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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ion:

교육학연구 Korean Journal of Educational Research 제50권 제2호, 2012, pp.51-70 A Study on the Theory of Mind and Mind Practice in Korean Zen Buddhism -Focused on the Thought of Deuktong-Gihwa around the Idea of Combination of Three Religions- Jung, Hye-Jung* 1) (The Institute of Mind Humanities, Wonkwang University) < Abstract > This paper is focused on the thought of Deuktong-Gihwa around the idea of combination of three religions and mind-nature theory. And through understanding of the mind practice theory in the Buddhist tradition of South Korea it is inquired the theory of pursuit the human perfection and the whole task of education. Deuktong-Gihwa is Buddhist monk Muhak s disciple. He left a lot of writing and theorized the relationship of three religions(confucianism, Taoism, Buddhism) systematically. He said that the taught of three religions were each of principles of life( 大 本 ), sunya( 空 ), Goksin( 谷 神 ). Deuktong likened three religions as Roots, shoots, leaves each. The theory of mind practice is to still mind and brightly illuminate the mind.(this is named Samadhi and Panna study) Also Deuktong-Gihwa is author of the book Hyunjunglon( 顯 正 論 ). In this book he said that the mean of Cheonsim( 天 心 ) in Confucianism is same the mind of Buddhism. He combined three kinds of religion. And he emphasized the mind practice to deliver and to keep the mind. Especially the mind practice of the mind to keep is not bound to the object in mind or remove the object in mind but only resign one s original mind and concentrate on or keeps the original mind. To keep the original mind is to illuminate the world by bright wisdom and conduct to the others by right mind. Key words: Deuktong-Gihwa, combination of three religions, Confucianism, Taoism, Buddhism, mind-nature, mind practice, Zen Buddhism 1)*Jung, Hye-Jung(The Institute of Mind Humanities of Wonkwang University, 22 Wonkwang-Univ. Street, Iksan, Korea 570-749; jhjnim@hanmail.net)

조선 禪 佛 敎 의 心 性 이해와 마음공부론 * 2) -득통 기화의 삼교합일 사상을 중심으로- 정혜정(원광대학교 HK마음인문학연구소) ** 3) < 요 약 > 본 연구는 득통 기화를 중심으로 그의 삼교합일적 심성론 이해와 마음 공부론을 고찰하 고자 한 것이다. 조선 선불교적 전통에서 추구하여 온 인간 완성과 교육의 과제가 무엇이었 는지를 파악하여 마음의 평정과 지혜를 갖추는 공부론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득통 기화는 자신의 스승이었던 무학대사와는 달리 저술을 많이 남겼던 인물이자 유불도 삼교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이론화한 사람이다. 그는 유 불 도의 근본 가르침을 각각 대본( 大 本 ), 진공( 眞 空 ), 곡신( 谷 神 )이라 말했다. 그리고 불가를 뿌리, 도가를 싹, 유가를 잎에 비유했다. 이러한 삼교관에 따른 득통의 마음공부론은 마음을 고요하고 밝게 비추는 정혜( 定 慧 ) 공부, 덕행의 교화와 심복( 心 服 ), 그리고 만물일기( 萬 物 一 己 )의 실천으로 집약된다. 여기에는 유가 현실주 의와 이에 따른 교화와 덕행의 공부방법이 가미된 것으로 유가의 영향이 크다. 유가는 불교 가 도덕적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과 통치규범이 부재하다는 것을 비판해 왔고 득통은 이 에 부응하여 마음공부에 덕행의 실천을 이끌어내었다. 그러나 유가의 실천이 삼강오륜의 인 간관계를 중심한 덕목이라면 득통이 새롭게 강조한 덕행은 우주중심적 만물중심적 도덕으 로서 진정한 인( 仁 )은 만물을 자기와 한 몸으로 여기는 것 에 있음을 강조했다. 주제어: 득통 기화, 서산 휴정, 유불도 삼교합일, 심성론, 마음공부론, 조선 선불교 2)* 이 논문은 2010년도 정부재원(교육과학기술부 학술연구조성사업비)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구되었음(NRF-2010-361-A00008). 3)** 정혜정(익산시 원광대학로22 원광대학교 교학대학 3층 제2연구실) - 52 -

I. 서론 숭유억불의 조선사회로 접어들자 불교 승려들은 그들 자신의 존재를 유교와의 관계 속에서 재정립하고자 노력해 나갔다. 이들은 불교의 주체성을 견지하면서도 유교적 규범과 사회질서 안에서 자신들을 재발견하고자 했으며 유가뿐만 아니라 도가의 사상과도 회통시키는 작업을 수 행해 나갔다. 그 대표적인 선승을 꼽으면 세종대 득통 기화, 명종대 허응당 보우, 선조대 서산 휴정, 숙종대의 운봉 대지 선사를 들 수 있다. 득통 기화는 한국 선불교의 법맥인 지공( 指 空 ) 나 옹( 懶 翁 ) 무학의 법통을 이었고 허응당 보우는 문정왕후의 섭정에 힘입어 불교를 중흥시킨 인 물로 여기에 중요한 역할을 맡은 인물이 서산이다. 운봉 대지 선사는 서산의 법계를 잇는 문하 의 사람으로 심성논쟁을 제기한 바 있다. 이들의 법통적 사상적 연맥은 조선 선불교의 대표적 인 흐름을 만들어 내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본다. 본 연구는 이 가운데 득통 기화를 중심으로 그의 삼교합일적 심성론 이해와 마음 공부론을 고찰하여 한국 불교적 전통에서 추구하여 온 인간 완성과 교육의 과제가 무엇이었는지 고찰하 고자 한다. 특통의 삼교합일 사상은 그의 독창적인 사상이라기보다는 중국 송대에 제기된 삼교 회통적 심성론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조선 선승들의 삼교합일 사상은 삼교의 본체론에 보다 천착하여 마음이 모든 진리를 꿰뚫는 핵심 원리임을 내세울 뿐만 아니라 삼자가 솥의 세발처럼 결합되어야 올바른 도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한 점에서 차이점도 없지 않다. 또한 마음공부론에 있어서도 전통적인 선불교의 수행인 정혜( 定 慧 ) 수행을 견지하면서도 유가와 도 가의 영향을 받아 도덕 실천에 관심을 갖게 된 것 역시 그의 특징이다. 유가가 덕행을 강조하 고 예악과 형벌을 방편으로 쓰지만 득통은 이를 인정하면서도 인과( 因 果 ) 이치에 따른 심복( 心 服 )을 중시하여 만물일기( 萬 物 一 己 )의 덕행으로 방향을 잡아나갔다. 유가가 인간중심의 도덕이 라면 득통의 그것은 만물중심, 우주중심의 도덕이라 할 것이다. 현대 교육에서 전통교육의 가르침은 소멸되어 가고 있지만 욕망과 경쟁으로 마음과 몸을 쉬지 못하는 피곤사회 에서 그리고 경쟁으로 내몰리고 소유지향으로 길들여져 가는 교육현실에 서 조선 선승들이 제시한 마음공부론은 우리 교육이 포함시켜야 할 하나의 대안처럼 보인다. 우리는 많은 것에는 관심을 가지면서도 자신의 궁극이자 고통의 원인인 마음에 대해서는 관심 을 갖지 않는다. 전통적 스승들은 마음이 우주의 근원이요 인간의 본래성으로서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아 자신의 본래 마음을 깨닫고 이를 밝혀 세상을 비추고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 53 -

