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버유캔파잇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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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기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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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클로버유캔파잇 1권 킨나이프
2 소개글 클로버유캔파잇=클로버.Y.C.F.(=You can fight!). 영혼. 천사. 악마. 신. 정령. 진화. 전생. 운명. 트라우마. 일상. 망상. 동화.치유. 글쟁이. 만남. 등을 키워드로 한 라이트노벨-일상패닉현대판타 지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킬링타임용 유쾌한(?) 스토리. 자작표지-클로버(왕,세계,행운),날개(흑백,천사와악마),열쇠구멍(숨겨진비밀) 주인공 단독 설침 no, 트라우마와 함께하는 여러 캐릭들이 짬뽕되는, 여럿 '우리들의 이야기'로 치유계가 되려 노력하는중이나~/ A.B.C.D.별 개의 단편처럼 보이나 완결로 갈수록 하나로 쭉 이어지는 방향으로 설정/ [완]은 작은완성,쉬어가기,동시에 이어짐을 뜻함./ 전체 큰 흐름 A~D 순서로.../ ~ 시작된 나의 글...^^/ 감사합니다. 1권: A0-1 ~ B4-3. / 2권: B4-4 ~ B6-4, ~ C2-9, ~ D2-5. 3권: B7-1 ~ B9-4. / 3.5권: B9-5 ~ B10-2.(약 8만자. 그외 약 15만자.)
3 목차 A0-1. 아메바에서 인간까지! 아직도 진화 중? 5 A0-2. 이 두통은 웬 소녀에게서 시작되었다! 10 A0-3. 나는 단지 입에 머금고만 있었다고요! 15 A0-4. 희고 검은 건반은 포인트가 맞질 않아. 23 A0-5. 도를 믿으십니까~에 으르렁대지마. 33 A0-6. 부럽지만 그쪽은 아닌 거 같아. 44 A0-7. 눈 내리는 날에 석양은 몰락한 걸까? [완] 53 B0-1. 하늘and무지개and판다and너구리 63 B0-2. 스모키아이가 설교하잖아! 소년! 72 B0-3. 게이트는 간지나게 오른손으로 열지요! [완] 82 B1-1. 적당한 미끼로 얄궂은 미소를 막아! 89 B1-2. 알아. 그 사진이 발목을 잡는다는 거. 98 B1-3. 방황하는 토끼와 커피 한 잔. 107 B1-4. 역시 자네는 마음이 아픈 것이야. [완] 116 B2-1. 어떤 풍경을 갖고 싶으세요? 124 B2-2. 당신을 절대로 바꾸지 않아! 133 B2-3. 화려한 소풍, 달걀흰자를 유심히. [완] 143
4 B3-1. 술래를 얌전하게 만드는 방법. 154 B3-2. 우리는 같은 문제에 봉착했어! 162 B 달러 받고 1000달러는 잊어. 171 B3-4. 포기하면 그걸로 끝이다. 181 B3-5. 모래폭풍을 넘어 콜로세움의 무대에서. 190 B3-6. 블랙 초콜릿은 와자작하고 부서져. 199 B3-7. 성공했고 울었고 양해를 구한다. [완] 209 B4-1. 비키니 소녀와 상어와 구세주. 219 B4-2. bye-bye하고 이별을 고하면 조금 나아져? 229 B4-3. 트라우마와 운 사이 버둥대는 타이밍. 237
5 A0-1. 아메바에서 인간까지! 아직도 진화 중? :48 [글 제작일: ] 킨나이프: 트라우마 제로 완벽한 이상향 인간을 꿈꾸며, 특별한 존재의 만남과 깨알패닉과 웃음을 원했 고, 동화속의 인물들도 내 방식대로 파헤치고 싶었습니다. A: 인간은 왜 약한가. 트라우마는 어디서 오나? 어떻게 해야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나? 어떤 진화론은 존재하는가? 변할 수 있나? 나는? B: 이번 생 말고 다음 생의 존재여부는? 운명의 수레바퀴. 불완전함 가득한 신의 일상생활. 신이 되기 전에 인간의 기억. 기타 등등. C: 글쟁이의 고뇌, 다른 존재와의 조우 가능성은 있나? 없나? 그냥 만나고 말았다면 이제 어쩔 것인지? ABC 각각의 단편이나, 하나하나가 퍼즐조각, 다 맞춰지면 묘한 그림. ***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A0-1. 아메바에서 인간까지! 아직도 진화 중? 저 멀리 보기 좋게 펼쳐진 푸른 하늘이 단순히 거짓 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내 마음 필터를 통해 오롯이 변질되어 세차게 부는 돌풍과 함께 떠밀려가는 속이 케케묵은 먹구 름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그게 좋은 일이었는지 나쁜 일이었는지 도통 알 수가 없군. 지난밤과 새벽을 지나간 그 얄팍한 시간 속에서 내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자세히는 알 수 없 었다. 정체모를 몇 개의 장면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혀댈 뿐. 단지 그것들로 인해 심하게 고통스러웠고, 어리석은 마음속의 수많은 나 란 존재들 중 거의 대부분 을 싹 정리해버린 것 같긴 했다. 그게 무슨 말이지? 뭐 어쨌든, 이해되지 않는 무엇을 나는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었다. 뭔 웃기는 소릴 해대는 거지? 지금 난? A0-1. 아메바에서 인간까지! 아직도 진화 중? 5
6 알고 있다. 이런 게 터무니없는 소리처럼 들린다는 것. 나불대는 나도 그러니까. 여튼, 그렇게나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던 그 패자들을 사그리 없애버린 것으로 추정되는 오직 단 하나 의 승자만이 이 몸을 점령해버린 것이란 것은 잘 알겠다. 정말 난 알긴 하는 걸까마는. 다시 말해, 그 승자 란 녀석은 나의 어제 를 없애버리고는 막 태어난 나의 오늘 로부터 새로 운 역사를 써나가기로 한 모양이었다. 나 역시 어제의 방식들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주변 인물들이나 풍경들은 죄다 동일한 데 나의 그릇, 아니 나의 내용물에 뭔가가 사소하게 어긋나 버 린 지도 모른다. 이것이 진화인 것인지 퇴화인 것인지 아무것도 모른 채 이 공간에 있을 뿐. 나는 누구지? 나는 어디에서 온 존재인가? 나는 무엇이지? 뭐. 알게 뭔가. 그래도 어차피 그것은 나 일 텐데. 그래. 그것들은 모두 나 라고 믿는다. 아니, 이러고저러고 할 것도 없이 모두 나 일 것이다! 라고 결정짓고 있는 것이 왜 아주 조심스러워 지는 것인 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괜찮을 거다. 아주 희미한 기억 속에서 교차하는 누군가의 장면이 누군가의 음성이 문득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지지지익. - 네가 그걸 할 수 있을 것 같아? - 파밧. 그 누군가의 건방떠는 말과는 달리, 나는 그다지 동요하지 않았다. 그저 약간의 짜증스러움과 의아함에 조금 부족한 용기를 품은 심장을 가지고 있을 뿐, 그저 제자리에 서서 새까만 그림자로만 이미지가 떠오른 그 녀석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 녀석의 말이 열쇠가 된 것인지, 어느 샌가 떠오른 또 다른 풍경 이! 나를 조금씩 과거의 기억으로 확 공간이동 시켰다. 그랬기에 난 그때 그 순간의 기록을 관통해 거기에 머물게 되었다. 이것은 마치 지난밤과 새벽에 꾸었던 기억나지 않던 어떤 꿈이 한가하기만 하던 대낮에 다시금 다채롭 고도 선명한 색을 한껏 뿜어대며 내 뇌리를 자극하는 유혹의 손짓을 보내오는 듯했다. 끼이익. 어느 가상의 문 이 열리자 펼쳐진 그 풍경은, A0-1. 아메바에서 인간까지! 아직도 진화 중? 6
7 마치 내 삶속의 한 조각을 잘라낸 듯 정교하기 그지없었고 너무도 생생하게 내가 이 순간 숨을 쉬고 있 는 이 감각까지도 잘도 만들어내고 있었다. 거기엔 값 꽤나 튕길 세련된 검은색 고급 피아노가 놓여 있었고, 그 피아노의 좌석엔 안경을 쓴 깐깐한 인상의 40대 여성이 교수라는 특유의 직업 냄새를 와락 풍기듯 피아노를 정갈하게 연주하고 있었고, 그 옆 에선 다소 통통한 볼에 약간의 수줍은 붉은 빛을 물들이고 있던 한 고교생 소녀가 피아노음에 맞춰 노 래 를 부르고 있었다. 아! 이 노래는! 왠지 나도 아는 노래를 그것도 내가 특히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기에 더욱 반갑게 느껴졌다. 이제 조금 긴장이 풀리는 듯했다. 그렇게 난 이 공간의 일원이 되었다. 그런데 내가 아는 노래여서일까? 그 소녀는 더욱 비교 가 되기 시작했다. 내 눈앞에선 당장이라도 그 노래를 부른 진짜 가수 가 홀로그램으로 쫘라라 만들어져 저 소녀 바로 옆에서 노래를 열심히 부르고 있는 듯 보였다. 그 가수의 인상은 더욱 더 팽팽한 긴장감을 드리운 채 복잡한 음과 음 사이를 자유로이 기교를 부리며 넘나들며 기계와 같이 엄격하게 음정을 맞추며 유연한 조화로움을 이끌어냈고 그것이 곧 완벽 이라는 아름다운 음색을 만들어 내게 활활 타오를 듯한 감동을 주고 있었다. 맞아. 그 가수. 진짜 잘 불렀었어. 아직도 가슴이 짠해. 단순히 내 상상으로 탄생시킨 내 회상 속의 멋들어진 가수 가 그렇다는 거다. 그 어떤 부담스러울 정도로 드넓고도 높은 무대라 할지라도 하나의 분명한 색감을 지닌 존재감을 만들 어낼 수 있는 그런 명장 급 가수의 음색은 실로 그 소녀가 따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쯤은 나도 알 수 있었다. 아니 그렇다기보다-. 고개를 퉁명스레 조금 돌린 내 눈길이 절로 저 통통한 볼 살을 부풀리며 노래를 랄랄라~ 긴장된 듯 부르 는 소녀에게 퐉 내리꽂힌다. 아마도 이 순간 내 눈길은 차갑기 그지없을 터다. 조금씩 감정적으로 열 받기 시작하고 어딘가 불안해 안달이나 있으니 말이다. 그때쯤 내 두통도 꿋꿋이 시작되었다. 아. 소녀여. 이거 엄청나게 엉망진창이야. 거기선 더 확실하게 내려야지. 아니야! 이 노래의 테마인 아늑하고 고고한 감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잖아. 아 진짜. 거긴 그렇게 불러서는 안 된다고. 그래! 그 부분에선 호흡을 그렇게 확 끊어버려서야 뭐가 돼? A0-1. 아메바에서 인간까지! 아직도 진화 중? 7
8 더 이어붙여야지. 아 답답해. 제발 멈춰줘. 어이. 소녀! 네 목소리 거슬린다. 진짜. 어떻게 좀 해달라고. 제발. 제발! 속으로만 읊조리는 데도 짜증이 날 정도였다. 나는 온 마음을 다해 저 아름다운 노래가 망쳐진다고 마구 저 어설프기 만한 소녀를 타박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굳이 그냥 꺼져버려. 라고는 단순히 말할 수 없었다. 그런 건 매우 가벼운 생각일 터다. 누구나 완벽한 가수라면 이 세상은 몹시도 재미가 없을 테니까. 저 소녀 역시도 점점 노력하면 늘지 않을 까? 과연 그럴까? 이런 저런 생각으로 분주하기 시작할 때, 노래가 전체 중 1/4지점에도 안 갔건만 여교수의 손짓으로 순 간 중지당한 채 어정쩡하게 서 있는 소녀, 곧이어 어두운 표정으로 확 굳어가는 소녀, 자신의 통통한 양 볼이 달궈졌는지 열을 식히려 그곳에 양 손을 촥 갖다 붙인 부끄러움 가득한 소녀를 나는 보았다. 이내 딱딱한 음성이 여교수의 입에서 쏟아진다. 몹시 화난 음성이다. 너. 다음부터 여기 오지 않아도 돼. 네-에? 말귀도 못 알아들어? 가라고 가! 당장! 문을 가리키며 신경질적으로 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여교수의 눈빛은 소녀를 더욱 더 괴팍하게 재촉했다. 머뭇대다 마지못해 하는 것이 분명할 그 말을 힘없이 저 아래 깊이깊이 툭 떨어뜨리던 소녀다. 네에. 저어. 감사 했 습니다. 꾸벅. 기분은 좋지 않지만 예절은 몸에 배어 있어서는, 공손히 인사를 남기고 뒤돌아선 소녀가 뚜벅뚜벅 걸어 오다 나를 힐끔 쳐다보다 또 다시 급작스레 얼굴이 살짝 붉어진 채로 나를 휙 지나쳐갔다. 그때, 반짝 하고 눈물이 허공에서 크게 빛나고 있는 것은 내 착각일까? 보기 싫은 장면을 보고 만 탓인지 착각이라 받아들이는지도 몰랐다. 아니면, 알면서도 못 본 척 하는 무 심한 내가 여기 있을 뿐이거나.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단 말이지? 난 상관없잖아. 아니야? 뭐냐고 대체. 이 기분 드러운 건. 뭐지? 그렇게 순간적으로 아주 짧은 미안함과 불편함이 교차하는 것도 잠시, 그 소녀가 막 문을 나선 순간 여 교수의 불평이 내게 하소연하듯 와락 넘어왔다. 아직 문이 완전히 닫힌 것도 아니건만 급하기도 하시지. 뭐 문이 닫히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는 건가? A0-1. 아메바에서 인간까지! 아직도 진화 중? 8
9 저 여교수는? 칫. A0-1. 아메바에서 인간까지! 아직도 진화 중? 9
10 A0-2. 이 두통은 웬 소녀에게서 시작되었다! :50 그렇게 순간적으로 아주 짧은 미안함과 불편함이 교차하는 것도 잠시, 그 소녀가 막 문을 나선 순간 여 교수의 불평이 내게 하소연하듯 와락 넘어왔다. 아직 문이 완전히 닫힌 것도 아니건만 급하기도 하시지. 뭐 문이 닫히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는 건가? 저 여교수는? 칫. 소녀가 날 인지하며 바라봤기 때문에, 게다가 저 여교수마저 나를 바라보며 말을 걸고 있기 때문에, 비 로소 나는 이곳에 속한 어떤 존재가 된 것이라 판단했다. 물론 아까도 실감이야 하고 있었지만 각 인물들이 나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당최 모른다는 점 때문에 난 단지 이 풍경을 그냥 드라마삼아 보고 있을 뿐이었지만, 더는 그리 할 수 없는 모양이다. 곧 내 의식은 좀 더 쫑긋한 토끼 귀 마냥 긴장의 날을 세우기 시작했다. 너도 들었지? 정말 미치겠어. 끔찍하지 않아? 저런 앤 재능 이란 게 애초에 없어서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전혀 티도 안 날거야. 노력 이란 것도 다 어느 정도 가능성 이란 게 떡 하니 버텨주고 있어야 되는 거 아니겠어? 저런 표준 이하의 외모 에 눈치까지도 바닥이라 감히 끝까지 부르려고 하다니! 아~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저런 앤 수십 트럭을 갖다 줘도 안 받을 거야. 분명 기분 나쁠 것 없는 타인을 향한 말임에도 왠지 나는 속으로 몰래 울컥한 기분을 지나칠 수가 없이 침울함에 끌려들어가고 있었다. 아. 예. 게다가 연달아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는 여교수는 유명한 방송 사회자 MC와도 같아서 내가 할 수 있 는 거라곤 겨우 이 정도로 응대하는 게 다였다. 또 다시 사회자는 지 혼자 방송 다 해먹으려고 게스트에게 말을 넘기지 않고 혼자 원맨쇼를 하고 있었다. 물론 이야기 흐름에 꼭 필요하므로 하는 게 당연하므로 방송 PD는 굳이 MC에게 다른 사인(sign)을 넣질 않고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렇다니까! 그냥 첫인상에서 확 자르려다가 쟤네 고모네 A0-2. 이 두통은 웬 소녀에게서 시작되었다! 10
11 친구의 사촌이 정치인맥이 세간에 좀 알아준다고 하더라고. 정치인맥이니 뭐니 솔직히 그런 말은 할 필요도 없었는데, 난 정말 신경 안 쓰는 편이거든. 그런데 웬걸. 그렇게 생색냈으면 뭐라도 알아서 챙겨 왔겠거니 했지. 근데 세상에 있는 것들이 더해요. 겨우 감자 한 박스 주는 거 있지?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로! 씨알이 잔뜩 굵은데다 모래가 묻은 신토불이 감자 한 박스였어. 믿겨져? 나한테 실컷 정치인맥 인맥! 이러면서 유난떨 때는 어떻고! 그게 사과 박스 가 전혀 아니었다고. 너도 알지 그 사과 박스란 거 말이야. 그때, 별안간 내가 아는 게 나오길래 대뜸 박스 가 아니라 박수 를 짝 소리 나게 쳤다. 아. 그거요. 사과가 없는 사과 박스. 일명 신사임당(5만원) 마님 박스던가요? 간단한 상식 퀴즈 하나를 맞췄다는 얄팍한 긍정의 감각만 느낄 뿐, 그곳에 그 어떤 기쁜 점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저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되는 이건 별 의미 없는 짝짜꿍이었다. 그렇게 또 다시 주도권이 빼앗기고 여교수는 뭐 그리 할 말이 많다고 쫑알거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런 이야깃거리가 대체 뭐가 중요할까? 또 다시 끼어들 수 없는 내가 거기 있었다. 그거야. 그거라고. 물론 배 박스도 상관없었다고. 정말 이런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이럴 줄 알았으면 잔챙이 는 처음부터 안 받는 거였다고. 전혀 상대를 안 했어야 했다고. 내가 실력이 꽤 좋은데다 한 몸매하고 너무 세련된 여성상 이미지인 터라 방송 좀 나간 게 화근이었지. 그래서 별 하찮은 것들이 다 들러붙는다고. 아~ 별 하찮은 것들이 말야! 그것에 대한 응답으로 조금 심심한 대답을 한다만, 왠지 귀찮아진다. 허나 여교수가 혼자 중얼대는 앞의 말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면 말이 더 길어질 거 같으니까 어정쩡하게 수긍하기로 한다. 어서 어서 다음으로 넘어갔으면 하는데 정말이지 시간도 너무나도 지루하게 느껴져 여기 있기 갑갑할 정도였다. 나는 대체 여기서 뭘 하면 좋을까? 도무지 내가 뭘 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그저 할 수 있는 거라 곤 이 흐름에 편히 몸을 맡길 뿐이라는 것이다. 에. 그래요? 뭐, 확실히 길을 걷다 한번쯤 다시 쳐다볼만한 건강한 구릿빛 몸매긴 했지만, 얼굴은 이목구비가 몹시도 뚜렷한 서구 형이라 내 타입이 아니긴 했다. 그래도 여교수의 나이 대(40대)에서 보자면 평균이상의 얼굴 로 할아버지들 꼬리 좀 칠 듯한 타입이긴 했지만 굳이 자기 입으로 자랑 질을 하다니 어이가 없었다. A0-2. 이 두통은 웬 소녀에게서 시작되었다! 11
12 피아노를 치며 신중히 심사를 하고 있을 땐 안경까지 낀 터라 꽤 깐깐하고 답답하고 예민한 인상을 팍팍 풍겼지만 나와 대화를 하는 도중에 조금씩 빈틈이 드러나는 부드러운 미소(=쾌활한 비웃음)를 달고 있어 나이치곤 꽤 예쁜 편으로 보이긴 했다. 20대의 자칭 예뻤던 여성이 차츰 나이를 먹어 40대에 이르러 공주병을 앓고 있는 미묘한 느낌이랄까. 그 런데다 성격은 좀 더럽고 철딱서니도 없는 듯 보이고 싸가지는 밥 말아 먹었을지도 모를~ 어쩌고저쩌고 쿵짝쿵짝. 근데 말야. 내가 비밀 하나 알려줄까? 네? 그게 무슨 비밀 인데요? 왠지 모르게 솔깃해지는 말이었다. 비밀 이란 언제 어디서나 매력적인 향기를 내니까 말이다. 40대에 공주병이면 한때 젊었을 적 에피소드는 꽤나 넘쳐날지도. 대체 뭘까나~? 어떤 거냐 하면, 쟤네 고모네 친구의 사촌이라던 국회의원 있지? 알고 보니 정말 시답잖더라고. 힘은 무슨. 권력은 또 무슨. 이번엔 공천도 못 받고 죄다 떨어졌다지 뭐야. 개천에서 용이 났다더니. 용이 아니라 그냥 도마뱀이었다고. 역~시 시간낭비였어. 기이이(+피이)-! 갑작스레 어떤 소리 에 정적 아닌 정적이 찾아오고, 그 소리는 잘 닦인 대리석 바닥을 살짝 스치다 멈춘 자동차 타이어와 아주 먼 친척쯤 되는 듯이 근접했다. 이 소린! 설마-! 그렇다. 매끈한 운동화 밑창의 고무가 바닥과 마찰해 내는 소리였다. 무시해도 될 작은 소리였지만 소리 에 민감한 사람들뿐이라 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아뿔싸. 머리가 또 지끈거렸다. 그리고 등줄기가 새삼 서늘해졌다. 그러고 보니까, 조금 전에 뛰쳐나갔던 그 소녀는 가벼운 운동화 를 신고 있었던 게 내 기억 위로 부 상했다. 그랬던 거다. 아까 뛰쳐나갔지만, 저 여교수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악랄한 독기를 무시할 순 없 었던 모양이다. 비록 난 내 눈앞의 여교수와 한 패는 아니나, 곁에서 들어주는 둥 마는 둥 하는 것만으로도 이 양심이 절로 뜨끔해져서는 심장이 오그라들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다. 확실히 저 소녀라면 내가 그 여교수와 같은 편이라 여길 게 뻔했다. 당연한 게 아닌가. 게다가 이 호박씨 까듯 지저분한 뒷담화야말로 소녀의 발걸음을 대리석 바닥에 찰싹 붙어버리게 만들고 A0-2. 이 두통은 웬 소녀에게서 시작되었다! 12
13 꼼짝달싹도 하지 못하게 만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고요히 두려움과 분노에 떨며 치욕스럽게 흘러들어 오는 메시지를 죄다 듣고 있을 게 뻔한 일이었다. 그러다 자리를 신속히 뜨려는 순간 자신에게서 그 소음 이 발생하고 만 거였다. 정말 그런 건 바라지도 않는 일이었을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니 마치 내가 그 소녀가 된 듯이 심장이 쿵 쾅거렸다. 아. 이런!! 바보 같은! 난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하고 만 것인지. 왜 이 여교수 곁에 남아서 귀를 더럽히는 시간낭비 같은 이야 기를 듣고 있었던 걸까. 왜 나는 그때 그 소녀를 쫓아 나가지 못했는지 창피스럽기만 했다. 여교수와 한패라고는 생각하지 말라고 그건 오해라고 해도 그 소녀가 듣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괜스레 마음이 무거워진다. 내가 이 공간에 남아있었기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듣지 말아야할 것을 들어야만 했던 저 소녀의 마음을 생각하자니 너무 슬퍼진다. 아직까지도 난 이 여교수 옆에 서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나는 무얼 위해 여기 있는 걸까? 타다닥! 이 순간 확 정신이 들었던 그 누군가 의 뛰어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역시 그 소녀가 분명했다. 그때, 난 앞서 일어난 일련의 짧은 상황 에 굉장히 스스로 황홀해하는 미소를 품고 있던 눈앞의 여교 수를 지금 보고 있었다. 그 미소는 일순 참으로 아름답고도 섬뜩함으로 얼룩져있었다. 여전히 내 눈앞에서 잔혹하게 열린 붉은 입술은 모터를 달고 잘도 쑥덕이고 있었다. 저런 쥐새끼 같은! 하는 짓도 진짜 재수 없다니까. 난 뭔가에 휘말리는 것도 싫고 소란 떠는 것도 싫고 그저 관여하지 않고 조용히 넘어가기를 원했었다. 한때는,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듯했다. 아마 그 소녀는 눈물까지 펑펑 쏟으며 달리고 또 달리고 한참을 달릴 것이다. 추측이 아니라 진짜 그럴 거라 당연히 와 닿을 만큼 저 여자의 말은 차가웠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이 사건을 계기로 그 소녀가 노래를 부른다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게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하니 괜 히 안쓰러워졌다. 이건 너무 심한 일이었다! 아마 무척이나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 소녀는. 그리고 어쩌면 이런 상황으로 방치해버린 나조차도. 뭐야. 너도 한 마디 해봐. 넌 어떻게 생각해? A0-2. 이 두통은 웬 소녀에게서 시작되었다! 13
14 나는-. 왜 이 시점에서 머뭇거리고 마는지, 곧 그녀의 재촉이 시작되고, 너도 그렇게 생각했지? A0-2. 이 두통은 웬 소녀에게서 시작되었다! 14
15 A0-3. 나는 단지 입에 머금고만 있었다고요! :15 뭐야. 너도 한 마디 해봐. 넌 어떻게 생각해? 나는-. 왜 이 시점에서 머뭇거리고 마는지, 곧 그녀의 재촉이 시작되고, 너도 그렇게 생각했지? 그 여교수는 일순 작열하는 태양을 바라보는 호기심 가득한 사막의 뱀처럼 번들대는 두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것은 역시 나를 은근슬쩍 떠 보고 있는 게 분명하리라. 허나 나는 내가 이곳에서 무엇 이란 존재인지 퍼뜩 파악할 수 없었다는 이유로, 신중하고 안전한 내 살길을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앞서 봐온 이런 몇몇 장면들밖에 없는 단서로는 이곳에서 나의 존재 라는 걸 뚜렷하게 나타낸다는 게 어려웠다. 대체 나는 어떤 존재일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열을 내다가 또 침착해져버린 이유도 알 수 없다. 그저 나는 교묘하게 관찰 하고 또 관찰할 뿐이었다. 이 순간이 꼭 꿈속에서의 나 자신 이라고 생각하니 현실에서의 나 란 것은 무엇이었는지 전혀 단 하나의 이미지도 떠오르지 않아서일까. 이곳에서 누군가의 흐름에 휘말리지 못하고 그저 옳고 그름이란 판단력을 다소 잃는다는 이런 감각에 꽤 묘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A0-3. 나는 단지 입에 머금고만 있었다고요! 15
16 난 왜 이리도 고민해야하는 것일까. 이렇게도 당연한 장면에서, 당연한 대사 하나 못 치고 있다니 우스 워졌다. 정말이지. 이럴 때 보면 나는 마치 백지의 인간 인 것만 같다. 모르겠다는 말밖에 할 줄 모르는 그런! 아-. 그럼 난 그러니까 단순히 진실을 말해야 할까? 어떻게 한담? 어쩌면, 저 여교수는 나란 존재가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으며 약간의 호감이 있기에 저런 험담을 저리도 편하게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하지만 저런 부류는 때론 양면성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 문에도 차마 발을 뺄 수가 없다. 꿈속에서 나는 역시 나였지만, 이곳에서 만난 이들은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뿐이다. 꿀꺽. 조심스레 한숨을 삼킨 후 난, 이 순간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허나 내 안에서 조금씩 온몸을 휘감고 일렁이고 있는 이 잔잔히 깔린 정체불명의 파장을 띤 불쾌감은 더 욱 더 내 심장을 옭죄어오고 있어서인지 또 한 차례 내 생각은 뒤집혀버리고 만다. 그렇게 감정이 왠지 단번에 들쭉날쭉해지고 말았다. 난 금세 변덕스럽고도 괴팍한 성격으로 돌변해버린 듯 도무지 눈앞의 저 여자에게 우호적이고 싶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어디선가 들었던 것도 같은 정의 란 말에 목숨 거는 타입도 아니지만, 그 노래하던 소 녀를 꽤 잘 안다던가 하는 것도 물론 아니지만! 역시 거슬렸던 거였다. 더는 속이는 거나 마찬가지인 냥 덮어두고 싶지 않았던 거다. 내 본심을. A0-3. 나는 단지 입에 머금고만 있었다고요! 16
17 그럴 리가 없잖아요. 난-. 보시다시피 난 이토록 시간을 지체하고 역시 머뭇거리기밖에 못한다. 그리고 또 다시 방황하고 있었다. 내가 말한 대답이 왠지 금세 마음에 들지 않아서일까. 역시 말을 내뱉자마자 혼란스러움에 빠져들다니 이런 조짐은 단연코 말을 내뱉기 직전까지도 예상하지 못한 거였다. 대체 내가 원하는 것은 대체 무엇인 것일까? 나는 나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공황에 빠진 나를 바로 눈치채버린 그 여교수는 이내 거침없이 허공에 말을 툭 내뱉는다. 거짓말! 그것에 곧바로 치고 들어가 답을 넣었으나, 한 템포 늦었던 모양이다. 찔린다., 아-니-거든요! 말이란 게 이렇게나 어렵게 나올 줄이야. 왠지 한쪽 볼에 혹부리영감의 불룩한 혹이라도 장착된 듯 입을 억지로 열기라도 한 듯 힘이 꽤 들었다. 봐-아. 너도 쟤랑 하등 다를 게 없어. 슬슬 자기 분수 를 알아야지. 이야기를 듣다보니 난 갑자기 더욱 당황스러운 기분에 휩싸였고, 급작스레 닥친 멘탈 붕괴에 나는 한 차 례 지나가버린 줄 알았던 그 두통을 다시금 끌어안게 되었다. 에? 뭐라고요? 우리는~ 그러니까 요 앞에서 노래 부르던 애를 같이 씹고 있었던 것 같지만, 아니 나는 잘 씹지는 못하 고 그저 소심하게 입 안에서 잠시 머금고만 있다가, 그 소녀에게 확 들켜서 지레 겁먹고 놀래서는 그때 돌 A0-3. 나는 단지 입에 머금고만 있었다고요! 17
18 연 막 씹어 삼킨, 그런 이야기 비슷한 게 되었던 거 같은데. 아니, 결론 은 설라무네 내가 전혀 그 애를 비웃은 게 아니라고, 여교수가 말한 모든 그 소녀에 대한 지저분한 소리는 난 절대로 전부 동의하지 않은 셈이라고 쭉 말하고 있었던 거 같은데. 아니었다! 아닌 거다!! 갑작스레 부자연스럽게 들어 올린 내 양손을 내 양쪽 귀에 혹시 들어갔을지 모를 나쁜 먼지나 나쁜 소리 등등을 탁탁 털어내는 척 딴청을 피웠다. 그러며 뭔가 내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하고 순간 바보 처 럼 어리석은 생각을 떠올리다가, 상념 회피를 하다가, 역시 아니잖아!!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내 안에서 제멋대로 무언가가 재생되어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앞서 저 여교수의 입에서 나왔던 개 껌 쩍쩍 씹는 소리 비스 무리한 것이 나에게로 초점을 정확히 맞추고 무한의 총탄을 피웅~ 날리고 있었던 거였다. - 너도 들었지? 정말 미치겠어. 끔찍하지 않아? 저런 앤 재능 이란 게 애초에 없어서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전혀 티도 안 날거야. 노력 이란 것도 다 어느 정도 가능성 이란 게 떡 하니 버텨주고 있어야 되는 거 아니겠어? 저런 표준 이하의 외모 에 눈치까지도 바닥이라 감히 끝까지 부르려고 하다니! 아~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저런 앤 수십 트럭을 갖다 줘도 안 받을 거야. - 봐-아. 너도 쟤랑 하등 다를 게 없어. 슬슬 자기 분수 를 알아야지. - A0-3. 나는 단지 입에 머금고만 있었다고요! 18
19 그렇다. 나더러 한 소리였다. 이것도. 저것도. 그렇게 잠시 내가 멍 때리고 있는 사이에도 그런 나를 기다려주는 일 따윈 없이 계속 입을 들썩이며 제 할 말을 다하고 있었다. 그 여교수는, 야. 너. 재능도 없는 게 뭘 하려고? 뭘 할 수 있다고 나서길 나서는 거야? 우스워. 우습다고. 아니 웃기지도 않아. 너. 세상이 그렇게 쉬워? 넌 어차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멍청이야. 뭘 하든지 다 실패해버리고 말지. 뭐든지 다! 본래부터 성실함도 끈기도 없었고 말야. 제대로 완성해낸 게 있기나 한 거야? 응? 있다면 말해봐. 이 멍청아. 어서 헛된 망상에서 나와. 이 현실을 봐. 다 널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그래. 나도 어느 정도는 동조하고 있었다. 어떤 한편으론 속으로라도 그 노래를 부르던 그 소녀가 전혀 맘에 들지 않았다고 그 진실을 말하려고도 했었지만 안 하기로 했다. 이제 관찰자도 냉정한 지켜봄도 하기 싫었다. 이 여자가 지금 뭐라는 거야? 네가 뭘 안다고 그래? 왜에? 화났니? 왠지 듣자 듣자하니까 기분이 진실로 상한다. 순식간에 욱하는 심정이 북받쳐 오르는 정말로 나 자신의 본질이란 게 딱 등장했던 거다. 이제 나는 나를 조금씩 알 것도 같다. 나는 역시 그 여자 말대로 일지도 모른다. A0-3. 나는 단지 입에 머금고만 있었다고요! 19
20 아마 멍청이 였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난 침착한 어조로 또박또박 그녀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전한다. 나 참. 화든 뭐든 안 나? 네가 말하고 있는 건 전부 제대로 풀어줄 수 없어. 그 누구도 단번에 맞서기 힘든 문제라고 그런 건. 재능이 있니 없니 조차도 난 하나도 모른다고 그런 건. 이 세상이 쉽다고 생각하냐-니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도 없어. 근데 너, 왜 날 다 아는 것처럼 구는 거야? 난 널 본 적조차 없는데. 왜 비난을 하는 거야? 왜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미리 단정 짓는 거야? 네가 뭔데? 내가 널 알기라도 해? 난 네가 엄청 낯설거든? 그리고 여기. 여기도 나 정말 맘에 안 든단 말이야. 대체. 왜 그러는 거냐고! 넌 누구야? 여긴, 이곳은 닮았지만, 전혀 현실 이 아니란 걸 말을 하면 할수록 더욱 알아차리고 만다. 현실이라 면 입에 발린 말이 더 쉬울 뿐 저렇게 대놓고 누군가를 분석하는 이런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애정이 있는 경우는 다르지만, 여기서 그런 애정이 있다고 보진 않는다. 게다가 어쩐지 지금 눈앞의 여교수는 더 이상 40대란 나이를 가진 존재가 아닌 듯, 어느 시점에서 나는 돌연 그녀와 대등 해져 있었다. 물론 그것이 처음엔 감정적으로 화나서 일거라고 생각한 나도 있었다. 허나 그 대등함 이라는 이 묘한 감각은 단지 내가 화가 났기 때문에 저절로 반말이 된 것이 아니라 반말 이냐 아니냐 따위는 이제 더는 이곳에서 상관이 없어져서 반말 이 되어버린 거 같았다. 역시 이런 생각조차도 꿈 이라 이해할 수 없는 게 더 많지만 그런 느낌이었다. A0-3. 나는 단지 입에 머금고만 있었다고요! 20
21 이 여자, 여교수란 껍데기를 쓰고 대체 무엇을 감추고 있는 걸까-라고 저절로 떠올리고 말았다. 이런 지금이야말로 좀 더 정신을 번쩍 차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그녀의 입술이 움직이 기 시작한다. 하하. 뭐~야. 정말 기억 안 나는 거야? 그래. 안 나. 그게 정상이지. 무뚝뚝하게 대구중이었는데, 그녀가 묘한 말을 시작하고 있었다. 아니. 넌 어쩜 우리들 중에 제일 바보인지도 모르겠어. 라며 어느새 내게 가까이 다가와 내 머리카락을 자연스레 만지작거렸고, 난 그걸 유혹이라곤 보진 않았 지만 굉장히 달콤한 샌달우드향이 나서 왠지 편안한 기분에 아주 잠시 취했다. 우리들이라니? 뭔가 이상한 소리를 해대다가 내가 의문을 제기하자 그녀는 곧 말을 돌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꽤나 수 상쩍었다. 어쨌든! 난 네가 가장 무서워하던 피아노 학원 교사 였어. 그래. 다시 만나니까 너무 두려워서 정신착란이라도 일으키는 거야? 날 제대로 못 알아볼 만큼? 너무 늙어버려서 그랬으려나? 한때 공주병 환자에게 이 말 한방이면 싶었지만, 별로 통하지 않았던 듯 그녀는 조그맣게 미소 지을 뿐 이었고, A0-3. 나는 단지 입에 머금고만 있었다고요! 21
22 아무리 시간이 지났어도 떠올려야지. 안 그래? 그때, 난 아주 잠깐 두 눈을 한번 감았다 떴다. 그런 잠깐의 깜빡임은 수억 수광 년을 지나버린 듯 느릿하게 스스로를 되돌아봤다. 역시나 아무런 기억이 날 리도 없지만, 단지 저 여자의 망상일지도 모르지만, 어쨌건 이곳은 내 안 일 것이다. 단지 꿈쩍도 않고 잠을 자고 났더니 그것은 마치 어딘가로 가서 어떤 것을 보고 경험하고 왔다는 것이 되었고 그것은 낯설음이 가득해도 오로지 단 한 글자 꿈 이라는 단어로만 해석되고 있으니까. 그러니 그것은 어딘가로 갔음에도 아무 곳도 가지 않은 것이 되는 거였다. 모두 내 안에서 일어나는 미스터리가 될 것이다. 꿈, 내 안, 그곳에서 굴러다니는 선명한 영상 속, 혹시 잠시 잠깐의 망상, 부유하는 상상, 무의식 등 으로 불리는 설명할 수 없는 공간에 내가 있는 것이라고 그쯤 해둘까. 지금 눈앞의 저 여자는 꿈의 어떤 대상이 되나? 나의 어두운 그늘, 나의 알 수 없는 무의식, 나의 비밀스런 그림자 등등이라도 되는 것일까? 역시, 모르는 것은 모르는 거다. 그녀를 내가 알 리가 없다. 기억에 없다. 그건 그렇고, 나는 그때 그녀를 다시금 세세히 바라보며 잔잔히 입가에 미소를 걸었다. 내 얼굴 내 몸체 가득 자신만만함이 가득한 모습을 그리며, 나도 한번 이런 것쯤 해보고 싶었으니까. 내가 널 무서워해? 말도 안 돼. A0-3. 나는 단지 입에 머금고만 있었다고요! 22
23 A0-4. 희고 검은 건반은 포인트가 맞질 않아 :16 내가 널 무서워해? 말도 안 돼. 물론, 이 순간의 나는 거짓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겉도 속도 자신도 없는데 괜히 있는 척 해버렸다. 한번 그래보는 거다. 역시 눈치채버린 것일까! 저 여자, 나의 그림자 뭐시기 의 존재는, 사나운 킬러가 사냥감에게 안부를 전하듯 살짝 평온하게 내 뱉는다. 나와는 다른 선명한 도도함을 제대로 발산하면서, 아니. 말이 돼. 그러고 보니, 나는 어느새 키가 작아져 버렸다. 점점 줄어드는 느낌도 없이, 그냥 단박에 작아진 모습으로 등장해서 나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왜! 이런저런 의문을 생각할 새도 없이 앞서 얼마간의 기억도 차츰 잊혀지고 있었다. 한때 노래하던 그 소녀와 같은 고등학생 정도의 나이보다는 내가 조금 더 먹었고 확실히 눈앞의 40대 여 교수보다는 반 토막 정도나 어린 정도가 아닐까 여겨졌는데, 그리 추정하고 있었는데, 지금의 나는 어린애로 코스프래 된 채였다. 작은 신발과 작은 옷가지와 작은 몸으로. A0-4. 희고 검은 건반은 포인트가 맞질 않아. 23
24 20살 정도의 파릇함은 대체 어디가고 8세의 여리고 어수룩함이 남아 내 작은 손을 내 눈앞에서 활짝 비 추고 있었다. 곧 나는 완전히 기억 을 또 잃어버렸다. 앞서 겪었던 꿈 을 잃어버리고 또 다른 꿈 에 진입한다! 갸웃. 고개를 잠시 기울여보던 나는 눈을 몇 번 끔뻑거리다가 곰곰이 생각해본다. 음. 근데- 왜 내 손을 쳐다보고 있는 거지? 에- 손바닥에 뭘 적었나? 문득 휙-하고 이런 생각이 나를 지나쳐 가고 있었다. 그 생각은 흙먼지를 일으키며 금세 달음박질을 치며 저 멀리 질주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 의 뒤통수를 한참이고 한참이고 멍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어느 날, 어느 작은 방에 두 사람이 있었다. 하나의 문이 달린 그 작은 방엔 그다지 비싸 보이지 않는 평범한 피아노와 살짝 구릿빛 피부의 어딘가 낯익은 20대 중반쯤의 학원 여선생 한 명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피아노 의자엔 물론 내가 앉아 있었고, 그 옆으로 그 학원 선생이 내게 시선을 둔 채 한 손엔 회초리인 지 지휘봉인지 긴 막대를 들고 있었다. 그 회초리에서 좋지 않은 기운이 내게로 풀풀 번져온다. 문득, 내가 왜 여기 있는지 깨달았다. 아- 맞다. 여긴 피아노 학원이었지. 얼른 다 끝내고 집에 가서 밥이나 먹어야지. A0-4. 희고 검은 건반은 포인트가 맞질 않아. 24
25 그런 단순한 생각이 상황인식의 전부였던 8세의 나였다. 이 순간 난 그냥 있기 뭐해서인지 왜인지 묘한 긴장감의 기운에 휘감겨서는 이내 주눅 들어서는 곧 눈앞 의 악보를 뒤적거렸다. 잠시 끊겼던 기억이 이어지면서 다시 주눅이 든 모양이었다. 그리고 아까 내 손을 쳐다보고 있었던 이유 도 이제 깨달았다. 조금 전부터 내가 뭔가 굉장히 잘못한 일이 있는 모양이라 생각 되었다. 옆의 학원선생이 꽤나 성이 난 모양새로 두 눈에 힘이 들어가서 눈치 챌 수 있었다. 곧 나는 여기서 해야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팔랑. 팔랑. 이리저리 넘기다 깔끔한 페이지를 보니 조금 전처럼 또 공부해야할 곳인가- 하며 활짝 펼쳐놓고는, 주 섬주섬 작은 손가락을 움직이며 피아노 건반을 조심스레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주변에 팽팽한 긴장감 때문인지 난 금세 움츠러든 손가락이 굳어버린 것일까. 뙁띵땅땅쾅. 그때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생각해도 이런 음은 역시 아니란 기분이랄까. 또 죄송하고 괜찮지 않은 기분이 든다. 하여튼 그런 게 내 귓가를 꿰뚫고 이어 또 다시 맘에 들지 않는 누군가의 음성도 바짝 촉을 곤두세운 채 홱 다가온다. 아니야. 그게 아니잖아. 다시. 가느다란 회초리 같은 막대로 피아노에 몇 번, 악보에 몇 번 두들겨 대던 학원선생이었다. 그리고 마음 같아선 내 머리도 내려치고 싶다는 표정이었지만 꾹 참고 있는 게 선명히 들어왔다. A0-4. 희고 검은 건반은 포인트가 맞질 않아. 25
26 그랬기에 더욱 공포스러웠다! 내 부모님은 아마 이런 선생의 모습을 모를 것이다. 물론 내가 말해도 믿지 않겠지. 부모는 부모대로 바쁘고 아이는 맡아줄 곳이 마땅치 않고 그리하여 어쩌다 이 피아노 학원 에 내가 집어넣어지기 전에 학원비가 적절히 지불되기 전에 이 학원선생은 몹시도 착했다. 내가 무식하게 굴고 있을 때조차도 상냥함의 천사나 마찬가지였다. 네! 선생님! 있죠-! 도 가 어딘가요? 아. 어제도 물어본 거 같은데. 그건 기본 중에 기본인데. 하하. 여기란다. 여기서부터 도레미파솔라시도 야. 알겠지? 또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봐도 좋아. 알겠지? 네! 선생님! 헤헷. 물어봤던 걸 또 물어봐도 피아노와 전혀 무관한 걸 물어도 그리 귀찮게 굴어도 다정하기만 했다. 그런데 선생님! 8분 음표랑 16분 음표랑 다시 그려주세요. 헤헤. 까먹었어요. 아. 그거 일주일째 내가 알려줬는데 잘 모르겠어? 다른 애들은 다 외웠던데. 음. 끙. 그러니까. 이렇게 그리는 거란다. 하. 하하. 시간이 흘러 조금 더 친해졌다고 느꼈을 무렵엔, 선생님! 아까 다른 선생님이랑 하는 이야기 들었는데요. 약혼식에서 남친이 도망갔다면서요? 그게 뭐예요? 약혼식이 뭐예요? 에- 남친 이면 남자친구? 맞죠? A0-4. 희고 검은 건반은 포인트가 맞질 않아. 26
27 근데 왜 남자친구가 도망가요? 왜요? 선생님이 술래 예요? 아. 그러니까 도망간 거예요? 우와! 저도 술래잡기 좋아해요! 아. 음. 그러니까. 오늘 선생님이 아파서 다른 선생님이 오실거야. 김 선생님! 여기 좀 부탁할게요. 죄송해요. 그러며 열심히 달려가던 뒷모습을 보이던 학원선생이었다. 뭔가 울먹거리는 듯도 하다. 선생님! 저번에요! 길거리에서 뺨맞았잖아요. 어떤 아줌마한테서. 그때 그 아줌마가 이랬잖아요. 어디 유부남한테 꼬리를 쳐!? 하고. 근데 유부남 이 뭐예요? 그리구 꼬리 는 동물한테 붙어 있는데. 선생님은 꼬리가 있어요? 저는 없는데! 갖고 싶어라! 와아. 그 꼬리! 보여주세요! 꼬~리! 저 보고 싶어요! 저는요. 여우 귀랑 여우 꼬리가 갖고 싶었는데 안 가져지는 거 있죠! 선생님. 선생님 꼬~리 보여주세요! 네? 빨리요! 네!? 어서요! 선~생~님! 네? 미안. 저기 유 선생님! 죄 송한데요. 저 좀 조퇴 해야할 것 같아요. 갑자기 현기증이. 그러며 조금 전까진 멀쩡하던 사람이, 순간 비틀거리다가 또 멀쩡히 힘껏 달려가던 학원선생의 뒷모습 이 저 멀리 쭈욱 멀어져만 간다. 곧 다음 내 담당으로 찍힌 성별 남자인 유 선생님 이 내게 다가왔고, 저-어. 유 선생님! 오늘 우리 선생님 차~암 이상하네요. 왜 그러는 걸까요? A0-4. 희고 검은 건반은 포인트가 맞질 않아. 27
28 아. 하하. 그러니까. 오늘 속이 좀 안 좋은 모양이야. 에~ 설사 났구나! 그거 정말 안 됐네요. 저런. 뭔가 상한 걸 먹었나-봐요. 유 선생님. 학원 끝나면, 같이 병문안 가요! 응? 아니. 절대로 안 가는 게 좋을 거 같아. 오늘만은 꼭 혼자 있고 싶어 할 거야. 에? 유 선생님. 이런 날이 기회 라구요. 뭐-뭐!? 유 선생님. 저 그거 봤어요! 유 선생님이 우리 선생님 훔쳐보면서 침 흘리는 거 봤다구요! 좋아하는 거죠? 히히. 우리 선생님을요! 그렇죠? 그러자, 꽤나 당황해 얼굴까지 붉어진 유 선생은 내 머리 위로 손바닥을 가만히 얹더니 가볍게 톡톡 두 드리다 말고는, 얼른 내 손을 꼭 부여잡고는 굉장한 기세로 피아노가 있는 작은 방음 방안으로 다급히 들 어갔다. 그러고는, 엄청난 기세로 더듬거렸고 떨고 있었다. 조-좋아하는 거 아-아니야. 네-네 판단의 오-오류일 뿐이야! 그~래~요? 근데 왜 우리 선생님이 민 선생님이랑 잠시 밖에 나갔을 때~요. 그때 왜 그랬어요? 발끈. 내가 어쨌다고 그러는 건데? 응? A0-4. 희고 검은 건반은 포인트가 맞질 않아. 28
29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짓다가, 선생님 손에 들고 있던 종이 두 장을 마구 찢었잖아요. 그거 쓰레기통 에서 봤어요. 다 합체시키니까 극장표 던데요. 아니야. 난 결백해. 네가 본 건 명백히 환상이다. 한동안 우리는 눈빛 만으로 서로를 쭈욱 쳐다보고 있었다. 찌~잉. 찌릿. 역시나 잔뜩 흔들려서 눈 싸움에 진 것은 유 선생님이었다. 먼저 깜빡거리며 시선을 딴 곳으로 옮겨 버린 것이 패배의 원인이었다. 기선제압에 성공한 나는, 마침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당당히 말했다. 예. 그럼. 오늘 저도 컨디션이 좀 안 좋아서, 오늘 10 페이지 할 거 반 만 하면 어떨까요? 그때 유 선생님과 나는 또 다시 한번 눈빛만으로 서로가 멋진 남자 임을 전하고 또 전해가며 그 비 밀 을 봉인하기에 합의를 보았다. 좋아. 너는 사내구나! 그래도 오늘 시간은 꽉꽉 채워야해. 알 지? 물론이죠! 우리는 서로의 굳은 맹세를 악수로 대신하며, 그날만은 5페이지만 했다. 게다가 내 담당 여선생님은 며칠 간 나오지 않다가, 어느 날 굳은 눈빛과 함께해선 안 될 다정한 말투로 맛난 과자와 사탕 같은 간식을 들고서 내 앞으로 다가왔다. A0-4. 희고 검은 건반은 포인트가 맞질 않아. 29
30 그렇게 내 곁에 바짝 다가와 어딘가로 기어들어갈 듯이 작은 톤으로 소곤손곤 말을 건네고 있었다. 있지. 저번에 저 기. 그 꼬리라던가 유부남이나 약혼식이나 그런 얘기. 절대 아무한테도 안 한다고 약속해줄래. 정말 부탁이야. 그 대신에 이거 선물 로 줄게. 이거 전부 유명 빵집 수제과자랑 사탕이거든. 정말 맛이 끝내준다고. 최고의 맛이야. 그러니까 제발 부탁해. 알겠지? 부탁해? 응? 그 여선생님은 내 눈앞에서 선물을 내밀며 두 손을 마주 모아 합장과 동시에 비는 시늉까지 하고 있었 다. 눈가에 아련히 맺힌 눈물방울을 글썽대며, 아이참. 이런 거 안 줘도 되는데. 알았어요. 얘기 안 해요! 절대로요! 저 굉장히 조용한 애에요! 응? 진짜. 정말? 약속이야. 알았지? 고마워. 진짜야. 그렇게 우린 서로를 보며 활짝 웃었다. 그때 난 선물도 받고 참 행복했었는데 말이다. 물론 학원 대금 지불 후 이주일이 지났을 무렵엔 나 말고 또 다른 학원생에게 더욱 더 과한 친절을 베푸 는 듯 보였다. 그 학원선생은! 어느덧 내게 관심이 슬그머니 떠나가고 왠지 사무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그저 의무감으로 피아노를 가르 쳐야만 하기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우중충하고도 딱딱한 그러한 서로의 입장이 되고야 말았다. 결과적으로 내게는 더욱 더 다정하고 상냥함이 담긴 말대답도 확 줄어들었고 한껏 싸늘한 기세로 무시 무시하게 공부만을 시켜댔다. A0-4. 희고 검은 건반은 포인트가 맞질 않아. 30
31 평소엔 안 끼고 왔던 어디선가 구한 매서운 붉은 테 안경까지 끼고는 눈빛을 반짝이던 학원 여선생은, 여기서. 여기까지는 숙제야. 해와. 그리고 오늘은 이 부분을 칠거야. 어서 쳐봐. 어제 내가 미리 예습해오랬지? 어서 쳐! 에-? 예습 같은 거 안 했는데. 아버지가 일은 집에 들고 오지 말라고 했다고요. 아- 뭐. 어쨌든 쳐볼게요. 저는 남자니까요. 잘 못 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놓고 그 다음엔 당연한 듯이 꾸중을 듣고 그런 게 반복되는 나의 일 상이 되어갔다. 틀렸어! 틀렸어! 다시! 오늘 이 순간도 그랬다. 이딴 학원! 가고 싶지 않았지만, 레벨 업 때문에 왠지 어쩔 수 없게 되어버렸다고나 할지. 얼마나 배웠냐 고~ 오늘은 무엇을 배웠냐고~ 묻는 귀여운 동생들과 동네 친구들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나는 피아노를 잘 못 치는 학원생이니까 그러니까 이해한다. 잘만 치는 잘난 척 쟁이 친구들 및 형들과 누나들과는 다르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 얼굴에 드리운 표정은 아무렇지가 않을 리 없다. 어느새 이 공간을 왠지 모를 어둠 만이 가득히 점령하고 있었다! 끈적끈적하게 늘어지는 스트레스도 어린아이의 어깨를 경직시키고 말았다. 긴장되고 불안한 상태에서 잘 하려고 서둘러서 더 망쳐버리고 만다. 이 피아노 건반은 내가 원하는 음을 제대로 잘 나오게 만들어주 질 않고 있었다. A0-4. 희고 검은 건반은 포인트가 맞질 않아. 31
32 그렇게 작은 손가락들은 비틀거리며 다른 건반을 살금살금 욕심내고 있었다. 곧 학원선생의 비난의 비가 싸늘하게 이 공간을 지배하고 커다랗게 압도해 나간다. 햇살 하나 없이 까마득히 펼쳐진 먹구름 저 아래로 우산도 없이 그 차가운 비를 혼자 맞을 뿐인 아이였 다. 또오옥. 또옥. 똑. 비의 빗방울은 마치 피아노 건반과도 닮았다. 흰색과 검정색의 건반 막대는 빗방울이 대지에 낙하하듯 무시무시한 굉음을 내며 나를 아슬아슬 피해내 며 내 키만 한 사이즈로 바닥에 척척 내리꽂힌다. 퍼퍼퍼벅. 파바박. 파박. 콰아아앙! 역시 비가 한 방울만 올 리 없듯이, 수십 수백 방울이 커다란 건반으로 둔갑해 이 작은 방을 관통하며 내리꽂혔다. 이내 온 방안을 거의 다 꿰뚫은 다음엔 어김없이 막판엔 흰 건반 또는 검은 건반 하나가 날아와, 내가 앉은 이 자리를, 내 몸 사이즈에 딱 맞게 모양을 맞추어, 금방이라도 날 빠개버리러 부셔버리러 올 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요리조리 알아서 피했을 이 학원의 여선생은 건반의 비가 올 때마다 앞서 내리꽂힌 건반 위로 훌쩍 뛰어올라 멀쩡한 상태로 굳건히 서 있을 거란 것만은 더욱 또렷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띵땅띵땅. 틀렸어. 내가 몇 번을 말해야 하니? 나~참. 다시! A0-4. 희고 검은 건반은 포인트가 맞질 않아. 32
33 A0-5. 도를 믿으십니까~에 으르렁대지마 :19 띵땅띵땅. 틀렸어. 내가 몇 번을 말해야 하니? 나~참. 다시! 뚱땅띵땅. 다시 해! 다시! 땅땅뚱띵땅. 그렇게 몇 번의 다시 가 우려지고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숨통이 턱턱 막혀왔다. 하-아. 이렇게 계속해서 다시 가 우려지고 우려진다면, 머지않아 국물은 굉장히 짜게 변할 것이 분명할 텐 데, 이런 상황에서 저. 있잖아요. 물을 좀 더 보충해야할 것 같아요. 심부름할 사람은 여기에 저뿐이니 까. 제가 얼른 물을 가져 올게요. 그럼. 안녕히! 라고 말해버릴 수는 없는 거다. 오늘은 이만 하죠. 하고 쿨(cool)하게 넘어가버릴 배짱도 이곳의 내겐 없다. 아직 벽에 걸린 시계가 얼마 가지도 않았으니까. 레슨 1시간이 참으로 길기도 했다. 그 벽시계를 노려볼 때마다 그대로 시간이 멈춘 듯 움직이지 않는 것만 같았다. A0-5. 도를 믿으십니까~에 으르렁대지마. 33
