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 주제와 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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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과 학기 술부 고 시 제 호 초 중등교육법 제23조 제2항에 의거하여 초 중등학교 교육과정을 다음과 같이 고시합니다. 2011년 8월 9일 교육과학기술부장관 1. 초 중등학교 교육과정 총론은 별책 1 과 같습니다. 2. 초등학교 교육과정은 별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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伐)이라고 하였는데, 라자(羅字)는 나자(那字)로 쓰기도 하고 야자(耶字)로 쓰기도 한다. 또 서벌(徐伐)이라고도 한다. 세속에서 경자(京字)를 새겨 서벌(徐伐)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또 사라(斯羅)라고 하기도 하고, 또 사로(斯盧)라고 하기도 한다. 재위 기간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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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다시 부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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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국회 1 월 중 제 개정 법령 대통령령 7 건 ( 제정 -, 개정 7, 폐지 -) 1. 댐건설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 1 2. 지방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 1 3. 경력단절여성등의 경제활동 촉진법 시행령 일부개정 2 4.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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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답 과 해 설 1 (1) 존중하고 배려하는 언어생활 주요 지문 한 번 더 본문 10~12쪽 [예시 답]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한 사 람의 삶을 파괴할 수도 있으며, 사회 전체의 분위기를 해쳐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04 5

3) 지은이가 4) ᄀ에 5) 위 어져야 하는 것이야. 5 동원 : 항상 성실한 삶의 자세를 지녀야 해. 에는 민중의 소망과 언어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 입니다. 인간의 가장 위대한 가능성은 이처럼 과거를 뛰어넘고, 사회의 벽을 뛰어넘고, 드디어 자기를 뛰어넘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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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당중학교 감사 7급 ~ 성동구 왕십리로 189-2호선 한양대역 4번출구에서 도보로 3-4분 6721 윤중중학교 감사 7급 ~ 영등포구 여의동로 3길3 용강중학교 일반행정 9급 ~ 1300

눈먼 부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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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 주제와 변주 문학수 / Woodstock

소개글 경향신문 문학수 기자님의 클래식 음악의 세계

목차 1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4 2 66 3 클래식, 그 은밀한 삶과 치욕스런 죽음 158 4 베를린필이 눈감은 나치의 추억 171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2009.04.30 14:48 [당신의 클래식] 쇼스타코비치 재즈모음곡 2번 어떻게 해야 클래식과 친해질 수 있나요? 당신은 자꾸 그렇게 물어요. 그럴 때마다 제 대답은 늘상 같 지요. 당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반복해 들으세요. 그러다보면 그 음악의 구조 가 머릿속에 들어오고, 그때부터 그 곡은 당신의 클래식 이 된답니다. 그러면 당신은 또 고개를 갸우뚱해요. 내가 좋아하 는 클래식? 난 클래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천만에요. 당신은 아주 많은 클래식을 알고 있어요. 기분 좋을 때는 모차르트의 아리아를 흥얼거리기도 하 고, 마음이 울적할 때는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선율을 떠올리기도 하지요. 다만 그 곡이 누가 작곡한 무슨 곡인 줄 모르고 있을 뿐이죠. 하지만 상관없어요. 당신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그 곡을 받아들였다는 게 중요하지요. 당신은 적어도 수십 곡의 클래식 음악을 이미 알고 있어요. 또 지금도 계속해서 어떤 음악을 만나고 있지요. 때로는 어둑 한 영화관에서 가슴 서늘케 하는 선율을 만나고, TV 화면을 스치는 CF 속에서 귀에 쏙 들어오는 음악을 만나기도 하지요. 오늘 만날 음악은 쇼스타코비치의 재즈 모음곡 2번 이지요. 최근 몇년간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한 클래 식은 아마 이 곡이었을 겁니다. 영화 때문이지요. 텔미 썸딩 이라는 영화에서 염정아가 심은하에게 들 려주던 음악이 바로 이 곡이었어요. 번지점프를 하다 (사진)에서는 이병헌과 이은주가 노을을 배경으 로 왈츠를 추는 장면에서 이 곡이 흘러나왔지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유작인 아이즈 와이드 셧 이라 는 영화를 보셨나요?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이 주연을 맡았지요. 이 엽기적이고 난해한, 게다가 야하기 까지 한 영화에서도 쇼스타코비치가 만들어낸 세박자의 슬픈 선율을 만날 수 있답니다. 왈츠는 춤곡이지요. 하지만 경쾌한 세박자를 타고 흘러가는 이 곡의 선율은 슬프고 어두워요. 요한 슈트라 우스의 왈츠처럼 요란하고 화려한 비엔나풍이 아니랍니다. 역시 쇼스타코비치답지요. 그는 스탈린 치하의 구소련에서 인민에게 음악으로 봉사할 것 을 요구받았지만, 아마도 생태적으로 모더니스트 였던 것 같아요. 내성적인 그는 줄담배를 즐겼고, 표정은 언제나 완고했지요. 그의 음악은 무겁고 어두운 데다 팽 팽한 긴장감마저 감돌아요. 그리고 행간( 行 間 )에는 차가운 유머가 숨어 있지요. 쇼스타코비치의 재즈 모음곡 2번 은 국내에 편집음반으로 여러 종 나와 있답니다. 하지만 클래식의 맛 에 슬슬 빠지기 시작한 당신에게 권할 만한 음반은 도통 눈에 띄지 않네요. 좀더 본격적인 음반으로 두 종 을 권해드릴게요. 하나는 라디오프랑스 필하모닉이 러시아 춤곡들을 연주한 Ballets Russes (EMI)랍니 다. 파보 예르비가 지휘했고,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 합창단이 참여했습니다. 제대로 된 관현악 편성으로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4

재즈 모음곡 2번 을 들을 수 있지요. 또 하나는 테오도르 쿠차르가 지휘한 우크라이나 국립 심포니의 연주랍니다. Jazz&Ballet Suites 라는 제목으로 네덜란드의 브릴리언트 레이블에서 발매했어요. 국내 에도 수입됐답니다. 매끄럽고 세련된 맛은 없지만, 질박함이 오히려 마음을 끌어당기네요. [당신의 클래식] 영화 피아니스트 & 쇼팽 그 남자의 이름은 블라디슬로프 스필만 입니다. 피아니스트죠. 유대계 폴란드인입니다. 1911년에 태어 나서 2000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래 산 편이지요. 우리 나이로 치자면 아흔까지 살았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나들었죠. 나치의 광풍이 몰아치던 때였으니까요. 독일 선전부 장관이었던 괴펠스가 콘서트홀에서 히틀러 만세 를 선창할 때였고, 푸르트뱅글러가 베를린필하모닉을 지휘해 베토 벤의 합창 을 무시무시한 폭풍 처럼 연주할 때였지요. 오늘 당신과 함께 들을 음악은 쇼팽 입니다. 당신은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의 삶을 다룬 영화 피아니 스트 를 DVD로 보고는 가슴 먹먹한 감동을 주체하지 못했지요. 스필만을 연기했던 애드리언 브로디의 열성팬이 된 당신은, 영화 속에서 흘러나오던 아름다운 곡들의 제목이 뭐냐고 저한테 물었지요. 첫장면을 떠올려보세요. 1939년 바르샤바 라는 자막과 함께 흘러나오던 곡. 녹턴 (Nocturne)이랍니 다. 야상곡 이라고도 하지요. 쇼팽은 21개의 야상곡을 썼습니다. 그중 18개가 생전에 발표됐고 나머지 는 유작이지요. 당신이 들었던 곡은 유작 가운데 하나인 20번 C샤프 단조 랍니다. 쇼팽의 여러 야상곡 중에서 특히 사랑받는 애틋하고 서정적인 곡이지요. 영화 속에서 스필만은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이 곡을 연주합니다. 독일군이 점령한 페허의 바르샤바. 아사( 餓 死 ) 직전의 스필만은 폭격당한 빈집으로 숨어들지요. 구정물과 감자 두 개로 죽음을 벗어난 그는 도둑고양이처럼 주방을 뒤지다가 통조림 깡통을 찾아냅니다. 벽난로 옆 에 놓여있던 부삽으로 깡통을 따려고 안간힘을 쓰지요. 그러다가 깡통이 데구르르 굴러갑니다. 그 자리, 깡통이 멈춘 자리에 한 남자가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독일군 장교 호젠펠트였지요. 여기서 뭘 하나? 장교가 묻습니다. 깡통을 따려고 스필만은 죽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지요. 무슨 일을 하 나? 교사 출신의 장교가 다시 묻습니다. 저는 머뭇거리던 스필만은 피아니스트였습니다 라고 과거형 으로 답하지요. 물끄러미 스필만을 바라보던 장교가 한숨을 푹 내쉽니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5

한겨울입니다. 스필만은 낡은 피아노 앞에 앉습니다. 호젠펠트가 연주해 봐 라고 말합니다. 굶주림에 두 눈이 퀭한 스필만은 곱은 손가락으로 발라드 1번 G단조 를 연주하지요. 4분의4박자 느린 라르고를 힘겹게 짚어나가던 손가락이 점차 빨라집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클라이막스. 오른손의 화려한 아르페지오 가 폭발하면서, 스필만은 억눌려왔던 음악가의 열정을 결국 터뜨리고 말지요. 그 다음날부터 호젠펠트는 스필만의 다락방으로 몰래 음식을 나릅니다. 러시아군에 밀려 철수하기 직전, 그는 마지막 빵 을 스필 만에게 건네며 외투를 벗어주지요. 전쟁 끝나면 뭘 할 거야? 연주를 해야죠. 이름은? 스필 만 피아니스트다운 이름이네. 오늘 권해드릴 음반은 Bes t Belo ved Cho pin (EMI)입니다. 당신에게 잊지못할 감동을 선사했던 발라드 1번 을 마우리치오 폴리니가, 야상곡 20번 을 미하일 플레트네프가 연주합니다. 참, 독일군 장교 호젠펠트는 어떻게 됐을까요? 그는 1952년 포로수용소에서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신의 클래식] 투병속 걸작 만들어낸 베토벤 얼마전 EBS TV를 통해 방영된 제3회 EBS 국제 다큐멘터리 페스티벌 에는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베토벤의 머리카락 (Beethoven s Hair)이라는 작품이 인상적이었지요. 혹시 보셨나요? 음악가와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자주 만드는 래리 와인스타인 감독의 수작( 秀 作 )입니다. 2005년도 작품이지요. 이 다큐멘터리는 후세에 남겨진 베토벤의 머리카락 몇 올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사인( 死 因 )을 밝히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그의 머리카락에서 일반인보다 100배가 넘는 납성분이 검출된 사실에 주목하지요. 결국 이것이 그를 괴롭혔던 귓병, 그리고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원인이었을 거라고 추정합니 다. 괴팍한 성품도 납중독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짐작하지요. 이와 더불어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이 발견됩니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6

다. 병마와 싸우며 고통에 신음하다 죽어간 베토벤. 병명조차 알아내지 못하는 의사들에게 불같이 화를 내 곤 했던 그의 머리카락에서, 놀랍게도 모르핀 성분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모르핀, 그것은 진통제랍니다. 그래요. 베토벤은 차라리 육신이 찢기는 듯한 고통과 싸울지언정,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죽는 순간까지 맑은 정신 으로 음악을 만들길 원했습니다. 그것은 운명에 맞선 처절한 투쟁이었지요. 1802년부터 빈 근교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살았던 베토벤은 그해 10월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 를 써서 두 동생 앞으로 남긴답니다. 하지만 그는 자살하지 않았어요. 세 상을 떠난 1827년까지, 적어도 25년이 넘는 세월을 병마와 싸우며 음악을 향한 열정을 남김없이 불태웠지 요. 오늘 당신과 들을 음악은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이른바 운명 이랍니다. 33세였던 1803년에 머릿속 에 악상을 그리기 시작했고, 1807년 본격적으로 작곡에 돌입해 이듬해에 완성했지요. 귓병이 악화돼 청각 을 잃기 시작하던 시점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육체의 병이 깊어지면서 불멸의 음악이 태어난 것이지요. 그의 걸작들은 대부분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 이후의 곡들이랍니다. 누구나 이 음악을 알고 있어요. 아마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클래식일 겁니다. 딴딴딴 따 하는 시작부, 소위 운명의 동기 라고 말하는 첫 주제를 모르는 사람들은 정말 드물지요. 하지만 1악장부터 4 악장까지 온전히 들으면서 감동에 젖어본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답니다. 교향곡 역사에서 이처럼 격렬하게 문을 여는 1악장은 드물어요. 오케스트라 총주( 總 奏 )가 운명의 동기를 1 주제로 제시하고, 이어서 호른과 바이올린이 2주제를 노래하지요. 긴장감 넘치는 1악장이 끝나고 2악장은 부드럽고 어둡게 흘러갑니다. 이를테면 긴장 과 이완 인 셈이지요. 3악장에선 한층 더 가라앉다가, 마침내 4악장에서 모든 에너지가 폭발하지요. 마치 고통을 뚫고 솟아오른 햇살처럼, 뜨거운 환희가 울려퍼 집니다. 언젠가 당신에게 말했지요? 같은 곡을 반복해 들으면서 그 곡의 구조 를 느껴보라고요. 특히 베토벤 5번 은 구조의 미학이 탄탄한 걸작입니다. 2년 전 타계한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1974년 빈필하모닉 을 지휘했던 녹음 을 권합니다. 70년대 최고의 명연으로 꼽히지요. 도이치그라모폰(DG)에서 발매했습니 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7

