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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남북관계전문가 설문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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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간물은국방부산하공익재단법인한국군사문제연구원에서 매월개최되는국방 군사정책포럼에서의논의를참고로작성되었습니다. 일시 장소주관발표토론간사참관 한국군사문제연구원오창환한국군사문제연구원장허남성박사 KIMA 전문연구위원, 국방대명예교수김충남박사 KIMA객원연

공동성명 포함내용 비교

120~151역사지도서3


1. 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가? 전진과 후퇴를 반복해왔던 한반도 비핵 평화 프로세스는 년을 거치면서 중대 고비를 맞이했다. 2009년 북한의 로켓 발사와 한-미-일의 과잉대응으로 촉 발된 위기는 북한의 2차 핵실험과 이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제재 결의

차례11

개회사 축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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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송승종길병옥, ' 군용무인기개발의역사와그전략적함의에대한연구,' 군사 제 97 호, ) 최근공개된자료에따르면주한미군은기간중 268 회의무인기비행을수행한것으로알려졌다.

마지막으로경제분야에서는남과북이 민족경제를균형적으로발전시 키기위한실질적인대책들을강구해나가기로합의 하면서남북간경제 협력을구체화하기위한토대를마련됨 Ⅱ. 2018년한반도평화프로세스 문재인정부는평창올림픽을한반도평화의분수령으로삼고자적극적이대북포용정책을시도하였으며, 북한은김정은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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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정책백서목차(1~18)

(중등용1)1~27

KDI 북한경제리뷰 2018 년 6 월호 결여되어있다는것이다. 이에회담후의기자회견에서트럼프대통령은 이보다더분명할수없다 라고강변하면서도, 시간이충분하지못해구체적인검증방법에대해서는합의하지못했다고밝혔다. 이후트럼프대통령은 벌써그들은프로세스를시작했다 라고강조하면서, 경제제재는

리뷰10월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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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통일, 국제사회의역할과전망 등 4 개영역에관해총 47 개문항을대상으로 수행되었다. 이중한반도비핵화와평화체제구축과관련된 19 개문항의결과와주요함의를 제시하고자한다. 3) 각국가 / 지역별대북정책에대한평가 한국의대북정책에대한국제적지지도가가장높음 해외전문가들은미국보다

하려는당의확고한신념과의지의구현 우리의실정에맞게 경제발전과국방력강화에서최대의효과를낼수있게하는현실적인노선 국방비를늘이지않고도적은비용으로 방위력을더욱강화하면서경제건설과인민생활향상을꾀할수있는방도 주체적인원자력공업에의거하여핵무력을강화 하는동시에전력문제도풀어나갈수있는합리적인노선

갈등관리 리더십 연구결과 보고서.hwp

이글은국립외교원외교안보연구소에서매주개최되는 주요국제문제분석세미나에서의논의를참고로하여저자가작성한것입니다. 세미나일자 발 표 전봉근안보통일연구부교수 토 론 황일도안보통일연구부교수김준형한동대학교교수이수형국가안보전략연구원대외전략연구실장 발행일 2018

목차 Ⅰ. 기본현황 Ⅱ 년도성과평가및시사점 Ⅲ 년도비전및전략목표 Ⅳ. 전략목표별핵심과제 1. 군정성과확산을통한지역경쟁력강화 2. 지역교육환경개선및평생학습활성화 3. 건전재정및합리적예산운용 4. 청렴한공직문화및앞서가는법무행정구현 5. 참여소통을통한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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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핵 파문의 발단과 의미

( 제 20-1 호 ) '15 ( 제 20-2 호 ) ''16 '15 년국제개발협력자체평가결과 ( 안 ) 16 년국제개발협력통합평가계획 ( 안 ) 자체평가결과반영계획이행점검결과 ( 제 20-3 호 ) 자체평가결과 국제개발협력평가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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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회보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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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핵화에대한대가로미국에제시할체제안전보장조건으로 1 평화협정체결, 2 북미수교, 3 주한미군축소및성격변화등을제시 - [ 평화협정체결 ] 미국이공화국에대한핵위협공갈정책, 대조선적대시정책을모두철회한다면공화국도구태여미국을핵무기로겨냥하고있을필요를느끼지않게될것 이라고밝히고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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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참고자료) 폐막 기자회견문(120326).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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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7( 통권 700 호 ) 아시아분업구조의변화와시사점 - 아세안, 생산기지로서의역할확대


이글은국립외교원외교안보연구소에서매주개최되는 주요국제문제분석세미나에서의논의를참고로하여저자가작성한것입니다. 세미나일자 발 표 신성원경제통상연구부장 토 론 최우선안보통일연구부교수심상민국제법센터교수조성렬국가안보전략연구원수석연구위원 발행일 2018년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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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법학논고제 50 집 ( )

< 특별기획 > 전술핵재배치관련지상 ( 紙上 ) 토론 최근국내외에서큰쟁점이되고있는전술핵재배치문제와관련, 본연구원에서는내부연구진의여러제언을이슈브리핑에싣습니다. 이는활발한토론을통해객관적이고창의적인정책아이디어를모색하는데목적이있습니다. 칼럼에담긴내용은집필자의견해이며, 국가안보

이슈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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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최근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세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6자회담 재개 대( 對 ) 한 미 일 군사협력 금년 들어 남북관계의 개선 신호는 북측의 적극적인 평화공세에서 시작되었다.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에 이 어, 북한 국방위원회는 1월 16일 우리측에게 중대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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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군지

제4장


대한주택보증 ( 주 ) 대한주택보증

세미나자료 전국초 중 고성교육담당교사워크숍 일시 ( 목 ) 10:00~17:00 장소 : 한국교원대학교교원문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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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

[국회입법조사처] 판문점 선언의 배경과 북미 정상회담의 쟁점과 전망.s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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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지제3 호서식] ( 앞쪽) 2016년제2 차 ( 정기ㆍ임시) 노사협의회회의록 회의일시 ( 월) 10:00 ~ 11:30 회의장소본관 11층제2회의실 안건 1 임금피크대상자의명예퇴직허용및정년잔여기간산정기준변경 ㅇ임금피크제대상자근로조건악화및건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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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안보및북한압박, 제재와관련된대북정책들에대한선호도가상대적으로경제협력, 인도적지원정책들에대한선호도보다높았다. 따라서문재인정부가대북정책공약으로제시한바있는한반도신경제지도구상, 남북한시장통합, 남북기본협정체결, 개성공단및금강산관광재개등의정책이국민들에게받아들여지기위해서는북

북한의핵 미사일위협으로부터 우리대한민국을더안전하게지키겠습니다 주한미군 THAAD 배치

최근북한이초강경자세를취하는이유는첫째, 북한이안보-경제교환모델에대해회의적인시각에기인한다. 북한은비핵화에대한실익을분석한결과북한체제의동요만초래하였지북한경제에실질적인도움주지못한것으로판단하였으며, 이명박정부의출범으로안보-경제교환모델의실효성에대해의문을갖게된것도한요인이다. 둘째,


Contents Ⅰ 1 Ⅱ ~9.4 김정은공개활동 6 北, 백두산지구체육촌건설진행 ~9.11 김정은공개활동 10 北정권수립일 67 돌경축중앙보고대회 12 北, 전자상업체계 상연 개발및운영 ~9.18 김정은공개활

요약및핵심포인트 선대지도자들에대한의존도감소와김정은의리더십공고화 2012년부터 2016년까지의북한신년공동사설과신년사를핵심키워드로분석해보면, 김일성과김정일에대한직간접적인언급이김정일사망직후인 2012년에는무려 76회였지만, 2013년에는 47회, 2014년에 21회,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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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마이더스


1. 조사설계 조사대상 2017 년 2 월현재, 전국만 19 세이상남녀 표본의크기 조사방법 1,021 명 ( 가중전 1,021 명, 가중후 1,000 명 ) - 가중치를 1,000 명기준으로부여했으나, 보도시표본크기는 1,021 명으로보도해야함. 구조화된설문지를이용한전

고 시 서울특별시고시제 호도시관리계획 [ 용산지구단위계획구역 ( 서부이촌동일대 ) 및계획 ] 결정 ( 변경 ) 및지형도면정정고시 구분 도면표시번호 지구명 지구의세분 위치 면적 ( m2 ) 연장 (m) 폭원 (m) 최초결정일 비고 기정 1 미관지구 역사문화미관

더바이어102호 01~09

신규투자사업에 대한 타당성조사(최종보고서)_v10_클린아이공시.hwp

2. 응답자특성표 BASE : 전체응답자 조사완료사례수 목표할당사례수 전체 1,029 1,000 권 서울 / 인천 / 경기 역 대전 / 충청 / 세종 별 광주 / 전남 / 전북 대구 / 경북 부산 / 울산 /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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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가전략연구 일본의 아시아 태평양 전략 황세희( 재단법인 여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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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북미고위급회담과전환적국면.hwp

중점협력국 대상 국가협력전략 ( 9 개국 ) ᆞ 5 ᆞ 30 관계부처 합동

연구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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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031)223교과(교)2-1

한국정책학회학회보

조사구번호 가구번호 - 한국종합사회조사 성균관대학교서베이리서치센터 종로구성균관로 전화

2저널(11월호).ok :36 PM 페이지25 DK 이 높을 뿐 아니라, 아이들이 학업을 포기하고 물을 구하러 가를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 본 사업은 한국남동발전 다닐 정도로 식수난이 심각한 만큼 이를 돕기 위해 나선 것 이 타당성 검토(Fea


북한의핵능력고도화와한국의핵무장 남북대화문제 목차 Ⅰ. 문제의제기 Ⅱ. 북한의핵실험과핵능력고도화전망 Ⅲ. 북핵에대한한국의대응방안과핵무장문제 Ⅳ. 한국주도의북핵관리와남북대화의병행추진 Ⅴ. 한국핵무장에대한국제사회설득문제 Ⅵ. 쟁점과정책제언 2

[ 조사개요 ] 구분 내용 모집단 전국에거주하는만 19 세이상성인남녀 표집틀 유무선전화 RDD 표집방법 지역별, 성별, 연령별기준비례할당추출 표본크기 2,000 명 ( 유선 551 명 (27.55%), 무선 1,449 명 (72.45%)) 표본오차 무작위추출을전제할경우

II. 북핵문제와한반도신뢰프로세스의본질 1. 냉전대결의치킨게임 < 표 1> 에서나타난바와같이치킨게임의경우게임의당사자는직접출동이라는최악의상황을피하는회피전략을선택하는것 [A] 이내쉬균형점이지만냉전기에동서진영이대결하던상황에서상대진영에대한우월감의충족이나동맹국에대한위신때문에상대

Transcription: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회의 비핵평화프로세스와 남북협력의방향 ----------------------------------------------- 2018.10.12.( 금 ) 13:00 ~ 18:00 중소기업중앙회관제 2 대연회실 ( 여의도 ) 공동주최 : 후원 :,,

프로그램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 일시 : 2018년 10월 12일 ( 금 ) 13:00 ~ 18:00 # 장소 : 중소기업중앙회관제2대연회실 ( 여의도 ) # 공동주최 : 북한연구학회, 중소기업중앙회, 강원대통일강원연구원, 한국문화관광연구원, 한국수출입은행 # 후원 : 세종연구소,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한국자산관리공사 학술회의일정 등록 13:20 ~ 13:50 기획패널 1 ( 세종연구소 ) 사회 : 양운철 ( 세종연구소 ) 개회식및축사 13:50 ~ 14:10 개회사 : 김병로 ( 북한연구학회장 ) 환영사 : 박성택 ( 중소기업중앙회장 ) 축사 : 강성윤 ( 초대북한연구학회장 ) 제 1 회의 (14:10 ~ 16:00) 6.12 이후비핵평화프로세스평가와전망 - 완전한비핵화 공약이후북한의안보전략분석과전망 : 이호령 ( 한국국방연구원 ) - 6.12 이후비핵평화프로세스에관한정치적 기술적평가 : 장철운 ( 경남대학교극동문제연구소 ) - 비핵평화프로세스의쟁점과과제 : 김준형 ( 한동대학교 ) 제 2 대연회실토론 : 변상정 ( 국가안보전략연구원 ), 임재천 ( 고려대 ), 차두현 ( 아산정책연구원 ) 기획패널 2 ( 한국문화관광연구원 ) 사회 : 박영정 ( 한국문화관광연구원 ) 남북문화예술교류의현황과과제 - 남북문학교류의역사와향후과제 : 김성수 ( 성균관대학교 ) - 남북한음악교류의양상과지향 : 배인교 ( 경인교육대학교 ) - 남북미술교류의현황과과제 : 홍지석 ( 단국대학교 ) 중연회실토론 : 오양열 ( 한국문화관광연구원 ), 천현식 ( 국립국악원 ), 김지은 ( 건국대학교 ) 기획패널 3 ( 강원대통일강원연구원 ) 사회 : 고유환 ( 동국대학교 ) 소연회실 남북학술 역사교류의평가와과제 - 남북화해시대의남북역사교류 : 홍순권 ( 동아대학교 ) - 개성공단을활용한남북과학기술교류협력방안 : 변학문 ( 북한과학기술연구센터 ) - 한반도새로운평화, 남북여성교류의과제 : 김정수 ( 평화여성회 ) 토론 : 전현준 (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 ), 김유향 ( 국회입법조사처 ), 김성경 ( 북한대학원대학교 ), 정구연 ( 강원대학교 )

자유패널 1 핵과북한의정책변화 - Is the Denuclearization of North Korea Viable Policy Goal? : The Internal 사회 : 김종수 and External Factors of North Korea s Nuclear Policy : 이승열 ( 국회입법조사처 ) ( 더불어민주당 ) - 북한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의의미와성과 : 나정원 ( 고려대학교 ) - 북한여성의군복무와자부심형성배경 : 이현희 ( 고려대학교 ) 소연회실토론 : 임상순 ( 평택대학교 ), 이유진 ( 산업은행 ), 권오국 ( 경찰대학교 ) 기획패널 4 ( 강원대통일강원연구원 ) 사회 : 임경훈 ( 서울대학교 ) 휴식 (16:00~16:20) 제 2 회의 (16:20 ~ 18:00) 지자체남북교류협력의과제 - 접경지역남북교류의쟁점과과제 : 경기도사례를중심으로 : 최용환 ( 국가안보전략연구원 ) - 접경지역교류협력 강원도 : 김기석 ( 강원대학교 ) - 북한개발협력과남북대학교류 : 정구연 ( 강원대학교 ) 자료집별도제 2 대연회실토론 : 정대진 ( 아주대학교 ), 최규빈 ( 서울대학교 ), 우평균 ( 한국학중앙연구원 ) 기획패널 5 ( 한국수출입은행 ) 사회 : 이주철 (KBS 남북교류협력팀 ) 중연회실 기획패널 6 ( 이대북한연구회 ) 사회 : 박희진 ( 동국대학교 ) 소연회실 평화 번영을위한남북교류와인도지원과제 - 남북보건의료협력사업의과거, 현재, 미래 : 엄주현 (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 - 남북종교교류경험을통해본민족화합의가능성과과제 : 윤은주 (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 - 대북제재와인도적지원 : 문경연 ( 전북대학교 ) 토론 : 이금순 ( 통일연구원 ), 김태성 ( 한국종교인평화회의 ), 이민규 ( 서울연구원 ), 손승호 ( 한국수출입은행 ) 남북의소통과교류 : 언어, 군, 정서 - 김정은시대 < 겨레말큰사전 > 편찬사업의과제와전망 : 모순영 ( 겨레말큰사전 ) - 김정은시대대남군사소통전략 : 경제와핵사이 : 이미숙 (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 - 영화로읽은김정은시대의정서 : 김정수 ( 통일교육원 ) 토론 : 김엘렌 ( 이화여대학교 ), 유현정 ( 국가안보전략연구원 ), 윤현경 ( 이화여대학교 ) 자유패널 2 남북한협력의새로운창窓 사회 : 함규진 ( 서울교육대학교 ) 소연회실 상기일정은변경될수있음. - 식민 냉전시기북중접경지역조선인의사이성과혼종성 : 최선경 ( 북한대학원대학교 ) - 남북여성및청소년교류협력방안 : 조우찬 ( 통일교육위원회중앙협의회 ) - 남북교류협력활성화를위한법제도고찰 : 헌법과국가보안법을중심으로 : 전수미 ( 연세대학교 ) 토론 : 윤보영 ( 동국대학교 ), 최순미 ( 아주대학교 ), 배국열 (LH공사), 김일기 ( 국가안보전략연구원 ) 만찬

목차 [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회의 :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 제 1 회의 (14:10~16:00) 기획패널 1 6.12 이후비핵평화프로세스평가와전망 - 완전한비핵화 공약이후북한의안보전략분석과전망 7 : 이호령 ( 한국국방연구원 ) - 6.12 이후비핵평화프로세스에관한정치적 기술적평가 27 : 장철운 ( 경남대학교극동문제연구소 ) - 비핵평화프로세스의쟁점과과제 47 : 김준형 ( 한동대학교 ) 기획패널 2 남북문화예술교류의현황과과제 - 남북문학교류의역사와향후과제 69 : 김성수 ( 성균관대학교 ) - 남북한음악교류의양상과지향 87 : 배인교 ( 경인교육대학교 ) - 남북미술교류의현황과과제 105 : 홍지석 ( 단국대학교 ) 기획패널 3 남북학술 역사교류의평가와과제 - 남북화해시대의남북역사교류 117 : 홍순권 ( 동아대학교 ) - 개성공단을활용한남북과학기술교류협력방안 123 : 변학문 ( 북한과학기술연구센터 ) - 한반도새로운평화, 남북여성교류의과제 143 : 김정수 ( 평화여성회 ) 자유패널 1 핵과북한의정책변화 - Is the Denuclearization of North Korea Viable Policy Goal?: The Internal and External Factors of North Korea s Nuclear Policy 167 : 이승열 ( 국회입법조사처 ) - 북한국가경제발전 5 개년전략의의미와성과 187 : 나정원 ( 고려대학교 ) - 북한여성의군복무와자부심형성배경 219 : 이현희 ( 고려대학교 )

제 2 회의 (16:20~18:00) 기획패널 4 지자체남북교류협력의과제 - 접경지역남북교류의쟁점과과제 : 경기도사례를중심으로 247 : 최용환 ( 국가안보전략연구원 ) - 접경지역교류협력 강원도 263 : 김기석 ( 강원대학교 ) - 북한개발협력과남북대학교류 281 : 정구연 ( 강원대학교 ) 자료집별도 기획패널 5 평화 번영을위한남북교류와인도지원과제 - 남북보건의료협력사업의과거, 현재, 미래 285 : 엄주현 (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 - 남북종교교류경험을통해본민족화합의가능성과과제 305 : 윤은주 (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 - 대북제재와인도적지원 323 : 문경연 ( 전북대학교 ) 기획패널 6 남북의소통과교류 : 언어, 군, 정서 - 김정은시대 < 겨레말큰사전 > 편찬사업의과제와전망 347 : 모순영 ( 겨레말큰사전 ) - 김정은시대대남군사소통전략 : 경제와핵사이 365 : 이미숙 (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 - 영화로읽은김정은시대의정서 383 : 김정수 ( 통일교육원 ) 자유패널 2 남북한협력의새로운창窓 - 식민 냉전시기북중접경지역조선인의사이성과혼종성 399 : 최선경 ( 북한대학원대학교 ) - 남북여성및청소년교류협력방안 425 : 조우찬 ( 통일교육위원회중앙협의회 ) - 남북교류협력활성화를위한법제도고찰 : 헌법과국가보안법을중심으로 435 : 전수미 ( 연세대학교 )

제 1 회의 [ 기획패널 1] 6.12 이후비핵평화프로세스평가와전망 사회 : 양운철 ( 세종연구소 )

완전한비핵화 공약이후북한의 안보전략분석과전망 이호령 ( 한국국방연구원 )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완전한비핵화 공약이후북한의안보전략분석과전망 이호령 ( 한국국방연구원 ) I. 문제제기 북한은 2018년신년사를통해 2018년평창동계올림픽과참여시사와더불어남북관계개선을요구하는우리의요구를수용하며 2017년과는 180도달라진행보를보이기시작했다. 3월 5 일정의용안보실장을단장으로한대북특사팀의방북과연이은방미로남북정상회담과북미정상회담의계기가만들어졌고, 북한은 4월 20일제 7기 3차전원회의를통해핵능력이완성됐으므로이제는경제력향상에주력하겠다는 경제건설과핵무력건설병진노선의위대한승리를선포함에대하여 라는결정서를만장일치로채택했다. 4월 21일이후핵실험및 ICBM 시험발사중지, 풍계리핵실험장폐쇄, 핵위협과핵도발이없다면핵무기불사용, 핵무기 핵기술이전을금지하겠다는내용을담은결정서채택은북한의 전략적결단 의변화로평가되면서남북간, 북중간, 북미간국면전환은빠른속도로전개됐다. 2017년까지 6년간북한내부에만머물며국제무대에서정상외교를한번도수행하지않던김정은위원장은 2018년 9월말현재 3차례의남북정상회담, 3차례의북중정상회담, 1차례의북미정상회담에이르기까지 완전한비핵화 약속을내세우며북한의국제사회고립극복과지난 10년간경색된남북관계를이완하기위한노력을적극펼치고있다. 그러나, 4.27 판문점선언에서남북이 완전한비핵화를통해핵없는한반도 를실현하겠다는약속과 6.12 북미회담 3항에서 북한은판문점선언을재확인하고한반도의완전한비핵화를위해노력하겠다는약속, 그리고 9.19 평양선언에서남북은 한반도를핵무기와핵위협이없는평화의터전으로만들어나가기위한실질적인진전을조속히이뤄나가는데인식을같이했다 고하지만, 아직비핵화를위한실질적인조치는진행되고있지않다. 북한의핵시설운행은여전히계속되고있다. 북한이대외적으로표명하고있는점과결과로서보여지는실질적인변화와는여전히간극이크다. 따라서본소고에서는북한의전략적결단에따른변화가북한의안보전략변화를가져왔는가라는문제제기를통해과거북한의도발국면에서대화국면으로전환됐던시점들에서보였던특징들을분석하고자한다. 2018년국면전환이과거의국면전환과차별성을갖는것이북한당국이추구하는목표변화에따른안보전략변화인지여부를전망해보고자한다. 9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Ⅱ. 북한의도발 - 대화국면전환과특징 1) 2018년의국면전환은북한에서처음나타난현상인가? 북한은시대별로국면전환을시도했던시기가있다. 그렇다면, 과거의도발에서대화국면으로전환했던것과 2018년의국면전환의차이가무엇인가? 2018년의국면전환은현재진행형으로어떠한결과에이르게될지는아직미지수다. 그러나과거북한의국면전환시기에북한의안보전략변화가시도됐는지에대한여부를평가해본다면, 현시점에서의북한의안보전략변화가능성을가늠해볼수있을것이다. 이러한유추를위해서우선북한의도발유형과빈도가시대변화에따라어떻게나타나는지를 1 침투도발, 2 군사적도발, 3 비군사적도발, 4 전략도발로나눠서평가해봤다. 북한의도발유형별증감자체를그래프로전개해보면 < 그림-1> 에서보는바와같이 2000년이전에는침투도발과군사적도발이주를이룬반면, 2000년이후에는비군사적도발증대와전략도발이주를이루고있음을알수있다. 이그래프는도발횟수에기초하고있기때문에도발의상이한성격과강도는표현되고있지않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이러한도발추세그래프는대화국면전환시점에서의북한도발추세그래프가어떠한변화를보이는지를전체적맥락에서파악해볼수있다. < 그림 Ⅰ-1> 북한의도발추세 (1953-2018) 2) 북한의도발범주 ( 침투도발, 군사적도발, 비군사적도발, 전략도발 ) 별세부양상을연대별로정리해보면 < 표-1> 과같이정리해볼수있다. 1) 이호령 이중구 전재우, 북한의도발양상변화와남북관계연구, ( 한국국방연구원, 2018) 참조. 2) 이추이는북한의주요도발사례를토대로구한것으로서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와육군연구소의주요도발사례연표를참조하였다. 편집부 (1986), pp. 240-246; 육군연구소 (2017), pp. 606-608, pp. 609-618. 10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 표 -1> 연대별북한의지배적인도발유형 구분 1950 년대 1960 년대 1970 년대 1980 년대 1990 년대 2000 년대 2010 년대 침투도발지상침투 > 해상침투우회침투 군사적도발 지상도발 > 해상도발 > 공중도발 ( 대남도발 + 대미도발 ) 지상 지상 +NLL 지상, 공중 +NLL 비군사적도발 여객기납치 국내테러, 여객기납치 / 폭파, VIP 암살시도 개성공단, 관광객 ( 탈북인사암살 ) 사이버, GPS 교란 전략도발 - ( 단거리미사일 ) ( 핵연료주기 ) 단 중거리미사일, 위성, 재처리위협 + 핵실험, 재처리위협 ( 증대 ) + 신형중장거리, ICBM 급미사일 (HEU) 첫째, 북한의침투도발은과거에는해상침투를위주로하면서육상침투도시도하는양상으로전개되어왔으나, 2000년대에들어서는우회침투를중심으로전개되고있다. 둘째, 군사적도발은 1970년대까지는지상도발을중심으로하면서해상도발, 공중도발을병행하고한국군과미군에모두위해를가하는방식을취했지만, 1980년대에들어서는한국군에대한지상도발형태로단순화되었다. 그리고, 1999년경 NLL 도발이북한의기존도발양상에추가되었다. 2010년대중반부터는소형기를통한공중도발이새로이등장해, 현재북한의군사적도발은지상, 공중도발과해상 NLL 도발을위주로전개되고있다. 셋째, 북한의비군사적도발은 1960년대에본격화되기시작하여 1980년대까지공항과기차역등에대한테러 ( 국내테러 ) 와여객기납치및폭파, 대통령암실시도등으로다양하게나타났으나, 1990년대소강상태를지나면서남북간의교역이나교류를이용하는테러 ( 관광객이나개성공단근로자위협 ) 로전환되었다. 최근비군사적도발의중점은 2000년대말부터사이버테러와 GPS교란으로다시금전환되고있다. 마지막으로, 북한의전략도발에있어북한은 1990년대까지는미사일개발과재처리위협으로핵개발가능성을위협하는형태의도발을해왔으나, 2000년대에는폐연료봉재처리를감행하고핵실험을실시하는단계로나아갔으며, 2010년대에는핵물질의생산부분은덜강조한채신형중장거리미사일의시험발사위주로도발을감행하고있다. 한편, 남북간시대별회담횟수와도발그래프를종합하면, < 그림-2> 에서보는바와같이도발위주의국면에서대화공세의국면으로의전환이뚜렷하게나타나는시기를찾아볼수있다. 1 1967~1972년, 21983-1992년, 31996-2000년, 42012-2018년의 4 시기는도발감소와대화증대로그래프간간격이가장크게나타나고있다. 첫째분기점인 1967~1972년은 1967년에서 1968년까지북한의도발이냉전기중가장높은수준으로고조되었었으나, 1969년이후도발추세가완화되어 1971년말부터 1973년여름북한의결렬선언전까지는남북대화가높은수준으로진행되었다. 둘째분기점인 1983년에서 1992년의시기는 1983년 10월아웅산테러로인한남북간의긴장고조로부터시작됐다고볼수있다. 11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12 < 그림 -2> 남북간시대별국면전환그래프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이기간중 1980년대중후반은북한의도발이절대낮다고할수없는수준으로지속되었지만, 노태우정부의북방정책과남북대화노력으로 1990년대초남북대화의폭과수준은전례없이확대되었었다. 셋째분기점은 1996년부터남북정상회담에이르는 2000년도까지이다. 당시 고난의행군 에진입해있던북한은김정일체제의공식출범을앞두고 1996년부터강도높은대남도발을감행했으며김정일체제출범이이루어진 1997년에는대남도발을더욱빈번히추구했다. 이러한도발고조기에도남북대화의확대국면이이어졌다. 2000년들어햇볕정책을추진하던김대중정부와의대화에북한은적극적인의지를표명했으며, 6.15 남북정상회담도개최했다. 넷째분기점은 2012년에서 2018년에이르는국면이다. 북한은 2012 년부터다시금국제사회와한국에대한도발을강도높게진행했으나, 2018년에들어서북중간, 남북간, 북미간정상회담을포함해높은수준의대화를추구하고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시대의 4개의시기모두도발국면과대화국면으로전환과정에서북한의 1정치상황, 2군사상황, 3경제상황, 4남북관계, 5북중관계, 6북미관계에서공통점을보이고있다. 첫째, 정치상황을보면김일성은 자주노선 과 유일영도체계 를주석제도를도입하며 1 인지배체제와사회통제를한층강화했던시기이고, 김정일은유훈통치를통해 1인지배체제를구축해나가는가운데 1998년 선군정치 로김정일국방위원장체제를공고화시켰고, 김정은은김일성-김정일주의를통해 2016년국무위원장체제를통해 1인지배체제를공고화시켰다. 이를위해김일성, 김정일, 김정은모두이시기에헌법을개정하는공통점을보이고있다. 둘째, 군사적측면에서볼때도발과군사전략과의연계성을보이고있다. 도발국면이고조되는시점에서의김일성시대는경제국방병진정책과비대칭전략개발이, 김정일시대는선군정책, 군사강국, 핵개발공식화전략이, 김정은시대는핵경제병진정책과 4대강군화노선, 전법의강군화, 군사훈련의해에이르기까지군사전략및군사능력강조가발표됐던시점이다. 셋째, 경제와관련해서는도발국면기에북한은경제개발계획이실패하고속도전을진행해온공통점이있다. 1967 1972시기는 1차 7개년계획경제와 2차 5개년경제계획실패와이를만회하기위한천리마운동이, 1983 1992시기는 3차 7개년계획경제실패와 200일전투, 100일전투의속도전이, 1996 2000시기는사회주의강성대국론에기초한 2010계획 추진과 강계의정신, 성강의봉화, 라남의봉화 로노동의속도전이, 그리고 2012 2018시기는핵경제병진정책과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선포및휘황한설계도를제시하고 70일전투, 200일전투, 만리마운동의속도전을진행했지만, 전략도발에따른대북제재증대로 2017년북한은 -3.5% 성장을했고, 김정은시기연평균성장률은 0.45% 에그치고있다. 넷째, 북한의대남정책은대외환경의급변하는변화와남한정부의대북정책변화와상관성을보인다. 특히, 북한의통일정책변화및발전도대남정책과맥을같이하고있다. 1967 1972시기는닉슨독트린과박정희대통령의대북정책변화가북한의대남정책변화를가져왔고, 1983 1992시기는동유럽붕괴와냉전종식, 그리고노태우대통령의북방정책과 7.7선언을통한민족내부거래로서의남북경협제안등이 1990 1992년남북대화 13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국면을활성화시켰고, 1996 2000시기는김대중정부의햇볕정책이남북첫정상회담을가져왔고, 2012 2018시기는대북제재가고도화된가운데문재인정부의신베를린구상에기초한대화제의에북한이 2018년평창올림픽에참석을시사함으로써 2018년 9월말현재 3차례정상회담개최등남북관계를대화국면으로급속히전환시켰다. 한편, 북한은도발국면에서대화국면전환기에통일정책도고려연방제 고려민주연방제 낮은단계의연방제 조국통일 3대헌장 자주통일의대통로 / 만리마속도로통일실현등을제시해오며우리민족끼리를강조해왔다. 다섯째, 도발국면에서의북중관계는갈등관계이거나냉각기였고, 국면전환기에는상대적으로호조를보였다. 1967 1972는중국의문화대혁명에따른북중관계악화와미중데탕트에따른북중관계회복, 1983 1992는중국의개혁개방과한중외교수립에따른관계악화와중국의원조에대한기대, 1996 2000은남북관계개선을기점으로북중관계가회복되기시작했으나, 특수한우호관계보다는보편적국가관계로이행하는시점이라고볼수있다. 2012 2018년은북중모두새로운지도부등장과각자의이해관계상충에따른갈등기로 2018년대화국면전환이후협력을모색하는조정기로접어들었다고할수있다. 여섯째, 북미관계를보면북한은도발및국면전환시기에미국과의직접대화를모색했다는점이다. 1967 1972 시기는닉슨독트린을기점으로대미직접대화를모색했고, 1983 1992 시기는대미관계개선에보다적극적인태도를가졌고, 1996 2000년시기는북미상호코뮤니케가나올만큼북미관계를발전시켰으며, 2012 2018년시기는전략도발중단이후 2018년최초로북미정상회담을개최했다. 이러한공통점에도불구하고, 2018년국면전환을과거의국면전환과차별화된다고할수있는가? 이는 2018년국면전환이도발국면으로되돌아가지않고완전한비핵화달성과남북간공고한신뢰구축을통해한반도평화번영의길로나가는해법과도연계된다. 이를위해서는우선이러한국면전환이전략변화에따른것인지, 아니면전술변화에따른것인지의여부를판단하는것이중요하다. Ⅲ.2018 년이후북한의안보전략변화가능성과평가기준 북한의완전한비핵화와북한의안보전략은어떠한연계성을갖고있으며, 이는어떠한상황이충족됐을때북한의안보전략변화가가능한가? 그리고북한의안보전략이변화됐다고평가할수있는기준은무엇인가? 라는질문에대한해답은현재북한의완전한비핵화이행로드맵과이에대한상응조치가무엇인가와도연계된다. 그러나, 북한의안보전략변화가능성여부는북한의비핵화이행의초기단계에서평가하기란매우제한적이다. 정보의제한과더불어안보전략변화여부를평가할수있는기준과수단의변화가뚜렷하지않기때문이다. 우선북한의안보전략변화여부는북한이추구하는목표가변화했는가부터평가해 14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봐야한다. 북한은 3대에걸쳐변화되지않는목표는 북한을향한적대시정책해소 와 자주통일 로북한이강조하는사회주의강국달성은북한의자주통일이완성되는시점이라고볼수있다. 그렇다면, 이러한목표를달성하기위해북한은어떠한방법과수단을강구해왔는가를평가해봐야한다. 즉, 북한이추구하는안보전략과이를달성하기위한방법사이에불균형이나타난다면, 외교전략, 대남전략, 그리고군사전략의변화혹은조정이나타날수밖에없다. 따라서 완전한비핵화 를선언한이후북한의외교전략, 대남전략, 군사전략의변화여부를종합적으로판단해볼때북한의전략적결단이란것이안보전략의목표변화여부인지를가늠해봐야한다. 만약외교전략, 대남전략, 군사전략의큰변화가나타나지않았다면 전략적결단 이라는것은지난시기북한이보여왔던국면전환과큰차이가없을수있다는점에유의해야한다. 즉, 국면전환에따라특정기간동안대미 / 대중외교정책의활성화, 남북간대화와교류협력증대, 대외적으로북한의도발및군사적시위가감소했다가다시북중, 북미, 남북관계교착및도발증대로나타났던과거의교훈을고려해야한다. 먼저김정은위원장의 전략적결단 에따른완전한비핵화약속이후북한의안보전략의변화여부를평가해보기위해서는기존의주장과어떠한차별성을갖는지부터짚어볼필요가있다. 첫째, 사회주의강국달성이라는목표에서군사부분의변화여부다. 북한은핵무력완성에기초한군사강국이고, 현재진행되고있는 완전한비핵화 에대해북한은 최강의전쟁억제력 을갖게됨으로써이제는 정치군사강국 으로세계무대에당당히나선만큼경제강국이되는것은시간문제로자평하고있다. 3) 특히, 2018년은북한정부수립 70주년인동시에김정일이표방한선군 10주년의해로북한은비핵화를이행해도최강의전쟁억제력을갖추고있기때문에문제없다는자신감을과시하고있다. 이는 4월 20일제 7기 3차전원회의에서핵경제병진노선과핵무력완성선언을업적으로평가하며, 이러한업적이한반도긴장완화와평화의기류를만들었다며핵무기병기화가완결됐기때문에이제는경제건설에총력을다하겠다는의지피력 4) 과그맥을같이하고있다. 그러나, 문재인대통령이 3차남북정상회담을마치고돌아온후대국민보고에서 김정은국무위원장이가능한한빠른시기에완전한비핵화를끝내고경제발전에집중하고싶다 는김정은위원장의희망은 9.9절노동신문사설과결을달리하고있다. 완전한비핵화를종결시키고경제발전에집중하겠다는주장과최강의전쟁억제력을갖췄기때문에경제강국에집중하자는주장은사실큰간극이있다. 1. 북한군사전략의변화여부그렇다면 2018년국면전환기에들어오면서북한군사분야에서눈에띠게변화되는부분은있는가라는질문을제기할수있다. 일단, 변화라고식별되는부분은첫째, 김정은의공개활동은 2012년 151회, 2013년 212회, 2014년 172회, 2015년 153회, 2016년 133회, 2017년 99회로 2013년을정점으로꾸준히감소해왔지만, 공개활동중군관련공개활동비율은반대로꾸준히증대해왔다. 2013년 30% 에서 2014년 36%, 2015년 34%, 3) 위대한인민의나라, 우리공화국의앞길에는승리와영광만이있을것이다, 노동신문, 2018.9.9. 4) 경제건설과핵무력건설병진로선의위대한승리를선포함에대하여, 노동신문, 2018.4.20. 15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2016년 37%, 2017년 44% 5) 까지이르렀다. 그러나 2018년은 9월 11일기준공개활동 79 회중군관련활동은 5회 (6.3%) 로 2월 8일조선인민군창건 70돌열병식참석, 5월 18 일당중앙군사위제 7기제1차확대회의지도, 6월 30일조선인민군제 1524 군부대시찰, 7월 17일인민군제810군부대산하어장현지지도와 7월 25일제525호공장현지지도가전부다. 6월군부대시찰은교양사업실태에중점을뒀다면, 7월군부대현지지도는군인들의식생활문제에중점을두고있다는점에서차이를보이고있다. 둘째, 김정은체제의주요특징중하나는핵능력고도화가군부의영향력증대와비례하지않는다는점이다. 김정일시대선군정치로군의위상이높아진것을김정은시대에와서는군의정치적위상은낮추되군의실질적전투능력을향상시키는정책으로선회했다. 비록 2009년제12기최고인민회의에서군인의대의원이전체대의원중 16.9% 에서 2014년제13기최고인민회의에서는 17.2% 로소폭증대했지만 6), 조직규모나의사결정체에서의군의위상은김정일체제에비해약화됐다고볼수있다. 2016년 6월개최된최고인민회의제13기제4차회의에서국방위원회산하의인민무력부가신설된국무위원회산하로옮기면서인민무력성으로개명되었고, 주로군행정만을담당하게됐다. 또한개정이전의국방위원회는 국가주권의최고국방지도기관 으로규정됐으나, 신설된국무위원회가 국가주권의최고정책지도기관 으로규정되면서, 국방위원회임무와권한은주로정책수립과감독은하되결정권은없어졌다. 7) 또한당중앙군사위위원 17명중군종과병종사령관들을해임하며 12명으로축소했고, 부위원장직을폐지하고내각총리 ( 박봉주 ) 를합류했다. 이는당의군통제력강화와대북제재상황에서군사와연동된내각의집행력강화를의도한것으로볼수있다. 2016, 2017년은당중앙군사위확대회의는열리지않았지만, 2017년제7기 2차전원회의에서당중앙군사위위원의소환및보선을보면대북제재확산과 핵무력건설 과정에서발생할수있는정치군사적위기에대비한조직확대및보강을했다고볼수있다. 최룡해의복귀, 당군수공업부제1부부장리병철의합류, 김원홍을대체한정경택국가보위상신임, 대남 대외분야정보전문가인정찰총국장장길성이신임되었다. 8) 그러나 2018년국면전환이후열린 2018년제7기 3차전원회의에서는남북정상회담에역할을했던인물인김창선, 리선권, 김일국, 핵무력완성에기여한장길룡, 안명건, 대외정책관련김정남, 최고인민회의상임위서기장정영국등비군부인물이승진한반면, 김정각총정치국장은전임자가겸직했던정치국상무위원이아닌정치국위원에그치는등군부인사가배제된점을알수있다. 9) 이어서 5월 18일에개최된당중앙군사위원회제7기제1차확대회의에서는혁명발전요구와현시기인민군대실태를종합적으로분석하고, 혁명적당군을군사정치적으로더욱강화하며국가방위사업전반에개선 5) 통일부북한정보포털의김정은공개활동동향의엑셀자료를참고해서재정리한내용임. 군관련행사에는부대방문, 군현지지도, 군공연참석, 사진행사, 군수공업활동까지를포함시킴. http://nkinfo.unikorea.go.kr/nkp/trend ( 검색일 : 2018. 9. 20) 참조. 6) 조선중앙통신은 3 월 9 일에진행된제 13 기 1 차회의에서김평해대의원자격심사위원회에서이런발표를했다고보고함. 조선중앙통신, 2014 년 4 월 10 일. 7) 109 조 1 항과 2 항을보면, 국방위원회는선군혁명로선을관철하기위한국가의주요정책을세운다. 국가의전반적무력과국방건설사업을지도한다고되어있되결정권은없다. 8) 박영자, 북한노동당중앙위원회제 7 기제 2 차전원회의평가및권력구조전망, ( 통일연구원, 2017), pp.27~28. 9) 손효종, 북한노동당제 7 기제 3 차전원회의평가와함의, 주간국방논단 제 1716 호, 2018. 16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을가져오기위한일련의조직적대책들을논의함과동시에일부위원들을해임하고새로운간부를임명 10) 했다고발표한점을볼때, 2018년국면전환에따른정책정비와북한군수뇌부세대교체를완료했다고볼수있다. 총정치국장은김정각차수에서김수길로, 총참모장은리명수에서리영길로, 인민무력상은박영식에서노광철로젊은세대로교체됐다. 11) 마지막으로, 2018년국면전환이후아직까지는북한의군사능력과군사훈련의변화가없다. 한반도비핵화의지를남북정상회담과미북정상회담에서재차강조했지만, 북한은핵미사일프로그램동결과관련된조치는하지않고있다. 풍계리핵실험장폐기는제7기 3차전원회의를통해 임계전실험 능력이있다고밝힌이상의미가크지않고, 서해위성엔진시험발사장해체동향은언제든지수주및수개월내복구가가능하고, 탄도미사일대량생산과는관계가없다. 12) 또한, 올 1월월스트리트저널은북한군의동계훈련규모가예년보다축소돼보인다고보도 13) 했지만, 정보당국관계자에따르면 북한은작년 12월부터예년수준의군사훈련을계속실시 해왔고, 일부훈련의경우규모가다소축소됐지만, 이는김정은의훈련참관여부와관련이있다. 김정은이참석하지않았던해와비교하면훈련규모는비슷한수준 14) 으로볼수있다. 지난 5월 25~27일강원도원산앞바다에서실시한해상훈련은오히려예년비슷한기간에했던훈련보다함정규모가더큰것으로알려졌다. 인공지진파가발생할정도로규모가큰대형폭발도수차례감지됐는데, 정보당국은신형폭뢰 ( 爆雷 ) 가터졌을가능성이높은것으로보고추가분석중이라고했다. 15) 이는남북회담분위기조성을위해한 미연합훈련기간과규모를조정하는한미노력과비교된다. 평년보다늦게시작해금년 3월에종료한 2017년 북한의육 해 공군동계훈련도예년수준으로진행됐으며, 2018 하계군사훈련도예년과유사한수준으로정상적으로실시하고있다. 16) 북미정상회담이후현재까지북한군사훈련규모와강도면에서볼때, 북한은전략도발과군사훈련을강조했던지난 3년수준과비교해볼때변화를보이고있지않다. 종합해보면, 북한은도발과대화국면전환기에군사정책과조직의변화를보이고있으나, 대화국면으로전환시북한군의능력과훈련은정책변화를보이고있지않다. 이는북한이공세를위한전략적정점 (culminating point) 을조성하고그결정적순간에도달했다고판단될때전면적기습공격을단행하겠다는기본전략을그대로유지하고있다고볼수있다. 김정은위원장은정권안보차원에서 민족해방 의목표를완전히폐기할수는없을것이다. 특히, 북한의전통적인군사전략은이념적적대주의에기반해미제국주의식민지상태에있는남한국민을해방시키는 정의의전쟁 을정당화하고있고, 이를위해공세교리를채택해왔다. 따라서완전한비핵화추진을북한의공세전략에서수세전략으로의 10) 통일부, 주간북한동향 제 1413 호 (2018.5.12.~5.18) 참조. 11) 북, 리영길총참모장임명공식확인... 군부세대교체완료, 연합뉴스, 2018 년 7 월 27 일. 12) 미국, 지난주서해발사장해체동향파악... 해체해도복구가능, SBS, 2018 년 7 월 26 일. 13) KBS, 2018 년 1 월 30 일. 14) 북한군사훈련예년수준, 조선일보, 2018 년 5 월 31 일. 15) 북, 한미훈련트집잡더니... 남북 북미만날때군사훈련, 조선일보, 2018 년 5 월 31 일. 16) 북현송월, 서울 강릉방문한시각북한군동계훈련실시중, 뉴스 1, 2018 년 1 월 22 일 ; 김학용, 영변핵시설 동창리미사일실험장정상가동중, 뉴스 1, 2018 년 7 월 5 일. 17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전환여부와동일시해서는안된다. 북한은 1980 년대중반이후소련이군사전략을수세전 략으로전환한이후동독인민군이급격한사상이완과서방세계에대한대적관이급속도 로이완되었다는사실 17) 을잘알고있기때문이다. 2. 북한대남전략의변화여부 2017년문재인정부가새로들어서고 5월이후대화국면조성을위한민간차원의교류허용및신베를린구상발표후후속조치로대화제의를했지만, 북한은무대응과더불어전략적도발을강화했다. 2016년이후남북간대화는 2018년 1월북한이신년사발표로남북간대화개시되기전까지완전히단절됐었다. 2018년 9월말현재까지선대시기의남북관계와비교해볼때, 남북회담이경협과교류중심에서정치군사로옮겨갔다는점에서이전과차이를보이고있다. 한편, 북한은남북간교착의장기화에도불구하고, 2017년까지의신년사와 7차당대회를통해밝힌대남정책과통일정책을보면, 김정은시기의대남정책은선대가추구해왔던대남정책과통일정책을한층더공고화시키고빠른시일내에달성하고자하는강한실천의지를보이고있다. 북한의대남정책은남조선혁명을목표로한대남혁명전략과연방제통일을목표로한통일전략의결합이라고볼수있는데, 18) 김정은은김일성의대남혁명전략달성수단인 3대혁명역량과통일의기본방향인고려민주연방제바탕위에, 김정일의통일전략을달성하기위한조국통일 3대헌장을 19) 당대에완성시키는것을과업으로간주하는것같다. 따라서북한은 7차당대회에서통일준비와관련해비평화적방법에의한통일도준비하고있다는점을시사하며, 남북관계악화의원인을 1 남한의제도통일, 2 북한을자극하는심리전방송과대북전단, 3 남북화해와협력에저촉되는법률과제도장치, 4 한미연합훈련과통일외교, 5 6.15합의와 10.3합의불이행을제시했다. 20) 또한미국과남한을적으로설정한전통적인식도수정하지않았다. 21) 2011년 12월김정일사망이후김정은집권 5년간조선중앙통신 노동신문에보도된남북관계관련기사를분석한텍스트마이닝분석에서도김정은정권은미국과남한을적으로설정하고있다. 22) 이러한인식아래북한은남북관계와통일부분에서의 우리민족끼리, 획기적인전환 과 속도 를강조해왔다. 2014년신년사에는 조국통일운동에서의새로운전진 을이룩할것을강조한데이어, 2015년광복 분단 70주년 1월신년사에서 자주통일의대통로 를열어나가자는투쟁구호를제시했고, 7차당대회사업총화보고에서는 하루빨리분열의장벽을허물고조국통 17) 김태현, 북한군군사전략변화에대한연구 : 전략불균형 에대한 위험관리 를중심으로, 전략연구, 제 22 집제 2 호, 2015, pp. 167~204. 18) 김동식, 북한대남전략의실체, ( 기파랑, 2013), p. 63. 19) 조국통일 3 대헌장은, 1 조국통일 3 대원칙 ( 자주, 통일, 민족대단결 ), 2 전민족대단결 10 대강령, 3 고려민주연방공화국으로구성됨. 20) 김정은, 제 7 차대회에서한당중앙위원회사업총화보고, 노동신문, 2016 년 5 월 8 일. 21) Ibid. 22) 오경섭 이경화, 김정은정권의대남정책및통일담론, ( 통일연구원, 2016), pp. 33~35. 18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일의대통로를열어, 우리대에반드시조국통일할것 을강조하는가하면, 2018년 4월남북정상회담에서는자주통일의미래를 만리마속도 로앞당길것을강조했다. 그리고 3차남북정상회담이후노동신문은연일 비핵화 에대한언급은없이 3차남북정상회담으로 자주통일 의시기가한층무르익고있다는점을강조하고있다. 문재인정부의남북간평화공존을강조하는부분과대비되는부분이다. 북한은 2017년까지조건식대화를제안하며대남의중을떠보고자했지, 남북관계를적극적으로풀기위한의지는강하지않았다. 이명박정부에서박근혜정부로의이행기에는대북유화정책전환을유도하기위한 6.15 남북공동정신에기초해 6.15선언과 10.4 선언을이행해야남북관계를개선할수있다고주장 23) 하며사실상 1992년남북기본합의서를무실화시키고자했고, 박근혜정부의 통일대박론 이발표되자, 이에상응하는한국정부의통일정책에대한비판과더불어통일에대한담론을증대시켰다고볼수있다. 2018년국면전환이후, 북한의대남전략은과거부터주장해온 우리민족끼리, 자주통일 에기초해 6.15합의, 10.4합의, 4.27 판문점선언, 9.19 평양선언을이행해나갈것을강조하고있다. 북한은이를 자주통일 을가속화하기위한합의로선전하고있다. 따라서북한의전략적결단이후대남관계및통일정책도지속되고있음을알수있다. 3. 북한외교전략의변화여부 2012년북미고위급회담을통해 19.19공동성명준수의지재확인, 2정전협정을한반도평화와안정의기초로인정, 324만톤영양지원및추가지원, 4 문화 교육 스포츠분야등인적교류증대, 5미국의대북제재조치가북한주민일상생활을목표로하는것이아님을확인하며장거리미사일발사, 핵실험및고농축우라늄활동을포함한영변핵활동중지, 이에대한 IAEA 사찰단복귀등 2.29 합의를발표했다. 그러나장거리미사일시험발사로 2.29합의는무효화되고, 이후북한은미국에게대북적대시철회를꾸준히요구해왔다. 그러나적대시정책철회에방점이변화되고있음에주목해볼필요가있다. 첫째, 유엔사해체를평화협정과연계시키고있다. 정전협정 60주년인 2013년 1월외무성은비망록을통해, 6월국방위대변인중대담화및유엔주재북한대사를통해유엔사해체를강조하다가 2015년 9월외무성대변인담화, 10월외무성성명, 12월외무성대변인담화를통해또다시유엔사해체를공개적으로요구한다. 이후 2016년 1월에는조선법률가위원회백서를통해유엔사해체를주장한다. 이는 2013년 3차핵실험단행후, 2015년남북간대치국면이후 2016년 1월 4차핵실험직전에평화협정제안을집중하다가 4차핵실험이후부터는평화협정논의가사라지는데, 이는유엔사해체와평화협정을동일시하고있다는점을시사한다고볼수있다. 둘째, 평화협정논의는 2013년 9월, 10월에이르러서는박길연외무성부상의핵군축 23) 대결상태해소는조국통일을위한선결과제, 노동신문, 2013 년 1 월 9 일 ; 우리민족끼리가유일한출로, 조선신보, 2013 년 1 월 28 일. 19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제안으로이어지고있다. 비핵화-평화협정 틀을 핵군축-평화협정 의틀로전환시키고있다. 이러한추세는북한의핵무력강화조치와같이진행 24) 되어왔다. 북한은그동안유엔무대를통해 군축 을강조해오다 2006년 1차핵실험이후 핵군축 으로선회하며핵군축의미, 실천사항, 의제등을제시해왔다. 2006년 10월외무성대변인성명을통해핵보유국을자처하며핵군축과종국적인핵무기철폐를위해백방으로노력할것을밝힌이후, 2012년 4월 6월, 10월유엔군축위, 제네바군축회의, 유엔총회를통해핵군축을주장해오다가 2013년 6월 16일국방위대변인성명을통해북미고위급회담을제안하는데핵군축을의제로삼고자했다. 당시북한은미국에게 1군사적긴장완화, 2정전체제의평화체제전환, 3핵없는세계건설문제등양측이원하는여러문제에대해논의할수있다는입장을보였다. 이후 2013년 9월핵군축에관한유엔고위급회의대표연설에서북한은 전략적우위확보를위한핵군축제안이나일방적인핵억제력포기요구는핵군축에서아무런진전을기대할수없다 며 조선반도비핵화는우리에대한미국의핵위협을완전히제거하고남조선을포함한조선반도전역을핵무기없는지대로만드는것 라고밝히고, 2013년 10월유엔총회전원회의에서박길연은핵군축을제안한다. 핵군축협상을조속히개시하며, 무조건적인핵불사용담보제공, 핵무기사용금지를규정한구속력있는국제법문서작성을요구하는한편, 미국적대시정책청산은정전협정을평화협정으로대체하며유엔사해체, 각종제재해제, 군사적위협을종식시켜나가는것이라고제시했다. 북한의이러한입장은 2016년 5월 7차당대회에서세계비핵화로이어졌고, 2016년 7월정부성명에서 조선반도전역의비핵화를주장하며이를위해서는 1남한내미국핵무기공개, 2남한내핵무기 기지철폐, 3핵타격수단을한반도에끌어들이지않겠다는미국담보, 4핵위협사용을하지않겠다는확약, 5미군철수선포등을제시했다. 셋째, 한미연합훈련중단과평화협정체결을한반도평화조성을위한선제조치로동등하게취급하며방어적차원보다는공세적차원에서요구하고있다. 2015년신년사에서김정은은한미연합훈련으로한반도긴장상태가높아져북미간신뢰있는대화가어렵다며대북적대시정책철회를위한조치로한미연합훈련중단을요구한데이어서, 2016년신년사에서김정은은한미연합훈련을핵전쟁군사훈련이자침략전쟁연습이고조선반도의긴장을격화시키는군사도발이라고평가하며핵전쟁연습을즉각중지할것을요구하고북미평화협정체결을요구한다. 그리고, 2016년 4월리수용외무상은한미합동군사훈련중단시핵실험중지준비가되어있다는 쌍중단 을제안하게된다. 마지막으로, 비핵화와평화협정의선후관계를완전히바꾸고있다는점이다. 2015년에는평화협정체결과관련된외무성발표문들을보면, 11월, 12월로가면서노골적으로 선비핵화, 후평화협정 을거부하고있다. 이러한특징은 2016년 10월쿠알라룸푸르미 24) 북한은 조선정부비망록 : 병진의기치따라강성번영향해나갈것이다 을통해 날로악랄해지는미국의핵위협공갈은우리를핵억제력강화의길로떠민근원이다 라고밝힘. 조선중앙통신, 2017 년 3 월 13 일. 20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북 1.5 접촉에서한성렬주장에서도잘나타나고있다. 북한은핵보유국임을주장하며핵과미사일에대한것을논의하기전에평화협정과평화프로세스를원한다는것이자신들의기본입장이라고재확인했다. 2017년 6차핵실험과화성-15형탄도미사일실험직후 국가핵무력건설완성 선언이후북한은평화공세로전환해금년 6월북미정상회담을통해 한반도의완전한비핵화 를위한노력을한다고했지만, 김정은시기주장해왔던담론들에기초해볼때비핵화속도를내기란쉽지않다. 3차남북정상회담이후종전선언과비핵화입구조치가미북간빅딜로다뤄질것이라는기대가높지만, 북한은 종전선언 + α 를미국은 영변핵시설폐기 + α 를얻어내고자할것이다. 사실, 2018년북한이비핵화약속을하며선제조치를취한것부터 3차남북정상회담합의문에담은영변핵시설폐기부분은모라토리엄과동결을담은 2012년 2.29 합의수준에도못미치고있다. 즉, 북한이과거부터주장해왔던평화협정추진이 완전한비핵화 달성이라는목표를향해수단이되고있다는점에서북한의외교전략은오히려과거부터유지해왔던입장을공고히하고있는셈이다. Ⅳ. 맺음말 : 유의점과대응방향 김정은시기의북한의성명발표를보면, 2014년을기점으로대남과대미대화조건의차이가크지않다. < 표-2> 에서보는바와같이, 북한은김정은집권초기대화조건으로최고존엄비난중지, 5.24 조치해제를비롯해 6.15, 10.4 선언준수, 전단살포중지, 심리전중단, 전쟁연습중지등을내세우다가, 2014년이후는매우호전적태도를보이면서한미연합훈련, 북한핵묵인, 대북제재해제, 미군전략자산전개중지등을요구했다. 한편, 미국에대해서는한미연합훈련중단을비롯해대북적대시정책철회를요구해오다가대북적대시정책철회선결조건으로한미연합훈련중단과평화협정을요구해왔다. 북한은비핵화문제를핵군축으로대응하며조선반도비핵화와세계비핵화를연계시켜왔으며, 북한의이러한입장은 < 표-3> 의판문점회담과북미회담에서한반도비핵화 이행 이아니라 노력 을하겠다고표현하며북미간비핵화에대한개념과이행시간사이의간극을넓혔다. 이처럼북한은남북관계에서경제영역에서정치군사영역으로대화조건을확장시켜나감으로써남한과미국에대한요구들이상호수렴되는현상을갖게했고, 이러한추세는한미가북한비핵화를강조할수록북한문제에대한조정과협력의속도를높여야하는결과를초래했다. 21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 표 -2> 북한의대남 대미대화조건및요구비교 대남대화조건및요구 군사적적대행위전면중단 대미결탁, 대북제재중단 한미연합훈련중단 제도통일 / 체제대결포기 북한핵보유묵인 5.24 조치해제 6.15/10.4 공동선언준수 최고존엄등북한비방 중상중지 대미대화조건및요구 군사적긴장완화 대북적대시정책철회 한미연합훈련중단 유엔사해체 정전체제평화체제전환 이후평화협정체결요구 핵군축제안 : 조선반도 / 세계비핵화 < 표-3> 북한의대남 대미대화조건및요구비교 4.27 판문점선언 6.12 북미정상회담공동합의문 민족자주원칙, 남북합의이행 협력교류활성화 개성상주남북공동연락사무소설치 이산가족상봉 / 철도 도로연결 새로운북미관계수립약속 지상 / 해상 / 공중일체적대행위전면중지 한반도의항구적이고안정적인평화체 비무장지대실질적인평화지대제구축노력에동참 북방한계선평화수역화 판문점선언재확인및한반도완전한비 정전상태종식, 확고한평화체제수립핵화노력약속 남북간군사적신뢰구축및단계적군축 전쟁포로와실종자유해송환 올해종전선언, 평화협정으로전환 한반도비핵화를위한국제사회의지지와협력을위해적극노력 따라서, 우리는다음과같은점에유의하며 2018년어렵게찾아본국면전환을지속시키기위한방안을모색해야한다. 첫째, 북한은지배체제가공고화됐다고판단된경우, 국면전환을통해북한이직면한대내외주요문제들을풀고자하는특징을보여왔는데, 이때북한이활용하는것이바로우리정부의대북정책이다. 북한은우리의대화제의를바로수용하기보다는 1인지배체제가안정적으로공고화됐다는판단이있은후, 대외적고립과내부의경제문제를해결하기위해대화의장으로나오는경향을보여왔다. 따라서우리의대북정책변화때문에북한이대화의장으로나온것처럼보이지만, 북한이처한대내외상황을보면오히려북한은대내외처한문제를해결하기위해전략적으로대화국면을활용했다고볼수있다. 특히, 남북관계가대화국면에접어들면, 북중관계, 북미관계도동시에대화국면으로진입하면서중국으로부터경제지원과미국의대북압박이줄어드는효과를얻기때문이다. 북한의이러한전략적계산을고려한대북정책추진과대화제의가필요하다. 즉, 대화국면조성을위해북한에게많은양보와제의를하기보다는우리입장에서반드시관철시켜야 22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할내용을전제로한대화제의를한후조건이충족되는적정시간까지시간을버는전술을사용할필요가있다. 특히, 군사회담과관련해서북한의요구사항과접점을찾기위한방향설정보다는우리가반드시지켜야할요소중심으로군사회담을이끌어가는것이중요하다. 둘째, 북한이대화국면에서는주로침투와비군사적도발을통해대외적으로는남북간직접적무력충돌이없는것처럼보이도록하지만, 북한의대남도발유형이바뀌었을뿐도발이중단되지않았다는점에유의해야한다. 따라서군사적대응능력과대비태세를강화해나가는가운데, 침투와비군사적도발에대응, 그리고전략적도발이중단됐지만, 전략적도발을위한프로그램은중단되지않았다는점에기초해서대응능력과대비태세를갖춰나가야한다. 북한이 2018년국면전환이후, 남북간신뢰구축을강조하며향후군비통제, 군비감축까지도추진하고자한다. 이번 9.19 평양선언부속합의로채택된남북간군사합의서도이러한맥락에서이해될수있다. 한편, 김정은시기의주요특징중하나가전략도발을강화하는가운데북한군부의위상이정비례관계를보이지않다는점을감안해볼때, 북한은재래식군비와관련한군비통제를협상카드로사용할가능성이크다. 남북간군사협상에서군비통제부분과관련해서는북한의전략무기에대한우리의대응능력과규모를충분히감안해군비통제협상에임해야할것이다. 섣부르게남북한군비통제, 군비감축의가시적효과를보여주기위해재래식군비를조정하게될경우북한의전술에휘둘릴가능성이높다. 향후, 북한의전략군규모를비롯해북한군부조직과예산변동여부를판단한후군비통제협상에임해야할것이다. 셋째, 북한의도발국면고조기를보면북한의새로운정치선언, 군사전략및군사정책발표와상관성이높을뿐만아니라, 북한의도발양상변화와도밀접한관련성을보이고있다. 따라서북한의군사전략, 군사정책, 군사구호가천명되는시점에유의하며군사회담과대북정책추진에전술적변화를줄필요가있다. 즉, 북한의군사전략및군사정책발표에대한내용과그에따른군사능력과대비태세변화가남북관계에미치는영향, 특히남북신뢰구축및군비통제에미치는영향에대해우리가의제를재설정하며북한의기존태도와입장에변화를줄필요가있다. 이는북한이현재까지대남정책을위해사용했던방법중하나로, 이는상대방의입장과정책변화에대한관심을높일뿐만아니라, 자신의정책추진에도변화를줄수있다. 따라서북한군사정책및군사전략변화에대한우리군의입장표명을반복적으로홍보하는노력이필요하다. 이러한홍보와전술적태도변화는북한이한국의정책에귀기울이는효과를가져다주며, 궁극적으로남북이회담을통해접점을찾아갈수있는환경조성의역할을하게될것이다. 한편, 4개의시기는북한의통일정책발전과남북정상회담제안및성사와겹친다. 1 시기에는 1971년평화통일방안을거쳐 1973년조국통일 5대강령이라는고려연방제공화국통일방안이만들어졌고, 2시기에는 1980년고려민주연방공화국창립방안에기초해 남북불가침선언 을주장해오다가 1988년에는남북최고위급회담에서불가침선언을채택할것과북미평화협정, 낮은단계의연방제방안을적극적으로제안하고 1990년에는신년사를통해남북정상회담을제안했다. 3시기에는 4자회담에소극적태도를보이다가 2000년 6.15 정상회담을통해남북관계의변화를가져왔다. 4시기에북한은 조국통일에서의새로운진전 을이룩할것을강조한데이어광복 70주년신년사에서는 자주통일의 23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대통로 를열어나가자며통일의속도전을강조하고있다. 여기서우리가주목해야할점은도발에서대화국면으로전환되는시점에북한은통일정책을강조하며통일정책추진의맥락하에서대남관계를설정하고자했다는점이다. 그결과북한의통일정책완화는남북관계에서대남회유책으로발전되는한편, 한반도평화와안정의핵심의제인평화협정과평화체제, 핵문제에서는남한을배제시키는경향을보여왔다. 따라서우리는북한이남북관계와북미관계의의제를차별화시키는것을방지하는한편, 평화협정및비핵화와관련해북한이대미협상에우리를전술적으로활용하는것에대해평화협정및평화체제, 그리고비핵화에대한우리의입장과최종목표에근거해대응해야한다. 넷째, 4시기모두경제문제를극복하기위해국면전환과더불어개혁개방을적극추진하고자했지만, 경제개혁개방은제한적으로진행되었고군수공업을비롯해국방분야에대한지출을줄이지못했다. 더욱이경제개혁을통한변화가나타나면다시통제하는정책을반복함으로써경제개혁을근본적으로단행하지못했고, 나아가북한은 1980년대중국과유사한개혁개방을시작했지만중국은개방을하고북한은개방을하지못함으로써 2018년현재다른결과를낳게했다. 결국북한이경제문제심화로번번이대화국면에나와서경제협력과지원을요청했지만, 이러한요청은북한사회내부의과감한경제개혁개방으로이어지지않았기때문에북한경제는겉으로성장해보이나실질적으로는저성장늪에빠져있다. 특히, 김정일은김일성과사실상의교체기인 1980년대후반 ~1990년대초기에, 김정은은집권이후 2016년까지평양시외관변화를위한대대적인도시정비사업과건축사업을통해지도자의위상을높이며외관상경제성장을한것처럼보이고자했지만, 내부적으로는경제부작용을낳았다. 김정은시대초기의석탄, 철광석등북중무역을중심으로한호조에힘입은무역총액은대북제재강화로무역량이감소하고, 북한의 5대품목까지수출이금지되자 2017년은지난 20년중가장최악인마이너스 3.5% 경제성장을하는등 2012~2017년평균경제성장률은 0.45% 로저성장세를보이고있다. 따라서북한이대화국면에나올때마다요구하는경협문제에대해서우리를비롯해주변국가들은경협과투자에근본적변화를추구해야한다. 지금과같은작은것에서부터조금씩협력해나가는것이아니라, 중화학및군수공업중심의북한경제에대한구조적변화를전제로한경제협력과투자가진행되어야한다. 북한경제의체질개선요구가전제되지않는다면, 외부의투자나경협은지엽적일수밖에없고북한의비핵화추진에대한동력으로서의역할도감소할수밖에없다. 경제개혁과경제개방에대한적극적요구를통해선대의실패를되풀이하지않도록해야한다. 즉, 김일성시대는병진정책을지속시키는가운데외환도입을통해경제회생을하고자했고, 김정일시대는군수경제를중심으로경제활성화조치를하려고했지만모두다실패했다는점을김정은정권에게각인시켜줘야한다. 다섯째, 4개국면모두국제환경이북한에게유리하지않았다는점이공통적이나, 2018 년국면전환은남북관계와북중관계, 그리고미북관계에초점을맞춰볼때, 1996~2000년시기와그이후국면전환과매우유사하다. 한국의적극적인대북정책과북한의호응으로남북정상회담이추진되었고, 남북정상회담이있기전 5월북한은중국방문을통해남북정상회담설명과중국의지지를이끌어내고, 중국으로부터개혁개방권고를받아 7.1 경제개선조치로이어나가는등북한의변화가가시화됐던시점이다. 또한이시기북미관 24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계도금창리지하시설에대한우려가해소되자미사일회담을비롯해 2000년조명철차수가미국을방문해클린턴대통령을접견하며미북공동코뮤니케를합의했다. 그러나, 이후북중관계는전통우호관계적전략적협력을복원해갔으나, 미북관계는이듬해공화당으로교체되면서미국은대북강경책으로선회했다. 남북관계는경협과교류중심의기능주의적접근을취하다보니, 남북간근본적관계개선보다는남남갈등이증폭되는현상이나타났다. 또한이후대북정책과관련한한미간의입장차이와당시남한내반미정서증대는한미동맹균열의문제까지대두됐다. 그결과 2차핵위기이후미국은북한과의직접협상을거부했고, 6자회담이라는다자틀이가동되면서북한의핵문제는장기화됐고, 북한핵문제의장기화는다시남북관계와북미관계, 그리고북중관계를경색시키는 악순환 이되었다. 따라서국면전환시주요고려사항중하나는남북관계, 북미관계, 북중관계가모두동일한방향으로균형적발전을추진해나가야하고, 이과정에서한국, 미국, 중국간의대북협력과공조도강화시켜나가야한다. 한미간혹은미중간의이견으로북한의적극적개혁과개방이지연되서는안된다. 여섯째, 북한이대화국면으로나왔을때, 북한이주장하는요구사항과우리가북한에게요구하는사항간에혼동을해서는안된다. 또한대화국면을북한이전략적으로이용하고자하는것도통제할필요가있다. 북한은 1시기를통해남북관계를통한평화협정에서북미관계를통한평화협정으로전환했고, 2시기를통해서는미북간고위급회담을성사시키며북한에핵무기불사용, 남북간동시사찰, 미군기지사찰, 팀스피리트훈련중지, 핵우산제공중단, 북한의사회주의체제존중, 북미간정치경제관계개선등을조건으로 IAEA 사찰을수용하고제네바합의를통해핵동결에이르렀지만, 이후우라늄고농축문제로북한은제네바합의를파기했다. 문제는북한핵문제에대한국제사회의관심증대는북한이비핵화를단행하기보다는이계기에북한의한반도정책을추진하는토대로활용했다. 따라서북한은이후비핵화관련합의사항에북한의대남정책과통일정책을추진하는데있어서의제약요인들을해소하는방안을모두포괄하는 포괄적인해법 을강조했다. 한편, 2시기는북한이상대적으로열세적입장에있었던불가침선언을강조하며정전위의기능과역할을강조하는태도를보였다. 3시기에이르러서는그동안대북안전보장에서요구했던사항들을대북적대시정책철회로전환시키며, 선결조건으로새로운평화체계및평화협정을요구했다. 또한국교정상화, 중간단계로서의잠정협정, 주한미군철수등을요구하다가남북정상회담이후주한미군주둔을북한이용인하는방향으로정리됐다. 그러나 4시기에이르러서는핵무기의정당성을유지한채선결조건으로한미연합훈련중지와평화협정을요구하는정책으로변화됐다. 2005년 9.19 합의이후미국은북한과평화협정체결을추진한다는것을골자로한새로운대북접근법 ( a broad new approach to dealing with NK) 25) 과 2006년 11월 18일하노이에서개최된한미정상회담에서부시대통령이 북핵폐기시종전선언 을포함한대북제안을천명했던것과비교해볼때북한은 비핵화-평화협정 26) 이아니라 완전한비핵화이전에평화협정 을해줄것을요구하고있 25) The New York Times, May, 18, 2006. 25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다. 특히, 북한은북미정상회담후첫번째고위급회담이순조롭지못하자, 외무성대변인담화를통해한미연합군사훈련중단은 가역적인조치 로북한이취한 핵시험장의불가역적인폭파폐기조치에비하면대비조차할수없는문제 27) 라고주장했다. 북한은한미연합훈련중단카드를획득하자, 이제는종전선언이한반도비핵화의선제조치임을강조하고있다. 북한은한반도의완전한비핵화의시간을핵없는국제사회도래와연계시키며핵군축차원에서북한이이전에요구했던사항들을관철시키는정책으로속도를내고있다. 따라서우리는이러한북한의정책변화를잘간파하며북한의요구사항에대응해야한다. 북한은핵경제병진정책의성공적추진덕에전략적결단을내렸다고한만큼, 북한의일방적인선제조치를기다리며약속을이행했다고평가할것이아니라비핵화를위한선결조건리스트작성이필요하다. 그렇지않으면, 결국북한이시기별로변화시켜온평화협정프레임속에갇혀 선평화협정, 후비핵화 로변화될가능성이높아진다. 결국, 북한은완전한비핵화를공약했지만, 북한의안보전략은변화된것이없다. 전술적변화만나타나고있을뿐이다. 2. 평화우선의한반도정책과 문재인프로세스 태동 문재인정부가출범할당시의통일외교안보환경은최악이었다. 보수정부 9년동안남북관계는완전히단절됐고, 고고도미사일방어 ( 사드, THAAD) 체계배치를둘러싼한 중갈등이심화됐다. 북한의연이은핵실험과미사일시험발사로핵무기고도화가이뤄졌다. 미국의트럼프대통령은대북강경발언을쏟아내면서 최대의압박 을본격화했다. 문재인정부출범이후에도북한은핵 미사일고도화와관련한연이은도발을지속하면서괌포위사격을공언하면서미국본토를공격할수있는대륙간탄도미사일 (ICBM) 완성을위해질주했다. 미국트럼프대통령이군사옵션사용가능성을언급하면서한반도에긴장이고조됐지만, 문재인정부는전쟁반대의지를분명히하고 평화우선주의 를천명했다. 문재인정부는 오직평화 란평화우선의한반도정책을추진하면서남북관계개선과비핵화노력을병행추진해왔다. 문재인정부의대북정책구상의핵심은지난해 7월 6일베를린에서밝힌 신한반도평화비전 ( 베를린구상 ) 에잘나타나있다. 베를린구상은김대중정부의한반도냉전구조해체구상과노무현정부의한반도평화체제구축노력을계승하여대한민국이한반도비핵화와평화체제구축을위해주도적역할을하겠다는의지를밝힌것이다. 26) 한미정상회담직후, 11 월 28~29 일힐대사는김계관과의후속회담에서북핵포기시 1 종전선언과한반도평화체제구축, 2 북한체제안전보장, 3 북미수교, 4 에너지경제지원, 5 유엔안보리대북제재결의안해제용의등을재확인해줬다. 김강녕 (2007) 참조. 27)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외무성대변인담화, 노동신문, 2018 년 7 월 7 일. 26

