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음양사(陰陽師) 와 겐지 모노가타리(源氏物語) 의 시대* 25) 26)김수 희** kshfolo417@hanmail.net Contents 1. 서론 2. 본론 2.1 영화 음양사 의 주저음 2.2 음양사 (東宝, 103分, 2001) 2.3 음양사(陰陽師) 와 겐지 모노가타리 3. 결론 Abstract 1988年発表された夢枕獏氏の 陰陽師 シリーズの成功は 以後現在まで続く空前の晴明 ブームへの火付け役となった 以後 大ヒットした岡野玲子氏のマンガ本のみならず 陰 陽師 あるいは 安倍晴明 関連本が相次いで出版され 正確にカウントできないほどの晴明 本が世にあふれている状況である 一連のブームの頂点に達しているのは 2001年10月に公開された映画 陰陽師 であると いえよう 観客動員220万人 興行収入32億円という驚異的な大ヒットを記録したこの映画 は 豪華キャストや俳優たちの熱演でも話題を引き起こした 何よりも評判だったのは 主 人公の安倍晴明役に狂言師野村萬斎が抜擢されたことである 原作者夢枕獏氏の強力な推 薦によってなされたこの大抜擢は結果的に大成功し 野村萬斎は狐の子と噂される晴明の神 秘的な雰囲気を見事に表現し 彼以上の晴明はありえないという評判を受けるようになっ た 伊藤英明 小泉今日子 今井絵里子 真田広之 柄本明など 共演者の豪華な顔触 れも話題になった 本稿は 平安時代に実在した陰陽師安倍晴明を取り扱ったこの映画を通して 平安時代 の文化に接近し なおそれを平安時代の屈指の古典文学である 源氏物語 と比較しながら考 えてみたいと思う というのは 安倍晴明と藤原道長に関連する説話が端的に示しているよ * 이 논문 또는 저서는 2007년 정부(교육인적자원부)의 재원으로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KRF-2007-362-A00019) ** 고려대학교 일본연구센터 HK연구교수.
日本研究 ୪ うに 安倍晴明が活躍した時期はまさに 源氏物語 が世に現れた時期と関わり深く 陰陽 師の活躍が平安貴族社会に及ぼした影響には計り知れないものがあるからである 実際 源 氏物語 の随所で 陰陽道との顕著な関わりが確認されるのみならず 時代的な背景にもお 互い相応している個所が少なくないと思われる 本稿では 映画 陰陽師 を生み出す土台となった晴明ブームや 映画の具体的な展開を 検討し さらに 源氏物語 の内容と比較しながら 映画の様々な問題について考えてみるこ とにする これを通して大衆文化としての 平安もの に対する理解を深めると共に 源氏物 語 を文化論の側面から捉え直してみたいと思う Key Words : 映画 陰陽師 源氏物語 物の怪 Դ 1990년대 일본 문화계를 강타한 고전 관련 콘텐츠 중 하나에 음양사(陰陽 師) 가 있다. 본격적인 시발점이 된 것은 베스트셀러 작가 유메마쿠라 바쿠(夢 枕獏)에 의해 1988년 시리즈 첫작품으로 나온 음양사(陰陽師) 의 대성공이었 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것은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고 할 수 있 다. 이와 관련된 만화, TV드라마, 영화 등의 형태가 범람하면서 이른바 음양사 붐 이 그 극에 달하였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작품으로 2001년 일본에서 흥행했던 영화 음양사 를 들을 수 있 다. 10억엔에 달하는 막대한 제작비나, 노무라 만사이(野村萬斎)를 비롯한 초호 화 캐스팅으로도 화제가 된 이 작품은, 기존의 오밀조밀한 일본영화와는 일선을 긋는, 이른바 대표적 블록버스터라고 할 수 있었다. 화려한 CG를 통해 구현된 SF판타지 세계는 강렬한 느낌의 독특한 세계를 구현하였고, 흥행 면에서도 성 공적이어서 일본 국내에서만 관객 220만명을 동원하며 32억 엔의 흥행수입을 올리는 쾌거를 기록하였다. 잔치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편의 배우와 스태프 들이 다시 모여 2년 후 전작을 뛰어넘는 제작비 12억 엔의 블럭버스터로 음양 사2 를 제작하기에 이르렀고, 이 작업에는 음양사 붐 에 불을 지폈던 원작자 유 메마쿠라 바쿠씨도 직접 참여하여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일본판 퇴마록이라 할 수 있는 이 영화는 한국에서는 흥행에 참패하
ઽฃ ଣઑॷ 陰陽師 ڋ ԧ ࠤ 源氏物語 ଭ ਏ 였다. 영화를 이해하는 데에 반드시 필요했을 헤이안 시대(平安時代)나 음양사 등에 관한 지식이 너무 부족했고 정서적으로도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는 역으로 헤이안 시대나 음양사에 대해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는 점을 드러내기도 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영화의 곳곳에는 헤 이안 시대에 대한 이해 없이는 파악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문화적 요소가 현저히 드러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비학문적 세계에 있어서의 문화적 현상 에 대해 학문적 세계로부터의 발신 의 중요성이 날로 더해가고 있는 가운데,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문화적 요소에 대한 학계의 뒷받침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필요시 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른바 과열된 붐 한가운데 조성된 잘못된 일반상식도 포함되어 유 통될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비학문적인 세계와의 소통 이라는 측면에서, 음양사, 혹은 헤이안 시대 라는 코드가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커다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에 대해 학문적으로 고찰해야 할 필요성이 더 더욱 절실해졌다고 할 수 있다. 본고는 이상과 같은 사회적 학문적 필요성을 인식하며, 헤이안 시대의 실존 인물인 음양사 아베노 세이메이를 다룬 이 영화를 통해 헤이안 시대에 대한 접 근을 시도하고, 아울러 이를 일본 굴지의 고전문학 작품인 겐지 모노가타리(源 氏物語) 와 비교검토해 보고자 한다. 