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독교 운동, 그 실태와 대처 최승락 교수(신약학) I. 들어가는 말 지금 한국교회는 안과 밖으로부터의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 안으로는 성장 동력이 약화 되어가고 있으며 특히 다음 세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밖으로는 전례 없는 반기독 교 운동의 거센 풍랑을 만나 복음 전도의 길이 위협을 당하고 있다. 한국 사회 속에서 본격 적인 반기독교 운동이 일어난 것은 10여년 안팎의 일이다. 그 사이 이 활동은 많은 사람들 의 참여와 호응을 등에 업고 조직화, 다변화되어 가고 있다. 이 글의 목적은 간단하다. 이 시대 우리 주변의 반기독교 운동의 실태를 유형별로 살펴보고, 이어서 이에 대한 대처 방안들을 모색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기독교가 그 본래적 정체성을 회복하고 주님께서 세우신 자리에 바르게 설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II. 반기독교 운동의 현 실태 1. 주요 반기독교 운동 사이트들 반기독교 운동은 다양한 형태로,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전개된다. 그 중에는 각종 강연이나 전시회, 동아리 및 SNS를 통한 연결망, 신문 방송의 보도, 영화 등의 대중매체, 출판물들을 통한 활동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한 활동이 가장 활발하고 파급 효과 또한 크다. 우리는 먼저 가장 대표적인 몇 개의 반기독교 운동 사이트들의 활동 현황을 관찰해보고자 한다. 1) 1) 반기독교시민운동연합(http://www.antichrist.or.kr) 안티기독교운동의 선두주자 역할을 하는 시민단체(?)로, 총 회원 18,003명(2012.3.21 기준) 을 거느리고 있다. 사이트는 1) 반기련 2) 토론방 3) 칼럼 4) 안티바이블 5) 참여광장 6) 자료실의 총 6개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FAQ 게시판에는 반기독교시민운동연합(이하 반기련) 운영진의 취지 및 사상 이 소개되고 있는데, 몇 가지만 간략히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a. 반기독교운동의 취지는 기독교의 폐단을 고발 하는데 있다. b. 폐단의 근거를 성경에서 찾는다. c. 성경의 잘못된 점이나 비합리적이고 모순된 점을 찾아 지적하는 일을 추진한다. 1) 이 부분의 자료 조사를 위하여 고려신학대학원의 권봉진, 강승구, 김두한, 안준모, 한경민 학우들이 수고해 주 었음을 밝힌다. 그들의 수고에 감사를 표한다. - 1 -
d. 기독교의 폐단은 다른 종교에 대한 배타성 으로 나타난다고 본다. e. 단군상 파괴, 성남 일화 축구단 몰아내기 등을 들어 사회/윤리적 비판을 가한다. 이 사이트의 운영진은 반기독교활동은 기독교 비판보다는 반기독교를 위한 견해 표 명이라 밝힌다. 다음은 반기독교 활동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설명의 일부이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저희는 단지 기독교에 대한 반대 견해를 표명하고자 할 뿐이며 저희가 유일하게 인 정하는 수단은 이성에 의한 설득입니다. 반기독교의 목적은 개인마다 다소 다르고, 그 지향하는 바가 틀 리겠지만, 저희 안티활동의 1차적인 목적은 "홍보"입니다. 종교에 대한 비판은 사회적으로 금기시되어 있기에 다루기 어렵고, 논의하기 난해한 카테고리라는 근본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기독교"라는 종교가 그 동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호도해왔던, 그리고 기독교가 이만큼 성장하는 데 원동력이 되어 왔던, 기독교의 여러 기본적인 명제나, 교리들의 허구성, 혹은 불완전성을 보다 낱낱이 파헤침으로써, 이를 많 은 사람들이 보면서, 기독교라는 종교에 관해 한번 쯤 재고해 보게 되는 기회를 갖기를 바라는 것입니 다.(by 아이디:오디세이, 출처 - http://www.antichrist.or.kr/bbs/board.php?bo_table=faq&wr_id=514) 이 사이트의 토론방에는 반기독교로의 전향을 목적에 둔 고민 상담이 매우 구체적 인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이 이 상담 활동의 주된 타깃이 되고 있 는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구체적인 한 예이다. 질문 :... 제 와이프 역시 모태신앙에 전형적인 기독교인이고 예배를 빠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으며... 저도 그랬고요. 처가도 마찬가지이며 제 집안도 마찬가지 입니다. 가정의 평 화를 원합니다. 전 아니라 할지라도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교회에 다녀야 하고 남들 통성 기도 할 때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어야 하는 것도 곤욕이고요 어제도 온 가족이 예배에 참석 했 습니다. 이런 제 우유부단함이 앞으로도 계속 껍데기만 들고 교회에 갈 것이라는 생각이고 요...와이프에게 제 심정을 얘기해야 할까요? 방금 전에도 이 사이트에 접속해 있는 것을 와 이프에게 걸렸습니다. 싸우기 싫어 대충 둘러대긴 했습니다만 기독교인에서 무교로 전향하 신 이곳의 많은 분들이 있으실 거라 생각됩니다. 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답변 : 사용하시는 언어를 보았을 때, 정말 개독에 대한 믿음이 깊으신거 같으시네요... 정말 고뇌에 가득찬 고민을 올리셨는데요... 가정의 평화가 저는 우선이라 생각합니다... 오랜 시 간 개독을 믿어온거처럼, 개독을 떠나는 길 또한 그만큼 길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음이 떠남은 시간이 오래 걸릴지라도 가야할 곳을 정해 놓은 것이니, 결국 개독을 벗어 나실수 있을 것이라 생각 합니다. 아이들의 종교는 성인이 되어 가지게 하자고 제의해 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http://www.antichrist.or.kr/bbs/board.php?bo_table=distress&wr_id=592 이 사이트의 칼럼난에는 고정 칼럼리스트들이 글을 올리고 있고, 그들의 글을 모아 책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다음은 그 한 예이다. 책명 : 일반인이 알아야 할 악서 바이블 이야기 지은이 : 이계석 출판사 : 유마북 페이지 : 320page 사이즈 : 150*210 가 격 : 12,000원 판 매 : 인터넷 서점 및 전국 서점 - 2 -