II. 득통 기화의 마음이해 득통 기화(1376~1433)는 고려 말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에 참여했고 태조의 왕사를 지냈 으며 나옹의 법통을 이었던 무학대사의 제자이다. 득통은 삼교일치설을 주장하면서 여기에 호 불론적( 護 佛 論 的 ) 입장을 가미하여 심성론을 전개했다. 득통은 어린 나이에 성균관에서 입학하 여 수학을 했고 21세 때 친구의 죽음을 보고 출가의 뜻을 굳혔다. 그는 유불도 삼교일치를 제 창했는데 이 삼교일치의 사상은 신라말 최치원( 崔 致 遠 )의 사상에서부터 나타난 것으로 고려말 운곡 원천석도 삼교일리론( 三 敎 一 理 論 )을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삼교합일론은 득통에 의해서 시작되었다고 흔히 말한다. 그의 삼교합일론은 중국 송나라 계숭( 契 嵩, 1007~1072)이 지은 보교편( 輔 敎 編 ) 과 비슷한 점이 있다. 계숭이 그랬던 것처럼 득통 역시 유교측의 강력 한 배불론에 대한 반론이라고 하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주장된 것이다. 그리고 계숭이 불교의 오계와 유교의 오상이 같다고 주장하거나 불교가 근원 본체에 강하고 유교가 드러나는 자취에 강하다는 입장은 득통에게서도 보여진다. 그러나 득통은 유 불 도 각각의 性 을 대본( 大 本 ), 진 공( 眞 空 ), 곡신( 穀 神 )이라 말하고 불교와 성리학의 마음을 형이상자와 형이하자로 구분하며 불 가, 도가, 유가 삼자의 관계를 뿌리, 싹, 잎에 비유한 점이 주목된다. 그는 삼교를 결합시키면서 도 서로가 갖는 차이점과 불교의 수승한 점을 밝혀 성리학자들의 공격에 이론적으로 대응하고 자 했다. 1. 삼교합일( 三 敎 合 一 )적 마음 이해 성리학이 말하는 우주와 인간의 궁극적 실재로서, 천리는 우주자연의 질서였지만 점차 인간 에게 주어진 본성과 동일시되었고 이는 선천적인 도덕적 규범으로 읽혀졌다. 성리학자들이 불 교를 비판했던 가장 큰 이유는 불교는 세계와 인간을 도덕적 관심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이 었다.(윤영해, 1997:24-25) 또한 성리학자들은 심성론적 접근에서 불교를 비판하여 불교는 見 性 成 佛 이라 하고 作 用 是 性 이라 하는데 이는 성( 性 )이 리( 理 )인줄을 모르고 마음의 작용을 성 ( 性 )인 줄로 잘못 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득통 기화는 유교나 불교뿐만 아니라 도교의 도( 道 )도 모두 마음을 근본에 놓고 있 다고 보았다. 마음과 성( 性 )에 대해서 삼교 모두 말하지 않은 바가 없고 유교는 드러난 자취를 탐구하고 불교는 참됨에 들어맞으며 그 둘 사이에 붙어서 두 가지를 붙여주는 것이 도교라 하 였다. 삼교의 도는 모두 마음에 근본하였다. 儒 者 는 자취를 전공하였고 불자는 참에 계합 - 54 -

하였다. 유자의 자취란 形 而 後 者 로 情 이다. 격물치지 성의정심하여 덕업을 닦는 것이고 닦지 않고 다스리지 않는다면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를 이룰 수 없다. 또한 불가의 참이 라 하는 것은 形 而 上 者 로 性 이니 그 본체는 끝이 없으며 그 밝음은 시작이 없다. 신령하 여 다함이 없으며 오묘하여 작위함이 없이 삼제를 다하고 시방에 뻗혀 담연히 홀로 존 재하는 것이다. 마음을 거두어 근본에 나아가 건곤의 祖 가 되어 일체를 명령하는 이것을 性 이라 한다. 능엄경에는 말하기를 허공이 大 覺 가운데서 나옴이 마치 바다에 한 물거품 이 일어남과 같고 有 漏 의 티끌 같이 많은 나라가 다 空 을 의지해서 나왔다 하였다.(함허 저/송재운 역, 1984:5-6) 득통은 삼교 모두가 마음을 근본에 놓고 있는 하나의 이치라는 것을 강조하면서도 그 주장 하는 바가 다름을 밝히고자 하였다. 유교의 마음은 자취를 전공한 것으로 형이후자( 形 而 後 者 )로 서 情 이라 했고 격물치지 성의정심하여 덕행을 닦는 것에 초점 두어져 있다고 보았다. 반면 불교의 마음은 참에 계합하는 것으로 형이상자( 形 而 上 者 )로서 성( 性 )이라 했다. 그리고 이 성 ( 性 )을 곧 공( 空 )으로 놓아 세상 만물이 모두 이 공( 空 )에 의지해 나오는 것임을 강조하였다. 표 1 득통이 보는 성리학과 불교의 마음 성리학의 마음 불교의 마음 형이후자 형이상자 마음( 心 )은 곧 기( 氣 ) 마음( 心 )은 곧 성( 性 )이자 공( 空 ) 자취 참에 계합 덕행에 초점 둠 마음을 거두어 근본에 나아가는 것에 초점 둠 득통에 의하면 자취를 전공으로 하는 유교의 마음은 형이후자로서 드러나는 형상을 볼 수 있고 가깝고도 얕은 것이기에 고답적이지 않다. 이는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 각의 경계를 말하지는 못한다. 반면 참에 계합하는 불가의 마음은 오묘하여 볼 수 없고 멀고도 깊지만 그 깊음은 반드시 얕음을 포괄하고 있고 그 얕음을 열등시하지 않는 대각의 경계를 말 하는 것이라 하였다. 득통이 주장하는 불교의 마음( 心 )은 곧 성( 性 )으로 만물의 근원이 되고 일 체를 명령한다. 마음은 또한 신령하여 다함이 없고 오묘하고 작위함이 없이 삼제를 다하며 시 방에 뻗혀 담연히 홀로 존재한다. 여기 한 물건이 있으니 이름과 모양을 벗어났고 고금을 꿰뚫었고 한 티끌 속에 있으 나 천지를 둘러쌌다. 안에는 온갖 묘한 것을 간직하였고 밖으로는 모든 근기에 응해 준 다. 삼재의 주인이 되고 만법의 왕이 되니 넓고 넓어 거기에 견줄 것 없고 높아 거기에 짝할 것 없다.... 천지보다 먼저 있으면서도 그 비롯됨이 없고 천지보다 오래 있으면서 도 그 마침이 없으니 어찌 현묘하지 않은가. 이것이 空 인가 有 인가 나는 그 어떻게 된 - 55 -

것임을 모르겠도다.(권기형 역, 1972: 365) 원래 불교에서 불신( 佛 身 )이 우주 법계에 충만하다는 것은 일월성신 산하대지 어느 하나 포 섭되지 않음이 없이 온 우주법계에 청정한 몸이 두루 미침을 말함이다. 득통은 만일 배우는 자 가 물들여진 망념을 초월하고 마음 근원을 청정히 하여 활연히 이에 서로 계합하면 홀연히 여 래의 경지( 如 來 地 )에 뛰어 들 것이라 했다.(함허 저/송재운 역, 1984:7-6) 마치 물거품이 물로 돌아가며 태양을 가리는 구름이 허공에서 소멸됨과 같다. 이는 자신의 마음이 본원으로 되돌아 가 그 사이에 막힌 바가 없기 때문이다. 득통은 유교와 불교 모두 마음을 말하고 성( 性 )을 말하지만 그 핵심은 다르다고 하였다. 유 가의 性 은 중용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하늘의 명령이자 순선한 것으로서 마치 불의 뜨겁고 물 의 시원한 성질과 같은 것이라 보았다.(함허 저/송재운 역, 1984:11) 득통 기화가 이해한 유가의 성( 性 )이란 이일분수( 理 一 分 殊 )로서 솔개 날고, 물고기 뛰고, 인간에는 인의가 있는 것과 같은 개별리의 성( 性 )이다. 이는 일반 성리학에서도 공통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바다. 그리고 유가의 성( 性 )은 만물에 고르게 들어 있는 개별적 이치로서 사물에 의지하는 대본( 大 本 )이라 하였다. 반면 불교의 성( 性 )은 천하를 통하는 도( 道 )이자 성체( 性 體 )로서 진공( 眞 空 )이라 하고 도가의 그 것은 변화를 교묘히 하는 한 기운( 一 氣 )으로서 곡신( 谷 神 )이라 하였다. 천하를 통함은 한 도이고 변화를 교묘히 함은 한 기운이며 만물을 고르게 함은 한 이치이다. 그러나 얕고 깊음이 같지 않으므로 성인의 가르침이 셋으로 처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眞 空 이라 말하니 性 體 를 들어서 말함이요 도교에서는 谷 神 이라 말하니 변화 를 밝혀서 말함이요 유교에서는 大 本 이라 말하니 사물을 의지해서 말함이다.(함허 저/송 재운역, 1984:79) 득통에 의하면 불가에서 성( 性 )은 곧 우주본체로서 모든 만물에 내재해 있는 보편성이다. 유가의 성( 性 )이 현상의 개별적 특수성을 강조하는 것이라면 불교는 만물에 내재한 보편성으로 서의 성( 性 )을 강조함과 동시에 개체가 곧 전체요 전체가 곧 개체인 관계를 강조한다. 불가의 성( 性 )은 모든 현상을 포함하면서도 적연( 寂 然 )히 움직이지 않고 만물의 시작인 동시에 근원이 된다. 도가는 곡신( 谷 身 )으로서 한 기운이 성대하여 영묘하게 발동하고 변화를 일으킨다. 이를 각각 나무에 비유하면 불가는 뿌리, 도가는 싹, 유가는 잎에 해당된다. 땅의 함양하는 것이 진 공이고 종자에서 싹이 트는 것이 곡신이며 가지와 잎으로 구체화되는 것을 대본이라 그는 말하 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 모두 같은 이치로서 단지 그 얕고 깊음에 따라 가르침이 셋으로 나눠진 것에 지나지 않음을 그는 말하였다. - 56 -

