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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되지만, 논란은 더욱 증폭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광주지역 민주화 운동 세력 은 5.18기념식을 국가기념일로 지정 받은 데 이어 이 노래까지 공식기념곡으로 만 들어 5.18을 장식하는 마지막 아우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걱정스러운 건 이런 움직임이 이른바 호남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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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l_ A A. I 조성대4교..1..., 뿔할뭘 년 1 2월호 4 핫뉴스 전호종 제 13 대 총장 취임식 성료 전호종총장 취임 인터뷰 학교법 인 정이사 체제 전환 위한 힘찬 발걸음 조선 대 정상화 추진위원회 백수인 위원장 김주훈 제 1 2 대 총장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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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푼화재 제 7 호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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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업소개 정원 4 발달서보조훈련 2013년 원업에 진행되었던 작은 도서관 설을 토대로 발달의 대한 직업에 대한 개발을 위한 훈련들을 진행. 5. 선택업 을 구성하여 당들의 대한 일상에서 받아왔던 스트레스 해소 등 양한 을 운영원. 11 문화제 의 에 대한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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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생각하고, 재료를 준비하고,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이 작업을 3번 반복 하는 것만으로 하루가 다 간다. 그들이 제작진에게 투쟁하는 이유는 그들이 원하는 재료를 얻기 위해서다. 그 이상의 생각은 하고 싶어도 할 겨를이 없다. 이 땅은 헬조선이 아니다. 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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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년 9 월 저 11 권제 2 호 외무부부인회 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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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 않 證 1990. 9. l 축 사 / 5 방안에서의 여행 강인숙 제 1 권 제 2 호 6 선배닝을 모시고 톡 집 / 통일로가는독일 8 독일의 통일을 지쳐 보면서 성우인 10 독일은지금 민선홍 11 베를린장벽 소감 양정숙 13 신 게르만민족 대이동 황문숙 / 15 해여,조국의 해여 박명성 16 부인회소식 18 좌당: 엄지로떠나며 외교활동 // 23 뉴욕, 뉴욕, 뉴욕 마복자 25 우간다의 W. I.M.A. 김민선 27 이디오피아에서 2년반 정재욱 29 노래에 소망을 싣고 서정 애 년l 겸소묘 / 31 아프리카의 밤 김영희 32 어느바다이야기 한정숙 33 삶의 작은톱니바퀴 김정화 표지 김순자 1맹3년생 35 부다페스트의 붉은별 김연주 36 어머님을 그리며 유고에서 김경수 김승호주코트디브와르 38 카리프해의 흑진주 김성분 대사부인 중앙아프리카,불란서, 40 중동에서 있었던 일 한만숙 스웨덴에서생휠

{ 가족이야기 7 그;;t c:c: C그 - 기행문 58 42 모로코에 부는 태권도 바람 44 솔밭길 45 유치원에 보내며 46 수리남의 파란꿈 47 와싱턴의 아이들 7 57 꿀벌과별꿀 62 세계의 문화예술 64 67 70 72 풍물기 76 78 81 82 7 시리아유적 기행 Nevado del Ruiz 여행기 7 멕시코벽화 내가본고야의 작품 필리핀의 대냐무악단 인도의 종교와건축양식 7 미래의 나라 : 브라질 오만의 혼인잔치 사막나들이 일본,일본사람들 여승구 박애련 권오축 박성 이 조정주 흉혜선 김태숙 안계숙 백희영 장숙희 소 스 ι 여 박은주 유현자 김옥란 박회복 한덕순 84 만 화 송미숙 { 생활정보 7 85 강의 안내, Bridge 1쨌년 저 11 권 제 2호 발 행 : 1쨌년 9월 15일 발행인 : 외무부부인회 펀집인 : 이 우 겸 한돈자 이 경 애 성 우 인 발행소 외교안보연구원 인쇄소 (주)법 신 사 86 88 90 92 93 97 98 요 리 꽃꽂이 한복의 맹시 관저의 실내장식 Herbs at Home 쇼펑가이드 펀접후기 위공자 김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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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사 방안에서의 여행 강인숙 ( 건국대 교수, 문회부장관 부인) 방학이 되면 생활의 리듬을 바꾸기 위해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시작하는 버릇이 있 다. 그런데 금년에는 방학이 되자마자 병이 났다. 일주일을 누워 보내는 한가한 신세가 된 것이다. 덕택에 외 교 燈 을 독파할 기회가 생겼다. 그것은 행운이었다. 신열이 나는데도 불구하고 거기 씌어 있는 글들을 통해 나는 볼리비아에서 시작하여, 시에라리온, 파푸아 뉴기니, 중앙 아프라카, 와가두구, 피 지, 리비아등을 두루 여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한번도 가 보지 못한 곳의 풍물과 생활정보, 문화등을 그 글들을 통하여 익히면서 나는 외교관 부인들의 애환과 긍지를 함께 터득할 수 있었다. 외교관 부인에게는 이름이 없다. 외교관 부인에게는 봉급이 없다. 외교관 부인에게는 자유도 없다. 그 러면서 외 교관 부인은 해박한 지식을 지녀야 하고, 호스 테 스 에 걸맞는 우아함과 세련된 화술, 부지런함과 겸손함을 겸비해야 한다. 그 뿐이 아니다. 그들은 또 숙련된 요리사여야 하며, 이사짐 꾸리기 선수이기도 해야 하는 것이다. 예언서를 조건없이 받아들 이 는 착한 기독교인처럼 소리없이 정부의 지시에 따라 이동해야 하는 남편의 뒤에 별책부록처럼 끼워져 옮겨 다녀야 하는 운명 속에서 그들은 때로는 카멜레온이 되어야 하며, 때로는 성자가 되어야 하고, 때로는 거짓말장이가 되어야 한다. 아픔도 슬픔도 그리움도 모두 가슴 밑바닥에 묻어 놓고 늘 환하게 웃는 얼굴을 지녀야 하는 그 생활의 곡예 속에서 버리기 연습에 숙달 되어야 하는 고달픈 여인 들 하지만 그들의 생활에는 침체가 없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기 때문이다. 그 분주한 일상 속 에서 그들은 온 세상 사람 다 만나는 행운을 누리며, 외지에 한국을 알리는 전령으로서의 역할에 긍지를 느끼고, 척박한 땅에 과일나무를 심는 기적을 행한다. 이따금 산타크로스가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관광안내원이 되기도 하는 그 다양한 역할은 그들에게 정신적인 성장을 가져다 줄 것이다. 외교 燈 의 매력은 절절한 체험이 지니는 현실감과, 소재의 다양함, 풍물소개와 문명비평, 생활 정보등을 고루 갖춘 내용의 풍요함에 있다. 이 여름에 내가 가장 큰 감동을 느끼며 읽은 이 잡지의 성장을 기원한다. 1990년 8월 5

선배님을 모시 고 최 영 준 7월 의 어 느날 오후 최영준선배넘(윤석헌 전 주 프랑스대사 부인)을 모시고 오랜 외교관생활의 경험담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윤석헌대사넘께서는 1954년에 외교관생활을 시작하시고 와싱톤, 본, 카이로 등지의 근무를 마치신 후, 필리핀, 프랑스, 유엔대사 등을 역임하셨다. 최영준선배께서는 1949년 이화여대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하시고 Arneriæn Univer허ty대학원 과 Aædemie de la grande αjawlliere에 서 도 수학하셨다. 1974년 에 는 Le Salon des Artistes Francasis 展 에 서 은상을 수상하셨다. 선배넘께서는 5회의 개인전을 가지고 각종 단체전에 참가하시며 활동을 해 오셨다. 선배님과의 환담중 외교관 부인으로서의 소양과 태도에 대한 지혜로운 충고가 많았기에 여기 그 내용을 간추려 본다. 외교관부인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태도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긍정적 인식입니다. 독일근무 일년이 채 안되었을 때, 갑자기 카이로로 떠나라는 전화통보를 받고 카이로가 어디냐 고 물었어 요. 그러나 곧 또 하나의 새로운 미지의 세계가 내 앞에 있다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으며 기쁜 마 음으로 갔어요. 그러 니 까 그곳 생활이 하나도 어렵지가 않더군요 시간을 아끼는 자세도 몽에 익혀야 할 중요한 점입니다. 부유한 나라일수록 사람들이 검소하고 부지 런 하지 않습니 까? 시간은 기계와 같이 잘들 지키며 바쁜 생활 중 에 서도 취 미 생 활이나 사회봉 사 에 시 간을 아끼지 않습니다. 근변과 시간절제는 우리가 꼭 배울 점입니다 6

외교관의 아내는 남편과 더불어 주재국 사회에서의 비중이 높고 일상생활 그 자체가 외교활동 으로 볼 수 있으므로 그의 일거일동이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자신의 인격과 교양을 쌓는데 부단 히 노력을 해야 합니다. 지금 젊은 후배들은 수준높은 교육과 생활환경의 향상으로 우리가 옛날 어렵던 시절, 해외생활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얻은 교양과 지식, 언어능력을 이미 다 갖 추고 있다고 봅니다. 그런 능력을 바탕으로 많은 경험을 쌓으세요. 집에서 자신있게 입고 나간 옷 이 막상 모임의 분위기에 맞지 않게 느낄 때가 있는 것처럼 자기 스스로의 경험을 통하지 않고는 배울 수 없는 것이 많지 않습니까 7" 그러나 자기가 경험한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편견의 위험은 피해야 합니다. 각 지역사회는 각각의 특징이 있고 각 근무지에는 모두 독특한 분위기가 있습니다. 경직된 사고를 경계하며 해외 생활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상황에 유연성있게 대처하는 것은 현명한 외교관부인의 소양입니다. 매사에 신축성을 가지고 임하면 자연히 남의 의견에 귀기울이는 현명함도 몸에 배어서 해외생활 의 보배로운 존재가 됩니다 환경이 허락하는 범위안에서 자기성취를 위해 노력하며 보람을 찾도록 하세요. 해외생활에서 때로는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지요.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취미생활을 개발하여 노력하면 자기도 모르는 새에 외로움을 극복하고 자기평온을 찾을 수 있읍니다. 나의 경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이 행운이었어요. 아마 그림이 없었다면 어렵고 외로운 기간을 극복하는데 더 오랜 시간이 펼요 했을 겁니다. 젊은 부인들이 남편의 내조자 역할을 하면서도 자기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보기에도 아름답습니다. 이런 후배들이 해외에서 우리나라의 얼굴로서 활동하는 것을 지켜 보는 것은 선배로서의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돌이켜 보변 큰 일을 했다고는 할 수 없으나 30년이 넘는 외교관부인의 생활을 대과없이 끝낼 수 있었다는데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힘에 겨울 정도로 쫓기듯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 다는 것에 후회없읍니다. 지금도 그 생활에 습관이 되어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는 내 자신을 발견 하고는 미소지을 때가 있읍니다 7

통일로 가는 독일 온 민족이 성사되기를 열망하던 8.1 5의 남북 민족의 대 교류 는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러나, 이 제의는 하나의 시작으로서 가까운 장래에 우리도 통일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우리 모두에게 안겨 주었 다. 같은 분단국으로서 익어가는 독일의 통일을 바라보면서 부러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언젠가는 우 리도 같은 입장에 처하리라는 가정하에서 독일의 통일을 바라보는 여러 콧의 시각을 여기에 모아 보았 다. 서울에서, 서독의 수도인 본에서, 그리고 베를린 현장의 우리 총영사관에서의 인상들이다. 독 일의 통일 을 지 켜 보면 서 성 우 인 1989년 11 월 9 일 자정을 기해서 베를린장벽이 붕 괴되었다. 세계의 이념적 분단을 상징하면서 두가지 가치체계의 대립을 지켜보던 28마일의 장벽이 하루 아침에 없어졌다. 세계역사의 커다란 지각변동이 바 로 눈앞에서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 10 7~ 월. 지켜 보기에도 현기증이 날 정도의 빠른 속도로 두개 의 독일은 통일을 향해 달리고 있 다. 독일국민 들 이 언 젠 가 라고 희망하던 통일이 지금 그들의 눈앞에 확연히 다가오고 있는 것 이 다. 흑자는 독일의 통일을 역사의 산물 이라고 평한다.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가 없었더라면, 동구의 변혁이 없었더라연 결코 오늘과 같은 통일은 기대할 수 없 을 것이 틀림없다. 그야말로 예기치 못했던 역사의 선물 이라는 것이다. 역사에 있어서 어떤 사건을 보 는 시각은 이것을 우연의 連 鎭 로 보는 견해와 정연 한 인과관계의 連 鎭 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因 果 性 을 무시하고 역 사에서 교훈을 얻기는 어렵다. 오 늘날 공산주의의 급격한 쇠락은 근본적으로 그 이념 8

이 개인의 자유와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을 무시하였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이다. 페레스트로이카 도 40여년간의 공산주의 실험이 실패한 결과, 고르바 초프와 소련국민이 선택할 수 밖에 대안이었다. 독일의 통일도 국제환경의 없었던 유일한 변화 속에서 역사의 흐름이 그 거대한 물꼬 리 를 틀 때 기회 를 놓 치지 않고 거머쉴 수 있는 준비를 꾸준히 해왔기 때 문이다. 통일을 위한 정치적인 기 반조성 은 20 여년 전 시작되었다. 1969 년 브란트 수상은 독일갱책 (벼lte뼈nd Politik) 과 동방정 책 ß )st Politik)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는 독일 문제에 대해 우 리 자신 이 소극 적 이연 독일안 운명은 제삼자에 의해 정해진다 는 신념 을 가지고 통독을 상대로 한 독일정책 을 추진 하였다. 동독에 대한 원조를 통하여 상호개방을 촉구 하고 양독국민의 동질성유지를 위한 교류를 계속하 였다. 그 결과 1 972년에는 동 서독 기본조약을 체결 하여 상호 실체 를 인정하였다. 브란트 수상의 이러한 정책은 당시 동독의 잔인한 공산정권에 합법성을 부 여한다는 세찬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이 정책은 장 기적으로 볼 때는 독일 통일과정 에서 동독국민의 지 지 를 얻는 결정적인 기반 을 조성하였 다. 대 외적으로 는 동방정책 을 통하여 동구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소련과의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였다. 그로 인해서 소 련의 거부권 행사없 이 동 서독이 나란히 유엔에 가 입할 수 있었다. 외교적으로 독일의 통일에 가장 큰 걸림돌은 미 영 불 소, 즉 세계 제 2차대전의 전승 4개국과 주변국 가들과의 관계개선 문제였다. 서독은 패 전 이후 중립 을 추구하지 않고 1950년대에 이미 북대서양조약기 구 (NA1D)와 구주공동체 (EC) 에 가입하였다. 서방측 과 정치 경제적으로 결속을 강화함으로써 이들의 뿌 리깊은 대 게 르만민족에의 불신감을 무마하였다. 일의 통일논의가 시작된 후 서독은 NA1D의 일원으 로 계속 남을 것임을 천명하여 통일에 대한 서방측 의 지지를 확보하였다. 소련에 대해서는 이 천만의 동독인을 적으로 잡고 있는 것보다는 팔천만의 독일 인을 친구로 갖는 것이 낫다 는 논리와 경제협력으로 독 통일에 대 한 동의를 확보하 였다. 그러나 독일 의 통일에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는 지 난 40여년간 쌓아올린 막강한 경제력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서독의 경제력은 지 금 수천억 달라에 이른 다는 막대한 통일비용 을 감당하고도 다시 소련 에게 통일을 묵인하는 상당한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실 력이다. 지난 3월의 동독총선에서 기민당을 중심으로 한 독일동맹이 가장 신속한 통일방법인 서 독 에의 흡 수통합방식을 내세움으로써 동독국민의 압도적인 지 지를 받았다. 이것도 사실 동독과 서독화폐의 等 價 교 환을 약속한 서독 콜총리의 승리이자 서독 마르크 貨 의 승리였다. 이제 독일의 통일열차는 10월이변 종착역에 도착 한 다. 지난 45년간 세계 를 지배하던 냉전체제가 무너 지고 세계질서가 재편되려는 역사적 전환점에서 독 일은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고 세계질서의 재편을 선도하고 있다. 같은 상황에 있던 분단국으로써 독일 의 통일을 지켜보는 우리는 독일과 다른 우리의 처 지를 한탄하고, 문을 꼭 잠그고 있는 북한을 원망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남북한 간에는 동 서독 과 달리 6. 25라는 뼈아픈 동족상잔의 전쟁 이 있었고 단절된 상태에서 상호불신의 골 이 갚 이 패 어져 있 다. 그러나 독일민족보다 결코 약하지 않 은 웅집력을 가진 한민족이 이런 불신의 벽을 제거하지 못할 리 없다. 미래를 향한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꾸준한 노 력을 계속한다면 우리에게도 언젠가 하는 통일 의 날 이 생각보다 빨리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해 본 다. 註 :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J, Zbigniew Brzezinski 의 rthe Grand Fai lure : the Birth and the Death of Communism in the Twentieth Centrury J, Ti m e 誌 및 일간신문등을 참조. 1951 년생 이준희 서구1 과장부인 캐나다, 우루과이, 네덜란드에서 생훨 9

독일은 지금 민 선 흥 지난 3월 5일 우리가 서독대사로-부임하기 위해 켈 른-본 (Köln-Bonn) 비행장에 도착한 날은 갯빛하늘에 서 막 비가 쏟아질것 같은 유럽특유의 음산한 날씨 였다. 중세기의 아름다운 성들이 우뚝 솟아 있고 저 아 래 멀리 내려다 보이는 라인강(Rhine) 의 긴 물줄기를 따라 나무창살문 많은 삼각지붕의 예쁜 집들이 여기 저기 산재해 있는 풍경은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듯 아름답다. 그러나 한 순간 평온해 보이는 이 도시 이 땅에선 지금 통독이라는 역사적인 대과엽이 진행 되고 있고 나는 바로 그 현장에 와 있구나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숙연해지며 긴장감이 돈다. 이곳에 와서 몇달 안되는 짧은 기간동안 나는 벌 써 그들에게서 우리와는 다른 변을 많이 볼 수 있었 다.준법정신,정직,상호신뢰감,정확성,검소,절약 등의 기본정신을 바탕으로 살아온 그들의 사회는 훨 씬 밝고 질서가 잡혀 있다. 그리고 지금 독일인들은 조금도 들떠 있지 않고 차분하게 냉철한 눈으로 현 실을 지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국민들의 신뢰 와 지지를 받고 있는 이나라 정치지도자들은 국민의 의사를 토대로 정책을 세워 실행에 옮기며 지금은 국민과 정부가 모두 일심통체가 되어 통일로의 대로 를 굳건히 행진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과연 어떻게 그들은 40여년 동안이나 이념과 체제 가 달랐던 분리된 국가가 하나로 합치는 힘겨운 과 정을 이처럼 놀라운 속도로 밟아 나가고 있을까? 나 는 나름대로 그 요인들을 생각해본다. 첫째로 1989년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으로 동서국가 간 의 냉전 대립상태가 화해무드로 바뀌고 헝가리를 위 시한 사회주의 국가들의 잇다른 대혁명을 가져 오게 한 국제정세 변화를 들 수 있다. 두번 째로는 공산체 제를 배격하고 자유와 평등을 외쳐대며 마침내 베를 린장벽을 무너뜨리고 만 동독시민들의 총봉기, 그리고 세번 째로는 서독 국내의 정치적 사회적 안정과 더불 어 막강한 경제력으로 통독에 대해 꾸준한 경제원조 를 하면서 인적 문화적 교류를 통해 민족상호간의 동질성을 유지해 오도록 노력해온 점 들을 들 수 있 다. 이러한 중요 요인들 외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통 독을 주도해온 헬무드 콜 서독 수상과 독일인들의 게르만 민족론 이다. 콜수상은 오랫동안 기다려온 통일의 적기를 놓치지 않고 포착하여 탁월한 정치감 각을 기초로 한 정책과 통일과정의 일정표를 세우고 강한 의지로 이를 밀어 나가고 있다. 자세한 통독일 정을 되풀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그는 제 일차적으로 중요했던 통화통합을 7월 1 일 실시하고 완전 자유왕 래를 실시 하였다. 이제 이차적인 정치통합의 마무리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남아있던 독일의 나 토가입 문제도 지난 7월 16 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 통령과의 회담에서 그의 전격적인 수락을 얻어 냄으 로써 이제 그의 각본대로 통독의 연내실현이 눈 앞 에 다가온 것 이 다 ímr. Germany J 란 타이 틀과 함 께 지난 7월달 rtrrnej 표지를 장식한 그의 얼굴은 새로운 유럽사회를 이끌어 갈 독일 재상으로서의 당 당하고 권위있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항상 중간계충 의 보통사람 임을 강조하는 콜수상은 통독의 모든 성공적 수행은 오로지 어려운 현실에 슬기롭게 대처 해 나갈 줄 아는 독일인 스스로가 이룩한 것 이라고 그 공을 국민에게 돌리고 있다. 통화통합후 물밀듯 밀려 들어온 서독 상품들이 진열된 상점 앞에서 부 러운 눈으로 바라 보면서도 사재기 를 억제하고 있 는 동독인들의 모습이 TV 화변에 나올 때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플레를 방지하고 오히려 마르크화의 강세를 가져오게 한 것이다. 우리 10

도 같은 경우에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나 라에서 만연되고 있는 호화결혼식, 외제선호 등의 나 날이 더 심해져가는 사치풍조가 우리 를 주시 하고 있는 외국인들 눈에는 과연 어떻게 비추어질까? 나 는 통일성 취 를 가져오게 한 많은 요인 들 가운데서도 통일에 임하는 독일인들의 자세 이것이야말로 우리 가 본 받아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몇 번이고 강 조 하고싶다. 1933년생 신동원주서독대사부인 영국,일본,미국, 멕시쿄,인도에서 생휠 베를린 장벽 소감 양 정 숙 독일 통일 이 이루어져 가고 있는 현장을 보면서 느끼는 감회는 각자가 다르 리라. 더러는 찬양과 더불 어 우려의 표명 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이럴 수 가 있는 것일까고 놀랄 것이고, 나와 같 이 분단국에 서 온 사람 은 허물어져 가고 있는 베 를린 담장 앞에 서 조국의 38션을 떠올리게 되곤 한다. 두터운 콩크리트 담으로 둘러싸였던 베 를 린에 온 지 2년 여 만에 말끔히 헐려진 브란멘부르그문 앞을 가연 언제 이곳에 담장이 있었던가 싶다. 불과 수개 월 전 만해도 브란덴부르그문 앞은 마치 채석장과 같았다. 괴상한 그림들로 뒤덮힌 그 벽돌담을 깨어 역사의 증거물로 간직하려는 관광객들과 그 역사의 조각 을 깨어 잇속을 취하려는 장삿꾼들의 쇠망치 소 리, 그리고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하려는 신사숙녀 들의 부산한 웅직임 등은 마치 인류전체가 이념과 주의를 깨뜨리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 다연 지나친 표 현일까. 사람들이 베를린 을 붉은 바다 위에 떠있는 외로 운 섬 이라고들 표현한다. 섬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바다가 아닌 벽돌담과 철조망으로 둘 러싸였다는 차 이라고나 할까. 그토록 사람들의 마음을 답답하게하 던 베 를린장벽은 동서독간의 어느 국경, 아니 세계의 어느 국경보다 더 많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그럴것이, 2차대전의 장본인인 히틀러의 수 도이자, 파리의 4배가 된다는 거대한 베를린이며 세계의 수 도로선 가장 물과 숲이 많은 아름답고 전원적인 도 시 임은 물론 4대 전승국들의 군화소리가 드높던 점 령지역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 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역시 이 도시의 심장 을 꿰뚫어 놓았던 그 시멘 트 담장이리라. 그 비 극의 장 벽은 2차대전의 패전국으로서 감수해야 했던 대가이 기도하다. 그러 나, 바로 그 이념과 주의의 산물인 장 벽이 정치가, 예술가, 관광객 등 수 없는 사람들의 발 길을 끌었고, 그들의 마음을 그려내 는 붓끝은 우중충 베를린시 11

한 담장을 기괴한 그림으로 단장했다. 만약 그 담장 이 없었더라면, 통독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지금과 는 달랐을 것이며, 이념과 주의의 개념이 나의 피부 에 이처럼 절실히 와닿지 않았을 것 이란 생각도 든 다. 그런 의미에서 역설하면, 베를린담장은 통독의 주역이자, 여러 모로 베 를린 시민 들의 비운에 큰 보상 을 한 셈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이 나라 통일 의 밑거름은 베를린장벽이나 행운같은 것이 아니라 독일국민의 성실성, 실질성, 준법정신 그것이라 믿어 진다. 그곳 사람들은 수퍼마켈을 가는 남녀 노소치고 나 처럼 지갑만 달랑 들고 가는 사람을 보기 드물다. 바구니, 비닐봉지 등등 옛날 우리가 시장갈 때의 모 습과 같다. 우리 돈으로 40원 정 도하는 비 닐봉지 값을 아끼고자 함은 물론이고, 그 많은 비닐공해 를 다소나 마 줄 이 기 위한 그 시민 정신, 하우스 만 (아내역할의 남편)이라는 단어가 유행할 정도의 체면아닌 실질 성, 자전거 길까지 따로 만들어 놓고 어김없이 지키는 그 준법정신 은 내게는 불편하기도 하고 감탄스럽기 까지 하다. 우리나라처럼 반세기라는 긴 세월의 분단 상태에서 페레스트로이카 라는 러시아단어가 채 나 의 귀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통일 을 이루는 이 민족 은 참으로 기이한 민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독에서의 아슬아슬한 평화적 시위가 일어난게 어제 같고, 풍선을 타고 동독을 탈줄해 오던 한 의사가 풍선이 가로수에 걸려 죽었다는 소문을 들 은지 잊그 제 같은데 벌써 오늘은 통일이다. 누가 붙들새라. 셋 트기같이 빠르게, 구렁이 담넘어 가듯 매끄럽다. 나라사랑은 일상생활의 일부이며, 그 이상도 그 이 하도 아니 라는 듯, 누구나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함은 두 말할 것도 없거니와, 아무리 하찮은 일을 하는 사람 이라도 자신의 일에 대한 전문인이라는 관념과 자부 심 또한 대 단하다. 더 대단한 것은 분수에 맞게 살 줄 아는 검소하고도 검소한 민족이란 점이다. 이들은 통 일, 통일, 애국, 애국을 외치는 사람도 없어 보인다. 윗쪽을 쳐다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앞만 보고 사는 민족이란 생각도 해본다. 베를린은 우리에게 전쟁의 아픔 을 상기시키는 역 사의 현장이다. 그것의 첫 째는 도시 중앙의 장벽이 고, 둘째는 번화가에 자리하고 있는 부서진 교회이 고, 셋째는 구 베를린역이라고 할 수 있다. 허물고 다 시 짓지않는 이유는 후손들에게 전쟁의 아픔을 보여 준다는 이유에서라고 한다. 역사의 소중함과 두려움 을 아는 민족이라 여겨진다. 나무와 물이 감싸고 있 는 베를린시를 2차대전이 계속되고 있는 곳 이 라 농 아닌 농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은 최 전선 이라고 표현하는 동서이념의 주둔꾼들 대결장이 다. 그러나, 이 민족은 이념과 주의의 노예이기 이 전 에 빵보다는 자유가 소중하다는 사실을 전쟁을 치 룸 으로써, 이념의 장벽을 넘겨다 봄으로써 몸으로 체험 해 왔을 것이다. 우리의 동족상잔은 세월과 더불어 잊혀져 가지만, 이곳은 전쟁의 흔적을 보존함은 물론 장벽으로 인한 끊임없는 희비극이 일어나 왔고 또 일어나고 있다. 이 들은 재 결합 이 라는, 남들이 더 흥분하는 거 대 한 케엌을 바로 코 앞에 놓고도 더없이 조용하다. 브 란 멘 부르그문 양쪽담장이 헐리던 날의 열광을 씻은 듯 잊었는지 모두의 마음은 일상으 로 돌아간지 오 래 이고 다 된 케엌 장식 생각에 신명이 나고 있을 헬 무트 콜 수상만 더없이 바빠 보인다. 반년 전과 다 른 점이 있다변 동독인들의 서베를린으로의 나들이 다. 시가지가 붐비고, 값이 약간 저렴한 알 디 가게 앞에 참을성 있게 줄서 있는 동독사람들, 메 르쩨 데 쓰 크란쓰 라고 베 를린 시민 들이 명명한 귀엽게 생긴 동 독차들로 체증이 일어난 도로뿐이다. 기이 한 민 족임 에는 틀림이 없는 것같다. 의 자유를 찾아 탈출해 오던 수 많은 동독 젊은이 들 희생과 성실하고 검소하며 준법정신 투철한 이 민족의 저력이 통 일에의 길을 닦았다고 믿으며, 통일 을 과제 로 안고 있는 나라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 러움과 더불어 찬사를 보내고 싶다. 1쨌년생 박동규 주 베를린 층영사 부인 오스트리아, 자이르, 희 랍, 말레이지이에서 생활 12

신 게르만 족 대이동 화 스 WEST GERMANY 서독으로 탈출하는 동독인들의 동 서독 끊임 없는 행 렬을 다루는 기사가 자주 실렸다. 엄마, 서독으로 탈출하 는 동독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고등학교 일학년에 다니는 아이의 느닷없는 물음 에 왜?"하고 나는 의아해 했다. 아빠는 항상 너희 들은 언제나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사람들은 자기 나라를 버 리 고 떠나잖아요 뜻밖의 말에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사람 은 누 구나 자유롭게 행복을 누리고 싶어하는데 그곳에선 그렇지 못하니까 그렇겠지 그렇지만 어렵고 힘들더라도 자기 나라를 끝까지 지켜야 되잖아요?" 우리가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고 지내듯이 자유의 소중함을 모르고 사는 아이에게 어 떻게 설명을 해 줘야하나. 우리 나라도 남북으로 갈라진 뒤 공산 치하의 억 압에 못이겨 월남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니? 그들은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정든 고향을 떠나온 사람 들이야. 동독 사람들도 인간답게 살고 싶어 그런단 다 베를린 장벽 붕괴 홍미와 스렬을 갖고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지켜보 던 어느날, 정확히 말해 작년 11월9일은 세상 사람들 을 환호와 탄성으로 몰아넣은 기사가 신문 1 면톱을 커다렇게 장식했다. 세상에, 어쩌면!" 감탄만 할 뿐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베를린 장벽 위에서 삼페인을 터뜨리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던 젊은이들의 모습은 나의 가슴 을 뭉클하게 했다. 625 이후 남북분단이 완전 고착된지 벌써 40년이 된 우리나라. 독일과는 같은 분단국의 슬픔을 함께 하는 동병상린으로 한가닥 위안을 받고있던 터였는 데 이제 저들은 통합으로 가는 첫 관문인 벽을 허문 것이다. 우리의 삼팔선도 저들처럼 언젠가 없어질 날이 올 까하는 기대와 회의가 교차되었다. 나는 독일에 있을 때 가본 베를린 장벽을 떠 올렸 다. 당시 서베를린 하면 괜히 두렵고 불안한 곳으로 여겨졌었다. 지도를 펴 보면 동독땅 가운데 동그라니 떠 있는 조그만 섬과 같은 도시. 그곳을 가려면 자동차를 타 고 논스톱으로 동독 영토를 지나야 했다. 13

처음 우리가 서독 국경을 벗어 날 때는 동독으로 향하는 서독 자통차들 이 줄을 잇고 있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그 많던 서독 자동차들은 다 어디로 빠 졌는지 보이지 않고 낡고 허술한 동독 자동차들만 스쳐 갈 뿐이었다. 적지에 홀 로 있다는 불안감이 본능적으로 일어났 다. 어쩌다 간혹 서독 자동차를 보면 왜 그렇게 반 갑던지 우리는 혹시 길을 잘못 든게 아닌가 걱정이 되어 도로 표지판과 지도를 몇 번이 고 확인했다. 운전대를 잡은 그이는 우리가 서베를린으로 나가 는 길을 지나쳐 온 건 아니겠지? " 그런것 같지는 않은데요 하면서도 나는 내심 초조 하고 불안했다. 얼마를 달렸을까? 처 만 치에 서베를린 이란 표지 판이 눈 속에 들어왔다. 여보, 저기 봐요. 서베를린 이 나왔어요! " 나는 너무 기뻐서 소리쳤 다. 그것은 우 리에겐 구원의 등불과도 같았다. 이념과 체제가 다 른 사회 가 우리 에 게 준 경험을 톡톡히 한 셈이다. 거 대 한 동독땅에 비 하면 해변의 한줌 모래알 같은 도시 서베를린. 그러나 그것은 자유의 상정으로 고고 하게 빛나고 있었다. 형언할수 없는 감동을 지닌 채 우 리 는 먼저 베 를 린 장 벽 으로 향했다. 장벽 앞에는 여 러 분은 지금 동 베를린과의 경계 앞에 서 있습니다.J라는 뱃말이 우 리의 주의를 끌었다. 서독으로 탈주하는 동독인들을 막 기 위하여 1961 년 동독측에 서 축조했다는 베 를린 장벽. 그 장벽 이 축조된 이 래 70여명의 동독 주 민이 장벽넘어 서독으 로 탈주 하려다 숨 져 갔다. 그 중에는 탈주도중 동독 경비병에게 들켜 총 에 맞아 쓰 러 져 간 어 린 소년 의 슬픈 얘 기와, 건물 밑 땅을 파서 탈출 하려다 숨진 사 람의 안타까운 얘기 등 수많은 사 연들 이 우리의 마 음 을 아프 게 했다. 자유가 무엇 이 길래 그들은 그렇게 귀중한 목숨과 바꾸어야 했나? 새삼스 럽 게 경건 하고 엄 숙한 마음으 로 고개 를 숙 였다. 그런 한 사연들을 간직한 채 30년 을 버려 오던 장벽이 이제 무너 졌 다니 먼저 간 이 들 의 영혼을 어떻 게 위로해 줘야 하나? 베를린장벽 붕괴 이후 서 독과 동독은 통합작업을 숨가쁘게 추진해 왔다.7월 l 일부터 兩 獨 의 경 제 사회 통합이 정식으로 발효되었고 1 2월 중순경엔 총선을 치러서 정치적인 통합을 한다고 한다. 외견상 그들의 통합은 소련 대통령 고르바초 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과 통구에 울밀듯이 밀려온 민 주화 물결의 소산 이 다. 그러나 서독은 벌써 20년 전 부터 통일에 대한 강한 신념으로 동독과의 상호교류 를 서서히 시작해 왔다. 1 969년 서독은 당시 社 民 黨 의 브란트 수상의 동방 정책의 일환으로 상호방문교류와 경제협력 등을 추 진했다. 그리하여 1972년 동독과의 상호교류를 골자 로 한 兩 獨 기본조약이 체결되었다. 초청장을 가진 서독주민은 30 일 이내에 동독을 자유롭 게 여행할 수 있었고 6 5세 이상의 연금대상자와 서독내의 직계가 족에 긴요한 용무가 있을 때는 동독주민도 서독을 다녀올 수 있었다. 그후 1982년 야당인 基 民 黨 이 집권을 한 후에도 동방정책은 계속되었다. 서독은 경제적인 부강을 바탕으로 동독에 경제적 인 원조를 아끼지 않았고, 對 동독 무 역특혜 조치로 관세장벽철폐, 동서독 여객기 전면 운항합의, 양독 정 상회담 개최등 괄목할 만한 발전을 보였다. 그러한 兩 獨 의 움직임 에, 여타 유럽 국가들은 일말의 불안감 을 가지면서도 독일이 통합 되리라고는 생각치 않았 었다. 그러나 게르만족의 우월성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 고 있는 그틀은 합 리 적이고 실질적인 사고방식의 바 탕위에, 끊임없는 노력을 통하여 마침내 통합이라는 열매를 얻은 것이다. 아! 우리에게도 빨리 그런날 이 왔으면! 그래서 고 등학교 다니는 두째 아이에게도 명확하고 귀 중한 해 답을 줄 수 있기를. 1947년생 권영민 청와대 의전 비서관 부인 오스트리아 독일, 요르단에 서 생훨 14

