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제개편논의의한국적맥락 서복경 ( 서강대 ) Ⅰ. 들어가며 본논문의관심은선거제도그자체보다 선거제도개편의정치 에관한것이다. 1987년민주화이후중대선거구제개편논의가제기되고부상하여소멸되는과정을추적하고그배경과맥락을분석함으로써, 선거구제개편의현재적함의를찾는것이그목적이다. 당연하게도, 모든상황에서 바람직하거나선한제도는존재할수없다. 특정한기준하에서더나은제도와덜나은제도를비교할수있을뿐이다. 선거제도의경우, 일반적으로비례성 (proportionality) 과정치안정성 (political stability) 을그기준으로삼는다. 득표의의석전환이얼마나유권자의표심에비례적인가가선거제도연구의중요한한축이라면, 다른축은유효정당의수 (the effective number of parties) 등으로측정될수있는정치안정성이다. 물론정당의수가작으면정치가안정적이고, 많으면불안정하다는논리가개별국가의현실을설명해줄수있는것은아니다. 다당제의유인을갖는다고가정되는비례대표제채택국가들이, 양당제의유인을갖는다고가정되는다수대표제채택국가들보다정치적으로불안정하다는주장이현실에서성립되기는어렵다. 다만, 정당의수가많을수록정부나의회가결정을내릴때거부권 (veto power) 을갖는행위자의수가많다는의미이고, 결정에이르기까지걸리는시간과노력이상대적으로많이들수있다는, 지극히상식적인함의를제공해줄수는있다. 그럼에도, 더많은국가사례를모아더정확한방법으로제도비교를수행해왔던수많은연구의결과들이현실의행위자들에게줄수있는함의는분명히있다. 제도 선거구제개편논의의한국적맥락 3
는그게임에참여하는모든행위자들의합의에기초해야하므로도입되기어렵고, 제도가도입되면행위자들이그제도에적응하여전략을바꾸고서로의선택이교호하면서특정한정치적결과를만들어내기까지시간이오래걸린다. 이런이유로, 선택하지않은제도의결과에대해미리예측해볼수있는준거가반드시필요한것이다. 또, 특정영역의제도를어떤기준에서판단해야하는가에대한준거를제공해줄수있다. 특히제도실행의경험이풍부하지않은국가들에서특정영역의제도를디자인할때가장먼저부딪히게되는문제가기준의설정이다. 무엇을기준으로특정제도를평가하고맥락을부여해야하는가의문제다. 선거제도비교연구에서비례성과안정성을그일반적기준으로삼는다는것은선거제도의도입, 개편을고민할때최소한이기준에서출발해야한다는실천적함의를가질수있는것이다. 선거제도를구성하는한하위제도인 선거구제 도마찬가지다. 특정선거구제를다른유형으로개편하고자할때, 가장먼저고려되어야할기준은비례성과안정성의기준이다. 이두가지기준은각기별개로존재하는것이아니며, 서로상쇄하는효과를가진다. 이런이유로개별국가들은자기나라의맥락에비추어 적정 수준의비례성과안정성을타협하는제도를디자인하게되는것이다. 2009년 6월, 대통령직속사회통합위원회가선거구제를포함한선거제도개편안을제안한것을기점으로선거구제를포함한제도개편논의가진행되고있는것이, 이글의현실적배경이다. 1987년이후한국에서선거제도개편논의는지속된역사를가지고있다. 이후구성된모든정부에서선거제도개편은중요한정치의제였고, 선거구제역시그하위범주의논의의제로오래존재해왔다. 이글은현정부에서새롭게제기된선거구제개편논의를계기로, 지금까지진행되어온선거구제개편논의의맥락과배경을분석하여현재적함의를찾고자한다. 4 정치선진화를위한선거제도개선방안
Ⅱ. 사례 (1) 노태우정부에서의경험 1987년의헌법개정과선거제도개편이후, 선거구제개편이정치의제로떠오른최초의계기는 1991년 2월 19일노태우전대통령의담화발표였다. 대통령은 대국민담화 에서, 당시문제가되었던 수서사건 에관해대국민사과를하면서, 유사한사건의재발방지를위해서도여-야는돈을쓰는현재의정치풍토를과감히개혁하는제도적개선을단기간에이뤄야한다. 는제안을담았다. 그리고제도개선방향으로 깨끗한선거, 돈안쓰는선거, 건전한정치윤리 를제시했다. 집권당이던민자당은다음날열린당무회의에서 정치풍토쇄신을위한제도개선특위 구성을결의하고, 깨끗한선거, 돈안드는선거 를위한방안가운데 1구1인선거구제를 1구 2인이상의선거구제로전환하는개편안을담았다 ( 조선일보, 1991/2/21, 2면 ). 수서사건 이란 1989년 3월지정된수서택지개발예정지구를특정조합에특혜공급하는과정에서청와대비서관, 국회건설위원회소속의원들포함여 야당의원들, 건설부및관련부처공무원들이뇌물을받은것으로드러난비리사건이다. 1991년 2월 3일청와대와당시야당이었던평화민주당이서울시에보낸협조공문이공개되었고, 2월 7일검찰이수사에착수했으며, 2월 19일노태우전대통령의담화가발표되었다. 수서사건 과대통령의담화내용을연관시켜보면, 청와대와여-야의원들이뇌물을받은것은선거에돈이많이들기때문이며, 대안으로선거제도를바꾸어 깨끗한선거, 돈안쓰는선거풍토 를정착시켜야한다는것이다. 그리고집권당인민자당은이제안을받아대안중하나로선거구제개편안을논의의제로채택하였다. 노태우정부집권후반기에등장했던선거구제개편논의는 1992년 12월제14대대통령선거까지지속되었다. 흥미로운것은, 초기정치자금과연관되어제출된선거구제개편안이 1991년 6월지방자치선거를거치면서지구당폐지, 내각제개헌사안과연계되어의제의내용과지위가변화되었다는점이다 ( 한국일보, 1991/06/25, 3면 ; 조선일보, 1991/7/26, 3면 ). 민자당내에서는소선거구제에서지구당을유지하는비용이많이들어불법정치 선거구제개편논의의한국적맥락 5
자금의수요가발생하는데, 중대선거구제로전환하면지구당을폐지할수있어정치자금을줄일수있다는주장이등장했다. 그리고신민당내에서는대선거구제로의제도개편이결국내각제개헌을염두에둔것이아니냐는의혹이제기되었다. 야당의이런의혹은집권민자당내부의제도선호지형속에서등장한것이었다.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민주정의당이 1990년합당을해결성된민주자유당은내부계파별로권력구조및선거구제에대한선호가달랐다. 구공화당계와민정당계의원들은내각제와중대선거구제를, 민주당계의원들은대통령제와소선거구제를선호했던것이다. 이런입장차이는결국제14대대통령선거를앞둔 1992년 10월, 집권당내대규모충돌로현상했다. 당시박태준최고위원으로대표되었던민자당내민정계의원들은김영삼대통령후보에게 내각제개헌 을대선공약으로채택할것을요구했고, 김영삼후보가이를거부하자탈당등의사태를맞이하게된다. 당시각정당들의입장을보면, 민주당의이기택총재와민중당의이우재총재는중대선거구제찬성입장이었던반면 ( 동아일보, 1991/06/26, 2면 ; 한국일보, 1991/07/24, 3면 ), 집권민자당의김영삼대표와제1야당인신민당김대중총재는소선거구제유지입장이었다. 1992년 12월에예정된대통령선거에서출마예정후보를가졌던민자당내민주계와신민당은현재의제도유지를선호했던반면, 그렇지못한정치세력들은제도변화를통해균형점을바꾸기를원했던것이다. 결과적으로대통령의제안에도불구하고, 국회제1정당의대표와제2정당의대표가선거구제개편에동의하지않았기때문에제도개편은이루어지지않았다. 민주화이후최초등장했던선거구제개편논의는이후반복되는논의과정에서발견되는일정한패턴을보여주었다. 우선선거제도개편논의의출발점이대통령인경우가많았다는것이다. 단임제대통령들이임기중에선거제도를개편하려는적극적의지를가졌다는점은, 역대대통령들의중요한특징이되었다. 그리고, 최초제안된맥락과는무관하게중대선거구제개편은권력구조개편논의로수렴되었다는점이다. 물론선거구제는전체로선거제도의한하위구성부분이고대개중대선거구제제안은다른선거제도개편안들과함께제안되었다. 하지만특징적인것은제안의초기에는대부분선거제도개편안의하위범주로제안되지만, 논의의발전과정에서가장큰범주의정치제도인권력구조변화와연계되었다는것이다. 6 정치선진화를위한선거제도개선방안
(2) 김영삼정부에서의경험 노태우정부하에서소선거구제와대통령제유지입장을고수했던김영삼전대통령이집권후최초로선거제도개편안을언급한것은 1993년 3월이었다. 취임직후인 2월 27일재산을공개하고 단한푼의정치자금도받지않겠다. 고공언한김영삼전대통령은, 3월 4일정부와민자당에 돈안드는선거를위한선거제도개편안을마련하라는지시를내렸다. 이발언에대해민자당지도부는 ( 정당의 ) 시 도지부와지구당의존폐여부를검토할것이며, 현재소선거구제로되어있는선거구를중선거구나대선거구제로바꾸는문제로아울러검토할것 이라고밝혔다 ( 국민일보, 1993/03/06, 2면 ). 하지만이시점선거구제개편논의는곧바로잠복하게되는데, 3월 7일김영삼대통령이 중대선거구제는잘못될경우돈을더많이쓰게된다 는발언으로소선거구제유지입장을확인했기때문이다 ( 동아일보, 1993/03/07, 1면 ). 김영삼전대통령의대통령제및소선거구제유지입장은같은해 6월이기택민주당대표와의회담에서도다시확인되었다. 당시김영삼전대통령은일각에서 깨끗한선거, 돈안드는선거 의대안으로중대선거구제가거론되었던것과는달리, 중-대선거구제는돈이많이들어소선거구제가더좋다고생각한다. 는입장을견지했다 ( 조선일보, 1999/06/16, 2면 ). 하지만김전대통령의입장과는별개로, 1996년국회의원선거를앞두고 1995년중반부터민자당내에서중대선거구제논의가전개되었다. 논의의진원지는민자당내호남 충청지역구의원들로알려져있고, 그정치적표출은 7월 5일이춘구당시민자당대표의국회연설을통해서였다. 이춘구대표는 망국적인지역감정을타파하기위해선거제도개혁을포함한가능한모든노력을기울일것 이라는언술로, 선거구제개편의지를피력하였다 ( 동아일보, 1995/07/07, 03면 ). 하지만이논의는 1995년 11 월을기점으로다시정리되었다. 언론들은당시민자당내선거구제개편논의가중단된이유를제도적용의실익이없고, 야당의반대가강력하여실현성이없으며, 당시시기적조건때문으로분석하였다 ( 한겨레, 1995/11/28, 6면 ). 당시시기적조건이란, 5 18사건에대한재조사와함께전두환, 노태우전대통령에대한조사가이루어지고결국노태우전대통령이구속되었던정황을가리킨다. 이런일련의과정을거쳐민자당은 1995년 12월 6일, 당명을신한국당으로개명하였다. 선거구제개편논의의한국적맥락 7
신한국당에서선거구제개편논의가다시부상한것은 1997년 3월이회창대표가취임한이후였다. 1997년 6월, 대외비 로분류된신한국당의내부문서 [ 고비용정치구조개선검토안 ] 에따르면, 호남지역의여당목소리와영남지역의야당목소리를의회제도틀안에수렴해국민통합을이루기위해서는선거제도의일대전환이불가피하다... 소선거구제를중대선거구제로전환해야한다 고밝히고있다. 이문서가흥미로운점은, 당시까지주장된중대선거구제개편근거가운데 깨끗한선거 를가능하게한다는주장을폐기하고 지역갈등해소 라는단일근거로정리해냈다는점이다. 동문서에의하면, 선거비용면에서는어느선거구제가 덜든다 는확증이없는만큼, 선거비용축소라는관점보다는지역갈등을해소하는사회통합의측면에서검토되어야한다 고명시하고있다 ( 동아일보, 1997/06/23, 02면 ). 노태우정부말기제출된선거구제개편안이정치비용축소측면에서접근된것과는달리, 김영삼대통령은중대선거구제와정치비용의관계를인정하지않았다. 이즈음학계에서도선거구제와정치비용의직접적인상관관계를부정하는논의가빈번히제출되었는데, 그중요한경험적근거가일본의선거제도개편원인과결과였다. 알려진바와같이 1993년일본에서선거제도개편이추진된주요근거는정책중심정당정치활성화와함께정치비용의감소였다. 한선거구에한정당이여러후보를공천하게됨으로써, 정당의정책이아닌후보개인의능력으로선거경쟁을해야하고이과정에서과도한선거비용이발생하므로, 1구 1인선거구제로전환해야한다는일본의선거제도개편논리가한국에널리소개되기시작했던것이다. 아무튼이시기이후로, 각정당이나정치인이선거구제개편을논할때 중대선거구제가정치비용이덜든다 는논리를전개하는사례는급격히줄어들었다. 1997년말, 신한국당후보가된이회창총재는관훈클럽초청토론등에서중대선거구제로선거구제개편을공식입장으로밝혔고 ( 서울신문, 1997/10/07, 2면 ), 1997년 6월의내부문서에이어중대선거구제는신한국당의공식당론으로이해되었다. 한편이회창총재로부터탈퇴압력을받던김영삼전대통령은 1997년 11월신한국당을탈당했다. 8 정치선진화를위한선거제도개선방안
(3) 김대중정부에서의경험 노태우정부말기부터주기적으로등장했던선거구제개편논의에서일관되게소선입장을고수했던김대중전대통령과그의소속정당이, 선거구제에관한입장을변경하게된시점은집권 1년여후인대략 1999년 4-5월경으로확인된다. 집권직후부터 IMF외환위기사태를관리해야했던김대중정부는, 민간부문의경제규모축소및실업등에직면해공공부문축소라는대응과제를설정했다. 국가공무원직의축소나정부운영재정규모축소등과함께, 국회에서도유사한맥락에서의석규모축소가논의되기시작했던것이 1998년초반이었다. 당시한나라당에서는 의원정수를 200명선으로줄여야 한다고의견이제출되었고, 국민신당에서도 200명선 ( 동아일보, 1998/02/02, 4면 ) 으로의축소가주장되었다. 의원정수에대해 200명이상 이라는규정만을두고있는헌법을고려할때, 할수있는한최저의석규모가제안된것이었다. 선거제도의특성상제도의어느한하위범주만개편논의의대상이되기는힘들다. 한구성요소의변화가원하는결과를낳기위해서는연관된다른제도의변화를함께고려할수밖에없고, 논의주체의측면에서도제도개편논의의장이열리면모든이해관계들이투입되기때문이다. 1998년봄부터시작된선거제도개편논의는또선거구제개편논의와맞물렸다. 당시까지도집권당인국민회의는소선거구제와정당명부제도입이당론이었던반면, 한나라당과자유민주연합, 국민신당은중대선거구제를선호하는것으로인식되었다. 한나라당의이회창당시총재는 1997년대선국면에서중대선거구제로의전환을공식입장으로채택한바있었기때문이다. 하지만논의가전개되면서공식입장뿐아니라선호까지뒤바뀌기시작했다. 2000 년 4월제16대국회의원선거를 1년여앞둔 1999년봄부터본격적인선거제도개편논의가진행되었고, 이과정에서김대중대통령과국민회의는소선거구제 + 정당명부제에서중대선거구제 + 정당명부제로입장이선회했고, 한나라당은중대선거구제에서소선거구제현행제도유지로입장을공식화했다. 1999년 3월, 당시국민회의의정동영대변인은 당의공식입장은소선거구제 + 정당명부비례대표제이지만자민련과의논의에서는중대선거구제에대해개방적으로논의할방침 이라고밝혔다 ( 한국일보, 1999/03/19, 1면 ). 한편같은날한나라당이회 선거구제개편논의의한국적맥락 9
