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 統 調 8 9-1 0-7 3 7.7 特 別 宣 言 과 南 誇 韓 關 係 設 定 의 位 相 諸 問 題 및 그 展 望 l 9 8 9.,'.y.'"a. U.-.i '.;-,-'.(."'.''.-t..u-. -.-.'를 任 者 ;.?. 永 俊 ( 江 原 大 ) t3..:. 小.,.'5; 4?:i??l: -7;:..j'.;J ; ::... 國 土 統 - 院
冊 을 내면서 l989 年 7 B 7 日 盧 泰 愚 대통령은 변화하는 國 際 情 勢 와 統 一 에 대한 國 民 的 輿 望 에 부응하여 南 北 韓 關 係 와 誇 方 外 交 에 대한 새로운 地 平 올 열어야 하겠다는 政 策 意 志 에서 r7 7 特 別 宣 言 J올 關 明 하였숩니 다. 이 報 告 書 는 7.7 宣 言 l 周 年 에 즈출하여 이 宣 言 에 따 른 南 北 韓 關 係 의 位 相 에 대한 再 照 明 과 그 麗 望 을 살펴 보고자 g 囑 한 特 殊 課 題 硏 究 結 果 로 當 院 의 政 策 調 査 硏 究 계 획의 일환으로 推 進 되었습니다. 아울러 여기에 收 錄 된 내용이 當 院 의 見 解 와 반드시 致 하는 것은 아님올 밝혀두면서 關 聯 齋 究 에 一 助 가 되기 를 期 待 합니 다. 1989. 10 調 査 硏 究 室
要 約 文 l. 우리의 統 一 問 題 를 主 體 面 에서 보면 南 北 韓 이 當 事 者 이며 周 邊 變 數 로서 는 4 大 國 이 있고 또 對 外 關 係 가 國 內 政 治 의 延 長 이라는 民 主 國 家 의 政 治 的 메카니즘에서 보면 國 內 政 治 (JlQ 散 )가 統 一 문제에 대한 중요한 變 數 로서 작용한다. 따라서 우리의 民 族 共 同 禮 를 바탕으로 하는 r 體 리 聯 合 J구상은 첫째로 北 韓 의 r 料 출MlJJ 方 案 에 대한 對 應 論 理 的 인 시각에서 補 竟. 體 系 化 되어야 찹은 를른, 둘째로는 對 北 關 係 가 封 美 關 係 나 對 北 方 關 係 등!tt 外 關 係 일반의 基 本 的 인 틀속에서 有 撚 的 이며 調 和 的 으로 追 求 되어야 하며 또 세째로는 議 會 料 民 主 政 治 過 程 을 통한 統 - 論 議 의 國 內 r 政 治 的 인J 賂 散 이라는 政 治 的 시각에서 補 充. 體 系 化 되어야 한다. 2.!? 料 b 對 應 論 理 의 開 發 올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事 項 에 대해 留 意 하는 것이 그 視 角 의 定 立 에 有 益 할 것이다 燎 l) 南 北 韓 의 統 一 方 案 을 歷 史 的 인 脈 終 에서 時 系 列 的 으로 分 析. 比 較 하여 北 韓 提 議 의 持 縮 性 과 可 誇 性 즉 戰 略 的 인 一 貫 性 과 戰 術 的 인 伸 締 性 2 ) 黨 의 統 一 路 綠 과 政 權 次 元 의 統 一 方 案 의 構 造 的 인 連 繫 性 特 히 5차 黨 大 會 (7o) 이래의 理 의 r 南 郭 鮮 革 命 J 論 理 와 統 一 과의 相 關 關 係 ( 密 着 性 )에서 聯 邦 制 의 實 體 를 把 握 準 3) 對 話 의 努 口 가 政 權 機 關 이 아닌 黨 外 廓 團 體 인. r 祖 國 平 和 經 一 委 J이머 따라서 政 府 次 元 의 r 崙 商 J이 아니라 汎 社 會 的 인 r 政 治 工 作 J이 主 形 態 라는 事 實 4) 따라서 聯 邦 料 의 實 體 (속알)인 人 民 民 主 主 義 革 命 과 形 態 (거글)인 聯 邦 料 ( 赤 化 ) 流 -이 戰 略 的 으로 料 合 되어 있으면서도 r 聯 邦 料 J라는 낱말 로서 統 一 意 志 에 대한 政 治 名 分 의 장악을 추구하고 있다는 點 5) 그러면서도 그들은 4o년대 이래 提 議 해온 核 心 的 인 戰 略 的 條 件 을
聯 邦 制 의 先 決 條 件 속에 한데 묶 어 놓옴으로써 一 見 論 理 的 인 體 系 性 을 誇 示 코저 시도하고 있다는 零 點 6) 聯 邦 料 는 全 的 으로 非 法 理 論 的 이며 따라서 本 質 的 으로 政 沿 戰 略 이라는 點 3. 위 와 같은 一 連 의 史 賓 에 留 意, 對 北 對 應 論 理 의 視 角 을 定 立 하여 우 리의 民 族 共 同 體. 體 削 聯 合 방안을 體 系 化 해야 하는 바 여기에서는 다음 과 같은 事 項 을 고려함이 바람직하다. 즉 l) 聯 邦 制 에 대한!If 應 論 理 에 있어 法 理 請 的 인 접근은 그것의 實 體 에 대한 인식을 호도할 우려가 있으며 따라서 l 流 的 으로 政 治 戰 略 的 으로 對 處 해야 한다. 2) 北 韓 의 對 南 提 讓 가 政 治 工 作 的 인 流 元 에서 전개되는 限, 政 治 工 作 에 대한 當 面 的 인 對 處 에 비해 우리의 統 一 方 案 의 구상보완은 보다 長 期 的 인 展 望 에서 推 進 3) 北 韓 이 3 大 原 則 (7.4 聲 明 )과 5 大 綱 領 을 되풀이 하는 가운데 종래의 핵 심적인 主 張 을 先 決 條 件 속에 플어 聯 邦 利 와 結 合 시킨 點 을 고려, 우 리는 적어도 7o 年 代 이래의 주장가운데서 核 心 的 인 要 求 를 취합하여 한데 묶는 것이 體 系 化 를 위해 必 要. 政 策 童 言 이나 提 議 때마다 原 則 이나 理 念 에 대한 r 表 現 J이 다소 다름으로써 非 體 系 性. 非 一 貫 性 을 우리측에서 보여주는 느낌이 있다. 4) 民 族 共 同 體. 體 制 聯 合 구상의 體 系 化 를 위해 이들 原 則. 理 念. 종래의 核 心 的 인 主 請 을 한데 묶는 作 業 과 더불어 그 구상이 前 提 하는 r 民 族 共 同 體 J라는 假 論 의 要 當 性, 그것을 바랄으로 하는 體 削 聯 合 방안의 合 理 性 과 現 實 性 을 論 理 的 으로 體 系 化 해야 한다. 5) r 體 制 聯 合 J 이 聯 邦 訓 도 國 家 聯 合 도 r 民 族 國 家 J로 가는 過 程 도 아니라 면, 法 的 關 係 아닌 特 殊 關 係 인 南 北 輕 간의 실질적인 2개의 主 權 國 家 간의 관계를 가능하다면 보다 具 體 的 으로 성격규정할 필요가 있다출 ii
6) 뿐만 아니라 體 制 聯 合 구상이 社 會, 文 化, 經 濟 등 非 政 治 的 인 共 同 體 에서 政 治 的 共 同 體 로 移 行 할 것이 前 提 되어 있는 바, 非 政 治 的 인 각 분야의 공동체에서 同 時 的 으로 政 治 的 共 同 體 로 이행한다고 보는 것 은 理 論 的 인 모순이다. 따라서 이들 移 行 過 程 에서 차지하는 각 분야 의 共 同 體 의 r 先 流 性 J이나 r 襤 先 順 位 J에서 본다면, 經 濟 交 流 우선주의 보다는 社 會. 文 化 共 同 體 의 회복피 經 濟 共 同 體 의 회복피 政 治 共 同 體 의 회복이 純 理 일 것 같다출 - 7) 위의 5) 및 6)에 대한 찰 慮 를 비롯하여, 北 韓 이 r 聯 邦 料 J에서 統 國 家 의 正 統 性 의 계숭을 선진하기 위해 r 高 麗 J라는 國 號 를 사용하는 데 對 處 하며 또 日 常 生 活 感 情 상의 共 感 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r 韓 民 族 生 活 共 同 體 J라는 槪 念 을 援 用 할 짓올 檢 討 할 價 値 가 있을 것이다. 生 活 共 同 體 로서의 連 帶 意 識 이나 理 念 統 一 을 위한 그것을 바탕으로 삼아보자는 것이다 를 8) 北 韓 이 r 國 旗 J에 대한 아무런 言 及 이 없음을 勸 案 하여 우리는 어떤 - 形 態 에서든지간에 統 一 國 家 의 國 燎 로서 r 太 極 旗 J를 사용할 것을 練 方 素 속에 包 含 시킬 必 要 가 있을 것이다. 4. 우리의 對 北 政 策 은 料 美 政 策 이나 對 北 方 政 策 등 對 外 政 策 - 般 과의 有 機 的 인 調 和 속에서 追 求 되어야 한다. 特 히 우리는 安 保 ( 平 和 )를 떠난 統 一 을 생각할 수 없으니 말이다. 뿐만아니라 우리의 統 一 問 題 가 아직까 지 지니는 國 際 的 性 格 에서 보아서도 그러하다. l) 그러기 위해선 萎 料 b. 業 料 b 方 政 策 은 우리 外 交, 安 保 의 骨 諒 인 對 美 關 係 의 기본적인 틀속에서 調 和 的 임이 바람직하다 출 2) 經 濟 協 力 을 바탕으로 하는 週 速 的 인 對 北 方 政 策 의 推 進 은 北 韓 을 자 극하여 經 濟 的 實 利 와 統 一. 安 保 사이에 不 均 衛 的 인 逆 機 能 을 가져올 수도 있다를 3) 實 利 와 安 保 外 交 의 均 衡 에서 形 成 되는 國 際 理 境 을 利 用 하여 밖으로는 iii
r 限 誇 的 J인 유엔 加 入 이나 交 叉 承 認 을 제의하여 分 斷 國 定 化 에 대한 北 韓 의 非 難 을 對 鎖 하며 안으로는 이러한 f료 時 的 J인 南 北 韓 관계의 性 를 格 規 定 올 統 一 方 案 의 體 系 속에 포함시킬 필요는 없을까 4) 새 統 一 方 案 구상에서 南 北 韓 관계가 競 爭. 代 決 關 係 에서 同 件 者 關 係 로 移 行 할 것으로 前 提 되어 있는 바, 이것을 어느 意 味 에서는 지나친 二 分 論 的 인 單 純 論 理 라는 비판도 없지 않다. 따라서 南 北 韓 관계를 敵 對. 競 爭. 同 件 者 關 係 등 보다 多 面 的 으로 規 定 하는 것이 理 論 上 으로 바람직한 것인데 이문제는 앞의 3의 5)와 6)에서 指 摘 한 共 同 體 移 行 의 r 先 粒 性 J문제 및 要 인b 政 策 推 進 의 r 價 先 順 位 J 문재와 밀접한 관게에 있다. 따라서 이들 여러 문제를 包 括 的 으로 考 應 하여 南 北 輕 關 係 의 性 格 規 定 을 보완함이 바람직하다 等 5. 새 統 一 方 案 의 補 淸 을 위해 또하나의 重 要 한 變 數 는, U6.29J 宣 言 이래 분출된 多 樣 한 統 一 論 議 의 政 治 過 程 을 통 한 收 散, 즉 政 治 的 收 散 이라 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선 다음과 같은 것을 考 應 함이 바람직하다. 즉 l) 統 一 論 議 의 Jl& 敵 이란 與 野 그리고 在 野 출 界 各 曆 의 論 議 의 算 術 的 總 計 는 결코 아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收 散 過 程 의 모델을 참고한 수 있다. 政 府. 與 黨 간의 與 團 내의 收 散 7 與 圈 을 包 含 하는 政 治 圈 내의 收 斂 고 在 野 論 議 의 政 沿 團 에시의 濾 過 피 政 治 的 合 意 2) 이들 一 連 의 過 程 에서 政 府 의 議 會 가 中 心 役 割 을 해야하며 場 外 鬪 爭 論 理 를 議 會 에서 濾 過 시켜 政 治 團 내에서 國 家 政 策 으로 路 散 해야 한다. 따라서 政 策 樹 立 ( 政 治 ) 體 系 와 政 漆 施 行 ( 行 政 ) 體 系 를 하나의 政 治 過 程 속에 유기적으로 統 合 시켜야 한다. 이 機 龍 이 바로 與 圖 의 政 治 力 이 다. 3 ) 政 桔 와 行 政 이라 는 두 機 能 을 하나의 循 環 過 程 속에 유기적으 로 統 출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現 在 行 政 委 에서 구상하고 있는 政 府 流 元 에서의 그 機 能 의 統 출 調 整 을 위한 r 統 - 關 係 長 官 會 議 J( 常 設 機 構 ) iv
와 맞먹는 기구가 統 - 政 策 의 수림을 위해 國 會 內 에도 어떤 形 態 의 것이든지 간에 마련되어야 한다. 4) 이와 함께 與 圈 내, 그리고 政 治 圈 내에 協 議 機 構 의 설치 및 그 활동 의 活 性 化 가 바람직하다. 5) 統 一 問 題 에 있어 중요한 것은 對 北 交 流 의 推 進 에 앞서 國 會 룔 통 한 活 潑 한 政 沿 的 JlA 散 이며 또 그것이 對 民 啓 導 에도 기여한다.
目 次 I. 問 題 의 提 起 3 II. 北 韓 의 r 高 麗 民 主 聯 邦 共 和 國 Jt 賓 設 인가 形 態 만의 虛 像 인가? 6 l. 北 韓 의 統 -. 對 話 提 讓 內 漆 의 持 讀 性 과 可 變 性 6 l) 北 韓 의 r 國 家 J 目 標 와 南 朝 鮮 革 命 의 性 格 規 定 6 2) 時 系 列 상으로 본 北 韓 提 讓 의 持 精 性 과 可 變 性 1 2 (i) 4o 年 代 末 에서 5o 年 代 前 率 期 까지의 趨 勢 1 2 (2) 5o 年 代 中 寧 期 에서 末 까지의 趨 勢 1 4 (3) 6o 年 代 의 趨 勢 1 5 (4) 7o 年 代 의 趨 勢 17 (5) 8o 年 代 의 趨 勢 21 (6) 北 韓 의 統 一. 對 話 戰 略 의 一 貫 的 인 特 徵 2 7 2. r 高 麗 民 主 聯 邦 共 和 國 J 의 實 體 와 形 態 3 0 l) r 崙 麗 民 主 聯 邦 共 和 國 J의 槪 念 生 成 과 그 變 遷 3 0 (l) r 南 北 朝 鮮 料 郊 利 J 제의와 그 內 容 (60-72) 3 0 (2) r 淸 麗 聯 邦 共 和 國 J의 제의와 그 內 燎 (73-79) 3 8 (3) r 高 麗 民 主 料 를E를 和 國 J의 제의와 그 內 春 (8o~ ) 4 2 2) r 聯 邦 削 J의 分 析 시각에 데한 몇개의 附 言 4 8 (l) 植 民 地 論 理 에서 본 提 議 의 性 格 4 8 (2) 業 統 一 路 線 과 政 府 統 一 政 策 의 상관관계에서 본 提 議 의 性 格 l l l l l l l l l l l l l l l l l l l l l l l l l l l l l l l l l l l l 9 l l l l l l l l l l l l l t l t t l l l l l l l l. 4 9 (3) 對 南 宣 傳. 編 動 工 作 體 茶 에서 본 提 議 의 性 格 5 0 理. r7.7 宣 言 J과 우리의 r 能 系 聯 슴J 틀일방안 구상 5 3 1. '-7.7 責 言 J의 政 策 的 背 景 :우리의 統 一 方 案 의 持 牆 性 과 可 變 性.... 5 3 l) 7o년대 이전까지 53 2) 7o년대 이후까지 5 8 - l.
2. 1-7.7선언J과 r민족공동체 J개념 r체제연합j통일방안구상 63 l) 盧 泰 愚 大 統 領 의 r7.7 宜 言 J... 63 2) 盧 泰 愚 大 統 額 의 國 政 演 說 과 유엔 演 說 65 3) 李 洪 九 統 一 院 長 官 의 개념구상 68 린. r 體 制 聯 含 J 틀일방안 구상과 南 北 關 保 설정의 位 相 및 諸 問 題... 7 2 l. 後 讀 的 實 理 措 置 72 l) 社 會 文 化 분야 72 2) 外 交 施 策 분야 74 3) 南 北 頂 上 會 談 개최제의 受 諾 促 求 7 5 4) 經 濟 ( 開 放 ) 분야 76 2. 南 北 關 係 설정의 拉 相 과 諸 問 題 7 7 l) 政 治 關 係 의 位 相 과 問 題 7 7 2) 經 濟 關 係 의 位 相 과 問 題 8 1 3) 法 的 關 係 의 拉 相 과 問 題 82 y. r 體 制 聯 含 J 를일방안 구상의 補 完 을 위한 政 策 方 向 8 6 l. 槪 說 86 2. 聯 邦 創 통일방안에 대한 對 應 論 理 87 l) 北 韓 의 料 상 粒 린 통일방안의 戰 略 的 構 圖 87 2) 우리의 對 應 論 理 의 構 造 9 0 3. 對 北 政 漆 과 對 外 政 策 의 有 機 的 인 連 繫 性 9 3 4. 國 內 的 인 政 治 過 程 을 통한 統 - 論 讓 의 收 散 9 7 l) 與 圈 및 在 野 의 統 一 方 案 97 2) 政 治 的 雌 散 의 메카니증 1 0 1 vl. l 吉! 淸... lo7. 2.
I. 開 題 의 提 起 統 一 政 雜 의 수립 및 집행에 영향을 미치는 대내외적인 變 數 에는 여러가 지 要 素 가 있다. 그러나 ;l 중에서츠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의 두가지 要 素 로 집약할 수 있다. 우리는 政 黨 政 治 를 바탕으로 讓 會 削 民 主 義 를 표방하고 있다. 때문에 다른 國 家 政 策 일반에 있어서와 마찬가지 로 統 一 政 策 도 그것이 특정한 政 黨 이나 社 會 集 團 의 政 綱.정책이나 方 案 의 차원을 넘어서 國 家 的 수준에서의 정책 즉 國 家 政 策 化 하기 위해서는 議 會 制 민주주의의 政 治 過 程 을 통해 收 散 되어야 한다. 與 圈 내에서 與 黨 과 政 府 사이에 수렴되고 制 度 圈 내에서 與 野 사이에 收 斂 되고 또 削 度 圈 과 在 野 勢 力 사이에 수렴되어서 國 家 意 恩 로 통합되어야 찬다. 이와 같이 여러 政 黨.사 회 세력의 다양한 統 一 論 議 나 방안올 정치과정을 통해 國 家 政 策 으로 수렴. 統 合 하는데 있어서 l차적으로 政 燎 와 與 黨 이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함은 재른 을 요치 않는다. 이들 政 府. 與 黨 의 통합 능력이 바로 政 沿 力 이기 때문 이 다. 87 년 r민주화j를 위한 盧 大 統 領 의 '-6.29J 童 言 이 있은 후 근 i 年 만에 r7.7j 特 別 童 言 이 발표되자 學 生 運 動 圈 및 在 野 勢 力 의 辰 政 府 투쟁은 그 爭 點 이.료s 諒 린ul 一 刻 #=및 一 천핀희는 一 -좌료뒈 더욱 過 熱 해 졌다. 體 制 挑 戰 的 인 民 衆 統 - 論 을 비롯하여 운동권과 在 野 에서 다양한 통일논의가 百 家 爭 p출 流 으 로 분출되 어 통일논의 자유화. 開 放 化 만이 아니라 對 北 接 觸 努 口 의 多 元 化 찰 開 放 化 마져 요구하여 제도권 밖에서 反 體 制 사회운동으로 몰아감에 政 局 을 긴장과 혼미속에 뒤흔들어 놓게 되였다. 그러던 利 那 에 文 收 師 의 入 北 은, 黨 利 黨 略 을 앞세우는 政 沿 圈 의 우유부단성과 더불어 국민으로 하여금 한층 더 경악케.하기에 충분하였고 또 이것과 더불어 野 圈 과 在 野 에서는 r7.7j 特 別 宣 言 에 뒤따를 法 的 制 度 的 인 후속조치의 미비를 비판하는 소리가 높. 3 -
이 일기 시작했다. 여기에 첫째로 7.7 特 別 宣 言 으로 개방된 통일논의의 난 핵상올 바로잡고 7.7 特 別 宣 言 의 시행올 위한 法 的 制 度 的 인 후속조치의 보 완이 政 沿 的 課 題 로 전면에 제기된 것이다. 북한의 그것에 관한 것이다. 물 른 아무리 民 主 國 家 라 하더라도 반드시 對 外 關 係 가 國 內 政 治 의 직선적인 연장이 아널 수도 있다. 그러나 의회정치는 政 理 政 治 이며 정당정치는 壓 力 政 治 이다. 때문에 民 主 國 家 는 대외관계에 있어 국내적인 政 治 的 壓 力 에서 플려나기 위해선 多 樣 한 見 解 의 收 散 이 l차적으로 불가피하다. 따라시 우 리의 對 北 關 係 도 l차적으로 국내적인 다양한 견해의 수렴을 政 治 的 基 望 으 로 하여 北 韓 의 路 線 이나 政 策 에 대처하는 짓이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7o년대 중반기 이래 특히 8o년대에 들어와서 흔히들 北 韓 의 統 - 方 案 을 賀 피 f 9 로 인린 燕 라 되였다. 그러나 필자는 測 b B 邦 料 J를 北 韓 의 통일방안의 實 體 로 보는데 대해 근본적으로 의문을 갖는 사 람이다. 북한이 r 商 朝 鮮 聯 邦 削 J를 처음에 공식으로 제의한 것은 6o년 8월 l4일t 김일성의 8.l5경축사를 통해시 였다. 따라서 만일에 南 北 聯 邦 料 가 北 韓 의 統 一 方 案 이라고 한다면, 6o년 이전에 北 韓 에 통일방안이 없업찰 말 인가.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다. 北 韓 의 統 一 方 案 은 시종일관적이며 다만 그 때 그때의 主. 客 觀 정세의 변화에 따라 戰 略 戰 術 의 변화로서 그 형태만 달라진 것이다. 일언의 폐지해서 그들의 談 - U r U m는만7 一 출린로.를화 도 없업다는 말이다. 그들의 통일방안은 黨 規 約 이나 憲 法 에 명시된 基 本 目 標 와 밀착되어 있다. 이러한 脈 絡 에서 본 다 Q 우리는 북한의 통일정책의 實 體 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단순히 南 北 聯 邦 削 로 피상적으로 이해하 기에 앞에서 그들의 基 本 目 標 를 비롯하여 금일에 이르기 까지의 統 一. 料 話 의 제의에 있어서 聯 邦 料 의 實 體 가 무 엇 이냐를 먼저 과악해야만 한다. 그들의 聯 邦 削 의 實 體 에 데한 파악없이 ; l 것에 대처하는 우리의 統 一 政 策 의 補 亮 策 이 설수 없치 때문이다. 따라서 - 4 -
이 報 告 書 을 통해 먼저 북한의 統 一. 對 話 提 議 에 대한 歷 史 的 分 析 을 토대 로, 북한의 南 北 聯 邦 制 의 實 體 를 규명하여 그것에 대처하는 우 리 立 場 과 基 本 視 角 을 규정하고 7.7 特 別 宣 言 에 따르는 남북관계의 位 相. 諸 問 題. 補 完 策 을 개관코저 한다.. 5.
II. 北 韓 의 r 高 麗 展 主 聯 邦 共 和 國 J> 實 健 인가 虛 像 인가 l. 北 韓 의 統 一. 對 話 提 議 內 容 의 持 續 性 과 可 變 性 北 韓 의 통일방안인 r 商 麗 民 主 聯 邦 共 和 國 J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선 北 韓 의 統 一. 對 話 제의내용의 時 系 列 上 의 r 持 經 性 J과 r 變 f린 生 J에 대한 분석 을 통해 黨 路 線 에서 차지하는 r 高 麗 民 主 聯 邦 共 和 國 J의 전략. 전술적인 의미 - 내용이 먼저 파악되어야 한다. 여기에 있어 r 持 繼 性 J이란, 북한의 對 南 統 戰 略 의 불변적인 率 質 을 의미하여 r 可 變 性 J이란 전술적인 形 態 變 化 의 신축 @ 가 料 다. 바 刊 말하자면 북한의 통일. 대화 제의의 역사적 흐름의 맥락에서 高 麗 民 主 聯 邦 共 和 國 의 실체가 과악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l) 北 韓 의 r 國 家 J @ 標 와 r 南 朝 鮮 革 命 J의 性 格 規 定 에는 政 治 體 도 국가정책 f t % l H l G l w f l t D 의 효율적인 수립. 집행을 위해 國 家 團 標 (national goal)를 설정한다. 다른 공산정권의 일반적인 屬 性 에 따라 북한에 있어서도 그의 r 國 家 目 標 J는 마 르크스. 레닌 主 義 的 인 이데올로기에 의해 革 命 目 標 로서 규정되며 따라서 ;2 것은 r 南 朝 鮮 革 命 J에 대한 성격규정과 밀접한 연관관계를 지닌다. 그러나 출 日 成 은 처음부터 蒸 規 約. 憲 法 에 마르크스, 레닌 主 義 를 공식적인 지도이념 으 로 明 文 化 하거나 南 韓 革 命 의 性 格 을 규정한 것은 아니였다. 그것은 그의 권력기반이 잡힐 때까지 특히 그에 대한 국민의 民 族 主 義 者 로서의 기대를 호도하기 위해서 였다. 그려나 김일성은 寶 質 的 으로는 처옴부터 소련 軍 을 배경으로 南 韓 革 命 路 線 을 추구했다. 理 鮮 共 産 黨 北 郭 鮮 分 局 이 설치(45.10.13)된 후 같은 해 i2월 l7일, 북조선분국 제3차 擴 大 軌 行 委 員 會 에서 김일성은 黨 路 線 과 조직에 관 한 보고를 통해 그들에게 제기된 당면과제를 fb 朝 鮮 J을 통일된 ' 民 主 主 義 1. 6.
的 독립국가를 위한 강력한 ' 民 主 ' 基 地 로 전환시키는 것Ji) 이라고 했다. 김일성은 소련 軍 의 비호아래 朝 鮮 共 産 慕 北 朝 鮮 分 局 을 창설하여 북한을 소 비에트화하기 위해 마르크스.레년주의적인 拳 命 的 黨 을 발족시킨데 이어 북한의 革 命 基 地 化 를 決 定 的 擔 保 로 하여 한반도의 共 産 化 를 공약한 것이 다. 그리고 46년 9월 9일 f 料 a 鮮 勞 動 黨 창립대회의 종결에 관한 報 告 J를 통해 김일성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기초를 떠나서는 발전할 수 없으며 譽 또 현재 단계가 부르죠아 r민주주의j 革 命 段 階 로서 그 당면과업이 反 索 反 封 建 r민주주의j 혁명을 수행하는데 있다고 했다.2) 그려나 北 朝 鮮 勞 動 黨 創 立 大 會 (46.8)에서 채택된 黨 綱 領 이나 黨 規 約 그리 고 제2차 黨 大 會 에서 개정된 黨 規 約 과 같은 기본문헌에서는 r 富 强 한 민주 로 r L 브 5찬 t 9 브 을 당면 목표로 설정한것 외에는 指 導 理 念 으로서의 마르크스 聾 레닌주의나 革 命 의 基 本 性 格 에 데해선 아무런 언급이 없였다3)그것 은 이 무렵이, 북한의 소비에트화 과정에서 제l단계인 지도자의 수입과 革 命 的 인 黨 을 육성하는 단계에 해당하여 김일성의 권력기반이 허약했으니 말 이다. 6.25 奪 侵 은 革 命 基 地 路 線 올 무력에 의해 관철하려는 무모한 시도 였다. 그러나 5o년대 중반기 부터는 그의 r 革 命 基 地 J노선이 보다 구체적으 로 黨 規 約 에 명문화되게 되었다. 그의 권력기반이 다져진 것이다. 즉 인 민 군의 창설(48.2), 헌법채택 (48.4), 政 權 鱗 立 (48.9) 후 6.25 敗 戰 에 뒤이어 南 勞 黨 을 숙청(53)하고 나서 소련파의 숙칭0(53-56)을 거의 마무리하면서 제3차 黨 大 會 (56.4)의 개최를 내다보는 시기였다. 55년 8월 l4일, 김일성은 r8.i5해방 io주년 겋축대회J에서 反 帝. 辰 封 建 的 계층과 統 一 戰 線 을 형6하여 灰 漆. 反 封 建 的 r 民 主 J 革 命 의 課 業 을 수행 l) r김일성선집j (평양:1963). 2 ) 梁 好 民, r 北 韓 의 이데출로기 Q.2oz 제l권( S m. 1973), p.127. 3) r 朝 鮮 勞 動 黨 大 會 資 料 集 J, 제 ( 國 土 統 一 院, 1988), pp.86~91. 2 7 0 ~ 2 7 5 4) 林 隱, r 北 朝 鮮 王 朝 成 立 料 史 J( 東 京 : 自 由 社, 1982), p. l 88. 5) r김일성선집j 4(평양:19G0), p. l3 4. - 7.
하는 길에 들어린다고 했다.5)제3차 黨 大 會 (56.4)에서 개정된 r 黨 規 約 J에서 마르크스. 레년주의를 당의 指 導 理 念 으로 獨 立.해방을 위한 人 民 의 抗 日 革 命 鬪 爭 전통을 계숭하여 최중목표를 共 産 社 會 건설에 또 當 面 目 標 를 全 國 的 댐위에서의 辰 漆. 反 封 建 的 r민주혁명j의 수행에 두고 革 命 基 地 를 정치. 경 제적으로 강화하터 統 一 올 촉진 하겠노라고 강조했다.6) 당의 지도이념과 힉명전통을 정의하고 7 정 한 것이다출 料 차 黨 大 會 (6 7")약에 서도 당의 지도이념이나 남한혁명의 성격규정 제3차 黨 大 會 때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제4차 黨 大 會 에서는 제 3차 黨 大 會 에서와는 달리 革 命 傳 統 에서 민족의 獨 立. 해방을 위한 인민의 r항일투쟁전통j 대신에 朝 鮮 共 産 主 義 者 들의 抗 日 武 裝 鬪 爭 의 혁명전통을 계승7) 할 것을 강조했다. 黨 中 央 委 제4 期 제5차 全 員 會 議 (62.12)에서 4 大 軍 事 路 線 즉 _릿~. 전인민의 武 裝 化, 2) 전국토의 요새화, 3) 全 軍 의 幹 部 化, 4) 全 軍 의 現 代 化 를 결 정했다. 그 후 65년 4월 l4일 金 日 成 은 인도네시아 방문시, 공산통일의 決 定 的 時 期 를 주도적으로 형성하기 위해 3 大 革 命 力 量 의 강화가 중요하다고 역설했는데 l) 북한에 r 革 命 基 地 J를 강화하며 2) 남한에 地 下 黨 (통혁당)을 조직하여 r 南 理 鮮 革 命 諒 量 J을 강화하며 또 3) r 國 際 的 혁명역량J출 강화 한다는 것이 그것 이였다. 북한은 6o년대 이후 4,l9와 5,l6이라는 남한 정치상황의 특수성과 영합하여 출에서 平 和 갓 勢 를 전개하면서도 이면에서는 폭력수단에 의한 南 韓 革 命 을 적극 추진해 찰다. 제5차 黨 大 會 (70.11)의 당규약은 힉명전를에 있어서는 제4차 黨 大 會 때와는 변화가 없었으나 표현이 달라졌다. 제5차 黨 大 會 에서 개정된 黨 規 約 이 전문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6) 國 土 統 一 院, r할의 책J, p.525. 7) r 北 韓 全 畵 J 下 卷 (극동문제연구소, 1974), P.220. "조선로동당 제4차대회 결정 서", r 朝 鮮 勞 動 黨 大 會 資 料 集 J제2집 (국토통일원, 1988),p. 114.. 8.
