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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동북아역사논총 44호 있다. 재북한 일본인 문제는 현실 외교정책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민감한 사안 이다. 향후 북일수교 교섭이 재개된다면 일본 측이 과거 북한의 일본인 억류와 사유재산 몰수문제를 협상범주에 포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양국 간의 첨예한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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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의 일본군 위안부 동원: 소개업자 접객업자 일본군 청부업자 등의 역할* 1) 수행과제명 과제책임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종합연구(Ⅰ) 이인선 부연구위원 Tel: 02-3156-7159 e-mail: islee@kwdimail.re.kr 요 약 일본에서 발간한 자료집, 신문광고, 조선총독부의 재판자료, 국내 신문자료, 일본 신문자료 등을 활용하여 조선에서의 일본군 위안부 동원, 구체적으로 소개업자 접객업자 일본군 청부업자나 군위안소 업자의 역할을 분석하였음. * 이 이슈페이퍼의 내용은 본 연구 공동연구진인 강정숙(성균관대 동아시아 역사연구소 책임연구원)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이 이슈페이퍼는 다음과 같이 인용해 주십시오. 이인선 황정임 김동식 강정숙 조윤주(2015).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종합연구(Ⅰ). 서울: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조선에서의 일본군 위안부 동원: 소개업자 접객업자 일본군 청부업자 등의 역할 1

1 배경 및 문제점 전투지나 점령지와 같이 적대적 관계에서 일본군이 집단적으로 그리고 폭력적으로 여성들을 공공연하게 군 위안부 로 삼은 다른 동아시아 지역과 달리, 1930~1940년대 조선은 일제가 일상적으로 그리고 공개적으로 여성들을 강제적으로 동원하기는 어려운 식민지 였음. 일제는 징용제나 징병제 등을 통해 자기의 침략전쟁의 협력 자로 조선인들을 끌어들이려고 했었고, 또 일제정책에 조선민중의 저항도 있었기 때문에 여성의 동원은 좀더 간접적인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임. 따라서 일본군이 군 위안부 동원을 요구하면 조선에서는 조선총독부 와 조선군사령부가 중심이 되고 그 수족으로서 소개업자 접객업자 청부업자 등이 움직이는 형태였음. 여기서는 일본에서 발간한 자료집, 신문광고, 조선총독부의 재판자료 1), 국내 신문자료, 일본 신문자료 등을 활용하여 조선에서의 일본군 위안부 동원, 구체적으로 소개업자 접객업자 일본군 청부업자나 군위안소 업자의 역할을 분석하였음. 2 조사 및 분석결과 소개업자의 역할 일본군이 군 위안부 동원을 요구하면 조선에서는 조선총독부와 조선 군사령부가 중심이 되고 그 수족으로서 움직이는 것이 소개업자 접객업자 청부업자 등임. 여기서는 소개업자들이 여성 소개과정의 실제로 보여준 움직임과 군위안부 동원과 관련하여 어떠한 역할을 하였는지를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함. 1) 조선총독부가 생산한 재판관련자료는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의 과제 팀이 국가기록원에서 공동수집한 것을 활용하였다. 2 2015년 이슈페이퍼

일제시기 취업방식과 관련해 보면, 일제 말기 강제동원을 제외하 고, 지인이나 직접 문전취업을 하지 않는 한 소개업자를 통하여 이 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음. 사실 인사소개업이라 하면 생활고나 가족부양에 곤경을 당하는 여성들에게 건강한 직장을 소개하여 생계 를 유지하게 하는 2)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겠으나, 일제 때 그 실상은 아주 달랐음. 일제시기 인신매매의 기반 위의 공창제가 도입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음. 여기에 소개업 혹은 인사소개업(주선업)의 이름의 영 업분야가 만들어졌고, 이 소개업에 대한 규정들도 모든 도는 아니 지만 시차를 가지며 각 도에서 만들었음. 3) 그러나 불법적 행위에 대한 규제나 소개업자의 자격조항도 갖춰져 있는 경우가 적고(윤명 숙, 2015: 391), 이를 시행하려는 공권력의 노력도 일본에 비해 극히 부족하였음. 이 때문에 전근대에서 근대로의 전환과 식민지화라는 중압 속에 있던 조선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인신매매는 공창제 등 성매매 관련 업종의 공식화와 함께 급증하고 확산되었음. 소개영업자들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인신매매범과도 상시 연결되어 있었음. 인신매매범에 의해 유괴 협박 납치된 여성들을 인신매매범 과 공모하거나 확인하지 않고 인신매매 방식으로 음식점 대좌부업 자 군위안소로 넘기고 있었음. 사례 하나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음. 부산서 이형사는 동부 내에 부녀유괴단이 있는 것을 감지하고 수사한 결과 29일 정오 부산역전에서 군산부 소화통 최현룡(34)을 체포하고 취조하였는데, 부산 2) 한성일보(1948.9.12.). 성명서 (서울시내 인사소개업자). 1면 3) 조선총독부 관보에 수록된 인사소개업 관련 규정 몇 개만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함남 경무부장(1911.12.11.). 諸 營 業 に 關 する 願 屆 手 續 及 取 締 規 程., 전남경무부장(1912.8.19.). 諸 營 業 取 締 規 則., 경북경무부장(1913.3.1.). 周 旋 營 業 取 締 規 則., 황해도경무부장(1913.3.31.). 諸 營 業 取 締 規 則., 충청 남도도지사(1929.9.6.). 紹 介 營 業 取 締 規 則 및 紹 介 營 業 取 締 規 則 取 扱 規 程. 일제 전반기의 인사소개업 관련 규정은 전라남도도지사(1939.12.16.). 紹 介 營 業 取 締 規 則., 평안남도도지사(1940.9.3.). 紹 介 營 業 取 締 規 則. 등이 발표되었다. 조선에서의 일본군 위안부 동원: 소개업자 접객업자 일본군 청부업자 등의 역할 3