창총재는 우리나라정치현실에서군소정당이나정치결집체가다수출현, 계파보스들이힘을얻는선거구제도는바람직하지않다 며, 대선국면에서와는달리중대선거구제에대해부정적입장을피력했다 ( 세계일보, 1999/03/20, 2면 ). 1999 년 4월과 5월을경과하면서, 청와대와국민회의를통해국민회의와자민련이중대선거구제 + 비례대표정당명부제로근접해가고있다는소식이전해졌다. 반면이시기한나라당은중대선거구제를선호하는의원들과이회창총재등소선거구제유지를선호하는의원들사이의갈등해결을 6월이후로미루고있었다. 1999년 5월시점조사된자료에의하면, 당시한나라당당무위원 59명가운데소선거구제지지자는 22명, 중대선거구지지자는 21명이었다고한다 ( 경향신문, 1999/05/24, 4면 ). 집권연합인국민회의와자민련이선거제도개편안에합의하기위해만든기구인 8인정치개혁특별위원회 의활동은, 중대선거구제 + 정당명부제가 협상용 제안이나서로다른제도선호들이협상되고타협된결과가아니라, 기존선호가변화된결과임을확인시켜준다. 1999년 3월 24일양당은선거제도개편안협상을위해각정당에서 4인씩을내보내 8인정치개혁특별위원회 를결성했다. 1997년대통령선거이전인 1995년부터소위 DJP 공조를추진하는과정에서, 그합의된내용가운데하나가 중대선거구제에대한반대 였다. 당시집권당인신한국당에서등장했던중대선거구제에대한반대가양당의합의내용이었던것이다. 1999년의 8인특위 는 1995년의합의에기초해소선거구제 + 비례대표정당명부제를골자로합의안을만들어 5월 6일발표했다. 하지만국민회의와자민련의 지도부 는 5월 7일발표된합의안의재협의를발표했고, 11일부터재협의에들어간양당은 5월 25일중대선거구제 + 정당명부비례대표제를합의안으로채택했다 ( 서울신문, 1999/05 /26, 3면 ). 그리고같은해 6월 18일, 김대중대통령은충남지역언론과의회견에서 지역주의정당구조를전국정당화하기위해중선거구제를채택하기로했다 고밝히며, 입장변화를공식확인했다 ( 한국일보, 1999/ 06/19, 1면 ). 한편 1999년 6월 1일, 한나라당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소선거구제유지와정당명부제도입및비례의석수확대반대 를기본으로한한나라당의입장을제출했다 ( 세계일보, 1999/06/02, 5면 ). 1999년 8월과 9월에걸쳐김대중대통령은공개적으로선거제도개편을촉구했지 10 정치선진화를위한선거제도개선방안
만, 2000년제16대국회의원선거를두달여앞둔 2월 8일, 국회를통과한선거법개정안에는중대선거구제도, 권역별비례대표제도, 1인2표제도포함되어있지않았다. 2001년집권당은다시중대선거구제를포함한선거제도개편을추진하지만결실을보지못했고, 집권당의선거제도개편안은 2002년대선에서재집권에성공하면서다음정부로이어졌다. (4) 노무현정부에서의경험 아직김대중정부시기였던 2001년 7월 19일, 헌법재판소는 2000년제16대국회의원선거가끝나고제기된헌법소원에대해위헌판결을내렸다. 1인 1표제에근거한전국구의석배분이위헌이라는것이었다. 이결정은 2004년제17대국회의원선거전까지위헌판결을받은선거법을개정해야한다는것을의미했다. 노무현정부는대통령과집권당의의지와무관하게선거법개정의과제를안고출발한것이다. 물론노무현전대통령은집권이전부터선거제도개편의의지가강했고, 선호역시일관되고분명했다. 민주당후보경선당시부터선거구제개편과정계개편을연관시켰고 ( 국민일보, 2002/03/27, 3면 ), 선거구제를개편해야할정책목표는그의정책우선순위가운데가장상위를차지하고있었다. 민주당의후보가되면서밝힌 10대국가경영비전과 30대정책방향가운데, 정치분야의정책목표는 지역통합과권력분점 이었고이를구체화시키는선거제도개편방향으로는중대선거구제 + 정당명부비례대표제 +1인2 표제의조합이제시되었다 ( 국민일보, 2002/04/18, 5면 ). 집권직후부터대선당시의공약을지키려는노무현전대통령의시도는집요하고일관되었다. 2003년 4월과 10월시정연설에서선거제도개편을촉구했던것을비롯해, 2003년 12월에는국회에직접서한을보내선거제도개편을요구하기도했다 ( 국민일보, 2003/12/18, 4면 ). 2003 년 11월에조사된한자료에따르면, 당시 16대국회의원 139명을조사한결과 52.5% 인 73명이중대선거구제개편에찬성입장을밝힌것으로확인되었다 ( 서울신문, 2003/11/10, 3면 ). 하지만 16대국회다수당이었던한나라당은소선거구제유지입장을고수했다. 17대국회의원선거를앞두고개정된선거법에서는, 2001년헌법재판소로부터위 선거구제개편논의의한국적맥락 11
헌판결을받은 1인 1표제전국구제를폐지하는대신, 1인 2표제와소선거구- 전국단위정당명부비례대표제가채택되었다. 17대국회의원선거를통해원내다수당이된집권당열린우리당은선거직후곧바로중대선거구제개편을중심으로한선거제도개편을다시언급했다 ( 한겨레, 2004/08/14, 5면 ). 2005년 2월 25일시정연설을통해노무현전대통령은다시 지역구도타파 를위한선거제도개편을촉구했고, 2005년 7월 28일에는한나라당에 대연정 과함께선거제도개편안을제안했다. 노무현전대통령은 당원동지여러분께드리는글 에서 대연정은... 한나라당이주도하고열린우리당이참여하는대연정... 실질적으로정권교체제안 이며, 지역구도해소가그만한대가를치르고도이뤄야할만큼가치있는일 이고, 한나라당은선거구제개편안을받아들이고영남을기반으로한기득권을포기 해야한다고주장했다 ( 서울신문, 2005/07/29). 김대중정부까지 중대선거구제 는더상위의정치목표를달성하기위한여러하위대안들가운데하나로존재했다. 노태우정부말기 중대선거구제 가제안되었을때는 깨끗한선거 의명분을달성하기위한여러대안들가운데하나로제시되었고, 김영삼정부에서 중대선거구제 는뚜렷한차기대선후보를갖기못한정치세력들이권력분점을위한제도대안들을모색하는과정에서등장한대안들가운데하나였다. 김대중정부까지도선호가정해지긴했지만협상가능한대안들가운데하나였다고볼수있다. 하지만노무현정부에서제출된 중대선거구제 제안은 지역통합 이라는가장상위의정치목표를실현할수있는 1:1의대안의지위를갖게되었다. 지역통합 을실현할여러하위대안들가운데하나라기보다 유일하고절대적인 대안으로자리잡게되었던것이다. 물론 2003년 12월국회에보낸서신에는, 지역통합을위해중대선거구제가가장바람직한대안이지만야당의반대를고려하여소선거구제와권력별비례대표제조합을제안한다. 고밝히기도하였다. 하지만노무현정부전체를관통하여 지역통합 이라는가장상위의정치목표와중대선거구제라는제도대안이등가적가치를가졌다는것은분명하다. 12 정치선진화를위한선거제도개선방안
(5) 이명박정부와선거구제개편논의 이명박정부에서선거제도개편논의가공론화된것은, 2009년 6월 15일제17차라디오연설을통해서였다. 이명박대통령은 지역 이념 권력부패 정쟁의근원적인해결책 이필요하다는견해를피력했다. 이후 근원적해결책 의내용을둘러싼논의들이전개되었다. 6월 19일에는청와대고위관계자의입을빌어 이대통령이최근지역구도타파와관련해내놓은아이디어가운데하나가현재의비례대표의원제방식을개선하는것 이라며 호남에서한나라당의원, 영남에서민주당의원이나올수있는쿼터를두는방안을연구해보라고지시했다 는이야기가공개되었다 ( 문화일보, 2009/06/20, 1면 ). 8월 15일에는광복절경축사를통해 " 현행선거제도로는지역주의를벗어나지못한다." 며 " 국회의원이지역에매몰되지않고의정활동에집중할수있도록선거제도를개편할필요가있다 " 고밝혔다. 그리고한나라당내에서선거제도개편에관한논의가뒤따랐다 ( 세계일보, 2009/08/16). 하지만한나라당내에서는 지역주의를벗어나기위한 선거제도개편이무엇을의미하는지에대해입장이엇갈렸던반면, 민주당은 김대중 노무현전대통령과민주당이지속적으로지역주의해소의중요성을강조하면서그방법으로중 대선거구제등을내놓았던것 이라며 환영한다. 는입장을밝혔다 ( 경향신문, 2009/08/18, 06면 ). 이런가운데 2009년 9월 15일이명박대통령은언론과의인터뷰에서, 제한적개헌 논의와함께 이런선거구제를갖고는동서화합이이뤄질수없다 며 소선거구제플러스중선거구제를같이한다든가권역별비례대표제를한다든가하는것들은검토할필요가있으며이번기회에반드시하는것이중요하다 는입장을밝혔다 ( 한겨레, 2009/09/16, 1면 ). 2010 년 1월 4일신년연설을통해서는 배타적지역주의를완화하고대결정치를극복하기위한선거제도개혁도반드시올해완수해야할과제 라고제안하기도했다 ( 국민일보, 2010/01/05, 03면 ). 다소추상적인선거제도개편에관한언술들이선거구제개편논의와직접연관된계기는 2010년 6월 8일, 대통령직속사회통합위원회에서 지역주의극복을위해선거제도개편방안을공론화하겠다. 고대통령에게보고를한이후부터다. 사회통합위는현행소선거구제가 사표발생으로국민의표심을왜곡하고, 지역주의정치갈등과 선거구제개편논의의한국적맥락 13
지역별일당독점체제를강화하는주요원인이되고있다 며 특정정당의석독점지역에서도다른당의후보당선을가능케해사표발생을최소화하고지역이아닌정책투표를유도해정당지지율에대한표심을최대한반영하는개선책이필요하다 고주장했다. 보완방안으로는 지역구후보투표방식의개방형비례제, 정당특권제한중대선거구제 등을제안하고하반기공론화과정을거치겠다고밝혔다. Ⅲ. 분석 노태우정부말기 수서사건 에대한대국민사과와함께발표된선거구제개편의명분인 돈안드는선거 라는기준은, 김영삼정부를거치면서사라졌다. 김대중-노무현 -이명박정부를관통해현행소선거구제를중대선거구제로개편해야하는명분으로남은것은, 지역주의타파 혹은 지역정당체제의개편 이다. (1) 사회갈등관리의측면에서본중대선거구제개편논의 지역주의 를사회갈등으로본다면, 지역주의 해소혹은완화를위해선거제도개편을추진하는것은선거제도의사회갈등관리기능에주목하는접근이다. Richard Gunther & Anthony Mughan 는, 다수대표제로대표되는갈등의수를줄임으로써관리했던미국과영국, 비례대표제로갈등의수를가능한한많이대표시킴으로써관리했던벨기에와스페인사례를비교한바있다 (Gunther & Mughan, 1993). 선거제도에대한이런접근은권력이사회갈등을 관리 하는전통적인방법가운데하나가선거제도의개편이라는것이다. 더많은사회갈등이선거를통해대표되어의회로진입하게함으로써사회갈등을관리하는접근도있고, 더제한된갈등을받아들여의회내에서경쟁하는사회갈등의수를줄임으로써관리하는접근도있을수있다. 앞서선거제도를비교하는기준으로비례성과안정성을언급한바있다. 정치안정성을측정하는기준으로흔히사용되는것이정당체제를구성하는유효정당의수인데, 한정치체제에 14 정치선진화를위한선거제도개선방안
서정당의수란그사회의갈등의수혹은균열의수를반영한다고인식된다. 정당체제와사회균열의관계에서는정당의수와균열의수가관련이있지만, 다른측면에서선거제도의조작 (maneuvering) 을통해유효정당의수를줄일수도있고늘일수도있다는것이다. 현행 1구1인선거구제가지역패권정당후보만을당선시킴으로써사회적수준의지역갈등을심화시키기때문에, 1구 2인이상을선출하는제도변경으로동반당선을보장하면지역갈등이완화될수있다 는것이, 선거제도를갈등관리기능의관점에서볼때, 역대중대선거구제주장자들의핵심가정이다. 이주장은영남에서호남패권정당후보가, 호남에서영남패권정당후보가당선되도록제도를디자인함으로써사회균열으로서지역갈등의완화효과를기대할수있다고가정한다. 지역정당이지역갈등을대표한다는전제에서출발하여, 균열과정당의 1:1조응관계를제도조작을통해깨뜨림으로써대안을모색하는것이다. 그런데지역정당이지역갈등을의회에서대표한다는전제는한국현실에적합한가정인가? 현재를기준으로, 한나라당이영남의이익을대표하고민주당이호남의이익을대표하여의회내에서갈등을하고영남의이익과호남의이익을조정하는가? 이문제는특정지역구의원이자기지역구의이해를의회에서관철시키기위해노력한다는것과는일반적인행동원리와는다른것이다. 지역구에서선출된모든의원은재선을위해자기지역구의이해관계를우선한다. 는것은, 지역갈등을전제로하지않아도성립되는일반적인가정이다. 하지만집단으로서각정당들이당의정체성수준에서지역의이익을대표하고갈등하는가의문제는다른차원의문제다. 호남지역구출신의원들이더많은정당이영남지역구출신의원들이더많은정당보다호남의지역적이해관계에더민감한것은있을수있다. 하지만원내정치에서영남에기초한이익과호남에기초한이익이표출되고갈등하는의제의비중이, 의회정치를좌우할만큼, 선거제도의조작을통해서갈등을관리해야할만큼중대한비중을차지하고있는가? 현실이그렇다고답하기는어렵다. 이런이유로, 지난 20여년간 지역주의타파 와 중대선거구제 의연결고리를사회적갈등관리의관점에서파악하기는어렵다고판단된다. 선거구제개편논의의한국적맥락 15