34 휴우으으. 어쨌거나 이 작은 손가락 끝이 너무도 아프다. 조금씩 욱신거리는 이 통증이란 녀석이 피아노 건반을 두려워하는 듯 이리저리 망설이고 있었다. 또 다 시 피아노 건반을 치면 칠 때마다 건드리면 엇나간 음을 내버리는 건반을 또 다시 끝도 없이 칠 것만 같았 다. 계속 실수 하고 싶지 않은데 실수하고 있는 절망의 구렁텅이였다! 어느덧 나도 한계 를 넘어버린 모양이다. 기뻐하고 기대하던 동생들과 동네 친구들의 얼굴조차도 흐릿해져만 간다. 이젠 정말 그만하고 싶어질 정도로 가슴이 답답하고 이 작은 방이 더욱 더 좁게만 느껴졌다. 금방이라도 폐쇄공포증에 걸려 호흡이 가빠질 것만 같고 어질어질해져 기절 당해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여겨졌다. 마음이 아파 너덜거린다. 스스로를 믿을 수 없다. 난 왜 이렇게 완벽하게 쳐내지 못하는 것일까. 이런 나 같은 멍청이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하며 이런저런 자괴감이 독도 앞 해안의 거친 파도처럼 밀려 왔고 몹시도 부끄러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아. 뭐지? 그런데 한편으론 여기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며 허탈해하던 나 를 이따금씩 발견하 기도 했다. 보고 만다. 알아채고 만다. 갸웃. 아주 조금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여봤지만, 변한 점은 없다. 그 이상은 모르겠다. 역시 지금 난 그저 눈앞의 것을 잘 해내야만 했다. 그래야 칭찬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A0-5. 도를 믿으십니까~에 으르렁대지마. 34
35 난 칭찬이 좋은데~ 칭찬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하지만 지금의 나는 불가능할 것이다. 끊임없는 혹독한 연습으로 언젠가는 이 무식한 학원생을 갱생시키리라~! 외쳐대는 학원 선생이라던가, 자신의 프라이드(긍지)를 드높이는 것에 충실해져서는 이를 악다물고 다시! 하고 외치고 있는 학원 선 생만이 여기 있었을 뿐이었으니까. 땅땅뚱띵땅. 틀렸어! 다~시! 학원에서 대체 몇 시간째 이러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기도 하면서도 그때마다 오늘은 일요일 이 라는 둥 오늘은 특별 추가 교습 이라는 둥 말이 될법한 변명들이 당연한 듯이 머릿속을 닐리리아~ 늴 리리아~ 니나노~ 하며 훑고 지나가듯 떠올라 또 시간이 이렇게 쉽사리 흘러감의 연속성 에 대한 의심 을 거의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물론 이 학원에서 존재해야할 시간제한은 약 1시간에 불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조차 난 차마 인 식 해낼 수조차 없었다는 것이었다. 뚜뚜-뚜뚜뚜-뚜-뚜우우. 그렇게 기나긴 시간 속에서 힐끔 저 학원선생의 새까만 눈동자 를 바라볼 때면 약간의 의구심 소스 가 발려진 쩨쩨한 감각이 더욱 더 내게 묘한 모르스 신호 를 명확히 보내오고 있는 듯했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아! 그러던 내가 뭔가를 알아차리곤 정신이 번쩍 들었고, A0-5. 도를 믿으십니까~에 으르렁대지마. 35
36 한때 내 주변을 가득 메웠던 피아노 건반의 비 조차 단순한 거짓된 환상 이며, 지금 내가 여기서 두려워할 것은 그 무엇도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난 그동안 뭔가 단단히 착각 을 하고 있었던 거다. 그때였다! 삐잇-기기긱. 난 힘차게 내가 껌 딱지처럼 꼬옥 붙어있던 그 의자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 후, 순간적으로 빈틈이 보인 왼쪽의 길로 빠져나가려했건만 바로 그 방향으로 그 선생이 돌진해오는 바람에 다시 몇 번씩이나 방향을 틀어 눈치껏 요리조리 피해낸다. 귀찮은 그 선생의 마크 를 혼신의 페인트 기술로 겨우 떨궈낸 뒤, 난 유일하게 하나밖에 없는 그 문을 열고 확 뛰쳐나왔다. 다다닷! 그 사이 뒤쪽에서 그 선생이 쑥덕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약한 비웃음 소리도 옵션처럼 깔려서 더욱 불쾌했다. 네가 그걸 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마 평생 거기서 못 벗어날걸! 하하. 하하하. 난 분명히, 어린애인 채로 달리고 한참을 달린 뒤였건만, 다시 눈앞에 떡 하니 어딘가 본 듯한 그 40대의 여교수가 눈앞에 탁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 는 본래 20세 청춘으로 되돌아와 있는 채였다. 그 덕에 기억 까지도 자동으로 돌아온 상태라 그간 내가 어떤 상황을 겪은 것인지 더욱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분명히 이 여교수는 나를 맹물로 본다. A0-5. 도를 믿으십니까~에 으르렁대지마. 36
37 저렇게 응. 별일 없었는데? 근데 넌 아니야? 하는 평온함 표정으로 지긋이 쳐다보는 저런 광경이 더 욱 더 나를 메롱~ 메롱~ 약을 올려대고 비참하게 만들어버린 셈이다. 그렇다. 나는 얼마 전까지 지금도 역시 그저 꼼짝도 없이 그 여교수의 게슴츠레 뜬 마약쟁이 같이 허망이 풀려버 린 그 눈동자 를 한참이나 단지 바라보고만 있었던 것 이었다. 한참을 홀린 듯이! 열심히 달리고 달리다가 또 이 여교수를 맞닥뜨린 게 아니란 말이다. 그저 여교수의 손바닥에서 가볍게 놀아났을 뿐이었다. 단지 그녀가 날 바라본 것만으로 나는 그저 8살의 어린애가 되어서 한껏 괴롭혀지는 그런 불쾌한 기억을 갖게 되어버린 거였다. 이거고 저거고 모두 의식하고 싶지도 않았건만 저 새까만 그녀의 눈동자 를 다시금 들려다보는 사이 에 난 나도 모르게 칙칙한 절망을 잔뜩 끌어안아야만 했다. 여기에 온몸을 신경질적으로 냉랭하게 스치고 돋아나는 소름은 약간의 옵션 같은 거였다. 거봐. 무섭지? 무서웠지? 공포 는 그런 거란다. 뿌리칠 수 없지.. 왠지 답하기 싫은 기분이었다. 여교수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뭔가를 기대하듯 웃고 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굳이 두려움에 떠는 표정을 지어줄 리가 없었다. 단지 무표정인 채 굳어있긴 했지만, 이걸 두려움에 떠는 표정이라고는 난 생각 안 할 거니까. 절대로! A0-5. 도를 믿으십니까~에 으르렁대지마. 37
38 물론 조금 노-놀라긴 했지만, 저 여교수가 내 꿈속의 산물이라고 친다면 굳이 감흥을 일으킬 가치도 없 다고 생각한다지만, 역시 거슬림의 한 점도 없다는 말은 거짓이고 충분히 내 신경을 자극하고 있었다. 이건 그건가. 내가 현실 에서 해소되지 못한 피아노 학원의 트라우마(trauma)였던 걸까? 순간적으로 이 꿈 에서 현실 의 정보가 홱 스며들어왔기에 난 그리 판단했다. 그때는, 너무도 미숙해서 뭔가 잘 안 되었던 거였다. 조금도 나아가지 못하는 실력에 부족함과 무력함이 넘쳐서 너무도 답답하고 스트레스가 가득 쌓여서 한 편으론 망가지고 있었을 터였다. 후우. 홀로 심호흡을 한 뒤, 지금 냉정히 생각해보면 그냥 선생과 제자의 단계로 그저 잘 못 하니까 야단맞고 있는 것뿐인데, 그게 훈련의 방식일 뿐인데, 다음에 더 잘 치면 되는 건데, 아까는 문을 박차고 도망갈 만 큼 엄청나게 두려웠던 거다. 다시 한 번 더 그 방에 갇힌다면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지, 조금 전처럼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잡아먹은 뒤에나 그곳에서 도망쳐 나올 수 있을지조차 감히 가늠도 할 수가 없었다. 저 여교수, 내가 무엇이 두려운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꽤 요상한 존재로 내비치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멈춰버린들 뭐하겠는가. 또 다시 그 여교수가 뭔가 마법을 부리기라도 하면 또 어떤 장면의 두려움이 펼쳐질지 왠지 심장이 쪼그 라들 것 같기도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 가 있지 않았나? 이런! 그걸 잊고 있었다니! A0-5. 도를 믿으십니까~에 으르렁대지마. 38
39 그간 저 여교수의 꾐에 빠져 이리저리 투덕거리다가 지금에야 떠올린 것이지만, 아직 내 손 안에 해결되 지 않은 채 멈춰진 것이 있었다. 우오오! 괜히 열 받고 있었다. 지금 괴로움을 안아버렸기에 더욱 그런지도 모른다. 겪어보니 알겠다는 심정이랄까. 잊고 있었지만 확실히 다시금 깨닫는다. 지금 나를 사로잡고 있는 건 온통 이글거리는 분노 였고, 그건 바로 그 노래 부르던 소녀 를 향해 서였다. 얼핏 그 소녀의 모습이 나와 같다 는 생각을 슬며시 내 두뇌에 자리를 내어준 순간 더욱 치밀하게 불 타오르는 화염의 분노였던 거다. 아니야. 난! 그 소녀 따위와 동류가 아니야! 그 순간의 내 눈빛이 그 여교수에게 읽혔던 것일까. 바로 치고 들어왔다. 이제 내 말이 이해돼? 넌 그 애랑 똑같아. 재능 따윈 없다는 거. 이제 그 둔한 머리로 이해란 걸 했을까? 너. 이해 란 건 뭔지 아니? 슬쩍 끼어드는 저 여교수를 그냥!, 두 주먹이 와락 쥐어진다. 혈압도 한 번에 쫙 올라 뒷목을 부여잡는 게 취미였던 졸부 집 마나님들 흉내를 내야할 것만 같았다. 재능! 재능 하지 말라 이거얏! 어라. 잠깐! 이거 뭐지? 난 지금 한 마디도!! A0-5. 도를 믿으십니까~에 으르렁대지마. 39
40 아까 나는 단지 으르렁대며 생각했을 뿐인데, 어째서 말을 덧붙이는 꼴이 마치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듯이 선명했다. 난 금세 발끈해서는 여교수를 흘겨봤다. 그리고 따져들었다. 이제 하다하다 내 생각까지 읽는 거야? 미쳤어? 실례잖아! 무례해! 아니. 고개를 슬쩍 가로젓던 그 여교수는 말을 이어나간다. 검지를 들어 일순 까딱거려주며, 그런 단순한 독심술이 아니야. 그냥- 아는 거지. 헐. 이 아줌마가 왜 이래? 도를 믿으십니까~ 번외편이야? 뭐야? 난 도 는 안 믿을 거야. 레나 파는 몰라도. 농담이나 할 때가 좋을 때지. 꼬맹아. 그러니까 우린 오늘 널 죽일지 살릴지 고민하는 것뿐이야. 우린 좀 더 나은 미래를 열어줄 어떤 존재 를 찾고 있거든. 우린 꽤 먼 시간을 돌아왔어. 아메바에서 인간까지. 그런데도 또 남았지 뭐야. 하하 그렇다고 그리 어려워할 필요 없어. 그냥 네가 적합한지 어떤지 판단하는 것뿐이야. 그러니까 별로 네가 신경 쓸 것도 없다는 거야. 곧 죽어 없어질 건 없어지고 살아남을 건 반드시 살아남을 테니까. 그 여교수의 눈길은 어딘가 그리운 먼 곳에 향해 있는 듯 여겨졌다. 우주의 어느 은하계의 중심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랄까. A0-5. 도를 믿으십니까~에 으르렁대지마. 40
41 꽤나 깊이 있는 분위기를 띄우고 있어서 나는 중간에 끼어들 틈이 없어 곤란해졌던 참이었다. 기다린 끝에 이어진 내 말도 아무 거나 막 해댈 수가 없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얼버무릴밖에. 무슨 소리를 해대는지 모르겠군. 어떤 소녀가 노래를 부르는 걸 보여주다가 험담이나 해대고 그러다 돌연 나로 표적을 바꾸고는 나를 어 린애로 만들고 한없이 괴롭혔던 그녀였는데, 지금 이 순간은 뭔가 있어 보인다고나 할까. 꽤 의미심장한 말을 늘어놓고 있어서 그녀에게 한껏 집중하고 말았다. 그때 갑작스레 그녀는 흥이 난 것인지, 심심해서 그러는 것인 진 잘 모르겠지만, 그녀는 차가운 고음의 멜로디를 품은 피아노 건반을 미적지근하게 비슷한 음색의 건반을 몇 번씩이고 같은 손가락으로 지그시 눌러댄다. 어떤 것은 한참을 음을 놓아주지 않다가도 어떤 것은 단번에 음을 놓아주고 손가락이 건반에 머무는 시 간을 제각기 달리하는 모양새였다. 띵. 띵. 띠잉. 띠잉. 띵. 그런 조작 술에 왠지 난 당장이라도 속이 비틀린 듯 신경이 거슬리기 시작했음을 인식했다. 지긋지긋한 노이로제의 음색을 연주하려고 있는 건가-하고 느낄 정도로 짜증나는 여교수의 행동이었다. 젠장할. 역시 미치광이야! 미쳤어! 한참 앞서 좋은 이미지로 만들어버린 그녀를 다시 원상태의 부정적 이미지로 바꿔낸다. 나의 공황발작을 즐거운 듯 보고 있던 여교수는 입술을 열었다. 여전히 그 노이로제는 그대로 연주하고 있었다. 띠잉. 띵. 띵. 띠이잉. 그래. 재능이 없는 너는, 이제 어쩌고 싶지? A0-5. 도를 믿으십니까~에 으르렁대지마. 41
42 똑같은 음이 연이어 퍼진다는 것이 경쾌함 따윈 없이 지루하고 고통스러워서 나는 여교수의 음색을 망 쳐버릴 심산으로 우렁차고 굵직한 저음 쪽으로 다가가 손가락 다섯 개를 사용해 아무렇게나 쿵쾅거리며 상대방의 음을 망쳐주었다. 딴땅-딴! 따안! 과과광! 꽝꽝! 이러고 있자니 아주 살짝 쾌적한 기분이 들어 금방 행복의 나라로 포옥 빠져들 것만 같았다. 이런 게 기 분전환이란 거구나 싶었다. 그래. 나 재능 없다 어쩔래! 가능하다면 널 때려 부셔버리고 싶어! 이제 이런 노이로제 놀이는 지겹다는 듯 지금껏 놀고 있던 그 손가락을 살포시 떼어낸 여교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넌 어떤 결정을 내렸지? 결정이고 뭐고가~ 뭐래? 그 소녀에 대해서. 아님 그저 도망치고 싶어? 소녀가 뭘? 나하고 뭔 상관인데? 뭐라는 겨? 시~방~? 내가 왜? 도망? 좋아하시네. 난 그런 적 없거든? 시시껄렁한 자세로 다리를 달달 떨며 시비를 걸고 있던 나는, 그리 비웃음만을 걸고 있던 나는, 갑자기 뇌리 를 스치는 하나의 혜성이라도 발견한 듯 묘한 떨림 으로 잠시 움츠러들었다. 에-? 문득 갑작스레 이 여교수의 의도를 알게 된다고나 할까. A0-5. 도를 믿으십니까~에 으르렁대지마. 42
43 그와 동시에 이미 내 머릿속에서 서로의 한쪽 손을 내어준 생각과 말 이 꼭 잡은 손을 열심히 흔들 며, 눈앞의 하얀 결승선을 향해 함께 힘을 모아 전심전력으로 달려가 속도감 넘치게 통과해내는 그 광경 을. 곧 하얀 선은 시원스레 끊어지고 주위에선 크나큰 환호성이 들려오는 그 멋진 광경이 떠올랐다. 그 이미지가 단숨에 사라진 순간! 난 저절로 내 입이 열려 단어를 토하는 요상한 현상을 겪고 있었다. 말을 다 내뱉고야 나는 미처 생각할 틈도 없이 말을 해버렸다는 인식이랄까. 아- 아니. 정했어! 그래. 그거였어! 이제 모든 것이 분명해지고 선명해지고 있었다. A0-5. 도를 믿으십니까~에 으르렁대지마. 43
44 A0-6. 부럽지만 그쪽은 아닌 거 같아 :21 아- 아니. 정했어! 그래. 그거였어! 이제 모든 것이 분명해지고 선명해지고 있었다. 그 소녀와 나는, 닮았나?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는 몇 퍼센트(%)정도는 닮았을지도 몰라-라고 추측할 정도에 불가했다. 따지고 보면 내게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 생각했다. 스르륵. 와르르. 이때, 무의식과 현실의 경계가 슬금 무너진 채로 들어온 내 기억 으로는 난 아무런 문제도 없는 듯 평온했다. 모든 것이 괜찮고, 그냥 이대로 있는 그대로 나답게 지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자기합리화 였던 것을 이제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답다는 건 이런 건가? 정말 솔직한 나는 이렇게 무의식 속에서 숨죽여 왔던 거였다. 방황과 고민 속에서 아무 것도 정할 수 없는 나날, 그 속에 홀로 멈춰진 채로 있던 나 였다. 그저 다른 녀석들이 쫓아가던 그 길이 몹시도 부럽게 느껴졌고, 그래서 이쪽 길로 가야만 한다고! 이 길 로 가도 아무런 문제없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던 거다. 허나 또 다른 나는 그 언젠가 보았던 낯익은 풍경의 저쪽 길을 차마 잊지 못하고 머뭇거리고만 있었다. 그러는 사이 나는 이쪽도 저쪽도 아닌 길 한 가운데서 홀로 그대로 멈춰버리고 만 것이었다. A0-6. 부럽지만 그쪽은 아닌 거 같아. 44
45 어디로 가는 게 옳은 길이지? 이쪽? 아님 저쪽? 모르겠어. 다른 이들은 마치 아무런 걱정도 고민도 없이 제 할 일을 번듯하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 그것이 그저 한없이 부러울 뿐이었다. 내가 가려던 길은 그렇게 서서히 힘을 잃고 그 반짝임을 드러내주질 않으니까 나는 또 어디로 가야하는 지 모르게 된 거였다. 그러다, 난 그 소녀 를 만났다. 그 여교수가 한 말을 모두 맞다. 그 소녀는 노래도 정말 못 부르는 편이었고 재능도 없어 보였다. 그렇지만 왠지 내 마음속에서는 그 이유도 모른 채 불쾌한 기분이 일었다. 여교수가 그 소녀의 노래를 멈춘 건 꽤나 잘한 일이었지만 그 소녀는 더 부르고 싶었는데 더 못 부르게 되어 몹시 아쉬워하고 있었다. 갑자기 저지되어 몹시 실망하고 우울해하는 모습이라니, 사실 어떤 한편으론 그걸 잘 이해 할 수는 없었다. 왜 저렇게 민감하게 구는 걸까 싶어서, 그냥 그대로 포기하면 안 되겠냐고 악마의 속삭임을 전해주고 싶다랄까. 네 노랫소리 따위 아무도 듣고 싶지 않을 거라고 맹비난을 익명으로 해버리고 싶다랄까. 이런저런 기분 나쁜 말들을 생각해내는 내가 참으로 삐딱해보였지만, 왠지 그것에서 남몰래 대리만족을 느끼고 만다. 허나 그것은 어긋난 대리만족이다. 내게 내 스스로는 그런 말을 해주지 못 하니까, 그렇게도 열심히 하는 그 소녀에게 잔뜩 시련을 주어서 어서 포기해버리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이런 마음이라니, 그 마음을 전달하자마자 그 소녀는 겁에 질려 다 A0-6. 부럽지만 그쪽은 아닌 거 같아. 45
46 시는 노래 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르는데도, 어쩌면 그게 다행일 거라며 읊조리는 나라니, 이해가 될듯하면 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난 어디에서부터 심사가 이리도 뒤틀려버렸을까? 이래저래 나는 겁쟁이다. 겁에 잔뜩 질려서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 주제에 다른 녀석들도 잘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고 있는, 어 리석은 속물이다. 소녀는 다름 아닌 나? 왠지 닮지 않았다고 아니라고 애써 부정할수록 아닌 게 아니게 되는, 더욱 또렷이 그 소녀가 내 눈앞에 서 조금은 부끄러운 듯 그러면서도 힘을 내어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까 저지당했던 그 시점부터 이어진 그 노래는 조금씩 그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여전히 그 노래 진짜 심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요만큼도 좋은 점 따윈 없단 말이야. 속으로 이리 중얼대고 있지만, 진지한 불평이 아니라, 나는 어느 샌가 작은 웃음기를 달고 있었다. 후훗. 갑작스레 상황은 온화한 빛으로 물들어가고 마음도 느긋해져만 갔다. 하지만 그 모습과 겹쳐진 내 진실 한 모습이 눈앞에 들어왔다. 환한 빛 속에서는 모습을 드러내지 못 하고, 까만 어둠속에서만 잔뜩 움츠려 있는 나! 그런 나 를 이제야 똑바로 바라보게 되었다. A0-6. 부럽지만 그쪽은 아닌 거 같아. 46
47 안쓰럽기만 한 나 를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나는 그 방법을 몰라 고민하고 있었다. 이제야 드디어 그 해결책이 내 눈앞에 펼쳐지고 말았다는 걸 나는 안다. 맞아. 그거였어. 지금은 이런 어설픈 말로밖엔 못 하겠지만. 지금, 여교수의 눈앞에 있는 한 20살 다 큰 소년의 두 눈은 평소와 달리 무척 맑고 초롱초롱하게 빛 을 내고 있었다. 그 빛은 처음엔 그 어떤 망설임에 바람 앞의 촛불처럼 이리저리 흔들렸으나 이내 크고 깊은 빛을 흔들림 없이 발산하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네 말이 맞아. 나도 저런 앤 정말 한 트럭이 온대도 싫어. 하지만 알아냈지. 내가 뭘 해야 할지를! 이 말을 하기까지엔 내 침묵이 꽤 길어졌으나 여교수는 그런 나를 잘 지켜봐주고 기다려주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더욱 더 용기가 나서 하고 싶은 말을 죄다 늘어놓게 되었다. 아. 정말 이지. 난 이미 알고 있었던 거였어! 바보 같아. 하하. 그 애가 뭘 어떻게 해야 그 노래 를 더 잘 부르게 될지. 왜 진작 이걸 몰랐을까! 하하하. 내가 생각하기엔 그 재능 이란 건 딱 정해진 형태가 아니야. 그냥 보편적인 인간 이 어떤 단어로 미리 한계 란 걸 만들어 놓았을 뿐인 거라고. 그래. 좀 더 이렇게 저렇게 변형하면 어떻게 잘 될 것도 같아. 아니 확신해. 쟤는 변할 수 있어. 난 알 수 있어. 네가 말했던 것처럼. 그냥 알게 돼. 맞아. 내가 그 얘를 변하게 할 수 있다는 것조차도! 그래. 그동안 난 정말로 바보 였어. 내가 나만의 노래 를 어떻게 불러야하는지 A0-6. 부럽지만 그쪽은 아닌 거 같아. 47
48 그 방법이란 거 일찌감치 알고 있었는데도! 나는 그동안 이대로가 좋다느니 자기합리화만 잔뜩 하고 있었어. 단지 난 하지 않고 있었던 거지. 물론 내가 왜 무엇 때문에 그러고 있었는진 잘 몰라. 그렇지만 난 그저 하지 못하고 있었던 거였어. 이젠 알겠어! 그 노래를 어떻게 불러야하는지!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는지를! 난 이미 내 안에 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아. 이런 게 심장이 두근두근 거린다는 거였어. 이런 게 진짜로 살 아간다 는 거였다고! 이래저래 난 열변을 토해냈다. 나의 무의식이 나를 충동질하고 육감이 내게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이내 설레는 기분으로 만 들어버렸다. 스스로 감동해버려서인지 눈가에 눈물이 슬금 이슬 맺히듯 맺혀버리려는 걸 왠지 창피하니까 겨우 삼켜 버렸다.! 그때 난 직감적으로 느껴버렸다. 어쩌면 나도 한때 저 여교수 라던 내 꿈속의 그림자 와 같은 존재와 같은 족속 이었을지도 모 른다는 것을! 아마도 그런 눈빛을 하고는 그 여교수를 쳐다봤는지도 모른다. 그 여교수는 아주 엷게 미소를 짓더니 입술을 들썩였다. 잘했어. A0-6. 부럽지만 그쪽은 아닌 거 같아. 48
49 그것은 꽤나 다정하지 않은 음성이었지만, 그런 칭찬 이라도 칭찬이라 나쁘지 않았다. 그 순간이었다! 내 몸에서 서서히 빛이 맺혀 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우아한 금빛 물결은 내 온몸을 돌고 돌아 내 형태를 찬찬히 빛내고 있었다. 몹시도 이상한 기분이었다. 이렇게도 한없이 어둡고도 영원처럼 깊고 투명한데다 아름답게 반짝이거나 하다니! 한밤중 우주에 펼쳐진 은하수를 품안에 끌어안고 있는 상상이 현실이 되어버린 듯했다. 내 양손을 좌우로 쫘악 펼치니, 어둠을 품은 빛의 가루가 온몸을 부드러이 유영하고 있었다. 빛의 조각들이 서로에게 재잘거리듯이 이야기를 건네고 웃고 떠들고 있는 것처럼, 그저 바라보는 것만 으로 만족스럽고 가득한 충족감을 안도감을 느꼈다. 대체 지금 내가 무슨 풍경을 어떻게 말로 전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점점 나의 감정은 하늘을 날듯이 부드러운 상승곡선을 타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나. 그 애를 꼭 만날 거야. 만나서 말이지. 어느새 감긴 내 눈, 그 안에서 나는 이런저런 상상을 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나의 몸은 진짜로 밖을 향해 뛰쳐나가고 있었다. 운동화의 고무바닥 소음을 남기고 사라진 그 소녀, 한참이나 먼저 나가버린 그 애를 서둘러 쫓아서 그 애가 열고 나갔던 그 문을 나도 열고 나가서 그 건물을 빠져나와서는, 거리를 달리고 달려서 길거리 수소 문 끝에 소녀를 만나게 되는 순간을 떠올렸다. A0-6. 부럽지만 그쪽은 아닌 거 같아. 49
50 시간은 조금 지나버렸지만 난 생각대로 곧 그 소녀를 만나게 되었다. 하이(hi=안녕). 용기를 내어 인사를 건네 보았다. 아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누구? 아, 아앗. 그때 그! 딱 보는 순간 바로 기억했으면서 일부러 이제야 기억해낸 척 새침 떠는 소녀였다. 으응. 아 그러니까 할 말이 확 떠오르지가 않아서 잠시 뚱한 표정이었을 거다. 나는. 그런데 여긴 왜-. 그냥. 너를 만나고 싶었어.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내가 굉장히 속으로 오글거리면서도 이상했지만 그냥 패스하기로 했다. 헌데, 갑작스레 경계의 눈빛을 하던 소녀는 초조한 듯 자신의 손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저를 왜요? 설마 그 교수님께서 뭘 가져 오시라고 부탁하신 건가요? 굳이 사람을 보내면서 까지요? 역시 감자 보다는 사과 가 든 박스 를 보냈어야-! 그러며 웬일인지 오! 하며 이제야 알았다는 듯 자기 왼쪽 손바닥을 펴내 오른쪽 주먹으로 톡하고 치 던 소녀, 역시 눈치가 어지간히도 없던 소녀였구나~ 싶었다. 감자나 사과가 든 박스 말고 돈이 든 박스를 말하는 건데! A0-6. 부럽지만 그쪽은 아닌 거 같아. 50
51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다. 그렇지! 아, 아니. 그런 게 아니야. 난 그 소녀에게 내가 왜 여길 오게 되었는지, 내가 너에게 뭘 도와줄 수 있는지 등등을 상세하게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먹구름 사이로 해가 내리쬐는 어느 날, 그 햇살은 점점 더 그 영역을 넓혀갔고 이내 먹구름을 단박에 흩어내 버린다. 그렇게 맑고 맑은 햇살 가득한 날, 바람은 적당히 살랑거렸고, 푸릇한 단풍나무의 잎사귀는 아름답게 팔 랑대며 숨 쉬고 있었다. 그래. 이름이 민지 였구나! 나는 사른 이라고 해. 그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아 우리는 서로의 의견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때론 힘차게 발성연습을 시작하거나 새로운 노래 기법을 익혀나가고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소녀는 자신을 도와줘서 고맙다며 삼각 김밥과 딸기 우유를 사왔다. 다음날도 소녀의 또 다른 간식공세에 흐뭇한 표정이 되어버린 사른, 오늘은, 김치찌개? 헉. 밥도? 와아. 어때요? (우물우물), 응! 맛있어! 진짜 엄청나게 맛있는 맛이야! 우리는 웃고 또 웃었고, 뭔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면서 변형을 거듭하며 진화해가는 그런 우리의 새로운 미래 를 그려보았다. 하루하루 다가오는 나날이 소소하게 행복했고, 하루하루 변해가는 나날 또한 너무도 즐겁고 행복해서, 기적처럼 내 두 눈앞에서 그 소녀의 노랫소리도 눈빛도 인상도 서서히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A0-6. 부럽지만 그쪽은 아닌 거 같아. 51
52 정말 이렇게 다시 만나길 잘 한 것 같았다. 있지. 민지야. 여기. 뭔가가 묻은 거 같은데? 사른은 민지의 이마에 0.5cm도 안 되는 아주 작은 퍼즐 모양인데 살색인 어떤 조각이 붙어 있길래 무심 코 그걸 떼어냈다. 그때였다. 사른은 보고 말았다. 민지의 얼굴이 갑자기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것을! 스륵. 와르륵. 민지야. 너. 그 얼굴. 네? 으왓! 어떡해! 사른이 지적하기 전까진 잘 몰랐다. 민지는, 한동안 너무도 익숙하게 자신의 얼굴로 여기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너무도 자연스레 가면의 조각들이 떨어져버리고 말았다는 것에 놀라버렸고 고개를 푹 숙였다가 조심스레 얼굴을 들며 사른에게, 죄송해요. 속여서 정말 미안해요. 사른씨. A0-6. 부럽지만 그쪽은 아닌 거 같아. 52
53 A0-7. 눈 내리는 날에 석양은 몰락한 걸까? [완] :24 죄송해요. 속여서 정말 미안해요. 사른씨. 사른은 정말로 놀래서 심장이 벌렁댔다. 그토록 평범했던 민지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으로 달라져버린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엄청나게 굉장한 미인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잊었다가 겨우 말을 꺼낸 다. 아- 아니야. 누구나 숨기고 있는 건 하나쯤 있는 거잖아.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정말요? 응. 다. 그러며 사른도 자신의 얼굴을 만지작거려본다. 허나 변하지 않는다. 그 어떤 퍼즐조각도 떨어지지 않았 그것으로, 사른은 살짝 실망한 모양이었다. 뭐하세요? 사른씨? 아무것도. 사른씨. 바보 같아요! A0-7. 눈 내리는 날에 석양은 몰락한 걸까? [완] 53
54 그러며 화사하게 웃던 천상미인, 정말 말도 안 되게 사랑스러웠다. 나를 바보라고 칭함에도 이 순간은 이상할 정도로 모든 게 다 좋은 방향으로 변하고 있었다. 가만 자세히 보니, 이 민지 란 아이,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반짝. 반짝. 새까만 어둠 속에서 은하수가 반짝이는, 그런 내 몸체를 또 다시 들여다보게 되면서 민지 와 헤어지 게 되었다. 그렇게 내 기억은 한없이 점프한다. 다. 그 이후 나는 내 방 침대 위에 있었고, 난 막 방에서 나와서 부엌에서 물을 한 잔 마신다음 거실로 나갔 누가 TV를 안 끄고 간 거야? 나 참. 제대로 끄랬잖아. 전기세는 대체 어쩌라고? 응? 다. 귀찮아하며 화면을 들여다보던 나는, 아~ 또 로맨스 영화인가. 하며 다른 채널로 빨리 바꾸려고 했 헌데, 순간적으로 그 장면에 이끌리고 말았다. 그저 단순히 겨울의 눈 오는 풍경 속에서 흔한 대사일 뿐이었는데 이상하게 몰입되어서는 소파에 자릴 잡고 앉았다. 눈이 오네요. 어떤 남자가 겨울의 풍경을 바라보며 담담히 내뱉자, 꽤 즐거운 듯 좋아라~ 하며 그 옆의 어떤 여자가 말을 이었다. A0-7. 눈 내리는 날에 석양은 몰락한 걸까? [완] 54
55 네. 참 아름답죠! 그런데, 단순히 어떤 여자가 아니라, 그건 민지 였다. 그래서 더욱 더 집중하고 볼 수밖에 없었다. 아니요. 그저 차갑기만 한걸요. 저렇게 내리다간 온통 얼어붙고 말 거예요. 이 마음까지도. 그 직후 남자배우는 서둘러 자신의 입을 제 손으로 틀어막았으나 이미 자신의 쓸쓸한 마음을 그녀에게 들켜버리고 말았다. 눈이 녹으면 뭐가 되는 줄 알아요? 다. 생글거리며 질문하는 민지의 물음에 나는 속으로 설마 봄이 된다고는 하지 않겠지? 라고 중얼거렸 그 사이 나처럼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그 남자배우도 역시 반문하고 있었다. 네? 그 후, 나는 더 이상 소파 위에 앉아있질 않았다. 겨울 코트를 입고 목도리까지 한 채 하늘에서 송이송이 떨어져 내리는 새하얀 겨울눈을 맞고 있었다. 그 리고 내 눈앞에 민지가 보였다. 그 남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런! 이런! 나는 TV 안으로 들어와 버린 거였다. 이건 뭐지? 하고 허공에 멍 때리며 생각하는 사이에, 민지가 내게 되물었다. 이봐요. 사른. 듣고 있어요? 눈이 녹으며 뭐가 되는 줄 아느냐구요! A0-7. 눈 내리는 날에 석양은 몰락한 걸까? [완] 55
56 그야. 눈이 녹으면 물이 되지 않을까? 바닷물이 되진 않겠지. 봄은 더 더욱 안 돼! 왜 그렇게 흥분하고 그래요? 아니. 아무 것도. 별일 아냐. 손사래를 치는 내 앞에서 민지는 눈이 오는 풍경을 아련히 쳐다보다가 다시 나를 그윽이 쳐다봐주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눈이 녹으면요. 응. 꿀꺽. 조금 긴장이 되어 침을 삼켜버린 나였다. 그리고 민지는 활짝 미소 지으며, 눈이 녹으면 클로버 가 되요. 뭐시라? 순간, 사른은 흠. 이런 이론은 처음이군. 이라 생각하며 더욱 귀를 쫑긋거렸고, 왠지 모르게 내 심장 이 지금 사근사근 두근대고 있었다. 대체 그녀는 내게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이것 좀 봐요. 여긴 그저 아무것도 없고 새하얀 눈뿐이지만,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와서 싹이 트면 그건 A0-7. 눈 내리는 날에 석양은 몰락한 걸까? [완] 56
57 분명히 클로버 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갑자기 왜 그렇게 되는 거지? 그냥 요. 대답이 뭔가 근사하지 않아서 아쉬웠지만, 아쉬운 대로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나는 조금 짓궂게 굴고 싶어져서 한 번 더 되물었다. 왜? 그러니까. 그건 내가 심어뒀거든요. 여기에. 당신 몰래. 아 하지만 그게 무엇 이 될지는 모를 일이야. 갑작스레 난 삐딱 선을 탔다. 괜히 이런 부분에서 예민하게 구는 나였다. 그리 말한 이유는 클로버의 의미가 여러 가지여서였다. 세 잎 클로버는 행복을,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을, 다섯 잎 클로버는 불행을, 여섯 잎 클로버는 기적을, 일 곱 잎 클로버는 천운을 의미한다고 알고 있었으니까. 그것이 만약 다섯 잎 클로버라면 어쩔 것인가. 그럼, 넌 당연하게 그 불행 을 믿고 받아들일 것인가? 왜 그런 식으로 밖에 말 못하는 거예요? 사른? 절대로 행복일 게 분명하잖아요? 피잇.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러니까. 민지야. 세상사에 절대 라는 가설은 난 믿지 않아. 아닌 경우도 잔뜩 있으니까. 아무리 심은 대로 거둔다지만, A0-7. 눈 내리는 날에 석양은 몰락한 걸까? [완] 57
58 이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라고. 잘 되지 않는 경우도 있는 거야. 아니요. 내가 여기에 심은 건 세 잎 클로버 라구요! 그러니까 절대로 행복해질 거예요! 그 행복이란 거. 세 잎 클로버 하나로 행복해진다니 거짓말이야. 그런 건. 아무리 노력해도 얻지 못할 때가 더 많단 말이야. 제대로 알고서 말하고 있는 거야? 몰라요! 그런 건 몰라도 되잖아요! 왜 용기를 내지 않는 거예요? 사른? 얼마 전까지 그렇게나 희망적이던 사람이 어떻게 한 순간에 변하냐구요? 어떻게 해야 노래를 잘 부를 수 있는 지 알려줬던 그 멋진 사람은 대체 어디로 갔죠? 왜 그렇게 달라져버린 거죠?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난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 아무 것도. 갑자기 나를 벗어나려 조금씩 뒷걸음질을 치던 민지였다. 너는 내가 아는 사른이 아니야! 내 앞에 있는 이 멍청이는 누구지? 죽어! 죽어버렷! 갑작스레 감정이 격해져 내던진 여자 주인공 민지의 어퍼컷(uppercut)에 남자 주인공역은 맡은 사른은 A0-7. 눈 내리는 날에 석양은 몰락한 걸까? [완] 58
59 역시 남자 주인공이란 미명아래 전혀 맞을 리가 없었고, 그 어설픈 어퍼컷은 이내 사른의 손에 붙잡혀버렸 다. 둘은 순간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혀서, 흔들리고, 민지의 손은 사른의 손길을 뿌리치지 못한 채 그대로 계속 시선을 교환하며 머뭇거리다 사른이 먼저 입 을 열어, 겁쟁이라 미안해. 사과할게. 그리고요? 민지야. 난 네 말대로 나만의 노래 를 어떻게 불러야 더 잘 부를 수 있는지. 이미 내 안에 그 답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어. 나만의 노래 를 부르면 어떤 기분이 드는 지도. 그게 두근거리는 심장을 지니고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는 것도 잘 알고 있었어. 하지만 그럼에도 낯설었던 거야. 아무리 따뜻한 봄이 와도 혹독한 겨울에 단단하게 얼어붙어버린 건 좀처럼 녹지 않는 법이거든. 나도 꽤 오랫동안 녹지 않고 있는 새하얀 눈이었어. 그런 얼음덩어리처럼 고장 난 기계처럼 멈춰버린 채라서 어느새 아무것도 모르게 된 거였어. 그래. 이젠 내겐 그 노래를 잘 부를 수 있는 방법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A0-7. 눈 내리는 날에 석양은 몰락한 걸까? [완] 59
60 그것보다 우선은 나만의 노래 를 부르는 게 먼저였던 거야. 그것부터가 나의 시작 이었던 거였어. 그 모든 걸 깨닫게 해줘서 정말로 고마워. 그리고요? 눈이 녹으면 세 잎 클로버가 자랄 거란 거 믿을게. 이제 된 거지? 하고 나는 피식 웃었다. 아니요. 하나 더 남았어요. 아. 또 뭐가 남았더라? 아! 나, 행복해질게! 그리곤 난 평온하게 웃음을 꽃피웠다. 그러자 민지도 활짝 꽃처럼 웃어주었다. 네. 참 잘했어요! 사른씨. 갑자기 그들 뒷배경으론 감성 풍부한 황홀한 석양이 화들짝 펼쳐지고, 그들은 서로에게 매료되어 알콩 달콩 눈빛을 마주쳐가는 중이랄까. 그 와중에 민지의 손이 아직도 사른의 손에 그대로 붙잡혀 있었다. 지금. 뭐, 뭐하려고요!? 석양처럼 얼굴이 붉어져 당황하는 민지, 한편 진지한 눈빛의 남자, 사른의 미소가 길게 그려지며 입이 열린다. A0-7. 눈 내리는 날에 석양은 몰락한 걸까? [완] 60
61 키스. 지금 요? 응. 기대하라고. 그렇게 둘은 서로에게 다가가고, 두 눈을 감은 민지의 얼굴이 사른의 얼굴을 향해 다가오는 도중, 아 기분 좋다. 나는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건만, 내 심장은 이미 클라이맥스를 넘어서고도 더욱 행복감에 넘쳐 나고 있었다. 왠지 심장 부근에서 따스한 햇살의 새가 날개를 파득거리는 듯이 가슴 깊이 따끈해졌다. 이대로 두 입술이 포개어진다면, 갈색 초콜릿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릴 듯한 달콤한 포근함에 감동 해 울어버리진 않을까 염려되었다. 그렇게 사른과 민지의 입술과 입술이 막 닿으려는 직전, 모든 것은 정지되고, 그 틈을 파고든 누군가의 얼굴이 사른의 눈앞에 떡 하니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누군가의 음성이 민지의 자리를 차지한 채 무뚝뚝한 말투로 그 음성을 내던지고 있었다. 사른! 정신 차리고 앞을 봐라. 으왁! 누, 누구얏!? 나는 유 선생님이다. 기억 하고 있겠지? A0-7. 눈 내리는 날에 석양은 몰락한 걸까? [완] 61
62 방금 전만 해도 모든 풍경이 다정하고 따스함으로 넘쳐날 것만 같았는데, 모든 것은 한 순간에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곧 피아노 학원의 그 유 선생님 이 내 손을 꼭 붙잡고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으왁. 이 손 뭡니까? 왜 깍지를!?" 아~ 뭐, 도망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지. 별 큰 의미는 없다. 예. 예. 없겠지요. 나는 터덜터덜 왠지 기운이 빠져 지쳐가고 있었다. 그 이유야, 민지랑 하려던 걸 못해서이기도 했고, 유 선생님과 있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할 거고, 또 다 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자-아. 사른. 다 왔다. 네? 다시 둘러보고 어쩔 사이도 없이, 나는 그대로 잠에 취한 것인지 그대로 힘에 빠져 픽 쓰러졌다. 어둠이 내리고 다시 걷힌 순간, 두 눈을 떴을 때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 그것은 오롯이 내 방 안이었다. 나는 드디어 꿈 에서 깨어났다. A0-7. 눈 내리는 날에 석양은 몰락한 걸까? [완] 62
63 B0-1. 하늘and무지개and판다and너구리 :28 하늘은 가을 날씨의 한 가닥처럼 높고 청명했다. 그러나 유독 한 곳만 토실토실한 하얀 양을 수십 마리 풀어놓은 듯 뭉게구름을 껴안고 있는 한 동네 가 있었다. 거기엔 가운데가 뻥 뚫린 도넛 모양과 평범한 호선을 그린 무지개도 간혹 보였고 희한한 알록달록한 안 개도 우아하게 깔려 있었다. 그 아래로는 푸르른 잔디와 반들대는 유리알 타일이 뒤섞이듯 깔려 있었고, 그곳을 장식하듯 다양한 조 각상과 눈부신 꽃과 시원한 분수를 설치한 외국 신전 느낌 물씬 나는 어느 공간이 시야에 환하게 펼쳐진 다. 이곳은 다름 아닌 초원의 광장. 이야기는 이곳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에헴. 훠이. 훠이. 다들 비켜나십시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돌고 도는 운명의 수레바퀴를 성심을 다해 굴리시는 일명 운명의 서( 運 命 의 書 ) 님으로 알려지신! 본명 슈크 샤를로즈 님 납십니다. 자아. ( ) 굴~러간다. 굴러~간다. 굴러간~다. ( )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수레바퀴에서 손을 놓지 않으시는! ( ) 위대한 운명의 서 님이십니~다. ( ) 자-아. 비켜나십시오! 자-아. 다들 비켜나세요! 이곳 보완 및 안내 등등을 담당하는 경비병 영혼인 초록빛의 구체가 말했다. 그러자 한때 그 주변에서 왕성하게 수군거리던 셀 수 없이 많은 일반 영혼인 햇병아리 같은 어중이떠중 B0-1. 하늘and무지개and판다and너구리 63
64 이 노란 빛의 구체들은 바다가 두 쪽이 나서 쫙 갈라지듯 길을 활짝 터 주었다. 그 길로 운명의 서 라는 자가 기다란 팔 다리를 쭉쭉 뻗으며 걸음을 내딛었다. 그는 지적임의 상징인 네모난 은빛 안경테를 아이템으로 한 흑발의 20대 청년 모습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여름여행을 떠나는 화려한 바캉스 차림이 인상적이었는데 고흐와 하와이를 좋아하는 건지 해바 라기 꽃무늬 작렬하는 셔츠와 새하얀 반바지를 입고 허리만치 오는 자신의 긴 머리칼을 리본 하나로 묶어 의지한 채 휘날리며 당당히 오고 있었다. 슈크. 그는 운명의 서 니 거창하게 포장되고 있지만, 그저 자신의 보스 신 을 대신해 세상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한다거나 어느 동네에 49일을 다 겪은 죽은 자들을 경비병 레벨의 초록빛 구체들에게 영혼 회수를 명령하는 일을 하고 있 었다. 물론 신도 슈크에게만 맡겨두지 않고 거의 모든 일에 관여하고 있었다. 슈크는 고로 죽음을 거두는 최종적인 일을 하고 있기에 운명( 殞 命 )하셨습니다! 의 그 운명 이란 뜻의 기록 을 맡는 자가 되어있는 거였다. 지금 여기 모여 있는 노란빛 구체들이 바로 회수된 지 얼마 안 된 따끈따끈한 일반 영혼들이었다. 그들은 머지않아 신 의 승인절차에 따라 각기 또 다른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여행을 떠날 것이다. 그 러니까 신 은 영혼들을 다시금 모아 새 인생의 씨앗을 세상에 뿌려주는 일을 하는 거였다. 헌데, 왜 49일을 다 겪은 죽은 자들이냐 하면, 그것은 천국과 지옥 을 말하기 위함이다. 그것은 안타깝게도 정말로 존재한다. 천국과 지옥의 룰을 일부러 만들어 삶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한 것도 있지만, 그것 또한 신의 어떤 사 소한 귀찮음에서 왔을지도 모른다. B0-1. 하늘and무지개and판다and너구리 64
65 컴퓨터를 리셋(reset) 하듯 인간의 기억을 지우려 해도 너무 많은 것이 깔려있어서 너무 시간이 많이 걸 리는 그 비효율성을 잡기 위해서 그것은 처음 시작되었고, 그것을 위해 천사와 악마 라는 녀석들을 만 들어냈다. 천사와 악마. 그들은 인간의 복사판에 더해 신의 힘을 약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지휘 아래 죽음 을 언도받은 자 들은 49일 동안 천사와 악마 와의 정겨운 시간을 보내게 했다. 뭐, 간단히 말하자면 자기반성의 시간을 그 정도로 내어준 거였다. 그것으로 그동안 보냈던 세상에 대한 끝맺음을 위해 자신을 정리할 시간을 보내도록 강제조항을 만든 게 딱 49일인 것이다. 그 다음엔 일절 양보도 없이 리셋은 가차 없이 시행되도록 했다. 이런저런 시행착오 끝에 그런 걸 만든 다음, 신은 그의 비서나 마찬가지인 슈크 에게 말했다. 아. 이제 좀 살겠다니까. 하아. 나 낮잠 좀 잘게. 네에. 다녀오세요. 신이시여. 현재, 슈크는 오합지졸 같아 보이는 노란빛 구체들을 휙 살펴보다가, 찌릿~ 눈살을 찌푸리며 초록빛 구 체인 경비병 놈에게 초점을 들이대며 한껏 노려봐준다. 그러다 곧 자신의 은빛 안경테를 만지작거리며 시선을 거두곤 척척 앞으로 앞으로 걸음을 서둘러 내딛 는다. 으악! 저놈의 경비병! 왜냐. 넌 왜 노래를 하는 거냐? 이것은 나의 시련인가? 크윽. 그런 보이스(voice)를 가졌으면 노래 따위는 얼른 포기하라고. 소나 돼지의 합성동물이냐 너는!? 이 절대음감의 지닌 내게 고통을 주지 말라고! B0-1. 하늘and무지개and판다and너구리 65
66 으악. 하지 말라고 좀! 이런! 이런!!,, 후훗. 씨~익. 허나 머지않아 뭔가가 떠올랐던지, 그는 우아하고도 어딘가 얄궂은 미소를 달고 즐거운 소풍나들이라도 가듯이 신 이 있는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는데! 뚜벅뚜벅. 지금껏 꽃과 구름 문양 나무 창살로 가득한 한지를 바른 전통 나무문이 벌써 아홉 개나 열렸다 닫혔다. 그때마다 향긋한 풀꽃들의 내음과 아름답고도 다양한(?) 풍경의 신기루가 매번 다르게 펼쳐졌다. 첫 번째는 그냥 무난하고 두 번째도 그냥 신선노름 같은 온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그렇게 이어진다 싶었는데, 그렇게 쭉 낙원 이구나~ 평화 그 자체로다~ 라는 중얼거림은 아홉 번째 문 다음으로 열 번째 문이 열렸을 때는 돌연 사라져버렸다. 대나무와 솔 향이 가득한 가운데 들국화 꽃이 하늘하늘 번져가며, 헉!! 웬 판다곰 떼와 너구리 떼가 술병을 들고 술 취한 듯 미친놈처럼 비틀대거나 4방위에서 불쑥불쑥 텀블링 을 하고 지랄뽕짝을 부르며 짬뽕이 되어가고 있는 신기루를 보다가 머릿속이 한동안 처절한 패닉 상태 에 휩싸였다. 그렇게 한동안 뚱하니 멍하니 슈크는 정신을 놓고 멈춰있었다. 뭐 뭐지? 어느 한순간, 숨죽여 바라볼 수밖에 없던 그 신기루 속에서 같이 주거니 받거니 술을 마시며 술병을 들 B0-1. 하늘and무지개and판다and너구리 66
67 고 원샷 하며 판다곰과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나 라거나~ 너구리 꼬리를 한손으로 잡고 빙글빙글 돌리는 듯한 나 라던가를 보았다-아-아! 라는 그런 미묘한 망상이 슬쩍 펼쳐진 것은 무엇인지! -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 저건 저 웃음소린 분명히 자신의 음색과 닮아 있었다. 옷차림은 뭔가가 조금은~ 달라 보이긴 해도, 그 언젠가 입었던 옷인 거 같기도 하고 뭔가 아리송한 것이 정말 헷갈리기 십상인 기분이었다. 아니, 정말 자신 인걸까? 그렇다면 여기 있는 나 는 대체 누구 란 말인가~ 란 의문을 떠올리며 그는 한손으로 안경테를 벗 어들고 다른 한손으로 쓰사삭 두 눈을 비벼댔다. 비비고 비비다 보니 비빔면! 이 아니라, 그러고 보니 이젠 신기루 속의 나 란 녀석은 어디론가 사 라지고 없었다. 과연 실체 는 나 혼자였다고 생각했다. 아주 잠깐 헛것을 본 듯 했지만 말이다. 신경 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별일 아닐 것이라 그리 생각했다. 끄덕. 끄덕. 암. 그렇고말고! 그러던 중에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안개 사이로, 어딘 선가 등장한 반쯤 맛이 간 반달곰 새끼가 내 쪽으로 엎어지듯 무식한 방식으로 좀 더 자세히 말해 단지 그 육중한 몸의 체중만으로! 나를! 홱 넘어뜨렸다. 으헉! 순간 상대방이 너무나 무거워서 애써 긍정을 유지했던 내 방긋방긋한 기분이 꽤나 잡치기에 이르렀다. B0-1. 하늘and무지개and판다and너구리 67
68 게다가 아직 승부가 벌어지지 않았음에도 패배를 한 듯한 묘한 불쾌감이 슬금 몰려왔다. 야. 이봐. 어서 일어나. 뭐하고 누웠냐고? 냉큼 꺼지지 못해!?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착하기 그지없는, 나의 지나칠 정도의 상냥한 말에 그 놈의 커다란 반달곰은, 조금 부스럭거리더니 몸을 일으키는 듯했다. 그리고 넘어진 나를 양 앞발로 무척 가벼운 것을 들듯이 번쩍 들어 자신 앞에 척 세워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덥석. 그 다음 행동이 참으로 과격했던 반달곰, 그러고 보니 덩치가 나보다 가뿐히 2.5배를 넘겼고 키는 내가 마치 어린애가 된 듯한 기분이 들 정도의 사이즈로 꽤 컸다. 아니 그것보다, 으음 여기 왜 이리 어둡지? 누군가 불빛을 꺼버린 듯, 암흑에 진득한 술 냄새와 음식 삭은 냄새가 짙게 풍겨오는 그런 세상에 난 갇혀 버렸다. 아니, 난 또 뭘 느긋하게 이러고 있는 건지!? 내 머리가 먹혔다고? 지금? 우적우적? 우물우물? 으음 좀 아프네. 본능이 시켜서일까? 나는 한가한 내 양손에 신호를 보냈고, 이내 원 펀치를 녀석의 배(?)인가~에 직타로 찔러주었다. 덩치가 커서 요쯤이 배 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퍼억!!!! B0-1. 하늘and무지개and판다and너구리 68
69 내 주먹을 직선으로 뻗어 힘껏 넣으니 그 넓은 전방이 다 반달 마크를 단 곰돌이의 배요 몸이었다. 전혀 실패할 리 없는 절묘한 한 수였다. 쿠울럭. 퉤! 쿨럭 쿨럭. 으음 이제 좀 밝네. 그랬다. 난 반달곰의 입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녀석의 침이 내 옷과 내 머리와 내 얼굴과 내 안경 기타 등등 하여간 내 상반신을 흠뻑 적셔버린 터라 무척이나 화가 났다. 분노가 모락모락 치솟는다! 그리고 나는 재빠르게 네모진 은빛 안경을 깨끗이 닦고 나서 제대로 얼굴에 장착한다. 짜증나게! 지금, 내 눈앞에 전혀 상큼하지 못한 시커먼 블랙홀을 닮은 그놈의 퀭한 동태눈깔이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런 눈깔 아래로 녀석의 실실 쪼개는 그 빌어먹을 입가는 또 무엇인지! 이런! 썅! 너 죽고 잡냐!? 평소 지적이기 그지없는 얌전하고도 착실한 나였지만, 오늘만은 참을 인 을 세 번이나 새길 수가 어쨌든 참을 수가 없는 빌어먹을 날이었다. 그것에 나도 질 수 없다며 높이 점프한 나는 반달곰 새끼의 두툼한 머린지 대가린지를 양손 가득 부여잡 고 가뿐히 공중 점핑하며 니킥(knee kick)을 한참 로켓포 속도로 올려붙이고 있었다. 파밧!! 콱! 크으으허어억. B0-1. 하늘and무지개and판다and너구리 69