있 ch. r 朝 鮮 努 動 黨 은 마르크스. 레년주의와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우리나라 편실 에 창조적으로 적용한 金 日 成 동지의 의 펄 효 _ 로 L B 9 _ 르 r i 브 J E 료 一 -친찰으로 삼는다...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은 공화국 北 半 部 에시 사회 주의의 완전한 숭리를 보장하며, 全 國 的 범위에서 民 族 解 放, 人 民 民 主 主 義 건설하는데 있다.Jt> 즉 제5차 黨 大 會 에서는 당의 지도이념으로 마르크스.레년주의 외에 김일성 의 主 體 恩 想 을 덧붙이고 또 당면목표롤 전국적 규모에서의 民 族 解 放 人 民 民 主 主 義 革 命 의 수행에 둔 것이다. 이와 같은 革 命 目 標 와의 연관에서 김일 성은 南 韓 革 命 의 성격을 r 總 和 報 告 J를 통해 다옴과 같이 규정했다. r.를 朝 鮮 革 命 은 全 朝 鮮 革 命 외 구성부를이 다. 조선혁명외 全 國 的 숭리튤 이특하기 위하여서는 공화국 北 주 部 에f 4회주의 건설올 힘있게 다그치는 것과 함께 南 朝 鱗 에서의 힉명투쟁출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남조선혁명 은 美 帝 國 主 義 침략자들을 반대하는 o 族 解 放 革 찬임과 동시에...지주 雌? 찰자본가. 반동관료배들과 그들의 파 漆 통치롤 반대하는 人 民 主 義 革 命 이 다. 小 즉 그는 南 韓 革 命 을 全 한반도 공산화혁명의 構 成 部 分 이며 返 료4 藍 竣 建 民 族 解 放 人 民 民 主 主 義 革 命 으로 규정했다. 이와 함께 그는 統 一 에 대해 다 음과 같이 論 했다 출 r...남조천에 참다운 人 民 의 政 權 이 서면 공화국 北 半 部 의 社 會 主 義 역 량과 남조선의 애국적 민주역량의 단합된 힘에 의하여 우리 조국의 통 일이 순조롭게 실편필 것이다.Jlo) 여기에 김일성의 통일방안의 實 體 가 明 明 白 白 히 들어나고 있다. 즉 美 軍 8) r 北 韓 槪 諒 J.(국토통일원, 1980). p.293. 9) r 朝 鮮 勞 動 黨 大 會 資 料 集 J제 理 집 (국토를일편, 1988), pp. 5 7-5 8. lo) r위의 책J. p.65. - 9 -
撚 雌 를 위한 反 漆 ( 美 ) 民 族 解 放 투쟁과 우리 政 府 를 타도하기 위한 辰 파소 투쟁에 의해 容 共 的 인 人 民 政 權 이 들어서먼 그것과 북한의 공산정권출 合 作 시키는 것을 그는 經 - 로 보고 있는 것이다. 개념상 본절적인 차이가 없으나, 6o년대. 까지의. 辰 漆. 辰 對 建 r 民 主 J 革 命 論 이 7o년의 제5차 黨 大 會 를 계기로 民 族 解 撚 人 民 民 主 主 義 革 命 論 으로 이른화된 것이다. 전자에 있어 辰 漆 는 辰 美, 辰 封 建 이 辰 政 府 그리고 r민주j혁명이 容 共 政 登 의 자유로운 활동과 統 - 默 線 애 의한 社 會 主 誇 革 命 을 의미한다면, 후자에 있어 민족레방 이 辰 美, 인민민주주의혁명이 마르크스. 레닌주의적인 의 반정부투쟁에 의한 용공적인 人 民 政 權 의 수립을 의미한다. 어했든 김일 성 이 想 走 하고 있는 南 韓 革 命 과 合 作 漆 - 사이의 밀착관계를 우리가 이해 하는 것이 그의 통일방안에 대한 이해를 위해 가장 핵심적인 것이다출 = L 것은 다름 아니라 후술하는 바.그들이 제의하는 南 北 聯 邦 料 란.결국 이 合 作 統 一 方 案 과 진략적으로 같은 맥락에 있으니 말이다 출 南 韓 革 命 과 合 作 統 一 ( 赤 긴)의 전할절 밀착성에 대한 그들의 집요한 일관 성은 7.4공동성명이 나오기 하루 전인 72년 7월 3일의 보도 )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그들은 방승을 통해, 남한헉명은 남한지역에 해당하는. 문제 이며 남조선인민을 解 放 하기 위한 辰 漆 民 族 解 旅 인민민주주의혁명으로 人 民 政 權 을 쟁취하기 위해선 오직 유일하게 暴 力 的 方 法 밖에 없다고 강조한 것이다. 그 후 72년 l2월 27일에 개정된 社 會 主 義 憲 法 에서 主 體 思 想 을 지도이념 으 로 삼올 것을 명문화(제 4조)한데 이어 제6차 黨 大 會 (80.10)의 黨 規 約 에서는 김일성의 主 體 思 想. 혁명사상을 당의 지도이념으로, 김일성의 抗 日 革 命 투쟁을 당의 혁명전통으로, 當 面 目 標 를 제5차 黨 大 會 規 約 에서 처럼 全 國 的 범위 ll) 조선중앙방소, 1972. 7.3. l2) 金 達 述, " 南 北 對 話 의 平 價 와 南 北 關 係 의 再 定 立 ", 反 統 - 硏 究 論 讚 J, 8권 l호 (1988), pp.64~65 - l o -
의 民 族 解 放 人 麗 民 主 義 革 命 의 수행으로 또 최종복표를 온 사회의 주 체 사상화와 共 産 社 會 建 設 을 각각 규정했다.l2) 이상으로 우리는 북한의 革 命 統 一 戰 略 이 혁명기지노선(45)을 바당으로 출 발하여 제3차 黨 大 會 (56)와 제4차 黨 大 會 (6i)를 중심으로 5o년대 중반기에서 6o년대 말에 이르기 까지 反 漆. 反 封 建 r 民 主 J 革 命 論 으로 전개되어 제5차 黨 大 會 (7o)와 제6차 黨 大 會 (8o)를 중심으로 7o년대를 거쳐 8o년에 이르기 까지 民 族 解 放 人 民 主 義 革 命 論 으로 생성되는 과정을 개관했다. 이러한 통일전략 생성의 역사적 맥락에서 본다면 북한의 통일방안을 南 北 聯 邦 制 로 파악하기 보다는 民 族 解 放 入 民 主 義 革 命 論 으로 과악.대처.하는 것이 타당하다. 反 漆. 反 封 建 人 民 主 義 革 命 괴. 南 北 聯 邦 削 는 原 因 대 結 果 의 國 果 關 係 에 있으며 따라서 南 北 聯 邦 料 는 인민민주주의혁명에 의해 부과되는 결과적인 統 - 形 態 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석은, 북한의 反 漆. 反 封 建 革 命 論 이 틀 잡혀지는 6o년대 이래의 시기와 거의 때를 같이 하여 南 北 聯 邦 制 가 제의되업다는 사실에서 본다면 더욱 그 타당성이 수긍된다. 김일성의 對 南 革 命. 統 一 戰 略 은 고도의 政 治 戰 略 이며 그것은 레닌의 약소 민족해빙느선의 구현인 코민테른 이래의 테제를 이어 받은 갓이다. 그래서 그의 통일방안은 南 韓 社 會 에 대한 植 民 地 論 理 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는 남 한이 r 美 帝 J에 의해 강집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 부터 解 奴 되어야할 해방대상지역으로 그 성격을 규정한다. 이처럼 그는 식민지 논리에서 출 발 하기 때문에 반미투쟁에 출점을 두고 남한혁명에 의한 적화통일올 위해 反 帝. 寧 封 建 民 主 讓 革 命 이나 民 族 解 撚 人 民 民 主 主 義 革 命 을 선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있어 麗 美 투쟁이 남한혁명의 선결조건이며 또 그것을 그 는 민족해방투쟁이라 부르는 것이다. 때문에 그는 금일에 이르기 까지 줄 곧 집요하게 美 軍 徹 收 를 내 거는 것이다 準. 러면 다음에 南 革 命 과 統 一 의 相 關 係 즉 인민민주주의혁명과 聯 邦 制 의 상관관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보다 돕기 위해 時 系 列 상으로 본 북한의 - l l -
統 一. 對 話 제의의 전략적. 본질적인 일관성. 지속성과 전술적인 제의형태의 가변성올 살피기로 한다. 2 ) 時 漆 列 상으로 본 北 韓 提 議 의 持 續 性 과 可 變 性 북한은 5정한 單 一 提 議 를 하는 것이 아니라.브피피2f= 一 편츠 迎 9L 그 제의내용의 특징을 엄격히 구별하기는 물른 어렵다. 그러나 시발점올 중심으로 그들의 제의의 추세를 검토하면 그 제의의 특징을 時 系 列 的 으로 대충 가려볼수는 있다.l3) (l) 4o 年 代 末 에서 5o 年 代 前 寧 期 까지의 趨 勢 北 韓 이 남한에 대해 최초로 統 一. 對 話 제의를 해 온것이 48년 부터인 데, 이때 북한은 形 式 에 있어 政 黨. 社 會 團 體 代 表 者 r 連 席 會 議 J의 개최 그리고 內 容 에 있어서는 外 軍 撤 收. 南 北 韓 總 選 擧. 立 法 機 關 의 통합. 政 治 活 動 의 自 動 保 障 에 관 한 것이 주였다. 첫째로 북한이 제의한 것은 48년 3월 25일 이있는데 그들은 공식적으로는 r 北 朝 鮮 民 主 主 義 民 族 統 一 戰 t - - - t t - t - _ # t 線 中 央 委 제26차 會 議 決 定 J에 따른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V 알고 보 면 이 連 席 會 議 는 그후 政 治 會 議 (48. 4. 30), 代 表 者 協 議 會 (50. 6. 7), 全 朝 鮮 委 員.t-(54. 4. 27). 常 設 要 員 會 (59. 10. 26), 聯 출 會 讓 (60. 4. 27), 經 濟 Q 員 會 (63. 12. 10), 政 拾 協 商 會 議 (73. 6. 12), 大 民 族 會 議 (73. 6. 23), 全 民 族 大 會 (79. 1. 23), 民 族 統 - 促 進 大 會 (81. 8. 6), 100 人 聯 合 會 議 (82. 2. 10), 南 北 連 席 會 議 (88. 1. 1), 雙 務 的. 多 務 的 協 商 (88. 9. 9). 汎 民 族 大 會 (88. 12. 9). 南 北 政 治 協 商 會 讓 (89. 1. 1) 등 여러 용어를 번갈아 사용하며 3 l r3 / % o t n t s t # D s 7 r t 되풀이 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북한이 이들 連 席 會 議 나 政 治 協 商 會 議 방식의 대화를 추구하는 것은 政 l3) r 南 北 韓 統 一, 對 話 提 議 比 較 J(국토통일원. 1987) 參 照. r 北 韓 便 覽 J(국토통일원 ) 197?), pp.806~81.6. - l 2.
治 流 元 에서의 대화를 기피하여 우리 政 府 의 正 統 性. 代 表 性 을 거부하며 政 黨. 社 會 團 體. 個 人 을 포함하여 多 務 的 접촉과 合 作 을 시도하기 위한 것이 다. 그래서 김일성은 금년 新 年 辭 을 통해서도 盧 대통령은 정부대표로 받아 들이지 않고 4 黨 의 黨 首 의 한사람의 자격으로 南 北 高 位 級 政 沿 協 商 會 議 에 웅 할 것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이 그들의 統 一. 對 話 전략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라는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둘째는 外 ( 美 ) 軍 철수에 찰한 주장이다. 미군철수는 48년 4월 23일, 즉 南 北 政 黨. 社 會 團 體 代 表 者 連 席 會 議 의 4를째 되는 f 에 채택된. r 決 定 書 J l49zi 一 트츠르르4브를L르료 一 J 悲 9린 一 의르t차친=를2a르로르 一 i4 一 4 한의 대남전략의 선결로 건 가운데서도 가장 골간적인 요소이다. 셋째로 南 北 總 選 擧 에 관한 주장도 처읍에 48년 4월 3o일, 南 北 諸 政 黨. 社 會 團 體 代 表 者 連 席 회의 共 同 성명 형식으로 제기된 이래 주장되어 찰 다 그러나 E5 一 9 泌.친로4 進 璉 간r- 料 관및A4료웨라 一 限 璉 료 牆 L~료 諒 의 성 격을 지닌다. 넷째로 立 法 機 關 의 통합에 관한 주장을 처음엔 49년 6월 28일, 북한의 r 祖 國 統 - 民 主 主 義 戰 線 결성대회 중앙위 擴 大 會 議 J호소문을 통해 주장한 이래 7o년대에 들어 와서는 별로 주장되지 않았다. 이 점 限 時 的 주장이 라는 면에서는 總 筆 擧 에 대한 주장과 매우 유사하다. 다섯째로 政 治 活 動 의 자유에 관한 주장도 49년 6월 28일, 祖 國 統 一, 民 主 主 義 戰 線 결성대회에서 시작되업다.그러나 南 北 對 話 가 시작된 7o년대 이래 그 주장은 대화를 위한JzJ는i 一 塗 3=4 點 t 惡 漆 一 대한 주장으로 전개되어 오고 있다. 이렇게 보면 4o년대 말부터 나온, 美 軍 철수.총선거. 立 漆 機 關 統 合. 政 治 活 l4)r 北 韓 全 書 J 下 卷 ( 極 東 問 麗 硏 避 所, 1374), p.402.. l 3.
動 의 자유 등에 대한 북한의 주장 가운데서 오늘에 이르기 까지 지속되 고 있는 주장은 美 軍 撚 雌. 政 治 活 動 의 自 由 에 대한 주장이라 할수 있다. 이처럼 그들의 주장이 持 經 되는 것은 그것이 그들의 戰 略 에 있어서 핵심 적인 골간으로.되어 있기 때문이다. (2) 5o 年 代 中 半 期 에게 末 까지의 趨 勢 그런데 54년에 제네바 會 議 가 개최됨을 하나의 전기로 하 여 그들의 提 議 는 여러 새로운 形 式 을 갖추게 되었다. 즉 平 和 協 定, 武 力 的 行 使 와 不 可 侵 條 約, 軍 締, 蒸 事 條 約 폐기, 有 關 國 會 議 및 國 際 協 定 등 다양한 形 式 의 제의가 나찰다 출 國 際 協 定 체결은 제네바 會 議 에서 제의한 南 日 外 相 의 3개 類 l5) 統 一 방안을 통 해(54. 4. 27), 停 戰 協 定 의 平 和 協 定 으로의 전환과 lo만이하로의 軍 縮 은 제 네바 會 議 에의 南 日 의 연설l 郎 을 를해 (54. 6. 15), 有 關 國 會 議 는 最 高 人 民 會 議 제 l기 제9차 會 議 선언문을 통해 (53. 3. 11), 武 力 的 行 使 와 不 可 侵 條 約 은 8.15' 10 週 年 경축대회에서의 김일성연설을 통해 (55. 8. 14), 그리고 軍 事 條 約 폐기는 料 鮮 勞 動 黨 재3차 大 會 선언문을 통해(56. 4. 28) 각각 처 음으로 제의됐다. 이들 여러 提 議 는 그 形 式 을 서로 달리하먼서도 전략적 으로 노린 핵심은 韓 美 간의 유대단절과 美 軍 撤 收 의 촉구에 있었다. 그 중에서 i 濯 5. 일 最 高 人 民 會 識 제5 期, 제2차 會 議 에서 제의되기 까지. 9친린 걸쳐 재의되 c.. 武 力 的 行 使 에 대해서 84년 l월 lo일 中 央 人 民 委 員 會. 最 高 人 民 會 議 聯 合 會 議 에서 제의된 후에는 그것들에 대한 제의는 금일에 이르기 까지 거 론된 바 없다. 軍 事 條 約 폐기에 대해선 7l년 lo월 8 일 共 同 通 信 r미까미 J 特 派 員 과의 회견에서 김일성이 제기하기 까지 도합 l2회에 걸쳐 제의 했 으나 그 후엔 거른되지 漆 았다. 國 際 協 定 체결에 대한 제의는 56년에 이르 15)16) '' 南 北 韓 統 -. 對 話 提 議 比 較 J(국토통일원, 1987), pp. 19. 23~24. - l 4 -
기 까지 4회에 걸쳐 제의한것 외에는 그후 거른되지 않란다. 有 關 國 會 議 는 7o년에 이르기 까지 9회에 걸쳐 제의한것 외에는 거른된바 없다. 停 戰 協 定 을 대체 시키기 위한 南 北 韓 平 和 協 定 의 제의는 54 年 이래 lo여차례 제의됐으나 對 美 平 和 協 定 올 공식으로 제의(74. 3. 25)한 후에는 거론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들 제의 핵심은 美 軍 撤 收 에 있 望 으나 출 北 韓 平 和 協 定, 武 力 不 行 使 와 不 可 侵 條 約, 軍 事 條 約 폐기, 有 關 國 會 議, 國 際 協 定 체결과 같은 r 形 式 J에 의한 제의한 限 時 的 인 것이있다. 그러나. 軍 縮 문제만은 금일에 이르기 까지 계속 제의되고 있으며 따라서 f 軍 縮 문제는 美 軍 출 收 문제와 더불어 그들의 理 二 및9 登 필JL및.ifr 全 을 = L # l_4를를적천 一 JL으프다. 그리고 對 話 形 式 있어서는 諸 政 黨. 社 會 關 係 의 代 表 者 와 個 人 人 士 를 포합하는 Q 席 會 議. 政 治 協 商 會 議 친 핵심적인 요소임을 알 y 수 있다. 이를테면 政 治. 軍 事 문제 우선의 一 括 妥 結 方 識 과 非 政 府 的 차원에 시의 多 方 面 인 合 作 이 그들의 기본전략 이라는 것이다 출 (3) 6o 年 代 의 趨 勢 6o년대에 와서 새로이 제기된 北 韓 의 對 南 提 議 의 特 識 은 南 北 聯 邦 削 에 관한것이었다. 앞에서 논한 4o년대 및 5o년대에 시작된 對 南 提 議 를 북 한은 대체로 그대로 제의하면서도 6o년대에 틀어서면서부터 南 北 聯 邦 料 를 통일방안으로서 새로이 제의해 온것이다. 北 韓 은 6o년에서 83년에 이르는 기간동안 그 중요한것만 추려 보더라도 무려 수십차례에 걸쳐 南 北 聯 邦 制 를 제의해 찰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초기의 다분히 政 治 心 理 戰 的 인 성격의 엉성한 南 北 聯 郊 料 를 점차적으로 그들의 종래의 對 南 戰 略 的 인 요소를 복합적으로 집약하여 보다 理 論 化 하며 具 體 化 해 찰다. 그러나 南 北 聯 邦 訓 에 대한 최초의 제의가 49년에 결성된 祖 國 統 一 民 主 主 義 戰 線 과 같은 외곽단체에 의해 제의된 것이 아니라, co년8월l4-@ 1-8.15해 사실을 우리의 주목을 끄는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그것이 黨. 政 의 公 式 - l 5 -
的 인 입장의 확인올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때만 하더라도 그 제 의는, 南 北 總 選 擧 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過 渡 的!lt 策 으로서 r 南 北 朝 鮮 聯 邦 制 J를 실시할 것올 제의했을뿐 그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언급이 없업다. 때문에 제4차 黨 大 會 (61.9) 黨 規 約 전문에서, 제3차 黨 大 會 (56.4)의 그것을 n 대로 이어받아 설정한, r 南 朝 鮮 革 命 J의 성격규정과 南 北 聯 邦 制 를 전략개념상 으로 직접 결합시키지 못했다. 제4차 黨 大 會 에서도 제3차 黨 大 會 때와 마찬가지 로 당면목표를 全 國 的 범위에서의 辰 漆 辰 對 建 的 r 民 主 主 讓 J혁명의 수행으 로 설정하고 r 南 朝 鮮 革 命 J도 같은 범주의 개념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r L 후 6o년대에 걸쳐 南 北 聯 邦 料 가 및차례 제의되고 또 62년의 4 大 軍 事 路 線, 65년 3 大 拳 命 力 量, 67년 rlo 大 政 綱 J'", 69년의 '-1.21J사태와 統 革 黨 地 下 組 織 工 作 등 대남전략의 생.성. 발전과정에 있어서도 6o년대를 걸쳐 그들의 南 北 聯 邦 制 案 속에는 대남전략의 개템이 구도화되지 않았다. 이때만 하더라도 한국문제의 r유엔 化 J를 거부하여 民 族 內 部 問 題 化 하고저 특히 6o년대 중 반 기부터, 5o년대 중반기 이래 묵살된 有 關 國 會 讓 개최문제를 다시 들고 나 찰 던 시대이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南 北 聯 邦 制 는 7o년대를 거쳐 8o년대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對 南 革 命 戰 略 개팀의 生 成. 定 立 과 더불어 그 개념적인 틀 이 보완되고 구조화되게 되있다. 따라서 南 北 聯 邦 制 의 實 體 를 알기 위해 선, 그것을 對 南 革 命 戰 略 개념의 생성. 정립의 역사적 맥락과 연관시켜 분석. 검토해야 한다. l6) r 北 韓 全 書 J 下 卷 (국동문제연구소, 1974), p.54. 67년 l2월 l6일 金 日 成 이 最 高 人 民 會 議 第 4 期 제 l차 會 議 에서 한 lo 大 政 綱 演 說 에 나타난 統 - 方 案 은 (l)조 속 한 祖 國 統 一, (2) 南 韓 에시피 反 帝. 反 美 투쟁의 지원, (3) r 美 帝 J가 통일 의 장해, (4) 分 裂 된 조국올 후대에 넘겨줄 수 없다. (5) f린료 部 J는 전 국 적 범위의 民 族 解 放 關 爭 의 基 地 이며 原 動 力, (6) r 北 半 部 J의 革 命 基 地 力 量 출 강화, 南 韓 革 命 을 지원, (7) 언제든지 革 命 鬪 爭 에 대비할것 등이다. - l 6 -
(4) 7o년대의 趨 勢 7o년대의 특징은 첫째로 종래의 南 北 韓 平 和 協 定 체결제의를 계속 되풀이 해오다가 74년 부터는 對 美 平 和 協 定 체결을 제의하고, 둘째 6o년 이래 제의하던 r 南 北 朝 鮮 聯 邦 制 J를 수십차례에 걸쳐 제의하고, 세째 T - 軍 事 訓 練 의 중지를 간헐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했으며 네째 南 北 對 話 의 시작 과 더불어 對 話 開 催 의 선결조건으로서 綠 件. 環 境 論 을 본격적으로 들고 나 왔으며, 다섯째로 국제적인 反 轉. 反 核 운동의 무드를 타고 7o년대 중반기 이후 부터는 非 核. 平 和 地 帶 案 을 들고 나오기 시작한데 있다. 그러면 첫해로 停 戰 協 定 의 平 和 協 定 으로의 대체를 위한 南 北 誇 平 和 協 定 체결제의에서 料 美 平 和 協 定 체결제의에 이르는 역사적 맥락출 보다 체계 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5o년대 중반기 부터 시작된 南 北 韓 平 和 協 定 체결 제의를 時 系 列 的 으로 일벌해 보기로 한다. 停 戰 協 定 을 平 和 協 定 으로 대체시키기 위한 提 議 ( 北 韓 ) r 南 北 平 和 協 定 Jl7) 1) 54. 6. 15:'-제네바J회의 천글회의에서 外 相 ( 南 日 )연설 2) 56. 11. 7: 最 高 人 民 會 議 제l 期 제i2차 會 議 가 南 韓 民 議 院 및 人 士 에 보내는 便 紙 3) 63. 12. 10: 最 高 人 民 會 議 常 任 委. 祖 國 戰 線 率 央 s. 조국평화통얼위 출 同 會 議 대남 호소문 4) 65. 1. 8: 在 美 교포 金 龍 中 에게 보내는 金 日 成 회답서한 5) 69. 10. 8:제24차 유엔 總 會 관련 北 韓 政 府 備 忘 錄 6 ) 70. 6..22: 北 韓 政 府 備 忘 綠 7) 72. 1. 10: 金 日 成, r요미우리j기자 質 問 에 答 辯 8) 72. 5. 26: 金 日 成, r뉴요크 타임즈J 紙 r솔즈베리j 記 者 와의 會 見 9 ) 73. 3. 14: 南 北 調 節 養 제2차 會 議 ( 平 壤 ) 10) 73. 4. 5: 最 高 入 民 會 議 제5 期 제2차출 議 에서의 政 務 院 總 理 金 - 의 報 告 11) 73. 6. 12: 南 北 調 節 委 제3차 會 議 (서울) 12) 73. 6. 23:1-체코J 黨 제 l 書 記 r후사크j 환영 大 會 에서 의 金 日 成 연설 1 l7) r 南 北 韓 統 -. 對 話 提 議 tbu(1945~87)j (국토를일원 ). pp. 23~114. - l 7.
r 祖 國 統 - 5 大 綱 領 J속에 포함 r 美 國. 北 韓 平 和 協 定 l8) 1) 74. 3. 25: 最 高 人 民 會 議 제5 期 제츠 計 會 議 ~ 美 議 食 친 보내는 便 紙 ( 公 式 <b) 2 ) 76. 3. 28: 金 日 成, 日 本 r세까이j 誌 編 輯 局 長 과의 출 見 ( 交 叉 承 認 및 不 可 侵 條 約 반 대 ) 3 ) 77. 2. 8: 人 民 軍 創 設 28들 記 念 中 央 報 告 會 에서 副 總 參 謀 長 金 益 鉉 의 報 告 4 ) 79. 7. 10: 外 交 部 代 辯 人 성 명 5) r창릴 방안J 提 議 속에 포함 이상에서 보는 바 北 韓 은 r제네바j 會 讓 를 전기로 하여 5o년대 중반기를 전후하면서부터 南 北 간 武 諒 不 行 使 및 不 可 侵 條 約 체결, 軍 綿, 美 軍 撤 收, 連 席 會 議 ( 政 治 協 商 會 議 ), 軍 事 條 約 폐기, 有 關 國 國 際 會 議 등 다발적인 對 南 提 議 를 해오는 가운데 73년에 이르기 까지 南 北 韓 平 和 協 定 의 체결을 또 제 의했다. 그러나 停 戰 協 定 을 南 北 韓 平 和 協 定 으로 대체시키려는 그들의 戰 略 的 저의가 한국에서의 美 軍 撤 收 와 한국문제의 非 美 國 化 에 있출이 들어나서 美 國 과 우리측이 거부적인 태도로 일관하자 그들에게는 戰 略 的 탈출구가 필요했다. 對 美 接 近 의 적극적 시도가 그것이다. 그래서 74U3U25(g6l1 一 5=t= 으 로 對 美 平 和 協 定 체결을 公 式 으로 제의한 것이다. 76년3월28일에 있었 던 8 美 平 和 協 定 체결제의에 있어서는 5o년 대 중반기 이래 주장해 오 던 南 北 不 可 侵 條 約 체결 및 交 叉 承 認 에 대해 반대하기 시작했다. 어했든 한국을 배제한 직접적인 대미협상시도나 平 和 協 定 체결 등 2 者 會 談 은 미국측에 의해 수용될 수 없업다. 북한은 對 美 平 和 協 定 체결올 제 의한지 (74.3.25) 만lo년만인 84년4월l일 전법을 바리 55년이래의 不 可 侵 條 約 체결에 대한 주장대신에 不 可 侵 宣 言 을 公 式 化 하면서 韓. 美. 北 의 3 者 會 談 을 제의한 것이다. l8) r위외 책J. pp153~223. - l 8 -
둘께의 특징은 6o년이래 제의하던 南 北 聯 邦 制 를 7o년대에 와서는 그 戰 略 的 개념과 틀을 對 南 革 命 戰 略 과 밀착시켜 유기적으로 보완함으로써 계 속적으로 제의해 찰다. 그런데 南 北 聯 邦 制 는 별도의 항에서 상세히 검토할 계획임으로 여기에서는 다만 그것이 및번 形 態 및 內 容 에 있어서 發 展 的 인 찰바꿈을 했음을 지적하는데 그치겠다. 6o년 8월 l4일 김일성의 8.i5경축대회에서의 기념연설에서 제의된 r 南 北 朝 鮮 聯 邦 制 J는 그 명칭이 단순히 南 北 聯 邦 制 로 되어 있였고 現 制 度 를 그대 로 둔채 r 過 渡 的 對 策 으로서 실시한다는 것 외에 구체적인 內 容 이 명시돼 있지 않았다. 그러나 73년 6월 23일, 5 大 綱 領 속에 포함시켜 제의한 南 北 聯 部 制 에서는 高 麗 聯 邦 共 和 國 이라는 單 一 國 號 에 의한 과도적 연방제의 실시 와 통일논의에 있어서의 政 府 排 除 가 선결조건으로 제시되어 그 戰 略 的 저 麗 民 主 聯 邦 共 和 國 으로 징하고 또 그 선결조건이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 되 업을 뿐 만 아니라 및f로트LJl를찬 料 策 으로서가 아니라 통일된 形 態 라고 함으로써 그 전략적 實 體 가 더욱 명백해 졌다. 세째로 北 韓 의 제의 가운데서 7o년에 들어 와서 獨 特 하게 나타난 현상 은 南 北 對 話 를 위한 條 件. 環 境 論 이다. 條 件. 環 境 論 은.료 型 료 一 童 i@린 一 漆 경 조건에 관한 것으로서 그 중에는 美 軍 撤 il&, 辰 共 法. 保 安 法 의 폐기> 투옥인 사의 석방, 容 共 活 動 을 가능케 하는 言 論. 集 會. 結 社 의 自 由 등을 제시하는 데 이것은 한마디로 남한의 基 本 體 削 를 와해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것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이 T- 合 同 軍 事 訓 鍊 중지에 관한 요구이다. 전자는 72년 lo울 23일 처옴으로 제의된 이래 또 후자는 73년 4월 6일에 제의 된 이래 금일에 이르기 까지 되풀이 하여 제의되고 있다. 네째는 非 核. 平 和 地 帶 案 에 관한 선전공세이다. 7o년대 중반기부터 일기시 작한 전세f적인 辰 核. 辰 戰 運 動 에 편승하여 美 軍 撤 收 를 정당화하는 운동 으 로 몰아가고자 한다. 北 韓 이 최초로 76년 8월 東 京 에서 열린 r 轉 國 문제 - l 9 -
緊 急 會 議 J에서 韓 寧 島 의 非 核. 平 和 地 帶 化 그리고 78년 l2월 日 本 社 會 黨 r시모다히라j( 下 平 正 一 ) 부위원장의 平 壤 방문시 束 北 亞 非 核. 平 和 地 帶 化 를 제의한 이래 금일에 이르기 까지 기회있을 때마다 계속 되풀이 되고 있 f.l9) 북한은?년대 중반기 이래 非 核 化 문제를 軍 事 會 談 의 내용으로 압축 시키고자 시도해 오고 있다. 北 韓 이 7o 年 代 애 들어와서 처출으로 제기한 여러 提 議 는, 4o년대 이래의 主 張 들과 상호 보완관계서 主 客 觀 的 정세의 변화에 영합하면서 5차 黨 大 會 (70.11)에서 개정된 黨 規 約 속의 對 南 路 線 을 수행하기 위한 것임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5차 黨 會 議 에시의 路 線 이 그 이전의 黨 路 線 의 集 約, 보환체이 기 때문이다. 5차 黨 大 會 의 黨 規 納 은* 이미 논한 바 前 文 에서 r 全 國 的 撚 圍 에서의 民 族 解 放, 人 民 民 主 主 義 革 命 課 業 의 수행J을 당면목표로 설정하고 r 政 權 을 타도 하려는 南 朝 鮮 人 民 들의 反 美, 反 籠 懼 투쟁을 적극지지 성원하며 南 朝 鮮 革 命 의 誌 遂 를 위해 투쟁한다.J고 밝했다. 즉 남한에서의 麗 美 辰 政 府 투쟁에 의한 人 民 民 主 革 命 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말이다 營 이와 같은 년 서두에 명백히 들어나고 있다. 許 談 은 서두에서 우리 정부가 타도되고 r남조선에 人 民 의 政 權 이 수립되거나 애국적인 인주인사가 남조선에 들어 誇 여야 한다J2o)고 했다. 여기에서 보면 남한에서 人 民 民 主 主 義 革 命 에 의해 새로 들어설 과도기적인 容 共 政 權 인 人 民 政 權 의 수립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한 것이다. 북한은 7o 年 代 에 革 命 에 의해 우리 政 府 를 타고하고 새로 세 울 容 共 政 權 의 성격을 人 民 政 權 으로 개념규정한 것이다. l9) 2o) 跡 w 9 출 流 (Ui4aa UsUi-Uggoii U. U. "U 國 際 情 勢 와 祖 國 의 讀 主 的 統 一 을 축진시키는 데 대하여" (1971. 4. 12) - 2 o -
(5) 8o 年 代 의 趨 勢 7o 年 代 에 있있던 북한제의의 特 徵 은, 南 北 韓 平 和 協 定 체결 제의에 서 對 美 平 和 協 定 체결제의로의 전환, 南 北 聯 邦 料, 條 件. 環 境 論, T 一 合 同 訓 鍊 中 止, 그리고 非 核. 平 和 地 帶 論 의 형식을 취하면서 政 治. 軍 事 문제 우선의 一 括 妥 結 主 義 로 일관했다는 점에서는 그 이전 시대와 본질적으로 같은 맥 락에 있있다는데 있다. 8o 年 代 에 들어 와서도 그 제의의 形 式 은 달라겠으 나 美 軍 撤 收 와 軍 縮 에 출점을 두는 政 治. 軍 事 문제 우선의 一 括 妥 結 主 義 라 는 본질에 있어서는 전혀 다를바 없다출 그들이 8o 年 代 에 들어와서 취했던 제의형식은, 미국이 料 美 平 和 協 定 체 결제의를 거부하자 3 者 會 談 의 게최를 제의하고 또 이것이 3 軍 事 當 局 者 會 談, 南 北 淸 位 級 政 治. 軍 事 會 談 등 여러 形 式 으로 운신의 9 을 넓히면서 탈바꿈 을 거듭해 왔다. 이제 그들 제의 가운데서 중요한 것을 時 系 列 的 으로 개 관키로 한다. r3 者 會 談 J2l) 1) 84. 1. 10 : 中 央 人 民 委 員 출. 最 高 人 民 출 議 聯 출출 議 ( 不 可 價 宣 言 주장) 2) 84. 1. 25 : 最 高 人 限 會 議 제 7 期 제 3차 會 議 許 談 보고 3) 84. 3. 7 : 정무원 총 리 美 成 山, 陳 漆 鍾 총리에 便 紙 4 ) 86. 1. 1 : 金 日 成 新 年 辭 5) 88. 12. 30 : 政 務 院 總 理 延 亨 默 이 便 紙 여기에서 특기할 것은 76 年 3 月 28B, 對 美 平 和 協 定 을 제의할 때 종 피 _ 9 브 l 9 년 l월 lo일에는 南 北 不 可 侵 宣 言 을 요구한 점이다. 3 者 會 談 과 形 式 上 같은 3 者 會 談 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다만 軍 事 問 題 를 표현상 강조한 것이 3 軍 事 當 局 者 會 議 이다 營 2l) r 南 北 韓 統 -. 對 話 提 議 比 較 1945~1987.i(국토통얼원, 1987), pp. 261, 263 ~ 2 6 4, 3 9 3 ~ 3 9 4. - 2 l -
r3 軍 事 當 局 者 會 談 J22) 1) 86. 6. 17 : 人 民 武 力 部 長 료 振 宇, 우리 國 防 長 官 및 聯 合 軍 司 令 官 에게 보내는 便 紙 會 2) 86. 6. 26 : 南 北 經 謂 會 談 北 側 代 表 團 長, 이성록의 談 話 3) 86. 7. 2 : 南 北 赤 + 字 會 談 北 側 代 表 團 長, 이종를의 談 話 4) 86. 7. 5 : 人 民 武 力 部 長 異 振 宇, 우리 國 防 長 官 및 聯 合 筆 司 令 官 에게 보내는 便 紙 5) 86. 7. 15 : 朝 鮮 赤 + 字 會 代 表 團 성명 6) 86. 7.21 : 祖 國 統 - 民 主 主 義 戰 線 결성 4o들 記 念 서기국장, 유호준의 記 念 報 告 7) 86. 8. 10 : 北 側 會 談 代 表 團 代 辯 人 共 同 聲 明 8) 86. 8. 14 : rg. IS., 41글 즈음 政 黨. 社 會 團 體 聯 合 聲 謂 9) 86. 9. 8 : rg. 9J 節 38를 기념 中 央 報 告 大 會 연형목 기념보고 韓 國. 美 國. 北 轉 의 3 軍 事 當 局 者 會 談 이 韓 美 兩 國 에 의해 거부되자 北 韓 이 절충형으로 2 者 會 談 의 形 式 을 취하면서 政 治. 軍 事 問 題 의 一 括 妥 結 을 다시 시도한 것이 南 北 高 位 綠 政 治. 軍 事 會 談 의 제의였다 출 r 南 北 高 位 級 政 治. 軍 事 會 談 J23) 1) 86. 12. 30 : 最 高 人 民 會 議 제8 期 제 i차 會 議 에서의 金 日 成 연설 2) 87. 1. 1 : 政 務 院 총리. 인민무력부장 對 南 便 紙 (방송) 3) 87. 1. 15 : 南 北 國 會 談 예비접촉 北 側 代 表 團 長, 전금철 談 話 4) 87. 1. 16 : 朝 鮮 赤 + 字 會 代 表 團 長, 이종률 談 話 5) 87. 1. 17 : 南 北 經 濟 會 談 北 側 代 表 團 長, 이성록 談 話 6) 87. 1. 21 : 政 務 院. 人 民 武 力 部 長 대변인 共 同 聲 謂 7) 87. 1. 28 : 南 北 회담 北 側 代 表 團 共 同 聲 明 8) 87. 1. 30 : 政 務 院 총리. 인민무력부장 2차 對 南 便 紙 9 ) 87. 3. 3 : *. # 3차 對 南 편지 10) 87. 3. 5 : 朝 鮮 赤 + 字 會 代 表 團 長, 이증를 談 話 11) 87. 3. 6 : 南 北 經 濟 會 談 北 側 代 表 團 長, 이성록 談 諸 12) 87. 3. 8 : 南 北 國 會 會 談 예비접촉 北 側 代 表 團 長, 전금철 談 話 13) 88. 1. 1 : 金 日 成 의 新 年 辭 14) 88. 11. 16 : 政 務 院 총 리 李 根 摸 의 便 紙 22) r위의 책J, pp. 413~414, 419~433. 477~478. 23) r위의 책J pp. 447, 451, 455~457, 463~467. - 2 2 -