(2) 정당의조직기반측면에서본중대선거구제개편논의 다음으로, 중대선거구제 개편주장의주된논거로 지역정당체제의개편 혹은 지역별일당독점체제의해체 를들수있다. 이주장은정당체제내에있는모든정당이 전국적으로고르게조직기반을가진정당 이되어야한다는당위적전제에서출발한다. 이런당위적명분은김대중대통령과소속정당이오랜소선거구제유지입장을중대선거구제로변화시키는근거로제시되었고, 노무현대통령이임기내일관되게중대선거구제를주장하는근거로제시되기도했다. 한나라당이영남의이익을공개적으로표방하거나민주당이호남의이익을표방하기때문에유권자의지지를얻는것이아니라면, 즉사회갈등을정치적으로대표해서지역패권정당이된것이아니라면, 이주장이핵심적으로해결하려는과제는엘리트충원의문제가된다. 매선거때가되면각패권지역의 좋은 정치엘리트들이지역패권정당의공천을얻으려하기때문에후보공천을하기어렵고, 이렇게공천된후보는높은지지를얻기어렵다. 따라서동반당선이가능한선거제도조작을통해당선자를확보하여전국적인정당조직을갖추겠다는것이다. 그런데, 국가간비교의관점에서이주장은한국정치의정치환경적특성을전제로하지않으면이해되기어렵다. 정당체제내모든정당들이고르게전국조직을발전시키고, 선거때마다전국의모든지역구에서비슷한경쟁을벌이는이상적정당체제는현실에서존재하지않기때문이다. 한국정당정치가오랫동안모델로삼아왔던미국의양당정치에서도남부와북부, 서부에따라정당조직의판세가다르고경쟁의강도는차이가있으며, 정당지지의변화는 30년이상에걸쳐서서히이루어져왔다 (Andrew Gelman 외, 2008). 유럽국가들에서는지역별로조직기반이다르고선거에서지지가집중되어있는정당들이오히려일반적이다. 독일의현집권당인기민 기사연합은두정당의지역기반이다름에도오래연합조직으로존재해왔다. 한국적맥락에서보더라도, 1987년대선과 1988년총선이후지역별정당조직의편중이문제로지적되기는했으나, 선거제도개편을통해서라도 해결 되어야하는문제로부상한것은김영삼정부후반기부터였다. 신한국당의대통령후보가되었던이회창대표가취임한이후제출된 [ 고비용정치구조개선검토안 ] 은, 정치비용을주해결과제로내걸었음에도불구하고선거구제개편안을 사회통합 의관점에서접근할 16 정치선진화를위한선거제도개선방안
것을권고하고있다. 이는그명분이정치비용이든사회통합이든당시신한국당의입장에서필요한정책이었음을말해준다. 하지만 전국정당화 라는과제와선거구제개편의연계가분명히설정된것은김대중정부에서부터였다. 집권후 소선거구제 + 정당명부제 의오랜입장을변경시켜야할만큼절실한어떤필요가있었던것이다. 그현실적필요는노태우정부에서변화된정당체제의성격과집권에필요한득표수로부터유추할수있다. 1988년선거로만들어진 4당체제는의회정치를위해서도, 선거정치를위해서도정당간의연합을필요로했다. 실재로 13대국회의회정치에서는다양한형태의정당간정책연합이시도되었다. 하지만 1990년 3당합당 으로정당체제는양당제의성격을갖게되었고, 인위적으로형성된양당제조직기반을토대로김영삼정부는집권을할수있었다. 김영삼정부집권후반기에는자민련의창설로 1995년 DJP연합이시도되었고 1997년의집권에이르렀다. 하지만김대중정부하에서더이상의인위적인조직기반재배열이어렵게된조건에서, 집권을위한필요득표수의문제는중요한변수로고려될수밖에없었을것이다. 양당경쟁의대선구도에서영남이나호남의유권자규모는, 특정후보의당선에충분조건이되지는못했지만낙선시키기에는충분한규모였기때문이다. 국회의원선거를통해지역엘리트를충원하고정당의지역기반을갖추는문제가, 집권혹은재집권의핵심문제로부상할수밖에없는조건이었던것이다. 만약한국의유권자규모가훨씬크고전통적으로형성된지리적유권자집단의크기가현재와같지않았다면, 혹은대통령제와소선거구제가결합되어양당제로의유인이강력한제도체제가아니었다면, 영-호남갈등의문제는지난한국정치의역사에서처럼크게부각되지는않았을것이다. 이런점에서영-호남지역갈등의문제로부터직접선거제도개편의필요성을주장하는것은, 집권을목적으로하는정당조직과재선을목적으로하는현직자의이해관계를포장하기위해상당부분과장되었다고평가할수있다. (3) 권력구조개편의대체제로서중대선거구제개편논의 지난시기선거구제개편논의의중요한다른특징은, 논의의출발은선거제도였으 선거구제개편논의의한국적맥락 17
나종점은권력구조개편이었다는점이다. 노태우정부말기중대선거구제논의는내각제논의와결합되었고, 김영삼정부시기민자당에서제기되었던논의도내각제와연계되었으며, 노무현정부에서의논의는 분권형대통령제 와결합되었다. 현재이명박정부에서등장하는논의지형도이와유사한맥락을갖는다. 권력분점이가능한권력구조개편과중대선거구제논의가짝을이루었던것이다. 단임제대통령과함께했던정치세력, 당장집권가능성이낮은정치세력은권력분점이가능한제도대안을선호하게된다. 그리고재선이불안정한현직의원이나신규진입을원하는정치엘리트들은 보다쉬운 제도대안을선호할수있다. 한선거구에서 2명이상이선출되는선거구제는후보자의입장에서 2-3등안에만들면선출이가능하다는인식을갖게한다. 권력분점에대한선호와 보다쉬운 선거제도에대한선호가상승작용을일으키게되는것이다. 여기에더하여, 개헌 이현실적으로어렵다고판단될때중대선거구제는대체제기능을할수있다. 정부권력을분점할수는없지만의회진입을가능하게함으로써의회권력을분점할수있다는정치적기대를말한다. 이런기대는지금까지중대선거구제논의가정당라인이아니라각정당내부정치집단들의조건에따라교차해서찬 반이갈렸던경험으로부터확인할수있다. (4) 협소한제도대안과중대선거구제 정당과정치엘리트의현실적필요로부터선거제도개편을설명한다하더라도, 여전히남는것은 왜하필중대선거구제인가 의문제다. 집권이나권력분점, 재선이라는정치인과정치집단의이해관계를충족시킬수있는다른대안들은분명존재한다. 당장최근사회통합위원회에서도복수의대안이제시되었고, 이전의선거구제개편논의에서도복수의대안이제시된적은많았다. 하지만함께제시된다른대안들에대한논의는상대적으로빈약했던반면, 중대선거구제는그빈도와필요근거의측면에서가장많은주목을받았다. 그이유는무엇일까? 코스타리카의선거제도개편을연구했던 Lehoucq(1995) 은, 선거제도에대한사회학적설명 ( 사회갈등의반영등 ) 은설명력이약하며, 실재정책결정을만들어내는것은어떤합리적선택의결과도아니고 정치인들이이전에가졌던경험적인식 18 정치선진화를위한선거제도개선방안
(perception) 과낡은생각들 (historical baggages) 이라는결론에이른다 (Lehoucq, 1995, 19). 그의주장이현실에존재하는모든선거제도개편을설명해줄수는없겠지만, 한국적맥락에서는흥미로운시사점을줄수있다. 중대선거구제가제도비교의관점에서상대적으로단점이많은제도이며그런이유로기존에채택했던국가들이대부분제도를폐기했고그결과세계에채택국가가단 2개만남아있다는점, 제도에대한가장일반적인기대효과인 동반당선 은현실적으로구현되기힘들며제도를채택했던과거일본의사례나당장중선거구제를택한지방선거의결과를보더라도이것이입증된다는점등이그동안학계를통해지속적으로확인되어왔지만, 여전히가장 유력 한대안으로논의되고있는현실은 Lehoucq 의결론을떠올리게만드는것이다. 민주주의체제는아니었지만 2인선거구제의경험이있었고지리적으로가까운일본이오랫동안채택했던제도라는 낡은생각들 이외에, 다른대안들에비해중대선거구제가더유력한대안으로논의되는맥락을설명하기란참으로어렵다. 예컨대, 권역별비례대표제나오픈리스트정당명부비례대표제등의다른대안이회피되는이유는경험하지않은제도이기때문에통제불가능한부수효과들에대한두려움때문이아닌가짐작된다. 반면오래된경험적인식이확인된현실보다더중시되는것은, 불안정한정당정치환경에서생존해야하는현실적필요가만들어내는 원망적기대 때문이아닌가한다. 선거구제개편논의의한국적맥락 19
참고문헌 Gelman, Andrew, et al., 2008, Red State, Blue State, Rich State, Poor State: Why Americans Vote the Way They Do, Princeton University Press. Gunther & Mughan, 1993, "Political Institutions and Cleavage Management", Do Institutions Matter?: Government Capabilities in the United States and Abroad, The Brookings Institution, Washington, D. C. Lehoucq, Fabrice. 1995, Institutional Change and Political Conflict: Evaluating Alternative Explanations of Electoral Reform in Costa Rica, Electoral Studies, Vol. 14, No. 1 (March 1995): 23-45. Panebianco, Angelo, trans by Marc Silver, 1988, Political Parties: organization and power, Cambridge University Press. Remmer, KL., 2008, The Politics of Institutional Change: Electoral Reform in Latin America, 1978 2002, Party Politics, January 2008 14: 5-30. Wolinetz, Steven B., 2002, "Beyond the Catch-all Party: Approaches to the Study of Parties and Party Organization in Contemporary Democracies", Richard Gunther, José Ramón Montero, and Juan J. Linz(eds), Political Parties: Old Concepts and New Challenges, Oxford University Press. 20 정치선진화를위한선거제도개선방안
일본의소선거구비례대표병립제 - 제도적특징과한국에주는시사점 - 하세헌 ( 경북대 ) Ⅰ. 들어가는말 일본의중의원의원을뽑는선거제도는 1925년이래대부분의기간동안중선거구제로실시되어왔다 1). 중선거구제는한선거구에서 2-5명을선출하는제도로서, 자민당과같은단독으로정권을장악하려고하는대정당은한선거구에복수의후보를출마시키지않으면안되었다. 같은선거구에동일정당출신의복수후보존재는, 제2장에서설명하는바와같이정당중심의선거를불가능하게하고후보자간선거구이익유도경쟁을유발하였다. 이는정치부패를가져오게하는결정적인요인이되었고, 이를타개하기위해 90년대에들어일본에서는정치개혁이주요한이슈로등장하였다. 결국 1994년일련의정치개혁관련법과함께공직선거법이개정되어, 중선거거구제에대신해서소선거구와비례대표제를결합하는제도가도입되게되었다. 이제도하에서최초의선거는 1996년 10월에실시되었고, 지금까지 5번의실시경험을가지고있다. 2009년실시된총선에서는 55년체제 성립이후강고하게유지되어왔던자민당일당지배체제가무너지고정권이교체되는일도벌어졌다 2). 이제도도입의또 1) 1925년이후중선거구제이외의유일한예외는전후최초로실시된 1946년의총선이다. 이선거에서는선거구당 2 14명을선출하는대선거구제한연기제로실시되었다 ( 田中善一郞 2005, 9-11). 2) 자민당분열소동가운데치러진 1993년 7월총선거에서자민당은압도적인제1당의지위는유지하였으나, 9개정파의연립정부구성으로인해야당으로전락하였다. 하지만 9개월만에자민당은정권을회복하고, 2009년 9월까지정권을담당하였다. 따라서이 9개월을제외한다면, 자민당은 1955년이래 일본의소선거구비례대표병립제 23
다른목적의하나인정권교체가가능한선거제도의형성이라는목표도달성되었다고할수있다. 이런점에비춰봤을때, 제도도입당시의많은비판과중선거구제로의회기요구를벗어나, 이제도는중의원의원선출의룰로서일본정치에안착을했다고도할수있을것이다. 이하에서는일본의중의원의원선출제도내용에대해서알아보고, 다음으로일본제도의특징적인점들을지적한다. 그리고이러한특징들이한국의선거제도개정과정에서주는함의는무엇인가도살펴본다. Ⅱ. 일본의소선거구비례대표병립제 1994년에개정된공직선거법하에서중의원의원정수는 500석 (2000년부터는정수 480석으로감축 ) 이었다. 그가운데 300석은소선거구제로선출하고, 나머지 200석 (2000년부터 180석으로감축 ) 은비례대표제로선출하였다 3). 유권자는소선거구에서는후보자를, 비례대표제에서는정당을선택하는 1인 2표를행사하였다. 소선거구선거와비례대표선거는각각별개의의석결정방식에의해독립적으로실시되었고, 선거구의구조도독립되어있었기때문에, 이를일본에서는병립제 ( 竝立制 ) 라고부르고 줄곧정권정당의위치에있었다고할수있을것이다. 3) 본논문에서는일본의국회의원선거제도가운데서도중의원의원선거제도에대해서만살펴본다. 참의원의원선거제도에대해서간략히언급하면다음과같다. 1947년최초로제정된참의원선거제도는지방선출 150석과전국선출 100석, 합계 250석으로구성되었다. 임기는 6년으로서 3년마다반수씩개선 ( 改選 ) 하였다. 지방선출의원의선거구는도도부현을단위로해서각선거구마다 1-4명을선출하였다. 전국선출의원은전국을하나의지역구로해서득표순에따라선출하였다. 1982년에는이전국구제에대신해서비례대표제가도입되었다. 이것은각당이미리순위를정한명부를제출하고, 선거에서실제각당이획득한득표수에따라의석수를배분하는소위구속명부식비례대표제였다. 그런데 2000년 11월비례대표선출방식이비구속명부식으로변경되었다. 즉유권자는정당명이나제시된명부를바탕으로후보자명을기입하면, 우선정당별의석수를결정하고, 정당이획득한의석수내에서개인별득표순에따라당선자를결정하는제도였다. 현재의원정수는지역구 146명, 비례구 96명, 합계 242명이다. 3년마다치러지는참의원통상선거에서는지역구에서 73명, 비례구에서 48명, 합계 121명이선출된다 ( 阿部齊외 1996, 116; 하세헌 2002, 62) 24 정치선진화를위한선거제도개선방안
