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려 l를 통한 전통여 술분0 암 l 영재개념 및 선딛프뻐 l 관한 기초연구 연구책임자:권도희 \ \ \1111\1\11 \1 11 \ 1111 \1 \ \111\1 본 연구의 내용은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교육정책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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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발간등록번호 A냄 를 통한 전통예술분야의 영재개념 및 선블뻐 관한기초연구 연구책임자 권 도희 뽑 빼 +X 띠 찌 빼 템 과 뼈 부 J<RiGA 顯 겠;뚫었셨,앞f웠 聽 n월 뼈

2 A~려 l를 통한 전통여 술분0 암 l 영재개념 및 선딛프뻐 l 관한 기초연구 연구책임자:권도희 \ \ \1111\1\11 \1 11 \ 1111 \1 \ \111\1 본 연구의 내용은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교육정책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었습니다.

3 제출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귀하 본 연구물을 <사례를 통한 전통예술분야의 영재개념 및 선발에 관한 기초 연구>의 최종보고서로 제출합니다. 2008년 12월 한국예술영재교육연구원

4 연구진 연구책임자 권도희(한국예술영재교육연구원, 책임연구원) 공동연구원 정수년(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이진원(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보조연구원 김현정(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김유석(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문봉석(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박춘하(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엄정미(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김효정(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한국예술영재교육연구원

5 총목차 연구개요 I. 연구 목적과 내용 전통공연예술분야에서 영재 에 대한 문제제기.. 2. 현재 사용되는 선발 방법의 검토... 5 II. 연구방법 전문가적 판단의 객 관화 사례 연구... 9 III. 연구진 행 N. 결 론 전통공연 예술에 서 영 재 교육 전통공연예술에서 영재 개념 및 선발 관련 지표 전통공연 예 술에 서 영 재 저11 부 명인 문헌 사례 연구 I. 명 인 문헌 사례 분석 머 리 말 기관을 통한 전공공연예술인 교육 명 인 문헌 사례 통계 조사 특정 사례 검 토 맺음말 II. 명 인 문헌 자료 정 리... 껴 1. 판소리 산조 탕축... 92

6 4. 삼현육각, 시 나위 풍물 무용 잡가 및 민요 궁중음악 및 풍류 무속 및 기 타 제 2 부 명인 대담 연구 1. 명 인 대 담 사례 연구 분석 방법 개 별 사례 분석 II. 명 인 대 담 자료 음악부문 ) 기 악부문 강정 숙 김 영 재 서 용석 이 생 강 정 재 국 지 순자 최 경 만 ) 성 악부문 박송희 성 우향 안숙선 정 회 석 무용무문 강선 영 이홍구

7 효목차 표 1> 명 인 문헌 사례 연구의 대상 표 2> 당대 명 인 대담 연구의 대상 표 3> 대담 질문지 작성의 계획 표 4> 제보자별 선발의 지 표 추출 표 5> 명인 문헌 사례 분석과 통계를 위한 항목 설정표 표 6> 제 1 기 생 시 간표 및 학과 과정 (1 920년 제 정 ) 표 7> 제 171 생 학과배정(1 920년 제정 ν 표 8> 아악생 증가학과수업 총시수 일 람표 표 9> 국악영 재들의 분야별 첫 학습시 기 와 교과내용 표 10> 1918년 당시 권번소속 예기 연령표 표 11> 강정 숙 분석 표 표 12> 김 영 재 분석 표 표 13> 서 용석 분석 표 표 14> 이 생강 분석표 표 15> 정 재국 분석 표 표 16> 지 순자 분석 표 표 17> 최 경 만 분석 표 표 18> 박송희 분석표 표 19> 성 우향 분석 표 표 20> 안숙선 분석표 표 21> 정 회 석 분석 표 표 22> 강선 영 분석 표

8 그럼목차 그림 1> 렌줄리의 영재 개념과 영재 활동 영역... 3 그림 2> 전통공연예술 분야에서 예술영재 교육 평면 그럼 3> 전통공연예술 분야에서 예술영재 교육 입체 그림 4> 궁중 풍류-출생지 분류에 따른 통계 그럼 5> 궁중 풍류-학습시 작 시 기 에 따른 통겨,] 그럼 6> 궁중 풍류-사사기 간에 따른 통계 그림 7> 궁중 풍류-스승 수에 따른 통계 스승 수에 따른 통계 그림 8> 궁중 풍류-부모 및 친인척의 영향에 따른 통계 그림 9> 판소리-출생지 분류에 따른 통계 그림 10> 판소리 -학습시 작 시 기 에 따른 통계 그림 11> 판소리-사사기간에 따른 통계 그림 12> 판소리 -스승 수에 따른 통계 그림 13> 판소리-학습내용에 따른 통계 그림 14> 판소리-부모 및 친인척의 영향에 따른 통계 그림 15> 산조-출생지 분류에 따른 통계 그림 16> 산조-학습시 작 시 기 에 따른 통계 그림 17> 산조-사사기 간에 따른 통계 그림 18> 산조-스승 수에 따른 통계 그림 19> 산조-학습내용에 따른 통계 그림 20> 산조-명인 1 인이 학습한 기악의 수 그림 21> 및 친인척 의 영 향에 따른 통계 그럼 22> 삼현육각 및 시나위-출생지 분류에 따른 통계 그림 23> 삼현육각 및 시 나위-학습시 작 시 기 에 따른 통계 그림 24> 삼현육각 빛 시나위-사사기간에 따른 통계 그림 25> 삼현육각 및 시 나위 -스승 수에 따른 통계 그림 26> 삼현육각 및 시나위-학습내용에 따른 통계 그럼 27> 삼현육각 및 시나위-부모 및 친인척의 영향에 따른 통계 그림 28> 잡가와 민요-출생지 분류에 따른 통계 IV -

9 그림 29> 잡가와 민요-학습시 작 시 기 에 따른 통계 그림 30> 잡가와 민요-사사기 간에 따른 통계 그럼 31> 잡가와 민요-스승 수에 따른 통계 그럼 32> 잡가와 민요-학습내용에 따른 통계 그럼 33> 잡가와 민요-부모 및 친인척의 영향에 따른 통계 그림 34> 무용-출생지 분류에 따른 통계 그림 35> 무용-학습시 작 시 기 에 따른 통계 그림 36> 무용-사사기 간에 따른 통계 그림 37> 무용-학습내용에 따른 통계 그럼 38> 무용-스승 수에 따른 통계 그럼 39> 무용-부모 및 친 인 척 의 영 향에 따른 통계 그림 40> 풍물-출생지 분류에 따른 통계 그럼 41> 풍물-학습시작 시기에 따른 통계 그림 42> 풍물-사사기 간에 따른 통계 그림 43> 풍물-스승 수에 따른 통계 그림 44> 풍물-학습내용에 따른 통계 그림 45> 풍물-부모 및 친인척의 영향에 따른 통계 그림 46> 무속 외 -출생 지 분류에 따른 통계 그림 47> 무속 외 -학습시 작 시 기 에 따른 통계 그림 48> 무속 외 -사사기 간에 따른 통계 그림 49> 무속 외 -스승 수에 따른 통계 그림 50> 외 -학습내용에 따른 통계 그림 51> 무속 외-부모 및 친인척의 영향에 따른 통계 그림 52> 탈춤-출생지 분류에 따른 통계 그림 53> 탈춤-학습시 작 시 기 에 따른 통계 그림 54> 탈춤-사사기 간에 따른 통계 그림 55> 탈춤-스승 수에 따른 통계 그림 56> 탈춤-부모 및 친인척의 영향에 따른 통계 v -

10 연구개요 1. 연구 목적과 내용 예술 영재 교육의 현장에서 가장 먼저 대변하게 되는 문제는 영재의 선발 제이다. 최근 2-3년 사이 개인 연구자 및 한국예술영재교육연구원 등에서 영재 선발에 대한 연구와 제안을 낸 바 있었다. 이 연구 역시 이와 연속성 상에 있지 만, 연구 대상을 전통예술 분야로 한정한다. 그 이유는 전통예술의 경우, 현재까 지 영재에 관한 충분한 연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연구가 필요 하고, 여타 예술영재교육의 결과를 단선적으로 적용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 서 본 보고서는 전통예술영재에 관한 기초 연구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본 연구는 전통예술 교육에 천착하고 여타 예술 여재 분야의 연구 성과를 참고하면서 진행 되었다. 전통예술이라는 범주 속에는 음악, 무용, 연희, 회화, 조각, 공예, 건축 등과 많 은 세부 종목이 포함된다. 본 연구에서는 이 중에서 회화, 조각, 공예, 건축 등과 같은 시각예술 분야는 제외하고 음악, 무용, 연희와 같이 공연예술분야에 한정하 여 연구를 진행하도록 할 것이다. 1. 전통공연예술분야에서 영재 에 대한 문제제기 전통예술분야에서 영재 라는 말은 예술교육의 관례 속에서 쉽게 등장하는 단 어는 아니다. 그 이유는 현재 교육계에 등장하는 영재라는 용어는 전통적인 교육 에서 제기될 수 없는 것이었다. 현재 사용되는 영재라는 개념은 18세기 유럽에서 적극적으로 개진되었던 천재의 개념과 일정 부분 연장선 상에 있다.1) 그러나 천 재라는 개념은 그러한 현상에 대해 일관성 있는 설명과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점 에서 한계를 갖는다. 또 19세기 말 이후 20세기 벽두이후로 서구의 학자틀은 지 능측정, 음악 인지 능력측정 등과 같이 과학적 연구를 통해 영재를 예측하고 객 관화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이러한 태도는 현재 한국 사회에 제기된 영재의 개념 속에 응축되어있다. 여기서 주목되는 점은 최근 한국 사회에 등장한 영재라는 개 념은 적어도 근대이후 서양문화사 속에서 제기된 문제라는 점이다. 서양 문화사 의 전개에 있어서 회화 조각 건축 등은 기술 혹은 기교(테크네)의 차원에서 벗 1) 한국예술영재교육연구원예술영재교육발전방안연구 J 2이:6. 2, 쪽.

11 어나지 못하다가 르네상스 이후로 이것들은 단순한 기교나 손재주을 넘어서 가 치와 관련되어 있음이 인정되기 시작하였다, 17, 18세기 이후로 시, 회화, 조각, 건축, 음악 등의 5갈래가 다른 사회활동과 구별되는 이른바 진지한 예술 [fine arts, arts]로의 인정되었다. 서양의 근대 시기를 거치면서 진지한 예술이라는 합 의는 보다 정교하고 확고해졌고, 진지한 예술의 갖추어야할 자질들도 거론되었 다. 진지한 예술의 전제가 된 것은 정교한 기술을 중시하는 전통, 그리고 예술이 가치와 관련을 갖는다는 점에서 이성이나 오성과 별도로 대상의 본질을 통찰하 는 미적 판단력 등이다. 또, 예술의 개념이 만들어진 것과 별도로 서양 예술사에 서는 근대 무렵 예술 활동의 결과물을 작품 (a piece of work) 이라는 개념으로 구 별하게 되었다. 예술의 본질과 예술 작품 간의 관계 속에서 영감, 천재, 상상력 등과 같은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런데 예술작품이라는 개념이 자리를 잡는 과정 에서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생산물과 소비의 대상으로서의 예술작품이 주목되었 다. 이 때 예술작품의 상품성과 관련해서도 독창성, 창조성 등이 거론되었다. 이 러한 점들은 현재까지 예술과 예술작품에 대해 논의할 때 거론되고 있는 것들이 다. 따라서 이와 다른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는 한국전통예술의 경우 위 와 같은 문화적 배경과 연관되어 있는 영재 개념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가 문 제가 될 수 있다. 1970년대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영재교육이 시작되면서 영재의 문제는 예술이 나 수학, 과학 등 분과별 관섬의 영역을 넘어서 사회 제도적 관심을 환기시켰 다. 미국은 유럽 문화사의 전개와 별도로 미국이라는 특수한 문화적 상황에 기여 할 수 있는 인재 양성의 한 방향으로 영재를 주목했다. 그 결과 미국은 상당한 연구 성과를 보고하고 있다. 이러한 정황 때문에 현재 한국 사회에서 예술영재와 관련되어 가장 많이 참고하고 있는 사례가 미국의 연구 논문과 보고서들이다. 영재 (gifted) 개념의 한정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다양한 이견이 있었고, 지속적 으로 새로운 연구성과가 제시되고 있다, 2) 영재에 대한 다양한 제안에도 불구하고 대략적으로 입안하고 있는 것은 조셉 렌줄리의 세 고리의 관계도에 준한 것들이 다. 세고리 관계도는 영재성 (giftness)을 환기하고 이들에 대한 사회적 대안을 촉 구하기 위한 일차적 개념도로 인정된다. 렌줄리는 거시적 차원에서 영재를 규정 하고 그들의 일반 사회 현장에서의 공헌 범주를 적시하였다. 렌줄리의 세 고리 관계도란 영재의 자질과 관련된 세 개의 범주를 세 개의 고리로 개념화 시킨 것 이다. 이에 의하면 영재의 세 가지 자질은 평균이상의 능력 (Above A verage Ability), 과제 집 착력 (Task Commitment), 창조성 (Creativity) 이 다. 이 것 이 고루 갖 2) 에이브라함 j, 탄넨바움, 김태련, 김정휘, 조석희 역 영재교육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2004, 쪽; 한국예술영재교육연구원예술영재교육대상자 선발모형개발연구(1).1 서울: 한국 예술종합학교, 21αXJ.1 2, [ /

12 춰져야 영재라고 할 수 있다. 각각은 독자적으로도 작몽하지만 상호적으로 작용 하기도 한다. 그런데 렌줄리는 이러한 개념 설명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영재가 사회에서 공헌한다는 점을 선명하게 밝힘으로써 영재에 대한 실제적 관심을 촉 발기시켰다. 유럽과 다른 역사와 전통을 가졌던 미국의 경우, 이른바 프래그머티 즘이 교육에서 발현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유럽의 교육과 다른 종류의 합리적 교육, 빠른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에 적극적이어야 했다. 다음은 렌줄리 의 개념도이다. <그림 1> 렌줄리의 영재 개념과 영재 활동 영역 I Mathematlcs I f'il l써op써y ßeligion Gel1eral Performançe Area vt$ua~ Arts Soclal Sc써C"" language A1 s μf& ScÏ$ooes --"'-"'-"--"~'---'---'--"""-'-'-"""'~---"' _..._-_._------_.. _ _._-_..., " Phys:jcat $ciences Law Mus ; Movement Arts...._---_._...,_._.--- Specíflε Performance Areas Cartooning emograpby E~ tronh:; Mu$Ìc At.1ronomy M j.cf * gra pl1y Chi d Care Pub~ k: öpinjon?ol!lng C양 Þlannlng COf!sumerP엉 acuon TI l1s;;",?,fn;잉hdtj!dι~<i d 딩3 Dr~.!ff.>' ι Pea i Uf ~oo ",' }ewelryo<l$ 90 Polωll<m Cornrol co 엉 og Mop iiiak 09 Poetry Oml hology Choreogr쩌.P빼 Y Faatdon Oesìgn Fμrnfture De~í9n Biography W.avlng κav g.ltlon Fl!mMaklng Pl,vw,rung Genea gy $_11"" ÄdV6f j 영ng SçυIpture ι 0011에 s!ory Cos:tl.lme Oe$ign WikU!t-e. Manageme * E~여ronies MOI$Oro!ogγ s. Dèsìgn 뼈Jsica COffipt)SIUOft F ppotry Ägticuhural LandSC3pe MarkètJr 9 Research Arehite(;tuw Game DesigJl Anì f!.1 ιearning Ch<>m $1'1' J.lm3l "'" 191, Cr tltjsm e ι etc..w. rigure δ 1 Cr p?: ι R,γ)!(ι,ν ', A! ν1 qf th <2.1 hr~~e-ring Dt-rln'llkm m Ci( ( ( i! t:' S~. 이상의 그림은 영재의 개념을 정리하며, 그러한 영재가 구체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사회의 각 부문들을 보여줌으로써 영재가 개인의 계발 차원을 넘어선 사회 적 차원의 문제임을 보여주고 있다. 즉, 위의 표는 영재는 일반적인 범주에서 영 재의 활약은 물론이고 특별한 범주에서도 기여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점 에서 영재는 사회자본으로 인정된다.3) 이러한 연구는 영재가 사회에서도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제안을 하는데 매우 효과적이었고,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도 이러 3) Renzulli, Joseph S. Conception of Giftedness and Its Relationship to the Deve10pment of Social Capital. Nicholaus Colagelo, Gary A. Davis,(eds.) Gijted Education, pp (3rd ed.l Boston: Pearson Eduation, n J

13 한 제안이 받아들여지고 있다.4) 그러나 위의 개념도에서는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한다. 실제로 이후로 많은 후속 연구가 진행되었다. 예컨대 영재개념의 세밀화, 영재과 관련된 사회적 제도, 선발연구, 교육과정연구 등등.5) 즉, 영재의 개념과 별도로 영재가 기여하는 방식과 성장하는 방식은 별개의 문제며, 본질적으로 그 찾아내는 방법은 영재의 개념과 연계되어 있지만 각각의 절차는 별도의 연 구 영역을 설정한다. 예술의 개념의 전제가 된 문화적, 역사적 배경은 상호적으로 긴밀하며, 또한 영재라는 개념을 끌어낸 문화적, 역사적 배경도 상호적으로 긴밀하다. 이는 역으 로 전통예술을 배태한 문화사적 조건과 영재라는 용어의 모태가 된 사회 문화적 배경이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게 한다. 최근 한국 사회에 등장한 예술영재라는 개 념은 적어도 근대이후 서양에서 제기된 개념과 연장선 상에 있고 나아가 미국이라 는 배경 속에서 구체화되었다. 결과적으로 전통예술을 배태한 문화사적 조건과 영 재라는 용어의 모태가 된 문화사적 배경이 다르다는 점은 전통예술에서의 영재 개념을 사실상 의심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 개념이 최근 한국사회에 등장했고, 유 럽과 문화적 배경이 다른 지역에서 성과를 보였다는 점에서 전통예술 분야의 영재 연구의 시작점으로 검토해볼 만한 여지가 있다. 나아가 이려한 연구의 출발이 적 절하다면, 전통분야의 영재 연구는 해당 분야의 교육에는 물론이고 우리사회 내에 서 영재 개념을 수용하는데 있어서 근본적인 반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문화와 역사 속에서 도출된 정리된 영재 개념은 없다. 또한 근대 이 전까 지 유럽의 예술과는 거리가 먼 예술 을 향유했다. 그런데 한국예술사에서 전통예 술이 근대 사회에 배치되는 과정 속에서 전통의 근대화 과정이 이루어졌고,6) 또한 전통예술이 근대화된 교육 속에 수렴되고 있다는 점은 서구의 영재의 개념과 전통 적인 예술과 결부시킬 때 서로의 소통의 여지를 갖게 된다. 전통예술이 한국근대 교육사에 수렴된 이상 세계보편사적 전개 속에 등장할 수 있는 영재의 등장은 분히 가능하다. 이는 이론적 차원에서 비전통적 영재의 개념, 예술영재 개념 역시 일부 수용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전통예술 분야의 학습은 현재까지 근대교육의 맥락을 넘어서 관례의 차원에서 진행되기도 했다. 따라서 관계적 교육과 근대적 교육이 양립할 수 있는지에 대해 확인이 필요하다. 전통예술의 경우 오랜 기간을 걸쳐 학습의 전통을 가지고 있고, 이 과정에서 일정한 합의된 방식이 있음이 발견된다. 또한 보다 본질적으로 전통 4) 한국예술영재교육연구원예술영재교육발전방안연구 서울 한국예술영재교육연구원, 2<XXì.2, 37-46쪽 5) 한국예술영재교육연구원예술영재교육발전방안연구 서울. 한국예술영재교육연구원, 2<XXì.2; 한 국예술영재교육연구원예술영재교육과정연구 서울: 한국예술영재교육연구원, 2αXJ.1 2 등등에서 는 다양한 영재관련 연구를 요약하고 있다. 6) 권도희한국끈대음악사회사 서울: 민속원, A 약

14 예술 자체가 유럽의 예술의 경우와 다르기 때문에, 예술 자체의 동력으로부터 가 능한 학습의 체계를 발견하는 것도 필요하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가능 성을 염두에 두고 시작되었다. 한국예술사에서 전통예술이 근대 사회에 재배치되는 과정 속에서 예술교육 역 시 근대화된 교육과정 속에 수렴되고 있다. 전통예술계의 과제 중 하나가 근대 사회의 기제의 활용이라고 한다면, 비전통적 개념인 영재의 개념도 수용될 수 있 다. 이 점에서 전통예술의 경우 영재라는 개념은 전통인 방식으로 이해되어야 함 과 동시에 근대 제도권 교육에서 제시하는 이념으로도 해석가능하다. 이에 본 연 구에서는 전통예술분야의 특수한 상황에 근거한 예술영재 문제를 검토하였다. 다 만, 본 연구에서는 선행연구의 일천함 때문에 영재 개념과 선발에 대한 기초 연 구를 진행하였다. 2. 현재 사용되는 선발 방법의 검토 현재 예술영재 선발에는 다양한 절차가 요구된다. 이 중 1) 표준화된 검사 도 구에 의한 평가 2) 수업 관찰 평가를 통한 평가 3) 다양한 추천서 4) 실기 성취 도 시험 5) 기초(적성)검사 등이 영재 선발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1) 표준화된 검사 도구에 의한 검사는 영재 일반에 대한 표준화된 검사도구와 예술 분야에 대한 검사도구 등 다양하다.7) 표준화된 검사도구는 개인에 의해 이 루어지는 총체적이고 경험적인 판단과는 달리 판단의 근거들을 확인하고 검증할 수 있도한 것이다. 표준화된 검사도구는 다수의 대상에 대한 검사의 신속함과 일 관성을 보장하기 때문에 개인의 판단에 비해 객관적이라는 말이 가능하다. 화된 판별도구는 많은 사람을 빠르게 검사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영재교 육과 관련하여 더 많은 사람에게 기회틀 제공할 수 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기존의 것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표준화의 과정까지 이르기까지 수 많은 일차 검 사 자료를 축적해야하므로, 그 비용과 시간이 적지 않게 든다는 난점이 있다. 2) 수업관찰평가에 의한 판별은 8) 전통예술분야에서나 기타 예술분야 혹은 수 학, 과학 영재분야 어는 부문에서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는 선발방법이다. 최근 예술분야에서는 캠프를 통해서 미술이나 서양음악 부문에 영재발굴을 진행한 바 있지만,9) 전통예술 분야의 영재 발꿀에서 있어서 이를 실행한 사례는 보고되지 7) 영재에 대한 표준화된 검사도구는 다양한 것이 있다. 한국예술영재교육연구원예숲영재교육대 상자 선발모형개발연구(l)~ 서울: 한국예술종합학교, 2αX:ì 쪽, 한국예술영재교육연구원예 술영재교육대상자 선발모형개발연구 OI)~ 서울. 한국예술종합학교 , 36-46쪽. 8) 한국예술영재교육연구원예술영재교육대상자 선발모형개발연구 OI)~ 서 웅 한국예술종합학교, R ]

15 않았다. 3) 다양한 추천서는 부모, 담임교사, 전공교사, 자기추천서, 학교장추천서 매우 다양하다. 추천서는 예술의 개별 분야마다 추천서를 요구한 기관의 교육 목 표에 따라 양식이 다르게 만들어질 수 있다. 따라서 선발 주체의 구체적인 목표 와 계획에 따라 양식이 만들어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전통예술의 경우 영재 선발의 다양한 주체들은 서로 다른 선발 목표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양식도 일 정할 수 없다. 그러나 현재 추천서는 선발에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4) 실기 성취도 시험은 실기시험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전문가의 종합적 통찰과 판단력이 중시되는 판별 방법이다. 이 방법은 선행 학습과 기예의 익숙한 정도에 대해 가장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전통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 했던 방법이다. 그러나 이 다. 방법만으로는 영재 발굴의 기회를 보다 확대할 수 없 5) 기초적성검사는 개별 예술영역의 교육 목표에 따라 영재 선발의 여러 을 동시에 검토하려는 것이다. 2009년 2월 한국예술영재교육원-전통예술부문의 영재 선발에서 적성검사 라는 이름으로 음과 장단에 대한 감각과 감수성 및 창 의력에 대한 검사를 하도록 했다. 적성검사는 표준화된 검사와 달리 해당 기관의 교육 목표에 합당하도록 만들어질 수 있다. 이외에 객관적 검사도구라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객관화된 검사도구란 일정 부분 표준화된 검사도구 와 그 검사의 목표를 공유한다. 다만, 표준화된 검사도 구란 교육활동과 결부하여 교육적 제안과 검증 그리고 이러한 전 과정에 대한 평가가 완료된 것으로 한정된다. 그렇지 못한 경우 즉 표준화되지 않은 단계까지 전개된 경우를 객관화된 검사도구로 지칭할 수 있다. 왜냐하면, 타당도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표준화된 검사도구라는 말은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전통예술분야 가운데 표준화된 검사도구로 거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전 통예술분야 가운데 공연부문은 음악, 무용, 연희로 세분되어 있다. 각각은 공연예 술이라는 기초 자질을 갖고 있고 이에 대한 서로 간의 공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 범주를 포괄하는 검사도구가 제안된 바 없다. 단, 음악의 경우는 상황이 좀 다 르다. 음악 분야의 경우는 기존의 표준화된 도구를 응용하여 객관화된 검사를 시 도한 바 있기 때문이다. 전통음악 분야에서 객관적 검사 도구란 예컨대 고든 (Edwin. E. Gordon) 테스트 같은 것이다. 고든 테스트는 초급, 중급, 고급으로 나누어 음악에 대한 기초 검사를 하는 것이다. 각 단계 별로 난이도, 문항에 대한 응답의 방 9) 이미경, f2뼈 예술영재발굴캠프 서울: 한국예술교육연구원, 뼈

16 식에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리듬감과 음구조를 양축으로 하여 피시험자의 음악 적성을 검사한다. 그런데 고든테스트는 리듬감처럼 음악의 보편적인 자질을 묻는 경 우도 있지만, 음구조에 대한 인식을 질문 항목에서는 본질적으로 서양의 음악의 음구 인지의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한국전통음악에 대한 검사로서 한계를 갖는다. 이 에 대한 대안이 한국전통음악에 대한 객관적 검사이다. 한국전통음악에 대한 객관적 검사는 현경실과 원영실 10) 에 의해 제안되었다. 현경실 과 원영실의 경우, 검사 과정에 대한 검증이 가능하며 평가자 간의 의견차를 좁힐 수 있고, 빠른 시간 안에 다수에 대한 검사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현경설과 원영실이 제안한 객관화된 검사도구는 전통 음악 분야에 있어서 평가의 객관화에 대 한 강한 문제제기로 의미가 있고, 다수의 학생들에게 선발의 기회를 줄 수 있다. 그 러나 양자의 문항은 학습 성취도에 대한 평가이거나 음악을 하기 위한 기초적인 인 지능력에 대한 평가이기 때문에 영재의 판별도구로 사용하기에는 추가적 절차가 필 요하다. 예를들면, 영재판별의 도구로서 꼭 필요한 요소들이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청취시험 문항에서는 인지적 특성 (cognitive characteristics)을 검토할 수 있도록 하 였으나, 정의적 특성 (affective characteristics)을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 즉, 검사도구 의 개별 문항 가운데 창의성과 과제집착력 등과 같은 요소들을 배정하지 못했다. 또 한국전통음악에 대한 적성검사는 전문가의 손에서 합리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 서 한정된 부분이기는 하지만 전통음악의 주요 특성을 잘 포착하여 개별 문항으로 구현함으로써 영재판별을 가능하게 하며, 영재판별의 맥락을 넘어서도 전문가와 비전 문가를 구별하는데 있어서 설득적이고 논리적이다. 그러나 전통음악의 다양한 변수를 모두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나아가 이것들의 검사도구로서 타당도 (va1idity) 검증 은 부분적으로 이루어졌다. 즉, 국악전문가의 검사도구는 예언타당도 (Predictive Va1idity), 공인타당도(Concurrent Va1idity ), 구인타당도 (Construct Va1idity), 내용타 당도 (Content v a1idiη) 중 어느 하나의 타당도를 인정받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 이 방변에 대한 선행연구가 없었던 것에 기인한다. 현재 우리 나라의 영재 선발에는 다양한 절차를 활용하고 있고, 각 절차는 다 양한 방법으로 구체화되고 있다.11) 수학과 과학 영재의 경우는 선발의 절차에 따 른 수정보완책이 논의되고 있는데 비해 예술분야에 있어서는 기초 연구가 진행 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다수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선발에 활용할 수 있는 10) 현경실, 한국음악적성검사 (KMAT)의 공인타당도 연구" r 이화음악논집~ (2004) 243-쟁4쪽 r한국 음악적성검사 서울: 학지사, 때4; 원영실, 국악영재판별의 문제점 및 개선방향" r음악과 문화 제 19호, , 원영실, 적성검사 CD, 2c뼈 11) 김미숙, 영재는 누구이며 어떻게 선발하나?" r2008예술영재교육포럼 I~ 서울: 한국예술영재교육 연구원, 2α)8, 3-32쪽; 한수연, 예술영재교육원 학생 선발 방법과 커리률럼 구성에 대한 제안 충남학생회관 예술영재교육담임교사 워크숍자료집 천안. 충남학생회관 예술영재교육원, 2α)8. 34쪽의 표는 영재 선발의 필수 항목들을 정리하고 있다, - 7 -

17 객관적 선발 도구의 필요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검증과 평가에 있어서 장시간 이 걸리는 연구는 본 연구기간 (2 달) 내에는 성과를 제시할 수 없으므로 제외하였다. II. 연구방법 전통예술계에서는 재주 있는 학생을 발굴할 때 역사적으로 합의된 방식이 존 재한다. 예를 들면 과제를 내주고 얼만큼 성실성을 보이는지, 음을 들려주고 따 라 하게 해보든지, 장단을 쳐 주고 동작을 해보도록 하는 등 여러 각도에서 학생 의 개별적 차이를 평가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개별 교육자들에 의해 개인적으로 이루어졌다. 전통예술 영재 교육에 있어서 경험 있 는 개별 교육자의 판단과 교수방식은 그대로 존중되어야 함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와 별도로 그들의 교수 방식과 내용 그리고 통찰의 객관화 역시 근대 이후 전 개된 교육계의 과제가 아니라 할 수 없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사적 영역의 경험 을 공적 영역의 문제로 전환시키기 위해 기초연 진행하도록 할 것이다. 1. 전문가적 판단의 객관화 전통적인 영재 판별의 방식에 교육자의 개별적인 관점이 개입되기도 하지만, 전통예술의 교육 목표나 예술적 지향을 공유하는 한, 그리고 전통공연예술의 제 분야들이 공연 공간을 공유하는 한 평가의 관점들은 객관화될 수 었다. 이러한 필요는 현재기전통예술계의 교육자들이 공감하는 바이다. 그러나 공감과 별도로 전통예술분야의 평가의 관점들을 객관화하는 일은 별개의 일이다. 왜냐하면, 개 인에 의해 이루어졌던 평가 목표와 구체적인 대상 그리고 그 방법들은 다양하기 때문이다. 본 연구에서는 학습 현장에서 작동하는 전통예술 부분의 능력 판단의 준거들 가운데 영재 선발 부문에 대한 평가의 기준들이 무엇인지 주목하려한다. 영재 선발에 대한 전문가적 평가의 객관화는 영재개념에 대한 전통예술분야의 잠정적 합의나 동의를 전제로 검토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 전통예 야의 영재 개념은 선명하게 제시된 적이 없기 때문에, 그에 대한 합의나 동의 역 시 불가능하다. 이 점에서 전통예술 분야의 영재 개념은 사례를 통해 정리되어야 할 필요가 생긴다. 이하에서는 전통공연예술분야에서 관례적으로 재주 있는 학생 에 대한 판단을 어떻게 내리고 있는지에 대한 검토를 하도록 할 것이다. 최근 전통음악계에는 명인 이라고 불리는 예술가들이 있다. 명인은 예술적으 로 일가를 이룬 경우를 말하는데, 이들을 현재 영재라는 개념을 활용하여 재인식 n

18 해볼 여지가 있다. 또한 이들은 후진 양성에 오랜 경험을 갖고 있는 경우도 상당 하다. 이러한 경우 예술 학습 경험과 교육 경험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판단이 개 인 차원에서 수렴된다. 이제까지 명인들은 빠르고 정확하게 미래의 예술가로서 가능성 있는 학생을 선택해왔다. 그런데 이들의 통찰과 안목을 지나치게 존중한 나머지 그것을 객관화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심지어 노력의 낭비라고 까지 말하 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명인의 수는 극소수이며, 비록 명인이 사회 적 자산임에도 불구하고 일상 생활이라는 사적( 私 的 ) 맥락 속에서 배치되기 때문 에 그들에게 무한정 판별을 요구할 수 없다. 이 점 때문에 잠재적 능력자들은 명 언에 의한 평가의 기회를 충분히 가질 수 없음은 자명하다. 이에 명인의 경험 객관화하는 일은 명인의 개인적 평가와 별도로 필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연구는 거시적으로는 영재 개념에 대한 개별적 경혐의 객관화하는 차원에 서 진행되는 것이고, 미시적으로는 본 연구의 최종 목적인 선발 연구와 관련된 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명인의 사례를 통해 영재 판별에 있어서 경험적 판단 거들을 망라하고 이 중에서 일관성 있는 지점들을 발견하여 잠정적으로 영재 개 념을 정리하도록 할 것이다 12) 본 연구가 사례 연구를 통해 일관성이 확인되는데 까지만으로 한정하는 이유는 영재 선발의 문제는 사실상 영재 개념의 문제와 관 련될 뿐만 아니라 영재의 교육과정, 구체적인 교육기관의 교육 목표 나아가 해당 예술의 목표와도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예술영재 교육과 관련하여 다양한 절차들이 종합적으로 검토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영재 개념이 관철되지 못한 상태에서 영재선발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최근 시각예술분야에서 영재 선발은 교육과정과의 긴밀한 관 계가 속에서 이루어져야한다는 문제제기가 있었을 뿐이다 13) 본 연구는 이러한 연구사적 바탕 위에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사례에 천착하여 전 문가적 진술의 일관성을 찾아봄으로써 영재 개념과 선발의 지표를 정리하려 한다. 2. 사례연구 사례연구는 분석연구와 기초자료의 축적으로 나누어진다. 분석 연구는 선발의 1 차적 지표를 추출하고 이 지표가 추출되는 근거들을 밝히는 것으로 단락지을 것이다. 이 보고서 뒤에 첨부한 기초자료는 전통예술분야의 영재의 개념과 선발 에 한정되지 않는다 영재 개념과 선발이 교육과정과 예술관 나아가 예술사적 판 12) 대담연구가 진행된 적은 있지만, 전통분야는 제보자의 설정 및 질문지 작성 분석에 있어서 매 우 소략하다 한국예술영재교육연구원예술영재교육대상자 선발모형개발연구(l)~ 서울: 술종합학교, 2αX3.12, 373쪽. 13) 한수연 r예술영재 선발 모율 개발연구(I) J 서울: 한국예술영재교육연구원, 2008 한국예 q ]

19 단 등과 같은 다방면의 내용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례에 대한 분석적 연구의 구체적인 개요는 다음과 같다. 먼저 사례 조사 목 표는 첫째 현재 전통예술분야의 경우, 합의된 영재 개념이 없기 때문에 명인의 사례를 통해 영재 의 개념을 정리하는 것이고, 둘째 과거와 현재 전통예술분야 의 사례를 통해 영재 를 객관화할 수 있는 선발의 지표를 정리한다. 셋째 전통 공연예술 분야의 사례 조사를 통해 선발 및 관련된 1차 자료를 수집한다. 사례연 구의 세부 과제는 현재의 전통예술인 가운데 영재 로 볼 수 있는 대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문제를 검토한 것이다. 즉 주관적 판단기준에 일관성을 찾아 객관 화가 가능한가 그리고 이 때 기준이 되는 지표들은 무엇인가가 그것이다. 이를 위해서 본 연구에서는 세부 주제를 크게 둘로 나누었다. 첫 번째는 명인의 사례 문헌을 통해 연구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현재 명인들과의 대담을 분석하는 것이다. 명인사례의 문헌적 연구는 무형문화재보고서와 그에 준한 명인들이 증언 및 자료들을 검토하여 영재의 개념과 선발 지표, 그리고 교육과정 등을 분석하 는 것이다. 다음 <표 1> 과 같이 각 분야의 명인 566명에 대한 자료가 검토되었 다. <표 1> 명인 사례 문헌 연구의 대상 전문 분야 이름 전공 걷IIrT ;?r! 21 기악 삼현육각 및 시나위 43 음악 산조 94 판소리 성악 잡가와 민요 20 무용 74 ;i15c- 돋 ~ 91 연희 탈춤 73 기타(무속 및 범패) 27 계 566 (명) 한편, 당대명인의 현장 대담 연구는 현장조사 방법 중 대담 연구의 방법을 활 용하여, 자기 학습, 예술활동 경험, 교육경험, 사회활동을 경험 토대로 영재 개념 및 선발 지표들을 추출한다. 구체적 인 연구대상은 다음 <표 2> 와 같이 모 두 15명이다. n U

20 <표 2> 당대 명인 대담 연구의 대상 전문 분야 이름 전공 서용석 겸공(대금, 아쟁) 김영재 겸공(거문고, 해금) 이생강 대금 기악 정재국 피리 지순자 가야금 음악 최경만 피리 7J :Aà 각 5i' 가야금 λ 8 -i'- tlj: 판소리 성악 안숙선 판소리 정회석 판소리 박송희 판소리 무용 이홍구 궁중정재 강선영 민간춤 연희 김덕수 풍물 외 김대균 줄타기 외 각 부문 별로 대담 제보자를 정했으나, 건강 및 각종 신상의 문제로 본 연구기 간 중에 대담이 불가능한 경우는 대체했다. 그 결과 최종적으로 대담을 진행한 것을 위의 <표 2> 와 같았다. ill. 연구진행 명 인사례의 문헌적 연구에 있어서 일차적으로 진행해야할 일은 연구 대상의 확정이다. 문헌 조사를 통해 명인들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문헌에 대한 확정이 필 요하다. 본 연구에서는 명인론에 해당하는 다양한 문헌목록을 작성하고 그 중 타 당한 자료를 선택하였다. 그 결과 최종적으로 다음과 같은 조사 목록을 확정했 다. 이 때 주요 문헌은 명인론 관련 단행본과 무형문화재 조사보고서였다

21 명언론 관련 단행본 노재명l'명창의 증언과 자료를 통해 본 판소리의 참 모습~. 서울: 나라음악큰잔 치 추진위원회, 이규원ü"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전통 예인 백 사람~. 서울: 현양사, 성경린ü"선가 하규일 선생 약전~. 서울: 禮 音, 문화관광부ü"이달의 문화인물- 한성준~. 서울: 문화관광부, 문화관광부ü"이달의 문화인물- 송만갑~. 서울: 문화관광부, 문화관광부 r 이달의 문화인물- 이동백~. 서울: 문화관광부, 문화관광부ß'"이 달의 문화인물- 김 창조~. 서 울: 문화관광부, 문화관광부Ð'"이달의 문화인물- 정정렬~. 서울: 문화관광부, 무형문화재보사보고서 O 음악 립문화재연구소If'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16: 판소리 유파~. 서울: 국립문화재연 구소, If'무형문화재보고서 9: 시나위~. 서울: 문화재관리국, If'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7: 산조~. 서울: 문화재관리국 문화재 연구 소, ß'"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54: 경기시나위~. 서울: 문화재관리국, If'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51: 가야금 散 調 ~. 서울: 문화재관리국, Ð'"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51: 三 鉉 六 角 ~. 대전: 문화재관리국, If'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26: 현금산조: 신쾌동~. 서울: 문화재관리국, If'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28: 진쇠장단외 11 장단~. 서울: 문화재관리국, ß'"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39: 가야금산조~. 서울: 문화재관리국, ß'"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49: 화초사거리~. 서울: 문화재관리국, If'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51: 서도선소리~. 서울: 문화재관리국, ß'"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52: 서도의 관산융마와 수심가 및 추풍감별곡~. 서울: 문화재관리국, ß'"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55: 판소리 심청가~. 서울: 문화재관리국, 1%8. ß'"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56: 가곡~. 서울: 문화재관리국, l'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68: 대금산조~. 서울: 문화재관리국, 1959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74: 십이가사~. 서울: 문화재관리국, ß'"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76: 시나위(도살풀이 살풀이~. 서울: 문화재 - [ /

22 관리국, rr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77: 남도잡가~.서울: 문화재관리국, rr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78: 판소리수궁가~. 서울: 문화재관리국, rr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82: 판소리적벽가~. 서울: 문화재관리국, rr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83: 판소리숙영낭자전~. 서울: 문화재관리 국, rr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85: 시나위~. 서울: 문화재관리국, r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93: 영산회상~. 서울: 문화재관리국, rr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94: 가야금산조~. 서울: 문화재관리국, rr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75: 가곡(여창)~. 서울: 문화재관리국, rr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123: 판소리고법~. 서울: 문화재관리국, rr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 가야금산조 및 대취타 (추가)~. 서울: 문 화재 관리 국, rr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165: 향제줄풍류~. 서울: 문화재관리국, rr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176: 가야금산조 및 병창(남창)~. 서울: 화재관리국, rr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201-1: 대금산조~. 서울: 문화재관리국, rr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239 : 판소리(고법) 대금정악~. 서울: 문화 재관리국, rr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246: 가야금 산조 및 병창, 진도다시래기 기능조사 J. 서울: 문화재관리국, rr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247: 가곡, 제 57호 경기민요 기능조사.1. 서울: 문화재관리국, rr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250: 피리정악~. 서울: 문화재관리국, Ir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251: 제 5호 판소리 기능조사~. 서울: 문화 재관리국, rr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254: 수영야류 남도들노래~. 서울: 문화재 관리국, O 무용 rr무형문화재보사조고서 12: 승무 살풀이춤, 경남 북편~. 서울: 국립 문화재 연구소, Ir무형문화재보사조고서 8: Æ 舞 ~. 서 립문화재 연구소, Ir무형문화재보사조고서 14: 승무 살풀이 第 3 次 年 : 서 울, 京 織, 忠 淸 篇. 3~. 서울: 국립문화재 연구소, [d

23 r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13: 승무 살풀이춤, 第 2 次 年 : 全 南, 北 篇. 2J 서울: 문화재관리국, IJ"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18: 진주검무.1, 서울: 문화재관리국, Ii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37: 볍고섭이차J. 서울: 문화재관리국, Ii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41: 한국무용의 기본무보.1. 서울: 문화재관 리국, r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44: 승무 J. 서울: 문화재관리국, r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60: 처용무.1. 서울: 문화재관리국, 무 형문화재조사보고서. Ð"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64: 학무.!l. 서울: 문화재관리국, Ii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71: 연화대무 J. 서울: 문화재관리국, r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105: 동래학춤.!l. 서울: 문화재관리국, 19η2. r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121: 안성무속(경기시나위춤).1. 서울: 문화 재관리국, r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122: 사찰학춤 J. 서울: 문화재관리국, r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131: 호남승무 J. 서울: 문화재관리국, r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 태평무와 발탈J. 서울: 문화재관리국, r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169: 통영검무.JJ. 서울: 문화재관리국, Ð"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181: 태평무 J. 서울: 문화재관리국, r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185: 살풀이 춤J. 서울: 문화재관리국, r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192: 살풀이 춤 J. 서울: 문화재관리국, ï"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re: 학련화대합설무J. 서울: 문화재관리국, Ð"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215: 발탈 J. 서울: 문화재관리국, ï"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223: 승전무.JJ. 서울: 문화재관리국, r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243: 양산학춤 J. 서울: 문화재관리국, Ð"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252: 사직대제 평양검무 해주검무 J. 서울: 문화재관리국, ü"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253: 이춤 평안도다리굿 J. 서울: 문화 재관리국 O 연희 ï"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1: 꼭두각시놀음.JJ. 서울: 문화재관리국, r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2 양주산대놀이.JJ. 서울: 문화재관리국, r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5: 광대 J. 서울: 문화재관리국, r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7: 강강술래 J. 서울: 문화재관리국

24 Ií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9: 농악십이차 JJ. 서울: 문화재관리국, Ir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10: 범패 JJ. 서울: 문화재관리국, Ir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12: 봉산탈춤 JJ. 서울: 문화재관리국, Ií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15: 동래야유 JJ. 서울: 문화재관리국, Ií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22: 북청사자놀음JJ. 서울: 문화재관리국, 형문화재조사보고서 33: 호남농악 JJ. 서울: 문화재관리국, Ií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40: 남사당 JJ. 서울. 문화재관리국, Ií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62: 범패와 작법 JJ. 서울: 문화재관리국, Ií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73: 수영야유 JJ. 서울: 문화재관리국, Ií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79-1: 양주별산대놀이 JJ. 서울: 문화재관국, rr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æ: 서울지역의 무속 JJ. 서울: 문화재관리국, r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90: 송파산대놀이 J. 서울: 문화재관리국,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118: 줄타기 J. 서울: 문화재관리국, Ií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124: 은율탈춤 J. 서울. 문화재관리국, Ií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113: 하회별신굿탈놀이 JJ. 서울: 문화재관 리국, H"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134: 가산오광대 J. 서울: 문화재관리국,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135: 정선아리랑 및 배뱅이굿조사보고서 JJ. 서울: 문화재관리국, ß'"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156 배뱅이굿 JJ. 서울: 문화재관리국 j ß'"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161: 진도다시 래기 J. 서울: 문화재관리국, l'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164: 농악 JJ. 서울: 문화재관리국,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238: 하회별신 이 구례향제줄풍류 석전대제 J. 서울: 문화재관리국,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244: 진주 삼천포농악 기능조사.JI. 서울; 문화재관리국, rr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249: 은산별신제 강릉단오제 봉산탈춤 은 율탈춤 서울: 문화재관리국, 이상과 같이 문헌을 확정하고, 조사 대상을 한정한 후, 조사 항목을 설정하였 다. 조사항목은 성명, 성별, 생년월일, 전공분야, 출생지, 스승, 학습시기, 학습기 간, 학습종류, 학습장소, 학습동기, 가족영향, 활동시기, 활동상황, 특이사항 등이 다. 개인적, 지역별 학습의 내용을 알 수 있도록 하였으며, 스승을 비롯하여 학습 내용과 방법에 여러 세부항목을 설정함으로써 교육과정과 연계된 선발 기.::i:.* 늦l 까 "1 I 걷ε 딩 1M 하였다. 또 어떤 맥락에서 영재가 발굴될 가능성이 있는 살펴 15 -

25 보기 위해서 지역, 가족상황 등을 정리하였다. 당대명인의 현장 대담 연구의 경우, 각 분야별로 선정된 15명의 명인들에 대한 면담 내용과 방식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질문의 회수는 모두 2차례로 진행되 었다. 첫 번째 대담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부는 제보자의 경험 에 대한 질문이고 후반부는 제보자의 의견에 대한 질문이다. 이를 통해 영재의 개념에 대해 묻고자 했다. 두 번째 대담 역시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 부는 첫 번째 대담에서 미진했던 점을 묻는 항목을 배치했고, 후반부에는 첫 번 째 대담 중 일부와 중복하여 심화질문을 하였다. 개별 차수 당 질문과 답의 시간 은 개인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1 시간 분량으로 작성되었다. 그러나 개인의 사정 에 따라서 대담 시간이 1 시간 미만인 경우도 있었고 2시간을 넘는 경우도 있었 다. 또한 특별한 경우 제보자 개인적 사정에 따라 서면 질문을 실행하기도 하였 고, 1 차 면담에서 충분히 2차면담의 답변이 나온 경우 1 차 면담으로 마쳤으며, 1 차 면담지의 내용에 준하여 2차 면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질문은 네 가지 범주로 나누어 배치하였다. 각 범주 속에 질문은 맥락의 변화 속에 재질문 항목을 의도적으로 배치해 두었다. 또 제보자 자신의 경험과 견해 각각 분리하여 질문하였고, 영재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내용은 세분화하여 질문하 였다. 각 질문지는 공통적 질문지와 개별적 질문지로 나누어지며, 개별적 질문지 의 경우 개인 별로 질문 내용을 따로 작성하였다. <표 3> 대담 질문지 작성의 계획 범주구분 내용 질문방식 1 항ü3문항) 제보자 자신의 경험에 대한 질문 2헝{13문항) 제보자 자신의 견해에 대한 질문 공통적 질문 3항 1, 2차 범주로부터 확인해 0둡}는 세부사햄 대한 질문 개별적 질문 4항ü4문항) 1, 2차 범주의 세분화된 재질문(정의적 특성에 대한 질문) 공통적 질문 위의 <표 3> 에서 알 수 있듯이 제 1 항, 제 2항은 영재에 대한 포괄적 질문이며 제 3항은 1 차 질문에 대한 재질문이자 구체적인 질문이고, 제 4번 항은 재질문을 목표로 하되 정의적 특성에 대한 답을 유도한 것이다. 재질문지를 작성할 때, 제 보자가 진술할 때 사용했던 구체적인 주요어를 상기시키며 직접 질문하기도 했 고 간접질문을 하기도 했다. 재질문지가 작성된 이유는 1) 정확한 기억을 요구하 는 경우 2) 피상적인 진술을 보다 구체적으로 유도할 경우 3) 선행 진술의 진위 판단하기 위해 4) 진술의 일관성을 재검토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위와 같이 계획된 재질문의 원칙이 깨지는 경우 1)질문의 시간이 지나치게 경과했을 때, 2) ( O

26 제보자의 개인 사정 때문에 제한된 시간 안에 경우였다. 질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원하는 대답이 어렵다고 판단될 O 제보자 자신에 대한 질문 1-1. 당신을 영 재 라고 생 각한다. 당신은 동의하는가? 만약 아니라면 왜? 口 1-2. 어린 시절(대략 10세미만(돌캡이 무렵 포함) 예술교육 연령 이전) 나 주변에서 이야기하던 당신만의 행동특성이 있었나? (예를들면 음악 이 나오면 춤을 춘다던가하는 사례를 들어 질문) 口 1-3. 우리가 당신을 영재라고 부르기 이전에 어린 시절 당신의 재능을 타인 이 알아 본 적이 있었던가? 알아봤다면 그 타인은 누구인가?(자세히) 못 알아봤다면 왜 그랬을까? 口 1-4. 동료나 작고한 전통 분야의 인물 중에 영재라고 생각하는 인물은? 누구? 전공? 그 이유는? 口 1-5. 본격적으로 스승을 모시고 학습이 시작된 시기? 口 1-6. 스숭을 모시고 학습했던 내용을 시기별로 구체적으로 진술 부탁. 口 1-7. 음악가 집안인가? 스승은 집안 내에서 훌륭한 스승의 판별하는 기준이 있었나? 口 1-8. 자기발전의 동기는 어떻게 부여했나?동료 간의 경쟁, 스승의 격려, 자신의 목표 등등) 口 1-9. 전통예술에 대한 당신의 집안 분위기는? 口 어린 시절 당선의 연습량은? 口 CD 하루 일과 중 연습량 연습 자기 만족도 평가기준(예컨대 스스로 만족 하는가 혹은 일 정한 시간동안 연습하는가 등) 口 연습과 연주 외 에 음악 감상을 할 수 있었나? 口 전공 분야 외에 다른 예술분야에 대한 학습과 경험에 대해 진술 부탁. 口 CD 당신은 전공 악기 외에 다른 분야에 경험을 쌓았던 적이 여러 악기를 연주하는 경우 각 악기의 연습량을 어떻게 조절(겸공)? 악기의 연주(섭공과 겸공)가 당신의 전공분야에 어떤 영향? 17 -

27 1-13. 전통적으로 애기명창, 소년명창 이란 말이 있다. 이 말에 대한 평가 부탁. (애기명창이라는 자체가 한계적 상황을 노출한다고 보이는데, 애기명창은 명인이 되기 어렵다는 뜻인가 아니면 애기 때부터 명인 의 자질은 타고 난다는 것인가?) O 의견 및 제안을 묻는 질문 口 2-1. 전통예술에 영재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2-2. 전통예술영재라 할 만한 아동을 보신 적 이 있습니까?(초등 중등 고등) CD 전공 어떻게 어디서? 했나? (어떤 전공, 혹은 정 발견 후 어떻게 했나? 교육했나? (예 어떻게 교육했나? (위의 그의 예술가적 성장은 어떠했나? 질문에서 예 인 경우) 교육했던 경우, 어떻게 성장했나? 예술가 포기의 경우, 왜 그랬나? 口 2-3. 전통예술영재 선발에 적절한 연령은 언제인가? (해당전공 전통일반) 口 2-4. 무엇이 전통예술분야 영재성이라고 생각하나? (생각나는 대로 무순으로) 口 2-5. 위의 내용은 해당 전공의 영재성인가아니면 전통 전반인가? 口 2-6. 해당 전공의 영재를 알아볼 때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 (노래? 춤? 구체적으로) 디 2-7. 영재들의 선발에서 중요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뛰어난 예 성취 능력(재능), 연습 및 예술가적 실현에 대한 끈기, 열정, 예술가로 서의 책임감과 지도력, 공연현장에서의 순발력 등) 口 2-8. 전통 관련 영재 발굴에서 어떤 지표가 가장 중요한가? (중요한 순서대로) 口 2-9. 기교가 아닌 창의 력과 동기를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口 영재 선발에 대해 제안하실 수 있는 좋은 방법은? 口 전통예술영재를 선발하는 전문가들을 어떤 방식으로 선정하는 것이 가장 공정한가?예컨대 예술계에 존재하는 계파 의 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문제를 벗어나 口 국내에서 전통예술영재들이 성장에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인가? 口 전통예술영재가 앞으로 성장하여 음악가로서 감당해야 할 일은? - 18

28 0 개인 벌 재질문 개별 제보자 마다 질문이 다르다. (구체적이 내용은 대답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음) 단, 대담의 총 시간이 1 시간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단답형 질문과 서술 형 질문을 통시에 배치하였다. 디 3-X14l O 다른 맥락에 배치된 재질문 4-1. 전공 분야 외의 다른 예술분야 (혹은 다른 분야)에 관심을 둔 적 있나? 예술 분야라면 그 관심을 어떻게 해결하셨습니까? 口 다른 예술 분야의 경험이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사례 들어 자세히 말씀 부탁. 口 예술분야가 아니라면 어떤 분야? 口 4-2. 학습을 하던 시절 전공분야 외에 다른 예술분야의 전공자와 교분이 있었나? 口 있다면 어떤 전공의 누구이며, 어떻게 내 전공과 관련되는지 사례 들어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口 4-3. 다른 분야의 관심과 경험을 자신의 전공 분야에 활용한 적 있나? 사례 들어 설명부탁. 口 4-4. 다른 예술분야를 자기 전공분야를 함께 배운다면 어떤 좋은 점이 있겠 는지 말씀부탁. 口 4-5. 무대에 서기 전 혹은 시험이나 콩쿨에 나가기 전에 얼마나 어떻게 연습? 口 4-6. 어린 시절 (음악을 일방적으로 배우던 시절) 음악을 하는 목표가 무 엇? 왜 음악을 포기하지 않고 하신 것입니까? 口 4-7. 연습을 할 때 한 두 번 하고 마쳤는지 아니면 스스로 원하는 정하고 그것을 성취했나? 4-8. 어떤 상황에 연습을 시작하고 마쳤나?(음악에 대해 만족할 때 그만두 었다거나, 시간을 정해놓고 그만 두었다거나, 지루하면 그만두었다거 나, 조금해도 잘하니까 조금만 했다거나 등) 4-9 무대에서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여 연습을 한 경우가 있다면, 어떻게? 口 학생 때 (혹은 배울 때) 스승이 가르치는 대로만 했나 아니면 방식로도 해보았나? 口 자기가 잘 한다는 자신감이 든 적이 있었는가? 口 몇 살 때? 어 떤 계 기 로? 14) 개별 제보자 별로 질문의 문항 수가 다름. 19 -

29 자신감이 생겼을 때 자신의 기교는 어느 정도? 口 4-12 남과 다른 자신만의 표현 방식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한 적이 있던가? 디 몇 살 때? 어떤 계기로? 이런 생각이 생겼을 바로 자신의 기교는 어느 정도였던가? 4-13 스승이 하지 말라 했던 표현들을 해보고 성공해본(만족스러웠던)적이 있었던가?(예를들면 여기서 농현을 하지 말라 고 했는데 정작 하지 말라던 것을 해보니 좋았다거나 등) 口 4-14 스승에게 기본만 배웠던 상태에서 혼자 스승 없이 기본을 넘어서 본 적이 있던가? 이상의 질문지에 대한 대담이 완료된 이후 응답 내용을 분석하였다. 이 연구에 사용된 질문지는 질문의 의도가 있을 뿐 질문에 대한 개별 답변에 대한 평가의 기준은 없었다. 또 같은 질문지 내의 문한 중에서 같은 의도의 다른 방식의 질 을 했을 경우에도 이에 대한 답변은 달랐던 경우도 있었다. 그 이유는 생각의 차 이, 상호적으로 사용한 용어의 의미 차이, 질문의 의도를 잘못 파악한 경우, 질문 의 의도가 잘못 전달된 경우, 또 개인적 견해의 피력이 질문의 의도를 넘어서 과 대하게 전개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재질문을 통해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했으 며, 대담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의도한 항목에 대한 답변에서가 다른 항목에서 나 오는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본 연구의 분석은 개별 제보자의 차이를 그대로 드 러내되, 거듭되는 재질문과 답변을 사이에서 일관성을 확인해보고, 일관성이 확인 되는 중에서 영재 개념과 선발에 대한 지표들을 추출하는 방법을 취하였다. 한편, 전통혜술영재의 경우 기존 연구에서 영재 개념의 정립이 없었고, 사례에 대한 보고도 없었다. 연구에서는 이와 관련된 자료를 축적하는데 큰 의의를 두고 있다. N. 결 론 1. 전통공연예술에서 영재 교육 20세기 전반기까지 전통공연예술 분야에 있어서 수행된 교육은 예술적 역 량과 교육의 역량이 집중된 특수교육에 해당했다. 가계전승, 전문가 교육이라는 점에 있어서 전통적인 예술교육의 사례는 영재교육에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다. 본

30 연구에서는 작고명인 및 생존 명인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전통 공연 예술 영재 들의 교육이 어떠했고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검토하였다. 명인 문헌 연구의 경우, 근대적 교육체계의 성립 이전에 교육을 받았다. 따라 서 이들에게 새로운 예술교육 방법인 예술영재교육이라는 관점을 관철시키기에 는 무리가 있다. 또 이들에 대한 기록에도 역시 예술영재교육에 필요한 모든 사 항이 망라되어 있지도 않다. 다만, 이들이 받았고 또 가르쳤던 것은 예술교육에 대한 참고 사항이 될 만하다. 특히 가계로 예술이 전승되는 과정에서 총체적이고 집중적인 예술교육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 경우 학습자의 자질, 환경, 교사의 자질, 평가, 학습방법, 후원 등에 있어서 현재의 예술영재교육의 목표와 상당히 근접해 있기도 하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점 주목하여 그에 대한 검 진행하였다. 특히 학습시기, 학습기간, 스승 수, 가계, 학습내용에 대한 항목을 통 계적으로 분석해 보았다. 명인의 문헌연구의 경우, 명언에 대해 위의 사항에 대한 모든 기록이 남 아 갖추어져 있지는 않기 때문에 다소 거철은 분석만이 가능했다. 공연 갈래별로 차이가 있지만, 20세기 이전 및 전반기에는 5세 -15세 사이에 학습이 시작되었 고, 판소리, 산조, 시나위, 삼현육각 등의 분야에서 1-6명의 스승을 거쳤다. 또한 어느 분야와 관계없이 가무악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가무악에 대한 기초 경험은 매우 주목되는 점이다. 이것은 전통예술 분야 교육에 있어서 특수한 점이지만, 현재 교육의 입장에서 재해석의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가무악의 동시 교육은 전 통적인 방식이지만, 이는 현대교육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문학, 무용, 음악, 극동 과 같은 서로 다른 분야의 통합 교육이기 때문에 주목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헌자료를 통해 학습시기에 따른 교육효과의 차이, 다수의 스승을 통한 경험이 필 요한 이유, 악가무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이유를 찾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이에 대한 해명은 20세기 전 중반에 학습을 받은 현행 명인의 증언에서 찾을 수 있 었다. 본 연구에서 진행한 대담을 통해서, 현재 명인들은 작고 명인들과 같은 경험을 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외에도 이들은 다른 방식의 교육을 받올 수 있었다. 과거에 가계에서 이루어지던 교육이 학교나 사회의 기관에서 이루어졌던 것이 그것이다. 교육의 공간이 사적 공간에서 공적 공간으로 옮겨 가면서 특정 가계를 넘어서서 다양한 예술 갈래가 교육의 내용에 포함되었다. 예컨대 남도민 요 전공자가 서도 소리를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거나, 산조에 재능을 보이는 학 생도 탈춤을 추게 되었다거나 하는 것이 그것이다. 또한 이들은 근대 예술의 이 념들에 대한 학습을 한 바 있었다. 이 때문에 본 대담연구에 응한 제보자들은 당 대인의 입장에서 전통적인 예술 교육의 원리와 목표 그리고 지향에 대해 자신의 독창적인 생각들을 진술할 수 있었다. 작고명인의 교육의 세부와 영재교육 긴

31 과의 연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거론하였다. 이를 통해 명인 문헌 연구의 사례 중 악가무 통합 교육의 효용과 필요성이 구체적으로 진술되었고, 나아가 영재 교육, 예술 교육에 대한 거시적 제안도 발견할 수 있었다. 대담 연구에 참여한 제보자의 의견 중 가장 주목되는 점은 예술영재교육과 예 술을 분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술영재교육이 예술의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교육이어야 한다는 점은 대부분이 동의하고 있었다. 예술의 궁극적 목표는 가치 의 통찰과 그것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 그것을 표현하는 구체적인 기술에 대한 연마도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기술의 연마는 예술적 통 찰과 별개의 것이다. 이 점에서 예술영재 교육의 목표는 한편으로는 가치를, 또 한편으로는 기계문명을 수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치는 예술적 통찰이 있 어야만 드러낼 수 있는 것이고, 기계문명의 수호는 기예의 완수를 지향해야만 실 현할 수 있는 것이다. 교육 현장에서 가치와 깨달음이라는 측면은 학생의 예술에 대한 통찰에 대한 요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기계 문명의 수호는 정교한 기여}의 완수에 대한 요구라고 할 수 있다. 가치의 통찰과 기예의 완수 사이에는 많은 것 이 놓여 있다. 이러한 것을 개념도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그림 2> 전통공연예술 분야에서 예술영재 교육 평면 예술작 의완수 > ~C"-, ε 위의 <그림 2> 에서 A와 C는 각각 예술적 통찰과 기예의 완수라는 개별적 요 소라고 할 수 있다. 대담시 상당수의 제보자들은 표현 없는 통찰은 무의미하며, 통찰 없는 표현은 재롱에 불과하다고 진술하였다. 따라서 양자가 중첩되는 영역 이 상정된다. 위의 <그림 2> 에서 보이는 양끝은 한 쪽을 예술적 통찰로 다른 한 쪽을 기예의 완수로 가정 한다면, 양자가 겹치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이 지점이 ιm

32 예술영재 교육이 이루어지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단, 교집합의 크기는 달라질 수 있다. 예술적 통찰 (A) 과 기예의 완수 (C)가 예술교육에 기여하는 정도를 알기 위해 양자를 순수하게 드러내 보이는 것을 a, C로 양자가 겹치는 부분의 길이를 b 로 상정해 놓고 보면, 각각의 기여도를 개념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 대담에 응한 제보자는 기예의 완수 정도인 c 의 길이가 길어야 한다고 말한 경우도 있었고, 표 현의 진정성 등을 거론하면서 예술적 통찰의 정도인 a의 길이가 길어야 한다고 한 경우도 있다. 또한 a도 C도 아닌 창의성, 응용력, 이해력 등과 같이 무엇인지를 실 현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인 b의 길이가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기예의 완수는 정교함과 정확함을 담보해야만 실현 가능하다 정교함과 정확함 이란 기준이 선명하지 않다면 평가 불가능한 말들이다. 제보자들은 정확한 음정, 박자, 조성, 올바른 성음, 동작 등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이상의 요소들에 대한 정교함은 해당 분야 별로 합의된 판정 근거들이 있다. 제보자 자신들은 충분히 창조적인 학생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합의된 표준에 도달하기위해 적게는 하루 4시간 많게는 하루 온 종일을 연습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에 정교함과 정확함 은 연습으로 실현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연습은 신체 기능의 제어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신체기능의 제어와 관련된 진술로, 한 제보자는 노년의 예술가의 귀를 의지하지 말라고 조언하기도 하며, 줄타기의 경우 30대 이 후 기교는 축소되기 시작한다고 진술한다. 이는 연습이 1 차적으로 신체기능의 제 어와 습관화를 현실적 목표로 한는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런데 정교 함과 정확함에 이를 수 있는 것은 신체의 제어만이 문제가 아니다. 신체 제어의 목표가 운동이 아닌 이상, 또 그것의 목표가 예술인 이상 감수성과 순발력, 지적 능력 등과 같은 다양한 자질들이 뒷받침되어야하며, 나아가 예술에 대한 애정, 끈기, 집착 등과 같은 덕목들이 갖추어져야 자발적인 기예의 완수가 진행되다고 증언했다. 그런데 감수성, 순발력, 지적능력, 애정, 끈기, 집착 등은 기예의 완수 뿐만 아니라 예술적 통찰과도 관련되어 있다. 기예의 완성 방법에 있어서는 해당 예술분야의 관례적 정도( 正 道 )가 있기 마련이지만, 가치의 통찰에는 정도가 없다. 나아가 예술적 통찰은 관례적 정도의 고수와 일탈 사이에서 실현될 수 있기 때 문에 a의 길이가 0 이 되기 어렵다. 대담을 통해, 전통예술 분야에서 예술 영재교 육의 목표는 a와 C 의 길이를 최대한 줄이고 b 의 길이를 넓히려 한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학습 현장에서는 늘 b 의 길이가 문제가 된다. 선으로 표현된 b가 면으로 확장되면, 가치와 기예의 조화를 목표로 하는 교육 공간을 상정할 수 있다. 대담을 통해 교육공간 안에 넣을 수 있는 덕목들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이 공간 안에 들어가는 덕목들은 교육의 목표나 방법 등에 해당한 다. 전통공연예술 영재 선발에 있어서 제보자들은 예술과 교육을 긴밀하게 연결 시킬 뿐만 아니라 교육과정과 선발도 직결시키고 있었다. 이는 교육현장에 대한 까ω

33 경험을 근거로 제시한 항목들이 예술영재성의 내용 및 선발 지표가 될 수 있다 점을 보여주고 있다. 2. 전통공연예술에서 영재 개념 및 선발 관련 지표 전통예술 분야의 영재 선발에 있어서, 모든 제보자들은 자신의 예술관과 교육 관을 관통하는 선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모든 제보자들의 사적인 예술 관이 다르고, 교육관 및 교육 방법에 차이가 있으며, 선발에 대한 의견 차가 있 다. 예를 들면, 어떤 제보자는 창조성을 강조하고, 어떤 경우는 기예를 강조하며, 또 어떤 경우는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도전, 용기를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예술관이 반영된 선발의 지표의 구체적 사황은 제보자 마다 다르다. 또한 각각 의 제보자는 전공별로 서로 다른 영재 선발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다 음은 그러한 상황을 정리한 것이다. 아래 표에서 주목되는 단어 는 제보자들의 용어로 그들의 의견을 정리한 것이고, 분석단어 는 분석자가 정리한 것이다. 석단어에서 사용한 용어들은 제 2부 명인대담 연구 중 개별 제보자 대담 내용에 분석의 경우와 같다. <표 4> 제보자별 선발의 지표 주전공 제보자 주목되는단어 분석단어 강정숙 음감, 암기력, 성음, 연습, 예술학습속도, 학 교 공부, 통합적 학습능력, 학습순발력, 철 저한 자세, 감수성, 타고난 재질, 환경적 재질, 경제적 재질, 인성, 언어능력 무대에서의 창조적 대응력, 학 교공부, 협속도, 대회수상경력, 음감,암기력 노력, 재미, 연습, 만족감, 자신감, 좋아함, 즉흥성, 창의성, 청음, 독보력, 모방력, 사고 자기동기, 자기극복 학협도, 김영재 력, 음악적 소질, 재질,소질,재주, 기량, 성 자기조절, 성취감, 애호, 겸공, 음, 기초 시창, 춤, 노래, 영특, 체력, 기발 섭공, 섭렵, 전통적 감수성, 끈 한 아이디어, 표현력, 응용, 농현, 창조적 기,집착 음악 기악 서용석 욕심 자기 의지, 기초, 창작 음정, 떠는음, 소질 섭공, 겸공,표현력,김수성, 끈 기, 성실성, 창조성 타고난 재능, 도전욕, 응용력, 천재, 타고난, 체질, 재있고, 감동시키고 칭 악기 적응력, 따라하기, 김수성, 이생강 찬받고 용돈, 집념, 재질, 소질, 기능, 몰입, 모방, 예술, 섭공, 대담, 암기력, 변화무쌍, 감동, 기초 재주, 겁없음 자기 극복, 자발성, 전략, 자신 감, 성취, 자기평가 정재국 기술자, 머리, 판단력, 음악적인 해석능력, 야망,감수성,도선자발성, 용 빨리 배우고 끼가 있고 갈래를 넘니들고, 기, 자신감, 인내, 전략, 애착,자

34 'Tζ~*τl 제보자 주목되는단어 분석뻔 지순자 시창, 청음, 채보 시김새, 나이 수준을 뛰 어 넘은 것, 정확한 음, 기교, 풍부한 감성, 연습, 암기, 책임감, 좋아서 연습, 성능 성 기량, 기교, 순발력, 창작성, 큰 꿈, 느낌 장단, 음정, 재주, 옴의 형태, 노력, 지구력, 예술성, 순발력, 리듬, 선율, 음, 성대, 몽의 자태, 발, 확신, 음, 귀, 도전력, 인내력, 승 부욕, 몸반응 기평개 음악적 지도력 감수성, 섭표 겸표 응용력, 자 발성,신제협응,수업관찰,자기 평가 최경만 창조적, 연습, 즐거워서, 김, 서치기, 마음가 짐, 열정, 환경, 흉내내기, 기초 암1성, 예 민,빠르다,순발력,머리,재주,끈기,음악 자발적 노력, 힘조절, 감수성, 적 감각, 훈련, 애정, 음정, 탄탄한 소리, 장 자득 호흡, 장단귀, 시김새, 표현력, 응용, ~스 E 二 2-으 서, 재치, 기억력, 연마 영특 영리, 빠르다, 재 믿k송희 간, 재미, 목구성, 목, 혼자서, 암기, 연습, 기억 감수성, 정확성, 예민함, 이해력, 표현력, 자발성, 혁습속도, 연습, 준비성, 성실성, 근육훈련, 호흡, 응용력, 흥미 성우향 소질, 목, 노력, 끈기, 타고난, 선생, 성음, 기억력, 학습속도, 자기동기, 소 기초 질, 야망,자득 환경, 예술가의 집얀, 격려, 연습, 응용력, 성악 기억, 정확한음, 목, 성량, 박자, 음정, 한국 음악의 독창성, 음악성, 기피 자기표현, 박 안숙선 자 붙임, 성음, 발음, 연결 부분, 이해력, 음 악을 즐겨하고 사랑하피 끈기, 인내, 자긍 성, 자체 의지 감협,창의력,재능,음악성 정회석 민속무 가O 서L 여 끼가 있다, 참 잘 따라한다, 흉내, 목, 공력, 연습, 옴동작 도전력, 애정, 음의 길, 선율, 성취감,자신감,장의력,음악적 조성, 장단, 해석, 자율성, 표현력, 창조성, 지각 공력, 너무좋Ö}, 변형 적극성, 재주, 잡념이 없음, 소질, 스승, 자 탐구섬, 감수성, 적용력, 환경, 세, 이해력, 따라하기, 연습, 기본, 자기기분 인내심,창조성,진정성 무용 재질, 공부잘함, 표현력, 위엄성, 기능, 머 리, 노력, 음악성, 따라하기, 창의력, 통합 교육, 집중교육, 특기, 머리, 자질, 음악이해 궁중무 이홍구 력, 성취력, 음악성, 음색, 표출, 감성, 감각성, 시각, 자기의 표정, 객석에 대한 포용력,표현력,인성,얼굴,몸매,안목,감 수성, 응용력, 자기 안목, 시선, 자기 평개 개성, 창조성, 개인차, 환경, 거디고 % ω

35 T ;ι;나7 그 Z 제보자 주목되는단어 분석단어 연구 연희 호기심, 재미, 다재다능, 재담, 자율성, 학업 에 대한 욕심, 감성, 동작, 이해력, 호흡, 인 줄타기 김대균 지, 놀댐l 대한 이해, 감수성, 미적판단, 끈기, 열정, 행위, 창조적 질문, 후계구도 I 풍물 열정, 끈기, 상상력, 동작 장단 자발성, 야망, 연습, 자기평개 겸공, 보수, 응용력, 비평 싹수, 천재소년, 의지, 소질, 감성적 표현, 재주꾼, 꿈, 진취적 기운, 도전성, 장단, 기 잠재성, 자발성, 보수, 소질, 환 키U 터 수 능, 인성, 적성, 순간 받아들이는 창의력, 경, 창조성, 겸공, 호기심, 집중 응용, 창작, 연구, 노력, 두려움 깨기, 모방, 려 신체조건 위의 <표 4> 는 영재와 관련된 수많은 덕목들이 정리되어 있다. 위와 같은 경 험들이 배경이 되어서 제시된 의견의 세부를 들여다보면, 공연예술의 분야 마다 그리고 같은 분야라 할지라도 제보자에 따라 견해다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위의 <표 4> 에 제시된 단어들은 예술 교육 및 교육과 관련하여 다섯 가지 항 나누어 질 수 있다. 첫 번째가 기예와 관련된 것, 두 번째가 교육과 관련 된 것, 세 번째가 예술적 통찰과 관련된 것, 네 번째가 본인의 의지와 관련 없이 형성되는 환경, 다섯 번째가 기타(도전력, 야망, 보수 등)로 구분된다. 이 중 네 번째와 다섯 번째는 <그림 2> 과 무관한 상황들에 대한 진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 2> 은 예술교육과 관련된 평면 개념도라면 위의 <표 4> 는 영재의 세목을 보여주는 업체라고 할 수 있다.<표 4> 에서 표현되고 있는 5 항목 중 첫 3번째 항목은 <그림 2> 의 세목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표 4> 를 통해 발견되는 흥 미로운 점은 적어도 이상과 같은 5가지 항목 중 첫 3가지 항목에 있어서 제보자 별로 거론한 세목은 서로 다르지만, 근본적으로 같은 구조 하에 세목을 배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제보자 간의 견해 차는 위의 <그림 2> 에서 a, b, c 의 길이의 차 보여줄 뿐이다. 위의 <표 4> 에서 <그림 2> 에서 거론하지 못했던 것 여러 제보자들이 진 술하였음을 알 수 있다. 네 번째 항목은 영재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의 총 아이고, 다섯 번째는 그림 2> 의 구조에 비추어 분석해 낼 수 없는 것들이었다. 예컨대 야망, 도전력 등이 그것이다. 제보자들은 이러한 덕목들이 예술가가 예 계나 교육계를 넘어서 일반사회로의 진출하는 그리고 혁신이라는 역사적 행보에 기여하고 있음을 진술하고 있다. 이를 통해 기예의 정도를 넘어서고 예술적 통찰 이 공인되게 하기 위해서는 다른 덕목들이 관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대담한 도전정신, 실험정신 등은 예술교육과 관련한 개념도를 업체형으로 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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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의 경험 중에서 남다른 경지를 보이는 지점에 대해 상세히 대해 진술하였다. 한 편, 제보자들은 모두 성장 이후 예술 교육자로 활동하였는데, 교육자로서 학생 가르치는 과정에서 남다른 우수성을 보이는 학생들과 그렇지 못한 사례를 구분 하고 있었다. 제보자의 남다른 학생으로서의 경험과 교육자로서의 남다른 학생에 대한 관찰은 모두 영재 선발과 관련된 지표로 참고할 만한 것이었다. 2) 예술의 내적 논리에 대한 경험은 전문예술가로서 해당 전공 예술에 대한 경 험과 이해에 관련된 것이다. 예술적 통찰은 관련 예술분과의 표현 원칙에 대한 이해 없이는 이루어지기 어렵다. 예술에 대한 내적 논리의 파악은 예술의 실현에 있어서 반드시 선결되어야 하는 과제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제보자들은 예술의 정교함을 넘어서 그 정교함을 구성하는 원천과 원리에 대한 파악이 중요함을 진 술하였다. 이러한 진술 과정에서 제시된 개념과 용어들은 영재 선발 및 교육의 구체적 과제에 직변했을 때 매우 유용한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3) 공연 혹은 예술 실연 현장에 대한 경험은 예술의 사회적 기여와 관련된 것이다. 대 다수의 제보자들은 공연 현장에서의 순발력, 적응력, 창조성 등에 대해 거론하고 있다. 공 연 현장은 학습현장과 예술적 통찰의 문제와 별개의 것으로 예술을 통한 의사소통의 방 식을 문제 삼는 장이다. 특히 공연예술에 있어서 이에 대한 대비와 준비 나아가 자질에 대한 문제인식은 전문가에게는 필수적인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대다수의 제보자들이 이에 대한 인식이 교육에 적용되어야함을 진술하고 있다. 특히 무용과 연희의 분야는 절대적 으로 이러한 자질들의 교육을 강조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전문가적 경험과 통찰 은 영재의 자질을 가늠하는 지표가 될 수 있다. 4) 공시적 통시적 존재로서의 역량이란 학습과 예술의 관례로부터 벗어났던 경험을 말한다. 이는 구체적으로 역사적 존재로서의 경험과 당대 사회인으로서의 경험으로 구별될 수 있다. 역사적 존재로서의 경험은 예술의 관례와 기예의 관례 넘어서 인정받는 것을 말하며, 당대인으로서 사회적 존재로의 경험은 교육을 넘어서 기능인으로서 관례적 예술행위를 넘어서도 인정받는 경우에 속한다. 이에 대한 제보자들의 진술은 극히 부분적이었으나 전무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이 이 진술한 내용은 전통예술분야의 영재 교육에 관한 세목이 될 수 있으며, 나 아가 교육과 예술관이 연계된 선발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 있다. 한편, 구체적인 영재 선발 시험에 대한 제안은 제보자 마다 다르다. 각각 흥미 로운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본 연구 보고서의 제 2부 개별 사례 분석 항과 명인 대담 자료 편을 참고할 수 있다. 3. 전통공연예술에서 영재 전통공연예술과 관련된 문헌과 증언을 통해 보았을 때, 이 계통에 영재라는 말

38 은 찾기 어렵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말은 다양하다 15) 예컨대 전통적으로 재주 있다 끼 가 있다 참 잘하겠다 잘 크변 괜찮겠다 싹수 있다 싹수가 됐 다 싹이 되겠다 는 표현이 있다. 이러한 말은 재능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이 아 니고 포괄적인 것이 특정이다. 그런데 이와 별도로 위와 같은 의미와 권위를 갖 고 있지만, 평가에 있어서 재능의 방향을 적시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너는 소 리를 하면 잘 하겠다 너는 춤을 추면 잘 하겠다 는 말이 그것이다. 이러한 말 은 전통적 공연 예술에 한해서 특정 개인의 자질에 대한 구체적 평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평가는 사회적 합의를 얻고 공인되지 않았다. 오히려 전통 공연예술계에서는 이러한 자질을 사회적 호기심과 탐욕으로부터 보호하려 했던 것이 대담을 통해 확인된다 16) 그런데 재주 있는 학생에 대한 직접적인 평가의 언사가 있기도 했지만, 재능의 발견을 반어적으로 표현한다. 예컨대 까불지말고 고대로 커"(강선영)라는 말은 재능을 인정하되 그것을 보호하기 위한 언사라고 할 수 있다. 학생의 성장을 교육적 차원에서 보장하기 위한 표현임을 알 수 있 다. 이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영재 라는 존재가 사회 심리적 동의를 얻고 국가 적 지원 하에 공인되는 것과는 구별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전통적인 공연예술계 내에서 재주를 인위적으로 수 없는 경우 드물게 천재 신동 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이생강, 김덕수) 그러나 이러한 표현은 극히 드문 경우 에 속한다. 또 천재나 신동은 교육이나 학습의 맥락 속에 있는 학생에 대한 표현 이라기보다는 공연이라는 맥락 속에서 들어있는 연행자 를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사용되는 영재의 개념은 사실상 분명하지 않으며, 그 본질 자체도 완전히 파악된 것은 아니다. 다만, 개별 영역에 따라 해당 영재에 대한 잠정적인 합의가 있을 뿐이다. 이 점에서 전통공연예술 분야의 영재 개념 역시 재주있는 학생들로부터 정리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현재 정리된 자료 와 연구 성과로는 전통예술분야의 재주 있는 학생에 대한 합의된 개념을 제시하 기 어렵다. 단, 영재에 대한 사회의 요구가 있기 이전에 전통예술 분야에서 재주 있는 학생이 있었고, 이들에 대한 경험과 교육 역시 일찍부터 이루어졌다. 따라 서 이에 대한 천착은 전통공연예술에 있어서 영재 교육의 개념을 제시하는 근거 가 될 것이다. 위의 항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전통공연예술의 영재 교육의 개념 속에서 영재 성을 한정한다면, 기예학습의 목표를 이행하고 예술적 지향을 설정하여 이를 시 공간을 넘어 설현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학생이라고 할 수 있다. 15) 이하에 표현된 말들은 본 연구보고서의 부록으로 첨부된 대담 기록지 및 대담 사례 분석 항에 서 확인할 수 있는 것에 한해 서술하였다 16) 대담 기록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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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저 I 1 부 명인 문헌 연구 이 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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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1. 명인 문헌 사례 연구 분석 1. 머라말 1) 문제 제기 및 연구 목적 한국의 예술 영재 교육은 시작단계이다. 특히나 예술 영재 중에서 전통공연예 술 분야의 영재에 대한 교육은 기초적인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어려운 현실 속에서 미래의 한국 전통공연예술 분야를 이끌어갈 영재들을 발굴, 선발하고 교육할 시스템의 개발은 매우 시급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재적인 개념의 전통공연예술 분야의 영재 교육의 어려운 상황과는 달리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예술 영재 교육은 그 역사가 유구함을 지적한 논문 이 발표되어 흥미를 끈다. 노동은은 국악영재교육의 특성과 역사 에서 우리나 라의 전통적인 예술 영재 교육을 조기에 포괄적 음악 교육으로 개발되어 여러 장르를 다기능적으로 탁월하게 수행할 수 있는 창의적인 인재육성의 특성 을 가지고 있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17) 그는 특히 민간의 국악 영재 교육과 관련된 신청, 재인청 및 근대 기생학교의 국악영재 교육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을 정리 하여 위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하지만 위 연구는 전통공연예술 분야 전반에 걸쳐 검토되지 않았으며, 앞으로 한국영재교육연구원에서 진행할 전통예술 분야 예술 영재 선발 및 교육에 대한 지표 개발을 위한 총체적 접근을 위한 연구로서는 더 보충해서 검토해야 할 점 이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전통공연예술 분야 예인에 대한 문헌자료를 활용, 이 재검토하여 영재 선발 및 교육에 필요한 핵심적인 지 얻는 참고자료로서 활용하고자 하였다. 2) 연구 방법 및 절차 과거 전통공연예술 분야의 재원은 다양한 기관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양 성된 역사적 사실이 있다. 그러므로 먼저 이러한 기관을 통한 예술인 양성 방법 에 대해서 사적 검토를 진행하고자 한다. 오늘날 국립국악원의 전신이었던 조선시기 장악원에서는 악공을 양성하기 위 17) 노동은, 국악영재교육의 특성과 역사" r국악영재교육을 위한 세미나J( 서울: 한국교육개발원 영 재교육연구원 및 중앙대학교, 2005), 6월 1 일에서 6월 4일까지 열린 세미나 발표 자료 참조. 경

43 한 체계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위 노동은의 논문에서도 지적되었지 만, 신청과 근대 기생학교에서도 이러한 체계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다 만 이들이 오늘날 개념의 예술 영재를 전문적으로 교육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들 기관에 대한 사적 검토는 참고 자료로서 활용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명인에 대한 문헌 사례 분석은 구술 채록의 연구 방법을 활용할 수 없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때문에 명인과 관련된 여러 문헌 자료 및 증언 자료를 활 용해야 하는데, 예술인 생애를 소개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자료로서, 생존시 구술 채록본, 과거 문화관광부에서 주도하였던 이달의 문화 인물 관련 단행 문화재청과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간하였던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등의 자료 를 활용하여 영재로 볼 수 있는 명인들의 사례를 분석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에서 위와 같은 문헌들을 참고하는 것은 예술 영재를 발굴, 교육하여 최종적으로 전통적인 개념의 명인의 수준과 그를 뛰어넘어 창의성을 가지고 21 세기 미래를 선도할 창의적인 명인에 까지 도달하는 예술가를 양성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현재로서 그와 가장 근접한 예술가로 볼 수 있는 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에 대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라 생각했으며, 이외에 역사 속에 명인으 로 추앙받고 있는 예술가들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다양한 문헌들을 살펴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 다. 다만 위 문헌 자료 중에 소개되거나 채록된 명인 중 여렷 존재하는데, 연구의 편리성과 통계의 정확성을 더 대한 자료 또한 함께 활용했음을 미리 밝히는 바이다. 생존해 높이기 있는 명인들도 위하여 이들에 아래 표는 위에서 제시한 자료들을 활용하여 분석하고 통계를 작성하기 위한 항목을 설정한 것이다. 위 소개 자료들은 그 형식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명인 출생연도, 출생지, 스승, 배운시기, 사사기간, 학습곡목, 학습장소, 학습동기, 가족 영향, 활동시기, 활동상황, 활동기간, 특이사항 등으로 설정하여 도표화하 였다. 아래 제시된 <표 5> 와 같이 관련 내용틀을 정리하고 이를 출생지, 학습 시작 시기, 사사 기간, 스승 수, 학습 종목, 부모 및 친인척의 영향 등을 통계 결과흘 해석하였다. <표 5> 명인 문헌 사례 분석과 통계를 위한 항목 설정표 /ι 즈: 스 승 이 력 배 운 시 기 사 사 기 간 하 스 β 조 모 하 스 닝 자 소 학 스 닝 동 기 가 족 영 향 활 동 시 기 활 동 상 황 활 동 기 간 특 이 사 항 - 34

44 이 통계 분석에는 몇 가지 어려운 점이 있었음을 미리 밝힌다. 첫째, 궁중음 악, 무용, 연희 부분에서는 통계를 내어 이해할 만한 조사자 수가 적기 때문에 통계 활용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 예상된다. 둘째, 시대에 따라 음악을 분류하 는 방법이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2에서 기관을 통한 영재 교육은 궁중 과 민간 음악을 나누었으나, 실제 3장에서 명인의 실례를 조사 보고할 때는 정 악과 민속악으로 나누었음을 밝힌다. 셋째, 조사보고서의 내용 중 과거 전통공 연예술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시선 때문에 신분에 대한, 혹은 가족에 대한, 친척에 대한 증언이 구체적이지 않거나 사설과 다를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할 수 가능성이 있다. 다음으로는 여러 종류의 명인들의 특수 사례를 통해 어떠한 선발된 영재 어떠한 목표를 가지고 지도해야 하는 지 살펴보았다. 특수 사례로서는 정악대 의 명인 김계선, 정약대, 판소리의 어린 천재 김강남월, 무형문화재였던 함동정 윌, 춤의 명인이요, 피리의 달인, 명고수로 이름 높았던 한성준을 선별하여 간략 하게 살펴보았다. 2. 기관을 통한 전공공연예술인 교육 1) 궁중 예술 교육 (1) 장악원의 예술 교육 일제강점기 이왕직아악부의 아악수장을 역임했던 오당 함화진은 국악 50년 회고사 에서 장악원의 교수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인용 1> 직원의 자질( 子 않)들은 출생하는 그달부터 월급을 받고 성장하여 13.4세만 되면 반드시 악원( 樂 院 )에 들어와 음악을 배우게 되어 매년 3월 3 일 부터 9월 9 일까지 초집( 招 集 ) 교수하는 것을 장패( 長 牌 )라 하여 매일 오전 8 시 부터 오후 6시까지 가르치고 또 11 월 1 일부터 12월 24 일까지 야간 교수하는 것 소업방( 所 業 房 )이라 하여 매일 오후 6시부터 12시까지 교수하니 장패( 長 牌 ) 와 소업방( 所 業 房 )의 교수장소는 물론 본원( 本 院 ) 내에 각각 처소가 지정되어 있으나 소업방( 所 業 房 )에 한하여는 선생 자택에서 가르치기도 하는 것이다. 아동들에게 처음 악기를 지정하는 방볍은 그 체격( 體 格 )과 자세를 보아 지정 하니 가령 목이 깊고 손가락이 길면 대금( 大 짝)을 가르치고 손가락이 짜르면 피 리를 가르치고 용모가 단정한 자에게는 현악( 鉉 樂 )을 가르친다. 그러나 대체로 x ι

45 보아 악사( 樂 師 )와 전악( 典 樂 )의 자질( 子 됐)에게는 매양( 每 樣 ) 현악( 鉉 樂 )을 치고 악공( 樂 工 )의 자질( 子 첼)에게는 관악( 管 樂 )을 가르쳤으니 이것은 음악인 에도 현악은 상등인이 하는 것이고, 관악은 하등인 한다는 관습이 있어서 악기 로서 상하를 차별하는 악습이 있었던 것이다. 악인은 대개 세습제도이니 만치 자기 기술의 가장 미묘하고 독특한 가락은 좀 채로 타인에게 가르치지 않는 고집으로 극비에 붙이고 자기의 자질에게만 그 비방을 전수하는 고로 자연 그 비방( 秘 方 )으로 인하여 그 악기( 樂 器 )가 세습 적으로 전통을 계승하게 되니 그 세전( 世 傳 )을 가르쳐 거문고집이니 가야금집이 니 피리집이니 이러한 등의 이름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성재인( 成 才 人 )들도 매일 출근하여 2.3회식 합주 연습하되 만일 연습중에도 일부만이라도 잘못되는 점이 있어 발견될 때에는 용서없이 태형( 答 페)에 처하고 이와같이 2.3회의 잘못되는 점이 있을 때에는 또한 2.3회의 태형을 받게되니 여기에는 노소의 구별도 없는 것이다 18) 위 <인용 1> 에서 볼 수 있듯이 나라의 음악을 책임지는 악공들은 세습으로 선발되었는데, 그 세습이란 오늘날 의미의 예술적 유전자의 전승으로 해설할 수 있을 것이며, 13세 즉, 오늘날의 초등학교 6학년 정도 나이에는 본격적인 전통 음악 교육을 시작하였으며, 1 년에 1, 2 월, 그리고 10월 정도의 방학에 해당되는 시기를 제외하고는 10시간에 가까운 학습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장악원 교육은 비록 영재 교육은 아니며, 세습에 의한 교육에 해당하지만, 이 른 시기의 어린이들을 매우 엄격하게 훈련하여 악공으로 성장하도록 하고 있음 알 수 있다. 장사훈도 국악개요 에서 장악원에서 세습 음악인들이 어떻게 수업을 받는 지 적고 있다. <인용 1> 장악원 풍습은 이려했다. 악사청과 전악청이 있었다. 전악청에는 아동방( 兒 童 房 ), 장래방( 將 來 房 ), 성재방( 成 才 房 ), 참상방( 參 上 房 )의 네 반이 있 고, 따로 처용무를 배우는 오상방( 五 相 房 )이 있었다. 아동방은 섭이 삼세 되는 악인들이 음악 공부를 하는 곳이고, 여기서 업을 마치고 십육 칠세가 되면 장 래방에 들어가서 역시 음악 수련을 쌓게 된다. 장래방에서 기량이 우수해서 가 위 일가를 이루게 되면 다시 성재방에 들고 사표( 師 表 ) 자격을 갖추게 된 연후 에야 비로소 참상방에 든다. 다시 말하면 초년반 중등반 고등반의 순서를 거 치는 셈이다 19) 18) 함화진, 국악 50년 회고사 (4)," r음악생활 J(서울 국민음악연구회, 19ffì), 3월호, 쪽. 19) 장사훈국악개요J( 서울: 정연사, 1961), 잃4쪽. $

46 위 장사훈의 기록에는 아동방, 장래방, 성재방, 참상방 네 단계의 교육 체제 밝히고 있다. 함화진의 논의를 함께 연결시켜 보면 아동방, 장래방까지 장패와 소업방의 교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함화진이 말한 성재인은 성재방에 든 이 로 보이기 때문이다. (2) 이왕직 아악부의 예술 교육 일제강점기에는 장악원의 교육 전통이 사라졌다. 그러나 궁중음악의 명 맥이 계속 유지하기 위하여 이왕직아악부원양성소가 문을 열어 1919년부터 1945년까지 운영되었으며 1 기에서 7기생까지 모집 운영하였다. 양성소에 입학한 학생들은 전공인 악과 이외에 일반학과를 병행하여 수엽을 받도록 되어 있었다. 성기련은 이왕직 아악부원양성소의 음악교육 연구 에서 1920년에 제정된 이해 4차에 걸쳐 개정된 규정에 소개되어 있는 교수 방식을 정리하여 발표한 바 있다. 아래에서는 그가 정리한 시간표 및 학과 과정을 인용 소개하고자 한다.때) <표 6> 제 1 기생 시간표 및 학과 과정<1 920년 제정) 과도 ~ 1 학년 2학년 3학년 악리 성악 한문 학과목 습자 수신 일어 까E 1f 까:r 악조 기악 13 악조 기악 일무 13 악조 기악 악장 13 계 ) 성기련, 이왕직 아악부원양성소의 음악교육 연구" r제6회 동양음악연구소 국내학술회의 사료 를 통해 본 이왕직아악부~(서울: 서울대학교 동양음악연구소, 2(04), 학술대회 자료집, 125, 130 쪽의 도표를 참조하였다. 아래 표 8>까지 본 자료를 참조하였음.? ω

47 <표 7> 제 17] 생 학과배정(1920년 제정) 학습내용 1 학년 악조 문묘제례악 6궁, 종묘제례악곡 기악 편종, 편경, 특경, 금, 슬, 소, 훈, 지, 약, 적, 진고, 절고, 어, 박, 필률(당피리) 2학년 악조 종묘제례악곡 3학년 기악 일무 악조 기악 악장 펀종, 편경, 방향, 필률(당피리), 대금, 해금, 아쟁, 대금( 大 金 ), 진고, 절고, 축, 박 문묘제례 일무(문무, 무무), 종묘제례 일무(보태평지무, 정대업지무) 여민락, 령, 보허자, 만,낙양춘, 정읍, 영산회상,평조회상, 별곡, 취타, 가곡 편종, 편경, 방향, 필률(당피리, 향피리), 대금, 해금, 장고, 좌고, 건고, 현금,가야금,양금,생황,단소,박 종묘 경효전, 의효전, 경학원 37] 생 모집 공고를 보면, 연령은 11 세에서 17세에 해당하는 학생들을 모집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들 3기생이 받은 수엽은 1 기생, 27] 생 보다 더욱 다양하였 는데, 증가학과 수업 총시수를 정리한 표를 아래 인용하여 본다. <표 8> 아악생 증가학과수업 총시수 일람표 1j노 普 通 科 - 專 攻 科 구분 제 1학년 제2학년 제3학년 저μ학년 저115학년 비고 聲 樂 O O O O 器 樂 o O O O 實 習 O O O O 2,0또 정찢 樂 좋 樂 177 專 攻 483 合 奏 882 樂 樂 章 O O 68 歌 曲 123 科 歌 科 歌 O O 172 歌 詞 40 時 調 9 舞 科 舞 152 f륨 舞 90 普 通 舞 法 62 雅 樂 理 論 O O O O 490 音 樂 通 論 O 98 讀 法 P 昌 歌 樂 O O O 294 音 響 學 49 理 樂 理 音 樂 史 49 科 音 樂 原 理 49 作 曲 法 O 49 ιni n ~ O 48 끼 J

48 위와 같은 교육에서 장악원 시절에 비해서 악리에 해당하는 교과목을 지도하 여 예술 원리를 학습하는 것이 오늘날의 현대식 예술 교육과 맥락이 매우 유사 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5년제 과정으로 체계적인 예술 교육의 시스템을 갖춘 것은 전통공연예술 영재 교육의 커리률럼 작성에 참고가 될 것으로 본다. 2) 민간 예술 교육 (1) 신청이나 재인청의 예술 교육 노동은은 국악영재교육의 특성과 역사 에서 신청이나 재인청 출신의 국악영 재들은 당대 명인 명창 반열에 오른 가족들의 예술적 분위기에서 성장하고, 6-7세가 되면서 음악과 춤의 기본 학습을 하는데, 한 장르씩 석달 또는 100 일 간 집중적 학습심화과정으로 발전시켜 10대 또는 20대에 준명인의 반열에 오르 고, 음악춤 예술의 다양한 장르를 종합하여 스스로의 예술을 완성시켜 갔다고 지적하고 있다.2 1) 그는 전라도 신청의 예를 들어 기넣는 연습 으로 시작하여, 장단교육을 진행 하며, 다음으로 일가(- 家 ) 교육으로 춤과 음악을 함께 포괄적으로 학습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현장에서 그대로 적용하는 현장 교육과 체험 교육 을 일상화하여 그들의 실력을 배양하였다고 한다. 오늘날 전통공연예술 교육에 서 사라져 버린 현장학습과 체험학습의 교육을 어떻게 되살릴 수 있는가 또한 예술 영재 교육에 있어서 주목되는 점이라 하겠다. 신청 및 재인청 출신의 명인들의 분야별 첫 학습시기와 교과내용을 정리한 노동은의 자료를 아래 인용하여 본다. 21) 노동은, 국악영재교육의 특성과 역사" r국악영재교육을 위한 세미나J(2005), 6월 1 일에서 6월 4 일까지 열린 세미나 발표 자료 참조

49 <표 9> 국악영재들의 분야별 첫 학습시기와 교과내용22) 나이 판소리 가야금 가야금 ta i l 거문고 성악기타 대금 기악기타 춤 계 5세 0 6세 송흥록 김수악 한성준 홍성덕 (양금,소리) (장단) 4 장판개 송만강 7세 전도성 김창룡 성우향 김죽파 정정렬 김정문 박귀희 김여란 (가곡,가사, 성긍연 박봉술 장월중선. 시조) 14 김일구 8세 이동백 정응민 임방올 한숭호 김동준 진봉규 한농선 (영산회상) 9 박동실 성홍준 9세 조소옥 김녹주 선쾌동 6 정순임 한범수 10세 이선유 조동선 (퉁소, 3 단소) 11 세 한애순 박송회 신영희 함통정월 4 12 세 영계달 박화섭 정창업 배셜향 김녹주(김해) 조몽실 박녹주 김득수 김소희 박초월 안채봉 김애정 (가곡, 가사 시조) 12 13세 김초향 성운선 냥해성 조상현 박춘섭 정달영 (양금) 6 14 세 김성옥 오태석 김천흥 (아악) 강선영 (춤) 4 15세 박계향 1 정경태 16세 공창식 (시조) 3 이생강 기타 정광수(17) 박동진(17) 김동표 송순섭(1 8) (19) 김연수 (29) 위 도표를 살펴보면 다양한 장르의 전통예술 영재들이 6세때부터 전공 분야 의 학습을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비교적 이른 시기의 명창들이 어린 시절부 터 학습을 한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국악사의 한 획을 긋고 있는 명인 명 22) 노동은, 국악영재교육의 특성과 역사" r국악영재교육을 위한 세미나J(2αX5), 80쪽 참조

50 창의 경우 10세 이전에 학습을 시작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 하다. 노동은은 위 도표를 분석하면서 국악영재들의 본격적인 학습 시기는 6세에 서 29세에 걸쳐 그 시작이 다르나 전체에서 68%가 7세에서 12세에 이르는 시기 에 집중적으로 시작한다. 13세부터는 상대적으로 감소의 폭이 크다. 또 이들이 6셰 이전에 학습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예술적인 가정 환경에서 성장하였음을 전제로 한다고 언급하며 7세에서 12세에 첫 학습시기가 걸쳐있음을 명확히 했 다. 29세에 시작한 김연수 명창의 경우 영재형이 아닌 노력형의 명장으로 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2) 민간 기생학교 예술 교육 권번이란 일제강점기에 기생들이 기적( 破 籍 )을 올리던 조합을 말한다. 이러한 권번은 민간의 여성들의 종합적인 예술을 지도하는 교육적 역할을 담당하였는 데, 이들의 교육 과정 또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1918년에 편찬된 조선미인보감 에는 권번 기생들의 특기를 기록하고 있다 w조 선미인보감 에 수록된 권번은 한성권번, 대정권번, 한남권번, 경화권번, 대구조 합, 금천조합, 동래조합, 창원조합, 광주조합, 평양조합, 전남포조합, 수원조합, 개 성조합, 인천조합, 안성조합, 연기조합 등이다. 아래 <표 10> 에 조선미인보감 에 소개되어 있는 기생들의 권번 및 조합별 나이분포를 제시하여 보았다. 이 표를 보면, 가장 어린 기생이 9 세이고, 가장 나 이가 많은 기생은 33세로 나타나고 있다. 19세의 기생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 나고 있는데, 16세부터 19세 사이의 기생의 숫자가 많은 것으로 보아 대체적으 로 기생은 10 대 후반이 절정기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주목할 만한 것이 9세 의 어린 동기들도 있다는 것이다. 띠

51 <표 10> 1918년 당시 권번소속 예기 연령표23) 애 lc에 漢 쨌 大 ïe 漢 혐 흙때 2시폈 :Á때 東 햇 平 짧 Jtiii a때벚 윗 城 仁 J!I 金 폈 開 城 鎭 볍1벼 설 原 합 11세 세 3 13세 m 빼 lì 15세 세 z3 2) ?l 1꺼l ffi 18세 % m 19세 z δ ffi JYl 세 II 껑새 $세 세 장 aw 세 ^ Al1 3Jl.i 33^11 합계 $ !Nl 이들은 권번에서 체계적인 예술 교육을 받았는데, 이제 이들의 예술 교육을 검토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기성권번의 예를 들어본다. 기성권번은 1913년에 설립한 평양예기조합에서 발전한 것으로 그 산하에 존재하던 비공식적인 기생 학교를 1921 년에 평양기성권번 학예부로 명칭을 변경하여 공식 학교로 발전시 켰다. 이 학예부는 입학연령을 8세에서 20여세까지로 한정하고 만 3년의 수엽 연한으로 졸업증서를 부여하였다고 한다. 성경련의 현대국악개관 을 보면 바로 기성권번의 학식이 실려있다. 이 학칙에 23) 송방송, 경성방송국에 출연한 예기의 공연활동한국근대음악사연구 J( 서울: 민속원, 2003), Z75-76쪽 참조

52 따르면 기생들이 배우는 학과목으로 가곡, 시조, 겁무, 우의무(쩌 衣 舞 ), 거문고, 양금, 거문고 등의 가무와 악기연주가 있고, 이외에 한문, 시문, 서, 행서, 예서, 도화, 사군자, 산수, 인물 등의 기예과목이 있고, 또 교양으로 일어 독본 회화 등이 있다. 이러한 예를 비추어볼 때 전국에 분포한 권번 및 조합에서 예기들이 할 수 있 는 공연 종목이라는 것은 기성권번 학습교과목에 비추어 크게 벗어나지 않으리 라 생각할 수 있다. 노동은은 위 논문에서 평양기성권번 학예부에서는 시조, 가 곡, 겸무, 가야금, 양금, 한문, 시문, 서, 행서, 해서, 도화, 사군자, 국어(일본어), 독본, 회화 등을 비롯하여 사미센, 사쿠하치, 엔타류의 일본 악기 및 대중가요를 교과 과정으로 운영하였다고 조금 다르게 언급하고 있기도 한다.갱) 송방송은 경성방송국에 출연한 예기의 공연활동 에서 한남권번 소속 예기들의 기예 종목에 대하여 논의한 바 있다. 먼저 그는 한성권번 소속 기녀들의 기예 종 목을 정리하여 보았는데, 성악 부분에서는 가( 歌 ), 가사( 歌 詞 ), 경서잡가( 京 西 雜 歌 ), 남중잡가( 南 中 雜 歌 ), 서관잡가( 西 關 雜 歌 ), 서도리곡( 西 道 理 曲 ), 서도잡가( 西 道 雜 歌 ), 시조( 時 調 ), 우계면(꼈 界 面 ), 우조(겼 調 ), 가곡( 歌 曲 ), 경성잡가( 京 城 雜 歌 ), 남도리 곡( 南 道 理 曲 ), 남도리요( 南 道 理 護 ), 남도리창( 南 道 理 唱 ), 서도리가( 西 道 理 歌 ), 서도 리창( 西 道 理 唱 ), 서도행가( 西 道 行 歌 ) 등의 분류 명칭이 등장하고 있음을 소개하였 다. 이외에도 경성행가( 京 城 行 歌 ), 남도리곡( 南 道 理 曲 ), 남도잡가( 南 道 雜 歌 ), 남도 행가( 南 道 行 歌 ), 남방속요( 南 方 % 護 ), 내지가( 內 地 歌 ), 내지요( 內 地 諸 ), 서관리곡 ( 西 關 理 曲 ), 서관리요( 西 關 理 證 ), 서남리요( 西 南 理 護 ), 서방속요( 西 方 % 護 ), 잡가 ( 雜 歌 ), 창가( 唱 歌 )라는 성 악 분류 명 칭 도 등장하고 있다.잃) 이 들의 기 예 종목은 기성권번의 학습 과목과도 잘 일치하고 있다. 뒤에 함동정월 명인의 사례를 통해 더 구체적으로 언급되겠지만 권번에서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8시간 동안 전 종목에 걸쳐 매일 교육하여 각 종목 이 매우 숙달되도록 지도하였다고 한다. 24) 노동은, 국악영재교육의 특성과 역사" w국악영재교육 관련 심포지움 발표 논문 J, 85쪽. 25) 송방송, 경성방송국에 출연한 예기의 공연활동" r한국근대음악사연구 J(2003) 참조

53 3. 명 인 문헌 사례 통계 조사 26) 1) 음악 부분 (1) 궁중음악 및 풍류 본 항목에서는 종묘제례악, 정악가야금, 대금정악, 영산회상, 가곡, 남창가곡, 가 사, 시조 등으로 조사된 기록을 정리한 것이다. 각 항목별 문헌에 조사된 명인들 의 숫자가 매우 적은 관계로 이들 항목의 음악 통계 대상자가 19명에 지나지 않 는다. 아래 각종 통계표와 다이아그램이 제시되었다. 출생지 통계를 보면 서울 지역 출신이 63%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학습 시작 시기는 조사되지 않은 경우가 많 았는데, 6세에 시작한 사람도 1 명이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이 14, 15, 16세로 나 타나고 있는데, 이는 장악원의 제도에서 알 수 있듯이 13, 14세의 어린이를 아동 방에서 교육 시키는 제도를 연상하게 한다. 사사 기간은 6-10년 사이가 가장 게 나타났다. 장악원체제 내에서 스승 수는 1 명으로 학생은 한 사람의 스승을 모 시고 학습한 경우가 가장 많은데 이는 도제식 교육의 특징이라 해석된다. 하지만 이왕직 악부원양성소와 그 후신인 국악사양성소 등과 같은 교육기관에서 다양 한 교육을 지향하면서 다양한 전공의 교사를 활용하였기 때문에 스승 수가 9명 에 달하기도 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이 분야의 세습의 전통이 사라져 부모와 친척의 영향이 없는 것이 82%로 나타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서울 경기도 충청남도 모 르 D 출생지 분류에 따른 통계 % % % % n 1 1 5=mm <그림 4> 궁중 풍류-출생지 분류 에 따른통계 g 서울 I 경기도?층영남도 톨모롬 26) 본 항목은 보조연구자 임정미의 자료 조사 및 통계를 토대로 작성되었음

54 학습시작 시기에 따른 통계 5세 0% 0 6세 5% 7세 0% 8세 0% 10세 0% 11 세 0% <그림 5> 궁중 풍류-학습시 작 시 기 에 따른 통계 12세 0% 53% 13세 0% 14세 5% 15세 10% 2 16세 10% 2 11혔 11% 17세 0% 0% 훌쩍썩 0% Q% 악싹 M$ 훌짝짧 기타 62% 13 5얘 6예 7>1 s셰 i 생 11채 12셰 13 얘 14셰 15얘 10째 17셰지타오홈 100% 29 사사기간에 따른 통계 1 년 -5년 5% 1 6년 -10년 21% 4 11 년 -15년 11% 2 <그림 6> 궁중 풍류-사사기간에 따른 16년 -20년 0% 통계 21 년 -25년 0% 26년 -30년 0% 31 년 -35년 0% 않X 36년 -40년 0% 뚫톰빠 0% 0% 0% 0% 0% 0% 41 년이상 0% 모름 63% 12 * / * & 4f *@ ι& ιl 용 φ ** &tg,&* t (&*,* <&* 100% 19 κ %

55 스승 수에 따른 통계 1 명 47% 9 2 명 21% 4 3 명 5% 5명 5% 6명 11% 2 9명 11% 2 100% 19 <그림 7> 궁중 풍류-스승 수에 따른 랩 댐- - 뤘 없 를l 삐 생 녕 <그림 통계 스승 수에 따른 통계 않 썼 영 없 聊 떻 8> 궁중 풍 류-부모 및 친인척의 영향에 따른 통계 뼈 톨 聊 뼈 얘 얘 빠 뼈 엉 부모 및 친인척의 영향에 따른 통계 g 있슴 없슴 16% 있슴 없슴 16% 84% % (2) 판소리 판소리 분야는 총\ 123명을 대상으로 하였다. 이보형의 판소리유파 에 매우 자 세한 학습 경력이 소개되어 있기 때문에 비교적 신뢰할 수 있는 통계를 얻을 수 있었다.27) 출생지별로 살펴보면 전라도, 충청도 출신의 조사 대상자가 전체의 81%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판소리의 음악적 특성상 육자백이토리권 출신자가 많음을 나타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판소리의 학습 시작 시기는 전체의 76%가 16세 이전에 시작하였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10세 이전에 시작한 경우도 29%로 전체의 3분의 1 에 해당한다 이러한 통 계에 의하면 판소리는 확실에 어린 시기에 시작해야 하는 음악 종목임이 들어난다. 학습 기간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났는데 6-10년이 24%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 후 5년 씩 학습 기간이 늘어나는 경우도 7-14% 사이에 존재하였는데, 이러한 사실 27) 국립문화재연구소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16: 판소리 유파J. 서울: 국립문화재연구소,

56 은 판소리의 다양한 바탕을 모두 학습하기에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함을 말해준다. 스승 수에 있어서는 3, 4명의 스승을 둔 경우가 38%로 매우 높게 나타났는데, 이 또한 현재 전승되는 판소리가 다섯 바탕인 것을 고려할 때 의미있는 통계라 고 볼 수 있다. 학습 내용을 살펴보면 판소리 이외에도 다른 성악이나, 기악, 무용, 연희 함께 학습한 경우가 나타났다. 부모와 친인척의 영향 부분에서는 34%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조사되어 음악적 환경이 판소리에 입문하게 되는 중요한 작용을 하 고 있음도 알 수 있었다. <그림 9> 판소리-출생지 분류에 따른 통계 출생지 분류에 따른 통계 전라남도 45% 55 전라북도 25% 31 l 전라남도 서울 짧흥첩욱도 전라북도 빼경상남도 쩍기타 1%1% 5% 짧충정남도 짧경상북도 충청남도 11% 13 서울 6% 7 경상남도 7% 9 경상북도 5% 6 11% 45% 충청북도 1% l 기타 1% 1 학습시작 시기에 따른 통계 5 서} 2% 2 6서l 2% 2 7세 11% 13 8서l 4% 5 9세 3% 4 10세 7% 9 11 세 4% 5 12세 10% 12 13세 14% 17 14세 7% 9 15세 4% 5 16세 8% 10 기타 24% % 123 <그림 10> 판소리-학습시작 시기에 따른 통계 14% 24% a a l i i il ill i i a 5서 1 6써 1 7세 8세 9셰 10세 11 셔 112세!뼈 114셰 15.셰 16세 기타 47 -

57 사사기간에 따른 통계 1 년 -5년 6년 -10년 11 년 -15년 16년 -20년 21 년 -25년 26년 -30년 31 년 -35년 36년 -40년 깎 년이상 모 름 7 니 ι r 꺼 t % % % 14% 11% 10% 2% 3% 2% 11% 100% 이 μ 영 염 = m <그림 11> 판소리-사사기간에 따른 통계 24% 쩍 l 훌 뼈 를 띠 톨 I I 훌 를 - - α ---- 않 않 빠 ~ $1 ι4 &.t- _~,Y) **&i?.jí.~,.jí'.~.,~.~ & 수~- tc-- í>- \"생? ~"o,.,.~ ~.~~~-.~~-.~!쌍 g l 깨 톨 를 I I 9 스승 수에 따른 통계 1 명 10% 12 2 명 15% 18 <그림 12> 판소리-스승 수에 따른 통계 wm % 3 명 ω wm % 4 명 ω wm ω u 5 명 6 명 7 명 8 명 10명이상 기타 WM WM % % % 100% 1 n ÞÞ ι.ð; b ÞÞ p 4 % <그렴 13> 판소리-학습내용에 따 판소리 기타성악 기악 무용 연희 학습내용에 따른 통계 wm % % % % 뼈 %@ % $ 5 른통계 홈짧짧 ~,0). ~Y.ø Q 'í 0). 6% - 쩌 4 1% 48 -

58 <그림 14> 판소리-부모 및 친인척의 영향에 따른 통계 부모 및 친인척의 영향에 따른 통계 톨있슴 톨없습 이 스 샤 b 어 스 없 b 34% 42 66% % 123 산조 모두 94명의 통계를 내어 보았다. 산조의 경우 판소리와 유사하게 육자백이토 리권 출신들이 비교적 강세를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그 비율은 60% 정도로 판 소리보다 수가 적다. 학습 시작 시기의 경우 16세 이전에 시작한 경우가 전체의 62%로 나타났으며, 16 세 이전까지는 7세에 5%가 나타나는 등 고르게 1-8% 사이로 나타났다. 산조 명인들의 사사 기간은 20년까지가 63%를 차지했는데, 한 가지 악기의 산 조를 습득한 것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악기로 연주하는 산조를 학습하였거나 산 조 이외의 다른 종목을 함께 배웠기 때문에 수 십 년간 학습한 것으로 나타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사 기간의 분포는 스승 수의 통계와 거 의 밀접한 통계를 보여주고 있다. 학습 내용에 대한 통계를 살펴보면 산조의 명인들은 풍류, 시나위, 삼현육각 및 성악에도 특출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주 전공으 로 삼고 있는 악기 외에 다른 악기로 연주하는 기악 또한 많은 수의 연주자들이 기량으로 지니고 있음도 함께 알 수 있었다. 부모와 친척의 영향 부분에서는 판 소리 보다 적은 19% 의 관련 비율이 나왔다. <그림 출생지 분류에 따른 통계 15> 산조-출생지 분류에 따른 통계 전 라 냥 도 전라남도 44% 41 I 전 책 도 였 서 정 기 도 훌 경 썽 경 썼 횡 해 도 기 전라북도 20% 19 타 서울 10% 9 경기도 9% 8 경상북도 7% 7 켜Qλ l나.s:. 3% 3 44% 황해도 3% 3 기타 4% 4 100% 94 20χ

59 학습시작 시기에 따른 통계 5서l 1% 6 서l 1% 7 서l 5% 5 <그림 16> 산조-학습시작 시기에 따른 8세 3% 3 통계 9세 3% 3 10세 5% 5 11 세 1% 12 서1 6% 6 13 서} 7% 7 14세 9% 8 15% 15세 4% 4 16세 15% 14 ~ æ æ ~ : ~ a 1% 1%1 홈!!II 홈톨 기타 38% 뻐 1 7서 1 8써 1 9.Illl때11 내 11 쩌11 뼈 1 14셰 뻐11 뻐 기타 않% 사사기간에 따른 통계 1 년 -5년 15% 14 6년 -10년 17% 년 -15년 13% 12 16년 -20년 18% 17 <그림 17> 산조-사사기간에 따른 통계 21 년 -25년 10% 9 26년 -30년 7% 7 llll 31 년 -35년 3% 3 36년 -40년 1% LljJlt~~~ 41 년이상 2% 2 모름 14% 13 *b *i;1g**i@ **J**vψ i&*a@ X*ti&jf &* g ~ <1' R n ι U

60 스승 수에 따른 통계 1 명 11% 10 2 명 16% 15 3 명 14% 13 4명 13% 12 5명 17% 16 <그림 18> 산조-A 승 수에 따른 통계 6명 11% 10 7명 3% 3 8 명 3% 3 9 명 2% 2 illl i&ial 10명이상 9% 8 * 캉 앙 압 씬 캉 싸 & 양@@ 셔 찌 기타 2% 2 학습내용에 따른 통계 <그림 19> 산조-학습내용에 따른 통계 산조 29% 92 29:t Il.l_ì_: 31 :t 풍류,삼현육 31% 100 각,시나위 기타산조 7% 23 성악 23% 74 ð~? * < 무용 7% 21 Jt>4/i fi * 11.+ "Ò'.,. 연희 3% 8 1>@4,*.fI,~ 명인 1 인이 학습한 기악의 수 1 개 48% 45 2개 23% 22 3 개 13% 12 48% 4개 12% 11 5개 3% 3 20> 산조-명인 l 인이 학습한 기악의 수 톰옮옳닮 3% 6개 이상 1% 1 개 2개 3개 4개 5개 6개 미상 1% 51

61 및 친인척의 영향에 따른 통계 그림 21> 산조-부모 및 친인척의 영향에 따른 통계 훌있승 률없음 있슴 19% 1"느 lla 0 81% 삼현육각 및 시나위 삼현육각과 시나위를 하나로 묶어서 통계를 내보았다. 신청이나 재인청에 속한 예인들이 연주하던 두 음악의 성격은 다르지만 유사한 민간 단체에 소속된 예인 이 연주하던 음악이기 때문이다.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에 서울 경기 지역 삼현육각과 남도 지역의 시나위 명인 들이 많이 조사되었기 때문에 출생지 별 통계가 전라도 44%, 서울, 경기 40%로 나타났다. 사실 경기 지역의 경우 삼현육각의 뛰어난 연주자가 시나위 명인일 가 능성이 많다. 조사 대상자 중 58%가 16세 이전에 학습을 시작한 것으로 되어 있다.8세에 시작한 조사 대상자가 4명으로 9%이며 14세 때 시작한 비율이 19%로 제일 높다. 학습 기간의 경우 20년 이하가 69% 였다. 1-5년 사이로 학습한 대상자가 23% 로 제일 많이 나타났다. 스승 수에 있어서는 모든 대상자가 6명 이하로 조사되었 는데, 1-3 명 사이가 75%를 차지했다. 삼현육각 및 시나위 연주자들은 이들 음악 외에 기타기악을 14%, 무용, 연희, 성악 6, 13, 8% 정도로 하고 있었다. 부모와 친인척 등의 영향은 19% 였다. 출생지 분류에 따른 통계 <그림 22> 삼현육각 및 시나위-출생지 분류에 따른 통계 전라남도 28% 경기도 28% 전라북도 16% 서울 12% 경상남도 9% 황해도 7% 1{)()% μ E = 염 l 전라남도 燦 전라욱도 g 경상남도 7% 톨경기도 서옳 鍵 활 õh 도 m 4

62 학습시작 시기에 따른 통계 세 세 세 세 9 세 K 써 n 세 U 깨 E 써 써 k ι π 깨 씨 μν 페 K 기타 0% 0% 2 5% 4 9% 1 2% 1 2% 1 2% 1 2% 2 5% 8 19% 3 7% 2 5% 42% 100% 43 mm <그림 23> 삼현육각 및 시나위 학습시작 시기에 따른 통계 9x 5% 를2x 2x 2x 2x 마따.1. ;. 5서 1 6서 1 7.셰 8셰 9Ai1 10셔 111 써112셔 1 13셰 14서 1 15.\11 16셰 기티 19X 42x 1 년 -5년 6년 -10년 11 년 -15년 16년 -20년 21 년 -25년 26년 -30년 31 년 -35년 36년 -40년 41 년이상 사사기간에 따른 통계 % α MW% % % % % % % m <그림 24> 삼현육각 및 시나위-사사 23x 햄 j l1li 기간에 따른 통계 9x l 훌 i 태며아앤 않써 생 ι#j양성 성 감 양δ γ 얀~-얀~- ~' 앙 1 명 2 명 3 명 4 명 5 명 6명 스승 수에 따른 통계 잃 m 0/ o ω % 0/ o M 0/ 0 2 / O/ /0 ν ) τ ( vr % μ 7 U <그림 25> 삼현육각 및 짧 훌 를 톨 聊 댐 름 수에 따른 통계 짧 톨톨 를l I톰 냉 聊 시 나위 2% 111_. 훌* 1 명 2명 3명 4명 5명 6명 잉

63 학습내용에 따른 통계 <그림 26> 삼현육각 및 시나위- 학습내용에 따른통계 시나위,삼현 60% 61 60% 육각 기타기악 14% 14 무용 6% 6 연희 13% 13 성악 8% 8 * ')<k- 끼} * <그림 Z7> 삼현육각 및 시 부모 및 친인척의 영향에 따른 통계 나위-부모 및 친인척의 영향에 따른 통계 I 있슴 I 없슴 이 시 어 없 스 n 스 D 19% 81% % 잡가와 민요 잡가는 모두 20명을 대상으로 통계를 작성하였다. 출생지별로는 아래와 같이 서울 지역이 45%, 전라남도가 1Q% 이고 나머지가 경기도, 강원도, 경상남도 등이 었다.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에서 조사된 민요 종목들은 노동요가 많이 들어있다. 전 통음악사회에서 노동요는 전문가의 음악으로 보기에는 어려운 면이 많이 보이므 로 통계를 읽을 때 주의해야 한다. 학습을 시작한 시기는 10세 때 1 명이 나타나 고, 12세에 1 명, 13세에 2 명 등으로 보여진다. 앞서 민간의 기관에서 권번 교육을 생각하여 보면 전문가의 노래로서 민요가 전수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민요의 영재 부분은 이번 조사 통계보다는 기관의 교육 방법을 더 참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학습 기간에 대한 통계로는 20년 이내의 학습자가 전체의 70%를 차지했다. 그 리고 1-5년 사이의 학습자가 전체의 30%가 되었다. %

64 민요 조사 대상자의 경우 성악 이외에 기악을 학습한 경우가 많이 나타났다. 각 대상자의 학습 내용을 분야별로 나열한 후 종목 별로 통계를 낸 것으로 보면 79% 성악 대비, 12% 기악으로 나타났다. 부모와 친인척의 영향은 20% 로 나타났다. 출생지 분류에 따른 통계 <그림 28> 잡가와 민요-출생지 분류에 따른통계 서울 45% 9 전라남도 10% 2 경기도 5% 1 강원도 5% 45% 경상남도 5% 1 기타 30% 6 서옳 l 전라남도 었경기도 강원도 lii경상냥도 쨌기 Ef H t 0/ 5% 10% 학습시작 시기에 따른 통계 5세 0% 6세 0% 7 세 0% 8세 0% 9세 0% 10세 10% 2 11 세 0% <그림 29> 잡가와 민요-학습시작 시기 에 따른 통계 12세 5% 6Illi 13세 10% 2 14세 0% 15세 5% 1 16세 10% 2 며 앤 마 따 따 _1- 아) 략 훌 )아 굶 l 기타 60% 12 5셰 6셰 7셰 뻐 I 9.셰 l 때! 1 서 I 12셔 I 13써 I 14셔 I 15써 I 16셔 l 기타 다ι

65 사사기간에 따른 통계 1 년 -5년 30% 6 6년 -10년 15% 3 11 년 -15년 15% 3 <그림 30> 잡가와 민요-사사기간에 따른 16년 -20년 10% 2 통계 21 년 -25년 0% 26년 -30년 0% 31 년 -35년 0% las l 36년 -40년 0% 1 41 년이상 0% 모름 30% 6 100% 20 ::m... I... i.. 따땐며@ WJgι.,)수 ν* &#ιl 장i&* &* l b*.~f) ~ ::m 스승 수에 따른 통계 1 명 30% 6 2 명 25% 5 <그림 31> 잡가와 민요- 숭 수에 따 른통계 3 명 20% 4 30% 4명 5% 5 명 5% 1 II숱잉 10% 6명 10% 2 5% 5% 톨 7명 5% 1 ll l l톰- 100% 20 1 명 2명 3명 4영 5명 6명 7명 학습내용에 따른 통계 79% <그림 32> 잡가와 민요-학습내용 에 따른통계 성악 79% 27 기악 12% 4 기타 9% 3 100% 34 *C그, - r 기약 )1 타 %

66 부모 및 친인척의 영향에 따른 동계 <그림 33> 잡가와 민요 및 친인척의 영향 에 따른 통계 이 샤 어 없 스 n 스 D 20% 4 80% % 20 l!!!있슴 없슴 20% 2) 무용 부문 무용 부문은 궁중 정재와 민속 무용을 함께 통계를 내었다. 그 조사 인원수가 74명으로 적기 때문이다. 조사 대상자의 통계를 보변 경상남도 출신이 47%, 서울이 16%, 경기도 7%, 전라도 8%, 기타 8% 등이었다. 무용 부분에서는 전체의 44% 가 16세 이전에 무용을 학습하였다고 하고, 26% 가 기타, 조사되지 않은 대상자가 36%로 나타났다. 결국 36%를 제외한 나머지 가지고 보면 학습 사작 시기는 16 셰 이전 학습자가 이후 학습자의 2 배가 넘는 형국을 보여주고 있다. 사사 기간을 보면 73% 의 대상자가 조사되지 않았고, 나머지 27% 가 20년 이하 로 조사되었는데, 그 중에서 1-5년 사이의 학습자가 제일 많았다. 스승 수에 있어서 1 명이 전체의 46% 를 차지하였는데, 이것은 타 장르의 예술 과 비교했을 때 높은 수치라 할 수 있다. 이는 조사된 무용이 특히 개인 종목 위 주로 짜여져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부모와 친인척의 영향은 9%로 다른 장르에 비해 낮게 나타났다. 출생지 분류에 따른 통계 <그림 34> 무용-출생지 분류에 따른 통계 경상남도 47% 35 l1li경상남도 I 서울 경기도 l1li전라록도 JIIiII전라냥도 71Er 서울 16% 12 모를 경기도 7% 5 14% 전라북도 4% 3 전라남도 4% 3 4% 기타 8% 6 4% 47% 모름 14% 10 7% R 7 ι I

67 학습시작 시기에 따른 통계 5서l 0% 6세 1% 7세 3% 2 8세 0% 9세 1% 1 10세 1% 11 세 1% 12세 3% 2 13세 15% 11 14세 1% 1 15세 0% 16세 11% 8 기타 26% 19 모름 36% % <그림 35> 무용-학습시작 시기에 따 른통계 따 # 용 며 쉰따 鋼 나;냐퓨냐용휴내 1훌훌 5뻐뻐셔셰! 6뻐써셰! 7,쩨셰 8뼈뼈써셰1 9뼈뼈셰1 10뼈셰 11배1써께셔세lμ12,갱찌셰113뼈셔셰11씨4씨빼찌예115해삐셰 μ1뼈뻐삐 기타 모훌 36x 사사기간에 따른 통계 1 년 -5년 6년 -10년 11 년 -15년 16년 -20년 21 년 -25년 26년 -30년 31 년 -35년 36년 -40년 41 년이상 11% 8% 3% 5% 0% 0% 0% 0% 0% <그림 36> 무용-사사기간에 따른 통계 -- % i 찌? x % 셨,~...,,t,,~ ι & Q,& 냥 t 와 앓 않 생 생 영 써 9 Pφ i>-.,'- '*'- ~ % % 따 % % 3 를 I 를 를 I -삐 학습내용에 따른 통계 <그림 37> 무용-학습내 용에 따른 통계 무용 71% 110 기악 16% 25 기타 12% % 154 훌1- 무용 71 므1 7!Ef 71% - 58

68 스승 수에 따른 통계 1 명 46% 34 2 명 5% 4 3 명 11% 8 4 명 1% 1 5명이상 11% 8 모름 26% % 74 <그림 38> 무용-스승 수에 따른 통계 繼 훌 톨 l 삐 약 갱슬 뤘 뼈. 룹 얘 썼 뼈 l 聊 1 영 2명 3명 4영 5명미상 모름 <그림 39> 무용-부모 및 친인척의 영향에 따 른통계 부모 및 친인척의 이 샤 어 없 스 U 스 n 9% 91% 영향에 따른 통계 7 % 100% 74 뺑있음 l 없음 91χ 9% 3) 연희 부분 (1) 풍물 풍물 부분에서는 모두 91 명을 대상으로 통계를 작성하였다. 풍물의 경우 남사 당패와 같은 전문 예인 집단에서는 어련 시절부터 조기 교육을 통해 아동둡을 지도하였으나, 마을 단위, 부락 단위의 두레 풍물에서는 전문적인 예술 활똥이라 기 보다는 민속 활동으로서 존재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에 들어서 풍물로부터 사물놀이 등이 분화되고, 풍불이 전문성을 펼요로 하는 전문가의 공연 예술이 되 어 과거와 달리 창조적 예술가의 양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졌다. 생지별로 살펴보띤 경상남도가 47%, 전라북도가 21%, 충청남도 9%, 경기도 7%, 전라남도 5%, 충청북도 4% 등이었다. 학습 시작 시기는 17세 이하가 50% 로 각 나이별로 고르게 나타났다. 풍물의 사사 기간은 거의 조사되지 않았는데, 73% 의 대상자의 것이 조사되지 않았고, 조사된 나머지 대상자 중의 대부분인 15% 에 해당하는 대상자가 1-5년 59 -

69 동안 학습한 것으로 되어 있다. 스승 수에 있어서는 1 명이라는 조사가 79%로 절대적이었다. 학습 내용에서도 이 87%로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다. 부모와 친인척의 영향은 2%로 조사 대 상의 모든 종목에서 가장 낮은 비율을 나타내었다. <그림 40> 풍물-출생지 분류에 따른 출생지 분류에 따른 통계 경상남도 47% 43 전라북도 21% 19 충청남도 9% 8 경기도 7% 6 전라남도 5% 5 충청북도 4% 4 기타 7% 6 통계 l 경상남도 전라욱도 옳흥정냥도 I 경기도 용전라남도 쨌충칩욱도 기타 7% 47% 학습시작 시기에 따른 통계 5세 3% 3 6세 1% 1 7세 3% 3 8세 2% 2 10세 1% 1 11 세 1% 12세 2% 2 13세 3% 3 14세 4% 4 15세 3% 3 16세 7% 6 17세 13% 12 기타 55% 50 <그림 41> 풍풀학습시작 시기에 따른 통계 13% 3% 1% 3% 2x 1% 1% 2x 3% 4% 3% π l 1:1... 1, 1, 1l1li... 1 삐 삐 7셰 뻐 11삐 11 서 1 12시 3 써 1 14세 15써 1 16셔 1 17.세 기타 55%

70 사사기간에 따른 통계 1 년 -5 년 15% 14 6년 -10년 4% 4 11 년 -15년 1% 16년 -20년 3% 3 <그림 42> 풍물-사사기간에 따른 통계 21 년 -25년 0% 업X 26년 -30년 0% 31 년 -35년 1% 36년 -40년 0% 4% IX 3% 0% 0% 1% 0% 2x 훌훌빼빼없빼 繼 없 41 년이상 2% 2 모름 73% % 91 t *ι ~ψ ι**@,* * &@@* 장 * l ν**δ </' 스숭 수에 따른 통계 1 명 79% 72 <그림 43> 풍물- 승 수에 따른 통계 2 명 5% 5 3 명 2% 2 79% 5 명 2% 2 l휴 효 6명 1% 9 명 1% 2% 1% 1% 9% 모름 9% 8 {삐L. 100% 91 1 명 2명 3영 5명 6영 9명 모를 <그림 44> 풍물-학습 학습내용에 따른 통계 내용에 따른 통계 87% 기타 n핸 87% 13% 농막 기타 m

71 <그림 45> 풍물-부모 및 친인척의 영향에 따른 통계 부모 및 친인척의 영향에 따른 통계 liiiii있슴 I 없슴 있스 O 없스 O 2% 98% 2 89 εx 98% (2) 무속(법패 등 불교 포함) 무속과 범패 및 작법의 조사 대상자는 모두 27 명이다. 이 분야의 화재 조서보고서 등의 문헌에 구체적인 학습 경력 둥이 조사되지 작성 및 분석에 어려움이 나타나고 있다. 출생지별 대상자는 서울 19%, 경기도 15%, 황해도 15%, 경상북도 11%, 전라 남도 4%, 기타 15% 등이었다. 학습 시작 시기의 경우 조사 대상자의 70%가 조사되지 않아 그 시기를 알 수 없었는데, 나머지가 5 세, 7 세, 8세, 9 세, 15세가 1 명이고, 17 세 이후로 3명으로 나 타났다. 비교적 이른 시기에 학습한 대상자가 특정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마도 세습무의 특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사 기간에 대한 통계는 93%의 대상자의 내용을 알 수 없었는데,나머지가 모두 10년 이 하의 경 력 안에 포함되 어 나타났다. 스승 수에 대한 통계로 84%가 1, 2명의 스승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부모와 친인척에 대한 영향이 있었던 대상자가 41%로 세습과 관련된 특징적인 지표로 이해된다. 이 수치는 앞서 영향력이 가장 많게 나타난 판소리 부분보다도 높은 수치이다. 켜 òt T p 혀 D 않아서 통계 서울 경기도 황해도 경상북도 전라남도 기타 모름 출생지 분류에 따른 통계 19% 15% 15% 11% 4% 15% 22% 100% = 긴 <그림 46> 무속 외-출생지 -- 서 경 모 울 샘 를 도 른통계 l 경기도 혔전라남도 분류에 따 & 황 oh 도 緣 기 E~ 15%

72 학습시작 시기에 따른 통계 5세 4% 6세 0% 7세 4% 8세 4% 9 서1 4% 11 세 0% 12세 0% 13세 0% 14 서l 0% 15세 4% 16세 0% 기타 11% 모름 70% 100% ,---- <그림 47> 무속 외-학습시작 시기에 따 1 른통계 3 a _ a a a a _ 11% 0% 0% 0% 0% 0% - 0% 서 뻐 1 7셰 뼈 9써 111 셔 1 12셰 13셔 1 14서 1 15서 11뻐 l 기타 모를 70% 사사기간에 따른 통계 1 년 -5년 4% 6년 -10년 4% 11 년 -15년 0% 16년 -20년 0% 21 년 -25년 0% 26년 -30년 0% 31 년 -35년 0% 36년 -40년 0% 41 년이상 0% 모름 93% 1 <그림 48> 무속 외-사사기간에 따른 통계 짜 X 았 따 ~ ~ & ι,.t, ν ~ 엉 장 ι양감않앓양 않 ι&s 9 ~- IÇ ι <ff- \,,- ~- ~ 때 % % % 됐 l l - 찌 스승 수에 통계 <그림 49> 무속 외-스승 수에 따 른통계 1 명 37% 10 2 명 37% 10 3'영 0% 5 명 4% 6 영 4% 모름 19% 5 잉 ω

73 <그림 50> 무속 외-학습 내용에 따른 통계 학습내용에 따른 통계 67% 무속관련 67% 기타학습 33% 무속관련 )1 타학옳 부모 및 친인척의 영향에 통계 <그림 51> 무속 외-부모 및 친인척의 영향에 따른 통계 있슴 l 없슴 있슴 없슴 41% 59% % (3) 탈춤 탈춤의 조사 대상자는 모두 73명이었다. 탈춤도 풍물과 유사하게 단체 종목이 지만 과거 탈춤에는 성인들만이 참여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도 배역이 있어 연행되었으며, 전문예인집단에 소속되어 있는 아동의 경우 참가 확률이 더 높았 다고 할 수 있다. 출생지별로 살펴본다면 경상남도 40%, 함경남도 27%, 서울 14%, 경기도 4%, 충청남도 3%, 경상북도 1%로 나타나고 있다. 학습 시작 시기는 16세 이전이 41% 이고, 이후가 59% 이다. 사사 기간은 거의 조사되지 않았는데, 93%는 알 수 없었고, 나머지가 5명으로 10년 이하였다. 스승 수에 있어서 2 명 이하가 63% 였다. 이는 학습자가 집단 예술로서 다양한 배역을 모두 소화하여 학습하는 것이 아니고, 한 두 배역을 특정 스승에게 학습 받은 것에 따른 수치로 볼 수 있다. 부모와 친인척의 영향은 5%로 나타났다

74 출생지 분류에 따른 통계 경상남도 40% 29 함경남도 27% 20 서울 14% 10 경기도 4% 3 충청남도 3% 2 경상북도 1% 기타 11% 8 100% 73 <그림 52> 탈춤-출생지 분류에 따른 g g 경 상 경 기 기 타 야 도 마 통계 엽R 행 켜 - 저 - 냥 도 냥 도 鋼 도 학습시작 시기에 따른 통계 5세 0% 6세 0% 7 서l 0% 8세 0% 9세 3% 2 10세 0% <그림 53> 탈춤-학습시작 시기에 따른 통계 11 세 0% 81% 12 서] 3% 2 13세 1% 1 14 서l 3% 2 15세 4% 3 16세 5% 4 llx llx llx llx 3x llx _... llx 3x 1% 3x 4% 5x,A."..-...I1 빠.. 기타 81% 59 5!l1 6셰?셰 8세 9Ai11 때111 써 112셰 1 3!l11 뼈 1 15셰 16셰 기타 야

75 사사기간에 통계 1 년 -5년 5% 4 6년 -10년 1% 11 년 -15년 0% 16년 건 0% 21 년 -25 년 0% 26년 -30년 0% 31 년 -35년 0% 36년 건 0% 41 년이상 0% 모름 93% 68 <그림 54> 탈춤-사사기간에 따른 통계 강 잉 1 OX OX 훌뤘빠,... """" 영X OX 야 "_.1 *i성* 영 않 &@ 영 양 & 생? 앉 & s δ l' 스승 수에 따른 통계 1 명 41% 30 2 명 22% 16 3 명 3% 2 4 명 3% 2 5 명 0% 6 명 0% 7 명 0% 8 명 1% 9명 0% 10명이상 0% 기타 30% 22' <그림 닮> 41x 수에 따른 통계 Il!..!프연연:만 FI ('~ð;~~~ t> %@ δ ~\ <그림 56> 탈춤-부모 및 친인척의 영향에 따른 통계 부모 및 친인척의 영향에 따른 통계 IIII!있슴 g 없슴 5χ 있슴 없슴 5% 95% % 66

76 4. 특정 사례 검토 앞 장에서는 예술인 생애를 소개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자료로서, 생존시 구술 채록본, 과거 문화관광부에서 주도하였던 이달의 문화 인물 관련 단행본, 문화재청과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간하였던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등의 자료 분석하여 영재 선발 및 교육을 위한 지표로서 활용할 수 있는 통계를 작성 하여 보았다. 하지만 2장에서 조사하였던 역사 속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기관이 담당하였 던 영재 교육과 함께 3장의 통계를 활용해야 보다 정확한 영재 선발 및 교육에 대한 지표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장에서는 전통공연예술계에서 영재라고 볼 수 있었던 명인들의 사례를 개 별적으로 미시적으로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러한 작업은 2, 3장에서 살펴본 내 용들을 보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 함동정월의 사례 노동은은 국악영재교육의 특성과 역사 에서 산조 명인 함동정월의 구술채록본 을 인용하여 광주권번에서 1 년간 동안 학습한 내용을 정리하였다. 한편 함동정윌은 광주권번에서 1 년 반 동안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8시 간 동안 전 장르를 학습받았다. 이곳 광주권번은 맨 처음 기초과정으로서 영산회 상과 본무 중심의 교과과정을 운영하였다. 춤은 승무와 검무가 본부이었다. 본무 과정을 마쳐야 포구락이나 춘앵무 류의 법무를 학습하였다. 이러한 기초 과정을 마친뒤에야 여러 좌중 앞에서 발표회라는 책걸이를 했다. 광주권번은 첫 과정 기 간은 능력별 기간제이어서 최우수반은 1 년 반에, 우수반은 3년 과정이었다. 광주 권번의 두 번째 과정은 독공부 과정이었다. 곧,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장르틀 학 습심화와 집중과정으로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이다. 흔히 백일공부 로 불렀던 이 과정은 한 자르릅 100일간에 걸쳐 집중적으로 학습하는 과정이었다. 판소리의 백 일공부는 흔히 토굴을 파고 그 속에서 100 일동안 집중적으로 학습하였다. 함동정 월은 열 두 살 때 (928) 에 고향인 강진군 병영변에 돌아오} 병영신청이나 때로는 병영신청의 독선생을 모시면서 독공부 과정을 밟았다 가곡을 비롯하여 판소리 했다. 동시에 가야금 명인 최옥산한테서 최옥산류 가야금산조를 공부했 다 "28) 28) 노동은, 국악영재교육의 특성과 역사" r국악영재교육 관련 심포지움 발표 논문 J, 86쪽. 67

77 해방 후 최옥산류 가야금산조 명인으로 인간문화재가 되었던 함동정월은 11 세 에 시작하여 어린 시절 광주권번에서 집중적인 음악교육을 받았을 뿐 아니라 영 산회상, 무용, 가곡, 판소리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여 풍부한 음악적 소양을 습 득하였음을 알 수 있다. 2) 김차돈과 검강남월의 사례 필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에 판소리 영재로 두 명의 어린이가 명 인들과 어께를 나란히 하면서 유성기음반을 취입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판소리 명창 김창룡의 손녀인 김차돈은 11 세인 1934년 당시 굴지의 음반회사였던 콜럼 비아 유성기음반회사에서 아래와 같이 두 장의 음반을 취입한다. 콜럼비아 번 음반에서 김차돈과 함께 소리를 취입한 김성화( 金 成 花 )는 김차돈보다 비슷한 나이 또래라고 한다.29) Columbia A fjjn í 耶 琴 拉 P 昌 名 技 名 P 昌 金 차돈 鼓 韓 成 俊 Columbia B 春 香 傳 쑥대 머 리 金 차돈 鼓 韓 成 俊 Columbia ) 短 歌 萬 古 江 山 金 차돈 鼓 韓 成 俊 Columbia 40590( ) 빼 椰 琴 拉 唱 楚 漢 歌 金 차돈 金 成 花 鼓 韓 成 俊 노재명의 명창의 증언과 자료를 통해 본 판소리의 참모습 이라는 책에 따르 면 김차돈 11 세부터 조선성악연구회 송만갑 명창에게서 단가, 홍보가를 배우고, 13부터 1 년간 정정렬에게 판소리 춘향가를 한바탕 배웠다. 그리고 가야금 명창은 병창의 명인 강태홍에게 배웠다고 한다.3 0 ) 김차돈과는 달리 보다 성숙한 목소리와 원숙한 노래로 유성기음반에 판소리 취입한 어린 명창도 있었다. 김강남월( 金 江 南 月 )은 1939년 11 월에 당시 10세의 나이에 <천하태평>, <왕왈연하다>하다라는 판소리 대목을 빅타 유성기음반에 취업한다. 이 음반은 <박타 유성기원반 시리즈 (7) 여류명창 걸작집(1)>에 실명 씨의 이름으로 재발매 되었는데, 이 음반이 발매될 당시 이렇게 어린 명창이 취 입한 음반임을 알 수 없었고, 그 취입자의 이름도 알 수 없었다. 이후 일제강점기 신문 광고를 통해 알게 된 바 칠세에 동경 대판 등지 i < } ι 29) 아래 김차돈과 김강남월에 대한 내용은 이진원, 영화 <소리아이>, 김차돈, 그리고 김강남월 몽 J( 서울: (사)창무예술원, 2(08), 10월호 참조. 30) 노재명편저나라음악큰잔치 국악 도서(1) 명창의 증언과 자료를 통해 본 판소리 참모습J( 서울: 나라음악큰잔치 추진위원회, 2(XXì), 49-53쪽

78 연하여 만천하 인사를 경탄식히든 남도가요 천재 기희 김강남월양은 여기 처음 으로 원반계에 나핫다. 양은 아직 금년 11 세의 소녀이다. 과연 엇던 것인지 자못 흥미를 잇 설고 잇다라는 광고 문안에서 음반 발매 당시 11 세의 소녀였음이 밝 혀졌다. 그리고 이 음반 취입 시기는 서울음반에서 소장하고 있는 이 음반의 동 판에 각인된 녹음 날짜가 1939년 11 월 23 일로 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었 다. 이 김강남월의 음반은 다음과 같다. Victor K]-1383(KRE651) 南 道 歌 證 王 日 然 하다 金 江 南 月 Victor K]-1383(KRE650) 南 道 歌 護 天 下 泰 平 金 江 南 月 김강남월의 노래는 정말 10세의 어린 소녀가 취업한 음악이라고 들을 수 없을 정도로 기교가 있고, 원숙한 솜씨를 자랑하고 있다. 김차돈과 김강남월은 전통공 연예술 분야의 영재가 존재하며, 이를 발굴하고 교육해야 하는 의미를 되새겨 볼 때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3) 김계션과 정약대의 사례 대금정악의 명인 김계선은 3세에 대금을 잡았다는 기사에 따르면 매우 이른 시기 음악을 시작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나와 대금 이라는 보면 14세에 영문의 겸내취로 들어가서 학습을 하고 16세에 장악원의 악공이 되 었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그가 정식으로 음악계에 들어선 것은 14세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는 16세부터 대금의 명인 최학봉에게서 대금을 배운 후 정악과 민속악 모든 분야에 재능을 발휘하는 일대 명수가 된다. 매일신보~ 1935년 1 월 3 일 5변 大 琴 의 名 手 金 桂 善 君 洋 曲 짜지도 잘분다 風 流 界 에 드러서 참 樂 을 말하면 大 琴 을 비롯하여 쫓 琴 吹 長 鼓 며 短 蕭 라던지 그 수가 적지 안타 그러나 그 중에서 다른 것은 엽서도 그대로 되나 대금이 업 서서는 흥이 엽는 것은 물논이고 장단의 조화가 잘도지 안는다는 것이다 議 曲 잘하는 사람은 正 樂 은 전연 못하는 터로 정악과 속악이 쪽가튼 악기로서 밟아가 는 깊은 정반대로 정악을 잘하는 사람이면 속안은 전연 못할 뿐 정악하는 사람 속악을 잡지 안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악에서던지 속악에서든지 한번 젓대 를 쥐면 무엇이던지 빠지지 안는 金 桂 善 씨가 잇다 풍악에 잇서 엇던 레코~드

79 에던지 吹 入 하지 안흔 데가 업스며 라디오 를 드른 사람이면 누구든지 그를 념 버 원 이라고 말할 것이다 드세때부터 대금을 잡고 오날짜지 온 것으로 竹 로서 만든 멋개의 구녕으로서 자유자재로 동서양곡은 물논하고 세상이 내는 소리는 무엇이던지 내는 것으로 엇던 날 하로 친구의 집에서 놀고 잇든 중 꾀꼬리 고리 내엿는바 맛침 그 집에서 먹이고 잇든 농속에 새가 가티 짜라서 노래를 하엿 다하며 일반사람은 물논이고 그 방변의 전문가들은 김게선군은 대금에 新 接 한 사람이라고짜지 이르는 터니다 김계선의 스승인 최학봉과 쌍벽을 이루던 정약대( 鄭 若 大 )는 조선 후기 고종 순종 때의 대금 명인이었다. 그의 대금 수련은 지극하여 10년 동안 빠짐없이 날 마다 인왕산에 올라 도드리곡을 연습하였는데 한번 연주할 때마다 나막신에 모 래알을 넣어 가득찬 뒤에야 내려왔는데 하루는 모래 속에서 풀이 솟았다는 이야 기가 남아 있을 정도이다. 이는 정악의 명인들이 꾸준한 독공을 통해서 명인의 반열에 올랐다는 것을 말해주며, 어린 시기 조기 교육을 통한 학습과 더불어 끊 임없는 노력이 수행되어야 최고의 예술인이 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4) 한성준의 사례 무용사를 살펴볼 때 주목할 만한 명인으로 한성준이 있다. 한성준은 명고수로 이름이 높았지만, 최승희를 지도했던 민간무용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그는 충청남도 홍성( 洪 城 ) 출생으로, 7세 때부터 외조부 백운채( 白 雲 彩 )에게 춤 과 북을 배우고, 이 어 서 학조( 徐 學 祖 )와 박순조( 朴 順 祚 )에 게 춤과 장단을 공부하 였다. 1910년대에 들어 협률사( 協 律 社 ).연흥사( 延 興 社 ) 등 장극단체에서 감창환 ( 金 昌 煥 ).송만갑( 宋 萬 甲 ).정정렬 (T 貞 烈 ) 등 명창들의 고수로 활동하였다. 1933년 조선성악연구회 창립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활동하였고, 이듬해 조선무 용연구소를 창설하여 민속무용에 전념하면서 후진 양성에 힘썼다. 특히 이시이 바쿠<집 井 漢 (석정막)>에게 현대무용의 기본테크닉을 배운 최승희( 崔 承 喜 )에게 조선의 춤과 민족혼을 불어넣어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세우도록 도움을 주었다. 한성준은 일제강점기 수많은 유성기음반 회사에서 엄청난 양의 음반을 취입하 였는데, 그 중에서 대부분은 고수로서 참여하였지만, 몇 장의 음반에서는 피리연 주자로 피리시나위, 산조합주 등을 연주하여 충청도 지역의 내포제 시나위를 오 늘날까지 전해주고 있다. 1935년 서울에서 <한성준무용공연회 >를 가진 뒤 도쿄[ 東 京 (동경)] 등 일본 주요 도시에서 순회공연을 하였다 년 모던닛폰사가 제정한 예술상을 받았 다. 태평무( 太 平 舞 ), 학무( 麗 舞 ) 등을 만들었으며, 민속무용 체계와 기초를 세우는 m ω

80 데 크게 공헌하였다. 한성준에게 주목되는 것은 다양한 전통공연예술을 모두 섭렵하고, 전통에 입각 한 새로운 창작 무용을 끊임없이 창작하였다는 것이다. 한성준의 학습 시작은 7세로 매우 이르며, 장단을 먼저 이해하였고, 뒤에 춤을 배웠다. 그리고 꾸준한 명창과의 공연을 통해 최고의 명고수가 되었고, 무용연구 설립하여 한국 전통 무용 발전에 기여하였다. 이상에서 모두 네가지 사례를 살펴보았다. 사례(1)의 김강남월은 매우 이른 시기에 명창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공연 을 하였고, 음반을 취입하였다. 김강남월은 예술을 발전시켰다기 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예술을 가장 어린 시기에 원숙한 경지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 시킨 영재였다. 사례 (2) 의 함동정월은 권번과 신청 교육을 통하여 무형문화재예능보유자(인간 문화재)가 된 경우이다.11 세에 포괄적 전통예술 교육을 받았는데, 1930년데 럼비아 유성기음반에서 그의 가야금산조와 병창을 취입하기도 하였다. 사례 (3) 에서 김계선은 비록 이왕직아악부의 악사로 정악의 뛰어난 명인이었지 만, 그는 정악 만을 고집하지 않았고, 민속음악의 대가로서 이 날리게 되었 다. 장르를 뛰어넘는 시대정신이 보이는 예술가 상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정약 대는 꾸준한 연습이 중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사례 (4) 는 일제강점기 한국 전통예술계를 좌지우지 하였던 대 명인의 경우이 다. 장단과 춤을 배운 후 일가를 이룬 한성준은 한국 전통예술 중 정화인 무용 을 세계에 알렸던, 최승희를 배출했으며, 그가 정리한 승무, 살푸리, 학춤, 태평 t:j T 오늘날 전통 무용의 고전으로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사례가 존재하겠지만 우리는 어떤 예술가를 배양하기 위해 영재 교육을 하고 있는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네 사례 중에 어디에 목표점 을 두는가에 따라 영재 교육의 내용은 달라져야 할 것이다. 이들 네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점은 모두 늦어도 14세 이전에 전통 공연예술을 본격적으로 접했다는 것이다. 김계선과 함동정월의 예를 제외한다면 6-7세에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장르에 집중하여 명인이 된 경우도 있지만, 다양한 관련 장르를 함께 학습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자연스럽게 여러 장르의 명인이 되었다. 이는 영재들이 다양한 음악 장르 에 재능을 보여주는 현상과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은 집중적인 교육을 받 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71

81 전통공연예술 분야의 영재를 선발하기 위해서는 이상의 점들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조기 교육, 가 무 악 희를 포괄하는 다양한 내용을 담은 커 리률럼을 집중해서, 창의성을 배양하도록 지도해야 할 것이다. 사실 미래 전통 공연예술 영재 교육의 핵심은 창의성 있는 영재의 배양이다. 우리 전통공연예 의 심미적 특정을 갖추고, 예술의 정통성을 계승을 전제로 한 창의성의 발현이 란 매우 어려운 과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상에서 역사 속의 예술 교육 기관 에서도 창의성 있는 영재들이 배출되었던 만큼 과학적인 분석, 연구, 개발로 장 의성이 있는 미래의 전통공연예술을 선도할 영재를 육성할 수 있다는 것은 꿈 이 아닐 것이다. 5. 맺음말 이상에서 다양한 문헌에 기록되어 있거나, 조사된 바 있는 전통예술 분야 명 인에 대한 통계 조사를 통해 한국의 전통공연예술 영재 선발과 교육의 지표로 설정할 수 있는 요소들을 검토하여 보았다. 그 결과 판소리와 산조 분야의 경우 조사 보고서 및 관련 자료들이 충분히 남아 있기 때문에 비교적 유의미한 자료를 통계로 내어 볼 수 있었고, 기타 야의 경우도 상황에 따라 통계 결과를 해석해 보았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통계를 보다 심도있게 이해하기 위해서 과거 역사 속 에 존재하던 전통예술 교육 기관에 대한 검토를 먼저 진행했다. 궁중에서는 장 악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체계적인 교육과 민간에서는 신청 및 재인청, 그리고 권번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들 자료는 전통공연예술 분 야의 영재 교육의 커리률럼 개발 시 유용한 자료로 사용될 것이라 생각된다. 출생지, 학습 시작 시기, 사사 기간, 스승 수, 학습 부모 및 친인척의 영 향 등을 골자로 하는 통계 결과를 해석해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출생지를 제외하고 먼저 학습 시작 시기를 살펴보면 장르 별로 다르지만, 영 재성을 찾아볼 수 있는 16세 이전에 많은 장르에서 학습을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고, 5세에 시작한 경우도 찾아볼 수 있었다. 비교적 통계가 정확하다고 볼 수 있는 판소리와 산조 부분에서 이러한 경향이 명확히 나타나고 있다. 사사 기간에 대해서는 각 종목의 조사 대상자들이 다양한 관련 장르의 예술 끊임없이 학습하여 그 학습 기간이 매우 길게 나타나고 있다. 판소리의 경우 다양한 장르와 유파의 판소리를 학습하는 시기가 타 장르 보다 상대적으로 길었고, 산조 분야에서는 다양한 악기의 학습 등에서 오랜 사사 기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나 살펴볼 수 있었다. 전통공연예술에서 요구되는 노련미나 원숙미의 발현과 관련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를 오늘날 영재 교육에 적 끼 ι

82 용한다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집중 연습 시간을 보충할 수 있는 과제의 개발 을 고려해야 할 점이라 할 수 있다. 스승 수에 있어서는 여러 다양한 장르를 판소리와 산조, 시나위 및 삼현육각 분야에서 대략 1 에서 5, 6명까지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기타 장 르에서는 이보다 적은 수의 스승을 모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기서 제안할 것은 어떤 종목을 지도할 때 다양한 예술적 성격을 가진 교수들을 선택하여 다 양한 예술적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영재를 육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습 종목 내용에 있어서는 가 무 악 희를 포괄하는 다양한 교육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다양한 분야로 선발된 예술 영재들이 전문 분야만 의 교육이 아니라 다양한 관련 분야의 종목도 배울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주 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와 친인척의 영향에서는 과거 세습체제로 전승되던 예술 종목인 무악 분 야에서 그 관련성이 가장 높게 나타났고, 다음이 판소리로 나타났다. 예술적 분 위기 형성이 영재 성장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됨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머리말에서도 지적했듯이 본 연구에 활용된 자료의 대부분은 명인 문헌을 대 상으로 한 것으로 현재 생존해 있지 않기 때문에 더 진보된 연구를 위해서는 연구에서 활용하지 못한 문헌 자료들을 발굴하고, 증언을 수집하여 보다 완 벽한 통계를 작성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더 발전된 연구를 위하여 로 본 연구의 기초 자료로 활용한 데이터를 실었다. 이를 토대로 더 의미있는 통계가 만들어지고, 그 자료가 전통공연예술 영재 교육에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끼 ω

83 II. 명언 문헌 자료 정려 1. 판소리 2. 산조 3. 탈춤 4. 삼현육각, 시나위 5. 풍물 6. 무용 7. 잡가 및 민요 8. 궁중음악 및 풍류 9. 무속 및 기타

84 1. 판소리 순번 성 명 (한글) (한자) 성별 생년월일 종류 출생지 스승수 학습 학습 학습내용분류 부요친인척 시작 그lt'd 학 습 내 용 판소리 기타 및 주변인의 l 시기 시기 (바탕) 성악 기악 무용 연희 영향 강종철 姜 鍾 喆 2 김영환 金 命 煥 3 김복례 金 福 禮 남 m경년 æ월 æ일 판소리 전북 4 LnJL 1913년 aï월 02일 판소리고법 전남 14 여 19생년 12월 24일 판소리 전북 8 17서l J1세 잡개 춘향'7)-, 심청개 열사7)-, 수궁가 판소리고볍 10세 J1세 판소리 5마당, 열사가 6 4 기n 스"-요, 金 11떠 玉 여 1917년 12월 m 일 판소리 전북 5 13세 22세 심수궁청개 7)-, 홍 단개보가 춘향개 신식춘향7)-, 6 5 7니1 여 T/L 金 永 洙 6 김영자 金 榮 子 L 口 L 1917년 m월 n일 판소리고법 전남 2 여 llli1년여월 aï일 판소리 7â 격 H 6 7세 13세 잡개 단개 심청 7)-, 적벽개 춘향가 4 있음 10세 $세 판소리5마당 5 ---J m 7 김일구 金 一 球 남 19때년(생월여일 판소리 전남 8 9세 II세 춘향7)-, 홍보자 아쟁산조 4 2 λa1nel 가야금산조 심청개 적벽가 8 남봉화 F힘 逢 花 여 1!Hi년 æ월 02일 판소리 전남 5 17세 $세 홍보가, 춘향개 수궁개 심청개 5 단가 9 박금동 朴 金 童 L 口 L 1!I깅년 11월 15일 판소리 전남 3 16세 aj세 홍보자 춘향개 심청개 적벽가 4 10 박동진 *1 東 鎭 니n 1916년 m월 12일 판소리 충남 잡개 단개 춘향'71-, 거문고, 심청 7)-, 적벽개 홍보가 수궁개 북장단 박봉려l *1 鳳 禮 12 박정자 *1 貞 子 B 백남희 白 南 熙 14 서 차 스ι IJX: 昌 11뼈 여 1ffi1년 aï월 m일 판소리 전남 7 여 1927년 10월 $일 판소리 전남 3 남 1921년 02월 10일 판소리 전북 여 1ffi4년 11월 10일 판소리 전남 12 14세 $세 홍심보청자개 춘 수궁향개개 시 홍조보개7싸 숙금영산낭ξ자가 5 14세 18세 단7)-, 홍보자 심청개 춘향까 적벽가 5 5세 6세 수궁개심청개춘향가 3 있음 단개 가야금산ξ 거문고산ξ 16세 얘세 철현금산조 심청 7)-, 홍보깨 적벽 7)-, 5 3 oλl으 수궁개

85 및주변인의 기악 무용 연희 C 낭송 t 순번 서 며 (한글) (한재 성별 생년월일 종류 출생지 -λ스 1스 학습 학습 학습내용분류 부모친인척 시작 끝난 학 습 내 용 판소리 기타 ^171 시기 (바탕) 성악 15 성판례 成 띔l 禮 여 1%년 æ월 24일 판소리 전남 6 6세 ~세 적벽개 수궁개 춘향까 심청 7 ]-, 홍보개판소리 5마당) 5 16 신영희 申 英 姬 여 1942년 æ월 03일 판소리 전남 세 34세 심청개7]-, 춘향7 ]-, 홍보개 수궁7]-, 적벽 7싸금병창, 열사가 6 ~으p n 안숙선 安 淑 품 여 19<생년 03월 æ일 판소리 전북 13 10세 19세 홍수정구보궁가개장단 적 단,개 거벽개문 가고 춘야산향금조개,7 }야금병창, 심청개 6 3 λà으b 18 오정숙 吳 貞 淑 여 1%년 03월 21 일 판소리 경남 3 7세 28세 춘향개 홍보자 수궁개 심청 7]-, 적벽가 5 있음 윤석기 尹 錫 基 나 口 1932년 æ월 19일 칭극인 전북 2 20세 뼈세 홍보가 심청개수궁가 3 m 윤충일 尹 忠 니tr l없4년 03월 æ일 판소리, 칭극인 충남 8 12세 39세 수궁개 단개 춘향개 심청개 홍보가 6 적벽가 21 은희진 股 姬 珍 여 1947년 m월 21 일 판소리, 장극인 전북 6 9세 31세 단개 춘향개 홍보J]-, 수궁개 적벽 7]-, 심청가 6 22 임향임 林 香 11 여 1951년 01월 27일 판소리 전남 6 11세 41세 단7]-, 홍보개 적벽개 춘향개 심청가 5 있음 g 김정민 金 貞 敏 여 1949년 01 월 24일 판소리 충남 3 13세 20세 단개 수궁개 홍보까 춘향개 심청 7]-, 적벽가 6 24 정용훈 Tt섭 薰 남 UUJ년 W월 28일 판소리 전님 4 17세 31세 춘향개 홍보자 심정개 수궁개 5 적벽가 25 조동규 趙 東 奎 tj 1945년 03월 28일 판소리 전북 4 7세 20세 단개 춘향개 홍보자 수궁개 심청 7]-, 적벽가 6 ðì :s:사 서 1 趙 相 錫 남 1939년 11월 m일 판소리 전남 4 12세 잃세 단개 심청가 춘향개 수궁개 홍보자 6 적벽가

86 순번 성 명 (한글) (한자) 성별 생년월일 종류 출생지 하,거 섭; 학습 학습내용분류 부요친인척 λ승수 시작 끝난 학 습 내 용 및주변인의 판소리 기타 시기 시기 기악 무용 연희 (바탕) 성악 영향 z1 진봉규 陳 奉 圭 남 l쨌년(e얼얼 11 일 판소리 전남 3 7서l z1세 심청개춘향개 적벽가 3 있음 g 한신주 韓 태 珠 남 1없4년 æ월 10일 판소리 전남 3 9서1 17세 심청가 2J 한귀예 韓 貴 禮 여 1잃4년 01월 24일 판소리 일본 8 13세 lì세 심청개춘향개 적벽가 3 이λA으P II 공성덕 共 性 德 여 1945년 0'1월 3)일 판소리 전북 5 5'" 서l 남도잡7}, 홍보개 수궁가, 심청 7}, 춘향가 4 있음 31 김용준 金 龍 準 니n 19lJ년%월2J일 판소리 전북 3 13세 lì세 수궁개북 있음 ~ J ---J 32 æ 34 박길연 찌 吉 速 박오용 朴 五 1섬 송희열 宋 熙 烈 여 1940년 (J1월 æ일 판소리 전남 남 1ill3년 (E월 z1일 판소리 전남 남 1912년 æ월 zl일 판소리 충남 5 16세 46세 춘향7}, 심청 7}, 홍 멍가 수궁가 4 있음 6 19세 23세 단가, 춘향개 판소리 고법 2 35 아'-'스"-더, 安 順 德 여 19:쟁년 (J1월 II일 판소리 전남 2 14세 17세 홍보개 춘향개 심청까 수궁가 4 lì 시n 조 아니 深 鐘 安 여 19æ년 10월 m 일 판소리 전북 16세 춘향개소리북 37 æ 임헌하 林 憲 夏 조공례 趙 功 禮 나D 1919년 æ월 0'1일 판소리 충남 여 1935년 11월 3)일 판소리 전남 1945 판소리,북 3 14세 24세 홍보자 춘향개 적벽개 심청가 4 39 최명임 崔 命 任 여 1942년 æ월 ~일 판소리 전남 3 14세 3)세 춘향개심청가 2 40 심화영 해; 擁 英 여 1913년 æ월 (껴일 판소리 충남 18세 가야금 풍류, 가야금 병창, 춘향개 2 있음 심청가 41 나완집 羅 完 集 남 1919년 02월 m일 판소리 츠O 나p 4 11세 $세 단개 춘향개 심청개 수궁가 4 있음 42 λ.] 요 -Z 申 玉 做 여 1없년 æ월 25일 판소리 τ ~'J 4 16세 19세 춘향개 적벽가 2 43 박홍남 朴 洪 男 남 1921년 11월 W일 판소리 전북 2 23세 26세 단개 심청 7r, 홍보가 3

87 및주변인의 기악 무용 연회 영향 순번 성 명 (한글) (한재 성별 생년월일 ~* 출생지 λ승수 학습내용분류 학습 학습 부모친인척 시작 끝난 학습내용 판소리 기타 λ171 시기 (바탕) 성악 44 김원술 金 源 述 \t 19z1년 m월 21 일 판소리 전북 3 16세 2}세 단숙7영h낭 홍자보전깨 ; 춘향개 적벽 7}, 숙영 전바탕, 열사가 6 있음 45 김유앵 金 柳 驚 여 1m1년 æ월 24일 판소리 전북 3 11세 17세 수궁7 t, 춘향가 2 있음 4) 성준숙 成 俊 淑 여 1뼈년없월여일 딴소리 전북 6 15세 45^ìl 심 단개청가 춘 한향바7t,탕, 수 적궁벽개가 홍보개 6 47 이성근 李 成 根 남 1%년 m월 01 일 판소리 1:l-!i\ 4 21세 33 세 심청 7}, 춘향개 열λ까 홍보J}, 적벽가 5 --J (x) 48 4J 이옥희 李 玉 姬 처 며 오 鄭 炳 玉 여 여 1쨌년 æ월 15일 판소리 충남 4 1W8년(0월 m일 판소리 전남 5 17세 li세 춘향7}, 심청개 숙영낭자전, 흥보7}, 수궁가 춤, 단7 t, 홍보자 심청 7 t, 수궁7}, 13세 33^ìl 적벽가한바탕 5 있음 5 5l 조소녀 활 小 女 여 1941년 (fl월 ~일 딴소리 충남 5 18세 49세 단개 춘헝까심청가 전바탕, 홍보가 4 51 최채선 崔 菜 仙 여 1941년 W월 ~일 판소리 충남 5 18세 정세 단7}, 심청자 수궁7}, 홍보자 춘헝까 5 52 홍웅표 洪 雄 杓 남 19z1년 12월 17일 판소리 전북 aj서l 심청개 춘향7}, 수궁개 적벽가 4 있음 53 성점옥 成 點 玉 여 1!JZ7년 1댐 12일 판소리 전북 3 15세 $세 심청 7}, 춘향개 홍보자 수궁가 4 54 최난수 崔 爛 洙 여 1m1년 02월 12일 판소리 전북 2 8세 21 세 춘향7}, 심청 7}, 홍보가 수궁가 4 ffi 장옥순 張 玉 順 여 l뼈년 01월 27일 판소리 전남 4 9세 17세 단개 싱청 7}, 춘향7 t, 홍보가 4 ffi 강맹근 姜 굶 根 남 1918년 10월 æ일 판소리 전북 5 16세 세 홍보개 춘향채 적벽개 수궁가 4 '31 김이주 金 洙 남 19Æ년 판소리 전남 24세 m세 심청가 전바탕, 홍보자 춘향개 4 있음 적벽가

88 순번 성 명 (한글) (한자) 성별 생년월일 종류 출생지 λ;승수 학습 학습내용분류 학습 부모친인척 시작 끝난 학습내용 및주변인의 판소리 기타 시기 "171 기악 무용 연희 영향 (바탕) 성악 5s 김성래 金 成 來 남 1SÆ년(l)월 2)일 판소리 전남 4 13세 정세 춘향개심청개북장단 2 있음 ;=g ffi 61 박옥심 tt 玉 心 박정자 朴 靖 子 방야순 房 也 順 여 1S21년여월 12일 판소리 전남 3 여 1(}11년 11월 (l)일 판소리 전북 5 여 1918년 12월 21 일 판소리 전북 4 12세 22세 적벽가 뿔많 단7 1-, 심청 7 1-, 춘향개 적벽가 4 춘향71-,홍보가수궁개 4 춘향가전바탕 62 송순섭 宋 順 燮 남 1ffij년 10월 :::D일 판소리 전남 4 18세 적벽개 수궁개홍보가 3 --J 안채봉 安 彩 鳳 이임례 李 林 禮 여 19Jì년 10월 æ일 판소리 전남 6 여 1(}1 1년 m월 æ일 판소리 전남 3 12세 %세 단개 가 t금산조 심청개 춘향개 6 있음 홍보까수궁개적벽가 16세 43세 심청 7}, 열λ까 숙영낭자전, 홍보가 4 ffi 전악쾌 全 樂 快 니iJ 100년 11월 æ일 판소리 전북 2 12세 18세 춘향개설장고 ffi 처 츠 L 신d 鄭 春 實 여 1(}13년 æ월 15일 판소리 전북 4 13세 43세 홍홍보보자자 춘 심향청개가 수궁가 한바탕, 5 m 한애순 韓 愛 順 여 1924년 12월 a3일 판소리 전남 2 12세 잃세 춘향개 수궁가 전판, 심청가 전판, 적벽 7}, 홍보가 5 f입 한해자 韓 海 子 여 100년 æ월 22일 판소리 전남 4 17세 2)세 수궁개 적벽 7 }, 홍보자 춘향7 }, 심청가 5 ffi m 71 김향순 金 香 順 정홍수 T 供 秀 박미홍 tl 美 洪 여 1ill:i년 10월 24일 판소리 전남 2 남 1ffi2년 æ월 01일 판소리 전남 2 여 19:용년 æ월 m일 판소리 전남 12세 14세 심청가 16세 a3세 판소리고볍 있음 딴소리 다섯마당 5 72 박정례 朴 貞 禮 여 1S25년 01 월 23일 판소리 전닝 3 14세 24세 심청가 전바탕, 춘향가 전바탕, 홍보개 적벽가 4 AA1E

89 및주변인의 기악 무용 연회 영향 순번 셔 며 (한글) (한자) 성별 생년월일 종류 출생지 학습 λ승수 시작 시기 학습내용분류 학습 부모친인척 끝난 학습내용 판소리 기타 시기 (바탕) 성악 73 선농월 宣 弄 月 여 1m3년 æ월 'l7일 판소리 전남 춘향개 심청개 수궁개 적벽가 4 74 이명희 李 命 姬 여 1916년 12월 z3일 판소리 /\δ4속h 2 14세 æ세 단개 심청 7 t, 7싹금 산조 홍보7 t, 춘향가 4 7s 주운숙 朱 運 淑 여 1짧년 11월 W일 판소리 전남 2 17세 33세 살풀이 춤, 승무, 오북, 홍보자 3 3 춘향7 t, 심청가 76 이말량 李 末 良 여 1m3년 m월 æ일 판소리 /\δ} 속닙 4 10세 양금풍류 전바탕, 김계선 승무, 18세 박경원 검무, 가야금 산ξ 단7 t, 춘향가 c o η 78 장순애 張 順 愛 여 김영심 金 明 心 여 19lï년 04월 l)일 판소리 전남 6 8세 1ffi7년 07월 10일 판소리 전남 3 13세 26,서l 단개 홍보개 춘향개 적벽까 싱청가 있음 전바탕, 가야금, 거문괴 무용 34세 단개 춘향개 심청개 적벽개 살풀이 4 7.:l 김수련 金 壽 運 여 1945년 æ월 04일 판소리 전북 7세 19세 단개 춘향개 적벽 7}, 홍보개 수궁개 6 이λA으p 신청가 3) 김애란 金 愛 蘭 여 1ffiS년 11월 04일 판소리 부)산 4 18!.ì) 가야금 산조 가야금 병창, 승무, 24세 오북, 화곤L무, 부채춤, 살풀이, 검무, 있음 탈춤, 설장교 남도민요 단가 81 김영애 金 榮 愛 여 1916년 m월 18일 판소리 전남 4 8세 17세 살풀이, 승무, 단개 춘향개 심청개 5 2 홍보개 열^}7} 82 김정애 金 丁 愛 여 1942년 (E월 W일 판소리 부산 3 18세 19세 부채춤, 화관무, 살풀이, 단7}, 남도잡개 춘향개 홍보자 심청가 신태형 申 泰 亨 남 1앓년 aì월 æ일 판소리 전북 2 17세 껑서} 소리북,타악 84 류정이 柳 貞 ) 여 l뼈년 m월 13일 판소리 전북 3 12세 18세 단개 춘향7 t, 홍보개 시조 3 ffi 이정화 李 靜 ì'p 여 l뼈년 10월 æ일 판소리 경남 3 18세 'l7세 단개 심청개 춘향7}, 홍보가 4

90 95 박봉숲 *1 奉 述 LDL 1922년 æ월 18일 판소리 전남 4 11 세 20세 적벽 7}, 춘향개 홍보가 3 있음 4 λ g 'i3 학습 학습 학습내용분류 순번 성별 생년월일 종류 출생지 스승수 시작 그E그'cl 학 습 내 용 판소리 기타 (한글) (한자) 시기 시기 (바탕) 성악 기악 무용 연희 부잊요 주영연 친향인인의척 1 ffi 지수복 池 壽 福 여 1없7년 04월 (b일 판소리 서울 5 16세 잃세 단개 기야금산ξ 가야금병칭, 승무, 3 2 ~으D 홍보가 전바탕, 춘향개 신민요 'ð7 최장술 崔 長 述 남 1때년 æ월 10일 판소리 전남 6 15세 Jì세 홍보개 춘향개 수궁개 심청가 4 8:l 한봉혀l 韓 奉 惠 여 1946년 æ월 10일 판소리 서울 15세 18세 부채춤, 칼춤, 화관무, 살풀이춤, 장고장단,춘향가 æ 김망내 金 떻 乃 여 단개심청개 가야금 산:1:., 1924년 12월 18일 판소리 경남 8 13세 64세 7싸금 병창, 수궁개 적벽개 승무, 5 열사가 % 박미숙 *1 美 淑 여 1!1:18년 1뼈i G7일 판소리 전닝 2 31 세 II세 춘향개홍보자심청가 3 있음 단개 적벽개 춘향개 심정개 홍보7)-, 91 김순례 金 11떠꽤 여 1æJ년 10월 æ일 판소리 전남 8 13세 3)세 살풀이, 벅구춤, 검무, 승무, 가야금, 6 4 적벽개 수궁가 92 박일진 *1 鎭 여 jg:쟁년 æ월 10일 판소리 경북 2 7세 45세 춘향개 적벽개 심청가 3 없 김재근 金 (U1( 남 1923년 æ월 01 일 판소리 경남 2 31세 잉세 단개 춘힐f7)-, 수궁7)-, 판소리북 3 94 선동옥 宣 東 玉 남 19Jì년 11월 10일 판소리 전남 12세!'1l세 홍보개 적벽개 수궁개 춘향가 4 95 H-1l i )1 二 으 r 朴 綠 珠 여 1SUì년 01월 2)일 판소리 적벽 7}, 춘향개 홍보개 심청개 서울 6 10서1 31세 6 숙영낭자전 수궁개 숙영낭자전 fj7 한승호 햄 勝 鎬 니D 1없4년 æ월 12일 판소리 적벽가 전남 11 8세 16세 단개 심청개 적벽개 열사가 4 있음 ffi 이정업 李 正 業 남 1ffi4년 12월 15일 판소리 적벽가 서울 23세 정세

91 및주변인의 영향 순번 성 명 (한달) (한재 성별 생년월일 종류 출생지 학습 학습 스승수 시작 그E그'd: 학 습 내 용 시기 시기 (바탕) 성악 학습내용분류 뾰친인척 1 판소리 기타 기악 무용 연희 ffi 7디1 드 -, 스 金 得 洙 니n 1916년 a5월 10일 판소리 적벽가 서울 4 12세 18세 판소리 고법 1m 정첼호 鄭 哲 鎬 남 l!l경년 04월 2)일 판소리고볍 전남 3 7세 21세 춘향개 판소리 북, 적벽개 수궁가 4 oλ~으d 전바탕,심청가 101 김청만 남 1946년 04월 16일 판소리고법 서울 3 10세 설장고 102 장덕화 Ln} 1912년 W월a5일 판소리고법 끼 7iJ속 H 8 7세 'l1세 장괴 북(소리장단"l, 가야금, 대금, 5 무용,거문고1 민요 OJ N 1æ 104 한농선 韓 弄 仙 여 한송희 韓 松 熙 여 1ffi4년 01월 24일 판소리 전남 1ffi7년 10월 II일 판소리 서울 6 8세 28세 심청개 춘향7}, 수궁개 홍보까 4 가야금 5 15세 ffi세 1a5 성우향 成 又 香 여 1%년 æ월 24일 판소리 전남 6 7세 21 세 춘향개 적벽개 수궁개 십청개 가곡, 5 2 있음 평시조홍보가 1m 이동백 李 東 {김 남 1æì년 02월 æ일 판소리 충남 5 13세 15세 이λ 으n 107 송만갑 宋 萬 떠 'iì 1ffii년 판소리 전남 2 10세 판소리 이λA으n 1æ 김창환 남 1852년 판소리 전남 12세 28세 있음 1æ 김창룡 金 昌 龍 남 1872년 판소리 충남 4 7세 판소리 이λA으 口 110 정정열 丁 貞 烈 남 1876년 a5월 21일 판소리 전북 2 7세 40세 판소리 111 이선유 李 善 힘 1873년 판소리 경남 2 10세 II세 수궁개 춘향가 임방울 林 芳 짧 'iì 1ffi5년 04월 2)일 판소리 전남 4 1쩌1 춘향개 홍보자 심청개 적벽 7}, 수궁가 5

92 및주변인의 기악 무용 연희 영향 순번 성 명 (한글) (한자) 성별 생년월일 조 T Er 출생지 A숭수 하 /b; 학습내용분류 학습 부모친인척 시작 "lt'd 학 습 내 용 판소리 기타 시기 ^l71 (바탕) 성악 113 박록주 *1 綠 珠 여 1005년 판소리 7J파닝 10 12세 2s세 단7\-, 춘향가 전바탕숙,영 심낭청자개전 홍보자 수궁개 남도민요, 김여란 여 1m7년 04월 04일 판소리 충북 4 6세 aj세 적벽개 춘향가, 심청개 숙영낭자전, 민요, 가곡; 7},사 시조 아쟁, 7}야금 김연수 金 練 守 여 1911년 11월 æ일 판소리 경남 8 m서1 29서1 홍 양금보개, 가야 수금궁가, 가야금 병칭; 심정 7\-, 장영찬 張 서 瓚 남 l없)년 æ월 :ãl일 판소리 전북 5 7세 22세 춘향개심청가 2 있음 O:J ιj 김소희 金 素 姬 여 김애정 金 愛 貞 여 1917년 10월 17일 동편제 전북 8 1없4년 11 월 15일 명장 경남 8 13세 심청개 승무, 살풀이, 춘향개 수궁개 적벽개 양금, 거문괴 기야금 13세 17년 단개 7}야금병창; 심청개 적벽개 3 3 있음 살풀이, 승무,굿거리춤 119 박송희 朴 松 熙 여 19Z7년 02월 æ일 며 차 전남 6 시ξ 가곡 7싸 심청개 수궁7\-, 13세 æ년 적벽 7 }, 홍부개 춘향가 5 3 1aJ 상월중선 帳 月 l에uj 여 192)년 홍부가 전남 3 7세 단개홍부가 2 0λl 디으 121 처 과 'Í" T fjt 秀 남 1(ID년 W월:ãl일 며 차 전남 4 14서1 19세 춘심향청개가 홍부개 수궁7}, 적벽 7\-, 5 있음 122 조상현 趙 相 賢 LDl 19'힘년 11월 m일 명창 전남 3 13세 aj세 적벽개홍부가 조통달 검펴 達 남 1945년 04월 aì일 명창 전북 11 수궁개 적벽 7\-,홍부7\-,춘!가향개 민속춤, 가야금산조아쟁,심청 5 이M으n 합 계 <ffi :ãl 전체합계 g핑

