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 文 科 學 제97집 2013년 4월 晩 牛 朴 榮 濬 의 在 滿 時 節 小 說 試 探 Ⅰ. 서론 : 滿 洲 의 時 空 的 意 味 晩 牛 朴 榮 濬 (1911-1976)은 연희전문을 졸업하던 해(1934년)에 단편 模 範 耕 作 生 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장편 일년( 一 年 ) 이 신동아 의 현상 소설 모집에, 꽁트 새우젓 이 역시 신동아 에 거의 동시에 당선되어 당 시 문단의 寵 兒 로 세간에 화제를 모았다. 그렇지만 끝내 그도 국내에서는 취직이 되지 않아 할 수 없이 탈출구로 찾은 곳이 간도 龍 井 村 海 蘭 江 가 에 위치한 東 興 中 學 (현재 龍 井 三 中 )의 교사 자리였다. 월급 60원을 준다는 소개자의 말을 듣고 부임해 보니(1934년 6월경)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월 25원이었다고 했다. 박영준은 독립군의 자제가 많이 다니던 이 학교에서 조선어, 영어, 서양사, 논리학, 일본어 등 다섯 과목을 주당 32시간씩이나 가르쳐야만 했다고 한다. 1) * 본 논문은 2008년 연세대학교 산학협력단 자유과제지원사업의 연구비 지원에 의하여 연구되었음. 1) 본고에 인용되거나 소개된 박영준의 일대기는 1974년 4월 1일부터 그가 재직했던 연 세대학교의 학보 연세춘추 에 20회에 걸쳐 연재했던 自 傳 的 文 學 論 에서 참고했다. 본문에서 나오는 기록도 본인의 자전적 문학론 에서 취했음을 밝힌다.
6 人 文 科 學 第 97 輯 이러한 열악한 조건을 견디다 못한 그는 일 년 뒤 국내로 돌아와 또 다 른 탈출구를 찾는다.(1935년 6월경) 서울에서 직장을 찾기 위해 신혼의 아 내를 경상도 풍기의 처가로 보낸 후,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그러던 중 서울에서 죄목도 모른 채 체포되어 평양을 거쳐 고향으로 포승 에 묶인 채 압송되어 5개월간 옥살이를 하고, 결국 무혐의로 풀려나기까 지 온갖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 박영준은 불온 독서회를 조직하여 지도한 혐의를 받았다고 한다. 2) 과거 연전 휴학시절 고향에서 박영준은 전신불구 의 동네 문학청년이 아이들을 모아 책을 읽고 지도하는 모임에 몇 번 참 석하여 문학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원인이 된 듯하다. 그 후 어렵게 취직한 상업미술 잡지를 내던 商 美 社 가 도산하여 실직하게 된 다. 게다가 친구의 배반(부인의 결혼 지참금을 꾸어 달아남)으로 국내에서 삶의 터전을 잃게 되자, 실망에 찬 박영준이 逼 上 梁 山 의 심경으로 다시 두 번째로 찾은 脫 出 口 는 長 春 에서 남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지금의 吉 林 省 磐 石 縣 이었다. 1938년부터 해방 후 귀국하기까지 7년 동안 朴 榮 濬 은 그 곳에서 살았다. 朴 榮 濬 이 龍 井 에서 보냈던 1 年 까지 합하면 그의 20대 초와 후반 그리고 30대 초반을 거의 모두 만주에서 보낸 셈이다. 박영준의 在 滿 기간은 1차로 1934년 6월경부터 1935년 6월경까지, 2차로 1938년 6월 경(?)부터 1945년 8월까지인데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이라고 여겨진다. 본고는 박영준의 문학세계에서 주로 초기에 해당하는 龍 井 과 磐 石 에서 지낸 8년 동안에 발표된 소설을 중심으로 만주라는 時 空 間 이 박영준 작품 세계에서 가지는 의미를 중심으로 작품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당시 박영 준이 살았던 시대와 처했던 공간은 한 작가만의 개인적인 시대와 공간이 아닌 우리민족의 힘든 숨결이 명맥을 이어가던 곳이었음을 주목하여 논의 를 제기한다. 거시적으로 만주의 時 空 的 의미는 우리민족 근현대사의 연 장선상에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2) 박영준, 자전적 문학론, 황소걸음, pp. 419-420.
晩 牛 朴 榮 濬 의 在 滿 時 節 小 說 試 探 7 Ⅱ. 박영준의 自 傳 的 文 學 論 과 在 滿 시절 소설 박영준은 1934년 1월 조선일보 의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1976년 7월 까지 단편 213편, 중편 13편, 장편 21편 모두 247편의 작품을 한국문단에 남겼다. 3) 이른바 그의 출세작인 모범경작생 의 작중 인물 성두는 식민지 시대 농촌에서 가혹한 戶 稅, 小 作 料 인 도지, 흉작에 견디다 못해 눈앞이 캄캄해지자 아마 북간도나 만주로 바가지를 차고 떠나야 하는가 보다! 고 절망어린 탄식을 한다. 결국 박영준의 만주행은 그의 데뷔작에서 운명 적으로 설정된 식민지 시대의 지식 청년이 가야했던 어쩌면 숙명적인 길 이기도 했다. 박영준의 自 傳 的 文 學 論 은 그의 나이 63세가 되던 해인 1974년 4월부 터 연세대학교 학보 연세춘추 에 연재했던 제목 그대로 자전적 문학론 이다. 식민지 시대 그의 출생, 성장, 수학, 문학수업, 만주로의 이주 과정 을 아주 진솔하게 서술했다. 시기적으로는 1911년 출생으로부터 1934년 龍 井 으로, 다시 1938년 만주의 磐 石 縣 으로 떠나기 전까지 27년간의 개인사 를 스스로 기록한 실록이다. 식민 지배 초기 출생 이후 겪어야 했던 어린 시절의 가난, 기미 독립만 세 운동을 평양에서 주도했던 부친 박석훈 목사의 옥사, 선교사의 도움으 로 어렵게 이어진 숭실중학, 광성고보, 그리고 연희전문 시절의 고뇌, 방 황, 교우관계, 이성교제, 문학수업과 창작 등의 내용은 진솔한 고백이어서 젊은 시절의 인간 박영준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연희전문 졸업과 동시에 조선일보 의 신춘문예, 신동아 의 현상모집 소설 당선으 로 화려한 등장을 했음에도, 일제의 식민지였던 국내에서의 취업의 꿈은 끝내 박영준에게 좌절과 절망을 안겨 주었을 뿐이었다. 친구의 소개로 조 산원이던 鄭 淑 龍 과 혼인하면서 탈출구로 찾은 滿 洲 龍 井 東 興 中 學 에서의 1 년 교사 생활을 접고 귀국하여 재취업을 시도했지만, 취직은 고사하고 독 3) 만우 박영준 전집 에 수록된 박영준 작품 연보 참고, 서울, 동연, 2006.
8 人 文 科 學 第 97 輯 서회 사건으로 5개월 동안 모진 옥고를 치러야 했다. 그 후로도 직장을 구하려는 시도는 여의치 않았고, 어렵게 구한 직장 또한 파산으로 실직하 게 되었다. 더구나 형편이 어려운 친구에게 부인이 지니고 있던 결혼 지 참금을 설득하여 빌려주었다가 끝내 50원을 떼였을 때, 박영준은 나는 사람이 살지 않는 어떤 고도로 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고 술회하고 있다. 그럴 즈음 만주에서 살고 있는 어떤 친지로부터 만주에 좋은 취직자리가 있으니 오라는 연락이 왔다 라는 구절로 그의 자전적 문학론 은 끝맺고 있다. 4) 박영준의 재만 시절 소설은 龍 井 의 東 興 中 學 교사 시절과 磐 石 縣 의 紅 光 中 學 에서 교편생활을 했던 8년 사이에 쓰여졌다. 용정에서 보낸 첫 1년의 재만 시절 작품은 주로 국내의 문예지에 발표했고, 반석에서의 7년 동안 에 창작된 소설은 국내 문예지와 長 春 (당시 新 京 )에서 발간되던 滿 鮮 日 報 에 발표하였다. 박영준의 在 滿 시기 8년 동안에 발표된 小 說 의 서지학 적 연구는 만우 박영준 전집 5) 의 연보와 중국조선민족문학대계 의 해 제를 참고하였다. 6) 그러나 중국조선민족문학대계 (권12)에 실린 박영준 의 간도에서의 문학 활동 연보 는 1935년 6월 용정의 東 興 中 學 을 그만두 고 귀국했다가 다시 만주 길림성 磐 石 縣 으로 오기 전까지 3년 동안의 국 내 체류 기간에 발표된 작품도 포함하고 있는데, 엄밀히 말하면 在 滿 시 기에 창작된 것이 아니므로 제외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젊은 청년 소 설가 박영준이 龍 井 으로 왔다는 소식에 그곳에 상주하던 文 人 들이 찾아와 문학동인지 北 向 을 창간하고 그 편집을 맡게 되었다. 7) 박영준의 는 4) 박영준, 자전적 문학론, 황소걸음, pp. 430-431. 5) 만우 박영준 전집 은 13권으로 1-6 권(2002년 1월)은 단편, 7-13권(2006년 4월)은 중 장 편집으로 도서출판 동연에서 간행했다. 6) 전성호, 해제 : 박영준과 그의 중국에서의 문학, 박영준 : 중국조선민족문학대계 12, 연세국학총서 73, 박영준 저, 김동훈 허경진 허휘훈 주편, 연변대학 조선문학연구소 편, 서울, 보고사, 2007년 6월. 박영준, 자전적 문학론, 황소걸음, pp. 345-431. 7) 박영준, 자전적 문학론, 황소걸음, p. 402.