70 경쾌하게 박살나기 시작하는 피가 철철 나는 그놈의 두개골에서 일순 아름다운 노랫소리라도 들리는 듯 나는 흐뭇하게 입을 실룩실룩 쪼개고 있었다. 난 평소와 달리 너무도 기분이 상쾌하여 속이 시꺼먼 악마처럼 웃어댔다. 크큭. 크크큭. 크크큭. 크하하하하. 그럼에도 문득 고개를 든 반달곰 새끼는 내게 여전히 썩은 미소를 마구 날리는 것이 아닌가! 그 놈의 새끼는 지가 머리에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거 내가 다 아는데도! 너의 패배임이 확실하단 거 내가 뼛속 깊이 알건만!! 이렇게나 괘씸한 광경은 처음 보는 듯 뱃속 깊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 반달곰 놈의 중얼대는 입가는 여전히 내게 이런 말을 지껄이고 있었다. 후후. 약한 놈. 이것도 때리는 거냐? 쿨럭. 간지럽구나! 순간적으로 놀라웠다. 반달곰이 말을 하다니, 아니 그 전에 판다곰과 너구리 등과 술판을 벌인 신기루 속의 또 다른 나 도 충분히 이상하긴 했다.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니 정말 한눈을 팔지 않고는 못 배길 묘수였던 거다. 나 의 모습들이 이곳저곳에서 술판을 벌이는 그 광경이란 건! 어느 누가 그걸 보고 한 눈을 팔지 아 니 한단 말인가! 그것보다, 반달곰 저 놈이 동물 이라도 해도 언어정도야 구사해도 괜찮지 싶다. 요긴 뭐 그러지 말라 고 규정짓고 그런 데는 아니니까 말이다. 여긴 신 이라는 분도 계시는 영역이니까. B0-1. 하늘and무지개and판다and너구리 70
71 어쨌든! 그 놈은 내게 저리도 죽고 싶어 안달을 하며 약을 살살 올리고 있었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구두구두구! 심장이 커다랗게 머릿속을 누비며 쿵쾅거릴 만큼이나, 새하얗게 흥분해서 나는 그놈을 패기 시작했다. 감히 서열로 따지면 신 이란 분을 제외하고 여기서 짬밥을 가장 많이 먹은 나한테 덤벼들다니 용서 할 수가 없었다. 퍽퍽퍽! 그놈을 패느라 힘들어서 헉헉 거리는 내 혈기왕성하고 섬뜩한 모습에 언젠가부터 내 뒤편에서 야금야금 따라오던 판다곰들이 무리지어 나를 붙잡아댔지만, 말려댔지만, 역시나 통하지 않았다. 나는 이미 살포시 배시시 맛이 가~있어서 내 위에 올라서려는 이놈을 당최 용서할 수가 없었다. 이글이글. 그 덕에 말리려던(?) 판다곰들을 하나 둘 손에 잡히는 족족 가공할 나의 파워로 휘릭 휘릭 허공으로 저 멀리 산 멀리 날려버렸다. 고로 그들은 모두 저 멀리 허공의 점 이 되었다. 이봐. 반달곰. 그래. 이건 또 얼마나 간지러우냐? 대답해보라고! 응? B0-1. 하늘and무지개and판다and너구리 71
72 B0-2. 스모키아이가 설교하잖아! 소년! :30 이봐. 반달곰. 그래. 이건 또 얼마나 간지러우냐? 대답해보라고! 응? 또다시 나는 눈앞의 반달곰을 정성들여 손봐주기 위해 녀석의 위에 척 올라가 있었다. 녀석의 눈동자를 느긋이 바라보면서, 밑바닥 험한 지옥에서 되살아온 듯 한없이 어둠으로 파닥대는 그 런 흉흉한 눈빛을 그 놈에게 흘렸다. 이제 검붉은 액체가 마녀의 솥에서 끓어 넘쳐 솥 외부로 쫙쫙 흘러내려 그 겉면이 더렵혀지듯 일렁이는 분노를 발산하며 어금니라도 질끈 깨문 기세로 야수의 과감한 인상을 지으며 정신병자처럼 나는 중얼댔 다. 기합을 담아 소리쳤다! 죽일 거야. 죽일 겨 널 죽이고야 말 겨! 내 모습에 조금 움찔한 듯 반달곰 놈의 심장이 쿵쾅쿵쾅 대는 그 소리가 그 모습이 실로 가까이서 들려 오고 있었다. 이내 반달곰이 쉰 듯한 거칠고 낮은 노이즈 음성으로 작게 주절거렸다. 그러며 연신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 그만! 쿨럭. 나를 놓아주길 부탁한다! 크윽. 이에 내 입가는 용서 없이 실로 미친 듯이 아름다운 곡선으로 휘익 휘어져 올라가며 짙게 깔린 살벌과 말벌침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녀석을 당장에라도 처리해버릴 욕심에 손바닥이 간질거리는 건 물론이고 절로 흥에 겨워 신( 辛 :매울 신, B0-2. 스모키아이가 설교하잖아! 소년! 72
73 라면 먹을 때 너무 맵고도 열이 나서 버둥대는 호흡의 모양새)음성까지 발산해버릴 정도였다. 후후. 후후후. 후후후후 드디어 내 혼신의 에너지를 끌어 모은 마지막 주먹을 녀석에게 힘껏 뻗어가려던 참이었는데! 그 순간이었다. 뭐 이런 엑스엑스 같이 어안이 벙벙한 일이 내 앞에 벌어진 것은! 펑! 펑펑! 펑펑펑! 꽤나 허탈하게도, 그 순간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은 모두 연기 로 변했다. 방금 전까지 내가 붙잡고 있는 반달곰이나 너구리나 판다곰 등등의 풍경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러니까 모락모락 피어나는 뭉게구름 같은 개뿔도 없는 안개가 어느새 새하얗게 내 주변으로 몰려온 모양이다. 에? 에엑? 뭐지? 나, 지금껏 뭐하고 있었지? 뭐냐 이거? 응? 그렇게 현실감 넘치는 신기루 였던 것은 사라졌다는 거다. 소독차를 한껏 열심히 따라가다가 소독차 대신 하얀 연기만 남았다는 전설이다. 소독차 추적에 실패하고 집으로 가는 길도 방향도 죄다 잃어버리고 마는 그런 현실( 이 동네는 대체 어 디야? )을 마주하는 씁쓸한 기분이었다. 아. 왠지 싫다. 기운 빠지네. 그 반달곰! 아작을 내버리는 건데. 아쉽네. 쩝. 아쉬움과 실망을 접고 다시 걸음을 내딛는 슈크였다. 싸아아. B0-2. 스모키아이가 설교하잖아! 소년! 73
74 어느덧 나는 가느다랗고 긴 빛줄기가 조금씩 스며 나오기 시작하는, 그 앞으로 향하는 길을 향해 똑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뚜벅뚜벅. 뚜벅. 뚜벅. 이제 다 왔군. 이윽고 난 마지막 인 그 11번째 문 앞에 서 있었다. 머지않아 나를 감지한 듯 눈앞의 문이 자동문마냥 스륵- 반갑게 열려졌다. 그렇게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누군가를 향해 넙죽 엎드려 큰절을 올리며, 오오. 신이시여. 이 몸 운명의 서, 슈크 샤를로즈 부름을 받듭니다. 어서와. 슈크. 눈앞의, 한 소년이 슈크의 등장을 알아챈 듯 말을 건넸다. 그곳엔 짧은 붉은 머리칼의 한 소년이 홀로 있었다. 슈크가 방긋 웃고 있자 또 한 마디 덧붙이던 소년이자 신 이었다. 근데 왜 또 그래? 그딴 귀찮은 건 관두랬잖아. 붉은 머리칼 소년의 주위로 일렁이는 시린 푸른빛을 휘감은 고고한 흰빛의 오오라가 아니라면, 웬 녀석 이 이런 곳에 떡하니 있는 것인가 할 정도로, 소파 위에 늘어져 편하게 드러누워 책이나 읽고 있는 옆 모 양새가 꽤나 허술해보였다. 소년이 입은 하늘 및 파랑계통의 얼룩덜룩한 워싱청바지에 검은 반팔 면티만 봐도 무한한 방심이 저 하 늘의 눈깔을 찌르고 있는 듯 보였다. B0-2. 스모키아이가 설교하잖아! 소년! 74
75 그런 소년에게 나는 상냥히 답한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오오. 신이시여. 귀찮다니요. 저의 궁극의 예절만은 꼭 받으셔야지요! 그런데 웬일로 저를 부르셨지요? 아주 오래된 옛날 옛적 그 언젠가 예법이라는 둥 존경과 건강과 번영 관련어를 담은 길고도 긴 인사를 올렸었는데, 그게 마치 임금에게 하는 신하의 극존칭의 예 ( 禮 )와도 같았으나 신 과의 밀당(밀고 당 기기) 및 타협으로 요~정도까지가 한계라고나 할까. 이리저리 귀찮다고 투덜대던 신 에게 그 인사 직후부터는 슈크 마저도 설렁설렁 근거리까지 다가와 늘 하던 대로 묻고 있었던 거다. 때가 된 듯 해서. 이제야 읽고 있던 책을 양손으로 탁 덮고 몸을 돌려 이어 시선까지 돌려 슈크 를 정면에서 바라보던 신 이었다. 뭐랄까 차마 신 이라고 하기엔 화려한 얼굴조차도 아니었고, 단순히 어느 정도 평안함이 묻어나는 인상으로 누구나 한번쯤 사기를 치고 확 튀고 싶은 목표물 이 되었으면 되었지 사기꾼은 안 될 인상이 었다. 이 녀석 순진해 보여~ 오옷 넌 착한 소년이로구나~ 하며 머릴 빡빡 문질러 주고 싶어진다거나 하는 건 오버(over)려나. 키는 딱 중학교 신입생 1학년생치곤 작아보여서 초딩이냐~라고 묻고 싶은 150cm 사이즈였고 그러고 보 니 슈크(약 180cm)와 얼추 30cm정도 차이가 났다. 흐음. 그렇 군요. 벌써. 그런 시기가 왔군요! 응. 신이시여. 제가 일반 영혼들에게도 누누이 말해왔지만, B0-2. 스모키아이가 설교하잖아! 소년! 75
76 요즘 여행 이란 판타지&테러 랍니다. 그래? 네! 아시다시피 본디 자신의 영혼 지식은 일방적으로 보통 육체에 묻혀서는 아주 순수하디 못해 멍청한 바보 레벨까지 내려간다구요. 갑자기 지식 레벨이 내려간 탓에 꼴사나워진다고나 할지. 품위가 크게 손상된다고나 할지. 그런 탓에 자신이 속한 세상 속에서 뭔가 하나라도 배워갈 때마다 깨달아갈 때마다 몹시 황홀하긴 하지만~ 대체로 어려운 거 아니겠어요? 하하하. 그게 난처하다고나 할지. 그렇다구요. 그러니까 너도 가야지. 아 네. 물론 그건 그렇지~요. 싱긋. 슈크의 웃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결같이 조금은 지루한 표정을 달고 있던 신 이었다. 그런 거야. 그러니 실수 없도록 해. 홱. 금방 읽고 있었던 그 책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별 상관없다는 듯 뒤편 허공을 향해 아무렇게나 내던져 버렸다. B0-2. 스모키아이가 설교하잖아! 소년! 76
77 헌데 그 책은 낙하에 성공했다는 소리 소문도 없이 고요했다. 알고 보니 소파 뒤편 멀리 이미 수백여 권의 책들이 지면에서 살짝 뜬 피라미드 형태로 켜켜이 나란히 잘도 쌓여있었다. 아마도 그 책도 그 무리에 잘도 합류한 모양이었다. 피라미드 책 탑에 스투~라익! 을 당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도 없는 걸 보면 그 책은 원래부터 들어 가야 할 위치가 제대로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 후, 신은 소파 위에 등받이에 몸을 제대로 기대어 널브러져선 다리를 꼬고 거만한 자세로 앉았다. 그런데요. 저기 신이시여? 왜 그래? 정말 오늘부터 가시게요? 이번에 한번 종말 화끈하게 내리고 나서 일반 영혼들 도 지난 이력을 싹 정리해두고 성격도 아주 깨끗하고 순수하게 만들고, 그러니까 맨 처음 부터 다시 만들고 한 100년 후에 놀러 가시면 안 될까요? 그때쯤엔 참 경치도 풍요롭고 아름답고 우왁! 까딱! 신이 검지를 잠깐 앞으로 까딱했을 때, 슈크를 향해 지구상에서는 가장 거대한 흰수염고래 한 마리가 두 둥! 나타나 그를 깔아뭉개려 하고 있었다. 슈우우- 슈왁! 휙! 그걸 슈크는 놀라서 치켜뜬 눈 그대로 양손을 뻗어 잡아채 그대로 뒤로 휘~리~리~리~릭! 하고 온 신경 B0-2. 스모키아이가 설교하잖아! 소년! 77
78 을 집중해 다급히 집어던졌다. 단순히 그걸 휘릭! 이라고 단순히 표현해버리기엔 이 녀석은 몹시도 엄 청난 사이즈였으므로~설라무네. 그 후, 식은땀을 삐질 삐질 슈크 혼자 다 흘리고는, 다시금 신을 뻔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순간 방심 과 살짝 친구하며 멍 때리며 쳐다본 것만 같다. 신은 그랬다. 늘. 늘 아슬아슬하게 내가 최선을 다해서 할 수 있을 만큼의 에너지를 써야만 그 위기를 당당히 모면할 수 있도록 나를 시험하고 있었다. 그 고래의 덩치와 무게에 맞춰 적당한 공간과 적절한 타이밍과 힘 속도 균형 조절 등등으로 해내야 하는 그 짓 이었다. 그렇게 날 항상 시험하고 있었다 라고 생각하는 건 역시 내 합리화일지도. 한편, 뒤로 날아간 그 큰 덩치의 흰수염고래는 마치 공간이동 되기라도 한 듯 벽을 그대로 통과해 스으 윽 어딘가의 공간으로 사라져버렸다. 그 끝에 남은 건 물방울을 온 사방에 후다닥 튕겨주는 센스정도였을까. 훗. 종말인가. 그딴 생각. 하지도 마. 그럼, 슈크. 어서 게이트 열어. 신은 그 말을 하면서 전혀 화내는 얼굴이 아닐뿐더러 음성의 높낮이조차도 평이했다. 단지 정보 만을 말할 뿐이고 전달할 뿐이었다. 너무도 평범하게, 그래서 더 내가 식은땀이 날 정도로! 혹시 화가 났다는 걸 저렇게 말하고 있는 건지 또는 그게 아닌 건지. B0-2. 스모키아이가 설교하잖아! 소년! 78
79 왠지 그 속을 알 수 없는 신 이라 슈크는 생각했다. 휴으으. 허나, 그건 그거고, 지금 하늘아! 꺼져라~ 땅아! 무너져라~ 긴 한숨을 내뱉는 슈크였다. 그 후 그가 허공에 대뜸 앉자마자 땅바닥에서는 돌연 플라스틱 재질의 가시 없는 흰 백색 장미꽃 덩굴이 초고속으로 주룩주룩 자라나 의자 를 신속히 만들어내 그의 엉덩이와 등~ 몸체를 적당히 받쳐주고 있 었다. 새삼스럽게 왜 그래? 슈크? 그런 슈크의 모습에, 힐끔 시선을 주는 신, 그것에 적절한 대답을 이으려면 담배 가 필요하다는 듯, 슈크는 어느새 한 손에 붉고 아리따운 불꽃 이 붙은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들고 있었다. 희뿌연 연기 한 가닥이 하늘로 유유히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느슨히 올라가고 있었다. 곧, 그 새하얗기만 하던 연기빛깔이 알록달록한 파스텔 톤 무지갯빛으로 바뀌어 이어가고 있었음에도 신은 여기 금연구역이야. 꺼져! 라고 하지 않고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담배 한 모금을 깊이 들이킨 슈크는 허공에 연기를 방출한다. 막 뿜어낸 순간 그 연기는 옅은 무지갯빛이었다가 금세 무색투명으로 공기를 고요히 삼켜낸다. 헐리웃 마약쟁이를 흉내 내려는 걸까~ 슈크는 그 언젠가 시름시름 앓았던 적 있는 좀비 폐암 환자마냥 순식간에 시들해지고 검게 그을린 스모키아이 화장을 한 눈두덩을 드러내며 중얼 중얼 나직이 떠들기 시 작했다. 이봐요. 신이시여? 요즘 이 세상이 얼마나 많이 변한 줄 아십니까? 꿈속 여행같이 순박하기 그지없는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나 영화나 이것저것 보신다고 신경 끄고 계셨겠지만-요. B0-2. 스모키아이가 설교하잖아! 소년! 79
80 아 정말이지. 예전 같지 않다고요. 아주 테러리즘 이라고요. 예전의 그 순박한 녀석들은 없어지고 말았어요. 그놈들. 기술력 하나 믿고 의기양양하다니까요. 순 돈밖에 모르는 것들이에요. 그 귀엽고 착하던 하얀 양은 이제 검고 얼룩진 난폭한 소떼들로 변해 버렸다구요. 정말이지 예민하지 못한 녀석들이 잔뜩 우글거린다니까요. 음식에 고약한 방부제나 넣는 녀석들이라고요. 훗. 그래서 뭐? 예전 에도 그랬던 거 아냐? 물론 책이나 영화 다큐멘터리 등등 다양하게 보고 있다고. 난 전혀 편식쟁이가 아니라고. 날 허투루 보지 마. 이 외관에 속지 말랬잖아. 이래봬도 이 몸은 신 이라고. 정신차려야할 건 바로 너야. 슈크. 밍밍한 대답이 신의 입에서 평이하게 쏟아져 나왔고, 그것에 흥분해 속이 터지는 슈크는 담배를 휙 없애 버리고는 신에게로 후다닥 다가와서, 다시금 자신의 은테 안경을 고쳐 쓰고는, 신의 양어깨를 꽉 잡고는 설득표정으로 진지하게 눈빛에 맹렬한 열정을 더하며 소리쳤다. 훨씬. 훨어어얼씬 심해졌다니까요!! 저도 직접 겪은 일이라고요! 리얼 100%!! 정신을 확 차려도 될까 말까한 그런 대테러 사건들이 곧장 현실이 되는 세상이라고요! 예? 알겠습니까?? 두 눈뜨고 살아도 대낮에 머리가 총알에 관통될 판이라구요! 낭만 따윈 이기심에 묻혀 흔적도 없단 말입니다! 길도 너무 복잡해서 네비게이션이 없으면 안 된다고요. B0-2. 스모키아이가 설교하잖아! 소년! 80
81 전 정말 길치여서 얼마나 고생했던지 말도 못 해요! 그러니까 재밌지. 어쩔 수 없는 거 아냐? B0-2. 스모키아이가 설교하잖아! 소년! 81
82 B0-3. 게이트는 간지나게 오른손으로 열지요! [완] :32 그러니까 재밌지. 어쩔 수 없는 거 아냐? 씨익. 신은 그렇게 더는 아무 말 없이 무료한 표정을 지우고 조금씩 피어나기 시작한 티 없이 맑은 미소로 슈크 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신의 그 거짓 없는 미소 혹은 그 자체가 무표정한 압력을 담고 있을지도 모를 그것에 반사적으로 예민하 게 반응해 어느덧 저만치 뒷걸음질 치며 물러나 있던 슈크였고, 지금 그를 향해 신은 올곧게 한 손을 척 내밀고 있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움켜쥔 것이 없는 신의 그 텅 빈 손길은 마치 슈크에게 자-아. 잔말 말고 가자. 라 고 속삭여대는 듯했다. 이런 미소를 짓고 있을 때 덥석 잡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나름 아는 슈크였고, 얼른 덥석 신의 오른손 을 자신의 왼손으로 잡았다. 약간 긴장해서일까. 슈크는 살짝 멍을 때리고 있었고, 그 모습을 힐끗 보던 신은 이내 재촉의 눈빛을 보내왔다.! 그랬기에 퍼뜩 정신을 차린 슈크는 아무것도 잡지 않은 빈 오른손을 펼쳐내어 게이트 를 열기 시작 B0-3. 게이트는 간지나게 오른손으로 열지요! [완] 82
83 했다. 그 일이 마치 어느 직장인의 직업병이라도 된 듯 평상시와 다름없이 완벽함에 가깝게 일을 처리하고 있 었다. 스윽. 슥. 슥. 그저 오로지 오른손만으로, 허공을 넓게 휘젓는 단순한 몇 번의 직각적인 직선을 그리는 단조로운 손길 로 시작했으나 게이트를 여는 일은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어떤 때는 어느 한적한 숲속의 도인처럼 정신통일 염불하듯 줄줄줄 길게 뭔가를 중얼대고 있는 듯도 보 였고, 그러면서도 어떤 완성된 그림을 만들기 위해 고심하는 듯 퍼즐 한 조각 한 조각 정성들여 이곳저곳 에 끼워 넣는 듯한 섬세한 움직임도 보였다. 허공에 뭔가를 탁 탁 끼워 넣을 때마다 어떤 금빛 은빛의 정밀한 회로가 전기를 타고 흐르듯 파밧 파밧 거리는 흐름이 공기와 공기를 타고 쉼 없이 흘렀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나름의 성취감에 흡족한 듯 조금 더 기운을 내고 있던 슈크였다. 그러다 갑작스레 그의 손동작이 미친 듯이 빨라지다가 어느 시점에서 쉬어도 되겠구나~ 하는 기분이 들 자 자연히 그의 동작도 느릿하게 변했다. 그제야 주변 을 향해 시선을 돌릴 여유가 생겨 괜스레 힐끗 둘러보기도 하던 슈크였다. 그렇게 어느 한 순간 신 을 바라보았을 때, 신은 웬 허공을 향해 한쪽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고 있었다. 웬 허공에 윙크질? 혹시 연애스킬연습? 혼자 셀카(self camera) 연습? 카메라도 없는데? 에엑? 게슴츠레 그 광경을 구경하던 슈크는 그것과 동시에 문을 여는 마지막 수신호를 오른손으로 계속 이어 가던 중이었다. B0-3. 게이트는 간지나게 오른손으로 열지요! [완] 83
84 때마침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한 시선을 눈치채버린 신은 왠지 그 상황을 쉽사리 넘기는 척 아무것도 아 닌 척, 그저 허전해 보이는 자신의 빈 왼손으로 자기 눈을 비비적대고만 있었다. 그러며 슬쩍 이렇게 말을 흘리는 거였다. 으음. 뭐가 들어갔나? 모래? 이어서 자연스레 두 눈을 동시에 깜빡거려준다는 걸로 앞서 그것은 윙크가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 연유로 슈크도 아~ 정말 그런 건가. 눈에 뭔가가 그렇군. 윙크로 추정되는 그것이. 아, 그렇 군. 하고 홀라당 넘기고 말았다. 띵동!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게이트 완성 의 신호음이 들려왔다. 곧 슈크는 자신의 오른손 수작업 예술 공예로 형성된 문의 손잡이를 잡아 비틀어서 먼저 신 을 들여 보내고, 뒤따라 자신 도 그 안으로 들어가며 손잡이를 힘껏 닫는 것도 잊지 않았다. 조금 불편하긴 했 지만 여전히 에너지 공급원 겸 활용되고 있는 신 의 손은 절대로 놓지 않는 슈크였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작은 인사 를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슈크의 그 말에, 슈크. 너 어따 대고 말하는 거야. 글쎄요. 게이트를 열고 그 안에서 하늘처럼 그저 텅텅 비어있을 뿐인 무료한 허공을, 한참 몸을 날려 옷깃을 펄 럭이며 비행하고 있던 신 이 따졌지만, 위로 높이 묶었음에도 바람결에 찰랑이는 긴 머리칼을 오른손 만으로 뒤로 넘기던 슈크는 그저 잔잔히 미소 지을 뿐이었다. B0-3. 게이트는 간지나게 오른손으로 열지요! [완] 84
85 잠시 무운을 빌었을 뿐이지요. 부디 당신과 또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슈크가 그렇게 기도를 한 이유는, 세상 에 떨어지게 되면 둘은 서로는 헤어진 채로 언젠가는 다시 인 연으로 만날 것이 분명하긴 하나, 그 만남이란 것이 지척에 닿기 전까지는 스스로의 힘으로 그 세상 속에 서 홀로 잘 살아가고 있어야 한다는 거였다. 화아악. 그 후, 곧 거대한 소용돌이가 나타나 여러 갈래의 손길을 뻗어 그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머 지않아 신과 슈크가 잡고 있던 손도 떨어지게 되었다. 아마 둘은 그 손이 떨어지기 직전까지, 게다가 조금 더 멀어지기 전까지 서로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 다. 신이시여. 인연이란 게 존재한다면, 우린 절대로 다시 만나게 되겠지요? 그래, 알고 있다고. 그러니 슈크 너도 잘 견뎌봐. 신이시여. 이 슈크를 부디 기억하셔야 해요. 꼭~입니다! 생명은 소중한 거예요. 그래. 노력은 해볼게. 너도 잘 해보라고. 맘먹은 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지만. 네. 나의 신이시여. 믿고 있을게요. 나의 신이시여. 신이시여 어차피 또 다른 세상 에서 어떤 식으로든 태어나고 깨어나기 위해서는 이런 방식을 거쳐야만 했다. 이때만큼은 누구든 예외 없이 말이다. B0-3. 게이트는 간지나게 오른손으로 열지요! [완] 85
86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조금씩 찾아들어온 백과 흑이 빛과 어둠이 제멋대로 뒤범벅이 되고, 그들의 영 혼은 자신의 기억을 차츰 잃어가고 있었다. 사아아. 그렇게 둘은 완전히 헤어지게 되는 거였다. 이것으로 한동안 안녕 이란 말이다. 그것이 얼마나 긴 안녕 을 예고하는지조차 아무리 능력 있는 신 이라도 슈크 여도 전혀 알 수 없는 거였다. 그 이유는 신 이 모든 것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했고, 또한 신 의 명령에 따라 여러 명 의 슈크 가 배치된 각각의 세상엔 또 다른 법칙으로 시스템이 제각각 굴러가고 있기에 그런 거였다. 각각의 세상에 들락날락하는 영혼도 매번 다르기 때문인 점도 있고, 어쩌다보니 49일간 죽은 이들을 통 제해야할 천사와 악마도 제 나름대로 할 말이 있다고 제 구역에 망부석 로봇처럼 지키고 있지 않고 제멋 대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등등을 일을 벌이곤 했기 때문에, 다소 어떤 일에선 엉망이 되기도 한다는 점도 그러했다. 허나 그것 또한 신 의 견해에서 보자면, 큰 틀은 깨지 않는 선에서 천사와 악마 녀석들이 자질구레하 게 개입한다는 것 정도에 불가했으므로, 신 이기에 모든 것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의미보단 신 이기에 모든 것을 굳이 통제하지 않아도 되 는 거라고 말했었다. 그딴 거 몰라. 나 신 이라고 일단. 그러니까 넌 그런 신경 안 써도 돼. 슈크. 알겠지? 예. 하지만. 아, 아닙니다. 네. 신이시여. 그렇게 알겠습니다. 하하. 한때는 너무 무관심에 방임주의자인가 싶을 정도였지만, 적당한 무질서는 환영하는 주의랄까. 그런 기분 파라서 신 은, 아주 가끔씩 모든 정보 중 일부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해본다는 가벼운 개념으로 이런 B0-3. 게이트는 간지나게 오른손으로 열지요! [완] 86
87 여행 을 선택한 거였다. 그러니까. 간다고. 내가 그런 거 하나하나 세심하게 신경 쓰려고 신 이 된 건 아니라니까? 네? 그게 무슨 의미인지요? 신이시여? 하여간. 그런 기분 이 든다고. 아. 질문 그만. 나 잠깐 밖에 나갈 거야. 따라오지 마. 그래도 어딜 가시는 건지는. 꽃밭. 아. 네. 또 새로운 꽃이 생각나신 거예요? 지금 바로 만드시려고요? 됐어. 갈 거야. 아 맞다. 질문 그만 이랬지요. 하하. 죄송해요. 신이시여. 왠지 식물들에 대해선 애정이 꽤 있어서 토라져버리기도 하는 신 이었지만, 어쨌거나 그 둘이 만나서 서로를 알아차리게 될 때까지는 영원히 안녕 인 것이다. 이렇게나 쓸쓸한 여행 을 각자가 따로 시작하게 된다는 점부터가 왠지 신 의 보호자로서 기분이 엄청나게 나빠지던 슈크 였던 거다. 그러다보니 매번 그 여행 이 시작될 때마다 같이 따라가는 슈크 들마다 걱정이 태산일 수밖에 없었던 거였다. 어디로 떨어질지 모를 또 다른 세상, 그곳에 배치되어 그곳의 법칙을 지키고 있을 또 다른 한 명 또 는 몇 명으로 구성된 슈크 들조차도 우선은 신 의 편에 서 있긴 했지만, 둘이 모두 평범할지 어떨지 모를 어떤 인간 의 모습으로 감춰진 상태인지라 함께 따라간 슈크 에게도 신 에게도 전혀 도움 B0-3. 게이트는 간지나게 오른손으로 열지요! [완] 87
88 이 안 되는 거였다. 아마도 둘이 함께 가 되지 않는 동안은 본래 가지고 있던 힘의 위력도 인간 의 몸으론 전혀 펼칠 수가 없는 거였다. 그렇기에 둘 다 만나서 알아차리기 전까진 아무것도 모른 채 오로지 인간의 한계만을 간직한 채 나약하 게 존재할 게 분명했다. B0-3. 게이트는 간지나게 오른손으로 열지요! [완] 88
89 B1-1. 적당한 미끼로 얄궂은 미소를 막아! :33 가봐야 하나. 역시 그렇겠지? 문득, 떠오르는 그 생각 을 멈출 수가 없기에 급히 실천하려던 신 이었다. 지금 이 순간은 마침 슈크 가 오른손을 고이 써서 게이트를 열려고 애를 쓰고 있는 중이었고, 신의 오른손은 슈크의 왼손에 내어준 상태였다. 그래서 남아있는 한 손을 바라보다가, 스윽. 자신의 눈에는 훤히 보이는 이 공간에 존재하는 얄팍한 시간의 틈 에 하나 남은 한가한 왼손을 적당 히 집어넣은 신은, 드디어 원하던 것을 꼬옥 움켜쥐었다. 와락. 아마 이것도 다른 공간을 여는 문의 손잡이의 일종이란 걸, 신은 알고 있었다. 그 순간 즉시 신은 자신의 몸을 두 명으로 분리시켰다. 그 중 하나 1번을 이쪽에 두고, 또 다른 하나 2번은 왼손으로 아직은 보이지 않는 그 손잡이 란 것을 붙잡고 투명하게 일렁대는 그 문을 개방하기에 이른다. 그 후 그 길을 향해 걸음을 뻗어가고 있었다. 신이 둘로 나눠져버린 것. 그것이 원인이었을까? 이곳에 게이트를 여는 슈크와 함께 있는 이쪽의 1번 신 은 지금 약간 어리석은 반응 을 연출하고 B1-1. 적당한 미끼로 얄궂은 미소를 막아! 89
90 있었는데, 그건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눈짓(윙크)을 하는 거였다. 윙크라니? 아. 저거 나 야냐. 절대로 아냐. 1번 신 이 그 이상반응인 윙크 하기 초 전부터, 저쪽의 2번 신 역시도 그쪽의 상황을 당연한 듯이 엿보고 있었다. 자신의 오른쪽 손바닥 위 허공에 띄워둔 작은 모니터 화면에 있는 저쪽의 또 다른 자신 인 그 1번을 바라보며 속으로 쑥덕거리던 참이었다. 그 윙크 란 사소한 행동에 매우 짜증스러운 기색을 띄던 그였다. 평소 성격상 저런 짓은 절대 할 리가 없는, 엄청나게 창피한 짓에 속했으니까 말이다. 참으로 가벼운 사 내처럼 보이지 않는가 말이다. 저런 모습이라니! 그러고 보니 슈크가 게이트를 여는 초반부였기에 에너지를 꽤 많이 잡아먹고 있어서였기에 순간적으로 자신이 공급하던 그 에너지가 과부하 현상을 일으킨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니, 저런 윙크쯤이야 이해해버 릴까? 하다가도 저런 디테일이라니 역시 자신의 프라이드가 용납지 않았다. 때마침 그때 주변 을 훑던 슈크의 시선이 뒤통수에 팟 꽂힌다는 기분이 들었고, 저쪽 1번 신 이 느낀 걸 이쪽의 2번 신 이 모를 리 없기에, 본체 로서 퍼센트 함량이 높은 이쪽의 2번 신이 명령하 여 1번 신이 곧 그것을 실행하기에 이른다. 으음. 뭐가 들어갔나? 모래? 그 모습에 슈크도 1번 신을 향해 더 이상의 묘한 시선은 흘리지 않았기에 상황은 무난하게 넘어갔다. 곧 2번 신은 오른손 위에 띄웠던 1번 신 감시용 작은 모니터를 없애버린 뒤, 좀 더 적극적인 발걸음으로 자신이 갈 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씨익. 그 순간, 1번 신은 쾌재를 부르는 듯 작은 미소를 입가에 슬쩍 달고 있었다. B1-1. 적당한 미끼로 얄궂은 미소를 막아! 90
91 그때 또 다른 자신, 좀 더 본체에 가까운 2번 신이 지금쯤이면 이미 원하는 바를 성취하고 있음을 이 어져있기에 저절로 알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한편, 나는 시간의 틈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그리고 달렸다. 아주 가볍게. 기분 좋은 바람을 타고서. 사락 나는 1번 녀석과 멀어진 듯 보였지만 다시 또 이 공간이 연결된 다른 시간 속에 존재했다. 그 시간 속에서도 물론 이 공간과 닮은 다른 공간 은 존재했다. 그것은 얼핏 연결되어있는 듯 보였지만 서로 분리되어있었고 1번 녀석이 있는 공간과 똑같아 보였지만 전혀 다른 곳이었다. 이곳은 1번 녀석이 윙크를 하기도 전의 풍경이 완벽히 복사된 듯 보이는 곳으로, 내가 시간의 틈으로 왼손 을 뻗기 직전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내가 이곳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더 이상 나 를 보고 있었던 게 아니라, 그저 나 의 모습으로만 고스란히 멈춰있었다. 온전히 이곳에 있는 1인의 나 로서 어떤 생각을 하고서 막 어떤 곳을 향해 왼손 을 뻗을까 하는 그 생 각 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허나, 이곳의 유일한 나는, 그런 짓을 하지 않기로 한다! 이렇게 계획은 변경되었다. 이 순간부터가 내가 이곳이 1번 녀석이 있던 곳과는 전혀 다른 곳임을 증명 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단지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것은, 고요한 손끝으로 일으키는 한 줄기 바람뿐. 화아아. B1-1. 적당한 미끼로 얄궂은 미소를 막아! 91
92 이곳에서도 그 1번 녀석이 있던 곳의 슈크와 완전히 빼닮은 슈크가 게이트를 여는 중이었지만, 나는 홀 로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홀로 바람 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 공간은 곧 점점 거대해지기 시작하는 태풍과도 같은 나의 반란에 투명하고 무향의 바람을 받아들이 며 조금씩 조금씩 시간의 정지 를 이룩해내고 있었다. 처음은 작은 실바람, 그것의 소용돌이는 몸체를 서서히 다급히 부풀려가며 이 공간을 기어코 집어 삼켜 버리고 만다. 휘릭. 휘이익. 휘이이익. 곧 나의 바람은 과격한 움직임으로 일순 공간을 모두 지배 해버린다. 멈춰진 시간 속에서, 이 공간을 지배한 나만이 홀로 생동감 을 얻게 된다. 그랬기에, 내 옆에 있던 슈크 는 이곳에서 내가 일으킨 시간의 파편에 의해 와자작대며 난도질당해 모든 것이 와르르 부서져 내렸다. 본래 있던 풍경 이 새겨진 유리 판넬이 산산이 조각나 버렸기에 한때 이 풍경의 일부였던 슈크는 여 러 조각으로 나뉘어져 유리조각의 하나처럼 길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모양새였다. 그 중 일부를 재빨리 내 호주머니에 슬쩍 집어넣고는 기다렸다. 역시. 기다림에 끝에 다가온 뭔가가 있었다. 그 한 이질적인 뭔가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팔랑. 팔랑. B1-1. 적당한 미끼로 얄궂은 미소를 막아! 92
93 그것은 공중에 둥둥 떠 있는 작은 물고기 한 마리였다. 내 손바닥 안에 딱 들어올 꽤 작은 사이즈였다. 형광 연두 빛을 내며 앞서 내가 멈춰낸 시간 속에서 그 부서진 공간의 파편들 을 한입 두입 얌얌 대 며 먹어대는 속도가 장난 아니었다. 두입 째 먹는 것까진 봤는데 어느새 이 공간에 그 본래 있던 풍경 이었던 것의 조각이 싹 사라져 있 었던 거다. 그러며 다시 내 주변을 알짱거리며 나를 쳐다보는 눈길이라니, 물론 나도 그것을 다소 흐뭇하게 보고 있었다. 휙. 양손을 탁 뻗어내 잡으려는데 아슬아슬하니 빠져나간다. 그러고 세 번쯤 놓치곤 짜증나서 좀 더 힘을 내 보려는데 갑자기 은사로 된 그물이 활짝 펼쳐져 나와 물고기 사이를 가른다. 그 물고기는 왠지 얄궂게 웃는 듯했고 난 은사그물을 잡아당겨본다. 다행히도 그물을 걷는 행동을 하자 단숨에 걷힌다. 횡재한 기분에 난 그 물고기를 향해 웃어주었다. 이봐. 곧 잡을 거야. 허나 내 말에도 그 물고기는 또 웃었다. 비웃음이 확실해 보이는 그 얄궂음을 뿌리며 재빨리 움직임을 펼친다. 그 뒤로 맨바닥이었던 이 공간은 어느 샌가 물속으로 바뀌어져 있었고, 나도 그곳에 맞춰 헤엄치고 있었 다. 그러다 난 머지않아 알아챌 수 있었다. 그 형광 연두 빛 물고기가 그런 식으로 웃었던 이유를 말이다. 그새 수많은 동료를 데리고 온 것이었다. 내가 맨바닥에 발을 온전히 디디고 있다가 돌연 환경이 바뀌어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던 탓에 잠시 방심 해버린 사이, 똑같이 생긴 수많은 물고기들 사이에 몰래 숨어버린 그 녀석은 겉으론 차마 웃지 못하고 속 B1-1. 적당한 미끼로 얄궂은 미소를 막아! 93
94 으로 실컷 웃고 있을 것이다. 고약한 것. 이런 곳에서 시간낭비가 싫었던 나는, 아까 슬쩍 챙긴 것을 호주머니에서 빼서 그 중 일부를 내 앞 공간 에 뿌렸다. 파라랏. 이미 나는 멀뚱거리고 보고 있는 수많은 물고기들에게 포위된 상태였으니까. 그건 쉬운 일이었다. 다 똑같아서 그 녀석이 그 녀석처럼 보였지만, 역시 아까 내가 부셔버린 그 공간을 맡은 바로 그 물고 기 만이 서둘러 쫓아오더니 하는 수 없다는 듯이 내 앞 공간에 뿌린 그것들을 열심히 먹고 있었다. 그 동안 내 손은 호구가 아니기에 그 녀석을 척하니 잡아낼 수 있었다. 그리곤 내 품에서 슬그머니 내민 내 손안에서 나머지 그 물고기의 밥을 호주머니에서 꺼내서 마저 먹게 해줬다. 그러며 다정히 말을 건넸 다. 그러니까 그냥 잡히랬잖아? 내 손바닥 안에 척 들어올 듯했던 그 작은 물고기가 다 먹어치우자 내 양손을 넓게 펼쳐야 넉넉히 들어올 법한 사이즈로 꽤 커져있었다. 미니의 귀여운 금붕어가 우아한 몸체의 잉어가 되어버린 듯했다. 그 리고 한 번 내게 잡혔던 경력이 있어서인지 그저 내 눈앞에서만 둥실 떠 있었다. 잡힌 물고기를 자세히 보고 있자니, 이상한 숫자들이 물고기의 비닐 하나하나에 제각기 깜빡거리다 사 라지기를 반복하는 그 모습이 이 물고기로 하여금 형광 연두 빛을 내게 하는 원인이라 여겨졌다. 그래서 그 숫자에 집중해서 아~ 이건가? 하는 감을 믿고 나는 제각각 오묘한 빛을 내는 그 비늘에 가볍게 꾹꾹 번호를 입력했다. 그럴 때마다 간지러운 듯 몸을 살짝 움직이긴 했지만 다 입력해냈고 그러자 그 물고기는 곧 두 눈동자에 서 형광 파란 빛을 발하다가 그것이 전염되듯 다소 투명하게 몸체마저도 그 형광 파란 색깔로 다 뒤덮이 B1-1. 적당한 미끼로 얄궂은 미소를 막아! 94
95 는 듯 했다. 사아. 다시 원상태로 돌아온 물고기는 다시 작아져 있었고, 이 공간엔 이전엔 없었던 것들이 생겨나 내 주변의 허공을 크고 넓은 원통으로 짜라라 감싸고 있었다. 그것은 어느 선가 봤던, 이미 나와 수많은 슈크들과의 지나온 과거의 수많은 장면들이 하나 둘 선명하게 잘 묘사되어 있는 사진 들이었다. 온 사방의 원통의 벽면에 그것들이 떡 펼쳐진 채로 나를 향해 유혹의 손길을 보내고 있었다. 어서 나를 골라 달라고! 어서 손을 내밀어 당장에 선택해보라고! 말이다. 휙휙휙. 대충 신의 손길이 그것들 중 몇 장면씩 집었다 놓았다 하거나 집어 들어 던진다던가~ 고르고 고르기를 반복했고, 그것들 중에 신의 바지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는 몇 장면도 있었다. 그러다가 곧 원하는 장면을 찾아내자 이내 그의 입가엔 잔잔한 미소가 그려졌다. 흐음 이건가! 원하는 사진에 바로 손을 뻗어, 그 사진을 들고 그 위로 집게손가락으로 두 번 툭툭 건드려준다. 마치 가볍게 마우스로 클릭 질을 하는 듯했다. 그러자 그것은 곧 자신의 키를 훌쩍 넘어서는 정도로 넉넉한 사이즈가 되었고 그 안으로 쑤욱 몸을 내던 지는 신이었고, 그 이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사진 속 장면 이 펼쳐진 그곳, 그 내부에 있는 하얀색 비옷을 입어 후드를 쓴 그 시간의 문지 기 가 얼굴이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살짝 아래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스윽. B1-1. 적당한 미끼로 얄궂은 미소를 막아! 95
96 신에게 고개 숙인 채이던 그 문지기 가 한쪽 손을 쭈욱 뻗어, 신의 머리에 갖다 대고는 물었다. 어딜 가려고? 그러자 신은 답한다. 우리 얼굴 좀 보고 이야기 할까? 넌 잘 알 텐데 내 속셈쯤이야. 눈앞에 문지기, 놀랍게도 자신과는 너무도 닮은, 아니 또 다른 자신 이 이제야 고개를 들어 나를 바 라보고 서 있었다. 그래서 난 그 녀석에게 손을 들어 흔들며 반갑게 인사를 해주었다. 하이~! 아. 응. 아무리 닮은 자신이라지만, 시간의 문지기로서의 자신의 표정은 매우 단조로웠다. 그나저나 참 썰렁하구나. 너. 그건 됐고, 아무리 자기 구역이라지만, 넌 너무 여유로워. 저렇게나 살랑대는 그 꼬리가 보이지도 않나봐? 흠칫. 뭔가 딴 생각을 끄집어내려다가 난 그냥, 녀석의 말을 무시하고 묻는다. 낚시질 좋아하는 건 참으로 나 답다- 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어쨌건 지금은 이러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B1-1. 적당한 미끼로 얄궂은 미소를 막아! 96
97 됐고, 시작할까? 끄덕.(문지기) 끄덕.(나) B1-1. 적당한 미끼로 얄궂은 미소를 막아! 97
98 B1-2. 알아. 그 사진이 발목을 잡는다는 거 :34 됐고, 시작할까? 끄덕.(문지기) 끄덕.(나) 둘은 그것으로 서로를 인식하고 나서, 서로의 양손바닥을 서로에게 내밀어 마주 갖다 대며 둘 다 고스란 히 두 눈을 감았다. 곧, 그 둘은 묘하게 겹쳐지는 형상으로 서로의 몸은 서로를 향해 투명한 물결처럼 순간 일렁거렸고, 머 지않아 원래 그들은 하나 였던 것처럼 둘 중 하나는 그림자 라도 되어 버린 듯 오직 1인만이 그곳 에 남아있었다. 그 1인이 두 눈을 번쩍 뜨고 주변을 확연히 바라보았다. 신은 자신이 선택한 곳에 자신이 오직 한 명만 존재함을 확신했다. 언젠가 그랬듯 또다시 자신의 방에서 소파에 앉아 언젠가 읽었던 그 책을 한 장씩 넘겨보다가, 이곳 입구인 마지막 11번째 문이 열린 것을 알아챘다. 그리고 그 앞에 설 누군가도 알아챘다. 그렇게 그가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문장을 허공에 주르르 내뱉고 있다는 것조차도. [ 오오. 신이시여. 이 몸 운명의 서, 슈크 샤를로즈 부름을 받듭니다. ] [ 어서와. 슈크. ] B1-2. 알아. 그 사진이 발목을 잡는다는 거. 98
99 나의 대답 역시 그때와 같다. 이것은 법칙과도 같아서 꼭 그렇게 해야만 했다. [ 근데 왜 또 그래? 그딴 귀찮은 건 관두랬잖아. ] [ 오오. 신이시여. 귀찮다니요. 저의 궁극의 예절만은 꼭 받으셔야지요! 그런데 웬일로 저를 부르셨지요? ] 슈크 역시 그 시각에 들어맞는, 그 들어봄직한 말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되풀이했다. 그 모습 에 신은 이 상황이 꽤나 만족스러운 듯 드디어 이 순간을 위해 준비했던 그 대사를 냉큼 내뱉었다. 지금이 바로 시간의 방향을 묘하게 꺾을 때였으니까. 근데 너 몇 번째 슈크 였지? 그 언젠가 신이 몇 번째 임을 알고서 불려 졌던 슈크였지만, 어느덧 그 사실을 까먹고 있다가 다시금 묻는 거였다. 번거로운 방법을 써서 시간까지 돌려가면서 묻는 질문치고는 심오함이 떨어져 보이긴 했으나, 궁금한 건 꼭 알아야했다. 슈크의 그 몇 번째 에 해당하느냐~에 따라 다른 세상에서의 그 여러 가능성 에 대한 대처방식들 이 달라지니까 말이다. 간단히 말해 뭘 할 수 있고 뭘 할 수 없고가 분명해지니까~ 라고 해둘까. 물론 시간 돌리는 일이야 어렵지 않다. 신에게는. 조금 귀찮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일부러 그리 만들어놓은 거였다. 시간을 함부로 뛰어넘지 말라는 자신에 대한 경고나 마찬가지로 복잡하게 해뒀다는 거다. 넷? 그게 무슨. 슈크의 당황함에 피식 웃던 신이 살짝 반짝임이 감도는 그윽한 눈으로 슈크에게 말했다. 어쩌면 잔인할 B1-2. 알아. 그 사진이 발목을 잡는다는 거. 99
100 지도 모르는 그 말이지만, 둘 사이에선 별일 아닌 일이었다. 내가 운명의 서 를 하나만 만들었을 거 같아? 걘 굉장히 바쁘다고. 그러니까 물론 너 도 바쁘겠지. 그러니까 그게 흠. 뭐라고 말해야한담? 아아. 제 일기장 번호 요? 아. 잠시만요. 슈크는 이제 그 의미를 알아차린 듯 자신의 자료집인 일명 일기장 을 꺼내들었다. 그 전에 물론 한참을 온몸 구석구석을 먼지 털듯 뒤적이다가 자신의 오른쪽 귀 뒤편에서 펑! 소리와 함 께 일기장 을 찾아서 펼쳐서 쭈욱 읽어나갔다. 전 그러니까 301번 이네요. 하하. 슈크 란 자는 신에게 나눠받은 영혼은 하나지만, 몸은 여러 개, 그에 따른 경험치 즉 레벨도 여러 개 라고 볼 수 있었다. 슈크의 일기장 번호는 레벨이나 마찬가지였다. 낮은 수치면 경험치가 낮고 높은 수치 면 경험치가 높고 그런 거 말이다. 인간이 나이를 먹고 지식과 경험 등등을 습득한다면 지혜로워지듯이, 물론 모든 인간이 지혜로워진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일부의 이야기다. 그건 그렇고, 보통 신 이라면 선입견처럼 모든 걸 죄다 알고 있는 듯 했지만, 이곳의 신 은 아니 었다. 오히려 인간을 더 닮았다. 그렇기에 인간의 특성인 망각 도 있는 거였다. 물론 그 망각을 기록해둔 곳이 따로 존재하므로 스페셜하다는 신 이라고 불리고 있는 거다. 그렇군. 그 정도면 충분해. 너무 똑똑한 슈크 는 재미없거든. 옛? B1-2. 알아. 그 사진이 발목을 잡는다는 거. 100
101 인생을 너무 관람 해서 너무 능력이 출중해서 운명 을 죄다 비껴가거든. 그렇지. 운명 을 가뿐하게 극복하는 경우나 좌지우지 하는 경우도 많이 봤지. 아니, 더 쓸데없는 걸 더 불러버리는 것도- 랄까? 흠 그야말로 수레바퀴 를 꼭 껴안고 있지. 이해하겠어? 솔직한 말로, 이해할 수가 없네요. 하하. 아아. 그 정도가 딱 좋아. 슈크. 네. 그런가요? 하하. [ 때가 된 듯 해서. ] 라는 말을, 언젠가 했던 그 말을 되풀이해 덧붙이는 신, 그와 동시에 슈크의 시야에서 웬 지지직대는 노이즈가 펼쳐졌다. 그리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조금 어지 러울 뿐인 그 감각은 금방 까먹어버리게 되었다. 그 짧고도 짧은 시각, 시간은 그곳에서 조금 앞으로 되감기고 신 은 또 다른 자신을 만나게 되었다. 그 노이즈 의 잠깐 타임(얼음 땡 놀이의 그 멈춤의 신호) 해버린 공간에서 또 다른 자신은 자신의 모습과 똑같이 연두색 슬리퍼에 검은 반팔 티에 하늘색과 파랑색의 워싱청바지를 입은 차림이었다. 원래부터 이곳에 있었던 그는 입을 열어서 이제 막 이쪽으로 온 잠시 시간여행 중인 또 다른 자신에게 물었다. 왠지 삐딱한 눈빛을 하고서는, 너, 왜 여깄냐? 그런 일이 좀 있어. 설명 안 해. 갈게. 알았다. 나도 신경 끌 거야. 잘 가. B1-2. 알아. 그 사진이 발목을 잡는다는 거. 101
102 응. 두 명의 신이었다가 다시 한 명의 신만이 이곳에 남아서, 아주 자연스럽게 소파 위에 드러누워서 읽던 책을 읽고 있을 뿐이었다. 곧 슈크의 시야에선 노이즈 막 이 사라지고 왠지 어지러움도 없었다. 헌데 아주 잠시 앞에서 자신이 뭘 하고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나던 차였다. 그러다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자신은 큰절을 올리며 신께 인사를 건넸고, 오오. 신이시여. 이 몸 운명의 서, 슈크 샤를로즈 부름을 받듭니다. 어서와. 슈크. 근데 왜 또 그래? 그딴 귀찮은 건 관두랬잖아. 오오. 신이시여. 귀찮다니요. 저의 궁극의 예절만은 꼭 받으셔야지요! 그런데 웬일로 저를 부르셨지요? 라고 물었던 것을 금방 떠올려냈다. 그리고 신의 대답을 기다리던 중이었던 거다! [ 때가 된 듯 해서. ] 읽던 책을 양손으로 갈무리한 뒤 슈크를 정면에서 바라보던 신의 모습, 흐음. 그렇 군요. 벌써. 그런 시기가 왔군요! 응. B1-2. 알아. 그 사진이 발목을 잡는다는 거. 102
103 마치 모든 것들은 처음 이었다는 듯이 순조롭게 대사는 이어지고 있었다. 시간은 다시 딱 맞게 맞물리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방금 노이즈 공간 속에서 만난 자신에게 갈게. 라고 말했던 그 시간여행 중이던 신 은, 또 어느 시간의 틈에서 망설이고 서 있었다. 아. 그 문지기 녀석. 어째서일까. 난 아무래도 그게 신경 쓰였다. 시간 담당인 또 다른 나, 그 썰렁한 문지기가 한 말을 그냥 잊은 척 넘겨버리자니 영 찜찜했다. [ 그건 됐고, 아무리 자기 구역이라지만, 넌 너무 여유로워. 저렇게나 살랑대는 그 꼬리가 보이지도 않나봐? ] 난 지금 기억을 되돌리고 되돌려 그 미심 쩍인 꼬리 가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바지 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끄집어 들었다. 그 사진을 챙긴 시점에선 별 생각 없이 집어든 것이었으나 그건 아마도 자신의 무의식이 일찌감치 깨닫 고 있었기에 지금의 이 상황을 가능케 만들어버린 것이리라. 그것들 중엔 여흥삼아 간직하고자 집어넣은 사진 몇 개도 있었건만, 하여간 어떤 식으로든 내 생각이 수 많은 과거 사이에서도 곧 맞이해야할 과거이기에 한편으론 미래라고도 볼 수 있는 그 어느 부분까지도 어 느 정도 장악하고 있었던가~ 라고 생각해버리면, 또 새삼 내가 신이긴 신이구나! 싶기도 할 정도로 묘 하게 스스로도 자신에게 감탄해버리고 만다고나 할까? 뭐 이러고 있자니 또 나 스스로가 웃겨 보이기도 한다. 혹여나, 이런 생각들이 모여 나를 이루다보면 언젠가 나의 모든 행동을 모두 아무렇지도 않게 정당화해 버릴까 두렵기도 했다. 아무리 내가 신이라지만, 나도 모르는 일이 있는 것이 더 정상일 테니까. 그런 관점이 이 우주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규칙과 불규칙 모두를 부합해내기에 적당할 테니까. B1-2. 알아. 그 사진이 발목을 잡는다는 거. 103
104 뭐, 그 정도의 겸손을 담아 생각해두고, 어쨌거나 신은 게이트를 만드느라 공들이고 있는 슈크 가 있는 사진 쪽은 잠시 보류해두고, 문지기 가 말했던 그 꼬리 를 잡기 위해 지금 손에 든 이 사진을 보면서, 이번엔 집게손가락 클릭 질 보다는 그냥 머리 위쪽으로 사진을 슬쩍 날려버렸다. 휘릭. 사진은 생각보다 위로 한껏 솟아오르며 커져갔고, 중력의 작용에 의해 슬슬 아래로 내려오면서 더욱 그 사이즈가 한껏 커져가더니 곧 그 아래에 서 있던 신의 몸체를 꿀꺽 삼켜버리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신은 그 사진 이 가리키는 그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이유야, 그 꼬리 가 지금 머물고 있는 장소 가 바로 그곳 이었기 때문이니까, 허나 그 물고 기에게서 건네받은 사진 속에 있는 그 과거의 시간 은 절대로 아니다. 아까 그 문지기 가 그랬듯이 내가 찾아나서야 할 그 꼬리 가 발견된 것이 바로 얼마 전에 일어난 일이니 그런 모양이었다. 그런 의미로 자신은 이미 그 사실을 알렸다 고 생각하던 그 하얀 비옷을 입은 문지기 는 굳이 여 기에 나타나지 않았다. 헌데 이번엔 이 공간 에 초점을 맞추었고, 하나의 연결키 를 맞추기 위해 한때 이곳에 왔었던 기 억을 되살려 그때 자신이 입고 있었던 옷 으로 맞춰야 하는 게 법칙 이었다. 물론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 내 옷은 그곳에 법칙을 따르듯 이내 다른 것으로 탈바꿈되고 있었 다. 마치 적을 무찌르기 위해 완전 무장을 하는 듯한 쾌걸 조로처럼 다음 장면을 향한 빨리 감기 가 되듯 변신이 시작되었다. 신의 전신 즉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빛에 휩싸인 것과 동시에 실내용 연두색 슬리퍼가 어느새 번지르르 B1-2. 알아. 그 사진이 발목을 잡는다는 거. 104
105 한 갈색 가죽구두로, 하늘과 파랑의 절묘한 워싱청바지가 모던한 밤색 반바지로, 무난한 검정 반팔 티가 짙은 밤색 조끼와 베이지색 블라우스와 광택이 살짝 도는 군청색 나비넥타이로, 머리위론 없던 모자가 생 겨나 회색 베레모를 쓴 모습으로 변신은 순식간에 완료에 이르렀다. 신은 그렇게 시간의 바람 속에서 살랑 흔들리다 잠시 허공에 뜸들이듯 떠있었다. 그러다 결국 이제야 대지 에 두 발을 사뿐히 내려놓는다. 다 왔군. 그러며 주변을 둘러보던 그였다. 살랑. 살랑. 노랗고 핑크빛으로 얼룩진 은행잎이 빙그르르 바람결에 하나 둘 땅에 떨어지고 있었다. 그때마다 향긋한 바나나향이 은은하고도 달콤하게 감돌았다. 이런 독특한 은행나무는 이곳밖에 없었다. 그 사진 속 풍경으로 보았던 것은 다름 아닌 이 은행나무의 은행잎 으로, 이 장소가 틀림없었다. 헌데, 저건 뭐람? 핑크 반 노란색 반으로 뒤섞인 은행잎이 잔뜩 달린 은행나무의 가지 위에 앉은 맹한 눈빛의 토끼가 당근 을 들고 그것을 악기 삼아(?) 은행나무 기둥을 덩덩덩! 쳐대고 있었다. 나름 기도하는 심정으로 목탁을 울리듯 덩~덩~덩! 쳐대는 알고 보니 살짝 맛이 간 듯한 모양새의 검정7 에 하양3의 얼룩 토끼가 들려주는 적당한 소음을 배경삼아, 올 블랙 가죽 슈트를 입은 슈크가 아주 쌈박하 니 척 앉은 채 500ml 사이즈의 맥주컵에 담긴 짙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슈크는 아까 보던 해바라기 사랑해. 바캉스 더 좋아. 라는 풍의 슈크와는 전혀 딴 판이 었다. 슈크가 있는 곳을 향해 몇 걸음 되지 않는 그 거리를 걸어오면서 신은 지금도 덩덩덩~! 대며 소음을 내고 있는 그 토끼를 한 번 더 쳐다보다가 잠시 허공에 한숨을 내쉬며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B1-2. 알아. 그 사진이 발목을 잡는다는 거. 105
106 후우. 평소보다 훨씬 저혈압인 듯 예민한 감수성을 내뿜어 내고 있던 슈크는 기분이 별로인 모양이었다. 신이 왔음에도 평소에 그러듯 호들갑떨며 신이시여~ 라며 말해주지도 않고 있었다. 조금 열이 받은 신은, 너. 내 구역에 왜 들락날락 거렸냐!? 그것도 숨어서 몰래몰래? 슈크! 내가 나한테(문지기) 충고나 들어야겠어? 그러니까 꼬리가 밟힐 짓은 왜 해? 필요하면 쪽지를 날리든지 연락방법은 많잖아. 너 바보냐?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직접 와서 하라고. 어디서 끙끙대지 말라고. 대체 자기가 몇 살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이 바보 녀석아! 어디 한번 말해봐! B1-2. 알아. 그 사진이 발목을 잡는다는 거. 106