93 2. 산조 순번 서 며 (한글) (한재 성별 학습 생년월일 종류 출생지 스승수 시작 시기 * 학습내용분류 혁습 부모친인척 끝난 학 습 내 용 학습한 상현 및주변인의 기타 시기 산조 육각 산조 성악 무용 연희 기악 ~ÕJ 시나위 /T~ 한갑득 韓 甲 得 니디 거문고 전남 2 13세 Z3J.ìl 7)야금산ξ 거문고풍류산조 가곡 바 그 p 셔 니 方 鎬 善 여 거문고, 가야금 경님 5 12세 $세 7]-o þ금 산조 풍류, 판소리, 거문고 산조풍류 3 김선한 金 善 漢 남 거문고 경기 7 17세 'sl세 거문고 풍류 산ξ 한갑득 거문고 산조 c A 4 긴u 무,긴t 二 金 a 吉 5 황 :τf 기: 黃 得 ti 남 'J 거 τd JL 전남 2 17세 거문고 경기 6 13세 거문고산조 1 껑세 거문고용류 6 김죽파 金 竹 쨌 여 가야금 전남 10세 l해 가야금 산조 풍류, 판소리, 거문고 AA1EbL 산조풍류 7 함동정월 }때1폐짧 여 가야금 전남 8 11세 때서} 시ξ 가야금 풍류 산조무용, 3 판소리,가사 o 8 김소희 金 素 姬 여 가야금 전북 13 13세 $세 판소리, 양금풍류, 가야금산ξ 3 2 무용,가곡 7싸 9 박귀희 찌 貴 姬 여 가야금 대구 8 14세 34세 판소리, 가야금 산조 병창 2 10 정금례 鄭 今 램 여 가야금 경남 5 16세 %서) 가야금풍류 산ξ 거문고풍류, 무용 김숙자 :1ÍÞ. 淑 子 여 가야금 서울 9 6세 æ세 가야금산조 가야금병창, 판소리, 무용, 연희 2 1 있음 12 정 달영 鄭 達 英 ';:l 가야금 전닝 2 7세 m서1 양금풍류, 기야금산조 정악, 가야금 2 2 있음 병창 '-----듬트

94 성 명 학습내용분류 순번 (한글) (한자) 성별 생년월일 학습 종류 출생지 스승수 시작 λ]7] 학습 τ n: πf걷 부모친인척 그E:μU L 학 습 내 용 학습한 삼현 기타 및주변인의 시기 산조 성악 무용 연희 기악 육각 영향 산조 T 시나위 J 13 황병기 黃 秉 鎭 LDl 가야금 서울 b 17세 24세 가야금산조풍류,가곡 14 이영희 李 英 照 7}야금 전북 7 15세 42세 가야금풍류 산조 거문고산조 단소풍류, 양금풍류 15 이재숙 李 在 淑 여 가야금 서울 10 19세 잉세 가야금풍류 산ξ 강태홍산ξ 2 성금연산조 16 김정자 金 靜 子 여 가야금 강원 12 잉세 41 세 가야금풍류 산ξ 김종기산조 2 강태홍산조, 7]곡 3 (Jl 17 윤미용 尹 美 容 나p 가야금 경기 5 16세 31 세 가야금정악 산조 박상근 김병호, 최옥산산조 원한기 t 韓 基 니n 가야금 황해도 4 17세 al^ì 김홍배 7싸금산조뽑 19 양연섭 梁 連 燮 나n 가야금 황해도 5 16세 정세 대금정악, 가야금정악 산조 김죽파 2 2 산조 aj 김동식 金 댔 植 니D 대금 전남 2 l껴1 16세 가야금산ξ 대금풍류 2 21 서용석 徐 龍 錫 'ít 대금, 아쟁, 전남 7세 가야금 판소리, 대금산조 풍류, 삼현육각, 세 아쟁산ξ 7}야금 산조 서공철가야 있음 금산조 태평소 z 이생강 李 生 剛 남 대금 일본 5세 22세 피리, 대금산조 단소 5 있음 민요1 호적 23 이상용 l' +11 龍 남 대금 경기 3 14세 대금정악, 산조 24 빅동현 *1' 東 ;얹 LEl 대금 3 13세 25세 단7)-, 판소리, 대금정악 산조 2 있음

95 / 순번 2) m 성 명 성별 생년월일 (한글) (한자) 똥촌진 洪 鍾 鎭 LOL 원장현 元 長 賢 남 'l1 강사준 姜 思 俊 'J 학습 종류 출생지 스승수 시작 人 ]7] 대금 서울 3 16세 대금, 거문고 전남 5 17세 해금 경기 3 학습내용분류 학습 연 ii 걷T 부모친인척 그{t\t 학습내용 핵습한 및주변인의 삼현 기타 ^]7] 산조 육각 산조 성악 무용 연희 기악 C 셔~ T ι- 시나위 21세 대금정악산조 대금풍류 산ξ æ세 태평소 시나위, 거문고산조 해금정악 :13 김영재 金 泳 宰 남 해금, 거문고 경기 10 14세 무용, 양금풍류, 해금풍류 산조 al세 거문고산조 풍류, 71야금병창, 가곡, 농악민요 c ) 2J 정재국 쩔i 在 國 남 피리 충북 4 16세 %세 피리풍류산ξ 태평소 2 lj 서한범 徐 漢 範 냥 피리 전남 3 16세 껑세 피리정악산조시나위 2 31 박범훈 朴 範 薰 남 피리 경기 2 16세 19세 피리음악전반 32 æ 정철호 鄭 哲 鎬 냥 윤윤석 尹 允 錫 남 아쟁 전남 6 7세 아쟁 전북 3 16세 22J.ì] 판소리, 민요 거문고산주 가-0"금, 아쟁산조북장단 있응 lj세 단7t, 판소리, 아쟁산ξ 가야금 2 34 김일구 金 一 15}( 'J 아쟁, 가야금 전남 4 10세 입세 판소리, 아쟁, 가야금 2 λa15 3) 박종선 朴 鍾 善 'J 01쟁 전남 2 16세 21 세 가야금산조 아쟁산ξ 호적, 장.Jl,!1루 장상철 場 相 微 남 거문고 전북 5 'l1세 42세 가7}야곡,금 7풍싸류, 거문고산조 풍류, 시조, 7r새 범음, 양금풍류, 해금풍류

96 서 며 학습내용분류 순번 (한글) (한재 성별 생년월일 종류 출생지 λ승수 학습 학습 낀 ar7et 부모친인척 시작 끝난 학 습 내 용 삼현 기타 학습한 및주변인의 시기 시기 산조 육각 산조 성악 무용 연희 기악 영향 시나위? 'J7 æ 신쌍암 申 雙 岩 고리곤 高 利 坤 L디.} 가야금 전북 6 'ï::l 가야금 전북 3 aj세 1m세 I 수궁재 가야금산Z -'-> 대금풍류, 단소 세 ro세 단소풍류; 7싸금풍류 7댄, 시조 æ 이기태 李 起 兌 남 가야금 전북 6 ~세 $세 북, 양금, 가곡, 시ξ 7싸금산조 2 3 τh- 4} 김종환 金 鐘 煥 \t 가야금 전북 4 n세 ~세 북, 판소리, 가야금산조 풍류, 2 2 가야금병창 J 41 주선희 朱 宣 姬 여 가야금 전남 3 12세 47세 판소리, 가야금산조 풍류 강정렬 姜 貞 烈 신차용 辛 次 龍 Ln 가야금 전남 6 \t 피리 전북 가야금풍류 산조 신관룡 산주 7세 24세 가야금병창, 아쟁산조 판소리, λl으p 철가야금산조 'J7세 피리 풍류, 시나위 2 44 임동선 林 東 善 남 1915년 가야금 전남 16세 21세 7}야금풍류 산조 양금풍류, 피리, 대금 m 성판수 成 判 洙 한학률 韓 E설 f용 송태선 末 太 先 양태옥 梁 太 玉 전경환 全 敬 煥 정기수 鄭 f옮 受 니if 가야금 전남 6 남 가야금 전남 2 닝 가야금 전남 2 남 1919년 가야금 전남 3 LnL 가야금 전남 5 남 가야금 전남 5 세 47세 단개 판소리, 가야금산ξ 2 있음 대금풍류 $세 ~세 기야금풍류산조 1 잉세 ~세 가야금풍류산조무용 14세 4}세 설북,가야금산조 aj세 λ'11 팽과리, 피리 정악, 시나위, 기-O þ금 3 껑세 47세 노래, 북, 가야금 산조 장피 3 박^d-근7}야금산조

97 성 명 학습내용분류 순번 (한글) (한재 성별 생년월일 학습 1?rf그f 출생지 스승수 시작 시기 학습 효 %{t 끝난 학 습 내 용 상현 기타 부모친인척 학습한 및주변인의 -"171 산조 육각 산조 성악 무용 연희 기악 영향 시나위 끼!::. 51 김록주 金 綠 珠 여 가야금 전남 6 9세 18세 가야금산조 무용, 판소리 52 박향산 朴 香 L1 1 여 가야금 전남 10 13세 43세 산 판소ξ리 가,야 무금용산, 가조곡 풍',7류싸7 거문고 }야금병창 λl으p E6 김여막 金 女 莫 신금화 申 銷 火 최효숙 崔 孝 Ì<]}( 여 여 여 가야금 전남 3 12"11 가야금 전남 4 18세 가야금 전남 18세 승무, 단개 판소리, 가야금산조 풍류 2.J서l 가야금산조 풍류, 판소리 가야금산조전바탕 1 c:o E6 '31 58 박미홍 朴 美 紅 정유정 옳I 有 情 잉경주 林 景 珠 여 여 여 가야금 전님 3 12세 가야긍 전남 5 16세 가야금 전남 4 8세 28세 판소리, 가야금산조 λ A1ij 2A세 판소리, 무용, 가야금산조 17세 가야금산ξ 아쟁산조 2 2 :Ð 원광호 元 光?웹 나n 가야금 전남 7 13세 41 세 단까 판소리, 거문고풍류 산ξ 2 2 가야금산조 ffi 이말량 李 未 J#. 여 가야금 1il그Br 5 10세 4l세 양금풍류, 무용, 가야금산조 풍류, 거문고풍류, 가야금병창 서 상열 徐 相 1ft 남 가야금 1il속 a 3 17세 27세 7r야금풍류, 강태홍류 산조 2 신관용류산조 62 김정애 金 京 짧 여 대금 경북 3 14세 21세 소금, 단소풍류, 대박금상산근조가야 풍금류산,조 한주환대금산조 문동호 文 東 Y파 남 대금 전북 2 17세 25서l 강백천( 姜 伯 川 )류 대금산조, 태평소 2 3 시나위,아쟁산조 64 ;<è월중선 5흉 月 폐 lu 여 아쟁, 거가문야고금1 전남 8 8세 판소리, 가야금풍류 산ξ 거문고 53세 풍류산ξ 연희, 무용 2 2 2

98 순번 서 며 (한글) (한자) 성별 생년월일 종류 출생지 냉lμ 육상싸각현휴위y 산 학습내용분류 학습 학습 1A악o한 부모친인척 λ승수 시작 :g.\i 학 습 내 용 및주변인의 시기 λ]7] 산조 7S 성악 무용 연희 영향 4E 학기습 ffi 박차경 1' 1 묘 更 여 1911년 æ월 æ일 가야금 7.δ 격H 19세 æ세 가야금산조가야금풍류 ffi f51 æ æ 7J- 수 "- 려 앓 順 令 신명숙 $ 明 淑 김 동ll:. 金 東 票 송부덕소 *~칩감옆소 여 가야금 전북 여 가야금 7;j격 8 남 대금 전북 남 전북 a 15세 3)세 가야금정악 산ξ 판소리, 무용 2 14세 18,111 무용, 가야금병창, 가야금산조 1 2 η서l 18A1] 대금산조 시나위 2 15세 24세 대금풍류산조 0λ간1 T 끼) 김석출 金 石 11:1 남 호적 7.δ}속H 6 8세 25세 연희, 시나위 Q) 강동일 김무례 金 &1: 김오채 김천흉 金 千 興 박동신 朴 東 信 Ln} 거문고 산조 전북 난 1뼈년 단소 전남 남 설장구 전남 LnL 해금 서울 ';:l- 피리 황해 거문고풍류 산ξ 철현금, 가야금 3 3)서l 32세 산조1 아쟁산조 3 4 이λA으n 2 거문고산ξ 단소산조 2 2 있음 4 7세 21 세 피리, 북,가야금 3 있음 6 14세 해금,성악,무용 4 피리,판소리,무용 끼8 박종선 *1 種 善 LnL 미L소 아 전님 15세 아쟁, 태평소, 북, 장구 4 ~으P η 지성자 池 成 子 여 기야금 산조 기야금 산주 무용, 호적, 농악, 12 민요 대금풍류, 피리, 장구, 양금, 7 있음 78 천대룡 남 속 H 전남 3 17세 판소리,북 79 신복동 쩌 ~ 1효 남 현금산조 전남 (신쾌동) 6 10세 엉세 양금, 가야금, 대금, 거문고정악 4 산조판소리 80 7d 유 tι 더., 金 允 德 가야금 산조 서울 4 13세 ~세 양금 가야금산조풍류, 2 3 거문고

99 성 명 학습내용분류 순번 (한글} (한재 성별 생년월일 종류 출생지 스승수 학습 학습 부모친인척 τ {ffl 시작 그~tt 학습내용 학습한 및주변인의 삼현 기타 시기 시기 산조 육각 산조 성악 무용 연희 기악 영향 T 시나위 /~ 81 성금연 成 鎬 ;옳 여 기야금 산조 서울 4 낌서} $세 가야금산조 거문고풍류 2 82 강백천 姜 白 川 남 18:용년 W월 15일 대금 산조 전남 1E써l 대금정악 &3 강낙승 姜 洛 昇 84 김환철 JÍi~ 土 not 나tf 남 향제줄 풍류 향제줄 τn:γgr 전남 9 전북 2 c ζ 85 이기열 李 基 烈 'if 향제줄 τ{ffl 전북 4 16세 φ세 시조 71야금풍류, 기곡 7싸 거문고풍류, 양금풍류, 단소풍류 $세 l5^1] 대금풍류; 71곡 ~ 때세 세 시I~ 야 그 얘I Er, 거 ]J τn고* 2 2 ffi 황상규 黃 詳 奎 남 향저l줄 풍류 전북 3z세 거문고풍류,가곡 'ií1 원옥화 元 玉 花 여 가야금 산조 서울 5 12,11] 정세 가야금 산ξ 거문고산소 판소리 김정애 金 貞 愛 여 1없년 구례향 제줄풍류 전남 4 z:l세 tf1세 7}야금, 양금 줄풍류,거문괴 가곡, 2 3 시조 æ 이순조 李 順 祚 Ln 구례향 제줄풍류 전남 24세 53세 대금, 단소 풍류, 거문고 풍류, 3 4 가야금풍류 ~ 안 숙 형 h 성 j 3F&i예 安 淑 善 남 여 구례향 제줄풍류 가야금 버 "J- 전남 2 전북 18 16세 34세 단소풍류 9세 때세 가야금 풍류,최 무팎용1조 판소리, 강태홍산조, 2

100 성 명 학습내용분류 학습 학습 부모친인척 풍류 순번 성별 생년월일 종류 출생지 ~~τιt 시작 끝난 학 습 내 용 학습한 및주변인의 삼현 기타 (한달) (한재 시기 λ]7] 산조 육각 산조 성악 무용 연회 기악 영향 시나위 T 거~ 92 강정숙 姜 貞 淑 여 가야금 벼 차 경상 5 10 세 2l서1 판소리, 가야금병창 가야금산조 2 m 지영희 池 짧~ 니d 진쇠장단 서울 11 9서) 3'1세 무용, 취적, 양금, 단소 대금풍류, 2 5 농악,민요거문고풍류 94 이용양 李 龍 兩 니디- 진쇠장단 경기 19세 2l세 장단,무용 합 겨1] : 전체합계; 318

101 3. 탈춤 순번 서 며 (한글) (한재 김상용 金 相 容 2 문장원 文 章 퍼 성별 류파 생년월일 'J 남 1917 년 %월 15일 학습 연희 기타 주변인의 영향 학습내용분류 부모친인척 및 종류 출생지 스승수 시작 학습내용 시기 양주별산대놀이 경기 2 등장인물{완보역) 1 있음 동래야유 부산 4 덧봐기 춤, 딸뚝이춤, 양반춤 3 3 여재성 呂 在 成 남 북청사자놀음 함남 14세 퉁소 북, 정, 음악, 사자역 3 있음 c f\.) 4 이상호 李 相 浩 5 최승올 崔 承 )[ 6 조근룡 趙 th 龍 7 송복산 宋 m움 LlJ 8 지수문 池 秀 文 9 박계순 꺼 桂 順 10 박덕업 朴 德 業 11 김희창 金 喜 읍 12 윤태희 尹 泰 喜 13 최한복 崔 漢 福 14 윤영춘 尹 迎 春 15 마후섭 J펀 I훔 燮 16 마의수 馬 義 1* 17 김삼현 金 三 장 18 {l스1 서 金 壽 石 19 오동술 l윷 東 述 aj 이인섭 李 仁 燮 21 7u) 주 시 金 {뿌뼈 22 이재섭 李 在 燮 23 동태선 f흉 泰 善 24 동시협 훤 始 協 남 1945년 00월 æ일 남 연희 남 연희 남 연희 lill7년 'J 연희 læ7년 여 연희 19:경년 니 口 연희 1뽑년 02윌 æ일 LnJ} 연희 1없년 æ월 12일 나n 연희 1쨌년 02월 æ일 남 연희 lffií년 æ월 05일 남 연희 lill7년 00월 18일 남 연희 19J2년 (J1월 00일 남 연희 læ7년 æ월 여일 남 연희 1919년 10월 26일 니 연희 1900년 (J1월 19일 남 연희 1934년 (μ월 29일 니n 연희 1m3년 æ월 15일 님 연희 1913년 05월 01 일 남 연희 1912년 (J1월 23일 Ln} 연희 1m3년 02월 16일 남 연희 l ill7년 10월 28일 하회별신굿 ïð속h 탈놀이 꼭두각시 놀음 경기 3 14세 합사가챙 合 詞 歌 昌 ) 1 꼭두각시 놀음 충남 꼭두각시 놓음 경기 13세 호적 꼭두각시 놀음 충남 꼭두각시 놀음 경남 동래야유 부산 aj세 말뚝이 동래야유 부산 le써l 양반,전반연출 동래야유 부산 z3세 사대부 T {여 야 fπ 부산 17세 말뚝이,수양반 2 북청 λ}자놀음 함남 1써1 사자역활 북청 λ~7~놀음 함남 사자앞머리 북청 λ}자놀음 함남 사재뒤채역 북청λ}자놀음 함남 16세 악사역할(퉁소) 북청 λ}자놀음 함남 18세 약사역할(퉁소) 북청λ}지놀음 함남 18세 범(담보) 북청 ^~7~놀음 함남 15세 λ~7r놀음 북청λ}자놀음 경남 15세 퉁소 북청사7~놀음 함남 악사역할(팽과리) 북청 λ~7~놀음 함남 18세 악새북) 북청사자놀음 함남 16세 소고

102 <.D w 순번 2) ill 'l1 2E 's1 38 æ m 서 며 (한글) (한재 동성영 童 誠 밍Q 이근화선 李 根 花 善 박필순 朴 必 順 이태진 李 泰 鎭 변영호 i끄 永 鎬 이정락 李 植 洛 한약봉 韓 若 鳳 윤병천 尹 炳 千 윤병구 尹 炳 훼 정시덕 鄭 時 德 이연하 李 IÃ 夏 이상찬 李 相 贊 태명준 太 命 俊 조재준 趙 在 俊 김귀수 金 貴 秀 Z 덕주 행 德 周 박남수 *1 男 水 김기방 金 基 方 이월문 李 月 文 τ IT까-π't! 尹 守 萬 한만식 韓 萬 植 김달봉 金 達 鳳 키u 서..,그 金 石 根 :1ζ- 보 즈"- 趙 福 俊 김봉태 金 奉 泰 김용태 金 容 泰 성별 류파 생년월일 조 T Er 남 연회 1915년 æ월 31일 북청λ}::z~놀음 여 연회 1없4년 01월 z3일 북청 J+자놀음 여 연회 m깅년 m월 ui일 북청사::z}놀음 남 연회 19J)년 æ월 2)일 북청사::z}놀음 남 연회 19æ년 02월 ill일 북청 J,}.자놀음 \t 연회 1915년 m월 17일 북청사::z}놀음 남 연희 1없년 m월 17일 북청사자놀음 남 연회 19)4년 fj1월 31일 북청λ}::z}놀음 여 연회 1쨌년 02월 2)일 북청사자놀음 남 연회 1ffi4년 æ월 η일 수영야유 남 연회 19X1년 fj1월 m일 수영야유 니;:r 연회 19X1년 1댐 16일 수영야유 Lnl 연회 1901년 10월 aj일 T /L 여~:JOFπ 남 연희 1ffi3년 ui월 ()3일 수영야유 남 연희 191)년 11월 æ일 수영야유 남 연희 1914년 02월 æ일 1 / -어 o 야 Þ% 남 연희 1914년 11월 15일 4''l3 ö þ% 남 연희 1915년 02월 ui일 수영야유 남 연희 1915년 ()3월 12일 수영야유 남 연희 1916년 02월 14일 수영야유 남 연희 1916년 02월 ()3일 수영야유 \t 연희 1917년 m월 m일 수영야유 니D 연희 19J)년 æ월 01 일 수영야유 \t 연희 19J)년 æ윌 æ일 수영야유 \t 연희 1앉깅년 02월 24일 수영야유 L 口 연희 1922년%월 13일 수영야유 학습 기타 주변인의 영향 학습내용분류 부모친인척 및 출생지 -λ-스 스 시작 학습내용 시기 연희 함남 16세 정 1 함남 12 세 사당춤 함남 17세 꼽추춤 함남 η세 양반 함남 21세 악새퉁소) 함남 21세 대사 함남 잃세 승무 함념 9세 무동춤 함남 9세 영감, 악새장고) 부산 수영야제양반춤) 부산 수영야유{영감, 약사장고) 부산 2 수영야유{범) 부산 2 수영야원수양반,봉새 부산 수영야유 부산 2 말뚝이 부산 수영 þ%(셋째양반) 있음 부산 2 수영야제악사정) 부산 수영 oþ%(악사장괴 부산 2 수영야제챙과리) 밝} 2 수영야제넷째양반) 2 부산 수영야원악새북), 영노, 의원 3 부산 2 수영야윈영감) 부산 2 수영야유{악사장고) 부산 수영야윈악사북) 부산 2 수영야제사자) 부산 2 수영야%(제대각시)

103 순번 성 명 (한글) (한자) 김학문 金 짧 文 이여준 李 與 俊 성별 류파 생년월일 나n 연희 19;징년 æ월 æ일 남 연희 1ffi7년 æ월 2)일 학습 연희 기타 주변인의 영향 학습내용분류 부모친인척 및 종류 출생지 스승수 시작 학 습 내 용 시기 수영야유 부산 2 수영야제사자) T'성 òþπ 부산 2 수영야유{악사 북, 장고) 2 c..". :i3 54 E6 E ::B ffi m 68 ffi 김태춘 金 泰 春 정대윤 鄭 大 允 김옥천 金 玉 千 여태산 呂 泰 山 이범만 李 範 萬 한유성 韓 有 星 7d 여 ~~ 金 英 珍 정장봉 鄭 長 逢 허호영 許 浩 永 이충선 李 忠 善 허태복 칩; 泰 福 이윤성 李 允 成 이달선 李 達 善 김종엽 Â,f τ;z.서 최 창주 민남순 閔 南 11떠 Lnl 연희 19Æ년 æ월 15일 님 연희 19;경년 (μ월 al일 남 연희 1없1년 m월 (l)일 남 연희 HUì년 m월(}j일 남 연희 19)7년 æ월 14일 남 연희 1!U3년 m월 :-rl일 Lnl 연회 1910년 (l)월 m일 남 연희 1910'건 (J7월 2)일 남 연희 1913년 (l)월 æ일 L 口 " 연희 1910년 æ월 15일 니n 연희 1912년 (l)월 22일 니n 연희 1918년 æ월 U일 남 연희 1mì년 10월 'l1일 'ít 연희 1947년 æ월$일 여 연희 19'집년 æ월 16일 남 연희 19:j)년 06월 24일 여 연희 1940년 02월 al일 수영 F유 부산 T /Lη'ij òþ π 수영야유 부산 수영야유 수영야유 켜U 나n 수영야유 송파산대놀이 서울 송파산대(팔먹중, 신주부, 서방님) 3 송파산대놀이 서울 팔먹중, 샌님 2 송파산대밝 서울 눈끔쩍이,포도부장,샌님 3 송파산대놀이 서울 샌님, 눈끔쩍이, 팔먹중 3 송파산대놀이 서울 팔먹중, 도련님, 연님 송파산대놀이 서울 완l!, 쇠뚝이, 둘째상좌, 신할염 4 송파산대놀이 서울 장.ïl, 대금, 피리(악사역할) 3 송팎}대놀이 서울 대금, 피리, 해금(악사역할) 3 송파산대놀이 서울 피리, 대금, 해금(악사역할) 3 송파산대놀이 서울 피리, 해금, 장고(악사역할) 3 봉산탈춤 8 때세 봉산탈춤 봉산탈춤 2 12세 봉산탈춤 봉산탈춤 3 18세 봉산탈춤 은융탈춤 인천 2 29서1 은융탈휩영감) 깨 변동원 i용 東 1명 차부회 車 r훔 曾 박해일 朴 海 남 연희 1웠년 11월 24일 LDl 연희 1쨌년 06월 29일 여 무용 19:경년 은융탈춤 24세 은융탈휩악새 은율탈춤 인천 19세 있음 발탈 2 16세 화술, 재담,민요,발탈 3

104 부모친인척 및 주변인의 영향 순번 73 성 명 (한글) (한자) 박정임 朴 貞 {f 성별 류파 생년월일 종류 여 무용 l쨌년 발탈 학습 학습내용분류 출생지 스승수 시작 학습내용 시기 연회 기타 4 17세 발탈,장고,북춤 장재봉 5~ 在 奉 오정두 吳 正 냐 냥 연희 13:lì년 12월 15일 통영오광대 니n 연희 1iHl년(6월 15일 통영오광대 둘째 양반, 문둥탈 말뚝이, 경남 27세 4 비비양반, 할미 양반 경남 34세 영노1 악사 2 76 최희호 강f 홉 따f 님 연희 19.꺼년 01월 (E일 통영오광대 경남 :1l세 보유종별 홍백 양만 몽돌이, 사자후보 3 π 김진수 金 辰 ;) 'J 연희 1m3년 12월 æ일 통영오팡대 경남 엉세 보유종별, 사자탈, 소모 다음양반, 5 영노양반, 악사 lo υ æ 이양래 李 양 來 7J λ L λ } 金 三 成 구삼봉 1 具 三 꿇 Lnl 연희 1912년 02월 æ일 통영오광대 'J 연희 1911년 æ월 25일 통영오광대 니D 연희 1iHl년 11월 25일 동영오광대 경남 1 46세 보유종별 첫 양반, 작은 어미, 상여앞소리 경남 1 33세 보유종별 큰어미, 사람탈후보 2 보유종별 문퉁탈, 사자탈후보 경남 잉세 3 상제소무 3 81 무ι 차 λ 文 덤 葉 나n 연희 1919년 æ월 m일 통영오광대 경남 때세 보유종별: 말뚝이, 사자머리, 문둥이탈,소모악사 82 유동주 劉 東 H 남 연희 1917년 æ월 15일 통영오광대 경남 41 세 보유종별, 호적, 조리중, 작은어미, 포수, 꼭두각시 83 지정근 池 ie 近 남 연희 1916년 01월 22일 통영오광대 경남 세 보유종별 배뚜라미 양반, 큰 상제 3 84 강철암 姜 鐵 岩 'J 연희 1914년 æ월 11 일 통영오광대 경남 1씨 보유종별 삐트름이 양반, 사자후보 æ 이수경 李 양 景 여 TA 高 永 守 이태술 李 泰 述 박경규 朴 景 奎 박희무 朴 喜 JY; 남 연희 1m3년 02월 (E일 통영오광대 남 연희 l쨌년 æ월여일 통영오광대 'J 연희 1916년 m월 2j일 통영오광대 나13 연희 1902년 æ월 (E일 통영오광대 남 연희 1919년 æ월 15일 통영오광대 경남 51세 보유종별, 흑탈양반 경남 52세 보유종별 손임탈, 사자탈 후보 2 경북 42세 보우종별 작은 상재 조리중 2 경남 1 많세 보유종별 봉씨악샤당보 3 경남 41세 보유종별 상여군, 큰어미 2

105 c ) 순번 m 91 m % g-; 98 9.:l læ lc얘 1(li 1m 107 læ læ 서 며 (한달) (한재 주봉진 朱 鳳 珍 허정석 許 敬 析 박호선 *' 好 善 강경화 姜 慶 花 이안근 李 쫓 根 김창후 金 昌 後 홍성락 洪 成 洛 김민배 金 敏 培 제형호 諸 뚱 鎬 01π TA 李 允 洙 남상국 南 相 國 최규칠 崔 圭 七 배갑문 裵 甲 文 조용배 趙 鍵 培 정상범 鄭 相 範 허시출 許 時 出 최인순 崔 仁 순 허판세 許 判 tlt 방소군 方 小 君 정 효정 鄭 孝 貞 lltcae1 李 斗 實 허재도 許 在 道 이용주 李 龍 洙 박대봉 朴 大 鳳 성별 류파 생년월일 종류 남 연회 l쨌년 11월 11 일 통영오광대 남 연희 1쨌년 11월 3J일 통영오광대 여 연 년 (li월 3J일 통영오광대 여 연 1911년(li월 15일 통영오광대 남 연희 1뺑년 m월~일 통영오광대 남 연희 l1e7년 æ월 18일 고성오광대 남 연희 lffi7년 04월 m 일 고성오광대 남 연희 1&쟁년 æ월 3J일 고성오광대 남 연희 1915년 m월 15일 고성오광대 남 연희 1913년 æ월 16일 고성오광대 남 연희 lh꺼년 æ윌 m일 고성오광대 남 연회 lml년 m월 2:)일 고성오광대 니 口 - 연희 1쨌년 1뼈 'l1일 고성오광대 남 연희 l!id년 æ월 04일 고성오광대 Ln4 연희 1915년 02월 24일 고성오광대 tj 연희 lml년 (li월 2:l일 고성오광대 남 연희 lae년여월 15일 고성오광대 남 연희 1없1년 07월 13일 고성오광대 여 연희 1914년 æ월 æ일 고성오광대 여 연희 1m1년 æ월 3J일 고성오광대 ';:l 연희 1æì년 m월 13일 고성오광대 남 연희 1짧년(li월 (li일 고성오광대 남 연희 1ml년 02월 II일 고성오광대 남 연희 1짧년 02월 II일 김해오광대 학습 연희 주변인의 영향 학습내용분류 부모친인척 및 출생지 λ송수 시작 학습내용 시기 기타 경남 55세 보유종별; 무대감독, 의장감독 2 경남 64세 보유종별 의장감독 경남 n세 보유종별. 인선녀 작은어미 경남 19세 보유종별: 인선녀 작은어미 경남 보유종별; 약사 경남 'l1세 보유종별:사범 양반 경남 'l1세 보유종별: 문퉁이 북춤 2 경남 보유종별:북춤,장고 경남 보유종별: 각종견습 경남 보유종별. 각종견습 경남 보유종별: 장구, 영감 비비, 양반 2 경남 보유종별:오광대,작은어미첩 2 경남 보유종별 양반 장님, 본서방 2 경남 보유종별 중, 말둑 2 경남 보유종별 오광대 첩 2 경남 보유종별: 오광대, 비비, 큰어미 3 경남 보유종별 오광대(예비), 장님 2 경남 보유종별 오광대(예비) 경남 보유종별:소리,선녀 경남 보유종별. 소리, 선녀 경남 보유종별. 오광대, 각종 견습 경남 보유종별: 오광대(견습) 경남 보유종별. 챙세 경남 113세 보유종별: 악샤 챙파리 합 계: lffi 19 1&3 전체합계,

106 영향 4. 삼현육각 시나위 순번 서 며 (한글) (한자) 성별 류파 생년월일 종류 학습 학습내용분류 부모친인척 출생지 스승수 시작 학습내용 시나위 기능한 및주변인의 시기 타음악 무용 연희 성악 삼현 악기 이충선 李 忠 善 남 경기 1m1년 æ월 15일 삼현육각 경기도 6 Zl^11 대금 삼7에현, 시나위, 피리상현, 양금,7\-ö F금 이용우 李 龍 πl 나D 삼현육각 경기도 3 8세 무용, 판소리, 대금삼현, 2 있음 시나위 3 조한춘 趙 漢 春 나n 4 전태용 全 泰 龍 남 1919년 11 월 z7일 상현육각 삼현육각 단개 판소리 북장단, 피리 경기도 6 1써 삼현육각, 무악 피리, 해금 삼현육각,손굿 경기도 3 11세 해금, 피리, 대금 3 c J b 이영만 李 英 G었 'J 1913년 12월 a)일 상현육각 경기도 2 13세 판소리장단 무악장단, 삼현장단 6 정일동 鄭 H 童 LDL 1914년 æ월 24일 삼현육각 서울 2 8세 장구기초 줄타기, 삼현육각 7 최병호 崔 炳 1옮 남 전주 1931년 æ월 04일 삼현육각 경기도 15세 대금삼현, 해금상현, 피리상현, 3 3 )λ1enl 대금줄풍류 8 전태준 全 台 俊 'J 1944년 m월 13일 삼현육각 전라북도 4 13세 대금풍류, 대금산조 τ r13ii- 9 文 앓 니lT 19:KJ년 12월 16일 삼현육각 전라북도 14세 피리, 농악, 무용기초 10 김광남 金 光 男 남 삼현육각 전라북도 피리삼현, 무용, 농악 11 김준규 金 俊 圭 남 1944년 삼현육각 전라남도 1애 피리상현 12 이정렬 李 廷 烈 남 W45년 æ윌 2J일 삼현육각 전라북도 14세 피리삼현 13 전경환 全 敬 煥 나D 영광 u 박소암 朴 小 岩 여 고흥 삼현육각 상현육각 전라남도 4 찌세 농악 행과리, 피리, 가삼야현,금산 대조금 상현, 대금시나위 3 4 병창 전라남도 lj세 피리삽현, 대금삼현 자득 박동신 朴 東 信 남 해주 1900년여월 26일 삼현육각 황해도 3 16세 피리, 삼현육각 구음 지도

107 순번 서 며 (한글) (한자) 성별 류파 생년월일 종류 출생지 학습 학습내용분류 부모친인척 스승수 시작 학 습 내 용 시나위 가능한 및주변인의 시기 타음악 무용 연희 성악 삼현 악기 16 양소운 梁 蘇 ;r;. 여 해주 1%1년 CJ7월 12일 삼현육각 황해도 3 9세 장구, 무용, 서도소리, 탈춤, 삼현장구, 서도소리 m 김영택 金 永 澤 H-1l 보 -14 EE 朴 福 律 이치조 李 致 祚 이기숙 李 基 淑 냥 은융 남 통영 1921년 04월 æ일 상현육각 황해도 1쨌년 æ월 27일 상현육각 경상남도 1922년 æ월 17일 삼현육각 경삼남도 1922년 11 월 æ일 삼현육각 경삼남도 2 14세 피리 삼현육각 λ1afbι 3 12세 피리상현, 대금삼현, 해금상현 3 3 있음 47세 대금삼현 2 47세 삼현장구 21 이충선 李 忠 善 경기 1m1년 æ월 15일 피리 시나위 경기도 6 z:l,세 꺼 대 νn금,-삼 τa현trt,, 피리삼현, 피리풍류, 가야금산조 co 22 전태룡 全 泰 龍 경기 1922년CJ7월 æ일 피리, 해금 시나위 경기도 피리( 뺑, 시나위), 어정마달, 3 15세 앉은말 뒷전, 해금{염불타령, 있음 굿거리, 시나위) z3 김한국 金 漢 國 경기 1쨌년 æ월 15일 대금 시나위 경기도 3 1E써1 대금(긴염불, 굿거리, 타령, 뽕]-, 길군악, 시나위, 해금, 피리, 호적(능계염불), 호적시나위 24 서용석 徐 龍 錫 경기 대금,호적 1941년 æ월 m일 전라남도 시나위 25 m 박동현 *f 東 & 최병호 崔 炳 浩 경기 전라북도 1942년 æ월 25일 1931년 æ월 04일 대금 시나위 대금 시나위 전라북도 경기도 27 신차룡 쭈 次 龍 전라북도 1917년 12월 17일 피리 시나위 전라북도 여 하 4 4 있음 판소리, 대금산ξ 상현육각, 6 7세 민요반주, 호적시나위, 있음 아쟁산ξ 가야금산조 3 1에l 판소리, 대금산조 4 징세 대금삼현, 풍류, 피리삼현, 단소풍류 세 피리삼현, 시나위 2 28 신쌍암 申 雙 岩 남 전라북도 19CXì년 12월 æ일 대금 시나위 전라북도 3 J)세 가야금산조 소리, 대금산조

108 영향 순번 서 며 (한글) (한재 성별 류파 생년월일 종류 학습 학습내용분류 부모친인척 출생지 λ송수 시작 학 습 내 용 시나위 가능한 및주변인의 시기 타음악 무용 연희 성악 상현 악기 g 조계남 曺 桂 南 전라남도 1917년 m 월 rn일 피리 시나위 전라남도 3 8세 피리삼현, 피리시나위 2 II 박영태 *1 永 泰 전라남도 1짧년 01월 13일 피리 시나위 전라남도 22 세 피리시나위, 피리삼현 2 31 한용호 韓 用 鎬 전라남도 1!rn년 æ월 a:j일 피리 시나위 전라남도 %세 피리,장구 2 2 3z 박재성 朴 載 聲 전라남도 l없7년여월 18일 피리 시나위 전라남도 2 8세 장구,피리 2 있음 33 전경환 全 敬 煥 전라남도 HJ21년 11월 m일 피리 시나위 전라남도 5 17서} 팽과리, 피리삼현, 시나위, 농악가야금산조 병창 2 3 }λ1으n c &1 강한수 姜 漢 秀 li 신용현 申 龍 鉉 33 박복율 朴 福 律 J1 이일선 李 터 善 :B 김 광식 金 光 植 전라남도 1911년 01월 01 일 전라남도 1915년 æ월 m일 피리 시나위 퉁소 시나위 경삼남도 1%년 10월 27일 피리, 대금 시나위 l 13:꺼년 m월 21 일 경기시나위 으n 년 ffi월 æ일 경기시나위 전라남도 14세 피리시나위,아쟁시나위 2 2 있음 전라남도 18세 퉁소시나위 피리, 대금(삼현, 군악), 피리 경상남도 17세 2 3 있음 삼현,굿음악, 해금 경기도 4 a:j세 가야금, 피리, 피리시나위 2 경기도 4 1찌 피리, 시나위 대금, 해금 3 J) 지영희 池 奭 熙 음악 1m3년 æ월 14일 경기시나위 서울 2 21세 해금시나위 40 정권진 鄭 權 鎭 으P 아 1없7년 10월 15일 경기시나위 전라남도 2 7세 강산제 심청 7 }, 판소리 춘향가 있음 41 이충선 李 忠 善 남 음악 1007년 rn월 15일 시나위 서울 a세 42 이달선 李 達 善 나jj 음악 1!nì년 m월 27일 시나위 서울 10세 무악 43 지영희 池 :r!fi 熙 남 으n -1 1m3년 æ월 14일 시나위 합 계: 서울 3 23세 해금,무악, 무용반주 m 전체합계: 102

109 성 명 학습 학습 학습내용분류 부모친인척 및 순번 성별 류파 생년월일 종류 출생지 스승수 시작 끝난 주변인의 영향 (한글) (한자) 시기 시기 풍물 기타 3 현판쇠 남 연희 1쨌년 æ월 æ일 호남농약(우도) 전남 정세 3 5. 풍물 황일백 黃 8 I김 님 연희 1æ5년 농약십이차 경남 5 13세 2 문백윤 文 1i'J 允 남 연희 1~년 농악십이차 경남 10세 4 김영수 金 永 洙 남 연희 1913년 10월 m일 호남농약{우도) 전남 1 16세 5 백남철 白 南 喆 'rt 연희 l없년 셔월 æ일 호남농익{우도) 전북 15세, 6 김용업 金 龍 業 남 연희 1없4년 W월 19일 호남농악{우도) 전북 15세 7 8 ll L 口 } τ r 白 南 允 니 口 - 연희 1917년 m월 æ일 호남농악(우도) 전북 16세 8 김병섭 니tr 연희 1921 년 12월 æ일 호남농약(우도) 전북 17세 9 이동현 니tr 연희 1922년 æ월 15일 호남농악{우도) 전북 19 세 10 박남직 朴 南 植 남 연희 1918년 rj1월 m일 호남농약(우되 전북 14세 11 김재성 金 在 成 나tr 연희 1없7년 W월 æ일 호남농악 우도) 전남 17세 12 전사섭 全 四 燮 남 연희 1913년 æ월 25일 호남농약 우도) 전남 15세 13 김사종 金 四 鍾 남 연희 1918년 æ월 16일 호남농약(우도) 전북 l'7세 14 김재옥 金 在 玉 l 口 4 연희 1910년 æ월 æ일 호남농앤우도) 전북 2 15 한규동 韓 圭 東 남 연희 1aJ7년 12월 14일 호남농약(좌도) 전북 13세 16 박오복 *1 五 福 니tr 연희 1명7 년 æ월 27일 호남농약(좌도) 전북 14세 17 이정용 남 연희 l쨌년 11월 22일 호남농약{좌도) 전북 21 세

110 34 남기환 P힘 基 煥 연희 1쨌년 (E월 11 일 남사댐농악) 충북 2 있음 서 며 학습 학습 청F습내용분류 부모친인척 및 순번 성별 류파 생년월일 종류 출생지 λ승수 시작 끝난 주변인의 영향 (한글) (한자) τ n올n 시기 시기 기타 1 18 최영억 남 연희 1913년 æ월 19일 호남농액좌도) 전북 17^1 19 손판돌 니d 연희 1!ffi년 æ월 12일 호남농앤좌도) 전북 21세 aj 정오동 鄭 五 同 남 연희 19li년 12월 æ일 호남농익{좌도) 전북 16세 21 기 창수 'rl 연희 1ffi4년 12월 3)일 호남농익{좌도) 전남 17세 z 최상근 崔 -+1ì 根 'rl 연희 1007년 호남농익{좌도) 충남 a 홍유봉 洪 有 峰 남 연희 1914년 æ월 æ일 호남농약{좌되 전북 l l 24 한판옥 남 연희 19li년 호남농약{좌도) 전북 2:í 최성구 崔 聖 九 남 연희 1007년 10월 æ일 남사댐농악) 미상 3 6세 33 남향우 F힘 享 祐 님 연희 1007년 (J7월 13일 닝사딩{농약) 충북 2 14세 'll 양도일 梁 3월 ~. 님 연희 1007년 12월 24일 남사딩{농악) 충남 12세 2 28 임 광직 林 光 植 남 연희 1941년 (E월 æ일 남사딩{농악) 경기 11세 29 황점석 黃 /런 錫 남 연희 1916년 (J7월 24일 남사당{농악) 경기 2 21세 3 II 지수문 池 秀 文 LnL 연희 1쨌년 10월 12일 남사딩{농악) 충남 1&세 3 31 송순갑 宋 淳 甲 냥 연희 1914년 æ월 10일 남사댐농악) 충남 8세 18세 3 32 지운하 池 雲 夏 남 연희 1946년 æ월 11 일 남사댐농악) 경기 7세 3 33 박용태 *1 龍 泰 남 연희 1없4년 04월 aj일 남사당t농악) 경남 12세 2 s5 우종성 禹 種 成 나n 연희 19S5년 æ월 21 일 남사댐농약) 경기 n세

111 82 10 gz 순번 셔 며 (한글) (한자) 성별 류파 생년월일 학습 학습 힌 습내용분류 부모친인척 및 종류 출생지 λ송수 시작 끝난 주변인의 영향 시기 시기 풍물 기타 lì 'tl- "J -9- 南 享 祐 남 연희 lffi7년 (J{월 13일 냥사댐버나) 충북 18세 'J7 송순갑 宋 淳 甲 남 연희 1914년 rn월 10'일 남사댐살판) 충남 3 8세 38 조송자 趙 松 子 여 연희 lml년 rn월 31 일 남사댐어름산이) 경기 5세 æ 바1 이 l 수L 朴 李 順 여 연회 1없4년 aï월 16일 남사당 덧보기) 충북 40 최은창 崔 股 昌 남 연희 1915년 æ월 æ일 농익{경기) 경기 2 16세 aj세 3 41 이돌천 李 동 川 'tl 연희 1919년 aï월 :Ð일 농익{경기) 충남 16세 42 김문달 金 文 達 남 연희 1911년 농악 호남우도) 전북 17세 o f'\.) 긴u 송 수L 金 쩌 淳 이수남 李 壽 男 'tl- 연희 1933년 rn월 W일 'tl 연희 1917년 æ월 농악{호남우도) 전북 17세 농약 호남우도) 전북 17세 45 박기하 朴 基 河 'tl- 연희 19J1년여월 W일 농액영동농악) 강원 17세 46 최동규 崔 ;였 奎 남 연희 1942년 β월 23일 농익(영풍농악) 강원 2 17세 34세 47 {l셔니오 남 연희 1뻐년 æ월 13일 진주삼천포농악 5 7세 4 48 조갑용 남 연희 1 ffi'3년 11 월 34일 진주삼천포농악 6 5세 $세 디) 터 끼 12L- 金 德 ì* 남 19lï년 rn월 34일 사물놀이 충남 9 5세 10 있음 m 김재원 남 1없년 12월 27일 남사당패 충남 7세 박계순 朴 季 11떠 여 1927년 aï월 15일빨 남사당 경남 합 계: 전체합계

112 6. 무용 순번 서 며 학습 학습내용분류 부모친인척 및 성별 류파 생년월일 종류 출생지 스승수 시작 학습내용 기타 무용 기악수 주변인의 영향 (한글) (한재 λl317세1 l ω 1 강선영 姜 善 泳 여 19Æ년 æ월 II일 태평무 경기 전통춤 2 박정수 시 ßUl< 나 口 1942년 1뼈 aì일 일무 경기 5 13 세 정악 가야금, 일무, 편종, 편경 3 3 김천홍 金 千 興 'tt 무용 1911년 02월 æ일 처용무 서울 1 처용무, 궁중약( 宮 中 뺑 4 봉해룡 奉 i챔 1l~ 무용 1911년 01월 (lj일 처용무 서울 처용무, 궁중약( 宮 中 懶 1 b 김 기 수 金 짧 洙 니E 무용 1917년 11월 ::2일 처용무 서울 처용무, 궁중에 宮 中 觸 6 김태섭 金 泰 燮 LDL 무용 19::2년 12월 21 일 처용무 서울 처용무, 궁중앤 宮 中 樂 ) 7 김 룡 金 융E L11l 무용 l!id년 (μ월 aj일 처용무 서울 처용무 8 김중섭 金 꿇 燮 남 무용 1940년 m월 18일 처용무 서울 l 처용무 9 이상룡 2쭈*1l 龍 나p 무용 1942년 02월 10일 처용무 서울 처용무 10 임세양 林 1따 良 념 무용 1943년 01월 11 일 처용무 서울 처용무 11 이상규 李 相 奎 남 무용 1명4년 10월 æ일 처용무 경기 처용무 12 김재운 金 在 運 'il 무용 l쨌년 æ월 13일 처용무 전북 처용무 13 신중환 1'1' 煥 'tt 무용 1949년 02월 (lj일 처용무 경기 처용무 14 하주성 Lnl 무용 1949년 m월정일 처용무 서울 1 처용무 15 강선영 姜 春 子 여 무용 19Æ년 æ월 II일 태평무 서울 12세 승무, 태평무 2 16 이홍구 李 興 九 'tt 무용 1때)년 04월 æ일 학연화대합설무 3 16세 무용 17 최순이 m 順 {켜 여 무용 l ffi2년 W월 m일 진주검무 경남 검무 18 이 윤 려1 李 潤 :t L 여 무용 1003년 (lj월 (J7일 진주검무 경남 검무 19 김자오 金 子 뺏 여 무용 1m2년 (J7월 02일 진주검무 경남 겁무 aj 7디1 요 주 1 金 玉 珠 여 무용 19fJ7년 01월 17일 x니1t;ζ깅녀-r- 경남 검무

113 성 명 학습 학습내용분류 부모친인척 및 순번 성별 류파 생년월일 종류 출생지 λ송수 시작 학습내용 기타 (한글) (한재 주변인의 영향 시기 무용 기악수 l A l 21 김수악 金 壽 ffi 여 무용 1916년%월 fj7일 진주검무 경남 2 검무 a 이음전 李 音 全 여 무용 1914년 m월 12일 진주검무 경남 2 검무 z3 김순녀 金 順 女 여 무용 1924년 02월 10일 진주검무 경남 겁무 24 강금순 姜 今 順 여 무용 19Jì년 æ월 aj일 진주검무 전북 검무 2) 강귀례 姜 貴 피L 여 무용 1%년 02월 02일 진주겁무 경남 검무 m 최예분 崔 피L 分 여 무용 1911년 æ월 fj7일 진주검무 경남 겁무 'l1 정순님 鄭 順 南 무용 1%년 12월 11 일 승전무{통영북춤) 경남 13세 전통북춤 g 엄옥자 嚴 玉 子 무용 1없년Q}월 17일 승전무(통영북춤) 경남 전통북춤 g 김태현 金 太 玄 무용 lffi3년 fj7월 24일 승전무(통영북춤) 경남 전통북춤 30 이갑 李 甲 O 무용 19)1년 æ월 13일 승전무{통영북춤) 경남 17세 전통북춤 31 주봉진 朱 鳳 珍 무용 1al1년 11월 11 일 숭전무{통영북춤) 경남 36세 전통북춤 32 박경규 朴 景 奎 무용 1없년 æ월q}일 승전무{통영북춤) 경남 34 세 전통북춤 33 박의성 찌 義 成 무용 1918년 æ월 æ일 승전무{통영북춤) 경남 30세 전통북춤 34 박복률 朴 福 律 무용 1ffil년 m월 21 일 승전무{통영북춤) 경남 aj세 전통북춤 lí 황우명 무용 1951년 æ월 aj일 승전무{통영북춤) 경남 19세 전통북춤 36 정상복 鄭 尙 福 무용 1949년 12월 12일 승전i'-(통영북춤) 경남 17세 전통북춤 'J7 차영옥 車 英 玉 무용 1950연 æ월 aj일 승전무(통영북춤) 경남 18세 전통북춤 38 이미화 李 美 和 무용 l뼈년 æ월 n일 승전무{통영북춤) 경남 17세 전통북춤 39 조수미 曺 守 美 무용 1951년 01월 15일 승전무(통영북춤) 경남 17세 전통북춤 40 박영숙 *1 永 淑 무용 1쨌년 æ월 19일 승전무{통영북춤) 경남 17세 전통북춤 41 배옹진 좋홍짧 무용 1949년 12월 2)일 승전무(통영북춤) 경남 17서1 전통북춤 42 조 O 숙 무용 1950년 12월 2)일 승전무(통영북춤) 경남 17새 전통북충

114 순번 서 며 (한글) (한재 박두리 시 斗 理 유양희,fJí~ f후 姬 황수금 黃 守 今 김정희 金 貞 熺 유순자 柳 淳 子 주미희 朱 米 흉 한영숙 韓 英 淑 성별 류파 생년월일 무용 19)2년 as월 25일 무용 1 9)2년 æ월 01 일 무용 l떼년 æ월 경일 무용 1짧년 æ월 as일 무용 19l1년 æ월 zl일 무용 19)1년 æ월 31 일 여 무용 1!W년 10월 18일 학습 학습내용분류 부모친인척 및 종류 출생지 스승수 시작 학습내용 기타 주변인의 영향 시기 무용 기악수 승전무(통영북춤) 경남 16세 전통북춤 승전무{통영북춤) 경남 16세 전통북춤 승전무(통영북춤) 경남 17세 전통북춤 승전무{통영북춤) 경남 16세 전통북춤 승전무(통영북춤) 경남 1에 전통북춤 승전무(통영북춤) 경남 16세 전통북춤 학무 서울 1뻐 승무, 민속무용, 학무 3 ffi 이홍구 李 興 JL 'à- 무용 1940년여월 æ일 학무 충남 국악, 궁중무, 종묘일무, 민속무, 학무,숭무 <:) 기 51 배중열 裵 f대 烈 남 무용 1SZ2년 æ월 24일 통영검무 경남 21세 팽과리캉 삼듀L현속육악각, 장/장고고, 통영지 52 s3 박복율 *1 i 福 (~ 김숙자 金 淑 子 남 무용 1~년 æ월 'l1일 여 무용 1없7년 11월 'l1일 통영겁무 19세 삼현육각, 삼현북, 피리, 대금, 해금 살풀이 서울 2 13세 살풀이 춤, 무속춤, 창, 승무 3 E닝 il 더 여o 金 德 明 니D 무용 1924년 æ월 z2일 양산학춤 경남 3 16세 춤,전통춤 ffi 이봉애 여 무용 1923년 11월 13일 평양검무 3 16세 숭무, 평양검무, 서도창 2 56 ilτ 니n 여 무용 1떼년 æ월 'l1일 평양겁무 lì세 평양겁무 '37 김윤분 여 무용 1931년 11월 11 일 평양검무 ffi세 E3 안영희 安 英 姬 여 무용 19)4년 11월 3)일 평양검무 3 n세 평양겁무 :1l ro 양소운 梁 蘇 굽 차재숙 車 在 淑 여 무용 1924년 m월 12일 여 무용 1948년 12월 æ일 해주검무 3 10세 해주검무 13세 해주검무 봉산탈추므강령탈춤, 4 해주겁무, 한량무, 서도소리 61 김계화 金 桂 花 여 1925년 W월 24일 교방굿거리 춤 전남 6 13세 교방굿거리 살풀이춤, 판소리, 승무, 겸무, 굿거리, 법고충 있음

115 순번 62 æ 성 명 (한글) (한재 김백봉 金 白 峰 여 7lJ1 수 1 야.., 金 壽 품 여 성별 류파 생년월일 종류 출생지 1927년 æ월 12일 부채춤창무자 평안님도 1æ5년 12월 10일 굿거리춤 경남 학습 학습내용분류 부모친인척 및 스승수 시작 학습내용 기타 주변인의 영향 시기 무용 기악수 3 13세 춤, 숭무, 태평무 2 있음 춤의 기본, 승무, 소고무, 13 9세 굿거리춤, 입춤, 검7봐무,금 단,개 아쟁 심청개춘향개 Aλ1ζ% o 1 64 ffi ffi m ffi ffi 70 김숙자 金 淑 子 여 김진홍 金 員 弘 여 a lxo 스, 朴 貞 洙 남 박홍도 *f 셋 道 남 안채봉 安 彩 鳳 여 양소운 #è 蘇 굽 여 이매방 李 梅 Jj 남 도살풀이 Hffi년여월 (E일 한량춤 일본 오사차 1912년 10월 m일 일무 경기 19lì년 얘월 14일 문둥북춤 경남 19J)년 10월 æ일 소고춤 전남 해주검무 황해도 19Jì년(E월 (E일 승무 전남 6세 판소리 다섯 바탕, 잡가 전체, 2 무속춤 있음 4 13세 기살본풀무이,산 입조춤 한 산량조춤 승무, 세 정악 7싸금, 일무, 편종, 편경 3 쇠가락 단개 심청개 소고춤, 살풀이 8 13세 춤, 검무, 승무, 소리공부, 4 있음 가야금,춘향가 7 12세 춤, 서도12잡개 서도소리, 배뱅이굿, 가야금 2 7세 검무,승무, 법무, 북 3 있음 이애주 李 평 珠 여 장금도 G동 없B 挑 여 장홍심 張 r;c 心 여 정경파 鄭 慶 ijjl 여 100년 10월 17일 승무 1 9lJ년 m월 13일 동살풀이춤 전북 1914년 바라승무 함남 살풀이춤 τ '"속H 승무, 궁중정재, 검무, 7 7서} 완판승무, 경기도당굿, 무악, 4 3 장단, 범패, 시조 영기무도 가야금, 춤, 심청자 김연수제 6 심정개 춘향개 홍부7r, 2 적벽개 수궁개 승무, 정재춤 춤사위, 가야금 7싸금병장 3 11세 진쇠무, 태평무, 검무, 한량무, 7 l 선녀무,포구락, 승무 3 14 세 남도창, 장구가락, 살풀이춤 ~으P 합 겨1 전체합계

116 7. 잡가 및 민요 성 명 학습 학습 학습내용분류 부오친인척 및 순번 성별 류파 생년월일 종류 출생지 스승수 시작 끝난 학 습 내 용 주변인의 영향 (한글) (한자) 시기 시기 성악 악기 기타 김경복 金 fa }댐 남 1915년 æ월 01 일 서도소리 황해도 3 19써l 34세 서도소리, 잡가 2 2 북계월 을쉴 Æ 月 여 19'JJ년 10월 19일 경기십이잡가 서울 5 13세 14세 시 ξ 가사 경기민요 3 이λA으b 3 신유경 벼 pjí 京 여 19Jì년 (lj월 12일 육자애기 전남 7 4 안비취 安 값짧 여 19Jì년 æ월 21일 경기민요 서울 4 3 오복녀 吳 i많 女 여 1913년 12월 17일 서도소리 평안남도 6 15세 15세 6 이1 으 주 1 李 없 珠 여 1922년 æ월 14일 경기잡가 경기도 2 16세 가야금 산ξ 송무, 판소리, 2 1 남도민요 춤,가곡 7싸승무, 3 경기 12잡가 서도 소리,7)곡, 산조:7roF금, 장구, 궁중무용, 12잡개 양금 토막소리, 긴잡개 시조 7 },λh 민요 \ λ1으n 7 조공례 펌져l 禮 여 Igzj년(lj월 21 일 닝도들노래 진도 남도들노래 있음 8 조을선 여 1915년 (껴윌 (lj일 제주민요 제주도 3 제주민요 9 최봉출 崔 鳳 出 니n 1918년 04월 04일 정선아리랑 정선 2 정선아리랑 있음 니 1937년 æ월 27일 선소리 산타령 충청남도 2 껑세 Jì세 시조 산소리타령 2 10 황용주 11 강남중 姜 南 다l 니n 음악 lffil년 04월 (lj일 화초사거리 전남 18세 세 화초사거리 12 송향란 '* 香 關 여 음악!ffil년(lj월 16일 화초사거리 경북 2 10세 13세 판소리 13 H 1L 뇨, 二 즈 1 느 -*1 錄 ft 여 으디,Q.) 1004년 01 월 2s일 화초사거리 서울 6 12-"1] 잉세 판소리, 기야금 14 장학선 ~~ í랩 {띠 여 inil L lffij년 æ월 서도의 관산융마 평괴 1 10세 15 김수영 金 守 英 여 음악!ffiJ년(꺼월 21 일 서도의 관산융마 서울 1 16 김정연 金 iu써 여 으D 아 1912년 æ월 Jì일 서도선소리 서울 17 오복녀 吳 ~1íl 女 여 음악 1913년 12월 17일 서도선소리 서울 18 이춘희 李 春 義 여 음악 1947년 æ월 18일 민요 서울 3 m세 23-" D1 각'ii- c 二 金 ~J9( tn 여 음악 1951년 11월 (용일 민요 서울 3 16세 세 민요 aj 이연화 李 ;;g 華 여 음악 l쨌년 11 월 01 일 민요 서울 2 13세 23세 합 계: 전체합계

117 성 명 학습 흑L습 흐L습내용분류 부모친인척 순번 성별 류파 생년월일 종류 출생지 λ승수 시작 그if\:! 학 습 내 용 및주변인의 (한글) (한자) 시기 λ]7] 음악 성악 무용 연희 기악 기타 영향 가공 정악 7}o þ금,서 춤양, 음음악악, 이승렬 李 勝 烈 니õ 1없4년 (J1월 æ일 정악가야금 서울 9 이론, 가야지금휘산조 2 3 있음 국악이론, 8. 궁중음악 및 풍류 l 1 2 이강덕 'tt 1928년 11월 2A일 종묘제례악 6 3 김성진 金 훤 振 'tt 음악 1916년 12월 1)일 영산회상 서울 2 4 봉해룡 Z융 海 龍 남 음악 1911년 m월 a5일 영산회상 서울 5 박영복 朴 永 福 'tt 으n 야 19(J1년 12월 'l1일 영산회상 서울 이론, 거문고 궁중 정재, 피리, 국악기초음악, 이론, 춤싸, 가묘극 승 시무조, 살풀이, 민속 6 김종희 金 f~ 熙 니n 음악 1918년 m월 aj일 영산회상 서울 7 김태섭 金 泰 燮 남 음악 1922년 12월 21 일 영산회상 서울 2 8 정재국 鄭 在 國 'tt 음악 1942년(떠월 10일 영산회상 서울 2 9 김덕순 金 德 順 여 1918년 02월 æ일 여창시조 서울 9 m 소동규 蘇 東 奎 남 1917년 12월 aj일 내포제시조 충남 19세 잉세 시조 가곡 7싸 거문고1 양금 이동규 李 東 jc 남 남창가곡 서울 6 가곡; 7싸금, 편종, 편경, 6 6 있음 적,소금, 단소 기본무 12 이주환 李 珠 煥 음악 1ffil년 a5월 2A일 기곡 서울 13 {J %λ'1 나D 음악 1947년 æ월 ()'!일 대금정악 16^ì] 대금

118 순번 서 며 (한글) (한재 성별 류파 생년월일 종류 출생지 학습 학습 학습내용분류 부모친인척 A승수 시작 끝난 학 습 내 용 및주변인의 시기 시기 음악 성악 무용 연회 기악 기타 영향 14 이상규 L n l 1914년 10월 m일 대금정악 15세 대금 15 홍종진 남 으 口 O l 1949년 10월 21 일 대금정악 2 15세 19세 대금 조성래 남 디 o l 1949년 1 대금 음악 1때년 12월 æ일 가곡 서울 E L 1ffi2년 04월 m일 가곡 경기 5 16세 $세 거문괴가곡 1찌 갱세 남녀창가곡 19 김경배 金 ~ 培 님 이오규 쭈 h 靈 하규일 河 圭 1ffi7년 6월 10일 가곡 서울 3 6세 18^11 음악수업, 한문, 가곡, 단소 있음 거 τd o c 합 계 전체합계;

119 자u 주ι 서R 姜 俊 燮 남 진도다시래기 경남 2 8세 13세 잡7}, 홍보개 심청가 3 λ1으-p 2 김길임 金 吉 任 여 19Æ년 01월 'l1일 강강술래 있음 5 김석출 金 石 出 남 19;깅년 æ월 23일 세습무가 경북 5서} 있음 9 박병친 朴 秉 千 님 끼 lj'-~ λá으n 11 송동숙 宋 東 淑 'J 1!I졌년 æ월 25일 오구굿 경북 9세 무악 이λλ으n 9. 무속 및 기타 성 명 학습 학습 학습내용분류 부모친인척 및 τj ~ 종?규 그 성별 류파 생년월일 출생지 스승수 시작 끝난 학습내용 주변인의 영향 (한달) (한자) 시기 시기 무속관련 기타 3 박상화 *' 相 fu 남 1910년 æ월 23일 영기무도 g세 영가무도 한동희 韓 東 熙 여 회심곡 충북 15세 음성불사 l l 6 김윤수 金 允 洙 님 19,j6년 W월 æ일 저l주칠머리딩굿 제주 있음 7 김정석 金 點 石 'J 서울무악 서울 2 새납 있음 8 김찬섭 金 燦 燮 'J 1945년 ()J월 æ일 무악피리 서울 2 대금, 해금 정악 2 λ 1 으n 10 박어진 朴 於 珍 여 1923년 12월 17일 서울굿 경기 12 λ~ λ } L n} 대 石 南 여 동해세습무 경북 2 13 오수복 吳 壽 福 여 1924년 æ월 æ일 경기강신무 경기 2 -s r 끼 ;ζ- 14 禹 玉 珠 여 황해도 2 15 이선비 李 先 비 여 1934년 01월 $일 강신무 황해도 2 16 장보배 5fQ 寶 拜 여 1911 년 황해도 별신굿, 풍년굿, 오귀굿, 종λJ굿, 단오굿 5 있음 17 조한춘 4굉 漢 春 니n 경기무악 황해도 3 짧끓 1 있음

120 순번 서 며 (한글) (한자) 성별 류파 생년월일 캉?규 그 학습 학습 학습내용분류 부요친인척 및 출생지 스승수 시작 끝난 학습내용 주변인의 영향 λ]7] λ]7] 무속관련 기타 18 박세민 朴 tit 敏 남 1때)년 10월 æ일 염불 염불게송 19 m a la : DL 이일응 李 應 나ti 1915년 11월 3)일 범패 Lnl 193)년 (fi월 23일 범패작법 서울 2 전북 6 17세 염불, 바라, 나비춤 2 21 조송자 뼈 松 子 여 1927년 11 월 04일 경기 2 7세 어름학습, 승무, 검무 2 AA1E 22 김정석 金 뾰 錫 연희 1m7년 10월 18일 범패와작볍 서울 싱주권공, 짓소리, 불교무용 3 23 빅희덕 朴 줍 德 연희 1914년 10월 14일 범패와작법 서울 1 성주권공, 짓소리, 불교무용 3 24 장태남 ~ 泰 男 남 연희 1%년 æ월 æ일 범패와삭볍 훗소리, 짓소리 작법 3 ~ 25 m 김명호 金 明 룻 박정선 朴 慶 善 LDl 연희 1m2년 01 월 15일 범패와작볍 연희 l쨌년 01월 24일 범패와작법 경기 2 훗소리 싱주권공, 작법, 짓소리 3 z1 곽문환 흥f, 文 煥 나'iJ 연희 1921 년 10월 19 일 전남 19세 진도민요 판소리, 잡가 3 합 계: 전체합계: L..._

121

122 저 12 부 명인 대답연구 113

123

124 1. 명인 대담 사례 연구 1. 분석 방법 개별 사례의 분석은 보다 상세한 차원에서 개인별 견해를 확인할 수 있는 것 이다. 같은 질문에 대한 답변에 있어서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점을 통합 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본 연구에서는 개인차를 검토하고 종합 하기 위해 이를 분석하도록 할 것이다. 이 항에서는 개별 제보자의 의견을 종합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1 차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31) 1 차 분석에서는 용어를 통 일하여 사용하였다. 대담 내용 중에서 영재 개념과 선발에 있어서 주목되는 점을 개별 제보자 별 로 정리하여 분석 서술하고, 간략한 요약 분석표를 제시하도록 할 것이다. 표는 대담 전체 내용에 대한 요약으로 다음 세 가지 범주로 나누어져 있다. 口 대담내용의 원천에 대한 정보 口 제보자가 직접 발화한 언술을 정리 口 대담에 대한 1 차 분석 대담 내용의 원천에 대한 정보 는 분석의 결과와 표에 나타는 요약적 진 을 원천, 즉 대담 내용과 견주어 검증할 수 있도록 대담 시 개별 질문의 번호를 적은 것이다. 이 번호를 근거로 이 장의 뒤에 실린 명인대담자료 의 내용을 확 인할 수 있다. 일련번호 순서대로 정리했으나 실제 대담에서 순서가 뒤바뀐 경 우는 실제 대담의 순서를 그대로 두되, 질문 번호만 분명하게 해 두었다. 제보자가 직접 발화한 언술을 정리 는 제보자의 용어로 정리한 것이다. 대체 로 명사, 형용사로 표현된 것을 중심으로 정리했지만, 문장을 정리한 경우도 있 었다. 제보자의 직접 발화를 정리한 의도는 제보자 별 독창적인 의견들이 무엇인 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대담에 대한 1 차 분석 개별 제보자가 같은 단어를 쓴다하더라도 그 세부적인 내용은 다를 수 있다. 또, 제보자가 다른 용어를 사용하여 진술한다하더라도 그 내용이 같을 때도 있다. 따라서 개별 제보자의 의견을 일관된 시각 속에 검토하 기 위해서는 일관된 용어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이 용어를 한정하여 사용했다. 31) 종합 분석의 연구 개요항 참조

125 口 선발: 제안-영재성을 가진 학생에 대해 의지를 갖고 평가하는 것으로 한정 한다 선발 기준은 교육 중에서 교육 방법에 대한 제안 중에서, 예술가적 자질을 통해 추출할 수 있었다. 선발시험: 선발을 위한 구체적인 단계에서 시행하는 시험으로)한정한다. 口 관찰평가: 학습과 평가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체계로 한정한다. 口 수업관찰평가: 평가를 위해 수업을 하는 경우로 한정한다. 창조성: 독창성, 창의력, 작곡, 응용력, 적응력, 순발력 등으로 세분하여 표 현할 수 없는 창조성을 지칭하려할 때 사용하기로 할 것이다. 기본: 필수 학습이 끝난 상태에 대한 분석어로 사용하기로 한다. 口 발견: 영재성을 갖고 있는 학생에 대한 선발의 의지를 갖지 않은 상태에서 평가하는 것으로 한정한다. 口 동기: 영재성을 판단하는 여러 지표 가운데 하나로, 자기 스스로 동기를 갖 는 것은 동기유발, 남에 의해 동기를 갖는 것은 동기부여로 정리하였다. 겸공(짧L) 전공 분야가 여러 종목인 것을 한꺼번에 지칭할 때로 한정한다. 口 섭공( 涉 I): 전공 분야는 아니지만 전통공연예술의 제 분야-음악(악기, 소 리), 무용의 분야의 경험을 통칭할 때 사용할 것이다. 口 섭렵( 涉 繼 ): 전공 분야와 다른 예술 혹은 관심 분야를 통칭할 때로 한정한다. 환경: 예술환경, 교육환경(음악적 혹은 예술적 교육환경), 경제적 환경, 가족 의 후원, 감상의 기회, 학습이전의 환경 등 예술가의 성장에 필요한 주변 조건들로 한정한다. 口 교육시기: 영재를 가르칠 시기로 한정한다. 口 학습시기: 자신이 배운 시기로 한정한다. 이상의 분석 용어들을 통해 제보자 진술을 일관된 시각 하에 분석해보고, 나아 가 개별 제보자들의 견해 차를 가늠해보도록 할 것이다. 2. 개별 사례 분석 1) 음악부문 CD 기악부문 강정숙 강정숙은 가야금병창, 가야금, 창극에 능하고, 학습시 무용, 가야금, 소리, 116 -

126 타악을 고루 섭렵했다. 또한 늦어도 12세부터 학습이 본격적 학습이 시작되었으 며, 이후로 당대 최고의 스승을 두고 학습한 사례로 볼 수 있다. 강정숙은 학생 자신의 의지, 좋은 교사 그리고 학부모의 후원을 중요시 했다. 또한 전공 분야의 연마 외에도 관련 분야의 섭렵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 이유는 실제 공연 현장에서 서로 다른 관객에게 민첩하게 대응하기 위 해서 혹은 예술 실현에 있어서 장단과 같은 음악 요소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 다는 장점을 들었다. 야 점은 공연예술분야에 있어서 창조성이란 음악 자체의 창 조적의 실현과 동시에 공연 현장에 대한 적응력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 다. 무대 현장을 중시하는 점은 강정숙에게 주목되는 점이다. 실제로 제보자는 무대에 서 본 이후 연습을 더욱 강화했다고 하는 점, 무대를 위해 장기간의 안목 으로 세부 자료를 정리하고 연구하는 점 등을 진술하고 있다. 강정숙이 제안하는 영재 선발의 시기는 초등학교 4, 5학년이지만, 이들의 음악 에 대한 경험은 이미 유치원 시기부터 있어야함을 강조하고 있다. 선발의 방법은 학습을 과정을 거쳐 학생의 자질을 아는 것(관찰평가)과 전문가의 총체적 판단 (오디션)을 제안하고 있다. <표 11> 강정숙 분석표 문항변호 주목되는 내용 1 차분석 1-1 저가 영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연습 선발의 주체: 자기 자신 1-2 과묵한 중에 노래하고 춤추라면 했다, 감정 이 풍부했다 동네사람, 어머니 1-3 7디1 여 우닌 一,, 김소희 선발의 주체: 전문가 1-4 오정숙,한농선,강도근,김영운,성우향,서공 l 영재의 사례 칠,함동정월,박귀희 타고난 재질, 환경적 재질, 경제적 재질, 몰 입할 수 있는 환경조건, 당선(스승들) 관리틀 철저하게 하는 그 연습, 조금 타고 났다면은 어느 스승을 만나느냐, 그리고 어 떻게 환경이 주어져서, 우리가 99번 연습한 1-4 사람하고 1α) 번 연습한 사람하고, 잘한 다 못한다 따지기 전에 몇 년 하셨습니까 먼 저 든요? 몇 년했습니다, 그러면은 거기 치중해서 내가 그분의 음악을 본다던가 노래 를 듣는다던가 악기소리를 내가 들어 보면 금방 판단이 되죠 선발의 기준 선발의 방법 살(무용), 10 대에 무용, 악기, 성악, 타악 섭렵 선밥의 시기와 교육의 시기 117 -

127 문항번호 주목되는 내용 1차분석 1-6 천부적, 아버지의 관심과 애호(호적) 선발의 기준과 주변환경 1-8 타고난 재질이 없기 때문에 열심히 연습해야 되지 않을까 자기 평가 본격적으로 무대에 스면서 (20대 후반) 선생 1-10 님이 연 시작하여 잠 자기기 전까 연습 지 연습 1-11 우연찮게 너무 너무 잘하시는 분들 연주를 들을 수는 있었어요-아버지 손잡고 음악적 환경 하루에 다 못하잖아요, 날 별로, 시 간별(오전, 겸공의 방법과 장점: 무대에 1-12 오후, 저녁)로 분배하여 연습, 겸공의 장점- 서의 창조적 대응력 관객에 대한 대응 2-2 천부적이다하면 되겠다 그런데 한 길로 끝까 지 갈 수 있을까? 그 생각을 하거든요?, 김 혜람, 학교 공부도 잘하고, 가야금 병 창도 잘 하고 판소리도 빨리 받아들이고 뭐든지 빨라 요, 성음은 제대로 가지고 다니고요, 원래는 뭐 순서 배우고 장단 배우고 그 다음에 강약 배우고 막 이러거든요? 근데 얘는 한꺼번에 다 할 수 있는 아이다. 선발의 기준: 학교공부, 대회 수상, 학습속도, 바른 성음, 동시적 학습 2-3 유치원부터 시작하여 4, 5학년부터 선발 선발의 시기와 기준 본인이 해야 된다는 생각, 선생, 부모의 뒷바 라지 가르쳐봐서 남보다 빠르고 음감이 빠르고 암기력, 성음(순서를 빨리 암기하고 틀려요 뭔가 틀려) 나한테는 악기하고 노래를 배우러 왔으니깐 악기하고 노래플 시켜요, 뭐 배웠니 연주해 봐라 너 무슨 노래 배웠어 한 번 불러봐라 이러변 잠깐만 들어도 그냥 첫 시작부터 알 죠 그래서 인제 너는 누구한테 가라 너는 어 떤 선생님한테 가라 가르쳐주고 선발의 기준 선발의 기준들: 음감, 학습속 암기력, 성음 선발의 방법: 사례와 목표 2--6 시켜보면 알죠, 그럼 들어보면 아는데 창조성의 확인 방법 2-10 초등학교 한 반에는 20명이랄지 15명이랄지 30 명 거기 합창을 가르쳐도 잘하는 애 있어요. 거기서 뽑아야 되겠죠, 종합 예술학교에서 컨테스트 선발의 방법: 제안 해당 분야마다 최고가는 선생님들 모시고, 2-11 심사위원 열랫분씩, 열세분씩 열다섯분씩 모 셔다 놓으면요 절대 마음대로 안됩니다 선발의 방법: 제안- 선발 주 체의 선정 방식

128 문항번호 는 내용 1차분석 3-2 8, 9세-동네에서 춤추던 것 발견의 시기: 자질 3-4 8세 -13세-굿보고 흉내내기 발견의 시기: 자질 지금도 배우는 건 순발력이 있어서 순식간에 3-7 배워요, 유치원 때부터 해도 된다라고 생각 학습의 속도와 시기 을 해요 3 11 연습하다보면 바로 아파서 많이도 연습 못 하게 되고 이런 그런 상황들이 참 나한태는 연습 많았어요 내 마음대로 놀다가 딱 장단하고 만나는-무 겸공의 장접-음악적 표현의 용,악기,노래 자율성 세-표현력 발견의 시기 3-20 끼가 있는 애들에 뜯는 악기 소리는 전문가 만이 알아들어요 선발의 주체:전문가 가르쳐도 느낌을 달리 가지고 사람이 3-21 있어요, 빨리빨리 우리는 잡아내는 귀 선발의 기준과 주체 가 있어요 3-24 인성, 예술, 언어능력 예술가의 조건 4-7 될 때까지 헌다니까 그 장르를 선발의 기준 실수를 했다 싶으면 빨리 음향실에 가서 그 테잎을 찾아서 내가 들어보죠. 내가 많~이 하다 보니까 음악을 다시 어서 타기도 하고 인제 그런 능력은 되니까 선발의 기준 ~J- a - λ 4 김영재 김영재의 경우 거문고, 해금 및 작곡의 겸공의 사례로 분석되었다. 대담 결과 김영재는 이 악기들 외 다양한 동서양 타악기와 복원악기 혹은 개량악기들을 섭 렵하였고, 주변 예술 분야 특히 연극분야의 체험을 의도적으로 시도한 바 있었 다. 이러한 섭렵의 결과는 음악성의 증진에 기여했고 특히 창조성과 순발력 향상 에 기여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이 중에서 창조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점에 서 김영재는 창조성을 평가할 수 있는 선발을 진행해야한다고 제안하였다. 김영재의 재능 발견은 전문가는 물론이고 부모 및 동네 관찰자에 의해 이루어 졌다. 그러나 김영재 자신은 영재가 아니라고 했고 노력의 결과라 했다. 재주가 있어도 노력하지 않거나 다른 갈로 갈 수 있다 고 하여 예술가의 경지는 노력여

129 하에 달려있음을 거듭 강조했다. 노력은 연습과 연구 과정 모두를 말하는데, 김 영재의 경우 음악에 대한 열정이 꾸준한 연습을 즐겁게 여길 Y 수 있는 원천이 되 었다. 또한 수시로 이루어지는 전문가의 평가와 칭찬 그리고 상대적으로 주변 음 악가보다 어린 나이에 공연무대에 나선 점, 자신의 성취감은 자신감과 도전욕을 유도하였고, 자신의 창조성과 평소의 연습은 이러한 욕망을 현실화 시켰다 김영재의 사례를 통해 선발에 있어서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재주 있는 학생 선발은 최고의 기예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할 수 있는 행동을 고루 시켜 보고 그 아이의 재주가 어디 있는가 살펴볼 수 있는 방법 이라고 한다. 김영재의 경우 선발은 개인의 창조성의 계발이라는 점을 강하게 피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창조성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기예로서 구현되는 것이다. 이 에서 대해서 김영재는 양자의 조화를 주장했다. 전자의 경우 겸공과 주변 예술 갈래의 섭렵을 통해, 후자의 경우 체력 닿는데 까지 연습을 통해 양자의 균형을 주장했다. 또한 영재에 대한 평가의 문제가 선발이라는 단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학 생의 성장 단계별 평가를 제안하고 있다. 학생의 성장 과정 중 기예로서 높은 경지에 이룬 경우, 이 때의 평가의 방법이란 전문가의 칭찬, 합숙평가 즉 수업관 찰평가, 공연에의 참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나아가 학생 선발에 있어 서 롭다. 무속 집안이나 예술가 집안의 자제들을 눈여겨 볼 것을 제안하고 있어 흥미 점 <표 12> 김영재 분석표 문항번호 주목되는 내용 1차분석 1-1 나는 영재 아니다, 노력해서 얻은 실력이다 선발의 주체 자기 자신 발견의 주체: 담임선생님, 동 1-2 재주가 있다 춤과 노래를 잘한다 네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3-1 재질문) 1-4 본인이 노력하고1 경우 소질있는 사람이 계속 계발했을 선발의 기준 1-5 중학교 1 학년(14살) 학습의 시기 1-6 수시로 이루어지는 지명에 대비하기 위한 연습, 생님의 격려, 현장 공연, 재미 붙여가며 연습 선 동기 유발과부여 1-9 자기 고집, 좋아하는 것 선발의 기준: 자기 동기 시간-10시간(중3), 만족감과자신감도 생김 보람, 10시간 이상하면 뿌듯하고 선발의 기준: 자기 극복 1-11 공연장, 굿보러 가기, 여성국극단, 공연 선발의 기준: 자발성

130 문항번호 주목되는내용 1차분석 해금 거문고 전공, 악기(팽과리, 장고, 소고, 정, 서 1-12 양 작은북, 탬버린) 섭렵, 타악기 특정을 전공 악기에 반영하는 즉홍성과 창의성 겸공과 섭렵악기의 장점- 창의성,순발력 1-13 재주가 있어도 노력하지 않거나 다른 길로 갈 수 있다. 분야 영재성의 한계 2-3 초등학생~중학생 선발연령 전공을 정하기 전에 소질(청음이 좋거나 악보를 잘 보거나, 따라하기를 잘하거나, 창의력있는 행동, 노 선발 시험의 내용 연령별, 2-4 래, 사고력)이 보이는 경우 어린 나이-음악적 소질, 학습기간 별로 시험 내용을 재질, 기량을 보기 위해 위해 시창, 노래, 시켜 달리 해야함. 보고, 기초를 닦은 경우 성음을 본다. 노래도 시켜보고 춤도 추게 하고 남이 한 것을 따라 해보게 하고 스스로 저1 일 잘하는 것을 해보라 하교 2-5 타악기도 이무거나 줘서 두드려 보라, 소리도 질러보 영재 시험의 목표와제안 고 인간이 할 수 있는 행동을 고루 시켜보는 것이 그 아이의 재주가 어디 있는가 살펴볼 수 있는 방법 2--6 학생의 기분, 상태를 감안하여 재능을 보는 방법-넉 넉한 시간을 두고 평소 했던 재주를 부모님이 비디 관찰의 주체: 부모(일상), 교사 오 녹화, 특별한 행동의 동영상, 합숙-똑같이 춤, 악 (수업관찰평가) 기, 시창을 가르쳐보고 모두 잘 하는 학생 임시교육기관에서 한 두 달 여러 가지 지도해가며 2-11 다 수용하는지, 특수한 쪽만 하는지 관찰하여 개성 선발 방법 제안: 수업관찰평가 을 것 재주있는 아이들을 뽑아서 끊임없이 교육시키고, 본 인이 노력하고, 점검하고 1:1로 학생을 평가해주고 선발과 교육에 대한 공공의 기성세대의 모텔에 대해 토론하고 뒷받침해주고, 국 책임 가가뒷바라지 박초월, 신쾌동, 지영희, 김윤덕, 성금련은 모두 금방 영재성: 학습 속도, 자기 조절 따라하거나 장단의 한 배가 고르면 소질있다고 했다. 능력 3-3 정식교육 이전 초등학jjI 5학년 때 무용 학습 이전 환경 3-4 마포 서울 굿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음 애호 3-7 내가 마치 선생님 농현하고 거의 비슷하게 된 것 같다 라는 기쁜 마음이 든다 성취감 3-9 현장 공연(무용반주)-중3때 한영숙 선생님이 시킴 데뷔 3-11 아쟁, 양금, 공후, 비파, 대해금, 이상한 거문고 섭공 음악적 행동과 숨어 있는 장기, 음악을 맞춰서 한번 s3-12 춰본다든지, 웅직임쓸 본다든지, 뭐 또 다른 악 선발시험 제안 시켜본다든지, 흉내를 한번 내보게 한다 121

131 문항번호 주목되는내용 1차분석 영특하게 잘 따라한다든지, 의외로 아주 기발한 아 3-l3 이디어를 얘가 내서 표현을 했을 때, 어른들이 깜짝 창조성과기예의 조화 정도로그런 기량 긴 기간 동안 지켜볼 때 평가자의 많아야한다 3-15 다양한 생각을 갖고 학생들을 대하므로 객관화된 선발방법 제안 평가가가능하다 서양리듬이 아닌 한국적 리듬, 예를 들어 자진모리 나 이런 걸 가지고 움직임 하고 4/4 서양박자의 움 직임은 틀려요 기계적으로 체조처럼 움직이느냐 하 는건툴리죠 주변예술-연극학원 수강, 영화 및 여성국극 관람-은 즉흥성, 표현력, 자기 예술세계 발전에 도움 적통적 감수성 예술섭렵의 장점 주변 예술가와의 교유-내음악 속에 묻힌다:무용이 4-2 곡 같고1 곡 속에 춤이 보 ]Jl, 연극음악은 노래하는 예술섭렵의 장점 것같다 4-6 좋아서 한다, 즐겁다 끈기의 원천 4-7 체력, 배고프고 잠 올 때 연습을 그만둠 과제집착력 4-12 고등학교때 작곡, 편곡 창조성의 확인 방법 4-11 칭찬 단계별 선발, 자신감의 계기 4-13 즉흥, 웅용, 창조적 욕심 대담, 실험정신, 적극성 4-14 예술했던 집안 자손을 지켜 본다 선발에의 제안 서용석 서용석은 음악가 집안의 자손으로 태어났다. 자신의 가능성을 이모 부부(박초 월, 김광식)가 알아보았고, 자신 역시 자신의 직계 자손 가운데 손자의 재질을 일 찍부터 알아보았다. 서용석의 경우를 통해 음악 가족인 경우 가족 내의 판단에 따라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조정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서용석의 경우 대금의 전공자이자 해금, 아쟁을 동시적으로 전공하는 겸공의 사례로 대담한 것이었는데, 겸공 외에도 여타 섭공악기들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많은 시간 동안이 연습이 필요한 겸공이 가능했던 것은 스스로 음악에 대해 지극히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진술했다. 이 접은 스스로 만족하기 까지 하루 종일 지속되는 연습을 기꺼이 받아들였던 그리고 성실한 연습을 지속했던 원인이 되었다. 서용석은 경공의 장점으로 음에 대한 지각을 높인다고 하였다. 서용석은 음정에 대해 강조하는데 음정에 대한 선명한 지각은 음악성 판단에서

132 도 요건임을 거듭 밝히고 있다. 나아가 그는 자신이 작곡활동을 함으로써 창조성 을 실현하고 있었다. 단, 작곡은 별도의 학습 없이 자신의 음악을 배경으로 시도 하였다. 서용석은 영재 선발의 시기와 방법에 대해 주목되는 제안을 하고 있다. 영재 선발의 시기는 사춘기가 지나서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시기를 제안하고 있다. 이 는 음악가가 되려는 학생들에 대한 제안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영재 선발의 방 법 중 수업관찰평가를 제안했다 또 선발 시험의 구체적인 시험 내용으로 남도음 악의 경우 떠는음의 실현을 지켜보고 전문가적 판단을 내리기를 제안하였다. <표 13> 서용석 분석표 문항번호 주목되는내용 1차분석 1-1 나는 영재 아니다 선발의 주체 자기 자신 1-2 이모부(김광식, 대금), 박초월(이요 소리) 외 여러 이모들 발견의 주체: 음악가 친척 세 이후 -25세 교육의 시기 : 겸공의 사례 1-7 자기 의지 학습의 주체, 선발의 기준 1-8 스승(이모부)에게 기초를 배우고 자기 의지 영재의 조건 : 시도 1-10-CD 10시간 이상, 내가 바라는 실력이 됐다면 그만 연습 노력, 자기평가 1-12-(Z) 잠깐 잠깐(섭렵악기), 창작(경공악기) 겸공, 섭렵, 전공 악기의 연습 1-12-@ 으j} ;;<j 겸공의 장점 1-13 훈련된 어린이-애기명창 학습 2-2 손자(아쟁)-중학교-어려운 것을 무리를 없이 해결 발견의 시기 2-3 중학교들어갈나이 선발의 시기 2-4 계변조, 애절한 음-내기가 어렵거든요1 그 음을 소 화를무난히 해 내면 선발의 기준 2-6 음정을 잘 이해를 하고 받아들이변 선발의 기준 2-9 음정 선발의 기준 2-12 대놓고 칭찬하는 것은 좋지 않다 3-1 가슴이 쩡허게 느낌이 오는 애원성 표현력,감수성 3-4 시켜봤을 때 보통 사람들과 달리 다르게 잘 받아들 이면 선발 시험 제안:따라하기 아쟁-바른 손으로 활을 긋고 왼손으로 농현, 떠는 3-6 음을 한번 시켜보면, 대금-떠는 거 그걸 소화해 내 선발 시험 제안 는가로선발 3-7 한 몇 번 가르켜 보면 영재인지 아닌지 알아요 뭐 선발의 방법

133 문항번호 주목되는내용 1차분석 든 처음에는 어려우니까 어느 정도 소화를 시킬 수 가 있는가를 보고 영재인지 아닌지 알아요 3-8 레슨하는 식으로 해 가지고 그 사람의 소질, 쉽게 얘기해서 소질이 얼마나 있는가 그걸 보는 거지요 선발의 방법: 수업 관찰 평가 3-10 성실한연습 끈기,성실성 3-11 대금과아쟁소리에 매료 동기 유발 3 12 스스로 선택할 나이에 교육 시작 선발시기 3-13 하루 종일 연습-힘들면 다른 악기로 겸공. 연습 3-14 작곡 j<j-::: ιt:λ 게 이생강 이생강의 경우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났던 사례를 보여준다. 이생강은 천부적 인 재능을 타고 났을 뿐만 아니라 부친의 신중하고 전폭적인 지원과 엄격한 연 습이 뒤따랐으며 그 과정 중에 당대 최고의 선생을 만났고, 거의 모든 관악기 섭렵했다. 나아가 민속악의 전 갈래를 망라했고 민요 및 외국음악, 대중음악 편 등 다양한 시도를 거듭했다. 특히 그의 기예의 성취는 매우 높다. 예컨대 이 생강은 무슨 손가락으로도 해. 어떤 손가락으로든 맘대로, 자유자재. 나는 여기서 대금하나라도 어떤 키든 맘대로 바꿀 능력이 있는 사람이야 (2-11)" 라고 할 정도 로 기예로서는 당대 누구도 쉽게 따라하지 못할 경지에 이르렀다. 이생강의 사례 는 천부적 재능뿐만 아니라 후천적 노력이 있어야 성장한다는 점을 선명하게 보 여주고 있다. 예컨대 이생강은 7세까지 6시간, 이후로는 최소 14시간이상이라는 경이적인 연습을 통해 명인이 되었다. 이러한 고된 연습을 해 낼 수 있었던 원인 은 타고난 재능을 통해 과제를 쉽게 성취한다는 점과 부친의 독려 그리고 도전 정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다. 이생강의 경우 예술의 목표를 감동을 주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감동 주는 방식과 그것의 학습 방법에 대한 상세한 진술은 없었다. 다만 예술적 기 예와 통찰을 구별하고 있는데, 교육현장에서 기예는 따라하기, 통찰은 설명하기 통해 학생에게 전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 점 때문에 영재의 교육과 선발은 통찰을 전달하는 수단인 언어적 이해력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했고, 기예의 경 우 엄격한 방식의 시험보다는 음악을 경험하고 적응하는 과정을 보도록 하고 있 어 주목된다. 또한 그는 잠재성을 시험하는 방식과 교육을 통한 성취를 알아보기 위한 방식을 구분하고 그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교육을 통한 성취를 알 아보기 위해서 중시되었던 점은 이른바 기초 였다. 이생강의 경우 기초란 김넣

134 기, 숨을 길게 쉬기 등과 같은 것으로 기예의 연마 이전의 능력을 말하는데, 어 떤 경우 기초란 전문가적 안목이 기예를 통해 실현되는 것을 말하기도 해서 기 초라는 말의 일관성이 결여된다. 그러나 학습 경험이 있는 영재 선발에서 중요한 점 혹은 어린 학생들이라는 맥락에서 기초라는 용어는 전공별로 필요한 자질에 대한 기초 적성을 말하며, 이는 장단귀, 음정 등과 같은 음악적 영역으로 한정되 기도 한다. 이처럼 기초와 관련된 것들은 선발의 상하위 지표들로 인정될 수 있 을 것이다. 이생강의 경우 자신의 개성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다른 예술가와 다른 계기로 이루어졌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자긍심과 음악가로서의 독립에 대한 위기를 겪 은 후 개성에 대한 반성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는 다른 예술가와 매우 다른 상 황으로 보인다, 다른 예술가의 경우 타인이나 자신의 음악에 대한 평가를 통해 자기 극복의 계기를 갖고, 자발적으로 자신의 부족한 점 혹은 자신의 목표를 성 취하는 것과 구별된다. 이생강은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재질이 드러났고, 그 재 질은 부친에게 발견됨과 동시에 스스로의 노력 그리고 부친의 뒷받침을 통해 끊 임없이 성장하였다. 그래서 이미 10대에 한 세대 위의 음악인들과 공연 현장에서 활동했다. 이러한 상황은 이생강이 개성에 대한 성찰이 남달랐던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생강의 성장 과정 중에는 늘 주변의 칭찬과 현 실적 격려가 있었는데, 이는 자기 평가를 적극적으로 하고 개선의 여지를 찾는 환경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이생강의 사례는 타고난 재능을 가진 학생 교육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한 대안을 촉구하고 있다. 이생강의 경우 전통예술에서의 영재 교육에 대해 국가적, 제도적 차원의 지원을 요청하는 진술이 여러 차례 있었다. <표 14> 이생강 분석표 문항번호 주목되는 내용 1차분석 1-1 어릴 때 천재라는 소리 듣고 자랐다 1-3 부는 악기는 뭐든 소리가 났다 선발의 기준 1-4 임방울, 김소희, 안비취, 고백화, 강태홍, 한주환, 타고난, 체질 선발의 사례 1-5 1없8년 8월(1 937년 생)-한주환 학습의 시기 1-6 한주환과 만나기 전에 경기쪽 음악을 단소, 금, 피리, 퉁소, 태평소, 대금으로 불었음 소 학습 이전의 환경 1-7 음악가 집안 아님 1 8 왈킥 재있고, 감동시키고, 잘한다고 하고, 용돈 도 그 분이(전추산) 부는 것을(단소산조) 대금 면습하고 있다가 사관청에 가락을 내가 다 동기유발 타고난 재능, 도전욕, 응용력

135 문항번호 주목되는 내용 1차분석 연습을 하거든, 배우는 게 아니라 내가 대금에 얹어서 부니까 그 가락을 시간(일본 5세 -8세, 놀이와 장난 삼아), f낀나 1A 了 시간 (9세 이후) 1-12 겸공이 연습 중에는 상호적 도움이 안챔 겸공의 한계 1-11 듣기 전에 스스로 연습하고 직접 현장에서 연주 청취 환경: 직접체험 간접체험이 아닌 1-13 국가적으로 애가 공부를 할 수 있게끔 집념을 영 재 선발의 국가적 제도적 하고 몰입을 할 수 있게끔 경재적 지원 뒷받침 2-2 영재 교육의 국가적 보조 영재 교육의 국가적 책임 2-3 만 3, 4세 선발의 시기 2-4 재질, 소질, 자기의 기능을 키워주고 알맞게 하 는걸 난영재 영재의 개념, 표현 2-7 영재와부모 재주 있는 아이를 몰입하게 해야한다. 예술은 2-9 변화무쌍해야 됩니다, 변해야 되고 잘 되야 됩 선발기준 니다. 감동을 줘야 됩니다, 그게 예술입니다 여러 악기를 갖다 애들의 관심을 유도해 서 무엇이 애들이 원하는 거를 빨리 파악을 해 야 되겠고, 왜냐변 저 영재란 것이 국악만 하는 게 아니잖아요 소금이라던지, 피리를 갖다놓고 소리를 내는 것 또 막는 법부터, 테스트 해야죠, 부 는 거는 호흡이 긴 아이들 혁혁대면 안 됩니다 소리가 걸어야 됩니다, 춤사위 춰봐라 하면 별 써 선율이 되잖습니까? 하루만 뽑지 말고 노는 삼아 유희처럼, 농현해봐라, 자 거 해봐라, 후후 소리 나면 나중에 소리 내는 놈이 있어, 노래하기 영재 선발 방법 제안: 기악의 경우 선발 방법에 대한 제안. 악기 적응력 시험, 수업관찰 평 7}, 따라하기, 감수성 3-5 아버지-경기 에게사사 민요 잘 불었고 지영희와 이춘성 환경. 부친의 음악적 능력 기초 중요하다 기초가 돼가 있지 않은 상태는혼 자서 해가지고 능수능란하다고 재주를 부릴지 모르겠지마는, 기초가 안 됐다 그러면 모자르는 부분 취약점을 찾아서 고걸 보완해주고 열한 살 때도 뭐 아버지가 하기 싫어도 억지로 해라그랬고 선발 방법과 교육의 목표 연습 무슨 말을 이렇게 전달했는데, 애기들은 그 말 영재 선발과 교육에서의 3-20 이 자기 식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니까 거기에 차별 차이점을 두어야 한다는 거죠, 편차를 둬야 된 따라하기와 예술의 차이

136 문항번호 주목되는 내용 1차분석 다, 모양대로는 할 수 있는데 그 내면적인 것을 이야기할 때는 아무래도 설명이 들어갈 거 아니 겠어요? 그 설명이 들어갈 때, 그 영재가 받을 자기가수용하는 그 차이 우리 민속악은 최하 30년을 해야 기초의 기초가 3-19 된다 이 말이야, 남의 지도급 수준에 오른다 이 기초 말이죠 판소리하는 분이라든지 민요하는 분이라든지 춤 추는 분들은 단과 분과지마는, 악기를 하는 분 들은 종합예술이어야 된다. 이유는 춤추는데 춤 반주도 해되고, 독주도 해야 되고, 노래하면 노 래반주도 하고. 또 사물놀이를 하든지 농악할 때는 음악 멜로디가 들어가야 안되겠어요? 섭공: 필요한 이유 4-1 아마츄어 레슬링, 유도-폐활량 향상 주변 분야의 의 영향 관심과 전공에 4-3 운동-겁없음 대담 4-4 상업고등학교-암산능력 암기력 4-6 프랑스에 갔다오고 난 뒤에, 아, 우리 것이 최 고구나. 다시 내가 느끼고 다시 열심히 했다. 자기 4-7 연습목표-자기만의 설정 자발성과 전략 살에 17, 18세 사람을 능가할 정도, 16, 17세 에 벌써 나는 내 분야에는 장악을 할 정도 자신감, 성취 4-12 자기만의 표현방식에 대한 질문-내가 너무 튀 는 것을 음악으로서 내가 가진 것으로서 내가 갈고 닦아야겠다, 수련해야 되겠다, 내 자신과의 싸움이야. 자기 성찰 (스승이 다 작고한 후) 내가 이렇게 어디 기댈 데가 없었단 말이야, 인제 이거는, 혼자 살게 내 4-14 가 됐구나, 그러면 나 혼자 이제 열 몫을 해야 자기 성찰 되겠다, 그래서 그 때부턴 피나는 내가 더 했다 이거죠 감동을 줄 수 있는 음악을 해야지만 속 시 원하지, 오늘 감동을 안 줬다 하면, 나는 내가 내 자괴감에 빠져가지고 내가 자책을 막 한단 말이지대중음악 편곡 자기 평가

137 정재국 대담 연구에는 4가지 범주의 질문이 있는데, 이 중 1, 2 범주의 내용이 중심 이 되고 있고, 3, 4범주의 내용은 1, 2범주의 재질문이거나 확인질문에 해당한다. 정 재국의 경우 1, 2범주의 개별 항목에 대한 답변이 길어졌고, 답변의 진의를 질의 하는 과정에서 대담 현장에서 발생하는 의문을 즉시 해결함고 동시에 같은 의도 의 질문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 정재국과의 대담이 길어지는 과정에서 일관성이 확인되는 답변들이 여러 문항에서 도출되었기 때문에 3, 4번째 범주의 질문은 하 지 않았다. 정재국의 경우 주목되는 점은 영재의 자질로 창조성을 매우 강조했으며, 창조 성을 가늠할 수 있는 요소로 음악성 외에 지능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과 정에서 독보력이 중시되었다. 정재국은 창조성을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가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무대를 장악하는데 필요한 것이며, 합주 시 음악적 지도 력을 갖는 전제로 인식하고 있다. 정재국의 사례를 통해, 합주시 만들어진 지도 력은 학생의 성향에 따라 음악계의 지도력으로 전이 될 수 있었던 점은 매우 흥 미로운 점이다. 정재국은 창조성을 알아보는 방법으로 대화 혹은 면접 방법을 제 안했다. 이 외에도 정재국의 대담을 통해 학생의 야망과 도전정신을 영재 선발의 기준으로 추가해 볼 수 있었다. 영재 선발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으로는 정재국은 기본기에 대한 시험을 들었 다. 그런데 기본기는 정재국의 사례를 통해 볼 때, 전통공연예술의 다양한 가능 성이 차단되지 않은 교육을 담보하는 것이어야 하며, 좋은 교사에 의해 실행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정재국이 기본기를 연마할 시에 여러 음악 갈래의 섭 렵 그리고 공연예술 제 분야에 대한 기초적 섭렵이라는 교육과정을 거쳤는데, 각 교육과정에는 당대의 최고의 교사들이 배치되었다. 따라서 정재국이 제안하는 기 본기 시험은 이러한 조건을 갖춘 자들을 후보자로 놓고 선발하는 것이라고 해석 할 수 있다. 기본기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정재국은 그것이 창조성을 구현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라고 평가하고 있다. 특히 기악음악의 경우 성악과 달리 기본기 가 더욱 중요시되는데, 이는 기교나 표현의 정교함이 단 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정재국은 기본기에 대한 평가 가 영재 선발의 관건임을 재차 강조했다. 이와 관련하려 정재국은 실기시험 및 대화(면접)에서 기본기를 확인하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안했다. 정재국은 이 번 대담에서 영재 교육은 전문가 양성을 위한 교육이며, 동시에 예술가를 배출을 전제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예술영재 교육은 예술의 본질과 현장에서 필요한 요건들을 대한 교육이고, 이렇게 때문에 전통예술의 본 질과 공연 현장에서 필요한 요소들을 평가하는 것이 영재 선발이라고 주장했다

138 <표 15> 정재국 분석표 문항번호 주목되는 내용 1 차분석 나는 뭐, 전통음악계가 인정해준다, 손가 락만 잘 하는 기술자의 수준은 영재라고 볼 수 없어요, 음악을 맨들 수 있는 머리,머리 가 좋아야 되고, 판단력, 음악적인 해석능력 학교와 교회 행사에서 노래 독창(초등학교 3학 년 이후), 노래를 좋아했다 선발의 기준 발견 시기 1-3 중학교 2학년 무렵(16세)에 주위로부터 인정 선발의 주체 전문가, 동료 받았고, 우리나라의 최고의 그 연주자가 되겠 평가의 지속 다고 다짐함, 직접 선생님 연주 하는데 가서 듣 학생의 야망 고 그걸 채보를 해가지고 늦게 남아서 그걸 연 감수성 습하고 해가지고 선생님의 음악적인 그 도전정신 거를 내가 습득을 하는거지. 자기주도학습 송기군(거문고, 동료)-빨리 배우고, 끼가 있고, 갈래를 넘나들고, 시창청음이 좋고, 구응채보잘 1-4 하고, 예술가의 자제 강문득{거문고, 후배) 시김새가 나이 수준을 뛰어 넘은 것, 정확한 음, 해석력, 기교, 풍부한 감성 영재의 사례 영재의 요건 양성소 3학년 감성의 발견 이후 본격적 수업, 일치감치 그냥 칭찬을 해 줘가지고 키워 주는 거야, 20대 중반에 기둥이 되었고, 30세에 용기 를내서 도전 피리에서 만큼은 일인자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애 내 눈치개 나를 따라 먹을 사람이 없는 거예요 학습시기 연속적 선발의 방법의 제안 용기와도전 야망, 자신감 두 시간정도 항상 연습, 외운다 책임감 1-10 좋아서 연습-그날의 학습내용 완수와 새로운 목표량성취 영재의 자질: 인내, 전략, 자기평가, 암기 애착, 1-11 의도적 음악회 참가 및 라디오 청취 영재의 자질: 자발성 1-12 공연 단체 조직,즉 가흥곡, 장구-큰 영향, 자발적 창조적 음악활동 허튼가락, 작곡, 음악섭렵 몇 군데서 고르는 건 영재가 아니야, 그건, 최소한 50:1. 100:1 이 되야 영재지 4-6학년, 기악도 최소한도 5년 이%해야 쓸만 한 재목이 나오는 거지 1-2년 해가지곤 안 나오지. 선발 방법: 모집단 크기 선발의 시기, 선발의 조건 노래는 성음만 좋으면 좋은 성악가가 될 수 있는 재목이 될 수 있는데, 기악은 1-2년 해가지고, 성 음이 나올 수가 없거든, 기악적으로 성능과 성음 이 좋으냐 이것을 따져 가지고 그것만 갖춰 놓으 2-4 변 기본이 된 거기 때문에 거기다 기량만 얹혀주 고 그걸 가르켜 놓으면 재가 영재가 되는 거, 기 교 좋고 이런 애들은 겉 멋 들어가지고, 기본적으 로 되려 기본적으로, 공부허는게 아니거든 자기 홍에 맞춰서 막허는거기 때문 영재의 자집 기본 129 -

139 문항번호 주목되는 내용 1차분석 내 준 과제가 있잖아요, 과제가 없다고 할 때, 2-6 그 아이를 직접 장르 별로 시험, 그리고 시창청 음-영재로 지명 선발 시험의 제안 선발에 대한 용어 머리 똘똘 허문 뭐 머리 좋아도, 인품이 나쁘면 또 창작성을 가지고 있으면 리더십이 생긴다 창작성을 갖아야지, 그래야지 새로운 음악이 탄생하지, 선생님 따라허고 흉내내고 그런 거 는 예술가로써는 적격이 못 해요, 창의성과 창 조성을 갖을 애들을 뽑아야 해, 선생님들 고대 로 따라하는 애들 말고, 시창, 청음을 잘하면 순발력을 알아 볼 수 있어, 학생이 꿈이 좀 커 야 무대에 딱 버틸 수 있다, 성격을 보면 알지, 성격이 직접적이고, 큰 인물 같은 경운 말하는 거하고 생각하는 것도 다르다, 머리가 좋아야 한다,느낌 서류 전형에서 누구한테 얼마큼 배웠고를, 아 예 아예 묻지 말고 예술의 다양성과 창조성을 해치는 부모와 선생 의 지나친 집착 음악적 지도력 선발의 기준-정의적 요소들에 대한 경험적 판단 요건들 선발의 방법 제안-대화 선발 방법 제안 영재성의 요체: 창조성 ' 지순자 지순자는 한국근현대음악사대사에서 길이 빛나는 뛰어난 음악가-지영희와 성 금련 의 딸이고, 자기 자신도 일찍부터 (5세) 무대에 섰던 경험을 가졌으며, 자기 전공악기인 가야금 외에 무용분야를 겸공으로 했으며, 이 외에도 자기 스스로 학 습하여 아쟁이나 기타를 섭공으로 연마했던 경험이 있다. 지순자는 가족 생활 중 에 충분한 음악, 무용에 대해 충분히 학습하고 경험하며 나아가 부모 대신 교수 까지 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었고, 그리고 유년기부터 당대의 기성인들과 함 께 공연 무대에 서면서 남다른 안목과 경험을 축적해왔다. 지순자의 사례는 태생 적, 혹은 환경적으로 더할 나위 없기 때문에 사례로 선택되었다. 지순자의 경우 예술가의 자질로 기본과 자발성 그리고 끈기 동을 요구하고 있 는데, 이러한 이러한 점들은 모두 학생 선발의 지표가 될 만한 것이다. 지순자에 의하면 기본이란 박자와 음악에 대한 정확한 표현과 인식이며, 이상과 같은 의미 로 기본 용어 외에 기준 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기본의 개념에 대해서 지 순자는 대체로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진술했지만, 4-14항의 경우 기본이라는 것 이 그 완성도에 가까워지는 것 이라고도 하여 예술적 성취가 상당히 진행된 것 임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서 기본이란 본격적인 학습에 어가기 전에도 성취 가능한 것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단, 기본의 세부 내용에 대

140 한 평가는 달라지고 있다. 지순자가 구체적으로 제시한 기본은 장단과 음정이다. 이 중 음정은 학습을 통해 정확해질 수 있다고 하였던 것에 비해, 장단의 경우는 처음부터 그에 대한 정확한 변별과 감수성을 요구하고 있다. 장단에 대해 이렇게 진술하고 있는 이유는 분명히 말하지 않지만, 다음 몇 가지 근거들을 찾아볼 수 있다.1) 장단은 음악은 물론이고 무용에도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기 때문에 음악 적 자질로만 설명되는데 한계가 있다. 2) 지순자 자신이 5세 때 부터 무용으로 무대에 서기 시작했던 경험을 반추하면서 무용에서의 장단의 역할에 대한 통찰 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3) 지영희 즉, 지순자의 부친의 직접적 진술과도 관련 이 있다. 지영희는 음을 틀린 경우 안족을 고쳐주기도 했으나 박이 틀린 경우, 틀린 그 순간에 극단적으로 표시를 함으로써 장단에 대한 인식을 신체로 선명하 게 인식시켰다고 한다(1-7, 3-13). 지순자는 기본은 하루 이틀 완성되는 것이 아 니기 때문에 그것의 연마에 필요한 인내력이 절대로 필요하다고 했고, 다만, 기 본의 성취는 전문가가 듣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점에 서 기본에 대한 전문가의 판단에 대한 객관화가 필요하다 할 수 있다. 지순자는 매일 매일의 음악체험은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충분히 거쳐야할 당 연한 절차라고 판단하고 있다. 또 음악의 수련단계에서나 실현 단계에서나 정확 성이 요구되는데 이러한 정확성은 더 나은 표현력과 순발력에 영향을 미치기 때 문이라고 설명한다. 지순자의 경우 정확성의 맥락 안에서 박자와 음정의 정확성 에 대해 재차 강조하였다. 지순자는 기악의 경우 다양한 음악적 체험과 겸공을 제안하고 있다, 기악의 경 우 성악과 달리 기악독주와 무용반주, 합주 등 다양한 무대에 서야하기 때문이라 고 설명하고 있다. 이 점에서 각각의 예술 갈래에 적합한 자질이 무엇인지를 생 각해보게 하는데, 그 이유는 곧 영재 선발의 지표가 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지순자의 사례에서 주목되는 사실은 선발의 목표이다. 영재 선발의 목표는 재 의 방향을 전문가적 통찰을 통해 알려주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자세한 설명 하고 있지 않지만 적성검사를 제안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것은 예술적 기 능의 성취 정도를 폐쇄적 시험으로 판별하려는 태도와 다른 것이다. 또한 영재 선발에 있어서 학생 선발의 특정한 시기를 먼저 정하기 보다는 강요하지 않고 자기의 필요와 선택의 시기를 지켜보고, 귀가 훈련되어 있는 부모의 선발을 할 것을 제안하고 있어 주목된다

141 <표 16> 지순자 분석표 문항번호 주목되는 내용 1차분석 1-1 나는 영재 아니다. 국악 환경에 놓여지변 잘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자기평가 1-2 5살 때부터 공연에서 승무를 발견과 환경: 현장 공연 1-3 아버지(지영희): 재주가 많다 영재 선발의 주체: 전문가이자 아버지 1-4 지영희, 성금련 영재의 사례 1-5 8살(박철 판소리)이후-그 이전에 5살 무용(지영 희) 내 내 선생님한테 이거를 야단을 맞느냐 1-8 안 맞느냐 칭찬을 들었느냐 안 들었느냐 이게 동기부여 굉장히 중요했어요 1-9 소리를 들으면서 갔어요, 생음악을 환경 1-12 가야금, 장고, 아쟁, 해금, 장단과 음정 맞추기 재주가 있으니까 밀어붙이기 식으로 하면 언젠 2-3 가는 도중하차를 하는데, 가장 황금기에 놓을 수도 있다, 적성검사 겸공, 섭공 선발의 기준 선발의 시기: 일괄적 연령 제 한은 위험하다 2-4 재주있는 사람, 음정, 박자, 몽의 형태 선발의 조건 국악예술학교에서 학생들을 뽑을 때 무조건 장 단을 치고 춰보라고 했죠, 학생이 춤 2-6 안 배웠는데 하면, 그래도 니가 한번 표현해보 라 하죠, 리듬을 느끼는 필, 노래나 소리를 시켜 본다 선발 방법 제안 감수성 노력, 지구력, 예술성, 순발력 중 제일 중요한 게 지구력 똑같은 뭐를 놓고 한 몇 시간을 두고 아이를 그 걸 똑같이 해봐라 이런 것 선발의 기준 선발 방법 제안:관찰평가 2-12 경연대회 없어져야 해요 3-4 5시간에서 7시간 매일(초등4학년-고등학교) 연습 기타(스스로 좋아서, 지구력), 해금(아버지), 아 쟁(스스로), 거문고(스스로) 첫째로는 리듬을 그 담에 선율, 그 담에 정확한 음을 가르쳐야한다 기준(박자, 음)이 안 되어서 그래요, 그저 외우 기만 하는 거예요 용용력, 자발성 선발의 기준 기초음악성 3-9 기악은 다 배워 둘 필요가 있는 게, 야하거든요 다 표현해 t 겸공: 기악 경공의 필요성

142 문항번호 주목되는 내용 1차분석 3-10 자진모리를 칠 때도 있고 굿거리 칠 때도 있는 데 자진모리를 치는 데 굿거리 춤을 안 줄 거예 요. 그러니까 리듬 꼴에 따라서 얘가 어떻게 몸 을 반응하느냐 그걸 보는 거지, 몸 반웅 신처l 협응, 감수성 3-11 듣고 볼 수 있는 환경 환경 3-13 아이들이 재능이 다 각각이잖아요, 기악 할 수 있는 놈, 춤출 수 있는 놈, 소리할 수 있는 놈 그렇게 알아보는 거예요. 가리켜보면 알아, 가리 켜보면 아는데 제일 어른들이 중요하게 여겼던 게 박자거든, 그래서 박이 더듬하면 아예 처음 부터 탈락을 시켰어요, 음은 조정이 돼요. 선발의 방법 수업관찰평가 개인별 재능 모든 음악엔 예술엔 박자가 다 기본이잖아요, 성악이 되었을 때는 그 아이의 성대도 중요하 3-15 고, 무용이 되었을 때는 그 아이의 옴의 자태도 선발의 기준 중요한 거고, 우리 고전 무용같은 것은 발이 중 요하고 3-17 대부분 열심히 하는 사람들(학생들)을 보면 어 머니들이 귀가 터 있더라고 애보다 선발의 주체 : 부모 4-1 대중예술 환경,관심 4-6 하고싶다 동기유발 4-7 확신이 들 때까지 연습-무대에서 순발력이 생긴다 '?:l"é까r 4-8 마음에 들어야 연습 자기평가 음악을 가지고 가는 기준은 가르쳐 주시지만 그 4-10 거를 외운다든가 나중에 바리에이션을 한다든가 ;<J-3'::서 그거는 내 마음대로 내가 마음먹은 대로 표현했을 때 사람들이 듣고 너무 좋아했을 때 괜찮은 기교구나 느낌 어머니가 나한테 음악을 만들면서 이건 어떠냐 이렇게 물어본 적은 참 많았어 창조성 창조성 사례 4-14 기본이라는 것이 그 완성도에 가까워지는 것 기본 완성도(음악)에 이르려면 시간이 필요하잖아요1 그 도중에 포기하면 안 되니까 지구력을 첫째로 4-15 해야 한다는 거예요, 영킨 실풀기-도전력, 인내 과제 집착력 력, 지구력, 재주, 승부욕, 자기 스스로 완성시키 고 싶은 욕구-끝까지 자기 재주를 완성

143 최경만 최경만의 경우 전공에 대한 깊은 애정은 입문부터 성공의 바탕이 되고 있다. 자신 의 전공에 대한 깊은 애정은 자발적 동기 유발 및 예술 경험의 기반이며, 고된 연습 즐겁게 받아들이는 기초이다. 애정은 연습과 훈련을 거치면서 실력을 향상시키는 데 절대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최경만이 애정 다음으로 강조하고 있는 내용은 기초이 다. 기악 연주가에게 있어서 기초란 잠재성을 키우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최경만은 자기 전공분야에 대한 기초로 김넣게, 서치기, 운지법, 더름치기, 겹도름, 홀도름, 혀 목튀김 등을 들고 있다. 이러한 것은 음악을 실제로 연주하는 것과 별도로 갖춰야 할 자질로서 훈련을 통해 향상 가능하다고 한다. 즉, 타고난 음악성과 별도로 잠재성은 즉, 기초는 훈련을 튼튼하게 함으로써 발현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경만 은 잠재성을 확인할 수 있는 몇 가지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한 바 있고, 또 잠재성을 수 있는 몇 가지 제안을 내 놓고 있다. 최경만은 음악성에 대해서도 진술하고 있는데, 타고난 음악성이 있는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지만, 양쪽 다 수련이 필요함을 말하고 있다. 다만, 음악성 이 좋은 경우는 기억력, 학습속도, 이해력, 창조성, 응용력 등이 모두 좋다고 말 하고 있다. 선발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점은 수업관찰 평가이다. 최경만은 영재 선발에 1 달 간의 기간을 두고 관찰 평가를 하자는 제안을 하고 있다. 1 달간의 학습 내용을 기초 연마 로 계획하여 학생들이 이것을 수행하는 과정을 지켜보도록 제안한다. 수업관찰 평가 중에서 특히 음악성과 창조성을 확인하도록 하고 있는 점은 주목 된다. <표 17> 최경만 분석표 문항변호 주목되는 내용 1차분석 1-1 나는 영재 아니다, 난 정말 음악이 좋았어요 자기평가 1-2 장구 소리에 매력을, 느 1낌0세(초에등 피학리교를 5, 6학년-중 1, 발견의 주체: 자기자신 2 학년), 소리가 좋았음 잡았음 선발의 시기 (3-2 재질문) 1-3 지영희 선발의 주체: 전문가 1-4 지영희-창조적 음악가 선발의 기준 1-5 고등학교 1 학년(lffi4년) 교육의 시기 1-8 끊임없는 연습 자발성 1-10 하루 네 시간이상, 즐거워서 연습 자발성 1-11 현장 체험 1-12 호적, 대금, 단소, 가야금-악기의 음악적 개성 파 악, 다양성 파악, 섭공(악기)의 장점

144 문항번호 주목되는 내용 1차분석 1-13 영재다, 영특하다 선발의 표현 2-1 재주가 있다 아깝다 아까운데 지도 선생을 좀 잘 못 만나지 않았나 조금만 누가 좀 끌어줬으 변 저 친구는 좋은 음악을 만들어내고 성공을 할 텐데 선발의 표현 선발의 기준 조언 2-2 기초가 중요함-김, 서치기 등 선발의 기준: 기초 2-3 5, 6학년 선발의 시기 2-4 머리, 기초 선발의 기준 2-6 마음가짐, 열정, 머리, 환경, 기초 흉내내기(손떼기, 겹도름, 서치기, 요성) 선발의 기준, 시험 방법의 제안, 기초 (잠재력 시험) 2-7 음악성, 예민, 빠르다, 순발력 있다, 머리, 재주, 끈기 선발의 기준 2-8 음악적 감각, 머리, 훈련적응, 애정 선발의 기준 기본 가락에서 조금 가락을 더해서 좀 더 부드러 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 한 시간 동안 시간을 주고 하고 싶을 것을 해보게 함, 특히 농음 창조성 영재 선발 시험방식 제안 2-11 학생과 관련없는 원로 영재 선발의 주체 3-5 기초의 세부 내용-김넣기, 손가락 떼기, 혀치기, 더 선발의 기준 름치기, 겹도름, 흩s:.름, 혀목튀김 기초 3-8 피리 처음 잡은 때 -13, 14세 때 선발 시기: 1-2와 다른 답 3-9 하루 8시간, 최소 4시간 선발의 기준: 자발적 노력 3-12 그냥 무작정 좋아서 듣고 선발의 기준: 음악에 대한 애정 3-14 가야금, 대금, 단소, 악기를 가지고 장난 아니게 많 이 놀았어요, 뭔가 자꾸 만들어 낼려고 겸공의 장점: 창조성 기초-소리가 흔들리지 않고, 고음이나 저음처리 할 때 아래 위를 넘나드는데 음정이나 흔들림 없는 3-16 음정 표현, 고음에서 딱 휠 때 보통 힘으로 미는 것하고 서를 탁 치면은 힘을 안들이고 고음이 예 쁘게 쩍어져서 바로 난다는거을 알 때 선발 시험 제안 7ul-{ 서 3-17 기초-김넣기, 탄탄한 소리, 장호흡 선발 시험 제안 '---- 응용-잔가락을 넣으면서 표현을 더욱 예쁘게, 듣기 좋게 만들어내는 장단귀, 음악성-장단을 걸고 넘어가는 것과 먹고 들어가는 것, 음은 약간은 살려줘야 그 맛이 난다. 예를 들면 서도소리의 시김새라든가 예를 들어서 경제와 서제는 이런 표현을 해주고 따라하게한다 선발의 기준 차 ;;ζ 셔,{}수,서 시험의 제안: 장단귀, 음감

145 문항번호 주목되는 내용 1차분석 4-1 서도소리 기악도 성악을 알이.0]: 표현력이 좋아진다 섭렵의 장점 4-2 김영재 4-3 건축 평가의 주체: 예술 친구와 자기 자신 시각 예술은 청각 예술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4-4 응용 응용력 운동해서 근육 붙듯이 입술도 힘이 붙어서 피리를 어느 4-5 정도 지탱해도 여기가 풀리지 않을- 정도로 그러면서 내 가락을 원만하게 만들어내는, 혼자서 터득 선발의 기준: 연습의 필요 성,자득 4-11 연주 생활 중 자신감 자기 평가 4-12 남보다 더 예쁘게 감수성 4-14 연습과자득 창조성의 박송회 박송희는 자신의 음악 학습의 결과와 공연 실연에 대해 주변의 칭찬과 격려 많이 들었다. 또 학습시기의 행동양상 그리고 젊은 시절 공연 활동 양태로 보아 남다르게 타고난 점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제보자의 학습시절에 교사가 왜 더 안 가르켜준가 라는 의문을 늘 가지고 있을 만큼 학습속도가 상대 적으로 빨랐고, 젊은 날 공연하던 시절에는 나이 어리고 젊었을 때는 막 백날해 도 목도 안 쉬니까 라고 하여 타고난 신체 조건도 갖추고 있었다. 또한 박송희의 음악에 대한 애정도 매우 깊었고, 연습파 학습에 자발적으로 기꺼이 참여했다. 제보자의 성취에 대한 교사의 칭찬과 주변의 격려 그리고 음악에 대한 애정은 뚜렷한 예술 학습에의 목표 없이도 많은 역경을 견디게 한 원천이 되었다. 단, 학습 과정 중에는 모든 면에서 자발적으로 학습 과정에 참여하고 있음이 주목된다. 박송희는 예술가가 되기 학습으로 소리 뿐만 아니라 춤과 시조를 모두 배웠다. 박송희는 자신의 경험을 재고하면서 춤은 판소리 가창 시 발림에도 도움이 되므 로 꼭 필요하다고 하였고, 시조의 경우는 뱃심을 기 창에도 직접적인 도움이 되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이 수 있음으로써 판소리 가 통해 성악의 경우라도 기 초 학습 과정 속에 공연 예술의 타 분야를 포함시키는 것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박송희는 영재 선발의 시기를 대략 초등학교 5, 6학년으로 제안하고 있다. 이 러한 제안에는 기초학습이 전제가 되었다. 즉, 선발 이전에 대략 2년 정도 즉, 3,

146 4학년 동안 기초를 가르치고 난 이후 5.6학년에 선발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진술 했다. 그리고 제보자는 이러한 논지를 확장하여 대학 산하에 초등과정을 두고 기 초를 충분히 가르치고 그 중에서 학생을 선발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즉, 기초학 습과 선발을 연계시키고 있다. 이 점은 매우 흥미롭다. 왜냐하면 어린 학생 발굴하기 위해서 불특정 지역을 찾아다닐 수는 없기 때문이다. <표 18> 박송희 분석표 문항번호 τ ;ζ-: C;Ir 내용 1차분석 제가 영재라고 생각헌 것은 없지만은 제 상대방 1-1 분들이 보고 너는 소리를 하면 잘하것다(부모와 소리하는시 분) 자기평가 선발의 주체 1-3 아마 좀 재치가 있게 배운 것 같애요 선발의 기준 1 2 화전놀이 가며는 신이 나고, 들으먼 좋고, 나도 해 봤으먼, 참 재치 있게 헌 것 같애요, 쪼곰이라 도 배운 것을 안 잊어버리고, 어, 그러게 꼭 영특 선발의 기준: 기호, 기억 허게 헌 것 같애요, 선생님 입만 보고 했기 때문 에 내가 좀 잘 기억을 헌 것 같애요 , 17세 본격적 학습의 시기 1-7 아주 뺀듯한 학습을 한다더라, 이런 소문이 많이 나지 학습기관의 선택 1-6 소리, 무용, 시조 기초 1-9 어렸으니께 다 영리하니까 빠르지 선발의 기준: 학습속도 내가 연마플 해야 된께 즐겁지, 왜 더 안 가르켜 1-10 준가. 근데 그거는 보람은 있었지, 쪼금씩 가르켜 준 게 나는 벌써 다 외웠는디 선발의 기준: 즐거운 마음, 보람, 성취 1-12 한 바탕을 많이 배워야 영향이 오지, 내가 시조로 하니까 뱃심이 생기지, 숨을 두 번 쉬었지만은 인 겸공의 장점: 근육 훈련, 호 저 한 번 쉬고도 짝~악 할 수 있고, 추리하기는 웅용 참 편해요, 검무-발립 1-4 아 저 사람 소리 허는게 역시 재간이 있다, 소리 잘한다, 이렇게 평을 했지 정말 선발의 표현 피 나오는 노력을 허는 건가 안하는 건가 그것이 문제지, 옛날에는 재능이 있는 사람이 한 번 음악을 하면 은 피땀을 흘려가지고 하는데 선발의 기준 선발의 기준: 노력 2-3 -으 D학아 i 일학년은 안되요 한 삼사학년 때부터 서 도 가르치고 판소리도 가르치고 여러 가 선발 시기 지 가르치다 보변은 나는 피리 불라요 나는 선발 방법 : 관찰평가 해금할라요 나는 가야금 할라요 이렇게 나올 거 학습과 선발: 자발성, 자융 아니야그 나는러 판소리 할래요 이렇게 나오게 되어 성, 흥미 있어요 변 그때 거기서 영재릎 골라야지 사 - 137

147 문항변호 주목되는 내용 1차분석 학년 오학년 되면은 별써 짐작이 가거든? 그니까 그때 부터서 좀 가르쳐 가지고 애들을 귀를 열어 줘야 돼, 재미를 한번 붙이변은 애들이 좋아할 나 이고 이것을 좋다 즈그들이 판단 할 수 있는 그 런 나이, 기초는 다 가르칠 수 있잖아요? 그래서 그것에서부터 가르쳐가지고 영재를 뽑아야지, 저 반에션 이제 가야금 할거 아녀 나는 아쟁을 할라 요 가야금을 할라요 바꿀 수도 있는 문제요 바꿀 수도 있어, 일학년 삼사학년 이럴 때는 공부를 좀 시키고 오륙학년 때 오학년 육학년 한 이렇게 이 삼년 동안이라도 하면 여기서 나올 있어요 가르쳐갖고 시험을 볼 거 아녀, 영재를 찾으려면 2-6 그렇게 꽂아놓고 찾아야지 무조건 어디 가서 찾 아요 선발 방법 제안 기초 선생이 가르치다 보면은 그걸 따르다 보면은 거 기서 재능이 있는 사람은 빨리 빨리 따라와요 소리를 시켜 보면은 소리를 잘 할 거 아녀, 껴가 소리를 조금 배웠다고 막 춤추면서 그렇게 하겼 어? 그건 아니고 이거 하나만 보고 뽑아도 이것 은성공 선발 기준: 학습의 선발 방법 제안 2-11 일단은 가르쳐 가지고 뽑아서 좋지 않겠는가 보는 것이 선발 방법: 관찰평가 2-12 그러니까 한종대에서 초등학교를 마련해가지고 들어온 학생들 안에서 뽑아야지 인자 치는 법은 북으로 인자 치은 우리가 3-1 눈치로 인자 우리 한정대로 허은 딱딱 맞웅게 잘 한다 잘한다 그러제 재치 있게 한다는 것이 잘 받고, 언제 또 안 잊어 3-3 부리고, 금방 하고 그니께 인제 니가 재치 있게 목구성이 또 괜찮다 선발 기준: 감수성, 정확성, 예민함 선발 기준: 이해력, 암기력, 표현력 3-6 춤 기초 3-9 타고난 분이 있고 또 그냥 목만 났지 구성 이 없는사람 선발 기준: 표현력 재간, 내가 금방 배워버리지, 그 때는 그냥 재간 3-10 이란 말도 없고 너 참 재주 있다 뭐 잘 받옹게, 선발 기준: 학습속도 기억 가야금 배울 때는 배울 사람 배우고 안 배울 사 4-2 람 안 배우고, 나는 그거 안 배와요 f 그러븐 댐 자발성 둬 뻐리고. 외기 전에 까지만 허고 안 해, 그냥 놀아, 혼자 혼 4-5 자 간단헌게 혼자서 허는 거지, 누가 뭐 시킬 사 연습:자발성 람도 없고 해 줄 사람도 없고

148 문항번호 주목되는 내용 1차분석 4-6 목표는 아무것도 없었지 모르지, 긍게 좋은게 그 냥 했고, 선생님 칭찬 선발기준 인자 툴을 정한 것도 없고 그냥 허라고 헐 때 허 4-7 고, 나 혼자 그냥 해 보고 또 허기 싫으면 말고 자발성 그랬어 틈나는 대로 그래도 안 잊어 버렬라고, 가만히 자 은서도 가만히 해보고 나이 어리고 젊었을 때는 목이 쉴 것인지 안 쉬 는지 막 백날해도 목도 안 쉬니까 ~if 타고난자질 내가 지성스럽게 해야 것다 거기다가 방심을 4-11 해서는 안 되것구나, 내가 좋아하는 자꾸가 준비성 끔 연습을 해 놔야 되 성우향 성우향의 사례는 다른 제보자들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타고난 재능이 뛰어났 던 경우에 속한다. 왜냐하면 스스로 자신에 대한 평가가 매우 높고, 6, 7세에 이 미 주변에서 그 재주를 인정했으며, 학습 시작 이후로는 스승으로부터 재능을 인 정받았다. 그런데도 성우향은 다른 제보자와 마찬가지로 재능뿐만이 아니라 노력 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성우향 자신도 본격적인 학습 이후로는 듣기해도 하 면 달달 외우는 상황을 넘어서서 더 높은 예술적 경지를 얻기 위해서 새벽부터 밤까지 스스로 노력했던 경험을 진술하고 있다. 즉, 성우향은 타고난 자질과 노 력에 대한 선명한 판단이 있는 경우에 속하는데,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진술을하 고 있다. 예술가적 성장에 있어서 자질과 노력 차이는 특정 단계에서 우열을 가 렬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질이 없는 애기는 끈기를 해가꼬 성공을 하고 지가 노력을 해서, 타고 난 놈은 그대로 쑥쑥하니 크고 또 목도 타고 나야되년까. 목 나쁜 놈은 노력을 해서 만들어내고 지가 해가꼬. 좋은 놈은 더 빨리 될 수 가 있고 그러죠 라는 진술에서 확인되듯이 소질이 없는 학생 즉 타고난 재능이 없는 학생도 성장할 수 있고, 타고난 재능이 있는 학생도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즉 성우향은 소질이란 학습에 투자하는 절대시간 에 있어서 차이가 나게 할 뿐 성공(예술가적 성공)에는 무관하다는 점을 시사한 다. 그러나 자신의 사례를 통해 소질이 있으면 같은 스승에게 배워도 결과가 다 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자신이 다른 동료들과 다른 결과를 낸 이유로 타고난 재 능이 있었으며,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 암기력이 뛰어났고, 스스로 암기의 전략을 학습에서 적극 활용했던 점을 들고 있다. 더불어 성우향은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

149 지만 세계적인 음악가로 명성을 떨치고 싶었던 야망을 품고 있었던 점은 흥미롭다. 성우향의 어린 시절의 음악환경은 배우는 것이 듣는 것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 할 정도로 양적으로 빈약했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초기 학습 과정에서 는 판소리 외에도 소리 학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는 것들 예컨대 가야금올 했으며, 별도로 무용도 배웠다. 다만, 점차로 성우향의 관심은 여러 예술 분야에 서 판소리로 집중되었다. 애초에 판소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여겨진 가야금은 스승의 가르침과 자신의 판단 속에 점차로 소양으로 머물게 되었고, 무용은 판소 리의 발림 등에 활용되었다. 이는 예술 환경과 예술체험이 점차로 확장되는 과정 보다 자신의 전공 분야로 수렴되고 사례를 보여준다. 그러나 음악적 환경과 관련 하여 성우향은 흥미로운 점을 지적한다. 지기 엄마가 헌 놈 들으면은 뱃속에서 배와 가꼬 나와. 배와가꼬 나와서 여기 나오면 허는 짓이 틀려. 초등학교 이전부 터 부모네가 윗을 했다든지 어쨌다든지 그러면 그 얘기는 스스로 되야부러 라 고 하여 부모가 음악가인지 여부는 재능과 무관하게 성취를 이룬다는 점을 말하 고 있다. 이러한 점은 교육연령이 되기 이전에 부모의 음악경험이 학생의 음악적 성장에 절대적이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성우향은 전문가의 학생 선발의 목표 소질을 확인하여 학생의 소질을 계발해주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2-11) 즉, 학생의 타고난 소질을 가장 잘 계발해줄 수 있는 스승에게 학습 을 받도록 해야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 방법으로 학생의 소질과 유사한 소질 을 갖고 있는 스승을 추천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또 예술활동에 있어서 창조성이 필요하지만 그것의 한계도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 죽으나 사나 되든 안 되든 파 고드는 놈이 있어. 인제 다르케 하는데 적합하면 받아들이지만은 아니면 못 받아 이죠 라고 하는 점은 창조성의 해당 예술 갈래의 관례에 비추어 무한정 인정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냉정하게 진술하고 있다. <표 19> 성우향 분석표 문항번호 주목되는 내용 1차분석 1-1 나는 영재다, 안배왔어도 옆에서 하는 소리를 들 으면 딴 사람 갈친 디 난 쪼르륙 다 외야부러 난 쪼르록 다 외야부러 배운 놈들 보다 더 잘 해 부 렀어, 그런게 소질이여 자기평가 자득 1-2 6살에 도막소리 학습 학습 시작 (3-1 에는 7살) 1-4 안향련-소리도 좋고 인물도 잘 났고, 났어 목도 타고 영재의 사례 살부터 7년간 보성에서 심화학습

150 문항번호 주목되는 내용 1차분석 1-8 레코드 같은 거 판소리 듣고 보면 아이고 난 언 제나 저렇게 잘하나, 취입을 해야겠다 고 죽으나 사나 그것이 머리에 박혀있었어, 그게 좋아. 소리 를 해야된께, 꼭 하고 싶었어, 외국도 가고 뭐도 가고 해야 된다 싶어서, 선생님이 좋다 얼씨구 그 말을 나한테 질 많이 했어 취임새를. 동기유발 선발의 기준 1-9 아부지가 좋아하셨어, 업고 다녔어 부모의 후원: 애호, 심적 후 원 새벽 6시 이후 하루 종일 (20세이후), 연습 같은 1-10 거 안해도 머리가 존께 달달달 외웠어, 조금했는 선발의 기준: 암기, 연습 디 (20세 이전) 1-11 들은 것은 내가 배운 것 밖에 없제, 화순소리방, 레코드 환경 취미로 가야금(임방울이 가야금을 함:성음을 얻으 려고)-전공에 별 영향 없었음, 춤(김막동에게 사 1-12 사, 화순에서)-좋죠, 이 발립이 다 자연스럽고 손 겸공: 한계와 장점 하나 나오고 들어가고 한 것이, 글안하면 뺏뺏해 가고 이렇게들 생겼거든, 자연스럽게 움직이죠 소질이있는대신에본인이얼마나했든가 소질과노력 밖에서 지기 엄마가 헌 놈 들으면은 뱃속에서 배 와 가꼬 나와, 배와가꼬 나와서 여기 나오면 허 는 짓이 틀려, 초등학교 이전부터, 아 이렇게 갈 쳐 보변은 주고 받고 하는 것이 틀려 판소리는 선발의 기준과 시기 그리고 2-2 주고 받고 해 그냥. 절대 그냥 안하고 구전으로 방법 통해, 소질이 없어도 막 뚫고 들어와 더 해 볼라 고 그러고 인자 소질이 있는 놈들은 금방 쑥쑥 자라나고, 따로 교육하시지는 안했어, 일대일로 가르치닌까 2-4 부모네가 윗을 했다든지 어쨌다든지 그러면 그 얘기는 스스로 되야부러 영재의 편재방식 목도 타고 나야되닌까, 목 나쁜 놈은 노력을 해 2-6 서 만들어내고 지가 해가꼬, 좋은 놈은 더 빨리 선발이 기준 될 수 가 있고 그러죠 소질이 없는 애기는 끈기를 해가꼬 성공을 하고 선발의 목표: 소질이 있는 2-7 지가 노력을 해서, 타고 난 놈은 그대로 쑥쑥하 학생과 없는 학생 니 크고 선발의 기준: 끈기, 재능 예술적으로 소질이 있으면은 소리뿐만 아니라 다른 2-8 과목도 소질이 있을 거라 그말이야 그 애에 따라서, 외국도가고 어디도 가고 근다고 막 그럼서 선발의 기준: 소질, 야망 (3-21 재질문) L 죽으나 사나 되든 안 되든 파고드는 놈이 있어 2-9 인제 다르케 하는데 적합하면 받아들이지만은 아 창의성 니면 못 받아들이죠

151 문항번호 주목되는 내용 1차분석 노력가나 영재성이나, 타고난 놈이나 노력한 놈 이나, 두 가지가 달러, 맞대갖고 소질에 따라서 헐 놈있고 못헐 놈 있고 그러 데끼, 그것은 알아 볼수 있죠 소질에 따라 그 사람들, 개들에 따라서 소질이 나와야제 선발의 목표 선발의 목표 2-12 선생을 잘 만나야 돼, 부러, 경제문제 정통을 잘 못 만나면 배려 영재성 교육의 난점 3-2 그냥 지나가불면 안돼, 외워 선발의 기준 3-3 똑같이 갈쳤어도 내가 잘 배왔으닌까, 내가 잘 선발의 기준: 상대적 기준, 기억하고 했으년까 그래서 그런거라고 암기 시간(보성) /; j1f까r 가야금-그것이사 내가 시간 었으면 아무 때라도 3-15 연습하고, 드러누워서도 배우에다 놓고 하고 막 그랬제 겸공 연습 , 16세에 춤배움 겸공의 시기 3-20 λ AEnL 선발의 기준: 성음{주로 어린 나이 학생에만 크게 적용) 3-21 다른과목 (2-8)-전공으로 하는 과목 외국에 나가서 소리하고 세계적으로 울리고 그래 4-6 야 한다고, 그래야 인기가 있다고 그런 얘기를 동기유발:자기동기 들으닌까, 어렸을 때 그게 하고 싶어서 4-8 시간을 정해놓고 연습 '?:!ir 4-14 넘어서 보기로는 인자 맨날 하닌까 내 소질에 따라서 잘 되지, 없이는 안돼죠, 기초를 잡아야 돼죠 기초 안숙선 안숙선의 경우 음악가 집안의 자손으로 일찍부터 음악을 하고 학습할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었다. 제보자도 이 상황에 대해 쉽고 빠르게 될 수 있는 환 경 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안숙선의 경우, 역시 다른 음악가 집안의 자손처럼 일 찍부터 공연에 합류하여 현장 경험과 학습 경험을 동시에 할 수 있었다. 다만, 안숙선은 음악을 하고자하는 마음을 먹고 하루 10시간의 고된 연습을 수행함으 로써 독자적인 음악가로서의 능력을 향상시켰다. 안숙선이 학생 선발에 있어서 가장 중요시 하고 있는 점은 자제 의지, 혹은 자 기주관이라는 것이다. 자기 주관은 스스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자기 이해

152 라고 설명했는데, 이는 연습과 도전으로 연결된다. 또 학생 선발 기준으로 끈기, 인내, 자긍심, 자체의지, 창의성과 같은 정의적 특성도 거론하지만, 음악 구조의 표현, 발음, 박자관념, 음정, 소리의 연결 등과 같은 음악적 특성도 중시하였다. 이 외에도 목, 성량과 같은 타고난 재질에 대해서도 진술했다. 안숙선의 대담에 서 흥미로운 점은 모방 결과나 기교를 통해 소질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 음악에 대한 몽짓과 발짓의 반응, 특히 박자와의 조화 여부를 보고 그것이 흉내인지 음 악성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영재 선발 시험에서 슬픈 혹은 기쁜 가사를 주고 노래를 붙여 창조성과 감수성을 가늠해보게 하는 제안을 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표 20> 안숙선 분석표 문항번호 주목되는 내용 1차분석 1-1 나는 영재 아니다, 내외적 환경에서 자라난 것하 고 예술가의 집안에서 자라는 것하고 이런 것들 이 안 태어난 사람보다 쉽고 빠르게 될 수 있는 환경 영향이 컸어요 자기평가 나서는 것을 수줍어하고 싫어했는데 노래를 잘 1-2 불러서인지 초등학교 때 1, 2학년 때 교무실에 발견의 주체 : 학교 교사 선생님들이 점심 때 불려가서 1-3 친이모(가야금) 선발의 주체: 친척-전문가 1-4 주안순(주광댁의 딸) 영재의 사례 1-5 8살 때부터 주광덕에게 사사 본격적 학습의 시기 스승의 격려(어려서), 동료 간의 경쟁(성장 후), 1-8 어른들이 항상 음악을 하도록 환경을 자꾸 만들 동기부여 어주니까 대 때에는 나름대로 어제 배운 것을 잊어 먹 지 않고 다음날 가서 해야 된다는 것이 내 연습 량이었다, 해보고 가야금도 뜯어보고 했는데 내 가 이 음악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하루의 f긴è!'ê'" 연습량이 거의 아침부터 거의 한 10시간 정도, 동기유발 다른 분야 연극, 문학, 무용, 쪽 그렇게 하 는 것들이 소리하는데 상당히 도움이 되요-응용 력과 새로운 자극 전공이 아니니까 매일 할 수 없으니까 어쨌든 잊어먹지 않을 만큼 가끔 한 번씩 해보죠, 악기 같은 것은 정확한 음을 이해하는데, 악기는 뭐냐 1-12 고정이 되어 있는 음이잖아요, 소리는 자기 마음 겸공 대로 흔들리는데 악기는 정확한 응정, 박자, 그 악기가 가지고 있는 강약, 음량 그런 것들이 소 리할 때 많이 응용

153 문항번호 주목되는 내용 1차분석 초등학교, 너무 어릴 적부터 애들을 부모가 부담 2-2 을 주변 애들이 힘들어서, 성악이기 때문에 목이 선발의 시기 변성기 2-4 아무리 으면 안 되잖아요 좋은 성량을 타고 나도 응악성이 없 선발의 조건 노래를 부르는데 박자는 제대로 자기가 잘 맞추 는가 어떤 곡이 되었든, 그리고 음정이 제대로 정확하게 되었나, 우리 전통음악이 갖고 있는 특 별한 독창성을 나타내는가 아무리 어리지만 필요하지요, 예술성 더하기 인 성 그리고 환경, 자기가 예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예술을 잘못 사용하면 결국 천해지고 품격이 없 어지니까 그런 것들과 소질 자기 의지 자기가 어떤 일을 하려는 자기 주관 이 꼭 필요하지요 선발 방법 제안 영재의 자질 의지 기교, 자기를 표현, 원래 가지고 있는 음악성(이 해하려고 하는 것인지 어른처럼 흉내 내려고 하 2-9 는 것인지) 구분해야죠,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선발의 기준과 방법 제안 노래를 부른다거나 태도를 보고 그 사람이 음악 을 하는 성음을 들어보면 알 수가 있지요 3-2 초급단계는 중머리나 그렇게 구조가 복잡하지 않는박자붙임이그렇게또박또박정박자또 말도 많이 붙이지 않는 것, 중급은 자진머리, 고 급단계는 엇중머리, 엇머리, 진양 단계별 시험 제안 3-5 시간은 대중 없어요. 내가 이해할 때까지 연습시간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은 소리하는 성음 또 박자, 정확한 그러한 것을 어떻게 잘 구사하는 가, 음악이 가지고 있는 특성 예를 들자면 소리 연결이 되는 이런 부분, 소리를 그 사람이 가지 고 있는 소리 느낌, 하청 이 잘 나는가, 목소리가 아주 다부지고 천구성(매력적인 목소리) 영재는 몇 번만 가르쳐도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 나요 선발의 기준 제안 선발의 기준 3-12 음악적인 구조뜰을 정확하도록 가르치죠 언어를 음악적으로 만들어 것이기에 상당 히 중요시 여기지요, 발음과 박자관념, 그리고 SpL;져 선발의 기준 3-13 가정형편, 소리에 대한 자기의 주관, 내용이나 음악적인 구조에 흥미를 못 느껴서도 있지요 선발의 기준 살 선발의 시기 144 -

154 문항번호 주목되는 내용 1차분석 3-15 음악을 자기가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것을 타 고 나야지요. 음악을 즐겨하고, 사랑하고 선발의 기준 3-17 독창성-배워가지고 그 소화 자기 것으로 금방 7J-$:λ 끈기, 인내, 자긍심, 자체 의지 선발의 기준 자기주관-노래를 통해서 내가 무엇을 2f'-Jl 3-19 보여주고 싶은지 자기 이해가 없으면 안 되기 선발의 기준 때문에 3-20 어떤 가사, 대사를 줘서 한 번 이제 슬픈 대사, 졸거운 가사를 주고 한 번 노래를 붙여봐라, 음 악을 모방을 잘 하면은 음악에 소질이 있구나 시험의 제안 감수성, 하지요, 몸짓 발짓은 박자와 함께 가는데 따로 창의 재느, 으 n 아 -,성 놀변 흉내내기인지 음악성인지를 그런 태도로 알수 있지요 정희석 정회석은 판소리 명가의 적통으로 조부 정응민으로부터 이어지는 음악가 집안 의 자손이자 스스로도 독립적인 음악가이다. 정회석의 사례는 여러 점에서 다른 경우와 다르다. 여타 사례와 비교하여 특별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역시 남다른 환경이다. 제보자는 당대의 명인, 명창의 연주를 충분히 경험할 수 있었고, 가족 은 좋은 교사이자 비평가이면서 예술가이기도 했다. 또한 그가 출생하고 성장한 마을에서는 이른바 귀명장이 있어서 주변이 예술을 감상하고 비평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다. 제보자 자신도 자신의 음악환경에 대해 음악가 집안이라 보다 이해력이 좀 빨리 오고 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음악가 집안의 자손 과 비교하여 어린 나이부터 공연에 참여하여 전문 공연인으로 활동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주변의 요인과 별도로 제보자는 음악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그리고 판소리 외에 대급, 가곡 등 전통음악의 다양한 갈래를 섭렵했다. 섭공의 편력은 결국 판소리로 수렴되었다. 정회석은 판소리를 본질로서 가변성을 있다.바 로 이 점 때문에 판소리 교육의 주요 내용으로 창조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음악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고 및 겸공을 하는 사례는 정회석 외에도 여 렷 있었지만, 소리 전공자로서 겸공의 장단점을 통찰하고 소리의 변화와 역동성 거듭 강조하는 것으로는 정회석의 사례가 구별된다. 특히 정회석은 소리의 창 조성에 대한 다양한 차원으로 진술하고 있다. 판소리에 있어서 창작성은 꼭 목을 쓰는 것이 아니라 소리가 변화하면서 음악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말했 145 -

155 다. 즉, 소리의 속성은 변형이라는 점을 파악하고 소리에 매력을 느꼈다고 진술 한다. 단지 소리가 흉내내기였다면 진작 싫어했을 것이라고 하는 점은 소리와 관 련하여 창조성의 범주가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또 창조성의 차원은 배우는 사람 이 음악의 각 전공을 념나들어야 한다는 점에까지 미치고 있다. 이러한 점들은 연주자 차원에서 증언하는 창조성의 내용들로서 이러한 내용을 언급하는 정회석 은 사례는 매우 주목된다. 단, 창조성은 이른바 공력, 연습이 밑바탕 되었을 때 실현될 수 있음도 누차 강조하고 있다. 정회석의 예술관 및 음악실현 방법은 영재 선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 다. 정회석은 교육에 대해 거론하는 대목에서 음악의 구조적 차원(우조와 계변을 가려내라)의 변별과 실현, 귀훈련, 하나를 가르치면 두 세 가지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창조성)을 강조하였고, 나아가 큰 목표를 갖고 덤벼들어 연습을 해야 한 다는 점도 크게 강조하고 있다. 선발의 구체적인 점에 대해서 정회석은 음악 구체 적인 표현의 차원(음정, 조성, 음의 길이), 타고난 신체(목) 그리고 후천적 학습의 내력(공력)과 정의적 특성들(도전력, 애정, 창조성)에 관한 다양한 문제들을 거론하 고 었다. 이러한 것들은 실제 선발 시험에서도 일관되게 관철되고 있다. 예를 들변 전형적 실기 시험을 넘어선 새로운 시험을 제안하고 있다. 앵무새같이 따라 하는 게 아니고, 무슨 단어를 주고, 뭔가를 표현해라. 말을 이어봐라 라든지, 소리를 이렇 게 던져주고 한번 따라 해서 그 음의 길이하고 선율을 어떻게 이렇게 자기가 소화 할 수 있는가?" 등과 같은 문제를 제안하고 있어 주목된다. 정회석의 사례를 통해 예술관과 학습과 선발 과정에서 일관성이 관통되어야함 알 수 있다. <표 21> 정회석 분석표 문항번호 주목되는 내용 1차분석 1-1 끼가 있다 라든지 아니면 참 잘 따라한다 자기평가 뭐 이런 얘기는 좀 들었는데 영재라는 얘기는 선발의 표현 좀 들어본 적이 우리 때에는 별로 없었던 거 선발의 시기 같아요. 네 살무렵 선발의 주처11: 동네 사람 1-4 전반 박봉술,한승호,한일섭 선발의 주체: 전문가 1-3 그냥 듣고 영락없이 흉내를 내고 소리를 하니까 발견 1-4후반 정권진-열정, 한일섭-소리를 포기하고 소리의 영재의 사례 성음을 악기로 이렇게 표현과 작곡 선발의 기준 뱃속에서부터 들었죠 사실은, 그렇게 듣고 자 1-5 랐는데. 초등학교 6학년, 5학년 때 처 음 인제 학습의 시기 대회를 나가게 되었는데

156 문항번호 주목되는 내용 1차분석 1-7-CZJ 계면과 우조를, 해야된다. 이게 좀 전문적이지만 가려서 음악가 집안이라 다음에 남들보다는 이해력이 좀 빨리 오고, 할라면 진짜 이 독심을 가지고 큰 목표를 가지고 정발 탁 굳건히 마음을 갖고 덤벼들던지, 하루 펑일 지른다는게 엄청 힘들다 뿌듯한 마음이 있죠, 아, 해냈다 자기가 려고 해야 된다고 나는 보거든요 음악이 끊기지 않고 이렇게 들리고, 음악을 하려면 귀가 먼저 제일 듣고 하는 게 뚫려야 하는데 가곡, 대금-시간에 구애를 받거나 그러지 않았 고 하고 싶을 때 연습 선발의 기준 자기성취감 환경의 필요성 겸공과 연습시간 조절 유태평양, 소리 쪽만 그러지 말고 악기나 가곡 2-2 이나 이런 것도 좀 공부해서 폭 넓게 좀 해서 선발과 교육의 목표 좀 깊은 소리가 나올 수 있도록 인도 2-3 다서 여섯 살 선발의 시기 2-6 노래를 따라하기라든지, 발렴도 있고 그러기 때문에, 동작도 따라해보는 거, 장단, 몸 움직임 선발방법 제안 소리는 이렇게 하나를 해주변 두 세 가지를 표 2-9 현할 수가 있어야 되거든요. 꼭 똑같이 하는 창의력 사람은 별로 좋은 게 아니고 소리의 요소에 어느 정도 표현을 하느냐? 연륜 이 얼마나 되고 장단을 어느 정도 잘 구사를 하고 가지고 가고 가느냐, 목을 얼마나 많은 연 습을 했느냐 학생들이 자유스럽게 좀 배울 수 있는 터주는, 창작성해서 꼭 써야지 창작이라는데 그건 아니고 소리 자체가 계속 변화와 된 것이고 시 대에 따라서 변화, 자율성 시험의 제안과 평가 방볍 *J 3':셔 3-2 초등학교 6학년 자신감 3-4 음악공부의 초점은 귀를 열려고 하는거에요, 동네 분들 또 이렇게 오고 그러면 자리를 또 마련해주죠. 어디서 공부하면 할 수 있을라나 어쩔라나 들어봅시다, 귀명창 선발의 기준 선발의 주체: 전문가 아버지가 한 번 해봐라했을 때 해냈다는 자부 심이 있었고, 소리라는 거는 아침부터 시작해 3-5 가지고 계속 기를 토하는 건데, 이게 사실 힘든 거거든요. 그니까 그거를 쉬지 않고 했다는 거 죠. 거기에 대한 어떤 뿌듯함 성취감과 자신감: 인정과 연습 전문가의

157 문항번호 주목되는 내용 1차분석 목만 좋다고 그래서 소리는 절대 좋은건 아니 3-6 고 어떻게 해석해 나가느냐, 어떻게 판 7.J- 3ι; λ 4 을짜가느냐 3-8 2시간에서 최대 8시간 정도 연습 앵무새같이 따라하는게 아니고, 무슨 단어를 주고, 뭔가를 표현해라, 이어봐라 라든지, 3-10 소리를 이렇게 던져주고 한번 따라 해도 거기 에 그 음의 길하고 선율을 어떻게 이렇게 자기 가 소화할 수 있는가? 선발 시험의 평가 기준: 악적 지각과 창조성 음 얼마만큼의 연습 기간이 있었는가? 얼마만큼 소리 를 좋아하괴 뭐 악기를 좋아하던지. 얼마만큼 시 3-11 작해서 얼마만큼의 기간의 공력, 1년 한 사람하l 선발의 기준 3년 한 사람하교 10년 한 사람하고 확실하게 거에요 그래서 그게 이제 공력이에요 4-6 나는 너무 좋아 했어요 음악을, 소리를 좋아했어 선발의 기준 소리도 원래 변형을 해야 돼요. 그 장단 안에 서 놀아야 되기 때문에, 이게 노는 연습이지 똑 같이 흉내내는 건 아니거든요. 흉내낼려고 그 랬으면 진작 싫어했을 거에요 소리를 내 들인만큼 표현이 됐을 때. 그거를 다시 한 번 듣고, 아 저건 뭐가 잘못됐구나, 다음에는 저 기에 더 힘을 넣었어야 되는데, 이런 거를 반성하면 서 때는 그래도 뿌듯한 마음이 7.J-$':서 Q 자기평가 농요-삶이 있기 때문에 그만한 그니까 그게 어 4-13 려운 것이 인제 공력이고 그게 소리거든요. 다 금기의 실행 똑같은 소리에요, 진짜 감동 갚게 받았어요 4-14 배우는 사람은 맘대로 넘나들어야 된다고 난 봐요 소리가 살아있는, 생동감 있는 소리가 되는 것이지, 너무 이렇게 갇혀서 박제가 새장에 있는 새가 제 일 불쌍하거든 사실은, 일단 귀를 높여라 우리말이 얼마나 멋있고 이쁜지를 인식을 시켜줘야 되는 이 런 해야될 것입니다 창조성, 생동감, 감수성 2) 무용무문 강선영 2차례의 대담 결과 1, 2, 3번 항의 질문만 가능했다. 다만, 4번 항의 질문은 재 질문이자 정의적 특성들을 묻는 질문이었는데 이에 대한 답은 대략 1, 2, 3으로

158 부터 확인된다. 현재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교육환경 속에서 성장했음에도 불구 하고 주목되는 점이 있다. 당대 최고의 예 근거리에서 목도했던 점, 스 승이 가르치고 배우는 학습이 아니라 가르치면서 배우는 학습과정이 있었다는 점이다. 또한 강선영은 예술가는 집념과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선영은 기 본 훈련에 대해 강조하고 있었다. 강선영은 영재 선발에 있어서 새로운 춤을 보고 따라하기 과제를 준 후 감수 성과 적응력을 살펴야한다고 제안했다. <표 22> 강선영 분석표 문항번호 주목되는 내용 간략한분석 1-0 강고집 과제집착력, 의지 1-1 나는 영재 아니다 자기평가 1-1 적극성, 단념 영재 선발 기준 1-2 공부 잘함, 남녀공학 학습의 반장 일반 학습 능력 살 스승의 선발 잘크면 소 질이 있다 fi잘 크면 괜찮겠다 선발의 주체: 스승 및 전문가(한성준의 저대로만 하면 괜찮아 까불지 음악무용연구소) 알고 고대로 잘 커 1-4 이강선, 재주있다 영재의 사례 선발의 주체: 무용가 이강선 1-7 음악가 집안 아님 1-10-(j) 춤만 배우면 된다, 최 대 12-13시 간 연습 가르치는 연습 연습, 의지 1-10-(2) 무섭기만 하고, 잡념이 없음 학습자의 환경에 대한 역사적 진술 1-11 잔통예술에는 예의범절 2-1 소질, 지도력, 선생의 재질 영재 성장의 조건 2-2 배우는 처세, 자세, 행동, 수업 내용에 대한 이해력, 연구하 영재의 자질 는 자세, 자기 스타일(모방이 아닌), 사회적 책임: 사도로 가르침 가정형편 상 포기 3-1 (3-4세) 교육 시기에 대한 제안(1-6) 3-2 가정 교육과 예술교육의 연관성 선발의 조건 제안: 환경 3-3 인성교육과 무용교육의 필요 3-4 따라하기 감수성과 적응력: 새로운 춤에 대한 제보 자의 반웅 - 149

159 문항번호 주목되는 내용 간략한분석 3-6 매일 연습(일요일 없음) 인내심 3-8 장단 반주만으로 연습 선발시험 기본을 배운 후 자기 기분으로 마 3-10 음의 기분으로 춤을 춘다, 자기 옴 기본 훈련과 창조성, 감수성, 진정성 에 자기 것을 만들기. 춤의 믿음 3-11 노래는 안시키고 춤을 시켜봄 선발 시험에 대한 제안(2-6항 재질문) 3-12 어려서 시켜보면 안다 판단의 주체 질문) 전문가의 판단력 (2-9항 재 이홍구 이홍구의 경우 영재는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인데, 이들에게 창조력이라는 자질 이 필요함을 매우 강조하였다. 그런데 창의력은 교육과정 중에 관철되어야할 것 인데, 창조력을 교육 과정 중에 실현하기 위해서는 개인차에 의한 학습방법을 계 발할 것을 제안했다. 개인차를 평가하는 방법은 수업을 통한 관찰인데, 수업관찰 평가는 이홍구가 제안하는 교육의 방법이기도 하고 선발 방법이기도 하다. 이 점 에서 이흥구의 제안은 예술관과 교육 그리고 선발이 일관성 있게 연속되어 있다 고 할 것이다. 이홍구는 창조성, 개인별 특성, 기본에 대한 응용력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기 교의 연마가 필요하고 이에는 절대 시간이 걸림을 지적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집중적인 수업을 했다는 전제 하에 2년 정도의 수업을 진행하는데, 이 때 진행된 기본학습 전 과정에 대해 평가가 영재를 선발에 반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 다. 왜냐하면 제보자는 무용의 경우 음악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라고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주변 예술의 섭렵과 관심은 자신의 전공 분야의 기교의 향상은 물론이고 예술적 상상력을 채워주는 조건이 된다고 하였다. 다만, 이홍구의 사례에서는 주 변 예술의 섭렵 과정이 교육현장에서가 아니라 실제 교육 현장에서 이루어지 것이기 때문에 학습이라는 맥락이 배제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교육 과정 속에 수렴하여 역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변예술의 섭렵이 상상력의 확 장에 필수적이라며 상상력은 창조성과 직결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160 <표 23> 이홍구 분석표 문항변호 주목되는 내용 1차 분석 나는 영재 아니다, 나는 교해 의해 만들어졌다, }-1 김보남에 의해 재질을 인정 받았고 1기생 중에 너 하나뱀l 없다는평가를받았다 자기평가 선발의 주체 1-2 할아버지에게 공부 잘한다는 평가를 받음 일반 학습 능력 우수 }-3 초등학교 시절 대천에서 버들피리 잘 불었 선발의 주체: 동네사람(15세, 고, 대나무로 쌍피리 만들어서 잘 붙었다. 1앉)5년 이전) 김준연(피리, 다재다능), 김보남(무용, 표현 력, 위엄성, 몸에서 배어 나와, 존경심, 말로 }-4-0) 못할 경지, 그 앞에서 서변 얼어붙는 듯한), 영재의 사례 이병호(피리, 각종 동서양 관악기, 표현력이, 간이 녹아 떨어져요) }-5 고2 (양성소 입학(1955년) 후 4년 후) 교육 시기 1-7 음악가 집안 아님 }-8 성균관대 약대 합격, 학원 시작 후 민속무용 답사 연구, 홍미, 춤사위를 바로 잡아야 겠 일반 학습능력 우수(1-2) 다 김보남(정재), 김천흥(민속무용), 김백봉 자기 계발 방법 (창작무용)의 춤 연구 }-10-0) 1시간 연습 }-11 국악원의 한국음악, 민속악은 굿판 예술적 환경: 감상 1-}2-Ci:)(ì) 해금, 안무(김백봉), 발레(송범) 음악을 모르면 춤을 출 수 없다. 움직여야 한다, 사례-이매방 흐름대로 전공과 겸공의 기본 }-}3 참 잘했다, 재질이 있다 선발의 표현법 2-} 교육해서 만들어 낼 것이다 학년 관찰평가{총체적 교육 과정악기와 춤) 중의 관찰평가), 중학교 때 전공 집중교육 선발의 시기와 방법 선발의 방법: 교육과정에 대한 제안 2-4 기능, 머리, 노력, 음악성, 따라하기, 창의력 (하나 해주변 어떻게 개가 더 첨부하면서 악 선발의 기준 성을 나타내나) 영재는 교육으로 이루어져야 선발의 방법: 교육과정 중의 전 한다, 2년간의 통합교육(춤, 악기 등) 집종교 문가의 평가 통해 특기와 머리를 볼 수 있다. 얘는 선발의 표현법 이 방향을 가면 영재를 수 있겠다 2-6 이해력, 창의력 선발의 기준 2-7 했던 것을 해보게 한다(니가 했던 것을 한 번 해봐라) 그리고 움직임을 보며 음악을 얼 선발 시험의 방법의 제안 선발의 표현법

161 문항번호 주목되는 내용 1차 분석 마만큼 알아들었는지 확인(춤), 이 런 분야에 가능성이 있다 안되겠다고 평가. 교육 중에 자질을파악 선발의 방법: 찰평가 교육과정 중의 관 자질이 있음 사람, 창의력, 음악성, 가르쳐 준 이상을 한다(악성-음악, 재질-무용), 창조 선발의 기준과 교육과정 2-8 성을 위해서는 획일적인 교육은 금물, 영재 선발의 단계별 연속성: 교육과정 교육 중 창의력에 문제가 있으면 퇴출, 꼭 중의 퇴출 제안 가능한 사람만 교육, 1/10만 남아도 족하다 음색(음악), 몸을 표출하는 것(무용-감성, 감 2-9 각성, 시각, 자기의 표정, 객석에 대한 포용 창의력 선발과 교육방법 력), 문제에 대한 대화를 통한 교육 창의력-춤의 경우 교육 안한 분야에서 처음 2-10 보는 과제를 주고 몇 분 춤춰봐라, 음악의 창의력 시험 방법 제안 경우 초견으로 자유롭게 표현해봐라 선발의 기준을 다양하게 한다-표현력과 인성, 2-11 예컨대 춤의 경우 얼굴이나 옴매에 맞게 주제 를 서로 다르게 주고 표현해보도록 한다 선발 방법 제안: 선발시험 개인차에 따른 2-12 교육 이후에 대한 안목 마련, 우러나는 감수 성을 몸으로 표출-춘행전을 21세기의춤으로 영재에 대한 사회적 책임 표현, 획일적 교육 금물-각자 네 살풀이를 영재 교육과 선발의 핵심 만들어라 교수들의 선발과 전문가적 방향 제안 너는 2-13 이런 능력을 가져 쓰니까 이런 식으로 한 교육자의 책임 번 해봐라 네가 가서 뭐 좀 해 보겠니 3-7 국립국악원 일소당(춤, 음악 등), 구파발 할 예술적 환경: 감상 ((1-11 재절 미당(거의 매일) 문) 2년 재질(음악성, 춤에 대한 재질)을 보이는 선발의 기준 창의성 3-10 기간-응용력(기본과 변형)이 가능한 절대 시 수업관찰평가: 선발과 교육의 연 간, 용용할 수 있는 기능, 창의성 계 (2-4 재질문) (2년간 통합교육을 통해) 같은 기 가르 3-11 쳤을 때, 추게 했을 때 음악(장단과 선 율)의 -름을 맞추느냐 여부 전공과 겸공의 기본 (2-7 재질 4-1 연극-표정(춤도 하나의 연극), 표현력 커짐 {l그 I 영화와 연극 무대 미술(소품, 무대장치, 의 상) 안목의 확장 무용와 관련된 예술-연극>음악>고고학, 이 론적 천착 섭렵:주변예술의 이해 섭렵-탈시대적 감수성의 원천 4-6 기대와 사명감 예술활동의 견인력 4-8 여유 시간에 연습 선발의 유의점

162 문항번호 주목되는 내용 1차분석 4-10 내 니름대로 살풀이를 고치고 스혐1 게 묵인됨 7;J~ζ서 4-11 자신감없음 춤은 연기력, 진정성(손을 올릴 때 내 몸 전체 4-12 에서 마음까지 다 혼합돼서 올라가야 되거든), 감수성(내용의 감정), 자신감 보다는 연구 영재성: 정의적 요소와 인지적 요소 4-13 시선, 정이 좋은지) 자기 평가(좌측표정이 좋은지 우측표 영재성에 대한 제안 기본은 충실하게 한 후 내 기본 자기의 4-14 감정과 몸의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자기 개성과 창조성 동작이 필요 3) 연희부문 김대균 김대균은 줄타기 연희의 특수성을 강조했는데, 실제로 줄타기는 전통공연예술 가 중 소수에 의해 연행되며, 전승이 거의 끊어져가는 역사적 특수성이 있다. 김대균은 예술가 가정에서 자라지는 않았지만, 전통예술 전반에 대한 식견을 갖춘 아버지의 비평과 후원을 받았고, 민속촌이라는 연희 공간 속에서 성장함으 로써 남다른 예술 환경을 가질 수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삶의 현장이 공연의 현 장이자 학습의 현장이 되는 환경 속에서 김대균은 호기심과 재미로 9살에 줄을 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가 본격적인 학습을 할 무렵 줄광대의 전통은 사라지 고 있었기 때문에, 실기 학습의 계기를 충분히 갖기 어려웠다. 따라서 김대균은 줄타기에 대한 증언을 토대로 줄타기를 실행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점은 타기 분야의 특수성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김대균의 경험과 타고난 자질은 증 언을 구체화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이와 별도로 김대균은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줄타기를 통해 출세의 의지를 갖게 되었고 이는 학습과 연습을 극복하는 기반이 되었다. 이러한 점을 종합하면, 호기심과 재미와 별도로 도전욕과 학엽욕 그리고 상상력, 창조성이 김대균의 줄타기를 성공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본질적으로 줄타기의 경우 30 대 이후로 동작이 축소되기 때문에, 일찍부터 학 습해야하고 훈련해야한다. 또 줄타기의 동작은 장단이나 삼현육각 그리고 재담소 리라는 음악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에 제보자는 일찍부터 줄을 탔고, 이후로도 성우향에게 소리를 배웠으며, 장단을 익히는 과정에서 풍물을 훤히 꿰뚫을 만치 숙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환경은 현재 제도권 교육과정에서 갖추어지지 못했다

163 김대균에 의하면, 장시간 공연에서 줄타기의 핵심은 재담이라고 한다. 재담의 성공여부는 관객의 상황을 순발력 있게 포착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줄타기는 다 른 공연예술분야보다 더욱 더 창조적 역량이 요구된다. 실제로 김대균은 이를 직 시하고 학생 선발에서 행위 즉 기예를 시험하지만 이와 동시에 질문을 던져보기 제안했다. 행위 시험은 개별 놀음의 연행소, 이에 대한 이해의 폭, 감수성 등 을 보는 것이고, 질문은 재담의 구성력을 보기 위한 것으로서 창조적인 답을 내 는 경우를 우수하게 보아야한다고 제안했다. <표 24> 김대균 분석표 문항번호 주목되는 내용 1차분석 1-1 나는 영재 아니다, 나는 환경적 혜택을 받았다 자기평가 1-2 호기심,재미로 동기유발 1-4 박병천, 김덕수-다재다능 선발의 기준 1-5 9살(기본기), 13살(집중적 학습), 16살(첫공연) 교육의 시기 16-17살(심화학습), 재담의 응용력과 자율성-소집된 창조성 학습 1-6 관객의 이야기를 줄로 풀어냄, 통합적 학습, 단시간 교육의 시간: 통합적 교육의 에 불가능하다. 시간 1-7 싫지 않아서 줄을 탔다, 출세의 의지, J-1Lλ ~ 학업에 대한 영재의 자질 남다른 감성의 소유자, 남다른 감각, 기능을 소유한 자들은 있겠죠 네 살, 다섯 살 아이, 그 아이가 소품처럼 생각하는 소도구, 또 하나는 이 아이가 놀더라도 그거에 매우 익숙한 놀음 있잖아요. 그냥 걷더래도 풍물 가락을 탄다거나 풍물의 연풍대를 한다거나 선발의 기준 영재의 사례 선발의 기준 줄타기에서는 삽 십 세가 되면 환갑이다. 기본적으 로 일곱, 여넓, 열 살에 줄 학습을 시작해서 열두 2-3 살, 열세 살, 아무리 못해도 십오 세 전후해서 공연, 선발의 시기: 연회의 특수성 삼십 이후에는 체력적으로 동작을 하나씩 놓게 되 는단계 2-4 감성, 동작, 이해력, 호홉, 인지 선발의 기준 2-6 줄타기의 여러 가지 연행소, 놀음에 대한 이해의 감수성, 미적판단 선발의 기준 기능과 이해 2-7 열정 선발의 기준 2-8 끈기,열정 선발의 기준 2-9 행위, 창조적 질문 선발방법의 제안

164 문항번호 주목되는 내용 1 차분석 2-12 교육환경-감성이 다치지 않게 더 풍부한 더 영혼이 자유롭고 더 풍부할 수 있게 3-1 집안의 분위기는 굉장히 좀 우호적 환경: 우호적 부모 3-2 아버지-동작을 하기 위해서 보조 환경: 실기학습의 보조-연희 의 특수성 3-3 줄-강제성이 아니라 익숙한 놀이터, 9살 자발성 3-4 2시간(9-13살), 6시간 '?1도λr 3-5 후계구도1 줄 학습해서 잘 하면 어쨌든 생활에 동기유발 3-7 만족도는 동작별로 다르고, 시간과 횟수의 아니다 문제가 자기평가 판소리(성우향), 풍물의 가락을 훤히 알고 장구친다, 3-10 익숙하면, 실재 동작을 하고 재담을 했을 때 남보다 겸공 좀빠른 소리-줄소리 할 때는 정확한 장단 속도 올랐고 소 3-12 리 가는 것도 몰랐고 소리를 학습하면서 소리가 가 겸공 는 길, 기본 장단 흐름 파악에 유리 3-13 재담(이동안)-응용력 창의력 3-14 줄놀음-관객의 이야기들을 줄로 풀어 내기 창의력 : 줄놀음의 본질 3-15 초별 학습(기본적인 학습-소리가 가는 길, " 사설의 이해도), 중급학습, 상급학습 음악의 학습의 단계 3-17 아버지-귀명창 환경:비평 3-18 김덕수, 박병천-남다른 어떤 감성의 소유자 영재의 사례 미술무대에서 색이 좌지우지하는 데가 많으니까 조 4-4 명. 소품 활용, 연극-연희자체가 다 포함하지만 무대 차 ;:t.셔 활용도 무대 동션, 대사를 칠 때 무엇의 중요성 4-6 열정, 끈기, 재미, 가계에 보탬 중 특히 어렸을 때 재미 선발의 기준 4-8 딱좋을때 연습 4-10 그 동작을 보통은 일단계로 하면서 그 동작을 더 천천히 하면 목 장난감 같죠 연습:재미 대 초반 자신감 4-12 그런 것을 채우기 위해 학습을 했고 그런 학습을 통해서, 10대 후반 상상력 상상력

165 김덕수 김덕수의 경우 특수한 환경에 속에서 예술가로 성장했다. 즉, 제도화된 교육기 관에 의해 예술학습이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예인공동체의 생활 속에서 삶의 현 장이 공연의 현장이자 학습의 현장인 상황에서 성장했다. 이는 교육을 다른 행위 와 구별되는 사회활동으로 인정하고 교육의 목표를 따로 설정하는 것과 무관한 교육관을 피력하게 되는 기초가 되었다. 또한 연희라는 분과는 본질적으로 시청 각적 통합적 예술이고, 현장에서의 적응력이 중시되는 분과인데, 현재 처l 계적인 조기교육이 극히 부족한 분야기이도 하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예술가적 자질들 그리고 그와 연계된 교욱적 제안은 매우 긴밀하게 진술되어 있다. 그 중 가장 주 목되는 부분은 창조성과 잠재성 그리고 도전력을 매우 강조하고 있는 점이다. 영재 선발에 대해서 김덕수는 특히 타인 혹은 전문가의 시각 보다는 영재 자 신의 판단과 자질들을 중요시 하고 있다. 나아가 예술영재의 진로에 대해 진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바, 비록 예술영재 교육을 받았다할지라도 진로 선택은 예 술가로 한정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과학자, 지도자 등으로 확장될 수 있도록 해 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의 제안은 영재선발 시 다양한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는 학생을 선발하도록 예술영술 선발의 기초를 환기시킨다. 또한, 영재 선발과 교육 에 대한 사회적, 국가적 책임감에 대한 다양한 차원의 문제를 제기했다. 김덕수의 대담은 1, 2차 대담에 추가하여 서면 응답도 받았는데, 이 과정에서 끊 임없이 그리고 일관되게 진술했던 점은 예술관과 교육관이 일치였다. 즉, 예술의 목표와 미래 예술의 판도가 거론되었고 그에 합당한 인재 양성의 방식으로 영재 교육을 주목했으며, 이러한 목표 하에 영재 선발을 제안했다. 즉, 예술 영재 선발 과 교육과정은 예술의 목표와 직결되어 있었다. <표 25> 김덕수 분석표 문항번호 주목되는 내용 1차분석 나는 영재다, 과거에는 영재가 아니라 싹수 있는 애들을 찾았다. 천재소년, 어떤 능력이 있는 얘들 감성이나 인성이나 지금은 크게 돋보이지 않지만 교육을 시킴으로서 클 수가 있다든지 하는 판단 재롱, 보수, 의지, 천재적인 소질-유아시절의 행 위에 대한 보수, 김연아나 박태환은 그게 어느날 갑자기가 아니예요 자기평가 발견의 주체: 전문가, 관객 선발의 기준: 잠재성 선발의 기준: 자발성, 소질, 학습정도, 환경 선발의 주체: 전문가, 예인공 1-3 어~_.E.. "'C"'2. 동체 1-4 한일섭, 한성준-재창조, 시대의식을 일고 창조적 계승 영재의 개념과 실제: 의 경험에 대한 소개 선발의 기준: 창조성 제보자

166 문항번호 주목되는 내용 1차분석 1-5 만 5서11, 원초적 현장이 최고의 공부-교육이 삶, 영혼적 예술의 감성적 글로 가르칠 수 없다, 자기 학생에게 그 에너지나 그 기운을 결 국은 전달하고 학생은 자기만의 세계 표현 교육의 시작 교육의 목표 창조성 1-7 1, 2등이 영재 판단의 기준은 아니다. 학습 과정 영재성:끈기,통찰 에서의 깨달음, 예술의 벽을 념고 이겨내는 것 영재판단의 기준: 예술관 (재주꾼이 아님), 예술적 가치관과 비전, 학습의 영재의 육성: 비전과 다수의 지가 있는 절대수의 학생 중 선책 일반학생 자기 발전동기는 자신의 목표, 모든 역량과 그 상상적인 것을 현실적으로 창조, 어떤 기본을 가 1-8 지고 그 아이의 자라서 어 떤 일을 할 수 있게끔 가르칠 수 있어야 하는데 테크닉만 갈쳐 요? 그럼 영재교육이 아니라 재주꾼 교육 영재성: 자기 평가, 창조성선 발의 기준: 예술의 미래 1-10 연습은 스스로 만족을 위해 연습 : 자기 평가 1-11 음악감상 기회 있었음 환경 1-12 절대필수, 겸공은 전공의 위 한 교양 겸공 2-4 진취적 기운, 도전성 영재성의 조건 2-6 장단의 중요성 기본에 소리, 악기 순으로교육 기본과 겸공 중등 아이와 고등아이의 기 달리함, 선발 방법 제안: 차별화 2-11 아무것도 못하는 아이-예술적 기능보다는 인성, 장재성(예술학습이 없는 응 적성, 순간 받아들이는 장의력 시자) 꼭 연주자가 되는 건 아니고 전통예술을 가르칠 수 있는 지도자로 나갈 수도 있다. 영재교육을 2-12 받아서 과연 무엇으로 갈 수 있느냐는 그 아이 영재 교육의 목표 설정 제안 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줘야 돼요, 영어는 기 본이고 자유자재로 언어를 구사 한가지의 원리릎 가르쳐주변 다른 원리까지 확 3-1 장해서 이해하거나 다른 분야와 접 시켜 웅 용하여 창작 선발의 기준: 창조성, 응용 력, 이해력 3-3 본인이 잘할 수 있는 것 좋아하는 것에 최션을 다한다 영재 시험의 제안 3-4 연구, 도전정신, 노력, 두려움 깨기 선딸의 기준(1-8 재질문) 3-5 각 기능을 할 수 있는 신체조건, 감성 선발 시험의 제안 157

167 문항번호 주목되는 내용 1차분석 3-8 혼자서 교육받지 않았는데 따라하기 끝없는 호 영재 선발 기준: 자발성, 호 기심과 집중력 (4살 어린이) 기심, 집중력 4-1 타분야 예술을 보고, 따라하고, 즐김, 모방 4-7 목표 성취 후 새로운 목표 설정 도전 4-8 자신감 있음 -7살이후 영재 자신의 태도 4-12 자신만의 표현방식에 대한 고민 -9살 이후 영재 자신의 태도 158 -

168 II. 명인 대담 자료 1. 으야 n 닙 13,'걷r 1) 기악부문 강정숙 김영재 서용석 이생강 정재국 지순자 최경만 2) 성악부문 박송희 성우향 안숙선 정회석 2. 무용무문 7J-셔 L 여 Q 이홍구 3. 연희부문 김대균 김덕수 * 무리한 대담 일정을 탓하지 않으시고 바쁘신 중에도 기꺼이 면담에 응해주신데 대해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169 1. 음악부문 1) 기악부문 강정숙 1-1. 저희 한국예술영재교육연구원에서는 선생님을 영재라고 생각하고 었습 니다. 이 의견에 동의하십니까? 아니요, 저는 영재가 아닌데요. 내 그냥 열심히 연습을 해서 지금까지 왔거든 요? 그래서 저가 생각할 때 저가 영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口 1-2. 어련 시절 대략 한 10세 미만 돌 챔이 쯤, 예술교육을 받기 이전에 부 포님께서냐 주변에서 이야기한 선생님만의 행동특성이 있었습니까? 예를 들 면 음악이 나올 때 춤을 춘다던지. 음. 맞아요. 저 같은 경우는 하루 종일 있어도 말 한마디를 않는데요. 원래 얘 기 때 별명이 곰인데. 동네에 저가 어렸을 때에는 동네에 정자랄지 이런데 인제 일하시다가 노인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쉬시는 그 정자에서 쉬시고, 또 언제 젊은 사람들도 너무 넙고 언제 시간이 나면 거기서 쉰대요. 평소에 말을 안 하던 내가 정자에 가서 뭐 할머니들이 정숙아 노래 한번 해라 그러면 서슴없이 노래 불 춤 한번 춰라 그러면 그냥 춘대요. 너~훌 너훌 춤도 추고. 그러고 또 무 사람이 돌아가셔서 상여가 나가변 어린데 그렇게 눈물을 뚝뚝뚝뚝 떨어뜨리 고 계~속 그 상여가 사라질 때까지 쳐다보고 있고. 좀 그런 면은 엄마가 말씀하 시는데 남달르다고 말씀하셨어요. 이 곰탱이야 경상도말로, 곰탱이야, 하루 종 얼 묻는 말도 대답을 안 하는 사람이 어떻게 해서 노래 불르라 하은 불르고 춤 은 추느냐?"고, 많이 웃으셨다고 하더 라고요.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춤추시고 노래 부르시는 게 즐거우셨나 봐요. 예. 그랬나 봐요. 네. 口 1-3. 어련 시절에 선생님의 째능을 얄아보신 분이 었으셨나요? 아까 말씀해 주셨지만 부모님도 계셨고, 부모념 이외의 분이? 알아봤다면 口 1-3-0) 그 타인은 누구인가? 네. 부모님 이외의 분은 지금은 인제 다 작고 하셨어요. 그니깐 판소리 홍보가 에 시조라고 볼 수 있죠, 근세에 김정문 선생님 친조카 분 김영운 선생이라고 계 셨어요. 그래서 그 남원에 남원국악원에 판소리 선생님으로 계셨고, 또 홍보가 문화재이신 강도근 선생님이 계세요. 이렇게 두 분이 판소리 선생으로 계셨어요. 그래서 그 두 분께 인제 내 위에 언니가 있는데 저보다는 우리 언니가 참 천부 적인 소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얼마 전에 먼저 갔죠 저 세상으로. 근데 언 니가 공부를 하는데 그 선생님 두 분한테 공부를 하는데, 내가 방학 때 거기