[당신의 클래식] 영화 사랑도 와 베르디 운명의 힘 최근에 사랑도 흥정이 되나요? (Co mbien tu m a imes?)라는 프랑스 영화 한 편이 개봉됐답니 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기가 참 어렵습니다. 인터넷 영화예매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서울과 수도권 인근 을 통털어 경기도 부천에 있는 영화관 두 곳에서만 상영하더군요. 국내의 620개가 넘는 스크린을 괴 물 이 장악했답니다. 한반도 역시 250개가 넘는 스크린에서 상영되고 있지요. 괴물 에 치이고 한반도 에 받힌 영화들은 오갈 데 없는 신세였습니다. 결국 사랑도 를 보지 못하고 말았지요. 대 한민국에는 보고싶은 영화를 선택할 자유 가 거의 없더군요. 모니카 벨루치의 육감적인 몸매 때문에 안달이 났다구요? 뭐, 전혀 관심 없는 건 아니지만, 꼭 그것 때문 에 이 영화가 땡긴 것은 아니랍니다. 물론 이 영화가 남자들의 욕망 을 건드리면서, 그것을 대리 충족시켜주고 있는 건 부인할 수 없지요. 남자주인공 프랑스와는 평범한 월급쟁이랍니다. 어느날 홍등가 술집에서 창녀 다니엘라를 만나지요. 그녀는 지구상의 거의 모든 샐러리맨들이 꿈꾸는, 섹시하고 도발적 인 여자랍니다. 평범한 월급쟁이의 아내로 살면서 눈가에 주름은 점점 늘어나고 허리 사이즈마저 대책없 이 증가하는 마이 와이프 와는 차원이 다르지요. 다니엘라의 섹시함에 넋이 나간 프랑스와는 거액의 복권에 당첨됐다고 뻥 을 칩니다. 한달에 10만 유로씩 줄테니, 당첨금 400만 유로가 바닥날 때까지 같 이 살자고 제안하지요. 물론 다니엘라는 이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이런 영화랍니다. 평범한 남자들의 숨겨진 욕망을 프랑스식 코믹터치로 그려나가는, 그럭저럭 볼만한 영 화인 셈이지요. 더 애기하다간 자칫 스포일러 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다만 한가지, 프랑스와가 다 니엘라와 꿈같은 날들을 보내고 있을 때 한 남자가 불쑥 나타납니다. 다니엘라는 내 여자 라고 주장하 는 암흑가의 보스, 샤를리입니다. 작년에 은퇴설을 흘렸던 제라르 드 파르디유가 샤를리로 등장하지요. 바 야흐로 삼각관계의 시작입니다. 사랑도 가 보고 싶었던 이유는 바로 음악 때문이었지요. 프랑스의 국민배우 제라르 드 파르디유가 한창 전성기를 구가했던 1980년대 중반에, 마농의 샘 이라는 영화에 출연했던 적이 있답니다. 영화의 줄거리와 음악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던 수작( 秀 作 )이지요. 이 영화에서 시종일관 흘러나오던 아름답고 비극적인 선율. 베르디의 오페라 운명의 힘 의 서곡이었습니다. 원래 관현악 편성으로 작곡된 곡을 하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8

모니커 한 대로 연주하지요. 불행한 곱추 장 으로 분한 제라르 드 파르디유가 하모니커를 불다가, 그가 죽은 후 홀로 남은 딸 마농이 하모니커를 물려받습니다. 마농의 샘 은 무거운 비극입니다. 하지만 제라르 드 파르디유가 늙으막에 출연한 사랑도 는 유머 와 풍자가 넘치는 발랄한 영화인 듯합니다. 게다가 이 영화의 베르트랑 블리에 감독도 음악에 일가견이 있 어 보입니다. 그는 이 가벼운 영화의 이곳저곳에 오페라 아리아들을 적절하게 깔아놓습니다. 베르디, 푸치 니, 벨리니 등이 작곡한 아리아들이 거의 10분 간격으로 흘러나옵니다. 이 영화에서도 베르디의 운명의 힘 을 만날 수 있지요. 2막에 나오는 성모님, 자비로우신 성모님 이라는 아리아입니다. 격렬한 감정을 토해놓는, 드라마틱한 곡이지요. OST에서는 소프라노 미렐라 프레니가 노래합니다. [당신의 클래식]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 꿈 속의 고향 (Going Home)이라는 노래를 기억하나요? 꿈 속에 그려라 그리운 고향, 옛 터전 그대로 향기도 높다, 지금은 사라진 친구들 모여, 옥같은 시냇물 개천을 넘어, 반딧불 좇아서 즐기었건만 까까 머리 중학생 시절에 배웠던 노랩니다. 음악 선생님은 마치 두고온 고향을 떠올리기라도 하듯이 두 눈을 지 그시 감고 이 노래를 부르셨지요. 당신이 만약 40대 이상이라면 이 노래가 기억에 생생할 겁니다. 30대라 면 형이나 누나가 부르는 것을 적어도 한두번쯤은 들어봤겠지요. 향수에 젖은 듯한 이 아름다운 선율은 드보르작의 9번 교향곡 E단조 에 등장합니다. 흔히 신세계 교 향곡 이라고 얘기하지요. 부제( 副 題 )를 좀더 정확히 번역하자면, 독일어로 Aus der Neuen Welt, 즉 신세계로부터 라고 옮겨야 옳습니다. 꿈 속의 고향 은 두번째 악장에서 흘러나오지요. 6마디의 서주 가 끝난 후 잉글리쉬 호른이 이 애틋한 선율을 연주합니다. 드보르작의 제자인 미국인 피셔가 스승이 작곡 한 멜로디에 가사를 입혀서 미국인들의 애창곡이 되었지요. 까까머리 시절에 이 노래를 배웠던 것은 미국 의 노래가 우리나라 음악 교과서에 유난히 많이 수록됐던 탓이기도 합니다. 체코의 드보르작(1841~1904)이 미국으로 떠난 것은 51세였던 1892년이었습니다. 미국의 내셔널음악원 학장 으로 초빙됐던 것이지요. 드보르작은 뉴욕 동부의 방 다섯 개짜리 아파트에서 교향곡 9번을 작곡했습니다. 당시의 그는 미국의 민속음악, 특히 흑인음악에 적잖이 심취했던 모양입니다. 내셔널음악원 학생이었던 바리톤 H.T. 벌레이가 드보르작의 집에 들러 흑인영가를 불러주곤 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런 연유에서일까 요. 93년 12월 뉴욕필하모닉가 카네기홀에서 초연했던 교향곡 9번에는 흑인음악의 이디엄들이 곳곳에 담겨 있지요. 특히 드보르작은 Swing Low Swing Charriot 라는 흑인영가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귀가 밝은 사람들은 1악장에서 플루트로 연주되는 이 곡의 선율을 만날 수 있지요. 1악장은 마치 동이 터오는 듯한 느낌으로 문을 열지요. 첫 주제는 펜타토닉(5음계)와 싱코페이션(당김음)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흑인영가와 가스펠, 블루스, 재즈 등 여러 장르의 흑인음악을 거론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음악적 요소들이지요. 느리게 흘러가는 2악장은 목가적인 전원시를 연상시키지요. 3악장은 춤곡의 느 낌이 강합니다. 4악장도 누구에게나 익숙하지요. 교향곡 9번 전체를 들어보지 않았더라도, 2악장과 4악장 을 모르는 사람들은 정말 드뭅니다. 현악기의 힘찬 서주에 이어 빰빰빠 빰빠빠 하고 터져 나오는 호른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9

과 트럼펫의 주제는 당당하기 이를 데 없지요. 응원가로 연주되는 경우도 잦고, TV의 각종 프로그램에도 자주 등장하는 위풍당당한 선율입니다.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는 이미 당신에게 익숙합니다. 낯익은 선율이 여기저기서 흘러나 오는 덕택에, 지루함 없이 빠져들 수 있는 교향곡이지요. 바츨라프 노이만이 체코필하모닉을 지휘한 녹음 을 필청음반으로 꼽고 싶습니다. 1981년 녹음, 체코의 수프라폰 레이블에서 나왔습니다. 지난해 세상을 타계한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가 필하모니아를 지휘해 연주한 EMI의 음반 도 놓치기 아깝습 니다. 2장의 CD에 7, 8, 9번을 모두 수록했습니다. 중저가 음반이지만, 속은 꽉 찼습니다. [당신의 클래식] 톨스토이와 크로이처 소나타 톨스토이의 크로이처 소나타 라는 소설이 있지요. 포즈드니셰프라는 남자가 기차에서 만난 나 에게 아내를 살해한 사연을 주저리주저리 털어놓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대사가 아주 많은 데다가 소설이 그닥 길지 않아서, 맘 먹고 손에 잡으면 금세 읽을 수 있는 중편( 中 篇 )이지요. 남편과 다툼이 잦았던 아내는 바이올리니스트 트루하체프스키와 사랑에 빠집니다. 질투심에 눈 먼 남편은 결국 아내의 옆구리를 칼로 찌르고 말지요. 갑자기 찾아온 사랑에 마음이 흔들렸던 아내, 그녀는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였답니다. 어느날 트루하체프스키와 파티장에서 함께 연주를 하지요.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 를 연주합니다. 톨스토이는 전문가 뺨치는 실력을 가진 피아니스트였답니다. 그런데 그는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 타 가 맘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소설 속에서 포즈드니셰프의 입을 빌려 이 곡을 비난합니다. 이 소나타, 끔찍합니다. 음악이 영혼을 고양시킨다는 말은 거짓이라구요! 이게 어디 숙녀들이 앉아 있는 응접 실에서 연주할 곡입니까?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10

원문에선 더 장황하지만 분량을 조금 줄였습니다. 어쨌든 톨스토이는 크로이처 소나타 를 위험한 음 악 으로 여겼던 듯합니다. 사람을 흥분시키고, 불륜을 부추기는 타락한 예술쯤으로 생각했던 것이지요. 이 소설은 톨스토이가 금욕주의를 설파했던 시기, 그의 나이 61세였던 1889년에 썼던 작품이라는 걸 상기 할 필요가 있겠네요. 어쨌든 톨스토이의 소설 탓에, 크로이처 소나타 는 불륜 남녀를 파멸로 치닫게 하는 음악, 치명적인 사랑을 부추기는 음악 등의 수식어를 얻게 됐지요. 어떠세요? 갑자기 이 음악 이 궁금해지지 않나요? 베토벤은 10곡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남겼답니다. 그중 9번 크로이처 는 5번 봄 과 더불어 가장 사랑 받는 곡이지요. 이 곡은 시작부터 격렬한 낭만성으로 들끓어요. 가슴을 온통 진동시키는 느낌으로 문을 엽 니다. 간간이 온화한 선율이 섞이기도 하지만, 왠지 불안한 느낌이 유령처럼 떠돌지요. 반면에 2악장은 우 아합니다. 특히 피아노 반주에 실린 두번째 변주, 32분음표로 쪼개지는 선율은 온몸의 솜털이 일어설 듯한 감흥을 전해줍니다. 마지막 3악장도 서주부터 격렬하지요. 톨스토이적으로 묘사하자면, 치명적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브레이 크 없는 차를 타고 질주하는 격입니다. 그러다 갑자기 추락하는 느낌으로 끝나지요. 그래요. 마지막 은 갑자기 찾아옵니다. 하지만 그 갑작스러운 마지막도 오래도록 쌓인 필연의 결과겠지요. 다비드 오이스트라흐가 피아니스트 레프 오보린 과 협연한 음반(필립스, 1962)이 오래 사랑받은 수작 ( 秀 作 )입니다. 오이스트라흐는 이 곡의 격렬한 낭만성을 두툼하고 에너지 넘치는 연주로 녹여내지요. 이자 크 펄만과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협연한 음반(EMI, 1998)도 놓치기 아깝습니다. 바이올린보다 피아노가 더 욱 열정적으로 연주를 이끌지요. 또 하나 권해드릴 음반은 바이올리니스트 요지프 시케티와 피아니스 트 클라우디오 아라우의 1944년 실황 입니다. 뱅가드 클래식스 에서 발매된 이 음반에선 지글거리 는 잡음이 좀 들려오지요. 하지만 60여년의 세월을 건너온, 또 다른 음악적 열락( 悅 樂 )을 전해줍니다. 베토 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을 4장의 CD에 수록했는데요, 가격이 저렴해서 부담없이 선택할 만합니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11

[당신의 클래식] 모래시계& 파가니니 소나타 12번 이번 주에 해변의 여인 이라는 영화가 개봉됩니다. 고현정이 문숙 역으로 등장하지요. 그녀의 출연 작이 곧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참으로 오랜만에 모래시계 라는 드라마를 떠올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벌써 옛날이네요. 모래시계 의 혜린 과 해변의 여인 의 문숙 사이에는 11년이라는 세 월이 놓여 있습니다. 20대 중반의 청순했던 고현정이 어느덧 30대 중반이 됐지요. 이제 그녀는 삶의 무게 가 녹아있는 연기를 펼치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려운, 냉정한 시험대 위에 서 있는 셈입니다. 시청률 64%를 넘기며 귀가시계 로 불렸던 모래시계. 이제 추억 속에 아스라한 이 드라마는 고현정 을 명실상부한 스타로 만들었지요. 동해안 정동진역에 그녀의 이름을 딴 고현정 소나무 까지 생겼고, 음반가게에서는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소나타가 불티나게 팔려나갔습니다. 격동의 80년대를 배경으로 펼쳐 졌던 태수(최민수)와 혜린의 러브스토리. 두 사람의 이별을 더욱 아프게 만들었던 바이올린 선율은 바로 파가니니의 음악이었지요. 니콜로 파가니니(1782~1840)는 바이올린 연주자 겸 작곡가였지요. 신기( 神 技 )에 가까운 기교, 사람들에게 좀체 드러내지 않았던 사생활 등으로 인해 숱한 소문을 낳았던 인물이었습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 느니, 사탄의 아들이라느니 그를 둘러싼 소문들은 대부분 부패한 교회에서 흘러나왔음직한 음해성 루머 들이었습니다. 아직까지도 바이올린 비르투오조의 전설 로 남아있는 파가니니. 그의 음악들은 진지하거나 철학적이지 않습니다. 이탈리아의 작곡가답게, 노래하는 듯한 느낌으로 충만한 바이올린 명곡들을 여럿 남겼지요. 그 가 그려낸 멜로디 라인은 선명하고 밝습니다. 바이올린의 기교를 한껏 과시하는 현란한 프레이징도 적지 않지요. 모래시계 의 주제가 격이었던 혜린의 테마 도 그렇습니다. 정확한 제목은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소나타 E단조 입니다. 어떤 음반에서는 이 곡을 소나타 12번이 라고 표기하지요. 또 다른 음반에서는 소나타 6번으로 적기도 합니다. 어떤 것이 맞냐구요? 둘 다 맞답니 다. 작품2에서 이미 6곡의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소나타 를 썼기 때문에 6번 과 12번 이 혼용 되는 것이지요. 대개 바이올린 소나타는 피아노와 동행하기 마련인데, 이 곡은 기타를 파트너로 삼고 있습 니다. 이런 얘기가 있어요. 파가니니가 사랑했던 여인이 기타를 좋아했답니다. 파가니니는 그 여인을 위해 기타 를 열심히 연습했고, 기타곡을 100곡이 넘게 만들기도 했지요. 그래서 추측해봅니다. 아마 이 곡에도 그 여인과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 배경으로 깔려 있을지 모른다고 말이지요. 모래시계 열풍과 함께 베스트셀러로 팔려나갔던 음반은 바이올리니스트 길샤함 (35) 35)의 연주였습니다. 도이치그라모폰(DG)에서 나왔지요. 유태계 바이올리니스트 길샤함의 음색은 따뜻하면서도 매끄럽습니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12