해여, 祖 國 의 해여 북미대륙에 5년 구라파에 3년 바 며 서 --, c그 c> 조국의 해를 못 보는 복역수 ( 服 投 因 ) 로 살다보니 가뜩이나 근시인 눈에 잘 보이는 것 아무것도 없구나. 자주 흐린 하늘 아래 부슬비 듣고, 피어오르는 안개 속 에 전설처럼 도사린 고성 ( 古 城 ) 은 있어도 조국의 해 없는 곳에선 나는 언제나 나그네일 수 밖에 고아일 수 밖에 해여, 조국 의 해여! 영예롭고 찬란하고 자유로운 해여! 절제하고 육성하고 또 포용하는 해여! 나는 네 품에서 사물을 본다. 네 품에서 사랑받고 사랑을 주고, 절망하고 다시 희망한다. 네 품에서 웃고 울고, 노래하고 춤춘다. 해여, 조국의 해여! 어서 내 수의( 因 衣 )를 찢어 다오. 그리곤 푸르디 푸른 조국의 하늘로 발가숭 이 내 알폼을 데려 다가 네 해빛 속에 잠기게 해다오. 눈부신 빛의 포망( 補 網 )에 아주 나를 얽어서 다시는 나들이도 못 나가게 잡아다오, 붙잡아 다오. - 독일에서- 남흥우 대사부인 미국, 독일, 시에라리온, 후쿠오카가나에서생활 15

부인 회 소식 외교 燈 창간호 발간 외무부 및 주재관 부인들의 글 을 모은 간행물인 외교 燈 이 오 래 동안의 준비 끝에 1990년 3월 1 일자로 2,000부가 발간 되 었다. 원고 모집에서부터 편집 삽화 표지등의 모든 작업 이 부인들의 솜씨였기 에 이 잡지의 발행을 특 히 뜻갚은 일이 라고 생 각한다. 합실 어린이 집 방문 외무부 부인회는 시청의 부녀 복지과의 추천을 받아 합실 어 린이 집 을 방문하고 부모와 자 녀들, 보육원 직원들을 격려하였 다. 이 행사는 5월 가정의 달 에 불우 이웃을 돕는 행사의 일환으 로 이루어졌다. 부인회에서는 자모용 유아용 교직원용 티셔츠 200점을 준비하 외교관부인 애환담은 회지 외 교 燈 발간 외무부부 인회 회 장 金 千 銘 씨 (53. 崔 浩 中 외 무장관부인 ) 는 최근 회 원들의 글을 한데 모아 외교 燈 이 라는 회지 를 발간했다. 우리 회원들은 외 교관의 아내 로서 해외에 근무하는 동안 겪었 던 애환 이 나, 자녀교육 문제들을 서로 털 어 놓다가 우리들이 겪었 던 일들을 기록으로 남겨놓으면 후진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게 된 겁니다.JJ 이 회지는 4 x 6배판형, 7 5쪽으 로 외교관 아내로서의 역할 각국의 풍물기 등 이 실려 있다. 주간조선기사 내용 고 각 가정에서 수집한 완구등을 선물로 전달했다. 합실 어린이 집 은 저소득층 거주지역에 있는 서울시 산하 탁 아원 중에서 규모가 영세한 곳으 로 맞벌이 부부들의 어린 자녀들 을 맡아 돌보아 주고 있다. 효택 보훈 병원 위문 및 봉사활동 본부의 심의관급 이상 간부 부 인들은 1 986년 5월 이래 한국 보 훈 병원을 방문하여 봉사활동을 해 오고 있다. 1 2월과 1 월, 7월과 8월을 제외한 8개월 동안 매월 셋째 월요일 마다 모여 입원 가 료중인 애국지사 및 상이군경등 국가 유공자를 위로하고 병원 내 의 부족한 일손을 돕기 위 한 것 이 그 목적이다. 자선 실내악 연주회 1990년 5월 3 일 오후 외 무부 장관 공관에서는 강영훈 국무총 랴 부 인 을 비롯하여 국무위원 부 인들, 주 한 외교사절 부인등 200 여명을 초청하여 자선 실내악 연 주회의 자리를 마련하였다. 16

이 연주회를 위하여 피아노에 박지혜씨(이기주 경제 차관보 부 인) 바이올린에 김경민 교 수(서 울 예고와 경희대 강사), 플루트 에 김대원씨(뼈S 교향악단 수석 연주자 )가 수고하셨다. 오랫만에 있었던 실내악 연주회이었기에 청중들의 반응은 좋았으며 연주 후에는 다과를 즐기며 즐거운 교 제시간을 가졌다. 이화 여대 방문 외무부 간부 부인들은 1990년 6월 15 일 이화여대의 김옥길 이 사장의 초청을 받아 동 대학을 방뮤하였다. 이화여대는 외무부직 원 자녀들이 가장 많이 재학하고 있는 대학이다. 일행은 정의숙총 장을 예방하여 외무부직원 자녀 들에게 보내주는 후의에 감사 를 드렸다. 현대 시설로 새로이 완공된 도서관과 박물관 및 도예 실을 견학하였다. 특히 김옥길 이사장을 방문했 을 때는 이사장님댁의 소문난 냉 면과 빈대떡을 준비하시어 큰 잔 치를 베풀어 주시고 격려의 말씀 을 해주셨다. 직원 자녀들을 위한 오찬 외무부직원 자녀들을 위한 오 찬이 1990년 7월 26 일 정오 외무 부부인회 주최 로 한남동 공관에 서 있었다. 이 오찬회에는 기숙사 생 26명과 사감선생님, 그리고 본 부근무 직원들의 대학생 자녀 46 명 및 간부부인들이 참석하였다. 작년에 이어 두번째로 열린 이 행사에 올해는 대학원생과 군대 에 복무중인 자녀들도 참석하여 더욱 즐거운 모임이 되었다. 최호중장관 부인은 특히 방학 중에 부모님들께 가지 않고 서울 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공부 를 계속하는 기숙사생들을 따뜻 이 격려하였다. 학생들은 이런 정례적인 행사 가 발전하여 서로간에 친목을 다 질 수 있는 모임으로 정착되기를 희망하였다. 17

c.1- I그 임지로 떠나며 정들어 살던 집을 정리하고, 살림살 이 를 꾸려 생소한 곳으로 움직이는 작업을 몇차례나 해야하는지 막연한 가운데, 피곤하고 힘들어도 우리들은 사명감을 갖고 훌훌 털고 일어난다. 외교관은 자기가 있는 곳이 자기나라 영토 라는 생각을 갖지 않으변 영원히 집도 절도 없는 떠돌 이 별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또 다른 곳으로 우리의 할 일을 찾아 용감하게 떠난다. 때 : 1990년 6월 18일 콧 : 외무부장관공판 참석자 : 서 복 자 유종하 외무부차관 부인 미국, 영국, 수단, 벨기에에서 생활 김 용 규 노영찬주프랑스대사부인 멕시코, 프랑스, 세네갈, 샌프란시스코, 포르투갈에서 생활 조 성 권 김좌수 주 불가리아대사 부인 로마교황청, 태국에서 생활 정 윤 자 선준영 주 체코슬로바키아대사 부인 미국, 이란, 영국, 브라질, 제네바에서 생활 이 은 주 박동순 주 카이로 총영사 부인 스웨덴, 쿠웨이트, 오스트리아, 요르단에서 생활 이 정 희 권영순 주 몽고 대사 부인 멕시코, 아르헨티나, 제네 바, 베네주엘라, 파라과이에서 생활. 이 경 희 김항경 주 미얀마대사 부인 아가나, 뉴욕에서 생활 18

각자 다른 각오로 준비 알려져 있지만, 이번에 처음 수교되는 몽고, 체코슬 로바키아, 불가리아등에 대해서는 궁금한 점이 많군 요. 서복자 : 바쁘신 중에 시간을 내주 셔서 감사합니다. 해외근무에는 부임전 이사준비로부터 임지에서 정착 및 활동할 때까지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는 것이지요. 특히 북방외교의 결실에 따라 창 설공관에 가시는 분들은 보람도 크시겠지만 걱정도 많이 되실 줄 압니다. 우선, 부임 전의 마음가짐과 이사준비에 관한 이야기 부터 나누 어 보기로 할까요? 김용규 : 파리에 참사관을 거쳐 대사직으로 다시 가 게되니 기쁘기도 하고 감흥이 새롭습니다. 발령을 받 게되면, 새 근무지의 사회 문화 생활정보부터 수집하 는 것이 순서이겠지만 저는 그런 수고는 던 셈이라 고나 할까요? 이정희 : 몽고하면, 텐트속에서 생활하며 광활한 초원 을 말을 타고 달리는 정기스칸을 상상하게 되지요. 몽고는 세계에서 오직 소련하고만 교류를 했던 고립 된 나라라고 합니다. 이제까지 근무한 임지가운데 가 장 미지의 냐라이지요. 우선 기후만 보더라도 영하 40' -50 'c에서 영상 40' -5Q'c 를 오르내린다니 모두 힘든 근무지라고 해요. 그러나 우리 내외는 취향이 여 행을 하면서도 남이 다 가는 아스팔트 길보다 포장 안된 좁은 시골 길을 즐기고, 걸어갈 수 있는 길이면 흙이건, 풀밭이건 그것이 바로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 문에 우선 호기심이 생기는군요. 몽고는 인종적, 문 화적으로 우리와 흡사한 갚은 관계가 있는 곳 아니 겠어요. 국립 박물관에서 몽고 다라니경 특별 전시회를 보니, 관심을 갖고 유물들을 수집하다보면 우리가 잊 고 있던 우리 문화의 소박한 원형을 몽고에서 발견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은주 : 저도 지난 번 임지인 요르단에 이어, 같은 아랍문화권인 카이로에 가게 되어서 생소하지는 않습 니다. 어느 곳에서든지 적극적으로 사람을 많이 사귀 면서, 모든 일에 능동적인 자세로 행동하면 그런 대 로 성공적으로 근무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요르단 여성들은 일반적으로 중동여성이면서도 매우 활동적 이고 진취적이었어요. 이집트 여성들도 비 슷하지 않 을까 생각합니다. 김용규 : 카이로에 여행을 가보니 고대의 피라미드와 초현대적인 호텔들이 공존했습니다. 거리에는 벤츠가 다니는가 하면, 마차, 자전거가 다니고, 여성들도 활 기차게 보였습 니다. 불란서, 이집트등은 비교적 잘 조성권 : 불가리아도 우리나라와 처음 수교관계를 맺어 생소한 나 라이지만 지리적으로 그리스, 이 태리와 가깝고, 유럽문화권 에 있 는 나라이므로 크게 서투르리라고 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다만 이제 막 급격한 개혁을 시작한 사회주 의 국가로 사회적인 안정을 이루어 가기 전에 넘어야 할 수 많은 고비가 있을텐데 이런 어려운 점을 어떻 게 잘 해결해 나가려는지 호기심도 있고, 걱정도 되 어 불안하기도 합니다. 물론 세계 정세의 추세로 보아 좋은 방향으로 나갈 것입니다. 19

정윤자 : 1968년 프라하의 봄 이래 체코슬로바키아는 의 외교활동 지원 외에 공관식구들간의 인화단결을 민주화의 기초를 꾸준히 닦아온 나라라고 할 수 있 습니다. 사회주의 국가라고 불리우는 것도 싫어한다 는군요. 작년도에 우리나라와의 교역량이 일억 불이 된다는데 자동차, 가전제품 같은 소비재를 수입하고, 방직기계, 공작기계 같은 고도산업기술을 수출한 사 실로보아 2차대전 전세계 10대 공업국으로서 아직도 탄탄한 저력이 있나 봅니다. 체코의 문화는 드보르작, 스메타나의 음악 뿐아니라, 현재 체코 대통령 하벨이 쓴 청중 이라는 연극이 우리 대학로에 소개되었고, 보헤미안 크리스탈도 시내 백화점에 많이 진열되었 더군요. 바야흐로 이데올로기의 제약을 벗고, 각 분 야에서 도약하려는 순간인 이 때에 현장의 목격자로 처음 부임하게 되어 큰 의의를 느낌니다. 돕는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요. 김용규 : 특별히 부인들 간의 인화 단결이 공관 분위기에 좋은 영향 을 주지요. 집안에서 남자마음이 편해야 밖에서 의욕적이 될 수 있 다는 사실이지요. 대사부인은 직 원 부인들에게 항상 관심을 갖고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작 은 공관에서는 직원들과 부인들의 성격까지도 다 파 악되지만, 수십명씩 있는 공관에서는 일일이 살필 수 가 없어 안타까울 때가 있지요. 이경희 : 우리나라 신문에 未 決 의 나라라고 특집기 사로서 실렬 만큼 미얀마는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고, 우리에게는 아직 아웅산의 참사로 인해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는 나라인 것 같습니다. 더구나 버마, 랑군 이란 친숙한 이름 대신, 미얀마, 양곤이라고 부르니 오히려 먼 나라로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미얀 마는 우리나라 경제성장을 모델로 배워서, 오랜 사회 주의 결과로 나타난 궁핍상태를 벗어나려고 노력하 고 있다고 들었어요. 우리와 경제분야의 교류가 확대 될 전망이랍니다. 그곳은 심오한 불교문화를 간직하 고 있어서 그 분야를 공부할 좋은 기회가 될 것 같 습니다. 서복자 : 큰 공관에서 개인적인 관심과 접촉은 오히 려 도움이 안 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럴 때 전체 부 인회를 조직하여 활용하면 서로서로 폭 넓게 알 수 있으니까요. 부인회에서 새로 부임해 오는 가족을 위 해 어떻게 도와줄까 알아보기도 하고, 미리 김치라도 준비해 주변 좋지 않겠어요? 집안에 기쁜 일이 있을 때 함께 기쁨을 나누고, 우환이 있을 때는 서로 위로 하면서 상부상조하고 지낼 수가 있지요. 때에 따라 서, 친분있는 교수나 음악인을 초빙하여 그 나라의 예술 문화에 대한 강의를 듣는다연 부인들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좋은 기회도 된답니다. 이경희 : 제가 전에 해외에서 모시던 어떤 선배님은 부인회의 역할과활용 서복자 : 대사부인의 역할중에서 중요한 것이 대사넘 늘 남들만 대접하지 말고 반대로 근사한 대접을 한 번 받아보라고 하시며 매 달 일류 식당에서 점심을 사 주셨는데, 오래 기 억에 남습 니 다. 그런 기회를 통 해 용기도 얻고, 견문도 넓히는 기회가 되었어요. 20

조성권 : 회원의 수가 많으면 그런 점심모임을 갖기 관에서는 비품관리에 신경쓰이는 일이 많이 있지요. 는 힘들겠어요. 집집 마다 돌아가면서 간단히 티 모임 그릇은 많은 것 같은데 막상 쓸 수 있는 그룻은 모 으로 해도 좋겠지요. 부인들 의 살림솜씨, 어요. 자연스럽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성격까지도 짐작하게 되지 않겠 자란다거나 제대로 갖추어 있지 않을 때 가 많지요. 국산품을 쓰는 경우는 부족한 부분을 신속하게 공급 해 주는 부서가 외무부 내에 있었으면 해요. 남자가 하기 어려운 일이니 가능하면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이은주 : 잘못하면 시어머니가 며느 라 살림 점검하는것이라 생각할수 도 있겠으나, 아마도 젊은 사람들 은퇴한 부인들이 관리한다면 여러가지로 도움이 되 지 않을까요. 필요하면서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어려운 문제이지요. 사는 모습에서 배우는 점이 더 많 을테 니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 김용규 : 그래서 현지에서 구입할 때 예산이 빠듯해 해요. 틀림없 이 기말한 아이디어들을 도 반드시 몇 개의 여유분을 두고 비품을 사야 해요. 서로 나누며, 음식이나 살림에도 디너세트나 크리스탈 잔의 패턴은 계속 생산되는 것 변화를 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은 데요. 인 지 확인한 후에 구입하기로 하고, 그 이름과 구입 장소등은 기록으로 반드시 남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 해요. 처는 그 기록이 없 어서, 같은 무늬 잔 한개를 정윤자 :제 경우에 부인회의 활발한 활동은 근무지 의 추억 을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답니 다. 찾기 위해, 시내 상점을 샅샅이 뒤진 적이 있지요. 겨 우 구입한 상점을 찾았는데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서복자 : 그렇습니다. 처음 겪는 해외생활에서 언어 패턴이라고 해서 낭패한 적이 있었답니다. 문제라든가 소심한 성격때문에 부끄러워 하던 부인 들도 여러 모임을 갖고 권유하연 대개는 안정감을 찾고, 소극적이던 사람이 오히려 인환단결에 큰 몫을 하는 것을 보았어요. 부인회 활동이 궤도에 오르 면 대사부인은 누구든지 와서 마음을 열어놓고 의논할 수 있도록 하고, 불편한 점은 참작하여 공평한 판단 으로 조정해 주변 좋지요. 목사나 신부의 역할과 비 슷하다고나 할까요. 서복자 : 관저에 쓰지 않고 방치되어 있는 그릇 이 많 을 때, 따로 장부를 만들어서 공사나 직원들 집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계속 그 비품은 후임자들에 게 인계하는 방식으로 정리하면 효과적인 방법일 것 같습니다. 정윤자 :발령받으면 실질적으로 그 나라의 문화 생활정보 등을 알 아보는 일도 중요하지만, 솔직히 가정부문제는 현실적으로 대사부 현명한공관살림 이정희 : 신설공관은 문제 가 좀 다 르 겠지만, 기존 공 인에게 어느 의미에서는 제일 큰 일 인 것 같아요. 가정부의 자질문 제, 임금문제등 어려운 점이 많지 않습니까? 21

조성권 : 사실 가정부의 자질과 임금문제는 점점 더 는로마사람처럼 이란 말은 정 말 우리 들 이 동감하게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현 실입니다. 케이크나 디저트 되 지 요. 등의 요 리 법을 아는 고급기술의 요리사를 구하기는 커 녕 한국요리라도 잘 할 줄 아는 가정부를 구하는 일도 쉽지않게 되었습니다. 또 대부분 허락된 한 사 서복자 : 특히 청소나 정원관리는 사정이 허락하는대 람의 가정부를 데리고 혼자서 현관 접대에서부터 요 로 현지식 을 따 르 면 좋아요. 청소전문업체를 이용하 리까지 잘 하기를 기대하기는 거의 불가능하지요. 면 효과적이지요. 그 나라에 맞는 기구와 청소약품들 을 사용해서 우리가 하는 것보다 완벽하게 현관, 화 장실등을 깨끗 이 정돈해 주 기 때 문에 바뿔 때 일 일 김용규 : 다른 나라의 경우엔 의례 가정부가 있 어서 이 손 댈 필요가 없게 된답니다. 전화도 대사부인이 직접 받는 경우는 드물지 요. 제 경우에 외국사람에게서 전화가 왔을 때 잠깐 기다려 이경희 : 국내의 임금 을 생각한다 달라고 하고 약간 목소리를 바꾸어 조금 있다가 얘 면 경제적으로도 현지의 전 문가들 기한 적 도 있답니 다. 직접 내 가 대사부인 이라고 하 변 상대 방 이 믿질 않더 군요. 간단하게라도 영어를 할 의 도움을 청하는 것이 좋 은 방법 이라고 생 각됩니다. 무엇에서 든지 수 있는 가정부가 정 말 아쉬 웠 어 요. 그 나라 방식을 따 르 거 나, 주재국 의 물건을 사용해 주는 것도 주재 국에 대 한 우리의 예 의 가 될테니 까요. 이정희 : 전화는 그렇게 하더라도 방문을 받을 때는 더욱 난처합니 다. 대사부인이 직접 현관 문을 여 는 경우는 관례 상 드물거 든요. 서복자 : 현 지 인 운전 기사에게 현 관 영 접 과 웨 이 터 일을 보도록 임 기 웅 변 으로 대처해 보는 방법도 있겠 지 요. 서복자 : 외 교 관의 부인들은 정부시책의 홍보 내 지 실천으로부터 개인적인 일상 문제까지 척척 풀어나 가는 재치와 적극적인 생활태도를 보여야 할 것 같 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곧 각자 다 른 부임지로 떠 나시게 되는데, 대사부인으로서의 능 력 과 열성이 우 리나라 외교와 국가발전에 좀 더 구체적 으로 공헌할 이은주 : 그래서 현지에서 많 은 친구들을 사귀어 그 것으로 믿고 기대해 봅니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장시 간 좌담회에 자리해 들 의 의견과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아요. 로마에서 22

외교활동 요 요 요 ìt -==t, ìt -==t, ìt -==t, 마 복 자 었을까 내 생일이 되어 우리는 뉴짧젊 의 첫번 데 이 트를 약속하였다. 우리는 강건너 따뼈파핑의 아파트 에 보금자리를 꾸였고, 유엔본부가 있는 맨해턴은 지 % 하철로 30 분 거리밖엠 되지 않았다 두 아이들을 시누님댁에 맡기고, 셜리l 이는 마음으로, 내 딴에는 있는 대로 성장을 하고X약솜시간 에 30분, 타임즈스퀘어 지하철 종점으로 향했함 나는 r 분명 타임즈스퀘어 종점에서 지하철을 내행고, 사람들이 많이 몰려나가 는 쪽으로 따라나가 한 출입구로 나왔다.6시 30분, f 지하철 출구에 서 있는 나를 보고 남편이 찾아올 것 으로 생각하고 기다렀다.30분이 지났다. 날이 어두워 지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훌끔훌끔 쳐다보 기도 하며, 어떤 남자들은 이상한 눈초리로 말올 컬 기도 했다. 두번째로: 타보는 지하철이었지만 별 움은 없을 줄로 알았눈 데, 점점 겁이 나지 시간은 7시 30분. 약속을 안 지키는 남자가 아닌데, 무슨 사고라도 난 것 일까? 길을 잃었을까? 한참만에 정신을 차리니 공중전화가 눈에 띄었다. 뉴욕에 와서 공중전화는 처음 걸어놓는 것인데 아무튼 어떻게 해 서 시누넘댁에 통화가회었다. 깜짝 놀라시며 남편은 나를 찾아 헤매다가 전휩했다는 것이었다.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길표시를 찾아보라고, 두리번거려 보 니, 7AV. 42ST. 표 λ않 호였다. 이제 근처 시계탑이 있는 높은 건물앞으홉 가변 남편올 만날 것이라 일 러주셨다. 나는 허둥씨흙많짧을 쳐다 보며 급히 가던 중, 남편의 차와 극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나는 차솜으로 뛰어들며 뿔 화가 나서인지 너무도 반갑고 원망스러워서인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My짧때y"를 보려던 계획은 이미 시간이 늦어버 렸다r 뉴욕에서의 첫번 데이트는 간신히 만나 저녁만 먹는μ닐패작이 되고 만 것이다. 알고보니 우리가 뉴 향을 너 함로 쉽게 생각한 탓이었다. 타임즈스퀘어 지하철 종점에는 수십 곳의 출입구가 있었으니 오히 려 서로 만날 수 있었다는 일이 기적이었다. 예비지 식없이 부임초기에 겪은 잊지못할 에피소드가 되었 다. 이렇게, 어렵게 시작된 나의 뉴욕생활 이야기에서 외교단가족을 위한 UNHα;Pl떼ity Cornrnittæ" 에 대한 소개를 빼 놓을 수 없다. 1960년 초 한 아프리카의 외 교관부인이 뉴욕에 적응하지 옷하고 너 무도 외로운 끝에 자살한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이에 뉴욕에 사는 뜻깊은 여성자원 봉사자들 이 단체를 조직하고, 외 국인들이 뉴욕에 와서 생활을 웰 때 조금이 라도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돕기 시 작한 것이다. 이들은 각국 외교단의 가족상황을 늘 파악하고, 무 슨 일이든지 어떤 경우어표 도와줄 태세를 갖추고 보람과 긍지로써 움직인다. 주택을 구하는 문제, 계 약하는 방법등 생계의 근본문제부터, 자녀교육, 관광, 취미활동 퉁 모든 일상생활에 필요한 정보도 가르 쳐 주고, 각자 나름대로힘 러 분야의 프로그램에 등록하 여 뉴욕을 쉽게 알고.친구들도 쉽 게 사뀔 수 있도록 주선해 준다. 뉴욕의 i 명소관광, 박물관이나 미술관 견학, 오페라, 연극, 발러1], 뮤지칼, 음악회등의 티켓도 미리 - 활보해횡앞화는4외교관들에게 편의 제 공을 해 23

준다. 뉴욕이 워낙 방대해서 지역별로 외교단부인들 의 모임을 조직해 주고 서로 친목하는 기회도 마련 해 준다. 별장이 있는 사람들은 온 가족들을 초대해 준다든가, 젊은이들의 사교를 위한 댄스파티를 개최 한다든가 하여 그야말로 뉴욕생활에서 fæl-athome" 할 수 있도록, 항상 계절별로 다양하고 흥미로운 프 로그램을 마련해 놓고 있다. 영어가 서투른 사람들에 게는 영어회화모임이 있고, 불어나 스페인어 등 언어 별로 모임이 있어 누구든지 쉽게 의사소통하며 모일 수도 있다. 요리강좌도 있어 서로 시식해보고, 좋은 요리법을 나누기도 하고, 음악, 미술, 여행, bridge등 취미와 관심에 따라 흥미본위의 모임에도 참가할 수 가 있다. 나는 영어도 배우고 싶고, 각종 행사나 프로그램에 도 관심이 많았으나, 애들이 어린 관계로 수윌하지 않았다. 나의 사정 을 알고 Mrs. Schwariz란 분을 소개 해 주었다. 그 분은 자녀들을 다 결혼시키고 남편과 둘이서 단출하게 사는 전형적인 유태계 미국부인이 었다. 부인은 매주 하루를 나를 위해 봉사해 주기로 하고, 영 어 로 이야기를 나누며 나의 서툰 영어회화를 도와 주었다. 날씨가 좋을 때면 아이들까지 데리고 공원에 나가 피크닉도 하고, 자기네 클럽 (p끼vate club) 에 서 수영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쇼핑도 함께 다니며, 싸고 질 좋은 가게도 소개해 주고 마치 어머 니처럼 자상하게 모든 것을 도와주고 보살펴 주었 다. 지금도 그 분을 생각하며 마음으로부터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자원봉사의 귀중함을 되새겨 본다. 시간이 지 남에 따라 다양하고 복잡하고 방대한 도 시, 뉴욕에서의 생활이 합리적이고 편리함을 깨닫게 되었다. 바둑판처럼 놓여진 길을 따라 지도하나만 가 지변 지하철을 타고 뉴욕 어디든지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 생활에도 익숙해지고 아이들도 성장해서 여 러 모임에도 참석하게 되 었다. 유엔대표부인클럽 (UN Ißlegation Women 's Club) 은 한달에 한번 유엔 각 회원국의 외교관 부인들이 이 삼백명씩 모이는 데, 매번 어 느 한 나라가 host가 되어 그 나라에 관한 행사를 마련하고 주관하였다. 그러변 자기나라를 소개하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에 신경을 써서 전시회, 티파티등을 준비하게 된다. 한번 차례 가 오려면 1507H 국이 넘으니 몇 해씩 기다려야 하는 데 우리에게 1983년 기회가 와서 한 국의 날 로 정했 다. 우리는 한국식 안방을 꾸미고 고가구와 그림, 공 예품등을 전시하고, 음식과 고전음악을 곁드린 전통 한국춤까지도 선보이게 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이 부인클럽은 요리강습, 춤, 꽃꽂이, 독서, bridge등 취미생활 모임도 주관했다. 내가 참석했던 bridge그 룹에서는 보통 점심으로 모였는데 당시 우리와 국교 가 없었던 동구권 외교관 부인들과도 왕래해서 남편 들보다 앞서 북방 외교를 한 셈이다. 또 요리강습 때 에는 우리 불고기와 잡채가 인기가 좋아서 후에 다 른 외교관 부인들에게 당변을 사주느라고 바쁘기도 했었다. 클럽은 임원회가 있어서 회장등 12 명 이 주축이 되 어 운영되었다. 우리나라는 UN회원국은 아니었지만 클럽활동에 적극 참여하여 임원으로 일할 수 있었다. 나도 일년간 회계를 맡아 좋은 친구들을 사궐수 있었으며, 그 기회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좋은 추억 으로 간직하고 있다. 이렇게 모임을 통해 사뀐 친구 들을 리셉손이나 다른 행사에서 만나 남편에게 소개 시켜주는 일도 있었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외교의 일 역을 담당한다는 보람도 느낄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뉴욕이라는 근무지는 도시자체가 제 공해 주는 문화등 다양성 때문에 자기가 부지런하기 만 하면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한 곳이라 생각된다. 물론 맨해턴에 살아야 이러한 뉴욕 의 참 맛을 느끼고 향유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하루 속히 유엔에 가입하게 되어, 보다 많은 우리 젊은 외교관과 가족들이 맨해턴에서 살면 서 뉴욕생활을 더욱 즐겁고, 보람있게 보내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1937년생 이시영 외교정책추진 특별반장부인 뉴욕,세네길에서생활 24

우간다의 w. 1. M. A. 김 민 선 世 界 에서 가장 큰 빅토리아호수를 끼고 있고 나일 강의 시초로서 아프리카의 진주로 불려지는 캄팔라 市 는 오랜 내전으로 완전히 역사를 뒷걸음 한 상태 였다. 군데 군데 총구멍이 나 있는 건물벽과 포탄 에 맞아 허물어진 건물들, 오랫동안 버려진 상태로 있는 폐허같은 거리에 상점의 쇼우윈도우는 전혀 찾아 볼 수가 없고 유리창이 있는 곳은 모두 감옥같이 굵은 쇠창살이 둘러져 있었다. 전기사정 이 고르 지 않아 항 상 컴컴한 곳에서 무엇을 파는지 일일 이 들어가 보 지 않으면 알 수가 없었다. 떨어질대로 떨어진 신과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어 린아이들을 보면 나자신은 편안히 차를 타고 있으면 서도 사십년 전 육이오 동란의 잊혀졌던 기억 들이 다 시 되살아 났다. 한때는 무척 아름답고 평화로왔다는 데 전쟁은 이렇게 갚은 상처를 이 나라에 남겨 놓았구나 하는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1975 年 ~78 年 까지의 2 년 반 동안 옆나라 케냐에 근무한 경험으로 동부 아프리카의 기후는 좋다고 생각 했지만 우간다의 기후는 아프리카의 어느 곳보다도 더욱 좋다. 적당히 건습하고 맑고 화창한 날과 푸르 른 자연환경은 꼭 지상의 낙원처럼 느껴진다. 채소와 콕물이 다양하고 빅토리아호수에서 잡히는 장정 만하 게 큰 나일퍼치와 붕어류의 맛은 그런대로 괜찮다. 비 교적 오염되지 않은 육류를 쉽게 구할 수 있고 다 른 나라에 비하면 물가도 아주 싼 편이다. 얼마 전에 이곳 고아들 을 위한 부인회 모임에서 영국대사로 몇년 있 다 온 루지타 (Ru외ta) 외 무차관 부인은 자기나라가이렇게된것을팩 걱정스 럽게 얘 기하였다. 우리 한국은 사십년 전 전쟁으로 폐허가 되 다시피 부서졌었으나 이제는 완전히 복구하였고, 우 간다는 아름다운 기후와 공해에 물들지 않은 자연환 경, 풍부한 자원으로 농업과 수산업 특히 관광(서부 우간다의 관광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동 물과 풍경이 있다)으로 노력하면 얼마든지 다시 아 프리카의 진주를 찾을 수 있다고 격려했다. 앞으로 평화만 유지되연 이 나라는 확실히 무한한 밝은 미 래를 갖게 되리라 믿는다. 1960 年 代 에는 우리나라 의사들 약 50명 정도가 캄 팔라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봉사했었다. 전쟁 이 있 은 후 이들은 거의 떠나고 현재는 우리나라 정부 파 견 의사 두명만 있다. 서방 여러나라 특히 이태리가 우간다 에 가장 많은 원조를 하고 있으며 그외 독일, 영국, 미국퉁이 많은 관심을 갖고 무상원조를 해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농기구를 원조하고 있다. 인 플레가 심하여 돈을 주는 것 보다는 의료시설이나 25

약품같은 물건을 보내주는 것이 더 나은데 내륙이어 서 케냐의 몸바사 항구에서 캄팔라까지 운송하는데 많은 애로가 있다. 지난해 9 月 대통령궁에서 있었던 각국 대사부인과 기관의 대표 부인들을 위한 티파티에서 이곳 무세비 니 대통령 부인께서 우간다에는 전쟁으로 인한 고아 들도 많지만 해산하다가 목숨을 잃는 산모들도 많다 고 했다. 그날 모인 부인들이까금을 모아 캄팔라 시 내에 산부인과 전문병원을 설립하는데 도웅을 주변 좋겠다고 하여 국제부인 회 소속 단체로 W1M.A. (Women s Intematio때Matemity Aid) 를 처 음 시작하게 되었다. 우선 그때 참석한 부인들 중 여닮명의 병원 설럽 준비위원을 뽑았다. 미국, 영국, 독일, 소련, 유 고 및 한국의 대사 부인과 우간다 측에서는 카테가 야 부수상 부인과 루지타 외무차관 부인이 선정되었 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병원을 설립한다는 것은 이곳 사정상 무척 힘들고 비용도 많이 필요하였다. 우선 캄팔라 市 소속 건물중 폐허가 되어 사용하지 않으나 잘 수리하면 몇명의 의사가 진료도 할 수 있 고 해산 을 도울 수 있는 수준의 건물 몇 곳을 방문 하였다. 막상 시찰을 해 본 결과 수리를 한다 해도 물자가 귀한 곳이 니 시간이 오래 걸리고 인플레가 심하여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기금 을 모아 응급환자를 대학병원으로 옮길 수 있는 앵 블랜스를 구입하여 기증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이곳 에 있는 독일인 의사의 조언도 참작하고 몇몇 우간 다 의사의 의견도 들어 보았다. 마침내 우리들은 캄 팔라 市 중심에 위치한 市 소속 보건소 겸 초산모를 위한 교육과 가족계획 사업등을 하는 나구루 (Na 밍ru) 보건소를 시찰하였다. 그곳을 개조 시키고 건물 을 늘리 면 우선 열개의 침대를 수용할 수 있는 산부 인과 전문병원으로 쓸 수 있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첫 단계로 우선 장소와 건물을 정하고 그 다음 단 계로 병원에 펼요한 물품목록을 작성하며 설립 기금 액수를 알아야 했다. 이것 역시 독일 의사와 우간다 의사의 도움으로 이 루어 졌다. 완벽하게 하려면 비용 이 너무 많이 들어서 우선 기금 액수를 나중에 발표 하기로 했다. 이제 남은 일은 어떤 방식으로 기금을 모으느냐가 문제였다. 기금 마련 을 위하여 이곳에 오 래 근무하였고 기금마련에 참여 해 본 경험있는 부 인들의 의견 을 듣고 참고하기로 했다. 한번에 많은 기금을 모으려고 우선 이곳 상공인과 외교단을 상대 로 g외a e\'밍1lt1g을 Sheraton Hote!에서 하기로 했다. 저 녁 식사와 경매를 같이 하는 gala evening은 준비하는 데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 여 10 月 初 나 중순에 하기로 했다. 일인당 50불 정도의 티켓을 참가자들에게 팔고 저녁값을 제외한 나머지는 기금으로 하기로 정했다. 이곳 의사나 공무원들의 한달 월급이 1O ~20불 정도 이니 꽤 비싼 저녁이다. 또한 참가 회원들은 g메a everung에서 기금 마련을 위하여 경매를 할 수 있는 적당한 물건이나 현금을 기증하기로 했다. 이태리, 영국, 독일등은 이미 국가적인 차원에서 다른 병원을 설럽하여 돕고 있으므로, 나구루 산부인 과 병원 설립을 위하여는 대사부인의 개인적인 노력 으로 밖에 할 수 없다고 했다. 독일 대사부인은 본국 의 원조단체로부터 정기총회날 1M 의 침대와 해산 대를 각각 기증 받았다. 미국 대사부인은 5 月 에 아프 리카지역 공관장 회의차 본국에 가서 친구나 친지들 로부터 모금을 할 예정이었다. 이태리 대사부인은 병 원에 필요한 기구를 이태리에서 구입하게 되면 이곳 까지 무상으로 운송해 주겠다고 했다. 이곳 부인들과 외교관 부인들의 적극적인 노력과 도움으로 이제 나구루 산부인과 병원은 서서히 이루 어지고 있다. 나는 40년 전 전쟁의 폐허속에서 절망에 빠져있던 우리 를 도와 준 여러 우방국들을 기억하 며, 우리가 이곳에 있는 동안 나구루 산부인과 병원 의 설립과 유지를 위하여 사명감을 갖고 적극적인 힘이 되려 한다. 언제나 훈훈한 인정을 베푸는 주위 의 모든 사람들의 기대와 격려속에 지구촌의 그늘진 곳에서 이 루 어 지고 있는 조그마한 사업에 큰 보람 을 느끼게 된다. 1944년생 김재규 주 우간다 대사 부인 태국, 오스트레일리 o f. 스웨덴에 서 생훨 26