여기에 北 韓 의 제의를 時 系 列 的 으로 개관하면 北 韓 이 86년 중반기에서 부터 말에 이르기 까지 집중적으로 3 軍 事 當 局 者 會 談 을 제의한데 이어 8 7 년 초에 이르기 까지 政 治. 軍 事 우선주의의 같은 전략적 맥락에서 南 北 高 位 級 政 治. 軍 事 會 談 을 제의 했응을 알수 있다. 그런데 북한이 이들 3 軍 事 當 局 者 會 談 및 南 北 淸 位 級 政 治. 軍 事 會 談 의 제의와 거의 때를 같이 하여 T 一 合 同 軍 事 訓 練 中 止 와 非 核. 平 和 地 帶 案 을 제의 했다는 사실은 우 리가 주목할만하다. 이들 문제에 대한 그들의 제의내역은 대략 다음과 같다 rt 一 合 同 軍 事 訓 鍊 中 止 J24) 1) 73. 4. 6 : 最 高 人 民 會 議 제 5 期 제2 차 會 議 決 定 2) 78. 3. 6 : 外 交 部 聲 明 ( 公 式 化 ) 3) 78. 3. 12 : 許 談, 스리랑카 外 交 部 長 에 電 支 4) 79. 1. 23 : 祖 國 統 - 民 主 戰 線 中 央 委 聲 明 5) 79. 2. 28 : 人 民 武 力 部 長 代 辯 人 聲 明 6) 79. 3. 7 : 南 北 變 則 對 坐 때 7) 81. 2. 11 : 祖 國 平 和 統 一 g 員 會 要 員 長, 金 日 聲 謂 8) 82. 2. 14 : 外 交 部 聲 明 9) 85. 1. 9 : 政 務 院 副 總 理, 김환 南 韓 에 電 通 交 10) 86. 1. 1 : 金 日 成 의 新 年 辭 11) 86. 1. 11 : 外 交 部 聲 明 12) 86. 1. 20 : 各 南 北 會 談 北 側 代 表 團 共 同 聲 明 13) 86. 6. 17 : 人 民 武 力 部 長 要 振 字, 南 韓 國 防 長 官 및 聯 合 司 令 官 에 게 便 紙 14) 86. 12. 30 : 最 高 人 民 會 談 제8 期 제 i차 會 議 에서의 金 日 成 演 說 15) 87. 1. 11 : 南 北 經 濟 會 談 北 側 代 表 團 長, 이성록 談 話 16) 87. 1. 26 : 祖 國 平 和 統 一 委 員 會 要 員 長 許 鑛 명의로 성명 17) 87. 1. 28 : 南 北 會 談 北 側 代 表 團 共 同 聲 謂 18) 88. 1. 1 : 金 日 成 의 新 年 辭 19) 89. 1. 1 : 金 日 成 의 新 年 辭 78년 이래 北 韓 이 公 式 的 으로 적극 전개하여 온 T 一 合 同 軍 事 訓 鍊 에 대한 비방과 때를 같이 하여 進 行 推 進 한 운동은 非 核. 平 和 運 動 이있다. 7o년대 24) r위의 책J, pp. 141. 195, 311. 394, 397. 413, 447, 451, 459. - 2 3 -
중반기 이래의 國 際 的 인 辰 核. 辰 戰 運 動 의 분위기와 南 韓 에서의 運 動 圈 學 生 및 在 野 의 民 衆 運 動 으로 인한 8o년대 중반기 이래의 社 會 的 混 亂 에 便 乘 하여 非 核. 平 和 地 帶 設 定 에 대한 정치적 선전은 더욱 加 熱 해졌다. 이제 Z L 러면 非 核. 平 和 地 帶 化 선동에 대한 北 韓 의 遍 歷 을 零 살펴보자 r 非 核. 平 和 地 帶 案 J25) 1) 76. 8. : 東 京 에서 열린 r 韓 國 問 題 緊 急 國 際 會 議 J( 韓 漆 島 의 非 核. 平 和 地 帶 化 에 대한 최초의 주장) 2 ) 78. 12. : 日 本 社 會 黨 下 平 I E - 則 g 員 長 平 壞 방문때( 東 北 亞 의 非 核. 平 和 地 帶 化 에 대 한 최초의 주장) 3 ) 80. 10. 13 : 제 6 차 黨 大 會 4 ) 81. 3. 린 : 朝 鮮 要 動 黨 과 日 本 社 會 黨 共 同 聲 謂 5) 82. 1. : r아스까다 이찌오J( 飛 島 田 一 維 ) 日 本 社 會 黨 要 員 長 訪 北 때 6 ) 84. 1. : 各 國 國 會 에 呼 訴 支 7 ) 85. 10. : 유엔 總 會 參 席 副 主 席 朴 成 哲, 基 調 演 說 에서 呼 訴 8) 85. 11. : 美. 소 頂 上 會 談, 大 學 街 r 反 戰. 反 核 J 口 號 에 便 乘 9 ) 86. 6. 23 : 政 府 各 義 로 公 式 採 擇 10) 86. 8 : r 朝 鮮 平 和 옹호 全 國 民 族 委 員 會 J 各 義 로 지지호소 11) 86. 9. : 非 核. 平 和 를 위한 平 壞 r 國 際 會 議 J에서 決 議 文 12) 87. 7. 린 : 外 交 部 聲 明 13) 87. 7. 23 : 北 韓 政 府 聲 明 14) 88. 1. 1 : 金 日 成 의 新 年 辭 15) 88. 6. 9 : 몽고 r 國 際 會 讓 J에서 北 韓 代 表 支 持 呼 訴 16) 88. 6. : 東 歐 政 r 國 際 會 議 J에 非 核 主 張 지지초소의 金 日 成 電 支 위의 年 表 에서 보면 北 韓 의 8o년대 統 一. 對 話 제의 特 徵 은 후술하는 南 北 聯 邦 制 에 관한 것을 제외하면 對 美 平 和 協 定 체결제의 襤 折 때문에 戰 術 的 으로 전환하여 公 式 會 談 인 3 者 會 談. 3 軍 事 當 局 者 會 談. 南 北 高 拉 政 治 軍 事 會 談 제의와 병행하여 在 野 와 국제사회를 의식하여 T- 合 同 軍 事 訓 鍊 중지와 非 核. 平 和 地 帶 設 避 를 선전선동해 온데있다. 북한은 종래의 政 治. 軍 事 문제에 25) r위의 책J, pp.227~447. r 兩 外 通 信 J(33). pp.579~580 및 r같은 책J(36). pp.118~120. - 2 4 -
대 한 斷 片 的 인 주장을 包 括 的 으로 집약하여 一 括 찰 結 을 기도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政 治. 軍 事 問 題 優 先 의 一 括 要 結 主 義 는 8o년대 후반에 들어와서 더욱 정교하게 나타났다. 소위 r 平 和 保 瞭 4JiKXlL(88. 1. 7)을 비롯하여 r1료f 話 6t 平 和 方 針 J(88. 1. 7) 그리고 r 民 族 團 合 5개 方 案 J(88. 1. 11)이 바로 그것이다. 盧 大 統 領 이 작년 lo월 l9일 un 總 會 에서의 연설을 통해, 南 北 頂 上 會 談 출 束 北 亞 平 和 協 議 會.4 强 에 의한 交 叉 承 認 등 포괄적인 平 和 構 想 을 밝힌데 대한 거부반옹으로 제의한 것이 平 和 保 障 4 原 則 이다.26) 북한은 88 bu _n U 7(y 平 壞 에서 개최된 中 央 人 民 委 員 會. 最 高 人 民 會 議 常 設 會 議. 政 務 院 둥. 聯 合 會 議 7프q료z 重 로3트9rr-U-7p4-UiU)ii-ab=p).U--a-U-_ 向, 2) 駐 韓 美 軍 撤 收, 3) 南 北 韓 軍 綿, 그리고 4) 南 北 韓 과 美 國 이 참 여 하는 當 局 者 協 商 이 그것이다 零 平 和 保 障 4 原 則 을 그들의 입장으로 하여 북한은, 우리측의 요청으로 연 기된 南 北 國 會 談 준비접촉과는 별도로 l) 南 北 韓 高 拉 級 3A?출. 筆 事 會 談, 2 ) 在 野 를 포함한 汎 民 族 大 會 의 召 集 을 위한 實 務 代 表 會 談, 3) 3 者 會 談, 4) 아시안게임 (9o) 單 -팀 構 成 을 위한 體 育 會 談 그리고 5) r 世 界 靑 年 學 生 祝 典 J.참가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南 北 韓 學 生 會 談 등 동시다발적인 제의를 했던 것이다. 民 族 團 合 5개 方 案 은 祖 國 戰 線 中 央 委 와 祖 國 平 和 統 一 委 의 聯 合 會 議 에서 채 택된 것인데 l) 南 韓 政 府 의 타도와 民 主 ( 容 共 ) 政 權 의 수립, 2) 麗 共 의 排 拏 과 團 출, 3) 民 主 ( 容 共 ) 政 權 이 세워지면 對 話 의 문호개방, 4) 제 2 차 올림픽 大 會 를 民 族 共 同 의 利 益 에 맞게 해결 그리고 5) 武 力 衝 突 과 긴장완 화를 위해 최소한도의 緊 急 措 置 의 우선적 강구가 그것이다.27) 종래의 단괸적인 주장을 複 合 的 으로 집약시킨 이들 原 則. 方 案 을 토대로 26) r 內 外 遍 信 J. 1988. 11. 11. 27) r 南 北 韓 統 -. 對 話 提 識 뇌 較 J(국토통일원. 1987), p.513. - 2 5 -
북한은 89년에 들어와서도 南 北 高 位 經 政 治. 軍 事 會 談 의 리최와 政 治 協 商 形 識 의 連 席 會 談 그리고 群 衆 集 合 의 변형인 汎 民 族 大 會 의 개최를 고집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제의하는 方 案. 原 則. 形 式. 會 談 을 가리키는 낱말은 달할도 그 속인은 같은 것이다. 그들은, 南 北 韓 平 和 協 定 이나 對 美 平 和 協 定 과 같은 2 者 會 談 의 形 式 이 韓. 美 兩 國 에 의해 받아들어질수 없기 때문 에 形 式 上 3 者 會 談 의 테두리 안에서 다만 美 國 과 대등한 관계에서 平 和 協 定 을 체결하여 駐 韓 美 軍 을 철수시키는 반면에 南 韓 과는 不 可 侵 豈 言 을 채택 하여 軍 綿 과 같은 군사문제를 해결한 다음 대화에 응하고저 하기 때문이 다. 이런 戰 略 的 맥락에서 본다면 북한의 統 一. 對 話 의 제의는 제3차 黨 大 會 (56)에서 4차 黨 大 會 (6l)와 5차 黨 大 會 (7o)를 거쳐 제6 차 黨 大 會 에 이르는 동 안 生 成 ' 發 展 되어 業 規 約 에 명문화된 反 索 反 封 建 r 畏 主 J 革 命 이나 民 族 解 放 人 民 主 義 革 命 의 전략적 본질, 다시 말해서 r 南 朝 鮮 革 命 J 論 理 에서 적어도 지금 現 在 까지 한치도 및어나 있지않다. 따라서 그들의 주장에서 본다면 對 美 平 和 協 走 의 체결에 의한 美 軍 撤 收 와 南 北 韓 不 可 侵 宣 言 에 의 한 軍 縮 등 軍 事 問 題 의 해결은 r 民 族 解 放 J이나 革 命 을 위한 先 決 綠. 件 이다 拏 그리고 政 治 協 商 撚 式 의 連 席 會 議 나 汎 民 族 會 議 등은 우리 體 制 를 전복시키 기 위한 統 一 談 線 戰 術 의 한 형태이다. 지난 l월 3o일 許 熱, r 祖 國 平 和 統 一 3 員 會 J의 Q 員 長 이 盧 大 統 領 의 代 表 權 흘 인정하지 않고 4 黨 代 表 의 한 사람으로 참가할 政 沿 協 商 會 議 의 개최를 제의한 것도 이런 載 略 的 脈 終 에 서 이있다 출 이상으로 4o 年 代 에서 금일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을 편의상 및게 단계로 시기구분하여 그 不 變 性 과 可 變 性 을 중심으로 출 階 段 에서의 北 韓 의 統 一 ' 對 話 提 議 의 추새를 검토했다.?러면 이제 이들 各 階 段 에 걸쳐 이뤄진 그들 提 議 의 일관적인 不 變 의 特 徵 을 정리해 보겠다 燎 - 2 6 -
(6) 北 韓 의 統 一. 對 話 戰 略 의 - 貫 的 인 特 機 앞에서의 時 系 列 的 인 추세에 대한 검토를 토대로 하여 북한z 統 - ' 對 話 戰 略 에서 발견되는 一 貫 的 인 特 微 28)을 다응과 같이 정리할수 있다. 즉 (l) 休 戰 協 定 의 平 和 協 定 으로의 代 替, (2) 政 治. 軍 출문제 先 決 의 - 括 妥 結 主 義, (3) 多 務 的 인 先. 合 作, 後. 交 流 論 理, (4) 群 衆 集 合 의 政 治 協 商 方 式 그리고 (5) 先 출 朧 件 環 境 論 이다. 그러나 이들 여러 特 微 은 제 각기 독립 적인 요소라기 보다는 시로 밀접히 연결되어 複 合 的 인 특징을 구성한다. 첫때 休 戰 協 定 의 平 和 協 定 으로의 대체에 대한 루한 주의.주장의 l차적 인 목표 는 美 軍 撤 收 에 두어적찰다. 48년 이래 주장된 북한의 美 軍 撤 收 에 대한 주장은 제네바 會 議 (54)에시의 外 相, 南 日 의 제의를 하나의 전기로 하여 軍 縮 問 題 와 이어걱서 休 戰 協 定 을 平 和 協 定 으로 대체시킬 것을 요구하는 形 式 으 로 나타났다린 休 戰? 定 의 平 和 協 定 으로의 대체에 대한 북한의 제의는 처응 제네바 會 議 에서 주장한 이래 南 北 韓 平 和 協 定 의 체결을 주장했으나 南 北 對 話 와 더불 어 政 治. 軍 事 問 題 先 決 主 義 로 나오면서 74년 이래는 3ttE 平 和 協 定 의 체 결에 대한 요구로 탈바꿈 했다. 유엔 決 議 에서 탄생된 우리 政 府 의 正 統 性 과 출 法 性 을 부인하기 위한 그들의 戰 略 의 표현이있다. 특히 8o년대 중반 기 경부터 平 和 協 定 의 체결에 대한 북한의 제의는 r 政 治. 軍 事 會 談 J의 개 최에 대한 公 式 的 인 제의로 나타남으로 政 治. 軍 事 問 題 先 決 主 義 로 그들의 입장은 경직되게 되있다 출 둘째는 休 戰 協 走 의 平 和 協 定 으로의 대체에 대한 북한의 요구가 美 軍 撤 J 撚 에 핵심적인 목표가 두어했으니 만치 그것이 政 治. 軍 事 先 決 의 一 括 要 結 主 義 에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論 理 的 귀결이있다. 북한은 점차 駐 韓 美 軍 撤 lla문제를 핵심문제로 집중적으로 거른하려는 기본입장에서 며러 形 式 의 協 28) 문철순, "실효적 남북대화의 조건", r 外 漆 J 제호(한국외교협회, 1989. 3), pp.55~64 및 정세현, "북한의 대남사업 방향과 납북대화. 교류의 전망H, r같은 전집J같은 호, pp.65~72. - 2 7 -
商 을 제의하는데 전전했다. 북한이 74 年 3 月 25 日 이래 對 等 한 관계에서의 韓 國 의 참석을 때제한 對 美 平 和 協 定 체결을 제의한데 대해 美 國 側 이 거부 래는 3 軍 事 當 曆. 者 會 談 그리고 86년 l2월 이래는 南 北 高 位 級 政 治. 軍 事 會 談 의 제의둥 3 者 會 談 이나 2 者 會 談 의 形 式 을 빌려 제의했다. 그러나 여기에 료p이며 다만 韓 國 은 不 可 侵 宣 言 의 대상으로 밖에 보지 않는다는 사실이 ~ l t t t / / - - # / 다. 우리 政 府 를 대등한 協 商 의 대상으로 보지않기 때문이다. 셋때는 多 務 的 인 先. 合 作 > 後. 交 流 論 理 이다. 북한은 戰 術 的 으로, 平 和 指 向 的 인 대화주도의 이미지를 대외적으로 선전하기 위해서는 政 治. 軍 事 會 談 과 같은 當 局 者 會 談 을 제의하기도 한다. 그러나 基 本 戰 略 에 있어서는 우리 측이 주장하는 政 府 當 局 간의 對 話. 交 流 보다는 政 業. 社 會 團 體. 個 人 人 士 등 非 當 局 간의 출 作. 交 流 를 주장한다. 우리측의 政 燎 當 局 간의 先. 交 流, 後. 協 力 의 論 理 에 대해 북한측은 政 治. 軍 事 先 決 의 一 括 要 結 主 義 에서 先. 合 作, 後 ' 交 流 의 논리에 집착해 왔다. 북한은 對 話 를 혁명을 위한 투쟁으f 보 고 統 一 戰 線 을 바탕으로 하는 人 民 民 主 主 鐘 革 命 戰 略 을 추구하고.있으니 말이다. 북한이 當 局 者 간의 대화아닌 政 黨. 社 會 團 體. 個 人 人 士 간의 대화를 추구하 니, 우리측의 對 話 努 口 의 - 元 化 와 할서는 審 口 의 多 務 的 인 多 元 化 에 대한 주장으로 줄다리기 하고 있는 것이다. 금년도 新 年 辭 는 통해 金 日 成 이 r 高 麗 民 主 聯 邦 共 和 脚 J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하자고 하고 南 北 高 位 經 政 治 協 商 會 議 를 개최할것을 제의하면서도 南 北 當 局 者 간 政 治 協 商 會 議 가 아니라 盧 大 統 領 을 4 黨 黨 首 의 한사람 자격으로 金 壽 煥 추기경, 文 益 煥 목사 그리고 白 基 境 씨와 더불어 참석하라고 일방적으로 초청했다. 盧 大 統 領 즉 政 府 의 正 統 性 이나 代 表 權 을 부인하기 위한 논리에서 이있다. 북한은 南 朝 鮮 革 命 을 위 해 2 重 戰 略 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출 - 2 8 -
넷째는 對 話 를 위한 群 衆 集 合 方 式 의 政 治 協 商 에 관한 것이다. 북한은 當 局 者 간의 對 話 보다는 政 黨. 社 會 團 體. 個 人 人 士 를 망라한 非 當 局 간의 政 治 協 商 또 先. 交 流, 後. 協 力 보다는 先. 一 指 的 合 作, 後. 交 流 를 위한 連 席 會 議 의 개최를 제의해 왔다. 이들 群 衆 集 合 方 式 의 政 治 協 商 會 議 는 連 席 會 議 大 民 族 會 議, 全 民 族 大 會, 民 族 統 一 促 進 大 會, 南 北 政 治 人 聯 合 會 議, 汎 民 族 會 議 등 때에 따 라 여러가지 낱말로 바뀌진다. 어했든 群 衆 集 合 方 式 의 政 治 協 商 會 讓 는 當 局 者 를 對 話 의 主 體 로 거부하는 그들 論 理 와 같은 맥락에 있다 찰 다섯때는 對 話 를 위한 先. 條 件 環 境 請 이다. 先. 條 件 環 境 論 은 대화의 개시. 中 斷. 決 裂 에 대한 책임을 南 韓 에 전기시키기 위한 北 韓 의 투쟁전술 이다. 여기에서 가장 빈번히 원용되있던 조건은 美 軍 撤 收 를 비롯하여 辰 共 法. 保 安 法 의 철폐, 정치법의 석 방 등이며 7o년대 말이래 T 一 출 同 軍 事 訓 鍊 中 止 에 대한 주장이 덧붙여졌으며 또 7o년대 중반기 부터 非 核. 平 和 地 帶 設 置 에 대 한 선전. 선동이 이에 가세하게 됐 다 零 - 2 9.
넷때는 對 話 를 위한 群 衆 集 合 方 式 의 政 拾 協 商 에 관한 것이다. 북한은 當 局 者 간의 對 話 보다는 政 黨. 社 會 團 體. 個 人 人 士 를 망라한 非 當 局 간의 政 沿 協 商 또 先. 交 流, 後. 協 力 보다는 先. 一 指 的 合 作, 後. 交 流 를 위한 連 席 會 議 의 개최를 제의해 왔다. 이들 群 衆 集 合 方 式 의 政 治 協 商 會 讓 는 連 席 會 讓 f 大 民 族 會 議, 全 民 族 大 會, 民 族 統 - 促 進 大 會, 南 北 政 治 人 聯 合 會 議, 汎 民 族 會 議 등 때에 따라 여러가지 낱말로 바뀌진다. 어했든 群 衆 集 合 方 式 의 政 治 協 商 會 議 는 當 局 者 를 對 話 의 主 體 로 거부하는 그들 請 理 와 같은 맥락에 있다 찰 다섯째는 料 話 를 위한 先. 條 件 環 境 論 이다. 先. 綠 件 環 境 論 은 대화의 개시. 中 斷. 決 裂 에 대한 책임을 南 韓 에 전기시키기 위한 北 韓 의 투쟁전술 이다. 여기에서 가장 빈번히 원용되있던 조건은 美 軍 撤 收 를 비롯하여 反 共 法. 保 安 法 의 철폐, 정치범의 석방 등이며 7o년대 말이래 T 一 合 同 軍 事 訓 鍊 中 止 에 대한 주장이 덧붙여했으며 또 7o년대 중반기 부터 非 核. 平 和 地 帶 設 置 에 대한 선전. 선동이 이에 가세하게 됐다 寧 - 2 9 -
2. r 高 麗 民 主 聯 邦 共 和 國 J의 寶 體 와 漆 態 앞에서 북한의 統 一. 對 話 제의내용을, 持 績 性 과 可 變 性 을 중심으로 時 系 列 的 으로 분석차여 그 추세와 特 機 올 검토했다. 이와 같은 추세에서 본다 면 북한이 聯 邦 制 를 제의해 온것은 6o년이래 8o년대에 이르기 까지의 기 간이다. 그러면 여기에선 북한이 제의하는 聯 邦 制 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편의상 몇개 殺 階 로 구분하여 그 槪 念 의 生 成 즉 변천을 먼저 검토한다. 1) r 高 麗 民 主 聯 邦 共 和 國 J의 槪 念 生 成 과 그 變 遷 (l) r 南 北 朝 鮮 聯 邦 制 J와 그 內 容 (60-72) 북한이 聯 邦 料 제의에 있어 r 南 北 朝 鮮 聯 邦 制 J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와에서 논한 바 6o년 8월 l4일, 金 日 成 이 1-8.15J해방 i5 周 年 경축대회에서의 연설을 통해서였다. 그 후 r5 大 綱 領 J(73. 6. 23)이 발 표되기 이전까지는 대체로 r 過 渡 的 對 策 으로서 南 北 軸 鮮 聯 邦 削 J를 실시할 것을 빈번히 제의했다. 그 주요 내력은 다을과 같다. 60. 8. 1 4 : r8. l5 解 放 J i5 周 年 경축대회 연설에서 金 日 成, r 過 渡 的 對 策 J으로서 南 北 朝 鮮 聯 邦 制 提 議 60. 11. 1 1 : U N 제l5차 總 會 에 제출한 UNCURK의 제io 流 年 例 報 告 에 대한 北 韓 備 忘 錄 60. 11. 19 : 最 商 人 民 會 議 제2기 제8차 會 議 에서 同 常 條 委 員 長 崔 庸 健 報 告 60. 11. 2 2 : 最 高 人 民 會 議 제2기 제8차 會 議 에서 채택 60. 11. 2 4 : 最 高 人 民 會 讓 讓 長 崔 元 澤 平 壤 방송을 통해 韓 國 國 會 에 審 議 를 요구 61. 5. 9 :r 祖 國 平 和 統 - 要 J경성 大 會 에서 Q 員 長 洪 命 漆 가 제시한 統 一 方 案 - 3 o -
62. 10. 2 3 : 最 淸 人 民 會 議 제3기 제l차 會 讓 ( 聯 邦 制 의 先 漆 조건 美 軍 撤 Jl&) 65. 1. 3 :r 在 美 朝 鮮 問 題 硏 究 所 J 所 長 金 龍 中 에게 問 答 書 輸 69. 9. 2 : 金 日 成, r핀랜드j 共 産 黨 기관지 r칸산 우티세트J 特 派 員 과 회견 69. 10. 8 : 제24차 un 總 會 관련 北 韓 政 府 備 忘 綠 70. 11. :제5차 黨 大 會 에서 제시한 統 - 方 案 71. 4. 12 : 最 高 人 民 會 議 제4기 제5차 회의에서 外 相 許 談 r8개 條 項 J의 統 一 方 案 72. 9. l7 : 日 本 r 每 日 新 聞 J기자들이 제기한 質 問 에 대한 金 日 成 의 대답 73. 4. 5 : 最 高 人 民 會 議 제5기 제2차 全 員 會 讓 에서 한 政 務 院 총리 김일 報 告 이들 6o년에서 7o년대 초에 걸쳐 있있던 여러 제의 가운데서 가장 代 表 的 인 것은 6o년 8월 l4(a. 8.15경축대회의 연설을 통한 金 日 成 의 제의 이다. 그 주요내용을 보면 다출과 같다. r...자유로운 南 北 總 選 擧 를 실시하는 것이 平 和 的 祖 國 統 一 의 가 장 合 理 的 이고 現 實 的 인 겉이라는 것을 논박할 여지가 없다. 우리는 南 朝 鮮 의 모든 政 黨, 社 會 團 體 들과 各 階 各 層 인민들에게 이러한 選 擧 의 실시를 위 하여 나설것을 호소한다. 만일 南 朝 鮮 當 局 이... 南 北 總 選 擧 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면... 過 渡 的 인 對 策 이라도 세워야 할것이다. 우리는 이러찰 對 輦 으로서 南 北 朝 然 의 聯 邦 制 를 실시할 것을 제의한다... 聯 邦 制 는 당뵨간 南 北 朝 鮮 의 現 在 制 度 를 그대로 두고... 獨 自 的 인 활동을 보존하면서 동시 에 두 政 府 의 代 表 로 구성되는 最 高 民 族 委 員 會 를 조직하여 주 로 南 北 朝 鱗 의 經 濟 支 化 발전을 統 - 的 으로 조절...이리한 聯 邦 制 의 실시는 비록 各 階 各 層 을 망라하는 統 一 的 인 聯 合 政 府 가 못되어서 를일적인 國 家 的 지도 를 못하더 라도...U 29) 金 日 成, " 朝 鮮 人 民 의 民 族 的 명절 8.i5 解 放 i5돌 경측대회에서 한 報 告 -, r 新 東 亞 J i989년 i월호 별책부록. p.171. - 3 l -
이 金 日 成 의 報 告 에서 제의한 %친 料 料 鮮 의 聯 邦 制 J의 주요내용은 첫깨 聯 邦 削 가 현 制 度 를 그대로 두고 總 選 擧 실시 때 까지의 r 過 渡 的 인 對 策 J 이며, 둘째 그 機 能 이 經 濟. 文 化 의 統 一 的 인 發 展 에 두어져 있으며, 세째 그가 생각한 출 一 政 府 란 r 聯 合 國 家 J를 의미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聯 合 國 家 란, 國 際 法 의 國 家 聯 合 올 의한 것인지 또는 소비에트화 過 程 을 모델로 한 過 渡 期 形 態 인 聯 立 政 府 를 의한 것인지는 명백하지 않다. 그러나 처음 부터 總 選 參 의 先 決 條 件 으로서 美 軍 撤 收 를 주장한 북한이 r 南 朝 鮮 革 命 J을 3차 黨 大 會 (56) 및 4차 黨 大 會 (6l) 黨 規 約 에서 북한에서의 혁명과 마찬가지로 辰 漆 辰 封 建 民 主 革 命 으로 규정했을 뿐더러 4차당대회에서의 r 事 業 總 和 報 告 J 를 통해 金 日 成 이 南 韓 의 r 民 主 J 力 量 과 北 韓 의 社 會 主 義 力 量 이 r 團 合 J하여 統 一 을 실현하다고 하고 65년 4월 l4일 인도네시아 r알리아르함j 社 會 科 學 院 에서 한 연설에서 3 大 諒 量 의 강화를 강조하고 또 66년 lo월 5일 勞 動 黨 代 表 者 大 會 에서 先. r 南 朝 鮮 J 革 命, 看. 合 作 統 一 을 강조했다는 접 등에서 미루어 보더라도 그 想 定 한 統 一 國 家 = 聯 合 國 家 란, 결코 國 際 漆 상의 國 家 聯 合 이 아니라 週 渡 的 으로 政 治 的 연합인 聯 立 政 權 의 단계를 거치는 共 産 統 一 國 家 와 같은 핵락의 拳 命 戰 略 개념 이없음이 분명하다. 南 北 合 作 에 의한 赤 化 統 一 路 線 이 그 후 점차 개념적으로 다듬어져 漆 기 때문이다. 북한의 r 南 北 朝 鮮 聯 邦 制 J제의에 대해 金 日 成 의 제의(60. 8. 14) 다음에 검토할 가치가 있는 것은 5차당대회에시 제시한 統 一 方 案 (70. 10)과 最 高 人 民 會 議 제4기 제5차 會 議 에서 外 相, 南 日 이 보고하여 제시한 r8개 條 項 J (71. 4. 12)의 統 一 方 案 이다. 6o년대에서와 마찬가지로 같은 명칭으로 r 南 北 朝 鮮 聯 邦 制 J률 제의하는 7o년대 초는 시기적으로 休 戰 協 定 을 平 和 協 定 으 로 대체하기 위한 南 北 平 和 協 定 체결 제의에서 對 美 平 和 協 定 체결제의로 전환하는 과도기와 거이 때를 같이 한다. 구 별하기 위해, 그 內 審 分 析 에 들 어 가기에 앞서 먼저 몇가지 문제에 대한 - 3 2 -
인식을 가지고 출발해야 한다. 즉 그 첫째의 문제의식은 6o년 金 日 成 이 제의한 聯 邦 制 와 그 이후 제의된 聯 邦 制 가 개념상 어떤 상관관계에 있느 냐에 대한 것이다. 둘째는 당의 一 理 二 脚?L 一 政 燎 와1 統 語 方 素 좌7개념상의 상관관계에 대한 것이다. 세째는 r 南 朝 鮮 革 命 J과 統 一 의 상관관계를 그들은 어떻게 性 格 規 定 을 하고 있느냐에 대한 우리의 문제의식이다. 네째는 r 聯 邦 制 J방안이 革 命 및 統 一 에 관한 理 路 線 과 어떤 상관관계에 있느냐에 대 한 문제의식이다. 이들 몇개의 문제의식을 떠나서는 聯 邦 削 의 속알( 實 體 )와 거죽( 形 態 )을 구별할 수 없으며 따라서 그것에 우리가 정책적으로 합리적 으 로 대처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그러면 여기에선 5차 黨 大 會 (70. 11)에서 제시된 金 日 成 의 統 一 方 案 부터 검토한다. 金 日 成 은 5차 黨 大 會 에서의 r 中 央 要 事 業 總 和 賴 告 J중, r 南 朝 鮮 革 命 과 祖 國 統 一 을 위하여J라는 세항에서 r 南 北 朝 鮮 의 聯 邦 制 J와 統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r우리는 남조선에서 美 帝 침략군대를 를아낸 다출 南 北 의 軍 隊 를 각각 lo 만 또는 그 아래로 를이고... 經 濟 문체와 交 流 와 人 士 往 來 를 비롯한 一 速 의 措 置 를 리하며...평화적인 방법으로 祖 國 統 一 출 실현할수 있는 그런 條 件 이 마련필해 자유로운 總 選 擧 틀 실시하여 민주주의의 統 一 政 府 를 세울 것올 南 朝 鮮 當 局 에 여리번 제의했다. 만약... 總 選 擧 를 당장 실 시할수 없다면 먼저...하나의 過 渡 的 對 輦 으로서 南 北 朝 鮮 의 聯 邦 制 라도 실시할것을 제의했다.lo) 여기에서 보는바 그는 중래의 주장을 되풀이 하여 總 選 실시의 先 決 條 件 으 로 美 軍 綠 收 와 軍 縮 문제를 제기하면서 總 選 이 불가능할 경우에 r하나의 過 擴 的 對 策 으로시 南 北 朝 鮮 의 聯 邦 制 J라도 실시할 것을 제의했출을 강조하 고 있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서 聯 邦 制 의 구체적인 機 能 이나 內 容 에 관해 선 아무런 업급도 없다. 6o년 이래의 주장올 복창한 것이다. 그리고 또 그는 당의 統 - 路 線 에 대해 다출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3o) r 朝 鮮 勞 動 黨 大 會 資 料 集 J제 麗 집 ( 國 土 統 -RS, 1988), p.64. - 3 3 -
- r 南 朝 鮮 에 美 帝 침략군대와 템괴뢰들을 그대로 두고서는 나라의 平 和 統 이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조국를일위업을 실첨하기 위해서는... 美 帝 侵 略 者 들출 남조선에서 몰아내고...첨 軍 寧 라 綠 獨 裁 를 뒤집히 엎고 革 命 의 숭리를 이룩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南 朝 鮮 에 참다운 人 民 의 政 權 이 서면 共 和 國 피 糾 료 部 의 社 會 主 義 力 量 과 南 朝 鮮 의 愛 國 的 民 主 力 量 의 團 合 된 힘에 의하여 우리외 祖 國 統 -은 순조롭게 실현필 것이다.3l) 여기에서 보면 그가 말하는 黨 의 統 一 路 線 을 辰 美 民 族 解 放, 辰 政 府 人 民 民 主 主 義 革 命 으로 규정한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는 r 南 朝 鮮 革 命 J의 논리에서 출발하여 辰 美 民 族 解 放, 反 政 府 人 民 民 主 主 義 革 命 에 의 해 人 民 ( 容 共 ) 政 權 이 세워지면 南 北 政 權 의 合 作 을 統 一 이라고 규정한 것이 다. 그는 統 一 올 革 命 鬪 爭 으로 본 것이다. 5차 黨 大 會 에서의 金 日 成 의 統 一 문제에 대한 보고가 黨 의 입장에서의 黨 의 統 一 路 線 이라고 한다면, 6o년 8월 l4-@ 1-8. I5J 解 放 l5 周 年 경축대회에서의 연설은 黨 創 建 경축을 위한 연설이 아니였던 만치 黨 的 인 차원에서의 연설 이라기 보다는 政 府 차원에서의 입장이 앞서는 연설이였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5차 業 大 會 (7o) 規 約 에서 人 民 民 主 主 義 革 命 이라는 黨 의 革 命 路 線 과 6o년이래 연설을 통해 제의한 다분히 政 府 次 元 의 r 南 北 朝 鮮 의 聯 邦 制 J 案 이 어떠한 상관관계에 있느냐에 대한 槪 念 構 成 이 명백히 들어 漆 다. 그래서 5차 黨 大 會 가 黨 路 線 의 생성.전개에 커다란 전기가 되있다는 사실 에 우리는 유의할 필요가 있다. 勞 動 黨 大 會 의 역사상 r 總 和 報 告 J에서 r 南 朝 鮮 革 命 과 統 -에 대하여J 金 日 成 이 언급하였던 것은 이것이 처옴이자 지금현재까지 두번다시 되풀이 된 일이 없있으니 말이다. 이 r 報 告 J에서 김일성은, 南 朝 鮮 革 命 이 全 朝 鮮 혁명 統 一 의 구성부분(선결조건)이며 辰 帝 民 族 解 放, 人 民 民 主 主 義 혁명으로 수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30-1) 즉 김일성은 r 南 朝 鮮 革 命 J과 통일과의 관계 그리고 r남조선혁명j의 성격을 개념규정한 3l) r위의 책J P.65. 30-') r위의 책J, pp.55~65. - 3 4 -
것이다. 그 러나 통 합 적인 구조화는 이춰지지 많았다. 革 命. 統 一 에 관한 한, 5차 黨 大 會 규약으 로 채백된 理 路 線 이 6차 黨 大 會 (8o) 규약에도 그대로 규정되어 금일에 이 르 고 있다. r 聯 邦 制 J방안을 중심으로 5@ 豈 료 一 壟 塗 4t 一 르를 一 iee 峯 린 一 理 庶 進 鐘 료 결 합시키려는 시도는 로 L _ 브 漆 - M U W l U s 나타랐다. 그러면 最 高 入 民 會 讓 제4기 제5차 會 議 에서 外 相, 許 談 이 제시한(71. 4. 12) rg개 條 項 의 平 和 統 一 方 案 J을 살펴보자. 그 r8개 條 項 脚 J은 다음과 같다. 첫째, 南 朝 鮮 에서 美 漆 侵 略 軍 을 철거시킨다. 둘째, 美 漆 侵 略 軍 이 물러간 다음 南 北 朝 鮮 의 軍 隊 를 각각 lo만 트드 는 그 아래로 줄인다. 셋깨, 韓 美 相 互 防 衛 條 約 과 韓 日 條 約 을 비롯하여 南 朝 鮮 r괴뢰 J 政 權 이 민족의 이익에 배치되게 外 國 과 체결한 모든 매국적이며 隸 屬 的 인 條 約 들과 協 走 들을 폐초찰피_료 豈 르 一 브포한다. 넷째, 自 主 的 으로 r 民 主 主 義 的 J기초위에서 자유로운 南 北 總 選 擧 를 실 시하여 統 一 的 인 中 央 政 府 를 세운다. 다섯째, 자유로운 南 北 總 選 擧 를 위하여 南 北 朝 鮮 전지역에서 각 政 黨, 社 會 團 體 및 개별적 人 士 들이 政 治 活 動 을 별일수 있는 완전 한 自 由 를 보장하며 祖 國 統 一 위업을 위하여 鬪 爭 하였다는 이 유로 南 朝 鮮 에서 체포, 투옥된 모든 政 沿 犯 들과 愛 國 者 들을 모조리 석방한다. 여섯깨, 완전한 統 一 에 앞서 필요하다면 현재윤 같은 南 北 의 各 異 한 社 會 制 度 를 그냥 두고서 過 渡 的 措 置 로서 南 北 朝 鮮 聯 邦 制 를 - 32) 許 鍊. 最 崙 人 民 會 議 제4기 제5차 會 議 에서의 報 告, " 現 國 際 情 勢 와 조국의 函 主 的 統 -을 촉진시킬데 대하여", r 北 韓 最 高 人 民 會 議 資 料 集 J 제 麗 집 ( 國 土 統 院, 1988), pp.358~360. - 3 5.