晩 牛 朴 榮 濬 의 在 滿 時 節 小 說 試 探 9 北 向 제2집에 실린 수필로 서울 명동의 술집 풍광을 그리고 있다. 8) 이 후 용정 동흥중학에서 안정을 찾은 박영준은 해란강( 海 蘭 江 ) 이란 詩 를 동아일보 학예란 에 투고하여 게재되었다. 이 해란강 이란 시는 박영 준 일생에서 마지막으로 쓴 詩 作 品 이라고 한다. 9) 박영준은 재만 8년간 詩, 수필, 소설 등을 두루 창작했지만, 그 자신의 술회대로 철저한 소설가 였 음은 말할 나위 없다. 용정에서 귀국하여 약 3년 동안 국내에 머무는 동안 열심히 창작하면서 직업을 구했으나, 끝내 投 獄, 失 職, 背 信 의 쓰라린 경험 을 하게 되면서 국내 체류에 미련을 아주 접고 다시 定 着 을 위해 탈출구로 찾은 것이 磐 石 縣 의 紅 光 中 學 10) 교사직이었다. 박영준은 이곳에서 교사 생 활을 하면서 조국 광복과 더불어 귀국하기까지 作 家 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였다. 아쉽게도 박영준은 末 年 에 건강이 허락하지 않아 自 傳 的 文 學 論 에서 제2의 在 滿 시절을 회고하지 못한 채 1 部 로 끝내고 만다. 이후에도 끝 내 2부를 이어 쓰지 못하고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교수직 퇴임을 약 한 달 반 남기고 지병인 당뇨 합병증으로 별세(1976년 7월 14일)한다. 박영준의 在 滿 시절에 창작된 小 說 의 서지 연보를 시대 순으로 정리하 면 다음과 같다. 11) 먼저 연변대학에서 펴낸 연보(2007. 6.)와 만우 박영준 전집 의 연보(2002. 1.)를 비교 검토하면서 박영준의 재만 시절 창작 소설 을 다시 정리해야만 박영준의 재만 시절 창작 소설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랐다. 일제시대 만주라는 공간에서 작품이 나왔기 때문이다. 당시의 만주는 박영준 소설작품의 원초적인 생산지였다. 그것 이 발표된 곳이 초기에는 국내의 문예지였고, 후에는 만주 현지에서 발행 8) 박영준 저, 김동훈, 허경진, 허휘훈 주편, 연변대학 조선문학연구소 편, 박영준 : 중국 조선민족문학대계 12, p. 545, 주해에서 재인용함. 9) 박영준, 자전적 문학론, 황소걸음, p. 403. 10) 박영준은 1938년 후반기부터 1945년 해방 전까지 길림성 반석현의 紅 光 中 學 에서 교사 로 일하면서 창작에 전념했다. 紅 光 中 學 이 항일 민족영웅인 李 紅 光 의 이름을 기린 학 교임은 김병민 전 연변대학 총장, 조남철 현 방통대 총장을 통해 알 수 있었다. 11) 박영준 소설의 발표지와 창작 시점에 대한 고증은 박영준 : 중국조선민족문학대계 12에서 참고하였다.
10 人 文 科 學 第 97 輯 되던 신문과 잡지였다는 점도 상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단 편 발표년월 발표지 비 고 中 毒 者 1938. 義 手 雙 影 (장편) 無 花 地 密 林 의 女 人 1939. 7. 1939. 12.-1940. 8. 1941. 2. 1941. 신인단편집 (조선일보사 출판) 文 章 7호(임시증간호) 만선일보 연재 文 章 23호 재만 조선인 작품집 박영준전집 1 박영준전집 1 박영준전집 7 박영준전집 1 박영준전집 6, 1974. 6. 개작 현대문학 234호 등재 이상 다섯 편의 장, 단편 소설은 연변대학 조선문학연구소에서 편찬한 중국조선민족문학대계 12권 박영준 작품집의 내용이다. 12) 만우 박영 준 전집 1 13) 에서는 박영준의 용정 시절에 창작하여 국내 문예지에 발표 한 단편 생호래비, 도시의 잔회, 어머니 등 세 편이 보완되었다. 또 한 中 毒 者, 義 手, 雙 影, 無 花 地, 密 林 의 女 人 등 5편은 磐 石 에서 창작되어 당시 국내와 현지인 만주에서 발표했다. 당시에 작품 활동을 했 던 작가들은 지역적으로는 만주라는 공간에 살면서도 발표 지면이 한정되 어 있었기에 국내에서 발간되던 문예지에 투고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발표 시기의 순서에 따라 박영준의 만주 시절 작품 연보를 살펴보 면 다음과 같다. 12) 김병훈, 허경진, 허휘훈 주편, 중국조선민족문학대계 12권, 연세국학총서 73, 도서출 판 보고사, 2007. 6.. 13) 만우 박영준전집 은 모두 13권으로, 단편집 6권(2001년 1월)과 중단편집 7권(2006년 4 월)이 도서출판 동연에서 간행되었다. 14) 만우 박영준 전집 의 연보에 * 유랑 의 발표연도와 발표지가 표기되지 않았고, 중국
晩 牛 朴 榮 濬 의 在 滿 時 節 小 說 試 探 11 단 편 발표년월 발표지 비 고 모범경작생 생호래비 도시의 잔회 어머니 밭에서 우는 처녀 지 박사 아버지의 꿈 약국 새 신념 눈오던 밤 목화 씨 뿌릴 때 교유부인 한 성격 국숫집 쥐구멍 교수 성장기 아름다운 길 중독자 임정호 효자 사위 꿈 속의 고향 의수 *유랑 무화지 **봄은 온다 과도기 조선일보(신춘문예 당선작) 개벽 속간 3 신인문학 5 조선문단 23-24 중앙일보 사해공론 6 사해공론 9 조선중앙일보 조선중앙일보 부인공론 사해공론 16 사해공론 19 조선문학 조선문학 속간 9 풍림 4 매일신보 신인단편집 조광 28 농업조선 3 매일신보 농업조선 5 문장 임시증간 7 동아일보 14) 문장 23 매일신보 15) 신문학 박영준의 문단 데뷔 작 재만( 龍 井 ) 재만( 龍 井 ), 1946년 재티 로 개작 재만( 龍 井 ) 귀국 귀국 귀국 귀국 귀국 귀국 귀국 귀국 귀국 귀국 귀국 귀국 창작시기, 발표지 불명 재만( 磐 石 ) 귀국 귀국 귀국 귀국 재만( 磐 石 ) 재만( 磐 石 ) 재만( 磐 石 ) 재만( 磐 石 ) 창작 월, 지역 불명 이상의 표에서 밝혀진 박영준 초기 소설의 연보를 참고해 보면, 초기 용정의 동흥중학 교사 시절에 주로 조선 경내의 문예지에 발표한 생호래 비, 도시의 잔회, 어머니 등 세 작품이 재만 시절의 창작으로 추가 조선민족문학대계 12 전성호의 해제에 류랑, 동아일보 1940. 6. 5.~25.로 표기됐으 나 조사결과 작품의 不 在 를 확인했다. 15) 연보에 박영준 작품으로 표기된 ** 봄은 온다 는 매일신보 를 조사 확인한 결과, 박 노갑(1905~1951)의 작품, 봄은 오다 로 1942. 2. 15.~27.에 연재되었다. 박영준의 작품 이 아니며, 편집진의 오기로 여겨진다.
12 人 文 科 學 第 97 輯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작품이 발표된 시기가 1935년 전반기로 작가가 용 정에 체류하던 시기여서 재만 시절의 소설로 거론하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정착지 磐 石 에서의 7년간은 박영준이 1938 년 어느 시점에 갔는지가 명확하지 않으나, 근무지인 紅 光 中 學 의 학기에 맞추어 갔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대체로 1938년 후반기에 다시 滿 洲 의 磐 石 으로 갔을 것으로 여겨진다. 같은 해 창작된 소설이라고 해도 상 반기에 발표된 작품은 조선 경내에서 쓰인 것으로 볼 수 있어 재만 시절 의 작품으로 넣을 수 없다. 1938년 작으로만 알려진 중독자 는 조선일 보 에서 간행한 신인단편집 에 실려 알려진 작품이나, 중국내 조선인 소설선집 으로 출판(1998년 평민사)되었다. 의수, 류랑, 무화지, 봄 은 온다, 장편 雙 影 등이 박영준의 두 번째 재만 시절인 반석 체류시기 의 작품으로 조사되었으나 류랑 과 봄은 온다 두 편은 실체가 존재하 지 않으므로 제외했다. 박영준의 재만 시절에 창작된 작품으로 확실하다 고 여겨지는 아래의 것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았다. 龍 井 시절(1934년 6월-1935년 6월까지) 1. 생호래비 2. 도시의 잔회 3. 어머니 磐 石 시절(1938년 6월?-1945년 8월) 1. 中 毒 者 2. 義 手 3. 雙 影 4. 無 花 地 5. 密 林 의 女 人
晩 牛 朴 榮 濬 의 在 滿 時 節 小 說 試 探 13 Ⅲ. 작품론 1. 龍 井 시기(1934-35) 1) 생호래비 생호래비 는 1935년 1월 개벽 속간 3호에 발표된 작품이다. 아마도 용정에 머물던 첫 해인 1934년 말쯤에 창작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작품 내용에서 어느 지역을 묘사한 것인지 그 지역적 공간은 명시하지 않았으 나, 일제시대 우리나라의 아주 궁벽한 농촌 마을을 배경으로 가난한 머슴 이 처한 비참한 당시의 현실을 그린 내용이다. 작품의 인물, 사건, 배경의 구성은 아주 단순하다. 주인공인 가난한 농사꾼 홍진구는 남의 집 머슴살이로 살아가며 삼십이 다된 나이에 부모가 정해 준 열일곱 살 난 색시를 만나 가정을 이룬다. 몇 년을 살다가 지난겨울에 해산하러 간다고 친정으로 돌아간 아내는 끝 내 돌아오지 않고 아무런 소식도 없다. 아이는 낳은 지 사흘 만에 죽고, 아내는 아무도 모르게 어디론가 가서 남의집살이를 한다는 소식을 소문으 로 듣게 된다. 생호래비 가 된 진구는 봄이 되자 일손이 필요했고 아내를 간절히 기다렸으나 끝내 소식이 없다. 처가로 보내면서 쌀 한 톨은 고사 하고 해산에 먹을 미역도 사보내지 못한 가난한 진구로서는 처가의 무소 식이 괘씸하게 여겨졌지만 어쩔 수 없는 처지였다. 아내가 읍내에서 식모 로 있다느니 유모로 지내면서 받은 돈을 친정으로 보낸다느니 하는 소문 을 듣는다. 그러나 모든 것이 자신의 가난 때문이라는 자책감으로 진구는 성큼 아내를 찾아 나서지 못한다. 그렇다고 계속 그대로 지낼 수만은 없 어 용기를 내어 읍내에서 아내가 일한다는 주인집으로 찾아가 아내와 대 면한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인용한다.
