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동성애는 무엇인가요? 1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목차 책 머리에 4 제1부 1. 동성애는 무엇인가요? 섹슈얼리티의 다양성 10 2. 트랜스젠더는 누구인가요? 젠더의 다양성 19 3. 커밍아웃, 왜 하는 걸까요? 소통과 해방 27 제3부 8. 트랜스젠더는 왜 법적으로 성별을 변경하려고 하나요? 법 앞의 인정 72 9. 왜 동성 간에 결혼을 하려고 하나요? 동성 결혼과 평등권 82 10. 학교는 청소년 성소수자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요? 모두를 위한 교육 94 11. 성소수자들은 왜 축제를 하는 걸까요? 가시성과 자긍심 104 제2부 12. 종교인은 성소수자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불교와 기독교 113 4. 동성애는 정말 질병인가요? 전환 치료의 허구성 38 5. 동성애는 HIV/AIDS의 원인인가요? 조작된 낙인과 공포 46 주( 註 ) 120 6. 동성애 혐오도 권리인가요? 편견과 인간의 존엄성 52 7. 왜 성소수자를 차별하면 안 되나요? 차별 금지의 법적 근거 60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에 맞서 공존의 사회를 바라는 연구자들의 입장 140
책 머리에 차별할 권리 를 얻기 위한 싸움이란 게 있을 수 있을까? 불행히도 한국 사회 에서 우리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모욕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고자 싸우는 사람 들을 본다. 누적된 불안과 불만, 또는 종교적 신념을 혐오 로 표출하고 더 나아 가 그것을 정치적 의제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 바야흐로 혐오의 시대 이다. 그 혐오의 시대 한 가운데 성소수자가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인권 증진을 위한 토론의 공간은 성소수자에 대한 적대감을 선동하는 장이 되기 일쑤였으 며, 그러한 혐오는 성소수자 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수자 집단을 대상으로 확 장되고 증식하였다. 심지어 지난 4.13 총선에서 동성애 반대, 이슬람 반대 를 공약으로 내세운 기독자유당은 2.63퍼센트의 정당 지지율을 얻기도 했다. 일 부 사회 구성원을 노골적으로 배제하려는 차별할 권리 에 대한 주장이 시민 정치의 모습으로 등장한 것이었다. 인류가 특정 종교, 민족, 인종, 젠더의 우 월성을 앞세우면서 수많은 전쟁과 폭력, 학살을 일으켰던 역사에서 교훈을 배 우지 못하고, 그동안 어렵게 구축해 온 보편적 인권, 민주주의, 사회적 정의, 공감의 능력을 잃어가고 있는 듯 보인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 1973년 <미국정신의학회>는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 다 라는 학문적 결정을 공표했으며, 지난 40년간 동성애를 병리화해서는 안 된다는 학술적인 증거는 계속 쌓였다. 특히 영화배우 조디 포스터나 애플의 CEO인 팀 쿡과 같이 다양한 영역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는 동성애자들이 등장하면서 동성애가 그 자체로서 판단력, 안정성, 신뢰성, 또는 직업능력에 결함이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는 이야기는 이미 상식이 되었다. 이런 인식 의 변화 속에서 성소수자는 어디에나 있고, 우리 모두가 성적 다양성을 가지 고 살아가며, 함께 일하고 도움을 주고받는 사회적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다. 현재 전 세계의 권위 있는 학회 중에서 동성애를 병리적인 현상으로 간주하는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책을 쓰는 과정은 40년 전 혹은 그 이전에 멈춰 있는 것 같은 시간을 되 살리는 작업이었다. 오랜 기간 성소수자와 관련하여 전 세계적으로 축적되 어 온 지식들이 한국 사회에는 제대로 전해지지 못했다. 우리는 이런 토양에 서 편견에 기반한 혐오가 자라고 있음에 주목했고, 이에 최근의 연구 자료들 을 바탕으로 이 책을 집필하기로 했다. 성소수자에 대해 사람들이 궁금해 할 수 있는 기초적인 질문 12가지를 추리고, 각 질문에 응답하는 형식으로 책을 구성하였다. 동성애는 무엇이고 트랜스젠더는 어떤 사람인지에서부터 시작하 여, 커밍아웃의 의미, 동성애 혐오의 현상, 성소수자 차별금지 규범, 트랜스젠 4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책 머리에 5
더의 성별 정정, 동성 결혼, 학교에서 발생하는 성소수자 괴롭힘, 성소수자 축 제, 성소수자와 종교 등에 관한 짧은 글들을 모아 성소수자의 삶과 관련 쟁점 을 보여 주고자 했다. 집필과 토론 과정에 교육학, 법학, 보건학, 사회복지학, 사회학, 신학, 인류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를 전공하는 연구자들이 참여했다. 이 책의 집필진은 모두 성소수자의 삶에 대해 연구해 온 연구자이며 교육자 이다. 우리는 성소수자 교수에게 배우며 고정관념을 벗어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갖게 되었고, 성소수자 학생을 통해서는 교육 현장에서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고 다양성을 옹호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윤리적 실천인지를 알게 되 었다. 또한 성소수자인 동료나 친구를 통해, 혹은 성소수자 당사자로서, 사회 적으로 재현되는 성소수자에 대한 이미지와 지식이 사회적 실체로서의 성소 열두 명의 저자가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책 한 권을 완성하는 것은 쉽지 않 은 일이다. 그러나 지난 3개월간 서로 질문하고 토론하고 글을 돌려 보면서, 집필진 모두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힘으로 이 책을 만들 수 있었다. 이 책은 완성된 버전 이 아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연구와 지식은 매일 확장되고 새로 워지고 있다. 우리는 계속하여 새로운 연구 성과와 지식을 지속적으로 습득하 고 분석하면서 한국의 상황과 맥락에 맞는 성소수자에 대한 공정한 지식을 생산할 것이다. 이 지식이 사회, 국가, 제도, 법이 보장해 주지 못했던 성소수 자의 보편적 인권 과 차별받지 않을 권리 를 확장시키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 이 되길 바란다. 우리는 이 책이 성소수자, 그리고 우리 모두의 희망의 기획으 로 읽혀지길 바란다. 수자와 얼마나 다른지를 알게 되었다. 이 깨달음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혐오의 주술이 아닌, 좀 더 공정하고 객관 적인 지식이 한국을 정의롭고 사회적 소수자를 포용하는 사회로 만드는 데 기 2016년 6월 한국성소수자연구회(준) 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연구자로서 본업에 충실하면서 성소 수자와 관련된 기존의 연구 성과들을 바탕으로 성소수자에 대해 정확히 배우 고 연구하여 좀 더 객관적인 지식을 생산하고 이를 사회와 나누고자 한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원고의 검토, 교정, 편집 과정에서 함께 작업해 주시고, 좋은 의견을 나누어 주시며, 도움과 응원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6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책 머리에 7
제1부
동성애와 동성애자 가장 단순한 의미에서 동성애는 이성이 아닌 동성에게 지속적으로 사랑의 감정과 성적 친밀성을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동성애는 이성애나 양성애와 마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1 동성애는 무엇인가요? 섹슈얼리티의 다양성 찬가지로 인류가 수행해 온 섹슈얼리티의 한 형태로 그 역사 또한 장구하다. 섹슈얼리티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1 첫째는 인간이 가 진 성적 욕망(erotic desire)과 정서를 말한다. 성적 욕망과 이와 관련된 심리, 판타지, 매력, 끌림 등을 포함하는 의미이다. 둘째로 섹슈얼리티는 성적 정체 성(sexual identity)을 의미하는데, 이는 성과 관련된 자기규정이나 성적인 삶 의 방식을 포함한다. 셋째는 성적 지위(sexual status)로, 이는 특정한 성적 정 체성, 관행, 욕망에 사회적으로 부여되는 지위, 즉 성과 관련된 위계와 차별화 된 지위를 의미한다. 이성애는 이성에게 성적 욕망과 정서를 갖는다는 뜻이며, 이를 실천하는 사 람은 스스로를 이성애자로 인지하면서 자신의 성적 지위를 인정받는다. 동성 현재 동성애 를 둘러싼 열띤 논쟁이 진행 중이다. 다원주의를 지향하는 민주주의 사회 에서 성소수자의 인권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한국의 경우 그 과 정이 순탄치 않다. 2007년 법무부는 20가지 차별 금지 사유를 포함한 차별금지법 을 입법 예고했다. 하지만 일부 보수 개신교 세력이 차별 금지 사유에 성적 지향 을 포함 시켜선 안 된다고 압박했고, 그 결과 차별금지법 법안에서 7가지 차별 금지 사유(언 어,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 범죄 및 보호 처분 경력, 성적 지향, 학력)가 삭제되었다. 이는 사실상 차별용인법 에 다름 아니었고, 그마저도 심의 없이 폐기되고 말았다. 이 후 2010년, 2013년 포괄적인 차별금지법 제정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동성애를 반대 하는 보수 기독교의 개입으로 법 제정이 무산되었다. 동성애는 한국의 민주적 발전을 저해하는 유해한 행위일까? 인류가 존재한 이래 인간 섹슈얼리티 실천 중 하나로 존재 해 온 동성애에 대해 알아보자. 애는 동성에게 정서적 끌림과 성적 친밀감을 갖는 것, 양성애는 남성과 여성 양쪽 모두에게 정서적 끌림과 성적 친밀감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이성애자, 양성애자, 동성애자 등 성적 정체성을 획득해 가는 과정은 다양하다. 어떤 사 람은 생애 경로에서 성적 지향성이 달라지는 경험을 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 의 사랑, 성적 욕망, 판타지 등에 대해 매우 확정적인 생각과 태도를 가지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동성애가 선천적인 것인가 후천적으로 획득된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이나 이성애자인 사람이 평생 이성애만 실천한다는 전제 모두 인간 이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인지하고 획득하는 다양한 과정을 포괄하지 못한다. 사실 동성애를 경험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자신을 동성애자로 인정하는 1. 동성애는 무엇인가요? 11
것은 아니다. 2014년 미국 정부에서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조사에 참여한 미 국인 가운데 자신을 게이나 레즈비언으로 인지한 응답자는 1.6퍼센트, 양성 애자로 인지한 응답자는 0.7퍼센트였다. 2 2011년 <윌리엄스 연구소>가 갤럽 을 통해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미국 성인의 3.8퍼센트는 자신을 게이, 레즈비 언, 양성애자, 트렌스젠더라고 말했다. 반면에 동성애적 행동을 해 본 적이 있 는 사람은 8.2퍼센트였고, 동성에게 성적으로 끌린 경험이 있는 사람은 11퍼 센트에 이르렀다. 3 양적 조사에서 사회적 낙인의 대상이 되는 소수자 집단이 과소 표집되는 것은 피할 수 없음을 차치하고서라도, 이러한 조사는 성적 욕 망과 행위, 성적 정체성 간의 간극이 존재함을 보여 준다. 동성애와 동성애적 성적 정체성을 갖는 것은 다른 문제일 수 있으며, 성적 친밀성의 대상이 동성 이라도 곧장 자신의 정체성을 동성애자로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인 모욕과 차별이 만연하기 때문에 동성애적 정체성을 구성하고 드러내는 것 자체가 억압되어 왔다. 하고 처벌하기까지 한다. 동성애자가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어떻게 인지하는 가 하는 문제는 개인적 차원이 아닌 사회적 문제나 논란의 대상이 된다. 이성애자의 경우 이성에 대한 낭만적 감정을 가지고 그에 따른 성적 욕망을 실천하며, 사회적으로 승인된 사회적, 성적, 경제적 제도인 결혼을 통해 안정 된 이성애적 정체성을 수행하는 것으로 사회적 지위와 승인을 얻는다. 이성애 에 근거한 성적 욕망의 추구, 성적 정체성의 구성, 출산 및 양육의 과정이 보 편적이고 자연스러운 인간 삶의 형태라 간주되기 때문에 이것들 사이에 간극 이나 모순은 없는 것으로 전제된다. 많은 사회가 재생산과 생산의 기초 단위 로 이성애에 기반한 가족을 중시하기 때문에 이성애 이외의 인간 섹슈얼리티 는 예외적 인 것으로 간주된다. 때로는 위험하고 병리적인 행위로 처벌되기 도 한다. 이 때문에 동성에게 친밀한 감정을 갖고, 성적 판타지의 대상으로 동 성을 상상하고, 자신을 동성에게 매력적인 존재로 보일 수 있게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적인 것 으로 간주된다. 일부 국가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동성 간의 사랑을 결혼 같은 안정적인 제도로 구현할 수 있는 길도 없다. 즉, 이성 섹슈얼리티의 위계 구조와 동성애 인간 섹슈얼리티의 다양한 형태는 역사적으로 공존해 왔지만, 사회적 승인 여부에 따라 위계적으로 배열되어 왔다. 성적 욕망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지 만, 이런 성적 욕망을 실현하는 것은 사회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동성에게 매 력과 사랑을 느끼는 사람이 자신의 성적인 매력을 얼마만큼 드러낼 것인지, 어떤 맥락에서 어떤 정도로 성적 욕망을 드러낼 것인지 하는 것은 개인적 선 택의 영역이다. 하지만 많은 사회에서는 동성애에 대하여 이런 개인적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어떤 사회는 동성애를 드러내는 것을 금기 시하거나 제재 애 중심 사회에서 동성애는 인간 섹슈얼리티의 위계에서 하위에 배치된다. 동 성애자는 단순히 수적으로 소수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조 직적으로 억압되기 때문에 무권력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에 전 세계의 다양한 지역에서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은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근거한 차별을 문제화하고 그에 대한 대항 담론을 만들어 왔다. 성소수자들은 자신들이 자괴감을 느끼고 무시와 차별을 당하는 것을 당연하 게 여기도록 강요되어 왔으며, 그러한 강제적 내면화가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임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성소수자들은 LGBTAIQ, 즉, 레즈비언, 게 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무성애자, 인터섹스, 퀘스쳐너리의 이니셜로 성소 12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1. 동성애는 무엇인가요? 13
