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이름의 종류 박 현 A 눈 (민족운화추진회 전운위원) 1. 머 리 말 오늘날은 보통 한 사랍이 하나의 이름을 가지고 살아간다. 문학이나 서 에 둥파 같은 예숭 활동올 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더러 本 名 이외의 다른 이름이나 號 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양과 名 만을 사용 한다. 漢 字 로 운자 생활을 하였던 우리의 조상들윤 일생 동안에 여러 가지 이름을 사용하였다. 어릴 때 지어 부르는 兒 名 이 있고, 어느 정도 성장을 한 뒤에 짓는 本 名 이 있고, 본명을 바꾸어 부르는 字 가 있었다. 이러한 이름은 부모나 스송이나 친구들이 지어 주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독자 척인 가치관을 가지게 되고 사회활동의 범위가 넓어지연 號 를 지었다. 號 는 名 이나 字 를 대체하기 위하여 주로 자신이 짓는 것이다. 는 字 를 사용하였고 손윗사람을 부를 때에는 號 를 사용하였다. 이 죽은 뒤에 나라에서 내리는 짧 號 가 있다. 공식척으로 평가한 의미를 담고 있다. 친구 사이에서 밖에도 짧 號 는 대상 인물을 나라에서 王 이 죽은 뒤에는 諸 號 이외에도 優 號, 없윷 跳, 關 號 동을 지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關 觀 이다. 위의 여 러 가지 이릉틀은 태어난 뒤에 지어지는 것인데, 태어나거 전부터 이미 청해져 있는 이름이 姓 이다. 이 글에서는 이름을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되, 姓 은 다른 글에서 다루 어질 것이므로 제외하고, 字 와 號 를 중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아래에 인용하는 字, 號 둥에 대한 例 文 은, 생략한 곳이 많고 내용을 다소 손질하였기 때운에 原 文 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 분야에 대해 깊 이 연구하고자 하는 분은 原 文 을 찾아 참고하기 바란다. 例 文 끝에 붙인 숫자는 민족문화추진회에서 영언한 韓 國 文 集 훌훌 刊 의 集 數 와 面 數 이다.
40 새국어생활 제 l 권 제 l 호( 91 봉) 2. 부형, 스승, 벗이 지어 주는 이름 가) 兒 名 兒 名 은 부형이 지어 주는 이름이다. 부모나 가족이 꾼 태몽과 관련하여 짓거나 액맹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천한 이름으로 짓는 경우가 많다. 申 用 戰 의 二 樂 훔 集 훌 誌 와 硬 銘 에, 文 景 公 이 태어날 때에 文 忠 公 이 산에서 상서로운 기운이 내려오는 꿈올 꾸 었다. 그래서 白 홉훌훌이라고 名 을 지었다. 文 忠 公 의 집 뒤에 白 돕 山 이 있었다 (1 7-145) 하였다. 文 景 公 申 用 戰 의 兒 名 이 白 ffi 鍾 이었는데, 그의 할아버지언 文 忠 公 申 됐:flJ-가 꿈에 집 뒤에 있는 白 홉 山 의 靈 氣 를 받아 손자의 이름을 지 은것짜다. 朴 齊 家 의 貞 餐 集 外 從 弟 改 名 說 에, 名 은 나와 더풀어 명생을 함께 하는것이다. 태어난 지 적 달 만에 부오가 名 을 지어 주는데, 이것을 小 名 이라고 한다. 冠 禮 를 치료고 朋 友 가 字 릎 지어 불러 주 연 드디어 훌 名 이 정해진다. 그리하여 그 이릅을 돌아보고 돗올 생각하며 살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사랑하는 자식일수록 반드시 천한 이름을 붙여 주는데, 이와 같이 하는 것은 액을 악A 려는 것이니, 그 의도가 구차하다. 네 이릉이 돼지 隊 인데. 올해 열한 상이나, 거의 4 천 날을 돼지 행세플 한 생이다. 해꾀한 일이 아 니냐? 네 종형제들이 모두 誠 자 돌링자로 이릎을 지었으나 이제 네 이름을 횟 誠 이라고 짓는다. 쫓는 늘 해흘 향하여 서 있는 해바라기이다. 옛날의 충신들이 입 금융 사량하여 잊지 옷하는 것올 해바라기 같은 갱성이라고 히였다. 字 짓는 일 은 冠 禮 하는 날을 기다리도록 하자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小 名 은 곧 어렬 때의 이름언 兒 名 과 같은 돗인데, 천한 이릅울 지어서 온갖 잡귀의 침입을 막으려고 했던 옛 사람들의 생각 울 알 수가 있다. 나) 名 어느 정도 별탈없이 성장을 하연 兒 名 을 바꾸어 本 名 을 짓는다. 本 名 은,
이릎의 종류 41 부형이 지어 주는, 개인에 대한 정식 이름이다. 위에 인용한 朴 齊 家 의 外 從 弟 改 名 說 은, 外 從 弟 의 本 名 을 쫓 誠 이라고 짓 는 내용을 서솔한 글이다. f 可 섭섭의 浩 亨 뚫 名 子 說 에, 나무는 오래 자리 연 반드시 높은 산에 우뚝 솟고 울은 요래 흐르연 반드시 깊 은 바다에 이르게 왼다. 사람이 학문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쉬지 않고 오래 도록 하연 반드시 성공율 할 것이다 너의 이릉을 오탤 久 자로 짓는다. 너는 이 릉올 졸아보고 그 뭇올 생각하여, 뱃대로 놀기만 해서는 안 된다. 요늘 하나의 이치를 연구하고 내일 하나의 이치흘 연구하며 요늘 한 가지 착한 일을 하고 내 일 한 가지 착한 일올 하여 하루하루를 조심스렵게 공부해 나가연 반드시 흉륭한 사량이 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연 날마다 퇴보하여 반드시 소인이 될 것이 다, "(6-453) 하였다. 河 밟이 아들의 이름을 久 라고 짓고, 久 자의 뭇을 설명하면서, 이 름에 담긴 뭇을 실천할 것을 아들에게 당부한 것이다. 本 名 은 자녀에 대한 부형의 소망을 담아서 짓는다. 名 을 지으면 부형은 그 名 의 뭇을 섣영하고 그 뭇을 실천하연서 살기를 당부하는 글을 짓는 데, 이것이 곧 名 說 이나 改 名 說 등이다. 名 을 받은 시 람은 자신의 이름을 돌아보고 그 뭇을 생각하며 평생을 살아간다. 이것을 願 名 思 義 라고 한다. 다) 字 i댐 鍵 類 l뼈에, 冠 禮 를 한 뒤에 字 를 지어 주는 것은 그 名 을 공경하는 것 이다" 라고 하였고, 임금이 신하에 대해서, 선생이 그의 문인들에 대해 서는 名 을 부르고, 같은 관직에 있는 동료들 사이이거냐, 姓 이 같은 형제 들 사이이거나, 같은 스승 밑에서 공부하는 벗들 사이에서는 字 를 부른 톨 다"라고 하였으며, 名 은 字 의 本 이고 字 는 名 의 末 이다"라고 하였다. 字 는 名 을 대체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禮 記 에 남자가 20세가 되연 冠 禮 를 하고 字 를 짓는다"라고 하였고, 여자가 약혼을 하연 머리를 올리고 字 를 짓는다"라고 하였다. 朱 子 家 禮 에는, 남자는 15 세에서 20 세 사이에 모두 관례를 한다고 하였다. 字 를 짓는다는 것은 成 人 으로 안정받는 것을 의미하였다. 우리 나라 文 集 에 냐오는 글을을 통해서 字 를 짓는 시기와 방법, 가지는 의미 둥을 살펴보자. 字 가.
