머릿속에 들어오고, 그때부터 그 곡은 당신의 클래식 이 된답니다. 그러면 당신은 또 고개를 갸우뚱해요. 내가 좋아하 는 클래식? 난 클래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천만에요. 당신은 아주 많은 클래식을 알고 있어요. 기분 좋을 때는 모차르트의 아리아를 흥얼거리기도 하 고, 마음이 울적할 때는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선율을 떠올리기도 하지요. 다만 그 곡이 누가 작곡한 무슨 곡인 줄 모르고 있을 뿐이죠. 하지만 상관없어요. 당신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그 곡을 받아들였다는 게 중요하지요. 당신은 적어도 수십 곡의 클래식 음악을 이미 알고 있어요. 또 지금도 계속해서 어떤 음악을 만나고 있지요. 때로는 어둑 한 영화관에서 가슴 서늘케 하는 선율을 만나고, TV 화면을 스치는 CF 속에서 귀에 쏙 들어오는 음악을 만나기도 하지요. 오늘 만날 음악은 쇼스타코비치의 재즈 모음곡 2번 이지요. 최근 몇년간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한 클래 식은 아마 이 곡이었을 겁니다. 영화 때문이지요. 텔미 썸딩 이라는 영화에서 염정아가 심은하에게 들 려주던 음악이 바로 이 곡이었어요. 번지점프를 하다 (사진)에서는 이병헌과 이은주가 노을을 배경으 로 왈츠를 추는 장면에서 이 곡이 흘러나왔지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유작인 아이즈 와이드 셧 이라 는 영화를 보셨나요?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이 주연을 맡았지요. 이 엽기적이고 난해한, 게다가 야하기 까지 한 영화에서도 쇼스타코비치가 만들어낸 세박자의 슬픈 선율을 만날 수 있답니다. 왈츠는 춤곡이지요. 하지만 경쾌한 세박자를 타고 흘러가는 이 곡의 선율은 슬프고 어두워요. 요한 슈트라 우스의 왈츠처럼 요란하고 화려한 비엔나풍이 아니랍니다. 역시 쇼스타코비치답지요. 그는 스탈린 치하의 구소련에서 인민에게 음악으로 봉사할 것 을 요구받았지만, 아마도 생태적으로 모더니스트 였던 것 같아요. 내성적인 그는 줄담배를 즐겼고, 표정은 언제나 완고했지요. 그의 음악은 무겁고 어두운 데다 팽 팽한 긴장감마저 감돌아요. 그리고 행간( 行 間 )에는 차가운 유머가 숨어 있지요. 쇼스타코비치의 재즈 모음곡 2번 은 국내에 편집음반으로 여러 종 나와 있답니다. 하지만 클래식의 맛 에 슬슬 빠지기 시작한 당신에게 권할 만한 음반은 도통 눈에 띄지 않네요. 좀더 본격적인 음반으로 두 종 을 권해드릴게요. 하나는 라디오프랑스 필하모닉이 러시아 춤곡들을 연주한 Ballets Russes (EMI)랍니 다. 파보 예르비가 지휘했고,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 합창단이 참여했습니다. 제대로 된 관현악 편성으로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4

5 재즈 모음곡 2번 을 들을 수 있지요. 또 하나는 테오도르 쿠차르가 지휘한 우크라이나 국립 심포니의 연주랍니다. Jazz&Ballet Suites 라는 제목으로 네덜란드의 브릴리언트 레이블에서 발매했어요. 국내 에도 수입됐답니다. 매끄럽고 세련된 맛은 없지만, 질박함이 오히려 마음을 끌어당기네요. [당신의 클래식] 영화 피아니스트 & 쇼팽 그 남자의 이름은 블라디슬로프 스필만 입니다. 피아니스트죠. 유대계 폴란드인입니다. 1911년에 태어 나서 2000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래 산 편이지요. 우리 나이로 치자면 아흔까지 살았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나들었죠. 나치의 광풍이 몰아치던 때였으니까요. 독일 선전부 장관이었던 괴펠스가 콘서트홀에서 히틀러 만세 를 선창할 때였고, 푸르트뱅글러가 베를린필하모닉을 지휘해 베토 벤의 합창 을 무시무시한 폭풍 처럼 연주할 때였지요. 오늘 당신과 함께 들을 음악은 쇼팽 입니다. 당신은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의 삶을 다룬 영화 피아니 스트 를 DVD로 보고는 가슴 먹먹한 감동을 주체하지 못했지요. 스필만을 연기했던 애드리언 브로디의 열성팬이 된 당신은, 영화 속에서 흘러나오던 아름다운 곡들의 제목이 뭐냐고 저한테 물었지요. 첫장면을 떠올려보세요. 1939년 바르샤바 라는 자막과 함께 흘러나오던 곡. 녹턴 (Nocturne)이랍니 다. 야상곡 이라고도 하지요. 쇼팽은 21개의 야상곡을 썼습니다. 그중 18개가 생전에 발표됐고 나머지 는 유작이지요. 당신이 들었던 곡은 유작 가운데 하나인 20번 C샤프 단조 랍니다. 쇼팽의 여러 야상곡 중에서 특히 사랑받는 애틋하고 서정적인 곡이지요. 영화 속에서 스필만은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이 곡을 연주합니다. 독일군이 점령한 페허의 바르샤바. 아사( 餓 死 ) 직전의 스필만은 폭격당한 빈집으로 숨어들지요. 구정물과 감자 두 개로 죽음을 벗어난 그는 도둑고양이처럼 주방을 뒤지다가 통조림 깡통을 찾아냅니다. 벽난로 옆 에 놓여있던 부삽으로 깡통을 따려고 안간힘을 쓰지요. 그러다가 깡통이 데구르르 굴러갑니다. 그 자리, 깡통이 멈춘 자리에 한 남자가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독일군 장교 호젠펠트였지요. 여기서 뭘 하나? 장교가 묻습니다. 깡통을 따려고 스필만은 죽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지요. 무슨 일을 하 나? 교사 출신의 장교가 다시 묻습니다. 저는 머뭇거리던 스필만은 피아니스트였습니다 라고 과거형 으로 답하지요. 물끄러미 스필만을 바라보던 장교가 한숨을 푹 내쉽니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5

6 한겨울입니다. 스필만은 낡은 피아노 앞에 앉습니다. 호젠펠트가 연주해 봐 라고 말합니다. 굶주림에 두 눈이 퀭한 스필만은 곱은 손가락으로 발라드 1번 G단조 를 연주하지요. 4분의4박자 느린 라르고를 힘겹게 짚어나가던 손가락이 점차 빨라집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클라이막스. 오른손의 화려한 아르페지오 가 폭발하면서, 스필만은 억눌려왔던 음악가의 열정을 결국 터뜨리고 말지요. 그 다음날부터 호젠펠트는 스필만의 다락방으로 몰래 음식을 나릅니다. 러시아군에 밀려 철수하기 직전, 그는 마지막 빵 을 스필 만에게 건네며 외투를 벗어주지요. 전쟁 끝나면 뭘 할 거야? 연주를 해야죠. 이름은? 스필 만 피아니스트다운 이름이네. 오늘 권해드릴 음반은 Bes t Belo ved Cho pin (EMI)입니다. 당신에게 잊지못할 감동을 선사했던 발라드 1번 을 마우리치오 폴리니가, 야상곡 20번 을 미하일 플레트네프가 연주합니다. 참, 독일군 장교 호젠펠트는 어떻게 됐을까요? 그는 1952년 포로수용소에서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신의 클래식] 투병속 걸작 만들어낸 베토벤 얼마전 EBS TV를 통해 방영된 제3회 EBS 국제 다큐멘터리 페스티벌 에는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베토벤의 머리카락 (Beethoven s Hair)이라는 작품이 인상적이었지요. 혹시 보셨나요? 음악가와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자주 만드는 래리 와인스타인 감독의 수작( 秀 作 )입니다. 2005년도 작품이지요. 이 다큐멘터리는 후세에 남겨진 베토벤의 머리카락 몇 올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사인( 死 因 )을 밝히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그의 머리카락에서 일반인보다 100배가 넘는 납성분이 검출된 사실에 주목하지요. 결국 이것이 그를 괴롭혔던 귓병, 그리고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원인이었을 거라고 추정합니 다. 괴팍한 성품도 납중독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짐작하지요. 이와 더불어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이 발견됩니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6

7 다. 병마와 싸우며 고통에 신음하다 죽어간 베토벤. 병명조차 알아내지 못하는 의사들에게 불같이 화를 내 곤 했던 그의 머리카락에서, 놀랍게도 모르핀 성분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모르핀, 그것은 진통제랍니다. 그래요. 베토벤은 차라리 육신이 찢기는 듯한 고통과 싸울지언정,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죽는 순간까지 맑은 정신 으로 음악을 만들길 원했습니다. 그것은 운명에 맞선 처절한 투쟁이었지요. 1802년부터 빈 근교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살았던 베토벤은 그해 10월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 를 써서 두 동생 앞으로 남긴답니다. 하지만 그는 자살하지 않았어요. 세 상을 떠난 1827년까지, 적어도 25년이 넘는 세월을 병마와 싸우며 음악을 향한 열정을 남김없이 불태웠지 요. 오늘 당신과 들을 음악은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이른바 운명 이랍니다. 33세였던 1803년에 머릿속 에 악상을 그리기 시작했고, 1807년 본격적으로 작곡에 돌입해 이듬해에 완성했지요. 귓병이 악화돼 청각 을 잃기 시작하던 시점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육체의 병이 깊어지면서 불멸의 음악이 태어난 것이지요. 그의 걸작들은 대부분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 이후의 곡들이랍니다. 누구나 이 음악을 알고 있어요. 아마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클래식일 겁니다. 딴딴딴 따 하는 시작부, 소위 운명의 동기 라고 말하는 첫 주제를 모르는 사람들은 정말 드물지요. 하지만 1악장부터 4 악장까지 온전히 들으면서 감동에 젖어본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답니다. 교향곡 역사에서 이처럼 격렬하게 문을 여는 1악장은 드물어요. 오케스트라 총주( 總 奏 )가 운명의 동기를 1 주제로 제시하고, 이어서 호른과 바이올린이 2주제를 노래하지요. 긴장감 넘치는 1악장이 끝나고 2악장은 부드럽고 어둡게 흘러갑니다. 이를테면 긴장 과 이완 인 셈이지요. 3악장에선 한층 더 가라앉다가, 마침내 4악장에서 모든 에너지가 폭발하지요. 마치 고통을 뚫고 솟아오른 햇살처럼, 뜨거운 환희가 울려퍼 집니다. 언젠가 당신에게 말했지요? 같은 곡을 반복해 들으면서 그 곡의 구조 를 느껴보라고요. 특히 베토벤 5번 은 구조의 미학이 탄탄한 걸작입니다. 2년 전 타계한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1974년 빈필하모닉 을 지휘했던 녹음 을 권합니다. 70년대 최고의 명연으로 꼽히지요. 도이치그라모폰(DG)에서 발매했습니 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7

8 [당신의 클래식] 영화 사랑도 와 베르디 운명의 힘 최근에 사랑도 흥정이 되나요? (Co mbien tu m a imes?)라는 프랑스 영화 한 편이 개봉됐답니 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기가 참 어렵습니다. 인터넷 영화예매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서울과 수도권 인근 을 통털어 경기도 부천에 있는 영화관 두 곳에서만 상영하더군요. 국내의 620개가 넘는 스크린을 괴 물 이 장악했답니다. 한반도 역시 250개가 넘는 스크린에서 상영되고 있지요. 괴물 에 치이고 한반도 에 받힌 영화들은 오갈 데 없는 신세였습니다. 결국 사랑도 를 보지 못하고 말았지요. 대 한민국에는 보고싶은 영화를 선택할 자유 가 거의 없더군요. 모니카 벨루치의 육감적인 몸매 때문에 안달이 났다구요? 뭐, 전혀 관심 없는 건 아니지만, 꼭 그것 때문 에 이 영화가 땡긴 것은 아니랍니다. 물론 이 영화가 남자들의 욕망 을 건드리면서, 그것을 대리 충족시켜주고 있는 건 부인할 수 없지요. 남자주인공 프랑스와는 평범한 월급쟁이랍니다. 어느날 홍등가 술집에서 창녀 다니엘라를 만나지요. 그녀는 지구상의 거의 모든 샐러리맨들이 꿈꾸는, 섹시하고 도발적 인 여자랍니다. 평범한 월급쟁이의 아내로 살면서 눈가에 주름은 점점 늘어나고 허리 사이즈마저 대책없 이 증가하는 마이 와이프 와는 차원이 다르지요. 다니엘라의 섹시함에 넋이 나간 프랑스와는 거액의 복권에 당첨됐다고 뻥 을 칩니다. 한달에 10만 유로씩 줄테니, 당첨금 400만 유로가 바닥날 때까지 같 이 살자고 제안하지요. 물론 다니엘라는 이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이런 영화랍니다. 평범한 남자들의 숨겨진 욕망을 프랑스식 코믹터치로 그려나가는, 그럭저럭 볼만한 영 화인 셈이지요. 더 애기하다간 자칫 스포일러 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다만 한가지, 프랑스와가 다 니엘라와 꿈같은 날들을 보내고 있을 때 한 남자가 불쑥 나타납니다. 다니엘라는 내 여자 라고 주장하 는 암흑가의 보스, 샤를리입니다. 작년에 은퇴설을 흘렸던 제라르 드 파르디유가 샤를리로 등장하지요. 바 야흐로 삼각관계의 시작입니다. 사랑도 가 보고 싶었던 이유는 바로 음악 때문이었지요. 프랑스의 국민배우 제라르 드 파르디유가 한창 전성기를 구가했던 1980년대 중반에, 마농의 샘 이라는 영화에 출연했던 적이 있답니다. 영화의 줄거리와 음악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던 수작( 秀 作 )이지요. 이 영화에서 시종일관 흘러나오던 아름답고 비극적인 선율. 베르디의 오페라 운명의 힘 의 서곡이었습니다. 원래 관현악 편성으로 작곡된 곡을 하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8

9 모니커 한 대로 연주하지요. 불행한 곱추 장 으로 분한 제라르 드 파르디유가 하모니커를 불다가, 그가 죽은 후 홀로 남은 딸 마농이 하모니커를 물려받습니다. 마농의 샘 은 무거운 비극입니다. 하지만 제라르 드 파르디유가 늙으막에 출연한 사랑도 는 유머 와 풍자가 넘치는 발랄한 영화인 듯합니다. 게다가 이 영화의 베르트랑 블리에 감독도 음악에 일가견이 있 어 보입니다. 그는 이 가벼운 영화의 이곳저곳에 오페라 아리아들을 적절하게 깔아놓습니다. 베르디, 푸치 니, 벨리니 등이 작곡한 아리아들이 거의 10분 간격으로 흘러나옵니다. 이 영화에서도 베르디의 운명의 힘 을 만날 수 있지요. 2막에 나오는 성모님, 자비로우신 성모님 이라는 아리아입니다. 격렬한 감정을 토해놓는, 드라마틱한 곡이지요. OST에서는 소프라노 미렐라 프레니가 노래합니다. [당신의 클래식]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 꿈 속의 고향 (Going Home)이라는 노래를 기억하나요? 꿈 속에 그려라 그리운 고향, 옛 터전 그대로 향기도 높다, 지금은 사라진 친구들 모여, 옥같은 시냇물 개천을 넘어, 반딧불 좇아서 즐기었건만 까까 머리 중학생 시절에 배웠던 노랩니다. 음악 선생님은 마치 두고온 고향을 떠올리기라도 하듯이 두 눈을 지 그시 감고 이 노래를 부르셨지요. 당신이 만약 40대 이상이라면 이 노래가 기억에 생생할 겁니다. 30대라 면 형이나 누나가 부르는 것을 적어도 한두번쯤은 들어봤겠지요. 향수에 젖은 듯한 이 아름다운 선율은 드보르작의 9번 교향곡 E단조 에 등장합니다. 흔히 신세계 교 향곡 이라고 얘기하지요. 부제( 副 題 )를 좀더 정확히 번역하자면, 독일어로 Aus der Neuen Welt, 즉 신세계로부터 라고 옮겨야 옳습니다. 꿈 속의 고향 은 두번째 악장에서 흘러나오지요. 6마디의 서주 가 끝난 후 잉글리쉬 호른이 이 애틋한 선율을 연주합니다. 드보르작의 제자인 미국인 피셔가 스승이 작곡 한 멜로디에 가사를 입혀서 미국인들의 애창곡이 되었지요. 까까머리 시절에 이 노래를 배웠던 것은 미국 의 노래가 우리나라 음악 교과서에 유난히 많이 수록됐던 탓이기도 합니다. 체코의 드보르작(1841~1904)이 미국으로 떠난 것은 51세였던 1892년이었습니다. 미국의 내셔널음악원 학장 으로 초빙됐던 것이지요. 드보르작은 뉴욕 동부의 방 다섯 개짜리 아파트에서 교향곡 9번을 작곡했습니다. 당시의 그는 미국의 민속음악, 특히 흑인음악에 적잖이 심취했던 모양입니다. 내셔널음악원 학생이었던 바리톤 H.T. 벌레이가 드보르작의 집에 들러 흑인영가를 불러주곤 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런 연유에서일까 요. 93년 12월 뉴욕필하모닉가 카네기홀에서 초연했던 교향곡 9번에는 흑인음악의 이디엄들이 곳곳에 담겨 있지요. 특히 드보르작은 Swing Low Swing Charriot 라는 흑인영가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귀가 밝은 사람들은 1악장에서 플루트로 연주되는 이 곡의 선율을 만날 수 있지요. 1악장은 마치 동이 터오는 듯한 느낌으로 문을 열지요. 첫 주제는 펜타토닉(5음계)와 싱코페이션(당김음)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흑인영가와 가스펠, 블루스, 재즈 등 여러 장르의 흑인음악을 거론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음악적 요소들이지요. 느리게 흘러가는 2악장은 목가적인 전원시를 연상시키지요. 3악장은 춤곡의 느 낌이 강합니다. 4악장도 누구에게나 익숙하지요. 교향곡 9번 전체를 들어보지 않았더라도, 2악장과 4악장 을 모르는 사람들은 정말 드뭅니다. 현악기의 힘찬 서주에 이어 빰빰빠 빰빠빠 하고 터져 나오는 호른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9

10 과 트럼펫의 주제는 당당하기 이를 데 없지요. 응원가로 연주되는 경우도 잦고, TV의 각종 프로그램에도 자주 등장하는 위풍당당한 선율입니다.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는 이미 당신에게 익숙합니다. 낯익은 선율이 여기저기서 흘러나 오는 덕택에, 지루함 없이 빠져들 수 있는 교향곡이지요. 바츨라프 노이만이 체코필하모닉을 지휘한 녹음 을 필청음반으로 꼽고 싶습니다. 1981년 녹음, 체코의 수프라폰 레이블에서 나왔습니다. 지난해 세상을 타계한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가 필하모니아를 지휘해 연주한 EMI의 음반 도 놓치기 아깝습 니다. 2장의 CD에 7, 8, 9번을 모두 수록했습니다. 중저가 음반이지만, 속은 꽉 찼습니다. [당신의 클래식] 톨스토이와 크로이처 소나타 톨스토이의 크로이처 소나타 라는 소설이 있지요. 포즈드니셰프라는 남자가 기차에서 만난 나 에게 아내를 살해한 사연을 주저리주저리 털어놓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대사가 아주 많은 데다가 소설이 그닥 길지 않아서, 맘 먹고 손에 잡으면 금세 읽을 수 있는 중편( 中 篇 )이지요. 남편과 다툼이 잦았던 아내는 바이올리니스트 트루하체프스키와 사랑에 빠집니다. 질투심에 눈 먼 남편은 결국 아내의 옆구리를 칼로 찌르고 말지요. 갑자기 찾아온 사랑에 마음이 흔들렸던 아내, 그녀는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였답니다. 어느날 트루하체프스키와 파티장에서 함께 연주를 하지요.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 를 연주합니다. 톨스토이는 전문가 뺨치는 실력을 가진 피아니스트였답니다. 그런데 그는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 타 가 맘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소설 속에서 포즈드니셰프의 입을 빌려 이 곡을 비난합니다. 이 소나타, 끔찍합니다. 음악이 영혼을 고양시킨다는 말은 거짓이라구요! 이게 어디 숙녀들이 앉아 있는 응접 실에서 연주할 곡입니까?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10

11 원문에선 더 장황하지만 분량을 조금 줄였습니다. 어쨌든 톨스토이는 크로이처 소나타 를 위험한 음 악 으로 여겼던 듯합니다. 사람을 흥분시키고, 불륜을 부추기는 타락한 예술쯤으로 생각했던 것이지요. 이 소설은 톨스토이가 금욕주의를 설파했던 시기, 그의 나이 61세였던 1889년에 썼던 작품이라는 걸 상기 할 필요가 있겠네요. 어쨌든 톨스토이의 소설 탓에, 크로이처 소나타 는 불륜 남녀를 파멸로 치닫게 하는 음악, 치명적인 사랑을 부추기는 음악 등의 수식어를 얻게 됐지요. 어떠세요? 갑자기 이 음악 이 궁금해지지 않나요? 베토벤은 10곡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남겼답니다. 그중 9번 크로이처 는 5번 봄 과 더불어 가장 사랑 받는 곡이지요. 이 곡은 시작부터 격렬한 낭만성으로 들끓어요. 가슴을 온통 진동시키는 느낌으로 문을 엽 니다. 간간이 온화한 선율이 섞이기도 하지만, 왠지 불안한 느낌이 유령처럼 떠돌지요. 반면에 2악장은 우 아합니다. 특히 피아노 반주에 실린 두번째 변주, 32분음표로 쪼개지는 선율은 온몸의 솜털이 일어설 듯한 감흥을 전해줍니다. 마지막 3악장도 서주부터 격렬하지요. 톨스토이적으로 묘사하자면, 치명적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브레이 크 없는 차를 타고 질주하는 격입니다. 그러다 갑자기 추락하는 느낌으로 끝나지요. 그래요. 마지막 은 갑자기 찾아옵니다. 하지만 그 갑작스러운 마지막도 오래도록 쌓인 필연의 결과겠지요. 다비드 오이스트라흐가 피아니스트 레프 오보린 과 협연한 음반(필립스, 1962)이 오래 사랑받은 수작 ( 秀 作 )입니다. 오이스트라흐는 이 곡의 격렬한 낭만성을 두툼하고 에너지 넘치는 연주로 녹여내지요. 이자 크 펄만과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협연한 음반(EMI, 1998)도 놓치기 아깝습니다. 바이올린보다 피아노가 더 욱 열정적으로 연주를 이끌지요. 또 하나 권해드릴 음반은 바이올리니스트 요지프 시케티와 피아니스 트 클라우디오 아라우의 1944년 실황 입니다. 뱅가드 클래식스 에서 발매된 이 음반에선 지글거리 는 잡음이 좀 들려오지요. 하지만 60여년의 세월을 건너온, 또 다른 음악적 열락( 悅 樂 )을 전해줍니다. 베토 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을 4장의 CD에 수록했는데요, 가격이 저렴해서 부담없이 선택할 만합니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11

12 [당신의 클래식] 모래시계& 파가니니 소나타 12번 이번 주에 해변의 여인 이라는 영화가 개봉됩니다. 고현정이 문숙 역으로 등장하지요. 그녀의 출연 작이 곧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참으로 오랜만에 모래시계 라는 드라마를 떠올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벌써 옛날이네요. 모래시계 의 혜린 과 해변의 여인 의 문숙 사이에는 11년이라는 세 월이 놓여 있습니다. 20대 중반의 청순했던 고현정이 어느덧 30대 중반이 됐지요. 이제 그녀는 삶의 무게 가 녹아있는 연기를 펼치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려운, 냉정한 시험대 위에 서 있는 셈입니다. 시청률 64%를 넘기며 귀가시계 로 불렸던 모래시계. 이제 추억 속에 아스라한 이 드라마는 고현정 을 명실상부한 스타로 만들었지요. 동해안 정동진역에 그녀의 이름을 딴 고현정 소나무 까지 생겼고, 음반가게에서는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소나타가 불티나게 팔려나갔습니다. 격동의 80년대를 배경으로 펼쳐 졌던 태수(최민수)와 혜린의 러브스토리. 두 사람의 이별을 더욱 아프게 만들었던 바이올린 선율은 바로 파가니니의 음악이었지요. 니콜로 파가니니(1782~1840)는 바이올린 연주자 겸 작곡가였지요. 신기( 神 技 )에 가까운 기교, 사람들에게 좀체 드러내지 않았던 사생활 등으로 인해 숱한 소문을 낳았던 인물이었습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 느니, 사탄의 아들이라느니 그를 둘러싼 소문들은 대부분 부패한 교회에서 흘러나왔음직한 음해성 루머 들이었습니다. 아직까지도 바이올린 비르투오조의 전설 로 남아있는 파가니니. 그의 음악들은 진지하거나 철학적이지 않습니다. 이탈리아의 작곡가답게, 노래하는 듯한 느낌으로 충만한 바이올린 명곡들을 여럿 남겼지요. 그 가 그려낸 멜로디 라인은 선명하고 밝습니다. 바이올린의 기교를 한껏 과시하는 현란한 프레이징도 적지 않지요. 모래시계 의 주제가 격이었던 혜린의 테마 도 그렇습니다. 정확한 제목은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소나타 E단조 입니다. 어떤 음반에서는 이 곡을 소나타 12번이 라고 표기하지요. 또 다른 음반에서는 소나타 6번으로 적기도 합니다. 어떤 것이 맞냐구요? 둘 다 맞답니 다. 작품2에서 이미 6곡의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소나타 를 썼기 때문에 6번 과 12번 이 혼용 되는 것이지요. 대개 바이올린 소나타는 피아노와 동행하기 마련인데, 이 곡은 기타를 파트너로 삼고 있습 니다. 이런 얘기가 있어요. 파가니니가 사랑했던 여인이 기타를 좋아했답니다. 파가니니는 그 여인을 위해 기타 를 열심히 연습했고, 기타곡을 100곡이 넘게 만들기도 했지요. 그래서 추측해봅니다. 아마 이 곡에도 그 여인과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 배경으로 깔려 있을지 모른다고 말이지요. 모래시계 열풍과 함께 베스트셀러로 팔려나갔던 음반은 바이올리니스트 길샤함 (35) 35)의 연주였습니다. 도이치그라모폰(DG)에서 나왔지요. 유태계 바이올리니스트 길샤함의 음색은 따뜻하면서도 매끄럽습니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12

13 기타리스트 외란 쇨셔와 함께 연주하는 이 음반은 녹음도 정교하고 맑지요. 하지만 너무 선명한 음질 때문에 오히려 안 좋아하는 분들도 있더군요. 오늘 권해드릴 음반은 사라장(장영 주)이 99년 EMI에서 내놓은 Sweet So rro w 입니다. 이제 막 클래식에 눈떠가는 당신, 바이올린의 맛 에 흠뻑 빠져보고 싶다면 이 음반만큼 적절한 게 없습니다. 파가니니 외에도 비탈리의 샤콘느, 차이코 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의 2악장 등, 그야말로 당신을 위한 선곡입니다. [당신의 클래식] 슈베르트 죽음과 소녀 벌거벗은 소녀는 죽음 을 꼭 끌어안고 있습니다. 필사적인 포옹입니다. 살짝 열린 소녀의 입술이, 검은 나신( 裸 身 )의 죽음에게 키스해 달라고 애원합니다. 뭉크(1863~1944)의 죽음과 소녀 라는 그림이지요. 생 사( 生 死 )에 대한 시니컬한 응시, 관능과 공포가 동시에 느껴집니다. 죽음 이란 대개 노인의 것이지요. 소녀 가 죽음의 골짜기에 당도하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 습니다. 하지만 예술가들은 종종 죽음과 소녀를 결부시키지요.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1740~1815)라는 독 일의 서정시인이 있습니다. 그도 죽음과 소녀 라는 시를 남겼지요. 그러나 그 소녀는 뭉크의 그림처럼 죽음에 매달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지요. 가세요. 아, 지나가세요. 무서운 죽음이여! 제발 나를 만지지 마세요 라며 죽음의 유혹을 뿌리치지요. 하지만 죽음은 소녀를 내버려둘 태세가 아닙니다. 네 손을 다오. 아름답고 사랑스런 소녀여! 편안해지거라. 내 품에서 편히 잠들거라 라며 소녀의 손목을 움켜 쥐려 하지요. 서두가 길어졌습니다. 뭉크의 그림과 클라우디우스의 시를 이야기하는 까닭은 슈베르트(1797~1828)의 현악 4중주곡 죽음과 소녀 를 듣기 위해서지요. 슈베르트는 가곡의 왕 이라는 별명답게 클라우디우스의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13

14 시에 곡을 붙여 죽음과 소녀 라는 가곡을 썼습니다. 이 가곡을 모티브 삼아 현악4중주곡을 완성한 것은 그의 나이 29세였던 1826년이었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이었지요. 당시의 그는 가난과 병고에 시달렸습니다. 그야말로 거지처럼 살았지요. 156cm의 작은 키에 통통한 몸매를 한 이 착하고 여린 남자는, 친구와 맥주를 무엇보다 좋아했던 낭만주의자였습니다. 그는 살아 생전에 번듯 한 작업을 한번도 갖지 못했어요. 집이나 재산이 있을 턱이 없었죠. 심지어 피아노조차 갖고 있지 못해서, 기타를 치며 작곡을 하곤 했답니다. 슈베르트는 현악4중주곡을 15곡이나 남겼지요. 죽음과 소녀 라는 부제를 가진 14번 D단조 는, 죽음 을 눈앞에 둔 슈베르트가 클라우디우스의 시에 등장하는 소녀 처럼 발버둥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 다. 이 곡은 베토벤의 교향곡 운명 처럼, 강렬한 동기 를 제시하면서 문을 열지요. 빠~암 빰빰바 ~ 하는 이 동기는 1악장의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죽음과의 투쟁 을 형상화합니다. 1악장의 마지막에서는 마치 삶을 체념한 것처럼 선율이 잦아들지요. 곧바로 이어지는 2악장은 장송곡을 연상케 합니다. 특히 첼로의 피치카토 위에 얹힌 바이올린 선율은 슬프 기 그지없지요. 두번째 변주에서는 바이올린과 첼로가 서로 위치를 바꿉니다. 바이올린이 뒤로 빠지고 첼 로가 앞으로 나서면서 또 한번 슬픈 선율을 노래 하지요. 바로 이 2악장이 가곡 죽음과 소녀 의 선 율을 차용하고 있어서, 이 현악4중주곡은 동명( 同 名 )의 부제를 갖게 되었답니다. 3악장은 스케르초 악장답게 템포가 빠르지요. 드디어 죽음과의 무도회 를 시작하려나 봅니다. 4악장은 아예 타란텔라 풍의 춤곡이지요. 격렬하게 몰아치는 리듬 속에서, 자꾸 뭉크의 그림이 떠오릅니다. 이 마지막 악장은 2주 전에 당신에게 들려줬던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 의 마지막과 흡사하지요. 기 억나나요? 질주하다가 추락하는 느낌. 죽음과 소녀 의 마지막도 그렇습니다. EMI에서 라이선스로 발매한, 알반베르크 현악4중주단 중주단 의 연주 를 필청음반으로 권합니다. 흔히 송어 라고 부르는 피아노5중주 A장조 도 함께 수록돼 있습니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14

15 [당신의 클래식]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어느새 가을이네요. 영화 샤인 에서 미친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이 라흐, 세르지 라흐 라 며 영어식으로 더듬더듬 발음하던,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가 생각납니다. 그래요, 가을은 그의 음 악을 듣기에 참 좋은 계절입니다. 라흐마니노프(1873~1943)는 러시아의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였지요. 지휘도 했습니다. 팔방미인이었어요. 게다가 영화배우처럼 잘 생겼지요. 크게 쌍꺼풀 진 눈에 이마가 시원합니다. 하지만 얼굴 중앙에 큼직하게 솟은 매부리코가 그의 인상을 왠지 딱딱하게 보이게 하지요. 어쨌든 인상적인 외모입니다. 게다가 몸집도 건장했지요. 손도 큼직하고, 손가락도 남들보다 훨씬 깁니다. 이런 외형 적 특성은 그의 음악에도 일정한 특징을 형성하지요. 이를테면 이런 것들입니다. 피아노 건 반을 아주 넓게 사용하는 규모의 호방함, 또 피아니스트들을 자주 괴롭히는 어려운 테크닉 등이지요. 특히 피아노 협주곡 3번 은 라흐마니노프가 남긴 4개의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도 난곡( 難 曲 )으로 꼽히는 데 다, 연주시간이 45분이 넘는 대곡( 大 曲 )입니다. 영화 샤인 은 데이비드 헬프갓이 바로 이 곡을 연주하 다가 발작을 일으키는 것으로 이야기를 설정하지요. 하지만 오늘 당신에게 먼저 권하고 싶은 곡은 3번 이 아닌 2번 입니다. 왜냐고요? 이유는 간단합니 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은 이미 당신에게 아주 익숙한 곡이기 때문이지요. 특히 2악장 의 감미롭고 슬픈 아다지오 선율은 그동안 숱한 영화 속에서 단골메뉴로 등장했지요. 재즈와 대중음악에 서도 종종 차용하는 선율입니다. 듣는 순간에 곧바로, 달콤한 슬픔 이 가슴속으로 스며들지요. 그야말 로 가을의 우수( 憂 愁 )를 전해주는 음악입니다. 자세히 들어보면,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이 품고 있는 서정과 슬픔은 신경증적 불안과 우울을 동시에 느끼 게 하지요. 이 자의식 강한 매부리코의 작곡가는 2번 을 완성하기 몇해 전부터 심각한 신경쇠약에 시달 렸습니다. 1897년 발표한 교향곡 1번 이 심한 혹평을 받았던 탓이지요. 작곡가로서 자신감을 잃었던 그 는 꽤 오랫동안 정신치료를 받았지만 효과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만난 구세주가 니콜라이 다알 박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15

16 사였지요. 라흐마니노프는 그의 도움으로 자신을 괴롭혔던 병에서 벗어났고, 이듬해인 1901년에 2번 을 완성했습니다. 그는 이 곡을 다알 박사에게 헌정했지요. 이 곡은 1악장 도입부터 매혹적입니다. 피아노와 관현악이 주고받는 조화가 아름답지요. 느린 2악장의 슬 픔과 서정이 잦아들고나면, 3악장에서 다시 웅장한 규모와 파토스적 격정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 격정과 파워마저도 왠지 처연하게 들려오는 것이 바로 라흐마니노프의 2번 이지요. 이번 가을에는 라흐마니노프 2번의 가요적 통속성 에 한번 빠져보세요. 현란한 건반의 울림, 짜릿한 테 크닉도 별미 로 맛볼 수 있습니다.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가 1959년에 녹음했던 음반이 오랫동안 명 반으로 꼽혀왔지요.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의 연주도 80년대의 베스트셀러였습니다. 오늘 권해드릴 음반 은 젊은 거장 소리를 듣는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가 베를린필하모닉과 협연한 녹음 (2005, EMI)입니다. 안토니오 파파노가 지휘했네요. 참, 데이비드 헬프갓이 연주한 음반은 워낙 특이해서, 당신에게 권해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의 클래식]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1980년대 초반의 일입니다.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에 논장 이라는 서점이 있었지요. 4평 남짓했던 이 작은 책방에는 불온한 책들 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습니다. 가끔씩 경찰들이 들이닥쳐 그 책들을 압 수해가곤 했지요. 하지만 추억 은 때때로 역설적인가 봅니다. 가끔 그 시절의 논장 이 그리울 때가 있어요. 책을 뒤적이던 젊은이들의 온기가 가득했던 공간. 저 역시 그곳에서 하릴없이 책장을 넘기며 친구 를 기다리곤 했지요.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16

17 그러던 어느날, 쇼스타코비치 를 만났습니다. 녹음 테이프였지요. 스무개 정도 되는 녹음 테이프가 카 운터 옆에 쌓여 있었습니다. 교향곡 5번 D단조 였지요.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가 아직 건재하던 그 시 절에, 20대 청년의 눈에 가장 먼저 빨려들어온 단어는 혁명 이라는 부제( 副 題 )였지요.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지요. 그래도 그때가 그립습니다. 테이프가 다 닳아서 더이상 돌아가지 않을 때 까지 혁명 을 듣고 또 들었지요. 빠암~ 빠밤 하면서 고음과 저음의 현( 絃 )이 대구처럼 펼쳐지는 1 악장 시작부터, 왠지 가슴 두근거리는 감흥을 느끼곤 했습니다. 음악이란 그렇게, 개인적 체험과 상상력으 로 재구성되는 시간예술 이지요. 80년대 후반이 돼서야 일본 도쿄의 메이지대학 앞에 있는 레코드점에 서 이 곡을 CD로 구했습니다. 므라빈스키가 지휘한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의 연주였지요. 사실 혁명 이라는 부제 자체도 쇼스타코비치가 붙인 것은 아닙니다. 즉 표제음악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정작 쇼스타코비치 본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곡의 주제는 인간성의 확립이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서정적 분위기로 일관하고 있으며, 나는 그 중심에 서서 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체험에 대해 생각했다. 피날레에서는 이제까지 등장한 모든 악장의 비극적 긴박함을 해결하고, 밝은 인생관과 기쁨을 맛볼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이 곡은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 과 상통하지요. 한 인간의 역경과 고뇌, 이 를 극복하는 과정, 마지막으로 전개되는 환희와 승리의 피날레는 베토벤 5번을 고스란히 연상시킵니다. 하 지만 베토벤의 피날레가 하늘이 환하게 열리는 듯한 느낌인 것에 비해, 쇼스타코비치의 4악장은 여전히 절망의 늪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하지요. 1936년은 쇼스타코비치가 정치적 벼랑 끝에 서 있던 때였습니다. 당시 소련의 당 기관지 프라우다 는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에 대해 혹평 을 퍼붓고 있었지요. 스탈린 치하의 소련에서, 이 혹평은 무서운 경고의 메시지였습니다. 쇼스타코비치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 합니다. 1936년 1월28일, 나는 프라우다를 사러 역에 나갔다. 신문을 넘기다보니 음악이 아니라 황당무 계 라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구절을 영원히 가슴 속에 새겼다. 이것은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구절이 될 것이다. 이 내성적인 작곡가는 37년에 교향곡 5번의 작곡에 돌입, 그해 가을에 곧바로 완성합니다. 아주 빠른 속도 였지요. 또 그는 이 곡에 대해 당국의 비판에 대한 소비에트 예술가의 답변 이라고 스스로 언급합니다. 그렇게 해서 정치적으로 복권되지요. 마지막 4악장의 다소 허풍 섞인 팡파레를 들을 때마다 인간 쇼스타코비치가 받았을 상처와 스트레스, 혹은 불안감이 떠오릅니다.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가 15년에 걸쳐 연주해낸 쇼스타코비치 교향 곡 전집 (EMI)을 권하고 싶네요. 모두 10장으로 구성됐지만, 가격이 비교적 저렴합니다. 지휘자 얀손스 의 작가주의적 열정 이 가득한 컬렉터 아이템입니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17

18 Mravinsky conducts the Leningrad Philharmonic (4악장) [당신의 클래식] 비발디 사계 당신이 가장 먼저 들었던 협주곡은 아마 이 곡이었을 겁니다. 이탈리아의 열정과 생동감이 넘치는 음악. 작곡된 지 어언 3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오늘날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 가운데 하나지요. 클래식을 거의 듣지 않는 사람들조차 이 곡을 모르는 경우는 정말 드뭅니다. 사계절의 변화를 한 폭의 풍경화처럼 묘사하고 있는, 비발디의 사계 라는 곡이지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소재로 삼은 음악은 많습니다. 하이든은 오라토리오 사계 를 남겼고, 차이코프 스키의 낭만적인 피아노곡 중에도 사계 가 있지요. 러시아 작곡가 글라주노프의 발레음악 중에도 사 계 가 있습니다. 좀더 현대 쪽으로 내려오면 아르헨티나 작곡가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부에노스아이레 스의 사계 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사계 중에서도 비발디의 사계 야말로 최고의 인기곡이지요. 독일에서 바하가 활약했던 시절, 이른바 바로크 시대입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코렐리, 비발디, 타르티니 같 은 작곡가들이 창작에 매달리고 있었지요. 바하가 건반을 위한 명곡을 여럿 남긴 것에 비해, 당시 이탈리 아 작곡가들은 주로 현악기를 위한 곡을 많이 썼습니다. 그들의 음악은 대체로 화사하고 밝습니다. 우아한 선율과 풍부한 양감을 만끽할 수 있는 곡들이 많지요. 역시 지중해에 발을 담고 있는 이탈리아 음악답습니 다. 비발디는 작품 8 이라는 번호를 붙여 12곡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썼지요. 이중에서 1곡부터 4곡까지를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18

19 사계 라고 부릅니다. 각각 3악장으로 이뤄져 있지요. 1악장은 빠르게, 2악장은 느리게, 3악장에서 다시 빨라집니다. 음악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구성이지요. 게다가 비발디는 친절하게도 각 곡의 첫머리에 계절을 묘사하는 소네토 (14행의 짧은 시)를 일일이 붙였습니다. 곡의 중간에도 이 소네토가 들어가 있지요. 그래서 사계 는 작곡가가 제목을 붙인, 표제음악인 셈이지요. 또 이 곡은 묘사음악이기도 합니다. 한마 디로 말해 선율과 화성으로 그려낸 풍경화입니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제1곡 봄. 새들이 즐겁게 아침을 노래하면서 1악장이 시작됩니다. 시냇물이 졸졸 흐르다가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천둥과 번 개가 몰아치지요. 느리고 평화로운 2악장에서는 구름이 걷히고 푸른 목장에서 목동들이 햇살을 받으며 졸 고 있습니다. 3악장에서는 아름다운 요정이 나타나 양치기의 피리에 맞춰 춤을 추지요. 세번째 곡 가을 도 인기가 많습니다. 1악장에서 수확의 기쁨에 취한 농부들이 잔치를 벌이고 있네요. 아주 흥겨운 분위기입니다. 느린 2악장은 서늘한 가을밤의 풍경화를 그리고 있지요. 잔치를 끝낸 마을사람 들이 조용히 잠자리에 듭니다. 3악장은 동트는 새벽이지요. 총과 뿔피리를 챙겨들고 개를 끌고 사냥터로 떠난 사람들이 짐승의 뒤쫓는 장면이 그려집니다. 칼 뮌힝거가 지휘하는 슈투트가르트 챔버오케스트라의 1950년대 녹음이 명반으로 손꼽힙니다. 한국에서는 이탈리아의 실내악단 이무지치의 연주 가 인기음반이었지요. 바이올린 연주자 파비오 비욘디가 이끄는 에우로파 갈란테 는 속도감 넘치는 공격적인 사계 를 녹음했습니다. 다들 나름의 개성을 품고 있 지요. 하지만 오늘 권하고 싶은 음반은 줄리아노 카르미뇰라의 사계 입니다. 현대악기와 원전악기 를 오가는 탁월한 연주자. 그가 연주하는 비발디의 사계 는 귀와 가슴을 짜릿하게 흥분시키지요. 디지 털 시대의 명반으로 꼽히는 수작( 秀 作 )입니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19

20 [당신의 클래식] 무소르크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러시아의 작곡가 무소르크스키(사진)가 34세 때의 일입니다. 가까운 친구였던 건축가이자 화가 빅토르 하 르트만(1834~1873)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무소르크스키보다 다섯 살 많았던 친구였지요. 39세의 아까운 나 이에 저세상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무소르크스키는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말했지요. 이 얼마나 안타 까운 일인가. 말이나 개, 쥐 같은 동물들도 살아 있는데, 하르트만이 죽다니! 이듬해에 친구들의 주선으로 하르트만의 유작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수채화와 건축 설계도 등 약 400점의 작품이 전시됐다고 합니다. 물론 무소르크스키도 이 전시회에 다녀왔지요. 당시의 그는 러시아의 시인 푸 슈킨의 대하역사극 보리스 고두노프 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오페라를 작곡해 막 초연을 끝냈을 때였습 니다. 연주시간이 3시간에 달하는 대작을 써냈던 무소르크스키가 곧바로 작곡에 돌입한 작품은 의외로 규 모가 아담한 곡이었지요. 바로 친구의 유작 전시회에 다녀온 직후 작곡을 결심한 전람회의 그림 이었 습니다. 무소르크스키는 친구의 유작 가운데 10작품을 음악으로 옮겨놓지요. 따라서 이 곡은 묘사음악으로서의 성 격이 짙습니다. 게다가 재미있는 것은 곡의 사이 사이에 서주와 간주의 성격을 갖는 프롬나드 를 배치 하고 있는 점이지요. 프롬나드(Promenade)라는 것은 천천히 걷는 걸음걸이를 뜻합니다. 옛날 우리 선비 들이 시를 조용히 읊조리면서 천천히 걷는 것을 미음완보( 微 吟 緩 步 )라고 했지요. 프롬나드라는 것은 바로 완보 라는 뜻입니다. 참, 기발한 아이디어입니다. 무소르크스키는 전시회장에 들어선 관람객의 느릿한 발걸음을 함께 묘사하면 서, 단순히 그림을 음악으로 옮겨놓는 것 이상의 입체적 공간감 을 만들어냅니다. 그림을 바라보는 사 람의 입장, 다시 말해 관찰자의 주관성까지 아울러 묘사하면서 음악적 울림이 한층 커지는 것이지요. 첫번째 프롬나드는 소박하면서도 힘찬 건반의 울림으로 전시회장에 들어선 느낌을 전해줍니다. 이어서 뒤 뚱거리며 뛰어다니는 모습과 서글픈 비애가 어우러지는 1곡 난장이 (Gnomus)가 흘러나오지요. 그리고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20

21 또 한번의 프롬나드. 이번에는 첫번째보다 좀더 부드럽고 느긋합니다. 이어지는 2곡 고성 ( 古 城 )은 전람회의 그림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아름답고 서정적인 선율이지요. 하르트만이 그린, 이탈리아의 오 래된 성 밑에서 음유시인이 노래하는 모습을 음악으로 옮겼습니다. 10곡 중에 가장 강렬한 이미지를 남기는 곡은 마지막으로 연주되는 키에프의 대문 이지요. 당시 키에 프시는 도심에 웅장한 문( 門 )을 건설할 예정이었습니다. 아직 지어지지 않은 상태였지만, 화가 하르트만은 이 대문을 한 폭의 그림으로 남겨놓았지요. 러시아식의 둥근 지붕과 뾰족한 첨탑, 말을 타고 성 안으로 달 려 들어오는 병사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무소르크스키가 전람회의 그림 에서 마지막 방점을 찍듯이 작 곡한 키에프의 대문 은 러시아적 선율미와 웅혼한 기백이 넘치는 스펙터클이지요. 특히 이 곡은 피아 노 독주보다는 프랑스의 작곡가 라벨이 편곡한 관현악 편성으로 들을 때 그 감흥이 배가됩니다. 전람회의 그림 을 연주한 좋은 음반들은 아주 많습니다. 굳이 한두 개를 골라야 한다면 카를로 마리 아 줄리니가 시카고 심포니를 지휘한 음반 (1976, DG), 첼리비다케가 뮌헨 필하모니를 지휘한 실황 ( , EMI)을 권하고 싶네요. [당신의 클래식] 슈베르트 미완성 교향곡 때는 2054년, 장소는 미국 워싱턴 D.C.입니다. 수조 같은 공간에 3명의 예지자들이 둥둥 떠 있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무당이지요. 마치 시신처럼 물 위에 떠 있는 그들의 뇌는 범죄예방수사국의 화상모니터 에 연결돼 있습니다. 무당이 앞날을 예언하는 것처럼, 3명의 예지자들도 앞으로 일어날 살인을 예고하지 요. 범죄예방수사국의 존 앤더톤 팀장(톰 크루즈)은 모니터에 떠오른 핏빛 이미지 조각들을 분석해 살인이 일어날 현장으로 출동합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2002년에 만든 마이너리티 리포트 라는 영화이지요. 50년 후를 상상하는 이 영화에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21

22 서, 살인은 예고될 뿐 실제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미래의 살인범들 은 범죄예방수사국의 요원들에게 체포돼 감옥에 갇히고 죽을 뻔한 사람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잘 살아가지요. 하지만 이 설정은 아주 위험한 모순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지자들의 예고가 틀렸을 경우입 니다. 예지자들은 모두 세 명. 그들 가운데 한 명이 다른 의견을 내놨을 경우, 그 소수의 예고 는 쓰레 기통 속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그것이 바로 마이너리티 리포트 이지요. 범죄예방수사국의 수사실. 존 앤더톤이 엽기적 장면으로 가득한 살인화상을 분석하는 장면에서, 정말 뜻 밖의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슈베르트의 교향곡 8번 미완성. 바이올린과 목관이 어우러지는 그 낭만적 인 선율이, 피가 튀고 비명이 난무하는 살인현장의 엽기적 이미지들과 겹칩니다. 황당했지요. 왜 하필이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슈베르트의 음악을 저런 영화에 끌어들였을까. 스필 버그의 취향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스필버그는 앤더톤이 영상을 분석해 범죄현장을 찾아낼 때마 다, 심지어 앤더톤이 직접 살인을 저지를 거라는 예언을 맞대면하는 순간에도 이 선율을 계속 깔아놓습니 다. 게다가 수조에 떠 있는 예지자들을 관리 감독하는 앤더톤의 부하직원쯤 되는 인물은, 바흐의 칸타타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이시니 를 오르간으로 직접 연주하기도 합니다. 그뿐 아니지요. 아들을 잃은 앤 더톤이 가족들과의 즐거운 한때를 추억하는 장면에서는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비창 이 흘러나옵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는 단순한 미래영화가 아니더군요. 그것은 사심( 私 心 ) 많은 권력자가 과학기 술 을 장악했을 때 일어나는 비극을 경고하는, 나름의 메시지를 갖춘 영화였습니다. 슈베르트의 미완 성 은 예지자들이 보내주는 살인영상의 불완전함, 혹은 그것을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기계적 세계관이 결 국 비극을 낳고 말 거라는 복선으로 읽혀집니다. 1악장은 베이스와 첼로의 장엄한 서주로 문을 열지요. 이어서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선 율에, 오보에와 클라리넷이 함께 어울리지요. 약간 우울하면서, 동시에 감미로운 낭만성으로 가득한 선율 이지요. 스필버그의 영화에서도 이 선율이 자주 흐릅니다. 이어서 현악기들이 연주하는 짧은 16분음표를 배경으로, 어떤 비극성 같은 것이 점점 부풀어오르지요. 그 비극성은 1악장 종결부에서 마침내 폭발합니 다. 반면에 2악장은 고요하지요. 마치 꿈결에서 듣는 듯한 목가풍 선율입니다. 이 부드러운 선율과 함께 내면 의 고뇌를 상징하는 듯한 무거운 선율이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하지요. 그래서 미완성 은 끝나는 순 간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습니다. 브루노 발터가 지휘한 뉴욕필하모니, 혹은 카를 뵘과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 라면 더 이상의 선택은 없을 것 같네요.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22

23 [당신의 클래식]바하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한니발 랙터라는 인물이 기억나시나요? 영화 양들의 침묵 에서였지요. 차갑고 이성적이며,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살인마를 완벽하게 연기해낸 앤소니 홉킨스의 명연( 名 演 )을 잊을 수 없는 영화입니다. 감옥 에 갇혀있던 랙터가 탈출하는 장면, 교도관의 얼굴을 늑대처럼 물어뜯고 곤봉으로 사정없이 두들겨패는 순간에, 바하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이 잔잔하게 흘러나오지요. 정말 기발하고 독특한 조합 입니다. 조나단 드미 감독은 필라델피아 라는 휴먼스토리를 영화로 만들기도 했지만, 컬트영화에서 남다른 재 능을 보여온 감독입니다. 엽기적 살인과 골드베르크 변주곡 을 하나로 묶어낸 것은 역시 그다운 발상 이지요. 골드베르크 변주곡 은 하나의 주제(아리아)와 30개의 변주로 이뤄진 음악입니다. 원래는 피아 노의 원조격인 클라비어코드를 위한 음악이었지요. 요즘엔 피아노로 많이 연주됩니다. 가끔 현악3중주로 편곡되기도 하지요. 양들의 침묵 에서 흘러나왔던 음악은 첫곡 아리아입니다. 명상적 분위기가 가득 담긴 단순한 선율이지 요. 보통 사람으로선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이상성격자 랙터에게, 살인은 어쩌면 경건한 명상 이었던 모양입니다. 1991년 만들어진 이 영화는 이듬해 아카데미상에서 5개 부문을 석권했지요. 골드베르크 변주곡 을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영화가 있어요. 이 영화도 잊을 수 없는 수작( 秀 作 )입니다. 안소니 밍겔라 감독의 잉글리시 페이션트 이지요. 시종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던 양들의 침묵 과 달 리 이 영화는 가슴이 아릿하게 젖어옵니다. 2차대전이 끝나가던 무렵, 사하라의 모래사막을 배경으로 펼쳐 지던 사랑 이야기. 불륜 이라는 단어로 욕할 수 없는 사랑의 진실 때문에 가슴 한쪽이 먹먹해지는 영화 입니다. 이탈리아의 낡은 수도원에서 한나(줄리엣 비노쉬)가 먼지 쌓인 피아노로 연주하던 음악, 그 곡이 바로 골드베르크 변주곡 이었지요. 아리아와 첫번째 변주가 낡은 피아노 속에서 흘러나옵니다. 이 음악에 얽힌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어요. 바흐는 50세가 좀 넘은 나이에 이 곡을 작곡했을 것으 로 추정하는데요, 당시 드레스덴에 주재했던 러시아 대사 카이저링크 백작이 심각한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평소 그의 신세를 많이 졌던 바흐가 수면용 음악 으로 작곡해서 선사했다는 이야기입 니다. 하지만 이 얘기가 사실인지 허구인지는 알 수가 없지요.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23

