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어 : 여행기, 바츨라프 세로셰프스키, 폴란드, 오리엔탈리즘, 한국 Keywords : Travelogue, Waclaw Sieroszewski, Poland, Orientalism, Korea 투 고 일 : 2012. 10. 20 심 사 일 : 2012. 11. 1 2012. 11. 30 게재확정일 : 2012. 12. 10 오리엔탈리즘과 바츨라프 세로셰프스키의 ꡔ한국ꡕ 안 상 훈* 목차 >>> Ⅰ. 들어가며 Ⅱ. 서구인들의 한국인식: 박제 오리엔탈리즘 Ⅲ. 세로셰프스키의 한국인식: 복제 오리엔탈리즘 Ⅳ. 나오며 1) 국문요약 구한말 서구의 여행가들은 한국에서 관찰한 모든 것을 다양한 형태의 기록으로 남겼고, 문자 언어로 충분히 전달되지 못한 부분은 사진이나 삽화 속에 담아서 자국의 독자들에게 제시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서 서구인들의 이러한 기록들이 객관적인 관점이 아니라 오리엔탈리즘의 관 점에 바탕을 두고 고찰되고 연구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본 연구는 구한말 열강들이 세 력 확장을 위해 각축전을 벌이던 격변의 시기에 한국을 직접 경험하고 여행기 ꡔ한국ꡕ을 남긴 폴 란드 출신의 러시아 학자 바츨라프 세로셰프스키의 시선을 살펴보고자 한다. 뚜렷한 정치적, 역 사적 신념을 지니고 있던 세로셰프스키가 남긴 여행기가 어떤 점에서 여전히 오리엔탈리즘의 맥 락 속에 놓여 있는가를 조망하는 것이 본 연구의 목적이다. I. 들어가며 구한말 서양의 선교사, 상인, 탐험가, 학자, 군인, 외교관 등은 자신이 직접 * 단국대학교 러시아어과 연구교수.
102 제28권 4호 2012년 체험하거나 문헌을 통해 습득한 한국에 관한 견문을 다양한 형태로 출간했다. 보물섬 으로 인식되던 한국의 지리적 환경, 역사, 풍속, 관습, 한국인의 성격 등 한국에 관한 다양한 정보가 수록되어 있는 여행기들은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인기를 끌었고, 이전 텍스트를 전범( 典 範 )으로 하여 쓰인 또 다른 여행기들이 경쟁적으로 출판되었다. 1) 이러한 여행기들은 구한말 한국에 관한 서구인의 인식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타인의 시각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행기에서 그려지는 한국의 모습이 지나치게 획일적이고 정형화되어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역사 학과 인류학 분야의 연구가들에 따르면, 한국의 모습이 이렇게 묘사된 이유가 한국의 삶을 하나의 풍물로, 낭만적인 이국경치로 파악하고자 하는 여행기 작가들의 오리엔탈리즘적 관념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이란 인류학자, 사회학자, 역사학자, 문헌학자를 비롯한 오리 엔탈리스트들이 직 간접으로 경험한 동양의 현실을 텍스트의 소재로 삼으면 서 동양을 실체와는 무관하게 서구 사회보다 낙후되고 야만적인 열등한 가치 를 지닌 세계로 유형화한 것이다.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는 서구 지식 인들의 상상의 동양과 날조된 지식 에서 비롯된 오리엔탈리즘을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며 위압하기 위한 서양의 스타일 2) 이라고 비판하기도 했 다. 서양이 동양을 고정적 이미지 속에서 조작하는 것은 문헌학, 역사학, 지리 학 등의 학술적인 텍스트에서뿐만 아니라 저자가 동양이라는 이국적이고 매력적인 현실을 자신의 상상력의 원천으로 삼으려는 예술 장르, 특히 여행기 에서도 잘 드러난다. 오히려 여행기가 서구인들의 동양에 대한 왜곡된 인식론 과 담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전형적인 텍스트로 인식되고 있다. 3) 근본적으로 타자에 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는 여행기는 서양 사회에서 다양한 목적으로 서술되고 출판되어 왔다. 서양의 선원들이나 상인들, 군인들, 과학자들, 선교사들은 자본주의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1) 서양 사회에서 여행 문화는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 관광을 육성하고자 하는 정책 덕분에 번성 해 나갔으며, 쥘 베른(Jules Verne)의 ꡔ80일간의 세계 일주ꡕ와 같은 여행기의 성공에 자극 받아 점점 대중화되었다. 이와 동시에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는 문화가 출현했다. 권혁희, ꡔ조선에서 온 사진엽서ꡕ (서울: 민음사, 2005), p. 65. 2) 에드워드 사이드, ꡔ오리엔탈리즘ꡕ, 박홍규 역 (서울: 교보문고, 1978), p. 18. 3) 박지향, 여행기에 나타난 식민주의 담론의 남성성과 여성성, ꡔ영국 연구ꡕ, 4 (서울: 영국사학회, 2000), p. 145.
오리엔탈리즘과 바츨라프 세로셰프스키의 ꡔ한국ꡕ 안 상 훈 103 의 발흥, 기독교의 해외 선교 운동 등 서양 사회의 전반적인 흐름과 더불어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지역을 찾아내고 그곳에 관한 정보를 기록으로 남겼다.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하는 민족지적 서술 방식이 인기를 끌면서 이른바 탐험 가와 여행가들은 또 다른 목적으로 낯선 사회를 여행하였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 모습, 관습, 문화 등에 관한 정보를 직접 수집하고 기록해서 출판했다. 이들이 출판한 여행기는 서구 독자들에게 낯선 세계에 대한 무한한 동경심을 불러일으키면서 커다란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서구 여행가들은 오리엔탈리즘의 사고를 기반으로 비( 非 )서구 사회를 바라보고 분석하고 유형 화했다. 서구인들이 기록한 한국에 관한 텍스트들도 상당 부분 오리엔탈리즘이라는 큰 틀에서 서술되었다. 4) 서구인들은 한국을 대상으로서 욕망하고 관찰하고 분석했으며 한국에 관한 지식과 이미지를 자기중심적으로 재구성했다. 서구 인들이 기록한 한국에 관한 지식은 한국의 실체 라기보다는 한국의 현실을 오리엔탈리즘의 관점에 바탕을 두고 확대 해석한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형성된 한국에 관한 담론은 객관적 정보로서 기능하게 되었고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지적 권위 를 지니고 있다. 본 연구는 구한말 서양과 동양의 열강들이 제국주의적 세력의 확장을 위해 각축전을 벌인 격변의 현장이었던 한국에 와서 한국 사회와 한국인들을 직접 관찰하고 기록했던 러시아 학자 바츨라프 세로셰프스키(Waclaw Sieroszewski) 의 시선을 추적하고자 한다. 세로셰프스키는 1902년부터 1903년에 걸쳐 러시 아 제국 지리학회(Русское Географическое Общество)가 수행한 일본 아이누 (Ainu)족의 삶과 샤머니즘 연구를 위한 탐험에 동행하고 귀국길에 한국에 들러 약 두 달간 체류하며 한국을 여행했다. 그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1905년 ꡔ한국 - 극동의 열쇠ꡕ(Korea-Klucz Dalekiego Wschodu)라는 여행기를 폴란드어로 출판한다. 5) 4) 서기재( 徐 己 才 )는 한국에 관한 서구 여행가들의 기록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지닌 탐험정신 을 맘껏 발휘할 수 있었던 조선은 서양인들에게 동양의 신비로움 을 가장한 오리엔탈리즘 형성에 일조하는 장소로서 존재하기도 했다 라고 말하고 있다. 