42 새국어생활 제 1 권 제 l 호( 91 봉) 張 願 光 의 旅 훨f 集 旅 훌f 說 에, 시대가 내려오연서 尊 뽑의 동급과 長 ~의 칠서률 밝히지 않융 수가 없게 되자, 이마 지은 각각의 名 올 가지고 그 名 의 뭇을 따라 바꾸어 부률 수 있는 字 를 지 었다 名 이 있는 사랑은 모두 字 가 있었다. "(60-140) 하였다. 字 가 펼요하게 된 이유를 설영한 것이라 하겠다. 李 奎 報 의 東 國 李 相 國 集 察 樞 密 松 年 字 序 에, 쩨훌 密 相 國 蔡 公 이 그 음훌훌 대신할 것을 생각하여 냐에게 字 흘 지어 단과고 하 였다. 내카 天 老 라고 字 률 지어 주었다. "(2-241) 하였다. 성명이 蔡 松 年 이나 松 年 이라는 이릅의 돗은 소나우처렴 오래 산 다는 것이다. 소나무가 늘 푸르게 오래오래 잘 수 있는 것은 하늘이 그 짧를 누리게 하여 그렇게 잘 늙어 가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天 老 라고 字 를 지은 것이다. 字 의 뜻이나 相 國 벼슬로 보아 얀년에 지은 字 인 듯하다. 李 뿔 仁 의!빼 隱 建 忠 原 判 官 李 君 及 字 說 에, 李 君 及 이 나에게 字 롤 지어 달라고 하였다. 朋 友 가 字 흘 지어 주는 것은 꿇 이나, 내가 어찌 사양할 수 있으랴. 春 秋 公 후 傳 어1 이르기률 及 은 &뼈과 같다 고 하였다. 君 子 는 義 에 끊않하고 小 A은 利 어!1 ~~하다. 務 와 利 는 짧임 금 같은 훌륭한 사람이 되느냐 효 廳 갚은 도척놈이 되느냐 하는 것이 여기에서 판가릎이? ι 나며 天 下 國 家 가 제대로 다스려지느냐 망하느냐 하는 것이 여기에 매여 있다. 그래서 字 흘 公 義 라고 짓는다. "(6-610) 하였다. 忠 써 I $'IJ 官 벼슬을 하고 있는 친구 李 及 의 字 를 짓는 이야기이다. 及 은 미쳐서 도달한다는 뭇이고, fjfâffi.은 쉬지 않고 힘쓰는 모습이다. 利 益 되는 연만 쫓아다니는 小 A 이 되지 말고 公 옳를 깊이 생각하는 君 子 가 되기를 바라는 뭇이 담겨 있다. 權 近 의 陽 村 集 義 民 字 說 에, 어려서 名 올 짓고 冠 꿇롤 하고 字 를 짓는다. 字 라는 것은 친구 사이에 서로 지어서 불러 주는 것이다. "(7-210) 하고, 같은 책 金 民 名 字 說 어11.
이릉의 종휴 43 나의 친구 옳~이 字 률 지어 달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였다. 예로부터 朋 友 가 字 률 짓는 것이니, 내가 지어 주겠다. 폼운 제후의 학궁이다. 그대 이름이 엠3 인 것은 학문에 뭇올 두라는 의마이다. 학문올 하는 것은 그 本 源 을 제대로 찾는 일 이 중요하다. 그래서 字 률 學 源 이라고 짓는다. "(7-215) 하였다. 名 파 字 를 짓는 시기와 字 를 짓는 사랍이 누구인지를 밝혀 놓 았다. 申 用 澈 의 二 樂 훔 集 홍 誌 와 陣 鎬 에, 다섯 살 때에 아버지플 여의어 할아버지인 文 忠 公 이 직정 기르며 가르쳤는데, 어렬 때부터 재주가 뛰어나서 보통 아이들과는 달랐다. 文 忠 公 이 매우 기특하게 여치고 名 올 바꾸고 字 흘 지어 주었다. "(17-145) 하였다. 張 維 의 짧삼 集 金 生 짧 弘 字 說 에, 金 生 이 名 을 홉 弘 ~로 바꾸고 나에게 字 를 지어 달라고 청하였다. 내가 이렇게 알하였다. 弘 은 넓고 크다는 뭇이다. 字 를 夏 南 라고 짓는다" 넓고 크기로는 훌가 제일이다. 그래서 너의 하였고, 같은 책 柳 生 名 字 說 에, 柳 의 아을 세 사람이 나에게 名 과 字 롤 지어 달라고 하였다. 하였다. 어렬 째에 兒 名 을 쓰다가 어느 정도 성장올 한 뒤에 兒 名 을 버리 고 本 名 을 지 며 그와 동시에 字 를 짓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朴 英 의 松 쏟 集 神 道 - 陣 銘 에, 어렬 척부터 의갯하여 보통 아이들과는 달랬다. 아버지 參 몇l 公 이 名 을 英 이라 고 짓고 字 흘 子 實 이라고 지어 주었다. 公 이 태어난 지 5 년 만에 흉 判 公 이 세상 을 떠났다. "(18-130) 하였다. 이 글을 보연 子 寶 이 라는 字 는 朴 英 이 다섯 살아 되기 전에 名 과 함께 지어진 것입을 알 수가 있다. 權 好 文 의 松 嚴 集 續 子 行 可 字 說 에, 일쩍이 초카의 名 을 行 可 라고 지어 주었는데 세상에 행세활 수 있는 바랑직한 사랍이 되라는 뜻이었다. 이제 관례롤 하게 되어 字 흘 士 遇 라고 짓는다. 우릇 부 친이 名 을 짓고 벗이 字 률 지어 주는 것이 jfo] 냐, 名 과 宇 롤 오두 내가 지었다.