아베노 세이메이와 후지와라노 미치나가 (藤原道長)와의 관련 설화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듯, 아베노 세이메이가 활약 한 시대는 실로 겐지 모노가타리 가 창작된 시대와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으며, 음양사의 활약이 헤이안 귀족 사회에 끼친 영향은 너무나도 현저하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이 영화 음양사 의 바탕이 된 세이메이 붐 의 문화적 현상을 인식 하고, 그 바탕이 된 헤이안 시대에 대해 돌이켜 생각해보며, 영화의 구체적인 내용전개를 검토해 보고, 나아가 이를 겐지 모노가타리 의 내용과 비교하면서 각 분야에 있어서 간과되고 있었던 문제점들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日本研究 ୪ ઽฃ ଣઑॷ ଭ சୠଣ 2.1.1 헤이안 시대 - 화려한 귀족문화의 이면 일본판 퇴마록이라 할 수 있는 영화 음양사(陰陽師) 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 펴보기에 앞서, 영화의 전반적인 색채, 기조를 이루는 암울한 분위기에 대해 우 선 주목해 보고자 한다. 음양사 는 헤이안 시대의 실존인물인 음양사 아베노 세 이메이의 활약상을 그린 작품으로 일본의 헤이안 시대를, 사람과 귀신이 공존하 며 악령의 저주와 요괴의 출몰로 음울했던 시대로 파악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일본의 이른바 헤이안 시대(平安時代)는 큰 전쟁 없이 이름 그대 로 평안(平安)한 시대였고 화려한 귀족문화가 꽃피었던 왕조귀족시대라고 일컬 어지고 있다. 또는 견당사 파견의 중지와 히라가나의 확립이 상징하듯, 일본의 독자적인 문화가 확립된 시기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영화 음양사 뿐만 아니라, 사료적 가치가 높은 역사서 등을 들여다보면 최고귀족들 의 생활도 마냥 녹록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여실히 알 수 있다. 절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끊임없이 라이벌들을 배척해 가야했던 권력자들은 작렬하는 투 쟁 속에서 마침내 승리를 거두곤 했지만, 그들이 제거해 냈던 바로 그 원혼의 저주 때문에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다. 신분의 귀천을 막론하고 헤이안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가장 두려운 대상 은, 실존하는 천황도, 천황에 결코 뒤지지 않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 후지 와라씨(藤原氏)도 아닌, 죽은 자의 원령이었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왕위 계 승 등을 둘러싼 권력 암투나 그로인해 발생된 타살, 자살 등의 비극적인 사건 등에 관한 흉흉한 소문은 이런저런 사람들의 입을 통해 널리 퍼졌을 터이고, 권 력 투쟁 과정에서 희생된 자들의 원혼이 살아남은 사람들을 저주한다고 믿는 미신이 팽배해 있었다. 삼라만상을 통달하고 이계와 현세를 넘나들며 귀신과 원령들을 신비로운 주 술로 다스리던 음양사가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러한
ઽฃ ଣઑॷ 陰陽師 ڋ ԧ ࠤ 源氏物語 ଭ ਏ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2.1.2 원령의 출현과 헤이안 천도 헤이안 시대를 연 것은 간무천황(桓武天皇)의 헤이안(平安) 천도였지만, 구 습을 타파하고 새로운 기강확립을 도모하고자 했던 천도 또한 원령에 대한 공 포와 결코 무관하지 않았다. 781년 즉위한 간무천황은 두 번에 걸쳐 천도를 단행한 바 있다. 첫 번째 천도 는 784년 나가오카쿄(長岡京)로의 천도로 이는 오사베 친왕(他戸親王)과 그 모 친 이가미 내친왕(井上内親王)의 폐위와 죽음으로 이어지는 비극적인 사건과 연 관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고닌천황(光仁天皇)의 부인이자 쇼무천황(聖武天皇) 의 황녀(皇女)였던 이가미 내친왕(井上内親王)이 황후로 책봉되고 이듬해에는 황후 소생의 오사베 친왕(他戸親王)이 황태자로 책봉된 바 있었다. 즉 백제계의 모친을 둔 야마베 친왕(山部親王), 즉 간무천황이 아닌, 쇼무천황(聖武天皇)의 황녀인 모친을 둔 오사베 친왕(他戸親王)이 천황예정자로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이 두 사람은 주술로 남을 저주하려 했다는 이유로 폐위 유폐 되고 마침내는 같은 날 의문의 죽음으로 생을 끝마치게 된다. 폐위된 오사베 친 왕을 대신하여 황태자로 등극한 후 마침내 즉위한 간무천황은 구세력의 저항이 여전한 헤이죠쿄(平城京)을 버리고 나가오카쿄(長岡京)로 784년 천도하였다. 그러나 다음해인 785년 9월, 나가오카쿄 천도를 총괄 지위했던 간무천황의 총신 후지와라노 다네쓰구(藤原種継)가 암살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간무는 이 사건을 이용해 황태제(皇太弟)였던 사와라 친왕(早良親王)을 실각시킨다. 쿠데 타 사건의 배후에 당시의 보수 세력을 대표하는 최고 명문 오토모씨(大伴氏)에 의한 사와라 친왕의 옹립이 있었다는 이유였다. 사건의 진상이 불분명한 채 구 속된 왕자는 아와지시마(淡路島)로 유배가는 도중에 죽었다고 전해진다. 또다 시 왕권 쟁탈과 관련된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특히 사와라 친왕의 경우는 간무천황과 어머니를 같이하는 형제로서 그 원령 이 오랫동안 간무를 괴롭힌다는 점이 주목된다. 일례로 간무 천황 주변의 인물 들에게 불행이 닥치기 시작한다. 788년 간무의 부인이자 후일 쥰나천황(淳和天 皇)가 되는 오토모 친왕(大伴親王)의 생모 후지와라노 다비코(藤原旅子)가 30