외교활동 이디오피아에 서 2 년 반 혔 정 재 욱 옛날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의 공주집이었다는 대 사관저에 들어서 니 아카키(따혜6 ) 강 주변에 고목이 울창한 아름다운 곳이었다. 첫눈에 정원과 주위를 가 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활이 바쁘다고 꽃가 꾸기 같은 것은 생각도 못하고 살던 내가 일찌기 인 도네시아의 자카르타에 살면서 여러 해 비워 두었던 대사관저를 수리하면서 얻은 경험을 이곳에서 이렇 게 크고 아름다운 관저를 관리하고 가꾸라고 하나님 께서 나를 훈련시키신 것이라고 믿고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우기까지 기다려야 된다는 정원사들의 말을 못들은 척하고 자카르타 에 서 꺾꽂이 한 적이 있는 빨간 꽃나무를 시작으로 꽃을 피우는 작업부터 시작 했다. 매일 정원사들로 하여금 충분한 물을 주게하였 더니 한달 후엔 뿌리를 내리고 싱싱하게 살아 올라 왔지만 꽃이 피기엔 더 많은 세월이 걸려야 할 것 같았다. 꽃이 피어나기를 기다리며 나는 또 다른 작 업을 시작했다. 한국대사 관저는 어둡고 춤더라는 이 압hiopian Cr쨌 곳 친구들의 말이 듣기싫어 어떻게 하면 밝고 화사 하게 꾸밀 수 있을까 하고 궁리하던 끝에 꽃밭을 더 많이 만들기로 했다. 관저 입구에 아무 쓸모없는 텅 빈 시멘트 바닥을 깨어내고 흙과 거름으로 채워 꺾 꽂이 한 장미와 다른 외국공관의 관처에서 얻어온 꽃나무들로 메꾸어 가며 공식행사 이외의 모든 시간 을 정원 가꾸는 일로 근 일년동안 매일 정성을 들였 공항에 도착하여 시내로 향해 달라며 가난과 굶 더니 관저 모습이 날로 좋아져 갔다. 주림에 시달리는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이디오피아 이젠 국경일 행사도 호텔에서 하지 않아도 되겠구 와 아디스 아바바는 별개의 나라같다 고 이곳에 살 나 하는 자신감도 생겨 우리의 관저와 음식을 이곳 다가 온 어느 친구 얘기를 떠올리며 인간이 같은 사람들에게 소개하기로 마음 먹고 준비를 시작했다. 시대에 살변서 너무나도 다른 환경에 살고 있다는 전에 언덕을 45 도로 비 스듬히 깎아서 평지를 만들어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한글학교 어린이들의 놀이터로 사용하던 곳에 세군 27

데 계단을 만들고 중앙 계단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우리 태극기와 이디오피아 국기를 선인장과 각종 장 미꽃 들, 초록색 화초로 장식했다. 때마침 충분히 비 가 내려 출렁이는 아카키 강물을 배경으로 더 아름 다워 보였다. 500여 명 모인 손님들의 찬사에 용기를 얻어 더 열심히 정원일에 매달렸다. 한번은 이곳 Hortic내twal Society에 서 우리 관저의 정원을 공개해 달라는 요청을 해 왔다ι 그러나 아직 은 좀 부족한 점도 있고, 또 전문지식을 갖고 보는 이들에게 내놓을 만큼은 못 되는것 같은 생각이 들 어 망설이연서도 이런 기회가 있어야 우리 관저도 어느 수준의 정원을 갖게 될 것이란 생각에 89년 1 월 14 일에 정원을 개방하기로 했다. 막상 날짜를 정 하고 나니 3CXX)평이나 을 대야 할지 몰랐다. 되는 마당을 어디서 부터 손 꽃을 꺾어 심고 백합 꽃밭을 만들고 산보길을 만들고 잔디를 심었다. 계단 양옆에 만들어 놓은 태극기와 이디오피아 국기의 꽃들도 피 워야 하고... 정원 개방 전날 밤까지 작업이 계속 되었다. 드 디어 1월 14 일. 농과대학 교수들, 원예 전 문가들을 포함해 서 원예에 흥미있는 회원 들이 %여 명 름, 모였다. 정원의 구석구석을 돌 면서 나무마다 이 원산지 등을 알려주고 특이하고 진귀한 것들을 서로 나누어 가져 갔다. 이 기회를 통해서 우리 정원 에 밤나무가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부임해서 두번째 맞은 국경일 행사때는그동안평 지가 두배로 늘어났고 꽃들도 다 피었다. 잔디도 제 자리가 잡히고 양국의 국기들도 아름답게 피어서 누 가 봐도 국기라는걸 알 수 있게 되었다. 꽃꽂 이 장식용 장미와 아스파라가스도 충분하게 되었다. 행 사가 끝 나고 많 은 사람들이 아디스 아바바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있는 파티였다는 얘기를 할 때 2년 통안 땀흘려 애쓴 보람이 있구나 생각하며 피로도 가시는 것 같았다. 이젠 우리가 꽃을 넉넉히 쓰고도 남아 우 리나라와 가까운 관계를 갖고 있는 다른 나라의 국 경일에 꽃을 선물로 보내 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나는 이곳 Intemational Women s Qub의 할 회원으로 Hospi때ity 0뻐rlady의 직책을 맡아 일하고 있다. 이 국제 부인회의 모임은 한달에 한 번씩 Hilton Hote!에 서 커피 모닝을 갖으며 각 나라를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지난 해에 이어 두번째로 Koræ Moming을 할 차례 가 되 어 11월 2일 우리 관저 에서 모이기로 했다. 이왕에 하는 것이니 되도록 많은 사 람이 참석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선오찬을 하기 로 회원 들과 결정을 보았다. 이곳 화폐 20 Birr씩하는 티켓 220장을 만들어 팔고 30 명 은 우리의 손님으 로 초청하기로 하여 우리나라와는 수교가 없는 나라 의 대사 부인들과 정부 관리 부인들, 외무성 직원 부 인들을 초청했다. 오전엔 바자를 하고 내가 전에 공 부한 지압과 얼굴 미용에 관한 강의를 했다. 점심은 모두 한국 음식으로 준비하였다. 15가지의 음식을 각 각 큰 접시로 8접시씩 120접시를 만들고 70생의 불 고기와 이웃 셋다에서 구입해온 30kg의 새 우를 숭불 에 구웠다. 후식만 40접시를 준비했는데 모두 차리기 가 바쁘게 없어졌다. 수입금은 전부를 기증해서 부인 회 회원 모두가 고마워했 다. 그 이외에도 한국부인회원들이 크 리 스마스 바자라 든지, 코리아 모닝을 하면서 모아두었던 수익금을 전 액 AddisA벼ba Fist피aHαlj)l때에 기증했다. 이 병원은 늙은 노부부 의사가 가난한 임산부들을 위해 사재 를 들여 세운 병원이다. 이들이 어려운 사람들을 사랑과 희생정신으로 도와주며 사는 것을 보고 이제까지 살 아온 나의 삶이 부끄럽게 느껴졌 다. 우리가 그들에게 자그마한 도움이라도 줄 수 있었다니 보람이 있었 다. 그동안 이 나라의 여러가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일하는 보람을 갖고 용기를 잃지 않고 활동함으로써 우리나라를 더 많이 소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생활태도는 자신의 정신건강에도 좋을뿐만 아니라 대외관계 및 외교활동의 중요한 비 결이 된다 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다. 1942년생 고침수 주 시애톨 층영사 부인 독일,제네바시카고, 인도네시아, 이디오피아에서 생활 28

노래에 소망을 싣고 서 정 애 지난날, 대학의 첫 음악이 론 강의실에서 많은 여자 J17.수님들 가운데 몇 분 안되는 남자교수넘 한 분 이 말씀하셨다. 여 러분들은 4년 동안 많은 시간과 노력 을 장아 올리지만 한 명의 훌륭한 연주가가 탄생하는 것은 너무나 멀고 힘든 일이다. 그 러나 무엇보 다 열 심 히 공부하는 가운데 음 악의 무한한 아름다움을 자 기 것으로 만든다는 데 긍지를 가지도 록 하라 그때는 나름 대로 포부와 희망을 가졌었기 에 그 말 씀이 마음속에 섭섭하게 전해 왔었다. 하지만 졸엽과 동시에 약속이나 한듯이 다들 제각각 좋은 남편 만 나 결혼하 고, 본격적 인서양음악을연구하겠다고 외 국으로 유학떠난 두 친구들도 도중에 결혼해서 지금 은 자녀 들을 두고 다복하게 지내고 있다. 나 역시 남 편따라 두 아이들과 이 곳저곳 임지에 도착하여 새 삶 을 시 작하 고 적응하느라고 많은 세월이 지나도록 노 래 한번 제대 로 불러보는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했다. 4월의 어느 하루 파키스탄 항구도시 카라치공항에 도착했을 때 는 무더운 날씨와 도시의 삭막하고 가난 한 풍경에 앞으로 정착해서 지낼 날들이 조금은 서 글프게 마음에 닿아 왔다. 카라치는 인구 4백만 도시 가 몇년 동안에 배로 늘어 나고, 이웃나라 아프가니스 탄의 전쟁 난민들까지 몰려와 천만의 사람이 사는 콧 이 되었다. 전기와 수도는 잘 공급되지 않았고, 공 공건물은 전혀 위생시설이 되지 않아 불결하기 말할 수 없었다. 매일 지내기 짜증스럽고 힘든 나날이었 다. 그곳의 우리 교민들이라곤 각 상사에서 지사근무 로 나온 가족과 또 그곳에 정착해서 조그만 사업으 로 생계를 이어 오는 순수교민 두 가족등 모두 25가족 이었다. 대부분 젊은 부부와 어린 자녀들로서 더운 기후와 불편하고 어려운 환경에도 잘 견디 며 하루하 루를 즐겁고 보람있게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회 사와 수출한국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남편을 조용 히 뒷바라지하는 이 부인들이 한없이 대견하고 아름 답 게 보였다. 부인들은 부인회를 조직하여 여러가지 보람된 일을 해서 가난한 이웃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려고 노 력하였는데 몇 개월마다한번씩 각 가정에 서 가족이 나 자녀들이 쓰던 옷이나 물건을 모아 판 매하여 조그마한 기금을 고아원에 기증하는 행사를 하고 있었다. 그때마다 고아원을 맡은 수녀님 한분이 계셨는데 정말 고맙게 기금을 받아 가셨다. 29

또 부인 회 회원중에서 노래를 좋아하는 부인 열명 드디어 연주회날, 관저에서 All Nations Women s 이 모여 서 합창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그 합창 Club의 회원들을 모 시 고 오창 겸 음악회를 가졌다. 단에 입단할 때 는 벌써 3년이나 유지되고 있었다. 합 사회도 내가 맡아서 하 였으므 로 전날 밤에 남편에게 창지도는 어릴 때 부터 교회 성가대에서 활동해 온 영어교육도 받았다. 약 50명의 회원 앞에서 연주를 대우지사의 직원부인이 맡았고 반주는 대학에서 피 아노를 전공했던 금성사에서 나온 젊은 부인이 하고 했는데 대단한 성공이었다. 모두들 얼마나 기뻐하고 축하해 주었는지 그때의 감격을 그 고운 부인들의 있었다. 일주일에 한번씩 모여서 소프라노, 메조, 알 합창소리와 함께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손님들중에 토 세 파트로 열심히 연습하는 부인들이 참으로 젊 고 생기가 있어 보였다. 합창은 벌써 여러 곡을 연습 해 두어 훌륭히 연주할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그 아 름다운 노래를 들어줄 청중이 없어 가끔 한 번씩 남 편들과 자녀들을 모아놓고 발표회를 했다고 한다. 그 래서 나는 언젠가 조그만 콘서트를 한번 마련해 주 기로 마음먹었다. 파키스탄은 회교국이라서 자기나라 특유의 악기와 선율만을 연주하고 우리 상식의 연주회나 문화행사 란 거의 없어서 무 척 단조롭고 무료한 나날을 보내 야 했다. 마 침 외 국부인들로 구성된 꾀1 Nations 는 그당시 미수교국인 체코, 항가리, 유고의 총영사 부인들도 참석했지만 그중에서도 북경대학의 기악과 교수로 재직중인 중국 총영사 부인이 참석해서 그날 의 노래와 피아노가 너무나 좋았다고 몇번이고 칭창 하였다. 어떤 계기로 이렇게 좋은 음악 회 를 열게 되 었는지 여러가지 질문도 하였다. 다음날 클럽의 회장인 독일부인이 합창했던 부인 들이 즐길 커다란 치즈케엌과 감사 카드를 갖고 왔 다. 감사 카드에는 그가 이 치즈케엌을 아름다운 합 창단을 위해서 정성들여 만들었고 그 아름답고 매혹 적인 합창의 선율은 카라치 생활중 제일 기쁜 순간 Women s Club에서는 특별 프로그램으로 한국의 날을 이었다고 적혀 있었다. 다음날 모임에 나갔더니 모두 구상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이것을 절호의 기회로 생 들 좋은 콘서트였다고 듬뿐 칭찬을 하였고, 클럽의 각하고 이 기회 에 우 리 콘서트를 하기로 했다. 합창 곡목을 선정하고 거기에 피아노 독주와 성악 독창을 총무인 영국부인은 회원 일지에 합창과 독창, 피아노 독주의 곡목을 하나하나 기 록해 두었다가 참석 하지 넣기로 프로그램을 짜놓았다. 독창은 내가 맡기로 하 못한 회원들에게 보고하겠다고 하였다. 고 오페라 아리아 한 곡과 우리 가곡 두 곡으로 정 며칠후 다른 파키스탄 부인회에서 우리 합창단의 하고 나는 발성연습부터 완전히 다시 노래를 배우듯 연주를 제의해 왔다. 그러나 나는 그때 이미 이곳 파 열심히 연습하였다. 피아노 독주는 베토벤 소나타 로 푸아뉴기니로 발령이 나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 정하고 반주를 하는 젊은 부인이 맡기로 하였 다. 합 다. 처음 카라치 도착 당시 황량했던 마음이 떠날 때 창콕은 합창으로 편곡한 쇼팡의 야상콕과 영화음악, 그리고 우 리 가곡 등에서 선곡하고 만약 의 앙코르 에 대비 해서 불란서 상송도 준비하였다. 는 보람과 추억 으로 가득 갔다. 나는 이 조그마한 일 들이 미국이나 유럽등 선진국에서 근무하며 체험했 던 어떤 일보다 소중하게 여겨지며 작은 일에도 소 연주는 l 월 중순에 있었기 때문에 합창지 휘 자가 망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카라치 의 두달 후 있을 연주를 위해서 엄하게 지도하고, 나는 합창단을 생각할 때마다 되새기게 된다. 관처에서 연습하는 부인들을 위해서 호박죽과 녹두 죽도 대접하며 격 려 하 였 다. 그해 정월 초하루 관저에 서는 우리 한인가족들 이 모두 모여 신년 하례식겸 연주회날 입을 한복을 곱게 입고 드레스 리허설을 가졌다. 1명4년생 최남준 주 파푸아뉴기니 대사 부인 시 카고, 노르웨이, 뉴욕, 파키스E때서 생활 30

심경소묘 아프리카의 밤 별빛 초롱 달빛 초롱 칠흑 ( 像 黑 ) 이 무너 져 내려 차라리 초롱이 빛 나 어 둠을 밝히 우고 世 %의 때 홈 困 의 때 찌들은 때 감싸 안아 오히 려 넉넉 함 넘쳐 홀홀히 벗 기우고 熱 沙 의 더위 太 古 의 더 위 까땅게 다 태 우고 재마저 다 태우고 온누 리 하나 되어 벼버 다님l 2 :>;: 은 -yç 녹아 넘쳐 천 고 ( 千 苦 ) 의 넋 두리 긴긴밤 삼키우리 1952년생 강선용 아프리카2과 과장부인 중앙아프리카제네바, 밸기에에서 생활 31

심경소묘 어 느 바 다 이야기 한 정 스 요근래에 바 다 라는 말은,..-/ 나에게 무척 가 깝기도 하고 멸 게도 느껴진다. 1985년 8월부터 1987 년 8월까지 모리셔스라는 바다 속 용궁같 은 섬에서 살았 다. 위치상으로 는 아프리카대 륙과 더 가까이 있다 하지만 그 곳에서 지내보 면 그 섬은 동양과 유럽에 더 가깎다는 것을 알게된 다. 인구의 75% 는 인도인이고, 15% 는 영국인, 불란 서인, 5% 는 아프리카인, 5% 는 중국인들이다 아프리 카 대륙 남동쪽 마다가스카르섬 바로 옆에 있는 섬 으로서 웬 만한 지도에는 잘 나타나 있지도 않는 나 라로 인구는 백만이고 크기는 제주도만하다. 196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후지금은영연방에 속한다. 이 모리셔스의 기억중에 내 머리속과 눈속에 아직도 깊 숙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오염되지 않은 멋진 바다 이다. 그 바다에는 유럽 전지역에서 햇빛과 자연에 굶주 린 사람들이 일년 내내 여름휴가, 겨울휴가, 허니문등 으로 몰려오는 곳이다. 요새도 가끔 패션잡지나 해외 토픽난에 보면 반나체의 모나코공주가 휴가를 즐기 는 모습이라며 모리셔스의 해변이 그 배경으로 등 장한다. 우리가족이 그콧에 갈 때만해도 모리셔스라는 나 라는 들어보지도 못한 이 름이었고 어디쯤에 있는지 짐작조차 하지못했다. 시카고 생활 2 년반이 되는 여 름 휴가도중 남편은 모리셔스로 발령을 받고 그곳에 처음으로 공관창설을 하러가게 되었다. 대형서점에서 한 시간이나 걸려 겨우 찾은먼지같은 점 이 우리가 가야 할 모리셔스라는 것을 알았다. 바로 이렇게 전혀 모르는 곳, 다른 곳 은 시간과 공 간에 있어서의 불확실하고 두려운 미래 이 다 r모르는 곳 과 내일 속에 담겨있는 측정할 길 없는 잠재력 과 가능성이 한편으로는 우리들의 가슴을 부풀게 한 다. 나도 두려움과 설레임을 안고 이 동화같은 작고 도 작은 나라에 도착했다. 마크 트 웨인도 모리셔스를 지상의 전국 이라고 했다는데 그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도착한 다 음 날 알게 되었다. 어느 나라나 그 도시에 도착한 후 처음 며칠의 인상이 그 도시의 모습으로 오래도 록 남아있게 된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아주 작고 깜 깜한 길과 간혹 불빛이 보이 는 마을들을 지나고 좁 고 꼬불꼬불한 사탕수수 밭 사이를 지나 한시간 반 이나 울퉁불퉁한 길을 달렸다. 알고보니 공항에서 호 텔까지는 섭의 끝에서 끝이었다. 다음날 아침에 호텔방을 나가보니 어셋밤 달려온 길과는 상상도 안되게 근사한 호텔과 바다가 보였 다. 진분홍, 보라, 흰색 등의 조그만 크리스마스 종모 양의 부갱빌리아 꽃들이 소복하게 덮히고, 야자열매 가 주렁주렁 매달린 야자수 정원사이로 끝없 이 넓고 맑은 바다가 보였다. 파랑색 물감을 한번에 부은것처 럼 선명한 하늘 아래 에메랄드와 코발트색이 기막히 게 었다. 어우러진 바다 앞에서 나는 잠 시 나를 잊고 서있 발 밑에 느껴지는 새하얀 밀가루와 설탕을 섞 은 것같이 보드랍고 촉촉한 모래사장, 모래위에 띄엄 띄엄 송이버섯처럼 서있는 짚으로 된 파라솔, 그 밑 에 너무나도 편안하게 이 세상 모든 시름과는 무관 하게 길게 드러누워 있는 참으로 행복해 보이는 유 럽의 미남미녀들, 눈부 시게 빛나는 바다 위에 떠있는 알록달록한 요트들. 나는 내가 어디에, 왜, 이렇게 와 32

있는지 조차 잊은 채 그저 멍청히 서있었다.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수평선은 아주 멀리 있었고, 모든 것 은 평화스러웠고, 그 순간 내가 진짜 천국에 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뒤에서 엄 마 하는 귀에 익은 목소리에 금방 정신을 차렀고 이 곳은 천국이 아니라 앞으로 2년 정도를 지내야 할 새로운 곳이란 것을 알았다. 공항에서부터의 그 지저분하고 초라한 거리풍경에 대한 실망과 새로운 곳에 대한 막연했던 두려움이 어느새 기대와 호기심으로 바뀌고 있었다. 하지만 이 런 처 음의 흥분된 감정은 6개월 정도의 세월과 함께 조금씩 싫증과 외로움에 밀려 퇴색해가고 있었다. 시 간이 지남에 따라 바다에 대한 나의 애정도 식어가 고 감탄도 줄어들고, 나는 슬슬 탁하고 번잡스럽지만 다양한 생활과 편리한 문명이 있는 큰 도시의 생활 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습기때문에 생 기는 풍토병이 나를 슬슬 괴롭히며 내 몸과 마음을 병들게 만들었다. 그렇게 황홀했던 바다의 아름다 움도 나에겐 아무런 위안이나 치료가 되지 못했다. 그 바다에서의 철저한 평화, 고요, 감미로운 낭만, 싱 그러움등 모든 것들이 나와는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 하고, 하루하루의 생활이 너무 힘들고 길게만 느껴졌 다. 바다를 바라보면 마치 내가 몽테크리스트백작 이나 빠삐용 이 되어있는것 같았다.바다가운데 영원 히 갇혀있는 기분이 들면서 하루 속히 그 바다를 떠 날 수 있기를 바라게 되었다. 결국 어떤 것에라도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기에 는 우리들의 몸과 마음이 너무 약한 것을 알았다. 모 든 것들은 바로 나를 중심으로 내 감정과 건강상태 에 따라 상대적으로 가치가 아주 쉽게 변할 수 있다 는 사실이 나를 더 슬프고 외롭게 만들었다. 지금도 모리셔스 의 바다는 아름다운 추억과 철저 한 외로웅의 기억을 동시에 떠올리게 한다. 1953년생 이경우 주 영국 참사관 부인 프랑스 세네갈, 시카고, 모리셔스에서 생활 삶의 작은 톱니바퀴 김 정 화 태어나서 23년이 지날 때까지 나는 외교관이라는 서 들려 주시던 잔잔한 에피소드들이 아마 외교관 생 직업과 나를 진지하게 연결지어 생각해 본 적이 없 활의 인간적인 체취를 느끼게 한 입문쯤 됐을까? 이 었다. 대학원 1 학년 봄 축제때 만난 참 착하게 보 이 상하게도 정작 골머리를 앓으며 주녹들게 공부해야 는 사람이 외무고시를 보고 발표를 기다린다더 니, 또 했던 국제법 판례들은 다 잊어 버렸는데, 마치 지나 얼마후 외무부에 출근을 한다고 얘기할 때 도 난 나 가는 잡담처럼 특유의 그 느릿느릿한 점잖은 영어로 하고 별로 상관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스물 수업시간 내내 허리를 펴지 못하도록 웃게 만들었던 여닮살에 결혼을 하면서도 아무래도 난 결혼을 너 이야기들이 지금도 생각이 많이 난다. 무 일찍 하는 것 같애! "하고 있었으니까, 누구 부인 이미테이션 드레스를 입고 파티에 간 어떤 외교관 이 되고 더구나 외교관 부인이 되고 하는 복잡한 일 부인이 다른 사람의 진짜 디자이너 옷을 보고 살짝 이 실감 이 날 턱이 없었다. 졸도한 척해서 왔던 차로 도로 실려가 그 자리를 모 대학원 다닐 때 당시 연세 대에 잠깐 계시던 함병 면할 수 있었다는 얘기는 차라리 코메디처럼 들렸었 춘 교수께서 국제 법 강의 를 출강하셨는데, 한번에 70 다. 회의 나 파티에서 자리 서열 을 가지고 싸워야 한다 80페이지씩 일사천리 로 나가는 진도를 마1y quæ- 든지, 옛날 30 년전쟁 때 스워l 멘 여왕에 대해서 Tr용 tions?" 한마디로 끝내고 나머지 시간을 몽땅 할애해 Puiæante( 最 彈 의)를 빼먹고 Sérénissi.me ( 廠 下 )로만 부 33

르는 바람에 나중에 열심히 사과를 하고도 베니스의 중재 제의가묵살당해 버렸다 든 지 하는 이야기등등, 대범함 (7) 과는 동떨어져 있는 듯한 외교관계의 까다 로운 에티켓과 형식도 별로 내 체질에 맞는 것같지 가 않았다. 게다가 우리나라 외교관부인들은 요리솜 씨가 뛰어나야 한다는데 타고나기를 그쪽으로는 영 자신이 없는지라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었다. 어쨌든 외교관생활의 세련되고 화려한 변에 대한 환상보다는 자신도 없고 세세한 구체적인 일들에 걱 정이 많아서 내가 결혼할 사람이 왜 하필이면 외교 관이람 하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직업과 결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결혼을 하는 것이니까, 언 제나 내게는 세상에서 제일 맑고 따뜻한 사람으로 바치는 사람과 결혼을 하는데 망설임은 전혀 없었 다. 직업의 특성때문에 당장 내가 택하고 싶었던 길, 내 손에 쥐어져 있던 일들을 가슴이 저릴만큼 아깝게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아까운 마음을 내게 주어진 또 다른 역할에 쏟으면서 보람을 찾을 생각이다. 외무부에 들어온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군대복 무, 연수, 국내근무 뿐이었지 아직 외교관자격 으로 해외근무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실제로 외교관생 활이 어떤지, 어떻게 처신을 하고 지내야 하는지 아 는 바가 없다. 우리에게 첫 외국생활이라고 할 2년간 의 연수는 공부하느라고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쨌 다. 그러나 우린 아무래도 외국체질인가봐 할 만큼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던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이 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적응도 빨랐고, 이질적인 문화나 사고방식에 대한 맹목적인 거부감이나 찬탄 보다는 이해심을 갖고 냉정하게 장단점을 볼 수 있게 한 좋은 기회였다. 좋은 친구들도 만나고 여러가지 일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게 되면서 어느 사 이에 피부색이나 생긴 모양이 별로 의식되지 않고, 그냥 같은 인간으로서 애정을 갖고 대할 수 있을만 큼 익숙해지게 된 것은 내 인생의 폭과 갚이를 위해 서도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외교관생활에는 단순한 외국생활보다는 더 갖추어야 할 자질이 많을텐데 하는 생각을 많이 하 게된다. 요즘은 정상외교의 비중이 커지고 정보의 교 류도 직접 신속하게 이루어지는 세상이라 직업외교 관의 기능이 많이 단순해지는 감도 있다. 그래도 세 상일이란 사람손을 거쳐서 이루어지 는 것인 만큼 외 교관이라는 직 업에 요구되는 역할을 잘 파악하고 적 응해야 할 것 같다. 사실 명아리 외 교관시절에야 거 창한 각오까지 하고 지낼만한 일도 없겠지만, 큰 일 이든 작은 일이든 철저한 직업의식을 갖고 시작하는 것이 기분좋은 일이니까. 그런데 흔히 외교관이라면 세련된 신사의 이미지 뒤에 권모술수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깔려있는 것으 로 생각되는 경우가 많은 건 어천 일인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연륜이 쌓이면서 넉넉한 분위기와 기풍을 잃지 않고 자기 관리를 잘 하고 계신 분들을 주위에 서 보면 그것이 쓸데없는 걱정이구나 하고 마음을 놓을수가 있다. 하기야 도덕성과는 별 상관없는 인물로 치부되었 고 나폴레옹이 비단 스타킹에 진흙을 채워 넣은 것 같은 인간 이라고 평했다는 Talleyrand조차도 외교는 표리부동과 속임술로 하는 것이 아니다 라면서 충성 심과 정치협상에서의 성실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닌지 모른다. 어쩌면 그가 기막힌 변신 을 거듭하면서 블란서혁명과 공화정, 나폴레옹 치세, 왕정복고, 입헌군주제의 격변기에 유럽을 주름잡은 거물 외교관으로 일세를 풍미했던 것은, 세평이야 어 찌됐든 프랑스와 유럽의 질서를 위한다는 나름대로 의 원칙과 대의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시키는 힘이 되어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세계대전의 광란에 절망한 Sorokin같은 이는 국제 관계는 거의 전적으로 만연하는 니힐리즘에 지배되 고 있다 고 했다지만 21세기를 바라보는 요즘의 세 상은 그래도 뭔가 애쓰면서 살 만한 세 상이고 나날 이 긴밀해지는 국제관계에서도 할 일이 많아 보인 다. 내가 당장 고민해야 할 일은 어떻게 채를 예쁘게 썰고 어떻게 양념을 맛있게 할 것인가가 우선이겠지 만, 내가 인생을 함께 가기로 한 사람 곁에서 마음을 크게 열고 더 넓은 하늘 아래서 작은 톱니바퀴가 되 어 소중한 내 삶의 시간들을 가득 채워 갈 기회를 감사히 받아들이고 싶다. 1958년생 박효성 주 토론토 영사 부인 뉴욕총영사관연수 34

심경소묘 헝가리안 랩소디 의 아름다운 선율밖에는 아는 것이 없는 채, 우리나라 북방외교정책으로는 처음으 로 동구권 국가중에 수교된 헝가리에 발령을 받고, 나로서는 맨처음 공산주의 국가에서 살게 되 었다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공항에 도착하였다. 우리나 라 지방공항보다도 훨씬 뒤떨어진 허름한 모습에서 이것이 바로 공산주의의 실체구나 하는 불안한 느낌 뿐이었다. 헝가리도 유럽국가중의 한 나라이므로 다른 나라 와 별로 다르 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 도착해서 인지, 이념이 다른 사회가 이렇게도 인간생활에 다르 게 영향을 주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니 첫 인상이 어 둡기만 했다. 다뉴브강 은 유럽에 있는 여넓나라를 유유히 지나 며 흐르고 있고, 비엔나와 베오그라드등 세 수도를 통 과한다. 부다패스트는 이 강이 도시를 갈라서 부다와 페스트가 합쳐진 이 름 이다. 이콧에 아름답고 또 아름 다운 다뉴브강을 가로 질 러 연결되는 개성있는 다리 들.1840년대에 제일 처음으로 부다와 페스트를 연결 했다는 다뻐n Bridge. 한강과도 비슷한 넓직한 강을 오랜 전통을 과시하며 묵묵하게 역사를 말해주는 듯 이 걸려있는 α뻐nbridge는 저녁이 되면 찬란하게 조 명이 된다. 건너편 언덕 위에 옛 왕궁이었다는 박물 관은 은은하게 조명 이 되고, 조화속에 조용히 흐르는 다뉴브강의 물결을 마치 보석의 흐름처럼 느끼게 된 다. 부다페스트를 다뉴브강의 진주 라고 비유하는 것은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누구나 공감하기 때문이 리라. 낭만적인 느낌과는 동떨어지게 강변의 웅 장하고 화려한 국회의사당 건물 꼭대기에는 거대한 빨간 별이 세워져 있고, 모든 공공 국가기관 건물 위 에도 어김없이 붉은 별이 있어 가뜩이나 긴장된 나 의 마음을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또 웅장하고 아름 다운 석조 건물들에 낀 검은 때, 부스러진 벽들 그것 들을 전혀 보수도 하지 못한 채 놓아둔 모습이란 인 간의 활기를 빼앗아가는 황폐한 공산주의의 참 모습 을 보는 것만 같았다. 서울에서는 전연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벌어졌 다. 어느날 갑자기 생활필수품이 없어져서 며칠씩, 몇달씩 구할 수가 없게 되었다. 물건의 귀함을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물건 사재기의 요령을 배우게 되었 다. 바다에 접해 있지 않은 관계로 바다 생선이라고 는 없는 이곳에, 간혹 러시아제 냉동 생선이 나오면 조심스레 냉장해 두고, 조금씩 약처럼 먹어야했다. 무엇이나 흔한 서울에서 모르고 지냈던 물건에 대한 고마움에, 또, 편리했던 생활에 다시금 감사하게 되 었다. 그렇지만, 이곳 헝가리에는 옛 영화와 전통이 대단 해 보인다. 마치 망해버린 양반 부자집을 연상케 되는 데 그들의 박물관에 진열된 물품들이나 Hélend깅그룻 의 오묘한 수제품의 무늬와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 들의 말처럼 조상들이 지하에서 지금의 헝가리를 보고 통탄해 하고 있다 는 말에 동감하게 된다. 낮 의 실생활에 대한 어려움은 어디로 가버리고, 한편 밤마다 매일 같이 음악회나 오페라가 열리는 것을 보 변 헝가리인들의 전통적인 예술에 대한 사랑과 여 유, 그들의 높은 수준을 느낄 수 있다. 겉으로 보면 35

셋빛으로 침울하기까지 해도 내부에 들어서변 화려 한 장식으로 그 아름다웅 은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극 장들,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헝가리인들, 확실히 그 들은 잠재력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일년이 지났다. 지금 헝가리는 잠에서 깨어 나고 있다. 처 음에 나를 그토록 불안케 하던 붉은 별 들이 어느새 하나, 둘 떨어지더니, 이제 모두 떼어버 렸다.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지 기 시작했다. 모두 서 방세계를 동경하더니, 서방세계 사람들이 이곳으로 물밀듯이 몰려오게 되었다. 나는 확실히 변화하는 헝 가리를 목격하게 되었다. 나의 마음도 차츰 밝아졌 고, 하루하루 다르게 변하는 거리 속에서 낯익은 이 름들을 보게 되었다. 부다페스트 거리를 누비고 다니 는 헝가 리 차량에 sam Stmg, Gdd Star가 등장하게 되 었고, 모두 South Korea를 동경하게 되었다. 헝가리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주니 신장된 국력의 힘 에 고마움 을 느낀다. 식료품을 구하러 여기저기 시장 을 쫓아다니고, 왕 복 9시간이나 걸리는 비엔나를 자주 다니며 구입한 물건으로 생활을 해야 하지만, 너무도 아름답게 가지 각색의 꽃 이 피는 이곳의 오월, 음악소리같은 새소리 를 들으며, 도시를 유유히 흘러가는 다뉴브강을 따라 공산권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첫발을 디딘 개척자의 각오로서, 헝가리 역사의 새로운 변화를 목격한다. 1953년생 이원 형 주헝가리 참사관부인 일본, 영국에서 생 활 어머넘을 그리며 유고에서 z1 7:j ~ I그 ζ:; T 어머 니, 그냥 되 돌아 곁으로 가고만 싶은 것을 울 이 질 적인 탓으로 지난 80년 티토대통령의 사망이후 음으로 삼키며 김포공항을 떠나온지 어느새 두달 이 이들 공화국들간의 내 분 이 표변화 되었습니다. 그런 되어갑니다. 은은한 셋빛으로 가라앉은 하늘과 뾰족 가운데 베오그라드에 있는 세 르비아공화국과 발칸반 한 교회탑, 고만고만한 벽돌색 둥근 지 붕들 이 어우러 도 북부에 위치하며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에 국경을 져, 이곳 유고의 수도 베오그라드는 고즈녁한 분위 기 맞대고 있는 슬로베니아공화 국 이 가장 정치적, 경제 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적으로 영향력을 크게 행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싱그러운 미류나무 사이로 칠주하고 있는 멋스러 각 기 다른 민족들이 모여 이루어낸 유고의 문화는 운 전차와 다뉴브강 위를 지나는 아취형의 다리가 화려하게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깊이가 있어서 더욱 더욱 정겹게 느껴 지는 유월, 어떻게 지내시나요. 더 새로운 묘미를 느끼게 합니다. 문명에 쉽게 굴복하지 위를 유난히도 타시는 어머니의 건강이 염려됩니다. 않은 자연 그대로의 경관과 아직도 총탄이 박혔던 세계 어느 콧을 가나 그들 나름대로 전통과 문화 자리를 그대로 보존해 온 낡고 오랜 건물들은 제게 가 있지요. 이곳 유고에 역시 오랜 역사와 더불어 찬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과거 를 빨리 지워버리고 란한 예술 문화 가 꽃피 고 있음을 피부로 느 낄 수가 새롭게 출발하는 것에만 익 숙해 있던 저에게 그들의 있습니다. 유고 연방은 당초부터 다양한 민족으로 구 고집스러울 만큼 옛 것을 간직하려는 태도가 귀하고 성된 다민족 국가입니다. 각 공화국들간의 문화풍토가 아름답게 보여 졌기 때문입니다. 36