1 무슨 44 새국어생활 께 1 켠 제 1 호( 91 봄) 예로부터 없 父 라는 명칭이 있어 왔고 스송과 벗은 일체라는 말도 있었다. 그러니 내가 行 可 애게는 부친과 마찬가지이고 스송이라고 해도 안 될 것이 없다. 선비가 공부롤 하는 것은 세상에 쓰이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참으로 알아 주는 세상을 만 나라는 의미에서 士 遇 라고 字 흘 지었다. "(41-282) 하였다. 淑 父 가 조카의 名 과 字 를 지은 이야치이다. 名 은 부친이 짓는 것 이 원칙이나 없 父 도 부친과 같으니 지을 수가 있고, 字 는 벗이 짓는 것이 원칙이나 스승과 벗이 일체이니 스승의 자격으로 字 를 짓는다고 하였다. 張 顯 光 의 旅 힘 集 孫 錄 冠 說 에, 오늘 찌의 머리에 冠 을 얹었다. 이것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禮 이다. 冠 禮 라는 것은 이제 成 A의 의우를 부여하는 것이다. 네가 임솔년이l 태어났 니 이제 15 세 가 되었다. 중국의 법에 나이가 15 세가 되연 싼 丁 이파고 이름하는데, 이것은 成 A으로서 처신올 해야 한다는 의마이다. 우룻 사람의 遺 가 이 냐이가 되연 완성 되는 것이니, 冠 꿇를 하는 것은 成 A 이 되었다는 것율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사 랍의 평라는 것이 우엇이 냐. 사람으로서 해 야 할 도리, 바로 죠{때올 말한다. 집 에서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서로 아껴 주며, 친구들에게는 신의 있게 대 해야 한다. 머지않아 아내를 맞을 엔데 예철을 갖추어 셔로 대해야 한다. 사랑이 제대로 되연 군신간의 의리는 그 속에 다 갖추어지는 엽이다. 요늘 너의 관례를 하고 냐는 네 초부로서 이 글을 지 어 갱 계 한다. "(60-341) 하였다. 15 세에 冠 禮 를 한 것을 밝히는 글이다. 스숭이 제자들의 字 를 한꺼번에 지어 주는 경우도 있었다. 金 꽃찮i 으 값 짧 集 에 있는 朴 蘭 李 嗚 金 器 字 說 (20-19 1) 등 여 러 펀의 글은 문하에 있는 여러 제자들의 추를 한꺼번씨l 지어 주는글이다. 같은책 韓 宗 道 字 짧에 字 를 지어 名 의 돗을 드러내는 것은 師 友 가 할 일이다 라고 하였으니, 스숭 아 제자들의 字 툴 지어 주는 일이 많이 있었다. 字 는 名 과 마찬가지로 한 사랑에게 하나밖에 없으며 한 번 지으면 명생 을 바꾸지 않는 것이냐, 成 三 f법의 成 護 南 集 李 君 옳 改 字 可 成 說 에, 간흑 중간에 字 를 바꾸어 짓는 경우가 있다. 냐의 친구 李 휩는 字 가 秀 grm이었다. 하루는 내가 농담으로 그대는 秀 자에셔 뭇올 취한 것인가? 이삭이 패고도 여울지 못하는 수도 있다네. 하니, 이 친구가 그헝다연 내 字 흘 다시 지어 주게. 하었다. 그래서 내가 온갖 곡식이 완전히 여운다는 뭇을 가진 可 成 이라고 字 를 지어 주었다. "(lc-195)
이릅의 종류 45 하었다. 행자는 풀이나 곡식이 싹이 트는 모양을 뭇하는 글자이다. 秀 자 는 이삭이 왜는 뭇을 가진 글자로서 여기에서 우수하다는 돗이 파생되었 다. 곡식이 이삭이 잘 패고도 여물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완전히 여우는 것을 의미하는 成 자로 字 를 다시 지은 것이다. 徐 敬 德 의 花 짧 集 朴 題 正 字 詞 에, 朴 民 없이 字 가 元 夫 였는데, 나에게 바꾸어 달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흘 元 이라는 것은 天 德 의 뜸이요 짧 善 의 총칭이니, 초학자가 차지하기에는 합당하지 가 않네. 힘을 다하여 노력한다는 의미를 가진 題 표으로 字 롤 바꾸게. 하였다" (24-316) 하였다. 이런 경우는 돗이 걸맞지 않게 너무 크기 때문에 字 를 바꾼 경우 이다. 字 는 朋 友 가 짓는 것이다. 부형이나 스송이 짓는 경우도 더러 있으나 자신이 스스로 짓는 경우는 없다. 주로 친구 사이에서 서로 부르는 이름 이다. 字 는 冠 禮 를 하고 짓는 것이 원칙이나, 兒 名 을 버리고 本 名 을 지을 때에 함께 짓는 경우가 많다. 째로는 나이가 많은 노년에 지은 경우도 있다. 字 는 名 을 대신하여 부르는 이름이고,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이거나간에 名 과 깊은 관계가 있다. 위애 인용한 것 이외에도, 柳 得 悲 의 字 惠 風 은 굶 子 에 나오는 柳 下 惠 之 風 과 관련아 있고, 金 時 習 의 字 인 兌 맺n은 論 語 의 學 而 時 習 之 不 亦 說 乎 와 관련이 었다. 說 은 짧의 뭇이다. 鄭 士 龍 의 字 는 雲 쩨인데 風 從 虎 雲 從 龍 과 관련이 있다. 沈 彦 光 의 字 는 士 炯 인데 彦 과 士 는 같은 뭇이며 光 과 炯 은 같은 뭇이다. 許 훨의 누이 許 蘭 雪 빡은 蘭 雪 딴이 않이 고 名 은 楚 姬 이 며 字 는 景 樂 이 다. 중국 楚 나라 莊 王 의 훌륭한 부인이 雙 姬 었는데 名 과 字 를 여기서 따다가 쏟 것이다. 이와 같이 字 는 거의 예외 없이 名 의 뜻을 부연 설명하거나 보완하거나 같은 뭇을 가진 글 자를 쓰거나 하여, 名 과 짝이 되게 짓는 이름이다. 字 를 짓고 나연 字 序, 字 說, 字 離, 字 詞 등을 지어서 字 에 담긴 뭇을 설명하고 그 돗대로 실천을 하면서 살기를 당부하였다. 3. 자기가 스스로 짓는 이름 號 는 名 이나 字 를 대체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주로 거처하는 홉 獲 의 이 름이거나 거처하는 곳의 지영이거나 자신이 추구하는 바의 삶의 목표 둥