24 첫곡 아리아와 25번째 변주 같은 곡들은 잠을 청하는 데 꽤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오히려 잠을 깨우는 곡 들도 적지 않지요. 특히 글렌 굴드가 피아노로 연주한 버전 들은 지나치게 뚱땅거리는 느낌이 강해서 살포시 찾아온 잠마저 달아날 지경입니다. 굴드의 연주의 폄훼할 뜻은 결코 없습니다. 오히려 그는 개성넘치는 연주로 골드베르크 변주곡 의 새 장을 열었던 피아노의 귀재였지요. 음 하나하나를 생생하게 뽑아올리는 듯한 터치와 강렬한 리듬감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1955년의 첫번째 녹음, 또 뇌출혈로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이었던 81년의 마지막 녹음도 연주가 빼어납니다. 반도 란도프스카 여사가 쳄발로를 연주한 음반은 역사적 권위를 인정받은 명 반이지만, 1945년 모노 녹음이지요. 이제 막 클래식에 눈 뜨는 당신에겐 조금 벅찹니다. 구스타프 레온하르 트의 정격연주도 마찬가지이지요. 최근에 제가 들어본 음반 가운데, 가에데 트리오 의 음반 을 권합 니다.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의 현악3중주 편성으로 골드베르크 변주곡 을 연주하네요. 현악기의 울 림이 아름답고 풍성합니다. 음질도 훌륭하네요. 독일의 TACET 레이블에서 발매, 국내의 알레스뮤직 에서 수입합니다. [당신의 클래식]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 소리없이 그려낸 고난의 심포니- 나의 천사이자 전부이며 나의 분신이여. 잠자리에 누워서도 온통 당신 생각뿐이오. 내 불멸의 연인이 여. 베토벤이 죽었습니다. 1827년의 일입니다. 영화 불멸의 연인 (Immortal Beloved)은 그의 장례식으로 시 작하지요. 베토벤이 남겨놓은 유품 속에서 편지 한 통이 발견됩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베토벤이, 어 떤 여인을 불멸 이라 칭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그녀에게 넘긴다는 편지였지요. 베토벤의 친구였던 안톤 쉰들러가 편지에 등장하는 수수께끼와도 같은 여인의 존재를 찾아 나섭니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24

25 먼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이 영화의 많은 부분이 허구 라는 점이지요.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베토벤의 연애사건들과 괴팍한 성격들은 상당히 왜곡되고 과장된 측면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거짓부 렁 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요. 적어도 이 영화는 베토벤이 인간으로서 감내하기 힘든 형극( 荊 棘 ) 의 삶을 살았다는 진실 을 보여줍니다. 영화에서도 그려내고 있듯이, 그 형극의 정점에 교향곡 9번 합창 이 우뚝 서 있습니다. 줄거리를 좀더 따라가 볼까요. 쉰들러는 베토벤과 사랑을 나눴던 여인들을 하나하나 만납니다. 하지만 그 녀들은 불멸의 여인이 아닌 것으로 판명 되지요. 베토벤은 도대체 어떤 여인을 가슴속에 묻어놓고 평 생 사랑했던 것일까요? 영화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비밀이 하나씩 벗겨집니다. 베토벤은 죽은 동생의 아들, 즉 조카인 칼을 애지중 지 아끼지요. 동생이 죽자 법적 후견인이 되어 자신이 직접 키웁니다. 게다가 어린 칼을 위대한 음악 가 로 만들려고 애를 쓰지요. 이 과정에서 베토벤이 보여주는 광기어린 집착, 그것은 조카에 대한 일반적 인 사랑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영화는 결국, 칼이 베토벤의 실제 아들이었다고 주장합니다. 베토벤이 잊지 못했던 그 여인은 바로 동생인 카스퍼의 아내 조안나였다는 것이지요. 이 허구는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베토벤의 아이를 임신하고 결국 엔 그의 동생과 결혼하는 비극의 주인공 조안나를 상당히 부각시킵니다. 베토벤이 동생의 아이를 직접 키운 것은 사실이지요. 하지만 그 어디에도 칼이 베토벤의 진짜 아들이었다 는 증거는 없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베토벤은 1817년부터 인류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합창 을 구상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베토벤에게 정말 어려웠던 시절이었지요. 이듬해부터 귀는 아예 들리지 않았습니다. 조카인 칼은 불량소년이 되어갔고, 행실이 좋지 않았던 여인으로 알려져 있는 칼의 생모와 양육권을 둘러 싼 법정공방까지 벌여야 했지요. 게다가 당시 빈의 음악계는 베토벤의 음악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너무 심오하고 무거웠던 탓이지요. 이 화려한 감각의 도시는 좀더 발랄한 음악을 원했습니다. 정치적으로 는 베토벤이 지지했던 공화주의가 위축되고, 메테르니히가 집권해 보수반동이 득세했습니다. 교향곡 9번 합창 은 바로 이러한 시기에 만들어집니다. 1824년 5월7일, 빈의 케른트너토어 극장에서 이 곡이 초연됐을 때, 베토벤도 바로 그 무대에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들을 수 없던 그는 허공에 대고 지휘봉을 휘저었을 뿐이었지요.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지휘자 움라우후의 지휘봉을 보고 있었습니다. 연주가 끝나고 객석에서 열광의 파도가 휘몰아칠 때, 누군가 객석을 향해 베토벤을 돌려세우지요. 마에스트로, 보입니까? 정말 엄청난 환호였지요. 이 역사적 감동은 영화 속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됩니다. 1951년 푸르트뱅글러가 바이로이트 축제 관현악단과 합창단을 지휘한 녹음 이 명반으로 꼽히지요. 오늘은 조지 셀이 뉴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지휘한 58년도 녹음을 권합니다. 우리가 아는 조지 셀을 훨씬 뛰어넘는, 당당한 카리스마와 폭풍이 들어 있습니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25

26 [당신의 클래식]말러의 교향곡 1번 거인 좋아하는 사람한테 첼로 연주를 선물하고 싶은데 뭐가 좋을까요? 지인들로부터 가끔 그런 식의 질문 을 받습니다. 가을이 되면서부터 부쩍 늘었습니다. 저로서는 반가운 일이지요. 하지만 쉽게 대답하기 어려 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물어오는 당신 의 취향을 정확히 모르는 탓도 있지만, 자칫 잘못 얘기했다 가 오해나 편견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지요. 고정관념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특히 광활한 클래식의 바다에선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를테면 모차르트의 음악은 밝고 단순하다든가, 말러 음악은 어렵고 복잡 하다는 식의 편견 말입니다. 말러(사진)를 듣고 싶다고요? 당신은 너무 어렵지 않나요? 라면서 걱정부터 앞섰지요. 결론부터 애기하 자면,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말러를 향해 걸어가는 징검다리를 순차적으로 밟을 필요가 있지요. 이를테면 처음부터 교향곡 8번 Eb장조 를 듣는 것은 무리입니다. 천인 교향곡 으로 불리는 이 곡은 엄청난 규모에 구조적으로도 복잡하지요. 말러와 사귀려는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권하는 음악은 대개 교향곡 1번과 4번입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 면 이 두 곡에서 출발하는 게 보편적입니다. 일단 길이가 적당하니까요. 두 곡 모두 연주시간 50분가량입 니다. 말러의 다른 교향곡들에 비해 짧지요. 게다가 인상적인 모티브와 선율이 자주 등장합니다. 두어번만 들으면 머리에 쏙쏙 들어오지요. 또 교향곡 5번도 말러와의 초반 데이트에 유용합니다. 특히 4악장의 느린 아다지에토는 아름답기 이를 데 없지요. 위험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말러의 음악을 이해하는 핵심은 대립되는 두 가지 양면성을 하나로 끌어안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죽음과 삶, 진지함과 농담, 숭고한 아름다움과 유행가의 통속성, 고전적 형식과 민초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26

27 들의 자유스러움, 직관적 낭만주의와 차가운 이성의 대립각 같은 것들입니다. 그까이꺼 대충 을 도저 히 용납하지 못했던 말러는 이렇게 서로 부딪히는 것들을 평생 끌어안고 살았지요. 그는 삶을 사랑했습니다. 햇살을 받으며 들판을 산책하는 것을 좋아했고, 달콤한 디저트를 즐겼고, 주변 사람들에게 농담도 곧잘 했습니다. 새끼 고양이 두 마리를 주머니에 넣고 들로 나가 그것들의 재롱을 지켜 보며 즐거워하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늘 죽음을 생각했지요. 말러에게 사신( 死 神 )의 존재는 낯설지 않았습니다. 유년기의 그는 14명의 형제 가운데 8명이 죽는 것을 지켜봐야 했고, 사랑하던 큰딸 마리아가 어린 나이에 디프테리아로 세상을 떠나는 것을 망연자실 바라봐야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본인은 심장병 에 시달리면서 죽음의 공포와 싸워야 했습니다. 자, 이제 구스타프 말러(1860~1911)의 교향곡 1번을 들어봅니다. 거인 (Titan)이라는 부제에 처음부터 너 무 신경쓰지 않는 게 좋습니다. A음의 긴 지속음으로 시작하는 1악장은 조금씩 동이 트는 느낌, 전원의 새 벽 풍경을 연상시킵니다. 뻐꾸기 울음처럼 퍼져나가는 목관 소리가 아주 인상적이지요. 2악장은 춤입니다. 왈츠풍의 부드러운 무곡이 흥겹게 펼쳐집니다. 3악장은 듣는 순간 곧바로 당신을 매료시킬, 장송행진곡 풍 의 악장이지요. 허무한 느낌의 보헤미아 선율, 함께 어울리는 오보에의 대선율( 對 旋 律 )이 기막히게 아름다 운 표정을 연출합니다. 4악장은 남은 에너지를 모두 폭발시키는 것처럼 강렬하지요. 마지막 악장에서 지나치게 발산하는 느낌이 없지 않지만, 말러가 20대 시절에 쓴 초기작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필요가 있겠지요. 그래서인지 브루노 발 터는 거인 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 지휘자, 브루노 발터가 콜 럼비아 교향악단을 지휘한 음반 을 권합니다. 레너드 번스타인 이 지휘한 음반도 놓치기 아깝습니다. Gustavo Dudamel - La Scala Philharmonic Orchestra [당신의 클래식]그리그 피아노 협주곡A단조 단조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27

28 노르웨이는 세계지도의 가장 북쪽에 놓여 있습니다. 약 15만개의 크고 작은 섬들을 갖고 있지요. 그중 약 2,000개의 섬에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비틀스가 노르웨이의 숲 이라는 노래에서 묘사했듯이, 키 큰 나무들이 가득한 숲의 나라입니다. 또 2만km가 넘는 해안선을 가진, 바다의 나라이기도 하지요. 빙하가 만 들어낸 피요르드의 절경은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한여름엔 백야( 白 夜 )가 펼쳐지고, 요즘처럼 추운 겨울 에는 낮에도 어둠이 깔리는 여명의 나날이 계속되지요. 아쉽게도 한번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상상해보는 거지요. 머릿속에 그려보는 노르웨이의 풍경 속에 서, 바로 그 사람의 음악이 들려옵니다. 누굴까요? 힌트는 장발에 콧수염, 바로 작곡가 그리그(1843~1907) 입니다. 노르웨이는 14세기부터 덴마크의 지배를 받았지요. 19세기에 이르면 스웨덴으로 주인이 바뀝니다. 바로 이 시기에 노르웨이를 대표했던 세 명의 예술가가 있지요. 화가 뭉크와 극작가 입센, 그리고 음악가 그리그입 니다. 세 명은 동시대에 활약했지요. 특히 입센과 그리그는 젊었던 시절에 서로 소 닭보듯 했다고 전해지 는데, 나이가 들어서는 함께 작품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입센이 노르웨이 설화를 바탕으로 희곡을 써서 그 리그에게 작곡을 의뢰하지요. 그렇게 탄생한 음악이 바로 페르귄트 모음곡 입니다. 기억나시지요? 가 련한 여인 솔베이지가 역마살 낀 남편 페르귄트를 애타게 기다리는 노래. 바로 솔베이지의 노래 라는 애절한 곡이 유명하지요. 오늘 들을 곡은 피아노 협주곡 A단조 입니다. 노르웨이의 풍경과 서정을 음표로 옮겨놓았던 그리그의 작품들 가운데, 페르귄트 모음곡 과 더불어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이지요. 북유럽의 쇼팽 으로 불렸 던 그리그의 섬세한 낭만성이 곳곳에 배어있습니다. 그리그는 소프라노 가수 니나와 24세에 결혼, 한창 신 혼의 단꿈에 빠져 있던 시기에 이 곡을 썼지요. 자신감 넘치는 25세 청년의 싱싱한 에너지가 고스란히 느 껴지는 음악입니다. 이 곡은 아무 준비 없이 그냥 들으면 됩니다. 워낙 선율이 아름다워서, 처음 듣는 사람마저도 곧바로 매혹 시키지요. 팀파니의 트레몰로 연타에 이어지는 피아노 독주가 아주 강렬합니다. 1악장 도입부터 사람의 마 음을 확 끌어당기지요. 이어서 목관이 첫번째 주제를 연주합니다. 두번째 주제는 첼로가 제시하고 피아노 가 받지요. 단조의 악장이지만 우울하게 가라앉지 않습니다. 해안을 덮쳐오는 검은 파도가 연상되는, 격정 적 선율과 화성이 잇따라 펼쳐집니다. 피아노 독주자에게 엄청난 에너지와 뛰어난 기량을 요구하는 악장 이지요. 2악장 아다지오는 차분하게 절제된 분위기입니다. 그리그를 왜 북유럽의 쇼팽 이라고 부르는지 분명히 알게 해주는 악장이지요. 차분하게 절제된 현( 絃 )으로 시작해, 단아하고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이 꿈결처럼 이어집니다. 반면에 3악장은 변화가 많은 화려한 악장이지요. 노르웨이 민속리듬에 몸을 실은 피아노가 환 상곡 분위기의 선율을 연주합니다. 그렇게 화려함을 뽐내던 피아노가 한순간 꺼질 듯 잦아들지요. 그러다 가 다시 한번 춤곡풍의 리듬을 활기차게 연주합니다. 열정적으로 휘몰아치는 피아노, 이어서 오케스트라 가 포효하는 총주( 總 奏 )로 화답하면서 피날레를 맞이하지요. 그 종지부는 사뭇 영웅적이고 비장합니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28

29 피아니스트 디누 라파티가 1940년대 후반에 남긴 녹음 이 명연으로 꼽히지요. 루빈스타인 이 RCA빅 터심포니와 협연한 음반도 추천할 만합니다. 게자 안다가 라파엘 쿠벨릭 지휘의 베를린필하모닉과 협연한 74년 녹음, 크리스티안 침머만이 카라얀 지휘의 베를린필하모닉과 함께 연주한 82년 녹음도 괜찮습니다. [당신의 클래식]영화 엘비라 마디간 과 모차르트 남자는 여자의 머리에 총구를 겨눕니다. 하지만 차마 쏘지 못하지요. 그때 어디선가 나비 한마리가 나풀나 풀 날아옵니다. 그녀는 나비처럼 가벼운 몸짓으로, 그 나비를 쫓아가지요. 그녀가 나비를 마악 손에 잡으 려는 순간 화면은 멈춥니다. 이윽고 들려오는 두 발의 총성. 아름다운 초원에서, 인상파 그림 같은 햇살을 역광으로 받으면서 남자와 여자는 그렇게 죽어갑니다. 참으로 지독한 낭만주의였지요. 1967년도 스웨덴 영화 엘비라 마디간 입니다. 엘비라 마디간은 서커스단에서 줄을 타는 소녀였습니다. 육군 중위 식스텐과 사랑에 빠지지요. 전쟁을 혐 오하는 식스텐은 아내와 두 아이를 버리고 엘비라와 함께 자유를 찾아 떠납니다. 카메라는 두 사람의 도피 행각을 쫓아가지요. 그 도피는 아름다우면서도 끔찍합니다. 두 사람은 돈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수시로 세어보고, 허기에 지친 엘비라는 토끼풀을 뜯어 먹기도 하지요. 국내 모기업의 CF에 등장했던 유명한 장 면, 서로 다투던 남녀가 미안하다 는 쪽지를 적어 시냇물 아래로 흘려보내던 모습도 바로 이 영화의 한 장면이었지요. 당시 17살이었던 스웨덴의 발레리나 피아 데게르마르크는 이 영화 한 편으로 단숨에 스타가 됐지요. 청순 하기 이를 데 없는 외모의 그녀는 67년도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습니다. 이듬해에 또 한 편의 영화 에 출연했지만, 엘비라 마디간 으로 남겨놓은 인상이 너무도 강렬했던 탓인지 그 영화는 이내 잊혀지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29

30 고 말았습니다. 데게르마르크는 딱 두 편의 영화만 남겨놓고 자신의 본업인 발레리나로 돌아갔지요. 영화 엘비라 마디간 은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 을 세계적인 히트곡으로 만들어놓기도 했습 니다. 빌보드 톱10에까지 올라갔을 정도였지요. 모차르트는 모두 27개의 피아노 협주곡을 남겼는데, 그중 에서 지금까지 가장 폭넓은 사랑을 받는 곡이 바로 21번 C장조 인 듯합니다. 60년대에 보기 드물었던 인상파적 영상미를 연출했던 영화. 그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흐르던 2악장 안단테의 선율은 관객의 청각을 온통 사로잡았지요. 행진곡풍의 1악장 때문에 군대 라고 불렸던 이 협주곡의 별칭을 엘비라 마디 간 으로 바꿔놓을 정도였습니다. 지금도 CD가게에서 가서 엘비라 마디간 주세요 하면, 피아 노협주곡 21번 을 꺼내 줍니다. 모차르트가 28세 때 작곡했던 이 협주곡의 1악장은 당당하게 시작합니다. 음악학자 아인슈타인은 이 위풍 당당한 서주에 대해 젊은 혈기가 아름답게 녹아있다 고 극찬했지요. 반면에 2악장 안단테는 서정적 아 름다움으로 가득합니다. 창가의 성애처럼 흐릿한, 그래서 더 가슴이 아린, 모차르트 특유의 애상( 哀 想 )이 잔잔하게 녹아 있지요. 3악장은 다시 경쾌한 느낌으로 돌아옵니다. 당당하게 시작해서 슬픔을 유영하다 다 시 경쾌해지는 구성이지요. 어느 협주곡이나 그렇지만, 특히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을 들을 때는 피아 노와 관현악이 주고받는 대화 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감상에 도움이 됩니다. 가장 보편적으로 애청되는 음반은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빈필하모닉을 지휘하고 프리드리히 굴다가 피아노를 맡은 74년 녹음 입니다. 20번 D단조 가 함께 수록돼 있지요. 영화 엘비라 마디간 OST 에서 연주했던 피아니스트는 게자 안다 (1921~76)입니다. 모차르트 연주에 능했던 헝가리 태생의 피아 니스트였지요. 그의 연주(DG)도 놓치기 아깝습니다. [당신의 클래식]음악 풀어가는 코드 인문학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30

31 환희여, 신들의 아름다운 광채여, 낙원의 처녀들이여, 우리 모두 감동에 취하고 빛이 가득한 신전으로 들어가자.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 환희에게 (An die Freude, 1785)의 시작 부분입니다. 작곡가 베토벤 이 이 시를 읽었던 것은 20대 초반 무렵이었지요. 베토벤은 자신의 마지막 교향곡 9번 합창 에 그 감동 을 온통 쏟아붓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교향곡으로 꼽히는 합창 은, 말하자면 실러의 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문학과 음악이 교감한 예는 참으로 많습니다. 독일 작가 토마스 만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번에서 받 은 감동을 장편소설 파우스트 박사 로 옮겼지요. 스트라빈스키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를 음 악으로 번역하고자 했습니다. 영화가 20세기 예술의 꽃으로 등장하면서부터는 문학, 음악, 영상이 서로간 에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가 형성되기도 하지요. 이를테면 T.S. 엘리엇의 황무지 는 니벨룽의 반 지 나 파르지팔 같은 바그너의 서사극으로부터 영향을 받습니다. 이것은 다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 으로 연결되지요. 서두가 공연히 길어졌습니다. 오늘은 당신에게 음반이 아닌 책 한 권을 권하려고 합니다. 얼마 전 제 책상 위로 배달된 우편물들 가운데 말이 먼저, 음악이 먼저 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지요. 이 특이한 제목은 18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끊이지 않았던 하나의 음악적 논쟁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18세기의 작곡 가 살리에르가 음악이 첫째, 말은 둘째 라는 오페라로 촉발시켰던 이 논쟁은 음악 과 가사 가 운데 어느쪽이 더 중요하냐는 대립이었지요. 시는 그 자체로 완벽해서 다른 예술이 끼어들 필요가 없 다 는 측과 문학이란 음악의 옷을 입어야 진정한 예술로 태어난다 는 측의 오래된 논쟁입니다. 책을 쓴 이는 30대 중반의 음악컬럼니스트 정준호씨입니다. 그는 말 을 음악 보다 앞쪽에 놓고 있 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이 책에서, 문학이나 철학이라는 인문학적 코드로 음악을 풀어나가지요. 그것은 음 악이라는 봉우리를 향해 인문학의 도로를 닦는 일처럼 보입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무모한 짓일 수 있지 요. 인문학의 위기가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고, 대학가에서는 인문사회과학 서점들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말이 먼저, 음악이 먼저 는 자신의 음악 편력기를 센티멘탈한 필치로 주절주절 늘어놓는 책이 아닙니다. 이것저것 자료를 모아서 부피만 잔뜩 늘여놓은 1,000여쪽짜리 장서용 서적도 아닙니다. 감각적으로 재미있는 독서는 아니지만, 바흐에서 토마스 만, 셰익스피어에서 쇤베르크를 오가면서 음악의 또 다른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줍니다. 신화와 성서 라는 소제목을 달고 있는 1부는 그리스 로마신화와 성서의 이야기들을 소재로 삼고 있는 음악과 문학 작품들을 다룹니다. 2부 세상의 노래 는 괴테와 슈베르트, 드보르자크와 롱펠로우, 렘브란 트의 야간비행 과 말러의 7번 교향곡 등 예술 장르간의 영향관계를 밝힙니다. 3부 파우스트의 편 력 은 음악과 문학으로 묘사된 인생의 통과 의례, 4부 사랑의 변주곡 은 음악의 영원한 주제인 사랑 에 관한 에세이입니다. 이 책의 저자가 보여준 탄탄한 주제의식이, 10년 쯤 후에 10권짜리 대작으로 세상 에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당신의 클래식]베르디 라 트라비아타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31

32 비올레타는 고급 사교계에서 웃음을 파는 여잡니다. 18세기 초반의 파리, 가난한 시골 출신인 그녀는 타 고난 미모 로 뭇 남성들을 사로잡으며 사교계의 꽃이 됩니다. 알렉산더 뒤마의 원작에서 동백꽃 마 담 으로 불렸던 여인. 작곡가 베르디는 비올레타 발레리 라는 이름의 그 여인을 오페라 라 트라비 아타 무대에 세워놓습니다. 베르디는 사회성 짙은 오페라들을 많이 썼지요. 어떤 사람들은 라 트라비아타 만큼은 사회성과 무관 한 순수한 사랑 이야기 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오페라에서도 베르디적 작풍( 作 風 )은 여전합니다. 시 골 출신의 창녀 비올레타와 비교적 여유있는 집안의 아들 알프레도. 그들의 사랑은 신분의 벽 때문에 좌절 할 수밖에 없었지요. 극중에서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은 비올레타에게 내 아들과 제발 헤어져 달 라 고 애원하고 협박합니다. 당신이 아직 오페라 라는 장르에 충분히 익숙하지 않다면, 라 트라비아타 는 그 첫걸음을 떼기에 상당히 적절한 작품입니다. 일단 이 오페라는 구성이 복잡하지 않아요. 만남과 사랑, 갈등과 이별, 그리고 결국 죽음에 이르고마는 스토리 라인이 비교적 간결하지요. 등장인물도 많지 않습니다. 파리의 친구들을 비롯한 적잖은 앙상블 배역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주인공 비올레타와 알프레도, 그리고 아버지 제르몽의 행보만 부지런히 좇아가면 충분히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오페라입니다. 오페라의 전주곡은 해당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암시하지요. 라 트라비아타 는 주인공 비올레타의 비련 과 죽음을 귀뜸하듯이, 가냘픈 바이올린 선율로 시작합니다. 이어서 왁자지껄한 파티가 벌어지지요. 그 화 려한 파티의 주인공은 말할 것도 없이 비올레타입니다. 프로방스 지방 지주의 아들인 알프레도는 축배 의 노래 를 선창하고, 이어서 당신을 오래 전부터 사랑해왔다 고 고백하는 빛나고 행복했던 어느 날 을 부릅니다. 비올레타는 그의 고백에 처음에는 도리질을 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사랑에 빠져들면서 아 그 사람인가 를 노래하지요. 2막은 파리 교외에 있는 비올레타와 알프레도의 보급자리입니다. 만난지 3개월도 안 돼 동거 에 들어갔 으니, 속도가 엄청 빠르네요. 그동안 비올레타가 재산을 처분해 생활비로 써왔다는 걸 알게 된 알프레도가 나의 비겁함이여 를 부르면서 파리로 돈을 구하러 떠나지요. 이어서 아버지 제르몽이 들이닥칩니다. 노 래로 주고받는 소프라노와 바리톤의 대화가 음악적으로 대단히 볼만하지요. 비올레타는 결국 제르몽에게 당신의 아들과 헤어지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알프레도는 갑자기 마음이 변한 비올레타에게 분노하지요. 3막은 비올레타의 죽음입니다. 사육제 날의 아침. 뒤늦게 찾아온 알프레도와 제르몽이 눈물을 흘리며 후회 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폐병이 심해진 비올레타는 자신의 초상화가 박혀있는 목걸이를 알프레도에게 건네주고 숨을 거두지요. 요즘 최고의 테너로 꼽히는 롤란도 비야손이 알프레도를,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가 비올레타를, 토마스 햄프슨이 아버지 제르몽을 연기한 DVD가 인기가 높습니다. 현대 적이고 심플한 무대, 네트렙코의 뛰어난 미모와 연기가 한창 화제에 올라 있습니다. 도이치그라모폰 발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32

33 [당신의 클래식]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두달째 열애 중인 여인이 있습니다. 바이올린 연주잡니다. 이제 겨우 24세의 젊디 젊은 여인이지요. 처음 엔 나이가 꽤 든 줄 알았는데, 프로필을 확인해보곤 깜짝 놀랐습니다. 이름은 율리아 피셔 (Julia Fis cher). 1983년 독일 뮌헨 출생입니다. 아버지는 독일 토박이고 어머니는 슬로바키아 혈통이라고 합니 다. 요즘 그녀가 연주하는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에 푹 빠져 있습니다. 이 아리따운 독일 아가씨의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3년 전이었습니다. 그해 봄에 로린 마젤이 바이에른 방 송교향악단을 지휘해 브람스의 더블 콘체르토 를 연주했던 적이 있지요. 더블 콘체르토는 말 그대로 2중 협주곡 입니다. 바이올린과 첼로가 오케스트라와 협연합니다. 당시의 첼리스트는 한국 출신 장한나 였고, 바이올리니스트가 바로 율리아 피셔였지요. 당시 두 연주자와 로린 마젤의 협연에 대해 뉴욕타임 스 가 극찬을 했던 것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장한나와 율리아 피셔는 닮은 점이 적지 않습니다. 세계 각국 언론들은, 첼로와 바이올 린에서 차세대를 이끌 연주자로 두 사람을 맨 앞에 거론하는 걸 주저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 두 아가씨 는 나이에 비해 상당히 조숙한 연주를 들려줍니다. 저는 1년 전 장한나의 인터뷰 기사를 쓰면서, 도대체 이 어린 연주자의 내면에 어떤 노인이 들어앉아 있는 걸까 라고 적었습니다. 율리아 피셔도 그렇습니다. 음반으로 처음 접했던 그녀의 연주는 바흐의 소나타와 파르티타 였지요. 젊 은 연주자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재기 넘치는 연주가 아니었습니다. 테크닉을 뽐내는 치기 어린 모습도 찾 아볼 수 없었습니다. 담담하고 우아했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서른은 족히 넘었을 거라고 상상했지요. 두번째로 만난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4세의 율리아 피셔 는 이 열정적이고 낭만적인 곡을 연주하면서, 결코 가벼운 감상의 늪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이 곡은 바이 올리니스트라면 누구나 한번은 넘어야 할 산이지요. 하지만 그 산의 높이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너무 많이 알려진 곡인데다 숱한 명연( 名 演 )이 녹음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지요. 가장 먼저 하이페츠(1901~87)의 녹음이 떠오릅니다. 소위 명반으로 꼽히지요. 프리츠 라이너가 지휘한 시 카고 심포니와의 협연입니다. 예민하고 격정적인 연주로 유명했던 나단 밀슈타인(1904~92)은 72년에 클라 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하는 빈필과 역사적 명연을 남겼지요. 두 연주자 모두 구소련 출신의 거장입니다. 이 밖에 한국이 낳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얼마 전 내한공연을 가졌던 안네 소피 무터 등의 연주도 오래도 록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았지요.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33

34 하이페츠의 연주는 살을 벨 것 같은 검기( 劍 氣 )를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오늘 소개하는 율리아 피셔의 바 이올린은 음의 모서리가 훨씬 부드럽지요. 그녀는 나단 밀슈타인 유의 격정과도 거리가 멉니다. 얼핏 안네 소피 무터의 옛 모습이 떠오르지요. 하지만 무터가 신동 의 이미지가 강했던 것에 비해, 율리아 피셔는 이미 원숙하고 기품 있는 숙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녀가 연주하는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야코프 크라이츠베르크가 지휘하는 러시아 국립 오케스트라 가 협연하는 이 음반에는 실 내악적 정교함과 부드러운 열정이 담겼습니다. 펜타톤 발매, 국내의 알레스뮤직이 수입했습니다. Brahms Violin Concerto - Julia Fischer - Michael Tilson Thomas (NDR Sinfonieorchester ) [당신의 클래식]브람스 교향곡 1번 c단조 3개월 만에 다시 시작하는 당신의 클래식 에서는 아무래도 브람스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는 올해 한국 음악계에서 가장 자주 거론될 작곡가입니다.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시향이 지난해 베토벤에 이어 올해에는 브람스 교향곡 전곡과 실내악곡을 연주합니다. 또 지난 1일 막 올려 오는 23일까지 계속되 는 2007 교향악축제 에서도 브람스의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고 있지요. 게다가 11월 내한하는 지휘자 크 리스티안 틸레만과 뮌헨필하모닉도 브람스를 연주할 가능성이 적지 않습니다. 아직까진 브람스냐 브루 크너냐 로 고민 중이라는 소식입니다. 브람스(사진)는 낭만시대를 살았던 고전주의자 였지요. 참 재미없고 무뚝뚝한 사람이었습니다. 매일 새 벽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서 의관( 衣 冠 )을 갖추고 점심시간까지 작업에 몰두했지요. 그야말로 성실 과 신중 그 자체였습니다. 원래 음악이라는 것이 적당히 데카당스가 녹아들어야 감각적으로 재밌는 법인 데, 이 브람스라는 양반, 거의 구도자처럼 살았지요. 허풍이나 과장을 스스로 용납 못하는 완고한 성품의 소유자였습니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34

35 브람스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에 태어났던 토마스 만이라는 독일 작가가 있지요. 이 사람도 좀 비슷합니 다. 아침 식사를 마치면 정장에 넥타이까지 매고 서재로 들어가 소설을 썼지요. 점심 먹고 또 서재로 들어 갑니다. 오후 5시가 되면 자신의 서재에서 칼 퇴근했지요. 모름지기 예술가들이란 기질적으로 무정부주 의자에 가까울 터인데, 브람스나 토마스 만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 둘의 또 다른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북독일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브람스는 북부 독일의 항구도시 함부르크에서 태어났지요. 토마스 만은 그보다 더 북쪽인 뤼베크 출신입니다. 함부르크에 서 자동차로 1시간쯤 걸리는 곳이지요. 브람스나 토마스 만이 보여줬던 완고함의 이면에는 북독일 이 라는 지리적 코드가 내재해 있었을 거라고 짐작해봅니다. 오늘 권할 음악은 브람스가 남긴 네 곡의 교향곡 가운데 1번 c단조 입니다. 등 뒤에서 쫓아오는 거인 의 발자국 소리 를 의식하면서 21년이나 걸려 완성해낸 대작이지요. 그 거인 은 바로 베토벤입니다. 내향적인 브람스는 자신의 교향곡이 베토벤의 그것에 비해 너무 초라하지 않을지 무척 마음졸였던 모양입 니다. 그러다가 마치 결심이라도 한 듯이, 1악장 서두부터 강렬한 팀파니의 연타를 터뜨립니다. 장대하고 비극적인 표정을 연출하는 이 첫 번째 악장은, 베토벤의 넓이와 깊이를 따라잡으려는 브람스의 고뇌를 그 대로 보여줍니다. 소박하고 우수어린 2악장에서 오보에가 연주하는 선율, 평화로운 목가풍에 간간이 흥겨 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3악장에서 호른이 뽑아내는 선율도 기막히게 아름답지요. 마지막 4악장에서 다시 규모가 커집니다. 느릿하고 무거운 서주에 이어 바이올린이 급박한 피치카토를 토 해냅니다. 긴장감이 점차 상승하다가 관악기와 팀파니가 어울리면서 폭발하지요. 그러다가 다시 목관이 서 정적 분위기를 형성하면서 호른이 그 유명한 알프스풍 선율을 연주합니다. 강약과 완급이 반복되는 다소 복잡한 구조이지만, 남성적 로맨티시즘의 만끽할 수 있는 악장이지요. 1876년 초연 당시 4악장의 주제가 베토벤의 합창 과 비슷하다고 비판을 받았지만, 브람스는 바보 같은 사람들 이라며 일축했다고 합 니다. 교향곡 전곡을 수록한 음반으론 칼 뵘이 빈필을 지휘한 1970년대 녹음 을 권합니다. 브루노 발 터가 컬럼비아 교향악단을 지휘한 음반 도 훌륭합니다. 1번 만 수록한 음반을 찾는다면 프루트뱅글 러가 베를린필을 지휘한 52년 실황을 빼놓을 수 없지요.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35

36 Otto Klemperer - Philharmonia Orchestra Rec [당신의 클래식]베토벤 교향곡 7번 -봄기운 약동하는 리듬- 봄기운이 완연합니다. 출근길에 지나치는 인왕스카이웨이 양 옆으로 노란 개나리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벚 꽃은 이미 만개했고 목련은 꽃잎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일조시간이 길어지면서 수은주의 눈금이 점점 올라가면, 사람들은 대개 리듬감 넘치는 음악을 찾게 되지요. 음악을 찾는 마음도 결국 자연 의 섭리를 따르는 모양입니다. 천지의 기운이 사그라지는 가을녘에는 나직하고 느린 음악에 마음이 쏠리 지요. 하지만 이렇게 화창한 봄날에는 약동하는 리듬과 화려한 음색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그래서 떠오른 음악이 베토벤 교향곡 7번이지요. 특히 1악장과 4악장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박력 있는 리듬이 일품입니다. 듣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휘저으며 엉터리 지휘 를 하게 만들지요. 저도 가 끔 스피커 앞에서 두 손을 마구 휘저어댑니다. 7번은 그렇게, 듣는 사람의 마음을 격동시킵니다. 이 곡을 수록한 음반이 요즘 음반가게에서 꽤 팔려나간다고 합니다. 한데 그 이유가 재밌습니다. 드라마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흔히 일드 라고 줄여서 부르는 일본 드라마 한 편이, 뜻밖에도 베토벤 7번 바람 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바로 노다메 칸타빌레 라는 드라마입니다. 보셨나요? 장소는 일본의 어느 음악대학. 최고의 음악가를 꿈꾸는 젊은 음대생들의 방황과 사랑, 도전 뭐 이런 내용을 다루고 있는 드라마입니다. 내용은 좀 유치하지요. 하지만 클래식과 오케스트라를 소재로 만화를 그리고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일본문화의 넓이 는 그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7번은 이 드라마의 오프닝곡이지요. 남자 주인공 치아키가 난생 처음 포디엄에 서서, 사방에서 삑사 리 를 내는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연습하던 곡이 바로 7번이었지요. 음대의 말썽꾸러기들로 이뤄진 오케스트라는 결국 연주회를 치러냅니다. 기립박수가 쏟아지고 치아키는 유명해집니다. 또 한 명의 주인공 노다메. 며칠씩 목욕을 하지 않아 냄새를 풀풀 풍기는 데다 매사에 덜렁대기 일쑤인 여주인공 노다 메도 치아키의 열정에 자극을 받지요. 그녀는 유럽으로 유학을 떠나는 치아키와 동행하고 싶다는 일념으 로 피아노 콩쿠르에 도전합니다. 이 콩쿠르에서 노다메가 턱하니 우승을 차지했다면, 이 드라마는 아마 재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36

37 미없었겠지요. 당연히 노다메는 미끄러집니다. 하지만 동행 의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요. 세상에는 또 다른 길이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잘 생긴 치아키가 프랑스로 떠나기 직전, 일본에서 마지막으로 지휘하는 곡도 7번입니다. 듣는 이를 단박 에 흥분시키는 이 격동적인 교향곡이 드라마의 시종( 始 終 )을 장식하면서 극적 재미를 이끌어내는 셈이지 요. 7번의 파토스적 격렬함, 혹은 극적인 효과 때문인지, 실제로 이 곡은 젊은 지휘자들의 데뷔 레퍼토리 로 등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최근 LA필하모닉의 음악감독을 맡은 젊은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의 데뷔 앨범도 베토벤의 7번과 5번을 수록하고 있지요. 1813년 12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이 곡을 공개초연하던 베토벤은 지휘 도중 펄쩍 뛰어오르며 괴성을 질렀 다고 전해집니다. 아마도 4악장에서 그랬을 거라고 짐작해봅니다. 일부 비평가들은 술주정뱅이의 음 악 이라고 혹평했지만, 당시 청중의 열광은 대단했다고 하지요. 2004년 타계한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빈필을 지휘했던 1976년 년도 음반 을 권합니다. 생전의 클라이버는 레코딩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고, 당 연히 남겨놓은 음반도 소수에 불과하지요. 어떤 이들은 희소성 탓에 클라이버의 음반이 과대평가됐다 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베토벤 7번을 거론할 때 1순위로 거론되는 음반입니다. < 4악장 > [당신의 클래식]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지난 가을과 겨울, 모차르트만 내내 들었습니다. 베토벤도 말러도 브루크너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잠자리 에 들기 전에 꼭 한 곡을 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습관 탓에, 밤 11시 무렵이 되면 어김없이 앰프의 파워 버 튼을 누르곤 하지요. 오늘은 무슨 곡을 들을까? 진공관을 예열시키는 약 3~4분 동안 부지런히 LP나 CD를 뒤적거립니다. 그런데 지난 가을과 겨울, 손에 잡히는 음반은 거의 다 모차르트였습니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37

38 사연인즉슨 이렇습니다. 지난 가을 노모( 老 母 )가 뇌수술을 받았습니다. 겨울이 되자 형님이나 진배없는 선 배 한 분이 간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살다보면 어디선가 한번씩 찾아오는 강펀치를 연달아 두대 맞은 격이 었지요. 모친의 뇌수술은 4~5시간 걸리는, 만만치 않은 수술이라고 했습니다. 수술실 문앞에서 망연자실 서성이다 가 병원 바깥 벤치에 나와 앉았지요. 언제나 보이는 풍경, 바쁘게 지나치는 행인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습 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쓸쓸함과 허무가 밀려왔지요. 그 순간, 거의 무의식중에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 내 전화번호를 하나하나 입력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해보는 짓이었습니다. 왜 갑자기 전화번호를 입력할 생각을 했는지 딱히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어쨌든 손가락 끝에 신경을 집중하는 사이에 4시간이 절로 흘 러갔습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습니다. 2라운드는 곧바로 찾아왔습니다. 선배의 간에 침투한 암은 이미 손쓰기 어려울 정도로 진행됐다고 했습니 다. 형수는 살려야 한다 며 제 팔을 잡고 오열했지요.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상념이 오락가락했습니다. 최고의 명의에게 최선의 치료를 받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마인드 컨트롤이었습니다. 상상했 습니다. 햇살 따스한 봄날, 선배를 모시고 꽃 피는 등산길에 오르는 상상을 날마다 했습니다. 그렇게 머릿 속에 그렸던 희망 이 결국 현실이 됐지요. 간 절개 수술 후, 선배는 건강해진 몸으로 퇴원했고 3월부터 지금까지 가벼운 산행을 2번이나 했습니다. 삶이 괴로워서 음악을 듣는다 는 책이 있습니다. 시인이자 문화비평가, 오디오 애호가인 김갑수씨의 에세이집이지요. 그와는 20년 전부터 아는 사이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책의 제목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 더랬습니다. 삶이 괴로운 사람이 어떻게 음악을 듣는가, 라는 의문 때문이었지요. 그런데 감히 말하건대, 삶이 괴로울 때 들을 수 있는 음악도 있었습니다. 바로 모차르트였습니다. 묘한 체험이었습니다. 머릿속이 걱정과 근심으로 가득차 있던 순간, 어떤 음악도 귓속으로 들어오지 않던 시간 속에서도 모차르트의 음악만은 가슴을 파고들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가을과 겨울, 알프레드 브렌델 이 연주한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줄창 들었습니다. 칼 라이스터가 연주한 클라리넷 협주곡을 듣고 또 들었습니다. 그렇게 모차르트의 위대함 을 깨달았지요. 35년의 짧은 생을 살다 간 모차르트는 자신의 영육( 靈 肉 )을 태워 괴로움의 위안 을 지상에 남겼습니다. 비유법으로 말하건대, 그는 예수 였습니다. 모차르트가 인류에게 남긴 600여곡의 위대한 유산. 오늘은 그 중에서도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를 권합니다. 세상 떠나기 두달 전에 완성했던 유일한 클라리넷 협주곡입니다. 병고와 궁핍에 시달리던 말년의 모차르트를 도와줬던 친구, 안톤 슈타틀러를 위해 작곡했다고 전해집니다. 슈타틀러는 당대 최고의 클라리넷 연주자 였다고 하지요. 아마 당신은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 에 나왔던 2악장 아다지오 선율을 기억할 겁 니다. 제가 즐겨듣던 칼 라이스터와 베를린필하모닉( 라파엘 쿠벨릭 지휘)의 음반 은 도이치그라모폰 에서 나왔습니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38

39 [당신의 클래식]로스트로포비치 연주 드보르자크 첼로협주곡 B단조 그의 애칭은 슬라바 였지요. 풀네임은 므스티슬라프 레오폴도비치 로스트로포비치(Mstislav Leopol dovich Rostropovich). 무척 길고 발음하기도 어렵지요. 그래서인지 로스트로포비치 본인도 슬 라바 라는 애칭을 무척 좋아했다고 합니다. 슬라바는 영광 이라는 뜻의 러시아 말이지요. 지난 4월27일 저녁, 슬라바가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파리에 머물고 있는 첼리 스트 장한나와 서둘러 통화를 했지요. 그의 타계 소식을 전하는 부고( 訃 告 ) 기사를 급히 써야 했으니까요. 널리 알려진 대로 장한나는 슬라바의 애제자 가운데 한 명입니다. 잠결에 전화를 받은 장한나는 스승의 타 계 소식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통화를 끝내고 기사를 쓰면서 약간 헤맸지요. 손끝이 술술 풀리질 않았습니다. 그가 세상을 떴다는 게 왠 지 현실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음악에 빠져들었던 10대 후반 무렵부터 가장 가까이 접해온 첼리스트가 바로 그였지요.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슬라바가 연주하는 드보르자크의 첼로협주곡 B단 조 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 1985년도 녹음, 프랑스 에라토(Erato) 레이블에서 발매한 음반입니다. 일본 출신의 세이지 오자와가 지휘 하는 보스톤 심포니와의 협연이지요. 열흘 전 런던의 노팅힐 거리를 헤매다가 중고음반점에서 5파운드에 산 LP입니다. 어느덧 60을 바라보는 슬라바가 꼿꼿이 허리를 펴고 앉아 첼로를 켜고 있고, 오자와는 맞은 편에 앉아 한없이 존경스러운 시선으로 대가( 大 家 )를 바라보고 있지요. 피아노도 능숙하게 다뤘던 슬라바는 유난히 손이 컸습니다. 그의 첼로 소리는 힘이 좋고 울림이 풍부하지 요. 하지만 이 음반에서는 슬라바 특유의 박력을 찾기가 힘듭니다. 오자와의 지휘도 시원스럽게 뻗어나가 질 못합니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39

40 슬라바가 남겨놓은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 B단조 명연( 名 演 )은 따로 있지요. 69년 카라얀이 지 휘하는 베를린필과 녹음 했던, 도이치그라모폰 음반이 아마도 그것일 겁니다. 그의 나이 41살 때, 그야 말로 전성기였지요. 어떤 이들은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가 지휘한 음반 을 더 수작으로 꼽습니다. 하지 만 저는 이 녹음에서 슬라바가 보여주는 도도함과 당당함에 훨씬 마음이 끌리곤 하지요. 당시의 카라얀은 정말 대단했지요. 자타가 공인하는 음악계 최고의 권력자였으니까요. 한데 아제르바이젠 에서 태어나 러시아에서 성장한 이 40대 초반의 연주자는 대놓고 카라얀과 맞먹습니다. 1악장 시작부터 그 렇지요. 호른이 두번째 주제를 연주하고 오케스트라 총주( 總 奏 )가 끝난 다음, 드디어 등장하는 첼로 솔로 를 한번 들어보세요. 아, 그 느긋함이라니! 정말 느리지요. 당시 음악계의 황제 카라얀에게 나는 이 렇게 연주할 텐데, 당신은 어떻게 할 거야? 라고 묻고 있습니다. 소처럼 느릿한 이 운궁( 運 弓 )은, 참으로 벅찬 감흥을 전해주는 장면이지요. 이 연주에는 그렇게 한 편의 드라마가 숨어 있습니다. 슬라바는 이밖에도 숱한 명연을 남겼지요. 피아니스트 루돌프 제르킨이 84세의 고령이었을 때 함께 연주 했던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 1 2번 (DG), 영국 작곡가 벤자민 브리튼이 피아노를 맡았던 68년의 슈베 르트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데카)가 떠오릅니다. 그는 한국에도 몇 차례 다녀갔지요. 80년, 84년, 96년 으로 기억합니다. 이제 살아있는 그의 모습을 더이상 볼 수 없겠네요. 하지만 그가 있어서 오랜 세월 행복 했지요.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겁니다. 고맙게도 훌륭한 녹음을 수없이 남겼으니까요. Rostropovich - Dvorak Cello Concerto - Carlo Maria Giulini and the London Philharmonic Orchestra [당신의 클래식]슈만 교향곡1번 봄 ~ 나는 언젠가 완전히 미쳐버릴 것이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40

41 슈만은 늘 불안했을 겁니다. 그는 20대 초반이었던 1833년 무렵부터 정신병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전 해집니다. 그의 누나인 에밀리에는 이보다 8년 전에 강물에 뛰어들어 세상을 떠났지요. 슈만은 자신의 몸 속에, 스스로도 제어할 수 없는 악마 가 살고 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 불안함이 술과 여성 편력으 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지요. 일설에는 성병도 앓았다고 합니다. 매독이라는 구체적 병명까지 거론되곤 하지만, 이 설 의 진위를 확인하긴 어렵지요. 지난해 8월 음악전문지 도이치그라모폰 에 게재된 제 레미 니콜라스의 글은, 슈만의 병명을 조울증 으로 지칭하면서 흔히 주장되는 매독설은 사실과 다르다 고 적고 있습니다. 1840년은 슈만의 인생에서 단 한번 찾아왔던 화창한 봄날 이었지요. 그는 마침내 아름다운 클라라와 합법적으로 결혼했습니다. 클라라는 슈만의 스승이었던 피아노 교사 프리드리히 비크의 딸이었지요. 슈만이 스승의 집에서 클라라를 처음 보았을 때, 그녀는 고작 아홉살이었습니다. 비크는 슈만에게 피아노를 가르쳤을 뿐 아니라, 음악신보 라는 잡지를 창간해 낭만주의를 함께 설파했 던 음악적 동지 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딸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슈만과의 결혼을 극렬하게 반대 했습니다. 그러나 꼭 나이가 어려서였을까요. 결혼 얘기가 나왔을 무렵, 클라라는 이미 성년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나이 는 아마 핑계였을 겁니다. 비크는 이미 슈만의 정신적 불안 을 눈치챘던 것이지 요. 초상화로 확인할 수 있는 클라라의 미모는 정말 대단합니다. 슈만과 클라라는 법정 투쟁까지 벌여가며 결 혼에 골인했지요. 그해가 바로 1840년이었습니다. 슈만은 이듬해 2월에 교향곡 1번 봄 을 완성하지요. 봄 이라는 제목은 슈만 스스로 붙인 것입니다. 이 교향곡을 거론할 때 흔히 등장하는 신혼의 단꿈 이나 봄날의 화사함 같은 어휘는 반쪽의 진실 을 보여줄 뿐입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조증과 울증을 오가는 슈만의 불안, 현재의 행복이 언젠가 무너지고 말 것이라는 불행의 전조( 前 兆 ) 같은 것이 짙게 배어 있지요. 트럼펫의 힘찬 울림으로 막을 여는 1악장은 봄이 왔음 을 알립니다. 금관은 태양처럼 빛나고 현( 絃 )은 활기찬 리듬을 합주하지요. 목관은 나비처럼 날아다닙니다. 하지만 굵고 낮은 현악기들의 음색은 왠지 쓸 쓸합니다. 1악장 마지막의 폭발적인 고조 이후, 느리고 섬세한 2악장 라르게토(Larghetto)는 교향곡 봄 에서 가장 정제된 악장이지요. 활기 넘치는 3악장 스케르초에서 다시 나비가 춤을 추고, 마지막 4악장에서 바이올린 선율이 잘게 쪼개지면서 춤의 분위기를 이어갑니다. 목관의 음향은 마치 새의 지저귐처럼 들려오지요. 그러나 교향곡 봄 의 즐거움은 여전히 불완전합니다. 리듬은 활기차지만 색조는 어둡고, 음악적 구성 도 왠지 어수선합니다. 고전과 낭만으로 이어지는 교향곡의 역사에서 이 작품은 수작 이나 걸작 의 반열에 오를 수 없었지요. 당시의 슈만은 상처입은 영혼을 지닌 31세의 젊은이였습니다. 그의 교향적 어법 은 아직 설익은 상태였지요. 그는 44세에 라인강에 몸을 던졌고, 46세에 정신병원에서 눈을 감습니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41

42 푸르트뱅글러가 빈필하모닉을 지휘했던 1951년 실황이 역사적 명연으로 꼽힙니다. 제가 즐겨 듣는 음반은 엘리아후 인발이 뉴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70년 녹음 이지요. 푸르트뱅글러 같은 강렬함 이 느껴지진 않지만, 비교적 안정감 있는 연주에 녹음 상태도 좋습니다. 요즘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CD 중에는 네빌 마리너 경이 슈투트가르트 라디오심포니를 지휘한 음반 을 권합니다. 슈만의 교향곡 1 번부터 4번까지, 전곡이 담겼습니다. [당신의 클래식]오펜바흐 `뱃노래 인생은 아름다워 (La Vita e Bella, 1997)라는 영화를 보셨나요? 이탈리아의 로베르토 베니니가 감독과 주연을 모두 맡았던 영화였지요. 때는 1930년대 말, 유태인 귀도 는 아들 조슈아 와 함께 나 치 수용소로 끌려갑니다. 엄마 도라 는 유태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아들을 따라가지요.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은 후반부에 등장합니다. 탈출을 시도하다가 군인들에게 붙잡힌 귀도는 찰리 채플린 처럼 우스꽝스럽게 걸어가면서 쓰레기통에 숨은 조슈아에게 윙크를 보냅니다. 조슈아, 아빠는 지금 이 아저씨와 게임을 하는 중이야. 너는 끝까지 잘 숨어 있어야 해. 게임에서 1000점을 따면 진짜 탱크를 선물 로 준다고. 조슈아는 쓰레기통의 작은 구멍으로 아빠의 윙크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이지요. 알고 있어요, 아빠. 걱정하지 말아요. 이 가슴 아픈 유머의 영화는 오펜바흐가 작곡한 호프만의 이야기 가운데 뱃노래 를 두 번 들려줍 니다. 귀도가 어떤 여인에게 한눈에 반해 따라 들어간 오페라극장. 마침 극장에서는 호프만의 이야 기 가 한창 진행 중입니다. 유명한 아리아 뱃노래 가 흘러나오지요. 음악에 푹 빠져 있던 여인은 바로 도라였습니다. 그녀는 귀도와 결혼하지요. 후반부에서 또 한번 뱃노래 가 흘러나옵니다. 수용소에 갇힌 귀도와 도라는 격리되지요. 생사가 궁금한 상황입니다. 어느날 귀도는 축음기가 있는 방으로 숨어들어가 뱃노래 를 크게 틀어놓습니다. 목숨을 건 송신( 送 信 )이었지요. 수용소 곳곳에 울려퍼지는 그 아름다운 2중창은, 어딘가에 있을 아내에게 보내는 메 시지였습니다. 나하고 조슈아는 잘 지내고 있어. 당신도 버텨야 해 라는, 간절하기 이를 데 없는 기도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42