107 B1-3. 방황하는 토끼와 커피 한 잔 :35 너. 내 구역에 왜 들락날락 거렸냐!? 그것도 숨어서 몰래몰래? 슈크! 내가 나한테(문지기) 충고나 들어야겠어? 그러니까 꼬리가 밟힐 짓은 왜 해? 필요하면 쪽지를 날리든지 연락방법은 많잖아. 너 바보냐?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직접 와서 하라고. 어디서 끙끙대지 말라고. 대체 자기가 몇 살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이 바보 녀석아! 어디 한번 말해봐! 이렇게 막 떠들고는 싶지만, 이러는 자신을 순간 상상해보자 역시 단박에 유치해질 것만 같아 하지 않고 입을 꾸욱 다물고 슈크 정면 앞에 자리 잡았다. 곧 저 멀리서, 신의 착석을 눈치 챈 누군가 가 다가오고 있었다. 과연! 그 의자에 무게나 압력을 측정해 바로 본부(?)로 수신호해주는 센서가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던 그다. 처음엔 이 공간에 웨이터라곤 찾아 볼 수 없는, 그저 적당히 아름다운 나무가 있고 그 아래 우연히 탁자 와 의자란 가구가 있는 곳이라고만 여겨질 정도로 고요하고 평온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이곳은 아마 어딘가의 가게 가 틀림없었다. 꽤나 낯익은 풍경이었지만, 정확히 어딘지는 기억나지 않 았다. 이쪽을 향해 다가온 그 누군가 의 정체는 흰 바탕에 주황색 땡땡이 무늬의 메이드 복장을 한 여인이 었다. 늘씬한 다리를 척척 뻗으며 다가오던, 동글동글 펌을 한 단발 여성으로 붉게 바른 입술 근처에 찍혀 있 B1-3. 방황하는 토끼와 커피 한 잔. 107
108 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살짝 말아 올린 긴 속눈썹을 깜빡~ 두 눈을 깜빡~ 대며 주문을 받는 그녀였다. 식사는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손님? 신에게 묻는 말이었다. 그가 답한다. 그래. 내 배 상태는 식사를 해야겠지. 근데, 지금은 별로 생각 없어. 나도 커피긴 한데, 밀크커피로. 풍성한 우유 거품으로 포장하지 말고, 그냥 잘 담아서 따듯하게 하면 돼. 알겠지? 겉으로 보기에 신은 어려보이는 키 150cm의 작은 중학생 소년처럼 보였지만, 아무런 군말 없이 밝은 첫 인상 그대로 착착 주문을 받아가던 웨이트리스였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빨리 가져와. 고개를 꾸벅 숙이는 그녀, 그 다음으론 놀랍게도 그녀는 뜀박질을 하고 있었다. 메이드 옷과 머리칼이 찰랑대며 전속력으로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녀가 향한 방향엔 당연한 듯이 문이 있었고, 그 문에 바짝 다가섰을 때만 멈춰 섰다가 다시 열고 다시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과연 요리하는 구역은 따로 있기에, 어쩌면 자질구레하게 퍼졌을지도 모를 제각각의 음식냄새가 저렇게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차단되는 건가 여겼다. 흐음. 역시 좋은 가게야. 이러고 여유를 부리는 사이에도, 슈크는 신이 눈앞에 있음에도 눈치 챘을 게 분명한데도 본척만척 별말 이 없었다. 슈크는 단지 짙은 커피가 담긴 500ml 사이즈의 맥주컵에 입에 갖다 대며 한 모금씩 작게 입에 머금고는 B1-3. 방황하는 토끼와 커피 한 잔. 108
109 목 넘김이 참 좋구나~ 하는 시답잖은 생각을 해대며 살짝 머뭇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평소 같으면, 저 미쳐버린 듯 보이는 토끼의 추임새를 보면서 분명히 크게 웃어댔을 테지만, 오늘 슈크 는 그러지 않았다. 이런저런 그의 낌새를 눈치 채지 못할 이유가 없던 신이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아까 주문받았던 그 웨이트리스가 오고 있었다. 저렇게나 심하게 달리건만 왜 여기에 흙먼지가 자욱이 일지 않는 것이 정말이지 신기할 정도의 공간이 었다. 대놓고 각종 커다란 나무를 심어놓은 거의 자연적으로 보이는 공간이라 그저 이 바닥에 깔린 흙이 진짜 임이 틀림이 없다는 착각을 했다만, 어쩌면 이래보여도 색만 흙빛이지 그 아래는 단단한 돌로 마감했을지 도 모른다. 그 웨이트리스는 내가 주문한 밀크커피를 내 탁자 위에 대령해놓았다. 잠시 회상하자면, 그녀는 역시나 최선을 다한 뜀박질로 신을 향해 달려온 거였다. 한손엔 쟁반을 들고 그 안엔 밀크커피와 빨대, 다른 한손으론 달리기의 스피드를 위해 손날로 규칙적으 로 공기를 가로지르며 탄탄한 허벅지의 에너지를 뿜어냈을 거라 생각하니 실로 대단했다. 저 길고 긴 두 다리로 최고의 속도를 찍어냈을 법 싶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지만, 숨 한번 전혀 헉헉대지 않는 말끔한 태도의 그녀는 확실히 이곳 웨이트리스계의 프로다웠다. 손님. 맛있게 드시고 계산 확실하게 해주세요. 신은 그 말에 대한 대답으로 바지 뒷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꺼내 그 손안에 갇혀 있던 빛나는 동전을 점 원에게 휙 던졌다. 동전, 아마 어느 나라의 그 누군가로 못생긴 왕족 얼굴이 그려졌을 테지만, 그 자의 이름 따윈 잊었다. 단지 이 금화는 꽤나 값어치가 있겠지 싶은 생각뿐이었다. B1-3. 방황하는 토끼와 커피 한 잔. 109
110 핑글. 공중에서 둥실 떠 오른 금화는 우아한 둥근 포물선을 그리며 점원의 양손에 와락 들어왔다. 나이스 캐치(=nice catch). 그럼 거스름돈은 신이 한 손을 들어 가볍게 내저으며 그녀에게 하는 말은, 팁(tip)이야. 활짝 웃던 그녀가 가버리고, 신은 새로이 등장한 밀크커피 에 집중했다. 물론, 그 웨이트리스가 함께 들고 온 빨대로 쭉쭉 빨면 왠지 어린애 같으니까 그리는 하지 않기로 한다. 단지 김이 모락모락 흘러넘치는 먹음직스런 갈색의 밀크커피가 든 찻잔을 이리저리 탁자 위에서 까닥대 며 움직여대다가 대놓고 슈크를 노려보았다. 지긋이. 녀석의 무반응에 신의 손이 찻잔을 들썩거리다가 입가에 대려다가 다시 또 내려놓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던지, 신은 조금씩 답답해졌다. 그럴수록 자신의 입안도 점점 말라왔지만, 한 모금 마시고 나면 더는 참지 못할까봐 먹기를 주저하고 있 었던 거였다.. 그러는 사이 스스로도 슈크의 그 흐름에 휩싸였던지, 그의 분위기에 이끌리듯 벌써 몇 번째인지 말을 내 뱉으려는 타이밍이 지나가고 지나가 점점 지루해지고 있었다. 대체 무엇이 그로 하여금 말을 꺼내기가 힘든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것인지, 어째서 나는 그것에 또 휘둘리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인지, 갑갑한 일이었다. B1-3. 방황하는 토끼와 커피 한 잔. 110
111 ?!. 어쨌거나 마음에 드는 건, 이 찻잔, 그렇게나 시간이 지났건만(벌써 1시간이 흘렀다!) 찻잔 받침 자체에 서 열전달이 원활히 이어져서 적당한 온도로 커피가 유지되고 있었다. 딱 먹기 알맞을 정도로,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식지 않는다는 점이 굉장했다. 호-오! 그것만이 신의 마음을 푸근하게 만들고 있었다.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슈크, 오늘 그 녀석이 입은 옷도 그랬다. 물론 자기 취향이겠지만, 폼 재고 있다~고 겉으로 대놓고 말하고 있었다. 평소보다 훨씬 강한 가죽의상으로, 칙칙한 올 블랙 가죽 슈트라니! 은빛 체인이나 은빛별 장식의 징이라 니! 원래 하고 다니던 단발머리는 뒤로 새 꽁지처럼 빼서 묶었고, 그 머리에 둘러쓴 해골마크 두건은 또 뭐람!? 무척이나 짜증이 돋아나고 있지만, 녀석이 심각하니 우선 참고 있었다. 헌데, 아예 입 다물고 자기 할 일 하러 간다거나 하면 모를까, 아예 날 무시한다면 모를까. 그건 좀 어려 운 일일지도! 어쨌든 몰래 힐끗거리면서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데 문제 가 굉장히 많았다. 아까 내가 노려볼 때는 전혀 본체만체 하다가도 슬금슬금 내가 밀크커피에 집중하자 곁눈질을 해대는 꼴이라니! 이건 마치 거의 다 없어져 가는 모래 산에 연약하게 꽂혀있는 긴 막대기 옆의 모래를 살금살금 초조하게 긁어대는 꼴이라고나 할까!? 언제 쓰러질지 모를 긴 막대기를 지켜보는 초조함? 그냥 참지 못하고 긴 막대 기를 잡아 빼버리고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랄까? B1-3. 방황하는 토끼와 커피 한 잔. 111
112 꿀꺽~ 하고 애꿎은 침만 넘기고 만다. 아아악 답답해!! 결국, 난 내가 졌다! 는 심정으로, 나는 그에게 묻는다. 슈크. 왜 무슨 할 말 있어? 네. 저기. 또 다시 그가 머뭇대려는 찰나! 나는 탁자 위를 탁- 내려쳤다. 마치 눈앞의 날파리라도 잡는 듯이 가벼운 손짓이었으나, 그 소리에 반응하듯 은행나무 위에서 나무를 덩덩덩~! 울릴 듯 당근으로 쳐대는 얼룩무늬 토끼가 순간 당근 을 아래로 떨어뜨린 채 당황해하고 있었다. 싸아아. 그러는 사이 토끼의 두 눈빛은 선명하고도 까맣게 물들어버리더니 이제야 제 정신으로 돌아온 것인지 나무에 꼭 매달려 무서워하고 있었다. 자신이 왜 이런 곳에 올라와 있는지 두려워하며 덜덜 몸을 떨고 있었다. 죄송해요. 신이시여. 그래. 네가 뭘 죄송한 건진 잘 알겠지? 끄덕. 침울. 자-, 어서 갔다 와. B1-3. 방황하는 토끼와 커피 한 잔. 112
113 네. 굳이 신이 자신의 손으로 가리키지 않아도 슈크는 그 방향으로 걸음을 떼고 있었다. 역시 은행나무쪽으로 걸어가던 슈크, 얼룩 토끼를 뚱하니 바라봤다. 그러다 다시 진지하게 토끼의 두 눈 과 서로 마주침을 시도하자, 그 토끼는 아무런 거부감 없이 더는 그 어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짓도 없이 슈크의 두 팔 벌린 공간으로 떨어졌다. 가뿐히 슈크의 품으로 안전하게 들어온 토끼는 두 눈을 몇 번씩 깜빡 깜빡거리고 있었다. 그 후 바닥에 얌전히 내려놓자 잠시 멈칫하던 토끼는 귀를 몇 번 쫑긋거리다가 멈추곤 깡충깡충 어딘가 로 부리나케 달아나버렸다. 다시 제자리로 온 슈크가 신의 앞쪽에 앉았다. 잘했어. 곧 신이 칭찬했고, 슈크는 언짢게 웃었다. 그러며 신이 다시 말하길, 사소한 일. 벌이지 말자. 좀. 네. 또 다시 한숨을 내뱉던 나를 보고 있던 슈크에게, 지나가듯 그 말을 흘린다. 그렇게 네가 내 구역에서 기웃대니까 자동방어시스템이란 게 작동 해 버린 거잖아. 그러며 밀크커피를 입에 한 모금 흘려 넣는 신이었다. 입안이 금세 따스해져서 기분이 아주 조금은 누그 러졌다. B1-3. 방황하는 토끼와 커피 한 잔. 113
114 그 말에 순간 고요한 정적이 깔리고, 슈크가 뭔가를 떠올리듯 무슨 기억을 되찾듯 그의 두 눈이 느릿하 게 감겼다 떠졌다. 그 순간 뭔가 알아낸 듯 꽤나 당혹스러워했다. 아! 그럼 그 반달곰이! 그래. 그 애가 널 본 거겠지. 이유 없이 그런 짓은 절대~ 하지 않는 애들인데. 그런 셈이지. 아마 그 충격은 301번째 슈크가 모두 겪었을 테지만. 그 녀석 내내 기분 나빴을 걸.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았으니. 이라고 말한 이유는, 눈앞에 있는 이 녀석이 301번째 슈크가 아니라, 다름 아니 1억 번째 슈크였던 거라 그런 거였다. 아까 신의 말을 풀이해보자면, 신이 있는 그 구역을 자동방어시스템인 반달곰 군과 기타 등등(너구리 와 판다)이 있었고, 핵심요원인 반달곰이 1억 번째 슈크를 본 것이란 말이다. 허나 반달곰의 능력치가 낮아 1억 번째 슈크를 봤으나, 그가 자신의 실력보다 훨씬 월등한 자였기에 너 무도 빨리 지나가서 그 본 것 에 약간의 혼선이 왔던 거였다. 그래서 이미 그곳을 떠나버린 1억 번째 슈크를 못 찾은 그 대신에 그 분위기가 비슷한 다른 녀석 을 쫓아갔던 거였다. 슈크는 하나의 영혼을 복사시켜 만들어놓은 거라서 외모는 달라보여도 슈크 끼리는 그 분위기라는 부분 이 은근히 닮아있었고, 그리 닮았다고 하는 기준은 역시 신 의 의지에서 나온 거였기에 그리 된 거였 다. 그 자동방어시스템의 프로그램을 짠 자가 바로 신이었고, 그러므로 그 프로그램은 비슷한 분위기를 가 진 자를 향해 다시금 목표가 설정되어 그 감각을 쫓고 있었던 거였다. 그리하여 그 타깃은 301번째 슈크로 변경되어버린 채였고, 만약 1억 번째 슈크였다면 절대로 넘어갈 리 없는 그 수법을, 301번째 슈크는 차마 자신과 똑같이 생긴 자가 이리저리 헬렐레 술판을 벌리고 웃어대고 그런 요상한 망상을 형상화시킨 실사와 다름없는 최첨단 홀로그램 그래픽을 차마 못 본 척 할 수가 없었 던 거였다. B1-3. 방황하는 토끼와 커피 한 잔. 114
115 그리 딱 한눈을 파는 엄청난 실수를 하고 그 뒤를 치는 게 다름 아닌 그 거대 반달곰이었던 거였다. 허 나 역시 반달곰이 슈크 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자를 감히 이길 수는 없었던 거였다. 1억 번째 슈크, 그는 수많은 해 동안 나를 겪어오고 있었다. 내가 그 사진을 통해 이쪽으로 넘어오고 나서도 한참동안 슈크는 어딘가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숲길을 헤매고 있는 듯한 흐릿한 시선이었고, 지금도 그런 분위기로 느릿느릿 굼뜬 동작 일색이었다. 아까 얼룩토끼를 보며 했던 그 행동도 그랬다. 느릿하니 걸어가서 느릿하니 토끼가 자기 품에 떨어지도록 유도하고 넋 놓고 기다리고, 대체 뭐하는 짓 인지 모르겠다. 좀 더 시간 낭비 없이 효율적으로 일을 척척 처리할 수도 있었을 텐데, 자기가 무슨 CF 한편이라도 느 긋하게 찍고 있는 것도 아니고, 오늘 이 녀석은 도통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럼 말해봐. 본론만을 뜸들이지 말고. 어서. 저기, 그럼 물을 게요. 그래. 신이시여. 혹시 다른 신 을 만난 적 있나요? 인간계에서. B1-3. 방황하는 토끼와 커피 한 잔. 115
116 B1-4. 역시 자네는 마음이 아픈 것이야. [완] :36 신이시여. 혹시 다른 신 을 만난 적 있나요? 인간계에서. 잠시 공백이 흐르고, 따끈한 밀크커피를 코끝으로 향을 음미하다 입가에 갖다 대며 느긋이 한 모금 막 삼키던 신이었다. 저런 민감한 질문임에도 다소 여유가 넘치던 신이었다. 그는 드디어 호흡을 가다듬곤 말을 잇는다. 왜 그렇게 묻지? 왜 내게 다른 신 을 만났냐고 묻고 있는 거지? 네에? 그냥 나 아닌 또 다른 신 을 만난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슈크 너 였다고 말하지 않고?! 그 말에 순간 밋밋한 눈빛을 지워내고 그 위로 선명함을 담은 반짝이는 그것으로 갈아 끼운 슈크를 난 보았다. 은빛 징이 박힌 검은색 반 장갑을 모조리 낀 양손을 서로 꼬옥 감싸 쥐고 있는 슈크는 다소 긴장한 듯 보였다. 하지만 그 두 눈빛만은 진지함의 기운을 더욱 힘차게 끌어안고 있었다. 예-에. 만났어요. 그분 을. B1-4. 역시 자네는 마음이 아픈 것이야. [완] 116
117 슈크가 지금껏 내게밖에 보이지 않던 그 존경과 경외를 담은 그 시선이 잠시 타인 을 향해 있자, 그 것에 약간 불쾌했던 나였지만, 그래도 난 괜히 작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되물었다. 만났다라 그래서? 이-상하잖아요. 그 분 은 그렇게나 찬란한 영혼의 빛을 뿜어내고 있었는데! 그게 너무도 신의 모습과도 닮아서 그래서 그분도 어쩌면 신 과 비슷한 존재가 아닌가 하고 잠시 판단 내렸다고나 할지.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그게 궁금해졌다고 할까요. 아 그래? 그래서? 그게 뭐가 어쨌는데? 그 정도의 빛 을 가지신 분이 왜 아직도 이곳으로는 돌아오지 않는 것인지! 음음, 물론 이 말 자체가 신 께는 꽤 불편할지도 모르고 죄송스런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워낙에 그 영혼의 빛이란 것이 범상치가 않아서 말입니다. 솔직히 신경이 쓰였습니다. 저로선. 무척이나. 슈크의 음성만으론 내게 말해서 그 분 이란 자를 세세히 분석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자신이 믿는 신 은 유일하게 나 자신뿐이었으니까. 그래서 얼핏 반감이 섞여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 반감을 슬쩍 덮어둔 채로 말하는 이유는 또 무언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굳이 그 자 라고 칭하지 않고 그 분 이라고 한 것에 대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 역시 이 순간 섬세한 표정은 묻어둔 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던 신, 음. 역시 불편하네. 그거 외계인 같은 거 아닐까. 다른 행성의 뭔가 지구정복을 노리는 개구리 라던가. 아님 오징어 나 바퀴벌레 였을까? B1-4. 역시 자네는 마음이 아픈 것이야. [완] 117
118 신 이시어? 아. 미안. 좀 진지하구나. 오늘 슈크는. 하-. 계속해봐. 너무 열심히 진지해하는 슈크를 보며 조금은 긴장을 풀어주려던 게 어찌 하다 보니 이리 되었기에 신도 순간 뻘쭘해서 다시 조용해졌다. 네? 아. 저- 죄송해요. 혹시 말이지요. 저와 같이 신 이라는 존재도 몇 번째 분이 따로 계신다거나 그런 걸까요? 에? 난 전혀 들어본 적은 없는데. 뭐~ 신선하군. 아. 그럼. 그게 아니면 말이지요. 신 에게도 부모 가 따로 어딘가에 있다는 게 아닐까요? 부모님 되시는 분들 중 한 명을 제가 우연히 찾아낸 게 아닐까 하고. 대체 이건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요? 부모 를 논하고 있는 슈크의 모습을 보자면 왠지 아~ 신의 부모는 어떤 분들일까? 하며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추억에 젖어가는 눈동자를 하고 있다는 게 다소 너무 달달해서 그건 그것 나름대로 기분이 썩 좋지 않았던 신이었다. 어쩌면 다소 심각해져버릴 수도 있었지만 참으로 1억 번째 슈크 는 별 걸 다 세세하게 신경 쓰는 타 입이라 그것 때문에 오히려 더 긴장해버리게 되어서 곤란하던 신이었다. 하마터면 오해가 뒤얽히고 나와 동급의 신 이란 존재가 나에게 느닷없이 들이 닥치는 게 아닐까 하 는 위기감 같은 게 생겨나 순간 꽤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이제야 나는 진심으로 이것저것 불필요한 것들을 털어내며 미소를 지어본다. 그렇게 여기니 마음이 조금 평온해지지만, 미래는 모르는 거니까 이런저런 문제가 있는 거 아닐까. B1-4. 역시 자네는 마음이 아픈 것이야. [완] 118
119 왠지 모르게 지금의 나는, 부모 를 논했던 슈크는 가만두고 싶지 않아졌다. 후훗. 그거야 내 가 여기 있으니까. 돌아오고 싶어도 올 수가 없는 거야. 그 자는 괜히 난 이렇게 담담한 척 쓸쓸한 척 내뱉어버리고 말았다. 아깐 그렇게도 장난처럼 툭툭 가볍게 말을 전달해오다가 갑작스레 진담을 토로하는 듯 단조롭고 무거운 기운과 동조해 있던 신의 모습에 그 음성에 금세 우울한 기색을 내비치던 슈크,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그렇군요. 신이시여. 나의 세력이 크기 때문에 그나마 그 자가 돌아올 수 없다. 라고 이해한 슈크는 매우 기쁘게 다행스러 워했다. 하지만 곧 이어 말하는 그 말은 또 다시 어둠을 삼킨 채였다. 그것은 그 자리 는 바뀐다는 말인가요? 어째서 그런! 영원 할 줄 알았는데! 어째서! 왜 그래야 된다는 겁니까? 슈크는 스스로 한 말에 자극을 받은 건지 곧 그의 눈가는 조금씩 눈물을 만들어내며 결국 주룩 가득 채 운 눈물을 밖으로 흘려보내고 말았다.! 왜- 왜 그래. 울지 마. 아. 나도 당황해버렸다~아. 1억 번째 슈크는 너무 쓸데없는 일로 질질 짜고 있다는 게 평소 감상이었다. 정말 왕따 당하기 십상인 꼴 보기 싫은 찌질함을 지녔다. 맞다. 전에 세상에 여행 갔을 때도 교내 왕따 를 당하고 있는 중학생이었는데, 마침 갑부 집 아들이 B1-4. 역시 자네는 마음이 아픈 것이야. [완] 119
120 기도 했고 뭔가 사상이 이상해서 자신이 교내 불량아들에게 끼니를 제공한다고 인류애를 행동하고 있는 거라고 본인이 생각하고 있었을 땐 참으로 난감했었다. 게다가 자신이 실컷 얻어터지고 있었으면서도 역시 자네는 마음이 아픈 것이야. 라며 성인이 되면 반드시 후회하고 말테지. 라며 설교를 해댄 전적도 있었다. 울보인 주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상 컨셉은 어느 한쪽으로 말도 안 되게 강하게 치우쳐 있다 는 게 또 묘했다. 저런 걸 겉은 바싹하고 속은 부드럽다는 건가. 그건 슈크림 이야기고. 이럴 땐 딴 생각이 속 편한 것인데 잘 되지 않는다. 흐흐흑. 흐윽. 다. 불편한 것을 건너뛰기 위해 난 조금은 무미건조함에 냉정함을 담아 울음 뚝 의 기합을 보태어 말한 재수 없거든? 그만해라. 흐윽. 흐으윽. 흐윽. 하지만 흐윽. 어쩌다가 그렇게 되는 거예요? 신이시여? 당신만은 절대로 그럼 안 되는 거잖아요? 반칙이에요! 그런 건! 그럼 저는 대관절 어쩌라구요!! 흑흑흑. 왜 저런 꼴로, 의상만은 외관만은 가죽점퍼에 가죽바지에 광폭한 모험가 스타일의 바이크 맨이라도 될 듯한 모습인데, 저런 이미지로, 그저 울고 있는 거냐고!? 이제 와서 다 뻥이라고 말하기엔 내 품위가 살지 않는다. 별일 아니래두. 울지 마. B1-4. 역시 자네는 마음이 아픈 것이야. [완] 120
121 그렇지 않아요!! 흑흑 이건 크-큰 일이라구요! 흑흑흑. 눈물. 눈물. 눈물만을 펑펑 흘려내고 있던 슈크였다. 멀쩡하게 다 큰 어른의 모습으로 말이다. 이제 무슨 말을 덧붙이면 이 녀석 슈크가 좀 가만히 좀 얌전하게 될까 생각해보았다. 나는, 왠지 모르게 마음 깊이 안심하면서, 장난스러움도 역시 양념처럼 조금 지닌 채. 그런다고 네가 없어지진 않아. 다만 보관 될 뿐이려나!? 아 몰라. 흠칫. 네에? 신이시여?!! 놀라서 그런 것인지 드디어 눈물 수도꼭지를 꽉 잠가버린 슈크였고, 의외로 신은 그런 타이밍에 받아들 인 슈크를 보고서도 별 탈 없는 인상으로 받아치며 무덤덤하게 뒷말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그야 시스템 에 문제가 생길 테니까. 내가 신 이었을 때랑 딴 녀석이 신 일 때랑 여러 가지로 눈치 챌 거 아니야. 그래서 어딘가에 보관 될 뿐 이려나. 물론 전부 내 생각일 뿐이겠지만. 하하. 자세한 건 집어치워. 예초에 그런 거 일일이 신경 써서 뭐해? 그 말에 점점 진지하게 굳어져가는 슈크의 눈동자가 왠지 거슬리던 신이었다. 그럼, 그렇게 된다면, 그렇게 어디선가 보관 만 될 바엔! 저도 신 님을 따라서 갈 거예요! 어디든지 갈 거라구요! 신이시여! B1-4. 역시 자네는 마음이 아픈 것이야. [완] 121
122 슈크는 양손을 꽉 주먹으로 움켜쥐고 두 눈을 강렬히 반짝거렸다. 그 눈빛이 부담스럽다면 꽤나 부담스러웠던 신이었고, 그런 자신이 감당하기 싫은 상황, 점점 난감한 상 황에만 빠져드는 터라, 신은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뻥이야. 옛? 나도 몰라. 언제 신 이란 걸 그만둘지, 네가 나로 인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신 인 주제에 웃기지만. 이게 내 무능력 이겠지. 누가 신이 전지전능하대? 순 뻥이지. 그럼, 차나 마셔. 그리곤 신은, 왠지 더할 나위 없이 어색하다는 듯이 그에게 있던 시선을 치워버리고 근처 은행나무 잎이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느릿한 광경에 눈길을 두었다. 팔랑. 팔랑. 그러면서도 들려올 슈크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 네. 슈크는 단지 차나 마시란 말에 그저 차나 마시고 있지만, 조금 쓸쓸하게 깔린 눈동자 빛이 도무지 평소 의 밝은 놈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시간을 조금 더 보내고서야 신이 말하기를, 이봐. 미리 걱정하지 마. 내가 그만두면 미리 말해 줄 테니까. 특별히 1억 번 째 슈크한테는. 짐짓 그런 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입술을 삐죽대던 슈크는, B1-4. 역시 자네는 마음이 아픈 것이야. [완] 122
123 모두 슈크 라구요. 신이시여. 그래. 알았어. 툭 하니 대답을 던져두고 바라본 슈크는 여전히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만두지 마시라구요. 그만두시면 안 된다구요. 그래. 그래. 알았어. 그냥 그렇게 수긍하듯 끄덕대며 시간은 가고 또 가고, 은행잎은 빙글 빙글 저 하늘 위에서 자유롭게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팔랑. 팔랑. 문득, 신은 생각했다. 내가 만약 다음 타자의 신 이 된다면, 본래 유용한 슈크 를 다른 이름으로 다시 재사용 하고 있을 거라고, 그게 아니면 아예 파기 시키거나, 역시 자신을 따르지 않는 신하(?)를 어디다 쓴단 말인가. 어쨌거나, 신은 흐뭇한 마음이었다. 아주 조금이지만, 티 안 나겠지~ 할 정도로 살며시 눈가에 미소를 달았다. 왠지 밀크커피 속에 들어있는 약간의 달콤함이 두 눈에 담겨버린 듯한 따스한 기분이 들었다. 슈크(수많은 슈크들과도)와 정이 많이 들긴 들었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B1-4. 역시 자네는 마음이 아픈 것이야. [완] 123
124 B2-1. 어떤 풍경을 갖고 싶으세요? :37,,! 한순간 신의 눈빛이 묘하게 차분한 빛으로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콰아아. 마치 빛 한줌도 들어오지 않는 깊은 숲속처럼 깊은 심연 속을 드러내는 눈동자 빛인 듯 어쩐지 엄숙하고 도 적막이 철철 흐르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하고 있을 때면 슈크 도 알아서 눈치를 채고 신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아무리 궁금하고 급한 일이 생겨도 신을 억지로 깨우려들지도 않았다. 스르륵. 스륵. 신은 그렇게 자신의 머릿속 한구석을 농도 짙게 뒤지기 시작했다. 한편, 슈크는 차를 다 마시고 돌연 손을 번쩍 들고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해본다. 그것이 신호가 되었던지 머지않아 아까 그 메이드 복장의 웨이트리스가 오늘은 일이 고되었던지 웬일로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고, 이내 슈크의 요청에 응답했다. 후아악. 허억. 헉. 잠시 멈춰서 호흡을 고르던 웨이트리스, B2-1. 어떤 풍경을 갖고 싶으세요? 124
125 안녕하세요. 손님. 식사는 무엇으로 서둘러 말을 끊어낸 슈크는, 그게 아니고, 식사는 됐어. 지금부터 시간낭비 를 해야 하거든. 예? 아. 네. 응. 그래서 적당히 시간 때울게 필요한데 뭐가 좋을까? 나도 이런 건 처음이라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구체적으로 말해주시면 저희가 그때 웨이트리스는 앞치마에 있는 주머니에서 노트와 볼펜을 꺼내 필기 준비를 막 시작하고 있었다. 아. 아니야. 그냥 단순히 책 이 좋겠네. 하지만 생각 하는 건 하고 싶지 않아. 오늘은 그냥 글 보단 사진이 많은 잡지책이랑 으흠. 또 뭐가 필요하지? 뭐가 좋을까? 주문을 이어가다가 말고 슈크는 힐끔 곁눈질로 신 쪽을 바라본다. 그러다 잠시 웃는 눈을 하고선 웨 이트리스의 예쁜 얼굴을 바라보자 그녀도 방긋 웃으며 이어나간다. 아. 네. 뭐가 좋을까요? 혹시 가게 내에 풍경 을 찍으시려면 사진기 가 어떠세요? 우와. 들켰네. 마침 괜찮다고 생각했거든. 그 말에 그녀는 더욱 더 쾌활한 모습으로 수다 삼매경에 빠져든다. B2-1. 어떤 풍경을 갖고 싶으세요? 125
126 네. 다들 그렇게 생각하시는 지도요! 생각보다 여기 인기 가 꽤 좋거든요. 그 덕에 월급도 꼬박꼬박 나오고요. 전 한 번도 임금체불당한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뉴스에서 그런 사람들이 나오면 좀 안 됐다는 생각을 해요. 아차-. 그렇죠. 저희 까페는 메인 음식부터 후식까지 모두 굉장히 맛있고 분위기도 대단히 좋아서, 갓 생긴 애인과 함께 가고 싶은 까페 1위를 막 쟁취한 참이거든요. 거기에 헤어진 애인에게 나는 지금 너보다 훨씬 나은 새 애인과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는 이벤트 인증사진을 찍고 싶은 까페 1위도 지난주에 획득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가족끼리 모임 장소로도 높은 점수를 얻고 있죠. 어떠세요? 어디서 가장 많이 찍었는지 데이터베이스화 되어있는데 원하신다면 보시겠어요? 음. 하지만 난 남들이 다 하는 건 하고 싶지 않아. 대중적인 건 역시 적응이 안 돼. 그럼 손님은 어떤 풍경을 갖고 싶으세요? 아니.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사진기 는 됐어. 정말 갖고 싶은 풍경은 있지만, 난 조금 구식이라. 스케치북정도가 좋겠어. 향기 나는 크레파스도. 예. 그럼. 잡지책이랑 스케치북에 크레파스. 사각사각 노트에 필기를 해나가는 그녀, 아까까진 뭔가 당당했던 슈크는 현재 다소 얼굴을 왼손으로 가 리며 뭔가 곤란한 표정으로 딴 곳을 쳐다보며 오른손으론 탁자를 깔짝거리며 뭔가를 말할 듯 말 듯 하다 말하기로 결심한다. B2-1. 어떤 풍경을 갖고 싶으세요? 126
127 근데 잡지책은, 좀 어른다운 걸로 주면 돼. 나 겨우 20대 초반처럼 보이지만 꽤 나이가 들었거든. 그리고 이런 말 웨이트리스랑 하기엔 힘든데. 그게 그 잡지. 좀 심심하지 않았으면 하는데. 뭔가 집중할 수 있는 거랄까. 뇌를 팍팍 돌리면서도 활동적인 느낌이면 좋겠어. 책 표지 풍경은 바닷가인데 뭔가 열정적인 거라고 해야 할까. 자동차는 빨강이면 좋겠네. 수량은 한 박스 정도? 이러면 다 이해할거야. 여기 주인이 나랑 잘 알거든. 그리고 포장 은 필수라고 해줘. 그 후로 한 숨 한 번 내시며 이제 다 말했다. 며 안도하는 슈크였다. 에. 그럼 책 은 그렇게 하면 될까요? 주문은. 그런데 저기. 웨이트리스는 갑작스럽게 자신의 머릿속으로 달려드는 정보의 물결로 인해 뭔가 눈치를 챈 듯, 양 볼이 와락 붉어지고 말았다. 방금 손님 이 바라는 그 책의 정체, 그것이 이곳 주인장 과 아는 사이라는 데서 더욱 느낌이 오고 말았다. 그건 바로 19 의 붉은 책, 대강 그런 거일 것이다. 그녀는 잠시 소년 쪽을 바라보며 곤란한 기색을 하고 있었다. 그걸 보고 있던 슈크는, 응? 왜 그래? 아 저 괜찮을까요? 함께 착석하신 분께서. 그러니까 에. 저 분은 완전히 미성년자라고나 할까요. 만약에 같이 보는 거라면 역시 이런 건, 법에 저촉되는 거라서. 아. 물론. 괜찮아. 포장 은 필수니까. 겉으론 볼 수 없다고. 어쨌든 B2-1. 어떤 풍경을 갖고 싶으세요? 127
128 저 소년 은 다 이해할거야. 지금 수면상태거든. 아무것도 보지 못해. 네? 주무시고 계신건가요? 그럴 리가. 저렇게 두 눈이 다 뜬 채로. 못 본다니요? 잠시 슬픈 표정을 짓던 슈크, 아. 응. 그렇다고 큰 병은 아니야. 쌍꺼풀이 꽤 어울리는 얼굴인데 굳이 외꺼풀을 한다는 거야. 넉넉하니 꼬집기 쉽게 양 볼은 좀 더 통통하게 부풀리자고 했는데도 말을 듣질 알았다고. 머리카락은 빨강이 뭐냐고. 좀 더 귀여운 강아지풀 같은 브라운이 좋은 색인데도. 전혀 내 말을 적용해주지 않아. 이해돼? 그래서 그 부작용 이야. 저런 건. 그렇다고 난 생각해. 예? 뭐가 뭔 진 잘 모르겠지만, 혹시 저 손님께서 만에 하나 듣고 있는 건 아닌지. 그렇게 말하셔도 되요? 그것에 꽤 단호한 표정으로 또 삐딱한 기세에 들어선 슈크,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절대로 못 들어. 헌데 시각 청각 미각 정도의 감각은 죽여 놨어도 감촉은 절대 죽이지 않는단 말이야. 그래서 건드릴 수가 없어. 그 부분이 아쉽다고. 이해돼? 정말 못 됐다니까. 아- 저. 잘은 모르겠지만. 이대로 주문받은 물품을 전해드리도록 하죠.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신속히 할 테니까요. 응. 무인 으로 부탁해. B2-1. 어떤 풍경을 갖고 싶으세요? 128
129 네. 그럼.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손님. 응. 잘 가. 뒤돌아선 웨이트리스가 노트에 작게 전송합니다. 라고 말하자 필기한 문서는 은은한 푸른빛에 휩싸 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송완료 란 메시지가 노트에 저절로 적혀서 완료된 것까지 본 그녀가 이젠 노 트를 신속히 덮고 주머니에 도로 넣으며, 늘 하던 대로 앞서 왔던 길로 전력질주하고 있었다. 야~옹! 그 후 1분 남짓 지났을 무렵, 슈크에게로 세련된 검은 모자를 쓴 러시안블루 고양이가 앞장서고 그 뒤를 자체동력으로 바퀴가 달려 움직이는 상자 가 저 멀리서 모습을 일순 보이더니 바닥에 자동무빙레일이 라도 깔려있는지 교실 복도의 소름 돋는 귀신 처럼 파-파-팟 하더니 도착해버린 거였다. 마치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수평으로 직선코스로 타고 오는 듯 하다고나 할까. 야옹 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고양이가 멈추고 자리에 앉자 그 상자도 동력을 멈추고 정지했다. 그 상자는 꼭 해적의 보물 상자 같은 겉모양새로 고양이가 그 상자 앞으로 어슬렁대며 걸어가더니 앞발로 툭 건드리자, 상자가 이제 금은보화를 펼쳐놓을 기세처럼 금빛광선으로 칠갑을 하는 특수효과를 보이며 입을 쩍 하니 열고 있었다. 곧 그쪽으로 다가가 그 안에서 필요한 물품을 꺼내던 슈크, 그러는 사이 고양이는 상자 근처에서 느긋하 니 누워서 잠이나 청했다. 슈크는 막 잡지책들을 이것저것 뒤적이다가 몇 권 집어서 옆구리에 끼고 그 다음 그 바로 옆에 있는 크 레파스와 스케치북을 꺼내들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여전히 신의 눈동자는 차분히 깔려서는 자신의 머릿속 어딘가를 뒤적이느라 바쁜 상태였다. B2-1. 어떤 풍경을 갖고 싶으세요? 129
130 하지만 이것 또한 초반엔 자동차의 시동을 걸듯 컴퓨터의 부팅시간을 기다리듯 다소 준비과정이 필요한 터라 슈크의 말과는 다르게 신의 시각 만은 어느 정도 살아있었다. 허나 그렇다고 눈동자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순 없다. 그렇게 잠깐씩 스쳐 지나치는 광경은 인식할 수 있는 정도였다. 가령, 슈크가 웨이트리스와 이것저것 떠들고 있다거나 하는 풍경이나, 러시안 블루 고양이의 등장이라던 가, 바닷가 풍경으로 겉면이 포장된 잡지책 내부를 집중해서 쳐다보는 슈크라거나, 몇 번 뒤적거리다 고개 를 절레절레 젓던 슈크라거나, 또 다른 잡지책을 보며 한동안 멍 때리는 슈크라거나, 순간적으로 얼굴을 붉히다가 정색하며 주변을 두 리번대다가 고민한 페이지 몇 장을 긴장감 어린 두근대는 손으로 찢어내 접어서 품안으로 우겨넣는다던가 하는 슈크의 모습도 보았다. 패션잡지책 같은 걸 보는 건가? 잠시 단순히 생각해보다가도 뭔가 수상쩍기도 하면서 왠지 한심해보였지만 조금 있다간 이런 풍경도 보 지 못할 거 같은 기분이었다. 슬슬 머지않아 내 안에서 또 다른 화면이 뜰 참이던가, 그 사이 슈크는 이번엔 스케치북을 펼치더니 크레파스를 들고 나 를 빤히 쳐다보는 걸로 봐선 나를 모델로 해서 그리는 모양새였다. 살금살금 크레파스를 움직여대다가 어떤 데는 손가락으로 뻑뻑 문지르고 실패한 듯 얼굴이 찌푸려지고, 그러다 다음 장의 새하얀 종이로 넘기는 등등의 행동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뭘 어떻게 그리고 있는가 하는 건 거기까진 여기서 보이지 않으니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아는 사실이 하나 있다면, 슈크는 엄청난 그림치(?), 그림을 잘 못 그린다는 점이다. 평소의 그는 그림을 즐겨 그리는 편도 아니고 좋아하는 편도 아니지만 그저 그리는 데 의의가 있는 그 런, 누군가가 본다면 이거 유치원생이 그린 걸까요? 하고 맞받아칠지도 모를 그런 그림을 지금은 어 째서인지 좋아라~! 하며 그리고 있다. B2-1. 어떤 풍경을 갖고 싶으세요? 130
131 잘 하든 못 하든 즐겁게 그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런 게 재밌을 테니까. 어떻게 그릴까 괴로워하고 고민하고 기뻐하는 것이 즐거울 테니까. 그렇게 삶을 자신의 한정된 소중한 시간을 쓰고 있는 것일 테다. 모두들. 그러다 점점 슈크의 그 기척 마저도 자연스레 흘려버리게 되었다. 그걸로 눈앞의 익숙하던 풍경은 모두 지워진다. 그 대신 그 자리를 다른 것이 대신한다.! 이윽고 난 내 머릿속을 헤집는 섬광 한 줄기를, 그것의 은빛 실을 한 손에 딱 잡아채곤 곧 묘한 흥분에 휩싸였다. 곧 그 은빛 실을 한 손 가득 돌돌 감으며 그렇게 쭈욱 그것이 인도하는 길로 곧장 따라 걸었다. 뚜벅뚜벅. 처음 나타난 넓은 복도가 어느덧 다섯 갈래로 갈라진다. 그 중에서 중앙으로 뻗은 한쪽 길로 가서 거기서 또 두 갈래로 찢어진 길 중 하나인 왼쪽 편으로 난 길 로, 이제 그 길만이 쭉쭉 뻗어나간다. 내 감에 따르자면 그곳에 점점 가까워진다고 여겨지자 나는 금세 반갑게 뛰기 시작했다. 더듬더듬 손으로 훑으며 어두운 벽면을 걸어가자 넓고도 깊은 도서관 한 곳을 발견해낸다. 어림잡아 가 로와 세로가 각각 100m 정도는 충분히 넘는 듯 보였다. 뚜벅뚜벅. 가만히 걸음을 옮겼다. B2-1. 어떤 풍경을 갖고 싶으세요? 131
132 어디였더라? 1억 번째 슈크가 담당하고 있던 곳이. 여기까지 온 이유는 몇 가지가 있었으나 그 중 하나는 슈크가 말했던 그 자 가 궁금해서이다. 정말 나와 닮았던 걸까. 찬란한 영혼의 빛을 가진 채로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라고 했던가. 영혼의 빛깔은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일반인은 노란빛, 경비병은 초록빛, 슈크는 파란빛, 나는 흰빛 이었다. 그랬기에 301번째 슈크가 날 보고 있을 때 저절로 내 주위에 도는 흰빛의 오오라의 일렁임을 알 수 있었던 거였다. 그것이 이곳에서 내가 신 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 중 하나였다. 단순히 슈크 의 기록을 뒤지는 거라면 쉽사리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곳 잘 보이는 곳 어딘가에 반드시 1억 번째 슈크의 일기장 복사본이 있을 것이고 난 금방 그가 돌아다 닌 어떤 곳의 행적도 분명히 알 수 있게 되리라. 거기엔 영상기록 도 있을 것이다. 내가 반드시 보기를 바랄 테니까 내가 원하는 정보를 업데이트 해놓았을 게 분명하다. 그것을 생각하기 시작하니, 무언가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팟-! 투명하게 일렁대다 어느새 파밧-하고 선명해지는 책 한권, 그것이 딱 맞는 타이밍에 활짝 펼쳐진 내 두 손안에 뚝 떨어져 내린다. 내가 몇 번 뒤적이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고, 내 생각의 끝이 향하는 곳으로 내 손도 일찌감치 그 뒤적거 림을 멈춘다. B2-1. 어떤 풍경을 갖고 싶으세요? 132
133 B2-2. 당신을 절대로 바꾸지 않아! :38 팟-! 투명하게 일렁대다 어느새 파밧-하고 선명해지는 책 한권, 그것이 딱 맞는 타이밍에 활짝 펼쳐진 내 두 손안에 뚝 떨어져 내린다. 내가 몇 번 뒤적이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고, 내 생각의 끝이 향하는 곳으로 내 손도 일찌감치 그 뒤적거 림을 멈춘다. 어떤 적당한 페이지에서 책은 두둥실 떠 있었고, 영상은? 이라고 작게 말하자마자 네모난 화면이 공 이 튀어 오르듯 순간적으로 내 시야에 펼쳐진다. 흐음. 여긴 보육원 인가. 지금 슈크는 저 녀석을 보고 있는 거겠지? 어떤 금발의 파란 눈을 가진 외국인 소년이 보인다. 어느 학교의 교복을 입은, 중학생 정도 나이? 겉으로 보기엔 동양의 노란 피부에 검은 머리색을 한 주변 여느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도 그다지 두드러질 것이 없는 외모였다. 허나 왠지 모르게 그런 평범한 모습에서 뭔가 다른 기운이 깃들어 있었고, 그것은 마치 대자연의 절경이 나 위대한 예술조각품과도 같은 걸작 단위의 품격이 담긴 아름다운 풍경 과도 같아서, 나는 결국 한동안 그 금발 소년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왜? 뭐야 저거? * B2-2. 당신을 절대로 바꾸지 않아! 133
134 지금껏 여행 해온 여러 세상 속에서 눈요기할 아름다운 것들이라면 정말 질려버릴 정도로 봐왔었다. 여행의 막바지에 다다를 때쯤이면 늘 나름의 법칙으로 지키는 그 세상 직속 담당 슈크를 만나게 되니까. 그에게 억지로 안내당해서 토할 정도로 많이 보게 된다는 거였다. 자-아. 어서 가시죠. 신이시여. 좋은 풍경 속에서 좋은 음식이라니, 이런 게 진정 소풍 이란 거겠죠? 저 엄청 설렙니다. 감히 저 같은 게 위대한 신과의 만찬이라니! 감동입니다! 라고 말하고 있는 동그랗게 살찐 얼굴에 동그란 안경을 쓴 추정나이 50세 정도 나이든 회사 중역 같은 모습으로 흰색 목도리에 회색 정장을 다소 튀어나온 배가 터질 듯 안 터질 듯 미묘하면서도 또 나름 멋들 어지게 입은, 666번째 슈크가 뒤뚱뒤뚱 걸어서 내게 말을 건네 온다. 자세히 보면 1억 번째와도 301번째와도 뭔가~ 아주 먼 친척처럼 그 분위기에서 어딘가가 닮아있었다. 물 론 그 분위기 의 기준은 신만이 알 수 있을 그 무엇이겠지만. 난 괜찮아. 슈크. 오늘은 그러니까 저녁에 드라마 하나 볼 게 있어. 느긋하게 쉴 거니까 그리 알아. 손목에 찬 시계를 바라보며 현재가 밤 9시 반임을 확인하는 나였다. 이쯤 말하면 나가떨어질 줄 알았는 데 이 슈크는 왠지 끈질기다. 예? 그런 거야. 간단하잖습니까. 신이시여. 위성도 인터넷도 TV 안테나도 어느 하나 걸릴 것 없습니다. 소풍가서 제때 쉴 수가 있습니다. 제가 보증합니다. 그리고 밤 10시에 하는 탐정 드라마를 소풍 가서 신나게 보도록 하지요! 모든 기자재 설치는 저라면 가능합니다. 어떠십니까? 오! 슈크, 너도 아는 구나? 역시 그 드라마 좋지 않아? 뭔가 군더더기가 없는 느낌이지? 다들 열심히 연기하니까. 다들 반짝거린다는 거잖아. 그 여자 조연은 특이 눈여겨봤다니까! B2-2. 당신을 절대로 바꾸지 않아! 134
135 정말로 자기 배역을 좋아하는 느낌이었지. 그 책으로 나온 것도 봤는데 정말 그 캐릭터 그대로라니까. 아니 그 이상으로 잘했어. 다음번엔 꼭 주연을 잡겠지? 그러니까 그런 건 꼭 따뜻한 이 집에서 봐야하는 거라고. 그런 이유로, 슈크 미안한데 오늘은 소풍 쉬기로 해. 그렇게 난 푸르락 불그락 모닥불이 활활 태워지고 있는 벽난로를 바라보다 내가 본래 앉아있던 소파와 소파 쿠션과 합체하며 몸이 축 늘어진 듯이 몸을 한쪽 옆으로 기울이며 지친 포즈를 취했건만, 독한 녀석 이 따로 없다. 저 중역 느낌 나는 아저씨 슈크는 말이다. 설마! 저와는 절대로 소풍 따윈 가고 싶지 않으신 겁니까. 너무하시는군요. 신이시여! 이 세상에 나름 자신 있게 신께 소개할 수 있는 장소를 몇 군데 찍어 놓은 게 있었는데. 그동안 그 멋진 야경을 혼자 탐해왔다는 것에 너무도 큰 양심의 가책을 느껴왔는데. 그토록 근사한 풍경을 왜 보려하지 않는 건지. 저는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그런 게 아니야. 그냥 쉬고 싶어서 그래. 아-. 네. 그렇군요. 매번 그 독점욕 강한 1억 번째 슈크와 붙어 다니느라 그런 거죠? 아. 그렇습니까? 그 녀석이 대체 어디가 좋은 겁니까. 그럼 이 666번째 슈크인 저를 당장 찰랑찰랑하고 발랄한 10대 소녀 로 바꾸겠습니다. 얼른 승인해주시죠. 어서요. 원하는 취향이 어느 쪽이세요? 뭐든 하라면 알아서 까는 천사 같이 순수한 동네이웃 소녀? 이중인격의 반전매력이 돋보이는 악마 같은 제멋대로 깡패 소녀? B2-2. 당신을 절대로 바꾸지 않아! 135
136 아니면, 망사스타킹이 어울리는 대책 없는 철부지 킬러 소녀? 연애는 서툴지만 밤의 기술만은 최고인 무표정의 기사 소녀? 어서 말만 해주세요. 네? 신이시여! 왠지 말발로 딸리고 있었다. 뭔가 이 슈크는 엄청난 대사를 치고 있는 듯 한데. 근데 왜 갑자기 50대 아저씨가 10대 소녀로 바꾸겠다는 건지, 게다가 동네이웃에 깡패에 킬러에 기사에 어떻게 소녀 를 갖다 붙이고 있는 것인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평소에 어떤 영화를 보고 사는 거야? 어쨌거나 이번 일은 그저 눈만 깜빡하고 쉽사리 넘어갈 일이 아니라서 거기서 멈추기로 했다. 아. 알았어. 가면 될 거 아니야. 내겐 너희가 다 똑같은 슈크라고. 난 전혀 편애한 적 없단 말이야. 궁상 좀 떨지 마. 예, 그럼 그리 알고. 준비하겠습니다. 신이시여. 앞으로 나온 불룩한 배를 억지로 구겨 넣으며 깊이 숙여 인사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어째 신체조 건상 15도 각도를 기울인 인사만을 겨우 해낸 666번째 슈크였다. 잠깐만. 해야 할까 말아야할까 고민하던 내 결심이 드디어 자유를 갈망하고는, 굳은 의지를 불태운다. 이런 건 차마 말하지 않고는 넘어갈 수가 없었다. 헌데 이런 내 한때는 망설이다 결국엔 단호함을 짓는 이 표정을 곡해한 666번째 슈크는 징글벨을 울릴 듯한 징그러운 미소를 술술 흘리기 시작하며, 네? 또 무슨 일이신지? 아. 술 이군요. 몇 년산 와인을 원하시는지? 따끈한 막걸리는요? 그리고 음주가무에 능한 숙녀들은 몇 분이나 데려가실 런지? 물론 미성년자도 포함입니다. B2-2. 당신을 절대로 바꾸지 않아! 136
137 요즘 세상에 여학생 한정 특수 알바라는 종목이 있거든요. 오호호호. 이런 건 제가 알아서 스페셜하게 준비하도록 하지요. 오호호호. 안주는 육포? 아님 과일 좋아하세요? 역시 바텐더의 불 쇼도 봐야겠죠? 오호호. 그래. 뭐든 알아서 하든지 해. 난 상관없으니까. 그건 그렇고 슈크, 너 그거 알고나 하는 소리야? 갑자기 10대 소녀로 바꾸겠다니 어쩐다니 하는 그 진정한 의미를? 그거야. 신께서 취향 만 잘 정하신다면 알아서 멋지구리하게 뽀로롱 짜잔 하고 변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신의 미학 이야 어느 정도 파악했으니까 문제없지 않을까요? 언제든지 맡길 수 있답니다. 저는 완벽하게 신을 믿고 있습니다아! 오호호. 한때 수많은 슈크들끼리 소곤소곤 몰래 도는 이야기로, 신의 현재 모습을 보건데 신의 취향은 아마도 자 기 또래의 여성을 찾는 것이라는 것으로, 결론은 10대 소녀로 타켓을 잡고 있었다. 게다가 평소 신의 성격을 봐선 소란스런 여성보단 점잖지만 용기가 있고 너무 욕심 부리지 않고 사소한 것들에 밝은 미소를 활짝 지어줄 줄 아는 그런 단아한 순정파라던가. 물론 외모는 평균 이상으로 무조건 예쁘면 게임 끝나는 것이란 판단이었다. 하지만 신의 겉모습만으로 보고서 신의 취향까지 판단해버린다는 건 역시 무리라는 쪽의 얘기를 듣자 면, 아예 유혹을 대놓고 해줄 누나뻘 매혹적인 여성을 찾는지도 모른다거나 모성애를 원하는 마마보이 가 득한 성향에 치우쳐 있을지도 모른다는 등등의 쓸모없는 것들도 가득 떠돌고 있었다. 그 와중에 누군가의 한 얘기가 신은 남자취향이란 메시지를 흘렸으나 수많은 슈크들 중 상당수가 고개 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고 한다. 그 말에 1억 번째 슈크가 형제애라든가 부성애정도는 허락해줘도 된다고 봐 라고 울먹였다던가 하는 B2-2. 당신을 절대로 바꾸지 않아! 137
138 풍문이 있었다. 지금, 슈크가 단순히 설렁설렁 내뱉는 그 단어들을 듣고 있자니 왠지 울컥해서는 나는 이마에 손을 얹었 다가, 응? 아니야. 절대. 그런 단순한 게 아니라서 내가 고민했던 거야. 그건 변신대상 의 성격과 체질 및 생활패턴 등이 반영된다고 그렇게 된다면 난 널 도무지 어떻게 봐야할지 모르게 될 거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내가 그 어떤 슈크도 성별 을 바꾸지 않는 거겠지. 난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어서 이렇게 곤란할 때가 많았다. 왠지 눈앞의 666번 슈크가 내 말귀를 잘 못 알아듣고 있었지만, 그것에 차마 찬물을 끼얹기를 망설이고 있었다. 이런 말장난이 좋다거나 하는 것보다는 이 슈크의 어떤 가능성을 보고 싶어 하는지도 몰랐다. 어디까지 바닥을 치려고 하는 건가 하는 거라든지, 하긴 난 단순히 누군가에게 솔직한 진실을 보여주 고자 하는 그 의지가 난 너무도 나약한 것이었다. 이토록 슈크 혼자 뭔가 혼자서 들떠서 기대하고 있는 마당에 역시 일찍 가혹한 진실을 알려주는 나는, 그런 상냥함을 가진 난 여기 없는 거다. 역시 한번 변신시켜 주는 것은? 그런 경우의 수는? 그렇게 된다면 어떤 불상사가 일어날지 나는 잘 알고 있을 터다. 666번째 슈크는 역시 눈앞의 저 모습과 분위기를 닮은 성별만 여성일 뿐인 누군가의 모습으로 짠하고 등 장할 거였다. 그렇게 된다면 난 결국 힘겨워서 참을 수 없을 것이다. 너무도 웃겨서. 참느라 배탈이 난 척 하고 있어야 하는 걸까나. 대체 얼마 동안? B2-2. 당신을 절대로 바꾸지 않아! 138
139 그러는 사이에 탐정 드라마 에 집중하지 못 하게 될지도 모른다. 역시 본다면 생방송 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거니까. 그저 연달아 하는 재방송 따위를 봤다간 너무 마음이 안정된 나머지 온몸이 찌릿한 그 두근대는 감 각을 발생시키지 못하니까. 그런 건 역시 생방송에서나 한껏 설렘에 들떠서 발생되는 현상이었으니까. 물론 이런 생방송 집착은 나만 이러는 지도 모르겠다. * 흠, 역시 아무리 생각해봐도 안 될 말이다. 그 가능성은 제로다. 어떤 연령이든 여성화된 666번째 슈크라니, 단호히 말해 어울리지 않는다. 척 보는 순간 웃겨 죽을 것만 같다거나 꼭 누군가를 웃겨야만 살아남는 최상의 개그물, 아마도 그런 얼 굴로 표현될지도 모른다. 슈크는. 그 녀석의 성격까지도 고스란히 닮을 테니까 그건 더욱 귀찮아질 뿐이고, 만에 하나 내게 그 어떤 농도 짙은 관심 섞인 어필을 하려고 든다면, 그것마저 감당하기 싫은 게 당연했던 나는 아주 쉬운 선택을 하고 말지도 모른다. 역시 그런 때에는 나는 인격이 깔끔하게 반전되어 결국 난 하지 말아야할 짓을 하고 말지도 모를 일이 다. 가령 그가 담당하고 있는 이 세상의 깔끔한 폭파 정도? 물론, 이건 나의 호쾌한 농담이다. 정말 농담? 그렇다. 농담이다. 하하하. 왠지 그때가 되어봐야 아는 것일까 마는! 나는 나를 믿는다. 꽃밭을 소중히 여기는 그런 내가 그런 짓을 할 리는 없다고 생각하니까. 정말로 화가 나지 않고서야 그럴 리가 없을 거다. B2-2. 당신을 절대로 바꾸지 않아! 139
