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논문 아퀴나스에서 물질적 단일자에 대한 인식의 문제 박 우 석 한국과학기술원 1. 단일자들에 대한 인식의 문제: 알러스와 데이의 재구성 2. 물질적 단일자들의 불가지성의 근원 3. 인간 지성 고유의 인식 대상 4. 한 가지 문제 5. 추상 6.맺는 말 토마스 아퀴나스에서 물질적 단일자에 대한 인식의 문제는 중세 인식론의 역사 전체를 통해 가장 많이 논의된 문제들 가운데 하나 이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은 오늘날까지도 면면히 이어지 고 있다. 1) 이 문제에 관한 아퀴나스의 견해는 왜 그토록 중요한 학문적 관심사가 되었을까? 그것은 부분적으로 몇몇 학자들이 그 문제를 토마스의 철학 체계 내에서 가장 취약한 급소로 취급한 데 기인한다. 예컨대, 루돌프 알러스는 그것이 토마스주의 철학에 심 1) South, J. B., Intellectual Knowledge of Material Particulars in Thomas Aquinas: An Introduction in J. Hackett (ed.), Aquinas on Mind and Intellect: New Essays, Dowling College Press, 1996, pp. 85-115가 그런 하나의 사례이다. 139
각한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고 주장했다. 2).세바스챤 데이는 한 술 더 떠서 그것이 이미 후대의 스콜라철학자들에게 그런 걸림돌로 입증되어 토마스주의적 이론이 그것의 원리들에 충실한 채로는 설 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하나의 새로운 이론이 진화되 어 생겨났다고 했다. 3) 도대체 어떤 근거에서 이 학자들은 물질적 단일자에 대한 인식의 문제가 토마스주의 철학 체계에 그토록 치 명적이라고 믿는가? 아퀴나스 자신의 해결책, 즉 감각상으로의 귀 환(conversio ad phantasmata) 4) 이론은 또 도대체 왜, 그리고 무 엇이 잘못되었다는 것인가? 이 글은 이러한 의문들에 대한 부분적 인 해답을 제시함으로써 문제 상황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려는 소 박한 의도를 지니고 있다. 필자의 논술 전략은 이렇다. 제 1 절에서 필자는 우선 알러스와 데이가 아퀴나스에서 단일자에 대한 인식의 문제와 아퀴나스 자신 의 해결책으로 제시한 바를 검토할 것이다. 그런 예비적 논의를 마 친 후, 제 2 절에서 필자는 물질적 단일자의 불가지성( 不 可 知 性 : unintelligibility)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물을 것이다. 그리고 제 3 절에서 필자는 아퀴나스에게서 인간 지성의 고유 대상, 즉 물질적 단일자들 내에 존재하는 하성( 何 性 )의 문제를 논의함으로써 물질 적 단일자들의 불가지성의 문제에 우회적으로 접근할 것이다. 거 기서 우리는 물질적 단일자들 내에 존재하는 하성에 대한 인식 과 물질적 단일자들에 대한 인식 의 차이와 관련된 한 가지 심각한 문제와 마주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아퀴나스 자신의 해결책이 이 문제를 교묘하게 잘 다루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2) Allers, R., The Intuitive Cognition of particulars, The Thomist, 3, (1941), 95. 3) Day, S., Intuitive Cognition: A Key to the Significance of the Later Scholastics, St. Bonaventure, N. Y.: The Franciscan Institute, 1947, p. 15. 4) phantasmata 를 감각상 으로 옮긴 전례를 앤소니 케니 지음, 이재룡 옮김, 아 퀴나스의 심리철학, (서울: 가톨릭대학교출판부, 1993), p. 139에서 찾을 수 있다. conversio 를 귀환 으로 옮기는 것도 이재룡의 선례를 따랐다. 140 가톨릭철학ㆍ제14호 연구논문
1. 단일자들에 대한 인식의 문제: 알러스와 데이의 재구성 흥미롭게도, 알러스와 데이 양자 모두 성 토마스의 문제와 해결책 이 잘 알려져 있다 는 데 주목한다. 5) 그들의 해석에 따르면, 그 문제 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널리 받아들여진 견해들 간의 갈등으로부터 야기된다: (1) 지성은 명백히 물질적 특수자들에 대한 지식을 갖는다. 6) (2) 그에 반해, 아리스토텔레스는 보편자가 이성에 의해 알려지 는 반면, 단일자는 감각에 의해 알려진다고 말한다. 7) 토마스주의자들은 어떻게 해야 위에 인용된 아리스토텔레스의 격률을 위배하지 않으면서 데이가 인간 지성이 물질적 단일자들 을 안다고 하는 명백한 경험적 사실 이라 부른 바를 설명할 수 있 는가? 8) 아리스토텔레스에 충실하기 위하여 성 토마스는 우리 인 간의 지성이 물질적 단일자들을 직접적으로는 알 수 없다는 점을 시인해야만 했다: 우리 지성은 물질적 실재 내의 단일자를 직접적이고 일차적으로는 인식할 수 없다고 해야 한다. 9) 그러나, 단일자을 안다고 하는 명백한 경험적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성 토마스는 우리 인간의 지성이 간접적으로 단일자들에 대 한 인식을 가질 수 있다는 교묘한 이론을 창안해야만 했다. 그것이 소위 감각상으로의 귀환 이론이다. 5) Allers, 앞의 논문, p. 96; Day, 앞의 책, pp. 15-16. 6) Allers, 같은 곳. 7) Sed contra est quod dicit Philosophus. universale secundum rationem est notum, singulare autem secundum sensum. Physics, I, lectio 5, 189 a5; ST, I, q. 86, a. 1. 8) Day, 앞의 책, p. 15. 9) Dicendum quod singulare in rebus materialibus intellectus noster directe et primo cognoscere non potest. ST, I, q. 86, a. 1, responsio. 박우석 아퀴나스에서 물질적 단일자에 대한 인식의 문제 141