부내의 악질 주선업자와 결탁하고 경남 김해군 상동면 매리 이순임(19, 가명)외 4명을 유괴하여 계약서를 위조하고 각각 북지( 北 支 )방면으로 팔아버릴 목적으로 여자들을 동부 대신정 모음식점에 감금하고 있는 것을 자백했다. 4) 위 범행은 계약서까지 위조한 것으로 영리유괴 및 사문서위조, 국외 이송죄에 해당한 범죄를 저질렀음. 최현룡이라는 자는 인신매매범 으로 여성을 모아 소개업자를 통해 국외로 인신매매하려고 한 것이 었음. 여기에 북지( 北 支 )로 팔려고 하였다고 하였으므로 구체적으로 군 위안부 로 팔려고 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여성들의 인신 매매 방식의 한 사례를 보여주고 있음. 그런데 이 기사에 나온 최현룡은 분명 부산에서 잡힌 자이므로 조선내에서 재판 등을 하였을 것으로 보이나 한국 내의 신문기사에도 재판자료에도 발견되지 않음. 군 위안부 동원과 관련하여 소개업자의 역할을 파악하기 위해 피 해자 구술을 살펴본 결과, 피해자 구술자료집 10권 중에서 소개소 에 대해 언급한 사람은 6명에 불과하였음. 이는 접객업자와 직접 연결되어 전선으로 배치되어 군 위안부 가 되지 않는 한, 기본적으 로 소개업자가 매개가 되어 군위안소 업자로 연결되어졌을 것이나 소개업자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데에는 피해자들이 소개업이라는 것 자체를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임. 인사소개업자들이 일정 사무실을 두고 그곳에서만 영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을 모으기 위해 심부름꾼이나 끄나풀을 두고 있었고 인신매매범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임. 피해자 구술자료를 살펴보면 피해자들이 확실히 소개업자라는 것을 인지한 사례는 실상 그리 많지는 않지만 몇 개의 구술에서 확인됨. - 이순옥(가명)은 부모허락 하에 영천에서 비단공장 노동자로 취업 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사기를 당하여 대구와 평양에서 다른 여성 들과 합류하여 기차와 트럭을 타고 중국 관동에 도착하였는데 그때 4) 大 阪 每 日 新 聞 西 部 版 (1938.7.30.). 五 名 の 婦 女 を 誘 拐 / 飲 食 店 に 監 禁 す/ 悪 周 旋 屋 を 検 挙. 5면 4 2015년 이슈페이퍼