140 하하하하하. 음, 그런데 어째서인지 슈크는 1번부터 1억 번째까지 고스란히 존재하는 게 아니라 번호가 제각각이다. 있는 건 있고 없는 건 없고, 이것도 내가 굳이 별생각 없었던 부분이라 보통 내가 아무렇게나 정해놓은 번호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버린 거였다만, 새삼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무슨 이유인 것인지 나는 알 수가 없 다. 왠지 모르게 내가 모르는 것도 있는 거였다. 분명 어딘가에 적혀있을지도 모르지만 굳이 궁금하지도 않 고,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고 하겠다. 한편, 지금 보란 듯이 순간 우쭐해지는 어깨를 으쓱해대는 666번 슈크, 왠지 보고 있는 나마저 등골이 오 싸삭하게 섬뜩함을 느낄 정도다. 이럴수록 난 더욱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욱 단단히 무표정함을 유지시켰다. 신이시여. 물론 그렇게 변한 제 모습도 근사할 테지요. 너무 퍼펙트해지는 게 아닐까요. 지상의 완벽한 생명체처럼 말이지요. 물론 신께는 못 당하겠지만요. 당신이 넘버 1인 것은 변할 리 없지만요. 외모만은 저도 2인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제가 감당할 수 있을까요? 그런 일을! 왜 자기 좋을 대로만 생각해버리는 걸까. 이 슈크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간에 본래 자신의 체질을 닮는 다니까 그러네. 지금 슈크는 피자와 햄버거와 콜라와 밀가루 빵을 너무도 좋아한다. 물론 고기도 빠질 수 없을 테지. 그럼 그 결과를 너무 좋게 보는 너 자신을 잘 검토해봐야 할 텐데. 뭔가 색다른 미학의 관점에서 이야기 되고 있는 건가? 그래? 그런 말이 아니야. 그러니까 그런 상상 이 내겐 벅찬 거라고! B2-2. 당신을 절대로 바꾸지 않아! 140
141 왠지 화나서 흥분하는 척 하던 나는 슬금 시선을 돌린다. 이 정도로 눈치를 줬으면 알 듯 한데, 어디선 가 엇나가고 있는 거였다. 이 666번 슈크는! 역시 강하다. 이건 어디서 나타난 불굴의 캐릭터인 것인가. 나는 지금 벅찬 것뿐만이 아니라 그것은 꽤 나 힘들고 두렵고 무서운 거다. 스릴 넘치는 데스 게임(death game)인 거다. 그런 범주다. 이런저런 잔소리하는 여동생도 아줌마도 할머니도 싫다는 거다. 그가 뭐라도 좋으니 어떻 게든 변신시켜 달라고 할까봐 무서워질 정도다. 예초에 남자인 슈크를 다 알고 있는데 왜 여성화 시켜달라는 소리가 그 자체가 이상한 거다. 666번째 슈 크의 성격이 이상한 거라고 본다. 앗. 이러다간 나 탐정 드라마 시청자 캐릭터를 놓아버리고 말지도! 집중해! 흔들리지 않는 거다! 절대로!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네. 걱정하시는 건 잘 압니다. 아마 제게 반해버릴까 두려우신 거겠지요. 그것으로 1억 번째 슈크가 발작할까봐 수많은 슈크들이 미소녀로 변신 전쟁을 일으킬까 그걸 염려하신 거겠지요. 걱정 마세요. 저는 이런 제 모습을 아주 좋아하니까요. 방긋. 웃음 짓는 아저씨의 그 뒤끝 은 무섭고도 아슬아슬하여, 나는 단지 음음 하고 목을 가다듬으며 인내하며, 속으로 절대 안 반한다. 내 눈을 호구로 보는 거야? 라고 외쳐대며, 그런 건 아무래도 됐어. 일단, 소풍이나 가자. B2-2. 당신을 절대로 바꾸지 않아! 141
142 네. 아무렴요. 신이시여. 오호호호. B2-2. 당신을 절대로 바꾸지 않아! 142
143 B2-3. 화려한 소풍, 달걀흰자를 유심히. [완] :39 그런 건 아무래도 됐어. 일단, 소풍이나 가자. 네. 아무렴요. 신이시여. 오호호호. 입 오므려서 웃으면 자신이 슬램덩크 감독 부처미소의 할아범이나 치킨 파는 할아범을 닮은 줄 아는가 보다. 그것이 목표인 냥 웃고 또 웃고 있는 666번째 슈크 앞에서 나는 그저 같이 웃어줄밖에, 다소 일그러 진 거짓 미소로 말이다. 이 겁나 눈치 없는 것에 허탈이 맘 없이 동조해준다. 그러다 난 다급히 근처 작은 방 쪽으로 뛰어가고, 방음화 최대수치로 그 내부를 맹렬히 감싸며, 소리 질렀다. 으핫. 으하하핫!! 겨우 참았던 것들이 다시 펼쳐져 나를 괴롭혀왔다. 난 바로 상상 해냈고 예상대로 웃음을 절제할 수 없었다. 666번째 슈크의 여성 버전(version)이라 니 하지 말라고! 절대 어울리지 않는다고! 그렇게 너무도 한참을 웃어서 배가 아플 정도다. 그래서 드라마 하기 얼마 전 그 막간을 이용해서 심각하고 슬픈 책을 소환시켜 읽기 시작했는데도 이 책 이 이렇게나 밝은 이야기였던가-하고 생각하고 마는 나는 역시 나사를 하나 잃어버린 듯했다. 어쨌든 웃음의 잔상은 힘이 컸다. B2-3. 화려한 소풍, 달걀흰자를 유심히. [완] 143
144 그 방에서 나온 후, 거실에 서 있던 슈크의 얼굴을 본 순간 왠지 나도 모르게 또 웃음꽃을 피려고 하고 있었다. 그간 웃느라 그리 힘을 거의 빼버린 것이 아니라면 대놓고 비웃듯이 웃었으리라만, 난 그저 묘하 게 김빠진 웃음을 흘리고 만다. 실실. 헤헤~. 어쩐지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신이시여. 아. 응. 뭐 그렇지. 이것저것 준비하러 나간다던 슈크, 그는 신과 멀찌감치 떨어져서는 서둘러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손 가락을 빨리 놀려 어딘가로 연결시키고 귓가에 댄다. 이봐. 1억 번째 슈크, 머지않아 신은 내게 넘어올 것 같아. 오늘 여기 와서 몇 번이나 웃으셨는지 알아? 이 세상에 있는 나의 신은 몹시도 행복해 하신다고. 아냐고 그거? - 몰라. 너한테 관심 없어. 단식이나 해. 헤에~ 조금 있다 우리 소풍 가기로 했다고. 오늘 정말 활짝 웃으셨다고. 기록영상 보내줄까? 하하. 너의 패배임을 똑똑히 알게 해주겠어. - 지랄은. 영상은 보내봐. 일단 판단해줄게. 그 말에 666번째 슈크는 폰을 쥐지 않은 다른 손 안에서 마법처럼 작은 메모리카드 하나를 만들어내 그 것을 핸드폰 한 구석 구멍에 꽂아 연결시켰다. 곧 데이터는 저장되어 1억 번째 슈크의 폰으로 전송되고 있 었다. 후훗. 어떠냐. B2-3. 화려한 소풍, 달걀흰자를 유심히. [완] 144
145 - 아직 전송 전이야. 이제 완료. 흠. 나중에 대화하지. 나 바빠서 이만. 그래. 꺼지라고. 바이크 도둑. 슈크들끼리 사이가 안 좋으면 서로를 향해 비방을 하는 수도 생기고, 1억 번째 슈크가 666번째 슈크에게 단식이나 해 란 욕을 했으니, 그걸 맞받아쳐 바이크 도둑 이라고 해댄 거였다. 그들에겐 심심치 않 은 안부인사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전화는 뚝 끊기고, 어느새 장소는 비행기 내부로, 어느덧 전용 비행기는 밤하늘을 날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푹신한 전용 특등석 의자에 앉아 10시 탐정 드라마를 이곳에 마련된 대형 모니터로 다 챙겨보면서 간간히 밤하늘 높은 곳에서 아래로 펼쳐진 빛나는 도시의 야경을 적나라하게 구경하고 있었다. 솔직히 오길 잘했다는 기분이었다. 나쁘지 않은데. 이런 것도. 시간은 흘러 드라마가 끝난 다음 전용 룸을 벗어나 밖을 나가보니, 작은 파티 는 이미 시작되었고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며 두툼한 고기를 굽는 요리사의 능숙한 손길과 투명한 와인 잔에 그윽한 색감 가득한 술을 따르는 능숙한 웨이터를 지나치자 곧 몇몇의 웨이트리스가 곳 곳에 비치되어 쟁반 가득 각종 술과 어울리는 디저트를 나르고 있었다. 앞쪽의 작은 무대에서는 나를 주인공으로 인식한 듯 지금 막 노래를 시작하던 그 숙녀들도 초반엔 꽤 긴 장한 듯 보였지만 역시 베테랑이어서 곧 리듬을 타면서 어깨를 들썩이며 신나는 음색을 허공에 가녀리고 우아한 자세로 울부짖고 있었다. B2-3. 화려한 소풍, 달걀흰자를 유심히. [완] 145
146 바로 그 옆에 있던 탬버린을 양손에 든 666번째 슈크는 그간 홀로 노래방에서 갈고닦은 기술을 선보이 듯, 자신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며 자신감 넘치는 매력 포인트로 콕 찍은 그 듬직한 뱃살을 출렁거리며 훌라 춤을 추듯 엉덩이를 난잡하게 흔들며 탬버린을 요리조리 온몸의 여러 부위에다가 가볍게 쳐댔다. 그 몸짓이 몹시도 바닷가 물살마냥 출렁거려, 보는 내가 다 어지러울 정도여서 나는 이내 방향을 틀었 고, 그 모습에 내가 관심이 없어하는 건가~ 싶었던 666번째 슈크가 한 손을 척 위로 올리며 스탠바 이!(stand by) 하고 외쳐댄다. 딴따라라라따라~ 딴딴따랄라~ 이내 공중으로 퍼져나가는 부드러운 음색의 바이올린과 비올라 및 첼로의 클래식 연주가 흘러나오기 시 작했고, 그 리듬에 맞춰서 시작된 어느 바텐더의 불 쇼는 완전히 엉망진창으로 이어져가고 있었다. 우와아앗! 어이쿠! 처음, 살짝 긴장하여 머뭇대던 그 울상의 바텐더는 앞서 허공으로 훌쩍 내던진 그 술병을 차마 단숨에 받아내지 못한 까닭에, 결국 그것은 그대로 낙하해 금세 그 아래 있던 굉장히 비싸고 고급인 카펫 바닥 위 를 힘껏 부딪혀내고, 술병이 와장창 깨져버린 것은 물론이고 그 바닥을 온통 술로 흠뻑 적시고 마는 사고 를 쳤다. 그는 너무도 당황하여 그 깨진 술병들을 바라보며 바보처럼 실실 웃으며 이 상황을 무마해보려고 했다. 죄, 죄송합니다. 하하. 오늘 너무 긴장해서 실수가 있었습니다. 하하. 하핫. 평소엔 이러진 않는데 제가 왜 이럴까요. 부디 양해를 부탁드리면서. 하하.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이번엔 슬그머니 자리를 옆으로 옮기던 바텐더, 또 뭔가를 열심히 하기 시작한다. 머지않아 그의 눈앞에 있는 그 앞쪽 테이블에는 차곡차곡 쌓아 올라간 피라미드형의 대략 60~70잔 정도 의 유리잔 탑엔 투명하고 다소 옅은 베이지 빛의 술이 한 가득이 부어졌고, 각각의 잔들이 장소적인 제약 으로 인한 약간의 진동으로 아름답게 물결을 일렁이고 있던 참이었다. B2-3. 화려한 소풍, 달걀흰자를 유심히. [완] 146
147 이제 막 야심의 불꽃 하나를 붙여서 더욱 더 멋진 광경을 연출시키리라 결심했던 바텐더, 그 유리잔 탑 의 맨 꼭대기에 있던 유리잔 하나에 불을 붙이긴 했는데, 그게 뭔가 평소 연습할 때보다 훨씬 강하고 세다 는 게 문제였다. 그야말로 불꽃이 기세등등하게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으왁. 엄마아아! 불이얏! 또 다시 그 바텐더는 엄마 를 부르며 당황해 하고 있었다. 생각처럼 안 된다는 게 이런 불상사를 부를 줄은 정말 몰랐던 바텐더였다. 차곡차곡 높이 쌓여 올라간 그 유리잔 탑이 이젠 웬만한 마법사의 불탑이 되어 버린 듯 보였다. 스승이 시키는 대로 순번도 그다지 틀린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뭔가 잘못 계산한 모양일까? 이 병인데 저 병을 썼다거나 해서 도수 에서 뭔가가 꼬여버렸던 것이었나? 지금도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이 불길이 너무 뜨겁고 너무 무서웠다. 마침 오늘 교통사고를 당해 오지 못한 경력자를 대신해서 이번엔 꽤 중요한 안건이 들어왔기에, 신참인 자신이라도 와서 힘내 보려던 참이었고 그 경력자에겐 맡겨보라고 떵떵거리며 소리를 치고 왔었다. 허나 더욱 잘 하려다가 큰 과오를 범해가는 모양이었다. 이러다 이 얼만지는 모르겠으나 수십 수백억쯤 되는 이 비행기를 통째로 불살라 버릴지도 모른다는 공 포가 엄습했고, 아파트 대출 이자는 한참이나 밀려있었다. 하여간 신참은 서둘러 불을 끄려고 뭔가 옆에 있던 원기둥형의 붉은 통을 잡고서 여기저기 화~악 분사 하는데! 그것이 오히려 더 잘못된 것으로 일은 더욱 더 커지고 있었다. 헉! 이, 이, 이 통이 아니닷! 이건 뭐지? B2-3. 화려한 소풍, 달걀흰자를 유심히. [완] 147
148 으왓! 뜨거! 그러며 겁을 집어먹은 바텐더의 손에서 서둘러 붉은 통이 떨어져 바닥을 나뒹군다. * 아름다운 피라미드형 유리잔 탑을 중심으로 탁자는 차려졌고, 그 유리잔 탑 주변으로 여성들은 옹기종 기 모여 있었는데, 그 이유라면 거기에 다양한 형태의 케익이 잔뜩 모여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 각각의 케 익엔 각각의 초가 꽂혀있었는데, 그 초엔 이미 촛불이 켜진 상태라는 점이다. 이것이 왜 위험했냐하면, 그 신참의 붉은 통에 당했기 때문이었다. 그 신참으로서는 불이면 119이고 역시 빨간색 이라고 퍼뜩 생각해냈고, 그 붉은 통 안에는 당연히 물 이 들었을 게 분명하다고 여겼고, 그런 이유로 한방에 아주 많은 양을 주위에 쫘아악 이 불을 고 이 다 꺼 주십사~! 하는 기도하는 마음을 담아 힘껏 투하시키고야 만 것이었다. 으왓! 뜨거! 신참 바텐더가 붉은 통의 버튼을 힘껏 눌러 전방을 향해 뿌려대자마자, 모든 것은 일순 대 사건으로 번 져나가고 있었다. 끼아악. 사람 살려! 살려주세요!! 허나 그것은 분사용 헤어스프레이 통이었고, 인화성이 강하다고 알려진 그 헤어스프레이 와 불 꽃 이 서로 닿으니 그 불길의 확산은 엄청나게 굉장한 것으로 변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다들 모여 행복한 미래를 원하며 서로에게 축하메시지를 뿌리며, 그저 그녀들의 양손 위엔 케익이 든 접 시만을 들고서 케익 위의 그 작은 촛불을 후욱~하고 끄려다가, 신참의 스프레이에 당한 여성들은 이미 만 신창이였다. B2-3. 화려한 소풍, 달걀흰자를 유심히. [완] 148
149 5~6명이나 되는 여성들이 새하얀 연기를 머리에 가득 달고 꽥꽥 소리를 지르며 톡톡 터지는 팝콘처럼 날 뛰고 있었다. 끼아악. 사람 살려!! 아아악! 너 이 바텐! 죽고 싶어!? 정말 화려했다. 야경보다 더 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정도로! 그것 때문에 안절부절 못하던 슈크의 지시아래 주변의 웨이터와 웨이트리스가 신속하게 붉은 통의 소화 기를 들고 이리저리 설쳐댄다. 그럼에도 불길은 좀처럼 잡히지 않았고 온 사방으로 천리마처럼 번져나가고, 비행기 운전수들도 갑작스 레 매캐한 연기어택을 당해 그것들을 부지불식간에 들이마실 수밖에 없었다. 그 덕에 비행기는 좌우로 미친 듯이 양팔을 벌려 허우적거리고 덩달아 사람들도 물건들도 이리저리 뒤 흔들린다. 짝짝짝. 그 속에서도 무난하게 자리에 앉아 있던 나는, 그걸 보면서 역시 단순히 박수를 쳐줄 수밖에 없었다. 느 릿하지만 정확히 손과 손을 마주치는 그런 박수를. 우와. 최고. 이러다 진짜 추락하겠는데? * 뭐 그런저런 긴 회상을 여기서 끝낸다. 바로 얼마 전까지 난 슈크의 영상기록을 보고 있었다. B2-3. 화려한 소풍, 달걀흰자를 유심히. [완] 149
150 슈크의 시선이 향한 곳에 있던 그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외국인 소년, 중학생 정도의 나이에 평범한 외 모, 허나 그것은 실로 위대한 예술가의 걸작과도 맞먹을 아름다운 풍경 처럼 내게 비춰지고 있었다. 나는 차마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그 자에게 홀려 있었다. 왜? 뭐야 저거? 그간 너무도 굉장한 것들만 봐서 감정이 무뎌져 버릴 듯이 엔간한 것들에 대해선 무감동인 적이 많았던 자신이었건만, 그런 자신이 스스로도 가끔 재수 없다고 여길 정도였는데, 오늘 또 감각이 새로이 깨어나는 걸 느꼈다. 눈앞에 있는 보잘 것 없이 보이는 어떤 골동품에 대해 자신이 아는 것만큼만 제대로 알아채고 인식할 수 있는 거라서, 누군가에겐 그것이 다이아몬드 보석과 같은 가치를 지니기도 하고 또 어떤 이에겐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취급을 할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다 간파해내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일반인이 저 금발의 소년을 본다면 그저 자신과 같은 인간 그 자체로만 볼 것이겠지만, 이른바 볼 줄 아 는 자들이 봤다면 그 평가는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그런 이유로 슈크도 저 녀석이 신 일지도 모른다고 여겼던 걸까? 비록 인간의 모습인 채였지만 그리 판단해버린 걸까? 그래서 그리도 불안했던 것일까? 1억 번째 슈크는? 뒤죽박죽인 혼란스러움의 끝에 조금 차분하게 다시 집중을 한 후 들여다보니 왜 내가 아까 눈을 뗄 수 없었는가 하는 걸 알아낼 수 있었다. 저 자의 본질을 더욱 느끼려하자 단번에 알 수 있게 되었다. B2-3. 화려한 소풍, 달걀흰자를 유심히. [완] 150
151 그 자의 모습은 이제 내 눈으로 보기엔 마치 엑스레이를 보는 것과 같았다. 검은 몸체의 실루엣 내부에 있어야할 새하얀 뼈 대신 무언가가 은은히 일렁이는 형태를 보이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노란빛을 띄는 영혼이 일렁이고 있는 거였다. 그저 단순히 노란빛만 있었다면 일반영혼의 빛깔을 칭하건만, 거기에 뭔가 또 특별한 점이 있었다. 어째서 저런 것들이 모여 있어? 달걀후라이처럼 그 노란빛 영혼 외곽엔 자잘한 사이즈의 흰빛 알갱이들이 그것을 감싸고 있었던 거였다. 나처럼 자세히 3D로 그 본질을 들여다보지 않은 슈크가 만약에 놀란 가슴으로 감정에 휩싸여 저걸 봤다 면, 과연 그 모습이 나와 닮아 보이는 게 당연할 법했다. 그래서 그 자를 또 다른 신 일지도 모른다고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거의 내부의 노란빛을 감춘 듯 겉으로 드러난 영역이 넓은 흰빛만을 보았다면, 나의 영혼 빛깔과 닮았다 고 여겼을 터다. 허나 이 자와 내가 다른 게 있다면, 그건 난 이 몸체에 맞게 내 영혼의 사이즈를 적절히 압착해 둔 것이 니 저 자와는 그 근본부터가 다르단 말씀이다. 그럼 아무 문제없으려나? 하지만 계속 저 모습이어서는 안 될 거 같은데. 어차피 내 감 이지만. 뭐 하긴, 내 감은 믿을 만하지. 대체 누가 저래 놓은 거야? 다음에 슈크한테 체크해보라고 해야겠다. 지금으로선 급할 건 없겠지. 일 터지면 그때하면 되겠고. 뭐 별일이야 있겠어? 그냥 둘까? 아직은 위험하지도 않고. 참고로 자연 의 작은 풀벌레나 작은 식물이나 작은 열매나 꽃 등등도 신의 눈길로 분석해보자면 그 들도 아주 작고 작은 흰빛의 알갱이들로 구성되어있었다. 허나 그것은 영혼 의 빛깔이라 하진 않고 생 명력의 빛이라 칭하고 있었다. B2-3. 화려한 소풍, 달걀흰자를 유심히. [완] 151
152 그런 이유로 그저 환하고 밝은 생명력의 빛은 신 이 가진 시린 푸른빛을 휘감은 고고한 흰빛과는 전 혀 다른 거였다. '그 자'가 자연이 가진 그 흰빛을 가졌기에 왠지 모르게 '신'조차도 시선을 뗄 수 없었던 거였다. 그건 참 으로 특수한 경우였고 예상조차 못한 일이었다. 그런데 밝혀내보니 별일 아닌 일이기도 했다. 어차피 저거 내 일도 아니잖아. 1억 번째 슈크의 일이잖아. 그래. 그렇군. 이제 내가 볼일을 끝내고 그 책을 덮자, 그 형체는 금세 투명화 되어 일렁대더니 어디론가 쭉 멀어져간 다는 느낌을 전달받았다. 휘익. B2-3. 화려한 소풍, 달걀흰자를 유심히. [완] 152
153 B3-1. 술래를 얌전하게 만드는 방법 :41 중요한 것은 지금 부터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의 두 번째, 그것은 나의 존재에 관한 것이었다. 앞서 살펴본 것이 내 상상과는 달랐기에 안심했지만 내게도 어떤 의문이 생기는 게 당연했다. 만약에 신 이라는 존재가 은퇴를 하게 된다면 기억을 잃은 채 인간 이 되는 것인지, 나 보다 이전 에 그 누군가가 신 이었다던가 하는 기록은 과연 어딘가에 있는 것인지, 나는 몇 번째 정도 되는 신 으로 선택된 것인지 등등. 궁금한 것은 내 안에서 조금씩 넘쳐나고 있었다. 아직도 난 그 은빛 실을 놓아 주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에 가득 찬 채로 조심스레 걸음을 내딛는다. 뚜벅뚜벅. 피잉! 어느덧 나를 인도하던 그 길이 내 손에 쥔 그 은빛 실이 순간 뚝 끊어져버렸다. 그것에 깜짝 속으로 놀라며 누군가 방해공작인가! 라고 추측한대도 역시 이 안은 일단 내 머릿 속 이니까~ 라고 판단되니 이내 괜히 씁쓸해졌다. 또 다시 정신을 집중하며 두 눈을 천천히 감았다.,?,?? B3-1. 술래를 얌전하게 만드는 방법. 153
154 기다렸음에도 그럼에도 또렷하게 떠오르는 뭔가 가 좀처럼 없었다. 후우으으. 한숨을 길게 내뱉고는, 이번엔 노가다 좀 하기로 했다. 그저 내 감만을 따라가면서 도서관 이쪽저쪽을 쳐다보면서 앞과 뒤에 있는 커다란 책장 사이에서 왼쪽 으로 돌아 두 손을 힘 있게 뻗어 본다. 그리곤 책 폭만 해도 너무 두툼해 한손으론 잡기 버거운 전화번호 부책처럼 두툼한 책들이 쫘라라 꽂혀 있는 곳을 일일이 더듬어댔다. 감촉에 온몸과 마음을 집중하면서 이리저리 중얼댔다. 이건 아니야. 이것도. 이것도 아닌데? 으흠. 이건, 역시 아니야. 중얼중얼 내뱉으면서도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그러다가 겨우 50여권쯤 더듬어봤을까? 왠지 이런 짓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싫어졌다. 여기가 분명 자신의 머리 속이 아니던가? 그런데 왜 이렇게나 어려울까~ 라고 생각해버리니, 퍽이나 재미가 없었다. 귀찮게. 잠시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해보던 신, 뭔가가 머릿속을 강타한다. 그 즉시 실행해내는 건 당연지사, 생각한 그대로 이뤄지기를, 그리 바라는 기도 와 함께 짤막하게 말 했다. 소환. 그 말에 가로 세로 각각 100m정도 되던 그 공간에 원래 도서관의 모습이라 담담히 자리 잡고 있던 책장 과 책들 외에, 뭔가 새로운 것이 나타났다. B3-1. 술래를 얌전하게 만드는 방법. 154
155 쏴아아. 그것이 나타난 바닥엔 어김없이 어떤 동물의 얼굴이 크게 묘사된 빛나는 백색 원형진이 그려져 있었다. 멍! 멍멍!! 멍! 이곳에 온 그들은 덩치는 호랑이에 필적할 만한 새하얀 개 열 마리였다. 굳이 말하자면, 귀여운 진돗개 상이었다. 그들의 검은 눈동자는 무척이나 말똥말똥하게 자신의 주인 을 바라보다가 주인의 의도라도 눈치 챈 듯 순식간에 붉은 눈빛으로 변해버렸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입가에 희뿌연 연기가 뭉클뭉클 슬그머니 흘 러나오고 있었다. 그때, 신은 명했다. 태워버려. 모조리. 명령을 듣자마자 발군의 순발력과 비행 능력까지 갖춘 새하얀 진돗개 열 마리는 다행히도 천장까지 넉 넉한 도서관의 이곳저곳에서 앞 다투어 사방으로 흩어지더니, 번개처럼 그들의 영역을 자리 잡고는 희뿌 연 연기를 머금던 입을 쫙 쫙 벌려댔다. 그럴 때마다 그들의 입에서 내뱉어진 광란의 열기를 담은 불꽃의 비는, 흡사 저 하늘의 태양처럼 이글거 리며 온 세상을 초토화 시킬 위력으로 무섭게 번쩍대고 있었다. 콰아아아! 퐈아아아! 그들의 재빠른 돌진력은 물론이거니와 거대한 파괴력은 끊임없이 사방으로 거침없이 뻗어나갔고, 주변 을 심각하게 파괴의 구렁텅이로 몰고 있었다. B3-1. 술래를 얌전하게 만드는 방법. 155
156 쾅! 콰과광! 퍼엉! 꽈광! 처음 10여초 가량은 도서관의 파손이 심각했다. 순식간에 당한 모양이라, 건물을 지탱하는 기둥이나 벽 등이 부서져 내리고 기둥이나 벽의 형태를 띠고 있는 콘크리트나 나무 조각이 흉물스럽게 녹아내리고 고약한 냄새를 내고 숯덩이처럼 타들어가고 있는 책 장의 종잇조각들로 인해 불티도 주변을 잔뜩 휘적휘적 날아다녔다. 이곳은 마치 웅장한 불꽃 거인의 몸부림에 시신 하나 뼈 하나 추리지 못할 살벌한 전쟁터의 모습을 연상 케 했다.!! 허나 그것도 그리 길지 않았다. 또 다시 약 15여초가 더 지날 쯤엔 점점 복구가 되는 듯한 기세로, 시간이 되감기가 되듯 과거로 돌아가 고 있었다. 너무도 놀라운 자체 재생 능력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도서관의 괴물 같은 원상태 유지 능력에 진돗개 열 마리도 단시간에 과격하고 무차별적인 폭격을 한터라 꽤나 지쳐버린 모양으로 헉헉대고 있었다. 물론 그 이후로도 두 세 차례의 공방이 오고 갔으나 결과는 비슷했다. 아니 오히려 흰색 개들이 불을 내 지르는 기세보다 복구되는 속도가 조금씩 더 빨라지고 있다고나 할까. 더 해도 이건 시간낭비일 뿐이었다. 이제 여기엔 이렇게도 멀쩡한 도서관의 모습과 지쳐가는 열 마리 개들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 연유로 열 마리의 개들을 모습을 보자면, 마치 연기를 입안에 물고 있는 게 아니라 이미 들이킨 연 기에 괴로워하는 모습이었다. 감기에 걸리기라도 한 듯 콜록거리는 기세가 더는 불꽃이 나오지 않아 억울해하고 분통해 하고 있는 게 참으로 안쓰러워 보일 정도였다. 여기까지인가. 녀석들은. B3-1. 술래를 얌전하게 만드는 방법. 156
157 이젠 슬슬 보내야 되겠다고 생각하며, 자. 다들 돌아가. 수고했다. 푹 쉬고 있어. 나는 한 마리 한 마리마다 정성스레 부들부들 폭신폭신 대는 머릴 쓰다듬어 주며 덩치 큰 진돗개들을 돌 려보냈다. 곧 나의 바람대로 저절로 그 근처에는 처음 그 녀석들의 등장과 함께 나타난 은은히 흰빛을 내는 백색 원형진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것은 이내 녀석들을 소환했던 것처럼 다시 하나 둘 그리곤 다발적으로 데려 가 버렸다. 그 후 홀로 남은 난 잠시 싱긋이 웃으며 스스럼없는 자신의 발걸음이 충실히 향하고 있는 어느 한 구역 을 향해 나아갔다. 뚜벅뚜벅. 이미 아까 내가 봐야할 것들은 확실히 봐뒀다. 대형의 흰 강아지들이 싸우고 있을 동안 주변의 기운을 훑어보다 느낀, 단 1~2초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어디에선가 푸른 불빛 이 슬쩍 깜빡였다가 꺼진 것을 난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곳은 나의 사랑스런 강아지들이 매번 공격할 때마다 그 장소는 매번 다르게 어딘가 다급히 도망치고 있긴 했지만, 그 감각 을 나는 또렷이 잘 새겨두었다. 역시 다른 누구나 그렇듯이 최고의 위기 상황에서 중요한 곳은 더욱 더 특별히 관리하는 것이 분명할 테 고, 아마 그 푸른 불빛 으로 상징화된 곳이 그것이 아닐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대략의 패턴은 익혔다. 아니 그 패턴은 쓸모가 없을 것이다. 내가 이미 잘 새긴 그 감각 만이 유일하게 중요한 것일 테다. 처음 이 도서관 으로 보이는 곳에 도착하기 전에, 내가 그 은빛 실을 잡기 위해 손을 뻗은 그 순간을 B3-1. 술래를 얌전하게 만드는 방법. 157
158 암시하듯 나타난 섬광 한 줄기 가 바로 그 첫인상 이 그 감각 과 같았다는 거였다. 괜스레 666번째의 슈크와의 그 잔잔한 소풍을 떠올리지만 않았어도 더 쉽게 찾았을 것을, 정말 난 어리 석었다. 물론 푸른 불빛 이 깜빡이고 있는 곳은 5~6 곳에서 동시에 그랬고, 다 제각각 날 피해 도망 다니고 있었지만, 그 중에 하나만이 유일하게 더욱 그 섬광 과 긴밀히 닿아 있는 듯 느꼈다는 거다. 역시 이게 틀림없다. 확신과 함께 설렁설렁 걷던 내 발걸음은 금세 다급해졌고 내 말투도 점점 제멋대로 짜증을 부렸다. 여기는 바로 내 머릿속인데! 근데 어처구니없군. 모르는 녀석의 비밀창고 따위도 아닌데. 어째서냐고! 웬 보완이 이 모양이냐고! 귀찮아 탁. 드디어 찾아낸 한 권의 책 은, 내 손끝에 닿자마자 그것이 또 기회라는 듯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해버 렸고, 나는 서둘러 그 기운을 쫓아 옆으로 옆으로 열심히 뛰었다. 정말 최선을 다해 빨리 달렸다. 그 탓에 내 몸은 마치 10명분으로 늘어난 것처럼 보일 정도로 여기저기에 잔상을 남기고 있었지만, 그것 모두 이내 실체로 만들어버렸다. 그 잠깐의 트릭으로 난 엄청나게 빨리 도망가는 책 을 쫓아간다. 그리고 10명분이 된 실체조차도 다 시 제각기 1인 할당량 10명으로 순식간에 우린 100명이 된다. 곧 온 사방으로 짓쳐 들어가는 나와 나의 수많은 실체들은 온 도서관에서 책 의 기운을 쫓았고, 마치 이 모든 일이 1초도 안 걸린 시점처럼 짧은 시간 속에서도 더 짧은 시간 안에서 이뤄졌다. 그랬기에 그 시간 이라 칭하는 것은, 마치 오랫동안 정지되었던 것처럼 벽시계에 걸린 시계는 초침 을 한 칸 보내는 걸 주저하고 있을 정도였다. B3-1. 술래를 얌전하게 만드는 방법. 158
159 물 흐르듯 도서관의 책장과 책장 사이를 구석구석 잘도 누볐던 100명의 나, 그 중에서 한 명만은 지척거 리에 있었기에 더욱 추적의 거리를 좁힐 수 있었다. 그렇게 그 한명의 움직임은 바로 뒤편에 있던 책장과 책장 사이의 복도로 지나가는 척 하다가, 다시 재 빠르게 뒤돌아 바로 앞쪽에 있는 책장에 바보처럼 꽂혀있던 그 앙칼진 책 에게 더는 거부할 수 없는 내 손을 뻗으며 외쳤다. 허나 그 외침은 내 입을 거치지 않고 맘속으로 외치는 심어와 동일해 시간이라는 틀조차 깨어버린 상태 로 이뤄졌다. - 속박! - 그 순간조차도 그 책 은 책장에서 이동하려는 재빠른 움직임을 보이려했다. 허나 그것보다 빨리 내 조치는 이뤄지고 있었다. 휘이이. 철컥. 철컥. 철컥. 일찌감치 내 안에서 상상된 이미지가 눈앞의 책 을 투명한 사슬로 정신없이 휘감아댔고 이제야 드디 어 순순히 그것을 양손 안에 가득 넣을 수 있게 되었다. 휘릭. 책 을 손안에 넣는 순간의 반동과 함께 내 몸은 약간의 회전을 하며 멈춰 섰고, 그 순간부터 여기 있 는 단 한 명의 나 외에 99명의 나 는 순식간에 조금씩 투명해져서, 진짜 남은 나 를 향해 99명이 자 석처럼 내 몸을 향해 달음박질쳐서 합쳐지는 묘한 광경을 단숨에 연출해냈다. 파닥파닥. 정말이지 내 투명한 사슬에 감긴 주제에 아직도 싱싱한 생선마냥 팔딱대는 이 책 을 난 한쪽 왼손아 B3-1. 술래를 얌전하게 만드는 방법. 159
160 귀 힘과 왼팔로 밀어 붙이며 꼭 끌어안았다. 정말 방심할 수가 없군. 어이. 책 대체 너 뭐야? 딱. 그럼 한쪽 남은 오른손으로 뭐했냐하면, 오른손 엄지와 중지를 맞부딪혀 딱 소릴 낸 다음에 꽤 잠깐 허 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곧 아무것도 없던 그 허공에선 나무 도장 하나가 생성되어 낙하를 시도했고 난 그걸 오른손으로 챙겼다는 거였다. 나는 그 도장을 감고 있는 뱀처럼 기다란 몸체가 위엄 있게 기둥을 휘감는 듯한 동양용의 입체적인 조각 을 힐끗 바라보다가, 봐주는 것 얄짤없이 왼손에 붙들린 책 뒷면에 꾸욱 하고 도장을 눌러 찍었다. 그 러자 책은 움찔하듯 묘한 진동음을 내고 있었다. 웅웅. 그 책 뒷면엔 용의 면상 같이 보이는 묘한 글씨가 적힌 문양이란 게 그대로 찍혀 있었다. 이제 조금은 얌전해졌군. 책씨? 오~ 이거 생각보다 괜찮은데? 힘 좀 쓰는데? B3-1. 술래를 얌전하게 만드는 방법. 160
161 B3-2. 우리는 같은 문제에 봉착했어! :42 이제 조금은 얌전해졌군. 책씨? 오~ 이거 생각보다 괜찮은데? 힘 좀 쓰는데? 그 언젠가, 동네 용족에게서 받은 도장 으로, 잘 기억나진 않지만 그들이 말하기론 어린이 용 이 말을 듣지 않거나 아니면 어른 용 이 싸움질을 할 때면 가끔 써먹는다던 만년의 세월 이란 도장이 었다. 용도는 굳이 말해야한다면 강제수면용 이었다. 그렇다고 타이틀 그대로 만년의 세월 동안 잠만 진득하게 재워버린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물론 비유의 말이다. 조용히 미동조차 없는 채로 강제수면 당해서 그런 상태로 지혜의 바다 라는 방 대한 지식을 기록한 책을 억지로 읽어야 한다던가 했던 거 같았는데. 그것은 어쩌면 어린이 용에겐 대단한 잔소리나 마찬가지인 설교의 바다일지도 모를 물건일 테고, 싸움 쟁이 어른 용에게도 그저 푹 잠드는 질 좋은 수면 따위가 아니라 어려운 시험문제를 치르고 또 치르는 합격 이나 통과 따위는 오랫동안 없는 삭막한 끙끙대는 힘겨운 꿈과도 같을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어린이 용이나 어른 용이나 수면 속에서 꿈속에서 머리가 굉장히 괴로워져서 급기야는 몸부림마저 치고야마는 험난한 잠을 자야만 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여튼, 이런 걸 왜 만든 걸까? 그 용족들은? 난 순간적인 호기심이 일었고, 대체 지혜의 바다 는 어떤 기분인지 어떤 경험일지가 더욱 궁금해서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난 무심코 내 손바닥에 그 도장을 꾸욱 눌러 찍고야 말았던 예전 기억이 한 조각이 부상했다. B3-2. 우리는 같은 문제에 봉착했어! 161
162 신의 하루도 인간의 그것처럼 24시간쯤으로 잡아두고 세 끼의 식사가 있다면, 두 끼의 식사를 거를 정도 의 시간에 있어서는 주변의 슈크 무리들은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지만, 세 번째 식사 때에도 역시 신 의 공백이 도드라지자 그제야 다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있었다. 그 후 슈크들은 자신의 최고레벨인 일기장의 두께가 가장 두꺼운 자인 1억 번째 슈크에게 연락했고, 그 말을 들은 블랙 가죽바지에 레드 가죽 재킷을 입은 1억 번째 슈크는 온갖 걱정에 휩싸인 낙담한 표정을 한 채 지금 신의 영역에 다가서려 했다. 아니, 그러려고 하는 순간, 신의 여럿 문지기 들이 정확한 타이밍에 등장하여, 그러니까 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녀석이 다섯 명이 1억 번째 슈크 앞을 막아섰다. - 무슨 볼일이라도 있나? 슈크 앞을 가로 막아 둘러싼 다섯 문지기가 똑같은 유니폼이기라고 한 듯 후드 달린 새하얀 비옷을 입고 는 똑같은 표정으로 되묻는다. 문지기들이 낯선 자를 본 듯이 전혀 정답지 않은 말투와 인상으로 대구하여 서운했지만, 역시나 평소의 신과 똑같은 얼굴이기에 순간적으로 무척 안심해버린 슈크는 반갑게 인사하고 싶은 마음을 애써 살짝 억 눌렀다. 자신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은 문지기라는 것을, 신의 여러 시간을 관리하는 존재들, 유일한 신 그 본인과는 다르다는 것 을. 그런 것보다 얼른 그들에게 궁금증을 토해내는 게 더 시급했다. 문지기님이시여. 대체 신께선 어디로 가셨습니까? B3-2. 우리는 같은 문제에 봉착했어! 162
163 - 별일 아니다. 5일 후에 다시 오겠다. 그럼 이만 가봐. 5일 후, 다시 만난 문지기들은 두 명이었고, 그들은 슈크에게 단 한마디만을 남겼다. - 조금 더, 일주일 후에 다시 오지. 그렇게 시간이 지체 되어가는 것도 30일씩이나 지난 후, 왠지 안달이 나 버린 슈크였고, 겉으로 내색은 안했지만 이미 속으로 입이라도 삐쭉거리고 있다는 걸 슈크 눈앞의 두 명의 문지기들도 이미 인지해버린 상태였다. 역시 이런 시점에서 초조한 마음을 다시금 억누를 수 있었던 이유는, 두 문지기들이 신과 얼굴이 똑 빼 닮은 것에 있었다. 그랬기에 더욱 반가운 표정으로 마치 진짜 실체의 신 이라도 본 듯 구는 슈크에게 두 문지기들은 여전히 무표정하게 맞이한다. 문지기님들~~~! 정말로 오랜만입니다! 그들의 표정이 그러거나 말거나 슈크는 이렇게라도 만나니 기쁘기만 했다. 그런 진심을 알아채서일까. 예전과는 다른 분위기로 조금 느슨해진 슈크의 말투에 왠지 마음이 동한 두 명의 문지기들은 슬슬 그동 안 지켜왔던 무언의 긴장감이나 그들의 룰을 조금은 털어낸 듯 보였다. - 여어, 오랜만이야. 슈크. - 여어, 오랜만이야. 슈크. (흔들흔들!) 물론 똑같이 말을 반복하고 있는 건 왜인지 모르나, 그런 문지기 두 명 중 한 명은 심지어 손바닥을 보 여주며 살짝 흔들어대기도 했다. B3-2. 우리는 같은 문제에 봉착했어! 163
164 예전부터 가끔씩 스쳐 지나갈까 말까~한 아니면 전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던 그들을 떠올려 보자 면 전혀 예상 밖의 모습이었다. 그것에 다시금 새삼 놀라던 슈크, 눈이 조금씩 웃는 곡선을 부드럽게 그려가고 있음을, 그것이 그리 어 색함을 주진 않는다고 느꼈다. 이런 소통 이라도 충분히 고맙고 감사했다. 신의 부재로 왠지 모르게 하루 이틀 수척해지는 자신을 보고 있자니 참으로 집착이란 것은 자신을 통제 하는 것은 힘겨운 일이구나 하고 꽤 느끼던 참이었으니까.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냐고. 뭐든 함부로 못 만지게 했어야했어. 뭐라도 의논한 다음에 하면 얼마나 좋냐고. 진~짜. 보모의 심정을 알아달라고. 본래, 문지기들은 오직 신과 공유점이 있어서 그들끼리만 대하기를 좋아했고 다른 이는 배척하거나 대 충 적당히 무시하듯 밋밋하게 대하는 것이 일이었다는 점을 보자면, 그들의 관계는 실로 장족의 발 전 이었다. 그들은 서로가 같은 문제에 봉착하여 답을 구하는 사이가 되어버린 탓인지, 여러 번 만나는 사이 조금은 친해져 버린 탓도 이런 소통이라도 겨우 이끌어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네. 안녕들 하셨나요~~~? 문지기님들. 좀 더 묘한 기운으로 나는 당신의 적이 아닙니다. 한 패예요. 라고 말해오는 정다운 슈크를 보며, 문 지기 2인도 아직도 약간은 남아있던 그 낯설음이란 녀석을 조금 더 지워내며 찡긋 웃어주기까지 해주었다. 그러며 그에게, - 뭐, 그냥 그냥 그래. 너도 잘 지냈지? - 아닌가? 하하. B3-2. 우리는 같은 문제에 봉착했어! 164
165 문지기 1과 문지기 2가 말을 가볍게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이, 본심을 들킨 터라 살짝 어그러진 미소를 그린 채 잠시 당황한 슈크, 역시 문지기들은 신 의 본체를 그대로 닮아있었다. 대놓고 말하는 말본새가 참! 아니다. 이것마저도 좋지 않은가? 그래도 또 다시 그 말을 전하려니 마음이 아파왔다. 반복하고 기다리 고 또 기다리는 그 일을 대체 얼마나 반복할 참인지. 예-. 대체 그 분은 언제쯤 돌아오실 건지 문지기님들에겐 연락이 닿은 건가 해서요. - 아, 진짜. 내 말이! 내 말이 그렇다니깐! 그 녀석 어디로 갔는 진 대충 아는데, 표정 보니까 조금 더 기다려야 할까봐. 아까 나도 뭔가를 봤어. 나를 지나쳐 간 건가? 흠. 그 장소가 맞아. 지금 그 녀석 의식이 제멋대로인데다가 아직 돌아오지도 않았거든. 그렇다고 위험한 건 아니야. 예전에도 비슷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이 좀 시간이 길어서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지. 앞서 말한 문지기 1은 마치 지금도 무언가를 보고 연락받고 있는 듯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것에 슈크 도 막 희망이 생길 참이었다. 무슨 말이죠?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면 위험한 건가요? 그럼 몸을 찾았다는 말인가요? 어디 있습니까? 지금 당장 뵐 수 있는 건가요? 네? 말이 점차 빨라지고 있는 슈크의 상태를 보면서도 별로 동요 없이 무표정을 담은 문지기 2가 나섰다. 또 어디선가 다른 정보를 신속히 얻기 시작했는지 아까는 걱정했으면서 꽤 안심한 표정을 하고 있던 그 였다. B3-2. 우리는 같은 문제에 봉착했어! 165
166 - 흠. 아니. 안 돼. 볼 순 없어. 아. 지금 몸은 회수했다는 군. 하지만 이런 건 우리가 알아서 할게. 아직 의식 이 도망 다니고 있고, 그 녀석 또 어딘가에 호기심 동산 이라도 놀러가 있겠지. 너도 이젠 신경 꺼, 정신 건강에 나쁘다고. 여차하면 내가 강제로 깨워버릴 거니까. 그런 짓 했다간 후유증이 심각해질까. 그래? 아. 그렇구나. 그럼 그냥 기다리는 게 낫겠네. 그럼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언제가 되어야 정상적으로 다시 뵐 수 있는 겁니까? 슈크의 지금 눈빛을 보면 어떻게든 너희를 따라갈 수 있으면 가고 싶다는 눈치였지만, 어느 정도 포기하 고 있는 듯 보이기도 했다. 의식 이 어딘가로 도망 다니고 있다는 그런 말을 들으니 혼란스러웠을 테니 말이다. 예초에 의식과 몸이 따로 다녀도 문제는 없으니 신 인 것인가. 이래도 저래도 상관없다는 것은 무척 안도가 되었지만, 역시 계속 시간이 지체되니 초조함을 멈출 수 없 었다. 슈크의 불쌍함 가득한 기세에, 순간 머릴 긁적이던 문지기 둘은 갑자기 두 눈을 빛내더니 서로에게 시선 을 교차했다. 반짝. 그 후 문지기 1이 두 손을 활짝 펴서 숫자를 헤아리듯 되짚어 가고 있었다. 그러자 그 옆의 문지기 2가 그걸 바라보며 말하길, - 그래. 그 일이 있었던 첫 날 부터해서 딱 백일 정도만 채우면 아마 해결할 수 있을 거야. 일반론으론 그 정도니까. 그럼, 그때 내가 깨울게. B3-2. 우리는 같은 문제에 봉착했어! 166
167 그 모습에 문지기 1이 문지기 2를 바라보며, - 그럼 난 갈래. 난 이미 결론도 알고 있으니까. 짐짓 믿는 구석이 있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던 문지기 1이 문지기 2에게 시선을 주거니 받거니 했 다. 그 직후 문지기 1은 문지기 2의 등 뒤로 다가가는 척 하다가 순간 휙~ 하고 모습을 감춰버렸다. 갑자기 사라졌대도 그러려니 하던 문지기2조차도 이제 슈크에게 한 마디 남기고서 문지기 1을 뒤따라 사 라져버렸다. - 그럼 나한테 맡겨둬. 잘 가라. 슈크. 네. 잘 부탁합니다! 문지기님들. 뒷말을 붙이기도 전에 떠나버린 문지기들이었다. 왠지 긴장이 풀려서인지 배가 고팠던 슈크였다. 오늘은 긴장을 풀고 좀 느긋하게 온천에 몸이나 담가야겠다고, 좀 느긋하게 돈까스를 잘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냥 그날 하루는 욕조에서 거품 목욕을 하다가 잠들어버렸다. 물론 날 끄집어내어준 것은 우리 집 도우미 로봇인 머스탱 이었다. 여기서 주무시면 안 되요! 으차. 욕조에서 꺼냅니다~! 머스탱은 쇳덩이처럼 무거웠지만 나름 녹슬지 않고 단단한 티타늄합금으로 만들었고 평소 자기 몸에 광 내는 걸 좋아해서 요즘은 매우 번쩍번쩍하다. 취미는 내가 시킨 건 절대로 아닌데 그게 신 앞에서 재롱떨며 춤추기나 아부하기나 짧은 치마입고 넘 어지기였다. B3-2. 우리는 같은 문제에 봉착했어! 167
168 그렇다고 인간이 되고 싶어 한다는 소망을 가질 만큼 대단한 안드로이드 기능은 없다. 하지만 꽤 착하고 친절한 말투가 프로그램 된 귀여운 소녀인형처럼 생긴 로봇이었다. 감정은 없지만 주인의 정상맥박은 체크할 줄 아는 녀석이라 주인의 집에서 그나마 중간은 가는 청소와 빨래 그리고 아랫동네에서 머물고 있는 수준의 어설픈 요리를 담당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아. 잠들어버렸구나. 머스탱. 하하. 욕조에서 끄집어내어져서 욕실 나무 바닥에 부딪히고 정신을 차렸다. 머스탱은 안전하게 놓는 것에 서툰 나머지 조금 아프긴 하지만, 아 아무것도 안 입어선지 그간 욕조 물 이 벌써 식어 있어서인지 꽤 추웠다. 네. 잠들었어! 자-아. 목욕가운이요! 새하얀 목욕가운을 머리 위로 떨어뜨린 덕에 주섬주섬 입고는 허리끈을 묶었는데, 일어나려니, 일어나야 하는 걸까? 하고 멍한 생각을 하고 있는 차에, 흰 수건 하나가 더 떨어졌다. 머리를 닦으라고 하는 건가 보다하고, 내 머리카락이 젖었구나~ 하면서 짧은 머리칼을 닦으려 손을 머 리에 갖다 대며 닦는 시늉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던 차에, 자. 가죠! 간다! 슈~크! 기운 센 그녀 머스탱이 슈크를 번쩍 안아 들어서 침대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다행히도 튼튼한 바닥이 버텨주었기에 쿵쾅대면서도 나아가고 있었고 윗집 아랫집의 소음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주택이라 상관없었다. 도착했습니다아! 슈~크! 으응. 그래. 이번엔 그 바닥이란 게 침대 여서 아프진 않았다. 그리고 머스탱이 이불을 덮어주어서 그러다보니 B3-2. 우리는 같은 문제에 봉착했어! 168
169 또 금세 졸려서는 어느새 한바탕 푹 잘 수 있었던 것 같았다. 그 다음날 아침, 오늘 출근을 위해서, 난 한 마디 꼭 남겼다. 부수지 말고 알겠지? 머스탱? B3-2. 우리는 같은 문제에 봉착했어! 169
170 B 달러 받고 1000달러는 잊어 :43 그 다음날 아침, 오늘 출근을 위해서, 난 한 마디 꼭 남겼다. 부수지 말고 알겠지? 머스탱? 네! 사뿐사뿐 움직입니다아! 사뿐. 사뿐. 그러면서도 쿵쾅대며 조심스레 걷질 못하고 옆의 강화 플라스틱 박스 하나를 박살내버리던 머스탱을 바 라보면서, 슈크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똑같은 거 사놔. 네. 슈~크! 다녀와. 다녀오세요~. 잖아? 다녀오세요-라고 말하라고! 그리 생각하며 이를 질끈 깨물며 머스탱을 바라보는 슈크였다. 다녀오세요~오! 그것은 666번째 슈크가 주었다. 그 머스탱은. 야. 너 이게 얼마나 멋진 건지 알기나 해? 넌 평생가도 건드릴 수 없었을 거라고. 난 그런 혜택을 너한 테 준다는 의미로 감사하라고. 바이크도둑. B 달러 받고 1000달러는 잊어. 170
171 근데 왜 준다는 거야? 갑자기 왜? 닥쳐. 택배 로 이미 보냈으니까 확인해봐. 나의 권력과 돈줄과 명예가 얼마나 위세 등등한 지 절로 알게 해줄 테니까. 알고 싶어 할까? 내가? 왜? 머스탱은, 그가 있던 세상에서 아직 선보이지 않은 미발표작 중 하나라며 쓸 만한 수학자랑 과학자를 건 졌다는 둥 온갖 자랑질을 하면서 내게 주었다. 잠시나마 듣고 또 듣다보니 나도 그 녀석의 말빨에 점점 속아서 괜찮을지도. 라는 단어로 마음이 훌 렁 넘어갔고, 흠. 쓸 만한지 어떤지 보자. 감상은 나중에 들어. 뭐, 바이크 도둑의 감상 따윈 관심 없지만, 내 위대한 프로젝트 중 하나니까. 잘 봐둬. 내가 얼마나 잘 나가고 있는지 보라고. 응? 굉장하다면서 너무 존경한다면서 내 발목을 잡지 말아줘. 응? 알겠냐? 개뿔. 살이나 빼라고. 그러며 난 그 옆에 있던 쓰레기통을 걷어찼다. 분리수거가 안 된 쓰레기통이라 캔 깡통과 소주병과 종이무리가 우르르 쏟아져 바닥을 나뒹군다. 지금 우린 길바닥에서 만나고 있었고, 환한 곳에선 왠지 짜증나니까 뒷골목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 다. 물론 바로 옆이 맥주 바 이긴 했다만. 방금 전까지 나는 아주 잘 지내고 있었다. 나는 맥주 바에서 예쁜 언니 하나를 잘 꼬여서 술 잘 마시고 나이트클럽이나 같이 가려고 했는데, 저 놈 이 늘 하듯이 능글스럽게 웃으면서 우리 잠깐 볼까? 하면서. B 달러 받고 1000달러는 잊어. 171
172 왜 그때 내 호주머니에 18달러를 꽂아 넣는 거냐고? 재수 없게? 이거 오늘 시세로 1만9천949원밖에 안 하는데 뭐냐고? 왜 또 남에 머릴 만지는 건데? 내가 충격에 휩싸였을 즈음, 그 타이트한 블루펄 드레스에 호주산 갈색 긴 머리 언니는 야리꾸리한 눈빛 을 하면서 서둘러 도망쳐버렸고 오해는 생겨났고. 아우 진짜 저걸! 미친 놈!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화가 들끓는다! 녀석. 부끄러워하는 거냐. 아하하. 그 로봇을 택배로 못 받을까봐 이러는 건 아니었다. 괜히 말리기가 싫었다. 왠지 이 녀석 더러운 수작은 얼마든지 해먹는 부류니까. 그러니까 나는 지금 꽤 참았다. 그렇게 신속히 한쪽 발을 들어올렸다. 거침없 이. 시끄러. 살이나 빼라고 했을 뿐이잖아? 대체 그런 재수 없는 말은 어디서 배워먹은 거냐? 그거? 녀석의 배를 걷어찼다. 한 번 더 찼다. 분명 아주 빠르고도 강하게 쳤는데. 뭐야. 이 비계. 왜~케 단단해? 그대로 멀쩡히 서 있는 게 아닌가. 열불 났던 1억 번째 슈크, 그것에 담담한 척 666번째 슈크는 우쭐한 듯 말한다. 기묘한 미소까지 뿌리며 당당한 척 한다. 복근이야. 그 말에 이번엔 정강이를 서둘러 공략 후 넘어뜨려서 발로 그 녀석 배 위에서 아래로 쿡쿡 내려찍는데도 뭔가 말캉말캉하게 내 발이 절로 밀려버린다. 우엑 왠지 돼지비계가 생각나서 더 밟을 맛이 안 났다. 아~ 진짜! 그 배 뭐냐고 진짜. 불쾌감이 순식간에 B 달러 받고 1000달러는 잊어. 172
173 백배가 되어간다. 복근이라니까~. 그런다~. 내 양복 값이나 얼른 물어내. 옷을 탁탁 털며 뭐 별일 있었냐는 듯이 일어서는 666번째 슈크를 보고 있자니 더 할 맘도 안 들었다. 이 건 역시 폭력이니까. 하지만 나도 당했다. 그 전에. 그러니 정당방위다. 내가 왜 물어내? 네가 내 일 먼저 방해했잖아. 인과응보다. 근데 왜 넌 안 싸워? 너보다 내가 더 나쁜 사람인 거 같잖아. 이런 일방적인 폭력 같은 거. 나도 기분 더럽다고. 그래? 아 그럼 좀 더 할 걸 그랬다. 엉덩이를 만. 그 단어에 왠지 더욱 울컥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인지. 신께서 슈크끼리는 사이좋게 지내라고 그랬는데 이 제 그런 거 하지 말까 싶어진다고나 할까. 순간적으로 밀려드는 분노 게이지는 과연 엄청났고 또 계속 이어질 것만 같았다. 나도 나를 말릴 수 없 을 것만 같았다. 뭐-어? 엉덩이가 뭣? 아니 그게. 엉덩이 를 흔드는 그 여자 쪽이 낫다고. 아까 왜 여럿 있었잖아. 금발이랑 애쉬블론드(잿빛금발)랑. 헌데 네가 찍은 그 여잔 틀려먹었어. 아마 네 돈이 바닥날 때까지 안 놓아주겠지. 난 알아. 저런 여자들. 뭘 알아. 거짓말 마. 그냥 네 연애가 잘 안 되니까 괜히 시비 거는 거잖아. 확 벽으로 밀쳐버렸다. 666번째 슈크를! B 달러 받고 1000달러는 잊어. 173
174 허나 그는 저항도 없이 쭉 밀려가서는 벽을 타고 쭈욱 힘없이 내려왔다. 바닥이 흙바닥인데 지저분한데 그대로 앉아 있었다. 멍하니. 그런 가. 뭐 그런 거였는지도 모르지. 그럼 내가 당한 건 뭐지? 순간적으로 퓨즈가 끊긴 듯 절망을 껴안고 서 있는, 한때 자신만만하던 놈이 점차 작아져만 가던 걸 1억 번째 슈크는 똑똑히 보고 있었다. 그래서 돌연 동정이 피어올라왔는지도 몰랐다. 더 자세한 내막을 알고 싶었던 자신의 단순한 호기심인지도 모른다. 뭐, 갑자기 무슨 말이야? 너? 일주일 전에 똑같은 장소에서 돈을 뜯긴 나 는 뭐냐고. 바로 그 여자한테. 아 차키(key)도 뺏겼어. 카드는 일단 정지시켜놨는데 벌써 천 달러(110만8천300원)정도 썼더라고. 통도 크시지. 바로 튀어서 백화점을 들렀다니까. 그래서 나는 치밀하게 옷도 헤어스타일도 구두도 바꿨어. 그러니까 못 알아봤을 거야. 남자를 꼬시고 있던 나를. 마지막 대목으로 넘어갔을 쯤, 그 동정심은 어느 샌가 사라지고 없었던 1억 번째 슈크였다. 왜? 그래서 뭐? 내가 고맙다고 해야 돼? 아직 나- 그 여자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데. 허그(hug)라도 하게 해줬어야지. 뭐냐고. 안녕이란 인사도 없이 그냥 게이남으로 찍혔다고. 최악이지. 그거. 응. 안 그래? 좀 고마워해. 싫어. 안 할 거야. B 달러 받고 1000달러는 잊어. 174