표 2 삼교의 性 개념 삼교 性 의 개념 비유 불가 진공: 지극히 깊어 작위함이 없고 지극히 비어 시작이 없고 지극히 신령하여 다함이 없는 만법의 근원 뿌리 도가 곡신: 한 기운이 성대하여 영묘하게 발동하여 조화를 일으키고 형상( 物 )이 나타나는 것을 곡신이라 말함 싹 유가 대본: 현상적으로는 만 가지가 다르나 근본 체성은 한 이치인 대본 가지, 잎 2. 성정본말( 性 情 本 末 )로서 심성 이해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득통은 삼교를 각각 가지, 싹, 뿌리에 비유하면서 이를 한 나무로 결합시켰다. 그러나 득통이 궁극적으로 주장하는 바는 情 을 돌이켜 性 에 들어가는 것 이었고 도가나 유가 모두 심( 心 )과 성( 性 )을 말하지만 불교만큼 지극하지 못함을 말하고자 했다. 특히 득통은 왜 자신이 유교가 지극하지 못하다 하는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른바 근원으로 돌아가는 가르침이라는 것은 情 을 돌이켜 性 에 들어가는 것이다. 性 은 근본이고 情 은 末 이다.... 情 이 末 이 됨은 참을 등지고 유탕하여 분요함이 쉬지 않 으며 티끌을 흡수하여 모양을 삼음으로 혼탁하여 청정하지 않다. 분요하여 쉬지 않기 때 문에 생멸이 서로 연속하고 혼탁하여 청정하지 않기 때문에 물욕이 교폐한다. 물욕을 감 득하면 고뇌가 계속하고 생멸을 감득하면 생사가 응한다. 이것이 그 말이 되는 까닭이 다. 情 으로써 가르침을 삼는 자는 그 윤회의 도일 것이며 性 으로써 가르침을 삼는 자는 그 생사를 벗어나는 도일 것이다. 心 과 性 은 유교, 도교도 또한 말하지 않음이 없으나 그 말한 바가 지극하지 못하다. 지극한 것은 불교이다.(함허 저/송재운 역, 1984:106) 득통은 유교 도교도 심( 心 )과 성( 性 )을 말하나 그 가르침이 지극하지 못한 것이라 하였고 그 이유는 양자 모두 정( 情 )으로써 가르침을 삼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는 참을 등지고 어지 러이 움직여 쉬지 않으며 티끌을 흡수하여 모양을 삼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지러이 움직여 쉬 지 않기 때문에 생멸이 서로 연속하고 혼탁하게 되어 물욕이 교폐하게 된다. 득통은 유가의 말을 인용하여 하늘이 명령한 것을 성( 性 )이라 말하고 만 가지로 다르나 근 본은 하나라고 한 것이 그 성( 性 )을 말함이고 비고 신령함이 어둡지 않아 뭇 이치를 갖추고 만 가지 일에 응한다고 한 것은 그 심( 心 )을 말함이며 사람 마음은 오직 위태롭고 도의 마음은 오 직 은미하니 오직 정미롭고 오직 한결같이 하여 진실로 그 중( 中 ) 을 잡으라 한 것은 그 도( 道 ) 를 말함이라 (함허 저/송재운 역, 1984:100)고 유가를 이해했다. 그러나 문제는 유교에서 말한 성( 性 )은 하늘이 명령한 성( 性 )일 뿐 붓다가 말한 원만대각성 - 57 -

( 圓 滿 大 覺 性 )은 아니며 유교에서 말한 마음은 육체와 함께 생겨났다 사라지는 마음( 肉 團 生 滅 心 ) 일 뿐 불교가 말한 진여청정심( 眞 如 淸 淨 心 )이 아니라는 것이다. 원래 불교에서 말하는 진여청정 심이라는 것은 진리의 본체로서 밝고 참된 지혜( 妙 明 眞 智 )가 세계에 두루 뻗쳐 더불어 평등하 고 맑고 고요하여 순전히 하나 된 마음이다. 마음 거울이 밝게 비추어 걸림이 없으며 확연히 瑩 澈 하여 沙 界 에 두루하여 삼라만상 의 그림자가 하나의 원광 가운데 나타남이 안과 밖이 없다.(함허, 1984:108) 불교는 일체유심조( 一 切 唯 心 造 ) 를 말하기에 마음은 만상을 낳는 근원이 되고 모든 만물의 형체는 그 마음을 받지 않음이 없다. 마음의 선악, 사정( 邪 正 ), 염정( 染 淨 ), 호추( 好 醜 )의 짓는 바 연을 따라서 만물이 각각 그 존재로서 응하기에 사생( 四 生 ) 1), 구류( 九 類 ) 2), 범성( 凡 聖 )이 나 누어지는 까닭이 된다. 마음에 차별이 있기에 지은 것도 또한 차별이 있는데 마음은 인( 因 )이고 지은 바는 과( 果 )가 된다. 백팔 염주를 비유로 들면 백팔은 마음 속 번뇌를 가리키고 구슬은 번 뇌의 다름을, 염주끈은 습기의 이어짐이라 할 수 있다. 마음속에 번뇌가 서로 연속하는 것은 습 기가 이어져 잃어지지 않기 때문이고 환전( 環 轉 )하여 다함이 없는 것은 윤회가 쉬지 않기 때문 이다.(함허 저/송재운 역, 1984:143) 유가( 儒 家 )가 이일분수( 理 一 分 殊 )로서 성( 性 )은 오상의 편 전( 偏 全 )으로 인하여 다름을 논할 뿐이지만 불교의 눈으로 보면 그 성( 性 )이 이미 물들여진 정 ( 情 )임을 주장하게 된다. 득통의 눈으로 보면 유가의 성( 性 )은 그들이 주장하는 바대로 성즉리 ( 性 卽 理 )가 아니라 성즉정( 性 卽 情 )으로서 인의예지의 본성이 곧 말( 末 )에 해당하는 것이 된다. III. 득통 기화의 마음공부론 1. 정혜( 定 慧 )의 마음공부 앎이 가라앉고 생각이 멸하면 오직 고요함과 오직 앎뿐이리니 1) 생명체의 네 가지 출생방식으로 1 사람과 같이 태에서 나는 태생( 胎 生 ) 2 새와 같이 알에서 나는 난 생( 卵 生 ) 3 개구리와 같이 습기에서 나는 습생( 濕 生 ) 4 나비와 같이 홀연히 태어나는 화생( 化 生 )을 말한다. 2) 인도에서는 전통적으로 중생을 九 類 로 나누어 말한다. 구류중생( 九 類 衆 生 )이란 태어나는 방식에 따라 태생 난생 습생 화생, 형태의 유무에 따라 有 色 無 色, 지각의 유무에 따라 有 想 無 想 非 有 想 非 無 想 으로 나눈 것을 말한다. - 58 -