日本研究 ୪ 세의 나이로 죽고, 다음해에는 간무천황의 모친 다카노노 니가사(高野新笠)가 죽고, 다음해인 790년에는 후일의 헤이제이천황(平城天皇)이 되는 아테 친왕 (安殿親王)과 사가천황(嵯峨天皇)이 되는 가미노 친왕(神野親王)을 낳은 후지 와라노 오토무로(藤原乙牟漏)가 3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런 사태에 대해 사와라 친왕의 원령의 저주라는 흉흉한 소문이 암암리에 퍼져 일본기략(日本紀略) 에 의하면,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점을 쳐 본 결과 사와라 친왕의 저주라는 것이 판명되어 아와지시마의 친왕의 무덤에 사자를 보 내 그 영혼에게 용서를 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1). 영화 음양사 는 이러한 사와라 친왕의 원령에 대한 공포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2.1.3 유메마쿠라 바쿠(夢枕獏)와 음양사(陰陽師)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음양사 는 1990년대 일본 문화계를 주도한 고전 관련 콘텐츠 중 하나로, 유메마쿠라 바쿠씨의 일련의 작품뿐만 아니라, 오카노 레이 코(岡野玲子)씨의 만화를 비롯한 각종 세이메이본(晴明本)이 범람하면서 10년 이상 음양사 붐 을 지속시키고 있다. 넘쳐나는 세이메이 관련 출판물들은 정확 한 양적 규모를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였고, 이를 바탕으 로 한 영화, TV 드라마, 각종 극문화 등이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급기야 는 세이메이와 관련된 교토의 세이메이 신사(晴明神社)에 관광객이 쇄도하면서 교토의 중요 관광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거대한 광맥을 형성하고 있는 음양사 는 고도의 상품성을 지닌 신선한 콘텐 츠인 것이다. 참고로 음양사 붐 에 직접 불을 지핀 것은 유메마쿠라 바쿠씨의 소설이 틀림없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 아베노 세이메이 붐의 밑바탕이 된 것으 로 지적되는 작품 또한 없지 않다. 예를 들어 다나카 다카코(田中貴子)씨는 1980년대 등장해서 곧바로 영화화되기도 했던 아라마타 히로시(荒俣宏)씨의 데 이토 모노가타리(帝都物語) 가 아베노 세이메이 붐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지적 하고 있고, 시게타 신이치(繁田信一)씨는 오기노 마코토(荻野真)의 연재만화 공작왕(孔雀王) 도 세이메이 붐의 융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지적하 1) 헤이안 천도와 관련된 원령의 공포에 관해서는 후지와라 가쓰미(藤原克己)씨의 菅原道真 (ウェッジ 2002)의 내용에 시사 받은 바가 많으며 많은 부분을 인용하고 있다. pp.18 49
ઽฃ ଣઑॷ 陰陽師 ڋ ԧ ࠤ 源氏物語 ଭ ਏ 고 있다2). 특히 시게타씨는 이 작품의 주인공은 퇴마사로서의 사명감에 불타는 밀교승으로서 그 라이벌의 한사람이 시키가미(式神)를 조정하는 주술사였고, 이 작품에 의해 시키가미라는 것이 널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판단된다는 점에서 공작왕 도 세이메이 붐에 끼친 영향이 적지 않다고 파악하고 있다. ଣઑॷ 東宝 分 2.2.1 작품개요 및 장르 베스트셀러 원작에 의한 영화 음양사 (東宝, 103分, 2001)의 메가폰을 잡은 것은 비밀(秘密) 등으로 우리나라에도 비교적 알려진 다키타 요지로(滝田洋二 郎) 감독이었다. 주요 출연진으로 아베노 세이메이 역에 노무라 만사이, 미나모 토노 히로마사(源博雅) 역에 이토 히데아키(伊藤英明), 도손(道尊) 역에 사나 다 히로유키(真田広之), 미쓰무시(蜜虫) 역에 이마이 에리코(今井絵里子), 아오 네(青音) 역에 고이즈미 교코(小泉今日子), 후지와라노 모토카타(藤原元方) 역 에 에모토 아키라(柄本明), 사와라 친왕(早良親王) 역에 하기와라 마사토(萩原 聖人) 등, 초호화 캐스팅이 돋보인다. 단연 이목이 집중된 것은 세이메이 역으로 전격 발탁된 교겐시 노무라 만사 이였다. 가부키, 노(能), 분라쿠(文楽) 등과 더불어 일본의 대표적인 전통예능의 하나인 것이 바로 교겐(狂言)이다. 교겐 세계의 황태자인 노무라 만사이는 전통 예능 속에서 배양된 독특한 발성, 자신감 있는 표정, 강렬한 존재감, 날아갈 듯 가벼운 발걸음 등으로, 마치 실제로 헤이안 시대로부터 아베노 세이메이가 튀어 나온 듯 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최상의 캐스팅임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만 큼, 화면을 압도했다고 할 수 있다. 시종일관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던 노무라 만사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본격적으로 여장을 하고 나와 요염한 자태로 일본의 전통 춤사위를 선보이고, 이에 대한 호평이 이어져, 이후 음양사2 에서 는 영화 중간에 이러한 장면이 비교적 길게 삽입되기도 하였다. 상대역으로 나온 미나모토노 히로마사 역의 이토 히데아키는 인간과 여우사 2) 繁田信一 安倍晴明 陰陽師たちの平安時代 吉川弘文館 2006 p.3
日本研究 ୪ 이에서 태어났다는 신비로운 캐릭터 세이메이와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매우 인간적인 캐릭터로 영화의 현실감을 더하고 안정적인 스토리 전개에 일조했다 고 할 수 있다. 도손의 역할을 맡은 사나다 히로유키는 일본을 대표하는 미남배 우임에도 불구하고 선이 굵고 박력있는 악역을 펼치며 이토 히데아키와는 다른 의미에서 아베노 세이메이와 대칭을 이루고 있다. 아오네 역의 고이즈미 교코나 사와라 친왕 역의 하기와라 마사토 등도 지명도나 실력 면에서 설명이 필요 없 는 일본 최고의 명배우이다. 캐스팅 면에서 다소 아쉬운 역할은 아베노 세이메이의 시키가미(式神)인 미쓰 무시로 나온 이마이 에리코였다. 시키가미란 음양사들이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정령, 귀신의 총칭으로, 우지슈이 모노가타리(宇治拾遺物語) 등의 설화작품을 보면, 아베노 세이메이는 시키가미를 매우 잘 다루던 음양사로 표현되고 있다. 참고로 헤이안 시대의 음양사가 사용했다고 하는 여러 주술 가운데 현대인이 가장 관심을 보이는 것 중 하나가 시키가미를 조종하는 기술이다. 단, 아베노 세이메이는 시키가미를 자기 뜻대로 조정하는 초능력자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아베노 세이메이가 시키가미를 사용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확실한 기 록은 없다고 한다3). 원작에서 다소 벗어나 영화 속에서 새롭게 조형된 미쓰무시는 세이메이가 지 니고 있는 음양사로서의 능력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비중 있고 의욕적인 캐릭터 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중요 역할에 발탁된 것이 바로 이마이 에리코였다. 오 키나와 출신 여성4인조 그룹으로 1990년대 후반을 풍미한 스피드(SPEED) 의 메인보컬 출신이다. 이마이 에리코는 그 지명도만큼이나 음양사 출연이 화제 가 되었지만, 별들의 전쟁 을 방불케 하는 화려한 캐스팅 속에서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공전의 겐지 붐 을 타고 2001 년 12월 15일 개봉된 영화 천년의 사랑 Genji(千年の恋 Genji, 해외명) (원제 千年の恋 ひかる源氏物語 )가, 요시나가 사유리(吉永小百合), 아마미 유키(天 海祐希), 도키와 다카코(常盤貴子), 와타나베 겐(渡辺謙), 마쓰다 세이코(松田 3) 繁田信一 陰陽師と貴族社会 吉川弘文館 2004.2 p.33