6.12 이후비핵평화프로세스에관한 정치적 기술적평가 장철운 ( 경남대학교극동문제연구소 )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6.12 이후비핵평화프로세스에관한정치적 기술적평가 장철운 ( 경남대극동문제연구소 ) I. 서론 2018년들어한반도정세가급변하고있다. 2017년말까지북한은국제사회의대북제재와압박이더욱강화된데에도불구하고핵 미사일고도화를추진했다. 북한은 2017년 11월 29일미국본토동부지역을타격할수있는대륙간탄도미사일 (ICBM) 인 화성-15형 장거리미사일시험발사에성공하며소위 국가핵무력완성 을선언했다. 그렇지만멈추지않을것같았던북한의핵 미사일고도화는현재잠정적으로멈춘상황이다. 이처럼한반도정세가급변한전환점의시작은북한의평창동계올림픽참가를계기로이뤄진남북한당국간대화였다고할수있다. 김정은위원장이신년사를통해평창올림픽참가를시사하는동시에핵무기와미사일의대량생산및실전배치를강조했다는점에서평창올림픽이치러지는동안까지만해도몇개월뒤에현재와같은국면이전개될것이라고예상한사람들은많지않았다. 이러한맥락에서김정은위원장의결단으로한반도정세가급변했다는주장은일정하게만타당성을갖는다고할수있다. 즉, 북한이변화하고결단할수있도록여건을조성한문재인정부의노력역시평가받아야마땅한것이다. 한반도평화정착을위한문재인정부의노력은비단남북관계에만한정되지않았다. 문재인정부가 대북정책 이아닌 한반도정책 을표방한것처럼, 우리가원하는것은 한반도의평화 이며이를위해서는남북관계뿐아니라북 미관계도개선 발전돼야하는것이다. 이러한인식하에서문재인정부는한반도평화의당사자인동시에북 미관계개선을위한중재자역할을마다하지않았다. 문재인정부는한반도문제의주인이자당사자임을강조하면서도핵심적역할을하기어려운북 미관계개선을위해노력해온것이다. 이러한노력의결과, 2018년 6월 12일싱가포르센토사섬에서는역사상처음으로북 미정상회담이개최됐다. 그리고김정은위원장과도널드트럼프대통령은 6.12 북 미정상회담공동성명 을통해다음과같이합의했다. ( 생략 ) 김정은위원장과트럼프대통령은새로운조미관계수립과조선반도에서의항구적이며공고한평화체제구축에관한문제들에대하여포괄적이며심도있고솔직한의견교환을진행하였다. 트럼프대통령은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안전담보를제공할것을확언하였으며김정은위원장은조선반도의완전한비핵화에대한확고부동한의지를재확인하였다. 29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 생략 ) 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미합중국은평화와번영을바라는두나라인민들의념원에맞게새로운조미관계를수립해나가기로하였다. 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미합중국은조선반도에서항구적이며공고한평화체제를구축하기위하여공동으로노력할것이다. 3.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2018년 4월 27일에채택된판문점선언을재확인하면서조선반도의완전한비핵화를향하여노력할것을확약하였다. ( 생략 ) 1) 이러한배경하에서이글은 6.12 북 미정상회담이후이뤄진일련의비핵 평화프로세스에관해평가하는것을목적으로한다. 이를위해먼저한반도비핵 평화와관련된구조와행위자에관해논의할것이다. 이어서 6.12 북 미정상회담이후이뤄진한반도의비핵 평화프로세스진행경과를정리할것이다. 진행경과는주요행위자를감안해남북관계와북 미관계로구분할수있으며, 이슈를감안해비핵프로세스와평화프로세스로구분할수있을것이다. 다음으로 6.12 북 미정상회담이후진행된비핵 평화프로세스를정치적측면과기술적측면으로구분해평가할것이다. 끝으로향후한반도비핵 평화프로세스가어떠한방향에서추진될것인지를전망할것이다. Ⅱ. 한반도비핵 평화의구조와행위자 1. 한반도비핵 평화의구조 한반도비핵화와한반도평화의관계에대한남북한의인식은 2018년 4월 27일남북정상회담에서문재인대통령과김정은위원장이합의한 한반도의평화와번영, 통일을위한판문점선언 ( 이하 판문점선언 ) 에서확인할수있다. 남북한은 판문점선언 에서총 3개조, 13개항에합의했는데, 한반도평화및비핵화와관련된내용은 3조에서주로다루고있다. 3. 남과북은한반도의항구적이며공고한평화체제구축을위하여적극협력해나갈것이다. 한반도에서비정상적인현재의정전상태를종식시키고확고한평화체제를수립하는것은더이상미룰수없는역사적과제이다. 1 남과북은그어떤형태의무력도서로사용하지않을때대한불가침합의를재확인하고엄격히준수해나가기로하였다. 2 남과북은군사적긴장이해소되고서로의군사적신뢰가실질적으로구축되는 1) < 조선중앙통신 >, 2018 년 6 월 12 일자. 30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데따라단계적으로군축을실현해나가기로하였다. 3 남과북은정전협정체결 65년이되는올해에종전을선언하고정전협정을평화협정으로전환하며항구적이고공고한평화체제구축을위한남 북 미 3자또는남 북 미 중 4자회담개최를적극추진해나가기로하였다. 4 남과북은완전한비핵화를통해핵없는한반도를실현한다는공동의목표를확인하였다. 남과북은북측이취하고있는주동적인조치들이한반도비핵화를위해대단히의의있고중대한조치라는데인식을같이하고앞으로각기자기의책임과역할을다하기로하였다. 남과북은한반도비핵화를위한국제사회의지지와협력을위해적극노력하기로하였다. 2) 이상의내용에서도알수있는것처럼, 남북한은한반도비핵화보다한반도평화를더큰개념으로상정하고있다. 즉, 한반도평화정착을위한주요사안가운데하나로한반도비핵화를다루고있는것이다. 남북한은한반도비핵화외에도한반도평화정착을위해필요한사안으로상호불가침, 군사적긴장해소및신뢰구축과군축실현, 종전선언과평화협정체결, 평화체제구축을위한다자회담개최추진등을제시하고있다. 이처럼한반도평화를한반도비핵화보다더큰개념으로상정하는인식은 6.12 북 미정상회담공동성명 에서도어렵지않게확인할수있다. 공동성명 은전문을통해양정상이회담에서새로운북 미관계수립과한반도에서의항구적이고공고한평화체제구축에관해협의했고, 트럼프대통령은대북안전보장을확언했으며, 김위원장은한반도의완전한비핵화의지를재확인했다고밝히고있다. 또한 공동성명 은두정상이새로운북 미관계수립 (1항), 한반도평화체제구축 (2항), 한반도비핵화 (3항), 북한지역에있는미군유해공동발굴및인도 (4항) 등에합의했다고명시하고있다. 각항이적시된순서가아무런의미도담고있지않을가능성을배제할수는없지만, 6.12 북 미정상회담공동성명 이역사적문서라는점을감안할때그러한가능성이큰것처럼보이지는않는다. 오히려양국이공동으로추구하려는사안의중요성및포괄성등을종합적으로감안해가장큰사안부터작은사안순으로 1항부터 4항까지나열한것으로이해할수있다. 판문점선언 을해석한것과유사하게 6.12 북 미정상회담공동성명 을해석하면, 한반도평화체제구축을위해서는한반도비핵화외에도다른사안들의해결이필요하고, 새로운북 미관계수립을위해서는한반도평화체제구축외에도다른사안들의해결이필요하다는것으로이해할수있다. 2. 한반도비핵 평화의주요행위자 한반도비핵화와관련된행위자로는 2000 년대초 중반구성됐던 6 자회담참여국, 즉남북한 2) 청와대웹사이트 (http://www.president.go.kr/) 참고 ( 검색일 : 2018 년 8 월 17 일 ). 31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과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를상정할수있다. 그리고한반도평화와관련된행위자로는한반도에군대를주둔시키고있는남북한과미국을우선상정할수있으며, 중국이한반도비핵 평화와관련된주요행위자인지에대해서는별도의검토가필요하다. 따라서이글에서는남북한과미국이왜한반도비핵 평화와관련된주요행위자인지에대해논의하고자한다. 가. 북한한반도비핵 평화에있어북한은단연주요행위자라고할수있다. 김정은위원장이 3차례의남북정상회담과북 미정상회담을통해대내외에공약한 한반도의완전한비핵화 는북한비핵화와사실상동의어라고할수있다. 북한비핵화 가아닌 한반도비핵화 라고표현하는이유는북한의입장을일정하게배려했기때문으로보인다. 즉, 북한비핵화를위해서는외부, 특히미국의대북안전보장이필요하며, 이를위한실질적조치의일환으로미국전략자산의한반도전개중단이이뤄져야했기때문이다. 문재인대통령과김정은위원장이 2018년 9월평양남북정상회담에서합의한것처럼, 핵무기와핵위협이없는한반도실현은남한뿐아니라북한에게도긴요한것일수있다. 한반도평화에관해서도북한은주요행위자가아닐수없다. 한반도에서군사적으로대치하고있는실체는군사분계선이북지역의조선인민군 ( 이하북한군 ) 과군사분계선이남지역의한 미연합군이다. 따라서당연하게도북한군을포함하는북한은한반도평화의주요당사자라고할수있다. 한반도평화는우리만원하는것이아닐수도있다. 6.25전쟁을시작한것이북한이고, 북한이무력에의한적화통일야욕을완전히포기하지않았을수도있다. 그렇지만탈냉전이후북한은세계최강대국인미국과직접적으로군사적인대결을벌인다고인식하고있다. 게다가 1980년대를지나면서재래식군사력측면에서의대남우위가사실상무너졌다. 즉, 북한이느끼고있는피포위의식과외부로부터의안보위협은우리가상상하는것이상일수있다. 다시말하면, 북한도한반도평화를갈구하고있을수있는것이다. 나. 남한앞서언급한것처럼, 남한은미국과연합군을형성해한반도에서북한군과군사적으로대치하고있다. 한 미연합군은 1978년창설돼현재에이르고있으며, 한 미연합군창설이전까지는한국군과주한미군이북한군과군사적으로대치하고있었다. 6.25전쟁기간한국군에대한지휘권이유엔군사령관에게이양됐고, 전시작전통제권이아직한국군으로전환되지는않았다. 그렇지만이를근거로한반도에서북한군과군사적으로대치하고있는실체에서한국군을제외하는것은논리적 현실적측면에서있을수없는일이다. 한국군이북한군과군사적으로대치하고있다는사실그자체는남한이한반도평화의주요당사자이며, 한반도에평화를정착시켜야하는주요행위자가남한이라는의미이다. 남한은한반도비핵화의주요당사자중하나이기도하다. 북한의핵 미사일개발과이로인한위협을전제하는한반도의완전한비핵화가실현되기전까지남한은북한의핵 미사일위 32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협으로부터자유로울수없기때문이다. 문재인대통령과김정은위원장이 9월평양공동선언 을통해 핵무기와핵위협이없는한반도 를강조했지만, 이제막비핵화및이를위한협상의초입에진입했을뿐이다. 한반도의완전한비핵화가실현되거나한반도의군사적대치구조가완전하게없어지지않는이상남한은한반도비핵화의주요행위자일수밖에없는것이다. 다. 미국미국역시한반도비핵 평화의주요당사자라고할수있다. 트럼프행정부가 세계의경찰 역할을자임하고있는지에대한평가는차치하더라도그동안미국이견지해온세계전략을감안했을때, 대량살상무기의세계적확산은미국의이익에반하는것이며, 이러한맥락에서한반도의완전한비핵화는미국의주요한외교적과제일수밖에없다. 특히, 북한이핵 미사일을개발 고도화시킨이유가외부의위협으로부터자신들의체제안전을보장하기위해서이고, 북한이인식하는가장큰외부의위협이바로미국이라는점에서미국은한반도비핵화의주요당사자가아닐수없다. 북한이미국본토를타격할수있는능력을갖추기전까지미국은북한비핵화가중요한사안이라고언급하면서도이의해결을위한실질적행동에는미온적이었던것이사실이다. 그러나북한이 2016~2017년핵 미사일고도화를추진한결과, 북한의장거리지대지탄도미사일이미국본토에닿을수있다는점이물리적으로입증된이후미국은매우빠르게움직이기시작했다. 개념적차원에만머물던북한으로부터의핵 미사일위협이현실적차원으로전이되며실질적위협으로다가왔기때문이다. 이러한측면에서미국은자신들의안보를위해한반도의완전한비핵화에주요행위자로적극참여했던것이다. 한편, 비핵화와의관련성을굳이언급하지않더라도, 미국은한반도평화의주요행위자가아닐수없다. 앞서언급한것처럼, 6.25전쟁으로한반도에군대를주둔시키기시작한미국은여전히한반도에많은병력을주둔시키며한국군과연합군을구성해북한군과군사적으로대치하고있다. 특히, 미국은주한미군사령관이유엔군사령관과한 미연합군사령관을겸하게하며한국군에대한전시작전통제권을행사하는동시에 정전협정 의서명당사자이자주요행위자로기능하고있다. 또한한반도평화의한축이라고할수있는북한의대외위협인식은바로미국으로인해발생하는것이라는점에서미국은한반도평화의주요행위자가아닐수없는것이다. 3. 한반도비핵 평화의메커니즘 앞서정리한한반도비핵 평화의구조, 그리고이와관련된주요행위자인남북한과미국을포함시켜한반도비핵 평화의거시적메커니즘을그림으로형상화하면아래와같다. 33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 그림 1> 한반도비핵 평화의거시적메커니즘 위 < 그림 1> 에서도확인할수있는것처럼, 한반도의비핵 평화를실현하는기재는결국남북관계와북 미관계라고할수있다. 역사적인측면에서살펴보면, 한 미관계가부침을겪는과정에서한반도평화에어려움이조성됐던경우가없지않았던것이사실이다. 그렇지만현재와미래의한반도비핵화및평화정착과관련해한 미관계가난관을조성할것이라고예상하기는쉽지않다. 특히, 한반도평화와직결되는북한의핵 미사일능력이미국의사활적이해관계에현실적도전이되고있다는점에서북한의핵 미사일문제해결과한반도평화유지및정착을위한한 미간의협력은앞으로도지속될개연성이크다고할수있다. 한편거시적메커니즘을미시적수준으로구체화하는과정에서는하나의주요행위자가나머지두주요행위자사이의관계에영향, 특히부정적영향을미치는경우를상정하지않을수없다. 즉, 남한이북미관계에, 북한이한미관계에, 미국이남북관계에부정적영향을미치는경우를상정해볼수있다는것이다. 예를들어, 북한이지속적으로한미관계의이간을모색해온역사, 1994년북한과미국이 제네바기본합의 로귀결되는협상을할때한국이부정적영향을미치려한사실, 남북관계의진전에미국이장애를조성하려했던사례등이다. 2018년들어한반도정세가급변하는과정에서북한은아직까지한미관계에부정적영향을미치려하지않았다. 오히려상호신뢰가부족한미국을설득하기위해한국을이용했다고할수있다. 특히, 한국은스스로를당사자이면서도중재자로자처하며북 미관계가개선되는과정에긍정적영향을미치려했다. 그러나미국이남북관계에장애를조성하려하거나진전속도를조절하려하지는않았는지는곱씹어볼대목이다. 상호신뢰가부족한북 미관계가급진전하기어렵기때문에관계진전의경험이있는남북관계의급진전을미국이우려할수는있다. 34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그렇지만과연이러한행태가한반도의비핵화와평화정착이라는근본적목표를달성하는데부정적인영향을미치는것은아닌지에대한우려가있는것이사실이다. 이러한내용을형상화하면 < 그림 2> 와같이나타낼수있을것이다. < 그림 2> 한반도비핵 평화의미시적메커니즘 Ⅲ. 6.12 이후비핵 평화프로세스진행경과 여기에서는역사적인 6.12 북 미정상회담이후지금까지진행된한반도비핵 평화프로세스를두가지기준으로구분해살펴보고자한다. 먼저주요행위자를중심으로남북관계와북 미관계로세분해알아볼수있을것이다. 다음으로비핵프로세스와평화프로세스로세분하고자한다. 한반도비핵화가평화정착의일부이기는하지만핵심적인사안이며, 비핵화와관련된논의가대체로평화와관련된논의와구분돼이뤄지고있다는현실을감안할때비핵프로세스와평화프로세스로세분하는것이가능하기때문이다. 1. 남북관계 6.12 북 미정상회담이후남북관계는 2018년들어급반전된남북관계의맥락에서이해해야만한다. 북 미정상회담이역사적인이정표인것은분명하지만, 6.12 이후남북관계는북 미정상회담등북 미관계와일정하게연동되면서도독립적으로추진된경향이강하기때문이다. 따라서 6.12 이후남북관계를살펴보기에앞서, 6.12 이전까지진행된남북관계경과를먼저 35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정리할필요가있다. 2018년상반기이뤄진남북관계급반전의본격적인서막은평창동계올림픽이었다. 김정은위원장이 2018년신년사를통해평창동계올림픽참가의사를밝혔고, 북한의평창올림픽참가지원등을논의하기위해남북은 1월 9일고위급회담을개최했다. 평창올림픽개회식참석을계기로방남한북한의고위급대표단은 2월 10일문재인대통령을예방했는데, 이자리에서김정은위원장의친여동생인김여정북한노동당제1부부장은김위원장의친서를전달했다. 답방형식으로정부는정의용국가안보실장을수석특사로하는대북특별사절단을 3월 5~6일방북시켰으며, 대북특사단은방북첫날김정은위원장을접견했다. 대북특사단은귀환한직후 4월말판문점남북정상회담개최합의등의방북결과를설명했다. 문재인대통령과김정은위원장은 4월 27일판문점남측구역인평화의집에서만나남북정상회담을개최하고 판문점선언 에합의했다. 4.27 남북정상회담이후남북한은관계개선을위한교류 협력의폭을확대해나갔다. 판문점선언 이행을위한남북고위급회담을 6월 1일개최하고, 공동연락사무소의조속한개소, 장성급회담 체육회담 적십자회담개최, 철도 도로 산림협력분과회의개최등에합의했다. 북한은그동안반대해왔던남한의국제철도협력기구 (OSJD) 가입과관련해입장을바꿔찬성하는성의를보이기도했다. 이러한남북관계복원 개선에발맞춰남북한간군사적긴장을완화하기위한조치들도이뤄졌다. 2018년 4월남북정상회담개최를나흘앞두고군은군사적긴장완화및평화로운회담분위기조성을위해 0시부로군사분계선일대에서대북확성기방송을중단했다. 이에호응해북한도대남확성기방송을중단한것으로알려졌다. 나아가군은문재인대통령과김정은위원장의첫정상회담이후인 5월 1~4일대북확성기를철거하기도했다. 북한은 1월 9일남북고위급회담에서그동안차단했던서해지구군통신선복원사실을남한에공개했다. 특히, 문재인대통령과김정은위원장은남북정상회담사상처음으로합의사항에 군축 과관련된내용을포함시켰다. 또한정부는미국과의협의를통해 2018년 4월한미연합키리졸브및독수리훈련을 예년유사규모 로실시했고, 그이후에예정됐던모든한미연합군사훈련을사실상중단했다. 또한남북관계는북 미관계개선을중재하기도했다. 문재인대통령은 2018년 1월 4일트럼프대통령과의전화통화를통해북한의평창동계올림픽참가에긍정적여건을조성하기위해북한이그동안강력하게반발해왔던한미연합키리졸브및독수리군사훈련을올림픽기간중에실시하지않고순연하기로전격합의했다. 특히, 북 미관계개선을위한정부의노력은북 미정상회담개최를전후해빛을발했다. 대북특사단은 2018년 3월초방북해김정은위원장을접견한자리에서김위원장이트럼프대통령을가능한조기에만나고싶다는의사를확인했다. 정의용청와대국가안보실장은방북을마친직후워싱턴을방문해트럼프대통령에게김정은위원장의이러한의사를전달했다. 트럼프대통령은 항구적인비핵화달성을위해김정은위원장과금년 5월까지만날것 이라고언급했다. 무엇보다좌초될위기에놓였던북 미정상회담이정상궤도로돌아오는데에서남북관계는빛을발했다. 북 미간의기싸움이이어지던가운데트럼프대통령은 2018년 5월 24일김정 36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은위원장에게보내는공개서한을통해북 미정상회담을취소하겠다고전격발표했다. 다음날김정은위원장은문재인대통령에게만나자고요청했다. 이에따라 2018년 5월 26일, 판문점북측지역통일각에서문대통령과김위원장사이의두번째남북정상회담이개최됐고, 북 미정상회담이 6월 12일싱가포르센토사섬에서개최됐다. 6.12 북 미정상회담개최이후남북한은관계개선의속도를높이고있다. 먼저, 교류 협력과관련해, 체육회담 (6.18), 적십자회담 (6.22), 철도협력분과회담 (6.26), 도로협력분과회담 (6.28), 산림협력분과회담 (7.4) 이합의한대로개최됐다. 또한통일농구경기대회 (7.3~6, 평양 ), 코리아오픈탁구대회 (7.17~22, 대전 ) 북한참가,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단일팀구성및공동입장, 국제유소년축구대회 (8.13~18, 평양 ) 우리측참가, 제4차고위급회담 (8.13) 통해 9월중평양남북정상회담개최합의, 이산가족상봉 (8.20~26), 대북특사단 2차방북및김정은위원장면담 (9.5),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개소 (9.14, 개성 ), 평양남북정상회담 (9.18~20), 10.4 정상선언 기념행사 (10.4~6, 평양 ) 등이이뤄졌다. 특히, 평양남북정상회담에서문재인대통령과김정은위원장은 9월평양공동선언 을통해남북관계발전방향을위한구체적조치등에합의함으로써평화에기초한공동번영의청사진을보여줬다. 또한 판문점선언군사분야이행합의서 에국방장관과인민무력부장이합의함으로써그동안남북한간교류 협력및남북관계발전에장애로작용했던군사문제해결과관련한역사적이정표를마련했다. 이에앞서남북한은지난 6월 14일제8차남북장성급회담을개최하고, 그동안이행이중단됐던서해상우발적충돌방지를위한 2004년제2차남북장성급군사회담합의사항을다시이행하고, 동 서해지구군통신선완전복구에합의했다. 정부는미국과의협의를통해한반도에서의군사적긴장을완화하기위한조치들도추진했다. 6월 19일정부는미국과 8월실시예정이었던한미연합프리덤가디언연습의모든계획과활동을유예하기로결정했다고발표했고, 사흘뒤에는 7월에실시할예정이었던한미해병대연합훈련 (KMEP) 도유예한다고밝혔다. 한 미국방장관은 6월 28일서울에서회담을갖고 북한이선의의대화를지속하는한상호신뢰구축과평화정착을위한조치를지속적으로강구 할것이라고밝혔다. 정부는 7월 10일에는 8월로예정됐던국가전시대응태세점검훈련인 을지연습 을잠정적으로유예한다고발표했다. 7월 1일에는한국해군경비함이연평도인근에서국제상선공통망을이용해북한경비함을호출한데대해북한이응답함으로써 2008년 5월중단됐던남북한간서해해상국제상선공통망운용이정상화됐다. 7월 16일에는서해군통신선이완전히복원됐으며, 같은달 31일에는제9차장성급군사회담을개최하고 판문점선언군사분야이행합의서 내용에관해큰틀에서견해의일치를이뤘다. 8월 15일동해군통신선연결이이뤄져시험통화에성공했고, 9월 13~14일에는제40차군사실무회담을개최하고 판문점선언군사분야이행합의서 와관련된실무적인문제를협의했다. 10월 1일부터 판문점선언군사분야이행합의서 를이행하기위한첫조치로판문점공동경비구역과강원도철원군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지뢰제거작업이시작됐다. 37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한편남북관계는 6.12 북 미정상회담이전처럼 6.12 북 미정상회담이후에도북 미관계개선에기여하고있다. 북한과미국사이의협의가잘진전되지않아 8월 23일발표된폼페이오미국무장관의방북을다음날트럼프대통령이전격취소하는사태가발생했다. 이후정부는대북특사단방북 (9.5) 을통해김정은위원장이 한반도의완전한비핵화에대한확고한의지를재확인하고, 이를위해남북간에는물론미국과도긴밀히협력해나가겠다는의사를표명 했다고확인했다. 특히, 평양남북정상회담을통해문재인대통령은북 미대화재개의여건을마련했으며, 제2차북 미정상회담개최및폼페이오미국무장관의 4차방북 (10.7) 성사에기여한것으로평가된다. 2. 북 미관계 6.12 북 미정상회담이후지난 4개월간의북 미관계는북한의비핵화관련조치및미국의상응조치를두고기싸움을벌이며교착국면이이어졌다고총평할수있다. 북 미정상회담이전에두차례방북했던폼페이오국무장관은 7월 6~7일 3차방북했으며, 생산적인대화가이뤄졌고, 거의모든주요이슈에서진전을이뤘다 고자평했다. 그러나북한은 7월 7일외무성대변인담화를통해폼페이오장관의방북시나타난미국의태도에대해유감을표하면서도트럼프대통령에대한신뢰를유지하고있다고밝혔다. 트럼프대통령은 7월 12일김정일위원장이방북했던폼페이오장관을통해 7월 6일친서를보냈다고공개했다. 7월 15일북 미는 6.12 북 미공동성명 의마지막합의사항인미군유해송환을위한장성급회담을, 이튿날에는실무회담을개최했으며, 정전협정 체결일인 7월 27일 55구의미군유해가원산을떠났다. 트럼프대통령은 8월 1일에도김정은위원장으로부터친서를받았다고밝혔고, 8월 4일미국은트럼프대통령이답신을전달했다고설명했다. 그사이인 8월 2일해리스주한미국대사는 종전선언을하려면비핵화를향한북한의상당한움직임이있어야한다 며 핵시설리스트를제출하면좋은출발점이될것 이라고발혔다. 이에대해북한의리용호외무상은아세안지역안보포럼 (ARF) 에서 신뢰조성을선행시키며 (6.12 북 미 ) 공동성명의모든조항들을균형적, 동시적, 단계적으로이행해나가는새로운방식만이성공할수있는유일하게현실적인방도 라고대응했다. 북한은 8월 9일외무성대변인담화를통해미국의상응조치를재차촉구했으며, 같은날리용호외무상은이란을방문한자리에서 비핵화에동의했지만미국이우리 ( 북한 ) 에대한적대를포기하지않을것을알기때문에핵지식을보존하겠다 고언급했다. 이러한북 미간의기싸움은 8월말폼페이오장관의 4차방북취소사태로까지이어졌다. 8월 23일폼페이오장관은기자회견을통해스티브비건포드자동차부회장을신임대북정책특별대표로임명했다고발표하며 8월마지막주에방북할것이라고발표했다. 그러나다음날트럼프대통령은 한반도비핵화측면에서충분한진전을이루고있다고느끼지않 는다며폼페이오장관의 4차방북을전격취소시켰다. 트럼프대통령은 8월 29일백악관성명을통해 김정은위원장과의관계는좋다 면서도한 미연합군사훈련을재개한다면역대최대규모가될것이라고북한을압박했다. 이러한가운데미국은국제사회의대북제재가유지돼야만비핵화가달 38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성될수있다고지속적으로강조하고있는데, 7월 23일에는미국국무부와재무부가함께 대북제재및단속주의보 를발표했다. 그러나, 앞서언급한것처럼, 이러한북 미간의교착국면은남북관계, 특히평양남북정상회담을계기로삼아다시대화재개방향으로선회하고있다. 김정은위원장은 9월 5일방북한우리측대북특사단에게비핵화와관련해미국과도협의하겠다는의사를밝혔고, 평양남북정상회담에서는동창리엔진시험장과미사일발사대를유관국전문가들의참관하에우선영구적으로폐기하고, 6.12 북 미공동성명 에따른미국의상응조치가취해지면영변핵시설폐기등추가적인조치를취할수있다고했다. 평양남북정상회담직후유엔총회를계기로미국을방문한문재인대통령은트럼프대통령과의한 미정상회담에서평양남북정상회담결과를설명하며북 미대화재개의필요성을강조했고, 트럼프대통령은제2차북 미정상회담개최를시사했다. 8월말무산됐던폼페이오장관은 4차방북이 10월 7일이뤄졌는데, 여기에서북 미는제2차북 미정상회담, 북한의비핵화조치및미국의참관문제, 미국의상응조치등에관해논의한것으로알려졌다. 3. 비핵프로세스 현재진행중인비핵프로세스는크게두가지경로를통해진행되고있다. 하나는북 미간협의를통해구체적인비핵프로세스를구성해가는것이며, 다른하나는남북간협의를통해비핵프로세스추진의동력과돌파구를마련하는것이라고할수있다. 6.12 북 미정상회담을전후해지금까지진행된비핵화프로세스경과를간략하게정리하면아래와같다. 한반도비핵화는 9월평양공동선언 에 핵무기와핵위협이없는한반도 라는표현으로구체화돼있다. 이러한표현을실현하기위한현실적이고실질적방안은바로북한핵프로그램일체의포기 폐기와미국전략자산의한반도전개중단이라고할수있다. 미국전략자산의한반도전개는 2018년들어이뤄진적이한차례도없으며, 북한의핵 미사일재발이재개되지않는이상다시실현될가능성이크지않다고할수있다. 미국이세계모든지역을타격할수있는수단, 즉장거리미사일과전략폭격기, 핵추진잠수함등 3각체계 (nuclear triad) 를갖추고있기때문에북한에대한미국의핵위협이완전하게사라졌다고단언하기는어렵지만, 미국의확장억제력이실행되던한 미연합군사훈련이사실상중단됐기때문에대북핵위협은상당한정도로완화됐다고할수있는것이다. 따라서앞으로남은과제는북한이핵 미사일도발을하지않는여건을지속하면서북한이보유하고있는핵프로그램일체를포기 폐기하는일이며, 바로이것이 한반도의완전한비핵화 라는표현이담고있는주요내용이라고할수있다. 북한은 2018년 4월 20일열린노동당중앙위제7기제3차전원회의를통해 5년여전에김정은시대의항구적국가전략으로채택했던 경제건설및핵무력건설병진노선 의 결속, 즉사실상종료를선언했다. 이와함께병진노선종료를증명하기위한조치중하나로풍계리핵실험장을전격적으로폭파했다. 그런이후북한은 4.27 남북정상회담과북 중정상회담, 6.12 39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북 미정상회담등을통해 완전한비핵화 의지를주변국과주요이해당사국, 그리고국제사회에공언했다. 그럼에도불구하고북한이완전한비핵화를실현할의지가정말로있는것인지, 즉북한의비핵화진정성에대한의문은계속됐다. 트럼프대통령이 8월말폼페이오장관의 4차방북을전격적으로취소했던점등을감안할때, 6.12 북 미정상회담이후북한은비핵화조치추진에미온적이었던것으로보인다. 이러한태도는북한이미군유해도일정하게송환했고, 북 미정상회담이전에 선의 차원에서풍계리핵실험장도전격적으로폭파하는등 6.12 북 미공동성명 을단계적으로이행하고있는반면, 미국은 6.12 북 미정상회담이후에도거의아무런조치를취하지않았다고인식했기때문으로평가된다. 북한입장에서비핵화는미국의상응조치와단계적 동시적으로추진돼야하는데그동안은그렇지못했던것이다. 북 미간교착국면이이어지던가운데북한은 완전한비핵화 의지를처음으로표명했던남북관계를이용하며다시한번비핵화에대한진정성을과시하고, 이를물리적으로실현할수있다는다소파격적인공약을다시한번제시했다. 김정은위원장은문재인대통령과의평양남북정상회담합의서인 9월평양공동선언 을통해 동창리엔진시험장과미사일발사대를유관국전문가들의참관하에우선영구적으로폐기하기로했고 미국이 6.12 북 미공동성명 의정신에따라상응조치를취하면영변핵시설의영구적폐기와같은추가적인조치를계속취해나갈용의가있음을표명했다. 김정은위원장은이러한내용을비롯한다소구체적비핵화조치를 10월 7일방북한폼페이오미국국무장관과논의한것으로알려졌다. 4. 평화프로세스 앞서설명했던비핵프로세스와유사하게한반도평화프로세스역시크게두가지경로를통해추진되고있다. 하나는남북관계차원에서이뤄지고있는군사적긴장완화와관련된조치들이며, 다른하나는북 미관계차원에서북한이비핵화의단계적이행에조응해야한다며미국에요구하는소위 상응조치 라고할수있다. 먼저, 남북관계차원에서이뤄지고있는한반도평화프로스세진행경과에관해정리해보자. 남북한은 4.27 남북정상회담을기점으로이를준비하고이행하는차원에서 2007년말이룩했던초보적수준의군사적신뢰구축조치를대체로복원했다. 나아가남북한은 9월평양공동선언 을통해전쟁종식을선언하고, 이의부속합의서인 판문점선언군사분야이행합의서 를통해상당한수준의군사적긴장완화조치에합의하고이를본격적으로이행하기시작했다. 남북한은 판문점선언군사분야이행합의서 를통해 비무장지대내남북공동유해발굴및역사유적공동조사 발굴 평화수역과공동어로구역내남북공동순찰방안 남북군사공동위원회구성 운영 군사당국자사이의직통전화설치 운영등에합의했는데, 이는군사적신뢰구축에해당하는내용이라고할수있다. 또한군비통제와관련해서는 모든공간에서의일체의적대행위전면중지관련조치 판문점공동경비구역비무장화관련조치 서해북방한계선일대평화수역설정에합의했으며, 비무장지대내 GP 전부철수는군축에해당하는사안이다. 40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다음으로북 미관계차원에서이뤄지고있는한반도평화프로세스진행경과에관해정리해보자. 북한이풍계리핵실험장폭파, 평양인근의미사일관련시설해체등선별적인비핵화조치를취했지만, 북한이주장하는것처럼, 미국이취한조치는한 미연합군사훈련중단외에는거의없는것이사실이다. 북한이비핵화의상응조치로요구하는것은결국미국의대북체제안전보장인데, 이는한반도평화와직결되는사안이라고할수있다. 이러한측면에서미국이지금까지취한 6.12 북 미공동성명 에명기된트럼프대통령의약속, 한 미연합군사훈련중단, 미국전략자산의한반도전개중단등은언제든지번복될수있는가역적성격이기때문에북한이만족하기는어려운수준이라고할수있다. 북한은미국에 6.25전쟁을끝내는정치적성격의종전선언을시작으로한반도평화체제구축및새로운북 미관계수립을위한조치들을추진해나가자고요구하고있다. 그러나미국은폼페이오국무장관의 4차방북이전까지북한의이러한요구에대해보다진전된비핵화조치, 즉핵리스트신고등을요구하며맞섰다. 폼페이오장관은 4차방북 (10.7) 에서김정은위원장등과미국의상응조치에관해논의했다고발혔지만, 구체적내용은알려지지않았다. Ⅳ. 6.12 이후비핵 평화프로세스에관한평가 1. 정치적평가 2018년들어지금까지한반도정세가급진전되는과정을선도한것은다름아닌남북관계라고할수있다. 이는문재인정부가표방했던한반도정책의성과라고도할수있는데, 정부는남북관계를중심으로북 미관계개선과북한핵 미사일문제해결을추동해한반도에평화를정착시키고이를공고화해나가겠다는전략을갖고있다. 문재인정부는출범이후지속적으로이러한내용의한반도정책을표방해왔지만, 북한이핵 미사일고도화를추진하던 2017년에는성과를거두지못했다. 그러나 2018년들어문재인정부의한반도정책추진에북한이긍정적으로호응하면서한반도정세가급반전되기시작했다. 2018년에만 3차례의남북정상회담과 1차례의북 미정상회담등을거치며 2017년까지는상상하기어려웠던많은사항들이지난 9개월여동안남북및북 미간에합의됐으며, 일부이행됐다. 북 미관계가 6.12 북 미정상회담개최이후에도쉽게진전되지않았던반면남북관계는국제적인대북제재에저촉되지않는범위내에서매우빠른속도로추진돼온것이사실이다. 특히, 김대중 노무현정부시기남북관계의한계, 즉남북한간정치 군사적문제해결의미진함이근본적인남북관계발전에장애가됐던점을감안해국제사회의대북제재에해당하지않는남북한간군사적긴장완화에있어매우많은사항에합의하고이를이행하기시작했다. 남북한간의군사적긴장완화는한반도평화정착및공고화에직접적으로기여하는동시에한반도비핵화에도긍정적여건을조성하는것이라고할수있다. 한반도평화와관련된주요행위자는남북한과미국이며, 한 미간의근본적이견이발생하지않는이상한반도평화는남북관계및북 미관계의병행개선 발전과동의어라고할수있다. 남북한이 판문점선언, 41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9월평양공동선언, 판문점선언군사분야이행합의서 등을통해합의한남북한간군사적긴장완화는남북한의상호위협을감소시키는동시에한반도평화의한축인남북관계발전을추동 뒷받침하는것이다. 특히, 문재인대통령이 9월 19일평양능라도 5.1경기장에서김정은위원장이지켜보는가운데북한주민 15만여명을대상으로 한반도에서더이상전쟁은없을것이며새로운평화의시대가열렸다 고밝힌것은앞으로의남북관계가지금까지의남북관계와는그성격이전혀다를것임을천명한것이며, 한반도평화와관련된두주요행위자가실질적인한반도평화정착을대내외에약속한것이라고할수있다. 또한한반도비핵화는남북관계및북 미관계발전과관련된핵심적인사안이며, 한반도비핵화의주요행위자인북한은자신들의체제안전보장과비핵화를교환하기를원한다. 그동안군사적인측면에서한 미연합군과북한군이대치해왔다는점에서북한이원하는체제안전보장은비단미국만이아니라한국에게도해당하는사안이다. 따라서남북한간군사적긴장완화는북한이원하는체제안전보장을일정하게충족하는조치라고할수있다. 특히, 남북한간군사적긴장완화가이뤄지는상황에서는미국도북한에대한군사적행동을독단적으로단행하기가쉽지않다. 이러한점에서남북한간군사적긴장완화는한반도비핵화에도긍정적여건을조성하는것이라고할수있다. 이처럼남북관계를중심으로한반도평화프로세스가추진되고있는가운데서도한반도비핵화프로세스는상대적으로지지부진한것이사실이다. 한반도비핵화프로세스추진은결국북한의결단과행동으로만가능한데, 북한이비핵화프로세스를실질적으로진전시키기위해서는남한의역할도중요하지만이보다는미국의상응조치이행이더욱중요하다. 그렇지만미국은상응조치약속및이행에소극적인태도를보여왔다. 트럼프대통령은 6.12 북 미정상회담을전후해서부터지금까지김정은위원장과의신뢰를지속적으로강조하면서도북한의비핵화조치와대해서는다소인색하게평가해온것이사실이다. 이러한가운데북 미간에입장대립이지속되며교착국면이발생할경우에는남북관계가돌파구를마련해온것이사실이다. 6.12 북 미정상회담이좌초위기에직면했을때김정은위원장은문재인대통령에게 원포인트 남북정상회담을요청했고, 폼페이오미국국무장관의 4차방북이철회되며북 미간교착국면이발생하자평양남북정상회담을통해제2차북 미정상회담개최등북 미간대화의발판을마련했다. 더불어남북관계발전과한 미관계를통해미국이현재의대북정책을쉽게변경하기가어려운여건이조성 유지되면서한반도비핵화추진및실현에대한기대가지속되고있다. 문제는앞으로도이러한구도가지속될수있느냐, 지속돼야하느냐하는것이다. 북한과미국이서로를신뢰하기위해서는지난 70여년간이어진적대적관계의역사가갖는무게감을극복해야하지만이는단기간내에쉽지않은일이다. 6.12 북 미정상회담을전후해북 미사이에발생한몇차례의난관은양측이상호신뢰하지못하다는사실을단적으로보여준다. 6.12 북 미정상회담이상호신뢰를형성하기위한 첫 거래이자계약이었다고한다면준비정도와는상관없이내용적측면에서일정하게포괄적일수밖에없었을것이다. 그러나이러한 42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포괄적합의는향후에이뤄질합의이행의어려움을내포하는것이기도하다. 상호신뢰를구축하는동시에합의를진전 이행해나가는과정에서는당연히교착국면이나타날수있다. 그리고이러한상황을타개하기위해서는양측모두로부터신뢰를받는중재자의역할이중요할수밖에없다. 그러나언제까지나중재자가모든교착국면을돌파할수있는것은아니며, 그렇게하는것이바람직하지도않다. 2. 기술적평가 1994년북 미가합의했던 제네바기본합의 이행경과, 2005년 6자회담에서채택됐던 9.19 공동성명 등의경우를종합하면일련의북한비핵화관련프로세스를 신고 동결 불능화 폐쇄 폐기 순으로정리할수있다. 신고는북한이보유 운영하고있는관련시설과장비, 물질등의목록을작성하고, 이신고서를검증해야하는미국또는 IAEA 등에제공하는절차이다. 동결은북한이신고한시설과장비의가동을멈춘다는의미로, 현재상황에서더이상변화시키지않는조치를포함한다. 불능화는북한이신고한시설과장비, 물질을다시사용할수없도록하는조치를포괄적으로의미한다. 불능화에소요되는시간은불능화대상인시설과장비, 물질의특성에따라모두다를수있다. 특히, 원자로처럼인체와환경에치명적악영향을줄수있는시설의불능화는조심스럽게진행할수밖에없기때문에상당한시간이소요될수있다. 폐쇄는시설과장비, 물질의불능화가완료돼더이상기존의역할을하기어려운상태임을실질적으로증명하는조치를의미한다. 폐기는시설과장비, 물질이더이상이세상에존재하지않게됨을보여주는물리적조치라고할수있다. 풍계리핵실험장폭파와관련해북한의발표가폐기인지폐쇄인지오락가락했는데, 앞서설명한비핵화프로세스에따르면, 북한의핵실험장폭파는폐기가아닌폐쇄에해당하는조치로평가된다. 그렇지만북한의핵실험장폭파가폐쇄인지폐기인지를논하는것은큰의미가없다. 왜냐하면북한도국제사회가북한의비핵화진정성을의심한다는사실을잘인식하고선제적으로핵실험장을폭파한것으로이해되기때문이다. 김정은위원장도 9월초방북한우리측대북특사단에게풍계리핵실험장폭파를선의에서추진한것인데국제사회가제대로평가해주지않는다며어려움을밝혔다고한다. 북한의핵실험장폭파가비핵화프로세스에서갖는함의중하나는앞으로북한이약속한 완전한비핵화 가실현되는과정에서앞서설명한일련의비핵화프로세스가그대로적용되지않을수있다는것이다. 즉, 몇단계에걸치는일련의과정을순서대로거치며비핵화가추진되는것이아니라북한이마음먹기에따라모든단계를생략하고곧바로폐기 폐쇄조치가취해질수도있다는것이다. 북한이 9월평양공동선언 을통해유관국전문가들의참관하에동창리미사일엔진시험장및발사대를우선영구적으로폐기하겠다고밝힌것역시핵실험장폭파와유사하게일련의비핵화프로세스와관계없이폐기절차가진행될수있다는점을시사하는대목이라고할수있다. 또한미국의상응조치에따라영변핵시설의영구적폐기등추가조치를추진할수있다고한것역시마찬가지이다. 43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Ⅴ. 결론 : 향후전망 모두가목도하는것처럼, 2018년들어한반도정세는매우급격하게변화하고있다. 그리고이러한한반도정세급변을긍정적인방향에서선도하는것은바로남북관계이다. 남북관계발전을통해북 미관계개선과한반도비핵화를동시에견인하겠다는문재인정부의구상은대체로현실이되어가고있다. 이러한측면에서현재의남북관계는기존의남북관계보다훨씬더포괄적인역할을하고있다고평가할수있다. 기존의남북관계는북 미관계와비핵화에그다지큰영향을미치지못했기때문이다. 앞으로한반도비핵화프로세스는긍정적인방향으로진행될공산이크다. 김정은위원장이문재인대통령과 9월평양공동선언 을통해약속한사항들이이행될것이기때문이다. 먼저, 그리머지않은시점에남한과미국을포함한전문가들로구성된 유관국참관단 은북한을방문할것이다. 그리고북한이추진하는동창리미사일엔진시험장및발사장영구폐기를참관할것이며, 여기에는일정한검증도포함될것이다. 북한이자랑하는 9축 18륜, 8축 16륜등이동식발사대 (TEL) 차량들이아직존재하기때문에동창리미사일발사장폐기만으로는북한의대미미사일위협이완전히제거됐다고하기는어렵다. 그렇지만북한에서거의유일한장거리지대지탄도미사일및로켓발사장이동창리미사일발사장이라는점에서이시설의영구폐기는북한의대미미사일위협이일정하게감소한다는사실을의미한다. 동창리미사일엔진시험장폐기는아직완벽하지않은것으로평가되는북한의장거리지대지탄도미사일능력을더이상발전시키지않겠다는의미로이해되는데, 이역시비핵화와관련된조치라고할수있다. 미국이상응조치를언제, 어떻게취하느냐에따라그시점이달라질수는있겠지만, 북한이 9월평양공동선언 에서약속한영변핵시설의영구적폐기도이뤄질것이다. 동창리미사일엔진시험장및발사장폐기와마찬가지로영변핵시설폐기는북한이앞으로핵능력을향상시키지않겠다는의미로받아들여질것이다. 왜냐하면영변에는핵무기의원료중하나인플루토늄생산과관련된 5MWe 흑연감속로와사용후핵연료재처리시설 ( 방사화학실험실 ) 뿐아니라다른핵무기원료인고농축우라늄을생산할수있는우라늄농축시설등북한의주요한핵시설들이밀집해있기때문이다. 즉, 9월평양공동선언 에명기된 영변핵시설 이라는비교적포괄적인표현은영변에있는모든핵시설을의미하는것으로이해되며, 이의폐기와함께이러한추가적조치의추진가능성도열어둔것이다. 다만이러한비핵화프로세스추진은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두기재가운데하나인북 미관계와긴밀하게연동될것이다. 북한의동창리미사일엔진시험장및발사장폐기는남북한간의약속으로, 이를통해국제사회에서지속되는의구심을해소하겠다는의도가담긴것이기때문에북 미관계와크게연동되지않고추진될것이다. 그러나영변핵시설폐기등과같은추가적인조치는미국이 6.12 북 미공동성명 을통해약속한상응조치의이행을봐가면서북한이추진할것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두기재가운데남은하나인남북관계는계속해서진전될가능성이크다. 9월평양공동선언 과그부속합의서인 판문점선언군사분야이행합의서 를이행하려는남북한의의지가확고하기때문이다. 44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이러한상황에서한반도정세의긍정적진전이지속되기위해서는남북관계가북 미관계와비핵화를한동안은계속해서견인해야만한다. 북 미간의상호신뢰가부족하기때문에북한은북 미관계개선에대한미국의조치를두고, 미국은비핵화에대한북한의조치를두고상대측이먼저양보해야한다고기싸움을벌이며교착국면이재발할수있기때문이다. 교착국면이재발할때마다, 혹은교착국면발생이전에남북관계가돌파구와해결사역할을해야만북 미관계와비핵화를진전시킬수있을것이다. 남북관계는북한과미국사이에상호신뢰가형성되고축적될때까지상당한역할을해야할것이지만, 남북관계가그러한역할을언제까지, 어느정도까지감내할수있을지는미지수이다. 한편, 남북관계가한반도의비핵 평화프로세스진전을선도하는상황에서발생할수있는문제, 즉미국이남북관계에부정적영향을미칠가능성을언급하지않을수없다. 4.27 남북정상회담이후남한내에서개성공단재개에대한요구가표출되자미국조야에서는개성공단재개불가주장이나왔던적이있다. 이처럼남북관계발전을위해서는국제사회의대북제재가완화또는일부해제되거나남북한간교류 협력에관해서는제재면제가이뤄져야하지만미국은비핵화실현시까지독자적대북제재를유지 강화하는동시에국제사회대북제재에구멍이생겨서는안된다는입장을고수하고있다. 특히, 이러한가능성은북 미간교착국면에서현실화될가능성이더욱크다. 문재인대통령은지난 8월 15일광복절경축사를통해 남북관계가북 미관계의부산물이아니다 라고강조했지만, 미국이명시적 암묵적으로장애를조성하는상황에서남북관계가발전할수있을지는두고봐야할것이다. 45