170 갔어요. 언니 있는 곳에 그러니깐 함양하고 남원은 그렇게 멀지 않은 곳이에요. 거기에 가니깐 언니가 판소리를 공부하는데, 그 다음에 인제 언니가 휴가를 받아 서 집에를 왔는데, 내가 그 아부지가 베고 주무시는 목침이 있어요. 목침을 혼자 두틀기면서 언니가 한 일 년 걸려서 배운 그 노래를 다 어지간하게 외워서 나 혼자 막 신나게 불르고 있드래는 거에요. 언니 말을 빌리자면 손 위에 언니가 딱 오빠도 없고 언니 하나 밖에 없으니까, 내가 또 셋챈데 둘째 언니가 또 어렸을 때 저 세상으 로 가버렸죠. 그래서 제가 본의 아니게 둘째가 되고 지금은 인제 장녀가 된 거죠, 다 돌아가셔서. 근데 보면 남다르데요. 어렸을 때는 제가 꽤~ 괜찮았나 봐요. 마을에서 뭐 예술적으로 그러니깐 뭐 당산제를 지낸대든지, 무슨 뭐 옛날에는 TV도 없고 영화 도 뭐 무성영화 때니까.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무슨 굿처럼 형태만 이뤄졌다 해서 그걸 보면 집에 와서 혼자서 그렇게 방안에서 춤도 추고 그 흉내도 그대로 내드래는 거예요. 그래서 엄마가 그랬대는 거에요. 우리 엄마는 잘 몰라요. 춤도 잘 몰라 뭘. 딸이 노래하는가보다, 딸이 춤추는가보다. 제 아버지가 관심이 많으셨죠. 그런 경우 에 인제 채는 좀 그런 걸 좋아한다. 언니 때문에도 있었지만. 그리고 저희 아버지가 원래 임방울 선생님 그 집안하고 절친하게 지내셨대요. 그래서 임방울 선생님한테 저 희 아버지는 형님, 형님 할 정도였으니까요. 실은 저희 아버지는 예술을 하는 분은 아니고. 저희 친가는 한약방, 한약방은 그냥. 우리 친할아버지가 돌소리 할아버진데 별명이. 한약방하셨어요. 침도 놓으시고 약도 지으시고. 저희 아버지가 7대 독자에요. 그래서 저희가 지금 친척도 없고 그렇그든요? 근데 그런 상태에서 언제 언니 때문에 접하게 되고, 이 길로 접어든 동기가 되고. 그 다음에 제가 서울로 올라오게 된 동기 는 남원에서 명창대회가 있었을 때 그 당시에 언제 돌아가신 박초월 선생님, 정광석 선생님, 또 김소희 선생님, 박동진 선생님. 그 때 남원 춘향제 때 판소리 심사를 굉장 히 많이 내려오셨어요. 긍개 그 분들이 오셨을 때 만정 김소희 선생님이 제가 판소리 대회에 나온 거 보고 저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오셨죠. 그게 동기가 됐어요. 선생님의 째능을 알아보신 분이 김정문 선생념 조카 김영운 선생님? 네. 강도근 선생님하고. 흥부가 문화재셨죠. 작고하셨습니다. 다. 口 1-4. 동료 분들이나 작고하신 인물 중에 영째라고 생각하시는 분? 저는 한 가지 그 항상 제가 저 자신을 돌아다 볼 때, 난 축복받은 사람이 아 닌가. 이런 생각을 해요. 왜 그러냐면 제가 그 시기를, 그니깐 타이밍이 잘 맞았 다고 할까요? 판소리는 김소희 선생님, 강도근 선생님, 김영운 선생님 또 그 이 후에 오정숙 선생님. 돌아가셨죠. 한농선 선생님도. 다 돌아가셨네요. 그래서 이 런 그 선생님들을 제가 접하게 되고 그 밑에서 또 공부도 하고 인제 성우향 선 생님한테도 잠깐 제가 가서 춘향가를 배웠었죠. 그래서 복이 많고. 가야금 산조 는 서공철 선생님도 계셨고 또 함동정월 선생님한테도 한 때 공부를 다녔어요. 그러커고 가야금 병창은 박귀희 선생님. 지금 저의 스승이신 박귀희 선생님께 병 장을 했죠. 게다가 제가 국립 창극단에서 근무 하다 보니까 그 때 중요한 선생님 들이 다 거기 계셨어요. 그래서 선생님들 돌아가시띤서 그 단원을 가르치시고 그 러셨거든요? 그 국립창극단에 제가 입문해 있을 때 막내였어요. 그래서 그 때 제 - 161

171 가 무슨 뭐 판소리 주인공은 거기서 다 했죠 제가. 그래서 제가 행운이 뒤따른 사람이 아닌가. 아니 뭔가를 좀 이룰려면 스승이 훌륭하셔야 되잖아요. 그런데 저는 시간낭비를 그렇게 많이 한 것 같지는 않아요. 왜 그러냐면 선생님들이 제 가 복이 많아서 당대에 그냥 누구다 하면 그냥 다 아시는 분들이 다 제 주위에 계셨으니깐. 보고 듣는 게. 배우기도 했지만 엄청난 공부가 된 거죠. 작고한 선생님들이나 동료 분들 중에 영째라고 생각하시는 분? 그분들은요, 한 가지만 잘하신 게 아니에요. 뭐든지 하셔요. 춤이면 춤, 악기면 악기. 응? 극은 또 얼마나 잘하셨는데요. 국극도 잘하시고, 창극도 잘하시고. 하 여튼 굉장히 앞서가시는 분들이었죠. 그래서 요즘은 판소리면 딱 노래만하고, 가 야금 산조는 딱 가야금 산조만해요. 다른 거는 접하지 않아요. 또 대금 불은 딱 대금만 하시는 분들이 거의 많거든요? 근데 그게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선택했 던지 간에 행했을 때, 그 이전에 선행학습이라는 게 있어요. 음악을 하던 무용을 하던 노래를 하던 그 속에 먼저 제일 첫 번째 갖춰야 될게 박자가 아닌가 싶어 요, 박자. 그러고 인간이 태어나면 응애 하고 울잖아요. 근데 우리말에 말이 곡 이 붙어서 그게 노래가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분명히 무얼 하던지 간에 반드시 박자하고 장단하고 노래 하다못해 단가라도. 판소리 단가라도 접해본 분이 춤을 춘대거나 악기를 하시면 달라요. 전혀 안했던 분하고는 좀 다릅니다. 그래서 그 물리학은 뭐 한 가지 계~속하게 몰두하다 보면 되겠죠. 언제 그래서 박사도 나 오고 그러는데. 저는 뭐냐면 우리 음악은 그 산조랄지 병창도 계보가 좀 있잖아 요? 이 계보 저기쪽 계보들이 이렇게 쭉 있는데 저는 제 것만 고집하지는 않아 요. 내가 안가지고 있는 그 장르를 다른 파트에서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그 다 른 세계의 음악, 또 노래, 또 춤, 또 극. 그래서 전 하다못해 그 뮤지컬까지도 제 가 다 해본사람이거든요? 또 2 인극이랄지 연극도 해봤고요. 그래서 우연치 않게 도 여기저기 이렇게 몽을 맡겨서 한 번 부딪혀 보는 그런 작업들이 나한텐 소중 하지 않았었나, 그렇게 생각을 해요. 위의 선생님들 같은 경우는 다방면에 천부적이셨잖아요. 다 영재시죠. 네. 다방면에 천부척이면 영째적, 음악적 특성이 있을 텐데 위의 선생님들을 보시 면서 그런 특성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선생님들이 저한태는 거울이었으니까요, 앞서 가셨으니까. 만정 김소희 선생님 은 가야금 산조도 잘 타시고, 춤도 잘 추셔요. 붓글씨도 잘 쓰시고, 판소리는 말 할 것도 없고, 장단도 너무 잘 치시고. 때로는 재담을 하시는데 그 누구도 웃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어요. 그냥 모~든지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다 그분 천재에 요. 그러니깐 어쩌면 저러실 수가 있을까? 그 목소리는 얼마나 또 아름다워요. 그러고 때로는 훈훈하고 때로는 정말 살얼음처럼 칼처럼 칼날처럼 매섭고 그런 카리스마가 있거든요. 그래서 그분이 무대에 등장하는 그 모습, 무대에서 행해지 는 그 예술도 중요하지만 등장하면서 관객에게 뭘 주시는 그 모습 또 노래가 당 신이 행하던 그 예술이 끝나고 퇴장하는 그 뒷모습, 마무리. 치마를 곱게 여며서 옴을 감싸듯이 해서 분장실로 들어가는 모습. 그런 모습들이 다 저한테는 거울이

172 고. 또 박귀희 선생님. 첫 번째는 누구나~ 다 어떤 분이 찾아오}도 그 웃는 화사 한 그 미소는 그분이 정말 잇속을 들어내시고 웃으면 그 누구라도 그 양반이 하 신 말씀이나 그 행동이 어떻게 아닙니다 소리가 안 나올 정도로 그렇게 화사 하시고, 그 상대를 대하는 그 모습들 그에 못지 않는 그 예술. 아녀자로서 근검 절약해서 모은 그 재산들을 관리해서 그 당시에 국악 사업에 예술학교를 세우시 는, 남자도 함부로 행할 수 없는 천하의 여장부 같은 기질. 그래서 제가 생각하 는 이런 선생님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 저의 저 자리도 따라갈 수도 없고, 같은 경우는 감히 밟아서 논 영원한 숙제고, 영원한 하늘인거죠. 그래서 뭐 천부적이고 영재라는 말씀을 드려도 되는데. 글써}요. 저 말 해당사항이 조금 먼 거 같기도 해요. 천부적이다. 라는 말을 풀어서 설명해 주세요. 사람하고는 정 그 선생님들은 선천적으로 거의 6-70%를 타고 나지 않으셨을까? 그리고 그 당 시에 환경들이 그렇게 푹~ 젖어들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요. 타고 나선 선천적인 환경의 재질에, 경제적인 재질에. 당시에는 환경이 지금처럼 그렇게 다양한 예술의 장르가 있지 않을 그런 시절이었잖아요? 그래서 선생님들이 무대에 서지 않으면 별로 볼 수 있는 예술적인 가치가 그 당시에 이루어져있는 음악이 없 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불교에서 파생되는 음악이랄지, 또 이렇게 민간무속에 서 파생된 음악이랄지, 그래서 그런 모든 장르들이 그 당시에는 그런 장르가 없다 면 지금 선생님들이 하셨던 그 장르가 최고의 예술의 가치릎 가지고 있으면서 관객 에게 엄청난 어필이 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옆도 뒤 도 안보고 그 분들은 지금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면 산 공부를 들어간다 그러면 잠자고 먹는 시간 빼놓고 가야금을 타고, 노래를 하시고, 춤을 추셨다고 하니까. 그 래서 오로지 그 한 길에 거기에만 그렇게 볼입할 수 있는 그런 환경조건이 이루어 져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해요. 그래서 훌륭하게 그렇게 나중에 꽃피울 수 있 지 않았나, 예술적으로. 생각을 하고. 그분들은 이렇게 보면 당선이 이렇게 션을 그 어놓고 사시더라고요. 당신이 당선을 책임지는 거야, 누구 상대방하고 약속을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오늘은 여기까지 연습하고. 오후에는 월 하고. 이렇게 당신이 딱 딱 션을 그어서 다 당신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그 연습 그런 모습을 참 많이 봤어 요. 그래서 그 자기하고 자기가 약속을 해서 그게 이행해지지 않으면 자기가 당신 용서를 못하는 그런 모습을 저는 굉장히 많이 봤어요. 그래서 철저하게 당신을 관리를 하면서 그 모든 생활을 임하지 않으셨나. 그래서 예술도 100%, 인성도 100%가 아니셨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죠. 영재의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영재의 자질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선천적으로 50%. 선천적인 게 어떤 것인지. 제가 이렇게 인제 노래도 해보고 악기를 타니까 선생님이 그러더라고요. 날 가 르친 선생님이 너는 손끝에 묻어나는 성음이 따로 있어 수많은 제자를 가르치 는데 손끝에 묻어나는 성음이 있고, 니 목소리에 안개가 서려있어. 그래서 후천 적으로 선천적으로 조금 타고났으니 후천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여라 그런

173 데 선천적으로 50%, 후천적인 50%로를 가미하면 100%가 되잖아요. 그런데 그 선천적으로 타고났다고 해서 갈고 닦지 않으면 될 수가 없죠. 그래서 영재로 태 어난 것도 중요하지만 스승이 영재를 발견을 못할 뿐더러, 또 내가 재주가 있 다. 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갈고 닦지 않으면 길은 보이지 않거든요? 제가 생각 하기에는 특별한 영재가 있는 게 아니라. 물론 특별한 영재가 있습니다. 그러나 타고 났다면은 누구를 만나느냐, 어느 스승을 만나느냐, 그리고 어떻게 환 경이 주어져서 우리가 99번 연습한 사람하고 100 번 연습한 사람하고 틀려요. 그 래서 지금은 옛날에는 그 말이 또 맞기도 해요.50% 50% 해서 100%가 되면 오 직 좋으랴. 요즘은 학급 공부하랴 뭐하랴, 뭐 친구들도 만나서 얘기도 하랴, 연극 도 보러가랴, 영화도 보러가랴, 응? 스포츠도 할 시간 있어야지. 이것저것 하는 게 너무 많아요. 그래서 두 가지를 병행해야 되니까, 병행해야 되니까. 예술적인 실기적인 면도 갖춰야 되고, 학구적인 것도 갖춰야 되고. 그래서 굉~장히 힘들 잖아요. 우리가 학교 들어가는 것도 힘들고, 학교 가는 것도 힘들고. 그래서 하는 것이 너무 많고 보고 들어야 하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영재로 태어났다고 해 도 후천적인 그 나머지를 채우기에는 실기적인 변에서 많은 시간을 다 바칠 수 있지를 못한다는 그런 생각을 제가 가끔해요. 학교 나와서도 가르쳐도 보고, 또 개인적으로 연구소에서도 가르쳐도 보고, 가르쳐서 무대에다가도 세워도 보고. 얘, 저기 공연이 있는데 너 와서 연습 좀 해라 하면 선생님 뭐 저기 뭐 학교 수엽이 몇 시에 있고, 뭐가 뭐가 있고, 막 뭐가 있고 막 쭉~ 나열을 해요. 내가 듣기도 머리가 아파요. 그게 그러겠다. 얘야, 그것먼저 해라 이렇게 되잖아요. 그리고 너무 피곤하고 거리도 멀고 하니깐 때로 쉬기도 해야 되고. 그래서 그런 저런 그 환경 문제 때문에 열심히 하지 못 하지 않을까 하는 게 너무 많아서. 그 래서 인제 그런 면 때문에 영원한 영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깐 연습량이 충분하게 주어지지 않은 영재는 좀 나오기 힘들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가 다른 파트도 그렇지만 국악과가 얼마나 많고 한 해에 쏟아지는 인구가 얼마나 많습니 까? 그르나 그중에서 솔리스트를 건드릴려면 참 힘들죠, 각 파트에. 그러니까 해 금하는 누구. 지금도 정해져 있잖아요. 우리가 다 알잖아요. 아 누구?, 몰라 그 누구?, 어 그 사람 그니까 그 각 장르마다. 그래서 언제 그런 것이 물론 타고난 영재은 좋지만 후천적인 것이 뒷받침 되지 않을 때는 영재도 제 빛을 발 하지 못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많이 하기 때문에 저는 그래요. 글쩨 저도 너무 바빠서 때로는 연구소를 두 달도 못 나갈 때도 있고 이런데 뭐냐면 저도 인제 누가 배우러 오면 저는 시간 낭비도 하지 말고 돈 낭비도 하지 말라고 그러거 든요? 왜, 우리가 너무 힘들게 공부를 해왔기 때문에 그렇다고 해서 어느 단계까 지 오르기 전까지는 우리가 혼자 무대에 앉아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기 힘들잖 아요. 그 사람 마음을 내 마음으로 가져오기 힘들거든? 상대편이 아무 생각 없 이, 물론 거기에 관심 있어서 티켓을 끊었거나 또 동료에 의해서 우연찮게 보러 왔거나 그 관객의 마음이 내한테 접근할 수 있을 정도로 근사치라도. 그럴려면은 내가 열마나 많은 노력을 해서 내가 내 노래나 내 악기소리가 그 사람의 가슴속 을 파고들어야 되잖아요. 그럴려면은 정말 정말 몸이 시려지도록 갈고 닦고 연습 을 해야 되겠죠. 그래서 우리 음악은 그 전통은 정성 바친 만큼 답이 오게 되 있

174 죠. 그래서 인제 우리의 음악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해보셔서 알잖아요. 모든 사 람이 노력하지 않은 출중한 예술은 있을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나는 그렇게 생 각해요. 누가 잘한다 못한다 따지기 전에 몇 년 하셨습니까?" 먼저 묻거든요? 몇 년 했습니다 그러면은 거기 치중해서 내가 그분의 음악을 본다던가, 노래 듣는다던가. 악기소리를 듣는데 내가 들어보면 금방 판단이 되죠. 아. 이사람 하 고, 해야 되겠다., 이 사람은 안 하는 게 좋겠다.. 그래서 나는 누가 배우러 오면 사정없이 이야기 해 줘 버려요. 이야기해서 꼭 하고 싶으니까 당신은 무대스템. 당신 열심히 꼭 하고 싶다 그럼 당신은 학계 쪽으로 가시는 게 어떨까요? 당신 은 안 하시는 게 어떨까요? 인제 그 정도의 분별력은 제가 스죠. 제가 말씀 드리 는 거죠. 그니까 제가 생각하는 영재는 첫째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그 영재가 그 빛을 발하지 않을까 싶어요. 口 1-5. 본격적으로 스숭닝을 모시고 학습하게 된 시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네. 저 십대 때부터 했어요. 십대 때부터 제일 먼저 한 게 무용이었어요. 무용 하다 보니까 무용반주가 우리악기잖아요. 악기소리 듣기 좋아요 이렇게 그 다음에 악기 를 했죠. 악기하다 보니까 악기는 어디서 파생되는가?, 아! 여긴 노래에서 파생 된 거구나.. 그 또 노래를 하게 됐죠. 그래 또 하다보니까 또 장단 타악도 몇 일 그 또 타악도 하게 되고. 그렇게 해서 이제 한 가지 입문하다보니까 이것저것 두루두 루 이렇게 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이것저것 두루두루 하다보니까 내가 하는 장르에 많은 보탬이 되는 거죠. 그래서 그렇게 인제 시작이 된 겁니다. 무용은 언재부터? 무용은 저 열 두 살 때부터 했어요. 그러고 학교 다널 때 학예회 때도 나는 항 상 노래를 했었고. 학교에서도 무용을 했었죠. 천부적인 건 아닌 거 같고. 그 당 시에 제가 워낙에 드문드문 하늘만 보고 토끼 발맞추는 데서 그고 나서 커서 그 런지 저만 유별나게 그렇게 좋아핸 거 같아요. 그래서 하게 됐는데 음. 하여튼 좋아했어요. 제가 그 뭐 학교 가는 길에 뱃물이 졸졸졸졸 흐르면 그 물소리도 그 냥 흘러 보낼 수 없었고, 가을 들어 쓰르라미가 울면 애기 때부터 조금 그런변을 남달랐던 거 같아요. 그래서 뭐 어렸을 때 옛날에 왜 라디오 라는게 커 가지고 왜 그 나무로 만든 래디오가 있었거든요? 그게 우연찮게 들어보면 또 가요소리 가 나서 나 저거 하고 싶은데 아버지를 졸라가지고 하도 아버지를 조르니깐 아버지가 그 쇠 있잖아요 줄 쇠줄. 조그마한 설날처럼 생긴 쇠줄을 나무판에다 못을 쳐서 아버지가 그 쇠줄을 이쪽 못 치고 저쪽을 못 쳐서 쇠줄을 걸어주면 거기서 그 횡기고 놀고, 조금은 그랬던 거 같아요. 디 세 때 무용을 처음 배우셨다고 하셨는데, 스승님 성합은 어떻게 되시나요? 음. 조계화 선생님. 그 집안과 교류가 있었나요? 아니, 전혀. 그분은 조 씨고 저는 강 씨이기 때문에 전혀 교류가 없었죠. 근처 에 사셨어요. 근데 그분이 너무 아름다웠어. 여자 분이 목도 길고, 허리도 훤칠하

175 고 날씬해가지고, 피부도 하쌓고. 그분은 원래 유명하게 춤을 잘 추시는 분이었 어요. 그래서 그분 춤을 보고 나도 배우고 싶다. 그때에는 선생님 소리도 못하 고 아주머니 했죠, 그랬지. 그분한테 춤을 배우기 시작한 거죠. 춤은 그때 당시 어떤 결 배우셨나요? 그때 당시 인제 <살풀이> 라고. 그 수건을 들지 않고 맨손을 춤을 배웠던 거 였죠. 맨손으로 추는 춤. 인제 지금 생각하면 그게 살풀이 같아요. 기악은 어느 선생님께? 기악은 지금 진주에 계셔요. 지방문화재세요. 안숙선 판소리 명창, 안숙선 선생님 계시죠? 그분의 친 이모세요. 진주에 가야금 산조 인간문화재 신관용류를 하고 계 세요. 그래서 인제 그 선생님한테 저희 언니가 가야금을 배워서, 내 선생은 우리 언 니에요. 우리 언니가 강문숙인데, 문숙이 언니한테 가야금 산조를 배웠죠. 처음. 몇 세 때 배우셨나요? 그것도 십 대 때죠. 정확히? 정확히 생각이 안 나죠. 거의 섭대 때에요. 제가 다 한 거는. 성악도 그렇고 판소리도? 네. 다 십대 때 한 거죠. 다 십대 때부터. 성악은 강도근 선생념하고 김영운 선생념. 김영운. 이 두 분 선생님께는 어떤 걸 배우셨나요? 강도근 선생님한테는 수궁가, 적벽가 김영운 선생님한테는 춘향가. 그렇게 배웠죠. 타악은 어느 선생념께? 타악은 돌아가셨네요, 다 돌아가셨어요. 그러니깐 타악도 우리 언니가 정말 못 하는 게 없었어. 설장구도 잘 치고, 부포채도 잘하고, 팽매기도 너무 잘 치고. 내 위에 언니 때문에 제가 하게 된 거에요. 못 하는 게 없어요 언니가. 우리 언니가 천부적이지 않았나. 우리 언니를 보면은 그냥 그려내거든요. 그렇게 해서 인제 지금 안숙선 선생님하고 언니하곤 몇 살 차이 아니에요. 우리 언니하고 두 살 차 이인가? 지금 살아있다면 그렇죠. 같이 했으니깐. 타약은 어떤 결 배우셨나요? 그 당시 선생님이 정호동 선생님. 정호동 선생님은 아주 유명하신 분이죠. 열 두발이니 채상이니. 그 농악분야에서는 못 하시는 게 없죠. 그 선생님이 계셨고. 또 지금 생각이 잘 안나요. 타악하면 지금 사물이나 누구나 해도 그 선생님 이 들으면, 전사섭 선생님. 뭐 사실 그 자제분들도 다 유명했죠. 일찍 저 세상으로 갔지만. 언제 그 당시 그런 선생님들이 계셨어요. 그래서 그 선생님한테 배운 사 람이 저희 언닌데. 언제 저도 언니한테 많이 배웠어요

176 정호동 선생념하고 전사섭 선생님께 설장구를 배우신건가요? 전사섭 선생님은 설장구가 유명하시죠. 그래서 저는 너무 어렸으니까 언니가 배워서 내가 언니한테 배우게 된 거죠. 언니 되시는 분을 영재로 봐도? 천부적이죠. 언니가 천부적이죠. 못하는 게 없었으니까. 그래서 결국은 어 늦게 판소리에서 최고의 상이란 대통령상까지 받고. 이승만 대통령 살아있을 때 상도 받고 했어요 언니가. 근데 너무 일찍 가버렸는데. 그래서 내가 재주 있는 사람은 일찍 가나보다 하죠. 그래서 그런데 지금 내 밑에 동생 바로 내 밑에 여동생도 국립국악원에 같은 맴버에요. 같이 근무하고 있어요. 강길여라고. 그래서 우리는 삼 자맨데, 삼 자매가 다 했죠 예술을. 저기 우리 어머니는요. 딸이 하니까 우리 딸이 잘하는가보다. 우리 딸이 잘해. 이렇게 생각하지 특별히 뭐를 아시고 그런 건 없고. 저희 아버지께서 좀 들으실 줄 아셨어요. 아버지가 워낙 좋아하시다가 보니까. 아버지가 호적도 배우시고 그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인제 저희 아버지는 낚시 하시는 거, 사냥하는 거 이걸 참 잘하시거든요? 그래서 그 보면 아버지가 많은 관심을 가졌지 엄마는 뭘 어떻게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 그것도 잘 모르 셨는데, 지금은 많이 아시는 거 같아요. 口 1-7. 음악가 집안은 아니신 거죠? 선생념 아버님째서 호적도 수준급으로 상 당히 잘 부셨고 또 소리도 잘하셨다고. 네, 그렇죠. 잘 부시지 않고 아마추어로. 제가 알기론 오십이 념으셔서 배우셨 던 거 같아요. 그래서 늦게 좋아하셔서 배우셔서 많이 즐겨하셨어요. 엄방울 선생님과도 친분이 었으셨고. 네.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아, 우리 친할머니가 그렇게 좋아하셨대요. 할머니가 굉장히 관심이 많으셨대요. 그래서 할머니만 관심이 있었다고 그러죠. 저희가 이 야기 들어볼만 한 친척도 안 계시고 그래서 거의 집안에 대해서 들은 건 없고. 할아버지만 제가 알죠. 그래서 인제 할아버지는 유명하셨데요. 아버지 말을 빌리 자면 다 죽어가는 처녀가 몸이 쥐똥처럼 부어서 와서 할아버지가 치료하면 한 보름 정도 되면 이 뒤에다 옛날엔 젊어지고 왔다고 그래요. 그런데 갈 때보면 걸 어서 나간다고, 저희 할아버지가 명의였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아버지가 엄 청나게 하시고 싶어 하셨는데 반대해서 어렸을 때부터 못하셨다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저희 아버지는 원래 한량이에요. 한량이었어요. 口 1-7-(2) 집안 내에서 훌륭한 스승님을 판별하는 기준이 있었나요? 그렇지는 않으신 거 같고. 그냥 보냈는데 아버지가 생각하실 때 일단은 시키 면 뭔가가 되겠구나. 그런 생각은 하셨대요. 그런데 왜 그러냐변은 제가 평소에 말이 없고 뭘 시키면 뭘 깔끔하게 처리를 해서 하는 그런 성격이었데요. 그리고 뭐 우리 아버지가 그러시는데 너 이거 해라 그러면 그거 끝나기 전에는 방에 서 안 나온대요. 그렇게 제가 끈질긴 그런 그 파고드는 그런 거는 있었나 봐요. 그래서 인제 또 뭐 가야금도 만들어다가 춤도 춰싸코 노래도 불러싸코 그러니까

177 인제 어 내가 또 하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그러니까 아버지가 시킨거고. 사실은 음. 저가 경상도에서 남원으로 이사 올 때 아버지가 수술을 하셔서 살림이 다 없 어진 상황이어서 할 수 없이 남원으로 이사를 와서 그 당시 그냥 제가 하고 싶 었던 거에요. 그래서 인제 이걸 하게 된 거지. 인자 아버지가 보셨을 때 시켜도 될 만하셨겠죠. 그렇고 선생님들 두 분도 이 딸은 해도 되겠습니다 그 그래서 시킨 거거든요? 인제 그게 언제 동기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아버지가 보실 때, 선생님들이 보실 때, 챈 해도 되겠구나. 싶어서 시켜 주신 거 같아요. 당시 남원에서 강도근 선생님 하고 김영운 선생님은 유명하신 선생닝으로, 배 우려면 그 선생님들게 가야? 네. 다 그 두 분한테 갔죠. 그래서 강도근 선생님은 홍보가에 인간문화재 되셔 서 계시다가 돌아가셨고, 김영운 선생님은 되시기 전에 돌아가셨고. 그렇죠. 口 1-8. 선생념께서는 자기발전의 동기를 어떻게 부여하셨나요? 난 항상 이렇게 생각했어요. 나는 경상도 사람이라서 타고난 재질이 없기 때문에 열심히 연습해야 되지 않을까? 이게 언제 우리가 음을 논할 때 잡히지 않는 신기 도 있잖아요. 영원한 거에요.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처음에 가야금 타고 노 래 부를 때 아무리 생각해도 잘 되지가 않는 거에요. 접어 보기도 하고. 몇 번 접었 어요, 안 할려고. 근데 길거리 가다가 예전에는 그 뭐 음향기기가 지금은 상가 안에 다 있지만 옛날에는 스피커 라던지 길거리에 내 놓잖아요. 너무 너무 안 되니까 접 고 그냥 잊어버려야지. 하고 또 가다가 보면 그 스피커에서 가야금 소리가 들리는 거에요. 그래서 가서 다시 확인하면 그게 기차소리나 피아노 소리인거에요. 그러니 깐 내 안에 깊이 잔재하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안 할라고. 뭐가 그렇게 어렵고 안 되고 내가 의도하는 대로 음이 잡히지 않으니까 고민도 많이 하고, 또 선생님 모시 고 산공부도 많이 갔었고. 나는 그랬어요. 어떻게 생각했느냐 하면 해도 해도 안 되 서 집에서 있으면서도 먹고 잠자고 거의 친구도 잘 안 만나고, 그냥 방에 있으면서 만약에 뭐 산조가 한 시간이다 그러면 몰라요. 참말로 나 연습 많이 했거든요? 노 래도 많이 부르고, 연습도 너무너무 많이 했어. 나중에는 앞뒤가슴이 저릴 정도로 연습도 많이 하고. 결국은 지금 뭐냐면 손가락 마디마디 다 아프고, 비오고 눈 올라 그러면은 쑤시고 아프고, 젊었을 때부터 그건 그랬어요. 목도 휘어지고, 등뼈도 그 렇고, 무릎이랄지 뭐 이런데도 좋지 않아서. 그렇게 너무너무 한 때는 몰입해서 이 게 몽이 골병이 들 정도로 많이 타고 부르고 그렇게 하다보니까 나중에는 병이 찾 아오더라고. 이렇게 몸이 아프고 한 7년 동안 병원생활도 고생 많이 해서 병원에서 퇴원한 순간부터 다시 몽을 만들어야지 예술이라도 하지. 그렇지 않으면 못 하겠 다. 라는 생각으로. 몽이 많은 병이 찾아들어서 다시 회복하기까지 저 같은 경우는 한참 활동하다가 한 십 몇 년 동안 틈이 있었어요. 언제 그런 경우가 있었는데. 그 러니까 천부적으로 태어난 사람은 후천적인 노력을 많이 안 해도 되는데 저 같은 경우는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요. 연습량을 많이. 부어서 몸이 정말 많이 아왔고. 그 래서 그 스트레스 푸는 방볍을 몰라서 젊었을 때니까 때로는 그 술도 먹고. 잠 안 오고 몸 아프고 그래서. 그런 것들 등이 이제는 결국은 몸으로 오게 되죠. 그래서

178 저는 그래요. 애들 키워보니까 적당히 해야지. 그렇게 힘들도록 미안해서 연습 많이 하란 소리가 나한테도 안 나오더라고. 그래서 지금 알기로는 우리가 소위 영재라고 하는 분 들이 많이 계셔요. 근데 그분들한테 한 번 물어보세요, 몸이 정상인지. 나 는 나한테는 그게 뭐냐면 연습 안 할라고 하면 연습 안하고 올라가면 연주도 제대 로 안되고. 뭐 뭐든지 행해지는 게 안심이 안 되가지고, 그래서 공연 섭외가 와도 연습이 안 되 있으면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대답을 못하게 되잖아요. 그럼 먼저 내 가 나를 알기 때문에 그게 잘 안되더라고. 그래서 우리가 하루만 안 타도, 하루만 노래를 안 불러도 가시가 돋는다고 그러잖아요. 우리가 매일 밥을 먹잖아요. 이게 밥 먹듯이 연습을 하라 그랬죠. 많이. 口 어렸을 때 연습량이 어느 정도 되셨나요? 어렸을 땐 그렇게 연습에 치중하지 않았죠. 본격적으로 무대에 스면서 선생님 이 연습하라 연습하라 그래도 소용이 없어요. 본인이 당해봐야 되거든요. 무대에 본격적으로 스기 시작하면서 정말 가장 먼저 출근하고, 수위아저씨가 선생님, 잠글께요 할 때까지 연습을 하거든요? 본격적으로 시작하셨을 때, 연습량을 대략적으로 말씀해 주신다변 하루에 몇 시간 정도? 눈 뜨면 가야금 타요, 점심 먹을 때까지. 점심 먹고 또 타요. 그러니까 쉬는 시 간. 산에 공부를 하면 30일도 가 있고, 40일도 가 있잖아요. 그러면 잠잘 때까지 부르고 타요. 잠자고 나면 그 다음 날 또 그래요. 공부 할 때도 안 나가잖아요. 그냥 연습하는 거죠. 밥 먹고 자는 시간 빼놓고 그냥 연습 하는 거죠. 그러니깐 몸이 아프죠. 인제 봄 아파요. 손가락도 아프고 막 다 아파요. 그러고 또 절밥이 뭐가 있어요? 나물하고 된장하고 밥이잖아요. 그렇게 먹고 밖에도 잘 안 나오고. 지금도 저는 그래요. 제자나 단원들한테 연습할 시간은 연습하는데 써야 되 그 냥 소원하면 내가 연습해야 하잖아 앉아서 연습하면 시간도 잘 가고. 뭐 내 감 맡다 보니깐 때로는 컴퓨터도 좀 두들겨보고, 뭐가 왔는지 보기도 하고, 또 공연에 대해서 프로그램에 대해서 무슨 뭐 싸인 할 일 있으면 싸인 해 주고. 끈 데 예술 하는 사람은 보직 맡는 거 아니거든요? 근데 그결 조금 지금 연습을 내 가 충분하게 하지 못해서 여기 저기 일 때문에 쫓아다니다가 워 이렇게 하다보 면 연습량이 항상 부족하죠. 그래서 내가 하는 내 그 음악적인 그 조건에서는 제 가 빠져들지 못하니깐 그게 항상 아쉬움으로 남죠. 그냥 예술 하는 사람은 열심 히 갈고 닦아서 무대에 서는 것을 바라보+야지, 이것저것 맡다보면 자기 시간을 많이 뺏기니깐 좀 맞지 않다고 생각을 해요.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신 게 언제이신가요? 20대 후반? 그 전에 연습 시간은? 전 20 대 후반부터 했죠. 본격적으로 계속 공부 했죠. 공부할 때도 무대 서긴 섰어요. 그 때도 난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어요. 항상 열심히 하는 편인데 조금 등한시 했다 라는 것뿐이죠. 그 때도 정말 연습 많이 했어요. 그래서 내가 왜 그 러냐면은 나 라는 사람은 참 위대한 사람이다. 왜? 나한테 내가 채찍질을 참 많 이 하는 사람이거든요? 좀 쉬염쉬엄하기도 하고 했을텐데, 그래서 최근에 와서 - 169

179 는, 공연이 많이 없을 때는 조금 정신적으로 너무 매달리지 말고 좀 쉬자, 쉬자. 인제 나한테 자꾸 얘기를 하죠. 그래서 인제 조금은 운동 쪽으로 많이 신경을 쓰 고. 사람이 일단 건강해야 좋은 음악이 나올 수 있잖아요. 그래서 언제 시간을 많이 바뀌었어요. 그래도 공연이 중요한 공연이 주어진다 그러면 연습하고, 주어 진 공연이 없다 하더라도 직장에서 특별한 일이 없으면 작은방에 들어가서 연습 을 하죠. 그래서 뭐 나부터 연습을 하니까, 또 물론 플랜 (plan) 이 다 짜여져 있죠. 연습과정들이 모두 그렇지만 또 개인연습들도 하고. 이게 개인연습을 안 하고 그 냥 내가 하면 다 따라 하니깐, 제자들도 그냥 얘, 연습해. 왜 안하니?" 이럴 필 요 없거든요? 제가 보니까 앞서가는 분들이 저한테 거울이 되더라고요. 그게 언 제 조금 나도 너무 나한테 선을 많이 그었고, 생활하려고 무척 노력하는 사람 중 에 한 사람이니까 피곤하지. 10세 때 연습시간이? 연습 많이 한 펀이었지 세 때, 연습과 연주 이외에 음악 감상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있었나요? 음악 감상은 극히 드물었죠. 그때는 거의 제가 시골에서 컸기 때문에 드물었지 만, 우연찮게 너무 너무 잘하시는 분들 연주를 들을 수는 있었어요. 예전에는 극 장이라는 게 없었잖아요. 훌륭하신 분들이 연주를 하러 다니셨어요. 그래서 이 고을 저 고을. 그때 정말 명창소리를 들어보고 명연주자의 산조도 들었고. 그렇게 고을고을 오셨을 때 꼭 찾아서? 아버지 손잡고 따라서 가고 그랬죠. 口 1-9. 아버님께서 후원을 잘 해주셨나요? 아버지가 해주셨죠. 우리 아버지는 능력 있는 분은 아니셨고. 어쨌든 능력이셨 는데, 워낙에 저희 아버님이 저기 뭐라고 할까? 마음씨가 너무 좋으셔가지고 살 림을 다 없애셨죠. 고생 많이 하셨어요. 디 전공분야 외에 다른 예술분야에 대한 학습과 경험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그거는 그냥 하루에 다 못 하잖아요. 오늘은 이거, 내일은 저거, 모래는 또 이 거. 그래서 이렇게 분배해서 하죠. 그리고 어렸을 때는 그냥 만약에 오전에 가야 금 산조 탔잖아요? 그러면 오후에는 노래 불러요. 거 저녁에는 또 춤춰요. 그렇 게 충분하게 분배해서 할 수 있었어요. 口 선생닝째서 배우신 전공 이외의 악기연주가 현째 선생님의 천공분 야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었나요? 타악은 장단이고, 무용은 느낌이고. 요즘 그 생음악 하는 사람은 옴으로 하죠. 악기들 그런 것들도 있고, 성악은 그야말로 파생된 게 성악에서 파생된 게 달라 요. 기악이나 춤이나 우리가 염마. 아빠 먼저하고 응애 하고 울듯이 그게 붙이 면 그게 다 성악이잖아요. 그래서 한 가지만 하는 것보다 이렇게 많이 한 나 같은 - 170

180 경우, 만약에 관객이 젊은 사람들 애기들만 왔다. 그러면 거기서 산조를 연주 할려 고 하면은 애기들이 안 왔다고 치고, 누가 나에게 말 안 해줘서 만약에 섭외가 되 잖아요? 공연이 인제 몇 월 몇 일날 몇 시에 어디를 와서 몇 분을 해주시오 얘 길 한다고. 그럼 나는 관객이 누구냐고 뭐냐고 묻지 않아요. 때론 물을 때도 있지만 안 묻고 갈 때도 있잖아. 급해서 딱 가서 보면 관객이 어 여기는 이렇게 해야 되 겠네, 저기는 저렇게 해야 되겠네. 할머니 할아버지 계시는 곳, 2.30대가 모여 있 는 그 저기 공연장, 또 청소년들이 모여 있는 공연장, 많이 활용을 할 수가 있지요. 내가 할 수 있는 그 장르들을 다 활용을 해요. 그게 뭐냐면 어래인지 (arrange) 같아 요. 활용해서, 어랜인지 (arrange) 해서 거기에 맞게끔 즉석 연주가 될 수 있는 거죠. 곡 선택도 빨리 할 수가 있고. 거기에 맞춰가지고. 구체적으로 그 활용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그러니깐 가야금 산조를 한다. 그러면 판소리를 한다. 판소리는 가사가 있어서 사람들이 그냥 흔히 알잖아요. 도련님이 춘향에게 이별하기 서럽다, 춘향이 도련 님 보내기 서렵다, 가지 마시오. 헤어지는 거, 이건 이별장면이로구나. 그런데 산 조는 슬픈 사람이 들으면 무한하게 슬프고, 즐거운 사람이 들으면 즐거운 것 같 기도 하고 슬픈 것 같기도 하고. 그러고 우리가 하나에 낙엽이 떨어져도 그 언니 가 보는 그 시각하고 마음 느낌하고 내가 보는 시각하고 느낌이 다르듯이, 내가 여기서 애기들한테서 하는 음악은 가볍게 가야 되. 어? 즐겁고 가볍게. 애기들이 슬픈 걸 어떻게 알겠어. 그 때는 판소리도 잊어 버려. 그런 장면은 홀가분하게. 살랑살랑 추는 무용이랄지, 가벼운 신민요랄지. 이런 생각에 거기에 활용을 한다. 그리고 만약에 중 장년층이 오신다. 그러면 노래도 슬픈 걸로 담백하게 가다가 걸로 가다가 그 다음에 화사한 음악으로 가다가 그 다음에 어떤 음악은 빠 른 장르로 가다가. 그게 다 활용이 되죠. 그러니깐 이것저것 다 이렇게. 그러니깐 음악은 인생, 인생하고 똑같아- 음악은 인생하고 똑같아. 그래서 그 만약에 강정 숙이가 타는 산조, 강정숙이가 병창, 강정숙이가 뭐 행하는 뭐, 뭐 그 다음에 또 언니가 하는 뭐, 이게 쭉 하면 그렇게 치잖아. 우리가 왜 옷을 맞춘 옷집만 쭉 있잖아요. 그게 대충하면 한 집만 장사 잘 될 거 같잖아요? 그게 아니라 여러 집 이 있어서 내 취향에 맞춰 거기 가서 묻잖아요. 이 사람은 이 집 가고 저 사람은 일로가고, 또 그 사람은 다른 집으로 가거든요? 그러니깐 그와 마찬가지로 음악 도 마찬가지에요. 어떻게 365 일 판소리만 들어요? 365 일 맨날 같은 산조 들으가 변 좋겠어요? 같은 사람이? 그래서 우리는 인생하고 똑같다 라는 게 사람 인생 처럼, 다 모여서 남이 아니거든요? 한반도에서 태어난 다 우리 한민족이라 음악 도 마찬가지야. 가야금 산조나 대금이나 뭐 해금이나 뭐 판소리나 뭐 다~ 원래 하나잖아요. 거기서 다 파생된 거죠. 다들 엄마 아빠 그래서, 보통은 이 사람이 하니깐 이 사람 해 버리고 저 사람은 저 사람이 다 해 버릴 뿐이지 원 뿌리는 하나라고. 음악이 그렇게 이제 이어져서 내려온 거 같아요 그래서 나는 그 사람 이 뭘 했느냐? 만약에 판소리다. 그 사람이 판소리만 할 줄 아는가? 악기도 다 줄 아는가? 이 사람이 악기만 타는가? 노래는 알어? 이렇게 그래서 그 사람 이 행하는 음악을 우리가 심방곡이라 그러죠. 그 사람의 노래나 그 사람의 춤이

181 나 그 사람의 연주를 듣고 보면은 그 사람을 읽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그 같은 제자, 지금 저 서공철류를 여러 사람이 타는데 다 나랑 똑같지 않잖아요. 다 개 성적인 그 사람에 맞는 음악이 되고, 춤이 되고, 노래가 되죠. 그래서 영재가 있 으면 무엇보다도 발견을 빨리해서 환경을 만들어야 되고, 그리고 본인 스스로 노 력해야 만이 끝까지 영재로 남을 수 있다. 그리 생각해요. 口 전통적으로 애기명창 또는 소년명창 이라는 말이 었는데요. 어렸을 때 유명해진 사람은 명언이 되기 어렵다고 단정 지을 수 있을지, 아니면 어렸을 때 명 창이 커서도 명창이 된다는 것인지 야 말에 대해서 펑가 부탁드렬게요. 거 참 어려운 이야기인데요. 거의가 어렸을 때는 어지간해도 예뻐 보이죠. 잘 못해도, 조금 좀 그러니깐 덜 그려져도 그냥 그 나이에 맞게 너무 잘해. 챈 영재 야. 천부적이야 그러잖아요. 그런데 크다가 보면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하니 깐 느슨해지기도 하고, 커서 남자는 또 변성기도 오고. 요즘은 여자도 변성기가 와요. 그래서 성악 같은 거 애기명창, 끝까지 남는 명창이 제가 알기로는 없는 거 같아요. 실제 애기명창이란 소리를 들었으면 어렸을 때 그 짐은 부모님이 책 임져야 되는 거잖아요? 부모님 책임 이전에 선생님 책임이죠. 근데 애기들이 언 제 계속 중학교 가고 고등학교 가고 이러다보면 학교 공부에 치중하고.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하는 일이 너무 많아서, 거기다가 연습량은 충분하게 하지 못해 서 끝까지 못 가는 수가 있고 또 변성기가 와서 그 시기를 잘 못 넘겨서 못 가 는 경우도 있고. 그러니까 제가 보는 견해는 그렇더라고요. 그래 또 누구는 있는 데 누구는 보이는 사람이 없어요. 무대에 세웠을 때 그야말로 남자라면 그 조상 현 씨라고, 현존하고 살아계시는 조상현 씨만큼 가는 사람 봤어요? 없죠. 아니 그렇게는 못 가더라도 10분의 1 이 된다던지 2가 된다던지, 그 주어지고 남겨지는 게 있어야 되는데 혹시 보셨어요? 그래서 제가 그랬잖아요. 타고난 영재는 있 지 몰라도 끝까지 가는 영재가 힘들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영재라는 게. 口 2-1. 전통예술에 영찌가 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그 누구네 누구네 하는 분이 계시잖아요. 각 장표마다. 해금은 누구누구, 판소린 누구누구, 가야금은 누구누구 하잖아요 제가 알기론 그분들이 선천적으로 타고났고 후천 적으로 노력했기 때문에 그분이 천부적이 되고 영재적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지금 생존 하고 계신 분들도 많잖아요? 그분들이 다 영재라고 생각해요 口 2-2. 지도해 보시면셔 전통예술영채라고 할 만한 아동을 보신 적 었으세요? 저는 초등학생도 안 가르치고. 아! 가르치긴 가르친다. 제가 볼 땐 천부적이다. 하면 되겠다. 그런데 한 길로 끝까지 갈 수 있을까? 그 생각을 하거든요? 지금 국 고에 다니는 혜람이가 지금 김혜람인가? 김혜란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고 1 인가? 혜람이가 있고요, 지금 국고에서 판소리 할 거에요 아마. 병창도 잘하죠. 저에게 병 창을 하고 있죠. 개 초등학교 때부터 배우러 왔거든요? 근데 재는 내가 하나 가르 쳐주변 물을 할 정도, 그러니깐 그 학교 공부도 잘하고, 또 가야금병창도 잘하고, 판소리도 빨리 받아들이고. 뭐든지 빨라요 제가 보면은. 그리고 내가 깜짝 놀렐 정

182 도로. 그 목소리로도 표현하고 악기로도 표현하고. 그러니깐 어른들보다 더 음을 제 대로 가지고 가거든요? 그래서 껴는 천부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거죠. 성음도? 성음은 제대로 가지고 다니고요. 깜짝 깜짝 놀라죠. 가르치면서 어머 얘 좀 봐, 어머 얘 좀 봐. 내 속으로 그렇게 하면서 가르치거든요? 그러고 껴가 오면 즐거워. 가르치는 시간이 너무 좋아서 순식간에 흘러가고, 껴도 기분 좋게 배우 고 가고. 절로 절로 내 업에서 칭찬이 나오고. 그런 것이 영재가 아닌가 싶더라 고. 초등학교 때부터. 음, 나는 가야금 병창을 가르쳤어요. 신경은 쓰게 되죠, 신 경을 더 쓰게 되죠. 신경을 쓰나마나 얘는 너무 잘해버리니까. 그러니깐 진도가 더 빨리 나간다는 것이죠. 원래는 뭐 순서배우고 장단배우고 그 다음에 강약 배 우고, 막 이러거든요? 근데 얘는 한꺼번에 다 할 수 있는 아이다 이거죠. 그런 거에 요, 그런 차이. 口 선생님께서 보시기에 예술가적 성장이 잘 되고 있는 펀인가요? 네. 성장이 잘 되고 있는데요, 좀 약간 너무 힘들어서? 변성기가 오지 않았나? 그런 생각도 가끔씩. 지나갈 거 같고. 그러고 있잖아요. 이게 본인이 해야 되요, 본 인이 하고자 해야 되. 가장 중요한 건 정성도 자기 싫으면 관두잖아요. 밥이든 음식 은 뒀다가도 먹지만. 내가 하기 싫은 특히 예술은 죽어도 안 되는 건데 얘는 게 악착같이 할려고 하는 그걸 보면 해야 되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口 2-3. 선생님째서는 전통예술영재 선발에 적젤한 연령은 언제라고 생각하세요? 영재를 뽑으려면 초등학교 때부터 해야 되나요? 학교 시스템이? 우리는 항상 그러잖아요. 조기 교육이 절실하다. 조기교육 조기교육 하는데, 제가 지금 써 먹는 것도 나이 들어서 배워서 써 먹는 게 아니거든요.10대.20대.30대 초반에 배운 거 지금 써 먹고 있잖아요. 그래서 공부 시기는 그때가 적절하지 않나 싶어요. 초등학교 몇 학년 정도가 적절할까요? 4.5학년부터? 4.5학년부터. 기악 같은 경우. 성악 같은 경우는? 성악은 뭐. 보통 성악은 그냥 성악도 그 때쯤 해야 무리가 안 가지 않나. 얼 도 그렇고, 애기의 옴인데,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해요. 유치원은 가벼운 음악들이 많잖아요. 거기서 부터 시작 되야 되지 않나 싶어요. 유치원에서부터 하면은 좋고. 영째 선발에 적절한 연령은 4.5학년 때부터 하 는 것이? 네. 그래야 무리가 안 가지 않을까* 2-4. 선생님께서는 어떤 것이 전통예술분야의 영재성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까 성음도 말씀하셨고 습득 능력도 말씀하셨는데, 생각나는 대로 다시 말씀 173 -

183 해 주세요. 첫 번째는 본인이 해야 된다고 생각. 애기 자신이 하고자 하는 그 마음이 있어 야 되는. 어찌됐던지 간에 엄마의 손에 이끌렸던 아빠의 손에 이끌렸던 시작을 했어요, 처음 접했어요. 접해보고 나면 어떤 그 경우는 얘는 별로 탐탁치 않은데 부모는 시키고자 하는 그런 경우도 있거든요? 근데 무엇보다도 접했을 때 본인 이 하고자 하는 그 마음이 앞섰을 때 이젠 교육이 될 거 같다. 가장 중요한 것, 그리고 그 다음에는 선생님, 세 번째 부모님의 서포트. 본인 스승님 잘 만나는 거, 그 다음에 부모님의 뒷바라지, 그 다음에 본인의 노력 연습량. 영재성을 이렇게 알아 볼 수 있을까요? 그런 결 가르쳐보면 알잖아. 가르쳐봐서 남보다 빠르고 음감이 빠르고, 그냥 해보면 그냥 노래나 악기나 음감이잖아요. 음감이 빠른 사람이 영재죠. 그 가사 에 암기력이랄지 오늘 배운 거 내일 잊어버리지 않고 그대로 연습해 온 그 경우, 그 실은 쉬운 거 아니거든요. 그리고 선생님이 의도한대로 목이나 악기가 그려지 는 거. 그러니깐 다른 사람하고 툴리게 빨리 그게 속도가 되요. 자기 결로 만드 계기가 있으면. 그러고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손끝에 묻어나는, 그 목소리에서 묻어나는 그 성음이 다른 사람이 있어요. 그리고 순서를 빨리 암기하고 틀려요. 뭔가 틀려. 우리가 보는 느낌이. 口 2-5. 전통예술분야의 영째성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음감, 암기력, 성음, 음을 그려내는 능력 이라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이것은 전통예술분야 전반의 영찌 성과 선생념 전공의 영째성에 다 포함 되는 건가요? 엿보다도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의욕. 그렇죠. 口 2-6. 선생님께서는 해당전공의 영째를 알아볼 때 무엇을 시켜보세요? 노래를 시켜보세요? 아니면 춤을? 나한테는 악기하고 노래를 배우러 왔으니깐 악기하고 노래를 시켜요. 이렇게 보면 우리는 그냥 보면 알죠. 얘를 시켜야 되겠다, 안 시켜야 되겠다. 왜냐면 시 키면 알죠. 내가 먼저 아파 버리니깐. 아파 버리면 알잖아요. 그러니깐 뭐냐변 들 어보면 알아요. 뭔가가 표현하려 이거다 하고 지칭은 못 하고, 내가 그래도 대 충 이렇게 짚어서 이야기 해주잖아요. 그러니깐 이게 가야금 같은 경우, 같은 소 리로 들려도 이게 뜯는 소리도 틀려요. 그게 저는 그 여음이랄지, 벌써 얘는 절 실해서 하는 애 하고 그냥 대충해서 학교나 가고 싶고 이런 애 하고 툴리다니까. 보통 나한테는 내가 초보자를 안 받으니까. 초보자 못 가르치죠 이 나이에. 어린 애들은 배웠던 애들이 했던 애들이 온다고. 오면은 주로 뭐 배웠니? 연주해봐 라 너 무슨 노래 배웠어? 한 번 불러봐라 이러면 잠깐만 들어도 그냥 첫 시 작부터 알죠 우리는. 그래서 언제 너는 누구한테 가라 너는 어떤 선생님한테 가라 이것까지 나는 가르쳐주고. 내가 가르치는 게 아니라. 김혜랍 학생이 선생님께 처음 왔을 때, 노래? 그 전에 배웠였던 아이였나요? 선생님께선 어떤 것을 시켜보셨냐요?

184 가야금병창. 내 제자한테 배웠지. 난 초보자는 못 가르치니깐. 口 2-7. 영찌를 선발할 때 중요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뛰어난 예술 성 취능력, 연습 및 예술가적 설현에 대한 끈기, 열정, 예술가로서의 책임감과 리 더쉽, 공연 현장에서의 순발력 등 이런 것들 외에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 그게 다에요. 거의 다 배우는데 뭐. 제가 아까 말해줬잖아요. 외모가 아름 다우면 무대로, 외모가 섭섭하면 교육자로. 시청각도 맞아야 되니깐. 口 2-8. 영재 선발 시 가장 중요한 것은 방금 말씀해 주신 것 다 인가요? 다. 종합예술인 이니깐. 시청각도 맞아야 되니까. 口 2-9. 영재틀을 기교가 아년 창의력과 동기, 잠재력 같은 걸로 알아볼 수 있는 방볍은 무엇이 있을까요? 시켜보면 알죠. 그럼. 들어보면 아는데. 口 영재 발굴에서 제안하질 수 었는 좋은 방법이 았으신가요? 만약에 초등학교가 있잖아요. 요즘 강사풀제가 있어서 초등학교에서 자주 가르 친다면서요? 그러면 강사들이 가서 가르쳐줬을 거 아니에요? 초등학교 한 반에 는 20명이랄지, 15명이랄지, 30 l 정. 거기 합창을 가르쳐도 특출나게 잘하는 애들이 있어요. 거기서 뽑아야 되겠죠. 지금 그래서 강사풀제가 좋은 거죠. 그렇지 않으 면 우리가 만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거를 선발할 수 있느냐고, 애들을 선발할 수 있느냐고. 그래서 그렇지 않으면 종합예술학교 32)에서 콘테스트 (contest)를 하 던지, 학교 자체 내에서 콩쿨을 만들어서 초등학교에서부터 중 고등학교까지랄 지 이렇게 각 분야로 해서 거기 그렇게 치러보면 가장 간단하게 나와서 찾을 수 있잖아요. 그런 방법도 있어요 실은. 그렇지 않으면 접하지 못하죠, 누가 배우러 오기 전에는 접하지 못하죠. 저 같은 경우는 또 학생을 안 받으니깐, 애기 받지 않으니깐. 고등학생도 저는 잘 안 받아요. 그렇지 않고 애기들의 경우는 내 가 잘 모르죠. 그래서 내가 정수년 교수 33)께서 연락이 왔길래 나 자식도 안 놔 보고, 애기도 안 가르쳐 봤는데 그 말하고 내가 막 웃었다니깐. 그래서 다른 분 추천해 드리고 그랬는데 다른 분들 시간이 안 맞다 그래서. 나는 교육을 해도 뭐 대학이나 대학 간 애들만 가르쳤지, 애기들은 안 가르쳐 봐가지고, 口 전통예술영째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전문가들을 어떻게 선정하는 것이 가장 학생을 공정하고 정확하게 뽑을 수 었을까요? 학계 분, 잘 아실 거 아니에요. 사적으로, 물론 인간이다 보니깐 나는 이 교수 하고, 나는 저 교수하고 친해. 이러지 마시고. 기악은 각 장르마다 있어요. 거기 에서 최고가는 선생님들 모시고 하면 실수가 없지. 32)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지칭함. 33)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및 예술실기연수과정(예비학교) 주임교수. (기록자 주)

185 전문가 선생님들이라 해도, 파벌이 었고 계파가 었어서 공정한 심사가 조금 어려울 수. 그래서 심사위원을 좀 많이 모시고. 그 계통에서 누구다 누구다, 그러니깐 성 금련류가 있을 거고 뭐 죽파류가 있고 누구도 있고 누구도 있고. 그 죽파류 중에 서도 제일 잘하는 분, 누군지 알고 계세요. 학교에 계신 선생님들이 누가 제일 잘한다는 거, 다 실기인 이기 때문에. 그렇게 모시면 되고. 성악은 성악파트에 제 일 잘 하는 분들, 그냥 누군지 딱 나와 있잖아요. 그분들을 모셔다 놓으면 한 두 분만 모실게 아니라 심사 여러 분을 모셔야 되세요. 선생님들끼리 알기 때문에. 열랫 분씩. 열세 분씩 열다섯 분씩 모셔다 놓으면요, 절대 마음대로 안 됩니다. 그럼요. 그렇게 하시면 간단해요. 口 3-1. 선생닝째서는 어렸을 척에 함양과 남원에서 자랐다고 하셨는데요. 몇 살 에 남원으로 이사하셨냐요?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 이사한 것 같은데 확실히 정확히 생각이 안 나요. 저학년 때 아니면 고학년 때, 그 정도만이라도. 고학년 때 저학년 땐가? 고학년 때 인거 같애. 내가 있잖아요, 그 당시에는 몽 이 하두 약해서 너무 많이 아파서 그니까 십대 때 거의 많이 아왔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나를 불어서 키웠다고 그러지. 어머니 정성으로. 몇 번씩 날라 갈라고 그랬다고 우리 딸이. 거의 별로 내 건강으로서 살지는 못한 거고 어머니 정성으 로 이렇게 큰 거 같애요. 커서도 맨날 병치레 많이 하더라구. 口 3-2(1-2). 선생님이 어렸을 척에 동네 할머니들께서 노래 한번 해라" 하면 서슴없이 노래 부르고, 춤 한번 쳐봐라" 하면 춤 췄던 게 몇 살인가요? 하여튼 내 기억에는 없는데, 하여튼 그래서 기억에 있는 것은 뭐 그냥 한 여닮 살 아홉 살 이 때. 그 때도 그렇게 하고 또 그 전에도. 어렴풋이 기억은 나요. 口 3-3(1-3-G)). 선생님이 어렸을 적에 강문숙 선생님이 부른 노래를 어지간하 게 외워서 목칩을 혼자 두들기며 신나게 노래 불렀던 게 몇 살인가요? 그게 <춘향가> 였어, 지금 생각해 보니 춘향가. 춘향가를 몇 세 때 부르셨는지? 십대 때에요. 함양에서 학교 다니다가 언니한테 왔다가 가잖아요. 그러니 인제 공부하는 거 듣고. 그 때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인거죠? 네. 口 3-4(1-3-G)). 선생님이 어렸을 적에 굿 형태의 연행을 보시고 난 후, 집에 오셔서 혼자 방안에서 춤도 추고 흉내도 낸 게 몇 살인가요?

186 거의 다는 그런 짓을 십대 때 다 했어요 거의 내가 여닮 아흡 뭐 이럴 때. 열, 열 살, 열한 살, 열 둘, 열 셋. 하여튼 초등학교에서는 고학년이 되겠네요 그런 정도. 口 ). 선생님이 어렸을 적에 아버님의 손을 잡고 명인 명창들의 소리 를 들으러 고을고을 찾아 다니셨다고 하셨는데요. 언재부터 어디 어디로 가셔 서 들으셨나요? 지금 그결 기억한다면 내가 너무 괜찮게? 그리고 함양이나 남원에서 할 때 예 전에는 극장이라는 게 별로 없잖아요. 영화도 뭐 천 포장 쳐놓고 할 땐데. 그래 도 공연단들이 들어오면 반드시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가서 보여주셨어요. 그니 깐 그렇죠, 노천극장이라고 해야 되겠죠. 지금 생각하면 그런 거죠. 아주 어렸을 때, 세 네 살 아렬 때 부터? 세 네 살 정도의 기억은 할 수가 없는 거죠. 그 때부터 인제 듣는 거는 좋아했 데요, 아버지 어머니하고 항상. 그러다 뭐 누가 뭐 농사지을 때도 어디를 가나, 안 가나 이렇게 술 드시고 뭐 노랫가락 나오면 애기가 가만히 있지 않고, 평소에 는 말이 없고 그런데 무슨 음악소리 나오면 그냥 몸도 흔들고 그게 느낌을 많이 가졌대는 거죠. 口 ). 선생님께서 학교 다니질 때 학예회 때, 항상 노래와 무용을 하셨 다고 하셨는데요, 이때는 무용을 배우기 전인가요? 아니죠, 학교에서 배우죠. 학교에서 배웠죠. 내가 학예회 때 춤춘 거는 의상도 따로 맞춰줬었고 집에서 옷도 해주고 그거는 기억나요. 애들아 오너라 달 따러 가자 우리 윷 노래도 있었잖아요. 그게 그 노래에 맞춰서 춤을 췄는데, 의상도 모자도 절반은 흰색 절반의 검정색 스카프에 모자 씌워서 이런 기억은 나요.2-3학년 때 했어요. 함양에서. 그래서 언제 풍금소리도 귀에 지금 쟁쟁하고. 무용을 하신 거연 어떤 건지 기억냐세요? 학교에서 하는 거야 인제 현대무용이죠. 그 당시만 해도 그렇죠. 그거는 노래 구경 같이 하니까. 본격적으로 무용을 배우시기 이전에 하신 거네요? 그렇죠. 3-7(1-3-0)). 선생님의 재능을 알아보신 김영운 선생닝을 몇 살에 만나셨나요? 김영운 선생님이 내가 십 대 때 배웠으니까 다 십대 때 에요. 내가 지금 풀어 먹는 것은 십대 이십대 때 했던 거 삼십대 초반에 핸 걸 풀어먹는 거지. 그 이 에 배워갔고 풀어먹고 기억 한다라는 것은 참 힘들거든요? 지금도 배우는 건 순 발력이 있어서 순식간에 배워요. 순식간에 외우고, 돌아서서 일주일 지나면 일주 일도 못 가지.2-3 일 지나면 잊어버려. 그래서 우리가 우리 육체가 스포츠가 몸 으로 익혔으니까 몇 년을 묵혀놨다가 해도 바론데, 공부를 할지 외워야 할지 이 런 거는 머리하고 가슴으로 했는데두 잠깐 돌아보지 않으면 잊어버리잖아요. 나

187 이 먹어 가면 갈수록 더 잊어먹고, 판이 굉장히 빨라지잖아요. 이게 그런 거죠. 김영운 선생념하고 언제 만나신건지? 십대 초. 함양에서 계셨을 때? 그렇지. 학교 들어가기도 전에 선생님을 만났고,.:1. 후에도 만났고, 학교 가서 도 만났고. 그랬어. 왜냐면 나는 그래요, 나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선생님 이라면 조기교육 하라고 그럴걸요? 어렸을 때 배우면 우리가 절대 잊어버리지 않고, 어렸을 때 본 거는 잊어버리지를 않잖아요. 그니까 내가 생각할 때 25세 이전에 배운 것은 잊어버리라고 해도 안 잊어버려. 설사 내가 써먹지 않고 생각 지 않았기 때문에 전~혀 생각도 안했다가 한 40 대 이럴 때, 내가 좀 필요해서 고걸 기억을 찾을래도 못 찾아요. 근데 어느 날 요즘에 내가 눈을 뜨면 내가 어 렸을 때 어디서 뭘 했는데 생각지도 않든 가사가 갑자기 딱 내 뇌리에 스치면서 알려주는 거야. 이렇게 이런 거가 틀린 거 같애. 그래서 그것은 곧 어렸을 때부 터 했기 때매 내 밑에 잠재의식적으로 침전 되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나한대 읽혀주고 알려주는 거 같은. 요즘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요. 그래서 분명히 어떠한 장르가 됐던지 간에 자기가 일평생 해야 될 그런 장르라면 조기교육부터 해야 되요. 어렸을 때부터 해야 되지 않나 싶어요. 김영운 선생님한테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법구. 초등학교 들어가서도 법구. 볍기 전에도 혹시 학습을? 학습은 하지 않았죠. 초등학교 들어오고 나서 했죠. 조기 교육이 이루어지려면 몇 살 때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 유치원 때부터 해도 된다 라고 생각을 해요. 노래를 못 하지만 또 악기 못 다루지만 우리 쪽으로 이야기 한다면 춤을 못 추지만, 자꾸 보여주고 음악을 려주고 하는 모습을 보면 자기도 모르는 새에 우리가 절반을 듣고 절반을 보 면 공부가 100% 다. 근데 많이 보고 듣는 사람이 하는 것 하고 전혀 가사도 모르 고 생각지도 못한 곡을 갑자기 하라고 그러면 힘든데 평소 때 많이 들었던 곡은 하라고 그러면 그냥 스스로 가게 되잖아요 힘 안 들이고. 그런 원리라고 생각을 해요. 그리고 어렸을 때는 단순하잖아요? 딱 하나 가르쳐주변 고 하나만 생각하 잖아요, 잡생각을 하지를 않잖아요 정신이 맑기 때문에. 그래서 아마 조기 교육 운운하지 않나 싶고. 口 3-8(1-5). 선생념과 강문숙 선생념께서는 스승님을 모시고 본격적으로 학습 하게 된 게 초등학교 들어가고서 그 후부터 인가요? 그렇죠. 초등학교 들어가고 바로?

188 그 이전에는 인제 뭐 아버님 때문에 많이 듣고 보고 했는데. 그래서 그거 보고 하면서 예전에는 우리 시대하고 또 틀리잖아요 지금 여러분 시대하고는. 내가 때만 해도 즐길 거리가 별로 없었어요. 뭐 TV가 있어요 뭐가 있어요 아무것도 없죠. 래디오에서 나무 판자집 같이 생긴 그런 라디오 그게 최고였어요. 그런 매 스컴이래는 게 그 당시에 신문에도 뻔한거고, 놀이가 그 당시에 윷놀이랄지 공차 기 뭐 자치기 나무때기 짤라 가지고 하는 거 그런 놀이들이었죠. 고무줄 여자들 은 뭐 땅에 금 그어놓고 사방치기하고 놀이가 별로 없었잖아요 우리시대 때는, 그런 것들 밖에 없었기 때문에 한 가지에 몰입할 수는 있었지 않았나. 지금 할게 너무. 지금 애기들은 정신적으로는 너~무 피곤하고, 이것은 애기가 정신적으로 여유를 가질 시간이 없어 불쌍해 죽겠어. 새벽같이 학교 갔다가 오면 어디 보내 고 어디 보내고 무슨 뭐 속셈 영어 뭐. 이것은 애기가 아니라 무슨 기계도 아니 고 말이에요. 어린애들 업에서 얘, 오늘 어떻게 지냈니? 즐겁지 않았니?" 그러면 피곤해 죽겠어 이러거든? 가슴 아퍼, 가슴 아퍼. 그렇다고 그래서 그 인생이 대학 졸업을 했을 때 보장 되 있나? 사회적으로 보장 되 있는 졸업이 아니잖아 요. 지금 그런 거 보변 인간이 너무 혹사하잖아. 내가 학교 다닐 때는 허리 침에 다 책 보다리 하나 메고 학교 끝나면 메뚜기도 잡으러 가고 친구하고 놀기도 하 고 뱃물에 들어가서 벽도 감고 그야 말로 그 저녁노을 질 때 강가에서 억새 이 우거져 있는데 거기서 혼자서 느끼면서 걷고 가을바람도 느끼고 그 저녁노을 도 느끼고 쓰르라미 우는 소리도 많이 느끼고 기러기 날라 가는 것도 많이 보고 그런 것들이 지금 내가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거든요. 동네 애들하고 팬티 만 입고 저리 뛰어가서 역도 감고 말이에요. 이런 거. 지금 그런 거 못 하잖아요. 음악활동을 하면서 자연환경에 많이 노출 되면서 노는 것도 상당한 최고죠. 최고죠 최고죠. 口 3-9(1-6). 강문숙 선생님께 가야금 산조를 처음 배운 것이 언제인가요? 십대 라고 말씀을 해주셨는데, 십대 초반인가요? 후반인가요? 그렇죠, 십대 초반이죠. 모든 일은 십대 초반이에요. 초등학교 고학년 때 정도? 아니야 아니야. 초등학교 고학년 때 아니었어요. 저학년 때? 저학년 때. 저학년 1-2학년 때였나요? 네. 口 3-1O(1-3-(D). 김소희 선생님께 학습을 받기 위해 서울로 올라오신 게 몇 살 인가요? 그 때가 열 여닮, 열 아흡, 스물 이 때 쯤? 고등학교 정도 때 그 때 쯤 된 거

189 지, 김소희 선생님은 정말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훌륭하신 분이야. 다 그래. 다 훌 륭해. 자존심도 있고 자신 관리도 철저하게 하고, 정서적으로도 풍부하신 양반이 야, 너무 멋쟁이 멋쟁이. 口 스승님께서 니 목소려에 안개가 서려었어" 라는 말을 해주 셨다고 하셨는데요, ò1 말을 무슨 뜻인가요? 그니까 우리가 뭐 강정옥이 김정옥이 홍정옥이 이렇게 있잖아요. 많은 사람들 이 있는데 우리가 전화 수화기 목소리만 듣고 얘, 누군데 오랜만에 전화가 와 도 그와 같이 남이 흉내 못 내는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향기하고 그 사람만 이 가지고 있는 목소리의 그 향기가 있어요. 그래서 인제 선생님이 절 이쁘게 보 셨는지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노래라는 게 높은음도 있고 중간음도 있고 저음도 있고 그러잖아요, 상 중 하. 선생님 표현 하실 때 그렇게 하셔. 상 중 하가 너는 골고루 갖추고 있으니 노래를 하면 참 좋을 거 같다. 판소리를 하면 그래 서 선생님이 절 이뻐 하셨죠. 선생님 댁에서 살기도 하고. 그랬는데 인제 나는 원래 어렬 때부터 건강을 타고나지 못한 사람이었어요. 항상 지금 후천적으로 내 가 노력을 하거든요? 후천적으로 노력을 많이 해서 지금 이 정도 인거에요. 그래 서 뭘 하고 싶어두 그렇게 욕심을 내지 않았어요. 불같은 그런 의욕 갖고 해야 되는데 불같은 의욕 갖고 연습하다보면 바로 아파서 많이도 연습 못 하게 되고 그런 상황들이 참 나한테는 많았어요. 그래서 항상 그 내가 폼이 부단히 가도록 한다. 라는 것은 좀 무리가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고. 근데 언제 어디 사람이 연습하고 뭐 공부하다보면 그렇게 안 되잖아요. 그래서 인제 한 7년 동안 병원생활도 했죠. 아무것도 못 하고. 한참 연습하고 노래 부르고 그럴 때는 몽이 전신이 아프잖아. 그냥 가야금 줄도 나는 적당히 한 게 아니라 남자 선생님도 눌 러 보고도 야, 이거는 좀 강하다" 할 정도로. 그렇게 많이 가야금도 많이 타고, 노래도 많이 불르고 이것저것 다 해봤는데 이게 결국은 내가 생각할 땐 그래요. 지금도 연습을 하지 않는다면 내 양심상 허락지 않고, 내 귀에 들리는 음도 내 귀에 맞지 않고, 그래서 항상 연습되지 않은 공연스케줄이 와도 하지 않거든요. 예를 들어 조건 따지지 않고 그냥 안 한다고 그래요. 직장에서 하는 공연은 매 일 인제 나와서 연습을 하게 되니까. 회의가 없고 모임이 없고 이러면 거의 아시 다시피 내 책상 있는 사무실은 저 건너 방에 큰 방이 있고 그 외의 이 적은 방 은 내가 연습하는 방이거든요. 저는 거의 이 방에서 생활을 하죠, 연습하는 방에 서. 그렇게 연습을 해두 내 맘에 쪽 든다고 생각하는 그런 공연 횟수가 그렇게 많지 않으니까. 그래서 항상 고민하면서 하는 거죠 만족하지 못하니까. 또 뭐 연 습하겠지만 어쨌던지 간에 우리가 공부를 한다면 나이 들어서 하는 것 보다 어 렬 때부터 하는 것이 좋지 않나 싶어요. 그것이 훨씬 더 시간낭비하지 않는 일이 라고 생각을 해요. 가야금은 곧 내 인생이니까, 내가 하는 장르가 내 인생이기 때문에. 그러고 한참 연습하고 공부하고 할 때는 놀이라는 걸 난 몰랐어요. 친구 고 뭐고 안중에도 없었으니까. 그러니깐 내 말이 몸이 휘지도록 연습 해본 적 있 냐고 물어봐요. 몽이 휘어지도록, 말도 안 되게 노래를 불러본 적이 있느냐. 어디 가다가 길을 몰라서 지나가는 아저씨를 불러야 되요. 얼루 가야 되냐고. 아

190 저씨도 안 되서 말을 못 물어봐서 그래본 경험도 있고. 노래도 너무 많이 불르 고 못 먹고, 악기 너무 많이 타고 있는 대로 조여서 몇 번씩 몇 바탕씩 타고 하 루 종일 불르고. 저녁에 잘라면 이렇게 누워도 가슴이 결리고 아프고 저렇게 돌 아누워도 아프고. 옹 몽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고 이런 경험을 해 봤냐고 내 가 묻죠. 공부하는 사람들한테는 인제 설기하는 사람들한테. 그런 경우가 글쩨요, 가야금에다 너를 걸어라 이런 말을 곧잘 해요. 나는 그랬어 가야금, 너 아니면 난 없어. 난 이랬던 사람이었거든? 근데 지금은 할 게 너무 많아. 이렇게도 저렇 게도 하는 게 너무 많아서 그런 소리는 감히 하지 않죠. 그러나 언제 남는 시간 에 TV보는 시간에 연습하라고 그러죠. 왜냐면 우리는 다~ 필요 없어. 먹고 잠 자는 시간 빼 놓고 불르고 연주하고 그래야 되 그래야만이 이뤄지지 어느 정도 근간이라도 그릴 수 있지. 그래서 내가 뭐가 이렇게 어렵냐. 그래서 난 누가 이 거 한다고 그러면 하십쇼 소리가 빨리 안 나와. 口 3-12(1-3-(1)). 강문숙 선생념은 언제, 왜 음악을 시작하셨나요? 글쩨. 나 그결 언니한테 불어보지 않았으니까. 우리 언니도 자기가 좋아서 했다고 그래. 강문숙 선생념도 초등학교 들어가시기 전부터 시작을 하셨나요? 언니도 그랬죠. 일찍 했지. 들어가시기 전? 응. 3-13(1-6). 강운숙 선생님은 여성음악단 단원이셨나요? 여성국극단. 우리 언니는 그 사물을 참 잘했어요. 사물을 참 잘해서 남원에는 옛날에 유명한 여성농악단 이라는 게 있었어요. 거기에서 다 배웠죠 언니가. 거 기서 장구두, 팽매기두, 소고두, 정말 다 잘하죠 언니가. 여성농악단에 들어가셔서 단원으로 활동하시면서 배우신거에요? 잠깐 했죠. 거기서 다 배우게 된 거죠. 옛날에는 정말로 놀이가 없어서 뭐 하 나 배우면 거기에 섬취하고, 거기서 빠져들고. 자기가 좋아하면 충분히 공부를 할 수가 있었죠. 그러고 실력 있는 선생님들도 옛날에는 많았었고. 혹시 명청은 정확하게 아세요? 어렴풋이 기억나세요? 기억나지 않아요. 口 3-14(1-6). 강문숙 선생님은 언제 작고하셨나요? 지금 한 4년 챈 가봐. 언니는 일찍 시집을 가서 활동을 안 하다가, 자식 다 키 워놓고 하고 싶으면 자식 다 키워놓고 내가 하라고 그랬거든? 언제 딸 하나 있 는 외딸 다 대학 졸엽하고 난 다음에, 다시 판소리를 해서 남원명창대회 때 대통 령상까지 받고 KBS 에서두 다 좋은 상 받고 해가지고 활동을 막 할라고 그러는 데 암으로 쓰러져서 가버렸어. 상 다 받아놓고 막 할려고 그러는데. 내가 너무 아깝지. 내가 활동할 때 모니터 해주고 악기를 하면 이것은 이렇게 한다는 게

191 좋지 않을까?" 또 연주 가야금 산조를 이렇게 조금 시김성 있게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의상서부터 먹는 것도 다. 연주하는 것도 다. 뒤에서 보살펴 줬는데 보 살펴 준 사람은 가버리고. 3-15(1-6). 강길여 선생님은 전공이 어떻게 되시나요? 판소리아신가요? 판소리죠. 판소리 하는데 직장에서는 가야금병장으로 있죠. 때로 큰 공연 할 때는 판소리도 하고 민요도 하고 다 하죠. 두루두루. 원래 국립국악원이라는 데 가 시험 볼라면 1 인 3 역을 해야 되잖아요? 판소리를 한대거나, 산조를 탈 줄 안 대거나, 또 가야금병창을 할 줄 안대거나. 1 인 3 역은 해야 여길 들어오죠. 국립국 악원이라는 데가 제일 대단한 곳이잖아요. 口 3-16(1-10-CD). 선생님째서는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하셨을 때 눈 뜨면 연습을 시 작해서 잠자기 전까지 하셨다고 하셨는데요 대략 몇 시에 연습을 시작하셨고, 평균 총 몇 시간을 연습하신건가요? 또 몇 년간 이런 생활을 하셨나요? 어렸을 때는 그렇게 심취하게 안 하죠. 보통 그렇게 많이 안 해요 어렸을 때 또 그렇게 하라고 내버려두시지도 않고 부모님이. 근데 인제 정말 내가 이걸 해야 되겠다. 이것은 나의 길이다. 생각했을 때는 언제 그 때는 우리가 보통 악 기 통을 매고 절에 가잖아요. 절에 가면 새벽예불 3 시, 오후예불 6시 7 시. 그럼 뭐시기 모신 외에는 밥 좀 먹고 노렐 부르던지 악기를 타든지. 그러고 직장에 와서는 가장 먼저 출근해서 연습하다가 하루 일과 끝나고 다 퇴근하고 없어두, 수위아저씨가 어쩔 때는 장충동에 있을 때만 해두 문 닫을께요 할 때까지 연 습하고. 어딜 가지를 않았어. 일로 이사 와서도 마찬가지야. 일로 와서도 서초동 에서. 그니까 내가 연습 많이 하는 사람으로 아마 유명할 꺼에요. 그게 왜 그러 냐면 내가 나를 못 믿으니까. 결국 해 갖고 무대에 올라가. 그니까 정성 바친 만 온다구, 관객이 먼저 알잖아. 거짓말을 할 수가 없어. 절에서의 하루 일과를 대략 말씀해 주세요. 하루의 일과는 절에서의 일과는 별로 없어. 그냥 자요, 저녁 6시나 7시 예불 드리면 그 때부터 자니 3시에 일어나도 무리는 아니죠. 일찍 자니까요. 절에서 무조건 9시 되면 취침해야 되요.10 시, 11 시, 12 시, 1 시, 2 시, 3 시, 6시간. 그러고 낮에 공부하다가 너무 힘들면 개울가에, 여름 같은 때에는 개울가에 바위가 있잖 아. 햇볕에 데워졌잖아. 거기서 자기도 하고 그러지. 그런 그 시절이 있었어요. 새벽 예불 3 시, 끝나면 뭐 한 3시 반이나 되지. 그래서 언제 스님들도 잠깐 들어 가서 취침하셔요. 주무시고 나와서 인제 아침공양하시고 일하고 그러시지. 여름 에는 우리가 빨리 날이 밝지만 겨울에는 7 시, 8시 다 되야 해가 뜨잖아. 언제 그 런 겨울철에는 방안에서 연습하고 따뜻할 때는 밖에서 공부하고 그랬지. 3시 반부터? 아첨부터 연습을 시작해서? 예불 끝나고 나면 인제 좀 자야지. 잠 좀 자고 먼동이 좀 터야 나가고. 인제 악기 통 매고 개울가로 간다던지 이렇게 해서 새벽에 하면 정신도 맑고 선선하 기도 하고. 여름에 산공부 들어갔을 때

192 거의 저녁 6시나 9시정도까지는 계속 연습을 하신 거네요? 그렇지. 하루에 대략 몇 시간 정도 연습하신? 절에 안 가고 집에서 연습만 해도 산조 한바탕 타면 오십 몇 분이 거의 한 시 간 되. 그거 5 번 타면 5시간 아니유? 하루에. 그것만 타나요? 더 타기도 할 때도 있고 노래할 때도 있고 이렇죠. 그 때 선생님의 연습량이 대략 어느 정도 되는지를 보통 그 정도야. 절에 들어가서는 그냥 하루 종일 하는 거고, 밥 먹고 잠자는 시간 빼 놓고. 밤이고 낮이고 해. 잠자는 시간 빼 놓고. 그 정도야. 몇 시간이라 고 재 보지도 않았고. 그렇게 하는 거. 절에 계셨을 때 연습을 하루 종일 하셨잖아요. 그렴 이 생활을 몇 년 청도 하 셨나요? 산공부 꽤 많이 들어간 펀이지 내가. 애 데리고 들어가기도 하고. 口 3-17(1-5). 선생님께서는 무용, 악기, 노래, 장단 등 다방면으로 학습을 하셔 서 션생님이 하시는 장르에 많은 보탬이 된다고 하셨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떻 게 도움이 되는지 말씀 해 주세요. 판소리를 할 때도 장단 딱딱 맞춰서 하는 거. 장단 놓고 뛰어서 건너서 내 맘 대로 왔다 갔다 하고. 악기도 장단에 무섭지가 않아. 어느 누구가 쳐도. 장단을 훤히 내 뇌리에서 읽고 있으니까. 내 마음대로 놀다가 장단을 던져놓고, 내 마음 대로 놀다가 딱 장단하고 만나는 이렇게 생긴 거지. 그니까 장단에 얽매이지 않 고 그런 것들이. 口 3-18(l-12-@). 영째를 몇 살에 발견하는 것이 좋나요? 어떻게 발견해야 할까요? 그래서 말했잖아. 유치원부터 라고. 엄마 아빠 부르면서 유치원 들어 가면은 우리 가 보통 유치원에 5-6살 되면 들어가나요? 그때 부터죠. 얼마나 그때 이쁜짓 많이 하고 영리하고. 한 번만 가르켜 주변 안 잊어버리고 이러는데. 그니까 그 때 표현이 안 되면 들려주고 보여주기라도 해야지. 그래서 뭐 국공립 국악중학교, 지금은 국립 이 됐지만은 거기도 유치원부터 시작 했잖아요 국악유치원. 그게 그거에요. 영재들을 어떻게 발견하는 게 좋을까요? 아니 그거야 유치원 들어와서 다 테스트 하지 않아요? 테스트 하지. 아가야 너 뭐 좋아해 뭐 좋아해?" 다 물어서 테스트 할 껄? 물어서 껴네 시켜보면 알거 든. 당장 동요 하나만 가르쳐 봐도 툴리잖아요. 빨리 받아들이고. 거기에 우리 애 보면 끼가 있는 애들 있잖아요. 그냥 한 마디로 쉽게 말하은 끼라 그래. 같은 노래두 달리 부르는 애들이 있어요. 한 눈에 보이지. 아는 사람들은 애기 때 보 면 한 눈에 보이잖어

193 끼가 좋고, 습득력이 좋고, 표현력이 좋은 애들? 그럼. 표현력이 당장에 툴리지.5명이 있으면 5 명 다 툴리잖아요. 그 중에 빨리 발견이 되는 거죠. 처음부터 얘가 영재일 것이라고 알 수는 없는 거죠. 어떻게 발견하는 게 좋을까요? 그래서 그 무용에서 뽑는다 그러은 테스트 할 건데? 음악이랄지 악기, 뭐 이런 노래랄지 성악이랄지. 거? 그러고 또 뭐 일반적으로 었는 애들을 뽑을 경우에? 뽑을 경우에도 우리가 어차피 예 자가 붙은 거잖아요 지금. 예술을 시킬려고 하는 거잖아요. 그 영재라는 게 국한되어있지 않아요? 전반적인 영재 말하는 거 예요? 나는 내 파트에 대해서만 말씀드리는 거예요. 만약에 전반적으로 해서 봤을 경우, 어떻게 보면 좋을까요? 그건 인제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예능 쪽만 내가 생각한 거죠. 틀려요. 디 3-19(2-2-@). 김혜람 학생이 선생님께 배우러 온 것이 초등학교 몇 학년 때 인가요? 기억 안 나요. 고학년 때? 나 특히 기억력이 없어요. 백 년 제자들이 와서 뭘 물어보지도 않고 몇 살인지 도 안 물어보고. 공부하라고 그냥 가르치고. 제가 언제 왔지? 이거는 체크해 본 적도 없어. 그러고 너무 많이 왔다리 갔다리 하니까, 내가 오죽하면 그러잖아. 대 학교 입시 채점하러 갔는데 옆에서 있는 사람이 자꾸 날 쳐다보고 인사를 해서 그 냥 아유 안녕하세요 인사는 했는데 채점 끝나고 나서 선생님 제가 어느 학교에 그 때 저 몇 학년 몇 누구 라고 하는데 하여튼 기억 못 해버리잖아. 그니까 어렸 을 때 저 좀 너무 젊었을 때부터 많은 일도 하고 많은 데도 돌아다니고 하다 보니 까 난 그 사람이 그 사람이고 이 사람인가 인제 요즘은 그래요. 누가 인사를 해도 일단 인사는 반갑게 받지만 길게 안 가지. 그러고 인자 참 무심한 선생인지는 르지만 제자가 많아서 제자들이 무슨 이야기해도 한 번을 내가 물어본 적이 없어. 지네가 이야기해야 내가 듣지, 또 들으면 이쪽 귀로 듣고 일로 흘러가. 교육은 언제부터? 그건 간단해, 간단해. 유치원 때부터 해. 口 3-20(2-6). 가야금의 경우, 절설해서 음악을 하는 아이 와 대충해서 학교를 가려고 하는 아이 의 가야금 뜯는 소려가 다르다고 하셨는데요. 이것을 자세 히 예를 들어 설명해 주세요. 끼가 있는 애들에 뜯는 악기 소리는 전문가만이 알아들어요. 말로 표현이 안돼

194 디 3-21(2-9). 영재들의 창의력과 동기, 잠재력을 그 아이의 연주를 듣고 알 수 있다고 하셨는데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노래 한 곡을 가르쳐 주변 뭐 그냥 동요를 하나 가르쳐 준다. 그니까 쉽게 하 는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이거를 가르쳐도 느낌을 달리 가지고 부르 는 사람이 있어요. 그 노래에 담겨 있는 그 표현력을 잘 표현하는 사람이 있어. 껴는 타고 난거지 끼가.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했는데 푸른 하늘 은 하수 느낌이 다 틀려요. 그걸 빨리빨리 우리는 잡아내는 귀가 있어요 보는 도 있고. 그 내가 말하잖아. 지금 표현을 이렇게 밖에 못 하겠는 거야 나는. 그니 까 나는 알아. 달러. 그 부르는 느낌이 달러 벌써. 그래서 우리가 가끔 내 어제 저녁에는 어디를 갔나? 손님 모시고 저녁을 먹는데 나는 TV가 안 보이고 내 맞 은편에 앉은 손님은 TV를 계속 보고 있는 거야. 하도 손님이 그 TV를 보기에 나도 한번 돌아서 봤어. 무슨 고등학생인가 중학생인가는 모르겠어요. 여자애가 나와서 색소폰을 기가 맥히게 불어. 그 나이에 그렇게 불 수 가 없어 그렇게 불 다가 갑자기 색소폰 집어 치우고 또 노래를 불러요. 근데 그냥 프로가 부르는 거 이상으로 그 나이에 말이에요. 그게 타고난 낀 거 같애. 특별히 찾을게 아니라 인제 시켜 보은 동올 시켜 봐도 알고. 간단하게 시켜 보은 눈에 들어오고 귀에 잡히고 이러거든요? 아이의 연주나 소리를 들어봤을 때 그 표현력과 느낌으로 그 }이의 동기를? 필링을 느끼지 우리가. 읽을 수가 있죠. 창의력과 口 3-22(2-10). 영재 발굴의 재안으로 초등학교 한 반에 합창을 가르쳐서 특출 나게 잘하는 아이들을 뽑으라고 하셨는데요. 그 합창이 국악이 아년 양약이여 도 괜찮나요? 거기도 마찬가지에요. 느낌을 가지고 사람들이 따로 있대니까요, 얘기들이. 3-23(2-12). 국내에서 전통예술영재들이 성장하는데 가장 큰 걸렴돌아 되고 있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섭니까? 내가 줄리어드를 이야기 해 드렸을 텐데. 우리나라에서는 아까도 이야기 했죠, 자식한테 너무 많은 결 가르칠라고 하고 짧은 시일 내에 어렸을 때부터 너무 많 이 주입 시켜 놔가지고 나중에 인생에 살아가는데 보탬이 안 되게. 낭만이라는 게 없다고. 평생을 쫓기면서 허덕이면서 살다가 끝나는 거예요. 그거는 여유는 누가 가르쳐줘야 될까요, 어린 나이에. 왜 쫓기듯 평생을 그렇게 피곤하게 이 때 부터 그렇게 살아야 될까? 그래서 아름다운 시랄지 이런 그런 것이 나오지 않는 다고. 시도 막 문장 맞추기만 많이 하고 있고. }이들을 많이 자유롭게, 여유로운 환경에서 놓아주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었게. 그렇죠. 그가 갈 수 있는 길을 보이면 빨리 정해서. 그렇게 우리가 없이 많 아야 배워 갖고 밖에 나와서 써먹어요 다? 활용해서 써 먹냐구. 안 써 먹잖아. 185

195 그래서 너무너무 괴롭게 크고 돈은 돈대로 들구. 재가 이거 하니까 내 자식두. 얘가 이거 하니까 저 자식도 이거 시켜야 되. 난 정~말 나 거기에 대해서 애 이 불쌍해 죽겠어. 결국 풀어먹는 건 하난데. 口 3-24(2-13). 전통예술영재가 앞으로 성장하여 음악가로서 담당(강당)해야 할 일들은 어떤 것이 있겠는가? 난 크게 바라지 않아요. 자기 분야에 전념하면서 지금 세계적이기 때문에 외국 어는 좀 할 줄 알아야 되겠죠. 그리고 인성에 대한 학습, 인성에 대한 거. 예술도 중요하지만 첫째 인성, 예술, 그러고 누구를 만나서두 거침없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언어능력. 예술가가 난 그럼 된다고 생각해요. 인성 같은 경우는 어떻게? 그거는 여자면 여자가 갖춰야 될 도리라는 게 있잖아요. 가사 시간이랄지 뭐 이런 시간 충분히 활용해서. 우리가 언제 음악도 세계적이잖아요? 어디를 뭐 어 느 나라를 가던지 간에 인사말 정도 자기소개 정도는 할 줄 알아야 될 것 같고 언어는. 자기 예술은 물론이지만 남자면 남자 여자연 여자 갖춰야 될 그 인성, 교육 남에게 누가 되지 않는 그 교육. 그러고 뭐 나머지는 다 자기가 하지 말라 그래도 다 찾아서 자기가 자기 관리를 할 줄 알잖아요 그 정도면. 그래서 난 크 게 바라지 않아요. 난 그런 면이 좋지 않나 싶어. 口 4-1. 전공분야 외의 다른 예술분야 (혹은 다른 분야)에 관심을 두신 적이 있 습니까? 口 4-1-CD 예술분야라면 그 관심을 어떻게 해결하셨습니까? 나는 인제 최근에는 일이 너무 많아서. 그래도 최근에도 마찬가지에요. 시간만 나면 산에 올라가고, 시간만 나면 운동장에 가고, 옆에 예술의 전당이 있기 때문 에 좋은 음악 오케스트라나 흑인 연극 할 때 좋은 음악이 들어오면 보러가요. 지 난 번에는 그 요요마가 우리 국악하고 연결해서 뭐 후배가 하는 것도 있더라구. 난 정식으로 돈 많이 주고 티켓 사서 좋은 자리에 가서 봐요. 그런 시간을 많이 할애 하죠. 또 여기 전시회가 참 많아요. 음악 뿐만이 아니라 그림이고 뭐고 좋 은 작품 사진전이랄지 좋은 작품들이 와서 전시회 하면은 꼭 시간을 내서라도 가서 보죠. 왜? 보는 시간이 즐겁고, 눈이 즐겁고, 정신적인 수양도 많이 되고, 안목도 높일 수 있고. 또 집에 들어가는 길에 극장 앞을 지나가다 좋은 영화가 있으면 들어가서 봐요. 난 내 것만 고집 안하거든? 어렸을 적에는 그런 관심을 두신 적이 었으셨나요? 어렸을 때부터서 관섬은 많았어. 서울에 와서 한 때는 거의 인사동을 많이 돌 아다녔어요. 인사동 거리를 걷는 걸 참 좋아해. 그러구 참 산에두 많이 올라 가 구, 등산도 많이 하죠. 시간나면

196 산에 올라간 것이 예술과 관련된 거는? 그럼 사시사철이 산 속에 많은 변화들이 있잖아요. 진달래 피고 아카시아가 하 늘에서 피어서 그 바람에 흩날리는 거 쳐다보는 거. 보면 눈이 온 거 같기도 하 고 그 심성에 나의 정신세계에 많~은 걸 불러 일으킨다구. 그래서 때로는 시간 나면 강가로 차를 몰고 나가서 강의 해 넘어가는 그 모습도 보고. 그러니까 나는 그 굉장히 많은 그런 거를 연 범위 서울 시내 강북 나가는 거를 제일 싫어해. 사 람 많은데 싫어하고, 백화점 같은데 싫어하고. 원래부터 그랬어, 그러구 좀 한적 한 곳을 좋아하고. 口 4-1-(2) 선생님째서 산에 자주 오르시고 했던 경험들이 선생님 음악에 많은 영향을? 그럼. 반야심경 같은 것두 절에 어머니가 계셔서 어머니 볍고 내려오면서 절에 서 산길 따라서 걸어서 천천히 내려오면서 중열중얼중열 하다가 반야심경 곡도 만들고, 그래서 또 부처님 오신 날 되은 어머니한테서 불러 드리기도 하고 절에 가서. 그니까 인제 이런 것들. 그러고 또 뭐 한창 방송할 때는 드라마 같은 거. 그럴 때 또 곡도 빨리 거기 많이 생각하게 되고. 산에 가서 중얼중얼도 해보기도 하고.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면서 그런 경우도 있고. 그래서 영감이란 게 다른 게 아니라 차타고 좀 조금 시내만 벗어나두 참 좋아요 분만 이렇게 차 몰고 나가도 충분히 우리가 보고 느낄 수 있는 구상들이 많다구. 그러면 인제 시간만 나면 집에 잘 머물러 있지 않아. 테레비 앞에 앉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고 집에 있어도 그냥 들어가 YTN 좀 틀어 놓고 차 타면은 뉴스 틀어놓고. 인제 이렇게 지내지. 될 수 있으면 시간을 운동장에 가서 많이 할애 하는 거고. 口 4-2. 학습을 하던 시철 전공분야 외에 다른 예술분야의 전공자와 교분이 았 으셨나요? 나는 선생님들하고 참 많이 친해서. 항상 그 아버지가 그런 말씀을 하셨어. 니 앞 에 거울은 선생님이기 때문에 부지런히 나보다 위에 분들하고 이야기를 해야 뭐든지 습득할 수 있다"고. 그래 가지고 항상. 그 그래서 몰라요. 마음만은 어떻게 할지 모르 지만 난 열심히 보고 배우고 느끼고 알려고 노력한 사람이거든요? 그니까 선생님들이 다 훌륭하시고 그래서 요즘도 눈 뜨면 생각하고 자기 전에도 생각하고, 항상 연인처럼 선생님을 생각해요. 선생님들 다 떠올리면서 생각한다구. 선생님들의 전공분야? 판소리도 있고, 악기도 었고. 악기는 서공철 선생님 계시고, 박귀희 선생님 계 시고. 박귀희 선생님은 판소리, 무불능통이셨잖아요. 그 분은 춤도 잘 추시고, 그 선생님은. 판소리도 김소희 선생님, 김영운 선생님, 박동진 선생님, 또 그 외에도 돌아가신 한농선 선생님도 계시고, 오정숙 선생님도 계시고. 참 많지 쓸데없이. 그니깐 전부 다 생각하면, 지금은 내 나이가 느끼면서 사는 나이잖어. 그래서 항 상 그립고, 돌아다보게 되고

197 口 4-3. 다른 분야의 관심과 경험을 자신의 전공분야에 활용한 기억이 었으시나 요? 작은 사례를 들어 설명해 주질 수 었겠는지요? 내가 독주회 할 때 프로그램 기록 한 것은 유럽에서 다 거의 모아왔던 프로그 램들이에요. 그래서 90년도에 모든 자료를 한 번 보시면 아마 다를 건데. 내 프 로그램이 어디다 내 놔도 손색없을 꺼에요. 그래서 호암아트홀에서 독주회 할 때. 그니까 몰라요. 나는 지금도 그래. 대회를 내가 주최를 하든, 우리 법인체가 정기 공연을 하든, 포스터 하나서부터 항상 거기다가 최선을 다해요. 작품을 만 들라고 노력해. 대충대충 가잖아요, 대충대충 극장도 가잖아요. 난 그렇게는 안 가거든? 내가 뭐든지 무대에는 완벽해야 된다. 고 포스터 하나라도, 찌라시 하 나라도, 프로그램이라도, 항상 정성을 따지고 작품을 만들라고 노력하는 거지. 그 러고서 도로 전시회를 한다. 내꺼 뿐만이 아니라 서양이던지 동양이던지 상관없 이 많이 갖고 노는 거예요. 남의 공연 프로그램 좋은 거 있으면 항상 모아두고. 남의 인사말들 간단 듣기가 있으면 그거 흘려버리지 않고 또 모아두고. 모든 것 이 우리가 공부 아닌가? 허고 느끼는 것이 있어. 항상 뭐든지 그냥 이렇게 대충 대충 넘어가지 않고 좋은 작품이나 내가 관심 가지고 있는 것은 항상 스케치 하 고 모아 놓고, 이런 습관이 있지. 아무리 후배라도 어린 애나 무슨 프로그램 잘 만들어 놨다든지 뭐 티켓을 잘 만들었다고 그러면 고거를 딱 책장에다 꽂아 놨다가 다음에 내가 무슨 일을 할 때 약간 거기서 도움을 받는 그거지. 우선 흘 려버리지 않지, 좋은 작품에 나왔을 때. 유럽에서 하셨던 게? 뭐 우리가 한참 한 해 해외공연 3번 4번 나갈 때도 있었으니까. 참~ 해외 많 이 돌아다녔지. 좋은 극장가면 프로그램이랄지 이런 것들이 많이 비치되 있잖아. 그럼 이 지역 이것은 뭘로 만들었는지 뭐 이런 식. 그니까 하나만 내 분야만 관 심 갖는 게 아니라 내 분야에 관련된 건 다 관성을 갖고 쳐다보게 되는 거지. 유럽공연 가셨을 그 쪽의 팝플렛이란? 그렇지. 우리가 극장에 가서 어차피 공연하니까. 그러고 또 인제 80 이 념으면 서 부터는 해외공연 가서 노는 날이 있으면 미스사이공이랄지 레미제레블 이랄 지. 뭐 이런 것은 영국에서 20년씩 이상하고, 이런 것들도 다 거기 가서 보잖아 요. 택시 불러 타고 대절해서 가는 거야. 도대체 왜 20년씩 하는가? 장기공연=. 미스사이공은 왜 이 난리들이 나는가? 어떻게 만들었기에? 그건 우리 장르 아니잖 아요. 근데 보러 간다구요. 가면 조명 기가 맥히지. 조명이랄지 음향 시설이랄지 얼 마 안 되는 인원가지고 말이에요, 몇 백명 나오는 것처럼 표현을 하고. 왜? 난 맨날 무대에 서는 사람이니까. 우리 무대, 맨날 리허설 해두 음향이 문제 있고 뭐가 조명 이 문제 있고 막 그러니까 무대에서 사진 찍으면 제대로 잘 나오지 않고. 이러니까 막 짜증나는 거지. 그리고 전반적인 거, 나에 대해 관련된 것만 내가 쪼금 관심을 갖고 이 럴 따름이지 그 외에는 뭐 내가 관심 가는 분야가 뭐 있겠어요? 근데 예능 쪽으로 많은 관심을 갖는 거지, 내 장르만 따지는 게 아니라

198 口 4-4. 다른 예술분야를 자기 전공분야와 함께 배운다면 어떤 이점이 있겠는지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백야라는 영화를 보면 바리시니코프 라는 유명한 발레 하는 남자 있 죠? 그 남자는 작품이에요. 그 남자가. 근데 인제 그 남자의 그 영화를 보면 그 남자는 영화에서나 밖에서나 자기 관리를 철저하게 하잖아. 그러고 또 일본에 가 면 샤쿠하치를 잘 부는 그 연주자가 있어요, 명 연주자가. 무대에서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밖에서도 아름답게 자기를 관리를 해. 바깥에서 자기 말고 다른 한 사 람만 있어두 자기 몸에 신경을 쓰는 거야. 옷이랄지 머리 벗는 거랄지 응? 그래 서 그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구. 옷 하나 걸치는 거, 악세사리 하나 하는 거, 이 런 것들을 굉장히 눈 여겹게 봐요. 그래서 그 몽가짐이랄지. 물론 그 각본에 따 라서 하겠지만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그 분위기가 나한대 많은 도움이 되는 거죠. 그러니까 이게 예술이 왜 좋냐면 별로 아름답지가 않아도, 그 사람이 늘 잘했어요. 노래를 잘해서 나한테 감흥을 주면 그냥 그 사람이 아름다워지잖아요. 춤을 처음 들어오는 사람이 춤을 보여줘서 봤을 때 그 사람 춤이 참 내 맘에 든 다. 백년지기 같애., 연주를 잘한다 어머 저사람 저렇게 잘할 수 있어? 이야 저 런 면이 있어? 그냥 오늘 본 사람 같지가 않아 백년지기 같애. 그 사람이 가지 고 있는 심방곡인거야. 그 사람만의 표현이 되는 거. 인저 그 사람만의 그 사람 이 가지고 있는 뭐 학자 같은 변? 정말 그 분이 말씀하시는 거 한 대목만 들어 도 그 분을 읽을 수 있고, 연주가가 성악가가 들어보은 알잖아요 우리가. 그 에 인생도 알 수 있고, 그 분에 그 느낌을 알기 때문에. 그래서 뭐 우리가 막 어 떤 것이 성공한 인생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뭐든지 자기 분야에서 이 세 상의 직업이 수 없이 많이 뭐 우리가 감히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직업이 많을껄 요? 그래서 그 울타리 안에서 그냥 50등 안에만 들어도 그 양반 성공한 인생이 라고 생각해. 나는 어떻게 생각하냐면 개인적으로 내가 열심히 여자라면 소원이 멋있는 커피숍을 내고 싶다. 그럼 자기 힘으로 커피숍을 낸 사람 그 사람 성 인생이라고 난 생각해. 그게 대통령이 됐어? 국회의원이 되었어? 이렇게 돼서 크 게 된 게 아니라. 예술인이야, 그러면 나는 가야금을 탔어 그럼 난 가야금을 열 심히 탔어요, 그러면 관객이 와서 내 가야금 연주 소리를 듣고 너무너무 좋아하 고 박수쳐주고 그날 연주가 좋았어. 난 그럼 그게 나는 그날의 내 성공라고 생각 하는 사람이거든? 그래서 너무 막 사람들은 큰 부자가 됐어 크게 유명한 사람이 됐어. 이런 게 아니라 성공의 척도를 너무너무 크게 높게만 보는 거야 사람들은. 근데 나는 적은 것에서 행복이 올 수도 있다. 는 생각을 해. 내 마음에 행복. 그 니까 마음먹기에 달렸어. 그래서 예술이라는 것이 그냥 꾸준하게 우리가 왜 그 초가지붕에서 계속 물 떨어지븐, 그 밑에 바위 하나가 내가 어렸을 때 본 그 바 위가 조그만 돌맹이에 흠이. 내가 한 오십, 육십, 칠십, 팔십 되면 그런 흠이 파 지지 않을까? 이게 그렇게 느긋하게 생각 해야지 우리는 단숨에 이롤라고 생각 해. 특히 이 어려운 예술을. 물론 나는 이 생각도 하지. 일류 되고 싶으면 돌아가 지 말고 일류선생 찾아가라고 그러거든? 그럼 빠른 시일 내에 일류가 된다고. 요 즘은 가르치는 선생 자체가 머리에서 가슴으로 지도 이해 안 되는데, 학생들을 가르치니까 학생들이 빛을 바라지 못 해. 또 빨리 뜨거워질라고 하고, 빨리 이

199 라고 으로 생각 하니까 조금 무리가 오는 것 같애. 그래서 애기 때부터 서서히 정신적 여유도 갖게 하면서 가르치는 것이 옳아. 口 4-5. 무대에 서기 전 혹은 시험이나 콩쿨에 나가기 전에 얼마나 어떻게 연습? 나는 지금도 얼마 전에 남원에서 연주회 했었어요. 독주회 독주 초청연주. 서 울서 한 달 내내 연습허고 집에 가서 어머니가 밥 차려 놨는데도 밥도 안 먹고 염마, 안녕하세요 해놓고 엄마하고 잠깐 이야기 몇 마디하고 잠자는 시간 전까 지 타고, 고 다음날 연주시간 전까지 탔어요. 무대 올라가니까. 눈이 너무 나쁜데 다가, 못 먹은데다가, 눈 수술 하라는 거를 안 하고 어거지로 내려갔거든? 눈이 안 보일 정도로. 나 그렇게 연습하는 사람이에요. 중요한 연주 때. 눈에 안개 껴 서 가야금도 줄도 안 보이고, 한 두 장단 안 보였어요. 그러니까 나한테는 얼마 만큼 연습 하셨어요?" 얘기 안 물어도 된다니까. 口 4-7. 연습을 할 때 한 두 번 하고 마셨는지 아니면 스스로 원하는 목표를 정 하고 그것을 이루면 그만두셨는지? 인제는 오늘은 여기까지 연습해야 되겠다. 그러죠. 오늘 안 되면 몸이 따르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따르지 못해. 오늘 안 되면 내일 합시다. 어렸을 때는? 어렸을 때는 이거 저 축음기 판처럼 또 돌리고 또 돌리고. 그 장르를 계속 연 습을 하는 반복을 하는 거야. 워 떠~떠어 어흐흐어허으 흐흐어허으 이런 음 이 안 되면은, 흐흐어허으 어으 흐어 ~으--아--어 안 되지? 될 때까지 헌다니까. 그 장르를. 될 때까지? 축음기 판처럼 또 돌리고 또 돌리고 또 리고. 그랬어요. 口 4-9. 무대에서 최악의 경우를 대버하여 연습을 한 경우가 었다면, 어떻게 했 습니까? 무대에서 어쩔 땐 정신이 너무 없을 때 실수할 때 있어요. 근데 객석에서는 실 수한지 몰라요. 그럴 때를 대비해서 연습을? 아니. 대비해서 연습하지는 않아요. 하두 많이 써서 나도 모르게 내가 무슨 을 허고 어떤 장단을 인용해서 어떻게 가락을 차고 나갈런지는 몰라. 그래서 때 로는 실수를 했다 싶으면 빨리 음향실에 가서 그 테잎을 찾아서 내가 들어보죠. 근데 전혀 남은 모르게 하고 있고. 口 4-8. 어떤 상황에 연습을 시작하고 마쳤습니까? 평소에 항상 연습을 해 놓죠. 그러고 연습을 안 했다, 그러븐 저기 의뢰가 와 도 안 하죠. 그거에요. 준비 되 있지 않으면 난 무대에 올라가지 않으니까

200 口 학생 때(혹은 배울 때) 스숭아 가르치는 대로만 했나 아니면 다른 방 식로도 해보고 그랬나? 어렸을 때야 선생님 시키는 대로 하죠. 지금이야 인제 선생님들 안 계시고, 내 가 이렇게도 가고 저렇게도 가고 이렇게 해서 가도 저렇게 가서 가도 무리가 없 으니까 가는 거죠. 그것도 무리가 있다면 하면 안 되는 거죠. 口 자기가 어느 정도 잘한다는 자신감이 든 적은 있었는가? 내가 잘한다 그러면은 그건 병신이고. 그냥 관객이 들었을 때 괜찮다., 아! 사람 괜찮다. 이런 정도라고 생각하고 내가 하는 거지. 저 한 몇 잘 정도쯤안지? 아! 저 사람 팬찮다., 저 애 참 팬찮게 한다. 그런 얘 기를 들었을 때가? 글쩨요. 그거는 확실히 꼭 집어서 이야기 못 하겠네요. 젊었을 때도 잘한다 라는 사람이 있었고, 더 해야 되겠다 라는 사람도 있었고 그러니까 남과 다른 자신만의 표현 방식이 었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한 적이 었던가? 평소 때는 사람을 만나서 뭐 난 원래 말을 잘 안 하는 사람이니까. 크면서 말 공부도 하고, 말을 많이 할려고 노력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에요. 원래 말이 없 어. 지금도 처음 보는 사람 만나면 말 잘 안 하고, 좀 편해야 말을 하고. 또 때로 는 너무 직설적이고 그래서 항상 주의하는 거죠. 어렸을 적에 다른 사람과 다른 선생님 자신만의 표현방식이 있어야겠다고 생 각하신 적은 없으셨나요? 없어요 나. 그런 거 까지 안 생각하죠. 口 스숭아 하지 말라 했던 표현틀을 해보고 성공해본 적이 었던가? (예를 들면 여기서 농현을 하지 말라 고 했는데 정작 하지 말라던 것을 해보니 좋았다거나 등) 그렇지는 않았죠. 내가. 난 또 착실한 사람이야. 선생님이 이거 안 되 그러면 안 하는 사람이지. 그렇지는 않아. 口 스승에게 기본만 배웠던 상태에서 혼자 스승 없이 기본을 념어서 본 적이 었던가? 인저 선생님 계실 때는 내가 그건 안 했고. 선생님 안 계시니까 언제 내가 많~이 하다 보니까 음악을 다시 만들어서 타기도 하고 언제 그런 능력은 되니 까. 그것두 남들이 듣고 내가 듣기에 이것은 무리다 싶음 안 하고. 이것은 작품 짜면 나한테 한 번 하는 거죠. 배운 것을 토대로 곡조를 지을 수 었는 능력을 갖고? 그렇죠. 지금은 능력이 있죠

201 어렸을때 어렸을 때 그런 능력이? 능력이 있었다 하면 안 되죠. 선생님 계시기 때문에. 혹시 그결 좀 해보고 싶었다 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는? 생각 자체도 안 하죠. 나는 원래 A형이에요. 착한 사람이지. 애기 때 선생님 말을 잘 듣는 착한 사람. 김영재 口 1-1. 예술영재교육원에서는 선생님을 영재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동의하 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노력 해서 얻은 실력이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뭐 영 재다 이렇게 특별하게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디 1-2. 어련 시철, 약 열 살 이전에 혹시 부모님이나 주변을 통해서 들였던 선 생님만의 특별한 행동 같은 게 있었습니까? 재주가 있다라고 듣고 그 다음에 춤과 노래를 잘한다끼 또 그런 방변을 좋 아하는가 보다, 소질 있어 보인다 이 런 말은 들었습니 다. 口 1-3. 다른 사랍들이 선생닝을 영재다 라고 부르기 전에 혹시 본인 스스로 영재엄을 깨달은 적은? 본인은 모르죠. 다른 사람들이 평가를 해줘야지. 본인은 그런 걸 잘 인식을 못 하고 자랄 뿐이죠. 口 1-4. 동료냐 아니면 작고하신 분들 중에 영재다 라고 생각하살만한 분들이 계십니까? 저는 그렇게는 생각 안하고 전통예술은 길러지고, 본인이 노력하고, 소질이 있 는 사람이 계속 계발을 했을 경우에 그런 소리를 나중에 듣는다고 봅니다. 口 1-5. 거문고는 신쾌동 선생님이시고, 해금은 지영희 선생님이신데, 그 선생님 들에게 학습을 시작하게 환 시기는 언재쯤 업니까? 열네 살 때, 중학교 l 학년 때부터 입니다. 두 분 다 14살 때. 무용도 배우지 않으셨습니까? 무용은 조금 일찍 배웠는데 한 열두 살 정도, 한 5학년 때 배웠습니다. 그 때 선생님은? 김천흥 선생님이십니다

202 口 1-6. 음악, 무용 등등을 배웠을 때를 시기별로 좀 구분해 주십시오. 중학교, 고등학교. 시작했던 시기, 아니면 조금 발전됐던 시기? 이런 식으로. 노래를 아주 좋아할 때는 초등학교 1-2 학년 때 음악시간을 매우 좋아했고, 또 그 시기에 동네에서 벌어지는 굿 같은 결 많이 보러 다녔고, 그 다음에 그런 노 래들 춤 이런 거를 집에 와서 많이 흉내도 냈고, 그리고 자라다가 중학교 들어가 기 전 5학년 때부터는 어머니 친구 분의 권유로 고전무용소를 다녔고, 그걸 계기 로 해서 국악예술학교에 입학을 해서 해금과 거문고를 배우변서 중학교 초반에 이제 농악이라든지 민요, 가곡가사, 시조, 이런 것들을 이제 배우고, 그 다음에 조금 나이 들어서 고등학교 쯤 돼서 판소리를 좀 많이 공부를 했죠. 口 1-8. 그런 공부를 하게 된 동기가 있었습니까? 동료 간의 경쟁이라든지, 스 승님의 격려라든지, 본언이 정해놓은 목표. 이런 것들이 었었습니까? 그 땐 학교수업이었기 때문에 학교수업을 열심히 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연습 을 주로 많이 했고, 또 뭐 수시로 선생님들이 시키기 때문에 항상 대비돼 있어야 되고, 또 이제 조금 잘한다, 잘한다 이렇게 격려를 하니까 무용 반주도 시키고 이러면서 우리들끼리 모여서 무용 반주도 하고, 노래 반주도 하고, 이렇게 재미 붙여 가면서 연습을 많이 했었죠. 口 1-7. 음악가 집 안인가요? 아닙니다. 口 1-9. 전통예술을 한다고 했을 때 집안의 분위기는 어쨌습니까? 뭐 내가 좋아하는 거니까. 내가 고집이 이제 막 세니까. 부모들도 못 말리 처음에는 공부하라고 많이 권장을 했지만 내 고집이 원최 완고하게 가니까 그냥 내버려두셨죠. 口 어련 시철 당신의 연습량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口 1-10-Q) 하루일과 중에 연습량은 얼마정도 됐습니까? 중학교 3학년쯤 돼서는 하루에 여닮 시간에서 열 시간 정도 연습을 했습니다. 口 1-10-(2) 연습을 통해서 자기 만족한 경우가 었었습니까? 만약에 았었다면 어느 정도 연습을 했을 때 만족을 느끼셨습니까? 그 평가기준이 뭘까요? 연습을 많이 하면 할수록 보람을 느끼고. 또 열 시간 이상 했을 때에는 나름대 로 굉장히 뿌듯하고, 내가 마치 큰 일을 해낸 것 같은 그런 만족감이 생기죠. 자 신감도 생기고. 口 연습과 연주하는 시간 이외에 다른 음악을 감상 할 시간이 었였습니까? 판소리라든지. 뭐 옛날 명인 명창들. 그 녹음기를 통해서 많이 들었습니다. 그

203 리고 공연장 같은 데에서도 듣고, 그 다음에 우리 중학교 때는 여성국극단이 많 았는데, 그 여성 국극을 많이 보러 다녔고, 그 다음에 굿하는 데를 많이 따라다 니면서 굿도 많이 보았고, 그 다음에 우리가 반주를 직접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무용선생님들하고 같이 다니면서 무용짤 때 항상 같이 붙어 앉아서 무용도 같이 짜고, 연습을 많이 했죠 천공분야 외에 다른 예술분야에 대한 학습과 경험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Q) 거문고와 해금이 전공이신데 그 외에 다른 악기를 연주하신 경험이 나 학습을 하설 계기가 있었습니까? 많이 있었죠. 예를 들어 거문고, 해금뿐만이 아니라, 장고, 북, 효과, 바라, 양금, 아쟁, 목소리로 내는 소리라든지, 효과음, 녹음실 같은 데 가면 한 사람이 여러 가지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어서 여러 악기를 다루기 시작했죠. 口 1-12-(2) 전공약기와 다른 악기를 연주하설 수 있었던 그 시간을 어떻게 배 분을 하셨나요? 항상 다른 악기 만지는 시간도 따로 할애를 해서 연습을 했다고 봐요. 예 어 타악같은 경우는 농악시간에 이 악기, 저 악기 다 만져봤고, 팽과리나 장고, 소고, 정 이런 것을 연습을 했고, 또 인제. 서양악기 중에서도 큰북, 작은북, 탬버 린, 이런 악기들을 가지고 효과음, 무용곡의 효과음 이런 것을 할 때는 조금씩 연습을 다 했죠. 口 전공악기 이외에 다른 악기들을 같이 다룬 경우, 전공악기애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 텐데요.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다른 타악기를 하면서 전공악기에 많은 도움이 돼요.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이 되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전공악기를 하면서 타악기의 특징을 가지고 멜로디를 많이 가지고 놀 수가 있 죠. 그니까 즉흥성이 많아진다든지, 아니면 타악기에 기대서 뭐 새로운 곡을 만 들어 본다든지, 창의성이 많이 생기죠. 口 애기명창, 소년영창 이란 말이 었습니다. 어렸을 때에 유명해진 사람 들은 명인이 되기 어렵다"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어렸을 때 명창이 커서까지도 영창이 된다" 이런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옛날에 들어보면 어렬 때 명창들도 잘 교육을 시키면 나이 먹어서까지 계속 명창이 될 수 있죠. 그러려면 지도방법이 좋아야 되겠고, 또 그 소녀명창이 모든 생활면이나, 철학적인 면이나 이런 걸 잘 지도해주면 그 아이가 다른 길로 안가 고 그 길로 쭉 성공할 수가 있다고 보는데, 아무리 재주가 좋아도 노력을 하지 않는다던지, 다른 길로 간다던지 하면 하다마는 경우가 있죠

204 디 2-1. 전통예술에 영재가 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있다고 생각합니다. 口 2-2. 그런 아동을 보신 적 이 었습니까? 口 전공, 어떻게(어떤 전공, 혹은 정후를) 발견했나? 네, 뭐. 흔히 옛날 애들도 봤고, 요즘 애들도 그런 애들이 종종 나오는 걸로 알 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광주 쪽에서 내가 느낀 바로는 목소리가 아예 판소리 목 으로 돼서 얼마 배우지 않았지만 성음이 아주 제대로 나오는 애들도 있고, 경기 창법도 어린애지만 제대로 이렇게 되는 애도 봤고, 그 예로 유태평양 같은 애도 어려서부터 고전 춤사위를 봤더니 기성인처럼 아주 잘 소화를 시키고, 타악기도 잘하고, 특별히 전통예술로 그 끼가 보이는 아이들이 종종 있습니다. 혹시 유태평양 말고 다른 학생들은 아직까지는 기성인으로, 어른으로 성장하지 는 않은 상태죠? 내가 이름을 몰라서 그렇지만 뭐 어려서부터 그런 끼들이 있는데 지금까지 쭉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근데 크게 우리가 이름을 외우고 있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 口 2-3. 전통예술영째를 선발한다면 적절한 연령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무래도 초등학생, 중학생까진 봐야 되겠죠. 口 2-5. 선생념 전공악기인 해금, 거문고와 전통예술 일반으로 구분을 해서 설명 을 해 주신다면 어떻게 구분이 될까요? 거문고나 해금이나 피리 이런 전공악기는 좀 첫 번부터 고르기 힘들겠고, 그 악기를 하기 전에 소질이 보이는 애들이 있어요. 특히 청음이 좋다든지, 악보를 잘 본다던지, 뭘 따라서 잘 한다든지, 또 아니면 지가 스스로 창의성 있는 행동 이나 노래나 소질 같은 것이 보이죠. 어린애들은. 근데 첫 번부터 거문고를 잘 타고, 해금을 잘 하고 할 수는 없다고 봐요. 왜냐하면 이것은 기초부터 잘 닦아 서 오랜 세월이 흘러야 성음 같은 게 다 보이고 그런 거니까 어린 나이에는 전 반적인 음악적인 소질, 재질, 기량, 이런 것을 볼려면 시창이나 노래나 춤이나, 또 껴가 가 지고 있는 사고력이나, 여러 가지 어린애로 측정할 수 있는 한계가 있어요 口 2-4. 결국 그런 것들이 전통예술의 영째성이라고 보시는 거겠네요? 그렇죠 그런 애들을 뽑아서 계속 양성을 하고 교육을 잘 시켜서, 인제 애들이 어떤 전 공악기를 하나, 둘 선택해서 평생 할 수 있는 그런 길을 잘 잡아줘야 되겠죠. 口 2-6. 만약에 선생님이 전통예술영재를 뽑는 심사위원이다. 라고 하시면 역시 같은 조건들을 시험해 보질 것인가요? 여러 가지를 봐야 되겠죠. 말하자면 노래도 시켜보고, 춤도 추게 해보고, 남이 195 -

205 한 걸 따라서도 해보게 하고, 또 스스로 뭐 제일 잘하는 것 있으면 해보라고 하 고, 타악기도 아무거나 줘서 한번 이렇게 두드려보라고도 하고, 소리도 질러보고 인간이 할 수 있는 행동을 골고루 다 시켜보는 것이 언제 그 아이의 재주가 어 디 있는가 살펴볼 수가 있죠 어련 영재틀을 선발하는 데에서 중요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를 들면 예술적 성취능력, 그러니까 가진 째능이라든지, 아니면 연습이나 예술가적 설현에 대한 끈기, 열정, 책임, 리더쉽, 공연장에서의 순발력, 이런 것 둥이 있을 수 었는데요. 이런 것들 중에 어떤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 아니면 혹시라도 그 외 기타의 것들이 었으면 보충 해 주섭시오. 일단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먼저 발굴해야 돼요. 근데 그 재능이라는 게 시간을 정해주고 여러 명 있는데서 그게 얼른 튀어나오지 않고, 어느 분위기 라든지 시간이라든지, 뭐 많은 공간의 여백이라든지, 이런 결 종합적으로 봤을 때 그 아이의 기분, 상태. 어느 때에 그런 것이 갑자기 나올 수도 있는 건데 시 험장이라고 벌려놓고 거기서 어떤 행위를 해봐라하면 쑥스러워서 도리어 안 나 오는 애들도 있고, 그러기 때문에 좀 넉넉한 시간을 두고 그 아이가 평소에 했던 행동이나 뭐 재주라든지 이런 것을 부모님들이 관심을 갖고 비디오로 찍어놓았 다든지 녹음을 해 놓았다든지 그동안의 껴가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특별하게 굴 었던 모든 DVD라든지 이런 것을 통해서 잘 살펴봐야 될 결로 알고, 어느 날 몇 시에 시험을 본다. 그 때 해라! 그러면 그게 갑자기 안 나와요. 口 2-9. 창의력이나 동기를 알아볼 수 었는 테스트는 오랫동안 시간을 갖고? 시간을 갖고 같이 합숙을 하면서 그런 아이, 가능성 있는 애를 합숙을 통해서 여러 가지를 시켜봐야 되겠죠. 같이, 똑같이 춤도 가르쳐보고, 악기도 가르쳐보 고, 시창도 가르쳐 보고 막 하다보면 처음에는 30 명 했었는데 점점 줄어들겠죠. 20명에서 10명에서 5명에서 이렇게 줄어들 때, 만능재주꾼이 나올 수도 있어요. 口 그런 방법이 예술영재를 발굴하는 데 하시나요? 합리적일 수 있죠. 었어서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 口 예술영째를 선발하는데 있어서 전문가들이 참여하게 훨 댄데요. 그 전 문가들도 파벌이 았고, 또 계파도 었고, 그래서 공정한 심사가 이루어지기 조금 어 려운 상황이 있을 수도 있거든요. 그런 부분에 었어서 조언을 부탁드렵니다. 그러니까 이제 그게. 종합적으로 아까 얘기했듯이 그런 영재 재질이 있는 학생 임시 무슨 뭐 교육기관을 두어서 한 달이면 한 달, 두 달이면 두 달, 이렇 게 해서 여러 가지를 다 지도를 다 해보는 거죠. 지도자들이 이런 것도 시키고, 저런 것도 시켜봐서 그러면 아이들이 여러 가지를 다 수용을 해서 따라할 수 있 애가 있는가 하면, 어느 특수한 쪽만 잘하는 애가 있을 것이고, 자기 개성에 따라서 인제 틀릴텐데, 언제 고런 경우도 어떤 애는 특별히 타악을 기가 막히게

206 잘하는 데, 악기는 잘 못한다. 그런 애도 다루는데 움직임을 못한다던지 이렇게 될 찾아내는 수밖에 없죠. 있을 거고, 어떤 애는 악기는 특히 잘 수도 있으니까 그 특성에 맞게 개성을 디 국내에서 전통예술영재들이 성장하는데 가장 큰 걸렴롤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그리고 그 아이들이 커서 음악가로서 성장을 했을 때 강당 해야 하는 것들은 어떤 게 있을까요? 그러나까 이제. 걸림돌은 제도적인 것이고, 우리나라의 유교사상, 뭐 애 공부나 해야지 그런 걸 왜 하느냐 는 식으로, 이런 어른들의 잘못된 사고로 인해 서 훌륭한 예술성을 가진 아이들이 일찌감치 포기하는 것이 큰 장애일 수도 있고. 口 영재가 성장하여 음악가로서 강당해야 할 일들은? 개네들이 인제, 음악가가 되려면 많은 시간이 요하기 때문에, 그건 또 차후문제, 시간이 오래가야 그런 능력이 생기지 처음부터 그런 능력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요 더 해주질 말씀 았습니까? 글쩨 이 전통예술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성음이 붙고, 뭐 깊이가 있고, 나이 먹을수록 어떤 그 공력이라는 게 있는데, 어린애들이 처음부터 영재다 해가지고 서 산조를 기가 막히게 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판소리를 기가 막히게 할 수 있 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일단은 그런 재주 있는 아이들을 뽑아서 끊임없이 교육 을 시키고, 껴네들이 노력을 하고, 점검을 하고, 1:1 로 아이들을 평가를 해주고, 그 아이들이 어느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기성세대들이 커나가는 것을 토론하고, 또 뒷받침해주고, 엄청난 국가에서 껴네들에게 좀 뒷바라지를 해줘야 그 영재 이 쭉 쭉 자란다고 저는 생각을 하는데, 인제 이. 사회적인 제도문제로, 아이 하나, 둘밖에 안 났는데 국영수를 빨리 해야 된다, 공부를 해야 된다, 대학을 가 려면 수능을 봐야 된다는 이런 여러 가지 한국적 스타일의 제도가 빨리 이런 애 위해서 개선이 돼야 된다고 봅니다. 口 3-1(1-2). 어련 시절에 째주가 었다"나 춤과 노래를 잘한다., 소질 있어 보인다" 이런 말은 누구로부터 들으셨습니까? 주변에 사람들. 구체적으로 누굽니까? 학교에서는 우리 담임선생님 또 동네에서는 할머니 할아버지. 또 우리 엄마. 담임선생님은 국약을 전공하셨습니까? 안했습니다. 산수나 국어나 이런 선생님업니까? 전체. 그 때는 한 선생님이 전체를 다 가르쳤습니다

207 口 ). 전통예술에 소질이 었다" 할 때의 소질은 어떻게 알아볼 수 있 을까요? 지난 시간에 전통예술에 이 사랍이 소질이 었다라고 얘기할 수 었는 뭔가가 었다고 하셨는데, 그 때의 소질이란 건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요? 그거는 내가 중학교 1 학년 입학했을 때, 실기 선생님들. 예를 들어 뭐 박초월 선생님이나, 신쾌동 선생님이나 지영희 선생님이나 김윤픽 선생님 성금연 선생님 이런 분들이 어느 산조가락을 한 가락 했을 때 금방 따라한다든지 장단 한 배가 고르다든지 그러면 얘가 소질이 있다 라고 말씀을 하셨죠. 口 ). 열네 살 때,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정식 교육을 받으셨는데요. 혹시 그 전에 개인교습이나 학교레슨 응을 받은 척이 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그 무용소는 다녔지요. 무용은 초등학교 5학년 정도에 시작하셨다고 했는데, 그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그거는 이제 우리 어머니 친구 분이 김천홍 선생님 무용소를 다니셨는데, 그 분이 소개를 해서 나를 그 무용소에 데려가서 선생님한테 직접 언제 소개를 해 서 들어오게 됐죠. 무용교육이 선생념째서 교습을 받은 첫 번째 활동이 되는 건가요? 그렇지요. 口 ). 어련 시젤에 굿을 보러 다니살 때는 어느 지역의 굿을 보셨나요? 요 마포지역. 우리 합정동 서교동. 요 마포 동네. 한강 옆에. 서울 굿? 그렇지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셨나요? 네. 처음부터 다 봤죠. 중간중간에 짧게 보신 적도 물론 었겠죠? 조금 있는데. 거의 다가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앉아서 본 것이 많았습니다. 口 ). 고전무용소가 김천홍 선생님 무용소라고 하셨는데, 그 위치나 기 관명을 알 수 았을까요? 김천홍 고전무용학원이고 파고다공원 뒤에 그 시장턴데 거기였고. 여기 1 층은 무슨 간장 팔고. 상업 상가였고 2층이 무용소였습니다. 口 ). 농악, 민요, 가곡, 가사, 시조, 판소리, 이런 것들은 어느 선생님으 로부터 어느 정도의 기간을 배우셨나요? 그런 거는 이제 학교 입학해서 수업 시간에 있었어요. 그게, 민요시간, 무슨 창 악시간, 가곡, 가사, 시조 시간, 판소리 시간, 농악 시간, 그리고 자기 기악전공 따 로 있고. 그렇죠

208 한 학기에 몇 시간? 몇 년간? 전공, 부전공은 하루에 두 시간씩 토요일 빼고 매일 있었고 거의 매일같이 했 어요. 창악, 민요, 가곡, 가사, 시조. 농악은 아마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 있었고, 판소리는 매일 있다시피 했어요. 일주일에 너} 번. 일주일에 한 번이라고 하면 한 시간을 배우게 되나요? 두 시간. 한 번이 두 시간? 한 번에 한 두 시간. 한 시간짜리도 있고, 두 시간짜리도 있고. 그렇게 해서 어느 정도? 3년을 배우셨나요? 6년을 배웠지요. 6년 동안,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그렇게 똑같이 하셨군요. 口 3-7(1-1O-Ø). 연습과정에서의 보람 이라고 하는 것을 음악적 평가기준으로 풀어내 주설 수 있을까요? 연습을 했을 때, 아, 이 정도면 내가 보랑되다. 라 고 느꼈을 때 그 음악적 성취감은 어느 정도라고 수치로 얘기할 수 았을까요? 그거는 내가 평 하는게 아니고 옆에 사람들이 듣고서 평을 해주고, 선생님들이 벌써 소리 들어보고 그러면. 너. 너. 너. 너. 이 렇게 뽑아놓죠 아예, 잘하는 애 을, 그렇게 해서 인제 예를 들어 노래 반주를 시킨다든지 무용 반주틀 시킨다든 지. 아예 뽑혀요 잘 하는 애들은. 연습할 때, 예를 들어 어려운 성음을 표현했다. 내가 해냈다 라는 그런 희열이 나 보랍이나 느꼈나요? 있죠. 내가 마치 선생님 농현 하고 거의 비슷하게 된 것 같다. 라고 기쁜 마음 이 생기죠. 口 3-8. 몇 살 때 어느 악기를 언재부터 시작하셨나요? 열네 살 때 거문고, 가야금, 해금. 거의 나는 동시에 세 악기를 했습니다. 口 3-9(1-11). 선생님들의 무용반주는 언재부터 다나기 시작하셨나요? 고거는 언제 중3 때부터 한 결로 기억이 돼요. 중학교 1 학년, 2학년은 열심히 배우고, 흉내도 내고 그러다가 3학년 때부터 인제 한영숙 선생님이 시켰죠. 2년 정도 배우면 무용반주를 다닐 수 었다 라는 말씀이 됩니까? 아니면 그 때 상황이 그러해서 가능했던 겁니까? 2년 정도 열심히 배우면 승무, 검무 이렇게 삼현대 배우니까 그 곡만 가 지고 언제 무용반주를 하는 거죠

209 口 3-1O(1-12-Cl)). 예전에 녹음설에서 악기 이외의 효과음을 내셨을 때 상황이 궁금합니다. 구체적으로 설명이나 흉내 내주질 수 았는 소리가 있습니까? 뭐 파도소리 하게 되면 키에다가 콩을 굴린다든지. 바람소리는 뭐 부채가지고 낸다든지. 또 가야금으로 크레센도를 막 해서 물소리를 낸다든지. 목소리로 뭐 새소리, 개소리 뭐 그런 소리도 흉내내고. 그 다음에 그런 악기들이 또 서양악기 들이 있어요, 흉내낼 수 있는 악기들이. 목탁이라든지 뭐 북 같은 것도 뭐 예 들어 북을 뭐 엎어놓고도 치고 채 같은 결로 묘한 소리를 내본다든지. 또 병에다 가 물을 넣고 후 불어본다든지. 고무 호스가지고 벙벙 돌려서 바람소리를 만든다 든지 그런 특수효과를 많이 냈죠. 3-11(1-12-(2)). 전공약기인 해금, 거문고, 아까 가야금도 같이 시작하셨다고 했는데, 그 외에 다른 악기들의 연습시간을 어떻게 배분해서 할애 하셨나요? 그거는 이제 전공악기를 배운 후에 남는 시간에 아쟁은 지영희 선생님께 이제 예를 들어 내가 해금을 하는데 해금하는 아이들이 많았을 때, 선생님이 특별히 뽑아서 나는 아쟁을 내하했을 때는 또 아쟁도 했고 또 양금을 쳐라. 그러면 또 양금을 또 배워주셔서 양금도 쳤고. 북을 쳐라. 그러면 또 북을 치기도 하고. 그 때는 선생님이 하여튼 시키는 대로 이것저것 특수 악기, 공후, 비파, 뭐 이런 악 기들도 있었고, 대해금도 있었고. 또 이상하게 생긴 거문고도 있었고. 특수 악기 가 있으면 선생님들이 어떻게 소리 나나 봐서 시켜요. 그러면 내 전공악기 외에 그런 특수 악기를 좀 소리를 내고 그렇죠. 연습배분을 어떻게 하셨어요? 예를 틀어 거문고 3 에, 해금 2 에, 가야금 5. 그 런 식으로 나눠주시면 어떨까요? 그거는 내가 따로 개인 연습을 많이 하고 정해진 시간이 아니라 내가 빈 시간 에 연습을 했죠. 口 3-12(2-5). 영째성을 가진 아이가 시험을 보러 왔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선생 님들은 창의성 있는 노래냐 소질 같은 것을 발굴해내려고 할 것업니다. 평가 대상이 음악적 행동언가요? 그렇죠. 음악적 행동도 있지만. 인제 숨어 있는 장기. 음악적 행동 이외에 외적인 부분들도 같이 포함이 되는 거네요? 그렇죠. 그 부분들은 어떤 부분이 될까요? 음악적 행동 이외에. 그거는 뭐 말하는 거라든지 아니면 무슨 뭐 음악을 맞춰서 한번 춤을 춰본다 든지. 움직임을 본다든지. 뭐 또 다른 악기를 시켜본다든지. 흉내를 한번 내보게 한다든지 그런 방법이 있겠죠. 그런 것들이 모두 음악척 행동에도 포함이 되겠네요? 그렇죠

210 어떻게 영재성이다 아니다를 알아볼 수 있을까요? 그런 행동을 보였을 때? 아주 우리가 봤을 때 아주 영특하게 잘 따라 한든지 잘 한다든지. 우리가 생각 외로 아주 기발한 아이디어를 얘가 내서 표현을 했을 때 어른들이 깜짝 놀랄 정 도로 그런 기량이 나올 때, 아 얘는 천재성이 있다. 뭐 이런 걸 볼 수 있죠. 口 3-13(2-6). 이런저런 테스트를 하는 과정에서 소리를 질러보라 라는 의도는 무엇인가요? 성음 판단을 위해서인가요? 아니면 음악적 판단을 위해서인가요? 음악적 판단이죠. 口 3-14(2-7). 하루 만에 영재라고 점찍는 것이 아니라, 긴 시간동안 지켜보고 이 아이들이 어떤 특성들을 보이나 등을 연구를 하면 좋겠다 라고 말씀 해 주셨는데요. 어떤 사람들이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예를 들어 전문가? 아니면 학생? 아니면 뭐 국가에서 녹을 받는 누군가가? 뭐 많은 사람들이 볼수록 좋죠. 저희들끼리 노는 모습을 잘 관찰한다든지. 어 떤 테마를 주고서 마음껏 놀게 한다든지. 어느 장단을 막 이것저것 바꿔서 치면 서 놀게 한다든지. 아니면 지들끼리 노는 모습을 잘 관찰할 때, 어떤 사람은 이 렇게 볼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은 다른 쪽을 볼 수도 있으니까 좀 객관화해서 껴를 평가할 수 있죠. 그 사랑들이 교육전문가가 되나요? 아니면 음악전문가가 되나요? 아니면 어떤 특수한? 그래도 전공했던 음악전문가들이 보는 게 빠를 거예요. 음악 전문가라 하심은 살기인들 인가요? 아니면 이론? 실기인들도 있고 이론가들이 있는데 그래도 실기인들이 설기 알아요. 많이. 口 3-15(2-11). 악기는 특히 잘 다루는데 움직임을 못한다던지 뭐 야런 학생 이 었다고 하셨었어요. 움직임이라는 것을 거론하신 의도가 무엇인가요? 그것은 이제 느낌인데, 소리를 어떻게 가지고 노느냐. 그 다음에 껴가 잠재돼 있는 의식 속에 음악적인 요소나, 춤에 대한 요소나, 코믹한 행동의 요소나, 껴네 집안에 타고난 어떤 끼가 있든지 이런 걸 이제 찾아볼 수 있는 거죠. 음악적인 것이라면 전통예술에서는 움직엄이 꼭 필요한 것인가요? 필요하죠. 서양리듬이 아닌 한국적 리듬. 예를 들어 뭐 자진모리나 이런 걸 가 지고 움직임하고, 4/4 서양박자의 움직임은 틀려요. 그래서 인제 그럴 때 우리나 라 리듬을 가지고 노는 것이 멋스럽게 잘 움직여지느냐 그냥 기계적으로 체조처 럼 움직이느냐 하는 건 틀리죠. 口 3-16(2-13). 음악가나 예술가의 상이 었고, 그 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교육이 펼요한데요. 그렇다면 교육을 어떻게 잘 해야 이상적인 음악가가 될 수 있다 고 생각하십니까? 아이들, 선생님, 기관이 해야 할 일을 각각 말씀해 주십시요

211 그건 뭐 다각도로 노력을 해야 할 거예요. 선생님이 해야 할 일도 있고, 또 뒷받침 해줘야 할 일도 있고. 개인에 따라 노력도 해야 되고, 가정의 뒷받침. 또 친구들 간에 유대관계, 분위기적인 것이 다 합당하게 맞아야 제 발휘를 한다고 봅니다. 구체적언 어떤 안이 나와 었는 상태에서라면 말씀하시기가 쉬울 텐데, 지금은 구체적으로 좀 말씀해 주시기는 어렵겠죠? 그렇죠 전공분야 외의 다른 분야에 관심을 두신 적이 있었습니까? 많았죠. 연극, 그렴, 영화, 또 뭐 인제 여행이라든지 뭐. 4-1-(D 그런 관심을 어떻게 해결하셨습니까? 나 같은 경우는 연극학원에도 다녀봤고, 영화는 뭐 엄청 많이 봤고, 그 다음에 이제 뭐 여성국극단이라든지 이런 거는 본 건데 또 보러 다녔다든지 계속 관심 을 가지고 있었고. 하여튼 보통 딴 애들이 공부하러 다닐 때 나는 그게 공부라고 생각하고 다녔습니다. 口 4-1-(2) 그런 경험들이 구체적으로 전공하시는 예술분야에 어떤 영향을 미치 게 됐습니까? 절대적으로 영향이 있죠 그게. 구체적으로? 왜냐하면 산조를 배운다 하면 즉흥성도 막 나오게 되고, 장단을 가지고 마음대 로 놀 수도 있고. 그 다음에 무용반주 할 때도 특이하게 반주를 좀 재주를 피울 수가 있고. 노래 반주할 때도 잔가락을 많이 넣어서 표현을 해본다든지 뭐. 하여 튼 남보다 독특하게 뭘 하려고 하는 그것이 만들어서 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에 축적된 자기의 예술세계를 그런데다가 덮어씌우면서 발전되게 도움을 주는 거죠. 口 4-2. 학생 시젤에 전공분야 이외에 다른 예술분야의 전공자와 교분이 있었나요? 그거는 언제 서양음악대학에 다니면서부터 내가 주로 했다고 봅니다. 피아노 치는 학생들, 아니면 플룻이나 바이올린이나 이렇게 그런 아이들하고 놀아보고. 그 다음에 음악 외에는 별로 그렇게 많이 없었고. 연극 반주. 연극에 관심이 있 어서 연극음악을 많이 했었어요. 연극음악을 하면서 같이 밤도 새워보고. 무용 반주. 무용하는 사람들하고 많이 어울리고. 전공과 관련성이 있었나요? 많이 있죠. 그건. 구체적으로 어떤 관련인지? 있죠. 그거는 뭐 내 음악 속에 다 묻어져 있어요. 누가 말했듯이 내 음악을 으면 무용곡 같다는 소리도 있고. 내가 작곡한 곡 속에는 춤이 보인다는 말도 있

212 고. 또 연극음악을 하게 되면, 마치 노래하는 것 같다든지. 그런 말들을 들은 걸 보면 내가 참 그동안에 축적된 그런 것들이 내가 연주하는 속에도 묻어져 나오 는 거죠. 나도 모르게. 口 4-3. 다른 분야의 관심과 경험을 자신의 전공분야에 활용한 기억이 었으신가요? 많이 있죠. 그런 것도. 뭐 그림을 본다든지 서양음악 듣는다든지 모방도 많이 해보고. 도움이 많이 돼요. 같이. 연관성이 있어요. 口 4-4. 다른 예술분야를 자기 전공분야와 함께 배운다면 어떤 이점이 었을까요? 아주 좋은 일인데, 그게 현실적으로 자칫 잘못하면 이도 저도 안 되는, 그냥 또 퓨전과 같이 흐를 수도 있죠 그게, 그니깐 어느 한 쪽에 집중해서 깊이 있는 음악이 안 되고, 다문화 모냥으로 다 받아들인다? 그건 조금 전문성이 떨어질 수 도 있어요. 口 4-5. 무대에 서기 전 혹은 시험이나 콩쿨에 나가기 전에 얼마나, 어떻게 연습 을 하셨는지요? 나가기 전에는 연습을 물론 많이 하는데 평소에 그냥 연습을 해둡니다. 평소에 연습을 항상 해두고. 인제 연주날짜가 잡히면 뭐 한 보름 전이나 한 달 전. 이렇 게 잡아가지고 매일 하죠. 어렸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업니까? 그렇죠. 네. 디 4-6. 어련 시절, 음악을 일방적으로 배우시던 그 시절에 음악을 하는 목표가 무엇이었나요? 왜 음악을 포기하지 않고 하신 것업니까? 그거는 그냥 내가 첫째는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고 또 지금도 좋고. 항상 음 악 하는 것이 즐겁고 좋다 라는 마음이 들어야 돼요. 그래서 후회를 하지 않는다 는 것. 口 4-7. 연습을 할 때 한 두 번 하고 마셨는지 아니면 스스로 원하는 목표를 정 하고 그것을 이루면 그만두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어쨌건 뭐 내가 체력이 다할 때까지 연습을 하는 거죠 뭐. 그러니깐 어렸을 때 는 뭐 아주 배가 고플 때까지 한다든지. 잠이 아주 올 때까지 한다든지. 이렇게 시간을 정해놓지 않고 계속 연습을 하는 거죠. 음악적으로 원하는 목표가 있었을까요? 그날그날의 과제? 그런 거는 없었어요. 이제 시험 때만. 이제 뭐 외워야 된다든지 그러면 고럴 때는 다 외우면 끝나는 거죠. 口 4-8. 어떤 상황에 연습을 시작하고 마쳤습니까? 예를 들변 음악에 대해 만족 할 때 그만둔다, 시간을 정해놓고 그만 둔다, 지루하면 그만둔다, 조금해도 잘

213 하니까 조금만 연습했다든지. 이런. 근데 연습을 하다보면 연습 속에 빠져서 재미가 나고, 그 재미를 따라서 따라 서 계속 하다보면 오랜 시간이 되고, 오랜 시간을 하다보면 배도 고프고 지치고, 그러면 그 때는 좀 쉬고. 그런 식이죠. 口 4-9. 무대에서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여 연습한 경우가 있습니까? 많이 있죠 그 최악의 상황은 어떤 것이며, 어떤 연습을 하셨나요? 그거는 뭐 경연대회라든지 무슨 큰 공연이라든지 또, 선생님들 앞에서 꼭 보여 줘야 될 공여니라든지 무게가 있는 공연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연습을 많이 해 야지요. 최 악의 경우란 어떤 경우일까요? 최악의 경우? 어떤 최악의 경우? 줄이 끊어지는 경우라든지 아니면 뭐.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철저하게 준비를 해야 되죠. 그래서. 그래 도 줄이 또 끊어져도 당황하지 말고, 뭐 다시 들어와서 악기를 바꿔서 나간다든지. 그거를 위해서 혹시 준비를 하는 경우도 있냐요? 준비 악기를 두 개를 준비해 놓기도 하고. 그런 적도 있어요 학생 때, 스숭아 가르쳐 주는 대로만 하셨나요? 아니면 다른 방법도 한 번 해보고 그러셨나요? 학생 때는 선생님이 가르쳐 준 대로 해야 되죠. 큰일 나죠. 선생님이 다 계시고, 옆에 계시고 그러는데. 막 자기 가락을 맘대로 할 수가 없죠. 디 남과 다른 자신만의 표현 방식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한 적이 었으십니까? 그런 적 있죠. 몇 살 때, 어떤 계기로 하셨습니까? 그거는 인제 내가 고등학교 때 전통곡을 많이 인제 한다 라고 내 나름대로 생 각한 다음부터는 인제 창작, 작곡 이런데 눈을 조금씩 돌리면서 산조를 짜본다든 지 뭐 민요를 좀 인제 펀곡해본다든지. 막 서양음악을 한번 arrange 해본다든지 고런 생각이 들 때 조금 조금씩 해봤죠. 그런 게 일종의 자신감이라고 볼 수도 있나요? 그렇죠. 그 때에 스스로의 기교를 형가를 한다면 어떤 정도라고 보질 수 있으세요? 예 를 들어 뭐 1부터 10까지의 처음부터 굉장히 고급 기술, 연주능력을 가진 사이

214 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였다고 생각하세요? 그거는 뭐 실습이죠 실습. 자기 인제 초보로 봐야 되고. 언제 고렇게 해서 조 금 조금씩 배워나가는 거지. 첫 번부터 만족하고 뭐 이게 100% 됐다라고 예술인 들은 그런 마음을 잘 안 갖죠. 항상 부족한 거기 때문에. 口 자신이 어느 정도 잘한다는 자신감이 든 적은 었었습니까? 잘한다고는 마음에서는 그런 마음을 하는 거보다 옆에서 얘기를 해주죠. 옆에 서. 굉장히 잘했다. 많이 늘었다. 칭찬을 막 해주변. 내가 정말 잘해지나 보다. 그 렇지만 내 자신은 아직도 멀었다. 더해야 된다 라는 생각으로 공부를 해야지. 아 이만하면 됐어. 그러변 인제 공부 끝난 거죠 그 때부터 이제 버리는 겁니다. 口 스숭아 하지 말라고 했던 표현틀을 해본 다음에 성공하신 적이 었습니 까? 예를 들면 여기서 농현을 하지 말라 라고 했는데 정작 해보니까 좋았다 든지 이런 경험이 었으십니까? 옛날에 그러다가 아주 혼난 적이 있는데, 내 맘대로 무대에서 하다가 이제 거 문고 산조였는데. 내 맘대로 막 하다가 신쾌동선생님께 아주 혼나고부터 그담부 터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고. 또 지영희 선생님도 그런 변에서는 아주 냉정하 시게. 거기 그렇게 하지 말아라하면 하지 말아야지, 막 하지 말라는데 하고 그 러면 그 다음부터는 아주 미움을 사는 거죠. 선생님들이 돌아가신 다음에, 하지 말라고 그랬던 건데 해서 좋았다든지 아니 면 관객의 반응이 좋았다든지 그런 게 었였습니까? 약간 약간 그럴 수도 있죠. 그렇게도 했고. 그래서 나도 이제 새로운 산조를 만들게 됐고, 거문고 산조를 타다가도 갑자기 내가 즉흥 쪽으로 살짝 빠졌다가 오기도 하고. 인제 속에 담아놓은 것들이 많다보니까 이것저것 막 뒤어나와요. 나도 모르게. 언제 그렇게 돼서 어떨 땐 나도 깜짝깜짝 놀라는 적이 있어요. 선생님들이 살아계셨으면 혼났을까요? 지금 나이에 선생님들이 계셨으면, 겨우 그것밖에 응용을 못 하냐 그러고 아마 또 저기할 수도 있죠. 그거는 언제 전통음악세계에서 인제 그 축적된 예술이 그 만큼 응용을 해야 돼요. 판소리도 마찬가지고. 배울 때는 선생님한테 엄격하게 잘 배운 다음부터는 그 다음부터는 선생님을 뛰어넘는 그런 것도 선생님들은 좋 아하시기 때문에 꼭 선생님을 흉내내서 똑같이 하라는 건 아니거든요. 口 스승에게 기본만 배웠던 상태에서 혼자 스승 없이 기본을 념어서 본 적이 있는가? 그런 거 있어요. 예를 들어 뭐 선생님은 이렇게 가르쳐줬는데, 나는 그거보다 더 뛰어 넘어서 막 만들어 본다든지. 또 다른 선생님들 걸 듣고서 조금 조금씩 더 첨가를 해본다든지 그런 욕심들이 막 생길 때도 있었죠

215 끝으로 예술영재연구원에게 바라는 점이 었으면 한 마디만 해 주십시오. 예술영재를 기르는 데는 그 책상에 앉아서 우리 관념으로 껴네들을 우리가 생 각한대로 이런 애들이 영재다. 저런 애들이 영재다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그런 아이들이 어디에 있는가 스스로 발로 뛰어다니면서 발굴을 해야 돼요. 찾으러 다 녀야 돼요. 왜 그러냐하면 내가 영재다 하는 애는 하나도 없어요. 나타나지를 않 기 때문에, 그런 조사단이라든지 경연대회라든지, 어떤 특수한 행사를 열어줘서 전국적으로 아이들을 풀어놔서 어떤 공연을 했을 때, 정말 특출한 애가 올 수도 있거든요. 그런 애들은 나올 수도 있지만 모르고 집에서 딴 일을 할 수도 있는데 주변 주변 동네 동네 뭐 학교 학교마다 연계성들이 있어서, 그런 애들이 있다. 그러면 발로 뛰어다니면서 그런 애들을 발굴을 해서 찾아보는. 그러니까 움직이 면서 찾아보는 행정이 됐으면 해요. 그래서 영재들이 그렇게 제도권에서 탁탁탁 나와 주지는 않는다는 거. 그 다음에 길러지는 영재도 있겠죠. 인제 어떤 제도에 들어와서 정말 시켜보니까 잘하는 애도 있겠지만은 그냥 날 때부터, 또 그 집 가 운( 家 運 ), 가문, 조상 대대 할아버지 대부터 어떤 예술을 했던 집안의 자손. 그런 애들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어요. 왜냐 하면 우리나라 전통사회에서는 무속집안 이면 무속인이 쭉 끊이지 않고 나오고, 스님집안이면 스님이 계속 나오고, 이런 일들이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발로 뛰어다니면서 그런 걸 다 조사해보는, 움 직이면서 조사해보는 제도. 이런 것도 좀 참고했으면 합니다. 서용석 디 1-1. 당신을 영재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동의하는가? 제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요. 인제 쉬운 말로 예술은 백점이 없다고 하잖아 요. 그러니까 지금 내가 아는 거 이상 더 알 수 있다는 얘기잖아요. 그러니까 내 자신이 영재라 할 수 없지요. 口 1-2. 어련 시철(대략 10세 미만, 톨캡이 쯤. 예술교육 연령 이전) 부모나 주 변에서 이야기하던 당신만의 행동특성이 었었습니까? (예를 틀면 음악이 나 요변 춤을 춘다던가.) 예. 내가 어렸을 때는 친척 이모한테는 우리 어머니 밑에 동생 박초월 선생님. 과거에 홍천 양반인데 그 분이 인자 집에서 항상 제자를 길렀거든요, 소리. 그래 나는 인자 그 소리가 참 듣기 좋아가지고 배우기도 하고 그랬어요. 어린 나이에. 口 1-3. 우리가 당신을 영찌라고 부르기 이전인 어련 시절에 당신의 찌능을 타 언이 알아 본 척이 있었던가? 알아봤다면 口 1-3-Q) 그 타인은 누구인가? 어렸을 때 내가 어른들이 용석이는 국악을 하면 좋을 거 같다 그런 얘기를 어른들이 했지요

216 어른들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분이신지? 옛날에 우리 이모님 박초월 씨하고, 또 그 외에 이모님들이 많았었어요. 여형 제가 많에 가꼬. 외가의 이모님들이. 口 1-4. 동료냐 작고한 전통분야의 인물 중에 영재라고 생각하는 인물은? 口 누구? 그 이 유는? 전홍철 선생님. 전홍철 선생님은 그 말하자면 국악인으로서 국악의 멋을 가지 고 있는 훌륭한 분이시죠. 그래서 내가 그 선생님의 멋을 많이 듣고, 보고, 배웠 습니다. 口 1-4-(2) 전홍철 선생님의 전공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원래 소년 시절에는 소리를 했지요. 소리를 했는데 중간에는 인제 아쟁을, 지 금 국악계에서 한일섭 선생님이 창시자다 하는데 그 분은 자기가 창시자다 이거 예요. 내가 먼저 아쟁을 했었다 그런 얘기를 하고 있고. 지금 현재는 판소리 고 법, 판소리 고수로 문화재로 있어요. 전홍철 선생님께서 멋을 아신다고 했는데 그 벗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씀 해 주세요. 글쩨요. 그결 어떻게 말해야 할지. 口 1-5. 당신이 본격적으로 스승을 모시고 학습이 시작된 시기? 내 18세 때, 그때 당시에 박초월 선생님이 남편 분 있어요. 김광식 선생이라고, 그 선생님이 대금 민속음악의 대가거든요. 대금의 인제 대금 산조가 아니고 그거 는 인자 전라도 민요, 대풍류 이런 종류의 음악에 아주 대가였어요. 내가 보기에. 내가 그 분한테 대금을 배웠지요. 이모부. 이모부 스승을 모시고 (음악, 무용, 연희 등동)학습했던 내용을 시기별로 구체 적으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에 그러니까 시기적으로는 그게 언제 그때가 몇 년도고. 응? 언제라고는 기억 이 안 나지만은. 18세 때 대금 학습이 시작되었고, 선생님은 대금도 하시고 아쟁도 하시잖아요? 아쟁은 정철호 씨한테. 몇 세에? 그때 내가 대금을 배워가지고 지방순회공연 다니고 와서 아쟁을 했거든요. 그 때가 내 나이 한 25살 때. 口 1-7. 음악가 집 안인가? 네. 대금은 김광식 이고, 아쟁은 정철호 선생님. 옛날에는 국악에 국악인이 인

217 기가 안 좋아가지고 어른들이 반대를 했어요. 그런 거 하면 뭐하냐고 그런 거 하 면 못 쓴다고, 굉장히 애로가 많았습니다. 아버님한테 대게 혼나고 그런데 그래 내가 꼭 해야겠다는 마음이 딱 드니가 기어이 한 거죠. 왜 김광식 선생님을 스승으로 모시게 되었는지요? 대금을 하고 싶은데 일단 이모부니까. 그 배우기 쉽잖아요, 이모부니까. 대금전 공을 해야 겠다 해서 내가 배우게 된 거지요. 口 1-8. 자기발전의 동기는 어떻게 부여하셨습니까? (동료 간의 경쟁, 스숭의 격 려, 자신의 목표 등등) 내가 대금 제자들을 좀 많이 길렀어요. 아쟁은 우리 아들, 4형제인데 큰 아들 한테, 아쟁을 내가 물려줬어요. 이모부님의 끊임없는 격려로 인해서 대금 질력이 늘었나요? 그 어른에게 대금의 기초를 배운 거지요 기초를 배우고 인제 내개 내가 인제 이혜숙 선 생님, 한주환 선생님 그런 분들의 녹음을 가지고 내가 많이 개인 노력을 했지요 口 1-9. 전통예술에 대한 당신의 집안 분위기는 어떠했습니까? 외가 쪽은 국악 인이 많았지만 대체적으로는 국악에 대해서는 회의척인 시션이었군요. 장려하 지 않는 집안 분위기? 예. 외가에서는 반대하지 않았나? 예. 반대하지 않았죠. 口 어련 시절 당신의 대금 연습량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하루에 한 열 시간 이상 했다고 봐야지요. 에 그러니까 뭐 어떤 시간을 보고 게 아니고, 내 기분에 인제 이 정도면 됐다. 내가 바라는 그 실력이 됐다 하면, 힘들고 그러면 그럼 그만 하는 거지요. 시간을 보고 하는 게 아니고. 口 연습과 연주 외에 음악 감상을 할 수 있었습니까? 다른 음악, 그 양음악도 내 좋아해요. 기타도 치고 그랬어요. 口 전공분야 외에 다른 예술분야에 대한 학습과 경험에 대해 말씀해 주세 요. 대금과 아쟁 이외에 다른 예술. 그러니까 서양 양악기도 되겠고, 참, 기타 를 하셨다니까 기타는 어느 만큼 치시는지요? 아. 보통요. 친구들과 어울려서 노래 반주하고 같이 노래할 수 있는 정도. 口 1-12-(2) 여러 악기를 연주하는 경우 각 악기의 연습량을 어떻게 조철? 전 그때그때 시간이 있으면 그 시간을 이용해서 잠깐 잠깐. 노력을 했어요

218 기타야 선생님께서 취미로 하신 거고, 대금과 아쟁은 주 전공이시니까? 언제 내가 피리하고 해금하고 만들었어요. 곡을. 대금하고 }쟁 하고, 하루에 어떻게 연습량을 나누시는지요? 시간 뭐 시간이 딱 묶여 있는 게 아니니까. 그때그때 인제 시간이 있으면 연습 실에서 보통 때 생각하고 있던 음악을 가지고 해 보는 거죠. 口 여러 악기의 연주(제 예술분야의 섭렵)가 당신의 전공분야에 어떤 영향을 마치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주 전공은 대금이신데 그 야외의 악기와 작곡 둥이 대금 연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요? 예. 악기를 다루지만 음색은, 음색은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그 서로 악기의 음 정이 그 효과가 있지요. 음정에 효과가 었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그게 그 아쟁이나 대금은 같이 해도, 그 곡조만은 같은 곡조가 아니거든요. 그 러니까 인제. 口 전통적으로 애기영창, 소년명창 이란 말이 았습니다. 이 말에 대한 평가 부탁합니다. (애기명창이라는 자체가 한계적 상황을 노출한다고 보이는 데, 애기명창은 명인이 되기 어렵다는 뭇언가요? 아니면 애기 때부터 명인의 자질은 타고 난다는 것인지요?) 그렇지요. 애기 명창은 벌써 애기라고 할 수 있는 어린 아이인데 명창 말을 붙 일 수 있는 그만큼 훈련이 되는 거를 얘기하는 거죠. 긍정적인 거네요? 예. 口 2-1. 전통예술에 영재가 었다고 생각하는가? 있지요. 口 2-2. 전통예술영째라 할 만한 아동을 보신 적이 었습니까? (초등 중등 고등) 예. 가끔 가끔 보지요. 가끔 보고 또 우리 직계 손자가, 직계 손자가 지금 영 재. 아주 말하자면 저거 아빠가 하고 내가 아쟁을 할 때였고 아빠가 인제 그 아 또 같이 낳았는데 그렇게 아주 실력이 뛰어나요. 口 2-2-(j) 나이가? 나이가 인제 18세. 口 2-2-(2) 전공이? 아쟁

219 口 어떻게(어떤 전공, 혹은 징후를) 발견했나요? 그 나이에 굉장히 어려운데 어려운 것을 무리를 없이 해결 하니까. 소화롤 하면서? 대회 나가서 네 번이나 1 등을 했고, 교육감상 받고 그랬어요. 손주 분이 언재부터 아쟁을 켜는지, 몇 살 때부터 아시게 되었는지요? 중학교 왔을 때. 口 2-2-(5) 계속 교육을 시켰는지요? 예. 口 2-2-(5)-(j) 어떻게 교육을 시키셨는지요? 아들이 인자 아들헌테 34) 떠는 음을 이렇게 해 보라고 시키니까 무난히 잘 돼 요. 그래서 아쟁에 소질이 있구나 해서. 서용석 선생님도 큰 아드님도 가르쳐 주시고? 예. 달라 학원 같은 곳에 갈 필요가 없네요? 그럼요. 당연히 저거 아빠한테. 口 2-2-@ 지금도 계속 아쟁을 전공하고 있고요? 지금 전통문화예술고등학교, 口 2-3. 전통예술영찌 선발에 적철한 연령은 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해당전공 /전통일반) 중학교, 중학교 들어가는 나이. 口 2 4. 무엇이 전통예술분야 영채성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생각나는 대로 무순 으로 말씀하셔도 팬찮습니다. 그 말하자면 우리 전라도 음악은요. 애절하고 그 계변조, 애절한 음을 내기가 어렵거든요. 그 음을 소화를 했으면은, 소화를 무난히 해 내면 영재라고 봐야 돼 요. 그 어려운 걸. 口 2-5. 위에 말씀하신 내용은 해당전공의 영재성인가요? 아니면 전통 전반인가 요? 구분해서 말씀해 주설 수 었을까요? 계면조를 소화해 낸다는 것은 전통 일반에 대한 영째성인가요? 예. 34) 손자

220 口 2-6. 선생님은 해당전공의 영재를 알아볼 때 무엇을 어떻게 해보시겠습니까? 노래를 부르게 하나요? 춤을 추게? 구체적으로 어떤 노래 행동을 시켜보시나요? 우리 음은 대금이나 아쟁이나 거의 같다고 봐야 돼요. 한 가지만 음정을 잘 이 해를 하고 받아들이변은 다른 악기를 해도 그렇게 잘 돼요. 예. 口 2-9. 영재의 기교가 아닌 창의혁과 동기를 알아볼 수 었는 방법은 무엇이 었 을까요? 그 음정을 듣고 아는 거지요. 기교냐 아니냐가 음정만을 듣고 판벌이 가능한가요? 예. 口 국내에서 전통예술영찌들이 성장하는데 가장 큰 걸렴돌아 되고 었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원래 대 놓고 칭찬하면 좋지 않다고 해요. 디 선생님째서는 전통예술영재의 예로 아쟁을 하는 손주 분을 말 씀해 주셨는데요. 손주 분이 어려운 것을 우리 없이 잘 해결해 나간다고 하셨 는데, 그 어려운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요? 그러니까 아주 그 우리 민속음악의 아쟁의 애원성 같은 거. 그런 것을 보통 사 람이 하기 힘든 것을 무난히 해 냄니다. 애원성이 어떤 것인지요? 뭐냐하면 가슴을 쩡허는, 가슴이 쩡허게 느낌이 오는 애원성 말이죠. 그 만큼 표현력이 뛰어나다는 겁니까? 예. 口 손주 분야 }쟁에 소질이 었구나 하셨는데, 그때가 몇 살업니까? 중학교 갈 무렵, 초등학교 졸업하고. 그 내가 그때 전라북도 완주에 살았거든 요. 그런데 내가 가만히 보니까 굉장히 소질을 타고 났고. 그래서 그때 내가 학 교를 살펴보니까 전주예술 중학교가 있어요. 큰 행사도 하고 학교도 괜찮다 싶어 내가 손주를 그곳으로 보내야겠다 싶어 가족들과 얘기해서 예술중학교로 보냈지요. 口 손주가 애원성을 표현하는 것을 보고 영째라고 느끼기 이전, 행동 특성은 없었나요? 내가 남원에서, 국립민속국악원에 있는 그 판소리하는 단원들이 있어요. 단원 들한테 한번 창을 가르쳐봤어요. 창을 가르쳐보니까 굉장히 큰 애들 하는 거 =, 따라 하기 힘든 것을 따라서 다 소화를 시키더라구요. 창도 판소리는 아니고 진 도 아리랑 이라 할지 옛날 고재 민요. 이거를 시켜보니까 굉장히 하기 힘든 것을 소화를 시켜요. 그런 걸 다 포함해서 말하는 거지요

221 口 3-4(2-4). 무엇이 전통분야의 영재성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전통음악의 말하자면 그 판소리랄지 민요, 또 악기도 언제 여러 있을 테지만 악기를 한번 시켜봤을 때 보통 사람들과 달리 다르게 면 그런 걸 가지고 알 수 있지요. 가지 악기가 잘 받아들이 잘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만큼 뛰어나다는 겁니까? 예. 그렇지요. 口 3-5(2-5). 소질이 었구나 째주가 있구나 할 때, 내기 어려운 계변조의 그 애 절한 음을 무난히 소화해 낸다면 영재라 하셨는데요. 아쟁에 한정된 영재성안 가요? 전통일반에도 해당 되는 영재성인가요? 그러니까 판소리의 계변조. 판소리 계변조의 예를 들면 춘향가의 이별하는 대 목 에 그런 것 음정은 기악에서 나오거든요. 그 음정이 창을 허나, 악기로 허나, 그 음정이 어렵지. 어려운데 소화를 시키면 영재라 할 수 있지요. 아쟁뿐만이 아니란 거네요? 그렇지요. 口 3-6(2-6). 선생닝께서 해당전공의 영찌성을 알아보설 때 어떻게 바른손으로 활을 긋고, 왼손으로 농현, 떠는 음을 한번 시켜보면 보면 빨리 이해를 하면 알 수 있지요. 하시나요? 알아요.시켜 대금은요? 아쟁의 경우도 그렇고, 대금도 거의 같아요. 대금도 입김을 넣지만, 가로 불고 왼손으로 떨잖아요. 떠는 거 떠는 거 그걸 소화해 내는 가로 판별을 하죠. 口 3-7(2-10). 영찌 발굴에서 제안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특별히 발굴해야 한다는 것은 없지만은, 하여튼 부모님이 원해서 어린 애를 가 르킨다든지 해도 한 몇 번 가르켜 보면 영재인지 아닌지 알아요. 초보자는 다 힘 들잖아요. 나이가 들었어도 초보자는 뭐든 처음에는 어려우니까. 어느 정도 소화 시킬 수가 있는가를 보고 영재인지 아닌지 알아요. 口 3-8(2-11). 영째 선발을 맡은 선생님을 어떤 방식으로 선정하는 것이 공정하 고 정확할까요? 글째요. 어떤 방식으로. 아! 인제 요새 레슨들 많이 하잖아요. 선생들이 레슨 할 때 그 레슨 하는 방식인데, 그 중에서도 레슨 하는 식으로 해 가지고 그 사람 의 소질 쉽게 얘기해서 소질이 얼마나 있는가 그결 보는 거지요. 학생들뿐만 아니라 선생님도 레손을 해서 소질을 보고 적당한 선생닝을 뽑는 건가요? 선생님을 뭐 레슨한다기 보다도 그냥 보통 실력 있는, 명성이 높은 선생님들은 - 212

222 다 실력이 되지요. 口 3-9(2-12). 우리나라에서 전통예술영재들이 성장하는데 가장 큰 걸렴톨이 되 고 었는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부모님이 그러니까 직계자식이나 손주들도 그런 소질이 있는가 미리 알아채가 지고 계속 뒷받침을 잘해야 되요. 뒷받침을 잘해야 인물로 클 수가 있지요. 그런 데 인자 장난삼아 시켜보고 안 해버리면 아까운 영재감이 발휘를 못하는 거지요. 뒷받침을 잘해주고 거기에 그 아이에 맞는 선생님을 잘 연결시켜야 돼요. 부모는 그렇게 해 주고 싶은데 가정형편이 어려울 때는? 가정형편이 어려울 때는 말하기 곤란하지요. 형편이 안 되면은 어쩔 수가 없는 거 아니에요. 모든 것을 다 지도받는 선생님한테 그냥 봐 달라 할 수 없는 거고. 口 3-10(2-13). 앞으로 전통예술영째가 성장해서 음악가로서 당당해야 할 몫이 었다면 어떤 것이 았을까요? 난 항상 학생들 제자들에게 열심히 해라 노력 끝에 성공이다, 노력의 뱃가는 분명히 있는 것이다. 이걸 가장 중요하게 얘걸 해요. 예를 들면 레슨 받을 때도 다른 사람이 두 사람 있으면 한 사람은 100번을 연습하고 한 사람은 99번을 연 습했어요. 1 번 차이지만 100번을 연습한 사람이 뛰어납니다. 그래서 열심히 해라. 100번 연숍한 제자들이 성장해서 성공한 음악가가 되었는데 해주시고 싶은 말 씀이 었으시다면요? 그결로 만족하지 말고, 예술에는 100점이 없는 것이니까 더 더욱 더 노력을 해라. 口 3-11(1-7). 선생님께서는 대금을 어떤 계기로 하시게 되었나요? 민속무용반주곡이나 창극의 아주 그 효과음악을 하는데 아쟁이나 대금이 아주 효과가 좋아요. 그걸 듣고 매료되어 시작하게 되었지요. 대금에 매료되어서 시작한 것이 몇 살 때 이섭니까? 15-6세 때죠. 口 3-12(2-3). 요즘에는 영재를 꼬마 때부터 교육을 시키잖아요? 너무 꼬마 때는 몰라요. 그렵 사춘기 때 시작해야 하나요? 사춘기 앞두고 너무 나이가 어려도 안 돼요. 스스로 선택할 나이에 시작한다면 중요한 시기에 악기를 놓는 얼은 없을 꺼라 하셨 는데, 선생념도 그런 맥락으로 사춘기 즈음에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는 건가요? 여

223 口 3-13(1-10). 아쟁 같은 경우 20대 초반에 }쟁을 시작하셨다 하셨는데, 아쟁 은 하루에 몇 시간 연습하셨나요? 하루 종일요. 밥 먹을 때나 잠잘 때는 안하지만, 놓은 적이 없었어요. 전홍철 선생님은 약주를 좋아하셔서 아쟁을 별로 만지지 않으셨어요. 구음으로 해서 따 라하라 하고 그랬는데 그 양반이 어디 간다 온다 말도 없이 일주일만에도 오고 그랬는데 나는 계속 연습을 했거든요. 그 분이 어딜 다녀오면 내가 계속 아쟁을 하니까 그분이 아따! 용석이 아쟁 하는 정신력이 되었다. 내가 며칠 만에 와도 대단한 노력이다. 꼭 대성하겼다 그러셨어요. 대금도 하셨는데, 대금과 o}쟁의 연습량 조철은 어떻게 하셨나요? 그때그때 대금하고 싶으면 대금을 하고. 대금하다 힘들면 오래 들고 있으면 목 이 아프고 어깨가 아프거든요. 그래 힘들면 아쟁을 하고. 식사하시거나 주무시기 전에는 악기를 놓지 않으셨나요? 예. 대금하다 아프면 }쟁 하고, 아쟁하다 아프면 대금하고? 예. 하하하. 연습하시다가 이 정도변 했다 할 때 하루 연습을 그만 두셨다고 하셨는데, 이 정도변 했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결정하시는지요? 내가 할 만큼 해가지고 지쳐가지고. 이 정도로 열심히 하면 나중에 좋은 결과 가 오겠지 그러는 거지. 믿고 하시는 건가요? 예. 통기타는 언제 배우셨고, 연습은 얼마냐 하셨나요? 그건 12-13세에 했어요. 아는 분이 기타를 치는 분이 있었어요. 밤 시간에 그 분한 테 배우기 위해 30리 길을 걸어갔어요. 가서 배우고, 못 오면 그곳에서 자고 아침 일 찍 오고. 자고 아침에 올 때는 또 우리집 오기 전에 인제 뱃물 흘러가는 개울이 있어 요. 거기에서 또 노래를 하고 싶어서, 가수가 되고 싶어서, 발성연습. 아! 아! 하고 인 제 한 번 하면 모래위에 일 자 쓰고. 백번이 뭐 예요. 가수가 되고 싶어서. 선생념이 말씀하는 가수는 대중가수입니까? 예. 통기다는 가수가 되고 싶어 하신건가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음악이 좋아서 기타 소리가 하도 좋아서 배운 거지요. 통기타가 좋아 30리 길을 가서 배울 열정이면 통기타 가수로 나갈 수 있었을 렌데요? 그때는 아버님이 6.25 때 돌아가시고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그 길로 갈 수 가 없었어요. 하고 싶을 뿐이지 진행을 못했지요

224 음악은 너무 하고 싶은데 대금을 이모부님이 하셔셔 배우신 거군요? 예. 음악은 항상 선생님의 친구셨네요. 예. 대금과 아쟁을 연습한 시간은요? 한 시간 이상 하다가 또 바꾸고 그랬어요. 口 작곡도 하셨나요? 예. 작곡을 했지요. 어떤 곡을 하셨어요? 지금도 만들고 있는데. 신 뱃노래, 꽃 피는 동산, 홍겨운 마을, 사철가. 사철가 지만 지금 판소리 하는 사람들의 단가 사철가가 있어 곡목을 사계절 노래라고 바꿨어요. 이 노래들은 민요인가요? 신민요지요. 작곡은 언제부터 하셨나요? 내가 한참 젊었을 때는 전국에 순회공연 다니는 여성국악단 이 있는데, 내가 거기 다닐 때부터 선배님들이 작곡 하는 것을 보고 나도 언제 뜻이 있어 귀담아 듣고 현재까지 하고 있지요. 몇 세에? 20 대 초반이지요. 내가 요즘 시대에 맞겠금 피리 산조, 해금 산조도 만들었어 요. 신곡이 아니고. 산조가 옛날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산조가 문제가 있어. 요즘 시대에 맞게 만들었는데 호평을 받고 있어요. 여성국악단과 같이 순회공연 다닐 때, 선배들이 작곡하는 걸 보고 그때부터 작 곡을 하셨나요? 여11. 그때 작곡한 곡이 민요인가요? 예. 그럼 민요를 청년시절부터 계속 작곡 하셨나요? 예

225 이생강 口 1-1. 당신을 영째라고 생각하고 있다. 동의하는가? 뭐 동의보다는 어릴 때 저는 영재보다는 천재라는 소리를 듣고 자랐으니까. 口 세 미만 정도 나이에 부모님이나 주변에서 얘기하셨던 선생님만의 특 별한 행동특성이 았었나? 그게 아니고 저는 자연발생적으로. 우리 아버지가 직업은 운전수였는데 기사인 데, 아버지가 고국 생각이 나서 피리라든지, 단소라든지, 퉁소라든지, 대금을 만 들어가지고 혼자서 득음을 해서 연습을 했어요. 일본 동경에서. 그러다보니 제가 자연적으로 아버지가 부신 악기를 먼저 만난 것이 단소입니다. 그 단소로부터 시 작했기 때문에 뭐 어떤 주위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 안 끼쳤다 이게 아니라 자연 적으로 하게 돼 있는 거죠. 내 주의가 아버지를 감사하고 해서 아버지가 가르침 으로 이래 했는데 결국 한국에 나와서 계속 음악을 하게 됐고, 또 그 때는 우리 아버지가 하지 못하는 전문적인 분야에 선생님들이, 그 다른 사람들께는 상당히 참상인데, 6.25 전쟁이 일어나서 23분이 전부 부산으로 피난 오는 바람에 제가 그 속에서 선생님들 23분의 은사님을 변 거죠. 음악이 나오면 춤을 춘다던가, 악기만 보면 불고 싶었다든지 이런 것이 있었냐 하는 질문업니다. 그런 것이 아니고 나는 아버지가 하는 것을 그냥 뺏어서 소리를 내기 시작한 거니까. 뭐 자연히 뭐 그것이 전문적인 그 발로가 됐겠죠. 주위의 해라해라 어떤 하는 분위기가 된 게 아니고 뭐 자연적으로 아버지가 하는 거. 口 1-3. 주변에서 선생님을 특별하다고 보신 분은? 알아봤다면 口 1-3-(1) 그 타언은 누구인가? 그건 외국에 일본에 있는 분들이 아버지 혼자 생각에는 벅차고, 얘가 신기하게 도 이걸 적어도 몇 년 간을 불어야 소리 나는 퉁소를, 즉 샤쿠하치 라는 악기인 데 그걸 얘가 그것도 소리가 내 가지고 입이 다 들어가는데도 소리가 나니 이건 아무래도 이상하다, 그래서 우리집 옆에 국제극장이라고 일본의 동경 아사쿠사 옆에 있는 국제극장 곡사이게끼죠 라 그러거든. 근데 거기에 가서 일본 선생님 이 나를 테스트를 해야 된대 나를. 하니까 이말 저말 하다가 일본 옆으로 부는 소금도 요꾸히 라고 하거든요. 중국에는 디즈 라 해서 당적이라고 그러고, 우리 나라에서 소금이라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그결 횡적 요꾸히 라 그래요. 그것도 마음대로 불고, 그 어려운 <오히악기>라는 곡을 불고, 요즘으로 말하면 산조, 시 나위 식으로. 그래가 그게 예사롭지 않으니까 선생이 놀랬죠. 그래가지고 이 아 이는 부는 것만 가르쳐라

226 그 일본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기억하십니까? 그 때는 그 사람이, 선생님이 긴고류라고, 일본은 긴고류, 매잔류, 도잔류, 우리 같으면 이생강류, 무슨 류 있듯이 국가에서 지정을 받은. 지금은 뭐 지정도 안 받아도 지 맘대로 만들면 무슨 류라 그러잖아요 그게 아니고, 나처럼 국가에서 지정받은 분에 대해서 긴고 류로, 금자 임금 왕 두 개 있죠? 고자는 옛고 자, 류는 흐를 류 자. 금고라는 그런 류라 이 말이야, 거기 선생님이야. 그러니 어릴 때라 내가 기억을 못하죠 口 1-4. 동료나 작고한 선생님들 중에 이분은 영재다. 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口 누구? 전공? 그 이유는? 그렇죠. 그때 뭐 소리하는 분은 임방울 선생님, 김소희 선생님, 고담에 언제 또 경기 쪽에는 뭐 안비취, 고백화, 여기 또 김옥섬, 생전 살아계신 분 말고도, 왜냐 하면 우린 보면은 아, 저 분이 선천적으로 타고날 때 체질이 있었구나 하는 것을 판단할 수 있다고요. 내가 말하는 것은 후천적으로 잘하고 못하고 이거는 물론 잘하니까 그렇지만은 내가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 봤을 때 저 분도 어렸을 때 그 소리를 내처럼 들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도 내 윗대 분들이니까 또 선생님으 로써 그분들을 내 보살피며 탱긴 게 아니지 만은 그분들의 그 빼어난 그런 사람 이 있다 이거지. 그러니까 그런 분들이 내 눈에는 많이 발견됐지, 그러고 악기는, 기악은 이래 봤을 때, 강태홍 같은 선생님, 가야금 강태홍 그런 분들. 또 이래 는 분들은 웃대 분들에 우리 선생님 한주환 선생님 있어도, 그분은 대가 소리 들었지만 우리 선생님이까 당연히 그렇지만 그분 어린 과정을 모르겠고. 박종기 란 분을 듣기만 들었고, 음반을 들었고, 우리 선생님 과정은 들어 가르키면서 했 기 때문에 우리 선생님도 뛰어난 귀재다 그렇게 말씀드릴 수 있죠. 디 1-5. 본격적으로 한주환 선생님을 모시고 공부한 시기는 언제업니까? 1947년 8월. 그 이후로 선생님이 돌아가질 때까지? 15 년. 口 1-6. 배운 시기별로 어떤 것을 학습했는지 내용을 알려주십시오. 거는, 우리 선생님 만나기 전에는, 우리 아버지한테 이 경기도, 즉 말하면 그 경기도 쪽 남도 쪽이 아니라 그 전라도 쪽의 음악이 아니고 경기 쪽 음악, 그런 음악을 마 기초를 다 섭렵할 정도로 단소, 소금, 피리, 퉁소, 태평소, 대금이 제일 늦게 시작했다구. 그래서 상피리 7 개 악기 중에서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이 단소였 어. 소금, 그 다음에 퉁소, 피리 이렇게 했는데, 그 때 당시에는 뭐 민요 이런 경 기제로 했기 때문에 지금 어려운 산조 라던지 긴산조 이런 거는 우리 선생님 35) 께 배웠지 딴 데서 배운 일이 없거든. 35) 한주환 선생님을 말한다.(기록자 주) - 217