실시 한다. 일곱깨, 南 北 간의 通 商 과 經 演 的 協 調, 과학, 문화, 예술t 체육 등 여러분야에 걸친 호상 交 流 와 협조를 실현하며 남북간의 便 繫 거래와 人 士 來 往 올 실현한다. 여릴째t 이상의 문제를 협의하기 위하여 각 政 黨, 社 會 團 體 들과 全 體 人 民 的 성격을 가진 사람들로시 南 北 朝 鮮 政 治 協 商 會 議 를 진 행한다. 이 許 談 의 r8개 條 項 J은, 그들로서는 그 이전에 되풀이되던 黨. 政 의 단 편적인 여러 제의를 集 大 成 한 느낌이 다분이 있다. 더욱이 許 談 자신이 r L 출머리에서 r조선 勞 動 黨 과 共 和 國 政 府 가 일관하게 견지하고 있는 平 和 統 一 方 案 은 다음과 같은 8개 조항으로 요약될수 있다.J라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 다. 때문에 거기에는 內 容 上 두드러지게 새로운 요소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許 談 의 r8개 條 項 J 제의속에는 그 이전에 있었던 북한의 r 南 北 朝 鮮 聯 邦 制 J의 제의에 비하면 몇개의 특색이 발견된다. 즉 첫째로 許 談 이 政 務 院 外 相 의 자격으로 議 會 격인 最 高 人 民 會 議 에 대한 보고였출으로 일찰 政 府 責 任 者 의 한사랍으로서의 입장이 전제되지만 그 자신이 강조하듯이 黨. 政 의 일관하게 견지한 통일정책이라고 강조한 점에서 보더라도 그것은 黨 의 統 一 路 經 을 전제로 하는 r 政 燎 J의 統 一 政 策 이라는 뜻이다. 이롤 테면 5차 黨 大 會 (7o) 에서의 黨 의 辰 美 民 族 解 放, 反 政 府 人 民 異 主 主 義 革 命 路 線 과 의 개념상의 밀착관계를 전제로 한다는 말이다. 아닌게 아니라 許 談 은 n 앞머리에서 統 一 출 위해 南 韓 에 人 異 政 權 이나 民 主 ( 容 共 ) 人 士 의 政 權 이 들 어설 것을 先 決 條 件 으로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그 이전과는 달리 통일문 제에 관한 黨 路 線 과 政 府 方 案 이 개별상 연계적인 관계에서 구조화한 것이 ct. 둘깨 그의 r8개 條 項 J은 統 - 을 위한 8개 條 項 이면서도 內 容 上 따져보면 몇개의 段 階 論 이기도 하다. 어째서 그럴까. 그는 첫째에서 셋째까지 條 件 - 3 6.
그리고 다섯깨의 條 件 을 總 選 擧 를 위한 先 決 4개 條 項 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48년 이래 그들 주장.제의의 추세에서 보면, 美 軍 徵 收 => 軍 縮 => 漆 衛 條 約 의 철폐7 政 治 淸 動 의 自 由 保 障 등에 대한 일련의 도식적인 주장은 거 의 段 階 論 을 방불케 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4개 條 項 은 總 避 擧 를 위한 先 決 4개 條 件 이자 동시에 거의 4개 段 階 와 유사하다. 셋째 그는 南 韓 當 局 이 4개 條 項 의 先 決 에 의해 출선거를 받아들일 수 없 聯 @ 制 를 실시J하자고 r여섯째 條 項 J에서 제의 하고 있다. 그러니 이를테 면 總 選 擧 의 실시를. 위한 先 決 4개 條 項 은 聯 邦 削 의 실시를 위한. 否 定 的 인 先 行 條 件 인 셈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릴째 條 項 에서, 일곱째 조항까지의 모 든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각 政 黨. 社 會 團 體 들과 全 體 人 民 的 성격을 가진 사람들로써 政 治 協 商 會 議 를 하겠노라고 제의 했다..그는 對 話 主 體 의 當 局 者 논리를 거부한 것이다. 따라서 聯 邦 制 실시의 가장 긍적적인 l차적 先 行 條 件 이 정치협상이다. 때문에 그가 제의한 8개 條 項 은, 黨 의 統 一 路 線 인 辰 漆 民 族 解 放, 辰 政 府 人 民 主 義 革 命 의 수행을 위한 조건형성에 r t 전략적인 목적이 두어져 있다. 넷째 그는 r 南 北 刻 鮮 聯 邦 料 J의 실시를 제의 하면서도 여섯째 條 項 의 부연설명33)에서 쌍방의 制 度 를 그대로 둔채 民 族 共 同 의 이익올 위해 最 高 民 族 委 員 會 를 구성 한다고만 하였올뿐 그것의 구체적인 구성이나 機 能 에 대해선 아무린 언급도 없다. 이 점에 있어 金 日 成 이 최초로 연방제를 제 의(60. 8. 14)하여 그 기능을 추상적이나마 統 一 的 인 經 濟. 文 化 的 발전에 있다고 한것 과도 다르다. 聯 邦 制 그 자체에 대한 실질적인 관십보다는 黨 의 統 一 路 線 인 民 族 解 放 人 民 民 主 主 義 혁명수행의 先 決 條 件 의 조성에 대 한 강조가 더 지배적이라 할 수 있다. 33) r위의 책J, p.360.. 3 7.
다섯째로 聯 邦 制 를, 과도적 對 策 이 아니라 과도적 措 置 라고 한 점을 제 외하고 그 명칭에 있어 r 南 北 朝 鮮 聯 邦 制 J라 한 점에 있어서는 6o년 이 래의 다른 제의에 있어서와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전반?인 맥락에서 보아, 그의 제의의 특색은 業 革 命 路 線 의 개념 적인 기본적인 틀속에 政 府 統 一 政 策 을 한데 묶으러 한데 있다. 이와 같은 그들의 시도는 聯 邦 制 에 관한 한, 形 式 論 理 면에 있어서는 다옴 단계부터 보다 구체적으로 나타 燎 다. 그 후 日 本 r 每 日 新 間 J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대탑(72. 9. 17)에서 聯 邦 削 의 기능을 經 濟. 文 化 만이 아니라 政 治. 軍 事 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확대 하여 언급한바 있다. (2) r 高 麗 聯 郊 共 和 國 J의 제의와 그 內 容 (73~79) 6o년이래 제의된 聯 邦 制 는 7o년대에 더욱 빈번히 제의되있으며 高 麗 聯 邦 共 和 國 의 제의만 보더라도 그 주요 내력은 다출과 같다.34) 73. 6. 2 3 : 체코 共 産 黨 中 央 黨 총비서 r구스타2 후사스크J 一 行 환영 군중대회에서 한 金 日 成 연설 (5 大 綱 領 ) 73. 7. 4 : i-로동신문j 사설 73. 7. 2 4 : 祖 國 統 - 民 主 主 義 戰 線 중앙위 제59차 擴 大 會 讓 에서의 서철 報 告 73. 7. 24 : 祖 國 統 - 民 主 主 義 戰 線 중앙위 호소문 73. 7. 2 7 : r 祖 國 解 放 戰 爭 J 숭리 스무를 기념 中 央 報 告 大 會 에서의 한 익수 報 告 73. 9. 8 : r 朝 鮮 民 主 主 義 人 民 共 和 國 J.창건 스물다섯들 기념 中 央 경축 보고 大 會 속에서의 金 日 成 연설 73. 9. 9 : r 朝 鮮 民 主 義 人 民 共 和 國 창건 스물다섯글경축연회에서의 金 日 成 연설J 34) r 北 龍 의 料 邦 制 관련 資 料 集 J( 國 土 統 -U, 1978. 6) - 3 8 -
73. 9. 26 : 政 府 備 忘 綠 73. 11. 14 : 제28차 un총회 제l 委 에서 代 表 團 리종목 단장의 연설 74. 4. 2 5 : 수단 政 府 기관지 r알 싸하파J 責 襤 主 筆 의 질문에 대한 金 日 成 대 담 74. 4. : 金 日 成 撚 送 大 學 강의록 74. 7. 4 : 7. 4 南 北 共 同 聲 明 두들 즈음한 金 日 成 연설 74. 11. 9 : 祖 國 統 - 民 主 主 義 戰 線 중앙위 제63차 擴 大 會 讓 에서의 誇 談 보고 75. 5. 2 9 : 알제리 r엘 무자히드J 記 者 질문에 대한 金 日 成 답변 75. 5. 3 1 : A F P 記 者 질문에 대한 金 日 成 답변 75. 10. 6 : 金 日 成, r 諒 賣 新 聞 J에 대한 회답서 75. 10. 9 : 黨 창건 3o주년 기념, 金 日 成 연설 76. 6. 23 : 5 大 綱 領 발표 3를기념 平 壞 市 보고회 77. 6. 20 : 金 日 成, r르몽드j기자 회견 78. 1. 1 : 中 央 放 送 논 설 78. 1. 2 : 平 壤 放 送 논 설 78. 1. 3 : 平 壤 放 送 논 설 78. 2. 1 : 政 燎 備 忘 錄 78. 4. 16 : 平 壤 放 送 78. 4. 2 4 : 平 壤 放 送 ( 南 北 諸 政 黨. 社 會 단체 連 席 會 議 3o를 紀 念 報 告 ) 79. 9. 6 : 祖 國 統 一 異 主 主 義 戰 線. 平 和 통일위, 對 南 호소문 이들 7o년대에서의 북한의 많은 제의에 있어 참고할 가치가 있는 대표 적인 문헌은 이미 논한바 r 南 北 朝 鮮 聯 邦 制 J에 관해선 7o년 io월 5차 黨 大 會 에서.제시한 統 一 方 案 과 7l년 4월 最 高 人 民 會 讓 제 4 期 제 5 차 會 議 에 서 外 相 南 日 이 제시한 r8개 條 項 J의 통일방안이며 그리고 r 高 麗 聯 邦 共 和 國 J. - 3 9 -
- 에 관해선 73년 6월 23일 金 日 成 이 r체코j 共 和 國 中 央 委 총비서t r구스타 보 후사크J일행환영 군중대회에서의 연설을 통해 제시한 r5 大 綱 領 J이다. n 는 r5 大 綱 領 J속에 聯 邦 制 롤 포함시켰던 것이다. 金 日 成 은 앞인리에서 黨. 政 의 일관된 통일정책을 새로이 내외에 천명한다 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r5 大 綱 領 J35)을 들고있다. l. 오늘 조선의 南 과 北 사이의 關 係 를 개선하고 조국의 平 和 統 - 을 촉진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南 과 北 사이의 軍 事 的 대치상태를 해소하고 緊 張 상태롤 가셔야 한다. 2. 南 北 關 係 를 개선하고 나라의 統 一 을 촉진 시키기 위하여서는 南 과 北 사이에 政 治, 軍 事, 外 交, 經 濟, 文 化 의 여러분야에 걸쳐 多 方 面 的 인 合 作 과 交 流 를 실현해야 한다. 3. 나라의 統 一 問 題 를 우리 人 民 의 意 思 와 유구에 맞게해결하기 위 하여서는 南 과 北 의 광법한 출 界 各 曆 人 民 들이 조국통일을 위한 거족적인 애국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4. 오늘 나라의 통일을 앞당기는 데서 중요한 의의룔 가지는 것은 o1다. 5. 우리는 分 裂 이 고착되어 우리나라가 r두개 朝 鮮 J으로 영원히 갈 라지는 것올 막아야 하 며 對 外 關 係 분야 에서 도 南 과 北 이 공 동 으 로 나가야 한다고 인정한다 출 이 r5 大 강령J은 북한의 r 聯 郊 制 J개념이 생성되는 제 2 단계를 상징한다. 그 중에서 첫째항목은 軍 事 的 대치상태를 해소하고 緊 張 상태롤 완화하기 위한 것인데 그것에 대한 부연설명에서 5개의 先 漆 條 件 을 제시하고 있다. 35) 金 日 成, " 民 族 의 분열을 방지하고 조국을 統 一 하자" (체스교스로벤스교 社 會 主 義 共 和 國 黨 및 政 府 대표단올 환영하는 평양 市 군중대회에서 한 연설), r 訴 東 亞 J 89년 l월호, 별책부록, pp.295~298. - 4 o -
즉 l) 武 力 중강파 軍 備 경쟁의 중지, 2) 美 軍 철수, 3) 軍 隊. 軍 備 의 축소, 4) 외국으로 부터의 武 器 撫 入 중지 및 5) 美 軍 撤 收 를 합법화하기 위한 南 北 간 平 和 協 定 의 체결이다. 이들 5개 先 決 條 件 은 革 命 을 위해 그들의 政 治. 軍 事 문제 우선의 一 括 妥 結 주의를 관철시키려는 기본입장을 고집한 것이 다. 둘째의 항목인 政 治, 軍 事, 外 交, 經 濟, 文 化 등 多 方 面 的 인 合 作 과 交 流 에 대한 주장은 첫째 項 證 의 정치.군사문제 우선의 - 括 要 結 주의를 반영하는 것으로써 對 話 密 口 를 다원화하여 先. 交 流, 後. 協 力 이 아니라 先. 合 作 ( 聯 邦 ) 後. 交 流 의 동시.일괄처리 방식올 그 표현올 달리 하였을 뿐이다. 그들의 流. 合 作 論 理 는 처출에 느슨한 聯 立 內 閣 의 단계를 거쳐 共 産 黨 독재를 수립하 는 소비에트화 과정을 본딴 것이다. 린째의 항목인 각계 각층의 거족적인 참여에 관한 주장은 當 局 간 대화 를 거부하고 政 黨. 社 會 단체. 人 士 가 참여하는 군중집회식의 連 席 會 議 를 전제 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부연설명에서 大 民 族 會 議 의 소집을 주 장하면서 북한에서는 勞 動 者.근로농민.근로인테리.청년 學 生. 兵 士 들이 또 南 韓 에서는 노동자.농민.청년학생. 知 識 人. 單 人. 민족자본가.소자산계급이 참석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反 美 麗 政 燎 투쟁을 위한 統 一 戰 線 을 형성하겠다는 뜻이다. 및째항목인 單 二 트 旦 필 一 즈료4 南 兆 聯 部 린 一 린긴웨.편린4조죄웨_ 進 릿 一 그들 은_ 流 房 漆 출 議 -초집에~카료하학 一 를구r 度 를.r향를간피 過 渡 料 )-를차=g=를고 南 北 聯 邦 制 를 실시하는데 聯 郊 國 家 의 國 號 를 r 統 一 國 家 로서 세계에 널리 알 려진 高 麗 라는 이름을 살려서 高 麗 聯 邦 共 和 國 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J이 라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보면 聯 邦 制 실시의 先 決 條 件 이 大 民 族 會 議 의 소집 에 있다. 종래에 料 準 粒 糾 를 漆 l 料 a 鮮 瑞 漆 p 洲 라고 한것과는 달리 r 淸 麗 聯 邦 共 和 國 J이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들이 r 淸 麗 J라는 구호를 위 한 것 이다. - 4 l -
마지막으로 다섯째의 항목은 單 一 國 號 에 의한 유엔 加 入 에 대한 주장인데 이것은 分 斷 의 책임을 우리축에 돌리면서 미리 對 美 平 和 協 定 체결제의 (74)와 交 叉 承 認 반대 (76)를 겨냥한 것이기도 한다. 이들 5개항목.은 對 話 의 先 決 條 件 을 집약한 것으로서 5차 黨 大 會 이래의 民 族 解 放 人 民 民 主 主 義 혁명의 수행이라는 黨 의 r 南 朝 鮮 革 命 J. 統 -노선을 관 철시키는데 요하는 여건조성을 위한 것이다. 그들이 단일국호에 의한 r 高 麗 聯 邦 共 和 國 J의 실시를 강조하면서도 聯 邦 制 의 구체적인 機 能 이나 形 態 에 관해서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는 반면에 모조리 대화를 위한 先 決 條 件 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黨. 政 의 일관된 정책이 라고 선전하면서도 黨 의 r 南 朝 鮮 革 命 J논리와 r 聯 邦 削 J의 양자관계는 전자가 속알( 實 體 ) 이고 후자는 그 거죽( 形 態 )임이 분명하다. (3) r 崙 麗 民 主 聯 邦 共 和 國 J의 제의와 그 內 容 (8o~ ) 이것은 북한의 聯 邦 制 개념생성에 있어 제 3단계라 할수 있다. r 南 北 軸 鮮 聯 邦 料 (60~73)J에서 시작하여 그리고 r 高 麗 民 主 聯 邦 共 和!il-i(80~ )의 단계로 접어든 것이다. r 商 麗 聯 邦 共 和 aj에 다가 r 民 主 J라는 두 글자를 덧붙인 것이다. 黨 의 革 命 路 線 과 聯 邦 制 의 관계가 속알( 實 體 )과 거죽( 形 態 )의 관계임은 8o년대에 들어와서 더욱 명백히 드러 난다. 6차 黨 大 會 에서 金 團 成 이 黨 中 失 委 r 事 業 總 和 報 告 J를 통해 r 高 麗 民 主 聯 郊 共 和 國 J창립방안36)을 제시(80. 10. 10) 했다. 그는 그것이 가장 현실적이며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한 것이다. 그의 방안은 크게는 3개부분으로 구성돼 있는데 각 부분이 각기 段 階 的 인 성격을 지녀 3 段 勝 論 으로 되어 있다. 첫째부분은 聯 邦 制 구성을 위한 先 決 綠 件 에 관한 것으로서 제 l 段 階 에 해당한다. 여기에서 그가 제시한 先 決 條 件 은 다읍과 같다. 36) r위의 잡지J 찰은목 찰은 부록. PP.331~340. - 4 2 -
r 先 決 條 件 J : 合 作. 聯 邦 料 형성의 제 i 段 階 l) r 辰 共 法 과 국가 保 安 法 을 비롯한 파 連 적인 惡 法 을 폐지하고 모든폭 압 統 沿 機 構 를 없애버려야 한다.J 2) r모든 政 黨, 社 會 團 體 들을 合 法 化 하고 政 黨, 社 會 團 體, 개별적 人 士 들의 自 由 로운 政 沿 活 動 을 보장해야 하며...부당하게 체포 투 옥된 '민주' 인사들과 애국적인 人 震 들을 석방하여야 한다.J 3) r 震 主 主 義 的 政 權 으로 교체하여야 한다.J 4) r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전쟁위험을 제거하는 문재는 오직 停 戰 協 定 을 平 和 協 定 으로 바꿉으로써 해결될수 있다.J 이들 先 決 條 件 에 있어 첫째는 대한민국 政 府 의 타도, 둘째는 있지도 않 은 r 統 革 黨 J을 비롯한 參 共 的 인 정당. 社 會 단체. 人 士 외 反 體 制 투쟁의 출 法 化, 세째는 용공적인 r 人 民 政 權 J의 수립 그리고.네째는 南 北 간 平 和 協 定 이 아 니라 미국과 料 等 한 관계에서의 對 美 平 和 協 定 의 체결에 의한 美 軍 撤 收 에 대한 주장을 각각 의미한다. 따라서 이들 先 決 條 件 은 한마디로 말해서 人 民 民 主 主 義 革 命 을 위한 여건형성에 관한 것이다. 어했든 그는 이들 여건형성에 의해 反 體 料 人 民 主 義 革 命 이 일어나서 우리 政 府 를 타도하고 容 共. 聯 共 的 인 人 民 政 種 이 수립되면 南 北 合 作 ( 聯 邦 削 ) 에 의해 統 一 ( 赤 化 ) 하겠다는 것이 제 2 段 階 이다. r 合 作. 聯 邦 制 統 一 J : 제 2 段 階 그들의 戰 略 的 논리는 先. 交 流, 後. 協 力 이 아니라 同 時 一 括 要 結 主 義 에서 先. 合 作, 後. 交 流 의 逆 論 理 이다. 그들이 여기에서 제시하는 聯 邦 制 의 기구와 기능은 다출과 같다. l) 南 北 이 思 想. 制 度 를 그대로 두고 同 等 하게 참여하는 民 族 統 一 政 燎 를 수립하여 地 域 自 治 制 를 실시하는 聯 邦 共 和 國 을 창립한다. 2) 南 北 의 같은 數 의 代 表 들과 적당한 수의 해외 同 胞 들로 最 高 民 - 4 3 -
族 聯 邦 會 議 를 구성하여 거기에서 聯 邦 常 設 委 員 會 를 조직, 地 域 政 府 를 지도한다. - 3) 最 高 民 族 聯 邦 會 議 와 그 責 任 기구인 聯 邦 常 設 委 는 연방국가의 統 政 燎 긴서 政 治. 防 衛. 對 外 관계 등올 토의 결정하며 단결과 合 作 을 실현하다. 4) 國 號 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統 一 國 家 의 이름을 살리고 r 民 主 主 義 를 지향하는 南 과 北 의 공통된 政 治 理 念 을 반영하여 高 麗 民 主 聯 邦 共 和 國 으로J 한다. 5) 연방국가는 中 立 國 家 로 된다. 여기에서 특히 우리가 유의할 점은 l)에서 制 度. 思 想 올 그대로 두고 統 一 政 府 를 수립 한다는 것과 3)에시 聯 邦 國 家 의 統 一 政 府 인 혀고민족연방회 의와 그 常 <s기구인 聯 邦 常 設 委 가 남.북간의 출 作 을 실현할 것을 강조하고 또 4)에서 r 民 主 主 義 J를 지향하는 南. 北 의 공통된 政 沿 理 念 운운하는 점이 다. 制 度. 思 想 의 차이를 그대로 두고 聯 邦 制 를 실시한 나라란, 革 命 後 소 련이 이웃 약소민족을 倂 合 하기 위해 원용한것 외는 역사상 있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그들이라 해서 모롤리 없다. 그런데도 그것을 주장하는 것은 결국 하나의 전술에 지나지 않다. 또 그런가 하면 그들이 합작을 강조하 는 것은 그 다출에 나오는 4)의 주장과 밀착돼 있다. 즉 4)에서 r 民 主 主 義 를 지향하는 南 과 北 의 공통된 政 治 理 念 J운운한 것은 人 民 民 主 主 義 革 命 에 의해 우리 政 府 를 타도, 容 共 的 인 人 民 政 權 이 수립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 는 말이다. 다옴은 聯 邦 削 수립 후의 시정 방침인 rlo 大 政 綱 J에 관한 것이다 출 r 合 作. 聯 邦 制 수립후의 lo 大 施 政 方 針 J:제 3 段 階 l) 自 主 的 인 정책올 실시한다. 2 ) r민주주의 J를 실시하여 민족의 大 團 結 을 도모한다. - 4 4 -
3) 경제적인 合 作 과 交 流 를 실시한다. 4) 과학, 문화, 교육에서 交 流. 協 調 를 실시하여 통일적으로 발전시킨 다. 5) 교통과 체신올 南 北 사이에 연결한다. 6) 근로 大 衆 과 全 體 人 民 들의 생활안정을 도모한다. 7) 民 族 聯 合 軍 을 조직한다. 8) 해외 同 胞 들의 권리와 이익올 옹호한다. 9) 統 一 이전에 맺은 對 外 관계롤 처리,두 地 域 政 燎 의 활동을 통일적으 로 조정한다. lo) 모든 나라와 友 好 관계를 발전, 聯 邦 國 家 는 모든 국제기구에서 單 一 代 表 權 을 행사한다. 聯 邦 制 실시 후에 시행한다는 이들 rlo 大 政 綱 J은 그 출발에 있어서 先. 合 作, 後. 統 一 의 論 理 를 이어받은 것으로서 얼핀보기에도 合 作. 統 一 ( 聯 部 制 )후 에. 南 北 간의 합작.교류의 필요성이 어디에 있느냐의 의문올 제기한다. 때 문에 이런 시각에서만 본다? 그것올 전적으로 宣 傳. 漏 動 的 인 차원에서만 평가하기 쉬운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이련 시각과는 다른 차원에서의 평가도 가능하다. 그들의 戰 略 的 인 圖 式 을 소비에트화 과정의 모델을 準 據 體 로 하여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 4 5 -
高 麗 民 主 聯 邦 共 和 國 形 態 實 體. f1l 段 p Q ) 區 三 9 三 E 三 重 先 決 條 件 및/ ) 凉 - 료츠z 諒. 9 g _ -0- :4 : _-로_ -'X -'-'를. 제 2 段 階 巨 3 ( 聯 立 政 權 ) 合 作. 聯 邦 制 統 -.[ 合 제 3 段 階 - > 國 9 t 2 國 \ # (두 地 域 自 治 體 의 作. 統 一 = 聯 邦 制 ) ( 共 産, 統 一 國 家 ) 金 日 成 이 제시하는 r 淸 麗 民 主 聯 邦 制 J는 순수 形 式 論 理 에서 본다면 도표에 서 보는 바와 같이 3 段 階 論 이다. 그러나 그들은 形 式 論 理 가 아니라 辨 證 法 的 論 理 에 구애된다. 3 段 階 論 은 그의 聯 邦 制 의 외형적 거죽인 形 態 에 불과하다. 때문에 그 밑바닥에 깔려있는 戰 略 理 論 에서 보면 그 形 態 (거죽) 上 의 단계 보다는 그 속알인 實 體 는 더 복잡하다. 그가 주장하는 先 決 條 件 이 合 作. 聯 邦 制 統 -로 직선적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先 決 條 件 과 合 作. 聯 部 制 統 一 의 양자관계는 직접적인 原 因 대 結 果 의 관계로 이 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 양자의 중간단계에 人 民 民 主 主 義 革 命 의 수행과 人 民 政 權 의 수립이라는 매개적인 하위 단계가 전제되어 있으니 말 이다. 辨 證 法 的 論 理 의 발상일 것이다. 어했든 先 決 條 件 이 해결되어 反 體 制 人 民 民 主 主 義 革 命 에 의하여 수립된 春 共 的 인 人 民 政 權 과 북한공산정권의 先. 合 作 에 의한 聯 邦 制 統 - 올 그는 일 단 전제하고 있다. 때문에 그는 과l9 는 聯 邦 制 를 r하나의 過 渡 的 對 案 J w f 7 / # 4 l t l l. l s - 4 6 -
이라고 규정한 것과는 달리 여기에서는 r우리 나라의 全 領 士 와 全 民 族 을 포괄하는 統 一 國 家 J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논자에 따라서는 하나 의 의문이 제기된다. 즉 聯 邦 料 가 r 過 渡 的 대책J이 아니라 r 統 一 國 家 J라면 일단 적화통일이 된다음에 交 流. 단결을 위한다는 r시정을 위한 lo 大 政 綱 J이 무엇때문에 필요한 것이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政 治 的 인 계산은 그렇지 않다. 合 作. 聯 邦 制 統 -로서 공산통 일이 완결됐다고 그는 보지 않는다. 이것은 國 內 政 治 에서의 소비에트화 B. 델에서 본다면 共 産 黨 이 완전한 실권을 잡기이전의 聯 立 內 閣 의 단계에 해 - 당한다. 때문에 그는 일단 南 北 의 두 r 地 域 自 治 體 J를 합작시켜 淸? 邦 削 統 을 한다음 共 産 黨 리b 韓 ) 중심의 共 産 獨 識 體 制 단계에 넘어가야 한다. 이러 한 단계적 전환에 필요한 것이 바로 南 北 交 流 롤 촉진한다는 rlo 大 政 綱 J이 다. 이처럼 그는 先. 合 作 聯 邦 削 統 一, 房. 交 流 共 産 黨 獨 識 확립을 상정하고 있다. 金 日 成 은, 許 談 이 r8개 條 項 J의 통일방안 (71. 4. 12)을 黨. 政 의 일관된 정책이라 하고 또 그 자신이 r5 大 綱 領 J(73. 6. 23)을 黨. 政 의 일관된 統 一 政 策 이라고 한 것과는 달리 이 4? 策 漆 流 料 xf 를J=z. 漆 聾 이라고 했 다. 김일성은 그 후 83Ud U9.9J 節 35주년 경축연회에서의 연설을 통해 연방국가의 統 一 政 府 인, r최고민족연방회의j의 共 同 議 長 과 r연방상설위 J의 共 同 委 員 長 을 선출하여 t 9 z _ r 르 _ f _ 린 製 - U -? W 1 U-8-011 m 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있다. 이상 검토한 바와 같이. 聯 邦 制 의 거죽( 形 態 )은 여러번 바줬으나 그 속 알( 實 體 )는 일관하여 黨 의 r 南 朝 鮮 革 命 J. 統 一 路 線 과 밀착되어 있다. 따라 서 우리가 북한의 통일방안을 일단 聯 邦 料 로 전제한다면 그것의 실체를 알기 위해선 그것과 業 革 命 路 線 의 상관관계에 대한 보다 深 層 的 인 분석이 일차적으a 필요하다는 것을 여기에서 강조해 둔다. - 4 7 -
2 ) 聯 邦 制 의 분석시각에 대한 몇개의 附 言 (l) 植 民 地 論 理 에서 본 提 議 의 性 格 이 논문의 작성을 위해 맨처출에 北 韓 提 議 에 대한 時 系 列 的 인 분석을 통해 그들 주장의 持 續 性 과 可 變 性 그리고 일관적인 特 散 을 검출해 보았 다. 그리고 이것에 이어 앞에서는 그들 주장을 聯 邦 制 로 집약하여 r 南 朝 鮮 革 命 J과 統 一 과의 관계 및 黨 統 一 路 線 과 政 府 統 一 政 漆 과의 관계에 출점 을 두고 聯 邦 料 의 槪 念 生 成 및 그 변천을 검토했다. 할에서 지적한바 이 를 문제에 대한 보다 深 層 的 인 분석이 절실히 요청되지만 이 이상 더 할애할 紙 面 은 여기에 허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그것에 대한 다소간의 보충적인 설명으로서 聯 邦 制 에 대한 分 析 視 角 에 대해 附 言 하는데 그치겠다. 여기에 있어 첫째로 지적하여 부언할 것은 북한의 對 話 論 理 에 대한 정 확한 인식에서 부터 北 韓 에 대한 분석이 출발해야 된다는 사실이다. 그들 의 모든 統 一. 對 話 의 제의는 W U S - U, j i J U 1 - - M - a U W _ J y ft. 南 韓 社 會 의 性 格 規 定 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들의 이와 같은 視 角 이나 社 會 性 格 의 규정에 대한 그들 스스로의 修 正 없이는 黨 統 一 路 線 이나 政 府 統 一 政 策 그리고 對 話 에 임하는 戰 略. 戰 術 의 本 質 的 인 변화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를 비롯한 外 部 世 界 에서는 o 藍 讓 挑 및및 一 초J만초 一 z_- 輩 誇 濯 치 그러나 여기에는 근본적 인~7 詰 린L및 一 로줴찰 있다. 다시 말해서 핀 誕 塗 핀 一 雇 禮 9L_및 述 산로토L4 遷 撚 理 린 要 -타 一 료치~다를_ 變 數 료린_료k료_9지, 아니면 撚 纖 益 L료로 一 있지않으면 아니 된다는 뜻이다. 불행하게도 지금현재 이들 두개의 시각은 다같이 객관적인 전망을 결여하고 있다. 지금현재까지 북한은 코민데른 창설이래 레닌이 제기한 r 權 麗 地 民 族 解 一 출48.