고요한 앎이 그 앞에 나타나면 그는 곧 金 仙 과 같으리. 3) 득통은 마음 수행을 위해 먼저 불가 전통인 정혜( 定 慧 )의 수행을 말하는데 그는 정( 定 )을 물에 비유하고 혜( 慧 )를 달에 비유하였다. 정( 定 )을 물이라 한 것은 물이 한 곳에 그치는 성 질에 비유함이다. 마음은 물과 같아서 고무되고 요동치게 하면 그 작용이 곧 흩어지지만 물을 안정시키고 그치게 하면 그 작용이 곧 고요하고 완전하다. 완전하여 맑고 깊으면 천심( 天 心 )에 계합하고 요동하여 파도가 일면 영상이 혼미해진다. 정( 定 )의 공부란 잡되게 쓰는 마음이 없고 외부 티끌이 요동해도 침범할 수 없어 본지풍광이 이로부터 발현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또한 혜( 慧 )를 달에 비유한 것은 밝게 비추이는 성질을 말하고자 함이다. 그 밝게 비추임은 곧 정각( 正 覺 )을 말하는데 지혜의 눈이 밝게 열리면 바른 길이 목전에 있게 되어 칠흑 같은 어두운 밤 이 반대로 된다. 그러나 어둠이 밝음을 여의지 않으며 밝음이 어둠을 여의지 않기에 가리고 비춤이 동시로 행해진다. 보살의 淸 凉 月 이 항상 法 性 空 에 노닌다. 중생의 마음이 물처 럼 밝으면 보리가 그 가운데 그림자처럼 나타나리라 (함허 저/송재운 역, 1984:146-147)함이 그것이다. 혜( 慧 )는 곧 성공( 性 空 )의 달이다. 이와 같이 득통은 정과 혜를 고요함 과 비춤 으로 간주하고 있고 마음의 고요함과 밝게 비추임의 공부를 근간으로 삼고 있다. 기화에 의하면 달 로 비유되는 혜( 慧 )는 곧 반야로서 이는 어떠한 모습이나 이름으로 규정될 수 없기에 무( 無 )라 고 일컫지만 그 작용성의 관점에서 보자면 무( 無 )라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반야를 여기에서는 지혜라고 번역한다. 어찌하여 지혜라고 이름하는가? 허공은 설법 과 청법을 요해하지 못한다. 사대도 설법과 청법을 요해하지 못한다. 지금 눈앞에 분명 하게 홀로 밝으면서 모양을 띠지 않는 것이 있는데 설법하고 청법할 수 있는 능력이 있 다. 이 설법하고 청법하는 하나의 孤 明 은 하늘에 빛나고 땅을 비추며 과거에 빛나고 오 늘에 이르며 다니고 머물고 앉고 눕는 행위와 말하고 침묵하고 움직이고 가만히 있는 모든 때 모든 곳에서 밝고 신령스러워 뚜렷하게 항상 안다. 이것이 반야로 불리게 된 까 닭이다. 결정적으로 무( 無 )라 한다면 본성이 스스로 信 解 를 가지고 있으며 결정적으로 유( 有 )라 한다면 찾아보아도 자취를 찾을 수 없다. 이 때문에 神 이라 한다.(득통, 한불전, 7:11 中 ) 득통은 인간의 본성이란 곧 무( 無 )이면서 스스로 신해( 信 解 )를 갖추고 있는 유( 有 )이다. 그 러면서도 이는 자취가 없기에 신( 神 )으로도 명명하였다. 반야의 마음 역시 그러하다. 반야가 반야인 것은 고요하면서도 항상 비추고 비추면서도 항상 고요하여 고요함과 비춤이 동시에 성 립하고 비추는 작용이 언제나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지눌이 말한 공적영지의 마음과도 3) 涵 虛 和 尙 語 錄, 識 沉 想 滅 唯 寂 唯 知 現 前 卽 同 金 仙. - 59 -

같다. 공적영지는 비록 분별의 識 이 아니고 증오의 智 도 아니지만 또한 식과 지를 낳을 수 있다. 혹은 범부이기도 하고 혹은 성인이기도 하며 선을 짓기도 하고 악을 짓기도 한다. 순종하고 어긋나는 작용이 그 세가 만단으로 변한다. 그러한 까닭은 체가 知 이기 때문에 여러 연을 대할 때에 모든 시비호오 등을 분별할 수 있는 것이다.(지눌, 한불전4:757 上 ) 자기 안의 공적한 진심은 본래 청정하고 밝고 신령스러워 유 무( 有 無 )가 일치해 있다. 그러므로 유무를 떠나면서도 유무를 겸비한 고요함과 비춤을 득통은 신( 神 )이라 하고 불성이라 하고 여래장이라 하는 것이다.(박해당, 1996:6) 인간의 마음은 공적하면서도 신령한 앎이 있다. 이 지혜를 반야라 하고 불성이라 하는 것인데 정혜의 마음공부는 마음의 고요함과 밝게 비추는 마음의 영명한 지혜를 찾아가는 방법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마음이 고요하면 지혜가 드러나듯 이 정과 혜는 분리될 수 없는 공부이다. 2. 유불결합의 마음공부론 가. 덕행의 교화와 심복( 心 服 ) 득통 기화는 유가의 개인 수양에 해당하는 격물 치지 성의 정심( 格 物 致 知 誠 意 正 心 )을 불 교의 틀에 담아 情 을 닦아 본성을 회복한다 는 수양론과 일치시키고 대승기신론 적 입장에서 성( 性 )을 무정( 無 情 )으로 놓고 정( 情 )은 성( 性 )에서 생겨나는 선악염정( 善 惡 染 淨 )으로 개념 지었 다. 이는 앞의 II장에서 유가의 성( 性 )이 불가처럼 원만대각성은 아니라고 비판한 바 있지만 성 ( 性 )을 다시 무정( 無 情 )으로 해석하여 불교적 논리로 설명해 가는 그의 면모를 볼 수 있다. 體 에는 有 無 가 없으나 有 無 에 통하며, 有 無 는 性 情 에서 기인한다. 性 은 본래 無 情 이 고 米 性 이 情 을 낳고 情 이 생김에 智 가 隔 해지고 想 이 변하여 體 가 드러나니 萬 象 이 형 상된다. 情 에는 染 淨 과 善 惡 이 있고 淨 과 善 은 聖 이 흥하는 바이며 染 과 惡 은 凡 이 짓는 바이다. 情 이 만약 생겨나지 않으면 凡 과 聖 은 모두 興 할 수 없는 것이다. 菩 薩 은 性 은 비록 이미 깨달았으나 情 은 오히려 다하지 못하는 바가 있는 까닭에 覺 有 情 이라 칭한 다. 4) 4) 顯 正 論, 體 非 有 無 而 通 於 有 無 有 無 因 於 性 情 也... 性 本 無 情 迷 性 生 情 情 生 智 隔 想 變 體 殊 萬 象 所 以 形 也... 夫 情 也 有 染 淨 焉 有 善 惡 焉 淨 與 善 聖 之 所 以 興 也 染 與 惡 凡 之 所 以 作 也 故 知 情 若 不 生 則 凡 之 與 聖 悉 無 得 而 興 焉 菩 薩 性 雖 已 覺 而 情 猶 有 所 未 盡 故 稱 之 云 覺 有 情 也. - 60 -