자세한 것은 다음을 참조하기 바람. 서기 재, ꡔ조선 여행에 떠도는 제국ꡕ (서울: 소명출판, 2011), p. 52. 5) 세로셰프스키의 여행기 ꡔ한국ꡕ의 출판 과정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폴란드어 단행본은 1905년에 ꡔ한국 - 극동의 열쇠ꡕ란 제목으로 나왔고, 같은 해 러시아어판 ꡔ한국 스케치ꡕ(Корея: очерки)가 제2판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출판되었다.(세로셰프스키 선집 4권) 1906년에는 독일 에서 독일어 번역본 ꡔ코리아: 체험을 바탕으로 독자를 위해 쓴 한국과 한국인ꡕ(Korea. Land und Volk nach eigener Anschauung gemeinverständlich geschildert)이 출간되었다. 세로셰프스키의 여행기
104 제28권 4호 2012년 한국에서 약 두 달 가량의 직접 체험을 바탕으로 세로셰프스키가 한국의 풍습, 정치 경제 상황, 사회, 문화 영역을 총망라해서 정리한 한국 여행기를 폴란드어로, 러시아어로 그리고 독일어로 출간한 것은 적잖은 의미가 있다. 세로셰프스키의 여행기 ꡔ한국ꡕ은 세계의 관심이 한반도에 쏠려 있는 상황에 서 러일전쟁이 임박한 무렵의 한국의 모습과 사회 풍물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는 일종의 한국 다큐멘터리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뚜렷한 정치적, 역사적 신념을 지니고 있던 세로셰프스키가 자신의 여행 기에서 그의 조국 폴란드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는 한국과 한국인을 부정적 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한국의 식민지화에 동조하는 입장을 드러낸다는 점이 다. 본 연구는 세로셰프스키가 쓴 여행기 ꡔ한국ꡕ이 어떤 점에서 여전히 오리엔 탈리즘의 맥락 속에 놓여 있는지를 조망해 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우리는 먼저 한국이 서구인들의 인식 속에서 이미지화되어 가는 과정을 오리엔탈리 즘과의 관계 속에서 고찰할 것이며, 서양적인 가치관과 문화적인 코드에 입각 하여 정형화되고 박제된 이미지들이 세로셰프스키의 여행기에 어떻게 재현 되어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II. 서구인들의 한국인식: 박제 오리엔탈리즘 6) 서양에서 한국에 관한 이미지는 한국이란 대상을 직접 보지 못한 시기부터 형성되어왔다. 7) 16세기까지 유럽인 가운데 그 어느 누구도 한국 땅을 밟은 가 러시아에서 책으로 출판되기 이전에는 부분적으로 잡지에 연재되기도 했다. 1905년의 러시아어 판이 제2판으로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러시아어 초판이 폴란드어판과 함께 또는 그 이전에 출판된 것인지, 아니면 폴란드어판을 제1판으로 간주한 것이지 확실치 않다. 자세한 것은 다음을 참조하기 바람. 바츨라프 세로셰프스키, ꡔ코레야 1903년 가을: 러시아 학자 세로셰프스키의 대한제국 견문록 ꡕ, 김진영 외 옮김 (서울: 개마고원, 2006), p. 431. 6) 박제 오리엔탈리즘, 복제 오리엔탈리즘 이란 용어는 이옥순이 ꡔ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ꡕ에서 사용한 용어를 본 논문에 차용한 것이다. 영국은 인도 정복과 지배를 정당화하고, 식민지 인도인을 열등한 이미지로 그려내기 위해 부정적이고 비합리적인 인도의 모습을 창조해낸다. 상상된 부정 적인 인도의 이미지는 영국의 식민담론 에 의해 점차 본질적인 것으로 굳어지는데, 저자는 이러한 영국의 담론을 박제 오리엔탈리즘 이라 부른다. 우리를 비롯한 또 다른 동양은 영국이 만들어 낸 인도에 대한 담론을 은연중에 공유하며 인도를 열등한 타자로 바라본다. 저자는 영국에게 감염 된 우리의 시선을 복제 오리엔탈리즘 이라고 명명한다. 이옥순, ꡔ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ꡕ (서울: 푸른역사, 2009). 7) 김성택, 한국의 이미지에 대한 일반 연구 - 구한말 이전의 프랑스 문헌을 중심으로, ꡔ한국프랑스 학회 학술발표회ꡕ (서울: 한국프랑스학회, 2004), p. 33.
오리엔탈리즘과 바츨라프 세로셰프스키의 ꡔ한국ꡕ 안 상 훈 105 사람이 없었지만, 서구인들은 제3국이나 제3자를 통해 한국을 인식했다. 주지 하다시피 13세기부터 16세기의 시기에 서양 사회에서 모든 것의 중심은 기독 교였으며, 기독교를 믿지 않는 곳은 신의 은총이 미치지 않은 곳이며 무지한 이교도들이 사는 어둠의 지역으로 고려되었다. 이러한 기독교 중심의 세계관 이 지배하던 서양에서 한국은 아주 먼 곳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이 알려져 있던 미지의 나라였다. 한국을 지리적 공간으로 언급한 최초의 서구인은 선교 활동을 목적으로 몽골에 갔던 피아노 카르피니(Giovanni de Piano Carpini)지만, 한국의 이미지를 서구인들에게 최초로 심어준 인물은 기욤 드 루브룩(Guillaume de Rubrouck)으 로 알려져 있다. 루브룩은 ꡔ몽골제국 여행기ꡕ(Itinerarium ad partes Orientales)와 몇몇 기록에서 카울리 (Cauli, 고려)는 몽골보다 더 먼 곳에 있는 섬나라이며, 그곳에는 우상숭배자들이 살고 있다고 언급한다. 8) 이렇게 해서 한국은 지리 적으로 어떤 먼 나라보다도 더 멀리 떨어져 있고 지형적으로 바다와 산에 의해 막혀 있으며, 종교적으로 우상을 숭배하는 이질적인 문화와 풍습을 지닌 섬나라의 표상으로 이미지화되었다. 섬이라는 지리적인 특성과 산으로 둘러 싸인 지형적 특성은 고립 이라는 개념과 연관되면서 한국의 폐쇄적인 이미지 를 강화시켜주는 역할을 했다. 사실 한국은 서양의 문헌에서 독자적으로 다뤄 지기보다는 중국, 몽골 또는 일본과 함께 다루어지곤 했다. 극동에 있는 이 나라들은 서구인들에게 공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먼 곳에 위치하는 이국적 인 세계로 인식되었지만, 특히 한국은 서구인들의 의식 속에서 이국적인 극동 세계에 포함되어 있는 또 다른 이국적이고 비밀스런 나라로 받아들여졌다. 왜냐하면 한국은 일본이나 중국과 근접해 있고 상호간에 유사한 특징이 존재 하는데도 불구하고 지리적으로 더 먼 곳에 위치하고, 시간적으로도 훨씬 먼 곳에 떨어져 있는 나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9) 한국이 지리적으로 섬이라 는 초기 문헌의 잘못된 정보는 오랫동안 수정되지 않고 17세기 초까지 그대로 유지되면서 한국은 서양의 지도 속에서 계속해서 섬나라로 표시되었다. 10) 8) 한국과 관련된 루브룩의 글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기 바람. 프레데릭 불레스텍스, ꡔ착한 미개인 동양의 현자: 서양인이 본 한국인 800년ꡕ, 이향 김정현 옮김 (서울: 청년사, 2001), pp. 26-29. 9) 불레스텍스, Ibid., p. 198. 10) 1631년 예수회 소속의 마르티노 마르티니(Martino Martini) 신부가 1606년 조도쿠스 혼디우스 (Jodocus Hondius)에 의해 제작된 지도의 재판본을 출간했는데, 이 지도에서 한국은 처음으로 섬이 아니라 반도로 그려진다. Ibid., p. 44.