43 였지요.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도 인생은 아름답다 고 했습니다. 트로츠키는 1940년 멕시코의 코요아칸에서 스탈린이 보낸 암살자의 손에 죽음을 맞지요. 그는 죽기 직전에 남긴 유언장에서 인생은 아름답다. 훗 날의 세대들이 모든 억압과 폭력에서 벗어나 삶을 마음껏 향유하게 하자 는 글을 남깁니다. 이 마지막 글 은 연초록색 나뭇잎과 화사한 햇살, 청명한 하늘의 아름다움을 함께 예찬하지요. 혁명가로 평생을 살다가 시인의 영혼으로 마지막 순간을 맞은 셈입니다. 로베르토 베니니는 트로츠키의 유언에 착안해 이 영화를 구상했다고 전해집니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을 코미디로 만든다는 건 일종의 모험이었겠지요. 미국의 역사학자 라울 힐버그는 유럽 유태인의 절멸 이 라는 책에서 나치 학살로 인한 유태인 희생자를 510만명으로 추정합니다. 홀로코스트 백과사전 은 560~586만명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약간의 논란이 없지 않았지만, 로베르토 베니니는 이 끔찍한 비극을 웃음과 눈물의 코미디로 그려내는 데 성공했지요. 파리에서 활약했던 유태인 작곡가 오펜바흐(1819~1880)는 소규모의 희가극( 喜 歌 劇 ) 오페레타 작곡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극장을 직접 운영하기도 했던 흥행의 귀재 였지요. 그런 오펜바흐가 인생 말년 에 작품성이 뛰어난 걸작을 만들어보겠다고 마음 먹고 달려들었던 작품이 바로 호프만의 이야기 입니 다. 하지만 그는 오페라를 완성하기 직전에 눈을 감지요. 그의 사후에 18세 연하의 작곡가 에르네스트 기 로가 작곡을 마무리합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뱃노래 는 2막(3막으로 바뀌기도 함)에서 베네치아의 섹시한 아가씨 줄리에타와 호프만의 친구 니클라우스가 부르는 유명한 2중창입니다. 앙드레 클뤼탕스가 파리 국립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니콜라이 게다, 빅토리아 로스 앙헬레스,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 등 호화 배역이 포진한 EMI 음반 이 콜렉터 아이템으로 손꼽히지요.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43

44 [당신의 클래식]바그너 탄호이저 서곡 히틀러가 군중을 선동할 때도 저 스피커를 사용했대요. 방송인 황인용씨가 한쪽 벽을 채우다시피한 커다란 스피커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육중한 몸매를 드러내고 있는 그 스피커의 이름은 클랑필름(Klangfilm)입니다. 1940년대를 주름잡았던 독일산 명기( 名 器 ) 이지요. 이제 빈티지 애호가들이나 기억하는 고색창연한 이름이 됐습니다. 황인용씨가 운영하는 파주 헤이 리의 카메라타 에 가면 이 스피커를 만날 수 있지요. 가정용 스피커라기보다는, 대중이 모여들던 공공 장소에서 사용했음직한 대형 기종( 機 種 )입니다. 히틀러가 속사포 같은 선동을 쏟아내던 광장에서, 나치의 선전부 장관이었던 괴펠스가 히틀러 만세! 를 외치던 극장에서 이 스피커를 사용했을 겁니다. 물론 이 시커멓고 육중한 괴물 이 나치의 연설만 쏟아냈던 건 아닙니다. 광장이나 극장에 모인 사람들 에게 음악도 들려줬을 겁니다. 주로 바그너(1813~83 사진)의 음악이 울려퍼졌겠지요. 특히 음악극 탄호 이저 3막에 등장하는 순례자의 합창 이 빈번하게 흘러나왔을 겁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히틀러는 열렬한 바그너 숭배자였지요. 순례자의 합창 은 나치 시절에 독일 국가로까 지 사용됐던 음악입니다. 가스실로 끌려가던 유태인들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들어야 했던 숭고미 넘 치는 선율이 바로 순례자의 합창 이었지요. 역사의 저 편 으로 사라지지 않은 그 기억 때문에, 탄호이저 서곡 을 들을 때마다 공연히 마음이 불 편합니다. 클랑필름으로 바그너 음악 한번 들어볼까요? 하는 말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오려다가 쑥 들어가 버렸지요. 어떤 이들은 히틀러와 바그너가 무슨 상관이냐고 묻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취향의 문제일 뿐, 어떤 의미적 연관성은 없다는 항변이지요.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히틀러가 바그너에 푹 빠졌던 것에는 나름 의 이유가 있었지요. 바그너는 기독교에 짓눌려 이교도의 문화 로 폄훼됐던 게르만의 신화와 전설을 장대한 음악극 으로 되살려놓습니다. 작곡만 한 것이 아니라 대본까지 직접 썼지요. 이른바 독일의 후 기 낭만시대, 음악을 통해 게르만 민족주의 를 부활시켰던 작곡가가 바로 바그너였습니다. 1889년생인 히틀러는 음악을 미친 듯이 좋아했고, 바그너를 들으면서 민족적 센티멘털리즘에 젖어들었음을 부인할 수 없지요. 오페라와 음악극의 서곡 은 작품 전체를 함축합니다. 탄호이저 서곡 도 마찬가지이지요. 탄호이저 라는 이름의 기사가 사랑하고 방황하다가 구원 받는다는 줄거리를 요약해 보여줍니다. 이 음악은 모두 세 덩어리로 이뤄지지요. 먼저 3막에 등장하는 순례자의 합창 을 관악기가 주선율로 연주합니다. 이어서 현악기군이 이 주제를 받아서 연주하다가 트롬본이 등장합니다. 트롬본으로 연주되는 순례자의 합창 은 옷깃을 여미게 할 만 큼 성스럽고 장엄한 분위기를 풍기지요. 가히, 서곡의 백미( 白 眉 )입니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44

45 이어서 음악이 알레그로 템포로 바뀌면서 이른바 환락의 동기 가 등장하지요. 여신 베누스베르크의 요 염한 아름다움에 탄호이저가 유혹 당하는 장면입니다. 말하자면 정신과 육체의 분리, 성( 聖 )과 속( 俗 )의 대 비인 셈이지요. 탄호이저는 타락의 구렁텅이에서 어렵게 벗어납니다. 순결한 여인 엘리자베스의 희생 덕분 이지요. 서곡 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시 순례자의 합창 이 들려오면서 탄호이저의 방황과 타락은 구 원으로 마무리됩니다. 얼마 전 인기를 끌었던 일본 드라마 하얀 거탑 에서는 탄호이저 서곡 을 오프닝 테마로 사용했지 요. 밀로스 포먼이 연출했던 영화 래리 플랜트 에서 포르노 잡지 허슬러 의 사장인 주인공 래리 플 랜트가 법정으로 들어서는 순간, 장엄하게 울려퍼지던 음악도 바로 이 곡입니다. 제가 주로 듣는 것은 게오르그 솔티가 빈필하모닉을 지휘한 음반 입니다. 애호가들의 여러 이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꽤 들을 만한 레코딩입니다. [당신의 클래식]모차르트 레퀴엠 1791년 여름, 문밖에 서 있는 남자는 온통 시커멓습니다. 검은 가면을 쓰고 검은 망토까지 뒤집어 썼지요. 왠지 불길한 분위기를 물씬 풍깁니다. 하지만 한창 돈에 쪼들리던 모차르트는 그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 지요. 검은 가면의 사내는 가장 이른 시간에 레퀴엠 을 작곡해 달라 는 주문과 함께 선금( 先 金 )을 던져주고 사라집니다. 언제 온다는 기약도 없이, 조만간 다시 오겠다는 짧은 한마디만 남기지요. 레퀴엠 (Requiem)은 라틴어로 안식 을 뜻합니다. 신의 영광과 위엄을 찬미하면서 죽은 자의 명복을 비는 음악이지요. 검은 옷의 사내가 어느날 갑자기 찾아와 주문했던 레퀴엠 은 결국 모차르트의 유작 ( 遺 作 )이 되고 말았습니다. 모차르트는 그해 12월5일 0시55분, 레퀴엠 중에서도 가장 애통한 감정이 끓 어오르는 라크리모사 (Lacrimosa, 눈물의 날)의 작곡을 중단한 채 눈을 감지요. 그는 이 곡의 여덟번 째 마디까지 써놓고 영원히 펜을 내려놓습니다. 지금 우리가 듣는 레퀴엠 은 모차르트의 제자였던 쥐 스마이어(Suessmayer)가 후반부를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45

46 밀로스 포먼이 연출했던 1985년도 영화 아마데우스 는 모차르트의 죽음이 바로 이 레퀴엠 과 상당 히 관련돼 있음을 암시합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영화 이전에 연극 아마데우스 를 먼저 떠올리는 것 이 순서겠지요. 에쿠우스 로 유명한 영국의 극작가 피터 셰퍼가 대본을 쓴 이 연극은, 오랫동안 세간을 떠돌았던 모차르트 독살설 을 모티브로 삼고 있지요. 밀로스 포먼의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날 사 신( 死 神 )처럼 모차르트를 찾아왔던 검은 남자, 연극과 영화는 그를 당대 최고의 작곡가로 군림했던 살 리에르(1750~1825)의 하수인으로 묘사합니다. 살리에르는 검은 남자 를 모차르트에게 보내기에 앞서 하녀 로 위장한 스파이를 먼저 투입하지요.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드는 누가 급료를 주는지도 모르는 하녀를 집안에 들일 수 없다며 반대하지만,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는 공짜로 하녀를 쓸 수 있게 됐다고 좋아하며 살림을 떠맡깁니다. 그녀는 시아 버지와 대판 싸움까지 벌이지요. 물론 영화 속의 얘깁니다. 모차르트는 서양음악사에 기록된 불멸의 작곡가들 중에서 첫번째 프리랜서 였지요. 그는 권력자 밑에 서 굽실거리며 일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이것은 대단히 의미있는 사건 이었지요. 영화 아마데우 스 는 모차르트의 천재성과 당돌함뿐 아니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몸이 부서져라 일했던 작곡 노동자 모차르트의 모습을 부각시킵니다. 독살설 을 영화로 구성했음에도, 실제로 모 차르트를 죽음으로 몰고갔던 시대와의 불화, 혹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극심한 노동을 간과하지 않지요. 영화의 후반부, 모차르트의 장례식은 초라합니다. 공동묘지에 폭풍우가 몰아치고, 인부들은 커다란 보자기 에 담긴 시신을 그대로 구덩이에 던져 넣지요. 그 위로 하얀 석회가루가 뿌려집니다. 폭풍우치는 소리와 함께 모차르트 최후의 걸작 레퀴엠 이 장엄하게 울려퍼지지요. 영화 속에서 죽음을 사주했던 인물로 지목되는 살리에르는 이탈리아 출신의 작곡가입니다. 당시 오스트리 아 빈의 궁정악장이었지요. 베토벤, 리스트 등에게 음악을 가르쳤던 스승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베토벤은 살리에르 앞으로 당신의 제자 베토벤 이라고 밝힌 짧은 편지를 남기기도 했지요. 검은 사 내 는 프란츠 폰 발제크 백작의 심부름꾼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죽은 아내의 1주기에 맞춰, 레퀴엠 을 자신이 작곡한 것처럼 연주할 요량이었다고 하지요. 저작권 개념이 미비했던 당시엔 충분히 가능한 일이 었습니다. LP시절의 명반으로는 브루노 발터가 뉴욕필하모닉과 웨스트민스터 합창단을 지휘한 56년도 녹음(CBS)이 꼽힙니다. 하지만 이 녹음은 모노럴입니다. 스테레오로 녹음된 왕년의 명반으로는 칼 뵘이 빈필하모닉 과 빈국립오페라합창단을 지휘한 71년도 녹음 (DG)이 꼽히지요. 몇년 전부터는 지휘자 아르농쿠르 가 당대연주로 되살려 놓은 레퀴엠 이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 스 오케스트라와 성 토마스 교회 합창단이 지난해 연주했던 실황음반(RONDEAU)도 최근의 수작( 秀 作 )이 지요. 며칠 전 국내에서도 발매됐습니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46

47 John Eliot Gardiner conducts the English Baroque Soloists and the Monteverdi Choir [당신의 클래식]드뷔시 달빛 무성했던 잎들은 사라져버리고, 아름다움은 백설에 덮여버렸네. 도처에 불모가 휩쓸고 가네. 셰익스피 어는 리어왕 에서 늙음에 대해 그렇게 묘사했지요. 지난 5일 서울 호암아트홀에서도 이 글귀가 머릿속 에 어른거렸습니다. 올해 74세의 피아니스트 타마슈 바샤리. 그는 힘겹게 무대로 걸어 나왔습니다. 허리는 굽었고 몸은 한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어딘지 불안해 보이는 모습이었지요. 객석은 청중으로 가득 찼습니다. 쇼팽의 음악을 즐겨 듣던 지금의 40, 50대들은 바샤리의 명성을 여전히 기억하지요. 1970년대에 성음에서 라이선스로 발매됐던 도이치그라모폰의 음반, 바샤리가 쇼팽의 녹턴 과 발라드 를 연주했 던 이 음반은 불티나게 팔렸던 베스트셀러였지요. 그런 바샤리가 피아노 앞으로 위태롭게 걸어나와, 바로 그 음악, 쇼팽의 피아노곡들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곡은 환상 폴로네이즈 였지요. 이어서 발 라드 와 마주르카, 녹턴 과 스케르초 였습니다. 실연( 實 演 )으로 처음 만난 바샤리의 연주였지요. 하지만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어느덧 늙어버린 그의 육신 은, 청중이 기대했던 노련하고 섬세한 음악성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연주 는 결국 해석과 기 교의 만남이고 정신과 육체의 합일인 셈이지요. 하지만 아쉽게도 바샤리의 신경은 무뎌진 듯했고 손가락 도 적잖이 굳은 것 같았습니다. 노쇠한 육신이 억지로 건반 위를 달려나가다 미스 터치가 튀어나오기 도 했지요. 1부 연주가 끝나고 로비에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한 후배 기자는 마음이 아프다 고 말했지요. 저 역시 그랬습니다. 마음이 아플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안타깝고 답답한 심정은 마찬가지였지요. 2부에서 연주된 프렐류드 전곡을 들으면서 답답함은 점점 커졌습니다. 노장( 老 將 )은 지쳐 보였고 연주는 계속 위태로 웠습니다. 차라리 연주가 빨리 끝나기를 기다렸지요. 아, 나이듦이란 저런 것이구나, 그가 한국에 오지 않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47

48 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런 잡생각들이 오락가락하면서, 피아노 소리에 신경을 집중하기 어려웠습니 다. 그러다가 마침내 바샤리가 마침표를 찍었을 때, 피아노의 여음이 채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저는 한 숨을 내쉬었지요. 거기서 모든 게 끝났다면 오늘 이 글을 쓸 일은 없었을 겁니다. 그래요. 바샤리의 연주가 별로 만족스럽진 못했지만, 청중은 그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바샤리는 고개를 몇 번 끄덕거리면서 깊이 허리 숙여 청중에게 인사했지요. 건강이 별로 좋아보이지 않는 그는, 인사하는 자세조차 위태로웠습니다. 그는 몇 번 인가 무대로 걸어나와 허리를 숙였고 마침내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지요. 드디어 바샤리의 첫번째 앙코르 곡이 흘러나왔습니다. 바로 드뷔시의 달빛 이었지요. 10m 앞에서 바라봐도 덜덜 떨리는 모습이 감지되 던 그의 손가락 끝이 달빛 을 부드럽게 훑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청중의 응원에 고무된 것일까요? 내 내 위태로웠던 바샤리의 섬세한 피아니즘이 드디어 살아나고 있었습니다. 달빛의 잔잔한 파문( 波 紋 )이 번 져나가면서 연주회장을 고즈넉이 감싸안기 시작했지요.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드뷔시의 초기 작품인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의 세번째 곡 달빛. 이 곡은 테크닉적으로 어렵진 않지요. 하지만 음악적 뉘앙스를 살려내는 게 만만치 않습니다. 안단테 템포로 흘러 가는 느리고 조용한 곡이지만, 창가에 내려앉은 달빛의 은은한 시정( 詩 情 )을 오롯이 표현해야 하는 음악이 지요. 헝가리 태생의 노장 피아니스트 타마슈 바샤리에게, 그날 앙코르로 연주한 달빛 은 더없이 어울 리는 선곡이었습니다. 바샤리가 드뷔시의 피아노곡들을 연주해 음반으로 내놓은 것은, 그의 나이 36세였던 1969년이었지요. 도이 치그라모폰에서 나왔습니다. 달빛 이 포함된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외에 두 개의 아라베스크 도 담겨 있지요. 특히 아라베스크 1번 은, 이제 클래식에 막 눈 떠가는 당신도 익히 잘 알고 있는 곡입니 다. Fantasia ~ Walt Disney [당신의 클래식]슈만 피아노협주곡 a 단조 지난 4월, LG아트센터에서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 (66)를 처음 봤습니다. 1994년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와 내한했던 이후, 13년만에 찾아온 피아노의 여제( 女 帝 ) 라며 꽤나 떠들썩했던 연주회였지 요. 하지만 이 화제의 연주회 는 좀 싱겁게 끝났습니다. 한일문화교류 차원에서 마련됐던 그 연주회에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48

49 서, 아르헤리치는 그저 원 오브 뎀 이었을 뿐이었지요. 일본의 피아니스트 이토 교코와 비올리스트 가 와모토 요시코, 한국의 정명화, 이성주 등 여러 연주자들이 그 연주회의 주인공이었습니다. 많은 사람 들이 기대했던 아르헤리치만의 무대 는 아니었던 것이지요. 지금 제 손에는 아르헤리치의 DVD 한 장이 들려 있습니다. 지난해 6월 1~2일, 독일 라이프치히의 유서깊 은 연주회장, 게반트하우스(Gewandhaus)에서 공연했던 실황입니다. 리카르도 샤이가 지휘하는 게반트하 우스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었지요. 최근 국내에 라이선스로 출시된 이 DVD는, 영상으로 접할 수 있는 아 르헤리치의 최신 연주입니다. 게다가 레퍼토리가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 a단조. 그야말로 군침이 돌만 하지요. 이 곡은 아르헤리치의 대표 레퍼토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녀는 그동안 바츨라프 노이만, 세르지 우 첼리비다케,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마이클 틸슨 토마스 등 많은 지휘자들과 이 곡을 레코딩했지요. 리카르도 샤이와는 벌써 두번째 녹음입니다. 샤이는 솔리스트를 충분히 배려하지요. 이번 녹음도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르헤리치가 주도하는 연주라고 봐도 무방할 성싶습니다. 아르헤리치의 파워 는 젊은 시절에 비해 다소 주춤하지만, 그래도 당당한 보무( 步 武 )는 여전합니다.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지금의 아르헤리치 가 더 좋을 수도 있겠지요. 50년 관록에서 우러나오는 넉넉함과 여유로움을 겸비했으니까요. 20세기 전반기에 활약했던 탁월한 피아니스트 에드윈 피셔(1886~1960)는, 슈만 음악의 요체를 비감( 悲 感 ) 의 그늘 과 축제의 불꽃 으로 묘파합니다. 슈만이 남긴 유일한 피아노 협주곡인 a단조 는 이 두 개의 대립항이 뜨겁게 몸을 섞는 음악이지요. 특히 1악장이 그렇습니다. 관현악과 피아노의 강렬한 서주 ( 序 奏 )로 음악의 문이 열리자마자, 오보에가 뽑아내는 첫번째 주제가 쓸쓸하고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가 능하다면 당신은 이 단순하고도 슬픈 선율을 입속으로 몇번쯤 되뇌이는 게 좋습니다. 잠시 후 클라리넷이 연주하는 두번째 주제도 첫번째 주제와 비슷하게 흘러가지요. 피아노와 관현악은 이 두 개의 주제를 계속 해서 변형하고 발전시킵니다. 그렇게 격렬하게 불타오르던 음악이 어느 한 순간 잦아들지요. 그 순간부터 음악은 안단테 로, 즉 느 리게 의 속도로 흘러갑니다. 그 템포의 변화가 확연해서 당신도 금새 감지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전개 부 로 들어선 것이지요. 피아노, 클라리넷, 플룻이 한데 어울려 느린 속도로 주제를 다시 연주합니다. 마 치 한 편의 시처럼 흘러가는 이 부분은, 슈만 음악의 서정성을 톡톡히 맛볼 수 있는 명장면 이지요. 재현부 로 들어서면서 피아노는 다시 격렬해집니다. 이 격렬함은 1악장 종지부로 달려가면서 알레그 로 몰토 (Allegro Molto)로 더욱 급박하게 템포를 밀어붙이지요. 에드윈 피셔의 어법을 또 빌리자면, 1악 장 마침표는 축제의 제단에서 산화하는 불꽃을 닮았습니다. 아름답고 장렬하며, 동시에 허무한 뒷맛을 남 기지요. 점점 클래식에 눈 떠가는 당신은, 세 개의 악장을 한꺼번에 듣는 것보다 1악장을 몇번 반복하는 게 더 좋 을 것 같습니다. 잔잔하게 흘러가는 2악장은 평화로운 목가풍( 牧 歌 風 )이고, 마지막 3악장은 빠르고 리드미 컬하지요. 1악장의 진미( 珍 味 )를 톡톡히 맛본 후 2, 3악장으로 넘어가면 음악의 윤곽이 더욱 또렷해질 겁니 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49

50 Lipzig Gewandhaus Orchestra - Riccardo Chailly Tilson-Thomas/SFSO [당신의 클래식]푸치니 `공주는 잠 못 이루고 ' - 승리의 아리아 네쑨 도르마 - 며칠 전이었습니다. 폴 포츠 라는 36세 영국 남자가 인터넷에 화제로 떠올랐습니다. 그는 휴대전화 판매원 이었지요. 한눈에 봐도 세련됨 과 거리가 멀어 보였습니다. 옷차림은 후줄근했고 배가 볼록 나온데다가 치열마저 둘쭉날쭉했지요. 말투도 어눌했습니다. 그런데 이 남자는 브리튼스 갓 탤런트 (Britain s Got Talent)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하루 아침에 유명해졌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아마추어들의 노래 경연장입니다. 예선부터 결선까지 모두 3회에 걸쳐 실력을 겨루는 영국 ITV의 인기 프로그램이지요. 예선은 14일에 있었습니다. 촌스러운 폴 포츠가 주눅든 모습으로 무대에 올라오자 관객과 심사위원들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지요. 세 명의 심사위원 가운데 아만다라는 여성 심 사위원이 뭘 할 거예요? 라고 묻습니다. 잔뜩 긴장한 폴 포츠의 입에서 오페라를 부르겠습니다 라 는 대답이 어눌하게 흘러나오지요. 오페라? 브리튼스 갓 탤런트 는 주로 팝을 부르는 프로그램입니다. 게다가 후줄근한 외모의 아저 씨 가 오페라를 부르겠다고 더듬거리며 말하자 심사위원들은 다들 황당하고 가소롭다는 표정을 짓습니 다. 경연 참가자들에게 독설을 퍼붓기로 유명한 심사위원 사이먼 코웰이 가소롭다는 듯이 어디 한번 해 보세요 라고 한마디 툭 던지지요. 스튜디오의 분위기는 삽시간에 반전( 反 轉 )됩니다. 폴 포츠가 네쑨 도~르마, 네쑨 도~르마 하면서 푸치 니의 투란도트 중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 의 첫 부분을 노래하자마자 심사위원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독설가 사이먼 코웰은 이럴 수가! 라는 표정으로 폴 포츠를 바라보지요. 객석 에서도 난리 가 납니다. 아리아가 클라이맥스로 접어들면서 빈체로, 빈체~로!(승리하리라!) 하는 순간 관객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질러대지요. 어떤 관객들은 벅찬 감동에 눈물 을 흘리기까지 합니다. 그야말로 편견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지요. 성악가가 되고 싶었지만 종양과 교통사고로 꿈을 접었다는 휴대 전화 판매원 폴 포츠. 늘 자신감이 부족했다는 그는 준결승에서 안드레아 보체리의 히트곡 타임 투 세이 굿바이 를 부릅니다. 결승에선 공주는 잠 못 이루고 를 다시 부르지요. 1등을 차지한 그는 상금 10만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50

51 파운드(약 1억8000만원)를 받았고, 영국 여왕이 주최하는 2007 로열 버라이어티 퍼포먼스 에 출연하게 됐습니다. 네티즌들은 UCC 동영상을 부지런히 퍼날랐지요. 처음 이 동영상을 봤을 때 혹시 연출일지도 모른다는 우 려가 잠깐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하지만 폴 포츠의 간절하고도 긴장된 표정, 특히 1등으로 호명되던 순간 에 그의 눈에 맺히던 이슬이 잠시의 의심을 거둬갔지요. 그가 불렀던 네쑨 도르마 는 푸치니의 투란도트 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아리아입니다. 남자 주인공 칼라프가 3막에서 부르는 승리의 아리아 이지요. 직역하자면 누구도 잠들지 못하리 라는 뜻이지만 대개 공주는 잠 못 이루고 로 번역합니다. 칼라프는 모험심이 많은 데다 권력을 향한 욕망도 큰 인물이 지요. 그는 투란도트 공주가 낸 세 개의 수수께끼에 도전합니다. 세 개를 모두 맞히면 공주를 아내로 맞아 들이고 왕국을 차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라도 틀리면 죽음이지요. 칼라프는 3막이 열리자마자 나는 공주를 차지할 것이다. 아침이 되면 승리자가 될 것이다 라고 확신에 차서 노래합니다. 네쑨 도르마 는 루치아노 파바로티 를 떠올리게 하는 노래이기도 하지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때 로마에서 열렸던 3테너의 콘서트. 주빈 메타가 지휘했던 이 콘서트의 실황 음반은 불티나게 팔린 베스 트셀러였지요. 물론 이 무대엔 플라시도 도밍고도 있었고 호세 카레라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파바로티가 부른 네쑨 도르마 야말로 압권이었지요. 그는 지난 2월 토리노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도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상업적 성악가라는 비판에도 불구 하고 파바로티가 뛰어난 테너라는 사실을 부정하긴 힘들지요. 그는 현재 암과 싸우고 있습니다. 이제 막 클래식에 눈 떠가는 당신은 오페라 투란도트 전곡 음반보다는 파바로티의 앨범으로 네쑨 도르 마 를 접하는 게 더 유용할 것 같습니다. [당신의 클래식]토스카니니 삶과 예술 ( 上 ) - 생은 괴팍했고 지휘는 완벽했다- 이탈리아 중 북부에 파르마 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밀라노보다 조금 아래쪽입니다. 스탕달이 말년에 썼던 소설 파르마의 수도원 (1839)의 배경이지요. 이 소설은 파브리스 라는 남자 주인공의 굴곡진 인생을 묘사하면서 당대 사회상을 함께 그려냅니다. 특히 파브리스의 변화무쌍한 사랑 이야기는 소설 읽는 재미를 톡톡히 맛보게 해주지요. 파브리스는 스탕달이 연애론 (1822)에서도 강조했던 솔직한 열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51

52 정 으로 똘똘 뭉친 남자입니다. 적과 흑 (1930)의 주인공 줄리앙 소렐과도 비슷하지요. 순수하고 열정 적이지만, 무모하고 이기적인. 20세기의 거장 으로 불리는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가 바로 이곳 파르마 태생입 니다. 그는 소설 속의 파브리스처럼 정말 대책없이 뜨거운 사람이었지요. 이를테면 성질을 있는 대로 부리며 지휘봉을 부러뜨린다거나,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심하게 타박하면서 악보를 집어던지는 행동을 일 삼았습니다. 한번은 단원 가운데 한 명이 날아온 지휘봉에 눈이 찔려 상처를 입기도 했지요. 어디 그뿐인 가요. 그는 마음 내키면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다가도, 심사가 뒤틀리면 인상을 팍 쓰고 묵묵부답이기 일쑤였습니다. 언론과의 인터뷰는 당연지사 거절이었고, 맘에 안드는 작곡가나 지휘자를 함부로 욕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지요. 리스트를 진지하지 못하고 모양이나 부리는 인간 이라며 비난했고,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에 대해서는 바보, 무식쟁이들이나 좋아하는 오페라 라며 으르렁댔습니다. 당연히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했겠지요. 특히 가족, 그 중에서도 토스카니니를 평생 내조했던 아내 카를 라 는 항상 노심초사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양반, 정말 심각한 가부장( 家 父 長 ) 이었지요. 아내는 평생 한 명이어야 하지만 애인은 많을수록 좋다 가 그의 지론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내 카를라의 극진한 내조를 받으면서 유명한 스캔들을 몇 개나 터뜨렸지요. 그렇지만 저는 토스카니니를 비난할 수가 없습니 다. 음악가 토스카니니 에 대한 평가는 그의 괴팍했던 성품이나 이기적이었던 일상과 별개로 이뤄져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 평가의 잣대 가운데 하나는 올바른 정치적 선택이었고, 또 하나는 음악적 완 벽주의였지요. 토스카니니의 솔직한 열정 은 괴팍함이나 이기심으로 나타나기도 했지만, 독재자 무솔리니에 대한 불굴의 저항 으로 표출되기도 했습니다. 지휘봉을 든 예술가가 총칼 을 접수한 권력자에게 대드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겠지요. 하지만 토스카니니는 이탈리아 라 스칼라 의 지휘자로 재임했던 15년 동안 한번도 죠비네차(Giovinezza, 청년) 를 연주하지 않았습니다. 이 노래는 당시 파시스트의 당가( 黨 歌 )였지요. 베르디의 오페라 팔스타프 를 공연하던 중, 파시스트 당원들이 죠비네차 를 연주하라고 고함치자 토스카니니는 아예 지휘봉을 꺾어버리고 무대 뒤로 사라졌습니다. 푸치니의 투란도트 를 초연했던 1926년 4월15일, 라 스칼라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졌지요. 극장 안에서는 토스카니니가 끝까지 죠비네차 를 거부하며 오페라를 지휘했고, 분기탱천한 무솔리니는 극장 밖에 거 대한 군중을 모아놓고 비가 퍼붓는 가운데 선동연설을 펼쳤습니다. 예술과 권력의 한바탕 격전( 激 戰 )이었 지요. 이 치열한 전투 가 가능했던 것은 그곳이 바로 이탈리아 였기 때문입니다. 무솔리니가 당대의 권력자였다면 토스카니니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오페라 대통령 이었지요. 물론 무솔리니는 맘만 먹으 면 토스카니니를 죽일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민심과 세계 여론이 두려웠겠지요. 1929년 토스카니니는 결국 라 스칼라의 지휘봉을 내려놓습니다. 그 후 무솔리니와 파시스트가 무너질 때까 지 조국 이탈리아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지 않지요. 이후의 주무대는 뉴욕이었습니다. 1931년 잠시 귀국했 다가 볼로냐에서 파시스트 당원들에게 테러를 당한 후, 그 거부 의 마음은 한층 굳어졌지요. 이른바 음악적 객관주의, 주관적 착색( 着 色 ) 없이 있는 그대로의 음악 을 전달해야 한다는 토스카니니의 신념에 대해서는 다음주에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52

53 Beethoven Symphony #5 - Toscanini & Furtwangler [당신의 클래식]토스카니니 삶과 예술 ( 下 ) - 신념이자 지론 악보 그대로 연주하라 - 토스카니니와 푸르트벵글러 는 한 시대를 동시에 질주한 쌍벽( 雙 壁 )이었지요.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넘 었지만, 두 사람의 이름은 여전히 어떤 권위 의 상징입니다. 토스카니니는 1867년 이탈리아 파르마에서 태어나 1957년 세상을 떴고, 푸르트벵글러는 1886년 독일 베를린에서 출생해 1954년 눈을 감았지요. 이 두 거장이 20세기 전반기의 지휘계를 양분했다는 것에 적잖은 사람들이 동의합니다. 그런데 음악적 태도와 지 휘 스타일은 사뭇 달랐지요. 푸르트벵글러는 자신의 음악을 흘러가는 강물 에 비유하곤 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가 남긴 음악 을 듣노라면, 분명히 강물의 흐름 같은 것이 느껴지지요. 푸르트벵글러는 이 막힘없는 흐름이야말로 시간 예술의 요체( 要 諦 )라고 여겼던 듯합니다. 흐르면서 움직여라, 그것이 곧 살아있는 것이다 라는 관점이 지요. 그래서 그의 음악은 때로 급류처럼 휘몰아치다가 때로는 아주 느릿하게 흘러갑니다. 이 극단적이면서도 절묘한 완급의 배합이야말로 푸르트벵글러 음악의 매혹 포인트이지요. 요즘 유행하는 말을 잠시 빌리자면 강렬한 포스(force)가 느껴지는 음악을 들려줍니다. 물론 그 때문에 낭만성이 지나치다거나 주관적이라는 비판도 가끔 받지요. 토스카니니는 그 대척점에 서 있습니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악보대로 연주하라 는 것이 그의 지론 이었습니다. 그의 음악적 출발점이자 종착점은 언제나 악보 였지요. 연주는 재현이 아니라 재창 조 라고 강조했던 푸르트벵글러와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다릅니다. 푸선생 이 감성과 직관을 따랐다면 토선생 은 이성과 논리의 음악을 들려줬지요. 이른바 즉물주의 ( 卽 物 主 義 ), 있는 그대로 연주하라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습니다. 음악의 템포를 자의적으로 변경하는 것은, 적어도 토스카니니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요. 그래서 헝가리 출신의 지휘자 조지 셸(1897~1970) 은 (토스카니니는) 한 세대의 지휘자들이 숱하게 범한 제멋대로의 해석을 바로잡아 놓았다 고 평하기 도 했습니다. 이 엄정한 객관주의는 토스카니니의 음악이 건조하거나 딱딱할지도 모른다는 선입견을 부채질하기도 합니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53

54 다. 하지만 결코 그렇진 않지요. 그의 고향인 파르마는 이탈리아에서도 오페라 귀명창 들이 많기로 유 명했던 곳이었습니다. 성악가들이 이곳에서 공연하는 걸 가장 겁냈다고 전해집니다. 토스카니니는 이 고향에서 노래의 세례를 흠뻑 받으며 성장했지요. 그는 현악이든 관악이든 모든 연주자 들에게 노래하라 고 주문하곤 했습니다. 다만 네 멋대로 하지 말라 는 것이었지요. 실제로 그의 지 휘에는 탄력과 리듬감이 넘칩니다. 또 낭만주의 해석자들이 길게 늘여놓은 음악을 원상 복구시켜놓은 까 닭에 오히려 음악의 템포가 빠르게 느껴집니다. 그의 지휘봉은 길었습니다. 47cm의 지휘봉을 애용했지요. 성질이 불 같았기 때문에 부러뜨리기 좋은 긴 지 휘봉을 좋아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어쨌든 오버 액션을 경멸했던 토스카니니의 지휘폼은 상당히 경제적이 지요. 특히 그의 왼손은 윗옷의 두번째 단추를 거의 붙잡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무뚝뚝한 왼손 과 긴 지휘봉을 든 오른손이 동시에 올라가는 순간, 마침내 음악은 남성적 기백과 박력을 당당하게 뿜어내 지요. 소니비엠지가 국내에 유통하고 있는 토스카니니, 더 마에스트로 (RCA)라는 DVD는 그의 삶과 음악을 이해하는 데 꽤 도움이 되는 영상자료입니다. 특히 토스카니니가 말년을 함께 보낸 NBC오케스트라 단원 들이 마에스트로와의 추억을 회상하는 장면이 감동적이지요. 어느덧 80세 무렵의 노인이 된 그들이 눈가 에 이슬이 맺힌 채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아, 그는 정말 무서웠어요. 폭군이었죠. 하지만 존경할 수밖 에 없는 거인이었어요. [당신의 클래식]므라빈스키 에디션 - 정중동 지휘봉의 카리스마 음악깨나 듣는다는 사람치고 구소련의 국영 레이블 멜로디야 (Melodiya)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지 요. 예프게니 므라빈스키와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와 레오니드 코간, 피아니스트 에밀 길렐스와 타티아나 니콜라예바. 수많은 음악의 거장들이 멜로디야의 목록을 빛냈습니 다. 특히 냉전 논리가 팽팽했던 20여년 전, 멜로디야의 원반( 原 盤 )은 한국 애호가들에게 호기심 어린 컬렉 션의 대상이었지요. 1980년대 후반으로 기억합니다. 소비에트의 붕괴가 빠르게 진행되던 그 시절에 음반 외판원 한 분이 사무 실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전집류 책이나 음반을 가가호호 찾아다니며 할부로 팔던 시절이었지요. 머리가 살짝 벗겨진 쉰살쯤 돼 보이는 그분이 제 앞에 CD 카탈로그를 좌악 펼쳐놓았습니다. 바로 거기에 40장으 로 이뤄진 멜로디야 전집이 떡하니 버티고 있더군요. 멜로디야의 음원을 일본 빅터가 CD로 리마스터링한 전집이었습니다. 저는 결국 낚이고 말았지요. 요즘 유 행하는 말로 하자면 지름신 이 강림( 降 臨 )했던 겁니다. 지휘자 므라빈스키가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을 이 끌고 연주한 차이코프스키와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은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유혹 이었지요. 가격이 자그마치 65만원. 한 학기 대학등록금이 100만원 조금 넘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마치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냥 지르고 말았지요.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54

55 예프게니 므라빈스키(1903~88)는 구소련을 대표했던 상징적 지휘자입니다. 1938년 소비에트연방 지휘자 대 회에서 우승하면서, 최정예 연주자들로 구성된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의 수장으로 단숨에 임명되지요. 그로 부터 50년 동안 그는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 오케스트라의 지휘봉을 놓지 않았습니다. 키가 훌쩍 크고 몸매가 호리호리한 그는 정중동( 靜 中 動 )의 지휘 폼을 갖고 있었지요. 두 손은 웬만해선 가 슴 위로 올라가지 않습니다. 때로는 손목만 까딱까딱 한다든가, 아무 동작없이 눈빛만으로 지휘하기도 하 지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 긴 팔로 오케스트라의 사운드를 확 터주는 커다란 포물선을 그려냅니다. 번 쩍 치켜올라간 지휘봉이 위에서 아래로 직각으로 내리꽂히는 모습도 짜릿하지요. 부드러운 곡선과 절도 있는 직선의 교차. 그야말로 절묘한 음양( 陰 陽 )의 배합입니다. 8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므라빈스키와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의 많은 음반들이 국내에 소개됐습니다. 하 지만 네덜란드의 브릴리언트 가 최근 발매한 므라빈스키 에디션 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음반 입니다. 46년부터 87년 사이에 이뤄진 실황을 10장의 CD에 차곡차곡 담은 이 전집은 므라빈스키의 음악적 생애를 오롯이 관통하지요. 모두 31곡. 차이코프스키와 쇼스타코비치, 글라주노프 등의 러시아 작곡가들을 비롯해 모차르트, 베토벤, 바그너, 드뷔시, 바르토크에 이르기까지 동서고금의 레퍼토리를 넘나들고 있습 니다. 므라빈스키가 사랑했던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모두 6곡이 담겼습니다. 특히 교향곡 5번 은 생전의 므 라빈스키가 즐겨 연주했던 곡 가운데 하나지요. 여든살을 눈앞에 둔 82년 실황. 므라빈스키 스스로가 더 이상 손볼 곳이 없다 고 자부했던 연주입니다. 브릴리언트의 므라빈스키 에디션 에서 아쉬운 부분은 딱 하나지요. 수록된 31곡 중 일부는 음질이 과 히 좋지 못하다는 겁니다. 하지만 수십년 전의 실황녹음을 해상도 라는 기준으로 평하는 것은 적절치 못한 듯합니다. 게다가 저렴한 종이 케이스를 사용하는 등 일체의 거품을 뺀 브릴리언트의 착한 가 격 이야말로 이 전집의 머리를 쓰다듬게 만드는 미덕입니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55

56 Evgeny Mravinsky - Tchaikovsky 5th symphony 1st mov [당신의 클래식]정경화 협주곡 음반들 한국 출신 연주자들 가운데 기억나는 사람은? 유럽이나 일본으로 출장을 가서 음악깨나 듣는다는 선수 들을 만나면 이런 질문을 곧잘 던집니다. 가장 많이 듣는 답변은 바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 화 입니다. 열에 일곱은 이렇게 답하지요. 압도적인 빈도입니다. 지난 4월 영국 런던의 음반가게 해롤드 무어스 (Harold Moors)에 들렀을 때도 그랬습니다. 70살쯤 돼 보이는 주인장은 1970~80년대 데카 에서 내놓았던 정경화의 바이올린 협주곡 음반을 죄다 꺼내 놓았습 니다. 그는 싱글벙글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웠지요. 그리곤 이렇게 외쳤습니다. 원더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명실상부한 월드 스타 입니다.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 그녀가 내년이 면 벌써 60살. 세월이 빠르지요. 검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서양인들을 매료시켰던 현( 絃 ) 위의 열정 이 바로 엊그제 같습니다. 당시 서양인들은 스물을 갓 넘긴 그녀의 날카롭고 정확한 운궁( 運 弓 ), 무대를 가득 채우던 신들린 듯한 에너지에 매료되었지요. 70년 영국 런던의 로열페스티벌홀에서 있었던 유럽 데뷔 무 대. 앙드레 프레빈이 지휘하는 런던심포니와 차이코프스키의 협주곡 D장조 를 끝내자 대부분의 청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섭니다. 그날 쏟아진 기립박수는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지요. 음반사 데카 (Decca)가 이 보물 을 놓칠 리 없었습니다. 정경화는 무대에서 선보였던 차이코프스키 와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데카의 스튜디오에서 다시 연주합니다. 이 녹음은 이듬해 음반으로 세상에 나오지요. 앙드레 프레빈은 어린 정경화를 충분히 배려하면서도 박력 넘치는 사운드를 끌어냅 니다. 정경화도 밀리지 않지요. 후에 술회했듯이 거기서 밀리면 끝 이니까요. 유럽과 미국 매스컴이 동양의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56

57 마녀 라고 불렀던 22살 정경화의 뜨겁고 절박한 숨결이 오롯이 담긴 음반입니다. 저는 여기에 수록된 두 곡 가운데 차이코프스키보다는 시벨리우스의 D단조 를 즐겨 듣습니다. 정경화가 연주한 차이코프스키의 D장조 를 듣고 싶을 땐 81년 리코딩을 꺼내들지요. 이 역시 데카에서 나왔습니다. 이 음반은 그동안 정경화가 세상에 내놓은 리코딩 가운데 전문가들이 첫 손가락에 꼽는 수작 ( 秀 作 )이지요. 샤를르 뒤트와가 지휘하는 몬트리올 심포니와의 협연. 멘델스존의 E단조 가 함께 수록돼 있습니다. 그녀의 나이 33세. 절정에 이른 기량을 뿜어내지요. 음반 전문지들은 이 음반에 수많은 별을 던집니다. 그라모폰 클래식 CD CD 리뷰 스테레오 리뷰 오베이션 등 전문지가 모두 별 5개를 안기지요. 각국의 음반 평점 데이터를 종합한 클래식 CD 월드 베스트 가이드 (97)는 이 음반을 준( 準 )명반 (Best Performance)으로 규정합니다. 준명 반 도 쉽게 오를 수 있는 고지가 아니지요. 1923년부터 95년까지, 7만여장의 음반을 분석한 이 방대한 자 료집은 1만장에 가까운 괜찮은 놈들 을 추려냅니다. 그중에 준명반의 반열에 오른 것은 어림잡아 2~3% 정도에 불과하지요.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정경화의 연주를 꼽을 때 브루흐의 1번 G단조 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녀는 이 서정미 넘치는 협주곡을 두 번 녹음했지요. 첫번째는 73년 데카 리코딩. 루돌프 켐페가 지휘하는 로열필하모닉과의 협연입니다. 두번째 녹음은 50대에 접어든 90년 리코딩이지요. 데카를 떠나 EMI에서 내놓은 음반입니다. 베토벤의 협주곡 D장조 를 함께 연주했지요. 클라우스 텐슈테드가 지휘하는 로열 콘체르트헤보와의 협연. 차분한 품격이 느껴지는 이 연주 에도 호평이 쏟아집니다. 그라모폰 팡파레 스테레오 리뷰 등에서 망설임없이 별 5개를 안기 지요. 이 음반 역시 준명반 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저는 20대의 팽팽한 에너지가 전해지는 73년 녹음을 즐깁니다. 하지만 당신에게는 안전한 선택 을 권하 고 싶군요. 81년 데카와 90년 EMI에서 각각 내놓은 두 음반은 전문가들이 입을 모으는 수작입니다. 국내에 서 CD로 구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57

58 차이코프스키+시벨리우스(1970) 차이코프스키+멘델스존(1981) 부르흐(1973) 부르흐 +베토벤(1990) [당신의 클래식]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 - 악성 이 갈구했던 세계- 전원, 베토벤이 얼마나 갈구했던 세계였던가. 음악평론가 이순열씨가 책을 냈습니다. 신문사 출판 담당기자의 책상 위에 1주일이면 수십권씩 쌓이는 신 간 더미 속에서 그 책은 보일락 말락 조용히 숨어 있었습니다. 듣고 싶은 음악, 듣고 싶은 연주 (현암 사)라는 단순하고 평범한 제목의 책이었지요. 자신의 주인을 닮았는지 덤덤하고 밋밋하기 짝이 없는 제목 이었습니다. 저는 그 책을 자리로 가져와 이리저리 뒤적거렸지요. 그러다가 어느 페이지에선가 짧은 문장 하나가 눈길을 확 사로잡았습니다. 전원, 베토벤이 얼마나 갈구했던 세계였던가. 참으로 간단한 한마 디였지요. 하지만 그 짧은 문장에서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굵은 연필로 밑줄을 그었지요. 누구나 쉽게 내뱉을 성싶은 평이한 문장. 하지만 말이나 문장의 본질 은 그것이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가에 따라 달라지지요. 저는 이 책의 저자와 일면식도 없이 그저 1980년대 초 반부터 그의 글을 읽어 왔을 뿐이지만, 평론가 라는 호칭조차 부끄러워 하는 그는 자고로 음악을 다루 는 글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줬던 음악계의 문사( 文 士 )였습니다. 어느덧 73세에 이른 그는 음악동아 의 편집장이었지요. 저도 80년대 초 중반에 이 잡지를 꽤나 열심히 읽었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그 잡지엔 수많은 필자들의 글이 실렸지요. 그중 가장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건 역시 편집장 이순열 의 글입니다. 그것은 일본이나 미국 간행물에서 슬쩍 빌려온, 남의 글을 곁눈질한 짜깁기 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글에는 무엇보다 체험에서 우러난 진심 이 녹아 있었습니 다. 게다가 예나 지금이나 마음을 잡아끄는 것은 그의 담백한 문체입니다. 음악듣기를 오히려 방해하는 요 설( 饒 舌 )들이 난무하는 속에서, 그 담백함 은 진정한 애호가의 풍모를 보여주는 것이었지요. 그날 밤 오랜만에 베토벤의 전원 을 들었습니다. 한 줄의 문장이 전해준 감흥이 여전히 혈관 속에 흐르 고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브루노 발터가 수족( 手 足 )과도 같은 콜롬비아심포니를 지휘하며 들려주는 전 원 은 아름답기 그지없었지요. 토요일, 일요일에도 전원 을 들었습니다. 브루노 발터, 토스카니니. 푸 르트벵글러. 조금씩 맛이 다른 그들의 전원 을 들으며 빗방울이 오락가락하는 주말을 보냈지요.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58

59 베토벤은 교향곡 5번 운명 과 거의 동시에 6번 전원 을 작곡했습니다. 귓병으로 한창 고생하던 1808 년, 그의 나이 38세 때 써낸 음악이지요. 성격이 판이한 두 편의 걸작을 동시에 작곡했다는 사실 앞에서 역시 베토벤 이라는 경외감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5번은 인간 의 드라마를 장중하고 영웅적 으로 그려내지요. 반면에 6번은 자연 의 아름다움을 화성과 리듬으로 묘사합니다. 전원 이라는 제목 도 바이올린 파트의 악보에 베토벤이 직접 써넣었습니다. 1악장은 시골에 도착했을 때의 유쾌한 감정, 2악 장은 시냇가의 정경, 3악장은 농부들의 즐거운 모임, 4악장은 폭풍우, 5악장은 폭풍우 뒤의 기쁨과 감사. 모두 베토벤이 직접 표기한 악장 설명입니다. 본인은 묘사라기보다 감정의 표현 이라고 강조했지만, 이 곡은 누가 보더라도 표제( 表 題 )적이고 묘사적인 성격을 갖고 있지요. 아마 당신도 이 곡을 여러번 들었을 겁니다. 1악장은 서두부터 상쾌한 바람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2악 장은 물결치는 현악기로 막을 열고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이 새처럼 지저귀지요. 3악장에서는 농부들이 춤추고 노래합니다. 박력 넘치는 4악장에서는 저현( 低 絃 ) 악기들이 먹구름을 몰아오고, 팀파니와 트럼펫이 천둥치듯 작렬합니다. 마지막 5악장에서 다시 평화로운 분위기로 돌아오지요. 브루노 발터가 지휘하는 콜롬비아심포니의 전원 은 부드러운 서정미의 극치입니다. 토스카니니 와 NBC심포니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정확한 연주를 들려줍니다. 이 두 종의 음반을 다 들었다면, 푸 르트벵글러가 빈필하모닉을 지휘한 52년 연주 를 맛보지 않을 수 없지요. 그는 특유의 느리고 절제된 템포로 숭고한 전원 을 창조합니다. 하나 같이 놓치기 아까운 명반들입니다. [당신의 클래식]아바도가 지휘하는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6번 - 비극 속에서도 당당한 열정- 드디어 연주가 끝났습니다. 지휘자 아바도가 휴, 하고 한숨을 내쉽니다. 구스타프 말러가 스스로 비극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59

60 적 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던 교향곡 6번. 자그마치 89분에 달하는 긴 항해였습니다. 무대와 객석은 잠시 정적에 휩싸였습니다. 포디엄에 선 아바도는 솟구치는 격동을 어쩌지 못하는 눈빛으로 오케스트라 단원들 을 바라봅니다. 울음을 겨우 참는 것 같은 표정입니다. 그렇게 10초가량의 정적이 흐르고, 객석의 누군가 가 큰 소리로 브라보! 를 외칩니다. 이어서 터지는 박수소리. 온몸이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짜릿해집니 다. 지난해 8월 스위스의 작은 도시 루체른에서 열렸던 연주회. 이탈리아 출신의 거장 클라우디오 아바도(74) 가 2003년 자신이 창단했던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말러의 교향곡 6번을 연주했습니다. 저 는 며칠 전 국내에 출시된 DVD를 통해서야 당시의 감동을 맛봤지요. 비록 현장에서 확인한 실연( 實 演 )은 아니었지만, DVD를 통해서도 그 벅찬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 아바도의 승리였습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아바도는 2000년 위암 수술을 받았지요. 1989년 타계한 카라얀의 뒤를 이어 베를린 필하모닉을 이끌던 그는 건강 때문에 포디엄을 내려와야 했습니 다. 이후에도 아바도의 병세를 둘러싼 소문은 흉흉했습니다. 외신을 통해 가끔 접할 수 있었던 그의 모습 은 그야말로 몰골 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깡마른 데다 두 눈이 퀭했지요. 하지만 그는 2001년 5월 프랑스 르 휘가로 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음악만이 나를 구해줄 거라고 확신합니다. 동 료 음악가들과 함께 연주하는 즐거움 때문에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 말처럼 아바도는 다시 일어섰습니다. 그것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말러 로 돌아왔지요. 아바도는 자타가 공인하는 말러 스페셜리스트 입니다. 32살이었던 1965년 독일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데뷔 무대 에서 빈필하모닉을 지휘하면서 선보였던 곡이 바로 말러의 2번 부활 이었지요. 89년 베를린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으로 내정된 후 첫 콘서트에서 연주했던 곡은 말러의 1번 거인 이었습니다. 이후에도 해마다 빼놓지 않고 말러를 연주했지요. 건강 탓에 베를린필의 예술감독을 더 이상 지탱하기 힘들게 됐을 때 고별 콘서트에서도 말러의 7번 을 연주했습니다. 아바도는 그렇게 음악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말러와 함께 했습니다. 번호가 붙지 않은 대지의 노래 까지 포함하면 말러가 완성한 교향곡은 모두 10곡입니다. 11번째 곡인 10번 은 미완성입니다. 그중에서도 6번 은 말러 애호가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걸작이지요. 관악기 와 타악기의 배치가 유난히 두드러진 이 음악은 일말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 비극 입니다. 행진곡풍으 로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는 1악장 첫번째 주제에서 이미 비극적 좌절 을 예견하지요. 바이올린이 연주 하는 2주제에서 돌연 환한 햇살이 비쳐들지만 결국엔 이 햇살마저도 고독한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이 거대한 교향곡의 정점은 4악장이지요. 해머가 두 차례 커다랗게 작렬하는 순간, 삶은 순식간에 비극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쾅! 하면서 지축을 울리는 듯이 터져나오는 해머의 격렬한 음향은 인생의 어느 길목 에선가 느닷없이 만나는 운명의 타격을 닮았습니다. 하지만 고령( 高 齡 )의 아바도는 암 이라는 운명의 강펀치에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창 투병 중이 던 2003년부터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면서 매년 말러의 교향곡을 한 곡씩 연주했지요. 2번, 5번, 7번이 이미 DVD로 국내에 나와 있습니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60