- 放 J테제를 고수하고 있다. 그래서 북한은 우리 南 韓 社 會 를 r 美 帝 J에 의해 강점된 植 民 地 的 半 封 建 的 社 會 로 그 성경을 규정하는데서 이데올로기적이 며 주관적인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南 韓 社 會 를 r 美 帝 J의 강접에서 풀려나야 할 r 解 放 對 象 地 域 J으로 보며 따라서 r 南 朝 鮮 革 命 J 料 이 r 全 朝 鮮 J혁명을 위한 불가결의 일부이며 南 朝 鮮 革 命 에 의하여 統 一 이 완결된다는 논리와 政 治 的 名 分 을 들고 나오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黨 統 一 路 線 과 政 燎 統 - 政 策 의 핵심이다. 따라서 우리의 統 -문제를 국내정치문제에서 일단 떠나 통일문제의 대상인 북한과의 관계에 출점을 두고 생각 한다면 그들의 南 韓 社 會 에 대한 시각이나 그것으로 투시해 보는 南 韓 社 會 의 性 格 詠 定 에 대 한 修 正 可 能 性 을 전망하면서 차분히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2) 黨 統 一 路 線 과 政 府 識 - 政 策 의 相 關 係 에서 본 提 議 의 性 格 둘째로 지적.부언해야 할것은, 첫째에서 논한 그들의 對 話 論 理 와 밀접히 관련된 것으로서 黨 統 一 路 線 과 政 府 統 一 政 策 의 상관관계에 대한 것이다. 다 시 말해서 이것은, r 南 朝 鮮 革 命 J과 統 一 의 상관관계에 대한 그들의 基 本 論 理 의 틀 속에서 그 統 一 方 案 의 본질을 우리가 이해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논리이면서도 그 이상 더 북한올 이해하는데 핵 심적인 前 提 도 따로 없올 것이다. 常 識 이 現 實 이라면, 현실이 또한 眞 理 이 기 때문이다. 그들의 r 南 朝 鮮 革 命 J 論 과 統 一 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黨 統 一 路 線 과 政 府 統 一 方 案 의 상관관계에 대한 이해와 그 軌 률 같이하고 있다. 우리가 북한의 통일방안을 聯 邦 制 로 전제할 적에, 그때 그때의 聯 邦 制 제의가 黨 次 元 에서의 제의냐, 政 燎 차원에서의 제의냐 조는 黨. 政 次 元 에서의 제의냐 등 을 식별하는 것이 그들의 戰 略. 戰 術 에 대해 대처 하는데 있어 선행조건이 다. 그들 제의의 目 的 이 다르니 말이다. 37) r철학사전j (북한 사회과학연구원. 1988). pp.641~642.. 4 9 -
같은 共 産 國 家 사이의 관계에 있어 黨 대 黨 의 관계는 일단 구별되어 있다. 전자를 국가적 실리인 國 家 利 益 (national interests)을 위한 공식적인 當 局 者 간의 관계라고 한다면, 후자는 國 家 利 益 과는? 단 구별되는 理 念 을 중심으로 하는 名 分 상의 f계이다. 우 리의 南 北 對 話 의 경험에서 본다면 북한은 번번히 當 局 者 간의 대화를 기피 하고 遷 49L 塗 필52 료 塗 塗 로로y로료 一 rij린 一 왔다. 이것은 短 期 的 인 안목의 어떤 實 利 를 政 府 차원에서 추구한 것이 아니라 보다 長 期 的 이며 黨 略 的 인?원에 료 旦 i_=i한 투쟁에 南 北 對 話 를 이용했다는 것을 의미 한다. 때문 에 북한의 統 一 方 案 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선 黨 統 一 路 線 과 政 燎 統 一 政 策 과의 상관관계에서 r 聯 邦 制 J의 실체를 이해해야 한다. (3 濯 t 南 선전.선동. 工 作 體 系 에서 본 提 議 의 性 格 세째로 부언하고 싶은 것을, 위에 언급한 것들과 관련된 點 南 事 業 體 系 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관한 것이다. 북한의 料 南 선전. 선동. 工 作 업무에 있어 주요 일선기구는 族 民 主 戰 線 J이다. 이들 기구는 다 같이 北 勞 黨 의 9lt 南 혁명전략수행에 봉 사하지만 그 구채적인 기능은 다른 것 같다. r 祖 國 統 - 民 主 主 讓 戰 線 J은, 69년 6 월 25일 r r 南 린 壟 료s 主 漆 一 료 族 戰 理 l릿 北 韓 의 r력사사전j에 의하면 r 責 f 刻 鮮 의 全 體 人 民 들을 조국의 통일독립과 민주주의적 발전을 위 한 투쟁에로 불러이르킴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J38)라고 되어 있다. 또 북한의 r정치사전j에 의하면 r조국전선은 職 業, 性 別, 信 仰, 政 黨 의 차이를 불문하고 조국의 自 由 와 獨 立 을 지향하는 모든 階 曆 을 다 망 라한다.J39>라고 되어 있업다. 여기에서 보면 祖 國 統 - 民 主 主 義 戰 線 이란 대 38) r력사사전j I[(북한 사회과학원, 1971). P.307. 39) r정치사전j (북한 사회과학출판사, 1973), P.771. - 5 o -
중 에 대 한 선전.선동을 중심으로 아래로 부터의 統 一 戰 線 의 형성에 주 된 기능이 있는 것 같다. 祖 國 平 和 統 - 要 員 會 는 6l년 5월 3l일에 결성되었는데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보면 4. l9의 결과 제 2공화국이 출범하고 또 북이 聯 邦 料 를 처음 제의(60. 8. 14)하여 料 南 平 和 갓 勢 를 강화하기 시작하는 때였다. 이에 대 해 r정치사전j에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r. 우리나라 政 黨, 사회 團 體 들과 각 階 層 人 士 돌을 망라하여 社 會 團 體, 祖 國 平 和 統 - g 員 들 은.... 남조선에서7ii7r를를Gr1를아내고 7 o o 들 을 타도하며... 統 一 을 실현하기 위한 戰 爭 에 나서도록 政 治 宣 傳 사 업을 조직진행한다. 남조선의 각계각출 애국적 민주주의 역량을 투쟁에로 組 織 動 員 하는 政 治 事 業 을 전개한다... 세계의 진보적 인민들에게... 統 一 에 대한 현명한 노선과 방침을 널리 解 釋 宣 傳 하며... 小 ). 여기에서 보면 祖 國 平 和 流 一 要 의 기능은, 對 南 l) 政 治 宣 傳 사업과 료) 組 織 動 員 하는 政 沿 事 業 그리고 3) 해외에 대한 宣 傳 사업으로 되어있어 ; I 주된 기능이 위로 부터의 經 一 戰 線 의 결성과 工 作 업무에 두어져 있는 듯 하다..북한이 政 府 流 元 에서의 데화를 거부하고_ 祖 國 平 和 諒 - 委 員 會 의 및의 로 鄭 周 永 씨를 초청하며 r 全 民 聯 J과의 접촉을 제의한 것도 그런 機 能 에서 이었을 것이다. 祖 國 平 和 統 一 要 의 위원장은 黨 政 治 局 員 겸 祖 書 인 許 鑛 이다. 이 점에 있 어 工 作 機 構 라는 점에서 視 國 統 - 民 主 主 義 戰 線 과는 그 성격이 다른것 같다. '.. - - - -. 祖 國 統 一 民 主 主 義 戰 線 의 선전.선동공세와 祖 國 平 和 統 一 要 의 多 發 的 제의피 맞 물려서 料 南 工 作 이 전개되고 있다. 이처럼 북한은 當 局 者 간의 대화를 거부 하기 떼문에 對 南 事 業 은 행정부인 政 務 院 에서 다루지 않고 당비서의 관장 하에 있는 祖 國 平 和 統 一 委 와 같은 黨 의 외곽단체에서 다루고 있다. 또 그 4o) r위의 정치사전 J, pp.773-774. - 5 l -
렇기 때문에 북한의 對 話 를 비롯한 It 南 事 業 은 혁명조선을 조성하기 위한 工 作 的 인 流 元 에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r 祖 國 戰 線 J과 r 祖 平 統 J 다음에 언급할 방송도 r구 국의 소비방송J으로 개칭됐다. 68년 7월 남파간청, 李 文 奎 일당을 일망타진 함으로써 지하당구축이 좌절되었으나 북한은 남한에 統 革 黨 이 있는것처럼 위장해 오다가 民 民 戰 으로 개칭한 것이다. 民 民 戰 은 폭력혁명을 선동하는 對 南 혹색선전기구로서 統 革 黨 이 민민전으로 개칭됨과 더불어 r 民 族. 民 主. 自 主 J의 구호로 反 美. 辰 體 制 의 선동을 벌려왔 다. 2 5 이들 북한의 對 南 선전 선동. 工 作 을 위한 조직체계와의 관련에서 그의 統 一. 對 南 제의 동기. 性 格 의 규명이 그 실체의 파악을 위해 필요하다. - 5 2.
m. '"7-7 宣 言 J과 우리의 r 體 制 聯 合 J 統 - 方 案 구상 1. '7.?J 宣 言 의 政 策 的 배경:우리 統 一 方 案 의 持 續 性 과 可 變 性 6 共 和 國 의 民 族 共 同 體 개념올 토대로 하는 r 體 訓 聯 合 J통일방안 구상의 정책 적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南 北 料 話 가 시작되는 7o년대 이전과 그 이후의 2개 段 階 로 구분하여 우리 流 一 方 案 의 일관적인 持 繼 性 과 限 時 的 인 可 變 性 을 일별코저 한다. 이러한 우리의 노력은 어느 의미에서 본다면 ''7.. 7J 宣 言 의 정책적인 의의를 어떤 歷 史 的 인 배경과 연결시키는 한편 북한의 r 聯 邦 制 J 통일방안에 대한 3tt 應 論 理 롤 개발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1) 7o 年 代 이전까지 6. 25당시의 北 進 統 一 論 을 제외하면 6o년대 까지의 우리의 統 一 方 案 은 유엔 決 讓, 政 府 樹 立 과 對 北 提 議 그리고 제네바 會 議 에서의 提 案 등을 중심으 로 이해될 수 있다. 美. 蘇 共 委 의 決 裂 과 더불어 미국은 47년 9월 l7일 한국문제를 제2차 유엔 總 會 에 이관했다. 이것을 계기로 美. 蘇 의 소관상황이던 韓 國 문제가 국 제기구인 유엔의 소관상항으로 되었다. 동 9월 23일 유엔 總 會 는 한국문제 를 議 題 로 채택하고 lo월 28일부터 한국문제를 다루기 시작한 유엔 總 會 政 治 要 에서도 先. 政 府 수립t 肩. 外 軍 撚 收 롤 주장하는 美 國 案 과 先. 外 軍 撤 收, 房. 政 燎 수립을 주장하는 소릴 案 이 서로 맞섰다. 그러나 동 ll월 l4일 유 엔 總 會 는 43대 9, 기권6으로 美 國 側 決 議 案 올 채혁했다. 이 유엔 決 讓 案 州 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가) 選 擧 에 의해 선출된 한국국민의 代 表 들을 政 府 수립문제의 토의 에 참가토록 초청해야 한다 擊 4i) r 韓 國 外 交 30tf.. 1948~1978J( 外 務 部, 1979), pp.23~24. - 5 3 -
(나) 공정한 選 擧 감시를 위해 한국 全 域 에 걸쳐 여행, 감시, 협의할 權 限 이 부여되는 9개국 代 表 로서 유엔 臨 時 韓 國 要 員 團 (un- T c o K ) 을 설치한다. (다) 한를국민의 代 表 를 선출하기위해 48년 3월 i일 이전에 동위원 단 監 視 하에 人 口 뇌 例 에 따라 普 通 選 擧 원칙과 비밀투표에 의한 선거를 실시한다. (라) 선거후. 이들의 代 表 들이 가급적 조속히 國 會 를 소집하여 政 府 를 수립하고 Q 員 團 에게 통보한다. (마) 政 府 는 남북한 軍 政 당국으로부터 政 府 의 諸 權 限 을 이양 받고 자체의 國 防 軍 을 조직, 가급적 조속히 가능하면 9o일 이내에 占 領 軍 이 철수토록 關 係 國 과 협의한다. 유엔 統 韓 결의는 유엔감시 하의 南 北 韓 自 由 總 選 擧 案 이었다. 그러나 북한 측이 유엔 臨 時 韓 國 要 員 團 의 입북을 거절했다. 48년 3원 l일 駐 韓 美 軍 司 令 官 은 한국민에 대한 布 告 令 을 통하여 유엔 臨 時 韓 國 委 員 團 의 감시하에 5월 9 일에 南 韓 에서만 國 會 議 員 선거룔 실시할 것을 발표했다. 48년 5월 lo일 총선거를 통해 사상 최초로 선출된 l98명의 國 會 議 員 들은 5월 3i일 제헌 국회를 소집하고 후일 북한에서 선출된 국회의원을 위해 人 團 比 例 에 의한 議 席 의 3분의 l인 약 loo 席 을 공석으로 남겨두였다. 6월 l7일 국회는 滿 場 一 致 로 북한동포에 보내는 메시지와 決 議 文 을 채 택하고, 북한에서도 우리와 같이 자유선거로서 선출된 代 表 를 우리 國 會 에 보내도록 호소했다. 그리고 7월 l7일에 新 憲 漆 을 공포하여 제3 條 에서 大 韓 國 民 의 領 士 는 韓 半 島 와 그 부속도서로서 구성된다는 것을 명백히 하였다. 48년 8월 l5일 政 府 수립과 더불어 獨 立 을 내외에 선포하고 美 國 을 비 롯한 우방제국의 숭인을 받았다. 사상 최초로 유엔에 의해 숭인된 唯 一 한 國 家 로 탄생한 것이다. 같은 해 l2월 l2일, 유엔 總 會 는 유엔 臨 時 韓 國 養 員 - 5 4.
團 의 報 告 書 를 접수하여 한국민의 大 多 數 가 거주하는 韓 國 地 域 에 효과적인 통치와 管 轄 權 을 가진 合 法 政 府 가 수립되있으며 또 이 政 府 가 韓 國 내의 皓 一 한 政 府 라는 것을 선언했다.42) 이 때까지의 우리의 統 一 方 案 은 유엔 統 韓 決 議 와 우리 政 府 의 한반도에서의 唯 - 合 法 性 을 골간으로 했다. 그후 53년 7월 27일에 조인된 韓 國 休 戰 協 定 제6o조, 즉 한국으로 부터 의 外 軍 철수와 한국문제의 平 和 的 해결등의 문제를 교섭하기 위해 찰방측 을 대표하는 高 位 政 沿 會 談 을 휴전협정 발료후 3개월이내에 개최한다는 조항 을 근거로 하여 54년 4월 26일에 제네바 會 談 이 예정되로 개최됐다. 유엔 측에선 參 戰 l5개 國, 공산측에선 中.소. 北 韓 그리고 우리측에선. 卞 榮 泰 외부 장관을 수반으로 하는 대표단이 참석했다. 유엔 參 戰 國 代 表 들은 한국 문제 해결에 대해 다음과 같은 共 通 見 解 때를 가지고 있었다. (가) un의 權 限 과 資 格 을 인정하여 한국문제 해결에 유엔이 主 導 的 役 割 을 해야한다. (나) 南 北 韓 比 例 代 表 削 에 따라 自 由 總 選 擧 를 실시해야한다. (다) un 軍 은 統 一, 獨 立 된 民 主 韓 國 의 수립으로 un의 사명이 완수 될 때까지 한국에 계속 잔류해야한다 를 그러나 공산측이 北 韓 에서만의 選 擧 실시원칙을 거부하고 제네바 會 談 을 상 습적인 宣 傳 場 으로 악용하기 시작하고 북한 代 表 南 日 ( 外 相 )은 4월 27일 다읍과 같은 요지의 3개 項 目 方 案 인)을 제시했다. (가) 南 北 韓 政 府 는 부홍, 독립 및 統 一 r 民 主 J 國 家 를 세울 목적으로 國 會 議 員 총선거를 실시하며, 남북한 國 會 에서 각각 선출된 社 會 단체의 代 表 들로서 全 朝 鮮 委 를 조직한다. 42) UN:Year Book of the UN, 1948~1949(New York:1949), pp.288~289. 43) r 韓 國 外 交 30U, 1948~78.,(외무부, 1979). p.71. 44) r 南 北 韓 統 -, 對 話 提 議 比 較. 1945~1988.i( 國 소 統 -1%, 1987), p.19.. 5 5 -
(나) 6개월 이내에 일체의 外 軍 武 力 이 철수한다. (다) 극동 평화유지에 관심있는 該 當 國 家 들이 조선의 平 和 統 一 의 條 件 마련의 必 要 性 올 이전해야한다. 이때 우리 卞 榮 泰 외무장관은 5월 22일 다음과 같은 l4개 條 i 計 5)을 통일 방안으로 제의했다. (가) 統 一 > 獨 立 > 민주한국의 수립을 목적으로 유엔 監 視 하에 前 日 의 유엔 諸 決 議 에 의거 자유선거를 실시한다. (나) 南 韓 과 현재까지 여사한 선거를 행하지 않았던 北 韓 에서는 대 한민국의 헌법절차에 의거하여 自 由 선거를 실시할 것출 (다) 이 提 案 은 채택후 6개월 이내에 선거를 실시할 것 聲 (라) 選 擧 의 전후 및 그 기간 중 選 擧 監 視 에 종사하는 유엔 監 視 委 員 은 선거실시 전지역을 통해 자유분위기 유지에 필요한 조건 을 감시, 조성하기 위해 행동, 언른의 완전 自 由 를 향유할 것출 현지 當 局 은 監 視 Q 員 에 가능한 모든 편의를 제공할 것.' (마) 選 擧 전후와 그 기간 입후보자 및 그 운동자와 家 族 은 行 動, 言 論 및 기타 민주국가에서 인정되고 보장되는 人 權 의 誇 全 自 由 를 향유할 것출 (바) 選 擧 는 일반성인 投 票 의 기초에 입각하여 실시할 것출 (사) 全 韓 議 會 의 의원 數 는 全 韓 國 의 人 口 에 뇌 制 할 것 零 (아) 人 口 에 뇌 例 하는 議 員 數 의 할당을 위해 유엔 監 視 下 에 人 口 調 査 를 실시할 것출 45) r 韓 國 統 一 方 案 에 관한 資 料 J(솟 報 部 公 報 局, 64. 1. 20), pp.1~2. 여기의 나) 項 은 후에, r현재까지 자유선거가 불가능했던 北 韓 에서 自 由 選 擧 를 실시 하고 南 韓 에서는 大 韓 民 國 憲 法 上 의 절차에 의하여 자유선거를 실시한다.J과 정정했다.. 5 6 -
(자) 全 韓 議 會 는 선거직후 서운에서 關 會 할 것출 (차) 下 記 분제는 全 韓 國 會 개회후에 제징해야 함를 (a) 統 一 韓 國 의 새 大 統 領 선출여부 문제 (b) 大 韓 民 國 의 現 憲 法 의 수정여부 문제 (c) 軍 隊 해산에 관한 문제 (카) 大 韓 民 國 의 現 憲 法 은 全 韓 議 會 가 수정하지 않는 한 有 動 함 零 (타) 中 共 軍 은 선거실시일 보다 l개월전에 撤 狀 를 완료할 것차 (파) 한국으로 부터의 유엔군의 점진적 철수는 선거실시 전에 시작 될 것이다. 全 韓 國 에 대한 효과적인 支 配 는 統 一 韓 國 政 府 에 의 해 달성되며 同 支 配 가 유엔에 의해 증명되기 전에 撤 收 를 완 료해서 는 아니된다. (하) 統 一, 獨 立, 民 主 한국의 權 威 와 獨 立 은 유엔이 保 障 해야함 를 이상은 제l 共 和 國 시대의 우리의 통일방안이다. 4. l9혁명 후 탄생한 제2 共 和 國 도 6o년 8월, 유엔 決 議 를 존중하며 유엔 監 視 하에 南 北 韓 總 選 擧 를 실시하는 유엔 經 韓 決 議 를 천명했다. 그러나 이 民 主 黨 政 權 의 統 一 方 案 은 北 進 統 一 論 을 公 式 으로 부인하는 한편 先. 建 設, 淸. 統 - 을 기본전제로 하는 깃이였다. 北 進 論 의 부인과 先. 誰 設, 房. 統 一 의 기본전제는 5. l6 革 命 을 거치 수림된 재3 共 和 國 시대에도 그대로 게승되어 先. 建 設 은 政 治 發 展 을 뒤로 미룬채 제l차 5개년 計 劃 의 시작과 더블어 l차적으로 를일의 物 質 的 기반을 다지기 위한 국력배양에 박차를 가하게 하고 또 淸. 統 一 은 政 治 名 分 에 있어 統 一 論 議 의 개방에 앞서 安 保 體 系 의 强 化 를 통한 國 論 統 一 에 출점이 두이지게 됐다. 4. l9를 게기로 하는 大 學 街 의 南 北 協 商 論 과 혁신 계의 中 立 化 論 에 대한 反 테재가 辰 共 國 是 論 으로 나타 漆 던 것이다. 이리하여 6o년대 말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으로 우리의 統 - 方 案 은, 유엔 監 視 하의 人 口 流 側 에 의한 南 北 韓 總 選 黎 를 핵심적인 골간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7o. 5 7.
년대에 접어들면서 점차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2 ) 7o 年 代 이후 7o년대 우리의 業 料 b 政 策 의 변화는 國 際 政 治 的 여건 만이 아니라 國 內 的 인 연거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國 際 政 沿 的 으로는 미. 소간의 緊 張 緩 和 를 비롯하여 이것과 연관된 車. 西 간의 접근의 증 대 그리고 美. 中 간의 급속한 關 係 改 善 의 움직임이 그것이다. 또 國 內 的 으로 5게년 計 劃 의 수행에 의한 經 濟 建 設 올 통해 國 諒 培 養 에 대한 자신감이 붙게된 것이라. 이리하여 對 北 提 議 에서 연속적으로 주도적 갓 勢 를 취하게 된것이다. 7o년대의 그 주 요내력 46)을 보면 다음과 같다. (7b) 70. 8. 15 : 朴 正 熙 大 統 領 의 r8. l5 宣 言 J( 光 復 25주년 경축사) (4 ) 71. 8. 12 : 대한 赤 + 字 社 의 r8. l2제의 J( 南 北 赤 +출 會 談 개최제의 ) (4) 73. 6. 23 : 朴 正 熙 大 統 領 의 r6. 23 宣 言 J( 平 和 統 - 外 交 政 策 에 관한 특별성 명) (Eb) 74. 1. 28 : 朴 正 熙 大 統 領 의 南 北 相 互 不 可 侵 協 定 체결제의 (연두기자 회 견) (nb) 74. 8. 15 : 박정회대통령의 r 平 和 統 一 3 原 則 J천명( 光 復 25주년 기념 경축사) (yb) 78. 6. 23 : 박정회대통령의 r 南 北 間 經 濟 協 力 J촉진을 위한 協 議 機 構 의 構 成 제의 (4) 78. 8. 12 : 大 韓 赤 + 字 社 의 남북적십자총재회담 제의 (ob) 79. 1. 點 : 박정회 대통령의 r 南 北 韓 當 局 간 무조건 對 話 J제의 (연두기 자 회견) 朴 大 統 領 은 r8. l5 宣 言 J을 통해 북한에 대해 平 和 統 一 의 선결조건으로서 46) r 南 北 對 話 白 警 J( 國 土 統 -RS, 1984), p.5.. 5 8.
r 武 力 統 一 이나 暴 諒 革 命 에 의한 대한민국의 전복기도J를 버리고 선의의 體 制 경쟁을 위해 r 開 發 과 建 設 과 創 造 의 경쟁에 나셜 用 意 J를 촉구했다. 뿐 만 아니라, 유엔의 權 威 와 權 能 을 수락한다면 북한의 유엔 참석을 반대하 지 않겠다고 한것이다. 여기에 중요한 것은 첫째 북한을 협상이나, 對 話 의 대상으로서 體 料 의 존립을 인정했으며 둘깨로 유엔과 결부된 韓 國 문제를 南 北 當 事 者 문제로서 韓 國 化 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72년 r7.4 共 同 聲 明 J 의 발표에 의한 南 l 料 t 活 의 시작은 바로 우리 政 府 의 對 北 政 策 의 궤도수 정을 의미한다. 그후 r6.23 童 言 J으로 7개 項 의 정책을 성명했는데 그중 네째 頂 에서 북 한과 국제기구에 동시찹여 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겠다고 하고 또 다섯째 項 에는 유엔에의 同 時 加 入 과 유엔가입 이전의 한국문제 토의에의 북한출의 초청을 반대하지 않겠다고 했다. 또 여섯째 項 에서 體 削. 理 念 을 달리하는 국가들에게도 門 戶 를 개방하겠노라고 선언했다. 이들 선언의 요지는 한마디 로 이데올로기와 대외정책이 밀착되업던 冷 戰 論 理 의 극복을 위해 對 外 政 策 을 이데올로기에서 분리시키기 시작한데 있는 것이다. 그것은 統 一 이란 결 국 더 잘사기위한 民 族 的 念 願 이며 統 一 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하더래도 그것만을 위해 平 和 를 버릴수 없기 때문에 先. 平 和, 房. 統 -의 명제를 취한 것이다 그것은 47년 이래 2o년이상 계속되어 온 한국문제의 유엔 自 動 上 程 방식이 68년을 轉 機 로 裁 量 上 程 방식으로 바뀌게 되는, 그 간의 국 제정세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74년엔 r 南 北 相 互 不 可 侵 綠 約 J체결을 제의하고 또 r 平 和 統 一 3 原 친JJ올 제 시했다. 우리측의 不 可 侵 條 約 체결지의는, 북한측이 제네바 會 談 이래 美 軍 철수 를 촉구하기 위해 계속 南 北 平 和 協 定 의 체결을 제의함에 그것에 대한 對 應 論 理 로서 休 戰 協 定 의 효력을 존속시키면서 r 統 一 될 때까지 平 和 共 存 을 47) 李 撚 九 국토통일원 장관 國 防 大 學 院 강연, " 韓 國 의 統 一 政 策 ", r남북대화j;?i 44호(국토통일원. 1988). pp.73~74.. 5 9.
해 나가기 J위해 제의된 것이다. 그리고 r 平 和 統 一 3 原 則 J는, 7o년 이래의 漸 進 的 이며 기능주의적인 統 合 理 論 을 바탕으로 平 和 統 一 을 위한 3 段 階 論 을 제시한 것이다. 그 원칙으로서 첫째는 平 和 定 着 을 위 한 相 互 不 可 侵 協 定 (l 段 階 ) 둘째는 對 話 를 통한 多 角 的 인 交 派. 協 力 으로 상호문호의 開 撚 (2 段 階 ) 그리고 세해는 公 正 한 選 擧 管 理 와 監 視 하에 土 着 人 口 比 例 남북한 總 選 擧 (3 段 階 )에 관한 것이다. 여기에서 특히 세째에서 r유엔 監 視 J대신에 r 公 正 한 選 參 管 理 J라는 단서를 붙인것은 선거관리를 유엔의 기능으로 한징시키지 않 기 위해서 였다. 68년에, 한국문제의 年 例 유 엔 自 動 上 程 방식대신에 避 量 上 程 방식을 내용으로 하는 統 韓 決 認 案 이 새 로 통과된 이래, 75년에 南. 北 韓 을 각각 지지하는 美 國 측 決 議 案 과 소련측 결의안이 제3o차 總 출에서 동 시에 통과된 당시의 정세추세를 사전에 감안하지 않으면 아니되었기 때문 이다. 8o년대에 들어와서는 5 共 和 國 의 출범과 더불어 종래에 기회있을 때마다 천명된 우리의 統 一 方 案 을 보완 集 大 成 하는 가운데 統 一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의 節 流 문제를 제시하여 보다 실천적이며 포괄적이며 또 및 容 的 인 방안을 제시했다. 그것의 전헝적인 方 案 이 r 民 族 和 合 民 主 統 一 方 案 J(82) 이 있다.48) 그래서 이 方 案 은 統 一 過 程 에서 구현되여야한 지표로서 自 決. 民 主. 平 和 의 3 大 原 則 을 제시하고 統 一 祖 國 의 미레상( 目 標 )으로시 民 族. 民 主. 自 由. 福 祉 의 이념을 바탕으로 하는 主 權 民 族 國 家 의 수립을 설정했다 출 그리고 이들 3 大 原 則 에 입각하여 民 主 統 一 을 이룩하는 구체적인 節 流 를 제시했다. 즉 南 北 韓 주민의 代 表 로서 r 民 族 統 一 協 議 會 J를 구성하고 거기에 서 출 意 에 의해 統 一 憲 法 을 만들면 國 民 投 票 에서 확정한 다음 統 一 憲 法 의 규정된 절차에 따라 總 選 擧 를 실시하여 統 一 國 家 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 고 이 統 一 憲 法 의 제정작업을 위해신 相 互 信 賴 를 먼저 회복해야 되기 때 48) r 南 北 對 話 白 害 J(국토틀일원, 1984), 343-347.. 6 o.
문 에 過 渡 的 措 置 로서 r 南 北 韓 基 本 關 係 에 관한 暫 定 協 走 J을 체결할것을 덧 붙여서 제의했다. 뿐만 아니라 이들 信 賴 回 復 에 의한 民 族 和 合 을 바랄으로 民 主 統 一 에 이르는 제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우선 r 南 北 韓 當 局 最 高 資 任 者 會 談 J의 개최수락을 촉구했다. 그 간 5 共 和 國 시대의 對 北 제의 주요내력은 다음과 같다. 81. 1. 12 : 전두환 大 統 領 의 r 南 北 韓 當 局 최고 責 任 者 상호방문J제의 (Q 政 연설) 8l. 6. 5 :전두환대통령의 r 南 北 韓 當 局 최고 責 任 者 會 談 J제의 ( 平 統 자문 회의 開 會 辭 ) 82. 1. 2 2 : 전두화대통령의 r 民 族 和 合 民 主 統 一 方 素 J천명 ( 國 政 연설 ) 82. 2. 2 : 國 土 統 一 院 長 官 의 r2o개 示 範 實 踐 사업 <9)J제의 82. 2. 2 5 : 國 土 統 一 院 長 官 의 r 南 北 韓 淸 位 代 表 會 談 J제의 82. 8. 15 : r 共 産 團 거주동포 조국 自 由 往 來 보장J천명 83. 1. 18 : r 南 北 당국자 최고책임자회담J의 수락촉구와 동회담 r4개 항 의제5o)J제의 83. 2. l :r남북한 當 局 및 政 黨, 社 會 단체 대표회의J재의 83. 6. 5 :r남북한 當 局 최고책임자회담J수락 촉구와 ripu 서출충 회에의 북한대표 찰가회망과 신변보호J언명 84. 1. 1 : r각료급회담j수락 촉구 84. 8. 20 :r 南 北 韓 간 交 易 및 經 濟 協 力 J제의 84. 9. 14 : 水 災 物 資 제공제의 수락(9. 8 北 赤 제의) 84. 10. 4 :f 南 北 赤 十 를 會 談 J재개 제의 84. 10. 6 :r 南 北 體 靑 會 談 J게개 제의(대한체육회장) 49) r위의 ab.,, pp.347~350 5o) r4개항 의제J란, i) 긴장완화 2) 포활적 협의 3) 국제무대에서의 震 族 力 量 낭비방지 문제 그리고 4) 국제적 평화통일 여건조성문제이다 準. 6 l.
84. 10. 12 : r 南 北 經 濟 會 談 J제의 (부총리겸 經 企 院 장관) 85. 6. 1 : r 南 北 國 會 談 J수락(4. 9 북한제의 ) 85. 9. 2 0-2 3 :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단 교환 방문 86. 11. 28 : r 南 北 水 資 源 회당J제의 (건설부 장관) 87. 8. 3 : r 南 北 外 務 長 官 회담J제의 그러나 r 民 族 和 合 民 主 統 一 方 案 J이 종래의 통일방안을 집대성한 것이기는 하나 우 선 명칭이 길어서 불편하데다가 內 容 이 복잡하여 일반국민에게 매 우 생소한 느낌을 주있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던 차 에 올림픽의 성공적 인 개최로 자신감이 생긴데다가 주변성세의 변화로 새로운 要 料 b 方 政 策 및 麥 린b 政 策 의 수립, 보안이 불가피하게 되였다. 더우기 87년 r 民 主 化 선언J으 로 大 學 街 와 재야에서의 統 一 열기가 급작스럽게 국민사회에 확산되 百 家 爭 鳴 식의 통일논의가 중구난방격으로 터져 나왔다. 따라서 이들 문제의 해결 이 제6 共 和 國 의 우선적이 당면과제로 부각케 되있다. 이러한 政 治 的 분위 기에서 統 一 方 案 의 새로운 보완과 體 系 化 를 위해 r7. 7 宣 言 J을 통해 6 共 和 國 에서 원용된 것이 民 族 共 同 體 의 개념을 바탕으로 하는 r 體 制 聯 合 J통일 방안의 구상이다. 그러면 이것에 대해 다음에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출. 6 2 -
2. U-7.7 宣 言 J과 r 民 族 共 同 體 J개념 및 r 體 制 聯 合 J 統 一 方 案 구 상 1) 盧 泰 愚 大 統 領 의 r7.7선언 J 李 洪 九 통일원 長 官 에 의하면 새로운 統 一 方 案 의 구도에 있어 民 族 共 同 體 의 개념이 원용되는 것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3개의 가정 挑 )에서 출발하 고 있다. 즉 첫째로 統 一 은 단순한 國 土 의 재결합. 統 一 이 아니라 달라진 南 北 의 두 體 別 를 어떻게 결합시키느냐의 문제라는 것이다. 둘째로 역사적 으 로 본다면 3 國 時 代 에 3개의 政 治 體 料 로 분릴되어 있었고 또 日 漆 시대에 식민지화 되업어도 民 族 史 가 단절되지 않고 우리 민족이 5천년의 역사를 유지해 온것은 하나의 共 同 體 로서 존재해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세깨 統 一 의 추구는 분립된 민족이 하나의 共 同 繼 로서 살아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는 데서 를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民 族 共 同 體 의 개념이 통일방안에서 역사적으로 처음 시사된 것이 r7.7 宣 言 J에 앞서 가 惡 던 野 黨 總 裁 들과의 회담(88. 5. 28)에시 였다. 여기.. 에서 盧 大 統 領 은 r민족이 함께 잘사는 共 同 體 를 이룩한다는 입장에서 統 政 策 을 추구할것 J이라고 시사한바 있다. 그후 r7.7 宣 言 J(88. 7. 7)을 통한 統 一 관련 6개 頂 의 특별선언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되였다. 盧 大 統 領 은 r7. 7 宣 言 J의 앞머리에서 다읍과 같이 논하고 있다. r우리가 아직 비극적인 分 斷 現 寶 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근본적인 理 由 는 南 과 北 이 民 族 共 同 體 라는 의식올 둥진채 서로를 對 決 의 相 對 로여겨 敵 對 관계를 격화시켜 온데 있습니다...따라서 南 과 北 이 함께 번영을이룩하 는 民 族 共 同 體 로서의 關 係 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야 말로 統 - 祖 國 을 실 5l) 李 撚 九 長 官, 國 防 大 學 院 講 價 요, r 南 北 對 話 J제 44호(국토를일원. 1988), P. 84.. 6 3.
현하는 지름길일 것입니다. 이길이 곧... 民 族 統 合 의 길입니다.52) 여기서 보는 바 盧 대통령은 民 族 分 斷 을 극복하지 못하는 根 本 理 由 를 南 ' 北 간의 民 族 共 同 體 의식의 부재에서 오는 散 對 關 係 에서 찾으며 따라서 民 族 共 同 體 관계의.발전이 民 族 統 合 과 統 一 의 길이라고 한것이다. 따라서 盧 대 통령은 民 族 共 同 體 의식을 바탕으로 안으로는 南. 北 간에 交 流 를 를해 信 賴 를 회복하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여 밖으로는 料 決 관계를 지양하여 선의 의 同 伴 者 관계를 설정할 것을 선언했다. 그리고 盧 大 統 領 은 自 主 출 平 和. 民 主 ' 복지의 4 原 則 에 입각하여 民 族 成 員 진체가 참여하는 사회. 文 化. 經 濟. 政 治 共 同 體 를 이룩하여 새 時 代 를 열어나갈것을 다짐하면서 다음과 같은 6개 政 策 을 선 언했다. (가) 南 北 동포간의 적극적인 相 互 交 流 추진과 海 外 동포의 南 北 自 由 往 來 를 위한 門 F 開 放 (나) 이산가족의 生 死.주소확인, 서신왕래, 상호방문을 적극주선 (다) 南 北 간 交 易 문호개방( 南 北 통상 民 族 내 부교역으로 간주) (라) 友 部 國 과 북한간의 非 軍 事 的 物 資 交 易 에 不 辰 對 ( 民 族 공동채 공동 번영) (마) 國 際 社 會 에서의 南 北 韓 간 자유접촉과 協 力 회망(대북@쇄 政 策 의 해제) (바) 북한과 우리 友 邦 과의 關 綠 改 善 협조용의 ( 交 叉 承 認 의 추 구 ) r7.7 宣 言 J은 종래와는 달리 前 提 條 件 을 달지 않았다는 것이 하나의 특 징 이다. 뿐 만 아니라 북한은 對 決 과 競 爭 의 관계에서 民 族 共 同 禮 의 관계로, 그리고 국제사회의 責 任 있는 一 員 으로 포출하고 南 北 韓 關 係 를 한 民 族 共 同 體 내의 잠전적인 特 殊 關 係 로 규정한 점에서 r7. 7호 言 J은 지난날의 다른 52) 東 亞 日 報, 1988. 7. 7. 6 4.