소개업자 오씨는 일본군인과 이야기하고 가버렸고 이후 일본에서 살다 온 전라도 출신 여자가 관리인이 되었음(한국정신대문제대 책협의회 한국정신대연구소, 1993: 71-73). - 이상옥은 소개소에 있던 늙은 조선인 남자 한 명과 일본인 군속 한 명이 지방을 돌아다니며 여자들을 모아온다 라고 했는데 5), 소개 업자는 팔라우까지 여성들을 동원해 주인에게 넘겼음(한국정신대 문제대책협의회 한국정신대연구소, 1993: 185-187). 인사소개업 자들은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여성들을 모았으며, 박순애(가명)와 같이 소개소에 묵으면서 사람을 사는 업자들을 기다리기도 했음. - 이외에도 인사소개업자들이 각 지역에 연결할 고리들을 만들거나 이동하면서 연결되어 사업 을 확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증언집에서 소개소라는 언급이 없더라도 그와 관련되어있을 가능성이 큼. 아래의 신문광고 역시 군위안소가 소개업자를 통해 이루어졌음을 보여주고 있음. 다만 이 광고가 여성 개개인에게 가는 것이라기보다 여성동원이 가능한 인신매매업자나 요리업자 대좌부( 貸 座 敷 )업자 등을 향한 것으로 판단됨(강정숙, 2010: 111-112). 慰 安 婦 至 急 大 募 集 17-23세 後 方 00 隊 慰 安 婦 日 收 300엔 午 前 9 時 - 午 後 10 時 本 人 對 談 京 城 府 新 町 4-20 今 井 紹 介 所 電 話 5?-1613 자료: 京 城 日 報 (1944.7.23. 4면 및 1944.7.24. 2면). 신문광고. [자료 1] 경성일보 신문광고 5) 이상옥은 일본인 군속에 대해 견장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데 그는 1936년 15세의 나이에 부모나 보호자의 허락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 공장으로 간다는 일본인 군속 의 말에 의해 가게 되었는데 정작 도착한 곳은 팔라우였으며 그곳에서 군 위안부 로 되었다. 조선에서의 일본군 위안부 동원: 소개업자 접객업자 일본군 청부업자 등의 역할 5

재판관련 자료는 군위안소 자체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서술되어 있 는 것은 아니어도 군의 요구가 조선에서의 권력기관에서 금지하고 허가하는 기준을 만들거나 그 기준을 만들어 군 위안부 조달의 역 할을 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음. 여기서 군 위안부 로 동원된 여성 의 사례를 하나 들어보면 다음과 같음. 신순임(24세) 가정이 가난하여 부모의 뜻을 따라 1938년 3월 경성부내 서대 문정 2정목 121번지 서만규의 중개로 중지 남경소재 황군위안소 창기가 되었다. 1939년 8월 중순 귀선한 자로 8월 28일 전기 서만규집에서 그에 대해 제1선의 창기는 군인과 함께 전쟁에 참가하는 것이어서 참으로 위험하다. 금후는 어떤 일이 있어도 황군위안소의 창기로는 되지 않는다 라고 군사 관련한 유언을 만들고 있는 것을 관할 종로경찰서에서 탐지하여 조사한 바 창기 취업 중 하루 70명의 객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관계상 신체에 무리가 생겨 식욕감퇴하고 복통요통이 있고 신체쇠약하여 병에 자주 걸렸는데 올해 8월 중순에 간신히 전차금을 완제하고 귀선하였다. 재차 창기로 팔릴 것을 염려하여 중개업자 서만규 집에 와 이야기하였던 것이다. 이에 대해 동정할 점이 있어 종로서에서는 경성지방법원 검사정의 지시를 받아 9월 11일 경찰범처벌규칙 제1조 제21호 위반으로 구류 7일에 처해졌다. 자료: 경기도 경찰부장이 경무국장 및 경성지방법원 검사정( 檢 事 正 ) 앞으로 보낸 경고비( 京 高 秘 ) 제2303호(1939). http://db.history.go.kr/item/level.do;jsessionid=49ae8d40a44d1ea925d55a3 9F8673969?levelId=had_165_0740 (접속일 2015-08-20) [자료 2] 京 高 秘 제2303호 유언비어자 처벌에 관한 건 ( 流 言 飛 語 者 処 罰 に 関 する 件 ) (1939.9.13.) 군 위안부 와 인사소개업의 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난 문헌자료는 별로 없는데 위의 자료를 통해 그 군 위안부 화 과정의 한 사례를 확인할 수 있음. 위 자료는 경찰측 문서이고 당시는 일본군에 불리한 것을 말하면 사실을 말해도 처벌을 받는 엄혹한 상황이므로 피해자 의 입장과 다른 식으로 정리되었을 가능성이 높음. 사실관계가 전도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사건을 통해서 다음과 같이 6 2015년 이슈페이퍼