14 人 文 科 學 第 97 輯 무엇 하러 왔소? 먼저 마누라가 톡 쏘는 바람에 진구도 입을 벌리기는 했으나 대답이 시 원치 못했다. 그래, 잘 있었나? 잘 있지. 그럼 어데 가서 즉사한 줄 알었댔나? 어디까지나 색시의 말소리가 높았다. 돌아다니드니 말버릇 좋아졌구만! 별 걱정 다 하네. 진구의 마음은 떨릴 뿐이었다. 옆에 앉아 싱글싱글 웃기만 하는 주인은 진구와 대극( 大 極 )이었다. 편안하겠구나! 편안하기에 있지. 별 걱정 다 하눈! 그래 심사두 편하구, 언제까지나 있겠구만! 무어 못할 짓을 했나, 심사 편하지 못할 게 무어 있담. 죽을 때까지두 있 지 않으리. 쓸데없는 걱정 그만두고 빨리 돌아가기나 해. 그래 얼마나 편안하기로 남편에게 아무 말도 없이 몇 달이나 지내도록 남에 집에 있으며 시집살이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는단 말가! 너 같은 쌍 년이 어데 있니? 응, 그래 아무리 내가 못났다기로 그런 법이 어데 있으 며 세상이 아무리 파륜( 破 倫 )됐기로 그래야 옳단 말이냐, 쌍년 같으니! 어데서 그런 수작 막 하는 거야. 내가 너와 무슨 상관이 있어. 그따위 소 리를 함부로 해! 그래 봄철이 되니 데려다 일 시켜먹을 생각이 나서 이제 야 찾아 왔구나! 그렇지 않아도 지긋지긋해 진저리가 난다. 무에 그리 귀 해서 늙어 죽도록 싹김만 매다 말란 말가? 무얼 멕이구 무얼 입혔니? 너 도 사람이면 염치가 있겠구나! 무에 어째 이년아. 누구는 너만 못해 그런 시집을 사는 줄 아니? 이 죽 일 년 같으니. 나는 못 산다. 너 같은 놈하고는. 나는 혼자서도 얼마든지 밥은 곱게 얻 어먹을 수 있어. 잔소리 말고 빨리 가. 마음대로 다니다가 즉사해라. 진구는 떨리는 손을 처치할 수 없었다. 주인이 옆에 있어 말리지 않았으 면 무슨 일이 났을지도 모른다. 중략 그래, 종시 아니 오겠단 말가? 진구가 아내에게 또 대들었다.
晩 牛 朴 榮 濬 의 在 滿 時 節 小 說 試 探 15 못가! 못가는 줄만 알어. 가고 싶으면 이때 있을까? 진구는 일어섰다. 16) 이상의 인용은 본편의 끝부분으로 생호래비 홍진구가 집나가 돌아오 지 않은 아내를 찾아가 나누는 대화로 사건의 종결 장면이다. 머슴살이를 하다 나이 어린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렸으나 가난을 견디지 못해 결국 가정이 파탄되는 내용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홍진구는 가난으로 인해 농 촌에서 혼인하자마자 생호래비 가 되어 동네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된다. 동네 사람들도 그의 이름은 모르지만 생호래비 로는 모르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본편은 박영준의 데뷔작 모범경작생 에 이은 두 번째 작품으로 당시 농촌의 피폐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가난 때문에 가정이 파괴되는 작품 구성은 당시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보고들을 수 있었던 이 야기들이다. 주인공 홍진구가 신혼 초부터 생호래비 가 되는 것도 가난 때문이고, 그의 아내가 가정을 버리고 끝내 읍내로 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도 모두 가난 때문이었다. 가난을 면하기 위해 취하는 젊은 아내의 선 택은 식민지 시대에 가난한 조선의 농촌에서 비일비재했던 이야기들로 박 영준은 실감나게 당시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본편의 주인공 홍진구가 용기를 내어 힘들게 찾아가 만난, 집 나간 지 오래 된 아내와 나누는 대 화의 내용은 당시 조선 농촌의 농사꾼이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주변의 이야기일 뿐이다. 본편은 박영준의 초기 소설의 주제인 일본 식민통치 지배시기의 농촌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그것의 공감 키워드는 바로 가난 이 다. 16) 만우 박영준 전집 1, p. 49-51.
16 人 文 科 學 第 97 輯 2) 도시의 잔회 도시의 잔회 는 1935년 3월 신인문학 5에 발표된 작품이다. 용정에서 창작되고 서울의 문예지에 게재하였다. 1946년 8월 서울타임스사 에서 펴 낸 단편집 목화씨 뿌릴 때 에서 잿티 로 개작하여 발표했다. 17) 都 市 의 殘 灰 의 잔회 란 타다 남은 잿티 를 뜻하는 말이다. 작가 박영 준은 작품의 모두에서 서울은 불꽃( 火 焰 )에서 눈을 뜨고 불꽃에서 잠이 든다 고 시작하면서 그 잿티 를 빈둥거리며 다른 사람에 기생하는 룸펜 에 비유하였다. 한 마디로 도시의 잔회, 잿티 는 서울에서 일제시대 학 교를 졸업하고도 직장을 찾지 못해 때로는 본의 아니게 無 爲 徒 食 하는 群 像 을 묘사하고 있다. 그 이야기는 실제로 작가 박영준이 신변에서 직접 듣고 보고, 또 스스로가 체험했던 사실을 소설화한 것으로 보인다. 본편의 주인공인 최진수는 곧 작가 자신의 당시 모습이다. 박영준은 1934년 초 연희전문을 졸업하면서 여러 곳에다 이력서를 내고 취직시험을 보았으나 끝내 어느 한 곳에서도 부름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逼 上 梁 山 의 처지가 되어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龍 井 의 동흥중학이었음은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주인공 최진수가 곧 작가 자신임을 실증하기 위해 다음 의 문장을 인용한다. 황군. 오래간 만이로군 얼마나 바쁜가? 진수는 그를 볼 때 인사는 했으나 어쩐지 얼굴이 붉어지는 것 같았다. 졸 업 뒤 그의 소개로 그가 있는 XX 신문사에 시험을 치렀으나 얼마 전에 불합격 되었다는 신문사의 통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힘써 주었는데 시험에도 합격하지 못하고. 하는 비웃는 빛이 황이라는 사람의 얼굴에도 뵈는 것이 불쾌했다. 그런데 요전에 신문사에서 어떤 통지가 갔지? 중략 17) 본고에서는 원작 도시의 잔회 를 대조하지 않고, 만우 박영준 전집 1의 개작본 잿 티 에서 인용하였다.