선언과 구별된다 출 그러나 물른 r7.7 宣 言 J은 구체적인 統 一 方 案 자체는 아니다. 두 體 削 간의 적 극적인 開 放 과 協 力 을 통해 非 政 治 的 인 交 流 부터 시작하여 궁극적으로는 政 治 共 同 體 를 실현하겠다는 구상으로서 r6.23 宣 言 J이래 커다란 麥 린b 政 策 의 전환이며 변화라는 점에 그 기본적인 의의가 있다출 r7.7 童 言 J은 國 家 ( 政 沿 ) 共 同 禮 는 兩 分 돼 있어도 民 族 共 同 體 의 單 - 性 만 은 먼저 회복해야 겠다는 구상으로서 비정치적인 교 류. 협력부터 시작하여 r 國 출 家 J 統 合 에 앞서 r 民 族 J 統 合 을 이뤄나가겠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r7.7 宣 言 J의 정책구상은 統 一 에의 3 段 階 접근방법른이다. 즉 제l 段 淸 는 經 濟. 社 會. 文 化 등 非 政 治 的 인 공동체( 民 族 的 동질성)의 회복이며 제2 段 階 는 政 治 的 인 공동체의 결합 그리고 제3 殷 階 는 統 一 에 이른다는 구 상으로 이해된다, 4 大 國 交 叉 承 認 論 이 나올때 마다 同 時 性 交 叉 承 認 을 내 세우고 또 時 差 性 交 叉 承 認 論 이 제기될 때에는 그 時 差 의 長. 短 期 性 을 가지고 논란을 거듭하든것에 비하먼 進 一 步 한 것이다. 民 族 共 同 禮 의 개념을 토대로 하는 r7.7 童 言 J에서의 통일방안 구상은 論 理 的 으로는 rl 民 族 2 體 料 ( 國 家 )J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는 착상이다.' rl 民 族 2 國 家 J가 분단의 고착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통일에 이르는 過 渡 的 特 殊 관 계인 非 政 治 的 인 共 同 體 관계를 rl 民 族 2 體 利 J관계를 보는 것으로 생각된다 출 2) 盧 泰 蒸 大 統 領 의 國 政 演 說 과 崙 엔 演 說 盧 대통령은 유엔 演 說 (88. 10. 18)에 앞서, 제l44회 定 期 國 會 본회의에서의 國 政 연설 (88. 10. 4)을 통해 r7. 7 宣 言 J의 기본정신을 다시금 강조한 바 있 다. 대통령은 89년도 綠 算 案 제출에 즈음한 국정연설53)을 통해 l) 새.. - - 統 53) r남북대화jfl46호(국토통일원, 1988, PP.9~19.. 6 5.
방안을 제시할것을 천명하고, 2) 南 北 預 上 회담을 재촉구하고, 3) 北 方 政 策 추진의 加 速 化 를 강조했다. 따라서 이 國 政 演 說 은 그 基 調 에있어 國 內 政 治 나 경제에 관해서 보다는 北 方 外 交 와 統 一 정책에 관한것 이였다. 교류. 協 力 올 통해 南 北 관계틀 대결과 敵 對 관계 아년, 한 民 族 共 同 體 안의 동반자관계로서 民 族 統 合 을 다져 나가겠다는 r7.7 童 言 J의 정신을 다시금 다 짐했다. 그리고 제43 周 年 光 復 節 경축사에서와 마찬가지로 金 日 成 에게 r 主 席 J이라는 호칭을 公 式 的 으로 사용하여 우리의 不 可 侵 條 約 체결제의에 대한 對 應 論 理 로서 북한측이 제기한 不 可 侵 童 言 을 비롯한 모든 현안문제를 제한 없이 허심탄회하게 金 日 成 r 主 席 J과 만나 논의하기 위한 南 北 韓 頂 上 會 談 의 개최제의를 수락할 것을 재촉구했다. 그리고 料 方 관계의 개선노력이 北 韓 을 고립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責 任 있는 국제사회의 一 員 으로서 문호를 개 방할 것을 덧붙였다. 그러나 經 一 方 案 에 관해시는 새로운 方 案 의 제시가 필요하다고 전제하면서 다만 各 界 출 曆 의 의견을 수립하여 가까운 시일안에 새 통일방안을 제시할것을 약속했을뿐 그 이상 더 구체적인 언급이 없있 다. r7.7 童 言 J의 내용에서 벗어난것이 없다는 뜻이다. 다음에 유엔 演 說 의 내용을 어떠한가. 88년 lo월 i8일 정부수립 4d 周 年 을 기해 大 韓 民 國 의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l59개회원국 代 表 들이 참석한 제43 차 유엔 總 會 에서 盧 대통령이 r 韓 寧 島 의 和 解 와 統 一 을 여는 길J이라는 주 제로 연설했다. r7.7 宣 言 J에 이어 이 연설을 통해 崙 tb 亞 의 平 和 定 着 과 民 族 統 合 을 위한 제안이 천명됐다. 유엔 演 說 54)통해 盧 대통령은 i) 分 斷 극복과 束 北 亞 화해에서의 主 導 的 役 割 을 강조하고, 2) 한반도 平 和 定 着 을 위한 r 東 北 平 和 協 讓 會 議 J이 개최제의 3 ) 南 北 和 解 를 위한 非 武 裝 지대 r 平 和 市 J의 건설제의 그리고 4) 남북화해 타개책으로서의 南 北 頂 上 會 談 개최제의 수락의 게촉구를 천명했다. 54) r위외 책J P P. 4 7-5 9. 6 6.
유엔 演 說 에서도 南 北 관계의 性 格 규정에 대해서는 對 決 관계아닌 한 民 族 共 同 體 안이 동반자 관계라고한 r7.7 宣 言 J의 내용을 재강조한것 외에는 더 구 체 적인 설멍이 없었다. 따라서 유엔 演 說 에서도 한 民 族 共 同 體 안의 동반자로 서의 새로운 南 北 관계의 성격 규정에 대한 개념적인 보완보다는 平 和 意 志 에 구현을 위한 당면된 긴장완화 조치에 더 역점이 두어져 있다. 이런 童 言 的 맥락에서 盧 대통령은 南 北 韓 간의 교환, 교류, 交 易 을 폭넓게 촉진하기 위해 休 戰 線 의 非 武 裝 地 帶 안에 r 平 和 市 J를 건설할 것을 제 의 한데 이어 南 北 頂 上 會 談 의 개최를 재촉구했다. 盧 대통령은 lo월4일 國 政 演 說 을 통 해 북한이 84년 이래 公 式 的 으로 주장해온, r 不 可 侵 童 言 을.논의할 수 있다J고 한데서 한거름 더 나아가서 유엔 演 說 에서 l) 한반도 平 和 定 着 을 가능케 하는 制 度 的 裝 置, 2) 統 - 寶 現 方 案, 3) 남북간의 交 流 協 力, 4) 軍 綿 등 모든 문제까지도 頂 上 會 談 에서 논의하자고 재촉구 했다. 그리고 북 한 이 5o년대 중반기 이래 주장해온 休 戰 協 定 의 平 和 協 定 으로의 대체주장을 되받아 休 戰 協 定 을 平 和 r 體 制 J로 대체하는 방안도 이 頂 上 會 談 에서 강구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뿐만 아니라 盧 대를령은 동북아의 平 和 와 번영의 바방을 구축하기 위 해 美 ' 蘇. 中. 日 그리고 南 北 韓 으로 구성되는 6개 國 의 r 車 北 亞 平 和 協 議 會 議 J 를 열 것을 제의했다.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平 和 定 着 을 위해 形 式 上 으로는 6 者 會 談 을 제의하고 內 容 上 으로는 4 强 에 의한 南 北 韓 交 叉 承 認 을 제의한 것이다. 여기에서 보는 바 유엔 演 說 에서의 정책구상을 內 的 으로 남북관계에서 南 北 頂 上 會 談 을 통해 신뢰를 구축하며 外 的 으로는 한반도문제 판련국가들의 1 a f 9 1 의한 車 北 亞 平 和 協 議 會 讓 의 개최로서 긴장완화를 도모하려는데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도 國 政 演 說 (10.4)에서 천명된 民 族 共 同 體 개념을 바탕으로 하는 새. 統 一 方 案 의 구상에 대해선 구체적인 시사는 없업다.. 6 7.
3) 李 洪 九 國 土 統 - 院 長 官 의 개념구상 r7.7선언j과 寧 洪 九 長 官 의 견해를 징리해 보면, 民 族 共 同 體 의 개념을 바탕 으 로 r 體 料 聯 출J이라는 새 통일방안구상이 제기되기 까지에는 몇개의 槪 念 55 )이 전제되어 있다. r7.7 宣 言 J에 대해선 이미 논했옴으로 여기에서는 주로 李 洪 九 長 官 의 개념구상을 중심으로 살펴 보기로 한다주 출 개념상의 첫째 前 提 는 統 一 이란 어떤 통일을 의미하느냐의 意 味. 內 容 形 態 에 관한, 이를테면 통일의 性 格 에 관한 것이다. 이 첫째의 前 提 는 물 른 앞의 r 盧 대@령의 7. 7 宣 言 J에서 논한 것과 관련된다. 南 北 韓 은 日 本 軍 의 무장해제를 위한 38 線 의 劃 定, 두 이질적인 政 權 의 수 립 그리고 6.25등 세번에 걸친 分 斷 올 통해 금일에 이르는 동안 그 대 립이. 경직화되었다. 때문에 이질화된 두 體 訓 를 일시에 하나로 묶어서 空 間 等 的 으로 統 - 한 다 는 것은 현실에 있어 거이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異 質 化 속에서 共 通 分 母 롤 찰기 위해 원용된 槪 念 이 民 族 은 하나라 는 民 族 共 同 體 개념이다. 우리의 수천년의 역사상 政 沿 的 으로 몇개의 國 家 로 갈라지고 또 日 漆 下 에 식민지통치를 받았어서도 民 族 은 하나의 共 同 體 로 면면히 이4져 왔으니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統 一 이란 둘 로 갈라진 국토 를 失 地 圖 復 하여 空 間 的 으로 하나로 톨은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원래 하나의 民 族 共 同 體 였다가 오늘날 처럼 둘로 갈라진 것을 하나로 톨어서 원래의 상태로 다시 회복하는 것을 李 長 官 은 일차적으로 統 一 ( 統 合 )으로 보는데서. 출발하고 있다. 이를테먼 分 立 된 2개의 生 活 共 同 體 를 하나로 톨 는 작업이 統 一 인 것이다. 그렇다면 民 族 共 同 體 란 무엇인가. 그는 畏 族 共 同 體 의 내용을 하나의 社 會 共 同 體 이며 먼저 非 政 治 的 인 文 化. 經 濟. 社 會 共 同 體 를 하나로 묶은 다음 이것들을 포괄하여 하나의 共 同 體 로 묶는것 까지를 합쳐서 政 治 共 同 禮 의 55) 李 撚 九 長 官, 國 防 大 學 院 講 演 文 r남북대화j제 445-. 88. 7. PP. 6 1-8 7 및 記 者 와의 인터류, 東 亞 日 報 (89. 1. 5)와 朝 鮮 日 報 (83. 1. 5)참조 燎. 6 8.
문계라하며 따라서 포괄적인 하나의 政 治 共 同 體 의 설정을 統 一 이 完 鈴 되는 상태로 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그가 의미하는 綠 一 이란, 경제.사회. 문화등 각기의 共 同 體 를 하나식 회복한 다음 이들 非 政 治 的 인 여러 共 同 體 를 포 괄하여 政 沿 的 으로 하나의 共 同 體 로 묶는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둘째의 假 定 은 통일의 對 象 인 北 韓 및 통일을 여망하는 국민에 대한 의식에서 보더라도 分 斷 의 圖 着 化 를 의미하는 統 一 方 案 이 수용될 수 없다 는데 있다. 물른 現 實 的 으로 南 北 관계를 l 民 族 2 國 家 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러나 l 畏 族. 2 國 家 의 國 家 聯 合 Confederation은 아무리 고도의 政 治 的 統 合 이 이뤄져도 外 交. 國 諦 등 主 權 의 單 一 化 를 이를수 없기 때문에 9 c 고착화라는 인상을 주게된다. 뿐만 아니라. 國 家 聯 合 料 를 채택할 경우 r대 國 家 聯 合 制 는 예컨대 國 際 聯 출과 같은 것으로 새 中 央 政 府 를 만들지 않고 느슨한 會 議 體 나 協 議 體 만은 만들어서 결합하는 형태이다출 역사적으로 國 家 聯 合 의 형태는 초기 美 國 의 車 部 l3개f,lf가 美 洲 聯 合 을 결성했는데 하나의 中 央 政 府 를 만들지 않고 각f,!f가 主 權 을 그대로 보유하 여 大 陸 會 議 를 만들있다. 美 國 南 部 의 f,if들은 南 北 戰 爭 때 아메리카 聯 合 을 만들였다. 美 洲 聯 출은 獨 立 전쟁을 계기로 결속하여 聯 邦 料 로 발전했다. 現 代 의 聯 邦 削 는 美 國. 蘇 聯. 西 獨 이 대표적이며 이론상 國 家 聯 合 에는 유럽 共 同 體 (Ec)와 束 南 亞 聯 合 (ASEAN) 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國 家 聯 合 이 출발에 국가들의 결합형태이기. 때문이 다. 이들 여러 요인때문에 單 一 民 族 인 우리 南 北 을 하나의 民 族 共 問 體 로서 결합시키는 방식으로서는 분단고착화 인상을 주는 國 家 聯 合 料 가 타당성. 合 理 陵 이 없다고 享 長 官 은 보고 있는 것이다. 세째의 개념적인 가정은, 북한의 聯 邦 料 제의에 대한 對 應 論 理 적인 통일. 6 9.
방안의 모색이 필요하다는데 있다. 이른상으로 본다면 聯 邦 制 에서는 中 央 정 부와 地 方 정부 사이의 權 力 關 係 는 대등성의 원칙에 입각하지만 일반적으로 연방에 참여하는 地 域 單 位 는 主 權 을 완전포기하는 대신에 연방국가의 中 央 政 府 가 外 交. 塡 防 등 主 權 을 독점적으로 행사하다. 이미 앞의 의 2에서 상술한 바와같이 북한이 r 南 北 朝 鮮 聯 邦 削 J(6o)의 제의에서 시작하여 r 高 麗 民 主 聯 邦 共 和 國 J(8o)의 제의에 이르기 까지 그 개 념하 여러변 바뀌있다. 北 韓 의 聯 邦 制 의 개념생성은, r 南 朝 鮮 革 命 J논리에서 출발하여 전략전술적 필요에 따라 여려번 변화했으며 따라서 처음 6o년에 는 연방제를 r 過 渡 的 對 策 J이라고 했다가 貸 는 誌 濯 謙 送 壽 諒 撚 類 a 麗 小 支 一 릿 념에 있어서는 그것이 過 渡 的 인 것이 아니라 r 統 - 國 家 J라고 번복했다. 2. 그러는가 하면 英 文 表 記 에서는 Federal란 발말은 아예 쓰지않고 Confederal R르편로E는L 一 翼 스 迎 L린 一 瑞 料 괴 支 보다는 國 家 聯 合 에 더 가까운 느낌마저 주 고 있다..이것은 그들이 聯 邦 削 를 法 制 的 인 입장에서 보지 않고 일차적으 로 人 民 民 主 革 命 을 수행하기 위한 革 命 戰 略 的 인 관점에서 보기 때문이다. 앞에서 분석한 바 그들의 聯 邦 制 는 거죽( 形 態 )이며 그 속알( 實 體 )는 共 産 統 一 國 家 이다 출 따라서 북한의 聯 邦 料 를 이해하기 위해선 거죽( 形 態 )보다는 속알( 實 體 ) 즉 그 先 決 條 件 에 대한 이해가 랐서야 한다 聲 聾 그들이 내거는 연방제 구성의 주요 先 決 條 件 에 포함돼 있는 l) 反 共 法 보안법의 철폐t 2) 共 産 黨 의 정치활동의 합법화, 3) 大 韓 民 國 政 府 의 타도와 審 共 ( 人 民 政 權 )의 수립, 4) 對 美 平 和 協 定 의 체결에 의한 美 軍 撤 收 등은 先. 南 都 鮮 軍 의 遂 行 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북한이 政 治 的 으로 計 算 하는 대남전략의 함정이다. 북한의 聯 邦 料 방안올 수용치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이 선행조건이 라 하여 달아붙인 찰보조. 童 죄 때문이다. 그러나 그 戰 略 的 함정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못한 사람들에게는 그 함정은 보이지 - 7 o -
않은채 통일을 성급하게 여망하는 나머지 聯 邦 削 라는 위장된 통일지향성의 거죽( 形 態 )만이 크게 빛치게 되는 것이다. 대체로 위에 논한 몇개의 요인에서 합리적이며 時 間 올 두고서라고 실현 가능성이 있는 統 一 指 向 的 인 통일방안이 북한의 聯 郊 削 에 대한 對 應 論 理 的 인 시각과의 연계속에서 모색되어야 한다. 이러한 논거에서 李 長 官 은 학술 적으로 틀에 밖힌 개념보다도 政 治 的 으로 현안문제를 하나씩 풀어나갈 수 있다. 國 家 聯 合 이 l 民 族 2 國 家 로 분단고착화의 우려가 있고 또 聯 邦 料 가 理 念. 體 削 의 차이에서 政 治 的 으로 무의미한데 반하여 體 削 聯 合 은 南 北 을 별개의 國 家 로 인정하지 않고 현실적으로 2개의 政 治 體 削 의 분립에서 출하 지만 l 民 族 2 體 制 가 궁극적으로 l료 漆 一 그 壓 塗 트 一 그L 逃 妨 Ll 柱 zl4출 議 濃 - 또는_ 壽 逃 淸 設 L 一 의 미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合 議 體 나 聯 合 體 에서 남북간에 각종의 交 流 를 다를수 있음은 물론 남북이 서로 다른 體 料 로 인정되기 때문에 外 交. 國 防 등 主 權 은 南 피이 각기 브3J는츠7 一 료의다. 인적.물적교류를 통해 서로 신뢰를 회복하 여 하나의 民 族 共 同 體 로 결합됨으로써 統 一 을 모색하려는 것이다. 南 北 이 경제. 문화.사회에 있어 單 - 生 活 圈 처럼 交 流 가 이뤄지며 그것이 실질적인 統 一 과 같은 狀 態 이며 따라서 궁극적으로 統 一 에 이르는 중간 段 階 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享 長 官 이 지적한 바 體 料 聯 合 통일방안 구상은 그내용이 확정된 것은 아니벼 그 보완 체계화가 앞으로의 과제로 되어 있다.. 7 l -
w. r 體 制 聯 合 J통일방안 구상과 南 北 關 係 認 定 의 襤 相 및 諸 問 題 이미 논 한 차 r7. 7 童 言 J은, 원래 하나였던 民 族 共 同 體 가 2개의 이질적 擊 인 體 料 로 분 립 존재하고 있다는 事 實 에 대한 의식에서 출발하여 교류 協 諒 을 통해 하나의 民 族 共 同 體 로 회복하여 統 一 을 이룩한다는데 그 기본 취지를 두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 r 宣 言 J을 5)1기로 南 北 韓 관계를 法 的 으 로 서로 별개적인 2개의 獨 立 國 家 간의 관게로 보지않고 우선 統 一 될 때까 지 하나의 民 族 共 同 體 안의 暫 定 的 인 네부적 特 殊 關 係 로 보자는 것이다. 民 族 은 하나이고 政 治 體 料 는 둘이라는 전제아래 교류. 協 力 을 통해 先 社 會. 文 化. 經 濟 的 共 同 體 의 회복과 後 政 治 共 同 體 의 統 合 으로 통일을 이룩하 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 r선언j의 말미에 북한측이 r 肯 定 的 인 자세를 보여 온다면 보다 前 進 的 인 조치를 취해 나갈것임 J을 덧붙였다 출 이제 그러면 r7.7 宣 言 J의 구현을 위한 우리측의 후속적 實 踐 措 置 를 살 펴보자. l. 後 績 的 寶 踐 措 置 1) 社 會 文 린 分 野 첫째 金 相 流 大 韓 赤 + 字 社 총재는 88년7월 l3일 北 赤 中 央 委 孫 成 漏 위원장앞으로 전문을 통해 南 北 赤 十 亭 會 談 의 조속한 게개를 촉구하면서 다 응과 같은 5개 頂 의 의제를 제의하였다. (l) 離 散 家 族 들과 친척들의 주소와 生 死 를 알아내며 알리는 문제 (2) 이산가족들과 친척들사이에 자유로운 訪 問 과 자유로운 상봉을 실현 하는 문제. 7 2.
(3) 이산가족들과 친척들 사이에 자유로운 書 信 去 來 를 실시하는 문제 (4) 이산가족들의 自 由 의사에 의한 結 合 문제 (5) 기타 人 道 的 으로 해결할 문제 이와 함께 對 內 的 으로는 8월ll일, 金 總 裁 는 이산가족찾기 申 請 書 를 8월i2 일부터 ll월l2일까지 3개월간 접수할 것올 특별담화를 통해 발표했다. r T 러나 北 赤 孫 위원장은 전문을 통해 7월l6일, 赤 + 字 회당이 남측의 反 共 對 決 政 策 과 戰 爭 소동으로 중단되었다면서 선결조건을 내세줬다.56) 둘째 金 永 植 문교부장관은 7월l5일, 북한 政 務 院 교육위 번영립 委 員 長 에 게 보내는 서한을 통해 南 北 學 生 交 流 를 위한 南 北 敎 育 當 局 者 會 談 을 7월3o 일안에 판문점에서 개최하여 조국순례 大 行 進. 친선 體 育 競 技 교환 기타 학생교 류를 위한 문제를 협의하자고 제의했다. 이에 대한 북측 번 委 員 長 은 전문 을 통해, 뒤늦게 당국이 끼어들어 주선이니 뭐니하고 간섭할 조건이 못된 다면서 비난했다.57) 세째로 金 在 淳 의장이 제l42회 임시국회 제2o차 本 會 議 에서 만장일치 로 채택한 r서울 올림픽 大 會 에의 北 韓 參 加 促 求 決 議 文 J올 南 北 國 會 회담 준비접 촉과 함께 7월l8일 南 北 最 淸 人 民 會 讓 常 設 會 議 의장, 양형섭에게 전달하여 올림퍽 參 加 를 촉구했다.이에 대해 북측은 양형섭 議 長 명의로 8월중 제l차 國 會 連 席 會 讓 를 평양에서 개최하자고 제의하면서 r 南 北 不 可 侵 에 관한 共 同 宣 言 J초안을 동봉해 왔다. 이들 對 北 제의와 함께 對 內 的 으로도 일련의 조치가 강구됐다 출 네째 정부는 7월l9일 o시를 기해 前 方 地 域 에서의 封 北 비난방송을 전면 56) r남북대화j제 45호(국토통일원 f 1988.10), pp.54~55. 57) r위의 책J, P.64. - 7 3 -
중단하는 한편 K B s 를 통한 對 北 방송에서 특정인에 대한 인신공격을 지양 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文 公 部 는 같은 날 拉. 漣 北 작가 또는 在 北 작가의 해방전 문학작품의 상업출판을 허용하는 조치를 취했다. 뿐만 아니라 9월3 일 북한 및 공산권 特 殊 資 料 분류기준을 대폭 완화하여 북한 및 共 産 圖 자료 공개조치를 취했다. 또 lo월27일에는 우리 政 府 수림 이전에 발표된 拉. 鐘 北 작가들의 출악. 미술작품에 대한 일반공개 방침을 밝했다. 2 ) 外 交 施 策 를 野 崔 流 洙 外 務 장관은 7월l6(a, '"7. 7선언J을 실천해 나가기 위한 새로 운 外 交 施 策 을 발표했다. 그 주요요지 58)는 다음과 같다. (가) 對 共 輸 出 統 制 委 (COCOM) 의 규제대상이 아닌 非 軍 事 的 물자를 우 리 友 邦 이 북한과 交 易 하는 것을 반대하지 아니한다. (나) 위의 목적을 위해 우리 友 郊 과 북한의 민간인 自 由 往 來 및 우리 友 邦 의 북한에 民 間 商 社 설치를 반대하지 않는다. (다)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위치를 認 定 하여 북한의 국제사회의 貢 任 있는 一 員 으로 참여와 유엔산하 기구에의 참여에 협조한다 출 (라) 소모적인 外 交 的 對 決 을 지향하며.국제무대에서의 비방을 중지 한다. (마) 국제사회에서의 南 北 代 表 의 자유로운 접촉을 추진한다. (바) 우리 友 郊 과의 民 間 交 流 에 반대하지 않으며 美. 日 外 交 官 이 北 韓 의 外 交 官 과 제3국. 중립적환경에서 집촉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 는 다. 58) r위의 책J, pp.66~67.. 7 4 -
崔 長 官 은 이들 시책선언과 더불어 海 外 同 胞 들의 남북한 自 由 往 來 를 위한 후속조치도 발표했다. 이들 요지는 l) 국제무대에서의 남북한 關 係 改 善, 2) 우리 友 邦 과 북한과의 關 係 개선, 3) 우리와 中. 蘇. 車 歐 제국과의 관계개선에 관한 것이다. 3 ) 南 北 頂 上 會 談 개최제의 受 諾 促 求 盧 대통령은 光 復 43 周 年 경축사를 통해 r 北 韓 의 金 日 成 主 席 J에게. 南 北 頂 上 會 談 개최를 제의했는데 그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r4o년이 넘은 같은 民 族 간의 분단장벽을 이제 開 放 과 交 流, 協 力 으로 허뭍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루 발리 統 -의 여건을 성숙시켜 평화적 統 一 의 전기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자면 南 北 韓 當 局 의 最 高 責 任 者 가 만나서 對 話 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가장 效 果 的 이고 빠른 方 法 입니다....나는... 金 日 成 主 席 에게...빠른 시일안에 나와 만나 서 會 談 할 것을 提 議 합니다.J5) 이것은 r7.7선언j의 기본정신을 선도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것으로서 南 北 關 係 改 善 에 획기적 轉 機 를 마련하기 위한!t 料 b제의 였다. 盧 대통령은 金 日 成 을 r 金 日 成 主 席 J이라고 호칭하면서 모든 문제를 푸는데 있어서 가장 效 果 的 이며 빠른 方 漆 으로서 南 北 韓 當 局 의 最 高 責 僚 者 會 談 을 제의했다. 金 日 成 은 정권수립 기념일인 r9.9절j올 하루 앞둔 9월8일 경축보고 大 會 에서 南 北 頂 上 會 談 에 관해 언급했다. 이것이, 우리측이 그간 南 北 頂 上 會 談 제의에 대해 계속 침묵올 지키던 그가 처출으로 公 式 反 應 6a)을 보인 것이다. 여기에 있어 金 日 成 은 先 決 條 件 을 내세워, 南 北 頂 上 會 談 에서 不 可 侵 B 料 s 流 :로 誇 f;io. - 7 5.
宣 言 을 채택하고 統 - 國 家 의 聯 邦 政 府 률 세우거나 그 實 現 을 위한 r 平 和 統 - 5 員 會 J 같 은 것을 만들 의사롤 가지고 平 壤 에 온다면 환영 하겠노라고 했다. 그는 여전히 軍 事 問 題 선결주의의 입장올 고수하는데서 한치의 변화 도 나타내지 를았든 것이다 출 4 ) 經 濟 ( 開 放 ) 分 野 羅 雄 培 經 濟 企 劉 院 장관은 lo월7 일 중단된 經 濟 會 談 의 재개를 촉구하 면서 대북 經 濟 開 放 조치를 밝했다. 對 北 經 濟 關 旅 조치의 내용은 l) 民 間 상 사 對 北 韓 물자 交 易 의 허용, 2) 民 間 상사 對 北 韓 物 資 중계의 허용, 3) 北 韓 原 産 地 표시.상표부착 허용, 4) 童. 間 接 교역물자의 關 稅 등 비부과, 5) 남북 經 濟 人 의 상호 접촉. 방문허용, 6) 북한 船 籍 商 用 船 舶 의 입항허용 그리 고 7) 南 北 經 濟 交 流 관련 法 削 보완에 관한 깃이다.6l) 그리고 남북경제교 류를 위한 法 的. 制 度 的 장치가 마련될 때까지 對 外 賀 易 法 및 특수지역 交 易 에 관한 諸 規 定 등을 準 用 할 것이라고 했다. 이상과 같은 우리 側 의 r7.7 宣 言 J에 대한 일련의 後 繼 실천조치의 강구 에도 불구하고 政 治. 軍 事 閣 題 先 決 주의 입장만을 고수하며 북한측이 對 政 府 淸 位 級 政 治. 軍 事 會 談 의 개최를 제의하는 한편 業 料 b 접촉.교섭 惡 口 의 多 元 化 를 위해 在 野 를 의식한 나머지 連 席 會 談 의 개최를 제의하는 2 重 戰 略 을 버리지 않았다. 高 位 當 局 者 會 談 을 위한 誰 備 會 談 은 명칭. 議 題.실무 節 次 등 실질토의를 가져보지도 못한채 반년을 허송세월하는 가운데 북한측은 팀스피리트 訓 鍊 中 止 와 文 牧 師 사건 등을 들고 나오다가 지난 4월l7일에는 일방적으로 平 壤 靑 年 學 生 祝 典 이후로 회담을 연기했다. 6l) r위의 책J, pp.100~108. - 7 6 -
2. 南 北 關 係 설정의 位 相 과 諸 問 題 1) 戰 治 關 係 의 位 相 과 間 題 分 斷 國 이란, 그 역사적 근원에서 본다면 린놔5L_로 臺 츠린 一 5린찰 室 으 우리의 南 北 관계가 바로 이 車 려한 모순구조적인 성격을 띄운다. 南 北 은 각기 상대방이 지배하는 領 土 人 口 q.. 대한 관활권을 부인하여 北 韓 은 南 韓 을 r 解 放 대상지역J으로 보 며 또 南 韓 은 北 韓 을 r 收 復 대상지역 J으로 憲 法 上 으로 규정하고 있다. 南 北 韓 의 이려한 2 重 構 造 的 인 성격62)에 있어서 피 短 _ 週 家 雌 一 進 料 tz를9@79 이라고 한다면 l 民 族 l 國 家 2 地 域 ( 政 府 )적 성격을 分 斷 克 服 의 統 一 志 向 型 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였던 共 同 體 가 南 北 韓 으로 분단. 경직화되는 過 程 에서 南 北 韓 은 각기 國 內 的 으로 상이한 政 沿 體 洲 와 近 代 化 모델을 채택하고 독자적인 社 會 化 과정 이 진행되는 가운데 서로의 의사소통마저 단절되고 또 國 際 的 으로 서로 상극적인 진영과의 유대를 맺응으로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 야에서 이질화 되어 南 北 韓 의 기능적인 相 互 依 存 性 은 차단되고 말았다. 法 的 으로는 南 北 韓 이 같은 領 土. 人 口 를 서로 경쟁적으로 代 表 하여 하나의 國 家 를 지향하면서도 政 治 的 으로는 2 政 治 體 制 의 實 體 로 존재해 찰다. 南 北 韓 은 法 的 으로 상대방을, 서로 국토의 일부를 다만 실효적으로 점령하고 있는 不 法 集 團 으로 보았다. 그려나 72년 南 北 對 話 의 추진과 더불어 북한에 대한 法 理 論 중심의 해석 이 새로운 對 北 疎 治 的 인식으로 완화케 되있다. 즉 r7.4 共 同 聲 明 J이 나 62) 李 相 湯, " 機 龍 主 義 的 統 合 理 詰 과 南 北 關 係 改 善 方 政 硏 究 ", r 統 - 政 策 J 第 2 卷 第 l 家 s(국토통일원, l976년 를), pp.230~232.. 7 7.
온 후 金 鍾 泌 총리는 국회에서의 답변올 통해 rl 民 族 l 國 家 2 政 府 J가 정 부의 태도임을 공식적으로 할힌바 있다. 또 그는 73년6월23-g, 1-6. 23 宣 言 J이 발표된 직후 記 者 회견에서 r휴전선 以 北 地 域 을 事 實 上 지배하는 共 産 政 權 이 있다는 것올 인정할 뿐 國 家 로는 인정하지 않는다.J라고 밝힌 것이다. 그는 북한을 국가로는 인정치 않으나 事 實 上 의 政 權 으로 인정하여 남북한 關 係 를 l 民 族 l 國 家 2 政 府 로 규정한 것이다. 統 一 을 지향하기 위 해서는 l 民 族 2 國 家 를 수용할 수 없으며 따라서 l 民 族 l 國 家 2 政 府 로 규정할 수 밖에 없업든 것이다. r7.7선언j을 기점으로 하는 民 族 共 同 體 개념과 그것을 기반으로 하는 r 體 訓 聯 合 J 통일방안 구상은 위에 언급한 l 民 族 l 國 家 2 政 府 와 개념적인 맥 락을 같이하는 l 民 族 共 同 體 l 國 家 2 體 料 의 개념을 모델로 한것이다. 북한 을 事 實 上 의 體 制 로 인정하는 바탕위에서 統 一 지향적인 南 北 관계의 새로운 설정을 시도한 것이다. r 體 料 聯 출J구상에서는 북한의 존재를 國 家 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事 實 上 의 존재로서 體 料 만을 인징하기 때문에 l 民 族. 2 國 家 가 아니라 l 民 族 共 同 體. l 國 家.2 體 料 를 개념모델로 한다. 때문에 그것은 i 民 族 共 同 體 2 體 料 에서 출발하여 과도적으로 느슨한 體 料 聯 合 을 거쳐 l 民 族 共 同 體 l 國 家 의 통일에 이른다는 구상이다. 국제적으로는 2 主 種 國 家 이지만 南 北 韓 관계는 對 外 的 인 타국과의 관계가 아널뿐 더러 獨 立 國 家 로서의 南 北 韓 관계도 아니며 따라서 統 一 될 때까지 한 民 族 共 同 體 안의 暫 定 的 이며 특수한 內 部 關 係 로 보 는 것이다. 북한을 競 爭. 對 決. 敵 對 의 대상이 아니라 화해와 協 力 을 통 해 共 同 繁 榮 을 추구하는 같은 民 族 共 同 體 의 일부로 수용하는 것이다. 이처럼 rl 民 族. l 國 家. 두 體 料 의 分 立 J에서 출발하여 南 北 韓 관계를 한 民 族 共 同 體 안의 營 定 的 이며 특수한 內 部 關 係 로 보고 社 會. 文 化. 經 濟 분야에서 먼저 共 同 體 로 통합한 다출 이것을 바탕으로 政 沿 的 共 同 體 로 묶어서 統 一 을 실현하기 위한 體 料 聯 출구상은 여러 면에서 槪 念. 內 容 이 보완되어야. 7 8.