175 어리석긴. 내가 널 안 팬 이유를 알겠냐? 선비는 태산 같아서 잘 움직이지 않는 거라고. 소인배는 절로 가라. 됐거든. 그래도 재밌었어. 그 18달러. 네 뒷주머니에 넣을걸. 쳇. 피식 웃어대는 나를 도발해 오는 666번째 슈크를 보고서도, 왠지 그 언젠가 맘속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했 던 그 동정의 잎사귀가 괜히 팔랑거리는 통에 이를 질끈 악물고는 뒤돌아섰다. 난 사내인데, 마음에서 이미 울고 있어서 어떡하면 좋을까 싶었다. 정말 불쌍한 비계였다. 그는. 비계도 허옇게 떡 져서 기름지고 껍질도 너무 두꺼워서 구워서도 꼭꼭 씹어 먹는 것도 힘든 거다. 그러 면 얼른 폐기처분해야할 것만 같다. 난 또 뭐래는 건가. 하-아. 됐다. 잠이나 자라고! 이 빌어먹을 돼지 새끼야. 택배를 받고 전기를 한바탕 뜯어 먹을 때는 못쓰겠다. 라고 생각하다가도 집에 돌아왔을 때 청소라든 가 정리라든가 잘 해놓으면 조금 감동해서는 꽤 쓸 만하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그쯤에 신과 바닷가에 놀러갔을 때도 머스탱이랑 같이 갔는데, 잠시 한눈 판 사이에 그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어딨어? 머스탱? 어디 갔어? 머스태에엥? 생긋 웃던 머스탱이 사라지다니, 난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목 놓아서 그 녀석 이름을 불러댔다. 내 옆에 있던 신은 내게 괜찮을 거야. 라고 말해줬지만, 왠지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하필이면 여행 하지 않은 곳에 놀러 와서. 이곳 핵심 슈크 는 지금 급하게 볼일이 있다고 그랬다고 했지? 그리고 그 보조로 들어간 그 슈크 도 아직 뭔가가 한참 서툴다고. B 달러 받고 1000달러는 잊어. 175
176 예. 그렇다네요. 연결통로만 뚫어주고는 가버렸지요. 별일 없을 줄 알고. 일반인으로 온다는 건 이런 거네요. 이 세상도 이곳 담당 슈크(1세계 1슈크로 존재 또는, 1세계 2슈크, 그 이상도 가능)가 어떤 법칙을 정해 놓고 있는 곳이라, 이곳을 여행하고 그것을 몸에 익히고 그런 상태가 아니라서 이곳에선 신 도 1억 번 째 슈크도 영 무용지물이었다. 허나 그 신 의 안전문제에 대한 것은 절대로 가벼울 리 없었다. 아무리 낯선 곳에 떨어졌다고 해도 슈크 란 자들은 신 을 반드시 따르는 비서와 같은 거니까. 아 마 신에게 위험이 발생했다면 당장 달려올 것이다. 이곳의 슈크들은! 나 죽어볼까? 여기선 수영 못 배웠으니까. 아마 저 바다에 빠지면 금방 끝날 걸. 예-에? 안 됩니다! 절대로요! 흐음. 어렵네. 머스탱한테 도움이 되지 못해서. 돌연 사라진 머스탱, 잠시 머뭇대다가 그제야 슈크는 뭔가 떠올라서 얼른 머스탱과 함께 신제품으로 딸 려온 위치추적기의 화면을 보니 그녀는 아주 깊은 바다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행히도 점점 바다 위로 떠오르는 모습이 초록색 점으로 화면에 떴다. 너무도 빠른 속도로 부상하고 있는 게 특이 할 정도였다. 얼른 그 지점을 쫓아 가보니 모래가 하나의 길을 만들어 놓은 그곳에 해변에 쓰러진 머스탱이 있었다. 머스탱의 발바닥은 로켓 추진 장치인지 가스와 파랗고 새하얀 불꽃과 연기가 지지직 피어올랐다가 꺼졌 다 깜빡대고 있었다. 그녀에게 어떤 파손에 대해 방어하는 시스템이 있어서 자체적으로 부상하여 스스로 구조해버린 모양이 B 달러 받고 1000달러는 잊어. 176
177 었다. 그렇게 머스탱을 끄집어냈을 땐 미역과 다시마를 휘감고 있는 기세가 꽤 요란했다. 겉으론 멀쩡해보였지만 짠물을 군데군데 질질 흘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안 좋을 거란 건 이미 예감했다. 왜 그랬어? 영화를 봤어요. 바다. 예뻤어요. 들어갔어요! 예뻤어요. 슈~크! 언어기능은 정상이긴 한데 했던 말을 또 다시 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흐음. 그래서 들어갔다고? 예쁘다는 거 아는 거야? 바다가? 몰라요. 예쁘다는 거 몰라요. 슈~크! 좋아요. 예쁜 거 좋아요! 신이가 예쁘댔어. 슈크는 그때 신 을 잠시 쳐다봤고, 신이 가 자신임을 인식하고는 피식 웃던 신을 보았다. 그리고 슈크는 말에 힘을 준 채 짧은 잔소리를 이어 나가기로 했다. 머스탱에게. 아무리 그래도 짠물은 안 좋아. 너 로봇이거든. 저 죽어요? 네? 슈~크? 이런 상황에 뭔가 엄청 발랄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자체 프로그램이란 이래서 무섭다. 물론 앞에서 왠지 다급한 기분에 그렇게 못 느꼈을 뿐이지만 안도하니 다시 알게 된다. 이 녀석은 666번째 슈크가 준 로봇이란 것을. 신에게 아부나 떨고 점수나 얻으려고 만든 거였다는 걸. 그럼에도 왠지 기분은 안 나빴다. 아직 안 죽었어. 다음엔 하지 마. B 달러 받고 1000달러는 잊어. 177
178 그 탓에 걷는 기능에 문제가 생겼고, 발걸음의 힘 조절 실패랄까 머스탱은 시간이 흘러도 그 부분이 전 혀 학습되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그걸 준 666번째 슈크도 처음엔 연구해보자며 데리고 갔다가 도로 데려와서는 부품은 바꿨지만 더는 나도 몰라. 라며 일축을 했고 못 쓰겠으면 버리던가. 라며 덧붙이기에, 됐다. 고 말을 건네고 아냐. 좀 더 쓰지. 라고 덧붙였다. 그러던 어느 날 문제가 하나 더 발생했다. 머스탱의 설정이 말투가 존칭으로 되어 있다가 반말을 섞어 쓴다는 것이라고나 할까. 다시 되풀이하며 지적할 때는 듣는데 왠지 로봇이 일부러 안 한다는 기분이 가끔씩 들거나 하니까 그게 또 어이가 없다. 굳이 열렬히 내가 신경 쓰지 않는 이유는 걔는 무척 똑똑하지 않은 로봇이고 아니 로봇이니까 일까. 생각이 꼬이는 것 같다. 후우으. 여튼, 뭔가가 있었다가 갑자기 보이지 않게 된다는 건 마음이 편하지 않단 말이다. 신이시여. 얼른 정체를 드러내줘! 얼굴 좀 보자고! 응? 그렇게 시간이 가고, 문지기의 말대로 신은 나는 딱 100일을 채우고 스스로 깨어났다. 1억 번째 슈크가 한동안 계속 밥을 같이 먹자고 해서 꽤 오랫동안 같이 식사를 했던 생각이 난다. 그 옆 에 있던 머스탱도 함께였다. 머스탱은, 가끔 이상한데서 넘어진다거나 뭐 그런 바보짓을 했지만 나쁜 로봇은 아니니까 이해한다. 순간 든 갑작스런 생각인데, 별로 의미는 없을까? 근데 왜 입는 걸까. 그 로봇은. 팬티. 물방울무늬였나? 핑크? B 달러 받고 1000달러는 잊어. 178
179 B 달러 받고 1000달러는 잊어. 179
180 B3-4. 포기하면 그걸로 끝이다 :44 1억 번째 슈크가 한동안 계속 밥을 같이 먹자고 해서 꽤 오랫동안 같이 식사를 했던 생각이 난다. 그 옆 에 있던 머스탱도 함께였다. 머스탱은, 가끔 이상한데서 넘어진다거나 뭐 그런 바보짓을 했지만 나쁜 로봇은 아니니까 이해한다. 순간 든 갑작스런 생각인데, 별로 의미는 없을까? 근데 왜 입는 걸까. 그 로봇은. 팬티. 물방울무늬였나? 핑크? * 어쨌거나 그 후로는 한동안 난 그 도장 을 쳐다볼 생각도 하지 않았, 뭐 어쨌거나 지금은 그게 문 제가 아니다. 머릿속이란 공간에 들어와 버린 것이 원인일까? 회상이야말로 나의 방심을 기다리듯 순간적으로 방출되어 나를 지배해버렸던 거였다. 철커덕. 뚝. 책을 펼쳐보기 위해서, 한때 투명한 사슬로 휘감았던 책에 걸어두었던 속박 을 해제시키자, 사슬소리 가 차례차례 끊어지는 소리도 같이 차근차근 들려왔다. 웅웅. 곧 낮게 진동음을 펼쳐내던 책이, 오직 단 하나의 도장 만의 힘으로 그 구역을 온전히 점령해버리자 조금 더 강한 힘을 발휘되어버린 탓으로 그 책은 이제야 확실히 졸고 있는 듯 더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B3-4. 포기하면 그걸로 끝이다. 180
181 이제야 스스로를 사물이라 인정한 것인가. 어라. 어두워! 책을 제압한 뒤 느낀 점으로, 아까 하얀 강아지들을 불러 불 싸지르고 난리를 피웠을 땐 환한 대낮이었 는데 지금은 꽤나 적막하기만 했다. 기다랗고 나무격자로 된 창문을 관통해 나아간 풍경은 벌써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헌데 석양은 없고 어 둠이 바로 쏟아진 모습. 더듬더듬 책을 들고 걸어가 이미 흘러간 대낮 의 기억을 되살리며 어딘가 책상과 의자가 있던 공간 으로 걸어 나간다. 곧 책상을 발견하고 그 위에 매달려 있던 유리관을 뒤집어쓴 작은 가스등을 버튼 하나로 밝힌다. 은은히 피어나는 빛과 묘한 온기가 노란 세피아 색으로 퍼져나간다. 펄럭. 왠지 급한 마음에 선 자세 그대로 책을 활짝 펼쳐내 한 구절씩 읽어댔다. 원래라면 두 눈으로 훑는 것만으로 이해가 팍 됐어야 하는데, 그렇게는 도통 잘 되지 않아 소릴 내어 읽 어보는 중이란 거다. 드디어 이곳에 도착하고 만 것인가. 나는 말하겠네. 이곳은 함부로 누군가에게 침범할 만한 곳이 못 되네. 당장 나가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지. 흐음. 어째서인가? 왜 아직도 나가지 않은 거지? 저번엔 순순히 나가더니, 너도 참 이상한 녀석이군. 아니, 그때보단 좀 더 힘을 키웠다고 칭찬해줘야 할까? 하지만 난 너의 그 무엇도 아니라네. 그럴 필요는 없는 셈이지. 그래. 이번이 약 5만 번째 방문인가. B3-4. 포기하면 그걸로 끝이다. 181
182 머리가 갑작스레 어지럽기 시작했다. 하지만 좀 더 읽기 위해 애썼다. 두 눈이 핑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너의 첫 번째 방문이라. 기억나는군. 그땐 무심코 이 책을 집고 말았던 거겠지만 지금은 나가주길 바라네. 물론 내가 약 5만 번째라고 한 이유를 알겠지? 더욱 세세한 숫자를 헤아려줄 수도 있겠지. 허나 그런 짓은 너의 비참함을 더욱 부각시킬 테니 나는 관두기로 한다네. 내 다시 말하지. 넌 아무래도 이곳에서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을 것이야. 모든 것은 때가 되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이 룰이라네. 그것이 바로 너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일. 앞의 느낌과 이어져, 이번엔 책이 너무도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두 눈앞이 흐릿해지다가 다시 선명해지고 다시 흐릿해지는 걸 반복하고 있어서 더욱 더 커다란 어지러 움이 시작되었다. 그 덕에 나는 조금씩 몸을 비틀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이다. 좀 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은 괜찮았다. 좀 더 책을 쥐고 있는 양손에 힘을 주 었다. 그래. 이젠 어깨를 당당히 펴도 좋다네. 욕심을 부려서는 상처만 입을 뿐이라네. 지금의 너로는 안 되는 것이야. 이제 발걸음을 가볍게 하고 뒤돌아서 나가면 되네. 나가. 나가라고. 나가. 나가라니까. 우웁. 구토감이 슬그머니 내 뱃속을 머릿속을 헤집는다. B3-4. 포기하면 그걸로 끝이다. 182
183 느글거리는 배를 움켜잡고는 책을 펼친 채로 책을 바닥까지 처박았다. 아니 하고 싶어 한 것이 아니라 너무 무거워서 이젠 견딜 수가 없어서 그랬다. 바닥에 무릎까지 꿇고 있던 나였지만 여전히 책은 꼭 잡고 있으며 두 눈은 다음 글자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내. 가. 지. 금. 당. 장. 이. 라. 고. 했. 을. 텐. 데? 우욱. 그때였다. 미칠 듯이 닥쳐오는 순간적인 격한 두통을 가까스로 참아가며 눈물을 찔끔 찔끔 흘러대기도 했다. 물론 역시 더는 참기가 힘들어 소리도 듬뿍 고래고래 질러댔다. 그렇다고 양손을 책에서 뗄 생각은 아직 없다. 어떻게 해서 겨우 붙잡은 책 인데 그럴 수는 절대 그럴 수는 없었다. 으아아악! 아아아아악! 현재에 있는 나는 머릿속으로 들어온 나 이다. 허나 이곳에서 만든 나의 형체조차도 온통 고통에 휩싸여 왼손은 책의 가장자리를 포기하고 그 대신 나 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리고 내 오른손은 아직도 책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역시 놓칠 수 없는 거다. 그 후에 나를 괴롭히던 것은 두통도 구토감도 아닌 귀를 격렬히 파고드는 이명이었다. 그것은 듣기 싫은 소프라노의 고음과도 같은 것이 불규칙한 잡음처럼 뒤섞여 날뛰고 있었다. 삐이이이이이!! 그렇게 나는 더는 읽을 수 없었고, 갑작스레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B3-4. 포기하면 그걸로 끝이다. 183
184 의식을 잃기 시작한 것일까. 정신이 없다. 책을 잡은 오른손에 힘이 절로 풀릴 듯 말 듯 하는 그 짧은 순간에 포착된 시야만을 기억한 채, 나는 언 제 바닥에 누워버렸는지조차 모를 만큼 엎어져 있었다. 우웁. 우욱. 우우웁. 음. 음! 난 생각보다 빨리 의식을 차릴 수 있었다. 허나 그것은 의식을 차린다는 의미보다는 더욱 또렷한 정신 속에서 고통을 맛보는 것뿐이었다. 나를 이명만으로 편히 잠들게 하지는 않는다는 거였다. 뱃속이 뒤집히는 듯하다. 뱃속에 뭔가 이상한 벌레가 꿈틀거리는 것만 같은 최악의 기분이 들었다. 몇 번의 위급한 순간들을 넘어가며 누워서 비틀대며 꿈틀대며 토하려하나 토해지지 않는 것이 더욱 죽을 맛 이었다. 이대로 책에서 손을 떼어버리면 괜찮을 것이다. 아무도 이런 나를 말릴 리가 없겠지. 그런 안락한 마음이 생겨난다. 고통에 몸부림치느라 짧은 시간 내에 땀으로 얼룩지고 마라톤을 힘껏 달리기라도 했는지 온몸은 이미 기운이 없고 호흡은 일찌감치 어긋나서 이리저리 뒤척이고 있었다. 헉. 하아. 허어억. 호흡이 가빠져 제멋대로 턱을 움직이는 것으로 산소를 빨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왠지 오른손 안에 땀이 가득 차 책도 더는 잡고 있기가 불편해져서 곧 종이자락을 슬그머니 미끄러져 빠 져나갈 분위기에 임박했다. 나는 이제 완전히 지쳤다고 이미 몸이 그런 신호 를 보내오고 있었다. 이제 포기하라는 등의 짧은 메 시지를 말이다. 간단한 일이다. 포기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다. B3-4. 포기하면 그걸로 끝이다. 184
185 하아. 허억. 하아아. 허나, 그것은 포기하면 그걸로 끝이다. 다음 기회라면? 또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하는 것이다. 또 다시 겪어야 그 산을 그 계단 따위를 오를 수가 있는 거다. 그걸 몰라서 그러는 건가!? 나는? 왜? 이럴 리는, 이럴 리가 없다고! 허나 이것은 환상이다. 나는 지금에서야 알아차렸다. 모두. 없애버릴 것이다. 이 책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들이 나를 지친 것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제야 조금 호흡이 정상궤도로 향하고 식은땀이나 지쳐버린 몸 따윈 어디에도 없었다.! 아직도 바닥에 펼쳐져 있는 그 책을 양손으로 고이 잡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이 책을 이 글귀를 몇 번이나 본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랬다. 나는 단 한 번 이 글귀를 읽은 게 아니라 이미 20번이나 읽고 있었다. 이 글귀를 이 글자 한 자 한 자씩 읽어 나갈 때마다 나는 전진하고 있었을지 후진하고 있었을지 분명 여 러 군데에서 헤매고 있었을 게 분명하다. 어떤 부분에선 그 글자 를 넘어갔으나 어떤 부분에선 그 글자 를 그 문장 을 넘어서지 못해서 몇 번이고 되풀이 되고 있었던 거였다. 이제 그랬다는 걸 어렴풋이 깨닫는다. 그 덕에 나는 수십 번의 두통과 어지럼증과 구토감 시야박탈 등등의 괴로움과 싸우고 있었던 거였다. B3-4. 포기하면 그걸로 끝이다. 185
186 나는 역시 글 읽기를 멈췄다 가 다시 시작 했다 를 그토록 지긋지긋하게 반복했던 거였다. 그 흐 름에서 얼른 도망치고 싶었지만 다음 글귀를 향해 내 의지대로 쉽사리 나아갈 수가 없었던 거였다. 그래도 한 번 더 해보자 라는 마음을 몇 번을 더 먹어왔던가, 그렇게 53번을 더 읽었을 쯤 역시 이런 건 내 타입이 아니었다. 이런 모습의 나 라니 견딜 수 없었다. 난 결국 참지 못하고 그 글귀가 적힌 그 부근의 책장을 한 뭉텅이를 한 손으로 낚아챘다. 그렇게 힘주 어 구겨버릴 듯 움켜잡아 그 책에서 당장에 찢어버렸다. 쩌적. 찌익. 쩌어억. 지겨워 진짜. 수십여 장의 책장( 冊 張 )들은 하나 하나 바닥을 향해 어지러이 팔랑팔랑 떨어질 뿐,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드문드문 나타났던 아픔의 증세는 싹 사라져버린 상태라 꽤나 상쾌하고 통쾌할 수가 없었 다. 후우으. 긴 한숨조차 이렇게나 달콤했다. 허나 눈앞의 의자엔 왠지 앉을 수 없었다. 여전히 적당한 긴장감을 안고 뒤편의 책장( 冊 欌 )에 슬쩍 몸을 기댄 채로, 아직도 움켜쥔 채인 그 지긋지 긋한 책 을 눈앞에 들이댔다. 제멋대로 찢어져 너덜거리는 종이를 보며 비웃다가 남아있는 다음 쪽 페이지를 살펴보았다. 이번엔 정말로 처음 본 글귀가 떡 하니 눈에 들어왔다. 분하지만 그것 또한 입으로 소리 내어 읽을 수밖 에 없어서 그리했다. 왜? 너는 무엇이 알고 싶어서 이곳에 온 것인가. B3-4. 포기하면 그걸로 끝이다. 186
187 너는 누구이기에 그것을 원하는가. 너는 이런 것 따위 알 필요가 없다. 시간이 아깝지도 않는가. 차라리 이럴 시간에 그 녀석을 찾는 것이 네겐 더욱 유익할 것일 터. 그 녀석 말이야. 네 꿈에 나타나서 너를 괴롭히던 그 녀석을 찾으라고 이젠 이 책이 방식을 바꾼 것인지, 글귀를 읽자마자 불쾌감이 화가 치밀어 얼굴이 절로 달아오를 정도였 다. 마치 내 핵심을 오롯이 찔러오는 기분이었다. 이번엔 더는 글귀를 읽는 내가 없고, 단지 나의 감정 을 그대로 책에게 비춰냈다. 그 책에게 말을 걸었다. 바보짓이었지만 해버리고 만다. 어떻게. 그 녀석을 알고 있는 거야? 너? 그렇다. 언젠가부터 나의 꿈속에서 그 누군가가 늘 나온다. 단 한 번만 꾸었을 뿐이지만 선명히 기억에 남아있었다. 절대로 잊을 수가 없었다. 이유는 역시 알 수 없 다. 검은 부츠를 신은 그 녀석은 내 꽃밭을 처참하게 짓밟으면서 늘 이렇게 지껄였다. 우리의 대화는 간단했다. 허나 그걸 완벽히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싫어? 그렇게 그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당연한 걸 왜 물어? 왜 이런 터무니없는 짓을 하는 거지? 응. 하지만 나는 이런 거 좋아. 그것에 기가 차서 말을 이을 수 없어 답답한 내가 등장하고, B3-4. 포기하면 그걸로 끝이다. 187
188 뭐? 난 말야. 네가 싫어하는 걸 좋아하는 자. 그렇게 생각해. 야. 계속 대답하려니까 짜증나거든? 너 어떻게 들어왔어? B3-4. 포기하면 그걸로 끝이다. 188
189 B3-5. 모래폭풍을 넘어 콜로세움의 무대에서 :46 난 말야. 네가 싫어하는 걸 좋아하는 자. 그렇게 생각해. 야. 계속 대답하려니까 짜증나거든? 너 어떻게 들어왔어? 웬 미친놈이 이 근처를 알짱거리는가 싶을 정도였다. 대체 슈크들은, 대체 나의 문지기들은 어디서 뭐하고 있는 것인지 그러며 난 속으로 투덜거리고 있었다. 이곳이 꿈인 줄도 모른 채. 그런 와중에 계속 녀석의 말이 들려온다. 넌 말야. 아직 날 인정하지 않았지. 그래서 거부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보이지 않는 거야. 보고 있어. 제대로 널 보고 있잖아. 내 앞에 있는 게 네 녀석이지.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건데? 아니야. 보고 싶지 않아 해도 난 괜찮아. 이해해. 그런 거. 넌 그저 네가 좋아하는 걸 하면 돼. 그럼 난 네가 싫어하는 걸 좋아하면 돼. 그럼 모두 기분이 나아져. 그렇겠지? 그리곤 그 녀석의 어떤 얼굴이 잘 기억나진 않지만 하여간 그 녀석의 새하얀 얼굴이 보이다가 이내 눈가 에서 검은 눈물이 양쪽 볼을 타고 주루룩 떨어져 내리고 또 흘러내리고 있는 것을 나는 보고야 만다. 허나 나는 금세 그런 그 자의 모습에 질색을 하며 그것을 제대로 보려 하지 않았고 나는 어딘가로 도망 치고 있었다. 한없이. B3-5. 모래폭풍을 넘어 콜로세움의 무대에서. 189
190 끝없이. 어딘가로 훌쩍 떠나 사라지고 싶은 기분이 된다거나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어진다거나 했던 것이다. 으아아아!! 거대한 공황, 갑작스레 마음이 텅 비어버리는 감각이 허무하게 펼쳐진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정적이 나를 짓누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더는 보고 싶지도 않고 관여하고 싶지도 않은 감정이 요동친다. 정말 그런 가? 그것이 진심인가? 진심? 그게 그렇게나 중요한가? 난 지금 뭘 하려고 그랬지? 어디에선가 흘러나오고 있던 내 마음은 차분히 바닥을 채워나가며 나를 차분하게 만들어냈고, 뭔가가 하나, 돌멩이가 내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며 떨어졌다. 그리고 또 하나 더 떨어지고 하나 더! 계속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검은 눈물을 한 자의 인상 은 흐려지고 다시금 내 기억이 앞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 어떻게. 그 녀석을 알고 있는 거야? 너? 난 대책 없이 화를 내고, 그 전엔 책에 쓰인 글귀를 읽어 들이고 있었다. - 그 녀석을 찾는 것이 네겐 더욱 유익할 것일 터. 그 녀석 말이야. 네 꿈에 나타나서 너를 괴롭히던 그 녀석을 찾으라고 나는 흔들리고 만 것이었다. 역시. 이거. 모두 거짓말 이지? 너무 선명해서 굉장히 놀랐다고. B3-5. 모래폭풍을 넘어 콜로세움의 무대에서. 190
191 이봐. 책. 내가 이렇게 칭찬해주고 있잖아? 무슨 말이라도 해봐라-라고 한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라 관두지만, 한껏 째려봐준다. 정말이지 아까는 순간적으로 확 이곳에서 나가버릴 뻔했다. 위험했다! 어디서 그런! 어이없는 걸 갖고 와서는! 나한테 적용시키는 거야? 장난 그만 치시지? 응? 생각할수록 분노가 일어 책을 잡고 있던 내 양쪽 손의 힘이 난폭한 에너지의 기운을 타고 변화를 일으키 기 시작했고, 동시에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를 연상시켜버리자, 그 책은 서슬 퍼런 북극의 한기를 머 금어서 으드득 얼어붙어버렸다가 갑작스레 닥친 메말라버린 사막의 붉은 열기를 흡수한 듯 그것은 급격히 약해져가고 있었다. 스스슥. 스윽. 현재 난 책을 양손에 쥐고 있다는 것을 무시하듯 박수를 치는 듯 금세 내 두 손이 서로를 나아가 맞부딪 힌 것과 동시에, 책 그 자체는 누군가들의 발길질에 의해 힘껏 바스러지는 길바닥에 한가로이 나뒹구는 마 른 낙엽과도 같은 신세가 되어있었다. 거짓말쟁이 말을 내가 들을까보냐! 기억나지 않는다며 애써 무시해낸 나 였지만, 그 장면은 그 책의 마지막 악착스런 미련이기라도 한 듯이 또 다시 내 안에서 재생 되었다. 다. 이번엔 아무런 감정의 기색 없이 흘러들어 와서 그 새하얀 얼굴이 검은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리고 있었 난 아마 한동안은 이 장면을 잊지 못할지도 모른다. B3-5. 모래폭풍을 넘어 콜로세움의 무대에서. 191
192 꽤나 인상적인 것이었으니까. 그 사이, 책 녀석은 소멸을 향해 갑작스레 다가가는 모습이었고 나는 그걸 지켜보고 있었다. 헌데 역시 나 그 도서관에 그 책이랄까. 5초 후 책은 원상태로 돌아가려는 힘에 의해 원상복구에 힘쓰고 있는 탓에 이미 박수를 쳐 맞부딪힌 내 양쪽 손바닥 안에서는 이미 바닥에 너저분하게 떨어졌던 책의 부속들이 모이고 모여들더니 내 손바닥을 급격히 밀어내고 있었다. 그렇게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가고 있었고 그런 모습에 달가울 리 없는 나 역시도 내 힘을 또 다시 선보 이며 우리는 밀고 당기는 싸움을 이어나간다. 난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있는 듯했다. 내 손으로 책을 찌그러뜨리고 꾸겨버리고, 책은 자신의 온몸을 다시금 살찌우고 넓게 펼쳐대고 있는 것 으로 약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책의 복구 타이밍은 예전 도서관의 그 양상처럼 더욱 더 학습되고 익 숙해져 가고 있는 듯 빨려져만 가고 있었다. 그래. 네 녀석이 복구 되는 것쯤이야 알고 있다고! 나 역시 방법을 바꾸기로 한다. 내 양손 사이의 공간에 작은 태풍을 만들고 그 안에 무엇이든 잘라버리는 날카로운 칼들을 슬그머니 자 유롭게 풀어주기로 했다. 이제 이것으로 저 책 따위는 완전히 가루가 될 것이다. 종이 가루가. 몇 번이든 해줄게. 네가 포기할 때까지. 공격과 복구의 접전 중 책도 작전을 바꾸고 이젠 그저 종이 가루 로 존재하는 척 하더니, 그걸로 게임오버(game over) 인 줄 알았는데, 종이 가루가 어느새 미세한 먼지 조각처럼 변하고 공중에 쫘라 라 흩어진 채로 신의 주변을 배외하고 있었다. 쏴아아. B3-5. 모래폭풍을 넘어 콜로세움의 무대에서. 192
193 모래폭풍이 이는 듯 오래된 책이라 그런지 황토 빛이 엷게 시야를 가리운다. 모래가 눈에 들어가 버린 듯 살짝 눈이 따끔거렸고 그 때문에 눈을 비비적대던 신, 다시 눈을 몇 번이고 깜빡거리며 다시 떴을 땐 새로운 공간 이 열렸음을 인식해버린다. 어디지? 아직도 희뿌연 감각이, 짙은 안개가 눈앞에 있어 그 고요하고도 차가운 기운을 손으로 헤치며 앞으로 나 아간 신, 왠지 코끝으로 미미한 짠 냄새가 확 풍겨왔다. 그러고 보니 바닥의 느낌도 왠지 모래 를 밟는 듯 쑥쑥 발이 빠져 들어간다. 바다? 처얼썩. 철썩. 시선을 아래로 향하니, 푸르른 물결과 새하얀 포말이 신발을 적시며 다가오고 물러나기를 반복하고 있 었다. 이젠 시야도 꽤 맑아졌기에 그런 것들을 보는 게 가능했다. 철썩. 처어얼썩. 여느 부자동네의 휴양지나 다름없이 꽤나 볼만한 아름다운 풍경에 속했다. 내 발 아래 있던 것은 은빛과 하늘빛이 뒤섞인 묘한 모래였고 그것이 수 백 미터는 더 되게 넓게 펼쳐져 있었고, 그 뒤론 회색빛 암석산과 수수한 들풀 꽃이 속속들이 눈에 띄었다. 무인도마냥 한적해 보이는 이 곳, 새 한 마리 날아다니는 것조차 눈에 띄질 않는다. 하지만 나를 이끄는 묘한 감각이 발동해 나는 당연한 듯이 들어왔다 빠져나가는 파도의 물결을 향해 좀 더 깊어져가는 바닷물 을 향해 다가기로 한다. B3-5. 모래폭풍을 넘어 콜로세움의 무대에서. 193
194 첨벙첨벙. 힘껏 달리듯 가는 바람에 다소 물결에 대한 저항은 얻었지만, 나는 눈앞 20여 미터 앞에 보이는 거무튀 튀한 색의 호리병 하나를 발견하고야 만다. 저건 가? 가면 갈수록 바닷물은 더욱 깊어져가고 이제 엉거주춤 걷는 것도 힘들게 되었고, 어영부영 헤엄치듯 서 투르게 나아갈 뿐이던 신은 최선을 다해 호리병 형태의 유리병(?) 곁으로 꾸역꾸역 다가갔다. 한 손으로 유리병을 잡아채고 뚜껑을 열다가 따끔한 감각을 느낀 것과 동시에 엄지가 약간 베였다. 피가 살갗을 뚫고 가늘게 틈을 열었고, 그 붉은 피가 바닷물에 한 방울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이내 흩 어져 바닷물인 척 흘러가버리고 있었다. 또옥. 불길한 피 인가. 엄지를 바라보다 말고, 손에 든 유리병의 주둥이를 입가에 대고 기울여 그 안의 내용물을 꿀꺽꿀꺽 거침 없이 집어삼켰다. 왜 마셔야했냐고? 그냥. 그래야 될 것 같다는 느낌뿐이었다. 애초에 맛이란 것도 모르겠고 먹어야 뭔가를 얻을 것만 같은 어떠한 감 만이 나의 길을 비추고 있을 뿐이었다. 왜일까. 순간적으로 계속해서 그 이미지가 떠올랐다. 붉고도 붉은 피와! B3-5. 모래폭풍을 넘어 콜로세움의 무대에서. 194
195 붉은 핏방울의 파문. 그것은 아주 사소하고 아주 작은 핏방울이었지만 내게는 아주 거대한 핏방울이 온몸을 강타하고 있다는 여운을 보내오고 있었다. 이 넓고 넓은 바다의 푸른 수면 위를 때리고 있는 거대한 규모의 핏방울! 파문이 일고 또 이어서 우아한 곡선을 그리듯 동심원을 그리는 큰 파문이 일어났을 때! 팟-팟-팟-팟-팟! 머릿속으로 수많은 영상이 미친 듯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때, 신은 보았다. 우와. 엄청난데. 죄다 슈크 라고? 내가 막 그 생명체처럼 꿀렁대는 나무줄기 장식과 무척 오래된 듯 보이는 푸석거리는 이끼를 잔뜩 매달 고 있는 그 모험가 탐험 스타일의 신비로운 문을 열어서 처음 본 것이 그랬다. 마치 난 지금 콜로세움(원형대경기장)에 와 있는 듯 했다. 경기장의 내부 영역으로 보이는 무대 는 문을 연 순간 드러난 입구와 붙어서 직선으로 이어진 중앙 의 원형 무대정도였는데 그것은 전국 노래자랑 무대 만치나 꽤 작아보였다. 반면, 원형으로 드넓게 펼쳐진 좌석 에는 수많은 슈크 가 서 있었다. 그들은 누군가가 자신들을 선택해주기를 기다리면서 영원히 꿈을 꾸고 있는 듯 결전을 대비하는 듯 장 엄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압도되어 감탄이 절로 드는 기분이었다. B3-5. 모래폭풍을 넘어 콜로세움의 무대에서. 195
196 아. 모여 있으니 확실히 달라. 잠깐 휙 둘러본 것만으로도 꽤나 아는 얼굴이 없어 보였다. 내가 찾는 눈이 그다지 없는지도 모르겠다만, 억 이라는 숫자에 적응이 안 될 정도로 이곳에 있는 슈 크들의 수량은 꽤 넘쳐났다. 그런 연유로 1억 번째 라는 순번이 매겨진 슈크가 내 곁에 있다는 게 더욱 실감난다고나 할까. 물론 다들 눈동자의 생기는 없어 뵈는 홀로그램 처럼 보였다. 역시 1억은 넘겠어. 아니 확실히 넘어! 그럼 나 말고도 신 이란 자가 있긴 했던 모양인데? 결정적인 증거가 부족해. 자료가 너무 없다고! 무대 중앙에 있기에 보여 지는 공간만을 보는 것이겠지만, 지하가 한참이나 저 아래로 뻗어 있을 가능성 을 열자면 지금 이곳이 빌딩의 최상층 옥상에 해당할지도 모른다는 그런 이상한 기분도 들어서, 하여간 슈 크는 무지막지하게 많이 존재하고 있다는 걸 이제는 알아버린 셈이다. 슈크들이라, 301번째 슈크와 1억 번째 슈크와 666번째 슈크는 많이 달라 보이는 인상이었으나 나만이 알 수 있는 닮은 기운(분위기)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슈크 의 범주에 든 것일 거란 생각이 든다. 뚜벅. 뚜벅. 내 눈앞에 펼쳐진 이들도 그랬다. 어딘가가 놀랍도록 닮아있었다. 미묘하게 신체의 각 부분들의 구성이 다른 거일 테지만 말이다. 느낌은 일란성 쌍둥이처럼 딱 알아맞히겠는데, 나름의 습관이나 생활방식이나 성격 및 환경이나 유전자 등등에 따라, 살이 빠져 보인다거나 살이 더 쪄 보인다거나 더 건강하거나 병약하거나 더 깔끔 떨거나 털 털하거나 세련되거나 후줄근하거나 더 가꾸거나 관심 없거나 등등 그들이 바라는 서로의 성향은 제각기 B3-5. 모래폭풍을 넘어 콜로세움의 무대에서. 196
197 달라서, 그렇기에 각자 뿜어져 나오는 분위기가 전혀 달라 철저히 다른 자가 아닌가라고 보게 되는 거였 다. 그런데 저건? 설마 영혼의 빛깔인가? B3-5. 모래폭풍을 넘어 콜로세움의 무대에서. 197
198 B3-6. 블랙 초콜릿은 와자작하고 부서져 :47 그런데 저건? 설마 영혼의 빛깔인가? 어느 정도 슈크의 얼굴을 익혔다고 생각했는데, 참으로 기억력에서 어긋난 게 많았다. 그리고 묘한 점은 그들의 가슴 앞에 두둥실 띄운 파란빛 구체를 가진 슈크들과 검은빛 구체를 가진 슈크들로 나뉜 다는 점이었다. 내가 완전히 중앙의 원형 무대에 딱 들어섰을 때, 갑자기 파란빛 구체를 가진 슈크들의 몸체가 색감 을 잃고 새하얗게 변해버렸고 한편 검은빛 구체를 가진 슈크들의 몸체는 잿빛으로 변해버린 풍경이 시야를 채웠다. 무채색의 세상처럼 단순하게 변해버린 슈크들을 보고 있다가, 돌연 몇몇 백 의 슈크들이 가진 파 란빛 구체가 다급히 깜빡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그 몇몇의 백의 슈크들은 발아래부터 검은색으로 조금씩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 물듦의 정도가 각자 다 달랐다. 어떤 것들은 백과 흑이 드문드문 묻어 얼룩덜룩해보였고, 그 누군가는 얼굴부터 흑이 깔리고 아래로 백 이 자릴 잡은 경우라든가 꽤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느 순간! 신은 그것 을 보고야 말았다. 백과 흑으로 얼룩덜룩해진 슈크들의 몸체가 하나둘 신의 시선을 잡아끌었고 그들은 갑작스레 흑 으 로 온전히 몸체가 변해버렸고, 그들의 몸체엔 미세한 금이 거미줄처럼 퍼져나갔고, 이내 그것들의 금이 간 틈새 사이로 환한 빛이 뿜어 나오며 결국에 돌덩이 같이 변해버린 몸체가 딱딱한 껍질을 깨부수듯이 거칠 게 폭발하고 그 잔해는 바닥을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었다는 것을! B3-6. 블랙 초콜릿은 와자작하고 부서져. 198
199 이런저런 모든 일들은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다. 그 다음에 벌어진 일이 바로 그들의 가슴 앞에서 빛나는 파란빛 구체도 죽어버린 검은빛 으로 바뀐 것이었다. 그때 내게로 몇 번째일지 모를 어떤 슈크 의 말이 너무도 선명하게 전해왔다. - 이유로 이곳을 파괴합니다. 그럼 다들 최후까지 신 을 부탁합니다. 그리고 이어진 또 다른 슈크 의 말과 말이 이어져 나간다. - 선택은 파괴. 신 께는 안부를 부탁. 감사의 인사를. - 버틸 수가 없네요. 더는. 아아 당신 탓 아니니 자책하지 마시길. 안녕히. -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부디 몸조심하시길. 사랑하는 나의 신이여. - 예에. 저는 갑니다. 그 녀석들 잔뜩 지옥으로 데려가니까 걱정 마세요. 파괴 자동 설정 카운트다운까지 5초. 그럼. 굿바이. 4초. 3초. 그 후로도 계속 끊임없이 이어진 메시지들은 온통 파괴하겠다. 는 의미와 신에게 보내는 마지막 인 사 정도였다. 몇 백 개를 들은 것도 아니고 고작 몇 십 개를 들었건만, 너무도 듣기가 괴로워졌다. 이런 것이 심장이 죄다 뜯겨나가는 것과 같은 심정이란 걸 알아버린 것 같았다. 끝도 없이 내리는 슬픔의 비를 세차게 맞고 있는 듯도 했다. B3-6. 블랙 초콜릿은 와자작하고 부서져. 199
200 그 순간 내 머릿속을 점령하고 있는 것은, 바로! 생명을 품은 붉고도 붉은 피와 죽음을 품은 검고도 검은 피! 그 붉은 핏방울의 파문. 동시에 그 주변에서 뒤섞이고 있던 검은 핏방울의 파문. 처음엔, 그것은 아주 작고도 작은 핏방울이었을지 모르나, 어느 샌가 내 안에서 더욱 더 그 몸집을 부풀 리고서, 아주 거대한 핏방울로 변하여 내 전체를 흔들고 있었다. 그렇게 내 주위를 휘감고, 내 온 마음과 몸에 있는 힘껏 부딪혀 들어오고 있었다. 또옥. 또오옥! 또옥!! 드넓게 펼쳐진 내 마음의 수면 위에서, 거대한 규모의 핏방울이 떨어져 내린다! 그것은 마치 열대지방의 한동안 내리기 시작하면 멈출 줄 모르고 이어지는 미쳐버린 폭우를 닮았다. 붉고 검은 피의 핏방울이 나를 향해 쉴 새 없이 떨어져 내린다. 그 거대한 파문은 내 마음의 중심에 떨어져 수없이 많은 동심원을 그리며 한없이 밖으로 퍼져나가고 퍼 져나가기를 서슴지 않는다. 또옥. 똑. B3-6. 블랙 초콜릿은 와자작하고 부서져. 200
201 나는 울었다. 그저 울부짖었다. 이성을 잃어버린 짐승처럼. 아아-아아아-악!! 죽음의 색이 그려진 그들의 눈빛을 들여다보니 더욱 치밀어 오르는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또르륵. 똑. 또옥. 슈크들, 그들의 담당하던 세상이 어떤 이유로 파괴당해야만했다는 그런 무서운 이야기였던 것이다. 그것을 내게 보여주고 들려주고 있는 거였다. 아! 안 돼! 안 돼에에!! 난 고개를 이리저리 저었다. 난 아마도 지금 무척이나 두려운 표정을 짓고 있는 지도 몰랐다. 동시에 나도 모르게 몸이 떨려와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온몸을 긴장감으로 가득히 움츠리고 처음 바라본 현실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던 거였다. 그렇다.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슈크 의 번호가 제멋대로였던 거였다. 좀 더 일찍 알아차렸어야했건만 나는 참으로 불완전한 신이다. 아니 어쩌면 신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란 것은 신도 뭣도 아닌지도!! 털썩. 뒷걸음을 치다가 바닥에 넘어져 고개를 숙인 채 우는 일밖에 할 수 없던, 멍청하고 어리석은 나였다. 지금 신이 고뇌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을 때도 다른 장면 은 당연한 듯 이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아직 파란빛 구체를 가슴 앞에 두둥실 띄우고 있던 완전한 백의 슈크들 몇몇이 금방 부서진 검은빛 구 체를 가진 흑의 슈크들을 향해 손길을 서서히 뻗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B3-6. 블랙 초콜릿은 와자작하고 부서져. 201
202 화아아아. 그 뻗어나간 손길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왔고 그것은 앞서 부서진 자의 형체를 원래대로 다시 복구시 키고 있었다. 다시 만든 것들은 어둑한 잿빛의 몸체를 가지고 있는 슈크들로, 여전히 새로 태어날 그 어떤 가능성도 없는 것을 품은 검은빛 구체를 가슴 앞에 쓸쓸히 띄운 채였다. 이곳으로 들어오기 전까지는 신이 전혀 알지도 못할 단단한 적막 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우지끈. 신이 넘어졌던 그 바닥이 갑작스레 소릴 내며 무너져 내리더니 한없이 긴 추락이 이어졌다. 어느 빈 공간을 향해 낙하하고 또 낙하해서는 블랙 초콜릿과도 같은 바닥면을 몇 개를 부셔내고 있는지 그도 모를 지경이었지만, 그 검은 바닥이 그의 몸과 힘껏 부딪혀 와자작 부서질 때마다 그 자신의 기억도 부서져가는 듯했다. 아니 부서짐이란 것보다 그 기억에서 멀어지는 감각이라고 해야 할까? 얻어낸 수많은 정보로부터 자물쇠가 걸려버린 그런 암담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다시금 제자리 로 돌아왔을 땐 신는 그것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신의 그 제자리라는 건, 아마 아까 거무튀튀한 색의 호리병 하나를 집어서 그걸 따기 직전 으로 돌아 온 것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때 신은 그걸 선택 을 하지 않았다. 별로 얻을 게 없어 보이는 그 호리병을 그냥 저 멀리 던져 버렸다. 그랬기에 그 호리병을 땄기에 얻은 B3-6. 블랙 초콜릿은 와자작하고 부서져. 202
203 훈장인 엄지에 베인 자국도 보이지 않는 거다. 어차피 신은 기억도 못할 테지만. 두리번두리번. 나는 지금 바닷물에 몸을 반쯤 적신 채로, 단지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고 곧 드러나기 시작한 셀 수도 없 이 한껏 늘어나 있는 또 다른 호리병 형태의 유리병이 잔뜩 있는 것들을 보고 있었다. 참으로 엄청난 기세로 펼쳐져 있었다. 아. 지긋지긋해지려나? 저 유리병. 난 다른 유리병을 보자마자 이런 소리를 해댔다. 이런 내가 좀 묘하긴 했다. 근데 뭐가 지긋지긋하다는 거지? 아. 또 예감 이란 건가. 하하. 나는 겉으론 웃고 있었지만, 속으론 허탈해하고 있었다. 무엇에? 하고 잠시 의문을 띄웠지만, 그 책과 밀고 당기는 접전을 아직도 벌이고 있어서 그런가 보 다~ 하고 지쳤나보다~ 하고 결론짓고 넘겨버렸다. 별 시답지 않은 일로 치부하고서. 반짝. 많고 많은 호리병들 중에 내 두 눈에 딱 담겨오는 순간 빛을 발하는 그것 을 제일 처음으로 난 선택 했고, 서둘러 뚜껑을 열었다. 병뚜껑이 꽤 빡빡해서 힘줘서 여느라 손이 베여버렸다. 중지 끝이 베여서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다. 따 끔하고 번거롭게 귀찮은 기분이었다. 꿀꺽꿀꺽. B3-6. 블랙 초콜릿은 와자작하고 부서져. 203
204 그대로 들이킨 다음, 역시 맛을 모르겠다. 조용히 파문이 이는 어떤 호수를 보는 듯했다. 그런 장면이 열리며 어떤 정보를 열어주고 있었다. 왜 이런 게!? 그라탕 요리법? 머릿속으로 달음박질치듯 쏟아져 들어오는 그라탕 요리법, 다양한 야채와 향기로운 허브와 치즈와 감자 와 그게 뭐 어쨌는데? 뭔가 유용했지만 필요 없었다. 허탕이었다. 그 후에 뭔가가 빛난다! 싶으면 이거닷! 하며 흥분해 달려가서 호리병의 뚜껑을 따서 벌컥 들이 켜 원샷 한다. 상황은 비슷했다. 손이 어딘가 베이고 피나고 머릿속엔 파문이 일고 정보를 열고 정보를 얻고 그런 식으로, 이렇게 이어진 대략의 정보들은, 아 정말이지 이래저래 호기심을 충족하곤 있었고 소망했던 것이긴 해지만 정말로 원하 는 건 이게 아니었다. 대체로 요즘 일상 에 대한 정보들이 가득했다. 저번에 봤던 책과 관련된 작가의 근황이라던가, 그 작가가 무슨 책을 냈네 언제 어디서 태어났네~ 어떤 학교를 다녔네~ 뭘 전공했네~ 어쩌네~ 하는 것들이나, 요즘 간간히 1억 번째 슈크의 집에 살고 있는 로봇인 머스탱이 만드는 어설픈 요리 때문에 정신 사납다 던 슈크가 보기 시작한 간단한 집밥이라던가 포근한 간식들이라던가 레스토랑에서 먹을법한 뉴메뉴 집밥 등등에 대한 요리 이야기라거나, 666번째가 투자하고 있다던 주식이야기나 연애대사전과 같은 것들, 내가 요즘 검색하고 있는 고대 어느 나라에 대한 예술적 가치가 있는 유물이랄까. 그리고 1억 번째 슈크 가 읽어보라고 추천하던 패션 잡지나 모터사이클 잡지 등등이 왜 여기서 나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B3-6. 블랙 초콜릿은 와자작하고 부서져. 204
205 모두 최신 자료들이라 열중하고 보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지만 말이다. 그 후에도 비슷한 양상이다. 다. 이것도 열어서 마셔보고 저것도 열어서 마셔보고, 선택 후엔 후회 없이 거침없이 열고 마시고를 반복했 이는 결국 도서관 과 같았다. 열고 마시든, 펼치고 읽든 말이다. 내게 그렇게 보일뿐이지만, 이곳은 바다가 아니라 도서관, 그것은 유리병이 아니라 책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했다. 지금부터 나는, 마신다고 하지 않고, 읽는다고 정정하겠다. 반짝. 넓고 깊은 도서관에서 또 다른 책이 기이한 초록빛을 내고 있었고, 얼른 다가가 그 책을 펼쳐들고 뒤적 이고 읽고 그 뒤를 반복적으로 비슷한 패턴이 이어진다. 그리고 또 다른 책을 펼치고 뒤적이고 필요한 부 분은 적당히 찢어서 챙겨두고 불필요한 부분은 버리고, 그런 식으로 정말로 중요한 정보들로만 모아 또 다 른 책을 만들고 그것을 세세히 다시금 읽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나는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내 두 손이 붉게 물들고 있음을 알아차리면서도 알아차리지 못한 척 집중을 했다. 신의 눈동자는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빛의 스캔으로 상하좌우 대각선 등등으로 책의 정보를 요리조리 분석하고 먹음직한 부분만 도려내는 작업을 다시금 거쳐 눈과 마음에 새겼다. 그렇게 한참을 그리 시간을 보내다보니 체력은 한계에 달해가고 있었던 모양으로, 몸이 순간적으로 무 너졌고 어느 샌가 호흡이 가빠져 있었고, 방금까지 읽고 있던 앞서 선택한 책을 놓아버린 채 바닥을 향해 쓰러지고 말았다. B3-6. 블랙 초콜릿은 와자작하고 부서져. 205
206 드러누워 천장 을 바라보니 아까의 그 공간으로 다시 되돌아간 듯 하늘 이 참 맑았다. 그리고 바 닷가의 물결은 자신을 넉넉히 떠받치고 부드러이 출렁대고 있었다. 한동안은 호흡을 길게 내쉬거나 하며 편히 쉬고 있다가 양손을 바라봤을 때, 그것은 너무도 선명하고 섬 뜩할 정도로 붉은 빛을 내고 있었다. 양손 가득이 피, 그리고 피, 붉기 만한 피 였다. 손바닥에 가득 붉게 얼룩진 그것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이상한 기운에 사로잡힌다. 그럼에도 애써 또 모른 척을 하면서 중얼거렸다. 힘들어죽겠네. 너무나 많은 용량의 것들을 다룬 모양이었다. 여기 저기 분산을 해둬서 찾는데 오래 걸리는 군. 젠장. 잡힐 듯도 한데 전혀 잡히는 건 없고, 도대체가 읽으면 읽을수록 마치 신이란 존재는 겨우 나 혼자뿐인 것처럼 만들어두다니, 정말 철저하네. 처음에 만난 그 책 말대로란 건가? 나는 아직 멀었나? 하지만 뭔가 이상한 건 하나 정돈 찾아냈잖아. 어떤 불가피한 사정으로 파기해버린 슈크가 있었다던가 하는 그 문서 한 건이랑, 그 앞의 문서 가 신의 관리 부족으로 생긴 데이터 상의 오류라고 치부해버리면서 파기한 슈크는 단연코 존재하지 않는다 고 한 문서가 또 한 건이 있었지. 내가 데이터 오류를 전달받은 적이 있다는 기억은 아예 떠오르지 B3-6. 블랙 초콜릿은 와자작하고 부서져. 206
207 않는단 말이지. 그럼 또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말이기도 한데. 또 다른 신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고. 대체 얼마나 단정하게 삭제버튼이란 게 있는 건지. 아님 역시 내가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일까. 내 능력 밖이란 건가. 아니, 설마 내 관리부족이란 게 내 일을 그 여행의 임무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 자동적으로 파기되어버린 걸까? 관리부족이 자세히 뭐지? 혹시 뭔가 제대로 안 읽고 서명한 적이 있었던가? 문서정리가 잘 안 되고 그런 적이 있었나? 왠지 잘 모르겠는걸. 그랬나? 모두 내 탓?? 그럼 큰일인데. 슈크는 파기될 수도 있는 존재란 건가? 그렇게 되는 건가. 너무하네. 그런 건.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아. 바닷물에 출렁거림 속에 몸을 맡기고 대자로 뻗어 두둥실 떠다니고 있을 쯤, 하늘을 바라보니 뭔가가 날 고 있었다. 역시 외딴 섬엔 새 가 있겠지. 한 마리쯤. 어 근데. 뭔가-. B3-6. 블랙 초콜릿은 와자작하고 부서져. 207
208 B3-7. 성공했고 울었고 양해를 구한다. [완] :49 바닷물에 출렁거림 속에 몸을 맡기고 대자로 뻗어 두둥실 떠다니고 있을 쯤, 하늘을 바라보니 뭔가가 날 고 있었다. 역시 외딴 섬엔 새 가 있겠지. 한 마리쯤. 어 근데. 뭔가-. 내가 새 를 보았다고 판단내린 이유는 새하얀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저건 하늘을 나는 통조림 이었다! 저런 게 이곳에 있다니, 당연히 이상했다. 그리고 직감했다! 저건 잡아야한다고! 반드시! 이유를 불문하 고서라도! 누워있던 몸을 벌떡 일으켜 서둘러 주변에 있던 갈색 호리병 하나를 얼른 낚아챘다. 그것과 동시에 이미 그 표적을 향해 던져버렸다. 신의 손길에 의해 한 차례 가벼운 반동의 흐름을 타고 꼬리엔 로켓과도 같은 추진력을 달고 탄력적으로 공기를 무시무시하게 가르는 호리병은 가속하고 가속하여 통조림 새 를 향해 날아간다. 곧 근거리 진입했다! 슈우웅! 호리병은 높이 날아올랐고 곧 홈런이 되어 통조림 새를 맞출 그 순간, 그 절묘한 타이밍에 통조림 새는 문득 공중에 멈춰서는 새하얀 날개 한쪽으로 힘껏 펄~럭 거려준다. 뭔가 그 모습이 묘하게 오~ 하이파이브! 라고 외치는 손바닥치기 같았다. 아니 통조림 새의 날개가 B3-7. 성공했고 울었고 양해를 구한다. [완] 208
209 안타를 치고 있었다. 그것뿐이었건만, 호리병이 다시금 바다를 향해 추락하고 말았다. 왜 안 맞는 거야? 통조림 주제에! 신은 징징거렸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허나 주위엔 너무도 널리고 널린 호리병이 있지 않은가. 그것들을 품에 안을 수 있는 만큼 껴안아서 박 깨기 놀이를 시작하기로 한다. 내 손엔 콩주머니나 모래주머니 대신 호리병이 들어있고, 제대로 장전되었고, 무작위로 무차별로 그 통 조림 새를 노리기 시작한다. 휙휙휙. 휙휙휙. 던질 수 있을 만큼 던지고 또 잡아서 던지는 행동을 이어나간다. 내 연속동작은 치밀하고 반복적으로 이 어져나간다. 물론 힘과 가속과 순발력은 필수였다. 허나 반전매력을 선보이는 통조림 새는 그것을 가소롭다는 듯 회 오리치는 작은 날갯짓으로 미친바람을 윙윙 일으키며 호리병의 경로를 변화시키고 모두 회피해내고 만다. 아. 금방 배웠다는 거구나? 내가 일으켰던 그 태풍을! 문득, 신은 그 책을 종이가루로 만들어냈던 자신의 작은 태풍을 떠올려보며 피식 웃음 지었다. 그렇게 일순 우두두두 바다를 향해 떨어져 내리는 허망한 수십여 개의 호리병 비를 바라보며 탄식할 사이도 없었 다. 평소엔 이럴 게까지 할 필요가 없는 일들을 직접 손을 쓰려니 참으로 번거롭고도 어려웠다. 무언 가와의 싸움이란 것은! 목표를 향해 점점 다가간다는 것은! 이런 모양새인 거구나 싶었다. B3-7. 성공했고 울었고 양해를 구한다. [완] 209
210 그래. 해보자. 까짓 거. 나는 곧 굳은 결심과 함께 눈앞에 있던 수많은 호리병들을 공중에 띄우는 상상과 그것들을 가로방향으 로 길게 쭉 정렬시키는 상상을 했다. 그 후론 그것들의 중심에서 내 양손을 뻗어 가며 난 호리병을 일종의 총탄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물론 내 몸도 출렁이는 바다에 국한되지 않고 공중에 튼튼한 바닥이 있어 두 발을 딛고 설 수 있다는 상 상을 해냈다. 날아다니는 것을 잡기 위해 난다는 것은 꽤나 복잡하고 다양한 제어가 필요할 듯해서 관두고, 나는 지금 바다의 찰랑거리는 수면 위에 투명한 바닥을 만들고 그 위에 단단히 설수 있게 되었다. 내 시야 안에 들어온 호리병들을 모조리 끌어 모아 확보하면서 그와 동시에 버튼을 누르듯, 눈앞에 있는 호리병을 원하는 방향은 자신만의 온전한 감각으로 정한 뒤, 양손으로 탁탁 밀쳐버리는 것으로 제각각 발 사시켜나가기 시작했다. 콰가가가! 콰가가가! 기관총과 같은 연속 사격은 물론이고, 내가 무슨 짓 을 해버렸기 때문에 그것은 괴이한 소리를 내며 목표물인 통조림 새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 무슨 짓이란, 내가 호리병에 양쪽 손바닥을 댄 순간 나선형으로 신속히 움직이는 어떤 에너지 덩어리 를 그 안에 박아 넣은 거였다. 그 덕에 호리병은 발사 직전부터 격렬히 회전을 품은 채 붉은 열기로 가열된 채로 주변의 공기를 사근사 근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보이지 않을 속도로 제 각각의 호리병이 발사된 후, 거대한 충격파가 신의 얇고도 튼튼한 보호막이 자동적으로 뒤덮여버린 그 몸을 통과해내며 연속적으로 B3-7. 성공했고 울었고 양해를 구한다. [완] 210