晩 牛 朴 榮 濬 의 在 滿 時 節 小 說 試 探 17 그게 참 분하게 되었네. 시험은 참 잘 치렀는데 자네 졸업한 학교 졸업 생이 벌써 사에 네뎃이 되서 다른 학교 출신을 쓰게 되었다네. 진수는 좌우간 기분이 조금 전환되었다. 자기가 못나서 다 같이 본 시험에서 낙제를 한 줄 알고 그런 말은 입에 도 내기 싫어하던 것이 그런 내용으로 불합격 되었다니 그래도 면목이 서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18) 박영준은 연희전문을 졸업하던 해 처음으로 취직시험을 본 곳이 조선중 앙일보라고 하면서 그의 자전적 문학론 에서 다음과 같이 자술하고 있 다. 그 뒤 나는 여기저기 취직시험을 치렀다. 맨 처음 친 곳이 조선중앙일보 였다. 그 당시 그 신문사의 문예부장이 이태준이었다. 내가 신춘문예에 당선된 뒤이기 때문에 그런 분이 내 이름을 알고 점수를 많이 주리라는 생각을 가졌다. 그리고 사회부에는 연전 2년 선배인 이정순 씨가 기자로 활약하고 있었다. 그분은 사회부 기자로 정말 명성을 떨치고 있었고 그래 서 신문사 내에서도 크게 인정받고 있었다. 그래서 그 선배와 의논하고 시험을 쳤지만 결국 합격하지를 못했다. 그 뒤 그 선배를 만나 물었더니 연전 졸업생이 몇 명이나 있는데 나까지 입사하면 연전 블록이 생길 것 같아 시험 성적이 뒤떨어지지는 않았지만 불합격이 되었다는 말을 했 다. 19) 이상의 인용 내용을 비교하면 작품에서의 등장인물 최진수는 곧 작가 자신이자 그의 체험을 소설화한 것이라는 확실한 증거로 족하다. 도시의 잔회 는 곧 서울의 룸펜을 잿티 로 개작하여 묘사하고 있지만 1930년대 우리나라 젊은 지식인 群 像 의 삶의 모습이고, 이것은 작가 박영준이 체험 적 실체의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생생한 경험으로 당시의 현실을 대변하 고 있다. 작품의 끝 부분에서 작가의 다음과 같은 절규를 주목해야 할 것 18) 만우 박영준 전집 1, pp. 64-65. 19) 박영준, 자전적 문학론, 황소걸음, pp. 375-376.
18 人 文 科 學 第 97 輯 이다. 서울의 찬란한 빛의 혜택을 못 받는 무리! 도리어 서울의 불꽃을 잡아먹는 타고 남은 잿티! 그는 명일( 明 日 )을 위하여 울고 싶어졌다. 20) 3) 어머니 어머니 는 1953년 5월 조선문단 23, 24호에 발표되었던 작품이다. 시기적으로 역시 龍 井 에서 창작되고 서울의 문학지에 발표되었다. 용정 시절에 발표된 마지막 작품인 셈이다. 생호래비 에 이어 본편 어머니 도 식민지 시대 가난한 농촌의 한 가정의 몰락을 그린 내용이다. 주인공 금성은 홀어머니와 아내와 자식을 둔 20대 중반의 가장이지만 게으르고 책임감도 없는 청년이다. 홀어머니가 며느리를 데리고 집안을 이끌어 가 고 있다. 아들 금성은 돈이 생기면 외지를 떠돌면서 주색잡기로 탕진하다 돌아오기 일쑤인 삶을 죄의식 없이 이어가는 생활을 한다. 어머니와 아내 가 겨우 내내 애써 기른 송아지를 끌고 나가 장에다 내다 팔고 투전으로 탕진한다. 일하기 싫어하는 게으른 금성은 끝내 마을의 지주 고 주사로부 터 소작을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는 최후의 통첩을 받게 된다. 그로 인해 금성의 집안은 회복불능의 모습이 되어 가족은 뿔뿔이 헤어지게 되는 내 용이다. 고 주사 집의 머슴 성순이가 금성을 찾아와 고 주사가 집에 좀 다녀가라는 말을 전하자 어머니에게 가라고 미룬다. 어머니는 할 수 없어 아들 대신 고 주사 집에 찾아간다. 올라 오실래기 어두웠지요? 옆에 앉아있던 고 주사 댁도 한 마디 했다. 요사이 어떻게 지내십니까? 20) 만우 박영준 전집 1, p. 69.
晩 牛 朴 榮 濬 의 在 滿 時 節 小 說 試 探 19 언제나 보아야 입이 찌그러져 보이는 고 주사의 말도 어쩐지 정이 흐른 듯했다. 그저 그렇게 살지요. 말하기가 싫은 어머니가 길게 대답하지 않았다. 에 요새는 누구나 궁핍할 뗀데 어떻게 살어 나갑니까? 내일 성순이를 시켜 쌀이나 몇 말 보내리다. 염려 말구 그저 자시시우.... 어머니는 그 말이 거짓말 같았다. 좁쌀 한 말을 줄 때에도 가을에 입쌀로 줄 계약을 하고야 주는 그다. 내일 보내리다. 그런데 또 한 가지 할 말은 요즘 들으니깐 금년엔 농사 질 수가 없다더군요. 일꾼도 흔하지 못한데 거름이 하나도 없다니 어떻게 농사를 짓겠소. 그래서 차라리 쌀로 먹을 것을 주는 것이 낫지. 생땅을 버릴 수가 없어서 금년부터 다른 사람을 주기로 했소. 할 말을 다 했으니 가도 좋다는 듯이 권련을 피워 물고 천장을 바라본다.... 금성이만 똑똑했으면 제 아버지의 대나 잇지 않았겠소? 옆에 앉았던 여편네가 쐐기를 박았다. 신통한 이야기가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땅을 뺏고 아들을 모욕하는 건 너무 심했다. 내 아들이 못나기에 당신네가 잘 되지 않았소? 무슨 되지 못한 소리 그만두.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참을 수가 없었다. 명환이와 가까운 새가 아니었으면 땅을 뗀지 오랬을 줄 아우. 고 주사의 말이다. 고맙소! 덕분에 잘 살았소. 어머니는 쏜살같이 나왔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몽둥이를 든 금성이가 피 냄새를 맡은 호랑이처럼 뛰어나갔다. 21) 이상의 인용에서 게을러 일하기 싫어하는 소작농 금성과 그 어머니는 지주 고 주사로부터 더 이상 소작을 연장 받지 못하여 가정이 끝내 몰락 하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자신의 불성실함과 게으름을 탓한 것에 성난 호랑이처럼 집을 뛰쳐나간 금성은 고 주사 집에서 몽둥이를 휘둘렀고, 가 21) 만우 박영준 전집 1, pp. 93-94.
20 人 文 科 學 第 97 輯 족이 뿔뿔이 흩어져 가려던 참에 집으로 경찰이 들이닥쳐 구타 죄로 잡히 는 것이 끝 장면이다. 1930년대 피폐한 식민지의 농촌에서 살아가던 우리 네 농촌 풍광의 일면이다. 박영준의 龍 井 시절 1년 동안에 발표한 이상 세 편의 단편은 모두 소재 가 만주가 아닌 국내의 도시와 농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생호래비 와 어머니 에서 보이는 당시의 농촌은 가난으로 황폐한 모습이었고, 작가 스스로를 서울의 룸펜으로 그리고 있는 도시의 잔회, 즉 잿티 에서는 당시의 지식인들 또한 미래가 보이지 않는 현실을 실감 나게 묘사하고 있 다. 모국 서울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젊은 작가 박영준이 당시 만 주의 현실을 소설화하기에는 삶의 체험이 부족했다. 그러나 두 번째의 체 류지 길림성 磐 石 에서의 7년은 당연하겠지만 소설의 취재 내용이 달라진 다. 한마디로 현지의 삶이 소설화되기에 이른다. 2. 磐 石 시기(1938-45) 1) 中 毒 者 : 가난, 彷 徨, 脫 出, 曠 野 의 寄 着 地 滿 洲 이 소설은 1인칭 서술로 된 나 라는 주인공의 일생을 독백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나 인 주인공 김상현은 취미 없는 생활에 염증을 느껴 도망쳐 버린 아내(명희)를 죄책감 속에서 정리하고 낡은 사진기 하나, 옷 한 벌, 당장 호구를 연명하기 위한 돈 몇 푼을 지니고 평양을 떠나 북만주의 하 얼빈으로 간다. 그러나 그 곳에서 사진을 찍어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 여러 곳을 방 황하던 끝에 북안진에 이른다. 그곳의 여관에서 머물기도 어려울 만큼 그 간 수중에 지니고 있던 노자도 바닥이 날 지경에 이르자, 여관( 客 棧 )에서 나에게 통역을 해 주던 남편에게 버림 받은 여인의 유혹으로 곤경을 넘겼
晩 牛 朴 榮 濬 의 在 滿 時 節 小 說 試 探 21 으나, 끝내 그녀와 어울리지 않고 사진을 찍어 보답하고 떠난다. 방황 끝 에 진남포만큼 큰 도시인 해륜의 흑목사진관 에 25원의 낮은 급료로 취 직한다. 그 하숙집에서 주인 부부의 혹독한 매를 맞으며 식모살이를 하는 러시아인과 한인의 혼혈아인 순자 의 비참한 모습을 목도하게 된다. 여기 서 강자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 러시아인과 한국인의 혼혈아인 순자 는 어떤 의미에서 일본에게 핍박받는 조선인의 모습을 상징한다고 생각된다. 나 는 참혹한 그녀의 생활에 동정심을 품게 되고, 어느 날 공원으로 산책 나온 나 를 뒤따라온 순자 를 데리고 여관에 가서 잠자리를 하게 된다. 그러나 순수했던 동정심과는 달리 어린 순자 의 순정을 짓밟았다는 죄책 감 때문에 끝내는 아편 중독자가 되고 만다. 그러나 너의 역사에 금 하나를 그어 준 그 날 밤이 지난 뒤 그러지 않아 도 생각이 헷갈리어 어쩔 줄 모를 때 너는 그 하룻밤의 역사로 나를 붙 들 권리가 생긴 것처럼 말했지? 나는 겹쳐 돌아가는 생활이 싫어 만주로 온 사람이다. 너는 너의 순정을 자랑할 만큼 깨끗한 것이라 말할 것이다 마는 진딧물의 단물을 빨아먹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개미와 같은 그 애정 이 나에게서 멀리 떠난 지 오래다. 나는 너에게 빼앗길 것도 없고 빼앗기 지도 않을 것이나 너의 순정을 빼앗을 것 없는 나의 우상을 옆에 놓고 보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기쁨을 얻겠다는 욕망 이외에 딴 무엇이냐? 너 의 불행을 그 불행을 간직한 마음자리를 나라는 우상의 관념으로 메워 보겠다는 순정 이외에 나는 너의 순정을 딴 말로 평가할 수가 없다. 그러 나 순자야, 나는 너를 미워하지 못한다. 미워하기 전에 내가 가진 부담을 두려워해야 하겠다. 너는 매일 새로운 괴로움을 느끼며 죽을 때까지 나의 이름을 잊어버리지 못하리라. 그게 나의 부담이다. 너에게 진 나의 부채 다. 그 부채에 억눌리어 내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네가 나를 원망하고 내가 너를 두려워함은 응당 있어야 할 윤리이리라. 그러나 너를 떠나 이 먼 오지에 와 있는 것같이 나는 내 마음에게서도 멀리 떠나 있다. 그래서 정신이 말똥말똥해지려는 이 순간을 단축시키기 위하여 다시 아편 영매소에 가야겠다. 나는 일금 20전을 주고 이 중독 속 에 빠짐으로 안식을 구하건만 너는 값도 치를 수 없는 관념에 중독되어 얼마나 괴로워하겠니? 나를 비웃지 말아라! 너는 내가 소설가들이 취재