있다. 이제도는적은득표율의변화가큰의석수변화를가져오게하는소선거구에서는대정당에게유리하도록하는한편, 11개블록의비례대표제를통해서는소정당에게도중의원에의석을가질수있도록하였다. 이런의미에서일본의소선거구비례대표병립제는대정당과중소정당사이의의석배분의밸런스를유지하게하는데유리한제도였다. 비례대표선거는전국을 11개로나눠블록단위의비례대표제를채용했다. 각블록별로정당은순위가기재된후보자명부를선거관리위원회에제출하고, 유권자는정당명으로투표하였다 ( 구속명부식비례대표제 ). 각블록에는 6-29명의의석수가배분되었다 4) (< 표1> 참조 ). 소선거구와비례대표선거에각각입후보하기위해서는일정한요건을갖추지않으면안된다. 먼저정당이소선거구에후보자를공천할수있기위해서는소속국회의원이 5명이상이거나, 직전국정선거 ( 중의원총선거또는참의원통상선거 ) 에서 1% 이상의득표율을올려야만했다. 따라서새롭게중의원소선거구선거에참여하기를바라는정당은당면소선거구선거이외의선거에서실적을쌓아놓지않으면안되었다. 비례대표선거에서정당이명부입후보를하기위해서도각정당은국회의원 5명이상을가지거나, 직전국정선거에서 2% 이상득표, 또는비례선거각블록정원의 20% 이상후보자를낼수있어야만했다 ( 안순철 2000, 233-234). 소선거구선거에서당선되기위해서는선거구유효투표의 1/6 이상의득표를하여야만했다 ( 법정득표수 ). 반면비례대표선거에서는이러한규정을두고있지않다 ( 川人貞史외 2002, 114). 한편소선거구에입후보하는후보자는그선거구가포함되어있는블록의비례대표선거에도중복입후보할수있다. 중복입후보하는후보자는비록소선거구에서떨어져도비례대표의순위에따라당선될수있는가능성이주어진다. 소선거구에서당 4) 선거구별 1 표의비중을동일하게하기위해매 10 년마다실시되는국세조사 ( 國勢調査 ) 의결과에입각해서, 10 년을단위로해서소선거구는선거구획정을새롭게실시하고, 비례대표구에서는정수조정을행한다. 일본의소선거구비례대표병립제 25
선이되면비례대표명부로부터는제외된다. 또한중복입후보자에대해서는비례대표후보자명부의순위를동일하게할수있다. 중복입후보자가소선거구에서낙선했을경우에는소선거구당선자의득표에대한낙선자의득표의비율로당선자를결정한다 5). 이를 석패율 ( 惜敗率 ) 이라고하는데, 석패율이높은순으로해당하는블록의비례대표정당명부의동일순위후보자들가운데당선자를결정해간다. 6) < 표 1> 일본중의원비례대표블록별의석수 블록 소선거구의석수 비례대표의석수 블록별총의석수 北海道 ( 홋카이도 ) 12 8 20 東北 ( 도호쿠 ) 25 14 39 北關東 ( 키타칸토 ) 32 20 52 東京 ( 도쿄 ) 25 17 42 南關東 ( 미나미칸토 ) 34 22 56 北陸信越 ( 호쿠리쿠신에쯔 ) 20 11 31 東海 ( 도카이 ) 33 21 54 近畿 ( 긴키 ) 48 29 77 中國 ( 츄코쿠 ) 20 11 31 四國 ( 시코쿠 ) 13 6 19 九州 ( 큐슈 ) 38 21 59 합계 300 180 480 주 ) 각의석수는 2009년 8월 30일에실시된제45회총선거의경우 일본에서중의원의원선거제도로서소선거구비례대표병립제를도입한목적은기존의중선거구제가가지고있던폐해를시정하고, 정당본위 정책본위의선거를실현하기위함이었다 ( 梅津實외 1998, 244; 平野浩 2003, 199-203; 이갑윤 2006, 49-50). 한선거구에서 3-5명을선출하는중선거구제하에서는자민당과같이단독으로정권을획득하려고하는정당은동일선거구에복수의후보자를출마시키지않으면안되었다. 이러한경쟁조건하에서는후보자들은다른정당출신의후보자와는물론같은 5) 석패율계산방식은다음과같다. 석패율 = 낙선후보득표수 / 당선후보득표수 100 6) 석패율이동일한경우에는해당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이추첨으로당선순위를결정한다. 26 정치선진화를위한선거제도개선방안
정당내의후보자와도치열한경쟁을벌여야했다. 동일선거구에서동일정당후보자간대결이라는상황은정당의정책에기반을두는선거전을원천적으로불가능하게했다 ( 三宅一郞 1989, 村松岐夫外 1992, 124-125; 阿部齊외 1992 107-110; Ramseyer and Rosenbluth 1993, 20-28). 따라서후보자들은대개당의공식조직과는별개로후보자자신의후원회를구성하고, 선거구서비스활동에치중하는전략을펴왔다. 그결과선거과정에막대한비용이들게되고, 이것이파벌형성과정치부패를가져오게하는주요한요인이되었다는평가이다. 그러나정당본위의선거실현이라는점으로부터이제도를평가할때, 그목적을충분히달성할있다고는보여지지않는다. 무엇보다소선거구비례대표병립제의도입으로인해유권자는소선거구에서투표하는후보자의소속정당과비례구에서선택할정당을달리하는소위분리투표 (split-ticker voting) 가가능해졌기때문이다. 2009년선거에서는유권자의약 10-15% 가소선거구와비례구에서각기다른정당에게투표하는분할투표를한것으로추정되고있다 ( 朝日新聞 2009.9.1). 더욱이중복입후보자의순위결정에석패율을도입한것은비례대표에서의부활당선을위해소선거구에서의개인표획득에박차를가하게하는요인이되었다 ( 梅津實외 1998, 244-245). Ⅲ. 일본선거제도의특징 (1) 중복입후보제 일본중의원선거제도의가장큰특징중의하나는소선거구에입후보한자가비례대표에도입후보할수있는중복입후보제를채택하고있다는점이다. 중복입후보한자는소선거구에서낙선을해도비례대표선거구에서의순위에따라부활당선할수있는여지를남겨놓고있다. 지금까지의실시경험에비춰볼때, 중복입후보제에대해서는긍정론과부정론의다양한평가가나오고있다. 이에대해살펴보기전에먼저 1996년이래의총선거를대상으로중복입후보의실태에대해서살펴보기로한다. 일본의소선거구비례대표병립제 27
< 표2> 와 < 표3> 은최근에실시된 2005년총선거와 2009년총선거에서각정당별로중복입후보한비율과부활당선한비율을제시한것이다. 2005년과 2009년총선모두당의방침에의해중복입후보를일체허용하고있지않는공명당을제외하고는 7), 모든정당들이소선거구입후보자를대부분비례대표에도중복입후보시키고있다. 2005년선거에서자민당은소선거구입후보자 290명가운데 96.6% 에해당하는 280 명을비례대표에중복입후보시키고있으며, 민주당의경우는 289명가운데 98.6% 인 285명이중중복입후하고있다. 군소정당들가운데는공산당만이비교적중복입후보비율이낮은반면, 다른정당들은대부분의소선거구입후보자를비례대표에중복입후보시키고있다. 2009년선거도 2005년과동일한경향을보여주고있다. 자민당은 93.1%, 민주당은 98.9% 나중복입후보하고있으며, 사민당과국민신당, 신당대지는 100% 중복입후보하고있다. 전체소선거구입후보자수에차지하는중복입후보자수를보면, 2005년총선의경우는 919명가운데 69.1% 인 636명이중복입후보하고있다. 2009년총선은 762명가운데 83.9% 인 639명이중복입후보하고있다. < 표 2> 2005 년총선거의중복입후보비율과부활당선자비율 소선거구입후보자수 비례대표중복입후보자수 중복입후보비율 (%) 비례대표당선자수 부활당선자수 부활당선비율 (%) 자민당 290 280 96.6 77 48 62.3 민주당 289 285 98.6 61 59 96.7 공명당 9 0 0 23 0 0 공산당 275 22 8.0 9 4 44.4 사민당 38 36 94.7 6 4 66.7 국민신당 10 7 70.0 2 1 50.0 신당일본 6 6 100.0 1 1 100.0 신당大地 2 0 0 1 0 0 합계 919 636 69.2 180 117 65.0 7) 1996 년신제도에의해처음으로총선거가실시된이래공명당은 5 번의선거모두에서중복입후보를허용하지않고있다. 28 정치선진화를위한선거제도개선방안
< 표 3> 2009 년총선거의중복입후보비율과부활당선자비율 소선거구입후보자수 비례대표중복후보자수 중복후보비율 (%) 비례대표당선자수 부활당선자수 부활당선비율 (%) 자민당 289 269 93.1 55 46 78.2 민주당 271 268 98.9 87 43 49.4 공명당 8 0 0 21 0 0 공산당 152 60 39.5 9 3 33.3 사민당 31 31 100.0 4 3 75.0 みんな당 14 13 92.9 3 2 66.7 국민신당 9 9 100.0 신당일본 2 2 100.0 신당大地 1 0 0 합계 762 639 83.9 180 97 53.9 < 표4> 총선거별중복입후보비율 1996년 2000년 2003년 2005년 2009년 소선거구후보자수 1,261 1,119 1,026 919 762 중복입후보자수 566 699 612 636 639 중복입후보비율 (%) 44.9 62.5 59.6 69.2 83.9 < 표5> 총선거별비례대표총의석수에대한부활당선자비율 1996년 2000년 2003년 2005년 2009년 비례대표총의석수 200 180 180 180 180 부활당선자수 117 97 부활당선비율 (%) 42.0 44.0 67.0 65.0 53.9 < 표4> 에서 1996년이래실시된 5번의총선거에서전체소선거구입후보자수에차지하는중복입후보비율을보면, 총선거가거듭될때마다그비율이증가하고있는것을볼수있다. 1996년과 2009년을비교할때, 중복입후보비율은거의 2배나증가하고있다. < 표2> 와 < 표3> 을통해각정당별로비례대표당선자가운데소선거구에서낙선 일본의소선거구비례대표병립제 29
한후보가부활당선한비율을보기로한다. 2005년총선에서자민당은 62.3% 가부활당선자이며, 민주당은무려 96.7% 가부활당선자이다. 2009년총선에서는자민당이 78.2%, 민주당이 49.4% 를각각기록하고있다. 군소정당들의경우에도부활당선자가대략 50% 전후를차지하고있다. < 표5> 로부터지난 5번의총선에서전체비례대표당선자가운데소선거구에서낙선한후보가비례대표선거에서부활당선한추이를보면다음과같다. 2003년총선의경우가장높은 67% 를기록하고있고, 그다음이 2005년총선으로 65.0% 였다. 그외는 40-50% 대에위치하고있다. 이로부터볼때, 매선거마다비례대표당선자의반정도는소선거구출마자임을알수있다. 중복입후보제실시에대한위와같은실태에입각해볼때, 중복입후보제에는어떠한문제점과의의가있는가? 먼저중복입후보제에대해제기되는문제점부터살펴보기로한다. 무엇보다일단소선거구에서유권자들의심판을통해낙선하였음에도불구하고, 비례대표제를통해부활당선되는것은유권자들의후보자를떨어뜨릴수있는권리를박탈하는것이라는비판이있다. 2005년총선거에서는소선거구에서낙선한후보가운데 117명이나비례대표제에서구제되었으며, 2009년에는 97명이부활당선되었다. 유권자로부터아무리불신을받고있고, 자질이떨어지는후보자라고하더라도일정규모이상이되는정당의비례대표명부의상위순번에만오르게되면, 이후보의당선은기정사실화된것이나마찬가지이다. 이런점에서소선거구에서의투표는형식적인것이되고, 따라서유권자의투표효능감은매우저하될수밖에없다. 석패율의당선라인에정당간, 지역별로매우심한편차를보이는점도문제점으로지적할수있다. < 표6> 은 2009년총선에서석패율이가장높은낙선자와석패율이가장낮은당선자를각각제시한것이다. 동경 11구의일본신당有田芳生후보는 97.0% 의석패율로도낙선한반면, 사이타마 8구의공산당塩川哲也후보는 21.7% 의석패율로도당선되었다. 양자의석패율차이는 75.3% 나된다. 소선거구선거에서는당선자에비해훨씬낮은표밖에얻지못한후보가비례대표의명부순위에따라서는훨씬높은비율을얻은후보자를제치고당선할수있는것이다. 석패율당선라인에편차가나고있는점은자민당과민주당의 11개블록별석패율당선라인을나타내고 30 정치선진화를위한선거제도개선방안
있는 < 표7> 로부터도확인할수있다. 이표에의하면, 같은블록내에서의정당간은물론, 같은정당내에서도지역별로석패율의당선라인에매우심한차이가나고있음을볼수있다. 또한같은소선거구에서득표가적은하위낙선자가상위낙선자를제치고당선하는소위 추월당선 현상도발생하였다. 2009년총선거의경우소선거구선거에서는 3위를하였지만, 비례대표선거에중복입후보함으로써 2위후보를제치고당선된것이 3개선거구에서일어났다. < 표8> 에서보는것처럼동경 15선거구에서중복입후보로당선된柿澤俊子후보는 2위후보에비해득표수가반에도미치지못하였다. 이와같은추월당선이다수발생할때, 유권자의선택의의미를상실케함으로써선거에대한불신을조장할수있다 ( 小林良彰 1997, 236). < 표6> 2009 년총선거의석패율이높은낙선자와석패율이낮은당선자 석패율이높은낙선자 소선거구 소속 이름 석패율 (%) 사이타마 8구 일본신당 有田芳生 97.0 히로시마 5구 자민당 寺田念 93.8 야마구치 2구 자민당 山本繁太郞 90.1 후쿠오카 9구 자민당 三原朝彦 89.4 아키타 3구 자민당 御法川信英 89.0 석패율이낮은당선자 소선거구 소속 이름 석패율 (%) 사이타마 8구 공산당 塩川哲也 21.7 후쿠시마 3구 자민당 吉野正芳 도쿄 15구 みんな당 未途新 36.9 카나가와 12구 사민당 阿部知子 43.0 후쿠오카 8구 민주당 山本剛正 58.3 일본의소선거구비례대표병립제 31