함이 지적되고 있다. 우선 첫째로 非 政 治 的 共 同 體 로서의 통합에서 시작하여 政 治 的 共 同 體 로 서의 통합을 거쳐 統 一 에 이르는 일련의 過 程 과 그 성격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內 容 規 定 이 뒤따라야 할것이다. 더욱이 民 族 共 同 體 로서의 통합이 단순히 統 一 에 앞서는 過 程 만이 아니라 統 - 震 標 그 자체이기도 하다면 이들 移 行 過 程 에 대한 성격규정이 필요하다. 이 移 行 過 程 에 대한 성격규정 문제는 곧 정책의 價 位 順 拉 문제 및 이들 문제를 다를 對 內 및 南 北 간 機 構 와 그 기'능에 관한 문제와 연관되고 있다. 우리의 基 本 立 場 은 先 平 和 定 着, 後 平 和 統 一 에 있는바 平 和 와 統 -은 그 政 策 目 標 에 있어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뿐 더려 서로 상충하기도 한다. 例 컨대 우리는 統 一 을 위해 서는 機 能 主 義 的 통합이론을 바탕으로 민족적 同 質 性 의 회복을 위해 非 政 治 的 분야에서의 交 流 부터 시작한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반면에 平 和 定 着 을 위해서는 經 濟. 琴 事 的 으로 북한을 압도하는 힘을 배양해야 한다찰 둘째는 論 理 的 설즉력에 관한 것인데 이것은 앞의 문제와 표리관계에 있다. r7.7 宣 言 J은 남북한관계를 종래의 競 爭. 對 決. 敵 對 관계로 부터 한 民 族 共 同 體 안의 同 件 者.공동번영관계로 바 刊 놓기 위한 對 北 인식의 전환에 대한 政 治 童 言 이였 다. 그러나 對 北 관계의 새로운 전환이 매개적인 中 間 段 階 의 거침이 없이 한 꺼번에 a t 決 관계에서 同 伴 者 관계로 전환한다는 喆 理 는 二 分 論 的 인 單 純 論 理 이며 따라서 비현실적인 것이 되기 쉽다.63) 이러한 시각에서 본다면 南 北 韓 관계의 전환을 위해서는 二 分 論 的 인 사고구조 보다는 현안문제의 성격에 출 따라서 撚 린b관계를 종래와는 달리 敵 對 관계 일변도로만 보지 말고 散 對 경쟁. 協 力 (동반자)이라는 3 重 關 係 로 상정하여 政 策 的 으로도 3 重 的 으로 대치 63) 梁 性 喆, " 南 北 關 係 어떻게 定 立 할 것인가", 朝 鮮 日 報, 89.5.4. - 7 9 -
':'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렇게 되면 요는 대북관계의 3 重 性 과 3 重 的 인 政 漆 的 대처문제룔 앞에서 논한 非 정치적 공동체로의 통 합에서 政 治 的 공동체로의 통합에 이르는 移 行 過 程 과 조화시키는 것이 가 장 바람직할 것이다. 셋깨는 종래의 우리 統 一 政 策 과의 체계적인 연계성을 맺는 일이다. 다시 말해서 그간의 우리 統 一 政 策 과 민족공동체 개념을 바탕으로 하는 r 體 制 聯 合 J구상 사이에 일관성이나 調 和 性 을 도모하는 것이 중요하다 黎 국민일반은 7o년대 이래 북한 聯 邦 制 案 의 구체적인 내용은 몰라도 그저 남북의 두 이질적인 體 制 를 하나로 묶는것으로 생각하기 쉽기 때문에 옷 어넘기기 어려운 면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아니된다. 이와는 달리 우리의 실정은 어떠한가 準 6o년대 까지 국민은 대체로 유엔 監 視 下 의 남북한 總 選 擧 를 우리의 통일 방안으로 알고 있업다. 7o년대에 들어와서 南 北 對 話 와 더불어 先 平 和 定 着, 後. 統 一 을 기본원칙으로 하여 非 정치적인 교류.협력을 통해 통일을 이룩 하는 것이 정부정책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5 共 和 國 의 츨팀과 더불 어 r 民 族 和 合 民 主 統 一 J방안이 제시됐다. 그러나 이것은 이름 자체z 길어 서 일반이 기억하기 힘들얼을 뿐만 아니라 內 審 또한 복찰해서 이해하기 어려됐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후 6 共 和 國 시대에 와서는 民 族 共 同 體 와 體 制 聯 合 방안이 개념적으로 제시됐다. 이렇게 새 政 府 가 들어설 때마다 그 內 容 의 연계성은 유지되였다 하더라도 명칭자체가 자주 바리지니 전문가아닌 일반국민에게는 統 一 方 案 이란 종잡을 수 없이 수시로 바커며 단편적이며 복잡하며 일관성없는 것으로 비출다 해도 무리는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국민의식을 감안하여 새로운 統 一 方 案 의 보완. 體 系 化 를 위해서는 과거에 제시된 방안의 골간을 가급적 受 容 하는 것이 對 民 弘 報 를 위해서도 무엇보 다 필요하다. 넷깨는 統 一 올 위한 對 北 政 策 과 對 北 方 政 策. 對 美 政 策 사이의 調 和 를 유. 8 o -
지하는 문제인데 이것은 다출에 논하겠다. 2 ) 經 濟 關 系 의 位 相 과 問 題 r7. 7 宣 言 J이 l 民 族. l 國 家. 2 體 削 의 分 立 을 전제로 政 沿 的 인 남북한 관계를 한 民 族 共 同 體 안의 暫 定 的 인 특수관계로 선언했으니 만치 남북한의 經 潛 관계도 국가간의 交 易 이 아닌 民 族 內 部 의 교역으로 그 성격을 규정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 經 濟 交 流 를 위해 작년 lo월7일 經 濟 企 劃 院 장관에 의해 후속 실천조치로서 7개 頂 目 의 정책이 발표되있음은 이미 논한 바와 같다. 뿐만 아니라 法 制 的 후속조치를 강구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서 r 南 北 交 流 協 力 에 관한 特 別 法 案 J에 대한 공청회도 지난 5월i8일에 개최된 바 있다. 공술인들의 주제발표의 요지는 다옴과 같다.64) 첫째는 이 법안과 國 家 保 安 法 의 상충문제가 지적되어 先 國 家 保 安 漆 개정이 촉구되있다. 둘째로 協 議 會 구성문제와 기능문제가 지적되였는데 여기에서는 여러부처의 관장에서 오 는 혼란을 막기 위해 統 一 院 長 官 이 일괄관장하되 協 議 會 나 實 務 要 員 會 를 구성 기본정책을 수립, 수시로 관계부처와 협의토록 해야한다는 주장이 있 는가 하 면 官 僚 主 義 의 폐단을 막기 위해 汎 國 民 的 合 意 機 構 를 만들어야 된다는 의견도 있얼다. 세째는 在 外 國 民 과 內 國 人 의 차별을 없애야 된다고 지적했다. 네째로 大 統 領 令 에 지나친 委 任 올 하는것은 좋지않다는 지적이 있었다. 다섯째로 북한 當 局 의 합의를 얻어야하는데 지금까지의 경험에서 보 아 그것은 거의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民 間 企 業 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 야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들 지적된 여러문제중에는 保 安 法 과의 상충으로 인한 法 料 上 의 문제도 64) 朝 鮮 日 報. 89.5.19. - 8 l.
있으나 對 北 관계에서는 北 韓 當 局 의 합의를 얻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 이다. 때문에 북한당국이 交 流 보다 合 作 을 고집하는 한 民 間 交 流 의 전망은 제한적일수 밖에 없을 것이다. 3 ) 法 的 關 保 의 位 相 과 問 題 南 北 韓 관계의 전개에 있어 北 韓 의 法 的 地 位 문제65)가 핵심적인 문제 로 거른케 된것은, r7. 4 共 同 聲 明 J(72)에 따르는 南 北 對 話 의 추진을 계기로 한다. 韓 幸 島 에서의 唯 一 合 法 政 府 의 地 位 를 명분화한 憲 法 上 의 논리와 對 北 接 觸 을 위 한 政 策 變 更 의 必 要 性 사이에 마찰이 일어난 것이다. 국가통치를 위 한 근본규범인 憲 法 과 現 實 政 策 사이에 괴리가 생겨서 政 策 이 憲 法 에서 이할하는 현상이 나타 漆 기 때문이다 출 북한의 法 的 지위의 성격규정에 대해 학자들의 견해가 반드시 일치되는 것은 물른 아니다. 또 북한의 地 位 를 法 料 的 인 論 理 에서 보는 憲 法 學 者 들 과 現 實 政 策 에서 보는 政 治 學 者 들의 견해사이에는 더욱 서로 큰 차이가 있다. 大 韓 民 國 과 北 韓 은 서로 상대방의 政 府 의 존재를 법적으로 否 認 하며 大 韓 民 國 에 대해 북한의 雌 復 對 黎 지역인데 반하어 北 韓 에 대해 남한이 解 放 對 象 지역으로 되어 있다. 이를테면 大 韓 民 國 과 북한은 그러 나 이러한 法 理 論 의 논리가 우리의 경우에 있어 現 實 政 治 의 政 策 論 理 에 의해 밀리기 시 작한 것은 7o면대 諒 린b 對 話 의 시작을 계기로 한다. r7. 4 共 同 聲 明 J이 발표 되자 당시의 中 央 情 報 部 長 의 平 壤 방문이 辰 共 法. 國 家 保 安 法 의 위반이 아니 냐의 여를이 제기됐다. S. r-g. 23 晝 言 J(73)을 통해 유엔 同 時 加 入 을 북한측 65) 韓 亨 漆 외 공 저 r 南 北 韓 分 斷 解 消 의 法 論 理 J( 國 소 統 一 院, 1981). 金 明 基, "남북분단의 法 的 性 格 ", r 統 - 논 총 J 2권 l2-(1982), pp. 115-125.. 8 2.
에 제의하자 북한을 국가로 승인하는 것 이 아니냐의 여른이 일기 시작했 다. 政 府 의 法 的 인 유권해석이 불가피하게 된것이다. 이때 金 鍾 泌 총리는 앞에서 언급한 바 l 民 族. l 國 家. 2 政 府 가 정부의 공 식적 입장임을 밝히면서 북한을 r 休 戰 線 이북지역을 事 實 上 지배하는 共 産 政 權 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뿐 國 家 로는 인정하지 않는다J고 언명한바 있 다. 북한을 法 的 으로 國 家 로 認 定 하지 않지만 政 治 的 으로는 r 事 實 上 의 政 權 J으로 인정한 것이다. 法 理 論 보다도 政 策 論 理 가 對 北 認 識 에서 앞서게 된 것이다. 北 韓 政 權 의 地 位 는 法 的 으로는 여전히 不 法 ( 叛 亂 ) 團 體 이지만 政 治 的 으로는 大 韓 民 國 의 國 土 의 일부인 북한지역을 事 實 上 으로 지배하는 政 權 으 로 인정된 것이다. 학자에 따라서는 북한의 이러한 法 的 地 位 를 r 準 暴 徒 的 인 地 域 的 事 實 上 의 政 權 J66)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어했든 國 內 法 과 國 際 法 사이의 괴리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法 的 으로 북한을 國 家 로 인정하지 않으나 政 治 的 으로는 事 實 上 의 政 權 으로 인정하여 國 際 的 合 意 의 성격을 띤 r7. 4공동성명 J이 발표되없으니 말이다 零 崔 斗 善 총재의 南 北 赤 + 寧 회담의 제의와 그것에 대한 政 府 의 허락 그리고 r7. 4공동성명 J등의 適 漆 性 올 위해 원용된 法 理 論 은, 72년ii월24일에 개정된 維 新 憲 法 前 文 에 있는 平 和 統 -관련 文 句 와 제43조를 근거로 했다.67) 즉, 그 前 文 의 r 平 和 統 一 의 역사적 사명에 입각하여 'J라는 文 句 와 재43조의 r대통령은 조국의 平 和 統 一 을 위한 성실한 義 務 를 진다J라는 조항에 규정 된 憲 法 上 의 權 限 에 따라 大 統 領 이 그런 회담제의를 허락할 수 있기 때 문에 辰 共 法 이나 國 家 保 安 漆 에서 논의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해석한 것 이다. i-6. 23 宣 言 J은 政 治 宣 言 에 의 한 r할슈타인 原 則 J의 事 實 上 의 포기를 9i :료 출J, P.12느 i23.. 8 3.
含 蓄 한다. 이와 같 이 7o년대 前 半 期 에 있어서 北 韓 에 대한 事 實 上 의 政 權 으로서 인정 및 유엔 同 時 加 고에 대한 제의가 있은다옴 8o년대에 들어와서 더욱 對 北 認 識 의 전를이 이뤄 惡 다. 盧 大 統 領 은 r7.7 宣 言 J을 통해 交 x@ 認 을 제 의하고 43 周 年 光 復 節 경축사와 定 期 國 會 에서의 施 政 演 說 (88.10.14) 그리고 제43차 유엔 總 會 에서의 연설(88.10.19)올 통해 金 日 成 에 대해 金 日 成 r 主 席 J 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이들 북한에 대한 事 實 上 의 政 權 으로서의 숭인 交 叉 承 認 의 제의 그리고 김일성에 대한 公 式 稱 號 의 사용등은 설사 法 的 承 認 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唯 一 代 表 種 에 대한 우리의 주장을 對 外 的 으로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북한을 대 화의 對 象 으로시 法 的 實 體 아닌 政 治 的 實 體 로 보게된 것이다. 이렇듯 南 北 韓 관 계 를 r7. 7 宣 言 J에서 南 과 北 의 관계를 r 民 族 共 同 體 로서의 關 係 J로 발전시키겠다고 한 것은 위와 같 은 개념적 흐틈의 맥락에서 이해된다. 統 一 이 필메까지의 南 北 韓 관계를 한 聯 邦 制 나 國 家 聯 合 의 結 合 方 式 의 기본성격이 法 律 的 인 것이라고 한다면 體 料 聯 合 의 그것은 政 治 的 인 것 이라고 할 수 있을것 같다. 이처럼 分 斷 國 은 l 民 族. l 國 家. 2 體 制 ( 國 家 政 府 )를 전제로 하여 2개 國 家 인 것 같으면서도 單 - 國 家 인것 같기도 하기 때문에 이들 2 重 的 性 格 을 法 的 으 로 해결하기 위해 원용된 개념이 案. 西 關 係 를 모델로 하는 ri?9 的 特 殊 關 係 J의 개념이다. 分 斷 國 이 2 重 國 家 의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그들간의 68) 朴 東 照, r 南 北 關 係 進 展 에 따르는 請 般 法 的 문제와 解 消 方 漆 J(국통정 7 7-1 0-1177). pp.39~45.. 8 4 -
r7 4?트9른5= f브7트트.트a 性 梅 즉 國 際 漆 的 <4 格 과.iz트트.으츠 주 는 것이 營 죠리 崙 定 Modus Vivendi이다 출 그러나 북한의 기본입장에 변화가 없는. 8 5.
y. r 體 制 聯 合 J통일방안 구상의 補 完 을 위한 政 策 方 向 l. 槪 說 이상으로 북한의 對 南 提 議 內 容 의 역사적인 持 繼 性 과 變 化 의 개념적인 맥락속에서 r 南 朝 鮮 革 命 J 論 과 聯 邦 料 통일방안의 밀착관계를 분석하여 料 邦 制 통일방안의 實 體 와 그 形 態 상의 허상을 밝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對 應 論 理 로서 우리의 r 體 削 聯 合 J 통일방안 구상의 政 策 的 배경과 南 北 韓 關 係 설정의 拉 相 과 諸 問 題 를 또한 검토했다. 물론 우리의 統 一 方 案 에 영향을 미치는 對 內 外 적인 많은 要 數 가 있다. 뿐만 아니라 統 -이 南 北 韓 6천만 민족성원 모두의 念 願 이다. 때문에 統 一 문제가 단순히 북한 政 沿 集 團 의 戰 略 的 인 방안에 대한 對 應 論 理 的 인 시 각에서 만이 고안되고 처리되기에는 너무나 民 族 生 存 에 집결된 절실한 문 제이다. 그러나 統 一 문제에 대한 일차적인 대상은 북한의 共 産 政 權 이다. 이 려한 統 一 문제가 지니는 본질적인 政 沿 的 性 格 때문에 우리의 r 體 制 聯 合 J 통일방안 구상도 첫째로 북한의 政 治 集 團 이 재의하는 聯 邦 料 통일방안에 대한 對 應 論 理 的 인 시각에서 일단 벗어날 수 없는 自 己 拘 來 性 을 지니는 문제 이 다 拏 그러나 아무리 우리의 統 - 方 案 이 북한의 聯 邦 料 재의에 대한 對 應 論 理 的 인 自 己 拘 束 性 을 지년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른 變 數 에 대한 原 園 대 結 果 의 복합적인 또 어느 의미에선 矛 盾 된 상관관계에 있다. 主 體 面 에서 보면 南 北 韓 이 當 事 者 이면인도 統 -문제에 대한 變 熱 面 에서 보면 統 一 과의 연결이 전제되는 對 北 政 策 은 對 北 方 政 策 이나 對 美 政 策 등의 對 外 政 策 일반 과 절열된 관계에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둘째로 우리의 統 一 方. 8 6.
案 의 구상을 위해선 對 北 統 一 政 策 이 對 北 方 政 漆 이나 料 美 政 策 등 對 外 政 策 일반의 기본적인 틀 속에서 유기적으로 연계.조화되어 추진되어야 한다. 세째는 議 會 政 治 過 程 을 통한 다양한 統 一 論 議 의 수렴에 관한 것이다. 87 년의 民 主 化 를 위한 r6.29 童 言 J과 88년의 민족자존과 統 -번영을 위한 r7. 7 宣 言 J으로 계층간의 이해갈등과 다양한 욕구가 분출되고 衆 口 難 除 식의 통 일논의가 전개되어 마침내 文 牧 師 의 入 北 으로 統 一 문제가 국내정치문제로 爭 杰 化 되게 되였다. 이와 같은 통일논의의 난맥상은, r7.7 童 言 J을 됫받침할 후속조치가 미쳐 뒤따르지 못한데서 오는 法 削 上 의 공백에도 기인하지만 더욱 중요한 요인은 國 內 政 治 過 程 을 통해 통일논의를 수용치 못.한 政 沿 團 의 政 沿 力 의 무기력에 이있다고 할 수 있다. 議 會 料 민주정치를 표방하는 한 통일정책이 아무리 일차적으로 북한을 상대로 한다 하더라도 먼저 국내정치적으로 다양한 統 一 論 議 가 雌 論 되여야 한다. 이것은 國 內 政 治 의 안정을 위해서도 선결과제이다. 민주국가에서는 sf 外 政 漆 은 國 內 政 治 의 延 長 이니 말이다. 더우기 북한이 料 南 工 作 的 인 차원 에서 전개하는 政 治 心 理 的 에 대응하기 위해시 국내정치적인 合 意 와 收 散 이를 정치의 중요한 熊 能 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서 政 治 的 收 散 이란, 국민적 출 意 를 위해 政 治 圈 에서 일차적으로 수렴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우리의 r 體 利 聯 合 J 통일방안의 개념적인 보완을 위한 정책방향을 l) 聯 邦 制 에 대한 對 應 論 理 2) 統 一 方 案 과 對 外 政 策 일반의 相 關 係 그리고 3) 國 內 政 拾 的 인 收 敵 이라는 3개 측면에서 경토코저 한 다. 2. 聯 邦 制 통일방안에 대한 對 應 論 理 1) 北 韓 의 聯 邦 制 통일방안의 戰 略 的 指 圖 聯 邦 制 하면, 일반적으로 法 理 論 的 인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이 知 的 인 慣 例. 8 7 -
이다. 그런데 북한이 제시하는 統 一 方 案 역시 聯 邦 制 로 알려지고 있다. r L 래서 북한의 통일방안의 분석에 있어시도 일반적인 知 的 인 傳 統 에 의한 영향인지는 몰라도 法 理 論 的 인 시각에서 접근하려는 경향이 없지 않다. n 러나 서구사회에서의 聯 邦 制 의 개념과는 달리 적어도 북한의 聯 邦 料 에 관 한 한 法 理 論 的 인 시각에서의 그 實 體 에 대한 접근시도는 그 개념적인 출발에 있어 북한의 聯 邦 制 가 지니.는 戰 略 的 底 意 를 호도할 우려마져 없 지 않다. 북한의 聯 郊 料 는 統 一 國 家 로서의 聯 邦 的 理 念 이나 內 容 에 관해 法 律 的 의미를 병시한 바 전혀 없으며69) 따라서 그것은 본질적으로 r 南 朝 鮮 革 命 J 戰 略 에 바탕을 둔 共 産 主 義 的 合 作. 倂 合 @ 理 이다. 우리가 機 能 主 義 的 인 漸 進 的 統 合 理 論 을 바할으로 하고 있는데 반하여 북한은 共 産 主 義 的 인 合 作. 聯 合. 聯 立. 倂 合 의 革 命 戰 略 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북한의 聯 邦 料 에 대한 접근이나 그의 對 應 論 理 의 정립에 었어서는 法 理 論 的 인 시각보다는 政 治 戰 略 的 인 시각이 앞서야 됨을 시사한다 출 물른 그렇다고 해서 法 理 論 的 인 시각이 무력대고 불필요하다는 것을 의 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統 一 의 실마리를 를려 위해서는 南 北 韓 두 主 體 (또는 代 表 權 者 ) 사이에 기본문제에 관한 政 治 的 合 意 가 선행되어 야 한다. 이것은 통일문제가 法 理 論 을 적용할 法 制 上 의 문제이기에 할서 본질적으로 主 體 사이의 意 志 에 따르는 政 治 的 合 意 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 이다. 때문에 북한의 聯 邦 料 통일방안에 대해 일차적으로 r 政 治 的 인 料 應 論 理 J의 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準 북한의 統 一 方 案 의 속알( 實 體 )은 남한에시의 人 民 民 主 主 義 革 命 에 의해 수 립된 容 共. 聯 共 的 인 人 民 政 權 과 북한 共 産 政 權 의 合 作 이며 따라서 聯 邦 料 는 그것을 위장하여 經 一 意 志 를 선전하기 위한 形 態 (거죽) 상의 허상에 69) 金 正 均 r 國 際 上 에서 본 北 撚 의 r 聯 邦 制 J 案 에 關 한 硏 究 J, 국통정 7 7-1 2 - l372(국토통일원, 77수 ).. 8 8.
불과하다. 그것은 西 方 國 家 의 상식으로선 理 念 과 體 制 를 달리하는 국가사이 의 聯 邦 削 가 현실적으로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다만 共 産 國 家 에서는 聯 邦 制 가 民 族 문제 해결의 수단, 즉 弱 小 民 族 을 倂 合 하기 위한 전략적인 수단으 로 이용됐다 Lenin은 혁명전에 聯 邦 料 를 부르죠아 敎 義 라하여 거부하는 대 신에 民 族 自 決 主 義 를 구호로 외치다가 執 權 후 약소민족을 소비에트 支 配 하 에 倂 合 히기 위해 聯 郊 料 를 이용했다.7o) 金 日 成 은 이 레닌의 聯 邦 制 의 개 념을 성실히 계승하고 있다출 북한의 r정치사전j에는 다출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r... U 經 法 _s5l4를출 一 7 料 法 린J 拉 _l 柱 L 一 惡 族 를르 一 c 淸 4는린 一 라라돌 에서 실시되는 國 家 構 造 形 式 의 하나이다... 社 會 主 義 國 家 에시 聯 邦 制 (실제로 여기에서 보는 바 金 日 成 은 레닌의 명제에 따라 聯 邦 削 가 말과 風 習 그리고 文 化 가 서로 다른 民 族 의 국가들로서 이뤄지는 國 家 構 造 의 形 式 이 라고 했으니 말과 풍습 그리고 전통문화롤 같이 하는 南 北 韓 사이에 연방 제가 적용될 수 없음을 자인한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聯 邦 削 를 제의하는 것은 論 理 的 인 矛 盾 이며 우리 말로서는 r 高 麗 民 主 聯 邦 共 和 國 J이라고 하면서도 養 文 표기에서는 ''Democratic Confederal Republic of KoryoJ라 하여 聯 邦 아닌 國 家 聯 合 의 개념을 함축하여 애매모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聯 郊 制 를 統 一 國 家 의 形 態 로 내걸고 統 一 適. 志. 名 分 에 있어 政 沿 조 作 的 인 차원에서의 선전적인 효과를 노림과 동시에 合 作 統 一 의 實 利 를 아울러 겨냥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統 一 에 대한 意 志. 名 分. 實 利 를 한데 플어놓으려a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첫째로 종래의 70) D. P. H a m m e r, U. S. S. R.:The Politics of Oligarchy (1974), pp.141~144. 7l) r정치사전j (북한사회과학 출찰사, 1973). p.313.. 8 9.
.. 찰편적인 혁명전략적인 주장의 骨 誇 을 人 民 民 主 主 義 寧 命 을 위한 先 決 條 件 속 에 집약하고 또 이것을 聯 邦 制 라는 위장된 統 一 國 家 의 형태와 결합시켜서 그들 통일방안올 일견 그릴싸하게 論 理 的 으로 合 理 的 이며 現 實 性 있는양 꾸 며놓은 것 이다. 둘째로 그들은 앞에다가 r 高 麗 J와 r 民 主 J라는 용어를 덧붙여서 수사학인 선전효과를 기하고 있다. 그들의 말대로 r 聯 邦 國 家 의 國 號 는 이미 世 界 的 으 로 널리 알려진 우리나라 統 一 國 家 의 이름을 살리기J 위한 것이라는 주 장이 民 族 史 的 正 統 性 의 계숭자임을 자처하기 위한 것이라면, r 民 主 J라는 두 文 字 는 7o년대 후반이라 南 韓 에서 전개된 反 r파쇼j투쟁의 분위기에 영 합하여 각계 각층에 호소함으로서 反 體 料 세력의 통일전선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 세깨의 특징은 r7. 4 共 同 聲 明 J에서 합의된 自 主. 平 和. 民 族 的 대단결이라 는 3 大 原 則 과 5 大 綱 領 에 대한 일관적인 강조이다. 이들 3 大 原 則 과 5 大 綱 領 등 기본 原 則 에 대한 일관적인 강조는 그들의 統 一 方 案 이 임시적인 속임수 의 驗 術 이 아니라 진정한 流 一 政 漆 이라는 것을 선전함으로써 統 一 에 있어 서의 正 統 性 과 提 讓 의 名 分 을 겉머지는 반면에 대화중단의 책임을 남한에 전가시키기 위한 것이다. 2 ) 우리의 對 應 論 理 의 構 造 어했든 우리의 r 體 料 聯 合 J 통일방안의 구상은 政 治 的 對 應 論 理 의 시각에 서 그 체계에 있있서 이들 북한의 聯 邦 料 방안의 특징에 대처하는 것이어 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첫께로 論 理 的 인 妥 當 性 이나 合 理 的 그리고 現 賓 的 인 實 現 可 能 性 있는 내용을 다듬어야 한다. 논리적인 要 當 性 은 r 體 制 聯 合 J 통일방안구상의 전제적인 假 說 인 民 族 共 同 體 의 개념에 관한 것이다. 이질적 인 政 治. 經 濟 체제속에 分 斷 후 수십년이 경과하는 가운데서 뭐니 뭐니해도 南 北 韓 간의 同 質 性 의 기반이 되는것은 원래 역사적으로 하나였던 民 族 共 同. 9 o.
體 재념이다. 5 共 時 代 의 r 民 族 和 合 民 主 統 一 方 案 J에 비하면 民 族 共 同 體 의 개 념은 소박한 民 族 感 情 에 대한 호소력을 더욱 지널 뿐만 아니라 그 명칭 자체가 간편하여 국민이 기억하는데 부담감이 적으며 日 常 生 活 상의 공감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생각할 수 있는것은, 북한이 r 聯 邦 制 J에서 수사 학적인 상징으로 r 淸 麗 J라는 역사적인 國 號 개념을 원용하는데 대한 ilt 應 개 념으로서 또 體 料 聯 合 구사에서 일상생활상의 非 政 治 的 인 民 族 共 同 體 의 회복 을.일착적으로 강조하기 위해서라도 r 韓 民 族 生 活 共 同 禮 J라는 개념을 도입 하는 것도 검토할 가치가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여기에 또하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북한이 統 - 國 家 의 國 號 로서는 r 高 麗 J를 들먹이지만 國 旗 에 대한 언급이 없음을 감안하여 우리는 太 極 旗 를 어떤 撚 態 에서든지간에 統 - 國 家 의 國 旗 로 할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臺 潛 의 경우가 하나의 모델이 필 수도 있다 諒 북한이 r 高 麗 J라는 국호를 통일국가의 그것으로 사용코저 하는 것은 淸 句 麗 와 그 額 土 의 계숭자로서의 高 麗 를 우리 역사발전의 연장선상에 놓으 므로서 그들의 進 德 的 襤 位 를 선전하기 위한 것이다.72)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도 북한처럼 r 淸 麗 J라는 국호를 사용하거나 또는 史 學 者 들이 共 同 體 의식이 회박하며 外 勢 ( 唐 나라)를 빌려서 무력을 사용하여 3 國 統 一 을 했 다고 비판하는 r 新 蘿 J라는 국호를 원용하는 것도 자연스렵지 못하다 출 다음에 論 理 的 인 출 理 性 은, 지속적인 基 本 原 則 의 개념적인 틀 속에서 = i 간 제의된 우리의 統 一 方 案 의 골간을 집약하여 일관적이며 體 系 的 인 內 容 으 로 한데 퓨어서 구조화하는데 대한 것이다. 앞에서 논한 바 북한의 聯 邦 料 방안이란, 3 大 原 則 과 5 大 綱 謹 의 틀 속에 종래의 단편적인 주장의 전략 적인 골간을 先 決 條 件 으로 한데 튜음과 동시에 이것을 다시금 聯 邦 이란 72) 게리 레드야드, r 南 北 韓 史 學 者 대화 나서라J, 東 亞 日 報, 1989. 1. 5.. 9 l.
形 態 와 결합시켰다. 그런가 하면 우리의 原 則 은 그때 그때 표현을 달리함 으로써 어던가 모르게 一 貫 性 을 결여하는 것과 같은 인상마지 주고 있다. 例 컨대 r 平 和 統 一 3 原 則 J(74)에서 平 和 定 着. 信 賴 회복. 總 選 擧 를 주장하고 r 民 族 和 合 民 主 統 一 方 案 J(82)에서는 民 族 自 決 의 原 則 과 民 主 的 절차와 平 和 的 方 法 그리고 民 族. 民 主. 自 由. 福 祉 의 이상을 강조하고 하는가 하면 r7.7 宣 言 J(88)에서는 自 主. 平 和. 民 主. 福 祉 의 原 則 을 강조하는 등이 그것이 다. 따라서 우리의 統 一 方 案 의 일관적인 體 系 性 과 論 理 的 인 合 理 性 을 보완 하기 위해 그간 강조된 여러 原 則 을 정리 수렴하며 또 적어도 7o년대 이래 우리 통일방안의 주요골간을 한데 찰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위에 언급한 체계화노력의 연장으로서 社 會. 文 化. 經 塗 _등 w린 速 @5토 一 및 蓮 조화다. 이와 같은 편 返 遲 理 핀 一 量 壟 료zJ_로린린죠4 旦 ~Deutsch의 코뮤니케이션 理 論 을 원용할 여지는 없는 것일까? 그는 민족 (nationality) 이 및묘으는및린친초_ 一 핀피f 型 塗 츠4 一 및호핀는LL 一 본다. 즉 그에 의하면 코뮤니케이션 및 經 濟 去 來 를 매개로 형성된 사회집단이 民 族 인데 이 료 族 이? 族 主 義 者 들이 權 力 을 장악하면 國 民 (nation) 이 되고 로 主 權 的 으로 되면.료3로 壇 5딘5브=4a편르tJL및는 一 것이다 물른 r 體 制 聯 출J방안은 南 北 韓 의 두개의 異 質 的 인 體 削 를 하나로 묶는다 는 것이 아니라 두개의 異 質 的 인 體 削 가 分 立 한채 다만 機 能 的 으로 어떤 統 合 狀 態 에 이른다는 논려에 입각하고 있는것 같다. 그러나 競 爭. 對 決. 敵 對 관계에 있던 南 北 韓 관계가 아무런 중간적인 매개단계없이 共 同 번영의 民 族 共 同 體 로 이행 한다거나 또는 社 會. 文 化. 經 濟 的 인 각 共 同 體 가 동시적 으로 종극에 가서 政 治 共 同 體 로 이행한다는 생각은 힌실에 있어서나 論 理 의 域 에 있어서 다같이 설득력이 적다. 따라서 이들 共 同 體 의 移 行 過 程 에 73) Karl W. Deutsch, "Nationalism a n d Social Communication," World Po1itics(January 1953). - 9 2 -
있어서의 각 共 同 體 의 先 流 性 문제에 대한 論 理 設 定 이 이른상 요망되기도 한다. 우리는 南 北 交 流 문제에 있어 우리의 經 濟 成 長 을 과신하는 나머지 經 濟 交 流 를 우선시하기 쉽다. 그러나 이러한 接 近 方 式 은 북한이 交 流 보다도 合 作 을 고집하는 한 제한점을 가질 뿐더러 북한이 그것을 그들 體 制 에 대한 충격적인 요인으로 받아들일 가능성 높다는 점을 우리는 미리 計 算 해야 한다. 따라서 이런 개념적인 맥락에서 본다면 合 作 아년 交 流 를 통한 社 會. 文 化. 經 濟 的 인 각 분야에서의 共 同 體 회복을 위한 先 次 性 문제에 있어 經 濟 交 流 가 다할수 있는 역할의 한계를 충분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만일에 歷 史. 傳 統. 言 語. 習 俗 에서 공유하던 傳 統 文 化 에 있어서의 同 質 性 회복이 가장 손쉬원 順 理 라고 한다면 經 濟 共 同 禮 이 회복에 대한 政 策 的 關 心 보다는 人 的 交 流 를 통한 코뮤니케이션의 指 進 이 先 行 되어야 할 것이다. 會. 文 化 분야에서 회복되면 그것이 바랑이되어 공동브영을 9 로 濯 盜 漆 一 去 _ 來 의 福 祉 共 同 體. 經 淸 共 同 駱 의식으로 발전할 수 있올 것이다. 이렇게 되면 社 會. 文 化 的 共 同 體 經 濟 共 同 體 에로 이행되면, 社 會. 文 化 的 인 同 質 性 과 共 同 繁 榮 의 지속적인 安 定 化 에 대한 의식이 生 存 ( 共 存 )을 위한, 이를테면 生 活 共 同 體 의식에로의 발전 그리고 나가서는 政 治 共 同 綠 의 바탕이 되는 理 念 共 同 體 의식에로 移 行 할 것이라 합은 도식적이며 論 理 上 의 개념이기는 하나 검토할 필요가 있다. 3. 對 北 政 策 과 對 外 政 策 의 有 機 的 인 連 緊 性 우리의 통일문제는 主 體 的 인 명에서 보면 南 北 韓 이 當 事 者 임으로 2 者 會 談 이 거른되지만 주변국가들의 영향력을 또한 變 熱 로 본다면 6 者 會 談 등 有 關 國 多 者 會 談 도 거른된다. 이것은 우리의 統 一 政 策 이 그 대상면에서 북한이 - 9 3.