유고는 이미 오래 전부터 개방노선을 걸어온 탓인 지, 자유의 숨결을 이곳 저곳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알록달록한 천막의 노천시장에서, 강변의 낭만적인 식당에서, 그들의 인정과 미소 속에서 저는 자유를 봅니다 어머니, 얼마 전에 베오그라드의 남서부지방으로 차를 달려 보았습니다. 끝없이 펼쳐지는 농지, 이상 하게도 비옥한 농지에 심어진 것은 밀과 옥수수, 시 금치, 근대 정도였습니다. 겨울도 섭씨 영도 안팍이니 우리나라처럼 비닐하우스로 얼마든지 가계를 살찌울 수 있을텐데 이콧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나 라체제의 제약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공동으로 작 업하는 집단농장은 마치 과거의 죽은 도시와도 같았 습니다. 그런데, 그에 반해 개인이 직영하는 개인 농 장은 지붕의 색깔부터도 생동감있게 보였고 진한 자 유의 내음을 맡을 수가 있었습니다. 진정한 자유란 어떤 것일까요. 제가 이곳을 떠날 때 쯤이변 해답을 얻을 수 있을까요? 유고는 부유한 나라가 아닙 니 다. 그렇지 만 그들에 게는 소박함과 따뜻한 정이 있습니다. 이곳에 도착한 지 며 칠 되지 않았을 때 우연히 저희집 맞은 편에 작 은 오두막집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젊은 부인이 선 뜻 들어오라고 해서 들어가긴 했으나 정말 당황했습 니다. 그렇게 가난하게 사는 집은 처음 본 것 같았습 니다. 그들은 소중히 간직했음직한 프럼 브랜디와 커 피로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나올 때는 남편이 그렸다는 작은 유화 두 점과 마당 한 모퉁 이 에 있는 장미나무에서 가장 탐스러운 송이만을 골라 제 품에 안겨주는 것이었습니다. 누추하게 살면서도 자신있게 열어보이는 그들의 순수함과 찾아온 손님 에게 무엇 이나 나누어주고 싶어하는 정다운 부부는 오랫동안 제 마음을 촉촉히 적셔 주었습니다. 물질문 명에 도덕심이나 인간성까지도 상실되어가는 것을 너무 많이 보아온 치로서는 가난한 이웃의 나눔이 너 무나도 아름답게 보였습니 다. 시장에 가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빵 한 조각에 야 채 몇가지를 사들고 가는 모습을 흔히 보는데, 그 래 도 그들의 다른 손에는 늘 꽃 한송이가 들려있곤 합 니다. 그들의 삶의 여유이고 사랑이 아닐런지요. 어 머니, 빵 한조각에 붉은 장미 한송이 멋이 있지 요. 정규교육을 받지못한 가난한 유고화가들이 그려 내는 Naive P,뻐1뼈g이 그렇게도 감동을 주는 이유는 그들이 삶에서 걸러내는 진실한 사랑과 따뜻함을 그 대로 화폭에 그려 담기 때문인 것 같았습 니다. 유고는 관광국가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철도시스템 이 엉망이라서 수많은 여행객들을 불편하게 만들곤 합 니다. 어느 캐나다 외교관 부인은 기차 여행을 하 러 나갔다가 콩나물 시루같은 인파때문에 되돌아 올 수 밖에 없었고, 헝가리에서 오는 친구를 마중나갔다 가 아무리 기다려도 기차가 오지않아 되돌아오니, 새 벽에 느닷없이 일행을 잃어버린 채 도착하더라는 것 이었습니다. 도중에 연착을 알려주려고 역에서 전화 하는 사이에 기차가 떠나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시간 개념이 없는데다가, 신문지를 깔고 아무데서나 식사 를 하는 여행객들로 철도역은 지저분하기 짝이 없다 고 합니다. 베오그라드의 물가가 상상을 초월하리 만 큼 올라 택시요금도 아연실색할 정도로 비싸졌고, 관 광국가라는 미명아래 그야말로 어두운 변이 없는 것 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좋은면, 싫은변 다 부대 끼고 살다보면 그런대로 정이 들어버리지 않겠어요. 무엇보다도 유고의 인정때문에, 어쩌면 저의 다른 고 향이 탄생하게 될지 도 모르겠습니 다. 저는 이곳 베오그라드에서 행복할 것입니다. 그들 과 같 이 숨쉬고 생활하면서 메말랐던 제 가슴에 유 고의 훈훈한 바람을 가득 채워 넣어야겠습니다. 어머 니 기다리세요. 이곳을 떠날 때는 유고의 바람을 컨 테이너 가득히 실어가 선물로 드리겠습 니다. 더워지는 날씨에 건강 조심하시고 안녕히 계십시 요. 창밖을 내다보면 그리운 어머니의 얼굴, 가슴이 메어집니다. 1 156년생 최병구 주 유고 1 등서기관 부인 영국,필리핀에서 생휠 37

심경소묘 카리브해의 후진주 71 ^'세 흐갇 C그 d L::!:" s "Þ α깅 亡 ;그 ~ 브라질에서 3년간 생활을 마치고 중미 카리브연안 국가인 아이티에 첫 발을 디딘지 2년이 흘렀다.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 검은 피부색의 행인들이 오가는 광경에서, 내 자신이 아프리카대륙에 와있는 것인가 하는 착각을 할 정도였다. 중남미에서도 최빈곤국. 정정 불안국으로 엉성하고 지저분한 거리. 거리를 지 날 때마다 구걸하는 헐벗고 굶주린 아이들. 아이티는 정 말 하나님 의 축복을 받지 못한 나라일까. 아이티라는 국명은 1492년 콜럼버스가 이 섭을 발 견한 직후, 남미 아마존유역에서 7세기경 이주해 온 토착원주민 Arawak종족들을 만났는데 이 들이 Hyiti (산이 많은 나라)라고 부른 데서 유래되었다 한다. 이름대로 국토 전체의 70% 이 상이 산으로 덮여있는 산악국가여서인지 주택들이 산속에 숨어 산재해 있다. 아이티는 과거 식민지 국가로서는 미국다음으로 1804년에 불란서로부터 독럽하였으며, 이에 대해 대 다수의 국민들은 큰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 러나 빈부의 차가 극심하여 일부 소수 특권층은 상 상도 하기 어려운 호화주택에 사는가 하면, 대다수의 국민들은 표현하기도 힘들 정도의 가난에 허덕이며 지낸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있는 자들 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은 선망이지, 적개심이 아니 라는 것이다. 그들은 운명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낙관주의적인 생각에 젖어 있다. 모든 일을 급히 서 둘러 한다든가, 미래를 대비 한다기 보다는, 그날 하 루를 즐기면서 욕심부리지 않고 생활하는 것이다. 이 러한 국민성으로 말미암아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 는것일까. 또한 천주교 국가인 관계로 생활에서 신부님의 영 향력이 강하며, 절대주권자로서, 재판관, 의사, 또는 교육자로 모든 일의 해결, 책임자로서의 위력을 지니 고 있다. 우리 가족이 이곳에 있는 동안 네 차례의 정변발 생과 세 정권이 교체되는 등 정국이 늘 불안하였으 며, 그때마다 식품조달이 어려워 빵을 사려해도 줄을 서서 장시간 기다려야 했다. 식품을 구입해 나오면, 도로 중간중간에 시위대들이 불붙인 타이어로 바라 케이트를 쳐서 오도가도 못하고, 총격전이 벌어지는 사이로 셋길을 찾아가다 길을 잃을 뻔한 적도 있다. 38

필사적으로 탈출해서 집에 돌아와 안도의 숨을 쉰 게 장식해 놓아 마치 꽃마차처럼 꾸며놓은 것을 보 일들이 주마등같이 기억속에 스쳐간다. 아들 애를 유치원에 보내려고 등록하였으나 정국 이 불안하여 휴교하게 되었다. 세차례씩 이곳저곳 옮 겨 보다가 결국 보내지 못하고, 이제는 아예 포기하 고 집에서 한글 만을 가르치게 되었다. 정국의 불안은 자연히 외부출입을 삼가하게 했으 며, 집안에서 가사일에나 열중하게 되는 갇힌 생활이 아도 그들의 손재주가 얼마나 뛰어난 가를 대변해 주는 것이다. 아이티에는 열대의 강렬한 태양아래 빛나는 비취 색의 바다가 있다. 어찌나 곱고 아름다운지, 주말에 가끔 찾아가변 가족, 친척,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마 저 달래주는 것만 같다. 우리가 이대로 서울에 돌아 가변, 식구대로 진한 갈색피부로 변해서 아이티사람 었다. 그러한 나의 일과는 자연히 지루해졌으나, 한 들이라고 하겠지. 이곳의 자연적인 관광 자원을 조금 편 내 자신을 더 성찰해보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또 우리 가정이 기독교 신앙생활에 더욱 충실하게 되었 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삶을 영위하게 되었다. 이곳 외교단 부인회의 활동이 활발하였는 데, 회원 들과의 친분교제와 미국인 선교사 가족들과의 사권 이 울안에 갇혀사는 나의 생활로부터 유일한 돌파구 가 되었다. 이들을 집으로 초대해 한국음식을 대 접하 기도 하고, 우리도 초대받으며 더욱 친분이 두터워져 만 개발한다면, 아이티도 인근 도미니카 공화국같이 관광국가가 되어 국가경제 재건에도 일익을 담당하 게 될 터인데, 아쉬운 마음 뿐이다. 5, 6년전만해도 유럽, 미국 등지에서 적지 않은 관광객들이 몰려와 관광수입이 약 7천만불이 되었다고 한다.86년 2월 듀발리에 독재정권이 물러난 후 지금까지 정정의 불 안으로 현재는 관광객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기존 시설까지도 폐허화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안타까운 갔다. 한번은 그들에게 어느 나라에 가든지 중국음식 일이다. 정국의 안정이 국가이익을 위해 얼마나 중요 점이 있는데 이곳 아이티에만 없다고 하니까, 우리집 한 것인가를 새삼 느끼게 한다. 에 중국식 한국식으로 훌륭한 요리사가 있는데 무슨 그렇지만, 물질 만능주의, 이기주의가 심각하게 팽 불만이냐고 하며 은근히 칭찬도 해주었다. 외국인들 과의 교제로 그들의 생활방식도 파악할 수 있었고, 배해 있는 현대 문명사회에서 아이티사람들은 그래 도 때묻지 않은 순수함, 소박함, 공동체의식, 그리고 아이티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입장에서 이해하게 되 인간애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으니 나는 이 중미의 었다. 이들의 90% 이 상이 카톨릭신자이다. 그렇지만 밤이 되면 모두 아프리카에서 전래된 토속신앙인 V때 를 믿는 것같다. 아무튼 신앙심이 매우 갚은 국민임 엔 틀림이 없다. 주일이변 무더운 날씨에도 검은색 양복과 모자를 정장하고 성당마다 많은 남자들이 참 흑인의 섬나라를 바다의 귀한 보석인 진주라고 생각 하며, 아 이티 를 카리브해의 흑진주(Black p,없rl in the Canbl:xxm)라고 부르고 싶다. 이제 외국 친구들과의 많은 만남과, 그들과의 우정 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고, 어려운 지역에서 최 선을 다하는 남편을 보고 가슴 뿌듯한 감사한 마음 석한다. 가난하지만 종교에 대한 열이 강해 기독교 으로 이제 우리 가족의 아이티생활도 마무리 지을 신자들의 숫자도 급증하여 자리가 없을 때는 교회밖 시간이 얼마 남지않은 것만 같다. 에 확성기를 설치하고 예배를 드리고, 군데군데 그늘 진 곳에 모여 찬송가를 부르는 모습도 눈에 뜨인다. 이들은 또한 예술성이 뛰어난 국민이다. 열대 원시 1957년생 적 화풍의 그림과 마호가니로 만든 조각품은 유명하 다. 거리에 명물로 등장하는 대중 교통수단인 픽업을 조병립외무사무관부인 포르투갈, 상파울러, 아이 티에서 생휠 Tap tap( 땅땅)이라고 하는데, 현란한 색체로 화려하 39

시 口 - 겨 - 쇄 ~ 중동에서 있었던 일 한 만 숙 벌써 2년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있었던 많은 일 들 중의 하나이다. 퇴근후 우리는 서둘러 공항으로 나갔다. 공항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고, 사모님을 법는 대로 하나같이 사모님, 좋으시겠어 요 부러운 얼굴들을 하고서 인사를 드렸다. 그날은 대사님과 사모넘께서 임시 공관장회의를 위해 일시 귀국하선다고 모두 공항에 나갔던 것이다. 보통 다른 나라 공항에서라변 잠시 헤어지고 만나 는데 가볍게 인사를 나눌태지만, 그곳 바그다드공항 에서는 그 당시 이란과의 전쟁으로 인해 언제 우리 의 생명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 는 불안한 상태였기에 공항에서의 인사는 각별한 것 이었다. 콩!"하는 미사일의 굉음이 들린 다음에 새삼 우 리는 살았구나 하는 감사한 마음으로, 셋더미 위에 울부짖는 유가족들의 슬픔 속에 그들을 통정하며 인 내하면서 조심스럽게 지내던 시절이었다. 누구나 무 사히 귀국하게 될 수 있는 날을 기다리던 터였다. 왜 냐하면 취업근로자들 중에 이따금 유해로 귀국하는 모습을 보았고, 또한 πf뉴스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처참한 전사자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11월 28 일, 그날 따라 유난히 애수에 참긴듯한 모 습이었다. 인자하게 대해 주시던 그 얼굴엔 핸지 모 르게 어두운 그림자가 깃들여져 있는 듯 했다. 우리 가 그분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 몇시간 후에 그런 엄 청난 일을 당하리라고 그 어느 누가 상상이나 했으 랴? 불과 몇시간 후에 비행기 폭파로 영영 우리의 곁을 떠나실 줄이야 그분은 다정하게도 곁에 앉은 내게 이번에 서울 가연, 애들한테 전화해서 김장김치 맛있게 담가 놓으 랄까?" 아니오 제가 귀국해서 해야죠 이 대화가 그 분과의 마지막 이야기가 되었다니. 우리는 그 당시 이미 발령받고, 귀국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도 같은 비행기로 귀국할 예정이었으나 후임자가 부득이 부임일자를 연기한 관계로 우리가 일정을 늦춰놓고 있었다. 사모님께서는 우리 생각을 하셔서 자상하게도 김장염려까지 해 주셨던 것이다. 왜 그런지 이번 일시 귀국은 좋은 줄을 모르겠어. 다시 이곳에 올 것을 생각하니까 그런가봐 라고 말 끝을 흐리셨다. 며칠 전에 어떤 행사에 가셨다가 다류 나라 대사부 부들과 테러범이 쏘아대는 총에 맞아 쓰러지는 사람 들 틈을 구두까지 벗어 들고 가까스로 도망쳐 사셨다 고, 그 위기를 용케 모변하였다고 눈물흘리며 들려주 시던 분이었기에 충분히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 다. 우리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어려운 오지에서 같이 지냈던 관계로 서로 깊 은 정을 나누며 지내 고 있었다. 탑승하기 위해 떠나며 서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며 뒤돌아 보고 또 보시던 그 분의 마지막 모습이 눈에 선하다. 바그다드를 떠났던 대한 항공의 실종 소식! 그날 의 그 충격! 그 놀라웅! 우리는 즉시 전 직원들과 함께 24시간 비상근무에 들어갔다. 그러면서도 설마 혹시 올림픽이 가끼워 오니까 테러범이 비행기를 납치한 것일까? 아니면 기관 고장으로 갑자기 어디에 추락된 것일까? 모두 다른 상상을 하는 가운데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 했다. 혹시 납치되었더라도 사람만은 무사히 살아 있 기를 바라며 우리는 간절히 기도드혔다. 그렇게 간절 하게 기도드린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희망이 여지없이 무너 지고, 비보의 연속이었다. 충격적인 슬픈 소식. 믿어 지지 않는 사실. 우리와 함께 계시던 그분들이 하루 사이에, 아니 불과 몇시간 사이에 저 세상으로 가시 다니 그것도 비행기 폭파 사건으로, 공중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이것이 모두가 알고 있는 1987년 11 월 29 일에 있 40

었던 KAL기 폭파사건으로 타계하신 고 강석재 대 사 넘 내외 분 에 관한 이야기이 다. 그후 며 칠 이 지나 유품 정리를 위해 고인의 아드 님 이 도착했다. 집에서 저녁식사를 마련했으나 아무 것도 먹 지 못한다는 목메인 말을 들었을 때, 본인 보 다도 오히려 내가 쏟아지는 눈물을 억 제 하기 힘들었 다. 부모가 계셨던 여름방학 에 보았을 때 는 그토록 씩씩하고 명랑하던 모습이었는데. 그래 도 평상시 부 모를 떠나 생활하던 외교관 자녀답게 모든 변에 침 착하게 행동하는 것을 보니 더욱 더 애 통하고 가슴 이 메어졌다. 바레인에서 범인을 잡고, 수수께끼 의 실마리가 풀 리듯 하나하나 폭로되면저, 우리는 가슴저 리는 아픔 을 느꼈다. 유가족들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며,... - - - 아. 우 Bridge 리는 관저 에 빈 소를 마련했다. 조문객 을 맞으며 분주 한 날들을 보냈 다. 마치 휘몰아치는 태 풍 을 맞은 것 만 같았다. 그야말로 인내심과 새 로운 각오를 요구하 는 순간들이었다. 비행기 소리를 들을 적 마다 아련히 떠오르는 모 습. 그 모습은 700여일이 지 난 오늘에도 이 따금 나의 머리속 에 생 생하게 떠오르곤 한다. 을 수 없는 슬픈 사연중의 하나이리라. 1938년생 먼 훗날까지도 잊 이우상 주 뉴욕 부총영사 부인 구암, 아가나, 필리핀, 핀랜드, 이라크에서 생활 * - - - A f - - *- - - 아. 3. W.3 φ A K J 4 O K 7 2 4AKJ42 4---4-. Game all. Dealer West. N m i K 9 8 φ10965 O J 8 6 4 Q5 3 The complete deal : E S 4'" all pass West leads the queen of spades to South s ace. Declarer plays a club to the king and cashes the ace, West discarding two spades. Then comes ace and king of hearts and a heart ruff, the queen appearing from West on the third round. South ruffs a low spade in dummy, discards the four of diamonds on the heart jack, and throws you in with the trump. What do you play and why? Analysis Declarer is known to have five clubs, four diamonds, two hearts and two spades. Two tricks in diamonds are needed to defeat the contract. If West s diamonds are A Q X or A 10 9, the contract cannot be made. If West s diamonds are no better than A 9 x, the contract cannot be defeated, for declarer has a simple finesse against the jack. The critical case is where West has A 10 x in diamonds and South Q 9 x. '...... 85 페이지로... - 41

가족이야기 모로코에 부는 태권도 바람 M 익 λ - 구 해외근무 발령을 받으면 펼연적으로 주부들에게 떨어지는 숙제중 하나는 아이들의 교육과 그에 따른 언어문제이다. 극히 드물긴 해도 한국어로 계속 교육 을 시킬 경우에는 문제가 덜하겠으나 완전히 새로운 언어로 교육을 받 게 할 경우, 하나의 외국어를 학교 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까지 익히는 데에는 고통스 러운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의 연령이 나 개인의 능력에 따라 그 기간의 차이는 있다 하여 도, 길건 짧건 시간만이 해답을 갖고 있으므로 끈기 있게 기다리는 것이 상책이겠다. 이처럼 기다리는 일 이란 어른보다 지혜가 덜한 아이들이 겪어야 되는 심리적 부담을 곁에서 조금이나마 덜어주지 못할 때 부모들이 느끼게되는 안타까움의 시간을 뜻하기도 한 다. 아침마다 학교 갈 때면 배가 아프다거나, 갑자기 말을 더듬게 된다거나, 이상한 습관이 생긴다든지, 집안에서 말이 없어진다거나 등등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실례를 통해 문제의 심각도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며 이 문제가 나 자신에게 떨어 지면 그 정 도가 더 심하게 느껴질 것이다. 물론 그 기간만 잘 넘기변 되는 일이겠고 그것은 하나의 가능성일 뿐 내 아이들에게 꼭 일어나리라는 확신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넘어야 될 문제 앞에 서있던 나로서는, 조 금 과장되게 말하자연, 공포에 가까운 것으로 얼마 동안 머리 속을 떠나지 않던 생각이었다. 서울의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을 섭섭해하는 아이 들에게 새로운 친구, 새로운 생활에 대한 즐거운 이 야기를 흘려 넣어주며 보통 때보다 훨씬 상냥한 엄 마로 장시 변신하였던 것도 내 자신의 고민을 감추 기 위한 작은 연극이었을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 들 어가며, 계획대로 현지의 미국학교에 아이들을 입학 시키면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일이 마치 전장터 로 병사들을 내어보내는 일이라도 되는 양, 이럴 때 는 이런 말을 하라는등 나는 쉬지않고 떠들고 있었 다. 요즈음 갑자기 더 친절했던 엄마가 이제는 또 허 둥거리고 있으니 표현은 못했어도 아이들은 분명히 뭔가 변하고 있다는 불안감을 느꼈음에 틀림 없다. 그 래서 가족 모두 괴상한 표정을 지으며 학교안으로 들어섰던 것 같다. 긴장하고 있는 내 앞에서 미국인 교장은 무척이나 여유있는 태도로 자신은 태국에서 근무하였기에 한 국학생들의 능력을 알고 있다는 위로의 말을 해주었 고 학교 사정에 따라 한달 후부터 교실수업에 들어 가게 할 것이며 그 동안은 방과 후 특별활동에만 우 선 참가시키겠다는 말을 했다. 그렇게 하려는 또 하 나의 다른 이유는 언어가 덜 쓰 이 는 특별활동을 통 해 자연스럽게 적응하도록 유도해 보는 것이 목적이 란 것이다. 모든 것이 막연하였던 나로서는 전문가인 교장 의 제안을 거절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하루라 도 빨리 언어를 익혀야 할텐데... 라는 불안감 이 없 었던 것도 아니다. 그 때 여러 종류의 특별활동 중에 서 우리 애 들 에게 보이스카우트, 걸스카우트, 발레, 그리고 태권도를 권하는 것이었다. 내 앞에 놓여진 시간표에는 태권도가 다른 클래스에 비해 유난히 시 간 수가 많은 것이 눈에 띄었다. 놀랍기도 하고 반갑 기도 하여, 이유를 물어보니 현재 이 학교는 유도나 가라 테 는 없고, 태권도를 원하는 학생들이 폭발적인 숫자라서 소프트볼 등의 다른 스포츠 시 간의 6배 에 해당하는 수엽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태권도는 42

어느 나라를 가나 훈련할 때 한국어를 쓰게 되어있 고 있는 아이들의 학교생활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으니 우리 애들에겐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며 그것 한 부분이 되어버렸다. 친구와 사궐 때는 올림픽에 도 일주일에 최소한 3시간 이상은 학교에서 한국말 대한 질문을 받게 마련이었고, 다행히도 서울에서 이 을 듣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몇 년간 한국에 있으면 미 유단자가 되어 이곳에 온 큰 애(만 11 세)는 태권 서 밖을 내다보던 입장에서 이제는 반대로 외국에 도반에서 실력을 자랑하며 낯선 곳에서 스스로 가질 서는 한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7" 하는 또 다른 입 수 있는 소외감이나 불안감 따위는 전혀 느끼지 못 장으로 우리나라를 보며 아이들은 자부심을 느끼게 하며 적응하기 시작했다. 태권도 훈련중 모로코인 사 될 터이니, 그동안 진정한 한국 사람을 만들겠다는 범님이 경례 를 공례 로 발음하고 오른쪽 을 왼쪽 이 생각에서 우리 말을 정확하게 구사하도록 순간순간 라고 틀린 구령을 붙였을 때도 자신은 웃지도 않았 어휘마저 고쳐주던 일, 태극기를 그린 아이에게 엄청 고 틀린 것을 사범님도 알게 될테니까 직접 지적하 난 칭찬을 보내던 일, 우리나라 식사법을 의식적으로 지 않았다며 집에 돌아와 이야기하는 여유있는 - 모습 가르치던 일 등의 우리 나름대로의 집안에서의 교육 은 우리의 아이가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감을 가지고 도 받아 들이는 아이들의 수동적인 태도에서 능동적 적응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하나에 자신을 얻은 아이 인 동기유발이 가능해지리라고 생각하고 있을 는 외국어를 익히는 데에만 열중하였고 현재의 빈약 때 였다. 한 실력은 그리 상관치 않는 것이었다. 열심히 하면 서울 올림픽과 태권도 그리고 한국에 대해 온통 꼭 잘하게 된다는 확신을 부모인 우리가 강조할 시 찬사가 곁들여진 설명을 우리 식구능 모로코의 미국 간도 펼요치않게 스스로 터득해 버린 것이었다. 참으 학교에서 우리가 아닌 외국인 입을 통해 듣고 있는 로 신기한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어린 아이라서 중이었던 것이다. 서울 올림픽을 도화선으로 폭발적 부모가 무조건 도와줘야 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쉽 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태권도는 다른 스포츠와는 게 적용시킬 것인가 고민하던 우리와는 상관없이 문 달리 혼이 깃든 운동이라서 정신통일 이 필수적이고, 제가 해결되어 버린 것이다. 이는 몸과 마음이 동시에 단련된다. 이런 것은 부모 너무 크고도 멀리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개인과 들이 강제로 교육할 수 없는 것이라 많은 학부형들 는 무관하게 느낄 수 있는 서울 올림픽이나 태권도 이 적극적으로 자식들에게 권하고 있다. 태권도의 이 등이 우리 한 개인의 생활에까지 이렇게 영향을 주 런 변에 매혹당한 학과 선생님들도 직접 참가하고 는 것을 체험하며 이것을 다만 우연이나 행운이라고 있다. 서울 올림픽 개 폐막식 중계를 보며 너무나 정 말해 버릴 수 없는 심정으로 내가 우리나라 참 좋 적이면서도 힘있고 심오한 철학성을 실감하며 한국 지? 올림픽도 했고, 태권도도 있고 라고 아이에게 이 갖고 있는 신비 속으로 빨려 들었던 것을 한국인 말하자, 엄마는 올랐어요?" 라고 되묻는 것을 보며 인 당신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현재 이곳에서 태권 지금 내가 느끼는 홍분이 세계 어느 나라에 가든지 도를 배우는 사람들 중에는 그때 느꼈던 신비스러움 한국사람이면 누구나 알게 되는 전혀 감동을 주지않 을 지속시키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도 이유중 하나이 는 당연한 사실이란 생각마저 드는 것이었다. 다 이런 설명은 나에게 십여년 전 한 외국인에게 유도와 태권도의 차이를 설명하느라 애썼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였다. 또한 우리에겐 크게 새롭지않아 그 러려니 했던, 이미 2년이 지난 서울 올림픽에 대한 1952년생 박대원 주 모로코 참사관 부인 찬사를 다시 한번 이 먼 이국 땅에서 들으며 감격스 프랑스, 벨기에, 러웠던 것을 어떻게 모두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중앙아프리카에서생훨 태권도, 서울 올림픽... 이것은 그날 이후 계속되 43

~~ 죠 二 1:ll- z] 2.. E 己 박 애 련 부에노스 아이 레스의 유월은 셋빛 하늘과 희뿌연 안개가 색바랜 고층빌 딩 을 휘감고, 밀 때면 가로수 잎 은 떨어질 듯 대 롱대 롱 황 금빛 이 파리가 애처로이 곱습니다. 앓은 햇살이 빠끔히 내 주말이면 풍성하게 어 울 어 진 숲과 드넓은 초원 에서 여기 저 기 가족끼리 아사도 ( 소갈비를 큼 지 막하게 잘라 소 금과 레몬즙 을 쳐서 장시간 약한 숭불에서 서서히 구운 것 ) 를 먹으 며 자연을 마음껏 즐기는 이 나라 사람들은 그 야말로 마음의 여유를 누릴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저희들도 주말에 짱을 내 어 아이들과 들판에서 공을 차고 아사도를 먹 어 보았답 니 다. 아 버 님, 어머님도 옆에 계셨더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습 니 다. 귀국하면 산기숨 개울가에서 아사도 솜 씨 를 보여 드릴까 합 니 다. 과일가게에 동글납작한 감이 눈에 띄 어 어 머 님께 서 주시 던 홍시 가 생각났습니다. 맛은 달콤하였지만 그 흥시 의 맛과는 비교가 되 지 않았습니다. 담장 옆 감나무에 빠알장게 물들 때변 차곡차곡 항아리에 줄줄이 세워 두 고 저희들 이 찾아 볍던 긴 겨울밤엔 의례히 다홍빛 홍시를 내 놓으셨지요. 얼듯말듯한 홍시가 입안에서 사르르 녹던 따스한 옹돌방 이 그립 기 만 합 니 다. 초겨울에 접어든 영상의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얼음이 꽁꽁 어는 한국 의 겨울처럼 기온이 많이 내 려가지 는 않지만 습도가 높아 피부에 와 닿는 추위가 제법 대단합니다. 지난 5월 8일 어버이 날엔 막내둥이가 음료수, 과자, 과일을 차려 놓고 엄마, 아빠, 절 받으세요 라며 제 형 과 같이 넙죽 절을 하였답니다. 어찌나 대견스럽고 흐뭇하였던지, 그 순간 아, 난 아홉 살짜리 아들보다 못난 사람이 되 고 말았구 나. 고국에 계신 부모님께선 얼마나 섭섭하셨을까! 편지는 커녕 전화도 안드린 제가 애들 앞에 앉아 있 기 조차 민 망하였읍니 다. 늦게나마 사죄의 글 드라오니 섭섭한 마음 푸시옵소서. 못해 드린 저희들의 효도를 봐옹는 날 가슴에 듬뿐 안겨 드리겠습 니 다. 허공 중 에 치솟은 유카리나무 숲 사이로 팔짱을 끼고 서 로 부축하며 유유히 거닐고 있는 노부부들을 보면 정 겨운 풍경이 한 폭의 그림입니다. 아버넘 어머넘께서도 솔밭길 걸으실 때 팔짱을 껴 보시며 이 곳의 정경을 상 상해 보시지 않으시 렵 니 까? 콩밭 두렁엔 연두빛 쌍배추가 기지개를 켜고, 논 에 서는 통통거리며 돌아가는 양수 기 소리에 벼포기가 쑥쑥 자라나서 무르익어 가는 고향을 그려봅니다. 1953년생 장비호 주 아르헨티나 교육원장 부인 44

가족이야기 유치원에 보내며 권 오 숙 오늘 아침에는 오래간만에 내린 시원한 빗줄기가 더 위에 지친 나무에 생기를 주어 물방울 반짝이는 나뭇잎이 한충 푸르러 보이는구나. 방금 전 네가 다 니던 유치원 에서 보내 온 졸업 앨범과 사진들을 받 았단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기며 웃고 노래하 고 달라는 친구들 가운데 보물찾기하듯 네 모습을 찾아 나가다 보니 지나온 일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구나. 성우야, 이곳 일본에 와서 며칠만에 일본말을 전혀 몰랐던 너를 학기 중간에 유치원에 넣고 힘들어 하 는 네 모습에 마음 졸였던 일들이 생각나는구나. 아 침마다 일어나기 싫어하는 너를 깨우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유치원에 안가도 되는 동생 성선이를 늘 부 러워 했었잖니? 네가 유치원에 들어가서 한달이 조금 넘었을때 긍금하여 유치원에 잠깐 들여다 본 적이 있었지. 다른 친구들 모습은 하나도 보이지 않 고 한 아이가 작은 등을 보이고 동그마니 앉아 있는 데 분명히 네 모습이었지. 너는 조그만 거북이가 들 어있는 어항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단다. 너에게 가서 엄마가 왔음을 알려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데 네가 먼저 엄마를 발견하곤 선생님과 친구들이 너만 두고 어디로 가버렸다며 울음을 터뜨리지 않겠니? 그럼 엄마와 함께 친구들 있는 곳에 가보자고 엄마 가 달랬을때 년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거북이 보고 있는게 더 재미있다고 친구들이 있는 곳엔 절대 가지 않겠다고 떼를 부렸단다. 몇 달이라도 집에 데리고 있으며 일본말이 좀 익숙해 진 후, 새 학기가 시작될 때 유치원에 넣을 걸 하는 후회도 되고 너에게 미 안한 생각이 참 많이 들더구나. 그렇지만 네가 차차 명랑함을 되찾아 가고 네 동화책 옆에 엄마가 모르 는 단어의 뜻을 찾아 적어 놓은 걸 보곤 엄마도 모 르는 말이 그렇게 많으냐고 즐거워 하고, 책을 읽을 때 아는 말이 나오면 엄마, 이건 한국말로는 이런 뜻 이야 하며 열심히 설명해 주기도 했었지. 성우야, 네가 유치원에 들어가서 8개월정도 지났을 때 학습참관일이 있었단다. 엄마는 아침부터 괜히 시 험 치르는 학생같이 마음이 두근거렸단다. 그날은 게 임을 통해서 위 아래 왼쪽 오른쪽을 배우는 수엽이 었단다. 너도 잘 기억할거야. 지금도 가끔 신이 나서 그 일을 말하곤 하니까. 처음 두 문제를 성우가 맞추 어 박수를 받았었지? 그때 부끄러워하면서도 손가락 으로 V자 를 그리며 엄마를 바라보던 너의 반짝이 는 눈동자를 보는 순간 늘 엄마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던 어두운 구름이 싹 걷혀지는 것 같았단다. 성우야, 올해는 성선이가 유치원에 들어갔다. 며칠 전 아침엔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떼를 쓰는 성선이 에게 네가 이렇게 말했지. 성선아, 이건 비밀인데, 형도 처음 유치원에 갔을 때는 아침에 엄마가 막 깨 울 때까지 눈을 꼭 감고 자는 척하고 있었다. 자꾸 자꾸 가니까 유치원이 재미있게 되었단다. 자, 를 내서 가 봐 썼는지 몰라. 들이 몹시도 부끄럽더구나. 용기 그 말을 들은 엄마 마음이 얼마나 기 한편으로 늦잠 잔다고 너를 혼냈던 일 사랑하는 성우야. 우리 가족의 생활은 네가 좋아하 는 모험 의 연속인 것 같구 나. 네가 일본에 와서 힘 든 일들 잘 견디고 재미있게 지내고 있듯이 우리 다 른 나라에 가면 또 다른 경험도 하고 추억을 많이 만들 수 있지 않겠니? 우리는 세계 여기 저기를 다 니며 큰 귀, 밝은 눈과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 도록 함께 힘을 합쳐 보자꾸나. 아빠, 엄마는 명랑하 고 용감하며 일본 친구들에게 우리 노래를 열심히 가르치고 있는 우리 성우가 정말 사랑스럽고 자랑스 럽단다. 1957년생 ζ때현 주 일본 2등서기관 부인 말레이지이에서 생활 45