자료실에는 보도자료 및 사진 등을 스크랩해 놓았다. 여기에는 기독교인들 및 목회 자들의 사기행각, 성 추행, 뇌물수수 등 사회/윤리적인 문제들과, 현 MB정권에 대한 비판이 포함된다. 아울러 약 120권의 반기독교 관련 추천도서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사이트가 주안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안티성경 운동인데, 특히 바이블 19금 지 정 서명 운동 을 추진 중에 있다. 이는 19세 이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성경을 읽지 못하도 록 금지하자는 운동이다. 이 운동의 근거는 다음과 같은 그들의 성경 이해에 근거한다. 바이블(Bible)은 아예 공갈과 협박으로 시작해서 마침내, 사람이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들어가서 영원 히 이를 갈며 신음하리라는 악담과 저주를 보여 주는 무지막지한 악서( 惡 書 ) (http://www.antichrist.or.kr/event.php) 아버지가 딸을 근친상간 (창 19:31), 형수와 관계에서 시동생과의 질외사정 (창 38:6), 남자끼리의 동 성애 (창 16장), 여자 신체를 이용한 포르노 구절 (아가 7장), 가축, 젖먹이 아기까지 죽이는 잔혹성 (사무엘상 22:19), 인신매매 가격을 정한 비윤리성 (레 27장) 등 (http://www.antichrist.or.kr/bbs/board.php?bo_table=cartoon&wr_id=2646) 1) 포르노 따위의 음담패설( 淫 談 悖 說 ) 2) 사람을 속이고 골탕 먹이는 사기행각( 詐 欺 行 脚 ) 3) 처음부터 끝까지 과학과 논리와는 거리가 먼 무지막지( 無 知 莫 知 ) 등이 난무 바이블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순과 궤변을 엮어 놓은 허구... 거기에다 한 술 더 떠서, 저주와 악담을 뭉쳐 놓은 무서운 내용의 악서 (http://www.antichrist.or.kr/event.php) 이상의 내용을 바탕으로 반기련은 이와 같이 호소한다. 이에, 나라의 장래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어린이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더럽히지 않고 깨끗하게 지켜주기 위해서는, 우선 적으로 어린이들 주위에서 바이블을 철저히 차단시켜야 되겠다는 운동을 벌이게 된 것입니 다. 1,000 만 서명 운동에 모두모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뜻있는 많은 분들의 성원을 기다 립니다. 현재(2012.3.20)까지 이 운동에는 9,665명이 서명참여 중이다. 2) 클럽 안티 기독교(http://cafe.daum.net/clubanti) ㆍ 카페명- 클럽 안티 기독교 ㆍ 카페지기- 大 圓 壹 ㆍ 개설일- 2000.06.19 ㆍ 회원수- 10,680(2012년 3월 현재) ㆍ 랭킹- 94 단계 (2012년 3월 현재) 이 카페는 2000년에 개설되어 2004년에 회원 6,654명으로 클럽 랭킹 114단계 정도였지 만, 2005년을 거쳐 2006년에 오면 회원이 10,093명으로 증가하고 클럽 랭킹도 60선에 올 라선다. 이는 2004년부터 거세게 일어났던 대중매체들의 기독교 비판과 연관성을 가진다고 본다. 한국방송공사(KBS)가 그해 10월 1일 1TV에서 한국사회를 말한다-선교 120주년, 한 국교회는 위기인가 를 방영한 것을 필두로 주간 <시사저널>이 12월호에서 여의도순복음교 회 헌금사용에 대한 의혹, 조용기 목사 아들들의 병역문제 등을 다루며 강렬한 어조로 순복 음교회를 집중 공격하였다. 여기에다 김선일씨가 이라크에서 피살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대 중의 관심을 사로잡았고, 학내종교의 자유를 주장한 강의석군 사건도 일어났다. 이와 맞물 려 서경석 목사를 필두로 기독교사회책임 이 발족하면서 교회의 정치참여, 특히 보수적 노 선의 정치참여에 대한 논란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이런 일련의 흐름들이 일반 대중의 교회에 대한 반감을 증폭시키는 한편 보다 구체 - 3 -
적인 방식으로 반기독교 운동을 조직화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클럽 안티 기독 교의 활동은 반기련 등의 다른 안티 운동들과 큰 차별성을 가지지는 않는다. 이 사이트에서 반기독교적 활동의 주제로 삼는 것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a. 교회의 재정 사용 문제 목회자와 교회의 투명하지 않은 재정사용 또는 유용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또한 목 회자들의 비상식적인 사례나 전별금 등 주로 신문에 기사화되는 내용을 중심으로 비판한다. 그리고 이러한 재정적인 문제에 대한 비난은 헌금강요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진다. 또한 목 사의 세금문제에 대해서도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또한 교회를 매물로 사고파는 것을 인터 넷 캡쳐나 전단지 사진으로 찍어 올리며 비판한다. b. 대형교회와 교회 내부의 추태 교회의 대형화에 대한 비난이 많다. 특히 사랑의 교회 건축문제와 관련하여 비판이 거세다. 중세시대의 대형 성당건축과 비교하며 비난하고 있다. 그리고 교회 내부의 싸움이나 의견이 갈려 서로 대립하는 것도 비난의 대상이 된다. c. 목회자의 성윤리 문제 목회자의 성윤리 문제는 단골 비판 메뉴이다. 거의 모든 기사나 뉴스에 등장하는 성과 관련 된 문제는 빠짐없이 스크랩 된다. 여기에는 이단이나 정통교단의 구분이 없다. d. 교회의 정치세력화 교회의 수구보수성향 정치활동에 대해 많은 반감을 표한다. 몇몇 정치목사의 발언이나 기사 에 매우 많은 반감을 나타내고 있다(기민당 전광훈 목사, 서경석 목사 등). 클럽 안티 기독교의 반기독교 운동의 주된 타깃은 기독교의 독선적인 구원관 이나 기독교의 공격적인 전도 와 같은 것들이다. 이들에게는 최근의 롭 벨 목사(미시건 주 마스 힐바이블처치 담임)의 지옥은 없다는 주장을 담은 책 <사랑이 이긴다: 천국, 지옥, 세상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의 운명에 관한 책 A Book About Heaven, Hell, and the Fate of Every Person Who Ever Lived>이 환영할만한 책이 되고 있다. 이런 것에서 시작하여 이 클럽은 1성경에 대한 오류나 구약시대의 여러 가지 잔인한 사건들, 2신학이론상 논리적으 로 설명될 수없는 것들에 대해 반박, 3교회사에 나타나는 교회가 저지른 여러 가지 악행 들, 4한국교회의 악행들 등의 방향으로 지식의 범위를 넓혀간다. 반기독교 운동의 대중적이면서도 이론적 지지자들로 이들은 리차드 도킨스와 도올 김용옥 등을 자주 부각시키며, 성경비판과 관련해서는 급진적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성경관 을 정석처럼 따른다. 이 그룹은 나름대로의 활동의 방향성을 제시하는데, 그 중의 하나는 타종교(불교나 기타종교) 옹호를 위한 반기독교 운동은 지양하려 한다는 점이다. 일차적으 로 종교의 다원성을 인정하지 않는 기독교에 대해 공격하자는 취지를 가지지만, 보다 넓게 는 종교자체를 거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그중에 기독교가 가장 해악적인 종교이기 때문에 기독교를 공격한다고 주장한다. 3) 카페 안티기독교(http://cafe.naver.com/antichristianity) - 4 -
ㆍ 설립일 : 2003.12.9. ㆍ 회원수: 현재 6,796명, 게시글 20,085개, 총 방문자: 906,360명. ㆍ 카페 디렉토리: 주제 종교/봉사 > 개신교 ㆍ 카페설명 : 독선적이고 배타적이며 거짓 사랑 일삼는 기독교를 반대한다. 이 카페 역시 반기독교 운동의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기독교의 반사회적, 비윤리적 행위들 이다. 일본 쓰나미 등 자연 재해에 대해 하나님의 징계 혹은 심판의 경고라는 일부 목회자 들의 발언이 비판을 받고 있으며, 봉은사 땅 밟기 등 타종교에 대한 배타적 행위 등이 큰 빈축을 사고 있다. 이 밖에도 이 카페가 부각시키고 있는 기독교 관련 비양식적, 비윤리적 행위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SBS 창사20주년 특집 그것이 알고 싶다 에서 다룬 사건으로 소아암에 걸린 한 소녀를 기도로 치유하려 하다가 죽게 한 일 - 맹신 2청교도영성훈련원장 전OO 목사가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와 관련, 종교 집회에서 특정 정 당 지지를 호소하고, 참석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일 - 윤리의식저하 3교회헌금 32억 횡령 목사에 징역 4년 - 자금횡령 4 신도를 성노예로... 