61 이번에 만난 6번 이 더욱 특별한 것은 아바도의 환한 표정 때문입니다. 속단은 어렵겠지만 그는 이제 병마의 굴레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이제 비극 을 지휘하면서도 당당합니다. 암을 이기고 포디엄에 다시 선 74세의 마에스트로. 그에게서 전해오는 정신의 강인함 때문에 음악의 감동이 한층 크게 울려옵니다. Mahler - Symphony 6 - Claudio Abbado - Lucerne Festival 2007 [당신의 클래식]드보르자크 교향곡 `8번 ' - 무더위 확 날려줄 청량한 선율- 당신은 재즈도 듣는지요? 지금까지 주욱 클래식 얘기만 해온 당신의 클래식 에서 갑자기 웬 재즈 냐 고 의아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유는 클래식과 재즈는 태생적으 로 갈 길 이 서로 다르기 때문일 겁니다. 클래식은 기본적으로 악보에 충실한 음악이지요. 말하자면 그 것은 작곡가의 음악 에 가깝습니다. 반면에 재즈는 순간의 감흥, 즉 즉흥(Improvisation)을 중시합니다. 다시 말해 작곡가보다 연주자의 음악 인 셈이지요. 물론 클래식에도 즉흥곡(Impromptu)이 종종 있습니 다. 특히 슈베르트나 쇼팽의 즉흥곡 이 유명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엄밀히 말해 작곡가의 즉흥일 뿐, 연주자가 내 맘대로 연주할 수 있는 즉흥은 아니지요. 저는 재즈를 종종 듣습니다. 특히 요즘같이 폭염이 내리쬘 때 자주 듣습니다. 이럴 때 기타리스트 짐 홀 (77)의 유칼리 (Eucaly)를 들으면 한 잔의 아이스 커피를 마신 것처럼 시원하지요. 빠르게 반복되는 리 듬의 폭포, 테니스광으로 알려져 있는 짐 홀의 힘찬 프레이즈가 열기에 휩싸인 몸에 찬 물을 부어주는 느 낌입니다. 짐 홀은 생존해 있는 거장이지요. 며칠 전 드러머 맥스 로치가 82세를 일기로 타계했습니다. 이제 거장급 으로 누가 살아 있나 헤아려 보면, 색소폰 연주자 소니 롤린스(77)와 더불어 짐 홀의 이름이 선명하게 떠 오릅니다. 짐 홀이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와 함께 연주했던 언더커런트, 소니 롤린스와 함께 했던 더 사운드 오브 소니 같은 앨범들은 재즈깨나 듣는다는 애호가들의 콜렉션에서 빠질 수 없는 음반들이지 요. 유칼리 는 퓨전 스타일에 가까워 오히려 외면받는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더위를 날리는 데 이만 큼 적절한 음악은 별로 없지요. 여름은 클래식의 불황기입니다. 연주회 횟수는 줄고 음반 매출도 떨어지는 계절이지요. 하지만 클래식에도 시원한 음악 은 있습니다. 지난 4일, 예술의전당에서 있었던 아시아필하모닉의 연주회. 정명훈이 지휘 하는 이날의 콘서트에서는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8번 이 연주됐지요. 오늘 당신에게 권할 음악이 바로 이 곡입니다. 여름날의 선곡으로 더없이 어울리는 음악이지요. 특히 트럼펫이 행진곡을 연주하듯 시원스레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61

62 뻗어가는 4악장은 가슴이 뻥 뚫리는 청량감을 맛보게 해줍니다. 지난 14일 서울 충무아트홀에서도 이 곡이 연주됐습니다. 터키에서 온 안탈랴교향악단의 연주회였지요. 안 탈랴는 터키에서 서너번째 규모를 가진 도시라고 합니다. 안탈랴교향악단은 터키의 다섯 개 국립교향악단 가운데 하나라고 하더군요. 그들이 연주하는 드보르자크 8번 은 섬세한 맛이 다소 떨어졌습니다. 하지 만 쭉쭉 뻗어나가는 금관의 활달함은 상당히 들을 만했지요.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약간 흔들린, 관악기 위 주의 사운드였습니다. 속단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것이 투르크족 오케스트라의 개성 일 거라고 짐 작했습니다. 연주회가 끝난 후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담배를 같이 피우며 더듬거리는 영어로 몇마디 얘기 를 나눴지요. 한국과 터키의 수교 50주년을 기념하는 연주회라고 하더군요. 23일 진주, 24일 경주에서도 연 주회를 갖는다고 합니다. 이들이 드보르자크 8번 을 선곡한 것도 여름 때문이었을 겁니다.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가운데 9번 신 세계로부터 에 이어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 1악장은 첼로, 클라리넷, 호른의 선율로 시작합니다. 이 첫 번째 주제에는 보헤미아적 우수가 담겼지요. 그러나 이 우아한 알레그로 템포는 잠시 후 저음의 현악기들 이 뽑아내는 서늘한 행진곡풍 리듬으로 바뀝니다. 이어지는 2악장에는 숲속에 들어선 듯한 청량감이 가득 하지요. 3악장 머리에서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주제는 8번 에서 가장 인상적인 악구( 樂 句 )입니다. 그 아름다운 바이올린의 노래 에는 누구라도 마음을 빼앗기고 말지요. 트럼펫에 이어 첼로가 춤추는 듯한 주제를 연주하는 4악장. 변주에 변주를 거듭하다 마침내 폭포수처럼 시원하게 마침표를 찍습니다. 콜린 데이비스가 런던심포니를 지휘한 필립스 (Philips )음반), 라파엘 쿠벨릭이 베를린필하모닉 과 바바리안 라디오 심포니 등을 지휘한 도이치그라모폰 (DG)음반 이 들을 만합니다. 8번 뿐 아 니라 7번, 9번 이 함께 담긴 CD 2장짜리 음반들입니다. 드보르자크의 고국인 체코의 수프라폰 레이블에서 발매한 음반도 만나볼 필요가 있지요. 바츨라프 노이만이 체코필하모닉을 지휘했습니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62

63 Herbert von Karajan - Vienna Philharmonic Orchestra, 1985 [당신의 클래식 ]20세기 러시아의 전설적인 연주자들 콘서트 고어 (Concert Goer)라는 말이 있습니다. 연주회장을 열심히 찾아다니며 음악을 듣는 애호가들 을 일컫는 말이지요. 반면에 음반을 수집하면서 음악을 듣는 애호가들을 레코드 컬렉터 (Record Collecter)라고 부릅니다. 좋은 연주를 수록한 음반이 있으면 어떻게든 손에 넣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이지 요. 음악 애호가 집단을 단순하게 구분한다면, 대략 이 두 개의 단어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콘서트 고어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음반으로 음악을 듣는 것을 쓸데없는 짓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음악이란 결국 시간예술이고, 현장에서 직접 대면하는 것만이 감상의 정도( 正 道 )라는 관점이지요. 연주자 들 가운데도 이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1964년에 36세로 요절한 재즈 관악기 연주자 에릭 돌피는 연주가 끝나면 음악은 허공으로 사라진다 고 말했지요. 그는 자신의 레코딩을 거들떠보지도 않 았다고 전해집니다. 3년 전 타계한 명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도 녹음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지요. 덕 분에 그가 남겨놓은 베토벤 교향곡 5번 7번 등은 명반 혹은 준명반 의 반열에 올라 있습 니다. 물론 연주 자체도 훌륭하지만, 희소성이 한 몫한 덕분이기도 하지요. 레코드 컬렉터들 중에도 오로지 음반으로만 음악을 듣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연주회장의 실황보 다는 음반과 오디오가 만들어내는 소리에 더 빠져들지요. 수년 전 프랑스 파리의 음반 벼룩시장에서 한 50 대 남성을 만났습니다. 그는 자신을 재즈 애호가라고 소개했습니다. 그에게 오늘 저녁에 올림피아 극장 에서 소니 롤린스 연주회가 있던데요. 저는 거기 갑니다 라고 말했지요. 그랬더니 이 아저씨, 난 연주 회장에 가지 않아요. 오직 음반으로만 들어요 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더군요. 저도 음반 수집과 오디오에 빠졌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30대 때였습니다. 한 10년 동안 오디오 바꿈질을 반복했고, 이른바 오디오 파일용 음반 이라고 부르는 음질이 뛰어난 CD들을 찾아다녔지요. 그러다가 나이 마흔이 넘어서면서 그만두었습니다. 첫번째는 경제적 이유였고, 두번째는 취향이 변한 탓이었지요. 그 10년 동안 저도 연주회장을 찾아다닌 적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요즘엔 즐겨 찾습니다. 그렇다고 오 디오를 내다버린 것도 아니지요.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정착한, 저렴한 가격의 낡은 오디오를 애장하고 있 지요. 음반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요즘엔 음질 좋다는 CD에 별로 관심이 가질 않습니다. 직직 거리는 잡음이 섞여 있는 LP의 음색에 오히려 마음이 끌리지요. 또 기계적으로 잘 편집된 고해상도 음반 보다는, 연주자의 실수와 객석의 기침소리, 박수소리와 환호성까지 생생하게 담긴 실황음반에 애착이 가 곤 합니다. 최근 네덜란드의 브릴리언트 에서 내놓은 20세기 러시아의 전설적인 연주자들 은 100장 의 CD로 이뤄진 전집 입니다. 그런데 반가운 것은 그 100장 모두가 실황 음원이라는 사실입니다. 러시아 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보유하고 있던 음원을 브릴리언트가 라이선스로 출반한 것이지요. 저는 요즘 이 CD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63

64 들을 하루에 한 장씩 듣는 재미에 푹 빠져 있습니다. 수록된 연주자들의 면면이 그야말로 국보급 들입니다. 일단 러시아 피아니즘의 쌍벽으로 꼽히는 스바 아토슬라프 리히터와 에밀 길렐스의 실황음반들에 먼저 손길이 갑니다. 두 사람은 네이가우스(피아니스트 부닌의 조부) 밑에서 피아노를 같이 배운 동문 입니다. 서방세계로 먼저 진출했던 이는 길렐스였지요. 하지만 뒤이어 진출한 리히터가 오히려 더 인기를 얻었습니다. 여러 소문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서로를 좋아했는지 아니면 경계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한 시대를 공존한 라이벌임은 분명합니다. 이밖 에 3장의 CD에 담긴 라자 베르만의 리스트 연주, 1990년 카네기홀 공연 이후 서방세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예프게니 키신의 10대 시절 연주도 쉽게 만나기 어려웠던 음원들입니다. 피아노의 리히터와 길렐스처럼, 바이올린에서 쌍벽을 이뤘던 오이스트라흐와 레오니드 코간의 연주는 각 각 10장의 CD에 담겼습니다. 물론 첼로의 라이벌도 있지요. 얼마 전 타계한 로스트로포비치와 97년 세상 을 떠난 다닐 샤프란이 그 주인공입니다. 로스트로포비치가 호방하고 음량이 풍부한 첼로를 들려준 반면 에, 샤프란은 섬세한 시인 의 연주를 들려줬지요. 당신이 음질 을 중시한다면 이 전집을 선택하는 것이 적절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50년대부터 80년대까 지의 연주실황이 담긴 탓에 어떤 음원들은 음질이 떨어집니다. 하지만 음질보다 러시아 거장들의 생생 한 육성 을 원한다면, 장당 약 2000원의 착한 가격 에 이만한 연주를 만나기 어려울 성싶습니다. 국내 시장에서는 이달 20일 이후에 판매된다고 합니다. Lazar Berman - Chopin`s Polonaise op.44.live 1992 Rondo Capriccioso Viktor Tretyakov plays Saint-Saens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64

65 CD 1-5 : Svia to s la v Richter, pia no C D 6-21 : Emil Gilels, pia no CD : La z a r Berma n, pia no C D : Evgeny Kis s in, pia no C D : Da vid Ois tra kh, vio lin C D : Leo nid Ko ga n, vio lin CD : Vikto r Tretia ko v, vio lin C D : Gido n Kremer, vio lin CD : Ms tis la v Ro s tro po vich, cello C Ds : Da niel S ha fra n, cello ~ 문학수기자 [email protected]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65

66 주제와 변주 - 문학수(경향 연재/2008.8~2009.7) :40 [주제와 변주]월경을 꿈꾸던 여행자 낭만 의 문을 활짝 열다 겨우 이것뿐인가? 라고 질문하고, 새로운 세계를 찾아 여행할 권리. 소설가 김연수의 산문집 여행할 권리 (창 는 그 짧은 문장이 깃발처럼 걸려 있다. 책을 읽기 전에 심드렁하게 지나쳤던 한 줄의 글귀였는데, 300쪽가량의 책 들여다보니, 이거, 음미할수록 묘미가 있다. 그에게 여행 이라는 행위는 무척 치열한 의미를 갖는 듯하다. 그것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말하 ( 越 境 )과도 같다. 겨우 이것뿐인가 라고 회의하면서 더 넓고 높은 차원으로 자신의 존재를 옮겨보려고 몸부림치 설가는, 30년대의 작가 이상과 1950~60년대의 시인 김수영을 여행자 의 전범( 典 範 )으로 여긴다. 이상은 1937년 도쿄 진보초오의 꼬부라진 뒷골목 이층 골방 (김기림의 회고)에서 숨졌다. 그는 동시대의 시인 김 파리까지 한번 가보자고 언약했지만, 그 행로의 중간에 결국 세상을 등졌다. 김수영은 또 어땠는가. 그는 퇴락한 5 라보며 겨우 이것뿐인가? 라며 회의하다가, 독하게 신경질을 부리며 들큰한 카페를 빠져나왔다. 그는 찬바람 부 침을 뱉어라 라고 외쳤다. 결국 정신의 월경을 꿈꾸는 여행은 그렇게 더 넓고 높은 곳에서 찬바람을 맞는 것일 테 목숨을 잃기도 하는 것일 테다. 진보의 길을 가고자 하는 순수한 개인의 운명이란, 그렇게 가혹할 때가 많지 않던가 이제 책장을 덮고 베토벤을 생각한다. 김연수의 여행할 권리 를 읽는 내내, 문득문득 베토벤이라는 존재를 떠올 것뿐인가, 라고 질문하면서 새로운 세계로 떠나는 것. 이것이야말로 베토벤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가 아니던 베토벤도 월경을 꿈꾸던 여행자였다. 100년의 세월을 버텨온 고전주의가 진부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던 19세기의 벽 토벤은 오스트리아 빈 교외의 조용한 마을 하일리겐슈타트에 있었다. 귓병은 날로 악화돼 치유불능 판정을 받은 상 벤은 이게 아닌데 라는 음악적 회의에 부딪혀 있었고, 원인조차 알 수 없는 난치병에 시달리며 차라리 죽음을 그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가 바로 이때 쓰여진다. 그것은 동생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편지 형식의 유서였다 도 후회는 없다. 죽음이 나를 끝없는 고뇌에서 해방시켜 줄 테니. 그렇게 막장까지 갔던 베토벤은 죽지 않았다. 대신 그는 답답한 고전의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으며 월경했다. 그것이 에로이카. 바야흐로 베토벤 음악사의 중기( 中 期 )로 거론되는 새로운 낭만 의 시대가 이로부터 활짝 열린다. 적으로 착수해 이듬해 봄에 완성한 이 괴물 같은 교향곡은, 근대음악사에 벼락처럼 떨어진 축복 과도 같았 구에게서도 볼 수 없었던 장대한 규모, 격렬하게 부딪히는 긴장과 이완. 그것은 이제 음악이 가야 할 길이 바뀌었 베토벤은 귀족들의 비위를 맞춰주던 산뜻한 선율과 형식을 가차없이 파괴했으며, 그리하여 음악은 그 자체로 묵직 베토벤은 이 곡을 스스로 지휘해 초연했는데, 당시의 청중들은 틀림없이 불편 했을 것이다. 66

67 거장 푸르트뱅글러가 빈필하모닉을 지휘한 52년 녹음 (EMI)은 에로이카 를 거론하면서 빠뜨릴 수 없는 역 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걸작을 또 한 명의 낭만주의자가 지휘하는 셈이다. 이 음반이 너무 오래된 것이라 탐탁지 않 엘 바렌보임이 베를린 슈타츠카펠레를 지휘한 녹음(Teldec)을 선택해도 좋다. 카라얀이 베를린필을 지휘한 77년 로 마리아 줄리니와 LA필하모닉(DG), 솔티와 시카고 심포니(데카)도 후회없는 선택이 될 듯하다. 칼 뵘이 베를린필 대 연주는 신뢰할 만한 겸손함을 내포하고 있지만, 왠지 단단한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는다 [주제와 변주]중독성 있는 슬픈 선율로 그린 아름다움과 죽음의 비창미 1911년 5월, 독일의 작가 토마스 만(1875~1955)은 이탈리아 베니스를 여행하고 있었다. 그는 거기서 작곡가 구스타프 다는 소식을 듣는다. 나이 쉰을 갓 넘긴 말러의 부음은 토마스 만에게 적잖은 충격을 줬다고 전해진다. 토마스 만은 보다 음악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깊었던 사람이었고, 특히 말러에 심취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그는 말러 적 벗이기도 했던 지휘자 브루노 발터(1876~1962)와 친밀한 우정을 나누던 사이였다. 상심에 빠진 토마스 만은 아름다운 베니스의 풍광에서조차 죽음 의 이미지를 봤던 모양이다. 2년 후 그가 발표한 음 (Der Tod in Venedig)은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쓸쓸히 죽어가는 어느 중년 예술가의 마지막 순간을 그린다. 미( 美 )와 죽음의 문제. 결국 토마스 만은 베니스에서의 죽음 이라는 중편을 통해 세기말을 관통했던 이 탐미적 내며, 그 직접적 계기는 흠모했던 작곡가 말러의 죽음이었다. 67

68 줄거리는 단순하다. 과로와 무기력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50세의 작가 구스타프 폰 에센바흐는 휴양차 베니스의 리 는 그곳에서 미소년 타치오를 만나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진다.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 사랑. 그의 시선은 타치 벗어나지 못한다. 그 매혹은 50 평생을 도덕주의자로 살아온 중년의 영혼을 뒤흔들 만큼 강렬하다. 그는 베니스에 떠나지 못한다. 거리 곳곳을 배회하며 타치오의 뒷모습을 고통스럽게 좇는다. 결국 그는 수영을 즐기던 타치오를 넋 가 벤치에 홀로 앉아 죽음을 맞는다. 소설은 분량도 짧고 줄거리도 단순하지만 쉽게 읽히진 않는다. 독일 소설 특유의 관념적 표현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많은 탓이다. 대신 이탈리아 감독 루키노 비스콘티(1906~1976)가 71년에 만든 동명의 영화라면 좀더 접근이 용이하다 주인공의 직업을 아예 작곡가로 바꿨고, 어린 딸을 잃고 상심에 빠지는 에피소드 등을 곁들이면서 말러 의 실제 노골적으로 심어놓는다. 영상도 탐미적이라고 할 만큼 아름답다. 게다가 영화의 시종( 始 終 )을 장식하는 교향곡 5번 가 결국 비스콘티가 말러에게 바치는 헌사 임을 보여준다. 마지막 낭만주의 작곡가 말러는 모두 10개의 교향곡을 완성했다. 그것들은 고전이나 낭만 초기의 교향곡들에 비해 조도 복잡하다. 그래서 적잖은 이들이 말러 교향곡의 산맥에 오르기를 꺼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1번, 4번, 5번부터 특히 아름다움과 죽음의 친연성을 그려낸 5번 교향곡은 선율미가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트럼펫이 장송 팡파르를 울리며 시작하는 1악장. 바이올린과 첼로가 연주하는 주제 선율은 슬프다. 마치 한 곡의 선율은 몇 번 들으면 자신도 모르게 콧노래로 흥얼거리게 되는 중독성을 가졌다. 타악기조차도 눈물을 흘리는 것처 넘치는 악장이다. 베니스에서의 죽음 에서 수시로 등장하는 4악장 아다지에토(Adagietto)는 느리디 느리다. 현악기와 하프 한 대만 이 조금 넘는 악장. 1악장과 더불어 말러 음악의 비창미( 悲 愴 美 )를 대표하는 4악장은 꺼지는 촛불처럼 잦아들면서 영화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은 라파엘 쿠벨릭이 지휘하는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의 연주. OST보다는 5번 교향 년 연주(DG)를 구하는 것이 용이하다.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세상을 떠나기 3년 전인 87년에 빈필하모 (DG)은 고전 반열에 오른 필청반이다. 특히 4악장 아다지에토는 한 번 들으면 도저히 잊을 수 없는 명연. 비교적 자 루돌프 바르샤이와 융에 도이치 필하모닉의 99년 녹음( 브릴리언트)이 좋다. 청소년들로 이뤄진 교향악단 들려준다. 68

69 Kubelik( 1971, DG) berns tein( 1987, DG) Ba rs ha i( 1999) [주제와 변주]청중의 환심 거부한 건반 위의 지식인 1955년 6월의 따뜻한 날이었다. 미국 뉴욕의 컬럼비아사 녹음 스튜디오에 나타난 그는 두꺼운 외투에 목도 리까지 두르고 있었다. 장갑을 낀 손에 들려 있는 악보가방, 생수 2병, 타월 한 무더기, 알약병 5개가 그의 소지품이었다. 그리고 그를 구성하는 이미지에서 절대 빠져선 안 되는 키작은 접이의자. 그는 마치 낚시의 자와도 같은 14인치 높이의 의자를 꺼내놓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참으로 얼토당토않은 모습이었을 터. 스 튜디오 직원들은 황당했을 것이다. 그날 녹음실에서 연주된 곡은 바하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이 레코 딩에는 전설의 탄생 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를 둘러싼 이런 식의 일화는 한두 개가 아니다. 2년 뒤 뉴욕에서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하는 뉴욕필하 모닉과 협연하던 날. 그는 따뜻한 물에 거의 한 시간가량 손을 담그고 있다가 연주회 시작 2분 전에야 대 기실에 나타났다. 이날의 옷차림도 황당했다. 두터운 외투와 올이 굵은 헐렁한 스웨터. 당황한 번스타인이 청중 앞에서 이 스웨터를 벗을 건 아니지 라고 묻자, 그는 아무 대답없이 스웨터를 벗었다. 그 바람에 머리카락이 온통 헝클어졌지만 그는 손으로 그것을 쓸어올리지도 않은 채 무대로 나갔다. 그날 연주한 곡 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2번. 그는 애지중지하는 난쟁이 의자 에 다리를 꼬고 앉았고, 청중에게 서 비스듬히 등을 돌린 자세였다. 그는 느린 악장에 이르자 입을 헤 벌린 채 무대 천장에 시선을 고정시켰 고, 마지막 악장에선 거의 뒤로 쓰러질 것 같은 자세로 피아노를 쳤다. 캐나다 출신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Glenn( Go uld 1932~82). 앞서 언급한 두 개의 일화는 미셸 슈나이더의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이창실 옮김 동문선)를 참조했음을 밝힌다. 굴드는 콘서트홀의 청중 을 좋아하지 않았다. 피아니스트로서 한창 때였던 64년, 당연히 출연료도 고공행진했을 그 시기에 굴드는 청중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려버린다. 그때부터 그의 음악 활동은 오로지 방송국과 음반사의 스튜 디오에서만 이뤄진다. 69

70 굴드의 오랜 친구이자 의사였던 피터 F 오스왈드는 글렌 굴드, 피아니즘의 황홀경 (한경심 옮김 을유 문화사)이라는 평전을 썼다. 거기엔 굴드가 청중 을 어떤 존재로 생각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직접적인 언급이 등장한다. 굴드는 말했다. 현악기들이 불협화음을 만들어낼 때를 기다리며, 지휘자가 까다로운 박자에서 실수하기를 기다리고 끔찍합니다. 음악회를 쫓아다니는 철면피한 인간들 나는 그런 사람들 을 싫어하며 신뢰하지도 않고, 친구로 삼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에 대한 오스왈드의 해석은 이렇다. 글렌은 연주회장에 오는 사람들이 음악을 들으러 오는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그는 음악을 듣는 장소로 서 연주회장은 내리막길을 가고 있는 운명에 처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스스로 고립을 원했던 피아니스트.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고 우울증을 앓았으며, 상식을 뛰어넘는 멋대로의 행태를 보여줬던 사람. 그러나 굴드를 다만 그렇게 기행을 일삼은 피아니스트로만 바라본다는 것은, 어쩌면 그가 그토록 싫어했던 청중의 태도 와 별로 다르지 않을 법하다. 그렇다면 굴드는 과연 누굴까. 오리엔탈리즘 의 저자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가 유작으로 남긴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장호연 옮김 마티)는 굴드에 대해 한 단계 높은 조망을 제시한다. 사이드는 굴드를 좋은 식당에 들어가 저녁을 기다리듯 가만히 앉아서 작품이 차려지기를 기다리는, 조용하고 수동적인 청중에 맞서 싸움을 거는 돌발 적인 천재 로 얘기한다. 기교면에서 미켈란젤리, 호로비츠, 바렌보임, 폴리니, 아르헤리치와 같은 반열 에 놓이 지만, 뛰어난 기교적 연주를 연주회장에서 과시하는 것을 뛰어넘어 담론의 영역으로 나아간 지식인 이라는 것이 사이드의 평가다. 그리하여 그는 굴드를 지식인 비르투오소(기교가 뛰어난 연주 자) 로 칭한다. 사이드는 그렇게 말년의 저작에서, 그동안 굴드를 향해 던져졌던 수많은 수수께끼와 의문 부호에 대해 명징한 답변을 내놓고 떠나갔다

71 [주제와 변주]글렌 굴드, 바흐를 말하다 ㆍ낭만주의 달콤함에 반기 음과 음사이 침묵을 응시 기행과 파격을 일삼았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음악가로서 그의 실체 는 과연 무엇이었는가. 지난주 주제와 변주 는 그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는 시도였고,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년의 양식에 관하 여 (장호연 옮김 마티)에서 풀어놓은 모범답안 에 상당히 많은 빚을 졌음은 이미 밝힌 바와 같다. (기교의 과시를 뛰어넘어) 담론의 영역으로 나아간 지식인 비르투오소 라는 것이 사이드의 평가. 이번 주에는 후편( 後 篇 )을 이어간다. 굴드는 왜 비르투오소의 한계를 넘어 지식인으로 불릴 수 있었는가. 게다 가 그는 왜 고리타분한 바흐의 음악에 집중했는가.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는 이 두 개의 질문은, 결국 하나의 길 로 이어진다. 이른바 명인( 名 人 ) 연주자를 뜻하는 비르투오소(Virtuoso). 19세기 초반을 관통 해온 낭만주의는 중반에 이르러 비르투오소 시대 를 맞는다. 그 문을 열어젖힌 이는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1782~1840)와 피아니스트 리스트(1811~1886)였다. 당시는 작곡과 연주가 분리되기 이전이었으니, 두 사람은 당연히 작곡가이면서 동시에 연주자였다. 신들린 듯한 기교를 선보였던 이들이 등장하면서, 작곡 에 놓여 있었던 음악의 무게중심은 연주 쪽으로 서서히 자리를 옮겨간다. 비르투오소의 경이 로운 연주는 콘서트홀에 모인 청중을 사로잡았고, 청중은 연주자에게 점점 더 눈부신 테크닉을 원하게 된 다. 사이드는 이것을 부르주아 문화가 꽃피운 산물 이라고 진단한다. 모차르트, 하이든, 초기 베토벤을 양육했던 교회, 궁정, 사유지를 대체하면서 새롭게 등장한 자율적이고 세속적인 연주공간(콘서트홀 등)의 산물 이라는 것이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우리가 놀라운 기교를 가진 천재를 들으러 가는 현대의 콘 서트홀은, 짜릿함과 흥분을 극한 상황으로 체험하는 일종의 벼랑 이라고 지적한다. 비르투오소 시대가 막을 올린 지 100년쯤 지나서 등장한 한 명의 반항아. 그가 바로 굴드였다. 그는 100년을 거치면서 더욱 집요해진 청중의 기대와 요구를 가차없이 거절했다. 이에 대한 굴드의 직접적 언급 은 62년에 쓴 박수를 금지하자! (Let s Ban Applause!)에서 드러난다. 굴드는 이렇게 썼다. 예술이 란 내적 연소다. 천박하게 밖으로 드러내 대중에게 과시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음악의 목적은 아드 레날린을 순간적으로 분비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경이롭고 고요한 상태를 점진적으로 구축해가는 것이다. 알려져 있다시피, 굴드가 음악계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1950년대 중반. 반 클라이번과 블라디미르 아슈케 나지 등의 뛰어난 피아니스트들이 리스트, 쇼팽, 라흐마니노프의 통속적이면서도 화려한 선율을 연주 하며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때였다. 사이드의 표현에 따르자면, 굴드가 음악가로서 경력을 쌓아갈 무렵, 낭만주의 음악은 대단히 상업화되고 말랑말랑한 레퍼토리로 변질된 상태 였던 것이다. 굴드가 바흐를 선 택한 것은 그래서였을 것이다. 당시의 청중에게 바흐 는 낡고 재미없는 음악의 대명사가 아니었던가. 바흐를 듣는다는 것은 마치 골동품 취미와 같았을 것이다. 그래서 역으로 굴드는, 죽는 날까지 바흐를 71

72 손에서 놓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굴드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을 평생에 걸쳐 두 번 녹음했다. 사이드는 55년 내놓은 첫번째 녹음 에 대해 비르투오소의 역사에 진정으로 새로운 무대가 열렸다 고 의미를 부여한다. 두 번째 녹음은 81 년 4월과 5월에 이뤄졌다. 굴드는 여전히 화려하고 달콤한 음( 音 )을 거부한다. 그의 피아노는 명징하게, 스 타카토로 울려나온다. 말년의 굴드는 그렇게 소멸하는 음에 집중했다. 음과 음 사이의 침묵을 응시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음악이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 을 하나의 역사 로 남겨놓은 굴드는 이듬해 10 월 영면했다. 50세. 사인은 뇌졸중이었다. * Goldberg Variations Aria & Some Canons (1964) (1955년) (1981년) [주제와 변주]오이스트라흐 탄생 주년 ㆍ 만년 2등 바이올리니스트 20세기 최고 로 기억되다 KBS라디오에서 FM 실황음악회 를 진행하는 컬럼니스트 정준호씨가 한 통의 메일을 보내왔다. 20세 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는 오이스트라흐 아닐까요? 한데 푸치니 탄생 150주년과 카라얀 탄생 100주년에 가려 그의 탄생 100주년을 다들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지난달 30일 도착한 메일이었 다. 그날은 마침 다비드 오이스트라흐(1908~74)의 생일이었다. 우크라이나 오데사에서 태어난 20세기 바이올린의 거장. 한 통의 메일이 잠시 잊고 있던 그의 존재를 상기 시켰다. 지난해 이맘때쯤 독일에 살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을 인터뷰했을 때, 그녀가 했던 말도 떠 올랐다. 크고, 부드럽고, 따뜻한 소리를 내고 싶어요. 바로 오이스트라흐 같은 소리를 내고 싶다는 뜻 72

73 이었다. 오이스트라흐는 그렇게, 21세기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도 닮고 싶은 연주자 의 표상으로 남아 있다. 생전의 오이스트라흐는 2등 과 인연이 깊었다. 어린 시절에는 이 아이는 재능이 없어요 라는 말도 들어야 했다. 오이스트라흐 라는 이름이 처음 주목을 받았던 것은 1935년. 그해 열린 비에냐프스키 콩 쿠르에서 2위를 차지하면서였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는 16세의 프랑스 소녀 지네트 느뵈(1919~49)에게 쏠 렸다. 그녀가 1등이었다. 얼굴도 예뻤다. 7살에 출전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실력을 보여줬던 폴란드의 이다 헨델에게도 음악계의 관심이 몰렸다. 오이스트라흐는 뒷전에 놓이는 처지였다. 20세기 최고 라는 헌사도 그의 생전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야사 하이페츠 라는 벽 때문이었 다. 오이스트라흐보다 7살 많은 하이페츠는 러시아 바이올린의 명가( 名 家 )로 꼽히는 레오폴드 아우어의 문 하( 門 下 ), 이른바 아우어 집안 의 적자였다. 그는 3살 때 바이올린을 시작해 10살 무렵에 이미 유명해 진, 그야말로 신동이었다. 10대 중반부터 세계를 돌며 신기( 神 技 )에 가까운 기량을 뽐내던 그는, 1917년 뉴 욕 카네기홀에서 미국인들을 열광시켰다. 그리고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 조국 러시아로 돌아가지 않았다. 24세에 미국 시민권을 얻어 미국인 으로 살면서 부와 영예를 풍족히 누렸다. 경이로운 테크닉으로 20세기 초 중반을 열광시켰던 야사 하이페츠. 오이스트라흐 앞에는 그가 버티고 있 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이스트라흐는 또 2등 에 머물러야 했다. 바이올리니스트 겸 다큐영화 제작자인 브뤼노 몽생종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20세기 거장들의 다큐멘터 리를 여러 편 만들었고, 그들의 삶과 음악세계를 생생하게 기록한 책도 몇권 썼다. 말하자면 영상과 문자 로 20세기 거장들을 기록 한 사람이다. 그의 필름 가운데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인민의 예술가인 가? 라는 것이 있다. 구소련 체제를 억압 으로, 오이스트라흐를 그 희생자 로 만들어가려는 단 순 구도 는 때때로 불편하지만, 그래도 이 영상물은 오이스트라흐의 삶과 음악을 일별하게 해주는 귀한 자료다.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는 몽생종의 카메라 앞에서 이렇게 말한다. 오이스트라흐는 바이올린의 왕이었 어요. 빼어난 바이올리니스트였을 뿐만 아니라, 멋진 남자(wonderful man)였어요. 그 오이스트라흐가, 허름한 옷차림의 청중 앞에서 바이올린을 켠다. 감자를 캐다 온 듯한 농민, 혹은 기계 를 돌리다 퇴근한 듯한 노동자쯤으로 보이는 차림새들이다. 하지만 그들 앞에 선 오이스트라흐의 표정은 진지하다. 절친했던 바이올리니스트 예후디 메뉴인(1916~99)이 서방으로 망명하길 권유했을 때, 조국이 나를 키워주고 지금의 자리를 줬다 며 거절했다는 바이올리니스트. 이제 많은 이들이 그를 20세기 최고 의 바이올리니스트 로 기억한다. 2등 의 삶을 묵묵히 살며 보여줬던 중후한 인간미와 가슴을 울리는 바이올린 소리. KBS 클래식FM이 이달 10일까지 그의 미공개 음원들과 희귀 연주실황을 소개하고 있다. 놓치기 아깝다. 73

74 Debus s y - Cla ir de lune Ra vel - Tz iga ne [주제와 변주]쇼스타코비치 쇼스타코비치, 영화 등에 모음곡 ㆍ아내의 죽음, 그 황망함과 쓸쓸함 아름답고 슬픈 선율에 담아 옛 소련을 대표하는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1906~75)가 영화음악 작곡에 처음 손을 댄 것은 1928년이었다. 코진체프 감독이 만든 <신 바빌론>이라는 영화였다. 그후에도 그는 거의 매년 하나씩 영화 음악을 만들었다. 마지막 작품은 70년 작곡했던 <리어왕>. 이 영화의 감독도 역시 코진체프였다. 그렇게 해서 쇼스타코비치는 평생 40편에 달하는 영화음악을 작곡했다. 그는 왜 이렇게 많은 영화음악을 썼을까. 그것이 의문 으로 남는다. 쇼스타코비치라는 대( 大 ) 작곡가의 생존 시기. 그 시절은 마침 소련 영화의 융성기였다. 쇼스타코비치와 무려 10편의 영화를 함께 작업했던 코진체프는 당시 소비에트의 대표급 감독이었다. 이들은 앞서 언급한 두 편 외에도 <막심의 청년시절> <막 심의 귀환> <소박한 사람들> <선구자의 길> 같은 영화에서 호흡을 맞췄다. 그렇게 유도한 것은 물론 당 이었다. 쇼스타코비치는 당의 권유를 뿌리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곤 했다. 왜 그랬을까. 그것 은 바로 영화음악 작곡이 쇼스타코비치에게 긴요한 생계수단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청년시절 그는 영 화관에서 무성영화 배경음악을 연주하며 아르바이트를 했고, 좀더 나이 들어서는 영화음악을 작곡하며 밥 을 벌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작곡한 영화음악을 들을 때마다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가 장 의 애환 같은 것이 느껴진다. 33세에 레닌그라드음악원 교수로 부임했다가, 42세에 즈다노프의 비판을 받고 교수직을 사임해야 했던 정황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내향적이고 성실했던 쇼스타코비치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강했던 듯하다. 이런 유추 는 충분히 가능 하다. 왜냐하면 36년부터 40년 사이에, 그는 다른 시기의 두 배나 되는 분량의 영화음악을 쏟아놓기 때문 이다. 이 때는 바로 쇼스타코비치가 아버지의 기쁨 을 만끽하던 시절. 딸 갈리나가 36년에, 2년 후에 아 들 막심이 태어난다. 물론 아빠 쇼스타코비치는 고된 노동으로 피곤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사랑하 는 두 아이에게서 많은 위로와 기쁨을 얻었을 것이다. 74

75 가족을 위해 열심히 영화음악을 만들었던 쇼스타코비치. 그는 55년에 영화 <등에 >(Ga dfly)를 위해 모두 12곡으로 이뤄진 모음곡(Suite)을 작곡한다. 등에 는 쇠파리 라고도 부르는 날벌레. 영화의 원 작은 영국 작가 에델 릴리언 보이니치가 쓴 낭만적 혁명소설이다. 국내에도 같은 제목으로 번역 출판돼 있 는 이 소설은, 혁명을 배경으로 삼으면서도 사회주의적 대의보다 개인의 내면에 초점을 맞춘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 시기에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고, 옛 소련에서도 스탈린 사후에야 영화로 만들어졌 다. 쇼스타코비치의 영화음악 중에서도 이 작품이 좀더 특별한 것은 음악에 담긴 애수( 哀 愁 ) 때문이다. 특히 7 번부터 10번까지의 곡들은 애틋하기 그지없다. 그는 왜 이렇게 아름답고도 슬픈 선율을 쉬지 않고 풀어 놓 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를 이렇게 짐작해본다. 아내 니나가 세상을 떠난 것이 54년. 물론 쇼스타코비치는 결혼 전에 타티 아나 글리벤코라는 여인을 사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23년간 아내의 자리를 지켜온 니나의 죽 음은 그를 황망하게 했을 것이다. 아직 어린 두 아이와 함께 아내의 빈자리를 바라보는 심정. 특히 모음곡 8번 로망스 와 10번 녹턴 은 당시의 쇼스타코비치가 느꼈을 쓸쓸함과 허망함을 진하게 투영한다. 음반으로 듣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리카르도 샤이가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95년 녹음(Decca)을 추천한다. 쇼스타코비치는 아내 니나가 떠나고 8년 후, 편집자 출신의 이리나 스핀스카야와 재혼한다. Ro ma nce fro m The Ga dfly (Sho s ta ko vich) [주제와 변주]에드워드 사이드를 추억하며 ㆍ이-팔 분쟁의 복판에 서서 음악으로 공존 을 꿈꾸다 시리아 북부에 알레포 라는 마을이 있다. 이스라엘 건국 시기였던 1948년의 1차 중동전쟁 때 폭격으로 폐허가 됐던 마을이다. 알리자 카신이라는 유대인 여인은 그곳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고향은 완전히 파괴 75

76 돼 아무 흔적도 남지 않았다. 그 참혹한 전쟁터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그녀는 레바논 산을 넘어 이스라엘로 피신했다. 이제 노년을 맞은 그녀가 이렇게 회상한다. 삶은 행복하고 만족스러웠죠. 집이 불탔던 것은 1948년 전쟁 때뿐이었 어요. 우리는 그곳에서 형제자매처럼 살았어요. 유대인과 아랍인, 아르 메니아인들이 한데 어울렸죠. 모슬렘과 기독교인들이 같은 마당에서 놀 았어요. 명절이면 사람들이 선물과 음식을 가져왔죠. 우리는 그것을 함 께 나눴어요. 55년 전에 떠나왔는데 마치 어제 일 같아요. 기억할 만한 시절이었죠. 지금도 친구들과 알레포 이야기를 하면 다들 흥분해요. 일본의 다큐멘터리 감독 사토 마코토(51)가 만든 <아웃 오브 플레이스 >(Out of Place)에 등장하는 장면이다. 마코토는 2003년 9월 세상을 떠난 팔레스타인 출신의 사상가 에드워드 사이드(사진)의 궤적을 소형 카메 라 한 대로 훑는다. 137분. 다큐멘터리치고는 분량이 많다. 하지만 이 지루한 기록 필름이 한국에서 벌써 두 번이나 상영됐다. 2006년 EBS가 국제다큐멘터리 페스티벌 (EIDF) 초대작으로 방영했던 <아웃 오브 플레이스>를, 지난 2일 인디스페이스에서 또 만날 수 있었다. 한국 독립영화협회가 주최한 일본 다큐멘터리 특별전 에서였다. 부제로 붙어 있는 에드워드 사이드에 대한 기억들 (Memories of Edward Said)처럼, 우리 사회에도 그를 기억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팔레스타인 사람. 이집트 카이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16세 때 미국으로 유학해 반아랍주의의 편견에 시달리며 공부했던 사람. 프린스턴과 하버드를 졸업하고 컬럼비아대학에 재임하면서 서구의 자만심에 독설을 날렸던 사람. 덕분에 미국 우파 언론의 끝없는 공격에 시달렸던 사람. 77년부터 팔레스타인 민족회의에 참여했으나 93년에 아라파트와 다투고 등을 돌렸던 사람. 그는 스스로 술회했듯이 어디 있든지 어긋나 있는 인생이었으며, 그 어긋남 을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으로 끌어안았던 사람 이었다. 평화로운 공존. 그것은 과연 가능한 것일까. 사이드는 가능하다고 믿었다. 특히 말년의 그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공존하는 둘이면서 하나인 나라 를 꿈꿨다. 그는 정치권력이 오히려 그것을 방해한다고 믿 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권력자를 증오하는 만큼 아라파트를 미워했다 는 것이 <아웃 오브 플레이스>에 등장하는 증언이다. 그는 음악비평가이자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다. 음악이야말로 공존 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되리 라 믿었다. 그 동반자가 바로 이스라엘 국적의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66)이었다. 두 사람은 90년대 초 반 런던의 한 호텔에서 우연히 마주쳤고, 약 5년간 자신들의 믿음을 대화 로 풀어나가며 우연을 필 연 으로 바꿨다. 99년 함께 창단한 서동시집 오케스트라 (West-Eastern Divan Orchestra)는 바로 그 결과물이었다. 20세 안팎의 아랍과 이스라엘 젊은이들로 이뤄진 오케스트라. 그들은 2005년 분쟁지역 라말 76

77 라에서 베토벤 교향곡 5번을 연주해 감동을 빚어낸다. 연주회장 밖은 무장군인들에게 둘러싸인 상태였다. <아웃 오브 플레이스>의 마지막 장면. 카메라가 바렌보임을 비춘다. 그가 말한다. 사이드는 음악이 갈등 을 치유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게 음악의 본성이거든요. 그래서 그는 (진정한) 음악가 였어 요. 객석의 불이 꺼지고 바렌보임이 피아노 앞에 앉는다. 슈베르트의 즉흥곡 op 음악이 흐르 는 사이, 카메라는 레바논의 작은 마을 브루마나 로 간다. 사이드의 무덤이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그는 자신이 태어난 땅으로 가지 못하고 아내의 고향에 묻혔다. Elga r C ello C o ncerto with J.Du Pre Diva n Orches tra Ba renbo im - Wes t Ea s tern [주제와 변주]피아니스트 다니엘 바렌보임 ㆍ조강지처 버린 주홍글씨 폄훼당한 전인적 음악성 사람들은 그를 미워했다. 불치병에 걸려 죽어가는 조강지처를 버린, 인정머리 없는 이기주의자라고 여겼 다. 이 비호감 의 강도는 한국에서 특히 셌다. 그의 연주와 지휘는 실제보다 격하되기 일쑤였고 음반도 도통 팔리지 않았다. 좋아하는 피아니스트가 누구냐는 질문에, 그의 이름을 거론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적어도 한 10년 전까지는 그랬다.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 얘기다. 바렌보임과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의 결혼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음악 커플의 탄생이었다. 바렌보임이 26세, 뒤 프레가 22세였던 1968년의 일이었다. 옥 스퍼드대학 교수였던 아버지와 피아니스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뒤 프레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키 작은 유대인 바렌보임과 결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뒤 프레가 결혼을 위해 종교까지 유대교로 바꿨던 것은 유명한 얘기다. 하지만 70년대에 들어서면서 뒤 프레에게 닥쳐온 불행의 그림자. 그녀는 첼로 를 켜다 자주 템포를 놓쳤으며, 나중에는 눈이 침침해지면서 악보마저 보이지 않았다. 다발성 근육경화 증 이라는 희귀한 병. 그렇게 온몸의 근육과 신경이 점점 굳어가던 그녀는 결국 73년 무대에서 내려왔고 87년 눈을 감았다. 42년의 짧은 생애였다. 빼어난 연주력에 아름다운 외모, 게다가 사랑을 위해 자기를 희생할 줄 알았던 순정한 여인. 이런 훌륭 77

78 한 아내를 돌보지 않은 싸가지 없는 남자를 누가 좋아하겠는가. 뒤 프레가 세상을 떠난 후, 바렌보 임을 언제나 따라다녔던 이 주홍글씨는 그의 연주에 대한 폄훼로까지 이어졌다. 사람들은 음악가로 승승 장구하던 그를 미워했으며, 그의 음악을 들으며 정서적으로 불편해했다. 게다가 바렌보임은 나는 하루 2 시간 이상 피아노 연습을 하지 않는다. 그 이상은 내게 필요치 않다 고 공공연히 발언함으로써, 잘난 척하는 인간 이라는 낙인까지 찍혔다. 그렇게 감정적 공분 을 샀던 바렌보임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였다. 그 결정적 계기는 팔레스타인 출신의 사상가 에드워드 사이드와의 만남이었고, 두 사람이 5년간 나 눈 대화의 주요 부분을 간추린 <평행과 역설>이야말로 바렌보임의 이미지를 부정에서 긍정으로 바꾼 전환 점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바렌보임이 <평행과 역설>에서 보여줬던 모습에 충격 을 받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음 악은 아름다워요 라는 단순 어휘를 앵무새처럼 되뇌는 지휘자, 저는 바이올린이 전공이기 때문에 피아 노 음악은 몰라요 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연주자. 그렇게 자기 분야에만 충실한 전문가 들이 즐비한 땅에서 정치와 사회, 음악과 문화를 종횡무진 오가는 바렌보임의 식견 은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던 것 아닐까. 2년 전, 성공회대학의 신영복 선생께서 독일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피아니스트 조은아를 소개했다. 음악 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대화나 한번 나눠보라 는 뜻이었을 게다. 그렇게 알게 된 그녀와 대화를 나누다 바렌보임 얘기가 나왔다. 그녀가 말했다. 조강지처를 버린 재주 많은 음악가 정도로만 생각했었죠. 그러 다가 파리 샤틀레극장에서 바렌보임이 바흐의 평균율 전곡을 연주하는 걸 들었어요. 그때 완전히 설 득당하고 말았죠. 무엇보다 음악을 대하는 시선 이 피아노만 아는 피아니스트들과 달랐어요. 억지 목소 리를 내지 않았고, 한 음 한 음에서 정신의 걸음걸이가 느껴졌어요. 바렌보임은 어떤 음악가인가? 파리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와 시카고심포니의 음악감독을 역임했으며, 2000년에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종신지휘자 자리에 오른 세계적 지휘자. 모차르트, 베토벤, 멘델스존, 쇼 팽 등 방대한 레퍼토리를 가진 천재형 피아니스트. 게다가 그는 피아졸라의 탱고를 맛깔스레 연주해내는 크로스오버 연주자이기도 하다. 그뿐일까? 아니다. 무엇보다 그는 <평행과 역설>, <음악 속의 삶> 등을 통 해 정치와 문화의 관계를 통찰해온 평론가다. 또한 그는 자신의 조국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의 무를 전혀 이행하지 않는다 고 항의하면서, 서동시집 오케스트라 를 이끌고 분쟁지역을 찾아가 베토 벤을 연주하는 지식인이다. 그래서 그에게 전인적 ( 全 人 的 )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본다. 전인적 음악가 바렌보임. 전문화 라는 구호 아래 정치와 경제는 갈수록 막강해지고 개인의 능력과 시야는 점점 협소해지는 세상. 그렇게 인간의 삶이 갈수록 왜소해지는 21세기에, 이 얼마나 특별하면서도 빛나는 존재인가

79 [주제와 변주]쉼없이 반짝인 38살 불꽃 삶 스페인 속살 을 노래하다 ㆍ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기타의 울음을 멈추게 할 수는/ 없으리라/ /아, 기타여! /다섯 개의 칼에 의해/ 상처 입은 심장이여.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1898~1936)는 그렇게 썼다. <칸테 혼도 시집>(1931)에 수록된 기타 라는 작품. 절창( 絶 唱 )이다. 전문을 인용하지 못해 아쉽다. 스페인의 시인이자 극작가였던 로르카는 시는 입으로 읊 는 것. 책 속의 시는 죽은 것 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시는 탄식과 절규를 토해내는 집시의 노래 칸테 혼도 (Cante Jondo)를 닮았다. 음악 은 로르카 문학의 원천이었다. 안달루시아의 푸엔테바 케로스에서 태어난 로르카는 11살이 되던 1909년에 부모를 따라 그라나다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안 토니오 세구라에게 음악수업을 받았다. 어린 시절 그의 꿈은 백 발의 노스승처럼 음악가가 되는 것이었다. 데뷔작이었던 첫 산 문집 <인상과 풍경>을 내던 스무 살 때까지만 해도, 그의 꿈은 여전히 음악가였다. 하지만 그것은 법학을 공부하라는 부친의 반대로 벽에 부딪혔고, 그래서 택한 차선의 삶이 시인과 극작 가 였을 것이다. 피아노 연주와 작곡에 능통했고 자국의 민속음악에 뜨거운 애 정을 가졌던 로르카. 이 전방위적 예술가는 38년의 짧은 생을 그야말로 불꽃처럼 살았다. 24세에 스페인을 대표하는 작곡가 마누엘 델 파야와 칸테 혼도 페스티벌 을 조직해 음악가의 못다 한 꿈을 불살랐고, 극단 바라카 를 만들어 전국을 돌면서 민중과 만났다. 대표작이랄 수 있는 <칸테 혼도 시집>과 <집시의 노래집>은 문학 언 어로 육화된 스페인의 노래였다. 나뭇가지에서의 왈츠, 즉흥적인 사랑노래 익나시오 산체스 메 히나스를 추모하며 같은 주옥같은 시편들은 얼마나 음악적인가. 로르카가 시인이자 극작가로 활약하던 30년대는 스페인의 정치적 격변기였다. 로르카는 30년대 초반부터 우익 파시스트들에게 공산주의자 로 낙인찍혔다. 그는 반파시스트 운동에 열렬히 참여했고, 인민전선 을 지지하는 지식인 서명운동에 동참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인민전선 정부를 수립한 36년. 역설적이게 도 이 해는 로르카에게 운명의 해였다. 같은 해 7월 반혁명 쿠데타를 일으킨 프랑코와 팔랑헤당은 순식간 에 그라나다를 점거했고, 13만의 그라나다 인구 가운데 2만3000명을 학살하는 인간사냥을 벌였다. 로르카 도 이 학살극을 피해갈 수 없었다. 음악과 시, 연극과 회화를 아우르던 천재는 어떻게 죽었는가. 비참하고 덧없다. 36년 8월16일. 그는 루이스 로살레스라는 시인이 자기 집으로 피신하라고 권하자 그 말을 믿고 따른다. 하지만 그렇게 신뢰했던 사람 은 시인의 탈을 쓴 팔랑헤당의 프락치였다. 체포된 로르카는 19일 새벽, 그라나다의 비스나르 언덕으로 끌 려갔다. 새벽 공기를 가르던 섬뜩한 총성. 그것이 음악을 사랑했던 시인 로르카가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들 79

80 었던 소리 였다. 그의 시신은 산기슭의 구덩이에 던져졌다. 그렇게 세상을 떠난 로르카를,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훗날 이렇게 회상한다. 번갯불의 화신. 쉴 새 없이 움직였고 즐거워했고 반짝였고 초인적인 매력을 느끼게 했다. 행복이 그로부터 쏟아져 나왔다. 로르카가 시를 통해 들려줬던 스페인의 노래. 그것을 노래 그 자체로 들어본다면, 과연 누구의 목소리 가 좋을까. 선택은 별로 어렵지 않다. 당연하게도 빅토리아 데 로스 앙헬레스 를 골라야 한다. 로르카가 세상을 떠나기 15년 전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난 이 소프라노야말로 스페인의 노래를 대표하는 성악가. 그녀 는 50년대에 마리아 칼라스, 레나타 테발디와 더불어 스리 소프라노 로 거론되던 프리마돈나였지만, 오 페라보다는 오히려 고향의 노래를 불러 더 큰 존재감을 아로새겼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20세기까지, 그녀 는 스페인 노래들로 숱한 명반을 내놓고 2005년 세상을 떴다. 특히 50년 지기인 동갑내기 피아니스트 알리 시아 데 라로차 (85)와의 협연은 놓치기 아까운 아름다운 음악 이다. VICTORIA DE LOS ANGELES - Spa nis h s o ngs [주제와 변주 ]20 세기 최고의 첼리스트, 그의 앞에선 모두가 포로 ㆍ파블로 카잘스 20세기 첼로의 거목. 거기까지만 얘기해도 단박에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바로 파블로 카잘스(1876~1973) 80