간접적으로, 그리고 의사-반전에 의해 (지성은) 단일자를 알 수 있는데, 왜냐하면 위에서 말했듯, 가지적 종 10) 들이 추상된 후에도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대로) 그 안에서 가지적 종들이 인식되는 감각상으로 되돌아가지 않고서는 그것들에 의해 현실적으로 인식하 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11) 비록 알러스와 데이가 아퀴나스의 문제와 해결책을 제시하는 방 식에 비판의 여지가 있더라도 12),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분명하다. 그러나 아퀴나스의 해결책은 후대의 스콜라철학자들에게서 널리 10) species intelligibilis 를 이재룡은 가지적 상 으로 옮긴다. 케니 지음, 이재룡 옮 김, 앞의 책, p. 64. 한편 이상섭은 이를 번역하지 않고 원어 그대로 두다가 2005 년 이후에는 가지상 으로 옮긴다. 이상섭, 토마스 아퀴나스의 Species Intelligibilis 개념과 그것의 13세기 철학에서의 위치-신학대전 I, 85, 2를 중심 으로-, 가톨릭철학 5 (2003), 252-281; 이상섭, 토마스 아퀴나스와 표상주 의논쟁, 철학연구, 68 (2005), 227-249; 이상섭, 사물 vs. 개념 또는 가지상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 안의 파테마타 에 대한 스콜라철학의 해석, 서양고전 학연구 29 (2007), 187-215 참조. 11) Indirecte autem, et quasi per quandam reflexionem, potest cognoscere singulare: quia, sicut supra dictum est, etiam postquam species intelligibiles abstraxit, non potest secundum eas actu intelligere nisi convertendo se ad phantasmata, in quibus species intelligibiles intelligit, ut dicitur. (ST, Ia, q. 86, a.1, responsio). 12) 상호 연관된 세 가지 측면에서 비판이 가능하다. 첫째, 그들은 지성이 물질적 단일자들을 인식한다는 가정의 의미를 명료화하는 데 실패했다. 최소한 그들 은 안다 나 인식한다 가 지니는 여러 가지 다양한 의미를 구별하고자 노력 했어야 한다. 둘째, 그들은 직접적 또는 간접적 으로 인식한다는 것의 의미 가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논의하지 못했다. 예컨대, 현대철학자가 직접적으로 안다(directly knows) 는 표현을 쓸 때, 그것은 일차적으로 소여의 직접적이고 비-추론적인 감각-지각을 의미한다. (Kekes, J., Recent Trends and Future Prospects in Epistemology, Metaphilosophy, Vol. 8, Nos. 2, 3, (1987), 93 참조.) 마지막으로, 그들은 문제가 신의 인식, 천사의 인식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이라는 점을 충분히 강 조하지 못했다. 인간과 달리 천사는 보편자와 단일자 양자 모두를 하나의 지 적 능력에 의해 인식한다. (ST, I, q. 57, a. 2) 신의 경우 형상과 질료 양자 모두를 그의 순일한 지성에 의해 안다. (ST, I, q. 14, a. 11) 아리스토텔레스 의 격률 자체가 가리키듯, 오직 인간만이 감각과 지성이라고 하는 다양한 인 식 능력을 갖는다. 그리고 바로 이 특수성이 물질적 단일자의 인식에 얽힌 온 갖 난제들을 야기한 것이다. 142 가톨릭철학ㆍ제14호 연구논문
받아들여지지 못 했다. 데이가 설명하듯, 아퀴나스의 입장에 따르 는 난점들은 결국 아퀴나스의 전제들 가운데 하나를 전적으로 물 리치게끔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다른 각도에서 그 문제에 접근하여, 만일 지성이 물질적 특수자들 을 직접적으로 안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것들을 간접적으로 아는지는 하 나의 가짜 문제 라고 말함직하다. 이것이 후대 스콜라철학자들의 해결책 이었다. 13) 여기서 데이는 스코투스와 오캄의 직관적 인지 이론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 논문에서 필자의 목표는 아퀴나스의 입장과 스코투 스 및 오캄의 입장이 지닌 강점과 약점을 비교하려는 데 있지 않 다. 필자는 단지 정확히 무엇 때문에 물질적 단일자들에 관한 인식 의 문제가 아퀴나스에게서 문제가 되는지, 그리고 왜 다수의 주석 가들에게 아퀴나스의 해결책이 극복할 수 없는 난점들을 초래하는 것으로 여겨지는지를 이해하기 원한다. 만일 아퀴나스의 사상에 내재한 극복할 수 없는 난점들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물질적 단일 자들에 대한 직관적 인지 의 이론을 도입한 진정한 동기는 다른 데 서 찾아야만 할 것이다. 2. 물질적 단일자들의 불가지성의 근원 물질적 단일자들에 대한 인식의 문제를 깊이 있게 논의하기 원 한다면, 답해야만 할 가장 중요한 문제들 가운데 하나는 물질적 단 일자들에 대한 인식의 문제가 야기되는 것이 그것들의 단일성 때문 인지, 그것들의 물질성 때문인지, 아니면 양자 모두 때문인지를 밝 혀내는 일이다. 그러나 몇몇 주석가들은 성 토마스 스스로 그것들의 물질성 때 13) Day, 앞의 책, pp. 34-35. 박우석 아퀴나스에서 물질적 단일자에 대한 인식의 문제 143