211 주변으로 확장되어 퍼져나간다. 충격파의 다발적인 생성으로 인해 신의 몸 주변에선 이미 정신 사나운 파도가 이리저리 요동치기에 이 르렀다. 갑작스레 누군가의 글귀가 생각났다. 기가 막힌 명궁으로 소문난 자의 말이었다. - 우리는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을 쏘는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임에도 쏠 수 있다. 그 이유는 우리는 마음의 눈 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 진실 에 가까이 접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나의 최고로 단련된 감 이라는 것이다. 콰가가가! 콰가가가! 저 녀석을 맞출 때까지 발사는 계속되고 있었다. 삶이 너무 일상화 되니까 자신이 신 이라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되는 것이다. 그 누군가가 말했던 전지전능까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히 머릿속으로 제대로 상상해낸 것은 실현시키고 야 마는 능력은 잘 갖춘 모양이다. 허나 역시 스스로도 불완전함에서 벗어나질 못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연습해야하는 것이다. 그 연습 이라함은 그 통조림 새에 가까이 가기 위한 바람 을 더욱 강하게 하는 것이었다. 한 번씩 쏠 때마다 몇 배씩이나 그 원한다! 는 바람 은 커져나가고 더 증폭되어 가는 것이라 생각 했다. 그리 염원했다. 이런 것으로도 염원 해야 한다니. 맞으라고!! 맞아! 맞아버리는 거닷! B3-7. 성공했고 울었고 양해를 구한다. [완] 211
212 콰가가가! 콰가가가! 아마도 그 염원이 닿은 모양으로, 여러 개의 호리병 중에 단 1발의 호리병 군사가 마침 정밀하게 조준되었고, 그 공격을 방어하려던 동작 을 선보이려 새하얀 날개를 휘저었으나, 그것이 바보 같은 일임을 알아채버린 통조림 새는 뭔가 다른 방법 을 써볼까 잔머릴 굴리려다 억울한 듯 몸을 단단히 움츠리며, 그 앞으로 묘한 무지갯빛 투명 막을 형성해 내며 방어하고 있었다. 허나 그 단 1발의 호리병 군사가 가진 나선 에너지 덩어리는 꽤 과격한 기운을 품고 있었고, 그것은 그 즉시 그 투명 막조차도 관통하고 이어 움츠린 채 있던 통조림 새의 새하얀 날개를 쉽사리 관통해내고, 얼 굴인지 엉덩이인지 앞과 뒤를 구분할 수 없는 그것의 몸통에 와락 부딪혀 쾅! 하고 소리가 일더니, 드 디어 그 통조림 새의 깔끔한 하강을 신도 이제야 볼 수가 있게 되었다. 나이스(nice)! 이야! 명~중이닷! 그 명중 소식이란, 꿀같이 달콤하다-라고나 할까? 신은 홀로 환호성을 지른 후, 집중력을 다소 벗어낸 터라 공중에 떠 있던 남은 호리병들이 힘없이 떨어 졌고 신도 투명한 발판을 버리고 바닷물에 가볍게 첨벙하고 빠졌다. 그 후 얼마간 헤엄을 쳐가니, 그 부근에 떨어진 통조림 새 를 만날 수 있었다. 그것을 붙잡아 막 분해를 시작한다. 재질은 양철, 힘을 잃고 구멍 난 날개는 필요 없고, 머리인지 꼬리인지 모를 앞과 뒷면 중 하나의 납작 한 면에 손가락을 가져간 후 깊숙이 쑤셔 박자, 손가락 개수만큼 5구멍이 생기고 그곳에 제각각의 손가락 이 걸려들자 그대로 뚜껑을 뜯어냈다. B3-7. 성공했고 울었고 양해를 구한다. [완] 212
213 아까 충격파를 껴안았을 때 몸에 보호막이 저절로 둘러쳐진 탓에, 호리병 뚜껑을 여느라 자잘하게 베인 상처와 미리 흘려 말라붙은 핏자국들 외엔 통조림을 열면서는 전혀 다치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랬으면 좋았을 것을. 호리병 뚜껑을 열고 또 열면서 나는 일부러 다치고 있었던 것일까? 왜? 일부러 피를 보려고? 그리도 날 소중히 하지 않는 건가. 잘 모르겠다. 통조림 안에 든 내용물은 달콤새콤해 보이는 껍질이 벗겨진 작은 복숭아 하나가 통째로 들어가 있었다. 당연히 그걸 입으로 직행시키고 꼭꼭 씹어서 삼켜버린다. 과즙의 향기가 장난 아니게 근사해서 순간적으로 행복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와아. 이건 또 왜 이렇게 맛있는 거야? 지금껏 잘못된 표적을 노리고 있었구나. 나 참. 다 먹고 나자, 새로운 시야 가 열렸고 그곳에 난 이미 도착해 있었다. 그것은 어떤 문으로, 생명체마냥 꿀렁대는 나무줄기 장식과 무척 오래되어 보이는 푸석대는 이끼를 잔 뜩 매단 그런 모험가 탐험 스타일의 신비로운 문이었다. 왠지 이 문. 어디선가? 기분 탓인가? 본 것 같은 장면이라 금세 익숙해지고 지루해지는 감각과 함께 문이 내 손이 닿기도 전에 저절로 열려졌 고, 콜로세움(원형대경기장)이 펼쳐져 있었고 중심부의 원형무대만이 텅 비었을 뿐 객석은 웬 사람들로 가 득 차 있었다. 슈크? 저들 모두가? 묘하게 장엄한 분위기에 압도당한다. 하지만 이런 장면도 괜히 지루했다. 언젠가 비슷한 걸 봤었나 싶은 그런 감각이 또 슬그머니 고개를 치켜든다. B3-7. 성공했고 울었고 양해를 구한다. [완] 213
214 그래서일까? 나는 혼자 뭐라 뭐라 중얼대기 시작했다. 음. 다들 눈동자에 생기가 없네. 역시. 이거 어디선가 봤나? 대충 봐도 1억 명은 넘겠어. 그러니까 1억 번째 다음에 또 있다는 건가? 그럼. 그렇다면. 어쩌면 신 이란 건, 나 외에도 존재했을지도 모른다는 건가? 지금 난 파란빛과 검은빛의 구체를 각각 가슴 앞에 띄운 슈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이것 또한 아는 광경이라는 감각을 인식해내고, 그러는 사이 이런 분위기에서 나는 왠지 미묘하게 엇갈리는 심정을 체감해야만했다. 두근. 두근두근. 두근두근. 보통은 아는 것이라면 편안해야할 안정감 이란 것이 이곳엔 전혀 없었고, 그저 불길한 음색만을 풍 겨오기 시작하는 내 심장의 박동소리 때문인지 더 신경이 쓰이던 그때였다. 아! 난 그때 슈크들을 바라보고 있었음에도, 갑자기 떠오르기 시작한 어떤 다른 기억 에 사로잡히고 말 았다. 그 기억이란 건 갑작스레 백과 흑으로 얼룩덜룩하게 변하던 슈크의 몸체가 흑으로 완전히 변해버린 것, 그 후 그 흑의 몸체는 곧 거미줄처럼 이리저리 금이 가고 그 틈새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왔고, 결국 그것 은 폭발해버렸고 남아 있는 거라곤 그저 딱딱한 돌덩어리 같은 껍질의 잔해가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굉장한 불쾌감이 신을 덮친 것과 동시에, 왠지 이렇게 이대로 저쪽에 마련된 중앙의 원형 무대 쪽으로 꼭 가야만 할까? 하는 고민이 생겨났다. 이런 기분이라면 역시 가고 싶지 않은 기분에 가까웠지만, 그럼에도 한편으론 난 확인해야만 한다고 생 B3-7. 성공했고 울었고 양해를 구한다. [완] 214
215 각했다. 이 공간과 묘하게 겹쳐지는 이 기억 이 과연 맞는 것인가? 하는 것을. 지금하지 않는다면 언제 한단 말인가. 역시 이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적은 없었지만, 난 지금 땅바닥만을 보고 걷고 있었다. 그냥 고개를 든 채 저 슈크들을 보면서 멀쩡히 걸어 나갈 수 있는 용기 는 지금의 나에겐 전혀 없는 게 아닐까-하는 그런 나약함속에서 나는 그저 고개를 푹 숙인 채 애써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렇게 드디어 중앙의 원형 무대에 딱 발을 들여놓고서 갑작스레 한숨을 푸우욱 내쉬었다. 또다시 심장 박동이 커져가기 시작한다. 두근두근! 두근! 두근두근! 두근! 긴장된 그 분위기 속에서 고개를 서서히 들어 정면을 바라봤을 때! 역시 나는, 그대로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울었다. 울고 또 울었다.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한 일은 그것이 다였다. 울부짖는 나 는 보고 있는 일. 그 모든 것 이 떠올랐고, 그 기억에 너무나도 생생했다. B3-7. 성공했고 울었고 양해를 구한다. [완] 215
216 내가 또 다른 선택을 한 것까지 말이다. 처음 잡은 거무튀튀한 호리병을 이미 열어보았고 이 광경을 보았다는 것도 모른 채, 되돌아가서 그 호리 병을 던져버리고 이리저리 헤매다가 통조림 새를 만나서 또 다시 이 광경을 보고 있는 나 를 다 알아 버리고 말았다. 아직도 내 귓가로 들려오는 그 메시지들은 온통 파괴하겠다. 는 의미와 신에게 보내는 마지막 인 사 정도로, 이래서 가족 을 연인 을 친구 를 잃어서 이성을 잃어버린다는 말을 하는 거였다. 참으로 끔찍한 악몽이 아닌가. 지금 와서 괜히 봤다며 몰랐던 척 하고 싶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역시 견딜 수가 없는 건 매한 가지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이렇게 한없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자신과 새까맣게 얼룩진 바닥의 붕괴의 시작을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는 자신이 이곳에 있을 뿐이라는 것을! 그런 슈크들을 보고나서, 그런 일은 없을 거라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부정하던 처음 의 나는 이곳에 더는 없으니, 이것이야말로 성숙해졌다는 의미일까? 오히려 이미 알았기에 일찌감치 그 참혹함을 인정해버리는 나는 이렇게나 매정하다는 의미일까? 역시 이 모든 것을 부정한다. 는 그 의미는 이리 표현하나 저리 표현하나 매한가지인 듯 나는 온몸에 새겨지기 시작하는 그 가혹한 고통을 그 엄청난 충격을 역시 참지 못했다. 우지끈. 쩌억. B3-7. 성공했고 울었고 양해를 구한다. [완] 216
217 신이 서 있던 바닥은 갑작스레 소릴 내며 무너져 내렸고, 그리곤 한없이 긴 추락, 거기까진 똑같았으나 이곳 역시 신 의 머릿속이란 곳이라 그 감정 이 반영되어서인지 신은 한없이 깊은 곳까지 떨어져갔 다. 반복된 낙하와 낙하 후 이어진 블랙 초콜릿과도 같은 검은 바닥면을 앞에 겪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수량 을 부수고 부숴내고 아주 밑바닥 심연 끝까지 떨어져 내렸을 쯤해서 그 모든 추락 은 드디어 멈춰버렸 다. 부서진 기억. 멀어져간 기억. 모든 것은 처음부터 단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던 기억으로. 모든 것은 어떤 한 지점을 향해 숨 가쁘게 되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 다른 어떠한 제자리 를 찾아 나선 신 은 어딘가에서 정신없이 잠을 자고 있었다. B3-7. 성공했고 울었고 양해를 구한다. [완] 217
218 B4-1. 비키니 소녀와 상어와 구세주 :51 그 어딘가에서, 분명히 잠을 자고 있었다. 정신을 잃은 채로. 야. 일어나봐. 철썩. 누군가 소리치며 내 뺨을 철썩 내리친다. 내가 일어나지 않자, 다른 한쪽 뺨도 마저 내리친다. 찰싹. 그럼에도 난 몸에 감각이 돌아오지 않아 눈을 뜰 수조차 그 손을 막을 수조차 없었다. 우와. 이 녀석. 자는 척해. 밀리언! 이리 와서 봐봐. 여보세요? 일어났을 텐데? 으흠. 아직도 가물거려요? 자세히 들어보니 비아냥대는 여자 목소리였다. 이제야 부스스 눈을 슬그머니 뜰 수 있었고, 그때 난 보고 말았다. 감히 못 볼 것을 보고 만 거였다. 아. 여긴 대체 어딘가! 나는 위 아래로 흰색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한 연보라색 머리칼을 가진 여자애가 10대 소녀가 날 덮칠 B4-1. 비키니 소녀와 상어와 구세주. 218
219 듯이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고 말았다. 왜 덮칠 듯이 라고 했냐면, 여자애의 포즈가 이상했으므로, 곧게 똑바로 누운 내 몸 바로 위에서 엎 드린 듯이 그녀의 양손은 내 머리 양옆에 각각 둔 채 내 얼굴 정면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는 말이다. 난 말을 더듬거리며 양해를 구한다. 비, 비, 비키시지요! 정확히 말해 1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왠지 쾌활함이 넘쳐나는 이 소녀에게, 나는 이미 그 기선 제압 분 야에서 한발 늦은 셈이다. 뭐, 누구나 그럴 것이다. 눈을 떠보니 저런 모양새라면 말이다. 정신없이 이곳에 잠든 나에게 일방적으로 따귀를 날리다니 절대적으로 저 여자는 일진 이 틀림없다. 반말과 경어를 번갈아 대구하던 저 말투를 봐라~ 역시나 일진 이다. 아님 그 이상의 존재이거나. 그런 연유로 나이는 내가 훨씬 많은 주제에 저런 경어 비스 무리한 요 를 갖다 붙이고 난리부르스를 부리고 있지. 28 그릇씩 먹은 내 떡국이 아깝다. 쳇. 허나, 그만큼 일진 이 무서운 법이다. 오히려 이런 평범하면서도 유쾌 모드인 일본도라던가 권총을 가볍게 들고 다닐법한 쾌걸 일진이 저 나 이 때엔 꽤 많은 법이니까. 이렇게나 상대방의 숨이 닿을 정도로 가깝도록 다가오다니, 저 여자는 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역시 탐색중인 것인가? 어디로 팔아먹을지 같은 걸? 어딘가 새우잡이라도 보내버릴 셈인가? 요즘은 호 스티스쪽 벌이가 더 괜찮은 건가? 아니, 그런 거라면 굳이 나 이면 절대로 안 되지 않나? 내가 그리 내세울만한 외모를 가진 것도 아니고 그저 수많은 인파속에서 확 묻어가는 존재에 불가한데. 왜 이리도 가까울 정도로 빤히 뻔뻔스레 아직도 날 쳐다보고 있는 걸까. 저 여자 가슴도 너무 가깝다. 하여간 창피함이 온몸에 닭살마냥 돋아나 계기만 있다면 확실히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B4-1. 비키니 소녀와 상어와 구세주. 219
220 우와. 너. 지금. 얼굴이 빨개. 혹시 첫눈에 반했다든가 그래? 응? 이미 고개는 일찌감치 옆으로 돌렸다. 역시 얼굴이 빨개졌다면 귀까지도 빨개졌으려나? 너무 놀라서? 딱 한 칼에 끝날 것 같아서? 저 여자 뭐 라는 걸까? 갑자기 첫눈에 반하다니 왜 저런 소릴 하는 걸까? 이런 살벌해져가는 이 분위기에서 반할까보 냐. 역시 저건 적의 장난질이다! 순진한 척 하긴. 뭘 바라는 거냐? 거짓부렁에 나는 속지 않아. 저 여자는 그 냥 놀리는 게 신나는 그녀의 전문분야인지도 모른다. 아니요. 전혀 하나도 안 빨갛습니다. 당장 비켜주세요! 나도 그 노래 알아. 그거 모두 비켜주세요~! 였나? 아닌가? 아! 맞다! 모두 비켜나세요~! 내 부릉부릉 자전거가 당신네 거시기를 짓밟습니다. 따르르르르릉. 그거 맞지? 하하핫. 그, 그만하시지요! 이런 치욕적인 상황에서 내가 그냥 이대로 멈춰있는 이유라면 지금부터라도 잘 설명할 수 있다. 이 여자를 밀친다 는 것도 꽤나 에너지를 요하고 있는 바, 그리하기 위해선 내 시야를 제대로 확보해 야 되는데 그리 잘 확보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모든 것은 출발한다. 주변은 너무도 어지럽다. 이미 혼돈에 찌든 세상이다. 아~ 누군가 날 도와줬으면 바란다. 게다가 내 몸이 반듯이 누워있기에 그 옆에 있는 내 손도 어째서인지 배 부근에 나란하고도 얌전히 송장 B4-1. 비키니 소녀와 상어와 구세주. 220
221 전문자세처럼 붙어있는지라, 그 내 손이란 걸 이용하기 위해서는 내 손을 우선적으로 위쪽으로 올려 보내 야하건만 정말 올리기 애매한 자리에 위치한 터라 어쩔 수 없다. 용기를 내어보려는 순간, 내 손은 저절로 덜덜덜 떨려버린다. 수전증도 아니건만. 정말. 이 현실에서 도피해버리고 싶다. 나는 살그머니 빼어내어도 서로의 몸만은 전혀 건드리지 않고 움직여내는 고도의 기술을 사용해야만했 다. 그러다 조금이라도 실패했을 시엔 눈앞의 이 여성의 큰 가슴에 손이 에구머니~. 저질러 버렸다아! 하는 자체 효과음과 함께 부딪혀버리고 말겠지. 그 직후, 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은 치한 범으로 몰리고, 어느새 주변에 포진해버린 그녀의 지 인들이 가진 다량의 핸드폰 사진기는 대낮을 밝힐 듯 환하게 플래시를 터뜨리며 찰칵거리고 그 증 거 야말로 나를 완벽히 감옥에 보내고 말 터다. 죄송합니다. 어떻게든지 제가 다 잘못했어요. 그러니 그 일본도로 처형만은! 살려주세요. 부모님께 잘할게요. 친구들한테도 스승님들 욕한 것도 미안해요. 착하게 살 테니. 그러니 부디! 살려주세요! 이리저리 울부짖던 나를 지나가던 순찰대가 연행, 수갑을 채운 후 경찰서로 갈 것이다. 그곳에서 요즘 담배 값이 올라서 혈압까지 오른 그 형사가 내게 이렇게 말할 예정이겠지. 자네. 잘못 걸렸어. 증명할 수가 없어서 그렇지. 자넨 아마 묘한 술수에 유도된 걸지도 몰라. 저 여자 보통내기가 아닌 거 같으니까. 치명적인 태클의 여인인가. 흐음. 그래도 법이 이런 걸 어떡하나. 저 여자한테 돈 좀 뜯기고 그냥 나오는 게 나아. 젊은 인생 이렇게 바보처럼 망칠 수는 없잖아? 별을 달기 시작하면 그 다음은 일사천리 라고. B4-1. 비키니 소녀와 상어와 구세주. 221
222 어디가 무엇이 일사천리란 거죠? 형사님? 아. 말이 그렇다는 거지. 하하하. 순진한 청년일세. 만약에 나 라면 말이야. 그냥 이왕 걸린 김에 확 해버렸을 거라고. 용기도 없는 친구 같으니. 허허허. 그러니까 뭘 확 해버린다는 것인지. 그 말에 형사는 뭔가 답답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야리꾸리한 상상을 펼치는 듯 행복해하면서 자신의 양손을 찐빵을 살짝 쥔 듯한 모양새로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두 눈이 묘한 곡선을 그리고는 헤실 헤실 대고 있었다. 아. 이런 상상하고 있는 나도 싫다. 그만, 항복이다. 이 여자야. 내 머릿속 소프트웨어가 이것밖에 안 되니, 난 이만 포기하련다. 날 구워먹 던 삶아먹던 알아서 하라고 이 여자야. 역시 이어지는 건 한숨뿐. 후으으으. 그 긴 한숨을 끝으로, 난 소리쳤다. 살려주세요! 여기 여자 강도가 나타났어요!! 허나 그 말은 별로 통하지 않았다. 왜 지나가는 사람이 안 보이는 걸까. 이 시간대에 다 해수욕이나 하고 있는 건가? 그러고 보니 조금 있으면 노을이 꽃을 피겠지. 그러면 뭐하나 이놈의 팔자. 이 모양이니. B4-1. 비키니 소녀와 상어와 구세주. 222
223 여기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야. 무슨 소릴! 여기 두 명이나 있잖습니까. 아, 맞아. 셋이다. 나하고 너하고 그리고 저기 오고 있는 내 편 하나. 그러며 키득거리며 웃던 여자, 왜 웃으면서 가슴까지 웃고 있는 것인지, 또 고개를 돌려서 다가오는 적 을 쳐다봤다. 이미 희망을 잃은 채로. 밀리언. 여기!! 이름이 불린 자를 나도 보았다. 멀쩡하게 기능성 골프웨어 같은 느낌의 조끼에 가디건에 긴바지를 입어 상류층 냄새를 풍기면서, 어째 서인지 여아용 삐삐머리를 하고 있었다. 것도 다소 진중한 분위기를 가진 서른 조금 넘어 보이는 저 나이 에 저러고 있는 거다. 그 순간 웃음이 나오려는 걸 꼭 참아내며 그쪽 방향이 아닌 다른 쪽으로 고개를 슬그머니 돌렸다. 그쪽은 우연히도 넓은 바다 방향이었고, 해변 가까이엔 내 것으로 보이는 노란색 구명보트가 다 터져서 너덜대고, 조금 멀리 바다엔 그곳의 회오리 조류라도 탄 듯 멍청한 한 마리의 상어 가 동그랗게 원을 넓게 더욱 짙게 그리며 지느러미를 뾰쪽하게 세운 채 푸른 바다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 왠지 이제야 진정이 전혀 되질 않는다! 여긴 어디냐고! 뚜벅뚜벅. 걸어온 밀리언, 아마도 자신의 삐삐머리가 되었음은 전혀 모르고 있는 듯 지금 당당한 포즈로 멋진 척 팔짱을 낀 채 요상한 포즈의 남녀 2인조 근처로 다가왔다. 왠지 골치 아프다는 듯한 표정을 짓던 그는 그녀에게 말을 전하고, B4-1. 비키니 소녀와 상어와 구세주. 223
224 제발. 아가씨. 아무 남자나 건드리지 말라고요. 또 빼앗을 작정입니까. 그의 소중한 것을? 좀 이러지 맙시다. 창피합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까. 어젯밤도 몸소 만족해드렸잖습니까. 벌써 100여명이나 당신의 손에 유린당했습니다. 대체 얼마나 욕망에 꿈틀대야 만족해 줄 겁니까? 아아 밤새도록 불타오르는 청춘이여. 가련한 여자여. 목마른 여자여. 듣는 것만으로도 왠지 엄청난 대사였다. 연극의 한 구절 같았다. 하여튼, 한 구석에 송장포즈를 하고 있 는 28세의 남자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왜 또 이러시나. 내가 저거 잡아먹기라도 해? 내가 쟤랑 언제 SE. 읍! 뭔가 뒤처리가 너무도 재빠른 밀리언, 어느 샌가 여자의 입을 한손으로 막았고, 그것과 동시에 여자의 몸을 허리를 뒤에서 껴안아 번쩍 들어 올린 덕에, 한 구석의 28세의 남자는 구원을 얻었다. 오. 나의 구세주! 라고 말해버리면 웃길 테니 참는다. 이 와중에 오해할 말을 해서 뭐하겠는가. 호스티스가 되지 않아! 보 이러브도 안 한다니까! 그저 구세주에게 감사히 꾸벅 인사하려고 어느 샌가 굳었던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저 소란 꾼인 여자애 일진의 말은 이어졌다. 그것은 밀리언이라 불린 자의 품에 안겨서 버둥대다가 뭔가의 타협과 눈치작전 끝에 겨우 그의 손을 해 제하고 입이 열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밀리언. 장난하지 말라니까. 쟤라면 진짜로 알아먹는 거 아냐? 오해하잖아. 정말. 아니면 너 혹시 정말 나랑 그거 하고 싶어서 B4-1. 비키니 소녀와 상어와 구세주. 224
225 그래? 말하지 그랬어? 그럼 지. 금. 부. 터? 어때? 매혹어린 표정을 지으려 애쓰며 부끄러워하면서도 밝히고 자빠졌던 그 흰색의 비키니 소녀였건만, 그는 딱 잘라 거부의 의사를 밝혔다. 아. 그러죠. 장난하지 말죠. 서로. 어차피 그들 사이에선 장난은 장난이니까. 애초에 그러고 말 사이가 아니란 것은 서로가 잘 알고 있었 다. 이젠 됐다 싶은지, 밀리언이 비키니 소녀를 품에서 놓아주었고, 소녀는 이제 모래바닥에 맨발을 붙일 수 있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내 얼굴 표정을 포착해내곤 웃어대던 그 여자 일진이었다. 우와. 쟤 좀 봐. 뭐 이상한 거 상상하나봐. 후훗. 후하하핫. 놀리지 마세요. 너무하십니다. 라고 말리던 시누이, 아니 밀리언이란 녀석이 더 너무한다고 생각하면서, 이제 몸은 다 일으켰고, 밀리 언을 향해 인사를 꾸벅하던 나, 그럼, 감사했습니다. 풀어주셔서. 전 이만. 인사는 했고, 이제 길을 떠나기로 결심한 나는, 이렇게 자연스러운 수순이라 맘속으로 충분히 기뻐하며 담담히 이곳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난 걸어가려는데! 밀리언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기 진짜 무인도야. 곧 해가 질 텐데? B4-1. 비키니 소녀와 상어와 구세주. 225
226 그의 성의를 봐서, 난 그를 향해 돌아보며 간단히. 괜찮습니다. 저 여자가 있는 이런 곳보단 괜찮겠다 싶으니 그리 말하고, 또 돌아서서 내 갈 길을 가려는데, 왜 자 꾸! 저런 상어하곤 잽도 안 될 짐승들이 산다고. 칼은 있어? 없지? 네. 없습니다. 그냥 갈 겁니다. 어디든. 잡지마세요. 나는 재빠르게 걸어가다가 누군가에게 쫓길 것을 두려워서 막 뛰기 시작했다. 힘껏 달렸다. 허나 바로 옆에서 천천히 달려오는 것 같은, 그럼에도 나를 앞지를 것 같은 밀리언이 역시 나를 제멋대로 앞지르고 말았다. 허억. 헉. 헉. 왜요! 위험하다. 그 방향은. 비키니 여자를 생각하니 절대로 그쪽은 갈 수 없었다. 그 여자가 여기서 좀 멀리 있으니까 용기가 났다. 그러니 이런 말도 할 수 있는 거였다. 여기가 더 위험해요! 저 여자가 더 위험해요! 왠지 씩씩대는 내 기세를 보며 밀리언은 말없이 다가와, 내가 알아차리지도 못할 빠른 손속으로 내 머리 인가 내 목 어딘가를 내려친 것 같았다. 그리고 난 바로 기절해버려서 기억이 없다. B4-1. 비키니 소녀와 상어와 구세주. 226
227 남아 있던 둘의 대화. 밀리언. 야~만~인! 무표정인 채 놀리는 여자애의 말에 밀리언은, 기절한 28세의 남성을 어깨에 척하니 울러 맨 채 비키니 여자 쪽으로 걸어와 담담한 말을 이었다. 당신이 벌인 일입니다. 그냥 구조해준다고 하면 되지. 왜 그런 몹쓸 몸짓을 해선. 아. 얼굴이 다 화끈거릴 정돕니다. 모래바닥을 발로 퉁퉁 차올리면서 팔짱 낀 손을 풀지 않고 투덜대던 비키니 소녀였다. 왜 네가 창피해하는 건데? 넌 나의 슈크 야. 넌 나의 부하라고. 그럼 당신도 신 답게 하면 되잖아요? 언제 그럴 듯 해질 건데요? B4-1. 비키니 소녀와 상어와 구세주. 227
228 B4-2. bye-bye하고 이별을 고하면 조금 나아져? :52 왜 네가 부끄러워하는 건데? 넌 나의 슈크 야. 넌 나의 부하라고. 그럼 당신도 신 답게 하면 되잖아요? 언제 그럴 듯 해질 건데요? * 화르륵. 어떻게 보면 그 풍경은 밀리언이 어깨에 울러 맸던 그 남자 의 처형장 같다. 멀리서 보면 그는 이미 온몸이 어둠이 깔린 밤에 커다랗게 타오르는 불속에 있어, 그 화려한 불꽃에 타 서 통구이가 되고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잘 말린 통나무를 쪼갠 장작을 쌓아 불을 붙인 캠프파이어 장작 근처에 그가 있었기에 그리 보이는 것뿐이었다. 그 캠프파이어 무대에는 앞서 흰색의 비키니를 입은 여자에게 농락당했던 그 28세의 남자가, 다소 젖어 물빛이 맺혀있는 하늘색 반팔 티에 검은 양복바지를 입고 담요 한 장을 덮고서 일찌감치 기절해 뻗어있었 다. 그런 그의 모습을 근거리에서 바라보고 있던 남녀, 그들 역시 그 무대에 동참해 있었고, 그들은 바로 신 과 밀리언이었다. 지금 막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듯이 쑥떡 거린다. 있지. 밀리언. 저 녀석 혹시 일부러 우리 에게 온 걸까? 그럴 확률이 없다고는 볼 수 없죠. B4-2. bye-bye하고 이별을 고하면 조금 나아져? 228
229 당신과 내가 만난 것도 확률의 하나니까요. 어둠 속에서 일렁대는 불꽃의 빛이 둘의 얼굴에도 이런저런 음영을 그리고 있었다. 지금은 더는 비키니를 입은 채가 아닌 멀쩡하게 생긴 노란 원피스에 담요를 덮고 있던 여자와 그저 골프 웨어 비슷한 캐주얼 스포츠 차림에 두툼한 숄을 어깨에 걸친 스타일리시한 30대의 남자가 거기 있었다. 게다가 그 30대의 남자는 더는 여아용 삐삐머리가 아닌, 그저 목을 덮는 생머리의 검은 단발을 하고 있 었다. 아마도 자신을 그 삐삐머리로 만든 원흉은 그 여자인 모양이다-만 원망할 수조차 없는 그런 관계라고나 할까. 그랬을까? 그래서 그때 우린 기적 을 보았던 거겠지? 그지? 밀리언? 굳이 그런 게 기적이라고 부르기엔 그렇네요. 그런가? 하지만 비껴나갔다고. 그 비극 을. 그 둘 중 한 명, 밀리언은 그 비극에 대해서 회상 을 이어나간다. 허나 그가 그것을 막 시작하려고하자마자, 28세의 청년이 먼저 시작 해버리고 만다. 단지, 그것은 시간이 되돌려져, 과거의 한 장면 이 확 펼쳐진 것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그 과거는 지금 이때에 비로소 현재 가 된 것이다. 난 간만에 마신 여름의 폭탄주에 취해서 이곳 에서 잠이 들었다. 이곳에서 잠든 건 정말 나의 의지였을까? 내가 이곳으로 걸어들어 온 기억은 전무하다. 이곳은 술로 인해 해장도 안 된 내 속이 울렁거릴 만치나 물결도 출렁이는 바다 위이고, 정확히 말해 노 B4-2. bye-bye하고 이별을 고하면 조금 나아져? 229
230 란 구명보트 안이었다. 그리고 어딘가에 반드시 묶어져 고정되어 있었을 것이라 추정되는 그 손때가 탄 누 리끼리한 그 굵은 밧줄이, 불길하게도 마침 적당히 끊어진 채 바다 물살을 타고 제멋대로 휘적대는 게, 잠 에서 막 깨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내게도 확실히 보이던 참이었다. 왜 내가 여기 있는 건데? 왜? 하필 난데? 지금은 술이 확 깰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정신이 꽤 멀쩡하다고 자부하고 있지만, 단지 술에 취해서 자다 일어나보니 이런 곳 이란 이 세상의 방식이 당신은 이해가 되는가? 나는 좀 처럼 이해할 수 없다. 오늘 왜 그렇게나 그 술은 달콤한 것인지, 취업 면접에 실패한 후 너무 들이킨 모양이었다. 이렇게 떠다니다가 조난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난 양복재킷조차 안 입고서 이런 반팔에 정장바지 차 림이라니, 지금은 그나마 5시 정도의 오후 어느 때쯤으로 걱정할 게 없지만, 만약에 여름바다위에서 밤까 지 만나면 동태가 되어버리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음, 그 윗도리를 어딘가에 벗어뒀는데 그 어딘가는 그 친구가 빌렸다던 어느 텐트 안이려 나? 뭔가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마침 그 윗도리에 내 핸드폰이 있었다-라니, 이런 굉장한 농담이 또 있을까. 바보 같은 나. 그냥 울고만 싶어진다. 다. 한껏 취기가 올라서 윗도리를 막 벗어 어딘가에 나뒀을 그때까지만 해도, 난 꽤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 왜? 슬퍼하지 않느냐고? 아니, 난 다행이라 생각했다. 정말이다. 굳이 양복을 빌려 입고 면접까지 보러갔었지만, 그런 시늉까지 했었지만 그 면접에 실패한 것이 나빴다 곤 생각하지 않으니까. 물론 정상적인 내 친구들은 꽤나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B4-2. bye-bye하고 이별을 고하면 조금 나아져? 230
231 나라면 척 하고 면접에 합격해버릴 것이란 걸 추호도 의심하지 않은데다, 걸리기만 하면 오늘 술값은 반 반 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골든 벨을 울리는 셈이니까 말이다. 그 후 그 다음번이나 그 다음 다음번의 술값도 부탁한다. 친구. 하며 내게 의지해올지도 모를 일이 다. 허나 그런 사소한 미래의 술값이 문제가 아니다. 왜일까? 당연하게 잘 될 거라 생각했던 그 취업 면접에서 난 왜 실패를 얻은 것일까? 그것에 대해선 나도 잘 모 르겠다. 왜 머뭇거리고 마는 것인지. 왜 잘 안 되는 것인지. 내가 왜 잘 되려고 애쓰지 않는 것인지에 대해. 그 친구들이 늘 바라는 이른바 잘 된다고 하는 그 안정적인 인생관에 대해 왜 나는 속하지 못하는 것인 지. 왜 나 혼자만 그런 것들로 괴로워하고 있어야 하는 것인지. 내 고민은 실로 끝이 없었다. 그렇게 모든 것은 술로 이어졌고, 내 취직 실패에 나를 걱정해주며 친구들은 내게 맛나게 제조된 폭탄주 를 주었다. 몇 잔이고 들이켰는지 잘 모르겠다. 그것이 이런 결과로 남을지는 그들도 아마 몰랐을 것이다. 여름하면 해변이고, 그런 해변엔 어김없이 상어가 돌아다니기 마련이라는 영화 속 이야기 같은 공상은 금물이지만, 지금 이곳에 왜 그런 것이 있는 거냐? 하는 것은 역시 그 망할 신의 장난인걸까. 아니면 나의 시련인걸까? 운명일까? 바이바이(bye-bye). 나의 인생. 바이바이(bye-bye). 나의 친구들. 기타 등등. 다들 이해해주길. 으아악!! 사람 살려! 살려주세요! 상어다. 상어!! 그렇다. 난 지금 당면한 과제를 풀려하고 있다. 내 보트 뒤쪽에 저 멀리 상어가 나를 습격하려고 나타난 것에 나는 마치 영화 속 여주인공처럼 당황해서 는 새된 소리를 냅다 질러댔다. B4-2. bye-bye하고 이별을 고하면 조금 나아져? 231
232 역시 뭔가 떠올리려 애써도 상어에 대한 대처방법은 단 하나도 모르겠다. 이럴 땐 보통 팔이나 다리 하나가 잘리더라도 피를 질질 흘리는 것은 감수하고서, 정신력을 바짝 차리며 헤엄치고 또 헤엄쳐서는 해변에 다다르는 게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 아닐까? 허나 그런 것들을 해내려면 탄탄하게 근육으로 단련된 균형 잡힌 몸매와 철인 3종 경기를 무난히 견디는 트리플A 수영선수정도는 되어야 되는 게 아닐지 싶다. 나는 그것에 이미 해당사항이 없단 말이다. 수영은 그럭저럭해내긴 해도 엄청난 스피드와 과한 체력을 퍼부을 만한 몸에 축적된 근육도 에너지도 없고, 내 뒤엔 캔디가 아니라 내 뒤엔 상어 라는 그런 극한 속 환경을 견딜 수 있을까보냐! 아아. 이러다 상어의 탈을 쓰고 해변에 나타날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그 상어의 입이 열려진 그곳에 안착해 있는 건 아마도 그저 생명력이 바닥난 해맑게 웃고 있는 얼 굴(머리만)정도일까? 그리 보였다지만 놀라서 기가 차서 웃었던 걸 그 상어가 그 타이밍에 날 순간 캡처해 버린지도 모른다. 상어가 서핑(웹서핑)을 이미 알고 있다면 캡처정도는 껌일 것이다. 그런 건 별로 신기한 일도 아니니, 뭔 소리를 하는 건가 나도 참. 그렇다면 나머지인 내 몸통은? 그것은 얼마 후 바닷가의 어떤 해적이 그물로 건져 올리게 될지도 모른 다. 우연히도 목 위가 없는 시체가 그물과 함께 끌려 올라왔고, 어쩌다보니 그 시체가 입은 옷의 일부가 다 소 벗겨져버린 터라, 그 해적은 하반신의 어느 부분을 유심히 확인해보며 쓸데없는 비웃음을 품은 채로 어 떤 감상을 남기고 있을지도. 그 녀석 참, 부실하게도 생겼구만. 하하하! 그리고 또 한 마디 더 덧붙이라면? 이라는 질문에도 호쾌히 응하는 해적, B4-2. bye-bye하고 이별을 고하면 조금 나아져? 232
233 저번에 끌어올린 녀석은 꽤 쓸만해보였지. 아, 그래서 난 서둘러서 선장 딸에게 보여줬다고 근데 고~녀석 꽤나 꺅꺅 소릴 질렀지만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도 어설프게 가린 터라 볼 건 다보고 있었다고! 역시 그녀는 선장의 진짜 핏줄인가 하고 난 새삼 감탄했지. 선장이 워낙 바람둥이라 이 여자 저 여자 하다보니까 어느 게 진짜 핏줄인지 논란이 뜨거웠거든. 그건 그렇고, 헌데 오늘 건진 이건 뭐 그러기엔 뭔가가 부족하다랄까 살짝 애매한가? 뭔가 딥임팩트(deep impact) 요소가 전혀 없다보니까. 괜히 힘만 버렸다니까. 칫. 그 다음에 이것을 어찌할 것인지 해적의 뒤처리에 관한 건? 다시 버릴 거야. 어디에? 당연히 바다지! 이걸 어따 써먹겠냐고? 앙? 뭔가 불만? 참으로 고약한 상상을 하고 있다. 나도. 그러니까 요는, 해변을 걷는 수많은 사람들이라던가 그 누군가라도 내가 이곳에서 이러고 있음 을 얼른 눈치 채도록 고함을 먼저 질러보는 게 브라보 일 것이다. 공황 속에서 이런저런 상상이 솟아 나와도 그냥 하던 거나 집중하기로 했다. 상어다! 상어가 나타났다아!! 살려줘! 날 살려내! 괜히 소리 지른 거다. 왠지 상어라고 말하니, 상어가 자기 이름 부르는 줄 알고 있는 듯이 더욱 바짝 추 격해 들어온다! 어디선가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는 건가 어쩌는 건가 생각할 틈도 없이 두려움만이 몸을 팽창하며 나를 잡아먹고 있었다. 내 송곳니가 세상에서 가장 크다~고 자랑하듯 커다란 입을 쩌억 벌리고서, 단번에 내 노란 구명보트는 B4-2. bye-bye하고 이별을 고하면 조금 나아져? 233
234 펑~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렇게 보트군이 전사하셨습니다. 그 생선머리 암살자는 이제 당신을 추격합니다. 라는 메시지가 시 끄럽게 내 머릿속을 울려댄다. 그 덕에 나는 더욱 더 힘차게 몸을 다다다 움직이며 도망을 가야했고, 그렇게 냅다 바다 속으로 풍덩 뛰 어들었다. 갑작스레 뛰어든 바다니까 차가울 리가 없다는 건 거짓말이다. 돌아갈 곳이 사라지고 말았으니까 그 바람직하지 않는 찬 바닷물에 몸은 억지로 견딜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틈새를 파고든 바닷물이 이미 죽은 보트군 을 수장시키려 애를 쓰고, 이젠 새로이 설정한 표 적에 나를 기록하고 나를 향해 짠 내를 풍기며 그야말로 거침없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주변을 가득 채우고 모두 이 바다의 일부가 되어라~ 라는 듯이. 정말 재수 없는 그 소리 나한테 하지 말란 말이야! 여기서 죽어줄 순 없어! 절대로 그건 싫어! 살려주세요! 어푸. 어푸. 살려주세. 꾸룩. 그 바다의 버릇없이 짠 내용물들은 내 입속으로는 얼마든지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으니 어서 들어가게 해달라고 난리를 쳐댔다. 내가 첨벙거리고 첨벙거리기 시작할 때마다 더욱 더 그 뱉지도 못할 짠물을 들이밀고 있었다. 안 먹을 테다. 안 먹을 거란 말이야! 그렇게 속으로 빌어도, 나는 먹을 수밖에 없다. 그 짠물들을! 저 바다란 녀석은 악마와도 다름없는 냉정한 녀석이 틀림없다. 어푸. 어푸. 꾸르륵. 살려. 어푸. B4-2. bye-bye하고 이별을 고하면 조금 나아져? 234
235 나는 열심히 수영하고 또 수영했다. 하지만 너무 당황한데다가 뭔가 조금은 그 술기운이란 게 남아있어서인지 그 열심히 수영함에 있어 왠 지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오히려 긴장감만이 차곡차곡 쌓이고 쌓여 두통이 날뿐이다. 그런 와중에도 너 같은 건 얄짤 없다. 는 듯이 다가오는 상어의 고요한 잠꼬대와 그 뒤척임 소리를 듣고 있자니 화가 날 정도다. 그렇게 그 상어는 나를 쫓아오고 쫓아와서는, 나를 찢어 죽이고 말 것이란 추측이 확산되며 내 몸 안에 녹아들기 시작한 그 공포도 한층 농도를 진한 색으로 바꾸며 전신 곳곳을 누비고 있었다. 죽고 말겠지. 아니야! 아니, 살 수도 있어. 살 거야! 살고 말거라고! 난 이런 긴장감에 약했다. 너무 두려워졌다. 그 순간 심장이 너무나 빨리 박동한다. 두근! 두근두근! 두근! 두근두근! 두근! 그렇게 호흡마저도 가빠진다. 고통스럽다. 라는 그 감상밖에는 떠올릴 수 없게 되었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또 그 트라우마가! B4-2. bye-bye하고 이별을 고하면 조금 나아져? 235
236 B4-3. 트라우마와 운 사이 버둥대는 타이밍 :54 두근! 두근두근! 두근! 두근두근! 두근! 그렇게 호흡마저도 가빠진다. 고통스럽다. 라는 그 감상밖에는 떠올릴 수 없게 되었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또 그 트라우마가! 그것들이 몰려온다. 졸음이 다가오려고 한다. 이 와중에 자는 것이 정상인가 싶지만, 난 그런 식이었다. 왠지 주변 환경에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예민하면 예민해질수록 더 더욱 졸음이 다가온다. 그래서 무심해 지려고 쭉 노력해왔는데. 왜 지금이야? 왜 이런 식인 거야? 나는 트라우마 가 있다. 나는 약도 듣지 않는 수면장애 가 있다. 나는 한밤중에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에 날이 서 있었다. 한밤중에 매우 작게 째깍거리는 시계소리, 아파트나 주변 건물 뒤를 지나가는 자동차 바퀴 음, 부엉이의 울음, 시간개념을 잃어 밤에나 울곤 하던 그 수탉의 울음소리, 윗집의 물 내리는 소리, 아랫집의 자잘한 라디오 소리, 밤새 윗집에서 들리는 컴퓨터 게임 중인 듯 키보드 소리 연타 음, 창문 틈새로 스쳐지나가는 압박감 가득한 바람소리 기타 등등 뭔가 자잘한 것들을 꼬박꼬박 다 들으면서 완벽한 잠을 이루지 못한다. 겨우 새벽녘이 되어서야 겨우 2~3시간 정도 잠을 잘 수 있게 된다. 그런 상태라면 그 다음날엔 늦잠은 필수겠지만, 그것도 그렇지가 않고, 어느새 습관이 된 모양인지 멀쩡 히 일어날 수 있었다. B4-3. 트라우마와 운 사이 버둥대는 타이밍. 236
237 밤의 시간이 아까워 어떤 날은 독서로 새하얗게 밤을 불태웠다. 허나 그 다음날 지독한 피로로 인해 거의 누워있어야 했다. 그럼에도 밤과 동일하게 두뇌와 청각만이 깨 어있는 상태로 말이다. 이래저래 해본 결과, 그냥 두 눈은 감고 몸은 누워 꼼짝하지 않은 채로 두뇌와 청각은 깨어난 채로 밤을 지새우는 게 그 다음날을 위해서도 좋은 결과를 주었다. 그런 불규칙한 수면리듬 및 생활패턴을 가지고 있어서일 것이다. 그 트라우마 란 것이 생긴 원인에는! 이렇게나 긴장되는 상황 이 들이닥치면 결국 이렇게 갑작스레 아무데서나 졸리고 만다. 졸려서는 안 되는 상황에서 꼭 잠들고 만다니, 이런 건 확실히 미친 짓이었으나 나는 절대로 거부할 수 없는 트라우마인 것이다. 그러니 하는 수 없다. 누구나 하나쯤 포기하고 살듯이 나도 포기하고 사는 것이다. 이도저도 할 수 없는 이런 상황에선, 될 대로 되라지-머. 라며 원래는 절대로 하고 싶지 않던 그 말 이란 걸 괜스레 해대면서 괜한 위안을 얻을 뿐이다. 포기하고 잊어버림으로서 나는 애써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 마음 한 구석은 절대 편안할 리가 없는 거겠지만! 그것은 늘 따라다니는 나의 불가능하고 불가사이하고도 미해결사건과도 같은 고뇌의 한 영역일지도 모 른다. 그 트라우마란 녀석으로 말미암아 내 몸은 그렇게 수면하고자 하는 의지 에 깊숙이 휩싸여 내 정신 력을 훔쳐버리고 결국엔 날 굴복시키고야 만다. B4-3. 트라우마와 운 사이 버둥대는 타이밍. 237
238 늘 그렇듯이. 난 곧 잠에 빠질 테고 온연히 무방비상태가 될 것이다. 이런 내가 너무도 안타깝고도 두렵지만, 언젠가부터 이미 적응이 되어서인지 지금은 잘 모르겠다. 이래저래 생각해봤자 해결도 안 되고 시간만 가니까, 걱정해도 소용없는 문제였으니까. 이 모든 것이 나일 테니까. 그러므로 언제든지 어느 순간이든 나는 죽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난 그 언젠가부터 죽음에 늘 노출되어 있는 거였다. 아니, 그냥 죽음이 무감각하게 늘 곁에 있어주었다 고 생각하면 간단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렇게 트라우마가 발동되기 시작하고 나서는 왠지 무심해져버린다. 곧 다가올 상어조차도 왠지 무섭지 않다는 감각을 느끼게 된 걸보면, 역시 지독하게 내리는 잠의 속삭임 속에선 역시 아무것도 모르게 된다. 정신도 몸도 이미 죽은 듯이 멍청이가 되어서, 더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더는 아무것도 생각 하지 못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그 다음이 어떻게 될지 전혀 알 수 없지만 꽤나 차분한 감각이다. 나는 어째서인지 그 트라우마 안에서만 깊은 평온을 느낀다. 모든 감각을 죽인 채로 깊이 잘 수 있다는 건 이런 것이란 걸 알아버려서인지 모른다. 그래서 어느 샌가 그것이 너무도 달콤해 차마 버릴 수도 없게 되어 버린 지도 모른다. * 28세의 청년의 회상이 이렇다면, 밀리언의 회상도 어떤 과거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B4-3. 트라우마와 운 사이 버둥대는 타이밍. 238
239 그러니까 그의 기억은 대충 이러했다. 저 멀리 바다 위에 왠지 모를 노란 구명보트 한 정의 출몰, 그것을 망원경을 통해 보고 있었다. 처음 그것을 발견했을 땐 그저 웬 빈 보트 가 저기 떠 있겠거니 하며 신경을 껐었다. 허나 그것이 묘하게 신경이 쓰였던 이유는, 그것이 둥글게 원을 그리며 돌아가는 그 회오리 조류에 붙잡 혔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조류에 붙잡혔다 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 천천히 또는 빠르게 그 조류를 타고 눈앞에 서 같은 곳을 크게 원을 그리며 돌고 돌다가 이번엔 그 안쪽의 꼬인 조류를 탄 것인지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왔다 갔다 반복적으로 움직여대고 있었다. 밀리언의 눈앞에서 알짱거리는 그런 모양새의 풍경이야말로 정말 문제 였다. 끔찍하군요. 저런 패턴. 응? 뭐가? 밀리언? 와아. 보트네? 네. 이번엔 어리석은 고기 한 마리도 합류했네요. 와아. 재밌다! 저거! 뱅글뱅글 돌고 있잖아. 그 조류에 이번에 탑승한 것은 바로 상어 무리에서 홀로 길 잃은 한 마리의 커다란 상어였던 것으로, 노 란 구명보트와 지느러미를 뾰쪽하게 세운 상어가 그렇게 조류에 휩쓸려 나란한 모양새로 계속 그곳을 돌 고 있을 때였다. 잠시 구경 중이었는데, 밀리언은 그 노란 구명보트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있는 어떤 한 사람을 본 순간, 저것이 빈 보트가 아님을 알게 된 것이었다. 원으로 도는 조류와 좌우로 흐르는 조류의 움직임으로 인해 어떤 지점에서 그 보트와 상큼하게 미소 짓 는 새하얀 송곳니를 가득 달고 있는 그 우락부락한 상어가 딱 마주치게 된 것이었다. B4-3. 트라우마와 운 사이 버둥대는 타이밍. 239
240 그렇게 금방 바다를 향해 냅다 뛰어드는 1인을 발견했던 밀리언과 그녀(신)였다. 허나 그들은 그 누군가의 급 위기! 란 이 순간을 접함에 있어 뭔가 나사가 하나쯤 빠졌다고나 할까. 이곳은 지금 다소 널널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저 고기 이름 뭐였지? 이런저런 업무에 시달리다보니 스트레스는 급팽창했고 그 결과, 갑자기 떠올리자니 저런 바다생물 따위 이름조차 생각이 안 난다며 신이 물어오는 걸 막 답하던 밀리언, 서둘러 핸드폰을 꺼내 빠른 손가락 터치 로 검색해낸다. 아. 네. 저건 상어 로군요. 동물계 척삭동물문 연골어강 악상어과 백상아리속 백상아리, 백상어라고도 한다네요. 음. 그렇구나. 상어 가 지나가고 있네. 음. 음. 괜히 몇 번씩이나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이 상어였어. 라는 낙천가적인 말을 하던 신이다. 역시 해변하면 상어, 여름하면 상어~라고 생각합니다. 응. 그건 나도 동의해. 여름하면 상어에다 미녀에다 비키~니지! 그 타이밍에 노란 구명보트에서 한 사람이 바다 속으로 투신하는 장면을, 신도 밀리언도 보았다. 이제야 신경 쓸 정신이 살아났는지 신이 다소 퉁명스레 말을 던져온다. 근데 밀리언. 저러면 보통 잡아먹히지 않아? 콱-하고. 글쎄요. 그건 상어 하기 나름 아닐까요. B4-3. 트라우마와 운 사이 버둥대는 타이밍. 240
241 라고 쌈박하게 대답할 뿐이던 밀리언이었다. 그리고 바로 덧붙이길, 여기 적힌 걸 읽어보면, 백상아리는 인간을 먹지 않는군요. 아, 이런! 하지만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물 수도 있다고도 합니다. 영화 속에 그 상어가 이게 모델이었나 보네요. 공격받아서 사망한 사람의 사망원인 대부분이 장기손상이나 혈액손실에 의한 것이라고. 이 녀석 꽤 하는군요. 백상아리의 새끼는 어미의 뱃속에서 부화하는데 아직 태어나지 않은 형제들을 잡아먹으면서 커간다고 하네요. 그래서 백상아리가 낳는 새끼는 늘 독자 네요. 뭐, 하긴 그렇네. 상어하기 나름이겠네. 밀리언. 근데 저 상어 불쌍하네. 형제도 하나 없다니. 그렇게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게 일반론일까? 그게 과연 좋은 걸까? 응? 제대로 듣고 있는 겁니까? 저 녀석은 괜히 독자 가 아닙니다. 뱃속에서 1번으로 태어났다는 특권으로 남동생과 여동생을 먹어버린 거잖아요? 다 해치워버린 거라구요! 하지만, 영양보충은 해야지. 그래야 살아남잖아? 무언가가 이 세상에 태어난다. 는 데에는 이런저런 희생이 따르는 법이지요. 그런 식으로 대화는 이어져갔고, 신이나 슈크나 저기 위기와 혼란에 빠진 사람 하나를 구하려고 그 다지 애쓰지는 않았다. 수백 수천이나 수억을 구하는 어떤 일이면 모를까. 저런 것은 자연생존법칙이니까. 사는 건 알아서 살아 야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왠지 그들은 매일 습관처럼 보는 죽음이란 것에 대해 어딘가 무뎌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B4-3. 트라우마와 운 사이 버둥대는 타이밍. 241
242 * 다시 시간은 제대로 현실 을 되찾고, 지금을 다시금 재생 하고 있었다. [ 그랬을까? 그래서 그때 우린 기적 을 보았던 거겠지? 그지? 밀리언? ] [ 굳이 그런 게 기적이라고 부르기엔 그렇네요. ] [ 그런가? 하지만 비껴나갔다고. 그 비극 을. ] 절묘한 타이밍으로 그 누군가의 삶의 길인가 죽음의 길인가가 서로 갈려버린다. 그런 것들에 흥미를 보이는 것은 역시 신이었다. 물론 밀리언도 그쪽에 관심은 있었지만 그런 내색을 하지 않을 뿐이었다. 그때 그들이 보았던 것은! 삶이었을까? 죽음이었을까? 그것은. 아마 조류에 휩쓸려서 제 몸을 잘 가누지 못한다는 것은 상어에게 있어서도 꽤나 당혹스럽고도 어지러 운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 보트에서 막 바다로 뛰어든 그 자 또한 상어가 갑작스레 다가온다니 꽤나 무섭 고 다급했을 터였다. 만약에 그때, 그 사람이 그 움직임을 갑자기 멈추지 않았다면, 아니 그 사람과 그 상어 사이에 엇갈린 조류의 영향으로 그 노란 구명보트가 제멋대로 끼어들지 않았다면, 그 자는 상어에게 이미 잡아먹혀 죽은 목숨이었을지도 모른다. 딱 좋은 타이밍에 그 자는 몸에 긴장을 풀고 힘을 뺀 채 바다에 그 물에 온몸을 모조리 내맡겨버렸다. B4-3. 트라우마와 운 사이 버둥대는 타이밍. 242
243 그리고 뒤쫓아 오던 상어는 갑작스레 넓게 전신을 펼친 노란 구명보트가 자신의 앞을 가리는 통에 아무것 도 볼 수가 없어 더욱 몸부림쳤고 더욱 거세게 물길을 그 파도를 앞으로 실어 보냈다. 그로인해 그 구명보트가 상어의 얼굴에서 떨어져나가고 그 반동을 더욱 채워 그 앞을 향해 보내버리게 된 것이었다. 그 앞에 있는 건 다름 아닌 그 자였고, 마침 같은 방향으로 가기 시작했던 그 조류조차도 기꺼이 그 자 를 돕는 팀의 일원이 되어주었다. 그 결과로, 그 자는 뱅뱅 돌거나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마구 움직여대는 그 조류에서도 풀쩍 벗어나 게 되었고 그런 큰 떠밀림으로 인해 해안 쪽으로 확실히 떠밀려 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사이 뒤처리는 이래저래 뒤틀려버린 심사의 조류가 원을 더욱 크게 그리며 방향을 다시금 한차례 바 꾸어버렸기에 그 상어는 또 다시 붙잡혀 조류의 철통 감옥에 갇힐 수밖에 없었던 거였다. 그 자는 그렇게 삶의 길로 탄탄히 일보 전진했기에 오늘만은 살아남아 대승리를 이루어낼 수 있었다. 네. 확실히 그렇긴 하네요. 그럼 역시 운 이 좋은 녀석이라고 해둘까? 밀리언? 당신의 생각 이 그러하다면 그런 거겠지요. 거의 대부분이 그렇지 않습니까. 신의 생각이 끼치는 영향력을 생각해보자면, 그녀의 상상력이 발휘하던 그 수많은 능력들을 보자면 그 럴 거라 생각하던 슈크, 밀리언이었다. B4-3. 트라우마와 운 사이 버둥대는 타이밍. 243
244 클로버유캔파잇 1권 블로그 그림소설!조용히축복의비가내린다. 저자 킨나이프 발행일 :02:12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복제와 전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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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원 柳 馨 遠 (1622~1673) 1) 유형원 연보 年 譜 2) 유형원 생애 관련 자료 1. 유형원柳馨遠(1622~1673) 생애와 행적 1) 유형원 연보年譜 본관 : 문화文化, 자 : 덕부德夫, 호 : 반계磻溪 나이 / 연도 8 연보 주요 행적지 1세(1622, 광해14) * 서울 정릉동貞陵洞(정동) 출생 2세(1623, 인조1) * 아버지 흠欽+心
정 관
정 관 (1991. 6. 3.전문개정) (1991. 10. 18. 개 정) (1992. 3. 9. 개 정) (1994. 2. 24. 개 정) (1995. 6. 1. 개 정) (1997. 3. 14. 개 정) (1997. 11. 21. 개 정) (1998. 3. 10. 개 정) (1998. 7. 7. 개 정) (1999. 8. 1. 개 정) (1999. 9.