81 다. 본인도 술회했듯 첼로보다 별로 크지 않은 키 에 두툼한 손을 가진 20세기 첼로의 제왕. 그와 동시 대, 혹은 그의 사후에도 숱한 첼리스트가 명멸했지만, 카잘스만한 존재감으로 여지껏 숭앙받는 인물은 찾 기 힘들다. 왜일까? 마침 국내 한 음반사에서 카잘스의 명연을 10장의 CD에 담아 파블로 카잘스 스페셜 에디션 을 내놨다. 스테레오 이전에 녹음돼 세월의 때가 뿌옇게 낀 음반들이지만, 아흔살 넘어서도 연주 를 멈추지 않았던 카잘스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거친 숨소리가 고스란히 들린다. 소문난 음악애호가인 소설가 송영 선생은 <바흐를 좋아하세요?>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음반도 귀하고 그것을 들려주던 기기도 귀하고 정보조차 귀하던 시절, 나는 어느 조그만 음악실 문 밖에서 무반주 첼 로 모음곡 6번을 처음 들었다. 파블로 카잘스의 연주라는 걸 뒤에 알았 다. 문 밖에 선 채로 음악이 끝날 때까지 들었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몇달 동안 이 음악의 선율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길을 걸을 때나 남 과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눌 때나 심지어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귓가에 맴돌았다. 만약 그 연주의 주인공이 카잘스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어땠을 까? 모리스 장드롱이나 안너 빌스마였다면, 아니면 미샤 마이스키나 요요마였다면? 그래도 그렇게 강렬하게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아마 아 니었을 것이다. 물론 그들도 각자의 스타일로 일가를 이뤘음에 분명하 지만, 카잘스처럼 꼼짝없이 사람을 붙들어매진 못했을 것이다. 카잘스의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스페인 카탈루냐의 시골마을 벤드렐에서 보낸 어린 시절. 카잘스 음 악의 내밀한 에너지는 그때 이미 시작됐던 것은 아닐까? 시골 성당 오르가니스트였던 아버지. 그는 어린 아들에게 음악과 피아노를 가르쳤지만, 성당에서 오르간을 연주할 수 있는 정도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그 는 아들이 목수가 되거나 장사를 하길 바랐다. 어린 파블로의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열한명의 아이 가운데 일곱명이 태어나면서 죽었던 가난한 집안의 아들. 본인도 탯줄에 목이 감긴 채 태어나 거의 죽을 뻔했던 그 아이는, 어서 어른이 돼 집안을 돌보는 게 자기 몫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친은 달랐다. 파블로에게 첼로를 시키겠다고 고집하는 어머니와 그걸로는 먹고 살 수 없다는 아 버지는 빈번히 부딪혔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아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결국 이긴 건 어머니였다. 운좋게 후원자들을 만난 카잘스는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에서 몇년간 첼로를 공부했고, 아들의 영원한 지지자인 어머니와 함께 프랑스 파리로 갔다. 하지만 거기서 모자를 기다리고 있던 건 낭만이 아니라 끔찍한 궁핍이 었다. 카잘스는 훗날 당시의 거처는 헛간이나 다름없었다 고 회고했다. 93세의 카잘스가 자신의 삶을 회고한 <나의 기쁨과 슬픔>(앨버트 칸 엮음)의 한 대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어머니는 어딘가로 돈을 벌러 나갔어요. 삯바느질거리를 얻어 오셨지요. 나도 필사적으로 일거리를 찾았어 요. 샹젤리제의 음악홀에서 하루에 4프랑을 받고 연주했지요. 그곳까진 꽤 멀었어요. 전차삯이 15상팀이었 는데, 나는 매일 첼로를 들고 걸어 다녔어요. 어느 몹시 추운 겨울날, 난 심하게 앓았지요. 일을 하러 갈 81

82 수 없었어요. 어머니는 더 늦게까지 바느질을 하셨지요. 하루는 집에 들어오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이상했 어요. 절망스럽게도! 아름답고 길던 검은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았어요. 어머니는 신경쓰지 마라, 머리카 락은 다시 자라는 거야 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래서 카잘스는 목숨 을 걸고 첼로를 켰을 것이다. 3년 후 다시 파리를 찾은 23세의 카잘스. 그의 앞 에는 마침내 빛나는 성공이 기다리고 있었다. 파리 음악계의 거장 라무뢰(1834~99) 앞에서 랄로의 첼로 협주곡 을 처음 연주하던 순간, 그것이 바로 카잘스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절뚝거리며 다가와 카잘스를 끌어안은 라무뢰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보게, 자네는 정말 특별하군. 다음달 나 와 연주하게 될 걸세. 연주회가 열린 것은 19세기가 막을 내리던 1899년 12월17일. 카잘스는 단 한번의 연주로 20세기 최고의 첼리스트 라는 후세의 평가를 예약했다. 그리고 라무뢰는 4일 후 타계했다. 서두 에 언급한 파블로 카잘스 스페셜 에디션 은 카잘스의 주요 녹음을 간추린 1000세트 한정판. 카잘스 애 호가라면 구입을 서두르는 것이 좋겠다. CD1, 2. 바흐 무반주 첼로조곡 전곡 / CD3, 4.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 / CD5. 카잘스 트리오 : 베토벤, 슈만 / CD6. 카잘스 트리오 : 슈베르트, 멘델스존 CD7. 브람스, 드보르작 / CD8. 엘가, 브루흐, 브람스 / CD9. 헨델, 브루흐, 포퍼, 포레, 슈만, 바흐, 하이 든, 브람스, 헨델, 차이코프스키, 큐이 CD10. 포퍼, 슈베르트, 슈만, 바그너, 드뷔시, 쇼팽, 고다드, 그라나도스, 생상, 스감바티

83 [주제와 변주]가난한 떠돌이 삶 31 년 세상에 남긴 작별 인사 ㆍ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1번 그는 친구와 술을 좋아했다. 몸에서는 늘 담배 냄새가 풍겼다. 키는 작고 몸매는 통통했으며, 둥근 얼굴에 이마는 툭 튀어나와 있었다. 어릴 때부터 근시였던 터라 늘 두꺼운 안경을 꼈으며, 그 안경 너머에서 두 눈은 반짝반짝 빛을 발했다. 슈베르트는 그렇게 착한 인상을 지녔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슈 베르트의 이미지들은 대부분 그렇다. 성품은 느긋해 보이고 행 동거지에 여유가 있어 보인다. 한량 같은 분위기마저 풍긴 다. 하지만 친구였던 레오폴드 쿠펠바이저가 그린 초상화. 이것 은 분위기가 영 다르다. 꾹 다문 입술에 굳은 표정. 영락없이 겁 많고 소심한 청년의 얼굴이다. 약간 오른쪽을 향한 시선은 왠지 불안해 보인다. 그 초상화는 피아니스트 알프레트 브렌델(77)의 DVD 슈베르트 피아노 작품집 (Schubert Plano Works)의 해 설지 첫 페이지에 실려 있다. 그것을 보는 순간, 그래, 이게 바로 슈베르트의 얼굴이지! 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가 살았던 31년의 생애는 베토벤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활동했 던 시기와 거의 겹친다. 베토벤은 그때 이미 이름을 날리던 대 작곡가였지만 슈베르트는 아직 신출내기에 불과했다. 생전의 슈 베르트는 거의 룸펜에 가까웠다. 하지만 떠돌이 룸펜 의 삶 을 스스로 원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도 번듯한 직업을 갖고 싶어했다. 세상을 떠나기 2년 전, 오스트 리아 궁정의 부악장에 응모했던 슈베르트. 당시 그가 직접 썼던 청원서를 읽어가노라면, 이 키 작은 음악 가에 대한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생전의 슈베르트가 피아노 소나타 라는 이름으로 남겨놓은 음악은 모두 23곡. 그중에서도 19번 c단조 D 번 A장조 D 번 B플랫장조 D.960 은 백미로 손꼽힌다. 이 세 곡은 세상을 떠나기 약 두 달 전에 작곡했던 유작들. 곡명 속의 D 는 음악학자 오토 에리히 도이치(1883~1967)가 작성한 작품 번호의 약자다. 어떤 이들은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호평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같은 이가 그 렇다. 굴드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슈베르트를 좋아하지 않는다. 반복적인 구조에 잘 적응이 되지 않는 다. 장문의 에세이와도 같은 그의 작품을 듣다 보면 불안감과 어색함마저 느껴진다. 몽생종이 쓴 <리흐 테르, 회고담과 음악수첩>(2005 정원출판사) 에 부록으로 수록된 옮긴이 말 을 참조했음을 밝힌다. 굴드가 지적했듯 슈베르트의 피아노 음악은 반복적 이다. 아름다운 주선율을 조( 調 )만 옮겨가며 여러 83

84 차례 반복한다. 그래서 때때로 지루하다. 특히 굴드처럼 간결한 스타카토를 즐겼던 피아니스트에게는 더욱 그러할 터이다. 그래서 작곡가 슈베르트 는 시인이라기보다 미문( 美 文 )의 에세이스트에 가깝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남긴 3곡의 소나타에서는 그 설명적인 반복마저도 가슴 아프다. 특히 21번 B플랫장조 D.960. 이 곡은 가난한 떠돌이 로 31년을 살았던 슈베르트가 세상에 남긴 작별 인사 다. 브렌델은 앞서 언급한 슈베르트 피아노 작품집 에서 이렇게 말했다. 첫 악장은 눈물도 흘리지 않고 두 눈을 뜬 채 작별을 고하는 듯이 들린다. 두번째 악장은 피아노를 위한 세상의 모든 애가( 哀 歌 ) 가운데 가장 아름답 다. 슈베르트를 좋아하지 않는다 고 털어놓았던 굴드마저도 이런 언급을 남긴다. 1957년 모스크바에서 열 렸던 피아니스트 리히테르의 연주회. 그때 객석에 앉아 있던 굴드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리히테르는 슈베르트의 마지막 소나타인 B플랫장조 소나타 로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 곡은 매우 길다. 리히테르 는 내가 들어본 것 중에서 가장 느리게 이 곡을 연주했다. 나는 최면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망아지경에 빠져버렸다. 슈베르트의 반복적인 구조에 대한 나의 선입견은 모두 스러졌다. 그렇게 마지막 소나타로 세상과 작별을 고한 슈베르트는, 1828년 11월18일, 병세가 악화돼 정신착란 증세 를 보였다. 둘째형의 집 지하실에 기거하고 있던 그는 자신을 베토벤으로 착각한 채 헛소리를 했다. 슈베 르트는 그렇게 발작을 일으킨 지 하루 만에 눈을 감았다. 사인은 장티푸스. 하지만 독일의 내과의사 디터 케르너는 <위대한 음악가들의 죽음>이라는 책에서 슈베르트의 사인이 매독 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Schubert Piano Sonata D. 960 part 2 ~ Alfred Brendel (1988)

85 [주제와 변주]리히테르, 우직한 황소 같은 피아니스트 ㆍ겉치레 벗고 내면의 열정 불태우다 피아니스트 스비야토슬라프 리히테르(Sviatoslav Richter 1915~97)의 러시아식 애칭은 슬라바 다. 지난 해 4월 세상을 떠난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도 같은 애칭으로 불렸다. 하지만 이 둘은 성품과 음악적 분 위기가 사뭇 달랐다. 첼로의 슬라바가 호방하게 뻗어나가는 외향적 음악을 들려줬던 반면에, 피아노의 슬 라바는 엄청난 집중력으로 자신과 싸우는 내향적 연주를 보여줬다. 무대로 걸어나올 때의 모습도 아주 달 랐다. 로스트로포비치는 뛰어들듯이 성큼성큼 무대 중앙으로 걸어나왔지만, 리히테르는 조용히, 느리게 걸 어나와 피아노 앞에 앉고는 했다. 그는 고개를 잠깐 숙여 청중에게 인사한 다음, 아예 눈길을 객석 쪽으로 돌리지도 않았다. 어쩌면 그것은 청중에 대한 무시, 혹은 오만으로 비칠 수도 있는 행동이었 다. 리히테르는 심지어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연주한다. 나는 청중에 대해 아무 관심이 없다 고 털어놓은 적도 있었다. 전기작가인 브뤼노 몽생종과 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하지만 리히테르를 오만한 연주자 라고 손 가락질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것은 청중에 대한 무시라기보다, 무념의 상태 에서 음악에만 집중하겠다는 의지에 가까웠다. 그래야 청중도 제대로 된 음 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리히테르의 뜻이었다. 조명이 휘황한 콘서트홀을 좋아하지 않았던 피아니스트. 그래서 그를 떠올 릴 때마다, 객석과 무대가 완전히 암전된 상태에서 악보와 건반만을 비추는 불빛에 의지해 연주하던 모습 이 함께 떠오른다. 말년의 리히테르는 그렇게, 불을 꺼달라 고 요청하곤 했다. 그리고 71세였던 1986년, 그는 자동차 한 대로 러시아를 횡단하면서 궁벽진 마을들을 찾아다녔다. 레닌그라드에서 블라디보스토크 까지 이어졌던 여정. 리히테르는 그렇게, 러시아의 외진 곳을 찾아다니며 91회의 연주회를 치러냈다. 그는 성미 까다롭게 내 피아노 를 고집하지 않았으며, 시골 성당의 낡은 피아노로 연주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심지어 조율이 안된 피아노로도 감동적인 연주를 선보였다고 전해진다. 고집과 당당함, 느리고 무겁고 선이 굵은 연주. 11년 전 타계한 리히테르는 그렇게, 황소 같은 이미지 의 피아니스트로 남았다. 그는 청중에게 멋지게 보이려는 겉치레를 털어내고 오로지 음악에 집중했으며, 세속적 성공에 눈 돌리지 않고 결벽증에 가까운 꼿꼿함을 보여줬다. 지난주 주제와 변주 에서 언급했던 슈베르트의 소나타 B플랫 장조 D.960. 리히테르는 슈베르 트가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에 남긴 이 소나타에서도 역시 특유의 피아니즘을 보여준다. 극단적으로 느린 걸음의 1악장, 두루루룽 하고 울려나오는 왼손 저음부의 트릴이 묵직하다. 슈베르트 음악은 눈물 콧 물 짜는 신파 라며 악담 을 퍼붓는 이들은 2악장을 한번 들어볼 일이다. 어둡게 흐르는 비애감, 하지 만 센티멘털로 추락하지 않는 정신적 긴장감. 이만하면 숙연하지 않은가. 85

86 이 곡의 명연을 남긴 또 다른 이들로는 빌헬름 켐프, 루돌프 제르킨, 알프레드 브렌델 이 떠오른다. 켐프의 65년 녹음은 섬세하다. 하지만 리히테르와 비교하자면 선이 가늘고 힘이 없다는 인상을 준다. 반대 로 제르킨의 75년 녹음은 힘이 넘친다. 고조되는 프레이즈에서 너무 세차게 달려나간다는 느낌마저 든다. 피아노 소리에 간간이 섞인 거친 숨소리를 함께 듣노라면 더욱 그렇다. 얼마전 은퇴를 선언한 브렌델은 네 명 가운데 가장 달변 의 연주. 음색도 리히테르나 켐프에 비해 환하다. 그런데 슈베르트의 마지막 소 나타 를 이렇게 유창하게 묘사해도 되는 것일까. 타계한 두 거장과 77세의 노대가에게는 살짝 미안하지만, 오늘은 리히테르가 연주한 슈베르트의 D.960을 권한다. 61년 11월, 모스크바에서 있었던 연주회. 프라하 실황음반을 구하기 어려워진 지금, 이것이 하나의 대안이 될 성싶다. 네덜란드의 브릴리언트가 발매한 <스비야토슬라프 리히테르 인 콘서트>(사진)에 수록돼 있다. 5장의 CD로 이뤄진 이 음반에는 슈베르트 외에 베토벤과 리스트의 소나타들도 함께 담겼다. 가격도 저렴하다. 86

87 Alfred Brendel Wilhelm Kempff Rudolf Serkin [주제와 변주 ] 나치 당원 전력 불구, 20 세기 음악계 최고권력 ㆍ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89)은 나치 당원이었다. 2차대전 종전 후, 그는 자신의 나치 전력에 대 한 비난이 쏟아지자 이렇게 해명 한 적이 있다. 나는 1935년 (독일) 아헨에서 음악총감독이 되려할 때 당원이 되었다. 내가 숙원해온 목표를 바로 눈앞에 둔 3일 전에 시장이 와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아 직 당원이 아니지요? 지역구 당책임자에 따르자면, 이 자리는 당원이 아니고는 맡을 수 없습니다. 그래 서 나는 서명했다. 카라얀은 그렇게, 나는 1935년에 어쩔 수 없이 나치에 가입했다 고 변명했다. 현재 유통되고 있는 카라얀에 대한 허다한 자료들도 이 술회 를 대체로 의심없이 받아들인다. 일본의 유명 한 음악전문 출판사인 음악지우 ( 音 樂 之 友 )에서 90년 펴낸 <클래식의 거장들>도 카라얀이 아헨 시대에 나치에 입당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이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상 류층 집안에서 태어난 카라얀은 - 그의 아버지 에른스트 폰 카라얀은 오스트리아의 국립보건국 국장이었다 년 4월에 이미 나치당에 가입했다.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되기 1년여 전이었다. 당시 오스트리아는 독일, 이탈 리아와 마찬가지로 여러 정파와 이념이 뒤섞인 혼란한 정 국 속에 있었다. 카라얀의 잘츠부르크 나치당 당원번호는 그는 한 달 후 독일의 울름(Ulm) 지역 나치당 87

88 에도 가입한다. 이때의 당원번호는 였다. 카라얀은 27세에 아헨극장 음악총감독 자리에 오른 후 승 승장구한다. 그는 2년 뒤 빈 국립오페라극장에 데뷔했고 이어서 베를린필하모닉과 베를린 국립오페라극장의 지휘 봉을 차례로 든다. 당대의 거목 푸르트벵글러(1886~1954) 가 나치에 협력하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뒀던 것과 달리, 카라얀은 더욱 적극적으로, 다시 말해 나치의 일원 으로서 출세 가도를 달린다. 광기 어린 독재자 히틀 러는 이 젊은이의 지휘를 별 볼 일 없다 고 생각했지만, 냉철한 전략가였던 문화선전부장관 괴펠스의 생각은 달랐던 듯하다. 그는 출세에 눈먼 이 젊은 지휘자야말로 나치의 문화정책을 효율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뛰어난 인재 라고 여겼다. 음악은 과연 정치와 무관한가? 이른바 음악의 자율성 은 기회주의자들에게 훌륭한 자기 변호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카라얀도 그랬다. 그는 독일이 전쟁에서 패망한 직후, 자신을 심문하던 미군 장교에게 나 는 단지 음악을 했을 뿐 이라며 스스로를 변호한다. 이 순수함 은 약발을 톡톡히 받았다. 당시의 미군 장교는 음악이 생존을 의미하는, 음악만이 중요한 광신자 라는 보고를 올렸고, 카라얀은 2년 후 연주활 동 금지에서 완전히 해제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치 당원이었던 카라얀의 음악 권력은 종전 후 더욱 확고해진다. 푸르트벵글러는 어느 덧 지는 해 였고 성품이 괴팍한 첼리비다케(1912~96)는 정치에 서툴렀다. 1954년 베를린필의 수장이었던 푸르트벵글러가 세상을 떠나자, 카라얀은 이듬해에 그 바통을 이어받으면서 종신지휘자 의 자리에 올 랐다. 그는 베를린필과 빈필 등 공공자금으로 운영되던 연주단체의 입장료를 올려 연주회 문턱 을 높 였으며, 57년부터 시작된 스테레오 녹음 시대를 맞아 매끄럽고 세련된 사운드의 음반을 잇달아 발표했다. 그때부터 20세기가 거의 막을 내릴 때까지, 카라얀의 시대 는 계속됐다. 20세기 음악계의 최고 권력자였던 카라얀. 그는 베토벤과 브람스, 바그너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을 즐 겨 연주했다. 그는 대중이 좋아할 만한 음악을 반복적으로 연주했으며, 정통 독일 레퍼토리의 범주를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음악적 폭이 좁다든가, 청중의 입맛에만 맞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카라얀이 베 를린필을 지휘해 녹음했던 벨라 바르토크(1881~1945)의 음악은 어쩌면 그 비판에 대한 일종의 알리바이 증명 이었는지도 모른다. 카라얀은 바르토크의 현악기, 타악기와 첼레스타를 위한 음악 을 60년에,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을 65년에 녹음했다. 하지만 나치의 광풍에 쫓겨 미국으로 건너갔던 헝가리의 작 곡가 바르토크, 가난과 백혈병에 시달리다 뉴욕에서 객사한 그의 음악을 카라얀의 지휘로 듣다니! 이 어찌 불편하지 않겠는가. 88

89 Music For Stings, Percussion And Celesta Sz.106, Concerto For Orchestra Sz.116 // Egmont Overture [주제와 변주]동서양 동서양, 신과 인간 거대한 음악의 벽화 그리다 ㆍ 현대음악의 성자 올리비에 메시앙 1941년 초, 그는 갇혀 있었다. 프랑스군으로 참전했다가 나치에게 붙잡힌 포로 신세였다. 폴란드 서남부와 체코 동북부에 걸쳐 있는 슐레지엔 지역의 괴를리츠(Goerlitz) 수용소.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 는 그 담장 안에서 작곡돼 초연됐다. 1월15일이었다. 3명의 수용소 동료와 4중주를 초연했던 당시 상황을, 그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살을 에듯 추웠다. 수용소 전체가 눈에 묻힌 상태였다. 3만명에 이르는 포로들은 주로 프랑스인들이었고 폴란드, 벨기에인들도 일부 있었다. 악기는 엉망이었다. 첼로는 현이 세 개뿐이었 고, 내가 연주할 피아노의 오른쪽 건반은 누를 수는 있었지만 다시 튀어오르지 않았다. 나는 넝마 같은 초 록 재킷을 걸치고 나무 고랑을 차고 있었다. 현대음악의 성자 로 불리는 올리비에 메시앙 (1908~92)의 회고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이 전설적인 일화는, 이제 20세기 음악사의 명장면 으로 남았다. 올해가 바로 메 시앙 탄생 100주년. 그의 조국 프랑스는 올해를 메시앙의 해 로 선포해 기념했고 세계 곳곳에서 그를 기리는 연주회들이 줄을 이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지난 일요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있었던 피아니스트 백건우씨 89

90 의 연주회는 메시앙 음악의 넓이와 깊이 를 생생하게 보여준 수연( 秀 演 )이었다. 오늘 메시앙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는 것 은, 바로 그 연주회에서 받은 감흥이 여전히 크기 때문이다. 백씨는 메시앙의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20개의 시선 을 연주했다. 2시간이 조금 넘는 연주. 하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 다. 20개의 시선 은 피아노 한 대로 그려낸 우주적 장관( 壯 觀 )이었다. 백씨의 피아노는 섬세함과 격렬 함, 명상과 즐거움을 빼어나게 직조했으며, 성모의 자장가처럼 부드럽게 울려나오던 피아노의 음향은 어 느덧 거대한 태풍으로 변모해 몸과 마음을 후려쳤다. 이거야말로, 꼼짝할 수 없게 만드는 음악 아닌 가. 그 연주회장에 피아니스트이자 음악평론가인 김순배씨와 동행한 것은 행운이었다. 김씨가 메시앙 연구로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는 것도 그날 처음 알았다. 연주회의 커튼콜까지 완전히 끝난 후, 맥이 탁 풀린 모습 으로 정신없이 두들겨 맞은 것 같네요 라고 말하자, 김씨가 이렇게 진단 했다. 이 음악이 표현하 고 있는 세계가 워낙 방대해요. 인간성과 신성( 神 性 )을 동시에 오가잖아요. 음역도 위 아래를 극단적으로 오가면서, 그야말로 극한적인 대비 를 보여주고 있어요. 또 정신적이고 영적인 세계가 소리로 표현됐 을 때, 인간의 육체와 대립하는 측면이 있지 않겠어요? 그래서 몸이 얼얼한 겁니다. 이질적인 것들, 아니, 사람들이 이질적이라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의 융합 이야말로 20세기 작곡 가 메시앙의 키워드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연주회가 있기 한 달 전쯤, 프랑스에 있는 백건우씨와 인 터뷰를 했다. 그때 백씨는 메시앙의 음악세계는 복합적 이라고 표현했다. 복합 이라는 게 어떤 의 미인가 라고 묻자, 백씨는 이렇게 부연했다. 메시앙 선생은 서양뿐 아니라 동양을 끊임없이 이해하려 고 했어요.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여러나라 음악에 관심을 가졌던 분이죠. 거기에 자연과 종교까지 아우 른, 굉장히 그릇이 큰 작곡가입니다. 유사한 언급이 에드워드 사이드의 <음악은 사회적이다>에도 등장한다. 사이드는 메시앙에 대해 확고한 절충주의적 태도 를 통해 어떤 전통이나 권위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었다 고 말한다. 여기서 절 충 은 적당한 타협이라기보다 융합 이라는 뜻에 더 가까울 성싶다. 동양과 서양, 신과 인간, 미시적 자연과 거시적 우주를 융합해 거대한 음악의 벽화를 그려낸 메시앙. 김순배씨는 지난 일요일 연주된 20 개의 시선 에 대해, 20세기 최고의 피아노 작품 이라고 평했다. 90

91 Olivier Mes s ia en Vingt Rega rds s ur l' Enfa nt-jes us [주제와 변주]찬란한 서정의 광휘 꿈꾼 20 세기 골수 낭만주의자 ㆍ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러시아의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는 19세기 후반에 태어나 거의 20세기 중반까지 살았다. 덕분에 남 아 있는 사진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가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198cm의 껑충한 키에 늘 굳어 있는 얼 굴. 피아니스트 리히테르는 러시아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가 얼마나 내성적인 사람인가를 회고했던 적이 있지만, 그보다 한 세대 앞선 라흐마니노프는 한층 더 우울한 초상을 후대에 남겼다. 그는 꼭 필요한 얘기 가 아니면 하루 종일 거의 입을 열지 않았고, 우스갯소리 따위는 아예 자신의 사전 에 올려놓지도 않았 던 사람이었다. 마침 KBS 클래식FM에서 14일부터 6일간 라흐마니노프의 밤 이라는 특집을 마련하는 모양이다. 진행자 인 정준호씨가 보내온 e메일 속에 라흐마니노프의 지독한 내향성 에 대한 스트라빈스키의 회상이 담겨 있어 눈에 띈다. 내용을 소개하자면 대략 이렇다. 라흐마니노프는 조국 러시아를 떠나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말년을 보냈다. 같은 동네에 역시 러시아를 떠 나온 스트라빈스키가 살았다. 두 사람이 부부 동반으로 식사를 하던 중, 라흐마니노프의 아내가 스트라빈 91

92 스키에게 물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뭘 하세요? 스트라빈스키가 대답했다.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하지 요. 그러자 라흐마니노프의 아내가 남편에게 투덜댔다. 거봐요. 운동을 하고 샤워도 한다잖아요. 얼마 나 멋져요. 당신은 부끄럽지도 않아요? 산책도 싫어하는 게으른 양반아! 하지만 라흐마니노프는 묵묵부 답. 그는 겸연쩍게 웃지도 않고 인상을 찡그리지도 않은 채, 그저 식사만 했다고 한다. 이 장면은 맞은편에 앉아 있던 스트라빈스키에게 약간 불편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핀잔을 들으면서 도 말없이 밥만 먹던 라흐마니노프의 모습을 오래도록 잊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는 훗날 자신의 제자인 로 버트 크래프트에게 이 일화를 들려줬고, 그것은 스트라빈스키의 회고록에 실렸다. 그 책에는 이런 얘기도 있다. 한 번은 우리집 현관 앞에 꿀을 두고 갔어. 너무 늦은 시간이어서 폐가 될 거라고 생각했나봐. 말 없이 꿀만 놓고 갔더라고. 내성적일 뿐 아니라 남에게 민폐 끼치는 걸 극도로 싫어했던 라흐마니노프. 이런 특별한 성정( 性 情 )은 아마도 유년시절에 형성됐을 것이다. 라흐마니노프는 유서깊은 타타르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퇴역 장교였던 그의 아버지가 거의 난봉꾼 수준이었던 모양이다. 그 아버지는 이리저리 사업을 벌인다며 집안의 재산을 탕진했고, 아내와도 끝없이 불화를 겪다 결국 이혼하고 말았다. 그런 까닭에 라흐마니노프 는 어려서부터 부모와 떨어져 살며 외로운 시절을 겪었다. 게다가 누이가 디프테리아로 세상을 떠나는 바 람에 소년의 외로움과 우울은 더욱 커졌을 것이다. 1897년에 교향곡 1번 이 혹평받은 후, 심각한 우울 증에 시달리며 정신과 치료까지 받아야 했던 라흐마니노프의 내면에는, 이렇게 유년의 트라우마 가 자 리해 있었던 것이다. 작곡가, 지휘자, 편곡자이자 피아니스트였던 라흐마니노프. 그는 20세기 음악사에서 보기 드문 멀티 플 레이어 였다. 그는 20세기의 새로운 흐름에 눈을 돌리지 않은 채 19세기적 음악어법을 끝까지 고수했던 음악적 보수주의자였으며, 찬란한 서정의 광휘를 인생의 마지막까지 꿈꿨던 골수 낭만주의자 였다. 손가락을 쫙 펴면 손의 길이가 30cm에 이르렀다는 라흐마니노프. 고국을 떠난 그는 미국 땅에서 살면서부 터 작곡가보다는 피아니스트로서의 활동에 집중해야 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생계 때문이었다. 1943년 로스앤젤레스의 한 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사랑하는 나의 손이여, 잘 있거라. 가여운 손이여! KBS 클래식FM 실황음악회 가 14일부터 방송하는 곡들은 교향곡과 피아 노협주곡 전곡. 합창교향곡 종 도 방송된다. 최근의 명연과 더불어 라흐마니노프의 굴곡진 생애를 만날 수 있다. 92

93 [주제와 변주 ]20 세기후반 피아노의 거장 마침내 무대에서 내려오다 ㆍ알프레드 브렌델 알프레드 브렌델(77)이 떠났다. 18일 저녁 오스트리아 빈의 무지크페라인 홀. 올해를 마지막으로 연주활 동을 접겠다 고 이미 선언했던 브렌델이 생애 마지막 연주를 펼쳤다. 20세기 후반의 피아노 음악을 이끌 어온 거장. 언제나 신뢰할 수 있었던 브렌델의 진지한 피아니즘이 마침내 과거 라는 시간 속으로 떠났 다. 7년 전 프랑스의 음악잡지 <피아니스트>와 진행했던 인터뷰. 93

94 7년 전 프랑스의 음악잡지 <피아니스트>와 진행했던 인터뷰. 그것을 다시 들춰본다. 당시 70세의 브렌델이 늙음 에 대해 담담하게 말한다. 사람이 늙으면 체력에 한계가 오는 법이지 요. 이제 내가 하고 싶은 연주만을 선택할 겁니다. 연주회 요구 에 휘둘리지 않는 게 잘 늙어가는 방법이지요. 내 육체가 앞으 로도 잘 버텨 주었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말문을 연 그는, 자 신의 음악관을 전통주의자 라는 한마디로 요약한다. 나는 작품 이 연주자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이미 가르쳐주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전통주의자 에 속하 지요. 연주자는 작품을 좌지우지해선 안되고, 작곡가가 그렇게 썼으리라 지레 짐작해서도 안됩니다. 연주자의 일생은 파라 독스로 가득차 있어요. 작곡가의 의도를 존중하면서도 음악을 창조해야 하니까요. 브렌델은 초절기교의 비르투오소가 아니었다. 눈부신 개성을 뽐내는 스타일리스트도 아니었다. 그는 청중을 자극할 만한 어떤 포즈 를 갖고 있지 않았으며, 언제나 작품의 본래적 언어에 충실했다. 섬세한 프레이즈에 도달했을 때 건반을 향해 살짝 기울어지던 머리, 피아 노가 선율을 노래하는 장면에서 멀리 허공을 바라보던 눈빛. 그것이 브렌델이 보여준 포즈의 전부였다. 그래서 브렌델은 대기만성일 수밖에 없었다. 1931년 당시 체코 땅이었던 모라비아에서 태어난 그는 일찌감 치 오스트리아로 이주해 피아니스트의 길에 들어섰지만, 이른바 빈 3총사 로 불리던 프리드리히 굴다, 파울 바두라 스코다, 외르크 데무스 등 또래의 피아니스트들보다 한수 아래 취급을 받아야 했다. 젊은 시 절의 그는 그렇게,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었다. 1963년 미국 무대에도 데뷔했지만 그를 불러주는 메이저 음반사는 한 곳도 없었다. 몇 군데 마이너 레이블에서만 그에게 녹음 기회를 줬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음반사 복스 에서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녹음하는 등, 그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갔다.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던 인생. 그것은 어느날 갑자기 점프 한다. 브렌델도 그랬다. 이 견고한 구 조주의자 에게 음악계의 스포트라이트가 쏠린 건 70년대에 들어서면서였다. 어느덧 그는 40대였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젊었을 때 내 연주는 그리 화제를 모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한발씩 전진 했지요. 그러던 어느날, 영국 런던의 퀸 엘리자베스 홀에서 연주했을 때, 그날의 연주회는 나 스스로 만족 할 만한 것도 아니었고 프로그램 자체도 밋밋했어요. 그런데 연주회 다음날, 세군데 음반사로부터 제안을 받았어요. 갑작스레 물이 끓어올라 온도계의 눈금이 확 치솟는 느낌에 휩싸였지요. 앞서 언급한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그래서 그는 10년쯤 연하인 마르타 아르헤르치, 마우리치오 폴리니 와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20세기 후반의 피아노 음악을 이끌었다. 그리고 마침내 18일, 연주 인생 60년의 마침표를 찍었다. 4권의 에세이집을 쓴 음악비평가이자 2권의 시집을 낸 시인 브렌델. 이 전인적 피아니스트의 부재에 대한 94

95 아쉬움 때문일까. 최근 국내에 수입된 35장짜리 CD세트 <알프레드 브렌델>이 1주일도 안돼 동이 났다. 네 덜란드의 음반사 브릴리언트가 내놓은 전집. 브렌델에게 아직 세간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기 전이었던, 58~70년의 녹음들이다. 곧 재수입될 전망이다. Brilliant 6CD & 35CD Beethoven - Sonata Op 106, ''hammerklavier'' And Bagatelles Op 126; Nos 2 & [주제와 변주]차이코프스키 교향곡 가슴 시린 북국의 정취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은 겨울에 들으면 더욱 제맛이다. 베토벤의 7번과 드보르자크의 8번 교향곡이 여름 에 한층 어울리는 것처럼, 음악에는 나름대로 계절과의 어울림이 있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차이코프스 키의 교향곡은 겨울의 음악 이다. 아예 겨울날의 몽상 (Winter Daydreams)이라 이름 붙인 1번부터 비창 ( 悲 愴 )으로 불리는 6번까지, 어느 곡에서건 가슴 시린 북국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러시아적 비애감과 때때로 폭발하는 광기 어린 열정.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은 번호가 없는 만프레드 교향곡 까지 포함해 모두 7곡이다. 그중에서도 백미로 꼽히는 곡은 4, 5, 6번. 교향곡으로서의 구조가 취 약하고 선율이 지나치게 감상적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이 세 곡은 러시아 교향곡의 전형을 이 뤄낸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잿빛 우울은 그의 천성과도 같았다. 우랄 산맥 서쪽의 보트킨스크. 차이코프스키의 고향이었던 그 회색빛 광산촌이 그런 성정을 더욱 부채질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는 소심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었다. 이를 테면 1877년 가을, 모스크바강에서 벌어졌던 자살 소동은 이 우울한 소심남 의 성품을 단적으로 드러 낸다. 10월 초였다. 차이코프스키는 슈만이 라인강에 몸을 던졌던 것과는 달리, 강물 속으로 풍덩 뛰어들 지 않았다. 그는 물이 허리까지 차오르는 지점에 이르자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조용히 얼어 죽기를 기다 렸다. 하지만 그 동사( 凍 死 ) 기도라는 것도 본인의 말일 뿐, 실제로 그가 자살을 결행했던 것인지는 알 길 이 없다. 어쨌든 차이코프스키는 구조됐고 동생의 손에 이끌려 병원에 입원했다. 95

96 결혼식을 올린 지 두 달쯤 된 아내 밀류코바와의 파경. 그것이 자살 기도의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차이코 프스키에 관한 허다한 자료에서, 9년 연하의 아내 밀류코바는 거의 악녀 로 그려진다. 음악을 이해하지 못했고 신경질적이었으며 심지어 저속하기까지 했다는 등, 그녀에게 퍼부어지는 비난은 꽤나 극단적이다. 하지만 왠지 석연치 않다. 늘 우울하고 예민했던 남자, 동성애 기질까지 갖고 있던 차이코프스키는 과연 파경의 희생자이기만 했을까. 게다가 자살 소동 1년 전, 차이코프스키는 부유한 미망인 폰 메크 부인과 묘 한 관계를 맺었다. 표면상 그것은 예술가와 후원자의 스폰서십 이었지만, 차이코프스키와 그녀가 13년 간 주고 받은 1200여통의 편지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교향곡 4번은 바로 이 무렵에 쓰여졌다. 걸작으로 분류되는 세 곡의 교향곡 가운데 가장 드라마틱하고 열 정적인 곡. 아내를 피해 이탈리아로 떠난 차이코프스키가 산레모 바닷가에서 오케스트레이션을 완성한 교 향곡이다. 악보 머리에 등장하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 는 바로 폰 메크 부인. 그녀와의 야릇한 관계가 차이코프스키의 창작열을 자극했음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앞서 작곡한 1~3번과 확연히 구별되는 완성도. 시작부터 격렬하게 포효하는 1악장과 비애감 가득한 2악장이 특히 매혹적이다. 그로부터 10년 뒤 작곡했던 5번. 차이코프스키는 이 곡에서 러시아풍의 애상보다 서구적 낭만주의의 경향 을 짙게 보인다. 광포한 열정과 비장미 넘치는 선율이 잦아들면서 한층 정갈하고 산뜻해졌다. 특히 왈츠풍 의 3악장이 그렇다. 또 5년 후 세상에 나온 6번 비창. 아름다운 선율과 정교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차 이코프스키 교향곡의 정점에 서 있는 이 작품은 유감스럽게도 유작이 되고 말았다. 차이코프스키는 이 곡 을 직접 지휘해 초연하고는 9일 후 갑자기 눈을 감았다. 사인은 콜레라. 하지만 동성애가 발각돼 법원으로 부터 자살을 강요받았다는 설도 있다. 흔히 추천되는 4 5번 레코딩은 므라빈스키와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의 연주다. 이와 더불어 스베틀라 노프가 지휘하는 소련 국립관현악단의 실황 도 놓치기 아깝다. 1990년 5월24일 도쿄 산토리홀에서 있 었던 연주. 일본의 포니캐년에서 나왔다. 1주일 후 같은 장소에서 있었던 5번 실황도 마찬가지다. 4번보다 오히려 더 짙은 쾌감이 느껴지는 명연이다. 6번 비창 은 키릴 콘드라신이 모스크바 필하모닉 을 지 휘한 멜로디아 음반을 1순위로 권한다. 예리하게 가슴을 파고드는 현악기군이 단연 압권이다. 96

97 Mravinsky Evgeny Svetlanov Kiril Kondrashin [주제와 변주 ] 행동하는 음악가 다니엘 바렌보임 팔레스타인에 콘서트홀 건립 꿈꾸는 유태인출신 지휘자 새해의 문을 연 지휘자는 다니엘 바렌보임(67)이었다. 1일 오전 11시45분(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의 무지 크페라인(Musikverein)홀에서 열린 빈필하모닉의 신년음악회. 유대인 지휘자 바렌보임이 올해로 69회째를 맞는 이 음악회를 지휘했다. 주로 연주된 곡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와 폴카였다. 빈필하모닉은 여 느 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역시 흥겨운 음악으로 한 해를 열었고, 연주회 실황은 세계 각국에 위성으로 중계됐다. 한달쯤 뒤 음반과 DVD로도 나올 예정이다. 하지만 이 즐거운 음악회의 지휘자 바렌보임은 심사가 착잡했을 것이다. 지난달 30일 신년음악회 리허설 을 앞두고 열렸던 기자회견. AP통신은 바렌보임이 3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 을 끔찍한 사건 (terrible events)이라고 비판했다고 보도했다. 바렌보임은 그날 이렇게 말했다. 아직 도 많은 사람들이 군사적으로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어떤 이들은 예술로 공존을 얘기하는 건 공허한 제스처 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국적과 팔레스 타인 명예시민권을 동시에 갖고 있는 바렌보임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팔 공존을 외쳐왔다. 그는 지난 해 8월 베를린의 발트뷔네 극장에서 이스라엘과 아랍 청소년들로 이뤄진 서동시집 오케스트라 (West- Eastern Divan Orchestra)를 지휘한 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그날까지 연주를 멈추지 않을 것 이라고 말했다. 바렌보임이 주장하는 이-팔 공존. 그것은 독일 의회신문과의 인터뷰 에서도 말했듯, 팔레스타인이 국가로서 모든 권리를 가지면서 이스라엘 및 요르단과 연방 형태를 이루 는 것 이다. 그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고 비판하면서 팔레스 타인이 자유롭고 안정되지 않으면 이스라엘에도 자유와 안정은 없다 고 주장한다. 이제 바렌보임의 꿈은 팔레스타인 자치구역인 요르단강 서안의 라말라(Ramallah)에 콘서트홀을 짓는 것이 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다만 음악을 연주하는 것일 뿐 이며 (나는) 분쟁을 종식시킬 수 있 는 아무런 계획도 갖고 있지 않다 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주장하는 평화로운 공존이 20세기로부터 배 97

98 운 교훈 이며, 조국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행위는 인간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일 뿐 이라고 설명한 다. 그런 맥락에서 그는 유대인 지식인들의 침묵 을 비난한다. 행동하는 음악가 바렌보임의 꿈은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 지난해 마지막 날, 이스라엘 공습에 희생된 가 자지구 팔레스타인인은 400명에 육박했고 부상자도 1900명을 넘어섰다. 하마스의 공격에 목숨을 잃은 이스 라엘인은 4명이며, 220여명이 부상했다. 그래도 바렌보임은 계속 꿈꿀 것이다. 1999년에 팔레스타인 출신의 사상가 에드워드 사이드와 함께 창단했 던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는 그 꿈의 첫단추였으며, 2005년 여름에 분쟁의 한복판 라말라에서 개최했던 콘서트 는 두번째로 이뤄낸 꿈이었다. 바렌보임은 이스라엘의 저지로 여러차례 무산됐다가 마침내 성사된 그 콘서트에서 모차르트의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호른을 위한 협주교향곡 과 베토벤의 교향곡 5 번 을 연주했다. 인디펜던트 와의 인터뷰에서 역사적 사건 이라고 자평했던 이 연주회 실황은 국 내에서 CD와 DVD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DVD에 함께 수록된 93분짜리 다큐멘터리는 음악 이상의 감동을 전한다 [주제와 변주]톨스토이가 소설로 그려낸 독약같은 파멸의 이중주 ㆍ베토벤 크로이처 소나타 음악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독약 일까?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때때로 그렇다 고 말했 98

99 다. 그는 음악이 운율과 하모니를 통해 정신을 조화롭게 하고 감정을 순화시키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치우 치면 사람을 유약하게 만들 뿐이라고 경고했다. 음악을 하찮은 것 으로 여겼던 이 철학자는, 그렇게 나 쁜 영향을 주는 음악을 지상에서 영원히 추방해야 한다고까지 설파했다. 음악에 대한 이 부정적 견해는 19세기 말 러시아의 소설가 톨스토이에게서 다시 발견된다. 19세기는 이른 바 낭만의 시대. 베토벤 이후 점점 확고해진 음악의 절대성과 신성함이 반론의 여지없이 통용되던 때였다. 음악은 고통스러운 세계에서 구원으로 나아가는 문(쇼펜하워)이었고, 나약한 인간을 초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게 하는 통로(니체)였다. 톨스토이가 음악이 인간을 파멸로 이끈다 고 말했던 때는, 바로 이렇게 유럽이 음악을 숭앙하던 시대의 끝자락이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낭만의 종주( 宗 主 )로 통했던 베토벤의 음 악, 그중에서도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 가 도마에 올랐다. 소설 <크로이처 소나타>는 톨스토이가 59세였던 1887년에 집필을 시작해 2년 후 완성했던 중편 분량의 작 품. 기차 안에서 만난 나 와 고지식한 외모의 키 작은 남자 포즈드니셰프 의 대화를 축으로 이야기 가 흘러간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그저 듣는 입장일 뿐, 포즈드니셰프의 독백과도 같은 대사가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포즈드니셰프는 아내를 살해한 남자. 치정살인은 빌어먹을 음악 때문 에 일어났다. 아내와 다툼이 빈번 했던 그는,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인 아내가 바이올리니스트 트루하체프스키와 소나타를 연습하는 모습을 보고는 불같은 질투에 사로잡힌다. 파리에서 돌아온 트루하체프스키는 촉촉한 눈, 미소를 머금은 붉은 입술, 포마드를 바른 콧수염, 최신 유행의 머리 스타일 을 가진 매력남. 아내는 그를 만난 다음부터 얼굴 에 생기가 돈다. 적어도 남편인 포즈드니셰프가 보기엔 그렇다. 그는 아내와 트루하체프스키가 파티장에서 소나타를 함께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는, 두 사람이 음악으로 맺어진 음욕의 관계 라고 확신한다. 그 들은 크로이처 소나타 를 연주했습니다. 처음 나오는 프레스토를 아세요? 이 소나타는 정말 무시무시 합니다. 음악이 영혼을 고양시킨다는 건 헛소리이고 거짓말입니다. 음악은 영혼을 자극할 따름입니다. 에 너지와 감정을 끌어올려 파멸로 이어지게 합니다. 톨스토이 본인의 생각도 그랬다. 그는 <크로이처 소나타>의 후기에서 자신도 같은 의견임을 밝혔고, 소설 속의 여러 묘사를 통해 포즈드니셰프라는 인물에 작가의 모습이 상당히 투영됐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낭만적 음악에 대한 이 극단의 회의는 톨스토이의 오래된 음악 편력에서 비롯했을 터. 그는 음악 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던 지독한 애호가였고, 전문가 뺨치는 실력을 갖춘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다. 음악 때문에 빚어진 치명적 사랑은 헝가리의 작가 산도르 마라이(1900~1989)의 <열정>에도 등장한다. <크 로이처 소나타>보다 반세기쯤 후 쓰여진 이 소설도 역시 독백체. 주인공 헨릭은 형제 같았던 친구 콘라드 가 자신의 아내인 크리스티나와 연인 관계임을 깨닫고 배신감에 휩싸인다. 콘라드와 크리스티나를 맺어줬 던 불륜의 끈도 역시 음악. 절망한 헨릭은 오두막에 칩거하고 크리스티나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헨릭은 어느날 종적을 감춘 콘라드를 내내 기다리면서 노년을 맞고, 41년 후에야 나타난 친구 앞에서 이렇게 말한 다. 자네와 크리스티나 사이에서 음악은 서로를 묶어주는 끈이었어. 나는 그 사이에서 끝내 고독했네. 음악은 자네와 크리스티나에겐 말을 했네. 나하고 대화가 끊겼을 때도 자네 두 사람은 서로 얘기를 할 수 99

100 있었다네. 나는 음악을 증오한다네. 톨스토이가 영혼을 자극하는 음악 이라 평했던 9번 크로이처 는 베토벤이 남긴 10곡의 바이올린 소 나타 가운데 가장 빈번히 연주되는 곡. 오이스트라흐와 레프 오보린 의 연주가 오랜 세월 호평을 받았 다. 두 남자의 협연이 너무 중후하고 고전적이라면, 기돈 크레머와 아르헤리치 의 연주를 선택해도 좋 다. 톨스토이가 언급했던 빠르고 격렬한 프레스토 는 1악장과 3악장에 등장한다. 벼랑으로 떨어지는 파 국의 느낌은 3악장에서 한층 짙다. Adolf Busch & Rudolf Serkin plays Beethoven Violin Sonata No 9 (Kreutzer) [주제와 변주]쇤베르크 바르샤바의 생존자 ㆍ팔레스타인 아이들이 죽어가는 지금, 그를 듣는 것은 얼마나 불편한가 끊임없이 타자 를 상상하고, 그들과의 차이를 강조해, 그것을 배제하면서, 우리 라는 일체감을 굳혀가는 것. 도쿄경제대 교수이자 에세이스트인 서경식은 <디아스포라 기행>(돌베개)에서 그렇게 쓰고 있다. 내셔널리즘 이라는 근대적 상상력에 대한 비판적 언급의 일부다. 종국에는 파괴와 살육을 부채질 하게 될 이 부정적 상상력은, 자본주의적 인간관계에서 왜곡된 처세술로 통용되기도 한다. 언젠가 시내의 한 대형서점에서 잠시 들여다봤던 처세술 책에는, 지금 맞은편에 있는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려면 제3 자를 함께 헐뜯으라 고 쓰여 있었다. 그 비뚤어진 상상력의 극치를 최근에 질리도록 목격하고 있다. 며칠 전 외 100

101 그 비뚤어진 상상력의 극치를 최근에 질리도록 목격하고 있다. 며칠 전 외 신으로 들어온 두 컷의 사진. 그중 하나는 이스라엘과 가자지구의 접경에 주둔 중인 이스라엘 군인들이 출정 구호를 외치는 장면이다. 운동경기에 출전한 선수들이 파이팅! 을 외치는 모습과 너무나 닮았다. 또 한 컷의 사진은 돌배기쯤 돼 보이는 팔레스타인 아기가 병원으로 이송되는 장면. 아기의 얼굴은 피범벅이다. 가련한 천사는 그토록 급박한 상황에서도 맑고 아름다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심란하다. 그날부터 음악을 듣는 짓 이 불편하고 버거울 뿐이다. 지금 가자지구를 폭격하고 있는 이스라엘도 한때 광기어린 순혈주의의 희 생양이 아니었던가. 앞서 언급한 <디아스포라 기행>에 등장하는 장 아메리 (1912~78)라는 유대인. 그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철학자이자 문인이 었다. 그는 독일문화 속에서 자아를 형성했던 지식인이었고, 의심의 여지없이 자신을 독일인 으로 생 각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히면서 그의 자아는 분열한다. 예컨대 이랬다. 내가 의지하려고 하는 (정신적) 기반은 모두 적의 것이었다. 예를 들어 베토벤. 그 베토벤을 베를린에서 푸르트벵글러가 지휘하고 있었다. 대지휘자 푸르트벵글러는 제국의 명사였다. 메르젠부르크의 격언시에서 고트프리트 벤에 이르기까지, 17세기 음악가 북스테후드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에 이르기까지, 정신의 유산과 미적 자산은 고스란히 적의 수중에 있었다. 어느날 나는 어리석게도 내 직업을 독일문학자 라 고 말했다가 친위대원에게 노여움을 사 죽도록 얻어맞았다. 나치 친위대원의 분노. 짐작하건대 그것은 유대인이 감히 독일문학자 를 사칭하다니! 였을 것이다. 그래서 숱한 유대인 음악가들이 광기에 사로잡힌 악령의 눈길로부터 벗어나야 했다. 히틀러가 권력을 잡 았던 1933년에 독일을 탈출한 유대인 음악가는 자그마치 4000여명. 그중 한 사람이었던 쇤베르크 (1874~1951 사진)는 일찌감치 나치의 공포를 예견했던 음악가였다. 그는 프로이센 아카데미 교수로 독일 내에서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했던 음악계 명사였지만, 망설임없이 독일을 떠나 미국 보스턴으로 몸 을 숨겼다. 그렇다면 독일에서의 쇤베르크는 과연 어땠는가. 그는 바흐, 베토벤, 브람스를 잇는 독일 음악 의 적자( 嫡 子 )를 자처했고, 자신으로 인해 독일 음악의 헤게모니가 앞으로 100년은 더 지속될 수 있다고 자부했던 사람이었다. 그토록 충성스러웠던 유대계 독일인조차도 독일땅에서 내쫓기고 말았다. 12음 기법으로 20세기 음악사에 절대적 영향을 미쳤던 쇤베르크. 그가 1947년에 작곡했던 바르샤바의 생존자 라는 곡이 있다. 이 곡은 나치의 횡포에 숨진 수많은 동족 들에게 바치는 음악적 애도사였다. 악몽 같은 공포와 비통함을 고스란히 담은, 20세기 음악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진술로 꼽히는 음악. 하지만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팔레스타인의 아이들이 속절없이 죽어가고 있는 지금, 이 음악을 아무 거리낌없이 대면한다는 게 얼마나 가능할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힌 장 아메리의 절규가 다시 떠오른다. 베토벤 은 적의 것이었다. 101

102 Bamberger Symphoniker, conducted by Horst Stein, Hermann Prey [주제와 변주]모차르트 명연주 펼친 여성 5인방 피아노는 과연 남성의 악기일까. 얼마 전 해외에서 주로 활동하는 한국인 피아니스트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남자였고, 대화의 중심은 아무래도 피아니스트들에 대한 것이었다. 20세기 중반의 거장이었던 에드빈 피셔에서부터 길렐스, 리히테르 같은 러시아 출신의 비르투오소들, 또 최근의 예브게니 키신에 이 르기까지 여러 피아니스트들을 도마에 올려놓고 한참이나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가 말했 다. 피아노는 역시 남자의 악기죠. 여자들의 연주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어요. 여성 피아니스트들이 들으 면 기분 나쁘겠지만, 사실은 사실이죠. 그 말이 끝나고 10분쯤 뒤 역시 피아니스트인 그의 아내가 카페 로 들어섰다.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침을 뚝 뗐다. 자신의 아내에게 오늘 연습을 잘했냐? 고 묻는 그의 눈빛에 장난기가 살짝 어려 있었다. 그의 말은 일면 타당하다. 일단 피아노라는 악기는 덩치가 만만치 않다. 넓게 펼쳐진 88개의 건반을 훑어 내리려면 어깨가 넓어야 하고 팔이나 손가락도 길어야 한다. 게다가 피아노는 태생적으로 타악기의 속성 을 지닌다. 건반에 연결된 88개의 현을 해머로 두들겨 소리를 낸다. 이 메커니즘이 현대적으로 개량되는 과정에서, 악기의 음량을 키우기 위해 해머와 건반은 더 무거워졌다. 전신( 前 身 )이었던 하프시코드에 비해 한층 완력을 필요로 하는 악기로 변해온 셈이다.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던 라흐마니노프는 키가 2m에 가까웠고 손가락을 쫙 폈을 때 손의 길이가 30cm에 이르렀다. 러시아의 거장 리히테르는 손가락 끝에서 피를 흘리며 건반을 두드리기도 했다. 1990년 세상을 떠난 쿠바 출신의 호르헤 볼레트(Jorge Bolet)는 손을 높이 들어올리지 않고도 상당히 중량감 넘치는 리스 트 연주를 들려줬는데, 그것은 결국 손목의 힘이 좋다는 뜻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사진으로 확인해본 그 의 손목은 뼈대가 엄청나게 굵다. 102