ઽฃ ଣઑॷ 陰陽師 ڋ ԧ ࠤ 源氏物語 ଭ ਏ 聖子) 등의 초호화 배역과 14억엔이라는 일본 영화답지 않은 제작비 에도 불구 하고, 흥행이나 평가 면에서 저조한 결과를 거둔 것에 비해4), 음양사 의 경우는 2001년 최고의 흥행작(애니메이션 제외)이라는 성과와, 무엇보다 음양사2 가 연 이어 만들어질 정도로 탄력을 받았다는 점이 그 분위기를 전해준다고 할 수 있다. 장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세이메이 세력과 요괴 군단이 싸우는 장면은 SF액션물, 화면 여기저기서 등장하는 원귀들의 출현이나 생령(生霊) 등은 스릴러 호러, 헤이안 시대로 간 해리포터라고 표현할 수도 있 을 정도로 마법에 가까운 주술을 선보이는 음양사라는 캐릭터는 환타지의 세계 를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2.2 스토리와 시대배경-음양사의 역할을 중심으로 한 에피소드 영화 도입부는 헤이안 천도, 즉 나가오카쿄로부터 지금의 교토로 수도를 옮 기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으며, 본격적인 영화의 내용은 헤이안 천도로부터 약 150년 후인 헤이안 시대를 배경으로 전개되고 있다. 다음과 같은 내레이션을 통해 음양사의 역할과 헤이안 시대의 시대배경을 우선 전하고 있다. #(내레이션) 헤이안 시대. 인간과 귀신이 공존했던 시대. 어둠 속에 숨어 지내던 귀신과 요물들은 그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파고들어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귀신들은 때론 나타나 이빨을 드러내며 보는 이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이러한 귀신과 원령을 세상의 이치로 다스리는 자들이 있었다. 궁정에 속하여 여러 가지 점술로 길흉을 점치고, 신불의 가호를 빌고 천체 관측, 달력 작성, 시각 측정 등의 일을 담당하며 삼라만상을 널리 통달하고 있는 자. 그들이야말로 어둠의 시대에 현세와 이계를 넘나들던 음양사라고 불리던 자들이었다. # 4) 졸고 영화 천년의 사랑 Genji 千年の恋 ひかる源氏物語 論 日本學報 2006.8에 자 세하다.
日本研究 ୪ 平安の時代 人と鬼とが共に生きていた時代 暗闇に潜みし鬼 魔物 アヤカシは それを恐れる人の心に忍び入り しっかりと息づいていた 鬼達は時にその姿を現し 牙を剥き 見るものの思いを揺さぶり掻き乱す これらの鬼アヤカシを世の理をもって制する者たちがいた 宮廷に属し 様々な占術で吉凶を占い 加持祈祷 天体観測 暦の作成 時刻の測定を司り 森羅万象にあまねく通づる者たち 彼らこそが闇の時代に現世と異界を駆け巡った 陰陽師と呼ばれるものたちであった 이상과 같은 음양사에 대한 설명 후, 직능으로서의 음양사의 역할이나 능력 을 구체적으로 입증해 주는 몇 가지 장면이 이어진다. 예를 들어 최고 지위에 있는 음양사인 음양두(陰陽頭) 도손이 각종 건축이나 수리 등에 있어서의 길흉 의 판단이나 방향선택 등에 일일이 관여할 뿐만 아니라, 성좌의 관측에 따라 미 래를 예언한다는 구실로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까지 개입하고 있다. 귀족들 의 생활이나 정치적인 활동 반경 속에 음양사가 매우 깊숙이 관여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어 음양사로의 세이메이의 신비한 능력을 나타내는 몇 가지 에피소드가 나 온다. 이는 세이메이의 상대역이라 할 수 있는 미나모토노 히로마사와의 만남과 신뢰형성을 축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영화 초반 관객을 영화 속으로 몰입시키는 데에 효과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주술의 힘이 뛰어난 세이메이에게 아름다운 나비의 목숨을 손을 대지 않고 빼앗아 보라는 주문이 내려지고, 이에 대해 세이메이가 나뭇잎을 날 린 후 주문을 외어 나비를 정확하게 반으로 갈라지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때마 침 그 광경을 직접 목격한 히로마사는 세이메이의 능력에 놀라면서도 죽은 나 비에 대한 안타까운 생각 때문에 한편으로는 불쾌하게 생각한다.5) 5) 源忠正 晴明 手を触れずにあの蝶の命を奪ってみよ 一度お主の術を見てみたいわ 博雅 忠正様 何もそのようなことを 見ればすばらしき蝶ではありませぬか 小野清麻呂 よいではないか どうせ季節外れじゃ
ઽฃ ଣઑॷ 陰陽師 ڋ ԧ ࠤ 源氏物語 ଭ ਏ 이런 와중에 가네이에(兼家)의 저택에서 소나무에 박이 열리는 해괴한 일이 생긴다. 지난 밤에 귀신과 마주친 가네이에(兼家)는 또다시 이런 일이 생기자 히로마사에게 아베노 세이메이를 불러줄 것을 간곡히 요청하고6), 히로마사는 나비를 죽인 사건으로 가뜩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던 세이메이를 달갑지 않은 마음으로 찾아가게 된다. 그런데 세이메이를 방문한 뒤 또다시 그의 신통력에 탄복하게 된다. 자신이 가네이에와 나눈 이야기나 자신의 혼잣말들을 모두 다 듣고 있었던 것이다7). 또한 세이메이가 죽였다고 생각했던 나비가 기실은 살아있다는 것을 알고 그 능력에 감탄함과 동시에 인간적인 신뢰감을 비로소 회복하게 된다8).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은 세이메이가 박에 걸린 주문을 푸는 장면이다. 