22 人 文 科 學 第 97 輯 할 소설 구성의 한 소재밖에 안 되는 것이니까. 그러나 너는 아편 중 독으로 내가 잠이 들어 있을 때까지 나를 혐오하고 원망할 수 있는 자존 심이나마 가지고 살아라. 22) 주인공 나 는 불우한 혼혈아인 순자 의 처지를 동정하다 본의 아니게 저지른 행위에 대한 자책으로 스스로 아편 중독자가 되어 괴로움을 잊으 려고 한다. 하숙집 주인 부부의 혹독한 매를 견디다 못한 순자 가 자신을 동정했던 나 를 따라 나선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하지 만 나 를 믿고 따라온 어린 소녀의 순정을 짓밟았다는 죄책감 때문에 괴 로움을 잊고자 아편 중독자가 된다는 인물의 설정은 지나친 감정의 의도 적 오류라는 느낌이 든다. 그렇지만 이것은 박영준 특유의 윤리와 도덕의 식에 바탕을 둔 인간애를 드러낸 作 品 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박영준의 둘째 동생의 이야기를 소재로 쓴 것이지만, 물론 허구화된 내용이라고 했다. 23) 박영준은 네 형제의 둘째로 태어나 유일하 게 전문학교까지 졸업했으나, 나머지 형제들은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 다고 술회하고 있다. 24) 박영준은 전문학교를 졸업하면 취직하여 둘째 동 생이라도 학교에 보내리라고 마음을 먹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바로 그 동생이 사진 기술을 배워 시골에서 사진관을 차렸으나 잘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만두고 만주로 갔다가 실패하여 돌아온 내용을 소재로 형상화한 것이 바로 이 中 毒 者 이다. 박영준은 자전적 문학론 에서 이 소설에 대 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나는 동생이 국내에서 살 수 없어 만주로 갔다가 거기서도 살 수가 없어 서 돌아오는 이야기를 절망적인 태도로 썼다. 말하자면 절망 속에서 고민 하는 한국 청년의 모습을 그렸던 것이다. 25) 22) 박영준, 조선민족문학대계 12, p. 90. 23) 박영준, 자전적 문학론, 황소걸음, p. 382. 24) 박영준, 위의 글, p. 382. 25) 박영준, 위의 글, pp. 382-383.
晩 牛 朴 榮 濬 의 在 滿 時 節 小 說 試 探 23 이상의 내용은 동생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허구화한 것이지만, 작가 자 신이 일제 강점기에 겪어야 했던 혹독한 삶의 체험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하겠다. 어디에도 정착할 곳이 마땅치 않아 절망 속에서 방황하던 당시의 한국 청년의 참담한 모습은 곧 작가의 체험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 다. 그것은 곧 가난의 탈출구를 찾기 위해 만주란 曠 野 를 방황했어도 끝 내 中 毒 者 가 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조선 청년의 암울한 신세를 대변한 것이라고 하겠다. 日 帝 라는 時 期 와 滿 洲 라는 空 間 은 바로 우리민족에게 박영준은 中 毒 者 를 통해 時 空 的 意 味 를 대변했다. 그래서 박영준은 中 毒 者 를 자신이 아 끼는 작품 이라고 그 의미를 강조했다. 26) 2) 義 手 : 불구 지식인의 갈등과 방황 1939년 7월 文 章 지에 발표된 단편 義 手 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성진( 成 鎭 )이 중학 졸업반 시절 공장에 견학을 갔다가 돌아가는 기계에 정신이 팔려 오른 손 하나를 잃어 平 生 을 어렵게 살게 되는 내용 이다. 손이 하나 없어진 나는 결국 좋아했던 理 化 學 을 포기하고 文 科 로 바 꾸어 교사가 되지만, 그의 나날은 학생들의 놀림과 주변의 무시로 불행한 학교생활로 이어진다. 끝내는 주변의 놀림과 경멸을 견딜 수 없어 학교에 사표를 내고 만다. 다행히 받은 유산이 있어 생활에 큰 걱정이 없어 오래 도록 망설이지 않고 직장을 그만둔 주인공은 자신의 의수를 의붓자식이라 고 생각하면서 원래 자신의 취미인 발명에 몰두하려는 생각을 한다. 도서관에 다니면서 집에서만 살게 된 새로운 환경은 어린 아들과 충돌 하게 되고 끝내는 아내와의 가정불화로 이어져 어려운 지경에 빠진다. 그 는 다시 도서관에서 발명 관련 책을 보면서 그것도 그의 취향에 맞지 않 26) 박영준, 위의 글, p. 382.
24 人 文 科 學 第 97 輯 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법학 공부로 바꾸면서 아내와 갈등하게 된다. 주인공 성진은 자신은 온전한 육체를 가지지 못했지만 아들 보현만큼은 강한 생활력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고자 한다. 그의 도서관 생활은 어느 누구와도 접촉이 없어 마음 상할 일이 없었다. 도서관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 날 성진은 길에서 단소를 불면서 지팡이에 의지해 살아가는 장님의 모습을 보게 되면서 스스로가 나약하게 살고 있음을 깨 닫는다. 성진은 소경보다 못한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어느 날 자신의 의 수를 아들에게 당당히 보이려는 생각을 하나 끝내는 접고 아내에게 아이 에게 교육환경이 더 좋은 곳으로 이사할 것을 제안하는 것으로 맺는다. 6단락으로 구성된 박영준의 초기 단편 義 手 는 오른 손을 잃은 것으로 인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나약한 아버지 상을 그린 작품이다. 신체 불구자가 겪는 삶의 갈등을 묘사하고 있으나 滿 洲 란 지역에 대한 직접적 인 표현이나 언급은 作 品 에서 찾을 수 없다. 주인공 성진이 교사로 문과 를 전공했다는 내용으로 미루어, 그리고 작품 발표 시기가 1939년 7월이 었던 점을 고려하면 磐 石 에서 교사생활을 하면서 주변에서 보고 들은 내 용을 바탕으로 창작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주제 설정이 다소 미약하다 고 여겨지나 당시 만주라는 시공간에서 겪는 소시민의 삶의 哀 歡 을 그린 것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 적응력이 약한 주인공이 義 手 의 장애를 극복하지 못해 탈출구를 찾으려고 고민하고 갈등하는 지식 인의 심리묘사가 돋보인다는 점에서 작품성을 찾을 수 있다. 3) 雙 影 雙 影 은 1939년 12월부터 1940년 8월까지 만선일보 에 연재한, 박영 준의 재만 시기에 발표한 유일한 장편 소설이다. 전성호의 서지적 고증에 의하면 원래 전 후편 360회로 연재할 계획이었으나 무려 50일분이 누락되
晩 牛 朴 榮 濬 의 在 滿 時 節 小 說 試 探 25 었다고 한다. 27) 때로는 연재 회수가 중복되기도 하고 누락으로 내용 연결 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28) 당시 일본 제국주의가 종국으로 접어들던 시대 적 상황을 고려해 보면 만주의 공간적인 불안한 형편과 맞물려 있다. 만 주에서 발표한 신문 연재소설로 박영준의 첫 장편이어서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 구성과 줄거리를 요약한다. 작품 구성은 前 後 편 각각 99회와 129회로 만선일보 에 연재되었으나, 이미 언급한 바대로 회수의 누락과 중복이 적지 않다. 前 篇 의 경우 99회 가 중복되어 100회로 단락을 지었다고 할 수 있다. 100회분 前 篇 에서 21, 29, 30, 42, 43, 44, 77, 78, 95회 등 모두 9회분이 누락 되었다. 雙 影 의 구성과 대강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前 篇 1~12, 彼 女 의 過 半 生 (그녀의 과반생) 13~16 歸 鄕 17~27 友 人 (21회분 누락) 28~36 落 葉 日 記 (29,30회분 누락) 37~46 再 出 發 (42,43,44회분 누락) 47~53 下 宿 54~62 對 面 63~76 制 服 한 學 生 ( 生 徒 ) 77~88 距 離 (77,86회분 누락) 89~100 歎 息 (95회분 누락, 중복된 99회를 100회로 수정) 27) 전성호, 위의 글, p. 23. 28) 전성호는 50회분 누락이라고 했으나 전편 9회분, 후편 39회분 총 48회분이 누락되었 다.