대승기신론 의 일심이문에서 일심이 생멸문과 진여문에 통하고 진여가 무명으로 인하여 발현되듯이 득통 또한 성( 性 )과 정( 情 )을 진여와 생멸의 관계로 놓아 성( 性 )이 미혹(무명)에 의 하여 정( 情 )이 생기고 체가 드러난다 하였다. 정( 情 )이 생겨나지 않으면 범인도 성인도 없는 것 이고 원래 깨달은 자도 정( 情 )을 다하지 못하기에 각유정( 覺 有 情 ) 이라 말하는 것이다. 정( 情 )이 성( 性 )에서 생겨남은 구름이 하늘에서 일어남과 같고, 정( 情 )을 떠나 성( 性 )을 밝힘 은 구름이 걷히어 푸른 하늘이 나타남과 같다. 정( 情 )에 얕고 두터움이 있음은 구름에 맑고 흐 림의 차이가 있는 것과 같고 구름에 맑고 흐림의 차이가 있으나 하늘의 빛을 가리우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 구름이 일어남에 해와 달이 빛을 빼앗겨 천하가 어두워지고 구름이 걷힘에 빛이 온 세계를 비추어 우주가 확연해 진다. 이는 마치 청명한 바람이 떠도는 구름을 쓸어감과 같다. 그러나 그 보이는 바를 넓히고자 하면서도 청풍( 淸 風 )을 싫어하는 것은 인간의 미혹( 迷 惑 )이며 나와 타인을 깨끗하게 하고자 하면서도 이 도( 道 )를 싫어하는 것은 잘못 5) 이라 하였다. 특히 득통은 유자들이 불교가 허원적멸( 虛 遠 寂 滅 )의 도라 비판하는 것에 대하여 불교는 결 코 허무적멸이 아니라 유 무( 有 無 ) 일치의 적조( 寂 照 )라 항변하면서 유가의 명덕( 明 德 ) 수행 은 불가의 묘정명심( 妙 精 明 心 )에 해당하고 유가의 적연부동 감이수통( 寂 然 不 動 感 而 遂 通 )은 곧 불가의 적조( 寂 照 )이기에 유교와 불교가 크게 다른 것이 아니라 반론하였다. 6) 불교가 지향하는 마음공부의 궁극적 목표는 허무적멸을 일삼아 텅 빔 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꽃이 피어 온 세계를 환히 비춤 에 있다는 것이다. 소위 虛 遠 寂 滅 이라는 말은 三 藏 十 二 部 중에서 어느 경전에 근거하여 말한 것인가? 圓 覺 經 에 이르기를 마음의 꽃이 피어 온 세계를 환히 비춘다. 라고 하였으니 한결같이 寂 滅 로 향하고 있다 함이 옳은 것인가? 儒 家 의 소위 明 德 은 佛 家 의 이른바 妙 精 明 心 이 다. 소위 寂 然 不 動 이라는 것은 감응하며 마침내 통하는 것이니 곧 佛 家 의 이른바 寂 照 라 는 것이다. 7) 득통 기화에 있어서 성( 性 )은 본래 무정( 無 情 )이고 미성( 迷 性 )에 의해 정( 情 )이 생겨난다. 이 는 성리학의 성 정( 性 情 )개념과는 다른 이해 방식이다. 8) 대승기신론 에서 말하는 체( 體 ) 5) 顯 正 論, 情 生 於 性 猶 雲 起 於 長 空 去 情 顯 性 猶 雲 開 而 現 大 淸 也 情 有 薄 者 焉 有 厚 者 焉 猶 雲 有 淡 者 焉 有 濃 者 焉 雲 有 濃 淡 之 異 而 掩 天 光 則 一 也 情 有 厚 薄 之 殊 而 礙 性 明 則 同 也 雲 起 也 日 月 收 照 而 天 下 暗 然 也 雲 開 也 光 被 大 千 而 宇 宙 廓 如 也 雲 起 也 日 月 收 照 而 天 下 暗 然 也 雲 開 也 光 被 大 千 而 宇 宙 廓 如 也 佛 敎 比 之 則 若 淸 風 之 掃 浮 雲 也 欲 所 見 之 廓 如 而 厭 淸 風 者 惑 矣 欲 自 他 之 淸 泰 而 厭 吾 道 者 失 矣. 6) 득통은 유가가 주장하는 바와 유자들이 불교를 비판하는 견해를 조목조목 들어 이를 유가적 담론으로 불교를 설명하였다. 특히 당시 유자들은 충과 효의 문제, 윤회의 문제, 보응의 문제, 보시의 문제, 출가 의 문제 등을 제기했는데 그의 현정론 은 이들 유자들의 비판에 대한 답변이자 반론이라 할 것이 다. 7) 顯 正 論, 所 謂 虛 遠 寂 滅 之 言 三 藏 十 二 部 中 據 何 典 而 言 歟... 圓 覺 云 心 花 發 明 照 十 方 刹 一 向 謂 之 寂 滅 可 乎... 儒 之 所 謂 明 德 卽 佛 之 所 謂 妙 精 明 心 也 所 謂 寂 然 不 動 感 而 遂 通 卽 佛 之 所 謂 寂 照 者 也. - 61 -

상( 相 ) 용( 用 ) 삼대 가운데 체( 體 )와 상/용( 相 / 用 )에 해당하는 것이 득통이 이해한 성( 性 )과 정 ( 情 )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情 은 性 에서 생겨난다. 고 한 것과 같이 성( 性 )에 수반되어 생겨난 정( 情 )을 수행을 통해 닦아나갈 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다. 불교는 유자들이 비판하는 것처럼 허무적멸의 도가 아니라 유무 일치의 적조( 寂 照 )임을 득통은 강조하였다. 더 나아가 그는 유불 도 삼교가 지니는 각각의 근본 이치 즉 도교의 무위 무불위( 無 爲 無 不 爲 )/ 유교의 적연부동( 寂 然 不 動 )과 감이수통( 感 而 遂 通 )/ 불교의 적( 寂 )과 조( 照 )의 이치가 서로 부합하는 것이라 하여 삼 교를 회통시켰다. 말한다. 도교 및 유교 불교는 같고 다름과 우열이 어떠한가? 말한다. 도교에서 無 爲 而 無 不 爲 當 有 爲 而 無 爲 라고 하였고 불교에서는 寂 而 常 照 照 而 常 寂 이라 하였으며 공 자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대저 易 이라는 것은 無 思 이며 無 爲 이니 寂 然 히 不 動 하며 감응 하여 마침내 통한다. 라고 하였다. 대저 寂 然 이라는 것은 일찍이 無 感 함이 없으니 곧 寂 而 常 照 이다. 感 通 이라는 것은 일찌기 不 寂 함이 없으니 곧 照 而 常 寂 이다. 無 爲 而 無 不 爲 는 곧 寂 而 常 感 이다. 有 爲 而 無 所 爲 는 곧 感 而 常 寂 이다. 이것에 의거한다면 三 家 의 말하는 바가 그윽한 가운데 서로 符 契 하며 한 입에서 나오는 것과 같다. 9) 득통은 만약 사람을 가르치되 정( 情 )을 떠나 성( 性 )에 의지하여 수양하게 하면 마음은 능히 바르게 될 수 있고 몸은 능히 닦여질 수 있어 능히 제가치국평천하( 齊 家 治 國 平 天 下 ) 할 수 있 다 하였다. 마음의 밝음이 온 세계를 비추듯이 깨달은 청정심의 마음으로 인간과 세상과의 관 계를 맺고 그 밝음을 행하면 수신제가치국평천하( 修 身 齊 家 治 國 平 天 下 )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와 같이 하면 세상이 다스려지지 않는 바는 없다 10) 고 득통은 말한다. 이는 유자( 儒 者 )들 이 불교에는 통치규범이 없다는 공격에 대한 대응이라 할 수 있고 득통 나름대로 사회 통치를 염두에 둔 증거라 할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는 성( 性 )에 의지하여 마음을 밝히는 공부가 유가의 규범적 덕행( 德 行 )이나 형정( 刑 政 )을 통해 인간을 교화하고 통치하는 것보다 더 근본적 인 것임을 강조하였다. 논어에 이르기를 정사로써 인도하고 형벌로써 다스린다면 인민은 나쁜 일을 하지 않 지만 진정 마음속으로 부끄러워할 줄은 모른다고 했으며 덕으로써 인도하고 제도( 禮 )로 8) 성리학에서 성( 性 )은 리( 理 )로서 인의예지를 일컫고 정( 情 )은 기( 氣 )로서 칠정( 七 情 )을 일컫는다. 성( 性 ) 과 정( 情 )은 이원화되어 있다. 9) 顯 正 論, 曰 老 與 儒 釋 同 異 優 劣 如 何 曰 老 之 言 曰 無 爲 而 無 不 爲 當 有 爲 而 無 爲 釋 之 言 曰 寂 而 常 照 照 而 常 寂 孔 之 言 曰 夫 易 無 思 也 無 爲 也 寂 然 不 動 感 而 遂 通 夫 寂 然 者 未 嘗 無 感 卽 寂 而 常 照 也 感 通 者 未 嘗 不 寂 卽 照 而 常 寂 也 無 爲 而 無 不 爲 卽 寂 而 常 感 也 有 爲 而 無 所 爲 卽 感 而 常 寂 也 據 此 則 三 家 所 言 冥 相 符 契 而 如 出 一 口 也. 10) 顯 正 論, 若 敎 人 人 依 此 而 修 之 則 心 可 得 而 正 矣 身 可 得 而 修 矣 可 以 齊 家 可 以 治 國 可 以 平 天 下 矣... 苟 如 是 而 世 不 治 未 之 有 也 - 62 -