주(呪) 라는 문자를 적은 표를 박에 붙이고 주문을 외우자 박은 기이하게 꿈틀거리며 晴明 罪なことをおっしゃられまする 源忠正 できぬのか 6) 兼家 どうか 安倍晴明を呼んできてくれ 博雅 しかし 兼家様 私は陰陽師という人種にどうも苦手で しかも晴明は人間ではないと噂されております 母親は狐で 子供の時から鬼の姿が 見えたとかも 兼家 噂に立つのはよほどすぐれた陰陽師だからであろう 7) # 晴明 これは博雅様 博雅 なぜ 私の名前を それに私がここに来ることを一体誰から聞かれた 晴明 一条戻橋の向うから何やらぶつぶつと呟いておられましたな 何故 私が行かねばなら ぬのだ と 博雅 聞こえたっていうのか 晴明 それほど私の顏は狐に似ておりまするかな 8) # 晴明 式神と申しまして 身の回りの世話をさせるには便利なものにございます 博雅 式神 まさかあの娘もその式神とやらかあ 晴明 あれなら 博雅様はもうお会いになっています 博雅 会っている 晴明 ええ 蜜虫 博雅 あ 殺めたのではなかったのか 晴明 その昔 空海和尚が長安より連れ帰ったとされる尊き蝶にござりまする 殺めるなど は畏れ多きこと まずは一献いかがですか 博雅 私は酒を飲みに来たわけではない お主に頼みがあってやってきたのだ 晴明 承知しております
日本研究 ୪ 이윽고 기회를 포착하여 세이메이가 박을 두 개로 가르자 안에서 검은 뱀이 나 타난 것이다9). 이 뱀을 따라가자 어느 다리 아래로 다다르게 된다. 다리 위의 작은 구멍 밑으로 내려간 뱀을 따라가 보니 거기에는 죽은 여성의 시체가 있었 던 것이다. 2.2.3 실존인물 아베노 세이메이 일본에서 음양사 가 두터운 마니아 층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신비한 힘을 지닌 전설적인 인물 아베노 세이메이가 가상의 인물이 아니라 역사상 실존했던 인물이라는 점에도 힘입은 바가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아베노 세이메이는 헤이 안 시대에 실존했던 음양사로, 후지와라노 미치나가(藤原道長)의 미도관백기 (御堂関白記), 후지와라노 사네스케(藤原実資)의 쇼유키(小右記), 후지와라 노 유키나리(藤原行成)의 곤키(権記) 를 비롯한 남성한문일기나 곤자쿠 모노 가타리슈(今昔物語集) 나 우지슈이 모노가타리(宇治拾遺物語) 등의 설화집에 서도 그 활약상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아베노 세이메이와 후지와라노 미치나가(藤原道長)가 관련 된 이야기는 상당하다는 점이다. 유명한 이야기가 상당히 많지만 예를 들어 설 화집 고콘초몬쥬(古今著聞集) ( 陰陽師晴明 早瓜に毒気あるを占ふ事 )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미도관백(御堂関白)라는 명칭으로 더 유명한 미치나가(道長)의 모노이미(物 忌み) 때문에 천태밀교계의 수도승 소조 간슈(僧正観修) 한의사 단바노 다다 아키(丹波忠明), 무사인 미나모토노 요시이에(源義家), 그리고 음양사 아베노 9) # 晴明 見事な瓜ですが この瓜には呪がかかっております 兼家 博雅 シュ 晴明 呪です (中略)博雅様 これが呪の正体です 何者かが呪によって瓜に忍ばせたの です 兼家 では 瓜を喰ろうていたら 晴明 この蛇が兼家様を腸から喰ろうていたでしょう 博雅 やはり鬼の仕業か 兼家様 何か心当たりはありませぬか 兼家 馬鹿な 何故わしが祟られねばならん 晴明 それはこの蛇が教えてくれましょう 兼家 は
ઽฃ ଣઑॷ 陰陽師 ڋ ԧ ࠤ 源氏物語 ଭ ਏ 세이메이가 함께 모여 있었다. 이 때 나라 근방에서 참외가 바쳐지는데 모노이 미 중에 다른 곳에서 온 물건을 그냥 들일 수 없어서 아베노 세이메이에게 점을 치도록 시켰더니, 참외 중 하나에 독이 있다는 점괘가 나온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미치나가가 수도승에게 가호를 빌게 하자 바로 반응이 나타나 참외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이어 한의사가 참외의 두 곳에 침을 놓자 참외가 전 혀 움직이지 않게 되더니, 참외를 자르도록 명령을 받은 무사 요시이에(義家)가 칼로 참외를 자르자 참외 안에서 뱀 한 마리가 몸을 말고 있었다는 점이다. 요 시이에의 칼에 정확하게 목이 잘려 있었을 뿐만 아니라 두 눈에는 다다아키(忠 明)가 놓은 침이 꽂혀 있었다. 이 설화에서는 최고 권력자 미치나가를 둘러싼 음양사, 밀교 수도승, 한의사, 무사 등, 각각의 직능의 최고 권위자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인 것처럼 표현되고 있는데,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이것은 허구의 이야기이다. 시게타 신이치(繁田 信一)씨에 의하면 천하에 그 무용을 떨친 무사 요시이에는 1032년 생으로, 1008년에 죽은 밀교승 간슈나 1005년에 죽은 아베노 세이메이, 1027년에 죽은 미치나가와는 자리를 함께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한의사로 등장하는 단바노 다다아키도 간슈나 아베노 세이메이가 세상을 떠날 무렵 아직 10대의 소년이기 때문에 위의 다섯 사람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것은 허구라는 것이다. 즉 아베노 세이메이가 죽고 나서 약 200년 이상 흐른 후, 다치바나노 나리스에(橘成季)가 설화집을 편찬했을 시점에, 당시 사람들에게 익숙했던 당대의 대표적 권위자를 등장시켰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가 매우 흥미로운 것은 시게타 신이치씨도 지적 하고 있는 것처럼, 음양사를 대표하는 세이메이가 점을 치는 사람으로 그려지 고, 신에게 가호를 비는 일 등에 관해서는 밀교승인 간슈가 담당하고 있다는 점 이다. 즉 직능적으로나 사회통념적으로나 음양사는 점을 치는 사람이고, 신의 가호를 비는 쪽은 승려라는 기본인식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10). 그러나 영화 음양사 에서는 소나무에 달린 박이 범상치 않음을 점친 것도 세 10) 繁田信一 安倍晴明 陰陽師たちの平安時代 吉川弘文館 2006 pp.18 21 豊嶋泰國 悪霊秡師匠陰陽師と密教僧 国文学解釈と鑑賞 陰陽師 安倍晴明とその周縁 2002.6 p.27