몇 가지는 확인할 수 있음. - 첫째, 신순임은 22~23세에 빈곤하여 부모의 뜻에 의해 서대문에 있던 중개업자인 서만규 6) 의 중개로 전차금을 받고 남경( 南 京 )소재 군위안소의 군 위안부 (창기)가 되었음. 둘째, 자신이 생각한 것과는 너무나 다른 생활로 70명을 받아야 해서 병에 자주 걸렸음. 셋째, 만 1년 반이 지나 전차금을 반환하고 귀환하였음. 넷째, 재차 팔릴 것을 염려하여 중개업자 집에 와서 위 이야기를 하였음. - 위 중개업자는 1935년 기사에서의 주소가 서대문정 2정목 122번 지였던 것이 1939년 121번지로 되어 있는데 잘못 기록되었거나 제대로 기록되었다면 전 주소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거주 하면서 이러한 영업을 했던 자였던 것만은 분명함. 신순임은 빈곤 하여 부모의 뜻에 의해 전차금을 받았다는 것까지는 사실인 것으로 보임. 그러나 처음부터 군 위안부 가 되는 것을 알았는지는 알 수 없음. 신순임이 간 군위안소가 어떤 유형의 위안소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전차금을 반환하면 귀환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음. 또 하나의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음. 이것은 인사소개업과 접객업 관련자들이 어떻게 여성을 동원하였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이 자료 는 현재 남아 있는 국가기록원의 조선총독부의 재판자료 중 위안부 가 언급된 거의 유일한 자료라고 할 수 있음. 철번호 CJA0000687 昭 和 19 年 豫 濟 6 號 하산정웅과 청수종복에 대한 심리결과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음. 6) 조선중앙일보(1935.2.25.석). 도박단 14명 일망타진. 2면. 소개업자 서만규는 이 일이 있기 전에 도박으로 인해 경찰에 검거된 적도 있었다. 기사내용은 아래와 같다. 1935년 2월 24일 오전 4시 20분 종로서에서는 시내 서대문정 2정목 122번지 서만규의 집에서 도박을 하든 서만규 외 13명의 도박단을 일망타진하는 일방 판돈도 72전을 압수하였다 한다. 앞에 언급한 마스다 미치요시( 增 田 道 義 )가 주선자는 모두 인격자가 아니다 라는 말을 상기하게 한다( 增 田 道 義, 1934: 38; 윤명숙, 2015: 391 에서 재인용). 조선에서의 일본군 위안부 동원: 소개업자 접객업자 일본군 청부업자 등의 역할 7

피고인 하산정웅은 순천읍 화전인사소개소의 종업원으로 1944년 9월 경성 종로소개소에서 궁본OO가 종로소개소를 방문하여 음식점의 종업 원이나 기타 월급을 지급받을 수 있는 직업에 취직을 의뢰하는 것을 보 고 동녀를 전차금 명의의 돈을 수취하고자 유괴하려고 계획하였다. 자기 는 순천읍 희락별관이라고 하는 요리점의 회계를 맡는데 요리점의 회계 보조로 월급 150원으로 받아주겠다고 속이고, 동녀의 부모가 생존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승낙을 구하지 않고 수일 후 에 희락별관에서 작부로 일하게 하여 이득을 얻고자 하는 목적으로 동녀 를 순천읍내로 연행하였다. 동읍 희락별관의 청수OO에게 동인에 대해 작부 고용을 교섭하였으나 동 별관은 현재 휴업 중이고 동소에서는 작부 는 필요하지 않지만 동인이 경영하는 만주국 빈강성 아성현 아성의 희락 지점에는 위안부(창기)가 필요하다고 하자 동녀를 만주국으로 이송 유괴 하려고 결의하고 동녀에게는 전차금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차금 3500원 이 있는 것처럼 속여서 희락지점의 위안부 고용을 신청하여 승낙을 얻어 동인으로부터 전차금 명의로 3500원을 수취하였다. 동녀를 제국 밖으로 이송하는 목적으로 동녀를 유괴하고 만주국에 이송 수속 중 발각되어 이 송하지 못하였다(재판관련 서류 철번호 CJA0000687 昭 和 19 年 予 済 6 号 ). - 피고인의 하산정웅은 영리유괴는 형법 제215조, 국외이송유괴는 동법 제226조 제1항에 각 해당하는 범죄라고 판단하여 피고인 하 산정웅은 형사합의부 공판으로 가고 피고인 청수종복은 면소되 었음. 이후 자료는 발견되지 않고 이송 수속 중 무엇이 문제로 이송 되지 않고 예심재판을 받게 되었는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에서 매우 한계가 있는 자료임. -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소개영업과 관련하여 알 수 있는 것은 첫째, 하산정웅이 소개소 종업원으로서 순천소개소가 경성의 소 개소와 연계를 가지고 상당히 넓은 범위로 움직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고, 둘째, 취업하는데 있어 부모의 승낙이 필요하나 이것을 거치지 않았고, 또 전차금이 없는데 전차금을 중간에 갈 8 2015년 이슈페이퍼