26 人 文 科 學 第 97 輯 後 篇 1~3 前 篇 槪 略 4~26 幻 滅 (12,13,14회는 회수 중복, 24회의 중복을 23 회로 수정) 27~32 며누리 33~39 運 命 惡 戱 (36회분 중복) 40~66 지렘마, 딀렘마(41,53,54,56회분 누락) 67~98 전(32)회분 누락(99회분이 월광보( 三 )이어서 97회 분부터 월광보의 소제목이 시작된 것으로 판단 된다. 99~109 月 光 譜 (106회분 누락) 100~124 路 傍 草 125~129 자장가 前 篇 피녀( 彼 女 )의 과반생( 過 半 生 ) 이라는 소제목으로 1회부터 12회까지의 내 용은 신여성인 주인공 최혜련이 본처가 있는 평양 부잣집 아들 김철식과 중국의 상해, 북경, 남경, 만주 각지로 떠돌면서 불륜의 도피 행각을 벌이 다 끝내 방탕한 남편(?) 김철식이 뇌출혈로 상해에서 죽자 혈육인 딸 연자 와 남편의 유골함을 안고 열차로 안동(현재의 丹 東 )을 거쳐 남편의 고향 평양으로 시부모를 찾는다. 시부모와 본처가 있는 시가에서 냉대를 견디 다 못해 끝내 죽은 남편 김철식의 장례 행렬을 멀리서 바라보는 신세가 되고 만다. 모란봉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여학교 동창 성실이의 집에서 딸 연자와 함께 머물면서 서로의 밀린 옛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동경에 서 고등사범을 나온 성실은 다시 서울의 성신보육학교에 취직되어 간다고
晩 牛 朴 榮 濬 의 在 滿 時 節 小 說 試 探 27 했고, 최혜련은 딸 연자를 데리고 친가인 청진으로 歸 鄕 (13-16회)한다. 그 러나 고향에서 가족들 특히 오빠의 박대와 음해를 견디지 못해 재기를 다 짐하고 서울로 와 성실이 보육교사로 있는 성심학교에 학생으로 입학하여 공부를 하게 된다. 친구이자 선생인 성실은 학생인 혜련과 한 집에서 생 활하면서 물심의 도움을 준다. 그러나 조성실은 동경 유학시절 혼인하기 로 약속한 남자(송수만)에게서 버림을 받게 되자 혜련에게 편지 한 장을 남기고 사라진다. 당장 공부하면서 살길이 막막해진 혜련은 암담한 현실 을 타개하기 위해 고민하면서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하는 내용으로 전편 을 맺는다. 주인공 최혜련은 서울에서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신문사에서 일하는 문 학청년 권성구를 고향의 친구 이숙희를 통해 만나 사귀지만 재혼은 생각 하지 않고 오로지 딸 연자를 위해 재기를 다짐할 뿐이다. 최혜련과 그 주 변 친구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로 소설 雙 影 의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당시로서는 조선 境 內 인 평양, 서울, 청진, 함흥, 원산 등의 지역에서 펼쳐 지는 일제식민지 시대의 우리네 지식인 청춘남녀의 인생 파노라마를 그리 고 있다. 雙 影 에서의 주요 인물은 최혜련을 중심으로 친구 조성실, 청진 동향의 친구 이숙희, 그리고 숙희를 통해 알게 된 전문학교 졸업생 문학 청년 권성구, 다시 권성구를 통해 알게 된 그의 전문학교 친구 박동환, 부 잣집 아들인 동경 유학생 송수만, 그녀의 동창생 정인선과 경옥 등이다. 後 篇 후편은 무려 39회분이 누락되어 전체적으로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전편의 개략, 즉 지난 이야기의 줄거리를 소개하는 내용으로 후 편(1-3회)이 시작된다. 소제목 幻 滅 (4-26회)은 후편의 본격적인 시작으로 권성구가 전문학교 의 연구원으로 있는 친구 박동환을 혜련에게 소개하여 교제하는 내용이
28 人 文 科 學 第 97 輯 다. 동환은 성구와 같은 하숙방을 쓰는 친구로 혜련을 알게 되고, 조혼을 한 본처와 이혼을 하고 혜련과 결혼을 하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혜련 의 남자를 리드하는 능동적인 성격이 동환에게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받아 들여졌다. 그러나 동환은 비록 본처와 애정이 없어도 그녀와의 이혼은 또 다른 한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평소에 사랑을 느끼지 못한 동환도 자신의 모친인 시어머니가 처를 구박하거나 박대하면 측은하게 여 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혜련의 딸 연자가 병에 걸려 어려울 때 동환 은 순수한 마음으로 치료하도록 도움을 준다. 혜련의 환심을 사려는 행위 에서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난 인도적인 충정의 발로였다. 혜련 또한 동 환과의 재혼을 생각하면서 갈등이 없지 않았으나 공부를 끝내고 자립하여 연자를 위해 살려는 초심을 굳건히 지킨다. 혜련이 청진으로 가는 도중에 원산에서 유치원 교사를 하고 있다는 편지를 받은 성실을 찾아가 보게 되 고 배반을 당한 남자 송수만의 관계를 파악하게 된다. 공교롭게도 송수만 과 결혼한 여인이 바로 청진의 고향 친구 이숙희였고, 그녀가 함흥에서 살고 있어 다음 날 혜련은 친구의 신혼집을 들러 갈 작정이었다. 송수만 은 함흥에서 이숙희와 결혼 해 살면서도 성실을 학교로 찾아왔던 것과 성 실이 그에게 복수하기 위해 가까운 원산으로 와 자리 잡게 된 사정을 말 했다. 함흥에서 송수만은 부로카 업을 하면서 기생집에서 주색잡기로 탕 진하면서 산다고 했다. 또 다른 친구인 동창 경옥은 부잣집에 시집가 안주인으로 부귀한 생활 에 만족하면서 모든 인간의 삶을 물질적 만족에 맞추어 생각하고 판단한 다. 그녀에게 부귀를 제공하는 남편에게 굴종하면서 집에서 부리는 사람 들에게 군림하면서 대리 만족을 누리는 생각 없는 여인이다. 온갖 신변의 유혹을 극복하면서 보육학교를 졸업한 주인공 최혜련은 백 방으로 직장을 구했지만 여의치 않아 끝내 원하지 않았던 평양의 유치원 교사로 가게 되어 딸 연자와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나 혜련이 딸 연자와 평양에 거주한다는 사실이 시가에 알려지게 되고 시어머니가 나타
晩 牛 朴 榮 濬 의 在 滿 時 節 小 說 試 探 29 나 과거와는 달라진 다정한 목소리로 손녀 연자를 데려가겠다고 한다. 연 자를 시가로 보내기로 한 혜련은 허전한 마음을 달랠 길 없어 잠든 연자 를 위해 브람스의 자장가를 부른다. 공허한 마음을 달래지 못해 동환을 그리워하면서 성구에게 편지를 쓰는 것으로 대단원을 마무리하고 있다. 박영준의 장편 신문연재 소설인 雙 影 도 中 毒 者 의 경우와 마찬가지 로 스스로가 겪은 신변의 체험담을 소설화했다. 中 毒 者 가 작가 자신의 아우인 사진사를 모델로 했다고 술회한 바 있다. 雙 影 도 자신이 겪은 체험과 신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창작한 소설이다. 박영준이 그의 자전 적 문학론 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 대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청진에서 살고 있는 L이 자기의 친구 한 사람을 내게 소개했다. 만나 이 야기를 들어 보니 어떤 남자와 결혼을 해서 중국 상해로 가서 살다가 그 만 그 남자가 죽어 남편의 뼈만 안고 돌아왔다는 여자였다. 집이 가난해 서 친정집 신세를 질 수가 없어 독립생활을 하려고 서울에 왔다는 것이 었다. 그리고 독립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직업을 가져야겠는데 직업 가운 데는 유치원 보모가 좋을 것 같아서 보육학교에 입학하겠다는 것이었다. 퍽 지성적이고 얼굴도 깨끗했다. 첫 인상도 좋았고 또 그의 소개하는 것 을 생각해서 나는 R에게 친절을 보였다. 29) 청진에서 살고 있는 L이 자기의 친구 한 사람을 내게 소개했다 는 첫 구절은 곧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 최혜련의 모델(R)이 된 것이다. 여기 서 L은 청진의 보통학교 교사로, 박영준이 연희전문 학생시절 韓 이란 친 구로부터 소개받아 상당한 기간 동안 편지를 주고받은 연인 사이였으나 한때 소식이 끊겨 끝내 결혼을 하지 못했다. 졸업을 하고도 직장을 얻지 못했던 박영준은 호구지책으로 결혼을 하게 되고 나중에 L의 진심을 알 게 된 뒤 후회하면서 죽을 생각까지 했다고 술회했다. 30) 주인공 최혜련으 29) 박영준, 위의 글, p. 425. 30) 박영준, 위의 글, p. 386.