227 口 1-7. 음악가 집안이십니까? 우리 집에는 우리 할아버지는 원래 요즘 같으면 법관이었고 사헌부 감찰사였 고, 감찰사니까 아마 검사역할 했죠? 그리고 우리 아버지는 공부하기 싫어서 일 본에 들어가서 운전을 했는데 아버지는 직업적이 아니라도 음악을 좋아하셔서 결국은 그 제자가 동해 별신굿 하던 김석출. 그분이 우리 아버지 제자예요. 그럴 정도로 부는 것을 잘 부셨다고 하는데 단 산조를 못하셨어. 남도 꺼만 못 했을 거야. 그러니까 우리 집에는 인자 집안은 아버지로 인해서 어느 분이 발달 되어 있으니까. 그냥 이렇게 직업적으로 뭐 요즘처럼 한 게 아니고 아버지는 아버지 개인으로 혼자 뭐 그. 들었겠죠. 우리 아버지는 4 대 독자인데, 그러니까 아마 외 롭고 이러니까 대나무 끊어가지고 어렬 때 불고, 17살 때 키가 1 미터 91 이야. 그 러니까 마 워낙 덩치가 크고 이러니까 16살 때 도망을 가버렸어. 19살 때. 20살 념으면 그 때 징용을 끌려갔거든. 군대를 가던지. 근데 나이가 16살 밖에 안 되 니까. 동경을 가서 일본사람 밑에서 운전을 배운 거야. 그래가지고 뭐 고향생각 하면서 불은 건데. 결국은 나중에 우리나라에 해방된 이후에 이 소금이라든지, 피리라든지, 또 단소라든지, 리코더라든지 이런 그 악기를 만들어서 최초로 우리 나라에서 판 분이 우리 아버지야. 악기를 만들어서 파는. 왜냐하면 자동차 사업 도 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다 빼앗기고, 정부에 다 빼앗기고, 또 친일파로 몰려 서 재산 다 빼앗기고, 그러다 보니까 우리 아버지는 직업적이라고 할 수는 없는 데 나중에 직업이 된 거지. 口 1-7-(2) 집안 내에서 이 사람은 잘한다, 또는 이 사랍은 스승으로 삼을 수 었 다 등의 판별 기준이 있었나요? 아버지가 섰지. 서서 우리 아버지는 1943년도 들어오셔 가지고 인제 당신이 번 돈 가지고 부산에 일본 사람이 있는 집단 하는 곳을 매입해가지고, 아버지가 그 땅 주인이 돼 있었고, 쉽게 말하면 그 적산 땅인데, 적의 땅이라 그랬거든. 그런 그 보수동의 노른자의 땅을 음성적으로 다 구입을 해서 주인이 돼 있었고, 부산 의 최고 갑부라는 소리를 들었고, 자동차 18대가 엄청났는데. 그런데 그 갑부소 리를 2년 듣고 망해버렸지. 왜냐면 아버지가 데리고 있던 조수가 일본서 데리고 있었는데, 이 사람이 집을 한 채 줬는데 또 안준다고 해서 안주니까 친일파다. 다른 사람은 징용 끌려갔는데 이 야마모토 상은 일본사람 양자 들어가서 이래가 돈 벌었다. 그리고 군수물자 날랐다. 그 때 내가 조수다. 이런 식으로 입증하는 바람에 매일 만주 땅에서 독립군이라고, 깡패도 독립군, 뭐 전부다 독립군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와서 우리집에 와서 제일 부자니까 돈 내라 그러고. 큰 죽이네 살리네 하니까 자동차 두 대로 포항에 도망을 왔어. 포항에 우리 친척이 있으니까. 아버지가 4 대 독자니까 친척이 없잖아. 그래서 저 멀리 걸리는 우리 외가 쪽에, 그런 포항을 이사 간 것이 발단이 됐어. 그 3년 있다가 그 있는 중에 그 때 어물을 팔기 위해서 트럭에 건어물을 실어서, 또 포항에 최고 갑부가 누구 냐면 그때 박내수 씨라고. 내한테 고모할아버지 되는 분인데, 그분이 최고 갑부 였어. 현재도 포항에 황대봉 이라고 최고 갑부인데 그 사람도 내하고 8촌간이야. 외 8촌. 진짜.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한 게 아니고 일단은 우리가 그런 흐

228 름으로 아버지를 따라서 아버지가 건어물을 팔러 전주로 갔는데. 1947년 8월 달 이야. 갔는데 한참 더울 땐데. 나는 11 살 땐데 트럭에 올라앉아서 아버지가 시키 는 대로 태평소도 불고, 대금도 불고, 그래 불고 있으나까 사람들이 모일 꺼 아 니요? 모여서 고기는 하나도 안사가고 나만 쳐다보고 돈을 던저 주는 거야. 그게 기분이 되게 나쨌지. 일본에는 그런 게 없거든. 있으면 과자 사던지 이랬는데. 아버지 왜 나를 톤 던져주느냐? 이거 이상하다 아버지, 이게 이상하지 않냐 난 거지가 아닌데 왜 돈을 주느냐. 이렇게 12살 때 말했지. 일본말로 말했지. 말은 듣지만 조선말은 할 줄 몰랐어 내가. 그러니까 아버지가 하는 말씀이 그. 이 조선은 잘 하면은 이걸 치뿌 다. 립이다. 잘하게 되면 이런 걸 준다. 이거는 방식이 다르니까 절대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라. 니가 워낙 뛰어나게 잘 부니 까 격려금으로 주는 거니까 나쁘게 생각하지 마라. 그래도 주더라도 공손히 준 게 아니라 막 던지고 준 게 아니난 말야. 그래도 나는 기분 나쁘다. 하는 사이에, 안 할라고 하는 사이인데. 그래서 그 우리 며느리 36) 내가 할려고 하는 말은 뭐냐 하면, 일단은 아버지가 위에 계시다가 어떤 사람을 봤는데, 두루마기를 입고 있 어. 두루마기에 쥐색이야. 즉 말하면. (책상을 가리키며 )37)요런 색깔이야. 그래 있 는데 긴 칼을 차고 있단 말이야. 그래 인제 일본에서 온 사무라이들, 무사들인 줄 알았어. 일본무사가 조선에 와 있는 줄 알았어. 나는 어리니까. 결국은 2년 밖 에 안됐으니까. 내가 조선 나온지가. 내가 그분을 봤더니 콧수염이 나있고 얼 이 시커떻게 덩치도 이래 이런 분인데, 칼을 차고 있단 말이야. 그래서 보니까 그분이 한주환 선생님이야. 대금을 주머니에 꼽고 다녔어. 그게 칼이 아니라 대금이었네요. 대금이야. 근데 나는 아버지가 조그만 거 만들어 줬거든. 손에 닿는 거. 그래간 그래 그거 불고, 그래 연주하고 있었는데, 그. 저. 내가 지금. 그 때 우리 선생님 만나가지고, 21 일 간을 지금 제일여인숙이라고, 전라도 전주에 뉴코아 있는 자리가 옛날 풍남동이었어요. 그 전주역이 그 때 당시에 거기 있었다고. 그래가 지고 거기에 앞에 삼거리가 있었는데, 그 때 그 저. 여인숙 집에, 집은 요만한데, 옆에 순대국 팔고 장꾼들이 오면 밥 먹고, 또 인자 장 이래 옮기변 밤에 와서 자 고. 여기에 낮에는 비어 있으니까 거기에 인제 우리는 조그만 방 옆에 하나 아버 지가 얻어가지고 있고, 그래 뭐 어물은 간곳이 없고, 어데 갔는지 뭐 안 보이데. 나 거까진 생각 못했고. 21 일 동안에 아버지가 어디 가서 팔았는지 마 그건 어 물. 그래서 한주환 선생님께 산조를 배웠단 말이야. 그 전엔 뭐 다른 곡들도 다 배웠지만은 산조를 처음 배웠지요. 그래서 산조를 처음 입문한 것이 1947년 8월 이었다 그 말이지. 그 이전에는 내가 다른 곡 다 할 수 있었고. 그 때 배우신 것은? 자진모리를 먼저 배웠어. 산조라는 것을 진양부터 배운 게 아니라 나는 거꾸로 자진모리부터 배웠어. 그래서 그걸 자진모리가 4년간 불었어. 자진모리가 굉장히 36) 인터뷰 도중 며느님이 잠깐 들어오셨었음. (기록자 주) 37) 이생강 선생님 연구실 내부에 쥐색 책상이 있었음

229 길어. 근데 그렇게 선생님 부는 대로 부니까 자진모리 따르룩 할 거 아니야. 그 러니까 나는 11살 먹은 게 나는 뭘 알겠어? 해봐야 산조가 윗인지 모르고 그냥 불었으니까. 그러다가 6.25사변이 나서 부산올 왔단 말이야 년에 부산 을 다시 와서 인제 안미동 이라는 아주 그 산골짜기에다 집을 하나 아버지가 돈 남은 결로 사가지고, 그래 언제 새로 언제 함석집을 지었어. 그때 오광대에 장세 봉 씨 라던지 뭐 이런 분들 많이 국악인들 우리집에 와서 거처가고, 또 판소리하 시는 분들 우리집 와서 거처가고, 그래서 우리집에서 자고 먹고, 우리집은 별로 크지도 않았는데 뭐 한 50-60평 돼가, 앉은 자리가, 집이 한 40평 정도 되니까 여러분들이 앉아서 자고 쉬다가 주무실 곳은 뭐 좁아도 그렇게 가고 했지. 그래 서 우리 선생님께 그때 배우다가, 근데 이제 자진모리를 배워서 내가 불면. 진양 불어보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 판소리하고 오는 분들이 전라도에서 오지 부산은 국악이라면 너무 열악해서. 그러니까 누가 뭐 아는 사람도 없고. 그러니 까 그 때 당시에 우리 집에는 부산 천지는 부는 사람은 뭐 피리 퉁소라 그러잖 아. 그러니깐 안미동에 아주 잘하는 아무아무개가 아주 기가 막히게 퉁소 잘 부 는 놈 하나 있다. 이거는 소문이 나가 있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래서 그. 나중에 선생님이 함양으로 해서 들어오셔서 가지고 부산오시고 이제 뭐 집으 로 찾아 왔죠. 그때는, 우리집은 전화가 있었으니까. 전화를 못하잖아 어디 집에 가 전화를 할 거야? 우리집은 그래도 전화가 있었으니까. 그래 오셔가지고 이제. 우리집에 와서 한 석 달 계시다가. 그래 왜 자진모리를 가르쳤냐 물어보니까, 너 무나 어리고, 게다가 너무 느리게 하면 애들이 빨리 못 받아들일까. 그러니깐 재 미가 없고 하니깐 안할까 싶어서 그냥 자진모리부터, 빠른, 재미난 거부터 먼저 가르켰노라 그렇게 하신거지. 야마모토 상이 아버님이시죠? 그땐 일본 이름이지. 아버님이 한주환 선생님이나 고성 오광대 사람들을 알아보는 기준이, 안목 같 은 게 따로 았으셨나요? 일본에서 내가 뒤에 들은 거지만은 일본에서 그때 당시 일본 사람들이 축음기 판을 팔기 위해서 조선 사람들의 성악가 라든지, 악기 하는 사람들을 다 불러서 레코드 취업을 했습니다. 일본에 들어 가가지고. 그 때 김소희 선생님이 13살 때 벌써 들어갔거든. 그래서 그 때 당시에 남아있는 음반이 그 때 일본서 사가지고 듣다보니까, 우리 교포들이 일본에 가면 뭘 듣고 싶냐면 고국의 뉴스나 정세를 이. 그렇지 않겠습니까? 해외에 많이 나가 있으면 우리나라 그쪽에서 신문 빨리 보는 거. 그렇듯이 축음기 판을 사가지고 그런 음악을 듣다보니 이게 무슨 음악인가? 산. 그 봉장취를 써 놨다 뭘 틀어 놨다. 박종기 선생님 가락을 들었을 거 아니요. 그 때 우리 한주환 선생님만 들은 게 아니고, 그 때 우리 아버지가, 박종기 선생님을 들었단 말이야. 그러니까 내가 조선에 나가면 이 분을 꼭 만나 야 되겠는데, 어디 가서 만나나? 그래서 포항에 이왕 저렇게 도망가서, 친일파로 려서 도망갔으니 뭐 트럭에다 인제 거름을 싣고 나를 싣고 어디를 다니면 내 음악도 자랑도 시키고, 선생님도 만날 수 있지 않겠느냐. 아버지가 머리가 그렇

230 게 생각하신거지. 긴 안목이 아니라 이 아이를 부른 뒤에 조선에 와서 조선말을 가르칠라 하면은 그 때 전쟁터에 시끄럽고, 전쟁나기 전 이지만 남북이 갈려가지 고 남선, 북선 그럴 때거든 한창. 그럼 이 애를 어떻게 이걸 시키며, 이거 부는 걸 누굴 가르쳐야 되겠냐. 야를 서양악기를 가르쳐야 되겠냐 국악기를 가르켜야 되겠냐. 그러니까 아버지가 클라리넷도 사주고 머도 사주고 부는 건 다 가져왔 어. 난 업에만 대변 소리가 나니까. 입에만 대면. 거짓말이 아니야. 어떤 악기도 업에만 대면 소리가 나니까. 뭐. 한 번 두 번 세 번 불면 다다닥 해. 불었어. 그 사람보다 더 잘 불었으니까. 선생님이 여러 가지 관악기를 하시는 건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걸 할려고 한 게 아니라 손에 닿는 악기부터 시작하다 보니깐 악 기가 그렇게 여러 개 하게 됐다. 그런 이야기고, 그리고 선생님들도 대금 하나만 해도 선생님 몇 명? 다섯 사람인데. 정악 하는 사람, 민속악 하는 사람 중에서 뭐 남도 잘하는 산조 말고, 경기 잘하는 분, 경상도 음악 잘하는 분들, 머 그런 분들을 만나게 되니까 결국은 너랫 분 되고. 또 피리도 대여섯 분 선생님 되고, 단소도 전추산 선생님을 통해서 몇 선생님 죽도선생, 여러 선생님을 만나게 되 고, 퉁소도 여러 선생님 되고, 그래서 선생님이 23분이야. 진짜 악기 가르치는 선 생님은 19분이고, 고 담에 판소리 하는 분들이 나를 가르쳤죠. 임춘앵, 김소희, 박녹주, 한일섭 38), 이 네 분들이 악기를 안 해도 음을 잡아주는 분들이야. 이래 불면 이 사람아 그 음이 잘못됐어. 같이 공연 다니니까 되지. 공연 안 다니면 김유석 들어가도 아무 소용이 없잖아. 그러니까 같이 공연 다니고 그 때는 반주 자 하니까 음악을 많이 연습하면 거기 청이 좀 이상하네. 또 음이 좀 내려가지 않네. 그렇게 고침을 받았죠. 그래서 우리는 검증된 사람이지. 쉽게 말하면. 선생 님께 배워도 여러분들의 판소리한 분들에게 하고. 그 다음에 1950년도에 내가 서 울에 있었거든. 서울에 1950년도 올라왔는데 우리 선생님 우리집에 전화 왔기 선생님 양산에 계시니까 빨리 내려가라 해서 부산에 무슨 다른 일로 내려왔다가 다시 양산 통도사로 갔어. 가니까 그 때 임방울 선생님하고 김소희 씨를 그때 처 음 보고, 조선일보 방일영 회장을 봤고. 그래서 아 이분이 김소희 선생님이구나. 그 때 레코드 아버지 가져오시면 제일 어렸던 목소리로 나오는 분이 김소희 선 생님이야. 아 이분이 김소희 선생님이구나, 이분이 임방울 선생님이구나, 우리 선 생님도 계셨고. 한주환 선생님도. 口 1-8. 음악을 하게 된 동기가 있었나요? 주변에서 잘한다, 잘한다. 라든지, 아니변 경쟁을 한다든지? 그런 게 아니고 아까 말씀 드린 대로 아버지가 하시다 보니까 하게 되고, 또 선생님을 만나게 되고 전쟁이 일어났고 전쟁이 일어나다 보니까 옹기종기 선생 님들이 용두산이나 가까운 부산 가까운데 한걸음에 내딛을 수 있는 곳에 다 있 었단 말이야, 왜? 조금 수복, 전쟁 끝나면 서울에 다시 올라 오실라고, 그러다 보 38) 임춘앵, 김소희, 박녹주 선생님은 소리를 잡아주셨고, 한일섭 선생님은 연주 시에 지적을 해 주신 분

231 니까 생활은 어려워도 한가한 시간이 많았지. 이렇게 다들 자기들이 바쁘면 나를 가르칠 시간이 없었는데, 내가 빨리 하루에 뛰면 일곱 분, 늦으면, 내가 게으르면 네 분을 만났거든. 매일 나는 배우는 것이 하나의 일과였기 때문에 누가 해라 말 하는 게 없죠. 그리고 내가 좌절감은 많이 가졌지. UN군이 들어와서 휴전되고 난 뒤에 휴전이 되니까 긴장했던 게 풀어지니까 세계 각국에 16 개 참전했던 나 라의 UN군들의 문화가 물밀듯이 들어오는 바람에 팝, 상송, 유행가 이런 게 짱 뽕돼서 우리나라 음악이 정착할 곳이 없는 거야. 그런데 다행이도 서울에 있다가 내려가면서 무용하는 선생님들 따라서 무용 반주를 하게 된단 말이야. 밥은 먹고 살아야 되니까. 그니깐 그 선생님들 따라가서 무용하는데 반주를 하다보니까 결 거기서 서양음악을 듣게 되고 그 다음에 캡이 생기잖아. 그 사이에 옷 갈 아입는 사이에 독주를 하게 됩니다. 옷 갈아입는 대용으로 아무거나 그냥 찬조출 연 하는 거야. 지금처럼 정상적으로 하는 게 아니고 누가 돈 주는 것도 아니고, 악사비만 받고 몇 푼 받고 하다보니까 아 이거는 우리 것을 또 하지만 현실에 따라서 뭔가 곡을 해야 된다. 그럼 이 5음계를 가지고 뭘 하느냐. 그럼 그 유행 되는 <목포의 눈물 이라던지,<두만강> 이라던지, 남회수가 불렀던 무슨 곡이 라 던지, 뭐 최진성이 불렀던 <신라의 달밤> 이라든지,<홍도야 울지 마라> 지 그때그때 당시에 유행되고 흘러내려온 거를 이걸 해야겠다. 그래서 그 때부터 남은 여기를, 남은 시간을 활용해서 지금 일곱 악기 연습하기도 바쁜데 어떻게 가요 하겠습니까? 그러나 잠을 네 시간밖에 안자고, 어디서 공부하느냐 그 부산 동네 온천장에 금정산이라는 산이 있어. 그 금청산 안에 금정사란 절이 있어. 그 절 스님이 나한테 공부를 해. 대금 산조를 배워. 배우고 또 전추산 이라고 유명 한 단소 산조 부르면 그 어른 39)은 정악으로 단소를 가르친 게 아니라 정악으로 김개울 스님을 향제 정악을 가르쳤어. 그래서 전추산, 스님을 만나게 된 동기가 그거고, 그 뒤에 그 어른이 나를 안 가르칠라 그랬어. 미워가지고. 왜냐변 부르는 데 나는 대금에 몰입하는데 너무나 단소 소리가 밤에, 그 양반은 단소를 낮에 절 대 안 불어. 새벽 1 시 -2시쯤 돼야 불어. 혼자서, 그리고 인사도 안 받아. 전화도 일체 안 받어. 왜 안 받냐? 나는 모르지. 그러면 나도 인사 안하지. 그래서 그 분 이 부는 것을 대금 연습하고 있다가 또 시간나면 아 딱 4관청에 보면 대금, 단소 소리가 쉽게 말하면 딱 그 소리가 내 귀에 들리거든. 그럼 그 가락을 내가 다 연 습을 하거든. 얼마나 미워? 와서 바로 배우는 게 아니라 내가 대금에 얹어서 부 니까 그 가락을. 그리 싫어했던가봐. 그래서 나도 배우고 싶은 생각도 없고, 나도 배우고 난 뒤에도 우리 선생님이란 소리 한 적도 없고, 누가 물으면 그 정도로 선생님하고는 내가 별로 그렇게 선생님을 왈각 좋아하지 않았단 말이야. 전추산 선생님을. 당대에 그 분이 당대에 아무리 단소 산조를 잘 불어도 대금에 악기에 비하지 못하거든. 대금은 악기 그릇이 큰 것을 받을 수 있고 지금까지도 봐도 끝 이 없는 악기고. 왜 대금과 가야금과 거문고가 살아남았는지 이유를 알아야 돼. 무한대의 악기다 이거야. 그 사이에 비파란 악기도 있었고 퉁소란 악기도 있었 고. 왜 끊어졌어? 음악에 한계가 오니까 끊어진 거야. 왜? 대금 소리 듣지 퉁소 39) 전추산 선생을 말한다. (기록자 주)

232 소리 안 들어. 대금 소리 듣지 단소 소리 안 들어. 들을 때 듣지. 왜? 음폭이 큰 음악이 있는데 뭐 하러 단소 소리 들어? 그러니까 발전이 안 되는 거죠. 그러니 까 나는 그 때 당시는 몰입한 것이 단소는 삐쭉삐쭉 불어도 내가. 뭐 평조 라던 지 뭐 부는 거는 내가 청성곡이 됐던 내가 마음대로 부를 수 있어. 그런데 내가 대금을 이걸 해야 내가 다른 걸 장악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또 대금을 해야 현대음악을 가깝게 할 수 있어. 피리 라야지만 가까운 섹소폰 소리 를 낼 수 있겠더란 말이야. 그래서 이거는 어디까지나 내가 이걸 좌절을 하고 끝 날게 아니라 내가 서양악기를 불게 아니라, 국악기를 가지고 서양음악을 한번 해 보자. 그래서 서양음악에 음이 안 나오는 거는, 옥타브가 안 나오는 것은 살짝 찍고, 이것은 악 올릴 것을 살짝 찍어도 그 표현은 되잖아. 고담에 다음 음을 그 냥. 기교로서 앞에 그. 음 틀린 것을 감지를 못하게 하고 다음 가락을 그. 감정에 공감할 수 있게 하고. 음악이라는 것은 예술이라는 것은 감동을 주지 않으면 예 술이 아닙니다. 그건 교육이지. 하나의 기록이고 형식이란 말이야. 그러니까 어떠 한 곡을 대금으로 가져가더라도, 어떤 곡을 부르더라도 감동을 줄 수 있어야 된 단 말이야. 그래서 그런 쪽에 인자 쪼금 현대 감각에 맞는 것을 빨리 배우고, 동 요도 빨리하고 그 때 유행되던 곡을 해서 우선 전달해야 된다고. 그래서 어떤 때 국악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가요를 들려주고, 국악을 알려고 하는 사람들은 평 조를 잠깐 불었다가 다리나 청성곡 비슷하면, 좋아하면 <아리랑> 갈쳐주고. 그래서 사람을 차별을 두면서 가르켰다 이 말이야. 무슨 말씀인지 알죠? 자기가 싫은걸 골동품을 우리 고려청자니까 봐라 이게 아니고 왜? 선호, 자기가 선택을 해라. 죠이스. 그럼 니가 뭐냐? 아, 나는 단소 좋아하면 단소해라. 그래서 갔는데 그 때 전추산 선생님께 단소 산조를 배운 것도 내가 보니까 왈각 재있게 안했고 내 곡만 벌써 업력해놨으니 언제든지 내 혼자 연습하면 되고, 그러나 지금 급한 건 윗이야? 대금이고, 피리고. 우선 빨리 대중들에 근접할 수 있는 것을 연구하 자. 또 선생님들 오시면 가서 공부하고. 그래서 내가 원형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 사단법인체를 문화재청에서 원형 대금 산조라고 법인체를 만들었어, 오죽하면. 그 시대의 조류에 따라서 음악은 변하고 사람도 변하고 학문도 변하고 과학도 변하지만, 원형을 기준으로 한 거라야 우리의 것이지. 우리의 말이 없어지면 안 되잖아. 말이 없는 게 아니라 음악이 없어지변 언어도 없어진단 말이야. 요즘 전 부다 서양물이 들어서 이 교수들이 말할 때마다 언론에나 방송에 보면 전부다 미스테이크 라든지 어떤 사용을 그냥 말을 말해도 우리는 영어도 잘 하지 못하면서도 연결할 때 들었던 말로 액션이라든지 뭐 이런 것을 그냥 한국말로 해도 되는데, 그런 말을 인정을 하듯이. 그니까 자연히 결국 뿌리가 없으면 안 되겠다. 나는 퓨전도 시작 제일 먼저 한 사람이야. 또 관객들이 하더라도 옛 국 악을 예술화 승화시킨 사람도 이생강이고, 또 세계무대에 올린 것도 이생강이고, 나는 한 것을 많이 했다는 것이 아니라, 나는 하고 왔다는 사람이야. 새로운 것 이 아니라 이거지. 그래서 해가지고 왔기 때문에 아까 전에 방금 물은 동기부여 라든지 어떤 영향으로라든지 그건 아닙니다. 단, 내가 쭉 해왔는데 너무나 대중 들이 거리가 멸어지고 너무나 우리 껄 몰라주니까. 가치도 모르고 애써서 잠 안 자고 해도 가치를 몰라주니까 차라리 이 시간에 서양음악을 하면 대우를 받지

233 않겠느냐. 돈도 별고. 그래서 나는 서양음악 쪽으로 갈 마음이 있었는데, 마침 1960년에 프랑스에. 어렸을 때는 어떨까요? 어렸을 때는 멋모르고 배웠고. 예술영재 쪽이기 때문에 어렸을 때 위주로 말씀해 주시걸 부탁드립니다. 어렸을 때는 동네에서든지 불어봐라 그러면 불잖아. 잘 한다 그러고 빵도 사 주고 좀 크니까 기타하는 사람들이 우리 같이 유행가 해보자 그러면, 야 이거 잘 분다 그러고 자기들이 술사고, 필요한 것도 있고, 가진 자들이 불러서 불면 은 용돈도 주고 그럼 생활보탬도 되고. 그럽 훨씬 어렸을 때는요? 아예 어련 아이였을 때? 어릴 땐 아까 말씀 드린 대로 5살 때부터 시작해서 조선 9살에 나와서. 그 때는 동기는? 없었지. 나는 멋모르고 그냥 아버지가 하는 대로 불기만 불었지. 어련나이에 머 해야 된다. 그런 것도 모르지. 口 그 때는 연습을 얼마나 하셨어요? 그 때는 일본에 있었으니까 많이 하지는 못하고. 口 1-1O-(j) 시간으로 하면? 뭐, 장난감 만지듯이 나는 악기 만졌으니까. 시간은 정확히 모르겠고 내가 봐 서는 하루에 한. 일본에서는 아버지 때문에 대 여섯 시간 한 거 같고, 악기 여러 가지를 하다보니까. 하나만 만져도 한 시간이니까. 그렇게 했고, 한국 나와서는 한 열네 시간 이상정도 했어 평균. 열네 시간 내지 한 열여닮 시간 정도. 최하 열네 시간이야. 평균? 매얼요? 대금을 제일 많이 불었고. 대금을 하루에 업에 댔다 하면 한 여닮 시간 이상은 가졌었고. 그러니깐 악기를 들었으면 최하 두 시간 이상을 놓지를 않았다는 거지 전공분야 외에 다른 예술분야에 대한 학습과 경험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口 1-12-(2) 여러 악기를 하셨잖아요. 연습량을 대금을 제일 많이 하셨다고 그러 셨는데 그 조철은 어떻게 하셨어요? 그러니까 이제 대금이 너무 크니까 할 게 너무 많더라고. 쉽게 말하면 조그만 그릇은 물 담기가 조금만 담아도 되잖아요. 큰 그릇은 많이 부어야 될 거 아니 요? 그러니까 큰 그릇에 자꾸 붓기 시작하지. 양을 똑같은 양을 하려면, 요 양이 나 요 작은 그릇이나, 큰 그릇이나 양은 같다 말이죠. 부피는 달라도. 그러니까 자연히 대금을 부는 시간이 많았죠. 다른 건 잠깐잠깐 해도 기본만 잊지 않고 하

234 고. 또 선생님이 가르쳐 준거 있지 않고 하고, 그래서 지금 현재는 남도대풍류, 남도대풍류를 전부 아는 사람이 이생강이 한 사람밖에 없어. 우리나라에. 지금 남도대풍류 다 끊겼어. 이 생강이 가지고 있고, 퉁소 산조 가지고 있고, 단소 산 조 가지고 있고, 피리 산조가 그냥 있는 게 아닙니다. 피리 산조가 대금 산조 못 지않게 오래된 겁니다. 그 산조를 내가 다 보유하고 있지. 그 다음 태평소, 태평 소 시나위나 산조는 지금 이 사람들은 몰라. 저저 피리, 퉁소 하는 사람들은, 태 평소 안 배운 거는, 시나위를 남도 쪽으로 말하면은 한일섭, 방태진만 알았지 다 른 사람은 몰라. 김문일이란 분이 유명한 분이야. 이분은 한일섭이 류가 아니야, 방태진 류가 아니야. 녹음이 안 나온 게 그게 참. 그 때는 녹음기가 없었으니까. 그 결 배운 사람이 나하고 김석출 씨가 배웠단 말이야. 내가 먼저 배우고, 김석 출 씨는 배울려다가 돌아가셨어. 아니, 아니 그. 김문일 선생님. 口 단소, 태평소, 대금, 여러 가지 많이 하셨잖아요. 그런 것들이 상호 도움이 되나요? 손가락도 툴리고 부는 음색도 틀리잖아쩌) 도움이 되던가요? 도움이 안 되지. 왜냐면 우선 반대가 되지, 대금을 불라면 피리소리가 안 나고 피리가 소리 안 나면 대금 소리가 안나. 왜? 대금은 옆으로 별려야 되고, 단소 벌려야 되는데, 손은 앞으로 나와야 되고, 피리 그렇죠? 또, 옆으로 불면, 입이 옆으로 벌려야 될 거 아닌가요? 반대가 되잖아요. 음악적으로는 도움이 되나요? 도움이 되고 안 되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감각을 느낄 정 못 느끼고 조건 입력만 되는 거야. 입력만. 그니깐 정신을 보통 몰입하지 않으면 이게 햇갈 릴 정도로 혼란이 오죠. 그래도 일단 중심을 잡고, 그 때는 돈이 없으니까 녹음 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콩나물 대로 적을 수 없고, 음보를 음표를 적을 수도 없고. 내만 아는 것을 머를 적는다 하더라도 나만 아는 숫자보를, 그 럼 위에 옥타브 두 개 올라가는 그결 적고. 숫자보로 하셨네요. 그렇지 그게 제 일 편하지 구멍 이 몇 개, 5공, 6 공, 7 공. 그 숫자보요? 그렇지. 그 숫자가 맞아. 그러니까 우리가 보면 도, 레, 미. 이러면 그럼 여기 구멍에서 나오게 되면 5관청을 다섯 잡았다. 1, 2, 3. 내만 아는 거지. 내가 안 잊 어버릴 정도로. 그 담에 인제 녹음기를 있기도 했지만 서양에서 온 리베라라든지 큰 녹음기 밖에 없었어. 그걸 인제 돈이 없으니까 무선사에 가서 빌려서 녹음해 테이프 하나. 나중에 이사 가니까 다 녹아버렸지 40) 다르잖아

235 口 연습하시고 나면 이 정도는 됐다, 만족했다 하는 그런 게 있었을까요? 끝이 없지. 끝이 없는 걸 그 때 알았고. 또 연주를 자꾸 불려 다니고 또 나는 하는 것이 많은 것이 성장해서 언제는 서울에 올라와서도 무용음악, 영화음악, 또 레코딩, 또 춤추는 음악, 나는 하는 게 너무 많아. 口 하는 것도 많이 하셨고, 듣기도 많이 들으셨죠? 뭐가요? 영화음악, 레코딩음악 뭐 이런 거? 듣는 게 아니라 내가 직접하지. 틀을 기회는 전혀 없으셨어요? 기회라는 것은 영화를 보잖아. 그 영화를 보니까 그 나오게 되면 영화음 악을 해달라고 의뢰가 오니까, 거 가서 영화음악, 그. 그립을 보고 음악을 하죠. 음악을? 영화 BG음악 같은 거. 테레비 BG음악. 그런 거를 통해서 그런 음악을? 아니, 내가 하게 된 거죠. 해달라고 하니까 해 준거죠. 자연적으로 듣고 배우신거죠? 그건 내가 아까 말했잖아요. 무용반주를 하고, 또 춤 반주를 하다보니까 몸에 익었었잖아. 자연히 그냥? 누가 뭐 시키고 자시고. 그래서 지금 우리 음악이 인턴과정이 있습니까? 없습 니다. 대학 나오고 뭐 하나 문제하나 지적하는 사람 없고. 지금 뭐 한국종합예술 학교 실기? 오라 이거야. 제대로 하는 놈 하나도 없으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무 슨 그 교수들이 김영재 교수처럼 뭐를 막하면 뭐 하는 사람이 몇 사람 있난 말 이야? 나는 내 후배 중에서 김영재 교수나, 어? 박범훈 교수도 그 사람은 할라고 그래도 남도, 할 수도 없어. 피리는 남도 아무리 할라 그래도 표현력이 없어. 그 래도 피리 최고로 잘 부는 사람이 박범훈이 아니야? 나는 내 후배래도 내가 는 악기를 해도 우리나라에서 피리 누가 제일 잘 룹니까? 하면 나는 박범훈 씨 꼽아. 개인적으로 친하고말고. 거 미운 건 놔두고. 고담에 이 그 정악 쪽에 말하 면 정재국 씨를 내가 최고로 꼽고. 고 담에 민속 계에 굿판 잘하는 사람은 김찬 섭이 제일 낫고, 그 외에는 없어. 나는 뭐 이런 말 죄송하지만은 나는 피리 하나 들고라도 밑지지 않아. 나는 대금만 아니고 피리 한 개만 지금 무대상에 서도 그 사람 능가하지는 못해도 따라는 한다 이 말이야

236 口 전통적으로 애기명창, 소년명창 이란 말이 었잖아요. 애들이 공부를 해 서 어른까지 쭉 이어질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도 었잖아요? 그렇지 못한 경우는, 우선 환경 아닙니까? 왜냐면 무조건 애들이. 이런 게 있 습니다. 그냥 애를 키우기 위해서 영재교육 위해서 국가에서 다 보조해서 갔다. 아닙니다. 얘는 집안이 너무 가난해요. 그러면 얘는 가정도 먹고 살려야 해. 그래 서 국가에서 공부가르치려 하는데, 집은 느그집 가정까지 먹여 살리려는 건 아니 거든요. 여기에 갈등이 생기는 겁니다. 우리 같은 사람이 그랬다 이 말이야. 쉽게 말하면. 우리 같은 사람이 나라를 위해서 어디를 간다. 하면 돈을 몇 푼을 주겠 어? 무슨 돈이 있어서 월급을 주겠어? 그러니까 국가를 위한다기보다는 해외 안 갔으니까. 외국가고 싶은 마음도 있고, 비행기를 한 번도 안탔으니까 비행기 도 한 번 타보고 싶고, 어린 마음이 있고, 그런데 여기 갔다 오는 몇 달 사이에 우리집은 굶고 있단 말이야. 왜? 이생강이가 피리 불딘지 굿판 나가서 불던지 요 리집에 가서 불던지 남을 가르킬려면 학채 라던지 그런 배우는 돈이 있을 거 아 닙니까? 무슨 말씀인지 압니까? 그런데, 그 보조를 누가 해줍니까? 우리나라에 그런 게 있어요? 그러니까 영재교육을 하고 앞으로 교육을 시킨다는 건 무조건 무료로 가르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 말이야. 뛰어난 아이들일수록 상당히 집안이 상당히 어렵고 가난한, 불우한 아이들이 많다고 봅니다. 또 그런 정신이 있어야 음악을 합니다. 넉넉한 애들은 아무래도 정신이 해이해지지 않느냐. 소질 이 었다 하더라도 부모가 넉넉하고 어떤 그러면 좀 정신적으로 자랄 때 뭔가 편 하게 자랐다 할까? 가질 것 다 가지고 가진 애들은 조금 정신적으로 조금 해이 하다. 나는 첫째는 그 애들이 자랄 때 영재교육이란 것은 무조건 음악이다, 무조 건 이렇게 해서 크는 게 아니라 주위 환경을 잘 조합을 해서 그 애가 환경이 어 떻게 사느냐? 그러면 국가적으로도 뭔가 저 사람에게 생활 최소의, 최하의 어떤 가정의 이 애가 공부를 할 수 있게끔 집념을 하고 몰입을 할 수 있게끔 제도적 인 가정의 최하의 어떤, 식구가 얘가 움직이지 않아도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을 만들어 줘야 영재교육이 된다고 그렇게 봅니다. 아직까지 L 전통예술에 영재가 었다고 생각하세요? 전통예술 뿐만이 아니라 어디에도 영재는 다 있습니다. 학문이나, 그림이나, 됐 던 종합적으로 지금 종합예술학교 같으면 종합 다 있습니다. 그림 어릴 때부터 소질 있는 아이가 있고 노래도 벌써 우리 딸을 가르키면 세 살 때부터 벌써 노 래를 하는데. 보니까 막 나는 내가 안 가르쳐서 그런데, 그러니깐 그런 재질이 있는 사람이 따로 있어요. 그게 영재입니다. 그냥 후천적으로 영재도 있지만 그 게 아닙니다. 벌써 영재란 것은 뛰어났습니다. 벌써 거기에. 지금 보면 자기 집에 안하는데 설장고를 친다고 하면 신이 나고 홍이 나가지고 그래가 거기에 그 것을 흥 달아서 장구를 배우고 막 한다 이거야. 근데 아버지가 가르칠려면 돈이 있어야 가르치지. 어? 무슨 말씀인지 압니까? 나는 어렬 때 내 배운 제자들은 돈 10원도 안주고 다 가르쳤어. 지금 40 대 넘은 우리 제자들은 나한테 10원 안내고 내 밥 먹고 다 큰 놈들이야. 생활이 안 돼. 이생강이는 벌어서 가들 주기도 바빠. 지금도 우리집 몇 명 있는데 이제 내가 너무 어렵고 그러다보니 이 사람 눈치가

237 알아서 지금 헤어졌지만, 그래도 있어. 그니깐 영재 그거는 아까 말씀 드린 대로 모집을 해서 어떤 테스트를 음정, 하던지 또 이 방변에 미술교육이 어떻게 있는 건지 만약에 어떤 학교에서 영재교육을 뭐를 정부에서 도와준다는 것은 종합적 으로 무엇이 이 애기가 우선 조기교육이니까 어느 거를 했느냐. 옛날에 학문을 봤을 때 박사를 능가하는 애들이 대여섯 살 먹은 그런 애들이 다 했어. 결국은 애들이 영재교육이 됐느냐? 안됐거든. 그 후천적인 카이스트나 이런 게 없었단 말이야. 그러면 자기와 같은 수준을 해야 되고, 또 하나 인성교육이 없었단 말이 야. 어?! 왜 서양 꺼만 앞서 가버리고, 앞에 가는 먼저 보고, 앞에 돼 있는 서양 꺼만 우선 그거 쳐다보니까 내 것이 기초적인 것이 없었다 이 말이야. 그러니까 나중에 전부 바보가 돼버려. 그러니까 지금 조사를 해 보십시오. 교수께서 지금 지나온 걸 조사를 해보란 말이야. 지금 학문이든 문학이 됐든 수학 잘하는 애 어떻게 돼있냐 말이야. 후천적인 어떤 그 기관이 없었단 말이죠. 말만 영재 해놓 고 대학을 보냈는데 애가 바보가 돼. 왜? 껴만 이래 올리고 부모 따라 탱기면서 최고로 했는데, 껴가 아무데를 가든 지가 어린 아들 동료가 없었단 말이죠. 거 애가 바보가 돼 버렸단 말이죠. 口 2-2. 혹시 그런 }이 가 었을까요? 나는 많이 봤죠. 口 2-2-(D,C2) 나이 랑 01 륨이 항 밝히 살 수 았으신지? 있죠. 우선 내 동생부터 우선 죽었지만은. 이성진이라고. 최초에 세계최초에 이 농악 사물을 제일 먼저 알린 사람이지. 리틀앤젤스를 통해서. 이성진이라고 하면 잘 알지. 그거는 나를 수십 년 반주하고, 설장구가 됐던, 팽과리가 됐든, 상고가 됐든, 뭐 태평소가 됐든, 피리가 됐든, 대금만 못 불고 다 잘해. 무용 안무 잘하 고 잘 가르키고. 그분은 따로 교육받으신 적이 었으세요? 있죠. 학교를 통해서? 학교가 어있어? 학교 누가 가르치는 학교가 어디 있어? 옛날에. 그래서 나중에 는 돈이 없어가지고 서울예술학교에다가 얘기해가지고. 박헌봉 교수한테, 저. 교 장 얘기해가지고 학교 적만 걸어놓고 나이는 저 박범훈이 보다 많은데. 결국은 뭐. 학교는 뭐 몇 년. 왜? 내가 이야기했잖아. 우리 아버지가 그러는 바람에 호적 을 5년 줄이는 바람에, 우리 동생들이 나이가 다 4 년, 5년 다 줄어졌지. 그러다보 니까 학교를 다 다닐 수가 없었지. 나도 정규교육을 못 다녔지. 그냥 고등학교도 몇 군데 옮기고, 초등학교도 옮기고, 뭐 그렇게 불우하게 살아왔죠. 아까 말씀 드 린 대로 다 경제적인 여건이 있어야 돼. 그럼 이 영재학교를 만들려 하면, 가정 환경. 차라리 안 가르치연 말고, 만약에 어떤 환경에 따라서 지금은 그렇지만 나 중에 그 애가 돈을 벌어야 된단 말이야. 무슨 말씀인지 압니까? 애가 무슨 돈을 버냐 하지만 예술 잘하게 되면 법니다. 지금 영화나 다 안 그렇습니까? 그러면 - 228

238 거기에 부모가 없는 돈 투자할 때는 얘가 훌륭하기 크기 위해서는 영재교육 보 법니다. 그러면 영재교육 하는 게 무조건 음악만 가르키고 소리를 가르키는 게 아니라, 그 애가 몰입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경제적인 가정에 국가에서 도와줘 야 합니다. 이게 제일 중요합니다. 우리나라에 그런 게 없어요. 나는 할 겁니다. 곧 할 겁니다. 내가. 나는 가정까지 해줄 겁니다. 나는 이생강이는 지금 할라꼬 시작을 벌써 해 놔놓고. 없으면 없는 대로. 지금 저 경남 산청에 지리산고등학 교 41)가 있습니다. 거기는 불우한 학생들 모아서 거기에 국가의 도움을 받고 아니 라, 개인이 후원회를 만들어서 지금 하고 있어요. 지금 3기인가 271 됐습니다. 거 기서 산청에 다행히도 기산 박헌봉 선생이 태어났던 그 자리입니다. 단성이란 곳 에서 지금 하고 있어요. 그게 이번에 내가 갔지만은 에. 거기에 내가 아까 말씀 드린 영재교육을. 근자에 이야기한 게 아니야. 내가 이생강이 영재 얘기 하고, 또 민속악 예술대학을 만든다는 것은 다 한번 보면 30년 전에 신문 보면 나와 있습 니다. 그 때 벌써 나는 모 그룹의 회장들이 벌어준다고 해서 그결 하고 있는데, 좀 유감스럽게도 우리 좀. 안타깝게 돌아가셨지만 이 분뜰이 같이 동의하고 동조 하셨으면 내가 됐을 텐데, 우선 입지적인. 자기들이 이런 결 하기 위해서 같이 동승을 안 해주기 때문에 민속악이. 앞으론. 민속악, 국립민속악이 생겨야 됩니 다. 제가 아까 말씀드린 것은 국립국악원 잘 돼있습니다. 부산도 돼있고, 진도도 만들어가 말은 하지만, 내가 말씀드린 것은 국립민속악이 있어야 된다. 어떠하게 누가 이거 반대하면 안 됩니다. 우리 국민이, 즉 우리 백성이 쓰는, 이게 쉽게 말 하면 우리나라의 다종교입니다. 즉 말하면 우리 국악이, 민속악이 종교라면 종교 라는 거고, 국교입니다. 우리음악이 없으면 우리말이 없어져요. 그래서 내가 살아 있는 한 내가 지금 72이지만 1937년 3월 16 일이지만, 내가 호적에는 1942년 4월 30일로 돼 있어. 그래서 우리 동생들이나 뭐 우리 아버지 덕분에 재산 찾을라다 이래 5년 줄여 논 거라서. 나 혼자만 나이를 고칠 수가 없어. 우리 10남매가 다 고칠려면 여러 가지가 다 복잡하잖아. 나이 젊으면 좋잖아요. 그래서 뭐 그렇게 지금 지내고 있는데. 어쨌든 간에 지금 그. 영재교육은 어디라도 무엇이라도 환 경적인 것을 생각해야 된다 하는 그런 이야기업니다. 口 2-3. 전통예술에 영째가 었다면 선발에 적절한 연령은 몇 살 정도일까요? 벌써 말하고 하게 되면 벌써 만 3 세 4세부터 가르쳐야 됩니다. 거기에 맞는 동작이라든지, 그거는 왜냐하면 우리 동생만 유독 얘기 하는 게 아니라, 우리 동 생은 만 3살도 안돼서 벌써 팽과리 치고 벌써 했습니다. 그거는 역사가 다 아는 이야기니까 내가 꾸며서 하는 게 아니야. 지금 최종실 이라던지 김덕수 라딘지 이광수, 얘들은 10세 안에 벌써 대여섯부터 시작한 애들이야. 나는 최종실은 우 에 아냐하면 삼청각농악대, 지금 아까 전에 봤을 때, 지금 대여섯살 때 어깨에 이렇게 무둥 타고 상모 돌리고 했던 애야. 나는 그 사람들을 봤으니까. 41) 경남 산청군 단성면 호리 523번지, α)5)

239 口 2-4. 영재성이란 어떤 게 있을까요? 뛰어난 재질이 있어야 돼. 소질이 있어야 된단 말이야. 끼가 있어야 된단 말이야 말하 자면. 학문은 학문이 있고, 그림은 그림이 있고, 꼭 같은 애도 그립을 그리라면 벌써 달 라요. 글도 글, 달필 잘 쓰는 사람이 있어. 그럼 거기에 맞게 자기의 기능을 키워주고 알맞게 하는 걸 난 영재라고 봅니다. 뛰어난, 남달리. 그러고 또 그런 소질도 발견을 하 려면 또 김 선생 같은 사람이 그런 사람을 발굴 해야죠 또. 口 2-5. 그런 것들은 대금에 있어서 인가요, 여러 가지 일반에 있어서 인가요? 여러 가지죠. 무조건 전통입니다. 우리가 다 내려온 건 다 전통 아닙니까? 그 러나 전통이 아닙니다. 나는 민속악과 궁중악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딱 두 가지. 정악이 아니라 정악도 민속악입니다. 그러니깐 궁중악이냐 민속악이냐, 이 두 가 지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분류해야 합니다. 그 말뜻은 어떤 국악에, 어떤 갈림길 두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일반 위정자들이라든지 일반 민초들. 저 관중들이 음 악을 분류할 때, 서양음악도 보면 박자에 따라서 트로트, 지루박, 여러 가지 형태 의 박자가 있고 재즈, 팝송 그 나라에 있듯이, 우리나라에도 국악이 있으면 국악 은 방대하기 때문에 국악을 인식이 아, 저거는 궁중음악이 왕이 할 때 이렇게 내 려왔다. 분리돼야 된다 이거지. 갈라져야 된다 이게 아닙니다. 내 이야기를 잘 어야지 잘못비치면 분쟁을 삼으란 이야기가 아니고, 어떤 분이 봤을 때 궁중음악 은 이런 거구나, 민속악이 이거구나, 민속악은 엄청나게 방대합니다. 왜? 8도에 방언이 있듯이,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황해도, 강원도, 평안도, 제주도, 이런 그 8도의 각 언어가 있듯이, 이 음악도 그렇게 생존해왔다 이 말이지. 농요라든지 민요도 그렇게 태어났지 않습니까. 사투리 의한, 그러니까 거기에 발전되어 오듯 이 엄청난 거기에 악기도 그렇고, 춤도 그렇고, 노래도 그렇고 다 너무나 많기 때문에 그것을 바로 그냥 요즘은 자치제라 해가지고 지방 발굴해서 도문화재도 있기는 있지만은 한 목에 다 하겠습니까? 그니깐 이런 것을 다 정립을 해서 학 문을 만드는 것이 다 여러분들이 할 일이 아니난 말입니다. 네? 그렇지 않습니 까? 그러니까 그런 것을 많이 또 어떤 분이, 선배 중에 작고하셨지만 이름은 거 론 안하겠어요. 수원에 모 분이 대금을 부는데 그분이 대금을 흉내내고 경기제 그대로 하는데 또, 도당굿하고 그런 분이 한 분 있었어. 근데 이 분이 그런 굿한 데 하면 창피하고 자손대대로 또 우리 아들하면 우리 아버지 점쟁이다. 무당 박 수 되는 게 싫어가지고, 자꾸 대금 쪽으로 이렇게 했는데. 우리 선생님들도 웃 대 어른들이 다 집안이 무당들이었어. 우리 박종기 선생님도 위에 나는 못 봤지 만은 그쪽에 선생님들도 무당이었어. 무당 반주해가지고 음악을. 다 엄마가. 지금 박병천이 지금 그 사람들 다 무당이야. 무당 뒷바라지 하는 사람들이야. 어? 알 았어? 그러니까 박종기란 사람은 자기 할아버지, 친할아버지가 아니야 박종기란 사람은 서출이야. 서자야. 그래가 박환영, 박병천이, 그 했던 그 양반들이 직계가 아니다 이 말이야 할아버지가. 쉽게 말해 작은 할아버지지, 작은집에서 났다 이 말이야. 무슨 말씀인지 알죠? 예. 그래도 그건 뭐 뼈대가 같으니까. 그거와 마찬 가지로 창피하니까 이런. 무당굿 한 것 이런 결 안한다 하고, 악기를 하고 했는 데, 그분이 조사를 이렇게 왔단 말이죠. 이래 논문 쓰러. 근데 자기가 산조의 창

240 시자인냥 박종기 직접 배웠는 결 한냥 해가지고 문화재가 될라고 무척 애를 썼 어요. 그래서 그분이 있다가 귀에 내 귀에 들어왔단 말이야. 안 된다. 그분을 부 산서 내가 가르쳤거든 나는 싹 빼버리고, 내가 젊으니까 빼버리고 박종기, 한주 환 선생님 이름 대가지고 문화재 될라고 하니까. 그 분 개인에게는 상당히 미안 한 이야기지만 역사를 왜곡하면 안 되죠. 나중에 다 알게 되는데. 나한테 배울 때 누가 옆에 있는 사람이 아 저 분 아무아무 씨가 이생강이 한테 배웠는데 하 면, 그 사람 영터리 아닙니까? 예. 그러니까 역사를 왜곡되게 하지 마라 이겁니 다. 마 조금 뺑을 까도, 그런 식으로 해서. 한 세 개 해가지고, 네 개에서 다섯 개. 그건 조금 봐줄지 모르지만, 전혀 냄새만 지나가고 난 뒤에 한둘만 하지도 않아놓고 스무 개 했다 그러면 안 되죠. 口 2-6. 영재를 알아보설 때 춤을 추게 해보시겠어요? 노래를 해보게 시키시겠 어요? 악기를? 아닙니다. 그게 아니고 애들 오게 되면은 장고라든지 악기라든지 여러 가지 있 을 것 아닙니까? 부는 악기도 있지 않습니까? 그럼 애기들이 부는 거를 흘 분다 고 안 되지만 그래도 후 불면 소리 나는 애도 있어요. 우리 손자가, 우리 애가 40 념어서 애를 낳았는데 아버지는 석사과정을 밟고 전수 조교로 후계로 돼 있 잖아 이광훈 이라고, 43인데 근데 애를 늦게 낳았어. 할아버지가 데리고 놀면서 불어보라고 하니까 167TI 월 만에 피리소리를 내더란 말이야. 피리 후 불변 후 안 납니다. 애기들이. 근데 채가 후 부니까 소리가 나는데, 손가락을 해보라고 하니 까. 푸푸 한단 말이야. 그렇다고 재질이 있는 건 아닙니다. 그렇다고 재질이 있는 건 아니야. 또 그래서 다른 애들이 하니까 안 되는데,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고, 얘는 조금 더 낫다 그 말이지. 왜? 할아버지가 했으니까 영향을 준거지. 동기부 여를 한 거지. 또 하나는 무엇이냐면. 그래서 내 말은 그렇게 하고 인제 여러 가 지 악기를 갖다 놓고 지가 하고 싶은 대로 놔 둬. 두드리고, 그리고 유섬히. 그게 테스팅이야. 너 이거해봐라 이거보다는 할 수 있고. 어떤 애들은 겁이 나서 손 못 대는 애도 있을 것이고. 그래 우선부터는 내가 말하는 것은 애들은 두드리고 춤추는 걸 먼저 가르쳐야 된다. 또 부는 악기를 먼저 안 가르쳐도. 그래서 리 부터 장고 같은 거 이런 거 두드리는 거 좋아하잖아요. 똥똥치고. 그렇게 하느냐. 일부러 그렇다 해서 젖먹이 애를 데려다가 할 수는 없고, 그래도 말귀는 하고 걸어 다닐 줄은 알고 유치원 까지는 갈 수 있는 정도 할라면은 보통 만 한 5세, 4 세, 5세 가 적당하지 않겠느냐. 그럼 그런 애들부터 자연적으로 하는데, 음악만 가르치기엔 머 아버지가 안 보내겠어? 영재교육을 난 어떤 교육을 가르치는지 나는 모르겠는데 학문도 가르치는지 그냥 예술만 가르키는지 나는 모르겠어. 그러니까 그거는 최초 의 어떤 기본적인 학교에 오면 애들이 이거 예술학교하고 빨리 유치원 다닐게 아니 라 여기에 최소의 학문적인 기초, 머 수학이라든지, 글이라든지, 애기들이 말을 배 울 수 있는 역사라든지, 그런 거는 조금 조금씩이라도 애들 지루하지 않게끔 같이 병행해야 되지 않겠느냐. 만약 학교가 설립을 해서 움직인다면은 경영을 한다면 시 간은 애 유치원 갔다 오고 남는 시간에 빨리 오라고 하던지 그건 이제 그런 방법은 학교에 운영상 의논할 것이고, 나에게 자문이 온다면 지금 이야기 묻는 것 같으면

241 어떠한 학교에 수용을 해서 애기들이 너무 지루하면 안 된다 이 말이야. 애기들이 애기답게 놀아야 된다. 자기끼리 놀고 친해질 생각을 해야지 우리처럼, 아까 전에 내처럼 잠 안 자고 할 필요는 없단 말이지 어느 정도 말귀를 알아듣고 잘 할 때 그 땐 최선을 다해서 우리처럼 해야 된다 말이지. 口 영재들이 성장하지 못하게 되는 걸렴돌 같은 게 있을까요? 가짱 큰 걸 렴롤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아까 전에. 걸림돌은 언제 그. 우선 가르친 지도자 선생님과 학부형과의 마찰 있을지도 모른다. 왜 그러냐면 애기니까 인자 한창 할 때 싫증을 권태를 빨리 느 낀단 말이지. 애들이 뭘 하다보면 권태를 잘 느껍니다. 또 변화가 큰 애들은 변 화를 부여해 줘야 됩니다. 그 어떤 같은 동작에 같이 하게 되면 애기들이 권태를 느껴버리니까, 부모들이 와서 어떤 애기가 하기 싫어한다, 뭘 한다. 또 부모가 학 교에 요구하는 게 또 있을지 몰라요. 이생강이 같은 뛰어난 사람이 있는데 아버 지가 모든 걸 굶지 않고 이런 결 하는 분들이 오늘날에 나는 많지 않다고 봐요.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이 많지 않다고 봐. 모든 걸 희생을 하고, 자식을 위해서 막 가르칠라고 하는 사람 열의는 있으나, 우선 세 끼 밥을 먹어야 될 것이 세상 이 너무 밝다 이 말이죠. 예? 그니깐, 말 안 해도 학교 안가도 컴퓨터 누르면 지 금 영재교육학교 어떻게 돌아간다는 건 커리률럼보고 지금 알 수 있을 것 같고, 예? 어떻게 보면 시간까지 다 나와 있고, 두드리면 지금 머하고 있다는 걸 다 알 고 있다 이 말이야. 그래서 어떤 마찰이 생길 것이다. 완벽할 수는 없지만은 분 명히 난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제일 그게 있고, 또 부모님이 애를 맡겨도 아까 말씀 드린 대로 교육은 잘 시켜줬는데, 생활이 너무 어렵다. 애를, 옷을 해 가는 데 남의 애는 다 해 가는데 학교에서 옷까지 다 해주는 건 아니고, 자 이러니까 이제 부모가 이름이 나고 이생강이가 이름이 나면 뭔가 요구하는 것이 있을 것 이다. 그러면 그것을 예측을 해서 다는 안 들어 주더라도 십분이라도, 이십분이 라도 그걸 아마 경제적으로 또 학부형, 내가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 모 야구 선수 아버지가 결국은 그 아이를 사장시키고 말더란 말이죠. 그 말뜻은 뭐냐 하 면 그 재주 있는, 재질 있고 뛰어난 애가 결론은 아버지 욕심 때문에 결국은 좌 절하고 말더라 이 말이죠. 영재들이 음악가로서 강당해야 되는 부분에 속하는 건가요? 아니면 그걸 이겨 내야 되는 건가요? 이겨낸다는 것은 이제는 요. 옛날 우리가 클 때처럼 그때는 먹을 것도 없고, 배도 고프고 하다보니까 어디라도 붙잡아야 돼. 그러나 지금은 뭐 조금 가진 자 들이 있으니까 가서 밥 한 대 주시오 하면 그냥 지나가면서 요즘 그 저 뭐라나? 함박스테이크 하나라도 사줄 수 있는 그게 아닙니까 아직까지는? 자기는 돈 없 어도 옆에 한 사람이 배고프다고 해주면. 옛날처럼 보릿고개는 아니다 이 말이 야. 그러니까 그건 문제가 아닌데, 내가 지금 앞으로 현재까지도 지금 현역으로 뛰고 있으니까, 보면은 제일 가정에 제일 문제다. 그 뛰어난 재주 있는 아이들이 정말 이렇게 몰입할 수 있게끔만 만들어 준다면 그 빠른 세월에 세계에 어디에 232 -

242 내놓더라도 머 요즘 말하는 김연아라든지. 마 이런 그것도 자기들 그 운동이라든 지, 스포츠라든지, 또 그렇지 않습니까? 예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그러니깐 우리나라는 보면은 바이올린이나 현악기만 음악이 아니라, 국악기 대금 하나라도 잘 불고, 가야금 하나라도 잘하면 세계 최곱니다. 나는 그런 찬사를 받은 사람이 고, 또 아버지도 그렇게 같이 음악 다녔지만 나는 정말로 솔로리스트로서 스타라 고 비슷한 소리를 들었고, 세계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플룻을 부나, 바이올린을 하나, 피아노를 하나, 이생강이 대금을 부나, 찬사는 똑같다 이거죠. 무슨 말씀인지 알죠? 그렇기 때문에 국악이다 이래 보면은 잘못된 것이 국악 교 육이라고 하는데, 교육은 배우면 다 교육입니다. 시작할 때부터 교육입니다. 그러 나 교육에 안주하면 안 됩니다. 예술입니다. 예술은 변화무쌍해야 됩니다. 변해야 되고 잘 되야 됩니다. 감동을 줘야 됩니다. 그게 예술입니다. 그런데 이 예술과 그냥 하는 정도에 까지를 구별 안 한다면은 이것은 어떠한 예술도 발전이 없다 이렇게 봅니다. 口 2-8. 영째 선발에 가장 중요한 점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예를 들어 능력, 끈 기, 열정, 순발력, 어떤 게 었을까요? 자. 우선은 선발한다는 자체가 우선 일단은 그 학생들이, 영재들이 유아들이 모여야 안 되겠습니까? 그럼 모였다 생각하고, 있으면 선발과정이란 것은 아까 말씀 드린 대로 여러 악기를 갖다 놓고, 애들의 관심을 유도해서 무엇이 애들이 원하는 거를 빨리 파악을 해야 되겠고, 왜냐면 저. 영재란 것이 국악만 하는 게 아니잖아요. 일단은 전통예술입니다. 그러면 전통 종합입니다. 전공 한 번 합시다. 그러면 여기에 나오는 애들을 보 고 춤추는 장면을 보여주던지, 춤추는 장변을 보게 되면 애들이 시선이 갑니다. 누구든지 춤추면 다 좋아해요. 그 다음에 두드리기입니다. 다 좋아합니다. 부분 부분해도, 이결 산조라면 모르지만 애들이 모르니까 껴네들 좋아하는 동요를 려줍니다. 그리고 쉬운 단소라든지 안겨줍니다. 절대로 리코더나 서양악기를 갖 다 줘선 안 됩니다. 우리 전통은 아닙니다. 그니깐 우선 단소라든지, 소금이라던 지, 피리를 갖다놓고 소리를 내는 것들을, 또 막는 법부터, 그걸 테스트 해야죠. 그리고 그 중에서 부는 거는 호흡이 긴 아이들이어야 합니다. 혁헥대변 안 됩니 다. 소리가 길어야 됩니다. 지금 누굴 평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민속악은 정말 아까 전에 말씀드린 대로 민속악은 선생님이 같이 배워도 톤 칼라니 뭐니 하면 은 몸이 뚱뚱한 사람이 있고 몽이 약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몸이 뚱뚱한 사 람은 모두 음량이 릅니다. 성량이. 그 면은 거기에 알맞은 악기를 주어서 소리가 그 바란스가 맞아야 됩니다. 그런 게 그 굵은 사람이 가는 걸 피리 갖다 놔놓고. 피리 부는 거 봤죠. 몸이 그냥. 말하자연 얘 너 어디 갔다 왔냐?, 폼 큰 사람이 야, 너 어디 갔다 왔어?" 이게 아니라, 어디 갔다 왔어?"하면 안 맞잖아요. 또, 가날프고 봄 약한 사람이 야, 너 요즘 이생강이 잘 있냐?" 이러면 안 맞는 겁니 다, 바란스가 안 맞는 겁니다. 그러니까 춤도 남자 춤을 출 때 같이 따라하는가

243 안 하는가 그래서 애기틀 데려다 놓고 춤사위 춰봐라 하면 벌써 선율이 되잖습 니까? 그건 몇 번만 해보면 나와. 그러나 하루만 뽑지 말고, 노는 삼아 유희처럼 자 따라해 봐라하면 거기에 있고, 고 담에 부는 거 같이 합니다. 껴들도, 또 가 야금 뚱땅뚱땅 하면 손가락도 아파, 그러면 손가락 이거 할 때 애들 머 하나 끼 워주변 되니까 똥당 뺑겨 봐라 하고 농현 한대로 요렇게 해봐라 하면 벌써 나 오잖아요. 자 부는 거 해봐라. 후후 소리 나면, 나중에 소리 내는 놈이 있어. 그 럼 골로 또 편성하는 거예요. 그렇게 많은 거 애들 한 100 명이면 100 명, 200명이 변 200명 모여지면, 그 학생들을 애기들을 가지고 테스트를 하는 거죠 여러 가지. 자 노래해봐라 자 아무개 노래를 <아리랑>부터 시키던지, 민요는 음악 아닙 니까? 다 하죠.<만고강산> 또 따라하는 놈 있으면 남도 쪽으로 또 보내고, 그 렇게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 하는 이야기죠. 口 전문가들을 펑가위원으로 모시게 되잖아요. 그분들을 어떻게 모시는 게 공정할 거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계파나 이런 것들이 었잖아요. 계파란 것을 말씀 드릴게요. 지금 계파는 우스운 것이 왜 계파를 나누는 것 자 체가 우습다고 생각해. 왜냐면 민속악은 하납니다. 지금 단 하나, 위에 이름 있는 분이 세종파 다, 어떤 파가 나왔을 때, 아가 춘향아 불렀는데, 이 사람은 호 령제로 아가 춘향아 이래 불렀다. 요 차이밖에 없거든, 그런 음악은 얼마든지 후세에 맞춰가면서 발전 계승입니다. 예? 그런데 왼 청으로 이렇게 했다. 자 어보세요. 낙양성 윗데 리리~ 높고 낮은 이래야 되는데, 높고 낮은 이라면 말하고 안 맞지요? 그렇습니까? 높고 낮은 따라라 띠리 이렇게 하면 되잖아 요. 근데 높고 낮은 이라면은 그게 안 맞는 거 아닙니까? 고런 거나 교정을 하 지 유파 관계는 절대 없습니다. 단 하나는 올바르게 나는 지금 영재교육이 이것 을 잘 생각 있으면 더 잘 불기 위해서 빼어나게 하기 위해서 한다. 예를 들어서 또 김영재 보담 해금 더 잘하기 위해서, 잘하기 위해서 얘들 영재를 키우는 겁니 다. 이생강이가 막았다. 전무후무하다 이러면 음악은 죽고 맙니다. 내 이런 말이 야. 김영재보다 뛰어나지 않으면 앞으로는 그 음악은 끝나고 말어. 김영재 음악 은 없어. 무슨 말인지 내말 잘 몰라? 그 당대에 뛰어난 사람을 기초로서 만들어 놔야 된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유파발표를 하기는 하는데, 옛날에는 이렇게 이생 강이 불 때는 사람들이 가 라고 했는데 거 라고 했다. 이거는 필요합니다. 고런 거는 해주고, 시대에 따라서는 가 가 극 하면 극 해야 된다. 이 말이죠. 그게 좋다면 그렇게 하고 원형은 놔둬라 이 말이죠. 그 대신 원형에서 벗어나면 안 돼. 기역자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 그 말이야. 가 가 됐든 거 가 됐든 모음과 자음 에 의해서 조금 달라지는 건 몰라도 기역자는 변하면 안 된다 그런 뜻입니다. 내 얘기는. 그러면 이생강류가 었다. 그 이생강이 잘 부니까 지금 전국에 제일 많은 것이 대금은 산조가 보면, 서용석류가 90% 차지해요. 고 다음에 그 중에서 약, 아 저 서용석류가 한 80% 차지해. 그 중에서 12~3%가 저 강백천류가 차지해요. 그 다음에 나머지 5~6%가 이생강 입니다. 다른 사람 깜짝 놀랄 거라고. 왜? 이 생강이 보면 제일 많은데 우째서 적느냐? 그게 아니야. 내가 말한 거는 기초가 잘 된 사람을 말한 거야. 기초가 바로 된 야기, 또 그렇게 쉽게 양산체제는 아니

244 거든 나는. 또 하나는 해외공연을 하도 많이 다니니까 제자를 기를 수 있는 그런 시간도 없었고, 지금도 그렇게 빨리 막 양산체제는 나는, 애들이 못 따라 주니까 그게 안타깝고, 그래서 지금 서용석 선생은 그렇게 많아요. 그 다음에 두 번째는 원장현이 그 다음에 이생강이 제일 없어. 한범수류는 이제 없어져. 한범수 라는 게 없어. 지금 박용호가 불어도 그건 박종기 선생님 꺼지 어찌 그게 한범수 꺼난 말이야. 그거는 이거는 사람이 쉬쉬할 때 있고 안 할게 있지 만은 바른말. 여러 분들이 할 때는 내가 입증을 하니까. 1956년도에 한범수 선생님이 원래 잘 부셨어. 해금도 잘 하시고, 그런데 그 분이 하는데 그 퉁소 불다가 박후성이 라. 옛날에 박금동 42) 이라 하는 분이 단체 단장을 했어. 그러니까 한 선생, 악사 들이 없으니까, 부르는 사람의 숫자가 적으니까 한 선생, 다른 거는 현악은 많은 데 부는 게 없어 한 선생 젓대를 부시오 그래서 보니까 남원까지를 갈 수도 없 고, 그 때 남원에 1950년대 그 때 강백천 선생님이 남원에 계셨단 말이야. 그러 니깐 갈 수가 없어서 이러다가 어쩌다가 기회가 돼서 남원가서 몇 가락만 대금 부는 법을 한범수 선생님이 배웠어. 배워가지고 그 뒤에 혼자서 연습을 하다가, 그냥 연습을 하고 있는데 그 때 나를 만났단 말이야. 부산에서. 만나가지고 이 분이 업이 돌아가 버렸어. 풍으로. 그래서 내가 왜냐하면 그래도 연세가 그 어른 이 나보다 많이 잡왔으니까 그래서 내가 인자 한 선생님이라 부르면서 그 어른 을 임약국이라고 나한테 배우는 한약국( 韓 藥 局 ) 주언을 내가 소개해가지고 돈 안 들고 소개했지. 임약국이라고. 그 분 나한테 단소를 배웠어. 그 한범수 선생님을 모시고 갔어. 부산에 충무동에 모시고 가서 낫게를 해줬다니까. 한 일주일 이상 해가지고 침 맞고 이래 해가지고 그래서 한범수 선생이 날 너무 이뻐하고 그래 했는데, 그러다가 고담에 언자 내가 서울에 1962년도까지 지영희 선생님 집에 있 다가 부산을 왔다 갔다 했지. 절에도 있고 그 사이에 62년도 8월 달에 군 때문에 다시 부산에 왔어. 나는. 그게 인자 우리 선생님하고 하직할 때, 군대 간 사이에 선생님은 돌아가셨고. 그 때, 62년도 8월 달 까지는 제자가 내 하나하고, 내가 인제 소개했던 경상도 상주에 지금 보험 소장하는 권부자란 분이 계셔. 여자인 데, 그 분이 나보다 서너 살 아래 있으니까 1941 년생 일꺼야. 난 그렇게 기억을 하고 있어. 열아홉 살 때 나한테 단소를 배워서 만 17세인가 18세인가 그 때 나 한테 대금 산조를 배워가지고? 중모리까지 배우다가 내가 한주환 선생님을 소개 하고 난 프랑스로 간단 말이야. 그래서 그걸 권부자씨가 부산서 1 등윤 해가지고, 서울에 KBS 뭐 이런 거 종합으로 해가지고, 서울에 국립국악원에 있었어. 그 때 는 국립국악원 1 기생도 여자가 없었어. 그래가 인제 말은 영웅이라 하지만 그 때 는 마. 내 생각은 그래. 그래가지고 언제 우리 개울스님이 말해가지고 이렇게 어 떻게 해서 국립국악원에 비원 앞에 있을 때, 거기에 조금 있었다고. 있을 때 한 범수 선생님이 거기에 대금 선생으로 있었단 말이야. 그래가지고 한범수 선생한 테 산조를 조금 배웠어. 근데 내가 그 때 외국 갈 때 한주환 선생님을 소개를 해 주고 갔거든. 그래서 한주환 선생님께도 다 배우지도 못하고, 한범수 선생님께는 자진모리까지는 좀 하기는 했는데, 나중에 언제 그 뭐 한범수 선생이 대회를 나 42) 박금동파 박후성은 동일인물. 박금동이 본명, 박후성이 예명임(기록자 주)

245 갔을 때 권부자씨, 들은 바에 의하면, 서울에 요래가지고 나가서 1 등을 했는데, 한범수 씨가 가르친 대로 안 부르고 나한테 배웠던 한주환 선생님 이걸 불렀던 가봐. 그래서 말 듣기로는 대금을 깨버렸다고 한범수 씨가 화가 나가지고. 마, 그 런 말을 내가 간접적으로 들은 적이 있어. 그럼 그 여자는 캐나다에 갔다 와서 그냥 그대로 악기를 접어버렸지. 그래서 내가 말은 한주환 선생님 작고하실 때, 그 때 권부자씨가 있었다는 거지. 그런데 그 대금을 가지고 있었냐고 물어보니까 대답을 안 하더라고. 몇 십년 만에 만나서 물어보니까, 머 그렇게 된 거요. 그래 한범수 선생님은 우리집에 와서 나하고, 내가 1965년도에 군대 제대하고 임춘앵 씨를 따라서 다시 서울을 왔단 말이야. 그래서 그동안에 강백천 선생님한테도 배 우고, 돌아가신 강백천 선생님 제자, 김동식 이라고, 김동진 이라고 있었단 말이 야. 지금 김동진, 김동준, 김동표가 있는데 지금 대금 산조 또한 사람이 부산에 지금 전라도 화순인가 그 출신에 김동진, 김동준, 김동표, 내가 그 막내 동생이 인간문화재로 대금 산조로 돼 있어. 강백천 선생님 후계자로 지금 부산에 있어. 아직 살아있어. 나보다는, 뭐 우리가 벗하지만 두 살 아래라도 그 사람 형은 나 하고 한 살 위라서 내가 형이라 부르는데 죽었지. 그런데 그 사람이 왼손잡이라 왼손으로 불어. 왼손잡이로 왼손으로 부는 바람에 동생이 되어 버린 거야. 왼손 으로 불면 안 되잖아. 아무래도 문화재는. 그렇게 되가지고, 한범수 선생님은 거 김동진 선생님께도 좀 배웠어. 조금 배웠다고. 그러다가 인제 박종기 선생님 거 녹음가지고 레코드를 틀어서 채보를 했단 말이지. 그 때 우리집에서 했었어. 왜 냐면 나하고 예술학교 비원 앞에 있으니까 가시다가 우리집이 바로 학교 밑에 니까. 거 저저 운당여관 옆이거든, 그러니까 그 옆에 거서 오시다가 작은 방에 이병우 씨라던지 정문연 선생님이라딘지 남자 선생님들은 다 우리집에 인제 계 셔서 약주 한 잔씩 잡숫고 사주변. 내가 있으면 보고 다 그랬지. 나는 셋방살이 하지만은 그렇게 했고. 뭐 돌아가셨다 그것만 아니면 옛날 다 우리 선생님들 다, 그래 오시면 뭐 밥도 드리고 이렇게 다 했지. 채보를 한 번은 선생님이 하신 것이 박종기 선생님 거를 했는데, 후자들이 한범수씨가 가르쳤으니까 한범 수류라 그랬지 그거는 표절이고. 박종기 선생님꺼를 또 그대로 했으면 한범수 선 생님이 잘 부를 수 있을 것인데, 기초가 안 된 상태에서 채보만 해가지고 이래 하다보니까 듣고 오죽 해봐야 얼마나 했겠습니까? 내 이야기 무슨뜻인지 알겠어 요? 그니깐 그분이 워낙 옆에서 박후성씨가 해라 하니까 대금을 한다고 그래 가 지고 채보만 한거고, 또 국립국악원에 계시니까, 다른 분들은, 그 때는 국립국악 원에 계신분들이 뭐라 했냐면 산조를 망국지곡( 亡 國 之 曲 )이라 그랬어. 나라가 망 하는 곡이라고 사람들이 그랬었어, 그 사람들 그렇게 배워왔어. 거짓말 아니야. 산조라면 뜨끔하고 보지, 배우지도 않았어. 그래가 박동진 선생님도 계셨고, 거기 에 김금암 선생이라고 우리 민속계에 김병호류라 하는 가야금, 그 선생님도 국악 원에 계셨거든. 그 동네가 바로 원서동 계시고 우리 자주 만날꺼 아니야. 그 딸 도 김화자라고 공부하고 뭐 계속 만나니까. 우리는 박동진 선생님도 마찬가지고. 그 때는 박동진 선생님은 행세를 안하고 다니고. 그분은 그때 같이 다닐 때 장단 쳤어. 소리를 해도 안 알아주니까. 그 역사를 내가 너무나 잘 알잖아. 그래서 같 이 다니고 막 그랬었지. 그니깐 제가 아까 말씀드린 이 말이 다른 말로 흘러갔지

246 만은 그런 것이 복합적으로 영재라는 것이 뚜렷하게 누가 있어서 어디서 영재를 골라 고르겠습니까? 그러니까 실기자를 위주로 한 절대로 학문적인 사람은 그냥 자기들 거 뭐 보는 시각적으로 보는 게 있겠지만은, 일단은 제일 먼저 심사를 보 는 사람은 심사위원들을 초청할 때는 실기자를 갖다, 전문적인 실기자를 불러야 돼. 유파라 하면 안 됩니다. 자, 유파라 하는 이유를 말씀드렬게. 내가 저 한종 43) 에도 한 3년간 강의를 갔는데, 모 유파는 보니까 음정이 다 안 맞아 애들이 다. 이런 애들이 한예종 44) 기술로 배우러 와가. 뭐 이런 애들이 있어. 도저히 얘들이 여기는 연주를 해가지고는 여기를 나올 애들이 아니야. 합격될 애들이 아니야. 이생강이 판단에는 음정이 안 맞아. 악기도 음정이 안 맞어. 오늘날에 참 제일 중요한 것이 악기입니다. 악기 조율이 됐는가 안 됐는가도 중요합니다. 지금 누 구 한 사람 터치하는 사람 있어요? 누가 문제제기 하는 사람 있습니까? 대금의 기준인 대금에 대한 산조가 어떻게 해서 변화, 변천되어 왔고, 단소 산조가 하는 데, 단소 할 때 단소 잡는 법부터 틀려요. 그러니 이게 무슨 영재교육 되고, 올바 교육이 되느냐 말이야. 여기 보면은 단소가 구멍이 네 개 있다 하면 이 사람 들은 국악원 사람들은 이렇게 잡습니다. 이렇게 가르켜요. 그러면 이 중심을 잡 게 해줘야 하는데, 이렇게 가르키니까 요거만 돌아오는 거만 악기소리를 내지, 요거는 소리를 못내. 해도 요렇게 하지. 해금하다 안 되면 밑에 손 내려오듯이. 그거는 줄이 두 개밖에 없으니깐 어쩔 수 없지만. 맞아 안 맞아? 그러니깐 요렇 게 하다가 얼른 내려옹단 말이야. 요러다 내려 올 거 아니가? 이거 내려오다가 이렇게. 그거는 있지만. 이거는 자연적으로 돼 있는데 왜 이걸. 사용은 안. 이렇 게 하면 소금도 불고, 대금도 불고, 피리도 부는데, 왜 이렇게 하라는지 알 수가 없다 이거야. 이게 궁중음악 하는 사람들이야. 그결 이론하시는 사람들이 보신 적 있어요? 없지? 지금 내가 이야기하니까 알겠지? 자, 그런데다 단소 음이 안 맞어. 어떻게 음을 맞춰야 되나. 다음에 내가 시범 보여줄게. 내가. 학교에 가서. 그러니, 그러고 이제 그렇게 이야기 하면 이 사람은 혼란이 온대. 무슨 혼란이 오냐 이 말이야. 발전인데, 예술. 이런 멍청이 같은 소리를 하길래 인제는 내가 공격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정작 까불면 나는 바로 느그들 옷 벗는 게 아니라 국 악에 대한 인식을 그냥 공개를 바로 공격을 안 할 수가 없다. 이제는 정면도전을 하겠다. 나 거 국악원 나온 사람들 수천만 명이 와도 꿈쩍도 안 해. 자신이 있으 니까. 나는 내 논리가 아니라 내가 배웠던 노하우와 경륜 또 시범 보여주면 됩 니다. 나는 누굴 그 사람이 나쁘다 좋다 이야기 하는 게 아닙니다. 국악원은 그 렇게 해라. 이거 국악. 궁중음악을 하던지 시조를 하던지 그렇게 부르란 말이야. 근데 책에는 전부 이렇게 분다 이 말이야. 그게 나는 못마땅하다 이거야. 나는 민속악 하는 사람으로서 민요할 때는 이 손을 다 써야 돼. 예? 내 말 지금 뜻을 알겠어요? 그니까 이 손을 다 쓸 수 있는 이 손을 왜 병신을 만들어 놓느난 말 이야. 아, 누구든지 한번 설득력 있는지 물어 봅시다. 어느 사람 불러가지고. 이 렇게 내가 못하면 모르지만 난 이생강은 무슨 손가락으로 해. 어떤 손가락으로든 43)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지칭함. 44)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지칭함

247 맘대로, 자유자재. 나는 여기서 대금하나라도 어떤 키든 맘대로 바꿀 능력이 있 는 사람이야. (대금시범) 난 어떤 곡도 마음대로 해.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오라 이거야. 피리를 가져오던지 대금을 가져오던지. 나한테 문제를 가져오란 이 야기입니다. 나는 차라리 공개를 해서 전부 무슨 사람이 있는데 물어봐라 이거 야. 내가 표현하겠다 이거죠. 내가 그 음을 못 내면 내가 엉터리가 되는 거죠. 나 는 자신이 아니라 이날까지 60년을 해왔다 이 말이죠. 그런데 지금 내가 말씀 드 린 거 전부다 이렇게 교과서에다가 이렇게 병신을 만들어 놨어. 자, 이걸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이 늦은 감은 있지만은 내가 인간문화재가 되고 하니까 올바른 이거 내꺼만 몰입해서 했던 거지 내 책임이 있단 말이지. 그래서 강의 다 니면서 나는 그래요. 그분들 보고. 잘못 했다는 게 아니라 정확하게 하던지 궁중 음악은 그렇게 해라 이겁니다. 그러나 민요할 때는 이렇게 해라 이 말이야. 자 이 소리가 낫습니까? 저 소리가 낫습니까? 또 이렇게 민요를 하려면 손가락을 다 써야 됩니다. 그럼 손 이렇게 잡으면 다 놔버려야 될 거 아니냐 이 말이야. 그건 우리 합리적이야 딴 거 아니야. 그니깐 그거는 정당하다 이 말이죠. 그래서 이 교육도 필요하고요. 단소를 지금 교육을 잘 하지 않으면 관악기를 할 수가 없 습니다. 모든 기초, 기본이 단소입니다. 우리 전. 우리음악에. 이걸 아셔야 되고, 그 다음에 나한테 물은 말은. 여기에 지금 현재 거. 어떻게 하면 공정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은? 그러니까 유파. 그거를 올바르게 공정하다라면 유파를 우선 그 애들을 갖다 지 이생강류 가르치고 이게 아니란 말이죠. 기초를 바로 가르쳐야죠. 민속악에 대한 것이면 민속악, 정악이다 하면 정악, 그렇지 않습니까? 근데 왜? 다른 건 모르지만 정악은 계통은 왜냐하면, 저 정악 대금은 애들이 만지려면 손가락이 띠 어지지 않습니다. 길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선 빨리 민속악을 배우는 방법은 어 떻게 하며, 또 정악은 애들 손가락이 길어야 되니까, 기다려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러면 그거 대금을 불라면 단소 라던지 점차 점차 내처럼 손가락이 닿는 악기 부터 시작해야 되는 것 아니겠어요? 그렇기를 원하는. 그러면 좋겠고, 했으면 좋 겠다. 관악기는. 그럼 좋겠고, 유파는 관계없이 아무해도 관계없다. 단 하나는 올 바르게 해야 된다. 다 국가가 지정하는 사람을 불러서 해야 합니다. 그 이야기는 우리 같은 사람, 누구 한 사람, 그리 안하변 인증을, 공인을 못 받는다. 지금은 무슨 유파. 왜 유파업니까? 자, 말씀드릴까? 요 내가 녹음을 할게요. 나는 후세에 분명히 나는 이걸 입증을 할 테니까. 자 서용석류가 있습니다. 서용석류 라는 것 은 뭐냐. 그 사람이 우리 한주환 선생님께 배웠다 하는데, 내가 1962년 8월 달 까지는 이 사람이 배운 일이 없어. 그러다가 몇 개월 후에 우리 선생님 작고하셨 어.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우리선생님이 경기제 음악을 해야 굿판 나가서 밥이 라도 돈을. 워낙 돈벌이가 안 되니까, 민요도 못 부시고 산조 하나 밖에 못 부니 까 배가 고파서 영양실조에 걸릴 것 같으니까 누가 뭐 대금 산조 부르라는 사람 도 없고, 단 뭐 조선일보 방일영 회장이 가끔 부를 때 한 달에 한 번 부를까 말 까. 밥이 생계유지가 안 돼, 또 학교 나가도 밥벌이가 안 돼. 민요를 할 줄 모르 니까 한범수 선생님은 민요도 할 줄 알고 한학을 많이 공부하셔서 악보도 한문

248 으로 해서 정간보도 보실 줄 알고, 그 어른은 또 해금도 할 줄 알고, 퉁소도 불 줄 아니까, 그런데다가 빨리 지영희 선생님한테 가서 경기제를 빨리 배웠어. 그 래서 어디 가서 반주도 하고, 굿 하는데 가서 먹고 살게끔 방법을 배웠단 말이 야. 근데 우리선생님 45)은 굳이 한다는 것이 남도 밖에 못해. 그래서 이제 누가 옆에서 경기굿거리나 민요를 해라. 나 군대 가고 나서, 차라리 그 전에 들었으면 내가 이렇게, 이렇게 가르쳐 드리던지 할 건데 선생님이 제자한테 배우기 좀 쑥 쓰러웠던 가봐. 무슨 말인지 알겠죠? 그래서 서용석 선생은 누구냐? 서용석 선생 이모부가 김광식 씨야, 김광식이란 분은 누구냐? 대금 산조는 박종기 선생님께서 조금 배웠어. 배웠지만 경기제가 최고야. 경기제에 음악을 제일 잘했단 말씀이죠. 김광식이란 분이. 그래서 서용석 선생의 이모부니까. 그래서 박천택이라고 박동 인 하고 사촌 간 되는 사람하고, 인자 우리선생님이 박초월하고 거 저 부산에 낙 원동에 있었단 말이야. 낙원동에 거 우에 계시면서 놀러가가지고. 야, 용석아 너 좀 내 경기제 좀 가르켜 다오. 그랬었던가봐. 나는 간접적으로 들은 소리요. 예, 그러면 내가 산조를 가르켜주마. 그래가지고 배웠다고 그래요. 배운 것이 언제 거 본인은 뭐 25분짜리 배웠다고 하는. 나는 모르겠고. 뭐 일단 그 사람이 이야 기한 것은 아니죠. 아직 한 번도 지금 서용석 씨가 지금 거 몸이 참 안타깝게 저 래 돼 있지만은 내하고 음악을 해도 자기가 내보고 한주환 선생님한테 배웠다고 한 번도 소리를 안 해. 그 사람이 못 하게 된 게 나는 15년을 모시고 있었고, 본 일이 없고, 단 몇 개월 사이에 배웠다면 배웠을 수도 있겠죠. 근데 서용석 씨는 배웠다 그러면 어떤 주법이라든지 기법이라든지. 口 3-1(1-3-(D). 국제극장에서 일본 선생님들 앞에셔 부셨던 악기가 무엇업니 까? 퉁소 입니까? 샤쿠하치 업니까? 아니면 둘 다 업니까? 국제극장에서라뇨? 고꾸사이게끼죠? 어릴 때? 어릴 때 처음 불은 것은 소금. 단소를 먼저 불었는데, 일본 사람들에 가서 갔을 때는 샤쿠하치. 퉁소. 우리 퉁소를 가져갔지. 한국 퉁소인가요? 어. 한국 퉁소. 우리 아버지가 사쿠하치와 같은 한국 口 3-2(1-3-(D). 그 때 일본 선생님이 누군지 기억 얀 나신다고 그러셨잖아요? 근데, 그 사람이. 아버지(한대) 뒤에 커서 들었지만, 내가 다서 여섯 살 때 기억이 잘 안 나잖아. 그런데 고거는 생각이 나잖아. 중간에 끊었으면 모르지만 계속 이어 왔기 때문에 기억이 나는 거야. 그 사람은 긴고류 라고. 일본에 도잔류, 긴고류, 매 잔류 라고 세 가지 류파가 있어. 이생강류, 한주환류 이러 듯이. 매잔류, 도잔류, 긴 금고류라 이 말이죠. 그러니까 한문으로 말하면, 가야금 자 고, 고 자는 옛고 자고, 류는 유파야. 그 류파의 선생이야. 그 양반 내가 기억이 안나요. 45) 한주환 선생님

249 무슨 악기의 류파 에요? 샤쿠하치요. 그럼. 일본에도 사쿠하치가 지금도 있어요. 매산류가 있고 한문으 로 치면은. 또 그 도산이라고, 모일도 자에다 외산 자더라고. 내가 그래 기억하고 있거든? 그 다음에 금고류는 가야금 할 때, 임금왕 밑에 이제금 자, 고자는 옛고 자. 그래서 금고류. 그거를 일본말로 긴고류 라고 그러지. 口 3-3(1-6). 상피리 7개 악기 중에서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이 단소였다"라고 하셨는데요.상피리가 뭐에요? 상피리는 그 피리 중에 조그만 거 우리나라 상피리 있잖아. 세피리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니야. 세피리 같은 두 개 붙어 있는 거지. 쌍피리? 그렇지. 내 경상도 발음이니까 잘 안 돼서 그렇지. 쌍시옷. 짱피리 일곱 개 악기는? 일곱 개 아니라, 일곱째 악기가. 그니깐 단소, 소금, 대금, 피리, 퉁소, 태평소, 쌍피리.7개다 이거지. 가지 수가. 그 중에 얼곱 번째? 선생님이 숫자 세셨을 때 일곱 번째? 어. 제 일 번부터 해가 대금을 제일 늦게 잡았지. 선생님이 시작한 악기 순서가? 그렇지. 순서가 그렇단 말이야. 순서 이야기지. 왜냐하면 손에 닿지 않으니까. 口 3-4(1-7). 김석출 선생님은 언제, 어디서 이생강 선생님의 부천께 악기를 배 우셨나요? 1947년 봄에, 그때 내가 11살 땐데, 우리가 부산에 이리 왔다가 우리 아버지가 친일파로 몰려가지고, 돈이 많으니까, 일본서 들어왔으니까는 했을 리 없고. 이래 가지고 야반도주를 했어. 우리가. 어디를 갔냐하면 포항으로 도망을 갔어. 안 죽 으려고. 왜냐하면 자꾸 뭐 친일파라 그러고 또 뭐 그런 바람에. 그래서 거기. 우 리 아버지가 자동차 운전수인데 돈이 인자 많이 별어왔다 해서 인자 그렇게 뭐 만주 혁명가니 이렇게 와가지고 그래서 인제 뭐 우리 아버지를 죽인다 살린다 하고 그랬거든. 나도 본명이 이주식인데, 내가 생강이란 이름이 일본에서 자랄 때 이름이지 아명인데 나중에 언제 그 동경 오는 사람을 빼버렸어. 우리집은 나 만 빠진 게 아니라, 할아버지부터 위에 다 빼버렸단 말이야. 똑같이 빼야 되지. 하면 한명만 빠진 게 아니란 말야. 다. 그러다보니 저 사람들 4에까지는 뭐 뒤에 한국서 났을 때까지도 순서가 나이가 있으니까. 그렇잖아. 쌍둥이 아닌 다 음에야. 뭐 쌍둥이라도 뭐 그렇게 나이 차이는 아니거든. 그래서 상당히 어려웠 46) 동생분이 사무실 밖에 계셨음. 저 사람들 은 동생들 전체를 지칭함

250 었고. 음. 그래가지고 인제, 그 때 당시는 동경에서 우리나라 나이로는 한 6살쯤 됐지. 만 5세정도. 그니깐 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아버지 껄 뺏어가지고 소리 낸 것이 단소였다 이 말이야. 처음에. 김석출 선생님이? 김석출 씨는 1947년에 우리집에 봄에 찾아 왔더라고. 죽도라고 포항에. 포항에 포항. 우리가 포항을 1947년도에 이사를 갔거든? 그래 갔는데, 그 때 봄에 4-5월 달에 김석출 씨가 우리아버지한테 새납을 배우러 왔단 말이야. 그 때 김석출이 뭐하는 사람이냐 하면 울진에 살 땐데, 동해 별신굿이라고 묵호에 배 그 만신. 만선하고, 배가 들어갔다 나갈 때 풍어제라든지 할 때 그 사람이 노상 그 가족 웃 대 부터 대대로 그 냥반들은 그 쉽게 말하면 만신들이란 말이야. 口 3-5(1-6). 아버님의 음악척 기량은 어느 정도였나요? 글쩨 어렬 때는 잘 몰랐는데 내가 성장하고 다닐 때 보니깐 뭐 지금은 우리 아버지만치 민요를 그렇게 부는 분들이 몇 분 있을까 그럴 정도였어. 그만치 잘 불었어. 그 대신 시나위나 산조 같은 것은 잘 못하셨어. 민요위주로 하셨군요? 경기 쪽으로. 경기 쪽 음악. 동부음악. 이 저 남도 전라도 쪽의 음악은 절벽이 었어. 잘 몰랐어. 귀명창이셨나요? 귀명창이라기 보다는 거 음악을 우리집에 보면 지 국악 판이니까 아버지가 옛날에. 그 유성기판이 전부다 많이 들으셨군요? 그렇겠지. 좋은 소리와 안 좋은 소리를 변별하는 능력이 었으셨나요? 당연하지. 그러니깐 고 다음에 내가 성장 했을 때라도 민요를 서울서 내가 지 영희 선생님이나 또 부산서도 이춘성 선생님이나 다 배워가지고. 정희 선생님이 누구시죠? 지영희, 지영희. 이춘성 할아버지. 다. 버지가 구음으로 가르쳐 주셨어. 피리를 배우 오면은 그게 아니다하고 아 口 3-6(1-7-(2)). 자진모리를 먼저 배우신 이유가 선생님을 재미있게 배우게 하 려고 한주환 선생님이 그렇게 하셨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단지 아이가 재미 없어 하는 거 말고 또 다른 의도가 았었을까요? 잘 모르지. 난 여넓 살 때니까 잘 몰랐으니까. 그분의 그 의미심장한 그 런 뜻은 잘 모므겠고 1951 년도에 다시 4년 후에 만나가지고 우리 집에 인제 계 셨단 말이지 사변 났을 때 피난 오셨단 말이지. 오셨으니깐 그 인제 우리

251 집에 모셔가지고 나는 그 때까지도 그 자진모리가 산조인줄 전체인줄 알았지. 진 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지금도 어느 사람 불어봐요. 산조 하면 산조다 하고 가 르치면 자진모리가 산조인지 진양조인지 잘 모르잖아. 한주환 선생념이 예를 들어 그런 순서로 배우셨다 라든지? 우리 선생님이 어디서 그렇게 배웠다 그 소리는 안 하더라고. 안 하시고 그냥 그 한숙구 선생께 배워가지고 그 아들 되는 한수동 선생께 배워서 그 담에 그 배운 걸 가지고 1930년에 박종기 선생을 광주서 만나서 배웠다고. 그래서 배워가 지고 한숙구와 옛날에는 그 선생님들 재주 있는 분들이 김종기 라든지, 강태홍 선생이라든지, 근 세대에 박성옥이란 분들은 악기를, 가야금 잘 하면서도 춤도 잘 추고. 춤도 그냥 보통 춤이 아니란 말이야. 그런 그 가야금 잘하는 강태홍 선 생도 춤의 선생이었어. 그런 또 한숙구 선생님도 대금을 잘 불면서도 가야금을 능수능란하게 잘했어. 그래가지고 가야금이 사실은 김창조씨보다 더 앞섰단 말이야. 김석호 선생념? 한숙구. 본명이 한승준이야. 1849년생이야. 그걸 어떻게 다 외우세요? 1849년이고, 1925년에 돌아가셨어. 그거는 내 직계니까 내가 알 수밖에 없어. 내 직계는 알아야 되잖아. 그러니깐 즉 말하면 지금 뭐 김창조 씨가 영암출신 해 가지고 뭐 산조가 창시자라 그러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 안하지. 왜냐하면 김창조 씨와 그 우리 한숙구 선생님과 두 분의 나이가 한숙구씨가 연세가 열 몇 살 더 위에란 말이야. 나이 많다고 먼저 시작했다 그거는 아니겠지마는 이름은 김창조 선생이 만들어서 훌륭한 제자를 길렀기 때문에 이름이 났고. 만약에 이생강이라 는 존재가 오늘날 문화재라는 제도가 없다면 일반에만 이름이 났지. 국가에서는 국립국악원처럼 궁중음악만 이어 왔을 거 아니냐 이 말이야. 口 3-7(1-7-(2)). 단소도 전추산 선생님을 통해서 몇 선생님 배웠고" 할 때, 죽 도 선생님이란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 분 이름이 죽도라는 이름이 신창휴 씨라고, 신창휴. 내가 기억은 그렇게 하 고 있는데. 그 분이 어떤 분이세요? 단소도 불고, 대금도 불고, 퉁소도 그래요 그 양반이. 작업적으로 하시는 분이세요? 직업적으로. 신창휴 씨라 그라면 옛날에 김월하 씨 같은 그런 사람이 전부 같 이 반주 같이하고 다니고 노상 그랬지. 김월하 선생님보단 위에 위엔데. 口 3-8(1-7 -(2)). 엄춘앵, 박녹주, 검소희 선생님이 소리를 가르쳐 주셨고, 한얼 섭 선생님도 가르쳐 주셨다고 하셨는데요. 한일섭 선생념이 소리를 가르쳐 주 신건가요? 아니면 구음으로 악기를 지도해 주셨다는 의미인가요?

252 구음으로. 내가 이제 불변은 내가 이렇게 우리 선생님 돌아가시고 난 뒤에. 내 가 이렇게 불잖아. 불게 되면 아이고, 동생들 잘못 됐네 입으로 방금 불었던 가 락을 교정해 주셨다. 또, 한일섭씨 같은 분도 가락을 이어질 때, 좀 더 멋있는 가 락으로 이어준 분이 한일섭씨, 판소리를 가르쳐 주신 건 아니죠? 판소리를 가르쳐 준건 아니죠. 대금을. 산조를 잘 하기 위한 가락을 콘트롤 해 줬다 생각하면 돼요. 그 네 분이 다. 口 3-9(1-8). 하루에 바쁘게 움직이면 일곱 분, 아니면 네 분까지 봐러 다나셨 다고 하셨잖아요. 그 기간이 얼마나 되요? 몇 년 정도를 그렇게 하셨어요? 뭐 몇 년이 아니고. 한 그 뒤에 선생님들이 인제 그 수복되고 올라가셨는데, 한 2년 남짓? 口 3-10(1-8). 금청산 안에 금정샤란 철이 있어. 그 절 스님이 냐한테 공부를 해. 대금 산조를 배워. 배우고 또 전추산 이라고 유명한 단소 산조를 부르면 그 어른 47)은 정악으로 단소를 가르친 게 아니라, 정악으로 김개울 스님을 향 제 정악을 가르쳤어" 김경월. 줄풍류. 그 철 스님, 그리고 그 어른은 정악으로 단소를 가르친 게 아니라, 향제 정악 으로 할 때의 그 어른이 누구시죠? 같은 분이세요? 다? 그니까. 전추산이란 분은 호가 추산이지 이름은 전용순이야쩌) 전용순 씨가 호 가 홍연도 있고 추산도 있고 여러 가지 호가 있어요. 그러니까 알려지기는 추산, 전추산 이라지. 그래야 알지. 홍연, 전용순 이라면 모르는 분들이 많다 이 말이 야. 그런데 인제 그 분이 한 사람인데. 이 분이 언제 경월스님이라고 금정사 주 지스님을 가르쳤단 말이야. 주지스님이 경월스님이세요? 주지스님이 경월스님이지. 그 앞에 유담스님 이라고 또 있었거든. 그 금정사 주지 가 55년도부터 58년도, 57년도까지 는 유담스님 이 란 스님 이 주지 했고 그 담 에 경월스님은 딴 데 가셨다가 그리로 오셨단 말이야. 오셔가지고 또 주지가 될 때 그 때 이 저 유담스님은 단소밖에 못 불었고, 경월스님은 대금까지 내 밑에 오고 있었을 상태야. 단소, 대금을 하설 줄 아는 거네요? 경월스님이? 그렇지. 그렇지. 경윌스님뿐만 아니고 유담스님은 단소 밖에 못했고. 47) 전추산 48) 전용선 임

253 전추산 선생님도 검경훨 스념한테 가르쳐 주신 거세요? 그래. 전추산 선생님이 경월스님에게 향제 정악을 가르쳤다. 대금을. 그렇지. 그런데 단소 산조는 그 전추산 선생님이 남을 안 가르켰나 그러더라구. 옛날부터. 아무한테도? 응. 그 때 당시도. 그걸 왜 그랬냐 그랬더라니까 재주 있는 놈이 없어서 안 가 리켰다 나중에 그러시더라고. 그런데, 내가 유담스님께도 그 선생님이 단소를 그 렇게 잘 부셔도, 나는 그 대금 산조에 몰입하느라고 왜냐하면 내가 또 연습을 해 놔야 선생님이 또 오실 거 아니야. 그래야 되니까 나는 그게 연습만 몰입을 했다 이거지. 몰입하는데 뭐 산조에 단소를 내가 잘 불었지마는 단소 산조에 대해서 펙 그렇게 내가 그렇게 매력을 대금만치 느끼지는 않았단 말이야. 않았는데 어느 밤에 그 저쪽 사랑방에 절 방에 계셨고 난 이쪽에 있었는데 그 소리가 내 귀에 들어와서 대금을 연습하고 있는데 그 가락을 내가 대금에다 얹어버렸다 이 말이 야. 쉽게 말하면 그 선생님 불면 부는 대로 음을 그렇게 받으니까 얼마나 내가 미워. 배우지도 안 하고. 대금 소리가 그 양반 귀에 들려오니까. 그래서 얀 가르쳐 주셨다고요? 나중에 뒤에는 그것 때문에 안 가르쳤다 하더라고. 미워가지고, 내가. 그래서 나도 인사도 잘 안하고 인사해도 인사 잘 안 받고. 또 하도 나도 젊으니까 화딱 지 나가지고 나도 인사를 안 해버렸지. 그 때 나이가 뭐 내가 20대니까 그렇게 그 때 당시는 그랬었다고. 내가 꿇릴 것도 없고. 뭐 내가 안하면 그만이지 뭐. 그 런 기분으로 선생님의 그 고명한 결 몰랐다 이 말이죠. 어렬 때니까. 3-11(1-7-<2)). 한주환 선생님을 트럭 위에서 처음 쨌다고 하셨잖아요. 그 때 겪색 두루마기를 업으셨다고 하셨는데, 그게 일본식 두루마기인가요? 한국식 두루마기인가요? 우리 한국 두루마기. 무사 같다고 그러셨잖아요? 안에 저 대금을 갖다 끼고 있던 것이 그것이 나는 우리 일본에서 무사들 하는 긴 칼 인줄 알았단 말이야. 내 대금은 짧거든. 손에 닿게 하려고. 우리 아버지가 맨들어 주셨고. 한주환 선생님꺼는 대금이 길잖아요. 그러니까 도포를 두루마기 업으셨는데, 옆에서 허리춤에서 꺼내더라 이 말이야. 들고 다닌 게 아니라. 그래 서 내가 위에서 보니까 어린 마음에 그게 대금이란 생각을 안 가졌고. 그결 사무 라이들 칼 빼는 줄 알았다 이 말이죠. 口 3-12(1-7-<2)). 아버님이 한주환 선생님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셨나요? 우리 아버지는 뭐 한주환 선생님이 처음에는 내가 알 때는 박종기 선생님을 찾을라고 했던 거 같애. 근데 이미 나를 데리고 갈 때는 박종기 선생님은 벌써 작고하셨고 인제 우연히 인연이 될라고 하니까 왜 나를 데리고 그렇게 그 마른 명태를 실어가지고 전주를 탱기겠어? 각 전라도 지방에? 그니까 그 분을 알 길

254 이 없으니까 겸사겸사로 비용도 쓰고 건어물도 팔고. 그러신 것 같아. 내 생각에 는. 팔면서 사람을 인제 많이 모이게 하고 내가 태평소를 불면 사람이 많이 모일 거 아냐. 그러면 우리 동네 누구누구 부른 사람 있다. 아버지는 그 소리 선생님을 찾을라고 했지. 한주환 선생님을 알아서 찾을라는게 아니라. 한주환 선 생님은 그 때는 이름이 무명인 이었으니까. 한주환 선생님은 그 때 뭐 레코드 이 름난 분들도 아니고. 응. 우연히 선생님하고 처음 만나게 되셨네요? 1947년도니깐 그 뭐 우리 아버지는 그 뭐 레코드에 나오는 그 진도 출신의 박 종기 선생님이 우에 49) 사는지 모르잖아. 그래서 다니셨군요. 이곳 저곳? 어. 그러니까 그 분이 진도 사시면 진도로 바로 가셨겠지. 그렇지 않고 그러니 까 전라도 지방을 제일 먼저 왔는 그 첫 날에 만났단 말이야. 한주환 선생님을. 이틀도 아니야. 인연이 될라니까 내가. 口 한주환 선생님을 처음에 했을 때 음악적으로 남다르다, 이런 느낌을 받으셨나요? 어릴 때는 전혀 나는 그런 생각은 없고, 우리 아버지가 선생님한테 인사를 해 라. 그리고 배워라. 그니까 아무 무의미하지 뭐. 그냥 그대로 잘 불었니까. 난 무 엇이든지 잘 불었으니까. 한주환 선생님이 악기 하신다는 사설은 어떻게 하셨어요? 그 때 꺼낸 게. 그게 칼 인줄 알았는데, 그게 대금이더라 이 말이지. 한주환 선생님이 한 번이라도 불어야 그걸 듣고 이 분야 잘하는 분이다, 아니 다 알 거 아니에요? 그래 그 트럭에서 내려가지고 그 앞에 여인숙이 있었단 말이야. 그 여인숙이 제일여인숙이라고 사람도 재우고, 장꾼들 밥도 주고 순대국도 팔고, 술도 팔고 그래요, 요래 있으면 여러 사람들이. 방이 있으면 장사하는 장꾼들 장뜰-뱅이라고 하잖아 장꾼들이 자잖아요. 그 밤에 자지 낮엔 안 자 잖아요. 거걸 바로 가셨어요? 아니, 그러니까 식사를 하면서 거기서 하면서 바로 앞이 역 앞이니까. 口 부산에 계질 적에요, 선생념 댁이 넓지 않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어떤 친분으로 그 당대 유명한 선생님들이 선생념 댁에 묵으셨나요? 우리집은 거기 뭐 평수가 가옥이 서른 한 다섯 평 정도 가까이 되거든? 한옥 집으로 되 있는데 그 대신 언제 집이 낮기 때문에 위에 다락이 있었다고. 그래 방은 인제 하나, 둘, 셋 밖에 없고 인제 마루가 있고. 그 다음에 다락이 하나, 둘, 49) 어디에

255 세 개가 있었다고.2층식으로. 그 때 2층식으로 돼 있어. 그래서 선생님들 오시면 거기에 인제 주무시고 다락에서도 주무시고. 어떤 인연으로 그 선생님들이? 그러니까 그 전에 오는 분들은 우리 선생님은 이제 모셨지마는. 한주환 선생님을요? 우리 한주환 선생님도 모시고, 오광대 하시는 분들. 왜냐하면 그 전부 다 그 뭐라 그러나? 음악을 여러 가지 것을 종합적으로. 판소리 선생님들 오시면 판소 리도 가르치고. 왜 선생님 댁에 오신 거예요? 우리 아버지가 워낙 좋아하시니까. 그거를 알고 이렇게? 그렇지. 뭐 모시고 와 그분들을. 그 때는 밥 먹기가 어려웠는데 우리집에선 그 래도 자동차 두 대가 있었고. 포항에서 이렇게 멸리서 와도. 옛날처럼 잘 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트럭이 두 세 대 있었고 그랬거든? 口 3-15 (1-7-~). 선생님의 스승님 23분 중 엄춘앵, 검소회, 박녹주, 한일섭 선 생님 이외의 19분을 말씀해 주세요. 그러니깐 지금 뭐. 우선 우리 아버지부터 이수덕 씨, 임동선, 고 담에 지영희, 신창효, 신세균, 최창로, 김문일, 방태진, 또 저 오진석, 임동선, 열 몇 사람 기억 하라면 생각을 해봐야지. 그러니깐 그 분들이 그 쪽 분야에 이름들이 전추산 뭐 계시잖아 쭉. 단소는 단소 선생님, 대금은 대금 선생님, 민요는 경기제 민요, 또 남도 쪽에는 남도민요. 또 피리 선생님 툴리고, 태평소 선생님 툴리고. 3-16(1-8). 국약을 알려고 하는 사람들한테는 청성곡을, 좋아하면 아리랑을 가르친다고 하셨는데요. 전공으로 국악을 공부하려는 사람에게 무조건 흥미 보이는 것 위주로 가르철 수 없잖아요. 그 사랑들한테는 뭐부터 가르쳐 주세 요? 국약을 전공으로 시작하는 사랑들? 전공하는 사람들도 각자가 소리를 내어 오는 사람들도 있고 딴 데서 배워 오 는 사람들도 있고 또 혼자서 터득한 분도 있고, 다 여러 가지 종류가 있을 거 아 니오? 거기에 맞춰서 그 실력을 봐가지고 가늠을 해서 거기 순서대로 해야지 처 음부터 또 다시 가르치면 시간이 그 사람들도 아깝고 배워 왔는 것을 내버리지 않는 상태에서 쉽게 말하면 기초를 잘 닦아야 되거든? 운동으로 말하면 기마자 세가 잘 돼 있어야지. 모양만 이래가지고 운동하는 게 되는 게 아니란 말이야. 그와 마찬가지로, 이 음악도 기초가 잘 돼 있는지. 기초가 잘 돼 있으면 무슨 악을 전달해도 그 분은 받는다 이 말이지. 그런데 기초가 되가 있지 않은 상태는 상당히 혼자서 해가지고 능수능란하다고 딴 데서는 재주를 부릴지 모르겠지마는 내 눈에서 봤을 때, 아 이건 기초가 안 됐다. 그러면 모자르는 부분을 가지고 취

256 약점을 찾아서 고걸 보완해주고. 전공자 역시 맞춤식 교육이라는 말씀이죠? 그렇죠. 그렇지 않고는 안 됩니다. 口 3-17(1-10-(1)). 하루에 통틀어서 열네 시간씩 연습하시던 시기가 었였잖아 요. 그게 몇 살 때인가요? 그거는 여하튼 열한 살 때도 뭐 아버지가 하기 싫어도 억지로 해라 그랬고. 그 때도 벌써 하루 최대로 안 하더라도 벌써 일고여넓 시간 했고, 열한 살 먹은 게 무슨 힘이 있어? 우에 바로 올라가라 해놓고 나를 불게끔 하려고 그랬나봐. 그러 고 나는 그 때 조선말을 할 줄 몰랐으니까. 말을 이렇게 배우러 탱겼으니까. 나 가도 뭐 소용이 없어. 나가도 뭐 밖에 나가면 애들 돌 던지고, 왜놈은 가라 그러 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어씬지 내가 나가긴 나가면 두드려 맞을 생각부터 먼저 하는 거야. 그러니까 밖에 나가면 애들 두드려 맞으니까 결국 뭐 운동이나 안 맞 을 운동 그런 거 하고. 응. 口 3-18(1-12-(2)). 김문일이란 분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주세요. 그분은. 정확한 건 잘 모르는데 지금 부산에 국악지회장 김정례 씨라고 있어. 그 양반도 그분을 잘 알아. 근데 뭐냐하면 그 때 그분이 사실적으로 생활이 어렵 다보니까 요즘 말하변 약장사라 그럴까. 그걸 언제 일본말로 데끼야라 그러는데. 거기에 그 무대를 만들어가지고 거기서 애들 농악하게 되면 하고 뭐. 먼저 세상 을 먼저 갔던 그 동생 이성진이라고 동생도 거기서 인제 설장고도 치고, 팽과리 도 치고, 손님들에게 박수 받고. 그 저 잊그제 보니까 김덕수는 다섯 살 때부터 했다는데 우리는 거 세 살부터 했어. 정말이야. 랭과리도 치고 윗이고. 그렇게 하 지 말라 그랬는데 천재라 하더라. 그런데 그 때 그 김문일 선생이 뭐라 하면 태 평소를 불었단 말야. 그리고 또 태평소도 불고 농악도 하고. 왜냐하면 춤추면 반 주도 하고 그랬었어. 그 때 내가 인제 그분에게 시나위라고 하는 것을 배운 것은 그 전에는 방태진 선생한테도 배우고 그랬었는데. 인제 배웠는데. 오진석, 방태 진,한주환 선생님하고 박동진 이런 분들하고 같이 다녔단 말이야. 다닐 때 박동 진 선생님이 옛날에 판소리를 하셔도 판소리가 이제 그게 안 팔리니까 장구치고 다녔다고. 북치고. 어. 그랬었어. 그래서 같이 다닐 때 방태진 선생님 알았고, 오 진석 어른도 거기서 알았고. 피리 산조에 지금 우리나라에 피리산조가 지금 박범 훈 씨나 정재국 씨 이렇게 하고 있지마는 이 피리 산조가 원조가 나거든?! 검문얼 선생님의 출생년도는 모르시죠? 출생년도는 뭐 우리 아버지가 1902년생이니까 그 양반은 우리 아버지보고 형 님형님 이랬으니까 아마 천구백십 한 이년 이삼년 안 됐을까? 추정을 하는데. 口 3-19(2-2-(1),(2)). 30년 전, 신문기사에 나왔다고 하신 민속악 예술대학을 만 든다 는 내용 있었잖아요. 자료 검색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무슨 신문 에 났다거나, 도서관에 가서 마이크로필름을 찾아보거나?

257 왜냐하면 나는 지금도 컴맹이라서 인터넷 이걸 생각을 못했고 그 때 당시에 컴퓨터 나왔다 하더라도 별로 신경 쓸 일도 없었고 내가 해야 될 그런 것도 그 런 결 못 느꼈기 때문에. 어느 신문사였나요? 신문사는 뭐 조선일보 나왔을 거고 뭐. 어디라도 동아일보도 나왔을 거고 뭐. 이런 인터뷰라. 이런 인터뷰하는 과정이었지. 또 그리고 강원도도 그렇고 제주도 도 그렇고. 벌써 그 때부터 이십 몇 년 전에도 그랬고, 십 몇 년 전에도 제주도 에서 통합 민속악대학 국립국악대학 만든다하는 것을 소문이 나가지고. 거기서 내한테 인터뷰 요청도 오고 또 강원도 원주에서도 인제 그 내가 뭐라고 그러냐 하면 의대라도 좋단 말이야. 민속악 종합예술대학이 있어야 한다. 그 얘기는 왜 그러냐 하면 우리의 국민음악이 국민의 음악이 우리가 국악이 국민의 음악이란 말이야. 왕의 음악이 아니란 말이야. 지금 얘네들 90% 이상이 이게 50) 채택이 될 란가 모르겠지마는 전부 다 대학교수가 전부다 90% 이상이 전부다 그 분들로 지 채워져 있어요. 교수들이. 그니깐 그분들이 돼 있다 잘못했단 얘기가 아니라. 그 부분은 궁중음악을 전공하는 분들이라 이 말이야. 우리 민속악은 최하 30년을 해야 기초의 기초가 된다 이 말이야. 남의 지도급 수준에 오른다 이 말이죠. 그 냥 모양은 이런 식으로 될란가 모르겠지마는 여하튼 모양만은 그렇게 될란가 모 르겠지마는, 어느 정도 남의 수준이 지도자급이 될라 그런가하면 최하 무엇을 하 더라도. 판소리를 하던지, 춤을 하딘지, 기악을 하던지 이렇게 음악을. 내가 지 말하는 거는 남도음악을 말하는 겁니다. 산조라든지, 판소리라든지, 살풀이라든 지, 이 사물 하더라도 농악이더라도 전문적인 타악도 남쪽 음악이 발전이 많이 돼 있었고, 상당히 고난이도의 음악이 남쪽에 다 자리 잡고 있었단 말이야. 호남 지방에. 그래 그 음악을 어느 정도 기본을 잡으려 하면은 30년을 해야 남한테 나 서서 겨우 한마디 할 수 있다. 나는 그런 거거든? 그렇기 때문에 이결 빨리, 가 까운 사이에 영재를 키워서 이렇게 어려우면 이건 저변확대차원에서 상당히 어 렵다. 그래서 그랬는데, 그 때 당시에는 전부다 정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은. 국 립국악원이란 곳에서 장려를 해가지고 국가에서 지원을 해서 그 분 음악이 전부 다 왕궁음악만 차지하게 되고, 또 국가에서 또 뭐 일만 나오면 그 분들이 나와서 하게 되고 또 국가예산이나 심의할 때 보면 그분들이 전부 다 심의하고 전부 다 좌우되고 이러다보니까 그게 분통이 터져서 내가 못 견디겠다 이 말이야. 내 개 인적으로 뿐만 아니고. 그러면 우리가 해외 나가서 1960년부터 세계로 돌아다니 면서 Korea folk, 그니깐 우리의 민속악이 세계적이라는 것을 그분들이 정말로 최고라는 걸 찬사를 받고 갈채 속에서 나는 자라왔단 말이야. 그런데 우리 국내 에 들어오면 찬밥이라. 쉽게 말하면. 국가 자체부터. 그래서 그런 게 있었기 때문 에. 나는 말하는 것은 그 분들은 그 분대로 음악을 하면 되니까. 우리는 우리의 민속악만 해요. 그런데 정치하는 분들 이 분들이 전부다 국립국악원에 그게 본산 언줄 알고 있고 또 이게 갈라지는 걸 싫어하니까 그냥 가뜩이나 그 국민들에게 50) 녹음기를 가리키며 이 녹음자료가 라는 돗임

258 멀어져 가는데 멸어져가는 그 이유는 무엇이냐 하면 그 이유는 뭐냐? 왜 세울려 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하는 소리야. 무조건 이생강이가 돈 없는데 대학을 믿 다. 그 이야기가 아니라 이 말이야. 그래서 인제 고런 맥락을 보시면 되고. 단 하 는 오늘날도. 그 분들은 궁중음악 하신 분들은 궁중음악 그냥 하시면 되고. 우리 는 민속악만 하면 돼요. 단 저기 무엇 때문에 그러냐 하면 그 분들이 민속음악에 대한 것을 왈가왈부하고 또 음정도 올바른 거를. 요즘 같으면 올바른 거를 잘못 됐다고 하고 경연대회도 나가게 되면 그 분들이 차지하고 있고. 이러다보니까 이 것이 이제 모순이 생긴다 이 말이죠. 口 3-20(2-6). 영 재를 뽑을 때 어 련 아이 와 초등부, 중등부를 나눠서 뽑게 되 면 문재가 달라져야 될 것 같아요. 어떤 차이점을 두시겠어요? 우선 이해관계가 있지 않겠어요? 어떤 이해관계요? 선생님 말하는 거라든지 지도자 말하는 쪽에서 받아들이는 식견, 애기들의 나 이의 차이에 따라서. 그러니깐 무슨 말을 이렇게 전달했는데 애기들은 그 말이 자기 식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니까 거기에 차이점을 두어야 한다는 거죠. 편차를 둬야 된다. 그니깐 쉽게 말하면 재주는 있고, 가르치는 데에는 선천적인 재주가 있다고 하더라도 모양만 따라가는 게 아니잖아요. 그럼 말을 전달해야 될 것 아 니에요? 그럼 선생의 지도방법에 따라서 말을 전달 할 때에 받아주는 어린 아이 가 거기에 받아 주는 그 뭐랄까 수용하는 자세가 어느 정도의 나이가 들어야 되 지 않겠느냐? 그니까 어릴 때는 어릴 대로 예술이라기 보다는 기량이라고 그럴 까? 기교라고 그럴까? 그 예능을 어떤 키워 나갈 때 고런 나이 차이는 조금 둬 야 그런 식으로 교육을 시켜야 아무래도 받아주는 식견의, 자기들이 받아주 는 수용하는 그 쪽이 아무래도 어느 정도 우리가 그래서 초등학교, 중학교, 학교 있는 게 이유가 거 있잖아요? 수준 차이가 뭘까요? 예를 들면? 말귀를 그니깐. 지도자 선생의 전달을 받을 수 있는 그 차이점이죠. 그 말은 뭐냐하면 모양대로. 모양대로는 할 수 있는데 그 내면적인 것을 이야기할 때는 아무래도 설명이 들어갈 거 아니겠어요? 그 설명이 들어갈 때, 그 영재가 받을 자기가 수용하는 그 차이가 있지 않겠느냐. 口 3-21(2-11). 권부자 씨는 진양부터 배우셨나요? 아니면 그분도 자진모려부터 배우셨나요? 그 분은 진양부터 내가 가르쳤지. 내가. 그 때 부산에. 그 때 인제 그분이 만 17세가 되는데, 그 때 19살인가 그럴 거요. 내가 기억을 하기로는 그 분이 1941 년생이란 결 알고 있는데 1958년돈가? 1959년돈가 되니까 계산해보면 18, 19, 만 17, 18세 밖에 안 됐다 이 말이죠. 그니깐 그 때 머리 두 갈래 따고

259 학생이었네요? 아니고, 그 교환수라. 학교는 나는 뭐 고등학교는 안 다닌 거같이 보이더라고. 왜 그러냐 하면 직업에 그 상당히 어려웠으니까. 학교는 나는 그 왜 그러냐하면 뒤에는 모르겠지마는 뒷머리를 왔고. 와가지고 그 전화교환수 있지? 그걸 경주에 서 했다고 하더라고. 내가 듣기는. 들어가지고 밤에 그 단소 소리가 들어오다 보 니까 그 돌아가신 최창로 선생이라든지 이말용 선생이 있는데, 하다가 부산에 김 영조라고 와서 부산에 취직을 하고 있었는가 거는 내가 잘 몰라. 그 분이 경주에 서 온 거는 틀림없고, 지금은 상주에 있어요. 상주에. 조사면 나와요. 그런데, 그 분은 내가 저 산조를 제일 먼저 가르친 사람이에요. 말하면. 중모리까지 가르쳤 는데. 하다가 우리 선생님이, 한주환 선생님이 또 서울서 오셔가지고 내가 데리 고 인사를 시켜주었어. 그리고 고 담에 인제, 그러변서 김경월 스님도 연결이 되 니까 그래가지고 또 소개를 받고. 그래 아무래도 여자가 대금을 부니까 난리가 난거지. 부산에 그땐 처음이니까. 우리나라 역사상 아직까지 대금을 가지고 산조 음악을 연주할 수 있었다는 것은 권부자 씨 밖에 없었으니까. 그래서 그때는 대 단했죠. 그래가지고 그 부산 무슨 방송대회에 나가서 1등도 하고. 나는 그때 1958년에 벌써 나는 진주 개천예술제에 내가 특상을 했거든. 그래가지고 그랬고. 나는 1960년 프랑스를 갔다 오니까 없어요. 그래 말 들어보니까 뭐 국악원에 여 기에 있다가 그 때 국악원엔 제 1 기생하고 2기생까지는 여자가 없었거든? 근데. 口 3-22(2-11). 그동안에 강백천 선생념한테도 배우고, 돌아가신 강백천 선생 님 채자, 김동식 이라고, 김동진 이라고 았었단 말이야. 지금 김동진, 김동준, 김동 표가 었는데 지금 대금 산조 또한 사량이 부산에 지금 전라도 화순인가 그 출신에 검동진, 김동준, 김동표" 뭐 이렇게 었다고 하셨는데요. 김동진, 김동준? 그 분은 그 담양 산다고 그랬어. 담양에. 원래 그 김동준은 형제간이야 형제간. 김동진, 검동준, 김동표, 이렇게 세 분이 계세요? 또 한 분 더 있어요. 형제간 있어도. 그렴 김동식 이란 분은 어떤 분이세요? 김동식이가 김동진이야. 口 3-23(2-11). 기초가 잘 된 사람. 여기서 기초를 어느 기준까지로 보시나요? 아, 뭐 쉽게 말하면.<아리랑>을 한다. 하게 되면 <아리랑>을 하는데, 자기 혼자 만약에 배워가. 쉽게 말하면 전성이라든지, 뭐 발발성이라고 부르는 그니깐 그렇게 떨면 안 되잖아요. 뭐 그런 거를 바로 잘못 배운 것을 잡아주고 습관이 잘못되면 안 되잖아요 대금 오른손 불어야 되는데 지금 왼손 불면 안 되잖아요. 그러면 그 고치기가 어렵잖아요. 원래 그 김동진 같은 사람들은 이건 안 할 말인데 왼손으로 불다보니까 문화재가 못 됐어. 지금 원장현이 처럼 됐어. 그러니까 그결 왼손부분을 오른손으로 고쳐줘야 될 거 아니냐 이 말이에요. 그래가 모든 딱 51)도 마찬가지겠 51) 장구 치는 주법 중의 딱 을 말함

260 지마는. 물론 지금 장구 치는 거는 왼손 치는 사람도 많고, 또 어떤 때 보게 되면 은, 왼손으로 또 부는 경우가 많아요 또. 우리 국악계에 반 수가 왼손으로 부는 사 람들이 많아요. 왼손뿐만 아니고 장구를 치딘지 뭐를 하던지 다 그래. 기초라는 게 어느 정도 수준? 아까 30년 정도를 말씀하셨는데. 그건 남을 가르칠 때, 가르칠 때 명인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기초를 탄탄하 게. 음악이란 끝이 없잖아요. 예술은 끝이 없습니다. 아, 이제는. 내가 국악이 가 길을 내 눈에 보인다 하는 것이 기초다 이 말이죠. 우리가 지금 60년 넘게 해도 나는 지금도 공부하고 있잖아요? 또 할 것이 너무 많다 이것이야. 口 3-24(2-11). 전에 대금시법을 보여주시면서 나는 내 손가락을 맘대로, 자유 자째로 할 수 있다. 이 대금 하나로 어떤 키 (key)든 맘대로 바꿀 능력이 었 다"라고 하셨잖아요. 그 정도 수준에 도탈하려면 어련 아이틀이 어떤 훈련과 정을 거쳐야 될까요? 그거는 어. 첫째 이제 내가 23분에게 선생님께 배웠으면, 나한테 배운 제자는 24분 배운 거 한 가지 아니에요? 특정만 가져서 전부가 조합을 해서 가졌으니까. 그니까 23분이 있는 거 그 깊은 뜻까지 속까지 배운 건 아니지마는 기초를 잘 배워놓으니까 어느 걸 받을 수 있었다 그런 뜻이었고. 고 다음에 애들을 가르칠 때는 거기에 대금뿐만 아니고 무슨 악기든지 춤이든지 종합적으로 말했을 때 거기 에 노래 같으면 노래의 성향이 있을 것이고. 내가 지금 포괄적으로 얘기한다고. 대 금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게 아니라고. 우리는 종합예술을 하니까. 다시 말씀드려서 판소리하는 분이라든지 민요하는 분이라든지 춤추는 분릎은 단과분과지마는, 악기 를 하는 분들은 종합예술이어야 된다. 이유는 춤추는데 춤 반주도 해되고, 독주도 해야 되고, 노래하면 노래반주도 하고. 또 사물놀이를 하든지 농악 할 때는 음악 멜 로디가 들어가야 안 되겠어요? 그죠?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종합, 그니깐 다 종 합적으로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악기를 하는 사람들은. 쉽게 말하면 서양음 악 하는 사람들이 밴드라고 하는데. 나는 이거 못 분다, 모르겠다. 이게 아니거든? 그니깐 트로트 잘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xx 잘하는 사람 있을 것이고, 재즈 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니깐 그런 종류의 멜로디를 구사할 수 있는 그런 사 람이 있듯이 우리 한국음악은 최하의 30년 가까이는 해야, 아, 이제는 남쪽에 음악을 하는구나, 서쪽에는 무슨 음악을 하고, 북쪽에는 무슨 음악을 하고, 어느 지방은 하고. 그 때야 겨우 안다 하는 정도지. 시간이 필요하겠네요? 노력과 시간? 그렇지.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삼박자가 맞아야 돼. 첫째 재질이 있어야 되고, 가르치는 선생님이 그 당시에 그 분야의 최고 분을 만나야 되고, 고 다음에 후천 적 노력을 많이 해야 된다. 본인이 전공분야 외의 다른 예술분야에 관심을 두신 적이 았습니까? 口 4-1-(D 예술분야라면 그 관심을 어떻게 해결하셨습니까? - 251

261 내가 운동으로. 스포츠로. 누구든지 가진 꿈일런가 모르겠지마는. 내가 환경이 그래 되다 보니까 원래 두 가지를. 하나는 스포츠로 세계 챔피언이 되고 싶은 생 각에 몰입해서 한 적이 한번 있었고. 어떤 스포츠를? 거. 레슬링. 아마추어 레슬링. 유도하고. 그 다음에 그 하나는 저 뭐라나? 저 우리 할아버지가 이조시대 요즘 같으면 검찰이었어. 검사. 그래서 너무나 살기도 어렵고 해서 우리 아버지가 밀어주면 고등고시에 도전을 할라고 그랬어. 검 판 사가 되 볼라고. 그게 모든 것이 안 돼. 결국은 나는 부는 거 외에는 안 된다. 口 4-1-(Z) 그럽 공부도 그렇고, 레슬령도 그렇고, 확설히 예술적인 데에 도움이 되던가요? 운동은 도움이 됐고. 어떤 도움이 되던가요? 그니까 우선 건강하니까. 기초운동을 하게 되고, 또 내가 운동을 하고 산에 가 서 운동을 하고 뛰고. 기초 중에서 모든 게 달리기. 뛰어야 하니까. 하다못해 호홉이라도 좋아지시겠네요? 거 뭐 산에 올랐나 내렸다. 뛰어 올랐다 내렸다 노상. 아주 폐활량이 말할 수 없이 되죠. 심폐기능이 아주 뛰어났죠. 口 4-2. 전공분야 이외에 다른 분야의 분들과 교분도 있었나요? 친분이라든지, 교류라든지? 口 4-2-(f) 었다면 어떤 전공의 누구이며, 어떻게 내 전공과 관련되는지 말씀해 주설 수 었나요? 사례를 들어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 그렇죠. 운동하는 사람들은 운동하는 사람대로 친분이 있었고. 그 때 당시 는. 그래가 그 때 당시에 언제 이렇게 뒤에 이렇게 뭐 했던 분은 거기 총수 된 분들도 계시고, 또 언제 뭐 우리가 교분이란 웹니까? 매일 같이 다니고 이렇게 해야 되는데 결국은 내가 업종이 틀리잖아. 나는 이제 거기 나가고 또 서울에 라왔고 이러다 보니까. 어렬 때 이제 그렇게 운동계통에 있던 분이 중앙에 오니 까 그 뭐 그 분야에 총재가 돼 있고 하는 분들도 몇 분 계시고. 음악활동에 었어서 직접적인 도움을 주거나 이런 관계는 눈에 보얼 정도는 아 니였냐요? 음악이란게 우리가 봤을 때, 너무나 우리 세대는 격동기, 격전시대라서 세끼 밥을 먹어야 되니까 우선 어떻게 하면 오늘 여기 가서 밥 한 끼 얻어가지고 우 리 가족을 나눠 주느냐. 우리 형제간에 같이 나눠 먹느냐 그런 거 하고, 하나는 국악이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나는 이것을 가지고 끝까지 가야겠다. 하는 것이 그렇게 몰엽이 됐지

262 口 4-3.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과 경험을 선생님의 전공분야에 활용한 기억이 었으세요? 내가 그 학교를 고등학교에 다닐 때 집안이 어려워서 여기에 그 때 당시에는 한 두 탈간 회비주변 학교 다닐 수 있고. 또 영도나 부산 같으면 영도지방 가면. 결국은 유도부 있다가 요즘 말하면 조폭들이라 그럴까? 그러면 좀 이렇게 체격 이 작은데도 몸이 챔싸고, 또 몽이 이렇게 역삼각형 나오고 그러면 그 사람들이 가만 안 놔둬요. 그럼 불러가지고 씨름하는 테스트 모델이 되는 거야. 즉 말하면, 그 사람들에게 안 맞으려고 그러니까. 우선 순간에 사람이 1:1 로 한다고 해도 그 사람들도 다 그런 기술을 가졌는데. 하물며, 7-8명이 사방에 둘렀을 때는 눈에 보이는 게 없어요. 뒤에 무엇이 막 날라오거든. 이거는. 신사적으로 뭐 주먹싸움 이 아니에요. 어느 때 몽둥이 날라 갈지 모르니까 별써 저쪽에 사람이 오면 눈치 보고 빠른 걸음으로 빨리 피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파출소로 먼저 가든지. 제일 먼저 딴데 가더라도 보면 파출소부터 먼저 알아 놔야 돼. 우선을 보호해주는 거 는 그거 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달리기를 잘해야 돼. 달리기를 잘해야 우선 털 맞지. 그러니깐 옛날에는 6.25 때는 그 자리다툼으로 이래 가도 모르고 고개 숙 이고 가면 숙이고 간다고 때리고, 걸어가면 주머니 넣고 간다고 건방졌다고 려 맞고, 팔 빼고 가면 힘쓴다고 두드려 맞고. 막 그랬어. 그러니깐 그걸 결국은 밀집된 어떤 그룹을 형성해야 되는데, 그러니까 한동안 나도 뭐 안 맞을라 하니 까 그런 루팡이란 별명을 가지면서 밤에 마스크를 하고. 음악에는 어떻게 활용하셨어요? 그러니깐. 활용한 게 아니라. 그런 그 용기와 대시하는 거 이런 게 있다 보니까. 겁 없이. 마 선생님께 배울 건 배웠지만은, 악기를 가지고 이제 7개를 가지고 산을 뛰어 높은데 올라가서 마음껏 그냥 하게 되는 거죠. 그런 건강이나 그런 어떤 주위에 그런 어떤 자극이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내가 있었겠느냐? 하는. 그 때 만약 넉넉하게 잘 먹 고 잘 살고 편하게 있었더라면 오늘날 내가 있었겠느냐 의문이 생기죠 다른 예술분야를 자기 전공분야와 함께 배운다면? 그러하면서, 아 참, 이런 그런. 그 상고. 상업고둥학교를 다니다 보니까. 암산능 력이 생겼어. 기억하는. 숫자 기억하는 거라든지. 그 때 당시에. 그 때 당시는 주 판 이렇게 놓고 하는데 그거라도 조금 이렇게 해야 되니까. 그러니깐 이제 암산 을 하고 외우는 걸 잘 하니까 그 뭔가 이거 그 시창, 청음이라든지. 어떤 음이 딱 입력이 되면 분산이 안 되고, 바로 대금 올리면 대금이, 피리 올리면 피리가, 뭐 이렇게 청각이 많이 발달 됐다 그럴까? 口 4-5. 무대에 서기 전, 시험이나 콩쿨 나가시기 전에 얼마나 연습을 하셨나요? 그거는 뭐 어떤 대회나간다고 난 그렇게 많이 하지 않았어요. 평상시에 열 몇 시간씩 불다 보니까 몸에 그냥 배어 있었다고나 할까? 그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시죠? 요즘은 이제 좀 나이가 들고 여러 가지 그 생활 변화가 오고 주위 환경의 지

263 받아서. 여러 가지로 또 오늘 이렇게 지금 미스터 김을 만나듯이. 다른 사 만나는 시간이 내가 배정된 시간 이외에 만날 수도 있고 안 만날 수도 있고, 예. 그렇다보니까 시차에 따라서 달라지다 보니까 요즘은 그래 악기 갖고 오래 있는 시간은 많이 없죠 어련 시절, 스승님으로부터 음악을 일방적으로 배우던 시절에 음악을 하 는 목표가 았으셨나요? 왜 음악을 포기하지 않고 하신 것업니까? 아, 그니깐 포기를 했죠. 왜냐하면 너무나 소외되고. 전에 이야기. 말씀드린 대 로 우리 국민 자체가 일본 사람들의 영향으로 36년 그 강점으로 인해서 그 때 당시에 그 동맹국이었던 이태리 독일음악을 가지고 그게 우리나라 음악인냥 일 본사람들이 그냥 무조건 주업을 시켰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우리 것이 5음계 가 지고 음을 갖다 전달하기는 너무나 어려웠어. 또 그렇던 찰나에 또 유엔군의 문 화가 물밀 듯이 들어와 버렸고. 좋은 거는 받아들이면 좋은데 우리가 기초가 돼 있지 않는 상태에서 윗이 막 들어오다 보니까 중구난방이 되 버렸다, 무질서가 돼 버렸다 그런 뜻입니다. 내 이야기는 시대의 조류에 따라서 그때그때 필요한 음악은 같이 함께 병행해야 되는데, 우리 꺼라 해서 그냥 숨겨놓고 고려청자라고 가둬 놓을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세대에 따라서 그 시대에 대중들이 원하는 음 악을 해야 그게. 대중이 원치 않는 음악은 소용이 없다 이 말이죠. 그니까 무조 건 우리가 이렇게 모셔 논다 이게 아닙니다. 지금 요즘도 뭐 잘못된 것이 국악교 육이라 그러는데. 교육이 왼천적인 게 뭐에요? 예술을 장하기 위해서? 또 모든 그런 기교와 기량이 뛰어나기 위해서 그 교육을 받는 거 아니요? 그냥 하나 존 재가치를 섬겨 받기 위해서 하는 건 아니다 이 말이야. 그 시대에 따라서 움직이 다보니까. 결국은 아까 전에 말하던 음악이 외국의 음악이 자리를 잡다 보니까 우리 것이 알아주지도 않더라. 안 알아주니까 내가 그냥 포기상태에 갔죠. 갔다 가 나중에 언제 프랑스에 갔다 오고 난 뒤에, 아, 우리 것이 최고구나 다시 내 가 느끼고 다시 열심히 했다. 뭐 어느 우리 쪽 뿐만 아니라 다 자질이 있을 거예 요. 있지마는. 내가 우리 한국서 태어났으면 나는 국악 안 했죠. 차라리 내가 서 양악기 뭐 부는 재주가 있으니까 뭐 무슨 클라리넷을 하던지 섹소폰을 하던지 해서 뭐 부는 악기로 세계적으로 내가 누구보다도 더 잘했을지도 모르죠. 口 4-7. 연습을 할 때 한 두 번 하고 마셨는지 아니면 스스로 원하는 목표를 정 하고 그것을 이루면 그만두셨는지? 오늘의 분량은 여기까지다. 이렇게? 아, 인제 분량은 그게 아니라. 물론 이제 설정을 했죠. 오늘은 선생님 가르쳐 걸 오늘 나가기 때문에 24번을 분다. 왜 24번을 했냐하면 짝수로 내가 나누어 서 4 x 6=24 해가지고 진양조는 6박이라 생각하니까, 24박짜리를 한다하니까, 24 번. 내가 선생님한테 배운 걸 24번 한다.24 번. 제일 많이 언제 연습을 한 것이 대금이고, 그 다음이 피리고, 그 담에 단소, 퉁소 순으로. 그거는 기존에 되니까 자연히 피리같은 거 연습 안하면 엽이 풀려서 소리가 안 나요. 해금도 해보면, 요렇게 잡아 탱겨보면 이 아귀힘이 있어야 나중에 안 하게 되면 나중에 이게 안 된다. 또 나이 먹으면 이게 신체적인 구조라 할까 뭔가 이 생겨서 손가락이 잘

264 안 맞을 땐 바이브레이션( vibration) 이 나오지 않는다 이 말이야. 그와 마찬가지 로 그 때 그 때 시대에 따라서 툴리지만 현재는 나이가 이래 먹었으니까 아무래 도 기운이 빠지고 그렇죠. 口 4-9. 무대에서 최악의 경우를 대벼하여 연습을 한 경우가 었으세요? 뭐가 었 을까요? 악기를 놓친 경우? 아니면 무대 나가기 전에 청이 찢어졌다든지? 아, 그게 뭐냐하면, 청이 내가 이렇게 수 십 년 불면서도. 청 떨어진 거. 불면서 연주하고 청 떨어진 것이 딱 네 번 있어. 그래서 처음 떨어졌을 때는 내가 미안하 다고 내가 청 붙이러 밖에 나갔고, 그 다음부터는 뭐 이 그 테이프. 가서 한 번 감 고, 고 담에 한 번은 또 근자에 있는데 그 청이 또 이 햇빛에 바래가지고 팡 터지 더라고. 터지니깐 연주하다고 미안하다고 얼른 해가지고 붙여가 불고. 두 번은 붙여 가 불고. 두 번은 안에서 그냥 떼 가지고 한 손을 막아가면서 얼른 붙였고. 口 학생 때, 스숭아 가르쳐 주시는 대로만 했나요? 아니면 가르쳐 주지 않은 방식도 한 번 시도를 해보셨나요? 학생 때? 배울 때? 나는 미련하게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만 했죠. 내 맘대로 한 적은 없어. 口 언제 정도에 내가 잘한다고 느끼셨어요? 4-11-CD 몇 살 때? 어떤 계기로? 그때는 뭐 내가 어릴 때부터 내가 제일 잘한다고 느꼈지. 왜냐하면 다른 사람 이 하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우리 나이 또래에 하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선생님 들이 잘한다 잘한다 그러니까 잘한 줄 안다 이 말이지 (2) 그렴 그 정도 기교는 지금 와서 보시면 어느 정도 수준이나 될까요? 그때 맞게끔 잘했다. 고 나이 대에서? 어. 수준이 념을 정도로. 그 수준이 넘 정도로 잘했어. 지금의 10살아면? 열 살 정도 됐을 때는 벌써 한. 뭐 한 그러니까 뭐라 그럴까? 한 세, 7-8 년 위에 사람들. 그 사람들을 능가할 정도로. 뭐 한 살 두 살 차이 아니고. 우리 또래에 사람이 없었으니까 가늠을 못했지마는. 우리 선배들이 보통 뭐 부신다. 뭐 내가 10대에 벌써. 이 런 소리 뭐 지금도 생각해보면 조금 건방진 소런데. 벌 써 16, 17 딱 펠 때 벌써 나는 내 분야에는 장악을 할 정도로 벌써 내가 느낌이 좀 건방진 마음에, 그건 후회 안 했어. 자만했던 것이 후회 안했다 이거지. 그 말 은 자만이라는 것은 내가 생각에 넘친 것을 말하는데, 그게 아니라 내가 감지 한 거지. 그러니까 뭐 뭐든 매사에 자신 있었고. 아까 전에 뒷받침 해준 것은 또 이렇게 운동을 하고, 또 주위에 환경이 두드려 패는 사람이 많고, 걸음도 제대로 짧

265 못 걷게 맞았으니까 방어하기 위해서 그 시대가 그렇게 만들은 거라 이거야. 그 렇다보니까 그 용기가 뭐 어디 대시하는 데는 어디에 뭘 하는 데는 주춤거리 게 없었고. 무조건 나가서 하는 바람에 그게 생활화 돼 버렸어. 아이고 뭐 저 저 쪽에 가서 졸아 가지고 뭐 저 사람이 그런 일을 느껴본 일이 없고 판소리다 통 합적으로 옛날에 경연대회 나오면, 판소리 잘하든지, 민요 잘하든지, 유행가든 난 눈에 띄질 않았으니까. 악기 대금만 하나 들고 나가면 어디가도 나는 이길 수 있 다는 그런 항상 그런 마음의 준비가 아니라, 준비가 되 있은 상태기 때문에 간혹 뭐 소리가 제일 으뜸이다. 뭐 현악이 예를 들어서 말하면 뭐 이렇게 얘기하는 게 있잖아요. 옛날엔 그런 소리 했어. 철 소리가 좋아도 돌 소리 보다 못하고, 돌 좋 아도 줄 소리 보다 못하고, 줄이 아무리 좋아도 죽소리보다 못하고, 죽이 좋아도 육성보다 못하다 그랬거든. 그래도 육성이 제일 낫죠. 왜냐하면 육성은 뭐 간다 그러면 간다는 게 표현이 되고, 우선은 의사전달이 되잖아요. 그리고 육성이 최 고다. 하지만 그것도 소리 나름이다. 나는 그러거든? 모 분은 어떤 분은 뭐를 한 다고 우리나라 노래가 최고다,하고 이래 거들먹거리면, 이리와. 내하고 무대 한 번 서봐?" 왜 악기를 무시하난 말이야? 난 그런 식이야. 까불지 말란 말이지. 모 든 것이 음악이란 것은 다 그 수준이 있는데 니는 왜 그결 가지고 왜 악기를 무 시하난 말이지? 내하고 무대 한 번 서봐? 춤? 응 이리와. 너 왜 무시해? 응. 이 리와. 우리나라 최고의 명무라는 사람 내가 이름은 밝히지 않겠는데 하도 그 나 거 한 10년 동안 못 살게 한 사람이 있어. 그래서 그 날 내가 그냥 네하고 나 가자. 무대 나가자. 네 한 내보다 한 10살 위에 분인데 지금도 살아 있어. 그니깐 지금 누구라 하면 벌써 전국에 알 분이야. 그래서 내가 앉혀 놓고 내가 오랜만 에, 내하고 같이. 느그는 시각예술 밖에 없어. 춤추는 거는. 우리는 시청각 예술 이야. 왜 무시하냐 이 말이야. 거 내하고 같이 나가보자 말이야 무대 가가지고. 나는 그런 사람이야. 그 지금도 뭐 그런 사람들 간혹 있어요. 판소리라든지 민요 하는 분들. 종합예술 그 예술이 다 어렵고, 지금 피아노도 소리 나는 것도, 가야 금도 소리가 나지마는 잘하기가 어렵잖아. 그효? 맞아 안 맞아? 그런데 그걸 지 금 무시하거든? 해가지고 지가 제일이니, 판소리 내가 제일이니, 나 민요 내가 제일이니 그러면 나는 내한테 죽어 그거는. 그거는 내한테 한번 이겨봐라. 나 이 생강이를 한번 이겨봐 란 말이야. 나는 그런 자신이 있어. 난 xxx 이 아니야. 지 뭐 우리나라에 뭐 판소리 잘하니, 민요 잘하니 그 사람이 그냥 있으면 다행 이지만. 우리 기악이라든지 뭐 다른 결 무시하는 조로 나오면 나는 그렇게 대답 올 해. 내하고 같이 무대 한 번 서보자 이 말이야. 口 선생념만의 표현 방식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노력했다, 그거는 뭐 당연한 거고요. 몇 살 때? 어떤 계기로 하셨어요? 냐만의 표현방식? 口 4-12-(D 몇 살 때? 어떤 계기로? 그거는 이제 선생님 돌아가시고 난 뒤에 너무 내가 자만을 하고 내가 이제 자 신이 있으니까 자신이 충만하니까 남 보기에는 상당히 거만하게 보였나봐. 그 이 야기가 내 귀에 들어올 때는 오랜 시간의 날짜가 걸린다 말씀이죠. 바로 옆의 친

266 구 야, 너 잘난 척 하지마. 너 엄마 주위에 너 안 좋아.하는 사람들이 오는 동안 에 이렇게 오는 사람들도 간혹 있거든요? 이제 충고로 하는 사람들이 있었거니 와, 그런데 음악을 이렇게 해도 자신을 갖고 한 번 생각을 하다 보니까 내가 남 에게 비쳐지는 것이 제일 두렵더라. 그래서 그렇다 해서 위축이 되 가지고 있을 수도 없고. 또 아무 잘못도 없는데 그 옴가짐이라든지 이런 거를 내 나름대로 거 비춰가면서 걸어 다닐 수도 없고, 또 요즘 군인들처럼 제식훈련 할 수도 없 고. 그게 상당히 난감하고. 또 혼자 독주를 하게 되는데 나는 우리 또래 비슷한 사람들하고 같이 다닌 게 아니라 나는 내 위에 선생님들 년 아버지 같은 분들하고 음악을 다녔단 말이야. 그렇다보니까 어떤 선망의 대상이 된 게 아니라 그 분들에 비친 것은 내가 상당히 건방지게 보일 것 같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때에 따라 말을 들어보면 반사적으로 보면은 결국은 그래서 내 자신을 음악으로 서 내가 자꾸 내가 너무 튀는 것을 음악으로서 내가 가진 것으로서 내가 갈고 닦아야겠다 수련해야 되겠다. 내 자신과의 싸움이야. 그려다가 20대에 종로에서 모 사람이 그 이야기를 했나? 카세트에 내 산조음악과 우리 선생님의 음악을 담 아가지고 그결 지금 말하면 그 때 당대에 최고의 명인이라는 분들 그 자리에서 장난삼아 내 이름을 우리 선생님 이름으로 바꾸고 내 이름을 바꿔서 이거는 가누가 했다 이래가지고 장난삼아 했던 것이 거기 있던 분들이 아, 이생강이도 잘하지만 너희 선생을 따라가려면 멀었다 그렇게 평이 나버렸어. 그러니깐 선 생님을 잡아먹었다, 소리를 쉽게 들었다 이 말이야. 감히 그렇지 않은데도 우리 선생님 돌아가시고 난 뒤에. 그 녹음을 듣고. 그래서 나는 선생님을 이겼다는 소 리에 그 마음에 그럴 리가 없지마는, 내가 그 정도에 그 사람들에게 비쳤다는 거 죠. 그러니까 그 이후에 선생님을 더 연구를 하게 되고. 선생님이 이제 그 때 당 시에 뭐 그 소리를 안 들으면 안 들은 대로 지났겠지마는 그 때 인제 주위 사람 들이 아, 이거는 전라도 사람만이 하는 판소리, 산조 이런 음악인데, 내가 경상 도 사람이 나는 경상도 출신은 아니지만 경상도 말을 하니까. 저 억양이 되지 않 사람이 산조를 했다. 해카지고 다른 사람들보다도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 고 전국에 막 퍼지기 시작해. 무용가들은 나를 알지만 국악계에는 내가 늦게 알 거지. 왜? 전에도 얘기했지만 국악계는 돈을 적게 주니까. 허허허. 그래서 그 런 어떤 우리 또래 연령차이 보다는 내가 앞서 나갔고 잘하고 못한 그런 차이를 얘기한 게 아니라. 우리 내가 먼저 어릴 때 시작을 해서 내가 데뷔를 빨리 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되지. 디 스승 없이 기본을 념어서 본 적이 았으신 거네요? 남의 평이 그랬고 그러다 보니까 결국은 이게 뭐냐 하면 이게 내 혼자 살아야 되겠다. 이제 살아남아가지고 전에는 선생님이 이름을 가지고 돌아가셨다 해도 선생님 핑계대고 선생님이 이렇게 가르쳐주더라. 이럴 수 있는 여지가 있었지마 는 선생님도 작고하셨고. 또 저를 가르쳐주신 23분 중에도 살은 분이 반수 이상 돌아가시고. 그 때 당시 그러다보니 나를 내가 이렇게 어디 기탤 데가 없었단 말 이야. 기탤 데가. 그 말뜻은 인제 이거는. 내 혼자 혼자 나 됐구나. 혼자 살게 내 가 됐구나. 그러면 나 혼자 이제 나가서 열 몫을 해야 되겠다. 그래서 우리 선생

267 님 이제 대금 산조, 그 때부턴 피나는 노력을 내가 더 했다 이거죠. 口 혹시 아런 적 았으세요? 선생님이 이거는 하지 마라 라고 가르쳐 주셨 는데 그대로 그냥 해보신적. 그니깐 예를 들면 여기서 농현을 하지 말라 고 그랬는데 떠셨다든지, 여기는 잔가략을 빼라 했는데 선생님이 일부러 넣으 셨다든지? 그런 건 없어요. 나는 선생님이 시킨 대로 했으니까. 나중에 톨아가신 뒤에도 그런 거는 없었나요? 그런데, 그래서 아까 전에 말했잖아요. 임춘앵이라든지. 나는 은사 복이 있어서 선생님들이 그라고 또 군대를 갔다 오고. 그 때 그 시대의 조류에 맞춰서 애들 데 리고 반주하러 가며는 미군부대. 미군부대 가변 미군부대 가서 애들이 옷 갈아입 사이에 브릿지 역할 하는 맨들어 독주도 아리랑 도라지 하고 그러다보니 그 나 라음악을 하나씩 기억을 하게 돼. 아, 이 사람들에게도 데니보이 하나 불러주변 좋 겠다. 이 사람 썽머타임 해주변 좋겠다. 이 사람은 트위스트 곡 하나 해주면 좋겠 다. 그랬을 때, 뭐 xxx 터키 뭐 어느 부대 오면 한 가락 그 한 가락, 우리가 아리 랑 알듯이 그거를 내가 해주었단 말이야. 그 대단히 자기들 환영을 하고. 나는 적 당히 어디 가면 그냥 적당히 단소 룹니다 대금 룹니다하는 게 아니라 감동을 줄 수 있는 그런 음악을 해야지만 속 시원하지. 오늘 만약에 그거해서 감동을 안 줬 다 하면 나는 내가 내 자괴감에 빠져가지고 내가 자책을 막 한단 말이지. 예술영째연구원에서 학생들을 뽑고 교육을 하게 되잖아요? 바라는 점이나 이 렇게 좀 가야 되겠다 생각하시는 방향을 짧게 한 번 말씀해 주세요. 그래서 뭐 우선 그. 일단은 거기에 있는 영재라는 아무래도 유소년이 되겠지 요. 그런 그 되면 거기에 환경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인제 결국은 애들 이 자라나고 뭘 배운 애들에게는 그런 편차를 주지 않는 게 좋고. 우선 그 다 동 의를 하잖아요? 학교에 오면, 오는데 그 중에서 재주는 있는데 뛰어난 재주는 있 는데 아까 전에 말했듯이 우리 같은 사람이 있단 말이에요. 내가 움직여야, 어린 나이에도 움직여야 우리 가족이 밥을 먹을 텐데. 근데 그런 애들은 몇 명 없다 하더라도 뛰어나요. 그러니깐 넉넉하게 자란 애들은 요즘 보통 학문 같으면 모르 겠지만 이런 예술 쪽에 뛰어난 사람들은 가난한 쪽이 많이 있더라고. 어릴 때 보 면. 나는 어릴 때 기능을 봐서 알죠. 지금도 근자에도 애들을 가르치면은 조금 이렇게 어렵게 어렵사리 학교 오는 애들이 껴들이 또 재주가 능한 애들이 좀 있 고. 그래서 상당히 그런 애들을 또 내가 좀 모르게 감싸가지고 이렇게 가르치 데. 결국은 그런 쪽에도 국가적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 요즘은 뭐 국민시장 되었으니까. 국가적으로도 어떤 그 환경에 따라서 조금은 배려를 해주었으면. 그 런 경제적으로 뭐 옷을 사면은 꼭 뭐 집에서 안 가져오더라도 뭐 봤을 때 뭐 이 렇게 뭐 차별을 둔다는 건 아니지마는 학교 소속 된 기숙을 한다든지. 그 다음에 집에서 다닌다 하더라도 그런 건 지도자 선생께서 재주 있는 그런 학생들이든 영재들을 유심히 봐뒀다가 그런 어떤 어려움이 있으면 우리 옛날에는 이 방문을 해가지고 선생님들이 와서 그 집안 가정생활을 얄고 가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268 그게 나중에 뭐 촌지가 돌아서 그런 것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는 바람에 요즘 그런 건 없어졌다 하는데, 우리나라는 뭘 하나 잘못했다하면 그걸 뭐 될 생각은 안 하고 없애버리거든. 또 다음에 다른 거 것이 이어가지 못하는 것. 까 그 자제분들 가르쳐 놓으면 얼마나 잘하겠냐 이 보완해서 또 그러하기 때문에 그런 또 자제분들이 누가 한다면 이어 가지 못 하면은 그니 말이야. 나도 내 자식을 가르 치만은 여기 미스터 김도 아버지가 만약 한다면 뭐 있는 거 없는 거 더 잘 가르 쳐 준단 말이야. 자기가 하지 못했던 것, 자기가 미치지 못했던 것, 모든 생활 때 매 못했던 것을 전부 다 2세에게 가르쳐 주는데 우리나라는 그게 잘못 돼 이거야. 다 우리나라는 뭐냐하며는 잘못 보여가 세습체계처럼. 김일성이, 김정일 식으로 생각한단 말이야. 그게 아니거든. 그 아버지가 부모가, 자식을 가르칠 때 있다 보통 열의로 가르치는 게 아니거든. 이해합니까? 그러니깐 시험 볼 필요도 없 어. 솔직히 말해서. 영 소질이 없는 사람은 모르지만은 어렬 때부터 타고, 어릴 때부터 듣고, 어릴 때부터 보고 왔는데 다른 사람보다는 소금 절여도 많이 절여 졌을 거 아니야. 어떻게 생각해? 맞아 안 맞아? 듣는 게 그거고, 봤든 게 그건데.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그걸 할라면 온갖 옆에서 사방에서, 요런 인간들 아주 못 된 인간들이야. 그런 타입 아주. 나는 인제 끝으로 이야기 하지만 이게 채택이 될라는지 안 될란지 모르겠지만 지금 인제 이론 공부를 하니까. 나는 어떤 차별 을 둘라는 게 아니고 일단 궁중음악은 궁중음악대로 전공하는 분들이 거기에 종 사를 하고, 의사라고 그래서 전연 전문분야 외에도 과외가 할 수 있지마는 이 속악이 세계의 음악이니까. 이거는 국가적으로 도움을 아무 도움 없이 살아왔다 이거야. 문화재가 돼야 조금 몇 놓 나오지. 그 외에는 자력으로 올라갔다 이거야. 그럼 이제 국가적으로도 뭔가 예우가 달라져야 된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이거는 영재하고 교육이 없는가 모르겠지만은 국가적으로 그렇다 이거지. 민 정재국 口 1-1. 선생님 인정하설 수 있나요? 선생님을 영재로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 만약 아니라면 왜? 나는 뭐. 영재보담두 근래에 언제 그 전통음악계를 나를 인제 그 하나의 전통 음악인으로서 성공한 케이스로다가 인정해 주기. 주기 때문에 그래서 지금 내가 좀 이제. 영재보담은 전통음악에서 성공헌 길을 가고 있다, 그렇게 지금 얘기 하고 있고. 영재래는 것은 우리 전통음악계에서는 사실 쓰지 않고, 그런 사람은 있지도 않고. 그랬는데 서양음악에서는 인제 영재 그 제도가 있어가지고 인제 영 재들을 많이 그동안 길르고 해와서 성공을 많이 거뒀지만은 전통음악계에서는 아직 그 영재래는 그 어휘의 자체가 아 처음 생긴다는 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에.아마 전근대적으로 옛날 스타일로 영재라고 그러면은 그건 그거야말로 기교가 사람, 응? 그거로만 해서 어 손가락만 잘 돌아가고 음악성이 좋으면은 영재

269 로씬 크게 될지 몰라요. 그러나 현대적인 세월로 봐서는 또 서양음악도 지금 거, 같은 길이로 해서 언제 봐. 봐준대변은 전통음악도 서양음악과 마찬가지로 꼭 기 회만 주면 안되고, 기회뿐이 아니라 이 그 음악 사상이래던가 그 음악적인 그 기 초, 또 악리이론도 다 갖춰야 되는 응? 그런 사람이 인제 그 영재로 생각허는데 우선 그 기초가 든든한 그러한 그 실기 그 실기 바탕이 되서 자기 음악을 맨들 수 있는 자기 음악의 영역을 맨들 수 있는 그런 자질 있는 사람이 일단 되야 되 고. 고다음에 최소한도 옛날에는 그 악곡이래는 게 뭐예요? 그거는 순 손가락만 돌아가는 사람들이고, 머리도 없고, 악리를 모르는 사람들이란 말이야. 근데 근래 에는 인제 이론과 실기를 다 합해서 다 혈 줄 알아야 그 영재라고 생각할 수 있 거든? 그러기 때문에 지금은 인젠 어 이론도 최소한도 이론은 알아야 되요. 그거 는 옛날 악학궤범에도 그런 게 있잖아요, 손가락이 묘한 사람은 악리를 모르고 악리를 아는 사람은 응? 기능을 모른다는 그런 말도 있듯이 그렇게 지금. 지금도 똑같은 통용되는 그런 말이라고요 그게 그게 우리도 영재래면은 일단은 그 자기 음악을 맨들 수 있는 그런 투철한 머리가 있어야 되요. 그게 머리가 있어애지 영 재가 되는거지, 그냥 손가락만 잘 하고 기술자의 그런 수준은 영재라고 볼 수 없 어요. 그건 기술자지, 하나의 그거는 영재가 아니거든요? 그러니깐은 능력 설기 능력도 좋음은 물론이고, 이론도 같이 보고, 머리가 좋아야 되고, 어. 판단력이 있어야 하고, 음악적인 해석능력이 좋아야 되고. 다 이래야 이게 음 영재로 볼 수 있는거지. 그런 능력이 없으면은 판단능력이 없으면 영재가 될 수가 없어요. 음악적 판단능력을 말씀하시는 거죠? 그렇죠. 음악적 판단능력 디 1-2. 어련 시절 부모나 주변에서 이야기하던 당신만의 행동특성이 있었습니까? 난, 어렸을 때 그런 큰그 재질이래던가 그런 건 내 자신도 느끼지 못했고. 주위 사람들도 그런 건 느끼지 못했고. 이 국악 한 거 자체도 난 우연하게 지금 헌게 된 거고, 내가 좋아서 한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우연히 헌거 거던요? 그거 그 때 당시의 경제사정 모든 게 변변치 못하니깐은. 그래서 그냥 억지로 그냥 언제. 거저 국비장학생으로 공부하려는 바람에 그냥 국악 시작 허고. 국악이란 자체도 몰랐어요, 뭔지도 모르고. 그냥 시작헌건데 내 자신이 음악적인 그 끼는 어 그 때 당시엔 뭐 국악이 그르게 뭐 흔히 익숙치 않고 국악이래는 게 교과서에서도 별로 없을 때니까는 배우지도 않고, 국악 하은 그냥 가야금이나 있고 거문고, 우 록선생이나 알았지 뭐 아무것도 몰랐거든요? 허허흐 그 정도니까는 아무것도 모 른 상태에서 언제 국악을 시작 헌거고, 또 내 자신의 내면적인 그 음악적인 그런 거는 약간 있었다고 봐요. 그게 대충 나이로. 초등학교 때 내가 인제 그 연극 같은 것도 좀 어렸을 때 좀 나가서 했고. 학교 에서도 했고, 교회 같은데서도 나아가서 했고. 또 근데 6.25 때고, 이러고 이럴 때는 그 때는 교회에서 많이 찬양하러 많이 탱겼거든요? 그리고 또 미군부대도 간혹 가고 그러면 내가 노래로 솔로 많이 했어요. 노래는 잘한 것 같애요 내가

270 요. 노래. 그니깐 동요 같은 거. 어린이 그런거니깐 은 그래도 음악적인 끼가 조금 있지 않았나 그런. 내가 나선 거를 보면 초등학교 대략 몇 학년 쯤 이셨는지. 한 5,6학년 때.3, 4학년 5, 6학년 때 내가 인제 그. 3학년 때도 하셨던것 같아요? 그게 노래를 그 때 내가 좋아해가지고. 어. 노래 부르는 것을 즐겁게. 그래서 교회에나 학교에서 인제 학예회 같은 거 할 때 노래를 내가 솔로로 한 적이 있어요. 그결 보면 내가 저 음악적인 끼는 좀 타고 태어나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그 땐 뭐 음악을 헐, 음악을 한다는 그런 생각보담은 그냥 아서 그거는 교회는 그런데는 조금 헌 것 뿐이지 내 음악적인 끼는 내가 찾아보 질 못했어요. 그냥 노래만 좋아하고. 스스로 그게 었다고 생각하신 때는 언제예요? 언제 인제 저 국악원 국립국악원 들어와서 부터죠. 국악사 양성소,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 양성소 입학하고 나서 국악이래는 걸 처음 접한건데. 내가 처음 어올 때부터 내가 좀. 남다르게 좀 새로운 걸 봐줄라고. 입학시험 때도 남들은 다 동요를 부르는데 나는 <산타루치아>를 불렀어요. 그게 몇 세 때죠? 여기 내가 열 다섯 살에 들어왔거든요? 2년 묵고서 열 다섯 살에 일학년, 중학 교 일학년 들어왔는데 <산타루치아>를 멋지게 불러 갖고 들어왔다고 내가. 아, 그 딴엔 내 에피소드에요. 그 하나의. 네, 재미았네요. 다른 사람들은 전부 그냥 동요나. 으허허허허허. 산타루치아플 겁 없이 그냥 들어왔거든? 그런거 보면 내가 좀 음악적인 거는 타고 난 것 같애요. 기 초적인 음악적인 그 실력은. 그러나 언제 본격적인 음악적인 수엽은 국악사양성 소에서 헌건데. 국악사양성소. 그 뭐아 저 까까중머리 뭐 요만한 애들 열 다섯, 고것들 와서 뭘 알어? 사실은 음악은 국악은 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0 점인 상태에서 시작한건데. 그 때 우리가 양성소에서 아주 기초적인 그 학습을 잘 받았어요. 기초학습. 그게 처음부터 전공을 허지 않았어요. 피리전공은 내가 중학교 2학년 1 학기 때 했지만은. 그게 지금 같은 경우는 대학으로 따지변 3학기 지나서. 지나서 인제 전공을 시작한거죠, 피리. 그게 1, 2학년 1 학년 중간부터 피 렬 시작한거거든요? 그니깐 1 년 반은 거의 국악에 대한 기초이론, 또 기초적인 그걸 전부 인제 배운거죠, 1 년 반 동안. 그니깐 기초가 그렇게 중요한 거 예요. 1 년 반 동안 그냥 거 기초적 국악에 대한 모든 이론이래든가, 양악이론. 하다못해 양악이론까지. 그 전문적으로 그 때 배웠고. 국악 기초적인 악기 단소나 소금 같 은 거, 그런 걸 통해서 인제 국악을 습득하고 또 편종 같은 걸 쳐봄으로서 아악

271 에 대한 그 정신을 알게 됐고. 그래도 우리가 1 학년 2학년 중간까정은 거의 기초 웹 쐐 적인 공부를 많이 했어요. 그래서 구음도 배웠고, 지 요? 무 슨 퓨? 모든 악기 전부요? 악기구음. 그니깐 피리구음이죠 대개. 그 모든 학생이 다 피리 구음을 배우는. 그럼요, 피리라는 악기는 전 학급 학생들이 다 배우는 악기예요. 그니깐 공통과목 이예요. 옛날에는. 피리는 다 불 줄 알아야 되요. 전교 학생들이. 그래서 피리 L.-. 단소가 아니라 피리였어요? 단소도 다 배우고, 소금도 다 배우고, 적이라고 있어요. 퉁소. 그것도 공통과목 으로 다 배우고, 고 다음에 피리도 공통과목으로 다 배웠어요. 악기로는 고다음 에 편종, 편경 뭐 이런거 인제 제례악 같은 거. 그건 쉬우니깐은. 편종, 편경 이 런 제례악을 통해서 인제 그 음악의 들어가니깐 쉽게 하는거죠. 그결 다 허고 나니깐 원리를 인제 터득허고 그러고 나서 전공을 그닝깐 기초가 튼튼했지 우리 가 그러고 나서 인제. 정악을 인제 피리전공을 인제 시작헌거고 그리고 인제 3학 년, 2학년, 3학년 중학교 때 언제 일 년 반을 한거죠. 그리고 고등학교 때 부터는 인제 고 다음엔 문을 더 활짝 열어가지고 민속악까징 언제 허게 됐고. 민속악까 지 다 언제 우리가 섭렵해서 인제 허게 됐고. 민속악 뿐이 아니라 하튼 뭐. 까징 다 배웠어요. 고등학교 들어가셔서는 무용? 아니, 무용은 저 1 학년, 중학교 1 학년 때부터. 아, 기초학습으로요? 어. 기초학습으로 6년간 했어요 그결, 고 3까지. 그럼 어떤 것을 배우선 거예요? 정재무용. 정재허고. 고 다음에 승무 같은 언제 민속무용. 옛날에는 다 이렇게 했군요. 그래은. 그거 다 배웠지. 고 다음에 뭐 서양춤도 좀 배우고, 댄스 같은 거. 런 것도 좀 배우고 또 저 발레에도 쪼금 배우고 기초적인 거. 기닝까 우리가 굉 무용 장히 폭 넓게 공부한거예요. 그 무용도 그냥 다 거의 망라해서 배웠고. 그러니깐 은 6년간 배웠으면 그래도 명색이 6년 배웠으니깐은 그래도 어느 정돈 그 때 시엔 했지. 전통무용도 그렇고. 다 인제 어느 정도 한 상태고. 그리고 노래, 노래 도 다 배웠어요. 우리가 가곡, 가사, 시조, 정가. 정가를 다 배웠어요. 그거=.. 몇 년간? 1학년 때 부터요? 그 1 학년, 3학년 때부터 2학년, 2학년 때부터 아마. 정가는. 그리고 속요. 속요 그 당

272 는 인제 그저 입창이나 인제 좌장, 민요 이 속요 아니예요? 그건 고등학교 때부 터 배웠어요. 그래서 웬만한 건 다 불러요 우리가. 노래를. 서도소리도 그렇고 남도소리도? 그럼요. 조금씩 다 했어요. 남도에서는 단가 정도는 몇 가지 불렀어요. 단가 정 다 배웠다고. 몇 가지 중요한 것들 죽장망혜니 진국명산 뭐 이런 거는 다 알아요. 서도소리는? 서도는 못 배웠고. 경기는? 경기민요도 뭐 쉬운거니깐 그건 안 배웠고. 그거는 경기민요는 일반적인 음악 이기 때문에 그건 안 배웠고, 고다음에 저기. 좌창. 좌창 배우고 잡가. 잡가 배웠고. 서울잡가요? 제비가니 뭐 이런 거 다 배웠어요 우리가. 유산가 뭐 이런거. 당시에 선생님이 누구셨어요? 이창배 선생님. 그런거 다 배우고 그러니깐 국악의 전반적인걸 다 배운거예요. 그니깐 언제 여길 졸업하면 국악사양성소니깐 국악사가 되는거예요, 선비사 자. 국악사라는 것은 이 실기만 잘해선 안되고 국악의 모든 분야를 다 총괄해서 다 꿰뚫어 볼 줄 아는 사람이 국악사가 되는거예요. 근데 국악사의 그 목적을 전통 음악의 모든 장르를 다 꿰뚫어 볼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갖추게끔 맨들어내는 교 육이란 말이예요. 그게. 그게 내가 정악인이라서 정악만 한게 아니예요. 그 때 민속악도 하고, 다 배웠거든. 폭 넓게. 국악의 전반적인 건 다 배웠어요. 그때는 빨리요. 하다 못해 요즘에 저 대학원에서 배우는 우리는 악경까지 배웠어요악 기 J. 악기 고등학교 때. 그 때 그걸 한문으로 된 거를 그걸 배웠다고 우리가. f 오음지기는 유계인생에 뭐 이런거 있죠? 우리가 그걸 고등학교 때 배웠다고 그 거를. 그 정도. 지금은 대학원이나 배울까 말깐데. 우리가 그 때 그걸 배웠어요. 박성영 선생님이라고. 박성유. 그 노인. 했었는데 그분이. 그게, 그걸 쭉 배웠고. 일단 그런거 까진 다 배우고, 국악이론은 성경린 선생한테 배웠고. 국악사, 국악 이론은 성경린 선생악기 는 고등학교 때, 고등학교 1 학년 때. 이론도 고등학교 때요? 이론은, 이론은 중학교 때부터 했죠. 이론은 중학교. 국악이론, 양악이론 다. 그래서 양악이론도 해야되는 것이 그 양악이론 거 함 으로써 시창청음 같은 거 그걸 다 헐 줄 알아야 되요. 시창청음도 다 했고. 그래 서 시창청음을 헐 줄 알아야 우리 국악도 시장청음을 할 수 있고 국악시창청음 이 있잖아요? 국악시창청음도 그걸 헐 줄 알아야 국악시창청음도 황,태,중,임,남 그걸 다 읽을 줄 알지. 12율을. 그게 그결 다 읽을 줄 아는 거지 우리가

273 시창청음은 누가 가르치셨어요 그 때? 그건 양악하는. 시창은 양악선생이 가르켰지. 김호성 선생님이라고. 김호성, 장 현 그런 분들이죠. 굉장히 유명하신 분들이지. 김금환, 뭐 그런 분들. 그런 한테 우리가 양악시창 배우고 양악이론을 배웠어요. 노래도 배우고. 그니깐 양악 도 다 그게 이론적으로 다 배운거고, 국악이론 성경린 선생한테 다 배운거고. 그 때는 우리는 고등학교 졸업하면은 현재 대학수준 이상의 그런 실력을 갖췄다고 벌써 생각해요 그 때는. 해온 걸로 봐서는. 분량이 엄청났지. 당대의 최고의 선생님들. 응. 분량이 엄청나죠. 그때두. 口 1-3. 선생님의 음악적인 찌능을 알아봐 주신 주변의 분들이 제셨나요? 아니. 그니깐 내가 중학교꺼징은 내가 나의 음악적이래는 것 그거를 선생님들 도 몰르고 그냥 일반적인 악과만 가르켰으니깐. 전공을 내가 시작허문서 피리의 쪼금 내가 좀 남보다 잘 부는 데 그래도 평판을 들었죠. 중학교 때. 전공은 중학 교 2학년 때 했으니깐은. 그 때부터 내가 쪼금 음악적인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 고, 어. 고등학교 2 학년, 3학년 때는 완전히 두각을 나타내가지고 선생님들이 인 정을 하게 됐고 선배들도 인정하게 됐어요. 저기 내 1 기 선배들도. 내 앞에선 감 히 피렬 못 불고, 내가 그냥 피릴 불면 다 그냥 그게 관두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그 때부터 내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가지고, 피리로서는 최초의 언제 국악사 양성소의 최초의 실기우수상이래는 게 있거든요? 피리로는 내가 최초의 실기우 수상을 탄 사람이에요. 국악사 양성소에서. 1 기생은 하나도 못타고, 피리에서. 하 나도 못타고 내가 최초로. 271 생인데 내가 탔고. 그 실기우수상이래는 게 전공이 나 음악에 대한 우수성이 인정된 사람 주는 거거든 그게? 그게 나는 그 때 인정 을 받았고 주로 그 때 그걸 탔단 말이야, 그게 더 영광스러와, 저 우등상 보담두. 고3 때 졸업할 때. 그걸 내가 실기우수상이래는 걸 피리캡이로는 최초로 내가 탄 거예요. 1 기생도 못 탔는데. 그래 그런 거. 질기우수상 한 명만 주나요? 한 명만 줘요. 전교에서? 응. 그니깐 인제 피리 하나, 대금 하나 뭐 이렇게. 전공별로 하나씩 주는 건데 피리로는 내가 탔고. 그래서 그 때 당시에 내가 인제 일단은 어 피리에 재능이 있고, 음악에 잘한다 하는 그런 평판을 선생님들한테나 선 후배들한테 인정을 받은 거죠. 아니 그렇게 공인된 거 말고요. 뭔가를 알아본 분들, 더 어렬 때. 없었죠. 그 때는 별로 없었고. 솔로를 누가 뽑아줘야 하는 것 아니예요? 선생님이 솔로로 자언 하겠습니까? 그거는 인제. 글쩨 그거는 인제 교회의 목사님이나 또 학교 언제 담임선생님

274 교회 성가대 지휘자가 아니라 목사님? 거. 그렇죠. 목사님이지. 옛날엔 성가대가 따로 없었고 그냥 그닝까는 목사님이 다 이렇게 하은서 했기 때문에. 인제 그런 분들이 좀 알아보고 목이 좋으나 깐은. 그래 고것도 담임선생이 좀 시켰고. 그래서 헌거예요. 그래서 그 때 이제그 게 어렸을 때 난 영재라고, 음악영재라는 거 생각치도 못했고. 또 음악한다는 자 체도 난 생각치도 않고. 그니깐 내가 처음 국악사양성소 들어간 것도 뭔지 볼르 고 그냥. 으? 들어간 것 자체가 벌써 나는. 국악을 헌데는 그 각오는 없었애요. 나는 허다보니깐 자연스럽게 국악을 허게 된거고. 내 전공의 매력을 느껴서 열심 히 하다 보니까는 지금의 이렇게 된거지. 전공에 처음으로 매력을 느끼셨든 때가 언재에요? 그니깐은. 1, 2학년 때는 뭐 별로 못 느꼈고. 보통 학과니깐은. 전공 들어가서 부텀 피리에 대한 그 애착이 있고 내 전공에 대한 애착이 있어서 최소함두 이 피리라는 피리 갖고는 내가 한번 우리 나라의 일인자 한번 되야겠다는 그 생각 그 때부터 먹었어요. 언제쯤? 그 중학교 2 학년, 3학년 때. 3학년 때. 피리 갖곤 내가 한 번 우리나라의 최고 의 그 연주자가 되겠다하는 그런 마음을 그 때 당시에 내가 먹었다구. 먹구, 내 가 목표를 잡고서 연습을 꾸준히 해왔어요. 그, 꾸준히 해왔는데. 학교에서 가르 키는 음악적인 틀이래는 것은 기초적인 기본적인 음악만 가르키거등요? 대개? 악보에 의해서 그냥 선생님들도 그대로 가르켜야됐고. 악보에 의한 그 표면적인 음악만 가르키고. 그니깐 그 외를 떠나면은 새로운 음악이래던가 그런 걸 접할래 은은 선생님 음악을 도둑질 해야되. 여렷이 같이 가르키는 것은 똑같은 틀에 의 해서 똑같은 기본적인 것만 가르키지 그 이상의 것은 안 가르킨단 말이야. 그나 깐 그 이상의 것을 선생님의 그 음악을 속의 것을 집어 낼래은은 직접 선생님 연주 하는데 가서 듣는거예요. 그래서 그결 채보를 해가지고 늦게 남아서 그결 연습하고 해가지고 선생님의 독특한 음악적인 그거를, 내가 습득을 하는거지. 몰래.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그러셨어요? 2학년 때부터. 응. 그니깐 선생님 그. 어. 건 가락을 안가르켜요, 안가 르켜줘요. 그런 그런 묘헌가락, 우리음악에는 그런 묘헌가락이 있고 뭔, 묘한 그. 시김새가 있고 그렇지않아요? 그걸 학생들한테 여렷이 그. 잇 가리키는데 그 안 가리켜 주는거거던. 기본만 가리켜주지. 그니깐 고런 특수한 그. 음악적인 기교며 그런거는 배울래은은, 선생님한테 직접 가서 듣는거예요 내가 가서. 그 음악 하 는 거=. 그런 것을 하신다는 것은 어떻게 아셨어요? 아니, 선생님들이 인제 내가 배운건데 선생님들은 무대에 나가서 달리 헌단 말 이예요. 음악을 더 멋있게 헌단 말이야. 그니깐 고거 이 그니깐 시검새지, 시김새 고. 이 음악적인 그 흐름을 달리 허고도 멋지게 허더란 말이지. 그걸 내가 자꾸

275 얻어 듣고 선생님껄 몰래 빼는거지. 담 밑에 가서 이렇게 듣지. 듣고 그렇지 않 으면. 공연 때. 공연 때 우리는. 공연 때 그 좌석에 들어갈 수도 없어 학생들은. 그래서 밖에서 듣는 거지. 크. 그렇게 해가지고 선생님들에게 배우고 내 피리 독 주회 지금도 그 하지만은. 그럽 기교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셨어요? 그건 내가, 내가 혼자 공부허는거지. 그게 듣고 와서. 소리만 기억하고? 그럼. 듣고 와서 내가 교실에서 혼자 연습해가지고 터득허는 거지. 지금 지금 내가 잘하는 피리 상령산도 선생님한테 딱 한 번 배운거야. 딱. 그리고 나머지 선생님한테 직접 듣고 라디오에 나오는 거 듣고, 듣고서 내가 공부헌거지 개인 적으로. 그래 갖고 상령산 내가 내 나름대로 선생님 성함이? 김준현. 김준현. 어 그분이 피리를 잘 불으셨기 때문에 우리 가리키는 거 하고 무대에서 부는 거 하고는 달러. 그분이. 그 언제 선생님이 무대에서 부는 그분의 그 기량을 알래은 무대에 가서 들어야 되거든. 그래서 난 무대에서 옆에서 그냥 선생님 소리를 여러 번 많이 들었다구. 그래 갖고 거기서 좋은 가락과 좋은 시김새, 음악적인 흐름 그런 걸 몰래 내가 선생님한테 배웠고. 뺏어가지고 듣고 서 교실에 가서 그냥 연습하는거야. 그걸 매일 그런 짓을 많이 했지. 김준현 선생님이 잘한다고 칭찬은 안 해주셨나요? 그런 가락하고 자기 따라허먼은 야단쳐요. 건방지다고. 어. 기본이나 충실해야 지. 음악에 벌써 니색. 니가 멋을내고? 어? 그런건 안된다 그건 이 다음에 해라. 배울 때는 원가락만 허고 원 저기 뭐이지 잡가락이고 잔가락 넣고 뭐 이런 거는 아주 금물이예요. 선생님들이 가리킬 때는. 그니깐 아주 원가락만 배우고 이런 자진가락이고 이런 그런 거는 잡가락이라서 배우지말라 라는거예요. 맛도 내지 말고. 음악적인 감정을 자유자재로 표현하지 말아라. 그 입장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금. 그 옛날 선생님들은 그 인제 그 정악이래는게 그런거 아니예요? 감정을 절제 하는거 아니예요. 그니깐 너무 감정을 내비치다보면은 정악을 안하기에 쉽다고.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정악을. 정악은 꿋꿋하고 그냥 맛깔 없더라도 힘차게 하 것이 정악의 특색 아니예요? 그 때는 선생님들이 그 정악에다가 맛깔 집어넣 고 막 그냥 흔들어서 불고 막 이러먼은 괜히 선생님들이 막았다고. 그렇게 되은 민속악으로 흘러가기 쉽기 때문에. 그게 맛을 알게되면 민속악은 더 맛이 많잖아 요? 그렇기 때문에 민속악을 안 시킨거야. 그거하은 아리랑타령 한 번 몰래 불을 래은 어디 선생님이 알은 그냥 야단쳤어. 왜 그런거 부냐고. 거를 왜냐면은 민속 악이 싫어서가 나뻐서가 아니라, 자꾸 민속악을 허다 보면은 정악을 버리게 되. 정악을 허면은 이거는 재미도 없고 그렇잖아요? 시김새도 그냥 그렇고. 그러니까 는 민속악에 맛 들여 놓으면은 정악을 안하게 된다고. 그래서 그런.저걸 차단하