취하고, 여성은 음식점 종업원 등을 원하였는데 위안부(창기)로 팔아넘기려고 하였음. 셋째, 같이 공모하였을 것으로 보이는 청수 종복은 면소되었음. 인신매매범으로 유명한 하윤명은 상당히 주목할 인물로, 인신매매 범으로서 인사소개업자와 긴밀한 관련을 맺어 여성을 인신매매 그 리고 위안소로도 여성을 넘기는 등의 불법행위를 한 자임. - 그는 1925년 대전형무소 간수로부터 시작하여 1934 부녀유괴범 으로 이름을 낸 이후 인천에서 송학루라는 창가를 경영하였으며, 1939년에는 인신매매범으로 신문지상에서 대단한 관심을 받았 음. 7) 그리고 정식 재판과정을 거쳤다면 최소 만기일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돌아다니며 인사소개업자로서 다시 범죄를 저질렀 음. 전쟁말기에는 싱가포르에서 군위안소를 경영하였다는 글이 남아 있음(임종국, 1984: 306).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 보면 하윤명 이란 자는 인신매매, 인사소개업, 창가, 군위안소 경영 등 군위안 부제와 관련한 상당한 영역에 걸친 영업을 한 자임. - 그의 죄상으로 보면 상당한 기간 투옥이 예상되나 신문에서만 찻 잔 속의 태풍처럼 논의되었을 뿐, 과연 그가 경찰 다음단계로 넘 어가 재판을 받아 형을 살았다는 흔적, 즉 재판 및 입감서류는 발 견되지 않음. 이 점으로 보아 분명 하윤명은 일본군이나 조선의 권력기관과 유착되어 그의 악행으로 신문잡지에서는 다뤄졌으나 정작 처벌은 되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됨. 당시 군위안부제가 어 디에 기반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음. 인사소개업을 군 위안부 피해자 구술이나 관련자료 등을 통해 보면 인사소개업자와 접객업자는 분명히 분리되어 있고 인사소개업자가 바로 군위안소 업자로 전환하는 경우는 별로 눈에 띄지 않음. 그것은 7) 매일신보(1939.3.7.), 으오! 가여운 소녀들 毒 牙 犧 牲 百 五 十 名 誘 拐 魔 河 允 明 夫 婦 罪 狀 擴 大, 2면, 매일신보(1939.3.16.). 誘 拐 魔 河 允 明 夫 妻 行 狀 記 3, 3면. 조광 제3권 제5호(1939.5.1.), 색마 유괴마 하윤명 죄상, pp.178-188. 이외에도 다수의 기사가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한혜인(2013)의 글을 참고. 조선에서의 일본군 위안부 동원: 소개업자 접객업자 일본군 청부업자 등의 역할 9

인사소개업자가 군위안소 업자로 되기 위해서는 조선내 영업을 접고 전업을 해야 하기 때문으로 보임. 이에 비해 접객업자였던 요리점 업자나 유곽업자(대좌부 혹은 대석업자)들이 군위안소 업자로 되는 것은 확인할 수 있음. 위와 같이 여성의 의사와 무관하게 전차금을 갈취하기 위해 인신매 매범이나 소개소 업자 등이 취업을 원하는 여성들을 이러한 방식으로 성매매업에 팔아 넘기는 사례는 상당히 많이 발견됨. 이 과정에서 필요한 문서를 위조하는 경우도 빈발하였음. 신문지상으로 보아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제법 보도되었으나 국가기록원에 소장 되어 있는 국외이송에 대한 재판 건수가 극히 적었음. 이에 대해서는 좀더 조사가 되어야 할 것이지만, 당시 일상적인 영리유괴와 관련된 범죄처벌은 상당히 있었는데 비해 군 위안부 동원과 관련되는 국외 이송에 대해서 거의 불처벌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음. 접객업자의 역할 요리업자나 대좌부업자가 전쟁터로 이동하여 군위안소를 경영하게 된 경우도 있었음. - 팔렘방에서 군위안소를 경영하였던 조경옥은 광주에서 춘목암을 경영하다가, 송경호는 경주에서 명월관을 경영하다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확전한 이후 인도네시아 팔렘방에서 군위안소를 경영 하였음. 이들도 기본적으로 요리업 혹은 을종 요리업자로서 접객업 종사자였음. - 이들이 군위안소 업자로의 전환과정에서 어떤 방법으로 여성들을 모았는지 명확한 자료가 있지는 않지만, 광주나 경주의 영업과 관련된 직접 여성들을 데리고 가거나 새로 추가로 모아서 가 군 위안소를 운영한 것은 확실함. 특히 경주의 송경호는 팔렘방에서 제1명월관, 제2명월관을 만들었고 8) 위안소 운영을 위한 관련자 8) 광주매일(1992.1.16.). 수마트라섬 팔렘방 위안소 배치 한인 위안부 61명 명단 공개,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2009). p.41 10 2015년 이슈페이퍼