비핵평화프로세스의쟁점과과제 김준형 ( 한동대학교 )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비핵평화프로세스의쟁점과과제 김준형 ( 한동대학교 ) I. 한반도평화프로세스, 그시작 2018 년상황개요 김정은의신년사 -> 남한의전격회담제의 -> 북한수용 남북대화시동과한미연합훈련연기에대한미국강경파의불만 vs. 트럼프의문대통령대화시도 100% 지지발언 (2018년 1월 4일문재인-트럼프전화통화 ) 평창 & Beyond: 평창의성공 & 계승플랫폼마련노력 ( 평양 -> 평창 -> 평화 ) 평창올림픽 : 북한대표단의과감한행보 vs. 미국대표단의혼선행보 대북특사파견과남북정상회담전격결정 대미특사파견과북미정상회담전격결정 미국외교안보라인전격교체-폼페이오와볼튼등장 김정은의중국방문과북중정상회담전격성사 북미정상회담장소와일정결정 북한의대남및대미불만 : 남북고위급회담무기연기, 김계관담화, 리선권비판 문재인정부의출범과평화이니셔티브 촛불혁명으로탄생한정부 : 3 가지적폐 ( 반민주, 천박한자본주의, 분단체제 ) 북한의도발과미국의대북강경책과사드압박 (Sandwiched) 극우민족주의및스트롱맨의시대 vs. 평화이니셔티브 사드는미중권력투쟁게임의전초전 : 사드철수는중국의영향력을, 사드운용은미국의영향력확인의제로섬게임 북한핵문제를둘러싼초기남북미중의엇박자 49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문재인정부 : Positioning or zigzag? 북한의지속적핵및미사일도발과문재인정부의강경대응 김정은-트럼프의말폭탄교환으로인한위기고조 북한의핵무기실전배치가임박한상태에서이를무시하고남북관계를전면적으로복원하긴부담이지만전제조건이되는것은막아야하지만, 한국의대화시도가제재를약화시킨다는반론에대한대처문제부상 문재인의차별성 : 전임보수정부가한미동맹을강화하며남북관계를무시하는것과도다르며, 지난진보정부의남북관계발전을위해한미동맹의부분을소홀히하는것과도차별화려는의도와노력 다른한편, 문재인대통령은평화구상꾸준히전개 1) 신베를린선언 (2017.7.6): 북한붕괴나흡수통일또는인위적통일불추진 2) 8.15경축사 : 북핵문제의평화적해결원칙재강조, 흡수또는인위적통일불추진, " 누구도대한민국동의없이북한에군사행동을결정할수없다 50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3) 11월30일한중 3불입장발표 4) 12월19일경강선 KTX에서의 NBC 기자회견 : 평창올림픽기간한미군사훈련연기발전 ( 한반도안보딜레마구조탈피시도 ) cf) 11월29일북한의화성-15 발사 5) 평창올림픽과특사파견 II. 북한의전략 북한의전략적변화 2010 년 12 월 17 일김정일사망, 2012 년김정은정권공식출범 2013년 3월헌법상핵보유국삽입이후핵경제병진노선 : 4차례핵실험 (3차 ~6차 ), 탄도미사일 41차례 61발발사 ( 이가운데 11차례중장거리탄도미사일 ) 실험 - 2013년 3월핵경제병진노선수립 - 2013년 5월경제개발구법제정- 2013년 10월국가경제개발위원회 ( 관 ) + 조선경제개발협회 ( 민 ) -> 특구확산 2017년신년사의핵무력완성예고-11월 29일화성-15 발사이후완성선언화성 15발사 : 미국본토타격능력확보와핵무력완성선언 ' 핵강국건설사에가장빛나는장을아로새긴특기할대승리 ':11월29일은 ' 역사적인날 ' 노동신문사설 : ' 조국청사에길이빛날민족의대경사, 위대한조선인민의대승리 ' 제목의 1면사설에서 "' 화성-15형시험발사의대성공은우리조국이국가핵무력건설의역사적위업을빛나게완수하였음을만천하에시위한영웅적쾌거 " 화성-15형이고도 4천475킬로미터까지오르고 950킬로미터를비행했지만, 최대고각발사에도주변국가안전에그어떤부정적영향도주지않았다 국가의이익을침해하지않는한그어떤나라나지역에도위협이되지않을것 재진입기술, 종말단계유도기술등의미증명부분을남겨둔채로완성선언 51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2018 년 1 월 1 일신년사 - 3가지핵심내용 : 1) 사회주의경제발전 ; 2) 남북관계개선과평창올림픽참가 ; 3) 핵무기대량생산및실전배치 - 핵무력완성 : 자신감-핵언급 22차례 - 핵무기선제불사용 : " 우리는평화를사랑하는책임있는핵강국 - 대북제재와압박체제에서인내와돌파의지표명 - 대미경고성언급 : " 미국본토전역이우리의핵타격사정권안에있다 " " 핵단추가내사무실책상위에항상놓여있다 - 대남화해성언급 : 우리민족끼리 : 민족의사변적해 노동당 7기 3차전원회의 (2018년 4월20일 ): 핵경제병진노선의결속 - 2017년 10월 7일 7기 2차회의를개최한지 6개월만에개최 - 김정은은 2016년 10월 7차당대회때핵무력건설을기본노선으로제시 : 병진 ( 경제-핵 ) 노선은항구적으로틀어쥐고나가야할전략적노선 이라며 핵무력을중추로나라의방위력을강화해야한다 고강조 - 이를고려하면최근비핵화의지는당노선과배치 : 비핵화조치를하려면당전원회의등에서정책수정불가피 - 병진노선의종료 ( 결속 ) 과새로운국가노선으로 경제총력노선 출범 52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3차전원회의결정서 결정서 : 주체107(2018) 년 4월21일부터핵시험과대륙간탄도로케트시험발사를중지할것 핵시험중지를투명성있게담보하기위하여공화국북부핵시험장을폐기한다 핵시험중지는세계적인핵군축을위한중요한과정이며우리공화국은핵시험의전면중지를위한국제적인지향과노력에합세할것 이라며 우리국가에대한핵위협이나핵도발이없는한핵무기를절대로사용하지않고그어떤경우에도핵무기와핵기술을이전하지않겠다 결정서는또 사회주의경제건설을위한유리한국제적환경을마련하고조선반도와세계의평화와안정을수호하기위해주변국들과국제사회와의긴밀한연계와대화를적극화해나갈것 김위원장은세계적정치사상강국, 군사강국의지위에확고히올라섰다. 현단계에서사회주의경제건설에총력을집중하는것이당의전략적노선이라고천명했다 경제중심의전략적노선을실현하기위한당면목표로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수행기간에모든공장, 기업소들에서생산정상화의동음이세차게울리게해야한다 전망적으로는주체화, 현대화, 정보화, 과학화를높은수준에서실현해전체인민에게남부럽지않은유족하고문명한생활을마련해주는것 북한의전략적결정 = 공포감 + 자신감 : 트럼프의대북제재의효과일부 + 군사옵션가능성에대한우려와핵무력완성으로말미암아대화입지가공평해졌다고판단 - 트럼프 9월19일유엔연설 : " 핵무장을포기하지않는다면북한을완전히파괴 (totally destroy) 할것 " 북한을공격할때는핵무기도사용할것 " - 9월21일, 김정은개인성명 : " 초강경대응조치를단행 ; 트럼프가세계의면전에서나와국가의존재자체를부정하고, 모욕하고, 우리공화국을없애겠다는역대가장포악한선전포고를한이상, 우리도그에상응하는최고의초강경대응조치의단행을신중하게고려해야할것이다. - 리영호외상 : 상응조치에대한개인생각은 " 태평양에서사상최대의수폭실험 " - 9월23일미국 B1B 2대, F15C 6대 DMZ와북한지역공해상무력시위 ( 북한은영공침범으로보고있음 ) - 9월24일북한최고인민회의각국국회로보내는서한 : " 최근, 미국대통령트럼프의불법무도한망언에의해한반도에핵전쟁의위험이시시각각다가오고있다." - 9월25일, 리용호뉴욕에서 " 미국의전략폭격기가우리영공에들어오지않아도격추할권리를갖는다." 53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북한의노선변경 사회주의경제건설을위한유리한국제환경을마련하여조선반도와세계의평화와안정을수호하기위하여주변국들과국제사회와의긴밀한연계와대화를적극화해나가겠다. ( 핵을보유한빈국 vs. 핵없는신흥개발도상국 ) 북한식그랜드전략시동 : 안보-안보교환의국제적공감대형성중 ( 지난수년간의실패는안보를경제로사려고했기때문임 ) 김정은의전략적결단 III. 미국의입장분석 트럼프행정부의대외전략 대북정책관련내부이견과혼선 국무부-국방부의상대적온건노선 : 대화필요성인정하지만, 효과면에서는여전히의구심으로북한의전술에말려들거나, 기껏해야과거의지난한과정의반복이라는시간낭비로판단 - 국무부라인 : Rex Tillerson-Susan Thornton-Joseph Yun-Mark Lambert - 국방장관 Mattis와주한미군사령관 Brooks 등은한국의대화의지지지 조셉윤사퇴 & Tillerson 전격해임과강경파 Pompeo 임명 백악관-재무부의강경노선 : 대북불신감깊어대화상대로인정하지못함 ( 북한악마화 ), 평창올림픽과트럼프의문재인대통령전폭지지표명으로인해주춤하고있으나대화불신의기본입장유지 - 백악관라인 : McMaster-Mattew Pottinger-Allison Hooker - 재무부 : 독자제재-금융제재의주역 - CIA Mike Pompeo & 유엔대사 Nikki Haley McMaster 전격해임과 John Bolton 전격임명 김정은신년사이후남북관계개선조짐에대한미국내강경파의제동 맥매스터보좌관의미국의소리 (VOA) 인터뷰 : 이번신년사는한국과미국을멀어지게만들려는단순한접근에분명한목적이있다고본다 며 신년사를듣고안심한사람이있다면그는분명연휴동안샴페인을너무마셔서그럴것 니키헤일리유엔주재미국대사역시 2일 ( 현지시간 ) 뉴욕유엔본부기자회견 : 북한이모든핵무기를금지하기위한어떤것을하지않는다면어떤대화도진지하게받아들이지않을것 이라고언급 트럼프의대외전략 : 기본적으로강경입장을유지함에도불구하고필요시전술적혼용가능 54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미국외교안보라인교체 틸러슨해임과폼페오임명 (3월 13일 ) - 틸러슨해임설지난해하반기부터꾸준히제기 : 틸러슨은 disaster (politico), 국무부관료들의인정도못받았던동시에트럼프와의이견과갈등지속 - 폼페오는강경파이지만, 아바타또는충성스런행동대장의의미 - 압박과대화의진용완성의의미 John Bolton의 NSA 임명의함의 (3월22일) - CVID: 2003년 5월5일볼턴주도로만든개념 - 부시행정부당시국무부차관 & 유엔대사역임하면서 2006년 10월북한핵실험에대한최초유엔안보리제재안 1718 도출 - 대북강경파로김정일을 tyrannical dictatorship으로불렀으며북한주민과리더십분리대응주장 ( 북한은그럴 human scum and bloodsucker이라고맞대응 ) - 네오콘의부상이라는일관적경향지속하면서동시에 Trumpism의신봉자로서 UN을포함한다자주의무시, 이란핵협상파기, 동맹경시 - The only way to resolve the NK problem is to change the regime. - 볼튼의거듭되는리비아모델언급으로말미암아북한의불만폭발 : 사이비우국지사 표적비판 폼페이오 1차비밀특사방북 (2018년 3월31~4월1일 ) - 2000년 Albright 방북이후고위급방문 - 4월29일 ABC 방송인터뷰 : 완전하고검증가능하며불가역적인비핵화 '(CVID) 의방법론에대해깊이있게논의했으며, 완전한비핵화를위한 ' 진짜기회 ' 가있다고생각한다 - 트럼프는김정은을두고매우많이열려있고, 매우훌륭하다는언급 55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폼페이오 2차공개특사방북 (2018년 5월9일 ) - 1차방북과는달리국무부출입풀기자단과동행 - 1차방북에서는노동신문이사진두장을공개했던것과달리 2차에는 1면에 8장의사진게재 - 억류자석방및동행귀국과트럼프의새벽공항마중 - 이후북미회담장소와일자공개 (6월 12일싱가포르 ) - 북한의긍정적언급 : 미국이새로운제안 & 만족스러운대화 - 트럼프 (5월10일): 매우큰성공일될것, 매우좋은일이일어날것이고했고, 북한역시김정은위원장과폼페이오만남에서미국이새로운대안을제시했으며, 만족한합의를했다고보도 한국의중재역할시동 : 특사방문 한국의대북특사 (2018년 3월5일 ~6일 ) - 결과 : 3가지 + 남북정상회담 - 6개항합의 : 1) 3차남북정상회담 4월말개최 ; 2) 남북정상간핫라인설치 ; 3) 북한의비핵화의지천명 ; 4) 북 미대화용의 ; 5) 대화기간전략도발중단 ; 6) 남측태권도시범단 예술단평양방문의지 한국의대미특사 (2018년 3월8일 ) - 결과 : 3가지 + 북미정상회담수용 - 트럼프가참모와의논의없이즉흥결정 : 모두예상하지못한조기회담수용 - 한국특사에게발표부탁 VI. 남북정상회담과판문점선언 개요 2018년 4월27일, 남북은 11년만에성사된정상회담에서 " 한반도의평화와번영, 통일을위한판문점선언 " 에합의 하루라는짧은시간의실무회담및북미회담의예비회담적성격에도불구하고완전한비핵화와종전선언을포함한기대이상의성과 김정은의잃어버린 11년언급과합의보다이행이더중요하다는점을선제적으로치고나온것은매우의미가큰부분임 : 새로운출발이나신호탄같은언급도이번회담을계기로비핵화의확실한의지를밝힌것으로주목해야함 휴전선넘나들기와도보다리산책등비주얼로도많은역사적명장면들세계주목 남한의정상회담표어 : 평화, 새로운시작 과북한김정은위원장이방명록에쓴 평화의시대, 역사의출발점에서 " 의조응 56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판문점선언내용분석 남북관계의특별함 : 남북관계의주도성, 우리민족끼리, 길잡이를뛰어넘는당사자의식 ( 남북회담이북미회담에종속되지않음 ) 강대국의이해관계에끌려가는것이아니라주도적으로이끌어가겠다는의지의표현 : 북핵문제가남북관계를규정또는한계짓는것이아니라남북관계의개선을통해비핵화로나가겠다는것임 3조 13개항의순서 : 전쟁없는새로운평화의시대를위해 1) 남북관계발전 -> 2) 한반도군사긴장완화 -> 평화체제구축 ( 평화체제틀안에서의비핵화규정 ) 모두 : 한반도에더이상의전쟁은없을것임을선언 ( 종전선언 ) 판문점선언총평 한반도에는물론이고세계의냉전체제를종식시키고새로운평화의문을여는세계사적회담 남북정상회담은당초기대와예상을훨씬뛰어넘는성공으로평가할수있음 : 특히한국이북한에게서원하는최대치를얻어낸회담이었음 남북정상회담은북미정상회담의길잡이또는운전자의역할탁월하게해낸것으로평가 ( 북미정상회담성공가능성을매우높인회담- 유능한길잡이가만든좋은지도 ): 남북관계발전이한반도평화체제구축및비핵화와선순환관계를형성할계기를만듦 단순한비핵화만언급하는것이아니라기본적인로드맵도내포 : 1) 완전한비핵화 -> 2) 핵없는한반도 -> 국제협력 운전자 & 길잡이 : 북한의비핵화에대한보상에대해남한이북한을안심시킴 ( 도보다리에서의충고 ) 당초문대통령이말했던남북정상회담이북미정상회담의길잡이회담으로만든것임 : end state인완전한비핵화를남북이합의 두번째중요한단어인 종전선언 이들어간것도매우고무적임 김정은은핵을포기하고경제발전전략으로가겠다는전략적변화선택재확인 남북정상회담에대한트럼프의축복과북미정상회담에대한낙관 - 트위터 남북간역사적만남이일어나고있다 며남북정상회담을거론한뒤 한국전쟁이끝날것이다! 미국과모든위대한미국인들은한국에서일어나는상황을매우자랑스러워해야한다 - 북한의핵무기를인정하거나북한과전쟁을해야하는양극단의상황에서자신의노력으로북한핵무기를평화적으로제거할수있게되었다 북한이보유한 3 개의카드 1) 미래의핵 : 김정은의핵및미사일실험 ( 잠정 ) 중단선언으로사용한카드 2) 현재의핵 : 핵프로그램중단및폐기를의미하며이는검증 / 사찰요구 3) 과거의핵 : 이미완제품의형태로보유한핵무기로검증 / 사찰로도확인이어려운카드이며, 북한체제안전을보장함으로써북한의자발적 / 능동적폐기로만가능 57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과거핵 : 완성한핵무기 핵무기관련시설 : 핵무기, 핵무기연구시설, 제조및저장시설, 고폭실험시설, 핵실험장 ( 폐기예정 ) 핵물질 : 플루토늄, 고농축우라늄, Po-210, H3, Li6, Be, 고밀도금속, 고성능폭약 탄도미사일의범위 : MTCR 미가입, ICBM 모라토리움, 중단거리탄도미사일 (MRBM, IRBM, SLBM) 문제 ( 일본 ) 미국의골대뒤로물리기 : Pompeo의 PVIG 언급, Bolton ( 북한과논의할것이과거보다많아졌다면서생화학무기폐기와탄도미사일거론 ) V. 트럼프의북미정상회담전격취소 볼턴의리비아모델강조와북한 ( 김계관 ) 의반발담화 김계관의 1차담화 (2018년5월16일): 개인인명의담화 - 일방적핵포기는응할수없음 : 수뇌상봉개최재고 - 리비아식해결책을밀어붙이는볼튼직접비난 트럼프의 1차타협자세 : 볼튼을옆에두고서리비아모델은아니라며선을긋고, 샌더스대변인은트럼프모델명명 : 북한에대한체제안정과보상에대한재확인 펜스의리비아재언급 : 북미정상회담무산가능성을위협한북한에강력경고 - 회담을먼저요구했던건북한이었으며, 트럼프대통령은언제든그만둘수있다고언급 - 마이크펜스 : " 김정은이트럼프대통령을갖고놀수있다고생각한다면큰실수 " 이며, 결국독재자카다피의죽음으로마감된리비아모델언급하였고, 대북군사옵션아직배제되지않음 ( 백악관안팎에서북미정상회담에대한회의론이확산되는가운데나왔음 ) - 폼페이오와므누신등은북미정상회담준비중이며긍정적이라고발언하는등상반된반응 58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최선희부상담화 : 미국시간 5월23일저녁마이크펜스부통령을원색비난담화 - 최선희는조선중앙통신에낸담화를통해 핵대결 을언급하며미 북정상회담취소가능성거론 - 최부상은펜스부통령을 정치적으로아둔한얼뜨기 이담화직후트럼프는참모들과미 북정상회담취소방안을논의하기시작 5월24일트럼프의취소서신발표 담화들을통해북한의큰분노와공개적적개심이정상회담취소 : 워싱턴포스트와 NBC, CNN 등에따르면트럼프대통령은 최선희담화 두시간뒤인밤 10시경존볼턴백악관국가안보보좌관을통해내용을보고받고분노 - 보고를받은지 12시간도안돼정상회담을취소하기로하고관련내용을담은서한을 24 일오전 9시43분북측에전달 - 회담취소논의회의 : 펜스부통령, 폼페이오국무장관, 볼턴보좌관이참석했고, 서한은트럼프대통령의구술로작성 " 당신이잃어버린기회는진실로역사상슬픈순간이다 - 회담취소로아쉬운쪽은북한 : " 북한이번영의기회를잃었다 회담재개의여지남김 - 김정은위원장을향해언젠가는만나기를고대한다며 협상의여지있다 - 미국인석방감사표시 : 아름다운몸짓 - 마음을바꾸게된다면부디주저말고내게전화하거나편지해달라." 트럼프의전격취소직후 - 트럼프대통령이북-미정상회담을전격취소한직후백악관고위관리는비공개브리핑을통해북한의 약속위반행적 (a trail of broken promises) 공개 : 1) 9일폼페이오 2번째방북이후 12일로예정된싱가포르실무접촉북한불참및무소식 ; 2) 북한의비방이 인내한계넘었다 특히최선희의펜스비방이기폭제역할 ; 3) 풍계리핵실험장폭파직후회담취소발표는전문가참관좌절과연관 ; 4) 중국배후설 ( 다롄방문이후달라진북한 ) 반전 취소발표 8시간만의김계관담화 ( 김정은위임서신 ) - 김계관외교부제1부상 : " 트럼프대통령이거론한 ' 커다란분노와노골적인적대감 ' 이라는것은일방적인핵폐기를압박해온미국측의지나친언행이불러온반발에지나지않는다 " 며해명 - " 아무때나어떤방식으로든마주앉겠다 " 트럼프의화답으로말미암은반전 : 따뜻하고생산적인담화로평가 - 취소하루만인 25일편지반전 "6월12일회담바뀐것없다 5 월 26 일판문점 4 차남북정상회담 판문점통일각에서전격적인 2차남북정상회담이북한통일각에서열림 양국정상은완전한비핵화에대한확고한공약및충실한이행의지재확인 59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문재인대통령은김정은위원장에게트럼프대통령은북한이완전한비핵화를결단하고실천할경우북한과의적대관계종식과경제협력에대한확고한의지가있다는점을전달 김정은은판문점선언에이어한반도의완전한비핵화의지를분명히하였고, 북미정상회담의성공을통해평화와번영의달성에협력하겠다는의사피력 27일일요일문대통령의기자회견 : 북한비핵화의진정성에대한확인보다체제보장에대한확신을줄필요가있다는언급 북미정상회담실무협의재개와김영철통전부장방미 5월 27일부터판문점및싱가포르에서의북미실무협의진행 폼페이오 2차방문까지의합의사항유효한것인가에대한확인과긍정답변추정 : 김영철방미 김영철-폼페이오뉴욕회담및트럼프에게김정은친서전달 - 트럼프는김영철부장을접견한후 6월 12일싱가포르에서당초예정대로김정은위원장을만날것이며, 이는시작이될것, 종국에는결론에도달할것, 한차례회담만으로이루어지는것은아니라고언급 - 이에대해미국의주요언론들은트럼프측이목표 기대치낮추려는발언으로해석 VI. 북미정상회담과싱가포르공동성명 < 도널드트럼프미합중국대통령과김정은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국무위원장의싱가포르정상회담공동성명전문 > 트럼프대통령과김정은위원장은미국과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새로운관계수립과한반도의지속적이고견고한평화체제구축과관련한사안들을주제로포괄적이고심층적이며진지한방식으로의견을교환했다. 트럼프대통령은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안전보장을제공하기로약속했고, 김정은위원장은한반도의완전한비핵화를향한흔들리지않는확고한약속을재확인했다. 새로운북미관계를수립하는것이한반도와세계의평화, 번영에이바지할것이라는점을확신하고, 상호신뢰를구축하는것이한반도비핵화를증진할수있다고인정하면서트럼프대통령과김위원장은아래와같은합의사항을선언한다. 1. 미국과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평화와번영을위한양국국민의바람에맞춰미국과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새로운관계를수립하기로약속한다. 2. 양국은한반도의지속적이고안정적인평화체제를구축하기위해함께노력한다. 3. 2018년 4월 27일판문점선언을재확인하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한반도의완전한비핵화를향해노력할것을약속한다. 60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4. 미국과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신원이이미확인된전쟁포로, 전쟁실종자들의유해를즉각송환하는것을포함해전쟁포로, 전쟁실종자들의유해수습을약속한다. 역사상처음으로이뤄진북미정상회담이거대한중요성을지닌획기적인사건이라는점을확인하고, 북미간수십년의긴장과적대행위를극복하면서새로운미래를열어나가기위해트럼프대통령과김위원장은공동성명에적시된사항들을완전하고신속하게이행할것을약속한다. 미국과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북미정상회담의결과를이행하기위해마이크폼페이오미국국무장관, 관련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고위급관리가주도하는후속협상을가능한한가장이른시일에개최하기로약속한다. 도널드트럼프미합중국대통령과김정은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국무위원장은북미관계의발전, 한반도와세계의평화, 번영, 안전을위해협력할것을약속했다. (2018년 6월 12일싱가포르센토사섬에서 ) 북미정상회담평가 일반적평가 - 역사적회담이자북미관계개선의새로운전기가마련되었다는것에는동의하지만, 그러나구체적 실천적내용은미흡하다는평가 - 당초성공의조건들로거론되었던사안들 : CVID, 타임라인, 종전선언또는불가침선언합의여부 - 한국, 중국, 러시아정도를제외한각국반응은비판적 - 미국은 CVID 없는합의는아무리좋게포장한다고하더라도실패로규정 북미정상회담에대한한국정부의평가와입장 - 전반적인비판분위기속에서한국정부는한반도의평화를여는역사적인시작이라는점에서전폭지지표명 : 역사적전환점이자새로운평화질서로가는시작으로서의의의를강조 - 일단북미정상회담이사전에또는도중에돌발사태가일어나지않았다는점과, 결과역시다소모호한점이있어도확실한실패가아니라는점에안도분위기 - 북미공동선언을도출하고여기에양국정상이서명한것은큰성과판단 - 트럼프의생각및인식변화에특히주목 : 얼마전까지만해도곧전쟁을벌일것같은트럼프가사실상의종전선언이라고할수있는전쟁없는한반도의시각으로돌아선것, 심지어평화의전도사처럼행동하는것에대해매우만족 - 미국내부에서가장강력하게요구했던직접적인 CVID가빠지기는했지만, 판문점선언에서와마찬가지로 완전한비핵화 가사실상의 CVID로해석 미국의입장과반응 트럼프및정부관료들의반응 - 북미정상회담에관해서는일단긍정적 : 불과 6개월전을생각하면이런진전은매우놀라운변화 61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 김정은은과연아버지나할아버지와다른지도자인가 : 김정은의심리와정체성에대한것은아직확실하게얘기하기어렵지만다른것은분명 - 그에게가장중요한것중하나가세계로부터자기가평가절하받는것임 : 정상적인주권국가의지도자로인정받기원함 - 인권문제 (Human Rights): 적어도이번트럼프정부에서는우선순위의정책은아닌것은분명하지만, 인권문제야말로가장미국답게하는이슈라는인식 ( 북한같은상대에대한중요한 Leverage) - 한미연합군사훈련취소 ( 연기 ) 문제 : 한미동맹유지위해통상적훈련dl 필요하지만, 최근의훈련은방식이나목적은달랐음 ( 공격적인전략적자산전개 ) - 그럼에도불구하고 one cycle of exercise를취소한것이며, 영구적취소또는동맹조정이나미군철수등의문제와는상관없음 의회측반응 - 공화당의원들은트럼프가기존의대통령과는전혀다른유형이기때문에역설적으로가능했고, 또가능할수있다고판단 - 그러나 CVID 전에는결코제재해제없다는것이의회의일관된입장이며, 우선적으로철저한사찰과검증요구 - 나중에의회의승인을요구하지말고처음부터과정중에의회입장반영요구 - 인권문제는반드시함께다뤄야함 - 종전선언은북한의의미있는비핵화조치이전에는불가하다는입장 : 종전선언은평화협정의제도적측면이아닌정치적선언이라고하더라도한미동맹이나유엔사해체등이걸려있는문제로판단 전문가및여론주도층반응 - 아직보여준평화는없고, 김정은의가시적변화도없음 - 싱가포르합의문에평화레짐이합의문에담겨있지만어떤평화를말하는지불분명 : 비핵화에대해서도서로가다를수있듯이양측이말하는평화가다를수있음 - 비핵화필수과정이없이평화체제만속도를내는것은곤란함 : 현재까지는비핵화는미국이주도하고평화체제는한국이주도하는양상인데, 이에대한공조와소통이매우중요 ( 한국이너무앞서가는것에대한불안및불신이워싱턴에존재 ) - 북한체제보장에관해미국은 negative security guarantee 이상은제공불가능 - 평화프로세스는한미동맹의미래에주요도전거리 : 특히성공할수록한미동맹의지위와역할에대한변화요구는상승할것에대한우려 VII. 교착 폼페이오 3 차 빈손방북 이후북미입장차부각과종전선언문제 - 미국의욕심과선제조치부재와이로인한북한의불만 ( 외무성대변인담화 ) - 판문점선언에서남북정상은연내종전선언합의 : 선언문에따르면남북은정전협정체결 62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65년이되는 2018년내종전을선언하기로합의하고정전협정을평화협정으로전환하기위해남 북 미 3자또는남 북 미 중 4자회담개최를추진하기로합의 - 미국은종전선언은정전체제의종식이므로 ( 종전선언과평화협정동일시 ) 평화협정과동시에가야한다고판단 ( 한국은정치선언이며평화체제의시동을거는것이라는입장 ) - 일각에서는종전선언을해주면대북군사옵션을더이상사용할수없게되는문제점거론 - 주한미군철수문제및유엔사철폐문제를북한측에서제기할가능성높다고생각 : 따라서북의종전선언을이시점에서들어주어서는안된다고주장 종전선언시점에관한쟁점 - 현시점 : 북한의핵무력완성이라는변수로말미암아종전선언을통한조기북한체제보장 -> 비핵화조치 -> 제재완화를북한이요구하고있으나미국은북한의선제적비핵화조치이후가능하다는입장 - 한국정부는판문점선언을통해남북이종전선언을하고연이어남북미의종전선언목표 - 미국은한국만종전선언을원한다고주장하지만한국정부는남북모두가원하고트럼프대통령도긍정적이라고판단 George Bush: 종전선언의의미불분명 : 안정보장협정, 평화협정, 종전선언, 전쟁종식등과혼용 ( 송민순회고록참고 ) 당시한국정부내이견 : 청와대는종전선언과평화협정을분리했으나, 외교부는평화협정의일부로인식하고종전선언에난색 : 이번에도유사한상황? 폼페이오 3 차방북과종전선언문제 : 한국정부의입장과과제 북미양국모두북미정상회담에서이후과정낙관하다가고위급및실무협상난항 - 6월 11일 : Andrew Kim 비공개기자회견에서종전선언, 연락사무소미국측에서는아무런문제가없다. 이들역시비가역적조치일뿐임, 트럼프대통령도동의하고있는부분임 - 북한 : 김영철-조명균 ( 평양친선농구경기 ) 에서김영철은한미군사훈련연기도자신들이관철한것처럼제재해제도자신있어했었음, 그런데북미고위급회담이후노동신문에서남한 ( 문재인 ) 비난한것은북한이이부분에대해서지나친낙관을하다가당황하고있는상황으로판단됨 - 4차방북까지무산 북중정상회담과종전선언및제재 - 6월15일시진핑생일에김정은꽃다발을보내고국제관계가변화되더라도북중관계는변하지않을것임을확언 - 6.19일방중북중정상회담 : 정세가바뀌어도북중관계와북한에대한지지는변함없을것 임을강조 - 3가지불변약속 : 중국당과국가는국제형세가어떤변화를겪든지북중관계를발전시키고공고히하려는확고한입장을바꾸지않을것이며, 중국인민의북한인민에대한우호와정의도변할수없으며, 중국의사회주의북한에대한지지도변하지않을것임을강조 ( 한반도비핵화와평화체제구축과정에서중국이북한의후원자역할을하겠다는의지를분명히보인것으로해석 ) 63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VIII. 평양남북정상회담및한미정상회담이후 문재인대통령이되살린평화프로세스 폼페이오 4차방북무산이후북미관계교착장기화국면타개 : 특사파견 -> 남북정상회담 -> 한미정상회담 -> 유엔총회연설 - 문재인대통령 : 지난 3일대북특사파견하면서 한반도평화정착에매우중요한시기 라는언급 - 2018년 3월의재현노력 특사단이전한김정은의발언주목 - 비핵화의지재확인 - 트럼프에대한신뢰불변확인 : 북미협상에다소어려움이있지만그럴때일수록트럼프대통령에대한신뢰는계속유지하고있으며, 참모는물론이고그누구에게도트럼프대통령에대한부정적이야기를한번도한적이없음을강조 - 북한의선제조치들에대한국제사회일부의의문제기에답답함토로 - 미국의상응조치가있으면북한도적극적조치를하겠다는약속 : 순서상종전선언을원하지만, 미국이먼저해줄경우미국이원하는조치가능하다는암시 - 최초로비핵화타임라인제시 : 트럼프대통령의첫임기 (2021.1) 내에비핵화를실현해북미관계를개선하고싶다는의사표명 - 종전선언과관련해서는 " 미국과우리나라일부에서제기하고있는우려, 종전선언을하면한미동맹이약화한다거나, 주한미군이철수해야한다거나하는것들은종전선언과전혀상관이없는것아니냐 " 라는입장밝힘 : 종전선언에대한미국의대북의심해소를위한발언 평양남북정상회담 2 가지진전이필요했던회담 : 1) 판문점선언진전 ; 2) 비핵화진전 판문점선언의진전문제 : 한반도종전의구체적실현 ( 판문점선언 2항 ) - 한반도전쟁가능성을완전히종식시킬수있는구체적인실천합의 - 남북사이군사적긴장완화조치에대한폭넓은합의 - 비핵화의디딤돌 (stepping stone) 역할 : 북한의불안감해소를통해서보다적극적인비핵화 비핵화진전문제 - 동창리검증하에폐기 ( 무조건 ): 트럼프에대한선물, 특히싱가포르회담합의에대한국내비판에서트럼프입지고양 - 영변핵시설폐기 ( 조건부 ): 북미협상을위한연결 - 상응조치 vs. 선제조치 64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한미정상회담과유엔연설 북미관계중재및촉진역할 - 김정은의진정성과선제양보조치전언 ( 플러스알파 ) - 트럼프는국내정치입지가불안해지고, 또한 11월중간선거를앞두고북미관계진전에속도를내지못하는상황에서중재및촉진자역할 - 폼페이오방북과 2차북미정상회담가시권 우리평화하게해줘 - 대미압박으로작동가능 - 결국은트럼프의결단과강경파진압여부에달려있 현재미국정부상황 강경파의득세와트럼프의어려운입지 - 핵리스트신고전에는북한의비핵화조치는시작도안한것으로규정 - 핵프로그램가동이나 ICBM 개발진행, 제재회피및위반사례거론하며대북불신증가 미국측의종전선언반대에대한 3가지이유 1) 북한의선제조치와종전선언은비등가로인식 2) 법적제도적문제필연적발생 : 종전선언은법적구속력을가진평화협정의수준이므로정전체제와종전체제가공존할수없음 3) 북한에대한불신 : 종전선언을할경우북한은비핵화보다미군철수나유엔사해체를요구할것으로예상 - 트럼프대외정책시스템의난맥상 한미정상회담이후변화가능성 - 대북정책에대한트럼프입지강화모멘텀 - 문-김-트프로세스재작동여부 - 제재완화문제에대한트럼프의조건부수용요구 - front-loading의과감한실천과완전한핵신고서제출과맞교환 - 또다른고비 : incomplete report 논쟁과제재완화논쟁 65