< 표7> 2009 년총선거석패율당락라인 (%) 권역 자민당 민주당 北海道 82.7 11.1 東北 98.5 11.1 北關東 78.1 11.1 東京 89.9 11.1 南關東 76.5 11.1 北陸信越 90.7 11.1 東海 83 11.1 近畿 76.6 11.1 中國 94.9 65.8 四國 80.2 89.7 九州 92.0 11.1 < 표8> 추월당선상황 소선거구 순위 당락 이름 득표수 표차이 카나가와 12구 2위낙선櫻井郁三 69,524 3위당선阿部知子 47,538 21,986 도쿄 15구 2위낙선木村勉 80,054 3위당선柿澤俊子 38,808 41,246 오카야마 3구 2위낙선西村啓聰 54,595 3위당선阿部俊子 53,626 969 중복입후보제가현역의원들의기득권보장에기여하고있는점도문제점으로들수있다. 2009년총선에서소선거구에출마한자민당현역의원 249명가운데 231명이비례대표선거에도중복출마하였다. 현역의원의중복입후보비율은 92.8% 에이른다. < 표9> 에제시해놓은것처럼중복입후보하지않고소선거구에만출마한현직의원들은모두당선회수가높거나주요한당직 정부직을경험하여소선거구에서의기반이매우탄탄한후보들이었다. 자민당전체중복입후보자 269명가운데현역의원이차지하는비율도 85.9% 나되었다. 반면신인후보및전직의원은 14.1% 에게만중복입후보의기회가주어졌다. 2009년총선거에서민주당현역의원들의중복입후보비율은자민당의그것을훨씬능가한다. 107명의현직후보자가운데 3명을제외한 104명이중복입후보하였다. 32 정치선진화를위한선거제도개선방안
그비율은 97.2% 에달하고있다. < 표10> 에서볼수있는것처럼중복입후보하지않은 3명은전현직당대표이거나, 다나카전수상의딸로서국민적인기가매우높은사람으로낙선의우려가거의없는후보들이었다. 이처럼중복입후보의기회가현역의원들에게압도적으로유리하게주어짐으로써현역입후보자들은재선에보다유리한입장에서게될수있었다. 반면신인의등용기회는그만큼좁아질수밖에없었다. 중복입후보제하에서부활당선자의존재는소선거구임에도불구하고한선거구에복수의당선자를배출시키고있다. 2009년총선거에서는한선거구에 2명이상당선자를낸곳이 91곳에이르렀다. 전체 300개선거구가운데 30.3% 에이른다. 심지어 3 개선거구에서는각각 3명의당선자를배출하였다 8) (< 표11> 참조 ). 한선거구에복수의후보가당선되는것은선거구간에한표의격차를심화시키는요인이되고있다 ( 강태훈 2003, 20-21). 2명의당선자를내는선거구의유권자 1표는, 1명밖에당선시키지않는보통의선거구의그것에비해, 평균 2배의가치를가지게되는것이다. 일본의경우소선거구간 1표의격차는본래부터심각한상황에있는데 9), 중복입후보제를도입함으로써이를더욱심화시키고있다. 이외에도중복입후보제에의해당선된의원들이 2류의원 으로취급되는문제점을지적할수있다. 신제도가도입된이후소선거구에서정상적으로당선된의원들은금메달, 비례선거구의원은은메달, 부활당선된의원은동메달이라고하는서열의식을조장하는풍조가생겨났다 ( 福岡政行 1997, 11; 韓國日本學會 1998. 113-114). 실제이들부활당선된의원들은의정활동과정에서눈에보이지않는제약을받고있으며, 당직 국회직 정부직등각종보직의임명에있어서도상당한차별을받고있다 10). 8) 당선자 3명을배출한선거구는이바라기 7구, 사이타마 8구, 교토 1구이다. 이들각선거구에서는모두 4명씩입후보하여 3명이당선을하였다. 9) 2009년총선거에서최소선거구대비최대선거구의비는 1.89대 1이었다. 10) 2009년 9월총선거직후에출범한민주당하토야마내각의구성에있어서는소선거구및비례대표당선자는포함되었지만, 부활당선자는전혀기용되지않았다 ( 朝日新聞 2009.9.17). 일본의소선거구비례대표병립제 33
< 표9> 2009 년총선에출마한자민당현역의원가운데중복입후보하지않은후보 소속 이름 당선회수 경력 도쿄 2구 深谷隆司 9 전통산상 도쿄 16구 島村宜伸 9 전농림수산상 군마 1구 尾身幸次 8 전재무상 군마 2구 笹川堯 7 당총무회장 군마 3구 谷津義男 7 전농림수산상 군마 4구 福田康夫 6 전수상 사이타마 7구 中野淸 4 중의원내각위원장 시즈오카 3구 柳澤伯夫 8 전후생노동상 아이치 9구 海部俊樹 16 전수상 아이치 12구 杉浦正健 6 전법무상 미에 5구 三ツ矢憲生 2 당미에현회장 오사카 18구 中山太郞 7 전외상 효고 4구 井上喜一 7 전방재담당상 카가와 3구 大野功統 7 전방위청장관 후쿠오카 7구 古賀誠 9 전간사장 후쿠오카 8구 麻生太郞 9 전수상 사가 3구 保利耕輔 10 당정조회장 쿠마모토 2구 林田虎 4 내각부부대신 주 ) 경력은 2009 년 8 월 30 일의총선거당시를기준으로제시하였다. < 표 10> 도동일하다. < 표10> 2009 년총선에출마한민주당현역의원가운데중복입후보하지않은후보 소속 이름 당선회수 경력 홋카이도 9구 鳩山由紀夫 7 당대표 이와테 4구 小澤一郞 13 전당대표 니카다 5구 田中眞紀子 5 전외상 < 표 11> 2009 년총선거결과 2 명이상당선자를배출한선거구수 2명당선 3명당선 선거구수 88 3 34 정치선진화를위한선거제도개선방안
마지막으로부활당선된의원들이비례대표선출의원으로서의대표의본질을흐리는행동을하는것을지적할수있다. 부활당선된의원들은비례대표로서선출된의원임에도불구하고, 대부분은이를망각하고자신이낙선한소선거구의대표라는인식을하고있으며, 지역활동도소선거구유권자들을주요한타겟으로삼고있다. 유권자역시한조사에의하면부활당선된의원들을블록대표나국민대표로생각하지않고, 소속선거구대표로인식하고있다 ( 河北新聞 2000.6.21). 이러한대표로서역할혼동은기본적으로는제도적복잡성과모호성에기인하는것이기는하지만 ( 강태훈, 2003, 23), 비례대표로서의본질적기능발휘에중대한결함이생긴것이라고하지않을수없다. 다음으로중복입후보제의장점에대해살펴보기로한다. 무엇보다중복입후보제는정당에게있어꼭필요한인물을당선시키는데유용한제도이다. 일부에서는소선거구에서유권자들의심판을받아낙선한후보를비례대표에서구제하는것은민의를왜곡하는것이라는비판도있다. 하지만현대와같이정당이포괄정당 (catch all party) 화되고있고과두제화되어가는상황에서유권자들의후보및정당에대한선택은, 정책에대한면밀한관찰을하고정당간의차이점을확인한뒤에투표를하기보다는, 각정당의대표또는유력정치가가표방하고있는정책을그정당의정책과동일시해서투표하는경향이강하다. 그런데소선거구에서만일대표또는유력정치가가낙선이라도한다면, 그들을바라보고선택한유권자들의정책은실현될길이없어지게된다. 또한현대의원내각제국가에서의총선거는 수상선택 선거라고도할수있다. 수상후보는정당지지나정책과함께선거의중요한결정요인이되고있다. 대부분의국가에서각정당의선거운동도텔레비전을통한당수토론등수상후보를전면에내세우는방식으로행해진다. 유권자들은어떤인물이수상에적합한가를항상생각하면서투표하고있는것이다. 이처럼특정인물을수상으로앉히기위해그가속한정당에투표하였음에도불구하고, 그인물이소선거구에서낙선을한다면, 그인물에대한전국의많은유권자들의의지는실현될수없는것이다. 일본에서는실제중복입후보제에대한많은비판이존재하지만, 이제도를시행하고있는독일에서는위와같은이유로당수급인물의당선을확실히보장할수있는 일본의소선거구비례대표병립제 35
제도로서유용하게이용되고있다. 예를들어기민당 (CDU) 당수이며독일통일의영웅이었던콜수상과자유민주당 (FDP) 의당수로서 70-80년대에걸쳐 18년간이나외상을담당해왔던겐셔도중복입후보제의혜택을입은인물이다. 콜의소선거구는사민당 (SDP) 세력이강한공업지대였으므로수상이되고난뒤에도몇번이나낙선을하였다. 소선거구에서승리를하게된것은 1990년독일통일을이룩하고난뒤부터였다. 겐셔도전국적인기는타의추종을불허하였지만, 제3당의후보였기때문에소선거구에서는 10% 정도의득표로항상낙선을하였다. 심지어독일통일을실현하고, 노벨평화상후보가되었을때에도그의득표율은 15% 정도밖에되지않았다. 다음으로중복입후보제는사표의발생을줄여군소정당의의석획득에도움을준다. 소선거구제하에는 3위이하의정당후보자에게던진표는사표가될가능성이높기때문에, 유권자들은자신의선호를직접표현하지않고전략투표 (strategic voting) 를하는측면이있다. 그러나중복입후보제하에서는소선거구에서의낙선자가석패율에의해비례대표구에서구제될수있는길이열려있기때문에, 2위이하의후보자에게던진표가반드시사표가되는것은아니다. 따라서유권자들은자신이선호하는후보자가당선가능성이낮다고해서다른후보자에게표를던지는전략투표를할동기가약화된다. 정당의입장에서도소선거구에서의당선가능성이낮다고하여후보자를내지않을이유가적어진다 ( 김세걸 1999, 87). 또한후보자의입장에서도소선거구에서낙선했더라도비례대표구에서당선되기위해서는당선자에게근소한차이로낙선하여석패율을높여야만한다. 이러한요인은소선거구에서군소정당의후보자가득표율을증가시키는요인으로작용하며, 적극적으로소선거구의석경쟁에참여시키게만든다 ( 고선규, 2002, 394). 중복입후보제의이와같은효과는다음의 < 표12> 에서볼수있다. 각정당별부활당선자의비율은 2009년총선거의경우, 민주당이 14.0%, 자민당이 38.7%, 공산당이 33.3%, 사민당이 42.9%, みんな당이 40.0% 로, 대체로소정당일수록높아지는경향을보이고있다. 2005년선거의경우도맥락을같이하고있다. 이처럼부활당선의가능성이남아있는한, 군소정당은소선거구에후보자를내세울것이고, 유권자들은군소정당에게도투표를할것이다. 그리고군소정당의후보자도소선거구에서전력을다하여경쟁하게될것이다 ( 김세걸 1999, 87). 바로이러한점이소선거구제중심의제 36 정치선진화를위한선거제도개선방안
도하에서도양당제로의압력을크게약화시켜군소정당들이의회에진출하는데도움을주고있는것이다. 이외에도선거를통해비례명부의순위결정에유권자가부분적으로나마참가할수있는길이있다는점도중복입후보제의장점이다. 구속명부식제도하에서는유권자는정당이제시한명부에대해수동적으로밖에반응할수없는반면, 중복입후보제하에서는특정순번의동일순위자들에대해서는소선거구에서의투표를통해후보자의당선순위결정에간접적으로관여할수있다. 한편중복입후보제가시행되지않으면, 그만큼많은후보자를비례대표구에내세우지않으면안된다. 하지만독일의공직선거입후보를위한휴직제도와같은후보자조달을위한제도가갖춰지지않은일본에서는, 자질이뛰어난후보자를대량으로확보하는것은그렇게쉬운일이아니다. 전체획득의석수 (A) < 표 12> 전체의원수에차지하는부활당선자의비율 2005 년총선거 2009 년총선거 부활당선자수 (B) A/B 전체획득의석수 (A) 부활당선자수 (B) 자민당 296 48 52.2 119 46 38.7 민주당 113 59 16.2 308 43 14.0 공명당 31 0 0 21 0 0 공산당 9 4 44.4 9 3 33.3 사민당 7 4 57.1 7 3 42.9 국민신당 4 1 25.0 3 0 0 신당일본 1 1 100.0 1 0 0 みんな당 5 2 40.0 A/B 주 ) みんな당은신생정당으로서 2009 년총선거에처음으로국정선거에참여하였다. (2) 권역별비례대표제 일본의중의원선거제도의또하나의특징은비례대표선출에있어권역별비례대 표제를채택하고있다는점이다. 위에서설명한바와같이전국을 11 개권역으로나 일본의소선거구비례대표병립제 37
누고, 각정당은순위가매겨진권역별명부를제공한다. 이점일본과유사한소선거구비례대표병립제를채택하고있으면서, 전국을하나의비례대표구로하고있는한국의국회의원선거제도와차이를보이는부분이다. 현행제도도입을위한선거법개정논의과정에서는비례대표선출단위를두고서광역자치단체인 47개도도부현 ( 都道府縣 ) 을각각의단위로하는안과전국을하나의구역으로하는안등이제기되었다. 하지만도도부현을단위로해서는각구역내에서선출하는정수가너무적어비례대표제본래의의미를살릴수없고, 반면전국을하나의단위로해서는각정당의후보자명부가상당히길어질수밖에없기때문에실용적이지못하다는의견이다수를이루었다. 결국양자의절충점으로서 11개블록안으로낙착이되었다 ( 阿部齊외 1996, 115). 그런데일본의각권역별선출의원수는가장많은곳이 29명이고, 가장적은곳은 6명에지나지않는다 (< 표1> 참조 ). 이처럼한선거구에서선출하는의원수가많지않다보니군소정당이비례대표배분에참여하기는좀처럼어려운상황이다. < 표13> 각권역별비례대표제에서당선자를낸정당수 권역 당선자를낸정당수 명부를낸정당수 北海道 4 8 東北 5 7 北關東 5 9 東京 5 9 南關東 6 9 北陸信越 3 8 東海 4 9 近畿 5 10 中國 3 7 四國 3 6 九州 5 8 38 정치선진화를위한선거제도개선방안