인면수심 목사 철창행 - 성폭행 5목사에 의한 어린이 강간사건 - 아동성폭행 6서OO, 이근안 등의 목사안수문제 성직자의 자격 7이혁재 폭행파문 기독교 공인들의 윤리문제(폭행사건) 8순복음교회 50주년 기념행사에 신국장로, 김주하집사의 사회와 이명박대통령, 정몽준의 원, 이상득의원의 격려사 등이 있었던 대규모 집회를 기독교의 우상 이라는 제목으로 비판 함 - 기독교인의 우상화 9국내 장기 기증을 장악한 기독교 단체에서 환자가 기증한 시신에서 장기나 피부, 뼈를 몰 래 뜯어낸 뒤 강남 지역 성형외과에 미용재료나 성형재료로 고가에 팔아넘긴 사건, 국내 최 대의 기독교 장기 이식을 받는 단체 대표 목사가 정부 후원금 1억 5천여만원을 횡령한 사 건, 그리고 KBS취재파일에서 조사한 것을 근거로 푸드뱅크에서 기부 받은 음식 중 90%를 전도를 위해 사용한 사건 등 자금횡령 및 지나친 구호선교 이 밖에도 이 카페는 하나님을 무자비한 살육자로 표현하는 등 선정적인 방식으로 기독교에 반감을 가지게 만든다. 이를 위해 이들은 야훼(여호와)의 명령으로 살육된 90만 5천 154명의 기록 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야훼가 죽였으나 그 수가 명 시되지 않은 소위 싹스리 살육 의 예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야훼가 실재로 존재한다 고 해도 이런 신에게는 머리 숙일 수가 없습니다. (http://cafe.naver.com/antichristianity/878)라고 덧붙인다. 이 카페는 기독교와 관련된 다음과 같은 용어집을 소개하고 있다. 이 용어들을 보 면 안티 기독교 운동이 기독교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가 잘 드러난다. 기독교를 사이비 종교와 철저히 일치시키고 있으며, 믿음을 세뇌화의 과정으로, 교회의 활동들을 돈벌이 영 업 행위로 매도하고 있다. 개독교(기독교), 야훼(하나님), 유대설화집(성경), 먹사(목사), 신도(성도), 맹신도(신실한 성도), 광신도(십 자가 군병), 고성방가(복음전파), 마케팅(복음화), 해외영업(봉사활동), 영업본부(성전), 세뇌(거듭남), 배교 - 5 -
(실족), 강요(권유), 심한 강요(강권), 노예근성(자유의지), 사회분란(영적 전쟁), 저주(축복), 논쟁(시험), 비 판(핍박, 탄압, 중상모략), 불륜(과로), 허풍(간증), 구타(안수기도), 환각(성령강림), 정신착란(성령체험), 푸 닥거리(심령부흥회), 헛소리(방언), 조상 및 장승(우상), 제사(우상숭배), 불신(정신질환), 우리 교회 및 종 파(정통), 다른 교회 및 종교, 그리고 종파(이단), 창조론(과학), 진화론(미신), 타종교(미신, 사탄), 안티개 독인(타종교 알바, 빨갱이), 내부비판자(적그리스도, 독사의 자식), 단군왕검(사이비종교 교주), 나는 맹신 자요 (아멘), 나는 광신도요 (할렐루야), 돈줄 만들기(구원) http://cafe.naver.com/antichristianity/27938. 때때로 이들은 개독의 마인드 를 알아보기 위해 교회를 염탐하기도 하며, 그 경험 들을 공유하기도 한다. 4) 기독교비평(cafe.daum.net/chiwoo) ㆍ 총 회원 : 3,962명(2012년 3월 22일 현재) ㆍ 하루 평균출석 수: 약 45명(2012년 1월~3월 기준) ㆍ 개설일: 2000년 10월 12일 ㆍ 운영진: 6명(카페지기: 아이디 척추접어라 ) 카페 기독교비평은 FAQ를 통해 이 사이트의 존립목적을 밝히는데, 그 내용이나 방식은 반 기련과 거의 일치한다. 곧 이 사이트는 기독교의 폐단을 고발하고 폐단 자체가 기독교의 경 전인 바이블을 토대로 나온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목적을 가진다. 그 방향성은 기독교의 반사회적, 반윤리적 행태를 고발하는 것과 함께 성경의 잘못된 점과 비합리적이고 모순된 점을 찾아 지적하는 것이다. 이 사이트는 자신들의 최종 목적을 기독교 자체가 이 땅에서 없어지는 것으로 설정하고 있다. 기독교비평에서 비판하는 기독교의 행동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1 단군상 훼손, 단군상 건립반대와 미션스쿨 건립(종교의 자유 침해와 건립반대와 건립에 따른 이중성 비판) 2 사찰 방화, 훼불행위, 불당 난입 3 PD수첩의 대형교회 비리 고발로 인해 MBC 안보기 집단운동, MBC에 소송 걸기 4 김용옥씨의 '논어' 강좌와 관련 입막기 서명 등 집단행동 5 공공장소에서 '불신지옥 예수천당' 외치는 고성방가 행위 6 목사, 기독교 지도층의 신도 강간, 사기로 신도들에게 재물 강탈 등 수많은 범죄 행각 7 진화론에 대한 모함, 비방. 진화론에 대항하여 창조과학회 설립 8 전국을 교회와 십자가로 뒤덮는 기이한 현상 9 민족 전통 문화를 부정 10 다른 종교와 사상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 및 배척 11 제사 지내지 말라고 시비 걸기, 이로 인한 친족, 혈육 간에 불화 조성 12 장승공원, 백제 불교 최초 도래지 기념공원 조성 등에 대한 집단 방해 행위 13 성남 일화 축구단 몰아내기 집단행동 14 '붉은 악마' 개명 압력 집단 시위, '백의 천사' 만들어서 '붉은 악마' 응원 방해 15 부천 중부 및 남부경찰서 내 경승실 철폐 요구 집단 시위 16 화폐도안변경촉구추진위원회(위원장 안상준 목사) 만들어 화폐도안 변경 서명운동 17 대중 음악, 뉴에이지 음악 등을 악마와 사탄의 흉계라고 매도 18 기복신앙과 미신행위 - 6 -
이 밖에도 기독교비평은 반기련과 유사한 차원의 안티 바이블 운동을 벌이고 있으 며, 더 나아가서 기독교 신학에 대한 나름대로의 반대 논리를 펼치고 있다. 특히 기독교 유 신론에 대한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비판을 시도한다. 기독교 유신론의 증명 방법들을 소개하 고, 이를 하나씩 부정해가는 방식이다. 이들이 반박하는 유신론 증명 방법들은 1존재론적 증명, 2변화로부터의 증명, 3우연성으로부터의 증명, 4우월성의 정도로부터의 증명, 5조 화로부터의 증명, 6도덕론적 증명, 7종속론적 증명, 8불의치유론적 증명, 9성경으로부터 의 증명 등인데, 이에 대하여 기독교비평은 무신론적, 무목적론적, 비계보론적 입장에서의 반대 논리들을 제시하고 있다. 2. 반기독교 운동의 동향과 전략 위에서 살펴본 반기독교 운동 사이트들이 대체로 2000년 이후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것 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동아리 형태의 감정적 반기독교 운동을 펼치던 단계에서 10년 안 팎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보다 체계화된 시민단체로까지 발전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반기련의 경우 개박연 (개독교 박멸을 위한 안티연대)과 다음클럽안티기독교(운 영자 아뒤, 러셀, 꽹과리)가 합해서 2003년 9월에 반기독교시민운동연합으로 탈바꿈하였다 (주요 멤버: 러셀님, 옹기쟁이, 꽹과리). 그러다가 2005년 5월에 반기련 중앙사무실이 개소 되고 유급 상근자(옹기쟁이)까지 생겨나게 되었다. 위에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안티기독교 사이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전형적인 운동 의 패턴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이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목회자의 불륜이나 교 회의 비리 등 공분을 불러 일으킬만한 사안들이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이런 개별적 행태들 을 도출하는 일반적 틀을 성경에서 찾아 양자를 매치시키고 있다. 이를 통해 기독교는 항상 그럴 수밖에 없다는 일반화를 유도한다. 여기에다 기독교를 부정하는 권위 있는 무신론자들 이 저술한 도서나 논리를 사용하여 이런 일반화를 뒷받침한다. 최근의 동향으로 눈에 띄는 것은 기독교를 보수정치와 연결시켜서 기독교에 정치적 색채를 입히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기독교 = 이명박정권 = 친미의 등식이 형성된다. 