46 새국어생활 제 1 권 제 1 호( 91 붙) 으로 名 과 字 를 대체하여 부르는 이름을 삼았는데 이것이 號 이다. 우리 나라 文 集 에 나오는 몇 가지 글을 가지고 살펴기로 한다. 李 奎 報 의 東 國 李 相 國 集 白 훨 居 土 語 錄 에, 옛날에는 짧로 名 올 대신한 분들이 많이 있었다. 그 거쳐하는 바 所 居 흘 가 지고 호롤 상은 자도 있고, 그 기르는 바 所 훌 흘 가지고 호흘 삼은 자도 있고, 그 얻은 바의 켈상 cm 得 之 實 을 가지고 호흘.상은 자도 있다. 王 뺏의 號 안 東 휩 子 와 삼 子 美 의 號 인 草 堂 先 生 과 햄 知 쫓의 號 임 四 明 狂 客 과 白 樂 天 의 號 인 香 山 居 士 는 거쳐하는 바를 가지고 짧롤 상윤 것이고, 빼뺨의 싸인 죠 柳 先 生 파 鄭 薰 의 號 인 七 松 處 土 와 歐 陽 子 의 號 인 六 - 居 土 는 기 르는 바플 가지 고 호흩 삼윤 것이 고, 張 志 n의 호인 玄 륨 子 와 元 結 의 호인 짧 浪 쩔는 얻은 바의 실상을 가지 고 호 률 상은 것이다. 나는 떠도는 인생이라 청해진 거처도 없고 기르는 것도 없고 얻 은 바의 실상도 없다. 위의 세 가지 중에 하나도 옛 사랑에게 미치지 못하니, 나 의 호흘 어떻게 지어야 하겠는가? 명소에 거운고 흉 와 슬 댐 과 시( 詩 )를 매우 좋아하였기 때문에 三 옳 好 先 生 이라고 호를 지었으내 거운고 타는 것도 잘하지 옷 하고 시 짓는 일도 장하지 옷하고 솔도 많이 마시지 옷하나 이 般 롤 내가 차지하 고 있으연 세상 사람들이 껄껄거리며 웃을 것이다. 그래셔 白 雲 居 土 라고 호률 바 꾸었다. 白 쫓응 내 가 본받고자 하는 바 所 幕 이 다."(1-502) 하고, 그 아래에 구름의 속성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을 하였다. 거처하 는 장소, 기르는 바의 사물, 터득하여 깨달은 이치나 도달한 경지, 뭇을 두고 살아가는 삶의 지표 둥이 號 를 짓는 자료가 된다는 것올 알 수가 있 다. 李 뺑의 龜 嚴 集 ( 宋 寅 의 題 魔 造 橋 ) 題 R흉 記 에, 옛날의 군자들은 반드시 居 處 하는 室 을 두었는데, 그 室 이라는 것은 겨우 옴 이나 붙이고 지낼 만한 조그마한 것이었지 고대광실 큰 집이 아니었다. 그래서 舍 라고 하기 도 하고 짧라고 하기 도 하고 廣 이 라고 하기 도 하였다. 그리 고 그것올 표시하는 이륨이 없올 수 없기 때운에, 혹 나의 일삼는 바 홈 之 所 짧 로써. 혹 냐 의 보종하는 바 홈 之 所 存 로써. 혹 나의 힘써 노력하는 바 홈 之 所 없 효써 이릎을 상았다. 한갓 이릅만 상올 뿐 아니라 그 이룸의 풋에 맞추어 실천을 하였다 (33-489. 36-212) 하였다. 이 글은 堂 이나 짧나 野 의 이릎을 짓는 법에 대해서 말한 것이다. 이렇게 지어진 堂 號 나 寶 號 나 후f 號 퉁이 대부분 그대로 그 주인의 號 가 되었다.
이릎의 종류 47 張 顯 光 의 旅 함 集 旅 野 짧에, 시대가 내려올수록 世 道 가 밝지 못하고 갱치가 어지려웠다. 천하에 큰 포부냐 역량을 가지고도 세상에 나와서 차기의 뭇올 혈 수 없었던 선비들은 물러가 山 林 이냐 江 뼈에서 은거 생활을 하였다. 이런 사람플은 세상 사랑들의 이목에 자신들 의 名 이나 字 가 드허나는 것올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셰속에서 부르던 이릎인 名 과 字 를 벗어나서 새로운 이릎인 號 플 짓게 된 것이다. 혹 거처하는 서실 이름 으로 호롤 장기도 하고. 혹 거쳐하는 장소나 지명올 가지고 호를 상기도 하고, 江 湖, 池 澤. 앓 山, 양 洞 에 마음으로 즐기 거 나 옴이 가서 살거 나 하는 퉁퉁의 연 관이 있으연 그것을 가지고 호훌 상기도 하였는데. 이렇게 지어지는 이름을 총칭 하여 훌f 號 라고 하였다. 뒤 세대에 태어난 사랑들은 존경하는 ξ상이나 선배들에 대해서 강허 그분들의 名 이나 字 를 업에 올라지 뭇하고 보통 그분들의 휩 號 로써 불렀다. "(60-140) 하였다. 여껴서는 野 號 라는 개념을 보통 말하는 號 라는 개념과 같은 뭇으 로 사용하였는데, 세상에서 버렴을 받아 산림에 묻혀 사는 사람들이 세속 사랍들의 업에 오르내리는 자신의 名 이냐 字 를 대체하기 위해서 號 를 지 었다는 것이다. 위 세 펀의 글을 가지고 호를 짓는 방법의 대강을 정리하연 다음과 같다. 가. 白 뚫 語 錄 : 號 를 짓는 경우 1. 所 居 (거처하는 지명이나 장소) 2. 所 훌(기르는 초목이 나 소유하고 있는 사물) 3. 所 得 之 寶 (깨달은 이치나 진리와 관계되는 개념어) 4. 所 幕 (지 향하는 바의 목표) 냐. 題 魔 記 : 堂 號, 췄좀 腦, 휩f 號 둥 거처하는 훌훌 室 의 이륨을 짓는 경우 1. 所 事 (일상는 것) 2. 所 存 (간직 하고 있는 것) 3. 所 썼(노력 하며 추구해 나가는 것) 다.~ 훌f 짧:훌f 號 를 짓는 경우 1. 所 居 之 室 (지내고 있는 집이냐 방) 2. 所 處 之 地 (지내고 있는 지명) 3. 江 湖 池 澤 훌 山 갑 洞 其 心 所 樂 其 身 所 遇 之 物 (좋아하거나 가서 사는 자연 경관)