문에 문제가 야기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클루지는 이렇게 쓰고 있다: 그러므로, 물질적 조건들이 개성( 個 性 : individuality)의 조건들이 다. [그것들은] 본성상 형상적인 조건들이다. 이런 전제 아래서, 우리 는 그런 조건 하에 발생하는 형상은 -따라서 특수화되거나 개체화된 형상은- 그 설명에 의거할 때 가지적이지 않으리라 예상해야만 한 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아퀴나스 자신이 말한 바이다: 가지성은 단 일자 자체와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으로서의 단일자 와 양립 불가능하다. (ST, I, q. 86, a. 1, ad 3.) 그러므로 불가지성 의 원인은 물질적 조건들이 아니라 질료이다. 14) 만일 클루지가 옳다면, 그리고 우리가 알러스나 데이처럼 물질 적 단일자들에 대한 지식의 문제가 성 토마스에게 특별히 두통꺼 리가 된다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이 상황이 토마스주의의 체계에 만 특유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물질적 실체들에 대한 토마스주의적 개체화 원리는 지정된 질료(materia signata) 이기 때문이다. 15) 그러나, 그런 이해는 분명히 잘못 되었다. 첫째, 만일 단일자들 에 대해 직접적인 지적 인식을 가질 수 없는 것이 단일자들의 물질 성 때문이라면, 스코투스의 이론처럼 개체화의 원리가 지정된 질 료가 아닌 이론들에서도 물질적 단일자들에 관한 인식의 문제는 14) Kluge, E.-H., Abstraction: A Contemporary Look, The Thomist, Vol. XL, No. 3, (1976), 355-356. 15) 아퀴나스의 지정된 질료에 의한 개체화 이론은 다음과 같은 전거에서 확인된 다: ST, Ⅰ, q. 3, a. 3; ST, Ⅰ, q. 29, a. 2, ad 3; ST, Ⅰ, q. 30, a. 4; ST, Ⅰ, q. 50, a. 4; CG, Ⅰ, 21; CG, Ⅰ. 49; CG, II, 83; CG, Ⅳ, 65; De ente et essentia, ch. 4; De spiritualibus creaturis, 8. 그러나 여전히 논쟁의 여지 가 많이 남아있다. 이에 대한 상세한 논의는 이경재, 토마스 아퀴나스의 개별 화 문제, 철학연구, 23, (2000), 75-98, 이재룡, 토마스 아퀴나스의 개체 화 원리, 신학과 사상, 45, (2003), 102-140 및 조셉 오웬스, 토마스 아퀴 나스, 조지 그라시아 엮음, 이재룡, 이재경 옮김, 스콜라철학에서의 개체화, (서울: 가톨릭출판사, 2003) 참조. 144 가톨릭철학ㆍ제14호 연구논문
마찬가지로 야기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물질적 요소를 지니지 않는 물질적 단일자는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가능한 유일한 방식은 단일자들에 대한 인식의 문 제와 단일자들의 개성에 관한 인식의 문제를 조심스레 구별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럴 경우, 어떤 이론에서도 단일자들에 대한 인 식의 문제는 심지어 단일자들이 물질적인 경우에 조차도 인식의 가능성을 확보하는 문제가 될 것이다. 나아가서, 다양한 이론들이 단일자들의 개성에 대한 인식과 관련되는 상이한 문제들을 제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것임( 個 差 ; haecceitas)에 대한 인식의 문 제는 스코투스의 견해에 특유한 문제이다. 16) 둘째, 아퀴나스가 단일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적 인식의 불가능 성을 그것들의 물질성 탓으로 돌린 것으로 해석하는 클루지 등의 주 석가들은 그들 생각과는 달리 결정적인 논거를 갖고 있지 못하다. 클루지가 거론하는 문제의 단락(ST, I, q. 86, a. 1, ad 3)은 지성이 물질적 단일자들을 안다고 하는 견해를 지지해는 한 가지 특별한 유 형의 논변에 대한 답변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 단락을 단지 그것이 답하고 있는 논변을 배경으로 해서 이해해야만 한다. 그 논변에 의 해 설정된 특별한 맥락을 유의하지 않을 경우, 우리는 아퀴나스의 답변으로부터 지나친 결론을 끌어낼 위험을 자초할 수 있다. 다소 자세하게 설명해보자. 클루지가 거론한 단락은 다음과 같다: 단일자가 가지적일 수 없는 것은 그것이 단일자이기 때문이 아니 라 그것이 물질적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오직 비물질적인 것만이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 비물질적인 단일자 같은 것이 있다면-그리고 지성이 그러한 것인데-그것은 가지적인 데 아무 장 애가 없다. 17) 16) 스코투스에서 단일자에 대한 인식의 문제를 다룬 최근 연구로는 다음과 같은 논문들이 있다. A. B. Wolter, Duns Scotus on Intuition, Memory and Our Knowledge of Individuals, History of Philosophy in the Making, ed. L. J. Thro, (Washington, D.C.: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Press, 1982), pp. 81-104; J. B. South, Scotus and the Knowledge of the Singular Revisited, History of Philosophy Quarterly, 19, (2002), 125-148. 박우석 아퀴나스에서 물질적 단일자에 대한 인식의 문제 145
이 단락으로부터 우리가 도출해낼 수 있는 것은 단일자에 대한 지식의 문제가 비물질적 단일자에서는 야기되지 않는다는 것뿐이 다. 그것은 물질적 단일자에서는 야기되는데, 왜냐하면 비물질성이 이해의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물질성이 불가지성의 필요조건이라는 결론을 끌어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물질적 단일자를 불가지적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다른 조건들이 있 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논의해온 단락이 어떤 논변에 대 해 답하고 있는지 확인해보자. 3. 또한 우리 지성은 그것 자신을 이해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일한 어떤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어떤 활동도 가질 수 없을 것이 다. 왜냐하면 활동은 단일자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지성은 단일자를 인식한다. 18) 명백히, 이 논변은 어떤 단일자도 우리 지성에 의해 인식되지 않 는다는 주장에 대한 반례로서 제시된 것이다. 