기타리스트 외란 쇨셔와 함께 연주하는 이 음반은 녹음도 정교하고 맑지요. 하지만 너무 선명한 음질 때문에 오히려 안 좋아하는 분들도 있더군요. 오늘 권해드릴 음반은 사라장(장영 주)이 99년 EMI에서 내놓은 Sweet So rro w 입니다. 이제 막 클래식에 눈떠가는 당신, 바이올린의 맛 에 흠뻑 빠져보고 싶다면 이 음반만큼 적절한 게 없습니다. 파가니니 외에도 비탈리의 샤콘느, 차이코 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의 2악장 등, 그야말로 당신을 위한 선곡입니다. [당신의 클래식] 슈베르트 죽음과 소녀 벌거벗은 소녀는 죽음 을 꼭 끌어안고 있습니다. 필사적인 포옹입니다. 살짝 열린 소녀의 입술이, 검은 나신( 裸 身 )의 죽음에게 키스해 달라고 애원합니다. 뭉크(1863~1944)의 죽음과 소녀 라는 그림이지요. 생 사( 生 死 )에 대한 시니컬한 응시, 관능과 공포가 동시에 느껴집니다. 죽음 이란 대개 노인의 것이지요. 소녀 가 죽음의 골짜기에 당도하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 습니다. 하지만 예술가들은 종종 죽음과 소녀를 결부시키지요.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1740~1815)라는 독 일의 서정시인이 있습니다. 그도 죽음과 소녀 라는 시를 남겼지요. 그러나 그 소녀는 뭉크의 그림처럼 죽음에 매달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지요. 가세요. 아, 지나가세요. 무서운 죽음이여! 제발 나를 만지지 마세요 라며 죽음의 유혹을 뿌리치지요. 하지만 죽음은 소녀를 내버려둘 태세가 아닙니다. 네 손을 다오. 아름답고 사랑스런 소녀여! 편안해지거라. 내 품에서 편히 잠들거라 라며 소녀의 손목을 움켜 쥐려 하지요. 서두가 길어졌습니다. 뭉크의 그림과 클라우디우스의 시를 이야기하는 까닭은 슈베르트(1797~1828)의 현악 4중주곡 죽음과 소녀 를 듣기 위해서지요. 슈베르트는 가곡의 왕 이라는 별명답게 클라우디우스의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13

시에 곡을 붙여 죽음과 소녀 라는 가곡을 썼습니다. 이 가곡을 모티브 삼아 현악4중주곡을 완성한 것은 그의 나이 29세였던 1826년이었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이었지요. 당시의 그는 가난과 병고에 시달렸습니다. 그야말로 거지처럼 살았지요. 156cm의 작은 키에 통통한 몸매를 한 이 착하고 여린 남자는, 친구와 맥주를 무엇보다 좋아했던 낭만주의자였습니다. 그는 살아 생전에 번듯 한 작업을 한번도 갖지 못했어요. 집이나 재산이 있을 턱이 없었죠. 심지어 피아노조차 갖고 있지 못해서, 기타를 치며 작곡을 하곤 했답니다. 슈베르트는 현악4중주곡을 15곡이나 남겼지요. 죽음과 소녀 라는 부제를 가진 14번 D단조 는, 죽음 을 눈앞에 둔 슈베르트가 클라우디우스의 시에 등장하는 소녀 처럼 발버둥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 다. 이 곡은 베토벤의 교향곡 운명 처럼, 강렬한 동기 를 제시하면서 문을 열지요. 빠~암 빰빰바 ~ 하는 이 동기는 1악장의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죽음과의 투쟁 을 형상화합니다. 1악장의 마지막에서는 마치 삶을 체념한 것처럼 선율이 잦아들지요. 곧바로 이어지는 2악장은 장송곡을 연상케 합니다. 특히 첼로의 피치카토 위에 얹힌 바이올린 선율은 슬프 기 그지없지요. 두번째 변주에서는 바이올린과 첼로가 서로 위치를 바꿉니다. 바이올린이 뒤로 빠지고 첼 로가 앞으로 나서면서 또 한번 슬픈 선율을 노래 하지요. 바로 이 2악장이 가곡 죽음과 소녀 의 선 율을 차용하고 있어서, 이 현악4중주곡은 동명( 同 名 )의 부제를 갖게 되었답니다. 3악장은 스케르초 악장답게 템포가 빠르지요. 드디어 죽음과의 무도회 를 시작하려나 봅니다. 4악장은 아예 타란텔라 풍의 춤곡이지요. 격렬하게 몰아치는 리듬 속에서, 자꾸 뭉크의 그림이 떠오릅니다. 이 마지막 악장은 2주 전에 당신에게 들려줬던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 의 마지막과 흡사하지요. 기 억나나요? 질주하다가 추락하는 느낌. 죽음과 소녀 의 마지막도 그렇습니다. EMI에서 라이선스로 발매한, 알반베르크 현악4중주단 중주단 의 연주 를 필청음반으로 권합니다. 흔히 송어 라고 부르는 피아노5중주 A장조 도 함께 수록돼 있습니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14

[당신의 클래식]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어느새 가을이네요. 영화 샤인 에서 미친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이 라흐, 세르지 라흐 라 며 영어식으로 더듬더듬 발음하던,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가 생각납니다. 그래요, 가을은 그의 음 악을 듣기에 참 좋은 계절입니다. 라흐마니노프(1873~1943)는 러시아의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였지요. 지휘도 했습니다. 팔방미인이었어요. 게다가 영화배우처럼 잘 생겼지요. 크게 쌍꺼풀 진 눈에 이마가 시원합니다. 하지만 얼굴 중앙에 큼직하게 솟은 매부리코가 그의 인상을 왠지 딱딱하게 보이게 하지요. 어쨌든 인상적인 외모입니다. 게다가 몸집도 건장했지요. 손도 큼직하고, 손가락도 남들보다 훨씬 깁니다. 이런 외형 적 특성은 그의 음악에도 일정한 특징을 형성하지요. 이를테면 이런 것들입니다. 피아노 건 반을 아주 넓게 사용하는 규모의 호방함, 또 피아니스트들을 자주 괴롭히는 어려운 테크닉 등이지요. 특히 피아노 협주곡 3번 은 라흐마니노프가 남긴 4개의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도 난곡( 難 曲 )으로 꼽히는 데 다, 연주시간이 45분이 넘는 대곡( 大 曲 )입니다. 영화 샤인 은 데이비드 헬프갓이 바로 이 곡을 연주하 다가 발작을 일으키는 것으로 이야기를 설정하지요. 하지만 오늘 당신에게 먼저 권하고 싶은 곡은 3번 이 아닌 2번 입니다. 왜냐고요? 이유는 간단합니 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은 이미 당신에게 아주 익숙한 곡이기 때문이지요. 특히 2악장 의 감미롭고 슬픈 아다지오 선율은 그동안 숱한 영화 속에서 단골메뉴로 등장했지요. 재즈와 대중음악에 서도 종종 차용하는 선율입니다. 듣는 순간에 곧바로, 달콤한 슬픔 이 가슴속으로 스며들지요. 그야말 로 가을의 우수( 憂 愁 )를 전해주는 음악입니다. 자세히 들어보면,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이 품고 있는 서정과 슬픔은 신경증적 불안과 우울을 동시에 느끼 게 하지요. 이 자의식 강한 매부리코의 작곡가는 2번 을 완성하기 몇해 전부터 심각한 신경쇠약에 시달 렸습니다. 1897년 발표한 교향곡 1번 이 심한 혹평을 받았던 탓이지요. 작곡가로서 자신감을 잃었던 그 는 꽤 오랫동안 정신치료를 받았지만 효과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만난 구세주가 니콜라이 다알 박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15

사였지요. 라흐마니노프는 그의 도움으로 자신을 괴롭혔던 병에서 벗어났고, 이듬해인 1901년에 2번 을 완성했습니다. 그는 이 곡을 다알 박사에게 헌정했지요. 이 곡은 1악장 도입부터 매혹적입니다. 피아노와 관현악이 주고받는 조화가 아름답지요. 느린 2악장의 슬 픔과 서정이 잦아들고나면, 3악장에서 다시 웅장한 규모와 파토스적 격정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 격정과 파워마저도 왠지 처연하게 들려오는 것이 바로 라흐마니노프의 2번 이지요. 이번 가을에는 라흐마니노프 2번의 가요적 통속성 에 한번 빠져보세요. 현란한 건반의 울림, 짜릿한 테 크닉도 별미 로 맛볼 수 있습니다.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가 1959년에 녹음했던 음반이 오랫동안 명 반으로 꼽혀왔지요.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의 연주도 80년대의 베스트셀러였습니다. 오늘 권해드릴 음반 은 젊은 거장 소리를 듣는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가 베를린필하모닉과 협연한 녹음 (2005, EMI)입니다. 안토니오 파파노가 지휘했네요. 참, 데이비드 헬프갓이 연주한 음반은 워낙 특이해서, 당신에게 권해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의 클래식]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1980년대 초반의 일입니다.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에 논장 이라는 서점이 있었지요. 4평 남짓했던 이 작은 책방에는 불온한 책들 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습니다. 가끔씩 경찰들이 들이닥쳐 그 책들을 압 수해가곤 했지요. 하지만 추억 은 때때로 역설적인가 봅니다. 가끔 그 시절의 논장 이 그리울 때가 있어요. 책을 뒤적이던 젊은이들의 온기가 가득했던 공간. 저 역시 그곳에서 하릴없이 책장을 넘기며 친구 를 기다리곤 했지요.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16

그러던 어느날, 쇼스타코비치 를 만났습니다. 녹음 테이프였지요. 스무개 정도 되는 녹음 테이프가 카 운터 옆에 쌓여 있었습니다. 교향곡 5번 D단조 였지요.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가 아직 건재하던 그 시 절에, 20대 청년의 눈에 가장 먼저 빨려들어온 단어는 혁명 이라는 부제( 副 題 )였지요.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지요. 그래도 그때가 그립습니다. 테이프가 다 닳아서 더이상 돌아가지 않을 때 까지 혁명 을 듣고 또 들었지요. 빠암~ 빠밤 하면서 고음과 저음의 현( 絃 )이 대구처럼 펼쳐지는 1 악장 시작부터, 왠지 가슴 두근거리는 감흥을 느끼곤 했습니다. 음악이란 그렇게, 개인적 체험과 상상력으 로 재구성되는 시간예술 이지요. 80년대 후반이 돼서야 일본 도쿄의 메이지대학 앞에 있는 레코드점에 서 이 곡을 CD로 구했습니다. 므라빈스키가 지휘한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의 연주였지요. 사실 혁명 이라는 부제 자체도 쇼스타코비치가 붙인 것은 아닙니다. 즉 표제음악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정작 쇼스타코비치 본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곡의 주제는 인간성의 확립이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서정적 분위기로 일관하고 있으며, 나는 그 중심에 서서 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체험에 대해 생각했다. 피날레에서는 이제까지 등장한 모든 악장의 비극적 긴박함을 해결하고, 밝은 인생관과 기쁨을 맛볼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이 곡은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 과 상통하지요. 한 인간의 역경과 고뇌, 이 를 극복하는 과정, 마지막으로 전개되는 환희와 승리의 피날레는 베토벤 5번을 고스란히 연상시킵니다. 하 지만 베토벤의 피날레가 하늘이 환하게 열리는 듯한 느낌인 것에 비해, 쇼스타코비치의 4악장은 여전히 절망의 늪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하지요. 1936년은 쇼스타코비치가 정치적 벼랑 끝에 서 있던 때였습니다. 당시 소련의 당 기관지 프라우다 는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에 대해 혹평 을 퍼붓고 있었지요. 스탈린 치하의 소련에서, 이 혹평은 무서운 경고의 메시지였습니다. 쇼스타코비치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 합니다. 1936년 1월28일, 나는 프라우다를 사러 역에 나갔다. 신문을 넘기다보니 음악이 아니라 황당무 계 라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구절을 영원히 가슴 속에 새겼다. 이것은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구절이 될 것이다. 이 내성적인 작곡가는 37년에 교향곡 5번의 작곡에 돌입, 그해 가을에 곧바로 완성합니다. 아주 빠른 속도 였지요. 또 그는 이 곡에 대해 당국의 비판에 대한 소비에트 예술가의 답변 이라고 스스로 언급합니다. 그렇게 해서 정치적으로 복권되지요. 마지막 4악장의 다소 허풍 섞인 팡파레를 들을 때마다 인간 쇼스타코비치가 받았을 상처와 스트레스, 혹은 불안감이 떠오릅니다.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가 15년에 걸쳐 연주해낸 쇼스타코비치 교향 곡 전집 (EMI)을 권하고 싶네요. 모두 10장으로 구성됐지만, 가격이 비교적 저렴합니다. 지휘자 얀손스 의 작가주의적 열정 이 가득한 컬렉터 아이템입니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17

Mravinsky conducts the Leningrad Philharmonic (4악장) [당신의 클래식] 비발디 사계 당신이 가장 먼저 들었던 협주곡은 아마 이 곡이었을 겁니다. 이탈리아의 열정과 생동감이 넘치는 음악. 작곡된 지 어언 3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오늘날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 가운데 하나지요. 클래식을 거의 듣지 않는 사람들조차 이 곡을 모르는 경우는 정말 드뭅니다. 사계절의 변화를 한 폭의 풍경화처럼 묘사하고 있는, 비발디의 사계 라는 곡이지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소재로 삼은 음악은 많습니다. 하이든은 오라토리오 사계 를 남겼고, 차이코프 스키의 낭만적인 피아노곡 중에도 사계 가 있지요. 러시아 작곡가 글라주노프의 발레음악 중에도 사 계 가 있습니다. 좀더 현대 쪽으로 내려오면 아르헨티나 작곡가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부에노스아이레 스의 사계 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사계 중에서도 비발디의 사계 야말로 최고의 인기곡이지요. 독일에서 바하가 활약했던 시절, 이른바 바로크 시대입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코렐리, 비발디, 타르티니 같 은 작곡가들이 창작에 매달리고 있었지요. 바하가 건반을 위한 명곡을 여럿 남긴 것에 비해, 당시 이탈리 아 작곡가들은 주로 현악기를 위한 곡을 많이 썼습니다. 그들의 음악은 대체로 화사하고 밝습니다. 우아한 선율과 풍부한 양감을 만끽할 수 있는 곡들이 많지요. 역시 지중해에 발을 담고 있는 이탈리아 음악답습니 다. 비발디는 작품 8 이라는 번호를 붙여 12곡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썼지요. 이중에서 1곡부터 4곡까지를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18