제 1 회의 [ 기획패널 2] 남북문화예술교류의현황과과제 사회 : 박영정 ( 한국문화관광연구원 )

남북문학교류의역사와향후과제 김성수 ( 성균관대학교 )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남북문학교류의역사와향후과제 김성수 ( 성균관대 ) 목차 1. 문제제기 : 4.27 판문점선언, 9월평양공동선언 의문학적확산 2. 남북문학교류 (1989) 의빛나는전통 3. 민족작가대회 (2005) 와 6.15민족문학인협회 (2006) 의의의및한계 4. 마무리 : 계승과신설병진 원칙- 문학교류협력사업의재개와진전방안 1. 문제제기 : 4.27 판문점선언, 9 월평양공동선언 의문학적확산 2018년은분단 70년을획기할만큼특별한해이다. 금년초만해도상상할수없었던상황이지금우리눈앞에서전개되고있다. 남북은 4.27 판문점선언 에이어 9월평양공동선언 을통해세계만방에분단 / 냉전체제를끝장내고평화체제로나아갈것임을분명히천명하였다. 미국중국등국제사회의도움을받되민족스스로의힘으로평화를이루겠다는의지를표명한만큼, 이제는총론을각론차원에서전방위적으로확실히이행해서평화체제를 되도록빨리 정착시켜야한다. 백두산에이어남북정상이한라산에서다시맞잡은손을높이드는장면은세계에한반도의평화정착의과정을분명하게전달하는큰메시지가될것이다. 2018년 4.27 판문점선언과 9.19 '9월평양공동선언 ' 은한 ( 조선 ) 반도의전쟁공포에서완전히벗어나려는평화체제로의도정에중요한불가역적인진전이라고의미부여할수있다. 이러한정세인식하에서지난두보수정권의 잃어버린 10년 동안타의로 ' 중단 ' 된남북의문학교류재개와그를 위한 / 통한 문학및언어연구의새로운방향모색과청사진을마련할때이다. 그를위하여지난교류협력의역사를정리하여그역사적교훈을되새기고다시는실패하지않게끔불가역적인새로운교류협력방안의제안과향후과제를선점하기위하여쟁점을부각시킨다. 이와관련하여 2018.9.19 9월평양공동선언 의네번째항목 1번을다시보면, 사회문화분야에있어서교류활성화의지를담고있다. 4. 남과북은화해와단합의분위기를고조시키고우리민족의기개를내외에과시하기위해다양한분야의협력과교류를적극추진하기로하였다. 1 남과북은문화및예술분야의교류를더욱증진시켜나가기로하였으며, 우선적으로 10 월중에평양예술단의서울공연을진행하기로하였다. 71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여기서남과북이문화및예술분야의교류를 더욱 증진시켜나가기로했다면, ' 더욱 ' 의함의는기왕의 국민의정부, 참여정부 때이루어졌던교류협력사업 (2000~2008) 을복원재개하는차원만이아니라는뜻이다. 1회적이벤트성사업이나정권교체로바로휴지조각이되는교류협력이아리나제도와법으로정착되어야하며, 무엇보다도 3차례정상회담에서보듯이사업자체를상시화, 정례화하고대상도확대해야한다. 여기서특히짚어볼대목은남북교류와협력나아가평화와통일문제를보는남남갈등특히세대간격차와해소방안이다. 쉽게말해서사회적의제 ( 아젠다 ) 를주도할세대교체자체가쟁점이다. 분단세월이흐르면서세대가바뀌고남북의인구구성도많이변했다는사실이다. 평창동계올림픽때남북여성하키단일팀의구성문제에대해서보였던남쪽젊은세대들의부정적반응도곱씹어보아야한다. 따라서이번선언에는명기되지않았지만, 미래를함께꾸릴남북의새로운세대간에상호이해의폭을넓힐수있는기회를앞으로많이마련해야한다. 1) 가령쟁점부각을위하여기존의동아시아담론지평에서북한이란불편했던존재를아예외면 / 무시했던관행을깨고국가로실재하는조선이란국가를하나의국가로인정하는대승적차원의세계관적전환이필요하다. 이때저 1987체제 가강요했던 민족, 통일, 계급, 리얼리즘 ( 사실주의 ) 등권력지향적가부장적인거시담론을더이상반복하거나퇴행적으로요구하지도말았으면한다. ' 통일 ' 의과정에꼭 ' 통일 ' 이라는화두를앞세울것인가? 뒤에세우든지전략적괄호넣기가효과적이지않는가? 당장은통일이아니라통이 ( 通異, 統二 ) 나국가연합으로충분하지않는가? 또한그연결고리에여전히 ' 민족 ' 이란오래된미래개념을강박적으로넣어야하는가같은의문을품는문제의식이다. 이와관련하여지난 9월 7일예술위의남북문학교류세미나에서남북작가교류와겨레말큰사업편찬사업에오랫동안종사했던정도상작가의남북작가교류복구안, 김재용교수의 통일문학선집남북공동편찬 재개사업안에대한요약과논평을한다면, 올드보이의귀환과세대교체의절박함 이라고생각한다. 거기더해 민족 통일 이란거시담론과도덕적당위가문화적다양성을자기정체성으로삼는 2030 신세대들에게억압장치로작용할것을우려한다. 2. 남북문학교류 (1989) 의빛나는전통 돌이켜보면해방후남북분단내내인위적장벽에막혔던남북작가 문학의소통 교류가본격시도된것은 1960, 1989, 2005년세차례였다. 교류제안만이루어진것이 1960, 1989년이었고, 실제성사된것은 2005,6년이었다. 1960년 4.19혁명이후이듬해 5.16 군부쿠데타이전까지북한작가들은남과의대화와교류를끊임없이요구하였다. 가령 1961년 3월조선문학예술총동맹결성대회에서한한설야위원장의보고를보면, 남북전쟁중이던 1951년 3월 북문예총과남조선문화단체총련맹과의련합대회 후문예총이결성되었다는식으로남북연합의전사전통위에서지금의문예총이창립되었다는 조선반도대표성 을명분으로삼는다. 1953년 9월전국작가예술가대회후임화김남천이태준등박헌영계남로당계열종파분자 1) [ 송두율칼럼 ] 9 월평양선언 에부쳐, 경향신문 2018.10.01 20:59:1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10012059015&code=990100&utm_c ampaign=share_btn_click&utm_source=facebook&utm_medium=social_share&u) 72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를숙청하기위하여고육지책으로문예총을해소하고작가, 음악가, 미술가 3개직능식동맹만남겨두었다가, 체제가안정된 1961년초에명실상부한예술장르전분야를아우르는조직을만들었던것이다. 해방후수백명맹원에서출발한북한작가예술가조직이 16년이지난 1961년당시 8천여명이란보고도인상적이다. 2) 때문에 남조선작가예술가들에게 남북문화교류와평화통일을호소 (28면) 하는대목이자연스럽다. 문예총 ( 재 ) 결성대회는한설야위원장의보고한귀퉁이에의례적으로남북문학교류만덜렁제안한것이아니다. 조선문학예술총동맹중앙위원회명의로 남반부작가예술인들에게보내는편지 를공식채택하였다. 3) 이제이승만독재정권이물러나고 인민봉기 로정권을잡은남조선인민들의통일열기를작가들도받아들여북남문학교류를 민족문학 의명분아래실행하자는제안이다. 자기들의문학은사회주의적사실주의문학이지만이른바 순수문학 이헤게모니를잡고있는남조선과의교차점은 민족문화 이며대척점은 순수문학, 민족주의문학, 반공문학 이라고규정한다. 4) 우리에게전혀알려지지않았지만북한의조선로동당제6차당대회를앞둔 1980년 1월 7~10일의제3차조선작가대회에서 북남문학교류 를공식제안했다는역사적사실을확인할수있다. 예전에는계급문학의반대개념이라서거의금기시하고사용하지않던 민족문학 이란담론을꺼낸다. 조선작가동맹은 24년만에열린작가대회에서주요안건으로남한작가들에게다음과같은호소문을보낸다. 우리는 1980 년대첫해의첫걸음을힘있게내디디면서우리의민족문학건설에서새로운또하나의리정표로되는조선작가동맹제 3 차대회를가지였다. ( 중략 ) 남조선에서한독재자는제거되였어도그무덤우에솟아난것은인간의존엄과민족의자주권이아니라민주주의의가면을쓴 유신 잔여세력들의폭압과광란적인칼부림이다.( 중략 ) 우리북과남의작가들은조국과인민이겪고있는분렬의수난을직접체험하고있는지성인으로서서로주의와사상이다르고리념이다르다해도이모든것을초월하여민족적량심과애국애족의감정을합치여민족지상의파업인조국의자주적평화통일을앞당겨오자. 남조선작가들이여! 우리북과남의전체작가들은마음과붓을하나로합쳐우리의슬기롭고아름다운민족문화를통일된삼천리강산에찬란히꽃피워나가자. - 조선작가동맹제 3 차대회 1980 년 1 월 10 일평양 5) 이는문학교류를통해남북대화의물꼬를다시트고싶어서비정치적민간교류의일환으로제안했다고의미를부여할수있다. 왜냐하면박정희유신독재체제의종말 (1979) 로인하여남북대화를재개할적기라고정세변화를도모했기때문이다. 하지나훗날염무등등의회고에의하면우리작가들중아무도이사실을몰랐다고한다. 따라서공식성을띠지않은이제안은북한대내적인것으로평가할수밖에없다. 민족이나휴머니즘, 인도주의조차허용되지않게최소한의남북간소통조차원천봉쇄했을만큼박정희 전두환군부독재 (1961~87) 시대는분단 / 냉전체제와반공 반북이데올로기가판을치던암흑기였다. 2018년 10월현금의시점에서우리북한학계가진정으로분단 / 냉전체제를극복 / 지양하고 2) 한설야, 천리마시대의문학예술창조를위하여조선문학예술총동맹결성대회에서한한설야동지의보고, 조선문학 1961 년 3 월호, 13~29 면. 3) 조선문학예술총동맹중앙위원회, 남반부작가예술인들에게보내는편지, 조선문학 1961 년 3 월호, 8~12 면. 4) 김해균, 남조선문학이걸어온길 ( 평론 ), 조선문학 1966.1, 95~ 면. 5) 조선작가동맹제 3 차대회, 남조선작가들에게보내는호소문, ( 성명 ), 조선문학 1980.2,, 31~32 면. 73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평화체제로나아가려면근본적인프레임전환이필요하다. 가령 60년넘게정보 공안당국이명명한 납 월북 해금 이란낙인찍기의문화정치를비판 해체하고재구성해야한다. 납 월북 에서 재 월북 재북 귀북 으로, 나아가 분단피해자의신원운동 으로프레임을전환해야, 비로소냉전 / 분단체제가강제한공안통치적배제와숙청이라는 뺄셈의문학사 프레임에서벗어날수있다. 나아가탈냉전 / 평화체제를지향하는 통합과포용의문화사 로의제를변환할시점에, 지금 2018년 10월현재와있는셈이다. 6) 이에지난 30년간의남북문학교류의성패를돌아보고교훈을찾아야한다. 분단 70년간남북한의통일열기는, 1989년문익환 황석영 임수경방북사건으로상징되는시민사회의전향적통일운동에촉발되어고조되었다가 1992년말구소련의몰락으로열기가급격히사라질때까지 3,4년간최고조에달했다. 문학장만보더라도 1988년의이른바 납월북작가해금조치 당시재 월북작가작품과북한문학작품이봇물처럼소개되었다. 1987년 6.10항쟁을통한절차적민주주의가진행되고 88 올림픽개최를위한대내외적인이념적포용정책의필요성때문에오랜준비와단계적조치끝에 납 월북작가해금 조치가단행되었던것이다. 7) 통일열풍의문을먼저연것은 실천문학 이었다. 실천문학 1988년겨울호를보면당대지성을대표하는소장진보지식인의백가쟁명식통일담론이권두기획으로실려있다. 특집 민족문제 3 민중과통일 이란대주제하에윤석인의 민중적통일론의전개와정립방향, 김대환의 경제통합과민족경제, 이철희의 북방정책의비판적검토 등이실려있다. 8) 같은지면에북한문학의대표작 10편 ( 시 8편, 소설 2편 ) 이소개되었다 : 조기천, 백두산 ( 서사시발췌 ) ; 리찬, 달과딸과어머니와 ( 시 ) ; 백인준, 녀인도 ( 시 ); 박세영, 위원회에가는길 ( 시 ) ; 김우철, 농촌위원회의밤 ( 시 ) ; 조기천, 흰바위에앉아서 ( 시 ) ; 정문향, 푸른벌로간다 ( 시 ) ; 김조규, 모란봉 ( 시 ) ; 이기영, 개벽 ( 단편소설 ) ; 리북명, 로동일가 ( 소설발췌 ). 이들작품은 특별기획 북한문학작품선 이란기획으로우리독자들에게처음소개되었다. 국가보안법이시퍼렇게살아있는 6공정권의검열-필화체제하에서 법을뛰어넘은 셈이다. 법을넘어선북한소개와통일담론의정치적 법적 운동적차원의평가는전공학자들의몫이다. 북한문학전공자로서임헌영, 김재용등이기획한이특집을객관적으로평가한다면, 북한문학을대표하는정전을전문가시각으로제대로선택하여우리독자가접근하기편하게편찬 소개했다고높이평가할수있다. 당시우후죽순으로 기습 / 게릴라 출간되었던 1932년 닻은올랐다 봄우레 처럼김일성우상화를노골화한총서 불멸의력사 장편소설이나 민중의바다 ( 피바다 개제 ), 꽃파는처녀 등김일성이직접창작했다는 항일혁명문학예술 을소설로개작한주체문학대표작들과는달리, 이들작품은우리한국독자들에게상대적으로거부감이덜한것이다. 수령론에입각한개인숭배나신파조서사가강한주체문학대표작보다는사회주의건설의노동찬양이위주인사회주의리얼리즘작품이상대적으로예술적완성도가 6) 김성수, 재 월북작가 예술인 해금 조치 (1988) 의연구사 문화사적의미, 증오와냉전의식의험로를넘어다시평화교류의길로 : 재 월북작가 예술인해금 (1988) 30 주년기념학술회의 : 남북문학예술연구회 성균관대국문과 인문학협동조합학술회의발표논문집, 성균관대, 2018. 8.17~18. 핵심주장요약. 7) 그간의상세한경과와의의에대한논의는이봉범, 냉전과월북, ( 납 ) 월북의제의문화정치 ( 역사문제연구 37, 2017.4) 참조. 8) 윤석인, 특집 민족문제 3 민중과통일 _ 민중적통일론의전개와정립방향, 실천문학 1988. 겨울호, 138 면. 김대환, 경제통합과민족경제, 실천문학 1988. 겨울호, 159 면. 이철희, 북방정책의비판적검토, 실천문학 1988. 겨울호, 173 면. 이종오, 사회운동과통일운동, 실천문학 1988. 겨울호, 194 면. 김명환, 분단극복과민족문학운동, 실천문학 1988. 겨울호, 211 면. 74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높고개인숭배가덜해서그럴것이다. 다른한편통일열기와함께통일문학 / 북한문학특집기획이문예지사이에널리성행하였다. 가령 민족해방을여는문예운동의이정표 를표방한무크지 녹두꽃 의통일시기획이그한예라하겠다. 1990년창간된지단 3호로종간된무크지종간호에실린통일을염원하는 남북다섯시인의통일낭송시 기획물이주목된다. 9) 이특집에서이채로운것은북한대표시인오영재시 전해다오 와김일성대학생인최주원의시, 분계선너머빨간딸기 이다. 자리가비어있구나 / 고은, 신경림, 백락청, 현기영, 김진경 / 그리고간절히우리를청해놓고 / 오지못하는사람들 / 허나우리는나무라지않으마 / 그것을나무라기에는 / 가슴이너무도아프고 / 터지는듯분하구나 // 지금쯤 / 어느저지선을헤치느라 / 온몸이찢기어피를흘리고있느냐 / 애국의뜨거운가슴을열고 / 그들이달려오는길을 / 그누가가로막았느냐 / 아, 분계선을자유로이넘나들며 / 오가는바람아 / 떠가는흰구름아 / 우리의이목소리를실어가다오 // 그리고전해다오 / 오늘은우리돌아서가지만 / 마음만은여기판문점 / 이회담장의책상위에얹어놓고간다고 / 정의와량심의필봉을높이들고 / 통일의길을함께갈 / 그날을기어이함께찾자고 / 바람아, 구름아, 전해다오 /// - 전해다오 10) 이마을아이들의두손가득 / 빨간물고웁게물들였을딸기 // 바라보기조차괴롭구나 / 분열의고통은해를넘는데 / 이제더는참을길없는이분노 // 진정너는이가슴에끓어솟아덩이로맺히는 / 아핏방울같구나 // 산하에썩어진젊은넋들의 / 함성이바람결에들린다 / 그때의피처럼너는 6 월의하늘아래 / 그리도빨갛게타익었구나 /// - 분계선너머빨간딸기 11) 전해다오 는북한에서활발한시작활동을하고있는오영재시인이 1989년 3월 27일 남북작가회담 예비접촉이남한당국과한미연합사에의해무산되자판문점북측지역에서남측대표단을기다리다즉흥적으로낭송했다는전언이다. 북한측대표단의일원으로판문점에서남한측대표단을기다리다접촉자체가통일로 ( 구파발 ) 출발지부터원천봉쇄로끝나고고은, 신경림등 5명이관계당국에연행되었단소식을듣게되자이시를낭송했다는편집자주가달려있다. 분계선너머빨간딸기 작자최주원시인이이시를발표할당시인 1989년도에 김일성종합대학교조선어문학부창작과 5학년 학생이었다. 앞의시편들이통일이란주제를현장적즉흥성과정치적구호성때문에선전시에가깝게거친표현을마다하지않았던데비해이작품은노골적인정치적주장이덜하고습작기문청처럼 빨간딸기, 붉은피, 붉은노을 의색채이미지를동원하여, 분단 ( 북에선분렬 ) 의고통과통일반대세력에대한분노를형상적으로표현하려애쓴다. 이시는소설가황석영이북한을방문, 김일성종합대학학생들과대화를나누는자리에서교내신문에실린시를낭송했다는에피소드가있다. 원제는 딸기 로 사람이살고있었네 황석영북한방문기 ( 창작과비평, 1990년여름 ) 에서재수록했다는편집자주가있다. 9) 편집주체의기획의도를밝힌종간사의한대목이다, 북의두분이야낭송을들어보지못했지만고은어르신, 김남주선생님, 그리고젊은고규태시인은우리민족의대표적낭송시인으로손색이없다할것이다. 게재에대한승낙조차받을수없었던북의두시인과더불어우리의통일노래꾼세분에게깊이감사드린다. 김형수, 정도상, 백진기, 녹두꽃이떨어지면 ( 머리말 ), 녹두꽃 제 3 호 ( 종간호 ), 두리출판사, 1991.8, 8~9 면. 10) 오영재, 전해다오 ( 시 ), 녹두꽃 제 3 호, 1991.8, 73~74 면. 11) 최주원, 분계선너머빨간딸기 ( 시 ), 녹두꽃 제 3 호, 1991.8, 75~76 면. 75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하지만북한시의소개자체가불법이었다. 이러한남북시인의통일 ( 염원 ) 시를게재했던매체는바로이런이유로국가보안법위반으로편집주체가체포되는바람에폐간되었다. 무크지 녹두꽃 을냈던녹두출판사대표신형식사장, 핵심편집위원백진기평론가, 중심필자고규태, 오봉옥시인들이줄지어국가보안법위반으로복역하고나오는동안 녹두꽃 은무겁게젖어한발짝도옮겨딛지못했기때문 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백조의마지막노래처럼종간호에통일을염원하는 남북다섯시인의통일낭송시 를소개한것이다. 무크지 녹두꽃 이폐간된 1년후 녹두꽃 3호종간호를냈던두리출판사에서다시연계매체 노둣돌 을창간했는데, 여기에이시기통일담론의남북교류를실증하는자료가실려있어주목을요한다. 방북작가황석영의특별기고인, 설문대담형식의 통일을위해문학의길을걷다보면어디나조국이었네 12) 이다. 김형수, 김진경등편집주체의설문과황석영의답변은남북문학의교류협력사에서시사하는바가적지않고자료적가치또한크다. 편집진의설문은매우많지만그중제7번설문을보자 : 선생님은방북당시인 89년 4월 23일에북한의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최영화제1부위원장과 남과북이민족문학예술을통일적으로발전시킬데대한합의서 를채택, 서명한바가있습니다. 이합의서는모두 7개항으로구성돼있습니다. 그것의결과로서, 남 북 해외의문학작품을함께싣는 통일문학 ( 계간지 ) 이북한에서발간되고있다고들었습니다. ( 중략 ) 합의서의의의와성격에대해서말씀해주시지요. 13) 이에대한답변에서황석영은 남과북이민족문학예술을통일적으로발전시킬데대한합의서 의실체적진실을강조한다. 그러면당시합의서의머리말을발췌하면서되새겨보도록하자. 의견교환에서쌍방은황석영대변인의평양방문이서로상대측문학예술에대한인식과이해를도모하며남북문학예술인들사이의민족적화해와단합을실현하는데매우유익하였으며민족최대의숙원인조국통일위업을촉진하기위한남북문학예술인들의역할을높이는데커다란의의를가진다는것을확인하였다. ( 중략 ) 남북문학예술인들간의교류와왕래가활성화되어야하며남과북이서로상대측문화예술의실상을바로알고민중속에그것을바로소개하고홍보하여야한다고하면서, 남북의민족문학예술이둘이아니라하나의책으로합본출판하기도하고남과북의작가예술인들이문학예술작품을공동으로합작하기도하며공동으로사진전, 미술전, 영화제같은것을자주개최하여야한다고언급하였다. 14) 이미북한의조선작가동맹통일문학분과에서는남한작품과함께당대북한문학을소개하는계간 통일문학 을발간하고있었기에, 같은형식의정기간행물공동편집을제의받은것이다. 적어도북한정간물에서남과북의문학이동시에게재되거나동시기남한문학작품을출판한다든가하는일은분단이후처음있는일이었다. 방북했던황석영도같은글에서, 북한대학생에게서민족문학계열의남한작품을읽고자기네문학과는또다른감동을받았다는소감을들은바있었고최승칠같은북한작가에게서도거의같은견해를여러번들었다고증언하였다. 그것이황석영에대한예우차원이아니라는것은그들이줄줄외우고있는시구절이나작품줄거리, 주인공에대한소상한기억으로알수있었다고한다. 15). 12) 황석영, 통일을위해문학의길을걷다보면어디나조국이었네 ( 특별기고, 설문대담 ), 노둣돌 창간호, 두리출판사, 1992. 가을호, 86~143 면. 13) 윗글, 100 면. 14) 윗글 101~105 면. 76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그렇다면 1988,9년시기에한반도남북에선서로상대방정기간행물, 출판물의문학을통해남북한주민 민중 ( 인민 과 국민 의또다른개념어 ) 들이서로알게모르게만나고있었던것이라하겠다. 가령지금은고인이된원로월남시인이기형의통일담론과김규동의시 북의시인에게 도당시상황을대변한다. 정치권이통일문제에앞장서야함에도불구하고오히려뒷전에처져있는반면문화권이앞질러나가는현상은참으로가슴벅차고경하해마지않는현상이다. 작년겨울의남북통일음악제와금년 4,5 월의일본지바남북통일탁구팀의눈부신활동은남북 7 천만동포의감격이요눈물이었다. 지금이순간에도남북선수와통일응원단이부르는 아리랑 의여운이쟁쟁하게들려온다. 필자는가끔남북통일후의문화황금시대를가슴뿌듯이그려보곤한다, 우리민족과같이재능있는남북형제가힘을합친다면아름다운조국산하를터전으로세계최고수준의문학작품, 예술작품, 학술작품등을반드시창조해내리라는것을믿어의심치않는다. 16) 여보통일이왜안되우 / 언제까지이러고있어야하우 / 우리힘우리노력이 / 이것밖에안된단말이우 / 지금이시간에 / 당신은무엇을하고있소 / 반백년이흘렀구려 / 늙기는했지만 / 옛날처럼잘웃고 / 지구력도갖고시도쓰고있소?/ 달이밝소 / 별이저리총총하고 / 둥근밤하늘이끝없이퍼져가오 / 여보잠자코있지말아요 / 내가잘못한일이있으면 / 언제든지충고도해줘요 / 옛날엔그랬잖아아, 옛날엔그랬잖아 17) 1988년 7월 2일 7.4남북공동성명 16주년을맞아민족문학작가회의의회장단 ( 회장김정한, 부회장고은 백낙청 ) 이남북작가회담을제창한바있다. 이듬해 2월 17일북한조선작가동맹중앙위원회가평양방송을통해남북작가뿐만아니라해외동포작가까지포함하는 범민족작가회의 를열것에역제안하는공개서한을통일원을통해전달하였다. 민족문학작가회의는작가회담준비위원회를구성하고 3월 27일예비회담대표 5명을선정하여판문점에서예비회담을열자고제안하였으나문공부 통일원 한미연합사에서허가할수없다고하여회담이무산되었다. 18) 이와관련하여다시 노둣돌 편집진의제8번설문을보면바로그민족문학작가회의와조선작가동맹의 남북작가회담 실패이후후속작업의가능성을타진하고있어주목된다. 문예지편집진김형수등 민족문학작가회의통일문학인위원회 에서 1992년집행부를일신하여소강상태에빠졌던 남북해외작가회담 을재추진하려하는데, 이에대한선구자황석영의견해를묻는것이다. 19) 그의답변은작가예술인들이실패를무릅쓰고방북투쟁과남북교류를계속시도함으로써분단장벽을과감히무너뜨리자는과격한주장이다. ( 중략 ) 89 년부터방북투쟁등으로자주교류의물고는터졌다고하겠지만, 범민족대회의완강한저 15) 위와같은글. 16) 이기형권두에세이, 문화향상과조국통일의지름길, 실천문학 1991 년여름, 6~10 면. 17) 김규동, 북의시인에게 ( 시 ), 창작과비평 1993. 겨울호, 146 면. # 월남원로시인의북한애가이다. 18) 3 월 24 일문공부장관은기자회견을통해민족문학작가회의의문단대표성과관계법령미비를들어남북작가회담예비회담을허가할수없다고발표하였고, 이어서당일인 27 일에는항의성시위의뜻으로임진각을향해가던대표단등회원 26 명이마포서로연행되는동시에며칠뒤에는준비위원장고은씨가구속되기에이르렀다. 염무웅 ( 문학평론가 영남대교수 ), 남북문화교류에대하여 ( 권두에세이 ), 창작과비평 1990. 겨울호, 22~ 면. 19) 윗글 106 면. 1989~90 년남북간에비공식적으로교환된이들교류협력사업제안은우여곡절끝에결국 2005 년의민족작가대회와 2006 년의 6.15 민족문학인협회결성, 기관지 통일문학 1,2 호간행배포로가시화된바있다. 이명박, 박근혜정부하의 잃어버린 9 년 동안다시중단되었지만조만간재개, 복원, 진전될것으로믿는다. 77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지에서보는바와같이남한당국은창구일원화정책을고수하고있습니다. 작가회의 의성격을잘알고있는당국이이쪽의의도대로허용할리도없고자칫하면그들의틀속에들어가이용당할우려도많습니다. 국가보안법철폐운동과연결시키면서 만남 자체를국가보안법과정면대결하는식으로추진한다면성사가되지않더라도대중에대한효과는있겠지요. ( 중략 ) 국보법에정면도전하면서분단의장벽을과감히무너뜨리는선도적투쟁은작가예술인들이해야할일이라고생각합니다. 20) 이와관련하여당시문학평론가염무웅은남북작가교류협력사업의청사진과의의를다음과같이설명한다. 남북의같은민족이공유하는모국어를자신의활동근거로가지고있는문인들이분단을극복하고통일을앞당기는과정에서해야할임무는무엇일까자문자답한다. ( 전략 ) 남북의문학인들은우선상대편의문학작품들을자유롭고선입견없이많이읽어야한다. 그리고이를위하여광범위한출판물의교류가전제되어야한다. 남북문학인의교류는출판교류의토대위에서만실질적인내용을획득할수있기때문이다. 아는바와같이 88 년해금이후남쪽에서는월북 재북작가들의작품과해외동포작가들의작품뿐만아니라 피바다, 꽃파는처녀 등이른바혁명적고전들도서점에서구해볼수있게되었는데, 이는매우환영할만한진전이다. 그러나이것은일시적이고과도기적인방편에불과하고한걸음나아가남북의출판물들이자율적인공동민간심의기구를통해서점으로공급되어야한다. 남북작가들의신작을묶어내는잡지의공동발행도바람직할것이다. 물론여기에는당연히비평작업도포함되어야한다. ( 중략 ) 또한, 통일민족문학사의구도가잡힐수있을것이다. 아마문학사에서의근현대부분은오랫동안합의에이르기어려울것이다. 문학사의정통성을해석하는시각이원천적으로다르기때문에심각한논란이예상되는터이지만, 그러나논란의과정이낭비적이지는않을것이다. 왜냐하면북쪽의항일혁명문학전통이토론 수용되는동안우리의민족문학사는크게확장될것이고이확장된시야안에서식민지시대와분단시대의제반문학경향들이적절한제자리를찾을수도있을것이기때문이다. ( 중략 ) 결론적으로말해서남북작가회담을포함한남북문화교류는분단의장벽을허물어뜨리는통일운동의일환으로전개될때진정한실체를획득한것이며그것은남북사회의민주화 자주화 인간화를추구하는전민중적노력을통해불가역의궤도에진입할것이다. 21) 이를보면 1990년당시에이미통일을향한남북문학교류의의의에대한나름의명분과구체적인사업요지가담겨있다. 하지만 1989년의통일문학을위한남북작가교류는실패하였다. 이에북한작가는민족문학의남북소통과교류를막은남한당국과한미연합사를맹비난하였다. 22) 통일운동을위해방북했다가투옥된황석영을북한에서수행했던최승칠시인에의하면자주통일운동은배타적인이기주의때문에민족을분열시킨침략자, 압제자를반대하여민족단합을갈망하는문학이바로 애국적인민족문학이면서동시에세계적높이의문학일것이다. 이라고일갈한다. 당시북에서내놓은민족문학소통과교류내역 23) 을보면, 가령합동창작집과평론집교류, 서사시공동창작등을예로들수있다. 20) 윗글 106~107 면. 21) 염무웅, 남북문화교류에대하여 ( 권두에세이 ), 창작과비평 1990. 겨울호, 24~28 면. 22) 최승칠, 혈맥은가를수없다 공화국을방문한황석영과지낸나날을돌이켜보며 ( 수기 ), 조선문학 1991.1, 45~ 면. 23) 가령 남과북이민족문학예술을통일적으로발전시킬데대한합의서 (1989) 이다. 최승칠, 혈맥은가를수없다 공화국을방문한황석영과지낸나날을돌이켜보며 ( 수기 ), 조선문학 1991.1 ; 황석영, 통일을위해문학의길을걷다보면어디나조국이었네 ( 특별기고, 설문대담 ), 노둣돌 창간호, 두리출판사, 1992. 가을호참조. 78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 전략 ) 중요한것은북과남의작가들이통일을위한문학운동을조직적으로확대발전시키는것이다. ( 중략 ) 북과남의합동창작집과평론집을북과남에서각각출판하여호상교류하자는것이다. 례컨대하나의서사시를북과남의시인이공동으로쓸수도있다. 주제와구성안을사전에합의하고서사시의앞부분은북의시인이쓰거나뒤부분은남쪽시인이써서각각현지출판물에발표하고그것을북과남혹은 3 국에서합본하여출판하자는것이다. 영화도합작할수있겠다는의견들이였다. 가령 춘향전 을영화로만든다면대본이나연출을북과남이적당히분담하고, 성춘향을북에서내면남에서는리몽룡을내는식으로하여합작을하면그인기와영향력은대단할것이다. 노래의경우는한쪽시인이가사를써서방송이나다른수단을써서다른쪽에알려주면그쪽의작곡가가곡을붙여상대방에알려주는방법을쓸수있을것이다. 이렇게되면통일주제의새로운노래들을북과남이함께부를수있을것이아닌가. 24) 남북통일의어떤주제와구성안을사전에합의하고서사시의앞부분은북의시인이쓰거나뒷부분은남쪽시인이써서각각현지출판물에발표하고그것을남북혹은제3국에서합본출판하자는제안도흥미롭다. 2018년시점에서남북양쪽의당시문건을비교해볼때 1989~90년당시민족문학교류를주도한쪽은북한이었다. 당시북한의문예총백인준위원장과최영화제1부위원장, 작가동맹통일문학담당조정호부위원장은남한의민예총대변인이며민족문학작가회의지도위원인황석영과민족문학소통과교류문제를놓고의견을모은뒤 민족문학을통일적으로발전시킬데대한합의서 를작성하고쌍방이서명한문건을교환했기때문이다. 통일지향의민족문학을남북공동으로발전시키기위해서는작가들이자주만나는것이절실하다. 황석영이북한문예총 작가동맹이남한민예총 민족문학작가회의만회담을가질것이아니라필요한경우에는남쪽의순수문학진영 ( 보수파 ) 인예총 문협과도회담을병행하는것이좋겠다는의견까지냈다는대목에서소통의진정성을확인할수있다. 1989년당시통일문학운동을 2018년의한반도적시각에서다시보니남북소통대화교류협력의구체적청사진이눈에띤다. 1990년대초문예지에수록된북한문학작품소개와통일담론의열풍, 그리고동시기에북한조선문학기관지의남조선문학소개가동시적으로진행된점도특기할만하다. 1988~92년문예지의통일열풍과북한문학소개는, 우리에게제대로알려지지못한 1960, 1980년북한작가들의 북남문학교류 제안에대한남측의뒤늦은화답이었으나 1989~92년엔당국의방해로성사되지못하고 2005~6년성사되었다. 이번에남북문학교류의숨겨졌지만빛나는전통, 그과정을회상이나전언이아니라당시남북한문건 ( 노둣돌과조선문학등의인터뷰 ) 을찾아소상하게밝혔다. 즉동시대남북문학의교류협력방안과통일담론이황석영의지상인터뷰와조선문학지의최승칠회상기를통해확인된셈이다. 이는 2005년성사된민족작가대회와 2006년실행된 6.15민족문학인협회결성과기관지통일문학간행이, 노무현참여정부때갑자기발생한 1회적사건이아니라는뜻이다. 이미 1960, 1980, 1989년등세차례에걸친남북의문학교류사의물밑흐름의표출이었던셈이다. 그것도 6월항쟁으로남한사회에가장 내부냉전 ( 전쟁공포에근거한자기검열과남남갈등 ) 이극심했던시기에온몸으로저항하던 법을넘어선투쟁 으로. 어쩌면문학예술은체제수호와정의구현의이념을공권력으로삼는법과불화라는것이생래적운명일지도모른다. 세계 24) 최승칠, 위의글. 79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문학사를훑어봐도법테두리안에서모범을지킨끝에나온걸작은톨스토이문학정도밖에없지않은가. 3. 민족작가대회 (2005) 와 6.15 민족문학인협회 결성 (2006) 의의의및한계 남북문학교류는 1960, 1980, 1989년세차례의시도와좌절끝에드디어참여정부에서성공적으로성사되었다. 즉남북의문학교류협력심지어연합단계인민족작가대회 (2005), 6.15 민족문학인협회 결성 (2006), 기관지 통일문학 (2008) 발간사업이수행된것이다. 평화체제이후문학교류협력사업의방향을가늠해보기위하여사회문화전분야를통털어한반도통합프로세스의준거로볼때 교류-협력-연합 이가장조직적 가시적으로실행된민족작가대회와 '6.15민족문학인협회'(2006) 결성의경우를보자. 2005년 7월 20일부터 25일까지평양, 백두산, 묘향산등지에서남북문인 200여명이참석한 6.15공동선언실천을위한민족작가대회 가열린바있다. 해방이후실로 60년만에처음으로한겨레문학의통일된목소리가대내외에표출되는순간이었다. 백낙청, 고은, 염무웅, 황석영등남측대표와홍석중, 김병훈, 오영재, 남대현등북측문인, 정화수, 김학렬 ( 재일동포 ), 이언호 ( 미주대표 ) 등이천지가내려다보이는장군봉중턱에서민족작가대회의성과를재확인하는 통일문학의새벽 축제를벌인것이다. 김형수와장혜명두시인이 7월 20일평양에서열린작가대회본대회에서채택된공동선언문 - 우리민족의이념아래 6.15 민족문학인협회를결성하고기관지 < 통일문학 > 을내며해마다통일문학상을수여하자는선언- 을낭독하였다. 이어서고은시인이지난밤백두산삼지연베개봉호텔에서즉흥창작한시 다시백두산에서 를낭독했다. " 해뜬다 / 이삼천리강산모든풀잎들꽃잎이슬들 / 아침햇발한살한살에눈뜬다 / 불싸리꽃금취꽃 / 우정금꽃기뻐라 // 1 백년전하나였던것 150 년전하나였던것 / 아니 3 백년전 / 어느먹밤터무니에도 / 오로지하나였던것 // 1 백년후 / 어찌하나아니겠느냐는것 // " " 몇해만인가 / 다시백두산정수리새벽에올라 / 몇해만인가속깊이우짖어 / 남김없이 / 내빈발걸음터벅터벅내려간다 / 내려가 / 삼지연백두영봉그림자를오롯이맞이한다 / 아니둘이아닌 / 하나의삶그것을낳고야말 / 햇빛부신하루를맞이한다 // 저바닥가득히해진다." 25) 이에화답하여오영재시인이 잡은손더굳게잡읍시다 를읊었고뒤이어여러사람이감회를토로하고천지가내려다보이는봉우리에서만세삼창을불렀다. 이러한장면은그동안너무나도멀게만느껴졌던남북문학간의이념적대결구도를넘어통일문학으로향한도정을중도확인하는기념비적성과로생각된다. 남북문학가사이에거의최초로내면의교류가시작되는순간이라할것이다. 하지만남북분단문학의장벽이그정도의감격적장면연출만으로그리쉽게허물어질수있는것은애초에아니었다. 분명서로가하나의모국어로 ' 문학 ' 과 ' 통일 ' 을이야기했지만, 문학의본질과사회적기능, 의미에대한남과북양측의기준과기대가워낙다르고, 통일의성 25) 김성수, 북한현대문학연구의쟁점과통일문학의도정 - 민족작가대회의성과를중심으로, 어문학회전국학술회의발표자료집, 대구가톨릭대, 2005.10.17. 참조. 80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격과지향을두고도현격한간극이있는것이엄연한현실이기때문이다. 26) 2006년 10월 30일결성된 6.15민족문학인협회는남북교류사에서분단 (1948) 이후최초로조직된민간인의단일조직이라는의의를갖는다. 해방후처음으로구성된문학인조직이자문학적성향차이를초월하는범문단조직이다. 남측에선한국문인협회와민족문학작가회의의대표가공동회장단에포함되고, 북측에선조선작가동맹대표가회장을맡았으니, 남북문인을대표하는통합단체로일컬을만하다. 이로써남북문화예술교류는교류의형식과내용면에서진일보했다고할수있다. 남북작가들은 2005년의첫만남이후 1년만에통합단체를결성하고, 다음단계로 2008년 1월과 7월에기관지 통일문학 창간호와제2호를간행하였다. 통일문학 에수록된북한소설을보면, 북한주민들의사회주의적일상이생활속에드러난작품들이선정되었다는추정을할수있다. 이는양측이자신의이념에서완전히벗어나진못했지만그래도주민들의실제삶을다룬작품을선정했다는의의를가진다. 남북문학교류협력사업의본격출발점인 2005년민족작가대회와교류협력단계를넘어서서초기연합단계까지선보인 '6.15민족문학인협회'(2006) 결성의의의를다시정리해보자. 첫째, 본격적문학교류의시작이다. 2006년 10월 30일 6.15민족문학인협회가공식출범하여남북교류사를통틀어분단이후최초로남북민간인단일조직이출현하게되었다. 이는기나긴통일운동사의과정에서도한획을긋지만추후전개될사회문화교류의차원과형식을한단계진전시키될것이다. 특히남북작가들의공동취재와공동집필, 또문학작품교류등의사업을이제남측의작가들이북의당국에제안하고, 승인을받아서북측작가들과여러차례의실무회담을거치면서합의하는형식이아닌, 단일조직의내부회의에서토론하여행사의규모와범위, 형식및주제를결정하여공동집행하는단계로진입하게되는것이다. 둘째, 한겨레의문학영토확장이라는상상적개념이가능하다. 남북의상호신뢰와이해가전제된다면우리에게모든북한문학은그자체로근대문학혹은현대문학이며코리아반도문학의일부인지역문학, 지방문학이기도하기때문이다. 남북작가들은오랫동안남과북에서다른이념을교육받고다른방식으로사고했던독자만을대상으로문학활동을전개했다. 이제분단관행에서벗어나북작가들은남측독자들을염두에두고, 남작가들은북측독자들을염두에두는시대로진입하게될것이다. 셋째, 그럼에도불구하고남북사이에문학관, 세계관사이에커다란차이가있음을인정하지않을수없다. 정도상이일찍이언급한것처럼 통일이아니라통이 ( 通異 ) 가이제야간신히이루어진셈이기때문이다. 평양과백두산, 금강산등지에서남쪽의작가들은북의체제를정면에서만났었다. 60년이나완벽하게다르게살아온, 타자로서의체제앞에일부작가들은매우당황했었다. 충분히그럴수있다고생각했다. 타자로인정하지않으려는완강한내부냉전적사고, 내면의저항심리가꿈틀거리고있음을여러곳에서느꼈다. 27) 26) 통일문학 = 통일된민족문학은분명이상이지만이념형이기도하다. 수령문학과선군 ( 先軍 ) 문학을내세운북한문학의실체를모른체할수는없다. 가령, 죽은김일성이 살아계시다 를실감하게만드는신화화장치나김정일의선군통치가지닌문화정치적자장이워낙강고해보였다. 신화를역사로, 다시일상으로만드는통치시스템과그를철저하게뒷받침하는문화예술적장치에회의를표하지않을수없다. 남북교류를위해서풀어야할과제중난감한부분이바로이부분, 수령론과선군사상이라고생각한다. 27) 따라서 2006 년이후특정보수언론과문단권력인어떤거대출판사, 문예지커뮤니티에서왜방북작가들이북한체제와인권에대한비판을솔직히털어놓지않는가하고공개심문할때침묵할수밖에없었다. 2018 년지금까지도문단내의강한반북심리는강한데내부냉전적감각의실체가그때내면화되었다고생각 81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넷째, 통일내지통합의단계별과정과내외조건에서문학등사회문화분야의역관계가반드시정치군사적교류협력의종속변수에머무는것은아니라는사실의실증이다. 냉정한정치적시선으로평가한다면남북의문인조직자체를북한의통일전선전술에순진한남한문인일부가말려들었다는반북파의비난으로부터자유로울수없다. 문학교류가정치군사적으로경색된정치군사적위기, 갈등, 적대국면을평화와화해의국면으로바꾸어가기위한 민족애를확인하는민간지식인행사 (2007. 10. 24일자남측준비위원회의성명에나온표현 ) 를표방했으나, 그러한선의의의도가관철되기엔 2006년 10월제1차핵실험후경색정국의현실적장벽이너무나강고하였다. 그럼에도불구하고문화예술인사이의 영혼의대화 는지속될수있고, 역으로그를통해정치군사적긴장을완화할수있다고본다. 28) 하지만문학교류는거기까지였다. 이명박정부가들어선후각종검열의강화와북한의지난친요구로 2009년기관지 3호가배포중단된후교류는전면중단되었다. 기관지편집과정에서의갈등과그보다더엄혹한현실정치의압력속에서남북관계전체가악화되면서조직부활과기관지복간은요원한일이되고말았다. 그럼에도불구하고남북문인의직접적인 인적교류 라는점에서, 2000년전후족출한남북간의 1회적이벤트성공연이나전시성문화교류에비해서는진전되었다고평가할수있다. 더욱이 2000년이후국민의정부및참여정부에서정치 군사적긴장완화분위기형성에문화교류가상당한기여를한것또한부인할수없다. 냉전체제로분열 분단된서로의문화를실제눈으로접하게됨에따라그동안의막연한적대감이사라지고호기심을충족시켜주민실상에좀더감성적으로접근할수있었다. 교류과정에서남북의문단학계인사들이서로친분을쌓고신뢰관계를형성할수있었다. 정서나심리는불가역성이높은만큼, 서로많이다르지만때로는공감대도확보할수있는 내면의교류, 무의식의교류 를체험하게된것이다. 이런맥락에서남북문학의통합프로세스에는상호이해로부터출발하여교류와협력, 그리고동거및연합단계등장기프로세스중무엇이이루어지고무엇이부족한지중간점검이필요하다. 2000년대의성과인 민족작가대회 (2005), 6.15민족문학인협회 (2006), 겨레말큰사전편찬사업 (2004~ 현재 ) 등보다진전된남북교류와협력단계로가기위한중장기전략으로제도정착이가장중요하다. 평화체제로의도정에서문학교류방향은새로움에얽매일필요가없다. 새로무언가뉴스가치만있는사업을 1회성이벤트로자꾸만들지말고이미이루어진남북문인학자들의교류협력사업을복구복원복권해서내실있게진전시키는것이올바른출발점이다. 4. 마무리 : 계승과신설병진 원칙 - 문학교류협력사업의재개와진전 방안 29) 2018년의새로운정국에서남북문학교류의 계승과신설병진 책을새롭게제안한다. 6.15 & 10.4 선언당시교류협력사업의 ' 계승 ' 과 2018년 4.27 판문점선언 9월평양공동선언의시대 한다. 28) 당시 6.15 민족문학인협회의공식입장이다. 29) 김성수, 평화체제로의도정과남북문학및언어교류방향,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18 제 4 차통일문화정책포럼발표문,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 2018.9.19. 참조. 82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적요구를새롭게반영한 ' 진전 ' 된새사업의병진전략을수행하자는제안이다. 우선 2005,6년민족작가대회 & 민족문학인협회, 기관지등교류협력사업의복원재개를위한현황부터파악한다. 이경우가장우려되는것은남북한전문인력, 인적자원의자연적상실이다. 오랜기간쌓아온남북작가 ( 문인, 문학인 ) 간의신뢰가교류재개의기반인데인적자원의노쇠화와세대교체, 직제변경등으로인해인적기반 ( 휴민트 ) 이왜곡, 상실될상황이다. 따라서현황파악및상호신뢰감회복과인적연계망재구축이절실하고급하다고아니할수없다. 30) 이후, 작가연합조직의복구와함께, 4.27 판문점선언과 9월평양공동선언의시대변화에합당한세대교체와출판유통미디어의대체가필요하다. 기존의통일문학기관지 3호배포 + 4 호편집후속작업을병행하되, 더이상북측에끌려다녀 70년대디자인과낡은지질, 그리고정치구호와검열삭제로누더기가된잡지 를받아들여선곤란하다. 31) 지금은 2006년이아니다. 통일, 민족이란텅빈기호, 이념에끌려다니는 뺄셈의문학사, 최소교집합 만합의하는느슨한연대원칙으로얄팍하고부실한콘텐츠를통일과민족이란미명으로가리면안된다. 독자들이호기심에가득차찾아읽고싶게만들어야한다. 새로운디자인의문예기관지를편집할수있는소통망을구축하되, 디지털작업또는 SNS 소식지와웹진을동시간행하도록추진해야한다. 이를위하여편집주체의세대교체가필요하다. 기존의아날로그방식의남북사회문화교류기구 ( 위원회, 원, 센터등의거버넌스 ) 설립에관료주의적으로접근하지말았으면한다. 남북공동기구운용과병행하여 한겨레 ( 조선민족 ) 언어 / 문화자료의디지털데이터망 허브구축을새로제안한다. 아날로그식발상의기구, 건물과예산, 인원이중심이되는것이아니라언어문화콘텐츠자체가중심이되는디지털마인드의언어및문학교류협력사업을상상했으면한다. 정부부처의어느특정부서가중심이되어야하는지예산과인원구성에관료적으로접근하기보다그노력의일부만쏟아도유투브같은인터넷망에한민족전체의언어문화콘텐츠를느슨한망조직정도로연계하는실용적구상을하자는것이다. 마무리삼아남북문학교류협력의향후과제를연도별로청사진을그려본다. [1 단계. 현황파악 ] 2019~2021~ 지난 2000~2008 년중단된이전교류협력사업의복구재개 5.24 조치 (2010) 해제, < 겨레말큰사전 > 공동편찬사업 (2004~) 의실질적 ( 특히인적교류 ) 재개, 유명무실해진 '6.15 민족문학인협회 '(2006) 의재결성과기관지 < 통일문학 > 제 3 호 (2008) 유통및제 4 호이후의속간, 유보된제 1 회통일문학상수상실행. [2 단계. 평화체제도정의전향적조치 ] 2021~ 국가보안법상 특수자료소지, 고무찬양죄 등연구목적예외적용시행령개정, 남북 / 통일문학선집편찬사업의자기비판과재편. 월북작가 30) 교류사업의재개에서교류주체인휴민트, 즉사람이중요하다. 2005 년교류협력사업의주역인북의장혜명시인과정도상작가간의인맥복구가최우선필요하다. 염무웅도종환정도상김재용안도현등 올드보이의귀환 과함께고명철신용목손홍규등후속세대의노장청연합전략이필요하다. 지난공백 13 년사이에 2005 년작가대회산파역이었던최영화시인, 작가대회주역이기형 ( 이기영 ) ( 김규동이호철최인훈등월남원로 ), 김병훈오영재등북측문인, 김학렬등재외문인이사망하였다. 이분들을뒤늦게추모한다. 2005 년북측파트너의 2018 년현황을보면, 김덕철안동춘김병훈장혜명홍석중오영재남대현등의당시주역중김병훈오영재는사망, 장혜명은와병설이있다. 현재안동춘문예총중앙위원장, 김대성조선작가동맹중앙위원회위원장, 박일명소설분과위원장, 박현철시분과위원장이활동하고있다. 31) 1989 년창간된북한작가동맹통일문학분과 ( 이전의남조선문학분과 ) 기관지계간 통일문학 75 호 (2007 년 4 호 ) 와표지디자인, 목차와본문편집체제등이거의비슷하다. 더욱이 6.15 민족문학인협회기관지통일문학이창간 (2008.2.1. 1 호, 2008.7.31. 2 호, 2009.3 3 호?) 된후북의기관지는더이상간행되지않고있어의문이생기지않을수없다. 게다가매체론적으로볼때간행물번호표기방식이북한식 ( ㄷ -3164) 인데반해정작국제규격인바코드와 ISBN 이없다. 남북의다른일반간행물에는다있는국게표준규격표시가없으니 비공식, 임의 간행물일뿐이다. 83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와문학작품아카이빙. 분단 / 냉전체제피해 ( 금기, 숙청 ) 작품의복원과작가의복권 신원선행조치. ( 특히기존남한주도의통일문학선집 ( 예술위, 2003. 시디롬, 미배포 ) 편찬을자기비판한다. 남북한의기존현대문학전집류의단순병합은곤란하니, 해체후재구성해야한다. 정전해체후한겨레의한글언어문화콘텐츠를스캔촬영한후통합구축하자. 다양한언어문화 & 예술텍스트의디지털아카이브 = 서울과평양의실물자료를스캔후링크만거는허브는예산과인력, 저작권등에서실행가능하다. 원칙적으로자료제공을편리하게하되수용은수용자의몫으로남기는탈근대, 비계몽원칙이어야한다. 북측에게도선전과교양이라는당문학원칙의느슨한해체와디지털시장논리로유통하는정황을양해받아야한다.) [3 단계. 남북연합초기단계 ] 2024~ 남북문인통합조직주도하에재북월북재남문인의활동공간이나작품배경이었던주요공간보존관리관광자원화. 북한지역문인생가터보존과복원, 유명작가의문학관, 기념관, 작품소재나배경이되는지역의탐방로조성등이실례이다. 남북은체제분단에도불구하고민족공통어를사용하고있어서문학의동질성회복에중요한공유자산을지니고있다. 그러나말과글에서동일한언어유산을공유하고있지만어문규범이나어휘등언어생활의세부적인부분에서는이질화현상도심각하다. 32) 남북한사이에문화교류가활발해지고학자들간의인적왕래와정보교환, 지적자산협력사업이이루어지면, 자연스러운언어문화교류및통합언어문화가형성될수있을것으로전망된다. 마침북한도변화하고있다. 2018년에는남북 / 북미정상회담을통해한반도비핵화와평화체제를향한의지를보임으로써김정은 시대 제2기를구가할수있게되었다. 김정은정권 2기가대외적인긴장과대내적인결속을다졌던 2017년의강경노선을버리고 2018년이후급변한것은핵무력완성선언후인민경제발전에전념하고있기때문이다. 4.27 판문점선언과 9월평양공동선언을기점으로문화예술계의긍정적변화방향을전망하고속도전으로교류협력을재개및진전시켰으면하는희망을품는다. 가령 9월 14일개소한개성의남북연락사무소활성화를통한소통창구상설화, 5.24조치해제, 개성공단과금강산관광등의동시적병행적시도를하면어떨까한다. 정부의공식창구개설을기다린 후 가아니라비정치적비정부적교류를 병행 하거나때로는 선 조치를해서본격교류의 마중물 차원에서저지르는것이지혜일수있다. 미리준비할것은과거사정리이다. 납 재 월북 월남 / 숙청 / 연좌제등으로금지 / 금기 / 금제했던 ' 분단피해 ' 작가의복원 복권 신원운동을위한남북문단 학계의공동조사연구협력을제안한다. 이는문화예술분야에서의분단 / 냉전체제를평화체제로전환하는기초자료구축이될것이다. 그러려면우리가기득권을버리고먼저양보하여대북포용책을적극활용했으면한다. 말대말, 행동대행동 은협력의기초다. 물론주고받는과정이반드시 같은값 일필요는없다. 기계적상호주의는불신의반영이다. 신뢰를쌓기위해서는 유연한상호주의 가필요하다. 현재의제재상황에서도한 미양국이취할신뢰의실천적조치는얼마나많은가? 아낄이유가없다. 이때협력은전술이아니라전략이고, 기술이아니라철학이다. 협력은일방의노력으로이 32) 이글을쓰는중에독일베를린자유대학의한국학자 Barbara Wall 이 Korean Studies FU Berlin 에서 Feierliche Eröffnung des neuen Institutsgebäudes 에참석중 이라는페북글을올렸다. "Institut fuer Koreastudien der Freien Universitaet Berlin 이우리연구소의공식명칭이다. 남쪽에서는우리를한국학과로부르고북쪽에서는조선학과라고부른다. 어떻게부르든우리는독일국민의세금으로운영되는공공기관이다." 이것이바로남북발화자가애써외면하지만 2018 년 10 월지구의현실이다. 유광석, 주독北대사, 핵무기없는한반도위해남북같이노력, KBS 뉴스, 2018.10.03.(06:30)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045464) 84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루어질수없고, 상호관계로이루어진다. 적대관계에서는지속가능한협력이불가능하다. 다음으로북한을포함해서전세계에흩어진남북한 / 한민족디아스포라문학예술관련자료와정보를온라인으로연결하는인터넷허브구축을제안한다. 남북한을포함해서전세계에흩어진한겨레디아스포라문학예술관련자료를온라인으로연결하는인터넷허브를상상하자. 그처음에는 ( 남 ) 한국 /( 북 ) 조선문학개념의철옹성을해체하고 코리아문학리부트 를해야할터. 현존하는분단 / 냉전의산물인 한국문학과조선문학 의대립적지양체인 통일문학2.0 을재구성하되, 통일이라는개념이총체성을강제하는또하나의도덕적당위나사회심리적억압장치로작동되지않았으면한다. 미투운동과난민찬반론에휩싸인 2018년의 2030세대에게일종의사회심리적 ' 억압장치 ' 로 ( 역 ) 기능하는 1987년체제 식의 ' 민족, 민족문학, 통일, 통합문학 이란당위원칙에대한근본적회의를외면하면안된다. 청년세대들에게통일은당위가아니다. 그래서소통과화해놀이로서의교류협력방식을대안으로모색할필요가있다. 가령인터넷네트워크중심의느슨한연대, 동거, 연합이남북교류협력의새로운출구로되었으면하는상상을하게된다. 만약코리아문학리부트이후의문학이또다른억압장치로변질될것이라면차라리문학사를, 통일 통합문학사를서술하겠다는욕망을버리자. 이것이남북한문학의장점과미덕, 가령리얼리즘민중사역사소설중심으로통일문학사를서술하자고 상호상승식문화통합론 을주창했던통일문학1.0 담론제창자 33) 로서 2018년에 통일 통합문학사의 ( 불 ) 가능성 이란키워드를떠올리게된속내이다. 물론평화체제이후더먼거리의통일된민족문학으로의도정에대해서남북한학자나문예당국사이에구체적인논의와합의가존재하지는않는다. 무엇보다도두체제사이에언어 문화관, 세계관사이에커다란차이가있음을인정하지않을수없다. 통일이아니라통이 ( 通異 ), 즉이질적인두체제사이에소통이조금씩이루어진셈이기때문이다. 이상은분명통일된언어 문학이지만실제현실은체제와이념간극이예상보다훨씬크다는사실이다. 다만언어 문학의민족적동질성이큰만큼현금의적대관계가완화되는경우가장먼저사업을재개하고이후지속가능한제도화방안을강화해야할터이다. 가령 한겨레언어문화자료 의넷망구축이야말로새로운방향이라결론지을수있다. 33) 통일문학 1.0 김성수, 남북한근현대문학사비교와통합방안, 통일의문학, 비평의논리, 책세상, 2001.4. 서장참조. 학술대회논문발표는토지문화재단의제 2 차한국문학사편찬연구심포지엄 (2000.8.18) 에서이루어졌다. 남북문학사의통합논리를무리하게펴는경우문학의정치종속성이우려된다는지적을수정보완한바있다. 85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참고문헌 1. 기본자료 창작과비평 실천문학 녹두꽃 노둣돌, 조선문학 등의자료 2. 논문김경웅, 통일의사회문화적접근 - 남북한사회문화교류와통합방향모색, 한국정치학회보 제 28 집 4 호, 한국정치학회, 1994. 김병로, 통일환경과통일담론의지형변화, 통일문제연구 26(1), 평화문제연구소, 2014. 김성수, 북한현대문학연구의쟁점과통일문학의도정, 어문학 91 호, 한국어문학회, 2006.3. 김성수, 통일문학담론의반성과분단문학의기원재검토, 민족문학사연구 43 호, 민족문학사학회, 2010.8. 김성수, 통일담론과남북문학사소통방안, 민족문학사연구 56, 민족문학사학회, 2014.12. 김영주, 한국시민사회단체의통일담론연구, 북한대학원박사논문, 2010. 김재용, 분단구조하의남북중심주의와민족문학의과제 분단구조와북한문학, 소명출판사, 2000. 김재용, 남북의문학적통합과북한문학으로서의재월북작가연구, 국어국문학 168 호, 국어국문학회, 2014. 박영정 김성수외, 남북문화교류협력사업분석및발전방안연구, 문화체육관광부, 2013.1. 유임하외, 북한문학사의쟁점, 민족문학사연구소편, 새민족문학사강좌 2 권, 파주 : 창비사, 2009.5. 이영미, 남북한통일문학사기술의과제와전망, 한중인문학연구 제 50 호, 한중인문학회. 2016. 장성규, 통일문학을넘어탈분단문학으로, 실천문학 Vol.98, 실천문학사, 2010. 정동영 지승호. 10 년후통일. 서울 : 살림터. 2013. Lankov, Andrei, Kim Takes Control: The Great Purge in North Korea, 1956~1960, Korean Studies Vol.26, No.1, Hawai i: University of Hawai i, 2002. 3. 단행본김성수, 통일의문학, 비평의논리, 서울 : 책세상, 2001.4. 남원진, 이야기의힘과근대미달의양식, 경진, 2011. 류만 최광일, 조선문학사 (16) 1990 년대문학, 사회과학출판사, 2012. 민족문학사연구소편, 새민족문학사강좌, 창비사, 2009. 민족문학사연구소남북한문학사연구반, 북한의우리문학사재인식, 소명출판, 2014. 이종석, 새로쓴현대북한의이해, 역사비평사, 2000. Bourdieu, Pierre, 하태환역, 예술의규칙 : 문학장의기원과구조, 동문선, 1999. Gabroussenko, Tatiana, Soldiers on the Cultural Front: Developments in the Early History of North Korea Literature and Literary Policy, Hawai'i Studies on Korea, 2010. Habermas, J., 한승환역, 공론장의구조변동 - 부르주아사회의한범주에관한연구, 나남출판, 2001. 86