수자의 집단적 정체성을 사회적으로 드러내면서 자 신의 정체성을 긍정하고 사회를 변혁하는 운동을 통 해 무권력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들 간에 광범위하게 수행되었던 동성애 관계 또한 주 목할 만하다. 이들은 <금빛난초연합> 또는 <상호이해 연합>을 만들어 공동주택에서 함께 살며 아프거나 죽 음을 맞이할 때 서로를 돌봤다. 평생 남성과 혼인을 동성애는 서구의 산물인가 하지 않기로 맹세한 이 그룹에는 채식을 하는 여성들 이 많았기 때문에 채식주의 자매들 이라 불렸다. 이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는 서구에서 수입된 퇴폐적 인 성적 행위로 비난받는 경우가 있다. 또한 커밍아 웃, 성전환, 공인된 동성애적 실천, 동성 결혼 등은 개 인의 자유주의적 선택권을 옹호하는 민주주의가 발 달된 서구 사회에서만 가능한 현실이라고 믿는 경향 도 있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수집된 인류학적 보고들 에 의하면 동성애는 인류가 존재한 이후 현재까지 모 든 곳에서 나타난 보편적인 현상이다. 4 예를 들어 몸 바사나 케냐 지역의 부유한 무슬림 여성들, 호주 원주 민 사회에서 여자 사촌들 간의 성적 관계, 19세기 미 국 보스턴 지역에서 유행하던 보스턴 결혼 은 역사적 으로 다양한 지역에서 레즈비언 전통이 있음을 확인 해 준다. 5 난디족을 비롯한 동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 에서는 여성 간 결혼 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었다. 지 위와 부를 확보한 여성이 여성-남편 이 되어 여성과 결혼할 수 있었고 이 제도는 현재도 발견된다. 6 19세 기 중국 남부 광동 지역의 비단 짜는 수천 명의 여성 동성애는 인류가 존재한 이후 현재까지 모든 곳에서 나타난 보편적인 현상이다 동성애는 서구의 산물이 아니라, 통시적이며 공시적으로 존재해 온 인간 사랑과 섹슈얼리티의 한 형태다 들에 대한 탄압이 이루어진 것은 1949년 중국 사회 주의 혁명 이후이며, 그 때문에 이 여성들은 말레이시 아, 싱가포르, 홍콩, 대만 등으로 피신해야만 했다. 7 남성 간 동성애 실천의 다양한 형태 또한 전 지역 에서 기록되고 보고되어 왔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 서 성인 남자들 간에 행해지던 동성애는 주로 연장자 남성과 어린 남성 사이에 이루어졌는데, 이런 성관계 는 교육적 차원에서 바람직한 것으로 간주되기도 했 다. 뉴기니의 삼비아족은 연장자와 연소자 남성 간의 동성적 의례를 성인 되기의 과정으로 승인했다. 8 중 국의 경우 동지 라 불리는 남성 게이들의 오랜 역사 가 존재하고, 9 한국에서도 수동무, 맞동무 등 동성 애 남성을 일컫는 용어가 사용되어 왔다. 또한 삼국 유사,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의 문헌에도 동성 애가 언급되었고, 19세기 말과 20세기 초까지 남성 동성애가 강원도 지역을 비롯해 광범위한 곳에서 행 해졌다. 1940년대까지 계층과 직업을 망라하여 행해 14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1. 동성애는 무엇인가요? 15
졌던 동성애는 일제에 의한 청년들의 강제 동원과 6.25전쟁으로 인한 청년들 의 징집으로 급격히 사라졌다. 10 이렇듯 다양한 역사적 맥락과 장소에서 동성 애는 동성 간 사랑, 상호 협력, 협상의 형태 혹은 이성애가 가능하지 않은 상 황에서 비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성적 실천의 형태로 다양하게 존재해 왔다. 동 성애가 수행되어 온 맥락과 사회적 의미는 다양하다. 동성애는 서구의 산물이 아니라, 통시적이며 공시적으로 존재해 온 인간 사랑과 섹슈얼리티의 한 형태 다. 11 성애자와의 문화적, 도덕적 차이를 부각하고, 이들의 성교를 병리적으로 담론화하며 동성애자 집단을 사 회적 위험 집단으로 낙인찍는 것과 관련이 있다. 또 다른 방식으로, 동성애자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완전 히 배제하지는 않지만 동성애를 유전적으로 결정 된 것, 혹은 어쩔 수 없는 결점 으로 간주하여 동성애를 포섭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동성애자는 원래 그렇 게 태어난다 고 인식하며, 그 점을 인지하여 우리 가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동성애를 다루는 방식 성적 욕망의 특정한 형태인 이성애는 어린 시절부터 적극적으로 장려되고 인정될 뿐 아니라 법과 제도를 통해 강화된 반면, 동성애에 대한 지식이나 사 실은 거론되거나 교육될 수 없는 상황이 오래 지속되었다. 동성애에 대한 지 식은 동성애자들의 오랜 경험과 관점에서 만들어지기보다, 동성애자가 아닌 사람들에 의해 구성되었다. 비동성애자들이 동성애 에 대한 지식을 점유하 고, 동성애가 사회적으로 허용 가능한 섹슈얼리티인지를 판단해 왔다. 즉, 동 성애에 대한 지식이 타자화, 편협한 인식과 편견, 사회적 낙인의 형태로 구성되 었기 때문에 동성애는 더욱 더 병리적인 형태의 섹슈얼리티로 규정되어 왔다. 이성애만이 본질적이고 정상적이며 종교적 섭리라 믿는 이성애 중심주의 (heterosexism) 사회에서는 다른 형태의 섹슈얼리티를 실천하는 모든 존재들 을 희생양 으로 만들면서 이성애의 독보적 지위를 구성한다. 이성애 중심 사 회에서 동성애자 를 다루는 방식 중 하나는 처벌이나 격리 등의 강압적 제재 를 사용해 억압하는 것이다. 이는 동성애자를 과잉 성애화된 존재 로 보며 이 성소수자는 문화적 다양성을 가진 동등한 존재이며, 다문화주의 관점에서 시민권을 보장해야 할 사회 구성원이다 그들 을 받아들이자는 식이다. 이러한 방식들 모두 동성애에 열등한 지위를 부여하여 이성애의 배타적 지위를 구성하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소수자가 문화적 다양성을 가진 동등한 존재이며, 다문화주의 관점에서 시민권을 보장해야 할 사회 구성원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이러한 변화는 성소수자 운동의 성과 이다. 성소수자들은 낙인된 타자로 규정당해 온 억압 의 역사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대표 하면서 인간 섹슈 얼리티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공존하자는 운동을 벌 여 나갔다. 이와 함께 많은 문화에서 성소수자의 존재 를 긍정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것이 민주주 의를 확산시키는 길이라는 사회적 신념과 합의가 생 겨나고 있다. 성소수자가 받은 다양한 박해의 유형들, 즉, 혐오, 낙인, 부당한 구속, 구타, 고문, 강간, 직장 16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1. 동성애는 무엇인가요? 17
에서의 해고, 학교에서의 지속적인 괴롭힘, 사생활 침해, 벌금, 태형, 사형 등 이 민주주의 사회의 인권 개념에 위배된다는 인식이 널리 수용되고 있는 것이 다. 성적 박해를 용인하고 방관하는 사회는 대외적으로 민주주의적 가치를 옹 호하는 사회라고 인정받을 수 없다. 예를 들어 흑인 지도자인 넬슨 만델라는 1994년 대통령 취임사에서 동성애자 인권을 언급했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성적 지향을 근거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헌법에 명시한 세계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12 이성애자와 마찬가지로 동성애자 또한 친밀성과 신뢰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나가길 원하며 이런 관계가 결혼 이나 파트너십 과 같 은 사회적 인정의 제도화된 통로를 갖기를 원한다. 이 때문에 유럽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는 동성 결혼을 성적 자기 결정권이라는 권리의 형태로 보장해 준다. 한국 또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등을 통해 다원주의라는 민주주의의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2 트랜스젠더는 누구인가요? 젠더의 다양성 원칙과 보편적 인권 보호라는 측면에서 성소수자의 시민권을 보장해야 한다. 트랜스젠더라는 말이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1년 하리수 씨의 TV 광고 출연이 계기였다. 그와 더불어 트랜스젠더 인권 운동이 다방면에서 전개되고, 여러 당 사자들이 용기 있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으며, 법적 성별 정정에 관한 전향적 판결 등 이 이루어지면서 트랜스젠더는 TV 속의 낯설고 신기한 존재를 넘어 우리 사회의 한 구 성원으로 조금씩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성별 이분법에 따른 고정관념과 이로 인한 트 랜스젠더에 대한 오해들, 그리고 엄격한 성별 정정 요건, 의료보장의 부재와 같은 제도 적 장벽으로 인해 여전히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자신의 온전한 성별 정체성을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과연 한국 사회에서 트랜스젠더는 어떤 삶을 살고 있으며 어떤 오해와 차별을 받고 있는지 알아보자. 18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트랜스젠더에 대한 이해와 오해 는 Male to Female의 약자로 출생 시 남성으로 지정 되었으나 자신을 여성으로 인식하는 사람을 말한다. 현재의 신분 체계 속에서 모든 사람들은 출생 시 남성/여성 어느 하나의 성 별로 지정되어 출생 신고가 이루어지고, 이를 바탕으로 성별 번호가 포함된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는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렇게 출생 시 지정 된 자신의 성별에 큰 불편이나 위화감을 느끼지 않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중 에는 지정 성별에 따른 외모, 옷차림, 성역할, 신체 등에 불편함을 느끼거나 나아가 지정 성별과는 반대의 성별 또는 남/여가 아닌 독자적인 성별로 자신 을 인식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트랜스젠더는 이러한 사람들을 가리키기 위하여 만들어진 용어이다. 트랜스젠더가 구체적으로 사용되는 맥락은 한국과 외국에서 조금 차이 가 난다. 처음으로 트랜스젠더라는 용어가 만들어진 미국 1 을 비롯한 서구 에서 트랜스젠더는 성별 표현, 성별 역할, 성별 정체성 등이 사회가 요구하 는 성별 규범에 맞지 않는 모든 사람 을 가리키는 포괄적 용어(Transgender Umbrella)로 사용된다. 2 이에 비해 현재 한국의 커뮤니티, 성소수자 운동 등에서 사용하는 트랜스젠더는 정체성으로서의 면을 보다 강조하여 출생 시 지정받은 성별과 자신이 인식하는 성별이 다른 사람 3 을 가리키며 간성 (Intersex), 크로스드레서(Cross dresser) 등과 구분되는 범주로서 이야기된 다. 보다 구체적으로 좁게는 FTM/MTF를, 넓게는 FTM/MTF/젠더퀴어를 포 함하는 범주로 이해할 수 있다. FTM/MTF와 같은 말들은 성별 정체성이 남성/여성인지에 따라서 트랜스 젠더를 구분하는 용어이다. FTM은 Female to Male의 약자로 출생 시에 여 성으로 지정되었으나 자신을 남성으로 인식하는 사람을 말하며, 반대로 MTF 트랜스젠더라고 해서 모두가 동일한 방식으로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따른 성별 표현이나 성별 역할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동일한 의미로 FTM/MTF라는 말 대신 트랜스 남성 (Transman)/트랜스 여성(Transwoman)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4 한편 젠더퀴어(Genderqueer)는 중성, 양성, 무성 등 남성/여성이라는 이분법에서 벗 어난 독자적인 성별로 자신을 인식하는 사람들을 말 한다. 현재의 한국 커뮤니티 등에서는 맥락에 따라 젠 더퀴어를 트랜스젠더에 포함시키거나 트랜스젠더와 교집합을 이루는 독자적인 범주로 사용하고 있다. 5 한편 현재 트랜스젠더에 관한 가장 큰 오해는 트 랜스젠더는 모두 수술을 통해서 자신의 몸을 바꾸었 거나 바꾸려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6 그리고 이러한 오해로 인하여 트랜스젠더가 법적으로 성별을 변경 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생식기 관련 수술을 받을 것이 요구된다. 수술을 받지 않은 트랜스 여성의 경우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트랜스젠더인 척하는 것이라 의심 받거나 병역 이행을 요구받는 일도 있다. 7 그러나 남 성이라고 해서, 여성이라고 해서 모두가 같은 외모, 성격, 신체 조건을 갖고 있지 않은 것처럼, 트랜스젠 더라고 해서 모두가 동일한 방식으로 자신의 성별 정 체성에 따른 성별 표현이나 성별 역할을 추구하는 것 은 결코 아니다. 8 트랜스젠더 중에는 수술 등을 통해 20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2. 트랜스젠더는 누구인가요? 21
자신의 신체를 전환한 사람도 있고, 수술이 아닌 호르몬 등 몇 가지 의료적 조 치만을 받은 사람도 있으며, 별도의 의료적 조치를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외모와 성격 역시 여성/남성스러운 사람부터 중성적인 사람, 특정한 성별 특 징에 구애받지 않는 사람까지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수술 여부나 현재의 외모, 신체 조건 등을 기준으로 트랜스젠더인지 아닌지를 함부로 판단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한편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은 교차할 수 있다. 가령 트랜스 여성이라 해 서 반드시 남성을 좋아하는 이성애자라고 할 수는 없으며, 같은 여성을 좋아 하는 동성애자거나 양성애자, 무성애자 등 다양한 성적 지향을 가질 수 있다. 실제로 성소수자 3,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최근 조사에서 트랜스젠더 응답 자 233명 중 자신을 이성애자라고 응답한 사람은 48.4퍼센트에 불과하여, 트 랜스젠더 내에도 다양한 성적 지향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3 트랜스젠더와 동성애자는 어떻게 다른가? 트랜스젠더에게 필요한 것은 치료가 아니다 오랫동안 동성애자, 여장남성, 남장여성, 트랜스젠더는 구분 없이 하나의 범주로 여겨져 왔다. 20세기에 들어와서야 트랜스젠더라는 독자적인 범주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9 우리나라의 경우 1990년대 이전까지도 트랜스젠더 와 동성애자를 뚜렷하게 구분하여 명명하지 않았다. 10 따라서 현재까지도 많 은 사람들이 트랜스젠더와 동성애자를 혼동하여, 남성 동성애자들은 모두 화 장을 하고 여성스런 행동을 한다고 생각하거나 트랜스젠더가 성별을 바꾸려 는 것은 동성애로 인한 것이라는 오해를 하곤 한다. 트랜스젠더와 동성애자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의 개념을 알 필요가 있다. 성적 지향은 어떠한 성별을 가진 사람에게 성적, 감 정적으로 끌리는가 를 나타내는 개념이고, 성별 정체성은 자신을 어떠한 성 별로 인식하는가 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11 따라서 지정 성별과 다른 성별 정체 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이 어떤 성적 지향을 갖고 있는지와 무관하게 트 랜스젠더라 할 수 있는 것이고, 자신과 같은 성별에 대한 성적 지향을 갖고 있 다면 그 사람의 외모, 성격 등과는 무관하게 동성애자라 할 수 있다. 12 정신질환 목록에서 제외된 동성애와 달리 아직 트랜스젠더에 대한 정신과 진단은 남아 있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최초의 의학적 정의는 1980년 <미국정 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의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 람 3판(DSM-III)에서 성전환증(Transsexualism)과 아동의 성 주체성 장애 (Gender Identity Disorder)가 등재된 것을 기초로 하며, 이후 1993년 편람 4판(DSM-IV)에서는 성 주체성 장애로 이름이 통합되었다. 14 그리고 현재 <세 계보건기구(WHO)>의 국제 질병 분류 10판(ICD-10) 15 과 이를 바탕으로 한 한국 표준 질병 사인 분류 16 역시 성전환증과 성 주체성 장애라는 트랜스젠더 에 대한 정신과 진단 항목을 두고 있다. 이에 따라 트랜스젠더가 호르몬 치료 나 외과 수술 등의 의료적 조치를 받거나 법적 성별 정정 혹은 병역 면제에 필 요한 절차를 밟기 위해서는 17 정신과 진단서를 제출할 것이 요구된다. 그러나 트랜스젠더에 대한 정신과 진단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트랜스젠더 정체성이 치료받아야 하는 정신과 질환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성 주체성 장 애 진단을 받은 경우 권고되는 의료적 조치가 일반적인 정신질환처럼 약물이 22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2. 트랜스젠더는 누구인가요? 23