단일자인 우리 지성 은 그 자신을 인식한다. 그러나 이 논변은 요점을 놓치고 있는데, 왜냐하면 어떤 단일자도 우리 지성에 의해 인식된다는 것은 아퀴나 스의 주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에 인용한 답변에서 아퀴나스는 단지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쟁점이 물질적 단일자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에 주의를 환기하고 있을 따름이다. 따라서 아퀴나스는 물질적 단일자들의 불가지성의 진정한 원인을 적시할 필요가 전혀 없다. 만일 클루지의 문헌적 전거가 결정적이지 못하다면, 우리는 쟁 점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됨직한 다른 단서들을 탐색해야만 한다. 17) Ad tertium dicendum quod singulare non repugnat intelligibilitati inquantum est singulare, sed inquantum est materiale, quia nihil intelligitur nisi immaterialiter. Et ideo si sit aliquod singulare immateriale, sicut est intellectus, hoc non repugnat intelligibilitati. (ST, I, q. 86, a. 1, ad 3) 18) Praeterea, intellectus noster intelligit seipsum. Ipse autem est quodam singulare: alioquin non haberet aliquam actum; actus enim singularium sunt. Ergo intellectus noster cognoscit singulare. (ST, I, q. 86, a. 1). 146 가톨릭철학ㆍ제14호 연구논문
필자는 인간의 지적 인식의 고유 대상의 문제를 답하려 애씀으로 써 그런 작업을 수행할 것을 제안한다. 다시 말해서, 지성의 고유 의 인식 대상을 재검토함으로써 우리는 물질적 단일자들이 왜 지 성에 의해 직접적으로 인식될 수 없는지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 을 것이다. 3. 인간 지성 고유의 인식 대상 지식의 대상은 언제나 인지 능력에 비례한다. 19) 그리고 인간은 천사가 아니므로 보편자와 특수자 양자 모두를 동일한 능력에 의 해 파악할 수가 없다. 그러나 비이성적인 동물들과는 달리, 인간의 인식은 감각 지각과 특수한 대상들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간의 인식에 고유한 대상은 무엇인가? 성 토마스는 이 물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한다: 그 반면, 인간 지성의 고유 대상은, 그것이 육체에 결합되어 있으 므로, 물체적 질료 내에 현존하는 하성( 何 性 ) 또는 본성이다. 20) 그러나 현존하는 물체적 질료 안에서 발견되는 하성 또는 본성 이란 무엇인가? 필자는 본성 이나 하성 에 결부된 애매성 때문에 이 구절이 여러 가지로 달리 해석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성 또는 본성 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기 위해서 공통본성의 존재론적 지위를 논의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조셉 오웬스는 19) Gilson, E., The Christian Philosophy of St. Thomas Aquinas, (N.Y.: Random House, 1956), p. 201. 20) Intellectus autem humani, qui est conjunctus corpori, proprium objectum est quidditas sive natura in materia corporali existens. (ST, I, q. 84, a. 7, Responsio) 박우석 아퀴나스에서 물질적 단일자에 대한 인식의 문제 147
아퀴나스와 스코투스 양자 모두가 그들의 공통본성 이론을 아비첸 나를 배경으로 하여 개발했다는 점을 훌륭하게 논증해보인 바 있 다. 그에 따르면, 아비첸나의 공통본성 자체의 이론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논제들로 요약될 수 있다: (1) 공통본성 또는 본질은 그 자체로는 단일자도 보편자도 아니다. (2) 공통본성 자체는 아무런 일성( 一 性 )도 갖지 않는다. (3) 공통본성은 그것 고유의 존재성을 지닌다. 이제, 오웬스의 설명처럼, 이런 아비첸나의 논제들은 스콜라철학 의 초월자(transcendentals) 이론이 받아들여질 경우 수정되어야 만 한다. 왜냐하면, 먼일 존재성과 일성이 동연적( 同 延 的 )이라면, 존재성은 지니지만 아무런 일성도 지니지 않는 것이란 있을 수 없 기 때문이다. 스코투스는 공통본성 자체에게 실재적이지만 수적 일 성보다는 미흡한 일성을 부여함으로써 아비첸나의 논제 (2)를 거 부한 반면, 아퀴나스는 아비첸나의 논제 (3)을 거부한 것이다. 21) 아퀴나스는 아비첸나의 논제 (1)을 보존했을 때 공통본성 자체 의 어떤 존재성도 부인한 것이므로, 절대적으로 고찰된 공통본성 을 거론해야만 했다. 따라서, 현존하는 물체적 질료 안에서 발견 되는 하성 또는 본성 에 대한 우리의 원래 물음은 이제 다음과 같 은 문제에 해당한다: 아퀴나스에 따를 때, 인간 지성의 고유 대상 은 (1) 비록 물질적 단일자들 안에 개체화되어 있을지라도 절대적 으로 고찰된 공통본성인가; 아니면 (2) 물질적 단일자들 안에 개 체화된 (것으로서의) 공통본성인가; 그렇지 않으면 (3) 물질적 단 일자들로부터 추상된 (것으로서의) 공통본성-즉 가지적 종-인 가? 아퀴나스 인간 지성의 고유 대상으로 무엇을 지목하는지 알아 보기 위해 다른 단락들을 좀 더 검토해보도록 하자. 21) Owens, J., Common Nature: A Point of Comparison between Thomistic and Scotistic Metaphysics in J. F. Ross (ed.), Inquiries into Medieval Philosophy: A Collection in Honor of Francis P. Clarke, (Westport: Greenwood Pub. Co., 1967), pp. 185-209. 148 가톨릭철학ㆍ제14호 연구논문