< 표14> 비례대표선거의정당별보너스율 의석율 득표율 보너스율 민주당 48.3 42.4 5.9 자민당 30.6 26.7 3.9 공명당 11.7 11.5 0.2 공산당 5.0 7.0-2.0 사민당 2.2 4.3-2.1 みんな당 1.7 4.3-2.6 국민신당 0 1.7-1.7 신당일본 0 0.8-0.8 신당大地 0.5 0.6-0.1 < 표15> 한국비례대표선거의정당별보너스율 의석율 득표율 보너스율 한나라당 40.7 37.5 3.2 민주당 27.8 25.2 2.6 자유선진당 7.4 6.8 0.6 민노당 5.6 5.7-0.1 찬조한국당 3.7 3.8-0.1 친박연대 14.8 13.2 1.6 < 표13> 으로부터각권역에있어 1석이상을얻은정당수를보면, 각권역별로 3-6 개정당에지나지않는다. 北陸信越권역은 8개정당이명부입후보를하였지만, 3개정당만이의석배정을받을수있었고, 東海권역에서는 9개정당가운데 4개정당만이의석을얻을수있었다. 의원정수가 8명밖에안되는北海道권역에서는공산당이 7.2% 를획득하고도한석도얻지못하였고, 정수 6명인四國권역에서도역시공산당이 6.7% 의표를얻고도의석은전무하였다. 이렇게볼때, 권역을세분화하는것은상대적으로군소정당에게불리하게작용하고있음을알수있다. 권역별비례대표제가군소정당에게불리한점은비례대표선거결과에대해서, 각정당이득표율에비해의석획득에얼마나이득을보았는가를측정하는지표인보너 일본의소선거구비례대표병립제 39
스율 ( 의석율-득표율 ) 을계산한것으로부터도확인된다. < 표14> 에서볼수있는것처럼대정당인민주당과자민당은득표율에비해각각 5.9% 와 3.9% 씩의석배분에이득을보고있는반면, 군소정당들은모두실제득표율에비해손해를보고있다. 비례대표제는기본적으로선출단위의의원정수가많아질수록의석율과득표율의비례성은증대된다. 일본도각권역별로뽑는의원수를늘릴때, 군소정당에게불리한점은어느정도해소될것이다. 이러한점은 < 표15> 의한국의비례대표선거결과로부터확인할수있다. 한국에서는전국을하나의권역으로해서 54명을선출하고있다. 권역별로 6-29명을선출하는일본에비해, 한국에서는의석율과득표율의비례성은상당히개선되고있는것을볼수있다. 대정당인한나라당과민주당은각각 3.2% 와 2.6% 의보너스율밖에얻지못하고있고, 군소정당들은거의득표율에비례해서의석을가져가고있다. 한편권역이세분화되어있음으로해서군소정당의경우는당선은물론, 입후보명부조차제출하지못하는일도벌어진다. 각권역에입후보할수있는자격은각권역의원정수의 20% 이상의후보자를내는정당에게만주어진다. 민주 자민 공명등전국적조직을가진큰정당들은모든권역에명부를낼수있지만, 군소정당들은모든권역에걸쳐이조건을갖추기가쉽지않다. 전국적으로비례대표선거에서 3석을얻은 みんな당 은北海道 北陸信越 中國 四國의 4개권역에서는입후보조차하지못하였다. < 표13> 에서보는것처럼비례대표에명부입후보한정당수가권역별로다양한분포를보여주고있는것은이러한점을반영한다. 입후보하지않는권역에서는특정정당에대한유권자의선택기회는박탈될수밖에없다. 이러한점으로부터도일본의권역별비례대표제는군소정당에게불리하게작용하고있음을알수있다. Ⅳ. 일본의선거제도가한국에주는함의 : 결론에대신해서 한국의국회의원선거방식은일본과같은소선거구비례대표병립제를채용하고 있다. 하지만중복입후보제와권역별비례대표제를채택하고있지않다는점에서약 간의차이를발견할수있다. 한국은소선거구입후보자가비례대표선거에나갈수 40 정치선진화를위한선거제도개선방안
없으며, 또전국을하나의비례대표선거구로하고있다. 그런데일본의중복입후보제와권역별비례대표제는, 한국이선거제도를개정하려고할때, 시사점을얻을수있는부분이적지않다고생각된다. 이하에서는이점에대해서간략히논하기로한다. 현재한국의국회의원선거제도를개정하고자하는논의에있어그주요한논점이되는것은지역주의를해소하는데어떠한제도가좋은가이다. 현행소선거구중심의제도는유권자의의사와실제의석수사이에과도한격차를발생시킴으로써, 지역주의가강한영호남지역에서는지역패권정당이외의정당이그지역에서의석을얻기는쉽지않다. 일부에서중대선거구제로개편을요구하는것도이와같은점을개선하기위해서이다. 여기에서도지역주의를해소하기위해서는어떠한방안이있을까에초점을맞춘다. 먼저중복입후보제는한국의지역주의를완화시키는데기여할수있을것이다. 지금까지는영호남의유력정치가라하더라도낙선의두려움때문에상대지역에출마하는것은거의불가능하였다. 하지만중복입후보제가도입되면, 낙선에대한두려움없이출마할수있게된다. 예를들어대구를지역구로하는박근혜한나라당전대표가광주의소선거구선거에출마해서비록떨어진다하더라도, 한나라당비례대표명부의상위순번에기재되어있다면부활당선될수있다. 만일소선거구에서당선이된다면, 이것은한국의지역타파노력과관련해서일대사건이되고, 강고하게만여겨지던지역주의는중대한도전을받게될것이다. 이처럼중복입후보제는한국적상황속에서정치적실험을해볼수있는중요한제도이다. 다음으로일부에서선거제도개편방안의하나로서제기되는것이권역별비례대표제의도입이다. 영남권 호남권등전국을몇개의권역으로나누고할당받은의석을정당투표의득표율에따라배분하면, 한나라당은호남권에서, 민주당은영남권에서각각의석을획득할수있다는논리이다. 그러나앞에서일본의권역별비례대표제의예에서살펴본것처럼권역별로선출하는의원정수가적을경우에는권역내에서소수의득표밖에얻지못하는정당은거의혜택을입을수없었다. 현재한나라당의호남평균득표율이 10% 가되지않고, 민주당의영남득표율이 20% 가되지않는상황에서의원정수가적을경우에는권역 일본의소선거구비례대표병립제 41
별비례대표제를도입한의의를거의찾을수없을지도모른다. 강원택 (2009) 은전국을 6개권역으로나누고 11), 제18대총선당시의정당투표율을적용하여각정당이얻은의석수를계산하였다. 그에의하면전체비례대표의석을 120석으로늘릴경우, 민주당은열세지역인경북권에서 1석, 경남권에서 2석을얻고, 한나라당은호남- 제주권에서 2석을얻을것으로예상됐다. 이처럼권역별비례대표제를도입할경우에는권역이세분화되는만큼, 비례대표로선출하는전체의석수를대폭늘여야할것이다. 지역주의의의미있는완화를기대하기위해서는적어도 150 석은되어야할것으로생각된다. 11) 6 개권역은서울권, 경기 - 강원권, 충청권, 호남 - 제주권, 경북권, 경남권이다. 42 정치선진화를위한선거제도개선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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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식선거제도의특성과적용 김영태 ( 목포대 ) I. 글을시작하며 우리의선거제도개혁과관련하여크게주목받고있는제도가운데하나는독일식선거제도이다. 소위 인물화된비례제 (personalisierte Verhältniswahlsystem) 로칭해지는독일식선거제도는지역대표성을갖는대표자를선출하면서도유권자의정치적의사가정당의의석수에거의정확히반영되고있다는특징을가지고있기때문이다. 단순다수제방식의선거제도를오랫동안유지해왔던뉴질랜드나동구유럽의신생민주주의국가일부가독일식선거제도를채택한가장중요한이유역시바로이때문이라고할수있다. 물론모든제도가그러하듯독일식선거제도역시문제점이전혀없는완벽하고이상적인선거제도는분명히아니며, 설령이상적제도라할지라도한국적적용에는여러가지문제점이수반될수있다. 실제우리의선거제도개혁과관련하여일부에서는독일식선거제도의도입을주장하기도하지만, 이에대한비판적논의또한적지않다. 이러한점을고려하여이글에서는독일식선거제도에대한그간의논의를통해이미어느정도알려져있기는하지만다시한번독일식선거제도의특성을정리하는한편, 독일식선거제도의한국적적용과관련하여그간에제기된여러가지문제점들을비판적으로검토해보기로하겠다. 이러한점에서이글은새로운논점이나주장을제시한다기보다기존논의를정리하는성격이강하다. 여기에최근들어독일의선거제도가근본적인변화는아니지만다소간변화했으며, 또다른변화를예고하고있다는점도함께고려되었다. 보다구체적으로독일선거제도의부정적득표영향과관련하여연방헌법재판소는 2011년까지이와관련한제도적개선을결정한바있다. 독일식선거제도의특성과적용 47
이에따라독일은지난 1998년헤어-니마이어 (Hare-Niemayer) 방식의의석산정방식을생라그 (Sainte-Laguë) 방식으로바꾸었으며, 초과의석 (Überhangmandate) 과관련한문제를해결해야하는과제를안고있다. 1) 이글에서는이러한독일선거제도와관련한최근경향을반영하면서독일식선거제도와관련한그간의논의를정리해볼것이다. 이글은크게세부분으로구성되어있다. 먼저이글의첫번째부분에서는독일식선거제도를의특징을중심으로독일식선거제도를간략히소개하겠다. 다음으로이글의두번째부분에서는독일식선거제도의한국적적용과관련하여논의되는다양한문제들, 예컨대독일식선거제도의비례성문제, 독일식선거제도와지역주의완화문제, 정부의안정성과효율성문제등과같은우리선거제도의주요논점에서부터독일식선거제도와관련하여제기되는의원정수문제, 초과의석문제, 명부작성방식문제등제반문제를검토해보기로하겠다. 마지막으로이글의세번째부분에서는이글의논의를간략히요약정리하는한편이글에서논의하지못했지만우리의선거제도개혁과관련하여간과할수없는몇가지사안들을지적해보도록하겠다. II. 독일식선거제도의특성 흔히우리가독일식선거제도라칭하는선거제도는보다정확히독일연방하원의선거제도이다. 독일연방하원은보통, 평등, 직접, 비밀, 자유투표의원칙에따라선출되며, 기본적으로만 18세이상의독일국민이면누구나선거권과피선거권을갖는다. 독일연방하원의원선거는원칙적으로 4년마다실시되며, 선출되는의원정수는기 1) 독일선거제도의근본틀에는변화가없지만정당의의석산정방식이생라그방식으로전환됨에따라독일의의석산정과정을사례를통해설명하고있는기존설명은엄밀히보면이제모두잘못된설명이라고할수있다. 또한지난 2009 년독일연방하원선거결과를헤어 - 니마이어방식으로계산하면정당별의석수에작은차이가있다. 48 정치선진화를위한선거제도개선방안
본적으로 2002년연방하원선거부터 598명이지만경우에따라의원정수는늘어날수있다. 2) 독일연방하원선거제도는 1949년이래몇차례개혁과정을겪었지만, 선거법에서 인물선거를결합한비례제 에따라의원을선출한다고규정되어있듯, 그기본골격은현재까지유지되고있다. 역사적으로현독일연방하원의전신인바이마르공화국당시제국의회는순수비례제방식을통해구성되었다. 이와달리 1948/49년독일선거법이 인물선거를결합한비례제 를채택한것은바이마르공화국당시다수정당의난립으로정부가불안정했다는역사적경험이고려된것이기도하지만, 또다른한편으로는정치적이해관계에따른타협의산물이기도하다. 즉선거법제정당시상대다수제는유일하게기민당 (CDU) 만이주장했으며, 사민당과자민당은비례제의도입을강력하게주장했다. 게다가기민당내부에서조차상대다수제를반대하는의견이증가하자, 결국독일선거제도는사민당이내세운중재안에따라비례제에인물투표라는형식을가미한형태를띠게된것이다. 이러한소위 인물화된비례제 로칭해지는현행독일선거제도의핵심적인특징은다음과같이요약될수있다. 첫째, 유권자들은 1인 2표를행사한다. 3) 즉선거에서유권자들은단순다수결로선출하는지역구직선후보에게기표를하는한편정당명부에또다른한표를행사한다. 이때지역구후보에게던지는투표를흔히제1투표 (Erststimme), 그리고자신이선호하는정당에대한투표제2투표 (Zweitstimme) 라칭한다. 둘째, 명목적인전체의석가운데 299석은지역구에서단순다수제방식으로선출되며, 나머지 299명은주단위에서작성된정당명부에서선출된다. 각주 (Land) 별 1인선거구 ( 지역구 ) 수는인구에비례하여생라그 ( (Sainte-Laguë) 방식으로정해지며, 각선거구의인구편차는 15% 이상을넘어서지않아야하며, 25% 이상의편차가있는경우 2) 독일연방하원선거의선거권과피선거권은 1972년만21세에서만18세로하향조정되었다. 또한명복적인독일연방하원의원정수역시독일통일이전까지는 496명이었다가통일직후 656명으로확대되었다가, 2002년선거부터 598명으로재조정되었다. 3) 1949년당시에는 1인 1표제의현식을취했다. 즉유권자는자신이선호하는지역구후보에게기표를했으며, 각정당후보의득표수를합산해정당지지표를계산했으며, 이에기초해지역별명부당선자를확정했다. 그리고 4년후인 1953년부터 1인 2표제가실시되었다. 독일식선거제도의특성과적용 49
무조건선거구를새롭게획정해야한다. 셋째, 폐쇄형명부에등재된후보가지역구후보로도출마할수있으며, 이에따라지역구선거에서낙선하더라도명부를통해당선될수있다. 넷째, 독일연방하원선거제도에서가장유의해야할부분으로각정당의총의석은정당투표인제2투표의득표수에비례해결정된다. 즉우리처럼인물투표를통해 1인선거구에서당선된지역구당선자와정당투표의득표수에비례해정당명부에서당선된비례대표당선자를합산하여전체의석수가결정되는것이아니라, 전적으로정당투표 ( 제2투표 ) 득표수로정당의전체의석수가결정된다. 물론각정당의전체의석수를계산할때는기본적으로전체명목의석 (598석 ) 이기준이되며, 계산은지난 2009년선거이전에는헤어- 니마이어 (Hare-Niemayer) 방식을준용했지만, 2009년선거부터생라그 (Sainte-Laguë) 이적용되고있다. 4) 다섯째, 각정당은연방차원에서정당투표 ( 제2투표 ) 로 5% 이상을획득하거나, 혹은단순다수로선출되는지역구후보가운데 3명이상이당선되어야정당별의석배분과정에참여할수있다. 5) 여섯째, 각정당의전체의석수가확정되면, 해당정당의주별득표수에따라주단위의해당정당의석수가정해지며, 주단위의정당별총의석에서지역구당선자를제외한수만큼폐쇄형명부의순위에따라명부후보의당선이확정된다. 이과정에서주별로배정된의석수를초과하여당선된지역구당선자는모두당선자로인정한다. 이에따라 598석으로규정된연방하원의석수는경우에따라증가할수있으며, 이때증가된의석을초과의석 (Überhangmandate) 이라칭한다. 한편보다구체적인독일연방하원선거제도의정당별의석배정방식을지난 2009 년 17대연방의회선거결과를사례로설명하면다음과같다. 1) 정당별의석배분의최소조건을통과하지못한정당후보나무소속출마후보가운데지역구 (1인선거구 ) 에서 1위를한후보를당선자로확정한다. 2009년선거의경우해당사례는없다. 즉무소속후보자나정당투표득표율 5% 미만정당후보가운데 4) 독일과유사한방식의선거제도를채택하고있는뉴질랜드역시생라그방식을이용하고있다. 5) 이러한의석배분을위한최소조건은 1949년 1개주 5% 또는 1인선거구 1석 에서, 1953년 연방전체 5% 또는 1인선거구 1석 으로, 그리고 1956년다시 연방전체 5% 또는 1인선거구 3석 으로강화된바있다. 이처럼선거법제정이후독일이지속적으로최소조건을강화한것은다른무엇보다군소정당의난립방지가그목적이었다. 50 정치선진화를위한선거제도개선방안