나 상담에 의한 증상 완화가 아니라 호르몬, 수술 등 성별 이행(transition) 관 련 의료적 조치라는 점에서도 18 성 주체성 장애를 다른 정신질환과 동일하다 고 볼 수는 없다. 한편으로 성 주체성 장애라는 진단명이 트랜스젠더라는 정 체성 자체를 병리화하고 사회의 규범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 또 다른 낙인을 씌운다는 비판도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19 이에 <미국정신의학회>는 2013 년 편람 5판(DSM-V)에서 진단명을 성별 위화감(Gender Dysphoria)으로 바 꾸면서,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 자체는 정신질환이 아니고 중요한 것은 이들 이 느끼는 임상적으로 유의미한 스트레스에 대한 진단과 지원이라는 점을 강 조하였다. 20 <세계보건기구> 역시 이에 맞추어 2018년 개정될 질병 분류 11 판(ICD-11)에서는 성 주체성 장애를 성별 불일치(Gender Incongruence)로 변경하고 정신 및 행동 장애가 아닌 성 건강의 범주에 위치시킬 예정이다. 21 따라서 트랜스젠더 정체성은 동성애와 마찬가지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정 신질환이 아니다. 오히려 트랜스젠더에게 필요한 의료적 지원은 성별 위화감 의 정도와 주변 환경 등에 따라 본인이 원하는 호르몬 요법, 수술 등 의료적 조치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는 것임에도,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의료 진의 이해 부족과 사회보장제도의 미비로 이러한 의료 접근권이 사실상 전혀 보장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22 한편 이와 관련해서 한 가지 더 염두에 두어 두어야 할 것은 정신과 진단에 의해서 트랜스젠더인지 여부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의사가 가진 지식과 상담 능력으로부터 일정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겠으나 트랜스젠 더가 자신의 성별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탐색하는 과정에서는 무엇보 다 자기 결정권이 존중받아야 한다. 23 성별 이분법에 기초한 믿음에서 벗어나 다양한 성별을 가진 개인들이 그 자체로서 존중받을 때, 보다 많은 트랜스젠더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트랜스젠더는 드러난 것보다 훨씬 많이 존재한다 트랜스젠더 인구는 얼마나 될까? 국가 수준의 조사 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 수치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외국에서 이루어진 연구 결과를 바탕 으로 추정을 해 볼 수 있다. 의학계에서 가장 오랫동 안 인용되어 온 연구는 1993년 네덜란드에서 이루어 진 것으로, 이에 따르면 트랜스 여성은 인구 11,900 명 중 1명, 트랜스 남성은 30,400명 중 1명인 것으로 추정된다. 24 그러나 이 연구는 병원에서 성전환증 진 단을 받아 호르몬 요법이나 외과 수술을 받은 사람들 만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실제 인구수를 정확히 반영 한다고 보기 힘들다. 앞서 보았듯 모든 트랜스젠더가 동일한 정도의 의료적 조치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굳 이 병원을 찾지 않는 트랜스젠더들도 존재하기 때문 이다. 실제로 최근의 연구 결과는 위보다 훨씬 높은 비율 로 트랜스젠더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가령 2011년 미국의 연구는 매사추세츠 주와 캘리포니아 주에서의 조사를 바탕으로 미국 내 트랜스젠더의 비 율을 0.3퍼센트로 추정하였고, 25 2009년 영국의 연구 는 15세 이상의 트랜스젠더 비율을 0.6퍼센트로 추 24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2. 트랜스젠더는 누구인가요? 25
정하였다. 26 한국 인구를 5,000만이라 하고 이들 비율을 적용할 경우, 국내에 약 15만 명 전후의 트랜스젠더들이 존재한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처럼 상당히 적지 않은 수의 트랜스젠더들이 한국에 존재하는 것으로 추 정되지만, 실제로 자신의 주변에서 트랜스젠더를 접해 본 사람들은 극히 드 물고, 미디어에서도 연예인이나 유흥업 종사자로서의 트랜스젠더 이미지만 을 주로 다루고 있다. 물론 노동시장에서의 차별과 경제적, 문화적 여건 등으 로 특히 트랜스 여성들이 연예 산업이나 유흥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다양한 직업군, 다양한 생활 영역에서 트랜스젠더 들은 존재하고 있다. 27 인간의 성별이 태어나면서부터 신체적 특징에 따라 정 해진다는 믿음, 성별이 남/여 두 가지만 존재한다는 믿음, 성별 이분법에 기초 한 이러한 잘못된 믿음에서 벗어나 다양한 성별을 가진 개인들이 그 자체로서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3 커밍아웃, 왜 하는 걸까요? 소통과 해방 존중받을 때, 우리 사회에서 보다 많은 트랜스젠더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밀레니엄이 시작되던 2000년, 그 해는 성소수자와 관련된 이슈가 유난히 많았다. 드라 마 <슬픈 유혹>의 남자 주인공이 동성애 연기를 해서 주목받았고 국내 동성애자 인권 모임인 <끼리끼리>와 <친구사이>가 홈페이지를 열기도 했다. 가을에는 방송인 홍석천 씨가 커밍아웃을 하며 나라가 시끌벅적했고, 커밍아웃 은 온 국민들 입에 한두 번은 오 르내린 고유명사처럼 되어 버렸다. 그리고 16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성소수자에 대한 시선은 차갑기만 하고, 커밍아웃 이란 말은 개그 프로그램의 유행어처럼 여겨지고 있다. 26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어둡고 답답한 벽장에서 문을 열고 나오기 아웃에는 각자의 삶만큼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2 커밍아웃 은 벽장에서 나온다(coming out of the closet) 라는 말이다. 벽장 은 성소수자들이 성적 지 향을 숨긴 채 살아야 하는 시간과 공간을 뜻하며, 커 밍아웃은 그 답답한 곳의 문을 열고 나온다는 뜻을 담 고 있다. 그런데 성소수자들에게 커밍아웃은 한 차례 벽장문을 여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성 적 지향을 발견하는 과정, 그 사실을 인정하고 스스로 받아들이는 과정, 자신의 성적 지향을 가족, 친구, 동 료 등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는 과정, 성소수자 커뮤니 티에 참여하고 교류하는 과정 등 1 수차례 벽장문 앞 에 서게 된다. 이러한 커밍아웃의 형태나 과정에서 누 구에게 먼저 커밍아웃을 하는지, 대상이나 순서는 크 게 중요하지 않다. 여러 단계를 순차적으로 거치는 사 람도 있지만, 특정 단계를 건너뛰는 사람도 있다. 애 초에 이 모든 단계를 동시다발로 경험하는 사람도 있 다. 또한 개인에 따라 커밍아웃은 다양하게 해석되기 도 한다. A, B, C 세 명의 성소수자에게 커밍아웃 경 험을 묻는다면, 아마도 세 명이 저마다 다른 대답을 할 것이다. A는 처음 자신의 성적 지향을 알게 된 경 험을, B는 처음으로 동성 파트너와 가졌던 성 경험을, 그리고 C는 가족들에게 자신의 성적 지향을 알렸던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다. 이처럼 성소수자들의 커밍 벽장 은 정체성을 숨긴 채 살아야 하는 시간과 공간을 뜻하며, 커밍아웃은 그 문을 열고 나온다는 뜻을 담고 있다 벽장 문 안에서 망설이는 사람들 벽장 속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있어 보았다. 10분쯤 흘렀을까, 등에 식은땀이 나고 머리는 어지러웠다. 무엇보다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숨이 막히고 너무 답답했다. 이런 상황에서 문을 열지 못하고 그 속에서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성소수자들 중 대다수는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지만 차라리 답답하게 지내 는 것이, 벽장문을 열고 만나게 될 세상에 대한 공포보다 낫다고 생각해 커밍 아웃을 주저한다. 편견과 차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성소수자의 82퍼센트가 부모에게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고, 88퍼센트가 형제나 자매에게 본인의 성 적 지향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3 이들은 가족들이 자신들을 수치스러워할 까 봐, 혹은 상처를 주기 싫어서 커밍아웃을 할 수 없었다고 답했다. 4 그래서 성소수자들은 차라리 벽장에서 사는 편을 택하며 가족과 친구, 주변 모두에게 비밀에 부친 채 살아갈 결심을 하는 경우가 많다. 5 하지만 이와 같이 커밍아웃 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경우, 계속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숨겨야 하는 상황에 서 고립감을 느끼고 우울증을 비롯한 정서적인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6 즉,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성소수자는 스스로의 성적 지향을 오픈한 성소수자보다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더 많은 건강상의 문제를 경험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기본적으로 자신의 삶을 가족, 친구, 지인 들과 공유하면 서 사회적 지지를 받는다. 특히, 성소수자들에게는 자신의 성적 지향을 다른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 만으로도 사회적 지지의 유용성은 28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3. 커밍아웃, 왜 하는 걸까요? 29
크게 높아지게 된다. 실제로 성소수자가 성적 지향을 타인에게 공개하거나 성 소수자 커뮤니티에 참여하면서 스스로의 성적 지향에 대해서 긍정적인 감정 이나 태도를 갖는 경우, 보다 나은 삶의 질과 정신건강을 유지한다는 연구 결 과가 있다. 7 또한 커밍아웃을 많이 할수록 성소수자의 우울 정도가 점점 낮아 진다는 연구도 있다. 8 그러므로 주변과의 소통을 통해 얻는 사회적 지지는 성 소수자들의 정신건강 및 심리적인 안녕과 행복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커밍아웃을 하는 성소수자는 상대방으로부터 수용적이고 지지 적인 반응을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거부나 회피 같은 소통의 부재를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커밍아웃이 수용되지 않을 때, 상대방으로부터 언어 및 신체적 폭력을 경험하기도 하고, 상당한 스트레스와 고통을 겪기도 한다. 10 커밍아웃 은 일회성 사건이 아닌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서 지속적으로 경험하는 과정이 기에 이러한 상처와 정신적 고통은 만성적인 정신건강의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11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가 가족 내에서 커밍아웃을 했을 때, 가족의 반응 및 태도는 매우 부정적인 양상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다. 거부와 일방적 통보 가 아닌, 소통 으로서의 커밍아웃 하지만 이러한 커밍아웃이, 성소수자 당사자와 그 상대방에게 긍정적인 요 소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문제가 있다. 커밍아웃은 일방적인 통보라기보다는 소통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 커밍아웃 상황에서 성소수자는 성소수자로서의 자신을 표현하고, 상대방은 성소수자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드러낸다. 일반적으로 커밍아웃을 하려는 당사자들은 자신의 성소수 자 정체성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커밍아웃을 한 뒤 나타날 결과까지 책 임질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지만, 상대방에게는 커밍아웃이 일방적인 통보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커밍아웃 과정에서 당사자는 자신의 가족과 친구가 성소수자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될 상대방 의 입장도 충분히 고려하고 이해해 줄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친 구나 상담가와 예행연습을 하고 편지를 쓰는 등의 준비를 한 뒤에 가족들에게 커밍아웃을 하기도 하며, 이러한 준비가 상대방이 겪는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9 회피가 대부분이며, 이러한 태도로 인해 성소수자들은 분노, 슬픔, 소외감, 우 울감, 두려움, 무력감, 자존감 하락, 자살 시도 등의 심리적 경험을 하게 된다 고 한다. 12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해서 강한 거부를 경험한 청소년 성소수자들 은 가족에게 거부당하지 않았거나 약한 수준의 거부를 당한 집단에 비해서 자 살 시도를 하는 비율이 8배 이상, 우울증 호소하는 비율이 6배 이상, 불법적인 약물을 사용하는 비율이 3배 이상 높다고 한다. 13 특히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커밍아웃 후 소통의 부재를 경험한 경우, 가족 관계가 손상될 뿐 아니라 심각 한 수준의 신체적 정신적 위험 행동을 보인다. 커밍아웃을 한 이후 많은 성소 수자들은 사회, 학교, 직장, 혹은 가족으로부터 차별을 당하거나 폭력에 노출 되었던 경험을 토로하기도 한다. 2014년 총 3,159명의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성소수자들 중 16.2퍼센트가 차별과 폭력 의 경험이 있다고 답한 반면, 자신의 정체성을 대중에게 어떤 식으로든 드러 낸 경우에는 73.7퍼센트가 그러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14 용기를 내 벽장 밖 으로 나온 성소수자들이 실제로 벽장 밖 세상과의 소통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외면과 거부로 인해 벽장 안에서보다 더 상처를 받고 있는 것이다. 30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3. 커밍아웃, 왜 하는 걸까요? 31