276 기 위해서 선생님들이 민속악 하는 거를 싫어했어. 공부할 때는 정악만 해라. 그 래갖고 민속악은 인제 국악고등학교 때 했지만은. 가리키는 거 외에는 더 이상은 못했다고. 근데 나는 일부러 많이 공부를 했지. 나름대로. 개인 공부는 안해도 내 개인적으로. 그런 공부가 영재라면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아 그럼 필요하지. 스스로 알아서 하는? 그럼. 어려도? 그럼. 이게 처음 배울 때는 고지식하게 그냥 원리 원칙으로 공부허고, 어느 정 도 실력이 쌓아지고 인제 어느 정도 이게 된대변은 풀어 놓고서 니 음악을 맨들 어라하는 그런 기회를 주는게 좋을 것 같애. 어려도요? 어려두. 고 단계에 맞춰서? 그렇죠. 그래갖고 기초과정이 끝나고 어느 정도 음악적인 그 쌓이고 그러면은 인제 고거 외에는 인제 고 다음부터는 니가 음악을 맨들어서 니가 언제 음악 여 러 가지를 수용해서 공부를 해라 그니깐 민요 민속악도 수용허고 해라. 그걸 마 음을, 길을, 음악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도리인 거 같애. 그러나 몇 년간은 그런 수엽이 필요헌 것 같애요. 정악에서는 선생님이 정악만 시키는 그런 이유. 그니 깐 그건 그런 이유가 있잖아요? 아까도 얘기한 듯이 잘못하면 민속악에 휩쓸리 기 쉽고 자기 감정을 너무 표현하기 쉬우니깐은 민속악에 빠지기 쉽단 말이예요. 자기 감정을 표현하면은 민속악에 빠져요. 그거는. 그니깐 자기 감정을 절제허면 서 해야 정악을 허지. 그니깐 그렇게 하게끔 맨들어놓고 고 다음에는 어느 정도 공부 시키는 거데요. 넌, 민속악이고 모든 음악을 니가 해라 하는 그런. 허라는 말은 안 했지만은 방치했더라구. 그 때 가서는. 고3 고 2 고3 때 가서는. 선생님 내버려둬요. 그래 나는 뭐 민요 같은 것도 다 불고 다 했지만은 그거 다 그냥 듣고 헌거예요. 다. 선생님들한테 직접 배우지 않았어요 나는. 그래서 민속 악 같은결 해야 또 해외도 갈 수 있고 그러지. 헤히. 정악만 해가지고 누가 저거 해요? 그게 내가 국악고등학교, 국악사양성소 졸업하자마자 그 해에 내가 미 갔잖아요. 민속예술단 따라서. 응. 민속예술단 따라 가서 거기 민속예술단은 민속 악도 다 해야 되고 무용반주에선 민요 같은 거니 모든 음악을 통달해야지 허는 거 아니예요? 근데 졸업하자마자 그런데 뽑혀서 간거 보은은 내가 그 때 당시에 벌써 다 마스터 한거예요. 민속악을 뭐든걸 다. 은밀하게 공개적으로 허지 못허 고. 그래서 그런데 가서 내가 그래도 민속악 허고 미국에 따라가서 최초의 그래 도 미국연주였지. 내가 간 게. 우리나라에서는

277 口 1-4. 선생님 동료나 아니면 작고하신 선생님들 가운데 이 분 정도면 영재가 아닐까하고 고 생각하시는 분은? 우리 동료 중에선 인재가 많았어요. 171 보담 두 271 가 인재가 많았거덩요? 그 래서 2기에는 그 송기군이라고 있었어요. 거문고. 그 사람은 내가 봐도 정말 영 재예요. 어떤 점에서 그렇던가요? 271 생인데, 거문곤데, 건 누구나 지금 봐도 누구나 다 그 사람 얘기하면 다 영 재라고 생각 헐 꺼예요. 국악계에서는. 어떤 점에서? 그니깐 거문고도 잘 할뿐더러, 민속악 정악을 막 넘나들고. 고등학교 때 벌써 벌써, 고둥학교 때부터. 그리고 시창청음. 이거 뭐 그냥 구음으로 하는데도 지가 그냥 오선보에 척척척 막 적어요 그냥. 응. 우리보다 한 수 위야, 그게. 중학교 때부터 함께 공부하셨을 텐데? 그럼. 우리하고 쭉 공부 같이 했는데. 우리 동기니까는. 공부했는데 보니까는 음악 특수성도 뛰어나지만 자기 전공에 대한, 거문고. 감히 따라갈 사람이 없어 요. 그 사람은. 따라갈 사람이 없고. 빨라 배우나요? 그러은. 빨리 배우고 끼가 있어 그리고. 음악적인 끼가 있어요. 끼가 있고 그래 서 그런 것도 그렇구. 벌써 우리하곤 다르드라구 벌써. 받아들이는 그 척도가 달 라요. 에. 한, 한 수 워야 벌써 그 사람은. 이 분은 그렵 음악가 집안의 자손인가요? 혹시? 음악가 집안의 어머니가 그 분이 옛날 기생. 그런. 그렇다고 그래요. 그래 어천 지 끼가 좀 있더라구. 그런 후문이 있어요. 그 부모 어머니. 옛날 기생 출신이다. 이 분 말고 또 기억나는 분은? 지금 인제 우리 기에서는 그 뚜렷한 사람이 그 사람이 지금 제일 뚜렷하고 째, 그렇게 이 사람 이 사람 하나 정도는 내가 영재로 생각해요. 그 분은 음악을 만들기도 했네요? 창작? 작곡? 창작은 못. 창작은 안했는데. 창작은 안했는데 거 하튼 거. 음악성이 굉장히 뛰 어난 사람으로 내가 인정을 허고. 악기를 거문고 말고 다른 것도 하셨나요? 혹시? 다른 것도 좀 했죠. 다른 거 했는데 아무. 그 사람은 자타가 인정해요 지금 까 지두. 그런 사람이 있고. 또 후배에서 고 사람두 거문곤데.571 에 아주 거문고 잘 하는 사람이 있었고. 고다음에 인제 가야금에 강문득이라고. 그 사람 7 긴데. 그걸 그런 사람들은 영재라고 봐요

278 어떤 점에서 영재가 일까요? 그니깐 음악성이 뛰어나고. 음악성이라는게 여러 가지가 있을 수가 있잖아요. 빨리 아는 것도 그렇고. 빨리 하는것 보담은 음악의 그 시김새의 이게, 벌써 그 나이 수준을 뛰어 넘은 거야. 음에 대한 정확한 그런 것. 그건 물론이고. 그니깐 학생의 수준을 뛰어 넘어서. 세멸하게 말씀해 주시면 더 도움이 되는데요. 그건 뭐 글째. 그니깐 언제 음악적인 기초를 통해서 음정과 박자 그건 뭐 그건 당연헌거고. 응? 그건 당연헌거고. 음악을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 해석력에서. 그렇죠. 그니깐 인제, 그렇죠. 언제 그 기초를 다 배우고 나은은 인제 곡을 하나 어갈꺼아니예요? 그 곡을 마스터 하는데 그 사람은 혼자 독주해 봐라 그러은 해석력 이 다섯 여섯 사람이 다 똑같지 않거덩? 다 달르거등요? 근데 특별히 잘하는 사람이 있다구. 그건 해석력이 좋아서 그런거야. 그 끼가 있고, 음악적인 끼가 있고. 그러븐서 그 해석을 지 나름대로 해기 때문에. 그거 음악이 멋 있는거 예요. 그 세 분들을 냐름대로의 뭔가 해석하는듯 보였다. 다 달르지. 해석이 다 달르지. 나름대로. 선생님 가르키기 이전에 선생님들이 해석도 안가르켜요. 자기 자신이 알아서 허는 거지. 터득해가지고? 그니깐 전공 이 6명아 한 클라스 아니예요? 6명이 다 달라요. 음악이. 막 여민락 헌다 그러면 여민락이 다 달라 서로 간에. 시김새가 다 달라요. 흐름이 다 달르고. 그거는 바 로 자기 음악성이고. 자기 천부적인 음악성과 기초가 단단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 런 결 헐 수 있는 거예요. 그니깐 고등학교 이후에 영재라고 그러면은 벌써 그 사람은 학생으로서의 수준을 넘는 사람이야. 수준을 념고, 전문가. 그 수준을 념는게 그 해석력이라는 말씀이시죠? 그렇죠. 그런 거 해석 력 이고 그런게 특별한 거지. 자기 독창적으로 해석을 했는데 매끄러웠다. 이렇게 이해해도 될까요. 그니깐 음악적인 해석능력이 좋은 거죠. 해석능력. 응, 해석능력. 음악적인 해석력은 타고나는 것인가요? 아니면, 그건 타고 나는 거예요 사실. 타고 나는 끼가 있어야지 끼 없는 사람 아무리 이렇게 해 봤자 그 벽을 뚫지 못해. 응? 그 벽을 뚫을래면은 타고난 끼가 있어애 지. 그 일인자가 되고 이인자가 되는거지. 그 일인자는 아무나 되는게 아니예요. 그 계통에서. 그니깐 일적의 일수라고 그러죠 일수. 응? 거문고의 일수다, 피리 의 일수다. 일수래는 손 수 자 써가지고 일수라 그러거든? 일수다 그러은 그 사 때

279 람은 그 마지막 벽을 뛰어넘은 사람이야. 그러면 그건 명인의 급에 도달하는 사 람이예요. 그 정도가 되면은 그거는 영재라고 생각 할 수 있는 거고. 같은 나이 또래에 보다 뭔가. 한 수, 한 수 위지. 몇 수 위지. 음악적인 해석 능력이. 기교나 뭐. 그럼. 모든 변에서. 그니깐 자기 감성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거예요 음악적인 감성. 강수성하고 관계가 있는거예요? 감성, 음악적인 감성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거죠. 그게 음악이 감성 없으면 음악 못 해요. 감정이 있어야지 사람이.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 음악을 잘 허는 거지. 감정이 풍 부허지 못허고 메말른 사람은 음악 허더래도 메말른 음악 뱀에 못해요. 그 감성이 풍 부한 사람이 신랄하게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 음악을 잘 하는거야. 응? 웅. 口 1-5. 그러면 선생님채서 본격적으로 그 음악학습이 시작된 시기는? 양성소 들어가서 한 3학년 때부터 나의 음악적인 그 감성이 언제 발견이 됐고 남들한테 인정받기 시작했고 거의 뭐 고2 고3가서는 거의 뭐 그냥 학생들에서는 독보적인 피리챔이로 인정을 받았어요. 그 때 이미 뛰어 념으셨겠네요. 인정을 받았어요 내가. 막 말씀하신 영찌처럽 남다른 그 벽이 념어졌겠네요. 네. 그 때부터 그 때부터 선생님들 허구. 거의 이제는 장차 국악원이고 국악계 에 큰 피리 기둥이다 이렇게 느낌을 주고서 이렇게 인정을 해 준 거야 나를. 그 니깐 일찍해야 되요. 그리고 또 선생님들이 또 인정을 해줘야지. 선생님들이. 그 많은 사람 중에 하날. 하나를 탁 핸 거예요 그거를. 그래서 이 놈을 일치감치 그 냥 칭찬을 해 줘가지고 키워 주는 거야. 응? 칭찬 받게 하셨겠죠. 그래. 그니깐 인제 뭐 선생님 많은 저거 중에서 그냥 많은 재료 중에서 하 나를 좋은 재료를 하나 딱 뽑아내는 게 쉽지 않은 거거던? 그래 그 사람을 딱 뽑아 갖고 요결 은근히 키우는 거지. 그러은 언제 음악회 자리에서도 좋은 음악 회도 맨들어 주고 그래서 인정을 해주는 거지. 그니깐 거기에 자꾸 기가 살으면 은 선생님이 자꾸 칭찬해 주변 기가 살잖아. 근데 음악 허는 사람이 자넨 형편 없고 못해 잘 허는데두, 자기는 잘하는데 자꾸 못 해, 못 해 그러은 헐 맛 안 나요 음악이래는 게. 그 선생님들 사이에서 인정받고 f 증말 참 저 놈 잘 한다 이런 말 들으면 신이 나서 그냥 음악이 더 잘나오거든? 근데 난 잘하는데 선생 님들이 못 허한다고 하고 주위 사람들이 못 헌다 그러면은 신이 안나서 못 한다 구. 때려 치구 싶고

280 선생님 연배 때는 스승님들이 잘한다고 칭찬을 안 했던 걸로 제가 알고 었는데요. 응. 학생 때는 안 했는데 에. 졸업허구 나서 인제 국악원 들어 오구 내 인제 국악원의 목피리구 뭐 이렇게 있다 보니까는 선생님들이 이제 인정을 헌거지. 옛날 얘기를 해 주시면서. 그럼. 그러고 또 피리 계통에선 두 분 선생님들이 다 일찍 작고하시고 피리 안 하셨기 때문에. 김준현 선생님하고 또 한 분은? 김태섭. 그 두 분들이 내 우에 있던 선생님들이 피리를 일찍이 놨어. 일찍 으셨다고. 마흔 다섯 살에 돌아가셨고 한 분은. 김태섭 선생님이? 김준현. 예. 김태섭 선생은 내가 군대 갖다 와서 국악원 딱 취직허니까는 피리 시더라구. 딱 놓으 그 때 연세는? 어. 사십 후반이지. 김태섭 선생이. 왜 악기를 놓으셨을까요? 그니깐. 좋은 제자가 들어오니까는. 믿고 맡기신 거예요? 어. 그니깐 믿고 뱉기고 나하고 인제 같이 무대에 올라 선대는게 지금 좀 선생 으로써는 못허니까는 장구로 도신거야. 그분이. 피리를 안 하시고 장구로 도신거 야. 그래서 내가 국악원에 목피리로 취직허구서부터는 선생님이 바로 장구로 도 신거야. 자기 악기 포기허고. 자기 전공을. 20년의, 세대를 뛰어 념어 버려셨네요. 어, 그니까 그래서 나는 아악부 선생님들 허고 연주를 같이 헌거야. 나는 우리 선생님 내 선생님 급이니까. 선생님이 돌아가셨으니까 그 자리릎 내가 매꾸기 위 해서 김천홍 선생이나 어? 녹성 김성진 선생? 그 이왕직아악부 선생님들하고 내 가 피리를 같이 낀거야 이게. 젊은. 젊은 애가. 그니까 나는 이왕직아악부 선생님 들하고 음악을 같이 핸거야 나는.60년대부터. 한 세대를 뛰어념은 것이었네요. 그렇지. 그 때 선생님들이 안하시는 바람에 내가 은근히 올라가게 된거고. 은 근한. 목피리가 된거고 기퉁이 된거야 그게. 국악원의 그러니깐 기풍이 됐고 기 둥 음악인이 된거야 내가. 그 때부터 271 -

281 그게 20대? 응? 20 대 말이지. 20 대 중반 20 대 중반부터 내가 인제 국악원 생활을 시작헌 건데. 그니깐 내가 30 세. 만 30에 피리 독주회를 헌거 아니야. 실력 하나 가지고. 으허허허허. 어? 감히 그 때 그런 생각을 헐 수가 없잖아요? 그 때 당시에. 그 때 당시에 뭐 가야금 독주에 이재숙씨나 허고 뭐 그럴 땐데. 독주회래는 건 하나 없었어요. 몇 년이었죠? 피리 독주회? 72 년. 그니깐 71, 2년이면 내가 꼭, 막 30이거덩? 고 용기가지고 내가 한 것이. 피리 가지고 독주회 헌다는 건 상상치도 못허고. 그 때 대금도 없었고 대금 독주 도 안 했고 거의 없을 때야. 가야금 독주나 한 두 번 있었고 그랬지. 그런데 내 가 피리 독주회를 헌 것은 이미 획기적인 일이지. 또 그런 마음 먹은 자체도 내 가 좀 간탱이가 부었지. 으히히히. 口 1-6. 기초학습부터 음악 무용을 섭렵하셨다고 했는데요. 혹시 연희부분 쪽으 로 관련된 학습을 받을 기회는 았으셨나요? 연희 쪽은 안 받고. 탈춤은 배웠어요. 무용. 탈춤을. 어떤 선생남한테 배웠나요? 김진홍인가? 김진홍? 돌아가신 분인데. 김진홍씨라고. 고 때 당시 아주 유명한 60년대. 60년대 우리 학생 때니까는. 학생 때 탈춤을 그 분한태 우리가 배웠어 요. 봉산탈춤. 그렵 황해도 분? 경기. 하여튼 우리 전교생이 다 배웠거든요. 전교생들 기 초과목으로? 그렇죠. 중학교 때부터 배우신건가요? 아니요. 그거는 한 때. 한 학기 정도. 대충 그게 언채쯤 되요? 그니깐 내가 고 2, 고3 때지 口 1-7. 션생님 가계는 음악가 집안? 아니죠. 口 1-8. 스스로 어떤 발전의 동기? 그런 마음을 먹게 된 것은 우선 내가 어릴 때 참 고생을 많이 했고, 했기 때 에 언제 일단 학교공부에서 내가 전공을 인저 피리로 택했기 때문에 가만 보니 깐 내가 좀 노력허고 그러면은 피리에서 만큼은 일인자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애 내 눈치가

282 중학교 2학년 때? 벌써 선생님들이 벌써 작고 허시고, 연로 허시고 뭐 한 두 분 뱀에 없잖아요 선생님들이. 피리 부시는 분들이. 그니깐 그 분 들만 안 계시면 내가 뭐 일인자 되는 건 틀림없는 거니까는. 그니깐 동료들 끼리, 선 후배들 끼리 경쟁해서 1등 하면 내가 1 등이 되야되. 전체 양성소 출신 중에서. 스스로 목표를 정하시고. 정했죠. 늘 1등을 해야 되겠다는 그런 각오를. 그래, 그런 생각을 가졌지. 그게 그래야 내가 그 이 계통에서 살아남을 수 있 다 하는 그런 생각을 가졌어요. 그래서 양성소 출신 중에서는 최소한도 피리만큼 은 내가 일인. 일등이 되야겠다. 양성소 출신이 일인. 일등이면 전체 일등이지. 그래서 선 후배 간에 내가 전체에서 나를 따라 먹을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 때 부터. 그래서 선 후배들이 내가 피리허변은 피렬 안 불고 접은 거지 다들. 피리에 매력을 느끼면서 그런 생각을 하신 거죠? 그렇죠. 피리에 매력을 느꼈고 가능성을 생각했고. 아, 내가 이결 하먼은 틀림 없이 선생님 대를 이어서 내가 충분히 1 등은 되겠다 하는 생각을 했지. 그거 아 니면 나는 세상 살기가 어렵다. 국악계에서 피리를 불어서래도 내가 일인자가 되 이지 응? 그거 아니은 내가 국악계에서 있을 수, 2 인자는 필요없어. 뭐든지 일인 자가 되이지. 히히. 이인자만 해두 격이 똑 떨어져요. 그래야 이름도 날리고 그러 는 거지. 이인자는 아무 소용 없어. 그래 일인자가 된다는게 그 때부터 내가 그 런 생각을 갖었다고. 양성소 출신만큼은 내가 최고가 되고. 일등은 해야 겠다 피 리 만큼은. 딴 건 못해드래두. 그리고 그 때부터 하다가 맘 먹은거지. 그러니깐은 내가 소원성취허고 하는데 졸업하자마자 그냥 해외도 가고 응? 내가 그 발휘한 거죠. 실력 발휘를? 그래갖고. 口 1-9. 선생님 그러면 선생님 전통예술에 대한 당신의 집얀 분위기는 어떠했습니까? 그 뭐 가정이 없으니까는. 난 언제 조실이어 가지고. 아마 제 6.25 때 돌아가셨 으니까 6.25전에 다 돌아가셨거든. 이 한 분은 8.1 5때 돌아가시고, 아버님은, 어머 님은 6.25때 돌아가셨으니까. 내가 7,8살 때 다 돌아가셨지. 초등학교 1-2학년 때 다 돌아가셨기 때문에 난 외롭게 자란 사람이거든. 그게 그런 나의 뭐. 하여 중학교는 어떻게든 가야할거 아니에요. 우리 형편으론 중학교 갈 여유가 없었어 요. 그래서 국비장학생 모집이래서 무조건 시험을 본거야 그냥. 마저 공부한다니 까는. 그래서 그러더라는거지. 식구가 말리는지 그런건 없었고 아주 잘 됐다 그 러는 거지 뭐. 친척이고 뭐고. 다. 우선, 공부 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했으니까는. 얼마나 다행이에요. 또 거기 들어가서 내가 기술을 공부해서 그 피리를 공부해서 또 이렇게 된 것이 나의 인생사와 거의 같애요. 지금 이게. 나의 인생사가 워낙 에 내가 거친 인생사를 살았기 때문에. 그거를 그거에 대한 내 그 인간적인 어떻 게 보면 그 산이라고 할까 그렇게 생각해요

283 口 어린 시절 당신의 연습량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보통 뭐. 난 남어. 항상 끝나고 나서. 끝나고 나면 보통 두 시간 정도 항상 연 습하고 갔거든요. 학교에서. 끝나면 몇 시죠? 학교 끝나면 한 3-4시 되 나요? 학교 끝나면 한 5시 정도 되잖아요. 대개 저녁 6-7 시. 연습하고. 저녁식사하시고, 연습했나요? 저녁은 무슨 저녁이야. 그 때 당시에. 진지도 못 먹을 판인데. 두시간을? 시간을 거의 연 매일이요? 어. 정악이라는 것은 암기가 중요하거든요. 암기, 음악을 암기식으로 공부했기 때문에 악보를 보지 않고 암기 위주로 공부했기 때문에, 이 정통 음악은 거의 암 기를 해야 해요. 암기를 해야지. 배울 땐 악보를 보셨을 탠데요? 배울 땐 악보 보지만 시험 보고 뭐 이렬 땐 전부 인제 암기를 해서 보니꺼는. 그게 자꾸 암기의 능력이 생기는 거지. 그래서 아마 현직 정악하는 사람 중에 내가 제일 많을꺼야. 암기. 암기력이 그렇게 좋아 내가. 피리 정간보 한 결 다 외워. 거의 다. 피리보를 다. 그니까 아예. 언재 다 암기가 끝났어요? 아니. 끝난게 아니라. 지금까지도 뭐 하고 있지마는 보통 국악원 50 대, 40 대. 40 대 다 쨌지. 난 악보를 들어 보고 들어간 적이 없어요. 40 대 그 때도. 내가 국 악원의 악장하고 그랬을 때는 거의 악보, 미리 외버려. 나는 딴 사람보다 미리. 여민락 같은 거 1 시간 20분짜리 아니에요? 난 일주일이면 다 외워버려. 그거. 요즘에도? 그럼 바로 외워버리지. 40대 이후론 외우질 것도 없으설 것 아니에요? 그럼. 다 외웠잖아. 그러니까 그때 인제, 워낙 일들을 많이 했기 때문에 책도 뭐고 악보도 없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암기를 해야 된다 해야 허가지고. 그 20대 중반부터 취직허고 그렇기 때문에 암기를 미리 해버렸어요. 다 20 대부터, 학생 때부터. 그래 국악원 들어와서는 또 아주 완벽한 음악을 암기를 했지. 국악원에 서는 전곡 완주라는 게 70년대부터 전곡 완주가 생겼거든요. 그전에는 한 조금 은 그냥 연주라 했는데 70년대 중반부터 전곡 완주가 있었어요. 그래. 유초신지 곡 전체, 뭐 여민락 전체 그게 그 때부터였는데. 그 때 내가 목피리니까 내가 자 꾸 올라가야 되고 암기를 다 해야 해. 딴 사람들은 앵간히 해야 했지만 나는 완 벽히 해야 해. 피리는

284 그런 책임감이 었으셨어요? 내가 삐끗하면, 전체가 다 우르르 무너져요. 목피리 그 음악전체의 리더거든요. 피리가 제일 크죠 소리가. 주선율을 담당하기 때문에 장구 옆에 앉은 내가 음악 을 삐끗 삐끗허븐 여기 대 여섯 명이 있을 쯤에 이 사람들이 삐끗 삐긋허게 돼. 날 다 의지해서 하는 사람이거든 그게. 피리가. 그것도 전체 음악하는 사람들도. 합주 안에서의 자신의 어떤 역할을 깨달 것이? 그걸 내 들어와서 깨달은 거지. 더욱. 합주는 학교 때도 하셨잖아요? 합주야 했어도 그렇게 부분씩 했지. 뭐 십 분 허고 그 정도 했지. 기냥 한 시 간씩 허고 그런 건 국악원 들어와서 헌거지. 그래서 국악원 들어와서 합주 능력 도 많이 생기고 또 암기도 많이 하고 그래서 암기력이 좋아진 거야. 학생 때 그 런 내 개인적인 연습을 통해서 했기 때문에 남보다 암기력이 좀 빨라요. 중학교부터 하루에 두 시간은 꼭 연습은 한거에요? 그럼요. 더 많이 하셨었냐요? 아니 그 정도. 매일 매얼? 매일. 아니 거의 매일. 벼가 요나 눈이 오나? 아니 뭐 모르겠어요. 하여튼 거의 매일같이 하다시피 했어요. 매일 매일 밤.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요? 토요일은 쉬었겠지. 예. 뭘 했을 때 연습을 그만두세요? 그러니까 연습을 마치는 기준. 아니 뭐. 자기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연습이라는 것은 남이 시켜서 하는거은 거 좋아서 하는 거나까 효과가 없는 거야. 자기가 좋아서 허구해야 뭐 능력을 발 휘할 수 있고 음악을 맨들 수 있지 억지로 시키면은 건, 허고 싶어도 안해. 그건, 자기 자신이 자발적으로 해야지. 그렴 어느 정도 된다싶으면 연습을 그만두시나요? 아니 뭐. 그날 배운 거. 선생님한테 전체적으로 같이 배운거 또 저 민속악 은거. 그런건 몰래 배워야. 공부해야 되거든요. 민요나 이런 거는 몰래 혼자 공부 해야 되기 때문에 그래 공부 그렇게 했고. 연습은 오늘 그만하자, 내일해야지 그런 것을 뭘로 결정하셨어요? 긍까. 인제 새로운 게 그 장르 같은거 음악같은 거 있을 땐 어느 정도 뭐 아 오늘은 만약 민요같은 거 있으면은 아리랑 자배기라든가 뭐 몇 가지의 곡목을 275

285 정해서 요건 한 번 떼봐야겠다. 그날 그날 선생님의 목표량이 있었나요? 그래. 그러고 또. 당일 날 배우는 그 곡목있잖아요. 정악도. 그거를 아주 암기 하다시피 외워버리는 거지. 당일날 배우는 것은 외워버리고. 그럼. 또 몰래 새로운 것을 새로운 거 공부하고. 몇 개 정해 놓고 공부하고? 학교에서 공식적인 그 학과가 아닌, 학과가 아닌게 있잖아요. 민속학은 공식적 인 학과가 아니거든요. 비 공식 (웃음) 학과기 때문에 몰래 배우는거야. 공부 혼 자. 혼자 노력해서 공부하는거지. 그런 공부하고 당일 날 배운 정악같은 건 이런 건 당일 날 아주 완전히 소화해 버리는 거지. 매일 레슨하진 않을 거 아니애요? 거의 뭐 전공은 매일 있다시피 했어요. 전공이 제일 중요했기 때문에, 일주일 에 5-6시간씩 했다고. 그래. 전공은 매일 있다시피 했어요. 口 전공말고, 설제 악기 연습하는 것 말고 다른 음악 감상 활 기회는 많 았나요? 음악 듣는 시간? 못 듣는. 옛날에는 지금같이 음악회가 많지 않았아요. 한 달에 2번정도 있으면 잘했어. 국악회 연주라는게 국육거서 허는, 그 매 달 국악 강습생들헌테 보여 는 그게 있거든요. 그게 유일해. 그게 유일한 저 연주회고, 그 담에 KBS홀에서 한 달에 한 번씩 국악 연주를 했거든요. 그 당시에 그 때, 명인 명창들이 다 나 왔어 그 때 와서 해요. 가서 그 때 꼭 목 빠지지 않고 KBS홀에 가서 걸 들었어요. KBS훌이라 하면? 옛날에 KBS. KBS 세종 문화원이 있었어요. 서울신문사 고 위. 일 매달 한 번씩 듣고. 거기 가서 매 모든 학생이 전부요? 그렇죠. 대개 다 갔죠. 자발적으로. 자발적으로 가기도 하고 선생님들이 가라고해서 가기도하고 그러고 그랬는데. 지금같이 연주회가 많지 않았어요. 라디오나 음반같은 것을 들었나요? 래디오를. 국악계 그 때는 래디오가 많이 나왔거든요. KBS 래디오에 뭐 매일 같이 거의 한 시간씩 있었어요. 국악 시간이. 저 거 뭐 민속악도 나오고. 우리 선 - 276

286 생님들도 나오고 그러거든요. 저 거 매일 거지. 일부러 들으시는거에요? 일부러 듣기도 하고 그리고 또 내가 고 2, 고 3 때는 선생님들하고 같이 나가 서 방송하기도 그랬어요. 피리가 별로 없으니까는. 口 전공 분야 외에 다른 예술분야에 대한 학습과 경험에 대해 말씀해주세 요. 전공 악기 외에 다른 분야에 경험을 쌓았던 적이 었나요? 공연도 했고, 또 우리 팀원을 만들어서. 우리 같은 파트끼리 같은 우리 학년에 서 팀획을 만들어서 어 공연도 허고 그랬죠. 학교에서요? 악회을 하나 만들었어요. 학교에서. 학교 내에서 우리 우리 친구들끼리 자발적으로? 자발적으로 다섯 명이 만나가지고 연습도 헐 겸. 만들었지. 저 그게 제, 같이 인제 그 음악회를 악회 음악은 우리가 하고 무용은 또 여학생들. 각 고등학교 여학 생들 뽑아가지고 데 여섯 명, 한 열 명 정도 뽑아가지고 무용하고, 우리 음악하고. 같이 만나서 연습도 허고. 그래가꼬, 군부대 위문이라든가 농촌 위문이라든가. 언제요? 고등학교 때 고등학교 때요? 그게 가능했나요? 고 2, 고3 때. 그걸 했어요. 고 2, 고3 때 벌써 그런 일을 했다고. 농촌. 여학생 뽑았어요. 그 무용하는 우리가 그럼, 오디션을? 아니 오디션을 한 게 5..~ 2.<,즈 아니라 친구들한테 물어 물어해 가지고 무용하는 여학생 선생님 좋으셨겠네요. 우리하고 같은 나이 또래니까는 이건 연애도 헐 수 있는거지. 하하 하하. 그 여학생들허고, 그 여학생들 하고 같이 무용하면서 반주도 해주고. 그렵 다섯 명. 탑에는 어떤 분이 계셨어요? 나하고, 김선한 교수, 이상용 교수, 국악계에 다섯 명 중에 셋이 살아남은거야 이게. 나머지 두 분은? 나머지 한 사람은 저 하는사람. 임세량이라고 해. 죽었지. 그 사람, 정귀채라고 가야금 277 -

287 엄세량 선생님이요? 임세량. 그 유명한 사람이지. 아주 그냥. 그렴 임세량 선생님 잘하셨어요? 어. 해금. 잘했어요. 해금을 잘하는 사람인데 우리 다섯 명을 한꺼번에 송록회 라고. 소나무 송자에다가 송록악회라고 조직을 했다고 고 2 때. 이게 얼마나 갔어요? 우리 졸업하구선 고둥학교 때. 우리 결성된거기 때문에. 음. 고등학교 때만 필 요헌거 아니예요? 학생 때만. 그럼 우리가 졸업하은 인제 이게 해산되기 때문에 안 될 것 같아서 우리 후배, 2년 후배, 4기들.4기생들헌태 우리가 이결 냉겨줬어 요.4기생들을 뽑았죠 우리가 후배로다가 서한범 어? 피리에 서한범, 김동석이 라고 가야금 있어요. 저 미국에 있는 친구. 김동석. 그도 거문고에 저기 그것도 미국 간 친군데 암튼, 사기생을 우리 후배로 뽑았어요. 예. 5명을 엄선해서. 그 아들 모아서 송록악회를 꼭 유지해라. 그래 가지고, 다섯 명을 우리가 염선해가 지고 냄겼지. 청록악회를., 口 1-12-(2) 선생념 피리 말고도 전공 악기 외에, 나는 이 정도는 자신았다 할 수 었다하는 분야가 뭐 었나요? 전공외에 나는 뭐. 피리 외에는 딴거는 신경을 안 썼어요. 별로. 그래도 다 하셨잖아요. 다 했는데. 단소도 하셨을 것이고. 그럼 다 했는데 다 조금씩은 다 하죠. 가곡. 가곡 시조를 내가 좀 좋아한 것 같고. 가곡은 지금도 내가 해요. 간혹, 거 애들 내용 저 합주 같은 거 할 때 내가 노래를 부르거든? 직접? 한예종에 있을 때두. 그랬지? 내가 장구 잡으면서 내가 혼자 솔로 그 반주 수십 명. 특히 노래를 하게 시켰다고 내가. 가곡 반주도 그렇 게 해야 돼. 그러나까는 반주 같은 거 헐러고 그러면 음악을 알아야 되요. 가곡 을 알아야 국악 반주를, 가곡 반주를 잘하지. 민요도, 민요를 어느 정도 알아야 민요 반주를 잘 하는거에요. 다 배워나야 해. 노래도. 노래를 다 배워놔야 반주도 잘 할 수 있는거고 그런거지. 외운 악보래도 노래를 모르면 반주가 안되요. 반주 의 맛이 안 난다고. 노래 연습을 좀 따로 연습하설 때도 있었나요? 나는 따론 안 했지만 학생 때 배운 그 실력가지, 지 가곡. 가곡. 그냥 써 먹고 있죠. 그럽 연습설에서 따로 혼자 확설히 연습 하질 때는? 피리만 했지. 그건 뭐. 따로 그냥 거. 시간에 의해서 공부만 한 것 뿐이지. 근 데 그게 그 때 당시 공부한 게 지금도 쟁쟁해서 지금도 헐래면 헌다고. 가곡

288 가사 시조는 따로 연습 안 해도 그건 기본이니까는. 선생님 피리 말고도, 여러 가지를 하셨죠? 다했죠. 그게 그게 구체적으로 선생님 음악에 어떻게 도움이 됐는지? 도움이 된단 말이야. 그러니까 좀 상세하게, 가곡은 노래를 알아야 반주가 잘 됐다둥 그지. 다른 것은 어떻게 도움이? 장구, 장구도 따로 배우셨나요? 장구는 따로 안 배웠고, 장구는 뭐 저절로 되는 것이니깐. 배우지 않고도 그냥. 기초적인 장구 장단은 다 치지. 기초적인 건 다 쳐요. 굿거리장단, 무슨 산조 장 단, 기본은 치지. 기교는 없더래도 기본은 다 쳐요. 장구같은 건 저절로 필요했기 때문에 장구는 저절로 귀에 들어 왔기 때문에 내가 연습, 개인 연습으로 터득했 고. 그러고 저 첨에,내가 저를 배웠거든요. 저 성악과 내가 저 소금을 배웠거덩요? 소금 가지고 인제 종묘제례악 같은 거. 그 러니까 그 소금 악기 가지고 당악과 향악을 공부했기 때문에 전공 피리에 굉장 히 도움이 됐지요. 탈춤이나 무용이 어떤 식으로 도움이 했는지? 어. 내가 무용은, 전문 무용은 내가 싫어했어요. 워낙에. 또 쉬는 시간에 억지 로 들어가서 했기 때문에 무용에 취미를 못 는꼈거든요. 무용에 관심은 없었고 그냥 시간만 떼듯 들어 간거고. 탈춤 같은건? 탈춤 좀 배웠죠. 탈춤을 함으로써 거 탈춤은 좀 배웠죠. 탈춤하고 또 음악은 연관은 있기 때문에 어떤 점에 선생념 전공에 도움이? 민속 음악에 좀 도움이 되요. 민속 음악에 어떤 점이 도움이 될까요? 허튼 가락, 덩덕궁 장단이라고 그래, 덩덕궁 장단이. 덩, 덕, 덩덕. 그런데 장단 이나 장단 느낌이나. 장단을 허튼가락이라는 것은 딱 정해진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작곡해서 즉흥으로 부르는 거야. 그게 허튼타령이라는 것이 있죠. 그건 지금, 그 건 허튼가락이야 자기가 딱 무대에서 그냥 자기가 자작해서 만든 음악이야. 이거 는. 허튼가락이라는 것은 그런 것은 저 직접 자기가 맨들어서 불 수 있져. 허튼가락을 만든 것이 탈춤의 영향? 탈춤을 배움으로써 어떻게 그렇게 되요. 탈춤 배움으로써 어떻게 허튼 가락에 능력이 생기게 되나요. 아니 그, 탈춤이 흥겹잖아요. 어깨춤도 나오고. 어깨 춤이 라든가 그 탈춤의 그 그것의 차이가 재있지. 그러니까 음악적으로도 연관이 되

289 지. 탈춤이 덩덕콩덕 4박자 아니에요. 그러니까 음악적으로도 연관이 되지. 거기 에 대한 따른 음악도 흥겹게 연주 할 수 있죠. 탈춤을 함으로써 민속 음악하는데 되게 도움이 되요. 디 선생님 애기 영창 이라는 말이 들이 보셨져, 선생념, 그렴 그게, 결 국엔 애기 영창 이다. 애기라는 뜻인가요? 아님 명창이 된다는 뭇인가요? 아니. 그 때 당시, 애기래는 건 채를 초등학교 가기 전. 가기 전에 이젠 이제 명창 소리를 듣는 건데. 그냥 그건 붙여주는 거지. 잘하기 때문에. 거 명창이 아니라 유희지 유희. 그래가꼬 그건 애기들한테 붙여주는 하나의 좋은 뜻이지. 명창은 아니거든요. 그 건 애기헌테 그냥 붙여주는 하나의 저거지. 뭐냐 그래 뭐라 그래. 격려? 그런 뜻이지. 애가 무슨 명창이라는 의미하는거 예술가로써 크겠다. 이런 뭇은 아니에요? 그건 이젠 그것도. 어, 싹수가 됐다. 싹이 되겠다. 하는 그런 뜻으로도 생각헐 수 있수 있지마는, 아기 명창되가지고, 명창된 사람이 혼치 않아요. 얘기 명창이 왜 명창이 못 되는 것인가요? 그건 이제 그. 애기 때하고 목소리는 또 다르거든요. 목소리의 변성기도 지나 고 얘기도 하다보면 음악이 달라질 수도 있고. 목이 안 터질 수도 있다고. 예 들어 유태평양이라고 있어. 껴가 아기 명창이야. 지금와서 껴 안해요. 창 안해. 북, 이런 장구, 장구 치지. 연희 같은결 하지. 인제 노랜 안 해요. 기악 같은 경우에는 얘기 명창 같이 잘하는 사람을 발견될 수가 없나요? 그 제, 명, 민속악에서는 명창이 나오고 이러는데. 기악쪽에서는 어릴 때부터 하는 애들이 드물거든요. 기악은 또 그런 시스템도 안 되어 있고. 사회적인 그래 서 초등학교 때 기악하는 애들이 극히 드물잖아요. 지금, 창이나 그런 돈 좀 많 은 애들 몇 있어요. 많지만 기악 계통은 한정된 몇 명밖에 밖에 없거든요. 많지 가 않아요. 그건 왜 그러냐면 공부 할 시스템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그래. 그래 서 그런 기악을 쉽게 배울 수 있는 그런 배움의 장소가 드물지 기악은. 기악 얘기명인도 가능한가요? 그런 애들이 나올 수 있죠. 그런 애들이 나올 수 있는데. 연습 때문에? 에. 그럼요. 학생들이 악기에 매력을 느껴서. 자식을 시켜야 되는데 그게 시켜 야 돼. 일단은 억지로라도. 근데, 그런 시스템도 안 되어 있고 그런 배울 장소도 없기 때문에 기악을 안 시키는거거든요. 그러고 또 명창의 그 민속음악의 판소리 나, 민요나 이런 거는 일반인들에게서 많이 불리기 때문에 호기심에 부모들이 시 킨단 말이야. 그게. 근데 기악은 별로 시키는 사람이 극히 드물어. 이상하게. 그 래서 그 기악으로 명인이, 명창으로 명창의 씨가 돋아나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

290 서 아닌 것 같애. 그래서 예를 들어서 지금 피리하는 애가 왔는데 예찬이라고 고 놈은 초등학교 때부터 했어요. 지 부모들이. 초등학교 몇 학년부터 했어요? 아마 4학년 때부터 했을걸요. 잘해요? 그 부모가 음악하는 집안이에요. 그 누나가 또 해금을 했고. 그래서 그 부모가 벌써 이 쪽 피리를 딱 보고서 우리 애한테 맞겠구나 하고 초등학교 때부터 시킨 거야. 근데 여기 52) 영재로 들어왔잖아요. 최초로. 그렇게 잘하는 애가 없어요. 초 등학교 때부터 했으면 잘한거야. 기교나 음악 해석력이나 이런건 모든게 다 좋나요? 좋고, 능력도 뛰어나, 보니까는 재가 그렇게 뛰어나드라고. 자작 공부거는. 그 게 내 음악을 다 외다 시피 했어. 내 음악을. 그리고 껴가. 피라 같은 것도요? 그럼요. 그리고 껴가 영국가서 공부했고, 중학교를 내가 국악계를 가라고 했거 든. 거기 안가고 영국 가서 공부했어요, 껴가. 중학교를 아마 대전에서 탱기고. 고등학교를 아마 인젠. 영국가서 공부한거에요. 뭐했어요? 영국에서. 거기 가서 아마 일반학교 맹기면서 껴가 첼로니 바이올린이니 피아노 다 배우 고 온거야. 거기서. 음악성이 좋은 아이네요. 좋은 애에요 워낙에. 첼로도 잘하지 피아노 잘 하지, 피리 잘 불지. 근까 뭐 껴는 영재도 틀림없이. 口 2-1. 전통예술에 영재가 었다고 생각하는가? 영재가 지금 없잖아요. 아까 얘기 했듯이 영재는 초등학교 때부터 골라나야 되 는데, 초등학교 때 기악 쪽에서는 드물다고, 초등학교 때 지금 기악. 기악 쪽을 공부하는 사람이 몇 이나 되. 손에 쉴 정도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애. 성악보 덤은 적어요. 하여튼 성악은 많아요. 민요별로래도 애들도 많고, 판소리나, 무슨 뭐 좌창 뭐 이런 거, 배우는, 적게 있는데, 이 기악 쪽은 이 유난하게 없어 어요. 그런 뜻에서 그런 거지. 미리 어릴 때부터 골라 낼 아이가 없다는 뜻이지. 그러니까 뭐 충분히 실력도, 뭐, 중고등학교 있잖아요. 국악 중학교가 있고 또 예 고가 있어, 찾아 낼 수 있는데 현재 공부하고 있기 때문에, 초등학교 애 c 물다고, 기악 쪽에. 공부하는 애들이 드물다고. 만약에 어렸을 때부터 했으면 예찬이처렵 골라 낼 수가. 그건 많은 사람들이 해야 하나 고를 수 있지. 몇 군데서 고르는 건 영재가 아 니야. 그건 최소한 50:1, 100:1 이 되야 영재지. 그렇잖아요? 50 명, 100 명 중에 하 나 뽑아야지, 10, 10, 10 중에 하나 뽑는다는 건 그건 영재가 아니지 그래서 그 52) 한국예술종합학교

291 개수로 따져서는 희귀하는 저기가 있지. 영재는 희귀한 사람이에요. 그거는 맞아 요. 아무나 영재가 되는 것은 아니거든. 최소한의 100:1 에서 하나 뽑아야지. 희귀 한 거지. 열 사람 중에 하나라는 것은 나올 수지만 그건 아니란 말이야. 근까 저 변이 약해. 기악적으로. 口 2-2. 선생닝 그렴 전통 예술 분야에서 영재라고 했던 사례를 보신 적이 었죠? 저기 근데 특수한건 간혹 몇 명씩 나오는데 흔치 않다 이거죠. 글쩨 내가 보기 에는 그래도 찾아 낼 수 있어요. 초등학교에서 하는 애들이 간혹 많다고. 어느 정도 있어요. 근데 기악에서는 좀 드문 것이 저변이 약하다 이거라고. 그래서 영 재를 골라내는 것이 쉽지가 않다. 성악계통에 영재가 누가 있었던 가요? 성악? 유태평양이 말고도 많아요. 뭐 그런 애들 이름까지는 알지는 못하지만. 어떻게 발견하시게 되었어요? 뭐. 그런 공부하는 애들이 많아요. 거 저 지금 현역 판소리허고 이런 애들있 죠? 민요허는 애들. 개들 현역에서 보면 초등학교에서부터 한 애들이에요. 대게 다 거의 다. 현찌라고 하연 20대 념은? 그렇죠. 아니 지금 대학생있잖아요? 지금 대학생들이 대게 초둥학교때부터 한 애들이에요. 판소리나 민요허는 애들은 거 1-2년 해가지고 될 일이 아니거 초등학교 5-6학년부터 시작해서 중 고둥학교 지나서 대학원온 애들이 대다수 일껄. 성악은 껴들 다 영재라고 볼 수 없지 많으니까는 지금 뭐 우리학교에도 그 런 애들 많아. 뭐 다 초등학교 때부터 한 애들이야. 거 저 누구야 판소리 잘하는 우리학교에 1 기에 누구지? 이름이 뭐지. 서정민이. 껴들 다 초등학교 때부터 한 애들이야. 다. 판소리가 초등학교서부터 다 해요. 대개 그런 애들이 다 대학까지 오는 거지. 고등학교 때 해서 안되요. 중학교 땐 늦고 대학에서 당당히 붙고 어 느 정도 될려면 초등학교 때 시작한 애들이 다 대학원에 들어가지. 우리 학교 애 이 다 영재 급이지. 근데 기악은 그렇지 못하던 말이야. 기껏해야 국악고, 국악 예고에 거서 오는 애들이지. 일반 전문적인 교육 받은 애들이 온단 말이야. 실기 도 있고, 그렇잖에도 같은 예고래도 국악예고가 아니래도 일반 예술 고등학교에 서도 기악 전공은 몇 안되요. 선화예고 같은데도 보며는 전부 양악 전공, 무용전 공이지, 국악 전공은 몇 안되요. 그 유명한 학교가. 서울예고도 마찬가지고. 서울 예고는 거의 없다시피 하더라구요. 그전에 있었는데 한 두명 있었는데. 그나마도 없고. 선화예고에 외 무슨 예고가 많잖아요. 선화, 서울 저 경북예고니 뭐 전주, 남원 무슨 예고 많잖아요? 손꼽을 정도야. 기악하는 애들이. 예고에 전통 기악하 애들이 드물다 이거에요. 거기도 이건 저력이 괜히 약해. 기악이. 그니까 영재 뽑으려면 국악 중, 중학교나 예술 고등 중학교 거기서 뽑을 수밖에 없지. 많이 뽑 는다고 우리. 거기서 내놔? 안 주지

292 口 2-3. 그러면 전통 예술에서 영재를 뽑으려고 할 때는, 그 초등학교쯤이 초둥 학교가 째얼 몇 학년쯤 얼까요? 4 학년, 5-6학년 정도 되야. 기악 성악 상관없이? 근데 성악은 벌써. 대개 시작한 애들이 3-4학년이거든요. 근데 기악은 어 초등 학교 시작해 봤자, 별로 별로. 그 실력이 향상이 안 들어간다고. 눈에 안 띄어요. 그게 기악은. 기악 뭐 저 1-2년 해가지고 산조해요? 산조 떼기 어렵지. 1-2년 해 가지고. 1-2년 해도 4학년부터 시작한건데. 그래가꼬 영재라고 뽑을 순 없지. 최 소한 4학년 때 시작 했더래도 중 고등학교가야지. 껴가 꽃이 피는거지. 그렇잖 아요? 3-4학년 때 시작 했드래무는 중 고등학교가야 껴 음악적인게 나오지.6학 년 말이나, 중학교 초에 껴 음악성 이 나올 리가 없어요. 그거는 그렇잖아요? 1-2 년 배워가지고 될 일이 아니잖아요. 이거는 기악도, 최소한도 5년 이상해야 가 쓸만한 재목이 나오는 거지. 1-2년 해가지곤 안 나오지. 나올 수가 없어요, 그 거는 예찬이 얘가 초등학교때 허고, 4학년 때 했더래도, 벌써 중, 고등학교, 중학 교 했더래도 8년 아니야. 벌써 얘가, 고등학교 빼더래도, 고둥학교 때까지 다 했 으니까. 고등학교 2학년꺼지 했으니까 한 8-9년 한거야. 긍까 뽑은거지. 전통예술분야에서 영째를 뽑으려면? 이게 초등학교에서는 내가 보기엔 무용 분야나, 이런 연극 분야, 이건 찾을 수 있을꺼에요. 초등학교에서. 뭐 口 2-4. 어떤 것을 보며는 영재라고 할 수 었을까요? 근까. 그 이 영재 뽑으려면 초등학교면 고등학교 수준은 되야지. 초등학교면 고등학교, 그럽 중학교교 애 들은요? 중학교는 대학교 수준은 되야지. 그러면 고등학교 애들은 고등학교 애들은 일반 악단 수준은 되야지. 수준은 그렇게 따져야 되요. 만 좀 완벽하게 띤 애 기초 그런 애들은 어떻게 할까요? 그걸 섞어 놔가지고, 실패할 확률이 많거든. 그거 ~. 기악은 그런가요? 노래는 벌써 성음 들어보면 근본도 알 수 있단 말이야. 몇 년 했드래도 그 근 본을 알 수 있고. 아 이건 성음이 좋고 성능이 좋구나. 노래. 그리곤 성음이 좋으 면 그리고 성음만 좋으면 좋은 성악가가 될 수 있는 재목이 될 수 있는데. 기악 은 1-2년 해가지고 성음이 나올 수가 없거든. 기악도 최소한 3 년, 뭐 2년 이상해 야지 얘도 성음이 나오지 어느 정도. 음악성은 있는데 훈련을 제대로 못 받아서 영재 시험을 잘 못 볼 수가 었잖아요. 그건 내가 보기에는 우선 거 영재 기본적으로 실력을 판가름할려며는 첫째는

293 성음을 봐야 해. 성음을. 목소리가 원래 타고나는. 목소리가 타고 났냐. 그리고 기악에서도 가야금 성음이 벌써 다르단 말이야. 피리도 그렇고. 타고난 애들은 벌써 성음이 달라요. 끗끗한 성음. 기악에서는 톤 칼라를 벌써 딱 잡은 애들이 있어요. 어렵게 있어요. 톤 칼라를 딱 잡은 애들. 그 런 애들. 가야금에서도 어느 기법을 완벽히 터득한 애들. 그런 애들 어느 정도 기본이 갖춰 줬고 어느 정도 했기 때문에 좀 더 열성적으로 가르켜 놓으면, 영재가 될 가능성이 있지. 톤 칼라가 되있지 않고 기본이 되어 있지 않은 애들은 뽑아 봤 자 그건 모래성 쌓는 것과 같아요. 왜 기본이 들 된 애들이 뽑아 놓고 그래요. 귀가 아주 좋은 애들이 었을꺼잖아요. 그런 애들 귀만 보고 일단 뽑아서 학습 시키는 것은? 근데 하여튼 우리 그 저기는 암만 어리더래도 기본의 충실하고 성능과 성향이 충실해야 돼. 그럼 기본이라는게 기교의 가락만 있고 기교부리는 것 보덤도 우선 기본적인 성능이 좋으냐 성악적으로 성음이 좋으냐보덤도 기악적으로 성능과 성 음이 좋으냐 이것을 따져가지고 그것만 갖춰 놓으면 기본이 된 거기 때문에, 거 기다 이젠 기량만 얹혀주고 그걸 가르켜 놓으면 껴가 영재가 되는거 아니야. 그져? 기본을 1년에 하는 학생이 었을것이고 3년에 하는 학생이 었을것인데 1년에 하는 학생이 훨씬 나은 학생이잖아요. 맞아 그런 아이들을 가려 뽑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그러니까 그걸 뽑아야 돼요. 음색과 거. 저. 뽑으면 되요. 택하는 건 두 번째고. 일단 그 제대로 갖춰진 목과 갖춰진 성음을 갖고 있으면, 뽑아 놓으면. 나중에 그 기량은 나중에 가르쳐서 하문 되거든요. 그거는. 기본은 조금 잘 배워놨어야 되는 것이네요. 잘 배워놔야죠. 기본을? 그럼요. 그게 중요해. 그렇지 않고, 뭐 저, 기교있고 막 이렇게 하는 애들은 안 뽑 는게 나아. 기교 좋은 애들은 기교 좋고 이런 애들은 겉 멋 들어가지고 기본적으로 되려 기본적으로, 공부허는게 아니거든 자기 흥에 맞춰서 막 허는 거기 때문에 고 치기도 어려워요. 그냥 처음 배울 때부터 제대로 공부 시켜야 되지. 거 자기 멋대로 공부허고 룰에 벗어난 연주 기법, 가지고 허는 애들 있잖아요. 그거는 못 써요. 연 주의 룰이 있단 말이에요. 룰 안에서 제대로 공부허는 애들을 뽑아야 해요. 口 2-5. 선생님 그러면 전통 예술 분야에서 영재성이라고 하는 것들이 어떤 것 들이 있을까요? 분야 별로, 장르별로?

294 모두 말씀해주세요 기악과 성악은 아깐 핸 얘기구. 그러문 무용과 제 채 얘기가 있잖아요. 그건 전통에서 다들어 가는 얘기고. 무용은 어릴 때 시작하는 애들이 많아요. 무용도. 그렇기 때문에 그건 찾기 쉬울 것 같고. 연희도 요즘 사물놀이이 하도 흥해가지 고 장구 잘 치는 애들 많을꺼야. 어린 애들도. 그리고 각 사물팀은 다 있을 정도 니까. 뭐 그것만 봐선 안 되잖아. 연희라는게 꼭 장단뿐만이 아니라 연희라는게 무슨 탈춤도 있고. 김덕수같이 장구만 잘 친다고 하면 안 된단말이야. 口 2-6. 영채 시험을 보러 왔다. 뭐부터 시켜보시겠어요? 우선 뭐 우리가 내준 과제가 있잖아요. 과제가 있고. 얘가 제대로, 과제가 없다 고 할 때 선생님이 그 아이를 직접 바로 직접적으로 일단은 뭐 장르가 있잖아요. 우리 그 장르를 다 일단 시험을 보게 하고. 정악 음악이면 정악 음악. 또 뭐 러 가지 장르를 제대로 시험을 봐야죠. 그 정도는 되야지 영재가 되는 거지. 다 념나 들 수 있는 그런. 당장 뭘 시키시겠어요? 그럼 정악 시켜봐야지. 정악 뭐 상영산을 시키시겠어요? 아니 뭐 도드리도 있 고, 취타 같은 거 상에 관한 것도 있고, 하지만은 그런거 하고. 그런 담에 산조 한 번 좀 시켜봐야 되고 그 다음에. 그 다음에 시창청음 같은 거 악보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나. 시창 청음을 어떻게 테스트 하시겠어요? 취소한도 뭐 초등학교 수준이라면 뭐 저 코르위붕겐 정도. 그 정도는 읽을 알아야 되고. 중학교 수준이라면 콩코네 정도는 읽을 줄 알아야 되고. 그 정도 수준은 높여야 되지. 코르위붕겐 정도는 별로 어렵지 않잖아. 악보를 읽을 줄 아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죠. 필요하죠. 콩쿨에서 뽑아 낼 때, 돌아가요. 악보를 읽을 줄 모르면 템포 능력이고 뭐고, 선채 응? 니 n - L 머며 너 로 쨌 잖아요 악보를 읽을 줄 알아야지 머리가 싹싹 여 암기하고 귀로하고 암기도, 근데 난 다 공부했잖아요. 코르위붕겐, 콩코네까지 양악 시창을. 그렇 기 때문에 나는 탁 보면 다 읽지. 양악이고 정악이고 다. 국악이고, 다 읽잖아요. 나는 구음을 다 외워버렸잖아. 그런 정도는 갖아야지 최소한도 악보를 읽을 능 력. 우리 국악꺼진 더욱 좋지만 것까지 생각 안하더라도 그 양악 시창, 기본적인 시창을 할 줄 알아야지. 그래야 템포 감각도 갖을 수 있는거고 음정을 잡을 줄 알았단말이에요. 음정

295 악보를 봐야. 그럼 박자. 박자 관념이 투철해 지고 음정 관계가 정확해지고 그걸 험으로써 그래서 시키는 거지. 그게 그래서 그냥 시키는게 아니거든 센스야 그러고, 악보 는 센스라고. 창작하는 음악하는 사람들말이에요. 악보 충분히 다 보잖아. 그러니 까 센스로 보는거지. 그냥 더듬 더듬 읽으면 못해요, 그거. 선생님 청음은 어떻게 시험 보시겠어요? 그렴. 청음? 청음은 기본은 도 딱 눌러주고, 솔 오도, 딱 쳐주고, 읽어봐라. 솔. 초등 학교 정도는 그 정도 해주변 되. 육도 정도, 오도 정도. 거 자꾸 해주고. 중학교 정도문 악보를 볼 줄 알아야지"솔, 라, 솔 뭐 이렇게 해서, 최소한 사분의 사 박자 정도 그 이상은 해야지. 중학교 정도 이상이면, 좀 8분 음표도 나오고 해서. 선생념 청음을 보시는 이유는 정확한 댐포, 음정, 박자, 이런 요소를? 그렇지. 그걸 할 줄 알아야 음정, 박자 관계가 자기가 이런 담에 공부할 때 필 요한거지. 악기를 따라 해보기를 시키기도 하던데요? 그건 무용에서 하는 짓이지. 무용은 무용 사위 해 보라고 해요. 근데 기악에서 선생님이 한 번 해주고 따라 악보 였으면 된다는 생각을? 그렇져. 악보 악보 보고 읽을 줄 알고 정확한 음정을 갖고 불 줄 알면 되는거지 무슨. 여련 학생을 뽑을 때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애틀 뽑을 때 중요한 것이 뭘 까요? 이 아이의 음악에 대한 애정을 봐야 되는지, 그 애가 지금 잘하나 못 하나 를 봐야 될지 등등 어떤 것을 먼저 보고 뽑아야 할지 그 애 수준을 봐가지고 아까 얘기 했듯이 초둥학교 애들을 뽑으면 최소 고등 학교 정도 수준은 되야 되요. 영재래변. 근까 거기 수준을 맞춰야 되는거지. 아 얘가 깜짝 놀렐 정도로 고등학교정도 수준이나 되네. 그 정도면 영재감이지. 근데 그런 학생이 포기해버리면 안되는 것이죠? 뭘 포기해. 음악을. 하다가 왜 포기해. 포기할 놈을 왜 뽑아? 그걸 어떻게 알아봐요? 껴. 영재가 들어올 정도변 부모가 지원할 정도면 포기 안겠지. 아, 그래요. 영 재로 지명되고 학교에서 뽑을 정도면 부모님들도 벌써 껴를 이게 맘 먹고 들여 보내는 거지. 연습 삼아서 그냥 들여보내는 것은 아니거든. 그렇기 때문에 일단 부모님들의 마음가짐이 중요해. 부모들이 충분히 얘가 영재로 클 수 있는 자질을 가졌다 부모들이 생각하면 껴를 영재로 집어넣고 싶겠지 중간에 관두게 맨들지 않거든 웬만하면. 口 2-7. 선생님 예술가로써의 리더섭이라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예를 관현악단에서 선생님은 아까 그런 책엄감을 느꼈다고 하셨잖아요. 그런 -'::::...J a '-! :::: 섯를

296 알아 볼 수 있는 방법이 었을까요? 음악적인 리더십은 따로 없고. 리더십이 근데 뭐 합주단의 무슨 악장이나 통솔 할 수 있는 능력 음악을 자기가 끌고 나갈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건데 애들한 테 그런 것 까지 말할 필요는 없죠. 그래도 미래를 바라보는 것인데, 지도력 같은 것은 염두해 두고 머리 똘똘허문 뭐, 머리 좋아도 인품이 나쁘면 또 뭐. 창작성을 가지고 있으면 다 나올 수 있는거에요. 아 그래요. 口 2-8. 창작성, 그럽 지도력에서 굉장히 중요한가요? 그렴. 그렇죠. 창작성을 갖아야지. 자기가 창작성도 없고 남만 따라하고 흉내만 낼 정도면 그거는 안되죠. 창작성을 갖아야지. 그래야지 새로운 음악이 탄생하지. 선생님 따라 허고 흉내 내고 그런 거는 예술가로써는 적격이 못 해요. 그 거 판 소리에서 아주 부적격인거 아니야. 선생님 따라하는 것은 새로운 자기 길을 가야 하는 거 아니야. 가르쳐 놓고 니 특성되는 되로 가라. 니 특성되는 음악을 만들 어라. 판소리가 그렇잖아요. 선생님 따라하는 것은 거 저 무슨, 사진 소리 뭐, 사 진소리 그런거 안 좋잖아. 니 특성을 살려서 하는 그런 음악가가 되야지. 그런 재목을 뽑아야 해요. 선생 고대로 따라하고, 그게 아주 중요하다고. 창의성 있는 사람을 어떻게 뽑을 수 었을까요? 창의성과 창조성을 갖은 애들을 뽑아야 해 선생님 고대로 따라하는 애들 말고, 요걸 어떻게 알아 볼까요? 시험 볼 때? 뭐. 젊은 20 대. 그건 찾기 어려운데. 요새 똘똘하고. 저기 저 대화를 통해서. 대 화. 어 면접 면접이나 대화를 통해서 껴의 그걸 알아 볼 수도 있지. 면접에서 뭘 물어 봐야, 정말 창조성이 었나 알아 볼 수 었을까요? 음악가로써의 어떤 안목을 갖고 있느냐. 니가 음악을 허고 싶으면 어떤 음악을 만들고 싶으냐, 지금 21 세긴데, 지금 우리 음악이 머물러 있으면 안되지 않느냐 새로운 음악을 창조 할래변 앞을 내다 볼 수 있는 니 세대에 가서는 음악이 이 렇게 변할건데, 니 세대서 가서는 니가 어느 정도 커서는 어떤 음악가가 되고 싶 으냐. 어떤 예술가 그런 공연장에셔의 순발력은 어떻게 알아 볼 수 있을까요? 순발력은 시창 청음을 잘하면 순발력을 알아 볼 수 있어 공연장에서? 어. 현장 무대에 딱 셨을 때, 무대에서 버틸까는요? 어 그거는. 사람이 너무 저 조금 서 버리면 못 써. 뭐 이 학생이 꿈이 좀 커야 돼. 너무 좁은 마음 갖고 이게 협소한 마음 갖고 이렇게 있으면 무대에서 졸리고 못 한다고. 마음을 열고 내가 왕이다, 내가 여왕이다. 뭐 하는 그런 생각 갖고 대

297 범하게 무대 위에 올라서야지. 관중한테 딱 눌리고 벌써 그냥 무대 공포 질리고 연주가로써 그건 안 되 영재의 기교가 아년 창의력과 동기를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었 을까? 그걸 어떻게 알아 볼 수 았을 까요? 껴익 성격을 보면 알지. 성격이 얘가 직접적이고 큰 인물 같은 경운 말하는 거 하고 생각하는 것도 달러. 창의력을 음악적으로 어떻게 껴가 해결하고 있나를 볼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뭐. 그런 애는 뭐 창의력이 나오겠어요? 창의력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성숙하 고, 머리 수준이 어느 정도 되 있어야지 창의력이 나오는 거지. 어린 껴네들한테 답 구하기엔 좀 어렵지. 그렇잖아요? 머리 수준이 어느 정도 되고 재네들 맞는 지적 수준이 있잖아요. 초등학교는 초등학교, 중학곤 중학교 수준의 지적 수준이 있단 말이야. 중, 고등학교 초, 중, 고등학교, 그걸 조금 뛰어 념으면 영재지. 거 초등학교 똑같은 애들하고 일반 애들하고 똑같은 건 영재가 아니고. 지적 수준이 좀 높아야 해. 확실히. 지적 수준이 지적수준의 기준이, IQ같은 것 인가요?, 그렇지. 그런 것도 좀 높아야 된다 이거지. 학교 다날 때 공부는 뭇해도 음악 잘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건 공부 못한다고 IQ 가 나쁜건 아니야. 공부 못해도 IQ높은 사람 많다고. 음악을 잘 하기 위하선 머리가 좋을 수밖에 없다. 음악은 머리가 좋은 애들이 음악을 잘해요. 머리가 나쁜 애들은 음악을 못해. 장의력이 없어 그런 애들은. 1.2 단계에서는 갈 수 있지만 3단계는 못 올라가 그 런 애들은. 음악의 단계를 3으로 본다면 1.2단계는 누구나 다 해요.3단계 뚫기가 어려워. 마지막 장. 뚫을지 여부를 어떻게 얄아 볼 수 었나요? 그게 명의가 되가는 제일 어려운 길이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인제 그게. 껴의 음악적인 면목을 보면 알 수 있지만은. 후의를 알 수 있지만 은. 그렇게 봐야지 뭐, 음악적인 것을 봐서 얘가 앞으로 크게 되겠구나, 느낌을 받는거지, 口 영째를 발굴할 때 특별히 채안을 해 보고 싶은 방법은 혹시 없었나요? 개인 취미로 막 공연하는 애들 있잖아요. 그런 애들은 뽑으면 안 돼. 체계적으 로 공부하는 애들 있잖아요. 그런 애들을 뽑아야지. 체계적으로 공부하지 않고 그냥 취미로 공부하는 애들 있거든요. 선생 잘못 만나서 영터리 주법 엉터리로 그거하는 애들 있단 말이에요. 그런건 취법이고, 타법이고, 뭐든 게 제대로 공부

298 한 애들, 정식적으로 공부한 애들 그런 애들을 뽑아야지. 일단 그렇게 처음부터 이상하게 하는 애들은 타법이고, 취법이 쿠세가되고 못 고쳐. 선생 처음 만냐는 것은 학생 복인데요. 맨 처음 모르는 업장에서 만날 때는? 근데 고치기가 쉽지 않아. 한 번 어릴 때 공부 한 것은 잊혀지지 않기 때문에 그게 쿠세가 되버려. 웬만하면 안 고쳐져요. 그래서 평생간다고 그게. 그래 자기 의 쿠세가 음악적인 틀이. 평생 가. 안 고쳐져. 그래서 피라도 악기 처음 배울 때 가 중요해. 처음 배울 때 선생님이 어떻게 가르치고 어떻게 한게 중요하지. 잘못 한 번 가르쳐 놓으면 망가 되 그건. 선생 잘 만나서 제대로 정식적인 공부를 해 서 제대로 탄탄한 실력을 쌓아야지. 그냥 배워가지고 그러면 안 돼. 口 선발할 때 공정하려면? 계파니 제자니 등. 아니. 그런거 다 제쳐 놔야지 뭐. 일단은 공정하게 할라면 선생님 누구한테 배 운 거 쓰지 말고 일절 관계 스승 관계 그런 거 쓰지 말아야 해. 아주 백지 상태 에서 골라야지. 만약 판소리 송만갑 선생 계열이다. 거 부모님이 엄청남 국악계 또 엄청난 분이다. 거기 써 있으면 거 뽑기가, 안 뽑을 수도 곤란하잖아. 그렇잖아. 암묵적으로 아는 일들이잖아요. 그런 일틀을 배재하고 영째를 뽑으려면 어떻게? 거 그런거 없애버려. 인적사항을 없애버려 다. 인적사항과 학습사항을 모든 결 제로 상태에서 보고서 봐야지. 누구한테 배우고 누구한테 배우고. 뭐 이거 벌써 선업견 들어가지고. 아 얘 잘 되겠구나. 이렇게 생각한단말이야. 그럼 아예 영재 서류 전형에서 누구한테 얼마큼 배웠고를 아예 아예 묻지 말고. 백지 상태에서 그 애를 봐야지, 누구 끄나풀이 있어 가지고 보게되면 사람의 마음의 부담이 생 겨가지고. 누구 아들이 온다 그러면 아무튼 뭐 곤란하다고. 그거, 똑같은거야 그 게. 그냥 아무 아들도 아니고, 아무 그것도 없이, 기냥 백지상태에서 채점하는게 제일 맘 편한거야. 그건 내가 경험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거, 암묵적으로 알죠. 서류 때문에 아는것이 아니 잖아요. 아니 암묵적으로 알지 말아야지. 허허허. 얼굴 못 생긴 거 어떻게 알어. 아 얼 굴까지, 그러면 순위 저냥 막 바꿔 놓고 묶어 놓고 우리 오디션 볼 땐 그래요. 왔다가 또 바꾸고. 공정하게 하기 위해서 그럼 면접 바꾸고 막 그래요. 바꾼다고, 요즘 뭐 그렇게 엄격하게 해. 근까 워 막 쳐 놓고 허지. 근까 누가 누군지 알 수가 없어. 자기 제잔지도 몰라 그건. 톤 칼라라는게 있는데 내 제자다 싶은 그런 건 없나요? 근데. 그게 수 십명 허는데 몰라요. 못. 못 찾아낸다. 팬만핸 사람도, 근데 싸인 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음악이라는 건. 싸인 가지고 제자 골라내잖아. 뭐 하나. 음악. 뭐 하나 이렇게 해라. 가락하문 요건 넣라 안 넣어라. 고거 가지고 싸인이 되는거야. 대학에서는 학생을 뽑을 때,

299 口 전통예술 영재가 성장한다고 할 때 가장 걸렴돌아 되는게 뭐라고 생각 하세요? 근데 너무 애한테 너무 학부형이 집착을 한다든가 선생이 또 너무 껴에 대해 서 너무 집착한다던든가 그래서 포로화시키면 안 돼. 내 제자, 선생을 몇 사람 바꿔 줘야 해. 한 맛만 허지 말고 이것 저것 하게 해야. 하게 해야. 이 맛 저 맛 다 보게 해줘야 돼. 껴한테, 음식도 여러 가지 맛보게 하듯이. 그래야 살 찌 듯 이. 한 가지만 먹으면 안된단 말이야. 스승도 몇 사람 둬야 돼. 만약에 2년 음감 을 배운대면 2년 반에서 3 명 정도는 선생을 둬야 되요. 한 선생한테 쭉 배운대면 껴는 포로. 음악적인 포로로 맨든다고. 창조성을 발휘할 수 없게 만든단 말씀, 그렇게 맨들 수 있고 색깔이 하나의 색깔 밖에 못 밖에 못 만들어. 음악을 여러 가지. 다양성? 그럼. 음악은 다양성을 갖아야 돼. 창조성이나 다양성에 다 안 좋다. 그렴, 음 악은 다양성이 있어야지, 한 가지 색깔만 갖으면 안 돼. 그럼 애를 망치는 거야. 요즘에 큰 문재라 생각하시는 건가요? 고런 걸 배제할 줄 알아야해. 口 선생님 그러면, 전통 예술 영찌가, 음악가로써, 미래에 감당혜야 할 일 들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자기네들의 음악적인 영역을 넓혀가야 해. 껴가 그니까 음악 복지를 통해서. 또 해야 되고 또 자기 신분의 상승을 높일래면 악단에 취직한다든가 좋은 악단 에 취직한다든가 좋은 그룹을 갖고 있다든가. 또 해외가서,자기 음악 발전을 위 해서 뭔 대든가. 국내 말고. 그러한 개인적인 활동 범위를 넓혀가지. 미래 음악계의 상황은 달라질 헨데요. 그래서 꼭 나는 음악성 좋고 그런 사람들은 악단에 취직하지 말라고 그래. 플 레이어 프리랜서가 되라 그래. 프리랜서가 자기 음악을 할 수 있는거지. 악단에 매여 있으면 그 악단의 노예가 되어버려. 그래가지고 돈 몇 푼에. 그냥 죽어 있 기 때문에 자기 음악을 발휘 못 해요. 상자 안에 있는 음악가야. 그걸 벗어나야 지. 그래서 원일 얘길 간혹해요. 내 제자지만. 너 국악 취직해라 취직해라해도, 안 해. 고건. 올 놈인데 안 와요. 시립갔다가 5-6개월 만에 그냥 나와 버렸어. 프 리랜서야. 그 지네 음악 활동하고. 철학적인 음악도 이만큼 컸잖아요. 그래서 그 냥. 지 공부할 것 혼자 다 해가지고 그냥, 어, 피리 부는 놈이 그냥, 장구도 잘치 고. 그냥 별거 다 하잖아요. 이는, 껴를 내 보는거야. 거 강은일 같은 애들. 프리 랜서들이 자기 음악성을 펼칠 수 있는 무대를 넓혀야 돼. 한 무대 가지고는 안 돼. 양이 안 차. 그 끼가지고는 감당 못 해. 세계를 넓히라는 말씀이시죠. 넓혀야지. 그 영재들은 앞으로 세계를 넓히는 그 악단에 취직하는 것을 목표

300 삼지 말고 자기 그 음악적인 그 걸 필 수 있도록 넓게 보라 이거지. 전통 음악과 관련된 영재들한테 과제를 주신다면? 그건 언제. 쫓 장부를 만들지 말고, 대장부를 만들어야 해. 그러니까 인물을 그 인물을 맞게 키워야 해. 선생 그게 커요., 말 한마디에 굉장히 크다고. 그걸 좌우 하는 수가 있거든 그러니까 선생이 길을 열어줘야 해. 선생이, 넌 이 쪽은 이렇 게 해라. 이렇게. 껴네들은 뭐 모르거든, 그래. 선생이 한 마디. 선생이 가는 길을 지정해주고 또 애를 자꾸 그냥 능력을 자꾸 평가해주고, 자꾸 키워주고, 격려해 해주고 그래야지, 그래야 껴가 가는 길이 커지고, 커지지. 자꾸 야단지고 못한 다 못한다 뭐 저기하면, 껴가 주녹이 들어서 헐 것도 못해요. 자꾸 기를 살려 줘 야 해. 기. 나는 나한테 배우는 애들, 공부하는 애들, 되게 욕을 안 해요. 야단 잘 안쳐 기를 살려주지. 잘 한다 잘한다 하지. 그런 식으로 기를 살려주고, 칭찬을 많이 해주고, 그래야 돼. 과거에 끊겨지면 안 된다 l 런 과제가 었였다며는 요즘은 또 다륜 과제가 있 을것 같아요 지금은 국악원 새로 시작하는 단계나 마찬가지거든. 사실 어떻게 보면, 50년대부 터 지금까지, 50년대는 이젠, 고전의 발굴, 그거에, 원형 보전, 저 70년대는 발전의 단계고 지금은 완전히 어느 정도 수준에 와 있거든 2α)()년대는 이때는 더 안목으로 이 멀리 보 전통예술으로 보지 말고, 전통 예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음악, 창조 성 그런걸 길러 줘야지, 전통만 가지고 매달리다보며는 사람이 째째해져요. 전통에 관련된 충분한 기량을 전제 했을 때, 뭇언가요? 다른 것들을 볼 수 었게란 어떤 전통을 포기하라는 건 아니지. 그 바탕에서, 전통은 일단은 바탕이 튼튼해야 되 요. 튼튼한 상태에서, 보는 눈이 시야가 좀 넓어야지. 시야가 넓게 보게 끔, 선생 이 얘기를 해주고 교육을 시켜줘야 되요. 한 조금만, 넓게 보는, 시야를 좁게 보 게 끔 하지 말고, 넓게 보도록 자꾸 해줘야 해, 전통의 바탕이 충실해야 돼. 전통 의 바탕이 충실치 않으면 절대 안 되는거고. 다 어려운 얘기야. 내 얘기가 이게 망상적인 얘기고, 이런 얘기가

301 지순자 口 1-1. 당신을 영째라고 생각한다. 동의하는가? 영재라는 생각은 안 해요. 어떤 사람이든 보통사람 생각에는 부모한테 피를 물려 받았다 이렇게 얘길 하는데 저는 환경이라 생각하거든요. 어떤 사람이든 부모가 국 악을 안했어도 그 사람이 국악 환경에 놓여지면 잘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口 1-2. 어련 시절(대략 10세미만, 톨챔이 무렵 둥 예술교육 연령 이전) 부모나 주변에서 이야기하던 당신만의 행동특성이 있었습니까? 그거는 특별하게 보여지는 거 보다 어 5살 때부터 공연을 다녔으니까. 그때 춤 을 췄고 어머님 아버님이 순회공연을 할 때 내가 승무를 췄고 무대에서 벌써 그 때 연주가 활동했었던 거죠. 그러니까 아주 어렸을 대 애기 때는 그렇게 반응하 기 보다는 리듬 이런데 민감했다 그러더라고요. 口 1-3. 우리가 당신을 영재라고 부르기 이전인 어련 시절에 당신의 째능을 타 언이 알아 본 적이 있었던가? 알아봤다면 그건 타인이기 보다는 아버지가 아버지가 인제 재주가 많다 해가지고 많은 결 가르쳐 주실려고 했어요. 口 1-4. 동료나 작고한 전통 분야의 인물 중에 영찌라고 생각하는 인물은? 내가 느낄 때? 그 나는 부모님이 국악을 하셨고 그 환경에 있었기 때매 다른 사람을 볼 기회는 많지 않았어요. 그냥 아버지 어머니 그렇게 보고 어머니랑 아 버지랑 같이 음악하시는 선생님들을 봤고 그런 생각을 하기에 그땐 나이가 너 어렸고 그런데 지금 묻는다면 내 부모님이 영재가 아니셨나 두 분 다 너무 하시고 특히 아버님의 이론에 대한 논리는 지금도 어떤 사람하고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하고 날카롭고 그거를 계승시키는데 굉장히 노력하신 분이고 보면 아버님이 시대를 너무 빨리 앞서서 가셔서 꽃을 못 피우셔서 그렇지 지금 쯤 아버님같은 분이 있었다면 굉장히 국악이 좀 더 많이 발전되지 않았을까 그 런 생각을 해요. 아버님 지영희 선생님, 어머님이 가야금하시는 성금연 선생님 당신이 본격적으로 스숭을 모시고 학습이 시작된 시기? 시기는 어 내가 인제 어 어머님 아버님이 아년 부모님이 아닌 다른 분에서 공 부한 게 8세 때 박철 선생한테 판소리 공부를 한 2년 정도 했어요. 그리고 그 9 살에 김연수 선생님의 우리 국극단의 그 어린 심청으로 공연을 했고, 한 달을, 그리고 아마 그때가 고등학교 1 학년 땐가 전사섭 선생님한테 음 그 설장고를 배 웠고 그 담에 인제 시 립 관현합주단에 그때가 1969년도 70 1 년도쯤인 거 같아요. 그때 시립 관현합주단에 취직을 해서 한영숙 선생님께 살풀이를 좀 배웠는데 그 이전에 5살부터 내가 아버님한테 무용을 배웠으니까 무용의 기본은 원래 있었죠. 그러니까 특별히 다른 선생님을 모시고 공부할 기회는 많지 않았어요. 그리고 인 292 -

302 제 좀 아쉽다 하는 점은 내가 우리 아버지한테 아버지가 나를 이렇게 해 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은 민속악과 정악이 갈리지 않고 좀 나한테도 그 정 악을 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더라면 좀 더 두 가지를 다 알고 가면 더 훨씬 좋았 거 같다는 생각, 그때는 서로 민속과 말하자면 정악이라는 말조차도 정악이라 말조차도 고유명사로 되었는데 풍류가 정악이었어요. 풍류가 바를 정자 바른 음악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내가 아버지한테 배울 때는 마음을 바르게 해 주 는 음악 이래서 바를 정자를 써서 음악 악자인데 그렇게 가진 음악들을 서로 상 호 잘 교류 교류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이런 게 아쉬운 점으로 있어요. 口 1-7. 음악가 집 안인가? 네. 그거는 음악의 기본 이죠. 음악의 기본이라면 첫째는 박을 꼽고, 그 담에 멜로디 그 담에 화성이거든요. 박자가 잘 맞아야 일단은 음악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고, 거기에 주어진 음들이 있을 거 아니예요. 음악과 박이 잘 맞으면 거기서 크고 작은 소리가 나게 되고 그 담에 어른들이 많이 하는 말이 있어요. 간지가 있다, 이런 말, 맛갈나다, 붙을 때 붙고 떨어질 때 떨어지는 그런 느낌들이 굉장 히 중요한데, 요즘엔 그런 게 없다는 거죠. 그러니까 음악에 기교를 둔다면 제일 첫째로 박을 두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저희 아버지 같은 경우가 아 이들을 지도할 때, 내가 학생들에게도 하는 얘기인데 음정이 툴리면 주로 가야금 많이 했으니까 와서 고쳐 주세요. 아 이음은 너무 높아 이 음은 너무 낮아 그 러고 안족을 고쳐주시는데, 박이 툴리면 주변에 있는 것이 바로 날라 와 그 리는 그 순간에. 어렸을 때는 나는 그런 일을 한 번도 당한 적이 없었는데 뭐 제 자들이나 주로 제자들이 많이 당하죠. 그래서 한 번 내가 아버지한테 아버지 왜 꼭 그렇게 휴지를 던지고 재떨이를 던지고 하세요? 하니까 그거 그 순간을 놓치 면 기억을 못한다는 거예요. 툴리는 부분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 어필하기 위해 서 그게 옛날 선생님의 가르치는 방법이었어요. 口 1-8. 자기발전의 동기는 어떻게 부여하셨습니까? 나 같은 경우는 뭐 본인이 원해서 되기보다는 뭐 환경에 젖어서 했고 그 담에 나가면 일단은 내가 누구보다 못하는 게 아니라 누구보다 잘한다는 평을 들었었 어요. 그러니까 경쟁의식도 사실 있었죠. 있었고, 져서는 안 되는 왜냐하면 그런 거니까. 그거 이전에 그 경쟁을 하기 이 전에 내 부모님이 그거를 신랄하게 비판 하잖아요. 잘못하는 거는 용납이 안 되었기 때문에 어디 가서 내가 저 사람이 나 보다 잘하느냐 못하느냐 이게 중요한 게 아니었고 어 내 부모 내 선생님한테 이 거를 야단을 맞느냐 안 맞느냐 칭찬을 들었느냐 안 들었느냐 이게 굉장히 중요 했어요. 그 담에 훨씬 시간이 지난 다음에, 어려서는 음악의 깊이를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잘 했다고 칭찬받으면 굉장히 좋은 거고 그런데 음악을 하면서 느낌 갖게 되죠. 음악이 내가 느낌하고 딱딱 맞았을 때 뭐 음악적으로 쥐었다 놨다라 는 말, 맺었다 풀었다라는 말, 음악적으로 잘 구성이 되면 음악에 대한 만족도가 있어요. 그렇게 평가를 하죠. 때

303 口 1-9. 전통예술에 대한 당신의 집안 분위기는 어떠했습니까? 저희는 집안 분위기라고 하면 잘 때 그러니까 음악소리 가야금 소리를 들으며 깨고 잘 때도 그 소리를 들으면서 갔어요. 생음악을. 선택권이 없었어요. 요즘처 럼 아파트 생활이 아니고 주택에서 주택이 많아야 세 개 아닙니까. 방 하나는 가 야금이니 학생들이 와서 공부하고 뭐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늘 같이 생활했지요. 口 어련 시절 당신의 연습량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연습량이라 하면 어린 시절, 아주 어렸을 때는 연습을 특별하게 하기보다 듣고 보고 따라 흉내내기였죠. 그런데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어머니 학원 을 조교로 있음 샘이예요. 왜냐하면 집이 학원이니까 학생들이 오면 어머니는 안 계시죠 그래서 그 학생들을 가르친 세월이 제가 만 6년을 초등학교 4학년 중학 교 고등학교 1,2 만 6년을 학생을 가리키는데 그 시간이 보통 내가 생각할 때는 5시간 이상이었어요. 같은 걸 반복을 하고 그렇게 해서 음 아마 특별히 내가 따 로 연습 한 것이 아니라 가리키면서 늘었다고 생각해요. 口 연습과 연주 외에 음악 감상을 할 수 였었습니까? 있죠. 인제 그 청소년기에는 나름대로 그 때 통기타 음악, 팝송, 포크 송 그런 거 너무 좋아해서 기타가 굉장히 치고 싶어 기타를 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거 하다보면 밤을 꼴딱 새는 거죠. 한 8시간 씩. 치다보면 나름 기타도 조금씩 쳤고, 그 시절에 60년도 후반기죠. 후반기까지 그런 음악들을 많이 들었어요. 아했고, 그리고 과정 중에 대학교에 가면서 클라식을 좀 듣게 되었고 심취까지는 못했지만 이 국악을 하면서 그걸 알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리고 학 교 다니면서 내가 공부를 썩 잘 할 수 없었어요. 별로 잘하지는 못했어요. 환경 적으로 공부 할 시간이 없었으니까. 암기력이 좋았는지 국악에 대한 국악사, 국 문학을 굉장히 잘 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국사에 대해서는 아는데 서양 음악에 대해서는 모르니까 우리가 비교를 할 수 없더라구요. 그래서 공부를 서양 음악의 역사를 놓고 우리 국악을 비교하는 것을 좀 했었지요. 대게 재미있더라구요. 시 대별로 논해 보니까 그리고 서양음악에도 천재들이 많잖아요. 우리가 아는 사람 중에 피아노 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런 사람에 대한 생각, 그 담에 세계에 전쟁하고 많이 맞물려 있는 음악들을 듣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口 전공 분야 외에 다른 예술분야에 대한 학습과 경험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조절이라기보다 우리는 연습을 하면 될 때가지 했어요. 뭐든지. 안 되면 안 되 는 거니까. 그게 10시간이 걸리든 20시간이 걸리든 될 때까지. 여러 악기라변 인 제 내가 할 수 있는 게 주로 지금 인제, 가야금, 뭐 장고, 그죠? 해금 그 정도예요. 물론 아쟁도 뭐 만져서 하긴 해도 해금도 아버지한테 배웠지만 너무 오래전 어려 서, 18세에 배웠는데 해금할 시간이 그렇게 넉녁지 않아서 지금도 뭐 내 놓고 해금 전공자다 할 수는 없지만 하는 방법과 듣는 거는 굉장히 잘 알고 교육도 할 수는 있어요. 그런데 인제 순으로 본다면 장단이 중요해요. 그래서 내가 영재 교육 프로 그램에 부탁하고 싶은 게 정확한 박을 가르치라고 꼭 얘기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304 우리 국악은 고무줄 박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말하는 데 그건 굉장히 잘못된 말이예 요. 그런데 음악에 따라서 호홉으로 갈 수 있는 음악이 있어요. 그건 서양음악도 그 렇고 서양음악 중에 성악같은 거는 부르는 사람의 호흡에 따라 움직이거든요. 이 기악곡은 그렇지 않단 말이예요. 기악은 내가 폐활량으로 그걸 가져가야 하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그걸 공감하지 않으면 똑같은 박으로 같이 움직이지 않으면 타점 이 안 맞고 타점이 안 맞으면 강약조절이 안 된다는 거죠. 현재 우리 국악에서 그 게 제일 문제가 있고 또 하나는 음정 맞추기. 현재는 튜너기를 써서 서양악기 기준 으로 맞추잖아요. 가야금도 문제가 굉장히 많지만 가야금은 그래도 튜너기를 대 놓 고 맞추고 있어요. 거문고 같은 게 불안정해서 안 맞아지고, 특히 관악주자들이 자 기가 튜너로 할 때의 내는 음과 실재적으로 연주할 때 내는 음이 달라요. 자기 음 배음으로 지키지를 못하고 있는 거. 이게 현재 우리 국악 관현악단의 문제거든 요. 합주단이 보통 명이 연주를 하는데 똑같은 음정을 못 맞춘다 이거 되겠 어요? 똑같은 박을 못 맞춘다 이거 되겠어요? 형식은 서양 형식을 따라가면서 근본 적인 건 안 지킨다는 게 상당한 문제라는 거죠. 해금, 장구, 아쟁 등 여러 악기가 선생님의 주 전공 악기인 가야금과 어떤 영 향 관계가 였으신지요? 있겠지만 해금이나 아쟁같은 것은 가야금과 거의 같고 선율 악기기 때문 에, 그런데 장단을 쳤을 때 예를 들면 우리가 박자를 세마치 같은 경우 세 박자 로 보는데 그 나누어 보면 9박이 되요. 그런데 9박 리듬을 다 내가 다 칠 수 있 으면 가야금 가락을 9박으로 뜯을 수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12박이 될 때는 12 개를 뜯을 수가 있고,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특히 이 때는 따라는 오는데, 기악 연주자들은 장단을 쳤 자기가 스스로 바리에이션이 안 되는 것은 리듬 그 구 성을 모르기 때문에 그래서 제일 중요한 것이 장단이예요 전통적으로 애기명창, 소년명창 이란 말이 었습니다. 이 말에 대한 평 가 부탁합니다. 그게 어 나는 두 가지 다라고 생각하는데요. 타고 나는 아이들도 있지요. 음악 성이 특출해서. 그런데 이 과정 아이들을 교육하는 과정에서 예를 들어서 5살짜 리가 판소리를 해요. 예를 들어 1 시간짜리를 했다고 칩시다. 그런데 그 5살짜리 가 판소리의 완성도는 완성이 안 된 거거든요.5살 나이에 얹어서 봤을 때 껴가 잘하는 거지 얘가 명인의 대열에 놓고 보면 터무니없이 부족한데도 불구하고 사 람들은 이 아이를 잘 한다고 합니다. 잘한다고 하면 그 나이에 비해서 잘하는 거 이 아이는 자기가 잘하는 걸로 생각을 하죠. 그러면서 점점 나이가 먹게 되잖 아요. 20살에는 5살에 명창이면 20 살에는 정말 명창이 되어 있어야 하거든요. 그 런데 이 아이의 생각이 자기가 벌써 잘 부르기 때매 그 아이의 마음에서 노력 을 안 하는 거죠. 자질이 있어도 과정 중에 노력하지 않으면 그거는 안 되는 거 기 때문에 예를 들어서 나는 잘 모르지만 몇 년 전에 유태평이 엄청 명인이다, 어린 아이 명인이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제가 그 때 벌써 15년 전 쯤 될 거 같아요. 그런데 내가 그거를 보고 아, 아이 하나를 어른들이 잡는구나 이런

305 생각을 했어요. 왜냐하면 그 아이가 충분히 명창이 될 수 있는 자질인데, 어 이 위에 올려놓고 까불었기 때문에 얘는 크질 못하는 거죠. 그래서 지금은 어떻 게 하고 있는지를 모르지만 옛날에 어른들 말이 그런 말을 했어요. 우리 부모님 도 나를 앞에다 놓고 잘한다는 말 진짜 안 하셨거든요. 그건 자식뿐만 아니라 제 자들도 잘 하지만 앞에서 잘 한다는 말을 대게 아끼셨어요. 그리고 거꾸로 그렇 게 해서 되겠어? 조금 더해야지. 그게 음악이 더 만들어져야지. 이렇게 야단을 치셨지, 그리고 뒤에 가서는 채가 정말 잘 해. 그런데 그걸 뭐라고 하시냐하면 자꾸 잘한다 하면 어른들 말로 고가 넘어 이런 말씀을 하죠. 고가 넘어 이 말 이 뭐냐 하면 쉽게 말하면 우리가 왜 간장이 간장이 이렇게 념어 버리면 맛이 없죠. 더 쉽게 말하면 김치를 담궈서 익으라고 놨어요. 김치가 적당히 익어야 맛있는데 이게 갑자기 온도가 올라서 혹 뒤집어 졌을 때 국물이 혹 넘어 버리면 그 김치가 맛이 있어요? 그거는 찌개로도 못 끓여 먹는 김치가 되는 것처럼 바 로 그게 고가 넘는다는 말이더라고. 어려운 말이예요. 잘 숙성해서 얘가 잘 되면 굉장히 좋은 재목인데 미리 넘어버리는 거죠. 그러니까 5살 그 나이에 그 실력이 고게 끝인 거라.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어린 아이들 명창 뭐든지 그래 이거 소리뿐만 아니라 우리가 연예인들 배우도 그렇잖아요. 아기 탤런트나 배우 애 이 굉장히 잘했는데 그 아기가 큰 배우로 크기가 너무 어려운 것처럼 그거는 똑 같은 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요즘 보면 그 현대적으로 많이 문화가 좋아져서 그 런지 재주 있는 얘들이 대게 많아요. 그런데 그 재주만큼 아이들 중에 크는 애들 이 없다는 거, 너무 내 놓지 않고 잘 가꾸어서 재목이 되었을 때 딱 내놓아야 되 는데 미리 내 놨기 때문에 안 된다는 생각. 그래서 생각은 두 가지 다 라는 거. 口 2-1. 전통예술에 영째가 었다고 생각하는가? 있지요 전통예술영째라 할 만한 아동을 보신 적이 었습니까?(초등 중등 고등) 제가 많이 안 돌아 다녀서 그런지 아직은 못 봤어요. 口 2-3. 전통예술영째 선발에 적절한 연령은 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해당전 공 전통일반) 사람들이 말하기를 어려서부터 해야된다라고 하는데 물론 훈련과정에서 그게 필요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면, 나는 내가 원하지 않은 환경에서 커서 굉장히 중요한 시기에 가야금을 놓은 적이 있어요. 그게 왜냐면 본인이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중에 어른이 되면 안 하고 싶어지는 거죠. 그래 서 너무 어린 시기에 아이를 강압적으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어려도 환경적으로 즐거워하면 그걸 당연히 시켜야 하지만 애가 재질이 있다고 밀어붙이기 시작하면 그거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특히 전통 은 너무 어린 나이에 밀어붙이는 것은 저는 안 좋다고 생각해요. 나도 교육을 해 보고 나도 그런 교육을 당했지만 이 음 그 모르겠어요. 이 가야금을 잘 타려면 3 년 공을 들이면 효과가 나게 돼 있거든요. 그런데 현재로는 교육방법이 옛날하고

306 많이 다르다는 거죠. 그래서 지금은 30년을 해도 옛날 6개월 했던 사람의 소리만 못내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것을 봤을 때 억지로 아이들을 그렇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데 이런 것은 있어요. 지금 뭐 북한이나 중국이나 이런 데 아이들 적성 검사를 해서 그 아이들을 똑같은 능력이 있는 아이들을 한 군데 환경으로 몰아 넣잖아요 그건 굉장히 발전이 있을 거예요. 경쟁의식을 주고 다 같은 환경이 되어 있으면 선택권이 없어도 해야 된다는 욕심이 생기잖아요. 그렇게 만들지 않는 한 일부러 얘가 재주가 있으니까 밀어붙이기 식으로 하면 언젠가는 도중하차를 하는데 가장 황금기에 놓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口 2-4. 무엇이 전통예술분야 영재성이라고 생각하섭니까? 생각나는 대로 무순 으로 말씀하셔도 팬찮습니다. 성악이면 우선 성대가 좋아야 되고, 그렇지요? 박은 물론이고, 음정, 박이 기본 으로 좋아야 돼요. 그래서 옛날에 판소리 하는 사람들이 성대가 부족하면 병창을 했다고 해요. 옛날 사람들은 소리만 하지 않고 기악도 다루었기 때문에 기악으로 러나 앉는 경우도 있어요. 분야에 따라 다르죠. 무용을 하게 되면 몸이 갖춰줘 야 할 게요, 무용하는 사람이 뚱뚱하다건지 손발이 짧으면 아무래도 스케일이 작 아질 테니 그러니 그 조건을 맞추어야 겠지요. 가야금 같은 경우 내가 볼 때 음 모든 악기가 마찬가지겠지만, 리듬을 제일 먼저 가리켜 줘야 되고 요즘 교육이 잘못된 게 뭐냐면 서양 악보를 놓고 가르켜요. 서양 악보는 네 칸이잖아요. 그 네 칸 안에 우리 미분음을 그렬 수 없는 거. 또 하나는 가야금을 시작할 때 산조 부터 한단 말이예요. 그리고 상영산이나 오래 긴 박자를 아이들로 하여금 기다리 게 하는데 아이들이 박이 긴 것도 못 기다리지만 그게 몇 박자인지도 모르고 그 박자 형성이 되어야 되는 맨 첫 시기에 그냥 선율만 풀어버리는 거죠. 그런데 가 야금 산조라 하면 피아노로 말하면 소나타 곡이예요. 소나타는 맨 마지막에 치는 콕인데 우리 가야금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 국악의 지금 교육은 거꾸로 가고 있 는 거예요. 소나타를 먼저 가르키고 나중에 기본을 하는데 기본을 전혀 모르고 하는 거예요. 현재 제가 미국에 었다가 들어온 지 10년 되었어요. 그래서 내가 가르쳐 보니까 교육이 기본이 잘못 되어 있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가르키면서 아이들한테 하는 이야기가 재주가 있어야 되기도 하지만 참 하느님이 공평하신 지 재주 있는 얘들은 절대 노력을 안 해요. 재주 없는 얘들이 노력을 하는데 자 지금 우리가 기득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재주 있는 사람보다는 재주 없 는 사람이 훨씬 많아요. 현재 우리 국악계 구조가. 그런데 서양 같으면 재주 있 는 사람들 하고 그 사람틀이 노력하는 사람이 그걸 차지하지만 한국엔 아직 부 족한 게 대게 많으니까 음악에 대한 것은 뒷전이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다 차지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 아마 이런 인터뷰가 그래서 필요한 거예요. 실질적 으로 음 우리가 학자가 있냐? 학자가 있으면 그 담에 교육자가 있어야 하고 연 주가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 현재는 이게 다 다 이렇게 섞여 있잖아요. 그리고 학 자들이라고 미안한 이야기지만 현재 국악학자들이 국악을 논하는데 그분들이 써 내는 책이나 이런 걸 보면 아 이 사람이 정말 국악을 아는 사람인가? 하고 의심 되어지는 글들이 상당히 많거든요. 그러니까 그분들이 그거를 쓸 때 나는 최소한

307 도로 나는 전라도 음악 육자배기 하나는 부를 수 있다 그러면 no problem. 그런 데 경기 민요 시조 정가 이런 부분 성악 쪽의 한 부분도 못하면서 글을 쓰는 거예 요. 어떻게? 이랬을 것이다. 이랬다 한다. 이랬다. 그러고 매도하게 되는 거죠. 그 런데 음악과 너무 차이가 나니까 지금 현재 2008년도에 사는데 지금 공부하는 얘 들이 무지하게 힘든 거예요. 자, 기본도 안 닦였고 이론도 안 맞지? 그러니까 찾아 갈 때가 없는데, 듣는 귀는 안 열려 있지 이런 것들이 굉장히 답답한 거지요. 口 2-6. 선생님은 해당 전공의 영재를 알아볼 때 무엇을 어떻게 해보시겠습니 까? 노래를 부르게 하나요? 춤을 추게? 구체적으로 어떤 노래 행동을 시켜 보시는 지요? 아. 사람을 하나 만났다, 시켜본다. 그러면 옛날에는 국악예술학교에서 학생들 을 뽑을 때 무조건 장단을 치고 춤을 춰보라고 했죠. 그럼 학생이 춤 안 배웠는 데 하면 그래도 니가 한번 표현해보라 하죠. 그러면 그게 자진모리일수도 있고 굿거리 일수도 있고 어떤 장단들을 쳐 주변 얘가 어떤 리듬 감각이 있으면 그 결 가깝게 뛰어요. 그런데 굿거리 쳐 줬는데 빨리 뛰면 이건 안 맞는 거 잖아요. 그러니까 리듬을 느끼는 필을 보는 거죠. 그런 필을 보면 얘가 어느 정도 얘가 이런 감각이 있다, 그 담엔 노래를 시켜 본다든가 소리를 시켜 보면 더 알 수 있고. 口 2-7. 어련 영째들의 선발에서 중요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뛰어 난 예술 성취 능력(재능), 연습 및 예술가적 설현에 대한 끈기, 열정, 예술가 로서의 책임감과 리더쉽, 공연현장에서의 순발력 둥 지금 다 필요한 건데 제일 첫째는 노력이라고 생각해요. 지구력, 그리고 나중에 예술성에 순발력이야 훈련에 의해서 생겨요. 무대에 세워주고 여러 번 반복하게 되 면 익숙해지잖아요. 꼭 그렇게 해라 안 해도 돼요. 제일 중요한 게 지구력이고 무엇 보담도 환경이 제일 증요해요. 환경을 만들어 주변 아이들이 하고 싶어지고 그런 환경이 안 된 상태에서 아이들더러 하라고 하면 상당히 무리일 거라고요. 口 2-8. 전통 관련 영재 발굴에서 어떤 지표가 가장 중요합니까? 중요한 순서대 로 말씀해주십시오. 지금 우리 전통이 제대로 안 가고 있으니까 이런 플랜을 하는 거겠지요. 그러 면 이건 제 노파심일 수도 있는데 지금 국제 사회에 있어서 지금 현재 우리 국 악이 창작이다 뭐다 크로스 오버다 해서 그 뿌리를 잃는 음악을 굉장히 많이 만 들어 가고 있잖아요. 내가 김혜숙 원장한테도 가끔 하는 말인데 왜 전통예술원이 라고 이름을 붙였어요? 그냥 창작이라고 창작원이라고 뭐 국악 창작원이라든가 이렇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럼 그 사람은 지금 하고 있는 음악이 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전통이 된다, 이 런 얘길 해요. 그래서 전통원이라는데 내가 알고 있는 거는 나는 그거는 아니라 생각해요. 내가 웃으면서 그렇다면 서양 음악을 우리가 보통 클라식이라고 하죠. 그런데 그것도 뭐 트러디셔널이나 폭 뮤직이냐 모던이냐 종류가 짝 있어요. 그러면 그 사람들은 그런 생각이 없어서 지금 그 그 김혜숙 교수가 그렇게 말하는 거는 예를 들어서 푸치니도 전통음악원이라고 얘

308 기 하고 싶은 거고 어 누구냐 영국의 그 누구지? 유명한 그룹 사운드 비틀즈도 전통이라고 말해야 되는 건데 전통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에. 그거는 어느 시대의 어떤 음악이라고 표현하지 그걸 트래디셔널널 뮤직 (traditional music) 이라고 표현 안 한다 말이예요. 그러면 우리가 고대 음악이 있 고, 중세 음악 근세 음악을 가름면서 시대적으로 나누어 이렇게 발전하고 발전을 논하면서 지금의 음악은 이렇다 평하잖아요. 내가 미국에서 22년을 살았어요. 내 가 소수 민족으로 미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아마 좀 더 그런 생각을 많이 하는데 뿌리라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거거든요. 그래서 지금 많이 섞여서 지금 창작을 우리가 음악을 오선보로 구성을 하는데 우리 전통 음을 잃어버린 것이 굉장히 많아요. 예를 들어 노래를 하면 아라리(노래)이 우리의 국악의 가장 대표인데, 내 가 그 미국에 살면서 이렇게 꺾는 음은 한 번도 접해 본 적이 없어요. 우리나라 외에. 그런데 다른 음계들은 우조 메나리 음계는 다 같은데 이것만은 없어요. 근데 지금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표현하냐면 (노래) 이렇게 표현해요. 이거는 지금 서양 음계의 피아노 음계란 말이예요. 지금도 다 그렇게 가고 있어요. 가야금, 대금, 해 금, 다 서양식으로 표현해요. 소리만 그렇게 아직 안 변하고 있어요. 남도소리만. 고기서만 남아 있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늘 얘기할 때 현재 음 우리가 서양음악 과 같이 가게 되면 우리는 상당히 불리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고정음이 아니고 진 동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소리인데 그러니까 소리도 요성이고, 기악도 진동을 통해 서 하고 그게 피리건 대금이건 해금이건 가야금이건 모든 게 진동이고 꺾고 흔든 단 말이예요. 서양에서도 진동음이 있거든요. 근데 우리처럼 깊이 2도3도로 꺾고 흔들지는 않는단 말이예요. 서양이 기껏 흔들어봤자 2도예요. 우리는 3도 4도로 오 르락 내리는 게 있고 일반적으로 (노래) 이게 공식이거든요. 그런데 이걸 없애고 있는 중이예요. 지금. 그래서 어 전통, 우리 전통을 하려면 우리 걸 그대로 그거 이해하게 하고 들려줘야 되고 우리 몸에 배 줘야 되는데 현재 국악하는 사람들이 그 음을 못 들어요. 그런 게 굉장히 답답하지요. 가야금 전공자가 지금 만 명이 넘 어요. 그런데 그 미분음을 못 듣는다는 거, 어 그런 결 정확히 가져가야 할 텐데 아직 남도 쪽에 저기 남쪽에 전라도 쪽 사람들이 하는 판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아 직 그걸 가지고 있는데 그 외의 사람들은 하나도 특히 교수님들은 거의 모른다고 느껴져요. 왜? 그 음악을 그 음을 하면 그건 높아. 이래요. 왜 그렇게 높게 해 이 렇게 거꾸로 물어 오니까 할 말이 없는 거지. 왜? 그 사람들은 피아노 음계에 젖 어 피아노 음계로 가니까 높다라고 표현을 해요. 그러니까 속이 좀 답답하죠. 이것은 배우는 사람의 문제보다 가르치는 문제겠군요? 가르치는 사람의 문제예요. 그러니까 내가 하는 얘기가 지금 영재 영재하는데 영재프로그램을 사방 군데에서 하고 있어요. 옛날 국악예술학교에서 영재 뽑는데 도 그런 거를 해 줬어요. 아이들 지구력을 첫째로 해서 뭐 예를 들어서 똑같은 뭐를 놓고 한 몇 시간을 두고 아이를 그걸 똑같이 해봐라 이런 것도 하고 장단 그런 것도 운운을 했었는데 별로 그런 것이 해당사항이 안 되더라구요. 그러고 현재 우리 교육에서는 부모들이 모든 걸 다 해주고 있잖아요. 아이들이 인제 내 가 고등학교 2 학년 아이들이 가야금을 배우러 오는데 아이들에게 물어요. 너가

309 좋아하는 게 뭐니? 몰라요. 넌 뭐가 하고 싶으니? 몰라요. 껴들 답은 몰라요 예 요. 이게 오늘의 현실이에요. 口 영재 발굴에서 제안하질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었나요? 그거는 내 생각으로는 어떤 게 좋은 지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음 내가 보면 60년대 사람이예요. 나이가 60년대 뭐 활동을 많이 한 거는 아니지만 그 시대 우 리 부모님하고 부모님들이 움직일 때 같이 움직였으니까 음악을 내가 시키니까 시키는 대로 했지만 그런데 2α%년대인데 지금 40년 전 얘기를 하면 아무도 호 응을 안 해요. 그리고 내가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결로 들리는 거죠. 그러나까 우 리는 교육을 옛날식으로 받았는데 전통교육은 일단 많이 듣게 하는 게 제일 좋 다고 생각해요. 듣게 하고 어, 보게 하고 그 담에 하게 하는 거죠 전통예술영째를 선발하는 전문가들 어떤 방식으로 선정하는 것이 가장 공정하고 정확할 것이라 보십니까? (소위 예술계에 존재하는 계파 의 문재를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술계의 계파라면 뭐 민속, 정악 이런 거? 판소리의 경우 제마다 다 다르니까? 그러니까 그게 언제 좀 얘기가 이게 좀 벗어나는 얘기가 되겠지만 70-60년대 때 이 가요계에 노래 잘하는 사람 별로 없었어요. 그러고 이뿌고 여자들은 이뿌 고 남자나 여자나 돈이 좀 있으면 가수였어. 왜 항상 들을 때 왜 우리나라 가수 는 노래를 저거 밖에 못하지? 이랬는데 지금 40년이 지난 지 잘하는 얘들이 정말 잘하더라구요. 돈도 있고 기획사도 잘 타고 면 더 잘 나가고 그런데 잘하면 뜨더라구요. 그게 그런 거 보면은 대중들이 귀가 열렸다고 나는 보거든요. 그런데 현재 국악에서도 그런 게 필요하다고 보고 이게 없는 걸 결국은 하난데, 동편제니 뭐 서펀제니 뭐 많잖아요. 보성제니 이런 얘기들을 참 많이 만들어 놓는데 장사꾼들이 물건 만드는 것과 같아요. 물건은 하난데 포장만 해서 더 과대 포장해서 니걸 더 많이 파니 내걸 더 많이 파니 이 런 거 같아요. 내용은 똑같은 거거든요. 판소리 이거는 가야금도 마찬가지예요. 가야금의 류 이렇게 나오는데 산조의 기본 성음은 똑같은 거예요. 그런데 취향 이 어떤 것을 더 좋아하느냐 예를 들어서 우리가 같이 앉았어도. 무지개색이 있 는데 좋아하는 색이 다를 거 아니예요. 그런데 색깔이라는 것은 같아요. 소리나 기악이나 결국은 같은 것인데 사람들이 배우는 그 과정에서 예를 들어서 나는 초록색만 배웠어 그러면 저쪽에서 그 파랑색을 내면 너는 왜 파랑색을 내느냐 이거거든. 다 필요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볼 때는 소리가 되었든 기악이 되 었든 기본을 잘 가리켜야 돼요. 그래서 옛날에는 서편제라는 말이 없었어요, 동초제 이런 것도 없었어요. 그냥 소리지. 이런 것은 있어. 보성제. 동네를 이렇게 해서 뭐 어디 제 어디 제 이런 말은 있었지만 강산제 이렇게 말하는 거, 이거는 이름 짓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들었다고 난 생각해요. 그래서 내가 가야금을 하지만 가야금 산조가 지금 10바탕이예요. 그거를 류라고 하기도 하는데 내가 웃으면서 성금연류

310 완벽하게 이해를 하면 그 산조 길이 다 보이는 거야. 결국은 다 다 똑같아. 그래 서 내가 산조할 때 최옥산이요, 산조가 성금연의 이 부분과 똑같은 거다. 다만 우리 가 자음 14개야 모음 붙이면 한글이 되잖아요. 그런데 가 라는 글자가 뭐 어디 가 만 쓰는 게 아니라 가고 싶어 하는 데 쓰듯이 다양하게 쓰이는 것처럼 가는 같으나 어디 가서 붙는가에 따라 그 단어가 달라지는 것처럼 결과적으로 음은 다 똑같은 거예요. 소리나 기악이나 그런데 사람들이 지금 이게 40년 동안 너무 많이 만들었 어, 필요 없는 거를 그래서 혼돈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동초제니 이런 거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소리를 한다. 소리도 판소리 보다는 민요를 먼저 해야 되고, 사람 이 일반인들하고 잘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이 최고인거거든요. 그래서 판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판소리를 듣기보다 스토리를 듣는 것이거든요. 스토리를 소리로 듣는 거 예요. 그래서 판 한 판 두 판 할 때의 판소리 아니에요? 그게? 그런데 민요 같은 것도 마찬가지예요. 민요는 성음을 들어요. 그래서 민요 같은 경우는 소절이 통일된 게 없어요. 그냥 생각나는 대로 눈으로 보면 만들어서 자작으로 부르기도 하고 성 음은 판소리보다는 민요가 훨씬 많이 농익어 있어요. 그러니까 남도, 서도, 제주민 요 하다못해 토속민요 통속민요 이런 것들 민요를 먼저 배우면 음악을 느끼게 되 요. 그런데 소리도 보면 판소리 산조부터 가리키고 지금 우리 교육방법이 거꾸로 되어 있어요. 그거 왜냐하면 그 한때 교수들이 많이 되었잖아요. 서울대 졸업하면 무조건 다 교수 되었거든요. 그러니까 자기네는 성음으로는 얼른 그게 안 되거든요. 예를 들어 뭐 6개월 배우고 간 사람도 있고 1 년 배우고 간 사람도 있는데 성음이 안 되니까 뭘 했느냐하면 채보를 했어요. 채보로 악보를 내놓고 탁 악보를 줘 버리 니까 이게 음악이 될 수 없다는 거지요. 그래서 현재 기록은 되어 있는지 모르지만 소리가 안 남아 있는 거지요. 그래서 많이 안타깝기도 하고 정말 이 영재 교육을 잘 만 된다면 좋은 일이지요. 그런데 또 같은 거의 반복이지 않을까 내가 생각할 때는 그러고 또 하나는 염려스러운 게 들어주는 귀가 없다는 거예요, 분명히 음 전 주 그 뭐지? 그 전주 우리가 대사습 대회를 보면 분명히 아까 껴가 잘 불렀는데 아 닌 얘가 와서 상을 타. 이러면 그러면 상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다 자기 직함이 만 들어 지잖아요. 그러니까 오늘의 국악이 거꾸로 설 수 밖에 없는 거예요. 진짜는 안 남고 아닌 게 남다 보니, 신기한 게 일반인이 더 알아듣고 외국인뜰이 더 잘 알아 들어요. 신기해요. 그래 전공자들이 오히려 못 듣고 전공자들이 감각이 둔해서 왜냐 하면 빗겨나가는 음악에 익숙해 있으니까 이 바른 음악을 들을 줄을 몰라 아무리 깨우쳐줘도 소용이 없어요. 이게 현실이에요. 예술영째를 뽑는 전문 선생님은 귀명창이어야 하겠군요? 귀명창이어야하죠. 당연히 귀명창이어야지요 국내에서 전통예술영재들이 성장하는데 가장 큰 걸렴돌이 되고 있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경연대회 없어져야 해요. 경연대회가 상당히 걸림돌이 되고 있어요. 왜냐하띤 경연대회는 상장으로 모든 것을 다 해결하니까. 그거는 영재뿐만이 아니라 전공 하고 있는 전문가들한테도 굉장히 위기예요. 그러고 안 나와 대회를. 잘하는 사

311 람은 절대 안 나와요. 자 못하는 사람들이 돈을 얘기 들었잖아요. 언젠가도 어떤 문화재가 2천만 원 받고 하는 사건. 이런 게 이 대회 때문에 일어나는 거예요 그 래서 나는 대회가 없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대통령상 너무 흔하고 또 대통령 상 탄 사람들 소리하는 거, 기악 하는 거 들어보면 콧구멍이 막히지요. 그러니까 이 런 현실이 정리 되어야 하고 그게 될까요? 口 전통예술영째가 앞으로 성장하여 음악가로서 담당(강당)해야 할 일들 을 어떤 것이 었겠는가? 영재들이 커서 담당해야 할 몫? 그거는 당연히 뿌리죠. 뿌리인데, 지금 음 그 정치하는 사람들이 사실은 그런 거를 더 잘 알더라구요. 우리나라가 들고 나갈 게 우리 예술밖에 없데요. 우리가 산업국이기를 합니까? 뭐 공업국이기를 합니 까? 그러니까 옛날부터 우리가 들고 나갈 때는 짚신짝 밖에 들고 나갈 게 없다 고 했는데 현재는 국악이 어 섞여 있는 음악이 마치 국악인 걸로 착각하고 있 는 사람이 굉장히 많아요. 예를 들어서 바이올린, 해금하는 사람이 해금이 바이 올린인 줄 아는 사람이 99% 예요. 그런데 나는 내가 그러죠. 해금이란 악기는 우 리나라 전통악기로 어떤 몫을 담당했느냐면 굉장히 코믹한 악기예요. 그래서 효 과음악도 하고 굉장히 너스레도 많고 물론 그게 고운 소리도 내지만 그 바이올 린 고운 소리를 당할 수 있겠어요 해금이? 그러니까 자기 정체성이 없는 거예요. 자기가 지금 뭔지를 몰라. 자. 해금이 얼후 소리 당하겠습니까? 해금이 바이올린 소리를 넘겠습니까? 어느 거 들어요? 자 바위고개를 들어야 해요. 어느 것으로 듣겠어요? 그럴 때 바이올린으로 바위고개를 듣더라고 어 나는 해금으로 이를테 면 태평가로 듣겠어. 이렇게 나와야 하거든요. 이거는 정체성이 없어서 그래요. 그건 가야금도 마찬가지예요. 또 하나 내가 얘기 하고 싶은 게 문제가 뭐냐면 국 악관현악단이 지금 많이 사향길에 든 것은 사실인데 그 이유가 뭐냐? 난 그렇게 생각해요. 못 맞추는 박자 음정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이해되지 않는 그 사람들 의 뭐 사차원 세계에서 작곡을 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너무 이해하기 힘든 곡을 연주하기 때문에 대중들이 가까이 오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무리 자기 네들이 정부에서 돈을 먹고 살아도 일단 음악이란 것은 사람들이 듣고 공감하고 좋아야 되거든요. 그게 설령 장송곡일지라도, 들으면 아 이게 사람의 죽음을 뜻 하는구나 정말 슬프다라고 느낄 수 있어야 그게 음악인데 현재 우리 국악 창작 곡은 정말 듣기 힘들어요. 사람이 기 뺏기는 음악이지 기 받는 음악이 아니란 말 이예요. 자 내가 하는 얘기가 전공자들조차도 그 자리에 있기 싫고 그 국악공연 한 번 가 보셨어요? 자, 재미있어요? 음. 자는 거예요. 어떻게 티 안 나고 자느 냐? 이게 제일 이슈예요. 교수들이 아주 노련한 사람들은 한 시간 반 정도를 꼼 짝 안하고 마치 음악을 참 굉장히 감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사람 자고 있는 거거든. 그게 노련미예요. 현재 우리 국악의 형태가 이래요. 그러니까 내가 볼 때 는 관현악을 어떻게 뽑느냐면 초견으로 뽑아요. 初 見 으로 뽑는데, 내가 그래서 미안한 얘기지만 대놓고 미친놈들 지랄한다 그랬어요. 그러면 뭐라고 하느냐하 면 초견으로 뽑아놓고 음이 안 맞아서 도대체 연주를 할 수가 없다 이런 얘길 해요. 그래서 내가 당신네들이 초견으로 뽑았으면 그 예를 들어서 내가 가야금

312 연주자니까 가야금 연주를 얘기하는 거예요. 그러면 당선네들은 연주할 때 초견 으로 합니까? 자 어디 공연 행사 있는데 갑자기 5분전에 나온 악보 놓고 연주하 십니까? 그건 아니잖아. 최소한도 그걸 못 받았어도 그걸 사흘 전에 받을 거고 아니면 몇 십 년 전부터 있는 음악을 할 거면 음악을 어떻게 만들어내느냐 음악 을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같이 연주할 수 있느냐 이런 연주자를 뽑는 게 아니라 피아노 하는 얘들이 두 달 연습하고 들어오는 거예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우리 리듬도 몰라 음의 질을 모르니까 자연히 연주가 안 되는 거예요. 이게 오늘 국악 관현악단의 현실이에요. 그러니까 자 악기가 불과 관현악이라야 편성이 몇 개, 8 캔가 밖에 안 되거든요. 그런데 안 맞는 거예요. 그런데 한 팀에 8명이 있고 8*8=64 60명이고 이런 상황에서 우리 국악의 농음이 같이 맞아져야 하는데 이 평균율이 아니기 때문에 도태될 수밖에 없는 거지. 이런 것들 그러니까 가야금 하는 국악 하는 사람들이 국악이 발전할 수 없다는 거 전공자들이 굉장히 반성 해야 하는 거예요. 연주장이 너무 재미없어요. 사람을 다 쫓아내. 그래 국악 그러 면 안 가. 나부터도 안 가는데. 이런 게 좀 아 국악을 하는데 너무 재미있어. 옛 날에 50-60년대 때는요, 여성 국극단이라고 들어보셨어요? 지금의 아마 비 정도 의 인기였을거야. 그 이상 막 여자들이고 남자들이고 막 쫓아다녔어요. 거기에는 악가무가 있었고 드림이 있었고 정말 예술이 있었거든요. 재미가 있었고. 현재 국악공연은 재미가 없어요. 자, 영재를 아무리 키워도 그게 바뀌지 않으면 영재 왜 키우는데? 그지요? 영재들 환경에 모르겠어요. 나는 지금 어떻게 이거를 가져 갈지. 영재를 도대체 어디서 골라올지 그것도 모르지만. 사람들은 이렇게 얘길 해요. 우리 딸이 제일 화내는 대목이 우리 딸이 말하자면 내가 지영희 성금연의 딸이고 저는 또 아버지도 국악을 했고 나도 국악을 했고 그 밑에 딸이예요. 그런 데 가야금을 하니까 당연히 해야 된다는 거로 생각해요. 그런데 그거는 아니거든 요. 환경에 놓여지지 않으면 아무리 부모가 음악을 잘하는 사람이래도 듣도 보도 못했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그거는 말이 안 되거든요. 그거는 굉장히 사람한테 그런 환경에 있는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주는 거고 부모하고 같이 생 했을 때는 듣고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옳는데 애들이 클 때 3년 만 크냐고. 부 모 밑에서 3년만 크냐고? 뱃속서부터 듣고 나와서 20살 이상까지 다 커잖아요. 그런데 못하면 말이 그게 말이 안 되는 거거든. 그러니까 아무리 부모 가 음악을 안 한 아이더라도 그런 환경에 놓여지면 자연스럽게 될 수밖에 없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지금 우리가 현재 교육이 굉장히 잘못되었어요. 국악하는 얘들도 영어 수학 다 해야 하는 거지요. 그런데 수학도 좀 어려워요? 우리가 사 는 더하기 뺑셈만 잘하면 되지. 공학도 과학자가 되려면 수학을 잘해야겠지만 우 리 가야금 하는 사람이 수학 어디다 나 3.14 파이도 어디 써 본 적이 없는데 이 런 것들이 상당히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그거는 물론 북한에서 아이 그렇게 키우고 있고 뭐 대게 공산국가에서 그렇게 키우고 있잖아요. 절대적으로 재능 있는 얘들을 한데다 모아놓고 키우잖아요. 그런 애들 기가 막히잖아요. 자 중국 서커스단 어때요? 국제적으로 어디 그런 게 바로 그런 게 영재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물을 거 없어 거기 가서 보라구. 그러면 당연히 그렇게 될 거예요. 그 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 뭐 하기 전에 갑론을박이 그렇게 많아요, 그러고 형

313 식이 너무 많고 되지 않게. 내가 예로 하나 얼마 전에 뉴스를 봤어. 그런데 김연 아가 나갔던 그 대회래요. 얘기 들었어요? 스케이트 사건? 김나영인가 김 뭐인데 껴가 다섯째가 못 들고 여섯 번째였던데 탈락이 된 상태에서 두 명이 기권을 하 니까 자동으로 올라갈 수 있는데 이 스케이트 협회에서 전화를 그 팬들이 해서 껴 올려 보내라 하니까 우리가 가는 게 아니라 그쪽에서 데려 가는 거라 안 되 거라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팬들이 그곳에 직접 전화를 해 가지고 얘기해가 지고 그쪽에서 오라고 해서 당연히 가야하는 것을 이게 한국 실정이 이래요. 주 는 것도 못 받아먹고 못 찾아 먹는 거지. 근데 이 영재 이 문제도 학교 문제도 음악문제도 난 다 그렇다고 생각해요. 게 뭐 이런 글이야 뭐 안 나가겠지만 내가 어느 누구를 문화재 하는데 내가 태클을 걸었어요. 자 왜 걸었냐면 우리 딸이 국 악을 와서 공부해요. 껴는 시민권자, 미국아이예요. 법적으로는, 미국에 살아도 당연히 국악을 해야 되는데, 이 사람이 자 음도 몰라 박도 몰라 정치 백이 있으 니까 문화재가 됐어. 자 교수는 오케이. 교수는 자기가 어느 대학 교수면 학생 이 그 사람한테 공부하고 싶으면 가는 거예요. 문화재는 우리가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나라에서 줬기 때문에 나라 보물이야. 그런데 이 사람이 외국에 나와서 음 정도 못 맞춰. 그러면 우리 딸이 거기서 같이 활동을 해야 하는데 이 사람을 만날 때 이 사람을 우리나라의 보물이라고 해야 하는 거예요. 이런 것들이 그래서 그 사람을 내가 인정할 수 없다는 거예요. 문화재라는 게 뭐예요. 국보거든. 근데 음 정 몰라 박 몰라, 그런 사람이 문화재가 많아요. 현재. 그러면서 영재를 만들겠다. 나는 내가 볼 때는 영재 만들기 전에 문화재부터 정리하시오. 흐흐. 문화재부터 정 리하고 영재부터 키우는데 너무 머리로 정리해서 이거 난 된다고 난 생각하지 않 아요. 내가 말이 너무 과격할 수 있겠지만 그냥 참고로 들어두시라고요. 口 3-1. 지영희 선생님께서는 얼찍이 민간 차원의 사렵국악교육기관인 국악예술 학교 초창기 맴버셨는데 지영희 선생님의 국악애 대한 얀목을 좀 더 말씀해 주세요. 그 그 시대에 60년대에 한 30년을 앞서간 거죠. 에! 국악의 세계화를 꿈꾸셨고, 그담에 음 외국인들을 만났을 때 우리 음악을 어떻게 표현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해설을 그 사람들한테 설득을 시킬 수가 있나 서양 그 악보 오선보에다가 음을 얹기 시작했고 그래서 그 서양형식의 관현악을 만드셨잖아요. 그러니까 아 우리 전통음악이지만 그거를 그 서양형식에 좀 견주어서 만드셨고 지휘도 최초 로 지휘봉을 잡으신 분이고 그런데 굉장히 그 생각이 앞서가시기도 했지만 모든 일을 상당히 조직적이란 얘기죠. 그리고 무용이면 무용, 성악이면 성악, 기악이면 기악, 이거를 다 하셨기 때문에 음 그 우리 국악이 왜 그 있잖아요.62년도에 블 란스 민속 예술제에 가서 그렇게 좋은 평을 받으니까 아! 그럼 우리 음악을 국제 적으로 치고 있구나라 생각하고 그결 꿈을 꾼 거죠. 그러니까 아마 그런데 너무 빨 리 간 거라. 그 누구야 율곡 선생님의 십만양병설이라고 아세요? 임진왜란 때 그 얘기를 했는데 10년 후에 음 그 왜란이 얼어날 것을 염려해서 십만의 군사를 키워 서 강화하자 했지만 안 듣고 임진왜란이 터진 것처럼 그러니까 먼저 보는 눈이 있 어도 그 시대의 운과 음 주변의 사람이 없으면 그게 좀 못 따라 지는 거예요. 그

314 부분에 있어 굉장히 아쉽고 아버지가 좀 더 이렇게 유화 정책을 쓰셨더라면 이렇게 음 궁중악 하는 사람이나 이를테면 민속악과 아악이 갈라져 있었는데 좀 화합을 했 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생각하는데 머 돌아가신 분을 두고 이렇게 저렇게 얘기하는 거는 너무 죄송하지만 심지어 아버님이 나한테 그 사람들이 말하는 정악을, 우리 민속이지만 한번 해봐라 니가 해보고 뭐가 다른 지 한번 해 보자 이랬더라면 좀 달 라졌을 텐데 그것은 무조건 아니고 내 것만이 진짜라고 우겼기 때문에 지금 이러한 현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口 3-2. 지순자 선생님께서 스승을 모시고 학습이 시작된 시기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부모님이 아난 다른 분께 배운 것이 8세 때 박초 월 선생념으로부터 판소리를 2년 어느 대목을 배우셨는지요? 배우셨다 하셨지요? 구체적으로 판소리의 음. 심청전에 읍. 그 왜 심봉사가 심청이를 떠나보내고 심청이를 그리워하는 대목 있잖아요. 거기서부터 인제 심봉사 눈 뜨는 대목까지 배우고, 배우고, 인제 홍부전 놀보 뭐 어느 마을에 뭐 홍부와 놀부가 있었는데 처음부터 시작해서 박 타는 데까지 배운 거죠. 심청전하고 흥보전? 예. 그리고 9세 때 김연수 선생님은 언제 그때 우리 여성 국극단 이라는 단체 가지고 있었어요. 그때 아주 한참 유명한 연극 배우들이 많았었는데 어린 심 청이가 필요해가지고. 어련 심청으로 공연하면서 그 외 김연수 선생념과 어떤 트레이닝이 었였고 또 다른 배역이라든지 공연은 없으셨는지요? 음. 선생님 저한테 트레이녕 해 주신 게 없어요. 제가 소리가 되었기 때문에 pick up 되었던 거거든? 올라가서 심청이가 불단에 가서 자기 아버지 눈 뜨게 해 달라고 비는 게 있어요. 소리하면서 고거 한 대목이었지. 그래서 어린 심청역 을 하는 거고 이렇게 해라 이렇게 하면 된다 해가지고 김연수 선생님한테 배운 것은 없어요. 그런데 어려서부터 배운 것은 연극이라는 거 구성 또 그 담에 연극 이 왜 첨부터 끝까지 소리가 있잖아요. 사설이 있잖아요. 그결 그걸 뒤에서 내가 다 외웠는데 그게 공부가 되지 않았는가. 5세부터 지영희 선생님으로부터 무용을 배웠다고 하셨는데 어떤 무용을 배우 셨는지요? 춤사위라든지? 승무. 그러니까 그때는 그때가 그 전쟁이 끝난 후에 아버님하고 어머님이 주자 동이라는 데서 학원을 하고 있었어요. 그러면서 그때 공연들이 대게 많았어요. 뭐 환갑집도 있었고, 국민학교를 막 도는 거예요. 그 단체가 되가지고. 나를 승무 추게 하고 어머니 아버지가 반주를 해주시고 내가 춤을 추고 그렇게 해서 순 회를 했던 기억이 있어요

315 口 3-3. 선생님 집안은 음악가 집안이시잖아요? 부모님 외에 스숭은 누구셨는지 요? 위의 질문과 중복이 됩니다만. 그리고 더욱이 집안 내에서 훌륭한 스승을 판별하는 기준이 었었습니까? 이 질문은 중요합니다. 영재연구소에서 선생님 을 선별하는 기준으로도 적용이 됩니다. 그러니까 그 인제 어른 부모님하고 이렇게 나랑 아버지가 나한테 설명을 하진 않으셨지만 항상 아버지 하고 어머니 옆에 제가 있었어요. 어려서부터. 그러니까 어려서부터는 공연을 같이 다녔고, 초등학교 내가 4학년부터 애들을 가르치니까 항상 어머니하고 같이 웅직일 수 밖에 없었잖아. 학원에서 애들 가르치고 보통 왜 밥 먹으면서 대화가 되거든 국악계 모든 게 나는 맨 날 듣고 당신네들이 어 머니하고 아버지하고 이 국악사에 대해서 얘기를 다 하시는 거예요. 누구는 뭐를 잘하고 누구는 뭐가 누구는 뭐가 그르고 어린 나이에 그런 걸 귀담아 안 들을 수가 없지요. 늘 노상 들으니까 그러고 음악에 대한 것도 특별히 꼭 집어서 가르 쳐 주시는 게 아니라 당신의 음악에 나를 투입해 버리는 거예요. 스파르타식이라 하잖아요. 양금 쳐라. 목탁 쳐라. 북 쳐라. 정 쳐라 아니면 가야금 쳐라. 그러면 굉장히 황당한데 인제 어머니보다 아버지가 멜로디라든가 장단을 보고서 가르쳐 주시면 그결 익혀서 따라하는 거지. 그러니까 솔로는 아니지만 따라가는 거에는 하자가 없겠금. 그렇게 공부를 했어요. 그러니까 특별히 어려서 선생님을 머 초 빙해서 공부한 일은 없고 어머니 아버지가 선생님이었고, 그 담에 어머니 아버지 하고 같이 음악하는 모든 선생님이 선생님이었고 그걸 보고 들었고, 같이 음악을 했으니까 만약 내가 빨리 하고 그러면 음. 순자가 거기는 좀 천천히 해라. 머 거 기는 조금 빨리하는 거야. 이렇게 아! 그럼 내가 늦었구나. 내가 빨랐구나. 이렇 게. 특별히 선생님들한테 앉아서 한 거는 별로 없고 늘 어머니하고 아버지하고 같이 다녔어요. 머 무용 반주를 하든 방송국에 가든. 그러니까 제가 방송국에 갈 때 짐 들고 따라가고 이렇게 하다가 첨에는 시킬 생각이 없는데 하다보면 좀 부 족하니까 아이고 당신 다른 거 하고 얘 이거 하라 그래. 뭐해요? 어떤 때는 북도 치라하고 또 어렬 때 북을 잘 쳤어요. 승무를 치면 북을 치잖아요. 박자관념이 굉장히 좋았던 거 같아요. 그러니까 시키면 그대로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당신 이 시켜놓고 흐뭇해하시고 그랬던 거 같아요. 선생님, 훌륭한 스승을 판별하는 기준은? 훌륭한 선생을 판별한다는 게 굉장히 어려운 거 같아요. 먼저도 얘기했지만 박 자와 음이 정확해야 하는데 음이 정확해야 하는데 음의 기준을 지금 어디에 지 금 보면 기악은 오선보 피아노에 기준이 되어 있잖아요. 그러니까 음이 높고 낮 고 하는 거예요. 이런 게 있고. 기준을 따진다면 늘 같은 거예요. 그담에 인제 그 아이들의 재능을 본다는 끼, 재주 이런 결 보는데 끼나 재주나 물론 원래 타고 나는 사람도 있지만 환경이 나 같은 환경이 내가 아마 우리 부모님한테 안 태어 나고 뭐 다른 어디 동대문 시장 옷 파는 사람에게 태어났다면 난 옷 파는 재 가 있을 거 아니냐고. 가야금하고 거리가 멀 텐데 어린 아이라도 그런 환경에 두 어서 얘내들이 익숙해지면 되는데 선생님을 어떻게 판별하느냐고 하면 대답을 정확히 할 수 없어요

316 口 3-4. 지순자 선생님의 어련 시철 연습량에 대해 궁금합니다. 지난번에 제게 어련 시절 듣고 보고 따라 흉내내기를 통해 시작하셨다 하셨는데 어련 시절 이라합은 기억하시기에 몇 세 정도이신지요? 음. 말했듯이 내가 기억하고 활동한 게 5세부터잖아요. 집에 오변 인제 늘 학 생들이 있고, 또 그러면 듣는 거죠. 그러고 내가 언제 가르치기 시작한 나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가르쳤으니까 그때부터 일단 내가 집에 있는 시간에 그 때부터 가르치는 거야. 그러니까 나중에 고등, 중학교 지나서 고등학교 되니까 보통 5시간에서 7시간 사이 하루에 늘, 그걸 하는 거야. 옛날에는 매일 가르쳤어 요. 요즘처럼 일주일에 한 번 두 번이 아니라 삼십분을 하더라도 매일 가르치다 보면 똑같은 것을 반복을 할 거 아니예요. 그러니까 음 생각안하고 타도 하나도 안 틀리고 이렇게 되는 거지요. 내가 볼 때는 피아노도 하루에 8시간을 타야되는 기준이 있습디다만은 가야금도 6-7시간을 쳐야하거든요. 口 3-5. 지순자 선생님은 전공 악기 외에 다른 분야에 경험을 쌓은 적이 았으십 니까? 지난번에 통기타를 하루에 밤을 써워 가면서도 즐기셨다 하셨습니다만. 인데 고등학교 때 왜 가야금에 대해서 에, 사람이 권태기라는 게 있잖아요. 아서 한 게 아니라 그냥 하는 거죠. 기타라는 악기를 고등학교 때 접했는데 너 좋더라구. 그러고 그때는 송창식 뭐 이런 사람이 많이 저거 할 때니까 그 그런 노래를 부르면서 이게 안 되는 게 왼쪽 코드 잡는 게 왼쪽은 흔들기만 했지 잡 는 결 안 했는데 그걸 특별히 가서 어디서 배운 게 아니라 맨 처음에 배우는 게 a- e- b-부터 그렇게 배운 결 하면서 노래를 하는데 뭐 신기하니까 밤을 꼴딱 새우는 거지. 될 때까지 하니까 그런 지구력은 있었던 거 같아요 그러면서 어 그결 하는데 나중에 그걸 그냥 그걸 했으면 기타를 했을 텐데 욕심을 낸 거지. 클래식 기타를 하고 싶어 클래식 기타 학원을 갔어요. 도저히 내가 가야금을 가 리키면서 그결 할 시간이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핑계야. 그런데 그거를 뛰어 념 을 수가 없더라고 그 테크니칼이며 클래식 기타의 선율하며 내가 뛰어넘기가 참 어렵겠다. 그래서 거기서 내가 끝냈구요. 그 외에 다른 악기 국악기 쪽은 아무래 도 통하니까 아버님이 해금을 가르쳐 주셨어요. 해금산조 뭐 대풍류를 배우면서 또 다른 가야금하고 또 다른 선율을 선을 가지고 노는 것을 배웠고 머 그 외에 아쟁이라든가 이런 거는 아쟁 같은 것은 특별히 배운 적이 없고 보고 따라하는 거죠. 그런데 그것도 아쟁이 이제 시대가 지나면서 자기네 들이 만들어 놓은 형 식이 있잖아요. 어머니, 아버지가 했던 것은 내가 지금도 따라할 수가 있어요. 그 냥 당시 무용 효과 음악으로도 하고 깊은 남도재보다 경기재가 더 는 배우지 않고 하고, 많지, 이런 거 거문고 같은 것도 늘 두시고, 당신네들이 타니까 가르켜 주지 않아도 기타같이 음을 찾아 치는 법을 하니까 머 신쾌동류의 머 중중모리 한 번 탄다든가 이런 것은 되더라구요. 이런거지. 특별이 아버지가 내게 어디 가서 뭐를 배워라 그런 말씀은 안 하셨어요. 그리고 건방져서 상당히 건방졌던 거 같아요. 아버님이 논하는 사람들을 위주로 움직이니까 어린 게 음악이 좀 귀 에 부족하다 싶으면 상대를 안 했던 거 이게 철딱서니가 없어서. 지금도 철이 없 어 그런 거고. 하여튼 그런 거 같아요

317 口 3-6. 선생닝은 여러 악기를 연주하시는데 여러 연주가 선생님의 주 전공 악 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그 여러 악기 보다는 장고, 북들이 리듬악기잖아요. 그 리듬이 음악을 하는데 특히 창작을 하는데 굉장히 도움이 된다는 거. 왜냐하면 음 3박자가 4박자다 5박 자다 7박자다 이걸 그려서 내가 박을 만들잖아요. 예를 들면 세마치다 하면 그렇 게 치면 가야금을 그렇게 칠 수 있는 거 그 리듬대로 그러니까 그 가야금이라는 악기는 단순한 멜로디 악긴데 언제 우리 어머니 그런 거 보고 컸으니까 내가 치 거나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할 때는 리듬하고 반주를 같이 해. 그러니까 멜로디 그 담에 리듬 함께 하니까 가야금 소리가 굉장히 화려한 거예요. 그래서 성금련 의 가야금이 화려한 이유가 그 리듬을 동반한 거죠. 거기에 강약도 있고 가락이 더블일 수도 있고, 홀가락일 수도 있지만 자유자재로 움직인 다는 거죠. 그리고 제가 북을 치기도 하고 장고를 치기도 하고 그래서 내가 그 영재를 한다 그러면 첫째로는 리듬을 가르쳐야 해요. 리듬. 그 담에 어 선율 위주, 그 담에 정확한 음. 그런데 음이라는 게 그 서양음으로 시작하면 절대 안 되고, 그 인도음악처럼 인도가 그 타블라부터 배워요. 구음부터 배우고 쉬고 그 담에 성악을 배우는 결 로 알거든요. 우리도 그렇게 가야 된다고 생각해요. 가야금은 언채 누구에게 얼마동안 배우셨고 또 장고는 아쟁도 언채부터? 가야금은 음. 내가 기억하기를 7살 때, 내가 어렸을 때 대게 조그마했어요. 손 도 작고 그래가지고 7살에 염불도드리부터 배워서 처음에는 요렇게 치는 거다 가르쳐주시고 그 담부터 안 가르쳐 주시고 따라해! 이래. 그래서 어른들이 풍류 하변 그 방에 불려 들어가 풍류를 잘 모르겠지만 상영산이라고 굉장히 느릿 한 대목부터 양평 우조 계면까지 끝에까지 1 시간 그게 옛날 내 기억으로 1 시간 30정도 탄 거 같은데 요즘은 1 시간도 타고 1 시간 20분에도 탄다 하더라고, 어린 나이에는 굉장히 지루한 음악이었어요. 그게. 그런데 안 하면 안돼. 흔나니까 그 거를 그 노인네들이 올 때마다 같이 앉아서 탔어요. 이렇게 공부했고, 그 담에 어머니한테 산조를 배우게 되었고, 그게 초등학교 아마 3학년인가? 11 살이면 3학 년이니까 그때 경연대회를 지금처럼 초등부 중등부 있는 게 아니라 경연대회 하 면 어른하고 같이 나가는데 애고 뭐 상관없어. 어머니가 내게 짧은 산조를 7분짜 리 산조를 가르쳐주셨어요. 그래서 그거를 배웠고 그걸 장단을 쳐서 경연대회를 나갔고, 그담에부터 그게 뭐지 조교로 연결이 되었어요. 그렇게 하고서. 그래 언 제 모르는 거는 어머니 그때그때 마다 필요하니까 이를테면 뚫어주는 거지. 이렇 게 대충대충은 알지만 죽 연결이 안 되면 연결해 주시고, 그 담에 어머니보다 아 버지가 가야금을 이렇게 치면 오셔서 거기는 좀 낮은 음, 거기는 성조니까 좀 더 떨지 말고 아주 음 상큼하게 뭐 계면이니까, 슬프게 이런 얘기를 많이 해 주셨어 요. 어머니는 생각보다 굉장히 그 뭐라 그럴까 좀 무뚝뚝하셨어요. 아버지가 자 상하시고 그러니까 내 기억에는 어머님이 가야금을 하셔서 어머님이 내게 가야 금을 가르쳐 주셨지만 음악적인 걸 구성하고 그런 것은 아버지가 더 많이 해 주 셨어요. 그래서 장단도 아버지한테 배웠고, 북도, 무용도 아버지한테 배웠고, 해 금 이런 것도 다 아버지한테 다 배웠어요

318 해금은 몇 세에 하셨는지요? 해금은 18세에 그때 고 3. 고3을 내가 두 번을 다녔거든. 데모를 했지요. 왜냐하 면 맨 날 나만 시키니까 가야금도 하기 싫고 학교도 다니기 싫다 해서 한동안 인제 막 돈 별로 다니다가 그때 아버지가 나를 해금을 해 보라고 시키셨던 거 같아요. 해금을 해보니까 그것도 괜찮은데 그때는 다 싫을 때니까 가야금도 싫고 국악이 전체 싫으니까 그때 좀 열심히 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있지요. 아쟁은? 아쟁은 배운 게 없고 만약에 우리가 합주를 하거나, 인제 미국에서 공연을 했 고, 필요할 때 너 이거 해. 그러면 앉아서 어떻게 해요? 여기를 이렇게 이렇게 해. 보여만 주는 거예요. 박자라든가 음하고는 다 아니까 그렇게 가르쳐 주시고 특별하게 가르쳐 주신 것은 없어요. 아쟁은. 口 3-7. 영재교육프로그램에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정확한 박 을 가르치라고 얘 기하고 싶다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말씀해 주세요. 박이 어떤 분들은 그 박을 음 우리 국악하는 사람들이 나는 메트로놈을 놓고 박을 맞추라고 그러고 싶어요. 음. 왜냐하면 일단은 지금 현재 우리가 전통을 해 도 세계하고 같이 나란히 가야하는데 선율은 같이 안 가도 박은 같이 가야해요. 공감대가 있어야 하는데 공감대가 없단 말이예요. 옛날 사람들은 메트로놈을 안 써도 정확한 박에 움직였는데, 요즘 사람들은 메트로놈도 안 쓰고 아무것도 안 쓰고 그냥 한국 음악은 늘었다 줄었다 하는 것이여. 그런데 그렇지 않거든! 자, 서양 음악도 오페라나 성악하는 사람들의 호홉에 따라 길어졌다 빨라졌다 해요. 똑같이 부를 수가 없어. 호흡 때문에. 그런 것처럼 우리나라 판소리도 마찬가지 예요. 그렇지만 기악은 그렇지 않다는 거. 기악은 똑같아야 해요. 더군다나 합주 곡은 같아야 하기 때문에 공감대가 어디서 생기느냐 하면 박에서 생기거든요. 그 러니까 박자가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두엣 (duet) 이고, 머 합주고 할 수가 없다는 거지. 그리고 뭐가 있으냐 하면 숨을 들이쉬고 딱 해야 맞는데, 같은 숨을 쉬고 같이 움직여 줘야 하는데 그 숨이 안 맞으면 자기네들이 똑같이 뜯는 거 같지만 타점이라는 게 있잖아요. 북이나 장구를 치는 데 때려서 가장 소리가 강하게 나 부분, 가야금을 뜯었을 때 들어올렸을 때 떨어지는 그 소리가 있거든요. 걸쳤 다가 딱 놓을 때 나는 소리와 미끌어져서 나는 소리는 다르다는 거죠. 그러니까 그런 타점을 맞출 수 있는 거는 호흡과 그 박이 맞아야 하는데 박이 그냥 되는 게 아니라 일단은 기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현재에는 내가 볼 때는 악계에서 내가 지금까지 느껴본 걸로 보면 박을 정확히 가는 사람이 참 드물더 라고. 그리고 나부터도 이게 오래 길들여져서 딱 시작하면 빨리만 가려고 그러 고. 요즘 서양음악을 하는 친구들과 포커션이라든가 드러머들하고 일부러 만나서 하는 게 박을 나 쫓아 오지 말고 너네 박으로 해줘! 그러면 이렇게 치면 재가 는 거 같이 느껴지거든. 그게 그렇게 길들여져서 그렇거든. 나뿐만이 아니라 많 사람들이 그게 심각해. 이 특히 리듬 쪽에 있는 사람들이 특히 너무 심각해서 들어보면 알겠지만 사물놀이를 하면 처음에 시작했는데, 자진몰이를 하면 볼과

319 몇 장단 지나지 않으면 바로 휘몰이로 넘어가게 되어 있는 거야. 그게 자동으로. 그걸 사람들이 그걸 동참을 할 수 없어. 음악이라는 것은 공감이거든. 그거니까 그게 중요하단 말이야. 박을 메트로놈을 써서라도. 공감대를 만들어 줘야 한다. 어떤 선생님은 질색을 하는 데 그건 아니라고 보거든. 口 3-8. 기악 연주자들이 장단을 칠 때 따라는 자기 스스로 바라에이션이 안되는 것 이 라듬 구성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다 하셨는데 에를 들어 봐 주시겠습니까? 그 예를 든다고 치변 인제 우리가 보통 아리랑을 알잖아요. 아리랑은 3박자란 말이야.3박자를 가야금을 내가 가야금을 제일 저거 하니까 내가 이렇게 탄단 말 이예요. 그럼 이거를 멜로디 악기지만 우리 같은 경우는 리듬하고 같이 탄단 말 이예요. 가락을 쭉 채우면서 들어올 수 있는 거예요. 자 이걸 바꾼다. 자 아리랑 은 3박인데 3박자만 하면 재미가 없어. 그럼 굿거리라는 4박으로 바꾼다 그러면 6/8박자로 바뀌지요? 이렇게 바뀌어요. 박을 알면 바리에이션이 되지요. 그리고 어떤 거든지 가락도 채우고 박자도 바꿀 수가 있는데 현재 특히 우리 가야금에 박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봐요. 그리고 뭐냐하면 그냥 다 외우기, 다 암 기식이잖아요. 머리가 대게 좋아. 그냥 통째로 다 외워. 김죽파류도 통째로 외워, 성금류 통째로 외워. 거기에 기본은 없어. 자 자기 선생님이 하는 것이 그게 다 야. 그러면 사람이라는 게 음악이 선생을 한 3대를 거치면 음악이 희석이 돼요. 김죽파 같으면 어 김죽파 선생님의 음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배우는 학생이 그걸 안 들어. 그럼 뭘 들어? 자기 선생님 것만 들어. 그러니까 희석이 되어 가 는 과정에 음악이 변질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오리지널을 듣지 않는 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듣는 귀가 없는 거지. 우리 아버지 해금을 지영희류 산조를 누 가 하는데 하도 안 같아서 내가 우리 아버지 해금을 테잎을 틀어줘서 얘가 들어 야 할 거 같아서. 얘가 하는 말이 누가 해금을 이 따위로 타요? 이래. 그러니까 내가 그 자리에서 가슴이 꽉! 아니 숨이 확 막히는데 할 말이 없는 거야. 껴가 고 3인데 대학 시험을 위해 지영희 류를 타는데 내가 볼 때는 그것이 아닌 거야. 누가 이따위로 타느냐 하는데 내가 뭐라고 해야 해? 고민을 하다가 일주일 있다 가 얘야. 그 때 그분이 지영희 선생님 이었느니라. 얘가 그제사 어? 선생님 어떻 게 해요. 죄송해서. 니 잘못이 아니지만 그래도 오리지널을 들어봐야 하지 않겠 느냐? 그러니까 몇 대 걸러 자기 가르쳐 주는 것만 들었지 말은 지영희 산조라 하지만 지영희 산조가 아닌거란 말이지. 지금 그게 해금뿐만 아니라 성금류도 그 런 게 많고. 오리지널을 들어보고. 사람이라는 게 애초에 흉내내기에서 시작해서, 흉내를 내고 점점점점 가까워지는 소리를 내다보면, 나중에는 그게 똑같아져요. 사람 심리가 똑같이 하고 싶지 않거든. 거기에서 발전을 해야하는 거예요. 그래 서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가르쳐주는 대로 하고 내 나이 때쯤 되면 나보다 더 잘 타야 돼. 그렇잖아. 하지만 얘네들은 그런 관심이 없어. 그냥 그냥 가는 거 야. 들을 줄도 몰라 할 줄도 몰라 왜냐하면 그게 내가 보면 아이들이 무능하고 모잘라서가 아니라 이게 교육방침이 잘못 되서 그런 거예요. 기준이 안 되어서 그래요. 그래서 뭐든지 완성도가 되어야 발전하는데 얘네들은 박자도 모르고 음 도 모르면서 그저 외우기만 하는 거예요. 완전 지나가 버리는 거야. 그래서 악보 - 310

320 로만 눈으로 답습을 하니까 두 달을 하면 그게 익숙해요. 그런데 두 달을 하고 손놓고 일주일 있으면 I뱅이거든. 머리에 안 남아 있거든. 음악은 내 옴에 익혀서 내 옴에 익혀서 그 담에 다시 음악이 되어서 나와야 그래야 음악인데 얘네들은 눈으로 보고 그대로 뜯는 것을 음악으로 알아요. 그러니까 음악일 수가 없다는 거예요. 口 3-9. 무엇이 전통예술분야의 영채성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그 전통분야의 영재성. 지금 그렇다면 우리 음악의 전통을 어디에 두느냐에 있 겠지요. 두 가지가 있잖아요. 아악이 있고, 정악이라고 말을 해. 그런데 옛날에는 아악이라고 했어. 그래서 궁중음악과 민속음악 이 두가지. 트래디셔널과 포크 뮤 직인데 세계적으로 보면 포크 뮤직이 굉장히 많이 발전을 하고 궁중음악은 다 이렇게. 왜? 재미가 없거든. 놀이 문화도 너무 느리고. 민속은 사람들이 적나라하 게 표현할 수 있지만 궁중음악은 다 절제를 하거든요. 이런 차이였지요. 지금 보 면 바를 정자, 풍류 악자, 마음을 바르게 하는 음악을 고유명사로 가져갔다는 거 예요. 그것도 똑같아요. 그것도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보면은 내가 했던 걸로 보 면 정악이라 하기 보다는 옛날에는 풍류라 했거든. 풍류를 배워서 그 정화시키는 게 있어요. 음도 그렇고 음이 그러면 풍류라는 음악은 미분음이 굉장히 많아요. 거기에. 제일 기준 되는 게 단소의 청성곡 들어봤어요? 단소의 청성곡을 들어보 면 음들이 그 오선보에 표현할 수 없는 미분음들이 대게 많아요. 한 칸에 세 개 나 네 개를 잘라야만 그힐 수 있는, 네 칸에 다섯 줄에는 부족하다고. 그게 시 일 수도 있고 라줄일 수도 있고 미줄일 수도 있는데 우리가 보통 얘기하는 그거 다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니까 사람들이 표현할 수가 없어 들어서 외웠는데 요즘 애들은 재미있는 게 뭐냐하면 성악을 하는 사람들이 단소를 불어 그리고 관악을 하는 사람들 무조건 다 했어. 그런데 요즘 재미있는게 피리하는 사람이 단소를 못 부는 사람이 99% 야. 대금 못 부는 사람이 내가 알기로는 아마 90%는 되는 거 같아. 그러니까 대금을 부르면서 단소를 부르면 굉장히 특별한 사람이 야. 옛날에는 심지어는 가야금 하는 우리 어머니도 단소를 불었어요. 공부를 시 키는 데 있어서 너무 정제된 것만 각설탕만 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그 냥 가루 설탕은 설탕이라고 안 보고 누런 설탕은 더 설탕으로 안 보고 이런 게 현실이야. 그러니까 어떤 것이 더 음. 전통을 위주로 해야 하는가 말하기 보다는 어떻게 가지고 갈 것이냐 그리고 음 지금은 뭐 사람들이 정악 하는 사람 따로 민속악 하는 사람 따로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요. 창작음악 하는 사 람 따로. 물론 그런 것도 필요해요. 순수. 퓨어 (pure) 하려면 그렇게 해야 해요. 자, 음 대중가수가 트로트 하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팝을 부르면 그게 팝 같 이 들리냐고? 그렇지 않아? 자, 트로트 하는 사람은 트로트를 해야 하고 발라드 하는 사람 발라드를 해야 되거든. 그런 것처럼 우리 음악에 우리 성악도 남도 소리 하는 사람 남도 소리, 경기 소리 하는 사람 경기 소리 머 서도는 서도 시조 는 시조 가곡은 가곡. 이렇게 분리 되어 있는데, 기악은 뭐 든지 다 해야 한다는 거. 그게 전문적으로 봤을 때는 따로 가야 하지만, 성악은 그래요. 성악은 섞으면 곤란해요. 그런데 기악은 다 배워 둘 필요가 있는 게, 다 표현해야 하거든요

321 자, 가야금 하는 사름은 남도 민요 반주도 해야 하고 서도 소리도 해야 하고 시 조도 해야 하고 가곡도 해야 하는데, 요즘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면 남도 쪽에 치 우쳐 있단 말이예요. 그러니까 정가를 해도 남도처럼 흔들어. 시조를 해도 남도 처럼 흔들어. 머 이를테면 산토끼를 해도 다 이런 것이 남도소리가 섞여 버렸어. 그런데 그런 노래는 음구성을 보면 남도재가 아닌 거죠. 그러니까 재대로 우리가 형식을 못 찾아가고 있는 거는 모르니까 예를 들어서 한복을 입어야 하는데 한 복을 다 차려엽는 게 아니라 아랫도리 치마 업고, 위에는 양복 윗도리 하이힐 신 고 가는 거랑 똑같아요. 그래도 옷이라 생각하고 가면 어쩔 수 없지만 얼마나 웃 겨. 일습을 챙겨 입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거야. 음악도 그래요. 전통이라 하 면 어느 것을 전통으로 가져갈 것이냐 자 우선 그 기준부터 세워야 되고, 그담에 아이들한테 정악도 해야 하고 민속도 해야 하는데 단계적으로 해야 해요. 처음부 터 민속을 하면 이게 흔들려요. 처음부터는 풍류라는 거를 해야 해요. 풍류를 해 야 그것은 요동을 하는 것이 아니고 굉장히 절제되고 정제된 음들인데 그 안에 는 많은 음들이 있는데 그 음을 듣고 깨우칠 수 있어야 그 담에 흔드는 음악을 해도 음을 찾아가는 거거든. 우리는 그렇게 공부를 해서 어떤 선생님이 나한테 그러더라고 어떻게 순자는 그렇게 음을 잘 알아?" 선생님 제가 어려서 8살 9살 부터 어른하고 풍류를 했어요 그랬어? 풍류를 타본 사람과 안 타본 사람은 다른 거예요. 그리고 또 하나는 가야금에 있어서 정악에는 정악가야금은 미분음 을 안 쓴다는 거, 다 잘라 버려요. 그런데 우리 민간 풍류는 그런 결 다 써. 피리 소리, 단소소리도 다 써. 그러니까 그런 결 찾아갈 수가 있는데 지금은 볍금으로 I덩명 일본식으로 그게 말하자면 주법을 너무 신기하게 고토주법하고 많이 똑같 아요. 그렇게 해서 농현도 없고 이렇게 하는 것들이 좀 많이 우리 음악을 많이 없애지 않았나 하는 생각. 대답이 됐어요? 국악예술학교에서 학생들을 선발할 때 장단을 치고 춤을 춰보라고 한 다고 하셨는데, 이 때 시험볼 때 장단을 치는 사람은 누군지요? 아니 아니. 리듬을 주는 거지. 리듬을 주면 그 아이가 예를 들어서 자진모리 칠 때도 있고 굿거리 칠 때도 있는데 자진모리를 치는 데 굿거리 춤을 안 줄 거 예요. 그러니까 리듬 꼴에 따라서 얘가 어떻게 몽을 반응하느냐 그걸 보는 거지. 반응을 보는데 우리가 전통이니까 전통 장단을 치겠지만 그게 여의치 않을 때는 지금 밖에서 듣는 대중음악 틀어봐 주는 거예요. 그럼 얘네들이 분명히 반 웅을 하거든요. 그러면 옴에서 벌써 얘네들이 그 리듬에 익숙한 얘들은 리듬에 맞게 몽을 흔들게 되어 있어요. 그런 애를 뽑지요. 국악도 마찬가지예요. 口 어련 영찌틀을 선발할 때 중요한 점이 환경이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으 로 어떤 환경이 좋은지요? 환경이라는 것이 물론 돈이 첫째로 많아서 금전적인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옛날에는 국악을 배가 고파서 했어요. 옛날에는 그 공부하고 싶은데 학교를 갈 돈이 없어서 인제 뭐 국악양성소나 다 장학금으로 공부를 시켰어요. 그러니까 그 자체가 벌써 한이 많어. 그래 한이 많고 하니까 우리 국악 음악이

322 벌써 한 많은 민족의 음악이어서 벌써 거기에서부터 환경이 되었다고 봐요. 옛날 에는. 그런데 지금은 이 국악하는 사람들이 부유한 사람들이 하는 거예요. 돈이 있는 사람들이. 그런데 환경을 만들어준다는 거는 현재는 없는 환경을 일부러 만 필요는 없고 듣고 볼 수 있는 환경을 늘 만들어 줘야 되는 거야. 예를 들어서 뭐 소리를 얘를 명창을 시키겠다. 그러면 명창의 소리들을 늘 듣게 해주는 거죠. 뭐 잘 때든지 언제든지 듣기 싫을, 그냥 일상적으로 들려주변 얘네들이, 그런데 좋은 거를 들려줘야 돼. 선별해서. 잘 못 된 걸 들려주변 안 되고, 좋은 음악 음 음악을 계속 이렇게 반복적으로 들려줌으로써 쇠뇌 시키는 거예요. 사람이 왜 우리도 유행가 같은 거 꼭 안 따라 해도 맨 날 듣다보면 어느 날 흥얼흥얼 노래 방 가면 자신 있게 부르는 거 바로 그거예요. 그거를 얘가 인제 그런 환경에서 배우려고 노력하면 더 잘할 거고, 그게 환경이라고 나는 생각해요. 보고 듣고 고, 듣고 그 담에 따라하고 따라하는 거는 그 담에 나오는 거거든. 그런데 그것 을 과연 아이들이 얼만큼 견뎌할 것인가. 그런데 국악하면 심심하고 재미없고 지 루하고 그러는데 절대 그렇지 않거든요. 국악도 굉장히 다양한 리듬이 있고, 재 미있는 놀이가 있고 여기 그 9 그때가 2000년도에 인제 백대웅 원장념으로 있 을 때 원장님 저는 이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덜하고 그네 좀 해주세요 그랬더니 왜?" 얘들 힘 좀 빼게요 그랬더니 미쳤어? 아니 왜 그걸 여기다 매래?" 우 리 놀이 문화가 다 힘 빼는 문화였거든요 김혜숙 선생님이 미쳤어. 애들이 전 통음악 때문에 힘든데 별꼴이야. 그래서 내가 그게 아년데, 그네를 휠래변 힘을 빼야 하거든. 자. 그네 힘 빼야죠. 널 힘 빼야 휠 수 있어요. 우리 놀이가 옛날에 는 다 힘 빼는 문화였다고. 그런데 지금 현재 젊은 얘들은 널을 못 뛰어. 어떻게 하느냐면 에고고 하고 한 발 때 버리면 뛰는 사람 골탕 먹어. 그래서 나가 떨어 지고. 그네 뛰자고 하면 여길 꽉 쥐어가지고 발만 올라오}. 그게 힘이 안 빠져서 그런 거예요. 춘향이가 어떻게 그네를 뛰었겠어? 자, 그렇지? 남자애들 노는 자 치기. 자치기 이것도 힘을 빼야 탁 치고 올라 쳐 올릴 수가 있는 거거든. 또 쥐 불놀이. 이거 힘주고 있으면 불 나한테 다 떨어져. 그러니까 힘 빼가지고 막 리면 불이 이렇게 해서 보름날 정윌 대보름에 올라가서 뛰잖아. 우리 문화가 다 힘 빼는 강강수월래 힘 빼야 휠 수가 있거든. 그래 내가 미쳤단 소렬 들었거든. 그거 매달라 했다가 여기 예종에 자, 내가 가끔 왜 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그 냥 창작음악과라고 바꿔. 내 그랬어. 자. 이름은 전통예술원인데 하고 있는 거 보 면 전통도 하기는 하지만 창작으로 간다고. 전통이변 전통이어야 되는 거지. 그 래서 내가 애들한테 그네도 뛰게 해 주고, 얼마나 재미있어요. 그네 진짜 재미있 거든. 널뛰는 거 얼마나 재미있는데. 내 몸이 하늘로, 공중으로 올라가는 그런 재 미를 알어? 내가 올라가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탁 쳐주면 그걸 타고 올라가는 거,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탁 치고, 그게 그런 놀이가 너무너무 재미있는데, 요즘 우리 대한민국 처자들은 그걸 몰라. 그래서 내가 자, 공기놀이, 공기 힘주변 하나 도 못 집어. 이거 어떻게 던질 건데? 해 봐. 힘 빼야 올리고 던지고 집고, 우리 문화가 물론 고무줄놀이도 그렇고 고무줄도 될 때 힘주면 못 뛰거든. 발뛰기 놀 이 그것도 다 힘 빼고 하는 거야. 그런데 제일 필요한 게 널뛰기, 그네뛰기거 ~. 그런데 날 더러 미쳤다고 해. 그러니까 이런 것들을 아이들에게 체험할 수 있게

323 해주변 힘 빼는 거를 저절로 아는데 요즘 애들 힘 못 빼. 힘이 들어가서 꽉 쥐고 있어. 운전 배우려면 더 힘들 거야. 口 국악의 대표 음이 아라려--가--- 라고 하시면서 지금은 서양 음계로 표현한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그리면 예를 들면 가야금을 탄다고 합시다. (음악) 이렇게 하면 서양악보예요. 아라리가아 났네. 우리 국악악보로 하려면 이게 역부족이라는 거야. 여기서 미분 음이 안 되는 거예요. 여기서 흘려줘야 하는데 여기서는 안 되거든. 이게 레가 아니라 레보다 조금 낮은 음. 그 다음에 이것도 라가 아니라 시보다 조금 낮은 음. 걸친 음들인 거지. 말로 하려면 아라리가아 났네. 이건 서양음보고요. 올라 갔다가 끌고 내려와야 하는데 못 그리는 거야. 그러니까 아라리가아아(음 악) 났네. 이렇게 밖에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이게 현재 국악 현실인 거야. 그래 도 그런데 또 아직까지는 판소리를 지방에서 배울 때는 그래도 제대로 배우는 애들이 있고. 그렇지만 판소리에는 또 뭐가 문제냐 하면 뱃심을 안 준다니까. 또 목으로 하고. 그게 삼십만 넘어가면 애들이 소리를 못해. 힘이 없어. 옛날에는 eb( 플랫)이 아니라 e로 불렀더라고 그런데 요즘은 cy- b 이렇게 부른다고 그럼 보 세요. c, d, e 이렇게 되니까 3도 차이가 나는 거예요. 청이. 그게 옛날 사람들은 그렇게 높게 불러도 다 부를 수가 있었는데, 요즘 얘들은 선생이 가르킬 때 자기 키로 가리켜. 선생이 나같이 할머니야, 목소리가 안 올라가.bo 으로 해. 한평 천 지 늙은 붐이 광주고향을 찾았더니 제주어선 빌려타고 해남으로 건너갈제 이렇 게 한다고 그리고 배우는 아이가 열 몇 살이잖아. 껴가 한평천지 소리가 안나니 까 몸을 구부려서 늙은 몸이 광주 이렇게 부른다고. 그 얘가 무슨 발전이 있겠 냐고. 그래 나는 옛날에 그렇게 내려 불러보진 않았지만 애들이 붐이 아~프거나 하면 청을 내려 부른다고 그러면 박초월 선생이 북채를 치면서 이놈의 기집애 벌써부터 청을 내려 불러? 조그만 년이? 올려 불러! 나는 늙었으니까 내려부르지 만 너는 왜 그래? 이랬단 말이예요. 우리는 더 높이 해서 부르게 하는 거죠. 그 래야 나이가 먹을수록 청이 내려가거든. 그런데 지금은 올라갈 수가 없는 거예 요. 명장이 나기가 대게 어려워. 그리고 지금도 어른들이 남자고 여자고 청이 높 으면 목이 좋다고 해요. 그런데 그게 목이 좋으니까 청도 높을 수가 있고 자, 청 을 높이 부르니까 좋은 소리가 나는 거야. 그거는 타고나는 사람도 있지만 노력 해서 판소리 하는 사람 왜 폭포수에 가서 소리 지르고 왜 그러겠어. 그 뱃심에다 가 기량을 키우느라고 그결 하는데 요즘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있느냐는 거지. 마이크에 속삭이듯이 발라드 부르는 것도 아닌데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이러 고 있으니 그러니까 우리나라에 그 창자를 끊는 듯한 소리가 없는 거지. 이건 참 심각한 거예요. 판소리 하시는 분들도 많이 자중해야 하고. 한동안 유태평양을 조통선 선생님이 그 뱃심 넣어서 가르치면서 자기가 소리가 퇴었어. 옛날보다 훨 씬 잘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오래비, 오래비가 태평양이 때문에 소리가 었수. 그랬더니 선생님이 이게 이게

324 口 영재의 기교가 아년 창의력과 동기를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었습니까? 그러니까 아까도 얘기했듯이 그거 왜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그 러잖아. 장단을 쳐주고 춤춰보라. 노래를 시켜보는 거예요. 그러면 아이들이 재능 이 다 각각이잖아요. 기악 할 수 있는 놈, 춤출 수 있는 놈, 소리할 수 있는 놈 그렇게 알아보는 거예요. 가리켜보면 알아. 가리켜보면 아는데 제일 어른들이 중 요하게 여겼던 게 박자거든. 그래서 박이 더듬하면 아예 처음부터 탈락을 시켰어 요. 음은 조정이 돼요. 음이 틀리면. 그런데 박이 안 되는 얘들은 안 돼요. 처 박자를 제일 신경을 썼고. 우리 아버님 같은 경우 보시다가 같이 합주를 하는데 박이 늦으면 제일 잘 날라오는 게 두루마리 휴지거든요. 급하면 재떨이도 날라오 고 확 날라와요. 어떤 때는 과격하시면 목침도 날라오고 그러니까 우리야 그런 일을 당한 일이야 없는데 둔한 제자들 었잖아요. 아버지 왜 좋은 말로 해도 되는 데 꼭 집어 던지세요? 아버지하고 내가 맛짱을 많이 폈거든. 그랬더니 아버지 말 씀이 박자는 그 순간에 고치지 않으면, 그 순간에 고치지 않으면 못 고치는 거 야. 그렇게 지적을 받았을 때 기억을 한다는 거야. 그래서 그렇구나. 야단맞는 사 람은 늘 야단을 맞았고. 기억에 전통교육은 많이 듣고 보고 하는 게 좋다고 하셨는데 요즘 같은 때 어 떻게 듣고 보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요즘은 우리말로는 그런 거를 잘 골라서 선곡해서 듣게 해 줘야 될 필요가 있 는데, 음. 미국에서 우리 그 친구들이 애들 피아노를 사주러 갔는데 보통 우리가 뭐 한 2천 불이면 피아노를 샀어요. 1 천 불, 2천 불. 피아노를 샀어요. 그런데 음. 한 학부형이 나는 5천 불짜리 야마하를 사주겠습니다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보 통 5천불이면 되게 많잖아요. 그래서 그럴 필요가 있냐 했더니 그 엄마 말이 악은 음에 대해서 굉장히 그게 중요한데 야마하의 소리와 1 천불짜리 중고 피아 노의 소리는 사운드가 다르다는 거예요. 그 아이는 5살짜리 아이를, 얘 피아노를 들려줘서 그 음에 익숙하게 해 줘야 얘가 좋은 소리를 찾아가지, 그게 안 좋으면 좋은 소리를 못 찾아가지 않나 그 소렬 내가 한참 생각했어요. 자. 악 기도 그럴지언정 자, 연주자가 좋은 연주를 한 걸 들려줘야만 얘가 기준을 삼지. 대충 음도 안 맞고 박도 안 맞는 걸 들려줘서 계속 얘한테 들려주변 쇠뇌 시키 면 껴는 그게 바른 건 줄 알면 껴는 음악을 바로 갈 수 없다는 거죠. 그러니까 좋은 거를 들려줘야 하죠. 요즘은 공연이 너무 많아요. 내가 볼 때, 얼마 전에도 가면 요즘 터득 하면 잘 조는 게 덕이다. 잘 조는 게 표시 안 나게. 왜냐하면 음 악을 들으변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 거예요. 왜 음도 안 맞고 박도 안 맞는데 어 떻게 공감을 해요. 예를 들어서 노바디 노바디를 박자 툴리게 듣는다 해 보슈. 사람들이 공감을 하겠냐고. 그러니까 동일한 박자와 똑같은 음정을 논해야 사람 이 거기 동참을 할 수가 있는 거예요. 음악이라는 게 뭐예요? 내가 혼자해서 즐거운 것도 있지만 남을 들려줘서 감동을 줘야 하는 거예요. 그게 예술가고. 그 러니까 언젠가 내가 책에서 본 건데 예술이란 내 혼신을 다하여 듣는 사람의 혼 을 뺏어오는 게 예술이래요. 와! 그거 대게 멋있더라고. 그거 진짜 맞는 거 같애

325 자기가 혼신을 다 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혼을 가져올 수는 없다는 거지. 그런데 그 혼이라는 게 전위 음악 막 깨 부시고 해도 그것도 혼신을 다 하는 거지. 그런 데 그게 아니라 절도 있는 규정 되어 있는. 저 사람과 나의 공감이 있는 거 가지고 끌고 와야 된다는 거. 그게 뭐냐? 그거 그러니까 기본을 잘 애들한테 듣 게 해야 한다는 거 그게 애들한테 중요하다 생각해요 기본을 잘 가르쳐야 한다 하셨습니다. 그 기본이 궁금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기본 으로 생각할 수 있을지요?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설명해 주세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박자. 그리고 성악에서도 박자. 모든 음악엔 예술엔 박자가 다 기본이잖아요. 음악의 기본은 박자예요. 그런데 언제 성악이 되었을 때는 그 아이의 성대도 중요하고 그담엔 무용이 되었을 때는 그 아이의 몸의 자태도 중 요한 거고 우리 고전 무용같은 것은 발이 중요하고 발이 어떻게 해야 중요하고, 그것도 박자하고 다 연관이 있는 거예요 지난 번 판소리는 스토리를 듣고 민요는 성음을 듣는다 하셨는데 구체 적으로 성음을 예를 들어 주세요. 노래로 해 주셔도 좋습니다. 성음이라면 음 보통 그 민요 같은 거는 특별한 내용이 없어. 그냥 사설이 막 이것저것 다 찍어다 붙였어. 듣기 좋고 부르기 좋은 것도 뭐 음 만경창파에 두 둥둥 뜬 배 어기여차 배 띄워라 노를 저어라. 뭐 이렇게 자, 별로 사설이 없어. 그런데 그 사설을 놓고 물론 그 사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앞의 사람이 불렀던 것과 이 사람이 연관이 없다는 얘기야. 그러니까 성음도 듣고 박도 듣고 사설도 듣지만 띄어 짤라서 불러도 괜찮다는 거. 그러니까 그 소리 자체를 들으면서 흥 을 느끼게 되는 거예요. 그렇죠? 대부분 똑같은 가사가 아니래도 자기가 만들어 서 부르기도 하잖아. 저기 가는 저 처녀 영탱이 좀 보소 요리 실룩 저리 실룩 흔들거리네. 뭐 이렇게 웃기는 얘기도 많다는 거. 그런데 판소리는 스토리가 있 어요. 물론 거기에 자기가 재담도 섞을 수 있지만 기본 내용은 가야 된다는 거. 판소리 하는 사람들은 뭐가 필요하다면 연극적인 요소가 더 필요하다는 거, 물론 성음, 성음도 안 되면 소리 내는 것이 아니니까 그런데 거기에는 성음 + 그담에 연극적인 그 사람의, 한 사람이 모든 그 춘향이, 춘향전이면 춘향전에 나오는 사 람 다 해야 돼. 굉장히 뭐라 그럴까 드라마틱 (dramatic)하고 액티비티 (activity) 해 야 되는데, 액터 (actor)가 되어야 하는데 소리 자체는, 민요 같은 것은 잠깐 들으 면서 부드럽고 홍겹게 불러주변 되는 거, 그러고 박도 상당히 정확하고 악기들하 고 같이 가니까 그런데 판소리는 북만 가요. 고수가 여보게 사령 하면 예 하고 받아주고 그게 호흡이라는 거야. 그 사람들의 그러니까 일종의 연극같이 가니까 판소리 하는 사람들 가만히 들어봐요. 성음이 안 좋은 사람들이 많어. 목소리 걸 긍 걸긍 해도 그 사람이 굉장히 재미있게 표현하고 슬프게 표현하고 극적으로 가지고 갈 때 대게 인정받는 사람도 많다고. 口 국악 환경에 놓여지면 자연스렵게 국악에 대한 친밀도가 높아질건데 부모가 국악인이 아니고 그래서 집안 환경이 국악에 대해 노출되어 있지 않

326 은 상황에서 국악 환경을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게 어려운데 왜냐하면 내가 언제 우리 제자들을 봐도 딸을 명그마니 가야금 을 시켰어. 자기는 53) 들어도 몰라. 자, 그럼 애가 영터리를 해도 부모가 간섭을 할 수가 없어. 당연히 명인 못 나오지. 자, 관심을 두고 부모들도 그걸 듣고 판별 을 하고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대부분 열심히 하는 사람들 54)을 보면 어머니들이 귀가 터여 있더라고 애보다. 나 그런 경우 몇 번 봤어. 선생님, 이게 너무 좋은 거 같구요. 저 이렇게 늘었구요, "55) 이렇게 부모 가 관심을 가지 면 애들도 자연스럽게 늘 수밖에 없는 거지. 口 4-1. 전공 분야 외의 다른 예술분야 (혹은 다른 분야)에 관심을 두신 적이 었 습니까? 있지. 왜냐하면 어 지금은 지금 같은 때에 그 대중 대중가수들한테 관심이 많 고 그 담에 연극하는 사람들 내가 연극도 자주 보러 다니고 드라마도 보잖아요. 우리가. 드라마 보면서 저 사람은 굉장히 프로정신이 강하다. 프로라는 것은 뭐 야? 자기가 하는 결 정말 최선으로 해서 자기 하고 하고 싶은 것을 상대방한테 전달하는 거거든. 우리 음악하는 사람은 음악을 최선을 해서 하지만 연기하는 사 람은 연기를 예를 들어서 일지매 같은 것을 보면 일지매를 맡은 사람이 일지매 같이 보여져야 하는 거 그런 걸 볼 때 아! 정말 굉장히 열심히 한다. 저 액터가. 정말 열심히 해서 정말 일지매 같다. 이럴 대 그 사람은성공하는 거야.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음 그동안에는 내가 인제 미국에서 살 동안 참 먹고 사느라 힘틀어 서 다른 생활을 했지만 한국에 와서 보면서 국악계를 들여다봤을 때 사람들이 생활이 윤택해서 그렇지 음 절제성이 없어. 그리고 열정이 없어. 뭐만 있어? 욕 심만 있어. 그러니까 이 과정이 step by step로 가야 될 것을 자 최고가 되고 싶 고 자기 유명해지고 싶은 거 어느 사람은 안 그렇겠어? 그런데 기본을 배워 하 나썩 하나씩 나가서 다음어서 좋아져야 하는데 줄서기만 열심히 해. 어떤 사람에 게 가야 내가 좀 더 이름을 내고 갈 수 있을까. 자 이런 게 너무 만연한 거야. 지금 와서 보니까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하니까 진정한 예술가들이 나는 없다고 안 봐요. 그런데 나서질 않는 거야. 자, 진짜 옥이 있는데 많은 가짜 옥이 진짜라고 나서는데 어떻게 그 옥이 진짜라고 나서겠냐고. 이게 오늘의 국악 현실인 거 같아요, 그런데 내가 생각했을 때 70년 60년 말 70년 대 초에는 한국 에서 대중가요도 그랬어. 자, 노래 더럽게 못해도 가수였고, 얼굴만 예뼈 가지고 연기 하나도 못하는데도 배우했거든 그래서 내가 우리 한국은 어쩔 수가 없어 그랬는데 지금의 2000년대를 보면 정말 잘하는 거야. 노래 잘해 춤 잘 춰 연기 잘해 이렇게 되는 거 보니 아마 우리 국악계도 좀 늦기는 하지만 그렇게 가지 않겠나 그결 보고 인제 희망을 거는 거죠. 그리고 우리 제자한테 열정을 가져라 너 스스로 뜨거워져야지 그런데 요즘은 그런 거 없이 행위만 하니까 상대 쪽에 53) 부모 54) 학생들 55) 부모들의 말

327 서 느끼질 못하는 거야. 참고로 비보이들도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그러니까 세 계적으로 뜰 수밖에 없는 거야. 아마 그렇게 될 걸. 내가 얘기하는 게 비보이 을 만났어요. 다는 아니지만. 너희들이 휠 때 우리 박으로 뛰어야 하지 않겠냐? 자. 물론 너희들이 지금은 세계에서 1 위라 하지만 너네들이 뛰는 박은 몇 박이 냐? 2박자 밖에 더 있냐? 맞습니다. 우리는 홀수박도 있고 복수박도 있다. 그리 고 의상도 너네들이 뭐 그냥 모자 쓰고 협합바지 입고 뛰는 거 보다는 그래도 뭔가 우리 냄새를 풍기면서 뛰어봐라. 물론 껴네 것도 하고 우리 것도 했을 때 계네들이 우리것을 부러워하지 않겠냐? 그거는 아이텐티티(identity)라고 그러죠. 우리의 한국 사람의 뭔가를 가져가야 하는데 맨날 흉내내는 거를 잘 해도 흉내 는 흉내인거지. 노르동통한 게 잘 뛰네 이 정도일 뿐이지. 앗. 저게 뭐지? 대게 근사하다!" 아직 이렇게 봐 주진 않지. 지금 내가 얘기 다 했잖아. 연극도 가 보 니까 얼마전에 호야? 호야였지. 그지? 젊은 사람들이 모여서하는 연극인데, 무대 가요 일본 사람들 노 무대 모양 사각형 조그마한 무대야. 그런데 12 명이 나와. 12명이 나오는데 무대에 다 있어. 그런데 재미있는 게 왕이 달을 쳐다본다. 자기 가 그러고 달을 봐. 그런 특별한 그런건데 그 형식도 재미있었지만 이 사람들이 한결같이 혼신을 다해서 하는 거야. 그 박을 이렇게 효과음악도 별로 안 쓰고 자 기네들이 두드려 똑같이 12명이 똑같이 두드릴 수 있다는 게 너무나 감동을 받 은 거야. 왜냐하면 우리 가야금하는 얘들 10명이 5명이 2명이 똑같이 못하거든. 그게 뭐냐하면 아까도 얘기했지만 같이 맞추질 않는 거 왜 이런 걸 보고 그 담 에 그 요렇게 얼굴 요렇게 마주 보는데서 여자 얘가 눈물이 막 나오는데 나는 내가 물론 슬프면 눈물이 나지만 어떻게 그렇게 잘 울 수 있는지 감정 몰입 잘 했다는 거예요. 그 인물이 자기가 되지 않으면 눈물이 날 수가 없는 거거든. 자. 우리 가야금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할까 이런 생각을 많이 해요. 그러면 서 연극을 보면서 감동을 받고 정말 그걸 보면서 나도 눈물이 나려고 하고 보니 까 사람들이 훌쩍훌쩍 울어요. 그거는 그 사람들이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열정적 으로 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동화시킨다고요. 그런 결 보고 배운다구요. 또 비도 있잖아요. 나이가 인제 27살 밖에 안 되었는데 고생하면서 재는 죽기를 기를 쓰 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거기까지 간 거예요. 그런 열정이 없이 어떻게 최고까 지 가겠느냐. 도대체 왜 우리 국악은 그게 안 되는데? 口 4-2. 학습을 하던 시켈 전공분야 외에 다른 예술분야의 전공자와 교분이 었 으셨나요? 때는 별로 없었어요. 그때는 별로 없었고, 미국에서 살면서 미국에서 살면서 음악을 하잖아요. 거기가 언제 혼합 인종이 많잖아요. 그러면 특별한 행사가 있 거나, 놀이가 있거나 국제적으로 아랍인도 만나고 흑인도 만나고 뭐 중국 사람도 만나고 필리핀도 만나고 각종 인종들이 와서 자기 악기를 가지고 음악을 하고 뭐 그런 거는 많이 했지요. 口 4-3. 다른 분야의 관심과 경험을 자신의 전공 분야에 활용한 기억이 았으시 나요? 작온 사례를 들어 설명해 주설 수 있겠는지요?