남북한음악교류의양상과지향 배인교 ( 경인교육대학교 )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남북한음악교류의양상과지향 배인교 ( 경인교대한국공연예술연구소 ) I. 해금 ( 解禁 ) 30 년과남북한음악교류 2018년들어남북정상회담과평화공존에대한논의는지속된남북간반목의역사를상쇄시키는역사적인사건임에틀림없다. 또한 판문점선언이행을위한군사분야합의서 의내용에따라 10월 1일부터시작된판문점 JSA, 철원 DMZ 일대및화살머리고지의지뢰와폭발물제거작업이시작되었다. 이는마치 60여년넘게한반도에박혀있던가시들을하나씩정성스럽게빼내는듯한인상을안겨준다고해도과언이아니다. 남북의신뢰프로세스가작동하고있는결과물중하나일것이다. 최근의남북간신뢰관계형성과달리지난시기남북문화교류는분단이후양체제의우월성을홍보하기위해이루어져왔으며, 양국모두체제우월성을선전하는도구로음악을사용하였다. 전두환 노태우정권에서의남북음악교류는물론이고, 이후김대중 노무현정부의교류역시큰틀에서는벗어나지않는다. 그러나이러한행위는북한의공산집단을찬양하거나동조하는문화콘텐츠를국민에배포하고남한에서불법인이적단체와북한인민의접촉역시국가가주도하였으므로당연히국가보안법에위배된다. 2000년대남북문화예술교류를맡았던남한의여러단체나교류인사들이국가보안법에서자유롭지못하였으며, 최근방북한국회의원박지원도차기정부에서국가보안법으로구속될것이라는말을할정도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남북의음악교류는민족동질성회복, 문화정체성확립이라는큰틀에서강조해왔다. 1985년적십자회담과남북이산가족고향방문을계기로시작된남북한음악교류는현재까지다양한형태로진행되었다. 그리고다행스러운점은이러한남북음악교류와관련된보고서들이 10년에한번꼴로진행되었다. 즉, 1995년문민정부시절의남북교류공연관련보고서들, 2007년김대중, 노무현정부의대북정책관련남북음악교류가그것이다. 따라서이글에서는 1988년 10월 27일월북음악인작품에대한해금조치이전에있었던 < 남북이산가족고향방문및예술단공연교환방문 > 부터올해있었던음악예술공연을살펴보며향후남북음악교류의방향에대한제안을하도록하겠다. 단한반도가아닌해외에서열린음악교류는제외한다. 89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Ⅱ. 남북음악교류의흐름 1. 군사정부시기의남북음악교류 (1985~1990) 남북음악교류는 1985년에처음시도되었다. 박정희의암살과전두환의쿠데타, 그리고 80년광주민주화운동등박정희사후에도지속된군사정부시절에남북한음악교류가처음시작되었다는점은특기할만한일이라고할수있다. 그이전인 1983년에문화공보부는북한은아니지만당시공산권국가였던소비에트연방과동유럽사회주의국가에서제작된클래식음반수입을허용함으로써소위반체제국가의문화콘텐츠에대한개방이이루어졌다. 1984년에는남한의수재민을위한북한의수재물자제공을수락하면서남한사람들이북한의도움을받았던사건이있었다. 그리고이어 1985년 5월 < 제8차적십자회담 > 에서 8월 15일을기점으로제1차상호고향방문단상호교환제의가있은후분단이후처음으로남북한고향방문단및예술공연단의서울 평양동시교환이이루어졌다. 이때교류규모는단장 1명을비롯하여고향방문단 50명, 예술공연단 50명, 기자 30명, 지원인원 20명등남북각각 151명이판문점을거쳐서울과평양을방문하였으며, 예술공연을진행 1) 하였다. 1985년남북예술공연의내용을소개하면다음과같다. 먼저남한예술단은 9월 20일부터 23일까지평양대극장에서총두차례의공연을하였는데, 대체로공연은 민족전통가무를중심으로하되공연때사회자는정치성을배제하고상대방을비방 중상 자극하지않는원칙하에공연종목만소개하도록하였다. 그리고공연목록은 3일전에상대측에통보하며, 공연을위해관계자 5명이사전에답사하여준비하도록하였다. 남한의예술주체는방북공연을위해조직된서울예술단 ( 총감독 : 김치곤, 무대감독 : 유경환, 제작기획 : 이주형, 구성 연출 : 박만규 ) 이며공연은 2부로구성되어있었다. 공연목록과참가자는다음과같다. 표 1. 1985 년서울예술단평양소재평양대극장공연목록 제 1 부 : 겨레의맥박 순서 공연목록 참여예술인 1 개막무용 < 북소리 > 안무 : 김백봉 2 민속무용 < 태평성대 > 3 민속무용 < 승무 > 안무 : 정재만, 출연 : 이경숙 4 민요합창 < 울산아가씨 >, < 잦은산타령 > 편곡 : 김희조, 출연 : 김동곤외 17명 5 창작무용 < 꽃보라 > 작곡 : 김희조, 안무 : 정승희출연 : 정재만외 24명 6 가곡 < 사공의노래 > 노래 : 바리톤김성길 7 창과민속무용 < 강강술래 > 안무 : 송범, 창 : 안숙선출연 : 양승미외 23명 8 민속무용 < 봉산탈춤 > 안무 : 김선봉, 출연 : 정재만외 11명 9 민속무용 < 부채춤 > 안무 : 김백봉. 출연 : 양승미외 23명 10 재담 < 고향가는길 > 남보원, 백남봉 1) 김춘미 김용환 민경찬 이영미, 남북교류공연분석및통일지향적공연구성안연구 ( 한국예술종합학교한국예술연구소, 1995), 12 쪽. 90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제2부 : 2000년대를향햐여 11 현대무용 < 겨레의갈망 > 작곡 : 김정길, 안무 : 최정자출연 : 최용준외 34명 12 가요 < 눈물젖은두만강 > < 불효자는웁니다 > 노래 : 김정구, 김희갑 13 가요합창 < 아리랑목동 >, < 신고산타령 >, < 고향만리 >, < 서울의찬가 > 편곡 : 장익환 14 가요 < 찔레꽃 > 노래 : 하춘화 < 꿈에본내고향 > < 삼다도소식 > 노래 : 나훈아 15 현대무용 <2천년대를향하여 > 편곡 : 장익환, 안무 : 한익평출연 : 최용준외 16 가곡 < 그리운금강산 > 노래 : 소프라노이규도 17 민속무용 < 농악 > 안무 : 국수호, 출연 : 정재만외 33명 18 전원합창 < 아리랑 > 편곡 : 김희조, 출연 : 정재만외 44명 위의공연목록을보면, 전통과연관된민속무용과민요및신민요, 홍난파가작곡한 < 사공의노래 > 와일제강점기창작된대중가요, 현대무용등다양한장르의작품을한데섞어무대를연출하였음을알수있다. 또한공연목록대부분이일제강점기까지공유했던예술중대중예술위주로구성되어있어남한의입장에서북한과공유할수있는콘텐츠를찾으려고노력한것을볼수있다. 예를들어 < 울산아가씨 > 는월북음악인이면상이 1930년대만든노래이며, < 잦은산타령 > 과 < 봉산탈춤 > 은북한땅인황해도지방의민속예술이라는점등이그렇다. 그러나이에대하여북한측의입장 2) 은복고주의적이고종교적이며, 양풍 ( 미국식 ) 화되어퇴폐적이어서미풍양속을해쳤다거나, 일제식민지의잔재를청산하지못했다고보았다. 또한남보원과백남봉의 < 재담 > 에대해서북한을희화화한점을들며불쾌해했는데, 이에대해서는남한측에서도반성할정도였다. 한편같은기간남한의국립중앙극장에서있었던평양예술단의공연역시 2회공연을가졌으며, 아래의공연목록에도보듯이남한의것처럼무용과노래가어우러져있었다. 표 2. 1985 년평양예술단서울소재국립중앙극장공연목록 순서 공연목록 참여예술인 1 무용 < 금강선녀 > 2 여성 2중창 < 노들강변 >, < 조선팔경가 >, < 도라지타령 > 3 무용 < 손북춤 >( 풍년든벌판에서 ) 4 가야금연주 < 봄 > 가야금 : 배금옥 5 무용 < 달맞이 > 6 남성 4중창 < 양산도 >, < 까투리타령 >, < 웃음꽃이만발했네 > 7 무용 < 칼춤 > 8 장새납독주 < 그네뛰는처녀 >, < 풍년든금강마을 > 장새납 : 최명천 9 무용 <3인무 > 10 무용 < 샘물터에서 > 11 여성 4중창 < 모란봉 >, < 새봄을노래하네 >, < 뻐꾹새 > 12 무용 < 쟁강춤 > 2) 김춘미 김용환 민경찬 이영미, 남북교류공연분석및통일지향적공연구성안연구 ( 한국예술종합학교한국예술연구소, 1995), 23-31 쪽. 91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북한의경우도 1985년공연에서일제강점기에창작된신민요를많이배치한것을볼수있다. 노래로불린 < 노들강변 >, < 조선팔경가 >, < 양산도 >, < 까투리타령 >, < 모란봉 (-창부타령)>, < 새봄을노래하네 (-처녀총각)>, < 뻐꾹새 (-포곡성)> 3) 이모두그렇다. 다만이노래들이남한처럼단성 (Monophony) 으로부른것이아니라호모포니 (Homophony, 화성음악 ) 로불렀음을볼수있다. 북한의공연에대하여남한에서의대응역시적대감이표출되었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북한의공연예술-평양예술단의서울공연평가 (1985.12) 와일간지에실린기사의내용 4) 은다음과같다. 1 국악기를서양악기화하고춤동작에중국, 러시아, 동남아의춤사위를받아들이는등전통을훼손하고국적불명의예술을만들었다. 2 30, 40년대악극, 신파조, 대중가요적발성, 원색과스팡크 ( 빤짝이 ) 등을남용한의상등에서보이는미감이예술적이지못하고유치하다. 3 억지웃음과억양등이거부감을준다. 4 공연의구성, 무용의공간구성과음악의화성과구조등형식적측면이단순하며, 개성과창의성이없이획일적이다. 분단이후처음시도된예술교류는서로에대한적대감과체제우월성을드러내고싶은열망이담겨있었다고할수있다. 또한이러한반응은남한에서의북한음악연구, 그리고북한에서의남한음악연구가전무한상태에서상대의음악상황을미루어짐작한결과로보인다. 이것은북한의공연목록에서도확인할수있는데혁명가극 < 금강산의노래 > 에나오는 < 풍년든금강마을 > 이나전쟁기후방인민들과인민군인의관계를보여주는 < 샘물터에서 > 에대한이해가없었던것으로보이며, 1995년의 남북교류공연분석및통일지향적공연구성안연구 에서도이에대한설명이보이지않는다. 남한에서북한음악에대한이해가전무한까닭이었다. 그러나이한번의교류에서남북은서로의음악에대한연구의필요성을직감했으며, 이것은남한에서의전통악기개량과북한에서의전통문화원형보존에대한노력으로구체화되었다. 1988년올림픽개최이후 10월 27일에있은월북음악인들의분단이전행보와작품에대한해금조치는북한음악과음악인에대한언급을자유롭게하였으며, 제한적이나마접근가능한상황을만드는계기가되었다. 그리고 1990년 10월에는제1회 < 범민족통일음악회 > 가 10월 18 일에서 23일까지평양에서열렸다. 이음악회는 범민족통일음악회준비위원회 ( 위원장윤이상 ) 의초청에의해남북한및해외의동포들이참가하였는데, 남한에서는 서울전통음악연주단 ( 음악인 14명, 취재진 3명 ) 이참가하였다. 이후서울에서남북한합동공연 ( 북한 33명-단장성동춘, 남한 236명 ) 이 12월 9일 ~11일에있었는데, 11일의공연은서울에서있은남북고위급회담대표를위한특별공연이었다. 서울전통음악연주단 의평양공연과 평양민족음악단 의서울공연연주목록을정리하면다음과같다. 3) 남북교류공연분석및통일지향적공연구성안연구 에서는 < 모란봉 > 과 < 뻐꾹새 > 를북한에서창작한작품으로보았다. 그러나 < 모란봉 > 은경기민요 < 창부타령 > 의가사를사회주의적사실주의원칙에따라바꾼것이며, < 뻐꾹새 > 는 1936 년에왕수복이부른 < 포곡성 > 이다. 4) 김춘미 김용환 민경찬 이영미, 남북교류공연분석및통일지향적공연구성안연구 ( 한국예술종합학교한국예술연구소, 1995), 49-53 쪽. 92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표 3. 1990 년범민족통일음악회 < 서울전통음악연주단 > 공연목록 순서 연주곡 연주자 1 평시조 < 마음이지척이면 >, 창 : 김월하휘모리시조 < 창내고자 > 대금 : 홍종진, 장구 : 김정수 2 황병기작곡 < 비단길 > 가야금 : 황병기, 장구 : 김정수 3 가곡창 : 윤인숙, 대금 훈 : 홍종진, < 엄마야누나야 >, < 고향의달 >, < 우리는하나 > 장구 : 김정수, 가야금 : 황병기 4 단소연주 < 청성곡 > 단소 : 홍종진 5 서도민요 < 수심가 >, < 엮음수심가 >( 평안도민요 ) < 자진난봉가 >, < 사설난봉가 >( 황해도민요 ) 창 : 오복녀, 김광숙 < 개타령 >( 평안도민요 ) 6 대금산조 대금 : 정철수, 장구 : 김정수 7 남도소리 < 육자배기 >, < 자진육자배기 >( 전라도민요 ) 창 : 오정숙, 북 : 정철수 판소리 < 심청가 > 중부녀상봉장면 8 사물놀이 < 삼도농악가락 > 장구 : 김덕수, 꽹과리 : 이광수, 북 : 강민석, 징 : 김운태 표 4. < 90 송년통일전통음악회 > 중평양민족음악단공연 순서 연주곡 연주자 1 여성5중창 < 민요연곡 > 송영희외 4명 2 단소독주 < 중모리 >, < 안땅 > 단소 : 정동환 3 여성민요독창 < 능수버들 >, < 양산도 > 배윤희 4 여성민요3중창 < 신고산타령 > 배윤희, 장애란, 백순희 5 남성민요독창 < 산천가 > 6 혼성민요 5중창 < 회양닐리리 > 리성훈외 4명 7 여성독창 < 평북녕변가 >, < 바다의노래 > 백영희 8 여성독창 < 해당화 > 백영희 9 옥류금독주 < 도라지 > 김길화 10 여성저음독창 < 통일의길 > 송영희 11 가야금독주와병창 < 옹헤야 > 리순화외 12 민요독창 < 배따라기 > 김진명 13 혼성민요제창 < 정방산성가 >, < 자진난봉가 > 김진명, 김관보 14 소합창 < 우리의소원은통일 > 출연자전원 1985년의공연은남북모두일제강점기에창작된신민요와대중음악을주로하면서다양한장르가섞여있었던것에비해, 1990년두달의시간차를두고진행된남북음악교류는 1990년 2월에문화부와통일원에서발표한남북문화교류 5원칙 5) 에근거하며, 그중 분단이전의우리전통문화를우선 한다는항목에부합된연주회였다. 5) 1990 년남북문화교류의 5 가지원칙 : 1> 분단이전의우리전통문화를우선한다. 2> 승부및경쟁적분야는배제한다. 3> 전통문화의원형을변형, 훼손하는표현방식은지양한다. 4> 쉽고작은일부터시작한다. 5> 공동실행을위한지속적인노력을경주한다. 93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1990년에있었던남북의공연에대한남북의반응은 1985년과는많이다른모습이었다. 먼저 10 월에있었던남한의 서울전통음악연주단 의평양공연연주에대한북한의입장은공연된곡목이나연주자의기량과같은연주곡의내용보다는이연주회가지니는역사적중요성을강조함으로써호의적인입장을표명 6) 하였다. 이어 12월에서울에서있었던남북합동연주회인 < 90 송년통일전통음악회 > 중평양민족음악단공연에대하여남한의반응 7) 역시매우긍정적으로변해있었다. 1 북한의전통음악계승은한편으로서양음악지향적이면서도그속에서우리나라의고유한시김새와정서, 질감등우리음악의맛을드러내고있음으로써, 이질성만큼이나동질성도크다. 2 전통의현대화의측면에서높이평가할만하다 3 북한의전통악기개량은남한도동일하게안고있는이문제의해결에실마리를제공한한편, 서양악기에가까워진문제점을지니고있다. 4 북한의예술에보이는체제적응적인경향성과단정한형식미를지니고있다. 5 북한의맑고투명한발성법은북한체제자체가맑은소리를선호할뿐만아니라, 맑은소리로이루어진서도전통음악의특성에서비롯된것으로보아야한다. 6 가사전달이분명하였다. 1990년남한과북한의음악교류는분명 1985년과많이달라있다. 적대적인감정을그대로표출하였던 1985년에비해 1990년에는음악적분석이좀더적극적이었으며, 통일지향적공통점을찾고, 남북모두서로에게긍정적으로작용할요소를찾는등긍정적이었다. 또한 1985년의교류가국가적차원에서이루어진것이었다면 1990년의것은민간단체가참여함으로써이후남한에서민간교류의발판을마련하였다고할수있다. 또한 1985년이후월북음악인에대한해금과함께북한음악의이해가높아졌으며, 연구성과도나오기시작하였다. 그러나그양이턱없이적어창부타령의변형에해당하는 < 평북녕변가 > 나우리의 < 뱃노래 > 와같은 < 바다의노래 > 등을창작민요로인식하는등의오류가있었다. 1990년의연주회에이어 1992년 5월 제7차남북고위급회담 에서이산가족노부모방문단및예술단의서울 평양동시교환을실시하기로합의 8) 하였으나예술단교류는한동안성사되지못하였다. 2. 햇볕정책과남북음악교류 (1998 년 ~ 2007 년 ) 1998년남한에서국민의정부가들어서고, 북한에서고난의행군시기를마친후대북 대남관계와정책은일대변화를맞이하였다. 소위 햇볕정책 이라불리는김대중정부의평화공존에대한노력은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이라는역사적인사건을만들어냈으며, 1998년 11월 6) 김춘미 김용환 민경찬 이영미, 남북교류공연분석및통일지향적공연구성안연구 ( 한국예술종합학교한국예술연구소, 1995), 33 쪽. 7) 김춘미 김용환 민경찬 이영미, 남북교류공연분석및통일지향적공연구성안연구 ( 한국예술종합학교한국예술연구소, 1995), 67-70 쪽. 8) 국가기록원 남북적십자회담 http://www.archives.go.kr/next/search/listsubjectdescription.do?id=003373 94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부터시작된금강산관광및개성공단개발논의등경제협력에대한상호협력이있었다. 그리고 1990년이후 8년만인 1998년 5월에 리틀엔젤스예술단 공연이평양의봉화예술극장과만경대학생소년궁전에서있었다. 리틀엔젤스예술단은문선명의통일교재단에서창단한단체이며, 북한평화자동차공장지원사업논의와함께방북한것이라고할수있다. 이공연이후노무현정부의끝자락인 2007년까지약 18차례의남북음악교류공연 9) 이있었다. 또한이기간사회문화교류중음악위주의공연교류가주를이루었으며, 가요와서적의저작권협약 (2005) 과북한가요를남한의가수들이부른 동인 음반이발매 (2007) 되기도하였다. 1 1998.5.2.~12 표 5. 1998 년 ~ 2007 년남북음악교류양상 기간행사명장소내용 리틀엔젤스 예술단 평양 공연 평양봉화예술극장 / 만경대학생소년궁전 3 회공연. 민속무용, 가야금병창 2 1998.11.3 제 1 회윤이상통일음악회평양모란봉극장 북한국립교향악단과남한연주가협연 3 1999.12.5 2000 년평화친선음악회평양봉화예술극장남북한대중음악 4 1999.12.20 제 1 회민족통일음악회평양봉화예술극장남북한대중음악 5 2000.5.26~28 6 2000.8.18~24 평양학생소년예술단서울공연남북교향악단합동연주회 ( 조선국립교향악단 KBS교향악단, 서울 ) 7 2001.2.1~2 창극 < 춘향전 > 방북공연 예술의전당오페라극장 서울 KBS홀, 예술의전당콘서트홀 ( 북측단독 2회, 남북합동 2회 ) 평양봉화예술극장 ( 남원춘향예술단구성 ) 8 2001.3.26~27 창극 < 황진이 > 공연금강산문예회관 9 2002.8.15 10 2002.9. 20(KBS 단독 ) 9. 21 ( 합동공연 ) 8.15 민족통일대회북측예술단초청공연 추석맞이남북교향악단평양합동연주회 코엑스오디토리움 평양봉화극장 북한민족음악 유럽고전음악과북한창작관현악등 창극 / 민족가극 서라벌국악예술단 ( 단장 : 홍성덕 ) 의창작창극 북한민족무용 관현악 11 2002.9. 27~ 29 2002 MBC 평양특별공연동평양대극장남북한대중음악 12 2003.8.9~12. KBS 평양노래자랑평양모란봉공원 13 2003.10.8 류경정주영체육관개관기념통일음악회 평양류경정주영체육관 남한대중음악북한대중음악 14 2005.6.14~17 6 15 통일대축전평양 민족가극 < 춘향전 > 과가극 < 금강 > 15 2005.8. 23 조용필평양공연 평양류경정주영체육관 대중음악 16 2005. 9.28~29 금강산민속문화축전 금강산 남한전통예술, 북한민족음악 9) 이우영 천현식의목록에 2 개를추가하였으며, 총련계재일조선인의공연은제외함. 이우영 천현식, 남북사회문화교류 10 년의회고와전망, 국제고려학회서울지회 2008 년학술대회 : 지난 10 년대북정책 교류의회고와평가, ( 국제고려학회서울지회, 2008.06.), 80-99 쪽. 95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17 2006.4.29 금강산윤이상음악회개최금강산문화회관 18 2006.10.19~20 윤이상평화음악축전 2006 도쿄예술대주악당, 서울예술의전당, 베를린성마태교회, 뮌헨칼오르프첸트룸, 평양윤이상음악당 창작국악, 윤이상작품, 북한민요풍노래 윤이상작품 위의표를보면남북의정부간교류보다는민간단체의방북공연을많이볼수있다. 또한연주내용에서는전통음악, 양악관현악, 가극, 대중음악공연등다양하며, 그중대중음악공연횟수가가장많다. 특히핑클, 젝스키스, 베이이복스, 신화와같은아이돌그룹의공연에낯설어하는북한인민의모습은남한사람들에게북한의대중문화가상대적으로촌스럽다고여기게하는계기가되었다. 그러나설운도나이미자등이부른트롯트음악은아이돌의공연에비해상대적으로많은호응을받았다. 이것은북한에서현재까지창작되고있는민요풍의노래와일면비슷한부분이있기때문으로보인다. 표 6. 류경정주영체육관개관기념통일음악회관객반응 설운도 < 사랑의트위스트 > 관객반응 신화 <Perfect man> 관객반응 김대중 노무현정부시기음악예술교류는남북관계의일반적인흐름에따라단절과재개를반복하면서도교류가지속적으로확대되었으며, 교류에참여하는민간단체의활약이눈에띠게늘었다는점 10) 등으로앞시기의교류양상과는다른면을보인다. 한편이시기의음악교류에서또하나주목할것은교류공연이열린장소의불균형성이다. 위의표에서볼수있듯이, 18회공연중 14회가북한의평양과금강산에서있었으며, 4회만서 10) 이우영 천현식, 남북사회문화교류 10 년의회고와전망, 국제고려학회서울지회 2008 년학술대회 : 지난 10 년대북정책 교류의회고와평가, ( 국제고려학회서울지회, 2008.06.), 68-70 쪽. 96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울에서있었다. 남측민간예술단들의열성적인방북공연과달리북한은이기간동안소극적으로방남공연을하였다는것이다. 교류는활성화되었으나남한의물량공세와자본주의적퇴폐문화에대해서는방어기제가작동한듯하다. 반면에남한사람들은잦은방북과함께북한인민의실상이 TV를통해방영되면서북한에대한적개심보다는인도적지원의대상으로보는경우가많았다. 이와함께북한예술단중리진혁군과같은스타 11) 가탄생하는일도있었다. 3. 교류의단절? (2008 년 ~2017 년 ) 한편 2007년까지 10여년간남북한은서울과평야에서다수의음악교류를해왔다. 그러나정권재창출에실패한민주당을대신하여집권한이명박정부와뒤이은박근혜정부에서는이전정부의인도주의적대북정책을비판하면서북한과대립각을세웠다. 특히이명박정부초기인 2008 년 7월 11일에는금강산에서인민군이남측민간인에게총을쏘는사건이있으면서 10년간지속되었던금강산관광은중지되었다. 그리고이어진천안함사건과서해교전등으로대북관계는경색되었으며급기야 2003년부터남북경협의교두보로여겼던개성공단이폐쇄되었다. 정세의영향을받는남북문화교류는당연히경색되었으며, 비정치적인방북신청은결실을맺지못하였다. 한편이시기정부간의남북예술교류가전혀이루어지지못했던것에비해남한에서의북한음악연구는폭발적으로증가 12) 하였다. 북한음악을대상으로한석 박사학위논문의수는이전시기2편에서 21편으로증가하였으며, 단행본과학술논문은편수의증가뿐만아니라북한음악의시기별, 주제별연구가이루어지고있다. 이러한증가세의원인을두가지로나눠볼수있는데, 먼저그이전시기에축적된학문성과를계승하면서지속적으로북한음악을연구하는집단이생성되었다는점이며, 다른하나는김정일사후김정은의정권세습구도속에서직관적인북한의음악정책을바탕으로그들을이해해보고자하는욕구가반영된것 13) 이다. 그렇다면남한정부의적대적대북정책하에서남한의학자들은북한과직접적교류가없음에도어떻게북한음악에대한연구가증가할수있었을까? 이시기는이전과는다른교류의개념을설정할필요가있다. 바로인터넷을통한간접교류이다. 2005년에창립된 YouTube는동영상공유사이트이며, 2008년 1월에한국어서비스가시작되었다. 그리고이무렵북한에서도유튜브플랫폼을이용하여북한노래의화면음악과자랑할만한 (?) 공연영상, 그리고조선중앙TV의뉴스를공개하기시작하였다. 초기에는북한이동영상을업로드하고있다는것을남한학자들이인지하지못하였다. 그러나 2010년을전후하여파스텔색상의드레스를입고연주하는삼지연악단의여성연주자들의모습이담긴동영상이검색되면서소위입소문을타기시작하였다. 그리고삼지연악단과같은시기에창단된은하수관현악단의연주영상뿐만아니라 축포야회 와같은북한의공식행사동영상들, 그동영상에노출된북한인민의모습을별다른제한없이보게되었다. 이로인해북한음악에관심을가지고있던연구자와예술인들을중심으로북한음악을손쉽게감상할수있게되었다. 11) 서유상, 인터뷰북최고음악신동리진혁, 민족 21, 2005 년 10 호, 68-71 쪽. 12) 배인교, 북한, 음악, 그리고통합연구, 한국문화기술 ( 단국대학교한국문화기술연구소, 2018, 08) 25 호, 36-53 쪽. 13) 배인교, 북한, 음악, 그리고통합연구, 한국문화기술 ( 단국대학교한국문화기술연구소, 2018, 08) 25 호, 53 쪽. 97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북한악단에대한관심은 북한의걸그룹 이라칭한 모란봉악단 의시범공연으로폭발적으로증가하였으며, 이로인해북한음악형태와음색, 사운드, 퍼포먼스등을익히게되었다. 또한특정연주영상을보고연주기술에대해칭찬을하는모습도보였다. < 모란봉악단시범공연조회수 > < 연합뉴스 TV 북한의걸그룹모란봉악단 > < 은하수관현악단조회수와댓글 > 이외에기존의딱딱한북한소개프로그램이아닌예능프로그램으로 2011년 12월채널A의 < 이제만나러갑니다 > 와 2015년 9월부터방영한 TV조선의 < 모란봉클럽 > 등이방송되면서좀더부드럽게북한관련콘텐츠를접할수있게된점도간과해서는안될것이다. 물론이러한프로그램에서북한음악을대할때비난과조롱, 무시가기본이되는경우가많은것은사실이다. 98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그럼에도불구하고북한의 1호아나운서인리춘희아나운서의호전적이고단호한어투의말만접하였던남한사람들에게삼지연악단과은하수관현악단과같은음악단체의공연동영상은북한을재인식하고, 그들의음악을재평가하는계기가되었다고할수있다. 즉일반적으로다른문화의음악을접하는경우에서보이는것처럼북한음악콘텐츠에대하여처음에는서로비교 비하하다가접하는횟수가증가하면서또다른문화콘텐츠로인식하고결국다양성을받아들이는경로를취하고있다고할수있다. 4. 교류의재개 (2018 년 ) 2017년까지핵무력시위를벌였던북한의태도는 2018년평창동계올림픽을계기로급반전되었다. 그리고여지없이음악공연이있었다. 올림픽개막일하루전인 2월 8일강릉아트센터에서는삼지연관현악단의방남공연 ( 단장현송원, 지휘자장룡식 윤범주 ) 이있었으며, 2002년코엑스오디토리움에서있었던 8.15민족통일대회북측예술단초청공연이후 16년만이다. 그리고삼지현관현악단은 2월 11일서울의국립극장해오름극장에서두번째공연을가졌다. 삼지연관현악단의공연목록을정리하면다음과같다. 표 7. 평창동계올림픽 패럴림픽성공기원 < 삼지연관현악단특별공연 : 강릉 > 순서 편성 곡목 지휘 서주 8중창 반갑습니다 장룡식 1 8중창 흰눈아내려라 장룡식 2 녀성중창 평화의노래 : 비둘기야높이날아라 장룡식 3 경음악 내나라제일로좋아 4 녀성2중창 J에게 윤범주 5 녀성독창 여정 윤범주 6 가무 달려가자미래로 7 현악합주와녀성독창 새별 장룡식 8 관현악 친근한선율 : 아리랑, 검투사의입장, 모차르트교향곡 40번, 뛰르끼예행진곡, 아득히먼길 ( 러시아민요 ), 집시의노래, 검은눈동자, 또까따, 락엽, 가극극장의유령, 띠꼬띠꼬, 차르다쉬, 흑인영감조, 레드강골짜기, 백조의 장룡식 호수, 아이가태어났을때, 그대나를일으켜세우니, 스케트타는사람들의왈쯔, 라데쯔키행진곡, 카르멘서곡, 윌헬름텔서곡, 나의해님, 오랜우정푸니꿀라, 푸니꿀리, 빛나는조국 (25곡) 9 노래련곡 남자는배여자는항구, 리별, 당신은모르실거야, 사랑, 사랑의미로, 해뜰날, 다함께차차차, 어제내린비, 최진사댁셋째딸, 윤범주 홀로아리랑 (10곡) 10 녀성3중창 백두와한라는내조국 장룡식 11 종곡 우리민족끼리, 우리의소원은통일, 다시만납시다 장룡식 99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강릉공연과서울공연은소위수미쌍관 ( 首尾雙關 ) 을따라기획된공연이다. 서곡의 < 반갑습니다 > 와종곡의 < 다시만납시다 > 는물론이고두번째곡인 < 흰눈아내려라 > 는 < 우리의소원은통일 > 을도입부로두었고종곡에도 < 우리의소원은통일 > 을노래하는점에서그렇다. 또한 < 평화의노래 : 비둘기야높이날아라 >, < 내나라제일로좋아 > 는 < 백두와한라는내조국 > 과대응하며, 이어진남한노래도정확히자리를지키고있다. 그리고가운데에는북한노래와관현악을편성하는등의구성을취하고있음을볼수있다. 이에더하여평창동계올림픽당시한반도기의독도표시에대하여일본의강한반대에부딪혀경기장에서는독도가표기되지않은한반도기를사용하였는데비하여, 삼지연관현악단의무대배경에서는독도가표기된한반도기를사용하였다. 한편, 강릉의공연과는달리서울공연에서는 < 백두와한라는내조국 > 을현송월단장이인사와함께노래하였으며, 종곡은소녀시대서현이함께하였다. < 삼지연관현악단과한반도기 > 북한의삼지연관현악단공연은보도된것처럼만수대예술단삼지연악단을기본으로모란봉악단과청봉악단단원일부를조합한일종의 compilation 악단이라고할수있다. 장룡식은국립교향악단을비롯한여러단체에서지휘를할수있는최정상급지휘자이며, 윤범주는은하수관현악단소속지휘자였다. 그러나자막에지휘자장룡식은장룡석으로, 윤범주는윤법주로되어있어우리는여전히북한에대해잘알지못하고있다고하겠다. < 강릉공연영상중출연자소개자막 > 2월의방남공연에이어 4월에는 <2018 남북평화협력기원평양공연봄이온다 > 가 4월 1일과 5 일에각각동평양대극장과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있었다. 알려진바와같이 4월 1일은남한측의단독공연이었고 5일은남북한합동공연이었다. 방북공연의총감독은가수윤상이맡았다. 100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순서동평양대극장류경정주영체육관 1 석예빈외 집으로돌아가는길에 석예빈외 집으로돌아가는길에 2 정인 오르막길 정인 오르막길 3 알리 펑펑 알리 펑펑 4 정인, 알리 동그라미 정인, 알리김옥주, 송영 동그라미 5 백지영 총맞은것처럼잊지말아요 서현 푸른버드나무 6 강산에 라구요명태 레드벨벳 빨간맛 7 YB 남자는배여자는항구나는나비, 1178 8 레드벨벳빨간맛 Bad Boy 9 최진희 사랑의미로뒤늦은후회 J에게 10 이선희 알고싶어요 아름다운강산 그겨울의찻집 11 조용필 꿈, 단발머리 여행을떠나요 강산에 최진희 백지영 이선희, 김옥주이선희 12 서현푸른버드나무삼지연관현악단 13 합창 14 표 8. <2018 남북평화협력기원평양공연봄이온다 > 공연목록 친구여, 다시만납시다, 우리의소원은통일 YB 조용필 삼지연관현악단과백지영, 이선희, 정인, 알리 라구요넌할수있어사랑의미로뒤늦은후회총맞은것처럼잊지말아요 J 에게아름다운강산 남자는배여자는항구 1178 계몽기가요련곡찔레꽃, 눈물젖은두만강, 아리랑고개, 작별, 락화류수, 동무생각 친구여모나리자 백두와한나는내조국우리민족끼리우리의소원은통일다시만납시다 두차례의공연구성을보면, 2000년대초반에방북공연에참가하였던가수들과함께북한에서볼수없는허스키보이스를가지고있는여가수인정인, 알리, 백지영, 그리고걸그룹레드벨벳, 실향민부모를둔가수강산에가참여하였다. 그리고 2월공연에서잠깐출연하였던서현이사회자로참여하여북한노래 < 푸른버드나무 > 를불러환호를받았다. 그리고 9월에있은제2차남북정상회담에는알리, 에일리, 래퍼지코가동행하였다. 남한의공연은주로북한인민들에게자본주의세계의음악문화를전파하려는의도를강하게내비친것으로읽히며, 목소리나몸짓, 노래의내용등자유롭게음악성을발휘하는모습을보여주려한것으로보인다. 이번공연에대한북한관객의호응은 2000년대초반에비해서는많았으나여전히낯설어하는모습이역력하였다. 101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이선희 <J 에게 > 관객반응 레드벨벳 < 빨간맛 > 관객반응 Ⅲ. 남북음악교류의전망과지향 1985년부터있었던남과북의음악교류는햇수로는 30년을넘었으나중간에 10여년씩의공백기를가지면서매번다시처음으로되돌아갔다. 1985년남한에서공연된목록을보면과연그시기에이내용을알고허가했을까싶은곡목들도있었다. 또한 1985년공연에서그들의음악작업에대한토론이아닌적개심만가득한공연평, 예를들어 30, 40년대악극, 신파조, 대중가요적발성, 원색과스팡크 ( 빤짝이 ) 등을남용한의상등에서보이는미감이예술적이지못하고유치하다 은 2012년모란봉악단공연에대한남쪽언론사의논조에그대로적용되었다. 즉모란봉악단의음악형태와공연구성, 그들의음악적성과등에대한논의가아닌 반짝거리는민소매미니스커트와킬힐을착용한여성연주자 라는꼬리표를달아놓은것이그렇다. 그리고이러한북한공연주체에대한힐난은체제비판으로이어졌다. 그러나적대감만있었던것은아니었다. 교류가있은이후부터현재까지남북의음악인들은상대국의음악을연구해왔다. 그간남북의음악교류가어려웠던것은북한노래의사회주의이념성도한몫을하였다. 북한은체제유지와선전을위해음악을효과적으로사용하고있기에남북음악교류의 5대원칙에위배되지않는음악은찾아볼수없다. 이러한이유로남한에서북한노래를듣거나부를때국가보안법에서자유롭지못하다. 북한역시자본주의적퇴폐성을여전히강력하게반대하고있기때문에자본주의적이념성을표현한남한노래가허용되기어렵다. 10년전남북음악교류가활발했을시기의교류에대한성과를논하는글에서민간행사의정례화와남북교류의제도화가정착되었으며, 사회문화교류가남북의정치적긴장관례를완화시켰다고평가하였다. 또한남북교류협력의제도화에대한기틀이마련되고, 쌍방향교류를통한남북통합과사회통합을준비하는것을볼수있다 14) 고하였다. 그러나한계와문제점도발생하 102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였다. 남북의정치상황에음악교류가종속된점이나남한내강한반북성향, 북측의경직된태도, 남측의사회문화교류가대중적으로확산되지못한점, 교류가 1회성의보여주기식이어서성과축적이어려우며, 국가보안법의위험이노출되어있다는점을한계로들면서다음의문제점을제시하였다. 교류에참여하는사람이대표성에대한자각이부족하고, 민간중심의교류가중심이되지못하며, 교류에참여한특정단체나인물사이의네트워크가단편적인수준에머물러있어이것이국제교류의형태로나아가지못한점 15) 을들었다. 이러한한계와문제점은 2007-2008년뿐만아니라 2000년대초반남북음악교류가재개된시기에출판된글 16) 에서도확인할수있다. 그렇다면 10년만에재개된남북음악교류를위해어떠한입장과행동을해야할것인가를고려하여야한다. 또한 문제는그동안간헐적으로, 1회성행사로그치고말았던남북의예술교류를지속적으로그리고장단기목표설정아래진행시키는일이다. 지금까지는남북이만나는것자체가중요했고또그것만으로도충분히사건이될수있었지만앞으로는그것으로부족하다. 왜만나는지어떻게만나는지를생각하면서만나야한다. 이제그럴시점이되었다 17) 는 18년전이건용의말처럼리셋된지금의상황은또다시이것을요구하고있는것이다. 여전히남북한음악교류가갖는가장큰의미는남북한문화동질성의확인및상대방에대한이해의촉진이라고할수있다. 다행히음악은문화적감수성을오감중가장큰영향력을발휘하는시간과청각으로직접자극한다는점에서다른문화에대한이미지제고에큰기여를한다. 남북관계가좀더친밀해지면해질수록음악을비롯한문화예술교류는더불어활발해질것이다. 이를위해서는상대방을이기려는의식, 자문화우월주의에서벗어나서로를이해하고협력하겠다는입장을견지할필요가있다. 음악을접하는것이처음에는어색해하며비난하다가상대방의음악을존중하는일말의계기를마련했듯이북한은좀더글로벌한문화소통을위해적극적으로노력할필요가있다. 형체가없는음악은차단하고가두어놓을수없는속성을가지고있기때문이다. 그리고남북한에모두있는국가보안법성격의법률에대한폐지가필요하다. 기본적으로문화는수용자의입장에서볼때발달한콘텐츠가덜발달된곳으로흐르게마련이다. 국보법이존재한다는것은북한체제가우월하다는인식의발로가아닌가한다. 북한의경우도단계적으로글로벌한문화안으로들어올필요가있다. 분단이후자체적으로발전시시켜온북한음악의독특함을 2012년은하수관현악단의프랑스파리연주로각인시켰기때문이다. 다음으로신뢰를기반으로하면서장기적교류를위한프로세스를마련할필요가있다. 이를 14) 이우영 천현식, 남북사회문화교류 10 년의회고와전망, 국제고려학회서울지회 2008 년학술대회 : 지난 10 년대북정책 교류의회고와평가, ( 국제고려학회서울지회, 2008.06.), 71 쪽. 15) 이우영 천현식, 남북사회문화교류 10 년의회고와전망, 국제고려학회서울지회 2008 년학술대회 : 지난 10 년대북정책 교류의회고와평가, ( 국제고려학회서울지회, 2008.06.), 73 쪽. 16) 양정훈 강석승, 남북한의사회문화교류증대방안연구, 남북문화예술연구 ( 남북문화예술연구회, 2007) 창간호. 181-199 쪽.; 노동은, 남북문학예술의교류 - 음악, 실천문학 ( 실천문학사, 2000), 60 호, 309-312 쪽.; 노동은, 남북공연분야의교류와현황, 민족발전연구 ( 중앙대학교민족발전연구원, 2002) 7 호, 63-73 쪽.; 민경찬, 남북한음악교류의현황과미래, 한국전통음악학 ( 한국전통음악학회, 2000), 창간호, 329-339 쪽.; 김수길 황병기, 남북음악교류의방향, 현대이념연구 ( 군산대학교현대이념연구소, 2000) 15 집, 99-106 쪽.; 이건용, 문화예술현상읽기 / 남북음악교류, 양쪽음악이살기위해스스로필요한일, 월간문화예술 ( 한국문화예술진흥원발행, 2000 년 ) 8 호.; 노동은, 남북한음악교류의역사와전망, 음악학 ( 한국음악학학회, 2002) 9 집, 313-323 쪽. 17) 이건용, 문화예술현상읽기 / 남북음악교류, 양쪽음악이살기위해스스로필요한일, 월간문화예술 ( 한국문화예술진흥원발행, 2000 년 ) 8 호. 103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위해양악및서양음악, 전통음악 ( 민족음악 ), 대중음악장르를아우를수있는남북한음악교류를위한사회단체를설립할필요가있다. 이를매개로남북한작품의교류, 연구성과의교류, 그리고연구자료의교류가있어야한다. 또한장기체류프로그램을두어학생및음악교육자, 음악인교육이요구된다. 이러한과정에서축적된자료는한민족음악문화자료관과같은아카이빙센터를마련할기초자료가될것이다. 이와함께 2000년대교류의방식이한계가있기는하나다양한형태의교류음악회가필요하다. 양악, 전통음악, 대중음악분야의교류가있어야한다. 양악의경우남한에도잘알려진해외콩쿨우승자들을대상으로한합동음악회가있을수있으며, 북한식관현악곡과남한의창작곡교류등이필요하다. 국립국악원을중심으로 2013년부터북한음악연구를지속해온전통음악의경우는다른국악관현악단체와함께북한의국립민족예술단과의교류음악회가필요하다. 이러한음악교류는상대방에대한존중을기본으로하며, 지속적인관계를맺기위해꼭필요한절차이기때문이다. ( 참고문헌은각주로대신합니다 ) 104