예를 들어 박봉팔닷컴의 한 게시물에서는 대한민국에서 기독교가 큰 소리 치는 이유를 기독교가 미국을 배경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국 기독교는 기복적이고 기득권층을 배경으로 하는데, 이들이 기대는 부동산 거품이 꺼지고 미국의 영향력이 퇴조하 면 한국의 기독교도 자연히 그 영향력을 상실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같은 밥솥 의 주장 은 한국 기독교를 친미, 보수 성향으로 고착시키려는 안티 운동의 일반적 시각을 반영한다. (위 출처 http://www.parkbongpal.com/bbs/board.php?bo_table=b01&wr_id=103231) 이와 더불어 반기독교 운동에 환경보호론자들의 가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데, 이 부분에 있어서도 4대강 반대 = 이명박정권반대 = 기독교반대의 등식이 형성되고 있 다. 우리는 이 배후에 정치적 성향뿐만 아니라 환경 운동에 우호적인 단체나 인사들의 반기 독교 운동 가세가 이루어질 가능성에 대해서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3. 기타 기독교에 도전이 되는 최근의 현상들 과거 기독교가 민족 운동이나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던 시기에는 신 불신을 떠나서 교회 밖 에 두터운 기독교 우호층을 두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들은 누군가가 종교를 찾을 때 언제라 - 7 -
도 기독교를 추천할 준비가 되어 있던 기독교의 친구들이었다. 교회가 이런 친구층을 두텁 게 가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른다. 지금은 상황이 역전되어 버렸다. 교회는 두 터운 친구층보다 두터운 적대자층에 둘러싸여 있다. 이들은 종교를 가지고 싶다면 기독교 (개신교) 외에는 다 가지라고 말한다. 기독교에 적대적인 활동적 반기독교 운동뿐만 아니라 지성인들 사이의 무신론자 그 룹의 발흥에 대해서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비록 이들이 활동적 반기독교 그룹 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들의 존재나 활동은 언제든지 반기독교 운동의 이론적 자원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1년 2월 KAIST에서 한 기독교 과학자의 명예박사 학위 수여를 계기로 촉발된 진화론-창조론 논쟁의 산물로 그 학교 안에 프리 싱커스(Free Thinkers)라 는 무신론자 동아리가 결성되었다. 유사한 종류의 무신론자 모임이 서울대와 중앙대에서도 준비되고 있다고 한다.(조선일보 2012.2.25-26일자) 또 하나 우리가 주시해야 할 최근의 현상 중 한 가지는 종교 없는 종교 의 대두이 다. 이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적 조류 속에서 기존의 기성종교들을 넘어서 어느 특정 종 교에 가입하지 않고서도 종교적 욕망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흐름이다. 최근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의 대중적인 작가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은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서울: 청 미래, 2011)라는 책에서 무신론자의 종교를 강하게 옹호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그의 출발점 은 한편으로는 계속해서 철저한 무신론자로 남아 있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종교가 유용 하고, 흥미롭고, 위안이 된다는 사실을 때때로 발견할 수 있다 (12쪽)는 전제이다. 물론 그 의 관심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다. 그가 종교 의 이름으로 추구하는 것은 계시보다는 지 혜이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종교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 본적인 두 가지의 가장 큰 필요성 때문이다. 그중 첫 번째는 몸속에 깊이 뿌리박힌 이기적 이고 폭력적인 충동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함께 살아야 한다는 필요성 이며, 두 번째는 직 업상의 실패, 꼬인 인간관계, 가족의 죽음, 자신의 노화와 사망 등에 대한 우리의 나약함에 서 비롯되는 끔찍스러운 고통에 대처해야 할 필요성 이다(13쪽). 그는 종교의 관념과 의식 을 종교 제도 로부터 분리시키고 싶어한다(16쪽). 접 시에 담긴 음식을 모조리 먹어야만 한다 (18쪽)는 강성 신학이 기존 종교의 실패를 불러 왔 다고 진단하는 드 보통은 신학적 상부구조 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소외 현상을 극 복하고 공동체적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길이 있는지를 묻고 있다. 그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가운데서도 인간을 부드럽게 제자리에 놓아줄 만한 의식 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한 다(215쪽). 초자연적 세계에 대한 믿음을 부정하면서도 우정, 공동체, 감사, 초월 같은 개 념들과의 규칙적이고 전례적인 만남 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한다(315쪽). 그런 점에서 그 에게는 여전히 종교 가 필요하고 무신론자의 예배 와 설교 가 필요하며 또한 교회 가 필요 하다. 드 보통은 이런 필요를 선구적으로 내다보았던 오귀스트 콩트(Auguste Comte, 1798-1857)의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곧 인류의 종교 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단지 개인적 차원에 머물지 않고 제도화 된 무신론자의 종교 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 서 그는 콩트가 부르짖었던 10만 사제 론을 다시 들고 나온다. 이 사제들은 남을 도우려 는 강한 열망과 문화적, 미적 관심을 소유한 사람들 로서 동료 시민의 행복 능력과 도덕 관념을 드높이는 직무를 수행하고 치료 목적의 대화를 나누고, 세속적 설교를 행하고, 전 문용어를 배제한 쉬운 철학 논문을 저술 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321쪽). 콩트나 드 보통이 가진 비전은 단지 기독교의 파괴 내지는 부정이 아니다. 그것을 - 8 -
넘어 세속 종교의 수립이다. 기존의 접시에 담긴 음식을 모조리 먹기 를 강요하는 강성 신 학과 종교 제도를 대신하여 인류의 필요-정치, 가정, 문화, 직장 등이 이미 담당했던 범위 를 넘어서는 것들-에 부응하는 제도가 있어야 한다. 는 것을 부르짖고 있다(326쪽). 무신론 자인 드 보통과 같은 사람이 말하는 종교적 언어는 상당히 매력적인 측면을 가진다. 그는 기독교의 건축과 예전, 음악, 미술 등에 깃들어 있는 초월의 숭고미를 매우 심도 있게 잘 포착해내고 있다. 다만 그것이 지향하는 방향이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인간의 자기 성찰 이라는 점에서 그 출발점과 지향점의 차이를 가진다. 드 보통의 접근이 매우 대중적이라고 한다면, 보다 신학적이고 전문적인 차원의 종교 없는 종교 의 추구가 미국 시라큐스 대학(Syracuse University)의 종교 및 인문학 교 수인 존 카푸토(John D. Caputo)에 의해 표방되고 있다. 그의 책 <자끄 데리다의 기도와 눈물>(The Prayers and Tears of Jacques Derrida: Religion without Religion, Indiana Univ. Press, 1997)은 그 제목이 잘 보여주는 것처럼 데리다의 종교 없는 종교 개념을 깊 이 있게 파서 정리한 책이다. 카푸토는 데리다를 따라 하나님의 존재 중심의 존재론적 신학을 거부하는 출발점을 취한다. 