328 음. 그런 거는 그 지금 같은 경우도 그렇고 음 이를테면 서양의 리듬 그담에 그 사람들의 액션 그런 거를 어 우리도 저런 거는 해도 된다. 예를 들어서 우리 어머니가 그때가 60, 60 내가 그때가 몇 살이냐? 엘비스 프레슬 리가 막 머 울리 불리하고 막 딩딩딩딩 하고 트위스트 추고 했을 때 기타를 치면서 자빠지면서 하는 딩딩딩딩해요. 이렇게 보시더니 와 저거 참 재미있다. 우리도 한 번 해보자. 그렇게 만든 게 성금련의 휘몰이 가락이예요. 단단단단(음악) 그렇게 그런 걸 고 휘몰이라는 장단은 원래 있었던 장단이 아니고 그때 휘몰이라는 말을 붙이셨 어요. 나는 내가 알기로는 그때부터 휘몰이가 나온 결로 기억해요. 옛날에 있었 던 걸로 휘몰아친다. 휘몰이거든 그게? 그래서 성금련식 가락이 그때 만들어 진 걸 보면 어 나뿐만 아니라 우리 어머니도 그런 걸 보면 어 저거 참 좋다. 그런 게 세계 공통박이거든. 빠르고 그러니까 나 같은 경우도 내가 보면 음 박을, 박 을 많이 공유해요. 口 4-4. 다른 예술분야를 자기 전공분야와 함째 배운다면 어떻 엇점이 었겠는지 말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좀 버라이어티 해질 것 같애. 고정관념 틀을 좀 뛰어념을 수가 있고, 그런데 이거는 자기 게 완성된 담이어야 해요. 왜냐하면 자기 게 없는데 섞어 놓으면 이 거 완전히 그래서 우리 내가 이렇게 인제 사람들을 외국사람들을 겪어 보면 우 리 것이 굉장히 다양해. 그래서 항상 내가 뭐 그렇게 많이는 안 했지만 항상 음 악을 같이 하다보면 내가 끌고 가야 되더라고 왜냐하면 그 사람들 내 것을 못해. 그러니까 이렇게 이렇게 하라! 껴네들 것은 너무 단순하거든. 우리는 3 박, 4 박, 굿거리, 5박, 7 박, 박자도 다양하고 그 담에 선율도 다양하거든. 그런데 껴들과 같이 하면 please! 쉽 게 가자 이 렇 게 얘 기 하더 라고. 口 4-5. 무대에 서기 전 혹은 시험이나 콩쿨에 나가기 전에 얼마나 어떻게 연습 을 하셨는지요? 어려서는 음 뭐 외워서 외우는 게 처음이잖아요. 외워서 머 무대에 올라가면 머릿속이 하얘지거든. 하얘져도 얘가 움직일 정도로 해야 되거든. 그 우리가 조 건 반사라는 거 있잖아요. 공부를 하면 음 만약에 음 이렇게 둑 치면 본인도 모 르게 차바를 하잖아요. 이렇게 올라갔는데 하나도 기억 안 나도 얘는 훈련대로 할 수가 있어요. 그렇게 하죠. 그렇지 않으면 연주가 안 되니까. 그러니까 연습을 할 때 내가 인제 얘네들한테도 얘기를 하는데 열을 한꺼번에 하면 안 외워져요. 하나씩 하나 외우고 이게 외워지면 그 담을 외워 붙이고 이렇게 열 개를 붙여서 그 담에 다 외운 다음에 통째로 완전히 내 것화 되어야 그러니까 우리는 가야금 을 탈 때 얘기하고 다 해요 그게 옴에 아주 익어버리는 거예요. 글 쓰는 사람도 그렇게 하지 않나? 타자 치는 사람은 안 보고도 치잖아요. 똑같은 거예요. 다른 거 보면서 이거 다 친다고. 그거 음악도 그렇게 되어야 하는 거예요. 그렇지. 그 렇게 가야만 그게 무대에서 그러니까 내가 연습을 예를 들어서 100% 연습했다. 무대에 서면 50% 밖에 못해요. 그러니까 100%를 내려면 150%-200% 연습을 해 야만 100% 가까운 결 낼 뿐이지

329 口 4-6. 어련 시절 (음악을 일방적으로 배우던 시절) 음악을 하는 목표가 무엇이 었나요? 왜 음악을 포기하지 않고 하신 것업니까? 음악을 내가 가야금을 시작하면서 뜻이 있어서 한 것도 아니고 내가 그랬잖아. 선택권이 없이 하게 되었다고. 선택권이 하게 되었고, 하면서 그만 두고 싶었고, 도망을 갔을 적에 결혼이라는 거에 숨었어. 숨었는데 팔자가 그게 아넌지 언제 음 다시 가야금을 하게 되면서 다시 가야금을 할 때는 내 선택이었어. 내가 살다 보니까 그것만큼 잘하는 게 없더라구. 내 평생에. 그래서 하면서 인제 아이 가르치고 내가 그때 기쁨. 그래서 내가 아이들한테 그런 얘길 해요. 세상에서 제 일 행복한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돈 버는 사람. 그게 제일 행 한 거예요.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데도 하면서 돈 버는 많 은 사람이 있는 반면에 나는 어쨌든 간에 시작은 내 원 대로 안 되었지만 나중에 어떤 환경을 거쳐 아, 내가 가야금을 하고 싶었어. 지금은 굉장히 재미있어요. 음. 口 4-7. 연습을 할 때 한 두 번 하고 마셨는지 아니면 스스로 원하는 목표를 정 하고 그것을 이루면 그만두셨는지? 음. 될 때까지. 그럼. 될 때까지 해야지. 그거 한 두 번 하고 대충하면 무대에 서 반드시 설패해요. 음. 그게 자기가 해보면 확신이 들 때까지 그리고 확신이 들어도 계속 자기가 해야돼. 그래야 나중에 무대에서 깜빡해도 그걸 메워 나갈 순발력이 생기는 거고. 口 4-8. 어떤 상황에 연습을 시작하고 마쳤습니까?(음악에 대해 만족할 때 그만 두었다거나, 시간을 정해놓고 그만 두었다거나, 지루하면 그만두었다거나, 조 금해도 잘하니까 조금만 했다거나 등) 자, 음악을 어떤 걸 놓고 자기가 연습을 하는데 어렸을 때는 될 때까지 했어. 될 때까지 밤을 새도, 꼴딱 새도 그때는 체력이 되니까 될 때까지 하고 싶은데 봄이 안 되니까 나이를 먹으면서 아 오늘은 여기가지가 내 한계구나. 그러고 쉬 면서 열만큼을 쉬었다가 다시 그런데 내 마음에 이게 마음에 들어야 아, 이번에 도 내가 연습을 하면서 풍류라는 걸 외워야 되는데 그게 안 외워지면 일이 다 불안해. 항상 머릿속이. 그런데 그게 한꺼번에 외워지는 게 아니라 조금씩 덧 입 혀지는 거거든. 이게 나이가 먹으니까 진짜루 그게 딱 외워졌다 싶으니까 그때부 터 날아갈 꺼 같은 거야. 외워지는 거야. 외워졌는데 놓으면 안 되고 그래도 계 속 자기가 확인 하고 무대에 올라가서 했을 때 안 툴리고 했을 때 그럴 때. 口 4-9. 무대에서 최악의 경우를 대벼하여 연습을 한 경우가 었다면, 어떻게 했 습니까? 최악이라는 거는 우리 나 같은 경우에는 잊어버렸다 이런 게 아니라 줄이 끊 어졌을 때. 줄이 끊어져요, 요즘에는 악기 줄이 좋아 잘 안 끊어지는데 음. 그때 는. 줄이 한 줄 떨어지는 거는 그냥 커버를 해. 그런데 15현을 할 때 철사 줄이 한꺼번에 3번이 떨어진 적이 있었어. 딱 떨어지는데 다행히 그게 옥타브 음이 한 3 개 정도 있어가지고 중간에 딱 떨어지니까 굉장히 황당하데. 그럴 때 황당하지

330 생 라이브였기 때문에 그럴 때는 공력으로 가는 거야. 만들어져. 그러니까 그런 걸 보고 대단하다. 이렇게 해 주는데, 그 대단하다는 찬사보다 다음에는 이런 일 이 없어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하죠. 口 학생 때 스숭아 가르치는 대로만 했나 아니면 다른 방식로도 해보고 그랬나? 특별히 가르치면서 요렇게 저렇게 하라는 말씀은 안 하시고 내 방식대로 하죠. 뭐 음악을 가지고 가는 기준은 가르쳐 주시지만 그거를 외운다든가 나중에 바리에 이션을 한다든가 그거는 내 마음대로 하죠. 엄마처럼 타고 싶어서 가야금을 하지만 엄마처럼 타는 걸 확인을 할 수 없으면 엄마가 탄 가야금을 틀어놓고 타는 거예요. 박자도 맞추고 싶어. 그러면 하면서 볼륨을 죽이지. 그러고 막 같이 쳐. 같이 치면 서 이렇게 그걸 소리를 키워 볼 때 딱 맞았을 때 그런 걸 굉장히 많이 했어요. 口 자기가 어느 정도 잘한다는 자신강이 든 적인 었었는가? 그 대답이 항상 어려운데, 나는 지금도 내가 잘한다는 생각은 없어요. 왜냐하 면 항상 해도 마음이 100% 만족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그런 거는 있지요. 그런 상황에 이렇게 하면 되는데 저럴 때는 이렇게 하면 되는데 아까 같은 상황에 이 렇게 하면 잘 가지고 갔다 이런 게 있지 내가 잘 탄다 내가 아주 잘한다 이런 느낌은 우리 어머니도 안 갖고 돌아가신 거 같애. 그러니까 예술하는 사람들은 모르겠어. 자기가 잘 한다라는 그런 말을 안 하는 거 같아. 음. 口 01 련 자신감이 생겼을 바로 그때 그때의 자신의 기교는 어느 정도였던가? 자신의 기교. 기교는 인제 이런 건 있죠. 음. 내가 마음먹은 대로 표현했을 때 또 표현은 했는데 사람들이 듣고 너무 좋아했을 때 아. 괜찮은 기교구나 이렇게 느낄 때가 있지요. 그게 좋은 거구나 남과 다른 자신만의 표현 방식이 었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한 적이 었던가? 별히 머 그걸 다르게 하려고 그런 거는 아닌데 아까 얘기 했잖아. 모방이 제 일 중요하다고 내가 가야금을 하면서 닮고 싶었던 것은 당연히 엄마지요. 엄마 는 하는데 나는 못해. 그래서 굉장히 혼자 연구 많이 했지요. 심지어 속으로 엄 마는 대게 짝챙이 같이 혼자하고 나한테 안 가르쳐주고 그런다 싶었어요. 어머니 의 테크닉을 음 뭐라 할까 왜 나는 엄마가 내는 그 소리가 안 날까, 예를 들어서 어려서 내가 15살에 어머니가 내는 소리를 들어보면 어머니 소리는 굉장히 땅글 땅글한데 내 소리는 안 땅글땅글 한거예요. 그래서 그런 것들이 왜 그랬을까 처 음에는 이해가 안 되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나중에 내 소리가 어머니 소리같이 되었을 때 비슷하게. 아! 바로 이거였구나. 그러면 이런 소리는 결국 한 순간에 나는 소리는 아니구나. 그런 결 깨달을 수 있지요

331 口 스숭이 하지 말라 했던 표현들을 해보고 성공해본 적(만족스러윗던 적)이 었던가? (예를들면 여기서 농현을 하지 말라 고 했는데 정작 하지말 라던 것을 해보니 좋았다거나 풍) 하지 말어라는 소릴 들어보질 않았어. 한 번도 들어본 적은 없어. 나는. 한 번 도 없었고, 오히려 뭐라 그럴까 어머니가 나한테 음악을 만들면서 이건 어떠냐 이렇게 물어본 적은 참 많았어. 그러니까 하지 마라 이런 소린 안 들어 봤어. 口 스승에게 기본만 배웠던 상태에서 혼자 스승 없이 기본을 념어서 본 적이 었던가? 기본이라는 것이 그 완성도에 가까워지는 건데 그거는 그걸 꼭 느끼기 보다는 오래 하면서 만들어지는 거니까 그걸 느꼈다고 하기는 그런 거는 아닌 거 같애. 디 어련 영째 선발에서 지구력 을 첫째로 해야한다고 하였는데 영재 시 험에서 지구력이 왜 중요하며 어떻게 알아볼 수 었을 까요? 음악을 하는데 완성도에 이르려면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그 도중에 포기하면 안 되니까 그래서 지구력을 첫째로 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걸 알아보는 방법은 어떤 한 가지 일을 시켜요. 예를 들어 어려운 과제나 어려운 일을 시켜 요. 내가 쓰는 방법인데 엉킨 실을 풀어보게 하는 거예요. 이것은 성질이 급하면 풀지 못해요. 영킨 실을 푸는 것을 보면 승부 근성을 알 수 있지요. 그리고 답답 함을 참고 끝까지 가는 인내력을 볼 수 있거든요. 내가 경영하는 학원 애들은 이 걸 다 풀더군요. 우리 딸애도 그렇고. 그래서 이런 결 끝까지 해내는가 아니면 도중에 하차하는 가를 보는 거죠. 내 경험으로 봐서는 이상하게도 재주 있는 아 이들이 노력을 안 하더라고요. 그런데 지구력이 있는 아이들은 재주가 좀 덜 한 아이들이었어요. 하지만 지구력과 재주를 아울려 겸비한 애들이 있어요. 승부욕 도 있고 자기 스스로 완성시키고 싶은 욕구를 지닌 아이를 뽑아야 해요. 이런 애 이야말로 끝까지 자기 재주를 완성시키더군요.56) 56) 지순자 선생님께서 당신이 꼭 참여해서 해보고 싶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332 최경만 口 1-1. 당신을 영재라고 생각한다. 口 1-1-0) 당신은 동의하는가? 나는 동의를 하지 않아요. 口 1-1-(2) 만약 아니라면 왜? 나는 내 나름대로 열심히 해왔고 아까 얘기 했듯이 난 정말 음악이 좋았어요. 그리고 어려서부터 피리를 꼭 주머니에 넣고 다녔어요. 어디든지 자리만 허락한 다면 펴서 불고. 난 진짜 좋아서 했어요. 口 1-2. 어련 시절(대략 10세미만, 돌챔이 쯤, 예술교육 연령 이전 응) 부모나 주변에서 이야기하던 당신만의 행동특성은? 아 그런 거는 좋았어요. 정말. 자란데가 시골이다 보닌까 겨울이면은 노인들이 움 있잖아요 움. 깊은 사랑이라고 하죠? 움을 파놓고 노인들이 거기서 한 겨울을 나요. 그러면서 그 분들이 장구를 치면 그 전 장구는 이렇게 커요. 치면은 붕붕 그 울림이 기가 막혀요. 요즘은 작아지면서 그런 성음이 않나. 근데 그 소리가 나면 있잖아? 어려서 장을. 옛날에는 아홉시면 불 끄고 자잖아요? 근데 그분들은 거기서 불키고 논단 말이에요. 그 장구소리 어렴풋이 들리면 잠을 잘 수 가 없었 어요. 나가죠. 나가서 거기 들어 갈 수 없잖아요. 그럼 거기 문에 창문이 있어요. 거기서 이래 듣고 있고. 그럼 노인 분들이 소리를 해가면서 치거든요? 그게 게 좋았어요. 그리고 그 마음의 충동. 장구소리에. 그 소리에. 어려서부터 피려를 잡으셨다면 대략 몇 세 때? 10세 약간 넘어서. 그 때 주변 분들의 평가는 어떠셨나요? 그닌까는 참 잘한다. 잘한다? 저는 그런 소리가 귀에 닿지 않고 잘 한다 그 소 리 보담도 그냥 내가 좋아서 했어요. 늘 좋고. 그담에 그 당시에 구경거리가 많 아요. 우리 동네 굿을 많이 했어요. 그 당시에 어디든지 그런게 많았지만. 굿하면 뭐 피리 해금, 대금. 지금 보닌까 큰 굿이더라구요. 삼캡이라고 그러죠? 피리는 기본 놀 잖아요? 그것을 보고. 진짜 어떤 때는 밤 새기도 하죠. 선생님, 음악이 나오고 그러면 춤도 추시고 그러셨어요? 그런 숫기는 또 없었어요 i 口 1-3. 우리가 당신을 영재라고 부르기 이전인 어련 시절에 당신의 재능을 타 인이 알아 본 적이 었였던가? 원

333 口 1-3-CD 알아봤다면 그 타인은 누구인가? 우리 동네에 피리하는 분이 두분이나 계셨어요. 두 분다 지영희 선생님 제자셨 어. 한 분은 배워서 굿 집 만 다니는 사람이고, 한 분은 공부하는 사람이야. 그 당시에 건국대학교에 사학과를 다니고 있었으닌까. 근데 피리를 참 잘 불었어요. 근데 어느 날 한다는 소리가 오라고 하드라구요. 그 양반이 기타를 하면서 해봐 라 하닌까는 요렇게 기타를. 지금 보닌까 코드를 짚어가면서 해주는 거에요. 근 데 잘한다 그러드라고. 야, 잘 한다. 공부를 해봐라. 그래가지고 그게 인연이 되 가지고. 언제 우리 작은 형을 통해가지고 지영희 선생님 만나게 해줬죠. 학교에 보내라 그런 학교에. 지영희 선생님께서요? 예. 그래서 그 학교를 가게 된거죠. 그 당시에 예를 들어서 정악을 아는 사람 이 있었으면 그쪽을 보냈겠죠. 그 당시에만 해도 뭐 여기가 있는지 뭐가 있는지 모르잖아요? 이쪽이 지영희 선생님을 만나게 해주닌까 그 학교에 가서 공부하게 됐는데. 중요한 것은 내가 혼자 많이 불었었잖아요? 학교 들어가서 시험을 보는 대요 내가 지금도 생각해. 태평가를 했어요. 근데 선생님이 너무 좋아하는 거에 요 잘한다고. 그런다고 잘한다고 자만하고 연습안하고 그런거는 없었어요.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데 그 속을 들어갔으니 얼마나 좋아요? 그냥 현악실들어 가면 가야금이 확 있고 그냥 보기만 해도 좋아요. 口 1-4. 동료나 작고한 전통 분야의 인물 중에 영재라고 생각하는 인물은? 영재였다는 분은. 나는 우리 지영희 선생님이 정말 영재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학교에서 학생들을 데리고 그 당시 학생들을 놓고 관현악단을 만들었으닌까. 본 인이 지휘도 하고. 본인이 또 악보를 만들어서 파트보를 다 주고 지휘도 하고 우 리를 그런 결 시켰으년까. 그 다음에 지금 관현악 모듬북 있잖아요? 그 당시에 모듬북을 선생님이 하셨어요. 북을 하나, 둘, 셋, 네 개 이렇게 해놓고 그걸 장구 치는 여학생 이영옥이라고 있었어요. 그 학생을 그걸 치게 했었어요. 지금 보닌 까 그게 모듬북이에요. 그닌까 선생님은 무지하게 앞서 갔어요. 또 그 당시에 뭐 라고 늘상 우리한테 말하셨냐면 니네는 앞으로 열심히 해서 대학에서 가리키는 지도자, 교육자가 돼라. 앞으로는 봐라 틀림없이 각 대학에는 국악과가 다 생긴 다. 그 때 되면 선생이 없어. 빨리 공부해라. 이런 얘기를 하셨거든요? 저는 그 당시에 우리가 먹을 것도 없고 국악이 정말 그렇게 볼거리도 없고 누구든지 국 악하면 광대, 기생 이랬는데. 이건 생각이 미치지도 않는 얘기 아니에요? 전 그 렇게 생각했어요. 근데 선생님은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구요. 아닌게 아니라 각 대 학에 다 있잖아요. 각 대학에. 정말 시대가 좋아서 선생님들이 학교에서 하고 그러지만은 사실 어떤 선생님들은 정말 실력이 못 믿치는 데도 세상을 잘 만나서 자리를 차지하고 학생들을 지도 하는데 사실 어떻게 보면은 학생들에게 큰 장애가 되는 선생님들이 꼭 있죠

334 디 1-5. 당신이 본격적으로 스승을 모시고 학습이 시작된 시기? 선생님을 모시고 했을 때가 1964년? 고등학교 1 학년. 선생님, 그러면 그 전에는 피리를 누구에게서 배우신 건가요? 선생님 혼자셔요? 그전에는 내가 피리를 좋아하닌까 큰 형님이. 우리 동네에 지 선생님께 피리 배워서 굿집 다닌다는 분이 있다고 했지요? 그 분하고 친구에요. 그 당시에 너 좋아하닌까 큰 형이 왜 하필이면 그거냐고 나를 매질까지 했어요. 그래도 좋아하 고 맨날 그러닌까 자기 친구한테 피리를 얻어서 나한테 갖다 줬어요. 근데 그때 악보 준게 요만한 프런트 있죠? 요렇게 등사그림. 거기에 아리랑이 그려졌는 악 보가 있더라구요? 고다음에 인제 초도름, 겹도름 그런 기초적인게 짝 위에 있고 거 한 장 짜리를 나를 주드라구요 피리하고. 뭘 알아야지요. 그렇게 말리던 큰 형이 소리를 좋아했어요. 소리를 맨날 불러주변 나는 따라서 하는 거에요. 그 러다 보닌까 그게 알게 모르게 경기, 웬만한 서도 민요는 다 알게 된거에요. 그 학교 들어가기 전에 벌써. 그래서 환경이 참 중요하다는 거예요. 口 1-6. 스승을 모시고 학슐했던 내용을 시기별로 구체적으로 알려주시기 l:it랍니다. 업할 때까지 삼년동안 제가 처음 들어가서는 김넣기라고 해서 피리를 다 막 고 빵빵 불었어요. 빵빵 불고 그러면서 피리소리가 나겠죠? 그 다음에 피리에 김 이 제대로 들어간다 그러변은 그 다음부터 손가락을 떼기 시작했어요 고다음에 그게 되면서 흩도름, 겹도름, 고다음에 치도름, 내리도름, 고다음에 혀치기, 혀올려 치기, 내리치기, 겹치기, 목튀김 이런 등등을 공부하고. 고 다음에 저는 좀 늦게 어갔기 때문에 중학교 아이들하고 같이 공부하게 됐어요. 고취하게 되면서. 벌써 껴들은 염불타령이나 이런 걸 다 배웠는데 나는 그런게 처음이잖아요? 그래서 그 것을 배우고 그 후에는 그 학생들게 따로. 먼저 한 애들한테 가서 따로 공부를 하 고. 그 다음에 그 당시에는 항상 악보를 주고 공부를 했어요. 물론 악보를 뭐를 알 죠. 그년까 나는 모르닌까 아는 걸 놓고 불자 그러고는 눈으로 악보를 익히자 그 런 방법밖에 없더라구요. 그래서 그렇게 해서 공부하고. 그 다음에 그게 되면서 취 타 풍류 그다음에 대영산. 대영산이 가장 큰 고비인데. 그러면서 전반적인 민속음 악에 그닌까 마지막에 선생님이 이건 굿음악이다. 니네가 이걸 허래는 것은 아니 지만 음악하는 사람은 다 알아야 되기 때문에 내가 가리킨다. 하지만 굿집에는 가 지 말아라. 굿집이 나뻐서가 아니라 니네들은 공부를 하년까는 하나의 교육자로 그렇게 해라 하고 해서 마지막 공부하고. 그런 음악까지 다 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셔서는 다른 선생님께 배우신 적은 없으신가요? 네. 없어요. 스승님 께 교육받은 기 간은? 학교 3 년. 언제 그 후에 선생님이 뭐 있으면 와서 연습들 해라. 그러면 가 서 공부하고 그런 정도지. 그래서 나는 지금 자꾸만 생각하는게 공부는 정말 고 등학교 때 전반적인 것을 다 가르켜야 된다. 왜 그때는 힘도 있고, 머리도 있고 대학교 가면 틀려집니다. 벌써 여자친구도 만나야 되고, 담배도 피워야 되고, 술 찌μ

335 먹어야 되고, 또 뭐 친구들하고 노는 것도 툴리 잖아요 노는게. 안됩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전반적인 것을 다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口 1-7. 음악가 집 안인가? 아니에요 자기발전의 동기는 어렇게 부여하셨습니까? 나는 지금도 이렇게 생각하면 누굴 의식하면서 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근데 자신이 이렇게 오늘 하루 내가 피리를 따로 공부한 것 외에는 안불잖아요? 그러 면 무슨 큰 부담이 와요. 큰일났다 이거 안해서. 그닌까는 매일같이 피리를 불어 야 돼요. 지금 불고 놀러나갔어. 그럼 또 불어야 되는 거라. 그러면 또 들어와서 불었어요. 고등학교 때 옆집에 친구 아버지가 암에 걸려서 곧 돌아 가실려고 신 음하는데 피리를 불었어요. 또 우리 작은집에 작은댁 할머니가 돌아갔는데 초상 나서 곡소리가 나는데 나는 집에 들어가서 벽장에 들어가서 불었어요. 왜냐면 꼭 큰일 나는 것 같은. 겁이 나고 괜히 해야 된다는. 나는 그렇게 해서 했지 의식한 것도 없고 내가 꼭 해야 돼 이런 것도 아니고. 그 다음에 공부할 때 선생님이 하 것을 보고 흉내를 많이 냈어요. 악기소리의 흉내 그런 결 많이 냈어요. 째미도 많이 느끼고. 재미도 느끼고. 그런 매력을 그때부터 느꼈어요. 어떤 목표가 있어셔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서 얼반 사랍들은 꾸준히 하잖아 요? 선생님째서는 어떤 이유로 연습을 안하면 불안했을까요? 난 지금도 참 그걸 알 수가 없어요. 내가 왜 그렇게 그 때 그렇게 겁나가지고 했 나. 그닌까 항상 피리하고 하나, 서 하나 고것만 늘 갖고 다녔어요. 산에 가면 산에 도 가지고 가고. 그래가지고 그냥 혼자도 갔어요. 혼자. 근데 폭포가 있었어요. 또. 폭포 옆에 앉아서 딱 불고. 나는 청승인지 뭔지 모르지만 그렇게 연습을 했어요 전통예술에 대한 당신의 집안 분위기는 어떠했습니까? 그렇게 말리드니만 내가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식구들이 관심을 갖게 되고. 오 히려 누가 어떻고 이런 평은 집에서 하드라구요. 저는 이런 평은. 처음 집안에서 반대를 했지만 나중에 우호적으로 바뀌었다고 하셨잖아요? 선 생님이 하기 때문에 반대하신건가요, 아니면 전통예술 자체를? 형님도 노래를 좋 아 하신다고 하셨죠? 좋아는 하는데 내가 그것을 한다고 하닌까. 사실 형님이 그 친구를 봤을 때 맨 날 굿집 다니고. 진로 때문에 반대를 하신거지. 전통예술 전반을 향유하는 그런 집안이였던 건가요? 그렇죠. 형님도 좋아하시고, 아버님도 좋아하시고. 그런데 어머님은 뭐 무슨 노인정이나 그런데서 술 잡수시고 놀고 그런 건 싫어하셔요 한 가정에 진짜 어머님으로서

336 口 어련 시절 당신의 연습량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1-10-Cl) 하루 일과 중 연습량 연습량은 하루일과 중에 오후에는 네 시간 이상씩 불었던 것 같아요. 누가 시 키지 않아도. 왜냐면 그걸 잡고 있는 시간이 가장 행복해요. 口 1-10-(2) 연습 자기만족도 펑가기준(스스로 만족?, 일정한 시간동안 연습?) 그런 것도 없었어요. 그냥 부는 거에요. 그냥 좋아서 불고. 그 땐 불거라고는 형님이 노래해서 가리켜 준거 그런 거 부는 것 밖에 없잖아요. 그런 거. 그렇게 분거에요. 그런데 어려서 왜 그렇게 좋은 건지. 고등학교 때는 학과 공부 외에 개인 연습을 하셨는지요? 학과 공부 외에는. 그 당시에는 요 오전에는 학과공부를 다 했어요. 오후에는 전 공으로 들어가요. 하루에 네 시간씩 해. 피리만. 난 그거를 매일같이. 그리고 또 부 전공을 들어갔는데 난 전공 부전공을 다 피리만 했어요. 주야장창 피리만 불자. 그 리고 그거 끝나고 언제 또 청소하고 종례 끝나면 애들 다 가잖아요. 학교에 없죠? 학교에서 그 때는 김영재 선생. 김영재 선생이 중3 이었어. 내가 고 1 이고. 둘이서 밤 아홉 시가 되도록 막 불어요. 그냥 불었어요. 그러면 어떤 때는 이영희 선생님 이 야, 같이 하자 뭐 그러고 오시기도 하시고. 그렇지 않으면 둘이서 그렇게. 뭐. 그 때 교장 선생님이 학교 옆에서 주무셨거든요? 그래 듣는 모양이야. 그럼 이제 조회 때 아 어저께 누구 누구가 그렇게 늦게까지 연습을 하더라 그 때는 기분도 좋지만은 안하고 그냥가면 그게 그렇게 싫었어요. 연습을 참 많이 했죠 연습과 연주 외 에 음악 감상을 할 수 았었습니까? 그 당시에는 그런 것이 없었어요. 선생님들이 연주를 하신다 그러면 그것은 학 교관람으로 단체로 가서 듣기도 하고. 공연을 많이 보셨네요? 그때는 선생님이. 학교 행사가 많았어요. 그 때는 우리를 그냥 또 그렇게 보냈 어요. 가서 해라. 그리고 선생님이 참. 현장 경험이에요. 고등학교 때 그 때 라 디오에서 민속백일장이라고 있었어요. 그러면 현지에서 사람들이 신청해서 태평 가입니다 뭐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반주를 내 줘야 해요. 거기 가자고 하면 제 일 무서웠어요. 무슨 음악이 나올지 모르잖아요. 순수한 감상 경험은 기회는 많지 않으셨군요? 많지 않아요. 어렸을 때 움접. 그런데서도. 그런건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굿판에서도 틀으렸던 것들. 굿판을 하면 마루에 횟마루가 있잖아요? 거기에 팔을 패고 보고. 그게 피리 대 χ7 l

337 금 해금 소리가 좋아서. 口 전공 분야 외에 다른 예술분야에 대한 학습과 경험에 대해 말씀해주셰요. 口 1-12-Q) 당신은 전공 악기 외에 다른 분야에 경험을 쌓았던 적이 었나요? 다른 건 없어요. 다른 악기는. 내가 스스로 호적하고 피리만 공부를 했고 다른 건 따로 내가 좋아서. 선생님은 아니지만 동료들한테 가야금 짧은 거 산조도 한 바탕 떼고, 단소도 배우고, 또 지 선생님은 대금 산조도 한번 해봐라 해서 대 산조도 해보고. 하셨네요? 오래했지만 내 놓을 정도로는 안했었어요. 口 여러 악기의 연주(예술 섭렵)가 당신의 전공부야에 어떤 영향을 미 치는지 구체적으로 영향은 안 미치죠. 오히려 도움이 돼죠. 어떤 도움야 되나요? 예를 들어 대금에는 이런 가락을 쓰는데 피리는 이런 가락을 써선 안 되겠다. 부딪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래서 요런 건 아니다. 악기의 길을 서로 파악할 수 였으년까요? 그런게 필요하더라구요. 선생님, 음악이 다양해지거냐 이런데도 영향을 주던가요? 필요하죠. 네. 口 전통적으로 애기명창, 소년명창 이란 말이 었습니다. 이 말에 대한 평 가 부탁합니다. 저는 그 얘기는 싫더라구요. 그렇게 되면 다 명창이에요. 애기도 명창, 그 다음 에 무슨 성장, 거기도 명창, 요즘은 다 명창 명인을 부치는데. 우리들을 뭐 명인 이라고 하는데 저는 그런 소리자체도 별로 환영하지 않아요. 얘기명창이라는 말 자체가 어렸을 때부터 째능이 었다는 말인가요, 아니면 너 는 어쩔 수 없이 아무리 얘기소리야 이런 말인가요? 그런데 요즘은 그렇게 잘 하지도 않는데, 요 지역에서 한다고 해서 명창이라고 한단 말이에요. 또 봤을 때는 안 그런데 여기서는 명인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거 든요? 지금 우리 국악이 옛날에는 고등학교만 해도 잘 나왔다 했는데, 지금은 대 학을 거쳐 박사까지 다 하잖아요? 우리가 박사 정도되면은 전반적인 음악을 넘 나들면서 그런 걸 표현할 생각도 하면서 그렇게 해야 되는데. 너무 아닌데 이걸 로만 박사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런 걸 어디까지 박사를.차라리 음악이론, 아 니면 국악음악학 이런 식으로 박사를 받는다면은 좋은데. 옛날에 우리가 박사라

338 고 한다면 여러 가지로 꽉 차 있는 분들인데 요즘은 그런게 조금 좀 어디까지가 서야되는 건지 물론 거기까지 공부한다면 우리 국악인의 한 사람으로서 좋아요. 왜냐면 과거에는 국악하는 사람들 하면 멸시도 하고, 없고 그랬는데 지금은 있는 사람들이 하잖아요. 너무 좋아요. 그런데 고런게 정리가 좀 됐으면. 애기명창 소년명창 에 대한 분명한 의미를 틀고 싶습니다. 내가 듣기론 그냥 애기로서 잘 하닌까 명창이다, 못해서 너는 그결로 그냥 애 기명창이다라는 것은 아니다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명창이란 말은 좀 뺏으면 좋 겠어. 차라리 영재 다, 영특하다 이렇게 걸맞는 걸 해야지. o 2-1. 전통예술에 영재가 었다고 생각하는가? 어 사실 영재가 있다는 생각은 안해 봤어요. 그리고 늘 일상 말하는 재주가 있다 아깝다 그런 표현은 썼었죠. 근데 또 어떤 경우는 아까운데 지도 선생을 잘 못 만나지 않았나 그런 얘기도 해본적도 있고. 조금만 누가 좀 끌어줬으 면 저 친구는 좋은 음악을 만들어내고 성공을 할텐데 그런. 지금 까지 살아오면 서 아까웠던 사람들이 몇몇 있었어요. 아깝다 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넓은 의미에서 영재 의 지금 보닌까 그러네요. 의미로 포함이 되나요? 그런데 저희 전통예술분야에서 영재 라는 말을 안 써왔기 때문에. 그렇죠. 그러면 선생님께서 영재가 었다고 생각하신다는 전제하에 질문을 계속하겠습니다. 네 전통예술영째라 할 만한 아동을 보신 적이 었습니까?(초등 중등 고등) 口 2-2-(D 나이 아이들은. 내가 본적은 없지만은 음악을 하면서. 예를 들어서 인제 대학올 업한 학생들 이라든가, 고담에 고등학생들에게서는 고런걸 내가 잘 못 봤어요. 초등이나 중동에서는? 초등에서는 거의. 못 보시구요? 네. 더군다나 요즘은 모르겠어요. 우리는 고런 젊은 아이들을 상대할 그런 적 이 없으닌까. 못보긴 참 못봤어요. 근데 큰 애들은 좀 본적이 있죠. 口 2-2-CZ) 전공 피리

339 어떻게(어떤 전공, 혹은 징후를) 발견했나? 口 어디서? 그닌까 이제 악기 색깔도 참 좋아. 성음도 좋고. 근데 자기 나름대로 하는 것 은 아 느낌은 괜찮은데. 아, 요런. 쉽게 얘기 한다면 서치는 것이라든가, 입에서 노는 그런 부분이 안돼고. 또 연주할 때 겹도름과 흩도름이 있는데 요런 것을 사 용하지 못하고. 그런 것을 몰라서 사용하지 못하지 않았나 그런 그 아쉬운. 고 다음에 요성하는 것도 다 좋은데 요성하는 것도 왜 음악을 하다보면 흔들 때가 있고 안 흔들 때가 있잖아요? 그냥 자기 나름대로는 열심히 표현한다고는 하는 데 우리가 들을 때는 그건 아니어서. 그건 요렇게 좀 얘기 해줬으면 참 좋겠다라 는 그런 아쉬움도 갖지만은. 불러다가 건방지게 또 이렇게 해라 그러면 거기서 뭐가 고쳐지겠어요? 그닌까 내 나름대로 아쉽다 아깝다 그런 표현은 해봤었죠. 레슨하다가 발견하신 건가요? 아니요. 남이 하는거. 그닌까 나한테 배우지 않은 학생들. 다른 무슨 대회라든 지 혼자 막 연습들 하잖아요? 그럼 들어봐요. 그러면 저런 애들은 쪼금 누가 어 떻게 해줬으면. 그런 아쉬움이 들어요. 들었을 때 어떤 점들이 영찌성이 었다, 재능이 었다 생각이 드셨나요? 아. 고런 거는 인제 공부를 통해서 이렇게 하다 보면은 열 번을 반복해도 안되 친구가 있고 한 두 번하면 딱 알아듣고, 고 다음에 그 다음에 왔을 때 그것을 소화해서 오는 친구가 있고 전혀 안되는 친구가 있어요. 몇 번와도. 그래서 아 이런 친구들은 그냥 허긴 허되 어떤 경우에는 고만두면 어떨까. 안타깝죠. 안되 는데 그렇게 할려고 하는 사람은 그건 정말 안타까워요 안되는데. 그런데 쉽게 가는 사람은 본인도 그렇지만 가리키는 입장에서도 상당히 수월해요. 편하고. 고 다음에 재미가 있고. 그리고 욕심도 나고. 디 발견 후 어떻게 했나? 교육했나'! (yes. no) 요즘은 안 그래요. 우리 공부할 때에는 선생님 한 분 정해 놓고 공부를 시작하 면 그 선생님 안 계실 때까지 쭉 공부를 해왔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선생이 둘도 아니에요. 셋, 넷 이렇게 있어요. 영채성이 었다고 선생님께서 인정한 사량을 직접 교육하신적이 았으신지요? 아. 내가 지금 밖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몇 있어요. 근데 참 자랑스러워요. 어 떨 때는 저 놈은 나보다 낫다 는 느낌도 들어요. 그지만 내가 대놓고 넌 나보다 낫다는 얘기는 안해요. 왜냐면 사실 그런 거는 일부로도 안하고 그러는데 나는 맘을 갖고 있죠. 영재 아닌 친구가 있을거고 영재인 친구가 었을 거예요. 그러면 영재성 있는 친구를 달리 교육 시켜 본적이 았으신가요? 그런 거는 없어요. 제가 그 전에는 고등학교 애들도 공부를 가르켰었는데 지금

340 은 인제 안합니다. 왜냐면 얘기가 통해야죠. 그전에는 윗 모르고 했지만 지금은 안 해요. 근데 기초가 너무 안됐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 서치기나 더름이나 이런 게 선생님들 자체가 몰라 고 다음에 서치기가 선생들이 안돼. 안되다 보닌까 껴 네들한테 이걸 공부해라라는 그런 강요가 안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닌까 허긴 허 되 아주 기초적인 것을 모르고 지나간다는 거예요. 그의 예술가적 성장은 어 떠 했나? 많지는 안아요. 한 두명 정도 있는데. 그 사람들 지금 하고 있어요. 口 예술가적 성장인 경우 어떻게 성공했나? 음악활동들을 많이 하고 있어요. 언제는 전통과 창작과. 요즘 뭐 퓨전도 한다 고 하는데 그렇게 갖춰진 사람들은 뭘 해도 그렇게 나오는데 그게 안되는 사람 은 안돼요. 그닌까 전통이 안된 사람은 창작을 한다. 기초가 안됐는데 창작을 하 더라도 거기서 그게 드러나거든요. 口 예술가 포기의 경우 왜 그랬나? 자기는 재주는 있고 하기는 하는데. 지금 뭐 그런게 직장이나 뭐 이런거? 왜냐 면 나이는 먹어가고 또 생활하다 보년까는 나는 뭔가 어떤 경우에는 나보다 못 한대도 버젓이 직장을 가지고. 요즘 젊은이들은 관현악단 들어간다는 게 최고의 그거 같아요. 근데 사실 관현악단 들어가고 나서부터. 뭐 어떤 친구들은 김도 줄 고 오히려 안되는 경우가 있죠. 그래서 포기하고 중간에 안 하는 친구들이 있죠. 사회적 진출이 어렵거나 음악적 전망이 불투명해서? 그렇죠. 디 2-3. 전통예술영째 선발에 적절한 연령은 언재라고 생각하십니까? (해당전 공 전통일반) 우리도 좀 일러야 될 거 같아요. 초등학교 5.6학년? 그때 되면 불수 있죠. 말 귀도 알아먹을 수 있고. 거기선 거기에 맞게 아주 기초적인 것을 해서, 해야 된 다고 생각해요. 선생님, 그게 피려에만 해당하는 건가요 아니면 전통예술 전반에 해당흩}는 가요? 전통 다요. 口 2-4. 무엇이 전통예술분야 영재성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생각나는 대로 무순 으로 말씀하셔도 팬찮습니다. 공부를 시키다 보면은 그냥 잘하는 아이가 있고, 머리가 있어서 그결 응용을 하고 그 다음에 거기서 좀 더 나은 색깔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있어요. 그냥 우 지끈하게 하는 애들은 조금 뒤에 가서는 머리가 있는 친구들한테는 아무래도 딸 립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우리가 예민하게 발굴해서 정말 기초적부터 해서 맞게 하면은 아마 이담에 좋은 연주자나 후학들을 크게 건물로 써먹을 사람들이 나오

341 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요. 口 2-5. 위에 말씀하신 내용은 해당전공의 영째성인가요? 아니면 전통 전반인가 요? 구분해서 말씀해주설 수 있을까요? 전통예술 전반입니다. 口 2-6. 선생님은 해당 전공의 영재를 알아볼 때 무엇을 어떻게 해보시겠습니 까? 노래를 부르게 하나요? 춤을 추게? 구체적으로 어떤 노래 행동을 시커 보시는지요? 첫째는 그 아이의 마음가짐이죠. 이 음악을 얼마나 좋아하나, 열정이 있냐가 제일 중요해요. 그 다음에 아무리 꽤가 많고 머리가 좋아도 첫째 자기가 안좋아 하면 머리만 믿거든요. 첫째, 그 얘의 마음을 좀 읽어야 될 것이고. 거기서 재주 가 있고 그러면 좋은 음악가가 되지 않을까. 그 다음에 환경도 중요하죠. 우리가 듣고 자란다는게 얼마만큼 중요하냐면 예를 든다면 국악가족들 있잖아요? 거기 서 자란 아이들 껴네들은 어려서부터 그냥 뛰어 놀아요. 예를 들어서 엄마 아부 지가 가야금 거문고를 한다. 그러면 껴들은 거기서 예를 들어서 학원이면 학원에 서 막 뛰어놀아. 뛰어노는 것 같지만은 껴네들은 알게 모르게 듣고 있어요. 근데 어느 땐가 내가 예를 들어 거문고를 전공해야 되겠다. 그네들이 거문고를 하잖아 요? 그냥 다 한다닌까. 다 외워 가지고. 그래서 환경도 중요하다는. 그래서 개네 이 늘 듣고 자랄 수 있는 환경. 그런 열정과 애착, 가정환경, 그리고 중요한 게 앞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음악적 잠째력 같거든요? 그러면 음악적 잠째력을 알아보고자 할때는 어떻게 시 켜봐야 할까요? 기초서부터 훈련을 할 때 손가락을 멘다. 고다음에 홀도름과 곁도름 이런게 있 다. 서치기는 요런게 있고 우리말로 요성은 요렇게 요렇게 한다. 근데 고거를 흉 내를 바로 바로 낼 수 있는 요런 정도의 아이들이라면은 그것은 재주가 있다고 봐야죠. 시켜보면 뭔가 틀려도 틀립니다. 口 2-7. 어련 영째들의 선발에서 중요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뛰어난 예술 성취 능력, 연습 및 예술가적 설현에 대한 끈기, 열정, 예술가로서의 책 임감과 라더쉽, 공연현장에서의 순발력 등 누군든지 그렇게 보일꺼야. 이렇게 보면은 아주 좀 예민하게 보인다. 저 친구 는 무디게 생겼다 점잖게만 생겼다 이렇게 보이죠? 약간 예민한 것도 필요해요. 고런 친구들. 그닌까는 음악성 고런 것도 있으면서 좀 예민하다 뭔가 좀 빠르다, 순발력이 있다 요런 친구들. 예민하다는 것을 조금더 구체적으로 말씀 해주시겠어요? 예민하다. 그닌까 순발력이 있다. 머리가 좀 빨리 돌아간다, 그런. 예술적 감각이라고 봐도 될까요? 내가 생각할 때는 그렇게 봐도 될 것 같아요. 근데 그런 사람은 위험한게 뭐냐 m ι

342 면 잘 못하면 확 뒤짚히는 경우가 있어요. 잘 나가다가 뒤짚혀서 영뚱한데로 가 버려요. 포기하고. 그래서 끈기도 있어야 하고. 근데 어떤 애들은 재주가 있어서 빠른데 어떻게 가다보면 오히려 꾸준히 끈기 있게 가는 애보다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이 친구를 내가 연습을 해서 능가해야 되겠다 해야 되는데 그냥 포기해 버리는 빨리. 끈기가 없이 그러면 곤란하죠. 口 2-8. 전통 관련 영찌 발굴에서 어떤 지표가 가장 중요합니까? 중요한 순서대 로 말씀해주십시요. 음악적인 감각이 있어야 되고. 감각이 있으면서 머리가 있어야 되고. 고 다음 에 훈련에 들어갔을 때 훈련을 얼 만큼 잘 적응하고 받아들이느냐, 그리고 얼마 만큼 좋아하는냐 그런 정도가 중요하지 않은가. 口 2-9. 영재의 기교가 아년 창의력과 동기를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았을까? 창의력이라는 것은 특별한 것은 아니겠지만 연습을 통해서 내가 꼭 그렇게 해 와라 껴네들한테 맞게 가락이라든가 가잖아요? 근데 자기 나름대로 거기서 한 가락 더 집어 넣으면서 요렇게 해가지고와. 고런거는 창의력이라고 표현해야 되겠죠? 고렇게 만들어 와서 고 한마디 혹은 두 마디가 부드럽게 들린다는거, 기 본 가락에서 조금 가락을 더해서 좀 더 부드러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그런거. 口 영재 발굴에서 제안하질 수 었는 좋은 방법이 었나요? 방법. 참 어려운 질문만 계속 하네요. 그닌까는 영재발굴을 할 때 그 아이가 우선 관악이냐 현악이냐. 또 현악에서도 거문고냐 아쟁이냐 가야금이냐. 또 관악 에서도 대금이냐 해금이냐 피리냐 했을 때 예를 들어서 해금이다 그러면 해금을 가지고 한 번 해봐라. 한 시간 정도만 시간을 주고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해봐라. 그리고 한 번 들어 봐야 할 것 같아요. 거기서 여러 아이들이 있을 때 자기가 좋 아해서 그런 애들은 거기서 자기 맘대로 생각대로 악기를 주물렀지만 다른 애 보다 빠른 게 있어요 고런게. 그닌까 거문고 같은 걸로 음 스케일을 이렇게 해보 고 아리랑을 하는 애가 있고 아리랑을 못하는 애가 있고 그래요 그런데서 미묘 한 그런 것을 찾아서 뽑는게 낫겠죠. 그년까 기존에 었던 곡이 아니라. 아니지. 껴네들이 뭘 알겠어? 근데 어느 정도는 준비를 해 오거든요 영재 선발을 한다고 하면? 아 그러면은 그런 애들은 공부한 애들이 오거든요? 그러면 그 학년에 비해서 예를 들어서 초등학교 5, 6학년인데 거기에 비해서 애는 중학교 수준의 그 이상 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 예릎 들면 아주 깊은 농음에서 눌러서 내는 음이 있잖아 요? 그런 것을 만들어낸다. 그러면 음악성이 있는 애들이 거든요. 음악성이 시김새에서 많이 드러나나요? 그렇죠 소리내는 거야 다 똑같이 내년까. 왜냐면 그런 애들은 다 공부하고 왔을 테닌까. 찌 써

343 2-11. 전통예술영재를 선발하는 전문가들 어떤 방식으로 선정하는 것이 가장 공정하고 정확할 것이라 보십니까? 그런 경우에는 연세가 있으신 선생님들은 관악도 현악올 듣고 현악도 관악을 듣거든요? 그런데 참 위험한 게 내가 현악을 함으로서 현악에 가서 보면은 어떻 게 제자의 제자의 제자가 왔고 그런 경우가 있어서 잘 못 오해를 받을 소지가 많은데 그렇게 되면은 뒷 얘기를 다 정해 놓고 뽑는다 이런 얘기도 들을 수 있 거든요? 그래서 전혀 상관이 없는 선생님을 모셔다 몇 분씩 모셔놓고 거기에 동 참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필요한 것 같아요. 전혀 상관없는 선생님이라면 전공이 다른 선생님을 말씀하신 건가요? 그렇죠. 내가 아까 말했듯이 관악을 하셔도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예를 들어서 피리의 어느 선생님들은 정악, 현악을 듣는다. 다 꿰고 있잖아요? 민속악의 관악 을 하지만은 산조를 탄다 그러면 성음을 다 듣거든요. 그런 선생님들도 몇 분은 현악이지만 추대를 헌다든가 해서 나는 정말 깨끗하고 정말 될 사람 또 될 사람 이 들어와야 되고. 상이라면 정말 상을 탈 사람이 탔으면 난 정말 그렇게 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어요. 口 국내얘셔 전통예술영찌들이 성장하는데 가장 큰 걸렴돌아 되고 있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걸림돌이 정신적이거. 예를 들어서 직장에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아 오면은 (동일 집단 내에서 뛰어 나기 때문에 받는 시련과 상처에서 기인한) 내가 여기를 떠나서 다른 세계에서 폭넓게 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아 더럽 네요. 이거 때려 치우고 싶다, 국악세계가 더럽다, 하기 싫다 그러다 보닌까 국 악하는 사람들이 다 그렇게 보이고 싫어지는 거죠. 그런거를 참 조심해야 될 거 같아요. 내가 국악원에 민속단에 있었잖아요? 젊은 친구들을 노련한 친구들은 우리 자체적으로 스타를 만들어서. 스타가 되면 주위 사람들이 몰리잖아요? 그러 면은 민속단이 참 크게 꽃이 필것이고 그 다음에 크게 봐서는 국악원이 전체가 남다르게 드러날 것이고 그래서 내가 그렇게 얘기를 했드니만 반대하는거 있죠? 그렇게 자기네들은 원치 않는다. 그래서 접자. 바로 접어 버렸어요. 왜냐면 그래 봤던들 그 사람들이 한 두 사람이 어야지. 그 무리가 있기 때문에 안돼요. 영재들을 수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죠. 뒷받침을 해줘야 하고. 나는 정말 영재들이 악단 같은 데 안 보냈으면 좋겠어요. 학교나 이런데서 정말 그 사람들을 끝까지 공부시키고. 또 학교에서 연주를 통해 자꾸만 자기것을 자꾸 개발해 낼 수 도 있고. 또 사실 음악이라는 것은 남의 것을 많이 봐야 되잖아요? 마찬가지로 그 사람들도 그런 걸 통해서 많이 보게 하고 거기서 뭔가 더 많은 걸 만들어 내가고 이렇게 해 나가야 된다 고 해요. 그런거는 학교 쪽이나 학교의 연구실이나 뭐 이런데서 그런 친구틀을 발굴해서 진짜 뒷받침 해야하는 그런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344 口 전통예술영재가 앞으로 성장하여 음악가로서 담당(강당)해야 할 얼들 을 어떤 것이 있겠는가? 전통과 창작과 이런 것을 전부다. 사실 능통해야 된다고 해야 될까요? 그렇게 하면서 어떤 경우에는 비교도 해야 되겠고. 그 다음에 그네들이 연주하다보면 자 기네가 선생님한테 쭉 공부해 왔을 때 선생님들이라고 해서 다 바르게 가리킨 것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전문적으로 그네들이 그 때가서는 수준급이 되닌까 그 런 것을 폭넓게, 냉정하게 해서 정리 정립을 해놓는 연주회를 통해서. 그런 것이 필요하지 않은가. 또 앞으로 교육에서는 정말 기초적인 것을 꼭 함으로 그닌까 처음 시작할 때는 늦는 듯하지만 앞으로 봐서는 더 빠르다는 거. 그런 거를 전체 적으로 폭넓게 해서 아 이것을 해야 한다 그렇게 자꾸만 해서 배우는 학생들에 게 시도해서. 그것을 하는 사람들은 모든지 거기서 꼭 필요한 기교나 기초적인 것을 충분히 할 수 있는, 또 자기가 의식적이든 무의적이든 그런 것을 소화할 수 있는 그런 음악인들이 됐으면 좋겠어요. 口 ). 선생님의 출생지, 성장지는 어디였나요? 출생지. 지금은 구도 바뀌었지만 그 당시 주소가 서울시 특별시 성동구 군자동 50번지에서 태어났어요. 거기서 성장. 이십 몇 살까지 살았죠. 이른 밤 움 에서 연주하는 것을 자주 들으셨다고 하셨는데, 그 때가 몇 살 때 였나요? 그 때 초등학교 때에요.5학년, 6 학년, 중학교 1, 2 요때. 口 ). 동네에서 피리를 하셨다던 두 분의 성함은 어떻게 되나요? 口 3-3-CD 건대 사학과 다니시던 분은 작은형의 친구? 예. 디 3-3-(2) 굿 집에 다니시던 분은 작은형의 친구? 예. 口 3-3-@ 두 분다 지영희 선생님의 제자셨나요? 예. 큰 형친구 분은 김은산씨. 고 다음에 작은형 친구분은 한인국. 口 ). 지영희 선생님께서 포듬북을 하셨다고 했는데, 처음으로 만들었다 는 뭇인가요? 그렇죠. 북을 여러 개 달아가지고. 口 ). 처음 학교에 들어가서 배운게 검 넣기 라고 하셨는데, 이 과정을 얼마동안 학습하셨나요? 김 넣은 것은 어느 한 과정이 아니구요. 우리가 고등하고 졸업 하도록 선생님 짜 씨

345 께서 일단 앉으면 김넣기, 손가락 떼기, 혀치기, 더름치기, 겹도름, 흩도름, 고담 에. 혀 목튀김 이런 등등을 먼저 하고 난 다음에 항상 수업 들어갔어요. 그러년까 3년 내내 수업들어가기 전에 기본으로 하신거군요. 예. 口 3-6(1-6). 고등학교 이후, 지영희 선생님께 공연 등을 계기로 학습 받으셨다 고 하셨는데 언제까지 였냐요? 고등학교 졸업 후에 그 당시에 시립 관현악단이 새로 생겼잖아요. 그 당시 창 단 멤버로 거기있다가 고 다음에 관현악단 다니면서 서라벌 예대 갔어요. 67년 도 이때에. 그래가지고 다니면서 그 당시 서공철 선생님이 찾아오셨어요. 와가지 고 미국가자고. 그래가지고 김영재선생하고 나하고 미국갈 때 같이 갔어요. 그 때 67년도. 그 당시에는 그게 귀한건지 몰랐어요. 지금 보닌까 참 그 선생님한테 미국 가서 많이 배웠다는 것을 알았죠. 한범수 선생님이랑 같이 갔었죠. 그 때 이후로 또 지영희 선생념께 배우셨나요? 예. 그러면 몇 년 까지 지영희 선생님째 배우셨나요? 선생님께는 참 무궁무진하죠. 근데 참 아쉬운게 선생님이 안계시닌까는 이런 것도 배워야하고 저런 것도 배워야하고. 선생님 돌아가설 때 까지 배우신 건가요? 그렇지는 않죠. 컷으닌까 저희 생활도 있고 음악생활도 하다 보닌까 그렇지 않았죠. 선생님 몇 살 때까지 지영희 선생념과의 학습의 연관을 가지셨나요? 학습으로는 스물. 한 삼십. 삼십대까지. 口 3-7. 지영희 선생님께서는 좋은 스승 혹은 음악가에 대한 어떤 기준이 었으 셨나요? 아닙니다. 그런거는 말씀 안하셨어요. 대신 음악하는 사람은 항상 어디가든지 아주 열심히 해야 된다. 고다음에 자리를 가리지 말아라. 무슨 말씀하셨나면. 참 그 말씀이 잊혀지지 않는데 음악하는 사람은 파리와도 같다. 파리가 좋은 음식 에도 앉고 쉰음식에도 앉고 그러듯이 우리가 안좋은 자리에서 음악할 수 있고 참 좋은 데서 음악할 때도 있고 그런게 있느니라. 그러면서 어디를 가든지 최대 한 열심히 해라. 口 3-8(1-8). 연습을 안 하면 큰 부당을 느끼셨다고 했는데, 언채부터 그런 생 각이 들었나요? 내가 피리를 얻고 나서 소리 나는 것을 배우고. 손가락 떼는 것을 잠깐 배우 고 왜냐면 그분들이 굿집을 다니기 때문에 늘상은 가서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m 씨

346 그리고는 저 혼자 집에가서 연습 허다보닌까는. 큰형님이 노래를 잘 하셨었요. 경서도 민요, 잡가까지 참 다 잘하셨는데 그 형님이 늘 앉혀 놓고 처음에 시작한 다고 패기도 했는데 인제는 한다고 하닌까 붙들어 앉혀 놓고 노래해주시변 내가 피리로 받아서 하고 그래서 한 것이 예술학교 들어가기 전까지의. 거의 경기민요 는 다 배웠어요. 피리를 처음 잡으설 때 연세는? 나이가, 57년도 그때닌까 13, 14세 때. 口 3-9. 하루의 연습량에 대해 고등학교 이전, 고등학교, 졸업 후로 나누어 말씀 해 주세요. 시간으로 환산한다면 하루 일과가 8시간이라면 4시간은 불었어요- 그럽 고등학교 때는 더 하셨겠네요. 그렇죠. 엄청 불었죠. 뭐 우리는 공부보다도 피리부는 사람은 피리만 잘 불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엄청 불었어요. 학교도 8시간 수업에 4시간은 전공 부전 공으로 들어가요. 내가 전공, 부전공 들어가서 피리를 불고 그 외에 끝난 후에 밤 9시, 10시까지 피리를 불었으닌까요. 정말 8시간을 불으셨네요. 8시간 불어야죠. 고등하교 이후에 예대가시고, 대학교 시절에는 어느 정도를 연습하신건가요? 그때 가닌까 많이 안 불게 되요. 벌써 언제 대학교 가면 머리 컸다고 친구들도 있죠. 여학생들하고 남학생들하고 미팅한다고 해서 가죠. 안됩니다. 그래서 정말 공부할 시기는 고둥학교 때 까지. 대학교 가서는 그렇게 안됩니다. 힘도 좋고 머 리도 맑을 때. 口 3-10(1-10). 고등학교 설절 밤늦게 김영재, 이영희 선생님들과 함께 연습했 다고 하셨는데, 검영재 선생님은 거문고 연습을 하신 건가요? 해금. 이영희 선생님은 가야금 하시는 분 맞나요? 예 그때 선생님 이셨나요? 그럼요. 우리 틀어갈 때 그때 국어 선생님 이셨어 요 그 때 이영희 선생님이 이대 나오시고 텀없이 바로 예고에 오셨던 거 같아요. 그렴 당시 26, 네. 27잘 정도 되셨겠네요? 337 -

347 口 당시 교장선생님 성항은 무엇이었나요? 박헌봉 선생님. 3-12(1-11). 음반 및 라디오를 통한 음악 감상의 기회는 없었나요? 저는 지나가나다 우리 노래 소리가 들어오거나 뭐 그러면 가다가도 멈췄어요. 그것은 여}고들어가기 전부터 그랬어요. 그냥 무작정 좋아서 듣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리를요? 그럼요. 그게 감상이죠. 그 당시에 따로 감상할 때가 어댔어요. 口 3-13(1-12). 호적은 언재 누구에게 배우 셨나요? 호적도 역시 지영희 선생님한테 배웠습니다. 口 3-14(1-12). 동료들에게 짧은 가야금산조 한바당과 대금산조 및 단소를 배우 셨다고 했는데, 언채 누구에게 배우셨나요? 가야금 산조는 시립국악관현악단 초창기에 1 년 후배 송숙희씨가 있었어요. 송 숙희씨가 가야금을 했는데. 그때 하루에 매일 아침 만나서 일찍 출근하닌까 세장 단도 배우고 네 장단도 배우고 요렇게 한 것이 짧은 한 바탕이 그냥 되더라구요. 그 다음에 대금은 지영희 선생님이 대금도 좀 알아야 한다 해서. 대금은 선생님 이 한주환 선생님 릴테잎 채보를 해서 짧게 해서 대금을 가르켜 주셨어요. 선생 님이 부셔서 직접 가르쳐 주셨어요. 단소는 선생님이 부시는 거 보고. 따로 앉혀 서 가르쳐 주시지는 않고 연주하실 때 옆에서 듣고. 고담에 저는 악기를 가지고 장난 아니게 많이 놀았어요. 장단을 많이 놀리면서 뭔가 자꾸 만들어 낼려고 하 는. 그런 걸 자꾸 충동 해가지고. 제 나름대로 막 불고. 단소는 그냥 따라 배우선거네요? 네. 口 3-15(2-2). 전통예술영찌라 할 만한 아동을 보신 적이 었냐는 질문에 큰 애 들은 본 적이 었다 고 하셨는데, 몇 살짜리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중학교. 중학교 정도 됐는데. 저 나이에 고등학교 나이의 성음과 맛을 표현해 낼 때 그런 애들은 뭔가 알고 하는 거 같으닌까 그런 애들은 발굴해서 잘 길러 주변 좋을 거 같습니다. 口 창작도 가능하면서 기초가 탄탄한 학생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아 볼 수 었을까요? 제 나름대로 말씀드리자. 애매하긴 하지만. 기초라는 것은 기초가 탄탄해야 하 는 거 아니에요. 어느 음악이라든지 짝 뻗으면서 소리가 흔들리지 않고. 고 다음 에 고음이나 고다음에 저음처리 할 때 아래 위를 넘나드는데 음정이나 아니면은 흔들림없는 음정 표현을 해낼 때, 만들어 낼 때 아 요런 친구들은 감각 있는 친구들이구나 그만큼 연습을 해도 안되는 애들이 있거든요. 고 다음에 인제 예

348 들어서 불다가 3도 튀는 고음에서 딱 될 때, 그럴 때는 보통 힘으로 미는 것 하고 서를 탁 치면은 힘을 안들이고 고음이 예쁘게 쩍어져서 바로 난다는거. 그 런 데에서 나는 그런 거를 좀 볼 수 있지 않나. 口 3-17(2-3), 영째교육을 5, 6학년 때 기초적인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하셨는 데, 기초적인 것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이 있을까요?(전공 전통얼반) 예를 든다면은 과거에는 굿집 다니는 선생들이 굿집을 다니겠다고 배우러 오 는 성인들한테 그 사람들에게 김만 넣어라. 그것을 일 년 불리고 이 년도 불리는 사람이 있어요. 이년 동안 손가락 뜯지 말고 다 막고 불기만 해라. 사실 그게 미 련한 거 같고 무식한 거 같은데 어떻게 보면은 그만큼 소리 내는게 중요하다는 거. 고 다음에 소리 내는 거는, 요새 사람들은 불면서 바로 손가락 뜯잖아요? 사 실 그러기 전에 정말 탄탄한 소리. 그래서 정악이나 그런거 할 때는 상영산 같은 거 빵빵 불고. 그런게 필요하다는 게 뭐냐 하면은. 바로 손가락 띠고 그러면 바 로 장호흡을 할 수가 없어요. 그런 연습을 통해서 탄탄하게 굳혀 가는 게 중요하 지 않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口 3-18(2-4), 머리가 좋은 친구틀은 시킨 것을 응용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구체 적으로 어떻게 응용하던가요? 예를 들어서 아리랑을 한다. 어떤 애들은 잔가락을 넣으면서 표현을 더욱 예쁘 게, 듣기 좋게 만들어내는. 口 3-19(2-6), 음악적 장재력을 알아볼 때, 요성이냐 서치기 둥을 따라하기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씀해주셨는데, 그렇다면 장단이나 음정 등은 중요하지 않은가요? 중요하다면 어떻게 알아 볼 수 있나요? 중요하죠. 왜냐면 천성적으로 태어나면서 장단 길에 귀 어두운 사람이 있어요. 나이 먹어도. 지금 성인인대도 어떤 사람은 자기가 음악하면서 장단 안에서 자기 가 뭔가 가지고 놀아야 하는데 장단이 거꾸로 맞춰지는 격, 그건 안돼요. 그 다 음에 음치라고 하죠 왜? 음치 그런 사람들은. 저도 그런 학생들을 지도 해봤는데 정말 힘들어요. 그래서 우리가 나오는 기본 음자리 있잖아요. 예를 들어서 솔라 도레미다. 솔라도레미만. 고것만 스케일을 연습하라고 했어요. 우선 기본 바탕의 알아야 되는데 그것을 못 내는 학생들은 정말 답답하드라구요. 그래서 그 걸 맹 훈련을 한참 하닌까 되긴 되드라구요. 선생님, 제가 여기서 알고 싶은 것은. 장단이나 음정에 있어서의 음악적 장째 력이 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 볼 수 었는 건가요? 장단일 경우에는 우리음악에 장단을 걸고 넘어가는 것도 있잖아요? 아니면 먹 고 들어가는 것도 있고. 그런 것을 장단을 치지 않고 먼저 가르쳐 주잖아요? 친 다음에 한 동안 한 다음에 한 번 해보자 하면 그것을 딱딱 하는 애들이 있어요. 고건 장단귀가 있는 애들이에요. 고다음에 음악성도 있는 거에요. 왜냐면 그것을 자기가 어쨌든 연출하면서 거기서 만들어 가잖아요. 고런 것은 참 재주 있는 학 $

349 생들이죠. 근데 그것을 해도 해도 안되는 사람이 있어요. 선생념 그렇다면 음감은? 음감은 보통 이렇게 얘기하면 딱 알아먹는 애들이 있어요. 저는 이런 얘기해 요. 나이 든 선생한테 마지막 제자는 문제가 있을 확률이 한 80%는 있다. 왜냐면 춤 하시는 분들은 자꾸 허리가 꾸부려지고, 노래하시는 분들은 음정이 내려가고, 기악도 마찬가지로 허면서 음정이 내려가고. 그래서 그런 애기를 합니다. 젊은 천구가 음감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언가 곡을 시켜 보면은 무언가 고런 게 있습니다. 고 다음에 음감이라는게 절대음도 필요하지만은 우리음악에 왜, 요 음은 약간은 살려줘야 그 맛이 난다. 예를 들면 서도소리의 시김새라든가. 예를 들어서 경제와 서제는 이런 표현을 해 줘야 한다. 해봐라 그러면 고거를 딱 알아듣고 바로 하는 경우가 있어요. 口 3-20(2-8). 영째 발굴에서 중요한 지표가 되는 것이 음악적 감각 이라고 말 씀해주셨는데,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설명해 주세요. (장단, 음정, 분철 등) 음악적 감각이라는 것은 조금 전에 말한 것과 비슷하지만은, 음악하는데 고런 것을 자기가 바로 바로 받아서 내것화 해서 연주할 수 있는 고런 잠재력있는 머 리라고 할까요? 재주,고런게 있는 친구들은 모든지 잘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국 악하시는 선생님들 말씀대로 말 귀를 알아듣는 학생 참 그게 애매하지만은 어 쨌든 그런걸 다 포함해서 말 귀를 알아듣는 학생 이다고. 口 3-21(2-10). 영째 발굴할 때 한 방법으로 거문고나 해금 등을 한 시간 정도 만 주고서 하고 싶은 것 해보도록 하고 이를 살펴보자 라고 하셨는데, 이 때 한 시간 정도는 긴 시간인가요? 짧은 시간인가요? 아이의 능력을 알아 볼 수 있는 적당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口 4-1. 전공 분야 외의 다른 예술분야 (혹은 다른 분야)에 관심을 두신 적이 었 습니까? 그렇죠. 제가 기악을 하지만 워낙 소리 쪽을 좋아 하닌까 소리. 경기소리도 좋 아하고. 제일 먼저 많이 들었던 소리들이 경기소리, 서도소리. 어려서 많이 들은 게. 사실 그 당시에는 판소리는 그렇게 라디오에서 많이 안 나왔어요. 제일 많이 기억 되는게 묵계월 선생소리. 그 다음에 이은주 선생의 소리. 고다음에 또 서도 소리를 많이 들은 게 그 당시에는 이은관 선생의 베뱅이. 거기서 산염불도 나오 고 그러면 그 소리가 아주 시원하고. 그래서 어려서 그런 것을 흉내를 많이 냈어 요. 흉내를 많이 내면서 내 나름대로 따라도 하고 한 것이 많이 듣다 보닌까 표 현이 좀 되는거. 지금은 누가 그렇게 소리를 하고 그러면은 아 저건 아닌데 왜 이게 안될까 그래서 나도 저결 좀 해봤으면 어했을까하는 그런 생각도 해봤었어요

350 소리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설제로 들었던 음악들을 피리로 따라 해보고 그랬단 말씀 이시죠? 그런데 그게 선생념째서 기약을 하시는데 어떤 영향을 미치던가요? 기악을 하는데 있어서 저는 100% 효과가 있다고 생각을 해요. 왜냐면 노래 함으로써 악기 옮기기가 너무 편안한 거에요. 그 다음에 곡을 이해하면서 하닌까 좋고. 요즘 사람들은 노래를 모르면서 악기를 가르켜 주면 그것으로 하닌까는 한 계가 있고 멋을 낼 수 가 없어요. 그래서 저는 피리로 수심가다 그러면 수심가는 과거에는 반주가 없었거든요? 언제가 한번 하고 싶다 했는데 사실 무대 위에서 수심가 반주를 했어요. 어쨌든 제가 시도를 했었어요. 그 만큼 피리로 뭔가를 해 고 하는 그런 노력은 참 많이 했었어요. 표현력도 증대됐고, 공연을 하는데 있어서 컨렌츠도 만들 수 있었고. 그건 아주 절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口 4-2. 학습을 하던 시절 전공분야 외에 다른 예술분야의 전공자와 교분이 았 으셨나요? 口 었다면 어떤 전공의 누구이며, 어떻게 내 전공과 관련되는지 말씀해주설 수 었나요? 사례를 들어 구체척으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김영재 선생님. 저는 유난히 친했던 사람이 그 분이었던 거 같아요. 김영재 선생님과의 교분이 전공능력에 영향을 끼치던가요? 같이 연습을 하다보면은 서로 여기 좀 이상하다 다시 좀 해보자 그러면서 서 로 그결 가지고 만족을 느껴가면서 연습할 때 참 좋았고, 그 다음에 서로 그런 얘기를 합니다. 여긴 좀 이상한 것 같다. 여긴 참 좋았다. 그러면서 평도 해가면 서 그런 얘기를 김영재 선생한테 참 많이 배웠죠 다른 분야의 관심과 경험을 자신의 전공 분야에 활용한 기억이 았으시 나요? 작은 사례를 들어 설명해 주설 수 있겠는지요? 저는 어려서는 다 그렇겠지만 자동차 같은데 관심 많았었고, 건축 쪽에 관심이 어려서는 있었고. 선생님 그런 분야가 선생님의 전공분야에 영향을 끼쳤나요? 아닙니다. 안끼쳤어요. 口 4-4. 다른 예술분야를 자기 전공분야와 함께 배운다면 어떻 앗점이 었겠는지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피리를 한다고 한다면소리. 그 다음에 현악. 현악의 무슨 뭐 남자 같은 경우에 는 거문고를 좀 한다든가 그러면 참 좋을 거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닌까 그래요. 어떤 엇점이 었을까요? 피리를 하거나 그러면. 시나위나 이런게 표현이 현악을 하면은 이렇게(농현흉

351 내) 눌러서 이걸 다 하잖아요? 근데 고런게 현악을 한다면 더욱 깊고. 고다음에 긴 산조라든가 짧은 산조가 있잖아요? 그 안에 가락들이 참 많잖아요. 그것을 관 악하는 사람들이 피리하면서. 사실 좀 좁거든요. 예를 들어서 시나위를 십분씩 하자 그러면은 시나위 그게 뭔데 십분씩 하냐 하지만은 만약에 그런 산조 한바 탕을 다 한다면은 그 속에서 응용해가지고 얼마든지 연주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생길 거 같아요. 소리 같은 경우는요? 소리도 마찬가지거든요. 소리가 사실 그거보다는 더 먼저잖아요? 그래서 더욱 더 좋죠. 판소리라든가, 아니면 경기라든가. 口 4-5. 무대에 서기 전 혹은 시험이나 콩쿨에 나가기 전에 얼마나 어떻게 연습 을 하셨는지요? 언제 그것은 누구나 다 마찬가지에요. 무대 공연올 잡아 놓거나, 아니면 독주 회나 발표회를 잡아 놓으면 그 순간부터 그게 남아있죠. 요렇게. 얹쳐 있는다고 그러나 그런 표현. 그렇게 하면서 그것을 자꾸 풀어가기 위해서는 연습으로 만족 을 해야 돼요. 그래야 그게 응어리가 점점 가까이 가면서 커지는 게 아니라 좀 풀어져 가지만은 연습을 안해 놓으면 점점 더 커지고, 내가 자신이 자꾸 쪼그라 드는. 부담 때문에. 내가 연습을 그만큼 해 내면 자신감이 이렇게 어깨가 펴지 그런 게 있습니다. 고다음에 인제 나이가 점차적으로 들어가면서 뭐가 있냐면. 특히 피리같은 경우는 허다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거는 내가 자신이 없어서 가 아니라 힘이 딸려서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왜냐면 입이 풀려 버린단 말이에 요. 그래서 요새 젊은 애들이 이러는게 엽이 풀리면은. 그러기 위해서는 무한히 연습 해야돼. 그닌까 힘이 여기 정말. 운동해서 근육 붙듯이 입술도 힘이 붙어서 피리를 어느 정도 지탱해도 여기가 풀리지 않을 정도로 그러면서 내 가락을 원 만하게 만들어내는. 전 그래서 피리가 허면서 정말 힘들구나. 점점 그런 결 느껴요. 중요한 공연이나 시험 앞두고는 주로 연습량을 늘리는 방법으로? 려야죠. 당연히 늘립니다. 별도의 다른 훈련방법 같은 것은 사용하지 않으세요? 일단 거기에 연주할 것을 주로 집중적으로 연습하죠. 평상시 보다 시간을 더 많이 해서 어련 시철 (음악을 일방적으로 배우던 시절) 음악을 하는 목표가 무엇이 었나요? 왜 음악을 포기하지 않고 하신 것업니까? 전 어린 시절에 그냥 무조건 좋았어요. 또 어느 한순간 커가지고 고등하교 되 면서 졸업할 때 아 정말 내가 이걸 해가지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한 순간 에 슬럼프 빠졌던 그런 시절이 있어요. 그런 적도 있었고. 고 다음에 아, 내가 이렇게 힘들게 하고 있는데 늘고 있는 건지 한계라고 그럴까 하튼 늘고 있는 건 지. 점점 더 안되는 거 같은. 그럴 때는 아 이걸 그만둬 그러고 놨다가 또 잡아 요. 그러면 그 힘들 때 놨다가 어느 땐가 잡아서 하면 힘이 올라오고. 막 혼자

352 연습해도 아주 잘 될 때가 있어요. 그러면 아, 혼자 터득이랄까요 느껴가면서 공부를 했죠. 요런게 과정인가 보다 그러면서 이것을 놓지 말아야 겠다는 목표가 었였을 것 같은데, 어떤 목표? 음악이 좋아서요. 국악이 좋고. 또 시골에서야 뭐 거기서 그걸 안하고 한다면 그냥 농사나 지어야죠. 돈이 많아서 장사를 한다든가 할 수 있겠지만. 그냥 그런 거 보다도 먼저 음악이 좋았어요. 口 4-8. 어떤 상황에 연습을 시작하고 마쳤습니까?(음악에 대해 만족할 때 그만 두었다거나, 시간을 정해놓고 그만 두었다거나, 지루하면 그만두었다거나, 조 금해도 잘하니까 조금만 했다거나 등) 전 그런 거 없었어요. 하여튼 시간 날 때 마다 부는 거에요. 그닌까 저는 집에 서도 그냥 막 불었어요. 아래 위집 상황 생각안하고. 마칠 때는? 심부름. 심부름가서 뭐 사와라 이럴 때 놓고 가고. 해 저불어서 잘 때 그 때는 안불고. 늘 피리를 갖고 다녔어요. 연습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얼장에서 계속? 내가 생활한 한 부분이에요. 요새는 나가서 거 같아요. 연습해야 한다 나는 새로이 들은 口 4-9. 무대에셔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여 연습을 한 경우가 었다면, 어떻게 했 습니까? 그럼요. 연습하죠. 어느 때는 걱정 부담이 되고 걱정이 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이것을 안할 수도 없고, 헐 수도 없고. 그럴 때는 그냥 얼른 잡아서 해야 하는데 그 잡는 것도 어느 때는 쉽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렇지만은 언제 부담이 점점 더 커가는게 뭐냐변은 젊은 애들은 틀려도 그냥 그렇게 봐줄 수 있고 인제 그러는데 지금은 나이도 그 만큼 왔고 나이에 맞게 내가 또 연주 해야 하고, 고 다음에 내 이름에 맞게 연주해야되고 그런 부담들이 나아닌 다른 선생님들도 똑 같거든요. 그래서 더욱더 신경을 쓰고. 선생님, 무대에서 최악의 경우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뭐 연주를 하다가 연주들끼리 벌어지는 상황이 있잖아요. 잘 못 간다. 옛날에 관현악을 하는데 정악을 했어요. 잊어먹었어요. 피리가 흔들리년까 그 전체가 다 영망이 되는거에요. 어쩔 수가 없드라구요. 어디가 처음인지 뒤인지도 모르고. 그 런 경우가 딱 한번 있었어요. 시립국악관현악단 할 때. 그 이후로는 그 것을 극북하기 위해서 별도로 어떤 방법으로 연습을 하셨나요? 예를 들어서 곡에서 곡 넘어갈 때, 요 부분이 아리송할 때 고런 부분은 좀 더 집중적으로 연습을 하죠. 왜냐면 거기서 매듭이 잘 못되면 이게 영뚱한 데로 가 거든요. 큰 일 나는거죠. 이게 지금까지도 악몽이 잊어버리지 않아요

353 口 학생 때 스숭이 가르치는 대로만 했나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도 해보고 그랬나? 일단 받을 때야 똑같이 하죠. 그 다음에 선생님은 우리에 맞게 음악을 가르쳐 주시거든요. 거기다 고둥학교 시절에 성인들처럼 해주면 우리가 받기도 힘들고. 그러면서 선생님은 항상 정리를 해주셨어요. 요 음악은 요대로 불어라 그 다음 에 요 음악은 다른 선생의 어느 좋은 가락이기 때문에 그것을 배워서 니가 여기 다 넣어도 된다. 고런 말씀을, 정리를 해주셨어요 자기가 어느 정도 잘한다는 자신강이 든 적인 았었나? 저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음악 연주 생활도 하고 그럴 때. 그러면서도 항상 선 생님 그늘에 있었죠. 그래서 선생님이 어느 어디 가서 어느 선생님하고 무슨 음 악을 해라 그러면 가면 다 물론 선생님들이죠. 어떨 때는 피리가 둘도 있고 셋 도 있을 때가 있어요. 그러면은 다 나 보다 위인데도 아 이 피리 소리는 아니 다. 내가 갓 고등학교 나온 놈이 아, 이건 아니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다 그냥 좀 뭐랄까 좋게 얘기해서 자신감 뭐 바보스런 그런 일이었죠. 자신감이 들었을 때 선생님의 기교는 어느 정도였나요? 그때는 참 많이 좋았어요. 그 때는 선생님 외에는 어느 분도 무서워 보지 않았 어요. 그 정도로 자신감이 있어요. 왜냐연 전반적인 것을 다배우고 그리고 힘도 있었고. 막 많이 부닌까. 정말 웬만한 어른 이상으로 불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자꾸 나이가 들면서 아, 내가 좀 건방졌구나. 口 남과 다른 자신만의 표현 방식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한 적이 었던가? 고등학교 때부터. 요런 거는 나만이 갖고 있어야 겠다, 그리고 뭔가 흔들더라도 남 달리 흔들어야 겠다, 그 다음에 소리를 내더라도 좀 더 예쁘게, 고 다음에 흔들리는 것도 남들보다 예쁘게, 고다음에 가락을 넣더라도 남들보다 좀더 예쁜가락, 요렇게 평평하게 갔으면 약간 들어서 갔다가 안들어가는 그런 연습을 많이 했어요. 어떤 계기로 그런 생각을 하시게 되었냐요? 사실 음악이라는 게 똑 같잖아요. 그리고 그 당시에는 그냥 욕심에 남보다 더 잘해야 겠다는 생각 밖에 없어요. 학교교육을 통해서 생겨난 자연스러운 경쟁의식이네요? 그렇죠. 그땐 네가 나보다 더 많이 안다. 예를 들어서 민요를 너 몇 가지 아느냐 난 이정도 안다 그래 그렇게 해서 해보기도 하고. 고다음에 같이 연습 하다보면 못 따라올 때가 있어요. 그러면 모르는 거거든요. 그러면 내가 더 잘한 다는. 성취감 그런거죠. 어리닌까. 口 스숭아 하지 말라 했던 표현틀을 해보고 성공해본 적(만족스러윗던 적)이 었던가?

354 제가 이충선 선생님의. 피리하시는. 어느 날 방송을 하는데, 그 분이 염불타령 을 요상하게 하는데 괜히 그게 마음에 들더라구요. 그래서 어느 땐가 선생님 계 신지도 모르고 그걸 했어요. 그랬더니 대번에 뭐라고 호통을. 선생님이 표현을 뇌란가락(노란가락) 이라고 하면서 그런 가락을 하지 말라고 하더라구요. 가벼워 보이고 천해보이고. 요런건 제대로 그대로 배운대로 벗어나지 말아라 라는 말씀 을 하시드라구요. 그 후론 안 불었어요. 口 스송에게 기본만 배웠던 상태에서 혼자 스승 없이 기본을 념어서 본 적이 었던가? 그런 건 많지는 않지만은 그런거는 혹간 있던 기억이 나요. 그런게 뭐냐변은 결과적으로는 연습이에요. 연습을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표현이 안됐던 게 탁 될 수도 있고. 그 다음에 음악하는데 분위기 있잖아요. 예를 들어서, 우린 좀 졸 업하고서 커서 놀면서 왜. 그 전에는 논다는 게 각 가정에 가서 술상 받어 놓고 노래도 하고 반주도 하고 이러다보면은요 자기도 모르게 톡 튀어져 나오는 가락 이 있어요. 어, 이게 있어? 그런게 있더라구요. 내가 그런결 터득. 아, 우리 음악 이 안방음악인가부다 막 퍼드러지게 놀면서 뭔가 나도 모르게 만들어지는 가락. 그런게 참 있구나. 우리 음악은 정말 안방음악인가보다. 무대에서는 절대 그런 표현이 있던것도 안돼죠. 그런데 거기서는 흐툴리면서 나오닌까 이게 되드라구. 그런 것을 난 몇 번 겪었어요. 사실은. 그런 적이 있습니다. 2) 성악부문 박송희 口 1-1. 당신을 영째라고 생각하고 었다. 이 의견에 동의하는가? 글째요. 제가 영재라고 생각헌 것은 없지만은 제 상대방분들이 보고 너는 소 리를 하면 잘하것다 그런 소리를 내가 많이 들었어요. 상대방이 누구신가요? 그니깐 인제 상대방이 소리 허시는 분, 선생님이겠죠 잉. 그러고 또 부모님 도 너는 소리를 배우먼 아주 성공을 허것다 긍게 부모나 상대방 소리 허시는 분이 그런 말씀을 헌 것 같애요. 소려 하시는 선생님은 누구셨나요? 그때엔 인제 제가 이름은 잘 모르지만은 판소리도 하고, 시조도 허고, 그런 선 생님인 것 같애요. 어렸을 때는 어른 이름을 우리가 알 수가 없어요. 그냥 판소 리 선생님, 시조 선생님, 이 선생님은 판소리도 하고 시조도 헝께 그냥 판소리 선생님, 시조 선생님 이렇게도 불렀어요

355 성차옥 선생님이신가요? 예, 맞아요. 성차옥 씨라고도 허고. 또 인자 인제 안기선. 그 때는 박기홍 씨라 고 나이 많이 잡수셨어요. 그 분한테 단가도 배우고 쪼금 토막소리로. 인저 흥부 가 쫓겨 나가는데서 조금쭉 배우고 그런 것 같애요. 박기홍 선생님이 선생님 친척 분 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글쩨요. 인제 그 때는 성이 같으면 모두 형님 동생하고 그렇게들 지냈어요. 긍 께 나는 친척인지는 몰라도 인저 우리 아버님이 형님 어쩌고 그러니까 친척인가 그런 생각도 했었죠. 선생념 집안은 음악가 집안이신가요? 긍께 우리 아버님께서는 음악을 하신 거는 못 봤죠. 부모념께서 선생님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보시고? 언제 우리 어머니가 이 판소리 이런 걸 좋아하셨나 봐요. 그옛 당시에는 사반 데서 판소리하고, 인제 뭐도 어디 놀러 가먼 삼현육각도 챔히고, 이게 그런 그 음악 소리 듣고 우리 딸도 저렇게 좀 가르켰으면 허은 그런 생각에서 나를 가 르킨 것 같애요. 음악 환경에서 자라신거죠? 그렇죠. 그때는 이리가도 봄이면 봄대로 가을이면 가을대로, 그 화전놀이라고 있어요. 가은 우리는 그냥 뛰어놀다가 그 소리 나은 가. 가거든요? 그러은 이제 그 나이 잡순 분들이나 뭐 거그 좋아한 분들이 인제 남산이나 어디나 공원이나 가가지고 자리 깔아놓고 다 뭐 먹을 거 놓고 머도 앉아서 춤도 추고, 소리도 시 키고, 시조도 허고 막 그런. 그 노래를 많이 들었어요. 그게 그 옛 당시에는 그냥 그런 소리가 많이 났어요. 口 1-3. 선생념째서는 자신을 영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부모님께셔, 그려고 선 생념을 지도하신 선생님째서 선생념의 가능성을 보신 거네요? 알아봤다면 口 1-3-CD 그 타인은 누구언가? 예. 그래도 인제 내가 하고 싶었응게. 이제 부모가 이게 하라니까 더 좋았죠. 그래서 아마 좀 재치가 있게 배운 것 같애요. 口 1-2. 어련 시절에 음악적으로 독특한 행동특성이 있었나요? 한 1애l 미만으로요 으이. 그거는 없고. 이제 그 바깥에서 아까 말한 대로 화전놀이 가며는 신이 나고, 으먼 좋고, 나도 해 봤으먼 해서 인제 부모님이 언제 허락하니까 인제 한 번 해본다 해 가지고 헌 것이 참 재치 있게 헌 것 같애요. 그래서 어디 가서 불러 보라고 허먼은 너 앞으로 소리 잘하것다 이러고, 또 인제 그래서 쪼곰이라도 배운 것을 안 잊어버리고. 그렇게 꼭 영특허게 헌 것 같애요. 왜? 그때는 인제 글도 쓰는 것이 없고 선생님 입만 보고 했기 때문에 내가 좀 잘 기억을 헌 것 같애요

356 口 1-5. 본격적으로 스숭님을 모시고 학습하게 된 시기가 정확히 언제인가요? 인제 그때는 앞으로 너를 시키먼 되것다. 허는 그런 선생님의 생각이 있는 은 인제 나를 데리고 절로 가요. 절로 가서 예를 들어서 한 일주일을 있다가 온 다던지, 열흘이든지, 한 달을 있다 온다딘지. 그렇게 해서 본격적으로 소리를 배 운 것 같애요. 그 때 절로 가서 소리를 배워도 막 긴 소리를 허는게 아니고 토막 토막이 우리들이 헐 수 있는 그 대목만 가르켜 주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 슬픈데 도 안 되고. 예를 들어서 인제 우애하고, 이 정도. 예를 들어서 뭐 어린 것한테 <춘향전의 이별가> 막 이런 거 안 가르켜 주고, 딱 우리 배울 수 있는 어디 가 서 할 수 있는 그 애들한테 맞는 소리를 자 꾸 해 가지고 연마를 시키고 연마를 시키고. 그런 것 같애요. 선생님을 데리고 절에 들어가서 소리를 지도하여주신 스승념은 누구신가요? 김, 이 영구 씨라고. 박영구? 아니. 저 억순 씨라고 김영준 씨라고 있어요. 김영준 씨. 그 냥반이 어전에서 소리 도 했다 그래요. 인제 나중에 들응께 그걸 알았죠. 어렸을 때는 뭔지도 모르고. 그래 서 그 선생님이 인제 어린사람이니까 우리에 맞춰서 소리를 가르켜 주신 거 같애요. 본격적으로 검영준 선생님을 스승념으로 모시고 학습하신 거네요? 네. 그렇죠잉. 인자 그때부터서 인자 본격적으로 판소리는 이렇게 이렇게 헌다 는 것을 아르켜 주셨죠. 정확하게는 언제 쯤? 긍게 그때 인제 어린 시절이 요렇게 요렇게 넘어가고. 한 열 여섯 일곱 잉게. 이렇게 되는 거에요. 여섯 일곱. 그러게 내가 그냥 소리 잘 헌단 말 듣고 이제 통일창극단에서 텔러 와서 그리 간 것 같애요. 김영준 선생님은 어떻게 알게 되셔서 학습 받으신 건가요? 그 옛 당시에는 소리를 누가 잘헌다 누가 못헌다 그냥 뻔하니 다 알게 되아 있어 요. 그래서 그 냥반이 너 나 좀 따라가서 공부 좀 허자 인제 그때는 부모님끼리도 이렇게 알고, 인저 뭐 소리를 허다 보니까 연줄이 이렇게 닿으며는 그 애 좀 데리고 공부 좀 시켰으면 좋겠다. 그래서 따라가서 공부도 하고. 그런 것 같애요 부모님께서는 음악 하시는 선생님들을 많이 알고 계셨나요? 口 1-7-CD 스승은 누구였던가? 그렇죠. 서로 인자 동네가 인자 가차우니까. 서로 저 사람은 시조를 잘헌다, 소 리도 잘헌다, 또 저 사람은 악기를 잘한다, 막 그런 게 서로 다 알게 되니까 악 기도 가서 배우게 되고 이르케도 배우게 되고 그렇게 되죠. 그 때는 모든 그것이 다 여그서 저그서 허다 보니까. 아이고 그 가야금 소리 나븐 가야금 소리가 고, 거문고 소리 나은 거문고 소리가 좋고 또 피리불고 춤추먼 그게 좋고. 그래

357 서 인제 아마 이것저것 다 배운 거 같애요. 김영준 선생님께 가게 된 것은 부모님의 권유에 의해서 가게 펀 건가요? 에, 그렇죠. 그때는 인제 내가 아까 말이 빠졌지만은 그때는 광주에 권번이라 고 있어요. 지금은 학원이라고 있지만은 그 때는 학원이 없고. 인제 그런 걸 널 리 배울러면 광주로 가야 되요. 광주로 가서 인제 그 김영준 씨한테 춤도 배우 고, 검무도 배우고, 시조도 배우고. 긍것이 근 삼년동안을 걸린 것 같애요. 그래 서 졸업장을 받은 거예요, 졸업장. 그때는 일제 때가 되아서 일본말도 배와야 되 요. 그거 가서는 인제 조행도 배워야 되고. 그렁게 나이 어린사람이 조행이 뭐신 지 윗도 모른디 조행이 뭐시냐, 이게 판소리 배운 사람이 인제 가다가 우동 집에 가서 우동을 먹거나 허은 반장이 딱 보고 그 이튿날 일르은 막 매를 맞아요. 고 개를 마 똘래똘래 허고 가도 안되요. 거그서 들어가서는 조행을 배운 거예요. 학습 도 배우지만은 조행을 배운 거, 또 어디 가서 뭐 아무 거라도 집어 먹는 거, 그건 안 되는 거. 배고파도. 그래서 그 김영준 선생님한테. 소리는 아까 성차옥 씨, 박기 홍 씨. 그래서 기초를 배워가지고 그 광주로 가가지고 우리 어무니가 언제 그거 가 야 옳게 제대로 배운다 해가지고 그거 가서 배울 때 정말 조행이라는 게 무엇이라 는 것을 그 때 알았고, 아무데라도 들어가서 뭐 먹는 거 안 되앗고. 근제 따 악 가 면 길로 오는 길에 반장을 딱 세워 갖고 흐튼 짓 하은 혼나요. 그랬으. 광주 권번에서 교육을? 본격적인 교육은 거거서 다 받았지. 그래서 언제 거거서 춤, 소리는 인자 그 박동실 씨라고 거그 계시데요? 그때 박동실 씨한테서 배우고. 춤 이런 것은 그 영구 씨한테서 검무, 승무, 꽃춤, 또 시조, 주심, 편편락을 그 선생님이 다 알고 있더라고. 가야금으로도 펀펀락을 했어요. 근데 그 좋은걸 다 잊어버렸으니 아깝 고. 이게 그때는 소중한지 좋은 지도 모르고 그냥. 웅? 잘허니까. 그래서 그 시조 대회에서 나가서 내가 2등을 한 것 같애요. 그때는 상장이 없지만은 그래서 칭찬 도 많이 듣고, 잘헌다고 뭐 그랬는데 그 좋은걸 잊어 뻐리고. 그리고 그것을 삼 년 동안에 졸업장도 있었는데 졸엽장도 어데로 가 뻐리고 없고, 다 사진 찍고 그 랬는데. 그러고는 내가 인제 동일창극단에 간 거 같아. 한 열여넓 살 됐어. 김영준 선생님은? 그 냥반은 원래 화룡도 활 쏘는 장변을 잘하셨던 거 같애요. 그래서 그 때 내 가 화순에서 그 박초선이라고 있어요. 박초선이라는 사람허고 나하고 물이 그 선 생님 따라가서 그 <활 쏘는 대목>을 배왔는디, 증말 그 좋은 소리도 잊어뻐라고. 김영준 선생님째는 소려만 배우시고요? 거기서 소리만 배우고. 박영구 선생님께는? 그냥 다 무용. 잉게 춤도 춤, 가곡, 가사를 그 냥반한테 다 배우고. 박영구 선생님께 검무와 꽃무, 숭무, 가야금 풍류 그리고 양금, 가곡, 가샤, 시

358 조를 배우신 걸로 알고 있는데, 맞으신가요? 그렇죠. 네. 어머님께서 김영준 선생님이 훌륭하시다는 걸 알고 보내신 거잖아요. 그러니까 인자 그 광주 권번에서는 이렇게 이렇게 가르친다더라 그 소문을 듣고 인제 모든 걸 준비를 해 갖고서 하숙을 정해가지고 그 집에서 탱겨게 고럼 했죠. 광주 권번에 어느 선생님이 었는지도 다 알고 가셨나요? 그렇지요. 소문에 다 벌씀 나니까. 그 권번에서는 어떤 선생님이 이렇게 있는 디 춤과 가곡 가사를 다 헌다더라, 그리고 판소리는 그 박동실 씨가 있다더라. 언제 그런 소문을 듣고 갔지. 그니깐 아무나들 거기 못 들어가더라고요. 그때는 뭐 많지가 않으니까. 그분이 유명허다고, 뭐 유명허다고 믿고 가야지. 많지도 않 애, 있지도 않애. 그렇게 유명한 분이 있지도 않고 또 벌써 바닥이 적기 때문에 그 사람은 이렇게 유명하다. 그결 다 알고 있고 있기 때문에 갔지. 뭐 요새 같 이 막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고 그게 아니여. 딱 한 군데만 있었어요. 그래서 인 제 거그에서 나온 사람들은 다 학습이 같다. 같단 말이 여러 가지 거를 한다, 그래서 그 학습이 같다. 이렇게 이렇게 이야기를 하거덩? 그래도 거그 나옹 사람 들은 조행도 있고 아주 뺀듯한 학습을 한다더라. 이런 소문이 많이 나지. 口 1-6. 선생님께서는 판소리 이외에 기악, 무용을 배우셨잖아요. 스송닝을 모시 고서 학습했던 내용틀을 시기별로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배운 과정을? 권번에서도 방학이 있고 또 일요일이 있거둥요? 그때는 그 김영 준 씨가 인자 광주에서 계시니까. 그 광주 진숭사라고 있어요. 그 절에 가서 인 자 방학 동안에 가서 소리를 배우고 그렇게 오고 그랬어요. 어느 선생닝께 언제, 무엇을 학습했나요? 그 때는 선생님이 많지가 않은께 일단 그 선생님을 정해서 그것을 배우머는 거그서 연마를 다 허도록 공부를 해야지. 다른덴 갈 수도 없고, 있도 않고. 그래 서 이제 그 박동실 씨. 그 선생님은 쪼 쪼금씩 가르켜주고 또 무용은 소리 보텀 은 빨르니까 그 장단만 해서 순서만 잘 외우머는 이해허기 때문에 이 북가락도 내가 혼자 나무젓가락으로 많이 뚜드렷죠. 이제 그게 북가락을 연마 하니라고 세 때 김억순 선생님께 판소리를 배우셨고, 박영구 선생님께 성악과 기 약을 배우셨고, 또 박동질 선생님한테 언재 배우셨나요? 판소리? 언제 쯤? 그 옛 당시지. 긍게 그 권번에 가서 다 계셨어요. 그렇죠. 긍게 이 분야는 오늘 은 이 냥반이 판소리를 가르치고, 내일은 인제 무용과 이런 것을, 시조를 가르키 고. 잉게 이게 따로따로 해요. 다 시간이 있어요. 그냥 학교 같이

359 권번에서 선생님을 지도하신 선생님은 누구누구셨나요? 분이지, 김영준 선생념하고? 박영구씨. 아니 김영준 씨는 아니고, 개인이고. 잉 잉게 박동실 씨 허고, 박영 구씨 허고 두 분이 있었고. 그 때는 일제 때가 되 갖고 여자애, 일본 선생이 한 나 있었어요. 그래서 그 사람이 인제 말, 언제 교과서. 요새 같으머는 인제 가르켰고. 근데 그때 그 일본선생이 있어요. 하나끼. 내 잊어 부러도 안하네. 하 나끼 선생이라고. 인제 오후가 되먼은 그 선생님 반에 가서 또 글을 배워야 돼. 언제 국어책을 놓고 또 그 일본어로 다 배우고 그랬어요. 그래서 거그서 상당히 많이 배왔어. 口 1-9. 선생님께서 판소리를 배우셨을 때 전통예술을 접하셨을 때, 선생님의 집 안 분위기는 어쨌나요? 적극적으로 후원을 해 주시는 그런 분위기셨는지. 그건 없고. 왜냐하며는 그때는 누가 뭐 후원이란 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 그 때는. 도와? 없어. 그건 없고, 부모가 없는 돈에 겨 우 겨우 해서. 그때는 돈이 없으니까 쌀로 이고 와요. 이 하숙집에도 쌀이, 이 말가 옷이라 그래요. 서울에서 는 말이 이 쪼금만 결로 한 말이라고 허지마는 이 전라도 큰 말이 한 말이요. 긍게 그러케 해서 이고 가서 그 하숙집에로다 주고 언제 여그 월사금 쪼금내고 그렇게 배워왔지. 누가 뭐 후원은 뭐. 선생님이 판소리를, 음악을 할 수 었도록 부모념째서 잘 도와주셨나요? 그렇죠. 인제 부모가 도와 줬으니께 했지. 그러 안했으면 못하죠. 내가 갈지도 모르고, 고러지마는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부모가 못허게 하면 어쩔 수 없는 거 고. 또 부모가 하요 밀어줘야 겼다, 집에서는 못살아도. 그래서 인제 부모님도 고 생을 했죠. 그때 이제 부모님께서 농사 지어갓고 이렇게 하니께잉 전공 분야 외에 다른 예술분야에 대한 학습과 경험에 대해 말씀해주세 요. 배우는 과정 중에서 하루는 가곡, 하루는 무용. 이런 식으로? 그렇죠. 에. 그렇게 해야지. 잉 (2) 어떻게 연습량 조절을 하셨는지? 그러니까 언제 선생님한테 배웠잖아요. 그러은 인자 응? 지금은 화장실이라고 하지마는 그때는 변소 뒤에 가서도 북채 한나 갖고서 연습을 해야 되고. 가야금 은 언제 없으니까 모두 다 간 뒤에 언제 가야금을 연습을 허고 가고. 근께 도시 락을 싸 갖고 와서 낮에 먹고, 인제 그 먹은 다음에 다 해가 지도록까지 연습을 허고, 그러고 인제 하숙집으로 가지요. 연습도 인제 내가 해야지 누가 시켜줄 사 람도 없고. 내일 다시오며는 또 못 배우고. 인제 종아리 맞아요. 왜 연습을 안했 냐. 근께 선생님은 인제 가르켜주고 당신 처소로 가며는 우리는 거기서 남아서 다 연습을 해야 돼요. 인제 북도 뜯은 것도 아까 얘기했죠? 나무젓가락으로 막 뚜둘어서 이렇게 하고. 그래서 그때는 나이가 어리니까 잘 생각이 들었어. 뭐 욕 - 350

360 헐 수도 없이 그냥 입으로 그렇게 했다구요. 그니까 이제 예를 들어 지금 사람이 많으니까 그렇지마는 그때는 많이 배워봤자 한 대 여섯 명, 한 칠 팔 명 그러기 때문에 똑 같이 나가는 거에요. 인제 언제 들어왔다 보면 그때 일월 달에 들어왔 으은은 일월 달 쭉. 그 날이 갈수록이 똑 같이 배운 거에요. 으? 사람이 많으면 막 분야를 막 따로따로 이렇게 하지마는 그때는 분야를 없고 이제 어린 사람들 만 이렇게 쭉 앉혀놔가 칠 팔 명이면 똑 같이, 같이 나가는 거에요. 같이 나가는 데 그거서 잘하는 놈이 있고 못 허는 놈이 있더라고. 그 때 나는 잘했어. 막 잘 해가지고 칭찬받고 또 어디 가서 허먼 할 수 있어?" 그래서 그러기 때문에 대회 나가서 내가 2등을 했다고요. 음. 그래서 시조에 2등은 무슨 드물거든요? 그래서 나가 칭찬을 많이 받고, 다른 언니들은 막 매 맞고 못했다고. 그래서 나는 좀 영 리하니 헌 것 같애요. 그래서 나 지금도 이 북가락을 안 잊어 버러요. 춤은 잊어 버렀어. 그래도 내가 제일 아까운 것은 지금도 이 사현만 있음 편편락을 다 할 수가 있어. 내가 안 해서 그렇지. 그래서 선생님한테 그때 가야금으로 편도 했고 펀락도 허고. 쪼금 건들어 가면서 그런 좋은 학습을 잊어부러서 아깝고. 권번 시간표는? 그때는 시간표도 없어요, 사람이 많으니깐 누구는 맺시 누구는 맺 교시마는, 아까 말대로 한 칠 팔 명되게 쭉 앉아서 허고 쭉 앉아서 방 좁은게 둘이서 나와 라 둘이서 한다, 또 그르게 그러고 이게, 검무는 갔다가 여닮 명이 할 수가 없어 넷을 세워놓고 이렇게. 응? 그릉게 여닮 명이니깐 왔다 갔다 하면서 이렇게 허 고, 이 수금으는 혼자서 치니까 물이서 갈 수가 있고, 이렇게 해서 에. 지금 같이 복잡허니 생각허면 안되요. 아, 사람이 없어서 그냥 날마당 이렇게 하고 이제 다 사람 들어오며는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에 따로 이렇게 해요, 그렇게 들어왔 자 많이 들어온 거 없어요, 한 들어오은 한 서 너 명이나 들어올까. 인제 그래서 언제 내가 제 일 이 뺏다루 굉장히 많이 배운 거 같애요. 진도가 따라가기 벅찰 청도? 아 니에요. 쪼끔했어. 아 그닝께 우리가 했지, 우리가 뭐 녹음기가 있어 뭐 있 어. 선생이 한 두 줄이나 허먼은 그 두 줄을 이제 자꾸 귀에다 넣야지 그래갖 고 헌게 소리를 잘했다고. 두 줄 썩 뱀에 않해, 딱. 저 짧아도 두 줄, 길어도 두 줄, 딱 두 줄. 그니까 이제 한. 맺 번 허고 가서 연습해라 그러은 그. 그 즘에 나가서 막 연습을 했뻐려야제, 그란아은 잊어 부려. 무용도? 무용도. 어? 디나 누나 (구음) 저 한 번 가은 끝나. 또. 이리와라, 아까 그대 로. 디나 누 (구음) 이찍 오은 또 끝나. 그르게 뭐 이게. 이게. 저 손 저 올리다가 끝나, 그르게 그 까지 것 못 하것서? 근데 인제 한 번 뭐 한나 내려라 그러면 한 나 내리고, 이제 또 왔다 갔다 하고, 또 두울 올려라, 그 저 피어라, 허문 이거 피고. 그르게 참 빨라, 우리 그때 어렸으니께 다 영리하니까 빠르지 않아요. 그 래서 인제 그런 건 빨르고, 인자, 아까도 얘기했지만 칼 먼저 돌려라, 이제 칼. 칼 먼저 하나만 돌려라, 인저 둘 다 돌려라, 이게 딱 이렇게 해서 이. 그때는 음

361 복잡허지 않고. 이게 검무는 네 줄로 앉아, 저. 저기 네 사람, 여기 네 사람, 그렇 고 앉아서 인저 그렇게 왔다 갔다 하면서 이게 사물이라고 했지 이게, 그러기 때 문에 이 그러게 복잡허지 않고 사람이 지금 학교서는 뭐 시간표가 있고 윗이 있 고 허지만은, 그때는 시간표도 필요 없어, 우리가은 하루에 전부. 대로 그거 허 고, 인자. 인저 점심 먹고 소리 하고, 그저 저녁 때 때면 그 하나끼 선생한테 뭐 으? 으? 돔비피오로 소라노이니, 막 이 카고. 잉. 판소리도 배우고 무용도 배우고 그렇게 한 건데, 이렇게 뭐 그러시지는 않으셨었어요? 긍게 아까 말을 했지, 많이 배워야 햇갈리지. 햇갈리시거나 막 분야가 달라도요? 아니. 아니. 아니. 분야가 달라도요. 한나 띠고 분야를 시작허지, 이것했다 저거 했다 안한다니까, 오늘은 판소리 이게 쪼금 한 줄 했으은 내일은 인자 어? 아까 저리 갔다가 이리 왔다가 한거만 헌게, 고것만 이렇게 가 영리해 들어왔지. 그녕 께 요새같이 그렇게 막 이것저것 허은 아무리 영재라도 이것저것 허먼 순서가 배껴서 안되요? 근데 딱 그건 정리가 되야 했어요. 판소리은 판소리, 또 이거. 이 거 저 한. 두 줄만 허고 그냥 가기 때문에, 그러고 또 애들이 많애야 이. 이놈이 하라 저놈이 하라 하지마는 딱 정해져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생님들도 편해요. 口 그렴 선생님째서는 연습량이 어떻게 되셨나요? 口 1-10-(j) 하루 일과 중 연습량 하루의 일과를? 우리는 하루의 일과를 그냥 집에나 들어놔서 밥이나 먹고 놀 았제 어디 바깥에도 못나가요. 왜? 잘못 나갔다가는 반장이 보고 그냥 혼을 나니 까, 못나가요. 집에서 언제 빨래나 허고 인자 내일 입고 갈 것 인제 들어놔서 일 이나 하고 그렇게 했지, 어디 나가. 나가지를 못해. 그렁게 거그서 몇 년 동안을 광주에서 있었지마는 권번에 가고, 고 하숙집에 가고 고것만 알지 다른 데는 몰라. 하루 일과에 선생님이 연습하신 연습량은 얼마정도 했나요? 그니까 이제 그. 내가 아까 얘기 했듯이 점심 먹으면 땅과를 허고 인제. 언제 판소리를 다 허고, 언제 또 인자 무용을 또 들 맺어졌으면 그거 허고, 그러고 인 자 오후가 되머는 인자 일본여자한테 가서 공부를 하고, 그러고 인자 집이. 집이 가면은 빨래하고 다 내가 도시락 싸 갖고 온 것도 씻고, 같이 밥 먹고 그 두러 눠서 오늘 판소리한고 가만가만 이렇게 생각허고, 춤 춘거 생각허지 그냥 자고 인자 그냥 집에서 놀지 어디 놀러간 적이 없어, 큰일나. 그 때 권번에 계셨을 때 하루 일과를 그냥 좀 간략하게 연습과 관련해서 말씀 부탁드렵니다. 아니 간략이라는 게 없어, 딱 일게 요것배우고 또 요것배우고 딱 요것배우고 이것배우고 그것 뿐이지. 다린 건 간략이라는 거 없고, 언제 쪼금 앉아서 논다는 m ι

362 게 저 구석 제 앉아서 애들이랑 놀림 맞대고 몇 마디 얘기하면 고거 혼나지, 뭐 놀고 막 어째 뛰고 그것이 없어, 그래서 에. 조행이라는 것을 배우고 함부로 뭐 먹는 거 배우고, 그런 그. 그. 저 뭔 시간만 있어도 그거안하면 앉아서 요거 배우 면 조행이 이렇다 이런 거 그런 설명 이야기만 들었지 별거는 없어 간략이라는 게 없고 그냥 시간에 딱딱 맞춰서 그거 끝나먼 집에 가고 그랬다 오고. 그거뿐이야. 판소리 연습하는 시간과 따른 것 연습시간이 거의 버슷비슷? 아니 없어. 아 끝나면 끝나고 그러지 요새 같으은 어디가서 요리 같으은 그건 없어. 딱 있어. 판소리 배왔으면 판소리 끝나고 무용 배웠으면 그걸로 끝나고 점 심 먹고 좀 쉬다가 조금 서두 왔다 갔다 하다가 그 일본여자한테가 공부하고, 그 러고 가는 거야 집에 가셔서 또 연습? 집에 가서 서는 인제 할 새가 없지, 드러눠서 가만 이 생각이나 하은 모를까, 인제 시간이 인제 없으니까, 가서 내가 도시락 먹은거 같이 씻고 이제 뭐 빨래도 이렇게 하고, 그러고 인자 자면 되는 것이지, 요새같이 뭐 시간이 어디 놀러가고 뭐 그것이 없어. 권번에서 연습할 때 있잖아요. 그 판소리 연습하는 시간이랑 다른 무용이나 이 런 거 연습하는 시간이랑 비중을 비슷하게 두셨나요? 아니연 판소리를 쪼금 더? 시간이 없다니까, 내가 얘기 안해? 내가 배우면은 저 한저 통새 뒤에 가서 뚜 들고 조금헐까, 그건 없다고 그러지 않아 긍께. 지금 내가 얘기해봤자 이제 젊은 사람들은 그결 안봤기 댐에 모르는 거야, 간략을 해서 시간은 몇 시고 몇 시고 없어 그냥 이 판소리 배왔음 그결로 끝나고, 또 무용을 했으면 그것도 끝나고 점 심 먹고 또 시작했으면 또 그걸로 하고, 시간이 갈수록 까정 허고, 인제 또 시간 이 좀 남으먼 그. 일본여자한테 가서 공부하고, 그러고 인자 가는 거야. 연습할 수 있는 그 시간이 적은 걸로. 아니 똑같애. 아, 예를 들어 한 한 시간도 안 해 삼십분도 안 해, 아 내가 아까 얘기 안해요? 한 줄 배우먼 끝나. 한 줄 배우고 한 맺 번 허면 끝나브러, 그럼 가서 연습해라 그래. 연습 할 때요, 그 시간이 어느 정도 되는지? 그건 인제 연습할 때 쪼금하며는 불르면 또 와야 돼 내 무용. 무용하고 그럴 랑게 추. 춤을 출라니까. 그 때는 시간도 없고, 시간이 윗인지도 모르고, 그냥 뚜 드르고 그러다보면 어. 와라 그러면 또 와서 춤추고 그랬지. 요새같이 시간 적어 가서 몇 시, 이 런 거 는 없어. 수업하시고 나서 인재 다음 수업가기 전에 틈나는 그 시간마다 그렴 연습을 하신건데요? 아, 인제 시간이 없으니까 그냥 그냥 허는 거야. 그냥 허고 뭐 한 시간을 했는 지 두 시간을 뭐.. 저 어. 저리가 갔다가 이리 오은 끝난다 그러지 않어? 근게 쩌얘

363 몇 번만 왔다 갔다 하고 끝나고, 또 그러은 이것을 한번 해봐라, 그럼 이거 하고, 그렇게 해서 근데 이게 들어 왔다 갔다 하면서 이게 돌아가면서 이렇게 시켰지. 口 1-10-!2) 연습 자기만족도 평가기준(스스로 만촉 1, 얼정한 시간동안 연습 1) 그 때 배우셨을 때 그런 과정틀을 선생념께서 많이 만족스러우셨나요? 어. 그니까 인제. 이. 그. 이렇게 얘기를 하면 그냥 곽곽 맥혀 가지고 말이 안 나오는 디, 그때는 무슨 뭐 수업을 뭐 시간을 간략하니 뭐 이것도 없고, 그냥 한 줄 두 줄 배우면 그냥 나 혼자 가서 연습 하다가 불러서 또 춤추라 그르면 또 춤추고, 좀 쉬어라 그러은 또 쉬어도 또 나 혼자 저 가서 요리요리해보고, 또 인 자 와라 허은 이걸 한번 돌려봐라 그럼 돌려보고, 내 그 연마를 시키기 위해서 이렇게저렇게 왔다 갔다 하다가, 그 일본 여자한테 가서 어? 인제 일본말 좀 배 우고, 그러고 가먼 끝나고, 또 오은 또 그날 그대로 고런 식으로만 하고 있는 거 야. 그니케 그때는 시간도 없고, 인제 선생님들이 점심 먹어라 하먼 아 열두시. 열두신다 뭐다 알. 점심시각, 점심땐가 보다 점심 때먹고 저녁 때는 인자 또 부하고 하은 얼른 집에 가거라, 이렇게 허고 그렇게 된거야. 이게 사람이 없으니 까, 인제 쉴 시간도 많이 있고 그렇지마는, 그래도 또 선생님 또 아프면 다리도 주물러드리고 말이야, 또 그런 시간도 있고, 근께요 시간이 뭐 간략한 제 없어, 길어요. 하루가 굉장히 길어요. 그니까 많이 배울 때도 있고 자. 잘허면 또 배우 고, 못허면 또 내일 다시 배우고, 이렇게이렇게 하는거에요. 새 털 같이 많은 날 인디, 뭐 그렇게 애틀을 보. 볼 때 께서 그렇게 안 시키고. 그 때 권번에 계셨을 때, 소리 배우고 춤 배우고 하는 거는 즐거우셨나요? 만 족스러우셨나요? 그렇지 인자 내가 연마를 해야 된께 즐겁지. 왜 더 안 가르켜준가. 근데 그거 는 보람은 있었지. 쪼금씩 가르켜준 게 나는 벌써 다 외웠는디 애들은 더 갈켜 줬으면 그런 말도 못허고 어른 앞에서 한 번을 말도 못해요. 나 더 배울라요 소 리를 못허고, 잘 알아요 소리도 못허고, 시긴대로만 허고 있는 거지. 저 요새는 선생님한테 막 질문허고 그러지만은 그랬다가는 회초리를 맞아요. 口 권번 다니시는 그 시간 외에 혹시 뭐 음악 감상을 할 수 었는. 아유. 그 감상이 어디가 있어? 매 맞는다니께. 아유 가다 고개만 이려도 반장 이 보고 때려. 너 어딜감서 막 훼딱훼딱 둘르고 갔냐. 그려도 감상들도 없고, 그건 아무것도 없어. 그냥 요렇게 사는 거야 사는 데 우리만가서 좀 배운 거지. 그 감상 데가 어데 가 있어. 없어. 근게 왜냐은, 어데 우동집에 가서 우동을 못 먹어요. 집 에 가서 밥 먹고 자고, 자러 오야지, 이 반장을 딱 놔뒀다가 우리 선배에 이? 반장 을 나뒀다가 가게 들어가서 사탕 사먹었다 허은 마. 또 때려요, 혼나요. 팡주 권번에 들어가시기 전에, 그 화순에 제셨을 때 아까 말씀듣기로는 뭐 협 률사 공연도 오고, 그랬디거 그러셨잖아요? 그때는 그냥 놀았지, 놀고 가서 한 번씀은 해. 해봐라 허은 하고, 그냥 왔다갔 다만 하고 그냥 놀았지. 그래서 뭐 우리가 뭐 배운다고 뭐 어디 가서 마하고 구 354 -

364 경 가고 그런 것도 없고, 집에 와서 밥 먹고 한 번 가서 해봐라 연마를 하게, 안 잊어부렀는가 한번 가서 해봐라, 그렇게 했지 무슨 뭐 꼭 가서 꼭 해야 하는 그 런 것도 없고. 화순에 계셨을 때, 그 광주로 올라가시기 전에, 그때 뭐 성차옥 선생님한테 단 가도 배우셨다고 그러셨었잖아요? 그 냥반은 원래 선생도 아니고, 당신이 했던 것을 뭐 아니까 애들을 쪼금 가르 켜 준 것뿐이야. 막 그 소리를 허고 막 명창이고 막 그게 아니고. 내가 단가 한나 가르켜주마, 그래서 배웠던 것이지, 무슨 뭐 그런 게 아니고, 인제 그 안기 선 씨가 좀 집에 와서 쪼금 가르킬 때 인자 다른 사람도 와서 좀 배우고, 인자 그렇게 했지. 그러고는 그냥 또. 또. 다 관례가고 없는 거에요, 뭐 이것을 막 고바 놓고 막 이렇게 하는 것도 아니고, 한 몇 개월 있다가도 선생 떠나요, 돈 벌러 가야지. 우리만 가르키고 있겼어? 근게 그때 쪼금 배우고 가먼 우리끼리 그 양 그냥 또 노는 거야. 口 口 권번에서 소리 분야 이외의 그 예술 분야는? 분야가 없어, 분야가 없고. 판소리, 춤, 시조, 그거 벡에 없어. 판소리, 춤, 시조가 선생님 지금 전공하시는 판소리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아무 영향도 없고, 판소리는 판소리고, 시조는 시조고, 그랬지. 뭐 영향이 있거나 뭐 그러더 안 해, 그게 한. 한 바탕을 많이 배워야 영향이 오지. 어 한 자 중모리 한 장단 배우고, 중중모리나 한 장단 배우먼 끝나는디, 뭔 영향이 있겼어? 근데 내가 시조로 하 니까 뱃심이 생기 가지고 더 잘 할 수도 있지. 시조를 딱 뺏대고 하잖어? 그러기 때 문에 뭐 분야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 분야도 없고 그냥 이거 허머는 이걸로 그냥 시간 끝나은 또 이거 허고, 이거 끝나은 또 저거 허고, 그거 그제 분야도 없고, 그냥 그렇게 했기 때문에. 음. 에. 지성스럽게 배왔스은 더 많이 했겠지마는, 그레도 딱 그것이 딱 교정 되 있기 때매 더 나갈 수도 없는 거야. 선생님께서는 시조를 배우셔서 그 배 힘 뱃심이라든지. 아 그럼 배. 저기 음. 그. 그 장단을 맞출라면 것까지 처음에는 숨을 두 번 쉬었 지만은 인저 한 번 쉬고도 짝 악 할 수 있고, 또 떨어도 안 돼 전성이라고 해 갖고, 발발이 성이라고 그때는 전성이라고 안허고 발발이 성이라고 헌다고. 짝 악 뻗으 라고 했어, 짝 악 뻗어서 시조 한번 허고 나먼은요, 언제 추리하기는 참 편해요. 판소리 하질 때 많이 도움이 되셨겠어요. 뭐 많이 도움이 되지, 그니께 이 판소리를 어. 제대로 헐라븐 시조를 먼저 배 와라. 그러서 시조를 먼자 하고. 어. 주심, 주심 엮음이라고 시조 반. 시조는 아 주 느린 거 하고, 주심은 반. 빨리가는 거고, 그러서 편편락이 뭐. 그래서 그게 가곡이고 그렇게 했으니까. 짜싸

365 춤을 배우셨을 때 그게 판소리 그 발렴 할 때 뭐 도움이 된다든지 그런거. 그렇지, 인자 그때는 살풀이도 아니고, 이것은 인제 장삼을 입고 이렇게 꼬깔 을 쓰고 장삼을 입고 춤을 추기 때문에 그거는 발립을 쓸 수도 없는 문제고. 예 들어서 또 이. 검무도 칼을 들고 이렇게 하고 손 춤은 있어요, 이렇게 손을 써, 아무리 해도 음. 그 때는 발링이라는 게요 없고, 우리는 그냥 서서 이렇게 했 었지마는, 선생님이 이렇게 손 한번 올려라, 이렇게 해라, 그러은 인자 올렬 수도 있고, 그렇지마는 그. 이. 요새 같이 막 간지를 내가 지고 막 이렇게 해야 것다 저렇게 해야라 그것은 없고, 그냥 순수하니 손 한번 올리고 선생님 올리라은 이 렇게 올리고 그렇게 했다 뿐이지, 요새같이 막 꽃 놓고 별 놓고 막 그런 것은 없 다고 봐요, 그때 그러게 우리도 뭐 모르고. 몰르고 인제 그렇게 했기 때문에. 발렴하질 때, 그때 무용 배웠던 게 좀 많이 도움이 되셨냐요? 그 무용을 배워서 판소리에다 인제 쓸라면은 살풀이를 배워야지. 지금은 수건을 둘르 고 하지만은 그때는 수건을 안 들어요. 살풀이, 살풀이는 안 배왔어 우리가. 그냥 살풀 이는 안배우고 인제 이. 승무를 배왔기 때매 그냥 박자 나오먼 춤추는 거여. 口 1-4. 혹시 그 선생님의 그 동료분이시나 그 작고한 선생님들 중에서 그 영째 라고 생각되시는 선생님 혹시 었으셨나요? 소리를? 작고하신 전통예술분야의 선생님들 중에서 영째라고 생각되시는 선생님 혹시 았으셨나요? 나를 영재라고 생각하는? 선생님의 동료나 그 폴아가신 옛날 선생님들 중에 그 전통예술 분야의 선생님 들 중에서 영째라고 생각되시는 선생념들 혹시 았으셨어요?57) 아니, 그때는 응? 영재라고 생각을. 어떻게 우리가 그건 생각을 해? 아니, 지금 생각에. 과연 명창이 시더라. 응? 그때야 뭐 기가 맥힌 명창이 송만갑 씨도 있고, 정정 렬 씨도 있고, 응? 이동백 씨도 있고, 백점봉 씨도 있고, 다 기가 맥힌데. 지금은 이제 뭐 영재 어쩌고 그러지만은 그 냥반들은 대대 명창이고, 국창이더라. 응? 저. 저. 궁 안에 들어탱겨 소리 하신 분이라, 그런 분을 어떻게 따라갈 수가 있는 가? 임방울씨 같은 분은 기가 맥힌, 세상을 다, 세계를 흔들어본 그런 분 아니 야? 그러지만 그런 분들은 아주 남자 분으로써 판소리에 그 냥반들이 원칙이야. 이게 그때는 여자들이 판소리 안했어요. 안허고 재있는 대목만 이렇게 했지, 그 때 이 원래 이름 있는 분은 응? 송우암 씨, 송만갑 씨 뭐. 막 이렇게 내려오신 이 내가 있기 때문에 그런 분들은 감히 우리가 무슨 명창이라 헐 수도 없고. 야, 그 냥반이 국창이라더라. 야, 그 냥반 소리를 어떻게 우리가 따라갈 것인가? 57) 박송희 선생님 며느님(임경애) a: 선생님이 영재 같은 선생님이? 어머님이 지금 생각하시기에 돌아가신 분이나 어머니 그 동료 분 중에 아 저분은 참 영재다 타고난 소질을 갖고 있는 영재 다 라고 생각되시는 분이 있냐구? η J %

366 응? 모르고 우리는 그. 그 냥반의 그 소리, 그 분야를 따라갈 수도 없는 문제고, 그때는 여자들이 이뿐 듯만 이게 했지, 판소리라는 것은 남자분들이 했지 여자들 은 안 했어요, 그래서 이 박녹주 선생님도 응? 판소리. 를 남자같이 하신분이야. 박녹주 씨 한분 백에 없어. 그러 그때에는 다 여자, 소리로 했지. 인제 여자가 지금 다 완창을 하거나 그건 없어요, 다 대목대목 눈대목만하고 다 지냈지. 그 옛날같은 경우는 영재라는 그 개념이 없었잖아요. 개념이 아닌게 아니라, 그런 말을 쓸 수도 없는 문제고. 아주 재간이 있다, 아 저 사람 소리 허는게 역시 재간이 있다, 정말 소리 잘한다, 이렇게 평을 했지. 영 재건 뭔 영재여. 영웅적이다 아. 영웅적이다 이런 이야기는 썼어도 저 영재라는 건 나도 나가 영재가 윗이더고 영계냐? 그랬어요, 그래서 웃엇어 옆에서 윗허고. 이게 나는 또 옛날 사람이라 그래서 내가 지금 팔십 셋이나 펑게 옛날사람 아니 요? 내가 일제 때부터 태어나서 나온 사람이라, 어떤 사람은 안 그랬을까마는 그래도 그 선생들을 보므는 우리가 감히 칭호를 할 수 없는거에요, 와 저 사람 은 국창이다 그 소리도 못해, 아 그렇구나 허고 마음만 먹고, 선생님들이 앉아서 아무개는 이 사람은 국창이요, 아. 저사람 옛날 그 저 내가 인저 소리 증말 좋 은 목소리가 나은, 이거 옛날에 국창 선생님들 더늠이다 내가 그 얘기는 하지. 요즘에는 영재라고 다 쓰지, 나는 몰라. 영재가 멋인지 영겐 줄만 알았지 내가 뭐 그거 생각도 못해보고. 옛날 그 동료나, 그러며는 작고하신 그 선생님들 중에서 영째라고 생각되시는 인물은 였으신가요, 없으신가요? 없어. 없고. 이 내가 들을 때는 인저. 재가 소리를 제법 잘허는 것이 앞으로 소리 하겼다, 이런 말을 씻지, 니가 앞으로 영재가 되겼다 뭐 그거는 없고, 너 영 웅이 되겼다 그것도 없고, 인제 앞으로 허은 명창되겼다. 칭찬을 허제. 응, 너 착 해서 명창 되겼다 그것이 최고의 그 우리한테 써주는 말이여, 이제 방도 잘 썰고 이렇게 허은 너 양전하구나, 너 앞으로 명창 되겼다. 그. 그런 말이 굉장히 우리 한테는 와 나보고 명창 된다고 했다 고 그런 이야기가 많이 있었고. 口 애기 명창, 소년 명창이라는 말을 써요. 그래서 l 말얘 대해서 선생님 은 어떻게 생각을 하시는지 좀 얘기를 들었으면 해서요. 그렇지. 요새 인자 쓰는 말을 내가 인자 병창이라고 헝께 다 명창은 이? 이 이 명창이지 지금은 응? 소리를 잘해서 명창이 아니라 그냥 이름을 붙여 주드라 고, 애틀한테도. 너 명창이다 자 명창, 김명창왔어 뭔 명창왔어 그러지만은. 인제 이. 칭호를 붙여서 얘기를 해야지, 칭호도 없이 그냥 다 명창이라고 하면 어떤 사람이 명창인줄을 알겼어? 그것은 인제 요새 쓰는 말이니까 그냥 그렇게 믿어 줘야지, 같은 말이번 너 그냥 소리꾼이라고 하면 되겼어? 긍께 그냥 명창이라고 하는 것이 제일 빨르고, 제일 편안한 말인 것 같아. 어렸을 때부터 그런 자철이 있는 아이들은 커서도 그 자질이 계속 이어져서 명창이 될 수 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지? 싸m

367 근데 인자 내가 볼 때는, 이 여자들은 몰라도 남자들은 아무리 어렸을 때 잘해 도 변성기가 되먼은 다 바뀌어져 버려요, 목이. 일단은 이런 창이라고 하잖아요? 목이 나와야 소리틀 한다, 근데 이. 남자들은 다 어렸을 때는 다 소리덜 잘 해요, 그러는데 변성기 때가 되면 딱 목이 맥혀가지고 소리를 못해부러. 그래서 소리 성공을 못하고, 악기로 돌리거나 인제 많이 돌려 버리드라고, 그래서 한일섭씨를 보더라도 소화 한일섭씨도 얼마나 소리를 잘했어? 변성기 때 목이 가버린거야, 그래서 아쟁으로 다 바꿔버렸지. 김동준씨도 소리 잘했어, 김연수씨 제자로. 오정 식이 니나 해라 그러고 그냥 북으로 돌려버렸지. 내가 볼 때는 다 중간에 작파해 부러. 그래서 임방울씨 같은 분은, 자기가 변성기 때 목이 오니까 그냥 상투를 이렇게 서까래에다가 달아놓고 좌우로 이렇게 허면 소리하고, 이렇게 허은 또 깨 갖고 그만큼 피나는 노력을 해가지고 임방울 씨는 목을 얻어서 세계를 혼들어 쑥대머리 하나하고 호남가 두 개갖고 세계를 흔들어 부렀잖아. 긍게 아무라도 그 렇게 피나오는 노력을 허는 건가 안하는 건가 그것이 문제지. 애기명창이라고 했 어도 나중에 커봐야 아는 것이지, 애기 명창 때는 모르는거야. 그런 애들이 지금 은 이. 애들이 이. 소리를 헌다 그래도 몰라. 인제 그렇게 잘하는 애들도 못 들어 봤고, 인제 어떻게 교육을 시켜야 하는 것인지 그것도 의문적이라고. 口 2-1. 전통예술 분야에 영째가 있다고 생각하섭니까? 글쩨요. 그. 영재라는 것은 내가 애들.할 때 들어보지도 않고, 응? 내가 직접 보지도 않고 영재가 있다고 저기 내가 이야기는 못해요. 그치만은 요즘에는 내가 애들을 소리를 가르쳐 보면은 있다고 볼 수도 있어요. 왜 그러냐 인제 이 학교를 가면은 전부 음악을 막 사방에서 하고 있잖아요 인제 애들이라 음악성이 빠르게 오는가 봐요 우리는 음악을 들어보지도 안허고 먼데서만 이렇게 보고 그랬지만 은 어렸을 때 근데 지금 애들은 학교에 가면 막 별가지 음악을 다 하니까 좀 음 악성은 빠르긴 빠르지만은 영재라고는 얘기 할 수는 없다고 봐요. 내가. 응 모든 것도 배워서 애들이 영재식으로 해야 영챈가보다 이렇게 하지. 배우지도 않은 애 영재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자기 상상이지 가르쳐 봐야 안다고 봐요 나는. 전통예술에 관련된 것에서도 영재가 었다고는 보시나요 1. 전통예술? 전통예술을 언제 내가 전통 전통하니까 내가 얘기지, 전부 전통전통 하지만 좀 딴데로 삐져나간 것도 많지 않아요 그래서 내가 나는 내가 볼 때는 전통은 전통대로 살리고, 또 창작은 창작대로 하고 그렇게 합리로 시키는 것은 내가 불리하다고 생각해요 왜 이. 전통이라는게 이. 가야금 산조에도 농현이 있 는 것이고 다 열 두 줄 가야금으로도 백가지 곡을 낼 수가 있고 그러는데 막 합 해가지고 이러니까 내가 볼 때는 왜 저렇게 다 합해버리는가 따로따로 했으면 좋겠다 그러는 그 내 생각이예요. 다른 사람은 어떻게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그 래야 된다 발전도 좋지만은 전통 예술이라고 하면은 전통을 먼저 살려 놓고 나 가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그런 생각이 있어요

368 o 2-2. 음악적 재능이 보이고 그리고 좀 음악을 갖고서 이렇게 좀 창의력야 돋 보이는 아이틀을 그런 }이들을 보신 적 었나요? 아니면 지도하시면서? 창의력을 갖고? 창의력을 갖고 하는 걸 본 적이 있냐고? 음악적 창의력을? 웅 재능이라는 것은 껴가 들어가서 들어보고 응 어떻게 함으로서 야는 재능이 있다 없다 그런 것을 보는 것이지. 하지도 않고 보지도 않고 그런 걸 볼 수는 없거든 그러게. 내가 생각할때는 물론 요즘 애들이 재능은 많아요 재능은 많지만은 길게 갖고 나가는 것이 부족하다고 봐요 왜 옛날에는 재능이 있는 사람이 한번 음악 을 하면은 피땀을 흘려가지고 하는데 지금은 가다가도 피땀을 흘릴 정도면은 않 하려고 해 귀찮아갖고. 판소리도 막 해라 막해라 그래도 한 시간 동안 하루 하면 된다 내가 학교 가서도 애들 공부 가르치면서 너 소리가 좀 미숙하니 북채 하나 가지고 저 뒷산에 올라가서 솔나무 하나만 작살내면 너 명창 될 것이다 솔나무 하나만 작살내도 자꾸 두드려서 하다보면 솔나무가 넘어갈 거 아녀 그 솔나무 하나만 작살내도 너는 명창 될 것이다 그러는데 그런 그. 옛날같이 우리같이 소 리를 또 하고 또 하고 그런 그. 뭐라 그럴까 좀 그런게 없는 것 같아 귀찮으면 그만 해야지 이런 그게 있고 그래서 이런 전통이 피땀 흘리고 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사라지고 있구나 그게 좀 아쉬워요 많이 아쉬워요 지도하설 때 그 받아들이는 그 속도가 빠르거나 째능이 돋보였던 }이들이 혹 시 있었나요? 학생들한테 내가 지도 할 때는 이야기를 하죠. 옛날 우리는 이렇게 배가 고파 도 이렇게 이렇게 했다 근데 니네는 배도 안고프고 부모네들이 다 돈 주고 이렇 게 하는데 왜 이걸 성공을 못하냐 학교 4년동안 명창 못하면 나가도 소용없다 이런 얘기를 많이 해요 口 2-3. 만약에 그 영재들을 만약에 선발을 한다면 적절한 연령은 언제라고 생 각하세요? 적정한? 적절한. 나이. 나이? 아 이걸 배울 때? 나이는. 인제 이 판소리는 어려서부터 배운다고 모두 막 그러거든요? 근데 그건 옛날 얘기고 에. 지가 좋아한 것은 예를 들어서 꼭 이 걸 세우기 위해서는 초등학교부터서 좀 가르쳐 봐야 되는거예요. 이건 중모리다 이건 윗이다 이걸 초등학교부터서 가르쳐 보면은 거기에서 영재가 나올지 다 안 나올지 그건 모르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께 내가 생각할 때는 이. 내가 이게 건방 진 말이지만은 요즘에 대학원까지 다 나와서 학생들이 다 놀고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을 초등학교서부터 (지도를 해서) 좀 힘을 썼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기초 는 다 가르칠 수 있잖아요? 그래서 그것에서부터 가르쳐 가지고 영재를 뽑아야 지 느닷없이 영재를 어떻게 뽑는거야. 그결 애를 지도를 해보고 애들이 음악성이 있어서 따라올 수 있는 사람들은 아 이거 되겠구나해서 영재를 키워야지 그냥 갑자기 영재를 뽑아다가 무엇인줄 알아서 영재가 될거야 이거 각기 보변은 애 이 그러면은 초등학교부터서 초등학교도 일학년은 안되요. 한 삼사학년 때부터서

369 음악도 가르치고 판소리도 가르치고 여러 가지것을 가르치다 보면은 나는 피리 불라요 나는 해금할라요 나는 가야금 할라요 이렇게 나올거 아니야 나는 판소리 할래요 이렇게 나오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그때 거기서 영재를 골라야지 지 챙으로 갖다가 영재를 골라놓으면은 영재 될 사람도 더 안되요 뭘 알아야 하지 요. 인제 기왕 하려면은 어려서부터 해야 이것이 벌써 삼사학년이 되면 애들이 벌써 어느 정도의 윗이 와요 안 그래요? 일학년 이학년 때면 모르지만 그래도 사학년 오학년 되면은 벌써 짐작이 가거든? 그니까 그때부터서 좀 가르쳐 가지 고 애들을 귀를 열어줘야 돼 아 이것이 판소리였구나 아 이것이 피리 산조구나 이것이 아쟁 산조구나 뭐 이것을 해서 요즘에 봐요 콩닥풍닥콩닥풍닥 장구치 것은 다 좋아 하잖아요 응? 그것은 왜냐 빨리 치고 재있으니까 이것도 재미 한번 붙이면은 애들이 좋아할 나이고 이것을 좋다 즈그들이 판단 할 수 있는 그 런 나이기 때문에 나는 그때부터 하면 좋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예술영째를 뽑아서 지도를 하게 된다면 어떤 과목들? 그러니까 뽑아서 한다는 것은 우습지요. 어떻게 뽑아요? 응? 예를 들어서 사학 년 반으로 들어간다 판소리는 악기가 들어간다 저 들어간다 사학년 반으로 다 하나씩 들어가다 보면은 이 사람이 판소리를 쉬다 보면 저 반에서 이제 피리도 할거 아녀. 저 반에선 이제 가야금 할거 아녀 나는 아쟁을 할라요 가야금을 할라 요 바꿀수도 있는 문제요 바꿀수도 있어 그래서 나는 판소리 안해요 이러면 이 렇게 바꿀수도 있어 그럼 여기서 악기하는 사람이 나는 판소리해요 이러면 이렇 게 지그재그로 바꿀 수도 있다 이말이요 그래서 이 이거를 이. 전통에서는 전통 을 이렇게 딱 들고 있어야돼요 전통만 그리고 창작은 또 따로 개별적으로 하고 전통예술에 관련한 모든 분야들 o}이들에게? 그렇죠. 그래야만이 이것이 영재가 나오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이 들어가요. 근 데 이 정말 뭘 몰라서 못배우는 애들이 많고 또 어디로 가서 배워야 되는지 그 것도 모르고 또 잘못가면은 이제. 이. 돈만 몽땅 들어가고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그러니까 학교에서 이걸 좀. 했으면 하는 바램이예요 학교에서 하면은 나중에 재 이 커가지고 개인 내가 이사람 소리를 좋아하는디 요리 갈수도 있고 저사람 소리를 좋아하는디 저리 갈수도 있지만은 인제 여기서는 모르거든? 모르니까 이 제 이 전통예술을 그래도 판소리. 도 어 정말 유네스코에서 지정 받았는데 지금 조용히 있거든요? 사실 판소리는 어려워요. 그렇지만 지금 사학년 오학년 이럴 때 배우면 빨리 배워요 사실은 아무 거리낌 없이 그러니까 학교에서부터 초등부 터서 이렇게 시작을 해야 돼 일학년은 안 돼요 일학년 삼사학년 이럴 때는 공부 좀 시키고 오륙학년 때 오학년 육학년 한 이렇게 이삼년 동안이라도 하면 여 기서 나올 수도 있어요. 口 2-6. 선생님께서는 영째를 만약에 알아보신다면 어떻게 하살 건지? 아니 근데 무조건 가르치는거여. 예를 들어서 단가 만고강산이라던지 만고강산 을 가르쳐보면 거기서 가르쳐갖고 시험을 볼 거 아녀 따로따로 이제 갈라지는거 여 거기서 왜 학교 전체에서 이. 일학년 사학년 일반이라던지 다 배울거 아녀 거

370 기서 이제 반이라도 해서 따로따로 해서 시켜보면은 다 나와요. 똑같이 나와요 소질이 없는 놈은 악기로 너 악기하고 싶으냐 그럼 예 하면 그냥 바꾸는거야 여 기서도 그래 그러니까 이제. 한 일 년동안 가르쳐보면 그냐 알아요 요즘 애들은 빨라요 내가 종합학교를 그냥 할 때 보면은요 자기 분야가 아니더라도 소리 해요 왜 전공이 자기 전공이 아닌데 왜 잘하지 그러면 나는 판소리가 좋아요 원래 이결 해서 그렇지 그런 이야기를 하데 내가 중앙대에서 종합학교에서 120 명이랑 실적을 해서 놀래가지고 막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때는 내가 영도 밝고 나이도 젊고 그래서 강의도 잘했어 지금은 귀가 멍멍해갖고 가만가만 하는 소리는 못 들어요. 크게 해야 듣지 그치만은 그때는 내가 영리하고 그냥 막 그런 예도 있었어요. 그러니까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초등학교부터서 학생들 지금 초등학교 학생들 가르칠 학생들 많아요 악기도 많고 막 많은데 이런 전통예술 학교에서 그걸 이겨가지고 하나를 꽂아 줘야 돼요 영재를 찾으려면 그렇게 꽂아 놓고 찾아야지 무조건 어디 가서 찾아요? 아 거기 김천에가서 여기 남대문에 가 서 김서방 박서방 찾는거하고 똑같지 그러니까 내가 생각할 때는 내가 나이 먹 은 사람으로써 이게 이 초등학교부터서 삼 사학년 오학년 육학년까지 가르치다 보면은 여기서 영재가 다 나와요 악기도 나오고 판소리도 나오고 정가도 나오고 다 나온다고 나는 생각을 해요 口 2-7. 영찌들을 선발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게 무엇인지? 채능이라던지 아니면 은 연습 및 연습을 할 때 연습을 하려고 하는 끈기라던지 열정 이라던지? 그래요. 그런 말씀이 참 좋은 말씀이네 이게 어렸을 때 배울 때는 발성법을 가 르쳐야돼요. 예를 틀어서 였날에는 선생님들이 판소리는 막 악만 쓰면 좋은 줄 알고 막 악만 쓰라고 했었거든요. 근데 그게 아니예요. 예를 들어서 목을 어느 정도 이렇게 빼면서 소리를 해야 된다. 근데 요즘에는 옛날 선생같이 그렇게 가 르치면 아무리 악을 쓰고 안 가르쳐요 요즘엔 톤이 있잖아요 자기 음 그 음을 맞춰서 선생이 가르치다 보면은 그걸 따르다 보면은 거기서 재능이 있는 사람은 빨리 빨리 따라와요. 나는 그렇다고 봐요 그리고 또 발성 발성도 좋지만은 발음 을 정확하게 해야 돼고 요즘에 옛날 선생님들 들어봤죠 거자, 처자여 이래버리 면 춘향인지 뭔지 몰라요 그때여 춘향이가 이렇게 해야 되는데 옛날 선생님 이 그것 보고 권마성이라고 해요 지금은 권마성이 무엇인지 모르지요 옛날에는 가마를 태우고 다닐때는 어우 끼루끼루 해 이것보고 권마성이라고 그러거든 그 때는 이런 일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소리 하면은 아이고, 아이고, 아 이고 나 죽것네 막 이러고 소리를 했다고요 그렇게 목을 막 이렇게 그렇게 했 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고 그때여 춘향이가 아이고 여보 도련님 이렇게 딱 알아 듣게 말을 하잖아요 지금도 전라도 족으로 내려가면 말을 뭔말인지 하나 못 알 아들어요 그래도 나는 우리 선생님 박녹주 선생님이 발음이 정확해요. 정확해서 흥부가 한바탕 배우면 어디 가서 말하기 좋다고 말을 잘해요 아니리에서 잘해가지고 그러니까

371 2-9. 영재라고 지칭되는 아이들의 창의력과 동기 즉 장재력을 알아볼 수 있 는 방법은 어떤게 었을까요? 이제 그 창의력과 잠재력을 알아보려면 이게 시켜봐야 알고 모르는 건 손에 쥐어줘도 모르잖아요 애틀한테 손에다가 쥐어 줘봐야 창의력이 무엇인지 잠재력 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이지 아무것도 안주고 알아볼 수는 없는거예요. 그건 심리 박사나 되면 모를까 심리 박사도 몰라 이게 일단은 이렇게 해서 가르쳐 봐 야 얀다 이 말이야 내말은 그 영재들을 선발 할 때 중요한 것? 아니 그니까 여기서 내가 말을 했는데도 또 물어보면 내가 뭐라고 얘기를 해. 그니까 모르는 건 손에 쥐어줘도 모른다 이거요 그니까 애들도 시켜봐야 58) 아 니, 그럼 나와요.59) 아니 그것은 소리를 시켜 보면은 소리를 잘 할 거 아녀, 그러 면 아 너는 재능이 있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지 그럼 껴가 소리를 조금 배웠다고 막 춤추면서 그렇게 하겼어? 그건 아니고 이거 하나만 보고 뽑아도 이것은 성공 이라고 생각을 해야죠. 口 영찌들을 뽑을 때 선생님들을 전문가 선생님들을 선정을 해야 되거든 요 그래서 그 선정을 할 때 그 전문가들을 선정하는 것이 어떻게 선정을 해 야 공정하고 정확하게 훨 까요? 그러는데 이제 내가 그 말도 알아듣겠는데, 요새 선생님들이 뽑는다고 서로 파 벌이 있고 그러겠지만은 그것은. 에. 뭐라고 할까 옛날 선생님들 같으면은 너 재 상득허다고 해요 너 건방져, 너 알지도 못하면서 니가 이결 할 수 있어? 이렇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내 말은 뭐든지 시켜 보고 얘들이 그 들어 보면은 아 얘는 재능이 있다 없다 그걸 들어볼 줄 아는 사람이 들어야 되지 모르는 사람이 면 그것도 몰라 그러니까 서로 우왕좌왕 하지 말고 이렇게 초등학교 이쯤 돼서 선생들을 좀 강의를 좀 시켜서 발전을 시켜가지고 애들을 또 재능있는 애 뽑아야지 이렇게 지금 상상만 갖고 니가 잘한다 내가 잘 한다 내가 이 짓을 허 문 성공 못할 것이다 이것도 안되는거요. 일단은 해 봐야 알고 요즘에는 소리 충 분히 안해도 모든 사람들이 평은 잘해요 그치만은 자기가 해보라고 하면 한 마 디도 못해요 그것이 좀 섭섭한데가 있고 다 내가 모든 것을 뜨거운지 찬지 마셔 봐야 아는 것이고 고기도 씹어봐야 돼지고기인지 소고기인지 알지 지금 아직까 지 영재를 뽑기에는 너무나 서투른 생각이라고 봐요 일단은 가르쳐 가지고 뽑아 서 만들어 보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나는 그렇다고 생각해요 口 학생들이 성장 할 때 가장 큰 걸렴졸이 될 것은 무엇이고 또 음악가로 서 담당해야 될 부분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에 대해서. 58) 며느님 B: 아 근데 그것도 시켜 봐야 아는데 시켰을 때 어머니가 시켜 봤을 때 얘가 소리를 제 법 하는 그걸 보냐 아니면 소리를 하려는 열정을 중요시 하냐 그결 말하는 거지, 59) 며느님 日 : 뭐가 나오느냐 이거지,

372 그니까 애들도 이런 걸 많이 들려줘야 되고 응 또 어디 가서 지금 판소리 한 다고 해도 누가 또 그렇게 애들 데리고 가는 사람도 없고 또 누가 가서 꼭 저결 들어봐야 겠다하는 사람도 없고 그래서 이제. 내가 어디 가서 판소리를 하면은 내가 이런 얘기를 조금이라도 하고 하는데 그래도 또 무심코 모르는 사람들이 많고 또 연구한다는 사람들 역시 깊이 안 들어요 그러기 때문에 옛날에는 텔레 비전에서도 국악 한마당에서 막 윗도 나오고 토막극도 나오고 판소리도 나오고 해서 애들이 듣고 좋아하고 그랬지만은 지금은 아무것도 없잖아요 응? 국립극장 에서 판소리 완창만 했지 뭐 애들을 데려다가 뭐 한 것도 없고 그래서 이게 많 이 퍼져서 듣고 보고 이렇게 해야 어 이게 뭐 영재가 되던지 뭐가 되던지 그러 지 들을 데도 없고 배울데도 어? 알아야 아는 것이지 이렇게 줄을 아는 사람들 은 딱딱 들어가서 잘 배우지만은 배우려면 또 너무 엄청난데도 있고 그렇다고 해서 누가 애들을 위해서 그냥 희생으로 가르치는 사람도 없고 내가 희생으로 가르치는데는 학교밖에 없는디. 학교에서는 또 어떻게 영재를 키우냐 하는 의문 점들도 있고 어찌됐든지 전공자들을 좀 배출을 좀 해줬으면 좋겠다고 봐요 나는. 그래야 듣고 알고 하지 아니 요즘에 어디 뭐 들을 때 있어요? 없지 60) 그러니까 내가 선생들을 초등학교부터 배치를 하라 이거야 그러면은 나도 좀 선생이 되고 싶어서 소리를 한번 해볼까? 나도 악기를 한번 해볼까? 그러니까 내 말을 잘 알 아들어서 표현을 해줘야 돼 왜냐하면 나는 이 요즘에 무슨 뭐 신식말로는 못 알 아들으니까 배출을 해서 선생들이 다 초등학교 부터서 배치가 되면은.6 1 ) 아 근데 영재를 뽑으려면 무조건 초등학교를 만들어야지 초등학교를 만들면 학생들이 올 거아니야. 그래서 거기서 뽑아야지 나는 범위가 너무 큰 이야기고. 응 그러니까 한종대에서는 한종대에서 뽑으려고 하는 것은 그것도 무리야. 그러니까 한종대에 서 초등학교를 마련해가지고 들어온 학생들 안에서 뽑아야지. 이것은 너무 엄청 난 얘기야 뽑아서 만든다고 하면 안돼. 무조건 초등학교를 만들어가지고 들어온 대서 뽑아야지 이게 뽑아갖고 만든다고 하는 것은 어려운 이야기야 그러면 한종 대에서 초등학교를 만들으라 그래. 그니까 내 말은 어려운 말은 다 빼버리고 내 가 배울 때 그 과정을 이야기 하고 나같이 배운 사람이 몇이나 있는 줄 알아? 없어요 그때는 그냥 바람 동창 이 이런거 하고 앉았었고 이게 참 시조허네 한다고 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는 사람도 없고 그래서 옛 날에는 산조를 하려면 풍류를 먼저 배워갖고 산조를 해야 되고 시조를 먼저 배 워 갖고 소리를 해야 전성이 없고 뱃심이 짱짱하고 이렇게 됐지 지금같이 소리 60) 며느님 8: 우리 어머니는 국가적인 얘기를 하시는 거야 지금 초등학교에 이 나라에 심으라는 거고 여기서 퀴즈하는 거는 마지막에 언제 그 질문에서 내가 조금 보충을. 인제 이거 서류 작 성도 할거죠? 근데 이거를 배워놨을 때 영재를 뽑았어든 이쨌든 어느 정도 키워놨으면 키워놔 서 뭐 어디다가 쓸거냐 선생님이 항상 강조하는 게 들어갈 구멍도 없고 어디 가서 밥 벌어먹고 살 직장이 없는 거야 지금 이렇게 학생들이 배우지만 진짜 국립대 들어가려변 몇 백대 일이고 이번에 가야금 뭐 세 명 뽑는데 뭐 백 몇 십 명이 왔대 설 자리가 없대 그러니까. 61) 며느님 日. 근데 지금 이 선생님은 이 한종대에 예술원에서 영재를 뽑을거야 뽑아서 지금 껴네 를 뽑아야 되는데 어떻게 뽑아야 되고 어떻게 가르쳐야 되고 이런 걸 생각i>}는데 민학교에 다 집어넣으라는데 여기서 권한 밖이야 어머니는. 어머니는 국 쩌 씨

373 를 배워갖고 악만 썼지 깊이가 없다고. 口 3-1(1-1-(2)). 성차옥 선생님을 만나서 학습한 것이 언재인가요? 그리고 어떤 것을 배우셨나요? 내가 성차옥 씨한테 간 것은 한 고향이니까 인자 가끔 놀러가요. 그래서 인제 소리 배운 것은 그 때 한 열 다섯 때 인가, 그 때부터 너 좀 소리 배워볼래? 해서 그 때 시작을 한거거든요? 근데 그 때는 언제 소리만 헌게 아니고, 시조. 언제 장구를 놓고 시조를 쪼곰 배우고, 그러은 소리도 한번 배워봐라 그러은 인 자 또 북을 놓고. 그니깐 한 줄씩이나 이렇게 배웠을 거예요 아마. 그럼 그거 배 워 갖고 언제 집에 와서 나 혼자 이렇게이렇게, 크게도 못 해요. 인제 오빠들 학 교 탱기고 그러니까 저 골방에 가서 나 혼자 해보고 오지. 오빠들이 그 때는 못 배우게 해요. 그래도 나는 좋으니까. 인제 그렇게 연습을 했거든요? 그래서 인자 거기에서 뒷동산이라는 단가를 솔찬히 근 일 년 동안을 탱기면서 아마 띄었을 거예요. 이게 금방 안 해줘요. 그 때 옛날 선생님들은 쪼 곰씩. 인제 그 때는 녹 음기도 없고 글도 못 쓰고, 인제 입만 보고 손 장단 맞춘 것만 보고. 그 때는 장 단을 여기 한정대로만 해라, 그러은 그 한정대로만 그렇게 해야지 몇 박에 뭐가 어떻고어떻고 없고, 그려서 한정대로 뒷동산 지난 곳은" I 이렇게만 해라 그러 은 또 그렇게만 하고. 인제 예를 들어서 시조도 바람아 이 한정대로만 해라, 이 한정대로만 했지 언제 요새는 뭐 박이 몇 박에 그러는데 그거는 없고. 그런 식으로 그러면서 뒷동산을 한자리 배우고, 바람아 불지마라 인자 그것도 배우고, 그래서 밤 낮 그렇게 해서 그놈 같고 많이 풀어 먹은거죠. 성차옥 선생님께 열다섯 살에 학습을 하시고, 시조랑 단가랑 북을 배우셨는데 요. 그럽 북은 치는 법을? 인자 치는 법은 몰르고. 요건 중모리다 헝께 단가에는 중모린 줄 알고, 또 인 자 장구로 시조 장단 칭께 시조 장단 인갑다 허고. 그 때는 뭐 우리가 건방지게 몇 장단 이예요? 혈 수도 없고, 그냥 그 한정대로만 허고 있는 거예요. 단가 배우신거랑 시조 배우신 장단을 북으로 배우신거죠? 북으로 인자 치은 우리가 눈치로 인자 우리 한정대로 허문 딱딱 맞웅게 잘한 다잘한다 그러제, 그런식이여. 口 3-2(1-1-(2)). 성차옥 선생님께 배우기 전, 언체인가요? 음악이나 춤에 관심을 가진 적이 인제 관심을 가진 거는 보통 그 아주머니들이 화전놀이 가먼은 장구치고 당딱 궁딱 당딱궁딱 그러고 치먼은 언제 아이쿠 그게 좋았지, 어디 가서 그렇게 치 것도 많이 본 것도 아니고. 언제 봄이은 다 화전놀이를 가요, 보통 음식을 장만 해갖고. 인제 그 때가서 보면은 그 흥에 그냥 나도 흥에 겨워서 f 나도 저렇게 해 보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었었지. 화전놀이는 화전놀이는 언재부터? 인자 언제가 아니라, 그 때는 인자 봄이은 봄에 가서 인제 꽃놀이

374 간다고 윗하고 그렇게 가거든? 긍게 일 년에 한 번썩은 그렇게 가는 거여. 가을 에는 안 가고 봄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봄에. 영. 어머니 따라 탱기고 인자 그 놈 모두 다 장구를 매고, 그렇게 고, 그러고 인자 점심 먹고 오는 거지. 口 3-3(1-2). 선생님께서는 어렸을 척에 소리를 째치 있게 하셨다고 하셨는데 요, 째치 있게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스승님의 소리를 잘 기억한 것이 재치 있는 건가요? 아니면 소려를 맛깔나게 하는 것인가요? 재치 있게 한다는 것은 가르칠 때 빨리 받은 것을 보고 재치 있다고 그러거던? 그래갖고 인제 음을 안 툴리 게 또 와서 또 해고. 인제 예를 들어서 뒷동산 하고서 뒷동 산 이렇게 하는 사람도 있고. 내가 뒷동산 그러은 뒷동산 이렇게 똑같이 허니께 l 니가 재치 있게 하구나 언제 그런 그것은 다 할 수 있는 것이지. 째치 었게 한다는 말이 스승님의 소리를 잘 기억한다는? 그렇지. 재치 있게 한다는 것이 잘 받고, 언제 또 안 잊어 부리고, 금방 하고. 그니께 언제 니가 재치 있게 목구성이 또 괜찮다 인제 그런 이야기를 하죠. 그 때는 많이도 못허고, 그 쪼금헌걸 들어보고 인자 선생들이 r 야는 허먼 되겠구나 그런 생각들을 했겠지. 소려를 맛깔나게 한다는 것도 채치 있게 한다 라는 말과? 그 때는 맛깔난 것이 없고. 너 소리하븐 목이 좋으니까 막 나니까 인자 아무 물색 도 없이 막 나거든? 그래도 소리가 그 음이 아주 높으니까 그 때는 너 청이 되니까, 그 때는 높은 거 보고 되다고 그러거든? 너 청이 펑께 너 소리 잘하것다 그런 얘기 지 요새는 음이 높으다고 그러지만은 그 때는 너 청 참 너 음이 되다, 되다는 거 보고 높으다는 거야. 그닝게 인제 요새 말하곤 아주 전혀 딴판이지. 口 3-4( 1-7 -Cî)). 박기홍 선생님께 언제 학습 받으셨나요? 화순에서 아념 광주에서? 성차옥 씨는 원래 소리꾼도 아니고, 언제 그냥 몇 줄씩 허고 시조도 허고 그런 분이거든? 그닝께 그 분이 재주가 있는 분이야. 긍께 인제 이 박기홍 씨란 분은 원래 판소리로 인제 인데, 나가 인제 거 기서 기초를 쪼금 배웠죠. 그러고 쪼금 배우고 그 냥반은 그냥 떠나 부리니까, 그 대구로 어디로 떠나 부리셨어 인자 쪼금만 배우다 말아 부렀지. 몇 살 때 배우셨는지 기억나세요? 그 때 인자 그 무렵이겠지. 열 다섯 살 아셨을 때요? 응 그렇지, 그 무렵이지. 내가 뭐 몇 년을 지내고 몇 년 윗도 아니고, 그래서 인자 그 분한테 야 이것이 판소린가 보다 그런데 똑같은 소리지만은 이분은 원래 소리꾼이 아니시고 재주로 허신 분이고, 인제 이분은 원래 소리 판소리 짜 씨

375 허신 분이라 f 아 인제 이것이 긴가 보다. 그래서 인제 똑같은 소리지만은 거그 서 홍보가를 쪼금 배우다가 한 장단, 한 중모리장단이나 좀 배왔겠죠. 그것 뱀에 안 가르쳐 주니까. 口 3-5(1-12-(Z)). 선생님께서 권번에서 소리를 학습 하설 때요, 그날 배운 것을 바탕으로 개인 연습 하질 때 업으로 하셨다고 하셨잖아요. 구음으로 연습하신 건가요? 아니면 소리로 연습하신건가요? 그니까 인제 권번에서 선생님한테 소리 배운 것은 그냥 이렇게 주고받고 소리 배왔고, 인자 춤을 배울 때는 그 선생님이 인제 염불을 입으로 해요. 업으로 하신다는 게 구음으로? 응, 구음으로. 인제 구음이 아니 고, 염 불장단을. 구음이 라는게 너 나이 나 니 나 이것이 구음이고, 인자 춤을 출 때 나난 지나 이게 인제 염불을 그 염불장단 입으로 쳐요. 그러은서 춤을 가르켜 주지. 지금 질문 드련 거는 춤이 아니고 소리인데요 선생님. 소리는 그냥 주고받고 허고. 소리는 판소리롤 학습하철 때 주고 받으면서 그렇지. 예를 들어 홍보가 그러문 또 홍보가 허고 11기가 막혀 허은 기가 막혀 이렇게 했지 그 냥반이 다 해주고 해봐라 그건 아니거든. 그니까 홍보가 홍보가" "기가 막혀" "기가 막혀 그래도 한 세 번 네 번이나 가르켜 주고 가서 연습해라 그런다고. 선생님께서 그 때 업으로 연습을 하신다고 하셨는데 그 소리를 구음으로 연습 을 하신건지 소리로 연습을 하신건지 아니, 구음으로 헌거 아니지. 그 냥반이 가르켜 준 고대로 연습을 해야지, 내가 구음도 모르고 그 때는 구음이 윗인지도 모르고. 인제 소리를 배울 때는 홍보가 기가 막혀 나가란 말을 듣더니 만은 거 까지 딱 해주고 가서 연습해라 그러은 그 고대로 연습을 해야지 내가 딴 곡을 붙였다가는 인자 혼나지. 가사 없이 구음으로만 하셨는지 소리로 연습을 하셨는지 궁금해서 구음이 아니여, 판소리를 하는 거거니? 구음이라는 것은 판소리에다가 붙일 수는 없는 거여. 무용 헌 사람들이 구음이라고 붙이지. 구음 허고 판소리 허고는 아주 전 혀 딴 판이야. 소리 배울 때 홍보가 기가 막혀 그러은 기가 막혀 배왔잖어? 그 러면 자기가 딴 대로 홍보가 기가 막혀 이래 뿔면 큰일나지. 인제 홍보가 기가 막혀 허은 이렇게 해야지 궁고탱게 홍보가 기가 막혀 나가란 말을 듣더니 만은 이랬다가는 인자 큰일나지. 인제 그것이 구음이여 구음이고 자기 멋대로 붙인 것 보고 구음이라고 그러고 인제 소리를 선생님이 흥보가 그러은 딱 딱 이렇게 그 한정이 있어 기가 막혀 딱 딱 이런 게 그 한정대로만 딱 해 와야지 좀 느리거 나 어쩌거나 허은 또 다시 다 다시해라다시해라 하거든? 그렇게 했어

376 口 3-6(1-12-(2)). 선생님께서 권번에서 춤을 학습 하질 때, 무반주로 춤을 배우 고 추셨나요? 아니면 장단으로만 치고 춤을 추셨나요? 춤 출 때 장단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긍께. 그 선생님이 입으로 장단을 쳐/1나난 지나 이것이 염불이야. 염불장단 을 장단이 혼자 가리키니깐 누가 장단을 쳐줘? 긍께 업으로 장단을 다 입으로 하셔. 그래서 발 한나를 띄어라 또 둘 띄어라 팔을 내려라 올려라 이렇게 하면서 입으로 다 구음을 해준다구. 염불장단을 쳐주고, 졸립장단을 쳐주고, 굿거리를 쳐 주고, 타령을 쳐주고, 입으로만 다/1난나 나나이나 허너이나나 아나 이렇게 다 긍게 그 선생님 입으로 다 장단을 쳐요. 스숭님께서 장구를 놓고 장단을 치시면서 구음으로 같이 아니 아니고, 인자 동작을 가르킬랑게 서서 따라 탱기면서 그렇게 염불로 다 입으로 염불을 다 쳐줘 입으로. 업으로 염불 구음을 불러 주셨다는 얘기죠? 구음으로 헌게 아니라 구음 비스름 하은서 장단을 다 맞춰. 긍께 나난 지나 그러고 허은 장단이 되는 거야 입으로 다 장단을 치니까. 근데 요즘에는 그렇게 허는 사람들 알아야 또 구음을 허지? 몰라, 몰른게 그냥 장단을 치라 그러고 한 정대로만 허고 장단을 또 따로 맞추고 그러지만 그 때는 그 선생님이 나난 지 나 안나 다 후리 손을 피고 이렇게 허고 인자 한정을 선생님이 다 이렇게 해 줘서 발로 다 띄고 저거 헌것 같애. 긍게 춤도 그 때는 여그서 저까지 발만 띄고 왔다갔다해요, 한 일 개월 동안을 발만하나, 딱, 오른발 왼발, 나나 이렇게 해서 발 띈 것만 확 연습하고? 인저 발 또 하나 하나 든 걸로도 이렇게 연습을 하고 그다음에 둘 든 걸로 허고, 그려가지고 인자 또 장삼을 입혀가지고도 이렇 게 하고. 긍게 인자 손으로 미리 다 배우고 장삼을 또 입고 이렇게 하고, 그때는 참 정중하니 발 띨 때 합합에다가 이렇게 요새는 막 r 따다다다다다 할 때 막 피 고 막 그러지 그 때는 따다다다다다다 딱 r 헐 때 딱 피지 중간에 딱 핀 게 없어 요. 요새는 막 I 삐 뚱 딱 떡 f 막 요렇게 허지 나나 따다다다다다다다다닥 딱 r 헐 때 f 콩 막 이렇게, 요새 장단도 다 옛날 장단하고 툴리니까. 춤 배우시기 전에 창단을 좀 배우고 춤을 배우셨나요? 아니면 춤 배우시면서 같이 하셨나요? 없어. 어디 건방지게 내가 장단 배와갔고 왔어요 했다간 혼났어. 쫓겨나뿔지. 선생님이 춤을 배우시기 전에 모르지, 뭔 소린지도 모르고 그냥 선생님이 이거 춤 배와라 헝게 허지 62) 요새 사람두 건방지게 나 장단 배와갔고 왔어요 했다가는 그건 못써. 근데 창단을 먼저 가르치시고 춤을 가르치치는 그런 얼을? 아 천만에 없어. 그건 없어. 발과 장단과 같이 했어. 그건 없어. 그냥 장단과 62) 따님(서진경) B: 자기는 대금 배울 때 장단 먼저 배우고 왔어?