써 다스린다면 인민은 부끄러워할 줄 알면서 자발적으로 그 의무를 다하게 된다고 했다.... 인민을 정사로써 인도하고 형벌로써 다스린다면 반드시 덕행이 있기 마련이므로 상벌 은 국가의 제일 중요한 정책이 된다고 하였다. 한편 인민에게 시키지 않아도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아무 말 없어도 믿음을 주는 것, 즉 덕행은 참으로 우리 부처의 교화요 이어 이 방법 외에도 인과로써 교시할 수도 있다. 상과 벌로 교시한다면 더러 겉으로는 복종 하는 체하면서 마음속으로 배반하지만 인과로써 교시하면 진정코 심복하게 됨은 우리가 늘 목도하는 바대로의 세상 인심인 것이다. 왜냐하면 인민에게 상을 주면서 선한 일을 권고하고 벌을 주면서 악한 일을 말린다면 악한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위엄이 두 려워서 하지 않는 것이고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상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것이기에 겉 으로만 따르는 체할 뿐이지 진정 마음의 복종은 아닌 것이다.... 이에 심복하지 않는 사 람들은 또다시 상과 벌로써 교도해서 점차로 개선해서 따르게 만들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기에 인과를 교시하는 방법 이외에 상과 벌로써 가르치는 방법도 있으니 일러 섭수 하는 사람에게는 섭수토록 하고 절복하는 사람에겐 절복토록 한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 다. 이는 유교에도 가까운 것이니 이로써 유교와 불교는 모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다.(권기형 역, 1972: 370-371) 11) 유가가 사람들을 교화하는 것은 곧 덕행이나 형정으로서 이는 나라를 다스리는 근간이 된 다. 하지만 백성들이 이를 지켜 형벌을 면하는 것은 눈앞에서의 복종에 불과하다는 것이 득통 의 반론이다. 불교는 인과( 因 果 )의 이치를 보여 덕행을 유도하는데 이는 시키지 않아도 모든 것 이 이루어지고 아무 말 없어도 믿음을 주는 덕행이라 하였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불교의 교 화요 마음으로 따르는 심복( 心 服 )의 가르침이라 주장하였다. 그러나 득통은 모든 사람을 다 심 복시킬 수 없고 심복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그러한 사람은 잠시 상벌( 賞 罰 )로서 이끌어 점차 심복으로 유도할 수 있음을 그는 부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유교와 불교 모두 폐할 수 없는 것 이라 그는 결론짓고 있다. 12) 나. 만물일기( 萬 物 一 己 )의 도덕 실천: 인간중심에서 만물중심으로의 마음공부 의서( 醫 書 )에서는 손과 발이 저리면 기운이 통하지 못하는 것을 불인( 不 仁 )이라 하였다. 득 통에게 있어 인( 仁 )이란 천지만물이 일체로 융화되어 틈이 없는 것을 말한다. 어진 사람은 천지 11) 顯 正 論, 故 云 導 之 以 政 齊 之 以 刑 民 免 而 無 耻 導 之 以 德 齊 之 以 禮 有 耻 且 格 夫 導 之 以 德 齊 之 以 禮... 德 行 導 之 以 政 齊 之 以 刑 則 未 免 有 賞 罰 故 云 賞 罰 國 之 大 柄 也 夫 默 而 成 之 不 言 而 信 固 吾 佛 之 化 也 而 兼 以 因 果 示 之 示 之 以 賞 罰 則 或 不 過 面 從 而 已 示 之 以 因 果 則 服 乃 心 服 也 今 於 世 上 目 覩 其 然 也 何 則 若 勸 之 以 賞 禁 之 以 罰 則 止 惡 者 畏 其 威 而 止 之 爲 善 者 利 其 賞 而 爲 之 故 其 從 化 也 面 從 而 已 非 心 服 也.... 其 未 能 心 服 者 則 姑 以 賞 罰 而 導 之 使 駸 駸 然 心 悅 而 誠 服 也 故 示 之 以 因 果 之 外 亦 有 賞 罰 之 訓 存 焉 所 謂 應 攝 受 者 而 攝 受 之 應 折 服 者 而 折 服 之 是 也 此 則 近 於 儒 也 所 以 儒 與 釋 皆 不 可 廢 也. 12) 顯 正 論, 雖 然 安 得 使 人 人 皆 可 以 心 服 也 其 未 能 心 服 者 則 姑 以 賞 罰 而 導 之 使 駸 駸 然 心 悅 而 誠 服 也... 所 以 儒 與 釋 皆 不 可 廢 也. - 63 -

만물을 진심으로 자기 몸처럼 생각하고 이 이치를 잘 파악한 사람은 미미한 생물도 해치지 않 아서 어진 사람의 도를 얻는다. 13) 또한 만물은 모두 영명( 靈 明 )함을 하늘로부터 부여받았기에 생명을 좋아하고 사람 역시 살생을 싫어하는 정( 情 ) 또한 사람마다 다름이 없다 14) 고 득통은 말 한다. 이러한 영명한 마음은 참된 밝음( 眞 明 ) 으로서 형체를 따라서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형 체를 따라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이 영명한 마음은 비록 천변만화( 千 變 萬 化 )하더라도 담연( 湛 然 )히 홀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 마음을 득통은 곧 천심( 天 心 )으로 부르는데 이는 두 가지로 구체화된다. 하나는 견실심( 堅 實 心 ) 이요 또 다른 하나는 육단심( 肉 團 心 )이다. 육단심이라는 것은 혼백( 魂 魄 )의 정수( 精 髓 )이며 견실 심( 堅 實 心 )이라는 것은 바로 참되고 밝은( 眞 明 ) 마음을 일컫는다. 태어남은 마음과 형체가 함 께 받는 것이고 죽음은 형체만이 홀로 받는 것이다. 마음은 몸의 주인이고 형체란 마음이 부리 는 것이다. 선악 등은 참되고 밝은 마음이 주재하여 신하인 형체가 짓는 것에서 비롯된다. 득통은 이러한 견실심의 진명( 眞 明 )한 마음이 유가에서도 말해진 바라 하였다. 詩 經 에 이르기를 文 王 이 계단을 내려와 황제의 좌우에 있다. 고 하였으니 내려온 것이 어찌 天 靈 이 아 니겠는가? 15) 라고 득통은 반문한다. 득통은 천지만물이 하나로 융화되는 마음을 이름하여 영명 한 마음이라 불렀고 이를 진명( 眞 明 ), 혹은 유가적 표현으로 천심( 天 心 )/천령( 天 靈 )으로서 지칭 했다. 득통은 불가에서 말하는 참되고 밝은 마음( 眞 明 )과 유가의 천령( 天 靈 )이 다르지 않음을 강 조하면서 양자 모두 영명한 마음이기에 살생을 싫어하는 것이라 하였다. 유자가 불교의 불살생 을 비판하지만 유가 역시 만물일체, 천지부모를 주장하는 것이니 불살생을 지켜야 옳다는 것이 다. 그는 유가 경전 書 經 에서 天 地 는 만물의 부모이며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니 성실무망 ( 誠 實 無 妄 )한 총명이 군왕이 되었고 군왕이 백성의 부모가 되었다. 16) 는 글귀를 인용하여 유가 역시 천지부모의 마음으로서 천심( 天 心 )에 기초해 있음을 주장하였다. 즉 천지가 이미 만물의 부모가 되었으니 천지의 사이에서 생겨나는 것은 모두 천지의 자식이라는 것이다. 17) 천지와 만물의 관계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와 같고 자식에게 어리석고 지혜로움의 차이가 있는 것은 사람과 만물에게 밝음( 明 )과 어두움( 昧 )의 차이가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부모는 비 록 자식이 어리석고 불초하다고 할지라도 그를 사랑하고 그를 불쌍히 여겨서 오히려 제대로 키 13) 顯 正 論, 醫 書 以 手 足 痿 痺 爲 不 仁 蓋 手 足 一 身 之 微 者 也 雖 微 病 焉 則 氣 不 通 矣 仁 也 者 天 地 萬 物 融 爲 一 體 而 無 所 間 然 之 謂 也 深 體 此 理 者 則 雖 微 物 未 嘗 有 所 加 害 也 可 謂 得 仁 人 之 道 矣. 14) 顯 正 論, 物 皆 如 是 同 稟 靈 明 至 於 好 生 惡 殺 之 情 亦 何 嘗 異 於 人 哉. 15) 顯 正 論, 若 固 有 之 眞 明 則 不 隨 形 生 不 隨 形 謝 雖 千 變 萬 化 而 湛 然 獨 存 也 天 心 有 二 曰 堅 實 心 曰 肉 團 心 肉 團 心 者 魂 魄 之 精 也 堅 實 心 者 眞 明 之 謂 也 今 所 謂 心 者 眞 明 也 非 肉 團 也 夫 心 者 身 之 主 也 形 者 心 之 使 也 善 惡 等 事 心 君 命 之 形 臣 作 之 至 於 報 應 生 則 君 臣 等 受 死 則 形 臣 已 謝 而 心 君 獨 受 詩 云 文 王 陟 降 在 帝 左 右 陟 降 之 者 豈 非 在 天 之 靈 乎. 16) 顯 正 論, 惟 天 地 萬 物 父 母 惟 人 萬 物 之 靈 亶 聰 明 作 元 后 元 后 作 民 父 母 17) 顯 正 論, 曰 暴 殄 天 物 聖 人 之 所 不 與 也 況 天 道 至 仁 豈 令 人 殺 生 以 養 生 哉 書 云 惟 天 地 萬 物 父 母 惟 人 萬 物 之 靈 亶 聰 明 作 元 后 元 后 作 民 父 母 天 地 旣 爲 萬 物 之 父 母 則 生 乎 天 地 之 間 者 皆 天 地 之 息 也. - 64 -