데리다처럼 카푸토 역시 하나님 자신을 부정하거나 제거하고자 하는 관심을 가지지 는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자 하는 것이 그들의 주된 관심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주권성(sovereignty)을 전통 신학과는 다르게 생각하자는 것 이다. 특히 성육신 신학에 있어서 하나님이 인간의 약함을 취한 것은 전통 신학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자신 됨(ipseity)을 그대로 간직한 채, 다시 말해서 그의 주권성의 유보 없이 단지 경륜적/경제적 (economic) 차원에서 약함 또는 취약함(vulnerability)을 취한 것으로 이해 된다. 카푸토가 볼 때 그것은 일종의 투자 (a kenotic investment) 논리이다. 곧 다른 이 익을 노린 일종의 경제 행위라는 것이다. 카푸토는 비조건적 방식으로 예수의 약함을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 해서 예수의 약함 안에서 하나님의 주권적 자유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는 약함 외 에 달리 취할 것이 없다. 하나님 역시 그야말로 취약하다. 약함과 취약함은 하나님이 바로 그런 어떤 것이지, 하나님이 자유롭게 취하기로 선택하는 어떤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정말 로 약하고 취약하기 때문에 그는 그것을 자발적으로 취할 수 있는 자유가 없다. 2) 여기에서 카푸토는 약함의 신학 (theology of weakness)과 사건의 신 학 (theology of the event)을 도출한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예수의 존재 양식을 취하는 것이다. 미움과 공격 앞에서 사랑과 용서의 존재 양식을 취하는 이것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여지는 사건 이다. 이런 사건들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다. 사건의 신학에 있어서 예수 는 무언가가 일어나는 장소, 또는 어떤 사건의 장소, 표현, 육적 형태이다. 그는 단지 비유 들을 말하는 자가 아니라, 그는 이 사건의 비유이다. (위의 글 40쪽) 따라서 예수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예수의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곳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된다. 반면 예수의 사건이 발생하는 곳에서는 그 이름의 차이는 상관이 없다. 예수 이름의 사건들은 많은 이름으로 많은 횟수로 많은 장소에서 일어나며... 예수나 기독교, 종교나 하나님의 이름과 상관없이 일어나기도 한다. (위의 글 40-41쪽) 카푸토에게 있어서 신학은 약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약함 을 전제하기 2) John D. Caputo, "The Sense of God", in Lieven Boeve and Christophe Brabant eds., Between Philosophy and Theology: Contemporary Interpretations of Christianity (Burlington: Ashgate, 2010), 27-41 (39). - 9 -
때문이다. 그는 데리다의 이름으로 강한 신학 또는 고백적 신학을 해체하려 한다.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거의 사건 이란 이름으로 대체된다. 그는 사건 의 개념을 데리다와 들뢰즈 (Gilles Deleuze)에게서 배웠다고 밝힌다. 한 면에서 이 사건은 들뢰즈를 따라 인간 속에 내재하는 창조적 잠재력 또는 됨 (becoming)의 능력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또 다른 한 면에서 이 사건은 데리다를 따라 외재적 차연 의 고리 및 메시아니즘적 옴 (to-come)으 로 이해되기도 한다. 인간의 다양한 됨 과 미래를 향한 열려짐 속에서 끊임없이 사건 은 재연된다. 카푸토는 강성 고백적 신학의 해체를 기반으로 하는 철저한 종교다원주의적 입장 을 견지한다. 비록 반기독교 운동 그룹들이 이런 종교 없는 종교 를 표방하고 나오지는 않 지만, 그들이 반대하는 기독교의 배타적, 독선적 성향을 벗어버렸다는 점에서 반길만한 대 안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극도의 실용주의적 소비 사회 속에서는 이와 같은 종교 없는 종교 가 많은 사람들의 영적 욕구를 만족시켜줄 수 있는 대체 종교로서의 자리 를 더욱 크게 차지해 갈 것이다. III. 대처 방안들 1. 안티-안티기독교 운동 교계 일각에서는 안티기독교 운동에 대응하기 위한 안티-안티기독교 운동을 시작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국민일보 2012.2.17일자 기사에서는 현재 교계에서 기획 중인 1인터넷선교 사 10만 명 양성 운동, 2인터넷 사역자 간 네트워크 형성, 3반기독교 운동에 대한 법적대 응 등의 방안들을 소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은 안티기독교 대응 10계명(제공: 현대기독교역사 연구소)이 제시되기도 한다. 1.기사와 토론글의 모니터링 2.추천과 반대의 글 적극 활용 3.좋은 글을 정기적으로 올림 4.명 예훼손 글 삭제 및 법적 조치하기 5.왜곡된 정보 바로 잡기 6.한국교회 잘한 부분 알리기 7.포 털 등에 항의전화 및 방문 8. 글을 잘 쓰는 논객 및 인터넷 팀 양성 9.영적 싸움을 위한 중보 기도 10. 소셜네트워크의 적극 활용 오늘날과 같이 악의적이고 무분별한 안티기독교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이상과 같은 안티-안티기독교 운동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네거티브 전략에 지나지 않는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안티기독교 운동이 일어날 수 있는 토양을 정화 하는 일이 시급하다. 하나님과 성경과 교회를 곡해 및 음해하는 사람들은 역사상 언제나 있 어 왔다. 그 자체를 근원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길은 없다. 문제는 기독교가 욕먹을 일이 있어서 욕을 당하는 일이다. 교회가 자정의 노력 없이 대증적 대응만을 하려 한다면 문제는 더 크게 증폭되고 말 것이다. 2. 안티 바이블 운동에 대한 대처 우리는 위에서 반기련 등이 펼치고 있는 바이블 19금 지정 서명 운동 을 주목한 바 있다. - 10 -
나아가서 오늘날에 일어나는 기독교의 비리 현상들을 성경의 특정 부분과 연결시킴으로써 기독교가 태생적으로 불건전 집단인 것처럼 매도하는 전략이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한 면에서 이들이 펼치는 안티 바이블 운동은 맞대응의 수고를 아깝게 만든다. 이들의 관심 은 진정으로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성경의 하나님이 전체적으로 어떤 분인지, 그리 고 그리스도의 값없는 은혜의 복음을 통해 성경이 어떻게 사람을 새롭게 하는 능력을 가지 는 책인지를 알고자 하는데 있지 않다. 처음부터 부정을 위한 탐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오직 부정적인 부분만 보일 뿐이다. 따라서 이들의 성경 읽기는 피상적이고 왜곡된 성경 이해에 근거한 악의적 흑색선전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이들이 펼치는 안티 바이블 운동의 파장이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이 나 청소년들에게 성경 속의 끔찍한 장면들만을 간추려서 보여주면 하나님에 대해 강한 거부 감을 가지게 되지 않을 수 없으며, 처음부터 성경을 진지하게 알아볼 마음을 닫아버리게 된 다. 그러므로 성경 속의 예민한 부분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토론이나 가르 침의 기회가 꼭 필요하다.