사계 라고 부릅니다. 각각 3악장으로 이뤄져 있지요. 1악장은 빠르게, 2악장은 느리게, 3악장에서 다시 빨라집니다. 음악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구성이지요. 게다가 비발디는 친절하게도 각 곡의 첫머리에 계절을 묘사하는 소네토 (14행의 짧은 시)를 일일이 붙였습니다. 곡의 중간에도 이 소네토가 들어가 있지요. 그래서 사계 는 작곡가가 제목을 붙인, 표제음악인 셈이지요. 또 이 곡은 묘사음악이기도 합니다. 한마 디로 말해 선율과 화성으로 그려낸 풍경화입니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제1곡 봄. 새들이 즐겁게 아침을 노래하면서 1악장이 시작됩니다. 시냇물이 졸졸 흐르다가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천둥과 번 개가 몰아치지요. 느리고 평화로운 2악장에서는 구름이 걷히고 푸른 목장에서 목동들이 햇살을 받으며 졸 고 있습니다. 3악장에서는 아름다운 요정이 나타나 양치기의 피리에 맞춰 춤을 추지요. 세번째 곡 가을 도 인기가 많습니다. 1악장에서 수확의 기쁨에 취한 농부들이 잔치를 벌이고 있네요. 아주 흥겨운 분위기입니다. 느린 2악장은 서늘한 가을밤의 풍경화를 그리고 있지요. 잔치를 끝낸 마을사람 들이 조용히 잠자리에 듭니다. 3악장은 동트는 새벽이지요. 총과 뿔피리를 챙겨들고 개를 끌고 사냥터로 떠난 사람들이 짐승의 뒤쫓는 장면이 그려집니다. 칼 뮌힝거가 지휘하는 슈투트가르트 챔버오케스트라의 1950년대 녹음이 명반으로 손꼽힙니다. 한국에서는 이탈리아의 실내악단 이무지치의 연주 가 인기음반이었지요. 바이올린 연주자 파비오 비욘디가 이끄는 에우로파 갈란테 는 속도감 넘치는 공격적인 사계 를 녹음했습니다. 다들 나름의 개성을 품고 있 지요. 하지만 오늘 권하고 싶은 음반은 줄리아노 카르미뇰라의 사계 입니다. 현대악기와 원전악기 를 오가는 탁월한 연주자. 그가 연주하는 비발디의 사계 는 귀와 가슴을 짜릿하게 흥분시키지요. 디지 털 시대의 명반으로 꼽히는 수작( 秀 作 )입니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19

[당신의 클래식] 무소르크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러시아의 작곡가 무소르크스키(사진)가 34세 때의 일입니다. 가까운 친구였던 건축가이자 화가 빅토르 하 르트만(1834~1873)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무소르크스키보다 다섯 살 많았던 친구였지요. 39세의 아까운 나 이에 저세상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무소르크스키는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말했지요. 이 얼마나 안타 까운 일인가. 말이나 개, 쥐 같은 동물들도 살아 있는데, 하르트만이 죽다니! 이듬해에 친구들의 주선으로 하르트만의 유작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수채화와 건축 설계도 등 약 400점의 작품이 전시됐다고 합니다. 물론 무소르크스키도 이 전시회에 다녀왔지요. 당시의 그는 러시아의 시인 푸 슈킨의 대하역사극 보리스 고두노프 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오페라를 작곡해 막 초연을 끝냈을 때였습 니다. 연주시간이 3시간에 달하는 대작을 써냈던 무소르크스키가 곧바로 작곡에 돌입한 작품은 의외로 규 모가 아담한 곡이었지요. 바로 친구의 유작 전시회에 다녀온 직후 작곡을 결심한 전람회의 그림 이었 습니다. 무소르크스키는 친구의 유작 가운데 10작품을 음악으로 옮겨놓지요. 따라서 이 곡은 묘사음악으로서의 성 격이 짙습니다. 게다가 재미있는 것은 곡의 사이 사이에 서주와 간주의 성격을 갖는 프롬나드 를 배치 하고 있는 점이지요. 프롬나드(Promenade)라는 것은 천천히 걷는 걸음걸이를 뜻합니다. 옛날 우리 선비 들이 시를 조용히 읊조리면서 천천히 걷는 것을 미음완보( 微 吟 緩 步 )라고 했지요. 프롬나드라는 것은 바로 완보 라는 뜻입니다. 참, 기발한 아이디어입니다. 무소르크스키는 전시회장에 들어선 관람객의 느릿한 발걸음을 함께 묘사하면 서, 단순히 그림을 음악으로 옮겨놓는 것 이상의 입체적 공간감 을 만들어냅니다. 그림을 바라보는 사 람의 입장, 다시 말해 관찰자의 주관성까지 아울러 묘사하면서 음악적 울림이 한층 커지는 것이지요. 첫번째 프롬나드는 소박하면서도 힘찬 건반의 울림으로 전시회장에 들어선 느낌을 전해줍니다. 이어서 뒤 뚱거리며 뛰어다니는 모습과 서글픈 비애가 어우러지는 1곡 난장이 (Gnomus)가 흘러나오지요. 그리고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20

또 한번의 프롬나드. 이번에는 첫번째보다 좀더 부드럽고 느긋합니다. 이어지는 2곡 고성 ( 古 城 )은 전람회의 그림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아름답고 서정적인 선율이지요. 하르트만이 그린, 이탈리아의 오 래된 성 밑에서 음유시인이 노래하는 모습을 음악으로 옮겼습니다. 10곡 중에 가장 강렬한 이미지를 남기는 곡은 마지막으로 연주되는 키에프의 대문 이지요. 당시 키에 프시는 도심에 웅장한 문( 門 )을 건설할 예정이었습니다. 아직 지어지지 않은 상태였지만, 화가 하르트만은 이 대문을 한 폭의 그림으로 남겨놓았지요. 러시아식의 둥근 지붕과 뾰족한 첨탑, 말을 타고 성 안으로 달 려 들어오는 병사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무소르크스키가 전람회의 그림 에서 마지막 방점을 찍듯이 작 곡한 키에프의 대문 은 러시아적 선율미와 웅혼한 기백이 넘치는 스펙터클이지요. 특히 이 곡은 피아 노 독주보다는 프랑스의 작곡가 라벨이 편곡한 관현악 편성으로 들을 때 그 감흥이 배가됩니다. 전람회의 그림 을 연주한 좋은 음반들은 아주 많습니다. 굳이 한두 개를 골라야 한다면 카를로 마리 아 줄리니가 시카고 심포니를 지휘한 음반 (1976, DG), 첼리비다케가 뮌헨 필하모니를 지휘한 실황 (1993 94, EMI)을 권하고 싶네요. [당신의 클래식] 슈베르트 미완성 교향곡 때는 2054년, 장소는 미국 워싱턴 D.C.입니다. 수조 같은 공간에 3명의 예지자들이 둥둥 떠 있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무당이지요. 마치 시신처럼 물 위에 떠 있는 그들의 뇌는 범죄예방수사국의 화상모니터 에 연결돼 있습니다. 무당이 앞날을 예언하는 것처럼, 3명의 예지자들도 앞으로 일어날 살인을 예고하지 요. 범죄예방수사국의 존 앤더톤 팀장(톰 크루즈)은 모니터에 떠오른 핏빛 이미지 조각들을 분석해 살인이 일어날 현장으로 출동합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2002년에 만든 마이너리티 리포트 라는 영화이지요. 50년 후를 상상하는 이 영화에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21

서, 살인은 예고될 뿐 실제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미래의 살인범들 은 범죄예방수사국의 요원들에게 체포돼 감옥에 갇히고 죽을 뻔한 사람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잘 살아가지요. 하지만 이 설정은 아주 위험한 모순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지자들의 예고가 틀렸을 경우입 니다. 예지자들은 모두 세 명. 그들 가운데 한 명이 다른 의견을 내놨을 경우, 그 소수의 예고 는 쓰레 기통 속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그것이 바로 마이너리티 리포트 이지요. 범죄예방수사국의 수사실. 존 앤더톤이 엽기적 장면으로 가득한 살인화상을 분석하는 장면에서, 정말 뜻 밖의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슈베르트의 교향곡 8번 미완성. 바이올린과 목관이 어우러지는 그 낭만적 인 선율이, 피가 튀고 비명이 난무하는 살인현장의 엽기적 이미지들과 겹칩니다. 황당했지요. 왜 하필이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슈베르트의 음악을 저런 영화에 끌어들였을까. 스필 버그의 취향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스필버그는 앤더톤이 영상을 분석해 범죄현장을 찾아낼 때마 다, 심지어 앤더톤이 직접 살인을 저지를 거라는 예언을 맞대면하는 순간에도 이 선율을 계속 깔아놓습니 다. 게다가 수조에 떠 있는 예지자들을 관리 감독하는 앤더톤의 부하직원쯤 되는 인물은, 바흐의 칸타타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이시니 를 오르간으로 직접 연주하기도 합니다. 그뿐 아니지요. 아들을 잃은 앤 더톤이 가족들과의 즐거운 한때를 추억하는 장면에서는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비창 이 흘러나옵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는 단순한 미래영화가 아니더군요. 그것은 사심( 私 心 ) 많은 권력자가 과학기 술 을 장악했을 때 일어나는 비극을 경고하는, 나름의 메시지를 갖춘 영화였습니다. 슈베르트의 미완 성 은 예지자들이 보내주는 살인영상의 불완전함, 혹은 그것을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기계적 세계관이 결 국 비극을 낳고 말 거라는 복선으로 읽혀집니다. 1악장은 베이스와 첼로의 장엄한 서주로 문을 열지요. 이어서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선 율에, 오보에와 클라리넷이 함께 어울리지요. 약간 우울하면서, 동시에 감미로운 낭만성으로 가득한 선율 이지요. 스필버그의 영화에서도 이 선율이 자주 흐릅니다. 이어서 현악기들이 연주하는 짧은 16분음표를 배경으로, 어떤 비극성 같은 것이 점점 부풀어오르지요. 그 비극성은 1악장 종결부에서 마침내 폭발합니 다. 반면에 2악장은 고요하지요. 마치 꿈결에서 듣는 듯한 목가풍 선율입니다. 이 부드러운 선율과 함께 내면 의 고뇌를 상징하는 듯한 무거운 선율이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하지요. 그래서 미완성 은 끝나는 순 간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습니다. 브루노 발터가 지휘한 뉴욕필하모니, 혹은 카를 뵘과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 라면 더 이상의 선택은 없을 것 같네요.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22

[당신의 클래식]바하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한니발 랙터라는 인물이 기억나시나요? 영화 양들의 침묵 에서였지요. 차갑고 이성적이며,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살인마를 완벽하게 연기해낸 앤소니 홉킨스의 명연( 名 演 )을 잊을 수 없는 영화입니다. 감옥 에 갇혀있던 랙터가 탈출하는 장면, 교도관의 얼굴을 늑대처럼 물어뜯고 곤봉으로 사정없이 두들겨패는 순간에, 바하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이 잔잔하게 흘러나오지요. 정말 기발하고 독특한 조합 입니다. 조나단 드미 감독은 필라델피아 라는 휴먼스토리를 영화로 만들기도 했지만, 컬트영화에서 남다른 재 능을 보여온 감독입니다. 엽기적 살인과 골드베르크 변주곡 을 하나로 묶어낸 것은 역시 그다운 발상 이지요. 골드베르크 변주곡 은 하나의 주제(아리아)와 30개의 변주로 이뤄진 음악입니다. 원래는 피아 노의 원조격인 클라비어코드를 위한 음악이었지요. 요즘엔 피아노로 많이 연주됩니다. 가끔 현악3중주로 편곡되기도 하지요. 양들의 침묵 에서 흘러나왔던 음악은 첫곡 아리아입니다. 명상적 분위기가 가득 담긴 단순한 선율이지 요. 보통 사람으로선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이상성격자 랙터에게, 살인은 어쩌면 경건한 명상 이었던 모양입니다. 1991년 만들어진 이 영화는 이듬해 아카데미상에서 5개 부문을 석권했지요. 골드베르크 변주곡 을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영화가 있어요. 이 영화도 잊을 수 없는 수작( 秀 作 )입니다. 안소니 밍겔라 감독의 잉글리시 페이션트 이지요. 시종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던 양들의 침묵 과 달 리 이 영화는 가슴이 아릿하게 젖어옵니다. 2차대전이 끝나가던 무렵, 사하라의 모래사막을 배경으로 펼쳐 지던 사랑 이야기. 불륜 이라는 단어로 욕할 수 없는 사랑의 진실 때문에 가슴 한쪽이 먹먹해지는 영화 입니다. 이탈리아의 낡은 수도원에서 한나(줄리엣 비노쉬)가 먼지 쌓인 피아노로 연주하던 음악, 그 곡이 바로 골드베르크 변주곡 이었지요. 아리아와 첫번째 변주가 낡은 피아노 속에서 흘러나옵니다. 이 음악에 얽힌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어요. 바흐는 50세가 좀 넘은 나이에 이 곡을 작곡했을 것으 로 추정하는데요, 당시 드레스덴에 주재했던 러시아 대사 카이저링크 백작이 심각한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평소 그의 신세를 많이 졌던 바흐가 수면용 음악 으로 작곡해서 선사했다는 이야기입 니다. 하지만 이 얘기가 사실인지 허구인지는 알 수가 없지요.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23

첫곡 아리아와 25번째 변주 같은 곡들은 잠을 청하는 데 꽤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오히려 잠을 깨우는 곡 들도 적지 않지요. 특히 글렌 굴드가 피아노로 연주한 버전 들은 지나치게 뚱땅거리는 느낌이 강해서 살포시 찾아온 잠마저 달아날 지경입니다. 굴드의 연주의 폄훼할 뜻은 결코 없습니다. 오히려 그는 개성넘치는 연주로 골드베르크 변주곡 의 새 장을 열었던 피아노의 귀재였지요. 음 하나하나를 생생하게 뽑아올리는 듯한 터치와 강렬한 리듬감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1955년의 첫번째 녹음, 또 뇌출혈로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이었던 81년의 마지막 녹음도 연주가 빼어납니다. 반도 란도프스카 여사가 쳄발로를 연주한 음반은 역사적 권위를 인정받은 명 반이지만, 1945년 모노 녹음이지요. 이제 막 클래식에 눈 뜨는 당신에겐 조금 벅찹니다. 구스타프 레온하르 트의 정격연주도 마찬가지이지요. 최근에 제가 들어본 음반 가운데, 가에데 트리오 의 음반 을 권합 니다.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의 현악3중주 편성으로 골드베르크 변주곡 을 연주하네요. 현악기의 울 림이 아름답고 풍성합니다. 음질도 훌륭하네요. 독일의 TACET 레이블에서 발매, 국내의 알레스뮤직 에서 수입합니다. [당신의 클래식]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 소리없이 그려낸 고난의 심포니- 나의 천사이자 전부이며 나의 분신이여. 잠자리에 누워서도 온통 당신 생각뿐이오. 내 불멸의 연인이 여. 베토벤이 죽었습니다. 1827년의 일입니다. 영화 불멸의 연인 (Immortal Beloved)은 그의 장례식으로 시 작하지요. 베토벤이 남겨놓은 유품 속에서 편지 한 통이 발견됩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베토벤이, 어 떤 여인을 불멸 이라 칭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그녀에게 넘긴다는 편지였지요. 베토벤의 친구였던 안톤 쉰들러가 편지에 등장하는 수수께끼와도 같은 여인의 존재를 찾아 나섭니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24