106 제28권 4호 2012년 서구인들은 17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헨드릭 하멜(Hendrick Hamel)의 글을 통해 한국에 관한 좀 더 구체적인 정보를 얻게 되고 체계적으로 한국을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하멜은 1653년부터 1666년까지 약 13년 동안 한국 체류 경험을 바탕으로 두 편의 글(ꡔ하멜 일지ꡕ, ꡔ조선국에 관한 기술ꡕ)을 1668년에 출판한다. 11) 미지의 나라 한국에 관한 하멜의 책은 서구인들의 호기 심을 자극했고, 여러 판본이 서양의 각국에서 경쟁적으로 출판되었다. 흥미로 운 것은 독자들의 관심을 더욱 불러일으키기 위해 한국과 직접 관련이 없는 삽화들을 추가한 다양한 판본들까지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12) 하멜의 글에는 당시 한국 사회의 모습을 정확하게 묘사된 부분이 있는가 하면, 지나치게 단편적이거나 잘못된 이해를 바탕으로 쓰인 부분들도 있다고 비평가들은 지적한다. 하멜은 한국과 중국이 육로로 연결되어 있는가 아니면 떨어져 있는가? 라는 나가사키 총독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우리가 들은 바에 의하면 두 나라 사이에는 큰 산으로 연결되어 있다 한다. 겨울 에는 추위 때문에, 여름에는 맹수 때문에 여행하기가 위험하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주로 해로( 海 路 )로 가는데, 겨울에는 꽁꽁 언 얼음을 건너간다. 13) 섬나라로서 한국의 이미지는 하멜 이후 어느 정도 약화되었지만, 섬이 갖고 있는 고립 의 이미지는 여전히 한국을 따라 다녔고, 섬은 아닐지라도 산으로 가로 막혀 있는 험준한 지형, 혹독한 추위 등의 요소들이 추가되면서 한국의 폐쇄적인 이미지는 더욱 강화된다. 18세기 서양에서 중국 열풍이 불면서 한국에 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커진 다. 볼테르(Voltaire)를 위시한 계몽주의자들은 한국을 신비화하는 경향을 보 이기도 했으며 선교사들은 막연한 기대감 속에서 한국을 동경의 대상으로 그리기도 했다. 사실 한국에 관심을 갖고 한국을 서양 사회에 적극적으로 소개한 사람들은 주로 선교사들이라고 할 수 있다. 14) 이들은 선교 활동이라는 11) 하멜의 여행일지는 1668년 반 벨센(Van Velsen)에 의해 암스테르담에서, 스티히터(Johnness Stichter)에 의해 로테르담에서 처음 출판되었다. 헨드릭 하멜, ꡔ하멜 표류기: 낯선 조선 땅에서 보낸 13년 20일의 기록ꡕ, 김태진 옮김 (서울: 도서출판 서해문집, 2003), p. 13. 12) 낙타, 코끼리, 화식조 등의 삽화가 등장하기도 하고, 하멜이 서술하지도 않은 어린 아이를 잡아먹 는 악어 에 관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는 판본도 있다. 13) 하멜, Ibid., p. 84. 14) 선교사들은 일본, 중국에 이은 새로운 선교 대상국으로 한국에 관심을 기울였고 한국에 들어가려 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서양인 선교사 가운데 한국에 관해 처음 언급한 사람은 일본에서 선교
오리엔탈리즘과 바츨라프 세로셰프스키의 ꡔ한국ꡕ 안 상 훈 107 기독교적 소명의식을 가지고 한국에 관심을 기울였고, 한국의 풍속뿐만 아니 라 역사, 정치, 경제, 문화 등에 관한 보고서를 써서 서양 사회에 한국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특히 프랑스 선교사들이 남긴 한국에 관한 여러 기록들은 서구인 들의 한국관을 형성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1741년 출판된 프랑스 예수회 신부인 뒤 알드(Jean-Baptiste Du Halde)의 ꡔ중국사ꡕ(The General History of China) 15) 제4권에는 한국의 풍부한 금과 장례식 부장품에 관한 언급이 있으며, 샤를르 달레(Charles Dallet)는 ꡔ한국천주교회사ꡕ(Histoire de l'église de Corée) 16) 에서 한국을 자원이 풍부한 나라로 서술하고 있다. 산에는 금, 은, 동광이 많이 매장되어 있는 것이 확실한 듯하다. 많은 곳에, 그중 에서도 북쪽 지방에서는 땅을 조금만 파도 금이 나오며, 어떤 개울에는 모래 속에 사금이 들어 있다고 한다. 17) 지리적인 사실과는 상관없이 섬이라는 한국의 이미지에 동쪽이 갖는 상징 활동을 하던 포르투갈 출신 예수회 선교사 가스파르 비렐라르(Gaspar Vilelar)였다. 그는 1571년에 한국 입국을 시도했지만, 당시 전국시대( 戰 國 時 代 )의 혼란에 빠져 있던 일본 국내 사정으로 좌절되 었다. 그는 1571년 친우에게 보낸 두 통의 편지에서 한국의 지리적 위치가 만주로 들어가는 길목임 을, 한국인은 백인종이며 맹수의 수렵과 기마에 능하다는 사실을 기록했다. 비렐라르의 한국에 관한 지식은 매우 피상적이고 부정확했지만, 예수회 계통 선교사들이 한국을 인식하는 데 기여했 다. 비렐라르의 기록을 통해 한국에 관한 지리적 지식을 확보한 여러 선교사들은 한국의 임진왜란 과 병자호란에 관한 여러 기록물을 간행했다. 이로써 서양의 독자들은 한국의 지리적 위치, 중국 및 일본과의 관계를 비롯한 17세기 전후 한국이 처해 있던 국제적 정세와 한국의 정치에 관한 기록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자세한 것은 다음을 참고하기 바람. 조광, 서양과의 관계, ꡔ한국사ꡕ 32 조선 후기의 정치, (경기: 국사편찬위원회, 1997), pp. 502-506. 15) 이 책의 제목은 ꡔThe General History of China: Description géographique, historique, chronologique, politique et physique de l'empire de la Chine et de la Tartarie chinoise, enrichie des cartes générales et particulieres de ces pays, de la carte générale et des cartes particulieres du Thibet, & de la Corée; & ornée d'un grand nombre de figures & de vignettes gravées en tailledouceꡕ (중국 통사: 중국 제국, 타타르, 조선 그리고 티베트에 관한 지리적, 역사적, 연대기적, 정치적, 자연적 묘사와 그들의 독특 한 관습, 풍습, 의례, 종교, 예술 그리고 과학에 대한 정밀한 기술)이다. 이 책의 제4권 ꡔ조선전ꡕ (Kingdom of Korea)은 조선 왕조에 관한 지리적 관찰, 조선의 약사( 略 史 ), 조선의 풍물 등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장 밥티스트 레지스(Jean-Baptiste Régis) 신부를 비롯해서 중국에서 활동하던 예 수회 신부들이 모은 자료와 중국의 정사( 正 史 )에 나오는 조선에 관한 기록을 이용하여 작성된 것이 다. 이 책은 18세기 서구인에게 한국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가장 권위 있는 책으로 인정되고 있다. 특히 선교사들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파견되기 이전에 사전 학습용으로 활용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즉, 선교사들이 한국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한국에 들어왔는지를 직접 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자세한 것은 다음을 참고하기 바람. 국사편찬위원회 편, ꡔ이방인 이 본 우리ꡕ (서울: 두산동아, 2009), p. 167; 불레스텍스, op. cit., pp. 52-57. 16) 이 책은 샤를르 달레 신부가 한국을 직접 방문하고 기록한 것은 아니지만, 한국을 여행하려는 서구 인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한국 안내서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했던 다블뤼(Antoine Daveluy) 신부의 보고서를 편집한 것이며 편집 과정에서 달레 신부의 개인적인 생각이 상당히 반영 된 것으로 평가되는 글이다. 자세한 것은 다음을 참고하기 바람. 김성택, op. cit., p. 28. 17) 샤를르 달레, ꡔ한국천주교회사ꡕ(상), 안응렬 최석우 역 (서울: 한국교회사연구소, 2000), p. 28.
108 제28권 4호 2012년 성이 추가되고, 당시 서양 국가들이 식민지에 대해 꿈꾸던 세속적인 욕망이 투사되어 서양 사회에서 한국은 황금국 의 이미지를 띠면서 이상화된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서구인들의 관심이 고조되어 가던 시기에 진귀한 물건들 이 넘쳐난다는 한국에 관한 소문은 서구인들의 관심을 유발하고 모험심을 자극했다. 18) 마르코 폴로(Marco Polo)의 여행기 ꡔ동방견문록ꡕ에 등장하는 거란 (Cathay)이라는 명칭이 서양에서 15세기 말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을 이끌 정도로 서구인들에게 거대한 꿈의 황금국 이라는 이상을 제공했 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19) 1602년 포르투갈 태생의 베네딕트 고에스 (Benedict de Goes)에 의해 거란이 중국이라는 것이 밝혀진 이후 서구인들이 꿈꾸던 황금국의 이미지는 중국보다 더 동쪽에 있는 한국으로 은연중에 옮겨 갔다. 20) 사실 하멜조차 한국이 험한 해안과 산으로 뒤덮였음에도 불구하고 비옥하고 풍요로운 땅이라고 소개했다. 이 나라는 필요한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다. 쌀이나 그 밖의 곡식이 풍부하며 무명이나 베를 짠다. 누에 또한 상당히 많이 치지만, 좋은 품질의 비단을 만들어 낼 직조 기술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 은, 철, 납 등이 산출되며, 호피나 인삼 뿌리, 다른 물건들이 거래된다. 조선인들은 많은 약초를 재배하지만, 일반인들은 거의 그 약초를 쓰지 못한다. ( ) 이 나라에는 말과 암소, 황소 등이 많이 있는데, 황소는 거의 거세되는 일이 없다. ( ) 호랑이도 아주 많은데, 호랑이 가죽은 중국이나 일 본에 수출된다. 그 밖에 곰, 사슴, 멧돼지, 집돼지, 개, 여우, 고양이 등이 있다. 뱀과 독이 있는 동물 등도 많다. 21) 사실 서양 선교사들이 남긴 한국에 관한 기록들은 여러 가지 한계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선교사들은 근본적으로 선교라는 복음주의에 입각하 고 있기 때문에 한국을 그동안 신의 은총이 비추지 않은 미개하고 야만적인 지역으로 규정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서구 중심 18) 독일 상인 어니스트 오페르트(E.J. Oppert)가 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 한 사건이 나 제너럴 셔먼호의 도굴 사건(1866)은 한국에 금은보화가 풍부할 것이라는 상상에 의해 저질러진 대표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오페르트는 조선에는 금과 은이 풍부하지만, 유통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 ) 정부는 여러 곳에 있는 국고를 통해 금과 은을 보유하고 공급한다. 금과 은을 캐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으며 이를 위반할 경우 사형에 처한다. 정부는 매장량이 풍부한 광산을 개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곳으로부터 어떤 수익도 거둘 수 없다 고 쓰고 있다. 어니스 트 오페르트, ꡔ금단의 나라 조선ꡕ, 신복룡 역 (서울: 집문당, 2000), p. 125. 19) 주겸지, ꡔ중국이 만든 유럽의 근대ꡕ, 전홍석 옮김 (경기: 청계출판사), pp. 41-42. 20) 김성택, op. cit., p. 36. 21) 하멜, op. cit., pp. 134-136.