지역구 1위후보자는없다. 2) 무소속후보자나최소조건을통과하지못한정당소속후보자가운데 1위를해당선이확정된당선자의수를제외한나머지전체의석을기준으로정당투표 ( 제2투표 ) 득표수에따라생라그방식에의해정당별전체의석수를결정한다. 2009년선거의경우무소속후보자나최소조건을통과하지못한정당소속후보자가운데 1위를해당선이확정된당선자가없기때문에전체의석인 598석을기준으로최소조건을통과한기민당, 사민당, 자민당, 녹색당, 좌파, 기사당등이정당투표득표수에비례하여생라그방식에따라정당별의석이배정된다. 이때지난 2009년이전선거까지독일은헤어-니마이어방식을통해정당별의석수를산정했지만, 2009년선거부터생라그방식이도입되었다는점에특히유의할필요가있다. 6) 나눔수제 (divisor system) 의일종인생라그방식은미리정해진나남수로정당의의석수를결정하는방식으로생라그방식의경우각정당의득표수를 1, 3, 5, 7, 9... n 혹은 0.5, 1.5, 2.5, 3.5, 4.5,... n 등의나눔수로나누어몫이큰순서대로의석을배분하거나아니면가장적합한나눔수를찾아이것으로정당의득표수를나누어정당의의석수를결정하는방식이다. 7) 생라그방식으로 2009년선거결과에따른각정당의의석수를계산해보면기민당 173석, 사민당 146석, 자민당 93석, 좌파 76석, 녹색당 68석, 그리고기사당 42석등으로 598석이배분된다. 8) 그리고각정당별로배정 6) 헤어니마이방식과생라그방식에따라다소간정당별의석의차이가있을수있다. 예컨대 2009년연방의회선거결과를생라그방식으로계산된실제의석수와달리헤어-니마이어방식으로계산할경우녹색당은 1석을추가로얻을수있는반면기사당은 1석을잃게된다. 참고로생라그방식은대정당이나군소정당모두에게가장균등하게의석을배분하는방식으로알려져있다. 생라그방식이나헤어니마이어방식에관한보다자세한내용은안순철 1998을참고할것. 7) 독일이헤어-니마이어방식대신생라그방식을도입한것은당시까지의연방의석배분과정에서득표수의증가가오히려의석수의감소를초래할수있는소위부정적득표의영향을내포하고있어 2011 년까지연방선거법을개정하라는독일헌법재판소의판결에따른것으로, 헤어-니마이어방식에비해생라그방식은부정적득표의영향을축소시킬수있다. 물론이것으로부정적득표영향은완전히해결된것이아니며, 이는부정적드표영향문제가초과의석문제와연관되어있기때문이다. 이점에서독일은 2011년까지초과의석문제를해결해야만한다. 부정적득표영향에관해서는김영태 2001을참고하라. 8) 2009년연방의회선거정당투표 ( 제2투표 ) 에서기민당 11,828,277표, 사민당 9,990,488표, 자민당 6,316,080표, 좌파 5,155,933표, 녹색당 4,643,272표, 기사당 2,830,238표등을얻었다. 생라그방식에따 독일식선거제도의특성과적용 51
된의석은해당정당의주별득표수에비례하여정당별각주의의석수가확정된다. 3) 각주별정당의의석수가확정되면해당주의지역구 (1인선거구 ) 에서 1위를한후보를당선자로확정하고, 이를제외한수만큼주별정당명부의순위에따라당선자로확정한다. 예컨대기민당의전체의석 173석가운데 A주에배정된의석이 30석이고, 기민당이 A 주지역구선거에서 1위를한후보가 20명이라면, 지역구당선자 20명과함께기민당명부에서명부순위에따라 10명이당선된다. 만약 A 주지역구선거에서 1위를기민당후보가 10명이라면, 전체 30명에서이를제외하고기민당명부에서는 20명이당선된다. 이와달리지역구 1위당선자가 32명이라면지역구당선자 32 명모두당선자로결정하게되며 ( 명부당선자는없다 ), 전체의석을고려하여원래배정된의석이 30석이기때문에 2석은초과의석이된다. 실제 2009년선거의경우바이에른주에서만지역구후보자와정당명부를작성하는기사당의경우바이에른주 45 개지역구 (1인선거구) 모두에서 1위를하였으며, 이에따라 2번과정에서배정받은기사당의전체의석수이자바이에른주의석수는 42석이었지만 45석을모든인정받아기사당의최종의석수는 45석이며, 이때 3석이초과의석이된다. 2009년연방의회선거에서는모두 24석의초과의석이발생한바있다. 9) 라의석수를쉽게산정하는방식은다음과같다 : (1) 먼저각의석배분정당이얻은총득표수를배정할총의석수로나눈다. (11,828,277+9,990,488+...+2,830,238)/598=40,764,288/598=68,168 (2) 각정당의득표수를 (1) 의계산을통해얻어진수로나눈다. 기민당 : 11,828,277/68,168=173.52, 사민당 9,990,488/68168=146.56, 자민당 6,316,080/68168=92.65, 좌파 5,155,933,/68168=75.64, 녹색당 4,643,272/68168=68.12, 기사당 2,830,238/68168=41.52 (3) 우선기민당 173석, 사민당 146석, 자민당 92석, 좌파 75석, 녹색당 68석, 기사당 41석확정, 따라서 3석이배정되지못함.( 전체의석수와동일하면여기서마침 ) (4) 각정당의득표수를확정된의석수에 0.5를더해나눈다. 기민당 : 11,828,277/173.5=68194, 사민당 9,990,488/146.5=68175, 자민당 6,316,080/92.5=68282, 좌파 5,155,933,/75.5=68291, 녹색당 4,643,272/68.5=67785, 기사당 2,830,238/41.5=68198 등, 계산결과좌파가가장크므로좌파에추가 1 석배정 (5) 의석이최종적으로배정된정당, 즉좌파의계산된수 68291을좌파의다음나눔수인 76.5 로나누고 (68291/76.5=893) 이를앞서계산한나머지정당의수와비교하여가장큰수인정당에 1석배정, 따라서자민당에 1석추가 (6) 자민당의나눔수계산결과 68282를자민당의다음나눔수 93.5로나눈결과와나머지수를비교하여큰수정당인기사당에 1석배분 (7) (3) 에서확정되고남은 3석이모두배정되었으며, 각정당의의석은기민당 173석, 사민당 146석, 자민당 93석, 좌파 76석, 녹색당 68 석, 기사당 45석확정된다. 9) 최근들어초과의석은급증하는양상을보이고있다. 이는 1인선거구에서는기민 / 기사당이나사민당 52 정치선진화를위한선거제도개선방안
III. 제도적용과관련한몇가지비판적논의 (1) 정치적안정성과사회적대표성의문제 일반적으로선거제도는다수제와비례제, 그리고양자가혼합된혼합제로구분된다. 이론적인관점에서이러한선거제도의구분은이들제도에서관철되는대표성의원칙과배분의원칙을기준으로하고있다.(Nohlen 1989) 여기에서대표성의원칙이란선거제도의목적을안정적인정부의성립에둘것인지혹은사회각세력과정치집단이정치적으로고루대표될수있도록할것인지와관련된문제이다. 일반적으로다수제가안정적인정부수립을목적으로하는반면, 비례제는사회적대표성의강화에그목적이있다. 이러한대표성의원칙 ( 안정적인정부혹은사회적대표성강화 ) 을관철시키기위한기술적수단으로이용되는것이바로배분의원칙이다. 즉안정적인정부를목적으로하는경우가장강한정당에게의석을배분하는배분의원칙 ( 다수제 ) 을채택하고, 사회적대표성의강화를목적으로하는경우각정당의득표율에따라의석을배분하는배분의원칙 ( 비례제 ) 이관철되어야한다. 한편대표선출단위, 즉선거구라는차원에서는지리적대표성의원칙과기능적대표성의원칙을고려할수있다. 지리적대표성의원칙에따르면모든개인의동질성과원자론에입각하여지리적분할에기초해대표를선출하는반면, 기능적대표성의원칙에따르면기능적으로동질적인사회경제집단의대표성을고려한다. 비례제는기능적대표성의원칙을, 다수제는지리적대표성의원칙과결합하는것이일반적이다. 이미앞서살펴본것처럼독일의선거제도는배분의원칙으로서다수제와비례제를혼용하고있으며, 이러한의미에서혼합제라할수있다. 그럼에도독일선거제도는정당의전체의석수가정당투표에비례해결정되기때문에비례제라고보는것이더타당하다. 이러한의미에서비례제일반이그러하듯독일선거제도는기본적으로 과같은대정당후보들만이당선되는것과대조적으로, 군소정당의정당득표율이최근크게증가하는것과밀접한관계가있다. 독일식선거제도의특성과적용 53
대표성의원칙이란측면에서사회적대표성의강화를제도적목적으로한다고볼수있다. 그럼에도불구하고독일정치적안정성은의석배분을위한최소조건을통해보완되고있다. 일부에서는독일의의석배분최소조건이지나치게높으며, 이것이유권자의정치적의사를왜곡하고있다고비판하기도하지만, 선거법제정직후수차례에걸친최소조건의강화를통해지나친정당정치의분절화를막고정치적안정성을이루고있다는점역시간과할수없다. 또한대표선출단위라는측면에서도독일은비례제에인물선거를결합시킴으로서기능적대표성과함께지리적대표성역시관철될수있도록하고있다. 이처럼독일의선거제도는비례제의정치적목적을기본으로하면서도비례제가내포하고있는한계를극복할수있는, 즉다수제의장점을포괄할수있는제도적장치를마련하고있다. 독일식선거제도의이러한제도적효과는독일식혼합제선거제도를택한국가들이단순다수제를채택한국가에비해정부의안정성과효율성이보다높다는경험연구결과에서도확인된다. 보다구체적으로세계 155개국을비교분석한결과에따르면다수제를택한 91개국의안정정지수평균은 -.209로나타난반면, 비례제국가의지수평균은 0.183, 독일식혼합제국가 0.457, 일본식혼합제국가 -0.283 로나타났다. 또한정부의효율성지수역시다수제국가 -0.251, 비례제 0.347, 일본식혼합제 -0.282, 독일식혼합제 0.610 등독일식선거제도가국가의효율성역시가장높은것으로나타났다. 뿐만아니라반부패성지수역시다수제 -0.238, 비례제 0.314, 일본식혼합제 -0.353, 독일식혼합제 0.574로독일식혼합제의평균점수가높게나타나며, 이와마찬가지로법치성지수역시다수제 -0.242, 비례제 0.261, 일본식혼합제 -0.309, 독일식혼합제 0.571로나타났다. 물론독일식선거제도를채택한국가에서정치적안정성과효율성이높게나타난것이반드시선거제도때문만이라고이야기하기어렵다. 그럼에도단순다수제가영합게임 ( 제로섬게임 ) 적대결구도를가져오는반면, 독일식혼합제나비례제는권력분점을통해대화와협상을촉진시키고, 이를통해정부의자원동원능력을극대화할수있는가능성이높다는점은간과할수없다. 법치나반부패라는관점에서도특정정파에권력이집중되어있을때보다권력이다양한정치세력에분배되었을때상호감시와견제가보다용이해지며, 이것이법과원칙을존중하는사회를이끄는원동력으 54 정치선진화를위한선거제도개선방안
로작용하고있다고볼수있다. 이처럼현대정치에서정부의안정성과효율성은승자독식의권력집중보다오히려권력분산과견제를통해달성될가능성이높다. 게다가선거제도에대한평가와진단, 그리고대안마련은이러한선거제도의정치적영향, 즉선거제도가관철하려는대표성의원칙이사회적으로나시대적으로유의미한것인지에평가에서출발해야할것이다. 이러한점에서먼저선거제도를통해안정적인정부를구성하려는것은시대적으로나사회적으로그의미가크게훼손되고있다고볼수있다. 물론시대나사회적상황을막론하고안정적정부의필요성은상존하며, 우리의경우역시마찬가지다. 그러나현대정치에서안정적정부, 그리고이를통한정부의효율성달성은선거제도만으로는충분치못하다. 전세계적으로양당제를유지하고있는국가가매우제한적이고, 이마저도대부분크게흔들리고있다는것은부인할수없는사실이다. 특히다양한이해관계가복잡하게얽혀있는현대정치에서안정적인정부의구성은오히려대화와타협을통해서만달성될수있다. 특히우리의경우승자독식의다수제적선거제도로인한폐해인정치적갈등과대립은갈수록극심해지는양상이다. 물론여기에는대통령제도한몫을하고있지만국회의원선거제도의영향도간과할수없다. 즉 1인소선거구제중심의현행선거제도에서는특정정당이과반이상의의석을차지할수있다는기대감을높이며, 이에따라과반이상의의석을차지하려는대정당사이의경쟁이이제는선거여부와관계없이일상적인정당간정치경쟁으로변화하고있으며, 이에따른정치적불신과불만이극대화되고있다. 뿐만아니라현행단순다수제중심의선거제도에서도다당제적정당체계와이에따른분할정부 ( 여소야대 ) 의등장이빈번하여다수제의목적을달성하지못한채, 승자독식으로인한정치적갈등으로정부의정책적효율성만훼손되고있을뿐이다. 또한현행선거제도는인물중심의선출방식으로지역구의원과지역주민의연계를강화시키는효과를갖지만, 정치를안정적으로제도화시킬수있는책임정책정당을발전시키지못하고있다는것역시주지의사실이다. 현대대의제민주주의가정당정치를기본축으로하고있으며, 현대대의제민주주의는민주적정당경쟁그자체라고할수있을것이다. 바로이러한의미에서우리헌법 8조역시정당을헌법적조직으로규정하고있다. 그럼에도불구하고정부수립이후지난 50여년간, 특히민 독일식선거제도의특성과적용 55