우지 못할까 걱정하는 것인데 하물며 해를 더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18) 그러므로 기르던 것 을 살생하는 것은 형제를 죽여서 자신을 기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득통은 반론했다. 또한 형 제를 죽여서 스스로의 양분으로 삼는다면 부모의 마음이 어떠하겠느냐? 고 반문하면서 사람과 만물이 서로 해하는 것이 어찌 하늘의 뜻이겠느냐고 비판하였다. 천지동근( 天 地 同 根 ), 만물일체 ( 萬 物 一 體 )는 불교가 주장하는 말이지만 유가 역시 仁 者 는 천지만물로 一 己 를 삼는다 했으니 유가 역시 이를 실천을 해야 인( 仁 )의 道 를 다하게 될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사람과 만물은 이미 같이 천지의 氣 를 받았고 또한 같이 천지의 理 를 받았으니 천지 의 사이에 함께 태어나 이미 하나의 氣 와 하나의 理 를 稟 賦 받은 바 되었으니 어찌 殺 生 하여서 養 生 하는 理 가 있겠는가? 만약 천지와 내가 같은 뿌리이고 만물과 내가 일체라 고 하면 이것은 釋 氏 의 말이다. 仁 者 는 천지만물로서 一 己 로 삼는다고 말하면 이것은 儒 者 의 말이다. 행함에 있어 한결같이 그 말과 같이 한 연후라야 바야흐로 仁 의 道 를 다하 는 것이다. 19) 득통이 실천에 있어서 만물일기( 萬 物 一 己 )의 도덕을 강조하는 것은 유가의 영향이다. 원래 불교는 도덕이나 규범을 전면에 내세우기 보다는 선악( 善 惡 ), 성속( 聖 俗 )을 넘어서는 자유의 경 지를 예찬한다. 그러나 불가가 도덕적 관심이 없다는 유가의 비판에 부응해서 득통은 도덕적 실천을 마음공부로 이끌어내 그 덕행의 실천을 만물일기의 실천으로 제시했다. 이는 유가가 덕 행을 강조하지만 진정한 덕행은 만물일기( 萬 物 一 己 )의 실천에 있음을 그는 주장하는 것이고 불 교적 가르침을 유가적 담론으로 덧씌우는 것이다. 유가의 실천이 삼강오륜의 인간관계를 중심 한 덕목이라면 득통이 새롭게 강조하는 것은 우주중심적/만물중심적 덕목이다. 이는 분명 불교 적 가르침의 연장이라 할 것이지만 동시에 유가로부터 덕행의 실천을 배워 이를 마음공부에 포 함시킨 유불결합의 영향이라 할 것이다. 득통은 논어 에서 사람이 능히 도를 넓힐 수 있으나,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은 아니 다. ( 人 能 弘 道 非 道 弘 人 也 )는 말을 주목하여 불교도 도덕에 적극적임을 표출하였다. 사람은 도 때문에 존경받고 도는 사람에 의해 넓혀지나니 만일 사람이 넓히지 않으면 18) 顯 正 論, 天 地 之 於 物 也 猶 父 母 之 於 子 也 子 有 愚 智 之 殊 猶 人 與 萬 物 之 有 明 昧 也 父 母 之 於 子 也 雖 愚 不 肖 亦 愛 而 愍 之 猶 恐 不 得 其 養 焉 況 其 加 害 乎. 19) 顯 正 論, 殺 生 養 生 如 殺 同 息 以 自 養 也 殺 同 息 以 自 養 則 於 父 母 之 心 爲 如 何 哉 子 之 相 殺 非 父 母 之 心 也 人 物 之 相 殘 豈 天 地 之 意 乎 人 與 萬 物 旣 同 得 天 地 之 氣 又 同 得 天 地 之 理 而 同 生 於 天 地 之 間 旣 一 氣 一 理 之 所 賦 焉 有 殺 生 養 生 之 理 哉 如 云 天 地 與 我 同 根 萬 物 與 我 一 體 此 釋 氏 之 言 也 仁 者 以 天 地 萬 物 爲 一 己 此 儒 者 之 言 也 爲 行 一 如 其 言 然 後 方 盡 仁 之 道 矣. - 65 -

그 도는 넓어질 길이 없으리 세상을 이롭게 하고 도를 넓히는 것 그것이 우리 집의 사업이니라. 내 비록 지혜롭지 못하나 이로써 스스로 힘쓰는 것이다. 덕이란 외로이 서는 것 아니요 이치는 함께 껴잡아야 하나니 그대는 스스로 마음을 다잡아 서로서로들 협력하게 하라. 20) 사람이 도를 넓혀야만 도가 넓어지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임을 득통은 강조하면서 불교 역 시 이를 사업으로 하는 바요 자신 역시 이에 힘쓰는 바라 하였다. 이렇게 주장하는 데에는 그 가 유교만 도덕에 힘쓰는 것이 아니라 불교 역시 이를 주된 사업으로 삼고 있음을 강조하는 것 이고 이는 결과적으로 도덕의 실천 문제를 자신의 마음공부에 끌어들였다는 것이 된다. 득통은 도덕의 실천 문제에 있어서 유가( 儒 家 )와 더불어 도가( 道 家 )의 도덕 역시 검토하고 있다. 공자의 베개와 안자의 표주박에는 다 같이 즐거움이 있었고 요 임금이 전하고 순 임금 이 받은 것 모두 마음 전한 것이다. 장자 노자는 취할 만한 것 없다고 말하지 말라 염 담( 恬 湛 )하고 청허하기는 고금에 으뜸이네.... 범부로 있을 때 스스로 비굴한 것은 오직 물질을 따라다녔기 때문이니 다만 욕심만 내지 않으면 그 마음이 바로 부처였네. 21) 편안함을 즐기고 마음이 비고 맑은 것에는 도가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 득통의 평이다. 그러 나 그가 보다 중시하는 것은 인간중심의 仁 에서 우주중심의 仁 으로 도덕을 재확립하는 것이었 다. 천도는 지극히 어진 것( 仁 )이고 천지는 만물의 부모이며 어진 사람은 천지 만물을 자기와 한 몸으로 여기는 것이라 득통은 말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유가의 도이고 유자들은 이를 지켜야 도( 道 )에 충실할 것이라 충고했다. 진정 어진 사람은 아주( 鵝 珠 ) 22) 와 초계( 草 繫 ) 23) 같은 20) 涵 虛 和 尙 語 錄, 人 爲 道 宗 道 假 人 洪 人 若 不 洪 道 無 由 洪 利 世 弘 法 吾 家 事 業 吾 雖 不 敏 以 是 自 黽 德 不 孤 立 理 宜 同 攝 君 乎 自 忞 遞 令 相 協. 21) 涵 虛 和 尙 語 錄, 孔 枕 顔 瓢 同 有 樂 堯 傳 舜 受 共 傳 心 莫 言 莊 老 無 堪 取 恬 湛 淸 虛 盖 古 今... 凡 自 屈 只 因 遂 物 但 不 生 情 卽 心 是 佛. 22) 어느 주인이 자기 집에 탁발 온 중에게 곡식을 줄 때 그 집오리가 와서 주인의 손에 있는 구슬을 삼 켜버렸다. 구슬이 중의 붉은 가사에 비추어져서 붉은 색을 띄었기 때문에 이 집 주인은 시각의 착란을 일으켜 오리가 구슬 삼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조금 후에 구슬이 없어진 것을 안 주인은 중이 훔쳐갔 다고 난타했다. 그러나 중은 아무 말이 없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주인은 옆에서 꺽꺽거리는 오리가 삼 - 66 -