남북미술교류의현황과과제 홍지석 ( 단국대학교 )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남북미술교류의현황과과제 홍지석 ( 단국대학교 ) 1. 들어가면서 함경아의 2015년작품 <What you see is the unseen 당신이보는것은보이지않는것이다 > 는작가자신의말에따르면북한의자수공예가들이완성한작품이다. 작가는자신이여기저기서수집한이미지와텍스트들로도안을제작해중간자를통해북한으로보냈고북한공예가들이그도안을자수로구현했다는것이다. 그런데 2015년남한사회의현실에서이러한작업은어떻게가능했을까? 작가는작품제작의구체적인절차, 경로는밝히지않았다. 다만 간혹불가항력적인이유로작품이압류되거나실종된적이있다 는것만밝힐수있다는것이다. 작품속에는문구 ( 이를테면 Are you lonely?, Imagine!) 가숨겨져있다. 이것들은냉전시대삐라를예술적메시지로변용한것이다. 이정보들을종합하면함경아는작가적실천을통해보이지않는것-북한, 북한인민들, 북한의공예가들-을드러내고있다. 주목할점은우리 ( 관객 ) 뿐만아니라작가자신도그것을보지못한다는점이다. 그것은유령과같은것인까닭이다. 유령은보이지않지만우리곁에머물며때때로출몰하여우리를위협한다. 마치북한처럼말이다. 그보이지않는유령의흔적을잡아내는 ( 떠내는 ) 일이야말로함경아의근작들의과제다. <What you see is the unseen 당신이보는것은보이지않는것이다 > 을선보인전시회제목은 < 유령발자국 > 이었다. 1) 그작업행위의사실성, 진실성을가늠할수없다는점에서함경아의해당작품은일종의유사허구 (para-fiction) 2) 에해당한다. 이작품은오늘날남한의신세대예술가들에게북한과북한의미술이여전히 유령 과같은것임을일러주는사례다. 북한의미술, 그들은스스로어떤미술을만들어오고있는가, 그리고그들이미술이라고말하는카테고리는우리의미술과얼마나다르고또같은가? 라는물음에대해현재의남한미술계는다만 불완전한답변 3) 을내릴수있을따름이다. 이런현상은 1990년대초반부터적어도 10여년간남북미술교류가꽤왕성하게진행됐다는사실을감안하면놀라운일이아닐수없다. 교류의시대 이후꽤오랫동안지속된남북미술교류의단절을염두에두더라도말이다. 이글은지난교류의시대를되돌아보면서남북미술교류의현황과과제를검토해보는것을목적으로한다. 이글은흔히교류의성과로언급되는것들을비판적으로되돌아보면서멀지않은장래에재개될교류의과제와전망 4) 을장정적으로나마그려보려는시도이다. 1) 홍지석, 함경아 Phantom Footsteps, 월간미술 2015 년 7 월호, 46 쪽. 2) Carrie Lambert-Beatty, Make-Believe: Parafiction and Plausibility, October 129, summer, 2009, pp.51~53. 3) 여경환, 기획의글, 광복 70 주년기념전북한프로젝트, 서울시립미술관, 2015, 10~13 쪽. 4) 이글에서필자가그려보고자하는것은남북미술교류의구체적인실천대안을제시하는것보다는그실천의방법적태도와입장에가깝다. 실천대안에대해서는윤범모가 2000 년에발표한 남북미술교류의활성화방안 을참조, 이글에서윤범모는남북미술교류를활성화할제도적대안으로 1) 남북전문가의본격적상호실시, 2) 공동기획전추진, 3) 공동출판추진, 4) 국제전의공동참여, 5) 남북합작미술품판매회사의설립등을제시했다. 이대안을실현시키기위한필요조건으로서그는남북이념대립의해소를강조했다. 윤범모, 남북미술교류의활성화방안, 현대미술학논문집, 제 4 집, 현대미술학회, 2000, 228~230 쪽, 107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2. 북한미술전시회 1992년 5월예술의전당미술관에서동아일보사주최로 < 그리운산하 > 展 (1992년 5월 23일 ~6월 4 일 ) 이열렸다. < 그리운산하 > 展은분단이후남한에서열린최초의본격적인북한미술전시회였다. 5) 전시는당국의공식적인승인에의해처음으로반입된북한미술품의대중공개였다. 6) 하지만제목인 그리운산하 에서드러나듯전시는미술작품자체보다는미술작품이재현한대상, 곧북녘산하 ( 의이미지 ) 를관객들에게보여주는데초점을두고있었다. 1992년남북합의서채택으로 분단 46년동안머릿속으로만그리던북녘의아름다운산하를밟아본다는것이이제꿈만은아니게 7) 되었으나남한사람들에게북녘의아름다운산하를밟아보는일이현실적으로불가능했던시점에서열린 < 그리운산하 > 展은가상또는환영의형태로나마꿈을실현시켜주는매체로서기능했다. 실제로 황수령기슭, 온포의봄, 심해포구, 다림천, 묘향산의봄 등전시작품들은대부분북녘산하를소재로하고있었고전시회에는 그리운고향산천을 그림을통해서나마 확인하려는실향민들의발길이줄을이었다 8) < 그리운산하 > 展을취재한기자가인터뷰한평북의주출신의한실향민은 < 수풍호반 > 이라는그림을보고 예전에내가보던수풍댐주변의풍경과크게다르지않다 면서향수에젖기도했다. 9) 그런가하면 1997년광주비엔날레와연계하여열린북한미술전시를둘러본일반인신계우氏는 일제시대함경북도탄광으로끌려갈때지나쳤던금강산을사진으로다시보니그날의기억이되살아나는듯하다 10) 고토로하기도했다. 이렇듯 < 그리운산하 > 展이취한접근법, 즉북한그림을보여주되실제로는북한그림을보여주지않는-즉그림이아니라그림이재현하는풍경을보여주는- 접근법은이후열린북한미술전시회다수가따른가장일반적인접근법이됐다. < 조국의산하 > 展 ( 일민미술관, 1994년 11월 9일 ~11월 19 일 ), < 그리운북녘산하 > 展 ( 경인미술관, 1995년 7월 23일 ~8월 7일 ), < 가고싶은산하, 오늘의북한미술 > 展 ( 한국산업은행여의도본점, 1995년 8월 10일 ~11월 7일 ), < 조국산하의사계절-남북한공동사진전 >( 예술의전당미술관, 1998년 5월 29일 ~6월 11일 ), < 북녘그리운산하 > 展 ( 현대백화점아트갤러리 1998년 6월 19일 ~6월 21일 ), < 북한저명화가금강산그림 > 展 ( 현대아트갤러리 1998년 12월 21 일 ~12월 29일 ) 등그사례는아주많은편이다. 11) 이전시들은예외없이 보고싶은북녘산하그림으로라도! 를전시의목적으로내세웠고설령전시제목에서그런목적을노골적으로내세우지않았던전시들도 북녘산하구경 을전면에내세우는전시구성과홍보방식을취했다. 12) 1990년대남한에서열린북한미술전시회가이렇듯풍경화에재현된 북녘산하 를전면에내세웠 5) 물론그이전에도북한미술을다룬전시회가열렸다. < 북한의옛서화민예전 >( 조선일보미술관, 1988 년 8 월 8 일 ~8 월 21 일 ), < 북한우표특별전 >( 롯데백화점, 1990 년 9 월 12 일 ~9 월 17 일 ), < 한민족사진전 >( 세종문화회관, 1990 년 9 월 11 일 ~9 월 17 일 ), < 해금작가 10 인전 >( 신세계미술관, 1990 년 7 월 31 일 ~8 월 16 일 ), < 제 1 회세계수채화대전 >( 부산문화회관, 1991 년 8 월 19 일 ~8 월 30 일 ) 등여러전시에서북한미술을다뤘다. 하지만이전시회들이비교적소극적으로북한미술을다뤘던반면 < 그리운산하 > 展은북한미술가들이제작한조선화, 유화, 조각, 도자작품 150 여점을전시한최초의본격적인북한미술전이었다. 주최측 ( 동아일보사 ) 역시이전시를 분단이후최초로열리는북한미술전 으로홍보했다. 정철수기자, 북한현대미술첫서울나들이, 경향신문 1992 년 5 월 12 일. 6) 윤범모, 남북문화예술교류 - 미술편, 실천문학 2000 년 11 월호, 302 쪽. 7) 달려오는북한산하 그리운명소들, 경향신문 1992 년 1 월 1 일. 8) 홍은택, 그림으로본고향산하 - 첫북한미술전, 실향민발길줄이어, 동아일보 1992 년 5 월 28 일. 9) 홍은택, 앞의글. 10) 북한미술전인기, 매일경제 1997 년 9 월 3 일. 11) 전시목록은미술잡지 아트 Art 2000 년 5 월호, 100 쪽참조, 12) 일례로 1997 년 7 월일민미술관에서열린 < 북한원로작가 > 展을소개한 동아일보 1997 년 7 월 21 일기사제목은 보고픈북녘산하그림으로라도 였다. 108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던이유는무엇보다그들이그것을 순수하다 고믿었기때문이었다. 즉전시된작품들은대개 정치성이개입되지않은순수미술품 13), 사상성, 이념성이배제된순수조형작품 14) 으로홍보됐다. 물론그것이무작정순수한것일수는없다. 북한미술비평가들은 자연을위한자연을그린풍경화에는아무런예술적가치가없다 고하면서풍경화를그릴때는 사람들의사상의식발전과사회적발전에이바지되게그려야 15) 한다고충고한다. 풍경화작품들을보면서는아름다운조국강산에서행복을누리는삶의희열과자부심, 조국산천을개조변혁해나가는창조자의긍지와보람을느껴야한다 16) 는것이북한미술가들의일반적입장이다. 김정일의주장에따르면미술가는풍경화에서 자연에서얻은시적격정을뿜어올리되그정서적줄기가화면안에서는굵직하고단순하게느껴지게하고작품을보는사람들로하여금그줄기에잇닿아진여러갈래의아지를내다볼수있게형상 17) 해야한다. 그런데 1990년대북한미술전시회를방문한관람객들은무엇을보았을까? 전시주최자들이권고한 그리운북녘山河 와북한미술가들이 ( 관객들이 ) 내다볼수있게형상화하고자했던 여러갈래의아지들 사이에서당대의관객들은대부분 그리운북녘산하 만을배타적으로주목하는안전한방식을택했다. 또는거기서최소한의동일성을확인하는데머물렀다. 막연히편협하고경직돼있을것으로만알았던북한사람들의정서가우리와크게다르지않다는것을느꼈다 18) 는식이다. 현실을중시하면서도그에머무르지않고더높은세계로도약하려는기상이느껴졌다 19) 는대담한감상을내놓는이도없지않았으나대부분은 그리운북녘산하 이외의것을보지못했거나보려하지않았다. 그들이보아야할것, 또는보도록허용된것만을보았다고도말할수도있다. 설령자신의눈에그이상의것이보이더라도그들은그것을부정했다. 예컨대 < 그리운산하 > 展을관람한미술소장가조규대氏는전시작품들에서 예술성보다는손재주가능하다는느낌을받았다 면서 인위적으로풍경을조작한흔적도엿보인다 20) 고꼬집어야했다. 현재의지평에서남북미술교류를지향하는미술인들은 1990년대북한미술전시회의사례에서어떤교훈을얻을수있을까? 분명한것은과거 1990년대에통용된 보고싶은북녘산하그림으로라도! 라는식의접근이지금현실적으로더이상유의미하지않다는점을인정해야한다는점이다. 유튜브와구글, 텔레비전을통해생동감넘치는동영상으로북한풍경을접할수있는시대에미술작품에재현된북한자연풍경 ( 의이미지 ) 을바라보는일은그자체로는사람들에게큰감흥을불러일으키지못할수밖에없다. 1990년대이후이른바 포스트- 담론의유행속에서소위 순수미술 이나 예술의순수성 을추구하는이념이급격히퇴조하여지금남한미술계에서별다른영향력을행사하지못하고있다는점도고려해야한다. 그렇다면오히려풍경화의 순수성 에대한기대를접고오히려거기내포된정치성, 사상성, 이념성을부각시키는방식이적절할지모른다. 이경우 인위적으로풍경을조작한흔적 은꼬집을것이아니라적극부각시켜야할요소로부각될것이다. 즉사람들로하여금미술가가작품에서재현한대상-풍경이아니라그대상을재현한방식, 또는형식에주목하게끔하는전시를추구할필요가있다. 풍경화에서다뤄지는나무나땅은동물보다훨씬덜친숙한것이기때문에 예술에자의성이증가한다 21) 고했던폴발레리 (Paul Valéry) 나근대적풍경화가 외부세계의소원화 ( 疏遠化 ), 다른 13) 북한순수미술한눈에, 한겨레신문 1995 년 8 월 8 일 14) 북녘의순수회화세계한눈에, 경향신문 1995 년 8 월 8 일 15) 리기도, 조선사회과학학술집 85 철학편 : 주체의미학, 사회과학출판사, 2010. 107 쪽. 16) 한성철, 서화작품의정서성, 조선예술 2003 년 5 호, 61 쪽. 17) 김정일, 김정일미술론, 조선로동당출판사, 1992. 71~73 쪽. 18) 홍은택, 그림으로본고향산하 - 첫북한미술전, 실향민발길줄이어, 동아일보 1992 년 5 월 28 일 19) 앞의글. 20) 위의글. 21) 폴발레리, 김현역, 드가 춤 데생, 열화당, 2005, 113 쪽. 109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말로하면극도의내면화를통해 22) 발견된것이라고주장한가라타니고진 ( 柄谷行人 ) 에따르면풍경화는본질적으로주관적이며따라서이념적, 정치적인것이다. 이런관점에서보면풍경화에서확인가능한 인위적으로풍경을조작한흔적 은나무랄것이아니라풍경화를그린예술가, 더나아가그풍경화를가능케한 ( 생산한 ) 사회체제의자연에대한해석을헤아릴단서로서주목의대상으로삼을필요가있다. 그렇다면장래에북한의풍경화를다룰전시는과거와마찬가지로 북녘의산하 를보여주는데집중할것이아니라북한예술가들이자연을주관화하는방식, 북한인민들이자연을대하는미적태도, 그리고북한에서 실재 가해석되는방식을드러내는식으로방향을전환함으로써새로운효과를창출할수있다. 자연을대하는관점과태도의차이를드러내고확인할수있을때양자간차이와간극을좁히는일도가능하다고보기때문이다. 2018년판문점에서열린남북정상회담에서화제가된민정기의풍경화를예시로삼을수있다. 화가는북한산을그렸으나그것을투명하게재현하지않고불투명하게재현했다. 따라서이작품앞에선두정상은거기그려진자연대상 ( 북한산 ) 을문제삼기보다는그림자체 ( 기법 ) 를문제삼아야했다. 작품앞에서김정은이이렇게물었다. 이것은어떤기법으로그린것입니까 그에대한대답은다음과같다. 서양화인데, 우리동양적기법으로그린것입니다 23) 물론우리는풍경화가주관적인장르지만동시에객관적인장르일수밖에없다는점을기억해야한다. 북한산을그린그림은눈앞에있는북한산을결코무시할수없는것이다. 그런까닭에풍경화는주관과객관이쟁투를벌이는예술의장 ( 場 ) 으로이해할수있다. 이런사실을감안하면풍경화를매개로한미술가들의인적교류를통해주관 / 객관의상호작용을도모할수있다특히우리의주목을끄는것은 1999년 4월남한미술가 15명의금강산방문이다. 그것은동아일보와일민미술관이주최한 < 다시찾는금강산 > 展을위한일종의창작여행이었다. 평양태생의월남화가인황용엽은여행에참여하면서 금강산경치도경치지만이산가족으로서갖는느낌도담아볼것이다 라고다짐했고한국화가김호득은 금강산현장에서스케치를하는것자체가일종의행위예술이라고본다 라고말했다. 24) 당시창작여행에참여한미술가다수는금강산을재현하는자신의행위나그결과물을조선시대진경산수화가들과그들의작품에견주는식으로북한에속한자연풍경을방문, 재현하는데뒤따르는이념적문제를회피하는태도를취했지만그러한재현행위자체를문제삼은작가도있었다. 당시여행에참여한육근병은장전항에정박해있던봉래호갑판에서퍼포먼스를진행했다. 그는종이를둘둘말아종이망원경을만든후그망원경에눈을대고뜨거운시선으로금강산을바라보다그망원경에불을질렀다. 그는이작업을이렇게설명했다. 눈에서불똥이튄다는의미죠. 너무나아름다운금강산경치를보고눈에서불꽃이일었습니다. 또그아름다운경치를보고도마음놓고갈수없는현실에다시한번눈에불이나더군요. 그리고눈물이흘렀습니다. 이같은상황을재현해본것이지요 25) 1999년 4월의금강산창작여행의선례를염두에두면남북한미술의인적교류는남북상호간의협의하에미술가들의현장방문을최대한고무, 촉진하는데주완점을둘필요가있다. 저편 의자연과도시, 인간의풍경을형상, 재현하고그형상, 재현행위자체를문제삼는과정을통해 이편 의형상과재현의관점 ( 과태도 ) 을재고할기회를마련할수있기때문이다. 과거북한과중국미술교류의주요프로그램가운데하나가현지방문이었다는점을새삼상기할필요가있다. 일례로 2004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56돌기념미술전람회 를위해중국을방문한북한미술전시회대표단은베이징고궁, 베이징왕부정거리, 베이징중앙미술학원, 상해미 22) 가라타니고진, 박유하역, 일본근대문학의기원, 민음사, 1997, 41 쪽. 23) 이한빛기자, 김위원장 작가가누굽니까 대신 어떻게그렸습니까 물은까닭, 헤럴드경제 2018 년 4 월 30 일. 24) 금강산창작여행 - 진경산수화정신되살린다, 동아일보 1999 년 4 월 13 일 25) 산봉우리마다절경, 눈에불똥이튀네요 - 설치작가육근병퍼포먼스, 동아일보 1999 년 4 월 27 일 110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술관, 상해미술관, 상해 TV 방송탑등을참관했다. 26) 3. 미술시장 < 그리운산하 > 展 (1992) 을앞에서다룬것과다른층위에서검토해보기로하자. 널리알려져있다시피 < 그리운산하 > 展은전문가들의치밀한사전계획및절차에따라진행된것이아니었다. 그것은 두성통산이무역형태로국내에반입한북한미술을일반에공개한 27) 전시였던것이다. 전시에관여한윤범모에따르면무역회사가이른바구상무역으로현찰대신미술품을받아온것이 얼떨결에처음으로공식반입된북한미술품이된 28) 것이 < 그리운산하 > 展전이었다. 이전시는분명분단이후최초로열린북한미술전으로서각별한의의를갖지만또한동시에윤범모의표현을빌자면 희한한첫출발 로서여기에전시된작품들은미술인에의해체계적으로반입된것이아니라 비전문가에의해상품처럼갑자기무차별투하된 것이었다. 29) 이전시는이후의 비전문가들에의한상업적이벤트의성격이강한전시 또는 미술에대한기초적인소양조차없는일반업자들에의한체계없는북한미술작품의반입 30) 의최초사례이자모델이되었다. 1990년대초부터반입되기시작한북한미술작품들은이후기하급수적으로늘어나미술계의골칫거리가됐다. 1997년 8월 1일 한겨레신문 기사는 1991년부터 1997년까지공식허가를받고반입된북한미술품은조선화, 유화, 금속, 보속공예품, 수예품등을통틀어무려 80만점이고비공식반입품까지합치면국내북한미술품숫자는 100만점이웃돌것이라고전하고있다. 기사에따르면북한미술품반입은중국연변의조선족이나화교를통한간접거래로이뤄지고있으며 국내에서는인사동과장안평골동품상가의중개업자 ( 브로커 ) 들이무역상과함께지하유통망을형성하고 31) 있다. 이렇게반입된미술품들이북한미술에대한 낯섦 과 이질감 을해소하는데기여한것은사실이었겠으나문제는그대다수가미술에대한소양이부족한비전문가들이상업적목적으로반입한작품들이라는점에있었다. 1997년신문기자와의인터뷰에서이구열은국내에들어온북한그림들은상품차원을벗어나지못한다고평가하면서그것을북한미술을대표하는작품으로볼수없다고주장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일부상인들에의해질낮은태작들만반입되면서 북한미술 = 저질 이란편견이확산되고있어큰일 32) 이라는것이그의판단이었다. 그는이런상황을개선하기위한대안으로 남북당국간의공식적인전시교류의활성화 를제시하면서미술협회나북한조선미술가동맹등공신력있는미술단체들이공동기획아래순회전을갖는것이필요하다 고주장했다. 궁극적으로 남한미술이평양에서소개되고북한주요미술관에소장된명작들이서울에서제대로소개되어야만진정한의미의남북미술의이해가가능할것 33) 이라는것이그의주장이었으나이러한요구는현실에서실현되지못했다. 전문가차원의전문가가참여한정통미술전 이부재한상황에서 무분별한전시및판매 에몰두하는업자들의상행위가 34) 남북미술교류를얼룩지게했던것이다. 26) 박영정, 조현성편, 북한문화예술총서 1: 북한대외문화교류자료집,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16, 65 쪽. 27) 정철수기자, 북한현대미술첫서울나들이, 경향신문 1992 년 5 월 12 일. 28) 윤범모, 남북문화예술교류 - 미술편, 실천문학 2000 년 11 월호, 302 쪽. 29) 앞의글, 302~303 쪽. 30) 윤범모, 남북미술교류의활성화방안, 현대미술학논문집, 제 4 집, 현대미술학회, 2000, 216 쪽, 31) 노형석기자, 북에서왔시요 - 식량난여파밀려오는북한미술품, 한겨레신문 1997 년 8 월 1 일. 32) 노형석기자, 북한미술전문가이구열씨, 수준미달그림들만마구들어와큰일, 한겨레신문 1997 년 8 월 1 일. 33) 앞의글. 34) 윤범모, 남북미술교류의활성화방안, 현대미술학논문집, 제 4 집, 현대미술학회, 2000, 216 쪽, 111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1990년대이후북한미술전시회는대부분특정화상, 또는컬렉터의수집품을기반으로진행됐다. 이를테면 1995년광주비엔날레의북한미술전은 1993년 8월부터북한미술의국내소개를추진한홍콩거주재미교포원호영의소장품을다룬 35) 전시였는데이전시를포함해이후유사한접근법을취해광주비엔날레가몇차례진행한북한미술전시는 전시공학은커녕출품작까지수준미달 36) 이라는평가를받았다. 이렇듯전문지식을갖춘미술사가나미술비평가, 미술관큐레이터의기획이아닌화상과컬렉터의수집품에절대적으로의존하는전시는사회문화적으로유의미한전시가되기어렵다. 더나아가자칫컬렉션의상업적가치를끌어올리는수단으로전락하기쉽다. 그런데 2018년현재의시점에서북한미술전시를둘러싼상황은크게달라지지않았다. 그런의미에서 2015년서울시립미술관에서광복 70주년을기념하여열린 < 북한프로젝트 > 展 (2015년 7월 21 일 ~2015년 9월 29일 ) 은유의미한실험으로주목할수있다. 이전시는세가지섹션으로구성됐는데첫번째섹션은 한국의미술가들은북한에대해서무엇을상상하는가 를주제로두번째섹션은 우리가아닌외부의시각은어떻게북한을바라보는가를주제로그리고세번째섹션은 북한의미술, 그들은스스로어떤미술을만들어오고있는가 를주제로삼았다. 이가운데세번째섹션의구성은 국내외컬렉터들이소장한북한컬렉션중에서전시가능성들을찾는 것으로시작했다. 37) 미술관학예사는전시가능한조건의해외컬렉터들가운데 세계최대규모의북한포스터컬렉션을보유한네덜란드인빔반데어비즐씨의컬렉션일부와그를통해유화컬렉션을수집한로날드드그로엔씨의유화컬렉션의일부 ( 중략 ) 북한이발행한공식적인우표 5000여점중 4000여점이상을수집한국내컬렉터신동현씨의컬렉션일부 를기반으로전시공간을채웠다. < 북한프로젝트 > 展은이렇듯북한미술작품들을미술관내에서유의미한사회, 문화적문맥속에 ( 재 ) 배치하려는실험으로서의미를지니지만그핵심에해당하는북한미술작품들의선택에있어 관광을통해서든북한당국의허가를통해서든북한에직접들어갈수있기때문에작품수집과교류에우리보다유리한위치에있는 38) 몇몇외국컬렉터들의수집품이라는한정된풀에의존했다는점에서뚜렷한한계를지니고있었다. 4. 미술담론들 미술작품의상업적거래가남북미술교류의가장중요한축가운데하나가될수있다는것은분명한사실이다. 북한체제가미술작품의상업적가치를잘알고있으며 39) 그때문에미술작품의거래는핵문제해결에뒤따를대북제재해제이후남북미술교류의중요한통로가될수있다. 하지만상업적가치보다중요한것은여전히예술적가치이다. 그런까닭에 1997년 남북당국간의공식적인전시교류의활성화 를요구했던이구열의요구는현재시점에서도여전히각별한의의를갖는다 35) 김권, 전시품총 403 억원, 보험가입북한미술작품 140 점선보여, 동아일보 1995 년 9 월 21 일. 36) 윤범모, 위의글, 219 쪽. 37) 여경환, 기획의글, 광복 70 주년기념전북한프로젝트, 서울시립미술관, 2015, 10~13 쪽. 38) 앞의글, 11 쪽. 39) 박영정에따르면북한의만수대창작사는해외사업을전담하는자회사를운영하고있으며해외에미술관도유지하고있다. 북한은아프리카여러나라에대형동상이나조형물을수출하고있는데, 그일을담당하는곳이바로만수대창작사의자회사인 만수대해외개발회사그룹 (MOP) 이다. 나미비아, 짐바브웨, 세네갈등 10 여개국가에동상이나조형물을판매또는건립했고그대가로수억달러에이르는매출을올린것으로알려져있다. 조형물가운데대표적인것은세네갈다카르에세워진아프리카르네상스기념비로 2010 년 4 월건립이후관광명소로활용되고있다. 박영정, 이동훈, 북한미술, 진품증명위해인증샷도, 통일한국 2017 년 9 월호. 32 쪽. 112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고말할수있다. 남북당국간의협조하에남한사람들이미술관차원의공공전시를통해조선미술박물관등에소장된주요북한미술작품을진면목을확인하고그예술적가치의의미를헤아릴수있을때우리는북한미술작품의예술적, 인간적의미와의의를논할수있다. 이러한과정을거쳐야만종래의 북녘산하展 또는 북한미술展 을뛰어넘는유의미한예술프로젝트들도기획, 추진될수있다. 마찬가지이유에서북한체제를대표하는미술작품들의전시, 소개는남한미술시장에서북한미술작품의가치를정당하게평가하는판단의기준을제시하는일이될수있다. 이와더불어북한미술작품의거래활성화를위해서는몇가지해결해야할문제들이존재한다. 첫째는북한미술작품들의진위와관련된문제들을어떻게이해할것인가의문제다. 박영정에따르면북한에서는좋은그림을보다많은관객에게보여준다는의미에서자기복제를통한모사품보급이관행으로이루어지고있다. 또한북한미술작품들의주제나형식은당정책과노선을따른것이기에독창성을언급하기어려운상황이다. 북한에는기본적으로미술시장이존재하지않기때문에작품의원본성, 진품성을중시하는자본시장의논리가쉽사리적용되기어렵다는문제도있다. 40) 이러한문제가발생하는것은원칙적으로북한미술이사적소유와자유시장 (free market) 을인정하지않는사회주의체제의산물이라는점과무관하지않다. 보리스그로이스에따르면사회주의체제에서생산된예술작품은외관상서구자본주의사회에서 차용미술 appropriative art' 이라부르는미술과유사하다. 하지만미래를지향하며상징적인수준에서 ( 나마 ) 금지된것과허용된것사이의경계를횡단하고자본의재분배를추구하는방식으로현재지배적인사회체제에대한새로운공격, 또는전복적태도를취하는자본주의의차용미술과는달리, 사회주의체제의그것은이미달성된미래를현재에적용하는방식을취한다는것이그로이스의주장이다. 41) 그에따르면사회주의미술에서이른바차용 (appropriation) 은새로움을생산하는개인예술가의문제가아니라, 사적소유가아닌공적소유물들, 곧거대한집합적경험의저장고에간직된것들을나눠갖는문제에해당한다. 그가보기에이런경향은동구권사회주의몰락이후에등장한이른바포스트-코뮤니스트아트 (post communist art) 에도마찬가지로나타나는데이예술은 더이상그누구에게도 ( 사적으로 ) 속하지않는이미지들, 상징들, 텍스트들의거대한저장고에서차용하는 42) 태도를취한다. 마찬가지이유에서미술작품의모사와복제, 개작, 집체창작이일반화되어있는사회주의국가북한에서모사, 복제를통해미술작품을널리보급하는일은 ( 적어도체제내부에서는 ) 윤리적으로전혀문제가없는상태다. 43) 하지만그미술작품들이체제내부에서외부로옮겨질때, 즉자본주의미술시장에서상품으로거래될때 모사 와 복제 는심각한문제가될수있다. 만수대의미술품판매상점에서도모사화를취급한다. 문제는모사화에다모사화라는표시를하지않고있다는점이다. 그렇기때문에관광객들은모사화를구입하고서도마치원화를구입한것처럼착각을할수도있다. 게다가모사화를가지고악용하는일부상인들의행태는이제그수습의선을넘었다고도볼수있다. 앞으로교류사업이활성화되면될수록모사 40) 앞의글, 33 쪽. 41) Boris Groys, "Privatizations, or Artificial Paradise of Post-Communism," Art Power (Cambridge; The MIT Press, 2008), p.168. 42) Ibid., pp.168~169. 43) 이런태도는과거이른바사회주의형제국들과의미술교류를통해형성됐다. 이를테면 볼가리야기행 (1957) 에서정현웅은불가리아미술박물관에설치된외국작품의모사실에서강한인상을받았노라고회고했다. 그 모사실에는현대쏘련화가들의작품의모사도있었으며반 다이크, 브라고나 - 르 ( 프라고나르 ) 기타몇장의원화도있었 는데이에대해정현웅은 미술의전통이짧은나라에서는이러한모사실의설치는대단히중요하다고생각한다 고반응했다. 정현웅, 불가리야기행, 조선미술 1957 년제 1 호 ( 창간호 ), 39~43 쪽. 113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화문제는하나의장애물로작용할것이다. 이에북한당국은모사화관리를보다철저하게실시해야할것이다. 모사화관리가부실하면결국원화가다치게되고그것의연장선상에있는미술시장도얼어붙게할뿐만아니라국제무대에서도설자리가좁아지게될것이다. 44) 북한미술작품이자본주의미술시장에서판매되려면시장의논리를따라야한다는점에서 북한당국은모사화관리를보다철저하게실시해야할것 이라는위의요구는정당하다. 하지만그렇다고해서자본주의미술의프레임과잣대로북한미술을이해, 평가하는일이늘정당한것은아니다. 이를테면북한미술을 개성의저각현상 45) 으로, 즉예술성이뒤떨어지는획일적인예술로간주하는일반적인인식을문제삼을수있다. 과거북한미술이주관성, 개인적감정을철저히부정함으로써감정의기복을배제한다면서그것을 예술적상상력의고양과인간적현실체험의확대에반하는 현상이라고주장한논의를떠올려볼수도있다. 46) 이렇게북한미술을획일성, 단순성을특성으로하는폐쇄적이고천편일률적이며단조로운미술로이해하는접근은지금까지도큰영향력을행사하고있다. 실제로북한에서발행한화집이나 조선예술 등에실린 한결같은 미술작품이미지는그러한이해가현실에비추어크게어긋나지않음을시사한다. 오랜기간북한미술에주목해왔던연구자들조차오늘날북한에서제작된미술작품을보고그작가가누구인지를확인하는것은쉬운일이아니다. 하지만사회주의미술을획일적인것으로비판하는논의가기대고있는다양성과차이에대한옹호가예술작품을평가하는불변의잣대, 유일무이의틀이될수있는지생각해볼일이다. 지금지배적인다채로운다양성의포스트모던취향의기원은시장 이며예술에다양성을요구하는포스트모던의미적취향을 동시대시장이만든취향이며시장을위한취향 으로비판한보리스그로이스의주장 47) 을참조할수도있다. 이런주장에동의하지않는다하더라도 다양성과차이 를분별하는우리의미적감수성이이미굳어져북한미술작품들사이에존재하는유의미한차이들을파악하지못하고있는것은아닌지자문해볼수도있다. 이와더불어북한에서과거사회주의미술과의교류속에서형성된 예술가 개념, 곧 인간영혼의엔지니어, 또는 생산자 ( 노동자 ) 로서의작가 개념에대한보다면밀한이해가필요하다. 남한에서북한미술전시와거래가활발했던 1990년대이후남한미술계는북한미술계가특정미술가들에부여한 공훈예술가, 또는 인민예술가 칭호를대개 예술가의천재성 이나 창조적개인의독창성과개성 을함축하는용어로이해했다. 이를테면 공훈예술가로서일본에서수묵조의풍경화가많이소개돼있는리경남은간결하고서정이풍부한작품을그리는것으로알려져있으며 국제미술전람회에서여러번금메달을받는등예술성이최고조에오른것으로북한수예에서최고의작가로는인민예술가리원인이꼽힌다 48) 는식이다. 하지만이런기대와는달리 1952년에신설된 공훈예술가 1961년에제정된 인민예술가 는예술가개인의천재성, 독창성등을승인하는개념이라기보다는예술분야에서탁월한성취를거둔기술자, 생산자, 또는교육자에게국가가부여한명예호칭으로서의의미를갖는다. 49) 따라서그개념사용은자본주의와사회주의가요구하는예술가의차이에대한좀더섬세한이해에기초할필요가있다. 44) 윤범모, 남북미술교류의활성화방안, 현대미술학논문집, 제 4 집, 현대미술학회, 2000, 227~228 쪽, 45) 유준상, 북한미술에있어서의개성의저각현상, 북한미술, 국토통일원, 1979.12, 106 쪽. 46) 유홍준, 북한미술의史的전개와그이해, 김문환편, 북한의예술, 을유문화사, 1990, 41-42 쪽. 47) Boris Groys, "Beyond Diversity: Cultural Studies and Its Post-Communist Other," Art Power (Cambridge; The MIT Press, 2008), p.1518. 48) 강태호기자. 북한의조선화깔끔하죠?, 한겨레신문 1996 년 5 월 5 일 49) 홍지석, 북한식 " 미술가 " 개념의탄생 : 전전 ( 戰前 ) 미술의대중화, 인민화문제를중심으로, 북한연구학회보 제 17 권제 1 호, 북한연구학회, 2013, 242~243 쪽. 114