들의 수가 상당한 것으로 보아 단순히 경주에서 관련 여성들만 데리고 간 것은 아니었음. 당시 인사소개업과 대좌부업, 요리업 등을 겸하지 못하게 한 규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여성들을 함부로 접객업으로 넘기거나 인신매매 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에서 출발되었음. 전쟁기에 와서 소개영업 자와 접객업자의 관계나 각각의 존재방식이 어떻게 변화하고 이것이 여성을 동원하는데 어떠한 역할을 하였는지에 대해서도 밝혀져야 할 것이나 여기서는 군이나 권력기관의 요구, 혹은 전쟁말기 유흥업 통제의 결과로 군위안소 업자로 전업하고 있다는 결과만 확인되며, 그 예가 아래 두 사례임. - 팔렘방의 위안소 명월관을 경영하였던 송경호 등은 경주 노서리 에 주소를 둔 자로서 경주에서도 같은 이름의 요리점을 경영하였 던 자였음(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2009: 62-63). 조경옥은 광주의 유명한 요리점 춘목암 경영자였던 조성순의 아 들이었음(박선홍, 1994: 136-38: 일제강점하강제동원진상규명위 원회, 2009: 63-64). 특히 춘목암은 광주에서 가장 유명한 요리점 이어서 이곳에는 도지사나 서울, 일본 등지에서 오는 유명 인사 들을 접대하곤 하였음(박선홍, 1994: 136-38). 이 춘목암의 주인이 었던 조성순의 아들인 조경옥이 팔렘방에서 위안소를 경영하였 다는 사실은 유흥업 통제로 인한 풍선효과와 같은 것으로(박선홍, 2014: 117), 일제는 이를 적극적으로 지시하고 이용하였던 것임. [자료 Ⅲ-4]와 같이 1942년 조선군사령부가 현지군의 요청을 받아 경성에 있던 요리업자들을 군위안소 업자로 동원하였던 것( 女 性 のためのアジア 平 和 国 民 基 金, 1997e: 151; 連 合 軍 翻 訳 通 訳 部 局 (ATIS), 1945)은 이러한 배경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음. 일본군 청부업자 등의 역할 일본군 청부업자는 전쟁터에 배치되어 있던 일본군의 요구를 청부 받아 이를 수행하는 자임. 육군형법 제14조는 육군군속이라고 칭 조선에서의 일본군 위안부 동원: 소개업자 접객업자 일본군 청부업자 등의 역할 11

하는 것은 육군문관, 동대우자 및 선서하여 육군에 근무하는 자 로 규정하였고, 해군도 거의 유사( 秦 郁 彦, 1999: 358)하였음. 하타 이쿠히코( 秦 郁 彦 )에 의하면 각의결정(1940.5.7.)에 기초한 <외사경찰집행요람>에는 종군승, 종군신관, 종군기자, 종군화가인 종군자로서 육해군성이 발급한 중군면허증을 소지한 자 와 본방에서 부녀(예기, 작부, 여급 등) 고입을 위해 일시 귀국한 재지접객영업 자에 대해 주어진 재지제국영사관경찰서 발급의 증명서에 고입원 수를 명기한 경우 그 수의 원수에 상당하는 피고용부녀 에 대한 취 급은 명확히 구별하고, 특수부녀 는 군속, 군고용인이 아닌 자 이 므로 도지( 渡 支 )할 때는 민간인으로서 취급하도록 정했음( 秦 郁 彦, 1999: 358). 이것은 군 위안부 는 군속이나 군고용인이 아님을 밝힌 것이면서 한편으로는 재지접객영업자는 군속, 군고용인일 수 있다는 것을 말 하고 있음. 이 책에서는 명시하고 있지 않지만 야전주보규정( 野 戰 酒 保 規 定 ) 에 의하면 야전주보에 위안시설을 둘 수 있었는데(1조), 주보경영에서 청부를 받은 주보청부인은 군속일 수 있다라고 한 바 있음(제6조)( 陸 軍 省 陸 達 第 48 号, 1937). 9) 군청부업자로 판단되는 사례는 다음과 같음. 중국 우한( 武 漢 ) 적경리의 위안소 업자 박경도가 조선으로 다시 와서 군 위안부 를 모집할 때 신분은 일본군속의 신분이었음( 長 沢 健 一, 1983: 223; 山 田 淸 吉, 1978: 116-18; 하종문, 2009: 140에서 재인용). 이것은 군위안소 업자이지만 군의 요구를 받는 일종의 군청부업자로 9) 야전주보규정( 野 戰 酒 保 規 定 ) 제1조에는 (전략) 야전주보에 전항 외 필요한 위안시설을 만들 수 있다. 제6조 야전주보의 경영은 자영으로 한다. 단 어쩔 수 없는 경우(일부 음식물 등의 판매를 제외하고)는 소관 장관의 인허를 받아 청부에 맡길 수 있다. 평시의 위수지( 衛 戍 地, 주: 육군 부대가 계속 주둔하며 경비하는 지역)에서 반행( 伴 行 )하는 주보 청부인은 군속으로 취급, 일정한 복장을 갖추게 하는 것으로 한다. 단 그 인원은 보병, 야포병 및 산포병 연대에 있어서는 3명 이내, 기타 부대에 있어서는 2명 이내로 한다. 원문 링크: http://fightforjustice.info/wp-content/uploads/ 2013/06/5-1-1-1 野 戦 酒 保 規 程 改 正 1937.9- 前 半.pdf (접속일 2015-10-10) 12 2015년 이슈페이퍼