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이런 운동에 다 면역 력이 형성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에게도 성경 해석의 바른 원리들을 잘 가르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런 문제들에 대해 각자가 처한 자리에서 훌륭한 변증가들이 될 수 있도록 양육해야 한다. 특히 오늘날은 교회 안에서조차 성경을 읽고 자세히 가르치는 일 자체가 사라지거 나 줄어들고 있다. 이는 특히 청소년층으로 내려갈수록 더욱 심각하다. 성경의 내용 자체를 알지 못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안티 바이블 운동이 제시하는 성경의 몰랐던 내용들은 충격 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안티 바이블 운동을 이길 수 있는 길은 성경을 더 많이 읽고 바르게 알도록 만드는 것이다. 주일학교에서도 유희나 율동, 재미있는 활동 등에만 열 을 올릴 것이 아니라 성경 퀴즈나 암송 같은 사라져간 것들 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 3. 리처드 마우의 무례한 기독교 극복 운동 안티기독교 운동이 기독교에 대해 가지는 반감은 주로 그 배타성과 독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것이 그들이 기독교의 전도나 선교 방법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이 들의 반감 때문에 기독교의 선교가 위축되거나 자제되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우리는 사람의 요청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명령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 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리처드 마우 (Richard Mouw)가 말하는 무례한 기독교 가 되어 있지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마 우는 <무례한 기독교>로 번역된 한 책에서(서울: IVP, 2004) 다원주의 사회를 사는 그리 스도인 시민교양(civility) 이 어떤 것이 되어야 할 것인지를 논하고 있다. 지금처럼 종교와 신념과 가치관을 달리 하는 다양한 집단들이 함께 공존하는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갖 추어야 할 공적 예의가 무엇인지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마우의 관심은 확고한 신념과 시민 정신을 두루 갖춘 사람 을 많이 배출하는 것이 다. 이를 위해 마우가 생각하는 두 전략 중 하나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더 확고한 신념을 갖도록 돕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더욱 교양을 갖추도록 돕는 것이다 (22쪽). 마우는 자신이 말하는 시민교양 이 상대주의적 관점을 가지자는 것이 아님 을 강조한다. 이미 다원주의화된 사회 속에 그리스도인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 11 -
함께 살아가는 공동의 삶 의 공적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마우는 그리스도인이 빠지기 쉬운 제국주의적 제자도 와 승리주의 의 함정을 잘 지적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승리는 우리 신앙의 핵심이지만, 그 승리자의 전리품을 자기 것 이라고 주장하는 태도는 위험한 승리주의 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마우는 이렇게 말한 다. 성경의 저자들이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승리에 대한 확신을 표현하라고 격려할 때, 그 말의 의미는 지금 여기에서 승리의 상급을 요구하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리스 도의 구속 사역의 수혜자임을 가장 잘 증명하는 길은 그분이 확보해 두신 열매를 기다리면 서 그리스도와 같은 방식으로 기꺼이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다. (172쪽) 교회는 그리스도인의 공적 예의를 배우고 훈련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장소이다. 다만 교회가 사회 속에서 분리된 자신만의 섬처럼 존재할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관심 가지 시는 더 넓은 공공의 사회를 항상 대면하고 있다는 의식 속에서 남을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믿음을 당당하게 말하는 법을 훈련해가야 할 것이다. 4. 교회의 공공 책임성 제고와 그리스도인 덕 회복 운동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공공의 덕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가? 그런 것은 아니다. 바울은 빌 립보서 4:8에서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뭣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 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고 명한다. 이것들을 생각하라 고 할 때 이것들 (tau/ta) 은 바로 앞에 나오는 덕과 기림 으로 요약된 그 앞의 여섯 가지 항목들이다. 바울은 이곳에서 그의 서신들 가운데 단 한 번 덕(avreth,)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특 히 로마의 식민도시였던 빌립보에서 그리스도인의 공공적 탁월성을 가리키는 덕이 꼭 필요 했던 것이다. 그 구체적 예들로 제시되는 여섯 가지의 항목들은 꼭 종교적 용어에 국한되는 단어들이 아니다. 생각이나 행위가 거짓되지 않은 무엇이나 참된 것들(o[sa avlhqh/), 비루하거 나 비난받을만한 것이 아닌 무엇이나 존경받을만한 것들(o[sa semna,), 불의하거나 부당하지 않은 무엇이나 의로운 것들(o[sa di,kaia), 도덕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더럽지 않은 무엇이나 정 결한 것들(o[sa a`gna,), 혐오스럽거나 기피의 대상이 아닌 무엇이나 사랑스러운 것들(o[sa prosfilh/), 그리고 화나 역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닌 무엇이든 칭찬의 말들(o[sa eu;fhma)이 그것이다. 바울은 빌립보의 그리스도인들이 그 공공적 차원 속에서 이런 것들을 계속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따라서 그 탁월성을 세상 앞에서도 드러내는 삶을 보이라고 요구 하는 것이다. 이것이 공적 사회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기본적 자질이다. 바울은 은혜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 속에서의 일반적 덕이 무관심이나 배제의 영역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인 관심과 추구의 영역임을 분 명히 하고 있다. 바울이 여기서 언급하는 덕의 항목들은 그 당대의 스토아 철학자들이 강조 하는 덕목들과 많은 면에서 중첩된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바울이 스토아 철학의 덕 목록 을 그대로 가져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예를 들어 Joachim Gnilka). 하지만 그보다는 볼프 강 슈라게(Wolfgang Schrage)가 말하는 개방된 수용 (open acceptance)과 선택적 재정 의 (selective qualification)의 관계로 보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3) 바울은 당대 도덕철학자 3) Wolfgang Schrage, The Ethics of the New Testament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8), 200. - 12 -