30 人 文 科 學 第 97 輯 로 설정된 R이 어떤 남자와 결혼해서 중국에서 살다가 상해에서 죽게 되 자 남편의 유골을 안고 돌아왔다는 플롯의 설정이 雙 影 에 그대로 옮겨 진 것이다. 청진의 이숙희를 통해 혜련이 권성구와 알게 되고 교제하다 다시 친구 박동환에게 넘긴다. 雙 影 에서는 혜련의 딸 연자의 병을 치료 해 주는 것으로 설정되었지만, 실제로 박영준은 R(혜련)의 과부 언니의 열 두 살 된 딸이 결핵성 관절염에 걸려 도움을 청하자 청진에서 서울로 데려와 백방으로 뛰어 절단하게 된 다리를 끝내 고치도록 혼신을 다해 도 와주었다. 박영준은 오로지 인간애(Humanism) 에 입각해서 살려내야 한 다는 생각 하나로 최선을 다해 정성껏 치료를 돕고 병원의 치료비와 입원 비까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친구에게 부탁하여 해결해 주었다. 박 영준은 이 일로 한 소녀와 그 소녀의 어머니를 살렸다는 기쁨으로 당장 죽는다고 해도 자신은 기쁘게 죽을 것 같았다고 술회했다. 31) 雙 影 의 인물, 사건, 배경의 설정과 플롯(plot) 전개는 철저하게 박영준 의 체험적 시간과 공간에서 비롯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권성구와 이숙 희는 원래 연인 사이였으나 숙희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게 되자 청진으로 찾아가 만나는 사건부터 권성구가 곧 박영준 자신임을 알 수 있다. 이숙 희, 최혜련, 조성실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지만 전문학교 졸업생으로 등장 하는 신문기자인 문학청년 권성구는 박영준의 분신으로 느껴지도록 설정 된 인물이다. 한 달 동안 입원 수술로 다리의 절단이라는 엄청난 재앙을 면할 수 있 게 되었고, 입원비까지 마련하여 퇴원할 수 있도록 도왔으나, 완쾌되어 청 진으로 돌아간 모녀는 고맙다는 편지 한 장이 없었다고 했다. 언니와 조 카딸을 살려달라고 애원했던 R(최혜련)도 어디론가 취직되어 가버린 후 소식이 끊어졌다고 박영준은 허탈한 심정을 토로했다. 이만 저만 섭섭한 정도가 아니라 인생관이 달라질 정도였다 32) 고 자탄하였다. 그러나 작품 31) 박영준, 위의 글, pp. 426-428. 32) 박영준, 위의 글, p. 428.
晩 牛 朴 榮 濬 의 在 滿 時 節 小 說 試 探 31 창작의 시간과 공간이 滿 洲 의 磐 石 으로 옮겨진 후에 그의 소설 雙 影 의 등장인물을 통해 그가 평생 신봉했던 人 間 愛 主 義, 人 本 主 義 문학적 인물로 복원되었다. 주인공 최혜련이 잘못된 삶을 되풀이 하지 않고, 주변의 유혹 을 물리치고 딸 연자를 위해 역경을 극복하고 성공하여 끝내 딸 연자를 시가에서 원하는 대로 장래를 위해 보낸다. 친구 성실의 온정, 권성구와 박동환의 희생과 봉사는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야할 의미를 느끼게 해 준다. 雙 影 뿐 아니라 박영준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 그가 한 다음의 말 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위대한 휴머니즘으로 위대한 작품을 쓸 만한 역량이 없다. 그 대신 인정 있는 인간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자신이 인 정이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나는 인간성을 발휘할 수 있는 어떤 일에 부딪쳤다. 33) 소설 창작가로서의 박영준은 위의 인용에서 고백한대로 평생 휴머니즘 을 작품에 구현하는 데 初 志 一 貫 한 작가였다. 그것의 초보적인 단계를 人 間 愛 의 發 揮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스스로 실천하는 人 情 어린 인 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평생을 살았다. 그러나 人 情 을 베풀었어도 人 間 으로서의 최소한 報 答 이나 反 響 이 없을 때 인간은 실망하게 되고 다 른 어두운 그림자를 느끼고 볼 수밖에 없다. 인간의 지고한 사랑의 경지 는 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라고 해도 역시 인간이기에 인간의 밝은 그림 자를 기대한다. 그러나 항상 어두운 그림자도 존재한다. 본 작품은 식민지 통치시대 두 번째로 찾은 脫 出 口 인 지금의 吉 林 省 磐 石 에서 젊은 작가 朴 榮 濬 이 연희전문 시절과 龍 井 에서 겪은 滿 洲 의 체험을 바탕으로 암울했던 식민통치 시대의 젊은 조선인 지식인 남녀들의 삶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 삶의 현실은 언제나 밝거나 어두운 두 가지의 그림자인 雙 影 이다. 주인공 최혜련이 작품 雙 影 에서 보여 33) 박영준, 위의 글, p. 425.
32 人 文 科 學 第 97 輯 주는 그녀의 행동 궤적과 심리묘사에서 언제나 明 暗 이 교차한다. 항상 고 민하면서 현실의 어려움을 인도적으로 극복해 내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雙 影 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4) 無 花 地 : 꽃이 없는 땅, 만주 1941년 2월 文 章 25호에 실린 소설 無 花 地 는 표제에서 이미 그 主 題 의 상징성을 보여주고 있다. 박영준 재만 시절의 다른 작품과 비교해 볼 때, 이야기의 전개가 철저히 만주지역의 작은 한 邑 城 을 중심으로 전개되 고 있다. 中 毒 者 와 雙 影 의 主 人 公 과 등장인물처럼 만주와 조국을 넘나 들고 있거나, 만주에서 失 敗 하면 다시 조국으로 돌아오는 것과는 달리, 無 花 地 의 대표적인 人 物 인 재춘 을 중심으로 한 소설의 전개는 僞 滿 國 소도시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버려둔 기생 출신의 아내가 죽자 재춘이 다시 고향인 信 川 으로 가 20대의 젊은 여자를 재취하여 데리고 오는 내용 만이 조선과 연결된 내용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만주지역 소도시의 猝 富 재춘의 엽색 행각을 중심으로 당시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형상화하고 있다. 소설은 당시 僞 滿 國 의 수도인 新 京 ( 長 春 )에서 지방 소읍으로 출장 나 온 만주국 관리인 참사관을 그곳 지방 유지들이 재춘이 드나드는 기생집 에서 접대하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런 시굴도 종종 오시어서 우리 동포들이 사는 형편을 보셔야 하시지 않습니까, 저이들이야 암만 애를 써도 무슨 힘이 있어야지요. 참, 이곳은 우리 동포가 잊지 못할 곳입니다. 가장 먼저 땅을 개간하고 들어온 데가 이곳일 뿐 아니라 반만 항일군에게 가장 큰 희생을 본 데도 이곳입니다. 그래두 조선 사람이 가장 많기로는 간도 다음 갈 것입니다. 교육도 꽤 발전된 곳입니다. 조선인 이만 명가량 사는 곳에 공립학교가 여섯, 사립의숙 같은 것은 웬만한 부락에 대부분 있는 형편입니다. 그러나 농촌에 들어가면 말할 것 없어요. 만주 사람과 조금도 다름이 없 으니까요. 애들 공부가 다 무엇입니까. 만주 집에서 만주 사람과 꼭 같은
晩 牛 朴 榮 濬 의 在 滿 時 節 小 說 試 探 33 살림을 합니다. 술이 들어오기 전부터 이 지방에 사는 사람들 사는 각색으로 소개한다. 술이 들어와 색시가 잔을 돌릴 때쯤 되어서야, 선생님 돌아가셔서 많이 애써 주십시오. 이 지방에 사는 우리 동포들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결론 비슷한 말이 나온다. 네, 잘 알았습니다. 될 수 있는 대로 힘써 보지요. 34) 소설의 서두에서 지방 유지들이 소개하는 만주의 조선족 소도시의 형편 은 당시 우리민족이 간도와 그 밖의 만주지역에서 처했던 상황을 잘 반영 하고 있다. 간도 다음으로 조선 사람이 많이 거주하는 이곳의 형편을 만 주국 관리에게 설명하면서 도움을 청하는 내용이다. 될 수 있는 대로 힘 써 보겠다 는 의례적인 대답으로 마무리 짓는 만주국관리인 참사관의 행 태 등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만주의 현장 경험을 지닌 作 家 박영 준에게는 살맛나지 않는 땅, 희망이 보이지 않는 땅, 꽃이 없는 땅, 꽃이 피지 못할 땅 의 모습인 無 花 地 로 상징되고 있다. 또 만주 집에서 만주 사람과 꼭 같은 살림 을 한다는 말은 당대에 만주의 농촌으로 이주 한 조선민족의 열악한 형편을 압축하고 있다. 이와 함께 猝 富 재춘의 엽 색 행각은 시대 상황은 외면하고 일신의 부귀와 영달만을 일삼는 일단의 무리를 비판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소설 無 花 地 의 지역적 배경은 박영 준이 두 번째 탈출구로 찾은 지금의 吉 林 省 盤 石 縣 쯤이 아닐까 싶다. 그가 살고 있었던 지역 소읍을 소재로 삼아 현지 조선인들의 삶의 모습을 소설 로 묘사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가 탈출구로 찾은 두 번째의 지역도 僞 滿 國 의 치하에서 전혀 희망이 보이지 않는 꽃이 피지 않는 땅 인 無 花 地 였 을 뿐이다. 그것은 청년 作 家 박영준이 보여주고자 했던 조국의 또 다른 연장선인 滿 洲 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34) 만우 박영준 전집 1, p. 277.