신학대전 에서 아퀴나스는 다음과 같이 논변을 전개한다: 그 반면, 인간 지성의 고유 대상은, 그것이 육체에 결합되어 있으 므로, 물체적 질료 안에 현존하는 본성 또는 하성이다. 지성은 실제로 가시적인 사물들의 본성들을 통해 비가시적 사물들에 대해 그것이 갖 는 한정된 인식으로 상승한다. 그러나 정의상 이런 종류의 본성은 물 체적 질료를 갖는 하나의 개체 내에 존재한다. 예를 들어, 이 돌 또는 저 특수한 돌 안에 존재해야 한다는 것은 돌의 본성에 속한 것이고, 이 또는 저 특수한 말 안에 존재해야 한다는 것은 말의 본성에 속한 것이다, 등등. 따라서 돌이나 다른 어떤 물질적 실재의 본성은 그것이 어떤 특정 사물 안에 존재하는 한에서 참으로 완벽하게 인식될 수 없 다. 이제 우리는 감각과 상상력을 통해 특수자를 파악한다. 그러므로 만일 그것이 현실적으로 그것의 고유의 대상을 이해하려 한다면, 지 성은 특수한 사물들 안에 존재하는 보편적 본성들을 보기 위해 감각 상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 22) 여기서 아퀴나스는 절대적으로 고찰된 공통본성이 완벽하게 인 식될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절대적으로 고찰 된 공통본성은 인간 지성의 고유 대상이 아니다. 또한 아퀴나스가 인간 지성의 고유 대상이 물질적 단일자들 안에 현존하는 공통본 성이라고 했을 때 보편자(즉 (3))를 염두에 두고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가능 지성이 가지적 종을 받아들일 때, 그것은 현실적으 로 인간 지성의 고유 대상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가지적 22) Intellectus autem humani, qui est conjunctus corpori, proprium objectum est quidditas sive natura in materia corporali existens; et per hujmodi naturas visibilium rerum etiam in indivisibilium rerum aliqualem cognitionem ascendit. De ratione autem hujus naturae est, quod in aliquo individuo existat, quod non est absque materia corporali: sicut de ratione naturae equi quod sit in hoc equo, et sic de aliis. Unde natura lapidis, vel cujuscumque materialis rei, cognosci non potest complete et vere, nisi secundum quod cognoscitur ut in particulari existens. Particulare autem apprehendimus per sensum et imaginationem. Et ideo necesse est ad hoc intellectus actu intelligat suum objectum proprium, quod convertat se ad phantasmata, ut speculetur naturam unversalem in particulari existentem. (ST, I, q. 84, a. 7, responsio) 박우석 아퀴나스에서 물질적 단일자에 대한 인식의 문제 149
종들이 인간 지성의 고유 대상이었다면, 지성이 물질적 단일자들 안에 현존하는 본성을 지각하기 위해 감각상으로 되돌아 갈 아무 런 필요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퀴나스가 공통본성 은 오직 개체 안에 현존하는 것으로서만 인식될 수 있다고 썼을 때, 그는 인간 지성의 고유 대상이 물질적 단일자들 안에 개체화되 어 있는 것으로서의 공통본성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4. 한 가지 문제 그러나 이 단계에서 한 가지 당혹스러운 문제가 제기된다. 만일 인간 인식의 고유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 지성이 감각상으로 되돌 아갈 필요가 있다면, 인지 과정에 관한 한 물질적 단일자들을 인식 하는 것과 물질적 단일자들에 개체화되어 있는 공통본성을 인식하 는 데는 아무런 차이도 없어 보인다. 예를 들어, 물질적 단일자인 소크라테스를 인식하는 데 있어서뿐만 아니라 한 물질적 단일자 안에 개체화된 공통본성인 소크라테스의 인성을 인식하는 데 있어 서도 지성은 감각상으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한 물질적 단일자 안 에 개체화된 것으로서의 공통본성은 그저 하나의 물질적 단일자인 것일까? 성 토마스가 제 86 문에서 그가 앞서 제 84 문 제 7 항에 서 말했던 바를 그저 반복해서 말하고 있을 따름이라고 해야 하는 가? 대부분의 중세인들이... (존재하는 모든 것은 개체라는) 보편 적 개성의 이론을 거의 자명한 것으로 간주했다 23) 는 점을 상기한 다면, 그것도 아마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물질적 단일자들의 인식과 물질적 단일자 들 안에 개체화된 것으로서의 공통본성의 인식 양자 모두에 같은 과정을 적용하는 데 불만을 가져왔다. 그래서 영혼론 제 3 권 주 해, 강의 8, 713 절, 신학대전 제 1 권, 제 84 문, 제 7 항, 그 23) Gracia, J. J. E., Suarez on Individuation, (Milwaukee, Wisconsin: Marquette University Press, 1982), p. 35, n. 1. 150 가톨릭철학ㆍ제14호 연구논문