들의 가르침을 따라가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창조의 삶을 살면 그리스도인의 덕은 세상의 공적 삶의 영역에 있어서도 그 탁월성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이 부분에서의 바울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단 지 교회 안 만이 아니라 교회 밖, 공공의 영역까지도 그리스도인 사역의 현장이 되어야 한 다는 것이다. 돈 카슨은 오늘날의 복음주의가 사유화된 종교(privatized religion)로 축소되 는 현상을 심각한 어조로 경계하고 있다. 4) 이렇게 될 때 마이클 호톤(Michael Horton)이 지적하는 것처럼 교회는 세상 속에 있으나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닌 존재 대신 세상에 속하 나 세상 속에 있지는 않는 존재 가 되기 쉽다. 5) 이는 교회의 가장 큰 불행이다. 우리가 공공 영역 속에서의 교회의 사명을 생각할 때 데이빗 웰스(David Wells)가 복음주의를 구분하는 기준을 잘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6) 그는 교리적 내용보다는 세상 속 에서 도덕적 무게가 차지하는 비중에 따라 그 도덕적 무게가 아무것도 없는 복음주의와 합 당한 도덕적 무게를 가진 복음주의를 구분한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극단적 상대주의와 다 원주의가 지배적인 사회 속에서 덕은 사유화되는 경향을 가진다. 예를 들어 이 시대의 명예 의 덕은 돈이 많은 사람이나 인기가 많은 사람에게 돌아간다. 가치 또한 개인적 기호의 다 른 이름일 뿐이다. 이런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그 합당한 도덕적 무게 를 다 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웰스의 주된 고민이며 또한 우리의 고민이기도 하다. 비록 우리가 전례 없는 안티기독교 운동의 도전에 직면해 있지만, 우리의 시각이 지금 당장의 전선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이것을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던 인식의 회복을 위한 기회로 받아들여야 한다. 교회가 자기의 세계만으로 파고들 때 이것이 사회로부터의 얼마나 큰 지탄을 유발하는 일인지를 잘 배워야 한다. 교회가 더 넓은 사회 속에서의 공적 유익을 위하여 힘쓰면 힘쓸수록 그리스도인 덕의 탁월성은 더 빛나게 될 것 이고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 는(행 2:47) 결과도 회복하게 될 것이다. 5. 목회자 정체성의 재정립 및 비윤리적 목회자 제제 장치 한국 교회에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헌신되고 정직한 목회자들이 많이 있다. 이들의 수고와 봉사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은 주님 오실 때까지의 아픔일 것이다. 문제는 이런 신실 한 수고를 좀 먹는 소수의 욕먹는 목사들이다. 이 땅에서 목회자들이 공멸을 경험하지 않으 려면 목사의 이름을 가진 문제 유발자들과 먼저 선을 긋는 일이 필요하다. 선의의 목회자들 이 일평생 짓지도 않을 잘못을 보험하기 위해 목회자의 잘못에 대해 관대한 입장을 유지하 려 한다면 그 틈을 파고드는 일부 문제 유발자들에 의해 목회자 전체가 매도되는 불상사가 계속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목회자의 아이덴티티를 제고하고 그 질적 수준을 끌어 올리며 일부 비행들을 예방하기 위한 노력을 다 함께 기울여야 한다. 가장 먼저 목회자 양산을 막아야 한다. 어디서 어떻게 훈련을 받았는지도 알지 못 하는 숱한 목사들이 배출되어 탈선된 행동들을 할 때 모든 욕은 다 선의의 목사들에게 돌아 오게 되어 있다. 목회자의 소명의식을 드높이고 그 실력이나 덕성의 면에서 기본적 균등성 4) Don Carson, Christ and Culture Revisited (Grand Rapids: Eerdmans, 2008), 228. 5) Michael Horton, "How the Kingdom Comes", Christianity Today 50/1, 46, Carson, Christ and Culture Revisited, 228에서 재인용. 6) David F. Wells, Losing Our Virtue: Why the Church Must Recover Its Moral Vision (Grand Rapids: Eerdmans, 1998), 15-19. - 13 -
을 갖춘 목회자들을 배출해야만 한다. 개척도 어려운 오늘날의 상황에서 수많은 목회자들을 배출해 놓으면 사역지를 찾지 못하는 개개인의 불행을 넘어 그들에게 목사 면허를 준 한국 교회 전체의 불행을 피할 수 없다. 지금은 목회자의 양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그 질을 높이 고 균등화하는 방향을 추구해야 한다. 이는 신학교의 학생수를 조정하는 데서부터 그 작업 이 시작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일선 목회자들 가운데서도 탈선행위를 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강력한 규제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은 행위를 한 목사들도 조금 지나면 돌 아서 제자리로 돌아오는 이런 현상은 교회가 스스로 자정 능력이 없는 집단이란 것을 공표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먼저는 불미스러운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고 살피는 일 이 필요하겠지만, 이런 일들이 있을 때에는 손이 안으로 굽는 온정적 조치로 그칠 것이 아 니라 아픔을 감수하는 자정 조치가 이루어져야만 교회가 살아 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특히 개 교회주의에 치우쳐 있는 한국 개신교회는 이런 면에 근본적인 취약성을 가질 수밖 에 없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을 속히 찾아서 제도화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6. 대형 교회 중심의 교회 이미지 쇄신 우리는 안티기독교 운동의 반감이 주로 대형 교회에 집중되는 것을 본다. 이는 대형 교회들 에서 언제나 많은 문제들이 일어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동시에 대형 교회들을 종교 권력의 상징으로 보는 시각이 작용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안티기독교 운동이 얼마만큼 종교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 안에도 무신론에서부터 이신론적 색 채의 기독교, 기독교 외의 종교 등의 다양한 스펙트럼이 뒤섞여 있을 것이라고 본다. 어찌 되었든 이들의 기독교 비판의 기준은 기독교가 단순하고 비권력적이며 친서민적이고 이타적 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크면 클수록 비판자들의 기독교에 대한 인식은 더 이상론적인 것이 된다. 