이와는 반대로 커밍아웃을 통해서 긍정적인 소통 을 경험한 성소수자들의 경우 과거의 외로움과 우울 이 감소되는 등 정신건강이 회복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15 특히 가족으로부터 수용적인 태도를 경험한 성소수자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끼고, 커밍아웃 이 전의 불안감이나 우울이 사라지고, 자살에 대한 생각 이 줄었다고 한다. 16 뿐만 아니라 가족과 부모가 수용 적이고 지지적 행동을 보일 경우 성소수자가 약물이 나 자살 등에 노출될 위험이 줄고 신체적, 정신적 건 강과 전반적인 삶의 질을 높이는 데에도 큰 기여를 한 다고 보고된다. 17 커밍아웃의 과정에서 많은 성소수 자들이 심리적 상처를 입고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지 만, 궁극적으로 커밍아웃을 통해 얻는 해방됨 은 여 타의 부정적 결과와 비교할 수 없는 순기능을 갖는다 고 할 수 있다. 18 하지만 커밍아웃이 이러한 순기능을 발휘하기 위 해서는 커밍아웃 당사자와 상대방 모두의 준비와 노 력이 필요하다. 커밍아웃이 이루어질 때 상대방은 그 사실을 수용하기까지 충격-부정-죄책감-감정 표출- 결단-용인 에 이르는 총 여섯 단계를 경험하게 된다 고 한다. 19 이 모든 단계를 뛰어넘어 즉각적으로 수용 을 받는 경우뿐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단계적 수용 을 받는 경우에도 성소수자들은 소통으로서의 커밍 커밍아웃을 통해 얻는 해방됨 은 여타의 부정적 결과와 비교할 수 없는 순기능을 갖는다 아웃을 경험한다고 할 수 있다. 누군가 나에게 커밍아웃을 한다면 얼마 전 학생 한 명이 찾아왔다. 학교 친구가 자신에게 커밍아웃을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힘들어했다. 술 마시는 자리에서 친구는 고민 끝에 망설이다 커밍아웃을 했지만 정작 자신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처음에는 취한 척하고, 학교에서 만나도 아무 일 없는 척 하고 지낸다고 했다. 자신이 그 친구 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정작 그 자리에서 어떤 말을 할지 생각이 나질 않 았다는 것이다. 성소수자가 커밍아웃을 했을 때 이성애자는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 인간사에 정답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커밍아웃에도 뾰족한 답이 없다. 하지 만 분명히 지양해야 할 반응은 있다. 성소수자인 상대에게 실망했다는 식의 발언, 성소수자 정체성이 확실한지 거듭 묻는 태도, 동성애 정체성을 고칠 수 있다는 식의 자세는 커밍아웃 당사자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지금 나에게 말 해 주어서 고맙다(혹은 기쁘다), 지금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일은 없는지? 등 의 반응이 적절한 대처의 예시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왜 그렇게 오랫동안 숨어서 살았어?, 나한테 진작 말하지! 등의 반응은 커밍아웃 당사자에게 죄 의식이나 부끄러운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지양하는 것이 좋을 것이 다. 나아가 자녀가 커밍아웃을 하는 경우 우리에게 말해 주어서 고맙다. 우리 는 널 사랑하니까 네가 성소수자라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다, 엄마 아빠에게 감추느라고 힘들었겠다 등의 반응이 용기를 주는 부모의 태도라고 할 수 있 다. 20 32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3. 커밍아웃, 왜 하는 걸까요? 33
하지만 이러한 몇 마디 말보다 더 필요한 것은 커밍아웃을 하고 있는 상대 방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 주는 자세다. 어설픈 말로 위로하거나 설교하는 것보다는 그저 당사자의 말을 들어 주는 것이 공감과 소통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한다. 스무 살 무렵 친구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 친구도 내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 같았다. 우리는 20년이 지나도록 한 번도 성 정체 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가장 친한 친구이다. 사랑과 결혼 이라는 매우 일상적인 이야기들 앞에서 우리는 말은 하지 않지만 함께 고민해 왔다. 커밍아웃이라는 절차는 없었지만 이미 우리는 소통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의 삶을 지지한다. 커밍아웃은 단 한 차례 이루어지고 말 순간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적으 로 상대와 소통하는 관계 형성의 시간이다. 부정과 긍정, 갈등과 화해의 단계 를 함께 공유하는 커밍아웃을 통해 성소수자들은 해방감뿐 아니라, 많은 질곡 의 시간과 관계들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될 것이다. 벽장 밖의 현실은 따뜻하고 밝지만은 않다. 그러기에 더욱 벽장 밖에서 성 소수자가 벽장문을 열기까지 겪었을 두려움과 아픔에 공감하고 그것에 대해 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나아가 성소수자가 오랜 고민 끝에 벽장문 을 열고 나왔을 때 소통이 이루어질 우리 사회를 기대해 본다. 34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제2부
동성애가 정신질환 목록에서 제외된 지 40년이 지났다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43년 전인 1973년, <미국정신의학 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가 전 세계적으로 정신과 진단의 표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4 동성애는 정말 질병인가요? 전환 치료의 허구성 준을 제시하는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 3판(DSM-III,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III) 1 에서 동성애를 정신과 진단명에 서 삭제하기로 결정하며, 아래와 같은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2 동성애가 그 자체로 판단력, 안정성, 신뢰성, 또는 직업 능력에 결함이 있음을 의미하지 않으므로, <미국정신의학회>는 고용, 주택, 공공장소, 자격증 등에서 동성애자에 대해 행 해지는 모든 공적 및 사적 차별에 개탄하며, 그러한 판단력, 능력, 신뢰성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을 다른 사람들에 비해 동성애자에게 더 많이 지워서는 안 된다고 선언하는 결의안을 채택한다. 나아가 <미국정신의학회>는 지방, 주, 연방 수준에서 동성애자인 시민들이 다른 사람들에 게 보장되는 수준으로 동일한 보호를 받도록 보장하는 민권 법이 제정되는 것을 지지하고 촉구한다. 또한 <미국정신의학회>는 서로 합의한 성인들 사이에 사적으로 행해지는 성행 위를 형사처벌하는 모든 법률을 철폐할 것을 지지하고 촉구한다. 동성애는 죄악입니다. 만약 그들이 변하길 원한다면 사악한 삶으로부터 치료될 수 있습니다. 이런 말들은 제 아들 바비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바비에게 해 준 말이었습니다. 아들이 동성애자라고 말했을 때 제 세계는 무너졌습니다. 저는 아 들을 치료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했습니다. 8개월 전, 제 아들은 다리에서 뛰어내 려 자살했습니다. 저는 게이와 레즈비언에 관한 지식이 없었다는 걸 깊이 후회합니 다. 제가 듣고 배웠던 모든 것들이 편협한 생각과 비인간적인 모함이었습니다. 바 비의 죽음은 그 부모가 가지고 있던 동성애에 대한 무지와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 영화 <바비를 위한 기도> 中 동성애가 정신질환이 아니라는 과학적 근거가 지난 40년 동안 의학, 심리 학, 사회학을 비롯한 다양한 학제의 연구 결과로 지속적으로 축적되면서, 3 오 늘날 동성애가 질병이 아니라는 주장은 상식이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어떤 권위 있는 정신과 학회도, 어떤 정신과 교과서도 동성애를 질병으로 분류하거 나 동성애가 질병인지 여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의학적 결정에도 불구하고 몇몇 반( 反 )동성애 운동 단체 4. 동성애는 정말 질병인가요? 39
를 중심으로 동성애는 질병이다 혹은 동성애가 질병인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자, 이와 같은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자 2016년 3 월 <세계정신의학회(World Psychiatric Association)>는 동성애가 질병이 아 니라는 입장을 명확히 밝힌 성명서를 발표했다. 4 항목인 성적 발달 및 지향과 관련된 심리, 행동적 질환(F66. Psychological and behavioural disorders associated with sexual development and orientation) 에서 성적 지향 자체는 질병이 아님(Sexual Orientation by itself is not to be regarded as a disorder) 을 명시하고 있다. 6 사회적 낙인과 차별을 영속시킨 불행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현대 의학이 동성을 대상 으로 한 성적 지향과 행동을 병리화하는 것을 그만둔 지는 이미 수십 년이 지났다(APA 1980).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는 동성을 대상으로 한 성적 지향을 인간 섹슈얼리티의 정상적인 형태로 인정하고 있다(WHO 1992). <유엔인권이사회>는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렌스젠더의 인권을 존중한다(2012). 두 주요 진단 및 분류 체계(국제 질병 사인 분류 ICD-10와 DSM-5)에서는 동성에 대한 성적 지향, 끌림, 행동, 그리고 성별 정체성이 병리 현상이라고 보지 않는다. 이처럼 학회, 학술지, 전문가들 사이에서 동성애가 질병이 아니라는 점에 는 더 이상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반( 反 )동성애 운동 진영의 전문가들 은 동성애가 질병이다 는 주장을 하기 위해 여러 근거를 왜곡해서 사용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세계보건기구>가 국제 질병 분류 10판(ICD-10)에서 자 아 이질적 성적 지향(F66.1 Egodystonic sexual orientation) 이라는 규정을 두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한 오역이다. 이 진단명은 스스로 는 자신의 성적 지향을 명확히 알고 있지만, 그것을 긍정할 수 없어서 심리적, 사회적으로 고통 받는 경우를 뜻한다. 5 예를 들어 스스로는 동성애자라고 확 신하지만, 자신이 속한 보수적인 기독교 커뮤니티가 동성애를 용납하지 않아 반( 反 )동성애 운동 진영의 또 다른 주장은 1973년 동성애를 질병 목록에서 삭제하기로 결정한 지 4년이 지난 1977년, 정신과 의사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조사를 근거로 든다. 7 당시 조사에 참가한 정신과 의사 중 69퍼센트가 동성애 가 정상적이라는 데에 반대 한다고 답했으며, 나머지 39퍼센트만이 동성애가 질병이 아니거나 질병인지 여부가 불확실하다고 답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보여 주는 일화일 뿐, 2016년 현재 전문가들이 동 성애를 질병이라고 생각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없다. 1977년 조사에 참 가한 미국 정신과 전문의들의 경우, 의과 대학과 레지던트 수련 과정에서 동 성애가 여전히 질병 목록에 포함된 편람(DSM-II이나 DSM-I)으로 배우고 훈 련 받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설문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의과 대학 시절 수 업과 정신과 전문의 수련 과정에서 동성애를 질병이라고 배웠던 이들 가운데 도 31퍼센트는 동성애가 질병이 아니거나 질병인지 여부가 불확실하다고 답 했다는 점이다. 2000년대 이후로 <미국정신의학회>가 정신과 전문의들을 대 상으로 동성애가 질환인지 여부를 묻는 설문을 실시했다는 소식은 들은 바 없 다. 이미 수십 년 전 논쟁을 끝내고 모든 의학 교과서와 정신의학회가 공식적 으로 입장을 표현한 내용에 대해 더 이상의 설문은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정체성과 소속감 사이에서 고통 받는 경우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는 단어이 다. <세계보건기구>는 혹시라도 이러한 진단명이 동성애가 질병이라는 주장 으로 오인될 가능성을 사전에 봉쇄하기 위해 자아 이질적 성적 지향 의 상위 성적 지향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40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4. 동성애는 정말 질병인가요? 41