103 피아노가 남성에게 더 적합하다는 관념은 리스트, 라흐마니노프, 프로코피예프 같은 작곡가들의 음악에 이르는 순간, 여지없는 진실로 굳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이들의 음악은 넓은 음역을 변화무쌍하게 오가는 데다, 힘차게 코드를 짚어 연주하는 음의 뭉치들이 빈번히 등장한다. 아무래도 몸집이 크고 힘이 좋은 사 람에게 유리하게 마련. 그러다보니 피아노의 남성성 이라는 관념은 더욱 굳어질 수밖에. 그러나 피아노는 과연 남성의 악기일까? 꼭 그렇진 않은 것 같다. 그것은 연주하는 음악이 무엇이냐에 따 라 달라지는 것 아닐까. 이를테면 모차르트의 음악은 어떨까. 그것은 부피와 무게를 덜어낸 투명한 텍스처 에 도달하는 것이 관건일 터. 모차르트가 남긴 피아노 협주곡과 소나타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여준 연주자 들 중에는 의외로 여성이 많다. 일단, 릴리 크라우스 (1905~86)를 떠올려 보자. 그녀는 50년대를 대표했던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 가운 데 한 명. <이 한장의 명반>의 저자 안동림씨(77)는 크라우스가 51세에 녹음했던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 (EMI)을 명반의 반열에 올려놓고 있다. 10년 후 CBS에서 같은 음악을 다시 한 번 더 녹음했지만, 청신함과 영롱함에서 51세 때의 연주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평가다. 크라우스보다 10년 연상인 클라라 하 스킬 (1895~1960)은 신체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모차르트의 진경( 珍 景 )을 펼쳤던 피아니스트. 특히 세상을 떠나던 해에 녹음했던 피아노 협주곡 20번과 24번(필립스)이 오늘까지도 명연으로 빛난다. 또 두 여인보다 한 세대 뒤의 피아니스트인 잉그리드 헤블러 (80). 그녀는 오스트리아 빈 태생답게 우아한 세련미와 따뜻 한 음색의 연주를 펼쳤다. 특히 피아노 협주곡 23번, 24번, 26번을 비롯해 피아노 4중주 1, 2번 등 에서 명연을 남겼다. 영국에서 간행된 <죽기 전에 들어야 할 클래식 1001>은 일본 태생의 피아니스트 우치다 미쓰코 ( 內 田 光 子 61)에게 후한 점수를 준다. 그녀가 91년 녹음했던 피아노 소나타 전곡 (필립스)을 평하면서 이것 을 들으면 다른 음반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고까지 극찬한다. 런던 파이낸셜 타임스 에서 음악평 론가로 활동했던 맥스 로퍼트의 평가. 하지만 그것은 마리아 호앙 피레스 (65)를 사모하는 애호가들이라 면 발끈할 만한 얘기다. 포르투갈 출신의 그녀는 모차르트의 소나타 전곡을 두 번 녹음했고, 그중에서도 89~90년에 녹음한 두번째 음반(도이치그라모폰)이 수작으로 꼽힌다.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영롱한 터치가 일품. 모차르트 음악의 관건이랄 수 있는 투명한 텍스처 에 이만큼 도달한 연주도 드물지 않을까. 피아노가 남성의 악기라는 고정관념은 그렇게, 모차르트 라는 숲에 들어서는 순간 깨진다. 103

104 Lili Kra us Cla ra Ha s kil Ma ria Jo a o Pires Englid Ha ebler Mits uko Uchida [주제와 변주]슈베르트의 돌아올 곳 없는 방랑 ㆍ피아니스트 조은아의 역려과객 역려과객( 逆 旅 過 客 )이라는 말이 있다. 세상은 여관과 같고 인생은 그곳에 잠시 머무는 나그네길과 같다는 뜻일 게다. 이 말은 이백의 시 춘야연도리원서 ( 春 夜 宴 桃 李 園 序 )의 첫 구절에 등장한다. 원문을 더듬더 듬 찾아보니 이렇다. 夫 天 之 者 萬 物 之 逆 旅 光 陰 者 百 代 之 過 客 而 浮 生 若 夢 爲 歡 幾 何 (부천지자 만물지역 려 광음자 백대지과객 이부생약몽 위환기하). 무릇 천지라 하는 것은 만물의 여관이요, 세월이라 하는 것은 영원히 지나가는 길손이라. 부평초 같은 인생 꿈과 같으니, 즐거움이 되는 것이 그 얼마나 되는가? 피아니스트 조은아가 이 네 글자를 자신의 연주회 제목으로 내걸었다. 뜻밖이다. 클래식 연주회 타이틀에 역려과객 이라는 단어가 내걸리다니! 연주회 프로그 램을 자세히 살펴보니 슈베르트 일색이다. 방랑자 환상곡 가운데 느린 2악 장으로 시작해 리스트가 피아노로 편곡한 물방앗간 청년과 시냇물 물 위 에서 노래함 이 이어진다. 계속해서 아르페지오 소나타 와 현대음악가 라헨 만이 작곡한 슈베르트 주제에 의한 5개의 변주곡 이 연주되고, 마지막 곡은 슈베르트가 유작으로 남긴 피아노 소나타 c단조 다. 말하자면 이 연주회는, 31년의 생애를 나그네로 살다 간 슈베르트의 허무와 비애를 고스란히 그려내겠 다는 뜻으로 보인다. 19세기 초반에 문을 열었던 낭만의 시대. 당시 예술가들은 딱딱한 규칙을 거부했고 자신의 내면에 소용돌 이치는 감정에 충실했다. 그들은 현실보다 몽환을 사랑했으며, 스스로를 외로운 존재로 소외시키면서 세 상에서 겉돌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이백이 한 편의 시로 묘사했던 역려과객 의 세계관이 19세 기 유럽의 예술가들에게도 고스란히 나타났던 셈이다. 그래서 낭만주의 의 가장 두드러진 키워드는 방랑 이었다. 지난해 말 무대에서 은퇴한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브렌델도 방랑은 낭만의 조건 이라 는 말을 남기지 않았던가. 104

105 슈베르트의 방랑은 좀더 애절하다. 그것은 예술가의 자의식으로 선택한 방랑이라기보다 어쩔 수 없이 던 져진 운명이었다. 평생을 따라다녔던 궁핍과 작고 추레한 외모가 어찌 낭만적 선택일 수 있었겠는가? 생 전의 그는 자신이 쓴 작품의 10%만 연주됐던 불행한 작곡가였고, 짝사랑하던 여인들이 있었지만 늘 거부 당했던 초라한 남자였다. 결국 그는 나는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닌 것 같아 지상에는 내가 있을 곳이 없어 라고 푸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피아니스트 조은아는 슈베르트의 방랑을 돌아올 곳이 없는 방랑 이라고 표현했다. 바로 그것, 돌아올 곳 없는 방랑 이야말로 슈베르트 음악을 관통하는 가 장 중요한 동기일 터이다. 역려과객 의 문을 여는 방랑자 환상곡 o p.17 (사진 마우리치오 폴리니 연주)은 슈베르트의 방 랑을 대변하는 하나의 표상이다. 게다가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 겨울 나그네 같은 연가곡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늘 여인에게 구애하다가 거부당한다. 결국 슈베르트 자신일 수밖에 없는 그 주인공은 정처없이 방황할 뿐이다. 실연의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지도 못하고 고작 시냇물이나 찾아가 하소 연할 뿐이다. 이 소심함, 이룰 수 없는 것을 동경하지만 저돌적으로 쟁취하지 못하는 이 여리디 여린 감성 도 슈베르트의 음악을 이해하는 단초일 터. 같은 낭만주의 작곡가 슈만의 가곡이 사랑의 소용돌이에 몰입 해 어떤 광기를 드러내는 것에 비해, 슈베르트의 노래들은 대상을 향해 완전히 다가서지 못하고 망설일 뿐 이다. 그래서 쓸쓸하고 안쓰럽다. 피아니스트 조은아는 슈베르트의 음악에는 안주하지 못하고 부유( 浮 遊 )하는 듯한 화성들이 빈번하게 등 장한다 며 특히 마지막 곡으로 연주하는 피아노 소나타 c단조 는 어느 화음에도 머무르지 않고 계 속 방랑한다 고 말했다. 이 연주회는 2월7일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열린다. 105

106 Julius Ka tchen 1967 Schubert Wa nderer Fa nta s y [주제와 변주 ] 신화 보다 위대한 음악 ㆍ하이든 타계 200주년 올해는 작곡가 하이든의 타계 200주년이다. 1년 내내 그의 이름을 내건 각종 연주회와 음반 발매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2009년에 특별히 기억할 만한 작곡가가 하이든만은 아닐 터. 타계 250주년을 맞은 헨 델과 탄생 200주년을 맞은 멘델스존도 빈번히 거론될 작곡가일 것이다. 그러나 가장 커다란 존재감으로 다 가오는 이는 역시 하이든 아닐까. 일단 그는 누구도 따라오기 힘들 만큼 막대한 분량의 작품을 남겼다. 100곡이 넘는 교향곡과 83곡의 현악4중주, 4곡의 오라토리오와 34곡의 오페라. 그밖에도 많다. 피아니스트 알프레트 브렌델이 즐겨 연주했 던 일련의 클라비어 소나타들은 모두 50곡 정도, 또 얼마 전 국내에서 강마에 신드롬 을 일으켰던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흘러나왔던 첼로 협주곡 2번, 1970년대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장학퀴즈>에서 배경음악으로 사용됐던 트럼펫 협주곡 등등 이게 모두 하이든 의 음악이다. 1957년 네덜란드의 음악서지학자 호보켄(Hoboken)은 하이든의 작품에 일일이 번호를 붙여 정리했다. 하지만 누구도 호보켄의 목록을 완벽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하이든이 남긴 음악이 모두 몇 곡인지 파악하기 쉽지 않은 탓이다. 작곡 연도도 헷갈린다.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이 작곡한 음악이 하이든의 것으로 둔갑하 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이를테면 하이든의 세레나데 로 불렸던 현악4중주 17번 F장조 가 그랬다. 장난감 교향곡 으로 불렸던 교향곡 C장조 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호보켄은 1971년에 작품 목록을 수정 보완해야 했다. 작곡가 하이든의 남다른 능력은 그토록 방대한 분량 속에서도 일정한 수준을 유지했다는 점이다. 그렇게 많은 곡을 썼으면서도 태작(태 作 )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그가 얼마나 성실한 작곡가였는가를 보여주는 증 표다. 그러나 아쉽게도 음악깨나 듣는다는 애호가들이 하이든을 좋아한다 고 선뜻 말하는 경우는 별로 106

107 없다. 그의 음악은 고전주의 의 성을 같이 쌓았던 후배들, 이를테면 모차르트나 베토벤에 비해 뜸하게 연주된다. 왜 그럴까. 왜 그는 모차르트나 베토벤에 비해 충성도 높은 마니아층을 거느리지 못하게 된 걸 까. 한 음악칼럼니스트와 이 문제를 갖고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때 나온 결론은 대략 이랬다. 좋은 작 품이 너무 많은 게 탈이야. 냉장고에 먹을 게 잔뜩 쌓여 있어봐. 특별히 구미를 당기는 게 아무 것도 없을 수 있거든. 게다가 하이든은 모차르트나 베토벤처럼 신화 로 포장되지 못했어. 말년의 하이든은 유럽에 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스타 작곡가였지만, 20세기로 넘어오면서 오히려 모차르트와 베토벤에게 밀렸잖 아. 모차르트는 기구한 운명의 천재로, 베토벤은 격정적 드라마의 주인공이나 음악적 신( 神 )으로까지 그려 졌지만, 하이든은 그저 사람좋고 성실한 작곡가라는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잖아. 그 결론 끝에 이런 얘기도 나왔다. 그래도 하이든은 위대해. 사람들이 하이든을 좋아한다 고 입으로 말하진 않지 만, 그의 음악을 이미 허다하게 듣고 있잖아. 어, 그 곡이 하이든 음악이었나? 하면서 말이야. 올해로 타계 200주년을 맞은 하이든은 그렇게, 고전주의 이후 누구도 뛰어넘기 힘든 양 과 질 을 보 여줬다. 또한 그는 고전주의 소나타와 교향곡의 형식을 완성했다는 측면에서뿐 아니라 개인적 삶의 궤적 에서도 근대로의 이행 을 고스란히 보여줬던 작곡가였다. 가난한 집안의 아들이었던 그는 교회합창단 의 보이 소프라노 로 활동하다 변성기에 이르자 버림받았으며,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해 에스테르하지 가문에 종속된 음악가 로 30년을 봉직했다. 가난과 제도를 묵묵히 견디며 음악가의 길을 걸었던 그는, 1790년에야 에스테르하지 가문과의 계약을 끝내고 직업 음악가 로서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다. 유럽 에 시민계급의 기운이 서서히 퍼져가던 시기. 하이든은 어느덧 인생의 황혼에 이르러 있었다. 그는 그때부 터 파리와 런던에서 악보를 출판했으며 콘서트홀에 모인 다수의 청중을 위해 곡을 썼다. 그는 그렇게, 근대로 가는 징검다리 를 놓고 1809년에 눈을 감았다. M.Rostropovich - Cello Concerto No.2 in D, 3rd mov part 3 Wynton Marsalis - Trumpet Concerto [주제와 변주]명연주는 라디오를 타고 ㆍ바이올리니스트 율리아 피셔 107

108 어떤 이들은 45만원을 내고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회를 보러 간다. 또 어떤 이들은 45만원으로 한 달을 산다. 이 격차는 사라질 기미가 통 보이질 않는다. 오히려 해가 갈수록 커질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음악 듣기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 수십만원, 적어 도 10만원이 훌쩍 넘는 연주회를 갈 수 없다고 해서 기죽을 필요 도 없다. 당신이 진정 음악을 사랑한다면, 그리고 경제적으로 좀 쪼들리는 형편이라면, 용돈을 아끼고 아껴서 한 달에 한 번쯤 음 반가게에 들러보는 게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시간과 더불어 소멸하는 연주를 녹음 이라는 테크놀로지에 가둬놓은 탓에 현 장감은 당연히 부족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반의 미덕은 적지않다. 45만원짜리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를 1만원으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밑지지 않는 선택 아닌가. 게다가 지휘자의 해석과 악단의 연주력을 정확하게 분별해가며 들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러 번 반복해 들을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음반의 탁월한 미덕이다. 또 다른 대안도 있다. 수십년간 음악문화의 첨병이었던 매체, 바로 라디오다. 영국의 BBC처럼 뛰어난 전 문성과 콘텐츠를 갖추진 못했어도, 한국에도 KBS 클래식FM 이라는 방송이 존재한다. 물론 몇가지 아 쉬움은 있다. 대중적 인기를 고려해 선정된 일부 DJ들의 미숙한 진행, 미리미리 왕창 녹음했다가 한 편씩 방송하는 것, 클래식FM이라는 정체성에 걸맞지 않은 엉뚱한 음악 틀기 등이다. 그래도 KBS 클래식FM이 있어 다행스럽다. 이것은 당신의 주머니에서 한푼도 가져가지 않는다. 아무런 직접 투자 없이도 음악을 즐 길 수 있게 해준다. 듣고 싶은 음악이 언제나 흘러나오는 건 아니지만, 예정된 프로그램을 미리 확인하는 노력을 조금만 기울인다면, 최고의 연주회를 내 방에서 편안하게 만나는 즐거움을 누리게 해준다. 애호가들에게 특히 호평받는 것은 <실황음악회>와 <명연주 명음반>일 터. 이 두 개의 프로그램은 골수 청취자가 가장 많다. 게다가 방송할 선곡들을 인터넷으로 미리 공개해 청취자의 선택에 도움을 주는 친절 함도 갖췄다. <실황음악회>의 2월 방송분 가운데 놓치기 아까운 연주. 바이올리니스트 율리아 피셔(26 사진)의 이름이 눈에 띈다. 지난해 4월 덴마크의 코펜하겐 라디오 콘서트홀에서 있었던 실황.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 다녀갔던 마렉 야노프스키(70)가 지휘하는 덴마크 국립교향악단과의 협연 이다. 독일 뮌헨 태생의 피셔는 현재 가장 주목받는 바이올리니스트다. 네델란드의 펜타톤 (Pentatone) 레이 블에서 내놓은 8장의 음반은, 이 젊은 아가씨가 20대 초반에 이미 성숙한 음악가 의 경지에 올랐음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녀의 연주에는 인기를 끌어보려는 조급함이나 기교의 과시 같은 것들이 없다. 그래 서 담백하다. 아직 어린 나이를 감안한다면 놀라울 정도의 절제력이다. 소리를 멋지게 내보려는 과시를 뛰 어넘어 음악 전체를 조감하는 통찰력, 부드러움과 강함, 곡선과 직선의 유려한 어우러짐. 그것이 피셔의 108

109 음악이다. 더욱 놀라운 건 그녀가 피아니스트로도 데뷔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1월1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융에 도이치 필하모닉과 가졌던 신년음악회. 그녀는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 a단조 를 연주해낸 다음, 다시 바이올린을 들고 생상스의 협주곡 3번 을 연주했다. 관객들은 평생 처음 보는 이 놀라운 장면 앞에 서 뜨거운 박수를 멈추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피셔의 더블 플레이 는 1회용 깜짝쇼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는 누누이 나는 다만 바이올리니스트로 먼저 데뷔했을 뿐 이라며 피아노에 대한 애착을 보여왔고,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를 가장 존경한다 고 말하지 않았던가. 펜타톤에서 나온 피셔의 레코딩 가운데, 가장 먼저 만나야 할 것은 러시안 바이올린 협주곡 이다. 2005년 그라모폰 에디터스 초이스 를 비롯해 음악의 쇼크상 등 다수의 음반상을 휩쓸었다. 바흐의 소나타와 파르티타, 모차르트의 협주곡 1~5번,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와 더블 콘체르토 등도 콜렉터 아이템으로 꼽을 만하다. 그러나 그보다, 16일 KBS에서 방송되는 피셔의 연주실 황을 들어보는 게 먼저겠다. 왜? 공짜 니까. Khachaturian, Prokofiev, Glazunov : Violin Concertos / Bach : Sonatas & Partitas for Solo Violin / Brahms Violin Concerto 3악장 with Michael Tilson Thomas (NDR Sinfonieorchester) [주제와 변주]자연의 복된 고요 워낭소리 ㆍ말러의 교향곡 6번 워낭, 소의 목에 다는 방울. 영어로는 카우벨(Cowbell), 독일어로는 헤어덴글로켄(Herdenglocken)이라고 한다. 쩔렁쩔렁 울리는 이 방울소리를 독일의 후기 낭만주의 음악에서도 만날 수 있다. 이를테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 20세기 초반의 독일음악을 대표했던 작곡가 슈트라우스는 바이에른 알 프스의 장대한 풍경을 사랑했던 모양이다. 일출과 일몰, 강물과 폭포, 깎아지른 암벽과 천둥을 몰고오는 109

110 비바람. 슈트라우스는 그 대자연을 남성적 분위기가 물씬한 알프스 교향곡 으로 그려냈다. 첫곡 밤 으로 시작해 숲으로 들어감 꽃이 핀 초원 정상에서의 기분 등, 각기 이름 붙인 22개의 곡으로 구성된 표제음악이다. 쩔렁거리는 워낭소리는 9번 산의 목장 (Auf am Alm)에서 울려퍼진다. 하지만 알프스 교향곡 에 등장하는 워낭소리는 약간 요란하다. 목장의 소들이 떼지어 다니며 일제히 방울을 흔들고, 거기에 호른의 음향이 섞이면서 낭 만적 풍경화를 연출한다. 알프스의 워낭소리는 그렇 게 장대한 풍경의 일부일 뿐, 그것은 더 이상 어떤 의미를 갖지 못하고 20번 일몰 과 더불어 시간 속 으로 소멸한다. 그렇다면 오래도록 여운을 남기는 워낭소리는 어디에서 들려오는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후기 낭만의 시대를 함께 살았던 구스타프 말러. 그의 교향곡에서도 쩔렁거리는 워낭소리가 들려온다. 슈트라우스의 워 낭소리가 장대한 풍경을 연출하고 일순 사라지는 것에 비해, 말러가 음악 속으로 불러들인 그것은 교향악 적 서사의 일부를 이루면서 좀더 깊고 긴 여운을 남긴다. 생전의 말러가 완성한 교향곡은 번호가 붙지 않은 대지의 노래 까지 포함해 모두 10곡. 교향곡이라는 양식 속에서 장대한 문학적 서사를 구축했던 말러는 관악기의 편성을 대폭 늘이고 만돌린과 첼레스타, 채 찍과 해머 등 다양한 악기를 음악 속으로 불러들였다. 워낭소리가 등장하는 것은 그중에서도 4번, 6번, 7 번. 특히 인상적인 것은 비극적 (Tragische)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6번의 워낭소리다.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그의 음악, 그중에서도 6번에 등장하는 워낭의 의미는 무엇일까? 1악장은 현악기들이 연주하는 무겁고 어두운 행진곡풍의 주제로 문을 연다. 그러다가 발전부에서 마침내 등장하는 워낭소리. 말러 전기를 썼던 음악학자 앙리 루이 드 라 그랑쥬는 그것을 인간사의 번잡에서 한 걸음 벗어난, 은인자적 상징 이라고 해석했다. 워낭소리는 이어지는 2악장 안단테 모데라토에서 다시 등 장한다. 6번은 비극적 이라는 표제가 암시하듯 한 줌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 비관적 세계관을 보여주지 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악장은 느리고 아름답다. 라 그랑쥬는 이 목가적 악장의 중간부에서 새소리와 함 께 울려퍼지는 워낭소리를 말러의 창조적 에너지의 원천이었던, 자연의 복된 고요 라고 해석했다. 애초에 말러는 이 아름다운 안단테 모데라토 악장을 세번째 악장으로 초연(1906년)했다. 하지만 괴기스러 운 모티브로 가득한 2악장 스케르초가 1악장과 분위기가 너무 비슷하다는 지적에 따라 1908년에 악장의 순 서를 바꿔 다시 출판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어떤 지휘자들은 초판본 순서에 따라 스케르초를 2악장으로, 안단테 모데라토를 3악장으로 연주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솔티와 시카고심포니, 불레즈와 빈필하모닉 등 이 그렇다. 풍경을 뛰어넘은 비유와 상징. 말러의 교향곡 속에서 워낭소리는 그렇게 어떤 의미 로 자리했다. 영화 <워낭소리>가 늙은 소의 거룩한 생애를 쩔렁거리는 워낭소리로 상징했듯, 소리는 그렇게 풍경 이상의 의 110

111 미를 가졌을 때 오래도록 기억되는 것 아닐까. 요즘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6번 음반 가운데, 워낭소리가 가장 또렷하게 들려오는 것은 리카르도 샤이 와 암스테르담 콘체르토 헤보의 연주 (Decca )다.) 게르기예프가 런던심포니를 이끌고 진행 중인 말 러 사이클 중에서 6번 음반은 각종 상을 거머쥐며 호평받았던 수작이다. DVD로는 2006년에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연주(사진)를 권한다. 암과 싸우는 거장의 투혼이 감동적 이다. Mahler Symphony No 6, 1st movement - Valery Gergiev, London Symphony Orchestra [주제와 변주]음표로 그린 보헤미안의 정경 ㆍ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 19세기 중반, 파리 센강 오른편의 라틴구(La Quartier Latin)는 예술가들의 거리였다. 소르본 대학을 중심 으로 형성된 그 거리에는 고만고만한 술집과 카페들이 모여 있었고, 그곳은 수많은 시인과 작가, 화가들로 늘 북적였다.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의 발자크가 그 거리를 거닐었을 것이고, 시인 보들레르가 어느 구석 진 술집에서 파리의 우울 의 한 구절을 떠올렸을 것이다. 화가 고흐도 그 거리의 방랑자 가운데 한 명 이었다고 전해진다. 111

112 그 라틴구의 한 모퉁이에 모뮈스 라는 카페가 있 었다. 이곳은 특히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의 아지트였 다. 예술가로서 아직 이름을 떨치진 못했지만, 당대 에 서서히 뿌리내리던 리얼리즘 에 막 눈을 떠가 던 젊은 예술가들이 모뮈스에 모여들어 술을 마시고 토론을 나눴다. 아마 가끔은 주정도 부리고 다투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모뮈스에 죽치고 앉아 있던 패 거리 중 한 명이었던 앙리 뮈르제(1822~1861). 어찌보면 그는 아직 작가 지망생 이라 불러도 좋 을 신출내기였다. 나이로 치자면 발자크의 다음 세대 쯤 되는 작가였지만, 불행히도 마흔살이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난 데다 후대에 길이 남을 만한 걸작을 쓰지 못했다. 그런 까닭에 지금 뮈르제 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당시 함께 어울렸던 뮈르제의 동료들도 대개 비슷한 길을 걸었던 것으로 알려 져 있다. 그들 가운데 현재까지 가장 선명히 기억되는 예술가는 아마도 세 살 위의 친구였던 화가 귀스타 브 쿠르베(1819~1877) 정도일 터. 리얼리즘 미술사의 초입에 등장하는 쿠르베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 사할 것 을 강조하면서 돌 깨는 사람들 같은 걸작을 남긴 화가다. 그렇다면 뮈르제는 과연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던 것일까? 하루에 커피를 열 잔 가까이 마셨던 카페인 중 독자. 카페 모뮈스에 출근하다시피 드나들며 위대한 작가 를 꿈꿨던 그는,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 고 커피만 들이켜다 마흔도 안돼 세상을 등진 것일까? 꼭 그렇진 않다. 다행스럽게도 뮈르제는 당시 어울렸던 가난한 친구들, 함께 사랑을 나눴던 비슷한 계층의 여인들을 등장시켜 한 권의 소설을 썼다. 여러 개의 연작 단편으로 이뤄진 소설, <보헤미안의 생활 정경 >(Scenes de la Vie de Boheme)이라는 작품이었다. 시인 로돌포와 화가 마르첼로, 음악가 쇼나르와 철학자 콜리네, 다락방에서 삯바느질로 살아가는 노동자 루실과 그녀의 친구인 뮤제타. <보헤미안의 생활 정경>은 이렇게 여섯명의 젊은이들이 파리의 하늘 밑에 서 펼쳐가는 꿈과 사랑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것은 달콤하고 낭만적인 판타지가 아니라 당대 하층민들 의 궁핍한 삶, 인생살이의 고달픔을 생생하게 그려낸 리얼리즘 소설에 가까웠다. 그 시절, 프랑스에서는 시민계급의 기운이 한창 커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마터면 잊혀질 뻔했던 이 소설을 오늘까지 기억하게 만든 일등 공신은 뭐니뭐니해도 푸치니의 오페라 < 라 보엠>일 터. 오페라의 귀재 푸치니는 이 작품을 4막의 오페라로 만들어 1896년 초연했고, 원작의 내용 을 무시하고 대중적 신파극을 만들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라 보엠>은 푸치니의 다른 작품들, 이를테 면 <나비부인>이나 <토스카>와 더불어 오늘날 가장 자주 공연되는 오페라로 손꼽힌다. 푸치니는 아버지뻘 이었던 베르디보다 진지하지 못한 작곡가였음에 틀림없지만, 적어도 그는 청중의 귀를 사로잡는 매혹적인 아리아와 색채감 풍부한 오케스트레이션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 작곡가였다. 112

113 소설 속에 등장했던 착하고 예쁜 루실은 오페라로 자리를 옮기면서 이름을 미미(Mimi)로 바꿨다. 그녀는 1 막에서부터 내 이름은 미미 라는 절창으로 청중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미미로는 소프라노 넬리 멜바의 이름이 당연히 거론되겠지만, 최근의 생생한 <라 보엠>을 만나고 싶다면 지난해 뉴 욕 메트로폴리탄에서 공연됐던 실황(사진)이 좋을 성싶다. 로돌포 역에 라몬 바르가스, 미미역에는 안젤라 게오르규. 좋은 캐스팅이다. 특히 음울한 3막에서 미미가 보여주는 가창력과 연기력이 눈부시다. EMI 발 매. Angela Gheorghiu - Si mi chiamano Mimi [주제와 변주]광폭한 광폭한, 춘래불사춘의 음악 ㆍ슈만의 교향곡 1번 봄 봄에 들을 만한 음악은 뭐가 있느냐? 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이탈리아와 러시아 음악의 분위기가 사 뭇 다른 것처럼, 일조량과 기온의 변화는 사람의 감성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당연히 계절에 따라 마 음에 와닿는 음악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따사로운 봄을 만끽할 수 있는 곡은 아주 많다. 하이든의 현악 4중 113

114 따사로운 봄을 만끽할 수 있는 곡은 아주 많다. 하이든의 현악 4중 주 종달새, 베토벤의 교향곡 전원 의 1악장, 슈베르트의 피 아노 5중주 송어 의 4악장 등등, 일일이 헤아리기가 어려울 정 도다. 아예 곡명을 봄 으로 내건 음악도 적지 않다. 가장 먼저 떠오르 는 것이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 이다. 하지만 베토벤 자신이 이 소나타를 봄 이라고 이름붙인 것은 아니었으므로 일 단 열외로 치자. 다음으로 떠오르는 곡은 비발디의 협주곡 사 계 에 등장하는 봄 이다. 물론 하이든도 사계 라는 제목의 오라토리오를 썼고 차이코프스키도 같은 이름으로 모음곡을 남겼 다. 그들의 사계 에도 당연히 따뜻한 봄날이 등장한다. 이밖에 드뷔시가 색채감 있는 관현악으로 그려낸 봄,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우아하면서도 흥겨운 왈츠 봄의 소리 등도 빼놓을 수 없는 봄의 음악 이다. 하지만 춘래불사춘( 春 來 不 似 春 )이라,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는 이 말이 요즘처럼 실감나는 때도 없다. 기 상대는 평년보다 봄이 9일쯤 일러질 것이라 예보했고 개구리들도 일주일이나 일찍 깨어나 짝짓기에 분주 하지만, 이 또한 본질은 지구 온난화 일 뿐이다. 지금 이 땅에서 봄을 제대로 느낄 사람이 과연 몇 명 이나 되겠는가. 이럴 때 들을 수 있는 음악이 아마도 슈만의 봄 일 것이다. 슈만이 남긴 4개의 교향곡 가운데 첫 번째 곡. 그의 나이 31세에 작곡했던 이 곡은 봄 이라는 표제와 달리 어둡고 광폭하며, 심지어 추운 바람이 몰아치는 듯한 악상이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말하자면 춘래불사춘의 음악 인 셈이다. 어떤 이들은 약 동하는 봄 기운 운운하며 표제와의 연관성을 강조하지만, 네 개의 악장을 반복해 들을수록 슈만의 강박 과 우울이 곳곳에서 느껴지는 추운 봄 의 음악이다. 트럼펫과 호른의 팡파르로 시작하는 1악장. 처음부터 무겁고 느리다. 봄이 왔다 는 암시로는 왠지 부적 절해 보이는 이 불안한 팡파르는 1악장이 끝날 때까지 여러번 반복된다. 가끔 목관악기들, 특히 플루트가 앞으로 나서며 봄날의 새소리를 연상케 하는 악구를 연주하지만, 그 새들의 지저귐마저 이내 사그라지고 다시 어두운 팡파르가 커다랗게 고개를 쳐든다. 이어서 라르게토(Larghetto)로 느리게 흘러가는 2악장. 슈 만의 봄 에서 가장 로맨틱한 악장으로 꼽힌다. 하지만 그 로맨틱은 우아함이나 사랑스러움보다는 쓸쓸 한 비애에 가깝다. 아타카(attacca)로 중단없이 이어지는 3악장 스케르초에서도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고, 마지막 4악장에서 햇살처럼 잘게 부서지는 음표가 잠시 고개를 내밀지만 이 역시 관현악 총주의 무거운 기세에 눌려 사라진다. 베토벤의 광기 는 더 지독한 양상으로 낭만주의자 슈만에게 대물림됐던 것 아닐까. 안타깝게도 슈만은 마음의 병 을 끝내 치유하지 못했다. 그는 44세에 라인 강에 몸을 던졌다가 지나가던 배에 간신히 구조 됐지만, 46세에 정신병원에서 눈을 감고 만다. 그는 왜 죽어가면서 아내 클라라에게 알겠어(Ich 114

115 kennen) 라고 말했던 것일까? 그의 삶이 남겨놓은 마지막 수수께끼다. 레너드 번스타인이 빈필하모닉 을 지휘한 봄 은 이른바 필청반. 하지만 이 연주는 색채가 밝다. 번스타인 스타일로 채색된 봄 이다. 그 화사함이 거북하다면 조지 셸이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녹음 이 좋겠다. 슈만의 봄 에서 나타나는 구조적 산만함 을 극복하려는 지휘자 셸의 노력 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주제와 변주]라흐마니노프의 격정 쇼스타코비치의 익살 ㆍ러시아의 첼로 소나타 첼로 소나타 의 역사에 러시아 작곡가의 이름이 확실하게 등재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였다. 라흐마 니노프가 첼로 소나타 g단조 를 작곡했던 것이 1901년. 이 곡은 러시아 작곡가에 의해 쓰여진 첼로 소 나타 중에서 오늘날 가장 빈번히 연주되는 곡이다. 물론 그 전에도 러시아에 첼로 소나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안톤 루빈스타인(1829~1894)은 1852년에 소나타 D장조 를, 1857년에는 소나타 G장 조 를 썼다. 하지만 이 두 곡은 오늘날 거의 연주되지 않는다. 라흐마니노프에 이르러서야 첼로 소나 타 라는 장르의 문이 제대로 열렸고, 이어서 미야스코프스키,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예프 등의 작곡가 가 자신들의 작품 목록에 첼로 소나타를 올렸다. 라흐마니노프의 g단조 op.19 와 쇼스타코비치의 d단조 op.40 은 러시아를 대표하는 두 곡의 첼로 소나타로 꼽힌다. 두 사람은 33살 차이. 1873년에 귀 족 가문에서 태어난 라흐마니노프는 1917년 조국에서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자 미국으로 망명했고, 1906 년 평범한 기술자 집안의 맏아들로 태어난 쇼스타코 비치는 평생을 러시아에 머물며 옛 소련을 대표하는 115

116 작곡가로 활약했다. 말하자면 둘은 출신 계급이 달랐 으며, 냉전을 주도했던 미국과 소련에서 각자 생애의 후반부를, 혹은 전부를 보냈다. 하지만 그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사뭇 복 잡해진다. 라흐마니노프는 주정뱅이 아버지가 재산을 탕진하는 바람에 조부 밑에서 어두운 유년을 보냈으 며, 망명 후에는 본업인 작곡보다 피아노와 지휘에 매달려야 했다. 작곡보다 연주가 훨씬 환금성 이 컸던 까닭이다. 미국에서의 라흐마니노프는 그렇게, 생계를 위해 부지런히 피아노를 치며 살아야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쇼스타코비치는 어땠던가? 러시아혁명이 일어나던 해에 그는 11살이었다. 스스로 술회했듯, 2월혁명과 10월혁명 등 연이어 터지는 사회적 사건에 관심이 컸던 가정에서 성장했던 그는, 실생활을 음악에 담 고 싶다 는 소망을 어린 시절부터 키웠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소박한 미의식은 스무살을 넘어서면 서부터 희미해졌다. 그의 미적 감성과 아이디어는 어느덧 모더니즘의 길을 걸었으며, 예술가를 통제했던 스탈린 시대는 당연히 그에게 버거웠다. 그는 권력의 압박이 들어오면 자신의 미의식에 물 을 타며 버 텼다. 이를테면 교향곡 5번 이나 오라토리오 숲의 노래 같은 곡들. 그러다가 압박이 느슨해지면 자 신의 내밀한 자의식을 악보 속에 털어놓곤 했다. 33년을 사이에 두고 러시아 에서 소비에트 로의 이행기를 살았던 두 사람. 라흐마니노프는 혁명 후 의 역동적인 조국에 적응할 수 없었던 낭만적 복고주의자였고, 쇼스타코비치는 스탈린 시대의 통제를 물타기 로 버텼던 예민한 모더니스트였다. 게다가 두 사람은 극단적인 소심남 이었다. 자기 주장을 세우며 남과 대립하는 걸 피했고 남의 충고나 비난엔 크게 상처받았다. 라흐마니노프는 1897년 초연됐던 교향곡 1번 이 혹평을 받자 오랫동안 우울증 에 시달렸으며, 쇼스타코비치는 죄송합니다 라는 말을 평생 입에 달고 산 사람 이었다는 것이 피 아니스트 리히테르의 회고다. 억눌린 감정은 음악에서 어떻게 드러나는가? 두 사람이 각각 한 곡씩 남겨놓은 첼로 소나타는 마치 그 해 답과도 같다. 라흐마니노프의 g단조 op.19 에서는 과다한 감정의 분출이 자주 엿보인다. 쇼스타코비치 의 d단조 op.40 에 등장하는 리드미컬한 익살은 어둠 속에 숨어 혼자 키득거리는 웃음을 닮았다. g 단조 o p.19 는 첼리스트 다닐 샤프란과 피아니스트 펠릭스 고틀리프의 연주 가, d단조 o p.40 은 로스트로포비치의 첼로에 쇼스타코비치가 직접 피아노를 맡았던 연주 가 명연으로 남 아 있다. 최근 한국의 첼리스트 송영훈은 두 곡을 모두 연주한 음반(사진)을 내놓기도 했다. 같은 레퍼토리 로 순회 연주회도 진행 중이다. 14일 고양아람누리, 15일 성남아트센터, 17일 대구 수성아트피아, 18일 세 종문화회관 체임버홀. 116

117 Daniel Shafran - Shostakovich Cello Sonata Op.40, 4th mov [주제와 변주]청력 잃고 더 빛난 예술 조국 체코에 대한 헌사 ㆍ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 베토벤은 26세 때부터 청력을 잃기 시작했다. 50세 무렵이 되면 완전히 들리지 않 게 된다. 말하자면 그의 청력 상실은 20여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서서히 진행됐다. 하지만 체코의 작곡가 스메타나(1824~1884)는 경우가 달랐다. 그는 느닷없이 청력 을 잃는다. 50세였던 1874년. 환청이 점점 심해지더니 그해 10월에 접어들면서 완 전히 들리지 않는 상태가 됐다. 스메타나는 왜 갑자기 청력을 잃었을까. 가장 유력하게 제기되는 것은 매독 설 이다. 독일의 내과의사 디터 케르너는 <위대한 음악가들의 죽음>(현암사)이라 는 책에서 스메타나의 청력 상실을 매독에서 비롯된 진행성 마비 로 설명한다. 그는 베토벤에 대해서도 같은 설명을 내놓는다. 다만 그것이 천천히 진행되거나 빨리 진행된 차이였다는 것. 케르너는 같은 책에서 슈베르트와 파가니니의 사인 ( 死 因 )도 매독이었다고 설명한다. 매독 때문이었든 아니면 정신분열이나 우울증 때문이었든, 스메타나는 음악가로서의 연륜이 한창 무르익 던 50세에 갑자기 외부의 모든 소리로부터 차단된다. 그래서 그는 프라하 가극장의 지휘자직을 사임하고 칩거에 가까운 나날을 보내야 했으며, 그때부터 오로지 작곡에만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그의 귀에 들려오는 것은 내면에서 울려오는 기억과 상상의 소리뿐이었다. 117

118 역설적이게도, 그의 걸작들은 바로 이 시기에 쓰여졌다. 베토벤이 귀가 안 들리기 시작한 중기( 中 期 ) 이후 에 걸작의 숲 으로 들어섰듯, 스메타나도 청력을 잃고 난 후 그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음악을 남겼 다. 전부 여섯 곡으로 이뤄진 교향시 나의 조국 (Ma Vlast)과 현악4중주 1번 내 인생으로부 터 (From My Life)가 바로 그것이다. 게다가 흥미로운 것은 두 곡의 성격이다. 간단히 말해 하나는 조국에 대한 헌사 이고, 또 하나는 개 인적 심경고백 이다. 청력을 잃은 말년의 스메타나는 보헤미아의 민족주의를 웅대한 스케일의 관현악으 로 묘사해 체코인들에게 바쳤으며, 그와 거의 동시에 현악기 4대를 동원한 소박한 규모의 실내악으로 자 신의 인생을 반추했다. 스메타나는 그렇게 귀먹은 상황에서도 체코의 예술가 라는 공인으로서의 자각 을 놓치지 않았으며, 동시에 굴곡 많았던 자신의 개인사를 음악적 자전으로 남길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몸에 시시각각 닥쳐오던 정신이상증세를 이미 느끼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교향시 나의 조국 은 1874년부터(1872년이라는 기록도 있다) 5년에 걸쳐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절 벽 위에 지어진 성( 城 )을 묘사하는 첫곡 비셰흐라트 를 쓸 때만 해도 아직 귀가 먹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두번째 곡 몰다우강 을 쓸 무렵에는 완전히 들리지 않는 상태였다. 그래서였을까. 스메타나가 묘사한 몰다우강은 압도적 음량( 音 量 )으로 흘러간다. 체코 남부에서 발원해 북쪽을 향해 거칠게 흘러가는 물살, 숲에서 벌어지는 사냥 풍경, 농가의 흥겨운 결혼식, 관현악 총주가 강약의 대비를 급하게 오가는 급 류, 그러다 마침내 넓은 강폭을 이루며 도도히 흘러가는 강물. 눈에 보이듯 선연한 풍경이다. 계속해서 3곡 샤르카, 4곡 보헤미아의 초원과 숲에서, 5곡 타보르 와 6곡 블라니크 가 이어진다. 몰다우 는 독일어식 발음이다. 체코는 약 300년간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았고, 지배층의 언어는 독일 어였다. 스메타나가 한창 활약하던 19세기 중반의 프라하에는 체코어 사용자보다 독일어 사용자가 더 많았 다. 이때 오페라를 통해 모국어 의 부활을 꿈꿨던 작곡가가 바로 스메타나. 따라서 몰다우 는 블 타바 라는 체코식 표현으로 부르는 것이 더 맞겠다. 음반으로 첫손가락에 꼽히는 나의 조국 은 라파 엘 쿠벨릭 이 지휘한 연주들. 그는 보스턴심포니(71년),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84년), 체코필하모닉(90년) 등과 이 곡을 녹음했다. 하지만 바츨라프 노이만이 체코필하모닉을 지휘한 녹음 (75년)을 선호하는 애호가들도 적지 않다. 118

119 Rafael Kubelik - Czech Philharmonic Orchestra 1990 / Vaclav Neumann [주제와 변주]마지막 로맨티스트 완벽을 위한 결벽 ㆍ피아니스트 호로비츠 피아니스트 호로비츠(1904~89)는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그는 늘 자신의 스타인웨이 피아노만을 고집했으 며, 그것을 보잉 747로 공수해 연주회를 펼치곤 했다. 연주 여행 중에는 언제나 호화로운 호텔방에 묵었고 전속 요리사가 만들어준 음식을 먹었다. 정수기도 자신의 것만을 가지고 다니며 사용했다. 연주회는 반드 시 일요일 오후 4시에 열었으며, 담배는 하루에 딱 두 개비, 연습 시간은 하루 두 시간을 넘기지 않았다. 그는 거의 평생에 걸쳐 이런 습관들을 고수했다. 호로비츠보다 열한 살 아래인 리히테르는 어땠던가? 무척 대비된다. 러시아 태생의 세계적 피아니스트인 두 사람은 인간적 풍모뿐 아니라 삶의 궤적에서도 많이 달랐다. 호로비츠가 스물한 살에 서방으로 망명 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것과 달리, 집 한 채 없이 떠돌던 리히테르는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 진 후에도 평생 러시아를 떠나지 않았다. 호로비츠는 기차나 자동차 타는 걸 싫어해 비행기를 애용했지 만, 말년의 리히테르는 자동차 한 대로 러시아 대륙 을 횡단하면서 궁벽진 마을들을 찾아다녔다. 그는 그 곳에서 낡은 피아노로, 심지어는 조율이 제대로 안된 피아노로도 감동적인 연주를 펼쳤다고 전해진다. 다 소 거친 단정일 수도 있겠지만, 리히테르가 스케일이 큰 강골 이었던 반면에 호로비츠는 예민한 약 골 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호로비츠는 사람들이 자신의 까다로움을 지적하면 버럭 화를 냈다고 한다. 거기에는 다 나름의 이 유가 있다는 것이 그의 항변. 이를테면 자신의 피아노만을 고집했던 것은 손에 익은 악기로 완벽한 연주를 펼치기 위한 결벽증이었고, 연주 여행에 전속 요리사를 대동했던 것은 고기를 먹지 않는 개인적 신념 때 119

120 문 이었다. 또 언제나 일요일 오후 4시에 연주회를 시작했던 것은 그때야말로 내가 가장 생기 넘치는 시간이고, 따라서 관객에게도 최적의 시간이라고 믿었기 때문 이라는 것이 호로비츠의 설명이었다. 그런데 하루에 담배 딱 두 개비는 왜였을까? 아마도 그것은 건강 때문이었던 듯하다. 또 연습을 하루에 두 시간 이상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는 너무 연습을 많이 하면 연주가 기계적이 돼버린다 고 설명했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자신이 연주한 음반도 듣지 않았다. 그는 이에 대해 그것이 (현재의) 나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 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연주는 시간과 함께 소멸하며, 과거의 자신 마저도 결코 복제하지 않겠다는 것이 호로비츠의 뜻이었다. 이런 식의 결벽증, 다른 이들에게 까다로움으로까지 비쳤던 태도를 고수하며 호로비츠가 도달했던 피아니 즘은 어떤 것이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눈부신 테크닉이다. 호로비츠는 누가 보더라도 20세기 피 아노 음악사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테크니션이었다. 특히 1930년대의 그는 화려한 기교를 엄청난 음량 으로 뿜어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주관성이 농후하게 개입된 낭만적 해석. 호로비츠는 이에 대해 인쇄된 악보도 중요하 지만, 그것을 해석하는 것이 내가 평생 동안 한 일 이라고 말했다. 그는 원래의 음에 장식을 덧붙이는 등 자신만의 해석으로 연주하는 걸 즐겼고, 같은 곡이더라도 연주할 때마다 음악이 달라지곤 했다. 말하자면 즉흥성이 강했다. 좋게 말하면 마르지 않는 영감 을 가진 연주자였고,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자의적 왜 곡을 일삼았던 연주자였던 셈이다. 어쨌든 그는, 객관적이고 역사주의적인 해석이 음악계의 대세를 이루 는 20세기 중후반에 들어와서도 낭만적 해석과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그에게는 마지막 로맨티스 트 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 호로비츠가 61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았다. 86년 모스크바에서 열렸던 귀환 콘서트. 페레스트로이카로 해 빙 무드가 한창 번져가던 시절에 마침내 성사됐던 이 연주회는 착잡하면서도 감동적이다. 스카를라티의 소나타에서 라흐마니노프의 WR를 위한 폴카 까지, 82세의 노인이 무려 17곡을 몰아쳤던 연주회. 호로 비츠의 표정은 어린아이처럼 달떠 있고 청중은 한 음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음악에 몰입한다. 그러다가 마 침내 슈만의 트로이메라이 가 연주되던 순간, 객석 곳곳에서 눈물이 흐른다. 이 역사적인 실황이 최근 국내에 라이선스 DVD(소니비엠지 사진)로 출시됐다. 내가 러시아를 떠날 때 아홉 살이었던 조카가 일 흔 살 노인이 됐어 라며 하하 웃던 호로비츠. 그는 3년 후 뉴욕 맨하탄에서 심장마비로 눈을 감는다. 올 해는 그가 떠난 지 꼭 20년이 되는 해다. Schumann Traumerei in Moscow Chopin Polonaise Op. 53 in A flat major 120

121 [주제와 변주 ] 따뜻한 이성 이 빚은 논리적 감동 ㆍ왜 바흐를 듣는가 집에 안 듣는 바흐 음반 좀 있어? 출근길에 선배가 물었다. 요즘 들어 바흐의 음악이 유독 당긴 다 고 했다. 또 다른 선배 한 명은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다. 거실에 놓인 피아노를 밤 늦은 시간까지 치다 가 아래층의 지청구를 듣기 일쑤다. 그 선배도 요즘 바흐의 음악에 푹 빠졌다. 전에는 주로 쇼팽을 쳤는 데 요즘에는 바흐에만 관심이 간다 고 했다. 며칠 전, 전업 작가로 사는 친구 ㅈ은 네덜란드 음반사 브 릴리언트 에서 나온 170장짜리 바흐 전집 을 턱 하니 작업실 한쪽에 들여놨다. 그가 말했다. 바흐 참 좋네. 하루종일 들어도 질리질 않네. 사람들은 왜 바흐를 듣는 걸까? 바흐 통( 通 ) 으로 불리는 한양대 강 해근 교수에게 전화를 했다. 현재 음대 학장으로 재직 중인 그는 첼리스 트이자 음악연구가다. 연주자로서 뿐 아니라 음악학자로서도 국내에 보 기 드문 바흐 전문가 다.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를 받은 그는 이렇게 말했다. 바흐 음악의 두드러진 특징은 호들갑스럽지 않다는 것이죠. 바로크 시대의 다른 작곡가들과 비교하더라도, 바흐 음악은 한결 차분하 게 정제돼 있어요. 질서정연하고 논리적이죠. 바흐를 들으면 마음이 차 분해지고 정신이 맑아지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바흐의 음악에 마음 이 끌리는 것 아닐까요? 인간의 몸과 정신에는 균형을 맞추려는 본능적인 추( 錘 ) 가 있다고 한다. 바흐의 음악에 마음이 끌린다는 것은, 바로 이 균형추의 작동 같 은 것 아닐까? 객관적 상식이 무너져가는 세상에서 이성과 논리를 희구 하는 마음. 강 교수와의 대화 끝에 내린 결론은 그것이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바흐의 음악에는 정신 을 정화시키는 논리적 감동 이 존재한다 고 말한다. 바흐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강 교수는 우스개를 섞어 요즘 말로 하자면 범생이 같았던 사람 이라 고 했다. 아무 사심없이 자기 직분에만 충실했던 사람이죠. 가정에 충실했던 건 물론 드레스덴 시절에는 궁정음악가로서, 라이프치히 시절에는 성 토마스 교회의 칸토르(악장)로서 자신에게 맡겨진 직분에 최선을 다하며 살았습니다. 그게 바흐의 전부죠. 재미 있는 일화도 별로 없습니다. 바흐는 출판사로부터 자서전을 청탁받기도 했지만 거절했어요. 자기 자신을 위한 기록을 거의 남기질 않았어요. 독일의 음악학자 포르켈(J N Forkel, 1749~1818)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1802년에 <바흐의 생애와 예술, 그리고 작품>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것은 바흐의 첫 번째 전기( 傳 記 )이며, 서양음악사를 통틀어 첫 번째 음악가 평전이다. 한국에서도 2005년 강 교수의 번역으로 출간됐다. 바흐의 걸작 골드베르크 변주곡 에 121

122 얽힌 유명한 일화. 잠을 못 이루는 카이저링크 백작의 수면 촉진 을 위해 이 곡을 썼다는 이야기도 바 로 이 책에 등장한다. 바하의 제자인 골드베르크는 연주는 잘했지만 작곡엔 별 재주가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는 백작의 집에 상주하는 건반 연주자였다. 백작은 잠 못 이루는 밤 에 들을 수 있는 온화하면서도 생기 있는 곡 을 써달라고 바흐에게 의뢰했고, 제자인 골드베르크는 이 곡을 백작의 자장가 로 연주 했다고 전해진다. 바흐에 대한 속물적 관심은 그가 두 번 결혼해서 11명의 아들과 9명의 딸을 낳았다는 것에 모아지기도 한 다. 하지만 그게 뭐 대수랴. 바흐의 탁월한 생산력 은 음악에서 한층 빛났다. 바흐의 작품으로 확인된 것만 추려도 CD로 자그마치 170장의 분량. 그는 당대의 보편적 언어로 작품을 썼지만 대중과 영합하지 않 았던 은근한 고집쟁이였고, 뛰어난 건반 연주자였지만 노력만 하면 누구나 나만큼 연주할 수 있 다 며 항상 겸손했던 사람이었다. 따뜻한 이성 의 음악을 지상에 전해준 음악의 현자( 賢 者 ) 바흐. 그는 60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시력 이 급격히 악화된다. 영국인 의사의 집도로 두 번 수술을 받았지만 오히려 실명하고 만다. 그후 6개월간 계속 앓다가 1750년 7월28일 밤, 마침내 세상을 떠났다. 66세였다. 타계하기 열흘 전 아침에 갑자기 시력을 회복했지만, 몇 시간 후에 뇌졸중이 찾아왔고 온몸이 고열에 휩싸이면서 눈을 감았다고 전해진다. 122