리고 명제집 제 1 권 주석, 제 19 구별, 제 5 문, 제 1 항, 답변 7을 거론한 다음 로너간은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직접적 파악은 협약에 의한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우리는 지성의 최초의 대상이자 최초로 인식된 것이 한 물질적 사물의 하성이라고 읽게 된다 (ST, I, q. 85, a. 8; ST, I, q. 87, a. 3; ST, I, q. 88, a. 3c). 직접적으로뿐만 아니라 최초로 인식된 것이 어떻게 그럼에도 불 구하고 오직 감각상으로의 귀환에 의해서만 인식될 수 있는가? 24) 정확히 어떤 점이 로너간을 그토록 고심하게 만드는지 이해하고 자 애써보자. 그는 한 물질적 사물의 하성이 인간 지성의 최초의 대상이자 최초로 인식된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다. 물질적 단일자 들과 달리 인간 지성은 한 물질적 사물의 하성을 직접적으로 인식 한다고 로너간은 믿는다. 그러나 아퀴나스는 한 물질적 사물의 하 성을 인식하기 위해 감각상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 다. 만일 우리가 어떤 대상을 인식하기 위해 감각상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간접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라고 로너 간은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어떤 것을 동시에 직접적이자 간접적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은 터무니없다. 그러나 만일 우리 가 한 물질적 사물의 하성을 직접적으로 인식한다면, 왜 아퀴나스 는 감각상으로 되돌아감에 호소했는가? 그 반면, 만일 한 물질적 사물의 하성을 간접적으로, 즉 감각상으로 되돌아감에 의해 인식 한다면, 한 물질적 사물의 하성을 인식하는 것과 한 물질적 단일자 를 인식하는 것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 로너간은 감각상으로의 귀환(conversio) 과 감각상으로의 반전(reflexio) 을 첨예하게 구별해야 한다고 시 사했던 것 같다: 24) Lonergan, B. J., Verbum and Abstraction, in his Verbum, edited by O. B. Burell (Notre Dame: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1967), p. 195. 박우석 아퀴나스에서 물질적 단일자에 대한 인식의 문제 151
이제 귀환과 반전은 그것들 자체에서와 그것들의 귀결 양자 모두 에서 아주 판명하게 구별된다. 그것들은 그것들 자체에서 판명하게 구별된다: 감각상으로의 귀환은 인간 지성의 고유 대상인 하성을 인 식하기 위해 필요하다(q. 84, a. 7c); 그러나 감각상으로의 반전은 감 각상으로의 전환뿐만 아니라 하성에 대한 지식도 전제한다: 그것은 고유 대상에 대한 지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간접적 대상인 단일 자에 대한 지식을 위해 필요하다(q. 86, a. 1c). 25) 귀환 과 반전 을 구별할 필요성에 대하여 앤소니 케니와 피터 기치 사이에 최근 벌어졌던 논쟁은 우리에게 술어화(predication) 의 문제 또한 여기에 결부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성 토마스의 감각상으로의 귀환 이론에 대한 기치의 설명에 반대하며 케니는 감각상에의 주목(attention to phantasm: conversio ad phantasmata) 은, 아퀴나스에 따르면, 일반 판단이나 특칭 판단 여부에 무관하게 모든 개념의 행사에 필요한 어떤 것 이라고 주장했다. 26) 케니 자 신이 인정했듯, 그는 그런 해석에서 로너간의 논변에 크게 빚지고 있다. 로너간이 절대적으로 고찰된 본성과 단일자들에 개체화된 본성을 구별하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하는 한, 우리는 케니가 의도 한 바를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모든 인간은 동물이다 같은 일 반 명제에서 개념을 사용하기 위해 우리는 감각상으로의 반전이 아니라 감각상으로의 귀환을 필요로 한다. 그 반면,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 같은 단칭 명제에서는 귀환과 반전 양자 모두가 필요하 다. 전자는 인간 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기 위해 필요하고, 후자는 소크라테스를 재확인하기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귀환(conversio)과 반전(reflexio)을 꼭 구별할 필요가 있는가? 성 토마스의 인식론의 정수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그런 25) Lonergan, 앞의 책, p. 159. 26) Kenny, A., Intellect and Imagination in Aquinas in A. Kenny (ed.), Aquinas, (Notre Dame: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1969), p. 292; Geach, P. T., Mental Acts, (N. Y.: The Humanities Press, 1957), p. 65 참조. 케니는 여기서 일반 판단 으로 전칭 명제를, 그리고 특수 판단 으로 단 칭 명제를 의미한 것으로 여겨진다. 152 가톨릭철학ㆍ제14호 연구논문
용어 문제가 그토록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믿는 학자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만일 그것이 그토록 중요했다면, 성 토마스는 주어진 목적에 부합하는 오직 하나의 용어만을 골라서 사용했을 것이다. 조지 클루버탄츠는 continuatio, reflexio, 그리고 applicatio 처럼 물질적 단일자에 대한 지식의 문제와 빈번하게 관련되는 용 어들을 조심스레 검토한 다음 반전(reflexio)은 간접적으로 (indirecte)나 우유적으로(per accidens) 따위의 표현들 이상으로 말해주는 바가 없다 고 결론지었다. 27) 그러나 필자는, 설사 반전 (reflexio)과 귀환(conversio)의 구별이 물질적 단일자의 인식과 물질적 단일자 내에 개체화된 하성에 대한 인식 사이의 차이를 명료 하게 해주지 못할지라도, 불가지성의 원인에 관한 우리의 문제에 빛 을 던져줄 모종의 방법이 틀림없이 있다고 믿는다. 5. 