가족이야기 수리남의 파란 꿈 박 성 이 남아메리카의 북부이며 대서양변에 있는 작은 나 라 수리남은 1975년 아무런 준비없이 네덜란드로부 터 독립되었다. 그후 지금까지도 자립의 능력이 거의 없고, 외국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 다. 때 문에 정치, 경제, 사회등 모든 변에서 불안정하고 생활 필수품 조차 필요한 때에 구하기가 힘든 나라이다. 뜨거운 날씨와 많은 습기등 한국어l서 편하게 살던 우리가 적응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해 주는 분도 있었다. 그 러나 우리는 1 990년 2월 28일 모험을 시작했다. 장시간 비행기에 몸을 맡기고 피부로 느껴야 할 어려움을 그려보았다. 착륙을 얄리는 안내방송이 나 오자, 기내는 홀연, 숨조차 쉬지않는 듯 적막해졌다. 잠시후 덜커덩 하는 소리와 흔들림에 우리 세식구 는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모든 승객들은 박 수와 환호로 들떠 있었다. 어리둥절하여 사방을 둘러 보니 기쁨이 가득한 환한 얼굴들이 눈에 띄었다. 이 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나중에 듣고보니 그럴만한 이 유가 있었다. 수리남에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가 두대 뿐 이라고 한다. 그중에 한대가 작년에 착륙 도중 사고 를 당해 200여 명 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한다. 바로 그 비행 기 는 88 서울 올림픽 때 수영에서 금메달을 가 져온 수영 선 수 안토니네스티의 이름을 갖고 있었 다. 인구 40만의 작은 나라에서 사고로 남긴 자국이 환 호와 박수갈채로 승화된 것이다. 나도 다음엔 그들과 함께 힘껏 박수를 쳐주어야겠다. 우리가 근무해야 할 학교는 한국의 학교들과 비 교 할 수는 없지 만 40여명의 학생들이 우리의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전에는 유치원 아이들을 가르치고 오후에는 1, 2, 3 학년과 4, 5, 6 학년으로 나누어 복식 수업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남편은 고 학년, 나는 유치원과 저학년을 맡아 바쁘게 움직였다. 어린이들은 새 학년이 된 기쁨과 새로운 선생님과 의 만남에 조금씩 홍분되 어 있었고, 우리 도 또한 새 롭게 만난 아이들에게 많은 것들을 전해주고 싶은 욕심으로 가득했다. 새우잡이 배와 관련된 일을 하시는 아버지를 따라 이곳에 온 어린이들은 대부분 일정 기간이 지나연 귀국할 예정이다. 그러므로, 한국과 연관되는 수업을 같은 교과서, 같은 교육과정으로 다루어야 한다. 한창 모국어로 배우고 익혀야 할 시기에 익숙치 않은 외국어권에서 생활하므로 한국에서는 자연스럽 게 익힐 수 있는 자연 현상이나 사회도덕, 문화등을 어렵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어린이들을 위해 좀 더 한국과 유사하게 지도해야 되는 책임감이 솟 는다. 특히 생각이나 표현이 한국에서 내가 가르치던 아이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어른을 대하는 태 도, 국경일이나 절기등, 크고 작은 우리 고유의 것들 을 잃어가고 있는 것만 같다. 오전에 영어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오후에 한글 학 교로 모인다. 오후 3시부터 4시간 수업이 끝나 가정 으로 돌아가는 시간까지, 선생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 고 동화책 한 장이라도 더 읽을 수 있도록 이끌 어 간 다. 아이들과 함께 있노라면 흐르는 시간도 피곤함도 모두 잊게 된다. 하루하루 지낼수록 어린이들은 스스로 해야 할 일 을 찾아 해결하려는 긍정적인 학생들로 변해가고 있 다. 고국에 살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문화와 풍습을 익히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힘껏 도와주고 싶다. 약속 된 2년을 헛되지 않고, 지루하지 않게 파란 꿈을 싣 고 달려야겠다. 교사 수리남흔택인 학교 46

가족 이야기 와싱턴의 아이들 조 정 ^ T 미국에서 생활을 하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종 종 미국교육에 좋은 점이 많았다고들 이야기한 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의 하나로 과연 구체적으 로 어떠한 면이 어떻게 좋았었나 다시 한번 생 각해 본다. 미국교육은 미국의 독립선언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자유, 평등, 박애의 사상을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가르치고 있다. 이리 하여 스스로 자유 속에서 규율과 규칙을 잘 지 키게 하여 여러 사람들과 같이 더불어 사는 올 바른 사회인이 되기 위한 단 단한 기초를 다져주 고 있다. 자유와 평등 그리고 박애의 근본사상을 바탕 으로 하는 미국의 교육은 학교 뿐만 아니라 각 가정과 그 지역사회가 협력하여 구체적인 방법 으로 실천해 나가고 있다. 우선 학교에서의 교 육을 보면 매일 아침 수 업을 시작하기 전에 국 기에 대한 선서와 함께 나라를 생각하고 사랑하 는 노래를 부른 후 수업을 시작한다. 국기에 대 한 선서내용을 보면 1 pledge allegiance to the flag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to the Republic for which it stands, one nation under God, indivisible, with liberty and justice for all. 또한 각 달마다 기념일을 중심으 로 각기 테마 를 가지 면서 그것에 대한 자연스러운 관심과 흥 미를 갖고 개인, 가정, 나라에 대한 올바른 인식 을 간직하게 한다. 우선 새 학기가 시작되는 9 월은 Labor Day 다음날 부터, 학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마음으로 분주하게 일을 시작하는 달이다. 이 달은 back to school' 기간 으로 각 학교는 conference를 열어 학부형 들을 학교에 오게하여 각 교실 및 선생님에 대한 소 개와 일년간의 학습계획을 부모에게 알려주고 학부형들의 궁금증도 풀어준다. 10 월은 Colum bus Day 와 Halloween 이 있 다. Columbus Day 에는 각 학년에 맞게 미국의 역사를 가르치고, Halloween 에 는 그 해 에 수확된 pumpkin 을 가지 고 아이들과 가정 그리고 지역주민 모두가 즐겁 게 지내는 날이다.11 월은 Thanksgiving Day 가 있 어 그 해에 수확된 곡식을 보며 기뻐하고 하 나님께 감사드 리고, 그간 오래 헤어졌던 가족들 이 한데 모여 흐뭇한 시 간을 갖는다. 12 월은 크 리 스마스 가 있어 모든 가족들이 가족간의 사랑 을 나누며 서로에게 선물을 하고 즐 거운 시간을 보 낸 다. 아이들은 조그만 선물을 선생님께 갖다 드리고 선생넘께 고마움을 나타낸다. 그 러면 선 생 님 께 서 는 반드시 thank -you card 로 답을 해 주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 한 것은 정말 부 러운 풍경이었다. 1 월 은 새 해 이 면 서 Martin Luther King Jr s Birthday가 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킹목사 의 연설문을 인용하여 인간의 평등함 을 깊게 심 어 준다. 1 have a dream that one day this nation will rise up and live out the true meaning of its creed We hold these truths to be selfevident ;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 2 월 에 는 Valentine s Day와 Washington's Birthday가 있다. Valentine s Day 에는 학 급의 모 든 학생들이 서로서로 카 드를 주고 받게하여 모 든 아이들이 서로 우애를 나누게 한다. George Washington의 생일에는 그의 생애와 업적 그리 고 그의 정신을 배우게 된다. 와싱턴의 고별사 중 일부를 인용해 보면 Observe good faith and justice toward all nations cultivate peace and harmony with all. 3월은 St. Patrick s Day 가 있고 4 월에는 부활 절이 있어 부활절 달갈을 예쁘게 만들어 보연서 47

부활절의 의미를 배운다. 5 월 은 Mother s Day 와 Memorial Day 가 있고 6 월은 Flag D ay 가 있어 자기 나라의 국기에 대한 역사와 유래 등을 배 우고, 혹 교실에 다른 나라 아이가 있으면 그 아이 나라의 국기도 알리고 국기에 대한 의미도 이 야기 하게 함으로써 학생 들은 자기 나라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국기에도 널리 관심을 가지 게 된다. 6 월 중순 경 긴 여름 방학이 시작되고 7 월에 Independence Day 가 있어 각종 불꽃놀 이 와 행사로 즐거운 날을 보낸다. 이러한 각 달의 주제에 대한 교육 이외에도 학교에서는 견학을 통하여 실지로 배우는 것을 접하게 해준다. 국회의사당과 백악관, 특히 Sm itho n ia n 의 Air and Space Museum, Museum of Natural History, Museum of American History, National Gallery of Art 등 을 견 학 하 고 가을 수확철이 되면 근교 농장으로 가고, 때때 로 동물원 등을 견학하여 아이들에게 폭넓은 경 험을 가지게 한다. 한편 가정에서의 교육도 아이들에게 큰 부분 을 차지하고 있다.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과 함게 공평하고 즐겁게 놀고 생활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동시 에 지 도해 나간다. 자신의 아이들만을 중히 여기지 않으며 아무리 어린 아이들 사이에서도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 도록 예의를 지키게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점 인 것 같다. 작년 이맘 때 쯤 우리 큰아이의 친구가 우리 집 에 s leep-ove r 를 하러 온 적 이 있었다. 한동안 잘 놀더 니 히 밖이 어두워지자 그 친구아이는 멍청 밖을 내다 보면서 집생각이 난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 아이의 어머니에게 전화로 그러한 이 야기를 하였더니 그 어머니는 나에 게 정말 미 안하다. 너의 아이가 마음이 상하고 실망하였을 까봐 걱정이 된다 고 하면서 우리 큰아이가 원 한다면 자기가 20 분 후에 데리러 올테니 자기집 에 가서 s l ee p-o v er를 하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나는 이 어머니에게서 남의 아이도 진심으로 생 각해 주는 마음을 보고 많이 느끼게 되었다. 학부모들은 자신들 나름대로 최대한의 시간을 내어 아이들의 학교에 가서 여러가지의 봉사활 동을 하고 있다. 이러한 봉사활동은 자신의 아 이들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아이들도 위하고 사랑한다는 것이다. 한편 그들은 지역사회에서도 역시 매우 많은 관심을 갖고 아이들을 위해 여러가지를 실천하 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도서실의 운영, 지역 운동팀의 운영, 아이들을 위한 교통안전퉁이 그 실례라고 할 수 있겠다. 도서실을 편리하고 충 분하게 이용하게 하여, 아이들이 언제라도, 어느 책이라도 가깝게 보게 됨으로써 좋은 독서습관 을 키우게 된다. 그리고 그 지역에서 충분히 원 하는 운동을 즐겁게 할 수 있도록 운동시설과 운영, 그리고 구성이 튼튼하게 되어 있다. 그리 고 교통안전을 위해서는 학생들의 안전한 등하 교를 위해 마련된 교통수칙을 모두가 함께 준수 하고 있다. 학교와 가정 그리고 사회가 함께 아이들의 교 육에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동시에 책임도 지고 있다. 과거의 역사를 현재의 교육을 통하여 아 이들에게 전달해 주면서 아이들의 관심과 사고 를 폭넓게 해주고 있으며 나아가서 미래에 대한 상상도 풍부하게 해주고 있다. 미국에서의 교육은 자유와 평등과 박애의 근 본 사상을 바탕으로 아이들에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함께 갖게하는 것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이러한 미국에서의 경험으로 우리 아이들이 나 와 또한 남을 함께 생각하고 존중하는 정신을 계속 간직하도록 항상 옆에서 지켜보고 도와주 리라 다짐한다. 1됐년생 이호진 안보통일연구부 연구관 부인 미국, 우간디에서 생활 48

네 새 끼 도 0 정 서o 색 도 0 서 바 스 야A.IOfLf할공 아 시 아 나 는 섬 세 한 손 길 정 성 을 다 한 서 비 스 로 모 십 니 다 숨 소 리 마 저 고 르 게 가 다 듬 으 며 정 성 스 럽 게 차 를 달 여 따 르 는 여 인 의 섬 세 한 손 길 처 럼 아 시 아 나 의 서 비 스 도 섬 세 합 니 다 곱 게 차 려 입 은 색 동 옷 독 특 한 인 삼 주 각 테 일 포 근 한 정 이 담 긴 미 소 - - - 작 은 일 하 나 에 도 언 제 나 세 심 하 정 성 을 기 울 이 는 서 비 스 가 바 로 아 시 아 나 의 색 동 서 비 스 입 니 다 마 음 에 서 우 러 나 오 는 참 신 한 색 동 서 비 스 로 항 공 여 행 의 새 로 운 즐 거 움 을 드 리 는 아 시 아 나 항 공 이 제 항 공 여 행 은 아 시 아 나 로 다 녀 오 십 시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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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 꿀벌과 벌꿀 흥 혜 선 머리에 구멍이 나리만치 햇볕이 챙챙 내리찍던 어느 일요일. 아빠는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고 일찌감치 학교에 가 버리고, 밖에 나가자고 졸라도 들어주지 않자 아기는 드디어 엄마를 향해 두두두두 장난감 기관총을 발사해대니, 우습기도 하고, 가없기도 해서, 녀석의 손을 잡고 집 을 나섰다. 둘다 가지고 있는 옷 중에서 가장 시원한 것을 골라 입었건만 햇볕은 살을 파고 드는 듯 했고, 더위를 몽시 타는 아이는 별써 등이 질펀하게 젖어 있었다. 오지않는 버 스를 기다리며 집 나선 것을 후회하고 있는데 몇 발자욱 떨어져 있던 한 부인이 다가와 물었다. 저, 시부야 가는 버스를 타려는데, 여기 서는 것 같지 않군요 내 가 가끔 타는 몇 안되는 버스 중의 하나였기에, 거의 모든 일본인들이 그러하듯 친절하고 자세하게 대답해 주었다. 갑자기 작년 이맘 때의 일이 생각나서 웃음을 참을 수 없어 혼자 웃어 버렸다. 동경에서 처음 맞 는 여 름, 소문으로만 듣던 그 더위에 계속 놀라고 있던 나는 시원한 꿀물을 청량음료에 대신하기 로 하고 꿀을 사러 근처의 수퍼마켓에 갔다. 1 층, 2층 몇 바퀴를 돌아도 꿀은 눈에 띄지 않았다. 마침 진열대를 정리하고 있던 점원이 있어, 꿀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미쓰바찌와 도꼬니 아리마스까?" 안경을 끼고 있던 그 점원의 눈이 안경보다 더 커지지나 않 나 싶을 정도로 퉁그래지더니,그런것은 여기에 없다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 리 고는 진열대 정리 를 마치고 돌아가면서도 나를 이상한 눈으로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아니 세상에 꿀이 없논 수퍼마켓이라니! 이번에는 고참으로 보이는 점원을 찾았다.아까보다 더욱 똑똑한 발음으로 천천히 반복했다. 미쓰바찌와 도꼬니 아리마스까?" 역시 안경을 끼고 있던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이 점원은 눈 이 안경보다 커지지는 않았지만 그 반쯤은 된 것 같았다. 나를 잠시 쳐다 보더니 빠른 일본말로 다 소 긴듯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꿀이 있는 곳만 일러주변 될 것을 무슨 얘기가 길기도 하다 라 고 생각하며 내가 겨우 알아 들은 몇 마디로 추측해 보니 결국 꿀은 없다는 얘기인 것 같았다. 무엇 인가 잘못되었다고 막연히 느끼면서 내가 알고 있는 단어를 총동원해서 다시 도전해 보았다. 맛이 달고, 색깔이 노렇고, 시럽같은" 이번엔 이 점원의 눈이 보이지도 않게 작아지더니, 주위에 물건을 사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쳐다 볼 정도로 크게 웃었다. 아아, 하찌미쓰데스까?" 그가 저쪽 구석에서 꿀을 한통 들고 나와 통에 붙은 상품표시를 보여 주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우리말에서 그렇듯이 꿀벌-벨꿀의 관 계가 일본말에서도 미쓰바찌-하찌미쓰, 결국 내가 점원에게 물은 것은 꿀벌이 어디 있습니까? 였던 것이다. 값을 치르고 나오면서 실컷 욕을 했지만, 막 상 남편 앞에 꿀물을 내놓을 때는 참았던 웃음 1쨌년생 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영문도 모르고, 웃는 김영선 주 일본 연수생 부인 미국,와싱턴에서 생활 나를 따라 웃던 남편이 왜 그러는지 물었지만, 나는 끝내 가르쳐주지 않았다. 57

기행문 시리아 유적 기행 김 태 숙 요르단 고고학생 소속의 민간 단체인 Friends of Archaeology(FAO) 의 주선으로, 고대 문명 이 찬 란했던 나라, 시리아를 여행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요르단 체류중 제일 특기할 만한 일이다. 요르단 사랑들이 반을 차지했지만 우리 일행 중에 는 독일인, 미국인, 영국인, 프랑스인, 이란인, 그리고 유일하게 한국인인 나를 포함한 다국적의 구성이었 다. 차가 떠나자 곧 그 유명한 골란언덕 이 나타나고, 국경지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 늘 등장하는 정복 의 군인이 불쑥 나타나 검문을 했다. 비자없이 탑승 한 이란부인의 문제로 우리를 한시간여 뜨거운 차내 에서 긴장하게 만들었다. 해결되어, 다시 버스는 떠 나 무사히 국경을 통과했으나 중동 나라간의 미묘한 적대감은 잠시나마 우리를 공포 속에 있게 했다. 시리아는 지중해에 접해 있으며, 북쪽으로는 터키, 동으로는 이라크, 남으로는 요르단과 이스라엘, 그리고 서쪽으로는 레바논에 접해 있다. 나라의 면적은 우리 남한의 두배 가량이나, 인구는 고작 천만 정도이다. 회교국으로서 아랍어를 사용하고, 소수의 기독교와 드루즈교인도 있다. 종족도 대부분이 아랍인으로서 소수의 쿠루드족과 아르메니아족이 섞여 산다. 58

의무교육제, 그리고 두어개의 대학도 있으나 국민은 문맹 이 많 이 있다 한다. 전인구의 반 이 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특히 해안가에는 올리브, 포도, 살구등 과일이 풍부하게 나며, 담배가 주 농작물 이다. 베두인족 특유의 목축이 발달했고, 농, 동, 가죽제품, 그 리고 자개등 수공예품의 발달은 그 옛날부터 silk road교통의 요지로서 생긴 것이리 라. 국경에서부터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은 넓고 잘 닦여진 도로였고 이 나라의 규모를 한 눈에 보는 듯 화려했다. 우리의 안내원은 시리아 고고학성 직원인 무흐레 스씨였고 우리는 북쪽의 역사상 지구에서 제일 오래 된 도시, 알레뽀 (씨epJXl)에 서부터 시작하여 다마스 커스로 내려 오기로 했다. 알레뽀는 인류문명이 시작된 이래 다마스커스와 더불어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도시로 알려져 있다. 시리아의 제 2의 도시이며, 인구도 백만이 넘는다. 예 로부터 메소포타미아 지방과 비잔티움에서 다마스커 스로 가는 대상의 길목이어서 도시는 언제나 활기에 넘쳐 있다. 이곳은 아모레안 왕국의 수도로 많3αm 여년에 세워졌다. BC2CXXl여년에는 히타이티족에 의 해 점령 통치되다가 BC 1 200여년에는 아씨리아에 의 해 지배되었다. BC7 00여년 이곳은 바빌로니아의 세 력권에 들어가고 알렉산더대왕에 의해 정복되었다. A D6 5년 이후 로마제국에 의해 지배되다가, AD540년 에는 페르샤 영향권내로 들어갔다. AIXì 37년 이슬람 교를 받아들이면서 회교왕국으로 되었고, 1 5 16 년에 오토만제국의 일부로 귀속되었다. 세계 제 1차 대전 이 후에는 프랑스 식민지가 되었다가 1 946년에야 비로 소 독립 시리아의 제 2 도시가 된 것이다. 우리 일행은 시내 중심의 씨타델이란 곳으로 관광 을 나섰다. 씨타델은 BC1α맨 S y r o - Hi띠 te의 중 심도시로 알레뽀시의 한가운데에 1,500피 트나 되는 벼랑 위에 세워져 있다. ( 그림 1) 많은 인구를 수용 했던 씨타델( cita d e l) 에는 도로, 원형극장, 사원, 물저 장 탱크, 각종 수리 시 설이 있었고, 로마시절 유적인 공중 목욕탕, 호화스런 개 인 목욕탕 등의 놀랄만한 유적 이 많이 산재해 있다. 알레뽀 국립박물관에는 히타이 트, 레아, 아씨리아, 아모 메소포타미아, 페니키아 등의 문화재가 다양하 게 진열되 어 있었다. 고대사람들의 예술감각, 과학성, 때 로는 초자연적 요소등이 교차되 어 있어 나도 모르 게 BC3CXXl년 경으로 되돌아가 머 무는 듯한 착각마저 일으켰다. 점심 때에는 시내에 Wanæ 식당으로 갔는데, 정성 을 다하여 접대하며 아랍음 식의 진수를 알게해 주어 식당측 에 감사하고 싶을 정 도 였다. 오후는 자유시간 으로 시장 ( 9뻐( ) 행 이 었다. 나는 요르단 친구와 함께 시리아 특산품인 상보와 자개제품을 샀는데 아랍특 유의 물건 흥정을 친구가 해주어 쉽게 쇼핑을 끝냈 다. 친구는 알레뽀의 빗자루가 유명하다고 선물용으 로 많이 샀다. 만든 것과 비슷한 빗자루였다. 마치 박물관에서 본 BC 1 CXXl년 전에 다음날 아침 우리는 성 시 메온의 수도원을 찾았다. 이 수도원은 알레뽀의 북서쪽에 위치했으며 5세기경 의 바질리카 (bas ili ca) 로 기독교 예술의 참모습을 보 여주는 고고학적으로 중요한 성지이다. 황제들과 집권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성 시 메온은 AD4 32년 승천했다고 한다. 사후 유해는 안티오크로 옮겨졌고, 콘스탄틴교회에 묻혔다고 한다. 우리를 안내해 준 사람은 여기 서 20년을 살았는데 키신저와 카터 대통령을 직접 안내 한 것을 잊지 못 하고 열심히 자랑했다. 검은 구레나룻을 기른 전형적 인 아랍남자로, 그는 학력 이 없음에 도 불구하고 독 59

어, 불어, 영 어에 능통했고, 쾌활해서 노래와 춤도 사 양하지 않아 우리 일행을 내내 즐겁게 해주었다. 그 는 죽을 때까지 이 수도원을 지키겠다며 본인의 종 교는 모든 종파를 초월한 것이라 열변을 토해 박수 갈채를 받기도 했다. 알레뽀의 동남쪽에 위치한 에블라에 도착했을 때 는 한낮이었다. 에블라란 흰돌 이란 뜻으로 로마대학 의 마태아교수가 최근 발굴한 것이다. 1973년 진흙 書 板 을 발굴한 뒤, 19 74년 땅속에 묻힌 왕궁에 보존 되었던 1 5,1때여개의 방대한 문자판을 발굴하고, 기문자를 해독함에 따라 BC300 ~ 250년 사이에 존재 했던 거대한 왕국의 수도였음이 밝혀졌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미 학자를 양성하기 위한 학 교가 있었고, 사전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이곳의 안내 는 브리티쉬 카운슬 원장이 직접 참고서적을 낭 독해주며 보충해 주었다. 발굴된 쐐기문자는 현재 루 부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오론테스 강변 의 쐐 진 주라고 불리는 하마(H amiih) 시는 고대도시 로서 연대는 BC5000년으로 거슬러 올 라 간다. BC3때년 부터 BC2때 년까지 이미 융성한 문 화를 누렸고, BCllOO년부터 많750년까지 아라메안 왕국의 수도가 되었으며 AD3 50 년에는 이슬람교를 받아들여 오늘날 시리아의 제 3의 도시가 되었다 한다. 이곳에서는 이 미 로마 시 대부터 물레방아를 돌려 관 개 사엽에 사용했다는데, 100 여년 전에 만든 직경 90피트나 되는 거대한 바퀴가 오늘도 관광객 들 을 위해 삐거덕 삐거덕 묘한 소리를 내며 돌고 있었 다. ( 그럼 2) -',,[' - iι ι t - i 현재 하마 박물관은 1 8세기의 오토만제국 때 세워 진 아랍풍의 아셈궁으로 고색창연했다. 벽은 모자익 으로 장식되었고 대리석 타일을 바닥에 전부 깔았으 며 풍취있는 정원에는 시대를 초월한 조각작품들이 시션을 끌고 있었다. 드디어 점심시간. 낯선 고장에 서 음식의 위생이 문제가 될 때에는 독한 술이나 고 추, 파, 마늘을 생식하여 식중독이나 배탈을 예방한 다는 독일인 의사와 함께 아락(Arrack) 술을 마시던 오론테스 강변의 꿈같은 경치는 잊을 수가 없다. 우리는 저녁때에 Palmyra로 가서 여장을 풀었다. 호텔에 들자 즉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세기의 여왕 제노비아가 즐겼다는 진흙 맛사지를 하러 온천장으 로 갔다. 미세한 진흙을 얼굴이며, 온몸에 바르니 거 짓말처럼 피부가 부드러워졌다. 고대인의 지혜에 다 시금 탄복할 수 밖에 없었다. 내 생애 최초, 최후의 진흙 여자도 되어보며 고대 중동의 멋을 만끽했다 오늘은 팔미라의 유적을 보는 날이다. 페르샤에서 지중해로 가는 대상들의 길목에 위치한 고고학적으 로 중요한 도시이다. 원래 이름은 타드모아였다. 도 시 주위에 산재한 종려나무에 연유하여 영국인들이 팔미라라고 불러 전세계에 알려지고 사랑을 받게 된 고대도시이다. 팔미라의 펴1 허는 165km 에 이 르는 데, 당시의 거리, 성전, 광장, 극장, 씨타델 등 이 한폭의 파 노라마를 만든다. 기록에 의하면 이 도시는 BC2000년정부터 형성되 어 아라메안에 의해 12세기 가량 유지되다가 BC6 4년 로마의 식민지가 되고 AD212 년에 비로소 독럽되었 다. AD266년에 제노비아가 여왕에 오른다. 제노비아 는 로마에 대항하는 한편 269년에는 이집트와 소아 시아를 정복하는 등 3만여 도시국가들을 차지했다. 270년에 송리를 기념하는 황제(제노비아의 아들)의 이름이 새겨진 동전을 오늘날도 볼 수 있다. 패배를 모르던 여왕도, 결국 로마의 대공격 앞에 무릎을 꿇 게 되는데, 그녀는 협상 에 끝까지 응하지 않아, 그만 포로의 몸이 되고 말았다. 로마로 데리고 갈 때 순금 의 사슬로 수갑을 채 워 극진한 예우를 받았다고 로 마의 역사가는 기술했다. 그녀가 좀 우호적인 태도 를 하싹깨에

보였다면 포로가 되 지 않았으리라고 애석한 심정도 기록한 사실을 보면 그녀는 미모와 총명함, 용기 등 으로 모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걸이었던 모양 이다. 그 후 634년 이 도시 는 할리드 빈 알 왈리드에 의해 정복된 이래로 시리아의 영토가 되었다. 오아시스와 현대의 팔미라 마을과 접해 있는 폐허 는 언덕에 위치한다. 그곳에 발샤민 사원은 우리가 머무는 호텔과 멀지 않았다. 아름다운 원기둥으로 늘 어선 거리를 걸었다. 희랍어와 팔미라말로 새겨진 간 판들을 볼 수 있었다. 발샤민 사원은 성스럽고 아름 답게 조각되 었으며 외 곽은 네 변으로 건축되 었다. 형극장의 왼쪽 출구쪽에는 원로원이 있었으며, 방은 원주들로 나열되어 있고, 개선문과 시내로 통하는 길 이 된다. 늦은 오후의 황금빛 햇살 속에서 본 방대한 유적지의 폐허의 모습은 時 空 을 뛰어넘는 정감을 불 러 일으켰다. 팔미라시민 이 원 얼마나 엄청난 부( 富 )를 누렸든가는 폐허의 규모로 알 수가 있다. 당시의 기후는 지금과 는 달리 온화했고, 사막화되기 이전 이었으며, 과일 이 풍성했다고 한다. 그 사실은 건축의 조각장식으로 마루어 짐작되 었다. 언덕에 즐비하게 늘어선 커다란 돌로 쌓아올린 타 워석 묘지는 5층 건물의 높이에 해당된다고 한다. 안 에서 보는 정변에는 묘지의 주인공이 침대에 기댄 모습이 조각되었고, 지하에도 같은 묘지가 있음이 최 근 발견되어 다마스커스박물관에 복원해 놓았다고 한다. 한 묘지가 가족의 관들로 전부 채워지면 돌로 입구를 막아 버 리는 것이다. 타워의 꼭대기에 올라 땅 을 굽어보니 현기증이 났다. 옛 사람들의 정성어린 건축술에 감탄할 뿐이다. 제노비아광장에는 팔미라박물관이 있는데 한눈에 역사를 알게 해준다. 민속관에서는 그들의 수공예품 과 아울러 서민들의 진실한 삶의 변모를 엿볼수 있 었다. 1990년 5월 말 런던에 들렀을 때 영국의 고고학자 마크 오렐스타인경을 기념하는 비단길 이라는 특별 전시회가 대영박물관에 서 열렸다. 중국 장안에서 시 작한 비단길이 팔미라를 통해 안티오크, 티르, 알렉 산드리아를 거쳐 지중해로 가는 지도를 발견했을 때 반갑기까지 했다. 팔미라의 잊을 수 없는 폐허 속에 내가 있었다니! 날씨는 화창했고 바람까지 소슬하게 불어 여행의 마지막 기분을 내기에는 최고의 날씨였다. 다마스커 스로 들어가는 길에 조그만 마을 Khan M뻐goura에 들러 유적을 감상했다. 동네 길들은 비포장도로였고, 집들도 우리나라의 60년대와 흡사했다. 특히 금발의 푸른 눈을 한 예쁜 아이들이 순진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들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이 과거 우리가 가난했던 시절과 흡사 하게 비쳐졌다. 주머니에 있던 사탕이며 과자를 꺼내 주니 아이들의 엄마들이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수도인 다마스커스시내에는 여러 번의 兵 亂 으로 도시가 깨어져서 별로 유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시 장에 가보니 여러가지 수공예품과 불법으로 들어온 외국물건들이 암시장에 활개치고 있을 뿐이었다. 고대의 찬란했던 문화의 유적지를 상상해 보면서 후대인의 한 사람으로서 마냥 행복했던 내가 현실의 다마스커스를 보니 가슴 아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행기간 동안 나는 열심히 비디오 카메라에 유적 과 나의 여행 모습을 담았는데, 이듬해 1 990 년 1 월 초 암만에서 wine and c heese파티를 열어 성대한 시사회를 가졌다. 모두들 무척 진지한 태도로 감상했 고, 다시 한번 우리들은 역사를 거슬러서 아름다운 꿈을 꾸었다. 1맹5년생 심경보 주 스위스 참사관 부인 뉴욕, 헤이그 코펜하겐, 요르E뻐 서생활 61

기행문 Nevado del Ruiz 여 행 기 안 계 숙 발령 났어.J 어디로?J 천국에 가까운 나라로 발령을 받을 즈음엔 막연한 기대와 함께 초조해지 는데 난데없이 천국이라니. 영문을 몰라 되묻는 나에 게 남편은 고도가 2,6OOm인 콜롬비아라고 대답해 주 었다. 첫 부임지를 고도 2,300m인 멕시코시티로 받은 후, 고도 1,.뼈m 인 싼 호세를 거쳐 다시 高 原 민족이 된 것이다. 남편이 高 地 를 타 걱정이 되었지만, 미지 에 대한 기대감이 슬그머니 일었다.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의 첫 인상은 나의 무딘 시각 탓인지 다른 증남미 도시나 비슷했다. 같은 고 원지대, 같은 언어, 비슷한 풍습때문에 그러했으리라. 그러나 조금 지내면서 콜롬비아가 주위와는 다른 자 연적, 문화적 특정을 가진 나라임을 깨달았다. 몇 군 데 여행을 하게 되면서 이 나라가 크고, 아름답고, 구 경할 만한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존 밀림 지대, 사막, 황무지, 고원 등 지리시간에 배운 웬만한 지 형들은 모두 거기에 있었고, 인디언의 유적들이 숨 쉬고 있는 곳이었다. 이 모든 것중에 가장 기억에 남 는 곳은 바로 1 985년 11월 인구 501αm의 Annero시를 완전히 없애버렸다고 세계 각 신문에 대서특필 되었 던 Nevado del Ruiz 화산이 다. 네바도 란 만년설이 있는 산을 말한다. 콜롬비아는 적도가 지나가는 나라인데도 지대가 높기 때문에 네 바도가 상당히 많은 편이다. 그중 네바도 델 루이스 는 활화산이연서도, 산세가 험하지 않기 때문에 관광 지로 가장 많이 개발되어 있다. 이곳을 가려면 보고타 에서 프로펠러 비행거로 한 시간 정도 날아 마니살레 스로 가야 한다. 가는 도중 숲속의 조그만 집들, 바위 들, 강줄 기, 심지어는 웅직이는 양의 모습까지도 보 여 꼭 모형 도 위 를 나는 것 같다. 마니살레스는 고도 1,8OOm의 서부 내륙 지방 도시 로, 질이 좋은 콜롬비아 커피의 대부분을 가공하여 해외로 수출하는 곳이다. 커피나무는 그 크기나 열매 가 꼭 앵두나무처럼 생겼다. 커피열매의 과육은 앵두 처럼 달고 맛있다.8월 중순 열매가 막 익어가고 있 어 그 밝은 빛이 아름다웠다. 마니살레스에서 바라보는 네바도 델 루이스는, 흰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다른 네바도들과 함께 푸르게 반짝이고 있었다. 콜롬비아의 산들은 대개 경사가 완 만하다. 산도 사람을 닮아서 일까? 400년 전 정복자들 이 금과 에메랄드를 찾아 콜롬비아에 침입해 들어왔 을 때, 강한 민족의식을 가진 멕시코, 잉카제국과는 달리 맹렬히 저항하지 않고 스페인의 결혼정책을 순 순히 받아들였다. 거기에서 태어난 혼혈족이 대부분 인 콜롬비아인들은, 같은 혼혈족이지만 자기의 독특 한 문화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멕시코인들과는 달 리, 스페인을 모국으로까지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네바도 델 루이스는 거의 정상까지 자동차 길이 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지이프를 이용했다. 케이블카 대 신 도로가 있어 얼마나 다행 이 었는지 모른다. 산 기숨의 아열대에서부터 정상의 한대까지 2시간동안 힘들이지 않고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나로서는 큰 행운이었다. 길은 산 계곡을 따라 나 있었다. 계콕의 물은 셋빛 을 띤 흙탕물이었다. 콜롬비아의 강은 대개 그런 색 깔을 띠며 흐른다. 그 덕분에 땅이 비옥해서 산기늙 은 울창한 아열대림을 형성하고 있다. 조금 더 오르 니 수질이 좋아 인기가 높은 온천지대가 나왔다. 500m 간격으로 된 고도표시를 보며 계속 오르니 잎 의 넓이는 점점 좁아지고 전나무, 소나무등의 침엽 62