제 1 회의 [ 기획패널 3] 남북학술 역사교류의평가와과제 사회 : 고유환 ( 동국대학교 )

남북화해시대의남북역사교류 홍순권 ( 동아대학교 )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남북화해시대의남북역사교류 홍순권 ( 동아대 / 남북역사학자협의회남측위원장 ) 1. 들어가는말 지난 2월평창동계올림픽의개최를계기로시작된남북간해빙무드는마침내 4월 27일과 5 월 26일두차례연이어판문점에서개최된남북정상회담과 6월 12일싱가포르에서의북미정상회담, 9월 19일평양남북정상회담으로이어졌다. 남북미상호간연속적으로이루어지고있는일련의정상외교를주축으로한삼국간의대화는한반도주변정세에급격한변화를만들어내고있다. 아직예단하기힘든부분이없지않지만, 특히향후남북미간의협상을통해서진행될한반도비핵화와종전선언, 더나아가북미간의평화협정이체결되면, 남북관계는물론동아시아국제정치지형에일대지각변동을일으킬것으로예고되고있다. 이러한정세변화속에서미국과유엔의북한에대한경제제재가풀린것은아니지만 4월 27일판문점선언이후남북간에는과거와다른의미있는변화들이감지되고있다. 남북대화의공식채널이복원되고, 남북간문화예술단교환등문화체육분야의교류가재개되었고이산가족상봉이재개되었다. 또분단이후처음으로개성공단내에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설치되었고, 개성공단의재개를비롯하여다양한차원에서남북간의경제협력에관한논의들도구체화되고있다. 대표적인예로는철도복원사업을들수있는데이미북측철도의개선복원을위해현지에전문가를파견하여곧남북의공동조사가가시화되는단계에이르렀다. 특히지난 9 19 평양선언은남북교류의실현가능성에대한기대감을더욱높여주고있다. 이러한가운데남북간학술교류도다른분야와마찬가지로머지않아크게활성화될것으로기대된다. 다만, 남과북양측사이에개성만월대발굴조사사업의재개등을합의까지하였으나준비관계로아직구체적이고전면적인실행에옮겨지는못한상태이다. 다른분야에서의남북교류와마찬가지로학술교류를통한남북관계의진전은종국적으로통일을이루기위한상호이해의준비과정으로볼수있다. 남과북은서로다른체제와다른제도아래서 70년이상의오랜기간동안분단된상태로살아왔기때문에분단장벽에따른이질화가진행되어왓다. 그러한측면에서볼때문화학술분야에서의남북교류의확대는남북간의신뢰회복은물론민족적동질성을회복하기위해서도불가피한수순으로보인다. 언어와역사가민족의동질성또는정체성을구성하는중요한요소임은두말할필요가없다. 남북간학술교류는이러한관점에서살펴볼필요가있다. 실제로 2000년 6.15 선언이후지금까지남북간에이루어졌던학술교류가운데양측이가장큰역점을두었던사업이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 ( 언어분야 ) 과개성만월대공동발굴조사 ( 역사분야 ) 이었다. 이글에서는일단남북역사학자협의회중심으로이루어진남북역사교류의성과를정리해보기로한다. 119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2. 남북역사교류의전개와성과 1) 남북역사학자협의회의설립 2001년 6.15 남북공동선언이있은다음김대중대통령일행과함께평양을방문했던남측역사학자들과북측역사학자들과의사이에장차남북역사학자학술교류와공동학술대회를지속적으로진행하기로합의가이루어졌다. 이러한합의가가능했던것은역사학의교류협력을통해서민족동질성회복과상호이해증진은물론평화정착과통일에기여할수있다는점과이를위해서상설적인교류협력기구의설립필요성에대해서남북역사학자들사이의공감대가형성되었기때문이었다. 2001년 6월평양에서의합의에따라 2003년 2월남북양측은남북공동조직으로 남북역사학자협의회 ( 가칭 ) 구성에합의하고, 그해 8월남북역사학자들의공동조직체로서 남북역사학자협의회 구성하였다. 이는학술부문에서남북간처음으로결성된공동조직으로당시강만길전상지대총장이남측준비위원회의책임을맡았다. 이리하여 2004년 2월평양양각도호텔에서 < 남북역사학자협의회결성에관한합의문 > 에강만길남북역사학자협의회남측공동위원장과허종호북측공동위원장이공동서명함으로써남북역사학자협의회가공식적으로발족하게되었다. 남북역사학자협의회남측은 2004년 4월서울세종문화회관컨퍼런스홀에서창립총회를열어향후활동방향에대해서논의하였다. 2) 남북역사학자협의회의남북간학술교류사업 (1) 남북공동학술토론회및학술연구사업 남북역사학자협의회는설립취지에따라지금까지크게남북공동학술회의와학술연구, 그리고남북공동문화유산조사로나누어사업을진행해왔다. 이가운데전자는남북공동학술회의통해역사적인현안문제에대한인식을공유하고, 그해결방안을모색하기위한것으로지금까지다양한주제들이논의되어왔다. 그가운데는한일합방의불법성에대한남북공동학술토론회를비롯하여일제의조선인강제연행불법성문제, 국호영문표기문제 (Crea & Korea), 일제약탈문화재반환문제등이남북공동학술토론회의의제로다루어졌다. 이밖에일종의기념행사로고구려유적세계문화유산등재기념남북공동학술토론회 (2004년 2월 ), 개성역사지구의세계문화유산등록을위한남북공동학술토론회 (2004년 9월 ), 그리고중국심양에서일제강점 100년남북공동학술토론회 (2010년 4월 ) 를개최하기도하였다. 또남북역사학자협의회는 2007년 11월남북공동학술연구의일환으로남북역사용어연구사업을시작하여 2010년 5월까지진행하였다. 이사업은북측사회과학원력사연구소와남북역사학자협의회남측소속회원연구자들이집필작업에참가하여양측모두원고작성을마무리하였으나, 현실적상황을고려하여양측의합의로공식적인출판은보류한상태이다. (2) 민족문화유산조사및보존사업 120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남북공동문화유산조사와관련해서는북한소재문화유산보존사업에중점을두었다. 이를위해서고구려유적보존사업을위한고구려고분군남북공동실태조사와세계문화유산등재를위한개성만월대남북공동발굴조사가실시되었다. 전자는평양및인근고구려고분군소재지역을중심으로고구려고분군의실태를조사할목적으로 2006년 4월19일 ~ 5월 2일와 2007년 5월 30일 ~ 6월 9일두차례에걸쳐실시되었다. 이조사사업에는북측의민족화해협의회와문화보존지도국이공동으로참여하였다. 개성만월대발굴조사는남북역사학자협의회가가장오랫동안역점을두고지속적으로해온사업으로서 2005년 5월부터지금까지 7차에걸쳐진행해고있는사업이다. 이발굴조사사업에는남측에서는남북역사학자협의, 그리고북측에서는민족화해협의회, 문화보존지도국, 조선중앙력사박물관등이공동으로참여하고있다. (3) 고려황궁개성만월대발굴조사사업 개성만월대발굴조사사업은노무현정부시기제17차남북장관급회담에서개성지구역사유적들의세계문화유산등록을위한사업을쌍방당국이지원하기로합의함으로써, 실행에옮길수있게되었다. 그리하여남측남북역사학자협의회와북측민족화해협의회는논의를통해사업의구체적방향을확정하고, 2007년 5월서부건축군에대한첫시굴조사를실시하였다. 이어서 2015년 11월까지 7차에걸친서부건축군일대의발굴조사를실시하였다. 조사단은총 7차례에걸친만월대발굴조사를진행하면서 19동의건물지와총 3만 5천여점의유물이발굴하였다. 650여년만에모습을드러낸발굴유물가운데는 2015년 11월발굴된금속활자 1점도포함되어있다. 1) 또건물지와여러유구와유물들이발굴됨에따라이를바탕으로고려궁궐의정전회경전을 3D 영상으로복원 재현하는작업이가능해져지난 2월평창올림픽특별전에서시연되었다. 이처럼개성만월대발굴조사가성공적으로진행되면서남북공동의노력으로 2013년 6월제 37차유네스코세계유산위원회회의에서만월대유적을비롯하여개성성벽과남대문, 성균관, 왕건릉과현릉등고려왕릉군, 선죽교, 숭양서원등개성일대의역사유적이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등록되었고, 동시에개성시일원이개성역사유적지구로지정되기에이르렀다. (4) 민족문화유산전시활동 남북역사학자협의회는북한문화유산에대한조사결과를전시회를통해알리는활동도아울러전개하였다. 고구려고분군유네스코세계문화유사등재기념남북공동사진전시회 (2004.10.25.~12.5), 6.15공동선발표 5돌과조국광복 60돌기념고구려유물전시회 (2005.5.7.~8.13), 북녘의문화유산-평양에서온국보들-, 개성만월대남북공동출토유물전시회 (2015.10.12.~11.6) 등을개최하였다. 특히 2015년만월대유물전시회는북의개성과남의서울에서동시에열렸다는점에서특별한의미를지녔다. 올들어서는평창동계올림픽이열리는것을계기로개성만월대발굴유물을공개하는평창특별전을개최하였다. 평창특별전은 2월 9일부터 3월 18일까지평창올림픽개막식장바로인근 1) 제 7 차개성만월대남북공동발굴조사는 2015 년 6 월부터시작되었으며, 남측발굴조사단은 11 월 30 일발굴조사작업을마무리하고개성에서철수하였다. 그러나이듬해 2016 년 4 월북측발굴조사단이단독으로발굴조사를실시하던중금속활자 4 점을더발굴하여현재까지만월대에서출토된금속활자는모두 5 점이다. 121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상지대관령고등학교운동장의가설전시장에마련되었다. 고려건국 1100년고려황도개성만월대남북공동발굴평창특별전 으로명명된이전시회는비록현실적제약으로원래발굴된유물을직접전시하지못하고일부복제품과 3D 프린팅유물복제영상으로대체하였으나, 학술적의미외에도남북간문화학술교류의상징처럼인식되었다. 그것은특별전을찾은 54,000명의국내외관람객속에북측공동응원단과일본에서건너온총련응원단이포함되어있었다는사실을통해서확인할수있다. 이밖에남북역사학자협의회는현재지금까지남북공동조사를통해발굴한만월대유적자료를정리하는학술적기반사업을통일부의지원받아진행중에있다. 이사업의중요한목적은그동안조사한북한문화유산과개성만월대유적과유물의영상자료를기초로 3D 데이터기반활용연구및민족문화유산교류협력활성화를위한인프라구축방안을마련하는것이다. 3. 전망 남북간의역사교류도다른여타의남북교류사업과마찬가지로남북관계의변화에따라많은우여곡절을겪어왔다. 2008년정권교체발생한금강산관광객사고의여파로잠시중단된일도있었고, 천안함사건 의발생이후에는개성공단이폐쇄되는등남북관계가악화일로에들어섰다. 그러나남북관계가악화되어거의모든교류가완전히단절된상황에서도남북역사학자들이공동으로추진해온만월대발굴조사사업은단속적으로나마그명맥을끊지않고유지해왔다는것은큰의미가있다. 특히 2015년가을에는그동안일시중단되던사업의재개와함께발굴단이외일반학자들의만월대참관이이루어지도하였다. 이처럼만월대공동발굴조사는남북양측모두사업의중요성과의미에대해크게공감해온성공적인남북교류의상징처럼인식되어왔다. 이제역사교류를통한남북협력사업은그동안의성과를토대로새로운단계로의도약을눈앞에두고있다. 지난 9월 19일평양에서남북은 판문점선언이행을위한군사분야합의서 를교환하였는데, 그내용중에는 비무장지대내역사유적공동조사와발굴 항목이들어있다. 이는휴전선을반으로가르고있는 태봉국철원성 의공동발굴을염두에둔것으로, 그동안개성만월대공동발굴조사의후속사업으로검토해왔던사업이다. 개성만월대발굴조사과정에서쌓아온남북간의신뢰구축이이루어낸성과라고도할수있다.( 경향신문 2018.9.20. 일자참조 ) 이상에서살펴본남북역사학자들의역사교류는민족의동질성회복을위해서그로그의미가큰만큼앞으로도지속해나가야할것이다. 다만, 이러한사업을장기적으로지속적으로발전시켜나아가기위해서는남북당국의지속적인지원이전제되어야하고, 또남북양측간폭넓은대화를통해새로운의제들을발굴하고이를한반도평화정착의모멘트로활용하기위한다양한방안을함께모색할필요가있다. 122

개성공단을활용한남북과학기술 교류협력방안 변학문 ( 북한과학기술연구센터 )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개성공단을활용한남북과학기술교류협력방안 변학문 ( 북한과학기술연구센터 ) I. 연구목적 2018년초부터한반도정세가대화와협력쪽으로빠르게변화하면서남북교류협력에대한기대감도높아졌다. 이에따라 남쪽의자본 기술과북쪽의노동력 자원의결합, 개발협력 등남북협력방안에대한다양한논의가진행되고있다. 남북교류협력은남북의관심과이해관계가일치되는분야에서성사될수있기때문에, 북한의현상황과교류협력에대한그들의생각을파악하는일이필수적이다. 그러나북한을일방적인시혜의대상으로만바라보거나, 남측이하고자하는각종실험과혁신의시험대 (testbed) 로활용가능한 백지 로간주하는시각은북한의 능동적 욕망에대한이해를가로막는다. 이와관련하여이글은김정은국무위원장 ( 이하직책생략 ) 집권이후북한이과학기술발전에기초한경제발전을진지하게시도하여나름의성과와변화를만들었고, 최근이러한기조를더욱강화하기로결정하였음을확인한다. 이를통해과학기술교류협력에대한북한의수요가매우높으며, 그만큼과학기술교류협력의활성화필요성도커졌음을보이고자한다. 다음으로이글은과학기술교류협력의거점으로서개성공단이가진장점을정리하고, 향후개성공단에서시도해볼만한단계별과학기술교류협력방안을제시할것이다. Ⅱ. 김정은의 과학기술강국 구상과북한사회의변화 북한은 1998년김정일국방위원장 ( 이하직책생략 ) 이 2012년까지강성대국건설 을천명하고과학기술을 강성대국건설의힘있는추동력 으로규정하면서 과학기술중시정책 을추진했다. 1) 김정은정권은김정일시대에달성하지못한경제강국, 사회주의강국을실현하기위해김정일의과학기술중시정책을이어받아다양한정책을실행해왔다. 2) 1. 과학기술에기초한경제발전을꾀하는북한 가. 김정은의 과학기술강국 구상 출범직후부터일관되게 과학기술발전에기초한경제강국건설, 사회주의강국완성 을표 1) 정론 : 강성대국, 로동신문 (1998. 8. 22). 2) 김정일과김정은과학기술정책의연속성에대한자세한내용은변학문, 김정은정권 새세기산업혁명 노선의형성과정, 한국과학사학회지 제 38 권제 3 호 (2016), pp. 485-508 을참고할것. 125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방한김정은정권은 2016년 5월제7차당대회에서 과학기술강국 을 선차적인목표 로제시했다. 3) 사회주의강국을완성하는데서현재 총력을집중해야할기본전선 인 경제강국건설 을위해 과학기술강국 을먼저달성해야한다고규정한것이다. 북한은과학기술강국을 나라의전반적인과학기술이세계첨단수준에올라선나라이자과학기술의주도적역할에의하여경제와국방, 문화를비롯한모든부문이급속히발전하는나라 로정의한다. 북한이과연과학기술의전부문을세계첨단수준으로발전시킬수있을지는알수없다. 그러나북한이경제뿐아니라국가의모든분야에서과학기술에기초한빠른발전을시도하고있음은분명하다. 예컨대북한은교육환경개선을위해 IT에기초한 교육의정보화 를, 보건의료체제강화를위해의학과학발전 의약공장현대화를추진하고있다. 체육강국 을실현하기위해서도모든체육사업 ( 훈련, 경기, 선수육성, 기자재생산등 ) 을현대과학기술에기초하여진행하는 체육의과학화 를강조한다. 북한은국방과학기술을계속발전시킴으로써군사부문도더욱강화하려한다. 나. 주요과학기술정책, 경제정책 (1) 전민과학기술인재화 를위한 새세기교육혁명 전민과학기술인재화는 모든인민을최신과학지식과기술기능에정통하고능숙하게활용하며, 사회주의강국건설에서제기되는과학기술적문제들을풀어나갈수있는인재로키우는것 을의미한다. 4) 북한은전민과학기술인재화를과학기술강국달성을위한핵심요소로강조하고, 이를실현하기위해 새세기교육혁명 이라는이름으로교육전반에대한대대적인개혁을시행해왔다. 북한은초 중등과학기술교육을강화하기위해 2012년 9월 40년동안유지해온 11년제의무교육을 12년으로확대하고수학및과학기술수업비중을높였다. 5) 2014년부터는대학의교육및연구수준을높이기위한 종합대학화, 일원화 도실행중이다. 6) 이는극소수주요대학과여타대학들사이의격차가매우심한상황에서지역별 부문별거점대학을종합대학으로집중육성하고, 다른단과대 전문학교는종합대학을중심으로일원화하여교육개혁과연구개발을수행하게하는것이다. 북한은또교육환경개선을위해 교육의정보화 를표방하며컴퓨터를기반으로한교실 강의실현대화, 전자도서관설치, 전자교과서 원격강의개발및이용확대, 과학기술실습실확충등을진행하고있다. 7) 북한은노동자, 농민등성인을대상으로한과학기술교육도강화하고있다. 예컨대평양에최신과학기술자료의데이터베이스를보유한 과학기술전당 을건설 (2016년 1월개관 ) 하고, 이곳을각지역 기관 공장 농장 기업소의과학기술보급실들과국가전산망으로연결하여전국적인과 3) 이하과학기술강국구상과관련한내용은 조선로동당제 7 차대회결정서 : 조선로동당중앙위원회사업총화에대하여, 로동신문 (2016. 5. 9) 에서정리함. 4) 사설 : 전민과학기술인재화를힘있게다그쳐나가자, 로동신문 (2014. 10. 20). 5) 최고인민회의법령 전반적 12 년제의무교육을실시함에대하여. 조선중앙통신 (2012. 9. 25). 6) 사설 : 경애하는김정은동지께서제시하신새세기교육혁명방침을철저히관철하자, 로동신문 (2014. 9. 11). 7) 장일수 ( 교육과학원보통교육과학연구소소장 ), 중등일반교육과인재, 로동신문 (2016. 8. 2). 126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학기술보급망을구축하였다. 노동자, 농민, 주민들은과학기술보급실에서과학기술전당에접속하여과학기술자료를검색, 이용할수있다. 8) 과학기술보급실은주민들이대학의원격교육을수강하기위한통로역할도한다. 북한은 2010년김책공대가시작한원격교육대학을김정은집권이후빠르게확대하여 2018년 7월현재 50여개대학 200개이상의원격교육학과에서근로자 10만여명이공부하고있다고한다. 9) (2) 경제의정보화 추진 북한에서 경제의정보화 는 생산과경영활동전반에서컴퓨터이용확대 를뜻한다. 이는북한이최신과학기술에기초한경제발전을본격적으로추진한 2000년대초부터경제분야의핵심과제로강조되어왔다. 김정은집권이후에는 1970년대말부터경제분야의핵심구호이자기본과업이었던 주체화, 현대화, 과학화 가 주체화, 현대화, 정보화, 과학화 로바뀔정도로정보화의중요성이더욱높아졌다. 북한은최근몇년동안 통합생산체계 를정보화의핵심목표로삼아왔다. 주요생산공정을자동화하고컴퓨터망으로연결하여종합지령실에서생산전반에대한원격통제를가능하게하는통합생산체계를구축함으로써노동력절감, 생산성과경영효율극대화, 품질제고를달성하려는것이다. 북한은공업뿐아니라농축산부문에서도온실, 축사, 양어장의상태를실시간으로점검 통제할수있는통합생산체계를도입하고있다. 북한은자동화와통합생산체계를확대하여 생산의무인화 를실현하겠다고표방하였다. 10) 북한은교육, 보건의료, 체육등경제외영역에서도정보화를시도하고있다. 예컨대보건의료체제를강화하기위해각급병원과보건의료기관의운영에컴퓨터이용을확대하고, 초보적인수준에서부터 먼거리의료봉사 ( 원격의료 ) 를시작하여관련체계를개발하고있다. 11) 체육강국건설과관련해서도선수육성, 훈련, 경기등을과학적으로진행하고분석할수있는각종프로그램과기자재를지속적으로개발중이다. 12) (3) 생산현장의기술혁신독려 북한은생산현장의기술혁신을촉진하기위해다양한조치를실행중인데, 무엇보다노동자 농민의과학기술수준제고에기초한기술혁신활성화를꾀하고있다. 앞서살펴본전국적인과학기술보급망확충과원격교육대학확대의목적이바로여기에있다. 또한공장, 기업소, 농장사이의혁신경쟁을활성화하기위해과학기술전시회를수시로열어우수혁신사례와기술제품을발굴하고시상한다. 생산단위들도여러전시회에참가하여신제품을알리고있으며, 자사제품이수상하는경우판촉에적극적으로활용한다. 북한은 3대혁명소조운동 도다시활성화하였다. 북한은이운동시작 40주년을맞은 2013년 2월 전국 3대혁명소조원열성자회의 를소집하였고, 이후운동의주목적을 새세기산업혁명 8) 사회적관심이날로커가는과학기술보급실망체계, 로동신문 (2016. 5. 15). 9) 비약적으로발전하는공화국의원격교육사업, 조선의오늘 (2018. 7. 2). 10) 김정은동지께서전국경공업대회에서연설, 조선중앙통신 (2013. 3. 18). 11) 백수십건의의학과학기술성과이룩 - 보건성산하의학연구기관들, 로동신문 (2017. 12. 18). 12) 과학화는체육발전의위력한추동력, 로동신문 (2016. 8. 12). 127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촉진 에두고과학기술적자질과능력을갖춘대졸자를소조원으로선발하여생산현장에파견하였다. 13) 또 1993년제3차대회이후열리지않던 전국 3대혁명소조기술혁신전시회 를 2014년 3월, 2018년 3월개최하여각각 3천여건, 7백여건의기술혁신성과를전시했다. 14) 북한이수년동안의검토와시범실시를거쳐 2016년제7차당대회에서전면도입을결정한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 도기술혁신의유인으로작용할수있다. 15) 개별기업의경영권을대폭강화한이제도가원활하게시행된다면경제의개별행위자들이과학기술에기초한혁신을실현할수록더많은성과를취할수있기때문이다. 16) (4) 경제개발에서대학과연구기관의역할제고시도 1950년대후반이래북한과학기술은 생산현장에대한기술지원 이핵심임무로자리잡는등강한 현장지향성 을갖고있다. 17) 즉, 생산현장스스로해결할수없는문제들을대학, 연구기관이함께해결하는 문제해결형 과학기술은북한의두드러진특징이자오랜전통이다. 3 대혁명소조운동, 과학자기술자돌격대등도이러한전통의연장선상에있다. 김정은집권이후에도생산현장에대한기술지원은기본임무로강조되었다. 북한은이뿐아니라대학과연구기관이직접기술제품을개발, 생산, 판매하도록독려하고있다. 이역시김정일집권기부터시도되어 1996년김책공대에이미 미래과학기술교류사 라는회사가설립되었다. 김정은집권이후이는더욱활성화되어김일성대 첨단과학기술교류사, 한덕수평양경공업종합대학 대외경공업기술교류사, 과학원생물공학분원의 생물공학기술교류사 등여러기업이설립되었다. 18) 2017년부터는교육-과학연구-생산의일체화를표방하며주요대학에 첨단기술제품개발기지 를건설하기시작하였다. 19) 김정은정권은과학자들의연구의욕을높이고경제건설에적극적으로참여시키기위해과학자우대정책을강화하였다. 이와함께정권출범직후부터 과학은사회주의기관차, 과학자, 기술자는사회주의전초병, 과학기술은자강력의핵심 등과학기술과과학자의중요성을강조하는구호와담론을생산, 유포하고있다. 20) (5) 전력난해결을위한친환경에너지개발강조 김정은시대의북한은김정은집권기에비해친환경에너지개발을크게강조하여 제4차과학기술발전 5개년계획 (2013~2017),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 (2016~2020) 의주요과제로제시하였다. 2013년 5월 자연에네르기법 을제정하고, 2014년 건설법 에 녹색건축부문의과 13) 3 대혁명소조사업에대한당적지도에서나서는기본요구, 로동신문 (2013. 8. 30). 14) 로동신문 (2014. 3. 20); 조선중앙통신 (2018. 3. 22). 15) 사회주의책임관리제는개별기업들에게 계획권, 생산조직권, 관리기구및노력조절권, 제품개발권, 품질관리권, 인재관리권, 무역과합영, 합작권, 재정관리권, 생산물의가격제정권과판매권 등실질적인경영권을부여하는제도이다.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 근로자 2015. 7, pp. 49. 16) 변학문, 김정은정권과학기술정책의특징과산업발전전략 ( 통일부신진연구자정책연구과제, 2016), pp. 46-48. 17) 강호제, 북한과학기술형성사 Ⅰ ( 선인, 2007). 18) 로동신문, 2015. 9. 30, 2017. 11. 11 등. 19) 교육사업에서이룩된주목할만한성과들, 로동신문 (2017. 12. 12). 20) 로동신문, 2014. 4. 8, 12. 1, 2016. 1. 27, 2017. 11. 3 등. 128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학기술성과를적극적으로도입한다 는내용을추가하는등법제화도진행하였다. 2014년하반기에는국가과학원산하에국가의친환경에너지개발을선도할 자연에네르기연구소 를신설하였다. 21) (6) 과학기술에기초한대외협력확대모색 북한은낮은수준에머물러있는경제 과학기술부문들을빠르게발전시키고세계과학기술발전추세와속도를따라가기위해 세계적추세, 세계적수준 을강조하며과학기술교류확대 선진과학기술도입에도적극적이다. 예를들어대외학술교류를확대하기위해김일성대를중심으로국제학술행사개최, 해외과학기술정보수집활동강화, 국제공동연구활성화, 연구자들의해외저널논문발표등을시도하고있다. 22) 김정은위원장이제7차당대회총화보고에서 합영, 합작을실리있게조직하여선진기술을받아들 여야한다고언급하는등 선진과학기술도입 은대외경제협력의주요기준이다. 23) 이는과학기술에기초한 수출구조개선, 즉기업들의기술력을높여석탄 철광석등원자재보다고수익의가공품 기술제품수출을확대하는데목적을두고있다. 북한은최고인민회의에서대외경제성부상이수출구조개선을위해서라면 특혜및우대조치 를취해서라도자신들에게필요한기술을보유한외국기업과합영 합작을성사시키겠다고발언했을정도로적극적인태도를보이고있다. 24) 북한은국내품질관리에서도해외진출에대비해국제표준을적용하고있다. 대표적인사례가 2014년신설된 12월 15일품질메달 이다. 이는 1980년대초부터북한이시행중인국내품질인증제도인 2월 2일제품 칭호를받고 ISO( 국제표준화기구 ) IEC( 국제전기기술위원회 ) 등국제품질인증까지충족한제품에주어진다. 북한은이처럼강화된기준을적용하여품질을높임으로써수출경쟁력을갖게하려고한다. 25) 실제로도 ISO 9001:2008, ISO 22000 식품안전관리체계인증, GMP(Good Manufacturing Practice, 우수의약품제조및품질관리기준 ) 등국제표준을충족한생산단위들이점차늘고있다고한다. 26) 경제특구와개발구의핵심목적도과거의 투자확대, SOC 건설 에서최근점차 선진기술도입, 기술경쟁력 상품경쟁력강화 로변화하였다. 김정은정권이시대담론으로삼고있는 지식경제시대 에걸맞은경제구조를확립하기위해서는개발구들에최신과학기술도입을적극시도해야한다는것이다. 27) 심지어 모든특구 / 개발구는궁극적으로첨단과학기술개발구로전환되어야한다 는주장도등장하였다. 28) 21) 경애하는김정은동지께서새로일떠선위성과학자주택지구를현지지도하시였다, 로동신문 (2014. 10. 14). 22) 최현규, 노경란, 북한과학자의국제학술논문 (SCOPUS) 분석연구 : 2007-2016 (KISTI, 2017). 23) 김정은, 조선로동당제 7 차대회에서한당중앙위원회사업총화보고, 로동신문 (2016. 5. 8). 24) 리광근, 무역구조를개선하고선진기술을받아들여나라의경제를발전시키는데이바지하겠다, 로동신문 (2016. 6. 30). 25) 서광, 2017. 2. 16. 26) 로동신문, 2015. 1. 25; 조선중앙통신, 2017. 1. 21; 로동신문, 2017. 11. 12 등. 27) 첨단기술개발구창설은지식경제시대의필수적요구, 경제연구 2014. 2. 28) 류주형, 경제개발구개발에서지역별특색을살려나가기위한중요문제, 경제연구 2017. 3. 129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다. 과학기술에기초한경제발전전략을더욱강화한 2018 년 북한은 2018년 4월 20일로동당중앙위원회제7기제3차전원회의를열고 2013년 3월채택한 경제건설과핵무력건설의병진노선 을종결하고 사회주의경제건설에총력집중 을새로운전략적노선으로채택하였다. 이회의에서북한은 과학으로비약하고교육으로미래를담보하자 를 전략적구호 로결정하고 과학기술의위력으로경제강국건설의대통로를열어나갈것 이라고강조하는등과학기술에기초한경제발전전략을더욱명확히하였다. 29) 이보다먼저열린최고인민회의 (2018. 4. 11) 에서전년대비국가예산지출을 5.1% 늘리면서과학기술예산은 7.3% 증액하였다 ([ 표 3] 참고 ). [ 표 1] 김정은집권이후북한국가예산및과학기술예산증가율 ( 지출계획기준, 단위 %) 구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국가예산 10.1 5.9 6.5 5.5 5.6 5.4 5.1 과학기술예산 12.2 5.8 4.3 8.7 5.2 8.5 7.3 자료 : 로동신문, 조선중앙통신 의 2012~2018년최고인민회의예산관련보도에서정리. 김정은도 2018년들어과학기술과경제관련단위를집중적으로현지지도하면서과학기술에기초한경제발전노선을강조하고있다. 예를들어첫현지지도를국가과학원으로, 두번째를평양교원대학으로나감으로써향후국가정책에서과학기술과교육의중요성이더욱높아질것을예고하였다. 30) 2018년 6월 ~8월에는평안북도, 양강도, 함경북도, 강원도등의경제현장수십곳을집중방문하는소위 삼복철강행군 을진행하였다. 31) 이때김정은은경제강국건설의핵심적인요소로서 자력갱생 과함께 자체의기술역량으로자동화 무인화 무균화수준제고, 과학기술보급실운영을강화하여종업원을지식형근로자로육성 등과학기술을일관되게강조하였다. 32) 2. 과학기술중시정책에따른북한사회의변화 가. 정보화 의성과확산 (1) 생산현장의통합생산체계구축확대 북한경제는김정은이 첨단수준에올라선부문이있는가하면어떤부문은한심하게뒤떨어 져있다 고시인할정도로부문간, 기업간격차가크다. 33) 이런상황에서북한은모든생산단 위의현대화를동시에진행하기보다, 평양소재또는내각각성산하생산단위들을중심으로 29) 김정은원수님지도밑에조선로동당중앙위원회제 7 기제 3 차전원회의진행, 조선중앙통신 (2018. 4. 21). 30) 로동신문, 2018. 1. 12, 1. 17. 31) 정론 : 위대한인민사랑의삼복철강행군이여!, 로동신문 (2018. 8. 5). 32) 경애하는최고령도자김정은동지께서송도원종합식료공장을현지지도하시였다, 로동신문 (2018. 7. 26). 33) 로동신문, 2016. 5. 8. 130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통합생산체계구축에주력하였다 ([ 표 2] 참고 ). 이와같은경공업, 식품공업현대화에힘입어평양시내백화점에서북한산제품이중국산을대체하는등국산화에서도일부진전을거둔것으로보인다. 34) [ 표 2] 김정은집권이후현대화 정보화된주요경공업 농업생산단위 (2018 년 8월기준 ) 부문 식료 섬유봉제 잡화 농수축산 의료위생 사업장명 2017 년이전 2017 년 2018 년 평양기초식품공장, 평양어린이식료품공장, 평양강냉이가공공장, 금컵체육인종합식료공장, 만경대경흥식료공장, 대동강과일종합가공공장, 룡악산샘물공장, 평양곡산공장, 선흥식료공장, 류경김치공장, 2 월 20 일공장, 제 525 호공장, 제 534 군부대종합식료가공공장, 제 354 호식료공장, 11 월 2 일공장, 류경김치공장, 강서약수공장, 삼지연감자가루생산공장, 금산포젓갈가공공장, 송도원종합식료공장등 김정숙평양제사공장, 김정숙평양방직공장, 평양양말공장, 사리원대성타월공장, 평양가방공장등 룡악산비누공장, 류경생활용품공장, 평양체육기자재공장, 원산구두공장, 민들레학습장공장, 낙랑영예군인수지일용품공장, 류원신발공장, 평양화장품공장, 신의주화장품공장등 장천남새전문협동농장, 제 122 양묘장, 5 월 9 일메기공장, 평양메기공장, 평양자라공장, 대동강돼지공장, 평양건축종합대학축산기지, 삼천메기공장, 평양버섯공장, 4 월 22 일태천돼지공장, 1116 호농장, 순천메기공장, 평북돼지공장, 강원도양묘장, 석막대서양연어종어장등 정성제약종합공장, 보건산소공장, 치과위생용품공장, 평양제약공장등 최근에는이미현대화, 정보화된공장들을본보기로삼아상대적으로낙후한각지역경공업 농업생산단위의현대화를본격적으로진행하려한다. 예컨대가방공장의경우 2017년까지가방천과지퍼등원자재를생산하는공장들과평양가방공장의현대화 정보화에주력했다면, 2018 년에는청진가방공장 원산영예군인가방공장등각도가방공장의현대화를강조하고있다. 35) 김정은위원장의 2018년여름현지지도는현대화 정보화에서이미상당히성과를거둔단위들 ( 신의주화장품공장, 송도원종합식료공장, 강원도양묘장등 ) 뿐아니라, 앞으로현대화 정보화를진행해야할곳 ( 신의주방직공장, 신의주화학섬유공장, 청진가방공장등 ) 을대상으로도진행되었다. (2) 사회전반의정보화진전 : 전국정보화성과전람회 의예 북한은생산현장뿐아니라사회각분야에서거둔정보화성과와경험을소개하고교류를활성화하기위해 2016년부터매년가을 전국정보화성과전람회 를개최한다. 참가단위와출품작 ( 정보화성과, 정보기술제품 ) 규모는 2016년 200여단위 1,000여건, 2017년 240여단위 820 여건이었다. 북한은해마다이중 10대최우수정보기술기업, 10대최우수정보기술제품, 정보화모범단위 들을선정하여시상하였다. 특히정보화모범단위에는평양곡산공장 평양메기공장 평양버섯공장등통합생산체계를구축한생산현장뿐아니라, 과학기술전당 병원 상점 학교 검역소 물놀이장등비생산부문의다양한기관들도선정되었다. ([ 표 3] 참고 ). 36) 34) 북중접경지역에서바라본북한경제, KDI 북한경제리뷰 2018. 1, pp. 25-40, 특히 pp. 32-33. 35) 로동신문, 2018. 7. 17, 7. 26. 36) 로동신문, 2016. 10. 8, 2017. 9. 16 131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 표 3] 2016~2017 년최우수정보기술기업과정보화모범단위 구분 2016 년 2017 년 10 대최우수정보기술기업 정보화모범단위 김일성종합대학첨단과학연구원정보기술연구소국가과학원정보과학기술연구소푸른하늘전자합영회사전자공업성아침콤퓨터합영회사체신성정보통신연구소평양정보기술국붉은별연구소조선류경프로그램개발회사지능정보기술연구소조선콤퓨터쎈터평양정보기술국철도성정보기술연구소과학기술전당, 천리마타일공장, 평양메기공장, 평양곡산공장, 평양체육기자재공장류경치과병원, 미래상점평안북도수출입품검사검역소함흥화학공업종합대학등 김일성종합대학첨단과학연구원정보기술연구소김책공대붉은별연구소김책공대정보기술연구소국가과학원지능정보연구소평양정보기술국정보화1연구소삼흥정보기술교류소푸른하늘련합회사아침콤퓨터합영회사정보보안연구소연풍상업정보기술사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류경김치공장, 모란봉제 1중학교원산군민발전소, 평양시제2인민병원문수물놀이장관리소, 평양버섯공장락랑영예군인수지일용품공장등 20개단위 나. 산학연협력의활성화 북한보도에따르면김정은집권이후 6년동안통합생산체계확립에필요한기술과설비개발에김일성대 김책공대를포함한주요대학, 국가과학원산하연구소, 내각각성산하연구소들이활발히참여하였다. 그결과자동화된각종설비, 통합조종프로그램, 무인화된버섯생산체계, 온실환경종합측정장치, 에너지절약형생산체계등다양한기술과설비를개발했다고한다. 37) 연료 원료의자립, 기계 설비의국산화등북한경제의전통적과제를해결하기위한산학연협력도활발하다. 무연탄을이용한주체철생산의핵심설비인산소열법용광로를건설하기위한김책제철연합기업소와김책공대연구진의협력, 탄소하나 (C1) 화학공업을창설하기위한순천화학연합기업소 남흥화학설계연구소 김일성대 함흥화공종합대학 리과대학 국가과학원함흥분원의협력등이대표적인예이다. 38) 마식령스키장, 미래과학자거리, 과학기술전당, 려명거리, 단천발전소등김정은집권이후진행된대형건설사업에도평양건축종합대학을포함한대학들, 자연에네르기연구소 수리공학연구소등국가과학원산하여러연구소, 백두산건축연구원등건설관련연구기관들이참여하였다. 39) 다. 전문기술기업의증가 37) 에네르기절약형통합생산체계가구축된공장의새모습, 로동신문 (2017. 10. 31). 38) 탄소하나화학공업창설을위한대상건설힘있게추진, 로동신문 (2017. 8. 19). 39) 신화적인건설속도로완공을눈앞에둔려명거리, 조선중앙통신 (2017. 3. 15). 132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북한의기업소중 교류사 또는 교류소 가붙은곳들이기술기업인데, 명칭으로만보면수백곳에달한다. 대학과연구기관뿐아니라병원, 공장등자체적인기술 ( 제품 ) 을보유한곳들은모두교류사 / 교류소라는이름의부서또는회사를만든것으로추정된다. 김일성대, 김책공대, 리과대학등북한내에서연구역량이가장뛰어난대학들은교육-과학기술-생산의일체화를위해첨단기술제품개발및생산기지를건설하여완공을앞두고있다고한다. 예를들어 2017년 2월착공한김일성종합대학첨단기술개발원은연면적 18,000여m 2 의건물에공동개발실, 강의실, 무균 무진화된생산구역, 전자제품개발및생산실, 화학제품개발및생산실등을갖추었다고한다. 40) 김책공대가 2017년 3월건설하기시작한첨단기술제품개발기지는 1만수천m 2 의연면적에기술제품종합검사실, 전시장, 다수의실험실과개발실, 국제학술토론회장, 소회의실등이들어선다고한다. 이건물은또층별전력관리체계, 화재감시체계, 자동식별출입체계, 통신망체계, 난방, 급배수자동조종체계, 폐수자동정화체제등으로이루어진통합관리체계를높은수준에서구축한지능형건물로지어지고있다. 41) 라. 지적제품 에대한인식제고 북한은과학기술에기초한발명 특허의개발및확산을촉진하기위해 지적제품 거래를장려하고있다. 예를들어발명총국은김정은의지시에따라 2014년 6월부터우수발명, 특허, 과학기술성과를홍보하고개발자와수요자를연결해주는 지적제품전시장 을운영하고있다. 이곳은발명 특허문헌검색, 특허기술자료번역, 각종응용소프트웨어와하드웨어, 발명등록신청문건작성, 기술자문, 법률상담, 지적제품유통을위한합의와계약에대한실무지원및등록, 제품위탁판매등다양한서비스를제공한다. 이와함께부문별전시회, 기술발표회, 기술강습등도진행한다. 42) 국가의지적제품개발및거래장려에더해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가실시되면서지적제품개발과지적소유권의중요성에대한북한사회전반의인식도높아진것으로보인다. 경제행위자들이자신의이익을극대화하기위해서는독자적이면서도우수한기술의개발필요성뿐아니라그성과를보호해야한다는점까지도이해하게된것이다. 이에따라공장과기업소의특허권과상표권등록에대한대리업무를전문으로수행하는 < 평양지적자원교류소 >(Pyongyang IP Center-PIPC) 의업무량이해마다증가하고있다고한다. 43) 공학및법률전문가, 특허및상표대리인, 수십명의번역원과변호사를두고특허, 상표, 공업도안관련해외업무를대리하는업체도활동하고있다. 44) 한편북한은 2017년까지 15차례열린 전국발명및새기술전람회 를 2018년부터 국가발명전람회 로명칭을변경하였다. 2018년 8월 3일 ~13일열린 제16차국가발명전람회 에는발명권과특허권을받은 1,000여건의발명기술들이출품되어 2017년 제15차전국발명및새기술전 40) 룡남산지구에첨단기술개발원이일떠선다 - 김일성종합대학에서, 로동신문 (2018. 8. 13). 41) 첨단기술제품개발기지건설마감단계 - 김책공업종합대학에서, 로동신문 (2018. 8. 23). 42) 과학기술보급에이바지하게될지적제품전시장, 로동신문 (2014. 6. 15). 43) 대리업무를수행하는평양지적자원교류소의사업경험 - 특허권등록에대한관심과지향높아져, 조선신보 (2018. 1. 22). 44) http://www.naenara.com.kp/ko/trade/?company+7+558 ( 내나라 홈페이지 ). 133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람회 보다출품작수가 500건줄었다, 45) 북한보도에따르면이는지적소유권에대한사회적인식을높이고지적제품유통을더욱활성화하기위해 2018년부터최고수준의지적소유권인발명권, 특허권을받은대상만참가할수있도록참가자격을강화했기때문이라고한다. 전람회의이름을바꾼이유도이와같다. 46) 마. 친환경기술개발및이용확대 국내언론들도여러차례보도했듯이북한에서생활에너지확보를위한태양열, 태양광, 풍력이용은전국적인현상이되었다. 2017년 4월준공식을가진려명거리는 에너지절약형, 녹생형거리 를표방한곳으로서북한이동원가능한친환경기술들을집약한종합전시장과도같다. 려명거리의가로등은태양광을이용하며, 모든건물에태양광패널과태양열설비가설치되었다. 이와함께자연채광을이용한 광실형피동식태양열난방체계, 지하시설물의채광을위한 태양빛유도조명기술, 여름에햇빛을차단해냉방부하를대폭줄이는 빛선반냉부하감소기술, 실내환기와냉난방에지열을활용하는 지열-환기폐열이용기술, 빗물회수이용체계등도여러건물에도입되었다. 47) 최근에는생산현장의친환경에너지, 친환경기술이용도확대되고있다. 예컨대장천남새전문협동농장등전국각지의남새온실농장과축산농장들은 농산과축산의고리형순환생산체계 를도입하고있다. 48) 앞서언급한류원신발공장을포함해평양화장품공장, 평양제약공장, 평성시종어장등 에너지절약형 공장건설도서두르고있다. 49) 지난수년동안친환경기술을개발하는단위들도확대되었다. 국가과학원자연에네르기연구소와록색건축연구소, 전력공업성전력공업연구소, 국토환경보호성환경과학기술연구원, 김일성대태양빛전지제작소등연구기관과대학은물론이고평성자동화기구공장, 묘향첨단기술교류소, 목란광명회사, 삼천리조명기구공장등기업들도친환경기술을개발하고있다. 특히목란광명회사는 2017년국가전산망과계통병렬형으로운영되어축전지가필요없는건물일체형태양광발전소를건설하는등최근부상한기업이다. 50) 바. 경제발전에국방과학기술이용확대 (1) 국방과학기술의민간이전 징후 들 북한은김정은집권말기부터국방과학기술의비교우위를경제개발에이용하려했다. 장거 리로켓개발과정에서확립한 CNC(Computerized Numerical Control, 컴퓨터수치제어 ) 기 술을 2009 년부터민간공장에보급하여생산성을급속하게높이려한것이대표적인예이다. 51) 45) 제 15 차전국발명및새기술전람회개막, 조선중앙통신 (2017. 7. 18). 46) 지식과기술로경제강국건설에적극이바지할불같은열의제 16 차국가발명전람회장을돌아보고, 로동신문 (2018. 8. 17). 47) 려명거리에도입된록색건축기술들 (1)-(4), 조선의오늘 (2017. 5. 10-14). 48) 전국과수부문열성자회의진행, 로동신문 (2017. 12. 1). 49) 절약형경영전략과경제강국건설, 로동신문 (2017. 12. 20). 50) 최고품질의각종태양빛전지판들과응용제품들을개발, 생산, 조선의오늘 (2017. 7. 21); 인민들의문화정서생활에이바지하는선구자집단 - 목란광명회사를돌아보고, 로동신문 (2018. 8. 21). 134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2000년대초 선군경제노선 을공식화하면서북한이내세웠던명분중하나도 상대적으로높은수준에있는국방과학기술에기초해다른경제부문의성장을견인할수있다 는점이었다. 52) 김정은집권후에도북한은 국방공업에서최첨단과학기술을적극적으로개발하면서민수공업과연계를강화하여인민경제전반의현대화수준을끊임없이높인다 는점을강조해왔다. 53) 물론북한이군수과학기술을공개하지않는상황에서구체적으로어떤기술이민간으로옮겨갔는지확인할수는없다. 다만여러정황을통해군수과학기술을민간경제발전에활용하려는시도를다양하게하고있음을알수있다. 무엇보다북한은인민군산하생산단위의현대화를최고수준에서진행하고민간공장현대화의본보기로삼고있다. 예를들어인민군산하 2월20일공장 은북한최초로무인화된식품공장으로평가받았고, 김정은위원장은이공장을식품공장현대화의본보기로삼으라고지시하였다. 54) 그리고이곳에기술진을파견하여기술을전수받은 만경대경흥식료공장 은내수용캔맥주등생산품목을확대하였다. 55) 인민군산하 122호양묘장 은북한최초로묘목생산의전과정을자동화하였다. 2018년완공된 강원도양묘장 은 2년전김정은위원장의지시에따라 122호양묘장을본보기로삼아건설된곳이다. 56) 이밖에도 [ 표 2] 의현대화된생산단위들중제 525호공장, 제534군부대종합식료가공공장, 5월9일메기공장, 삼천메기공장, 금산포젓갈가공공장등이인민군산하공장이다. 이와함께북한은군수공업부문의생필품생산및판매확대를시도하고있다. 북한은 1950 년대말부터군수공장에서생필품을일부생산하기시작했다고알려졌지만, 군수공업부문생활필수품품평회 는김정은의지시에따라 2015년 9월처음개최되었고 2017년 9월에도열렸다. 57) 이는민간에비해높은기술력을보유한군수공업부문의생필품생산능력과제품품질을점검 홍보하고생필품생산을확대하기위한것으로보인다. 미래과학자거리내창광상점은군수공업부문이생산한생필품을전문적으로판매한다. 58) 북한은국방과학기술인력양성의핵심기관인국방종합대학도 2016년김정은방문을계기로반세기만에처음으로공개하였다. 59) 이후 김정은국방종합대학 으로이름이바뀐이학교는 2017년 9월개최된 전국정보화성과전람회-2017 에참가하기도했다. 앞으로도공개활동이계속된다면국방종합대학이보유한과학기술을대외적으로공개하고활용하겠다는결정이내려졌다고판단할수있다. 51) 정선철, 선군의길에우리조국의대번영과찬란한미래가있다, 로동신문 (2010. 11. 27). 52) 임수호, 김정일정권 10 년의대내경제정책평가 : 선군 ( 先軍 ) 경제노선 을중심으로, 수은북한경제, 2009 년여름호, pp. 20-36. 53) 김덕철, 우리식경제관리방법과경제강국건설, 근로자 2015. 2, pp. 37-39, 특히 p. 38. 54) 경애하는김정은동지께서우리나라식료공장의본보기, 표준으로전변된조선인민군 2 월 20 일공장을현지지도하시였다, 로동신문 (2014. 11. 15). 55) 만경대경흥식료공장완공, 조업식진행, 로동신문 (2015. 2. 11). 56) 경애하는김정은동지께서지식경제시대의요구에맞게과학화, 공업화, 집약화가훌륭히실현된조선인민군 122 호양묘장을현지지도하시였다, 로동신문 (2016. 5. 15); 경애하는최고령도자김정은동지께서강원도양묘장을현지지도하시였다, 로동신문 (2018. 7. 24). 57) 경애하는김정은동지께서군수공업부문생활필수품품평회장을돌아보시였다, 로동신문 (2015. 9. 22). 58) 경애하는김정은동지께서새로건설한창광상점을현지지도하시였다, 로동신문 (2015. 9. 25). 59) 전시회로보는조선의정보화열풍, 서광 (2017. 11. 27). 135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2) 인민군최고위직교체와국방과학기술의민간이전 북한은 2018년 5월로동당중앙군사위원회확대회의를개최하고인민군서열 1~3위인총정치국장, 총참모장, 인민무력상을동시에교체했다. 이에대해국내에서는 김정은의비핵화결정에대한군부의반발에선제적으로대응하기위해온건파를임명한것 이라는해석이제기되었다. 이연구는인민군수뇌부, 특히총정치국장과인민무력상교체에 국방과학기술의민간이전가속화 의도가숨어있을수있다고추정한다. 먼저인민군서열 1위인신임총정치국장김수길은 2014년 4월부터 2018년 5월까지평양시당위원장역임한인물이다. 60) 그의재임중평양소재공장 농장의현대화, 과학기술전당건설과과학기술보급실확충, 평양중등학원 평양초등학원현대화, 미래과학자거리 려명거리건설, 평양건축종합대학육성등과학기술중시정책에따른평양시의변화가활발히진행되었다. 즉, 김수길은과학기술전문가는아니지만북한의최고위급인사중과학기술중시정책의집행및총괄경험이가장풍부한인물중한명이다. 신임인민무력상노광철은이번인사직전까지북한군수공업을총괄하는 제2경제위원장 이었다고알려져있고, 2017년 12월개최된 군수공업대회 에서주석단의인물중두번째로언급되었다. 61) 따라서그는북한의국방과학기술에정통한인물일가능성이크다. 북한보도에따르면위인사를단행한당중앙군사위확대회의는 혁명발전의요구와인민군대의실태를종합적으로분석한데기초하여국가방위사업전반의개선을위한조직적대책들을토의결정 하였다고한다. 62) 아마여기서 혁명발전의요구 란 병진노선의종결과경제건설에총력집중 이라는 4월 20일의결정을의미할것이다. 따라서김수길과노광철의군수뇌부임명은경제건설에총력집중을위해국방과학기술의민간이전을가속하려는의도가담겨있다고해석할수있다. 김정은이중앙군사위확대회의에서 인민군대가경제건설에서도주력군의본분을다하고있음 을치하하고앞으로도임무를수행하리라는기대를표명한점도위와같은추정을뒷받침한다. 이후김정은은 2018년여름의집중적인현지지도시제525호공장 삼천메기공장 금산포젓갈가공공장등인민군산하생산단위들을다수방문하였고, 이단위들이자기부문발전의선구자가되어야한다고강조하였다. 63) 60) 북한보도에서김수길은 2014 년 4 월중순부터 평양시당위원장 으로소개되었다. 경애하는김정은동지께서김정숙평양방직공장에선물을보내시였다, 로동신문 (2014. 4. 19). 61) 자위적국방력강화의력사에특기할승리와영광의대회경애하는최고령도자김정은동지를모시고제 8 차군수공업대회성대히개막, 로동신문 (2017. 12. 12). 아직까지는노광철이 제 2 경제위원장 으로소개된북한보도를확인하지못했다. 62) 조선로동당중앙군사위원회제 7 기제 1 차확대회의진행, 로동신문 (2018. 5. 18). 63) 경애하는최고령도자김정은동지께서조선인민군제 525 호공장을현지지도하시였다, 로동신문 (2018. 7. 25); 경애하는최고령도자김정은동지께서삼천메기공장을현지지도하시였다, 로동신문 (2018. 8. 6) 등. 136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Ⅲ. 과학기술교류협력과개성공단 1. 과학기술을활용한남북교류협력의변화모색 가. 과학기술교류협력의필요성 (1) 과학기술교류협력에대한북한의높은호응가능성 앞서살펴본대로북한은과학기술에기초해경제발전속도를높이고고부가가치를창출하기위해과학기술중시정책을 20년동안지속하였다. 그결과연구개발활성화, 교육환경개선, 생산현장의현대화 정보화진전, 사회전반의정보화확산등가시적인성과도거두었다. 2018년들어서는병진노선을종결하고 경제건설에총력집중 을결정하면서경제발전을위한과학기술중시기조를더욱강화하였다. 이런상황에서 남측의자본과기술, 북측의자원과노동력의결합 이남북협력의주된방식이될가능성은높지않다. 물론개성공단 1단계등과거의경험을통해 임가공 형태의남북협력이우리에게많은이익을준다는사실을확인했으며, 앞으로도이러한방식이유효한분야들은여전히존재한다. 그러나과학기술중시정책을추진중인북한은대외협력에서 값싼노동력과풍부한자원의제공자 역할에머무르려하지않을것이다. 남북관계도마찬가지이다. 최근북한학자들이국내학회의학술지에논문을투고한데서알수있듯이북한은남북과학기술교류협력에적극적인자세를갖고있다. 64) (2) 과학기술을활용한교류협력의고도화필요성 앞으로남북교류협력이활성화된다면과거수준의회복을넘어교류협력을다각화 다양화하고대중의참여를더욱확대해야한다. 그리고이를실현하기위해과학기술교류협력을활용할필요가있다. 물론현대과학기술은대부분고도로전문화되어있고거액의연구비가필요하기때문에과학기술교류협력을 대중적 으로진행하기는쉽지않다. 오히려소수의전문가와대기업만의참여에그칠가능성이크다. 그러나동시에과학기술은세부분야와부문이매우많을뿐더러, 주로 첨단과학기술 에맞춰진우리의시야를확장한다면현실에서과학기술의수준이천차만별임을발견할수있다. 65) 따라서과학기술의이러한특성에주목하여다양한주제와형태의협력사업찾아낸다면, 과학기술전문성이낮거나소규모자본을가진사람들도어렵지않게참여하여교류협력의이해당사자가될수있을것이다. 64) 북 IT 논문, 남학술지게재에학계 발칵 남북과학기술교류신호탄, KBS (2018. 9. 4).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033880 (2018 년 10 월 3 일접속 ) 65) 기술사학자에저튼 (David Edgerton) 은전체기술활동에서극히일부분에불과한 혁신 에만주목함으로써현실에서더광범위하게사용되고따라서더영향력이큰 오래된기술 의중요성을간과하게만드는 혁신중심 (innovation-centric) 의관점을극복해야한다고주장했다. David Edgerton, The Shock of the Old Technology and Global History since 1900 (Oxford Univ. Press, 2006). 에저튼의이러한관점은과학기술교류협력의준비단계에서도필요하다. 137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나. 남북과학기술교류협력의구체적방식들 (1) 교류협력초기단계 김대중, 노무현정부시기남북이진행한협력사업으로부터과학기술교류협력의초기단계에필요한, 또는가능한방식들을추출할수있다. 66) 아래열거한사업들은과거는물론이고앞으로도과학기술교류협력초기단계에남북이상호탐색및이해증진을위해필수적으로수행해야할사업들이다. 정보및동향분석 : 과학기술관련각종정보의수집및분석, 과학기술분야별현황및기술수준, 기술체계분석, 과학기술인력및환경분석, 문헌동향분석. 교류협력을위한사전준비의성격이강하며, 향후교류협력에활용한만한북한과학기술의선정 검증을위해필수적인과정. 지원및공여 : 실험장비등기자재, 시약형태의실험소모품, 최신과학기술정보를수록한도서제공, 기술이전및기술원조, 특허제공등. 2000년대서울대의대의중고의료기기제공, 벤처기업협회 한국정보과학회 한국정보처리학회의 IT 도서북한보내기운동 이대표적인사례. 공동조사 : 남북공통의관심사에대한정보조사, 또는향후공동사업을위한정보를수집하는활동. 남북공동과학기술용어비교조사, 자생식물공동연구를위한기반조성, 북한산마그네슘원광석의공동활용타당성조사등이진행됨. 정보및인적 물적교류 : 학술대회, 토론회, 학술회의, 논문발표를통한정보교류, 대학간교류등. 2000년대에는남북공동학술대회를 10여차례개최. 공동연구및협력연구 : 공통의주제에대해함께연구 / 토론 / 논문작성을진행하는것. 2000년대에는한국정부의지원아래초보적수준이나마남북공동연구를수십건진행함 ( 농약시험연구, 북한주민생필용화학제품생산시험연구, 남북고생대화석과퇴적환경비교연구, 내한성고구마개발등 ). 이에더해앞으로과학기술교류협력을 2000년대보다더욱안정적 계획적으로진행하고다각화하기위해서는아래와같은새로운형태를시도할필요가있다. (2) 남북과학기술교류센터설립 남북과학기술교류센터는당면한협력사업에대한협의, 중장기교류협력계획의공동수립등과학기술교류협력을안정적이고질서있게진행하기위해필수적인기관이다. 김대중, 노무현정부시기에는교류센터가부재한상황에서각기관이개별적으로교류협력을진행하여협력사업의경험이공동의자산으로축적되지못하였다. 66) 이하과학기술교류협력초기단계의협력방식은이욱환, 남북과학기술협력활성화에미치는영향요인에관한연구, ( 한양대학교박사학위논문, 2009) 를참고함. 138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3) 산학연협력을포함한중장기적인공동연구 2000년대에진행된남북공동연구는모두초보적인수준의단기과제였다. 앞으로는남북이기초연구, 기술개발, 기술기업설립및해외진출등긴안목에서다양한형태와수준의공동사업을모색할필요가있다. (4) 북한의기술기업창업을위한교육및지원방안 앞서확인한대로북한은교류사 / 교류소등기술기업창업을확대하고, < 은정첨단기술개발구 > 와같은기술개발구를준비하고있다. 그러나기술벤처창업및마케팅경험이거의없어 10여년전부터싱가포르민간단체 <Choson Exchange> 의벤처창업 스타트업교육지원을받고있다. 67) 앞으로남측이기술벤처창업 운영 마케팅노하우를제공하겠다고제안하면북한이호응할가능성이크며, 이를통해북한주민들의창업을돕거나남북공동창업의기반을구축할수있다. (5) 남측기업의북한과학기술활용 북한이지난 20년동안과학기술중시정책을실시하고경제의현대화 정보화를추진하는과정에서개발한기술을남측이이용하는방안을검토할필요가있다. 예를들어 북한이통합생산체계구축을위해개발한종합조종체계와자동화된설비들을남한중소규모공장의 스마트화 또는영세업체의자동화에활용 북한의친환경에너지기술을공공건물이나주택에도입 전통적인천연원료를이용한북한의기능성식품과천연물신약의공동개발, 판매 ( 서울대학교의대통일의학센터등국내일부연구기관이북한천연물신약기술동향분석을진행함 ) 교육의정보화, 원격교육확대를위해북한이개발한각종교육관련프로그램과기기를활용한과학기술교육콘텐츠생산기업창업등 이를위해서는남측전문가들이참여하는객관적인검증을통해경쟁력있는북한기술을선별하는게선행되어야한다. 또한지적소유권에대한북한사회의인식이높아진상황을고려하여특허와발명에대한북한의제도를충분히검토 숙지해야한다. 이와함께필요하다면 남측의자본과북측기술을결합한창업, 북측기업에남측자본투자 등북측기술을이용하는다양한형태의남북협력을원활하게진행할수있도록남측의법과제도를정비해야한다. 67) 북한에스타트업설립꿈꾸는조선익스체인지창업자제프리시, BBC 코리아 (2018. 6. 10). https://www.bbc.com/korean/news-44429003 (2018 년 10 월 1 일접속 ). 139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2. 개성공단을활용한과학기술교류협력활성화 가. 과학기술교류협력의거점으로서개성공단의장점 무엇보다개성은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설치, 운영되고있는남북교류협력의핵심거점이다. 따라서발전단계별로남북당국간, 연구기관간긴밀한대화와협력이필수적인과학기술교류협력도개성에서진행하는게가장효율적이다. 개성공단자체의발전전망에도과학기술교류협력이포함되어있다. 즉, 원래계획에따르면개성공단은임가공이상의산업구조고도화를지향하며, 따라서단순재개를넘어 2 3단계개발까지이어진다면고급과학기술유치가필수적이다. 개성공단에는종합지원센터, 기술교육센터, 아파트형공장등과학기술교류협력초기에곧바로활용할수있는시설이이미존재한다. 개성에는북한의경공업종합대학인 고려성균관 도있어중장기적으로개성공단과고려성균관을거점으로한남북산학협력을진행하기에도유리하다. 나. 개성공단을활용한단계별과학기술교류협력방안 (1) 개성공단재가동, 정상화단계 ( 초기 ) 1 기존시설을활용한과학기술교류협력준비 종합지원센터에임시로남북과학기술교류센터설치 종합지원센터에는원래연구개발과디자인지원기능 (3D프린터를이용한시제품생산, 제품시험등 ) 이부여되어있었다고한다. 이곳에남북과학기술교류센터를설치하고상호이해증진과공통의관심사파악을위한사업을진행한다 ( 정보및동향분석, 공동조사, 공동학술행사, 남북주요과학기술기관 시설교차방문등 ). 당장실행가능한시범사업선정에서부터중장기적인공동사업계획준비를위한남북협의를진행한다. 창업에활용가능한남북의기술을공동으로발굴 검증하고, 북한 ( 남북 ) 과학기술전람회 를시범개최하여사회적관심을높인다. 공단내아파트형공장에창업지원센터설치 약 26,000m 2 의공간중미임대상태인 30% 정도의공간에창업지원센터를설치하고, 과학기술교류센터에서선정한기술을활용한청년창업을준비한다. 창업팀이활동할수있는공간은물론이고, 남북정부로부터인력 기술 투자등을안정적으로지원받을수있는제도를검토, 작성한다. 기술교육센터활성화 원래기술교육센터는북측현장기술자및중간관리자양성, 공단내공장의공정개 140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선사업에대한센터교수의지원을목적으로한기관이다. 앞으로센터의기술교육내실화와함께북한기술활용을위한교육프로그램을개발하면서기술교육센터의증축 확장필요성을검토한다. 2 경쟁력이확인된북한기술일부를공단에시범적으로도입 공단내일부시설에북한산태양광패널설치, 운용 개성공단을가로지르는삼봉천오염방지에북한기술이용 북한의국토환경보호성산하환경과학기술연구원이개발하여강 하천수질감시에도입한부유물질측정기를개성공단내설치 68) 북한의폐열회수기술도입 공단에서발생하는다리미폐열을난방, 온수, 건조등에재활용 북한기술을이용한시범온실운영 수경재배기술, 폐열회수기술, 온실환경종합측정장치등 북한의안면인식보안장치를공단일부시설에시범설치 김일성대연구진이개발한안면인식기술이미국상무성산하 NIST( 미국표준기술연구소 ) 가 2017년 6월 ~9월개최한 제1회얼굴인식상챌린지 에서 16개국중 6위를기록했다. 69) 3 북한의기술개발구와연계준비 북한은기술개발구에대한투자유치가본격화하지않은상황에서개성공단의남북공동운영을통해기술개발구운영의노하우를쌓을수있다. 남측은대부분내륙지역에지정된기술개발구과개성공단을연결함으로써북한내수시장에대한접근가능성을높일수있다. 초기단계에서는개성공단에기술개발구의연락사무소설치, 개성공단과개발구의연계계획협의 작성, ( 가능하다면 ) 개발구의투자유치설명회등을진행한다. (2) 중장기고도화단계 1 개성공업지구산업고도화본격추진 공단부지일부를북한과학기술을활용하는첨단산업유치구역으로설정한다. 초기단계에검증을거친북한기술에기반을둔기술기업설립, 운영한다. 68) 환경보호사업에서큰전진, 로동신문 (2016. 4. 27). 69) 한비이노베이션, 美얼굴인식상챌린지에서세계 6 위기록, 전자신문 (2017.11.29.). 오랫동안김일성대연구진과안면인식기술개발에협력한한비이노베이션대표김모씨가최근국가보안법위한혐의로구속되면서역설적으로북한안면인식기술의경쟁력이알려지게되었다. 141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2 청년기술창업활성화 ( 통일스타트업의거점으로서개성공단 ) 3 고려성균관을남북산학협력의거점으로육성 북측과협의하여현재방직, 식료, 도자기, 인삼등경공업위주인고려성균관을 IT, 기계, 건축등이추가된과학기술대학으로확장하고, 이를거점으로남북의연구진과개성공단내기업이산학협력을진행한다. 4 북한의개발구와연계사업강화 ( 기술개발구의허브로서개성공단 ) 은정첨단기술개발구등북한의개발구에참가할자격을충족한업체의분점을개성공단에입주시켜소규모로가동하면서점차본격적인기업소로육성한다. 이를통해개성공단이북한개발구들의파일럿역할을하게되고, 남북과학기술협력의공간적범위를확대할수있다. 142