먼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이 영화의 많은 부분이 허구 라는 점이지요.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베토벤의 연애사건들과 괴팍한 성격들은 상당히 왜곡되고 과장된 측면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거짓부 렁 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요. 적어도 이 영화는 베토벤이 인간으로서 감내하기 힘든 형극( 荊 棘 ) 의 삶을 살았다는 진실 을 보여줍니다. 영화에서도 그려내고 있듯이, 그 형극의 정점에 교향곡 9번 합창 이 우뚝 서 있습니다. 줄거리를 좀더 따라가 볼까요. 쉰들러는 베토벤과 사랑을 나눴던 여인들을 하나하나 만납니다. 하지만 그 녀들은 불멸의 여인이 아닌 것으로 판명 되지요. 베토벤은 도대체 어떤 여인을 가슴속에 묻어놓고 평 생 사랑했던 것일까요? 영화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비밀이 하나씩 벗겨집니다. 베토벤은 죽은 동생의 아들, 즉 조카인 칼을 애지중 지 아끼지요. 동생이 죽자 법적 후견인이 되어 자신이 직접 키웁니다. 게다가 어린 칼을 위대한 음악 가 로 만들려고 애를 쓰지요. 이 과정에서 베토벤이 보여주는 광기어린 집착, 그것은 조카에 대한 일반적 인 사랑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영화는 결국, 칼이 베토벤의 실제 아들이었다고 주장합니다. 베토벤이 잊지 못했던 그 여인은 바로 동생인 카스퍼의 아내 조안나였다는 것이지요. 이 허구는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베토벤의 아이를 임신하고 결국 엔 그의 동생과 결혼하는 비극의 주인공 조안나를 상당히 부각시킵니다. 베토벤이 동생의 아이를 직접 키운 것은 사실이지요. 하지만 그 어디에도 칼이 베토벤의 진짜 아들이었다 는 증거는 없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베토벤은 1817년부터 인류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합창 을 구상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베토벤에게 정말 어려웠던 시절이었지요. 이듬해부터 귀는 아예 들리지 않았습니다. 조카인 칼은 불량소년이 되어갔고, 행실이 좋지 않았던 여인으로 알려져 있는 칼의 생모와 양육권을 둘러 싼 법정공방까지 벌여야 했지요. 게다가 당시 빈의 음악계는 베토벤의 음악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너무 심오하고 무거웠던 탓이지요. 이 화려한 감각의 도시는 좀더 발랄한 음악을 원했습니다. 정치적으로 는 베토벤이 지지했던 공화주의가 위축되고, 메테르니히가 집권해 보수반동이 득세했습니다. 교향곡 9번 합창 은 바로 이러한 시기에 만들어집니다. 1824년 5월7일, 빈의 케른트너토어 극장에서 이 곡이 초연됐을 때, 베토벤도 바로 그 무대에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들을 수 없던 그는 허공에 대고 지휘봉을 휘저었을 뿐이었지요.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지휘자 움라우후의 지휘봉을 보고 있었습니다. 연주가 끝나고 객석에서 열광의 파도가 휘몰아칠 때, 누군가 객석을 향해 베토벤을 돌려세우지요. 마에스트로, 보입니까? 정말 엄청난 환호였지요. 이 역사적 감동은 영화 속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됩니다. 1951년 푸르트뱅글러가 바이로이트 축제 관현악단과 합창단을 지휘한 녹음 이 명반으로 꼽히지요. 오늘은 조지 셀이 뉴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지휘한 58년도 녹음을 권합니다. 우리가 아는 조지 셀을 훨씬 뛰어넘는, 당당한 카리스마와 폭풍이 들어 있습니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25

[당신의 클래식]말러의 교향곡 1번 거인 좋아하는 사람한테 첼로 연주를 선물하고 싶은데 뭐가 좋을까요? 지인들로부터 가끔 그런 식의 질문 을 받습니다. 가을이 되면서부터 부쩍 늘었습니다. 저로서는 반가운 일이지요. 하지만 쉽게 대답하기 어려 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물어오는 당신 의 취향을 정확히 모르는 탓도 있지만, 자칫 잘못 얘기했다 가 오해나 편견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지요. 고정관념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특히 광활한 클래식의 바다에선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를테면 모차르트의 음악은 밝고 단순하다든가, 말러 음악은 어렵고 복잡 하다는 식의 편견 말입니다. 말러(사진)를 듣고 싶다고요? 당신은 너무 어렵지 않나요? 라면서 걱정부터 앞섰지요. 결론부터 애기하 자면,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말러를 향해 걸어가는 징검다리를 순차적으로 밟을 필요가 있지요. 이를테면 처음부터 교향곡 8번 Eb장조 를 듣는 것은 무리입니다. 천인 교향곡 으로 불리는 이 곡은 엄청난 규모에 구조적으로도 복잡하지요. 말러와 사귀려는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권하는 음악은 대개 교향곡 1번과 4번입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 면 이 두 곡에서 출발하는 게 보편적입니다. 일단 길이가 적당하니까요. 두 곡 모두 연주시간 50분가량입 니다. 말러의 다른 교향곡들에 비해 짧지요. 게다가 인상적인 모티브와 선율이 자주 등장합니다. 두어번만 들으면 머리에 쏙쏙 들어오지요. 또 교향곡 5번도 말러와의 초반 데이트에 유용합니다. 특히 4악장의 느린 아다지에토는 아름답기 이를 데 없지요. 위험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말러의 음악을 이해하는 핵심은 대립되는 두 가지 양면성을 하나로 끌어안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죽음과 삶, 진지함과 농담, 숭고한 아름다움과 유행가의 통속성, 고전적 형식과 민초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26

들의 자유스러움, 직관적 낭만주의와 차가운 이성의 대립각 같은 것들입니다. 그까이꺼 대충 을 도저 히 용납하지 못했던 말러는 이렇게 서로 부딪히는 것들을 평생 끌어안고 살았지요. 그는 삶을 사랑했습니다. 햇살을 받으며 들판을 산책하는 것을 좋아했고, 달콤한 디저트를 즐겼고, 주변 사람들에게 농담도 곧잘 했습니다. 새끼 고양이 두 마리를 주머니에 넣고 들로 나가 그것들의 재롱을 지켜 보며 즐거워하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늘 죽음을 생각했지요. 말러에게 사신( 死 神 )의 존재는 낯설지 않았습니다. 유년기의 그는 14명의 형제 가운데 8명이 죽는 것을 지켜봐야 했고, 사랑하던 큰딸 마리아가 어린 나이에 디프테리아로 세상을 떠나는 것을 망연자실 바라봐야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본인은 심장병 에 시달리면서 죽음의 공포와 싸워야 했습니다. 자, 이제 구스타프 말러(1860~1911)의 교향곡 1번을 들어봅니다. 거인 (Titan)이라는 부제에 처음부터 너 무 신경쓰지 않는 게 좋습니다. A음의 긴 지속음으로 시작하는 1악장은 조금씩 동이 트는 느낌, 전원의 새 벽 풍경을 연상시킵니다. 뻐꾸기 울음처럼 퍼져나가는 목관 소리가 아주 인상적이지요. 2악장은 춤입니다. 왈츠풍의 부드러운 무곡이 흥겹게 펼쳐집니다. 3악장은 듣는 순간 곧바로 당신을 매료시킬, 장송행진곡 풍 의 악장이지요. 허무한 느낌의 보헤미아 선율, 함께 어울리는 오보에의 대선율( 對 旋 律 )이 기막히게 아름다 운 표정을 연출합니다. 4악장은 남은 에너지를 모두 폭발시키는 것처럼 강렬하지요. 마지막 악장에서 지나치게 발산하는 느낌이 없지 않지만, 말러가 20대 시절에 쓴 초기작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필요가 있겠지요. 그래서인지 브루노 발 터는 거인 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 지휘자, 브루노 발터가 콜 럼비아 교향악단을 지휘한 음반 을 권합니다. 레너드 번스타인 이 지휘한 음반도 놓치기 아깝습니다. Gustavo Dudamel - La Scala Philharmonic Orchestra [당신의 클래식]그리그 피아노 협주곡A단조 단조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27

노르웨이는 세계지도의 가장 북쪽에 놓여 있습니다. 약 15만개의 크고 작은 섬들을 갖고 있지요. 그중 약 2,000개의 섬에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비틀스가 노르웨이의 숲 이라는 노래에서 묘사했듯이, 키 큰 나무들이 가득한 숲의 나라입니다. 또 2만km가 넘는 해안선을 가진, 바다의 나라이기도 하지요. 빙하가 만 들어낸 피요르드의 절경은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한여름엔 백야( 白 夜 )가 펼쳐지고, 요즘처럼 추운 겨울 에는 낮에도 어둠이 깔리는 여명의 나날이 계속되지요. 아쉽게도 한번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상상해보는 거지요. 머릿속에 그려보는 노르웨이의 풍경 속에 서, 바로 그 사람의 음악이 들려옵니다. 누굴까요? 힌트는 장발에 콧수염, 바로 작곡가 그리그(1843~1907) 입니다. 노르웨이는 14세기부터 덴마크의 지배를 받았지요. 19세기에 이르면 스웨덴으로 주인이 바뀝니다. 바로 이 시기에 노르웨이를 대표했던 세 명의 예술가가 있지요. 화가 뭉크와 극작가 입센, 그리고 음악가 그리그입 니다. 세 명은 동시대에 활약했지요. 특히 입센과 그리그는 젊었던 시절에 서로 소 닭보듯 했다고 전해지 는데, 나이가 들어서는 함께 작품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입센이 노르웨이 설화를 바탕으로 희곡을 써서 그 리그에게 작곡을 의뢰하지요. 그렇게 탄생한 음악이 바로 페르귄트 모음곡 입니다. 기억나시지요? 가 련한 여인 솔베이지가 역마살 낀 남편 페르귄트를 애타게 기다리는 노래. 바로 솔베이지의 노래 라는 애절한 곡이 유명하지요. 오늘 들을 곡은 피아노 협주곡 A단조 입니다. 노르웨이의 풍경과 서정을 음표로 옮겨놓았던 그리그의 작품들 가운데, 페르귄트 모음곡 과 더불어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이지요. 북유럽의 쇼팽 으로 불렸 던 그리그의 섬세한 낭만성이 곳곳에 배어있습니다. 그리그는 소프라노 가수 니나와 24세에 결혼, 한창 신 혼의 단꿈에 빠져 있던 시기에 이 곡을 썼지요. 자신감 넘치는 25세 청년의 싱싱한 에너지가 고스란히 느 껴지는 음악입니다. 이 곡은 아무 준비 없이 그냥 들으면 됩니다. 워낙 선율이 아름다워서, 처음 듣는 사람마저도 곧바로 매혹 시키지요. 팀파니의 트레몰로 연타에 이어지는 피아노 독주가 아주 강렬합니다. 1악장 도입부터 사람의 마 음을 확 끌어당기지요. 이어서 목관이 첫번째 주제를 연주합니다. 두번째 주제는 첼로가 제시하고 피아노 가 받지요. 단조의 악장이지만 우울하게 가라앉지 않습니다. 해안을 덮쳐오는 검은 파도가 연상되는, 격정 적 선율과 화성이 잇따라 펼쳐집니다. 피아노 독주자에게 엄청난 에너지와 뛰어난 기량을 요구하는 악장 이지요. 2악장 아다지오는 차분하게 절제된 분위기입니다. 그리그를 왜 북유럽의 쇼팽 이라고 부르는지 분명히 알게 해주는 악장이지요. 차분하게 절제된 현( 絃 )으로 시작해, 단아하고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이 꿈결처럼 이어집니다. 반면에 3악장은 변화가 많은 화려한 악장이지요. 노르웨이 민속리듬에 몸을 실은 피아노가 환 상곡 분위기의 선율을 연주합니다. 그렇게 화려함을 뽐내던 피아노가 한순간 꺼질 듯 잦아들지요. 그러다 가 다시 한번 춤곡풍의 리듬을 활기차게 연주합니다. 열정적으로 휘몰아치는 피아노, 이어서 오케스트라 가 포효하는 총주( 總 奏 )로 화답하면서 피날레를 맞이하지요. 그 종지부는 사뭇 영웅적이고 비장합니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28

피아니스트 디누 라파티가 1940년대 후반에 남긴 녹음 이 명연으로 꼽히지요. 루빈스타인 이 RCA빅 터심포니와 협연한 음반도 추천할 만합니다. 게자 안다가 라파엘 쿠벨릭 지휘의 베를린필하모닉과 협연한 74년 녹음, 크리스티안 침머만이 카라얀 지휘의 베를린필하모닉과 함께 연주한 82년 녹음도 괜찮습니다. [당신의 클래식]영화 엘비라 마디간 과 모차르트 남자는 여자의 머리에 총구를 겨눕니다. 하지만 차마 쏘지 못하지요. 그때 어디선가 나비 한마리가 나풀나 풀 날아옵니다. 그녀는 나비처럼 가벼운 몸짓으로, 그 나비를 쫓아가지요. 그녀가 나비를 마악 손에 잡으 려는 순간 화면은 멈춥니다. 이윽고 들려오는 두 발의 총성. 아름다운 초원에서, 인상파 그림 같은 햇살을 역광으로 받으면서 남자와 여자는 그렇게 죽어갑니다. 참으로 지독한 낭만주의였지요. 1967년도 스웨덴 영화 엘비라 마디간 입니다. 엘비라 마디간은 서커스단에서 줄을 타는 소녀였습니다. 육군 중위 식스텐과 사랑에 빠지지요. 전쟁을 혐 오하는 식스텐은 아내와 두 아이를 버리고 엘비라와 함께 자유를 찾아 떠납니다. 카메라는 두 사람의 도피 행각을 쫓아가지요. 그 도피는 아름다우면서도 끔찍합니다. 두 사람은 돈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수시로 세어보고, 허기에 지친 엘비라는 토끼풀을 뜯어 먹기도 하지요. 국내 모기업의 CF에 등장했던 유명한 장 면, 서로 다투던 남녀가 미안하다 는 쪽지를 적어 시냇물 아래로 흘려보내던 모습도 바로 이 영화의 한 장면이었지요. 당시 17살이었던 스웨덴의 발레리나 피아 데게르마르크는 이 영화 한 편으로 단숨에 스타가 됐지요. 청순 하기 이를 데 없는 외모의 그녀는 67년도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습니다. 이듬해에 또 한 편의 영화 에 출연했지만, 엘비라 마디간 으로 남겨놓은 인상이 너무도 강렬했던 탓인지 그 영화는 이내 잊혀지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29