인물로서 이들처럼 만물일기를 실천해야 진정 어진이라 할 수 있고(권기형 역, 1972: 375) 만약 만물을 자기와 한 몸으로 여기지 못한다면 유자들이 아무리 인( 仁 )의 도를 말해도 어진 인간이 될 수 없다 하였다. 24) 득통은 이상과 같이 유자들의 공격처럼 불교의 마음공부가 고원( 高 遠 )한 것이 아니라 유가 와도 공통점이 많음을 주장했다. 또한 공자가 의도하지 말며 기필하지 말고 고집하지 말며 나 를 없이 하라. 25) 고 말하고 또 易 에 이르기를 등지고 멈춰 서서 그 몸을 볼 수 없음은 무아( 無 我 )요 그 뜰에 들어가도 그 사람을 볼 수 없음은 무인( 無 人 )이다. 라 한 것을 들어 만물일기 ( 萬 物 一 己 )와 무아( 無 我 )의 실천이 동전의 양면임을 강조했다. 무아무인( 無 我 無 人 )하다면 내가 없고 남도 없는데 어떤 허물이 있을 것이냐는 것이었다. 붓다 역시 나를 없게 하고 남을 없게 하여 일체의 善 法 을 닦는다면 菩 提 를 얻을 것이다. 라고 하였으니 공자와 부처 양자 모두 세상 은 달리 하였지만 그 마음은 같이 한 공부라 하였다.(권기형 역, 1972: 390) IV. 결론 조선 선불교가 삼교합일의 사상을 제기한 것은 중국 송대의 경우처럼 시대적인 배경 요인 이 크다. 고려 말 불교는 부패했고 허무적멸로 흐르는 경향이 컸다. 숭유억불의 시대에 유자들 의 불교 배척과 비판에 대한 불교의 대응은 미약했다. 그러나 득통 기화가 불교에 대한 변론을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유교의 허점들을 비판하면서 유불도 삼교결합을 시도한 것은 한국 사상전 통의 맥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할 것이다. 득통 기화는 자신의 스승이었던 무학대사와는 달리 저술을 많이 남겼던 인물이자 유불도 삼교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이론화한 사람이다. 그는 유 불 도의 근본 가르침을 각각 대본( 大 本 ), 진공( 眞 空 ), 곡신( 谷 神 )이라 말했다. 대본이란 삶의 강령을 의미하고 진공( 眞 空 )은 유/무( 有 / 無 )를 겸하면서도 유무를 떠난 본체이며 곡신은 생성과 변화를 의미한다. 득통은 불가를 뿌리, 도가를 싹, 유가를 잎에 비유했다. 유교는 드러난 자취를 전공하고 불교는 근본 본체에 계합하 키지 않았나 의심해서 오리를 잡아 배를 갈랐다. 과연 그 속에서 구슬이 나왔다. 이 중이 오리가 구슬 을 삼켰다고 말하지 않았던 것은 주인이 그 오리를 죽일까 두려워해서인 것이다. 이 중을 사람들은 아 주( 鵝 珠 )라고 불렀다. 23) 어느 중이 길가다가 도둑을 만나 지니고 있던 물품을 모두 빼앗기고 나선 도둑들에게 무성한 풀로 손 발을 꽁꽁 묶였다. 도둑들이 달아난 뒤에도 이 중은 자기 힘으로 묶인 풀을 풀 수 있는데도 가만히 있 었다. 마침내 지나가던 사람이 풀어 주었다. 왜 스스로 풀지 않았는가? 물으니 자기 몸을 풀려다보면 풀이 뜯겨지기 때문이라 하였다. 이 중을 사람들은 초계( 草 繫 )라고 불렀다. 24) 인간은 다른 생명을 먹지 않고는 삶을 유지할 수 없다. 그러나 만물일기의 도덕은 다른 생명을 취하더 라도 먼저 그 생명에게 감사하고 되도록이면 생명을 아끼고 살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대할 것이다. 25) 論 語, 子 罕, 子 絶 四 毋 意 毋 必 毋 固 毋 我 - 67 -

며 이 양자를 붙여주는 것이 도교라 하였다. 이러한 삼교관에 따른 득통의 마음공부론은 전통 선불교의 정혜( 定 慧 ) 공부에 기초해 있으면서도 덕행의 교화와 심복( 心 服 ), 그리고 만물일기( 萬 物 一 己 )의 실천으로 집약됨을 볼 수 있다. 선불교적 전통의 일반적인 공부는 간화선이나 정혜쌍 수, 혹은 염불선을 꼽을 수 있고 득통 역시 이에 근간을 두고 있지만 유가의 교화나 덕행의 실 천을 참고하고 있음이다. 득통은 유가 이데올로기 사회에서 불교가 생존할 수 있는 방편을 삼 교결합에서 찾았다 할 수 있고 유가의 현실주의에 영향을 받아 도덕과 규범을 주목하여 자신의 마음공부론에 이를 끌어들였다 할 것이다. 그동안 불교는 경계를 없애고 분별을 떨쳐 깨닫고자 하는 것을 주된 마음공부로 삼았다. 득 통 역시 주된 마음공부는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혀 지혜가 밝히 비추는 깨달음을 목적하고 있 다. 마음이 산란하지 않고 경계에 이끌려 다니지 않을 때 우리는 사물을 바로 판단할 수 있고 지혜를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유가가 불교를 끊임없이 공격하는 바가 도덕적 관심과 통치규 범의 부재 였고 득통이 이에 대응해 제시한 것이 만물일기( 萬 物 一 己 ) 의 도덕실천과 명심( 明 心 ) 이라 할 것이다. 득통은 만물일기의 실천을 통해 유가의 인간중심적 도덕을 우주중심적 도 덕으로 방향을 바꿔나갔고 유가의 명덕( 明 德 )과 수신( 修 身 )을 통한 제가치국평천하( 齊 家 治 國 平 天 下 )가 불가의 명심( 明 心 )에 있음을 주장했다. 만물일기를 실천해야 인( 仁 )을 실천할 수 있고 먼저 마음을 밝히 깨닫는 것에 제가치국평천하 하는 길이 있다는 것이다. 현대교육은 외부로부터 내부로 채우는 지식교육만을 주된 내용으로 삼지 내면을 비우고 고 요히 가라앉히는 마음공부에는 관심이 없다. 반대로 불교는 현실과 관계를 맺어가는 도덕이나 규범 및 경험적 지식들을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한계들을 고려할 때 득통의 마음 공 부론은 유가의 현세주의와 도덕 실천을 주목하여 자신의 공부론을 재구성했다는 측면에서 다소 진전이 있어 보인다. 인간은 자신의 궁극자인 마음을 이해하고 이를 깨달을 때 자유로워질 수 있다. 자신의 본래 마음을 찾고 스스로 생태적/우주적 삶을 실천하는 것에 교육의 목적을 두었 던 득통의 마음공부는 오늘날 교육현장에서 적용해 볼만한 또 하나의 가르침이 될 것이다. - 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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