오리엔탈리즘과 바츨라프 세로셰프스키의 ꡔ한국ꡕ 안 상 훈 109 사상의 시각에서 한국을 관찰하고 평가했다. 22) 더욱이 우리는 선교사들이 당시 한국 정부의 기독교 박해라는 외적인 조건 때문에 한국을 객관화시키기 보다는 한국 사회를 더 왜곡시키는 경향이 농후했다는 점을 특히 주목해야 한다. 당시 선교사들이 쓴 편지의 목적은 본국에 있는 기독교 신도들에게 해외 선교 활동에 관한 지속적인 관심과 후원을 이끌어 내는 데 있었고, 그렇게 때문에 선교사들이 쓴 한국에 관한 많은 글은 한국 기독교 신도들의 깊은 신앙심과 같은 긍정적인 측면을, 그리고 동시에 기독교를 탄압하는 한국 정부 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강조했다고 고려할 수 있다. 23) 선교사들 외에 외교관, 상인, 선원, 학자, 문인, 군인 등이 한국에 관한 기록을 남겼는데, 이들은 주로 1882년 조미수호조약이 체결된 이후의 구한말 시기에 한국을 직접 방문한 사람들이다. 이미 언급했듯이 당시 여행기 장르가 서구인 들의 이국취향을 만족시켜주면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 이 직업과 무관하게 한국에 관한 여행기를 써서 출판했다. 심지어 한국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 중국이나 일본 등 극동의 다른 나라에 와서 그곳의 문헌이 나 그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글을 작성하여 출판한 여행기도 상당수 있었다. 특히 중요한 사실은 신비로운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던 한국에 관한 이야기들이 독자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기존에 출판된 한국에 관한 정보 를 바탕으로 작가의 창조적 상상력이 가미된 서적들이 끊임없이 재생산되었 다는 사실이다. 미지의 세계인 한국에 관한 비현실적이고 과장된 이야기들이 덧붙여진 여행기들은 독자들을 더욱 자극하게 되었다. 한국에 금은보화, 희귀 동식물 등 진귀한 물건들이 넘쳐난다는 소문이 수많은 서구인의 상상력과 모험심을 자극했듯이, 한국에서 벌어진 선교사들에 대한 무자비한 박해 소식을 접한 서구인들은 한국을 무지와 야만의 나라로 평가했다. 여행가들은 한국을 가슴 을 드러낸 벌거벗은 여인의 세계,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야생의 숲, 심지어 부패하고 타락한 나라로 적극적으로 묘사하면서 고립 이라는 한국의 폐쇄성 을 다양하게 다루었다. 마법적인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산삼 24) 과 호랑이 22) 김성택, op. cit., p. 28. 23) 불레스텍스, op. cit., p. 105. 24) 일찍이 산삼(또는 인삼)에 대한 관심은 울창한 야생 상태의 산, 그리고 채집의 상징성과 연결되어 예수회 소속 의부들의 의학적 연구 소재가 되기도 했다. 불레스텍스, op. cit., p. 64.
110 제28권 4호 2012년 사냥꾼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모든 여행기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골 메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한국인은 오랜 옛날부터 산과 숲으로 이루어진 야생의 자연에서 수렵과 사냥을 하던 미개인이라는 표상으로 인식되었다. 서구인의 눈길을 끈 흰옷도 한국의 야만성을 강조하는 표상으로 인식되었 다. 한국에 관한 글을 쓴 대부분의 서구인들은 흰옷을 입은 한국인의 모습을 때로는 당시 조선의 상황을 연상하면서 쓸쓸한 왜가리 또는 유령 같은 사람들 25) 이라고 부정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한국인이 흰옷을 입는 이유가 한국의 남성들이 여성을 착취하려는 감정이 투사된 것이라는 왜곡된 평가를 내리는 서구인들까지 등장했다. 26) 심지어 한국인들이 흰옷을 입게 된 전설을 만들어내기까지 한다. 한국인은 의기소침해 있고, 순발력이 없고, 쾌활하지 않으며, 이제는 몰락해가고 있는데도 선조들의 사상을 쫓고 있으며, 주인에 대해 수동적이고, 아무런 즐거움도 없이 힘든 노동을 체념하며 받아들인다.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의 무게에 눌려 있고, 무언가 항상 비탄에 젖어 있는 이들 남녀노소는 왜 항상 흰색 상복을 입고 있는 것일까? 과거 한국은 너무나도 긴 복상( 服 喪 ) 기간을 경험해 차라리 항상 상복을 입고 있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는 것이 이 나라 사람들의 씁쓸한 논리이 다. 27) 이러한 전설은 이미 오래전에 러시아에서도 잘 알려져 있었으며, 1910년 나르스카야가 펴낸 ꡔ고요한 아침의 나라, 한국ꡕ(Страна утреннего покоя: Корея)에는 한국인들이 흰옷을 입게 된 흥미로운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한국인들은 왜 흰옷을 입을까요? 옛날 옛적 한국에 선한 왕이 살았습니다. 하지 만 병마는 선한 사람들도 용서하지 않는 법. 왕은 그만 중한 병에 걸리고 말았습니 다. 지혜롭고 학식이 있는 의사들이 모여 앉아 이런 저런 약을 써보자는 의견을 냈 습니다. 그때 가장 지혜롭고 학식이 높은 의사가 다음과 같은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왕께서는 마치 우유처럼 창백해지셨소. 우유로 왕을 치료해야 할 듯하오. 25) 퍼시벌 로웰, ꡔ내 기억 속의 조선, 조선 사람들ꡕ, 조경철 옮김 (서울: 예담, 2001), p. 39. 26) 조지 커즌(G.N. Curzon)은 한국인들이 결코 청결하지도 않으면서 흰옷만을 고집하는 독특한 민족 이라고 빈정대면서, 이는 남성이 여성을 계속 일하게 만들려는 숨은 뜻이 있는 것 같다고 주관적으 로 판단했다. 조지 커즌, ꡔ100년 전의 여행, 100년 후의 교훈ꡕ, 라종일 옮김 (서울: 비봉출판사, 1996), p, 53, p. 88. 27) F. Jouon des Longrais, Extre me-asie (de Yokohama à Singapoure) (Paris: Pierre Roger, 1927), 불레스텍 스, op. cit., p. 190에서 재인용.
오리엔탈리즘과 바츨라프 세로셰프스키의 ꡔ한국ꡕ 안 상 훈 111 (중략) 하지만 왕은 이미 우유보다도 더 창백해져 있었고, 우유도 왕을 구하지 못했습 니다. 이에 한국인들은 모두 흰 상복을 입고 모든 일을 멈추었습니다. 제사도, 결혼 도, 재판도, 형벌도 금지되었습니다. 모두가 금식하며 3년간 왕을 추모했고, 그 기 간에는 아무도 흰옷을 벗지 않았습니다. 이 3년간은 다른 왕이 통치했는데, 마침내 죽은 왕을 기리는 기간이 끝났을 때 새 왕이 죽었고, 사람들은 다시 3년간 흰옷을 입고 죽은 왕을 기렸습니다. 그런데 3년이 지나자 새로 즉위한 왕이 또 죽게 되었 고, 온 나라는 다시 흰옷을 입어야 했습니다. 이리하여 죽음의 상징이던 흰옷은 결 국 삶의 상징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세월 동안 세상에는 많은 아이들이 태어났으니까요. 바로 이것이 한국인들이 흰옷을 입는 이유랍니 다. 28) 출처를 알 수 없이 떠돌던 다양한 소문과 부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만들어 진 이렇게 황당무계한 이야기들은 한국의 정세에 세계적인 관심이 쏠리는 시의성에 힘입어 독자들의 웃음을 자아내면서 날조되고 반복되었으며 끊임없 이 재생산되었다. 서구인들은 한국에 관한 기존의 이미지에 또 다른 새로운 이미지를 더해 가는데, 이제 한국은 은자의 나라, 고요한 아침의 나라 (Land of the Morning Calm)라는 수식어로 표상되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국이 서구인들에게 은둔국 으로 인식된 것은 윌리엄 그리피스(W.E. Griffis)의 저서 ꡔ은자의 나라 한국ꡕ(Corea: The Hermit Nation)에서 비롯되었다. 29) 이후 한국을 표상하는 은둔국 의 이미지는 일본 지식인들에 의해 더욱 조장되어 한국인도 모르게 한국은 은자의 나라로 비춰졌고, 많은 여행기에서 은자의 모습으로 형상화되 었다. 그리피스가 ꡔ은자의 나라 한국ꡕ 서문에서 쓴 고요한 아침의 나라 30) 라 는 표현은 세계의 변화하는 흐름과는 관계없이 시간은 정지해 있고 수세기 동안 고립되어 역사 속에 사라진 과거 를 그대로 간직한 살아 있는 화석 이라 는 인식을 표현한 것으로, 동양 사회론에서 운위되는 무변동성( 無 變 動 性 ), 28) V. 나르스카야, ꡔ동화의 나라, 한국ꡕ, 안지영 편역 (경기: 한국학술정보, 2006), pp. 20-22. 29) 그리피스의 ꡔ은자의 나라 한국ꡕ은 여러 번 증보판을 냈을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을 뿐만 아니라, 선교사들을 비롯해서 한국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에게 한국에 관한 일반적인 지식을 제 공하는 역할을 했다. 30) 1885년 미국의 천체 물리학자였던 로웰(Percival Lowell)이 지은 ꡔ고요한 아침의 나라ꡕ(Chosu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 A Sketch of Korea), 영국인 화가 출신의 아놀드 새비지-랜도어(Arnold.H. Savage-Landor)의 ꡔ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ꡕ(Corea or Cho-se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1895)이 출간됨으로써 이 명칭은 구한말에 한국을 표현하는 가장 흔한 용어로 인구( 人 口 )에 회자( 膾 炙 )되었다.