상대임으로 對 北 政 策 으로 이해되지만 다른 變 數 的 인 면에서 본다면 對 北 方 政 策 이나 對 美 政 策 에서 분리될 수 없을 뿐더러 분리되어서도 아니되기 때 문이다. 때문에 對 北 政 策 은 對 北 方 政 策 이나 35t 美 政 策 의 기본적인 틀 속에서 입안되고 추진되어야 한다. 對 美 政 策 의 틀과의 연계속에서의 對 北 方 政 策 r L 리고 對 北 方 政 策 과의 연계속에서의 對 北 政 策 의 추진이 필요하다. 對 北 方 政 策 이나 要 料 b 政 策 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우리와 外 交. 經 濟. 軍 事 的 으 로 혈맹관계에 있는 對 美 關 係 를 제처놓고 추진되어서는 아니된다 聲 對 北 韓 交 流. 接 近 의 필요성에 대해 원칙상 韓. 美 는 그 政 沿 的 입장을 같이 하면서도 그 접근의 速 度 에 대해선 양국사이에 입장의 갭이 있다출 對 北 접근문제로 한때 韓. 美 사이에 빛어진 블편한 관계는 原 則 上 의 문제 가 아니라 접근속도문제에 있어서의 갭의 존게를 의미하며 따라서 우리의 對 北 政 策 과 對 美 政 策 사이의 不 均 衡 을 반영한다. 우리의 對 外 政 策 의 目 標 는 統 一 을 위 한 선행조건인 平 和 定 着 을 위 한 국 제정치적 與 件 造 成 즉 安 保 에 두어지지 않을 수 없다. 統 一 이 아무리 중 요하다고 하더라도 그 方 法 과 결과적인 統 - 形 態 를 고려치 않는 統 一 至 上 主 義 는 수용될 수 없다. 따라서 南 北 韓 간의 긴장완화와 平 和 定 着 을 위 한 국제적 여건의 조성을 위해서 유엔 同 時 加 고이나 交 叉 承 認 을 제의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북한이 그것을 r2개의 朝 鮮 J과 분단을 고정화하기 위한 책 동이라고 역선전 한다는 현실을 고려하여 限 時 的 인, 유엔 同 時 加 入 이나 交 叉 承 認 74)을 제의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리고 金 日 成 에 대해 頂 上 會 談 개최제의의 수락을 그 때 그 때 호기에 촉구하는 것 이 그에게 자극을 주 기 위해 필요하다. 지 난 lo월 l9일 유엔 總 會 에서의 연설을 통한 盧 大 統 領 의 美. 소. 中. 日 및 津 리b 韓 의 6 個 國 會 讓 의 제의도 같은 政 治 的 맥락에서의 제의이다출 74) 金 明 基, r 北 方 政 策 推 進 에 있어 提 起 되는 國 際. 國 商 法 的 諸 問 題 J, 國 統 調 8 8-1 0-6 8 ( 국 토 통 일 원, 1988) - 9 4.
이들 모든 제의는 對 美 關 係 의 기본적인 틀 속에서 조화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韓 國 의 北 方 政 策 에 대해 r신중한 支 持 J를 보내는 美 國 이 6 個 國 會 議 제의가 事 前 協 議 아년 通 告 라는 점에 불만을 표시하여 韓 美 外 交 에 새로운 課 題 를 던진바도 있였다. 어했든 이들 제의의 政 治 的 동 기는 經 濟 的 交 流 나 協 力 을 통해 情 勢 의 改 善 을 도모하기 보다는 거꾸로 정세의 개선을 먼지 도모하면 交 流. 協 力 의 기회가 더 중진필 수도 있다 는데 있다. 앞으로 더욱 北 韓 이 平 和 政 勢 로 나올것으로 전망되는 것은 고르바초프가 유엔에서 약속(88)한 l99l년 말까지의 소련 筆 5o만명 filj 滅 및 東 歐 로 부 터의 5만명 撤 收 計 劃 에 맞추어 제의할 軍 縮 會 談 제의에 관한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지난 6울 l2일, 美 솔로몬 流 官 補 內 定 者 가 上 院 外 務 委 員 會 가 마련한 인준청문회에서 밝힌 韓 半 島 에서의 r유럽 型 軍 締 J구상을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솔로몬 流 官 補 內 定 者 는 駐 韓 美 軍 의 장래문제 와 관련하여 북한측에 先. 信 賴 構 築 을 촉구함으로써 북한측의 先. 美 軍 撤 賂 주장에 반대했다. 그는 북한측이 아무런 緊 張 認 和 를 소리높이 외치면서 政 治 會 談 에서의 一 括 要 結 을 요구하더라도 고르바초프가 보여준것과 같은 현실 적인 信 賴 構 築 조치가 선행되지 많으면 아무런 의의가 없음을 강조하고 또 韓. 美 除 衛 관계는 時 代 의 요구에 맞게 계속발전 시킬것이라고 다짐하면 서 美 軍 이 勢 諒 均 衡 의 요충이며 소련의 對 北 軍 援 增 加 를 주목한다고 덧붙 였다. 그러나 최소한도 金 日 成 이 살아있는 한 북한사회의 變 化 可 能 性 은 없다. 그간 中. 소의 설득이나 日 率 의 중간적인 역할도 金 日 成 을 料 話 와 開 放 에 나오도록 하지 못했다. 더욱이 근자에 中 國 에서 벌어지고 있는, 經 消 開 放 이 몰고 온 政 治 的 自 由 에 대한 욕구에서 일어난 소요는 金 日 成 으로 하여금 75) 美 솔로몬 次 官 補 雨 定 者, r유림 型 軍 縮, 韓 半 島 실첨구상J, 朝 鮮 日 報 t 1 9 8 9. 6. 14.. 9 5 -
5o년대의 冷 載 構 造 로 되돌아가게 하는데 출분한 충격이있다. 북한이 經 滯 的 곤란에서 헤어나야 한다는 순수 經 濟 的 인 시각에서 본다면 북한의 開 放 化 는 불가피한 必 然 性 이다. 그러나 政 沿 的 인 시각에서 본다면 그럴 전망은 회박 하다. 北 韓 社 會 는 金 日 成 의 略 一 思 想 과 金 正 日 의 皓 一 指 辱 에 의해 경직할 때로 경직된 體 削 이며 따라서 中.소를 비롯한 외부세력에 의한 開 放 化 의 壓 力 은 金 日 成. 金 正 日 父 구 體 制 에 대한 타도운동에 지나지 않다.76) 金 日 成 은 北 韓 體 料 를 抗 日 의 전통을 이어받은 進 聾 隊 國 家 로 자처하고 있 다. 이러한 그들의 기본입장은 勞 動 業 제5차 大 會 (7o)에서 마무리된 것이다 를 抗 日 다응에 현실적으로 反 美 가 기본과제이며 그 다음엔 對 蘇 自 主 가 제2의 課 題 로 되어 있으며 民 族 自 主 性 의 고취로 內 的 으로는 폐쇄성을 고집하면서 對 外 的 으로는 한국에 대해 料 決 과 交 涉 의 兩 面 作 戰 으로 赤 化 統 一 을 추구하 고 있다. 이들 目 標 에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북한이 經 濟 建 設 을 위해 體 削 의 존립과 맞바꿀, 開 放 化 쪽으로 변화하리라는 기대는 허망된 망상이 되기 쉽다. 그들은 反 美 라는 目 標 의 추구를 위해 封 美 平 和 協 定 의 체결을 l974년 이래 줄곧 제의해 왔는데 그것은 단순히 象 徵 的 으로 韓 國 戰 爭 을 마무리하 기 위한 것이 아니라 美 國 이 北 朝 鮮 을 마침내 해뜨리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降 綠 文 書 77)를 받아내기 위한 것이다. 金 日 成 은 관계정상화를 위한 닉슨의 訪 中 을 美 國 이 中 國 을 3tt 等 한 관계로 인정하고 국제사회로 부터 中 國 을 추방하는 政 策 을 포기하도록 爭 取 한 勝 利 로 보고 있다. 뿐만 아니 라 베에트남의 장기간의 전쟁에 의한 共 産 化 實 側 를 金 日 成 으로 하여금 폐 쇄성을 고무케 하는 또 하나의 요인이기도 하다출 76) 佐 簾 勝 己, r 北 찰, 별지 않아 政 變 난다J, 朝 鮮 日 報, 1988. 9.3. 77) 知 圖 春 樹. r비타협적 民 族 主 義 변화 징후J, 東 亞 日 報, 1989. 1.1.. 9 6.
4. 國 內 政 治 過 程 을 통한 統 一 論 議 의 收 競 앞에서 體 料 聯 合 통일방안 구상의 보완을 위해 첫째로 북한의 聯 邦 削 統 一 方 案 에 대한 對 應 論 理 의 개발에 관해 논하고 둘째로는 對 北 政 策 과 對 外 政 策 간의 유기적인 連 繫 性 유지의 필요성에 관해 또한 언급했다. 그런데 우 리 南 韓 社 會 가 내부적으로는 북한의 聯 邦 制 방안이 먹혀들어갈 정도로 취약 하지 않는 한 그것은 政 治 工 作 流 元 에서의 정치심리전에 원용될 것이며 따 라서 우리의 통일방안을 論 理 的 인 妥 當 性 과 출 理 性 그리고 現 實 性 의 틀 속에시 體 系 化 하기 위한 料 應 論 理 의 개발문제는, 일찰 國 內 政 沿 的 인 수렴문 제를 떠나 對 北 관계의 시각에서 본다면 어느정도 長 期 的 인 구상이 될수 있다. 다시 말해서 對 應 請 理 개발의 문제는 당면적으로는 對 北 關 係 에서 보 다는 國 內 政 治 的 으로 더 절실한 문제로 된다는 뜻이다. 둘패로 對 北 政 策 과 對 外 政 漆 간의 유기적인 연계성유지에 관한 문제도 북한의 開 旅 可 能 性 및 中 國 의 질서회복 이전에는 그 현실적인 절실성이 감소된다. 이러한 시각에 서 본다면 우리의 새 統 - 方 案 구상올 보완하기 위해서는 國 內 政 治 過 程 을 통해 統 一 請 議 를 수렴하는 것이 政 治 的 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로 된다. 統 一 問 題 를 본질적으로 對 北. 對 外 問 題 로 보기에 앞서 國 內 問 題 로시 수렴되어 야 하기 때문이다 출 1) 野 圈 및 在 野 의 統 - 方 案 民 主 를 金 泳 三 總 裁 의 통일방안은 6 大 原 則.5 段 階 의 r 韓 民 族 共 同 體 J 方 案 이 다.78) 6 支 原 則 은 自 主. 和 解. 成 就. 平 和. 轉 換. 畏 族 大 參 與 의 原 則 이다. 또 5 段 階 論 에 있어 제l 段 階 는 南 北 韓 의 국내적 民 主 改 革 의 단계이며 제2단계는 漸 進 的 交 流 와 公 開 의 단계이며 제3단계는 非 政 治 的 분야의 協 力. 自 由 往 來 78) r 各 界 統 - 論 議 資 料 漆 J ( 國 土 統 一 院,1988.11), pp. 2 4 ~ 3 0.. 9 7.
의 단계이며 제4단계는 政 治. 外 交 분야의 협력강화와 統 一 準 備 단계이며 그리 고 제5단계는 l 民 族 l 體 料 의 平 和 的 民 族 流 一 을 선포하는 찰계이다. 따라 서 그가 말하는 r 韓 民 族 共 同 體 J란 l 民 族 l 體 料 를 의미한다. 제4단계에 이르기 까지 온 民 族 이 相 互 協 調 體 料 의 가치와 의의를 충분히 인식한 위 에 共 同 찰로서의 완숙기를 거친 다읍, 준비된 統 一 에 관한 구체적인 方 案 을 南 北 韓 주민들의 최종확인을 거쳐 네외에 l 民 族 l 體 制 의 韓 民 族 共 同 출 體 를 선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平 民 黨 金 大 中 總 裁 의 통일방안은 3 段 階 r 共 和 國 聯 邦 制 J통일방안 이다.7 ) 그의 聯 邦 料 方 案 은, 현존하는 南 北 의 共 和 國 이 완전한 獨 立 國 形 態 를 유지하 면서 상징적인 統 一 機 構 로 聯 邦 議 會 와 聯 邦 政 府 를 구성하는 平 和 共 存 (l 聯 邦. 2 獨 立 政 燎 ) 의 단계를 거쳐, 이 통일기구가 합의에 의해 제한된 權 限 을 행사하며 南 北 간의 人 的 物 的 交 流 을 추진하고, 궁극적으로 信 賴 회복을 바 탕으로 主 權 을 單 一 化 하여 統 一 을 이룩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平 和 共 存 피 平 和 交 流 고 平 和 流 一 의 3 段 階 통일방안이다. 그리고 그 의 r 共 和 國 聯 邦 制 J 는, 聯 邦 國 家 의 統 一 政 府 로서 r 最 高 民 族 聯 邦 會 議 J를 조직하여, 政 沿. 料 外 관계 를 결정하는 北 韓 의 高 麗 民 主 聯 邦 共 和 國 削 와는 달리 南 北 두 共 和 諒 이 平 和 共 存. 交 流 단계에서 獨 立 主 權 을 행사하여 先 決 條 件 이 없음으로 우리정부의 r 體 料 聯 合 J 통일방안과도 유사성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新 民 主 共 和 黨 의 金 鍾 泌 總 裁 는,8o) 통일은 국민적 合 意 의 확고한 원칙하에 일관성있게 추진되어야 하며 국제적으로는 力 學 관계를 고려하고 안으로는 相 互 信 賴 와 同 質 性 을 회복하면서도 對 話 를 펴나가는 한편 국제사회에서의 發 言 權 과 地 位 向 上 이 곧 統 - 로 가 는 길이라고 했 다 출 한겨레 民 主 黨 의 통일방안은 r7. 4 共 同 聲 明 J에 밝힌 自 主. 平 和. 民 族 的 大 3i : 壽 雲 j: sk 8 二 8: 3.98.
團 結 의 3 大 原 則 에 입각한 3 段 階 의 r한겨 el1 共 同 體 J (Korean Commonweal 流 ) 방인l 9다. 한겨레 共 同 體 방안도 3 殺 階 論 으로 되 어 있는데 그 제 l 段 階 는 平 和 共 存 과 同 質 性 회복의 단계이며, 제2 段 階 는 한겨레 共 同 體 실현의 단계이 며 그리고 제 部 피 營 는 平 和 統 一 의 단계이다. 제l단계의 주요내출은 交 流. 긴 장해소. 4 大 國 保 障. 交 叉 監 視 기구. 平 和 協 定 체결에 관한 것이며 제2 段 階 는 政 府 流 元 의 南 北 代 表 로서 구성되는 한겨레 共 同 體 를 비롯하여 非 核 3 原 則. 한겨레 共 同 體 의 單 一 國 號 로 유엔 加 入. 공동번영에 관 한 것이다. 제3단계는 南 北 政 黨. 社 會 단체의 政 府 流 元 에서의 참여를 비롯하여 軍 事 基 地 철폐. 中 立 化 선언. 統 一 憲 法. 單 一 의 政 府 와 國 會 구성에 관한 것이다 聲 또 在 野 의 文 益 煥 牧 師 는 r잠전적인 제안J으로서 3 段 隋 聯 邦 料 통일방안을 제시한다.M) 그의 3 段 階 聯 邦 料 방안은 先 決 조건으로서 l) 平 和 協 定 체결, 2) 脫 外 勢 국민지지 기반위에 선 民 主 政 府 수림. 不 可 侵 條 約 체결. 4 大 國 이나 유엔 의 平 和 保 障 에 의 한 美 軍 撤 收 그리고 3)유엔 同 時 加 入 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3 大 先 決 條 件 이 이뤄진 다응 聯 邦 料 통일의 제l 段 階 로서 英 聯 邦 削 (British Commonwealth of Nations) 와 비슷하게 南 과 北 이 外 交. 軍 事 를 獨 立 的 으로 운영하고 永 世 中 立 을 선언하며 제2 殺 階 는 南 과 北 이 社 會 經 濟 體 制 를 그대로 유지( 中 國 의 l 國 家 ', 2 體 削 ) 하되 軍 事 와 外 交 는 통합( 金 日 成 의 聯 邦 削 )하고 南 과 北 이 두 單 位 로 地 方 自 治 料 를 실시 (호네커 車 獨 首 相 안)하 며 그리고 제3 段 階 로서 南. 北 두 單 拉 의 地 方 自 拾 料 를 道 單 位 로 세분하여 완전한 單 一 政 體 를 이루는 단계를 각각 설정하고 있다. 文 牧 師 의 統 一 論 의 사상적 근거는 民 衆 統 一 論 이다. 그는 r 勞 動 者 와 農 民 이 피지배, 피착취계급으로 머불지 않고 이 나라의 主 人 으로 제자리를 잡 는 길 이 곧 民 主 化 요 民 族 統 一 인 것이다.J라고 했다. 그는 外 交. 軍 事 의 8l) r위의 책J, pp. 63~65. 82) 朝 鮮 日 報, 1989.4.4. ''앞의 책J, pp. 150~155. - 9 9 -
독립성인정과 永 世 中 立 化 선언의 제l 段 階 룔 설정하고 있어 북한의 料 Ep 料 보다 漸 進 的 인 방안을 제안하고 있으나 美 軍 撤 JlA를 선결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入 北 은 여러 논란올 불러이르킬 소지를 만들있다. 그는 지 난 4월 2일 북한의 祖 國 平 和 統 一 委 委 員 長 許 鑛 과의 共 同 聲 明 을 통해 聯 邦 制 통일방안에 합의하는 한편 팀스피리트 訓 練 反 對, 交 叉 承 認 및 交 叉 接 觸 거부, 汎 民 族 大 會 및 靑 年 學 生 祝 典 참가지지등의 입장을 誇 했다. 공동성명?114항에서 r 共 存 의 원칙에서 聯 邦 料 방식으로 統 一 하는 것이 우리 民 族 이 선택해야할 필연적이고 출 理 的 인 통일방도J라고 한것이다. 또 동 제6항에서 r 文 牧 師 가 주장하는 북남 交 流 와 점진적인 聯 邦 料 統 一 方 案 이 두개의 郭 鮮 을 지향하는 것이 아님을 확인하고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J고 한 점에서 본다면 文 牧 師 의 聯 邦 料 가 제4항에서 말하는 북한의 聯 邦 料 와는 다른것 같 은 느낌을 주면서도 그가 북한의 聯 邦 料 에 동조한 것으로 밖에 볼수 없 다는 지적이다. 뿐 만 아니라 金 日 成 이 지난 4월 l일 文 목사의 숙소를 찾아가서 가진 2차면당에서는 l차면담(3월 27일) 내용을 거듭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 플 이되고 있다. 즉 l) 高 麗 聯 郊 制 에 의한 統 一 實 現, 2) 政 治. 軍 事 會 談 의 필 요성, 3) 交 叉 承 認 과 交 叉 접촉의 거부방침을 金 日 成 이 거듭 전달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 같 은 民 衆 統 一 論 의 맥락에서 제시된 통일방안 가운데는 韓 國 基 督 敎 協 讓 會 (KNCC)의 방안이 있다. KNcc는 제3,4차 總 출 宣 言 文 (85.2) 를 통해 r 平 和 의 염원을 약한자, 가난한 자, 눌린 자, 곧 民 衆 이 가장 깊이 탄식하고 갈망하는 民 衆 의 현실이기 때문에 民 衆 主 體 의 統 一 과 平 和 統 一 이 곧 分 斷 克 駱 과 統 一 運 動 의 주류가 되어하 할 것이다.J라고 했다. 民 衆 이 主 體 가 를 되는 民 衆 統 一 論 으로서 統 一 의 主 體 만을 강조했을뿐 구체적인 方 法. 節 流 統 - 形 態 에 대해선 명시하지 않고 있다.. l o o.
그 밖에 民 衆 統 - 論 에 는 運 動 圈 學 生 들이 제시한 방안이 있다. 左 傾 및 運 動 圈 學 生 들이라 하여도 내부적으로 여러 分 添 가 있으나 크게는 辰 美 自 主 化 투쟁을 선결과제로 삼는 分 振 와 辰 獨 哉 民 主 化 투쟁을 우선시하는 두 派 가 있다.M) 그들은 일반적으로 勞 動 者. 農 民. 都 市 貧 民 의 階 級 聯 合 인 民 衆 을 主 體 로 하는 聯 共 統 一 올 강조한다. 自 主 化. 民 主 化. 統 一 을 서 로 같 은 論 理 의 延 長 線 上 에서 보는 것이다. 2 ) 政 治 的 收 散 의 메카니플 위에서 野 團 및 在 野 의 통일방안 가운데서 그 일부만을 살펴 보았다. 특히 在 野 의 다양한 통일논의는 마치 百 家 爭 鳴 을 방불케 한다. 북한은 體 料 上 露 의 목소리 하나만 었고 나머지는 그것을 복창하는 데 길들여져 있으나 우 리 繼 削 가 민주채제이고 보면 다양한 목소리가 각기 마치 제몫 출 을 하기 위한 競 爭 을 하는 것인냥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그려나 아무리 統 一 論 讓 에 있 어 다양한 목소 리 가 터 져 나온 다 하 더 라 도 統 一 만을 생각하고 平 和 의 訓 度 化 르 외면한 비현실적인 統 一 至 上 主 義 는 수 용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抑 麗 만으로서 그것에 對 應 할 수도 없다. 따라서 요컨대 그러한 다양한 統 - 論 議 의 목소리를 政 治 團 에서 어떻 게 狀 散 하느냐의 政 治 力 의 발휘와 메카니즘이 핵심적인 문재로 된다. 그러 나 어떠한 民 主 國 家 라 하더라도 收 散 이란, 결코 모든 계충의 의견의 단순 한 算 術 的 總 計 일 수 없다. 따라서 모든 계층의 다양한 意 見 을 濾 過 시켜 國 家 意 思 로 統 출하는 政 治 圈 특히 與 圈 의 龍 力 이 政 治 力 이며 또 여과시키 는 효과적인 裝 置 와 과정에 관한 것이 政 沿 的 메카니플이다. 다양한 통일논의에 있어서의 基 本 的 인 爭 点 은, 북한의 r 南 刻 鮮 革 命 J 戰 略 에 대한 평가에 있어시의 시각차이를 반영한다. 在 野 의 民 衆 統 一 論 은 대체 로 反 美. 辰 反 共 ( 政 府 )의 논리에서 출발하느니 만치 美 軍. 핵무기철수, 平 和 83) " 韓 半 島 의 危 機 狀 況 과 民 族 統 -", r 學 團 問 理 硏 究 資 料 J ( 全 國 大 學 原 理 硏 究 會 1 1986), pp. 71 ~1 94. - l o l -
協 定 체결, 4 大 國 이나 유엔에 의한 平 和 保 障 등을 先 決 條 件 으로 내세우고 있 다. 그러나 이들 先 決 조건이 韓 半 島 의 平 和 裝 置 를 위한 것이라고는 하나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의 실효성을 가지느냐가 문제이다. 그것도 그럴것이 平 和 協 定 체결이? 4 大 國 에 의한 平 和 保 障 이던 또는 유엔에 의한 平 和 保 障 이 던 간에 關 係 國 會 讓 가 韓 半 島 의 平 和 裝 置 가 될수 없으며 따라서 平 和 維 持 찰 가 북한의 意 志 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도리켜 생각하면 이미 제3o차 유엔 總 會 (75) 때 韓. 美 兩 國 이 그것과 비 슷한 提 案 을 한 적이 있다.84) 이때 키신저는 유엔 總 會 에서의 연설을 통해 休 戰 當 事 者 會 議 와 擴 大 會 議 의 개최를 제안하면서 南 北 韓 유엔 同 誇 加 入 과 交 叉 承 認 문제를 제기했다. 이 키신저 演 說 은 우리의 6. 23 外 交 政 策 宣 言 의 내 용 과 같 은 맥락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제 3o차 유엔 總 會 에서 통과된 西 方 側 決 議 案 에 있어서는 키신저의 休 戰 當 事 者 會 議 와 擴 大 會 議 를 r모를 査 接 關 係 當 事 者 會 議 J란 말로 포 괄 표현하고 있는듯 하다. 그 말의 표현이야 어했든 이들 회의에 대한 제 의 의의는 韓 半 島 에서의 平 和 定 着 에 대한 關 係 當 事 國 들의 의지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것이지만 북한은 그 런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 아무리 關 係 嘗 事 國 會 議 가 열린다 하더라도 그것이 成 事 되 기 위해서는 거기에서 합의된 사항들이 津 린b 誇 에 의해 실천되어야 한다출 따라서 북한이 革 命 路 線 을 포기하지 않는 한 어떠한 關 係 當 事 國 會 議 도 平 和 에 대한 북한의 의지를 떠나서는 무의미하며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한 裝 置 로 될수 없다. 이와 같은 사실은 지난해 lo월, 盧 大 統 領 이 제43차 유엔 總 會 에서의 연설 을 통해 제의한 6 者 會 讓 에 대한 關 係 國 의 반웅을 보면 더욱 뚜릿이 나타 나고 있다. 소련은 南 北 辨 話 노력을 지지해 왔다고 하는가 하 면 日 本 은 6 者 會 讓 를 획기적인 회의라 하여 그것에의 찹가회망을 誇 히면서 환경조성등 84) 朴 率 쳔, " 關 係 當 事 者 출 議 ", r 統 一 政 策 J 2 卷 l 號 ( 國 土 統 - R, 1976.4), pp. 4 0-4 8.. l o 2.
적극적인 대응의사 마저 표시했다. 그려나 美 國 國 務 者 의 한 高 位 官 吏 는 6 者 會 議 에 대한 구체적인 논 평 대신에 4 識 의 交 叉 承 認 을 지지한다고 했 다출 왜 그했을까. 이때 r개스턴 시거J 束 아시아. 태평양 擔 當 國 務 流 官 補 는 기자 와 의 一 問 一 答 에서 레이건 大 統 領 이 盧 大 統 領 의 그와 같은 조치들이 성공하 리라는 확실한 전망이 없다는데 의견을 같 이 하였으나 南 北 韓 의 문제가 關 係 當 事 者 에 의해 다뤄져야 하기 때문에 문제해결의 제l차적인 役 割 은 韓 國 民 과 그 政 府 에 있으니 美 國 은 다만 支 援 役 割 만을 한다고 했다. 또 r l 는 北 韓 에 대해 劇 的 인 변화를 기대하지 말라고 하면서 美 國 으로서는 특 별히 극적인 對 北 조치가 없을 것임을 강조하면서 美 國 으로서는 辰 對 하지는 않지만, 다만 이 시기에 그 런 提 案 을 밀고나갈 의도가 없음을 밝했다. 韓 國 의 z린b 政 漆 에 대 한 美 國 의 r신중한 支 持 J의 態 度 는 북한에 대 한 조 속 한 태도변화를 기대하지 않는다는 상황판단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 이 본질적인 韓. 美 간의 對 北 시각차이다. 따라서 統 一 문제는 우 선 國 內 政 治 的 인 當 面 課 題 로서 收 散 되고 接 近 되어야 한다. 業 料 b 統 一. 對 話 의 제의는 長 期 的 인 展 望 에서 떠나서는 政 沿 的 인 반 웅을 기대할수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政 沿 的 收 敵 이란, 政 沿 的 爭 2 으 로 되어있는 統 - 論 議 를 議 會 制 政 治 過 程 을 통해 r 國 家 水 準 에서의 政 策 J 즉 國 家 政 漆 으 로 收 敵 統 合 하 는 것 을 말하는 것이지, 이 미 만들어진 정책의 r 推 進 J을 위해 關 係 部 處 간의 기능을 조정하는 行 政 體 削 의 보완만을 의미하 는 것은 아니다 龜 文 牧 師 의 입북으로 종래에 政 經 分 離 의 원칙에서 추진 되 는 것으로 알고있 던 對 北 政 策 이 政 經 連 繫 로 급선회하는 가운데 對 北 및 對 北 方 政 策 에 대한 對 內 外 的 인 制 動 要 因 이 들어나게 됐다. 그 料 動 要 因 이란, l) l 人 의 r 密 室 外 交 J로 인한 與 野 4 黨 및 政 府 內 의 推 進 主 體 에 대한 거부감, 료) 機 構 의 난맥상이 빛어낸 關 係 部 處 간의 엽무상의 마찰, 3) 關 放 政 策 의 신속한 추진 에 대한 保 守 勢 力 의 회의 그리고 4) 美 國 의 신중한 態 度 등이 그것이다.. l o 3.
이들 要 因 들 은 對 外 的 으로는 교 류 推 進 主 體 문제 와 對 內 的 으로 主 管 部 署 와 관련된다. 料 北 및 對 北 方 관계의 기구로서는 l) 北 方 政 策 協 議 調 整 要 (위원장 安 企 부 장)을 비롯하여. 2) a. 外 協 力 委 (위원장 副 總 理 ), 3) 北 方 經 濟 政 漆 事 務 委 (위원 장 企 劃 院 장관), 4) 國 際 民 間 經 濟 協 議 會, 5) 安 保 長 官 會 議 6) 戰 略 企 劃 團 등 많은 기구가 있였다. 이들 난립된 기구를 통합조정하기 위해 政 府 와 與 黨 은 지난 2월 초 總 理 를 要 員 長 으로 하는 r3 린b 韓 및 北 方 交 流 協 力 委 J를 조직하여 모든 交 流 문제를 통합조정키로 결정하고 그 산하에 統 一 院 長 官 을 책임자로 하는 r 南 北 交 流 推 進 協 議 會 J와 外 務 長 官 을 책임자로 하는 f b 方 交 流 推 進 協 議 會 J를 두기도 했다. 그리고 特 別 法 을 제징하여 r 南 北 交 流 推 進 委 員 會 J를 法 定 機 構 로 하기로 했다. 또 지난 5월 l8일 r 南 北 交 流 悠 力 에 관한 特 別 法 素 J에 대한 公 誇 會 도 실시했다. 文 公 部 는 特 別 法 이 재정될 때까지 文 化 交 流 에 관한 政 流 語 問 과 의견수렵은 위해 지난 6원 2l일 r 南 北 文 化 交 流 協 議 會 J를 구성하여 特 別 法 案 속에 규정되어 있는 統 一 院 長 官 하의 r 南 北 交 流 協 力 推 進 協 議 會 J의 기능과의 관계가 좀 모호한 점도 없지 않다. 또 그런가 하면 行 政 改 革 委 의 개편안에 따르면 6월 23일 r 統 一 行 政 體 料 의 재조정안J을 의결했는데 統 一 政 流 의 r 梅 進 J를 위해 安 保 擔 當 副 總 理 를 신 설, 統 一 院 長 官 를 김임토록하며 트 통일원 長 官 이 委 員 長 으로, 外 務. 國 除. 文 設. 文 公 長 官 과 安 企 부장을 위원으로 하는 統 一 關 係 長 官 會 議 를 상션기구로 신설키로 했다.R) 여기에서 보는 바 지금 현재 與 團 側 의 대웅은, 주로 관계부처의 기능을 통합조정하므로써 交 流 r 推 進 J의 원활을 기하려는 政 策 推 進 行 政 體 料 의 보완 에 있다. 물른 이러한 推 進 過 程 에서 일어나는 시행착오를 미리 제거하기 위 한 관련부처간의 行 政 體 料 의 정비작업이 필요하다. 文 牧 師 의 입북을 계기 85) 東 亞 日 報, 1989.6.24. - l o 4 -
로 交 流 推 進 過 程 에서의 시행착오가 政 治 的 爭 杰 으로 떠 올랐으니 말이다. 그러나 알고보면 그 문제 역시 統 一 論 議 의 i 前 料 流 출이라는 政 治 的 인 문제 가 그 밑바닥에 깔려 있였다. 따라서 本 質 的 으로 중요한 문제는 對 北 交 流 r 推 進 J을 위한 行 政 體 制 의 조정보다도 政 拾 過 程 을 통한 國 民 的 合 意 의 모 색이 앞서야 된다는데 있지않을 수 없다. 즉 사무적인 推 進 機 構 의 기능조 정을 위한 행정보다도 國 家 意 思 의 결정을 위한 政 治 的 인 收 散 統 合 기능이 앞서야 된다는 것이다. 특히 問 題 그 자체가, 모든 民 族 成 員 의 生 存 문제와 직결된 統 一 問 題 고 보면 議 會 를 통한 收 點 이 民 主 主 義 的 인 國 民 參 與 를 전 제로 하며 또 그것이 政 治 名 分 上 국민에 대한 價 値 配 分 이요 를 政 治 의 기능이 다 聲 그러나 아무리 民 主 政 治 가 국민에 대한 r 政 治 的 인J 價 値 配 分 이라 하더라 도 統 一 論 證 의 수렴통합이란 결코 국민 各 界 各 層 의 의견의 算 術 的 總 和 일 수 없으며 政 府 構 想 을 중심으로 하는 보완적인 國 民 的 合 意 이다. 따라서 統 一 論 議 의 효과적인 國 民 的 合 意 를 위해 다음과 같은 것을 고려함이 바 람직하다. 즉 (l) 政 策 수립을 위한 政 治 過 程 과 執 行 ( 流 進 )을 위한 行 政 過 程 을 하나 의 유기직인 體 系 속에 統 合 한다. (2) 收 散 過 程 의 모델이 되는 것은, 政 府. 與 黨 간 與 國 의 수렴피 野 黨 의 구상을 포함하는 制 度 團 구상의 수렵즉 在 野 구상의 濾 過 라는 漸 進 的 인 週 程 이다. 이것은 國 會 의 積 極 的 役 割 을 전제한다. (3) 위와 같은 收 散 過 程 모델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선 첫째로 政 府 내 토른을 활성화하는 구상의 하나로서 政 府 내 常 設 的 인 總 括 機 構 ( 制 : 統 一 關 係 長 官 會 議 )와 맞먹는 기구로서 統 - 特 別 委 員 會 를 강화하여 院 內 에 恒 時 的 으로 설치하므로서 이뤄지는, 政 府. 議 會 간의 일상적인 의견조정의 도모가 효과적이다. 특히 여기에서 政 府 的 차원에서 國 家 安 全 保 障 會 議 (N.S.C.)의 기능과의 관련도 고려 - l o 5 -
출 해 볼 만하다 (4) 둘째로 統 一 문제에 대한 종극적인 責 任 은 大 統 領 이 지기 때문에 위의 政 府 내 상설출괄기구와는 別 途 로 大 統 領 주재하의 소규모 審 讓 會 議 의 설치도 구상해 볼만하다. (5) 세째로 위에 지적한 구상과 더불어 政 府. 與 黨 간의 協 議 를 일상 적으로 보다 활성화하고 체계화하기 위해선 常 設 機 構 의 신설도 고려해야 한다출 (6) 네째로 國 會 에서의 統 一 論 議 의 積 極 的 인 활성화는 그 자체가 통 일문제에 대한 國 民 啓 導 에 이바지할 뿐더러 與. 野 간에 基 本 政 策 에 一 致 하면서도 다만 方 法 論 上 에만 이견을 나타내는 超 黨 合 意 에 이르는 방법이다. (7) 다섯째로 政 治 圈 의 협조를 원활히 하기 위해선 野 黨 責 任 者 들에 대한 브리핑등 對 話 通 話 를 확대 제도화 할 필요가 있다. (8) 여섯째로 國 會 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한 國 民 參 與 를 불러일으키기 위해선 公 誇 會 의 개최등 코뮤니케이션의 通 路 를 擴 大 할 필요가 있 다. (9) 일곱째로 統 - 문 제 에 대한 합리적인 여를형성과 國 民 참 導 를 위해 선 특히 與 團 차 言 論 人 그리고 敎 指 등 여른형성계층간의 公 式 的 이던 非 公 式 的 이던 간에 어떤 意 見 交 換 의 장치가 필요하다 를. l o 6.
政 治 團 밖에서의 다양한 통일논의를 議 會 라는 制 度 的 인 틀속에 끝어들여서 收 斂 할 수 있는 것이다. (l988 年 6 月 ) - l o 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