대부분의 사람에게 성적 지향은 선택 사항이 아니다. 동성애가 선천적인 것 인지 후천적인 것인지에 대해서는 오랜 논쟁이 있어 왔다. 동성애와 관련된 유전자가 존재한다는 주장도 있었고, 8 어린 시절의 특정한 경험이 동성애자 은 이들이 선천적 요인과 후천적 요인 모두가 복합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 한다 고 밝히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성적 지향을 선택한다는 감각을 느끼 지 않거나, 아주 약하게 경험한다 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12 가 되는 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도 있지만, 9 연구마다 결과가 달라 이와 관련 해 학계에서 합의된 내용은 없다. 그러나 동성애가 선척적인 것인지, 후천적 인 것인지에 대한 논쟁과는 별도로, 성적 지향이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인 가와 관련해 <미국소아과학회>는 다음과 같이 명확히 정리하고 있다. 최신 문헌과 이 분야와 관련한 대다수 학자들은 성적 지향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즉, 개인은 선택에 의해 동성애자 또는 이성애자가 되지 않는다는 뜻 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성적 지향은 대개 아동기 초기에 형성된다. 10 즉, 성적 지향은 유전적인 요소와 환경적인 요소가 함께 작용하여 아동기 초기에 형성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내용은 성적 지향이 유전이냐 환경 이냐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성적 지향을 인지하게 되는 십 대에는 이미 개인이 자신의 성적 지향을 선택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심리학회> 역시 지난 2011년, 그간의 과학적 연구 성 과를 바탕으로 성적 지향과 동성애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문서 를 발간했다. 11 <미국심리학회>는 이 문서에서 개인의 성적 지향이 이성애, 양성애, 동성애로 발달되는 정확한 이유에 관해 과학자들 간에 일치된 의견은 없음 을 명확히 하고 있다. 나아가 성적 지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전적 요인, 호르몬상의 요인, 그리고 발달 및 사회문화적 요인에 관한 많은 연구가 수행되어 왔지만, 성적 지향이 특정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결론지을 수 있 는 연구 결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고 말한다. <미국심리학회>는 결론에서 많 동성애 전환 치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기에 치료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 인 선택에 따라 바꿀 수 없는 성적 지향을 외부적인 힘을 빌려 강제로 바꾸려 는 시도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하지만, 동성애 전환 치료 는 존재하지 않 는다. 다양한 형태의 동성애 전환 치료 가 근본주의 보수 기독교 집단을 중심으 로 계속 시행되어 왔고, 그 과정에서 치료의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지 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미국의 근본주의적 보수 기 독교 집단에서조차 동성애 전환 치료가 가능하다는 주장이 극단적인 주장으 로 취급되고 있다. 이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 주는 사례는 <엑소더스 인터내셔 널(Exodus International)>에 내려진 폐쇄 조치이다. <엑소더스 인터내셔널> 은 1976년 설립된 이후 미국과 캐나다에 250개 지부를 두고 그 밖의 17개국 에 150여개 지부를 가지고 있던 가장 큰 탈동성애 운동(Ex-gay movement) 단체로, 동성애 전환 치료를 주도해 왔다. 그런 <엑소더스 인터내셔널>이 지 난 2013년 6월, 그동안 자신들이 저지른 과오에 대해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사과하는 글을 발표하고 공식적으로 문을 닫았다. 13 그 사과문에서 <엑소더스 인터내셔널>의 회장인 알란 챔버스는 자신들이 무지로 인해 동성애를 치료의 대상으로 여겨왔고, 그 결과 성소수자들에게 도움보다는 상처를 주었다고 고 42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4. 동성애는 정말 질병인가요? 43
백했다. <미국심리학회>는 이러한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 하는 한편, 의료진과 동성애자들에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 위해 2008년 성적 지향에 대한 올바른 치 료적 대응(Appropriate Therapeutic Responses to Sexual Orientation) 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출간 했다. 14 이 보고서는 그동안 학술지에 영어로 게재된 동성애 전환 치료 관련 논문 83편을 체계적으로 검토 하고 정리하여, 학회 차원에서 동성애 전환 치료에 대 한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학회가 내린 결론은 앞서 이 야기한 것과 같다. 즉 현재까지 효과가 입증된 동성애 전환 치료는 존재하지 않으며, 성적 지향을 억지로 바 꾸려는 치료는 치료 대상자의 우울, 불안, 자살 시도 등을 증가시켜 오히려 동성애자의 정신 건강을 악화 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15 현재까지 효과가 입증된 동성애 전환 치료는 존재하지 않으며, 성적 지향을 억지로 바꾸려는 치료는 치료 대상자의 우울, 불안, 자살 시도 등을 증가시켜 오히려 동성애자의 정신 건강을 악화시킬 수 있다 선험적 가정에 근거한 소위 교정 치료(reparative therapy) 또는 전환 치료 (conversion therapy) 사용에 반대한다 는 내용의 보고서를 공식적으로 발 표하기도 했다. 16 <미국심리학회>뿐 아니라 다양한 보건, 의료, 심 리, 상담 관련 전문가 단체들 역시 위와 같은 입장을 반복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미국의사협회>는 의료 인들이 성적 지향과 행동에 대해 편협하지 않은 인식 을 가질 때, 건강한 사람에게도 아픈 사람에게도 최적 의 치료를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며, 동성애를 그 자 체로 정신 장애(mental disorder)로 가정하거나 환 자가 자신의 동성애적 성적 지향을 바꾸어야 한다는 44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4. 동성애는 정말 질병인가요? 45
1981년 첫 AIDS 환자 보고, 그 원인은 동성애가 아닌 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HIV)였다 AIDS 환자가 처음 발견된 것은 1981년 6월이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5 동성애는 HIV/AIDS의 원인인가요? 조작된 낙인과 공포 위치한 몇몇 병원에 동성애자 남성 다섯 명이 각각 내원했고, 그들이 일반인 들은 쉽게 걸리지 않는 폐포자충 폐렴(Pneumocystis carinii pneumonia)을 비롯한 여러 기회 감염에 걸렸다는 사실이 보고되면서부터다. 그 다섯 명은 공통적으로 T-림프구 숫자가 현저히 떨어져 있어 면역력이 약화된 상태였다. 당시에는 원인인 바이러스의 존재를 몰랐기에, 동성애자들에게 흔하게 나타 나는 감염병이라는 뜻으로 동성애 질환(Gay-Related Immune Deficiency; GRID)으로 불리기도 했다. 1 그로부터 2년 뒤 1983년, 원인 바이러스인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 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가 발견된다. 2 그리고 HIV 감염 이후에 질병 이 진행되면 면역 세포인 CD4 양성 T-림프구가 파괴되어 환자의 면역력이 약화되어 여러 질병이 발생하게 된다는 점이 규명되면서, HIV 감염 이후 질 UN 산하 에이즈 전담 기구인 UNAIDS는 HIV/AIDS의 낙인으로 인한 차별, 또는 성별 이나 성적 지향 등 섹슈얼리티로 인한 차별이 HIV/AIDS의 효과적인 예방과 치료에 장 벽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과학적 근거를 통해 보여 주며, 그 근거에 기반해 HIV/AIDS 감염인과 취약 계층에 대한 차별을 없애는 것을 HIV/AIDS 대응의 주된 비전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HIV/AIDS에 대한 낙인과 공포를 이용해 성소수자에 대 한 혐오와 차별을 선동하는 이들의 활동이 노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낙인과 공포, 차별을 없애기 위한 첫 걸음은 질병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 글 에서는 HIV/AIDS에 대한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HIV/AIDS 예방과 치료, 성소수자와 HIV/AIDS 감염인의 건강한 삶을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병의 진행에 따라 여러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를 AIDS(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 후천성면역결핍증)로 부르게 된다. 3 의학적으로 발견 된 첫 AIDS 환자는 1981년 미국의 동성애자였지만, 1970년대 후반에 이미 케냐를 비롯한 중앙아프리카 국가에서 성매매 여성을 중심으로 HIV 감염이 널리 퍼져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원인 바이러스 규명과 더불어 이러한 사 실이 드러나며 HIV 감염을 동성애 질환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의학적 근거를 잃 는다. <한국질병관리본부>의 HIV/AIDS 관리 지침 4 에 따르면, 현재까지 HIV가 5. 동성애는 HIV/AIDS의 원인인가요? 47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파되는 경로는 3가지뿐인 것으 로 밝혀졌다. 첫째는 질 성교 및 구강, 항문 성교 등을 포함한 성 접촉이다. 단 가벼운 키스나 포옹으로는 전 파되지 않으며, 콘돔 등을 사용하지 않고 HIV 환자와 성관계를 했을 경우에도 HIV에 감염될 확률은 0.01 퍼센트 이하로 알려져 있다. 두 번째는 HIV 감염인의 피를 수혈 받거나 감염인의 피가 남아 있는 주사기를 사용했을 때와 같은 혈액을 통한 전파이다. 마지막으 로 HIV에 감염된 여성이 출산했을 때 아기에게 바이 러스가 전파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세 가지 전파 경로, 즉 성생활, 혈액이 노출되는 경우, 임신 등에 있어서 적절한 예방 조치를 취하면 HIV 감염으로부터 안전 하다. 동성애는 HIV 감염의 원인이 아니다 동성애는 HIV 감염의 원인이 아니다. 동성끼리 성관계를 갖는다고 HIV가 생겨나지 않는다. 5 동성 애 집단에서 HIV 감염 유병률이 비동성애자들에 비해 높은 것은 동성 커플이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 (Unprotected sex)를 갖는 경우에 HIV 감염인인 파 트너로부터 전염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성 간 이든 동성 간이든 감염인인 파트너와 안전하지 않은 원인 바이러스 규명과 더불어 HIV 감염을 동성애 질환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의학적 근거를 잃게 된다 성관계를 갖는 경우 똑같이 HIV에 감염될 수 있다. 따라서 바꿔야 하는 것은 동성애 자체가 아니라 안전하지 않은(unprotected) 성관계이다. <질병관리본 부> 보고에 따르면, 한국 HIV/AIDS 감염인들 중 95퍼센트 이상은 성관계를 통해 감염되었기 때문에, 콘돔 사용 등의 예방법을 활용한다면 HIV는 효과적 으로 예방 가능하다. 6 따라서 의학계가 권장하는 안전한 성관계를 갖는 한, 동 성 커플에서 HIV는 전파되지 않는다. 7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모든 사회 구 성원들이 보다 안전한 성관계를 맺을 때라야 HIV 감염의 전파 속도를 줄일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과학적이고 윤리적이며 효과적인 방법이 라는 것을 각종 의학 연구 결과들이 말해 주고 있다. 동성애자에 대한 낙인이 HIV 감염 위험을 높인다 동성애에 대한 낙인과 혐오에 기반하여 동성애를 HIV 감염과 연관 짓는 것 은 HIV/AIDS의 예방과 치료에 큰 장벽으로 작용하고, 오히려 그 유병률을 높 이는 결과를 낳는다. 8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만연한 사회에서 동성애 자를 비롯해 HIV에 감염될 위험이 높은 집단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적극적으 로 드러내고 필요한 예방 수단에 접근하거나, 정기적인 검진을 받는 것이 아 니라, 오히려 스스로의 존재를 숨기고 음지에서 행동하게 된다. 전 세계 115개국에 거주하는 3,340명의 남성 동성애자를 조사한 최신 연 구 결과에 따르면, 동성애를 처벌하는 나라에 거주하거나 높은 수준의 성적 낙인(Sexual stigma)을 느끼는 사람일수록 HIV/AIDS를 예방하는 주요한 방 법인 콘돔과 윤활젤을 사용하는 비율이 유의미하게 낮으며 HIV 검사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9 또한 UN의 보고서에 따르면 비슷 48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5. 동성애는 HIV/AIDS의 원인인가요? 49
한 사회문화적 맥락을 가진 아프리카와 카리브해 지 역 국가들 중에서도 동성애를 처벌하는 국가의 HIV/ AIDS 유병률이 처벌하지 않은 국가의 유병률보다 높 은 것으로 나타난다. 10 즉, 현실에서 HIV/AIDS 유 병률을 증가시키는 원인은 동성애가 아니라 동성애 혐오와 동성애자에 대한 낙인 및 제도적 차별이다. 2015년 <질병관리본부>에서 발간한 2015 에이즈 에 대한 지식, 태도, 신념 및 행태 조사 보고서에 따 르면 2014년도에 일반인들이 AIDS 환자에게 사회적 낙인을 가하는 수준이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매년 진행된 4년의 조사 가운데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 다. 11 한국에서 HIV/AIDS 유병률을 낮추기 위해 필 요한 일은 질병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낙인찍기를 멈추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HIV 감염을 동성애자 집단의 문 제로만 국한해 생각하는 것은 사회 전체적으로 HIV 감염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많은 연구들 이 HIV 감염을 사회적으로 배제된 특정 집단의 질병 으로만 생각할 경우 그 취약 집단에 속하지 않는 사람 들에게 자신들이 HIV 감염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착각 을 불러일으켜 그들을 오히려 위험에 노출시킨다고 말하고 있다. 12 즉, 이성애자 간의 성관계에서도 HIV 가 전염될 수 있음에도 자신은 이성애자이니 동성애 현실에서 HIV/AIDS 유병률을 증가시키는 원인은 동성애가 아니라 동성애 혐오와 동성애자에 대한 낙인 및 제도적 차별이다 자들의 질병 인 HIV 감염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착각하며, 안전하지 않은 성관 계를 지속하고 HIV 검사를 받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13 HIV 감염은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이다 HIV 감염은 의학적으로 더 이상 치명적인 죽음의 질병이 아니라 관리 가 능한 만성질환이다. 14 1981년에 첫 AIDS 환자가 보고된 이래 지난 30년간 HIV/AIDS에 대한 연구와 치료법은 비약적으로 발전해 왔다. 특히 1995년 다양한 약제를 병용하여 효과적으로 바이러스를 억제하고 내성을 방지하는 칵테일 요법이 도입되면서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15 칵테일 요법 덕분에 HIV 감염인의 질병 진행 속도를 매우 늦출 수 있게 되었고, 이미 AIDS 관련 질환이 발병한 경우에도 환자의 건강 상태를 개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최근의 연구들은 이러한 치료들이 HIV에 감염된 이들의 평균 수명에 미친 영향을 검증하고 있다. 2008년 의학 저널 랜싯(Lancet) 에 영국, 미국, 캐나 다 등에서 진행된 국제 협력 연구 결과가 실렸는데, 20살에 HIV에 감염이 확 인된 경우 적절한 치료를 받는다면, 평균적으로 감염 이후 32-50년을 더 살 아간다고 발표했다. 16 보다 최근에 발표된 연구는 스무 살의 HIV 감염인이 적 절한 치료를 받는다면 70대 초반까지, 즉 감염되고도 평균적으로 50년을 더 살 수 있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17 비록 완치는 힘들다 할지라도 치료 기술이 발달한 덕분에 당뇨나 고혈압처럼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으로 HIV/AIDS라는 질병의 성격이 변화한 것이다. 50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5. 동성애는 HIV/AIDS의 원인인가요? 51