48 새국어생활 제 l 권 제 1 호( 91 앞\ 號 는 자신의 名 과 字 를 숭꺼기 위해서 짓는 것이다. 李 奎 報 의 白 雲 居 士 { 專 에서도 白 雲 居 士 는 先 生 의 自 號 이다. 名 을 감추고 號 를 드러냈다"라 고 하였다. 굳이 名 과 字 를 감추려고 지은 것이 아닌 堂 跳, 짧 號 둥이 후 대에 그 주인을 지칭하는 號 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 號 는 자신의 名 과 字 를 대체하는 것인데, 名 과 字 를 함부로 부를 수 없는 시대가 되자, 누구나 제약 없이 부를 수 있는 하나의 이름으로 정착되었다. 이제 구체적으로 개 인의 號 를 살펴보기로 하자. 위에 인용한 李 쫓 報 의 白 雲 居 士 認 錄 에, 흰 구릉 白 雲 은 내 가 본받고자 하는 바이 다. 구름이 라는 물건은 한가하고 자 유롭게 바람 따라 떠다니며 산에 걸려지도 않고 하늘에 붙어 있지도 않는다. 풍실 둥실 마옴대로 여기저기 떠다니며 아무 구속도 받지 않고 장깐 사이에도 변화무 쌍하여 도우지 헤 아렬 수가 없는 울건이 다. 웅게 웅게 피 어 오르는 것윤 君 子 가 세 상에 나오는 형상이고, 스르르 거두어 사라지는 것은 高 A 이 산렴 속으로 은거하 는 형상이다. 벼롤 내려서 가뭄에 타는 생물을 소생시키는 것은 仁 이고, 와도 어 디에 붙어 있지 아니하며 가도 마련을 두지 않는 것은 通 이다. 푸른 구릅, 누런 구름, 붉은 구릉, 검은 구릉도 있으나, 그것은 본래의 구릉 색깔이 아니다. 오직 아무 꾸멈 없는 회다흰 구릎이 구릉의 참모슐이다. 구름은 이렇게 어진 덕을 지 영고 1 렇게 깨끗한 색깔융 가졌다. 만약 구름올 본받고 배워서, 나가서는 만울에 윤돼올 끼치고, 을어와서는 마음올 비위 깨끗이 하며, 그 구릅쳐렴 깨끗하고 변함 없는 마음을 지키고 간직하여 유유히 온전한 자연의 세계로 들어가연, 구릉이 내 가 원 것인지 내가 구름이 된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할 것이다. 이 렇게 되연 참된 이치플 터득했던 옛 사람을과 : 비슷해질 수 있을 것이다. "(1-502) 하였다. 이규보가 白 훌 居 士 라고 호를 지은 것은 구릎의 속성을 본받고자 하는 돗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에 안용한 旅 幹 說 에, 어떤 사랍이 내게 i!ïf 號 를 하나 지~라고 권하기에 내가 이렇게 답하였다. 뿌f 號 라는 것은 그 사랍에게 합당하게 붙여져야 한다. 사람의 아들이 되어서 효행도 없는데 아버지께서 짧 名 을 지어 주셨으니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친구를 사귀연 서 신의도 없는데 친구들이 美 字 를 지어 주었 A 니 매우 부끄러훈 일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매우 부끄러운 것이라도 바꿀 수가 없는 것이다. 세상 샤랍들이 나 률 짧 題 光 이라고 부르고, 내 친구들은 냐를 德 H 每 라고 부르니, 그만하연 된 것이 지 감히 또 짧를 지을 수가 있겠는가 이런 생각으로 짧를 짓지 않고지내온 지가 40 여 년이 되었다. 이제 비로소 旅 휩이라고 號 를 짓는다. "(60-140)
이름의 종류 49 하고, 같은 책 앓 狀 說 에, 내가 旅 함이라고 스스로 號 흘 지었다. 붐이 고 지 내 기 때 문이 다. "(60-342) 일갱한 거쳐도 없이 발 가는 대로 옴을 하였다. 旅 幹 이라는 號 는 나그네라는 돗이다. 눌러앉아 오래 사는 칩이 없이 늘 떠돌아다니며 아무 곳이나 가는 곳에 거처를 정한다는 돗A로 旅 자를 사용했다고 하였다. 자신의 처지에 맞게 號 를 지은 것이다. 삼u앓의 뻐훌 千 百 웠 山 隱 者 傳 에, 隱 者 의 이 릉은 훌 屆 이 다. 휴은 下 遠 라고도 한다. 蒼 塊 가 그의 姓 民 이 다. 대 대 로 i 龍 伯 國 에서 살았다. 본래는 두 자 姓 이 아니었는데, 은거해 살연서 우리 나라 의 느린 音 을 따라 이릉도 바꾸고 성도 바꾸었다. I쏠 者 는 어렬 척부태 하늘의 이 치를 아는 듯하였고, 공부를 할 때에는 한 가지에 정착하지 않아셔 대략의 뜻만 알연 더 이상 배우지 않았다. 그의 성격이 남의 비위흘 잘 맞추지 옷하였으여 울을 좋아하여 솔만 마시연 남의 좋은 갱 나쁜 정을 오두 이야기하였고 우풋 귀로 들 어간 것은 입무로 내뻗지 않고서는 견다치를 옷하였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배 척올 당하였다 없다는 것을 알았다. 충년에 이르러서는 매우 뉘우쳤으나 스스로 세상에 얽매여 살 수 만년에 뼈놓의 중을 따라가서 밭을 빌려서 농사를 짓고 실 연셔 스스로 뾰 山 農 隱 이 라고 불렀다. "(3-35) 하였다. 이 號 는 混 山 에서 농사 지으며 은거해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뚫짧가 이름을 바꾼 내용이 흥미롭다. 하( 夏 )자에 계( 屆 )자를 더하거나 하( 下 )자에 체( 遠 )자를 더하면 음이 해( 選 )가 된다고 생각을 하였고, 창 (옮)자에 괴 ( 塊 )자를 더하연 음이 최 ( 崔 )가 된다고 생각을 하였다. 반대 로 젠자는 蒼 자와 塊 자로 분리된다. 이것을 反 切 音 이라고 하는데, 훈민청 음을 만든 뒤 닿소리와 흘소리를 설명할 때에도 이 방법을 사용하았다. 李 構 의 收 짧훨 陽 村 記 에, 陽 村 은 냐의 문인 擺 近 의 自 號 이다. 近 이 이렇게 말하였다. 제가 선생닝의 운 히에서 나이도 가장 어리효 학운의 수준도 가장 낮습니다. 그러나 홈오하며 본받 아 나아가는 것은 가까올 데에서 시작하여 먼 곳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可 遠 으로 字 릎 삼았습니다. 천하에 내 옴 가까이 있으연서도 심훤한 것에는 마음 속에는 誠 이 있고 밖헤는 陽 야 있습니다. 誠 은 오직 군자라야 실천할 수 있는 것 이고, 어리석은 사랑들도 모두 알 수 있는 것은 陽 입니다. 붐에는 온화하고 여릎 에는 우덤고 가을에는 따스하고 져율이 되연 옹기가 다시 살아냥니다. 농사가 야 기운을 타고 이루어지고 백성들이 이 기운을 받아 살아갑니다. 삼가 생각건대.