추상 문제 해결의 열쇠는 물체적 질료 내에 현존하는 하성 또는 본 성(quidditas sive natura in materia corporali existens) 이라는 구절의 의미에 주목하는 데서 찾아진다. 다음의 단락을 보자: 따라서, 실제로는 물체적 질료 내에 개별적으로 존재하지만 정확하 게 그러저러한 개별적 질료 내에 존재하는 것으로서가 아닌 형상들을 인식하는 것이 그것에 적합하다. 이제 실제로는 개체화된 질료 내에 존재하지만 그러저러한 질료 내에 존재하는 것으로서가 아닌 어떤 것 을 인식하는 것은 개별적 질료로부터 어떤 감각상들에 의해 표상된 한 형상을 추상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지성이 감각상으로 부터 추상에 의해 물질적 사물들을 이해한다고 말해야 한다. 28) 27) Klubertanz, G. P., St. Thomas and the Knowledge of the Singular, The New Scholasticism, Vol. XXVI, No. 2 (1952), 148. 28) Et ideo proprium ejus est cognoscere formam in materia quidem corporali individualiter existentem, non tamen prout est in tali materia. Cognoscere vero id quod est in materia individuali, non prout est in tali materia, est abstrahere formam a materia individuali, quam repraesentant 박우석 아퀴나스에서 물질적 단일자에 대한 인식의 문제 153
여기서 아퀴나스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분명히 하고 있다: (1) 인간 지성의 고유 대상은 물체적 질료 안에 개별적으로 존재 하는 형상이다; (2) 이 물체적 질료 안에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형 상을 이 개별적 질료 안에 존재하는 것으로서 인식하는 것과 물체 적 질료 안에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형상을 감각상들에 의해 표상 되는 개별적 질료로부터 (형상을) 추상함으로써 인식하는 것이 구 별된다; (3) 물체적 질료 안에 존재하는 형상을 인식하는 것이 인 간 지성에 고유하다고 말할 때 우리가 의미하는 바는 물체적 질료 안에 존재하는 형상을 감각상들에 의해 표상된 개별적 질료로부터 (형상을) 추상함으로써 인식한다는 것이다. 물질적 단일자 안에 존재하는 하성을 인식하는 것과 물질적 단일자를 인식하는 것의 차이를 이런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이 물질적 단일자인 돌 안에 존재하는 돌의 본성을 다루고 있다고 가정하자. 아퀴나스 는 이 경우 이 돌 안에 존재하는 돌의 하성을 이 개별적 돌 안에 존재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그 돌로부터 돌의 형상을 추상함으로 써 인식하는 것이 인간 지성에 적합하다고 말할 것이다. 만일 한 물질적 단일자 안에 존재하는 하성을 인식하는 것과 한 물질적 단 일자를 인식하는 것 사이에 첨예한 구별이 있다면, 후자는 이 돌 안에 존재하는 돌의 하성을 이 개별적 물질적 돌 안에 존재하는 것 으로서 인식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 개별적 물질적 돌로부터 형상 이 추상될 때, 그것은 이 돌의 물질성과 개별성으로부터 추상된다. 다음 단락은 같은 논점을 더 정교하게 제시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나아가서, 한 사물의 인식된 사물의 형상을 가지는 방식이 더 비물 질적일수록 인식은 더 완벽해진다. 따라서 형상을 질료로부터만이 아 니라 심지어 개별화하는 물질적 조건들로부터도 추상하는 지성은 질 료 없이 인식된 사물들의 형상을 받아들이지만 이것들의 물질적 조건 들 없이 그렇게 하지는 않는 감각들보다 더 완벽한 인식을 갖는다. 29) phantasm,ata. Et ideo necesse est dicere quod intellectus noster intelligit materialia abstrahendo a phantasmatibus. (ST, I, q. 85, a. 1). 29) Quanto autem aliquid immaterialius habet formam rei cognitae, tanto perfectius cognoscit. Unde et intellectus, qui abstrhit speciem non solum a 154 가톨릭철학ㆍ제14호 연구논문
가지적이기 위해 그 형상들은 이 물질적 단일자 안에 존재하는 하 성의 물질성과 개별성으로부터 추상되어야만 한다. 첫째, 그것은 물 질성으로부터 추상되어야 하는데, 왜냐하면 심지어 우리 감각들도 사물의 형상을 질료 없이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그것은 개별성으로부터 추상되기 위해 능동지성의 작용을 필요로 한다. 30) 감각상으로의 귀환은 한 물질적 단일자 안에 존재하는 하성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데, 왜냐하면 그 형상은 물질성과 개별성으 로부터 추상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보았듯, 감각상으로의 귀환은 또한 물질적 단일자를 간접적으로 인식하기 위해 필요하 다. 그러나 이 경우 그것은 형상이 추상될 필요가 있어서가 아니라 물질성과 개별성을 복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분명히 한 물질 적 단일자 안에 존재하는 하성을 인식하는 데 있어서와 물질적 단 일자를 인식하는 데 있어서 귀환의 동기가 다르다. 31) materia sed etiam a materialibus conditionibus individuationibus, perfectius cognoscit quam sensus, qui accipit formam rei cognitae sine materia quidam, sed cum materialibus conditionibus. (ST, Ⅰ, q. 84, a. 2) 30) 추상에서 능동지성의 역할과 기능에 관해서는 아직도 대단히 복잡한 논쟁이 계 속되고 있고, 이슬람철학의 배경까지 전제해야 온전한 논의가 가능하므로, 세부 사항에 관한 논의는 명백히 본 논문의 범위를 넘어선다. 