123 Ba ch Editio n 160CD / Ka rl Richter 26CD / Ha rno nco urt & Leo nha rdt 60CD [주제와 변주 ]30 0 년간 바흐를 숨쉬게 하는 손 ㆍ바흐를 사랑한 피아니스트들 사람들은 왜 바흐를 듣는가? 지난주에는 바흐 음악이 전해주는 논리적 감동 과 따뜻한 위안 을 얘 기했다. 이번주에는 바흐 연주의 대가들, 그중에서도 특히 피아니스트들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먼저 글렌 굴드(1932~82 사진). 바흐의 피아노 음악을 거론할 때 누구에게라도 가장 먼저 떠오를 이름이겠다. 그는 바흐의 골드 베르크 변주곡 을 평생에 걸쳐 두 번 녹음했다. 다시 말해 바 흐 는, 작곡가들에 대한 호불호가 뚜렷했던 굴드가 평생 동안 애 착을 가졌던 음악가였다. 특히 1955년에 첫번째로 녹음했던 골드 베르크 변주곡 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연주.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는 그것을 비르투오소의 역사에 진정으로 새로 운 무대가 열렸다 고까지 평했다. 굴드가 연주하는 바흐는 어땠던가? 빠른 템포와 절제된 스타카토, 음과 음 사이의 여백, 여러 성부를 마치 따로 녹음하기라도 한 것 처럼 충실하게 구현했던 대위법. 그것은 굴드 이전의 누구에게 서도 만나기 어려웠던 독특한 스타일 이었다. 생전의 굴드는 그것을 10대 중반에 이미 형성됐던 나의 스타일 이라고 술회했던 적이 있다. 어쩌면 그 개성은 기존의 주류에 대한 저항에서 비롯됐는지도 모른다. 굴드가 10대였던 1940년대에 주류를 이뤘던 바흐 해석은 당연 히 낭만주의였을 터. 에드빈 피셔, 란도프스카, 파블로 카잘스 등이 그렇지 않았던가. 하지만 굴드가 보기 에 그것은 바흐와 별 관련이 없는 연주 였다. 그는 앞 세대의 바흐 연주가들 가운데 오로지 로잘린 투 렉(1914~2003)만을 긍정 했다. 굴드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20세기 중반에 바흐 해석의 지침과도 같았던 존재는 에드빈 피셔(1886~1960)였 다. 기계적 객관주의를 배격하면서 영적인 연주를 들려줬던 피아노의 사제( 司 祭 ). 피아니스트 강충모 교수 (49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는 (피셔의 바흐 연주는) 대단히 낭만성이 강하다 고 평했다. 게다가 40년대에는 지금보다 녹음과 편집 기술이 많이 떨어졌던 탓에, 요즘 세대가 그의 바흐를 들으면 실망할 겁 니다. 페달도 많이 사용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너무 빨리 지나갑니다. 테크닉이나 짧은 선율이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지요. 그래도 피셔는 20세기의 바흐 스페셜리스트를 거론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존재입니다. 123

124 그렇다고 굴드가 20세기 중반 이후를 완전히 주도했던 건 아니다. 강 교수는 적어도 바흐의 평균율 연주에 있어서는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리히테르를 빼놓을 수 없다 고 강조했다. 리히테르(1915~97)는 굴 드와 상반되는 스타일의 바흐를 선보였던 피아니스트. 그는 굴드와 달리 페달을 적절히 사용하면서 음과 음 사이를 부드럽게 잇는 레가토를 구사했다. 강 교수는 리히테르의 바흐는 (굴드에 비해) 음색에 신경 을 많이 쓰는 온화한 연주 라고 부연했다. 굴드가 유일하게 동의했던 앞 세대의 거장 로잘린 투렉 은 어땠을까? 굴드는 생전의 인터뷰에서 (투렉 의 연주는) 각 성부들 사이의 구조적 관계와 더불어 직선적 부분도 매우 뛰어나게 고려돼 있다 고 말했 다. 그것은 그녀가 견실한 대위법을 구사했을 뿐 아니라 선율의 진행에서도 유려했다는 호평일 터. 하지만 굴드가 연주하는 바흐가 귀에 익은 이들이 투렉의 연주를 접한다면 좀 답답할지도 모를 일이다. 투렉의 연 주는 굴드에 비해 템포가 느리고 선이 굵다. 비슷한 스타일을 구사했던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타티아나 니 콜라예바(1924~1993)도 마찬가지. 강 교수는 투렉이나 니콜라예바는 모두 여성이지만, 리히테르나 굴드 보다 오히려 더 선이 굵은 연주를 펼쳤다 고 평했다. 살아있는 피아니스트로는 누가 있을까? 정확하고 학구적인 연주를 선보이는 안드라스 쉬프 (56)의 단 정한 바흐 를 빼놓을 수 없을 터. 또 진지한 구도자의 풍모를 보여주는 머레이 페라이어 (62)와 수정처 럼 맑은 분위기를 풍기는 안드레이 가브릴로프 (54)의 차가운 바흐 도 한번쯤 접해야 할 문제적 연 주 다. 그밖에 알렉시스 바이젠베르크 (80)가 선보이는 화려하고 강렬한 타건의 골드베르크 변주 곡 은 별미 로 맛볼 만한 연주. 바흐는 그렇게,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로잘린 투렉 안드라스 쉬프 머레이 페라이어 안드레이 가브릴로프 124

125 A. Weissenberg [주제와 변주]목숨과 맞바꾼 연주 심장이 터질 듯 ㆍ지휘자 키릴 콘드라신 오늘은 재즈 색소폰 연주자 스탄 게츠의 이야기로 문을 열어야겠다. 1991년 3월3일부터 6일까지, 그는 덴 마크 코펜하겐의 몽마르트르 클럽에서 연주했다. 세상을 떠나기 정확히 석달 전이었다. 당시 그는 골수까 지 쳐들어온 암과 싸우고 있었다. 결국 유작이 되고 만 몽마르트르 실황. 이 앨범에서 최고의 연주는 타이틀곡 People Time 이다. 그것은 지금 들어도 가슴 절절한 명연이다. 죽음을 목전에 둔 스탄 케츠는 평상 시처럼 상쾌하고 부드러운 리듬을 구사하지 못하고,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듯한 특유의 몽환적 비브라토도 들려주지 못 한다. 그날 스탄 게츠의 테너 색소폰은 목쉰 소리로 힘겹게 운다. 매끈하게 이어져야 할 블로윙은 곳곳에서 툭툭 끊어진 다. 폐가 다 망가진 상태였으니, 그렇게 호흡이 끊어질 수밖 에 없었을 터. 그래서 People Time 은 듣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것은 더할 나위 없이 감동적인 명연임에 틀 림없지만, 담담한 마음으로 마주하기 힘든 고통스러운 작 별인사 였던 셈이다. 스탄 게츠는 64세로 타계했고, 그날 몽마르트르에서 함께 연주했던 피아니스트 캐니 배런(66)은 유작 앨범 에 수록한 글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그가 얼마나 야위었는지. 그는 자신의 솔로 때마다 혼신을 다했 다. 그러나 솔로가 끝날 때마다, 나는 그가 얼마나 힘겨워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고통 때문이 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날의 음악은 사실적이고, 정직하고, 아름다웠다. 분분히 떨어지는 꽃잎을 보면서 떠오르는 또 한 명의 음악가. 스탄 게츠가 마지막 에너지를 그렇게 연소시 켰던 것처럼, 러시아 출신의 명지휘자 키릴 콘드라신도 음악과 함께 산화했다. 81년 3월6일, 네덜란드 암 스테르담에서였다. 그날 북독일방송교향악단의 지휘봉을 들기로 예정됐던 이는 클라우스 텐슈테드. 하지 만 텐슈테드의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연주회가 거의 취소될 상황 속에서 급박하게 콘드라신에게 연락이 닿았고, 콘드라신은 앞뒤 가리지 않고 연주회장으로 내달렸다고 한다. 숨이 턱에 닿아 도착한 시각이 연주 시작 1시간 전. 콘드라신은 리허설도 거의 없이 포디엄에 서야 했다. 연주할 곡은 말러의 교향곡 1번 거 인 (사진)이었다. 콘드라신은 누군가? 60년부터 75년까지, 모스크바 필하모닉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지휘자. 옛소련의 국영 125

126 레이블 멜로디야 와 네덜란드의 필립스 를 통해 한국 애호가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명장( 名 匠 ). 볼쇼 이극장의 보리스 하이킨에게 지휘를 사사한 그는, 스승이 그랬던 것처럼 스케일이 크고 강렬한 다이내믹 을 구사한 지휘자였다. 당국과 악단의 운영 문제로 마찰을 빚던 그는 75년 모스크바 필하모닉 음악감독직 을 사퇴했고, 78년에 네덜란드로 망명해 79년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의 지휘자로 취임했다. 그래서 소련 시절의 연주는 멜로디야 에서, 네덜란드 망명 후의 연주는 주로 필립스 에서 나왔다. 어느 것 하나 놓치기 아까운 수작들이 대부분이다. 어쨌든 대타 로 무대에 섰던 암스테르담 콘서트홀에서, 콘드라신은 평소보다 훨씬 뜨거웠고 지휘의 템 포도 빨랐다. 음반으로 기록된 당시 연주를 지금 들어보면, 다른 지휘자들의 말러 1번에 비해 뭔가 흥분한 상태로 질주한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약 50분에 달하는 연주. 10년 전부터 심장병을 앓아왔던 콘드라신 은 몸을 돌보지 않은 채 무서운 기세로 내달렸다. 그리고 그날 밤, 암스테르담의 한 호텔에서 눈을 감았 다. 심장마비. 향년 67세였다. 스탄 게츠의 People Time 처럼, 콘드라신의 말러 1번도 담담한 마음으로 마주하기 힘들다. 그럴 때 들 을 수 있는 것이 멜로디야 시절의 음반들. 특히 차이코프스키의 6번 교향곡 비창 은 압도적 명연이다. 면도날처럼 예리하게 가슴을 파고드는 현악기군, 그러다 마침내 화산처럼 폭발하는 관악기군의 팡파르. 이렇게 섬세하면서도 장쾌한 비창 을 어디서 만날 수 있겠는가. 멜로디야 시절에 콘드라신이 가장 집 중했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전곡 녹음도, 20세기 연주사의 한 페이지를 수놓은 장관이다. Tchaikovsky Piano Concerto No.1 ~ Van Cliburn with Kirill Moscow (1962) [주제와 변주]불편한 정치행보, 황홀한 음악 126

127 ㆍ리하르트 슈트라우스 2년 전 한국을 찾았던 뮌헨필하모닉의 연주회는 지금도 향기로운 뒷맛을 남긴다. 크리스티안 틸레만의 지 휘는 강렬하면서도 섬세했고 악기들은 제각기 카랑카랑한 소리를 내면서도 부드럽게 어울렸다. 애매하게 뭉개진 소리는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았다. 말하자면 제대로 다듬어진 독일 사운드. 게다가 당시 연 주됐던 곡들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사진)의 음악이었다. 틸레만과 뮌헨필이 자신들의 18번 을 한국에 서 선보인 셈이다. 5월에도 슈트라우스의 본가( 本 家 )가 내한한다. 이번 에는 파비오 루이지(50)가 지휘하는 드레스덴 슈타츠 카펠레(Dresden Staatskapelle)이다. 어찌보면 드레 스덴은 뮌헨보다 한층 더 슈트라우스의 향취가 강한 곳. 슈트라우스는 뮌헨에서 태어났지만, 대표작들이 가장 많이 초연된 도시는 드레스덴이었다. 게다가 그 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지휘자이기도 했다. 그 래서 이 악단이야말로 슈트라우스의 본가로 불려도 손색이 없는 전통의 악단. 약간 어둑하면서도 목질 ( 木 質 )의 분위기를 짙게 풍기는 그들의 음색은, 옛 동독을 대표하는 사운드로 통했고, 그것은 국영 음 반사 에테르나 의 단순한 자켓과 참으로 어울리 는 이미지였다. 그래서 오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다시 생각한다. 나치 시절 제국음악원의 초대 총재. 적어도 나치의 시각에서 보자면, 그는 20세기 초반부터 중엽까지 독일음악의 위대함을 증거한 초인 이었다. 문화부 장 관 괴벨스는 물론 히틀러도 그에게 찬사를 보냈다. 그런 정치적 행적 탓에 마음 한켠을 늘 불편하게 만드 는 음악가. 하지만 도저히 거부하기 힘든 황홀한 음악을 써낸 작곡의 귀재. 슈트라우스는 그렇게, 불편 함 과 황홀함 이라는 두 개의 능선을 오가며 논쟁의 여지를 남긴다. 그의 친나치 행적에 대한 평가는 자발적이긴 했지만 적극적이진 않았다 는 쪽으로 모아진다. 이것은 당시 최고의 명성을 지녔던 작곡가 슈트라우스가 나치의 요구를 거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거라는 상황 논리 에 근거한다. 또 생전의 슈트라우스가 보여준 약간 의 반골 기질도 가세한다. 이를테면 나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태인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와 오페라 <말없는 여인>을 함께 작업했다든가, 공연 팜플렛에 츠바이크의 이름이 삭제된 걸 보고 불같이 화를 냈다든가, 2차대전 말기에 나치가 슈트라우 스의 대저택을 부상자 수용을 위해 빌려달라고 했을 때 전쟁은 나와 무관하다 며 거부했던 일화 등이 사례로 등장한다. 슈트라우스는 그렇게, 간간이 히틀러의 성질을 자극했다. 그는 그럴 수 있었다. 나치가 국제적 명성이 높은 자신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슈트라우스는 자신을 비판하는 츠바이크에게 보낸 서신에서 음악과 극장을 후원하는 새 독일 127

128 정부 에 강한 호감을 나타낸다. 그는 음악의 자율성 을 내세우면서도 베를린올림픽 개막식을 위해 올림픽 찬가 (1936)를 작곡했고, 국가사회주의 이념을 형상화한 오페라 <평화의 날>(1938)로 나치 비평 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동맹국 일본을 위해 작곡한 일본 축제 음악 (1941)과 오스트리아 합병 5주년을 기념한 빈의 축제 음악 (1943)도 어용음악가 슈트라우스의 면모를 보여주는 행적이다. 결국 그에게 중요한 것은 부와 명성이었다. 나치 시절의 그는 살아있는 독일 음악가 가운데 가장 빈번히 연주된 작곡가 로 기록되면서 그것을 누렸고, 그래서 (나치와 슈트라우스가) 서로를 이용했다 (이경 분, <망명음악, 나치음악>)는 평가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그렇게 정치적으로 불편한 슈트라우스의 음악에는 분명 거부하기 어려운 황홀경이 있다. 그의 음악에는 거침없이 흘러가는 호연지기가 있고, 감성의 밑바닥을 흔드는 쾌감도 있다. 피아니스트 글렌 굴 드마저 찬란하다 며 경탄했던 그것. 슈트라우스 음악의 본가로 통하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연주 회는 5월9~10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다. 영웅의 생애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 차라투 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이 연주된다. Tribute To The Staatskapelle Of Dresden(4CD) / Richard Strauss 모음집 - Rudolf Kempe & Staatskapelle Dresden

129 [주제와 변주 ] 난 언제나 폴란드 음악가 ㆍ크리스티안 지메르만 그는 정치가처럼 웅변을 토해내지 않았을 것이다. 조용히 말했을 것이다. 그래서 객석의 뒤쪽에 앉아 있는 관객들에겐 그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53 사진)은 그런 사람이다. 연주를 들어보면 안다. 그는 청중을 현혹하지도 않고, 기교를 과시하면서 잘난 척 하지도 않는다. 거장풍의 거드름을 피우지도 않는다. 끝없는 연습과 준비로 완벽에 도달하려는 의지가 느껴지는 연주. 그래서 지메르만의 피아니즘은 신뢰할 만한 것 으로 정평이 나 있다. 한국에서는 대개 그를 침머만 으로 표기한다. 독일식 발 음이다. 때로는 짐머만 으로 쓰기도 한다. 이건 미국식 발음이다. 폴란드 태생인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지메르만 으로 불러달라 고 요청하곤 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올 바른 이 요청은 별로 씨알이 먹히지 않는다. 그래도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한다. 지메르만으로 불러주세요. 저는 폴란드 사람이랍니다. 그 지메르만이 지난달 26일 미국은 폴란드에서 손을 떼 라 고 말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디즈니홀에서 열렸던 미 국 투어의 마지막 연주회에서였다. 이 발언은 미국이 폴란 드에 미사일방어(MD) 기지를 설치하려는 계획에 대한 반발 로 해석된다. 지난달 28일자 미국 LA타임스 와 영국 가디언 은 지메르만이 나는 미국의 군사정책에 반대 한다 며 다시는 미국에서 연주하지 않을 것 이라고 선 언한 것으로 전했다. 일부 관객은 야유를 보냈지만 대다수는 마지막곡인 시마노프스키의 폴란드 민속음 악 주제에 의한 변주곡 을 끝까지 감상했으며 일부는 기립박수를 치며 환호했다고 전해진다. 물론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어떤 관객은 나는 비싼 입장료를 내고 음악을 들으러 왔지, 당신의 정치적 주장을 들으러 온 게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지메르만의 공연은 비싸다. 하지만 지메 르만의 표현의 자유 를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그가 음악에 대해 해석하거나 설명할 수 있듯이, 정치적 견해도 밝힐 수 있다 는 것이다. 실제로 가디언 인터넷판에는 그런 글이 적잖이 올라와 있다. 지메르만은 어떤 피아니스트인가. 일단 그는 쇼팽의 후예 라고 불려도 좋을 만한 연주자다. 이 평가는 당연히 폴란드 라는 지역성을 내포한다. 폴란드를 대표하는 작곡가 쇼팽을 가장 폴란드적인 감성으로 소화해내는 피아니스트. 그래서 1975년 바르샤바 쇼팽 콩쿠르에서 19살 나이로 우승한 후, 지메르만에게는 쇼팽 스페셜리스트 라는 수식어가 오래 따라다녔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이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 마도 그는 스페셜리스트 라는 규정에 담긴 일종의 억압, 혹은 상업적 의도가 불편한지도 모르겠 129

130 다. 76년 파리에서 피아니스트 루빈슈타인(1887~1982)이 그의 브람스 연주를 들은 후, 너야말로 브람스 스페셜리스트 라고 평했을 때, 지메르만이 몹시 불편해 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일화다. 지메르만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단어는 아마도 음악적 완벽주의 일 터. 그는 철저한 준비와 연 습으로 무결점의 연주 를 펼치는 피아니스트로 평가받는다. 그러다 보니 콘서트홀의 소음에 민감하고, 피아노도 자신의 스타인웨이만을 고집한다. 하지만 그 고집은 호로비츠의 결벽증 과는 달라 보인다. 지 메르만은 피아노를 직접 조율하고 위치를 열번씩 바꿔가며 녹음할 정도로 까다롭지만, 이는 결벽증 이 라기보다 오히려 치밀함 에 가깝다. 그래서 실제로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나온 그의 음반은 태작이 거의 없다. 특히 지휘자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와 협연한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 2번 (78년 녹음)은 젊은 시 절의 지메르만을 만날 수 있는 필청반이다. 또 그는 폴란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스스로 조직해 같은 곡 을 99년에 직접 지휘해 녹음했다. 이 역시 몸은 스위스에 있어도 나는 언제나 폴란드 음악가 라는 그의 담담한 육성 을 느낄 수 있는 수작이다. 단, 달콤한 살롱풍의 쇼팽에 익숙한 이들에겐 재미없는 연주일 수도 있다. Cho pin Ba lla d No [주제와 변주]벗에게 바친 장대한 연주 ㆍ베토벤 피아노 3중주 대공 하루키의 소설 <해변의 카프카>(문학사상사)에는 호시노라는 청년이 등장한다. 고등학교를 겨우 마친 화물 트럭 운전사에다 사장에게 혼날 것을 걱정하는 평범한 청년이다. 게다가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이 타적 심성까지 갖췄다. 한마디로 단순하고 착하다. 130

131 어느날 그가 찻집에 들른다.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 나온다. 호시노는 왠지 그 소리가 마음에 들어 주인 에게 묻는다. 아저씨, 저게 무슨 음악이죠? 베 토벤의 대공 트리오 랍니다. 베토벤이 오스트리 아의 루돌프 대공에게 헌정한 곡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루키는 약간의 코믹한 설정을 곁들 여 베토벤의 피아노 3중주 대공 을 소설에 등장 시킨다. 찻집 주인은 계속해서 말한다. 루돌프 대 공은 열여섯살에 베토벤의 제자가 돼 피아노를 배웠 습니다. 그리고 베토벤을 깊이 존경하고 여러모로 도 움을 줬지요. 베토벤은 마흔살 때 이 작품을 완성했 는데, 이 곡을 끝으로 피아노 트리오에 두번 다시 손 대지 않았습니다. 지면상 원문을 좀 줄였다. 어쨌든 찻집 주인이 대공 에 대한 설명을 백과사전식으로 늘어놓자, 호시노 는 알 것 같다 고 머리를 끄덕이며 찻집을 나선다. 그리고는 여관으로 돌아가,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 는 나카타 노인에게 말한다. 베토벤은 (귀가 안 들렸는데도) 좌절하지 않았어. 그 뒤에도 작곡을 계속해 훌륭한 음악을 만든 거야. 대공 트리오 도 청각을 잃고 작곡한 거래. 그러니까 아저씨도 글을 모른다는 게 불편하고 고통스럽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잖아. 대략 이 정도가 소설 속에 등장하는 대공 해설. 이만하면 대공 에 관한 중요 사항들은 대체로 언급 된 셈이다. 첫째, 대공과 베토벤의 우정. 루돌프 대공은 베토벤의 후원자이자 피아노 제자였으며, 무엇보 다 진심어린 우정을 나눈 벗이었다. 1809년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를 공격했을 때, 황실은 빈을 탈출해야 했고 대공도 그 대열에 있었다. 그때 베토벤이 진정으로 슬퍼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당시 작 곡했던 곡이 피아노 소나타 26번 고별. 베토벤이 자신의 음악 가운데 악장마다 부제를 붙인 것은 이 고별 과 교향곡 6번 전원 뿐이다. 게다가 베토벤은 고별 (Lebewohl)을 프랑스 출판업자가 일상 적 인사말인 아듀 (Adieux)로 번역하자 화를 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대공은 내게 소중한 친구 라 는 그의 뜻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둘째, 청각을 잃은 후 작곡한 마지막 피아노 3중주라는 점. 정확히 말해 마흔살의 베토벤은 완전히 귀가 멀진 않았다. 약간의 청력이 남아있던 그는 1814년 자신이 직접 피아노를 맡아 이 곡을 초연했다. 당연히 연주는 엉망이었을 터. 베토벤의 친구 루이 슈포어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화려했던 비르투오조 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포르테에서 어찌나 세게 건반을 두드렸는지, 피아노 현이 덜거덕거 릴 정도였다. 이것이 피아니스트 베토벤의 마지막 연주였다. 베토벤은 그날 이후 다시는 공식적 연 주회에서 피아노를 치지 않았다. 131

132 마찬가지로 그는 피아노 3중주도 더 이상 작곡하지 않았다. 그는 대공 이라는 곡에 이르러 피아노 트 리오 라는 장르로 하고 싶었던 말을 다했던 모양이다. 원래 피아노 트리오는 집안이나 살롱 같은 작은 공 간에서 주로 연주됐던, 말하자면 여흥적 성격이 강했던 장르. 하지만 베토벤의 대공 에 이르러 그런 관 념은 여지없이 깨졌다. 이 곡은 피아노가 리드하는 1악장 첫주제부터 웅장하며, 그 규모는 마지막 4악장까 지 흔들림없이 이어진다. 베토벤은 그렇게, 마흔살의 나이에 일찌감치 거장적 완결성 의 경지에 올랐 다. 소설 속 호시노의 말처럼 대단하다 고 할밖에. 하루키가 소설에 등장시켰던 음반은 루빈슈타인, 하이페츠, 포이어만 트리오의 연주(사진). 이른바 백만 불 트리오 의 연주다. 코르토, 티보, 카잘스도 이에 비견되는 역사적 연주. 모두 모노 녹음이다. 58년 녹 음된 오이스트라흐 트리오의 연주는 스테레오 녹음. 앞선 두 음반보다 좀더 나은 음질을 갖췄다. Piano trio No.7 in B flat major op.97, 1st movement. Alfred Cortot(piano), Jacques Thibaud(violin), Pablo Casals(cello), recorded [주제와 변주]끔찍한 망명지서 꽃핀 초인적 기교 ㆍ 피아니스트 라흐마니노프 라흐마니노프(1873~1943 사진)는 1918년에 미국으로 망명했다. 조국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난 이듬해였 다. 그는 특별한 정치적 견해를 밝혔던 적은 없었지만, 귀족이라는 이유 때문에 혁명 직후의 러시아를 떠 132

133 나야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조부와 부친은 차르 군대의 장교였고 어머니도 장군의 딸이었다. 10 월혁명 3주 후, 라흐마니노프는 스웨덴 스톡홀름으로부터 연주 요청을 받고는 가족과 함께 기차를 탔다. 그후 다시는 고국 땅을 밟지 못했다. 스톡홀름 연주회를 마친 그는 이듬해 미국으로 망명, 세상을 떠날 때 까지 러시아계 미국인으로 살았다. 그렇다고 라흐마니노프가 미국을 자유의 땅 으로 생각하면서 동 경했던 것 같지는 않다. 예컨대 그는 미국 망명 전이었던 1909년에 뉴욕에서 연주회를 치른 후, 가족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던 적이 있 다. 이 정 떨어지는 나라에는 미국인들만 들끓는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일만 하려고 하는지, 비즈니스를 외치면서 사람을 들볶고 강 행군시킨다. 나는 너무 지쳤다. 내 성격이 많이 나빠진 것 같다. 그랬다. 미국은 라흐마니노프의 머릿속에 끔찍한 나라 로 각인돼 있었다. 하지만 그는 1918년부터 그 땅에 발붙이고 살아야 했다. 그 는 45세였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었다. 그의 곁에는 러시아를 함께 떠나온 아내와 자식들이 있었다. 피아니스트 라흐마니노프의 생애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낯설고 물선 땅에서 그는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물론 예전 에도 종종 피아노를 연주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작곡가 라 흐마니노프의 연주였다. 하지만 사정이 달라졌다. 이제 라흐마니노프는 자신이 직접 쓴 곡뿐 아니라 베토 벤과 슈베르트, 쇼팽과 그리그까지 연주해야 했다. 당연히 작곡가로서의 활동은 점차 줄어들었고, 미국 망 명 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라흐마니노프가 완성해낸 곡은 6곡에 불과했다. 그의 생애는 그렇게, 미국으로 망명했던 45세 이전과 이후로 크게 나뉜다. 그렇다면 피아니스트로 전직 했던 라흐마니노프의 존재감은 과연 어느 정도였을까? 그것은 오늘날 우 리가 상상하는 이상이었다. 적어도 1920~30년대의 라흐마니노프는 요제프 호프만과 쌍벽을 이루던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다. 손가락을 쫘악 폈을 때 손의 크기가 자그마치 30cm에 달했던 그는 건반을 완전히 장악한 채 육중하고 화려한 연주를 선보였고, 콘서트홀의 청중은 그의 초인적 기교에 열광했다고 전해진다. 그에 대해 아르투르 루빈슈타인(1887~1982)은 이렇게 말했다. 황금색 비밀을 간직한 살아있는 피아노 음색은 가슴에서 나왔다. 나는 화려하게 건반을 질주하는 그의 손가락과 흉내내기 어려운 거대한 루바토에 홀려 시름을 잊고 빠져들어 갔다. 그렇게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니스트로서 명성을 얻고 돈도 벌었다. 그는 두 딸에게 프랑스 파리에 출판사 를 차려줬고 별장도 구입했다. 하지만 과연 행복했을까? 별로 그랬을 것 같지 않다. 아마도 미국을 지겨워 했던 그의 러시아적 심성은 여전했을 것이고 작품을 쓰지 못하며 겪어야 했던 작곡가로서의 갈 증 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미국 망명 후 혹독한 연주 일정에 시달리면서 요통과 관절염을 끼고 살 았고 늘 피로를 호소했다고 전해진다. 133

134 하지만 그의 연주가 아직 녹음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최근 국내의 한 음반사에서 라흐마니노프의 예술 (The Art o f Sergey Ra chma nino v)이라는 음반을 펴냈다. 모두 6장의 CD로 이뤄진 이 앨범은 1919년부터 42년까지 레코딩된 라흐마니노프의 주요 연주를 담았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피아노 협주곡 1~4번 과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 라흐마니노프 본인이 직접 지휘봉을 들었던 죽음의 섬 과 보칼리제, 교향곡 3번 을 만날 수 있다. 그밖에 본인이 쓴 여러 독주곡을 비롯해 쇼팽의 소나타와 녹턴, 바이올리니스트 크라이슬러와 함께 연주한 베토벤과 슈베르 트의 소나타 등을 수록했다. 특히 음악평론가 김진묵씨가 단정한 문체로 써내려간 해설은 이 앨범의 또 다 른 미덕이다. 자그마치 19쪽 분량으로 라흐마니노프의 생애와 음악을 상세하면서도 명확하게 짚어낸다. R a chma n in o v p la ys R a chma n in o v Pia n o C o n certo 3 (1 939) [주제와 변주]엄숙을 깬 단순함, 고독한 선구자 사교계의 윤활유 역할을 해왔던 음악은 19세기를 거치면서 절대적이고 숭고한 예술 로 격상됐다. 낭만 의 시대를 열어젖힌 베토벤은 성인 의 경지로 추앙받으며 음악의 종주로 자리매김했고, 사람들이 떠드 는 소리로 가득했던 연주회장은 조용한 경배의 장소로 바뀌었다. 음악은 그렇게 100년의 세월을 거치며 스 스로의 존재를 육중하게 키웠다. 선율과 구조도 점점 복잡하고 무겁고 드라마틱해졌다. 그리하여 마침내 19세기 후반, 낭만의 만개( 滿 開 )였던 동시에 소멸이었던 후기 낭만 의 시대가 도래했다. 바그너의 음악 극과 베르디의 오페라, 리스트의 교향시가 음악을 주도했고 그 뒤를 이어 프랑크와 브루크너, 브람스가 등 장했다. 그보다 더 젊은 세대로는 말러와 드뷔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이 있었다. 134

135 바로 그때, 엉뚱한 곳을 바라보던 이단아. 그가 바로 에릭 사티 (1866~1925)였다.( 이 프랑스 작곡가야말로 19세기 끝 무렵의 음악 지형 도에서 가장 독특한 개성을 보여준 음악가였다. 첫곡은 피아노를 위 해 작곡한 짧고 단순한 음악 오지브 (Ogives). 사티가 스무살에 쓴 이 데뷔작은 복잡하고 장대한 음악이 유행하던 당시에 느닷없이 튀어나온 중세 그레고리안 성가 스타일의 단순 음악 이었다. 당연히 청중과 평 론가들의 관심 밖이었을 터. 한마디로 말해 음악으로 인정받기조차 어려 웠을 것이다. 게다가 파리 음악원을 중도에 때려치운 사티는 프랑스의 음 악적 주류사회에 들어설 만한 백그라운드가 전혀 없었고, 카바레와 클럽 을 전전하며 피아노 연주로 밥벌이를 하던 가난한 작곡가 지망생에 불과 했다. 그러나 단순함 을 향한 사티의 추구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이 듬해 완성한 3개의 사라방드, 또 그 이듬해에 작곡한 3개의 짐노페 프랑스 작곡가 에릭 사티 디 에서도 신비하면서도 단순한 선율을 계속 반복했다. 1889년 썼던 6 개의 그노시엔느 에서도 마찬가지. 오늘날 짐노페디 와 함께 가장 자주 연주되는 이 음악도 짧은 악 절을 쉼없이 반복하다 어느새 스르르 사라진다. 바로 이 단순하고도 흐릿한 존재감, 그것이 바로 1925년 세상을 떠난 사티의 음악세계를 관통하는 핵심어일 터다. 사티는 자신의 독특한 작법을 고수하면서도, 한편으론 스스로에게 작곡가로서의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닌지 늘 불안해 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자신의 작품에 조롱기 가득한 제목을 붙이기 시작했다. 이를 테면 엉성한 전주곡 (1912), 정말로 엉성한 개를 위한 전주곡 (1912), 말라빠진 태아 (1913) 같은 곡이 그렇다. 그것은 자신의 음악를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풍자였을 까, 아니면 스스로를 향한 조롱이었을까? 일본 도쿄대 대학원 미학과 교수인 와타나베 히로시(56)가 쓴 <청중의 탄생>이라는 책이 있다. 그는 이 책 에서 사티를 20세기 음악의 방향성을 제시한 선구자로 평가한다. 엄숙한 콘서트홀을 빠져나와 일상의 삶 속에서 구현되는 음악, 바로 그것을 사티가 최초로 구현했다는 게 와타나베의 평이다. 와타나베는 연주 회장에서 연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지금 식으로 말하자면 배경음악으로 흐르도록 작 곡된 음악 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사티는 음이라는 타일을 깐 보도 라는 곡을 초연했을 당시, 조용 히 음악을 감상 하려는 청중에게 계속 말하세요. 움직이세요. 음악을 듣는 게 아닙니다! 라면서 화 를 내고 돌아다녔다고 전해진다. 19세기 말의 왕따 음악가 였던 사티. 가난한 독신자로 평생을 산 그는 세상을 떠난 지 40년 가까운 세 월이 흘러 미니멀 음악 으로 부활한다. 단순한 패턴을 반복적으로 연주하는 미니멀 음악은 60년대에 들 어서면서 현대 음악의 주요한 흐름으로 자리잡았고, 프랑스의 영화감독 루이 말은 자신의 영화 <도깨비불 >(1963)에서 사티의 음악을 사용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와타나베는 앞서 언급한 책에서 (사티는) 미니멀 로 대표되는 현대 음악의 한 경향을 완벽하게 선취하고 있는 음악가 라고 평한다. 135

136 Eric Sa tie ~ Gymno p die1 Jes s y No rma n s ings "Je te veux" by Sa tie (1984) [주제와 변주]덧없음의 노래, 희망의 노래 펜데레츠키 교향곡 8번 (1연) 사랑하는 나무들아, 내가 말해주랴?/ 참으로 아름다운 꿈들이/ 아침에 불그스레 내 주위에서 춤출 때/ 예감에 가득차 심었던 나무들아./ (2연) 아, 너희를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느냐/ 이처럼 아름답게 나를 다시 사랑하고/ 순수한 나의 생동력을/ 다시 나에게 불어넣어 주는 나무들아./ (3연) 내 가슴속에 자 라나오듯/ 하늘 높이 솟아올라라/ 큰 기쁨과 아픔을 내가/ 너희의 뿌리 속에 묻어 두었으니/ 사랑하는 나 무들아, 내가 말해주랴? 괴테의 시 사랑하는 나무들아, 내가 말해주랴? 의 전문( 全 文 )이다. 김광규 한양대 독문과 명예교수의 번역이다. 폴란드 출신의 거장 크시스토프 펜데레츠키(76 사진)가 2년 전 작곡했던 교향곡 8번 에 바로 이 시가 등장한다. 이 곡에는 괴테 외에도 아이헨도 르프, 헤세, 릴케, 카를 크라우스, 브레히트 같은 시인들의 작품이 곳곳에 서 등장한다. 모두 12개 악장으로 이뤄진 칸타타 풍의 교향곡. 펜데레츠키 는 이 곡에 덧없음의 노래 라는 부제를 붙였다. 그러나 다만 허 무 로 종결되진 않는다. 그가 늘 그래왔듯, 곳곳에서 부활과 희망을 암시 한다. 펜데레츠키가 바로 이 곡을 한국에서 직접 지휘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 다음날인 30일, 폴란드 방송교향악단을 지휘해 예술의전당 콘서트 홀에서 한국 초연한다. 지난 27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그는 지금 한 국인들이 느끼는 고통을 알고 있다 면서 특히 유가족들의 비통함이 얼 마나 크겠느냐 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부족해 더이상의 코멘트를 하지 못 하는 걸 양해해달라 고 했다. 1933년 폴란드의 남부 도시 뎅비카에서 태어난 펜데레츠키는, 이미 20세기 중반에 세계적 작곡가로 명성을 136

137 얻었고, 체제에 저항 하거나 현실에 대해 발언하는 음악가로 남다른 평가를 받아왔다. 그는 이에 대해 폴란드의 비극적 역사가 나를 그렇게 키웠다 고 했다. 실제로 그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목격했 으며, 외삼촌 한 명은 나치에, 또 한 명은 소비에트에 의해 목숨을 잃는 경험을 했다. 그래서 그는 당시의 기억과 상처를 아우슈비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분노의 날 (1967)이나 폴란드 진혼곡 (1980) 같은 음 악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젊은 펜데레츠키는 아방가르드였다. 의미의 전달보다는 형식 파괴와 새로운 어법을 찾는 일에 몰두한 실험주의자였다. 특히 50년대와 60년대 초반의 그는 자신의 음악 속에서 갖가지 음향 도발 을 감행했다. 이를 테면 현악기를 맨손으로 문지르고 두드렸으며, 웃음과 울음, 휘파람 소리를 음악 속에 섞 었다. 악기와 인간의 목소리에 대한 고정관념을 벗어나려고 했던 것일까? 당시 그가 썼던 음악속에서는 타자기 소리, 뱃고동 소리, 플라스틱 깨지는 소리를 비롯해 끌로 유리를 긁어대는 거북한 음향까지 들려온 다. 그러다가 펜데레츠키는 70년대에 접어들면서 방향을 선회했다. 이후 그가 걸어간 길은, 약간 단순화시 켜 표현하자면, 독일 풍의 신낭만주의였다. 오늘날 우리가 즐겨 듣는 그의 음악은 주로 이 계통의 작품이 다. 이제 노인이 된 그에게 젊은날의 음악은 어떤 의도를 갖는가 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그것도 하나 의 저항이었다 고 말했다. 그렇다. 폴란드의 음악학자인 토마제프스키도 그런 평가를 내린 적이 있다. 그 는 펜데레츠키의 아방가르드에 대해 (유일한 정답으로 주어졌던)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당시의 거대한 거짓말 에 대한 반발. 어린 시절의 충동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압제로부터 예술가를 해방시키려 했 던 열망 이라고 평했다. 그렇다면 외견상 180도쯤 방향을 튼 것으로 보이는 지금의 음악은 무엇인가? 펜데레츠키는 그것을 뒤로 돌아서서 문을 여는 것 이라고 설명했다. 그 문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다들 알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 지만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 며 이제 내 음악적 영감은 전통 이라고 불리는 바로 그 문에서 나온 다 고 덧붙였다. 이번에 한국 초연하는 덧없음의 노래 도 그렇다. 이 곡에서도 역시 말년의 펜데레츠 키가 재발견한 전통적 서정 이 힘을 발한다. 음반으로는 안토니 비트가 지휘한 바르샤바 필하모닉의 연주가 낙소스 레이블로 출시돼 있다. 가격도 저렴하다. 사진 김세구 선임기자 Krzysztof Penderecki / Antoni Wit / Warsaw Philharmonic Orchestra & Choir 1. Symphony No. 8, "Lieder der Verganglichkeit" (Songs of Transience) 137

138 2. Dies irae (진노의 날) / 3. Aus den Psalmen Davids (다비드 시편에서) 12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이 칸타타 풍의 교향곡은 19/20세기 독일 시집인 '덧없음의 노래'에 기초한 작품 으로 인생무상과 부활을 음악으로 표현한 곡이다. 아우슈비츠 희생자들을 기리는 방대한 스케일의 오라 토리오 '진노의 날'과 세계음악계에 작곡가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작품인 '다비드 시편에서'가 함께 수록되었다. ====================================================================== [주제와 변주]극과 극의 광포와 고요 ㆍ베를리오즈와 포레의 레퀴엠 레퀴엠 (Requiem)은 죽은 이의 안식을 기원하는 음악이다. 애초에 그것은 가톨릭 미사에서 불리던 전 례용 음악이었고, 악기 반주 없이 사람의 목소리로만 이뤄졌던 아카펠라 음악이었다. 첫 곡인 입당 송 의 라틴어 가사는 주여,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옵소서 (Requiem aeternam dona eis, Domine)로 시작한다. 그래서 첫머리에 등장하는 레퀴엠 이라는 단어가 이 음악양식 전체를 일컫는 이 름이 됐다. 안식 이라는 뜻이다. 바로크 시대에 이르러 레퀴엠에 악기 반주가 덧붙여지기 시작했 다. 또 고전주의로 접어들면서 왕족이나 귀족의 명령, 혹은 청 탁을 받아 레퀴엠이 작곡된다. 레퀴엠은 그렇게 교회의 테두리 를 벗어나 콘서트 음악 으로 점차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오늘날 우리가 즐겨 듣는 모차르트의 레퀴엠 d단 조 가 태어났다. 중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레퀴엠은 서양음악의 한 축을 이루 는 중요한 양식이었다. 수많은 작곡가들이 자신들의 창작 목록 에 레퀴엠을 올렸다. 그중 오늘날 가장 애청되는 것은 모차르트 와 베를리오즈, 베르디, 포레 등의 레퀴엠이다. 또 독일어 가사 로 쓰여진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 도 빼놓을 수 없는 걸작으 로 꼽힌다. 그중에서도 베를리오즈(사진)와 포레의 레퀴엠이 보여주는 극단 적 대비는 흥미롭다. 50년을 사이에 두고 각각 쓰여진 이 두 작품은 한마디로 말해 극과 극 이다. 베를 리오즈의 레퀴엠이 화려함을 뛰어넘어 광포할 정도로 음악을 몰아붙이는 것에 반해, 포레의 그것은 고요 한 명상의 세계로 죽은 이의 영혼을 인도한다. 음악적 규모에서도 베를리오즈는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인 원이 500명에서 1000명에 이를 만큼 웅장함을 구현했지만, 포레는 작은 시골 성당에서 울려퍼져도 어울릴 것 같은 소박한 규모의 레퀴엠을 남겼다. 둘 다 프랑스 작곡가였던 이들은 어떻게 이리도 다른 레퀴엠을 썼을까. 138

139 베를리오즈는 음악뿐 아니라 삶에서도 지독한 낭만주의자의 면모를 보였다. 그는 프랑스 사람이었지만 정 신은 독일 낭만주의에, 특히 베토벤에 그 뿌리를 대고 있었다. 그는 환상 이라는 표제를 붙여 마치 한 편의 판타지와도 같은 교향곡을 썼던 음악 이야기꾼 이었고, 짝사랑한 여인에게 계속 거부당하자 그녀 를 아예 자신의 교향곡에 마녀 로 등장시킬 정도로 망상증을 지닌 캐릭터이기도 했다. 게다가 당시 음 악사회의 주류에 대한 열등감도 있었다. 그는 23세에 파리음악원에 입학해 뒤늦게 음악 공부를 시작했으며 피아노를 아예 칠 줄 몰랐다. 그런 베를리오즈에게 들어온 프랑스 정부의 작곡 의뢰. 1830년 일어났던 7월 혁명의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레퀴엠을 써달라는 청탁은 30대 초반의 그를 고무시켰을 것이다. 그리하여 1 년 만에 작곡을 끝낸 레퀴엠. 당연하게도 그 음악 속에서는, 뭔가 보여주겠다 는 베를리오즈의 의지, 혹은 욕망이 불타오른다. 포레는 어땠던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활약했던 그는 성당의 오르간 주자였다. 그의 레퀴엠 은 죽음의 공포가 아니라 평화로운 안식을 노래한다. 그는 죽음의 자장가 로도 불렸던 자신의 레퀴엠 에 대해 죽음이란 고뇌에 차서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마음으로 다음 세상을 맞는 것 이라 고 말했던 적이 있다. 그 의 정신을 지배했던 것은 바로 가톨릭적 세계관. 게다가 레퀴엠을 쓸 당시, 그의 가슴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포레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직후 이 곡을 썼으며, 몇해 전에는 어머니를 먼 저 잃어야 했다. 포레의 레퀴엠은 전체가 7곡으로 이뤄진 간결하고 명상적인 음악. 특히 소프라노 독창으로 이뤄진 4번째 곡 자비로운 예수 가 천상의 노래처럼 아름답다. 포레는 그렇게 평화로운 안식의 내세관을 레퀴엠에 담았다. 미셸 코르보가 성 피에르 오리앙 성가대와 베른 심포니를 지휘한 녹음이 애호가들의 오랜 사랑을 받아온 음반(Erato). 앞서 언급한 베를리오즈의 레퀴엠으로는 콜린 데이비스가 런던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지휘한 음반(필립스)과 샤를 뮌슈가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 합창단을 지휘한 음반(DG)을 들어 볼 필요가 있다. 하이파이 오디오로 이 곡을 들을라치면, 압도적인 음향적 쾌감에 온몸이 떨릴 정도다. 139

140 ================================================================================== [주제와 변주]끝까지 자신을 지킨 은둔형 거장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 1990년대 초반에 개봉했던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 >(Tous les matins du monde)은 두 명의 음악가 이 야기다. 루이 14세가 집정했던 17세기 중반, 프랑스의 음악가였던 생트 콜롱브와 마랭 마레가 그 주인공들 이다. 둘 다 실존 인물들이다. 바로크 시대의 현악기 인 비올라 다 감바의 대가였던 생트 콜롱브는 세속의 영화를 마다하고 초야에 묻혀 사는 은둔형 거 장 이고, 반면에 그의 제자인 마랭 마레는 가난한 구 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나 음악가로서의 성공과 명 예를 꿈꾸는 야심가다. 영화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던 두 사람의 삶을 대비시 키면서 펼쳐진다. 물론 그 대비 가 때때로 극단적 이어서 현실감이 떨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영화의 인 물과 상황 전개라는 것이 극단적으로 치닫지 않으면 보는 재미 가 적은 법 아니겠는가. 이 영화는 두 인물의 극적 대비와 함께 그들의 내면을 그대로 보여 주는 듯한 미묘한 조명, 수첩에 적어두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기는 아포리즘적 대사 등으로 꽤 깊은 인상 을 남겼다. 물론 <세상의 모든 아침>은 허구다. 사실에 대한 고증보다, 아마, 그렇지 않았을까 라는 추 측과 상상으로 두 음악가의 삶을 재구성했다. 20세기의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1930~2004 사진). 그도 영화 속의 생트 콜롱브처럼 은둔의 삶을 살았 다. 그는 슈투트가르트 가극장의 음악감독직을 사임했던 1973년부터 세상을 떠나던 2004년까지, 적어도 생 애의 마지막 30년간 어디에도 몸을 담지 않았던 은둔의 프리랜서 였다. 그리고는 아주 가끔씩, 그것이 140

141 애의 마지막 30년간 어디에도 몸을 담지 않았던 은둔의 프리랜서 였다. 그리고는 아주 가끔씩, 그것이 빈필하모닉이든 베를린필하모닉이든 세계 정상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특별한 명연 을 남기곤 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이 원했을 때 어느 오케스트라든 지휘할 수 있었던 공인된 명인이었다. 이 은둔형 마에스트로 는 인터뷰를 싫어했다. 음반 녹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녹음을 공포스럽 다 고 말하며 저어했다. 이 때문에 극히 소량의 음반만을 남겼으며, 그것들은 당연히 희소가치 가 더 해지면서 명반의 반열에 이름을 속속 올렸다. 클라이버가 보여준 은둔 의 절정은 언제였던가? 그것은 베를린필하모닉의 종신지휘자였던 황제 카라얀이 세상을 떠난 89년에 찾아왔다. 당시 음악계의 호사가들은 클라이버가 당연히 그 뒤를 이을 것이 라고 점쳤지만, 그는 이 영예로운 포디엄 의 주인이 되는 것을 단호히 거부했다. 돌이켜보자면 그것은 얼마나 탁월한 선택이었던가? 클라이버는 그렇게 자신의 노선을 끝까지 지켰고, 덕분에 카라얀과는 또 다 른 지휘의 신화 를 만들었다. 그래서 2004년 클라이버가 세상을 떠난 후, 미국의 음악평론가 헨리 포겔 은 이렇게 썼다. 이상한 수수께끼의 주인공. 하지만 부인할 수 없이 세계 음악계에 우뚝 솟은 지휘자. 가 장 위대한 지휘자라고 추앙받으면서도 거의 지휘를 하지 않았던 사람. 은둔 의 삶을 시작했던 73년, 클라이버가 뮌헨의 바이에른 국립오페라단을 지휘해 리하르트 슈트라우 스의 오페라 장미의 기사 를 연주했던 음반이 최근 국내에 수입됐다. 그동안 DVD로, 혹은 해적판 음반 으로 종종 접할 수 있었던 실황이다. 하지만 이번에 수입된 음반은 오스트리아의 오르페오 레이블에 서 원본 마스터를 SACD로 재생해낸 공식 음반. 지난해 말부터 해외 사이트를 통해 개별적으로 구입 해온 애호가들도 적지 않았지만, 이제는 국내 음반가게 어디서라도 쉽게 구할 수 있게 됐다. 음질은 만족할 만한 수준이다. 지금까지 들었던 클라이버의 그 어떤 장미의 기사 보다도 생생하다. 일 본의 음악평론가 기요미 쓰토시는 이 음반에 대해 오케스트라가 살아 있는 것처럼 요동친다 는 평을 내놓았다. 물론 약간의 주례사 혐의가 있긴 하지만, 사실을 크게 벗어난 평가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클래식 초심자여서 장미의 기사 전곡을 듣는 것이 좀 버겁다면, 클라이버가 지휘한 베토벤의 교향곡 4번과 5번, 7번 등을 권한다. 브람스의 교향곡 4번도 클라이버와의 첫 만남으로 적절하다. 141

142 Strauss : Der Rosenkavalier Brahms Symphony No.4 (4th mov), with the Bavarian State Orchestra 1973년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뮌헨에서 상연한 장미의 기사 가 오르페오에서 SACD Hybrid로 CD화 되었다. 당시 43세의 클라이버는 에너지 충만한 추진력과 매끄러운 프레이징에, 불필요한 소리는 단 한음도 내지 않으며, 지극히 아름답고 오싹할 정도의 천재적 감성으로 리드해 나간다. 이미 해적판으로도 명성이 자자했던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장미의 기사를 이토록 선 명한 음질로 복각해 낼 수 있는 Orfeo의 기술에 다시 한번 탄복하게 되며, 역시! 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을 수 없다. So what is especially magical? The energy, the attention to the stage drama in the music (not least its wit), the pacing - "fast" compared with Karajan but with a wonderful rubato that allows for real pointing and emotion but owes more to Kleiber's natural instincts... than Viennese so-called tradition... Long-term Munich resident Claire Watson has done little finer on disc and is well "aged" in relationship to Fassbaender's tour de force Octavian (she makes a good youth throughout and a laugh-aloud Mariandel) and Popp's sweet but never vacant Sophie Gramophone Magazine, April 2009 This performance from 1973 is notable for its extraordinary textural clarity, in this densest of scores, and its rhythmic vitality. The vocal hero of the occasion is Brigitte Fassbaender as Octavian, her rich and creamy voice bringing her presence vividly before us. Lucia Popp is a classic Sophie, too, pure of voice but determined of purpose BBC Music Magazine, May 2009 **** =================================================================================================== [주제와 변주]서늘한 그늘의 아름다움 피아니스트 마리아 주앙 피레스 프랑스에 에라토(Erato)라는 음반 레이블이 있다. 포르투갈 출신의 피 아니스트 마리아 주앙 피레스(사진)를 처음 본 것은 이 레이블의 LP 를 통해서였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번부터 3번까지를 수록한 음반, 1974년 녹음이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5년 전이다. 막 30대 에 접어든 젊은 피레스 가 피아노 앞에 앉아서 왼손으로 머리를 142

143 받친 채 악보를 들여다보고 있다. 그것은 음악가 로서 아름다운 모습이기도 하지만, 한 사람의 여성 으로서도 매혹적이다. 커다란 두 눈은 촉촉하게 젖었고, 그 눈매는 뭔가 사연을 간직한 듯 서늘하 다. 처음에는 그래서 피레스의 연주를 들었다. 아마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예쁘고 지적인 외모, 게다가 정갈하면서 도 슬퍼보이는 모습에 반해서 피레스의 음반에 자꾸 손이 가던 남자 들이 한둘이었겠는가. 70년대의 피레스는 앞서 말한 에라토 에서 모차르트의 중 후기 피아노 협주곡들을 녹음했고, 슈베르트와 쇼팽의 음악을 녹음했다. 모두 LP 시절의 녹음들이다. CD로는 구하기 쉽지 않다. 일본 작가 다나자키 준이치로가 쓴 <그늘에 대하여>라는 책이 있다. 국내에서도 2005년 고운기 시인의 번 역으로 출판됐다. 작가 준이치로는 5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추천된 이래, 심장마비로 사망한 65년까지 해마다 후보로 거론됐던 일본 문학의 거봉. 그는 사회에서 동떨어진 개인을 그려내는 데 몰두했고, 퇴폐적 으로 느껴질 정도로 낭만적 경향을 보인 작가였다. 그는 이 책에서 그늘인 듯한데 그늘도 아니고, 그림 자인 듯한데 그림자도 아닌 거무스름한 것 을 음예 라고 이름짓는다. 안채에서 떨어져 신록의 냄새 나 이끼 냄새가 나는 정원의 나무와 수풀 뒤에 마련돼 있 는 것. 준이치로는 그 음예야말로 일본풍( 日 本 風 )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요소라고 말하면서, 재래식 화장실과 다다미방, 그림을 걸거나 꽃꽂이 를 하려고 벽 한쪽에 만들어두는 도코노마( 床 の 間 ), 연극 가부키와 인형극 노, 심지어는 옛 여인의 화장법 까지 들여다보면서 음예의 미학을 탐구한다. 그래서 책의 원제가 <음예예찬>이다. 한국어로 번역 출판되 면서 음예 가 그늘 로 바뀌었다. 피레스의 연주를 들을 때마다 그 음예 가 떠오른다. 아르헨티나 태생의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뜨거운 태양처럼 화려하게 타올랐다면, 세 살 아래의 피레스는 서늘한 그늘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연주자였다. 그 는 건반을 질주하는 아르헤리치에 비교하자면 달빛 에 가까웠다. 아르헤리치가 스케일 크고 호방 한 연주를 보여줬던 반면에, 선천적으로 몸집과 손이 작은 피레스는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 로 불리며 충성도 높은 일부 애호가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물론 어떤 이들은 피레스의 템포 설정에 동의하 지 않을지도 모른다. 또 강약의 대비가 자의적이라고 비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피레스가 89~90년 도이 치그라모폰 에서 내놨던 모차르트 소나타의 가치를 부인하긴 어렵다. 피레스는 앞서 언급한 프랑스 에 라토 에서도 같은 곡을 녹음했던 적이 있지만, 40대 중반의 나이에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녹음한 음반이 한층 더 호평받는다. 쇼팽은 그의 또 다른 장기였다. 하지만 그는 4년 전 슈베르트의 곡들을 녹음한 이후 심장병과 싸우며 한동 안 레코딩을 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최근 국내에 라이선스로 나온 그의 음반이 반갑다. 수술을 받고 건 강을 회복한 피레스가 다시 연주하는 쇼팽. 피아노 소나타 3번 을 중심으로 왈츠와 마주르카, 첼리스트 파벨 곰지아코프와 협연한 첼로 소나타 등을 담았다. 쇼팽이 1844년부터 1849년 사이에 작곡한 곡들, 말하자면 말년작들이다. 심장병과의 싸움에서 마침내 벗어난 피레스는 쇼팽의 말년작에서 어떤 그늘을 본 143