112 제28권 4호 2012년 무역사성( 無 歷 史 性 )을 가리킨다. 31) 이제 한국은 진보해가는 문명에서 벗어 난 무기력, 정체, 고립의 이미지와 연결되면서 서구 문명인에 의해 문명의 세계로 인도되어야 하는 신비와 은둔 의 나라를 의미하게 되었다. 이상에서 간략히 살펴보았듯이 서양 사회는 제3국이나 제3자를 통해 간접 적으로 한국을 접하면서부터 한국을 자신의 시선을 충족시키는 특정한 이미 지들로 양식화했다.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여행기들이 한국을 소개하는 안내 서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접한 이후의 여행가들은 한국을 미개하고 수동적인 이미지 속에서 유형화시켰고, 한국에 관한 그들의 시선이 신비화되 고 문학적 상상력에 의해 왜곡된 형태로 투사되어 갔다는 데 있다. III. 세로셰프스키의 한국인식: 복제 오리엔탈리즘 한국은 놀라운 나라예요! 땅은 아주 비옥해서 이집트처럼 작황이 좋지요! 한국 산 쌀은 심지어 일본쌀을 능가할 정도구요! 한국은 숲으로 끝없이 뒤덮여 있어요! 그리고 숲에는 값비싼 나무들뿐이랍니다. 참나무, 물푸레나무, 서양 삼나무, 삼나 무, 코르크나무. 한없이 풍부한 광물은 사 갈 사람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금, 철, 구리! 석탄과 대리석도 있어요! 새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꿩, 백조, 거위, 오리들이 들판을 날아다니고 사슴, 영양, 염소, 멧돼지 떼가 산야를 돌아다닌답니 다. 사냥꾼들에겐 광활한 곳이지만 조심해야 해요. 왜냐하면 호랑이가 있으니까요. 호랑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상점에는 호랑이 가죽이 빽빽하게 걸려 있어요. 정말이 지 멋집니다! 한국은 매력적인 곳이에요. 꽃 핀 버드나무에는 동백나무와 월계수 숲의 축축한 그늘이 드리워져 있지요! 부드러운 공기와 햇볕과 따뜻하고 푸른 바 다가 모든 걸 감싸고 있구요. 32) 세로셰프스키는 위의 인용문이 당시 유럽에 널리 알려져 있던 한국에 관한 이야기라고 소개하면서 자신의 여행기를 시작한다. 한국을 토지가 비옥하고 나무가 울창하며, 호랑이와 식인 악어를 비롯한 수많은 진귀한 동물들이 서식 하고 값비싼 광물들이 넘쳐나는 곳으로서 바라본 서구인들의 시선은 이국적 31) 정연태, 19세기 후반 20세기 초 서양인의 한국관, ꡔ역사와 현실ꡕ, 제34호 (서울: 한국역사연구회, 1999), p. 204. 32) 바츨라프 세로셰프스키 지음, ꡔ코레야 1903년 가을: 러시아 학자 세로셰프스키의 대한제국 견문록 ꡕ, 김진영 외 옮김 (서울: 개마고원, 2006), p. 13. 이하 세로셰프스키 번역본에서 인용할 경우 괄호 속에 쪽수만 표시함.
오리엔탈리즘과 바츨라프 세로셰프스키의 ꡔ한국ꡕ 안 상 훈 113 세계를 자신들이 꿈꾸던 보물섬 으로 상상하는 낭만주의적 매혹의 한 형태라 할 수 있다. 한국에 관한 이러한 전설의 시원은 서구 최초의 한국 보고서라 할 수 있는 예수회 선교사 마르티노 마르티니의 ꡔ새 중국 전도ꡕ(Novus Atlas Sinensis)에서 비롯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33) 한국은 매우 풍요로운 땅이며 밀과 쌀이 풍부하다. ( ) 한국에서는 인삼이 매우 많이 재배되며 금과 은이 풍부하게 매장된 산이 많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동해안에 서 진주를 채집한다. 34) 한국의 역사, 지리, 풍속, 지하자원에 관해 말하고 있는 마르티니의 책은 서양에서 생성되는 한국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35) 이후 서구인들의 수많은 허구적 상상, 욕망과 왜곡된 지식이 차곡차곡 쌓이면 서 서구인들이 꿈꾸고 욕망한 상상 속의 한국에 관한 이미지가 한국을 사유하 는 인식 틀을 이루게 되었다. 마르티니가 묘사한 한국에 관한 모습은 200여년 이 지난 후에 쓰인 세로셰프스키의 ꡔ한국ꡕ에서도 여전히 반복되며 확대 재생 산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반복은 담론을 제도화하는 매우 중요한 서술 전략 중의 하나인데, 한국을 인식하는 이런 요소들이 서양 사회에서 반복의 과정을 거치면서 점차 본질이 되어갔고 확인되지도 않고 부정확한 사실이 실제 현실 인 것처럼 지적 권위를 갖게 되었다. 마르티니의 생각이 당시 서구인들이 접할 수 있었던 자료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든 스스로가 상상해낸 것이든 상관 없이, 중요한 것은 이런 관점이 오래전부터 서구인들이 가졌던 이국으로서의 극동, 즉 타자에 관한 지식과 이미지, 상상과 욕망의 투영이라는 것이다. 36) 세로셰프스키는 한국에 관한 전설이 동양의 보물섬 에 관한 서구인들의 상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은 이러한 선입견 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것을 서문에서 강조하고 있다. 전문가 의 이야기라는 것들이 대개 다 이렇다. 한국의 자연과 풍습 등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건만, 실제로 다녀온 사람들의 입에 33) 이지은에 따르면, 한국에는 금과 은이 풍부하다는 마르티니의 생각은 마르코 폴로의 ꡔ동방견문록ꡕ 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자세한 것은 다음을 참고하기 바람. 이지은, ꡔ왜곡된 한국 외로운 한국ꡕ (서울: 책세상, 2008), pp. 42-44. 34) Martino Martini. Novus Atlas Sinensis, Vol. 6 (Amsterdam: Joannes Blaeu, 1655), p. 169. 이지은, Ibid., p. 42에서 재인용. 35) Ibid., p. 39. 36) Ibid., p. 44.
114 제28권 4호 2012년 서 나오는 말은 개항된 어느 항구에서 겪었던 믿기 어려운 모험담, 아니면 매력적 인 한국 에 관한 판에 박힌 모호한 설명뿐이었다. 그런 단편적인 이야기들로 한반 도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을 미리 그려 본다는 것은 물론 불가능했고, 생생한 정보 는 그 어디에서도 기대할 수가 없었다. 책들 역시 큰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황금빛 어리비치는 푸른 물결이 아름답게 일렁대는 일본해를 건너 마침내 한국의 해안에 닿게 된 나는 오히려 그 어떤 고정 관념으로부터도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였다.(14) 세로셰프스키의 여행기 ꡔ한국ꡕ은 당시 한국의 정치, 경제 상황, 인구, 산업, 신앙과 풍습 등을 총망라하여 정리한 민족지( 民 族 誌 )의 성격을 띤다고 평가되 고 있다. 37) 한국에 관한 심층적이고 종합적인 연구서라 할 수 있는 이 여행기는 기존의 한국 관련 문헌들, 즉 달레, 38) 오페르트, 39) 비숍(Isabella Bird Bishop), 40) 헤세-바르테크(Ernst von Hesse-Wartegg), 41) 그리피스, 42) 해밀튼(Angus Hamilton) 43) 등의 기록들과 백과사전적 성격의 ꡔ한국지ꡕ(Описание Кореи), 44) 그리고 정기 간행물 한국의 보고 (The Korean Repository), 한국 리뷰 (The Korean Review) 등에 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세로셰프스키는 여행의 방식이나 여행 기의 체제에서 전범이 되는 다른 여행기들의 예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대다수 의 여행가들이 배 위에서 한국이 멀리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한국을 스케치하기 시작하는 것처럼 세로셰프스키도 자신이 탄 배가 부산항에 접근 하는 장면으로 여행기를 시작한다. 드디어 푸르스름한 안개 속에 회색빛으로 드러난 한국의 해안이 보였다. 그 해 변들은 나에게, 생생하고 활기 있는 일본의 해안과 달리, 지극히 음울하고 아름답 37) 이민희, ꡔ파란, 폴란드, 뽈스까!ꡕ (서울: 소명출판, 2005), p. 63. 38) Charles Dallet, Histoire de l'église de Corée (Paris: V. Palmé, 1874). 샤를르 달레, ꡔ한국천주교회사ꡕ, 안응렬 최석우 역 (서울: 한국교회사연구소, 2000). 39) Ernst Jacob Oppert, Ein verschlossenes Land. Reisen nach Corea (Leipzig: F. A. Brockhaus, 1880). 어니 스트 오페르트, ꡔ금단의 나라 조선ꡕ, 신복룡 역 (서울: 집문당, 2000). 40) Isabella Bird Bishop, Korea and Her Neighbors (New York: Fleming H. Revell Co., 1897). 이사벨라 비숍, ꡔ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ꡕ, 이인화 옮김 (서울: 도서출판 살림, 1994). 41) Ernst von Hesse-Wartegg, Korea (Dresden und Leipzig: Carl Reißner, 1894). 42) William E. Griffis, Corea: The Hermit Nation (New York: Charles Scribner s Sons, 1882). 윌리엄 그리 피스, ꡔ은자의 나라 한국ꡕ, 신복룡 역 (서울: 집문당, 1999); Corea, Without and Within (Philadelphia: Presbyterian Board of Publication, 1885). 43) Angus Hamilton, Korea (New York: Charles Scribner s Sons, 1904). 앵거스 해밀튼, ꡔ러일 전쟁 당시 조선에 대한 보고서: 1899-1905년 사이의 격동과 성장ꡕ, 이형식 옮김 (경기: 살림출판사, 2010). 44) Описание Кореи (СПб.: Канцелярия Министерства Финансов России, 1900), ꡔ국역 한국지ꡕ, 최선 김 병린 옮김 (경기: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4).