377 무용을 한정대로만 밟으먼 장단이 딱 맞게 선생님이 가르켜 줬어. 口 3-7(1-10-(1)). 선생님께서 권번에서 학습하셨을 때, 점심 먹으면 땅과를 허 고, 그다음에 판소리를 배우고, 춤을 배우고, 조행을 배운다고 하셨는데요. 땅 과가 무엇인가요? 이것은 인제 와서 소리를 선생님대로 내가 오늘은 소리를 먼저 바르키고 가야 것습니다. 헐새 고케코롬 바뿔 때는 바꾸지만은, 수업에 오먼은 판소리를 먼저 배우고 인제 점심을 먹고 쪼금 앉았다가 춤을 배우고 그러고 저녁 때 남으먼은 언제 그 때는 일제시대 때라 일본 선생이 와서 또 글을 가르켰어요. 일본말, ζ 그럼 l 땅과가?63) 그냥 과목을 톨아가면서 배웠다 땅과는 없고, 땅과 랜게 없고. 그 때는 과 라는게 없고 그냥 시간이 남은번 배 우고, 인제 또 시간이 우리가 쉬는 시간이 있을 때는 그 조행에 대한 이야기 선생님이 해 주시지 口 3-8(1-11). 화순에 계셨을 때, 소리 한번 해봐라 하고 하신 분이 누구셨나 요? 동네 어른이신가요? 아남 스승님 이 신가요? 아니, 선생님이랑 모두 놀 수 있는 북도 배우고 그런 분이 f 아가 이리와라 사 탕 사줄께 그렇게 한 번씩 한 것이 노상 그런 것은 아니고, 이게 두 번만 해도 우리는 사탕 안 먹어요 f 그러고 안 허고 그랬어. 성차옥 씨란 분이 집에서 인자 있으니까 북도 배우러 오고, 좋아한 사람들은 시조도 배우러 오고 그랬어. 그 때 는 많지는 않지만 한 두 명이 왔다갔다하고 그런 것 같애요. 그러고 또 인제 그 때는 별로 일이 없응게 도란도란 앉아서 놀고 윗하고 심심헌께 아가 너 와서 해 봐라 북 한 번 쳐보게 인자 그런 식이야요.6 4 ) 협률사에서 온 사람은 돈 벌라고 아들한테 광고 돌리러 탱기고 얄리로 탱기는데 나 북 칠 사람도 없고, 어디가 그 런 사람들은 나한테 삐약삐약 한거를 북 치겼어? 잘하는 사람을 쳐야지? 그닝께 동네에서 봐도 이렇게 노시는 분들이 그래요. 口 3-9(1-4). 정말 좋은 목소리가 나몬 국창 선생님 더늠이다 라는 말씀을 해 주셨는데요. 정말 좋은 목소리란 목청이 좋다는 말인가요? 아니면 소리 구성 이 좋다는 말인가요? 그니까 언제 그 각자에 타고난 목 구성이 있어요. 인제 이 사람은 언제 뭐 수 리성이다, 또 이 사람은 뭐 깨성이다 그냥 목만 쩍 났지 구성은 없다. 인제 그 사람에 따라서 그런 구성이 있다 없다 하는 소리를 헌 것 같애요. 가요 같은 것 도 들어 보은 잘하는 사람이 있고 또 요상히 못허는 사람도 있잖어, 그 똑같은 이치야. 판소리도 자기가 목을 타고난 분이 있고 또 그냥 목만 났지 구성이 없는 63) 따님 B: 땅과 래는건 과목을 돌아가은서 배웠다 그거지. 64) 따님 日 : 그게 한 두 번 일어난 게 아니고 내가 볼 때는 루틴하게 이루어진 거 갇애. 가끔. 그니 깐 동네어른도 시켜줄 수가 있고, 협률사에서 공연을 오면 그 선생님도 시켰을 수가 있는 거 있 고, 누가 시키던 간에 한 번만 이루어진 게 아니잖아 그러니깐. 그거는 인제 랜덤이야

378 사람이 있고, 그 다 마찬가지로 언제 옛날 선생님들은 너는 목 구성이 괜찮다 그러면 소리 들어보은 아 그냥 헌게 너는 허변 되것다 인제 그런 이야기를 했 겠지. 뭐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다 사람 사람의 가진 목청이 있는 거 같애. 口 ). 옛날에는 소리 잘하는 아이들을 보고 재간이 었다 라는 말을 쓰 셨다고 하셨는데요, 재간이 있는 것을 어떻게 판단하면 좋을까요? 재간은 인저 장구소리 듣고 궁딱궁딱 춤춘 것이 재간이 있는 것이고, 장구 치 는데 뭐하러 들어가 앉아 있는 것은 재간이 없는 것이고.65) 아까 선생님이 질문 들어가기 전에 잠시 얘기 해 주신 것 중 선생님께서두 어 렸을 때 재간이 었였다는 말을 해주셨잖아요, 그거에 대해서 조금만 더 얘기 해 주설 수 았으세요? 재간이라는 게 나도 저기 미련하지가 않았지. 뭐 가르켜 주변 똑똑스럽게 받고 그렁게 재간이 있다 그랬지, 내가 인제 재간을 보일라고 헌 것도 없고 긍게 잘 가르켜 주변 잘 받응께 재간이 있다 그런거지. 선생님께셔는 어렸을 때 밖에서 음악이나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면은 그거를 잘 그건 인자 누가 배울 때 내가 옆에서 듣고 헌 적도 더러 있었고, 그렇다고 그 러서 내가 듣고 금방 잘해요 그럴 수도 없는 거고 내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을 했지. 내 속으로만 들으먼은 저 사람이 못 받은 목을 나는 하고 있어 바깥에서, 근데 왜 저렇게 못 받은가 그래도 그걸 자랑삼아서 얘기도 못 해보고 인자 그 자리를 배울 때 내가 금방 배워버리지 아까 들었기 때매 긍게 니가 잘 배운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겠지.6 6 ) 재간허고 재주허고 또 틀리지. 그 때는 그냥 재간이 란 말도 없고 너 참 재주 있다 뭐 잘 받응게 그 이야기지. 재간이 었다 라는 거에 소리를 잘 기억한다 이런 것도 째간이 었다라는 것과 그렇지, 잉. 근데 그 때는 많이 안 가르켜 준께 뭐 금방 배운게 재주 았다 그 뿐이지 니가 다 이거 외냐 소리는 안 해보고 기껏해야 요 줄이나 헐까 여기서 여까지 그거 못 외면 그건 바보지. 기억을 잘 하는 것도 째간이 었다? 기억력은 요래요 우리도. 배와갔고 인제 녹음기도 없고 글씨도 안 쓰고 긍게 여기서 여까지 인저 예를 들어서 여까지 외워라.그러은 잊어버려 나가서. 아무 리 생각해도 안 나. 근디 아침에 눈 뜨고 두러눠서 가만히 생각허은 나, 그때 언 빨리 잡아야지. 그래갖고 와서 선생님 앞에서 강의를 받치지. 65) 따님 B 홍이 있고, 관심을 갖고. 요새 왜 텔레비전에 나오는 애들도 똑같이 음악을 하면 막 흔 드는 애가 있고 가만히 앉아 있는 애가 있고 그러잖아 그럼 우리가 볼 때 재간이 있는 애들은 좋아하고, 막 이러고 있는 거랑 똑같은 위치지. 66) 따님 8: 그니까 선생님 본인 스스로 말하기는 좀 쑥스럽지만 내가 볼 때 영리하셨어. 영리해서 뭘 배우고 가르켜 줘도 왜 똑같이 공부도 빨리 이해하는 애가 있고, 근데 선생님은 내가 이렇게 쭉 옆에서 지켜보면은 선생님은 재간도 있었는데 선생님은 성실하셔. 그러니까 그게 두 개가 다 겸비가 되는 거 같애. 그러니까 배우는 것도 빨리 배우는데 욕심이 있다니까 학습에

379 디 3-11(1-4). 옛날 선생님들께서 착해서 명창 되겠다 라는 말씀을 해주시변 최 고의 칭찬이라고 하셨는데요, 이 말은 재간이 었다는 말인가요? 전통적으로 재간 었다는 말을 이렇게 표현하신건가요? 그건 재간허고는 틀린 말이고. 인제 뭔 일을 혈 때 방을 썰어도 막 먼지를 팍 팍 이러게 안 허고 살 살 이렇게 쓸면은 I 너 양전허고 방 쓴 것이 너 앞으로 명 창 되겼다 그래. 칭찬허니라고, 명창 된당게 그 말이 좋은 줄 알고 막 좋아허거 든? 긍게 예를 들어 빛이 나도록 방을 쓸지 않어 그러먼 요새 애들 방 좀 요리 요리 하은 먼지가 다 나잖어 지금은 기계로 막 다 해부리지만은 그 때는 빗자락 이렇게 들고 가만 가만 썰어서 저리 나가은은 아 얘가 참 눈치가 빨르고 뭐 하는 짓이 참 양전하구나, 너 방 씬거 본께 앞으로 너 명창되겼다 그러은 그것 이 좋은 줄 알고, 61)그 때만 해도 개구쟁이 같은 여자들도 있고 배운 애들이 그 래, 그렁께 인자 그런 이야기를 허시는 거지. 다른 게 아니고 착해서 명창 되겠다 라는 이 말을 덕당안지 예술을 말하는 것인지. 그 칭찬이라는 게 그 애들의 행동을 보고 너는 앞으로 언제 부자 되겼다 그 런 소리를 어린 것 헌테 헐 수는 없는 거고 소리를 허고 있으니까 너 허는 짓이 앞으로 명창 되겼다 그것이 칭찬 해 준거야. 칭찬이지 그것은 뭐 소리를 잘해서 명창 되겼다 그것은 아니여,68) 덕담이여,69) 口 4-1. 전공 분야 외의 다른 예술분야(혹은 다른 분야)에 관심을 두신 척이 었 습니까? 그 때는 내가 인제 뭐 분야 분야도 없고 일단 소리를 헌께 소리만 허고 있는 거고 또 언제 춤을 배와라 그러은 춤을 배우고 있는 것이지 내가 뭐 분야 뭐도 없고 그냥 그것만 허고 있는 거예요. 아무것도 모트고. 예를 들어서 운동하는 걸 좋아하셨다던지 운동도 윗도 없고, 없어 아무것도 없어. 소리나 배우고 좀 앉았다가 선생님한 테 좋은 이야기나 듣고 그냥 파허면 가는 것이지 가다가 예를 들어서 선생님이 너 중간에 어디 전빵이나 뭐 가서 사먹지 말고 집에 가라 사 갖고 가서 집에 가 묵어라, 여기서 길에서 먹고 탱기고 그 안된다 어디 우동집에도 못 가. 반장을 시켜가지고 인제 도시락 다 까먹고 빈 도시락 들고 쭉 가은. 67) 따님 日 : 그니까 왜 설치는 애들은 집중력이 없잖 h 아무래도 설치는 애들은. 68) 따님 B: 왜 우리 애들이 애기가 요렇게 책보고 있으면 아우 얘 공부 잘하겠다 그러잖아, 그 똑같은 거야. 69) 따님 日 : 근데 이제 거기 선생님들이니까 역시 그래도 이게 하는 짓이 양전한 애들이 이게 봤을 때는 소리도 잘하겠다 이런 어떤 성실성하고 뭐 그런 거 다, 의미가 있을 수도 없고 없을 수도 있을 거 같애

380 口 4-2. 학습을 하던 시절 전공분야 외에 다른 예술분야의 전공자와 교분이 있 으셨나요? 다른 분야는 가야금을 했지, 가야금을 인제 풍류를 배우고 풍류를 잘 하면은 인제 풍류를 하고 나는 그 때 편편락을 가야금으로다가 했어 그 선생님이 가르 켜 줘갔고,7 0) 전공분야 외에 다른 사람들과 교류나 친분을 가지고서 만난 적이 었다거나, 학 습하던 시철에 열 몇 살쯤? 그니까 이것이 사람이 요새 같이 수 십 명되고 말 심는 게 아니고 많애 봤자 야 한 열 명 안에 있어 공부한 사람들이. 가야금을 배우고 싶은 사람은 배우고 안 배우고 싶은 사람은 안 배워,71} 권번 안에서 그렇지. 안에서 시조 배울 때는 같이 다 앉아서 배우고 또 인자 가야금 배울 때는 배울 사람 배우고 안 배울 사람 안 배우고. 그래갖고 또 배울라고 하는 사람은 이뻐 갖고 또 선생이 더 가르켜 주고, 나는 그거 안 배와요 그러은 냄둬 뻐리고. 어렸을 때 권번 이외의 분들이랑 친분이나 교류는 사람이 별로 없어, 그 옛 당시에는 하도 없으니까 우리가 언제 삐약삐약 허은 잘헌다고 인자 그랬지. 口 4-5. 무대에 서기 전 혹은 시험이나 콩쿨에 나가기 전에 얼마나 어떻게 연습 을 하셨는지요? 지금 생각허먼은 연습을 많이 했겠지만은 그 때는 외기 전에 까지만 허고 안 해, 그냥 놀아. 멸여섯 살인가 얼곱 살 때쯤에 시조대회에 나가서 2등도 하시고 하셨다면서요 그 때는 인자 졸업장을 받은 다음에. 한 2 3년 탱기고 졸엽장을 받았거든? 그 때 너 한번 나가봐라 r 그래서 그 때 시조대회에 나가서 2등을 헌 적은 있어. 그 때 연습은? 나 혼자서 연습을 많이 했지. 그니까 많이 얼마나요? 그 때는 대회 나갈 때는 음악을 딱 내 가지고 1 장, 2 장, 3장 이렇게 1 장 끝나 고 해주고 또 2장을 나가고, 2장 끝나고 또 3장 나가고 그렇게 말장초장, 중장, 말장 이렇게 하거든? 지금 그니께 그 때는 초장, 중장, 말장 이렇게,72) 70) 따님 日 : 아니 그 때는 선생님이 지금 앞에도 쭉 인터뷰 할 때 말씀하셨잖아, 선생님 때는 판소 리 하나만 딱 배우고 이런게 아니야 선생님은. 춤도 배우고 71) 따님 S' 그니까 열 명이 그냥 맨날 친한 거야 똑같이 다 배우는 거지 자기가 72) 따님 日 : 내가 그 일을 지금에 빗대서 생각을 해봐 현정 씨가 그냥 선생님은 지금 내일 모레 공연이 있다, 지금 문화재 되시고도 지금 공연이 있다, 그러변은 선생님은 혼자 앉아서 연습하

381 어렸을 때도 뭐 하루 종얼?73) 혼자 혼자 간단헌게 혼자서 허는 거지, 누가 뭐 시킬 사람도 없고 해 줄 사람도 없 고74)그것은 자기가 알아서 인자 했겠지, 누가 선생님이 너 나가는데 I 이리와라 잠시 내가 연습시켜 줄께 그런 건 없고75) 긍게 초장에 음을 피리로 이렇게 할 때 얼마 정도에서 중장을 낸다 또 끝나고 말장에서도 얼마 정도 말장을 낸다 그렇게. 口 4-6. 어련 시절 음악을 일방적으로 배우던 시절, 음악을 하는 목표가 무엇이 었나요? 왜 음악을 포기하지 않고 하신 것업니까? 목표는 아무것도 없었지 모르지. 긍게 좋은게 그냥 했고. 선생님이 너는 이거 허븐 좋겠다 그려서 시조도 허고 인제 그 때는 어쩌다가 한 번 들어보고 다 가 부렀지. 그거 렷이지도 모르고. 口 4-7. 연습을 할 때 한 두 번 하고 마셨는지 아니면 스스로 원하는 목표를 정 하고 그것을 이루면 그만두셨는지? 그닝께 인자 툴을 정한 것도 없고 그냥 허라고 헐 때 허고. 나 혼자 그냥 해 보고 또 허기 싫으면 말고 그랬어. 口 4-8. 어떤 상황에 연습을 시작하고 마쳤습니까? 틈나는 대로 그래도 안 잊어버릴라고 l 아 내가 어디서 허라고 허먼은 이게 잊 어버리면 안 되것다 헌께 가만히 자은서도 가만히 해보고, 크게 못 허고 무대에서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여 연습을 한 경우가 었다면, 어떻게 했 습니까? 무대에는 인자 처음 올라 갈 때는 몰랐지 떨리고 막 그렁게 그 때는 무대 내가 올라간 것이 아니고 협률사가 왔더라도 애들은 안 시켰잖어. 그래서 난 언 제 그 때 졸업을 허고 열여서일곱 이 시기 때 동일창극단에서 인제 그 때는 일 제시대 때 동일창극단 한나 뱀에 없어 긍게 그냥 동일창극단 가자 그래서 그냥 아따 좋다 허고 따라갔지. 거 가서 인제 홍보 예를 들어서 홍보가를 허면은 자식 나가고 그랬지. 만약에 대금을 예로 들면 대금 불 때 청을 붙이는데, 대금에 청을 붙여서 연주를 하 는데 푸대에서 터질 수도 있잖아요. 그런 걸 대비해서 연습을 하신다던가 그런 것. 그것도 없고, 그거 들으먼 그냥 따라 갔지. 그냥 몰라. 대금을 누가 어디서. 그 셔. 그니깐은 그만큼 성실했기 때매 지금 얼만큼 했냐 그러면 내가 몇 시간 했다 이렇게 얘기 는 못하시지만 그냥 선생님은 거의 소리를 내가 생각 할 때 어렸을 때도 입에 달고 살으신거야. 73) 따님 Fl: 종일 일 수 는 없지만 틈나는 대로 74) 따님 B: 왜냐면 자다가도 일어나서 하시거덩? 지금도 자다가 일어나서 하시고 주무시기 전에도 하시고 주무시다가 깨서 75) 따님 B: 지금도 여기 아무도 없이 혼자 계시면 여기서 공부해 지금도, 그니깐 그런 성격이예요, 그런 성격. %

382 때는 대금 소리도 들어본 적도 없고, 피리도 들어본 적도 없고 인자 76) 최악의 상황을 대벼를 해서 하신 연습이 그 때는 그냥 아무 데라도 내 놔도 목이 그냥 짱짱짱짱 나오니까 그 때는 이 게 시조할 때는 세피리나 띠루디 띠 띠 막 이렇게 했지. 막 대금을 놓고 단소 놓고.π) 아니 근디 나이 어리고 젊었을 때는 목이 쉴 것인지 안 쉬는지 막 백 날해도 목도 안 쉬니까 그런 염려가 없었지. 그냥 허라고 허면 허고 인제 중간에 인자 커가지고 아유 내가 목이 안 나오면 어쩔까?' 그런 염려를 한 나도 난 목 안 나온 염려는 안 해봤어. 막 생감 먹으면 큰일 난다 목 나와 안 나온다 그래도 생감 막 묵고해도 아무 씨랑도, 자다가 일어나서도 아무 씨랑도, 78) 인제 나이 먹 으니까 감기 걸리은 목으로 오니까 목이 안 나온다 그러지만 그 때는 목에 대한 나는 이만한 신경도 안 써봤어. 인자 나이 먹으니까 어디가서 소리하라은 내가 목이 나오나 한 번 해보자 허고 목 푼다고. 근데 목 푼다고 나오는 것은 아니야. 소리를 많이 험으로써 이렇게 배에서 많이 내 놔야 소리가 나오는 것이지, 여기 서 목 구녕으로 하는 사람은 금방 쉬어 버리은 아요 쪽도 못 해 정신 터서. 그래 도 목이 쉬어가지고 아 이러게 나오은서 하는 게 더 구성이 있는 거야. 그게가 어려와. 많이 많이 해야 되 판소리는. 口 자기가 어느 정도 잘한다는 자신감이 든 적인 았였는가? 그니까 인자 내가 어디 가서 단가 한마디라도 허은 f 아이고 소리 잘하네 f 그런 소리 들어도 내 자신이 내가 소리를 잘한다 못한다. 그런 생각은 안 해보고 어디 가서 소리할 때 f 내가 지성스럽게 해야 것다 거기다가 방심을 해서는 안 되것 구나/ 그렁게 어디가서 허라고 하는 소리를 내가 항상 조금씩 준비를 해요. 느닷 없이 하라고 하면 딱딱 맥히잖어? 그니까 내가 좋아하는 곡을 자꾸 가끔 연습을 해 놔야 되. 그래야 어디 가서 딱 하라고 하은 딱 하지, 내가 천재가 아닌 이상 에 그런 거 안 해 갖고 준비를 안 해 갖고는 안 되 학생 때 스숭이 가르치는 대로만 했나 아니면 다른 방식로도 해보고 그랬냐? 그럼 그대로 해야지 안 했다가는 내가 언제 큰 저 건방진 것이 지 맘대로 소 76) 따님 1:3: 노래하는 사람은 목이 안 나오면은 그다음에 할 수가 없어, 77) 따님 H 아니야, 그거는 인제 대금을 예로 들은 거고. 그니까 내가 얘기를 해줄게. 선생님이 한 번 이제 큰 공연을 하나가 앞뒀는데 어떤 분이 소리를 좀 잔 나오게 하시라고 그 때 무슨 계란 을 하날 주셨데, 그래 그결 하나를 딱 드셨는데 이 목이 딱 가가지고 소리가 안 나오니까 그 공 연을 못 하신거야. 그니까 내가 볼 때 노래하시는 분은 악기는 얼령 청을 다시 붙이고 하먼 되 고 가야금은 줄이 끊어지은 잠시 기다리십쇼 하고 줄을 연결해서 할 수 있지만 만약에 소리 같 은 경우는 똑같은 거지 그니깐 잠깐만 기다리시라고 해서 내가 목을 물을 마셔보고 목을 가다 듬어 보고 할 수 있으변 하지만 이 악기랑 좀 달르기 때매 소리는 만약에 진짜 목이 딱 안 나 온다, 감기가 걸렸다 이럼 못 하시는 거니까 무대에 최악의 대비라는 거는 소리하시는 분은 평 소에 연습하시는 거 뱀에는 대비가 없는 거지 몽관리 잘하고 78) 따님 B: 감기에 안 걸려시게 평소에 관리를 하시는거, 어렸을 때는 몰르셨을꺼고. m

383 리헌다고 그 때는 선생님들한테 한 번 찍히먼은 안 되, 안 가르켜 줘요. 너 니 맘대로 헌게 니가 알아서 햇부러 이 렇게 口 남과 다른 자신만의 표현 방식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한 적이 었던가? 그것은 아니고, 선생님이 가르켜 준 대로 선생님의 그 더늠을 안 잊어 부리고 내가 해야 것다 하고 자꾸 생각을 허면서 내가 하지. 口 스숭이 하지 말라 했던 표현틀을 해보고 성공해본 척(만족스러웠던 적)이 었던가? 그거는 못 하고, 예를 들어서 가르켜 준대로만 해야지 또 다른데서 배왔다고 선생님 앞에 그런 식으로 해서는 이거는 건방져서 찍히면 안 되. 그래서 어쨌든 지 선생님이 가르켜 준 고대로 내가 이어 갈라고 애를 많이 쓰지. 혹시 스승닙째서 하지 말라고 했던 표현들을 해보고 성공해서 만족스러웠던 적이 었으셨나요? 예를 들어서 여기에선 농현을 하지 말라 고 했는데 했다던지, 여기서는 조금 더 그런 거는 없고? 그것은 그럴 수는 없고, 내가 언제 소리를 어디 가서 헐 때 선생님이 지켜봤을 때 너 똑같이 잘 헌다, 항상 그렇게 해라 그런 그 칭찬을 받았지. 口 스승에게 기본만 배웠던 상태에서 혼자 스승 없이 기본을 념어서 본 적이 었던가? 내가 혼자? 없어. 스승님께서 하시던 것을 오며 가며 들으시면서. 선생님이 했던 것을 내가 똑같이 또 헐 수는 없는 것이지. 그대로 숭을 낼라고 내가 애를 쓰고, 선생님 그 조대를 받아서 꼭 고대로만 해야지 또 예를 들어서 내가 건방지게 잘한다고 또 이렇게 했다가는 안 되지. 성우향 口 1-1. 당신을 영재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동의하는가? 네, 그래요. 왜 그라냐면 안 배왔어도 옆에서 하는 소리를 들으면, 들으면 딴 사람 갈친디. 난 쪼르륙 다 외야부러. 배운 놈들 보다 더 잘해부렀어. 그런 게 소 질이여. 口 1-3. 우려가 당신을 영재라고 부르기 이전인 어련 시철에 당신의 쩌능을 타 인이 알아 본 적이 있었던가? 없어. 있거나 말거나 난 계속 했으닌까. 7년을 가서 저 보성군 해천변에 선생

384 님이 살으셔요. 정 자 응 자 민 자 선생님이. 거기서 7 년을 가서 거기서 방 얻어 가꼬 밥 해묵고 7년을 그냥 살아 부렀어. 부모념이나 주변 분들이 선생님의 영재성을 한분도 알아본 분은 없으셨어요? 없었어요. 아부지나 어머니나. 그런 예술 계통에 캄캄해. 글안해도 여섯 살에 노래 불렀당께. 선생님한테 배왔어. 口 1-4. 동료나 작고한 전통 분야의 언물 중에 영재라고 생각하는 인물은? 안향련이. 일찍 죽었잖어. 소리도 좋고 인물도 잘 났고 그냥 타고 났는디 일찍 죽었제. 어떻게 안향련 선생님이 탁월하게 느껴지시던 가요? 목이나 뭐이나 전부가 타고나서. 안향련 선생님만의 특징이 있어요? 같이 소리 하는 선생님들 사이에서? 특정은 술을 잘 묵어. 술을 그냥. 들고 가든 뭐든 뱃속에다 담고 다녀. 음악적으로는요? 음악적으로 소질이 있은께 그렇게 돼지. 口 1-5. 당신이 본격적으로 스승을 모시고 학습이 시작된 시기? 이십 살. 여섯 잘 때 처음. 허기는 했어도 조금씩 토막소리로 여기저기 하다가 거기 들어가가꼬 인자 향가 완판소리, 심청가 완판소리. 우리 선생님은 홍보가가 없어. 그래서 수궁가 네 바탕만 하고 홍보가는 서울 올라오}서 박녹주씨한테 배왔제. 스무 살 때 공부 를 본격적으로 들어갔고. 이 선생님 한테 조금하다 저 선생님한테 토막소리로 삼 십분씩 얼마씩, 막 그러고 하고 다녔어요. 선생님 사시는 동네에서요? 예. 근께 첫 선생이 안향련이 아부지. 안기선씨. 그 아부지 한테 배왔어. 그 어렸을 때. 그 선생님이 소리방 꾸며놓고 갈친디. 내가 옆에서 다 듣고 잘잘잘 해부러 스승을 모시고 학습했던 내용을 시기별로 구체적으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거기 들어가서 살림살고 먹고 자고 하면서. 스우 살 때 철 년 동안 인가요? 칠년 그 이후에 스승닝을 따로 얀 모셨나요? 안 모셨어요. 근디 선생님이 나를 이뻐해서 나밖에 몰라. 그래서 다른 사람들 이 전부 우향이는 달리 갈쳐 놨다고. 자기네들 잘 못한다는 말은 않고. 나는 배 왔어도 옳게 갖고 가닌까 옳게 하는데 지기들은 그것을 못 따라오} 그 길을. 소리 q ] 乃

385 에 따라서 못 따라 오닌까 억지소리는 허지만은. 타고 났어, 재질이. 口 1-7. 음악가 집 안인가? 아니요 우리 고종사촌 형님은 주난행 79) 이라고 그전에 명창. 옛날에 우리 태어나기 전 에, 전전에 곤종사촌에 주난행 이라고 명창 소리 듣고. 그 때 레코드 취입하고, 일본 가서. 그 때 여기서는 못하잖아요? 주난행 씨라고 유명한 명창이 있었어요 집 안에 그분 한분만 계셨어요? 예. 정응민 선생님에게 선생님께서 배워야 되겠다고 가신건가요, 아니면 집안에서? 아니. 저 서울로 올라고. 왜냐면 김여란씨하고 약속을 했어. 약속을 해가꼬 서 울 올라고 했는디 서울서 뒤로 빠꾸를 해가꼬 보성으로 갔어요. 왜냐 누가 한 사 람이 박유석이라고 있어. 근디 그 사람이 보성을 갔다 왔는디 소리가 좋아. 단가 도 하나 배우고.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소리였어. 근께 거기서 키를 돌려 가꼬 보 성으로 가버렸어. 거가 정통소리였어. 口 1-8. 자기발전의 동기는 어떻게 부여하셨습니까? 레코드 같은 거 판소리 듣고 보면 아이고 난 언제나 저렇게 잘하나. 취업을 해야겠다 고 죽으나 사나 그것이 머리에 박혀있었어. 잘 하고 싶다는 생각을 윗 때문에 가지게 되셨어요? 그게 좋아. 소리를 해야된께. 꼭 하고 싶었어. 외국도 가고 뭐도 가고 해야 된 다 싶어서. 그런 소견이 다 있었어요. 선생님 혹시 동료들끼 경쟁의식이 있어 가지고 내가 더 잘해야 되겠다 이런 것은? 그런 건 많애. 왜 그러냐면은 몇 사람이 선생님한테 배우잖아요? 한 앞에 한 사람씩 연습을 시킨다고 혼자씩. 또 한 앞에 혼자씩 연습을 시킨다고. 그러면 선 생님이 좋다 얼씨구 그 말을 나한테 질 많이 했어 취임새를. 다른 놈이 오기가 나가꼬 아야, 너 소리할 때 선생님이 몇 번씩 취임새 줬다고. 지기들은 냄둬분 디 그런다고. 그렇게 소질 이 있었어. 타고났어. 口 1-9. 전통예술에 대한 당신의 집안 분위기는 어떠했슐니까? 나하는 대로 냄뒀죠. 아부지가 좋아하셨어. 아부지가 허든 못했어도 좋아하시 닌까. 벌어주셨어요? 그때 돈도 없고 가난하고 근께 밀어주고 말 것도 없이 내 선생 다 해가꼬. 내 가 성공했어. 79) 주난향 376 -

386 아버님께서 격려 같은 것 해주시고요? 그럼, 그렇지. 열 살 때까지 내가 막내라 아부지가 업고 다니셨는디. 술을 좋아 하셔. 술 한잔 잡수시고 엽고 다니는디 같이 넘어지고 그랬어. 口 어련 시절 당신의 연습량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할 때는 하루 내내 소리만 했어요. 새벽에 여섯시에 일어나서. 보성서 할 때 여섯 시에 일어나서 밥 묵을 때까지 목 풀어. 하루 내내 하면 목이 쉰께. 풀어가꼬 그 담에 연습하다가 두 시에 선생님한테 레슨 받고, 그 담에 또 그놈 연습하고. 맨 그것이 돌고 돌았죠. 날마다. 어렸을 때 소리 좋아해셔 따라하셨다고 하셨잖아요? 혹시 따로 연습 같은거 하셨나요? 연습 같은 거 안 해도 머리가 존께 달달달 외웠어 조금했는디. 연습은 따로 안하신거네요? 너1. 口 연습과 연주 외 에 음악 감상을 할 수 있었습니까? 아니요. 그런 것은 몰랐어요. 주로 음악은 어디서 들으셨어요? 들은 것은 내가 배운 것 밖에 없제. 어렸을 때 이런 저런 소리를 들으신 게, 주로 어디서 많이 들으셨어요? 레코드 같은 데서도 듣고. 그 때 뭐 구경 다닐 때도 없고. 어렸을 때, 좀 전에 말씀하셨는데 귀동냥으로 들었다고 하는 데가 거기가 어디 에요? 뭐하는데 에요? 화순. 뭐하는 데가 아니라 소리방 하나 얻어가꼬 안기순씨. 향련이 아부지 소 리방에서 초청을 했어. 해가꼬 학생들 거기 몇이 모여가꼬 배우고 그랬어요. 口 전공 분야 외에 다른 예술분야에 대한 학습과 경험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없어. 왜냐면 취미로 가야금 같은 것은 만져 봤어. 성음 얻기 위해서. 그것도 어렵지만 해봤어요. 연습량은 어떻게 조절하셨어요? 가야금은 전공이 아니기 뱀에 내버려 둬 버리고. 소리밖에 모프죠. 가야금은 취미 수준으로 시간 날 때 마다. 취미로. 왜 그러냐면 임방울씨가 꼭 시간만 나면 가야금을 이렇게 만져요. 그 러면 성음이 그렇게 좋아. 목 성음이 좋잖아요 근께. 가야금도 허면 그 성음을 따라가. 그래서 선생님이 가야금을 만저 싼게 나도 만지고 그랬다, 나중에 지나 닌까 그것도 어려와. 지 성음이 안 나와요 근데 어느 날 해가꼬 성음이 나오든마. 인 7 /

387 엄방울 선생념 말씀하셨는데, 직접 사사받으신 적이 었으신지요? 아니요. 그건 없었어요. 왜냐면은 그때에 단체를 많이 다녔어요. 지방으로, 김제로 어디로, 초대 받으면은 가서 소리해주고 우리는 그랬죠. 지방으로 많이 다녔어. 가야금이 선생님 소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던가요? 그런 거 까지는 못 느껴봤어요. 왜냐면 어른들이 못허게 해 선생님들이. 소리 헌 사람이 가야금 그런 거 해싸면 버린다고, 목 버린다고 못하게 했어요. 그랬는 디 못하게 했지만 그래도. 왜 가야금 한다고 성음이 버련다고 했을까요? 성음이 버린다고. 옛날 어른들이 못하게 했어요. 그러면 춤 같은 것은 배운 척이 없으신가요? 왜요. 춤도 그 때에는 지방에서. 화순 읍내에서 공부를 시키면은. 김막동 씨라고 있 어. 저 능주사는 양반. 그 양반이 춤을 출줄 안께 마당에서 인자 춤추고 그랬어요. 분에게 배워보셨어요 직접? 요. 춤을 배우년까 소리할 때 어떤 게 좋아진 게 었던가요? 좋죠. 이 발림이 다 자연스럽고 손 하나 나오고 들어가고 한 것이. 글안하면 뺏뺏해가고 이렇게틀 생겼거든. 자연스럽게 움직이죠. 폼을 자연스럽게 할 수 였으년까 소려할 때 조금 더 펀하시겠네요. 표현도 좋 아지구요? 그럼 전통적으로 얘기명창, 소년명창 이란 말이 었습니다. 이 말에 대한 펑 가 부탁합니다. 많이 노력을 해야지. 얘기 소리로는 성공을 못하죠. 그런께 애기가 명장이라도 노력을 해야 소리가 되제 글안해가꼬 명창은 안 되야. 애기명창이란 말 자체는 어렸을 때부터 잘한거다. 이 말인데? 그라제. 언제 거기서만 머무르면 안되고. 소질이 있는 대신에 본인이 얼마나 했든가. 그 공부는 나도 공부 피나게 했어. 나 같이 공부 근래에는 나같이 공부한 사람 없을 거여, 요새 애들이 학교 다니고 뭐 한께 조금조금 저것 조금 그라제 정통으로 그냥 막 퍼붓고 안 달라 들어. 근 데 나는 칠년이나 들어가서 했은께 그러제. 그래 가꼬 공부 나왔는디 몇 년 있은 까 목이 기가 막히게 좋은 목이 나와. 대사습 저 상 타고 그럴 때. 공력을 닦어 서 좋은 소리가 나오드라고

388 口 2-1. 전통예술에 영째가 았다고 생각하는가? 있어요 전통예술영재라 할 만한 아동을 보신 적이 었습니까?(초등 중등 고등) 있어요. 왜냐면 가령 아이를 가지고 있는디. 배에 있는데 많이 듣잖아요? 밖에 서 지기 엄마가 헌 놈 들으면은 뱃속에서 배와 가꼬 나와. 배와 가꼬 나와서 여 기나오면 허는 짓이 틀려. 근께 인제. 어려서지. 근데 소질이 나오지. 초등학생이요? 아니. 그 전부터. 口 2-2-(D 선생님껴서 보신 아동이, 발견하셨을 때 그 아동이 몇 살 정도였어요? 허기사 나도 7살 먹어서 했는디? 선생념께서 보셨을 때 아 영쩌성이 었네? 라고 발견하셨을 때 껴가 나이가 몇 살 정도? 그. 초등학교 갔을까 안갔을까. 초등학교 무렵이네요? τ5". 口 2-2-(2) 전공 뭐 나는 소리가 전공이닌까. 껴도 소리가 전공이었어요? 아니. 소리가 된거제 인자 전공이 없는디 갈쳐야지. 인자 소질 있는. 배와 가꼬 전공이 그러년까 선생님께서 발견한 아동이 소려 쪽으로 타고난? 예. 口 어떻게 발견했나? 아 이렇게 갈쳐보면은 주고받고 하는 것이 틀려. 갈치면은 따라서 하잖아? 판 소리는 주고받고 해 그냥. 절대 그냥 안하고 구전으로 통해. 선생님째서 한번 내 소리 한번 따라 해봐라 하고 했는데, 얘가 기똥차게 따라 서 한다던가요? 응. 기똥차게 따라서해. 타고 났어. 口 어디서? 계속 나는 소리 속으로 생활을 하고 있은께. 얘들이 오면 갈치면은. 학원에서요? 예. 끼 J m

389 口 발견 후 어떻게 했나? 교육했나? 교육해가꼬 대회도 나가서 상도타고 대학교도 쑥쑥 들어가고 그런 보람이 있어요. 口 어떻게 교육했나? 다르게는 안 해도, 보통 애들은 할라고 해. 소질이 없어도 막 뚫고 들어와. 더 해볼라고 그러고. 인자 소질이 있는 놈들은 금방 쑥쑥 자라나고. 그렴 소질 었는 얘를 따로 교육하시지는 않았나요? 안했어. 일대일로 가르치닌까. 그의 예술가적 성장은 어떠했냐? 영재라고 판단 됐던 얘가 예술가로 성장했나요? 많이 하죠. 거의. 대학교에도 국악과가 있잖아요. 口 예술가적 성장인 경우 어떻게 성공했냐? 대학교 들어가고 그리고 그 외에 활동하는 것은. 요새 판소리는 별로 큰 활동 이 없으닌까 그냥 그렇죠. 대학교 까지는 잘 들어갔는데 대학이후에 뚜렷한 활동이 있는 것은 아니네요? 가령 대회나 그런 것은 나가고 그러지만 아직은 길이 없어요. 口 2-3. 전통예술영찌 선발에 적철한 연령은 언재라고 생각하십니까? 초등학교 제일 때가 좋아. 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요? 전에도 소질 있으면 하면 좋고. 그렇지만 말귀를 알아먹을 때 해야 된다는 말씀이시죠? 예. 口 2-4. 무엇이 전통예술분야 영째성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생각냐는 대로 무순 으로 말씀하셔도 팬찮습니다. 근께 어려서부터. 가령 부모네가 윗을 80) 했다든지 어쨌다든지 그러면 그 얘기 는 스스로 되야부러. 지가 되야꼬 커 나가제. 따로 별도로 교육 안 시켜도. 그냥 내버려 둬도? 내버려 둔게 아니라 인자 교육을 시키지만, 자연히 커 나가. 선생님 제가 여춰보고자 하는 것은 영째끼 라는 것을 어떻게 알아 볼 수 었을까요? 대번에 맞대보면 알제. 껴를 상대해보면 알아. 그 끼가 있는 것을. 8이 예술

390 그것을 저회가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야 하거든요. 예를 들어 뭐를 시켜보면 금 방한다든지. 그렇지. 아니면 선생님께셔는 이렇게 소리를 했는데, 얘가 바꿔서 소리를 해 본다든지. 이런 것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근께 선생한테 배운 소리를 따로 어쩌게 할 수는 없제. 따로는 할 수 없은께 그대 로 갈치기는 한디. 소질이 없는 애들은 그만큼 공력을 많이 들여야 되고. 근데 그런 애들이 공부를 더 많이 해요. 막 죽으나 사나 죽기 살기로 하거든. 시켜봐야지. 그년까 시켜 봤을 때 잘 따라서 하는 것이 선생념께 생각하시기에 영재성이다? 그럼. 口 2-5. 위에 말씀하신 내용은 해당전공의 영재성인가요? 아니면 전통 전반인가 요? 구분해서 말씀해주설 수 었을까요? 나는 판소린께 다른 전반에서는 통할 수는 없지만은 그나마 본인이 그런 기질 을 타고 났으면은 소리뿐만 아니라 그 외에도 소질이 있겼죠. 口 2-6. 선생님은 해당 전공의 영째를 알아볼 때 무엇을 어떻게 해보시겠습니 까? 노래를 부르게 하나요? 춤을 추게? 구체적으로 어떤 노래 행동을 시켜 보시는 지요? 데리고 와야제. 하여튼 맞대가꼬 시켜봐야지. 그러면 그 놈이 받아들인 것을 보면 알제. 노래를 시켜보고. 난 노래닌까. 시켜보고 나서 잘 따라하는지, 성음은 괜찮은지, 요련 것들? 목도 타고 나야 되닌까. 막 목 나쁜 놈은 노력을 해서 만들어내고. 지가 해가 꼬. 좋은 놈은 더 빨리 될 수 가 있고 그러죠. 口 2-7. 어련 영재들의 선발에서 중요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끈기는 소질이 없는 애기는 끈기를 해가꼬 성공을 하고. 지가 노력을 해서. 타 고 난 놈은 그대로 쑥쑥하니 크고. 그러년까 잠재력이네요? 잠재력이 제일 중요하다, 재능이 재일 중요하다 그 말 씀이신가요? 그렇지. 口 2-8. 전통 관련 영재 발굴에서 어떤 지표가 가장 중요합니까? 중요한 순서대 로 말씀해주십시오. 일단 상대 해가꼬 그 놈 하는 행동을 보면은 알제. 소리를 배운다든지 그러면

391 어떻게 어떻게 나가는가 그것이 받아 들이면은 되는 것이죠. 그것만 었으면 될까요? 그럼요.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 없구요? 아무것도 본인이 지가 타고나면 할 수 없어. 예전에 선생님들 이런 말씀하시잖아요? 니가 아무리 잘해봤자 니가 인성이 없 으면 아무것도 얀 된다. 인성도 되게 중요시 하게 생각하시잖요? 소리에 대한 째능만 볼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것도 있을 것 같거든요? 근디 그것은 나는 예술적으로 소질이 있으면은 소리뿐만 아니라 다른 과목도 소질이 있을 거라 그 말이야. 그 애에 따라서. 그런데 선생님, 소질은 었는데 끈기가 부족해요. 그럼 안 되지. 그런 놈은 성공 못해요. 끈기도 중요하겠네요? 예, 그럼-요 얼마나 끈기가. 목에서 피나 소리하고 그런 것이 다 그런 끈기지. 그리고 판소리 하는 사람들이 고집이 써11. 기연히 하고나서 명창이란 말을 들어 부러요 잠재력이 제일 중요하고 째능여 중요하고, 그 다음에 끈기가 중요하다? 나는 어려서 소리 잘하면 일본도 가고 어디도 가고 그런다고. 막 그런 맘을 고 그거 했어요. 외국도가고 어디도 가고 근다고 막 그럼서. 자기 어렸을 때 목표가 뚜렷하게 있어야겠네요. 그래야 끈기도 생기는 거구요? 예 영재의 기교가 아년 창의력과 동기를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근께 열심히 하는 놈이 있당께. 죽으나 사나 되든 안 되든 파고드는 놈이 있어. 똑 같은 소리를 췄을 때 아놈은 똑같이도 잘 하고, 근데 다르게도 자기가 알아 서 한단 말이죠. 그걸 저희가 창의력이라고 하잖아요? 그 창의력을 알아보기 위 해서 어떤 방법을 사용할 수 었을 까요? 근께 인제 다르케 하는데 적합하면 받아들이지만은 아니면 못 받아들이죠. 그걸 받아 들이냐 안 받아 들이냐가 아니라 애가 창의성이 있는지 없는지 알 아 볼 수 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글쩨 일단 상대해서 갈쳐 봐야 알겼제. 口 영재 발굴에서 제안하질 수 았는 좋은 방법이 었나요? 그런데 그건 모르제 어뜨게 해. 이 판소리는 못해도 삼년 못해도 오년 글안하 면 몇 십 년. 나는 일곱 살 때부터 시작했은께. 시방 77이여 칠십칠회. 여태까지

392 판소리 속에서 살았어. 나는 그런께 갈치고. 내가 하고. 머 상 타고 뭐 타고. 노 력가나 영재성이나. 타고난 놈이나 노력한 놈이나. 두 가지가 달러. 젊은 사람들이 영재를 뽑을려고 하는데 경험도 없는데 뽑기가 어렵겠잖아요? 그래 서 선생님 의견을 여컴보고 싶어요. 영재 발굴할 때 어떤 좋은 방법들이 있을까요? 방법들은 일단 맞대봐야 될 거 아니요? 일단 맞대고. 맞대갖고 소질에 따라서 헐 놈있고 못 헐 놈 있고 그러데끼. 그것은 알아 볼 수 있죠. 口 전통예술영재를 선발하는 전문가들 어떤 방식으로 선정하는 것이 가장 공정하고 정확할 것이라 보십니까? 이것은 무조건 허고 뽑는 게 아니라 못 가야 삼년, 못가야 오년. 글안하면 십년 이상 전 부 그 때까지 해야 돼. 전공을 삼아서 해야 돼요 그래야 윗이 되든지, 안되든지. 그것은 좀 차후의 문재인 것 같구요. 다른 것과 연관되지 않고 정말 공정하게 영재들을 뽑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 해야 될 까요? 그냥 아무것도 안 시켜 보고 영재를 뽑는 거? 그건 안 되지. 소질에 따라 그 사람들. 껴들에 따라서 소질이 나와야제. 글.나 어려서는 그 때는 선생님 이렇게 내 제자다, 니 제자다 이렇게 딱 가져 있는 게 아니라, 그때 당시에는 가령 오 바탕이 있다 그러면은 오바탕 중에 어떤 선생님 제일 잘한다 그러면 거기 가서 배와. 그래놓고 또 인자 끝나고 났다 그러면 다른 선생님이 다른 바탕을 좋아한 다, 잘 하신다 그러면 다른 데 가서 해. 옛날 성악회 때 선생님이 다섯 분이 방 이 다섯인디 한 분 한분씩 앉았었데요. 근께 인자 배운 제자들이 배우고 싶은 선 생한테 가서 배와. 그 담에 또 배우고 싶은 데 가서 배우고, 오바탕을. 그랬는디. 지금 요새는 당채 진도아리랑도 하나 다른 선생한테 배왔다고 하면 이해를 못했 어요. 앞에만 놓고 볼라고. 시대가 변했어. 그래가꼬 옛날에는 글안했어요. 소질 에 따라서 저기 했는디. 口 국내에서 전통예술영재들이 성장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었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런께 과거를 봐도 막 열심히 해도 방해물이 있어. 지금은 방해물이 뭘까요? 윗이든지 열심히 할라고 하면 방해물이 다 있어. 글공부도 그렇고, 소리공부도 그렇고, 춤도 그렇고 모든 과목들이 다 그래. 걸림돌이 있다고. 걸렴롤이 알고 싶은데. 영재 었잖아요? 소리를 아주 잘한단 말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그런데 얘가 예술가로 성장해 가는데. 성장해도 선생을 잘 만나야 돼. 정통을 잘 못 만나면 배려부러

393 그러년까 선생님을 선핵하거나, 션생님을 잘 만나야 돼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 가많다? 예. 그러면 버려부러. 옛날에 성바지로 말하면 누가 양반이고, 누가 양반이고 막 따지잖아요? 그러대끼 소리판도 그것이 양반이 있어. 따로. 혹시 경재혁은 걸렴돌이 되지 않나요? 아 이거 헌 사람은 돈이 없어 다. 가랭이가 찢어지게 가난해. 밥도 저기 하고. 그결 또 좋아해 소리하는 사람이. 없는 사람이 그렇게 많이 해. 口 전통예술영찌가 앞으로 성장하여 음악가로서 담당해야 할 얼틀을 어떤 것이 었겠는가? 지가 끝까지 가지고 가야돼요. 지가 택했으면 끝까지 성공까지 올라가야지요. 성공해서는 어떤 역할이 있을짜요? 역할은 별 역할이 없지요. 저 윗이냐 지금은 내가 문화재가 됐잖아요? 지금 문 화재가 됐으닌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죠. 저 대사습에서 상 타고 어디서 상 타 고. 인자 크는 과정에는 뭔상, 원상. 이렇게 이력서 보면 싹 나와부러 그게. 써내 가꼬. 그래서 언제 허는데. 지금 같아서는 문화재 과정으로 밟았은께. 자기가 어렸을 때 영째였기 때문에 또 다혼 영재틀을 발굴해내고, 이런 것도 역할이 훨 수 았지 않을까요? 근디 이것은 지가 허고 싶어서 해야 된께. 억지로 끌어낼 수는 없제. 허는 있으면 우리가 끌어 내가꼬 시켜야 돼죠. 우리는 책임감이 있어. 우리 선생님한 테 배운 정통 소리를 앞으로 전해 줘야돼. 갖고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는 동 안에 없애 불지 않고 후학을 완전히 만들어 놔야 돼. 통판으로. 그런데 아직은 그런 놈이 없어. 그렇게 헐라고 하는 사람이 없으나 그래도 내가 지금 일흔 여섯 언디. 죽을 때까지는 해봐야제. 口 3-1. 선생님께서 영째성을 보였을 때가 대략 몇 세 때의 얼언가요? 어렸을 때부터. 어렸을 때년까 기억나시기로. 기억은 뭐 계속. 언제라고 딱 쩡어서 말 못하죠. 6살 때 안기선 선생념한테 배우설 때, 그때가 6살이셨죠? 아니요.6살은 넘었을 거요. 그때가 몇 살 정도였을까요? 7살인가. 7살 때, 배우설 때 잘 따라했다, 외워버렸다? 그러면은 큰 언니들이 배왔으년까 들어서 다해서 입력이 다 됐었다고

394 그 때가 7때 정도셨네요? 네. 口 3-2. 영재성이라고 하는 것 중에셔 외우는 것 은 중요한가요? 외워야 돼. 잘 외우는 것이 영재다, 잘 외울 수 있어야. 그냥 지나가 불면 안 돼. 우리 공부할 때는 막 완전히 외와가꼬 그냥 안보고 달달달달 외와부 그것을 잘하는 사랑이 영째이다? 응. 口 3-3(1-4). 얀향련써의 영찌성에 대해서, 소잘 이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 볼 수 있었나요? 소리도 잘하고, 인물도 이쁘고, 일등공신이여. 근디 하나 흠이 있으면 술을 그 냥 어쩌케나. 음악적언 소질, 소리하는데 있어서의 소질은요? 있어, 있어. 음악적인 것은 절대로 있어요. 그년까 어떤. 보성 선생님한테서도 공부했고. 잘 따라하셨나요? 한 번 들으면 따라하고? 그건 안 돼제. 공력을 들어야 된께 그건 안 돼고. 천재적인 소질이 있제. 어떤 소철언지. 예를 들면 선생님이 소리를 했는데 자기에 맞게끔 소리를 잘 구성한다든가. 그건 안 되고. 선생님이 전통으로 한 놈을 우리가 전해 받아야 된께. 제자들한 테도 전해 줘야 된께. 내가 내 작품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그 웅 자 민 자 선생 님, 그 양반이 내려 주는 것을 그대로 전해줬다는 말이지. 아주 잘 따라셔 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그닌까 삐딱션을 안타고 바로 옳은 길로 갔다고. 뺀듯한 소리. 남들보다 뛰어났던 것이? 그런께 같이 공부를 해도 나한테는 툴리게 갈쳤다고. 같이 공부를 했어도 틀리 게 갈쳤다고 선생님한테 그래요. 근디 그건 아니라 똑같이 갈쳤어도 내가 잘 배 왔으닌까, 내가 잘 기억하고 했으닌까 그래서 그런 거라고. 안향련 선생님하고 다르게 가르치셨다구요? 선생님하구요? 난 행련이 하고는 같이 안했고, 행련이가 내 전에 갔었제. 그 후로 보셨군요? 예

395 그 후에 봤을 때 기막히게 선생님 소리를 잘 계숭해서 잘 하드라 이 말씀이시죠? 행련이가. 내가 그런단 것이 아니라 가가 소리를 잘해. 口 3-4(1-5). 6세 때 토막소리를 조금씩 배우셨는데, 그 때 배운 순서를 생각나 는 순서대로 말씀해 주십시오. 안향련이 아부지. 안기션 선생념. 그 양반한테. 첫 선생님 했었제. 뭐 배우셨어요? 춘향가. 전 바탕을 다 배우셨어요? 아니, 그 때는 토막소리닌까. 뭐, 뭐 배우셨는지 순서대로. <옥중망가는디>. 그거 했어요. 그거 하냐 하셨어요? 예. 그때는 쭉 안하고 여기도 조금 저기도 조금하고 그랬어요. 뭐, 뭐 하셨는지 알고 싶거든요? 그냥 춘향가만 했어. 춘향가 안에서 <옥중망가는디> 또 다른 대목은 안 배우셨어요? 다른 대목은 생각이 안나고. 口 3-4(1-5). 홍보가는 박녹주 선생에게서 배웠다고 하셨는데, 그때가 몇 세 때 였나요? 전 바탕을 다 배우신건가요? 너1. 그 때가 몇 세 때? 그 때가 삼십 좀 넘었을까? 그랬을꺼요. 口 3-5. 스무 살 때 정응민 선생께 학습한 이후로, 서울로 올라와서 여러 선생님 에게 조금씩 토막소리 를 배웠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무엇을 배우셨나요? 박초월 선생님한테 좀 했고. 박초월 선생님쩨 뭐 배우셨죠? 우리 선생님은 홍보가를 안 해. 홍보가를 보성 선생님이 안 하닌까 홍보가를

396 배왔었죠. 박녹주 선생님께 흥보가 배우셨다고. 근디, 인제 박초월 씨한테 했는데. 박초월씨가 그 양반이 계변조여. 그런께 인 자 정통 판소리 박녹주 씨한테 재벌을 했죠. 박초월 선생님께 전 바당을 다 배우셨네요, 흥부가? 예, 흥부가만 배왔죠. 口 3-6(1-7). 친척 중에 주난향씨의 소리를 들으셨다고 했는데, 직접 들으셨다 면 언재, 어디서 들으셨나요? 주난향. 레코드로 들었어요. 口 3-7(1-7). 검여란 써와 약속하여 서울 상경하셨다고 했는데, 어떤 관계며 왜 약속을 하셨나요? 보성가기 전에 김여란 씨하고 약속을 했어 서울로 오마고 했는디. 내가 광주 살았거든요 그때 광주 살았는데 못 올라오고 보성 정응민 선생님한테로 빠꾸했제. 광주에서 출생하셔서 계속 20살까지 었다가 보성에서 7년 었다가 다시 서울로 가신 거죠? 예. 그 이후로 거의 서울에서 주로 사셨구요. 예. 검여란써가 선생님과 어떤 관계나요? 아 제자로 삼을라고. 내가 소질 있은께. 욕심을 냈제. 그래 가꼬 니가 서울로 올라 면 나한테 오니라 했는데, 내가 보성 가서 공부를 다 해분께 헐 것이 없어 부렀제. 그러면 보성가설 때 혼자 가신건가요? 예. 혼자 갔죠. 몇 년 짐 다 싸갖고 거기서 살림하고 살았어. 口 3-8(1-7). 보성에서 소리를 배우고 와서 기량이 크게 향상되었다던 박유석 이라는 사랑에 대해 구체척으로 설명해 주세요. 지금 나이도 많고. 그당시. 근께. 그냥 소리했지. 소려하시는 분이었어요? 예. 어느 지역에서 주로. 그래 광주에서 그 양반 만나가꼬 단가 들어보고, 우리 선생님 소리 들어보고

397 그래서 그냥 서울로 약속한 것을 뒤로 빠꾸했제. 口 3-10(1-9). 아버지째서 전통예술을 좋아하셨다고 했는데, 직접 소리나 기악 둥을 하셨나요? 아니. 절대. 좋아하셨죠. 口 교육비를 스스로 마련하셨나요? 그럼. 광주에서 갈 때에 돈 다 마련해 가꼬. 몇 년 꺼 싸 젊어지고 들고 들어갔지. 집안에서는 금전척으로 거의 지원이 없으셨네요? 그럼요. 디 보성에서 공부하설 때, 여섯시에 얼어나서 몇 시까지 목을 푸셨나요? 한 시간 정도. 글 안하면 다음날 소리를 못해. 꽉 쉬어 꽉. 口 선생념께 두 시부터 몇 시까지 레손을 받으셨나요? 가사적어 갖고 외와서 선생님한테 잠깐 배와. 몇 시간 정도? 아니, 몇 시간은 아니고. 몇 분? 응. 한 십여분 정도? 그거는 넘고. 이삼십 분 되겠네요? 예, 그렇죠. 口 레슨이 끝난 이후로 몇 시간 정도 연습하셨나요? 나는 계속했죠. 저녁밥 먹을 때 까지 하고 저녁 먹고 또 밤에 자기 전에 또 하고. 소리 속에서 살았어. 잘 때 까지. 레슨 끝나고 한 여섯 시간, 일곱 시간 하셨겠네요? 그렇죠. 다 따져 보면은 15시간은 했어. 아침부터 시작해 가꼬. 목 풀고 바로 혼자 연습하시고, 레슨 받고, 레슨 끝나고 또 연습하시고. 예. 口 3-15(1-12). 가o땀을 취미로 다루셨다고 했는데, 언채, 누구에게 배우신건가요? 원옥화씨라고 있었어. 그 양반이 가야금 산조도 잘하고, 소리도 잘하고 그랬어요

398 그 분은 뭐 하시던 분인가요? 예술이죠. 예술가. 口 가야금을 시간 날 때 마다 조금씩 만졌다고 하셨는데, 얼마 동안 다루 셨나요? 그것이사 내가 시간 있으면 아무 때라도 연습하고 드러누워서도 배우에다 놓 고 하고 막 그랬제. 따로 시간은 정해진 게 없구요? 예. 선생님한테 잠깐 배운 것은 없고. 가야금 샤섭 분은 하지 않으셨을까요? 그러면. 성음이 올라야 되닌까. 한 변 질으면 상사섭 분 하셨어요? 예. 시간이 한가하면 끝이 없지요. 口 김막동씨에게 춤을 배울 때, 몇 살에, 뭘, 어디서 배우신건가요? 저 능주. 그 때 당시 화순. 능주에 살았었어. 화순에서 할 때 마당에다 멍석 깔 아놓고 거기서 그렇게. 그 때가 안기선 선생님께 배우질 때 인가요? 아니, 그 전이제. 능주, 어떤 계기로 거기 가서 배우신거에요? 그 양반이 이리 왔다갔다 하닌까. 광주에서 배우셨다는 말씀이세요? 화순에서 공부할 때. 화순에서 안기선 선생님째 공부하질 때인가요? 네. 선생님 그때 나이가? 그땐 어리지요. 8살, 9살? 그거는 넘고. 열 한 대여섯 살. 안기선 생님께 꽤 오래 배우셨네요? 그럼요. 한 여섯, 일곱 살 때부터 시작해서. 내가 시작한 게 아니라 언니들이 시작해 가꼬. 그런 것을 내가 달달 외와 부렀

399 제. 내 머릿속에 다 들어와 부렀어. 정식으로 안기선 선생님께 배운 것은 언제 셨죠? 그 때 당시에 잠깐 들어가 공부했죠. 그 때 춤은 뭐 배우셨어요? 허튼춤. 口 3-18(2-2). 선생님째서 태중얼 때, 고 하시던 가요? 아니요. 그건 없었어. 어머님께셔 소리를 많이 듣거나 부르셨다 口 발견했던 영찌가 선생님의 소리를 잘 따라 한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따라 해야 잘 한 것인가요? 똑같이 사진처럼? 따라해서가 문제가 아니라 듣고도 해분당께. 그 때 당시는. 그닌까 내가 딱 안 배와도 다 해부러. 듣고만? 예. 머리가 영리해서. 똑 같이 따라하던가요? 예. 그게 잘 따라한 건가요? 선생님 소리에 똑같이 하는 것이? 공부를 해야지요 진짜 공부를 해. 그건 진짜는 아니지만은 그렇게 소질이 있었다고 선생님 소리하고 가장 벼슷하게 따라하는 것을 잘 따라한다고 하는 건가요? τ:ï. 口 3-20(2-6). 성 음이 나쁘면 영 째 라고 말하기 어 려 운가요? 나쁜 사람은 공력을 들여야제. 많이. 목 좋은 사람 보다 몇 돼. 그러면 공력 들어서 되죠. 배 공부를 더 해야 어렸을 때 성음이 안 좋으면 일단 영재라고는 할 수 없나요? 그러제. 口 3-21<2-8). 예술척으로 소질이 았으면 다른 과목도 소질이 있다고 말씀하셨 는데, 예를 들어 주설수 었나요? (공부를 잘 하나요, 그렴을 잘 그리나요 등) 그런 거는 딴 판이제. 여기는 예능 쪽에 소리년까 판소리년까. 그림이나 다른 과랑은 툴리지요. 소리에 대해서만 도통한 것이제. 그 때 말씀 하질 때, 예술 잘하면 공부도 잘하고 과학도 잘하고. 아니

400 그런 거는 아니에요? 그럼. 전공으로 하는 과목이 있잖아요. 선생념 그러면은 예술에 소질 있다고 해셔 다른 것도 잘하고 이런거는 아니네요? 예. 口 4-1. 전공분야 외의 다른 예술분야 (혹은 다른 분야)에 관심을 두신 적이 었 습니까? 두진 않았어요. 왜냐면 선생님이 악기 같은 거 만지면 못하게 했어요. 목 성음 버린다고 그래서 못하게 했어요. 그 외에 내가 취미로 만지고 놀았제. 선생님, 그러면 혹시 예술분야외에 다른 분야에 관심 없으셨어요? 없죠. 口 4-2. 학습을 하던 시절 전공분야 외에 다른 예술분야의 전공자와 교분이 었 으셨나요? 없어요. 춤 추던 사랑하고도 천하지 않았어요? 친하진 않았지만 배울 과목에 춤은 춤고 그랬제. 선생님한테 배우고. 그 당시에 연주하시던 분들 중에 친한 분은 없으셨나요? 없어요. 내가 언제 좋아만하지. 음악을 좋아하닌까 듣고 즐기기는 해도 친하지 않아요. 선생념께서는 주로 소리하는 분들하고만 천하셨나요? 예. 口 4-3. 다른 분야의 관심과 경험-가야금과 무용-을 자신의 전공 분야에 활용한 기억이 었으시나요? 작은 사례를 들어 설명해 주질 수 었겠는지요? 그것이 펼요하죠. 서서 무대에서 소리하면 발렴 해야죠, 춤 춰야죠, 소리 해야 죠 그닌까 절대적으로 필요하죠. 가야금은 어떻게 영향을 마치던가요? 가야금은 본인이 하고 싶어서. 소질이 있다, 하고 싶다 그래서 한 것이제. 소리에는 영향을 안줘요? 안줘요. 선생님은 영향 준다 고 못하게 했어. 목 성음 나뻐진다고 그랬는디. 그냥. 선생님의 경우에는 영향이 별로 없던가요? 예

401 口 4-4. 다른 예술분야를 자기 전공분야와 함께 배운다면 어떻 엇점이 었겠는지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다른 예술분야.소리하고 함께 배운다면? 얼단,춤. 한 가지 것 딱 해부러야제, 뭐 이것저것 하면 안된당께. 여러 가지 꺼 안돼. 여러 가지 것을 동시에 해서는 안된다? 절대. 하나 가지고 주목해 부러야제. 선생님께서 춤을 배우셨기 때문에 발렴이 자연스러워. 아, 그런 것은 필요한 것이닌까 했지만은 본업으로 할 것은 아니여. 그게 인제 필요하제. 무대에 섰을 때. 그냥 서서 하는 것과, 앉어서 동작하는 것과, 가만히 앉어서 소리로만 하면 안되잖아. 들을 사람이 피곤한께. 오만데 돌아가면서 객석 의 사람들하고 얘기 다하고 주고받고 하고 그러잖아요. 옛날 명창도 그랬잖아요. 무용을 업으로, 전공으로 삼는 거 말구요. 소리를 업으로 삼는데, 소려를 잘하 기 위해서 무용을 배우는 것이 도움은 된다는 말씀이시죠? 도움 되죠. 만약에 악기 같은 것도 배워두면 도움이 될까요? 별로 도움은 안 된디. 취미 삼아서 해 그냥. 口 4-5. 무대에 서기 전 혹은 시험이나 콩쿨에 나가기 전에 얼마나 어떻게 연습 을 하셨는지요? 그런 주로 해야죠. 막 몇 시간 씩 하잖아요. 시험이나 대회 같은 거 닥치면은 E정상시 하고 조금 다르잖아요. 펑상시 보다 어떻게 더 많이 하셨어요? 밥 먹고 노래 부르고 밥 먹고 노래 부르고 그랬죠. 대회 앞두고는 거의 뭐 공부 할 때에도 7년간은 계속 소리를 했어요. 대회 나가시거나 그러면 더 많이는 하지만 목 조심해야 된께. 그날 확 목 쉬어불면 못하잖아요? 그런께 적 당히 맞춰가꼬. 口 4-6. 어련 시철 음악을 일방척으로 배우던 시절 음악을 하는 목표가 무엇이 었나요? 왜 음악을 포기하지 않고 하신 것업니까? 그냥 하고 싶어. 선생님들이나 누구나 막 어렸을 때닌까. 외국에 나가서 소리 하고 세계적으로 울리고 그래야 한다고. 그래야 인기가 있다고 그런 얘기를 들으 닌까, 어렸을 때 그게 하고 싶어서

402 세계적인 예술가가 되고 싶은. 예. 口 4-8. 어떤 상황에 연습을 시작하고 마쳤습니까?(음악에 대해 만족할 때 그만 두었다거나, 시간을 정해놓고 그만 두었다거나, 지루하면 그만두었다거나, 조 금해도 잘하니까 조금만 했다거나 응) 끝없이. 시간 있으면 끝없이 하고. 대회 나가고 어쩌고 그럴 때에는 시간 맞춰 서 중단하고 그랬죠. 선생님째서 만족할 때까지 연습을? 아니, 그렇게 해 불면 진짜 목을 목 쓰닌까. 그렴 시간을 정해 놓고 하신건가요? 예. 口 4-9. 무대에서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여 연습을 한 경우가 었다면, 어떻게 했 습니까? 없죠. 口 학생 때 스숭아 가르치는 대로만 했냐 아니면 다른 방식로도 해보고 그랬냐? 아니, 가르쳐 준대로 했어. 이렇게 저렇게 하면 잡탕 되부러. 口 자기가 어느 정도 잘한다는 자신감이 든 적언 았었는가? 아이고, 자신감은 없어. 끝까지 지급도 자신감이 없어. 항시 아쉽고. 허고 나면 다시 하고 싶고. 어디 취입을 해도 그렇고. 다시 하고 싶어. 싹 뿌셔 불고. 윗 이 든지 내가 이만하면 쓰것다. 자신만만하면 진짜가 아니여. 가짜제. 口 남과 다론 자신만의 표현 방식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한 적이 었던가? 그냥 그대로 쭉 좋게 잡아가면 돼. 선생님이 가르쳐 준대로만? 예. 口 스송이 하지 말라 했던 표현들을 해보고 성공해본 적(만촉스러웠던 적)이 었던가? 안했어. 철대 복종해야죠. 디 스승에게 기본만 배웠던 상태에셔 혼자 스승 없이 기본을 념어서 본 적이 었던가? 넘어서 보기로는 인자 맨날 하닌까 내 소질에 따라서 잘 되지

403 그년까 스숭닙 없이. 없이는 안 되죠. 기초를 잡아야 되죠. 안숙선 口 1-1. 당신을 영재라고 생각한다. 동의하는가? 영재라니요? 아니요. 영재라기보다는 제가 하고 있는 음악을 잘 할 수 있는 그 런 내외적 환경에서 자라난 것하고, 예술가의 집안에서 자라는 것하고. 이런 것 들이 안 태어난 사람보다 쉽고 빠르게 될 수 있는 환경 영향이 컸어요. 口 1-2. 어련 시켈(대략 10세 미만, 돌 쟁이 쯤. 예술교육 연령 이전) 부모나 주 변에서 이야기하던 당신만의 행동특성이 았었습니까? (예를 들면 음악이 나 오면 춤을 춘다던가.) 뭐 어릴 적부터 노래를 잘 불렀던 것 같아요. 남에게 나서는 것을 수줍어하고 싫어했는데 노래를 잘 불러서인지 초등학교 때 1.2학년 때 교무실에 선생님 이 점심 때 불려가서 노래를 시킨다거나, 소풍가서 불러 소리를 시킨다거나, 노 래 잘하는 사람 그렇게 인식이 되었어요. 그때의 노래라는 것은 교과서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국악, 민요나 뭐나 그런 거 할 줄 아니까 그런 걸 시켰어요. 口 1-3. 우리가 당신을 영째라고 부르기 이전인 어련 시절에 당신의 째능을 타 인이 알아 본 적이 었었던가? 노래를 나와서 부르라고 하고, 데려가고. 일찍부터 어른들 따라서 공연장 따라 가면서 공연하고. 이런 것들이 노래를 하니까 가능했지요. 알아봤다면 口 1-3-(1) 그 타인은 누구인가? 우리 친 이모인데요. 가야금을 가르치고 계셨지요. 그 이모를 통해 국악에 입 문하게 되었어요. 남원국악원에 나가게 되었고, 다양한 것들을 접하고 배우고, 농 악장단 만들어 가지고 공연도 하고, 대회를 가기도 하고 하니까 자연히 더 배우 게 되고. 口 1-4. 동료나 작고한 전통분야의 인물 중에 영째라고 생각하는 인물은? 口 누구? 전공? 그 이유는? 내 어릴 때 나를 처음 가르쳐 주셨던, 정식으로 판소리를 배웠던 선생님이 주 광덕 선생님이신데, 그분에게 소리를 배울 때 주광덕 선생의 따님 주안순 이가 정말 영재였어요. 나보다 더 어릴 때 아버님께 소리를 배웠는데 어찌나 잘하는지 음악도 천재적으로 잘하지만 타고난 성량, 소리꾼의 성량을 다 가지고 있었다. 높은 청, 낮은 청. 너무 소릴 잘해서 남원 고향에서는 주안순 하면은 껴 앞뒤에

404 소리를 어른들이 하려면 오히려 부담을 느낄 정도로 잘했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던가 세상을 떠났지요. 장질부사로 세상을 떠났어요. 동갑내기였는데, 나는 학 교를 다녔는데 주안순 이는 학교를 안 다녔어요. 내가 찾아갔는데 장질부사로 못 만나고, 그 뒤로 세상을 떠났어요. 口 1-5. 당신이 본격적으로 스승을 모시고 학습이 시작된 시기? 초등학교 1 학년 지나고 8살 때부터 주광덕 스숭님께 배웠어요, 口 1-6. 스승을 모시고 (음악, 무용, 연희 둥둥)학습했던 내용을 시기별로 구체 적으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때만 해도 지금이야 판소리하는 사람들은 5바탕이 교과서지만, 그 때는 그렇 게 배우지 않고 한 바탕을 다 배우는 것이 아니라 대목 대목. 애들이니까 애들에 맞는 심봉사 애기 어르는 대목 심청이 밥 벌러 가는 대목. 애들 정서에 맞는 대 목을 했지요. 口 1-7. 음악가 집안인가? 口 1-7-(1) 스송은 누구였던가? 주광덕. 口 1-7-(2) 집안 내에서 훌륭한 스승을 판별하는 기준이 었었나요? 주광덕 선생이 소리를 잘 하시고, 특히나 창극도 하시고. 기가 막히게 잘하시다는 소 리를 어른으로부터 들었는데 그분을 모셔다가 사촌 이모 댁에 모시고 따님과 같이 배워, 그 분을 모셔다가 사촌 이모님 댁에 그 부녀를 묵게 하고 사사 받았어요. 口 1-8. 자기발전의 동기는 어떻게 부여하셨습니까? (동료 간의 경쟁, 스승의 격 려, 자신의 목표 등등) 나이가 들기 전까지 나이가 한 30세 전까지 스승의 격려, 음악을 하는 의띠 그런 것들을 부여해주셨고. 또 활동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동료들과의 경쟁도 상당히 큰 그게 되었지요. 삶의 목표가 뚜렷하다기보다는 어른들이 항상 음악을 하도록 환경을 자꾸 만들어주니까 어른들에게 이끌려서 한 거지요. 그렇다가 나 중에 나이가 들면서 점점 음악에 빠지면서 제 길이 된 거지요. 나이가 들어서. 이제 어릴 때는 이끌려서. 口 1-9. 전통예술에 대한 당신의 집안 분위기는 어떠했습니까? 한쪽은 뭐 당연히 음악을 해야 된다는 분위기였고. 우리 외가 쪽은 그런데, 우 리 친가 쪽은 부정적인. 아버님은 좀 아버님은 반반이셨던 것 같아요. 이것도 큰 재능이다 그랬던 거 같은데 집안 다른 어른들이 그거는 안 될 일이다. 여자 는 그렇게 돌아다니면 안 되는 거 상당히 보수적이었고, 그러면 안 되는 거 갈 등이 있었어요

405 口 어련 시절 당신의 연습량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口 1-10-(1) 하루 일과 중 연습량 내가 10 대 때에는 어릴 때에는 나름대로 어제 배운 것을 잊어 먹지 않고 다음 날 가서 해야 된다는 것이 내 연습량이었다. 해보고 가야금도 뜯어보고 했는데, 내가 이 음악을 해겠다고 마음먹었올 때 하루의 연습량이 거의 아침부터 거의 한 10시간 정도 되었어요. 그때는 음악을 하는 소속단체에 있었기에 일 나가변 공동연습 해야 하고, 또 개인연습 해야 하고 하니까 다 합쳐 10시간. 그 때가 80 년대 주로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힘이 들어 그렇게 까지 못해요. 다른 분야 연극, 문학, 무용, 그런 쪽의 협연을 자주 해 왔어요. 그렇게 하는 것들이 소리하 는데 상당히 도움이 되요. 웅용력이나 이런 것들에 도움을 주고, 새로운 자극이 되고, 언제 내가 그 소리 하면서 풀어지지 않았던 것들이 그런 것을 통해 도움이 되. 연극무대, 하다못해 영화음악 등등 많이는 아니지만 체험이 될 수 있지요. 口 전공분야 외에 다흔 예술분야에 대한 학습과 경험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口 1-12-(1) 당신은 전공악기 외얘 다른 분야에 경험을 쌓았던 적이 었나? 그 전공분야 외에는 소리 전공 외에 가야금 산조는 제가 많이 다른 선생님 께 유파별로 배워 봤고, 가야금 병창도 제 전공 판소리와 함께 전공이 되어 있 고. 나름대로 배우고 싶은 것들이 많았지요. 다른 악기, 국악의 모든 것을 섭렵해 보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지요. 口 1-12-t2) 악기의 경우 각 부문의 연습량을 어떻게 조철? 그거는 전공이 아니니까 매일 할 수 없으니까. 어쨌든 잊어먹지 않을 만큼 가 끔 한 번씩 해보죠. 口 여러 악기의 연주(제 예술분야의 섭렵)가 당신의 전공분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영향이 있어요. 악기 같은 것은 정확한 음을 이해하는데 박자 이해하는 데. 악 기는 뭐냐 고정이 되어 있는 음이잖아요. 소리는 자기 마음대로 흔들리는데 악기 는 정확한 음정, 박자. 그 악기가 가지고 있는 강약, 음량, 그런 것들이 소리할 때 많이 응용할 수 있어요. 口 전통적으로 애기명창, 소년명창 이란 말에 대한 평가 부탁합니다. 명인이 될 수 있다라는 자질이 보인다는 거죠. 애기가 명창이 될 수는 없지요. 음악적인 구조나 판소리 같은 것은 사설 가사 다 이해가 되어서 그것들이 음악 적 구조와 이해가 되어야 하는데, 그 어렬 때는 그 사설을 이해할 수 없어요. 사 설이 깊은 진지한 문학이기에 이해 없이 전혀 다른 말을 소리로 하고. 애기 명창 이라는 것은 가능성이지요. 앞으로

406 口 2-1. 전통예술에 영째가 었다고 생각하는가? 어. 있지요. 보면은 자꾸 나오는 거. 보면 있지요 전통예술영재라 할 만한 아동을 보신 적이 었습니까? (초등 중등 고등) 예. 더러 보여요. 口 2-2-(2) 전공 악기 쪽은 제가 잘 모르겠으나, 판소리 쪽은 제가 가르치고 있는 애들 중에서 한 두어 명. 초등학교 때부터. 口 어디서? 그들이 배우겠다고 찾아옹 거죠. 지금도 배우고 있고. 口 그의 예술가적 성장은 어떠했나? 부모님이 상당히 애들을 교육시키려는 의지가 있고, 그들이 타고난 소리를 할 수 있는 타고난 끼를 가지고 있더라고요. 부모님은 예술가는 아닌데. 너무 어릴 적부터 애들을 부담을 주변 애들이 힘들 어서 잘 교육을 시켜야 하는 것 같아요. 영재들을 더. 이건 성악이기 때문에 목 이 변성기 때 안 나온다거나, 환경이나 주변의 자기 나름대로 영향을 받아서 좋 은 영향 나쁜 영향을 받아 안 하겠다고 라고 한다거나. 그런 것들이 영재를 놓치 는 경우가 있지요. 굉장히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못하는, 묻혀서 사는 경우도 봤고. 口 2-3. 전통예술영재 선발에 적절한 연령은 언재라고 생각하십니까? (해당전 공 전통얼반) 어릴 때부터 소질을 보이니까 제가 보기에는 아주 어렬 적부터. 왜 그러냐면 요즘은 거의 서양식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교육이 다. 집안에서도 그렇고, 우리 교육도 그렇고. 대체로 초등교과서에 음악이 있다지만 제대로 전통 경험은 없었어요. 애들이 너무 다른 문화에 익숙해. 우리 것을 전혀 모르고, 또 우리 것 을 이상하게 생각하기에 어렬 때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口 2-4. 무엇이 전통예술분야 영재성이라고 생각하섭니까? 생각나는 대로 무순 으로 말씀하셔도 괜찮습니다. 당연히 음악성이죠. 음악을 이해하는 음악성. 그라고 음악성을 타고 나야지, 아 무리 목 좋은 성량을 타고나도 음악성이 없으면 안 되잖아요. 口 2-5. 위에 말씀하신 내용은 해당천공의 영재성언가요? 아니면 전통 전반인가 요? 구분해서 말씀해 주살 수 었을까요? 해당전공에 대한 음악성

407 口 2-6. 선생님은 해당전공의 영째를 알아볼 때 무엇을 어렇게 해보시겠습니까? 노래 를 부르게 하나요? 춤을 추게? 구체적으로 어떤 노래 행동을 시켜보시나요? 소리를 한 번. 다른 노래 박자를 맞춰 나가나. 박자라는 것은 자연적으로 자기 가 느껴야지, 박자를 하나하나 노래를 부르는데 박자는 제대로 자기가 잘 맞추는 가 어떤 곡이 되었든. 그리고 음정이 제대로 정확하게 되었나. 우리 전통음악 같 은 경우 전통음악이 갖고 있는 특별한 독창성을 나타내는가 그런 걸 보죠. 口 2-7. 어련 영째들의 선발에서 중요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섭니까 1 (뛰어 난 예술 성취 능력(재능), 연습 및 예술가적 설현에 대한 끈기, 열정, 예술가 로셔의 책엄감과 려더쉽, 공연현장에셔의 순발력 등) 먼저는 예술성, 예술성이 있어야 예술을 하지요. 그리고 예술성이 확인이 되었 으면 다음 인성을 길러야지요. 인성은 이겨나갈 수 있는 자기 자체적인 주관, 아 무리 어리지만 필요하지요. 예술성 더하기 인성 그리고 환경. 자기가 예술이 아 무리 뛰어나도 예술을 잘못 사용하면 결국 천해지고 품격이 없어지니까 그런 것 들과 소질을 보는 거지요. 口 2-8. 전통 관련 영채 발굴에서 어떤 지표가 가장 중요합니까? 중요한 순서대 로 말씀해주십시오. 예술성, 인성이고. 아무리 인성도 좋고 예술성도 좋지만 자기 의지. 자기가 어 떤 일을 하려는 자기 주관이 꼭 필요하지요. 口 2-9. 영째의 기교가 아년 창의혁과 동기롤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그런 거는 노래 부르거나 할 때 기교나 또 아니면 어떤 남에게 자기를 표현하 려는 것이 더 강한지, 원래 가지고 있는 음악성이나 그게 진실 된 가지고 있는 그대로. 나이가 어리니까 더 어려운 음악성을 보여 달라는 것도 아니고. 배운 것 을 가장 좋은 것은 이해하려고 하는 것인지 어른처럼 흉내 내려고 하는 것인지 흉내. 그런 것들을 구분해야죠.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노래를 부른다거나, 태도 를 보고, 그 사람이 음악을 하는 성음을 들어보면 알 수가 있지요. 口 영재 발굴에서 제안하질 수 었는 좋은 방법 01 었나요? 방법은 사실 우리 전통음악 쪽에서는 영재를 많이 발굴해야 돼요. 더군다 나 학교에서는. 영재를 발굴하게 되면은 역시 전통영재 발굴하는 것이 많은 지금 은 서양 위주의 교육에서 환경이 달라지게 하는 생각이 달라지게 하는 그런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에요. 우리 학교에서 진행하는 예술영재발굴교육이 상당히 고무적이지요. 口 전통예술영째를 선발하는 전문가들 어떤 방식으로 선청하는 것이 가장 공정하고 정확할 것이라 보씹니까 1 (소위 예술계에 존찌하는 계파 의 문채를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계파에 휘둘리지 않고 초지일관 진실 된 그런 분들을 모셔야지요. 계파 때문에 흔들려

408 서는 안 되고. 계파 때문에 망하잖아요. 자기 줄 잇는 사람만 데리고 하면 안 되죠 口 국내에서 전통예술영재들이 성장하는데 가장 큰 걸렴돌아 되고 있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도 역시 계파나 어떤 여러 가지 여건들을 다 떠나서 그러니까는 전통음악 이든 뭐든 그 안에서 그게 하나의 훌륭한 음악가를 탄생시키는데 모두 합섬을 해야 되고, 공동체적인 그런 생각으로 해야지 서로 계파 간에 이런 결 하면은 자 기 계파만 옳다고 하기 때문에 모두가 다 이제는 생각을 열고 정말 훌륭한 영재 길러내고 훌륭한 사람을 뽑을 수 있는. 추천하고 그래야죠. 口 전통예술영째가 앞으로 성장하여 음악가로서 담당(감당)해야 할 일들 을 어떤 것이 었겠는가? 우리 판소리 쪽은 예술영재가 나온다면 그 동안에 전통음악이 그냥 음악 쪽으 많이 발전을 하고 했지만 그것들이 인제 학술적으로 이론적으로 이런 그 음악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이런 음악을 어떻게 운영하고 어떤 것을 이용해서 어떤 식으로 이런 음악이 나오는지 학술적으로 한다면 충분히 우리 음악이 세계 적으로 어필을 하고 이론과 실기 이런 것들을 겸비할 수 있는 영재라고 한다면 음악을 충분히 이해한 사람이 그 이론도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그렇게 되 어야 한다 생각해요. 口 3-1(1-2). 선생님은 초등학교 때 노래를 잘 불렸지만 수줍어서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부끄러워 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런데 노래 부르는 것은 좋 아하셨나요? 나는 노래 잘 안 불렀어요 혼자. 사람들이 시켜서 들었던 것을 기억을 하고 있다가 불렀던 거 같아요. 口 3-2(1-6). 선생님이 스숭님을 모시고 학습했던 내용 중 심봉사 애기 어르는 대목, 심청이 밥 벌러 가는 대목 응을 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요. 학습 진행 사항을 초급 중급 고급 단계별로 나눈다면 어떻게 됩니까? 초급은 가장 음 악적언 구조가 쉬운, 어련 사람이 알아들을 수 았는 복잡하지 않는 대목 중에 어떤 대목일까요? 심청이가 밥을 벌러 나간다거나 아버지를 봉양하려고. 또 심청이가 아버지께 자기도 어리지만 아버지를 위해 밥 벌러 나갈 수 있다 그런 대목이지요. 중급 단계는요? 중급 단계는 음악적으로 조금 이제 구조가 자진머리. 초급단계는 중머리나 그 렇게 구조가 복잡하지 않는 박자 붙임이 그렇게 또박 또박 정 박자 또 말도 정 박자와 말도 상당히 많이 붙이지 않는 초급단계라면 중급은 이제 조금 더 그것 보다는 음악도 자진머리라거나 이런 걸 배우게 되고

409 고급 단계는요? 인제 엇중머리 라든가, 엇머리 라든가, 그런 것을 포함해서 진양이라든가. 진양 은 표현하는 게 좀 어려워요. 口 3-3(1-7-(2)). 주팡덕 선생님의 소리가 기가 막히게 잘하셨다고 하셨는데요. 무엇을 잘하셨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그 선생님이 그 어른이 소리를 기막히게 잘하셨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제가 만 났을 때는 와병중이셔서 소리를 안 하셨어요. 잘하셨다 그런 말을 들었어요. 선생님께서는 주광덕 선생님께 소리 잘한다는 말을 들으셨나요? 잘하겠다고 하셨지요, 목청을 보고. 목청과 음악을 이해하는 그런 것과 박자. 박자가 느리고 빠르고 할 때 음악적인 구조가 어떻게 늘어지고, 이런 것들을 받 아들이는 것을 보고 제게 음악을 잘하겠다 하셨어요. 그때 선생님이 부른 노래는 요. 처음에 심청가에 애기 어르는 대목 심청가 중중머리 대목 같은 거. 그렴 어련 나이에 견주어셔 잘 한다는 것인가요? 예. 口 3-4(1-8). 선생님께서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음악에 매료되었다고 하셨습니 다. 그 때가 몇 세 청도 이신지요? 29-30세 정도예요. 口 3-5(1-10-(1)). 어련 시절 소리와 가야금을 동시에 배우고 연습하셨나요? 악 기별 연습 순서, 시간, 과정을 말씀해 주세요. 전에 가야금을 배울 때는 어려운 산조는 안 배우고 그냥 정악, 풍류. 풍류부터 배웠고, 그 다음에 산조를 들어갔어요. 또 판소리는 처음에는 단가부터 배우고 그 다음에 가장 쉬운 대목부터서 했지요. 연습 시간은요? 시간을 정해 놓고 배우는 게 아니라 반복해서 계속 몇 장단을 가르쳐 주시지 요. 그결 가르쳐준 다음에 이해가 되었는지 해봐라, 인제 이해가 되었는지. 시간 은 대중없어요. 내가 이해할 때까지. 한 장단을 이해하는 시간은요? 글쩨요. 선생님과 주고받고 주고받고. 그렇게 하면 한 분. 한 장단 당? 한 장단이 아니라,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뭐냐 분량. 한 30분을 하게 되면 알 게 되죠

410 분량을 예로 들면은요? 그러니까 소리 같으면 중머리를 4-5장단을 한다든지 그러면 되는 거지요. 口 3-6(1-10-(j)). 선생님째서 음악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하루 연습량이 거 의 10시간정도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때가 몇 세였는지요? 그 때가 대 지. 완창을 하고 그럴 때 였으니까. 그것 때문에도 더 했지요. 한 자리에서. 10시간을 할 수는 없고. 아침에 좀 하고 인제 국립 창극단에서 연 습이 있으니 거기서 소리도 하고. 그럼 아침에 한 아홉시나 시작을 하면 내 개인 연습과 종합적인 연습을 하면 3-4시면 끝나거든요. 그 담에 오후 8시부터 개인연 습도 하고 그러지요. 口 3-7(1-10-(j)). 그 무렵, 음악을 하는 소속단체에 있었다고 하셨는데요. 어느 단체언가요? 국립 창극단입니다. 공동연습과 개인연습을 하셨다고 말씀 하셨는데요. 하루에 공동연습은 얼마나, 포 개인연습은 얼마나 하셨나요? 공동연습시간은 한 다섯 시간 정도고, 그 외에는 다섯 시간을 개인연습시간으로 하고. 口 3-8(1-12-(j) ). 션생닝은 전공분야언 판소리 외에 가야금 산조를 유파별로 배 워보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언제 누구에게 가야금을 배우셨는지 말씀해 주세 요. 어떻게 시간을 분배해셔 각각의 악기를 연습을 하셨기에 모두 뛰어난 성 과를 얻게 되셨나요? 지금은 다 잊어먹었어요. 가야금을 안 타니까. 맨 처음에는 신관용류를 배웠고, 두 번째로는 인제 서울 올라와서 성금련류를 아주 짧은 산조를 배웠구요, 그 담 에 함동정월류를 배웠구요 그리고 강태홍류를 배웠지요. 그 정도 배운 거지. 신 관용류는 어렸을 적부터 했구요. 풍류를 때고 배웠으니 초등학교 3-4학년 때부터 배웠지요. 성금련류는 70년대 초에 성금련 선생에게 배운 게 아니라 박귀휘 선생 에게 배웠어요. 그때는 합주들이 많으니까. 함동정월류는 70년대 중반 전 쯤에 함동정월 선생님이 우리 학원에 나오셨어요. 강태홍류는 제가 음 그것도 73년 이 때부터 배웠지요. 처음에는 김일구 선생에게 강태홍류를 배웠고, 그 담에 김일구 선생님의 선생님인 원옥화 선생에게 각각 두 번을 배웠지요. 口 3-9(1-13). 얘기명창의 의미를 말씀하시면셔 얘기명창이라는 단어는 가능성 을 함축하고 었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런 가능성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무엇 이 았을까요?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은 소리하는 성음, 또 박자, 정확한 발음들. 그러한 것을 어떻게 잘 구사 하는가, 그리고 음악이 가지고 있는 특성. 예를 들자면 소리가, 소리 연결이 되는 이런 부분들에 시김새가 있어요. 뒤에 소리를 그 사람이 가지 고 있는 소리 느낌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들어보면 알 수가 있거든요. 음악이 긴

411 장이 되고 칼날 같은 것들, 하청이 잘 나는가 목소리가 아주 다부지고 천구성을 띄었는가. 천구성을 가지고 있으면 제일 좋은데, 천구성은 통일된 악구성이 있는 목소리거든요. 개성 있는 목소린데, 그 목소리는 가장 매력적인 목소리겠지요. 청 음을 잘 못타고 나면 양철 때리는 소리처럼 가볍거나, 아니면 발발 떨거나, 또 너무 탁한 목소리라거나 또 인제 뭐랄까 그 힘이 없는 목소리라거나. 그런데 천 구성은 힘도 있으면서, 목소리가 맑으면서, 동그렇게 꽉 찬, 그런 뭐랄까 힘이 있 는데 매력적인 목소리. 그런 목소리가 나오는가 보고 가능성을 점치지요. 口 3-10(2-1). 전통예술에 영재가 았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로 자꾸 나오는 거 보면 었다고 하셨습니다. 주변에 영재가 어떻게 나오는지요? 영재는 소리하는 사람의 소리를 보면 어떤 사람은 그 음악적인 구조나 소리 내는 그 소리를 구사하는 방법이 참 안 되는 사람이 있는데 반면에 영재는 몇 번만 가르쳐도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나요. 디 3-11(2-2). 영째를 더러 보셨다고 하셨는데 어디서 영째를 보셨는지요? 제게도 꼬맹이들 한 두 어 명이 있구요. 애들이 중학교 1 학년, 그리고 또 중반에 있는 그 남창이나 여창들이 그렇게 잘하는 애들이 있더라구요. 찾 아보면. 그리고 전국적으로 콩쿨에서 본다거나, 또 공연에서 본다거나. 콩쿨에서 많이 보지요. 口 3-12(2-2-(5)-ô)). 선생님께서 지금 판소리 쪽 영째를 가르치고 었다고 하셨 는데, 어떻게 교육하고 았으신지요? 판소리에는 시김새 라든가, 이런 것들이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음악적인 원래 가지고 있는 음악적인 구조들을 정확하도록 가르치죠. 구조는 언어로 된 우리 소 리기 때문에 언어를 음악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기에 발음을 상당히 중요시 여 기지요. 발음과 박자관념, 그리고 음정. 음정을 정확하게 하려고 하죠. 口 3-13(2-2-@). 영찌틀이 묻히는 경우도 보셨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묻히나요? 가정곤란인가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영재들이 가정형편이 어려운 것도 있고, 또 소리를 하는데 대한 자기의 주관이 뚜렷하지 않아 포기할 수도 있고. 주위에서 보통의 애들처럼 부트는 노래가 아니 라서 내용이나 음악적인 구조에 흥미를 못 느껴서도 있지요. 口 3-14(2-3). 전통예술영째 선발에 적철한 연령은 아주 어렬 적부터 시켜야 한 다고 하셨는데 언재가 좋겠습니까? 애들이 노래 부르기 시작하는 다섯 살 정도라고 봐요. 口 3-15(2-4). 전통분야의 영째성은 음악성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음악성을 구체적으로 풀어서 말씀해 주세요. 음악을 자기가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것을 타고 나야지요. 음악을 즐겨하고,

412 사랑하고. 이런 것이 기본적으로 있어야 하지요. 口 3-16(2-5). 음악성은 해당전공에 대한 음악성인가요? 전통 전반에 대한 것인가요? 음악을 다 즐겨 부르되, 특별히 전통음악에 소질이 있으면 돼요. 口 3-17(2-6). 해당천공의 영째를 알아볼 때 박자, 음정, 그리고 특별한 독창성을 보신다 고 말씀하셨는데요 특별한 독창성이라 하면 구체적으로 무엇이 었을까요? 독창성이란 것은 음악을 목소리, 박자도 중요하지만 그런 음악을 배워서 자기 가 이어나갈 수 있는 자기만의 능력이 있더라구요. 애들이 보면, 어떤 애들은 배 워가지고 그 음악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지 못하는 애들이 있는가 하면 잘하는 애들은 자기 것으로 금방 소화를 하더라구요. 口 3-18(2-7). 영재를 선발할 때 중요한 점으로 예술성과 인성, 환경이라고 하 셨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인성이 끈기가 맞습니까? 끈기가 있고, 또 인내할 줄 알고. 또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자신의 자긍심. 자 기가 이 일을 하겠다는 자체 의지가 없으면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口 3-19(2-8). 인성도 예술성도 좋지만 자기 의지, 자기 주관이 필요하다고 하 셨는데요. 이게 왜 필요한 것인지 예를 들어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이러 한 것들이 갖추어졌다면 예술가로서 무엇을 할 수 았을까요? 왜 내가 하는지를 내가 모르면 남 앞에서 노래를 설명할 수가 없지요. 노래를 통해서 내가 무엇을 들려주고 보여주고 싶은지, 자기 이해가 없으면 안 되기 때 문에 자기가 하고 있는 음악을 통해서 듣는 이들과의 어떤 것들을 교감을 할지. 어릴 때는 잘 모르겠지만 결국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잖아요. 口 3-20(2-9). 영째 선발 시 아이의 창의혁과 동기를 알아보고 싶을 때, 흉내내 기와 원래 가지고 있는 음악성을 구분하는 묘안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어떤 가사 대사를 줘서 한 번 이제 슬픈 대사, 즐거운 가사를 주고 한 번 노래 붙여봐라 할 수 있지요. 지난 번 말씀하시기를 노래 부르기, 태도, 성음을 들어보면 흉내내기인지 음악 성을 드러내는 것이지 알 수 있다고 하셨는데요. 무슨 뭇인지요? 흉내를 잘 낸다는 것은 자신이 뭘 하는지 안 다는 것 일테니. 선생님의 테스트 설채 사례를 든다면? 흉내낸다거나 그러진 않구요, 자진머리 한 번 불러볼래? 니가 아는 노래나 그 런 걸 해 보라고 하면 그럴 때 보지요. 그 음악을 모방을 잘 하면은 음악에 소질 이 있구나 하지요. 태도의 문제라면? 음악과 몸짓은 함께 가는 것인데, 몸짓 발짓은 박자와 함께 가는데 따로 흉내내기인지 음악성인지를 그런 태도로 알 수 있지요

413 정희석 口 1-1. 선생닝을 영재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동의하십니까? 근데 이제 저희 국악 쪽이나 이럴 때는 영재라는. 제가 어렸을 땐 그런 얘기를 별로 들은 적 은 없고, 그냥 끼 가 었다 라든지 아니 면 참 잘 따라한다 뭐 이 런 얘기는 좀 들었는데 영재라는 얘기는 좀 들어본 적이 우리 때에는 별로 없 었던 거 같아요. 단어 자체가 현대 언어라고 생각을 하구요. 신동 이라든지 아니면 아까 말씀하 셨듯이 끼가 었다 이런 정도로 해석을 한다면? 음. 글째 인제 조금. 뭐 빨리 저거 하면 다섯 살? 한 네 살? 그 때 나 같은 경 우에는 한 네 살 때도 이렇게 동네 어른들이 이렇게 티받이 라고 그러는데. 티받 이가 빗자루 이렇게 쓸어 담는 그거를 동네에서 챙과리같이 치고, 그럴 때는 장 단 별로 느리면 느린 대로 빠르면 빠른 대로 춤을 잘 췄다 그래요. 근데 그런결 보고 동네 분들이 역시 뭐가 달라고 다르다는 얘기를 했다는 거 같아요. 口 잘 이전 정도에 부모님이나 주변에서 얘기했었던 그런 게 또 었습니 까? 4-5살 아 후부터 10살 이 내 로.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듣고 그랬기 때문에 이제 5살 그 이후로는 이제 소리 듣고 따라하고 거의 또 뭐 이렇게 홍얼거려보고. 그래서 언제 아버님 친구 이나 이렇게 놀러 오시면 소리를 시켜봤죠. 시켜보고 잘 한다는 소리를 좀 하고 그리고 인제 귀엽고 그러니깐 꼭 오시면은 꼭 그 소리, 이렇게. 옛날에는 이렇게 서로 소리를 하고 서로 쳐주고 이런 모임을 아버님 친구 분들의 모임들이 많이 있었는데, 큰 어른 분들이 소리하고 이러기 전에, 예, 처음 시작으로 꼭 한마디씩 하고 이제 그런 기억이 많이 나는데. 방금 전에 말씀해 주셨던 그 친구 분, 그 에른 분들야 구체적으로 어떤 분들? 친구 분들이 그 연배나 그런 소리하시는 분들이 이제 박봉술 선생님이라든지 한승호 선생님, 뭐 그다음에 친구셨던 한일섭 선생님, 이런 분들이 거의 친구 분 이셨고 같이 음악활동도 같이 하시고. 서로 모여서, 뭐라 그럴까 또 소리하고 듣고 연구하고 또 이런 말씀도, 재담들도 많이 하시고 이런 분위기에서 많이 어 울리시는 분들이죠. 口 1-3. 그 분들이 선생님의 찌능을 알아보셨다는 건가요? 알아봤다면 口 1-3-G) 그 타인은 누구인가? 그렇죠, 뭐냐 하면 이렇게, 일부러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그냥 듣고 영락없이 흉내를 내고 소리를 하니까. 아버님이야 이렇게 뒤에서 그냥 더럽하게 계시지만 주위에 친구 분들 꼭 시키고 잘한다, 잘한다 이런 얘기를 좀 하고, 저도 그런 잘한다, 잘한다 이런 거 때문에 어렸을 때니깐 내가 잘하는가보다 내가 이런 방면에 조금 남들보다는 좀 빨리 따라하고 특이한 그런 피가 좀 섞여있나? 남 404 -

414 들보다 조금 내가 좀 낫다. 는 생각이 들고 또 그런 분들이 대가의 분들인데 물 론 귀여워서 그랬겠지만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는 기분도 으쭉해지고 좋았던 그런 기억이 나지요. 口 1-4. 현재나 아니면 과거에 전통예술분야에 영재다. 라고 생각하는 인물이 었습니까? 口 누구? 전공? 그 이유는? 글쩨. 그. 제가 존경하는 분은 영재라는 그런 표현보다는 아무튼, 첫째는 우리 선생님이시자 아버지시고 아버님도 저와 같은, 저보다 이전에 그런 그 어렸을 때 그런 게 있었으니깐, 할아버님이 하셨으니깐, 할아버님 소리를 할아버님은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도 저희 아버님은 그냥 좋으셔가지고 그냥 제자들 가르치는 거 를 귀로 이렇게 들으시고 혼자 연습을 하셔가지고 무슨 그. 이렇게 굴 은데 가셔 가지고 이렇게 연습을 하시고. 좋아한 거, 좋아. 소리를 좋아한다는 거, 그리고 그 거를 나이가 어리고 그러지만 저도 그런 마음 너무 좋아서 사실은 그냥 자연 스럽게 귀로 듣고 따라 해보고 이런 거거든요. 시키지 않아도. 그런 면이 조금 영재라기 보단, 뭐라 그럴까? 너무 사랑하고 마음에 와 닿고 하고 싶어 하는 그 런 마음이 좀 일찍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게 아마 피내렴 이라든 지 그런 것이 아마 조금 있는 거 같고, 그담에 인제, 그. 그래서 아버님이시니깐 그런 것도 있지만, 소리에 대한 사실은 또 학교에 그 때는 이제 일제 때에 그런 거 학교고 그랬지만은 학교에 안가고 아버님은 그런 그. 일본 그 사람들이 이렇 게 금을 파다만 폐광 이런 데에 들어가셔 가지고 소리를 하고 끝날, 학교 끝날 때쯤이면 집에 오고 그러셨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다가 할아버님께 들켜가지고 굉장히 야단을 먹고 그 다음에 선생님한테도 야단을 먹었는데 과연 니 뭘 하냐? 사실은 소리가 너무 좋아서 수업시간에 나름대로 공부를 한다고 하니깐 어디 한 번 해봐라. 얼마나 잘 할지 하니깐 그 선생님이, 아! 길이 있는 거고 참 좋다고. 그 다음부터 그 선생님이 봐주셨다는 얘기가 있고, 특기대로 재능대로 공부를 하 고 그러는 거니깐 몇 번 정도는 봐주고 대신 한두 번은 수업에 참석하고 하고 싶을 때 가서 해라. 이렇게 그런 선생님이 그러셨다고 그러더라구요, 그 다음에 영재라기보다도 그 또래의 아버님 친구 분인데, 그 분은 인제 한일섭 선생님이라 고 그 분도 이제 그 소년명창이었죠. 소리를 처음에 잘하셨는데, 인제 중간에 남 자기 때문에 변성기가 있고 이래서 목이 이렇게 그래서 소년명창에서 끝까지 가 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아요. 그러면서 중간에 꺾이기도 하고 그러는데, 이 이제 그. 소리를 완전히 꺾인 것에 굴하지 않고 그 거를 악기화 해서 그 소리의 성음을 악기로 이렇게 표현을 하셨고, 그 다음에 뭐 태평소시나위라든지 그다음 에 구음으로 대금산조를 뭐 이생강 선생님이나 이런 분한테 가르치고 해가지고 제자를 이렇게 길러내시고 여러 방면으로, 그담에 새로운 민요도 작곡을 하시고 이런 부분이 아마 영재성이 있으신 거 아닌가 생각이 좀 드네요. 405

415 口 애기명창 또는 소년명창 이라는 말이 었습니다. 이 말 자체가 방금 말 씀하셨듯이 변성기 라던지 이런 걸로 변할 수가 있기 때문에 그 말 자체가 한계를 안고 있다고 생각 하는데요. 선생님은 그 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 시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게 이제 그것이 애기명창, 이랬을 때 물론 이렇게 소리 쪽, 신체적인 변에서 목이. 제일 중요한 게 성악가는 목이잖아요? 목이 이렇게 연습하고 수련하는 가운 데서 성장하면서 바뀌면서 안 좋아질 수도 있는 거고 그런 면도 또 있고, 또 반면 으로 너무 애기 때 너무 잘해가지고, 꼭 누구라고는 얘기하기는 그렇지만 너무 활 동을 많이 하고 너무 키워주고 너무 잘한다 잘한다 이러면 그 깊지가 못하고 소리 가 점점 넓어지고 깊이가 있게 해서 그 성장하면서 소리랑 같이 가줘야 되는데 너 무 끼나 아니면은 그런 쪽으로만 어렸을 때 그런 뭐 유명세. 그런 거에 너무 되다 보면 큰소리를 못하게 되는 수도 있지요. 그래서 그런 그 때의 교육이 어렸올 때, 물론 어렸을 때는 그런 음악세계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좁고 그냥 흉내 내고 이런 시기고 그런데 J 근데 이게 자기 내면화적인 자기 음악적인 게 표출되고 그럴 려면 좋은 교육이 돼야 되고, 그다음에 너무 이렇게. 뭐라 그럴까요? 유명세라든 지. 너무 그런 게 많이 따지고 그러면 깊은 공부를 할 수가 없죠. 옛날에 선생님 도 너무 그런 명예에 너무 치중을 하다 보면 소리가 깊은 공부를 못한다라는 말 씀을 많이 하셨죠. 소리나 이런 게 거진 수련이나 아니면 그런 마음적인 게 많이 작용을 하는 거기 때문에 그런 심성공부 라든지 이런 거를 옛날에 중요시하고, 그 런 또 교육이 뒷받침이 돼야지 나중에 어른이 되거나 성장했을 때도 좋은 소리나 깊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소리가 나는 나올 수, 나온다 생각을 해요. 口 1-5. 스숭이라고 굳이 표현을 하자면 집안에서는 아버님이 되질 탠데요, 스숭 이라는 의미로써 본격척으로 학습을 시작한 거는 언재로 보아야 될까요? 어렸을 때부터 듣고. 뱃속에서부터 들었죠 사실은, 그렇게 듣고 자랐는데. 초등 학교 6학년, 5학년 때 처음 언제 대회를 나가게 되었는데, 그 때 이제 아버님이 소 리는 이렇게 하는 거다. 하면서 그런 지도를 한 번 해주셨죠. 근데 그게 소리를 막 가르쳐 주신 게 아니고, 소리는 제가 다 했던 거고 다 들어서 했던 거고 그런데, 그런데 그. 마음의 수양에 <심청가>를 그 때 갖고 나갔는데 심청가를 왜 지도를 안 해줄까?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하루 전 날 들어오라고 하시더니 들어갔더니, <심청가>를 부르는 것은 그냥 노래나 이런 식으로 그냥 부르는 게 아니고 진짜 니가 부모에 대한 효를 행하는 마음으로 진솔 되게 이렇게 <심청가>를 불러야지 듣는 관객이나 듣는 사람이 마음에 동요가 오고, 그래야지 감동을 줄 수 있는 그 런 소리다. 라는 얘기를 하셨어요. 그래서 노래 이전에 <심청가>를 남한테 효하십 시오, 효하십시오. 그런 것이 되느냐? 니가 직접 효를 해야지 마음적으로 감동을 받고 설득력 있는 것이지 너는 불효하면서 남한테 효하라 효하라고 이런 소리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래서 효하는 마음을 가져라. 그런 마음으로 진솔 되게 불러 라. 라는 말씀을 하셔서 그 때 그 얘기를 배우건 아니고 그게 나한텐 굉장히 큰 공 부가 되었고, 그리고 그 다음날 정말 그 동안에 불효했던 그런 거를 좀 그. 속죄하 면서 열심히 불렀는데, 어떻게 해서 1 등을 했어요. 좋은 결과가 나왔고

416 정심, 정음? 그렇죠. 바른 마음에, 바른 마음에, 바른 마음으로 해야지 좋은 음도 진실 되 고. 좋은 음이 나온다는 얘기죠. 마음을 그러니깐 바르게 가져라. 마음을 바르게 가지고 진실 되게 불러라 라는 말씀을 하셨었죠. 口 1-7. 음악가 집 안인가? 口 1-7-(2) 집안 내에서 훌륭한 스숭을 판별하는 기준이 있었나요? 스승을 판별하는 기준. 그니깐 저희 집안은 소리집안이니까. 대대로 내려오는 소리집안이니까. 조를 많이 언제 이렇게 따지지요. 계면과 우조를, 이게 좀 전문 적이지만 가려서 해야 된다. 그 다음에 뭐 호걸제 라든지 경조, 이런 거를 계면 으로 표현하면 안 되고, 그러면 조대로가 되는 거고 조를 따져서 소리를 해야 된 다. 그런 게 굉장히 엄격하고, 그리고 아까 얘기했듯이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한다. 소리 이전에, 할아버님 때부터 그래서 이제 옛날 조상현 선생님이나 옛날 배우러 오시는 이런 제자들이 와도 처음부터 소리를 안 가르치고, 거진 6개월 정도는 일 만 시키고 그러셨다고 그래요. 풀 베어다가 소 먹여야 되고 거진 지금에 보면 어 떻게 보면 레슨식이고 서양식이고 이런데, 그 때는 정말 집에서 같이 살면서 일 하고 만약에 고되면 가라 그리고 정말 이제 6개월 정도 돼서 마음이 공부가 됐다 라고 했을 때는 이제 그 때부터 진도를 나가고. 그리고 한 번 나갈 때 확 나가. 굉장히 길게 길게 나가는데 그거를 외워서 해야지 다음 진도가 나가고 그 러는데 요즘에는 뭐 너무 쉽게 하는데도 그만큼 옛날같이 그렇게 못 하는 거죠 사실은. 교육방법이 그게 어떤 스승님들의 어떤 교육방법이 옛날에 어떤 그런 것 이 좋은 점도 많이 있다고 봐요. 요즘에는 많이 갖춰져 있고 뭐 사설도 있고 악 보화 작업도 하고 그러지만 또 옛날같이 그런 구전, 정말 옛날 전통적인 방식도 굉장히 전 좋다고 보거든요. 口 1-8. 선생님이 소리를 열심히 하시게 된 옹기가 있었을까요? 저는 소리 자체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그니깐 들으면 좋고, 그리고 다음에 남 들보다는 이해력이 좀 빨리 오고, 왜 저렇게 소리가 해야 되느냐? 그러건 제가 굉장히 빠른 것 같아요. 그래가지고 고제소리가 나오면 내 자신이 좋으니깐 자꾸 듣게 되고 따라하게 되고, 그리고 이제. 그랬는데, 저희 할아버님은 아버님을 차 라리 그 노력이면 차라리 공부를 해라. 훨씬 대우 받고. 법관도 될 수 있고. 옛날 에는 법관이면 굉장히 높잖아요? 그래서 반대를 하셨다 하시는데, 아버님은 당신 이 그런데도 좋아해서 아버님도 하셨기 때문에 저희들한테 저한텐 특히 하지 말아라 이런 얘기는 안하셨지만 이게 굉장히 힘들다 라는 말은 많이 하셨죠. 그래가지고 니가 정 하고 싶으면 그게 이제 한 초등학교 한 4학년 때 되나? 3학 년 때인가? 약간에 다른 사람보다 피가 있고 조금 이렇게 하는 게 보이니깐 아 버님도 하고 싶으면 얼마나 힘들다는 걸 보여 주실라고 그랬는가봐. 그래서 이제 하루 종일 밥 먹는 시간만 빼놓고 한번 해봐라 할 수 있겠냐. 한번 해보겠다고 그랬더니 정말 하루 종일을 했어요. 그랬더니 다음날 노~란 오줌이 나오더라구

417 요. 그만큼 소리가 아주 진이 빠지고 힘든 그런 거를 보여주실 라고. 그니까 할 라면 진짜 이 독심을 가지고 큰 목표를 가지고 정말 탁 굳건히 마음을 갖고 덤 벼들던지, 아니면 여기서 포기를 하고 차라리 공부를 해서 열심히 하든지. 이게 그만큼 힘들다는 것을 아마 체험을 해주실 라고 그러신 거 같아요. 그래가지고 그 다음날 누웠어요 그냥. 그 어렸으니깐 물론 그랬겠지만 소리를 지른다는 게, 하루 령일 지른다는 게 엄청 힘들다는 걸 느꼈죠, 근데 그런 걸 100 일, 1 년, 3년 반복을 해서 되는 게 소리니깐 그만큼 어렵고 힘든 거라고 생각이 들죠. 口 1-lO. 어련 시절 당신의 연습량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口 1-10-Cî) 그렴 그렇게 빵으신 날 은 만족도가 높으셨나요? 선생님 스스로? 뿌듯한 마음이 있죠, 아, 사실은 지금은. 모르겠어요, 보여주기 위해서 좀 더 해냈다. 그러고 소리를 하면서, 물론 소리를 하는 게 열심히들 하는 것 같고 그런 마음도 있는데, 자기가 즐길려고 해야 된다고 나는 보거든요. 자기가 즐거움을 느끼고 보여주기 이전에 그게 먼저 일차적으로 돼야지 남한테 보여주고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거지 자기가 즐겁거나 자기가 좋은 거를 못 느끼면 그게 좋은 소 리가 될 수 없다고 난 봐요. 그래서, 그래도 소리를 하면서 좋다, 재있다, 만족스 렵다. 그리고 그거를 그전에는 뭐 한 시간, 두 시간 하던 것을 밥 먹는 시간 빼 고 하루 종일 했으니깐 그거를 했다는데 굉장히 만족감을 느꼈죠. 그렴 평가기준도 그 안에서 해결이 되겠네요. 연습 같은 경우는 그렇게 하루정 도만 하셨나요? 아니면 매얼 같이 그렇게 평균적으로? 그결 그러니깐, 공부는 사실 밥 먹듯이 해야 되죠, 우리가 밥을 안 먹을 수 없 듯이 매일, 매일 해야 되는 것이고, 그 다음에 어느 정도 되기 전까지는 가장 짧 은 게 100 일 공부고, 짧은 게. 밥 먹는, 정말로 밥 먹는 시간 빼고는 계속 소리 하는 거예요. 그거를 대학교 때 이제 한 두 달간 산에 가서 해봤는데, 틀려요 8 1) 확실히 하면. 매일, 매일 밥 먹는 시간만 빼고 계속,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러면 목이 쉬었다, 또 조금씩 풀렸다 또 쉬었다, 또 풀렸다 이게 반복되면서 밑에 배에는 공력이 생기고 목은 다져진다 그럴까요? 서양음악 하시는 분들은 이비인후과 가면 굉장히 성대가 깨끗한데, 이렇게 판소리 우리 같은 사람이 가면 막 주름이 가있고 그래요. 자꾸 목을 성대를 단련을 시키는 거고 굳은살이 배긴 다고 그러나요? 목을 단련시키기 때문에, 그리고 뱃심. 그렇게 자꾸 반복을 하면 소리가 달라지고 목도 잘 안 쉬고 처음에 쉬었다가 안 쉬고 그러지요. 물론 다른 뭐. 서양음악 하시는 분들도 하루 종일 하시고 많이. 다 음악이라는 게 많이 해 야 되잖아요. 원래 판소리도 옛날에는 정말 이런 연습실이 아니고 정말 자연어l 서 자연의 음악이기 때문에 산이나 절이나 이런 데에서 뭐 10년, 이렇게 공을 들여 야지 득음을 할 수 있는 그런 거죠, 소리가. 그래서 좀 어렵다고 봐야죠. 81) 달라요. (기록자 주)

418 口 연습하시는 시간 외애 다른 음악 감상을 하설 시간은 었었습니까? 음. 그니깐 많이 있지요, 노래연습 하기 전에. 항상 저희 모임이나 이런 게 많이 있었기 때문에, 또 아버님 친구 분들, 또 선후배들 또 형님 친구들, 이래서 뭐 거 의가 음악이 끊기지 않고 이렇게 들리고. 뭐 신쾌동 선생님 이라던지 이런 분들. 한범수 선생님 이라든지, 성금연 선생님, 이루 말할 수 없죠. 뭐 이런 분들이 거의 노시기도 하고. 또 돌아가면서 이렇게 연주도 하시고 뭐. 특히 함동정월 선생님이 나 이런 분들은 저희 같이 사셨기 때문에 일산82) 선생님이나 이런 분들이 거의 주 위에서 이렇게 같이 계셨어요. 또 예술학교 숙직실, 이런 데서는 거의 매일 연주 가. 이렇게 그게 사랑방이죠. 사랑방연주. 지금같이 무대 이런 게 아니라, 정말 방 안에. 사랑방에서 하지만 요만한 음도 정말 생동감 있고, 정말 이렇게 불꽃이 튀기 는. 고수들끼리 만나면 정말. 무대에서 볼 수 없는 그런 또 다른. 막 이런 표현이 있기 때문에 다들 문화재급들 이셨고 쟁쟁하신 분들이기 때문에 저는 아주 행복했 고 축복을 받은 사람 중에 하나였죠. 그런 대가들의 음악을 거의 계속 들을 수 있 었다는 게 그게 아마 굉장한 공부가 됐던 거 같아요. 잠재적으로도 그렇고, 또 무 의식적으로도 그렇고. 귀. 귀가 뚫려야 되거든요 사실은, 음악을 하려면 귀가 먼저 제일 듣고 하는 게 뚫려야 하는데 그런 듣는 거에서는 축복을 받았죠. 口 전공분야 외에 다른 예술분야에 대한 학습과 경험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口 판소려 외에 다른 악기를 하셨다거나, 만약에 다른 악기를 하 셨으면 그 연습량을 판소려와 어떻게 분배 하셨는지, 그리고 다른 악기를 하 셨을 때 판소리 공부에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말씀혜 주섭시오. 저는, 저도 뭐 어떻게 됐던지 간에 어렸을 때는 듣고 판소리를 했지만, 고등학 교 때는 이제 아버님도 그렇고. 우리 음악이 언제 민속악, 뭐 옛날엔 정악 그러 잖아요? 궁중음악. 뭐 이러지만. 근데 사실은 저는 넓게는 다 같다고 봐요, 은 하나라고 보는데 그 때는 그렇게 좀 구분을 하고, 이런 적도 있었는데 아버님 이. 너는 판소리가 민속악적으로 속하잖아요? 너는 정악 하는 쪽의 학교를 가서 정악공부를 좀 해라해서 가곡을 했죠 제가. 고등학교 때는. 그다음에 언제. 대학교를 가야되는데 대학교 때에 전공이 성악전공이 없었어요 서울대에. 그래서 대금을 또 이렇게 하게 되었고, 그 다음에 직장을 다닐 때도 대금으로 들어갔고 3-4년을 정악 타악을 하고 그랬는데, 저는 여러 가지를 하는 게 좋다고 봐요. 그 니깐 판소리만 계속했으면 물론 조금 더 잘하거나 조금 더 빨리 판소리 쪽으로 그런 면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좀 깊게, 그렇지만 그거보다는 좀 넓게 하는 것이 좋다고 저는 보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이 이제 판소리나 뭐 가곡이나 이렇게, 대금이나 장단이나 그런 것이 판소리만 계속 하는 거 보다는 조금 더 넓 게 이해할 수 있고, 그게 나중에는 똑같은 거라고 봐요. 그래서 조금 소리를 넓 게 공부하는 게 좋다고 보고, 그 다음에 뭐 공부는 저는 하고 싶은 거, 대금불고 싶으면 대금불고 하고. 하고 싶은 대로 꼭 이거를 해야 되겠다. 이거를 꼭 몇 82) 고수 김명환 선생의 호이다.(편집자 주)

419 시간 채워야겠다. 이런 건 아니고, 대금 불다가 소리가 하고 싶으면 소리 그냥 하고 가곡을 한번 해봐? 가곡도 느리게 하면서 죽죽 빼서 정적이고 그런 면이 있기 때문에 다양하게 좀 공부를 했고, 시간에 구애를 받거나 그러지 않았어요 전통예술에 영째가 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글쩨요, 아직까지는 잘 못 본거 같은데. 개념자체가. 네 조금 애매하고 생소하고. 口 2-2. 영찌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학생이 굉장히 잘한다"라고 할 만한 학생 을 보신 적이 았으십니까?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나? 口 2-2-(2) 전공 예. 뭐 소리 쪽에, 어렸을 때부터 활동하고 이런 친구는 봤습니다. 口 2-2-(1) 고 당시 몇 살 정도 였을까요? 몇 살이었나? 유태평양이 몇 살이었나? 하여튼 좀 어렸을 때죠, 6-7살 정도였나? 지금부터 10 1 컨 정도 천? 7-8년 정도? 10년까지 안되나요?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초등학교 때. 아마 7-8살 때. 口 2-2-@ 그렴 직접 혹시 보셨나요? TV를 통해서 보셨나요? 아니, 직접도 보고. 발견 후에 특별히 교육되는 과정을 지켜보셨거나 그렇지는 않구요? 그렇지는 않구요. 단 이제 좀 너무 어렸을 때, 어렸을 때 너무. 뭐라 그럴까요? 너무 신동 이렇게 해가지고 조금 더 깊게 공부를 해야 되는데. 너무 에너지 어렸을 때부터 발산을 해버리면 조금 나중에 깊은 공부가. 조금 더 클 수 있는 그런 환경에 좋은 인재를 너무 먼저 써버리면. 기라는 건데 기를 너무 써버리면 나중에 인제 애기명창인데 꺾인다는 게 이런 게 잇듯이 그런 게 안타까움이 있 기도 한데 그런 사람일수록 저는 조금 더 이렇게 영재, 지금 영재라고 그러니까 영재교육, 이런 걸 통해서 조금 활동 같은 걸 조금 자제하고 조금 공부 쪽으로 넓히고 아까도 얘기했듯이 소리 쪽만 그러지 말고 악기나, 아니면 요런 그 정악 이나 이런 가곡이나 이런 것도 좀 공부해서 폭 넓게 좀 해서 좀 깊은 소리가 나 수 있도록 인도를 해줬으면 하는 그런 바람도 있고 그랬어요

420 口 2-4. 전통예술분야에셔 영재성이란 무엇얼까요? 아무튼 어쨌든. 소리가 소리자체가 좀 그러니까. 좀 어려운 면이 있어요, 우리 적, 우리적인 표현. 악기가 어렵고 그러지만, 사람 인성이 제일 표현하기가 사실 은 좋기도 하지만 제약적인 것도 있기 때문에, 물론 소리도 받쳐줘야 되고, 성음 도 있어야 되고 이렇기 때문에 좀 어렵다고 보거든요. 그런 변을 잘 따라하고 노 래를 어느 정도 할 수 있는걸 보면 다른 거 보다는 조금 더 재질이 있다고 봐야 죠, 예능적인 재질이. 口 2-3. 몇 살 정도가 영채 선발 연령으로 척당하다고 생각하섭니까? 그거야 자라는 환경도 있겠지만. 그러니까 아. 판소리일 경우, 전통예술 일반적인 경우를 구분해서 말씀해 주세요. 판소리는 어렸을 때 벌써 나타나요. 한 뭐 여서 일곱 살 정도변 노래하는 거라 든지 아니면 장난을 따라 친다든지 아니면 뭐 춤을 좀, 이렇게 좀 장단에 맞춰서 춘다던지 이런 게 거진 다서 여섯 살, 어렸을 때부터 나타나는 애들은 금방 나타 나더라구요, 그렇게 저기 되는데. 잠재적인건지, 그런 결 많이 듣고 해서 그런 것 도 있고 그러겠지만, 그 뒤로는 초등학교 때부터 해도 초등학교 때부터 교육을 받아서 잘 따라 하는 것도 있고. 또 핏줄이라고 그럴까요? 뭐 그런 결 타고난 그 런 것도 있고, 보통은 뭐 거의. 교육으로 보면 초등학교에서 뭐 중학교, 중학교라 고 그럴까요? 거기에서 보면 다 보이죠 거의. 교육제도 하에서는 이제 중학교 정 도 하지만 어렸을 때 그런 나오는 거는 일찍 보이더라구요. 다서 여섯 살 때. 口 2-6. 영째라는 것을 정의하기가 애매하기도 한데요. 그럽에도 불구하고 영째 를 뽑아야 된다 라는 상황이라면 선생님은 어떤 것을 시험문제로 내시겠습니 까? 예를 들면 노래를 부른다던지, 춤을 추게 한다든지, 아니연 구체적으로 동작을 흉내내게 한다든지, 어떤 방법을 사용하시겠습니까? 그게 인제 그. 저 같은 판소리 같은 경우에는 어차피 노래이기 때문에 노래를 따라 하기 라든지 다 들어 있잖아요. 그게 발림도 있고 그러기 때문에, 동작도 따라해 보 는 거, 그런 게 특히 목이 먼저. 목소리 따라하기를 해보면 금방 받는 사람이 있고, 잘 안 되는 사람이 있고, 이게 금방 잘 나타나거든요. 그 다음에 리듬감이 어느 정도 있느냐, 장단을 실어야하기 때문에, 그 다음 번으로 봐야 될 건 리듬감을 봐야죠. 장 단. 그 다음에는 몸치는 아닌가 몸이 어느 정도 장단에 움직임이 벌써 보면. 무용은 아니더라도 뭐 움직임이 완전히 어색하거나 그러면 안 되고 어느 정도의 장단의 변 화에 따라서 몸이 자연스럽게 이렇게 움직여가는 그런걸 보면 또 알 수 있지요. 몸이 장단에 따라간다는 것은 배워셔 터득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죠, 배우기 전에 그냥 몸 자체가 따라가지지요. 口 2-9. 창의력과 기교척인 거를 알아보는 방법이 었을까요? 창의력, 기교를 구 분해서요. 소리 같은 경우에 너무 정형화가 되어있는데 사실은. 소리는 이렇게 하나를

421 해주변 두세 가지를 표현할 수가 있어야 되거든요. 꼭 똑같이 하는 사람은 별로 좋은 게 아니고 그거를 그런 마음을 가지고 이렇게도 그려보고 이렇게도 목을 써보고, 이렇게도 해보고, 그런 게 원래 그 소리의 좋은 점인데. 요즘에는 너무 똑같이 할라 그래서 조금 병적인거라고 보는데 고런 게 소리를 마음대로, 좀 다 르게 표현을 이렇게 하는 고런 게 좋지요. 중요하고. 口 전통예술영째를 선발하는 전문가들을 어떻게 선정하는 것이 공정할까 요? 얼종의 계파라든지, 악기별로 특성을 갖게 되면 공정성을 잃어버렬 수 있 어서요. 조언을 부탁율 드렵니다. 글쩨 저는 음악이라는 게 나는 다르다고 보지를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 야에 정말 일가견이 있는 분들, 그니까 무슨 이론이나 이런 건 아니고 음악적으 로의, 정악이면정악, 민속악이면 민속악, 판소리면 판소리, 거기에 한 곳에 정말, 그 뭐라 그럴까요? 일가를 이룬 분들이 공정하게. 근데 이 공정하게가 문제가 있 긴 있는데, 정말 그 심성적으로 공정하게 하실 수 있는 분들이 해야죠. 판단을 이렇게. 정확하게 내리실 수 있는 분들이. 근데 그게 음악을 딱 한 곳에 이루신 분들은 정악을 하거나 뭘 하거나 다 알거든요. 사실 알게 되고 그러는데, 단 손 이 안으로 굽는다고 자꾸 자기 쪽으로 모이는 이런 경향이 있고 그런데, 그런 거 는 좀 아니었으면 좋겠고, 특히 판소리 같은 경우에는 이렇게 아까도 얘기했지만 파가, 유파 뭐 있잖아요. 뭐 김연수제, 뭐 만정 83)제 이렇듯이 제가 있는데, 저는 그래요. 뭐 그런 제를 따지지 말고 그 소리의 요소에 어느 정도 표현을 하느냐? 연륜이 얼마나 되고 장단을 어느 정도 잘 구사를 하고 가지고 가고 가느냐 이런 게 중요하고, 그 다음에 목을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느냐 이런 게 참 중요한데, 그런 거를 봐야 될 거 같아요. 그런걸 봐서 제를 따지지 말고 동초제연 동초제를 하는 사람만 이렇게 턱, 이렇게 뭐 보성소리하면 보성소리 하는 사람만 이렇게 뭐 좀 더 하고 이런 게 없지 않아 있어요. 그런데 그런 거를 따지지 말고 그냥 자체 소리로써 판단을 해서. 이렇게 돼야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口 2-12,13. 전통예술영째들이 성장하는데 걸렴롤은 무엇인지, 이들이 강당해야 훨 얼들은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요. 그게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그러니깐 제일 걸림돌이라는 게 뭐냐 하면. 만약에 어렸을 때 했거나 선생님을 만났는데, 그 선생님들이 너무 놔주지 않는 거, 그니깐 저 같은 경우에도 여러 가지 했기 때문에.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크게는 악기자체도 이 악기도 해보고, 판소리하는 사람이 가곡도 해보고 시조도 해보고 이게 굉장히 중요한 거거든요. 그 다음에 장단도 쳐보고, 여러 가지를 하 면서 그게 넓어지고 또 그게 하나의 소리로 모아지고 그러는 건데, 그래서 선생 님을 잘 만나야 된다는 언제 그 이야기가 그런 것도 있어요. 너무 일률적으로 한 선생님이 한 선생님 쪽으로 계속 가는 거, 그리고 선생님도 잘 안 놓아주고 고런 게 조금 이렇게 그. 다양하게, 선생님들이나 학생들이 저쪽으로도 가고 이 선생 83) 김소희의 호

422 님한테도 가서 좋은 점을 이렇게 배우고 나쁜 거를 버렬 수 있는, 그런 풍토가 돼야 되는 게 참 중요하고, 그래서 보다 넓게 자유스럽게, 이제 만약에 이제 영 재라는 교육에 있어서는 게 참 더 중요할 거 같아요. 학생들이 자유스럽게 좀 배 울 수 있는 터주는, 좀 그런 환경, 그것이 중요한 거 같고, 그담에 어차피 소리나 이런 것도 계속적으로 인제 옛날 거를 받아서 또 새로운 자기표현이거든요, 그 자체가. 요즘 들어서 이제 창작성. 해서 곡을 꼭 써야지 창작이라는데 그건 아니 고 소리 자체가 계속 변화와 된 것이고 시대에 따라서 변화와 되고 우리시대에 또 영재들이 자라서 그 시대에 맞는 그런 소리가 되어 져야 되고 그렇기 때문에 사설도 그렇고, 그래서 그런 그. 영재들한테나 저도 그렇고, 하여튼 그 시대에 자 기 고민을 통해서 새로운 어떤 표현이 돼야 된다고 봐요. 그래서 그런 변에서는 서로 고민을 하고 또 공부를 많이 해야 되고, 그렇겠죠. 그리고 또 그런 표현이 있어야 될 것이고. 그리고 중요한 건 이런 학생이나 이런 영재들이 공부할 때 여 러 가지를 좀 두루두루 공부할 수 있어야 되고, 특히 선생님이나 이런 분들이 너 무 그. 자기 제자다. 어렸을 때부터 끝까지 한평생 자기 제자다. 이런 걸 좀 버 리고. 좀 다른 선생님한테도 좋은 점을 좀 배우고. 근데 저희 아버지 때에서는 그런 게 있었거든요, 여기서 배운 제자도 어이 자네가 한번 맡아주게 그래서 <춘향가>는 자네가 좀 해서 자기 제자지만, 서로 이렇게 가고 그런 게 있었어 요. 근데 요즘에는 너무 그런 게 없어진 거 같고 그냥 내 새끼, 내 새끼 같이 놔주지 않고 계속. 이제 그런 면은 있죠. 선생님이 볼 때에는 아직 어리고, 아직 잘 못하고 그러기 때문에 더 해야 된다. 봐줘야 된다. 그런 마음은 있지만 저는 반대로 아예 개방을 하고 아예 터놔서 학생들 자신이 배우는 사람 자신들이 찾 아도 보고, 좀 자율성이 있게 여기도 기웃거려보고 여기도 기웃거려보고 자기가 찾아서 공부할 수 있는 그런 풍토가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口 3-1(1-3). 주위에 아버님 친구 분틀이 잘한다, 잘한다" 하셨잖아요. 그 분 들이 누구신가요? 저번에 말씀해 주신 거는 박봉술, 한승호, 한일섭 선생님이 었는데요, 혹시 그 밖에 분들이 더 계셨나요? 그니까 특히 이제 좋아하셨던 분들이 아버님 연배 분들이 그니깐. 박봉술 선생 님하고, 한승호 선생님 가까이 많이 계셨고, 광주에는 또 그 돌아가셨지만 북치 셨던 김성권 선생님이라고, 그 아버님하고 같은 저기에요. 연배가 같으세요. 그런 분하고 정철호 선생님도 거의가 다 비슷하죠. 한일섭 선생님 뭐 이런 분들. 또 가야금하시는 성금연 선생님, 인제 물론 그렇지만, 가끔 이렇게 인제 모이는 게 있지만. 제일 친하신 분들은 아마 그 분들이실 거예요 아마. 한승호 선생님, 박봉 선생님, 김성권 선생님, 한일섭 선생님. 거의 비슷한 연배시거든요. 口 3-2(1-3). 잘한다, 잘한다" 소리를 듣고 요쭉해 졌던 건 몇 살 때죠? 그 으씀 했다는 것은 초등학교 때? 5학년, 6학년 때에는 소리라는 걸 알았을 때부터. 왜 안 될까? 왜 나는 되지? 그런 게 한 4-5학년 때 초등학교. 근데 6학 년 되니까 오, 나만 되네?" 라는 그런 으쭉한 거를 느낀 거는 같은 거 같애요

423 6학년 때 라는 건 12-13잘 정도겠죠? 정상적으로 학교 가셨죠? 아니, 그 때는 초등학교 5-6학년 때는 소리를 좀 깊게 느꼈죠. 알았다고 할까? 12-13살? 글쩨 그건 모므겠는데? 안 가봐서. 정상적으로 학교를 가신 거죠? 동의. 口 3-3(1-4). 정권진 선생님이 폐광인지 굴인지에 들어가서 연습하셨다고 하셨 잖아요. 그 때 연습시간이 어느 정도 되는지 들어본 적 았으세요? 몇 시부터 몇 시까지랄까? 학교 가는 시간에 갔다가 끝나는 시간에 인제 오는. 마쳐서 그렇게. 평상시에 그렇게 하시고, 하루 종일도 하시죠. 좋아하셨다고 그러니까. 평상시에 학교를. 학교를 가야되는데. 학교를 안가시고 학교 가는 시간에 맞춰서 거기 가서 공부 하고,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이렇게 집에 갔었다고. 왜냐하면 할아버지가 반대하 셔서. 그 시간을 맞췄을 것 같아요. 口 3-4(1-7-(2)). 할아버님 문하로 들어오는 제자들이 처음엔 한 6개월 정도 일 만 하셨다 하셨는데, 그 기간 중에 남들이 하는 소리를 틀을 수 았었나요? 그니깐. 그거를 들으라고 하는 거죠. 들으라는 얘기죠. 그니깐 귀 공부를 먼저 시킨 다음에 그담에 인제 일과 함께. 일의 중요성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러면서 마음이 또 정제가 돼 지고, 그니깐 그게 인제 사실은 공부의, 음악공부의 초점은 귀를 열려고 하는 거예요. 듣는 공부 하는 거예요. 가끔이라도,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한 번쯤은 불러 볼 기회도 주어지나요? 근데 이제, 정식적인 건 아니지만. 자기가 어디 가서 하든지 말은 그렇겠지만 글쩨요. 아니면, 말석이라도 앉아서. 그렇죠. 말석이라도 앉아서 듣게 하고. 그담에 인제 정말 가르치는. 이렇게 딱 북을 놓고, 무릎 꿇고 해라. 이거 이전에 참여는 많이 하죠. 참여는 많이 하고, 저놈이 공부한다고 온 놈인디, 저거 노래 한자리 하면 들어볼래. 동네 분들 또 이렇게 오고 그러면 자리를 또 마련하죠. 마련해주죠. 어디서 공부하면 할 수 있 을라나 어쩔라나 들어봅시다. 왜냐하면 다 그 마을들에 귀명창들이 있기 때문에 그러면서 소개하고, 그러면서 공부할 수 있나 없나 라는 걸 서로 또 이렇게 얘기 해줄 수도 있고, 그니까 정식으로 이게 딱 배우는 이게 6 개월, 이거는 이제 가상 적인 6개월인데, 그 이전부터 공부는 들어간다고 봐야죠. 듣는 공부하고, 그런 자 리, 뭐 이런걸. 일투족을 옛날엔 다 살기 때문에. 지금 같으면 그게 안 되지 레슨 식이니까. 근데 그 때는 일투족을 다 보니까. 그게 언제 솔직히 얘기하면 산 공 부라고 생각되죠

424 口 3-5(1-8). 소리 배우질 때, 그 날 공부를 끝내고 뭔가를 해냈다 싶었다고 하 셨어요. 무엇을 해냈다는 느낌이 무슨 뭇인가요? 우조와 계변조를 가려서 공 부했다라는 건지, 아니면 그거에 상관없이 하루 종얼 내가 연습을 했다? 일단은 펑일 했다는 거. 그리고 그 때 소리가 어렵다는 거. 이렇게 두 가지 느꼈는데, 하나는 그 정말 뿌듯함. 내가 해냈다. 내가 꼭 그 때 느낀 거는 나도 아버지한테 인제 정식으로 공부를 할 수 있나? 라는 거를 좀 그래서 해냈다. 아 버지가 한 번 해봐라했을 때 해냈다는 자부심이 있었고. 그게 무엇언가요? 시간을 해냈다는 건지, 아니면 어떤 과재를 수행했다 라는 건지? 소리라는 거는 아침부터 시작해가지고 계속 기를 토하는 건데, 이게 사실 힘 거거든요. 그니까 그거를 쉬지 않고 했다는 거죠. 거기에 대한 어떤 뿌듯함. 口 3-6(1-10-(2)). 목의 단련이 연습 도전과제 중 하나인가요? 그게 인제. 어. 제일 중요하죠. 성악가로서는. 일단 목이 돼야 하니까 i 그거보다 는 일단 심성이나. 이면이라고 하는데, 그 곡의 해석이나 맺고 끊는 걸 난 더 좋아해. 목만 좋다고 그래서 소리는 절대 좋은 건 아니고 그거를 어떻게 해석해 나가느냐, 어떻게 판을 짜가느냐. 나는 그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口 3-7(1-10-(2)). 신체적인 목의 단련은 최소한 얼마간의 기간이 필요한가요? 그 단계를 상 중 하로 나눠 볼 수 았을까요? 그니깐 그거는 옛날로 보면, 그 소리 공부의, 모든 공부가 그렇지만, 짧은 게 100 일이고, 그담에 3년이고, 옛날식은 10년이고. 10년 동안 해서 안 되면 포기를 해야 되고, 되면 되고, 악기를 그 때 하던지. 근데 그 10년 안 되는 사람은 또 안 되잖아요. 안 되는데, 일단은 옛날에 10년이었죠.10 년. 그리고 언제 공부한다고 하면 3 년, 10년. 그리고 인제 초짜들이 입문한다고 했을 때, 1α) 일. 口 3-8(1-12-d),(2),@). 선생닝께서 공부하셨던 정가, 대금, 판소리, 타악의 연습 시간을 다시 한 번 알려주세요. 정가는 학교 때 했고, 대금이나 이렇게 그런 것은 국악원 연습 때 많이 불었 죠. 그니까 그 때. 하루의 연습시간? 수치로 하면, 네 시간? 두 시간, 두 시간, 네 시간. 그거는 일과적인 일과였고, 그 이후로 더 불어야죠. 소리도 마찬가지고. 하루에? 연습을 진짜 할 때는 여넓 시간은, 열심히 할 때 여넓 시간은 했죠 口 3-9(2-4). 소리를 잘하려면 소리도 잘해야 되고 성음도 있어야 된다"라고 하셨는데요, 소리와 성음을 구분해 주설 수 었을까요? 소리, 성음. 이제 같이 따라가는 건데, 그거를 뭐라고 표현할까요. 그게 그니까

425 소리는 넓게 얘기하는 그냥 소리고, 그 안에 이면에 의한 뭐 빛깔도, 그니까 색 채. 어려운 얘기네. 그걸 어떻게. 그런 변에서 참 어려운 얘긴데, 뭐냐 하면, 만약 그림을 그리자면 어떻게 칠할 것인가, 또 빛깔을 어떻게 낼 것인가? 그게 소리랑 똑같거든요. 글씨를 어떻게 쓸 것인가? 묵을 꽉 찍을 것인가 흘렬 것인가? 그게 먹하고 같이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거죠. 그게 잘 되는 사람은 성음이 있는 것이 고. 성음을 가지고 있다 그림을 그릴 때, 저 사람 그림이 정말 뭔가가 있다. 비슷한 얘긴 거 같애. 그래서 빛깔이라고 할 수도 있고, 색채라 할 수도 있고. 옛 날엔 그 물들인다고 하거든요. 소리도. 그걸 이렇게 저기 하얀 광목에다가 우리 가 빛깔을 들이잖아요. 그렇듯이 소리도 첨엔 하얀 거지만 거기다가 노란빛도 이고, 붉은 빛도 들이고 물을 자꾸 들여 줘야지, 여러 가지 빛깔을 낼 수가 있는 게, 이제 그게 이제 목소리죠. 보여지는 색깔하고, 들려주는 색깔. 소리 역시도 우리가 현대어에서 말하는 소리 하고, 판소리에 판 자를 줄여서 소리라고 하는 거에 차이점이 분명히 었잖아요? 어떻게 구분이 될까요? 소리 하면 너무 광범위하잖아요. 우리가 벽력 치는 소리도 소리고, 조그마한 풀벌레가 우는 것도 소리고. 근데 내가 보기에는 그래도 판소리가. 판소리에 있 는 그 소리가 가장 근접하게 표현을 하지 않나 생각을 해요. 뭐냐하면, 요만한 풀벌레 소리도 흉내를 내고, 새소리도 흉내를 내고, 그담에 큰 벽력같은 소리 낼 때, 벼락 치는 소리도 판소리에는 있거든요. 내가 산공부 할 때 옛날에, 정말 아침부터 이렇게 연습을 탁 할 때, 저녁 되면, 요만한 벌레소리가 전혀 안 들리 는 소리가 그렇게 자세하게 들렬 수가 없어요. 야, 자연이란 게 저런 거구나 요만한 개미가 안 보이다가도 너무 귀엽게 한 5분 동안 볼 때도 있고. 왜 산공부 해야 되는가. 바로 그런 거 아닌가? 흉내내는 걸로 봐서는 판소리가 제일 넓 고 범위가. 넓고, 자연미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소리가 좋아요. 口 3-10(2-9). 소리는 이렇게 하나를 해주변 두세 가지를 표현할 수 있어야 된 다 라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만약에 이걸 테스트 한다면 어떤 방법이 좋을까요? 그니까 뭐, 소리는 말이라고 했잖아요. 말을 앵무새같이 따라하는 게 아니고, 무슨 단어를 주고, 뭔가를 표현해라. 말을 이어봐라 라든지. 소리를 이렇게 던져 주고 한번 따라 해도 거기에 그 음의 길이하고 선율을 어떻게 이렇게 자기가 소 화할 수 있는가? 이게 더 중요하거든요. 맨날 같은 길을 가는 게 아니고 방법적 인 거를 가르쳐줘야 된다고 봐요. 그래서 그거를 얼마만큼 소화할 수 있느냐. 고기를 잡아주기보단 고기 잡는 법을? 그렇죠. 그 법을. 그게 굉장히 중요한데 지금은 너무 따라 할려고 하니까 너 갇히게 되는 거죠. 그니까. 걸어갈 수 있는 길을 가르쳐줘야 되는데, 너는 꼭 일 루만 가야 돼. 일루 가면 안 된다니까 그런 게 너무 잘못된 거죠. 편하게 갈 수 있게끔 길을 열어줘야 할 것 같아요. 口 3-11(2-11). 유파나 재를 떠나서 소리의 요소에 표현을 해내는 것, 그니까 다시 말해서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느냐, 목 쓰는 것이 어떻게 다르냐, 이런

426 걸 판단할 때, 혹시 기준점 같은 것을 마련할 수 있을까요? 가장 중요한건 공력이죠. 공력. 그래서 얼마 만큼의 그런 연습 기간이 있었는 가? 얼마만큼 소리를 좋아하고 뭐 악기를 좋아하던지. 얼마 만큼 시작해서 얼마 만큼의 기간의 공력을 들였는가? 공력이라는 게. 공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요? 그건 소리에 들어보면 나와요. 왜냐하면 그거는 1 년 한 사람하고, 3년 한 사람하 고, 10년 한 사람하고 확실하게 틀린 거예요. 더 염밀히 따지면, 3년 한 사람하고, 3 년 10 일 한 사람하고 또 그래서 그게 이제 공력이에요. 같은 뭐 점도 딱 도 딱 점 의 공력에 따라 툴리다니까요. 그니까 소리도 마찬가지고, 악기도 마찬가지고. 내가 옛날에, 나도 언제 그 학교를 다니는데, 직장 생활할 때 옛날 서울대 다닐 때 바이 올린 친구를 만났어. 파리에서. 야 너는 렷 하러 다 했던 거 아니냐 악보로 돼 있 고. 왜 여기까지 와서 고생이냐?" 했더니, 그 친구 하는 말이 지네 선생하고 활대하 나 딱 긋는 게 틀리다는 거야. 어, 그거는 내 얘기고, 우리 얘긴데 야, 너 공부 제대로 하러 왔구나 근데, 아무 곡을 모르는 게 아니고, 그 짱 을 긁는 공력, 이 짱 이 왜 툴리는가 그결 공부하러 왔다고 그래서 아마 그 친구는 지금 활동하고 있 데, 잘 하고 있어요. 그거 차이죠 뭐. 곡을 몰라서 뭐 배우겠어요? 공력을. 공력을 구체적인 수치나 객관화된 잣대를 대고 판달 할 수 었느냐 없느냐가 가장 큰 문재가 훨 거거든요. 그런 기준을 말로 해낸다는 게 사실은 어렵지만, 혹시 가능할까요? 선생님이라면? 그니깐, 정상적인 거는 가능했었고, 했어야 되고, 근데 이제 사람에 따라 이게 듣는, 인간이기 때문에 이게 툴리겠죠. 근데 지금은 이게 많이 어긋나 있는데, 그 게 맞아야죠. 그니까 뭐냐하면, 그건 들으면 차이가 나는 거고. 그결 뭐 기계적으 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거는 그러면 또 이게 안 될 것 같아요. 인간적인 게 있되, 분명한 건 있어요. 근데 그거를 공정하게 잡아야 될 것 같애. 그니까 그거를 나 는 할 수 있죠. 어려운 얘기에요. 그래서 근데, 그거는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귀 가 열려있거나, 귀에 우리가 언어를 듣듯이, 저 사람 말을 잘하구나, 진실이 있 구나 없구나 이결 딱 따지듯이 그걸 다 있는 거예요. 들을 수 있는 거고, 그래 서 서양의 그 뭐 배심원 제도같이 우리도 만약에 그런 변에서 정 그러면 정말 이 관객의 수준을 좀 높여서 같이 참여해서 할 수 있는, 그게 어떻게 보면 한 사 람 한사람이 주는 거 보다 더 공정할 수 있죠. 그 사람들을 위해서. 어차피 또 음악을 하게 되는 거고, 그 사람들의 펼요에 의해서 서로 이게 떨어질 수 없는 관계기 때문에, 그런 방법도 있다고 봐요 나는. 이 참 좋은 방법이에요. 口 4-1. 전공분야 외의 다른 예술분야에 관심을 두신 적이 었습니까? 아, 음악은 다 통하기 때문에. 물론 하나를 깊게 들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 연결이 돼 있는 거라. 나도 그래서 옆길을 많이 갔죠 대금도 했고, 뭐 또 악기 거문고도 했고, 만지는 거는 또 그래야지만 될 것 같애. 너무 한 곳에만 집중히 고, 거기에만 너무 저기하면 자기가 질릴 수도 있고, 잘못 가면 다른 길로 갈 수 도 있거든요. 그니깐 그결 잡아주는 것은 여러 가지 음악을 같이 섭렵하고 듣고 - 417

427 어울려져야지, 너무 골수가 되면 그건 나중에 또 그렇게 돌이킬 수 없는 그게 될 수도 있어요. 자기 고집대로만 음악을 하게 돼요. 그러면. 자제를 못하고. 口 혹시 음악 이외에 다른 분야는 없으세요? 보는 거 좋아하죠. 그림을 본다든지 글씨. 왜? 힘이 이렇게 있는 거. 이런 거 보면 좋고, 그 다음에. 기공 하셨었잖아요? 그거는 인제, 그거는 필수적인 거고. 소리에 기를 쓰는 거기 때문에. 아직도 공 부하고 있고. 왜? 기똥찬, 기찬 소리를 들려줘야하기 때문에. 기를 채워야 되잖아 요 일단. 기를 쓰는 거니까. 그거에 대한 거는 필수죠. 국악이나 음악 하는 사람 은 내가 볼 때는 그거를 꼭 해야 되는 거 같은데, 거기에 대한 거는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그건 그렇고. 골동, 옛날스러운 거 좋아하고. 보면 볼수록 싫증 안 나 거. 산조하고. 口 4-3. 다른 분야의 관심과 경험을 자신의 전공분야에 활용한 기억이 았으신가요? 아유, 그거는 같이 해야죠. 공유를 해야 되고. 口 4-4. 기( 氣 )도 그렇게 설명할 수 있나요? 그렇죠. 그림도 진짜 좋은 그렴은 기가 이렇게 나오잖아요? 글씨도 이렇게 힘이 있 다고 그러는게, 정말 이런 게 보여요. 마찬가지로 소리도 기가 찬 음악은 툴리거든요. 그니까 그게 우리 음악은 전부 그게 그 기, 모든 우주의 운용이 기 아니에요? 어떻게 보면. 크게 보면 그런데, 인간이 이제 소우주인데, 글씨를 쓰던 소리를 하던, 어떻게 하던 자기의 소우주를 잘 운용을 해서 기를 발산하는 거잖아요. 그죠? 口 4-5. 무대에 서기 전, 또는 시험이나 콩쿨에 나가기 전에 얼마나 어떻게 연습 을 하셨는지요? 예전에 또는 지금, 이렇게 구분을 해서 말씀해 주세요. 그 전에는 사실 뭐 첫 번 발표회 한다든지 이럴 때, 진짜 연습을 많이 했어요. 첫 번 발표회가 언제셨죠? 90 년. 나이로 치면? 제가 대금을 이렇게 바꾸고, 처음에 소리를 한다고 발표한 게 90년인가 그러니 까 86년도에 들어가서 7년 동안 대금을 불고, 3년간 타악을 했고 그러니까, 한 그렇네. 대학 졸업하고. 그 때는 굉장히 연습을 많이 하셨죠? 많이 했죠. 굉장히 많이 하고, 너무 많이 해서 본 공연 때 너무 쉬었어요. 목 이. 항상 그니깐 지금은 그런 조절을 하는데, 너무 연주회를 앞두고 너무 연습하 는 거보다 평상시, 규칙적인 공부가 그게 인제 파워가 있는 규칙적인 공부가 중

428 요한 것 같아. 우리가 밥 세 끼를 규칙적으로 먹는 게 제일 좋듯이 인스탄트 안 먹고, 정말 이렇게 정성들여서 밥만 잘 먹어도 사람이 건강하잖아요, 근데, 공부 도 그렇게 공부하는 것이 제일 좋은 것 같고, 그리고 중요한 것이 그날의 어떤 컨디션을 어떻게 유지하느냐, 기를 운용을 하는 것을 어떻게 하느냐. 이게 중요 하죠. 그게, 악기나, 악기는 정말 어떻게 보면, 소리하는 사람, 목 쓰는 사람의 엄 살일지 모르겠지만, 이게 금방 바뀌어요. 인간적인 게 있기 때문에. 아무리 잘할 려고 해도, 꼭 긴장이 되고. 이게 직접적으로 오는 거잖아요. 악기는 거쳐서 가는 거고. 그래서 가지고 다니기는 편하지만 그런 변에서는 목 쓰는 사람의 어려움을 알아줘야 할 것 같아요. 예전에 콩쿨에 나갈 때, 첫 번 발표회 때, 그 때는 하루에 평균 몇 시간 정도 연습 하신 거죠? 거의 새벽에 나가서, 아침 먹고 잠깐 산에 좀 들렀다가, 한 진짜 부지런 할 땐 7시부터 공부를 하고, 7시부터 11 시 반 정도까지 하고, 오전에. 오전에 공부가 그 렇게 되고, 밥 먹고, 1 시부터 5시까지. 요전 네 시간 반에, 오후 네 시간? 8시간 정도?8시간 반. 그리고 이제 기분이 좋을 때는 저녁때까지 확 갈 때가 있고. 요즘은 그렴 어떻게 하세요? 공연 전에? 그래서 이제 그걸 알기 때문에 평상시 공부. 아침공부가 좋은 것 같아요. 아버 님이나 우리 할아버님도 항상 얘기하는 것이. 저녁에 아무리 공부해야 아침 탁 해 뜰 때 기를 받으면서 공부하는 거에 한 두 배, 세 배정도 된다. 저녁에 4시간 할 결, 아침에 두 시간 하는 것이 훨 낫다. 기와 관계었는 건가요? 그렇죠. 기와 관계있는 거죠. 지금 생각하니까 그런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녁 에는 음으로 가는 거고, 우리가 인제 자시부터 하늘이 열리잖아요 사실은? 밤중 에부터 가는데 이제, 그 시간은 이제 잠을 잘 자야 되고, 호흡하변서. 그래도 아 침에 일찍 일어나서 5시, 4 시, 6시, 7 시, 이게 이제 좋은 시간이죠. 口 4-6. 어련 시절, 음악을 하는 목표가 있었나요? 왜 포기를 안 하시고 계속 하신 겁니까? 그냥 좋았기 때문에. 소리가 그냥 좋았고, 근데 너무 좋았기 때문에 소리를 하 지 않으려고 그랬고. 팬지는 모프겠어요. 너무 그냥 분위기겠죠. 그담에 항상 소 리를 많이 듣고 그랬기 때문에. 너무, 그니까 좋아해야 될 것 같아요. 나는 너무 좋아했어요 음악을. 소리를 좋아했어요. 그 중에 제일 영향을 많이 준 분이 아버 님이죠. 아버님 소리. 들으면 너무 좋고. 口 4-7. 연습 할 때도 목표나 이런 게 따로 았었나요? 그니깐 어느 정도까지 내 가 도달하면 그만하겠다라는

429 아유, 죽을 때까지 해야죠. 그만하겠다는 그 자체는 포기를 하는 거고. 정말 진 정한 음악을 좋아하고 그럴려면 그렇게는 안 되고, 죽기 전까지 얼마만큼 표현할 수 있을까? 왜냐하면, 욕심이 자꾸만 이렇게 늘어나잖아요? 그럴수록에 소리가 깊이가 깊어지고 넓어지고. 항상 그담에 부족했고, 그 전 걸 들어보면. 그러기 때 문에 음악이 점점 이렇게 발전이 되고, 그보다 더 욕심이 생기고. 아마 자기 욕 심을 끝까지 못 채우고 갈 거예요. 누가 그러대요. 모든 음악이나 예술도 딱 세 번이 있다고. 제일 맘에 드는 게. 한 평생 살아도. 그림도 정말 세 점. 소리하는 사람도 세 번 무대에 섰을 때, 정말 내가 잘했다는 생각이 들 때, 세 번 아마 있 을 거예요. 그림도 옛날에 내가 드라마 봤는데, 다 자기가 사서 다시 태우기도 하고 내 이런 기억이 있어요 어렸을 때. 글씨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고 아마 자기 맘에 드는 거는 한 평생에 아마 한 세 번. 그 성공 케이스로. 세 번 정도가 딱 맘에 들지 않올까. 口 4-8. 혹시 음악을 중간에 그만두셨거나 이런 적도 었나요? 만약 그랬다면 어 떤 이유에서 그러셨나요? 지루해 지셨나요? 그만 둔 적은 없고, 항상 음악을 이렇게 바꿨죠. 그니깐 내가 어떤 변에 조금 지루하다 그럴 때는 다른 음악을 이렇게 조금 더 깊게 들어갔었고. 근데 그거는 음악이라는 건 계속 꾸준히 해야 되는 거기 때문에, 그 자체를 이게 바꾼다는 거 는, 그리고 잊어버린다는 거는 음악 자체가 없어지는 거고, 그니까 그 안에서 만 약에 다른 음악을 듣는다든지, 아니면 조금 더 넓힌다면. 사실 서양음악을 좋아 한 적도 있어요. 뭐 대중가요를 좋아한다든지. 여하튼 그렇지만, 그런 음악에 그 렇게 별지 않게 이렇게 두루두루 왔다 갔다 하는 거는 괜찮지만, 그 자체를 탁 엎는다는 거는 안 되겠죠. 口 4-9. 무대에서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연습한 경험이 았으세요? 있죠. 무엇얼까요 그게? 그거는 언제 고민을 해야 되는 부분이고, 그것은 창작적인 부분인데, 우리 세 대에 우리에 맞는 음악이 과연 무엇일까? 그니깐 그 이전에 그것들은 발전 되와 서 있잖아요. 있는데, 우리가 같이 고민해서 뭔가를 표현해서 뭔가를 얻어낼 수 있는 그거를 준비는 해야 되는데. 그 작업이 어려운 것 같아요. 아직도 답이 없 고, 그리고 내 자신이 창피한 적도 있고. 그니까 그거는 서로가 같이 고민을 해 야 될 부분인 것 같아요. 알기 쉽게 얘기하면, 가령 만약에 판소리를 그대로 두 면서, 달리 변형을 시킨다든지, 아니면 새로운 가사를 가지고 내가 작창을 해서 시도를 한다든지. 너무 많이 부족하죠. 서양악기랑 같이 뭐 이렇게 같이 섞어본 다든지. 이런 시도가 참 어색하기도 하지만, 또 해야 될 부분인 것 같은데, 조금 내 욕심으로, 그니까 판소리나 정악이나 그거는 길이 딱 있잖아요 내가 어느 정 도의. 이렇게 하면은 이건 내가 좋아서 하니까 이건 괜찮어. 라고 얘기할 수 있 지만, 이거는 이 시도가 과연 내가 이거 맞는 거야? 이거 좋게 되는 거야? 좋게

430 되는 거야? 잘 들리는 거야? 그니까 답이 없을 때. 퓨전이라든지 이런 새로운 시도들이 최악이라고까지 말하기는 그렇지만, ò}푸 튼 최선은 }년 거네요? 그렇죠. 어떻게 보면 발버둥인데. 퓨전이나 이런. 그래서 그 시도를 신중해야 될 것 같아요. 너무 그렇게 그 뭐냐하면, 대중도 물론 중요하지만, 대중을 너무 이렇게 멀어져는 안 되지만, 너무 이렇게 떨어지면 안 될 것 같애. 대중의 그런 수준을 올려주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고. 그래서 옛날 아버님이나 정말, 할아버님 도 너무 명예와 인기를 추구하지 말아라. 가지 말아라. 그러면 소리를 못 한다 이랬거든요? 그니까 중간은 돼야 할 것 같은데, 너무 대중적으로 가는 것은 진정 한 또 음악의 그 지켜야 될 부분이 있는데, 너무 그렇게, 뭐라 그럴까요? 너무 준다고나 할까? 좀 값어치가 질이 당연히 떨어질 것 같애. 그래서 조금 관객의 수준을 올리면서, 그러면서 어느 정도의 관객과의 호흡. 너무 대중을 쫓아가는 거는 그렇게 좋지 않아요. 그래서 요즘 음악이 저는. 이런 얘기 좀 해도 될지 모 르지만, 별로 아닌 것 같애. 고민이 없고, 너무 쉽고, 퓨전도 좋지만, 지킬 건 더 지켜야 될 것 같아요 선생님이 배우살 때 스숭아 가르쳐 주신대로만 하셨어요?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변형도 해보고 그러셨어요? 사실은 그거는 말이라고 얘기했는데, 소리도 원래 변형을 해야 돼요. 그 장단 안에서 놀아야 되기 때문에. 이게 노는 연습이지 똑같이 흉내내는 건 아니거든 요. 흉내낼려고 그랬으면 진작 싫어했을 거예요 소리를, 그니깐 큰 줄거리는 있 죠. 어떻게 얘기를 가져가야 된다는 거. 그치만 그 얘기를 계속 해야죠 반복적으 로. 하지만 달라져야 되는 거죠. 스승님도 소리를 똑같이 내는 거를 반대하셨겠죠? 당연할 것 같아요. 왜냐하면 우리 아버님도 저희 할아버지 소리를 들으셨을 테 니까. 근데 우리 고모님이 큰 고모님이 거의 인제 우리 아버님 윗 분이죠 인제, 연세가 많으신데, 그러셔요. 할아버님이 소리를 할 때는 한 대목을 가지고 열 가 지에서 열다섯 가지를 하신대요. 그 똑같은 말을 가지고. 그니까 그거를 이렇게 도 쓰고, 이렇게도 쓰고, 이렇게도 쓰고, 그러면서 목을 이제 푸시면서 그 이제 목을 그려내는 연습이죠. 목 푸는거. 그런 고모님이 그런 얘기를 하시더라고. 근 데 아버님도 소리를 굉장히 좋아하셨던 사람인데, 진작 아셨을 것 같아요. 똑같 이 할 순 없는 거죠 사실은. 口 어느 정도 잘한다는 자신감이 든 적은 았으셨나요? 지금도 자신이 없어요. 항상 자신감이라는 게 없어요. 왜 그러냐하면 대 아버 님이시자 어려우신 스숭님이신 아버님이 너무 어려웠고, 또 감히, 항상 우리 우리 큰 형도 가야금을 하고, 우리 둘째 형도 대금을 불고, 나는 소리하지만, 야, 그렇게 해 어디 식은 죽이라도 얻어먹겠냐?" 항상 하시는 말씀이. 요즘 따뜻한 밥을 먹고는 있지만. 그니깐 그런 거예요. 그렇지만 그런 거목 밑에서 이렇게 자

431 라야지 되는 거 같아요. 그니깐 자만은 안 될 것 같고, 한 번도 진짜 마음에 든 게 없지요 아직도. 그렇지만 또 좋은 때도 있어요. 어쩔 때. 그래도 내 공력을 들 인 만큼 표현이 됐을 때. 그거를 다시 한 번 듣고, 아 저건 뭐가 잘못됐구나, 다 음에는 저기에 더 힘을 넣었어야 되는데. 이런 거를 반성하면서 들을 때는 그래 도 뿌듯한 마음이. 그래도 저건, 저 부분은 잘 했네. 라는 결 이제. 전체적인 건 그렇더라도, 몇 군데 인제 탁 해서. 야, 저긴 참 잘했다. 이럴 때 뿌듯함이 있어 요. 우리 아버님도 그 어디 인제 그 감상회를 하시던지 우리가 언제 조그만 소형 녹음기로 녹음을 해갖고 오죠. 그러면 어디 한번 틀어봐라 해서 탁 들으시고, 음, 이건 하고, 그런 그런, 잘 됐다 그러시죠. 口 남과 다른 자신만의 표현 방식이 었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한 적이 있는가? 어려운 얘기죠. 일단 목표를 세우고, 꾸준히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가 야죠. 산을 동산하듯이. 근데 우리가 그렇잖아요. 어디 산을 딱 정상에 올라가면 거기서 끝이 아니잖아요. 또 다른 산을 가고 싶고, 그보다 더 높은 산을 또 가고 싶고, 그러다 죽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그것 때문에 하는 거겠죠. 口 예전에 스승님이 이거는 별로 안 좋다. 하지 마라"라고 하셨는데, 억 지로 한 번 해본 적이 었으세요? 예를 들면 여기서 농현을 하지 마라, 떨지 마라 그랬는데 떤다든지, 가락을 념지 말아야 될 션을 념였다든지, 이런 경 험이 혹시 었으세요? 없으시연 대답 안 하셔도 되고요. 있긴 있죠. 뭐냐하면 너무 이렇게 화려하게 하려고 그럴 때. 왜냐하면 그릴 수 있는 능력이 되니까. 그럴 때가 있었어요. 치장하고 막 한 번 칠 걸 두 번도 쳐 보고 세 번도 쳐보고, 다루라고 뭐 얘기하는 것 ε 그게 언제 정도죠? 나이로 치면? 그게 한 중학교 때? 근데, 왜 그랬냐하면, 가다보니까 그게 중요하지가 않구나 라는 걸 느끼게 되고, 그래서 아버님이 항상 얘기하는 거는 너무 물들이지 말아 라 그 다음에 짜지 마라 우는 결 말씀하시는 거죠? 그렇죠. 짜지 마라. 그러면 시나우를 하는 거지 그게. 그리고 그게 특히 민요 하지 마라. 육자백이. 왜? 너무 서럼조가 되니까. 육자백이는 사실은 우리 보성소 리 할아버지 때부터 절대 금물을 시켰죠. 사실은. 근데 요새 육자백이 안하는 소 리꾼이 어디 있겠어요? 결국 하셨네요. 육자빽이를? 아, 그거는 근데, 그래서 느낀 게 있어요. 뭐냐하면 민요를 하지 말라고 했는 데, 사실은 내가 민요연구를 만들어서 진짜 채집도 하고 그랬거든요 대학교 다닐 때. 근데 인제 그 얘기는 허튼 우리가 얘기하는 그런 그 가수적인 민요이지, 정 말 삶에 나오는 민요는 또 틀려. 소리하고 똑같애요 길이. 그니깐 육자백이도 정

432 말 진도에 살았던 사람, 할아버지 카 나이 많고 이런 분이 하나 매기는 거 하고, 소리하는 사람이 매기는 거하고는 툴리죠. 그래 그런 거는 좋아하셨죠. 그리고 그건 진짜 살아있는 거고, 진짜 필요한 거고. 그것 때문에 소리를 다시 느끼게 됐어요. 아, 소리가 이거구나. 그 본질적인 소리. 꾸멈없이. 꾸멈도 없으면서 정말 할아버지 주름에 한 평생을, 우리가 보면 알잖아요. 한 평생을 살았다는 이게 탁 이렇게 화면같이 보일 때. 근데 소리는 사실 별 가락이 없거든요. 그니까 우리가 그 소리하는 사람이 이렇게 따지면 정말 가락이 없어요. 근데 그거를 우리가 표 현을 못하지. 왜? 삶이 있기 때문에. 그만한. 그니까 그게 어려운 것이 인제 공력 이고 그게 소리거든요. 다 똑같은 소리에요. 할아버지가 농활을 갔는데, 그 통영 에 갔어. 통영에 갔는데. 요즘에는 옛날에는 마을마다 그 저기가 있잖아요. 창고 에 북장구 다 있거든. 지금은 언제 사라졌지만, 그래도 그 마지막 할아버지가 90 세가 념으셨는데, 가락이 딱 세 개에요. 우리가 맨날 대학교 다닐 때, 땅도 땅도 내 땅이요 뭐 이런 거. 삼채 딱 이건데, 그 세 가락이 얼마나 이렇게 가슴에 와 닿는지, 그 할아버님이 조그마시면서 딱 이렇게 걸으시면서 이걸 쳐 주시는데, 나는 어디 무슨 지금 농악단보다 진짜 감동 깊게 받았어요. 그 진짜 가락은 별거 아니고 그렇지만 장구매고, 그 치는 것이, 야, 저게 진짜 그 삶의 농악인데, 그 사물이 아니고. 사물도 물론 사물, 좋지. 나쁘다는 게 아니지만, 오히려, 그게 그 런 것이 더. 근데 가락을 딱 세 가락밖에 없어. 그게 참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 고 직접적으로 그렇게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같이 공유하고, 놀고, 그게 우 리적인 정말 옛날 농경사회, 우리의 삶인데, 사실 우리가 그걸 잊어버렸잖아요. 없어지고 정말. 그 거기서 그 본건 아직도 감동이 있어요. 방금 말씀하신 할아버님은 통영에 었는 모 할아버님이시죠? 예천, 예천 통영. 예천 통영이라고? 지역이름인가요 그게? 예천. 경북 예천이요? 경북. 아아부리-(노래) 그니깐 메나리가 제대로 나오는 그. 참 멋있어. 口 스숭에게 기본만 배웠던 상태에서 혼자 스승 없이 기본을 념어본 적이 었으신가요? 기본을 넘어본 적이 아니고, 그건 넘나들어야 하는 거고, 스승이라는 것은 중 요해요. 내가볼 때. 왜? 인도자기 때문에. 그리고 그결 념나들 때 잡아줘야 되거 든요? 그니까 너무 이걸 갇혀서는 안 되고, 넘나드는 거를 해줘야 돼요. 하게끔 이렇게 열려 줘야 되고, 그담에 념나드는 게 너무 잘못된 데로 가면 그걸 잡아 게 그게 언제 스승이고, 그게 언제 제대로 된 그 지도자. 지도자면 좀 이상 하다. 요즘 지도자라면 좀. 지도자가 아니라 정말 선생님, 선생. 스승. 근데, 지 금은 너무 갇혀 있는 게 이게 잘못 됐고, 그 다음에, 배우는 사람은 맘대로 넘나 들어야 된다고 난 봐요. 일루도 가고 절루도 가고, 삐똘어지기도 하고, 진짜 고삐

433 풀린 망아지같이. 그래야지 소리가 살아있는, 생동감 있는 소리가 되는 것이지, 너무 이렇게 갇혀서. 박제가. 새장에 있는 새가 제일 불쌍하거든 사실은. 그래서 자연적인. 거기에서 스승의 역할. 첫 번째는 보고 열려있게 행동을 잘 해야 되고, 소리를 잘 해야 되고, 그게 제일 중요하고, 그게 안 되면 그 다음 인도를 해줘야 줘. 길을. 길 안내자. 해서 그리고, 뭐 이건 많은 얘기지만, 딛고 더 나아져야죠. 스승보다 딛고 일어서야 되는데, 지금 일어서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 같아요. 예술영째연구원에 H봐는 점이나 해주설 n짧이 었으λl면 간략하게 부탁드렬게요 글써} 저는, 너무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딱 정해서 집중적으로 이렇게 하지 말 고, 넓게, 그 음악을 포용하는 마음이라든지 아니면 뭐 넓게 듣는 거. 자연스럽 게. 좀 더 귀를 열려줬으면 하는 바램이에요. 너무 아이틀을 처음부터 그냥 팍 집중적으로 전공을 정해서 이런 것도 중요하겠지만 음악을 이렇게 이해하는 마 음도 있고, 포용하는 마음, 우리음악을 참 좋아해지게 할 수 있는 그런 방법, 그 런 걸 좀 생각해야 되지 않을까. 다양한 방법이 있겠죠. 일단 귀를 높여라. 그리 고 귀를 너무 영어 진짜 세계 공통어지만. 영어식으로 서양식의 이게 아니고, 정 말 우리적인 말. 우리말이 얼마나 멋있고 이쁜지를 인식을 시켜줘야 되는 이런 공부를 해야 될 것입니다

434 ? n T 요 무 강선영 뿌리가 있으면 생각이 나쁜 길로 가다가도 화딱 떠올라서 그 전에 그렇게 하 지 말라고 한 게 있었는데. 그것도 한 번 생각해볼 문제다. 조그만 정신적인 리 더는 될 수 있어도 그걸로 영재가 된다고는 생각을 안 해요. 모르겠어. 딴사람 생각과 다르게. 근데 어려서 그런 교육을 받는 게 확실히 중요하긴 하다. 나는 조금 완고한 집안에서 자랐어요. 신세대 그런 게 아니고 완전히 전통적인 구시 대, 예를 들어서 그게 영재에 해당되는지 안 되는지는 모르겠어요. 별안간 영재 얘기를 끄내니까. 영재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조금의 하나의 뿌리는 되지 않나 생각해봐요. 왜 그러나은 시골집이니까 전기도 없고 시골서 조그만 흰 등잔 기 조금 넣고 불 켜놓고 안 그럼 꺼놓고 안 그럼 달빛에 살고 그럴 때거든? 그러나 까 시골은 노상 컴컴하죠. 밤이면. 근데 지금까지 써먹는 것이 그 습성이다. 바꿔 지지 않는 습성이다. 그것이 조금이래도 우리 인간에 이득이 되는 거라면 영재가 아닌가, 영재 교육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을 해요. 밤에 우리 조부님께서, 내가 손 녀딸이 나밖에 없었어요. 그러니까 귀한 손녀딸이지. 한문도 우리 할아버지가 가 르키고 그랬는데, 안방에서 나와서 마루 아니에요? 마루 그다음에 신이 있지. 마 당 전에 좀 높은 데가 있잖아. 고무신들 벗어놓는데. 그결 어떻게 교육을 시키냐 은은 들어갈 때 신을 벗어 돌려놓게 하고 급하지 않게. 그결 배웠고 그것을 시행 을 안했다가는 난리가나니까 습성이 돼서 그냥 자연스럽게 했고. 또 밤에 열고 나와서 마루로 나와서 끝이 있잖아요? 큰문에서 나와 가지고 거기까지 몇 발짝 가느냐. 그결 낮에 교육을 시켜요. 거기 뭐가 있느냐 빗자루, 중요한 서류, 걸레, 쓰레받기. 그러면 밤에 불이 없어도 찾을 수 있는 거. 그러면 캄캄하니까 나가서 열 발 디뎌 그럼 거기야끼 손 넣고 찾는 거야. 그런 교육을 받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야, 빗자루 가져오너라 불 다 꺼놓고 그러면 재짝 가져오고 그 런 교육을 받았어요. 어린 나이에는 나쁜 마음으로 저 할아버지가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 고무신을 아무렇게나 놨다가 흘러덩 신으면 되는데 왜 그렇게 하는 걸 까? 예를 들어 그러는 걸 전체 집안을 그러는 거예요. 여기서 대문까지 몇 발짝, 뛰면은 몇 발짝, 지금의 시간 책정 같은 건가봐 아마. 그런 걸 적어놓고 교육을 받아서 난 그런 교육 밖에 못 받았어요. 그러고 학교를 못 가게 하니까 한문 배 우라고 하고, 커다란 기집애가 어딜 가냐고 하고. 물 버리는 수채가 있어. 아버지 가 가방을 던지면 어머니한테 불 안 묻게 받아서 학교 가다가도. 그렇게 완고해. 특히 더 완고해. 영재 교육이다 뭐다 이건 우린 들어 보도 못하고,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게 영재 교육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고. 학교 갔다 오다 들킬 때가 있어요. 그러면 무릎 꿇고 딱 한 시간 반. 더도 안 해요. 왜 갔다 왔느냐 물어보 도 안 해요. 딱 한 시간 반 무릎 꿇혀 놓고 있다 딱 한 시간 반 되면 할아버지가 들어오셔서 공부하자 그것도 그렇게 꾀를 부렸어요. 안하고. 지금 잘 배웠으면

435 서예가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가정교육에서 머리가 세뇌된 교육을 받았단 말야. 요거는 요 자리에 놓고 요거는 요 자리 놓고 그런 결 배웠단 말이야. 그러다 무 용을 배우게 되니까 무용도 그런 식이야. 선생님이 다섯 발자국 가라고 하면 발 자국 이외는 가지 않는 걸로 알고 그게 베니까. 영재교육이 따로 있는 진 모르지 만 그것이 연결되어 있는 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을 한다. 할아버지가, 선생님이, 그전엔 내가 할아버지라고 그랬기 때문에 자꾸 할아버지라고 하는데 아침 6시 에 연습 들어온다. 준비해라 그러면 나는 여섯 시에 일어나는 게 아니야, 다섯 시나 다섯 시 반에 일어나서 다 준비해요. 여섯 시 딱 시작이 그때부터 그게 내 엽의 시작이야. 그러니까 질서는 정연했어요. 그렇게 교육이 되면서 생활도 안정 이 되고 교육이 되더라. 당황하지 않고. 그래서 선생님한테도 그렇게 질서 있게 배워지고 하나 배우면 삐풀어지지 않고 그 길로만 가고 그렇게 해서 강고집 이 라고 내 별명인데, 옛날에. 거기서 온 게 아닌가. 그것도 영재 교육에 드는지 그 건 나는 모르겠어. 근데 영재 교육인 자체 그것은 현대적인 거. 그때는 일제 때 영재 교육이 뭔지 뭐가 뭔지 어떻게 알아. 용어 자체가 없었는데. 그래서 온다고 하길래 그건 나하고 해당치 않은 것 같은데 나한테 그러냐 그랬는데, 그냥 얼렁 덜렁 무용하다보니까 그런 거지 그랬는데. 이건 그냥 여담이니까 필요하면 쓰고. 그렇기 했기 때문에 이 세상 살아오면서 거짓말 안하고 남 미워안하고 정직하게 살지 않았나. 미워할 일이 없으니까. 그 때 그 할아버지께서 교육하실 때 남을 미워하지 마라. 너하고 한 배에서 나질 않았기 때문에 같질 않다 이런 말씀 하 는 거, 어렸지만 무슨 말씀 하시는가 했는데 지금 와서 보면 다 옳은 말씀이었 고. 그런 교육으로 해서 지금까지 누구 미워하지 않고 적 만들지 않고 하면서 제 자들한테도 그저 옳은 길로 가는, 바른 길로 가는 그러한 할아버지가 가르쳐 주 신 그 말씀에서 이치를 따져보면 그 얘기가 옳은 얘기니까. 그 얘기를 현대적으 로 이렇게 얘기를 하고, 글쩨 난 그게 있다면 있을까 뭐 없어요. 난 제자나 자식이나 똑같이 생각하기 때문에 거기에도 제자나 딸이 따로 없어 요. 다 똑같은 그저 제자 같고 동생 같고 딸 같으니까. 그니까 평평하게. 난 똑같 행동이에요. 어디고 똑같이. 우리 딸한텐 이 소리하고 뭐 제자한텐 이 소리하 고. 학교 나가도 그저 바른길 가라, 옳게 살아라, 정주고 살자 그런. 영재라는 게 남한테 잘못 안하고 남한테 욕 안 먹고 살고 그러면 그게 똑똑한 거 아니에 요? 지금은 영재 교육이니 그런 말 할 필요도 없는 것 같아요. 너무 꼬마들이 우 리보다 더 똑똑하고 그런데 무슨 영재 교육이 필요해요? 엄마들이 너무 더 심어 줄라고 하니까. 그거는 저기하고. 국악에서는 영재라는 말이 많이 필요할 거예요. 예술도 그렇고, 처세도 그렇고. 국악에서는 나는 정말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해요. 국악하는 사람들이 다 착하고. 어떤 사람이라도 다 착하지만, 국악하는 사람들이 자기 예술에 집중하다 보면은 별로 나쁜 사람이 없어. 그러니까 그러한 데다 그 런 것만 조금만 더 보태면은 국악계에서도 훌륭한 칭찬을 받지 않을까. 지금도 칭찬을 받지만. 좀 더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준비된 질문지에 따라 여좋겠습니다

436 口 1-1. 우리는 당신을 영재라고 생각한다. 동의하는가? 난 그렇게 해 본적이 없어요. 난 밤낮 바보라고 생각해요. 지금도 왜 그렇게 머리가 둔할까 생각해요. 좀 더 후배들을 위하고 무용계를 위해서 일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았을걸. 머리가 모질라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口 1-1-(2) 왜 아니라고 생각하세요? 나는 내가 생각할 때 부족하니까. 그렇게 해 줄 바에야 안 해 주니만 옷하니 까. 적극성을 안 띠니까. 왜 그러냐면 난 욕심이 그래요. 이것이 옳다 꼭 해야겠 다고 시작을 하면 죽더라도 해야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결 집착을 해서 하질 않죠. 안 되겠다 하면 얼른 단념을 해버리니까. 口 1-2. 어련 시절에 예술교육에 접어들기 이전에 부모님이나 주변에서 말하는 행동특성 있었나요? 우리 집에서는 나 하나 밖에 없고 식구가 많질 않아서 엄마, 아버지, 할아버지, 일꾼 이렇게 살았기 때문에 딴 교육 딴 걸 가르키고 그런 게 없어요. 내가 잘못 하는 게 없으니까 영리하게 잘 하니까. 뭐 내 이름이 우리 집에서 하루에 두 번 도 안 불릴 때도 있었어요. 우리집에서는 채는 예술에 소질이 있다. 이런 거 몰 라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어머니 혼자 계시면서 나 길를 때, 우연찮게 무용을 하 게 된 거지. 그것도 팔자가 됐으니까 된 거지 팔자가 없었으면 됐겠어요? 시골 학교서. 그런 역사가 있었거나 그런 거 없어요. 그냥 평범한 집 시골 농사꾼 집 딸이었어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엄마하고 할아버지 모시고. 세 식구 살던 그냥 평범한 집 딸이었어요. 왜 요즘 애들은 노래 나오면 춤을 춘다거나. 그런 것도 없었어요. 공부는 잘했어요. 남자 여자 공학이라도 반장이었어요. 두 드려 맞기도 하고 쥐어 박히기도 많이 하고 나이가 어리니까, 우리 집에선 나에 대해서 그렇게 뭐를 시켜야겠다 제는 뭐가 되겠다. 하는 그런 관념이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저 크는 처녀 크면 시집보내는 평범한. 口 1-3. 저희가 선생님을 영재라고 부르기 이전에 난 영재는 아니에요. 저희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째능을 타인이 알아본 적이 었나요? 알아봤다면 디 1-3-CD 그 타인은 누구인가? 어려서도 아니고 나이가 그래도 12살, 14살인데 다 컸는데. 근데 무용을 하면 연구소에서 선생님들이 많으시죠. 우리 선생님은 음악무용연구소였으니까. 음악 하시는 분들이 와서 공부하고 무용도 하고. 유명한 악사들 거기 다 있었으니까 그 놈이 잘 크변은 소질이 있다 자기들끼리 그런 소리는 하셨죠. 잘 크면 괜 찮겠다 그런 소리 하는 건 들었죠. 할아버지들, 아저씨들이. 심부름 잘하고 귀염 은 받고, 미움은 안 받고 자랐어요. 바지런하게 심부름도 하고 그러니까

437 특별히 이빼하신 분들 기억나세요? 돌아가신 분들. 이동백 씨도 이뻐했고, 김창룡 씨도 날 이뻐했고, 오태석 씨도. 많죠. 이뻐하고. 많아요. 그 분들 다 예뻐했어요 나. 창하는 분 김소희 씨, 이북으 로 납치돼 가지고 납치가 아니고 조상선이 자기네들이 갔죠. 정정렬 씨 아쟁하는 분이시고, 오태석 씨는 가야금하는 분이시고, 김소희 그 아줌마는 창하는 분인데. 정정렬 씨 하고 그 양반이 오태석 씨 하고 갔지 아마? 오태석 씨하고 넘어갔지. 오래 되서 이름을 다 잊어버렸어. 그 아줌마 이름이 곰본인데 그 이름이. 나이 자신 분들한테는 다 귀염 받았어요. 이북 넘어가고 돌아가고 그랬으니까 그렇지. 재능을 알아보신 분은? 그놈은 잘 길르면 괜찮겠다., 잘 기르면 한 선생님 이름 내 드리겠다 자기 네들끼리 나 듣는데 여담으로. 저 놈은 저대로만 하면 괜찮아 야 이놈아 까 불지 말고 고대로 잘 커 하고. 口 1-4. 동료나 작고하신 분 중에서? 아무도 없어요. 다 죽고 나 하나만 남았어요. 선배나 동료 중에 영찌? 口 누구? 전공? 그 이유는? 우리 연구소에 누가 있었어야지 큰 사람 뭐 서너 사람밖에 없었는데. 기악 하 는 사람하고 무용하는 사람 밖에. 나가질 못하니까. 지금처럼 누굴 접촉을 하고 그런 게 없으니. 사람이 있어야지. 이강선 씨라고 있었어. 내가 제일 존경하는데 어려서 결혼해서 종로 금방집 마님인데 잘살지. 그 양반이 무용을 했다는데 <살 풀이>를 그렇게 이쁘게 춰. 이강선 씨라고 아주 유명해. 어린 마음에 춤도 잘 모 데 보고 있으면 선녀가 노는 것 같애. 영재다 용어도 모를 때니까. 선녀가 됐을 건데 어찌 아래로 내려와 저러고 있나. 지금도 그래. 그 얼굴이 지금도 안 없어져. 얼굴도 이뻐요. 아주 발 하나 띠는데 내가 어려서 뭘 알아. 선녀가 와서 딱 앉는 오이씨 같은 그런 그 느낌을. 그이 때문에 내가 무용을 더했는지도 몰라. 당시 그 분의 연세가? 한 35세 7-8세, 40 정도. 그 내가 열여섯, 열일곱. 나는 그이 때문에 무용이 됐는 지도 몰라. 저렇게 아름답고 예쁜 거구나. 이강선 씨 때문에. 그분은 내가 그렇게까 지 자기를 좋아하는지 모르지 그분은 어른이고. 상대를 안 하니까. 부산까지 피난 갔 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만나질 못하고. 그 양반도 구여워 했고 나를. 재주있다. 선생 님 듣는데서 어우 저놈 재주있습니다. 잘 길르면 괜찮겠습니다 하고. 나는 그이한 테 완전히 매도되었고 그렇게 추는 사람 지금까지도 못 봐요. 口 1-5. 본격적으로 스송을 모시고 본격적으로 학습을 하게 훤 연령? 그 때는 다 모시고 했지. 집에서 왔다 갔다 하는 거 없어요. 나이가 몇 살이냐 고? 열세 살이지. 왔다 갔다 하면서 평택서, 학교 다니면서 열세 살부터 하다가

438 열다섯 때 완전히 올라왔지. 졸업하고. 세 사람이 합숙하면서 배웠지. 인천에서 왔었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몰라요. 한성준 선생님은 그것만 하시는 게 아니고 방송 레코드 악사들 와서 연구소에서 좋은 선생님들 데려다 놓고 배우고 해서 정신없는 분이예요. 연구소 두 번 세 번 둘러보고 무용이면 무용, 음악 체크하고 또 나가서 볼일 보고 그러죠. 口 1-6. 한성준 선생님 모시고 학습했던 내용 시기별로 말씀해 주질 수 있으세요? 그런 거 못해요 병중이라. 그렇게 세밀한 거. 신경을 쓰니까. 대충 큰 얘기만 해줄게. 그리고 그런 건 유치한 얘기야. 口 1-8. 자기 발전의 동기 어떻게 부여하셨는지? 그런 거 몰라요. 그 때. 아니 초등학교 학생들 졸업 해가지고 지금 애들이나 마찬가지지. 이제 중학교 들어가는 놈들. 아, 내가 무용을 하고 어떻고저떻고 그 런 거 생각하고 무용하는 애 하나 없어요. 그런 거 없어요. 그런 거 생각하고 하 는 애 하나 없어요. 춤추는 건가 보다 배워야지 순서 배워야지. 무슨 지금 이 같이 어쩌고저쩌고. 호랭이 담배 먹던 얘기 하고 있네. 친구와의 경쟁 혹은 스숭의 격려 등? 지금 애들 얘기야. 선생이 야 이름만 불러도 좋아서 할 판인데 격려가 어댔 어. 난 그런 연구소 안 가봐서 모르겠어. 내 세대하고 지금 세대하고 얘기하면 고려하고 신라 얘기야. 口 어련 시철 당신의 연습량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口 1-10-(D. 춤 배우질 때 연습량은 어느 정도? 아침 6시에 올라가면 저녁 7시에 내려올 때도 있고 8시에 내려올 때도 있고. 점심 먹을 때 30분, 저녁 먹을 때 30분.6시에 일어나서 청소하고 나변 7시 되면 수업하고 이랬죠. 그때는 그게 뭐 예술이다, 무용 연구소에서 예술가가 된다는 자부심 그런 거 없었어요. 그저 배워야 하나부다. 열심히 배워가지고 그지 같이 옷을 입더라도 그저 우리가 화장실 청소까지 다하니까. 그런 거 하더라도 그저 춤만 배우면 된다고 했지. 뭐가 이론이 있고 그런 용어를 써먹을 때가 아니야. 그저 고려하고 이조하고. 다른 얘기야. 지금 보면 선생님 이거 조금 더 올릴까 요? 내릴까요?, 좀 올려 조금 더 올릴까요?" 혼자 연습하는 시간? 없어. 내 연습이 없지. 하루 종일 가프치는 거야. 시간대로 오니까. 그렇게 쉬 고 내 연습하고 그런 거 없어. 그 사람들 가르키는 게 내 연습이야. 연구소에서 그 사람들 가르치는 게 나 배우는 거야. 똑같이 배우니까. 나하고 똑같이 하라고 하니까. 내가 똑같이 배워놔야 되잖아. 그러니까 연습하는 거야

439 口 1-10-(2). 그렇게 하질 때 스스로 이정도면 만족스렵다. 그런 거 았으셨어요? 그 때는 그런 거 못 가져요. 이 세대하고 얘기할라면 너무 차이가 나는 거야. 이 맘 자체 갖는 게 다르니까. 그 때는 무섭기만 하고 선생님이 거기 잘못 되었 다고 소리 지르면 어떻게 하나 그것만 걱정이지. 내가 무슨 이걸 가지고 무용가 가 되고 뭐 그런 따른 잡념이라는 게 하나도 못 들어가는 거야. 그러니까 젊은 세대들하고는 얘기가 안 돼. 지금 대구하고 서울하고 얘기하는 거야. 경상도말하 고 서울말하고 섞어서 한다고 생각하면 돼. 口 연주 외에 따로 음악 들을 수 었는 시간 었으셨어요? 그런 거 없어요. 그런 시간 없어요. 청소하고, 밥하고, 연구소 가르치고, 다 가 르치고 나면 보내고, 밥하고 가고 나면 할아버지 개인 심부름 하고. 따로 배우는 시간은 없으셨어요? 할아버지가 따로 새벽에도 하고 저녁에 해 주시고. 선생님 시간 나는 대로 배 우면서 선생님 안 계실 때는 가르치키기도 하고. 복잡하지도 않아. 거긴 아무 용 어도 없고 가르켜라 예 가르켜놨니?, 예 λ 배는 고프고 일제 때니까. 쌀 한가마니 오백 원, 육백 원 할 때니까. 내가 쌀 한가마니 내고 들어갔으니까 오 백 원. 그 때 당시에는 쌀만 주고 뱉겨. 노예지 노예, 솔직한 얘기로. 팔아먹은 건 아닌데 돈 주고 맡긴 건데. 본인 자신은 배도 고프고 안하던 일 할라니까 옴 은 쑤시고, 울기도 많이 울고. 지금 애틀 같으면 안 해. 애들이 춤추면서 떠들고 뭐 어쩌고 그러면 난리치면 너희는 좋은 때 태어나서 좋겠다. 하고 아무 소리 안 하고 쳐다보고 앉었어. 팔십 평생을, 10년은 아무것도 몰랐어도 팔십 평생을 살았는데 너무 딴 세상을 많이 살아놔서 복잡해요 나는. 영재 교육을 뭘 한다고 해서 영재 교육이 나하고 상관이 없는데. 요즘 젊은 애들 교육시키는 거하고 팔 십 년 전 얘기하고 무슨 상관이 있나 했는데 일단 오라했는데. 옛날 교육이 이런 것이 있었다는 게 모르는 사람도 많거든? 듣는 게 좋아. 옛날에는 이런 식으로 했다는 걸 아는 것도 좋아. 전통예술이니까. 전통예술에는 예의범절이 있어야지 전통예술에 영재가 었다고 보세요? 전통에는 영재가 있어야죠. 남다른 소질이 있고 여러 가지를 봐야지. 지도력이 라든지, 어른 으로서 선생으로서의 끌러나갈 수 있는 선생의 재질, 제자들을 정 잘 갈쳐 줄 수 있는 선생들이 필요하지 그런 창 잘한다 하는 아동들 보신 적 었으세요? 무용을 잘한다가 아냐. 난. 무용을 잘한다가 아냐. 배우는 처세 그결 보는 거 지. 자세, 하는 행동. 그게 몸에서 나오면 돼있는 거거든. 그게 영재지. 공부를 하 나를 해도 하나를 가르켜 보면은 손가락을 이렇게 해서 벌리고 해서 요렇게 요 렇게 엎어라 하면 다들 요렇게 해서 이렇게 엎어버리거든? 안 듣거든? 그런데 그걸 고렇게 하는 애가 있는데 그렇게 하는 애가 영재 기질이 있다, 그결 그대로 하거든? 지 꺼를 만드는 애가 있거든? 그게 영재야. 선생님들한테 공손하게. 뭘

440 가지고 영재라는 관념들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예술하고 처세 또 그런 사람이 성 공하고. 보니까 그게 예술가가 되고. 채는 잘 따라서 한다고 하는 아이를 보셨을 때 잘 성장해 나가는 것도 보신 적 었으세요? 난 따라서 하는 건 싫어해. 연구하려고 하는 애를 좋아해. 이렇게 해라 하면 자기스타일대로 잘 하려고 하고 그런 애. 남 따라 하는 거, 고대로 모방하는 건 영재가 아니야. 그런 애틀 잘 성장해 나가는지요. 그럼, 잘 추지. 연구하는데 안 될 리가 있나. 그러다가 포기하는 애틀도 었잖아요. 포기하는 건 도리가 없지. 가정이 어려워서. 어려운거 알면 데려다 갈쳐야지. 선생이 뭐 무용하는 거 가지고 돈만 벌려고 무용하는 게 아니잖아. 데려다 가르 치고 싶지. 지금은 예술을 배워서 저 선생한테 예술을 배워서 예술가가 되어야 겠다. 해도 다 그런 건 아니라고. 그 선생한테 신세지고 배워서 졸업이나 해야 겠다. 고 하는 사람도 많다고. 口 2-3. 아이들이 몇 살 정도에 시작하면 가장 효과적인 시기얼까요? 그런 얘기는 안 해. 왜냐면 보편적 아니고 대중적 얘기가 되니까. 누구나 수 있는 책이거든. 다 보게 되잖아. 숨겨놓고 도서관에만 집어넣는 게 아니니까 괜 히 욕먹을 필요는 없지. 자기하고 마땅치 않으면 욕하지. 그찮아? 말 많이 했다. 口 3-1. 어려서부터 교육을 받는 게 확질히 중요하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몇 살 정도가 좋을까요? 세 살, 네 살부터가 좋죠. 가정교육이죠. 제일 첫째는 가정이죠. 가족이 어떻게 산다는 거, 형제가 어떻게 산다는 거 그것을 먼저 해야죠. 그게 제일 중요해. 우 리나라에 가족이라는 게 제일 중요하죠 사람이 되고 나야 다른 걸 받아들여도 흡수가 되지. 口 3-2. 선생닝째셔 할아버념째 대문까지 몇 발자국 가고 하는 교육 받으셨다고 했는데 지금도 그래요. 그게. 무용하는데 도움이 되셨나요? 도움이 되죠, 도움 되죠. 선생님이 몇 발자국 가라 하면 그게 생각이 나죠. 열 발자국 가라하면 열 발자국 가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게 교육이 되죠. 할아버지께선 무용을 염두에 두신 게 아니잖아요. 그냥 집안의 가정교육이죠. 지금 생각하면 집안의 가정교육이 잘 되어 있어야 커서도 잘 돼. 교육이 안 돼 있으면 안 돼. 가정에서 이쁘다고 막 싸고 잘 가르

441 치지 않고 그러면 그것이 커가지고 진짜 안 되겠다. 口 (D>. 선생님째서 정식으로 한성준 선생념 문하에 들어가시기 전에 음악을 들어보신 적이 었으셨는지요. 학교에서 학예회 때, 반장이니까 조끔. 신식어머니 구식어머니 하셨다고. 노래를 못해 가지고. 그래서 노래를 못해서 춤을 춘거야. 노래는 지금도 못해 요. 한마디도 못해. 그래서 모임에 가면 우리 제자들이 아주 우스운 꼴이예요 내 가. 시켜도 못하니까 재미로 더 시키고 그러지. 음악은 좋아하는데. 듣는 건 좋아세요? 그렇죠. 예전에 음악 하는 어르신들도 오시고 그러셨다고 하셨는데 그 때 좋으셨겠네요. 그 때 몰랐지. 한 가지 밖에 몰라요. 할아버지가 가르치면 그 교육, 그거 외에 는 몰라요. 친구들도 없고. 워낙 연구소 일정이 많으셔셔, 밥도 하셔야 하고 심부릅도 하셔야 하고 그러셔 야 했는데. 워낙 잘 달리고, 뛰어 다니고. 그래서 지금 이렇게 건강한가봐. 그러니까 교육 이라는 건 내가 봤을 때 따로 없어요. 집안에서 집안 교육 시키고 학교에서 학교 교육 시키고. 근데 어떤 때 보면 어떻게 세상이 이렇게 됐을까, 요즘 애들 하는 걸 보면 우리는 생각도 못 했던 거니까. 우리 애들은 착하니까, 한국 사람은 착 하잖아요. 그러니까 잘 교육 시키면 잘 되지 않을까. 착하다는 심성이 있어야 성공을? 그럼요. 우리 전수관 제자들은 많이 교육을 시켜요. 허트루 빠지진 않아요. 잘 하고 있어요. 누가 뭐래도 자부심을 가지고. 선생님이 직접 교육을 시키시는 거예요? 인성교육도요? 인성교육이고, 무용도 그렇고. 지금도 해요. 口 ). 예전에 한성준 선생님께서 연구소에 좋은 선생님들 데려다 놓고 배우셨다고 하셨는데 한 선생님께서 배우신다는 말씀이신지 아니면. 그게 아니고 전국에서 춤 잘 추는 사람들이 올라와요 큰 연구소니까, 큰 선생님이고. 놀러도 오고 보러도 오고 그러면 자기네들이 한 번 춰보고, 그럼 우리도 따라하고 그런 거죠 저희야 그냥 한두 번 배우고 하루 다녀가는 거니까. 그니까 춤 자체는 알죠, 열심히 배우니까. 그런데 한 선생님 춤이 아니기 때문에 적극 배우지는 않아요 口 ). 세 사랍이 같이 연구소에 합숙하셨다고 하셨는데. 세 사람이 합숙해도 둘 다 가버리고 나 혼자만 했어