日本研究 ୪ 이메이이고, 신의 가호를 빈 것도 세이메이이며, 반으로 가른 것도 세이메이였 다. 실존 인물로서의 세이메이는 조정으로부터 관위와 관직을 부여받은 관인 음 양사로 신분적으로는 중급관료에 속한다. 이케다 가즈오미(池田和臣)씨의 지적 처럼, 전설의 음양사 아베노 세이메이가 시키가미를 마음대로 조종하는 초능력 자라면, 전설이 아닌 현실에서의 세이메이를 시키가미마냥 부렸던 것은 오히려 당시의 최고 권력자 미치나가였던 것이다11). 관료로서의 직분에 충실한 음양사 가 아닌, 세속을 초월한 것처럼 보이는 아베노 세이메이의 인물조형은, 음양사 가 귀신과도 대치할 수 있는 존재였던 것을 과도하게 강조한 나머지, 지나치게 초인간적인 면에만 주목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ଣઑॷ 陰陽師 ڋ ԧ ࠤ 2.3.1 음양사 안에 겐지 모노가타리 있다? 헤이안 시대나 원령에 대한 지식이 부족할 경우, 음양사 아베노 세이메이의 활약이 그야말로 만화 같기만 한, 유치하고도 지루하기 짝이 없는 영화일 수도 있다. 사와라 친왕을 이용해 수도를 전복하려고 하는 도손이 왜 그리 권력욕에 눈이 먼 것인지, 혹은 히로마사에 의해 모치즈키노키미(望月の君)라고 불리우 는 스케히메(祐姫)가 왜 죽음을 선택하는지 등에 대해 그다지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다면, 노무라 만사이의 강력한 포스를 감상하며, 공포와 스릴러와 액션 이 가미된 오락영화로 큰 기대 없이 편하게 즐기면 될 것이다. 그러나 영화 음양사 를 통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헤이안 이라고 하는 시대나 일본의 독특한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오락영화로 끝내기에는 너무 아쉬운 영화이다. 일본의 여러 가지 문화가 투영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주인공 세이메이와 원귀들이 싸울 때는 법력의 힘으로 원귀를 물리쳤던 노(能)의 도성사(道成寺) 라는 작품이 연상된다. 사실 도성사 를 연상케 했던 것은 영화 초반부에 가네이에를 저주했던 뱀이 실은 그 로부터 버림받은 여성의 원혼이었다는 것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가네이에 주 11) 池田和臣 御堂関白 藤原道長ー晴明の傀儡師 国文学解釈と鑑賞 陰陽師 安倍晴明とそ の周縁 2002.6 p.169
ઽฃ ଣઑॷ 陰陽師 ڋ ԧ ࠤ 源氏物語 ଭ ਏ 변을 맴도는 아름다운 여성의 환영이 실은 추한 귀신이라는 사실에 경악하는 히로마사. 한 여인이 가지는 원한과 그로 인한 비극을 미와 추의 극치로 표현했 다는 점에서 도성사 와의 관련성을 다시금 돌이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판 단된다. 그러나 헤이안 시대물이라는 점에 주목하며 우선은 겐지 모노가타리 와의 관련성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이하, 겐지 모노가타리 와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영화 음양사 의 중요장면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2.3.2 중요장면①-섭관 정치 아래의 후궁의 모습 영화의 도입부에는 음양두 도손이 수도의 수호자(都の守り人) 의 출현을 예 언하는 장면이 있다. 이 이야기에 귀가 번쩍 뜨인 사람은 천황 아래에 앉아 있 던 좌대신 후지와라노 모로스케(藤原師輔)였다. 만면의 웃음을 띠며 그 이야기 가 자신의 딸 도코(任子)의 뱃속 아이를 가리키는 것이냐는 모로스케의 질문은, 섭관정치 아래에서 왕자의 탄생이 자신의 영달과 가문의 미래를 위해 얼마나 결정적인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한편 이 보고에 낙담한 사람은 바로 옆에 있던 우대신 후지와라노 모토카타 (藤原元方)였다. 딸 스케히메(祐姫)가 이미 천황의 아들까지 낳은 상태였기 때 문에 새로운 왕자의 탄생은 자신의 딸과 손자와 자신의 미래까지도 위태롭게 만드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자신의 딸을 향해 어찌하여 천황의 총애를 잃었는지 를 따져 묻는 모토카타의 상심과 초조와 분노는, 음양두 도손에게 이용당할 만 큼 충분히 비정상적인 것이었다12). 그러나 갓 태어난 왕자 아쓰히라 친왕(敦平親王)은 결국 강력한 모노노케에 의해 생명이 위태로와지고, 이를 구하라는 임무를 맡은 세이메이의 활약에 의해 도손에게 이용당하던 모토카타와 스케히메는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권력투쟁의 양상을 좌대신과 우대신의 극심한 대립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겐지 모노가타리 의 세계를 방불케 한다. 또한 권력투쟁이 천황의 외 12) # 元方 無念じゃ広平 生まれた時には ゆくゆくはお前が帝だと言われていたのに 祐姫 師輔のところに男皇子が産れた な ぜ じゃ 祐姫 帝の寵愛を受けていたのは お前ではなかったのかー
日本研究 ୪ 척, 즉 섭관가문으로서의 지위확립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는 설정이나 이 에 후궁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는 것은 겐지 모노가타리, 마쿠라노소시(枕 草子), 오카가미(大鏡) 등을 비롯한 헤이안 문학 전반을 통해 확인할 수 있 는 사항이다. 이런 점에서 영화 음양사 는 헤이안 시대라는 코드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이를 관객들에게 안정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겐지 모노가타리 등의 분 위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례로 좌대신과 우대신의 대립으로 묘사된 모로스케와 모토카타의 등장을 들 수 있다. 역사적 사실로서 모로스케의 딸은 후일 레이제이천황(冷泉天皇)이 되는 아들을 출산하여 모토카타의 딸인 스케히메가 낳은 아들을 제치게 된다. 이로 인해 모로스케는 아들 가네이에(兼家), 손자 미치나가(道長)로 이어지는 후지와라 북가(北家)의 대표적 가계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 속에 비탄에 빠져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지는 모토카타는 레이제이천황을 비롯한 역 대의 천황을 괴롭힌 저명한 원령으로 당연히 공포의 대상이었다. 즉 모토카타와 모로스케의 대립과 그 이유는 어느 정도 사료 등에 의거한 역사적 사실에 뒷받 침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극적고조를 위해 역사적 사실에서 다소 벗어난 설정이 보인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66세의 나이로 죽은 모토카타는 죽기 직전까지 대납언(大納言)의 지위였기 때문에 영화 속의 좌대신, 우대신의 대립은 이른바 설정 이었다고 할 수 있다. 좌대신과 우대신의 극렬한 대립을 축으로 전개되기 시작하는 겐지 모노가타리 등, 헤이안 시대 문학의 영향이 현저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2.3.3 중요장면②-출산 장면의 모노노케 모로스케의 딸인 도코(任子)가 출산하는 장면에서 음양두 도손이 수하의 음 양사를 데리고 가호를 비는 장면이 있다. 헤이안 시대에는 출산이 목숨을 건 행 위로서 출산 과정에서 목숨을 잃거나 출산 직후 쇠약해진 틈을 타서 모노노케 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예가 적지 않았다. 따라서 겐지 모노가타리 에이가 모 노가타리(栄花物語) 무라사키 시키부 일기(紫式部日記) 등을 보면 최고 권력 자의 자녀의 출산 장면, 특히 다음 대의 천황이 될지도 모를 왕자 탄생 등의 경우