수림으로 바뀌었다. 해발 3,1α뻐n에 이르자 이를 경 계로 모든 나무들이 누워 있었다. 동시에 차 안의 우 리도 머리가 벙해지며 멀미 를 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한계고도가 3,1αx)m가 아닐 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는 계속 달렸다. 마치 경계 를 그어 심어놓은 듯 한 이끼류가 융단처럼 펼쳐졌다. 고원에서 자외선을 듬뿔 받아 빛깔이 선명한 꽃과 잔디가 대평원을 이 루고 있었다. 산 위에 이런 평 지 가 있을까. 우리는 잔 디 위를 마음껏 딩굴었다. 멍하던 머리도 개운해졌 다. 엔돌핀이 분비되었을까? 고도 4,1α애n에 이르자 환상적 인 초원과는 반대 로 풀 한 포기, 물 한 방울 없는 갯빛 땅이 펼쳐졌다. 길 은 고운 화산재와 자갈로 덮혀 먼지가 풀풀 날리고, 소리라고는 자동차 굴러가는 소리, 우리들의 대화 외 엔 아무 소리도 들라지않아 마치 죽음의 세계에 들 어선 것 같았다. 그렇게 1 0분을 갔다. 어느 순간 앞을 보며 나는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돌을 던지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 두 네바도가 만년설을 흩날라며 푸 르게 반짝이고 있지 않은가! 어느 보석산이 이처럼 아름다울까? 하얀 눈이 코발트빛 몸체를 자연스럽게 채색하고 있는 모습은 순결하고 숭고하기까지 하였 다. 이 네바도들은 마리아, 헬레나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데 루이스보다는 높지만 화산은 아니었다. 네바도 델 루이스는 해발 5,3뻐n에 있는데 지이프는 우리를 4,8OOm 지점에 조그만 모텔 앞마당까지 데려 다 주었다. 조그만 식당이 딸린 방갈로인데, 정상까 지 오르는 사람은 이곳에서 잠시 쉬었다 길을 떠난 다고 한다. 지이프에서 내리니 마당은 녹아내리는 눈으 로 질척였다. 낮에는 녹고 밤에는 언다고 한다. 지독 한 유황냄새와 화산재로 머리가 아프고, 추위로 몸이 떨려 두꺼운 파카를 입고 코를 싸매 쥐었다. 식당 문을 들어서니 여기가 천국이었다. 커피냄새 를 맡으며 훈훈한 난로불을 찍변서 아구아 데 빠넬 라 (휴설탕으로 만든 차)를 들고 나니 머 리가 한결 맑아졌다. 식당벽에는 담배를 피우지 말 것, 달리지 말 것, 숨을 크게 쉬지 말 것 등 산소부족으로 인한 주의사항이 적혀 있었다. 기운을 차려 밖에 나가니, 눈 앞에 화산의 하얀 몸체 가 나에게 쏟아져 내릴 것 처럼 솟아 있었다. 산 꼭대기는 구름 과 합쳐져, 연기 인지, 구름인지 분간 못할 하얀 기운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흩날라는 만년 설 을 보며 나는 문득 거대하고 무한한 힘을 가진 절대자를 느 끼며 두려움에 떨었다. 이 만년설은 화산 주위 마을 주민들의 생활용수, 공업용수로 중요한 역할을 함과 동시에 재해 때는 엄청난 재난을 몰고 오는 원인이 기도했다. 네바도 델 루이스는 우리가 방문한지 1주일만에 입산이 금지되었고, 석달 후에 폭발하여 엄청난 재해 를 가져왔다. 만년설이 녹아 내리면서 폭우까지 겹쳐 강 주위에 있는 마을들을 덮친 것이다. 네바도 델 루 이스에 대한 감동이 아직도 생생한데 이런 재난 을 듣고 착잡한 마음 긍할 길이 없었다. 당시 화산에서 5 0krn나 떨어진 Annero시 시민 들은 며칠 전부터 땅 속에서 구릉거리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시민들은 신부님과 시장에게 달려가 호소했으나, 그때 마다 아무런 위 험 이 없다 괜찮다 라는 무책 임 한 대 답 뿐이었다 한다. 지도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 지 새삼 느껴진다. 재해 직후 어느 농부의 πf인터뷰 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가족을 모두 잃어버린 그에게 심정이 어떤가 질문하자 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 데요. 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어요 하며 흐느끼기만 하였다. 게릴라, 테러, 마약등으로 악명높은 콜롬비아 이지만, 국민의 대다수를 이루고 있는 이러한 농부들 은 순박하고 착하기만 하다. 외교관 남편을 따라 이 곳저곳을 다니면서 나는 많 은 걸 보고 배우고 느낀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생활이 고달프기도 하지만 이런 생활에서 얻어지는 것이 많다. 우리를 남에게 올바로 알리는 일이 외교 관 부인의 역할 이 라면, 삶을 바라보는 참다운 눈을 길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 서 여행은 어느 곳이 되었든 나에겐 유익한 일이다. 1 953 년 생 이춘선 중미과과장부인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이태리에서 생훨 63

훌11률훨핍협l 멕시코 벽 화 백 희 영 나의 멕시코 생활은 결코 유쾌하게 시작되지는 않 았다. 멕시코로 향하는 비행기에서부터 남편은 일년 반이 되도록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나를 보고 야만 적인 모성애라고 야유하며 못마땅해 했지만, 나는 물 갈아 먹으면 탈이 날까봐 엄마 몸으로 여과된 모유 를 고집했었 다. 미련스럽게 수유한 것까지는 좋았는 데, Me피 City의 숨을 쉴 수 없는 악명높은 공해는 나를 완전히 지치게 했고 그 대 로 땅속으로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도착 다음날 아침 아이들의 우는 소리에 놀 라 일 어났는데 눈 이 열리지 않았다. 공해로 인해 눈꼽이 밀가루 반죽처럼 덮혀서 눈은 뜰 수가 없었고, 아이 들도 열리지 않는 눈때문에 겁에 질려 울었던 것이다. 1985년 9월의 멕시코 대지 진 때 나는 처음 당해 보 는 天 χ 에 질리다 못해 멍했고 순간적으로 18세기 불란서 예 언자 노스트라다무스의 세 계 의 종말 을 떠 올렸다. 아파트 건물이 통채로 흔들려 그 속에서 내 몸이 마치 그네타는 것처 럼 흔들렀다. 유리창 깨지 는 소리, 정전, 악을 쓰는 듯한 개 들의 처절한 울읍소 리, 여자들의 비명... 또 가장 필요할 때 항상 내 곁에 있어주지 않는 남편은 그 때 도 라파스로 출장 중이 었다. 그때도 나는 고스란히 혼자 그 공포를 수 습하고 안정시켜야 했다. 지진이 지난 후의 어느날, 쓰레기가 여기저기 지저 분하 게 널려져 있는 골목에 벽화들이 하나, 둘, 내 눈 에 띄기 시작하였다. 주로 페인트로 낙서처럼 그려져 있었지만 틈틈이 미술관의 벽화를 보고 난 후인지 라 골목 벽돌담의 그 벽화들도 차층 범상치 않게 보 였다. 식, 멕시코 사람들의 느긋하고 낙천적인 생활 방 원시적인 힘과 감동을 주는 미술과 문명에 눈을 뜨면서 차츰 지저분한 것에 대해서도 무디 어 지고 그 예술성에 감격하기도 했다. 예술가는 생활의 직접적 인 옳 物 이다. 예술가는 그 시대의 열망과 욕망과 희망의 수용체, 전달자, 반영 자로 태어난 시험장치이다. 어떤 때는 예술가가 수백 만 노동자의 욕망을 요약하고 전달하는 사람으 로서 봉사하고 어떤 때는 단지 소수의 지석층이나 귀족들 의 熱 멸이나 생활양상을 표현해 준다라고 멕시코 벽 화의 3 대 거장인 Diego R i vera는 그의 저 서 rthe Revolutionary Spirit of Modern Art J에 서 쓰고있다. 64

이런 혁명정선에서 시작된 벽화운동은 1920년 멕 시 코 젊은 화가들이 결집하여 화가, 조각가 협회를 만들고 멕시코 신화, 혁명의 역 사, 민중생활을 주제 로 공공건물의 벽에 벽화를 그린데서 출발하였다. 벽화운동의 대표적 인 화가인 Si,φ뼈, oroæo등은 멕시코 학명 당시 직접 내전에 뛰어들어 혁명대열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들의 벽화는 대부분 노동 자, 혁명등을 표현하는데, 옛 인디안의 피의 제단에 서부터 흐르는 빨간 색채에서는 그들의 피끓는 정열 과 원시적 힘이 느껴진다. 소재로는 고대 인디안의 찬란한 문명, 스페인 정복 자의 침략, 독립전쟁, 종교개혁, 혁명시기의 영웅들을 그렸는데, 도로나 작업장, 클럽, 시청, 학교, 병원같은 공공건물의 벽 에 그림 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였다. 이들은 그렴을 통하여 혁명사상을 표현 함으로써 민중사상을 고취시켰고, 강력한 민중의 회 화를 수립하였다. Rivera, Siquiros는 파리에서 당시 유행하던 모더니 즘을 습득하기도 하였다. 맹목적인 추종을 거부하고 주체적인 시각으로 받아들여 멕시코 토착 전통 위에 뿌리박음으로써 창조적이며 민족적인 대중예술의 꽃 을 피웠다. 그들의 독창성과 미의 밑바닥에는 멕시코 인의 체질과 떼어낼 수 없는 마야, 아즈텍의 死 生 觀 이 슬프도록 잘 투영되어 있다. 역사적 배경을 보면, 스페인 정복 이전에 인디안 사이에는 옛부터 전해오는 전설이 있었다. 갈대의 해 에 깃힐 달린 Que때lα없 神 이 동방에서 출현하여 아즈텍 왕국을 지배할 것이라는 것이다. 인디안들은 얼굴이 하양고 깃털 달린 神 을 오랜 세월을 두고 기 다려 왔다. 때마침 1519년, 아즈텍 달력으로는 갈대 의 해 에 스페인의 Herrnan Cortes가 배를 끌고 멕시 코에 도착했다. 아즈텍족들은 그들을 적으로 생각하 기는 커녕 신 이 도래한 것으로 믿고 정중하게 환영 하였다. 문화적으로는 우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즈텍은 스페인에게 한 번의 저항도 없이 자기나라 를 고스란히 바쳤던 것이다. 당시 멕시코 인디안의 예술은 사회의 집단적 삶에 대한 강렬한 욕구의 표출이었고 삶 그 자체였다. 곧, 자연에 대한 관념의 재현이었다. 모든 경우에서 예술 은 사회적 기능을 가지고 있었으며 종교적이고 이념 적이었다. 이러한 고대 인디안 문명이 스페인의 침략 에 의해 무참하게 파괴되었다. 옛날의 신은 새로운 신으로 바뀌었고 그들의 사원과 신들의 신성한 장소 에 교회를 세우고 건물을 지었다. 식민지 예술은 항 상 서구패턴의 복사였다. 이러한 사회 조직에 대한 격렬한 파괴와, 전통과 신념에 대한 치명적인 비난에 도 불구하고, 인디안들은 자신들의 정신세계를 갚숙 이 감춘 채 끈질기게 고수해 나갔다. 독립된 후에도 통치계급은 고대 멕시코를 두려움 과 부끄러움이 혼합된 감정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고 대 인디안 문화를 열등하게 취급했다. 멕시코 벽화운 동은 스페인 식민지의 악습과 폐단을 부정하고 그동 안 천시되었던 민족문화를 재평가하고 긍정함으로써 멕시코 고대문명인 아즈텍이나 마야 문명과 결부시 켰다. 소수 인디안 사이에 면변히 이어 온 민족 예술품, 즉, 뼈bl (고대 인디안 奉 歡 圖 ), 때icæ{장려한 그림 이나 상형문자가 들어있는 고대 인디안 책 ), 장식품, 조각, 판화, 정치풍자화, 인디안 직물의 색채와 디자 65

인, 關 器, 장난감등에서 멕시코 원주민의 거대한 유 산과 색채감각을 찾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현대 멕시코의 벽화는 고대 인디안 美 學 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수 세기 후 완전히 다른 사 회에서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다. 벽 화운동에 참여 한 대 표적 인 작가로는 Jose Clement Orosco, Siquiros David Alfaro, Diego Rivera 등을 들 수 있다. 세 사람 모두 앞서 말한 주제로 벽 화를 그렸다. 멕시코 사람들의 긍지인 이 세사람과 그들의 작품경향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 싶다. orαg가 그리는 벽화는 민중의 노여움을 기품있는 표현으로 대변하였는데 그 基 底 에는 씨니칼한 해학 과 우수가 스며들어 있다. 화연 역시 돌로 만든 동 네, 작열하는 태양, 노동과 휴식, 농민과 병정등 멕시 코 풍토에서 나오는 이미지가 아주 자상하게 그려져 있다. 그의 작품은 회색과 붉은색이 지배적인데 특히 회색은 모든 사람의 투쟁과 적개심을 나타낸다고 한 다독립의 아버지 Hi떠힘:O J를 보면 신부가 둥근 원 형지붕을 채우고 증오하는 스페인 통치를 향해 타오 르는 햇불을 들고 있다. 그 밑에는 인간의 무더기가 쌓여있고 인간의 파편과 배신당한 사람, 도로노동자 와 더불어 모든 종류의 동요와 공포가 그려져 있다. 거기에는 모든 것을 물리치고 승리할 것이라는 힘찬 절규가 보인다. Siφlf'OS는 이태리에서 3~5세기의 fre:m화, 비잔틴 모자익을 보고 지오토부터 미켈란젤로까지 벽화를 공부하였다. 거기서 그는 멕시코 예술의 새로운 확신 과 목표를 세웠다. 그는 그림과 투쟁을 동시에 했다. 그림제작, 전투, 감옥, 망명을 되풀이 했다. 병원, 학 교, 정부청사의 벽에 사다리를 놓고 그림을 그리다가 바로 정치활동에 뛰어가고 총을 쥐고 싸우기도 하였 다. 그의 그림은 정열과 투쟁으로 일관한 하나의 강 인한 인격이 화살같이 불을 품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Di쩡:0 Rivera는 여기서 제일 마지막으로 소개하지만 사실 나는 Rivera의 작품을 제 일 좋아한다. 그의 그림 은 세잔느, 루오, 고갱, 모딜리아니, 피카소 등이 Rivera를 통해 한번씩 거쳐간 것 같은 단순화된 형 체, 장식적인 선, 표현 적 색채가 마치 그들의 수제자 같다. 그는 멕시코 고대 미술에 흥미를 갖고 독창적 인 멕시코 예술이란 민족적이며 필연적으로 고대 인 디안갚명의 전통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 다. 그래서 그는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고대 인디안 의 생활을 독특한 색채로 벽화에 남겼다. 특히 그의 유화, 수채화, 판화는 너무도 훌륭해서 나의 멕시코 에 대 한 인상과 추억 은 Rivera의 작품이 주는 감동, 색채, 느낌으로 대치된다. 이상 세사람들의 벽화운동이 있은 후 현재의 멕 시코 미술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들이 찾아낸 멕시코 모양과 색감이 없었다면, 멕시코가 주 는 느낌을 우리가 이렇게 선명하게 느낄 수는 없었 을것이다. 1953년생 조환복 주 프랑스 참사관 부인 스위스, 볼리비아, 멕시코에서 생활 66

를표틸률훨핍휩l 내가 본 고야의 작 품 장 숙 희 F ranci9:xj J뼈 de Goya y Lucientes (Fuente뼈 1746-80떠.æux 1 828) 의 작품 100여점을 소장하고 있는 Prado 박물관은 1891 년 문을 열었지만, 그 건물은 이 미 1 785년 Carlæ 3세 때 지 어 져 자연사 박물관으 로 쓰였다. 18 1 4년 당시 왕비의 제의로 건물 한 쪽에 미술품을 전시하게 되 었고, 181 9년 왕립 박물관으로 개칭하여, 예술을 사랑했던 역대 왕들의 띠술품들을 대부분 소장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Goya는 생존하여 많은 작품 활동을 하고 있었고, 특히 궁중화가로서 작품활동을 하였기 때문에 오늘날 수많은 그의 작품 을 이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프라도는 박물관이 기 보다는 미 술관에 더 가깝다. 그래서 스페인 사람들은 미술품 소장 박물관으로서 는 프라도 박물관을 파리의 Iρuvre, 레닌그라드의 Herrnitage와 함께 세 계 3대 미술관의 하나로 꼽고 있 다. 소장품의 양보다 질을 따진다면 단연 세계 제일 이라고 자랑하고 있을 만큼 많은 걸작품들이 있다. 고야는 1746년 스페 인 북쪽 아라곤지 방의 Fuente tod 라는 곳에서 넉넉치 못한 집안의 여섯째 아이로 태어났다. 고집스럽고 용감하고 모험심이 많았던 그 는 1 8세에 마드리드로 가서 미술공부를 하게 되었다. 마드리드 유수의 산페르난도 미술학교에서는 아직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였으나, 1 770년 이태리를 방문 하여 새로운 미술세계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는 궁중화가가 된 처남의 추천에 따라 tar:x:my 를 짜기 위한 밑그림을 처남과 같이 그리게 되면서 부터 서서히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는 40세가 되어서야 정석 궁중화가의 일원이 되 어, 많은 tape잉ry 밑그럼들과, 성당의 천정그림 등을 맡아 그리게 되었다. 그는 1775년과 1 792년사이에 tap 앙ry πoons( 벽장식용 융단 밑그림 ) 을 주로 그렸는 데, 이 그림들은 tap:st.ry를 짜기 위해 본보기가 되는 캔버스유화였다. 고야 이전에는 플란더스의 재료와 기술자를 고용하고 프랑스에서 밑그림을 받아 tapg따f를 썼었으나, 스페인왕 까를로스 3세는 스페인 화가들을 고용하여 직접 밑그림을 그리게 했다. tap- 앙ry의 내용은 여전히 플란더스 풍의 일상생활이나 풍속 및 사회생활을 주제로 했으며, 우선 왕실, 귀족, 또는 교회의 기호에 따라 주제가 선정되었으므로 화가 개인의 독창성을 보이기는 어려웠었다. 고야는 이러한 그림들을 그리면서 그의 젊은 시절을 보내야 했다. 고야가 자신의 화풍을 갖기까지 영향을 받았던 화 가들 중에는 이태라 화가로 마드리드왕궁 천정화를 그렀던 Tie]))lo (l 696-1770) 와 처남 Baye내 그리고 독 일화가로 역시 왕궁 장식을 위한 그림과 tap:st.ry밑그 림을 그렀던 Me멍s (l 728-1779) 등이 있었다. 진정한 스승으로 가장 흠모했던 화가는 스페인의 대가로 훼 리 페 4세 의 전속 궁중화가였던 Velázlquez였다. 궁중 화가 시절 궁중에 소장되 어 있는 많은 Ve념따1ez의 작품을 직접 대하게 되었고, 한편 목판화로 만들기 위해 그의 그림을 버l 끼는 작업을 하연서 많은 것을 배웠고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43세가 되던 1789 년, 고야는 까를로스 4세의 전속 궁중화가로 임 명 되 었고 많은 왕족과 귀 족의 초상화 를 그리게 되었는데 불행하게도 건강이 나빠져서 47 세 되던 해에 청력을 잃고 말았다. 고야의 화풍은 점 진적인 변화를 거듭, 초기 작품에서 매우 조심스럽게 보여지던 자유로운 붓놀림은 그의 작품의 특정으로 확고하게 굳어갔다. 또한 빛의 표현도 빼놓을 수 없 는 특정 중의 하나로서 이 것 도 Ve닙찍Jez의 영 향이 었 을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67

고야의 빛은 그의 작품 알바 공작부인 J (마드리드, 알바의 집)과 솔라나 백작부인 J (파랴, 루브르)초상 화에서 잘 나타나 있는데, 특히 이들의 초상화의 주 위 배경과 가볍고 투명하게 처리된 의상에서 두드러 지게 표현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피부의 색깔, 소담 스러운 손, 복스러운 볼에서도 빛은 강조되어 있다. 이런 천부적 재능은 그의 대표작이기도 한 까를로 스 4세의 가족 J (마드리드, 프라도)에서 유감없이 발 휘되고 있다. 여기에서 고야는 아름답고 화려한 의상 의 표현과 더불어 인물 개개인의 모습을 세심한 성 격묘사로 표현했다. 궁중생활을 하면서 왕실가족 한 사람씩의 인물을 스케치 해 두었다가 자신의 화실에 서 이 를 모아 완성한 작품으로 왕 일가를 일정한 장 소에 모아두고 그린 그럼이 아니라는 데서 그의 관 찰력과 성격묘사가 돋보인 것이다. 이 그림에서는 종 래의 바로크적 요소와 배경의 중요성, 원근감 퉁이 사라지면서 왕실일가의 궁중 내에서 있을 법한 한 순간을 잘 만들어 내고 있다. 고야는 이와 비슷한 시기에 또다른 걸작 마야 (뎌s Majas) 를 그렸다 r옷입은 마야 와 옷벗은 마 야 로 불리는 두 작품인데 모두 프라도 박물관에 소 장되어 있다. 이 작품은 수 년간 비너스, 짚시 또 는 시골처녀 등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아직까지도 그 진짜 모델이 누구인지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고야는 표정없는 얼굴을 마야의 어깨 위에 불편하게 얹어 모델의 신분을 감추고 있다. 일설에는 고야가 1795년 알바공작 부인 초상화 주 문을 받고 그녀의 집에 머물면서 작품을 그렸는데 이 마야가 그때 알바공작 부인을 모델로 그려졌으리 라는 추측도 있다. 고야는 두 그림에 제작연도를 명기치 않아 확실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구성상의 유사점에도 불구하 고, 기법상의 상이점으로 미루어 제작연도에 차이가 있다는 설이 더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물론 두 그럼 에서 육감적인 효과를 높히기 위해 같은 시기에 서 로 다른 기법을 의도적으로 썼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옷벗은 마야 에서 아주 조심스러운 붓놀림으로 벨뱃같이 보드랍고 매끄러운 피부를 그려 냈으며, 연 두색, 회색, 흰색 그리고 살색을 조화시켜 가장 완벽 한 피부의 색조를 창출하였다. 이는 1780년 무렵 왕 이나 왕비의 초상화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던 인물 표 현 기법과 유사하다. 옷입은 마야 에서는 말년에 불란서 보르도에 머 물면서 그린 보르도의 우유배달 부인 J( 마드리드, 프 라도)과 비슷한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거의 인 당시 까를로스 4세는 왕비 마리아 루이사의 기세 에 눌려 지냈다는데, 고야는 이러한 왕실의 판도를 이 그림에서 잘 표현하고 있다. 즉 두 자녀의 손을 잡은 거만한 모습의 왕비를 화폭 중앙에 자리잡게 하고, 무능하고 선량해 보이는 왕은 그 옆에 옆모습 으로 세웠는데, 그래도 왕의 권위를 감안하여 왕비보 다는 한 발 앞으로 나오게 했다는 재미있는 해설도 있다. 또한 Ve념때E가 그랬던 것 처럼 자신의 모습 도 왼쪽 끝에 그려 넣었다. 68

상주의 표현법에 가까운 것이다. 그는 옷입은 마야 에서 굵직한 붓자국, 허리띠의 붉은 색, 자켓의 노랑 색 등 선명하고 대담한 색깔을 구사하였다. 그러므로 예술사가들은 이 두 작품이 1795년과 1803년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본다. 외설시비 때문에 옷벗은 마야 는 1901년에야 옷입은 마야 와 함께 프라도 박물관 에 공개 전시되었다. 1808년 나폴레옹의 스페인 점령 후 고야는 전쟁을 겪 으면서 목판화 연작으로 전쟁 의 참상 을 그렸는 데, 그 내 용들은 전쟁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온갖 야 만적, 비극적 또는 공포의 상황들이었다. 또 불란서 군이 물러난 1814년 그는 불란서 군대가 양민을 총 살하는 장변을 생생하게 재현한 마드리드, 1808년 5 월 3일 J (마드리드, 프라도)이라는 유화를 완성했으 며, 특히 이 그림에서 고야 특유의 빛처리와 색깔의 조화를 통하여 총살 당하는 순간의 절박감을 잘 나 타내었다. 같은 해에 그린 또 다른 유화 마드리드 1808년 5월 2 일 은 불란서군과 마드리드 시민들 간 의 격전을 그린 것으로 전자와 함께 스페인 예술사 를 장식한 또 다른 걸작이 되었다. 1819년 마드리드 근교에 집을 마련하고 옮겨살게 되었는데 1793년 이래 청력을 잃고 있던 그는 이 집 을 귀머거리의 집 이라 이름 붙였다. 몽시 앓았고, 다. 이해에 고야는 거의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회복되었 병에서 일어난 후 그는 자신의 집 벽에 직접 그 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총 14점을 1823년까지 그렸다. 그러나 그가 죽은 후 보존이 허술했고, 또 벽화에 맞 지않는 유화물감을 썼기 때문에 훼손이 빨랐다.1873 년 그 집을 구입한 은행가가 귀중한 그림이 훼손되 어감을 안타깝게 여겨, 화가 MartÎnez Cubells에게 의 뢰하여 벽화를 복원하였고, 또 캔버스에 그림들을 옮 겨 그리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1910년 집은 허물어졌 어도, 그의 BlackP히n뼈은 프라도에서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Black Pain삐g 이란 이름으로 불리워지게 된 것은 고야가 검정, 회색 그리고 갈색을 주로 썼을 뿐 아니 라 내 용도 염세, 어둠, 절망 등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 이다. 그는 생애 후반기의 고독, 나폴레옹군의 스페 인 침공시의 참화 등 불행했던 과거의 망령들로 고통 스러워 했으며, 이 모든 것들이 그의 곁을 떠나지 않 던 병마와 뒤엉켜 검은 그림으로 표현되었다. 나폴레옹의 스페인 점령시 친 프랑스파였다는 누 명과 함께 고야는 1824년 불란서 보르도로 망명을 떠났다. 이곳에서 그는 1828년 82세로 일생을 마칠 때까지 살면서 석판화를 비롯 다수의 초상화를 남겼 다. 특히 이 당시 그린 그의 작품 보르도의 우유배 달 부인 에서 약 반세기 후에 나타나는 인상주의와 표현주의의 기법을 이미 찾아 볼 수 있다는 것은 매 우 중요하다 하겠다. 이외에도 그의 작품에는 사회부패상, 미신, 反 종교 등을 주제로 한 사회고발, 시사만평같은 목판화 연작 fcapric뼈(제멋대로 하는일 )J가 있고, 그보다 나중에 는 f[)i뼈i뾰(어처구니 없는일 )J라는 이름의 연작을 남겼다. 이는 실제로 있을 수 없는 일들을 환상적으 로 그린 그림이었다. 이러한 목판화 연작들은 고야만 의 독창적인 작품으로 그의 내면세계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있다. 그의 생애는 스페인의 당시 시대상과 맥락을 같 이 한다. 불란서의 스페인 침공 및 스페인제국의 쇠퇴 등과 국내적 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몰락해 가는 스페인을 목격했다. 화가로서 이러한 스페인을 그리 고 기록했으며 사회적 모순과 난맥상을 예리하게 파 헤쳤다. 그는 한 시대의 증인으로서 격동기 스페인 역사를 그의 작품 속에 남기고 간 천부적 시각을 가 진 예술가였다. Juan J. Luna 의 rguia del Prado j, Rita de Angelis 의 rgoyaj, Valeriano Bozal 의 rhistoria del Arte en EspânaJ 를 참고 했음. 1947년생 김주억문화과과장부인 스페인, 파라과이에서 생휠 69

톨1를1핍I홉뭔1톨를 필리핀의 대나무 악단 소 수 L 여 필리핀 국민들은 음악을 무척 좋아하고 사랑한다. 어느 파티에 가도 의례히 노래 와 춤은 함께 있으며, 이 악단은 1973년 당시 펼 리 핀 의 College of Commerce 부속 고등학교 교장이 었던 Gloria Talastas여 어린이나 노인이나 흥겹게 춤을 추는 모습을 쉽게 사에 의해 처음 창단되었다. 이 악단의 공식 명칭은 볼수 있다. Banda Kawayan (Bamboo Band) 이 다. 그후 과거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영향 때문인지 성격은 정열적이며 또한 낙천적이다. 그리고 음악은 라틴풍 의 차차차 계통을 즐긴다. 열대성 기후에 맞는 원색적인 아름다운 의상의 무 희와 신나고 흥겨운 음의 화합은 많은 외 국인들을 황홀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며 관광객 유치에도 크게 한 몫을 한다. 필리핀은 대나무로 만든 가구로도 유명하다. 가볍 고 통풍이 잘 되며 청량감을 한껏 풍겨 무럽고 습한 기후를 이겨내야 하는 곳에서는 잘 어울린다. 그런데 이 대나무로 이 나라의 고유한 악기를 만드는 것이 Polytechnic University of the P hi lippin es의 언어학 과 조교수인 Siegfredo B. Calabig의 지도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는 악단의 지휘자이며 작곡, 편곡 그 리고 악기 제조까지 할 수 있는 만능의 실력자 이다. 단원들은 13세에서 20세에 이르는 35 명의 남녀 고등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악단은 지방 문화행 사, 졸업식, 운동경기, 각종 사교행사, 그리고 대통령궁과 민속극장에서 공연을 하며, 우리나라 대사관 파티에 도 두 차례 초청되었다. 악기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l) M뼈mba- 실로폰과 같으며 멜로디 파트를 담당하 다. 고, 보통 네 개의 큰 것과 두 개의 작은 것으로 연주 굵고 가늘고 길고 짧게 만든 대나무 악기는 사실 현대악기와 비교해 후진적인 변은 있으나, 이것으로 팝 뮤직등 현대음악 어느 것도 연주할 수 있다는 것 이다. 더욱이 모든 연주자가 연주를 할 때 곡마다 독 한다. 2) μraga벼ng -M때mba의 축소형으로 소리가 비슷 하다. (지도교수 Calab땅의 창작악기라고 한다.) 3) Angklung 소리를 내기 위해서 흔들어야 한다.G 특한 율동을 곁들인다. 대나무 악기에 담겨있는 신비 음 하나만 낼 수 있으며 보통 8개부터 1M 의 악기 하고 묘한 음과 율동의 조화에 감탄을 금할 수 없게 된다. 를 사용하는데, 한다. 한 사람이 두 개 내지 세 개를 연주 70

4) K빼gong - 이 악기는 베이스 파트를 담당하는데 고무 슬 리퍼 로 친다 니 참 재 미있다. 5) Bwnoong Bap(Barnl:xxJ Bass Bla때ng)- 심호흡으로 불어 야 하며 손가락으로 각 음계 구멍을 막아 주어 야 하고, 두 개의 바리톤 음과 두개의 저음을 낸다. 6) Bwnoong Trompa (Barnl:xxJ Hom B1뼈ng)- 힘차게 불어서 소리 를 내야 한다. 항상 세 시간 이상 연 주할 수 있는 곡이 준비되어 있으며, 초청 파티에 따라 의상도 바뀌는데 그 디자 인은 모두 단원 들의 작품이라고 자랑이 대단했다. 학 교 수업에 지장이 없도록 연주는 저녁 시간과 주말 에만 응락한다고 했다. 필리핀 관광성에서는 최근 이 악단의 존재를 재 인식하고, 문화예술적 가치를 크게 평가하였다. 정부 가 해외순회 공연을 적극 후원하여, 악단을 통해 외 을 다시 심을 수 있다는 뜻에서 큰 기대를 걸고 있 다. 이 악단은 이미 미주지역과 호주에서 연주공연을 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오는 8월에는 일본을 방 문하도록 되어있는데, 일본의 유명 백화점이 필리핀 상품전을 개최 하면서 판매 목적 으 로 이들을 초청하 였다고 한다. 이 나라에 춤과 음악이 끊이지 않는 한 이 대나 무 악단 의 연주는 귀중한 문화적 존재로서 가치가 있다. 그리고 단원들은 언젠가 기회가 주어진다변 자 기들의 아름다운 연주와 춤을 꼭 한국에 소개하고 싶다고 간절히 바라고 있다. 1웠년생 노정기 주 필리핀 대사 부인 미국,와싱턴에서생활 교활동, 홍보 역할을 담당케함으로써 필리핀의 인식 71

l톨따핍톨풀핍릎를 인도의 종교와 건축양식 바 은 즈 1. 하랍파 문명시절의 건축물. 모헨조다로와 하랍파에서 발굴된 유적으로 B.C. lcoo~2뼈년 사이 인더스 계곡에 꽃 피웠던 선사시 대 문명의 증거가 된다. 이 시대의 기록들은 만족할 만큼 해독되지 않았지만, 건축물들이 남아 충분한 증 거가 된다. 일정한 크기의 벽돌을 재료로 하고 집, 목 욕탕, 곡물창고 등에서 유형의 통일성을 보인다. 발 견된 토기와 동물모양의 동석( SoaÇ6l.one의 일종)들을 보면 상당히 질서가 잡힌 높은 수준의 문화도 엿볼 수있다. 하랍파 문명은 도시의 특정을 지닌 가장 일찍 형 성된 문명으로 알려져 있다. 모헨조다로의 중심부는 성채의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거리는 격자형으 로 놓여져 마을은 블록으로 나누어졌고 집은 방들이 한 가운데 있는 뜰을 향하도록 되어 있었다. 물은 운 하나 하수도로 빠지게 되어 있고 가장 큰 특정은 벽 돌로 만든 사각형의 탱크인데, 주로 의식을 위해 목 욕재계하는 목적이었다. 일련의 사각 플랫포옴은 곡 물창고로 여겨진다. B.C. 일천 년의 중반기, 하랍파문명이 흩어질 때 브 라만교의 발전과 불교, 재 인교의 출현으로 건축물에 변화가 있었다. 2. 불교 건축물 인도에서 종교건축물의 초기 단계는 불교와 재 인도의 건축물을 보면 종교적인 것, 왕을 위한 것, 군사적인 목적의 유적들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유적 들은 2천년 이상 된 것으로 다양한 기술과 형태로 지어져 왔다. 목재, 짚, 진흙 등의 재료로 지은 건축 물은 몬순기후에서 남을 수 없어 찾아보기 힘들지 만, 석조 건축물들은 특수한 형태들로 남아있다. 이 들은 후에는 이슬람과 유럽의 건축양식의 영향을 받 으나, 인도 특유의 모습으로 남게 된다. 인교의 시작과 연결된다. 두 종교가 모두 고타마와 마하비라가 존재하던 B.C. 5~6세기 경으로 거슬러 가기는 하나 이 시기의 건축물은 보존된 것이 하나도 없다. B.C. 3세기 아쇼카왕 집정때 종교적 색채를 띤 석조건물의 건축이 시작되었다. 아쇼카 왕조시대의 유물과 왕의 업적을 기록한 일련의 기둥에서 짐작해 보건대, 인도에 있어서 가장 최초의 예술적 전통은 이웃 페르샤의 아케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72