취급하였기 때문에 군속의 신분이 된 것으로 여겨짐. 이것은 버마 지역에서 조선으로 와서 재차 여성들을 모집해 왔는데 이들 역시 이러한 신분으로 취급되었을 것으로 보임. 이러한 자들에 대해 군속 이라는 용어만 사용된 것은 아니었음. 군종속자( 軍 從 屬 者 ニ 對 スル 旅 行 許 可 ノ 件, 1943.2.8)이라는 용어 역시 군속에 버금가는 용어로 군위안소 관련자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음( 女 性 のための アジア 平 和 國 民 基 金, 1997a: 167-170; 하종문, 2009: 138). 또 하나 군청부업자로 판단되는 사례는 아래 신문광고를 낸 허씨임. 아시아태평양전쟁시기에 조선인 군 위안부 동원과 관련해서 주목할 것 중의 하나가 신문광고이며 10), 아래는 당시 광고문 내용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임. ( 軍 ) 慰 安 婦 急 募 -. 行 先 00 部 隊 慰 安 所 -. 應 募 資 格 年 齡 18 이상 30 이내 身 體 강건한 자 -. 募 集 期 日 10월 27일부터 11월 8일까지 -. 出 發 日 11월 10일경 -. 契 約 및 待 遇 本 人 面 談 한 후 卽 時 決 定 함 -. 募 集 人 員 數 十 名 希 望 者 左 記 場 所 에서 지급문의할 사 京 城 府 鐘 路 區 樂 園 町 195 朝 鮮 旅 館 內 光 3(?) 2645 ( 許 氏 ) 자료: 每 日 新 報 (1944.10.27. 1면 및 1944.11.1. 2면). 신문광고. [자료 3] 매일신보 신문광고 10) 싱가포르에서도 1942년 신문에 위안부 모집의 광고가 있었다( 林 博 史, 2000). 東 南 アジアの 日 本 軍 慰 安 所. http://www32.ocn.ne.jp/~modernh/ paper22.htm (접속일 2015.10.20.) 일본에서는 이러한 내용의 광고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조선에서의 일본군 위안부 동원: 소개업자 접객업자 일본군 청부업자 등의 역할 13

- 1944년의 사회 분위기를 잘 알지 못하는 경우, 당시 여성들이 신문에 난 군 위안부 광고를 보고 자발적으로 모집에 응하였겠지 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이때는 군에 대해서 어떠한 이야기도 기사로 삼든 군의 검열을 거치지 않으면 안되었음. 기사가 철저 하게 점검되고 통제되었던 시절에 부대명은 명기하지 않았다고 해도 부대, 대 위안부 모집 광고가 버젓이 가능한 것은 일본군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음(강정숙, 2010: 109-110). 1939년 일본과 조선을 오가며 일본과 조선 각지의 부녀자를 유괴하 여 팔아먹었다고 검거된 바 있는 이동제는 중국 한구( 漢 口 )에서 군 위안소를 경영하였음. 한구시( 漢 口 ) 삼인로( 三 人 路 )에서 위안소 경 영자 이동제( 李 東 済, 37)는 평양지방법원 검사국에서 부녀유괴 혐 의로 구인장을 발급당하였는데 상해( 上 海 )에서 나가사키( 長 崎 )로 입항한 연락선 상해환( 上 海 丸 )에서 나가사키( 長 崎 )로 상륙하려는 때 나가사키( 長 崎 ) 수상서원이 검거하여 강서원에게 인도되었음. 그는 일본을 비롯하여 조선 각지에서 부녀자 수십명을 대륙으로 유괴, 팔아치워온 부녀유괴 상습자였음. 11) - 이자 역시 신문에서는 이렇게 보도되어도 과연 처벌이 되었는지 는 알 수 없음. 일제 당국이 군의 요구에 응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불법행위라도 눈감아주었던 시기인데 이동제는 한구( 漢 口 )에서 위안소를 하고 있는 자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함.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파인명사전에는 위안소 업자들의 명단이 다수 수록되어 있음. 위안소 업자들의 전직도 기록되어 있는데 그 중 여관업이나 인사소개소업과 같은 유관 업종이 아닌 자가 위안소 경영자가 된 사례도 있음. - 임두욱은 발동기 선수부장으로 1933년 대만으로 건너왔는데 1942년 남방군의 요청으로 약 50명의 여성을 데리고 보르네오로 갔음(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2009). 이때는 이미 군위안소 관계 11) 大 阪 每 日 新 聞 ( 西 部 版, 長 崎 )(1939.8.24.). 婦 女 誘 拐 の 常 習 半 島 人, 長 水 署 に 捕 る. 5면. 14 2015년 이슈페이퍼