주화이후한국의정당은이합집산을거듭해왔다. 이에따라유권자들의입장에서선거를통해정치적책임을묻기란대단히어려우며, 정치적책임은정치인개인의문제로치부되고있는것이현실이다. 게다가현행선거제도의장점으로언급되는지역주민과대표자의유대성강화역시우리의경우국회의원이지역주민을정치적으로대표한다기보다 경조사챙기기 등비정치적관계가주류를이루고있으며, 선심성지역구챙기기 등왜곡된형태의일회적지역대표활동으로문제가되고있다. 이처럼현행선거제도는대의제의근본원리인책임성과대표성을오히려왜곡시키는방향으로작용하고있다. 현행우리의선거제도는이처럼대표성의원칙이라는측면에서정부의안정성을추구한다는근본취지에도불구하고소기의목적을달성하지못한채여러가지폐해를낳고있을뿐만아니라, 다양한사회적이익의정치적대표라는현대사회의변화된요구에도부응하고있지못하다. 결국이러한점을고려할때의석배분원칙으로서가장강한정당에게의석을배분하는제도를채택하는것이바람직한가라는의문을갖는것은당연할수밖에없다. 한편대표선출단위라는측면에서기능적대표성의원칙보다지리적대표성의원칙을중시하는우리의선거제도가현시대적 사회적상황에조응하는지도검토해볼문제이다. 선거제도의채택원칙으로정부의안정성이라는대표성의원칙과이에따른의석배분의기술적원칙으로다수제를채택하면서동시에지리적대표성의원칙을채택한것은매우자연스러운현상이다. 그러나농업사회에서산업사회, 그리고여기에서한걸음더나아가후기산업사회로이행한현시점에서지리적대표성의원칙을고수하는것은기본적으로바람직하지못하다. 과거와달리지역간의동질성은커졌지만, 지역내이질성은확대되고있기때문이다. 여기에현대사회의분화역시간과할수없다. 물론사회가변했다고모두지리적대표성의원칙을포기하고기능적대표성의원칙을채택하는것은분명아니다. 그러나선거제도의개선을원한다면이점을고려할필요는있다. 물론혹자는시대적 사회적변화를고려한다면오히려지리적대표성의원칙을더욱고수할필요가있다고주장하기도한다. 농촌지역의경우산업발전과함께지역대표성의필요성이더커지기때문이라는것이다. 그러나농촌지역의정치적대표성을반드시지리적대표성과연계시킬필요는없다. 즉기능적대표성의원칙을채택하더라도농촌의대표성이보장될수있으며, 농촌지역의인구 56 정치선진화를위한선거제도개선방안
감소를고려할때오히려기능적대표성의원칙을관철하는선거제도가농민의이익을보다효과적으로대표할수도있다.( 이러한점에서사실한국사회에서농민의이익이제대로대표되지못하고있는것은부분적으로지리적대표성의원칙을관철하는선거제도를채택하고있기때문이라고볼수도있다.) 게다가지방자치의제도화를또다른정치적목표로설정하고있는우리의경우이에걸맞게국회의원선거에서는지리적대표성보다기능적대표성의원칙을채택하는것이바람직할것이다. (2) 비례성과지역주의문제 대의제민주주의가올바로작동한다는것은유권자의정치적의사를정치적의사결정과정에충분히반영토록하는것을의미하며, 따라서선거제도는유권자의정치적의사가왜곡됨이없이의회정치에반영될수있도록해야한다. 물론선거제도의이러한기본적인목적에도불구하고개인과집단에관한철학, 제도의정치적영향과관련한목적, 그리고현실적인조건등에의해선거제도의목적은완벽히충족되기어렵다. 그렇다고이것이선거제도의기본목적을전혀고려하지않아도된다는것을의미하지는않는다. 예컨대선거구획정과정에서 1인 1표 라고하는 표의등가성 의원칙을완벽하게구현하기는어렵지만, 이원칙을위배하는것이최소화되어야한다는것은자명한사실이다. 이와마찬가지로선거제도역시정당의득표율과정당의의석율괴리역시가능한최소화되는것이바람직할것이다. 바로이점에서독일식선거제도는이미언급한것처럼제도적으로높은비례성을갖는다는점에주목할필요가있으며, 바로이점이독일식선거제도를현행선거제도의주요한대안으로꼽는중요한이유가운데하나이다. 사실우리의현행선거제도는득표율과의석율의불균형이매우극심한편이며, 이로인해정치적의사결정과정에서유권자의정치적의사가왜곡되고있다. 예컨대지난 17대총선당시열린우리당은 38.3% 의정당지지율로전체의석가운데 51.4% 에해당하는 152석을차지해의석배분에서 10% 를넘는이득을취한반면, 민주노동당은 13.0% 의정당지지율에도불구하고 10석 (3.4%) 밖에얻지못한바있다. 이와마찬가지로 18대총선에서역시한나라당은 37.5% 의정당지지율을기록했지만, 전체의석은 독일식선거제도의특성과적용 57
51.2% 에달해 13.7% 의이득을얻었다. 이러한득표율과의석율의괴리 ( 불비례성 disproportionality) 는특히지역별, 즉권역별정당지지율과의석율을비교할경우더욱커진다. 예컨대 17대총선에서한나라당은영남권에서 53.9% 의정당지지율로 90.9%(60석 ) 의의석을차지하였으며, 열린우리당은호남권에서 56.4% 의지지율로 84.8%(24석 ) 의의석을획득한바있다. 바로이러한예에서살펴볼수있듯현행선거제도의불비레성은지역주의적정당구도를온존 강화시키는결과를초래하고있다는점도간과할수없다. 물론현행선거제도가지역주의의원인은분명히아니다. 그러나예컨대영남에서 53.9% 의지지를받는한나라당이강한정당에게의석을배분한다는제도적인배분원칙에따라영남지역의석의대부분을차지함으로서영남지역에대한배타적인정치적지배권을확보하고있으며, 이점은호남이나충청에서역시예외는아니다. 즉현행선거제도의불비례성은지역주의정당구도를온존 강화시키는요인가운데하나라는것이다. 이점은비례성이높은독일식선거제도가지역정당구도완화에도움을줄수있다는기존연구들에서도다시한번확인이된다. 특히시뮬레이션을통한분석결과, 다수제와비례제를단순병행하는, 즉현행제도에서단순히비례의석을늘리는것보다독일식선거제도가지역주의정당구도완화에훨씬더큰효과가있다는것이다. 예컨대 18대총선결과를독일식선거제도방식으로의석을배분하면모든정당이 6개권역모두에서의석을차지할수있어, 정당의지역적인독점구도가다소나마완화되는것으로나타나며, 그효과는일본식에비해크다. (3) 초과의석과의원정수문제 독일식선거제도는앞서살펴본것처럼초과의석이발생할가능성이있으며, 이에따라의원정수가유동적이라는특징을갖는다. 의원정수가유동적이라는것이반드시문제라고할수는없다. 그러나정치적불만이높은우리의정치현실에서의원정수는중요한정치적문제가운데하나이다. 게다가초과의석은본질적으로유권자의의사이기도하지만비례성의측면에서유권자의의사를왜곡시키는것이라고할수있다. 58 정치선진화를위한선거제도개선방안
< 표 > 혼합형선거제도도입시권역별최종의석배분 (365 석기준 ) a) 일본식 (* 무소속의석 25석이제외되어총의석수는 340 석임 ) 한나라 민주 친박 선진 민노 창조 서울 51 15 3 2 2 1 경기-강원 60 31 5 2 2 2 충청 5 10 1 18 1 0 호남-제주 2 38 0 0 1 1 경북 24 1 8 0 1 0 경남 38 4 5 1 2 3 의석합계 180 99 22 23 9 7 b) 독일식 ( 초과의석발생으로의석재배분 ) 한나라 민주 친박 선진 민노 창조 서울 40* 22 8 3 3 2 경기-강원 48 29 13 6 6 5 충청 12 7 3 14* 2 1 호남-제주 5 30 1 1 4 2 경북 22 2 12 1 2 1 경남 29* 7 13 2 5 2 의석합계 156 97 50 27 22 13 자료 : 강원택 (2009) 독일선거제도에서초과의석은선거구유권자수, 비례의석과지역구의석의비율, 투표참여율, 정당경쟁도, 분할투표와같은유권자의투표행태등과같은다영한요인에의해발생한다. 한국의경우지난 18대총선을사례로한분석결과 ( 강원택 2009) 에따르면, 지역구의석 245석, 비례의석 120석등총 345석을기준으로했을때, 총 10 석이발생하는것으로나타난다. 물론이러한초과의석은초과의석에영향을주는요인, 예컨대소선거구의석과비례의석의비율을재조정하면늘어날수도있으며, 줄어들수있다. 특히비례의석의규모를늘릴수록초과의석은줄어든다. 따라서독일 독일식선거제도의특성과적용 59
식선거제도를도입하면서초과의석의발생을최소화하려는경우비례의석이충분히확대될필요가있다. 한편초과의석과관련한최근독일의논의는우리에게훌륭한시사점을제공해준다. 먼저초과의석으로인한불비례성문제에문제의초점을맞추는경우비례성을유지하기위해발생한초과의석만큼다른정당에게도추가로조정의석을배정하는것이초과의석문제의해결책이다. 그러나초과의석수와동일한조정의석을배분하는것은비례성은높일수있는바람직한방법이지만, 전체의석이유동적이라는문제가남으며, 특히초과의석에조정의석이추가되기때문에의석수는더욱늘어난다는문제가남는다. 비례성을유지하는또다른방법이면서동시에의원정수의유동성문제를해결하는방식은독일바이에른주의주선거제도처럼초과의석을인정하지않는방식이다. 그러나유권자의직접선거를통해선출된당선인을인정하지않는다는것은현실적으로동의를얻기가쉽지않을것이다. 불비례성을고려하지않고의석수의유동성문제만을고려한다면권역별명부가연계된것으로간주하고특정지역의초과의석만큼을해당정당의다른지역의석에서제외하면전체의석수가고정될수있다. 그러나이역시지역별득표율과의석율의괴리를가져오기때문에문제가될수있다. 역시불비례성을고려하지않고초과의석으로인한전체의석의유동성문제를해결할수있는또다른방안은오스트리아에서처럼초과의석을인정하되, 다른정당에게배정될의석에서초과의석만큼을줄이는방식이다. 이방법은선거제도의불비례성이더욱커질수있다는문제점이있다. 이처럼초과의석의문제를해결하기위해서는먼저문제의초점을불비례성에둘것인지혹은의석의유동성에둘것인지명확히해야할필요가있다. 독일식선거제도도입과관련하여흔히제기되는또다른주요한쟁점은쟁점가운데하나는의원정수문제이다. 현행우리의선거제도는비례의석의규모가대단히작기때문에독일식선거제도의기본전제는현행보다비례의석을확대하는것이다. 문제는비례의석을확대하기위해서는현행지역구의석을축소하든지아니면지역구의석을현행대로유지하고전체의석을확대해야한다는것이다. 지역구축소의경우현직국회의원들의정치적이해관계를고려할때현실적실현가능성이그리높지않으며, 규모도제한적일가능성이높다. 물론지역구국회의원의이익만을고려하여 60 정치선진화를위한선거제도개선방안
의원정수를확대하는것은곤란하며, 의원정수확대필요성이그자체로서존재해야한다. 일반적으로의원정수는의회의대표성과효율성을고려하여결정되어야하는것으로알려져있다. 기존연구에따르면의회의대표성과효율성, 즉인구규모, 국가의경제력, 국가업무의정도등을고려해볼때우리의의원정수는다소확대될필요성이있다는것이일반적이다. 따라서지역구의석의축소가어렵다면전체의원정수의확대도고려해볼수있겠다. 물론의원정수를확대하기위해서는헌법개정이요구된다는지적도없지않다. 여기에서는이문제를심도있게다루는것이어렵기때문에이러한측면이있다는것만언급하기로한다. 의원정수확대와관련하여의회에대한국민적불만이매우높은현실에서의원정수확대는국민적반발을불러일으킬가능성이매우크다는사실역시간과할수없다. 따라서제도개혁을위해의원정수확대가현실적으로불가피하다면일정정도지역구의석을축소하면서의석을확대하는것을통해국민적설득과동의를얻는것역시중요할것이다. 의원정수와관련하여논의될수있는또다른사안은지역구의석과비례의석의비율이다. 비례의석의비중이높아질수록대표성의원칙으로사회적대표성의강화가강조된다고할수있다. 이러한점에서지역구의석과비례의석의비율을각각 1:1로맞추는것이가장바람직하다. 그러나지역구의석과비례의석을동일하게하기위해서는지역구의석을상당축소거나혹은상당한규모에의석확대가불가피하다. 이러한점에서현실적으로지역구의석의축소가어렵다면지역구의석과비례의석의비율이최소 2:1의수준이되어야할것이다. (4) 명부작성방식과비례의석산정기준, 그리고지역구와비례대표중복공천및석패율도입문제독일식선거제도의도입과관련하여제기되는또다른쟁점은비례의석배분방식에서전국명부와권역별명부가운데어떤것을선택하느냐이다. 정당득표율과정당의석율의비례성은권역명부에비해전국명부가다소높다고할수있으나, 의미를부여할정도로큰차이는아니다. 독일의경우권역별명부를채택하고있는것은다른무엇보다연방제국가이기때문이라고할수있다. 그러나우리의경우연방제 독일식선거제도의특성과적용 61
를채택하고있지는않으며, 현행비례명부역시전국명부이다. 다만지역주의완화라는관점에서권역별비례대표의경우어느정도당선자가지역을대표하는의미를가질수있기때문에지역주의의완화효과를기대할수있다. 즉특정정당의독점지역에서다른정당이비례명부를통해당선자를배출함으로서대립적정당구도를만들어낼수있다는것이다. 그러나지역대표로지역구의원이존재하는가운데또다른형태의지역대표를선출하는것보다오히려비례대표는국가대표로선출하는것이바람직하다는의견도있을수있다. 게다가표의지역적집중현상이강화되는경우권역명부로인한지역주의의심화를우려하는목소리도간과할수없다. 명부작성방식이정당정치의제도화에미치는효과역시현재로서는평가하기어렵다. 다만전국명부의경우정당정치가중앙당을중심으로하겠지만, 권역별명부의경우정당정치의중심이권역으로이동해야할것이다. 특히권역명부의작성권한이권역 ( 시 도당 ) 에있는경우정당의지방분권화를이룰수있을것이다. 결국제도적효과가운데비중을어디에좀더두느냐에따라선택이달라질수있겠지만, 권역명부가한국정치의문제를개선하는데더큰의미가있다고볼수있을것이다. 비례의석을권역별로배분하더라도권역득표율로배분할것인가? 혹은전국득표율로배분할것인가? 아니면일괄배분할것인가? 최대권역의석을일정정도로한정할것인가? 등의문제가남는다. 여기에서권열별명부작성에도불구하고전국득표율에따른배분이나일괄배분혹은의석제한등을고려하는것은이를통해지역주의완화효과를극대화해보자는것이다. 그러나권역별정당지지율과무관하게의석을배정한다는것은각권역의관점, 즉선거구단위에서정당지지율과의석점유율에괴리가매우커질수있으며, 직접선거의원칙을훼손한다는비판을초래할수있다. 특히소선거구정당득표율에기초한정당의석배분역시위헌판결을받은바있다는점을고려해볼때직접선거원칙의훼손은위헌논란을불러일으킬수있다. 게다가선거제도에서는권역배분과전국일괄배분에따른비례지역별의석수의차이는그리크지않다. 이러한점에서불비례성과직접선거의원칙훼손까지감안하면서까지기형적으로제도변형을할필요는없는것같다. 권역별로의석을배분할경우권역을어떻게분할할것인가의문제역시간과할수없다. 비례대표의권역별배분을위한권역의획정문제는아직까지세부적으로논의 62 정치선진화를위한선거제도개선방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