50 새 국어 생 활 제 l 검 제 1 호( 91 옴) 흉~Á 이 사랑틀을 교화시켜 나가는 것도 바로 이러할 듯합니다. "(5-20) 하였다. 權 近 이 陽 村 이라는 號 를 짓고 陽 이라고 글자를 선택한 이유를 설 명하고 있다. 李 行 의 騎 牛 集 騎 牛 짧에, 李 公 周 道 는 집이 쭈 海 에 있었는데, 매양 달이 솟은 밤이연 솔명을 들고 소른 타고서 山 水 사이를 노닐었다. 우릇 경치률 강상할 때에는 빨리 달리연 잘 올 수 가 없고 천천히 가야 그 오묘함을 모두 감상할 수가 있는 법 이 다. 말 馬 은 짜르 고 소 牛 는 느리니, 소롤 타는 것 騎 牛 은 천천히 가고자 해서이다. "(7-377) 하였다. 李 行 이 號 를 騎 牛 子 라고 지은 이유가 천천히 가연서 여유 있게 모 든 것을 보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자연의 경치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 든 일율 천천히 여유 있게 하려고 한 李 行 의 삶의 지표가 당겨 있다. 뺑 11 方 善 의 泰 짧 集 泰 寶 消 積 짧에, 泰 齊 는 方 善 의 自 號 이다. 어떤 사람이 와서 위운하며 말하였다. 지금 자네가 명만이 되 어 이름이 호척에 올라 있으니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해도 밥도 배풀리 벅지 옷하고 옷도 따뜻이 입지 옷한다. 밖에서는 사랍플이 모두 자네롤 우시하고. 집에 요연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울어 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옷할 학한 처지로 서 자네만큼 곤궁한 자도 없을 것임데, 泰 자로 호를 상운 것윤 어째서인가? 方 善 "1 이렇게 압하였다. 자네가 어쩌 나흘 알겠는가. 전에 내가 남쪽으로 귀양을 갈 때에 삶과 죽옴의 갈림길이 눈앞에 닥쳤는데도 마음 l 답당하여 아무 걱갱이 없었네. 이것이 泰 가 아니고 우엇인가. 술이 었으연 걸러 마시고, 숭이 없~연 사다 마시고, 마시고 싶으연 마시고 얼근히 취하연 그치네. 자연을 노래하며 훌 로 즐기연서 일쩍이 野 連 에 대해서 마음에 생각해 본 척이 없으니, 泰 한 자가 아니고서도 가능한 일이겠는가. 한 번 환난을 만나연 근심스런 얼굴로 괴로워하 며 날마다 여위어 가다가 마침내 죽게 되는 것윤 소인배들이나 하는 갯이다 (8-658) 하였다. 泰 는 크고 잘되고 태연하다는 등의 뭇을 가진 글자이다. 생활이 그토록 곤궁하연서 泰 자로 號 롤 삼은 이유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생활은 곤궁하지만 살아가는 마음의 자세가 泰 이기 때문에 泰 쨌라고 號 를 지었다 고 한 것이다. 崔 忠 成 의 山 堂 集 III 堂 뿔 客 { 專 에, 떨 生 이 어떤 사랍인지는 아우도 모른다. 성이 무엇인지 이릎야 우엇인지도 모
이릅의 종류 51 르고 어다서 왔는지도 모른다. 山 堂 에서 독서를 하며 지내는데 關 者 의 기상이 있 었다. 스스로 山 堂 혈 客 이라고 불렸다. 그 사람핍이 당박한 것을 좋아하는 성품을 지엇고 화려한 것은 아주 싫어하였다. 냥들이 칭찬올 하여도 좋아하지 않았고 냥 들이 혈돋어도 마음에 두지롤 않았다. 납들이 알아 주기률 바라지도 않았고 이홈 이 드러냐기롤 윈하지도 않았다. 있는 대로 먹고 있는 대로 입고 지내연서 추위와 배고픔을 창고 밤낮으로 책울 읽으며 보였다. "(16-599) 하였는데, 朴 世 핑가 지은 山 堂 集 隊 에, 山 호뿔 客 崔 公 은 譯 는 忠 成 l 고 字 는 링웹 聊 이 다. "(16-601) 하였다. 山 掌 훔 客 이 뚫 忠 成 의 自 號 임을 알 수가 있다. 山 堂 處 士 라고 한 곳도있다. 申 用 戰 의 二 樂 훔 集 序 에, 公 은 譯 가 用 澈 이 고 字 는 戰 之 이 다. 추중한 훌훌 號 는 文 景 公 이 다. 二 樂 은 그의 흉 名 인데. 대개 仁 智 의 뭇을 취한 것이다. "(17-35) 하였다. 輪 語 에 있는 어진 이는 산을 좋아하고 슬기로운 이는 울올 좋 아한다 樂 山 樂 水 ]."에서 따온 것인데, 이때의 樂 은 요 라고 읽으므로, 申 用 激 의 號 는 이락청 이 아니라 이요정 으로 원어야 옳을 것이다. 죠!7 軍 의 木 훌 速 橋 神 道 E뺑 銘 에, 公 은 ~)~흘 木 짧 子 라고도 하고 東 E홉 子 라고도 하였는데, 초갱에서 울러나 지낼 때애 거처하는 곳의 이릅올 가지고 號 를 상은 것이다. "(17-192) 하였다. 木 짧라는 지명으로 減 를 삼은 것아다. 申 光 漢 의 企 짧 集 文 簡 公 行 狀 에, 만년에 서울 동쪽 성밖 양짧 山 아래에 거처를 청하고 잘았는데, 골쩌기가 깊 고 정치가 아주 좋았다. 두 아들과 함께 그곳에서 시를 옳으며 지냈다. 스스로 路 옳이라고 하고 또 좁 城 洞 主 라고도 하였다. 거처하는 웹 寶 의 이릅올 企 寶 라고 하였 다. "(22-384) 하고, 같은 책에 있는 企 爾 記 에, 셔재롤 企 齊 략고 이용 붙였는데 우엇을 企 한다는 뭇인가. 나의 할아버지률 企