문제는 동성애가 아니라 동성애 혐오이다 동성애 혐오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니다. 모든 시대, 모든 종교, 모 든 문화에서 동성애에 대해 혐오감을 갖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6 동성애 혐오도 권리인가요? 편견과 인간의 존엄성 가 쉽다. 동성애 혐오는 사회문화적 배경에 따라 나타나기도 하고 그렇지 않 기도 한다. 예컨대 역사적으로 불교 문화권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 태도 가 드러나지 않는다. 1 한국의 경우에도 동성애 혐오가 언제나 있었던 것이 아 니다. 오히려 한국, 중국 등 아시아 국가에서는 과거에 왕이나 귀족을 중심으 로 동성 간의 성적 관계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2 동성애를 포용하지 못하고 불쾌하게 여기며 적대시하는 태도를 흔히 호모 포비아(homophobia), 다른 말로 동성애 혐오 또는 동성애 공포 라고 한 다. 호모포비아는 미국의 심리학자 조지 와인버그가 1969년 처음 소개하였 고, 1972년 자신의 저서 사회와 건강한 동성애자 에서 자세히 논의하면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3 이 말의 등장은 연구자들의 초점이 바뀌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연구자들 은 더 이상 동성애를 문제 삼지 않고 동성애를 혐오하는 사회적 태도에 주목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많은 연구를 통해 동성애자에 대한 부정적 반응들이 동성애자에 대한 왜곡된 정보를 퍼뜨려 편견을 조장하고 적개심을 부추기는 말들이 한 국 사회에서 공공연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런 사회적 태도는 분명 전 세계적 흐름과 매 우 큰 차이가 있다. 많은 나라에서 동성애자에 대한 역사적인 낙인과 차별을 철폐하고 사실은 편견에서 비롯된 막연한 공포에서 나온다는 점을 지적하게 되었다. 4 이러한 공포의 근원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동성애에 대한 편견이 만들어진 역 사적 배경을 살펴보자. 있는 동안, 한국에서는 오히려 동성애자에 대한 낙인과 차별을 만들어 가고 있는 듯 보 이기도 한다. 하지만 사회 구성원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며, 동성애 포용도가 빠른 속도 로 높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혐오 발언의 폭력성을 인식하고 동성애자를 포함한 모든 동성애 혐오의 역사적 기원 인간에 대한 존중을 실현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6. 동성애 혐오도 권리인가요? 53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 태도의 기원은 우선, 성에 대해 엄격했던 종교적 윤 리에서 찾을 수 있다. 근대 이전의 기독교는 임신 출산 목적 이외의 모든 성행 위를 죄악시하는 엄격한 성윤리를 적용했다. 이런 교리에 따라 중세 유럽에서 는 임신 출산과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성적 행위를 소도미(sodomy) 라 하여, 동성 간, 이성 간을 막론하고 엄벌로 다스렸다. 5 13세기에는 유럽 전역에서 임 신 출산 목적 이외의 성행위가 사형이 가능한 범죄로 취급되었다고 한다. 6 영국에서는 1533년에 동성 간 성행위를 처벌하는 법을 도입하였고 1967 년이 되어서야 이를 폐기했다. 반면 프랑스와 같이 일찌감치 종교와 정치를 분리한 국가에서는 이런 종류의 법이 빠르게 철폐될 수 있었다. 프랑스는 프 랑스혁명을 거치면서 1791년에 소도미법을 철폐하였다. 7 미국 연방대법원은 한참 뒤인 2003년 동성애 처벌법을 폐기하였는데, 이때 다수가 국가의 권한 을 이용하여 종교적 신념을 사회 전체에 강제할 수 없다 고 결정했다. 8 동성애를 질병으로 보던 과거의 정신의학적 관점도 동성애 혐오에 영향을 주었다. 19세기 말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정신의학계가 동성애를 정신질환 의 하나로 규정하면서 동성애가 비정상 이라는 관념이 널리 퍼졌다. 병리적 관점에서 볼 때 동성애는 치료 대상이었고, 정신분석, 호르몬 요법, 거세와 음 핵 제거, 전두엽 절제술 등이 동성애를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시도되었다. 9 그 러다가 1973년 <미국정신의학회>가 동성애는 정신질환이 아니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이어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DSM) 의 진단명에서 동성애를 삭제하였고,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1990년 국제 질병 분류 체계(ICD)에서 동성애를 삭제하면서 의학계에서 동성애를 병리적 관점으로 바라보던 시각이 철폐되었다. 10 동성애자들이 사회적으로 위험한 사람으로 취급되었던 역사도 있다. 인간의 역사는 편견과 낙인을 벗어나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을 수호하는 쪽으로 발달해 왔다 1930~40년대 독일 나치 치하에서는 동성애자가 상 습적 비행자 로 취급돼 강제수용소로 보내지고 학살 당했다. 11 한편, 1950년대 냉전 시대에 미국에서 공 산주의에 대한 공포가 극도로 커졌을 때에는 동성애 자가 공산주의자와 내통하는 국가 안보상 위험인물 로 여겨져 연방 공무원직에서 해고되는 일도 있었 다. 12 반면 1949년 중국 공산당은 동성애를 부르주 아 타락의 신호 라고 선언하고 동성애자들을 억압했 다. 13 결국 동성애자들이 배척의 대상이 된 것은 동성 애라는 행위 자체가 사회적으로 위험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다르다 는 이유에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동성애를 부도덕한 것, 비정상인 것, 사회적으로 위험한 것이라고 보는 관점들은 이와 같이 종교적, 사 회적 맥락에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 의 역사는 이러한 편견과 낙인을 벗어나 인간의 존엄 성과 평등을 수호하는 쪽으로 발달해 왔고 그렇게 진 화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전 세계 70여 개 국가들 에서 동성애는 처벌의 대상인 게 사실이다. 이들 중 상당히 많은 나라들은 식민지 시대에 영국에서 이식 된 동성애 처벌법을 유지하고 있다. 14 이제는 유럽의 모든 국가가 동성애를 더 이상 처벌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동성 결혼을 인정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 이다. 54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6. 동성애 혐오도 권리인가요? 55
우리나라에도 군형법에 동성 간 성행위를 처벌하는 조항이 남아 있다. 소위 계간 죄라고 불리던 이 조항은 1962년 군형법 제정 당시 도입된 오래된 조항 으로,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48년 미군정 시대에 제정된 군정 법률인 국방 경비법 (1928년 미국 전시 군법을 번역하여 도입된 것)에서 기원한다. 15 이 조 항이 현재 군형법 제92조의6 추행죄로 남아 항문 성교나 그 밖의 추행[ 醜 行, 추한 행위 라는 뜻]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 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동성애 를 비정상으로 취급하여 형벌로 다스리던 구시대적 태도가 우리 법 제도 속에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이다. 한 대량 학살이 이런 비인간화의 과정을 통해 일어났다는 점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독일 나치는 유대인을 혐오스러운 곤충, 병균, 암세포, 오염과 타락의 존재로 묘사했고, 17 르완다에서는 소수민족을 바퀴벌레 라며 없어져야 할 존 재라고 선동했다. 학살은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사람에 대한 집단적 적개심을 부추기는 말을 혐오 발언 또는 혐오 표현(hate speech)이라고 한다. 혐오 발언은 말이란 것이 어떻게 사람을 해치 는 잔인하고 위험한 폭력이 될 수 있는지 보여 준다. 지금도 세계에서는 단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당하고 심지어 살해당하는 일이 일어난다. 2011년 우간다에서는 동성애자 인권 활동가 데이비드 카토가 살해 동성애 혐오는 편견에 기초한 차별과 폭력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 혐오는 흔히 동성애를 성 중독, 소아 성범죄, 또는 소위 종북 과 연관지어 부르는 형태로 표출된다. 동성애라는 개념이 더 러운, 항문, 수간 등의 단어와 함께 사용되는 경우도 매우 많다. 사람들이 이처럼 동성애자를 혐오스럽게 묘사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이런 말은 왜 문제 가 될까? 무엇보다 이런 종류의 단어를 동성애와 엮어서 표현할 때 발생하는 분명한 효과가 있다. 동성애자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성소수자와 교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이런 말을 통해 알 수 없는 공포 감을 품기 쉽다. 16 흔히 그렇듯이, 말이 사람에 대한 편견을 만든다. 일단 편견이 형성되면 사람들은 그 편견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착각해 특 정 집단에 불이익을 주고 그 집단을 불평등하게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오류 를 범하기 쉽다. 게다가 사람을 병균, 오물, 동물 처럼 취급하다 보면,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없는 매우 잔인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인류에 대 되었다. 한 신문사가 동성애자로 지목된 100명의 사진을 신문에 싣고 동성애 자들이 학교에서 아이들을 잡아가려고 한다 고 공포를 조성하는 기사를 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발생한 일이었다. 18 이처럼, 혐오 발언이 위험한 것은 그 것이 단순히 말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광범위한 차별과 잔혹 한 폭력을 부르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19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감과 적개심이 실제로 행동으로 옮겨져 구체적인 범 죄로 나타날 때, 이를 혐오 범죄 또는 증오 범죄(hate crime)라고 한다. 최근 에 여러 대학에서 성소수자를 환영하는 현수막이 훼손되었던 사건이 대표적 인 혐오성 재물 손괴 범죄이다. 퀴어문화축제나 공청회 등 성소수자 관련 모 임이나 행사장을 물리적으로 막고, 소음으로 방해하고, 심지어 인분을 뿌리기 도 하는 등의 혐오 범죄가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런 혐오성 폭력에 가장 취약한 집단 중 하나가 청소년이다. 학교 폭력의 형태로 나타나는 동성 애 혐오성 괴롭힘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교육권을 심각하게 제약한다. 20 그렇다면 동성애자를 혐오할 권리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헌법 56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6. 동성애 혐오도 권리인가요? 57
과 국제 인권법은 모든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을 보장 하고 차별을 금지하는 원칙을 분명하게 채택하고 있 다.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발언을 하며 동 성애자들을 사회에서 존재해서는 안 될 존재로 묘사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부정이며 심각한 차별이자 폭력이다. 결국 동성애자를 혐오할 권리 를 주장하는 것은 인간을 차별하고 폭력을 행사 할 권리 를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존엄 성, 평등, 민주주의, 평화 등 이 사회를 구성하는 근본 원칙 자체를 부정하는 셈이다. 인간을 혐오할 권리가 존재하지 않듯, 바로 그 이유로 동성애자를 혐오할 권 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편견을 벗고 사람을 만나기 사회가 동성애를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2013년 한국에서 그렇다 고 응답한 사람은 39 퍼센트였다. 21 2007년에 같은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 한 비율이 18퍼센트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상황이 두 배 가까이 나아졌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39퍼센 트라는 포용 수준은 OECD 국가는 물론이고 전 세계 다른 국가와 비교해 봤을 때도 여전히 상당히 낮은 편 에 속한다. 22 스페인은 88퍼센트, 독일은 87퍼센트, 인간을 혐오할 권리가 존재하지 않듯, 바로 그 이유로 동성애자를 혐오할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캐나다는 80퍼센트가 동성애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응답했으며, 일본도 한국 보다 높은 54퍼센트가 포용적 태도를 보였다. 2013년에 조사한 39개국 가운 데 한국보다 동성애 포용도가 낮은 나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중국, 러시아, 터키, 우간다 등이었다. 동성애자에 대해 혐오감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연구에 의하 면, 동성애자와 의미 있는 관계를 맺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23 성소수자 의 삶과 경험을 듣고 인간적으로 교류하면서 편견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 는 지식과 경험을 얻게 된다. 24 또 남성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성차별주의나 특정 인종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인종차별주의와 같이, 이성애가 동성애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이성애주의 가 내 안에 있는 건 아닌지 성찰할 필요도 있 다. 25 요컨대 동성애자에 대한 적개심을 부추기는 허위 사실과 편견 대신 정확한 지식을 알고, 동성애자를 인간적으로 만나는 경험을 하며, 모든 인간이 똑같 이 소중하다는 평등 의식을 가질 때,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감을 덜어 내고 포 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이런 존중과 포용은 동성애자뿐만 아니라 장애 인, 이주민 등 다양한 소수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요청되는, 시민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 덕목이다. 성소수자 혐오를 철폐하기 위해 전 세계는 매년 5월 17일을 국제 동성애 혐오 트랜스 혐 오 양성애 혐오 철폐의 날(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Transphobia and Biphobia) 로 지정하여 기념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1990년 국제 질병 분류 체 계(ICD)에서 동성애 를 삭제한 날을 기념한 것으로서, 우리나라에서도 매년 관련 행사가 열린다. 58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6. 동성애 혐오도 권리인가요? 59