고 말았습니다. 데게르마르크는 딱 두 편의 영화만 남겨놓고 자신의 본업인 발레리나로 돌아갔지요. 영화 엘비라 마디간 은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 을 세계적인 히트곡으로 만들어놓기도 했습 니다. 빌보드 톱10에까지 올라갔을 정도였지요. 모차르트는 모두 27개의 피아노 협주곡을 남겼는데, 그중 에서 지금까지 가장 폭넓은 사랑을 받는 곡이 바로 21번 C장조 인 듯합니다. 60년대에 보기 드물었던 인상파적 영상미를 연출했던 영화. 그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흐르던 2악장 안단테의 선율은 관객의 청각을 온통 사로잡았지요. 행진곡풍의 1악장 때문에 군대 라고 불렸던 이 협주곡의 별칭을 엘비라 마디 간 으로 바꿔놓을 정도였습니다. 지금도 CD가게에서 가서 엘비라 마디간 주세요 하면, 피아 노협주곡 21번 을 꺼내 줍니다. 모차르트가 28세 때 작곡했던 이 협주곡의 1악장은 당당하게 시작합니다. 음악학자 아인슈타인은 이 위풍 당당한 서주에 대해 젊은 혈기가 아름답게 녹아있다 고 극찬했지요. 반면에 2악장 안단테는 서정적 아 름다움으로 가득합니다. 창가의 성애처럼 흐릿한, 그래서 더 가슴이 아린, 모차르트 특유의 애상( 哀 想 )이 잔잔하게 녹아 있지요. 3악장은 다시 경쾌한 느낌으로 돌아옵니다. 당당하게 시작해서 슬픔을 유영하다 다 시 경쾌해지는 구성이지요. 어느 협주곡이나 그렇지만, 특히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을 들을 때는 피아 노와 관현악이 주고받는 대화 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감상에 도움이 됩니다. 가장 보편적으로 애청되는 음반은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빈필하모닉을 지휘하고 프리드리히 굴다가 피아노를 맡은 74년 녹음 입니다. 20번 D단조 가 함께 수록돼 있지요. 영화 엘비라 마디간 OST 에서 연주했던 피아니스트는 게자 안다 (1921~76)입니다. 모차르트 연주에 능했던 헝가리 태생의 피아 니스트였지요. 그의 연주(DG)도 놓치기 아깝습니다. [당신의 클래식]음악 풀어가는 코드 인문학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30

환희여, 신들의 아름다운 광채여, 낙원의 처녀들이여, 우리 모두 감동에 취하고 빛이 가득한 신전으로 들어가자.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 환희에게 (An die Freude, 1785)의 시작 부분입니다. 작곡가 베토벤 이 이 시를 읽었던 것은 20대 초반 무렵이었지요. 베토벤은 자신의 마지막 교향곡 9번 합창 에 그 감동 을 온통 쏟아붓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교향곡으로 꼽히는 합창 은, 말하자면 실러의 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문학과 음악이 교감한 예는 참으로 많습니다. 독일 작가 토마스 만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번에서 받 은 감동을 장편소설 파우스트 박사 로 옮겼지요. 스트라빈스키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를 음 악으로 번역하고자 했습니다. 영화가 20세기 예술의 꽃으로 등장하면서부터는 문학, 음악, 영상이 서로간 에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가 형성되기도 하지요. 이를테면 T.S. 엘리엇의 황무지 는 니벨룽의 반 지 나 파르지팔 같은 바그너의 서사극으로부터 영향을 받습니다. 이것은 다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 으로 연결되지요. 서두가 공연히 길어졌습니다. 오늘은 당신에게 음반이 아닌 책 한 권을 권하려고 합니다. 얼마 전 제 책상 위로 배달된 우편물들 가운데 말이 먼저, 음악이 먼저 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지요. 이 특이한 제목은 18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끊이지 않았던 하나의 음악적 논쟁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18세기의 작곡 가 살리에르가 음악이 첫째, 말은 둘째 라는 오페라로 촉발시켰던 이 논쟁은 음악 과 가사 가 운데 어느쪽이 더 중요하냐는 대립이었지요. 시는 그 자체로 완벽해서 다른 예술이 끼어들 필요가 없 다 는 측과 문학이란 음악의 옷을 입어야 진정한 예술로 태어난다 는 측의 오래된 논쟁입니다. 책을 쓴 이는 30대 중반의 음악컬럼니스트 정준호씨입니다. 그는 말 을 음악 보다 앞쪽에 놓고 있 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이 책에서, 문학이나 철학이라는 인문학적 코드로 음악을 풀어나가지요. 그것은 음 악이라는 봉우리를 향해 인문학의 도로를 닦는 일처럼 보입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무모한 짓일 수 있지 요. 인문학의 위기가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고, 대학가에서는 인문사회과학 서점들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말이 먼저, 음악이 먼저 는 자신의 음악 편력기를 센티멘탈한 필치로 주절주절 늘어놓는 책이 아닙니다. 이것저것 자료를 모아서 부피만 잔뜩 늘여놓은 1,000여쪽짜리 장서용 서적도 아닙니다. 감각적으로 재미있는 독서는 아니지만, 바흐에서 토마스 만, 셰익스피어에서 쇤베르크를 오가면서 음악의 또 다른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줍니다. 신화와 성서 라는 소제목을 달고 있는 1부는 그리스 로마신화와 성서의 이야기들을 소재로 삼고 있는 음악과 문학 작품들을 다룹니다. 2부 세상의 노래 는 괴테와 슈베르트, 드보르자크와 롱펠로우, 렘브란 트의 야간비행 과 말러의 7번 교향곡 등 예술 장르간의 영향관계를 밝힙니다. 3부 파우스트의 편 력 은 음악과 문학으로 묘사된 인생의 통과 의례, 4부 사랑의 변주곡 은 음악의 영원한 주제인 사랑 에 관한 에세이입니다. 이 책의 저자가 보여준 탄탄한 주제의식이, 10년 쯤 후에 10권짜리 대작으로 세상 에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당신의 클래식]베르디 라 트라비아타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31

비올레타는 고급 사교계에서 웃음을 파는 여잡니다. 18세기 초반의 파리, 가난한 시골 출신인 그녀는 타 고난 미모 로 뭇 남성들을 사로잡으며 사교계의 꽃이 됩니다. 알렉산더 뒤마의 원작에서 동백꽃 마 담 으로 불렸던 여인. 작곡가 베르디는 비올레타 발레리 라는 이름의 그 여인을 오페라 라 트라비 아타 무대에 세워놓습니다. 베르디는 사회성 짙은 오페라들을 많이 썼지요. 어떤 사람들은 라 트라비아타 만큼은 사회성과 무관 한 순수한 사랑 이야기 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오페라에서도 베르디적 작풍( 作 風 )은 여전합니다. 시 골 출신의 창녀 비올레타와 비교적 여유있는 집안의 아들 알프레도. 그들의 사랑은 신분의 벽 때문에 좌절 할 수밖에 없었지요. 극중에서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은 비올레타에게 내 아들과 제발 헤어져 달 라 고 애원하고 협박합니다. 당신이 아직 오페라 라는 장르에 충분히 익숙하지 않다면, 라 트라비아타 는 그 첫걸음을 떼기에 상당히 적절한 작품입니다. 일단 이 오페라는 구성이 복잡하지 않아요. 만남과 사랑, 갈등과 이별, 그리고 결국 죽음에 이르고마는 스토리 라인이 비교적 간결하지요. 등장인물도 많지 않습니다. 파리의 친구들을 비롯한 적잖은 앙상블 배역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주인공 비올레타와 알프레도, 그리고 아버지 제르몽의 행보만 부지런히 좇아가면 충분히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오페라입니다. 오페라의 전주곡은 해당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암시하지요. 라 트라비아타 는 주인공 비올레타의 비련 과 죽음을 귀뜸하듯이, 가냘픈 바이올린 선율로 시작합니다. 이어서 왁자지껄한 파티가 벌어지지요. 그 화 려한 파티의 주인공은 말할 것도 없이 비올레타입니다. 프로방스 지방 지주의 아들인 알프레도는 축배 의 노래 를 선창하고, 이어서 당신을 오래 전부터 사랑해왔다 고 고백하는 빛나고 행복했던 어느 날 을 부릅니다. 비올레타는 그의 고백에 처음에는 도리질을 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사랑에 빠져들면서 아 그 사람인가 를 노래하지요. 2막은 파리 교외에 있는 비올레타와 알프레도의 보급자리입니다. 만난지 3개월도 안 돼 동거 에 들어갔 으니, 속도가 엄청 빠르네요. 그동안 비올레타가 재산을 처분해 생활비로 써왔다는 걸 알게 된 알프레도가 나의 비겁함이여 를 부르면서 파리로 돈을 구하러 떠나지요. 이어서 아버지 제르몽이 들이닥칩니다. 노 래로 주고받는 소프라노와 바리톤의 대화가 음악적으로 대단히 볼만하지요. 비올레타는 결국 제르몽에게 당신의 아들과 헤어지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알프레도는 갑자기 마음이 변한 비올레타에게 분노하지요. 3막은 비올레타의 죽음입니다. 사육제 날의 아침. 뒤늦게 찾아온 알프레도와 제르몽이 눈물을 흘리며 후회 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폐병이 심해진 비올레타는 자신의 초상화가 박혀있는 목걸이를 알프레도에게 건네주고 숨을 거두지요. 요즘 최고의 테너로 꼽히는 롤란도 비야손이 알프레도를,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가 비올레타를, 토마스 햄프슨이 아버지 제르몽을 연기한 DVD가 인기가 높습니다. 현대 적이고 심플한 무대, 네트렙코의 뛰어난 미모와 연기가 한창 화제에 올라 있습니다. 도이치그라모폰 발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32

[당신의 클래식]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두달째 열애 중인 여인이 있습니다. 바이올린 연주잡니다. 이제 겨우 24세의 젊디 젊은 여인이지요. 처음 엔 나이가 꽤 든 줄 알았는데, 프로필을 확인해보곤 깜짝 놀랐습니다. 이름은 율리아 피셔 (Julia Fis cher). 1983년 독일 뮌헨 출생입니다. 아버지는 독일 토박이고 어머니는 슬로바키아 혈통이라고 합니 다. 요즘 그녀가 연주하는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에 푹 빠져 있습니다. 이 아리따운 독일 아가씨의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3년 전이었습니다. 그해 봄에 로린 마젤이 바이에른 방 송교향악단을 지휘해 브람스의 더블 콘체르토 를 연주했던 적이 있지요. 더블 콘체르토는 말 그대로 2중 협주곡 입니다. 바이올린과 첼로가 오케스트라와 협연합니다. 당시의 첼리스트는 한국 출신 장한나 였고, 바이올리니스트가 바로 율리아 피셔였지요. 당시 두 연주자와 로린 마젤의 협연에 대해 뉴욕타임 스 가 극찬을 했던 것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장한나와 율리아 피셔는 닮은 점이 적지 않습니다. 세계 각국 언론들은, 첼로와 바이올 린에서 차세대를 이끌 연주자로 두 사람을 맨 앞에 거론하는 걸 주저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 두 아가씨 는 나이에 비해 상당히 조숙한 연주를 들려줍니다. 저는 1년 전 장한나의 인터뷰 기사를 쓰면서, 도대체 이 어린 연주자의 내면에 어떤 노인이 들어앉아 있는 걸까 라고 적었습니다. 율리아 피셔도 그렇습니다. 음반으로 처음 접했던 그녀의 연주는 바흐의 소나타와 파르티타 였지요. 젊 은 연주자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재기 넘치는 연주가 아니었습니다. 테크닉을 뽐내는 치기 어린 모습도 찾 아볼 수 없었습니다. 담담하고 우아했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서른은 족히 넘었을 거라고 상상했지요. 두번째로 만난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4세의 율리아 피셔 는 이 열정적이고 낭만적인 곡을 연주하면서, 결코 가벼운 감상의 늪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이 곡은 바이 올리니스트라면 누구나 한번은 넘어야 할 산이지요. 하지만 그 산의 높이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너무 많이 알려진 곡인데다 숱한 명연( 名 演 )이 녹음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지요. 가장 먼저 하이페츠(1901~87)의 녹음이 떠오릅니다. 소위 명반으로 꼽히지요. 프리츠 라이너가 지휘한 시 카고 심포니와의 협연입니다. 예민하고 격정적인 연주로 유명했던 나단 밀슈타인(1904~92)은 72년에 클라 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하는 빈필과 역사적 명연을 남겼지요. 두 연주자 모두 구소련 출신의 거장입니다. 이 밖에 한국이 낳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얼마 전 내한공연을 가졌던 안네 소피 무터 등의 연주도 오래도 록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았지요.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33

하이페츠의 연주는 살을 벨 것 같은 검기( 劍 氣 )를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오늘 소개하는 율리아 피셔의 바 이올린은 음의 모서리가 훨씬 부드럽지요. 그녀는 나단 밀슈타인 유의 격정과도 거리가 멉니다. 얼핏 안네 소피 무터의 옛 모습이 떠오르지요. 하지만 무터가 신동 의 이미지가 강했던 것에 비해, 율리아 피셔는 이미 원숙하고 기품 있는 숙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녀가 연주하는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야코프 크라이츠베르크가 지휘하는 러시아 국립 오케스트라 가 협연하는 이 음반에는 실 내악적 정교함과 부드러운 열정이 담겼습니다. 펜타톤 발매, 국내의 알레스뮤직이 수입했습니다. Brahms Violin Concerto - Julia Fischer - Michael Tilson Thomas (NDR Sinfonieorchester ) [당신의 클래식]브람스 교향곡 1번 c단조 3개월 만에 다시 시작하는 당신의 클래식 에서는 아무래도 브람스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는 올해 한국 음악계에서 가장 자주 거론될 작곡가입니다.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시향이 지난해 베토벤에 이어 올해에는 브람스 교향곡 전곡과 실내악곡을 연주합니다. 또 지난 1일 막 올려 오는 23일까지 계속되 는 2007 교향악축제 에서도 브람스의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고 있지요. 게다가 11월 내한하는 지휘자 크 리스티안 틸레만과 뮌헨필하모닉도 브람스를 연주할 가능성이 적지 않습니다. 아직까진 브람스냐 브루 크너냐 로 고민 중이라는 소식입니다. 브람스(사진)는 낭만시대를 살았던 고전주의자 였지요. 참 재미없고 무뚝뚝한 사람이었습니다. 매일 새 벽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서 의관( 衣 冠 )을 갖추고 점심시간까지 작업에 몰두했지요. 그야말로 성실 과 신중 그 자체였습니다. 원래 음악이라는 것이 적당히 데카당스가 녹아들어야 감각적으로 재밌는 법인 데, 이 브람스라는 양반, 거의 구도자처럼 살았지요. 허풍이나 과장을 스스로 용납 못하는 완고한 성품의 소유자였습니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34