ઽฃ ଣઑॷ 陰陽師 ڋ ԧ ࠤ 源氏物語 ଭ ਏ 에는, 가문의 사활을 걸고, 영험하다고 알려진 밀교승들을 불러 모아 신의 가호를 빌기 마련이다. 이때 앞서 언급한 고콘초몬쥬 등의 설화에서 여실히 드러난 것 처럼, 음양사와 밀교승의 역할은 어느 정도 분담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 음양사 에서는 밀교승은 거의 보이지 않고, 음양사가 대부분의 역 할을 수행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설화집 고콘초몬쥬 에서 음양사와 밀교승과 한의사와 무사가 했던 모든 역할을 영화 음양사 에서는 아베노 세이메이 혼자 일 사천리로 해결하고 있다. 삼라만상을 널리 통달하고 어둠의 시대에 현세와 이계 를 넘나들던 음양사 를 돋보이게 하는 장치의 하나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3.4 중요장면④- 人は心ひとつで 鬼にも仏にもなるもの 음양사 의 마지막 장면은 세이메이의 저택 툇마루에서 세이메이와 히로마사 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다. 영화의 주제는 히로마사가 의미심장하게 하는 말 인간은 마음 먹기에 따라 귀신이 될 수도 부처가 될 수도 있는 법이로군(人は 心ひとつで鬼にも仏にもなるものだな) 이라는 부분에 어느 정도 집약되어 있 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초반부터 어둠 속에 숨어 지내던 귀신과 요물들 은 그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파고들어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暗闇に 潜みし鬼 魔物 アヤカシはそれを恐れる人の心に忍び入り しっかりと息づい ていた). 라는 내레이션을 통해, 혹은 주(呪)란 인간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해석 등을 통해, 마음 속 귀신(心の鬼) 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이 표 방되고 있었다. 영화의 주제로서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이 마음 속 귀신(心の鬼) 일 수 밖에 없 다는 점에서 대해서는 공감하는 바가 없지 않다. 다만, 마치 해리포터 시리즈처 럼, 시종 일관 현실에서 벗어나 판타지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는 이 영화가, 결국 마지막 부분에 가서 최종적으로 추구한 마음 속 귀신(心の鬼) 이, 당시의 생각으 로서는 매우 이단적인 사고, 현대적인 해석이었다는 점은 확인해 두고 싶다. 사실 헤이안 시대의 경우, 모노노케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귀족들 의 생활에 밀착된 존재였을 가능성이 있다. 다케토리 모노가타리(竹取物語) 등과 같은 비현실적인 작품들에 비해 당시의 사회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 는 작품이라는 겐지 모노가타리 쪽이 오히려 모노노케 라고 하는 소재를 즐
日本研究 ୪ 겨 사용했다는 점은 모노노케가 일본 헤이안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일상 적인, 생활의 일부였다는 역설 또한 가능케 하고 있는 것이다13). 실제로 겐지 모노가타리 에서는 모노노케의 출현이 역동적이고 생동감 있게 묘사된 부분이 한두군데가 아니며, 겐지 모노가타리 보다 훨씬 더 역사적 사실 에 기반을 두고 있을 무라사키시키부 일기 에도 모노노케는 실존하는 존재인 것처럼 묘사되고 있다. 다만, 겐지 모노가타리 의 작자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의 모노노케관 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서, 무라사키시키부집(紫式部集) 에서의 다음과 같은 예 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림에, 모노노케에 씌인 여자가 보기 싫게 그려져 있는 뒤에, 귀신이 된 전처를 법사가 묶고 있고, 남자는 불경을 읊으며 모노노케를 나무라는 것을 보고 죽은 자를 핑계로 괴로워하는 것도 스스로의 마음 속 귀신 때문이 아닐까 답가 당연한 일이리. 그대 마음이 어둠이기에 귀신의 그림자라고 확연히 보였으리. 絵に物の怪のつきたる女のみにくきかたかきたるうしろにおにになりたるもとの めをこほふしのしはりたるかたかきてをとこは経よみて物のけせめたるところをみて なき人にかことをかけてわづらふもおのが心のおににやはあらぬ 返し ことわりや君が心のやみなれば鬼の影とはしるくみゆらむ14) 모노노케에 괴로워하는 후처와 모노노케가 된 죽은 전처, 불경을 읽으며 모 노노케를 퇴치하려고 하는 남편 등이 그려진 그림을 통해 마음 속 귀신(心の 鬼) 과 마음 속 어둠(心の闇), 귀신의 그림자(鬼の影) 의 문제가 대두되며, 최 종적으로는 남편이 모노노케를 보는 것은 스스로의 마음 속 귀신(おのが心の 鬼) 탓에 불과하다는 무라사키 시키부의 모노노케관이 드러나는 것이다15). 13) 겐지 모노가타리 의 모노노케의 출현 장면의 여러 문제점에 대해서는 졸고 일본 초기 산 문에 있어서의 모노노케 의 역할 ( 민족문학사연구 통권30호, 2006)에 자세하다. 14) 무라사키 시키부집 의 인용은 難波浩編 紫式部集 陽明文庫蔵 (笠間影印叢刊28, 1985)에 의한다. 15) 무라사키 시키부의 모노노케관 에 대해서는 주 13)의 졸고에 자세하다.