52 새국어생활 제 1 권 제 1 호( 91 봄) 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의 할아버지께서 堂 의 이픔을 希 賢 이라고 하셨으나, 내가 할아버지를 企 하는 것은 賢 을 회망하는 것이다. "(22-471) 하였다. 路 뿔은 魔 路 山 봉우리라는 의미이고 춤 城 洞 主 는 좁 城 洞 의 주언이 라는 뭇이다. 企 짧라는 號 는 書 짧의 이름에서 나온 것언데, 申 光 漢 의 할아 버 지 申 淑 f용의 書 爾 이 름이 希 - 賢 堂 이 었기 때문에 할아배 지가 추구하던 希 賢 의 못을 본받고자한것이다. 企 자는 발돋음을 하고 바라본다는 돗이다. 金 正 國 의 思 짧 集 八 餘 居 士 自 序 에, 손님이, 여밟 가지 넉넉한 것 八 餘 이 우엇이냐고 풀었다. 내가 답하였다. 나 울국에 보리밥이 배부르기에 넉녁하고, 부들자리 면 옹졸방이 누워 있기에 녁녁 하고, 솟아나는 맑은 생이 마시기에 녁넉하고. 방안 가득 꽂힌 책이 보기에 녁넉하 고, 봄꽃과가을 달아 강상하기에 넉넉하고, 새소리 솔바람 소리 듣기에 넉넉하고. 눈 속의 매화 서리 맞은 국화는 꽃 향기 맡기에 넉넉하고, 이 일곱 가지 녁녁함을 가지고 있으니 내 즐거웅이 녁넉하네. 그러니 녁넉한 것이 여닮 가지가 아닌가" (23-44) 하였다. 金 正 國 이 만년에 자신의 號 를 八 餘 居 士 라고 한례에 대해서 그 여 넓 가지 넉넉한 것을 조목별로 설명한 것이다. 李 濟 톰의 淸 江 集 淸 江 居 士 對 에, 쭈 IJ 愁 아 일어나연 마음이 어지러워지고 風 波 가 일어나연 강물이 흐려진다. 마 음은 장과 같은 것이다. Eia. 波 가 벚으연 강물이 맑아지고 利 愈 이 사라지연 마음이 깨끗해진다. 강은 마음과 같은 것이다. 캉물의 맑음파 흐렴을 가지고 내 마음의 깨끗함과 어지러웅올 살펼 수 있다. 냐는 강물의 맑음을 본받아 내 마음을 깨끗 하게 하고 싶다. 그래서 몸은 비록 산에서 살지만 마음은 늘 강에 가 있다. 옴은 밖이고 마음은 안아니, 몸이 거처하는 山 으로 호를 삼지 않고 마음이 가 있는 淸 江 으로 號 를 상은 것이다. "(43-503) 하였다. 李 濟 닮은 대대로 서울 남산 아래에 살았는데, 號 가 淸 江 居 士 였 다. 맑은 강물의 속성을 본받고자 하여 이렇게 號 를 지었다는 설명이다. 趙 宗 道 의 大 笑 野 進 橋 趙 大 笑 합 傳 에, 趙 宗 道 는 字 는 伯 由 이고 펴 安 에 살았다. 사랑됨이 기개가 있고 강직하였으며 여렷이 모인 자려에서 해학을 잘하여 많이 웃겼고 자신도 웃음이 많았다. 그래서 大 笑 子 라고 自 號 하였다. "(47-436)
이름의 종류 53 하였다. 해학을 잘하고 잘 웃는 성품을 가지고 號 를 삼은 경우이다. 申 提 의 號 는 뻐짧 혹은 用 뼈짧인데, 洪 可 百 의 맺 全 集 빼 爾 記 에, 先 王 朝 때에 임금께서 하루는 조정의 신하을애 대해서 이야기를 하시다가 申 않을- 보고 끊은 뻐하다 라고 하셨는데. 申 끊이 이 말을 가지고 자신이 거쳐하는 곳에 用 뼈아 라고 켠액 을 탈았다. "(51-456) 하였고, 申 값의 象 村 集 用 쐐 爾 贊 에서도, 申 않아 송지로 있을 째에 초정에서는 申 않을 중국 사신의 接 伴 官 으로 임영하 려 하었는데, 효 祖 大 王 께서 끊은 뻐하다 고 하셨다. 申 않이 이 말로 자신의 짧를 상었다 하였다. 중국 사신을 상대하려연 대단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야 하는데, 宣 祖 가 申 꿇은 재주가 없어서 안 된다고 하였다. 申 提 은 신하의 능력과 사람됨에 대해서는 그 임금이 가장 잘 아는 것이라고 하연서 이 말로 자 신의 호를 삼았다. 짧 號 는 일반적 S로 자신이 짓는 것이지만 더러 부형이 지어 주는 경우 도 있었다. 李 廷 짧의 四 짧 爾 集 忍 爾 說 에, 작윤 일을 참지 옷하영 큰 일을 앙치고, 참올성이 있어야 일율 이룰 수가 있 다고 하였다. 내가 세상을 오래 살연서 많은 일을 겪고 나서 바로소 콩자의 이 살씀이 참~로 옳은 밀씀이라는 것올 알았다. 나는 창올 忍 자 한 자로 명생올 살 아왔는더1.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제 너의 齊 號 흘 忍 자를 넣 어서 짓는다. "(51-31 1) 하였다. 이것은 아버지가 아들의 爾 g없를 지어 주연서 쓴 글이다. 申 款 의 號 는 일반척으로 알려진 象 村 이외에 玄 옳, 南 뿔 둥이 있는데, 象 村 集 玄 줬짧에, 옛날에 내가 어렸을 때에는 스스로 敬 堂 이라고 불랬었고, 장성한 뒤에는 百 뻐 이라고도 하고 南 쩍라고도 불렀는데. 몇 해 사이에 玄 옳이라고 바꾸었다. 玄 이라 는 것은 색깔이 없고 꾸임이 없고 채색이 없는 것으로서 검게 물을 들일 수도 없 고 회게 표뼈올 할 수도 없다. 그 오묘한 질박합은 至 A외 속마음과 같은 것 이다 하셨다. 敬 할이라는 號 는 공경스러운 마음을 지니려는 의지에서 지은 것
54 새국어생활 제 1 권 제 1 호( 91 봉) 이다. 罷 學 에서는 敬 以 直 內 義 以 方 外 라고 하여 敬 과 義 를 매우 중요한 개 념으로 생각하겼다. 百 뼈은 꾸멈 없고 질박하다는 뭇이 담겨 있다. 뻐은 巧 에 상대되는 말로서, 巧 는 영악스랩고 교요하고 재주 많은 것을 의미하 는 글자이고, 뼈은 둔하고 어리석고 자연스럽고 순수하고 꾸멈 없다는 뭇 을가진 글자이다. 南 헐는 납쪽 언덕에 있는 자신의 거처와 관계되는 호이 다. 玄 은 높고 높은 하늘의 빛깔이고 갚고 깊은 물의 빛깔이다. 인위적인 채색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오묘한 색이다. 申 救 이 만년 에 玄 융이라고 호를 지은 것은 그의 道 家 的 인 인생관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跳 는 주로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字 와 名 을 대체하기 위하여 짓는다. 