오리엔탈리즘과 바츨라프 세로셰프스키의 ꡔ한국ꡕ 안 상 훈 115 지 않게 보였다. 그 볼품없이 구겨지고 꺾어진 절벽들은 돌출부, 균열, 협곡 등으로 기괴했다.(14) 세로셰프스키는 해안이 황량하다는 언급을 한국의 첫인상으로 삼는다. 세 로셰프스키의 눈에 비친 한국의 첫인상은 생생하고 활기찬 일본의 해안과 비교된다. 이러한 첫인상은 한국에 관한 부정적 인식의 발단을 이루는 서구 여행가들의 한국 풍경에 관한 첫인상과 거의 동일하다. 구한말 서구인들의 한국에 대한 이해의 바탕에는 거의 언제나 일본이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서구 여행가들이 이미 일본 여행을 후에 한국으로 향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여행기들은 한국의 첫인상을 일본과 비교하는 것을 정형화된 양식으로 받아 들였다. 헐벗은 해안, 바닷가의 안개와 바람 으로 한국은 베일에 싸여 있는 이미지를 불러일으켰고, 미지의 먼 곳을 표상하던 한국은 문명세계와 동떨어 진 야성의 동굴 로,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연인의 이미지로 재현되었 다. 서구인들은 한국이 서양의 문명사회가 갖고 있는 무언가가 결여 된 슬픈 세계 라는 이미지에 권위를 부여했다. 물론, 쇠락해 가던 당시 한국이 처한 국제적 상황이 이러한 분위기를 더욱 강화시켜주는 역할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한국에 관한 인식의 상당 부분을 기존의 한국 관련 문헌들이라는 필터를 통해 그려내고 있는 점은 세로셰프스키가 당시 서양 문헌들이 지닌 오류에서 자유롭지 못했음을 드러낸다. 서양의 여러 나라가 선교사, 민속학자, 탐험가, 외교관, 문헌 학자들을 한국에 파견하여 한국의 역사와 지리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텍스트화를 해나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오리엔탈리즘과 관련하여 동양에 관해 쓰인 텍스트가 가지는 중요한 특성 가운데 하나가 오류 라고 할 수 있는데, 서양 사회에서 한국에 관한 문헌들을 텍스트화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오류 는 끊임없이 반복되고 재생산되었다. 세로셰프스키의 여행기에서 서술되는 한국에 관한 첫인상, 한국에 관한 지식뿐만 아니라, 한국에 관한 인식도 일본과 서양의 프리즘을 통해 생성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사료에 의거해서 서술된 그리피스의 ꡔ은자의 나라 한국ꡕ이 역사지식 오류를 많이 지니고 있는 것처럼 많은 부분에서 그리피 스의 텍스트에 바탕을 두고 있는 세로셰프스키의 여행기도 똑같은 오류를 반복한다. 45) 45) 사실 세로셰프스키뿐만 아니라 당시 대부분의 서구 연구가들도 그리피스의 자료를 한국 연구에서
116 제28권 4호 2012년 부산은 이미 400년 동안 일본에 속해 왔으니, 그리 놀라울 것도 없다. 대부분의 한국 땅은 16세기에 일본에게 점령당했었지만, 쇼군 히데요시의 죽음 이후 부산을 제외하고는 자유를 얻었다.(16) 일본에 의한 한국보호국화의 입장을 견지한 그리피스의 한국론이 대개 그러하듯이 서구의 동양학자들이나 여행가들 역시 한국을 일본의 변방이라는 맥락에서 인식했고, 이것은 근대화 과정을 선점하고 있던 일본의 특수한 이중 성과 맞물려 서구인들의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던 것도 사실이다. 세로셰프스키는 19세기 서양에서 과학으로 포장되어 사실인 것처 럼 주장되던 문화적 담론, 인종학적 담론이라는 시선 속에서 한국과 일본을 바라본다. 한국과 한국인을 서술하는 어휘들은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일본의 이미지와 관련된 어휘들은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제물포의 무역이 발전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일본인들의 덕분이다. 일본인들 은 그곳에 도시를 세웠을 뿐만 아니라, 제물포와 서울 사이의 철도선도 유지시키고 있다. 제물포에 부두를 건설하고, 은행을 열고, 무역회의소와 영사관을 설립하고, 또 우체국과 전신소, 무역대리소, 소방대, 방범경찰 등을 조직한 것도 그들이다. 왜 소한 섬나라 일본인들이 유능한 민족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들은 동양 여기 저기에 자기식의 생활방식을 주입하고, 중국인과 조선인은 일본인을 형제로 보기 때문에 그들에게 기꺼이 복종한다. 게다가 우둔하고 무례하고 가난한 조선 상인들 은 아직까지 남의 도움 없이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수준에 올라 있지도 못하다.(26) 조선인의 삶에는 초상집 같은 무거운 분위기가 깔려 있다. 모든 것이 억눌려 있 어 이웃나라 일본에서 느껴지는 생동감이나 진취성을 찾아볼 수가 없다. 조선인들 은 사소한 변화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사회는 마치 오래 앓아 욕창 생긴 몸처럼 조금만 바깥바람을 쐬어도 바짝 움츠러든다. 사방에 불신과 의심이 만연해 있어 사적인 관계에서는 아주 폐쇄적이고 공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 는다. 사고의 폭은 사회 전체에 대한 넓은 성찰로 이어지지 못하고, 지식은 여전히 중국으로부터 전승되는 것에만 국한되어 있고, 따라서 세계관 또한 전형적인 관료 선비의 메마른 유교적 기회주의 안에서 쪼그라들고 마는 것이다.(310-311) 중요한 정보지로 고려했다. 한국에 관한 종합적인 연구로 평가받고 있는 ꡔ한국지ꡕ 서문에는 달레 와 그리피스 두 사람의 작업은 이들이 모은 자료를 어느 정도 재해석하는 데 그친 한국에 관한 그 이후의 모든 연구에서 근본이 되었다 고 언급되어 있다. ꡔ국역 한국지ꡕ, op. cit., p. 1.