ઽฃ ଣઑॷ 陰陽師 ڋ ԧ ࠤ 源氏物語 ଭ ਏ 이상과 같이 보는 이에 따라서는 만화에 가까울 정도로 비현실적이었던 음 양사 라는 영화는 마음 속 귀신(心の鬼) 에 대한 언급으로 마무리 지어진다. 의 표를 찌르는 듯한 이 결론이 결코 의아스럽지 않은 것은, 모노노케의 출현을 생 활의 일부인 것처럼 생생하고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존 재여부에 대해 반신반의했던 것으로도 보이는 무라사키 시키부의 모노노케관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Ā 이상과 같이 화제의 일본영화 음양사 의 바탕이 된 세이메이 붐 의 문화적 현상을 확인해 보고, 그 바탕이 된 헤이안 시대에 대해 재검토해 보았다. 또한 영화 음양사 의 구체적인 내용 전개를 고전문학 겐지 모노가타리 와 연관시켜 생각해 보며, 영화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를 위해 필요한 여러 측면에 대해 검 토해 보았다. 영화 음양사 는 겐지 모노가타리 의 시대와 중첩되는 시대를 배 경으로 하면서도, 서로가 가지고 있는 이면의 세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를 비추어주는 거울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아베노 세이메이가 궁정에 속해 있는 관 인음양사이면서도 음양두에 대한 존경심은 물론, 천황에 대한 존경심조차도 가 지고 있지 않은 인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원령이 된 사와라 친왕의 힘을 빌려 수도전복과 천황살해를 획책하는 도손에 맞서는 세이메이가, 몇몇 장면에서는 천황을 노골적으로 조롱하는 것처럼 묘사되고 있다. 히로마사에 의해 모치즈키 노키미 라고 불리워지는 스케히메의 일화에서도 천황은 전혀 권위나 존경과는 거리가 먼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천황을 둘러싼 불경의식 이란 측면에서, 비슷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겐지 모노가타리 관련 작품과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1951년 흑백영화로 개봉된 다이에이(大映) 창립 10주년 기념 영화 겐지 모노가타리 (124分, 吉村公三郎감독/新藤兼人각본) 가 불경(不敬) 문학 으로 치부되던 전
日本研究 ୪ 쟁 중의 탄압을 의식해서인지 히카루겐지(光源氏)와 후지쓰보(藤壺)와의 밀통 등에 대해 과감한 각색을 했고, 2001년 12월 15일 개봉된 영화 천년의 사랑 Genji 도 고전 원문의 스자쿠천황(朱雀帝)를 쥬조천황(十条帝)으로, 레이제이 천황(冷泉帝)을 레이로천황(玲瓏帝)으로 바뀌는 등, 불경(不敬)을 꺼리는 자기 검열16)의 명맥 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것에 비해 놀랄 만큼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일본 대중문화의 전개양상에 있어서 매우 흥미롭고 본질적인 점이지 만, 이 점에 대해서는 금후의 과제로 삼는다. ఞճ 김수희(2006) 영화 천년의 사랑 Genji 千年の恋 ひかる源氏物語 論 日本學 報 제68집 pp.111 124 (2006) 일본 초기 산문에 있어서의 모노노케 의 역할 민족문학사연구 통권30호 pp.12 29 池田和臣(2002) 御堂関白 藤原道長 晴明の傀儡師 国文学解釈と鑑賞 陰陽師 安 倍晴明とその周縁 p.169 繁田信一(2004) 陰陽師と貴族社会 吉川弘文館 p.33 (2006) 安倍晴明 陰陽師たちの平安時代 吉川弘文館 pp.18 21 立石和弘(2002) 美的表象と性的表象 そして語られざる 源氏物語 ユリイカ 342 p.161 豊嶋泰國(2002) 悪霊秡師匠陰陽師と密教僧 国文学解釈と鑑賞 陰陽師 安倍晴明と その周縁 p.27 藤原克己(2002) 菅原道真 ウェッジ pp.18 49 (시청각자료) 음양사 (東宝 103分) (시청각자료) 음양사2 (東宝 115分) (시청각자료) 千年の恋 ひかる源氏物語 (TOEI VIDEO 143分) 투고일 : 2008. 6. 30 심사일 : 2008. 7. 29 심사완료일 : 2008. 8. 1 16) 立石和弘 美的表象と性的表象ーそして語られざる 源氏物語 ー ユリイカ 2002.2 p.161. 겐지 모노가타리 와 관련된 영화 및 영화에 드러난 천황에 대한 불경의식과 자기 검열에 관해서는 졸고 영화 천년의 사랑 Genji 千年の恋 ひかる源氏物語 論 (日本學報 2006.8)에 자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