자로 되어 보르네오에서 군위안소 업자로 되었던 것으로 보임. 당시 군위안소 업자가 되어지는 데는, 전체 군위안소 업자가 그러 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 초기 일본군의 요구에 부응하는 데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상당한 부를 축적하는 경우도 있어 이러한 업종과 관련 없는 자들도 참여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임. 3 정책적 함의 여기서는 일본에서 발간한 자료집, 신문광고, 조선총독부의 재판자 료, 국내 신문자료, 일본 신문자료 등을 활용하여 조선에서의 일본 군 위안부 동원, 구체적으로 소개업자 접객업자 일본군 청부업자 나 군위안소 업자의 역할을 분석하였음. 일제시기 공권력이 인신매매업자나 인사소개업자 등에 대해서 단 속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수백 건의 여성에 대한 영리유괴, 사기, 국외이송 등에 관한 자료 중에 군 위안부 로 동원 시 기본적 으로 적용될 국외이송죄에 해당하는 재판자료는 1938년부터 1945 년까지 단 10건뿐이었음. 그 중 단 한건만이 군위안소라는 단어가 확인되었는데 1944년 국외이송 미수사건으로 하산정웅과 청수종복 에 대한 예심판결건(재판관련 서류 철번호 CJA0000687)이 그것임. 그리고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공개한 앞에서 다룬 신순임의 건([자료 2])이 있음. 일제시기 전제 자료가 국가기록원에 소장되어 있지 않 을 수 있다라고 해도 단 두 건에 불과한 것은 다른 범죄행위와 비교 하여 지나치게 적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음. 이것은 인신매매범 소개업자 등의 불법이 권력기관과 연결되어 있 고 이에 따라 권력기관이 비호되었던 결과였다고 볼 수 있음. 범법 행위를 저질렀는데도 구속시키지 않고 그 일을 계속 할 수 있게 둔 사례들이 발견되고 있음. 예를 들어 앞에서 다룬 1939년 조선사회 조선에서의 일본군 위안부 동원: 소개업자 접객업자 일본군 청부업자 등의 역할 15

를 떠들썩하게 한 하윤명이 그것이고 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증언 하는 업자들도 바로 이러한 사례를 말해 주고 있음. 이러한 점을 통해 보면 조선에서 인신매매업자나 소개업자 등에 대 한 단속이 소홀하여 불처벌한 것보다 일제와 공모관계에 있어 불처 벌이 되었던 것이 사회에 더 악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음. 이에 반해 처벌 대상이 되었던 자들은 일본공권력과의 관계없이 단순 개 인 범죄를 저지른 자로서 일제의 불법행위에 대한 면죄부용으로 제 시되고 있었던 것임. 일제가 유언비어죄 등으로 처벌한 사례들을 보면 단순 유언비어에 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일제의 정책에 반하는 경우의 언론통제로서 법이 실행되고 있었음. 이러한 여러 가지 측면을 통해 군 위안부 동원과정에서 일제 권력기관이 다층적으로 개입하고 조선인 군 위 안부 동원을 주도하였고 할 수 있음. 위에 언급한 재판자료는 과거 일본군 위안부 연구에서는 부분적으 로 활용하거나 잘 사용하지 않았음. 이번 연구에서 전수조사에 이 르지는 못하였으나 광범위한 사료 섭렵을 하였다는 점은 향후 연구 를 위해 매우 중요한 성과라고 볼 수 있음. 동원업자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는 일제시기 군 위안부 및 성매매 영역으로 여성들이 어떻게 군 위안부 제 혹은 공창제로 편입되었는 가를 보여주는데 매우 중요한 열쇠 중의 하나임. 이를 위해서는 이 제 발굴하여 부분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재판관련자료 등과 같은 자 료를 향후 과제에서 좀더 다양하게 발굴하고 치밀하게 분석해 나갈 필요가 있음. 16 2015년 이슈페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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