오리엔탈리즘과 바츨라프 세로셰프스키의 ꡔ한국ꡕ 안 상 훈 117 세로셰프스키는 이제 막 철도 공사를 시작하는 제물포 공사장에서 일하는 한국인 인부들과 그들을 조율하는 일본인 감독관들의 모습에서 일본인들을 한국인들과는 다른 우월한 존재로 인식한다. 또한, 마을과 한국 가정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가난하고 지저분한 이미지는 구시대적이며 무기력한 한국인의 이미지로 제시되고 있으며 일본인의 이미지는 한국인과는 상반된 활기차고 세련되며 서구화된 문명인 의 모습으로 서술된다. 한국인을 미개하고 야만적 이고 불쾌하고 비합리적이고 활력과 자발성이 결여되어 무기력하거나 무사태 평하다고 보고, 반면 일본인을 합리적이고 도덕적이고 성숙되어 있다고 보는 세로셰프스키의 관점은 바로 오리엔탈리즘의 사고에 기인한 것이다. 단지 서양이 일본으로 대체된 일본판 오리엔탈리즘이다. 아울러 세로셰프스키는 자율적 개혁이 불가능한 한국을 문명국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일본의 개입이 필수적이라는 견해를 피력하면서 한국의 식민지화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 러한 시각은 그리피스를 비롯한 당시 서구인들의 일반적인 견해였는데, 46) 세로셰프스키 역시 그들의 기본적인 시각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서구인들이 오랜 세월 동안 편견과 상상과 이미지를 덧씌우며 한국에 관한 인식체계를 정형화했던 것처럼 한국을 여행하는 서구 여행가들은 길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물과 현상을 흥미로운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그들은 관찰한 대상들을 놓치지 않고 현장감 있게 기록하고 재현했으며, 활자화된 문자 언어 로 다 전달되지 못한 부분은 종종 삽화나 사진 속에 담겨 자국의 독자들에게 제시되었다. 그들은 한국의 여성을 관찰하면서 서양의 전유물로 여기는 문명 성과 분별력을 앞세워 판단한다. 젖가슴을 드러낸 한국 여인들은 한국 문화의 원시성과 야만성을 보여주기 위해, 그리고 문명과 야만의 담론에 관한 독자들 의 관심과 흥미를 높이기 위해 반복적으로 양식화되어 나타났다. 47) 세로셰프 스키도 다른 여행가들처럼 젖가슴을 드러낸 여인과 폐허, 혐오스러움, 불 결함 과 같은 부정적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어휘들을 반복 사용함으로써 한국 사회를 야만적 비문명 사회로 형상화한다. 역참이었던 곳은 마치 허물어진 헛간이나 마구간처럼 대단히 초라해 보였다. 거 46) 정연태, op. cit., p. 194. 47) 대부분의 여행기에는 가슴을 과다하게 드러낸 한국 여인들의 모습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데, 그 사진들은 대부분 촬영자의 요청에 의해 스튜디오에서 제작된 풍속사진 이다.
118 제28권 4호 2012년 기에 사는 사람들 또한 매우 더럽고 누추해 보였다. 삽시간에 우리를 에워싸버린 한 떼의 아이들 가운데는 성년에 가까운 소녀들도 있었는데, 은장식을 꽂은 그들의 옷이란 게 아주 낡은 것들이었다. 대부분이 알몸이었던 남자아이들에 대해서는 말 할 것도 없다. ( ) 닦지 않은 장화처럼 검고 더러운 주인 아낙은 드러난 가슴을 늘어뜨린 채 자기 집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이웃집으로 달려갔다.(46-47) 비숍이나 새비지-랜도어를 비롯한 많은 서구 여행가들은 한국 여성들이 어렸을 때부터 고된 일에 노출되어 있고 법적 사회적 지위가 매우 열악하다고 강조했다. 세로셰프스키도 하류층 여성을 표상하는 노동과 관련된 이미지를 클로즈업해 한국 여성의 낮은 지위를 강조했고, 쓰개치마를 쓰거나 가마를 타고 외출하는 상류층 양반가 여성의 이미지를 통해 베일에 싸인 폐쇄적이고 이국적인 은자의 왕국 을 담아냈다. 그는 외국인이 다가설 때 한국 여인들이 수줍은 모습으로 달아나고, 숨어 버리는 여성의 이미지를 보면서 숨어 있지만, 서구에 알려지지 않은 깊은 이야기를 간직한 한국의 모습이라고 주관적으로 판단하고 평가를 내린다. 구불구불하고 지저분한 골목의 돌담길을 따라 작고 더러운 마당에 들어섰다. 낮 은 처마 아래 좁은 마당이 있고, 돌무더기처럼 생긴 집에 아주 작은 문이 달려 있 다. ( ) 귀에 커다란 은 귀걸이를 단 가무잡잡한 여자아이가 열린 문틈으로 내다본 다. ( ) 아내와 딸은 집안에 몸을 숨긴 뒤, 살짝 열린 문틈으로 우리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집 뒤편에서 억누른 웃음소리와 함께 소곤소곤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 다. 호기심은 있지만, 겁 많은 사람들이 거기 몸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틈새나 구석 여기저기에 숨어 있는 개들의 으르렁대는 소리도 들려온다. 잠시 머무는 동안 우리는 마치 구석기 시대에서 튀어 나온 듯한 그곳의 생생한 풍경을 보고 당혹스 러움과 동시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19-21) 세로셰프스키의 여행기 ꡔ한국ꡕ에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그의 여행 경로이다. 배를 타고 부산으로 들어온 세로셰프스키는 도보로 산악 지역을 따라 원산을 거쳐 한국의 북쪽 지역을 여행한다. 그의 이러한 여정은 자신이 타자로서 한국에 대해 갖고 있던 보편적인 지식을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세로셰프스키는 일본이나 서구 세력이 변화시킨 항구 도시나 대도시 와 달리 한국의 북부 지역이 진정한 한국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곳이라 여긴 다. 그곳은 호랑이와 곰이 살고 있는 원시성의 장소이며, 한국의 역사를 거슬러
오리엔탈리즘과 바츨라프 세로셰프스키의 ꡔ한국ꡕ 안 상 훈 119 올라 신화와 전설의 고향이다. 금강산은 불교 정신의 공간이고, 한국 고유의 미신이 살아 있는 공간이다. 48) 세로셰프스키는 한국의 자연에 감탄하고 풍경 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든다. 다시 넓은 계곡이 펼쳐졌다. 그 가운데에 창백한 햇살 아래서 졸고 있는 회색빛 마을이 있었다. 그 뒤로는 나지막한 언덕이 연이어 있고 언덕 위에는 똑같은 소나 무가 줄지어 있었다. 만일 일본에서였다면, 나는 이런 마을이 장식용으로 인공 조 성된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 ) 어둠 속에서도 이 모든 것들은 흐릿한 황혼의 빛을 받아 높이 솟아 있다. 마치 안개로 가득 찬 부드러운 풍경화 같다. ( ) 그렇 다. 한국의 숲은 아름답다.(51-53) ꡔ한국ꡕ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묘사는 이상화된 과거 한국의 이미지 에 권위를 부여하고 정당화하며, 한국의 실망스러운 현재 모습을 더욱 두드러 지게 하는 역할을 한다. 여행기의 마지막 부분은 서울을 다루고 있는데, 서울은 황량하고 혐오스러우며 야성적이며, 부패한 관료들이 존재하는 세계이다. 서울의 비위생적인 모습은 한국의 자연 환경과 대조를 이루면서 한국을 부정 적인 시선에 묻어버린다. 검게 그을린 더러운 담벼락에는 거리로 난 창문도 없고, 먼지나 거름더미가 넘 쳐나는데다가 보도가 깔린 곳도 없으며, 거리 한가운데에는 웅덩이가 있거나 구정 물이 흐르고 있다. 또 아주 역한 냄새를 풍기는 곳도 있다. 채소 쓰레기, 오물, 개나 고양이, 새의 사체 등이 담장 밖으로 버려져 있어 서울의 낙후한 지역을 산책하기 란 아주 불쾌한 일이다. 덧붙이자면, 참을 수 없는 흰 먼지가 이른 아침부터 도시를 감싸고 있는 것도 지겨운 일이다. 여기에는 거리에 물을 뿌린다는 개념도 없고, 포 장된 도로는 더더욱 없으며, 심지어 물도 없다.(387) 세로셰프스키의 시선은 오물투성이의 비위생적인 서울의 모습에서 비숍이 빨래의 노예 49) 라고 불렀던 개천 변에서 빨래하는 한국의 여인들에게로 옮겨 진다. 당시 여인들이 개천 변에 줄을 지어 앉아 열심히 빨래를 하고, 햇볕에 48) 프레데릭 불레스텍스는 금강산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야생의 땅, 영적인 땅, 그러나 전설의 땅인 금강산은 서울이나 그 인근의 산들이 전달하지 못하는, 독창적인 한국적 미학 을 찾고자 하는 여행객에게는 이상적인 공간인 것이다. 하늘과 가까운 땅인 동시에, 다시 되찾은 한국의 내면 적 인 장소이며, 한국의 기원이고, 추억과 은둔의 땅이며, 그 어떠한 이방인도 발을 들여놓지 못할 깊은 계곡 속에 숨겨진 오솔길의 땅인 것이다. 불레스텍스, op. cit., p. 163. 49) 이사벨라 비숍, ꡔ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ꡕ, 이인화 옮김 (서울: 도서출판 살림, 1994), p. 60.