브람스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에 태어났던 토마스 만이라는 독일 작가가 있지요. 이 사람도 좀 비슷합니 다. 아침 식사를 마치면 정장에 넥타이까지 매고 서재로 들어가 소설을 썼지요. 점심 먹고 또 서재로 들어 갑니다. 오후 5시가 되면 자신의 서재에서 칼 퇴근했지요. 모름지기 예술가들이란 기질적으로 무정부주 의자에 가까울 터인데, 브람스나 토마스 만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 둘의 또 다른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북독일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브람스는 북부 독일의 항구도시 함부르크에서 태어났지요. 토마스 만은 그보다 더 북쪽인 뤼베크 출신입니다. 함부르크에 서 자동차로 1시간쯤 걸리는 곳이지요. 브람스나 토마스 만이 보여줬던 완고함의 이면에는 북독일 이 라는 지리적 코드가 내재해 있었을 거라고 짐작해봅니다. 오늘 권할 음악은 브람스가 남긴 네 곡의 교향곡 가운데 1번 c단조 입니다. 등 뒤에서 쫓아오는 거인 의 발자국 소리 를 의식하면서 21년이나 걸려 완성해낸 대작이지요. 그 거인 은 바로 베토벤입니다. 내향적인 브람스는 자신의 교향곡이 베토벤의 그것에 비해 너무 초라하지 않을지 무척 마음졸였던 모양입 니다. 그러다가 마치 결심이라도 한 듯이, 1악장 서두부터 강렬한 팀파니의 연타를 터뜨립니다. 장대하고 비극적인 표정을 연출하는 이 첫 번째 악장은, 베토벤의 넓이와 깊이를 따라잡으려는 브람스의 고뇌를 그 대로 보여줍니다. 소박하고 우수어린 2악장에서 오보에가 연주하는 선율, 평화로운 목가풍에 간간이 흥겨 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3악장에서 호른이 뽑아내는 선율도 기막히게 아름답지요. 마지막 4악장에서 다시 규모가 커집니다. 느릿하고 무거운 서주에 이어 바이올린이 급박한 피치카토를 토 해냅니다. 긴장감이 점차 상승하다가 관악기와 팀파니가 어울리면서 폭발하지요. 그러다가 다시 목관이 서 정적 분위기를 형성하면서 호른이 그 유명한 알프스풍 선율을 연주합니다. 강약과 완급이 반복되는 다소 복잡한 구조이지만, 남성적 로맨티시즘의 만끽할 수 있는 악장이지요. 1876년 초연 당시 4악장의 주제가 베토벤의 합창 과 비슷하다고 비판을 받았지만, 브람스는 바보 같은 사람들 이라며 일축했다고 합 니다. 교향곡 전곡을 수록한 음반으론 칼 뵘이 빈필을 지휘한 1970년대 녹음 을 권합니다. 브루노 발 터가 컬럼비아 교향악단을 지휘한 음반 도 훌륭합니다. 1번 만 수록한 음반을 찾는다면 프루트뱅글 러가 베를린필을 지휘한 52년 실황을 빼놓을 수 없지요.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35

Otto Klemperer - Philharmonia Orchestra Rec. 1958 [당신의 클래식]베토벤 교향곡 7번 -봄기운 약동하는 리듬- 봄기운이 완연합니다. 출근길에 지나치는 인왕스카이웨이 양 옆으로 노란 개나리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벚 꽃은 이미 만개했고 목련은 꽃잎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일조시간이 길어지면서 수은주의 눈금이 점점 올라가면, 사람들은 대개 리듬감 넘치는 음악을 찾게 되지요. 음악을 찾는 마음도 결국 자연 의 섭리를 따르는 모양입니다. 천지의 기운이 사그라지는 가을녘에는 나직하고 느린 음악에 마음이 쏠리 지요. 하지만 이렇게 화창한 봄날에는 약동하는 리듬과 화려한 음색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그래서 떠오른 음악이 베토벤 교향곡 7번이지요. 특히 1악장과 4악장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박력 있는 리듬이 일품입니다. 듣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휘저으며 엉터리 지휘 를 하게 만들지요. 저도 가 끔 스피커 앞에서 두 손을 마구 휘저어댑니다. 7번은 그렇게, 듣는 사람의 마음을 격동시킵니다. 이 곡을 수록한 음반이 요즘 음반가게에서 꽤 팔려나간다고 합니다. 한데 그 이유가 재밌습니다. 드라마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흔히 일드 라고 줄여서 부르는 일본 드라마 한 편이, 뜻밖에도 베토벤 7번 바람 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바로 노다메 칸타빌레 라는 드라마입니다. 보셨나요? 장소는 일본의 어느 음악대학. 최고의 음악가를 꿈꾸는 젊은 음대생들의 방황과 사랑, 도전 뭐 이런 내용을 다루고 있는 드라마입니다. 내용은 좀 유치하지요. 하지만 클래식과 오케스트라를 소재로 만화를 그리고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일본문화의 넓이 는 그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7번은 이 드라마의 오프닝곡이지요. 남자 주인공 치아키가 난생 처음 포디엄에 서서, 사방에서 삑사 리 를 내는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연습하던 곡이 바로 7번이었지요. 음대의 말썽꾸러기들로 이뤄진 오케스트라는 결국 연주회를 치러냅니다. 기립박수가 쏟아지고 치아키는 유명해집니다. 또 한 명의 주인공 노다메. 며칠씩 목욕을 하지 않아 냄새를 풀풀 풍기는 데다 매사에 덜렁대기 일쑤인 여주인공 노다 메도 치아키의 열정에 자극을 받지요. 그녀는 유럽으로 유학을 떠나는 치아키와 동행하고 싶다는 일념으 로 피아노 콩쿠르에 도전합니다. 이 콩쿠르에서 노다메가 턱하니 우승을 차지했다면, 이 드라마는 아마 재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36

미없었겠지요. 당연히 노다메는 미끄러집니다. 하지만 동행 의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요. 세상에는 또 다른 길이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잘 생긴 치아키가 프랑스로 떠나기 직전, 일본에서 마지막으로 지휘하는 곡도 7번입니다. 듣는 이를 단박 에 흥분시키는 이 격동적인 교향곡이 드라마의 시종( 始 終 )을 장식하면서 극적 재미를 이끌어내는 셈이지 요. 7번의 파토스적 격렬함, 혹은 극적인 효과 때문인지, 실제로 이 곡은 젊은 지휘자들의 데뷔 레퍼토리 로 등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최근 LA필하모닉의 음악감독을 맡은 젊은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의 데뷔 앨범도 베토벤의 7번과 5번을 수록하고 있지요. 1813년 12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이 곡을 공개초연하던 베토벤은 지휘 도중 펄쩍 뛰어오르며 괴성을 질렀 다고 전해집니다. 아마도 4악장에서 그랬을 거라고 짐작해봅니다. 일부 비평가들은 술주정뱅이의 음 악 이라고 혹평했지만, 당시 청중의 열광은 대단했다고 하지요. 2004년 타계한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빈필을 지휘했던 1976년 년도 음반 을 권합니다. 생전의 클라이버는 레코딩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고, 당 연히 남겨놓은 음반도 소수에 불과하지요. 어떤 이들은 희소성 탓에 클라이버의 음반이 과대평가됐다 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베토벤 7번을 거론할 때 1순위로 거론되는 음반입니다. < 4악장 > [당신의 클래식]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지난 가을과 겨울, 모차르트만 내내 들었습니다. 베토벤도 말러도 브루크너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잠자리 에 들기 전에 꼭 한 곡을 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습관 탓에, 밤 11시 무렵이 되면 어김없이 앰프의 파워 버 튼을 누르곤 하지요. 오늘은 무슨 곡을 들을까? 진공관을 예열시키는 약 3~4분 동안 부지런히 LP나 CD를 뒤적거립니다. 그런데 지난 가을과 겨울, 손에 잡히는 음반은 거의 다 모차르트였습니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37

사연인즉슨 이렇습니다. 지난 가을 노모( 老 母 )가 뇌수술을 받았습니다. 겨울이 되자 형님이나 진배없는 선 배 한 분이 간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살다보면 어디선가 한번씩 찾아오는 강펀치를 연달아 두대 맞은 격이 었지요. 모친의 뇌수술은 4~5시간 걸리는, 만만치 않은 수술이라고 했습니다. 수술실 문앞에서 망연자실 서성이다 가 병원 바깥 벤치에 나와 앉았지요. 언제나 보이는 풍경, 바쁘게 지나치는 행인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습 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쓸쓸함과 허무가 밀려왔지요. 그 순간, 거의 무의식중에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 내 전화번호를 하나하나 입력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해보는 짓이었습니다. 왜 갑자기 전화번호를 입력할 생각을 했는지 딱히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어쨌든 손가락 끝에 신경을 집중하는 사이에 4시간이 절로 흘 러갔습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습니다. 2라운드는 곧바로 찾아왔습니다. 선배의 간에 침투한 암은 이미 손쓰기 어려울 정도로 진행됐다고 했습니 다. 형수는 살려야 한다 며 제 팔을 잡고 오열했지요.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상념이 오락가락했습니다. 최고의 명의에게 최선의 치료를 받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마인드 컨트롤이었습니다. 상상했 습니다. 햇살 따스한 봄날, 선배를 모시고 꽃 피는 등산길에 오르는 상상을 날마다 했습니다. 그렇게 머릿 속에 그렸던 희망 이 결국 현실이 됐지요. 간 절개 수술 후, 선배는 건강해진 몸으로 퇴원했고 3월부터 지금까지 가벼운 산행을 2번이나 했습니다. 삶이 괴로워서 음악을 듣는다 는 책이 있습니다. 시인이자 문화비평가, 오디오 애호가인 김갑수씨의 에세이집이지요. 그와는 20년 전부터 아는 사이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책의 제목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 더랬습니다. 삶이 괴로운 사람이 어떻게 음악을 듣는가, 라는 의문 때문이었지요. 그런데 감히 말하건대, 삶이 괴로울 때 들을 수 있는 음악도 있었습니다. 바로 모차르트였습니다. 묘한 체험이었습니다. 머릿속이 걱정과 근심으로 가득차 있던 순간, 어떤 음악도 귓속으로 들어오지 않던 시간 속에서도 모차르트의 음악만은 가슴을 파고들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가을과 겨울, 알프레드 브렌델 이 연주한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줄창 들었습니다. 칼 라이스터가 연주한 클라리넷 협주곡을 듣고 또 들었습니다. 그렇게 모차르트의 위대함 을 깨달았지요. 35년의 짧은 생을 살다 간 모차르트는 자신의 영육( 靈 肉 )을 태워 괴로움의 위안 을 지상에 남겼습니다. 비유법으로 말하건대, 그는 예수 였습니다. 모차르트가 인류에게 남긴 600여곡의 위대한 유산. 오늘은 그 중에서도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를 권합니다. 세상 떠나기 두달 전에 완성했던 유일한 클라리넷 협주곡입니다. 병고와 궁핍에 시달리던 말년의 모차르트를 도와줬던 친구, 안톤 슈타틀러를 위해 작곡했다고 전해집니다. 슈타틀러는 당대 최고의 클라리넷 연주자 였다고 하지요. 아마 당신은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 에 나왔던 2악장 아다지오 선율을 기억할 겁 니다. 제가 즐겨듣던 칼 라이스터와 베를린필하모닉( 라파엘 쿠벨릭 지휘)의 음반 은 도이치그라모폰 에서 나왔습니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38

[당신의 클래식]로스트로포비치 연주 드보르자크 첼로협주곡 B단조 그의 애칭은 슬라바 였지요. 풀네임은 므스티슬라프 레오폴도비치 로스트로포비치(Mstislav Leopol dovich Rostropovich). 무척 길고 발음하기도 어렵지요. 그래서인지 로스트로포비치 본인도 슬 라바 라는 애칭을 무척 좋아했다고 합니다. 슬라바는 영광 이라는 뜻의 러시아 말이지요. 지난 4월27일 저녁, 슬라바가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파리에 머물고 있는 첼리 스트 장한나와 서둘러 통화를 했지요. 그의 타계 소식을 전하는 부고( 訃 告 ) 기사를 급히 써야 했으니까요. 널리 알려진 대로 장한나는 슬라바의 애제자 가운데 한 명입니다. 잠결에 전화를 받은 장한나는 스승의 타 계 소식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통화를 끝내고 기사를 쓰면서 약간 헤맸지요. 손끝이 술술 풀리질 않았습니다. 그가 세상을 떴다는 게 왠 지 현실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음악에 빠져들었던 10대 후반 무렵부터 가장 가까이 접해온 첼리스트가 바로 그였지요.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슬라바가 연주하는 드보르자크의 첼로협주곡 B단 조 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 1985년도 녹음, 프랑스 에라토(Erato) 레이블에서 발매한 음반입니다. 일본 출신의 세이지 오자와가 지휘 하는 보스톤 심포니와의 협연이지요. 열흘 전 런던의 노팅힐 거리를 헤매다가 중고음반점에서 5파운드에 산 LP입니다. 어느덧 60을 바라보는 슬라바가 꼿꼿이 허리를 펴고 앉아 첼로를 켜고 있고, 오자와는 맞은 편에 앉아 한없이 존경스러운 시선으로 대가( 大 家 )를 바라보고 있지요. 피아노도 능숙하게 다뤘던 슬라바는 유난히 손이 컸습니다. 그의 첼로 소리는 힘이 좋고 울림이 풍부하지 요. 하지만 이 음반에서는 슬라바 특유의 박력을 찾기가 힘듭니다. 오자와의 지휘도 시원스럽게 뻗어나가 질 못합니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39

슬라바가 남겨놓은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 B단조 명연( 名 演 )은 따로 있지요. 69년 카라얀이 지 휘하는 베를린필과 녹음 했던, 도이치그라모폰 음반이 아마도 그것일 겁니다. 그의 나이 41살 때, 그야 말로 전성기였지요. 어떤 이들은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가 지휘한 음반 을 더 수작으로 꼽습니다. 하지 만 저는 이 녹음에서 슬라바가 보여주는 도도함과 당당함에 훨씬 마음이 끌리곤 하지요. 당시의 카라얀은 정말 대단했지요. 자타가 공인하는 음악계 최고의 권력자였으니까요. 한데 아제르바이젠 에서 태어나 러시아에서 성장한 이 40대 초반의 연주자는 대놓고 카라얀과 맞먹습니다. 1악장 시작부터 그 렇지요. 호른이 두번째 주제를 연주하고 오케스트라 총주( 總 奏 )가 끝난 다음, 드디어 등장하는 첼로 솔로 를 한번 들어보세요. 아, 그 느긋함이라니! 정말 느리지요. 당시 음악계의 황제 카라얀에게 나는 이 렇게 연주할 텐데, 당신은 어떻게 할 거야? 라고 묻고 있습니다. 소처럼 느릿한 이 운궁( 運 弓 )은, 참으로 벅찬 감흥을 전해주는 장면이지요. 이 연주에는 그렇게 한 편의 드라마가 숨어 있습니다. 슬라바는 이밖에도 숱한 명연을 남겼지요. 피아니스트 루돌프 제르킨이 84세의 고령이었을 때 함께 연주 했던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 1 2번 (DG), 영국 작곡가 벤자민 브리튼이 피아노를 맡았던 68년의 슈베 르트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데카)가 떠오릅니다. 그는 한국에도 몇 차례 다녀갔지요. 80년, 84년, 96년 으로 기억합니다. 이제 살아있는 그의 모습을 더이상 볼 수 없겠네요. 하지만 그가 있어서 오랜 세월 행복 했지요.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겁니다. 고맙게도 훌륭한 녹음을 수없이 남겼으니까요. Rostropovich - Dvorak Cello Concerto - Carlo Maria Giulini and the London Philharmonic Orchestra [당신의 클래식]슈만 교향곡1번 봄 ~ 나는 언젠가 완전히 미쳐버릴 것이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40