짧 跳 나 堂 號 등과 같이 자신의 書 室 이름으로 號 를 삼는 경우도 있고, 名 이나 山 ) 11 의 이름을 따다가 號 를 상는 경우도 있으며, 地 자신이 지향하는 삶의 목표이거냐 터득한 철학척인 개념올 가지고 號 를 삼는 경우도 있다. 짧, 掌, 華, 짝, 짧, 野, 훔, 村, 嚴, 隱 둥 끝에 붙는 글자는 큰 의마가 없고 그 앞에 붙는 글자가 號 의 뭇을 담은 글자이다. 지명이나 서실 이릉 둥을 號 로 사용하는 경우는 자신을 간접척으로 지칭하는 것이고, 場, 居 士, 였다. 子 둥의 글자가 뒤에 붙는 짧는 자신을 직접 지칭할 때 주로 사용하 號 를 짓고 나연 친구에게 부탁을 하여 짧에 대한 說, 記, 傳 동을 짓게 하거나 스스로 이런 글을 지어서 號 를 지은 뭇을 기록하였다. 號 는 字 와는 달리 한 사람이 여러 개를 소유하는 경우도 많다. 당시에 일반적으로 쓰이고 불리던 號 보다는 후세에 그 사람의 文 集 名 으로 청해지 는 號 (짧 號, 堂 號 퉁)가 오늘날 많이 알려진 號 로 청착되었다. 4. 나라에서 지어 주는 이름 가) 훌훌 號 나라에서 지어 주는 대표적인 이름은 짧 號 이다. 응 益 號 는 죽은 뒤에 그 사 람의 일생의 j 행적을 종합하여 평가하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禮 記 에 죽으연 그 이름을 부를 수 없기 때문에 짧 號 를 짓는데, 論 號 는 그 이름 U 융 대체하는 것이다" 하였다. 그래서 諸 號 를 정하는 일을 易 名 之 典 이략 κ ii l화였다 - μ
이름의 종류 55 응훌 號 는 諸 法 에 의하여 조정의 대신틀이 의논하여 짓는다. 諸 法 은 훌훌 號 에 쓸 수 있는 글자를 정하고 그 글자에 당긴 뜻을 설영한 것인데, 짧 號 를 받을 사람의 일생의 행척을 짧 法 에 있는 조항과 비교하여 가장 합당한 글자로 훌훌 號 를 짓는다. / 우리 나라의 識 號 어l 는 文 貞, 文 忠, 文 簡, 文 純 둥, 文 자가 들어 가는 諸 號 가 가장 많a며, 忠 貞, 忠 武 둥 忠 자가 들어 가는 훌훌 號 도 많다. 음훌 法 에 는 여러 가지 글자가 있 A냐 짧 號 에는 대개 몇몇 글자가 주로 쓰였 A며, 같은 諸 觀 가 여러 사랑에게 사용되었다. 임금의 짧 號 는 여러 글자로 지었다. 예컨대, 中 宗 의 諸 號 는 양 偉 徵 文 昭 武 쩨; 仁 誠 孝 이 고 t 祖 의 훌훌 號 는 憲 文 烈 武 明 蕭 純 孝 이 다. 나) 顧 號 똥 號 는 임금이 죽은 뒤에 임금의 顧 에 붙이는 이름이다. 오늘날 우리가 世 宗 이니 英 祖 니 하고 부르는 것은 關 號 이다. 關 號 에 사용되는 글자도 짧 法 에 따라 정한다. 蘭 號 도 훌훌 號 를 정할 때에 조갱의 대신들이 의논하여 정하는데, 때로는 이미 지었던 顧 號 를 바꾸는 경우도 있다. 仁 祖 의 처음 의 關 號 는 烈 祖 었는데, 뒤에 仁 祖 로 바꾸었다. 중국 i휩 康 의 임금 徐 知 話 의 關 號 에 烈 자를 사용했기 때 문에 바꾼 것이 다. 關 號 를 지을 때에 뒤에 붙이는 글자는 宗 과 祖 가 있는데, 나라를 세운 임금 로서 始 祖 가 되는 경우이거나 임금이 父 王 의 王 業 을 직접 이어받지 옷한 경우에는 祖 자를 붙이고, 父 王 의 王 業 을 직접 이어받은 경우에는 宗 자를 붙인다. 5. 뱃 음 말 이름은 언제 누가 짓느냐에 따라서 세 가지로 나눌 수가 있다. 첫째, 대체로 20셰 이전에 父 兄 이나 스승 또는 친구가 지어 주는 이름 이 있다. 兒 名, 本 名, 字 가 여기에 속한다. 이 이름들은 본인의 성장 과 정에서 주변 사랍들이 지어 준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둘째, 어른이 된 뒤에 주로 자기 스스로 짓는 이름인 號 가 있다. 셋째, 본인이 사망한 뒤에 나략에서 지어 주는 짧 號 와 關 號 가 있다. 어렬 때에 부르는 이름이 兒 名 이며. 어느 정도 성장했을 때에 부르는 이
56 새국어생활 제 l 권 제 1 호( 91 봄) 름이 本 名 이며, 本 名 과 거의 동시에 지어서 주로 친구들 사이에서 부르는 이름이 字 이다. 이들 이름에는 그 이름의 소유자에게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략거나 이름의 돗을 생각하고 실천을 하연서 살기를 바라는, 짓는 사랍 의 소망이 담겨 있다. 가치관이 확립되고 사회 활동의 폭이 넓어지면 號 를 지었냐. 號 는 名 과 子 를 대체하여 부르는 이릅인데, 자신의 거처, 취향, 인생관을 따라 그 뭇을 반영하여 지었다. 字 는 名 과 마찬가지로 한 개인 이 하나만을 소유하였는데, 號 는 여러 개를 가진 경우가 많았다. 죽은 뒤 에 나라에서 지어 주는 이름에는 諸 號, ~영 號 퉁이 있다. 슴$ 號 짓는 일올 易 名 이라고 하였다. 關 號 는 임금의 願 를 지칭하는 이름인데, 그 임금을 부르는 이름으로 쓰였다. 이들 여러 가지 이름 가운데에서 名 l 외에 가 장 널리 쓰였던 이름은 字 와 號 이다. 이 외에도 합휠 跳, 官 名, 陸 號 퉁도 일종의 이름이라고 할 수 있으나, 사용의 범위가 / 애우 제한적이기 때문에 다루지 않았다. 위에서 다룬 여러 가지 이름 가운데에서 名 을 제외한 이름은 주로 그 시 대의 상충 사회에서 사용되었던 이륨이다. 오늘날 사용되는 이름은 姓 과 名 이 대표적이고 부분척으로 腦 의 잔영이 남아 있다. 참 고 문 헌 장헌규 신용호(1 990), 韓 國 A 의 字 짧 liif 究, 계 영 운화사. 국역 효종살록 1 칩 (1 990), 민족문화추진회. 한국문집총간 1 징 -60 징. 민족문화추진회. 꿇 記, 淵 훌앓 類 뼈. 훌 村 樂, 싫 삼 榮, 貞 鍵 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