아쇼카왕은 불교와 재인교의 후원자였고 많은 종 교 건축물이 그의 통치 당시에 지어졌다. 이 시대의 가장 특징적인 건축양식은 스튜파 (Stu맹)이다. 본래 장례를 위해 쌓아 올린 것으로 우주의 질서를 상징 함과 동시에 부처와 마하비라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 기도 했다. 가장 완전하게 보존된 스튜파는 산시에 있다. B.C. 1-3 세기 사이 것으로 장식이 없고 반구 형이다. 지름이 36.6 m (120ft) 로서 꼭대기에는 우산 모양의 뾰족탑이 있다. 이 뾰족탑은 무덤안에 깊숙히 묻힌 관의 위치를 나타낸다. 산시의 스튜파의 특정은 목재를 쌓아 놓은 것 같은 돌로 만든 난간과 문이다. 돌기둥과 난간은 스튜파 주변에 포장된 통로로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 며 AD. 1세기에 네 군데의 중요한 위치에 문이 세워 졌다. 문의 기둥과 처마에는 부처의 일화와 에피소드 등이 정교히 조각되어 있다. 불교도의 후원 아래 이 루어진 또 하나의 중요한 건축양식은 부처닝을 모신 방이다. 이 성역은 분명히 처음에는 나무로 만든 것 이었다. 왜냐하면 흘 입구 위에 있는 창문과 함께 조 각된 둥근 천장이 말발굽 모양의 빗살뼈로 받쳐져있 기 때문이다. 목재는 남아있지 않지만 B.C. 2세기부터 돌을 깎은 흔적은 남아있다. 불교신도들은 사원 안의 사각마당 주변에 있는 좁 은 선방에서 기거했다. 입구 반대 편의 중앙 벽에 있 는 큰방이 부처님을 모신 성역으로서의 기능을 했 다. 돌을 깎아내려서 됐거나, 벽돌로 만든 선방들은 아직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아잔다에는 선방과 부처 넘 상이 놓여져 있는 방들이 굽어진 계곡사이에 늘 어 서 있다. AD. 5λÞ1 경으로부터 내 려오는 불상이 놓여져있는 방들은 정교히 조각된 기둥과 문으로 되 어있다. 조각하고 채색된 부처와 그의 제자들의 형상 은 불교도들의 전설을 생생하게 나타내는 장면과 함 께 건축적인 장식도 겸하고 있다. 이 시대부터 불상 이 놓여진 곳은 초상화로도 장식되어 있다. 스튜파는 설법하는 자세의 부처의 좌상을 알 수 있는 배경이 된다. 인도에서 가장 큰 불교사원은 N빼펴a에 있다. 중 국에도 알려진 이 축복된 불교대학은 불교전통 이 사 라진 9세기까지 번성했다. 그러나 가장 축복받은 불 교의 성역은 부처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해탈한 부 다가야에 있다. 현대의 벽돌로 많이 개조되긴 했지만 이것은 6-7세기의 전통적인 양식이다. 3. 힌두교와 재 인교 사원 AD. 1세기 경에 열혈한 브라만교도들의 출현과 함께 새로운 종교적 색채를 띈 건축물들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형태는 신화 속의 신의 주거지를 나타내는 동굴이나 산의 형상이었다. 장식은 없었으나 성역 위 를 치솟는 탑들은 많은 층층을 이루었거나 외형이 꼬불꼬불했다. 사원은 기하학적 형태로 놓여 있었는 데 우주의 구조를 상정하는 것이었다. 돌을 깎은 불 교와 재 인교의 건축물을 물려 받아 초기 의 힌두교 성 역들 역시 바위를 깎고 조각한 것들이 었다. 가장 좋은 예가 Elephant.a에 있는 6세기경의 시바사원이 다. 한 때 사원 건축술에 있어서 구조에 대한 테크닉 이 유행했다. 최초의 예가 탑으로 된 성역과 원기둥 으로 된 입구의 조화이다. 곧 입구가 확장되고 원기 퉁으로 된 흘도 더해졌다. 성역은 통로들로 둘러싸여 있다. 바깥 면들은 주물을 기초로 하여 선들의 조각추종 자들로 가득찬 벽감으로 장식되어 있다. 문이나 원기 둥, 천장에는 수호인들의 상, 잎무늬 장식, 보석 이 박 힌 모티브들로 수 놓여져 있다. 그래서 사원 건축과 조각은 과감하고 정교한 계획 으로 이루어졌다는 것 을 알 수 있다. 73

1O ~11세기에 흰두교와 재인교의 종교적 건축양식 은 절정에 이르렀다. 인도의 각지방마다 스타일은 조 금씩 달랐다. 까llillJlIUf에 있는 B며Jad상1Vara사원은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피라미드형의 탑이 하나만 있 는 것이 대부분이다. 카주라호에 있는 사원들은 산맥 을 본 딴 듯한 굽어진 탑형식이 산재하여 형성되어 있다. Abu에 있는 재인교 대리석 사원은 건축조각의 더욱 놀라운 예이다. 거의 모든 원기둥, 석반받이, 입 구, 창 따위의 위에 가로댄 돌, 천장이 조각으로 장석 되어 있다. 인도의 사원 건축 전통은 1 2세기부터 모 슬렘의 침입으로 붕괴된다. 그 후로 사원들은 초기의 형태가 복고되거나 당시의 이슬람 건축의 형태를 도 입하게 된다. V띠뼈뼈n에 있는 16세기의 성역은 무 갈시대의 회교사원 건축물의 형태인 아치와 둥근 천 장이 잘 조화된 예이다. 인도의 남쪽지방은 모슬렘의 영향을 후에까지 덜 받은 편이어서 사원건축의 발달 이 계속되었다. 4. 회교사원과 무덤 이슬람이 인 도에 들어오자 완전히 새로운 건축양 식과 기술이 도입되었다. 회교사원과 돔 형식의 장려 한 무덤 등이 그것들인데 돌로 만든 아치, 둥근 천 장, 돌벽에 글을 새겨 장식하는 것, 기하학적 디자인 과 꽃잎 모양의 장식들이 특징이다. 티무르왕(1 336-1405, 아시아 서반부를 정복하여 대제국을 건설한 몽 고의 왕)시대의 건축술이 인도의 초기 이슬람 스타 일로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고유의 형태가 곧 외 래의 기술과 장식에 영향을 주었는데 아치형의 옆연 과 둥근 천장은 홍예돌 없이 받침돌로 된 석조물로 이 루 어져 있다. 기하학적 꽃무늬 모티브는 사원예술 에서 파행된 심오한 자연주의 경향을 띄고 있다. 인도의 수도인 델라는 최초의 이슬람 건축물을 보 유하고 있다. 12세기 말엽 델리의 회교사원은 부분적 으 로는 이미 붕괴된 재인교 사원의 기둥양식으로 세 워졌다. 그 형태는 큰 정원이 콜로네이드( 列 柱 )로 둘 러 쌓인 것이다. 서쪽 벽은 아치형의 벽감으로 되어 글 이 새겨져 있고, 아라베스크 장석으로 덮혀 있다. 델 라 술탄들의 무덤 건축물은 둥근 천장을 가진 사 각형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앓은 벽은 여러가지 색 깔을 가진 석조물로서 아치형의 벽감으로 장식되어 있다. 코너에는 작은 탑과 누각들이 있다. 둥근 천장 에는 연꽃과 항아리 모양의 장식 이 있다. 15세기 경에는 자치 이슬람 주의 출현으로 각 지 방마다 다양한 회교사원과 무덤 건축술이 완성되었 다. 구자라트 주에는 회교사원 건축이 동시대 재인교 사원 건축양식인 정교한 장식의 원기둥을 도입했다. 뱅갈에는 벽돌기술이 발달하여 곡선을 이룬 수평으 로 된 장식이 지방 특유의 집 스타일을 본댔다. 이슬 람건축은 16~17세기에 무갈제국의 후원하에 절정에 이른다. 닙hore,I옹lhi, Agra와 Fatehpur S뼈j등 무갈시 대의 수도들에 있는 회교사원들은 붉은 사암과 흰 대 리석으로 조각되어 있다. 큰 회교사원의 뜰로 들어 가려면 대단히 화려한 장식이 된 아치형의 문을 통 과해야 한다. 뜰의 서쪽에 있는 수도사들의 방도 장 식되어 있다. 벽, 아치, 둥근 천장은 릴리프로 조각되 어 아름다운 여러가지 색깔의 돌을 끼워 넣었다. 무갈제국의 가장 걸작품은 타지마할일 것이다. 이 무덤은 사자한 왕이 부인 문타즈마할을 기리기 위해 지은 것으로 사랑을 위하여 세워진 유물로는 세계에 서 가장 값비싼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문타즈는 14 명의 아이를 17년 간의 결혼 생활중 생산하였는데 1 629년 15 번 째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 슬픔에 잠긴 사자한 왕은 왕비를 위하여 무덤을 짓기로 하고 1632 년에 시작하여 1653 년에 완성하였다. 필요한 노동자는 인도 전역 뿐 아니라 중앙아시아에서도 왔 는데 인원이 2만 명이나 되었다. 프랑스인 A떠삐, 이 태리인 Verono등 건축전문가들을 유럽에서도 불러왔 다. 그중 우두머리 건축가는 이란에서 온 IsaKl뻐1 이 었다. 사자한 왕은 왕비의 무덤에 대비되는 검은색 대리석으로 된 자신의 무덩도 지으려고 했으나 이 일에 착수하기 전에 아들 오랑제브 황제에 의해 제 거되었다. 사자한 왕은 나머지 여생을 강 건너 자기 의 사랑하는 아내가 묻혀 있는 타지마할을 내다 보 며 아그라 요새에 갇혀서 보냈다. 타지마할은 각 연단의 구석에 세워진 흰 뾰족탑과 함께 흰 대리석 단 위에 세워져 있다. 탑들은 그냥 74

장식 일 뿐이 다. 중심 구조는 큰 구근모양 의 중앙 둥근 지붕을 네개의 작은 둥근지붕이 싸고 있다. 문타즈마 할과 사자한의 무덤은 지하실에 있다. 정교하게 자른 대리석 스크린을 통하여 중앙에 있는 방에 빛이 통 과된다. 천장이 아주 높은 이 방은 메아리가 대리석 둥근지붕까지 닿아 아주 웅장한 소리를 내며 항상 누군가가 그 음향을 내 어 관광객 이 듣게 한다. 타지 마할은 어느 각도에서 보나 우아하지만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면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대리석속에 여러가지 보석들이 박혀 아름다운 패턴과 뛰어난 장 인의 정신을 보여준다. 야무나 강 옆에 서 있는 이 건물은 큰 정원을 끼고 있고 똑같은 모양의 붉은 사 암으로 만든 회교사원이 이 건물을 감싸고 있다. 해 가 뜰 때, 해가 질 때, 달빛 아래에서, 보면 볼수록 더욱 장관이다. 마지막으로 타지마할에 대해서 연구하는 과학자들 에 의하면 현대문명이 이 불굴의 유적의 생명을 단 축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오염, 화학물질이 이 대리석 건물에 치명적인 손실을 주고 있기 때문이 다. 1764년에는 입구의 은으로 된 문이 떨어져 나갔.고, 도굴꾼이 둥근지붕에 입혀 놓았던 금으로 된 판 도 벗겨 갔다고 하니 가슴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1 얹었년생 이균동 주 스웨덴 2등서기관 부인 샌프란시스코, 인도에서 생휠 v 75

풍물기 미래의 나라 브라질 유 헌 자 1973년 5월 21 일 새벽에 건물도 별로 보이지 않는 대국의 수도라고 하기에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브라 날개축에는 주택, 상점, 교회, 학교, 병원 등 일상생활 과 직결된 생활권 지역으로 되어 있고, 기념축에는 질리아에 도착하였다. 주택 부족의 상황속에서, 시설 각종 정부 청사 등 공공 건물이 모여 있는 기능 도시 도 좋지 않은 게딱지같이 자그마한 호텔 생활은 좀 이다. 처럼 빨리 해결되지 않았다. 12시간의 시차로 밤낮을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는 브라질의 축제 카니발은 혼동한 아 이들은 낮에 자고, 밤에는 놀자니 아이들의 공식적으로는 사순절이 시작되는 3일동안 즉 일요 소음이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일, 월요일, 화요일까지 계속되나, 호텔측에서 나의 마음을 알아 차 실제로는 토요일 저녁부터 시작되 린 듯 장난감을 아이들에게 주었 어 聖 수요일 (A삶1 WI때m:lay) 아침 다. 그들의 아이를 사랑하는 국민 에 끝난다. 쌍바 스쿨의 예행연습 성에 정을 붙이고 언어를 익히며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과 각종 무도회, 거리마다 축제의 움직임은 카니발 한달 전부터 무 커피의 나라, 카니발의 나라, 축 르익는다. 카니발의 기원은 확실 구의 나라로 우리들에게 알려진 치 않으나, 자연의 소생을 뜻하는 브라질은 남미대륙의 47% 를 차지 봄철에 종교적이며, 달을 중심으 하고 있다. 천혜의 천연자원을 풍 로 한 원시적인 축제에서 유래 된 부하게 보유하고 있고 개발의 잠 브라질리아 시가도 다고 한다. 역사적으로는 로마제 재력이 큰 미래의 대국이다. 이 나 국의 농신제의 가무, 주연 등 옛 풍 라에 체재해 본 사람은 더욱 더 습에 나타나 있다. 모든 국민이 참 그 잠재력에 대해 실감을 갖게 된 여하는 대중의 축제로 빈부의 차 다. 특히 전 국토의 50% 가 아직 이없이 동등하게, 남자가 여자가 정글과 산림으로 덮혀 있는아마존 되고, 여자가 남자가 되고, 왕이 지역은 임산자원과 각종 지하자원 신하가 되고 신하가 왕이 되기도 이 대량으로 매장되어 있는 미개지이다. 이 지역에는 하며, 현실을 잊고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이다. 카니 수십의 인디안 부족들이 아직도 원시 생활을 하고 발 4 일 동안을 즐기기 위해 1 년 365일을 일하는지도 있어, 우리나라와 같이 NICS에 속하고 있는 신흥 공 모를 정도로 이 축제의 즐거웅은 모두를 도취시켜버 업국인 브라질을 흔히 석기와 우주시대가 공존하는 린다. 나라라고 부르고 있다. 브라질은 1,500년 포르투갈의 Cabral에 의해 발견되어 우리 대사관이 있는 수도 브라질리아는 해발 1,CXXl 17세기 부터 본격적인 식민이 시작되었다. 사탕수수농 미터의 고원지대 위에 세워진 인공도시이다. 전 세기 장을 위해 서부 아프리카로부터 수백만의 흑인노예 부터 국토의 균형적인 개발을 목적으로 1956년에 건 가 유입되었고, 19세기 중엽이후 독일, 이태리, 스페 설을 시작 1 960년도에 이전한 신수도로 도심지는 항 인, 화란 퉁 유럽국가와 레바논 등 중동국가의 이민들 공기 모형으로 설계되어 남북으로 아치형을 한 하이 이 이주해 왔다. 20세기에 들어와 일본이민과 60년대 웨이축과 동서의 기념축으로 나뉘어져 있다. 항공기 부터 시작된 한국이민 등 전 세계 각국 이민들로 구 76

성된 모자이크 이민사회로, 모든 민족이 화합 동화하 면서 살고 있는 인종차별이 없는 사회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두고 흑인과 일본인은 멸시의 대상이 은 또 1위를 좋아하는 것같다.20만명을 수용하는 세 계 최대의 리오데자이네로의 M밍a떠na 축구경기장, 환상의 섬, 호반의 도시라고 불리우는 인공도시인 브 되었는데, 흑인은 건달 또는 나태한 인종의 대명사 라질리아의 Pithon E때as 국립공원, 천지를 진동하는 로, 일본인은 수줍은 농부, 야시장의 장사꾼으로 불 리워졌다. 80년대에 들어와 일본인은 재능있고 열의 있는 인종으로 전환되었으며, 흑인은 여전히 하층의 인종으로 굳어졌다. 그들에게 동양인은 누구나 일본 인으로 부르게되니 한국인 이라고 밝히는 것이 습관 이 되었다. 낙천적이고 온화한 국민성을 지닌 브라질 사람들은 만사에 서두르지 않는 여유를 갖고 있다. 오늘 할 일도 곧잘 내일로 미루는 경향이 있어 잠깐 생활하는 우리에게 가끔 웃고 넘길 수만은 없는 일 듯한 19uacu 폭포, 조물주가 마지막으로 인류에게 하 사했다는 신비의 아마존 정글, 유아 사망률, 커피생 산량 등, 그 위에 세계 최대의 외채를 들어본다. 현재 브라질은 부와 번영, 그리고 전진이라는 이상의 일면 이 있는가 하면, 대부분의 국민이 절망과 무기력 상 태로 불평등 속에서 살고 있다. 현실의 브라질은 실 제로 두개의 브라질이 공존하고 있다. 서방세계에서 8번째로 큰 경제대국이며 하이테크 산업과 저명한 고 등교육 시설을 갖고 있는가 하면, 동시에 기아, 질병, 이 생기곤 했다. ~n -houæ를 하려던 전날에 있었 문맹, 높은 인구밀도와 유아 사망률 등의 문제가 있 던 일인데, 시간이 지났다고 문짝의 반을 페인트를 끝내지 않은 채 &:> Amanh장" (내일한다)하며 일꾼 들이 가버렸다. 또 한번은 신문사의 편집국장을 초대 했는데, 가뜩이나 늦은 저녁시간으로 9시에 초청한 사람들이 10시반이 되어서야 나타났다. 우리네 음식 은 따끈따끈해야 하고, 즉시 해서 색깔이 살아야 하는 데 시간이 맞지않아 걱정하며 음식을 내놓았다. 다행 히 시장이 반찬이었는지 맛있게 들어주니 짜증스런 기분은 어느 새 사라지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남 자분의 안색이 창백해지며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찬 수건을 적셔주고, 응급차를 부르며 법석을 떠는 동안 언제 그랬었느냐는 식으로 일어섰다. 며칠동안 원 고를 쓰느라고 피곤해서 그런 모양이라고 오히려 우 리를 안심시켜 주었다. 그 후 한국영화까지 보고 늦게 가변서 Amigo de Peito" (가슴에 품은 친구)라 하며 지금까지도 형제같이 지내며 도움을 많이 받게 되었 다. 지역과 인종의 다양성, 사회 경제적 수준의 다양성 다. 브라질의 경제학자 많mar &cha가 브라질을 Belindia"(Bel + lndia ; 현대적이고 산업화된 번영의 벨지움이 낙후되고 빈곤한 인도로 둘러싸여 있다는 뜻)라고 명명한 것은 자학적이나 현실을 잘 묘사한 것이라고 하겠다. 70년대초 닉슨 대통령이 브라질이 가는 곳에 라 틴 아메리카가 따라간다 고 말했듯이, 21세기 미래 의 대국을 꿈꾸던 브라질이 %년대에 들어와 극심한 인플레로 비롯된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고저 몇 차례 에 걸친 경제 안정 계획을 추진하면서, 21 세기에 과 연 이 강대국의 꿈이 실현될 수 있을지, 계속 미래의 나라로 머물게 될지 의문스럽다. 항공기 모형으로 설 계된 인공도시로 동체와 남쪽 날개축 서너 동네만이 덩그러니 준공된 살별한 상태에서 이곳에 도착하여 매사에 불편함을 느꼈다. 지금은 충분히 도시기능을 발휘하고 생활의 불편을 느끼지 않는 상태에서 이곳 을 떠나면서 10년이연 강산이 변한다는 말을 다시 생각해본다. 에도 불구하고 국가관과 애향심이 대단하여 각 주마 다 독특한 애칭이 있다. 삼대 미항의 하나인 리오데 자네이로인들은 카리오까(Cari a), 우리교민이 많이 사는 상파울로는 빠울리스타 (Pa배잉a), 수도인 브라 질리아는 깐당고(Ca떠머핑:0)등 25 개 주마다 특이한 지역 이름을 갖고 지역연고의 자부심이 강하다. 그들 1맹4년생 유병훈 주 라스팔마스 총영사 부인 77

풍물기 오만의 혼인잔치 김 옥 란 중동국가에 부임한 외교관의 부인들에게 공통적으 ~l~ 로 가장 불편한 점은 여성의 행동에 제약이 많다는 것이다. 남녀의 유별이 엄격하여 거리에 나갈 때 반드 시 차도르를 써야하는 나라가 많고, 그 나라 인사와 의 만찬, 리셉션에는 의례껏 남자들만 참석한다. 부 부동반의 기회는 외교단과 서구인들만의 모임일 뿐, 남녀가 한데 어울리는 기회는 좀처럼 없다. 그러나 오만에서의 생활에 조금 익숙해지떤서 나 는 여성들이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매우 활발 하게 교류하면서 지낸다는 것을 알았다. 낮기온이 좀 서늘한 겨울절에는 거의 매일 부인들의 커피모닝, 티 파티, 만찬등이 계속되어 초대에 일일이 응하기가 힘 들 정도이다. 오만의 상류층 가정에서는 여러 명의 인도인과 필리핀인들을 고용하기 때문에 부인이 사 소한 가사까지 돌볼 필요가 없지만 사정이 그렇지 못한 나로써는 정신없이 바쁜 날들을 보내게 되었 다. 그러면서도 오만의 여성들이 서로의 우정을 소중 히 여기므로 가능한 한 모든 초대에 응하려고 노력 하였다. 부인들끼리만 따로 접촉하고 보니 누가 누구의 부 인인지 를 익히기가 힘들었다. 이들은 우리처럼 결혼 후에도 자기 성을 그대로 갖고 있으며 남편 성을 따 르지 않는다. 더구나 모슬렘이름은 우리가 생각하는 성이 따로 없이 아버지의 이름이 자기 이름 뒤에 붙 어 성처럼 불리어지기 때문에 호칭에 어려움이 많 다. 예를 들어 냄미경h 라는 부인의 남편은 Mohama:l N없h 여서 Mrs N h 라고 불렀더니 아니라고 하며 Mrs. Mohama:l가 맞는다고 한다. Mrs. N h는 N h의 부인 즉 자기 시어머니 인데 특히 서구인들이 착오 를 많이 일으킨다고 한다. 하지만 아랍인들 중에는 집안이 명문인 경우에는 이름 뒤에 부족이름을 붙여 78

고 한다. 옛날 이들이 유목생활을 하던 어려운 시절 이것이 도리어 성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예 를 들변 Q뻐sAbd비 Mwnin 외Zawai의 al Zawai는 부 족을 뜻하는 것이다. 회교도들의 용습중 가장 생소하게 느껴진 점은 한 남자가 부인을 네 명까지 둘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은 드물고 대다수는 일 부일처로 지내고 있다. 두 명을 두고 있는 사람들은 대개 사회경제적 기반을 가진 사오십대 중년층으로 서 어렸을 때 부모가 정해준 제 일 부인을 두고 다시 이삼십대의 젊은 부인을 맞은 경우이다. 외국인들과 의 모임에는 대개 언어소통이 가능한 제 2 부인이 나 올 때가 많다. 이들은 남편이 모든 부인들을 공평하 게 대해주기에 별 불만없이 사이좋게 지낸다고 하 니 우리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마할이라는 결혼보증금제도가 일부다처제를 뒷받 침해 주는 것인가 보다. 이 제도는 오래전부터 중동지 방에 내려온 관습으로 신부를 맞기 위해 신부가족에 게 지불하는 일정액의 금액인데 보는 관점에 따라서 는 신부를 돈을 주고 사온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마할은 신부의 결혼의상, 치장등의 비용에 충당되고 일부는 나중에 이혼이나 과부가 되었을 때의 생활방 편을 위해 쓰는 것으로 미리 위자료를 받는 격이라 에는 언제 남편을 잃을지도 모르는 긴박한 상황이 많았고 여자들이 생활력이 없었기 때문에 이 제도가 반드시 야만적이라고 볼 수 만은 없다. 금액은 시대와 지방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상류층에서는 우리 돈으 로 천만원 이상이고 보통 백만원 정도는 가져야 한다 고 한다. 그래서 경제력이 없는 젊은 사람보다는 돈 많은 중년층이 제이 부인, 제삼 부인을 맞기가 쉽다. 비 교적 마할금액이 적은 인도인 태국인 등 외국인을 데려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 때는 400 오만 리알(약 팔십만 원)을 정부에 공탁시켜 놓아서 이들이 이혼 을 당하고 돌아갈 경우에 지불한다. 이 제도는 2년 전 국왕에 의해 공식으로 금지되었고 더불어 국제 결혼까지 금하게 되 었다. 오만의 생활에 조금 익숙해졌을 때 평소 자주 만 나던 친구로 부터 한 묶음의 청첩장을 받았다. 오만 의 부수상이며 굴지의 부호인 Quais AIxI내 Mur따1 머 Zawai의 아들과 그 사촌누이와의 혼인식 초청장으로 여자들만의 잔치가 사흘, 남자들만의 모임이 한 번, 그리고 부부동반 공식만찬 두 번으로 모두 여섯 번 의 잔치 초청장이었다. 외국인으로서 오만의 전통혼 례식을 볼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 않아서 우리 부부 는 모두 다 참석하기로 하고 그 날을 기다렸다. 혼인 의식은 대개 큰 강당이나 회당 혹은 정원에 지은 가건물이나 천막에서 거행하게된다. 혼인날 신 부집에 당도하니 식장의 내부는 그 집안의 귀중한 수직카페트와 벽걸이로 장식되었고 군데군데 가지각 색의 조화, 리본으로 화려하게 치장하여 축제기분이 났다. 정변의 무대에는 가마 모양의 큰 의자가 있었 는데, 금은보석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였고 앞연에는 진주로 엮은 발을 드리워 놓았다. 식장 안에는 중동 특유의 향기가 나는 향불을 피워 놓았고 신부가 가마 뒷쪽으로 들어오면서 헨나의식이 시작되었다. 헨나 (뻐nna) 라는 말은 야생꽃잎에서 채취한 식물성 자연 염료로 신부의 손발을 치장하는데 쓰인다. 은쟁반에 헨나를 내어 오고 신부가 진주 발사이로 손과 발을 내어 놓으면 그 집안의 나이 지긋한 여자들이 손으 로 헨나를 짓이겨 반죽하여 신부의 손과 발을 장식 79

한다. 우리나라에서 봉숭아 물들이는 것과 비슷한데 섬세한 꽃무늬를 그려넣어 하나의 예술품을 만드는 것으로, 여기에는 오랜 경험과 기술이 필요하다고 한 다. 약 세시간동안 헨나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무대에 서는 가수와 무희들의 여흥이 베풀어지고 하객들에 게는 음식접대가 계속되었다. 혼신의 힘을 기울여 신 부를 장식하는 여인들의 조심스러운 동작은 주위의 떠들썩함과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자정쯤 되니까, 바깥이 소란해지고 휘파람과 짝자 지껄한 소리가 나면서 신랑집에 모여있던 신랑의 친 척과 친지들이 몰려와서 신부가 앉은 가마를 둘러싸 고 작은 금붙이와 지폐를 던졌다. 이들은 헨나가 무 사히 치루어졌는가를 보러온 것이고, 이때 던진 금붙 이와 돈은 그날 잔치에 수고한 헨나아주머니와 악 사, 무희들에게 나누어준다고 한다. 항상 남녀가 유 별한 사회에서 이때는 남녀가 뒤섞여 있어서 이채로 왔다. 둘째 날의 의식은 신부가 곱게 치장하고 집에서 기다리는 동안 신랑은 모스크에 가서 혼인서약을 하 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모스크에는 평소에도 남자들 만 예배보러 가는 곳인데 혼인 의식이라해도 예외를 두지않았다. 여흥순서를 보며 한참을 기다리니 친척 들에게 둘러싸인 신부가 꽃가마 ( 온통 흰 자스민꽃으 로 감싼 벤츠 승용차)를 타고 와서 내리는데 여전히 얼굴은 가라고 있었다. 머리위에 보자기로 싼 코란을 얹고 신부어머니의 부축을 받으며 식장을 한 바퀴 돌고 나갔다. 하객들은 그날도 밤늦게까지 음식과 여 흥을 즐기고 돌아갔지만 아직도 신부얼굴은 보지못 한 셈이었다. 셋째 날에는 신부가 서양식 웨딩드레스와 베일을 쓰고 입장하였다. 헨나의식을 거행하는 가마에 앉아 발을 거두자 모든 하객들이 차례로 나아가서 신부의 손에 입을 맞추고 축하인사를 하였다. 나는 이때서야 비로소 신부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음식접대와 여흥이 지리하도록 길게 계속되고 나서 자정이 되자 첫 날 처럼 북, 팽파리, 휘파람소리와 함께 여러 친척들에 게 둘러싸인 신랑이 등장하였다. 신랑은 평상시와 다 름없이 디시다셔(아랍인 특유의 흰 가운)를 입고 허 리에 칼을 차고 머리에는 터반을 두른 모습이었다. 신랑이 이렇게 꼭 자정을 넘기고 신부를 찾는 풍습 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한다. 나는 아랍 친 구들로 부터 들은 신랑을 기 다리는 열 처녀 의 비유 같은 말을 이제야 이해할 것 같았다. 한편 신랑집에서는 남자손님들만 모셔놓고 여흥과 음식접대가 계속되었는데 무척 지루하였다고 한다. 여하튼 잔치의 마지막 날에 와서 처음으로 신랑신부 가 나란히 상석 에 앉은 가운데 하객 들과의 만찬이 진행되었는데, 냐는 음식과 여흥과 기다림으로 이 때 는 상당히 지쳐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답례품으로 작 은 하트모양의 흰 세라믹 과자그룻을 받았는데 겉에 는 신랑신부의 이름이 금박으로 예쁘게 새겨져 있었 고 안에는 행운을 상징하는 타원형의 흰 사탕이 들 어 있었다. 이 잔치는 물론 부유층의 행사로 특수한 예이지만 오만사람들은 혼인잔치를 힘 닿는 대 로 화려 하게 치 르는 것 같았다. 이들의 언어, 문화, 생활습관이 종교 를 떠나서는 있을 수 없는 것 처럼 혼인잔치도 회교 를 믿는 한 이 대로 지 속될 것 같다. 1933년생 최배식 주 요코하마 총영사 부인 일 본, 우루과이, 스위스, 브루나이, 오E뻐 서 생활 80

풍물기 박 희.!%!. --, 사막으로 야영을 간다고 한다. 사우디에서의 밤 여 행은, 처음이라 마음이 설레인다. 소풍가기 전날 국민 학생처럼 잠도 설쳤다. 밤늦게까지 준비물을 괜히 부 산스럽 게 챙긴다. 참사관부인과 내가 당번으로 정해 졌다. 둘 이서 시장도 가고 의논도 했다. 대사관 식구 가 전부 가기때문에 이것 저것 챙길 것이 많았다. 그 래도 집에만 있다가 나간다니 마냥 즐겁다. 3시 출발! 대사넘 차를 선 두로 대사관 차들이 마 치 퍼레이드를 벨리듯이 한줄로 달리는 모습은 장관 이다. 한참 달리니 주변 경치가 기막히다. 끝없이 펼 쳐지 는 사막, 멀리는 병풍을 두른듯이 낮으막한 언덕 이 나타나고, 모래색깔과 하늘색깔 이 변하고, 낙타가 멀리서 한줄로 걸어가고, 옆에는 새끼 낙타가 엄마를 따라가고, 양떼는 한가로이 풀을 뜯고, 한 폭의 그림 을 보는 것 같다. 사우디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었구나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한편으로는 인간의 존재가 너무 초라해 보인다. 이 렇 게 넓은 사막에 물도 구하기가 힘든 사막에서 종 교가 발생하리라고는 상상이나 했겠는가? 아마 이런 악조건 의 환경때문에 인간은 겸허해지고 자연의 위 대함에 순응하며, 이 자연을 만든 위대한 분이 있으 실거라고 생 각하 여 그 분에게 매달려 간구하고 기도 하며... 이렇게 해서 종교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생 각이 잠깐 스쳤다. 모래먼지를 날리 며 달리는 모습을 낙타를 타고 달 라는 베드윈족으로 착각까지 해가며, 우리 일행도 오 늘밤은 베드윈족이 되는 것이다. 텐트치고 담요깔고 양고 기 는 아니지만 불고기 바베큐를 맛있게 먹고, 얼굴들이 활기차 보인다. 남자애들은 톰소여가 된듯이 회중전등을 들고 깜 깜한 언덕을 올라가고, 엄마들은 독사한테 물린다고 소리치는데, 하지만 아랑곳 없다.3살짜리 꼬마도 형 들을 따라 나간다. 여자애들은 오랫만에 이야기로, 미국의 고등학교 이야기부터 인생에 대해서 재잘재잘 한자리를 차지 했다. 밤하늘의 날벌레를 죽인다고 모 기약 을 아무데나 뿌려본다. 꽤나 밤이 이속한 모양이다. 주위가 조용 해진다. 누워서 밤하늘을 본다. 이 렇게 한가롭게 누 워 밤하늘을 쳐다본 것이 언제이던가! 어릴적 평상 에 누워 밤하늘을 보며 별을 세던 때가 아스라히 생 각난다. 그때는 참 꿈 많은 소녀였는데... 갑자기 태고적 공룡이 언덕너머로 얼굴을 쑥 내미 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하나? 만화 의 주인공 둘리처럼 공룡과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얼 마나 좋을까? 하고 별로 보잘 것 없는 공상에 젖어 있는데 커피 좀 주세요 하는 소리가 들린다. 벌펙 일어나 당번 둘이 서 커피를 대접한다. 아침이 밝았다. 햇빛이 꽤나 강하다. 얼른 텐트를 걷고 집으로 돌아온다. 식구들이 모두 즐겁다. 1948년생 노훈건 주 사우디 아라비아 재무관 부인 81

풍물기 일본, 일본사람들 한 덕 순 이제 동경을 떠난치도 1 년 가까이 되어온다. 잊그 제 잔뜩 찌푸린 하늘을 보며 작년 이맘때는 무엇을 하였나 하는 상념속에 쓰유( 梅 雨 ;장마)가 시작되면 항상 초록빛 우산을 든 날씬한 하시쓰메 가오리( 橋 ;n 薰 )선생의 화사한 얼굴이 나타난다.3년여의 사검 끝에 헤어지게 됨을 아쉬워하며 자그마한 진주목결 이를 예쁘게 싸주던, 언제나 조용한 에다무라 가즈꼬 ( 技 村 和 子 )선생의 모습도 떠오른다. 일본에 도착한지 얼떨결에 보낸 열흘쯤 뒤 오후에 진표네 학교 선생닝이 전화를 하였다. 여선생이 천천 히 무엇이라 하는데 지금도 생각하면 부끄럽지만 무 슨 이야기를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으나, 차분한 느 낌과 높지 않은 음성이었다고 생각된다. 겨우 진표, Mother, letter"라는 말만 귀에 담아두고, 큰애 돌아오 기만 초조하게 기다렸다.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 니?" 아 니 " 2학년 짜리 녀석의 무심한 대답에 아 니, 잘 생각해 봐, 선생님이 전화하셨던데 몰라, 아 이들이 무어라고 했는데, 선생님이 또 뭐라고 했어. 응, 선생님이 이거 줬어 또박또박 적혀있는 사연 을 사전을 땀흘려 찾아가며 풀어 보니 진표가 오늘 시계를 차고와서 학급아이들 몇명이 진표한태 좋지 않은 말을 하여 자기가 그러지 못하도록 하였으나 진표가 놀라지 않았나 모르겠다. 학생들을 잘 지도하 지 못한 자신을 사과한다. 다만 학교에 시계를 차고 오는 것은 금지되어 있으니 학교규정에 따라 주변 좋겠다라는 이야기였다. 서울에서 떠날 때 평소 존 경하던 선배넘 댁을 인사차 들렀을 때, 많이 컸다고 하 시며 장난감 비슷한 미키마우스 손목시계를 큰아이 에게 주셨다. 갑자기 왜 그 시계를 차고 갔는지. 다행이었는지, 그 뒤 얼마 안있어 진표는 동경한국 학교에 자리가 났다하여 학교를 옮겼다. 그것이 신문 에 가끔 나는 이지메( 야유) 의 한 종류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은 그 일이 있은지 한 일년쯤 뒤 였다. 일 본 사람들의 철저한 집단주의로 그것은 화산과 태풍 이 많은 작은 섬 속에 갇혀 사는 수 많은 일본 사람 들에게 주어지고 또한 그들이 스스로 택하고자 하는 어쩔수 없는 운명이라고 보여진다. 한때 해외 여행하는 일본사람들을 깔보는 말로 깃 발 뒤에 졸졸 따라 다니는 팽뀐들 같다고 하였는데 그렇게 단체에 끼어 다니지 않으면 당장 자신에게 불이익이 올 뿐 아니라 다시는 그 사회에 도로 낄 수 없는 까닭 때문이며 바로 이것이 학교에서 이지메와 같은 문제가 끊이지 않는 이유라고 한다. 대략 6월 초순부터 시작되는 장마는 한달 가량 계 속되다 7월 중순께 걷히면서 혹까이도( 北 海 道 )를 제 외한 일본 열도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이때 쯤 이면 도시의 크고 작은 골목과 동네의 웬만한 공터 에서는 사나흘 또는 일주일정도 00 마쓰리(쩔) 라 고 하여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독특한 옷을 입고 모인 다. 우리가 살던 다까나와( 高 輪 )의 교란자까( 魚 藍 板 ) 에도 7월 말이 되면 며칠간 저녁에는 타이꼬( 太 鼓, 북)소리가 들려 나가 보면 할머니부터 예닐곱이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들 30-40명이 유까다차림으로 모여 북장단과 전통 음악에 맞추어 원을 그리며 춤을 춘 다. 끝나는 날 낮에는 주로 남자들이 유까다를 입고 요이사, 요이사 하며 미꼬시(가마)를 수십명이 어깨 82