차별이란 무엇인가? 차별(discrimination) 이란 같은 조건과 상황임에도 다르게 대우하는 것을 말한다. 반대로 평등의 원칙은 같은 조건과 상황이라면 평등하게 대우해야 한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7 왜 성소수자를 차별하면 안 되나요? 차별 금지의 법적 근거 다는 것이다. 1 물론 다르게 대우한 이유가 합당하다면 차별이 아니다. 예컨대, A가 B보다 그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에 더 적합해서 A를 합격시키고 B를 떨어 뜨렸다면 A와 B를 다르게 대우했지만 차별은 아니다. 하지만 동일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특정 집단에 속해 있다는 이유, 예를 들어 여성,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불합격을 시켰다면 불합리한 차별 이 되는 것이다. 차별은 소수자(minority) 의 문제이다. 2 동일한 조건과 상황에서 부당한 차별을 받는 것은 대개 소수자이기 때문이다. 소수자 집단은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불리한 지위에 있기 때문에 그 구성원들이 집단적으로 차별의 대 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소수자 집단은 신체적, 문화적으로 다른 집단과 구분될 수 있는 집단적 특징과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범주로서 상정된다. 성소수자는 차별에 취약한 대표적인 소수자 집단이다. 성소수자를 차별하면 안 되는 이유는? 평등과 차별 금지는 사회에서 다양한 시민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자신의 삶을 영위하 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며, 국제법과 국내법은 차별 금지의 원칙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은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차별 금지 사유로, 합당한 이유 없이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을 근거로 차별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된다. 모든 시민은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는 것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향 하는 사회의 대원칙이며, 국제 인권법과 대한민국 헌법에도 가장 중요한 원칙 으로 명시되어 있다. 성소수자도 시민으로서 당연히 이러한 평등한 대우를 받 을 권리가 있지만, 다양한 차별적 현실에 직면해 있는 게 사실이다. 성소수자 7. 왜 성소수자를 차별하면 안 되나요? 61
라는 이유로 취업 기회를 제한당하거나, 사회적 낙인 때문에 본인의 정체성을 드러내 놓고 살지 못하는 경 우가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동성애자가 AIDS 확산의 주범인 것처럼 낙인찍히거나, 치료를 강요받거나, 혼 인할 자유를 침해받는 것, 트랜스젠더의 성명/성별 정정이 불허되는 경우가 한국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는 성소수자가 시민으로서 평등한 지위 를 누리고 살지 못하는 차별적 현실의 극히 일 부분일 뿐이다. 이러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철폐 하는 것은 우리의 상식이자, 도덕적, 법적 책무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는 것은 우리의 상식이자, 도덕적, 법적 책무이다 별/지역별로 특수한 상황에 따라 달리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 구분해 볼 수 있 다. 일반적으로, 인종, 성별, 장애, 연령, 종교, 혼인 여부, 출신 국가/민족, 성 적 지향, 성별 정체성 정도가 보편적 차별 금지 사유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보편적 차별 금지 사유는 국가별 특수성을 고려할 여지가 없이, 말 그대로 보 편적 으로 적용되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국가가 그 국가의 고유한 전통이나 현실을 내세워,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 금지의 예외를 주장 하다면, 그것은 받아들여질 수 없다. 보편적 차별 금지 사유를 제외한 나머지는 국가별, 지역별 상황에 따라서 달리 정해질 수 있을 것이다. 차별적 현실에 직면한 소수자 집단의 종류가 구 체적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법 은 보편적인 차별 금지 사유 외에 출신 지역, 용모, 학력에 따른 차별을 금지 하고 있는데, 이것은 한국의 특수한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차별 금지 사유로서의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 원칙적으로 모든 차별은 금지된다고 할 수 있지만, 차별 금지를 법으로 시행할 때는 차별 금지 사유 를 구체적으로 규정한다. 개별 국가의 법제를 보면, 인 종, 성별, 장애, 연령, 종교, 혼인 여부, 출신 국가/민 족,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양심/신념, 가족관계, 전 과, 병력, 문화, 언어, 신체 조건, 학력 등이 차별 금 지 사유로 나열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차별 금지 사유들은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과 국가 국제 인권 규범이나 해외 주요 국가들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금지를 대표적인 보편적 차별 금지 사유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좀 더 자세 히는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을 모두 금지하고 있다. 먼저 성 적 지향(sexual orientation) 에 따른 차별이 금지된다. 3 성적 지향은 특정 성 을 (지)향하여 매력을 느끼는 것을 뜻하며 이성을 향하여 성적 매력을 느끼 는 성적 지향(이성애), 동성을 향하여 성적 매력을 느끼는 성적 지향(동성애), 남성, 여성에게 모두 성적 매력을 느끼는 성적 지향(양성애)으로 구분된다. 따 라서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다는 것은 특정 성에 매력을 느낀다는 이유로 차별적 대우를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예컨대 동성애를 범죄화할 수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취업이나 입학에서 불이 익을 주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동성 결혼의 경우에 62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7. 왜 성소수자를 차별하면 안 되나요? 63
는 혼인에 있어서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성별 정체성(gender identity) 도 차별 금지 사유로 인정된다. 성별 정체 성이란 자신이 특정 성별에 속해 있다고 느끼거나 인식하는 것을 말하며, 출 생 시 지정받은 성별과는 다른 성별에 속한다고 느끼고 인식하는 사람을 우리 는 트랜스젠더(transgender) 라고 부른다. 따라서 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 을 금지한다는 것은 자신의 성별을 어떻게 느끼고 인식하든 그 이유로 차별 적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한국에서도 대법원이 트랜스젠더의 이 름/성별 변경을 허용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는데(대법원 2006.6.22., 2004스42), 트랜스젠더 역시 한 명의 인간으로 존엄하고 평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이해할 수 있다. 성소수자 차별 금지에 대한 국제 규범 반( 反 )차별 또는 차별 금지(non-discrimination)의 원칙은 국제 규범에 의 해 확고하게 인정되고 있다. 유엔헌장(United Nations Charter) 은 1조 2항 과 3항에서 유엔 결성의 목적 중 하나로 차별 금지 와 평등 을 명시하고 있 고, 1948년 세계인권선언 역시 1조와 2조에서 평등과 차별 금지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4 세계인권선언 을 구체화한 조약인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 에 관한 국제 규약 (이하 자유권규약 )의 2조 1항과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 (이하 사회권규약 )의 2조 2항에도 평등과 차별 금지 의 원칙이 명시되어 있다. 이 규약의 각 당사국은 자국의 영토 내에 있으며 그 관할권 하에 있는 모든 개인에 대하여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기타의 의견,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또는 기타의 신분 등에 의한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없이 이 규약에서 인정되는 권리 들을 존중하고 확보할 것을 약속한다. (자유권규약 2조 1항) 이 규약의 당사국은 이 규약에서 선언된 권리들이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 는 기타의 의견,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또는 기타의 신분 등에 의한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없이 행사되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사회권규약 2조 2항) 다만 구체적인 차별 금지 사유가 국제 규범에 빠짐없이 제시되어 있다고 보 기는 어렵다. 이는 일종의 예시적 규정이며, 국제 규약 제정 이후의 변화된 상황과 인권의 발전 정도에 근거하여 구체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실제로 성 적 지향 과 성별 정체성 은 국제 조약에 명문 규정은 없지만, 국제 인권 기구 의 권위 있는 해석 을 통해 인정되어 온 차별 금지 사유라고 할 수 있다. 5 그 동안 <자유권위원회>, 6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위원회>, 7 <아동권리위원 회>, 8 <고문방지위원회>, 9 <여성차별철폐위원회> 10 등 국제 인권 기구들이 차 별 금지 사유에 성적지향 이 포함된다는 것을 공식 문서를 통해 일관되게 확 인한 바 있으며, 한국에 대한 국제 인권 기구의 권고 내용 가운데에도 포괄적 차별금지법 에 성적 지향 이 빠져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있었다. 11 특히 최근에는 유엔 차원에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을 금지 하는 각종 결의문과 보고서가 연달아 채택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 다. 2011년 6월 17차 <유엔인권이사회>에서는 인권,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 성 이라는 결의안이 채택되었고, 12 12월에는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이 유로 한 차별적 법과 현실 및 개인에 대한 폭력적 행위 라는 보고서가 제출되 었다. 13 또한 2014년에는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 금지에 대한 64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7. 왜 성소수자를 차별하면 안 되나요? 65
의지를 밝히는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14 이러한 공식적인 논평, 결의, 보고서 외에도 유엔은 성적 지향과 성별 정 체성에 근거한 차별을 없애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자유와 평등(Free & Equal) 캠페인 15 을 전개하며 다양한 홍보 자료를 배포하고 활동해왔으며, 16 작년 9월 유엔 총회에서는 <유니세프>, <국제보건기구>, <유엔인권최고대표 >, <국제노동기구> 등 유엔 내 12개 기구가 모여 성소수자(LGBTI)에 대한 폭 력과 차별을 종식하기 위하여 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특히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이러한 취지의 공식 연설을 수차례 행한 바 있다. 17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헌법 11조 1항) 평등권 침해의 차별 행위 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 신 지역(출생지, 등록 기준지, 성년이 되기 전의 주된 거주지 등을 말한다), 출신 국가, 출 신 민족, 용모 등 신체 조건, 기혼 미혼 별거 이혼 사별 재혼 사실혼 등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 인종,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前 科 ), 성적( 性 的 ) 지향, 학력, 병력( 病 歷 ) 등을 이유로 한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말한다.(국가인권위원회법 2조의 3)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에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혼자가 아닙니다. 폭력 과 차별을 끝내기 위한 투쟁은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투쟁입니다. 당신들에 대한 모든 공 격은 유엔과 내가 수호하고 지키기로 맹세한 보편적 가치들에 대한 공격입니다. 오늘, 저 는 당신들의 편에 섭니다. 그리고 모든 국가와 사람 들에게 당신들 편에 함께 서라고 요청 합니다. 이러한 국제 기준에 따라, 캐나다,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 아일랜드, 영국, 스웨덴 등 주요 국가들도 차별금지법에 차별 금지 사유로 성적 지향 을 명시하고 있다. 성소수자 차별 금지에 대한 국내 규범 우리 헌법과 법률도 국제 규범에 준하는 평등과 차별 금지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이외에도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제5조), 군에서의 형 의 집행 및 군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제6조)은 차별 금지 사유로 성적 지향 을 명시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이러한 취지를 담아 차별 금지 사유를 정하는 사례가 속속 늘어나고 있다. 예컨대 서울특별시 학생인권 조 례 (제5조)와 서울특별시 어린이 청소년 인권조례 (제7조)는 성적 지향과 함 께 성별 정체성을 차별 금지 사유로 정하고 있다. 한국은 위와 같이 국내법으로 성소수자 차별 금지 원칙을 명확히 하고 있으 며, 국제 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각종 국제 결의에서도 성소수자에 대 한 차별 금지에 찬성하는 표를 던졌다. 실제로 2011년 유엔의 인권, 성적 지 향과 성별 정체성 결의안에도 찬성했고,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차별 금 지 사유로 언급한 2009년 국제 인권 조약에 관한 결의안 과 2010년 비사법 적, 약식, 자의적 집행에 관한 결의안 에도 찬성 의견을 개진한 바 있다. 18 이렇게 국제법과 국내법이 명시적으로 성소수자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데 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차별 금지의 원칙을 분명히 천명하고 적절히 66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7. 왜 성소수자를 차별하면 안 되나요? 67