120 제28권 4호 2012년 말리는 모습은 한국인들이 입는 흰옷, 여성들의 열악한 법적 사회적 지위, 성적 대상으로서의 여성에 대한 관음증 등과 중첩되어 서구 여행가들의 이목 을 끌었다. 제방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곳의 물가에는 세탁하는 아낙들이 앉아서 짧은 방망 이로 젖은 빨래를 두드리고 있다. 보통 한국 여성들은 낯선 사내 앞에서는 특히 얼굴을 가리려 하는 통에, 한국 여자들의 매력을 충분히 바라볼 수 있는 곳은 그곳 에서뿐이다. 내가 궁금한 것은 자신과 남자들의 옷을 그렇게 자주, 부지런히 세탁 하는 이 부인네들께서 자기 몸의 더러움만큼은 왜 전혀 건드리지 않은 채 두는가 하는 점이다.(387) 청결과 문명, 지저분함과 야만 이라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제국주의 공식은 한국 사회를 문명적, 위생적 가치를 형성하지 못하고 온갖 야만성으로 가득 차 있다는 서구인들의 담론을 뒷받침해주는 문화적 논리로 이용된다. 한국 여인들을 위생적인 가치를 형성하지 못한 원시적이고 미개한 여성이라 고 비하하는 세로셰프스키의 지적은 이미 오래전에 비숍이 자신의 저서에서 밤새도록 들려오는 다듬이질 소리는 오직 남자들의 옷만을 다루는 것인지 여자들의 옷은 매우 더럽다 50) 라는 표현과 유사한 맥락에서 재현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세로셰프스키가 이전의 텍스트로부터 전수받고, 자신의 의식 속에 깊이 천착되어 있던 한국에 관한 특정한 시선과 문화적 체계를 여행기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미 살펴보았던 세로셰프스키가 소개한 한국에 관한 전설의 뒷부분은 다음과 같다. 사람들은 지극히 선량하고, 아이들은 몸집이 크고, 기꺼이 세금을 내며, 권력을 무서워하고, 노동력도 아주 쌉니다. 그들은 대체 무엇을 먹고 살아가는 것일까요?! 단, 한 가지 결함이 있는데, 불결하다는 겁니다. 대신 한국 여자들은 착하고 균형 잡힌 체구에 가슴이 크지요. 물과 비누만 쓸 수 있다면, 극동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들일 겁니다!(13-14) 위의 내용은 제국주의 시대에 인종주의적 시각을 이용한 희화적인 비누 광고를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서구 오리엔탈리스트의 시선에서 젖가슴을 드 러낸 관음적인 대상으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몸을 가린 숨김과 폐쇄의 상징으 50) 이사벨라 비숍, ꡔ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ꡕ, 신복룡 역 (서울: 집문당, 2000), p. 331.
오리엔탈리즘과 바츨라프 세로셰프스키의 ꡔ한국ꡕ 안 상 훈 121 로 정형화되던 한국의 여인들은 비누 51) 라는 근대적 문명의 잣대로 판단되어 문명세계로부터 고립된 미개성과 원시성의 표상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세로셰프스키는 한반도에서 강대국들 사이에 패권 경쟁이 심화되면서 중심 을 잃고 비틀거리며 휩쓸리는 불안정한 한국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서술로 자신의 여행기를 마치고 있다. 잠시 후 우리는 발코니로 나갔다. 달빛을 받아 하얗게 보이는 안개 낀 거대한 도시가 우리의 발아래 펼쳐졌다. (...) 갑자기 저기 나무들 사이로 갓 쓴 노인의 환 영이 보이는 듯했다. 노인은 졸음이 밀려오는 지친 머리를 기댈 곳을 헛되이 찾고 있는 듯 보였다. 그 모습이야말로 한국의 저 불행한 과거를 말해주는 끔찍한 상징 이 아니겠는가!(423) IV. 나오며 구한말 한국 관련 서구 문헌들이 제국주의의 확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한국 을 미개하고 수동적인 이미지 속에서 의도적으로 유형화시켰고 정치, 경제, 문화적 피지배 대상으로 객체화시켰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오리엔탈리 즘에 바탕을 둔 이러한 문헌들은 한국을 서양적인 가치관에 입각하여 자기중 심적으로 재구성했다. 서구인들은 문자 언어뿐만 아니라 사진이나 스케치를 통해서도 자신들의 담론을 효과적으로 전파하고 정당화했다. 이렇게 축적된 한국 관련 서구 문헌들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지적 권위를 지니면서 한국을 바라보는 서구인의 시선과 한국에 관한 담론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세로셰프스키는 뚜렷한 정치적, 역사적 신념을 갖고 있었 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조국 폴란드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던 한국에 대해 동정과 애정을 보이기보다는 개화와 진보라는 이름으로 일본에 의한 한국보호국화의 입장을 확고히 지지하고 정당화했다. 지배와 연관되는 지식의 형태로 추진되는 이념을 에드워드 사이드의 주장대로 제국주의 라고 51)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에 비누 는 비서구 사회의 불결함과 대비되는 위생을 지칭하는 서구 문명의 상징물이었다.
122 제28권 4호 2012년 받아들인다면 52) 세로셰프스키의 여행기는 당시의 시대정신이라 할 수 있는 제국주의를 전파하고 재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낯선 사람들의 생활 모습, 관습, 문화를 자국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서구 여행기들이 19세기 말 20세기 초 비서구 문화의 열등함과 서구 문화의 우월성 을 극대화해서 전파하던 매체로서 역할을 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여행 기 ꡔ한국ꡕ에서 지속적으로 드러나는 한국에 관한 세로셰프스키의 부정적인 시선은 많은 부분에서 오리엔탈리스트들, 특히 일본 전문 연구가로 알려진 그리피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우리는 세로셰프스키 가 한국을 직접 체험하면서 고요한 아침의 나라 의 이미지를 발견하고 섬세한 작가적 필치로 부각시키려는 노력을 여행기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53) 조그맣게, 모기 소리보다도 더 작게, 쇳소리가 다른 편 어디선가 들려오기도 한 다. ( ) 바람이 불긴 해도, 풀 한포기 움직이지 못할 약한 바람이다. 이제야 비로소 고요한 아침의 나라 인 朝 鮮 의 정체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평화의 중재만을 갈망 하는 가련한 나라! 높고 바람 센 불모의 바위 절벽들 사이사이로 꼼꼼히 다듬어진 깊고 고요한 계곡이 숨어 있는 놀라운 나라!(227) 종합적으로 볼 때, 세로셰프스키의 여행기는 한국에 관한 정확한 관찰과 사색의 연구 결과라기보다는 서양과 일본의 자료와 문헌들을 종합하여 편찬 한 보고서라는 냉정한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이 여행기에는 한국과 관련된 상당수의 사진들이 실려 있는데, 대부분이 한국의 풍속을 대표하는 이미지들 이다. 그러나 이 사진들은 세로셰프스키가 촬영한 것이 아니라, 한국의 풍속을 서구 독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서구인들에 의해 오리엔탈리즘의 맥락에서 이미 사료화되어 있던 시각 자료들이다. 대상을 그대로 재현해내는 사진의 기록성은 작가가 언어로 다 전달할 수 없는 부분을 보완해 주고 자신의 글에 대한 객관적 사실의 증서로서 기능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세로셰프스키의 ꡔ한국ꡕ에 실려 있는 사진들은 그의 여행 기록이 보여주는 또 다른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이라 할 수 있다. 세로셰프스키는 서구인들의 인식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던 정형화되고 박제된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 52) 에드워드 사이드, ꡔ문화와 제국주의ꡕ, 김성곤 정정호 옮김 (서울: 도서출판 창, 2002), p. 56. 53) 김학준은 그리피스가 한국에 대해 고요한 아침의 나라 라는 정적( 靜 的 )인 호칭을 쓰면서 일본의 떠오르는 태양 (The Land of Rising Sun)이라는 동적( 動 的 )인 호칭과 대비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김학준, ꡔ서양인들이 관찰한 후기 조선ꡕ, (서울: 서강대학교 출판부, 2010), p. 181.
오리엔탈리즘과 바츨라프 세로셰프스키의 ꡔ한국ꡕ 안 상 훈 123 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그럼으로써 세로셰프스키는 한국이 서구 사회보 다 야만적이며, 비문명적인 열등한 가치를 지닌 세계라는 서구인들의 오리엔 탈리즘의 관점을 자신의 여행기에서 반복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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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제28권 4호 2012년 Abstract Orientalism and Waclaw Sieroszewski's Korea Sang-Hoon An Western people stylized Korea by collecting information and textualizing it in the way that they can satisfy their own understanding of Korea. Western travelers realistically reproduced everything they see in Korea in a written form, and also provided the readers in their countries with sketches or pictures when the writing is not enough. However, most of information those Western travelers delivered at that time was based on Orientalism, which exaggerated the reality of Korea. Nevertheless, these false images have gone through numerous repetition and reproduction as they were fixed as facts, which still has intellectual authority. This study traces the perspective of a Russian scholar, Sieroszewski, who experienced and documented his understanding of Korea, which was in the middle of imperialists' competition to expand their power. Although he had clear political and historical philosophy, Sieroszewski saw Korea as a negative case, as a country gradually losing its autonomy and even threatened its own sovereignty between imperialists' competition, like his home country, Poland. He accepted Western theory of civilization, and even supported colonization of Korea. This study aims at investigating how his texts lied in the context of Orientalism. 54) 안상훈 tiesa@naver.com / 010-5276-0357 / 관심분야: 러시아 구비문학, 여행기 문학, 구한말 한러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