442 그분들은 이후 무용 하시고요? 안했는지 했는지는 모르지만 나 혼자 했어요. 혹시 이륨이 기억나시는지요. 하나는 동욱이고, 대구에 하나 살아요 박연화 라고. 동욱이는? 동욱이도 못 만나고. 그 박 선생은 한 삼십 년 전에 한 번 왔더라고, 서울에 나 찾아서. 口 3-6(1-10-(j)). 아첨 일찍 얼어나서 연습 매얼하셨어요? 매일하지 그럼. 얼요얼도 없어요? 없어. 그 때가 좋은 땐 거 같아요. 口 3-7(1-11). 션생님째서 한 선생님째 따로 배우시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셨는 데, 한 번 배우질 때 시간이 얼마나 걸렸나요? 오래 안 배워요. 하는 거 보시고 잘못된 거 었으면 그거 고쳐주시는 거예요. 그거 가르쳐 주시면 그거 그대로 하니까 삼성 분 정도요? 삼십 분 결렬 때도 있고, 한 시간 결렬 때도 있고, 두 시간 걸릴 때도 있고, 선생님이 추시면 보고 계시다가 지적하시고 그러시는 거예요? 그렇지. 口 3-8(1-10-(j)). 장단도 쳐주셨어요? 쳐줘야 하지 장단 안 춰주변 어떻게 해? 음악은 주로 장단으로만요? 그럼. 장단. 口 3-9(1-11). 자기거 하는 건만 하면 되지. 남의 거 좋네 나쁘네 할 거 없지. 자기 것도 관 리 못하변서 남의 거 잘한다 못한다 맘에 좋지 않는 것이 있다하더라도 내 제자 가 아닌데 평할 필요가 없지. 안 그래? 난 그래. 그 사람이 와서 물을 때 선생 님, 제 춤이 어떻습니까?" 그러면 거기는 조끔만 이렇게 하면 좋겠다 이건 하지. 전통예술에 예의범절이 었어야 된다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예의범절이란 게 딴 게 없죠. 근데 지금 한국 무용은 뭐라고 할 수가 없어요. 전통이니까 문화재니까 그걸 지켜갈라고 애를 쓰지. 사타구니 하나도 못 나오게 하고 팔을 못나오게 하고 그냥 벗고 하는 걸 못하게 하는 거 뿐이지. 지금은 한

443 국무용이라고 훌렁 벗고 뭐 다 다리 내놓고 하는 춤을 뭐라 그러겼어? 전통은 역사, 미덕인데. 난 할 말이 없어요. 口 3-10(2-2). 선생님째서는 이렇게 해라" 하면 자기 스타일대로 잘하려고 하 는 아이를 영째라고 하셨는데요, 자기 스타일대로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살 풀이를 예로 들어 설명해 주세요. 살풀이는 여러 사람이 딴 사람이 다 추니까. 자기 기분으로 마음의 기분으로 추는 거예요. 살풀이는 자기 마음에서 우러나는대로 춰야지 남을 헐뜯을 것도 없 고, 자기 마음에 있는 거. 기본은 배운 다음에 그걸 가지고 자기 몸에 자기 걸 만들어야지. 그결 그냥 그냥 추는 사람도 있고 가슴에 있는 걸 다 내놓는 것처 럼 추는 사람도 있고. 그결 누가 알아주나. 살풀이는 자기 마음을 흔드는 거기 때문에 춤을 추면 추는 사람이 눈물이 날 정도로 그래야 하거든. 저거 이쁘다, 좋다. 이건 근데 그결 원하니까. 춤추기가 참 힘든 때야. 전통도 어느 때고 돌아 올 때가 있겠지 내가 없어도. 그니까 교육은 무용은 어려서 가정서부터 받아야 해요. 첫째, 가정교육부터. 춤의 믿음을 관객한테 먼저 주는 걸 배워야 해. 춤의 믿음을 관객한테 주는 걸 배워야 한다고요? 그걸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요? 자기들이 연구해야지. 口 3-11<2-6). 선생님께서는 춤추는 소질 었는 아이틀을 보시면 어떻게 하시는 지요? 노래를 시켜 보신다거나 춤을 시켜 보신다거나, 시켜 보신 적 었으써요? 노래는 안 시켜. 춤은 시켜보지. 아무거나 해라 그러지. 엄마 아부지 있으면. 口 3-12(2-9). 기교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창의력을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어려서 시켜보면 알아. 口 3-13(2-11). 영째 선발할 때 선생님들의 계파를 벗어나는 방법으로 무엇이 았을까요? 난 심사는 안 해. 잘 활동 안 해요. 학교는 나가고. 이홍구 口 1-1. 당신을 영재라고 생각한다. 동의하는가?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근데, 나는 처음에 이쪽으로 발을 옮겼을 적에는 사 실은 1950년대닌까 그 때는 굉장히 경제적인 사정이 어렵고 육이오 휴전직후고 뭐 이러닌까 어렵잖아요? 그래서 일반 중고등학교를 갈 수 없는 입장이 됐죠. 그 래서 국비생모집이라고 하닌까 국립국악원에 들어가게 된거죠. 양성소라는 곳이 중고등학교 과정이년까 거기서 음악을 더하고 일반 공부 똑 같이한다. 그 호기심

444 에 간거죠. 그때는 뭐 아무 것도 없어요. 가야금이 어떻게 생겼는지 거문고가 어 떻게 생겼는지 한 번도 본적이 없으닌까. 그래 거기서 공부하다 보닌까. 그때 우 리 교육은 그랬어요. 중학교 1 학년 때부터 2학년 때까지는 똑같이 가르켰어요. 맨 처음에 가르친 것이 퉁수부터 그 다음에 피리 요렇게 두 가지는 똑 같이 가 르켰어요. 그리고 무용도 똑 같이 가르키고. 그래가지고 거기에서 자기가 갈길을 선택을 해요 전공과목을.2학년 끝나는 3학년 때부터. 그 때 나는 무용을 선택했 고 딴 사람은 뭐 정재국 같은 사람들은 기악 쪽으로 가고뭐 이렇게 갔는데. 그러 닌까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쪽으로 하는 거죠. 그렇게 해서 교육을 받았죠. 그런 교육 외에는 다른 거는 없는데. 선생님 말씀은 교육에 의해서 지금 이 자리까지 오신 것이지 영재는 아니었다는 말씀? 그렇죠. 그런데 한 가지 핵심적인 것이 있어요. 왜 그러냐면 내가 언제 충청도 대천인데 거기서 올라와서 서울에서 하숙도 하다 자취도 하다 돈은 자꾸 떨어지 고 그래서 어려워서 국립국악원 숙직실에서 잠을 자고 있을 때가 있어요. 한 2년 정도 됐나? 고 2학년 때부터 그랬나.. 그래서 잠을 갔어요. 잠을 갔는데, 김보남 선생님이라는 선생님이 있었는데, 성경린 선생님과 옹기분이시거든요? 우리나라 춤의 그때는 최고의 대가이셨죠. 김천홍 선생님은 그때는 춤을. 아주 저거고. 그 양반이 하루는 나를 불러요. 불러가지고, 너는 나하고 춤추자 그래요. 그래서 저 는 그렇게는 안되겠는데요. 제가 해금을 전공해야지요 전공 맡았으닌까. 해금 전 공였었거든. 아니다. 너는 나하고 춤 춰야 한다. 그러면 해금을 전공을 안 하면 전공점수가 안나오잖아요. 전공점수가 안나오면 퇴학을 해야해요. 국비닌까. 그 러면 나는 학교 그만둬야 하는데 선생님 전 어떡하라구요 그거는 내가 책임지 마. 너는 다 집어치고 나하고 춤을 춰야된다. 네가 할 일이 하나 있다. 휩니까 그랬더니 그때에 우리나라 궁중무용 얘기를 하는거에요. 그때는 민속무용 뭐 이 런 동작만 처음에 이렇게 가리켰는데 궁중무용을 얘기하면서 1 기생 중에서 이것 을 담당할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은 나와야 한다. 그런데 내가 쭉 너네들 가리 켜 보닌까 너 하나 밖에 없드라. 니가 이결 해야 하는데 이게 안나오면 궁중무용 끊긴다. 그러년까 너는 나하고 이거하자 그래서 학교 시책상은 그렇게 안되있지 않습니까? 그건 내가 원장하고 얘기한다 그래 원장하고 얘기 해가지고 해금 집 어 치우고 그쪽으로 전공을 하게 만들어 주신거야. 그래서 그 양반하고. 그 양반 한테 장생보연지무, 춘앵전 뭐 개별적으로 개인레슨을 해주는 거에요. 전체 이렇 게 가리키는 게 아니고. 너는 이걸 해야 하닌까 다른 춤은 추지 말아라. 김보남 선생님께서 선생님째 친히 그렇게 말씀하설 정도변 선생념째서 춤에 있어서의 영째성이 있었기 때문에. 예, 재질이 있었든 모양이죠. 그래가지고 이 정재는 거기만 하지 말고 이론도 해야한다. 그러닌까 많은 책들도 보고 이렇게 하자 그래서 이렇게 시작하게 된것 이죠. 했는데 졸업을 하고 딱 나닌까 다른 사람. 음악하는 하는 애들은 그런데. 내가 정재 했다고 해서 그때는 정재가 뭔지도 모르는데 일반사람들이 누가 알아 줘야지요. 그린까 민속무용은 같이 배웠으닌까 그건 하면 애틀도 가리키고 하면 되는데 정재는 가리킬 시간이 없어요. 누가 할라고도 안하닌까. 그래서 참 고민

445 을 했어요. 고민을 하는데 김보남 선생님이 언제 그러다 돌아가셨거든? 그래 돌 아가시닌까 난 더 문제가 있죠. 그런데 내가 인사동에. 그때도 인제 그 양반이 맨날 책 얘기를 하닌까. 인사동에 고서점에 가면 이런책도 보고 이런책도 구해 서 봐라, 봐라 그랬거든요? 그래서 그때부터 인사동을 다니는거예요. 다니면서 그때는 책이 아주 많이 나왔어요. 규장각 이런데서도 그냥 웬만한 것은 팔아먹고 그럴때거든요? 책이 많이 나왔는데 근데 그런책을 갖다 보는거에요. 그것을 하는 데 이제 내 생계는 어떻게 하나. 내가 학원을 하는거에요. 개인학원. 무용학원을 하고, 거기서는 일반 무용을 가리키는 거죠. 민속 무용 이런것만 가리키고. 이제 시간 나는 데로 가서 나 혼자 공부하는 거에요 책을 사다가. 그런식으로 해서 쭉 이어져 나온거죠. 그래서 인제 나는 그 양반의 사고를 끌어가 보겠다 아무리 어 려워도. 그래서 내가 정재에 발을 딛게 된거야. 口 1-2. 어련 시철(대략 10세미만, 돌캡이 쯤. 예술교육 연령 이전) 부모나 주변 에서 이야기하던 당신만의 행동특성이 었었습니까?(예를 들면 음악이 나오면 춤을 춘다던가) 어. 나는 이제 대천에서 초등학교를 나오고 내가 8남매 중에서 막내인데 중학 교를 넣어 달라고 했더니 우리 형님이 안 넣어주고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모든 재산권은 형님이 가지고 있는데 안 넣어주는 거에요. 그래서 집에서 사실은 탈출했어요. 가출자에요. 그래가지고 서울로 올라오}가지고 서울에서 인제 동대문 시장 이런데서 자고. 처음에는 기거할 때가 없잖아요. 그러면 거기 뭐 좌판같은 거 있으면 뭐 하나 덮고 자고 그러면서 학교를 들어가야 겠다는 일념만 가지고 있는데 국립국악원 이게 나왔단 말이죠 국비생. 그래서 들어간 거에요. 어려서부터 예술 쪽 방변에서는. 이쪽은 전연 모르고. 하여튼 나는 공부는 해야겠다는 신념은 가졌죠. 그건 왜 그러냐면 내가 어렸을 때 내가 한학을 좀 했어요. 우리 할아버지한테 공부를 했 는데, 할아버지가 항상 나를 굉장히 아꼈어요. 공 H 도 잘한다고 하고. 그래서 나 는 그게 토대가 됐다고 생각해요. 口 1-3. 우리가 당신을 영째라고 부르기 이전인 어련 시절에 당신의 째능을 타 언이 알아 본 적이 있었던가? 그거는. 옛날에 시골에 가면 버들피리를 많이 불잖아요? 버드나무 짝아서 하면 가요곡도 하고 고다음에 이제 대나무 가지고 쌍피리 만들어가지고 불고. 이런 것 은 많이 했는데 잘 분다고 들 했죠. 동네분들이? 예. 그럼 달 밤에 나가가지고 산비탈에 앉아서 버들피리 불고 앉아 있고 그랬죠. 가족 분들도 그런 것틀을 인정하셨나요? 안했어요. 왜냐면 내가 왕손이거든요, 사실은. 그래서 사실은 서울에 올라오}서 다른 학교를 다니는 줄 알았어요, 집에서는. 그랬는데 이 국악원에 다닌다고 하 436 -

446 닌까 광대새끼 나온다고 그래가지고 집에서 아에 그때부터 지금까지 집에 못가 요. 그때 나와서 지금까지 한 번도 대천을 가본적이 없어요. 중학교때인가 대천 한번 갔는데, 너 이놈의 새끼 광대새끼 윗하러 왔냐고 막 형님이 날리치고 집 안이 날리치고. 한동네에서 살잖아요 이가면 이가끼리. 그죠? 그냥 난리를 쳐가 지고 그냥 서울 또 올라왔죠. 그 다음부터 거긴 가지 못했어요. 口 1-4. 동료나 작고한 전통 분야의 인물 중에 영째라고 생각하는 인물은? 나는 국악원 쪽에서는 김준연 선생이라고 있었어요 피리부는. 있었는데 그 양 반이 아주 다재다능하고 피리도 잘 불고. 정재국 선생의 선생이죠? 직접 선생이 죠. 그 분이 있고. 무용에서는 김보남 선생님. 지금도 김보남 선생님처럼 춤 잘 추는 사람 못봤어요 지금도. 그리고이병호라고 옛날에 악극단 따라다니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양반이 본래 피리캡이에요 아악부에. 이병호, 아악부 171 생인데 그 양반의 재능. 그 양반은 못하는 악기도 없어요. 서양악기든 국악기든. 배운적도 없는데 자기 스스로. 그래서 악극단을 조직해가지고 미 8군단이고 막 그랬거든요? 50년대에. 그양반. 난 아주 천재라고 생각해. 김준연 선생님을 어떤 이유로 영째라고 보셨는지요? 왜 그렇냐변요. 피리 소리를 들으면 간이 녹아 떨어져요. 그때는 정악하는 사 람은 민속음악을 안했거든요? 영산회상 한 바탕하면은요 간이 흘러 내리는 거 같아요. 그렇게 표현력이 좋았어요. 그 유일한 제자가 정재국 선생이잖아요. 그 냄새가 조금 풍기잖아요. 검보남 선생님 같은 경우 대단하다 는 표현이 너무 추상적이어셔 조금 더 구 체적으로 말씀해주시겠어요? 구체적으로 보면, 그 사람의 표현력이라든지, 춤의 모든 동작에서 있어서 우리 가 말로 표현 못할 경지를 가지고 있어요. 근데 그 사람이 앞에서변 뒤에는 열어 붙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그 양반이 앞에 서면 뒤에는 입 한번 방긋하지 못해요. 그 정도 위엄성을 가지고 있어요. 몸에서 우러나와요. 그냥 존경심이 가 요. 근데 그렇게 춤을 추면 뒤에서는 고스란히 고대로만 따라가죠. 몸에서 베어 나와요. 춤으로서는 그 사람 당할 사람 없다는 거죠. 근데 그 당시에는 50년대는 그 양반이 대한민국 최고의 무용선생이었거든요? 그 당시에는 김백봉선생 이런 사람이 학원을 안할테닌까. 그렇게 했었는데 그 양반이 일찍 가시는 바람에 판도 가 바뀌었다 나는 이렇게 지금도 생각하거든요? 그 양반이 만약에 살아 계셨으 면 무용계의 판도는 이렇게는 안됐을 것이다라고 생각해요. 口 1-5. 당신이 본격적으로 스승을 모시고 학습이 시작된 시기? 이 시기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스숭을 요시고 학습했던 내용을 시기별로 구체적으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양성소에 들어간 게 1955년에 들어가서

447 그 때 연세? 그때가 내가 15살 인가? 14살 인가 그래요. 해금으로 시작을 하셔서. 그렇죠. 고등학교 2학년 때에는 완전히 바꿔 버린거죠. 무용을 검보남 선생님께 배우시고. 그 이후에는요? 한 1년 지나닌까 김백봉선생님이 우리 원장한테 와서 홍구를 나한테 보내달라고. 그 때가 김백봉선생이 처음으로 학원을 냈을 때거든요? 목정동에다가. 여기서 재질 있는 사람을 내가 키워 줘야겠는데, 이홍구가 제일 재질 있다고 하는데 보내달라 고 해서 저녁에는 거기 가서 무료로 공부를 하고 여기 와서는 여기서 또 하고 그랬죠. 내가 공부한 사람은 김백봉 선생, 김천흥 선생, 김보남 선생 요 세분이죠. 검천홍 선생님께는 언제? 김천흥 선생은 60년대부터 했죠 내가. 김천홍 선생님한테는 그렇게 많은 공부 는 안하고 60년대부터 학원에서 조교 비슷하게 있었죠. 口 1-7. 음악가 집 안인가? 口 1-7-(2) 집얀 내에서 훌륭한 스숭의 판별하는 기준이 있었나요? 앞서 음악가 집안이 아니라고 하셨기 때문에 이 번 항목은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口 1-8. 자기발전의 동기는 어떻게 부여하셨습니까? (동료 간의 경쟁, 스숭의 격 려, 자신의 목표 등등) 나는 61 년에 양성소를 졸업하잖아요? 그래서 서울대학교를 갈려고 했는데, 주 위에서 서울대학교 가지 말고 약대를 가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생물선생이. 그래서 성균관대 약대를 시험봤는데 합격을 했어요. 합격했는데 등록금을 낼 수 가 없었어. 그래서 포기를 했죠. 그래서 그때부터 종로 3가에서 아주 조그만 방 을 하나 얻어서 학원을 하나 시작했죠. 학원을 시작하면서 이제 일반인들, 애들 이렇게 가리키고 있으면서. 가리키다 보닌까 민속무용의 춤사위가 다양하지 못하 잖아요. 그래서 이거는 뭔가 연구를 좀 해야겠다 싶어서 1 년에 한 번씩 지방을 돌아다녀요. 1 년에 한 번썩 지방을 내려가서 어느 지방인지도 정하지 않고 그냥 오늘은 전라도 지방 어디를 가봐야겠다 하면 그럼 그 지방을 무조건 가요. 아무 것도 모르고 가는 거죠. 가가지고 뭐 여름 같은 경우 나무 밑에서 노인네들 뭐 밭일 하고 그러다가 막걸리도 먹고 그러잖아요? 그러면 거기 가서 막걸리를 동 이로 사줘요. 사주고 선생님, 저는 우리나라 춤을 연구할려고 온 사람인데요 선 생님 이 막걸리 드시고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한번 노는 것을 보고 싶어요 그러면 해줘요. 그러면 그걸 갖다가 춤사위를 그려요 이렇게 내 나름대로. 그래 서 올라오고. 그래서 전국적으로 다 돌아다니며 그런 일을 했어요. 그래서 민속 무용의 춤사위를 바로 잡아 봐야 되겠다, 우리 선조들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근 데 그런 것을 하다보닌까 재있는게 있어요. 도서지방하고 도서지방이 아닌 지방

448 하고 춤사위가 달라요. 똑 같은 춤사위라도 냄새가 틀려요. 그런 것을 캐치해나 가는 거예요. 그런데서 재미를 찾으셨군요? 예. 그래가지고 1 년에는 꼭 한번씩 내려갔거든요? 그 동안에 톤 모아놨다가 풀 고오고 풀고오고. 선생님째서 어떤 식으로 더 잘 해야 겠다는 동기부여를 하셨는지요? 그때는 나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처음 김보남 선생님한테 할 적에는 정재에 대 한 연구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그 다음에 김천흥 선생님께는 거의 민 속무용을 했어요. 김백봉선생은 완전히 창작이죠? 창작무용을 하는데 이 세분야 어떻게 어울리게 할 것이냐 이런 생각을 했다가 김종필씨가 중앙정보부장 할 때 예그린 악단이라는 것을 설립했죠. 중앙정보부 소속이에요 그게. 그 때에 예 그런 악단에 들어가게 됐어요. 몇 년도? 그게 62년도인가 3년도인가 그럴꺼에요. 거기 가보닌까 권여성이라는 분이 안 무를 하는데영 마음에 안들어. 그래서 나와버렸어. 나왔는데 그 후에 예그린 악 단이 2년인가 3년인가 하다가 없어져 버렸어. 그랬는데 지금 세종문화회관 불타 기전에. 거기에서 노래하는 성춘향 이라는 것을 뮤지칼로 만든다 그러드라구요. 그래서 거기를 또 갔어요. 갔더니 김백봉선생이 있더라고. 자네가 여기 어떻게 왔나? 저도 좀 해볼라구요 자네가 하면 좋지 김백봉선생이 그러드라고. 자네 가 할게 하나 있다. 자기는 견우직녀가 만나는 것을 하기로 했대. 나좀 도와줘 라. 견우직녀에 대해 네가 책을 많이 봤다고 하닌까 고걸 좀 써서 나를 주고 내 밑에서 좀 해 줄래? 네, 그러죠. 언제 그걸 만들었어요. 김백봉선생이 안무자고 나는 거기서 조역역할을 하고 했는데. 그게 1 회 공연으로 끝났어요. 단원도 몇 백명이 했거든요? 근데 그 다음에 운영할 수가 없어서 1 회로 끝나버렸어. 근데 그게 호홍은 굉장히 좋았어요. 대대적인 호응이었어요. 끝났는데 김천흥 선생이 그결 보고 막 야단을 쳐요. 너는 학원에서 일하라고 했더니 맨날 나가더니 거기 가서 딴따라 될려고 그런다고 김천홍 선생님이 막 야단을 쳐요. 그래서 인제 인 제 안 하겠습니다. 그랬는데. 그러자 워커힐을 지었어. 워커힐 전속무용단이 생 겨. 그런데 거기에서 조연을 한 사람이 이미 워커힐 단장으로 갔단 말이지. 그 양반이 자네가 와서 무용단을 맡아주게. 자네의 안무력이면 춤은 이게 된다. 그 리고 캉캉 같은 것은 외국 사람들이 와서 하닌까 한국무용은 자네가 와서 좀 해 주게. 그게 워커힐 다 짓기 전이야. 그래서 지금 남대문 그 앞에다 큰 홀을 하나 얻어줘 단원 뽑아주고. 거기서 교육을 해가지고 막을 열었어. 굉장히 나도 인제 활성화가 되잖아요? 돈도 별고 좋았는데 또 김천흥 선생님 야단치는 거예요. 너 는 학원에서 일하라고 했더니 나가서 맨 딴따라 짓만하고 너 학원도 그만두고 나가버려라 그러는 거에요. 가만히 생각해 보닌까. 근데 한 가지 핵심이 너는 교육자를 맨들라고 했는데, 너는 딴따라 밖에 안되겠다. 네 생각이 그렇다면 딴 따라로 가라 그래서 고민을 했어요. 그래도 교육자가 낫겠지 그러고서는 거기

449 집어치고 딴 사람한테 넘기고 그랬죠. 풍파가 많았어요. 디 어련 시철 당신의 연습량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口 1-10-(D 하루 얼과 중 연습량 연습량은 일반 학과목과 똑같이 하닌까. 단체로 하닌까. 하루 얼과중에. 일과 중에. 그 월요일에는 뭐, 뭐 이렇게 편성되잖아요? 그 프로그램 안에서 한 시간 정도죠. 口 연습 자기만족도 평가기준(스스로 만족?, 일정한 시간동안 연습?) 한 시간을 해봐야 별 효과가 없어요. 왜 그러냐면 한 시간을 하면 획일적으로 똑 같이 가리키년까 거기서 자기 기능을 나타낼 수도 없고. 선생님 한 시간 끝나 고 나와 버리면 끝나는 거닌까 거기서는 뭐 별 큰 효과를 못 봤고, 수업이 다 나면 김보남 선생님께서 일반인들을 위한 강습회를 했어요. 그 강습회에서 내가 앞에서 강습생들을 가리키고 이러면서 인제 춤이 늘었다고 보면 되겠죠. 그 때 애주뭐 이런 애=. 수업시간 외에 개인연습은? 개인연습은 거의 못하고요 장소도 없고. 口 연습과 연주 외에 음악 감상을 할 수 았었습니까? 음악감상 시간도 없어요. 연주회라든지. 연주회라고 해봐야 그때는 지금처럼 극장이 많아서 연주회가 많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가서 상설공연. 국악원에서 하는거 그게 거의 다 였어요. 그리고 옛 날 명동 국립극장에서는 서양음악은 많이 하는데 한국음악은 그렇게 할 기회가 없고. 국악원 안에서 하는 것이 결국 한국음악이고, 민속음악하는 사람은 거의 굿집에 다니는게 다고. 그 정도 밖에 없었으니까 그때는. 口 전공 분야 외얘 다른 예술분야에 대한 학습과 경험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양성소때 음악을 좀 했다는 것이, 그래도 해금을 했다는 것이 지금은 많이 도 움이 돼요. 음악을 알아 들으닌까. 또 김백봉 선생에게서 공부한 것이 또 안무력 을 얻었다는거. 그 때 인제 송범선생이 와서 발레를 가르켰거든요? 바로 옆이닌 까. 그래서 김백봉선생님이 너는 발레도 좀 해야 한다. 춤을 할려면 그래서 거 기서 또 왔다갔다 1 년을 했으닌까 그런것들이 다 보탬이 된 거죠. 무용을 시작하고 나서는 해금을 전혀 연주를 하지 않으셨나요? 아에. 안했죠

450 무용을 전공하시면서 서양무용과 전통무용을 병행 하셨는데, 그 연습량을 어떻 게 조절 하셨는지요? 그닌까 고거를 저녁시간표를 쨌거든요? 그러면 김백봉 선생한테 한 시간 나오 면 송범선생님한테 가고. 왔다갔다 그 수업시간만 하고 나면 그 다음 부터는 내 연습시간이 없어요. 그 수업으로 끝나죠. 양성소 시절이시죠? 그렇죠. 口 여러 악기의 연주(예술 섭렵)가 당신의 전공부야에 어떤 영향을 미 치는지 구체적으로 제일 중요한 것이 음악을 먼저 알아들을 줄 알아야 돼죠. 음악을 모르면 춤을 수 가 없거든요? 요즘 사람들 춤추는 것은 박자에다만 맞추잖아요. 음악의 흐 름에 맞춰야 되잖아요 몸을. 흐름에 물결 흐르듯이 이렇게 음악의 흐름대로 몽이 움직여 줘야 하는데, 요즘은 네박자면 네박자에다만 딱 맞추닌까 춤이 중단되잖 아요? 끊어지죠 그죠? 그러닌까 음악을 알아야 된다는 거죠. 쉬운 예로 이매방선 생같은 사람이 음악을 알기 때문에 춤을 잘 추시는 거예요. 음악의 감성. 들어 있는 감정을 내 옴으로 끌어 오잖아요. 口 전통적으로 얘기명창, 소년명창 이란 말이 었습니다. 이 말에 대한 평 가 부탁합니다. 나는 그건 명창이라고 보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그거는 지금 껴의 재능이지 명 창 소리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얘기명창이라는 자체가 한계적 상황을 노출한다고 보이는데, 얘기명창은 명인이 되기 어렵다는 뜻인가요? 아니면 애기 때부터 명인의 자질은 타고 난다는 것인지요? 그것은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잘 했다고 그러겠죠. 근데 그건 어울리지 않는다 고 생각해요. 어떤 변에서? 왜 그러냐면, 어렸을 때 열심히 시키면 잘하는 놈도 있고 좀 못하는 놈도 있는 데 그걸 명창이라는 이름까지 붙인다는 것은 문제가 좀 있지 않느냐. 어렸을 때 참 잘했다, 재질이 있었다 이러면 좋겠죠 전통예술에 영재가 었다고 생각하는가? 지금 현재로서는 영재가 있다라고는 볼 수가 없고, 영재교육을 어떻게 하겠는 게 더 제시가 돼야 되겠죠? 대개 서양같은 경우를 보면은 어려서부터 시키거든. 어려서부터 시켜 거기에서 자기의 특기를 찾아내요 다른 분야에서는 영재가 었다는 전제하에 영재교육을 하고 었습니다. 그런데 전통예술분야에서는

451 영재는 현재는 있다고는 볼 수 없다, 난 그렇게 보거든? 어떻게 교육해서 영재 만들어 낼 것인가죠. 口 2-2. 전통예술영째라 할 만한 아동을 보신 척이 었습니까?(초등 중등 고둥) 그거는 판소리 같은 경우에서 가끔 TV같은 데서 나오잖아요? 거 애들 판소리 하는거. 그런 애들은 영재에 해당하다고 봐야 겠죠? TV말고 선생념째셔 직첩 보신적은 았으신지요? 직접 볼 적에는 별로 그렇게 찾아내기가 어렵잖겠는가하는 생각이에요. 口 2-3. 전통예술영째 선발에 적절한 연령은 언재라고 생각하십니까? (해당전 공 전통얼반) 연령은. 난 이렇게 봐요. 초등학교 교육부터 시작해야 되지 않겠느냐 고 연령 때. 그런데, 초등학교 1,2,3학년은 너무 어리죠? 그러닌까 이해가 안되죠. 뭘 가르 쳐도. 그러닌까 한 4학년 정도로 해서 졸업할 때까지가 한 2년 되나요? 그 정도 에서 총체적인 교육을 한번시켜 본단 말이죠. 악기도 시켜 보고 춤도 가르쳐 보 고 각 분야별로. 그래서 한 2년 정도 교육해서 그 사람의 특기성을 찾아 내야겠 죠. 재능을. 찾아내서 중학교 과정의 연령부터는 그 분야로 나누어서 자기 전공 분야로 나누어서 집중교육을 하면 되지 않겠느냐 그렇게 생각해요. 口 2-4. 무엇이 전통예술분야 영째성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생각나는 대로 무순 으로 말씀하셔도 팬찮습니다. 영재성이라는 것은 기능을 뛰어나게 만들어 가야 된다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영재는 태어나지 않거든요? 그것을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자기가 얼만큼 노력하 느냐에 따라 영재가 되거든요. 그런데 노력이 없는 사람은 영재는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안돼요. 그러닌까 그렇게 영재는 교육으로서 이루어져야 된다, 그래서 만 들어 내야 된다. 잠재력이라든지 창의력은? 있죠. 그게 중요하죠. 그러닌까 그것을 보기 위해서 초등학교 4학년에서부터 통합교 육을 시킨단 말이죠, 집중교육을 한 2 년. 그러면 거기서 그 사람의 특기적인 거나 그 사람의 머리나 이런걸 다 볼 수 있잖아요. 그러닌까 획일적으로 그때부터 나누어서 너는 뭐해라 악기를 나눠주지 말고 단소도 가르치고 춤도 가르치고 다 클라스로 가 르킨단 말이죠. 그런 다음에 그 중에 교육하는 사람들이 거기서 애는 이 방향으로 가 면 영재를 만들 수 있겠다 하는 거를 교수들이 찾아 내야겠죠. 교육하고 나서 채가 소질이 었다 채는 영째성이 었다 라는 것을 무슨 기준 을 가지고 판단할 수 었을까요? 그 기준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만약 악기 한다면 음악성을 봐야되겠죠. 음악 성이 얼만큼 있겠느냐

452 따라하거나? 그렇죠. 잘 따라하고, 그걸 하나 해주변 어떻게 껴가 더 첨부하면서 이 악성을 나타내는 기능자들이 있거든요. 창의력까지? 창의력까지 봐야 되겠죠. 그런걸 찾아 내는게 중요하겠죠. 口 2-5. 위에 말씀하신 내용은 해당전공의 영째성인가요? 아니면 전통 전반인가 요? 구분해서 말씀해주설 수 었을까요? 전체가 다 그렇죠. 전통일반에서. 口 2-6. 선생님은 해당 전공의 영째를 알아볼 때 무엇을 어떻게 해보시겠습니 까? 노래를 부르게 하나요? 춤을 추게? 구체적으로 어떤 노래 행동을 시켜 보시는 지요? 그것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 그 사람의 이해력이 제일 중요하죠. 뭐를 하나 던져 줬을 때. 구체적으로 만약에 내가 춤을 해서 이렇게 손을 들었다. 이것은 동작을 설 명해 준단 말이죠? 이건 이렇게 해서 이렇게도 할 수 있고 이렇게도 할 수 있다. 그러면 만약 연극에서 아이고 배 아퍼, 배 아퍼 내가 이랬다. 그럼 너는 배 아플 표 현을 할 때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이러면서 껴 창의력을 자꾸 봐야겠죠. 그러면 배 아프다는 연기가 꼭 내가 했던 것만 아니고 다양하게 나올 수 있잖아요. 아 그럼 이 렇게도 얘는 창의력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것을 찾아내야 되겠죠. 口 2-7. 어련 영째들의 선발에서 중요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선 중요한 점은 맨 처음 선발 할 적에는, 그 동안에 껴네들이 했던 것들이 있을거 아 니에요? 만약에 영재교육을 받기 위해서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했다던지 그렇게 한 것 을 한 번해봐라 니가 했던 거를. 그래가지고 그 중에서 춤 같은 경우에는 움직임을 본다 든지, 거기에서 음악을 얼만큼 알아듣는 다는지, 거기는 뭐 재능이라는 것은 필요 없으닌 까. 그 당시에는 그죠? 그런 것을 캐치를 해야 되겠죠. 그러면 채는 이런 분야에 가능성 이 있다, 안되겠다 그런 것이 이제 표출이 되겠죠 성취능력만을 가지고 충분히 판단하기에는. 뭔가 열정이라든지, 끈기라든지 다 른 고려대상이 없을까요? 그거는 처음부터는 그게 나타나지 않죠. 그거는 교육하면서 나타나야 되는 거 년까. 그래서 교육을 하다보면은 껴가 어느 정도의 성취력이라든가, 어느 정도의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지 이런게 나타나잖아요. 그래서 그 나타나는 부분을 갖고 또 평가를 해야 되겠죠. 口 2-8. 전통 관련 영재 발굴에셔 어떤 지표가 가장 중요합니까? 중요한 순서대 로 말씀해주십시요. 가장 중요한 것은 영재 교육이라는 것은 지금 이제 우리 음악을 우리 문화에 대한 모든 것들을 좀 세계에 널리 이렇게 알리고 펼쳐나가고. 세계가 한 무대가

453 되닌까 거기에서 우리문화가 우뚝 설 수 있는 그런 자질있는 사람을 양성하는 거 아니겠어요? 그러닌까 그렇게 갈 수 있는 부분들을 어떻게 교육하는냐 허는 문제점에서는 처음에는 획일적인 교육은 안된다, 첫째로. 왜? 지금의 모든 만약 에 무용같은 경우는 획일적인 교육이거든요? 선생이 이렇게 하면 꼭 요렇게 만 해야돼, 손가락도 요렇게 하면 꼭 요렇게 해야돼 이건 아니다라는 거죠. 그닌까 어느 하나에 만약에 살풀이면 살풀이 한 작품을 선생이 했다면 이것을 네 나름 대로의 네 작품으로서 소화시켜서 하나의 네 작품을 한번 만들어봐라 그러면서 껴의 창의력을 자꾸 키워 가야되겠죠. 음악도 마찬가지에요. 음악도 악보보고 악 보대로 하는 것은 누구나 다 해요. 그럼 그 악보를 놓고 교육을 했단 말이죠. 그 러면 그 악보를 놓고 교육을 해가지고 그 악보속에 담겨 있는 음악성이 얼만큼 가있느냐 거기에서 자기 창의력이. 같은 악곡을 연주하더라도 다르게 나갈 수 도 있잖아요? 그런 그 악성을 얼만큼 가지고 있느냐를 먼저 캐치 해야 된다고 보죠, 두 번째는. 그것이 캐치가 된다면, 애는 요걸 가르켜 주변은 요 이상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러닌까 악성이죠 그게. 무용같으면 재질이고. 근데, 이런 것을 교육을 하다보면 나타나게 되잖아요? 근데 그것을 못할 때는 그것은 영재교육에서 퇴출시켜야 되켓죠. 다 끌고 갈려고 생각한다면 안된다는 생각이 죠. 그 중에서 시기별로 골라서 꼭 가능한 사람만 교육을 한다. 만약에 처음에 영재교육에 들어온 사람이 열명이라면 그 중에서 하나만 남아도 족하다는 거죠. 그렇게 찾아가야 되지 않겠느냐. 口 2-9. 영째의 기교가 아난 창의력과 동기를 알 }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창의성을 알아 볼 수 있는 그 방법이라는 것은. 악기를 타도 그 타는 방법이 똑같지 않고 다르거든요? 껴들이 나타내는 음색이라는게. 거기서 충분히 나올 수 있어요. 춤도 마찬가지고. 춤 같은 경우는. 춤 같은 경우는 껴가 옴으로 표출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죠. 감성이라든지 감각성이 어느 정도 좋으냐. 시각이라든지 자기의 표정이라든지 이런것들. 이런 것들을 찾아내야 겠죠. 왜 그러냐면, 여기서 내가 이렇게 춤을 추고 있는데 이렇 게 자기 앞만 보고 추는 사람이 있고, 주위를 다 자기 한 몸에 안고 추는 사람이 있단 말이죠. 그러면 내 몸안에 이 객석을 다 안을 수 있는 포용력을 가졌느냐. 춤이라는 것은 객석을 포용해줘야 되거든요? 그래야 감동이 오죠. 나만 기능 아 무리 잘 춰도 객석에서 감동이 안 오면 아무 소용이 없거든요. 그런 기능을 가졌 느냐 이런 것을 봐야 되겠죠. 그러닌까 가리킬 적에도 교수들이 그런 분야를 집 중적으로 이렇게 대화를 해가면서 해줘야 되겠죠. 그런데 우리나라 교육은 너무 획일적이라 그게 이뤄 질런지는 모르지만 그래야 된다고 난 생각을 해. 口 영찌 발굴에서 재안하질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었나요? 좋은 방법이라고 하면은 그 사람의 창의력을 제일 중요하다고 난 생각해. 그닌 까 어떤 과제를 하나 준단 말이죠. 이건 뭐 교육을 안한 분야예요. 그러닌까 레

454 파토리를 하나줘요. 그러닌까 연극에서 판토마임식으로 딱 던져 준단 말이죠. 이 런 이런 내용을 가지고 네가 몇 분 춤을 춰봐라, 즉석에서. 그러면 어느정도 재 가 해나갈 수 있느냐 그런 것을 봐야 되겠죠. 어떤 주제를 주변 그 주제 내용을 가지고 몸으로 표현할 수 있고 그럴 수 있도록. 그러면 뭐 음악 같은 경우는 그 음악의 어떤 주제를 주변 작곡하는 사람이 아니면 그건 안되잖아요? 음악의 어 떤 하나의 악보를 준단말이죠. 이 악보를 줘가지고. 그러년까 초견이죠? 줘가지 고 이것을 네 나름대로 표현해 봐라, 자유롭게 표현해봐라, 이 악보 속에서 자유 롭게 한번 표현해봐라. 악기를 가지고. 그러면 그 사람이 얼만큼 해내느냐를 보 면 되겠죠. 더 전통예술영재를 선발하는 전문가들 어떤 방식으로 선정하는 것이 가장 공정하고 정확할 것이라 보성나까? 우선 선발할 적에는 그 기준을 어디다 둬야 될 것이냐가 먼저 선정되야 되겠 죠. 기준을. 그래서 그 기준을 몇 가지로 만들어야 되겠죠. 이런 면 보고, 또 표 현력을 본다든지. 그리고 인성을 본다든지 여러가지 다 봐야 되겠죠. 재능이 아 무리 좋아도 인성이 안 되있으면 그건 절대 안 되거든요? 고런 프로그램을 설정 해가지고 고 분야를 집중적으로 봐야 되겠죠. 만약 그 프로그램을 딴다면 그 항목에는 어떤 것들이 추가될 수 있을 까요? 내가 생각하기에는 우선 항목이 그렇게 많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닌 까 그 사람을 딱 앞에다 세워나도 얼굴이나 옴매나 이런데서. 춤 같으면 풍겨 나 오는 뭔가가 나오거든요? 앞에 딱 세워나도? 그랬을 때 그것을 보고 애는 이런 변에는 좀 있을 것 같고,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을 할 수 있죠. 그러면 애는 이런 변에서 과제를 한 번 줘 보자. 그래서 즉석에서 한 번 해봐라 이런 식으로도 할 수 있겠죠. 과제는 여러 가지를 만들어야 되겠죠. 내용은. 그렇죠? 애는 똑같은 과제를 주변 안 되년까, 다 다른 과제를 줘야 되닌까. 口 국내에서 전통예술영찌들이 성장하는데 가장 큰 걸렴돌이 되고 있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성니까? 경제죠. 경제혁? 네. 왜 그러냐면 지금의. 언제. 음악을 만약에 전공한다고 해도 개인레슨을 안 받은 애와 개인레슨을 받은 사람과는 차이가 굉장히 납니다. 그러년까 그런 분야 를 어떻게 할 것냐. 애는 재질은 있는데 개인레슨 받을 능력이 없어. 그러닌까 그 교육을 함에 있어서 개인레슨을 받지 아니하고 영재교육원에서 완전히 길러 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가야되겠죠. 일단 거기 들어오면 저만 노력하면 영 재가 될 수 있도록. 그리고 영재를 교육했다, 그렇다면 애를 어떻게 이용해서 쓸 것이냐 허는 문제까지는 되야되겠죠. 그냥 영재교육 해 놓고 내 팽개치면 아무 소용없어요. 껴의 갈 길을 어떻게 우리가 해서 이것을 영구적으로 할 수 있고 우 리 문화속에서 껴가 클 수 있게 만들어주고, 또 껴가 또 그렇게 교육을 다른 사

455 람에게 해서 이어 갈 수 있게. 이게 중요한데 영재 교육 딱 해놓고선 졸업하변 너 갈 데로 가 그러면 아무 소용없다는 거에요. 영재 교육 뭐하러 해? 그러닌까 이것은 학교차원도 중요하지만. 영재교육원을 일단 만들었다면 국가적인 차원에 서 영재를 교육했을 때 애네들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해외. 뭐 이렇게 뭐. 이렇게 한다든지, 저변확대를 시킨다든지, 여러가지 기능을 줄 수 있잖아요. 넌 뭐 이태 리가서 이 분야를. 한국 것을 해서 교육을 해서 이렇게 활성화 시키고 너는 저 분야로 가서 이런 과제를 각 나라에. 예를 들어 갖다 심어가지고 우리 한국문화 를 하나의 세계문화로 이뤄갈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을 정부에서 해줄수 있도록 해줘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애네들을 길러 봤자 아무 소용없다는 거죠. 그러닌 까 쉬운 예로 이런 예가 있어요. 일본에 가부키는 많이 봤잖아요? 별거 없어요 동작. 그렇지 않아요? 재미도 없고. 근데 껴네들은 어떻게 하느냐. 우리나라는 너 무 안일해서 그래요. 껴네들은 각 세계에 나와있는 일본 기업들 있잖아요? 기업 들이 껴네들을 데려가요. 그래가지고 거기서 일본 문화의 교육을 맏게 시켜요. 그 나라 사람들한테 L 기업 안에서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가지고. 그리고 껴네들로 인해서 공연도 해줘요 정기적으로. 그러면 껴네들이 일본문화를 알잖아요? 그러 면 기업은 어떤 이익이 있느냐. 그 나라의 문화를 알게 되면 그 나라 문화 속에 서 만들어진 제품올 사게 된단 말이죠. 그걸 이용하는 거에요. 그러닌까 기업도 잘되고 문화도 살리고. 일본 문화가 세계에 다 있게 되죠. 세계 어디를 가도 가 부키 없는 데가 없어요. 다 기업에서 해요 그렇게. 차 문화도 보세요. 차 문화 사 실 우런데 지네들끼리 먼저서 거기서부터 시작해요. 기모노 업는거 이런거 뭐 다. 그래가지고 그것을 일 년에 몇 번씩 공연도 해주고 뭐 행사를 하면은 그 민 족들이 일본민족이 대단한 사람들이다 이렇게 보거든요. 그러면 그만큼 공산품이 나 이런 것들이 잘 수출되고 기업도 잘되고. 그러닌까 영재교육을 할 적에는 국 가의 경비가 부족하다면은 기업과 연계시켜서라도 일본과 같은 그런 임무를 껴 들한테 준단말이죠. 충분히 생활할 수 있는 결해서. 그러면 세계가 다 그렇게 가 봐요.우리나라 문화가 세계에 퍼지겠어요? 그때는 염려할 바가 없죠. 교육적인 환경에서만 봤을 때 걸렴톨이 돼는 것은 무엇인가요? 교육적인 면에서 봤을 때 획일적인 교육은 안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맨날 이 매방류, 한영숙류, 강선영류. 나는 껴들한테 그래요. 니네들이 학점을 따기 위해 서는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같은 살풀이라도 조금씩 다르지? 그러면 그거가 A라 는 사람이 소화시킬 수 있는 춤과 B 라는 사람이 소화시킬 춤이 다르다. 같은 살 풀이라도 왜 그 사람 체형에 따라서 그 사람 성격에 따라서 다르다. 근데 남의 것 이매방류 아무리 백번을 흉내내봐야 그것은 원숭아 밖에 안된다. 그것은 흉내 내는 것 뿐이야.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몽속에서 우러나는 감수성이 몸으로 표 출되어야 하는데 동작에서 너네들 그거 표출안되지 않느냐.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많은 여러 가지를 배워서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서 내가 다시 그걸 다시 구성해가지고 내 결로 해서 내가 표출시켜야 되는 것이다. 그것이 네 예술 이 나갈 길이지, 남의 것 아무리 해봐야 그건 원숭이 밖에 더 되느냐. 나는 그런 얘기를 해요. 그러닌까 난 정재를 가르켜도 춘앵전을 왜 이렇게만 추느냐. 이

456 사위를 가지고도 니가 얼마만큼 다양하게 만들어 갈 수 있다. 그러면 그걸 어떻 게 할 것이냐. 그러면 순조 때 맨들었다면 순조때를 그대로 이어갈 것이냐. 이거 21 세기의 춤으로 소화를 시켜라 이거죠 나는. 영째들에 있어서는. 영재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영재라고 보지 말라는 거죠. 교육을 통해서 영재를 만드라는 거죠. 그래서 그 영재를 만들 때는 획일적인 교육은 안된다는 것은 바 로 그런 문제 때문에 그렇죠. 그러닌까 만약에 똑같이 살풀이를. 여러 사람의 살 풀이를 가르친단 말이죠. 요걸로 A, B 다 각자 네 살풀이를 한 번 만들어 봐라, 최대한으로 노력해서 언제까지 해가지고 이걸 한번 보자. 그러면 그 사람이 얼 만큼 해나가느냐 이런게 중요한 거죠. 口 전통예술영 재가 앞으로 성장하여 음악가로서 당당(강당)해 야 할 얼틀 을 어떤 것이 었겠는가? 감당해야 될 부분들은 그것은 영재교육을 하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이 나갈길을. 아까 내가 얘기한데로 그 사람의 갈 길을 펼쳐 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다닌까.해야 될 일을 줘야지. 과제를 줘야지. 그게 안 되고 교육해서 내버려 두 면 아무 소용없는데 뭘. 예산낭비밖에 안된다고 생각해. 전통예술 영찌들이 개별척으로 성장했을 때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할까요? 자기 연구한 분야에서 최고의 수준의 자기 갈 길의 방향을 잡아야 겠죠. 국가 에서 안 해준다면 교수들이 자꾸 해줘야 돼겠죠. 너는 이러닌까 이런 쪽으로 가 봐라. 든지, 너는 이렇게 해. 라든지. 껴를 교육하다보면 껴의 능력을 얄 수 있잖 아요? 그러닌까 너는 이런 능력을 가졌으닌까 이런 식으로 한번 해봐라. 한다든 지. 또는 예를 들어서 외국학교와 외국의 대학이라든지 이런데서 이렇게 보내 테닌까 네가 거기 가서 뭐를 좀 해보겠느냐 해서 이렇게 연결 시켜 준다든지 이런 연결고리가 있어야 될 거에요. 그러닌까 우리나라에서는 결국 가서 해봐야 단체 밖에 갈 데가 없거든? 지금 현실이? 그거는 영재교육 안 해도 돼요. 영재교육을 꾸준히 받은 사람이 성장했을 때 어떤 역할들을 해 줘야 할 까요? 위치에 올라가서는. 껴네들의 활동무대만 딱 열어 줬으면 그 다음은 지네들이 펼쳐 가야 되겠죠. 세계에 관련돼서 어느 나라가서 그 분야에 우리것을 전파시킨 다든지 우리나라 것을 교육시켜가지고 우리문화를 세계화시킨다든지 이런 것을 해주변 거기 가서 껴가 이런 활동을 충실히 하면 되겠죠. 3-1(1-1). 양성소시절 검보남 선생님께 개별적으로 레슨을 받으셨다고 하셨 는데, 이 때 배운 춤을 순서대로 말씀해 주십시오. 고때 배운 춤은. 승무, 살풀이, 그담에 기본춤. 기본 춤이라면. 기본무용 그냥. 기본동작. 기본동작하고 나서 승무 살풀이를 들어가고 장생보

457 연지무, 춘앵전, 그리고 민속무용 여러 가지. 기타 민속무용이라고 하면. 민속이라면. 대개 김보남 선생님께서 일반적으로 가리키는 그런 춤들이닌까 지 게춤이라든지, 민요에다 맞춰서 추는 춤이라든지 뭐 이런거. 口 3-2. 이 때 레슨 1번에 몇 시간 정도 하셨나요? 우리는 보통 레슨을 받을 때 2시간. 口 3-3. 김보남 선생님째서 처음부터 가르쳤던 방법은 무엇이었나요? 그 양반은 처음부터 방법이 달라요. 처음부터 발동작. 맨 처음에 들어가면 발 동작만 한 일주일을해요. 발동작만 일주일을 한 다음에 거기다 손동작을 한 이주 붙여서 연습을 시켜요. 그러면 발동작과 손동작이 합치가 되는지 그것을 보면 서 거기에서 그 동작을 보고 이 사람이 춤을 춰도 되는건가, 안되는 건가를 파악 을 해요. 그래서 춤을 춰도 안 될 사람은 너는 춤 추지 말아라 아주 짤라버려 요. 그래서 아주 많은 사람을 가리키지 않아요. 口 3-4(1-4). 선생님째서 영째라고 언정하신 분 중에 이병호씨의 영째성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설명 부탁드립니다. 인제 그 양반은. 아악부 1 기 생인데. 우리는 그 양반한테는 직접 배우지는 못 했지만 그 양반이 당시 사회 활동을 하는데, 그 본래 피리를 전공했거든요. 그런 데 서양의 모든 관악기는 다해. 배운 적이 없는데요? 없는데도 관악기를 다해. 그래서 그 당시에 악극단에서 서양 악기의 주자로서 유명했죠. 주로 트럼멧. 그닌까 그런 정도의 머리를 가졌다 이 말이죠. 피려 하나를 잘 하고 그것을 또 응용해서 서양악기도. 서양 관악기는 다 했어. 플릇도 하고 뭐. 못한 게 없어요. 口 3-5(1-5).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스송을 모시고 푸용을 시작 하 셨는데요, 그렇다면 그 이전의 학습내용에 대해 다시한번 나이순대로 말씀해 주성시오. 내가 처음에 양성소에 들어온 것은 15살에 들어왔어요. 중학교 과정으로. 그렇죠. 그 때에는 뭐 처음에는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고 들어왔으닌까 뭐 가 야금이 어떤지 다른 악기가 어떤지 춤이 뭔지도 모르고 들어왔는데 선생이 하라 는대로 했을 뿐이죠. 그런데 그것이 주입교육이냐 아니면 일반적인 교육이냐에 따라서 그 학생들이 받아들이는 태도라든지 받아들여서 그 사람이 익숙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주입교육이 필요했다. 왜 내가 그러냐면은 다른 악기들은 거

458 의 중학교때는 일반교육으로 했기 때문에 그냥 피리 불어도 그만 퉁소 불어도 그만 그랬거든요. 그래놓고 전공과목을 해서 주입교육을 시키는데, 그럴 때에는 우리도 피리 소리만 나면 되는가보다 뭐 이러고 했는데. 전공과목으로 나눠서 주 입교육을 할 때는 그게 달라지거든요. 15세 때 시작하셨을 때는 얼반과정으로? 예. 일반과정 시키지. 한 1 년. 그러면 얼년 동안 모든 악기를 다. 모든 악기. 인제 피리, 퉁소 이것 가르키죠. 선생님째서 해금이 전공이셨기 때문에 관악기 위주로? 아니, 모두다. 현악기 하는 사람들도. 그러면은 15세 때는 1년 동안 그렇게 배우시고, 16세 때 해급전공. 해금 전공과목으로 가죠. 그때는 주입교육을 시켜요. 그리고 나서 17세 때 무용을 시작하셨구요. 예. 口 3-6(1-10). 김보남 선생님 강습회에서 선생님께서 대신 수강생들을 가르치셨 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때 보통 몇 시간 정도를 가르치셨나요? 보통. 강습생들은 저녁 5시에 시작해서 대개 7 시, 8시 정도 하죠. 口 3-7(1-11). 연주 외에 음악감상 시간이 많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는데, 혹시 레코드를 많이 들으셨나요? 없어요. 그러면 혹시 굿판 이나 국악원공연 둥을 자주 보러 가셨나요? 그렇죠. 국립국악원에서는 그때 일반인을 위해서 공연을 해준 적이 많지는 않고. 가끔 일소당이라는 곳에서 공연을 했는데. 있거든요? 얼소당이요? 일소당이라고 해서 무대가 돼있어요 국립국악원 안에. 거기서 일반인들을 위해 서 공연을 하죠. 그래서 춤추는 사람들은 그 당시에 많지 안잖아요? 그러닌까 외 부에서 춤추는 사람을 데려다가 공연하고, 가야금이라든지 이런 것은 대개 서공 철 선생이라든지 이런 분을 모셔다하고 그랬죠. 선생님, 그렇다면 그 당시 굿판은 많이 다니셨나요? 굿판은 굉장히 많이 갔죠. 거 할미당이라고 해서. 지금은 어디냐면 구파발 넘 어가는데 그 고개 위에. 옛날에는 거기가 장의사가 있었어요. 지금은 벽제로 갔 지만. 거기에 있었는데 거기 아래에 올라가기 전에 굿집만 확 있어요 할미당이 라고. 거기는 거의 매일 가다시피 했죠. 굿 구경하러

459 口 ). 송법, 김백봉 선생님께 배우설 때가 양성소시철 몇 학년 때의 일 인가요? 그라고 각각 학습시간은 몇 시간 정도였나요? 그 때가 고2 때죠. 학습은 한 시간 정도. 口 3-9. 얘기명창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어렸을 때 참 잘했다, 재질이 있었다 정도로 표현하는 것이 적당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영찌 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영재라는 것은 난 만들어 가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왜그러 냐면 지금 어린애들이 아동명창 애기명창 한다면 요즘에도 애기명창이라고 해서 방송에도 나오고 판소리하는 애들이 나오는데 고 수준에서는 제일 낳다. 영째는 아니다? 영재는 아니다. 그렇다면 영재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고 수준에서 제일 낫다는 것은 고 사람이 잘 키우면 큰 재목이 될 수 있다, 고런 것을 봤다, 그러면 그 사람을 어떻게 키울 것이냐 하는 문제가 바로 영재교육이다. 나는 그 런 생각이 들어. 口 3-10(2-4). 선생님째서는 초둥학교4학년부터 시작해서 2년 정도를 집중교육 (총체교육)을 한 다음에 그 안에서 각자의 소질에 맞는 전공을 가려주어야 한 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2년 이라는 기간 동안의 총체교육은 각각의 분야 에 어느 정도의 수준을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하는 것업니까? 고거는 그 사람의 재질을 보는 기간이닌까. 음악성이 있는지 또 춤을 추면 춤에 대한 재질이 있는지 보는데. 거기에는 각 악기가 다 있을 거 아니에요? 각 악기 중에서 이 학 생은 어느 악기가 합당한 건지. 이런 것을 파악하는 기간으로 보면 되겠죠 어느 정도를 해야 해당 악기에 소질이 었다고 얘기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만약에 내가 피리를 분다면, 피리의 기본선율을 우선 가리킬 거 아닙니 까? 기본 선율을 가리켜서 놓으면은 그것을 자기 나름대로 변형하는 관계가 나 오죠? 고 기본 선율을 가지고 민요도 불어보게 시키고 또 다른것도 하게 시킨단 말이죠. 그러면 거기에서 껴가 그 기본선율을 가지고 과연 민요가락을 제 나름대 로 불어갈 수 있겠느냐, 다른 음악도 이렇게 해 나갈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을 보 면은 아 이 사람은 응용할 수 있는 충분한 기능이 있겠구나 하는 걸 알 수 있 죠. 그런데 그런 것을 기본교육만 시켰는데 다른 과제를 시켰을 때 다른 것을 못 한다 그러면 다른 것도 역시 가리킨 것은 잘 하는데 자기 창작력은 없다. 찌질이 었느냐 없느냐 전공분야를 가려주기 전에는 살펴 보아야 하는 것이 창 의성이네요? 그렇죠. 창의성이죠. 예술은 창의성이 없으면 소용이 없거든요. 口 3-11(2-7). 영재선발 할 때에 시켜봐서 춤 같은 경우에는 움직임을 본다든지, 거 기에서 음악을 얼만큼 알아듣는 다는지 둥을 보아야 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이 450 -

460 때 어떻게 하면 그 애들이 음악을 알아듣는다는 것을 파악할 수 었나요? 그건 있죠. 왜 그러냐면 똑 같은 기본을 갈켰단 말이죠. 어떤 방법으로든지 가르켰 어. 가리키고 나면은 장고 장단에 맞춰서도 가리키고 음악을 틀어놓고도 가리키고 그러죠. 그러면 껴가 웅직임에 대해서 음악의 선율을 어떻게 받아들이냐. 그러면 춤 이라고 하면은 춤을 추는데 음악의 선율에 따라서 춤동작이 이어져야 되잖아요? 그 춤동작이 음악의 선율에 따라서 가느냐, 아니면 또박또박 박자만 가느냐 에 구분이 되죠. 열 명을 가리키면 또박또박 박자는 잘 맞는데, 음악의 흐름을 맞추지 못하는 애가 있어요. 그러면 음악의 흐름을 따라가는 애가 우선적이 되겠죠 口 영째를 선발할 때 춤 같은 경우에는 대상자롤 세워놨을 때 풍겨 나오 는 뭔가가 있어서 이를 선발기준으로 활용할 수 었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이것 을 좀 더 구체척으로 설명해 주질 수 있을까요? 사람을 딱 인제. 처음에 껴를 아무도 몰라요, 심사위원도 몰라요. 그러면 껴의 몽 과 눈에서 비춰오는 예능성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해요. 껴가 어떻게 움직이냐하는. 움직이기 전에 얘를 보면 그 몸매가 어떻게 유지돼서 애가 크면 그 몸매가 어떻게 될 것이다 허는 것을 감지를 해야되죠 심사위원들은. 껴의 눈매에서 표정을 보면 아 요놈은. 눈매에서 모든 것을 찾아 낼 수 있어요. 그러면 그 표정을 볼 수가 있 죠. 그래가지고 1차 시험을 만약 거기서 선발했다면 2차에서는 어느 동작하나 줘가 지고 거기서 표정까지를 해봐라 한다든지 이런 식으로 선정이 돼야겠죠. 口 4-1. 전공 분야 외의 다른 예술분야 (혹은 다른 분야)에 관심을 두신 적이 었 습니까? 口 예술분야가 아니라면 어떤 분야업니까? 있죠. 나는 고3때 연극을 좀 했거든요. 관심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때는 드라마 센타를 처음 유치진선생이 지었거든요. 그래가지고 거기 2 기생. 신구 뭐 이런 사 람들이죠. 그 사람들하고 소극장운동을 그때 많이들 했어요. 그래가지고 같이 탱 기면서 연극을 좀 했고 그랬죠. 극단에 소속되신건가요? 그러닌까 그 사람이 할 때 따라 탱기고 그걸 좋아서 하고. 근데 난 연극을 못 하닌까 따라앵기변서 그 뒤치다꺼리랑 다 하는거죠. 연극 많이 보시고? 그렇죠. 보고 느끼고 그랬죠. 연극을 봤던 예술적 경험이 구체적으로 무용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치던가요? 굉장히 영향이 있죠. 왜 그러냐면 연극을 하게 되면 연극하는 과정 속에 표정 이라든지, 연극하는게 있잖아요? 그것을, 춤을 추는데도 그게 펼요하거든요. 춤도 하나의 연극이거든요. 표현력을. 예. 표현력을 가질 수 있죠. 그래서 많이 따라 다닌거죠. 口 4-2. 학습을 하던 시철 전공분야 외에 다른 예술분야의 전공자와 교분야 있

461 으셨나요? 口 4-2-CD 었다면 어떤 전공의 누구이며, 어떻게 내 전공과 관련되는지 말씀해 주질 수 있나요? 사례를 들어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죠. 그러닌까 내가 교분을 가지고 있던 것은 그 당시에 연극하는 사람들하 고, 신구, 뭐 이런 애들하고 소극장운동 같이 이렇게 하고 거기 밥도 사주고 뭐 이렇게 했는데. 그 다음에는 영화 쪽에 한번 들어가 봤어요. 그래서 이용민 감독 이라고. 이용민 감독이 어디 살았냐면은 해장국 잘하는 청진동 거기서 여관을 하 고 있었어 덕홍여관이라고 하고 있었는데. 그 여관에 내가 묵으면서 영화에 미친 적이 있어요. 그래가지고 그때 했던 영화가 <시집가던날>, <살이마>, <악의꽃> 이런결 했어요. 그런걸 했는데 그 촬영장에 따라다니면서 그 스랩정도를 보게됐 죠. 그 감독이 그런걸 시켜가지고. 그래서 영화 쪽에도 한번 생각을 했었는데, 그 때는 내가 시나리오를 좀 써볼까 하는 생각에 그래서 영화 쪽에 갔었는데 내가 실망한게 한번 있어요.<가야금>이라는 영화가 나왔어요. 극본은 유치진선생이 썼는데. 그 <가야금>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난영공주가 나오는데 난영공주가 가 실왕의 오라버니거든요? 근데 딸로 나와요. 공주인데요? 예. 그러닌까 자기 선대. 그래서 연대가 틀려. 그래서 이용민 감독이 그걸 보고 나보고 수정을 해보라고 해서 해봤더니 거 연대가 틀립니다. 딸이 아니고 오라 버닌데 어떻게 딸로 나왔습니까. 그대로 찍으면 문제가 좀 있지 않겠습니까? 그 랬어요. 그랬더니 그러네. 그 대가 선생님이 쓰신건데 내가 또 그걸 고치라고 할 수는 없고 곤란하네 그러드라구요. 그래서 이용민 감독이 감독을 안 하고 권용 순감독이 <가야금>이라는 영화를 만들었죠. 그러한 교분관계가 선생념 전공에 어떤 여향을 미치던가요? 그런 것들이 전부 나하고의 영향도 물론 있었겠죠. 그런데 내가 방향 점을 으로 할 것이냐, 아니면 다른 것을 한 번 해볼것이냐 허는 생각에서 이것저것 연 해봤던 거죠. 해봤는데 결국 가서 보면 그런 영향이 굉장히 많이 미쳐요. 왜냐면은 내가 춤을 출 때는. 지금은 소품 만드는 사람들이 따로따로 있잖아. 의 상 만드는 사람 따로따로 다 있잖아요. 그런데 그것을 직접보고 내가 보고 느꼈 을 때는 아 장치는, 이런 종목의 장치는 이렇게 들어가는 구나. 저건 저렇게 어가는 구나. 그 후에는 무용에 관한 장치는 내손으로 거의 만들다 시피 했거든 요 김천홍 선생님 공연 때. 그 때의 경험 때문에. 예. 경험 때문에. 그러면 교분을 가졌던 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셨겠네요? 그렇죠. 그러면 대화를 통해서 예술세계가 넓어졌다든지

462 넓어졌죠. 그런 교분관계가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왜 그러냐면 나는 선생님한테 배운대로 춤만 췄잖아요. 그런데 그런거를 보면 서 아 이보다 더 넓은 춤의 세계가 있을 것이다 하는 것을 느끼고 지방에 다니 면서 우리 춤사위 연구라는 것을 하게됐죠. 예술의 세계를 확장시키는데 영향을 많이 미친 거네요? 예. 그렇죠. 口 4-3. 다른 분야의 관심과 경험을 자신의 전공 분야에 활용한 기억이 았으시 나요? 작은 사례를 들어 설명해 주설 수 있겠는지요? 그것이. 김천흥 선생님이 서울시 문화상 탄 것이 처용랑이라는 무극을 만들어 서 서울시 문화상을 탓는데 그 때에 의상도안하고 소품 하고 무대장치 이런 동 안을 거의 내가 했죠. 그때는 목공소에다 그것을 해가지고 도안을 해서 맡겨야 돼요. 전문가가 없으닌까. 그래 목공소에서 만들어오면 아 이거 잘 못 만틀어왔 다 또 바꾸고 이렇게 했죠. 무대에 대한 활용들을. 그렇죠. 활용들을 하게 되는 거죠. 口 4-4. 다른 예술분야를 자기 전공분야와 함께 배운다면 어떤 잇점이 었겠는지 말씀해 주시연 좋겠습니다. 무용하고 함께 배울려면. 연극이 제일 중요하죠. 고 다음에 음악, 고 다음에 중 요한 것이 고고학이에요. 연극을 함께 배웠을 때, 어떤 엇점이 있는지요? 연극을 함께 한다면 그 사람의 표현력. 극적인 무대에서 판토마임식의 극적인 그런 냄새를 자기 동작 속에서 같이 갈 수가 있죠. 그러면 관중을 자기 품안에 안을 수 있다는 거죠. 고고학 같은 경우에는. 자기가 이론을 연구 한다면은 아, 시대적인 것이 이러닌까 그 당시의 춤 사위는 이랬을 것이다 라는 것을 느낄 수 가 있죠. 가장 중요한게 뭐냐면 그 시대의 생활상에 맞춰서 그 사람이 움직이잖 아요. 그 시대의 제도는. 그러면 그 시대의 제도는 뭘로 파악할 것이냐. 내가 보 지 못 했으닌까. 그러면은 문헌이나 이런 것을 통해서 그 시대를 읽어 본단말이 에요. 읽어봐도 그것이 감이 안오잖아요. 그런데 이제 고고학 학자들하고 자꾸 대화를. 많이 했는데 나도. 대화를 하게 되면 뭐 어느 시대는 어떻고 생활이 이 래서 이런 도구가 나오고. 뭐 이런 얘기가 나오죠. 그러면 그 시대를 관찰할 수 가,있어요. 그러면 이 때 사람들의 춤사위는 대개 이런 형식으로 갔을 것이다라 는 예측이 들어오죠. 그래서 그런 것이 같이 가야된다. 이론을 학습하는 것이 창작을 하는데 포티브를 제공할 수 었다는 말씀이시네요? 그렇죠. 쩌생

463 口 4-5. 무대에 서기 전 혹은 시험이나 콩쿨에 나가기 전에 얼마나 어떻게 연습 을 하셨는지요? 그런 별도 연습이죠. 선생이 직접 따로 연습도 시키고 그랬었는데. 우리 때에 는 콩클같은건 없었고 무대에 출연하는 것 뿐인데. 별도로 선생님께 레슨을 받게 돼죠. 별도 레슨을 받고 혼자도 연습을 하고. 개인연습량은 평상시 보다 훨씬 더. 많아지죠. 보통 펑상시에 벼해서 어느 정도나 연습량이 많아지는 건가요? 그거는. 자기 시간 있는데로는 다 사용을 해야 되겠죠. 口 4-6. 어련 시절 예술을 하는 목표가 무엇이었나요? 왜 음악을 포기하지 않고 하신 것업니까? 난 목표는 그 당시에는 그랬어요. 김보남 선생님이 나를 무용으로 끌어 들인 것 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던 것이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를 많이 가졌거든요. 그 양반 이. 왜냐면 그 양반이 궁중무용을 했기 때문에. 궁중무용은 지금 느네들이 이것을 안하면 이것은 없어진다 누가 앞으로 이거 궁중무용 볼려고 그러겠느냐 그러닌까 너는 이것을 해야 한다. 해서 나를 선택했거든요. 근데 그결 하다 보년까 궁중무 용에 관한 것들을 어떻게 내가 정립을 시킬것이냐. 그렇게 내가 파악하기 전에 그 양반이 돌아가셨단 말이죠. 62년도에 돌아가셨으닌까 완전히 궁중무용을 파악하기 전에 돌아가셨단 말이죠. 그리고 그 말씀만 남기셨거든요. 그래서 이것을 우선적으 로 이론적 인 것올 먼저 알아야 되겠다 그래서 언제 고서점을 찾아 다니는 거죠. 그래서 고서적을 자꾸 구해서 보면서 연구를 하게되고 이렇게 된거죠. 김보남 선생님의 기대와 또 하냐는 궁중정재에 대한 사명감. 첫 째 이유는 그거죠. 궁중정재는 그때 60년대, 70년대 만해도 궁중정재가 뭔지 일반 사람들 하나도 몰랐어요. 그 때 그거 한다면 저거 미친놈이라고 했거든요. 그 런데 맨날 청계천 어디 앵기면 헌책방만 뒤지고 다니닌까 다 미친놈이라 그래. 口 4-8. 어떤 상황에 연습을 시작하고 마쳤습니까? (음악에 대해 만족할 때 그 만두었다거나, 시간을 정해놓고 그만 두였다거나, 지루하면 그만두었다거나, 조금해도 잘하니까 조금만 했다거나. 등) 아뇨. 그런 것은 못 느꼈고. 내가 연습을 해야 된다면 시간 있는대로만 연습을 하는 거죠. 그러고선 그 다음에는 다른 것올 한다든지. 시간을 정해 놓고 한 것은 아니고 여유만 있으면 연습에 들어가는 거죠. 그러고 나서 다른 일이 있으면 그리가고. 口 4-9. 무대에서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여 연습을 한 경우가 었다면, 어떻게 했 습니까? 그건 없어요. 무대에 출연한다고 한다면 내가 뭘 출것이냐 주제가 되면은 거기 에 대해서 연습을 하고 거기에 대해서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이 동작을 이어 갈

464 것이냐 어떻게 해서 이것을 할 것이냐 미리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죠. 그래서 고 분야만 딱 하고서는 안해요. 口 학생 때 스숭이 가르치는 대로만 했나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도 해보고 그랬나? 나는 처음에는 스승이 가리키는 고대로 가죠. 고대로 간 다음에 다른 방법으로 하죠. 만약에 내가 살풀이를 배웠다 살풀이를 배웠는데 영 이 동작은 나하고 안 맞어 그러면 그것을 내 나름대로 고쳐가죠. 그러면 어느 때는 선생님이 막 불러 요. 그래서 야단을 쳐요. 거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너만 왜 그렇게 하느냐 이러는 거죠. 그러면 선생님 그 동작이 나하곤 안 맞아요. 그래서 이렇게 해봤는 데, 선생님 괜찮아요? 그러면 선생님이 처음에는 야단을 치죠. 배울 때는 똑같 이 배우고 그것은 나중에 니가 해야지 하고 야단을 맞죠. 그런데 그런 방법을 자 꾸 쓰닌까 선생님이 좀 달리 본적이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나를 무용으로 끌어 들이지 않았느냐 그렇게 생각을 해요. 口 자기가 어느 정도 잘한다는 자신감이 든 척언 있었는가? 그거는 지금도 없어요. 口 남과 다른 자신만의 표현 방식이 었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한 적이 었던가? 나는 그건 있죠. 왜냐면 춤은 동작으로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극적인 하 나의 연기력으로 인해서 만들어진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왜 그러냐면은 내가 을 이렇게 들변 쉬어요. 근데 여기서 여까지 올라갈 때 내 몽 전체에서 마음까지 다 혼합이 돼서 올라가야 되거든요. 근데 그렇게 할려면 거기에 감정이 들어가야 죠. 그 내용의 감정, 그것이 내포되어야 되죠. 거기에 관한 연습을 많이 해야하죠. 그것이 남과 다른 선생님만의 독특한. 그렇죠. 만약 내가 상수에서 하수로 움직일 때, 객석에서 볼 때 이 하수 쪽은 좀 어둡게 보이거든요. 상수쪽을 잘 보게 되죠. 그러변 하수 쪽으로 갈 때는 어 떻게 가야 객석에서 나를 좀더 집중시 할 것이냐. 이런 것을 연구해야 돼죠. 이런 생각을 하설 때가 언채 쯤이셨나요? 그 때는 내가 학교를 졸엽하고 학원을 했는데, 학원하면서 부터는 그렇게. 어떤 계기로 그런 생각을? 내가 연극을 좀 따라 다녔기 때문에 그런거 같아요. 영향은 거기서 온것 같아 요. 연극도 그렇잖아요. 하수에서 하는 동작하고 상수에서 하는 동작하고 툴리거 든요. 눈에 잘 띄는 동작을 상수 쪽으로 해줘야 해요. 그래야 관중들이 받아들이죠. 口 스숭이 하지 말라 했던 표현틀을 해보고 성공해본 적(만족스러윗던 적)이 었던가?(예를들면 여기서 농현을 하지 말라 고 했는데 정작 하지말라

465 던 것을 해보니 좋였다거나동) 그런적은 있죠. 왜그러냐면 예를 들어서 내 시선이 앞으로만 자꾸 선생님이 했 는데 그 시선이 내가 옆으로 약간 돌렸을 때의 내 표정이 어떻게 나타나느냐 이 런 것은 앞에 거울을 놓고 연습을 하잖아요. 시선은 항상 거울을 놓고 해야 되닌 까. 그리고 거울을 놓고 동작을 하면서 웃어도 보고 또 반대로 하면서 그 표정을 그대로 가져보고 아, 이거는 좌측표정이고 이것은 우측표정은 아니다 라는 것을 느껴야 되겠죠. 그런 것이 중요하죠. 그러기 때문에 선생이 뭐 어디봐라, 어디봐 라 하는데 내가 느끼는 표정이 내가 보는 표정하고 달를 수가 있죠. 그런 것을 나 나름대로는 개척을 해야 돼죠.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口 스승에게 기본만 배웠던 상태에서 혼자 스송 없이 기본을 념어서 본 척이 었던가? 기본은 넘어서 본적이 없어요. 기본은 선생님이 해준 그대로만 했죠. 거기까지만 배운 다음에 선생님째서 혼자 념어서 보신적이 었으세요? 그거는 내가 학원하면서 그 기본동작이 나 한테 안 맞는 동작은 내 기본으로 만들어 갔죠. 그래서 나는 지금도 그래요 학생들 갈킬 때 내 동작을 그대로 하라 는 소리는 안해요. 이것을 네 나름대로, 네 스타일에 맞게, 네 체구에 맞게, 네 나름대로 고쳐가라 그러죠. 스승님들에게 배울 때는 기본에 충질하게 춤사위를 익히고 이후얘 스승닝을 떠나서는. 내것을 만들어야 되죠. 그게 중요해요. 그년까 자기 것을 못 만들면은 춤은 죽 는다는 생각이거든요. 왜?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 따로 있죠. 또 몽의 스타일이 둘이 다르죠. 그러닌까 춤은 자기의 동작이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한테 배워야. 여러 사람한테 배워가지고 그 동작이 맞지 않으면 그것은 내 춤으로 만들어 갈 수가 없잖아요. 그렇죠? 나한테 맞어야지 내춤으로 만들죠. 그러닌까 연구하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춤올 배웠을 때 그걸 거울 앞에서 이 동작도 이렇게 해보고 저 선생님이 가리킨 동작도 해보고 하는데 이것은 도저히 나하고는 안 맞는다 그러면 나는 어떤 동작을 해야, 어떤 식으로 가야 내 몽에 맞겠느냐 이런 것을 자기가 연구를 해야 되죠. 그래야 무용가가 될 수 있다. 스숭을 벗어나서는 반드시 그 스숭한테 배웠던 기본을 념어셔야만이. 넘어 서야죠

466 3. 연희부문 김대균 口 1-1. 줄타기에서는 독보적인 존재이신데, 스스로를 영채라고 생각하시는지? 口 1-1-r2) 만약 아니라면 왜? 나 스스로는 독보적이라고 생각한 적 없고. 다만 어렸을 때 용인 민속촌이 놀 이터였기 때문에 문화적인 혜택을 많이 받아왔기 때문에 환경적인 요소, 늘 형님 들 풍물, 아저씨들 연주하는 거, 누나들 춤추는 거, 선생님 줄 타시는 거 일상이 었기 때문에 그런 게 큰 자산 되었지 싶어요. 口 1-2. 어련 시철, 주변인들이 선생념을 볼 때 행동 특성이 있었나요? 높은 줄이 매여 있었는데 겁이 좀 없었고 호기심이 많아서. 늘 접하는 일상이 지만 지루하다거나 그런 게 전혀 없었으니까. 매일 공연을 보고 느끼고. 늘 재있 으니까. 어른들이 위험하다고 높은 줄에 올라가지 말라는데 호기심이 많아서 올 라가고 많이 즐겼다. 口 1-3. 선생님의 째능을 알아 본 사랑이 누군지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알아봤다면 口 1-3-Q) 그 타인은 누구인가? 일단은 9살에 줄에 올랐고, 본격적 학습이 13살부터. 선생님을 모셨으니까 도 제형태로 공부했는데 연행술인 재담 소리 기예적인거. 선생님이 칭찬을 많이 해 주셨다. 김영철 선생님께서. 口 1-4. 동료나 작고하신 분 중 영 재 라고 생각하는 분은? 口 누구? 전공? 그 이유는? 일단 영재라는 단어가 익숙치가 않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말씀드리긴 뭐한데 주변에 하다보면 예를 들면 선생님들 중에 학습할 때 늘상 얘기했던 돌아가신 박병천 선생님, 김덕수 선생님. 아이들 보면 있잖아요. 굳이 영재라고 한다면은 용어는 익숙치 않지만 대가 선생님들은 아마 그런 개념들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지금 짝 생각나는 분 었으셰요? 선생님은 많죠. 박병천 선생님, 김덕수 선생님. 그분들은 영재라고 생각을 하시 는지. 그렇죠. 소양 자양분들이 탁월한 부분이 많으니까. 도제로는 제가 마지막 세대일 것 같아요. 예전의 학습방식이잖아요. 늘 익숙한 부분이 많으니까. 박병천 선생님이 여러 분야를 아울러 하셨는대, 특별히 탁월하다고 생각하는

467 분야는요? 진도 씻김굿에서는 좌장이시고 큰 어른이신데, 그분이 가진 예술적 부분이 일 예일능이 아니고 다양한 학습과 방법을 통해 몸에 실제로 처l 득한 부분이 너무 많잖아요. 근데 실제로 놀음들을 보면 감히 우리가 다 할 수 없는 부분들. 평생 을 공으로 하셨기 때문에 북춤, 살풀이, 구음 시나위 내지는 너무 다양하죠. 그렇 기 때문에 어느 한 부분이 아니라 다재다능하면서도 이것이 먼저다 저것이 먼저 다가 아니고, 1 번에서 쭉 나열하면 수평인 거죠. 수직이 아니고. 口 1-5. 본격적으로 스승으로부터 학습하게 된 계기는 검영철 선생님이신데, 그 시기는? 13살? 본격적으로? 9살에 줄을 탔지만 9살 때부터. 위에서 하는 그건 기본기라고 하는데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하는 아주 기초적인 학습, 한 3년 한 거고. 13살부터는 거동을 못 하시니까, 신체적으로 불편하셨어요. 집에 모셔서 보통 3개월 4개월 저희 계셨으니까. 그 때 집중적으로 학습을 한 거죠. 1 년에 3개월 계시다가 서울 댁에 보름 계시다가 또 모셔오고. 그렇게 한 3년 한 거죠.3년 한 다음에 중3 이변 16 살? 그 때부터 첫 공연을 하게 된 거죠.3년 학습을 한 다음에. 선생님을 댁에 모시고 제대로 배우셨네요. 그 다음에 용인 민속촌에 처음 공연을 하게 됐고 그 때부터 전속 공연을 했는 데, 공연하면서 부족분이 늘 있는데 선생님 늘상 왔다 갔다 하시고 또 공연하는 거 모니터 하시고 또 별도 학습하고. 그렇게 계속 채워 나가는 거죠. 학습이라고 하는 건 뭐죠? 기 예적 인 요소라 하면 동작별로 동선이 1.2가 있고, 점프할 때, 집에 그런 부분 체 크해 주시고. 줄타기 생명력인 재담, 소리, 음악적 특성, 그런 부분들 계속 학습 해 나간 거죠. 더 큰 거는, 도제라는 것은 선생님과의 연배가 엄청 차이가 많이 나는데 생존해 계시면 90정도 되니까. 동시대의 생애담 같은 게 있는데 활동했던 수많은 선생님들 얘기를 늘 많이 들었으니까 그런 부분이 정말 학습이다. 그게 도제이고. 기능적인거야 채워나가면 되지만 실제로 그결 뭐라 하나 구전심수라고 하나? 그런 게 학습이죠. 어린 시절에는 그 많은 얘길 듣고 너무 고되니까 뭔 얘 기를 하시는지. 아이니까. 어느 날 힘들고 그랬는데 성인이 돼 고민을 해 보니까 그게 진짜 오리지날 학습이었던 거죠. 타인이 경험할 수 없는 그 많은 이야기들 이 진짜 학습이었던 거죠. 口 1-6. 학습 내용을 시기척으로,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김영철 선생님께는 줄타기, 기예적인 거, 재담, 소리는 기본적인 학습은 다 했 고. 88년도에 선생님이 내가 21 살 정도에 작고하셨는데 집중적으로 학습한 것이 잔노릇 위주, 기예들. 43가지 잔노룻 배웠고, 건강상 문제가 있으니까 집중적으로

468 빨리 빨리 가르켜야 했던 맘이 급하셨던 것 같아요. 그 위주로 했고 재담, 소리 병행했음. 기예는 줄을 타야했지만 재담이나 소리는 방안에서도 할 수 있 잖아요. 시기별로 하면 16-17살 때. 기본적인 모든 거는 이렇게 하고. 선생님 사 후에 재담, 소리, 어릿광대 역할론은 이동안 선생님께 심화하여 배웠고. 21, 22살 때부터. 제가 공연을 하면 줄광대 상대역, 어릿광대 역할을 늘 해주시면서 재담 이나 소리를 별도로 했어요. 집중적으로 학습을 받았죠. 그 때, 그리고 성우향 선 생님께 판소리도 별도로 배웠고. 같은 시기에 이동안 선생님. 20살까지는 김영철 선생님께 계속. 모든 소양은 김영철 선생님께 이뤄졌고 그리고 나서 이동안 선생 님이 어릿광대 직접 해주셨으니까 재담, 소리, 어릿광대는 이동안 선생님께 학습 하고. 큰 학습이었죠. 이동안 선생님젠. 재담을 하면 응용력이 있잖아요. 늘 재담 이 바뀌고 소리구성이 바뀌고. 어렸을 적엔 어렵잖아요. 하나도 어려운데 어쩔 때는 진양으로 갔다가, 어쩔 때는 중모리로 갔다가, 중중모리로 갔다가, 똑같은 소리를 놓고. 당시에는 그런 부분이 혼란스러웠는데 근데, 줄놀음에서 큰 특질 중 하나가 줄놀음 자체는 재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재담의 자유성, 또 허공에 줄이 걸려 있지만 줄을 통해서 소집된 관객의 이야기를 줄로 풀어내 것이 줄타기, 놀음이니까. 그런 재담의 특성이 강한데 그런 부분을 이동안 선 생께 제대로 학습한 거죠. 현상을 보고 느끼고 그것을 얘기로 풀어내는 거 현상. 그 자체로는 재담이 안되니까. 포장을 예쁘게 해야 되잖아요. 재담의 응용력, 자 율성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런 부분을 이동안 선생님께 학습을 한 거죠. 김영철 선생님째는 기예척인 것을 많이 배우셨겠네요? 전반적으로 다 배운 것이지만, 기예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그것을 포함한 전반 적인 것이지만 기예적인 부분에 중점을 두고 통합적으로. 학습이라는 게 그렇잖 아. 어느 날 뚝딱 되는 거 아니잖아요. 그것을 계속 채워나가고, 만들어 나가고, 그 공력을 키워나가는 거잖아요. 예를 들어 판소리 학습을 보면 심청가 완판을 떼었다 해도 처음엔 그것은 초급 학습이잖아요. 그다음에 두 번 세 번 네 번하 고. 그러면서 성음이나 구성력도 생기고 소리가 익어가잖아요. 그것처럼 줄타기 도 똑같은 거죠. 계속 스스로 학습하면서 공이 쌓여가고 채워가고. 다른 부분하 고 비슷한 것 같아요. 口 1-7. 혹시 음악가 집안이신지요? 전혀 아닌데. 아버님이 원래 판소리를 좋아하시고, 실제로 하시고 싶어 하셨어 요. 할머님이 반대하셔서 못 하셨는고. 할머니도 타고난 이야기꾼이셨대요. 나중 에 아버님한테 들었는데. 왜, 얘기하면 굉장히 구성력 있게 하시는 분 있잖아요. 동네에서 얘기하시는 분 있잖아요. 시골이니까 변단위 큰 잔치 있으면 상차림 전 문이셨고. 그러셨다 그래요. 아버님께셔 민속촌에 데려가셨다고? 데려간 게 아니고. 우리 아버님이 민속촌에서 일을 하시게 되어서, 예술가 일 은 아니시고, 어쨌던 그런 쪽으로 일을 하게 되셔서. 우리 이모부 되시는 분이 큰 엿집을 하고 계셔서 엿을 파논 광대 기질이 있는 분이 필요하실 거 아니에요

469 시니까 모셔갖고, 아버님이 원체 노는 것을 좋아하시니까. 그래서 가족 전체가 이사를 오게 된 거고, 나는 민속촌 안에서 실제 생활을 하기도 했어요. 아버님이 굉장히 기질이 있으셨어요. 근데 풀질 못하셔서. 당신 생각은 본인은 할머님 반 대 때문에 뜻을 이루질 못 해셨지만 이놈만큼은 꼭 잘 되길 하셨던 거죠. 학습할 때 보조 역할을 하시기도 했고. 혹독한 것도 있고. 예술가 집안은 아니지만 반대는 없으셨고? 할머니만 좀 반대하셨고, 집안의 반대는 없었다. 할머니만 하고 많은 일 중에 그 어려운 일을 시키냐 하시고. 口 1-7-CZ). 아버님이 훌륭한 스승을 판별하는 기준이 었였나요? 아버님 본인이 좋아하는 소리꾼 춤꾼이 있었는데, 임방울, 조상현, 박병천 선생 님이나. 딱 이게 옛날 어르신들은 예술, 비예술이다 는 기준은 없었지만. 왜 좋아하셨을까요? 아버님 기준은 그거였겠죠. 소리로 따지면 귀명창은 되시니까, 판독할 수 있는 기준은 있잖아요. 와 잘한다. 멋스렵다. 너도 장차 그런 사람이 되었음 좋겠다. 그런 얘기는 할 수 있잖아요. 왜냐면 그분이 보실 줄 아시니까, 하실 순 없어도. 그런 기준이 있잖아요. 춤을 보면 장단 흩으러질 때 팔을 좌악 올리면 팔 동선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그 팔을 올릴 때 온 우주를 끌 어올리는 듯 한 그런 에너지. 예를 들면 그런 멋스러움 일수도 있고. 어쩡 사람 이 저런 목소리를 구성지게 소리를 이쁘게 가져가고 표현할 수 있을까. 뭐 그런 게 아닐까? 예를 들면 뭐 그런 거 아닐까? 口 1-8. 자기 발전의 동기는 어떻게 부여하셨는지? 목표, 경쟁, 이런 것 보다는 어렸을 때는 선택의 기준이 없었으니까. 그렇잖아 요? 사실 9살짜리 꼬마가 늘상 뛰어 놀다가 우연찮게 싫지 않아서 줄을 타게 됐 는데. 동기부여는 어렸을 때는 빈곤했으니까, 열심히 줄을 타면 선생님처럼 훌륭 한 사람이 되면 실지로는 원체 가난했으니까 가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어렸을 때 실제로. 원체 가난했으니까. 차비가 없어서 상 학교를 걸어 다녔으니까. 어렸을 땐 그런 부분이고. 또 다른 부분은 선생님께 서 건강이 안 좋으셨으니까 생존에 계실 때 학습을 많이 해야 되잖아요. 그런 부 계속 동기부여 되었고. 성인이 돼서는 선택의 기준 얘기 했지만 또 누군가 해야 되고, 할려면 제대로 해야 되니까. 선생님 사후에 공연만 해도 아무 상 관이 없지만 또 다른 것이 필요하고. 그니까 소리하게 되고 또 이동안 선생님한 테 학습하게 되고. 그리고는 30 대 넘어와서는 사고 이후에? 공연하다가 줄이 끊 어지는 바람에 1 년을 재활하고 시간을 보냈는데 그 때 동기부여가 된 게 우리 학교 84) 였고, 학교 통해서 대학원 85)까지 정리하면서 그런 부분이 끊임없이 자아실 84) 한국예술종합학교. 85) 안동대학교 대학원

470 현도 되고. 그런 부분이 동기부여가 되었던 것 같아요. 기질 자체가 정체되고 멈 춰있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까. 동기부여도 되고, 뭔가 채우고 싶고, 느끼고 싶고. 口 2-1. 전통예술분야에 영째가 었다고 생각하시는지? 영재, 비영재. 뭐 특히 전통예술 쪽에는 익숙하지 않으니까. 굳이 그런 표현으 로 따지자면 그것을 하기 위한 남다른 감성의 소유자. 굳이 영재 뭐 그런 거 보다. 째능, 끼가 아니고요? 내 재능과 끼죠. 재능과 끼를 하기 위해서는 이성과 감성 했을 때, 그것을 표 현하기 위해 예술을 감성 코드라고 봤을 때 남다른 감각, 기능을 소유한 자들은 있겠죠. 있죠. 당연히 책이나 놀음을 보면 남다른 아이들이 있잖아요. 있거든 분 명히. 그렇게 이해를 하고 싶네요. 口 2-2. 그런 아동틀을 설제로 보신 적 었으세요? 실제로 본적 있어요. 후배 풍물 하는 풍물꾼인데. 그 아이가 몇 살인지 모르겠네. 디 2-2-(î),(2) 대략 나이하고 전공이? 잘 한다 그런 거 보다는 네 살, 다섯 살. 이 아이를 보면 늘 풍물가락이 익숙 하고 늘 장구채를 가지고 놀고, 어쩔 때는 잘 때도 꼭 잡고 자고.<세상에 이런 일이> 방송에도 나왔다고 그러더라고요. 전공이 아니고 그냥 익숙한 거예요. 口 그걸 선생님께서 설제로 보신 건데, 그 징후를 어떻게? 잘한다 못한다 징후? 어떻게 보면 그 아이가 소품처럼 생각하는 소도구, 또 하 나는 이 아이가 놀더라도 그거에 매우 익숙한 놀음 있잖아요. 그냥 걷더래도 풍 물 가락을 탄다거나, 풍물의 연풍대를 한다거나. 있잖아요. 아빠가 잘하는 풍물꾼 이니까. 공연을 한다거나 하면 왜 기본적으로 선율 타는 거. 口 어디서, 어떤 제기로? 대전에서. 후배는 절친한 후배니까, 집에서도 보고 학원에서도 보고 공연 장소 에서도 보고. 그 아버지랑 절친한 선 후배 관계니까. 그 이후에 교육을 하신 건 아니고요? 아니, 지금은 모르죠. 아버지가 그냥 놀아라 그런 거겠지. 그 아이는 그 흐름을 아니까. 그놈이 초등학교 들어갔는지 모르겠네. 어쨌든 독특한 아이였지 선생님께서는 전통예술영재를 선발할 때 적절한 시기가? 고민 안 해 봤는데. 글쩨, 기본적으로. 줄타기 쪽에서는요? 줄타기 쪽에서는 어렸을 때가 좋죠. 십여 세 전후. 줄타기는 학습이 특별한 경 우니까. 초등학교, 중학교만 들어가도 일정부분 생각이 앞서는 경우가 있잖아요

471 줄타기 경우, 굉장히 어렸을 때는 내 경험에 의하면 생각이 지배는 하지 않잖아 요. 선생님 지도를 해주변 아! 이렇게 하니까 재있네. 이런 거지. 이 동작을 하 다가 떨어지면 엄청 아플텐데, 그러면 생각이 개입이 된 거니까. 그런 부분 좀 다르죠. 그런 게 없을 때 동작이 체화되면 충분히 천 번의 동작, 이천 번의 동작, 행위를 통해서 겁 없이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니까. 줄타기에서는 삼십 세가 되면 환갑이다. 기본적으로 일곱, 여닮, 열 살에 줄 학 시작해서 열두 살, 열세 살, 아무리 못해도 십오 세 전후해서 공연을 한단 말예요. 삼십 전후해서 대부분 그만두고, 삼십 이후에는 체력적으로 동작을 하나 씩 놓게 되는 단계거든요. 삼십 세까지 마흔세 가지를 다 소화했다면 그 이후부 터는 하나씩 놓는 단계거든요. 좀 어쨌던 한 편으로는 농익은 붐동작, 놀음이 나 올 수 있고 동작으로 놓고 보면 동선 자체가 작아지고 큰 동작부터 하나씩 내려 놓게 되죠. 그런 거죠. 줄타기에서는 그렇다는 거죠. 口 2-4. 선생님께선 무엇이 전통예술분야의 영찌성이라고 생각하세요? 그건 너무 포팔적이니까 큰 거고. 음악이다, 무용이다. 관심분야에 남다른 그것 을 위한 감성의 소유자? 그런 게 기준이 될 수 있겠죠. 재능 있는 끼 있는 남다 른 감성의 소유자라고 한다면 피리를 하던 대금올 하던 춤을 추던, 보통 아이 보다 그것을 위한 감성이 남달라야 한다는 거죠. 그런 게 기준이 될 수가 있겠 죠. 굳이 동작이 전부가 아니고, 동작이 기준이 될 수는 없잖아요. 이해력도 있어 야 되고. 기본적으로 뭘 하기 위한 전체적인 거 있잖아요. 아까 꼬마 아이처럼 그냥 기능적인 삼채가 아니고, 호흡을 제대로 가져간다 할지 여러 가지 있잖아 요. 그런 결 정확하게 인지 하는거? 그러니까 영재라는 게 참 애매해요. 수학이 나 과학, 고런 부분들은 예전부터 해왔으니까 익숙한데 이건 처음이라 용어 자체 가 좀 어설프니까. 영재의 개념이 서 있는 것도 아니니까. 口 2-5. 남다른 감성, 기예를 하기 위한 이혜의 폭, 이런 것이 전통 전반에 걸친 것인가요? 아니면 줄타기 분야인가요? 전체에 걸친 것이긴 한데, 대상이 필요한 거나까. 피리를 하던 대금을 하던 작 게 보면 다 연결을 할 수 있겠죠. 줄타기 분야에서도 그렇고 타 분야에서도 그렇죠. 口 2-6. 선생념 분야에 영찌 선벌을 위해 어떤 테스트를 해 보시겠어요? 줄타기가 여러 가지 연행소 가 있으니까 그런 부분들을 저 아이가 어느 정도 이해하는지. 재담, 줄소리, 줄에서 하는 잔노릇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놀음 에 대해서 이해의 폭이 어느 정돈지 볼 수도 있을 것이고, 또 하나는 줄을 설치 해 놓고 줄을 실제 걸어 놓고 니가 보는 줄은 작게 보변 그냥 소도구 소품인데 미적으로 따지면 어떻게 보이느냐?" 그렇게 물어 볼 수도 있을 것이고, 행위로 보면 줄이 매여 있는데 니가 매달리던, 뛰던, 어떤 형태든 중심이 무엇인지 느껴 봐라 할 수도 있는 것이고. 뭐 대략?

472 口 2-7. 어련 영재틀 선발에서 중요한 점이 무엇인가 하는 건데요. 앞에 얘기 다 한 건데. 딱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열정이죠. 기본적으로 대상이 있 을 때 열정은 가져야 되는 거고. 그결 성취하기 위한 끈기는 당연히 수반되는 거고. 口 2-8. 예술영째 발굴에서 어떤 지표가 중요할까요? 기본적으로 열정, 끈기 다 포함되는 건데 열정이겠죠. 한 마디로 하면. 그것을 위한 감각을 가진 가슴이 뜨거운 열정. 결국은 기본적으로 어떤 행위를 하던 미 술을 하던 음악을 하던 열정, 그 속에 열정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일관되게 해야 되는 그거니까. 口 2-9. 예술영째를 뽑을 빼 기교가 아년 잠재척 옹기나 창의성을 알아 볼 수 있는 방법은? 앞에서 얘기한 줄타기를 줄놀음을 본다면 이 아이가 줄놀음이 가지고 있는 연 행소를 얼마나 이해하는지. 결국 예술 행위가 다 창의성이니까 의문을 가질 수 있죠. 줄이 설치가 돼 있다. 작게 보면은 소도구지만 너는 뭘로 보이느냐? 니 맘 대로 해봐라. 매달려 보든 뛰어 보든 표현해봐라. 그걸 보는 선생님들은 행위에 대해서 금방 알 수 있는 거잖아요. 줄놀음을 예로 든다면. 실제로 그 아이를 가 지고 기능적인 거야 시선을 어디에 두고 팔동작은 어떻게 하고 호흡은 어떻게 하고 한 번 걸어봐라. 이런 건 재미없잖아요. 창의성이라고 봤을 때 저 줄을, 소 도구를 가지고 나름대로 해봐라. 그런 형태로 할 수 있겠죠. 선생 엽장이면 알 수 있는 게 있으니까. 유심히 보면 알 수 있죠. 유심히 보설 때 그 기준이 었으세요? 기준이라는 게 글쩨? 어떤 대상이 있는데 아동들이 누구나 익숙한 쪽으로 대 답을 하지만 남다르게 대답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선생님 난 줄이 이렇게 보인 다.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이럴 수 있잖아요. 가르켜 주지 않았지만 스스로 왼 발로 서보고, 오른발로 서보고, 시션을 저기다 고정하니까 중심이 잡히네? 전체 적으로 조망을 해보는 거죠. 꼭 기준보다도. 口 전통분야영째를 선발하는데 있어 전문가를 선정하는데 공정한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글쩨, 애매하네. 비율로 따지면 3:3:4나 고런 식으로. 그러니까 학교에 몽담고 있지 않고 필드원 하는 분, 그리고 현직에 계시면서 연주활동 하시는 분, 또 미 학이든 뭐든 이론가들. 이런 식으로 비율을 따지면 되지 않을까. 그렇지, 학교에 서 다 좌지우지 한다면 그것도 문제가 될 수 있잖아요. 비율을 그렇고. 글쩨 그 건 애매모호하네. 口 예술영째가 성장하는데 가장 걸럼돌아 되는 부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 시는지요. 걸림돌이라기보다는 특별한 감성의 소유자라하면 그 감성이 다치지 않게 더

473 풍부한, 더 영혼이 자유롭고 더 풍부할 수 있게 교육 환경이 중요하겠죠. 영혼이 자유로워야 지속적으로 채워나갈 수 있으니까. 현 교육제도가 그런 게 있잖아요. 결국 그건 거 같아요. 교육에 대해 잘 모르겠지만 우리 때만 해도 동네 마당 자 체가 놀이터였다고 한다면 지금은 놀이터 개념이 바꿔었잖아요. 학원 원투쓰리 가고, 결국 학원자체가 놀이터가 되고, 사교의 장이 되고. 실은 학교가 최고의 놀 이터가 되고, 친구들하고 사교의 장이 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학원이 놀이터가 되 고 끼리끼리 사교의 장이 되잖아요. 그런 게 안타까운 거죠. 근데 그거를 누구나 다하는데 안할 수도 없고. 제도가 그런걸 뭐. 口 영재가 성장하여 음악가로서 감당해야 하는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전통예술을 했을 경우 일반 서양음악에 비해서 해외를 기준을 둔다면 그렇게 왕성하게 활동을 하거나 활동을 많이 하지만,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하나? 아이 이 해야 할 몫은 흔히 말하는 고급 예술 전통예술이 고급예술이 아니라는 얘기 가 아니고. 오페라나 대중적인 뮤지컬 그런 공연들이 늘 그런 공연들은 대다수가 유료화, 상당한 고가의 입장료가 필요하잖아요. 아이들이 다양하게 활동을 해서 그 이상의 어떤 활동을 해야 될 것 같고. 해외적으로도 한국의 전통음악 젊은이 들이 해외에서도 그만한 대접을 받아야죠. 그리고 그것을 위한 이론가도 따를 것 이고. 행위자, 연행자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니까. 장기적으로 보면 한 쪽에서 우리의 음악의 우월성을 지켜나가면서, 연행 쪽에서 보면 기존의 서구 기준을 따 지자면 그 이상의 대접을 받아야 되겠죠. 엄밀히 따지면 지금의 전통음악 경우에 해외 기준 따지면 한국에 대한 인지도도 그렇고, 제일 큰 거는 대접을 제대로 받 아야죠. 지금까지의 연행들은 해외에서 실제로 행위를 하고 돈을 번다는 개념보 다는 실제로 홍보 사절단 내지는 우리 돈 가지고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 것 보다는 바뀌어야죠. 실제로 우리 음악의 우월성도 자랑하면서 돈을 벌어와야죠. 또 그 이상의 대접을 받아야 되죠. 3-1(1-9). 전통예술에 대한 선생념 집안의 분위기가 어떠했는지요? 집안의 분위기는 굉장히 좀 우호적이죠. 예술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실제로 아 버님이 원체 귀명창이셨고, 소리를 좋아하셨고 하니까. 기본적으로 아버님 바람 도 있고 기본적인 예 자는 아시는 분이니까. 생활은 녁넉하지 않았지만 굉장히 호의적이었죠. 선생님이 육체적으로 불편하셨지만, 아버님이 굉장히 적극적이셨 으니까. 지도 학습에서도 그렇고. 어쨌든 절대적인 후원이 있었고, 또 절대적인 지도가 있었고 그렇죠. 口 3-2(1-7). 아버념째서 보조 역할을 해 주셨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구체적으 로 어떻게 도와주셨는지? 선생님께서 거동을 못하시니까. 일차적으로 어떠한 동작을 줄 위에서 전개 하는데 선생님이 이론상으로 이 동작은 시선이 어떻고, 팔 동작이 어떻고, 호흡 이 어떻고, 발동작은 이렇게 전개가 된다고 설명을 해 주시면 누군가는 그 동작 을 하기 위해서 보조를 해줘야 되잖아요. 예를 들면 처음에는 줄 위에서 이론상

474 으로 그 동작이 이해는 되지만 실질적으로 줄 위에서, 줄 위에서 전개하기 위해 서는 이 동작이 익숙하기 위한 단계가 있잖아요. 나는 줄 위에 있고 오른손에 채를 들고 왼편에 아버님이 보조를 해줘서 왼손에 나무막대, 보조목 이런 걸 대 주시는 거지. 아주 기초적인 거. 그러면 그 동작을 줄 위에서 학습을 해요. 수도 없이. 책을 천 독 하듯이. 그 동작을 되풀이 하면서 나중엔 궁극적으로 그 동작 위한 호흡 동작. 모든 것을 내 폼에 체화될 때까지 그 동작을 위해서 그 동작 을 보조목, 아버지가 보조해 주는 나무. 그게 이제 필요 없을 때 완벽하게 내 몸 에 체화가 되는 거니까. 기본적으로 훈련 학습할 때 아버지가 보조해 주신 그게 동작에 기본적인 보조를 어르신이 다 해주셨다는 거죠. 선생님은 이론상으로 지 도를 하시지만 아버지의 헌신적인 그게 없으면 불가능하죠. 왜냐하면 어렸을 때 선생님 공연하신 모습을 많이 본 게 아니니까. 9, 10, 11 살 뭐 기억이 희미하잖아 요. 궁극적으로는 행위는 보고 하면 익숙한 게 있는데 전혀 그런 게 없었으니까 상상 속에 동작을 그리는 거잖아요. 그리고 그 동작을 하기 위해 아버님이 보조 해주시고. 김영철 선생님 하신거 보기는 봤어도 원체 어렸을 때니까. 제일 처음에 보신 건 언재였나요? 10살. 입문동기가 선생님 공연하는 걸 늘 봤으니까. 어릴 때는 많이 봤지만 실 제 보는 거 하고 학습하는 건 다른 거니까. 口 3-3(1-2). 보고 나서 동기가 부여되신 거잖아요. 보시고 난 다음에 장난삼아 줄에 오르신 건 언제? 아홉살,열살. 보시고 바로? 공연 줄에 매달려보기도 하고, 높은 데 올라가서 뛰어내려보기도 하고. 늘 익 숙한 소도구라고 해야 되나? 줄이 늘 설치가 돼 있었으니까. 줄을 타는 입문 동 기도 그렇고. 전체적인 상황이 이걸 해야 된다 그런 강제성이 아니라, 늘 익숙한 우리 놀이터였단 말예요. 형들 누나들 춤추는 거, 아저씨들 연주하고, 선생님 줄 타시는 거. 늘 익숙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동기부여가 된 거죠. 그런 거 없이 뜬금없이 강압적으로 너 줄타라. 전혀 그런 건 아니고. 아홉 살 때 처음 보신 거네요? 그렇죠. 3-4(1-1O-(j)). 선생님의 어련 시절, 연습량이 하루 일과 중 어느 정도였나요? 아홉 살에서 열 세 살 까지는 아침저녁으로 연습을 했으니까. 아침 학교 가기 전에 한 시간 기준으로 아버지가 늘 학습을 시켜 주셨고 그리고 학교 갔다 와서 또 한 시간 정도. 늘 아침저녁으로 그리고 학교 안 갈 때는 낮에 한 번 정도. 왜 냐변 낮에는 손님이 많잖아요. 낮에는 핸만하면 피하고, 아침저녁으로. 그러다가 선생님을 우리집에 모시고 본격적으로 줄 학습이 시작될 때에는 보통 하루 종일 하니까, 하루 중에 세 타임을 연습한단 말예요. 아침에 해뜨기 전후로 해서 두어

475 시간, 그담에 점심 먹고 나서 두어 시간, 해지기 전에 두어 시간. 그건 기본적인 학습이고. 그리고 저녁시간이나 낮에 빈 시간에 재담 공부나, 그건 방안 공부가 가능한 거니까. 실제 학습량 따지면 굉장히 많은 거죠. 3-5(1-5). 선생님이 본격적으로 김영철 선생님께 학습을 한 거는 열세 살 때부터? 그효. 중 1 때부터. 그때 선생님을 모셨고 학교 가는 시간보다 줄 타는 시간이 더 많았으니까. 학교에 굉장히 많이 못 갔어요. 결석계 내고 보통 한 달, 어쩔 때 는 시험만 보고. 많이 봐줬죠. 왜냐면,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냐면 선생님께서 건강이 굉장히 안 좋았기 때문에 선생님 입장에서는 절박한 게 있었을 거 아니 에요. 후계구도는 세워야 되는데 제자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굉장히 절박하셨겠죠. 스숭님은 절박하셨는데, 선생님 자신도 사명감 같은 거 였으셨어요? 저요? 그런 거보다는 우리 가계가 원체 빈곤하니까. 내가 열심히 하면 늘 저녁 시간을 빌려서 생애담을 원체 많이 들었기 때문에 내가 빨리 줄 학습해서 잘 하 면 어쨌든 생활에 도움이 되겠다. 그런 쪽으로 생각을 많이 했죠. 왜냐면 원체 가난하니까. 口 3-6(1-5). 생얘담에 대해서 전에도 언급해 주셨는데,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되 셨다고? 제일 큰 거는 선생님 생애에 활동했던, 연행했던 그런 부분도 많고. 그리고 당시 에 동시대에 활동했던 선생님 기준해서 그 윗대 어른들도 많이 계신데, 그분들하고 공연했던 그런 게 제일 많고. 예전에는 선생님들은 현시대와 다르게 요런 요런 낭 만이 있었다. 예를 들면 임방울 선생님 소리를 굉장히 많이 들었는데, 저녁마다 소 리에 대해서 얘기해 주시기도 하고. 또 언제 실제로 에피소드 얘기를 하면 당시에 어디 지방 공연을 갔는데 악사가 하나도 없었다. 그니까 반주음악이 없었다. 그래 서 대 소리꾼 염방울 선생님이 북을 잡고 삼현육각이 없으니까 북으로 반주를 하면 서 구음을 하면서 줄을 탔다. 줄 속이나 소리 속 공력이 크신 분이니까 공연이 나 름대로 재있었다. 또는 공연을 한참하고 있는데 정전이 됐다. 그래서 이제 관객의 입장에서는 함성이 터져 나왔고 그런데 줄 위에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래서 내 별명이 거미였다 또 내지는. 뭐가 있을까? 뭐 대략 그런 얘기=. 口 3-7(1-10-(2)). 연습을 많이 하신 것 같은데, 어느 정도 하시면 만족을 했다거나? 어렸을 때 만족도는 동작별로, 예를 들면 줄 위에서 일 번 이 번 삼 번 동작이 쭉 있잖아요. 반복해서 되풀이하잖아요. 그 동작이 어쩔 땐 오십 번까지 갈 때도 있고, 어쩔 때는 열 번에서 그만둘 때가 있단 말예요 그 동작을. 오십 번까지 갈 때 편안하게 나올 때가 있고 열 번했는데도 편안하게 나올 때도 있고. 그런 기준 이 있죠.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고, 시간은 느려 질수도 있고 빨라 질수도 있고. 모든 동작이 줄 위에서 기본, 뒤로 갔다 앞으로 갔다, 서서 돌기, 앉아서 돌기, 앉았다 얹기, 일어나 종지 끝 붙이기, 발 해못걸이, 이런 기본 몸 풀이 동작에서

476 기본적으로 삼십 분은 소화해요. 줄 위에서 동작을 많이 하는 게 아니고, 기본동 작으로. 삼십 분 한 연후에 동작 들어가는데, 그 나머지 동작들은 시간이 더 길 어질 수도 있고 한 시간 안에 끝낼 수도 있고. 왜냐면 그 동작이 아무리 어리지 만 안단 말예요. 수도 없이 반복하니까. 경우에 따라 어떤 거는 삼십분까지 가지 만 어떤 건 십분 안쪽에서 끝날 수도 있고. 스스로 만족하질 때까지 계속하신 거네요? 그렇죠. 체력적으로 지쳐서 실수도 할 수 있지만 탄력을 이용하는 거니까. 실수하 게 되면 그 동작에 올인 하는 경우도 있고. 왜냐면 결국은 줄 위에서 행위 하는 것 이기 때문에 제일 일 번은 실수하는 건데, 줄타기에서 실수라는 것은 줄하고 줄광 대하고 분리되는 것을 말한단 말예요. 기본적으로 줄 위에서 동작하거나 동작을 놓 쳤을 때 줄을 잡고 매달려 있을 수 있고. 엄밀히 따지면 줄하고 줄광대하고 분리 되는 게 아니니까 동작을 하는데 잠깐 포인트를 놓친 것뿐이니까. 그 동작에 올인 하는 경우도 있고, 실수라고 하면은 줄 자체가 광대로 하여금 겁을 엄청 준단 말예 요. 그 줄이. 그니까 실수 한 다음에 그 동작을 완벽히 소화하지 못하면 광대가 열 어요, 존다고. 어떤 형태로든 그 동작을 완벽하게 소화를 하고, 놓쳤던 동선들을 다 시 잡아놓아야 하니까. 결국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고. 왜 좋을 때가 있잖아요. 동 작이 굉장히 면안할 때가 있단 말예요. 그런 걸 찾아 나가는 거죠. 펀안하게 하는 걸 중시하신 거네요. 편안하다는 것은 무리 없이 소화가 됐다는 거죠. 3-8(1-11). 다른 음악을 감상할 수 었는 환경이 었으셨는지? 학습할 땐 많지 않았고, 가끔 선생님이 서울에 공연 보러가자 그럴 때 빼놓고는. 그 리고 실질적으로 15살부터 공연했으니까. 그 때는 매 주말마다 민속예술 촌에 공연하러 오셨으니까. 그분들 탈춤이라든지, 농악이라든지, 북청사자놀음이라든 지. 실제로 굉장히 익숙하죠. 지금까지도 그분들하고 친분이 두럽고. 저보다 십 년 이 상 연배이신 ED대가 제일 많으니까. 그분들하고 되게 친해요. 사회적으로 지도층 어렸 때 그런 부분이 익숙하죠. 늘 풍물부터 익숙한 게 있었고, 실제 공연할 때는 주말 마다 외부에서 공연팀이 왔으니까 익숙하죠. 왜냐면 공연 시간이 앞에 민속촌 풍물하 고, 초청 공연팀이 하고, 그 담에 좋을 타고. 그렇게 진행이 됐으니까. 또 어른들이 열 다섯 살이변 꼬마죠. 꼬마가 줄을 타니까 늘 챙겨줬고 이뻐 했어요. 실제로 당시 활동 했던 분들 지금도 친분이 있는 분들 굉장히 많아요. 학교에 계신분도 많고, 회사로 따 지면 간부도 많고. 지금도 자주 만나요. 그분들을. 口 3-9(1-12). 그런 분들한테 학습이나 경험해 보신적은? 그런 건 없어요. 그냥 보고 느끼고. 그 때만 해도 내가 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 가 아니니까 책도 사주시고. 공부를 해야 된다. 오십 대, 그 당시 그분들이 대학 교 따진다면 탈패 출신들이 많잖아요. 기성세대 이면서도 실천 의식이 강한 분들 이니까 도움 많이 받았죠

477 口 3-10(1-12-0)). 다른 악기를 배우셨거나 연주해보셨거나 그런 건 없으셨고요? 그런 건 없어요. 커서는 성우향 선생님께 배웠고, 악기 같은 건 풍물 악기 기본적으로 풍물의 가락 선율 자체를 훤히 외울려고 외운 게 아니고, 그냥 다 아 니까 기본은 다 할 수 있죠 하면. 다만 내가 장구를 친다거나 풍물판에서 그런 결 하지 않았을 뿐이지, 기본적인 건 할 수 있죠, 다른 분야의 경험이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영향이 굉장히 크죠. 내가 줄을 타면서 타 음악을 이해한다는 것은 장단이나 호흡이나 동작들을 하는데 기본적으로 줄 위에서 동작들이 하나의 선율을 타는 거니까. 그냥 동작을 하는 게 아니고. 그걸 알고 타는 거하고 모르고 타는 거하 고는 하늘과 땅이죠. 가령 내가 줄을 타는데 기본적으로 삼현육각 선율을 알고 타는 거하고 음악 자체를 모르고 줄을 타는 거 하고는 하늘과 땅이죠. 그것처럼 도움이 많이 됐죠. 그러니까 익숙함과 익숙하지 않음의 차이는 익숙함은 늘 그것 이 내가 하진 않아도 익숙하잖아요. 가령 내가 탈춤의 A동작하고 B 재담을 한다 고 했을 때, 익숙하지 않은 것보다 익숙하면 실재 동작을 하고 재담을 했을 때 남보다 좀 빠른 건 있겠죠. 익숙하니까. 재당은 사설처럽 말로 하는 걸 말씀하시는 거죠? 그렇죠. 염밀히 따지면 선율도 있지만 사설 口 3-1 1( 1-13). 애기명창이나 소년 명창에 대한 평가를 부탁드렵니다. 고민을 안 해봐서 답하긴 뭐한데. 애기 명창이라. 판소리 쪽으로 따지면 애기 명장이 성인 명장은 된 적이 없다. 전혀 안 해봐서. 그런 여러 가지 버전이 있긴 한데. 글쩨 고민 아이들이 판소리 하는 걸 보셨을 때 느낌이 어떠셨어요? 학교 교수님이 들려주신 얘긴데, 20살짜리가 음악을 아무리 잘 해도 결국은 20 살 이래는 거죠. 니가 아무리 예능적으로 뛰어나고 특출하더라도 대 선생님들 눈 에 비쳤을 때는 더 내공을 쌓아야 되고, 더 도약을 해야 되고. 그렇게 볼 수 있 잖아요. 학교 자체가 대 선생님들이니까. 그것처럼 끊임없이 닦아 나가는 거죠. 아이한테 그런 얘기 하는데, 아들이 3년째 나가 있지만, 일반인들이 봤을 때는 3 년 하면 영어만큼은 잘 하지 않겠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지가 아무리 잘한들 중 2 수준이죠. 그렇게 답을 하고 싶네요.86) 口 3-12(1-6). 성우향 선생님께 판소리를 따로 배우셨을 때, 몇 살부터 몇 살까 지 배우셨나요? 88년도에 선생님 돌아가신 연후니까, 1 월 25 일 돌아가셨으니까, 88년 겨울이나 89년? 우리 선생님 돌아가시고 난 후에 한참 방황하다가 88년 겨울 기점으로, 86) 실제 대다에서는 3-11 과 3-12 문항 사이에 2번 항목 전체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478 언제까지? 딱히 몇 년이다 그런 것 보다는 글쩨, 93-94년 되나? 처음에는 판소리 한바탕 학습하고. 소리라는 게 초별학습이 있고 중별학습이 있잖아요. 계속 닦아야 되니 까. 그 학습을 통해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됐죠. 그 전에 줄소리 할 때는 정확한 장단 속도 몰랐고 소리 가는 것도 몰랐고 소리를 학습하면서 소리가 가는 길, 기 장단 흐름.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우향 선생님이랑 우리 선생님이랑 동시대에 같이 활동을 굉장히 많이 하셨으니까 그분들의 에피소드 같은 거 많이 든고 도 움 굉장히 많이 됐죠. 口 3-13(1-6). 이동안 선생념께서는 재당의 응용력이 많으시다고 말씀해 주셨는 데, 진양으로 갔다가 중중모라로 갔다고 하셨잖아요? 구체적인 얘기 좀 부탁 드렬게요. 가령 글자풀이 할 때 소순절이를 알량이면 찬찬히 들어오고 이게 정박 개념 이라면 오늘 같은 경우에 소순절이를 알량이변 찬찬히 들어오고 이렇게 어 놓기도 하고. 또 신세타령 같은 경우에도 부턱한네, 부턱한네 갑자기 단중 모리로 I생기기도 해요. 부턱한네, 부턱한네 흐름자체가 완전히 다르잖아요. 재 담 같은 경우에도. 어렸을 땐 적응이 안 되잖아요. 또 하나는 뭐가 있을까? 이 분이 재담이 가지고 있는 원체 다양하니까, 막 던지는 거예요. 어쩔 땐 이 재담 갖다 놓고, 어쩔 땐 저 재담에 연결시키고. 그런 부분들이 당시에는 이해를 못했 어도 녹취본이 다 있으니까, 학습할 때 그게 이제 지금 와서 보면 응용력이 생 긴 거죠. 재담은 주어진 틀이 있지만 결국은 현장에서 이뤄지고 소멸되는 일회성 행위인데 무엇보다 그것을 이끌고 가기 위해서는 이런 이런 응용력이 필요하다, 구조 자체는 똑같은 틀인데 구조 자체는 벗어나지 않죠. 그런 게 도움이 많이 됐 죠. 예를 들면 최근에 남양주에 무슨 축제에 갔다하면, 근데 그 산길이 열리는데 그 산길은 축제의 목적이고 축제 때만 일반인들에게 개방이 된다. 컨셉 딱 두 개 잖아요. 그럼 전 걷기 좋아하니까 한 바퀴 도는데 두 시간 반인데, 그걸 다 결으 면 공연에 지장이 있을 수 있으니까 한 시간을 걸었다는 말이죠. 그럼 그결 재담 으로 엮는다면 저 자연은 우리 것이 아니고 우리가 잘 관리해서 후손에게 물려 줄 의무가 있다. 당연한 거잖아요. 다른 하나는 재담을 하면 내가 여기 축제에 와서 두 가지를 봤다. 하나는 공무원들도 밴드를 구성해서 공연을 했으니까 공무 원들도 여가 활동하는 것이 보기가 좋았다. 또 하나는 산길을 한 시간 걸어갔다 왔는데 초자연 솔잎내가 너무 좋았고, 이 자연은 잘 관리해서 후손한데 물려 의무가 있기 때문에 누구나 소유욕을 버려야 한다. 그게 주제어인데 그걸 가지고 줄 위에서 삽화적 구성으로 풀어내기도 하고. 삼십분을 하면 숲이나 이야기를 그 결 끌고 가는 것이 아니고 삼분 단위나 오분 단위나 십분 단위로. 전체 사십분의 공연의 주제어는 축제 목적어가 있지만 전체로 가긴 가되 일정 부분 행위를 하 면서 풀어낸다는 거죠. 실제 줄 고사 할 때도 그런 기원을 해주고 줄 고사 할 때 고사 돈이 얼추 40만원 정도가 나왔어요. 축제 측에서도 좋았으니까 냈겠죠. 축 제 측과는 고사를 했고, 관객도 참여하고 그런 거. 학습에서 다 나온 거죠

479 口 3-14(1-6). 그런 응용력이나 자율성이 영재의 자질이 된다고 할 수 었을까요? 평가기준은 될 수 있겠죠. 결국은 우리 줄놀음이라고 하는 게 허공의 줄을 통 해서 바로 대상이 정해지는 관객의 이야기들을 줄로 풀어내는 게 최고의 키워드 라고 한다면 당연히 읽어내는 인식코드는 필요한 거니까. 口 3-15(1-6). 재당하고 소라는 기본척인 학습이라고 하시고, 잔노릇에 대해서 는 따로 말씀해 주셨는데요? 기본적인 학습이라는 건 아무리 재능이 있던 재능이 없던 학습이라는 건 초별 학습이 있고 중급학습이 있고 상급학습이 있잖아요. 결국 상급은 자기 도야인거 고 자기를 끊임없이 갈고 닦고 공력을 키워나가는 것이고, 기본적인 학습은 그것 을 이해하기 위한 그것을 체화하기 위한 소리로 따지면 소리가 가는 길, 음악의 흐름, 사설의 이해도, 이런 걸 초별학습이라고 한다면 그 다음 학습단계는 그걸 계속 갈고 닦잖아요. 선생을 통해서. 그런 연후에 또 한 번 갈고 닦고 그런 연후 에 집중적으로 자기 것을 체화시키기 위해서 독공을 하잖아요. 그런 단계인거죠. 째담이라서 기본이고, 잔노릇이라고 심화고, 그런 게 아난 거죠? 모든 것이 재담도 그렇고, 소리도 그렇고, 잔노릇도 그렇고, 다 기본적인 학습 이 있고 그런 기본적인 학습을 통해서 자꾸 커나가는 거죠. 예를 들어 큰 만신이 아무리 영험한 신내림을 받았다고 해도 열두 거리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되고, 기본적으로 학습을 해야 큰 만신이 될 거 아니에요. 그래야 좌장이 되고. 영험한 신내림을 받았다고 해서 열두 고리가 저절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것을 어떻게 운영이 되는지 어떻게 풀어야 되는지 그것은 신엄마 신아빠를 통해서 학습을 해 야죠. 그렇지 않아요? 口 3-16(1-6). 김영철 선생님째 학습하시고, 그 이후에 이동안 선생님? 성우향 선생님께도 배우고. 口 3-17(1-7-(2)). 아버님 얘기를 듣고 싶은데요. 예술에 대한 이해가 깊으셨고, 아버님만의 예술성을 판독할 수 었는 기준이 였으셨을 헨데? 전문적인 용어는 모르시겠지만 귀명창은 되시니까 소리를 이해할 수 있다고, 연결을 시 킬 수 있겠죠 어떤 선생님이 소리를 하시면 장단의 흐름이나 그 소리를 가져가시는 구성 력. 그런 기본적인 걸 아는 분이니까 그런 걸 판독 기준이라고 할 수 있겠죠 예를 들면 선생님 소리하시는데 고수가 말이야 장단을 한 박 띄었으면 두 박에서 잡고 들어와야지, 세 박까지 놓치면 쓰나" 고 정도의 이해력은 있으셨죠 87) 口 3-18(1-3). 박병천 선생님, 김덕수 선생념이 영째성이 었다고 하셨는데 특별 한 이유가 었으신가요? 한 게 뭐있어. 그분들의 활동했던 거 그분들이 가지고 있는 거. 남다른 감 87) 이후로 4번 질문으로 이어지고 있었으나 채록 편집 시 3번항의 질문을 모두 한 곳에 모아 두었 다 3-18항의 질문은 4-14항 이후의 질문으로 최종 질문이었다 470

480 각의 소유자들이잖아요. 그런 거였죠. 저분들 어렸을 때 실제로도 그랬었고, 아까 도 말했듯이 남다른 어떤 감성의 소유자였지 않겠는가. 실제로 박병천 선생님 돌 아가셨지만 우리끼리 그런 재담 많이 하거든요. 하나는 그렇게 많은 놀음, 체계 들을 후학들이 다 학습을 하거나 아니면 다 좀 자료를 좀 남기고 가시지. 근데 또 하나는 그분의 기량, 역량, 대상이 되는 학생들이 짧은 시간에 다 이해할 수 있겠어? 못하지. 또 하나는 저런 분들이 세상에 또 나올까? 우린 직접 학습을 했 으니까, 우리 학부 때. 특강도 한 번 해드린 적 있고. 어쨌든 남다른 것 같아요. 口 4-1. 다른 예술분야에 관심을 두신 적 았으세요? 관심은 많이 있죠. 口 4-1-(1) 해결은? 아니. 저는 전통예술 쪽보다는, 재능도 없지만 사실은 미술을 좀 이해하려고 했었죠.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그냥 책 많이 보고, 인사동도 원 없이. 물론 애 엄마가 그림을 하기도 했지만. 이해 할려고. 실제로 재있고. 친구들 많아요. 전시회 때마다 미술 하는 친구들 실 제로 전시회 비록 액자 값이지만 가져온 것도 많고, 구상도 좋고, 비구상도 그림 많아요. 산 거. 한국화도 좋고. 서양화도 좋아하세요? 네. 표현행위만 다를 뿐 코드 자체는 별 차이 없는 것 같아요. 결국은 우리처 럼 행위자체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도 있고. 어떤 건 문자의 기록을 통해서 역사 라고 한다면 그림은 역사 자체가 암호화되어 있잖아요. 화폭 속에. 색감을 통해 서, 구도를 통해서, 시대의 정신을 다 읽어내니까. 그런 것만. 표현방식만 다른 거죠. 결국은 다 통하는 거죠. 口 4-1-(î). 선생님의 예술세계에 도움이 됐나요? 글쩨, 도움이 되겠죠. 학교 가면 후배들한테 그런 얘기 많이 하는데 타과 수업 많 이 들으라고, 친구를 사귀더라도 끼리끼리만 다니지 말고 영상원 친구도 많이 사귀 고 미술원 친구도 많이 사귀고. 결국은 행위와 표현만 다를 뿐 다 통한단 말예요. 그런 통함을 알면 내가 비록 장구를 치거나 춤을 추거나 줄로써 행위를 하지만 농 축된 에너지는 다르죠. 다를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 얘기 많이 해요 애들한테. 남자 사귀더라도 너 연극원 친구도 좀 사귀어봐. 사고의 폭이 확장이 되겠죠, 난 진 짜 그게 필요하다고 봐요. 우리 것만 최고가 아니고. 우리 학교처럼 커리가 좋은 데 가 어있어? 우리나라에서. 그런 좋은 커리들 맘껏 활용하고 공유해야죠. 口 4-2. 학습을 하던 시절 전공분야 외에 다른 예술분야의 전공자와 교분이 었 으셨나요?

481 口 4-2-CD 미술 분야에도 그렇고, 친분이 았는 분이 많으신 것 같은데 구체적으 로 사례를 들어주세요. 대전에 목원대학교 박석신 교수도 있고, 한국화하시는 분. 대전에 이종필 선생 도 있고, 그분도 목원대 한국화도 있고. 우리 마누라일수도 있고. 사모님째서는 미술을 전공하신 거예요? 네, 그죠. 전공이죠. 구상. 그런 전공이 동기부여가 되죠. 인사동을 많이 다녔지 만 마나님을 통해서 그림의 이해의 폭도 넓어졌고, 동기부여도 됐고. 그가 소장 한 책도 내가 다 봤으니까. 그런 거 하나씩 알아가는 것도 재있고. 口 4-3. 다른 전공분야의 경험들을 활용해 보신 척 었으세요? 재담 구성하는데 플러스 요인이 되겠죠. 어느 줄광대가 그 대상 사물을 어느 정도 인식하는지가 생명력이니까 지도 교수에 의하면 재담 구성이 남다르다 이러시고. 口 4-4. 다른 예술분야를 자기 전공분야와 함째 배우연 어떤 이점이 있는지 조 금만 더 얘기해 주세요. 결국은 무대라는 공간에, 만약에 연희로 따지면 나는 연희자라고 한다면 상호 교류를 하게 되면 전체를 읽는 눈이 남달라질 수 있겠죠. 왜냐면 미술과 교류를 하면 색에 대한, 결국은 무대에서 색이 좌지우지 하는 데가 많으니까. 조명이랄 지. 또 내지는 소품 활용도. 고런 감각도 키울 수 있을 것이고. 연극 쪽으로 교류 한다면 연희자체가 다 포함하지만 무대 활용도, 무대 동선, 대사를 칠 때 무 엇의 중요성, 상호 소통할 수도 있을 것이고. 영상원으로 따지면 요즘에 영상이 중요시 되는 것이 많이 있어서 결국은 다 상생이죠. 커질 수밖에 없지. 커질 수 밖에 없잖아요. 전체를 이해하는 거 하고 내 것만 이해하는 거하고는 다르지. 口 4-5. 무대 서기 전이나 콩쿨 나가기 전에 얼마나 연습을 하시나요? 나는 콩쿨은 나가보지 않았고, 내가 어렸을 때 무형문화재 마당 발표공연. 내 기준에는 그런 것이 제일 컸으니까. 그러면 내가 공연을 위해 집중적으로 학습을 하죠. 선생님을 늘 대동을 해서 주어진 시간을 활용을 잘 해야 되니까. 그 정도? 이주 정도 집중적으로 보통 한 세타임 정도 학습을 하면 두 타임은 평상시대로 고, 한 타임은 몇 월 몇 일 발표공연을 위한 고렇게 많이 하죠. 이 주 정도는 하루 중 몇 시간 정도? 발표공연만을 위해서라면 한 두어 시간 되겠죠. 예전에는 발표공연이 심사기준 이 굉장히 엄했어요. 지금이야 좀 그랬지만 내가 어렸을 때부터 선생님 대신해서 내가 다 했으니까. 엄했다는 게 무슨? 평가 기준이

482 口 4-6. 일방적으로 배울 때, 줄타기를 하는 목표나 포기하지 않은 계기가 았었나요? 열정, 끈기, 가정적인 거 다 포함하지만 기본적으로 재미가 수반되니까 했겠지. 목표는? 어린 시절에는 목표 그런 것 보다 재미가 수반되니까 했고. 굉장히 재미있었 지. 또 누군가는 해야 되고 남들이 안하니까 더 재있는 거고. 사명감 같은 것도 았으셨어요? 그건 스무 살 넘어서 고민한 거고. 되고. 실제로도 도움이 많이 됐죠. 어렸을 때는 그냥 재있고, 가계에 도움이 口 4-7. 연습을 할 때 한 두 번 하고 마셨는지, 아니면 스스로 원하는 목표를 01 루면 그만 두셨는지? 이루면 그만하죠. 형식적인 게 아니고. 지금은 그래요. 아까 삼십분 같은 경우 에는 밑줄이라고 하는데 기본기, 현재에도 A동작, B동작 전개를 하잖아요. 현재 는 감이 제일 좋을 때 딱 그만둬요. 예전에는 A부터 쭉 나열했다변 이젠 기본동 작은 폼에 다 있으니까. 기본기 한 다음에 그게 7번이 걸릴 수도 있고 8번이 걸 릴 수도 있는데, 동작명이 지금은 제일 좋을 때 딱 멈춰요. 그러면 그게 그대로 축제 현장에서 나타나죠. 그게 그 안에 있으나까. 그게 이제 매일 반복되는 일상 이지만 반복되는 행위를 통해서, 감각적으로 저기가 있는 것 같아요. 口 4-8. 어떤 상황에서 연습을 그만 두셨는지? 딱 좋을 때. 실제 공연하기 전에도 최면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일 년 중에 가장 좋았던 현장, 그런 걸 하나씩 생각해요. 그게 실제로 도웅이 되고. 어떤 공연은 몇 년 전 거도 고민하고. 춘천에서 도깨비 난장 이랄지. 최면 거는 건 아니고 결 국은 사람이 코드 자체가 긍긍부부니까. 口 4-9. 최악의 경우를 대버해서 연습한 경우가 었다면요? 최악의 경우는 줄이 끊어지는 경우도 있고. 실제 공연하면 보통은 컨디션이 아 무리 안 좋거나 축제현장이 난해하더라도 기본적으로 흘러가지만 100번이면 1 번 정도, 실제로 줄에서 내려오는 경우도 있죠. 내려온다고요? 떨어진다고요? 떨어지는 게 아니고 중간에 다리에 마비가 온다거나, 그럴 때 있어요. 그거는 어 떻 게 할 수 있는 게 아니 까. 대비책 같은 건 었으셰요? 팬만하면 그렇진 않은데 그거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오는 거거든요. 지나친 조명이라든지, 조명이 굉장히 뜨겁거든. 한 시간 공연을 하는데 코드를 읽지 못하는 경우, 와요. 탈진하는 경우. 협연 같은 거 할 때 나 혼자 할 때는 사 오십 분 아무것도 아닌데 결국은 관현악이나 이런 사운드와 같이 협연이 될 경

483 우에는 자로 댄듯한 그게 있잖아요. 딱딱 정해 놓고 가야 되니까. 예를 들면 KBS국악관현악단 하고 한 시간 반짜린가? 야외에서요? 아니. 무대에서. 홀에서 한 시간 정도 하니까 다리가 마비가 왔는데, 익숙하지 않은 것에 사고가 있죠. 그러니까 아무리 준비를 많이 해도. 대비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가요? 대비할 수도 있겠죠. 지금 하라면 그렇게 안하겠죠. 지금은 두 시간이라도 하지. 어떤 대비를? 조명의 강도, 줄의 설치문제. 줄의 설치도 좀 엉성했으니까. 지금은 충분히 한 번 더 대비를 하겠죠. 첫째는 KBS홀에서 그랬고. 그 다음은 울산에서 했나? 그 때는 또 굉장히 좋았거든요. 口 학생 때 스숭님께서 가르치는 대로만 하셨는지, 아님 다른 방식으로도 해보셨는지? 다른 방식도 당연히 해보죠. 기본적으로는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하지만 경우 에 따라 요령도 생기고, 동작도 다르게도 할 수 있고.A동작을 가지고 탄력을 이용하 게 1 단계, 2단계가 있어요. 선생님과 할 땐 무조건 2단계로 하죠. 근데 더 러 요령 피면 1 단계로 하면 정말 편하거든요. 줄 자체에서 요만큼만 떠있는 상태에서 동작을 전개하는 거 하고 이만름 떠 있는 것하고는 다르잖아요. 요령을 피기도 하고. 그 동 작을 보통은 1 단계로 하면서 그 동작을 더 천천히 하면 꼭 장난감 같죠. 口 선생님은 몇 잘 정도에 잘한다는 자신감이 든 적이 었으셨는지? 공연을 하는데 재담을 참 많이 하는데. 섭대 때는 그것올 알기 위한 줄 학습이 전부였다면 이십대는 줄 위에서 겁 없이 날라 다녔고, 삼십대 되니까 줄놀음에 대해서 조금 알 것 같다. 그런데 사십대 들어서니까 여전히 줄놀음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여전히 난 안개 속을 걷고 있다 오리무중이다. 그런 얘기를 많이 하죠. 그런 재담을 많이 해요. 다르겠죠. 이십 대는 겁 없이 줄을 탔고. 줄 위에서 겁 없이 날라 다녔으니까. 어렸을 때 난 좀 잘하구나 하는 자신강이 생긴 계기가 있었는지? 그 때 기교는? 이십대 초반이겠죠. 계기는? 계기보다는 매일하는 거니까. 매일 공연하고 매일 연습하고. 어떤 동작을 해도 위에서 새가 된 듯한 그런. 口 남과 다른 자신만의 표현 방식이 었어야 펀다고 생각하셨나요? 그런 거 보다는 줄놀음이 가지고 있는 구성체계가 있는데, 예전에는 놀음형태 였다면 어느 시점에 와서는 판줄 형태가 아니고 도막줄 형태가 되었단 말예요

484 어느 시점부터는. 전체 스토리가 아니고 보여주기 좋은 것만 골라가지고 30-40분 만 공연 형태로 보여주는 것. 어릿광대도 없고 일인극 형태로, 삼현육각은 그냥 가고. 그런 것을 채우기 위해 학습을 했고. 그런 학습을 통해서 어쨌든 재담 능력은 좀 있다고 생각이 되는데. 그게 표현이 되는 거겠죠. 그걸 다른 사람과 다르게 표현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원래 있던 것을 학습하면서 다 하고 싶어서 그러다 보니까. 남다르다기보다 대상을 읽어내는 그런. 口 4-12-CD. 문제의식을 가지신 건데, 몇 살 때 어떤 계기로 그랬는지? 어떤 계기라기보다 줄놀음이 가지고 있는 여러 구성들이 있는데. 천천히, 주위 에 문화재 선생님이나 전문가 선생님들이라 우리네 줄놀음의 표현 방식은 이런 거니까 김군이 하나씩 채워나가야 된다고 늘 듣던 거니까 아 그런가보다 하고 실제 학습을 했고. 재있었고 그런 거지. 그런 얘기를 처음 들었던 때가? 십대 후반부터. 우리의 줄놀이는 이런 거다. 그래서 채워 나간 거죠. 口 스승님이 하지 말라고 했던 것틀을 해보고 만족스러웠던 적이 었으셨는지? 글쩨. 학습할 때는 크게 모르겠네. 口 스승님에게 기본만 배웠던 상태에서 혼자 기본을 념어 본 적이 았으셨는지? 뛰어 넘는다. 그런 거 보다 기본기를 하면 늘 익숙하니까, 뛰어 넘는다 그런 것 보다. 예를 들면 눈감고 걸어갈 정도. 예를 들면? 표현하자변? 그런 거. 뛰어 넘는다? 야간에 공연을 하면 시골가면 가로등이 없었어요. 밤에 훈련을 해요. 첨 에 줄에 서면 줄이나 작수목이 보이질 않아요. 근데 늘상 야간 공연을 위해 이렇 게 하다 보면 나중엔 줄이 훤히 보이고 작수목이 시야에 확 들어오}요. 그런 거죠. 김덕수 口 1-1. 일찍이 학습을 받았고 성공했기 때문에 영재라고 생각하시는지요? 口 1-1-CD 당신은 동의하는가? 코흘리개 때부터 이결 했는데 왜 했을까? 하는 것이 있어요 년대 초까 지는 이런 시스템이 없었고, 대개 전문 예술을 하는 단체나 옛날부터 해왔던 그 런 집단에서 아이들 때부터 가르쳐야 했던 역할이 있었기 때문에 그 시절의 명 인들이 영재가 아니라 싹수 있는 애틀을 찾았죠. 선생님들이 선택을 하게 되는데 소리였던, 춤이였던, 악기였던, 꼭예적인 것이었던, 지금하고 상황이 다른 건 사 회 환경뿐이지만 그것의 공통되는 것은 아주 영재적인 아이들을 뽑는 것은 선생 몫이에요. 펼요로 하는 선생에 의해서. 아마 그것이 지금도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날 거예요. 어떤 능력이 있는 애틀 감성이나 인성이나 지금은 크게 돋보이지

485 않지만 교육을 시킴으로서 클 수가 있다든지 하는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 번째는 스스로 영재, 천재라고 하는 애들이 어댔어요? 스스로, 주위에서, 보는 관 객 많은 대중이 우리 때는 천재 소년. 얘기 때부터 이랬죠. 하늘이 준 재능이 있 사람이라는 뜻 아니에요. 우리 학교가 됐던, 전 세계 똑같을 거예요. 어떻게 뽑을 거며 그런 능력을 가진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을 시킬 거냐. 아주 어렸을 적부터, 4살부터, o}버닝을 따라다니면서? 따라다니지 않았죠. 날 모시고 다녔죠. 왜 따라다녀 할 일없이. 내 할 일이 있 고 역할이 있기 때문에 사실을 모시고 다닌 거예요. 어른들이. 실제로 중요해. 그 런 표현이. 우리는 요즘처럼 레슨 받아서 어느 날 데뷔, 그게 아녀l 요. 고 어린아 이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날부터 한 몫을 받는 프로가 되는 거니까 전혀 다르 다. 그 속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학습을 하게 되고 아이가 어른이 되는 과 정에서 모든 예술적인, 기초적인 것을 공부하면서. 역할을 하시기 전에는? 첫날부터 공연을 했는데. 디 1-2. 선생님째서는 어렸을 때부터 주변의 예술 환경이 조성된 거잖아요. 어르 신들이 보신 선생닝만의 행동특성이 있었는지? 요즘이나 그때나 다름없는데. 그결 하고자 하는 사람의 의지냐. 그런데 그게 아이 일 때는 그 아이가 좋아하면 되는 거예요. 그 아이가 싫어하면 그건 못하는 거죠. 근데 5-6세 유아 때, 무슨 자기 의지로 하겠습니까? 요즘 아이도 그쪽 방면에 끼 가 있는 애들이 시키지 않아도 하고 텔레비전 앞에서 하고. 영재나 천재나 아이 이 재롱 피우다 끝나는 거냐. 아무리 아이지만 재는 정말 천재적인 소질이 있구나. 그 정도는 되니까 우리나라 최고의 예인들이 모이는 집단에 들어가서. 그 때부터 아무나 개런티 줍니까? 그런 것들은 요즘에 남 앞에 가서 무엇을 하든지 간에 자기 가 하는 행위에 대한 보수를 받는다는 것은 그건 프로죠? 엄청난 거죠. 그 자체가 증명이죠. 유아 시절에 어떤 장르가 됐던 그런 일을 해내고 있는 아이가 있다면 그 레이드를 나눠야 돼요, 예를 들어서 김연아나 박태환을 봅시다. 재들 고등학생이에 요. 그런데 세계를 재패하고 있다고요. 그게 어느 날 갑자기가 아니에요. 어떤 것이 됐던 예체능과 인문학 다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같다는 얘기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애가 시켜보니까 대단한, 그런 것을 보는 그 결과들. 그 때 했다면 그 환경이 어떠했던 이렇게 본다고. 그럼 모든 아이들이 다 하는 거냐? 그건 아니라고. 영재라 는 개념을 어떻게 볼까 하는 것 때문에 그런 거잖아요. 口 1-3. 어련 시절에 선생님의 재능을 타언이 알아 본 적이 있었냐요? 알아봤다면 口 1-3-(1) 그 타인은 누구인가? 어른들은 이미 검증을 하셨겠죠. 훨씬 전부터. 그 검증의 결과로 데뷔를 시킨 거고. 그 아이는 그 환경 속에서 실제적, 영재적 그런 교육이 없었더라도 그 조 직, 그 집단이 최고의 선생들이 있다면 그 시대 최고의 교육을 받는 거죠. 산교

486 육을. 그게 중요한 거죠. 우리 학교에서 사실은. 그게 엄청난 사실은 책임이 따르죠. 口 1-4. 동료나 작고하신 분 중에 영재라고 생각하는 분야 았으신지? 선생님들 아이 때 것을 내가 어떻게 알아요? 내가 만났을 땐 이미 어른 됐을 텐데. 口 누구? 그 이유는? 우리 쪽에 어른들이 몇 분 계시잖아요. 예를 들어 한일섭 선생님 같으신 분. 실제로 아쟁 산조를 만드셨잖아요. 전통이 가지고 있었던 어떠한 뿌리를 가지고 그결 재창조하신 어른들, 한성준 선생님들 같으신 분. 그 분들의 뿌리논 무속 남 사당에 계셨던 분이예요. 한 시대를 길게 읽고, 시대의식을 읽고, 전통을 완전히 창조적으로 계승한 분이죠. 우리 전 시대에 계시죠. 실제로 그런 어른들이 그 시 대 천재 예인이 아닌가, 난 그렇게 얘기하고 싶네요. 口 1-5. 본격적으로 스승을 모시고 학습을 시작한 시기는 언제인가요? 첨부터 얘기를 드리는데, 학습의 가장 원초적 현장에서 할 수 있다면 최고의 공부인 거예요. 교실에서 선생님이 교재로도 가르칠 수 있고 여러 방법으로 가르 칠 수 있죠. 그게 아니고 정말 현장 관객이 있고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생활하면 서 예술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교육을 받았어요. 그때는 그게 교육 이 아니고 삶 자체인거죠. 그치만 그 환경에 맞춰진 교육을 어른들은 시칸 거죠. 환경 자체의 모든 게 그 나이에 따라 달라요. 유년기, 10대기, 10-20대 넘어오는 그 과정이 다 다를 뿐인데. 많은 공간의 다른 살아있는 기운. 환경 속에서 꼭 판 소리의 어느 대목을 배우고, 승무를 배우고, 이런 게 아닌 거예요. 둘 중에 하나 죠. 아주 논리적으로 배우는 교육이 과연 올바른 거냐? 이성과 감성의 차이는 뭐 냐? 양쪽이 다 필요하지만 현장에서 두 쪽올 다 배울 수 있다면 최고의 교육이 죠. 악보니, 영혼적 예술의 감성적 표현을 어떻게 글로 논리정연한 것으로 가르 칠 수 있겠습니까? 어느 분야든 세계 최고의 선생은 자기 학생에게 그 에너지나 그 기운을 결국은 전달하는 거 아니에요? 그걸 받은 학생이 또 다른 자기만의 세계를 표현해 내고. 단 최소한의 디지털화되고, 가장 기초적인 것을 정리하고, 학문화 하는 것은 필요하겠죠. 그치만 그게 절대 다는 아니라는 거죠. 口 1-8. 어렸을 때 자기 발전의 동기는 무엇이었나요? 동료 간의 경쟁이었다거나? 거 정말 재미없는 질문이에요. 말이 안 되는 것 때문에 그런 거예요. 어느 누 가 그런 걸 인지하고 하나? 괜히 요즘 우리 엄마틀 자기도취지, 자기 대리만족이 지. 영재니 뭐니 이건 자기가 즐겁고 자기가 좋을 때 하는 거고, 그 과정에서 영 재는 관객에 의해서 달라지는 거. 하는 아이가 그 과정에서 영재니 천재니 하는 것은 그게 모였던 아이가 생각을 하면 어디까지 하겠어요. 상 타니까 좋을 거고. 과연 10 대 애들이 어디까지 생각을 하겠습니까? 그런 환경 속에서 그 아이의 인 성적인 것이라든지 감성을 엽그레이드 시키는 그런 교육을 그 아이는 어떻게 받 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죠, 그렇게 불어버리면 세상의 어떤 사람이 모두가 그럴 수 있다고 봐요? 사람에 따라 옆의 동료가 든 사람이 모두가 그럴 수 있다고 봐

487 요. 아주 일반적인 사람들이 저놈이 반장하는데 내가 왜 반장 못해? 예술세계 전혀 다르다고 봐요. 평생에 예술을 어떻게 경쟁합니까? 다 다른 거거든요 똑같은 장고가락을 치더라도, 아주 간단한 굿거리장단만 해도 그래요. 이 사람은 이 맛이 있구나, 이 사람은 이 맛이 있구나. 너는 1 등이고 나는 2등이고, 이건 아니라고 봐 요. 영재라는 판단을 이렇게 둔다면 난 그건 아니라고 봐요. 어느 것이 됐던 아이 때부터 자라오고 학습해가는 과정에서 그 아이가 깨달음을 가지면서 예술적 벽을 념어서 어른이 돼 가는 과정, 어른이 된 다음에서도 또 그 벽이 수없이 있어요. 그 건 꼭 피해야 하는 게 아니에요. 사람이기 때문에 모든 생활 속에 있는 그 모든 걸 이겨내지 못하면 무슨 예술이에요? 그냥 재주꾼 되고 끝나는 거죠. 굉장히 어 려운 거예요. 예인의 길이라고 할까요? 그 예인의 진정한 가치관과 존재성올 가진 그 사람은 이 사회 속에서 영재도 천재도 아니고 바보취급을 받는다는 거죠. 요즘 세대를 보란 말예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 하잖아요. 그게 일반적인 거라 거죠. 과연 우린 어느 쪽이 우리들이 얘기하는 예술, 그것보다 높은 것은 도적 인 또, 예인의 삶과 가치관. 진정한 의미의 예인의 존재성은 뭐냐, 왜 이런 얘길 하냐면 과연 천재는 어디 기준을 두고 있느냐 하는 거죠. 파연 베토벤, 모차르트가 천재였을까? 우린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는 거죠. 그 때 그 시절과 그 사람이 살았던 그 환경과 지금과는 다르다는 얘기예요. 우리는 전통예술, 그것도 공연예술 의 한계가 있잖아요. 현재의 공연 예술분야는 어떤 환경에 있냐는 거죠. 이 모든 게 함께 생각하고 그의 기준을 두지 않는다면 우리가 엄청난 잘못된 우를 범할 수 있어요. 그런 얘기하잖아요. 과학고니 특목중학교니 만든다고, 수많은 아이들이 있 데 돈 있는 애들만. 돈이 없으니 도전도 못하고. 그런 얘기하잖아요. 서울대 음 대에 이쪽은 돈이 있어야 하는 거야. 악기를 사야 되니까. 국악도 지금 마찬가지예 요. 우리 얘기지만 음악과, 무용과, 연희과가 있어요. 어쩌면 연희과 애들이 제일 가난해. 그게 현실이에요. 누구 잘못도 아니죠. 어디에 기준을 두고. 그들도 공부하 는 학생이고, 거기에도 천재가 있고, 거기도 부족한 애가 있죠. 생각하고 얘기 안 하면 우리가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거예요. 현질적으로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그런 선생님 문제들을 현실적인 간단해요. 연희를 하면 앞으로 최고로 잘 나가 직업, 예인 될 수 있다. 그러면 천재가 쏟아져 나올 거예요. 비전을 제시해야 하군요. 당연하지. 질 높은 학생을 뽑자면 그런 환경이 조성돼야 해요. 근데 껴들 아직 가야금을 잘 탈 놈인지 소리를 잘할 놈인지 아무도 몰라요. 단 뽑기 전에 싹수 를 본다고. 그건 볼 수 있어요. 정 말 느닷없는 아이큐 OQ)가 170넘으면 그건 진짜 돌연변이죠. 근데 예술에서 그걸 어떻게 측정하겠냐. 만약에 탈춤 잘 추면 세계 수퍼스타가 된다. 더라, 줄 잘 타고 팽과리 잘 치면 돈방석에 앉는다 더라. 그럼 너도나도 그 교육 받으러 오죠. 근데 누가 그거 배우리 오겠냐는 거죠. 그거하면 줍고 배고프고, 예인의 정신과 예인만이 갖는 영혼과, 과연 우리가 얘기 하는 예 인의 정신과 우리 전통문화를 이어가야 하고 이런 정신이 어디 있냐는 얘기죠. 학부형한테 어었냐고, 학생 스스로 선택할 수가 없어요, 그러한 사회 환경 때문

488 에 이거는 그런 것 같아요. 십년 전에 전통원이 생기면서 전통 연희과가 생겼는 데 이건 엄청난 거예요. 고려이후 조선 50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그 환경에 만 들어진 것도 있지만 양반 문화에서부터 현재까지 생각 안할 수가 없는 거예요. 민속 이란 말을 하잖아요. 아니 가장 우리적인 것이 저속하다고, 민속이라고 하 잖아요. 민족 하던지. 그러기 때문에 그냥 민속놀이야. 무속이나 풍물이나 탈춤을 우리 거라고 하면서 소위 음악, 춤, 소리, 이런 대접을 해주고 있냐는 거지. 이렇 게 모시고 있는 거에 가장 유전자 같은 씨앗 같은 DNA는 어디에 있냐는 거죠. 지역에 있는 전통연희, 무속, 전제부터 시작해서 노동을 할 때 하는 생활 문화 일수도 있어요. 수천 년의 결과물이죠. 근게 그걸 우리 스스로 사실 천시하고 있 어요. 꼭 예술세계 뿐만이 아니죠. 어느 날 서양문화 특히 서양종교 성경말씀이 들어오고 그런 결과지만 왜 단군할아버지 목을 치냐고. 굉장히 중요한 얘기예요. 그런 의식들. 어느 날 남의 것은 폼 나고 그거의 모방, 우리 것을 우리 속에 그 쪽 거를 화 하는게 아니라 그쪽 것 안에 우리 것이 화해버리는. 솔직하게 얘기해 야 해요. 그렇게 돼 버린 사회구조 사회의식이 일반 국민의식이에요. 사실은 그 것 때문에 지구촌도 매일 전쟁하고 그것 때매 결국은 빈부의 격차 마찬가지예요, 얘기 안하고 있는 거예요. 신문 나잖아. 대통령 새로 되니까 소망 교회니 신조어 도 생겨난대 잖아. 괜찮아요. 그것도 시대의 흐름일 수 있으니까. 그치만 이제 쯤 은 함께 갈 수 밖에 없는 서로가 상생적으로. 이 쪽의 좋은 게 있으면 나한테도 좋은 게 있을 수 있고 그런 속에서의 더불어 함께 가는 그런 속에서의 불균형적 인 거. 이결 알면서 참고 알아도 모른척하고 가죠. 그 폭을 줄이려고. 우리가 언 제부터 교육을 받기 시작했어요? 상놈이라고 하는 일반 서민들이 100년 전에 동 학운동은 노예 해방운동이에요. 다 노비문서가지고 있으니까. 동학은 그거 아녀l 요. 그 100년 사이에 한일합방. 일제가 있었고, 전쟁이 있었고, 불과 30-40년 정 도의 불꽃 튀는 변화가 있었던 거죠. 너무나 오랜 시간 어려웠으니까. 그러니까 뭐든지 최고야, 건물을 하나 져도 세계 최고. 이제 충분히 그런 거 다 경험했으 면 이제 자기 자신에 대한 거울 들여다보면서 내가 누굴까 하고. 다 최고면 어떻 게 존재가치가 있어요? 그러한 시대의 현재의 우리들이 어떻게 예술을 교육을 시키면서 특히 전통예술에서 영재 교육에 우리 정신이 있잖아요. 과거의 것이 있 었고, 글로별한 시대에 어떠한 정신을 기초로 해서 세계의 내노라 하는 다양한 문화 시장 속에서 경쟁을 하고. 상생, 즉 창조적인 것을 그 교육을 시켜야 되는 데 그 기본이 없다는 거예요 우리 스스로가, 우리 전문가끼리도, 학교 교수들끼 리도. 난 극히 부정적이에요 예술학과에서도 뭘 배우는지 모르지만 다 외국의 기본을 갖다 배우거든. 우리건 얼마나 알고. 난 한 번도 들어 본적도 없고, 세미 나 가서 들어보면 아주 현실과는 동떨어진 학자만의 자기 도취성이 많은 우리학 교만이 아니라 바깥 쪽도 그렇고. 그래서 가면 뭐 물어보고. 그런데 내가 가는 세미나장은 흥분되는 쪽으로 끝나죠. 그런 거 같아요. 미안해요, 질문하고 전혀 다른 답을 해서. 아니. 우리 그 정리 안하면 안 돼요. 지금의 시간의 축이 있잖아 요. 현재까지 온 결과. 그건 미래까지 생각을 모든 상황에 좌표 설정을 해야 한 다는 거죠. 그거 없이는 어디 맞출거냐는 거죠. 영재 교육 초 3 에 맞취서 어떻게 할까요? 실기 가르치는 거야 쭈르록 나올 수 있죠. 그게 영재 교육은 아니잖아

489 예술을 어쨌든 혼이 담긴, 시대가 바뀌어도 기본적인 역할 있잖아요. 현재의 시 간의 축에서는 그 좌표의 기본을 어떻게 정해야 된다는 거죠. 그거 없이는 장고 만 디따 잘 친다고 예인, 천재가 됩니까? 결국은 하나를 가르키면 그거에 고민하 고 모든 역량과 그 상상적인 것을 현실적으로 창조하고 그러면서도 우리 걸 안 버리는 그런 기초적인 교육을 시켜야지 영재가 탄생되는 거 아녀l 요? 우리 스스 로가 그런 정리가 부족하다는 거죠. 인터뷰 받고 있는 나 자신도. 연희과 생길 때 모두들 박수를 쳤는데. 10년 동안 컨테이너에서, 이건 말도 안 돼. 선생으로, 선배로서 창피해. 전통연희마당에서 이뤄진 걸 가르치는 게 기본인데, 김대균 선 생 있지만 줄칠 때가 없어요. 우리는 사실 그래도 버터 오는 거 보면. 그치만 졸 업해서 자신의 현실 세계가 있으니 가긴 가요. 가지만 간단히 말해서 우리 학생 들 진로가 어었냐 말이죠. 말할 수 없는 어떤 의미에서 고통 정도가 아니라 고문 이에요. 지금 과연 우리가 영재를 길러서 어떻게 할거냐 하는 대책이 없는 거예 요. 솔직히 학교에서 예비학교 했는데 나 한 번도 참여를 안했어요. 요번만은 교 육원이 생긴다니까, 10년 전과 달리 교육원이 생긴다고 열심히 해서 교과과정부 터 시작해서 우리 스스로 공부하면서 가야 되지 않느냐. 그래서 10년쯤 됐을 때 생각해야지, 그 아이가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보다 나은 것은 만들 수 있게 되 기를 기원하면서 적극 참여하자고 하는 거죠.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작은 일인 것 같지만 가장 소중하고 가장 중요한 일이예요. 인터뷰하기 전에도 그런 얘기하고 있었고, 그게 매일 고민이죠. 그런 고민 안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럼 편하겠지. 자기 혼자 활동하다가 나이 먹어서 때가 되면 은퇴하고. 우리 선배들은 안 그랬 어요. 그랬기 때문에 우리 대까지 우리 아버님, 할아버지 역대의 수수백년을 그 렇게 해서 이겨내면서 전달해 주신 무형적인 모든 것을. 그것을 그렇게 쉽게 무 시 발로 차 버리고 말수 있냐는 거지. 그래서 이 학교도 생긴 거고. 여러 정책이 있지만 이건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이것이 잘되면 모든 게 살아요. 언제 영재교 육 교재를 만들어 본적 있어요? (시계를 의식하니)더하세요. 근데 4시부터 수업 있어요. 얘기한 거 풀어서 쓰세요. 조금 더 얘기해도 되요. 학생들 똑같이 가르쳐 도 어떤 놈은 선생 잡아먹을 놈 이네. 그런 애들이 영재고 천챈거예요. 예술적, 기능적인 것만을 봤을 때의 평가와 눈에 귀에 보이지 않는 공력, 의식, 그걸 어 떻게 읽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거죠. 디 2-9. 영재의 기교가 아년 장째력을 알아볼 수 었는 방법은 무엇이 었을까요? 인간사회가 알면서도 모른척한다고 했죠. 사람을 외성적인, 내성적 사람. 아무 것도 모르면서 잘난척하는 사람도 있고. 근데 많은 분야의 예인들이 자기가 가지 고 있는 어떤 것을 소위 말하면 상품처럼 팔려고 하지 않는 그런 자존심이 사실 은 중요한 거거든요. 그니까 얘기 안 하고 나서지 않지. 누가 알아주던 말던 자 기의 의지대로, 자기가 배워온 자기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 그럼 이 사람들은 천재예요? 바보예요? 보통 사람들이예요? 겉으론 아무도 모르겠네요. 보통 그게 훨씬 많다는 거죠

490 그럽 어떻게 끌어낼까요? 고민해야죠. 이젠 세월이 변해서 우리 때 어른들은 줍고 배고픈 거부터 배우라 고 했고, 그거 배우지 못하면 그 때 어렵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에요. 요즘 줍고 배고픈 거 가르친다면 아무도 안 해. 우리들이 예인의 어떠한 기본이 기준을 잡 는 것도 지금 시간대에서 또 변하겠죠 그것도. 아까 내가 얘기한 전반적인 생활 의 변화, 미래의 영재 교육의 기준이 되는 좌표를 명쾌히 세우지 않는다면 아이 에게 너 이거 배워서 뭐 할 거야? 어떤 기본을 가지고 아무리 잘난 선생이라도 그 아이의 꿈을, 자라서 어떤 일을 할 수 있게끔 가르칠 수 있어야 하는데 테크 닉만 갈쳐요? 그럼 영재교육이 아니라 재주꾼 교육이 되는 거죠 영째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돈이나 학연 지연 없이 공정하게 뽑을 수 았을까요? 어떤 선생님은 어떤 계파니까 그결 선호하거나 그렬 수 있잖아요? 어떠한 전공의 유별을 따지기 이전에 초등 중등 아이와 고동 아이의 기준을 어떻게 선별할 거냐. 뭘 해온 아이가 있을 거고, 처음 시작하는 애가 있을 거고. 일단은 아이의 유년기를 본다면 초3 기준으로 봅시다. 더 어렬 수도 있죠. 아무 것도 못 한다, 그런데 그 아이가 영재 예술교육을 받으려고 한다면 예술적 기능 보다는 보편적 그 또래의 인성, 적성 뭔가 던져줬을 때 그 순간 받아들이는 창 의력, 보편적 테스트 아닌 테스트를 해야 된다고 봐요. 남다르구나, 시각이 달라, 어 보는 눈도 생각도 달라. 그런 후에 김덕수의 장고치는 걸 보고 난 사물놀이 하겠다 이럴 수도 있고, 안숙선이 소리를 잘하니 나는 앞으로 위대한 세계적인 판소리 플레이어가 되야겠다, 나는 김대균 선생처럼 21 세기 전 세계 줄타기의 왕 이 되고 싶다. 그거에 의한, 나중에 결정하는 거죠. 전통예술의 기능적인 것은 가 무 악이 기본이 되는 그런 정도의. 예를 들어 음친가 아닌가, 이놈이 난청에 이런 정도가 아니라면 우리가 자동차 운전면허증 색깔 테스트 그 정도가 아니라 면 생각의 발상이 다르네 하면 그런 보편적인 것의 영재의 기준을 찾을 수 있다 고 봐요. 그 다음은 어차피 우리 학교 오니까. 첨부터 전공은 절대로 바보라고 봐요. 많은 영양소를 줘야지. 그 속에서 요거는 괜찮은데 이거는 딸리는 구나. 그 스스로 깨닫고 선택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기초적인 예술은 절대적으로 필요하 죠. 그 중에서 골라 할 수 있는. 그래서 옛날 스승들은 다 했다는 거죠. 전공은 처음부터 정해져서 오죠? 정해진 게 너무 분화된 영양 결핍상태에서 하니까 갈쳐 준 것밖에 못하죠. 자 기의 적성도 간파되기 이전에. 그리고 분화된 교육이 전통예술분야는 절대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봐요. 장단을 모르는데 어떻게. 그냥 5선보로 갈치는 거야. 그러니 까 우리적인 신념, 우리적인 색깔이 안 나오지. 이거 잘됐다고 봐요. 컨덕팅 하는 거 어떻게 봐요? 물론 어느 날은 국악으로 애국가를 하니까 다 박수를 쳐줬어요. 악기 개량이 왜 필요하냐는 거죠. 우리 기질이 없어진다는 거죠. 으으으(구음) 이 런 거. 25줄로 하프 흉내내면 창작이야? 모차르트 사계한다고 창작이야? MBC 특집 그런 음악들이 세계 문화예술의 중심에 서다 모 이런 제목으로 그런 거 하든데 거참 세상이 많이 변했구나. 언론 매체 때문에 오는 문제예요. 일반 대중

491 도 그냥 그렇게 됐구나. 그 생명력을 봐야 되거든요. 그것이 세계인과 공유하고 얼마나 가느냐 그게 중요하죠. 口 영재들이 성장하는데 가장 걸렴돌아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난 이 학교 젤 첩에 왔을 때부터 말했지만 원어민 선생들, 초등학교에서 사회가 시끄럽잖아요. 어찌됐던 시대가 변해서 인터넷이라든지 필요로 하는 절대 필수적 인 게 이미 영어라고 할 수 있어요. 21 세기 디지털 글로벌 시대에 우리 미래에 전 통예술의 지도자 교육의 근본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 문제잖아요. 대학원을 나왔 는데 가야금을 설명하고 역사를 영어로 렉쳐할 수 있을까? 솔직히 국악을 전공한, 못하는 거지. 영재 교육에 그걸 꼭 넣었으면 좋겠어요. 그들이 40세 땐, 지구촌의 주인공이 되었을 땐, 국악을 배었다고 해서 꼭 연주자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전통 예술을 가르칠 수 있는 지도자로 나갈 수도 있고. 그 예로 태권도가 국가에서 해 줘서 세계화된 거 아니에요. 우리 윗 선배들이 서독으로 누이들은 감옥으로 가고, 형들은 실제로 우리 형님도 광부로 가고, 거기서 운동했던 형들이 독일에서 미국 으로 가서. 태권도란 단어가 우리 중 고등학교 때 없었어요. 무덕관, 청도관이랬 지. 반세기도 안 되는 동안 스스로 배고픔을 이길려고 스스로 만든. 이젠 올림픽의 종목으로까지 갔지만. 우리의 풍요로운 전통예술을 그런 의미에서 영재교육은 굉 장히 중요하다고 봐요 년 후를 보고 길게 장기적인 하지 않으면 의미 없다 는 거죠. 세계 속에 그들이 영재교육을 받아서 과연 무엇으로 갈 수 있느냐는 그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줘야 돼요. 연출가, 음악 프로듀서, 그 속에서 의사, 법학자 나올 수 있어요. 왜 로스쿨 못가요? 고대 때부터 보자고요. 그리스, 로마, 갈릴레오 예술가면서 과학자, 물리학자, 천체학자였고. 변화하고 있는 지구촌. 우리 는 그거에 기초가 되는 일을 지금 영재 교육의 초석을 까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의 영재를 뽑을 수 있다면 거기에 맞춰진 교파파정 연구개발 해야 되고, 고민해야 하고, 시간투자 해줘야 되죠. 잘났다하는 사람들이 말로만 잘났다 하지 말고 진실 한 의미의 자기 직엽의 최고의 봉사죠. 이거 참여한다고 돈을 법니까? 아님 명예 가? 그런 건 나중에 남죠. 시간이 많이 흐른 다음에 어떤 교과과정을 어떻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회 전반 흐름을 무시하며 살 수 없다는 거죠. 이 시대의 예인, 이 지구촌 예인이 될 수 있는 맞춰진 교과 과정이 절대적으로 영재교육,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켜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에요. 스페니쉬도 하고, 프렌치도 하고, 영어는 기본이고. 자유자재로 언어를 구사하면서 자기가 추는 봉산 탈춤이나 사자춤이건. 그럴 수 있는 영재들이 교육에 의해서 시스템에 의해서. 언어도 어렸을 때 아니변 하기 힘드니까? 절대적이에요. 왜 못 갈쳐요? 그래야 우리 게 세계화되지

492 서면응답(재질문) 口 1-2. 어련 시절 부모나 주변에서 이야기하던 당신만의 행동특성은?이 있었습 니까? (예를 들면 음악이 나오면 춤을 춘다던가) 네. 口 1-3. 우리가 당신을 영째라고 부르기 이전인 어련 시젤에 당신의 재능을 타 언이 알아 본 적이 있었던가? 알아봤다면 부모님과 예술 관련자. 口 1-3-CD 그 타인은 누구인가? (자세히) 口 1-4. 동료냐 작고한 전통분야의 인물 중에 영재라고 생각하는 인물은? 口 1-4-CD 누구? 한성준. 口 1-4-CZl 전공? 전통 가 무 악. 口 그 이유는? 시 대정신에 창조적 계승-전통을 펼침. 口 1-5. 당신이 본격적으로 스승을 모시고 학습이 시작된 시기? 만 5 세. 口 1-6. 스승을 모시고 (음악, 무용, 연희 등등)학습했던 내용을 시기별로 구체 적으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 남사당 시예, 악극 : 전통 가 무 악 등 국악 실기 및 이론. 口 1-7. 음악가 집 안인가? 1-7-CD 스숭온 누구였던가? 박헌봉, 송순갑, 남운용, 양로일, 지영희, 이창배, 박녹주 등. 1-7-CZl 집안 내에서 훌륭한 스승을 판별하는 기준이 었었나요? 네 자기발전의 동기는 어떻게 부여하셨습니까? (동료 간의 경쟁, 스승의 격 려, 자신의 목표 등등) 자신의 목표. 口 1-9. 전통예술에 대한 당신의 집안 분위기는 어떠했습니까? 전통예술의 시대적으로 대우를 받지 못함으로 부정적이었음. 口 어련 시절 당신의 연습량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1-10-CD 하루 얼과 중 연습량 하루 종일. 口 1-1O-CZl 연습 자기만족도 평가기준(스스로 만족? 일정한 시간동안 연습?) 스스로 만족. 口 연습과 연주 외 에 음악 감상을 할 수 았었습니까? 너

493 口 전공분야 외에 다른 예술분야에 대한 학습과 경험에 대해 말씀혜 주세요. 口 1-12-(j) 당신은 전공악기 외에 다른 분야에 경험을 쌓았던 척이 었나요? 네, 있습니다. 口 1-12-(2) 여러 악기를 연주하는 경우 각 악기의 연습량을 어떻게 조절? 전공을 위한 교양. 여러 악기의 연주(제 영향올 미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요망 절대 필수. 예술분야의 섭렵)가 당신의 전공분야에 어떤 口 전통적으로 애기명창, 소년명창 이란 말이 었습니다. 이 말에 대한 평가 부탁합니다. (애기명창이라는 자체가 한계척 상황을 노출한다고 보이는 데, 애기명창은 명언이 되기 어렵다는 뜻인가요? 아니면 애기 때부터 명인의 자질은 타고 난다는 것인지요?) 애기 때부터 명인의 자질을 갖고 있다. 口 2-1. 전통예술에 영째가 었다고 생각하는가? 네. 口 2-2. 전통예술영재라 할 만한 아동을 보신 적이 었습니까? (초등 중등 고등) 口 2-2-(j) 나이 6 세. 口 2-2-(2) 전공 사물놀이. 口 2-2-@ 어떻게(어떤 전공, 혹은 징후를) 발견했나? 교육 중. 口 2-2-@ 어디서? 부여사물놀이학교. 2-2-(5) 발견 후 어 떻게 했나? 교육했나? 너1. 口 2-2-(5)-(5) 어떻게 교육했나? 장단의 중요성 기본에 춤, 소리, 악기 순으로 교육. 口 2-2-@ 그의 예술가적 성장은 어떠했냐? 현재 예술가의 길, 가치관에 도전 중. 口 2-3. 전통예술영재 선발에 적철한 연령은 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해당전 공 전통일반) 5 세. 口 2-4. 무엇이 전통예술분야 영째성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생각나는 대로 무순 으로 말씀하셔도 팬찮습니다. 진취적인 기운으로 적극적 도전성을 가짐. 口 2-5. 위에 말씀하신 내용은 해당전공의 영째성인가요? 아니면 전통 전반인가 요? 구분해서 말씀해 주설 수 있을까요? 전통 전반

494 口 2-6. 선생념은 해당전공의 영재를 알아볼 때 무엇을 어떻게 해보시겠습니까? 노래를 부르거1 하나요? 춤을 추게? 구채적으로 어떤 노래/행동을 시켜보시는 지요? 하고 싶은 대로. 口 2-7. 어련 영재들의 선발에서 중요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뛰어 난 예술 성취 능력(재능), 연습 및 예술가척 설현에 대한 끈기, 열정, 예술가 로서의 책임감과 리더쉽, 공연현장에서의 순발력 등) 끈기와 열정 그리고 현장 순발력. 口 2-8. 전통 관련 영채 발굴에서 어떤 지표가 가장 중요합니까? 중요한 순서대 로 말씀해주십시오. (재질문) 실기 기본기의 지속적 학습에 의한 다양한 예술적 영양을 취득. 口 영째 발굴에서 제안하질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었나요? 선발분야 관계없이 영재교육 기본선발을 위한 시험내용을 개발해야하며, 단계 적으로 검증하여야 한다. 口 국내에서 전통예술영쩌들이 성장하는데 가장 큰 걸렴돌아 되고 있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물 안에 개구리식 교육. 口 전통예술영째가 앞으로 성장하여 음악가로서 담당(강당)해야 할 얼틀 은 어떤 것이 었겠는가? 1) 한국전통의 미학적 차원에서 지킴. 2) 세계문화예술로 승화발전 시키는 창조적 펼침. 3-1(1-1-(1)). 옛날 어르신들께서 싹수 었는 애들을 뽑으셨다고 말씀해 주셨 는데, 구체적으로 예술영재에는 어떤 싹수가 었어야 할까요? 하나를 가르치변 열을 받아들이는 능력. 즉 교육 또는 연습 시 한 가지의 원 리를 가르쳐 주변 그 원리를 응용하여 다른 원리까지 확장해서 이해하거나 다른 분야와 접목을 시켜 응용하여 창작화 시킬 때 영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口 3-2(1-2). 처음 공연을 시작하셨을 때, 당시 상황을 말씀해 주세요. (언제 문, 집단 구성원의 전공, 활동 등) 추석 전날, 아버지 손에 이끌려 집을 떠난 후 충청남도 조치원이 저의 첫 무대였 습니다. 조치원에 의용소방대를 만드는 권리기금 마련을 위해 난장축제가 한창 이 였습니다. 그 당시 남사당패 분들은 저를 곧바로 안아 인형처럼 어깨에 세웠습니다. 이런 놀이를 새미라고 하는데 다섯 살짜리 아이만 할 수 있는 역할로 어른의 어깨 를 타고 맨 꼭대기에서 노는 남자아이를 가리컵니다. 무서워 울거나 떼를 쓰면 절 대 할 수 없는 역할이었고 그 만큼 판에서 인기가 으뜸이었습니다. 그 이후 태평소 징, 팽과리, 자반뒤집기, 줄타기 등 남사당 생활을 하면서 최고의 스승들로부터 우 리의 전통연희를 학습하게 되었습니다. 그 남사당패는 조선 후기에 자연 발생한 민 중놀이 집단으로 실력을 갖춘 전문예인들이 전국을 돌며 최고의 솜씨로 공연을 했 습니다. 남사당놀이의 종목은 크게 여섯 가지로 풍물 농악과 접시를 돌리는 버나, 땅재주 부리는 살판, 줄타기하는 어름, 탈놀이 덧봐기, 꼭두각시 덜미가 있습니다. 口 3-3(1-2). 선생님은 싹수 있는 아이들에게 어떤 것을 시켜보시는지요? 동요에서부터 협합까지 다양한 장르가 있잖아요. 본인이 가장 좋아하고 잘할 업

495 수 있는 것을 시켜봅니다. 가장 좋아하는 것을 잘할려고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경 우가 많으니까요. 口 3-4(1-8). 자기 발전의 동기가 무엇이었나요? 끊임없는 연구정신과 도전정신 그리고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는 존재할 수 있지만 완벽한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더 완벽해지기 위해 서, 끝없이 연구해서 문제점을 찾아내고 그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합니 다 또한 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기존에 방식이 아닌 전혀 다른 새로운 것 에 대한 두려움을 깨고 앞으로 전진 할 수 있는 도전정신도 필요하다고 생각합 니다. 이 모든 것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 즉, 피나는 노력이 반드 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口 3-5(1-8). 선생념은 어떤 }이가 어떤 악기나 분야를 할 아인인지 알아볼 수 었으세요? 사람들마다 각각의 개성이 다르듯 신체적 또는 감성적인 부분에서도 각자의 기량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각각의 기능들을 할 수 있는 신체조건과 감성 적인 부분들을 확인한 후 조언을 해줍니다- 口 3-6(1-8). 전통예술분야 영찌교육에서 우리의 정신이 었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전통예술의 철학으로 어떤 것이 될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우리의 신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조들의 멋과 맛이 담겨있는 우리 전통예술인 연희에는 한국의 지역적 특성 계절별 특성 등 생활환경에 따라 다양 하게 창조 및 발전하여 왔을 뿐입니다.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신명은 어느 곳이 나 어떤 상황에도 신명을 중심으로 이루진다고 생각합니다. 口 3-7(1-8). 후학들을 위해 많은 얼틀을 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지금 까지 어떤 얼틀을 하셨는지요?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건 악기입니다. 그런 악기를 만드는 곳이 점점 줄어들고, 만드는 곳조차 예전에 장인들이 만들었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악기공방 장언을 양성할 수 있는 공방원을 개설했습니다. 그리고 폐교를 새롭게 꾸며서 사물놀이를 중심으로 전통연회를 가르칠 수 있는 부여한울림 교육원, 목포교육원을 개설하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건 교재개발입니다. 口 3-8(1-8). 선생 잡아먹을 놈이네 이런 아이들이 영채들이라고 말씀해 주셨 는데, 혹시 설제로 그런 아이들을 보신 적이 였으신가요? 별히 생각나는 아이들은 없습니다. 뭐 굳이 영재라고 생각되는 아이가 있다 면 예전에 방송을 통해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저의 음악만 듣고, 저의 연주를 따라하는 아이가 있었는데요. 저의 연주를 보기 위해 인터넷에서 찾아 혼자서 그 영상을 보고 따라하는데 정규교육을 받지 않았는데도 연주를 하더군요. 그 때 나이가 4살로 기억됩니다. 그 아이는 끝없는 호기심과 집중력을 보이더군요. 그 런 친구들이 영재라면 영재라고 생각됩니다. 口 3-9(2-9). 대부분의 영재적 기질을 가진 사람들은 이면적이라 자신을 쉽게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어떻게 끌어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해 봐 야 한다고 하셨는데요. 누가, 어떤 부류의 사랍들이 특히 고민을 해야 할까요?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입니다. 아이들의 설력뿐 아니라 그들의 생각과 현

496 재의 상황을 파악하고 적절한 교육과 휴식을 가지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기획제작자들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의 공연을 위해 연습하는 과정에서 기량이 많이 향상되며, 무대 위에서 관객들과 직접적으 로 호흡을 하는 경험이야말로 공연예술을 하는 영재들에게 가장 큰 공부라고 생 각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모님입니다. 자신의 아이들의 수준을 직시해 주 시고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은 좋지만 그 관심이 너무 많아서 아이들에게 부담을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이틀을 끝까지 지켜봐 주시고 믿어 주시는 것이 영재들이 꾸준히 노력하여 좋은 결실을 얻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口 4-1. 전공분야 외의 다른 예술분야 (혹은 다른 분야)에 관심을 두신 적 이 습니까? 4-1-CD 예술분야라면 그 관심을 어떻게 해결하셨습니까? 듣고, 보고, 따라하고, 즐겼습니다. 口 4-1-(2) 다른 예술분야의 경험이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사례를 들 어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모방. 口 예술분야가 아니라면 어떤 분야업니까? 문화인류학, 철학 u. 口 4-2. 학습을 하던 시철 전공분야 외에 다른 예술분야의 전공자와 교분이 았 으셨나요? 口 4-2-CD 였다면 어떤 전공의 누구이며, 어떻게 내 전공과 관련되는지 말씀해 주질 수 었나요? 사례를 들어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건축, 미술, 음악 등 같은 세대의 명인들 다른 분야의 관심과 경험을 자신의 전공분야에 활용한 기억이 었으시나 요? 작은 사례를 들어 설명해 주살 수 있겠는지요? 미술과 함께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즉흥적 작품 만들기. 口 4-4. 다른 예술분야를 자기 전공분야와 함께 배운다면 어떤 이점이 었겠는지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다른 기운과 신명의 교류에 의한 상생적 깨달음 무대에 서기 전 혹은 시험이나 콩쿨에 나가기 전에 얼마나 어떻게 연습 을 하셨는지요? 작품내용에 따른 기획에 위한 연습 어련 시절(음악을 일방적으로 배우던 시정) 음악을 하는 목표가 무엇이 었나요? 왜 음악을 포기하지 않고 하신 것입니까? 전통의 시대적 사명과 최고의 예인으로 계속 진행할 겁니다. 口 4-7. 연습을 할 때 한 두 번 하고 마셨는지 아니면 스스로 원하는 목표를 정 하고 그것을 이루면 그만두셨는지? 원하는 목표 이룬 후 또 다른 새로운 시작. 口 4-8. 어떤 상황에 연습을 시작하고 마쳤습니까? (음악에 었 대해 만족할 때 그 만두었다거나, 시간을 정해놓고 그만 두었다거나, 지루하면 그만두였다거나, 조금해도 잘하니까 조금만 했다거나 등)

497 약속 된 자신에 계획대로 진행. 口 학생 때(혹은 배울 때) 스숭아 가르치는 대로만 했나 아니면 다른 방 식로도 해보고 그랬냐? 자연스럽게 다른 방식이 이루어짐. 口 자기가 어느 정도 잘한다는 자신감이 든 적은 있었는가? 口 ) 몇 살 때? 어떤 계기로? 7살. 대통령상 수상 후. 口 남과 다른 자신만의 표현 방식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한 적이 었던가? 口 ) 몇 살 때? 어떤 계기로? 9 살. 악극단 시절 드럼연주 시. 口 스숭이 하지 말라 했던 표현들을 해보고 성공해본 적(만족스러웠던 적)이 었던가? (예를 들면 여기서 농현을 하지 말라 고 했는데 정작 하지 말라던 것을 해보니 좋았다거나 응) 어릴 적 없음. 나이든 후에 있음. 口 스승에게 기본만 배웠던 상태에서 혼자 스숭 없이 기본을 엽어셔 본 적이 었던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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