에 걸쳐 메고 동네를 돌았다. 실제 하는 사람들은 힘 드는지 재미있는지 알수 없으나 보는 내 눈에는 몹 시도 열심히 춤을 추고 돌아다니는 듯 하였다. 워낙 좁은 공간에서 지내는 일본 사람들에게는 장마 내내 찌푸듯해진 마음을 이렇게 푸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 각도 들었다. 마쪼리는 전통적으로 어려서부터 지역 내 사람끼리의 협통섬과 단결심을 기르기 위해 권장 되어온 것이었다. 흔히 일본의 전통을 칭찬하는 말로써 저 스시집은 몇 대에 걸친 집이고 저 우동집은 200년이 넘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일본사회는 무인( 武 人 )지배하에서 사 회계층의 구별이 엄격하였고 계층간의 이동이 거의 불가능했었다. 일본에서는 신분은 물론이고 지위도 대부분 세습되었는데 요즈음 일본을 움직인다는 주 요 정치가들 중에 선대( 先 代 )에 이어 계속하는 사람 이 많은 것은 이러한 관습이 아직도 남아있는 까닭 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와 같은 마쓰리는 일정한 사 회 계층으로 얽매어 있으며 주어진 환경 속에서 지 내야만 했던 일반 서민들에게 단결심과 복종심을 고 양시키면서 또 한편으로는 억압된 감정을 해소시키 는 역할로 지금까지도 중요한 풍물이다. 한편 일본 사람들은 참으로 잘 참고 남에게 피해 를 주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으로 유명하다. πf를 통 해 볼 수 있는 일변으로는 수십 명의 목숭이 사무라 이의 칼에 베어지고 또는 변심한 애인의 등 위에 비 수를 꽂는 것이었다. 참다 참다 안되면 결국은 칼을 뽑는 민족인듯 섬뜻함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죽임과 죽음을 마치 형식이 있고 아름다웅 이 있는 듯, 어떻게 하면 멋있게 여운이 오래 남게 죽는가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혹자는 달빛 문화 라는 용어 로 그들 문화의 모방 성, 복합성과, 찰나성을 지적하기도 하는데 나는 짧 은 기간의 느낌을 통하여 무엇보다도 그들은 형석을 중요하게 여기고 결과보다는 하는 과정을 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 었다. 그들은 남이 하지 않는 것을 하려 하지도 않지만, 남들이 하는 것을 하지 않으려는 법도 없는 듯하다. 일본 사람들의 결혼식은 유난하여 돈이 꽤 많이 든 다고 하는데(하기야 요즈음에는 혼수 준비로 우리가 더 들지 모르나)우스운 것은 호텔에 가 보면 누가 피로연에 참석한 사람인가를 쉽게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입고 있는 옷의 형태가 유별나게 비슷한 점 이다. 또 그통안 변하였는지 알 수 없으나 미혼인 여 자들 중에 어깨를 덮을 정도로 긴 머리를 드리우지 않은 사람은 거 의 없었다. 4년 가까이 일본에 사는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 고 많은 이야기도 나누었으며 또한 많은 것을 느끼 고 배웠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끼리라도 교또( 京 都 ) 사람 집에 가변 주인이 현관으로 어서 올라 오라 하 여도 정말 올라 오라고 하는 것인지 아니연 말로만 하는 것인지 구별이 쉽지 않다고 하는데 결국 이 이 야 기 는일본사람들의 마음을쉽게 알수없다는것을 나타내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얼마만큼 나와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을 알고 있는 것인가 하 는 의문도 생기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가족 모두 아무 탈 없이 일본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좋은 추억 과 생소한 경험을 하고 돌아온 것에 감사드린다. 195 1 년생 이규형 국제연합과 과장 부인 뉴욕, 중앙아프리카 일본에서 생휠 83

M m nu 1 α αn h OU ll 1O -- n n α ν h 야 UO ψ nu nu rl. 빠 지 Q) 센 깨 ι h n *L ι - - / 끼 ~ 1% t 따 k r 때 딩 X n ι J 용 lι \\l n AZ

강의안내 사단법인 대한여학사 협회 장소 : 서울 도봉구 쌍문동 423-44, 회관 (TEL: 993-2378, 995-7811) 목적 : 회원의 지식과 재능을 활용할 수 있는 기 회 의 알선, 문화교류 및 친선 도모, 봉사활 통을 통한 사회복지 향상에 기여 코저 함. 중요사업 : (1) 여학사 교실 특강 : 전 문인들을 초 빙, 강연, 패 널토의, 세미 나, 견 학, 답사를 월 1회로 개최 CZ) KAUW Forum( 영 어 공개 토 론회 ) 국제 친선 및 문화교류 사업으로 주한 외국인 회 원과 국내인 회원 간의 영어 공 개 토론회를 월 1회 개최. (세째 목요일 ) 회원 : 일 년회 비 1 5,cm원 ( 정회 원, 준회 원, 명예회 원제 도) 이화여자대학교 평생교육원 장소 : 이화여대 캠퍼스내 경영관 기간 : 대학교 학기와 같음 ( 3월 ~6월, 9월 ~11 월 ). 1 주에 하루, 2시간(단, 생활영어는 2 일, 4시 간)으로 1 6주 실시. 수강료 : 과목당 501αm원 ( 단, 생활영어는 1 3),1αm원 ) 강의 내 용 : 한국 및 동양미술감상, 실 내 디자인, 합 창 및 음악감상, 한국의 역사와 문화, 동양철학, 현대사회와 여성, 가족문제와 가족치료, 매스컴과 사회, 현대사회 와 정치, 세계경제속의 한국경제, 중년기 건 강관리, 한국의 꽃, 인간성과 교육, 한 국고전문학의 이해 등 34개 교과목. - φ <> * Qu * φ <> * Q Q A - 애 R J - A - TJu 1i nu 꺼 nb -, l 1i nu 끼 J *t ν 1 p m 따 nu qu F A ι 1. m mm * φ <> * * φ * m > <> * 3 A K K 7 A K -u i τ?i 1u Aa 9 A 2 φ 32 o Q 9 5 4 "'109876 없 --K J <> *- I - -Q Q 1 nu t- o n nv - u? % * φ <> * Note that the declarer has played well. When it transpired that he had a sure trump loser, his only obviou s chance of success was to find West with ace doubleton in K 9 8 diamonds or to find either defender with J 10 doubleton. φ 10965 But he has gi ven himself an extra chance by eliminating o J 8 6 the majors before throwing you in with the queen of clubs,... Q 5 3 standing to gain when you have the ace of dia monds or both jack and ten. 8 - J - n no At the table most defenders would promptly play the jack of diamonds, hoping for decla rer to misguess the position of the ten. However, declarer can make hi s contract if he covers the jack with the queen. The sure way to defeat the contract is to lead the eight of diamonds, which dra ws the nine, ten a nd king. On the next round the seven of diamonds is covered by the jack, queen and ace, and the six of diamonds is a winner on the third round. 85

생활정보 l 顯 o..l..l 미 넉 로 아이들과 헤어지게 되면서 허전하고 방황하는 마 음을 다독거리고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 기 위해 몇 권의 요리책을 준비하였다. 새로 부임한 사우디아 라비아에서는 뜻밖에도 제과에 필요한 재료, 기구 등 을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쉬운 것부터 시 작했는데 책대로 해서 케익이 구워져 나올때 여간 신기하지 않았다. 새로운 것을 만들면 직원부인들을 초 대 해 요 리 법을 소개해 주고 시식도 해보며 대 화를 나누기도 했다. 조금씩 솜씨가 늘면서 간혹 공관에 필요한 것을 만들어 가기도 했다. 다른 집을 방문할 때 과자나 초 콜렛을 사가는 대선 직접 과자를 만들 어 예쁘게 포장하여 선물하였다. 젊은 직원의 아기의 돌케엌도 만들어 축하해 줌으로써 서로 즐 거 움을 주고 받았다. 그러다 보니 색다른 음식을 접하변 그 냥 지나치는 일이 없이 요리법을 늘 물어서 실습해 보아 내 것으로 만들었다. 여자들의 출입이 여러가지 로 제 한된 중동에서 배우고자 하는 열성으로 제 과점 작업실을 방문하여 케이크 만드는 것을 견학할 정도 로 극성을 부렸다. 이러한 열성이 외교관부인들에 게 알려지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케 입만드는 솜씨가 좋은 사람으로 인식되어 외국부인들과의 사교에도 위 공 자 큰 도웅을 주었다. 사우 디아라비 아의 캐나다 대사 관저 에 는 Harùff라 외교관과 결혼한 부인들은 무엇 보다도 요리 하는 는 파키스탄 요리사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개 발한 법에 관심을 기 울 이 게 된다. 대 부분의 외 무부 부 인 Smokffi Salmon RollErl Sandwich는 모든 사람들 에게 인 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많 은 노력과 관심을 음 식 기를 끌어 캐나다 대사관의 명물이 되 었다. 캐나다 만드는 데 투자하였고, 선배들의 음식 만드는 솜 씨, 대 사 부인이 임지를 떠나게 되었을 때 모두 그 의 샌 상차 림 방 법, 파 티를 끌어가는 매 너 등을 옆에서 지 드 위치 를 더 아쉬워 했을 정도였다. 샌 드 위 치는 티파 켜 보고 도와드리기 도 하면서 나 나름대로의 독특함 티에서 나 간단한 식사의 애피타이저로 사용하 기에 을 찾 으려 고 노력하였다. 좋다. 스폰지케이크를 이용한 화려한 케이크 도 티파 외국손님을 대 접할 때는 그들 이 간혹 순수한 한국 티에 없어서는 안될 케이크이다. 시 간 이 없을 때 는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 문에 조금 변 제 과점에 서 스폰지 케이크만 사다가 계절의 신선한 형된 한식을 중심으로 주재국의 음식을 적 당히 조화 과일과 크림을 이용하여 멋지게 장식할 수 있다. 아 시켜 메뉴 를 정했다. 이 스크림도 그냥 동그렇게 떠서 대접하는 것보다 케 주요 리 로는 한식을 소개해도 무난하지만, 후식 에서 이 크처럼 틀에 넣어 생크림이나 과일로 장식하면 안 는 자신이 없어 과일을 쓰거나 제 과점에서 사다 썼 주인이 더욱 돋보일 수 있다. 여기에서는 SmokErl 는 데 어씬지 나의 모자라는 점을 드러 내 보 이 는 것 Salmon Rollffi Sandwich와 스폰지 케 이크를 이 용한 같아 늘 고민스러웠다. 중동으로 발령받아 학교관 계 Strawberry [용light를 소개하고자 한다. 86

Straw빼rryD빼며Tt (10... 12 인분) < 재 료> cejl7 己 t a외dr sugar ælf -raising flour -까-'- : C1j 우유(뜨겁게) 으앤딸기챔 W비p뼈 C뼈m 장석용딸기 4 개 1/2 cup 1 cup ~ζ- 二 El] 1/3 cup 1/2 cup 600 me 필요한 대로 <재료> smoked salmon heavy cream cream cheese 타바스코 ( Ta벼~) 소스 레몬쥬스 r어 cavjaf 다진 실파 fresh brown bread 4m 1/4 cup 1 pac없ge(8 m) 2 drops 1 ts 2 Ts 1 ts 한 덩어리 l 만드는법 @ 모든 재료를 섞어 냉장고에 굳궁해질 정도로 넣 어둔다. @ 빵을 하루 밤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길이대로 1cm 두께로 썰고 빵둘레 갈색 부분을 잘라낸다. @ 자른 빵을 국수방망이로 시방으로 앓게 조심스럽 게 밀어낸다. @ 앓아지고 커진 빵 위에 섞은 재료를 고르 게 발라 한쪽 끝에 서부터 손끝에 가벼운 힘을 주어 말아 올린다. @ 프라스탁 랩으로 싸서 냉장고에서 굳힌 후 약 lcm 정도의 두께로 썰어 담는다. @ 냉동했을 때는 상온에서 30-40분 녹인 후에 사 용한다.. 만드는법 @ 달갈을 전기 믹서로 처음에는 중간 속도로 젓다 가 빠른 속도로 크림 이 될 때까지 젓는다 (5-8 분 ). @ 설탕을 나누어 넣으면서 설탕이 녹을 때까지 계 속 젓는다. @ 밀가루와 소금을 섞어 채에 걸러 달갈에 섞 고 우 유를 넣고 가볍게 젓는다. @ 기 름 바른 21 인치 짜리 케엌 틀에 부어 200'c 오 븐 에 25분정도 굽는다. @ 다 된 스폰지 케엌을 wire rack 위에서 완전히 식 힌 후에 상하로 2등 분해 서 사이에 딸기쟁을 펴고 거 품 낸 크림을 발라 다시 합한다. @ 나머지 크림으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그 위에 딸 기 를 예쁘게 얹는다. 스폰지 케익을 기본으로 속에 넣는 재료와 향 기, 장식을 달리해 여러가지 케엌으로 변형시킬 수 있다. 1943년생 최상덕 국무총리 비서관 부인 미국, 일본, 이디오피아 사우디아라비 O 때 서 생휠 87

생활정보 그i1. 그ìL (') 1 *- ^ ~ I 71 C그 A-i c> 수 세계 여러나라를 다니다 보변 인간이란 어떻게든 통하게 마련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나라의 말을 할수 있으면 그거야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 우에도 동작과 표정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다. 인간 에게만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동작과 표정이 있는가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동물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한 곳에 고정되어 자라는 식물도 감런 것이다. 그러 고 식물에서 동작과 표정이 가장 잘 드러나고 가장 아름답게 나타나는 것이 바로 꽃이다. 꽃꽂이 하는 사람은 항시 꽃과 대화하며 산다 그 는 줄기와 가지와 잎사귀 하나하나에서 그 식물의 동작을 보고 꽃봉오리, 꽃송이, 꽃잎, 꽃술 하나하나 에서 그 표정을 읽는다. 꽃에 대한 애정이 있고서야 진정한 꽃꽂이의 수련이 가능한 것이다. 지금부터 30년 전의 일이다. 내가 꽃에 대해 본격적 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외무공무원인 남편 을 쫓아간 처음 임지였던 일본에서였다. 그곳 사람들 의 꽃꽂이에 대한 열성은 대단한 것이었다. 나에 게 있어 꽃꽂이는 아내의 역할을 자연스럽고 애교있게 수행할 수 있게 해준 매체였다. 손님을 맞을 때 집안의 꽃꽂이, 혹은 대사관저에 꽃을 꽂을때, 몇가지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대 사관 저에서는 우선 꽃의 선택부터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 다. 손님이 특히 좋아하는 꽃이나 그 나라의 國 花 를 꽂으면 참으로 좋아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꽂아서 는 안되는 꽃이 있다. 다 똑같은 경우는 아니지만 스 위스에서는 우리가 즐겨 쓰는 카네이션은 장례식 때 많이 쓰는 꽃이다 스위스사람이 참석할 때 식탁에 카네이션을 꽂는다변 그다지 좋은 반응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또 칸나도 나라에 따라서는 장례식 꽃으로 인식되어 있는 곳이 있다. 현관은 그 안주인의 첫인상이다. 꽃값이 비싼 외국 88

의 경우 고목이나 분재를 이용하여 약간의 꽃을 장 식하는 것으로 훌륭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웅접실에는 많은 사람이 둘러 앉게 되는만큼 탁자 가운데 꽃을 꽂을 경우 소파에 앉아 상대방 얼굴이 가리게 되 면 곤란하다. 이럴 때는 나지막하고 부드러 운 분위기의 꽃꽂 이 가 좋다. 장미나 나리등을 이용하여 응접실 한쪽벽에는 높 다랍게 꽂아보는 것도 분위기를 화사하고 부드럽게 만들어 줄 수 있다. 모임에 초 대 받았을 때에는 꽃다발이나 꽃바구니도 좋지만 자그마한 화분들 몇 개를 바구 니 에 함께 조 화있게 담아 가변 성의가 있어 보이고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식 탁꽃 은 빨강색 등 너무 강렬한 색이 나 향기가 나는 꽃은 삼가하는 것이 좋다. 향기 나 색이 너무 진 하연 음식맛을 즐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 는 노란색, 크림색, 분홍색등의 식욕을 돋구는 색의 꽃 을 이 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화장실의 경우 산 뜻하게 한 두 송이 정도 꽂되 빨강색은 피하는 것이 좋다. 요즈음은 초 대 받아 갈 때 가슴에 코사지를 꽂는 것 이 유행이 다. 옷색깔에 맞추어 양란으로 코사지를 만들어 꽂고 가변 화사해 보일 것이다. 꽃꽂이용 기물에 항상 신경을 써야하는데 우리의 백자수반이나 백자항아리를 이용하면 우리 도자기를 소개하는 기회도 되고 자연스럽게 대화의 화제가 되 어 여러 변에서 도움이 된다. 꽃꽂 이 는 이제 토탈아트의 단계에 이르렀다. 인간 이 꽃을 사랑하는 마음은 어디서나 마찬가지여서, 섬 세하고 깔끔한 기교를 보여주는 동양적인 꽃꽂 이 와 양적으로 풍부하고 대범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서양적 인 꽃꽂이를 함께 배워 꽃처럼 아름답게 살고 싶다. 1 9li년 강용중외신관부인 일본,영국에서생활 89

생활정보 한복의 맴시 한국여성의 미는 싸고 싼 갚은 곳에서 은은히 풍 겨나오는 데에 있으므로 한복을 입을 때는 속적삼, 속바지, 속치마를 갖추어 입도록 한다. 이 때 절대 속 옷이 보여서는 안되므로 속바지는 속치마보다 5cm 짧게, 속치마는 겉치마보다 3-5cm 짧게 입는다. 속옷 외무부 부인선교회는 1990년 7월 5일 외교협회에서 가예원 원장 설옥자씨를 초빙하여 전통다도와 한복 의 예절에 대한 강의를 가졌다. 上 記 기사는 그날의 강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은 모두 흰색으로 하며 속치마 끝에 레이 스를 단다 든지 패티코트를 입는 것은 좋지 않다. 특히 여 름철 에는 꼭 속적삼을 입어 겉저고리에 땀이 배어나오지 않도록 한다. (모시 속적삼이 시원해서 좋다.) 겉치마를 입을 때는 먼저 왼쪽 말기끈을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넣어 치마자락이 왼쪽으로 가도록 한다. 말기끈을 앨 때는 리본으로 매지 말고, 양쪽 말 기끈을 두손으로 꽉 잡고 말기를 고르게 하고 한번 맨 다음 서로 반대편 끈 밑으로 꼬아 끼우면 앞이 편편하여 모습이 예쁘다. 옷고름은 키가 큰 사람은 넓게, 작은 사람은 좁게 하고 고름을 매었을 때 양쪽 고름의 길이는 l-l.5cm 차이가 나고 치마 끝에서 30cm정도 위에 위치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눈물고름(향대)에 수를 놓을 경우 연령에 맞게 30대 이전의 젊은 사람은 원앙이나 목 단을, 40대 이후의 사람은 난이나 죽, 십장생 등을 수 놓는 것이 어울린다. 장신구는 조상께서 물려주신 것을 가슴사이 심장 의 위치에 장식했다가 자식에게 대물림하여 가문의 맥을 잇는다는 우리 전통 생활신앙이 깃든 노리개를 단다. 노리개가 무거운 것은 치마끈에 끼우고 가벼운 것은 옷고름 에 끼우기도 한다. 목걸이는 독특한 미를 나타내는 동정과 안 어울리므로 하지 말고 귀걸이를 할 경우 늘어지지 않고 귀에 붙는 작은 것을 택한다. 버선은 기장이 긴 것이 좋고 선을 때 중심선이 발 등에서 약간 안쪽으로 가게 신으면 발이 아프지 않 다. 신발은 고무신을 신는 것이 예의에 맞다. 한복의 미를 더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 길을 때는 왼팔을 쭉 펴서 치마자락을 잡 고 겨드랑이 밑을 약간 앞으로 당긴 뒤 치마를 추려 고정시켜야 뒷모습이 예쁘다. 몸은 뒤로 젖히지 말고 앞으로 약간 숙인듯 다소곳 해야 한다. 보폭은 locm 정도가 알맞으며 고무신 코끝으로 치마끝을 살짝 차 듯이 걷는다. 차에 탈 때 고름이 문틈에 끼거나 차마자락을 주 체하지 못할 때가 많다. 이 때는 우선 옷고름을 오른 손으로 잡고 왼쪽으로 가지런히 모은 뒤 왼손으로 치마자락을 잡아당겨 옷고름을 치마자락 속으로 넣 고 치마 뒤를 꼭 여며 정리되게 해서 앉으면 구겨지 지 않는다. 식사시 의자에 앉을 때는 치마자락을 자 연스럽게 위로 추려 치마끈에 끼워넣고 앞은 판판하 게 정리하고 옷고름은 그대로 늘어뜨린다. 고운 한복의 다소곳한 자태는 다른 어떤 홍보보다 도 한국을 가장 아름답게 알렬 수 있는 한 방법이며 또한 우리의 전통을 바르게 지킨다는 의미에서도 중 요하다. 90

@ 한쪽 소매를 접은 위에 종이말이를 놓는다. @ 다시 소매를 접어서 가지런히 정리한다. @ 치마 끝을 맞추어서 3번 접는다. @ 종이말이를 놓고 한쪽올 접은 후 다시 종이말이를 놓는다. @ 가지런히 정리한다 외국여행을 할 때 한복을 구겨지지 않게 보관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이 때는 못쓰는 달력등 으로 4개정도의 종이말이를 만들어서 갖고 간다. 1991 년 3월에 외교등 제 2권 제 1호가 발간될 예정입니다. 뭇 있는 분들의 적극적 호용율 바랍니다. 원고모집 안내 내용 : 시, 수뭘, 기행문, 풍물기, 문화예술에 관한 논고 만화동 마감일 : 1900년 12월 15월 제출처 : 외교 燈 편집실 (외교안보 연구원 내) 91

생활정보 관저의 실내장식 공관장 부인으로서 관저를 품위있고 운치있게 꾸 미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일반적으로 실내장식 같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구 선택에 신중한 배려가 요구된다. 가구를 장만할 경우 옷을 고를 때처 에 있어서 우리에게는 우리나라 고유의 건축구조와 럼 한눈에 예쁜 것이라고 택하면 후회하게 된다. 가 생활양식에서 온 핸디캡이 있다. 예컨대 한옥 에 는 넓 구는 옷과 달리 몇년을 계속 사용하는 물건이라는 은 벽이 없다는 점이다. 점과 또 이미 있는 가구와의 조화를 고려해서 선택 그러나, 관심을 갖고 기본 지식을 익혀 응용해 가 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되도록 형태나 면서 견문을 넓히면 적은 예산으로도 멋진 실내장식 을 할 수 있다. 색깔이 중간색인 것이 무난하다.선에도 유의해서 가 구, 테이블, 의자들의 다리가 곡선이든 직선이든 되 제일 기본이 되는 것은 공간 개념을 갖는 일이다. 도록 통일감을 이루도록 한다. 그러나 한두개 액센트 어느 한 부분만이 아니라 공간 전체를 활용하여서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도록 꾸며야 한다. 천정의 양들 리에, 벽의 그림들, 바닥의 카페트, 창문의 커텐 등이 가구, 장식품들과 서로 어울려져 보기에 좋은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건축양식이 고전적인가, 현대적인가에 따라서 뻐 ditional, ntemjxlrary 또는 혼합형 중에 어떤 스타일 의 장석을 할 것인가를 정한다. 건축양식이 현대식 이 고 천정이 낮은 방을 바로크풍의 육중하고 화려한 가구들로 꾸민다변 아주 거북스러운 분위기가 될 것 이다. 대부분의 관저 건축양식이 서구식이어서 한국 가 구나 장식품을 놓을 때에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 로 놓는 an tjque가구는 예외가 될 수도 있다. 커텐은 방 전체의 색조와 어울려야 하고 패턴을 잘 선택해야 한다. 소파에 씌운 천과 같은 것으로 커 텐을 하는것도 좋다. 벽지는 역 시 방 분위기를 잘 살릴수 있는 어울리는 색깔을 택한다. 그림은 방 전 체의 분위기에 맞는 것으로 택하고, 위치는 눈 높이 에서 약간 내려 거는 것이 안정감을 준다. 벽변의 크 기에 맞도록 그림크기를 고려하고 벽면이 가로가 길 연 그림도 가로가 길고, 벽면이 세로가 길변 그림도 세로가 길게 택하여 건다. 그림의 틀도 신중하게 택해야 하는데 가구의 틀과 잘 어울리는 것으로 해야 한다. 그림은 조명이 중요 함으로 그림램프를 사용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양보 다. 아무리 좋은 물건들 이 라 해도 너무 여러개 이 곳 다 질을 생각해서 다만 몇개라도 값지고 좋은 그림 저곳에 진열해 놓으면 방 전체의 조화를 깨뜨려 역 효과를 보게 된다. 되도록 간단하게 꾸미는 것이 실 내장식의 요령이다. 주재하고 있는 나라의 전통문화, 예술, 자연환경도 참작해서 응용하면 좋은 효과를 볼 수있다. 공관이라는 특이한 상황에서 전 후임자의 취향이 을 걸어야 방 전체의 품위를 높일 수 있다. 上 記 기사는 1990년 6월 26 일 외교안보연구원에서 신잉 공관장 부인들을 위한 임명진대사의 강의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임대사님께서는 관저의 선택, 국내미술품의 구입 시, 조언을 청하연 기꺼이 응해주실 것이다. 92

Herbs at Home Herbs have been valued for their medicinal and cosmetic properties for centuries. In recent times, modern science made these uses seem outmoded for a while. Now the pendulum has swung back again towards a more natural approach to health and beauty. Another important use of herbs these days is in their culinary value. A few leaves of fresh sage increase the flavour of meat and game dramatically, and a handful of chopped mint leaves sprinkled on a bowl of corn soup is refreshing enough to cool off any hot summer day. The most marvelous property of herbs is that these are among the easiest plants to grow and, once established in their place, need little attention. With a little gardening knowledge, patience and an interest in herbs you can not only make a charming addition to your garden, but have an elemental pleasure by harvestin~ and drying fragrant herbs and then making delicious stuffings for poultry and fragrant tea for visiting friends. Some complain about the lack of space for growing herbs. Though a well-kept herbal garden is the pride of any homemaker, a few pots of parsley or spearmint hung on a sunny kitchen windowsill will be a delight to your eyes and nose. Nowadays many dried herbs are readily available in supermarkets and health shops in most western countries. Though it is infinitely more satisfying to grow your own, these health shop herbs are quite passable in making herbal tea or fragrant water to soothe your skin. 93

parsley Parsley is probably the best known of all the herbs and the one most widely used. In the kitchen parsley has many uses, in soup and stuffings, with fish and finely chopped in salads, with vegetables or simply used as a garnish. Parsley is rich in Vitamins A, B and C and should be part of a healthy everyday diet. It has a mild savoury taste and has the ability to soften or disguise other harsher flavours. It is particulariy use ful in banishing the flavour of garlic-either mixed with it or eaten later on its own. For cooking, parsley is mostly used when fresh picked but it can be successfully dried for winter use. It is always used dried for parsley tea. To make parsley tea, pour 1 cup of boiling water over 2 teaspoons chopped parsley and leave to infuse for 5 minutes then strain. Parsley also contains slight bleaching properties and can be used on a regular base to f ade f reckles. The JUJce freshly squeezed each day can be dabbed on to the freckles and allowed to dry. Parsley helps to combat oily skin, especially if mixed with yoghurt. To make a face pack, make a strong infusion by pouring a cupf비 of boiling water on to 2 hand fuls of parsley. Strain and leave to cool a little before mixing it with the yoghurt. The mixture must not be too liquid. Cleanse the f ace and thinly brush the pack over the skin, avoiding eyes and neck. Relax for 15 mmutes. Remove the face pack with warm water. The botanical name given to sage comes from the Latin salvere meaning to be well and refers to the healing properties of the herb. Sage was widely used to steady the nerves and was said to sharpen the wit and the brain. In the kitchen, sage is perhaps best known in sage and onion stuffing, used with pork and rich poultry such as duck and goose. Sage can be added to soups and meat casseroles and put in the water when poaching fish. A fresh leaf gives a good flavour when added to apple JUJce and other summer drinks. A cup of sage milk can be very effective in helping to ward off a cold. To make sage milk, pour a teacupf비 of boiling milk on to 2-3 whole sage leaves and leave to stand for 5 minutes. Strain and drink hot at the first symptoms. A decoction of sage can equally well be used as a gargle for throat infections. To make a decoction ; pour 2 cups of water on to a handful of chopped sage leaves in an enamel pan. Bring to a boil and simmer for 10 minutes. Remove from the heat and leave to stand for a further 10 minutes. Strain and use the hot decoction to gargle until relief is obtained. 94 sage

thyme Thyme is an aromatic evergreen per ennial herb with small, dark green leaves growing densely on short stalks along woody stems. A net -like bushy plant, thyme grows up to 9 inch high, tiny pale mauve flowers appearing on whorls at the top of the stems. The herb flowers in July. In the kitchen every bunch of herbs used to flavour meat casseroles, soups and sauces, should contain a sprig of thyme. It is often used in stuffings for poultry and adds a pleasant flavour to meats and some fish when u..sed in cooking. At home thyme tea is a pleasant drink and is helpful for digestive upsets, loss of appetite and exhaustion. To make the tea, pour 1 cupful of bóiling water on to 2 tea spoons of thyme. Leave to infuse for 5-10 minutes. Warm tea will help to dispel a headache if taken immediately after the symptoms appear. There are many different varieties of mint which can be grown, but the flavour and scent of the fresh picked garden mint is best of all. In the kitchen, both fresh picked and dried mint are used in many different ways. It is delicious when added to vegetables, such as peas and beans, carrots and potatoes, or to pea soup and poached fish or chicken. Mint syrup is an unusual flavour in fruit salad and mint ice cream has a refreshing cool taste. Garden mint is added to fruit JUlce and adds an excellent flavour to punch ; iced mint tea with a slice of lemon and sweetened with a little honey is a refreshing drink for summertime. Fresh crushed mint leaves can be used in the form of a compress to relieve a bad headache. Pound the leaves to a pulp either by hand or in an electric blender, adding a little water. Spread the pulp on to a piece of muslin and lay it over the forehead and temples. Leave for 15-20 minutes or until the compress is warm. marjoram In ancient times marjoram was used in the preservation of meat for its disinfectant quality. In the kitchen sweet marjoram, with its aromatic taste is often rubbed onto meat before roasting to add a delicious flavour. It can be used in small amounts in soups, casseroles and vegetables. It is a fairly strong herb and needs to be used in moderation to bring out other flavours and not to overwhelm them. For medicinal purposes, ground dried mar- 95

joram can be used in the form of snuff, clearing the nose by inducing sneezing, for a stuffy nose or congestion. Taken in the form of tea, sweet marjora m is an effective herb for colds and sore throats. To make mar joram tea, pour 1 c upf비 of boi ling water on to a small handf비 of fresh marjoram leaves. Leave to infuse for 5-10 minutes then strain and serve hot. The flavour is improved if a few mint leaves are added and it can be sweetened with honey. A pleasant way to ease rheumatic pains is to pick fresh marjoram leavbs, warm them up between 2 plates over a pan of boiling water, and apply them directly on the affected area. rosemary Rosemary is a herb very well known in the kitchen for both sweet and savoury dishes. It is most commonly used with lamb, but it adds a delicious flavour to other roast meats and poultry. Rosemary is added to chicken soup and vegetable broths and gives a subtle taste to omelettes and scrambled eggs. It imparts an unusual fresh flavour when added to fruit salads. Rosemary is a strong herb and should be used lightly in cooking. The leaves a nd flo wering tips are the parts of the shrub used in the home. The leaves for drying are taken from the stems before the flowers appear. The flowering tips a re cut when the fl owers are full y open. To make rosemary tea, pour 1/ 2 cupful of boiling water on to 1 teaspoon of dried herb, leaves or flowering tips. Leave to infuse for 5-10 minutes, then strain and add honey to sweeten. Drink it warm and make fresh each time. Rosemary tea, a llowed to cool, makes an effective mouth wash for those suffering from bad breath. Dried rosemary leaves and flowering tips can both be added to a potpourri containing many other herbs. Its strong scent mingles well with a ny herb mixture and helps to cleanse the a ir in a stuffy room. Dandelion is an extremely we ll -known plant with its brilliant yellow flower. In the kitchen, young dandelion leaves add relish to salads, ma ke tasty boi led vegetable dishes and unusual soups. For a deliciously crisp salad that can be served as a starter or side dish, take 4 good handfuls of washed and sliced dandelion leaves and mix with the following ingredi ents: 6 slices crisply cooked bacon cut into strips, 2 slices cubed bread that has been fried in butter and garlic, 3 tablespoons oli ve or vegetable oil, 1 tablespoon vinegar, salt and freshly ground black pepper. Place all the ingredients into a large bowl, toss gently together and serve.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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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i( 편집후기 외교 燈 제 2호가 세상 빛을 보게되니 창간호를 받아볼 때와는 또 다른 감회가 듭니다.! & x m 성 \이 성 외교 燈 이 외무부나 주재관 식구들에게는 마치 자신들을 거울에 비 추 어 보는 듯 했고, 외부 사람들에게는 모르고 있던 사실을 알아내는 듯한 호기심과 외교관 생활의 일면을 엿볼수 있는 재미 를 불 러 일으켰다고 합 니다. 우리들의 글이 직업작가들의 그것과는 달라서 솜씨가 서 투르고 미 숙한 점도 많이 있겠으나 세계 각처에서 경험한 다양한 소재를 소박하고 진지하게 표현한 글들입니다. : 성 녕 - @, ι 국내외 각계 각층에서 많은 격려의 말씀을 보내주신 분들과 외교 燈 을 위하여 광고까지도 사양 않으시고 선뜻 응해주신 후원자들께 사의 를 표합 니다. 해외 또는 국내에서 바쁜 생활을 하면서도 정성스레 원고를 써 보 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 리며 앞으로도 계속 숨은 인재 들의 많은 참여 를 바랍니다. 바쁘신 시간을 할애하시어 원고를 보아주신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의 이 상억교수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 리며, 이 기회에 앞으로 기고하여 주실 분들을 위하여 이 교수님의 조언의 말씀을 소개합니다. 먼저 글을 쓰 기 전에 무엇을 쓰고저 하는지 문단으로 나누어 구상하고, 되도록 짧은 문장 으로 끊어 쓰는것이 전문가가 아닌 아마추어 작가들이 쉽게 쓸 수 있는 길이라고 합니다. 이 점을 창고하여 앞으로도 계속해서 많이 써 보내주셔 서 다음호에도 원고가 념칠 수 있게 되기 를 바랍니다. 었 성 \ 원 편 집 : 이 우 경 ( 장만순 교수부장 부인 ) 한 돈 자 ( 현희강 대사 부인 ) 이 경 애 ( 김삼훈 통 상 국장 부인 ) 성 우 인 (이 준희 서구 1 과장 부인 ) 미 술 : 이 정 혜 ( 이정빈 제 1 차관보 부인 ) 황 혜 경 (이수혁 동구 1 과장 부인 ) 김 정 은 ( 조정원 사무관 부인 ) 광 고 최 상 경 ( 최 대 화 국 제 경 제 국장 부 인) 정 김 영 자 ( 나 원찬 1 구주국장 부인) ι μs ~-Qι K,-æ, 잉1ι 녕성앉'/.ß,,;:(<,...:c.. V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