최근의 논의 가운데 다 음의 논저들을 참고할 만하다. L. Spruit, Species Intelligibilis. From perception to Knowledge, Vol. I: Classical Roots and Medieval Discussions, (Leiden: Brill, 1994); E. Stump, Aquinas s Account of the Mechanism of Intellective Cognition, Revue Internationale de Philosophie 204, (1998), 287-307; D. Perler, Things in the Mind. Fourteenth-Century Controversies over Intelligible Species, Vivarium, 34.2, (1996), 231-253. 아퀴나스의 추상 이론에 관한 국내 선행 연구 중에서는 이재룡, 토마스 아퀴나스의 추상이 론, 가톨릭철학 1, (1999), 134-168 및 이상섭, 앞의 논문 참고. 이슬람철 학의 배경을 조감할 연구서로 이재경, 토마스 아퀴나스와 13세기 심리철학, (대구: 대구가톨릭대학교 출판부, 2002)이 있다. 31) 이 절에서 우리는 conversio와 reflexio의 구별을 짓지 않은 채로 논의를 전 개했다. 그러나 귀환의 동기가 다르다는 것이 밝혀진 만큼 귀환과 반전을 구 별해줄 더욱 풍부한 문헌적 전거를 찾는 과제 또한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여 겨진다. 박우석 아퀴나스에서 물질적 단일자에 대한 인식의 문제 155
6.맺는 말 이 논문에서 필자의 목표 가운데 하나는 물질적 단일자에 대한 인식의 문제가 아퀴나스의 인식론에 특유한 것인지를 밝히는 것이 었다. 따라서 필자는 그 문제와 아퀴나스의 해결책의 정확히 어떤 측면들이 문제가 되는지를 적시하려 애썼다. 비록 몇 가지 난점으 로 여겨질 만한 측면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 우리는 그 어떤 명백한 오류도 아퀴나스의 사상에서 발견되지 않는다고 결론지어야 한다. 만일 이러한 평가가 올바르다면, 다수의 주석가 들이 믿는 바와 달리 물질적 단일자에 대한 인식의 문제는 아퀴나 스의 사상에 특유한 문제가 아니다. 그 결과, 스코투스와 오캄의 지적 직관 이론의 동기를 해명하는 문제 또한 다시 오리무중에 빠 졌다고 보아야 한다. 156 가톨릭철학ㆍ제14호 연구논문
국문 초록 아퀴나스의 물질적 단일자에 대한 인식의 문제는 중세 인식론의 역사에서 가장 치열하게 논의되어 온 문제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 는 부분적으로 알러스나 데이처럼 몇몇 학자들이 그 문제를 토마 스의 체계 전체를 통해 가장 취약한 지점으로 취급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알러스와 데이의 의견을 검토하고 나서 필자는 인간 지 성의 고유 대상의 문제를 통해 물질적 단일자들의 불가지성의 근 원의 문제를 논의할 것이다. 필자는 이 문제들을 적절하게 논의하 기 위해서는 물질적 단일자 내에 현존하는 하성( 何 性 )에 대한 인 식의 문제와 물질적 단일자에 대한 인식의 문제의 구별이 중요하 다는 점을 시사할 것이다. 이 구별을 전제하고서 아퀴나스 자신의 해결책이 그 자신의 문제를 다루기에 충분할 만큼 아주 교묘하다 는 점을 보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물질적 단일자에 대한 인식의 문제는 몇몇 주석가들의 주장처럼 아퀴나스에게만 특별히 야기되 는 문제가 아니다. 주요어: 아퀴나스, 물질적 단일자에 대한 인식, 중세 인식론, 감각상, 추상 박우석 아퀴나스에서 물질적 단일자에 대한 인식의 문제 157
Abstract The Problem of Knowledge of Material Singulars in Aquinas Park, Woo-Suk (Korea Advanced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Aquinas problem of knowledge of material singulars is one of the most heatedly discussed problems in the history of medieval epistemology. That is partly due to the fact that some scholars such as Allers and Day have treated the problem as the weakest spot in the entire Thomistic system. After having examined Allers and Day s opinions, I shall discuss the problem of the root of the unintelligibility of material singulars via the problem of the proper object of the human intellect. I shall suggest that it is important to distinguish between the knowledge of the quiddity existing in material singulars and the knowledge of material singulars in order to discuss these problems properly. With this distinction, it will be shown that Aquinas own solution is ingenious enough to handle his own question. In other words, the problem of knowledge of material singulars is not parochial to Aquinas, as some commentators claim. Key Words: Aquinas, knowledge of material singulars, medieval epistemology, phantasm, abstraction 158 가톨릭철학ㆍ제14호 연구논문
투 고 일: 2010. 3. 20. 심사완료일: 2010. 4. 9. 게재확정일: 2010. 4. 11. 박우석 아퀴나스에서 물질적 단일자에 대한 인식의 문제 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