집행하지 않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2015 년 11월 5일에는 <유엔자유권위원회(UN Human Rights Committee)>가 한국 성소수자의 인권 현실 에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적절한 조치를 권고한 바도 있다. 19 양한 종교적 신념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나의 (국가) 공동체에서 살아 갈 때 반드시 지켜야 하는 상호 존중과 평등 대우의 원칙을 담고 있다. 이 원 칙에 따르자면 케이크를 만들어 특정 종교의 신자들에게만 개인적으로 제공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어떤 상품을 공급하거나 채 용을 할 때, 차별 대우를 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 만약, 개신교 신자가 운 영하는 제과점은 개신교 신자들에게만 빵을 팔고, 불교 신자가 운영하는 회사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금지가 종교에 대한 차별인가? 최근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 종교 에 대한 (역)차별 이라는 주장을 종종 접하게 된다. 일례로 어떤 제과점에서 레즈비언 결혼식에 케이크 를 판매하는 것을 거절한 경우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 쟁을 들 수 있다. 일단, 차별금지법은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법이 아니다. 차별금지법은 제과점 주인이 종교적, 양심적으로 레즈비언 결혼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간섭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차별 금지 원칙은 모든 시민이 각자의 신념에 따라 자유롭고 평등하게 더불어 살아 갈 수 있는 최소한의 공존의 조건 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는 불교 신자들만 채용하고, 가톨릭 신자가 설립한 학교는 가톨릭 신자에게만 입학을 허가하고, 원불교 신자가 운영하는 버스 회사에서는 원불교 신자만 탑 승을 허용할 때 세상이 어떻게 될지 한 번 생각해 보자. 종교의 자유를 허용한 다는 것은 특정 종교를 우대하거나 특정 종교를 차별하는 외부적 행위를 용인 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차별 금지 원칙은 모든 시민이 각자의 신념에 따라 자 유롭고 평등하게 더불어 살아 갈 수 있는 최소한의 공존의 조건 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종교적 양심적 신념이 외부로 표출 되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면 그것은 전혀 다 른 문제가 된다. 실제로 차별금지법은 종교적 신념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 재화 서비스 교통 주거 의 공급, 교육 등과 관련하여 특정한 사람에게 불리한 대우를 하는 것을 규제하는 법이다. 차별금지법은 다 68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7. 왜 성소수자를 차별하면 안 되나요? 69
제3부
법적 성별이 자신의 성별 정체성과 일치하지 않을 때 일어나는 일들 많은 트랜스젠더들은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따라 사회적 삶을 영위하기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8 트랜스젠더는 왜 법적으로 성별을 변경하려고 하나요? 법 앞의 인정 를 바라며, 이를 위해 일정한 시점에서 성별 이행(transition)의 과정에 들어 간다. 복장을 포함하여 외형적인 모습을 바꾸거나, 호르몬 요법을 통하여 2 차 성징을 변화시키거나, 혹은 외과적 수술로 신체적인 전환을 하고자 한다. 어떠한 선택을 하는가는 각자의 성별 위화감(gender dysphoria) 정도 등 에 따라 다르다. 성별 이행을 한 트랜스젠더는 여성 또는 남성으로 통하는 (passing) 모습을 가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어느 한 쪽으로도 보이지 않는 중 성적인 모습을 가지게 되기도 한다. 트랜스 여성이 여성으로 통하거나 트랜스 남성이 남성으로 통하는 성별 이 행을 거치면서 사회관계에서 기존의 신분증상 성별과 외모가 불일치하는 문 제가 발생할 수 있다. 동시에 법적으로 남성과 여성을 다르게 취급하는 경우 법적 성별이 자신의 성별 정체성 및 현재 살아가고 있는 사회적 성별과 불일 치하는 문제도 생긴다. 먼저, 신분증이나 여권 등 공문서상의 성별 표기가 자신의 성별 성체성과 일치하지 않아 생기는 가장 큰 문제는 신분 확인이 불가능해진다는 점이다. 개인이 스스로 규정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은 인격의 일부이며, 자기 결정, 존엄성, 자유의 가장 기본적인 측면 가운데 하나이다. 법적으로 성별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한 요건으로 의료적 시술, 예컨대 성전환 수술이나, 불임, 호르몬 요법 등이 강제되어서는 안 된다. 결혼이나 자녀 여부와 같은 상태를 성별 정체성에 대한 법적 인정을 막기 위한 근거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 요그야카르타 원칙(Yogyakarta Principles) 중 제3원칙 법 앞에 인정받을 권리 이로 인해 신분증 제시가 필요한 모든 상황에서 신분증을 제시하기 어려워지 거나 제시하여도 본인 여부를 의심받게 되어서 일상생활에 많은 제약을 받는 다. 단순한 예로 구청이나 주민 센터 등의 행정기관 및 법원, 경찰서와 같은 공공 기관을 이용하기 어려워지고, 보험회사나 은행 같은 금융 기관을 이용 할 때, 구직 활동이나 취업 등을 위해 노동 현장을 찾을 때, 병원을 갈 때, 선거 8. 트랜스젠더는 왜 법적으로 성별을 변경하려고 하나요? 73
를 위해 투표할 때,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학교 진학 등을 위해 교육 기관을 이 용할 때, 해외 출입국 시 심사를 받을 때, 주류나 담배를 구입하거나 음주운전 단속 등에 걸렸을 때처럼 일상에서 신분증 확인이 필요한 모든 순간, 모든 상 황이 문제된다. 우리나라는 성별 정보가 포함된 주민등록번호를 공공 영역과 민간 영역에 서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1 더욱 큰 제약을 받는다. 특히 생계에 필 수적인 취업 과정에서 외모와 일치하지 않는 주민등록번호를 가지고 있는 것 은 치명적이다. 면접에서 성별에 대한 해명을 요구받으며, 그 과정에서 차별 적인 취급을 당하거나 채용이 거부되기도 한다. 취업에 성공한 경우라도 정체 성으로 인해 해고되거나 사직을 종용받는 등 비자발적으로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 트랜스젠더 취업자의 고용 형태가 열악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전체 경제활동인구에서 수입이 있는 일에 종사하는 임 금 근로자 중 정규직 비율을 살펴보면 20대가 65.5퍼센트로 나타나는데, 20 대 트랜스젠더 취업자의 경우 정규직 비율은 약 3분의 1 수준인 23.1퍼센트 이다. 30대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30대 취업자 중 정규직이 66.7퍼센트인 반 면, 30대 트랜스젠더 취업자 중 정규직 비율은 31.3퍼센트에 그치고 있다. 2 또한 법적으로 성별에 따라 다른 취급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문제로 남는다. 공적 영역에서의 각종 여성 할당제나 고용 할당제 등 여성 차별 철폐를 위한 정책, 행형법상 교도소 수용을 비롯한 형사법상 문제나 근로관계상 여성 근로 자 보호 등 법적 성별을 기준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은 영역에서 법적 성별 이 남성으로 되어 있는 트랜스 여성은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현행법이 법적 혼인을 지금처럼 이성 간의 관계에 한정시키는 한, 이성애자 트랜스젠더 는 법적 성별을 변경하지 않을 경우 혼인이 불가능하게 된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따른 삶을 영위할 권리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위의 두 가지 문제는 동시에 발생하거나 해결된다. 법적 성별 변경과 신분증상 성별 표기 변경이 동일한 절차를 거쳐 이루어지기 때문 이다. 현재 현행법과 판례상으로 트랜스젠더가 법적 성별과 신분증상 성별 표 기를 변경하려면 법원에 가족관계등록부상의 성별 정정을 신청하고, 이에 대 해 법원의 허가를 받으면 된다.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이 법적 성별로 간주되 는 동시에 주민등록번호상 성별 표기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일상생활을 가능하게 하고 자신의 성별에 따른 법적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 정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따른 삶을 영위할 권리는 헌법상 자기결정권에 의해 보장된다. 성별이란 개인이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정체성의 일부이자, 사회에 서 타인이 그 개인을 인지하고 그와 관계 맺는 방식의 일부이기도 하다. 따라 서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따라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고 사회적 관계를 맺으려 고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것은 그 개인이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따 른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출이자 자기 삶에 대한 결정이다. 자기 자 신이 누구인지 스스로를 인지하는 방식인 정체성은 인격의 일부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격을 자유롭게 발현할 수 있는 사회에서는 개개인이 자기 삶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자기 삶의 방향을 결정할 때 국가 공권력에 의해 방해받아선 안 된다. 따라서 신분증상 성별 표기와 법적 성별을 변경하지 못하게 함으로 써 트랜스젠더들이 일상생활 전반과 법적 영역에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게 막는다면 성별 정체성에 따라 삶을 영위할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 이다. 74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8. 트랜스젠더는 왜 법적으로 성별을 변경하려고 하나요? 75
2006년 6월 22일 대법원은 트랜스젠더의 법적 성 별 변경이 인간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을 비롯한 헌법 상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구 舊 호적법 (현행 가족 관계의 등록 등에 관 한 법률 )상 호적부(등록부) 정정 관련 조항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석해(2004스42), 이에 따라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에는 대부분 성별 정정이 가능하게 되었다. 다만, 법적 성별 변경을 위한 요건을 규정한 법률 은 제정되어 있지 않다. 과거 2002년 성전환자의 성 별 변경에 관한 특례 법안 (2002.11.4. 김홍신 의원 대표 발의)과 2006년 성전환자의 성별 변경 등에 관 한 특별 법안 (2006.10.12. 노회찬 의원 대표 발의)이 라는 이름으로 법률 제정 시도가 있었으나 두 차례 모 두 통과되지 않았다. 현재에는 실질적으로 대법원 가 족관계등록예규인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 허가 신청 사건 등 사무 처리 지침 에 따라 허가 여부가 결정되 고 있다. 그런데 대법원 예규는 행정규칙으로 대외적 구속력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각 법원에 따라 다른 판 단 기준을 제시하기도 하고 제출 서류의 보정 권고 및 명령 등이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본질적인 사항이 행정규칙으로 규정되는 상황 도 문제적이지만, 3 현실적으로도 신청인이 법원의 요 신분증상 성별 표기와 법적 성별을 변경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성별 정체성에 따라 삶을 영위할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구 서류나 판사의 판단을 예측하기 어렵게 하고 때로는 불필요하거나 명백히 인권 침해적인 방식으로 성전환 사실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일이 벌어지기 도 한다. 예를 들어 생식기관 제거 수술 증명서를 제출하였음에도 생식 능력 이 없다는 의사의 소견서를 추가로 제출하라고 요구하는 경우라든가, 외부 성 기 관련 수술 증명서를 제출하였음에도 수술한 외부 성기 사진을 제출하라고 요구하는 경우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법원에 따라 제출 요구 서류가 다르거나 동일한 조건에서 법원에 따라 허가 여부가 달라지기도 한다(예를 들어 성년자 에 대한 부모 동의서를 요구하지 않는 곳도 있으나, 부모 동의서 제출을 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불허 결정이 내려지기도 한다). 한편 2013년 3월 15일 서 울서부지법 결정 4 이후 트랜스 남성에게 외부 성기 성형 수술을 요구하지 않 는 추세가 다른 지방 법원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동 예규가 제시하는 기준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성별 정정 허가 신청 사 건의 심리를 위한 조사 사항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대한민 국 국적자 19세 이상 행위능력자 현재 혼인 중이 아니며 미성년인 자녀가 없 는 경우 2. 성전환증 여부 3. 성전환 수술을 받아 외부 성기를 포함한 신체 외 관이 반대의 성으로 바뀌었는지 여부 4. 생식 능력을 상실하거나 향후 종전의 성으로 재전환할 개연성이 있는지 여부 5. 범죄 또는 탈법 행위에 이용할 의 도나 목적이 있는지 여부가 판단 기준이 되며, 이를 증명할 각종 첨부 서류를 명시하고 있다. 이외에도 부모의 동의서가 추가된다. 이중 특히 주요하게 문제가 되는 기준은 1. 미성년자 자녀 여부 2. 의료적 요건(성전환증에 대한 정신과 진단, 생식 능력 제거, 성전환 수술) 3. 성년자에 대한 부모 동의서이다. 이와 같이 현실과 괴리된 엄격한 기준들로 인해 트랜스 젠더 중 법적 성별 변경을 한 경우는 13.2퍼센트에 그치며, 특히 58퍼센트가 76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8. 트랜스젠더는 왜 법적으로 성별을 변경하려고 하나요? 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