34 人 文 科 學 第 97 輯 5) 密 林 의 女 人 : 野 性 에서 人 性 으로 이 소설은 국내에서 출판된 만우 박영준 전집 6권 단편집에 개작 수 록되었다. 현대문학 1974년 6월호에 전재된 개작 密 林 의 女 人 은 작가 로서 박영준이 건강이 허락되지 않아 말년 絶 筆 하기 바로 직전의 작품이 다. 중국조선민족문학대계 (12권)의 본편 해제(전성호)에 의하면 원래 滿 鮮 日 報 에 실린 것을 그대로 옮겼다고 한다. 35) 그 후 33년 만에 개작 발 표된 密 林 의 女 人 은 당연한 기대이지만 상당히 성숙되고 세련된 내용과 문장으로 나타났다. 密 林 의 女 人 에 해당하는 작중인물인 주인공 김순이 의 삼인칭 표현도 그녀 를 박영준만이 썼던 그미 라는 말로 바꾸었다. 야생 밀림의 여인을 구출한 나 라는 인물의 신분도 확실히 밝히고 사건 의 공간도 분명하다. 일인칭 서술자 나 라는 사람은 만주국 길림성 蛟 河 縣 의 興 農 合 作 社 의 理 事 로 있었던 1940년 봄에 일어난 일이라고 서두를 시 작하고 있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만주에서 창작된 원작을 논의의 대상으 로 삼았다. 소설의 지역적 배경은 간도에 해당하는 汪 靑 縣 과 龍 井 이다. 어린 나이에 공산 토비가 되었다가 총상을 입고 포로가 되어 귀순한 金 順 伊 를 나 는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집에 데리고 와 인내심을 가지고 교화시켜 용 정의 부모를 찾아 보내준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에서 핵심은 밀림 속에서 토비로 어린 시절을 보낸 탓으로 세상 물정을 전혀 알지 못해서 온갖 행 패를 부리는 野 生 馬 와 같은 順 伊 를 서서히 교화시켜 삶에 적응하도록 변 화를 유도하는 나 의 행위이다. 다시 말하면, 密 林 의 女 人 이 野 生 馬 에서 人 間 적인 여인 이 되어 인간의 삶 속으로 들어와 진정한 여인으로 전환되 도록 헌신적으로 돕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온갖 어려움을 견디고 끝내 는 가족의 품으로 인간이 된 順 伊 를 인계하는 나 라는 人 物 의 설정을 통 35) 본편의 원작은 신형철이 1941년(만선일보사간)에 편집한 재만 조선인 작품집 싹트 는 대지 에 실려 있다. 중국조선민족문학대계 12, 연세국학연구총서 73, PP 95 2007,6, 서울 보고사 간.
晩 牛 朴 榮 濬 의 在 滿 時 節 小 說 試 探 35 해 박영준은 자신의 소설 미학인 휴머니즘을 실현하고 있다. 때문에 일제 어용단체인 協 和 會 를 통해서 密 林 의 女 人 에게 부모를 찾 아준다는 한 구절을 문제 삼아 박영준을 친일 행위 운운하는 것은 斷 章 取 意 에 지나지 않는다. 36) 이 소설은 전체적인 맥락에서 볼 때, 박영준의 평생 동안 일관된 주제인 휴머니즘적 윤리에 기초한 초기의 단편으로 이 해하면 될 것이다. 당시 만주라는 공간은 주인공 金 順 伊 와 같은 삶의 人 間 型 도 얼마든지 실제로 존재할 수 있었던 時 空 間 임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Ⅳ. 결론 : 가난, 탈출, 방황의 寄 着 地 박영준의 재만 시절 작품의 의미를 종합하여 一 言 以 蔽 之 하면 그가 평생 始 終 一 貫 신봉했던 Humanism 즉 人 間 愛 를 人 間 的 倫 理 를 바탕으로 작 품을 통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유감없이 구현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 나 작품성에서는 20대 초반의 청년 작가로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인물 사건 배경이 단선적이나 30대 초에 발표된 그의 첫 장편 雙 影 은 작품성에서 발전이 돋보인다. 1. 박영준은 소설작품을 통해 만주에서 바라보는 암담한 조국의 현실과 현지에서 겪는 우리 민족의 가난, 방황, 탈출의 寄 着 地 에서의 삶을 생 생하게 묘사하였다. 생호래비, 어머니, 중독자 에 등장하는 인 물들이 이 같은 당시의 상황을 대변하고 있다. 2. 박영준의 소설은 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어두운 현실에서 출구를 찾 지 못해 갈등하는 삶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도시의 잔회, 의 수, 쌍영 에 등장하는 人 物 群 像 을 통해 볼 수 있다. 3. 박영준 소설에서 만주는 꽃이 없는, 즉 희망이 없는 땅으로 묘사되고 36) 전성호, 위의 글, pp. 21-22.
36 人 文 科 學 第 97 輯 있다. 無 花 地 의 주인공 재춘이 만주 땅에서 벌이는 도덕적 타락 양 상이 바로 그것이다. 4. 박영준 소설에서 만주는 野 性 의 人 間 이 人 性 으로 回 復 되는 땅이기 도 했다. 密 林 의 女 人 에서 金 順 伊 는 나의 인간적인 배려에 힘입어 인간다운 인간으로 돌아오게 된다. 박영준은 젊은 시절 조국이 식민통치를 당하던 와중에 어쩔 수 없어 탈 출구로 만주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두 번에 걸친 8년의 만주생활을 체험 한 젊은 작가 박영준의 초기소설에 묘사된 가난한 농촌의 참담한 모습, 출구가 없는 지식인의 방황, 갈등 속에서도 그 저변에는 휴머니즘적 인간 애가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박영준의 재만 시절에 창작된 소 설은 작가 자신이 일제시대를 살면서 겪은 貧 困, 彷 徨, 脫 出 의 寄 着 地 만주에 서의 생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엮은 自 傳 的 성격의 작품이라고 정리한다. 그가 만주에서 남긴 작품을 통해 우리 민족이 지닌 歷 史 의 한 時 代 的 意 味 와 삶의 한 空 間 的 意 味 로 새겨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시 滿 洲 는 우리 民 族 再 生 의 공간, 力 量 充 電 의 공간, 光 復 豫 備 의 공 간이 되었다 고 그 의미를 자리매김한다. [주제어] 만주, 일제, 방황, 가난, 탈출, 기착지 [참고문헌] 김도형 외, 식민지시기 재만조선인의 삶과기억, 연세국학연구총서103, 서울: 선인, 2009년. 박기동 외, 황소걸음 : 스승 만우 박영준을 기리며, 서울: 동연, 2008년. 박영준, 만우 박영준 전집 (전 13권), 서울: 동연, 2006년.
晩 牛 朴 榮 濬 의 在 滿 時 節 小 說 試 探 37 박영준 저, 김동훈 허경진 허휘훈 주편, 연변대학교 조선문학연구소 편, 박영준 : 중국 조선민족문학대계 12, 연세국학연구총서 73, 서울: 보고사, 2007년. 정현기, 박영준의 문학과 인간, 포위관념과 멀미, 서울: 연세대학교출판부, 2005 년.
38 人 文 科 學 第 97 輯 中 文 提 要 1934 年 朴 荣 濬 (1911-1976) 以 小 说 模 范 耕 作 生 荣 获 朝 鲜 日 报 新 春 文 艺 奖, 在 新 东 亚 上 几 乎 同 时 连 载 微 型 小 说 虾 酱 和 长 篇 小 说 一 年, 接 此 他 以 文 坛 的 宠 儿 绚 丽 地 初 次 登 台 了 不 过 他 在 日 帝 强 占 期 的 韩 半 岛 里 找 不 到 工 作, 不 得 不 两 次 跑 到 满 洲 他 在 满 洲 一 边 当 中 学 教 师, 一 边 投 入 小 说 创 作 在 民 族 解 放 的 1945 年 回 国 后, 一 辈 子 以 作 家 身 份 过 日 子 朴 荣 濬 住 在 龙 井 时 (1934.6-1935.6) 创 作 了 光 棍 子, 城 市 的 残 灰, 母 亲 三 部 小 说, 发 表 在 国 内 的 文 艺 杂 志 上 在 这 些 作 品 中, 他 活 生 生 地 描 写 了 日 据 时 代 荒 废 不 堪 的 农 村 生 活, 以 及 彷 徨 岐 途 的 年 轻 知 识 分 子 的 群 像 之 后, 生 活 在 磐 石 时 (1938-1945) 撰 写 了 中 毒 者, 义 手, 无 花 地, 密 林 的 女 人 等 四 篇 短 篇 和 长 篇 双 影, 个 别 发 表 在 国 内 杂 志 和 当 时 在 长 春 发 刊 的 满 鲜 日 报 上 在 磐 石 时 期 创 作 的 作 品, 以 满 洲 和 祖 国 作 为 地 域 背 景, 描 绘 着 来 往 满 韩 两 地 的, 或 者 住 在 满 洲 的 朝 鲜 人 的 生 活 我 们 透 过 朴 荣 濬 在 满 时 期 创 作 的 作 品, 可 以 了 解 日 据 时 代 的 满 洲 对 韩 民 族 来 说 在 时 空 上 具 有 何 等 意 味 在 日 帝 支 配 下 的 1930 年 代 的 满 洲, 先 是 韩 民 族 彷 徨 岐 途 后 逃 脱 的 临 时 经 由 地, 后 来 是 力 索 光 复 推 动 力 的 时 代 且 是 空 间 满 洲 就 具 有 这 样 的 历 史 意 义 [ 关 键 词 ] 논문접수일: 2013.03.04 / 논문심사일: 2013.03.12 / 게재확정일: 2013.04.09 [저자연락처] junincho@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