시편강설-경건회(2011년)-68편.hwp
30 / 독립개신교회 신학교 경건회 (2011년 1학기) 시편 68편 강해 (3) 시온 산에서 하늘 성소까지 김헌수_ 독립개신교회 신학교 교장 개역 19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 로다 20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하나님이시라 사망에서 피함이 주 여호와께로 말미암 거니와 21 그 원수의 머리 곧 그 죄과에 항상 행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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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도연구개발비 년도매출액 년도광고선전비 년도매출액 년도 각 기업의 매출액 년도 산업전체의 매출액 년도말 고정자산 년도말 총자산 년도연구개발비 년도매출액 년도광고선전비 년도매출액 년도 각 기업의 매출액 년도 산업전체의 매출액 년도말 고정자산 년도말 총자산 년도연구개발비 년도매출액 년도광고선전비 년도매출액 년도각기업의매출액 년도 산업전체의 매출액
목 록( 目 錄 )
부 附 록 錄 목록( 目 錄 ) 용어설명( 用 語 說 明 ) 색인( 索 引 ) 목 록( 目 錄 ) 278 고문서해제 Ⅷ 부록 목록 279 1-1 江 華 ( 內 可 面 ) 韓 晩 洙 1909년 10월 11일 1-2 江 華 ( 內 可 面 ) 韓 晩 洙 洪 元 燮 1909년 10월 2-1 江 華 ( 府 內 面 ) 曺 中 軍 宅 奴 業 東 고종 18년(1881) 11월
호랑이 턱걸이 바위
호랑이 턱걸이 바위 임공이산 소개글 반성문 거울 앞에 마주앉은 중늙은이가 힐책한다 허송해버린 시간들을 어찌 할거나 반성하라 한발자국도 전진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일삼는 자신이 부끄럽지 않느냐 고인물은 썩나니 발전은 커녕 현상유지에도 급급한 못난위인이여 한심하다 한심하다 호랑이 턱걸이 바위! 이처럼 기막힌 이름을 붙이신 옛 선조들의 해학에 감탄하며 절로 고개가
*세지6문제(306~316)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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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 시사 토크 프로그램의 언어 사용 실태 점검 1) 2016년 2월 5일, 두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TV조선 2.0%, JTBC 3.1%이다. (닐슨코리아 제공) 제18차 - 논의내용 - 1 방송사 등급 프로그램명 방송 일시 출연자 TV조선 15세 이상 시청가 강적들 2016. 1. 13(수) 23:00 ~ 00:20 2016. 1. 20(수) 23:00
無爲旅行의 세상에 대한 삿대질 005
無 爲 旅 行 의 세상에 대한 삿대질 005 무위여행 소개글 목차 1 김정일의 붕괴는 북한주민들에게는 축복 8 2 善 의 결과를 담보하지 않는 정책은 폐기되어야 9 3 정치인은 국민에게만 負 債 의식을 가져야 한다 11 4 기댈 곳은 어디에도 없다 13 5 침략의 원흉을 비판하고 단죄하는 게 순서다 15 6 김수해님께 다시 드립니다. 17 7 이런 개 풀 뜯어
3) 지은이가 4) ᄀ에 5) 위 어져야 하는 것이야. 5 동원 : 항상 성실한 삶의 자세를 지녀야 해. 에는 민중의 소망과 언어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 입니다. 인간의 가장 위대한 가능성은 이처럼 과거를 뛰어넘고, 사회의 벽을 뛰어넘고, 드디어 자기를 뛰어넘 는
(가) 2) (가) 학년 고사종류 과목 과목코드번호 성명 3 2009 2학기 기말고사 대비 국어 101 ( ) 염창중 말할 수 있게 되어 어머니가 다시 주시거든 나에게 갚 아라. ꋯ먼저 답안지에 성명,학년,계열,과목코드를 기입하십시오. ꋯ문항을 읽고 맞는 답을 답란에 표시하십시오. ꋯ문항배점은 문항위에 표시된 배점표를 참고하십시오. (가) 우리 중에는 전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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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호천사' 한비야의 이라크에서 보낸 편지 "수돗물 5 일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학교엔 화장실 없어 아무데나 '볼일' "외국인 떠나라" 구호단체도 공격대상 오지 여행가로 유명한 한비야(45)씨는 6 월 16 일부터 이라크 모술에서 2 개월여 구호활동을 벌였다.바그다드 유엔 사무실 폭파사건에 이어 모술에서도 대규모 총격사태가 벌어지자 지난달 말 예정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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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ice of the People Voice of the People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 51 52 53 54 55 56 57 58 59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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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Ⅰ. 조사개요 1 Ⅱ. 조사지역과 그 주변환경 2 1. 자연 지리적 환경 2 2. 고고 역사적 환경 9 Ⅲ. 조사내용 31 1. 조사지역 일대의 문화재 현황 31 2. 조사지역 일대의 민속 지명분야 39 3. 조사지역 일대의 고고 역사학적 분야 41 (1) 조사방법 41 (2) 조사지역의 현황 및 변화상 41 (3) 조사내용 46 Ⅳ. 종합고찰 및 조사단
이명숙초고.hwp
우리나라 전래동화와 함께 하는 한국어 교수법 이명숙(동화사랑연구소 교수) 재외동포를 위한 한국어교사여러분! 우리 재외동포2~3세 들에게 자신들의 뿌리를 알게 오랜 언어와 문화적 전통을 가진 대한민족의 정체성을 갖게 해주어 그들이 살고 있는 나라에서 정정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얼마나 노력을 하고 계십니까? 우리나라의 문화를 알게 해주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우리나라의
분 후 가구수 현 행 조 후 가구수 가구수 비 장호원 진암5 468 부 발 무촌3 579 백 사 현방1 6 243 증포1 448 증 포 갈산1 769 진암5 281 기존 자연마을 진암9 8 187 코아루아파트 369세대 무촌3 271 기존 자연마을 무촌4 5 308 효
이천시 치 조례 일부개조례안 의안 번호 41 제출연월일 : 2010. 10.. 제 출 자 : 이 천 시 장 개이유 장호원 중 자연마을인 진암5, 부발 중 무촌3, 백사 중 현 방1, 증포 중 증포1, 갈산1, 중 중 담1, 관 중 관2 내 규아파트 및 빌라의 개발에 따른 대규모 인구유입으로 을 분()하여 주민편의는 물론 대민행 서비스를 강화해 나가자 하는 것임.
[최종본]햇쨍소식지_2009_여름호.hwp
2009년 여름호 (8월 19일 발간) 햇볕은 쨍쨍 어린이집 발 행 : 안산공동육아협동조합 햇볕은 쨍쨍 어린이집 주 소 :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일동 551-5 전 화 : 031-419-0652 홈페이지 : http://sunjjang.gongdong.or.kr/ 만든사람 : 홍보소위 (버들도령, 강낭콩, 해남이쿠누스, 하니, 산울림, 소방차) 햇쨍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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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차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정기회의 회의발언내용 16시 05분 개회 1. 성원보고 박희정 사무총장 - 금일 회의에 방청신청이 있습니다. 국민일보 이선희 기자, 아이뉴스24 김도윤 기 자이고, 18층 회의실에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성원보고 드리겠습니다. 재적위원 과반이 참석하셔서 성원이 되었음을 보고드립니다. 2. 개회선언 - 성원이 되었으므로 제28차 방송통신심의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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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事記 古 事 13 記 신화 전설 가요 계보 등을 소재로 하여 일본 건국의 유래와 제1대 神武천황부터 제33대 推 古천황까지의 事蹟을 기록한 일본 현존 最古의 典籍이며, 전체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天武천황 대에 천황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졌던 역사 저술사업을 元明천황이 계승하여, 太安萬侶에게 稗田 阿禮가 암송하고 있던 천무천황대의 역사 저술 내용을 필록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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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 2 - 제3장 보험금의 지급 60 제15조(보험금의 종류 및 지급사유) 제16조(보험금 지급에 관한 세부규정) 제17조(보험금을 지급하지 아니하는 사유) 제18조(보장성 공시이율Ⅰ의적용및공시) 제19조(환급금의 중도인출) 제20조(만기환급금의 지급) 제21조(해지환급금) 제22조(배당금의 지급) 제23조(소멸시효) 제4장 계약 전 알릴 의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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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안 내 사 항 상품안내 자주 발생하는 민원 예시 보험금 청구 구비서류 안내 보험금 지급절차 안내 가입자 유의사항 주요내용 요약서 보험용어해설 약 관 Ⅰ. 무배당 레저의품격상해보험(갱신형)(Hi1604) 보통약관 1 [부표1] 보험금을 지급할 때의 적립이율 계산 Ⅱ. 무배당 레저의품격상해보험(갱신형)(Hi1604) 특별약관 1. 상해관련 특별약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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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권 제67호 대구공동육아협동조합 http://cafe.gongdong.or.kr/siksikan 함께 크는 우리 아이 여는 글/03 교육평가 및 교육계획/05 터전소식/38 몸살림 체조 강좌 후기/43 단오행사 후기/44 게릴라 인터뷰/46 책 읽어주는 방법 찾기/50 특별기고/52 맛있는 인문학/55 편집후기/58 2010. 8 함께 크는 아이, 더불어
LEET 추리논증 29번 유사 적중 - 기본교재 -P.144 29. 다음 글로부터 추론한 것으로 옳은 것만을 에서 있 는 대로 고른 것은? 번역사 P는 고객 A, B, C로부터 문서를 의뢰받아 번역 일을 한 P는 하루에 10 쪽씩 번역한 모든 번역 의뢰는 매일 아침 업
LEET 추리논증 2번 기본과정 강의에서 한강변에 애완동물금 지 푯말과 애완돼지를 예를 들어 포함여 추상적 단어와 구체적 단어 의 포함여부 판단 문제 부를 묻는 강의를 실시 [ 법- 추상적/ 사건- 구체적] 유사 적중 - 기본교재 -P.210 유사 적중 - 기본교재 -P.257 모순 찾기 LEET 추리논증 4번 약점극복 심화추리논증-실전모의고사 [핸드폰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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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 불이학교 주소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성사동 337-22 http://www.burischool.org 전화 : 031-979-2012~3 개교 : 2010년 2월 개교 2014년 7월 14일 제18호 나는 살아있다! 내일 당장 죽을 수 있다. 지금 당장 사랑하라. -그린 터미널 화재 사고에 대한 불이학교 공식 입장과 설명(6월 3일자) 터미널 화재
Ⅰ. 머리말 각종 기록에 따르면 백제의 초기 도읍은 위례성( 慰 禮 城 )이다. 위례성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세종실록, 동국여지승람 등 많은 책에 실려 있는데, 대부분 조선시대에 편 찬된 것이다. 가장 오래된 사서인 삼국사기 도 백제가 멸망한지
고대 동아시아의 왕성과 풍납토성 - 풍납토성의 성격 규명을 위한 학술세미나 - pp. 46-67 한국의 고대 왕성과 풍납토성 김기섭(한성백제박물관) 목차 Ⅰ. 머리말 Ⅱ. 한국 고대의 왕성 1. 평양 낙랑토성 2. 집안 국내성 3. 경주 월성 4. 한국 고대 왕성의 특징 Ⅲ. 풍납토성과 백제의 한성 1. 풍납토성의 현황 2. 한성의 풍경 Ⅰ. 머리말 각종 기록에
평가결과보고서 제15회 곡성심청축제 2015. 11 제 출 문 곡성군수 귀하 본 보고서를 제15회 곡성심청축제 평가보고서 용역 의 최종보고서로 제출합니다. 2015년 11월 동신대학교 산학협력단 목 차 Ⅰ. 축제 개요 및 내용... 7 Ⅱ. 문화체육관광부 공통 평가항목 분석...27 Ⅲ. 축제 성과 요약...33 Ⅳ. 축제 만족도 분석...39 Ⅴ. 축제
주택시장 동향 1) 주택 매매 동향 2) 주택 전세 동향 3) 규모별 아파트 가격지수 동향 4) 권역별 아파트 매매 전세시장 동향 1 4 7 10 토지시장 동향 1) 지가변동률 2) 토지거래 동향 12 14 강남권 재건축아파트 시장동향 15 준공업지역 부동산시장 동향
2 주택시장 동향 1) 주택 매매 동향 2) 주택 전세 동향 3) 규모별 아파트 가격지수 동향 4) 권역별 아파트 매매 전세시장 동향 1 4 7 10 토지시장 동향 1) 지가변동률 2) 토지거래 동향 12 14 강남권 재건축아파트 시장동향 15 준공업지역 부동산시장 동향 17 이달의 부동산 Focus 새로운 주택청약제도 27일부터 시행 - 국토교통부 - 18
나라도 역사도 나몰라라
나라도 역사도 나 몰라라 비뚤어진 책만 활개 치는 세상, 왜? 그리고 어떻게? 일시 : 6월 1일(월) 오후 2:00 장소 : 살림 출판사 앨리스하우스 2층 나라도 역사도 나 몰라라 비뚤어진 책만 활개 치는 세상, 왜? 그리고 어떻게? 도서시장의 좌편향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아동도서, 청소년도서, 교양도서, 순수문학, 비평서 등 종류를 막론하고
인천광역시의회 의원 상해 등 보상금 지급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의안 번호 179 제안연월일 : 2007. 4. 제 안 자 :조례정비특별위원회위원장 제안이유 공무상재해인정기준 (총무처훈령 제153호)이 공무원연금법 시행규칙 (행정자치부령 제89호)으로 흡수 전면 개
인천광역시의회 의원 상해 등 보상금 지급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인 천 광 역 시 의 회 인천광역시의회 의원 상해 등 보상금 지급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의안 번호 179 제안연월일 : 2007. 4. 제 안 자 :조례정비특별위원회위원장 제안이유 공무상재해인정기준 (총무처훈령 제153호)이 공무원연금법 시행규칙 (행정자치부령 제89호)으로 흡수 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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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점검 모니터링 요원 점검 교육 및 업무 협의 경비 171 총무과 2012. 베스트친절 공무원 토론회 189 총무과 80 총무과 구의원과 구간부간 업무협의 간담회비 지급 157 총무과 직원교육업무추진관련 업무추진비 지급 174 총무과 조직관리 및 인력진단을 위한 업무
2013년도 시책추진업무추진비 집행내역 구분 집행내역 (단위:천원) 금액 부서 비고 총 01월 계 265건 소계 897,072 28,350 동 연두순시 관련 여론정보 수집 경비 지급 87 감사담당관 66 감사담당관 감사원 실지감사에 따른 업무협의 경비 지급 65 감사담당관 부패방지 시책 종합계획 수립 관련 업무협의 경비 지급 70 감사담당관 감사 유관기관 업무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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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1926 6 1) 1946 1 2) 60 1972 3 TV TV 3) 73 1) 1995 p 347 2) p 355 3) 1997 p 102 4) p 102 86 78 TV 4) 5) 2001 4 28 MBC 6) 2003 KBS EBS 7) MBC PD 100 KBS 8) 5) 6) 1980 KBS KBS KBS 7) 2003 11 21 8) 87 9)
목차 순복이네 가족 08. 한수와 금선, 그리고 순복의 탄생 11. 6남매 초등학교 시절 15. 가난과 해방 18. 순복의 기억 속 초등학교 소녀에서 처녀로 20. 6.25 23. 완도로 이사 26. 양재학원 28. 순복의 기억 속 완도 2 순복이 이야기. B_00_
순복이 이야기 -김순복 傳 1 B_00_ _.indd 1 2015-06-19 12:08:26 목차 순복이네 가족 08. 한수와 금선, 그리고 순복의 탄생 11. 6남매 초등학교 시절 15. 가난과 해방 18. 순복의 기억 속 초등학교 소녀에서 처녀로 20. 6.25 23. 완도로 이사 26. 양재학원 28. 순복의 기억 속 완도 2 순복이 이야기. B_00_
대표이사 K, L 4. 주식회사 동진여객 대표이사 M 피고보조참가인들 소송대리인 법무법인(유한) N 법무법인 O 제 1 심 판 결 부산지방법원 2014. 6. 12. 선고 2014구합20224 판결 변 론 종 결 2015. 5. 8. 판 결 선 고 2015. 8. 21
부 산 고 등 법 원 제 1 행 정 부 판 결 사 건 2014누21387 여객자동차 사업계획변경 인가처분 취소청구 원고, 항소인 1. 경원여객자동차 주식회사 대표이사 A 2. 대한여객자동차 주식회사 대표이사 B 3. 신흥여객자동차 주식회사 대표이사 C 원고들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D 법무법인 E 피고, 피항소인 부산광역시장 소송대리인 변호사 F 피고보조참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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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자저널 한국방송기자클럽 발행인 오건환 편집인 김형태 월간 발행처 2011 09 September www.kbjc.net 1990년 6월 20일 창간 서울시 양천구 목1동 923-5 방송회관 12층 T. 02) 782-0002,1881 F. 02) 761-8283 제150호 PD수첩 '광우병 보도' '제 38회 한국방송대상' 무죄 확정 수상작 선정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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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DD JOHN / ....?,. ( ), ( ).. < > 4 12 19 24 31 36 42 49 57 70 76 80 87 92 99 108 115 128 130 4. ",?", ' '. ".",. ".?.".., 6.,...,. 5 4.,...,. 1,..,. ",!".,.. ' ".,. "..",. ' '. 6 7.,..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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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이찬규 /주간 조효래 /편집간사 박민영 / 편집국장 김태완(창원대신문) 정원경(The Campus Journal) /641-773 경남 창원시 의창구 창원대학로 20 /전화 055) 213-2530~2536 fax 055) 213-2534 기성회비는 없어졌는데 등록금은 왜 그대로 기성회비 대학회계에 포함 등록금은 동일해 기성회 파산 예상 지난해 국공립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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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생태유아교육학회 2013년도 추계학술대회 이제는 생태유아교육이다 Ⅰ : 유아교육 개혁, 부모가 희망이다 일시 :2013년 11월 30일(토) 9:00 17:20 장소 :부산대학교 본관 대회의실(3층) 한국생태유아교육학회 한국생태유아교육학회 2013년도 추계학술대회 일정표 09:00-09:30 등록 및 친교 1부 사회:정지현(경성대 유아교육과 교수) 09:30-09:50
종사연구자료-이야기방2014 7 18.hwp
차례 1~3쪽 머리말 4 1. 계대 연구자료 7 가. 증 문하시랑동평장사 하공진공 사적기 7 나. 족보 변천사항 9 1) 1416년 진양부원군 신도비 음기(陰記)상의 자손록 9 2) 1605년 을사보 9 3) 1698년 무인 중수보 9 4) 1719년 기해보 10 5) 1999년 판윤공 파보 10 - 계대 10 - 근거 사서 11 (1) 고려사 척록(高麗史摭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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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
시나이는 없다 김진호_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지금 이 어느 때인데... 올해 전반기 개신교계를 뜨겁게 달군 하나의 이슈는 교회정관 개정 논란이었다. 몇몇 대형교회들이 정 관을 개정했거나 개정을 시도하고 있었는데, 이에 대해 개신교 시민단체들이 강력한 비판과 항의를 표한 것이다. 특히 사랑의교회의 정관 개정안이 그 논란을 더욱 격화시켰다. 이 교회는
목 차 국회 1 월 중 제 개정 법령 대통령령 7 건 ( 제정 -, 개정 7, 폐지 -) 1. 댐건설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 1 2. 지방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 1 3. 경력단절여성등의 경제활동 촉진법 시행령 일부개정 2 4. 대
목 차 국회 1 월 중 제 개정 법령 대통령령 7 건 ( 제정 -, 개정 7, 폐지 -) 1. 댐건설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 1 2. 지방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 1 3. 경력단절여성등의 경제활동 촉진법 시행령 일부개정 2 4. 대도시권 광역교통관리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 일부개정 3 5. 영유아보육법 시행령 일부개정 4
프 로 그 램 시 간 일 정 전체 사회 이명숙 대한변협 부협회장 (변협 세월호 특위 공동위원장) 10:00~10:20 (20분) 개 회 개회사 하창우 대한변호사협회 협회장 (5) 축 사 전해철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5) 축 사 이석태 4 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5) 축 사 위철환 前 대한변호사협회 협회장 (5) 좌장 : 신현호 변호사 10:20~11:10
Ⅴ.피타코라스2(P128-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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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누리 8월호 내지최종 0722
August 2006 _ Vol 76 등록번호 11-1370132-000057-06 ISSN 1739-9599 The National Center for Korean Traditional Performing Arts www.ncktpa.go.kr 2006.08 MONTHLY MAGAZINE 는 그동안 국립국악원 계간지로 발행되었던 이
버블 버블 고!!!
버블 버블 고!!! 통통고양이 소개글 버블 버블 고!!의 블로그 북 입니다. 조심히 사용해 주세용 목차 2012년 9월 23일 오전 08:04 5 태풍 즐라왓 북상, 한반도 아닌 중국 남동부 상륙 예상 6 송지효, 열애 인정 후에도 개리와 손 꼭 월요커플 이상무? 8 '닥치고 패밀리 박희본, 촬영도 잊은 채 셀카 삼매경? 10 아이유 생방송 실수담, FT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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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거 리 ㅡ 탈 북 청 소 년 제 1 강 배낭을 멘 소년 우여곡절 끝에 탈북에 성공한 열아홉 소년 현이와 같은 또래 소녀 진선. 진선은 학교에서는 동급생들에게 북한에 대한 곤란한 질문으로 시달림을 당하고, 아르바이트 가게 주인에게는 돈을 때이며, 집으로 돌아오면 언제나 혼자이다. 같은 아파트 위층에 사는 현이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부모에게 주고 싶은 선물을
복부비만 이란
복부비만의 치료 I. 복부비만 이란? 1. 비만은 체내지방이 과다하게 축적된 상태를 말한다. 비만은 체내지방의 분포 양상에 따라, 복부비만(상체비만, 중심성비만)과 하체비만 (말초비만)으로 구분하는데, 우리 몸에서 다른 부위보다 복부 또는 복강 내에 지방이 과다 하게 축적된 경우를 복부비만이라 한다. 2. 지방의 분포에 의한 복부비만 형태 1) 피하형 : 복강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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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2003. 12. . 1 1. 1 2. 2 3. 2 4. 2. 3 1. 3 2. TV3 3. TV 4 4. 4. 9 1. 9 2. 9 3. 13 . TV 17 1. 17 2. TV 19 3. TV 20. 32 1. 32 2. 33 3. TV 34. 36 1. 36 2. 36 3. 36 1. 37 2. 38 . 1. 1995 8 TVTV.,,,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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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보 선 람 기관의 장 시보는 공문서로서의 효력을 갖는다. 제 1105 호 2010년 04월 12일 월요일 목 차 고 시 인천광역시고시 제2010-95호 (도시관리계획(도시계획시설 : 공원, 주차장) 결정(변경) 및 지형도면 고시) 3 인천광역시고시 제2010-96호 (귤현구역 도시개발사업 개발계획(변경), 실시계획(변경)인가고시 및 지형도면 고시) 5 인천광역시고시
2 청소년뉴스 이달의 인물 3 수능 복수정답 인정으로 최대 6000명 등급 하락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출제오류 논란이 일었던 생명과학Ⅱ 8번 문항과 영어 25 번 문항이 결국 복수정답으로 처리됐다. 하지만 이번 정답 수정으로 생명과학Ⅱ 과목에서 최대 6,0
진주청소년신문 JINJU ADOLESCENT NEWSPAPER 2014년 11월 28일 금요일 복간 제 16호 사/단/법/인/청/소/년/문/화/공/동/체/필/통 잊지않겠습니다.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이달의인물] 사대부설고등학교 2학년 신동혁 [청소년뉴스] 수능 복수정답 인정으로 최대 6000명 등급 하락 서울 초 중 고교도 내년 9시 등교 추진 [학교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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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수학 검은 대장간 인문 Blacksmith Day 1 최석호 1. 그림과 같이 A B C D E의 다섯 개의 영역에 빨강, 노랑, 파 랑, 초록의 네 가지 색으로 색칠을 하려고 한다. 네 가지 색 중 한 색 은 두 번 사용하고 나머지 세 가지 색은 한 번씩만 사용하여 칠하는 데, 인접한 영역에는 서로 다른 색을 칠하기로 할 때, 색칠하는 방법 의 수를 구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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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시 와 농 촌 이 함 께 하 는 제 154호 2015. 10/11 월호 물품정보지 우리농 은 새로 나오는 상품, 변동 되는 가격, 중단되는 물품 등 소비자가 장보기 에 필요한 소식들을 빠르게 전하려 합니다. 발행일 : 2015년 10월 20일 발행인 : 이영선 신부 발행처 : 우리농촌살리기운동 천주교광주대교구본부 가톨릭농민회 광주대교구연합회 주 소:광주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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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 2016.05.03(화) "갈등없는 성과연봉제 도입" 홍보하던 동서발전, 부당노동행위 정황 성과연봉제 노사합의안 찬반투표 당시 동서발전 울산화력본부 기표소 모습 공기업 발전회사 중 처음으로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에 대한 노사합의가 이뤄진 한국동서발전이 직원 들의 찬성 투표를 유도하기 위해 부당노동행위를 벌인 복수의 정황이 나왔다. 직원들에게 동의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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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1 2001. 8 : : : KOREAN BROADCASTING INSTITUTE . 1. 4 1. 4 2. 5 1) 5 2) 8 3. 8 1) 8 2) 9 3) ; 10 4) 11 4. 13 1) 13 2) 14 3) 14 4) 16 5. 17. 5 18 1. 18 2. 19 3. 22 4. 22 1) -8, 325 22 2) 24 3) 2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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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E( 테마파티팀빌딩 ) 상품개발 및 리허설 대행업체 선정 공모 주제 00. 0. 제 주 특 별 자 치 도 관 광 협 회 Ⅰ. 제안범위 공모내용 # 각 행사별 컨셉, 진행 시나리오, 행사장 조성 등 제시 행사진행을 위한 물자, 제작, 인력, 안전, 비상계획 등 행사 추진전략 및 프로그램 운영조직, 업무분장 계획 제안서 작성지침 참조 Ⅱ. 리허설 개요(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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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딸놀이 마당극 뱀파이어쇼크-삶의 방식을 바꾸자 퍼포먼스-결혼을 노래함 마당극-아구아지매품바 충북여성민우회 한우리 주부연극단 핸섬우먼네트워크-네트워크가지역을바꾼다 경남여성회-지역여성문화운동의현장에서 [딸놀이 마당극] 기획.제작 한우리주부연극단 대본 : 최미애 연출 : 신주연 o 공연 해설 앞놀이 마당 여성의 주관적.개인적 한풀이가 집단성을 획득했을 때에
정다운사람들-82호최종
2015 vol. 82 2015 vol. 82 CONTENTS 03 04 05 06 07 08 10 11 12 14 15 16 I nter v iew Q. A. Q. A. Q. A. Q. A. Q. A. 02 03 04 05 월성확대경Ⅰ 5월 9일(토) 11시 월성종합사회복지관 앞마당에서 월성사랑마을축제가 마련되었습니다. 지역 내 주민 1,000여명과 함께하는
02 채널경남 종합 4.13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강석진 당선자 미래와 희망을 위해 함께 나아갑시다 거 함 산 합 군민의 마음을 모으는 소통과 화합, 상생의 정치를 이룩하겠습니다! 산청 함양 거창 합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압도적인 득표로 당선된 새누리당 강석진
(주) 채널경남 경남 창원시 의창대로 18번길 46 313호 대표전화 : 055)255-5103 채널경남 챕터스 채널경남 스쿨 Book 검색 채널경남 을 검색하시면 채널경남인터넷 방송ㆍ신문을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전화 (055) 945-5100~1 F.945-5102 www.chgn.co.kr 2016년 04월 18일 월요일 제 93호 거창 함양 산청 합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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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이름의 종류 박 현 A 눈 (민족운화추진회 전운위원) 1. 머 리 말 오늘날은 보통 한 사랍이 하나의 이름을 가지고 살아간다. 문학이나 서 에 둥파 같은 예숭 활동올 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더러 本 名 이외의 다른 이름이나 號 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양과 名 만을 사용 한다. 漢 字 로 운자 생활을 하였던 우리의 조상들윤 일생 동안에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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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광고 5호 2014 년 2 월 www.ijto.or.kr 발행처 제주관광공사 발행 편집인 양영근 THE JEJU TOURISM ORGANIZATION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선덕로 23 제주웰컴센터 TEL 064) 740-6000 FAX 064) 740-6038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3월6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 무렵에 첫 번째
산림병해충 방제규정 4. 신문 방송의 보도내용 등 제6 조( 조사지역) 제5 조에 따른 발생조사는 다음 각 호의 지역으로 구분하여 조사한다. 1. 특정지역 : 명승지 유적지 관광지 공원 유원지 및 고속국도 일반국도 철로변 등 경관보호구역 2. 주요지역 : 병해충별 선단
산림병해충 방제규정 산림병해충 방제규정 [ 시행 2015.9.9] [ 산림청훈령 제1262 호, 2015.9.9, 일부개정] 산림청( 산림병해충과), 042-481-4038 제1장 총칙 제1 조( 목적) 이 규정은 산림보호법 제3 장 " 산림병해충의 예찰 방제 에서 위임된 사항과 산림병해충( 이하 " 병 해충 이라 한다) 의 예방 구제를 위하여 병해충의 발생조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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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 오사카 > 도시개요 일본의 제 2 의 도시이자 긴키지방의 중심지 오사카 ( 大 阪 ) 도시개요 오사카는 고대로부터 전통적인 문화와 함께 근세의 새로운 예능, 유머와 해학, 독특 한 오사카의 사투리( 간사이벤) 가 생기면서 인정미 넘치는 도시로 발전했다.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새로운 상업, 독자적인 상품이 계속해서 발전되고 번창하면서 일본열도의
김기중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인터넷 내용심의의 위헌 여부.hwp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인터넷 내용심의와 그 위헌 여부에 관한 소론 - 서울고등법원 2011.2.1.자 2010아189 위헌법률심판제청결정을 중심으로 한국정보법학회 2011년 5월 사례연구회 2011. 5. 17.발표 변호사 김기중 미완성 원고임 1. 서론 헌법재판소는 2002. 6. 27. 99헌마480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등 위헌확인사건에 서 불온통신 의 단속에
주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도전정신이 빛난 블루클럽 최 승 노 자유경제원 부원장 블루클럽은 1998년 IMF 외환위기 때 등장했다. 남자들의 미용 이라는 사업 아이템으로 여성 중심의 이 미용실에 부담을 느꼈던 남성들을 위한 새로운 시 장의 개척이다. 또한, 당시 5,0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 정책으로 소비자들로 부터 큰 호응을 얻었고 직접 헤어디자이너들을 양성하여
세 입 업 무 편 람 2008.12 경 기 도 교 육 청 ( 재 무 과 ) 목 차 Ⅰ. 세입의 개요 1 1. 세입과 수입의 의의 1 2. 세입의 구성 1 3. 세입의 근거 3 4. 세입의 일반원칙 3 5. 세입의 회계연도 소속 구분 5 Ⅱ. 세입 예산의 구조 및 과목해소 6 1. 교육비특별회계 세입 예산의 구조 및 과목해소 6 2. 학교회계 세입 예산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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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화력 7 8호기 건설부지 문화재 지표조사 결과보고서 2005. 01. ( 재) 우리문화재연구원 하동 화력 7 8호기 건설부지 문화재지표조사 결과보고서 Ⅰ. 조사개요 1. 조 사 명 : 하동 화력 78 호기 건설부지 문화재지표조사 2. 조사지역 : 경남 하동군 금성면 가덕리 1336답 일원 3. 조사 면적 : 134,204m2 4. 조사 목적 한국남부발전(
1998년~1999년의 일기
1998년~1999년의 일기 자주달개비 소개글 2012년 4월 어느 날 14년 전에 끄적거려 놓았던 쾌쾌묶은 낡은 노트를 발견하고 이곳에 얾겨 적어보았다. 다시 정리하면서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정리가 되는 듯하여 의미있는 일이 되었다. 목차 1 1998.9.28(주인없는 집) 5 2 1998.9.29(돌아가고 싶은 그 때) 9 3 1998.10.3(아버지의
사진 24 _ 종루지 전경(서북에서) 사진 25 _ 종루지 남측기단(동에서) 사진 26 _ 종루지 북측기단(서에서) 사진 27 _ 종루지 1차 건물지 초석 적심석 사진 28 _ 종루지 중심 방형적심 유 사진 29 _ 종루지 동측 계단석 <경루지> 위 치 탑지의 남북중심
하 출 입 시 설 형태 및 특징 제2차 시기 : 건물 4면 중앙에 각각 1개소씩 존재 - 남, 서, 북면의 기단 중앙에서는 계단지의 흔적이 뚜렷이 나타났으며 전면과 측면의 중앙칸에 위치 - 동서 기단 중앙에서는 계단 유인 계단우석( 階 段 隅 石 ) 받침지대석이 발견 - 계단너비는 동측면에서 발견된 계단우석 지대석의 크기와 위치를 근거로 약 2.06m - 면석과
경기자 육성 프로그램 개정에 있어
제 1 장 단거리 릴레이 허들 1. 단거리 단거리는 자기 자신 이라는 물체를 어떻게 하든 빠르게 이동시키는 것을 100m, 200m, 400m의 거리에서 경쟁하는 종목이다. 빠르게 달리기위해서는 먼저, 정확한 자세로 서지 않으면 안된다. 머리위에서 끈으로 잡아 당긴다는 이미지로 일자로 서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자세를 의식하면서 중심이동 을 자연스럽게
Ⅰ- 1 Ⅰ- 2 Ⅰ- 3 Ⅰ- 4 Ⅰ- 5 Ⅰ- 6 Ⅰ- 7 Ⅰ- 8 Ⅰ- 9 Ⅰ- 10 Ⅰ- 11 Ⅰ- 12 Ⅰ- 13 Ⅰ- 14 Ⅰ- 15 Ⅰ- 16 Ⅰ- 17 Ⅰ- 18 Ⅰ- 19 Ⅰ- 20 Ⅰ- 21 Ⅰ- 22 Ⅰ- 23 Ⅰ- 24 Ⅰ- 25 Ⅰ- 26 Ⅰ- 27 Ⅰ- 28 Ⅰ- 29 Ⅰ- 30 Ⅰ- 31 Ⅰ- 32 Ⅰ- 33 Ⅰ- 34 Ⅰ- 35
충남도보 제2072호
충 청 남 는 공문서로서의 효력을 갖는다 제2072호 2010. 03. 22.(월) 1961년 7월 12일 선 기관의 장 람 고 시 ㅇ 제2010-71호 : 하천공사시행(변경)계획 고시 7 (이면계속) 게재를 의뢰한 각급 행정기관에 알려드립니다. 충 청 남 에 서 는 2 0 0 9 년 1 월 2 0 일 부 터 전 자 를 발 행 합 니 다. 본 전자 는 충청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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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알고 기사 쓰기 62 논쟁적 주제 다룰 땐 단정적으로 보도하지 말아야 과학적 사실에 대한 보도 시 주의할 점 양재규 언론중재위원회 정책연구팀장 변호사 기자도 전문가 시대다. 의학전문기자, 경제전문기자 라는 말은 이미 익숙하고 이 외에도 책전문기자, 등 산전문기자, IT전문기자, 스포츠전문기자, 자동차 전문기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기자들이 있다. 과학
< 목 차 > < 가입자 유의사항 >... 5 < 주요내용 요약서 >... 6 < 보험용어 해설 >... 8 < 주요 민원사례 >... 10 < 약관조항 안내 >... 11 무배당수호천사플러스상해보험 약관... 12 제 1 관 목적 및 용어의 정의... 12 제 1 조
무배당수호천사플러스상해보험 약관 1 < 목 차 > < 가입자 유의사항 >... 5 < 주요내용 요약서 >... 6 < 보험용어 해설 >... 8 < 주요 민원사례 >... 10 < 약관조항 안내 >... 11 무배당수호천사플러스상해보험 약관... 12 제 1 관 목적 및 용어의 정의... 12 제 1 조 목적... 12 제 2 조 용어의 정의... 12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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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발행인 권오훈 발행일 2014년 2월 18일(화) Tel: 02-781-2980~2 Fax: 02-781-2989 blog: www.kbsunion.net twitter: @kbsunion email: [email protected] 블루하우스 막장 드라마 스페셜 2 3 '민경욱 사태' 사내외 반응 들리는가, 민심을 대변하는 이 소리가! 묻고 싶다.
공공도서관도큐06
4 8 10 14 18 22 24 26 30 31 4 5 6 7 8 9 10 11 12 13 파워도서관 세상을 읽는 지혜, 미래를 이끄는 힘, 해운대도서관 책이 있어 행복한 도서관 해운대신시가지 주민들의 숙원인 해운대 도서관이 4월 2일 개관하게 되었다. 해운 대구 양운로에 위치한 도서관은 지하 2층 에서 지상 4층의 책을 펼친 모양의 현대 적 감각으로 지어져
래를 북한에서 영화의 주제곡으로 사용했다든지, 남한의 반체제세력이 애창한다 든지 등등 여타의 이유를 들어 그 가요의 기념곡 지정을 반대한다는 것은 더 이상 용인될 수 없는 반민주적인 행동이 될 것이다. 동시에 그 노래가 두 가지 필요조 건을 충족시키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제2 발제문 임을 위한 행진곡 의 문제점 임 과 새 날 의 의미를 중심으로 양 동 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1. 머리말 어떤 노래가 정부가 주관하는 국가기념식의 기념곡으로 지정되려면(혹은 지정 되지 않고 제창되려면) 두 가지 필요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하나는 그 가요(특히 가사)에 내포된 메시지가 기념하려는 사건의 정신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
노인복지법 시행규칙
노인복지법 시행규칙 [시행 2012.2.5] [보건복지부령 제106호, 2012.2.3, 타법개정] 제1조(목적) 이 규칙은 노인복지법 및 동법시행령에서 위임된 사항과 그 시행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 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1조의2(노인실태조사) 1 노인복지법 (이하 "법"이라 한다) 제5조에 따른 노인실태조사의 내용은 다음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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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5 18 민주화운동왜곡 대책위 등 주최 토론회 ( 5 18 민주화운동 왜곡과 대한민국 ). 2013년 5월 30일.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 5 18 민주화운동 왜곡과 한국의 보수 --5 18 민주화운동 왜곡 현상과 한국 민주주의의 과제 1) 조희연(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상임의장. 성공회대) 1. 들어가면서: 518 왜곡현상을 접하는 우리의 당혹스러움
2008.3.3> 1. 법 제34조제1항제3호에 따른 노인전문병원 2. 국민건강보험법 제40조제1항의 규정에 의한 요양기관(약국을 제외한다) 3. 삭제<2001.2.10> 4. 의료급여법 제2조제2호의 규정에 의한 의료급여기관 제9조 (건강진단) 영 제20조제1항의 규
노인복지법 시행규칙 [시행 2010. 3. 1] [보건복지가족부령 제161호, 2010. 2.24, 일 보건복지가족부 (노인정책과) 02-2023-85 제1조 (목적) 이 규칙은 노인복지법 및 동법시행령에서 위임된 사항과 그 시행에 관하여 필요한 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1조의2 (노인실태조사) 1 노인복지법 (이하 "법"이라 한다)
성희롱(성폭력)예방_뉴스레터2013-3호_20131218(최종).hwp
이런 것도 성희롱(성폭력)? 2013-3호 2013.12.20 목 차 [사례] 불쌍해서 어떡해...당신 눈엔 어때 보여요? [분석] 짝사랑과 스토킹 [시선] 성매매, 이런 게 궁금해요(1) 성희롱이란 무엇일까요? 아주대학교 성폭력상담센터는? * 본 메일은 아주대학교 성폭력상담센터에서 기획한 것으로 교직원과 학생 여러분들에게 성희롱/성폭력 관련 실제 사례와 이에
블링블링 제주월드
블링블링 제주월드 섬처녀둘리씨 소개글 목차 1 인천 을왕리 해수욕장에서 만찬 6 2 올레 15코스 11 3 [애월] 제주도맛집 아루요 25 4 감초식당 29 5 머체왓숲길원정대 32 6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 - 37 7 젊은날의 초상 - 헤르만 헤세 39 8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41 9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1, 2권 45 10 다빈치코드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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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노동뉴스 / 2016.02.23(화) '2대 지침' 새누리당 국민의당 "필요"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폐지" 한국노총 각 정당 노동전문가 불러 20대 총선 정책요구 집담회 개최 22일 여의도 한국노총회관 회의실에서 열린 20대 총선 한국노총 정책요구 집담회에서 최두환 수석부위원장이 머리말을 하 고 있다 원내 4당이 공정인사(일반해고) 지침과 취업규칙 해석
1 개정 사유 환경영향평가제도가 환경정책기본법 에 따른 사전환경성검토와, 환경영향평가법 에 따른 환경영향평가로 이원화 -유사 목적의 평가제도가 각각 다른 법률에 규정되어 평가절차가 복잡하고 환경평가의 일관성 연계성이 부족 *사전환경경성검토는 행정계획과 개발사업계획 수립
환경영향평가법 전부개정법률안 설명자료 2012. 7. 자 연 보 전 국 1 개정 사유 환경영향평가제도가 환경정책기본법 에 따른 사전환경성검토와, 환경영향평가법 에 따른 환경영향평가로 이원화 -유사 목적의 평가제도가 각각 다른 법률에 규정되어 평가절차가 복잡하고 환경평가의 일관성 연계성이 부족 *사전환경경성검토는 행정계획과 개발사업계획 수립단계에서,환경영향평가는
고등학교 수학 요약노트 - 확률과 통계
고등학교 수학 요약노트 확률과 통계 Sooji Shin [email protected] 이 노트에서는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수학의 내용 중 확률과 통 계에 관련된 개념과 공식을 정리하고 그에 따른 예제와 풀이를 소개합니다. 필요한 경우 중학교 과정의 내용도 포함하고 있습 니다. 이 노트에서 포함하고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경우의 수 대푯값과 산포도 확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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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의 명칭은 주식회사 와이티엔이라고 표기합니다. 영문으로는 YTN이라 표기합니다. 나. 설립일자 및 존속기간 당사는 방송법에 근거하여 종합뉴스프로그램의 제작 및 공급 등을 영위하는 목적으로 1993년 9월 14일 설립되었습니다. 또한 2001년 8월 31일에 코스닥시
분 기 보 고 서 (제 19 기) 사업연도 2011.01.01 부터 2011.09.30 까지 금융위원회 한국거래소 귀중 2011년 11월 14일 회 사 명 : (주)와이티엔 대 표 이 사 : 사장 배 석 규 본 점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5가 6-1 (전 화)02-398-8000 (홈페이지) http://www.ytn.co.kr 작 성 책 임
2012 한국메세나대회 심포지엄 발표인사 소개 전성률 (서강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 동 대학 석사 미국 시라큐스대 경영학 박사(마케팅전공) 미국 피츠버그대 경영대학원 조교수 한국소비자학회, 한국마케팅학회, 한국광고학회, 한국소비문화학회 상임이사
M E 2012 한국메세나대회 심포지엄 C E N A T S Y M 2012. October.24 WED 14:00 P O S 웨스틴 조선호텔 오키드룸 I U M 2012 한국메세나대회 심포지엄 발표인사 소개 전성률 (서강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 동 대학 석사 미국 시라큐스대 경영학 박사(마케팅전공) 미국 피츠버그대 경영대학원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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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부 언론관련판결 사례 제1장 명예훼손 사례 제2장 재산권 침해 사례 제3장 기타 인격권 침해 사례 제4장 형사 사례 제5장 헌법재판소 결정 사례 편집자 주 - 사건관계인의 인격권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사건관계인의 이름, 소속회사, 주 소, 차량번호 등을 비실명 익명처리하고 필요한 경우 최소한의 범위내에서 판결문의 일부를 수정 또는 삭제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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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성광고 실태 및 소비자인식에 관한 조사 2001. 11 생활경제국 표시광고팀 - 목 차 - Ⅰ. 조사개요 1. 조사배경 및 목적 4 2. 조사방법 대상 및 내용 5 3. 조사기간 5 Ⅱ. 기사성광고의 정의 및 일반사항 1. 정의 6 2. 특징 6 3. 관련법규 등 8 Ⅲ. 기사성광고 게재실태 1. 품목별 게재실태 10 2. 광고구분 표시 실태 11 3.
당사의 명칭은 주식회사 와이티엔이라고 표기합니다. 영문으로는 YTN이라 표기합니다. 나. 설립일자 및 존속기간 당사는 방송법에 근거하여 종합뉴스프로그램의 제작 및 공급 등을 영위하는 목적으로 1993년 9월 14일 설립되었습니다. 또한 2001년 8월 31일에 코스닥시
반 기 보 고 서 (제 19 기) 사업연도 2011.01.01 부터 2011.06.30 까지 금융위원회 한국거래소 귀중 2011년 8월 16일 회 사 명 : (주)와이티엔 대 표 이 사 : 사장 배 석 규 본 점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5가 6-1 (전 화)02-398-8000 (홈페이지) http://www.ytn.co.kr 작 성 책 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