144 것일까. 그는 이 녹음에 대해 쇼팽의 마지막 시기를 산책하는 마음으로 연주했다 고 말했다. 어느덧 65 세가 된 피레스의 얼굴에 적잖게 잡힌 주름살, 하지만 경이롭게도, 그의 눈빛은 여전히 청초하다. Maria Joao Pires ~ Mozart Piano Sonata K332 (1악장) 세기말 런던의 두 얼굴 18세기 중후반의 런던으로 가보자. 산업혁명이 발 빠르게 진행되던 당시의 런던은 유럽에서 가장 번잡한 도시였다. 산업화에 등 떼밀린 농민들은 속속 런던으로 올라와 공장이나 부두의 노동자로 일했다. 당연히 도시 빈민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1750년 런던 인구는 약 65만명. 영국 전체 인구의 11%였다. 프랑스 전체 인구의 2.5%가 파리에 거주했던 사실에 견준다면, 당시 런던의 산업화와 도시화가 얼마나 급속히 진행됐 는가를 가늠할 수 있다. 런던 상인 으로 대변됐던 신흥 부르주아들은 도심에 3, 4층짜리 우아한 집 을 짓고 살았고, 도시 빈민으로 전락한 노동자들은 외곽의 지저분한 거주지로 모여들었다. 아직 찰스 디킨스(1812~1870)가 등장하기 전이었다. 디킨스가 < 올리버 트위스트>를 통해 템스강 인근에 다닥다닥 붙은 더럽기 짝이 없는 집들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극빈을 묘사했던 것 은 1830년대의 일이었다. 하지만 런던의 빈부 풍속도 는 이 미 18세기 후반에 자리잡은 풍경화였다. 템스강의 하역 인부와 144

145 나이 어린 굴뚝 청소부들은 당시 런던의 가난한 계층을 상징하 는 존재들이었다. 특히 런던 상인 의 집에서 굴뚝을 닦던 청소부는 몸집이 작은 아이들이었다. 그래야 굴뚝을 드나들기 가 쉬웠기 때문이다. 많은 아이들이 굴뚝에서 그을음을 닦아내 다가 화상을 입었고, 어떤 아이들은 연기에 질식해 죽었다. 그 래서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의 굴뚝 청소부 (The Chimney Sweeper)라는 시는 얼핏 낭만적 풍경화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참상 의 기록이다. 바로 그 18세기 후반, 런던에서 공연예술이 하나의 산업 으로서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다. 런던 상인 들을 중심으로 한 신흥 부르주아지가 공연예술의 새로운 수요층으로 떠올랐고, 음악회를 비롯해 인형극과 서커스 등이 도심 곳곳에서 공연됐다. 당연히 이 흐름을 주도했던 흥행업자들이 등장했을 터. 오늘날로 치 자면 공연기획사 혹은 매니지먼트사 로 불리는 직종이 바로 이 무렵에 출현했던 셈이다. 이 공연 예술의 산업화는 파리를 비롯한 다른 도시에서도 진행됐지만 런던만큼 발 빠르게 시장을 키워간 도시는 없었다. 그런 흥행업자 가운데 요한 페터 잘로몬(1746~1815)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독일인이었다. 애초에 바이올린 연주자였고 작곡도 가끔 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연주나 작곡보다 장사 쪽에 한층 수완이 있었던 것 같 다. 그는 1781년에 물 좋은 런던으로 건너와 연주회를 기획해 표를 팔기 시작했고, 단숨에 흥행업자로 성공했다. 작곡가 하이든을 런던으로 불러들인 사람이 바로 그였다. 당시 하이든은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하인 음 악가 로 30년을 봉직하다 1790년 후작이 사망하자 겨우 족쇄에서 풀려났던 상태. 그런 하이든을 잘로몬이 손짓했다. 하이든의 입장에서 그것은 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 하지만 음악사는 하이든의 욕망 을 기록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그가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보다 규모가 크고 훈련이 잘 된 영국 오 케스트라와 연주하기를 원했던 것으로 기록한다. 어쨌든 하이든은 1791년 새해 첫날 런던에 발을 내디뎠 고, 흥행업자 잘로몬의 요청에 따라 12곡의 교향곡을 작곡해 초연했다. 교향곡 93번부터 104번까지. 이른바 잘로몬 교향곡 혹은 런던 교향곡 으로 불리는 일련의 작품들이다. 그것은 모차르트가 마지막으로 작곡한 6개의 교향곡과 함께 고전주의 교향곡의 완성 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오늘날 빈번히 연주되는 곡은 94번 놀람 과 96번 기적, 100번 군대, 101번 시계, 103 번 큰북 연타, 104번 런던 등. 하이든이 이전에 작곡한 교향곡에 비해 규모가 한층 커졌고, 불특 정 다수의 청중을 염두에 둔 듯 대중적 선율이 자주 등장한다. 아울러 당시 런던에서 부와 인기를 얻었던 하이든의 고조된 마음을 대변하듯 경쾌하고 활발한 에너지감도 넘친다. 하지만 하이든의 런던 교향곡을 들으면서 어린 굴뚝 청소부의 퀭한 두 눈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신흥 부 르주아지들이 연주회장에서 음악의 즐거움을 만끽하던 그 순간, 런던의 또 다른 곳에서는 키 작은 아이가 굴뚝을 닦고 있었다. 그것이 18세기 후반, 런던의 두 얼굴이었다. 145

146 Haydn Symphony #94(Surprise) 2악장 ~ Berliner Philharmoniker ~ Mariss Jansons Haydn Symphony #104(London) 1악장 ~ Symphonieorchester des Bayerischen Rundfunks ~ Mariss Jansons 요즘 지휘자들은 개성이 없어 <이 한장의 명반>의 저자이자 전 청주대 영문과 교수인 안동림씨(77 사진)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어떤 이들은 음악평론가 라고 부르지만 그는 한사코 손사래를 친다. 내가 무슨 평론가야? 그냥 음악을 좋 아하는 잡놈 이지 라며 고개를 내젓는다. 영 틀린 말은 아니다. 그는 음악평론가 라는 공식적 등단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지난 수십년간 음악에 대한 글을 써왔지만 그것이 평론적 글쓰기와는 거리가 있었 던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를 음악 칼럼니스트 라고 부르는 것도 난감하다. 우리나라 에 언제부터 이리도 음악 칼럼니스트들이 많아졌을까. 아마도 2000년대 접 어들면서부터인 것 같다. 각종 공연장 및 문화재단에서 간행하는 잡지에 수 많은 음악 칼럼니스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 양적 민주화는 한국의 공연 문화가 한 번쯤 거쳐야 할 통과의례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많은 칼럼니스트들 중에는 꽤 읽을 만한 글을 쓰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 얘기가 그 얘기인 경우가 흔하다. 게다가 남의 글을 슬쩍 하 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말의 앞뒤를 바꿔놓은 채 시침을 뚝 떼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아예 복 사 와 붙여넣기 로 자신의 글을 완성하기도 한다. 솔직히 말해 필자도 몇번인가 복사를 당했다. 최근 에도 어떤 평론가와 교수께서 실례 를 하셨다. 어쨌든 이렇게 정신이 어지러운 상황에서, 70년대부터 글을 써온 원로를 음악 칼럼니스트 라고 칭하는 것도 왠지 께름칙하다. 그렇게 호칭 문제로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안동림씨가 며칠 전에 한 권의 책 을 냈다. 20세기 명지휘자 34명의 음악적 생애와 특징을 비롯해 그들이 남긴 명 연주까지 소개하고 있는 <불멸의 지휘자>라는 책이다. 월간 객석 에 3년 동안 써온 원고를 500쪽 가까운 분량의 단행본으로 묶었다. 그는 내 글엔 깊이가 별 146

147 로 없다 며 특유의 어린애 같은 웃음을 터뜨리곤 하지만, 여든을 바라보는 나 이에 이만한 생산력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이미 쉽지 않은 일. 그야말로 노익 장 이라고 부를 만한 의욕과 기력이다. 지난달 30일 <불멸의 지휘자>를 펴낸 출판사가 출간기념 간담회를 마련했다. 대학로의 한 카페였다. 기자 들이 7, 8명쯤 참석했고, 이날 안씨는 기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매우 드문 경우다. 까칠한 기자들이 어 떤 개인의 출판기념회에서 박수를 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그는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다. 마침 그 자리에는 80년대 음악동아 편집장이었던 이순열씨(74)도 함께 했다. 요즘 지휘자들은 개성이 없어. 음악이 다 비슷비슷해. 스스로를 그냥 음악 애호가 로 고집하는 그 는 <불멸의 지휘자>를 써낸 이유를 그렇게 말했다. 토스카니니부터 주세페 시노폴리까지, 이미 세상을 떠 난 34명의 거장들을 다시 불러내는 까닭이 요즘 음악들은 평준화돼서, 도통 재미가 없기 때문 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점심 식사 후 다른 카페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도 같은 주제의 얘기를 이어갔다. 예술의 본령은 개성인데, 문명 자체가 기계주의 로 자꾸 흘러가면서 음악도 개성을 잃었어. 지휘자 들의 광휘도 사라졌어. 이제는 지휘라는 기능 만 남았어. 그는 그렇게 과거의 명장들을 그리워했다. 브루노 발터와 푸르트뱅글러, 크나퍼츠부슈 를 특별히 좋아 하는 지휘자로 꼽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정작 그리워하는 게 꼭 옛날 지휘자들일 뿐일까. 그의 얘기를 듣 고 있노라니, 그의 속마음에 자리한 것은 사람 냄새가 살아 있던 그 시절 에 대한 향수라는 생각이 문 득 들었다. 그가 말했다. 문 기자, 여기 이 선생이 경기도 퇴촌에서 농사를 짓잖아? 올해는 참외를 심었 대요. 7월 말에 수확한대. 직접 만든 퇴비를 주기 때문에 참외가 아주 실할 거라구. 어때 이 선생? 우리가 놀러가면 참외 좀 나눠줄 거요? 그러자 이순열씨가 반색을 했다. 얼마든지 오시구려. 어디 참외뿐인 가, 문 기자가 온다면 옛날 LP도 좀 나눠드리지. Toscanini - The Ride of Valkyrie ~ Wagner Sinopoli - Triumphal March from Aida ~ Verdi 친구 들라크루아가 본 쇼팽 거칠고, 고집세고, 고독한 예술가 147

148 프랑스의 낭만주의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1798~1863)는 쇼팽의 친구였다.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널리 알 려진 것은 아마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일 터. 1830년 파리에서 일어났던 7월혁명을 묘사한 그림 이다. 잔다르크를 연상시키는 여인이 가슴을 드러낸 채 삼색기를 들고 시위 군중을 이끌고 있는 이 유명한 그림은 현재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 중이다. 들라크루아는 이 작품에 카메오 로 등장하기도 한다. 자유 의 여신 바로 옆, 검은 모자에 검은 코트를 입고 장총을 든 채 전진하는 청년이 바로 들라크루아의 모습으 로 알려져 있다. 148

149 1830년이었다. 파리 시민들이 왕정복고에 반대해 봉기를 일으키고 들라크루아가 그것을 화폭에 옮기던 바 로 그 해에, 스무살의 쇼팽은 바르샤바에서 고별연주회를 펼친 후 조국 폴란드를 떠났다. 그리고 생애의 나머지 대부분을 파리의 예술가 로 살았다. 그것은 쓸쓸한 이방의 삶이기도 했다. 쇼팽은 그 아름답고 외로운 도시에서 12살 위의 선배이자 친구인 들라크루아를 만났다. 우정은 진실하고 깊었다. 1849년 쇼팽 이 병상에 누워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 창백한 이마를 어루만져주던 이도 바로 들라크루아였다. 한 때 사랑을 불태웠던 조르쥬 상드는 곁에 없었다. 같은 해 10월17일 쇼팽이 결국 세상을 떠나자, 들라크루 아는 그의 장례식을 주도하기도 했다. 우정의 증표는 또 있다. 들라크루아가 남긴 쇼팽의 초상화(사진). 쇼팽의 내면을 누구 못지않게 이해했던 들라크루아는 자신의 낭만적 화풍을 가미해 벗의 얼굴을 화폭에 담았다. 그림은 1838년작이며 당시 쇼팽은 28세였다. 들라크루아의 눈에 비친 쇼팽은 어땠는가. 그것은 결코 유약한 쇼팽 이 아니었다. 아무렇게 나 빗어넘긴 곱슬머리에 어딘가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반항적 눈매, 게다가 고집스러워 보이는 매부리 코. 들라크루아의 눈에 비친 쇼팽은 그렇게, 거칠고 고집스러운 남자였으며 격렬하고 고독한 예술가였 다. 그것이 쇼팽에게로 가는 또 하나의 열쇠일 것이다. 쇼팽의 음악은 센티멘털하고 여성적일 것이라는 생각 은 그의 음악을 다섯곡만 들어도 무너질 편견 일 터이다. 쇼팽의 음악에는 조국 폴란드의 민속음악, 특 히 춤곡에서 체득한 육체성 이 꿈틀거리며, 조국의 해방운동이 러시아의 무력에 짓밟힌 것을 참담하게 바라봐야 하는 청년의 분노도 담겨 있다. 게다가 쇼팽이 파리를 중심으로 활약하던 시절, 당대의 예술적 주류는 혁명적 낭만주의였다. 그것이 쇼팽의 격렬한 낭만성을 한층 추동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쇼팽의 거친 숨소리는 어디서 들려오는가. 일단 슈만이 거칠고 독창적 이라고 평했던 발라 드 1번 을 들어보자. 하지만 이 곡은 연주자에 따라 격렬함보다 부드러움 쪽에 방점을 찍는 경우도 흔하 149

150 드 1번 을 들어보자. 하지만 이 곡은 연주자에 따라 격렬함보다 부드러움 쪽에 방점을 찍는 경우도 흔하 다. 이를테면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가 그렇다. 그는 매우 균형잡힌 피아니스트임에 틀림없지만, 발라드 1번 의 고동치는 맥박을 전해주지 못해 아쉽다. 차라리 호로비츠의 1960년대 녹음(Sony)이나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의 87년 녹음(DG)에 한 표를 던진다. 가장 격렬하고 뜨거운 쇼팽의 음악은 뭘까? 친분 있는 몇 명의 피아니스트들에게 그렇게 물었다. 대 부분 쇼팽의 음악적 원숙기에 쓰여진 소나타 2번과 3번을 꼽았다. 소나타 2번은 3악장에 장송행진곡 을 배치해 장송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곡. 특히 1악장 첫 주제 부분에서 반주처럼 등장하는 저음부의 맥 박이 뜨겁다. 호로비츠의 62년 녹음,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74년 녹음(DG)을 권한다. 쇼팽이 세상을 떠나기 5년 전 작곡한 소나타 3번은 규모가 웅장하고 구성도 치밀한 걸작. 마치 망치로 머리를 때리듯이 시작하는 1악장 첫 주제의 에너지가 압도적이다. 어느덧 60대 후반에 이른 아르헤리치가 65년 쇼팽콩쿠르 우승 직후 에 내놨던 음반(EMI), 혹은 2년 후의 재녹음(DG)은 그 격렬한 에너지를 고스란히 전해준다. Chopin Ballad No. 1 ~ Zimerman Chopin Piano Sonata No. 2 ~ Vladimir Horowitz =================================================================================================== 가혹한 질병 육신의 고통이 찬란한 모차르트를 남기다 피아니스트 클라라 하스킬 얼마나 아팠을까. 클라라 하스킬이 연주하는 모차르트 협주곡을 들을 때마다, 그녀가 겪었을 육신의 고통 이 함께 떠오른다.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찾아왔던 세포경화증. 아리땁던 그녀는 결국 곱사등이가 되고 말 았다. 척추는 뒤틀리고 어깨뼈는 주저앉았다. 하스킬은 세상을 떠나던 65세까지, 그렇게 비틀린 몸으로 피 아노를 쳤다. 건반을 누를 때마다 적잖은 통증이 찾아왔을 게다. 실제로 하스킬은 가까운 이들에게 연주의 고통을 종종 토로했다고 전해진다. 그녀는 1956년 브장송 페스티벌에서 모차르트 협주곡을 연주하기 직전, 리사이틀과 협주곡은 무서워 라는 메모를 남겼다. 또 파울 자허의 지휘로 스튜디오에서 모차르트 협주 곡을 녹음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도 그녀는 무섭고 끔찍해! 라는 메모를 남겼다. 150

151 하스킬이 모차르트에 특별히 집중했던 것도 신체적 장애 탓이 컸을 터. 어린 시절의 그녀는 브람스, 리스트, 쇼팽, 무소르그스키, 라흐마 니노프 등을 연주했으며 현대작품으론 바르토크, 힌데미트까지 섭렵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7년간의 칩거 끝에 불구의 몸으로 다시 돌아온 하스킬에게 방대한 레퍼토리 는 무리였다. 그녀는 말 없이 운명을 받아들인 채 모차르트에 집중했다. 물론 슈만의 곡을 비 롯해 바이올리니스트 아르투르 그뤼미오와 함께 연주한 베토벤의 소 나타 등 명연도 두루 선보였지만, 오늘날 하스킬의 유산 을 대표 하는 것은 역시 모차르트 음반들이다. 특히 필청음반으로 꼽히는 것 은 세상을 떠난 60년 녹음했던 피아노 협주곡 20번과 24번(필립 스). 이고르 마르케비치가 지휘하는 콩세르 라무뢰 오케스트라와의 협 연이다. 두 곡을 굳이 비교하자면, 20번보다 24번이 더 뛰어나다는 평 가가 많다. 만약 오래 전부터 하스킬을 사랑해온 애호가라면 최근 프랑스 이나(INA) 에서 내놓은 미발표 음원들을 놓쳐선 안될 성싶다. 프랑스의 국영 라디오방송국 산하 레이블인 이나 는 자료실의 먼지 더미 속에서 때때로 귀한 음원들을 건져올린다. 지금까지 내놓은 음반 수가 극히 적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LP나 CD 를 복각한 음반이 아닌 애초의 녹음이어서 그 가치가 신선하다. 이번에 나온 Mozart, 4 Concertos 는 두 장의 CD로 이뤄졌다. 마르케비치가 프랑스 국영 라디오방송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9번과 앙드레 클뤼탕스가 같은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협연한 24번을 수록했다. 모두 55년 실황이다. 게다가 앞서 언급했듯, 하스킬이 두려움을 토로했던 56년 브장송 페스티벌 실황도 담겼다. 협주곡 19번이다. 이 실황은 프랑스의 마이너 음반사인 프낙 에서 LP로 출시된 적도 있으니, 정확히 말 해 세상에 첫선을 보이는 녹음은 아니다. 음질도 스튜디오 레코딩에 비해 건조하고 거칠다. 하지만 다행스 러운 것은, 매끄러운 음질을 위해 연주의 디테일을 깎아먹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불구의 하스킬은 2차대전을 겪으며 또 한번의 고비를 맞는다. 루마니아 태생의 유대인이었던 하스킬은 나 치를 피해 남프랑스로, 스위스로 떠돌아야 했다. 당시 그녀는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며 공포에 사로잡혀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그 와중에 늘 두통에 시달렸고 두 눈도 점차 안 보이기 시작했다. 시 신경에 생긴 종양 탓이었다. 하스킬은 종전 후에야 한 시골 의사에게 종양 제거 수술을 받고 두통과 실명 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으며, 얼마 후 액상 프로방스 페스티벌에 참가해 모차르트의 협주곡 20번을 연주 151

152 했다. 48년 7월25일. 그 실황이 바로 이번 음반 마지막 곡으로 담겨 있다. 60년은 하스킬의 마지막 해였다. 12월1일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있었던 바이올리니스트 그뤼미오와 협연 은 대성황이었다. 객석은 매진됐고 보조의자까지 들여놓아야 할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다음 일정은 일주일 후 벨기에 브뤼셀. 하지만 그것은 성사되지 못했다. 같은달 6일 브뤼셀 역에 도착한 하스킬은 계단을 내려 가다 발을 헛디뎌 넘어졌고, 혼수를 헤매다 다음날 아침에 눈을 감고 말았다. 의식불명에서 잠시 깨어난 그녀는 곁에 있던 동생에게 아무래도 내일 연주는 어려울 것 같구나. 그뤼미오씨에게 미안하다고 전해 다오 라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아프고 고단했던 65년. 하지만 그녀의 모차르트는 여전히 찬란하다. Mozart Violin Sonata K526 ~ Grumiaux and Haskill 협주곡 9번: 프랑스국영라디오방송오케스트라, 지휘- 이고르 마르케비치 1955년 6월 8일 연주 (로잔 Beaulieu 극장) / Piano Concerto No.9 in E flat, K "Jeunehomme" Orchestre National de la radio-t l diffusion fran aise / Direction Igor Markevitch 협주곡 19번: 컨서바토리 컨서트 오케스트라, 지휘- 예르지 카틀르비치 1956년 9월 6일 연주 (브장송 시립극장) / Piano Concerto No. 19 in F major, K. 459 Orchestre de la Soci t des Concerts du Conservatoire / Direction Jerzy Katlewicz 협주곡 24번: 프랑스국영라디오방송오케스트라, 지휘- 앙드레 클뤼탕스 1955년 12월 8일 연주 (파리 샹제리제 극장) / Piano Concerto No.24 in C minor, K.491 Orchestre National de la radio-t l diffusion fran aise / Direction Andr Cluytens 152

153 협주곡 20번: 컨서버토리 카데 오케스트라, 지휘- 에르네스트 부르 1948년 7월 25일 연주 (액상 프로방스 페스티벌 실황, 미공개 레코딩) / Piano Concerto No.20 in D minor, K.466 Orchestre des Cadets du Conservatoire / Direction Ernest Bour =================================================================================================== 정확하면서도 낭만적인 카리스마 마렉 야노프스키의 브람스 교향곡 <베토벤 바이러스>의 주인공이었던 강마에의 실제 모델은 루마니아 태생의 지휘자 세르지우 첼리비다케(1912~1996)라는 설 이 있다. 그러고 보니 똥덩어리 로 대표되는 강마에의 독설은 첼리비다케 를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푸르트뱅글러가 세상을 떠난 후 카라얀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떠올랐던 첼리비다케는 실제로 욕설 에 가까운 험담을 서슴지 않았던 괴팍한 성품의 지휘자였 다. 카라얀이 보여준 정치적 세련됨 에 견준다면, 첼리비다케는 길들일 수 없는 한 마리 야생마에 가까운 사람이었던 셈이다. 그의 독설 어록 에서 특히 유명한 것들은 다른 지휘자들에 대한 지휘자 마렉 야노프스키 혹평이다. 그런데 그것은 참으로 그럴 듯하게 적확해서 무릎을 치게 만드는 측면도 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그는 카라얀에 대해 유능한 비즈니스맨이거나 귀가 안 들리는 인간 이라고 쏘아붙였고, 리카 르도 무티에 대해서는 재능은 있지만 무식한 지휘자라며 폭언을 퍼부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에게도 3주 동안 굶으면서 견딜 수는 있지만 3시간 동안 아바도의 연주를 들으면 심근경색이 생길 것 이라고 독설을 내뱉었다. 또 지휘자 카를 뵘을 감자 포대, 그보다 한 세대 앞의 거장이었던 토스카니니를 음표 공장 이라고 평하며 예술성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이상의 어록 은 안동림씨가 얼마 전 펴 낸 <불멸의 지휘자>(웅진지식하우스)를 참조했음을 밝힌다. 이 안하무인의 카리스마. 알고 보면 첼리비다케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에게 욕을 얻어 먹은 토스카니니 (1867~1957)도 사실은 한술 더 뜬 폭군 이자 독설가였다. 그는 리허설 도중 성질을 부리며 지휘봉을 부 러뜨렸고 단원들에게 악보를 던지기 일쑤였다. 악보뿐 아니라 지휘봉도 던졌다. 한 번은 단원 한 명이 지 휘봉에 눈을 찔려 소송을 벌이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또 그는 최고의 권력자 무솔리니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던 반골 이었다. 그는 라 스칼라의 지휘자로 재임하던 15년간 파시스트의 당가( 黨 歌 )였던 조비네차 (Giovinezza, 청년)를 한 번도 연주하지 않았으며, 이 때문에 무솔리니와 그의 추종 세력들 153

154 에게 늘 눈엣가시였다. 결국 1931년 테러를 당한 토스카니니는 이탈리아를 완전히 떠나 무솔리니가 죽을 때까지 돌아가지 않았다. 암스테르담 콘체르트헤보우를 50년간 지휘했던 빌렘 멩겔베르크(1871~1951)는 어땠는가. 바그너와 브루크 너에게 평생을 전력 투구했던 한스 크나퍼츠부슈(1888~1965)는 어땠는가. 그들도 모두 카리스마형 지휘자 의 표상이었다. 정치적 이념의 차이, 혹은 리허설을 오래 하거나 짧게 하는 등의 몇몇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두 호통 지휘 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장들이었다. 올해 상반기에 인터뷰한 음악가들 중에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이는 폴란드 출신의 지휘자 마렉 야노프스 키(70 사진)였다. 그는 화합을 중시하는 민주주의형 지휘자들이 대세를 이룬 오늘날에도 여전히 카리스마 를 휘두르는 지휘자로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 오페라극장의 도제 시스템 속에서 성장한 카리스마형 계보 의 끄트머리쯤에 놓이는 지휘자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역시 대답에 거침이 없었다. 단원들에게 잘 보 이려고 대화를 많이 나누는 건 쓸데없는 짓입니다. 지휘자는 모름지기 단원들을 압도하는 해석력을 갖춰 야 합니다. 야노프스키의 장기 가운데 하나는 브람스가 작곡한 네 곡의 교향곡일 터. 네덜란드 펜타톤 (Pentatone) 레이블에서 2년 전부터 녹음해 발매해온 브람스 교향곡 1~4번 전곡이 얼마 전 국내에 수입됐다. 올해 초 그가 베를린방송 교향악단을 이끌고 내한해 선보였던 곡도 브람스 1번이었다. 펜타톤에서 내놓은 음반에 서는 피츠버그 심포니의 지휘봉을 들었다. 해석은 내한연주 때와 대동소이. 음 하나 하나가 매우 정련됐고 악기들 사이의 균형감도 빼어나다. 그의 연주는 과거의 거장들처럼 감정을 다소 과잉시켜 두꺼운 음을 뽑아내지 않지만, 그렇다고 최근의 분 석적 해석처럼 골격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연주도 아니다. 굳이 설명하자면 그 중간쯤 되는 해석 아닐까. 정확하면서도 노래의 낭만이 살아 있는 연주. 다만 펜타톤의 엔지니어는 음의 모서리를 약간 다듬어 부드 러운 맛을 추가한 듯하다. 덕분에 실제 연주에 비해 강렬한 맛은 다소 줄었다. 그래도 이 음반이 브람스 애호가들의 컬렉션에 추가되는 것에는 이견의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내한 무대에서 시종일관 무뚝뚝 한 표정으로 브람스를 지휘하던 야노프스키. 연주를 다 마친 후, 비로소 딱 한 번 미소짓던 모습이 떠오른 다. 154

155 =================================================================================================== [주제와 변주]모차르트 클라리넷 5중주 ㆍ클라리넷의 재발견, 실내악의 완성 모차르트가 생애 마지막 무렵에 가장 사랑했던 악기 가운데 클라리넷을 빼놓을 순 없다. 기악 음악의 발전 은 악기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게 마련. 목관악기 클라리넷은 모차르트가 맹활약을 펼치던 18세기 후반에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정확한 음정과 풍부한 표현력, 적절한 음량을 갖춘 악 기로 점차 발전하면서 오케스트라 속에도 클라리넷 연주자의 자리가 마련되기에 이른다. 그렇게 음악성을 차츰 인정받아가던 클라리넷은 모차르트의 말년에 이르러 악기로서 의 존재감을 선명하게 부여받는다.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이었던 1789년 썼 던 클라리넷 5중주 A장조. 기존의 현악 4중주 편성에 클라리넷 한 대를 덧붙인 이 155

156 곡이야말로 클라리넷의 재발견인 동시에 모차르트 실내악의 완성이라고 부를 만하다. 우아한 음색에 화려한 기교, 인생의 희로애락을 사람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듯한 표현 력. 이렇게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 클라리넷 곡은 모차르트 이전에는 당연히 없었으며,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오랫동안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적어도 100년 후, 브람스가 1891년에 클라리넷 5중주 b단조 를 쓸 때까지 그랬다. 모차르트로 하여금 클라리넷 5중주곡 을 쓰게 한 또 하나의 동기는 우정 이었다. 그것은 베토벤이 루돌프 대공과의 우정을 피아노 소나타 26번 고별 과 피아노 트리오 대공 으로 표현했던 것과도 흡 사하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어려운 말년을 보내던 모차르트도 클라리넷 연주자였던 안톤 슈타틀러 (1753~1812)와의 우정에 음악으로 답했으며, 그 첫번째 열매가 바로 클라리넷 5중주 였다. 알려져 있다시피 모차르트가 잘츠부르크를 떠나 빈으로 간 것은 1781년, 그의 나이 25세 때였다. 그러니 꼭 10년을 빈에서 살았다. 그 10년은 모차르트가 궁정의 족쇄 를 벗어나 프리랜서 음악가로 보낸 세월 과 같을 터. 빈 시절 초창기의 모차르트는 소위 잘 나가는 음악가였다. 그는 빈에서 작곡과 연주로, 또 학생들을 가르치며 적잖은 인기를 끌었다. 특히 빈 사람들은 피아노 연주에서 모차르트가 보여줬던 능 력에 환호했으며, 이에 자극받은 모차르트는 피아노 협주곡 14번부터 25번까지를 단숨에 써내기도 했다. 하지만 권력의 울타리를 벗어난 그는 점차 힘들어졌다. 모차르트를 아꼈던 하이든이 이 유일무이한 인 물 모차르트가 군주의 것이든 황제의 것이든, 어느 궁정에서도 지위를 얻지 않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다 라는 개탄조의 글을 남긴 것도 이 무렵이었다. 물론 여기엔 약간의 이견도 있는 게 사실이다. 빈 시절 후반부에도 모차르트의 수입은 별로 줄지 않았으며, 오히려 도박 등으로 돈을 날려 어려워졌을 거라는 추 측이 존재한다. 그렇게 모차르트 생애의 마지막 무렵은 몇몇 미스터리를 남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차 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3~4년 전부터 극심한 궁핍에 시달렸다는 것. 당시 모차르트는 자신이 몸 담았던 계 몽주의 비밀결사 프리메이슨 의 동료 푸흐베르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내가 싫어하는 사 람에게까지 도움을 청해야 할 만큼 안 좋은 상황이라네. 좋은 친구, 형제인 당신마저 나를 버린다면, 나와 가련한 병든 아내 그리고 아이도 파멸해 버릴 것이라네. 앞서 언급한 슈타틀러는 바로 이 시절의 모차르트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친구였다. 그 역시 프리메이슨 의 동료였으며 당대 최고의 클라리넷 연주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게 헌사한 클라리넷 5중 주 는 전곡이 모두 아름답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악장은 2악장 라르게토(Larghetto). 그것은 마치 한 마리 백조의 춤처럼 우아하며 때때로 관능적이다. 동시에 모차르트 말년의 슬픔이 아릿하게 배어난다. 2년 후 작곡한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도 역시 슈타틀러에게 헌사한 곡. 이 곡에서 클라리넷은 좀 더 저역으로 내려가면서 마치 오보에 같은 소리로 운다. 모차르트는 이 곡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협주 곡 을 쓰지 않았으며, 두 달 뒤 눈을 감는다. 156

157 Mozart Clarinet Quintet K.581 #1~4, Clarinetist Bruce Nolan and the Sierra String Quartet * 1년에1 걸쳐 연재해온 주제와 변주 를 오늘자로 마칩니다. 그동안 애정을 갖고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문학수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경향신문 연재글을 제 블로그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문학수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158 클래식, 그 은밀한 삶과 치욕스런 죽음 :57 클래식 음반, 100년의 삶과 영광과 쇠퇴 클래식, 그 은밀한 삶과 치욕스런 죽음 ~ 노먼 레브레히트 마티 클래식의 황제 로 20세기를 풍미했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난해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2000년대 초반 카라얀이 녹음한 CD 5장 구성의 베토벤 교향곡 전집을 큰맘 먹고 구입했던 기자는 지난해 말, 카라얀 탄 생 100주년을 맞아 그가 연주한 교향곡을 모은 CD 38장으로 구성된 특별판 박스세트를 샀다. 따져보니 장당 2000원도 되지 않는다. 당대의 지휘자 중 가장 많은 음반을 발표하고 역대 최고 판매량을 기록할 정도로 수완 좋던 지휘자 카라얀이 이 를 안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MP3와 인터넷 등 새로운 매체와 기술의 출현으로 불과 5~6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들이 음반산업 의 운명을 바꿔 놓고 있다. 음반업계를 호령하던 레코드 회사들이 차례로 무너져가고, 이름난 지휘자와 연주자들의 연주 가 초저가 음반으로 발매되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세계적인 클래식음악 평론가인 저자는 음반은 음악을 전 하는 매체일 뿐 이제 그 기한이 다해가고 있다 고 감히 선언한다. 명멸해가는 클래식 음반의 역사를 지근거리에서 지켜 본 저자는 이를 기록해두고 냉정하게 평가하겠다는 작지만 큰 욕망에서 책을 썼다. 토머스 에디슨이 1877년 축음기를 발명했지만, 클래식 음악이 음반이라는 매체로 자리잡기까지 오랜 시간 이 걸렸다. 20세기 초만 해도 많은 음악가들은 음반은 연주자와 듣는 이의 교감을 제거해 예술을 비인간적인 행위 로 만든다 며 음반을 거부했다.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슈나벨이 대표적이다. 음반 녹음을 선호했던 이들도 있다. 피아니스트 빌 헬름 켐프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로 유명한 괴짜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등이다. 1902년 이탈리아의 테너 엔리코 카루소가 부른 아리아 음반이 공전의 히트를 친 후, 레코딩은 클래식 음악 의 역사를 새로 클래식, 그 은밀한 삶과 치욕스런 죽음 158

159 써내려갔다. 사람들은 가정마다 축음기를 들여놓고 음반을 샀다. 수십개의 레코드 회사가 난립하다 전열을 가다듬었고 세력을 갖춘 메이저 음반사들이 출현했다. 음반프로듀서와 연주자 간의 끝없는 짝짓기와 결별, 여기에 새 로운 녹음 기술과 음반 매체의 발전으로 클래식 음악은 호황을 맞게 된다. 공연을 통해 한정된 지역에서만 알려지던 음악가 들은 음반을 통해 국경과 대륙을 넘어 이름을 얻게 됐고 부를 거머쥘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죽은 후에도 지속될 명예 를 갖게 됐다. 음반이 갖는 이점을 가장 잘 알고 있었던 이가 카라얀이다. 그는 독일 음악으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음악가 들의 선봉에 있었다. 책에는 수많은 연주자와 지휘자들의 이름, 그리고 전설적인 음반프로듀서의 이름과 뒷이야기가 등장한다. 음악만 들어서는 잘 알 수 없던 음악가들의 이면이 생생하게 드러나 흥미롭게 읽힌다. 귀동냥으로나마 20세기를 풍미한 클 래식 연주자들의 이름을 들어본 이들은 더 흥미를 느낄 것이다. 엔리코 카루소부터 1990년대 음반사들이 불황 타개책으로 새롭게 발굴하던 바네사 메이, 일 디보, 샬롯 처치 등 어린 음악가들에 관한 신랄한 비평까지 담고 있다. 책의 절반은 음반사에 할애하고 나머지 절반은 불멸의 명반 100장 과 최악의 음반 20장 으로 채웠 다. 1902년부터 2004년까지 나온 클래식 음반 중에서 골랐다. 선정의 기준은 대중들의 상상력을 이끌고 문명사회의 부속물로서 음반 이라는 매체가 발전 하는 데 끼친 영향력이란다. 이제 막 클래식에 입문한 이들에게는 음반사를 정리한 전반부보다는 후반부 의 음반 리뷰가 보탬이 될 듯 싶다. 장호연 옮김. 1만9000원 =================================================================================================== 최악의 음반 20 장 1. 바하, 2대의2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 야사 하이페츠, RCA 빅터 체임버 오케스트라, 1946년 RCA... 자아도취에 빠져 하이페츠가 연못에서 또 한명의 하이페츠를 보는 연주... 이보다 더 나쁜 연주는 없다... 다... 그도 뭔가 아쉬웠는지 15년뒤 그의 제자 에릭 프리드먼, 말콤 사전트와 함께 다시 녹음했 클래식, 그 은밀한 삶과 치욕스런 죽음 159

160 <1946년> ==> 15년 후 2. 베토벤, 삼중협주곡 ~ 리히테르, 오이스트라흐, 로스트로포비치 + 카라얀 베를린 필, 1969년 EMI... 4명은4 같이 연주하면서도 서로의 연주를 듣지 않았다... 자신들의 연주가 창피해서 한번 더 하자고 했지만 카라얀은 거절했다. 그야말로 음악적 비소통의 표본이었다... 그러나 관객들은 환호했다 엘가, 수수께끼 변주곡 ~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 번스타인, 1982년 DG... 연주자들은 몹시 화가 났다. 영국인들이 사랑하는 곡을 망쳐놓은 이유가 번스타인의 성격 탓이었기 때문이다. 번스타인이 다시는 같이 연주하지 않겠다고 하자 몇몇 연주자들이 박수 갈채를 보냈다 힌데미트- 지고의 영상 모음곡, 바일- 서푼짜리 오페라, 클렘페러- 행복한 왈츠 클래식, 그 은밀한 삶과 치욕스런 죽음 160

161 ~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오토 클렘페러, 1961년 EMI... 클렘페러의 아마츄어에도 못 미치는 작품과 연주는 그의 기대를 무참히 저버렸다 말러, 교향곡 2번( 부활) ~ 빈 필, 로린 마젤, 1983년 CBS... 빈 필은 시종일관 삐걱거렸고 두명의 여성 성악가( 제시 노먼, 에마 마르톤)는 서로를 무시 하며 최악의 음성으로 마젤을 몰아내기 위한 음모에 일조했다... 이 연주의 참혹함은 실로 믿기 어려울 정도다 크라이슬러, 바로크 양식의 협주곡 ~ 크라이슬러, 빅터 현악 오케스트라, 도널드 보히스, 1945년 RCA... 크라이슬러 자신이 발견했다고 하는 바로크 작곡가의 협주곡들은 사실은 그가 작곡하 고 속인 것들이었다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 피터 피어스, 벤자민 브리튼, 1963년 데카... 피어스의 독일어 발음은 부정확하고 첫 소절은 늘 삐걱거리고 듣는 이는 늘 조마조마하 다... 이때 끼어들어 화려한 솜씨로 그를 나락에서 구해주는 이가 브리튼이다... 클래식, 그 은밀한 삶과 치욕스런 죽음 161

162 8. 알비노니- 아다지오, 파헬벨- 캐논, 코렐리- 크리스마스 협주곡, 비발디 협주곡... ~ 베를린 필, 카라얀, 1983년 DG... 바로크 특유의 투박한 매력과 느슨함, 변칙적인 요소들은 무시하고 잘 조련된 군대로 밀어 붙이는 카라얀의 바로크 작품은 그야말로 고집스런 허영이자 오만한 해석의 표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음반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 했다 재즈 세바스치안 바하 ~ 스윙글 싱어즈, 1962년 필립스... 대체 이 음반에 어떤 예술적 목적이 있는지... 돈벌기가 목적이 아니라면 바하를 욕실용 음악으로 바꾼 까... 이유라도 있어야 한다... 이런 훌륭한 목소리로 고작 그런 사소한 목적에 사용해야 했을 클래식, 그 은밀한 삶과 치욕스런 죽음 162

163 <Vol.1> <Vol.2> <Vol.1+2> 10. 색다른 모차르트 ~ 던 앳킨슨( 프로듀서 ), 1996년... 마치 스타벅스 판매용으로 편곡한듯한 형편없는 모차르트는 예술과 상업성의 균형이 무너 졌을 때 얼마나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는지 생각한다면 역대 최악의 클래식 음반이라 해도 지나치 지 않을 것이다 베르디, 레퀴엠 ~ 르네 플레밍, 안드레아 보첼리 외, 키로프 오케스트라 & 합창단, 발레리 게르기에프, 2000년 데카... 보첼리가 베르디의 미묘한 감정변화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 테크닉이 없다는 것은 금방 들통난다... 게다가 다른 성악가가 보첼리의 한계에 맞춰 자신의 소리를 억누르는 것을 듣노라면 음반 제작자를 다... 기소하고 싶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첼리의 열정 덕분인지 음반은 대박이 났 클래식, 그 은밀한 삶과 치욕스런 죽음 163

164 12. 재즈 앨범 ~ 런던 신포니에타, 사이몬 래틀, 1986~87년 EMI... 음반 판매량은 형편 없었고 EMI는 래틀과의 계약철회까지 진지하게 고려했다... 래틀도 첫 음반에서는 흰색 타이와 검고 흰 멜빵을 매고 있지만 재발매 음반에서는 반성과 애도의 의미로 검은 정장을 입었다 초보자를 위한 말러 ~ 클라우스 텐슈테트, 존 바비롤리,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1996년 EMI... 이것이 음악을 들으려는 의지가 충만한 사람들을 위한 감상용 음반인지 아니면 높은 지위 를 얻으려는 사람들을 위한 과시용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 기돈 크레머, ASMF, 네빌 마리너, 1982년 필립스... 크레머는 크라이슬러 대신 자신의 친구인 알프레드 슈니트케의 카덴차를 체택했지만 이착 펄만, 예후디 메뉴힌, 아이작 스턴으로부터 돌아온 것은 분노뿐이었고 결국 크레머는 이 카덴차를 용도 폐기하고 말았다. 클래식, 그 은밀한 삶과 치욕스런 죽음 164

165 15. 쿠르트 바일, 9월의9 노래 ~ Va rio us Artis ts, 1997년 소니 16. 비제, 카르멘 ~ 제시 노먼,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세이지 오자와, 1988년 필립스... 무대에서 한번도 카르멘을 노래해본 적이 없는 제시 노먼은 애당초 섹시한 여인의 이미지 와 거리가 멀었고 당대 최고의 스타에 묻어가려던 음반사의 얄팍한 잔머리는 결국 제시 노먼에게는 명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음반사에게는 막대한 손실을 돌려주었다 영광의 순간 ~ 스콜피온스, 베를린 필, 2000년 EMI... 대용량 앰프를 들고 나온 록 밴드는 ' 록 음악을 즐길 준비가 되었나요?' 라고 소리치더니 클래식, 그 은밀한 삶과 치욕스런 죽음 165

166 오럴 섹스를 찬양 하는 노래를 불렀다... 사이몬 래틀은 이 작업을 두고 끔찍하고 오싹한 기획이라 했다 사티, 벡사시옹 ~ 레인버르트 더 레이우, 1977년 필립스... 벡사이옹은 18개의 음표로 구성된 모티브를 변형시키지 않고 아주 천천히 840회 밤낮으로 계속 연주해야 하는 작품이다... 이를 음반으로 옮기려는 시도는 클래식 음반 역사상 가장 멍청하고 가장 비음악적 짓이다 키리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 키리 데 카나와, 런던 보이시스,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칼 데이비스, 1985년 데카... 별다른 노력이나 열정 없이 2시간 정도 시간내서 녹음하는 캐럴 음반중에서도 이 음반은 입이 10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따분하기 그지없는 이 음반에는 감정이나 의미가 제대로 실린 노 래가 하나도 없다 파바로티, 최고의 모음집 ~ 루치아노 파바로티, 1977년 데카... 조지 마이클, 조 카커, 머라이어 캐리 등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파트너들 가운데 일부였으며 그 중에서도 죽은 프랭크 시나트라의 테이프에 맞춰 부른 이중창 My Wa y는 가장 고약한 것이었다... ================================================================================== 최고의 판매고를 올린 클래식 음반 바그너 - 니베룽겐의 반지 - 게오르그 솔티 (1960년대 ) 만장 - Decca 2. Three Teno r - 파바로티, 도밍고, 카레라스 년 만장 - Decca 클래식, 그 은밀한 삶과 치욕스런 죽음 166

167 3. 비발디 - 사계 - 이 무지치( 아요 ) 년 - 950만장 - 필립스 4. Three Teno r II - 파바로티, 도밍고, 카레라스 년 - 780만장 - Wa rner 5. C a nto Grego ria no 년 - 300만장 - EMI 6. 영혼의 아리아 - 안드레아 보첼리/정명훈 년 - 300만장 - 필립스 7. 차이코프스키 - 피아노협주곡 #1 - 반 클라이번/키릴 콘드라신 년 - 300만장 - RCA 8. 푸치니 - 토스카 - 마리아 칼라스, 티토 곱비 년 - 300만장 - EMI 클래식, 그 은밀한 삶과 치욕스런 죽음 167

168 9. O Ho ly Night - 파바로티 년 - 300만장 - 데카 10. 아리엘 라미레스 - 미사 - 호세 카레라스 년 - 300만장 - 필립스 11. 비발디 - 사계 - 나이젤 케네디 /Englis h CO 년 - 250만장 - EMI 12. 엘가 - 첼로협주곡 - 뒤 프레/바비롤리 년 - 210만장 - EMI 13. 칼 오르프 - 카르미나 부라나 - 제임스 레바인/시카고 SO 년 - 210만장 - DG 14. 모차르트 - 호른 협주곡 - 데니스 브레인/카라얀 년 - 200만장 - EMI 15. O So le Mio - 파바로티 년 - 200만장 - 데카 클래식, 그 은밀한 삶과 치욕스런 죽음 168

169 16. 아베 마리아 - 키리 테 카나와 년 - 200만장 - 필립스 17. 바하 - 골드베르그협주곡 - 글렌 굴드 년 - 180만장 - 컬럼비아 18. 베토벤 - 교향곡 9번 - 카라얀/베를린 필 년 - 150~200만장 - DG 19. 베토벤 - 교향곡 5번 - 카를로스 클라이버/빈필 년 - 150~200만장 - DG 20. Three Teno rs Chris tma s - 파바로티, 도밍고, 카레라스 년 - 120만장 - 소니 클래식, 그 은밀한 삶과 치욕스런 죽음 169

170 ======================================================================= 클래식, 그 은밀한 삶과 치욕스런 죽음 170

171 베를린필이 눈감은 나치의 추억 :26 베를린필이 눈감은 나치의 추억 1933년에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당이 정권을 탈취하자 선전장관 괴벨스는 베를린 필에 재정지원을 하기로 결정했고 예술감독이었던 푸르트벵글러는 악단 존속을 위해서라며 지원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베를린 필은 제3제 국의 어용 오케스트라가 됐고 나치스의 프로파간다(선전)에 가담하게 된다. 차가운 비가 내리는 날, 도쿄도 내의 영화관까지 베를린 필(베를린 필하모니 교향악단) 영화를 보러 갔다. 베를린 필 연주를 난생 처음 들은 것은 10년 정도 전 베를린을 여행했을 때다. 베를린 필은 카라얀이 수석지휘자였던 시절부 터 몇번인가 일본에 와서 연주를 했으나 내게는 티켓 값이 너무 비쌌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내가 몇번인가 베를린에 갔지만 일정이 잘 맞지 않아 실제로 연주를 들을 기회가 없었다. 1990년대 중반을 지나 마침내 그 기회가 왔다. 연주 곡목은 라두 루푸가 독주를 한 브람스의 피아노협주곡, 그리고 역시 브람스의 교향곡 제1번. 지휘는 클라우디오 아바도였다. 그날 밤의 감개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연주회에 함께 갔던 아내는 걸어서 호텔에 돌아오면서 지 금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하고 말했다. 그토록 감격한 아내의 기분을 나도 같이 느꼈다. 지금도 나와 아내는 가끔 그 날 밤을 떠올리고는 살아오면서 들은 연주 가운데 최고로 꼽곤 한다. 그 뒤 베를린 필 수석지휘자는 아바도에서 사이먼 래틀로 교체됐다. 지휘자가 래틀로 바뀌고 나서 나는 자 주 베를린 필을 들었다. 2007년 봄 잘츠부르크에서 들은 바그너의 악극 <라인의 황금>은 상당히 좋았다. 하지만 아바도 지 휘 시대를 능가 하는 명연주는 유감스럽게도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그런데 그 래틀이 이끄는 베를린 필이 2005년 가을 베이징, 서울, 상하이, 홍콩, 타이베이, 도쿄를 돌면서 한 아시아 투어 연주를 촬영한 다큐멘터리가 이번에 내가 보러간 영화 <베를린 필-최고의 하모니를 찾아서 >( 원제: 베를린필이 눈감은 나치의 추억 171

172 TRIP TO AS IA- The Ques t Fo r Ha rmo ny)다. 흥미 깊었던 것은 출신도 나이도 천차만별인 악단원들을 인터뷰한 것이었다. 솔리스트로서도 유명한 오보에 주자 알브레히트 마이어는 예상 외로 신경질적인 맨얼굴을 보여주었다. 베네수엘라의 슬럼 가에서 기적처럼 나타나 최연소로 정식 악단원이 된 콘트라베이스 주자 에딕슨 루이스는 사람은 태어나 성장하고 살아가 면서 발전한다. 그게 인생이라는 것이다 라고 앳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말을 했다. 노령의 파곳 주자 헤닝 트로크는 신이여, 지금 죽음을, 그런 순간을 몇번이나 맛볼 수 있는 광영을 누릴 수 있었으니, 인생은 그걸로 충분하다 고 했다. 필시 아 내가 지금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이라고 한 그날 밤과 같은 순간을 얘기하는 것이리라. 이 영화는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 로 불리는 베를린 필을 구성하는 연주자 개개인의 내면 속으로 들어가 음악이라는 예술이 지닌 불가사의한 힘의 비밀을 찾 아간다. 지휘자는 왔다 간다. 그래도 베를린 필은 남는다 라는 말이 영화 속에 나온다. 사이먼 래틀은 그 말을 받아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계속하는 게 내 책임이다 라고 말했다. 베를린 필의 125년 역사를 짊어진 사람다운 고지식한 발언 이다. 실은 이 영화가 끝난 뒤 밤 9시부터 또 한 편의 영화가 더 상영됐다. <제국 오케스트라 >( 원제 : Da s Reichs o rcheter)다. 이 다큐멘터리 작품은 과거를 검증하고 이해한다 는 취지로 2007년 베를린 필 125주년 기념식전에서 상 영됐다. 원래 베를린 필은 정치권력이나 권위에 대한 독립정신을 지닌 독립기업이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 패배와 바이마 르공화국 시대의 혼란을 거쳐 재정파탄에 직면했다. 1933년에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당이 정권을 탈취하자 선전장관 괴벨스는 베를린 필에 재정지원을 하기로 결정했고 예술감독이었던 푸르트벵글러는 악단 존속을 위해서라며 이 지원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베를린 필은 제3 제국의 어용 오케스트라가 됐고 나치스의 프로파간다(선전)에 가담하게 된다. 1933년 당시 베를린 필에는 4명의 유대인 단원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악단에서 추방돼 외국으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 한편으로 베를린 필 단원들에게는 많 은 특권이 주어졌다. 그들에겐 높은 급여와 훌륭한 악기들이 주어졌고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기호품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베를린필이 눈감은 나치의 추억 172

173 그들은 저 격렬한 전쟁 중에도 병역을 면제받았다. 이 영화 감독은 당시 단원들에겐 이 파란의 시대에 눈을 감는 일, 그리고 추방당한 4명의 음악가들 존재에 눈을 감는 일 이 얼마나 손쉬웠던가 를 묘사했다고 말했다. 추방당한 4명의 유대인 단원들 중 한 사람은 네덜란 드령 인도네시아에 당도했으나 그곳을 점령한 독일의 동맹국 일본에 의해 강제수용소에 수감당했다. 그는 전쟁 뒤에도 오래 살았으나 두 번 다시 독일에 돌아가지 않고 일본의 외진 시골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 당시의 기억을 아직 살아있는 두명의 전 악단원들이 증언한다. 그들은 영화 속에서 베를린 필이 나치 의 오케스트라였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생각은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다. 이 영화에는 히틀러 의 탄생일 축하 연주회에서 베를린 필을 배경으로 연설하는 괴벨스의 모습과 그 괴벨스와 정중하게 악수하는 푸르트벵글 러의 모습을 비춘 귀중한 영상도 나온다.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이 줄지어 앉은 나치 고관들 앞에서 소리 높게 연주되는 영상 을 보면, 이 작품을 단지 우애의 찬가로만 칭송하는 것은 깊은 죄를 짓는 순진함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될 것 이다. 뛰어난 예술은 지금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하고 생각할 정도의 지복( 至 福 )을 우리에게 준다. 그와 동시 에 대부분의 예술가는 예술이라는 지고( 至 高 )의 가치를 위해서 라는 생각으로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국가나 자본의 범죄에 가담하는 것이다. 그것이 예술이 지닌 양면성이다. 이 두 편의 영화를 이어서 볼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이 두렵기까지 한 양면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얻었으니 말이다. 아우슈비츠 이후에 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다 라는 말이 있다. 아우슈비츠 이후에 연주되는 교향곡 9번 은 어떨까? 현재의 연주자와 청중이 나치시대의 전철을 밟고 있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파란의 시대 나 추방당한 자들의 존재 에 눈을 감고 그것을 예술 이란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있지는 않은가? 서경식/도쿄경제대학 교수, 번역 한승동 선임기자 베를린필이 눈감은 나치의 추억 173

174 Furtwa ngler co nducts Beetho ven 9th S ympho ny fina le 베를린필이 눈감은 나치의 추억 174

175 클래식 - 주제와 변주 블로그 사색과 여유 저자 발행일 문학수 / Woodstock :38:46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복제와 전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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