물론 우리의 기준은 그런 이상론이 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변함없는 기 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정신을 따르고 실천하기보다 대형 교회들에 의지하여 종교 생활 을 누리기를 더 선호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자세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기독교의 권력화에 일조하는 셈이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라서 언제나 자기를 부정하며 자신을 탈권력화하고 낮아져서 섬기는 자리에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 교회가 대형 교회들로 대표되는 시대를 종식시켜야 한다. 그보다는 예수 그리 스도의 정신을 더 잘 따르고 반영하는 교회들이 진정한 대표교회라는 인식을 확산시켜 가야 한다. 규모에 상관없이 교회들이 그리스도의 정신을 따라 복음 본질 회복 운동을 벌이며 섬 김의 새 문화 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한국 기독교는 안티기독교 단체들이 평가하는 것이 아 니라 교회의 주님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평가하신다. 우리가 지금 안티 단체들의 욕을 좀 먹는 것은 괜찮지만 주님께서 우리를 책망하신다면 우리는 견디지 못할 것이다. 역으로 주 님을 기쁘시게 하는 살아 있는 교회 운동을 더욱 활발히 이루어 나간다면 안티 단체들의 비 방은 설 자리를 잃게 되고 부끄러움이 그들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다. 7. 전문적 대처 기구의 운용 - 14 -
좀 더 현실적인 차원에서 오늘의 한국 교회가 반기독교 운동을 포함하여 오늘날의 시대적 사조를 좀 더 민첩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진단하고 그에 따른 선교적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전문 인력과 기구를 구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의 재정을 좀 더 효과적으로 사용하 기 원하는 몇몇 교회들이 힘을 합해서 해석학 연구소 같은 것을 만들어서 운영한다면 지속 적으로 선포 사역(텍스트)과 그 현장(콘텍스트)의 다리 잇기 작업을 감당해갈 수 있을 것이 다. 이제는 더 이상 교회들이 건물 늘리고 자체 시설 갖추는데 혈안이 될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읽어내고 다음 단계를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전문 인력들을 양성하고 후원하는 데 연합적인 힘을 쏟아야 한다. IV. 나가는 말 안티기독교 운동의 역사는 성경만큼이나 깊다. 물론 오늘날은 인터넷 등을 통하여 그 확산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다는 차이는 있지만, 그 본질은 예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다. 초대 교회의 경우, 우리는 그 대표적인 예를 베드로전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베드로는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 (벧전 2:12)의 안티기독교 활동을 지적하고 있다. 그들의 비방은 전혀 근거가 없고 부당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상황 속에서도 성도들이 부름받은 대로 선한 행실을 실천하며 살면, 마지막에는 그런 비방하는 자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벧전 3:16).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난의 현실이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베드로가 이사야 8:12의 말씀을 기독론적으로 변용하여 적용하고 있는 것처럼,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 로 삼아 (벧전 3:15)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이다. 죽음을 이기신 그분이 우리의 주가 되시기 때문이며, 또한 우리의 고난이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복 있는 자의 고난이며(벧 전 3:14, 참고, 마 5:10), 그 고난의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 (벧전 3:16) 이기 때문이다. 이런 자세를 가지는 것이 세상에 대하여 담대히 증거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된 상태를 갖추는 것과 같다. 베드로서신이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은 이중적이다. 한 면에서 세상은 하나님의 창 조의 대상이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할 회복의 대상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한 면에서 세상 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계속적으로 반역 가운데 머물러 있다. 특별히 이방인의 세상은 그 악 한 행실로 대표된다. 그 안에는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 을 비롯하여 악독, 궤휼, 외식, 시기, 비방하는 말, 음란, 정욕, 술 취함, 방탕, 연락, 무법한 우상숭배 등의 악행들이 가득하며, 정당한 권위를 훼방하며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 행하는 자들이다(벧전 1:18, 2:1, 4:3, 벧후 2:10). 그들이 성도들을 비방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그들의 극한 방 탕 에 동조하지 않는 것 때문이기도 하다(벧전 4:4). 그러나 세상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악 행은 돌아보지 아니하고 교회를 비방하는 일에 대단히 민첩하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더 욱 더 선한 행실에 힘써야 하는 이유이다. 불필요한 비방거리들을 주지 않고, 오히려 부당 한 고난 속에서도 선을 행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통해 비방하는 자신들의 참 모습이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오늘날은 어떠한가? 부끄럽게도 많은 경우에 있어서 안티운동의 불씨는 교회 자체 가 공급하고 있다. 교회가 그리스도 때문에 고난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악행 때문에 고난을 받고 있다. 지금 교회 안의 뜻 있는 사람들이 교회를 걱정하며 비판하는 동일한 문제들이 - 15 -
안티 운동가들의 관점에서는 교회를 부정하고 박멸하기 위한 최상의 호재로 작용하는 것이 다. 그러므로 안티 운동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일차적인 길은 교회가 새로워지는 길 뿐이 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돌아감으로써만 항상 새로워질 수 있다. 우리가 이 시대의 독특한 난제 하나를 직면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에 대한 새로운 해답을 찾아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이미 해답은 우리 앞에 주어져 있다. 교회는 자신이 물려받은 그 오래된 복음 위에 굳건히 발을 딛고 서서 자신이 속하여 있는 오늘날의 상황을 좀 더 민감하게 살피며 주님께로부터 부름받은 자신의 본질의 자리를 잘 회복하기만 하면 지금의 위기를 넘어 다시 한 번 총체적 부흥의 기회를 맞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