슈만은 늘 불안했을 겁니다. 그는 20대 초반이었던 1833년 무렵부터 정신병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전 해집니다. 그의 누나인 에밀리에는 이보다 8년 전에 강물에 뛰어들어 세상을 떠났지요. 슈만은 자신의 몸 속에, 스스로도 제어할 수 없는 악마 가 살고 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 불안함이 술과 여성 편력으 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지요. 일설에는 성병도 앓았다고 합니다. 매독이라는 구체적 병명까지 거론되곤 하지만, 이 설 의 진위를 확인하긴 어렵지요. 지난해 8월 음악전문지 도이치그라모폰 에 게재된 제 레미 니콜라스의 글은, 슈만의 병명을 조울증 으로 지칭하면서 흔히 주장되는 매독설은 사실과 다르다 고 적고 있습니다. 1840년은 슈만의 인생에서 단 한번 찾아왔던 화창한 봄날 이었지요. 그는 마침내 아름다운 클라라와 합법적으로 결혼했습니다. 클라라는 슈만의 스승이었던 피아노 교사 프리드리히 비크의 딸이었지요. 슈만이 스승의 집에서 클라라를 처음 보았을 때, 그녀는 고작 아홉살이었습니다. 비크는 슈만에게 피아노를 가르쳤을 뿐 아니라, 음악신보 라는 잡지를 창간해 낭만주의를 함께 설파했 던 음악적 동지 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딸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슈만과의 결혼을 극렬하게 반대 했습니다. 그러나 꼭 나이가 어려서였을까요. 결혼 얘기가 나왔을 무렵, 클라라는 이미 성년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나이 는 아마 핑계였을 겁니다. 비크는 이미 슈만의 정신적 불안 을 눈치챘던 것이지 요. 초상화로 확인할 수 있는 클라라의 미모는 정말 대단합니다. 슈만과 클라라는 법정 투쟁까지 벌여가며 결 혼에 골인했지요. 그해가 바로 1840년이었습니다. 슈만은 이듬해 2월에 교향곡 1번 봄 을 완성하지요. 봄 이라는 제목은 슈만 스스로 붙인 것입니다. 이 교향곡을 거론할 때 흔히 등장하는 신혼의 단꿈 이나 봄날의 화사함 같은 어휘는 반쪽의 진실 을 보여줄 뿐입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조증과 울증을 오가는 슈만의 불안, 현재의 행복이 언젠가 무너지고 말 것이라는 불행의 전조( 前 兆 ) 같은 것이 짙게 배어 있지요. 트럼펫의 힘찬 울림으로 막을 여는 1악장은 봄이 왔음 을 알립니다. 금관은 태양처럼 빛나고 현( 絃 )은 활기찬 리듬을 합주하지요. 목관은 나비처럼 날아다닙니다. 하지만 굵고 낮은 현악기들의 음색은 왠지 쓸 쓸합니다. 1악장 마지막의 폭발적인 고조 이후, 느리고 섬세한 2악장 라르게토(Larghetto)는 교향곡 봄 에서 가장 정제된 악장이지요. 활기 넘치는 3악장 스케르초에서 다시 나비가 춤을 추고, 마지막 4악장에서 바이올린 선율이 잘게 쪼개지면서 춤의 분위기를 이어갑니다. 목관의 음향은 마치 새의 지저귐처럼 들려오지요. 그러나 교향곡 봄 의 즐거움은 여전히 불완전합니다. 리듬은 활기차지만 색조는 어둡고, 음악적 구성 도 왠지 어수선합니다. 고전과 낭만으로 이어지는 교향곡의 역사에서 이 작품은 수작 이나 걸작 의 반열에 오를 수 없었지요. 당시의 슈만은 상처입은 영혼을 지닌 31세의 젊은이였습니다. 그의 교향적 어법 은 아직 설익은 상태였지요. 그는 44세에 라인강에 몸을 던졌고, 46세에 정신병원에서 눈을 감습니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41

푸르트뱅글러가 빈필하모닉을 지휘했던 1951년 실황이 역사적 명연으로 꼽힙니다. 제가 즐겨 듣는 음반은 엘리아후 인발이 뉴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70년 녹음 이지요. 푸르트뱅글러 같은 강렬함 이 느껴지진 않지만, 비교적 안정감 있는 연주에 녹음 상태도 좋습니다. 요즘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CD 중에는 네빌 마리너 경이 슈투트가르트 라디오심포니를 지휘한 음반 을 권합니다. 슈만의 교향곡 1 번부터 4번까지, 전곡이 담겼습니다. [당신의 클래식]오펜바흐 `뱃노래 인생은 아름다워 (La Vita e Bella, 1997)라는 영화를 보셨나요? 이탈리아의 로베르토 베니니가 감독과 주연을 모두 맡았던 영화였지요. 때는 1930년대 말, 유태인 귀도 는 아들 조슈아 와 함께 나 치 수용소로 끌려갑니다. 엄마 도라 는 유태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아들을 따라가지요.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은 후반부에 등장합니다. 탈출을 시도하다가 군인들에게 붙잡힌 귀도는 찰리 채플린 처럼 우스꽝스럽게 걸어가면서 쓰레기통에 숨은 조슈아에게 윙크를 보냅니다. 조슈아, 아빠는 지금 이 아저씨와 게임을 하는 중이야. 너는 끝까지 잘 숨어 있어야 해. 게임에서 1000점을 따면 진짜 탱크를 선물 로 준다고. 조슈아는 쓰레기통의 작은 구멍으로 아빠의 윙크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이지요. 알고 있어요, 아빠. 걱정하지 말아요. 이 가슴 아픈 유머의 영화는 오펜바흐가 작곡한 호프만의 이야기 가운데 뱃노래 를 두 번 들려줍 니다. 귀도가 어떤 여인에게 한눈에 반해 따라 들어간 오페라극장. 마침 극장에서는 호프만의 이야 기 가 한창 진행 중입니다. 유명한 아리아 뱃노래 가 흘러나오지요. 음악에 푹 빠져 있던 여인은 바로 도라였습니다. 그녀는 귀도와 결혼하지요. 후반부에서 또 한번 뱃노래 가 흘러나옵니다. 수용소에 갇힌 귀도와 도라는 격리되지요. 생사가 궁금한 상황입니다. 어느날 귀도는 축음기가 있는 방으로 숨어들어가 뱃노래 를 크게 틀어놓습니다. 목숨을 건 송신( 送 信 )이었지요. 수용소 곳곳에 울려퍼지는 그 아름다운 2중창은, 어딘가에 있을 아내에게 보내는 메 시지였습니다. 나하고 조슈아는 잘 지내고 있어. 당신도 버텨야 해 라는, 간절하기 이를 데 없는 기도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42

였지요.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도 인생은 아름답다 고 했습니다. 트로츠키는 1940년 멕시코의 코요아칸에서 스탈린이 보낸 암살자의 손에 죽음을 맞지요. 그는 죽기 직전에 남긴 유언장에서 인생은 아름답다. 훗 날의 세대들이 모든 억압과 폭력에서 벗어나 삶을 마음껏 향유하게 하자 는 글을 남깁니다. 이 마지막 글 은 연초록색 나뭇잎과 화사한 햇살, 청명한 하늘의 아름다움을 함께 예찬하지요. 혁명가로 평생을 살다가 시인의 영혼으로 마지막 순간을 맞은 셈입니다. 로베르토 베니니는 트로츠키의 유언에 착안해 이 영화를 구상했다고 전해집니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을 코미디로 만든다는 건 일종의 모험이었겠지요. 미국의 역사학자 라울 힐버그는 유럽 유태인의 절멸 이 라는 책에서 나치 학살로 인한 유태인 희생자를 510만명으로 추정합니다. 홀로코스트 백과사전 은 560~586만명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약간의 논란이 없지 않았지만, 로베르토 베니니는 이 끔찍한 비극을 웃음과 눈물의 코미디로 그려내는 데 성공했지요. 파리에서 활약했던 유태인 작곡가 오펜바흐(1819~1880)는 소규모의 희가극( 喜 歌 劇 ) 오페레타 작곡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극장을 직접 운영하기도 했던 흥행의 귀재 였지요. 그런 오펜바흐가 인생 말년 에 작품성이 뛰어난 걸작을 만들어보겠다고 마음 먹고 달려들었던 작품이 바로 호프만의 이야기 입니 다. 하지만 그는 오페라를 완성하기 직전에 눈을 감지요. 그의 사후에 18세 연하의 작곡가 에르네스트 기 로가 작곡을 마무리합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뱃노래 는 2막(3막으로 바뀌기도 함)에서 베네치아의 섹시한 아가씨 줄리에타와 호프만의 친구 니클라우스가 부르는 유명한 2중창입니다. 앙드레 클뤼탕스가 파리 국립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니콜라이 게다, 빅토리아 로스 앙헬레스,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 등 호화 배역이 포진한 EMI 음반 이 콜렉터 아이템으로 손꼽히지요.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43

[당신의 클래식]바그너 탄호이저 서곡 히틀러가 군중을 선동할 때도 저 스피커를 사용했대요. 방송인 황인용씨가 한쪽 벽을 채우다시피한 커다란 스피커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육중한 몸매를 드러내고 있는 그 스피커의 이름은 클랑필름(Klangfilm)입니다. 1940년대를 주름잡았던 독일산 명기( 名 器 ) 이지요. 이제 빈티지 애호가들이나 기억하는 고색창연한 이름이 됐습니다. 황인용씨가 운영하는 파주 헤이 리의 카메라타 에 가면 이 스피커를 만날 수 있지요. 가정용 스피커라기보다는, 대중이 모여들던 공공 장소에서 사용했음직한 대형 기종( 機 種 )입니다. 히틀러가 속사포 같은 선동을 쏟아내던 광장에서, 나치의 선전부 장관이었던 괴펠스가 히틀러 만세! 를 외치던 극장에서 이 스피커를 사용했을 겁니다. 물론 이 시커멓고 육중한 괴물 이 나치의 연설만 쏟아냈던 건 아닙니다. 광장이나 극장에 모인 사람들 에게 음악도 들려줬을 겁니다. 주로 바그너(1813~83 사진)의 음악이 울려퍼졌겠지요. 특히 음악극 탄호 이저 3막에 등장하는 순례자의 합창 이 빈번하게 흘러나왔을 겁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히틀러는 열렬한 바그너 숭배자였지요. 순례자의 합창 은 나치 시절에 독일 국가로까 지 사용됐던 음악입니다. 가스실로 끌려가던 유태인들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들어야 했던 숭고미 넘 치는 선율이 바로 순례자의 합창 이었지요. 역사의 저 편 으로 사라지지 않은 그 기억 때문에, 탄호이저 서곡 을 들을 때마다 공연히 마음이 불 편합니다. 클랑필름으로 바그너 음악 한번 들어볼까요? 하는 말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오려다가 쑥 들어가 버렸지요. 어떤 이들은 히틀러와 바그너가 무슨 상관이냐고 묻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취향의 문제일 뿐, 어떤 의미적 연관성은 없다는 항변이지요.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히틀러가 바그너에 푹 빠졌던 것에는 나름 의 이유가 있었지요. 바그너는 기독교에 짓눌려 이교도의 문화 로 폄훼됐던 게르만의 신화와 전설을 장대한 음악극 으로 되살려놓습니다. 작곡만 한 것이 아니라 대본까지 직접 썼지요. 이른바 독일의 후 기 낭만시대, 음악을 통해 게르만 민족주의 를 부활시켰던 작곡가가 바로 바그너였습니다. 1889년생인 히틀러는 음악을 미친 듯이 좋아했고, 바그너를 들으면서 민족적 센티멘털리즘에 젖어들었음을 부인할 수 없지요. 오페라와 음악극의 서곡 은 작품 전체를 함축합니다. 탄호이저 서곡 도 마찬가지이지요. 탄호이저 라는 이름의 기사가 사랑하고 방황하다가 구원 받는다는 줄거리를 요약해 보여줍니다. 이 음악은 모두 세 덩어리로 이뤄지지요. 먼저 3막에 등장하는 순례자의 합창 을 관악기가 주선율로 연주합니다. 이어서 현악기군이 이 주제를 받아서 연주하다가 트롬본이 등장합니다. 트롬본으로 연주되는 순례자의 합창 은 옷깃을 여미게 할 만 큼 성스럽고 장엄한 분위기를 풍기지요. 가히, 서곡의 백미( 白 眉 )입니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44

이어서 음악이 알레그로 템포로 바뀌면서 이른바 환락의 동기 가 등장하지요. 여신 베누스베르크의 요 염한 아름다움에 탄호이저가 유혹 당하는 장면입니다. 말하자면 정신과 육체의 분리, 성( 聖 )과 속( 俗 )의 대 비인 셈이지요. 탄호이저는 타락의 구렁텅이에서 어렵게 벗어납니다. 순결한 여인 엘리자베스의 희생 덕분 이지요. 서곡 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시 순례자의 합창 이 들려오면서 탄호이저의 방황과 타락은 구 원으로 마무리됩니다. 얼마 전 인기를 끌었던 일본 드라마 하얀 거탑 에서는 탄호이저 서곡 을 오프닝 테마로 사용했지 요. 밀로스 포먼이 연출했던 영화 래리 플랜트 에서 포르노 잡지 허슬러 의 사장인 주인공 래리 플 랜트가 법정으로 들어서는 순간, 장엄하게 울려퍼지던 음악도 바로 이 곡입니다. 제가 주로 듣는 것은 게오르그 솔티가 빈필하모닉을 지휘한 음반 입니다. 애호가들의 여러 이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꽤 들을 만한 레코딩입니다. [당신의 클래식]모차르트 레퀴엠 1791년 여름, 문밖에 서 있는 남자는 온통 시커멓습니다. 검은 가면을 쓰고 검은 망토까지 뒤집어 썼지요. 왠지 불길한 분위기를 물씬 풍깁니다. 하지만 한창 돈에 쪼들리던 모차르트는 그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 지요. 검은 가면의 사내는 가장 이른 시간에 레퀴엠 을 작곡해 달라 는 주문과 함께 선금( 先 金 )을 던져주고 사라집니다. 언제 온다는 기약도 없이, 조만간 다시 오겠다는 짧은 한마디만 남기지요. 레퀴엠 (Requiem)은 라틴어로 안식 을 뜻합니다. 신의 영광과 위엄을 찬미하면서 죽은 자의 명복을 비는 음악이지요. 검은 옷의 사내가 어느날 갑자기 찾아와 주문했던 레퀴엠 은 결국 모차르트의 유작 ( 遺 作 )이 되고 말았습니다. 모차르트는 그해 12월5일 0시55분, 레퀴엠 중에서도 가장 애통한 감정이 끓 어오르는 라크리모사 (Lacrimosa, 눈물의 날)의 작곡을 중단한 채 눈을 감지요. 그는 이 곡의 여덟번 째 마디까지 써놓고 영원히 펜을 내려놓습니다. 지금 우리가 듣는 레퀴엠 은 모차르트의 제자였던 쥐 스마이어(Suessmayer)가 후반부를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신의 클래식 - 문학수 (경향 연재/2006.7~2007.9)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