한반도새로운평화, 남북여성교류의과제 김정수 ( 평화여성회 )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 한반도새로운평화, 남북여성교류의과제 " 김정수 ( 평화를만드는여성회부설한국여성평화연구원원장 ) 들어가는말 1991년 아세아의평화와여성의역할토론회 로부터남북여성교류의역사가시작된이래햇수로 28년이되었다. 2018년 3차례의남북정상회담과 1차례의북미정상회담을거치면서한반도의분단구조는근본적변화를맞이하고있다. 평화, 새로운시작 을내건 4.27 남북정상회담이한반도에서새로운평화를만들어내는것은거의누구나부인할수없는현실이되었다. 이러한전환의시기에남북여성교류는어떻게진행되어왔는가? 남북여성교류는왜필요한가? 남북여성교류는무엇을지향해야하는가? 남북여성교류의과제는무엇인가? 등등많은질문이제기된다. 이러한질문들에대해필자는남북여성교류에참여해왔던경험과이분야에대한연구자료등을기반으로하여새로운한반도평화의시대에제기되는남북여성교류의과제에대해논의해보고자한다. 남북여성교류 28년은부침의역사이며, 그부침은분단된한반도에서남북관계의부침에상응한다. 따라서올해남북정상회담으로남북관계가새롭게열리면서남북여성교류의기회도새롭게열릴것으로기대하는바, 2015년 12월개성에서열린 민족의화해과단합, 평화와통일을위한남북여성들의모임 ( 남북 100여명참석 ) 이후남북여성교류는아직전개되지않기때문에 남북여성교류의현황 이란소제목으로정리할수있는내용이별로없다. 28년남북여성교류의역사에대한연구는풍부하다고할수는없으나, 그래도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나몇몇학자들에의해꼼꼼하게정리되어축적한연구성과를가지고있어서오늘의이자리에서선행연구들에서제기된쟁점들을중심으로살펴보고향후남북여성교류의과제를이끌어보고자한다. 올해 3차례의남북정상회담이후남북의사회문화교류그리고여성교류의생태계는완전히변화된것으로보인다. 아직그변화된생태계를어떻게탐사하여어디에길을낼지거기서무엇을할지에대해서는파악할수없는부분이많이있다. 변화된환경, 변화된생태계에서남북여성교류의패러다임도분명새롭게전개되어야할터인데, 이를위해서도과거 28년의역사에대한성찰이새로운길을여는데조금이라도도움이되지않을까기대해본다. 1. 남북여성교류는어떻게진행되어왔나? 남북여성교류는 2000 년도 6.15 남북정상회담이전과이후, 그리고 2008 년이명박정부이후 145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그교류의성격과내용에있어변화의특징을지니고있다. 김원홍은 남북한여성교류의출발은 7 7 선언 이후남북교류및협력이제한된범위내에서이루어지는가운데, 1988년이후학생, 학자, 제반사회단체및노동조합, 언론기관, 정당등각계각층에서남북교류및협력제의가이루어졌고주로여성단체나여성종교단체가중심이되어여성과관련된여러분야에서교류를제의한데서비롯되었다 고그출발점을소개하였다. 1) 1990 년대초반 < 아세아의평화와여성의역할토론회 > 6.15 정상회담이전의경우대표적인것은 1991~3년까지남한 북한 일본여성들이함께동경 -서울-평양-동경을돌며개최한 4차례의 아세아의평화와여성의역할토론회 2) 와종군위안부문제를남북여성들이공동의과제로삼아개최한 일본의전후처리문제에관한토론회 7건 3) 을들수있다. 아세아의평화와여성의역할토론회 는최초의남북여성교류였지만, 3년간 4차례에걸쳐진행된만큼이후의남북여성교류의특징혹은성과와한계 ( 혹은특징 ) 를보여준일종의모델과같다고할수있다. 먼저성과 4) 로는 1 분단이후최초로남과북의여성들이판문점을직접통과해방남 방북을통해교류했던점, 2 제3차평양토론회에서북한일본군위안부할머니들 1) 김원홍, 북한여성의지위와남북한여성교류활성화방안 (2012), 2) < 아세아의평화와여성의역할토론회 > 진행개요 일시장소남측대표자북측대표자내용 1 차 1991.1 동경 2 차 1991.11 서울 3 차 1992.9 평양 4 차 1993.4. 동경 이효재 ( 한국여성단체연합회 ) 이우정, 윤정옥상동아세아의평화와여성의역할토론회한국실행위원회 이효재등 30 명방북실행위원회 이우정 ( 국회의원 ) 등 11 명실행위원회 3) < 일본의전후처리문제에관한토론회 > 진행 여연구 ( 최고인민회의부의장 ) 등 3 명 여연구등 15 명방남 여연구등 여연구등 13 명 o 아시아의평화와여성의역할 o 가부장제문화와여성 o 통일과여성 o 평화와여성 o 민족대단결과여성의역할 o 일본의식민지지배와전후책임 o 평화창조와여성의역할 o 일본의식민지지배와전쟁책임과전후보상, o 아세아평화, 한반도통일의실현을위해우리는무엇을할수있는가 146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의증언을직접듣고정신대문제와일본의전후처리문제를남북여성들공동의과제로삼아이후남북여성교류의역사의한축을이어올수있는계기를마련한점등이다. 특징인동시에한계성으로는 1 남북여성의직접교류가어려울경우제3국의장소, 제3국의여성들이남북여성들이만날수있는기회를제공해준점, 2 남북여성들이여성의관점에서동질성과이질성을동시에확인한점, 3 남북관계의변화 부침에따라지속성혹은정례화가매우어렵다는점, 4 남북여성교류의참가자가남한의경우여성운동혹은비정부기구를대변하는민간인이대부분이지만, 북한의경우민간인이나비정부기구더나아가여성운동의대표성을지니지못한다는점등이다. 이토론회를추진한 아세아의평화와여성의역할토론회 한국실행위원회에는한국여성단체연합, 여성민우회, 교회여성연합회, NCC여성위원회, 기독교여성평화연구원등이참여하였는데, 1994년이후북한김일성주석의사망과이어진남한사회의조문논쟁, 1차북핵위기, 1990년대중반의북한기근과고난의행군등으로토론회재개가불투명해지고남북여성교류의중단이길어지면서 1997년여성평화운동전문단체인평화를만드는여성회 ( 평화여성회 ) 를발족시킴으로써그역할을마무리하였다. 평화여성회는 1997년 3월창립하면서북한영유아돕기캠페인 ( 밥나누기, 사랑나누기 ) 을펼쳐북한영유아들에게분유 26톤을전달하였고, 2000년대재개된남북여성교류에서대표성, 의제설정, 실무협상차원에서주요역할을담당해왔다. 일시장소남측대표자북측대표자내용 1 차 1993.10. 동경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 ( 정대협 ) 2 차 1993.11. 평양정대협 ( 이효재등 2 명 ) 3 차 1998.7. 동경정대협 ( 정진성등 4 명 ) 4 차 1998.10. 북경정대협 ( 윤정옥등 6 명 ) 5 차 2000.3. 상해정대협 ( 정신성등 10 명 ) 6 차 2000.7. 필리핀 정대협 ( 윤정옥등 7 명 ) 7 차 2000.12. 동경정대협 ( 윤정옥등 150 명 ) 북한종군위안부및태평양전쟁피해보상대책위원회관계자 ( 종태위 ) 종태위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 ( 홍상진등 ) 종태위 ( 부위원장박명옥 ) 등 8 명 종태위 ( 박영옥등 3 명 ) 종태위 ( 황호남서기, 정남영등 4 명 ) 종태위 ( 홍선옥, 정남영, 황호남등 11 명 ) 제 2 차종군위안부아시아연대회의참가 일본의전후처리문제에관한평양국제토론회참가일본의전시하강제연행에관한동경심포지엄참가일분군위안부문제와여성의인권에관한남 북 일본여성의 3자회합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을위한상해국제심포지엄참가 2000년일본군성노예전범국제법정 마닐라국제실행위원회및국제검사단모임참가 2000 년일본군성노예전범국제법정 에일본천황공동기소 4) 한명숙, 통일 평화운동, 한국여성단체엮음 열린희망한국여성단체연합 10 년사, 동덕여자대학교한국여성연구소, 1998, p. 219. 147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2000 년이후 6.15 여성본부의중심의남북여성교류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은남북사회문화교류의물꼬를트는기회를제공했고, 남북여성교류역시새로운단계로진입하게되었다. 김대중 노무현대통령시기남북여성교류는크게두개의차원에서전개되었는데, 하나는 3.1절, 6.15, 8.15 기념민족공동행사의부문행사로서진행된여성상봉모임과다른하나는여성들만의독자적교류행사라할수있다. 종군위안부문제를제외하고다른주제로는거의중단된남북여성교류는 2000년 10월평양에서열린조선노동당창당 55주년기념행사참관차방북했던한국여성단체연합의지은희대표외 3인이조선여성협회의홍선옥대표를만나중단된남북여성교류의가능성을타진하면서이어지게되었다. 5) 남북여성들은민족공동행사에서만남을지속하다 2002년 10월 17일금강산에서남북여성들 700명이만나역사적인 6.15 공동선언실천과평화를위한남북여성통일대회 를열게되었다. 이후남북여성들은금강산과평양에서 2005~8년연 1회정도남북여성통일행사 (2005년평양, 남측 100명 ), 남북여성대표자회의 (2006년금강산, 남측 30여명 ), 남북여성대표자모임 (2007년평양, 남측 9명 ), 남북여성대표자회의 (2008년금강산, 남측 20여명 ) 등을잇달아열었다. 2000년대남북여성교류의특징은조직과내용에서 6.15 정상회담이전과차별화되는지점이있다. (1) 조직적측면에서 2002년금강산남북여성통일대회를준비하기위해 7개의여성운동단위 6) 가 2002 남북여성통일대회추진본부 를만들었는데, 이기구는 2005년에 6.15 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라는공동기구내여성위원회 (6.15 여성본부 ) 로수렴되었다 ( 우리민족서로돕기여성위원회제외 ). 6.15 여성본부는이후지금까지남북여성교류를추진하는대표성을지니고종군위안부문제를제외하고는거의유일한남북여성교류창구로기능해왔다. (2) 내용적측면에교류행사는대부분 6.15 공동선언실천을위한남북여성의과제 를중심으로논의되었다. 2002년금강산남북여성통일대회폐막식에서채택한공동결의문 (1 조국통일의새로운희망과믿음을가지고 6.15 공동선언실천을통한통일운동에적극나선다. 2 이땅에서전쟁을방지하고평화와안전을이룩하기위하여모든노력을기울인다. 3 이땅에평화와통일을앞당기기위하여여성들사이에연대와단합을적극도모해나간다. 4 남녀가평등한통일사회의기틀을마련하기위해공동의노력을기울인다.) 의주요내용 7) 은이후의남북여성교류행사에서지속적으로주장되었다. 그밖에여성들이대개 2박 3일의교류기간동안남북문화체험, ( 평양의 ) 여성 아동기관방문등의프로그램을진행 5) 김정수, 여성연합통일평화운동 30 년의기록, 한국여성단체연합 30 년의역사, 당대, 2017, p. 456. 6)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여성위원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단체협의회, (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여성위원회 ), 6.15 공동선언실현과한반도평화를위한통일연대여성위원회, 7 대종단여성위원회, 평화를만드는여성회. 7) 김정수, 위의글, p. p. 456. 148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하긴했지만, 부대행사로치러졌기때문에실질적성과로이어지기에는한계가있었다. 2000년대 6.15 여성본부는북측의대화파트너였던조선여성민주여성동맹, 조선여성협회, 민족화해협의회여성위원회와교류하면서공동행사와독자적행사를성사시키기위해실무협의도지속하였다. 8) 남북여성들은공동결의문과같은합의문에도달하기위해충돌하기도하였는데, 대표적인이슈가바로북핵문제에대한서로다른견해가그것이다. 한반도의평화실천의방안에대한남북여성들사이의이견으로북한의핵실험에대해미국의침략위협에맞선자위권을주장하는북한여성들과비핵평화주의원칙에서평화적방법으로평화를이루어야한다는남한여성들의주장 9) 은평행선을달릴수밖에없었다. 그럼에도불구하고한반도에서전쟁반대와평화적통일을위한여성들의연대라는공통의과제에대한공감대가남북여성들의교류협력을지속하게하는동인이되었다할수있다. 이명박정부가들어서면서그간정례화되었던남북여성교류는공동행사에서의여성상봉모임과독자적교류행사측면에서거의중단되었다. 2008년금강산에서열린남북여성대표자회의와 2015년 12월개성에서열린 민족의화해와단합, 평화와통일을위한남북여성들의모임 ( 남북 100여명 ) 을끝으로남북여성교류는아직재개되지않고있다. 그밖에 2014년 3월 일본군성노예문제해결을위한남북해외여성토론회 가제3국인중국심양에서열렸다. 이글을쓰고있는 2018년 10월 4일현재, 2007년 10.4 남북정상회담을 11년만에처음으로기념하는남북공동기념행사를평양에서열리고있는데, 이행사에여성계대표성으로약 3-4명이참석하고있다. 참으로놀라운것은여성대표단의일원으로지은희전여성가족부장관 ( 정의기억연대이사장 ) 이참석하는데, 지은희전장관은앞에서언급했듯이 2000년 10월노동당창당 55주년기념행사에당시여성연합대표로서참석하여중단된여성교류의재개를제안한적이있다. 이번에도지난시기중단된여성교류를다시여는마중물역할을할것으로기대한다. 남북여성학술교류 10) 학술분야에서도남북여성교류가진행되었다. 남북여성의입장과경험을중심으로한교류와 8) 김숙임의논문 ( 남북여성교류, 한국여성평화운동사, 한국여성평화연구원, 2005.) 은실무회담과정에서겪은크고작은어려움에대한소회를담고있다. 9)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 백학순, 이우영, 전영선, 정형곤 ), 남북사회문화교류중장기로드맵설정및추진전략연구, 통일부연구용역, 2007, p. 67. 10) 위의자료를인용하였음. pp. 119-20. 149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협력을추진한예로서, 남북한여성들간의학술교류는이화여대한국여성연구원을주축으로하여연변대여성연구중심과함께김일성종합대학의여성교수들이학술회의를개최하는방식으로 5차례이루어졌다. 11) 남북한여성의학술교류는여성의입장에서다룰수있는학술적주제를토론하고자했으나처음에는역시여성문제에대한서로의차이를확인하는데그칠수밖에없었다고한다. 이후학술회의가지속되면서남북한여성이함께공유할수있는주제를모색하고, 이를토론하기위해노력했다. 구체적으로여성의건강이나청소년교육등여성들이당면한어려움이나문제를다룸으로써공감의영역을확장시키고자했다. 공식적인회의자리에서는여전히북한여성들은공식담론의틀속에서만자신들의의견을표출하였지만, 해당주제와관련한개인적경험을함께나누는모습을보이기도했다. 여성의경험에근거한학술회의주제를구성함으로써여성들간의만남을지속할수있었고, 이를통해서로에대한신뢰를구축해나갈수있었다. 하지만학술교류역시한반도의정치군사적상황에영향을받아적극적으로사업을추진해나가기어려웠다. 그리고남북한여성의직접적인접촉과협의를통해교류를추진해가기어려운상황에서연변의여성학자들의도움으로사업을추진해갈수밖에없다는점은사업추진의동인이면서한계이기도한부분이이다. 정부차원의남북여성교류 남북정부차원의여성들의접촉은일차적으로는남북협상에여성참여를들수있겠으나일반적으로이분야에대해남북여성교류로포함시키지않는다. 남북정상회담 12) 의경우, 2000 년 2007년의남북정상회담당시여성계대표성을지니고정상회담에참여한특별수행원여성인사들이북측의여성계인사들과의모임을가졌는데, 이를남북여성교류라는범주의활동의일부로포함시킬수있는지에대해서는좀더논의가필요하다. 조영주는이를정부간여성교류로분류하였는데, 2007년정상회담에서는처음으로여성분과가신설되고남측여성계대표 3인이참석하여, 정상회담에서남북여성대표들은모자보건및영유아지원사업, 일본군위안부공동 11) 남북여성학술대회주제 ( 중국연변 ) 1 2000 남 북 중국의청소년교육과양성에관한학술회의 2 2002 현대사회경제발전과여성 3 2007 녀성연구의발전로정과시대적과제 4 2014 여성의재생산, 건강과권리 5 2015 여성교육과사회적지위 12) < 평양남북정상회담에서의여성참여현황 > 150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조사사업, 여성관련법 제도공동조사및연구등에대한논의를진행하였다. 13) 북측에서도조선여성협회의홍선옥대표나조선여성민주여성동맹의박순희위원장등여성계대표인사들이참여했던점을고려한다면, 2007년의남북정상회담에는여성계간담회에는이전의남북여성교류에참여했던대표성과논의되었던의제가반영되었다고할수있다. 남북정상회담에서의여성계 ( 여성분과 ) 간담회와만남을남북여성교류의일부로이해할경우, 2018년평양정상회담은특별수행원중여성참여라는양적측면과여성적의제혹은성인지적측면의교류협력이라는질적인측면에서이전의정상회담의경험과매우다른양상으로나타난다. 2018 평양정상회담에참가한특별수행원의범주에여성계를특화시키지않은결과로볼수있다. 이번정상회담이한반도비핵화와남북관계발전이라는의제에초점을두었기때문에여성부문행사를별도로배정하지않았다는한참석자의설명은설득력이별로없다. 그러나경제계, 문화예술계, 노동계, 과학기술계등부문별간담회는진행되었던점에비춰볼때한반도의평화와민족경제의균형적발전에성인지적관점에대한인식이부족한점이반영된것이아닌가하는생각이든다. 2. 남북여성교류의의미 : 왜필요한가? 분단으로단절된남북여성만남자체의의미성 남북여성교류의의미혹은 왜 에대한질문은다양하게제기될수있다. 1991 년봄동경에서 일본여성들이주선하여남과북의여성들이 아세아의평화와여성의역할토론회 에서만났을 때남의여성들은남과북의여성들이만나야한다고주장했다. 분단된한반도의주민들이, 여 2000 년정상회담 2007 년정상회담 2018 년평양정상회담 특별수행원중여성수행원 24 명중 1 명 (4%) 장상 ( 이화여대총장 ) 48 명중 5 명 (10%) 현정은 ( 현대그룹회장 ) 안숙선 ( 국악인 ) 51 명중 11 명 (22%) 체육계, 경제계, 예술인, 종교계, 원로자문단등 여성계대표성 여성분야교류 1 명 (4%) 장상 ( 이화여대총장 ) 영부인과여성대표여원구등북측여성계대표와만남 3명 (6%) 김화중 ( 한국여성단체협의회 ) 정현백 ( 한국여성단체연합 ) 김홍남 ( 국립박물관 ) 영부인과여성대표들여성분과간담회및북측여성계대표와간담회 ( 북측 8명 ) 13) 조영주, 통일담론과여성의실천, 북한학연구 제 8 권제 2 호 (2013), pp. 257-8. 0% 남북영부인들만남 - 어린이시설방문등 151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성들이너무오랫동안만나지못했기때문에만나야한다는기본적인욕구라할것이다. 이산가 족의만남에어떤이유나명분도없이만남자체가필요한것과마찬가지이다. 단절된사람들의 만남, 분리된여성들의만남은그자체로의미를지닌다. 모든여성들이남북여성교류에서만남그자체에의미를두지는않는다. 그러나남북의분단은단절이고고립이며, 정치적 이념적분단이초래한물리적단절은상대방이어떤이들인지거의알지못하는상황으로만든다. 필자가 1991년 11월 25일저녁서울올림피아호텔에서열린제2차 아세아의평화와여성의역할토론회 에서실무자로개막식리셉션테이블에서부친인여운형선생묘소를참배하고울어서부은눈으로빠르게입장하는북측의여연구선생과그일행을맞이했을때, 그것은북한사람들을태어나서처음으로눈앞에서만났던아주긴장되었던특별한순간으로생생하게기억하고있다. 당시토론회에남측여성계인사 300명정도가관심분야와지역, 심지어이념적지형을초월하여열광적으로참석한것은단절된분단의세월동안만나지못한북한사람들, 북한여성들에대한근본적인관심이발동했기때문이라고본다. 이러한만남자체의의미, 호기심, 관심사, 기대감과같은원초적감정과욕구의발산은남북의교류나왕래가자유롭게될때까지지속될것이다. 그런데오랜분단과단절로억눌린상태에서만나게되면감정과욕구의과잉이나타날수밖에없다. 남북여성교류에서도종종다양한방식으로감정이나욕구의과잉이폭발되기도했으나, 대표단과집행부차원에서최대한조절하는노력을통해조금씩만남과교류에대해익숙해지는과정을거치게되었다. 남북여성교류는이질성극복과동질성회복이라는교류협력의과제에부합할까? : 상대방을이해하기위한만남의필요성 통일이왜필요한가? 라는질문의통일의식조사에서 같은민족이기때문 이라는답변이 1 순 위에서밀려난지꽤오래되었다. 그런데, 남북사회문화교류협력의이유나동기, 그리고의미 성에서같은민족으로서분단이초래한이질성을극복하고동질성을 회복하여민족공동체를 의식을형성하여통일을준비하기위해사회통합을이뤄내야한다는것이매우중요한목적으 로자리매김되고있다. 14) 남북교류협력의주요담론은민족의동질성회복차원에서논의되고 14)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 백학순, 이우영, 전영선, 정형곤 ), 남북사회문화교류중장기로드맵설정및추진전략연구, 통일부연구용역, 2007, p. X. 사회문화교류의. 기본방향은 2000 년이후부터현재까지의경험을반추하여다음과같이다섯가지의방향에입각하여진행되어야함을제안했다. 1 사회문화교류를통해남북사이의이질성을극복하고동질성을회복하면서민족공동체의식을함양해가야한다. 2 남북상호간에이해와신뢰형성과정의축적이라는관점에서사회문화교류협력을추진해야한다. 3 남북관계의전반적발전과더불어사회문화교류의경우도제도화단계로들어가야한다. 4 남한사회내에서민주주의를확대하고평화문화를정착시키는노력속에서남북사회문화의전반적인발전을이끌어가는과정이되어 152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있음을알수있다. 남북여성교류의경우남북여성의이질성확인은지난 28 년의교류역사를통해공개적 비공개 적차원에서다양한방식으로이뤄졌다. 사실양측여성들의이질성은남북여성들이남한땅에 서최초로, 공개적으로, 대규모로대면하는현장에서부터드러났다. 1991 년 11 월서울에서열 린 아세아의평화와여성의역할토론회 소주제 가부장제문화와여성 토론에서 1946년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설과함께여성해방이법과제도적측면에서이뤄졌다는북측여성발표 15) 와이에대한남측여성들의당혹스러움을생생하게전달한기록은남북여성의이질성과동질성문제가남북여성교류의초기부터제기된근본문제임을보여준다. 아시아의평화와여성의역할 서울토론회는 11월 25일부터 30일까지서울평창동라마다올리피아호텔에서열리기로되어있었고, 실제로는북한대표들이하루일찍귀환함으로써 29일까지진행되었다. 첫토론회 가부장제문화와여성 은남측조형교수 ( 이화여대사회학과 ) 의발제로시작되었는데참석자들이남쪽사람들이었던만큼, 관심은북측의토론에모아졌다. 북측의입장은한마디로 북한에여성문제란없으며있을수도없다 였다. 우리참석자들은질문과답변이거듭됨에따라처음의진지한긴장에서벗어나못내못마땅한얼굴로서로를쳐다보기시작했다. 남한에는법이며, 경제제도며가족등거의모든부분에가부장제유제와그에따른사회적불평등이존재하고있다고발제내내모든 치부 를드러내는데심혈을기울였던조형교수가머쓱해져야했다. 16) 금강산이나평양에서 2박 3일의여성교류행사에참여하게되면비슷하게경험하는양태가 가부장제문화와여성 이라는남북여성들이공히관심을가질만한주제를논의하는자리에서드러난것이다. 북한여성들의공식적입장은북한정권이수립되어사회주의적해방과동시에 여성문제는이미해결되었다 는정식화 ( 定式化 ) 된담론이상도이하도벗어나지않지만, 남한여성들은여성문제에있어백명이모이면백가지목소리를내고대개는불평과불만이터져나오게된다. 필자가경험한바, 2박 3일동안남북여성이만나서함께여러프로그램에참여하 야한다. 5 사회문화교류의추진에서점진적단계적통합이라는방향하에민 ( 民 ) 과관官 ) 의협력을모든영역에서실현해가야한다. 15) 남한의경우 1989 년도에들어와서야남녀평등권을만드는것에비해북한은 46 년 7 월 30 일에공포된 북조선남녀평등권에대한법령 (9 개조 ) 와 9 월 14 일공포된법령의 시행세칙 (29 개조 ) 에남녀평등권을기초에둔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권리, 남성과동등한여성의자유결혼권, 자유이혼권과재산상속권과이혼시재산과토지분배권을제정한다. 또조혼이나민며느리제도, 일부다처제, 공 사창제도를금지하였다. 김귀옥, 분단체제와혐오를넘어, 평화시대여성의삶, < 기고 > 서울겨레하나, ' 판문점선언시대 ' 를읽는아카데미 (4) 강혜진통신원, 통일뉴스 2018. 7. 27. tongil@tongilnews.com 16) 신진화 다시 읽는 남북여성토론회, 여성과사회 3 호 (1992), pp. 181-182. 조영주, 위의글에서재인용, pp. 262-3. 153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고여행하며오고가는자리 ( 특별히 2005년평양남북여성통일행사에서남한여성 100명이참석하여평양-칠보산일정동안남북여성은거의함께이동하고다양한삶의경험을나누는자리가되었다 ) 에서삼삼오오혹은개별적으로대화를나누다보면, 북의여성들에게남의여성들은여성문제에관해일종의북한체제의선진성을선전하는차원의이야기를많이듣게된다. 남의여성들은북의여성들이겪는실질적삶의어려움이나남녀관계에서가부장적유산이현존한다는것을알고는있지만, 그점에대해대개는반박하거나논쟁하지않고경청하는태도를취하곤한다. 그러면여성문제에관한한표면적으로는북한체제가비교우위에있는것이된다. 이는서로다른정치, 경제, 사회, 문화체제에서살아온필연적이질성이라할수있을것이다. 삶의방식 이달라지면, 사고방식 도달라지며 옳고그른것 에대한사회적인식역시달라진다. 마찬가지로 의사소통방식 역시달라질수밖에없다. 따라서이렇게다차원적으로달라진삶의생태계에서남북여성들은여성문제에대한법과제도의차이뿐아니라인식의차이그리고서로를대하는태도나의사소통방식의차이까지경험하고확인하곤한다. 서로다른기준과관점을가지고상대방에대해계몽하려고하며또한다른의미에서상대방을수용하기도한다. 앞으로도이질성혹은차이를확인하는과정은꽤오래지속될것이다. 아울러이질성을확인함으로써상대방을이해하는과정은반드시필요하다. 오히려남북여성들이분단으로달라진다차원적인이질성들을확인하기위해서도다양한만남의시도와교류의장은열려야한다. 다음으로동질성회복은여성교류에서어떻게자리매김되어왔을까? 남북여성들은이질성을확인하는과정을통해서도역시가부장적성별역할이라는동질성을확인해왔다. 매우아이러니한일이다. 가부장적유산이가정이나사회에서생활속의남성-여성의권력관계, 부부관계에서존재하고있음또한발견하고남북여성들이결국은비슷한여성이라는존재로서삶의어려움을겪고있음을확인하게되는것이다. 여성들이만남과대화를통해확인한동질성은전통적인가부장적성별역할에대한비판적인식에다름아니며, 성평등사회를이루기위해서는극복해야할과제가아닐수없다. 그러나남북의여성들이여성문제에대해공감대를이루는순간들이있다고해서함께해결해야할공동의과제로수용되는공식적의제설정차원과는다른문제이다. 아울러북한을방문한일부남성지식인이나문인들이규정하고설명해주는남북여성의동 질성, 즉가부장적문화와성별역할구분에의해탄생된여성성이나순종성이남북이공히회 154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복해야할전통적문화유산으로받아들여져서는안된다. 북한을방문한남성문인들이찬양해마지않았던북한여성의순종성이나전통적여성성은가부장적문화에대한북한여성들스스로의자각과성찰을통해성평등인식으로전환되어야할것이다. 여기에서남한여성들의역할은남한사회의가부장적법과제도나아가적대적이고혐오적인여성인식을성평등한것으로전환시키는꾸준한노력을기울이는것이가장바람직한방법이라고본다. 남북여성교류에서이질성의극복과동질성의회복이라는교류협력일반의의미성을구현하는것이필요하다고남북여성들이동의한다면, 그방식은남북여성학술교류의사례에서보이듯이학술적 실천적토론과공감의장을마련하는것이바람직할것으로보인다. 김귀옥은 북한사회에서우리가타산지석으로가져올것이있다면조직성이고우리사회의장점은자율성 17) 이라고한다. 분단체제가생산한각체제의장점인동시에상대방에대해인정하고또자신에게부족하거나결핍된부분을보완해야할요소라할것이다. 이는남북여성들의만남에서도드러나는일반적특징이라할수있는데, 각각의장점이나특징을기반으로하여남북여성의관심사, 특별히여성문제를중립적혹은객관적으로, 적어도최소한상대방에대해존중하고격려하려는태도를견지한채논의하는자리는학술토론회라는장에서이뤄지는것이가장그목적에부합할것으로보인다. 상호배움과자신에대한성찰과반성, 이를선순환적으로피드백할수있는방식으로남북여성학술토론회를운영할수있다면, 남북여성들이여성문제에대해자율성을지니고논의하는과정을통해성평등한평화문화구축이라는여성평화운동의과제도접근할수있을것으로기대한다. 한반도평화구축과정에여성들의참여 - 시민적권리와책임성 28 년간남북여성교류에서중심과제는 여성들이힘을합쳐한반도에서전쟁의위기를몰아 내고평화로운통일을이룩한다 는것이라할수있다. 6.15 공동선언실천을위해모인여성단 체들의조직인 6.15 여성본부 의고유사업은남북여성교류의추진이다. 이조직이남북여성 교류를추진하는공식적통로로기능, 혹은독점적지위를유지하는명분은 2000년남북정상이합의한공동선언실천을위해남북여성들이힘을모으기위한최적의기능을담당할수있다는것이다. 2000년금강산에서열린남북여성통일대회의공동결의문에는남북여성교류의목적성이모두포함되어있다. 1번조항 ( 조국통일의새로운희망과믿음을가지고 6.15 공동선언 17) 김귀옥, 분단체제와혐오를넘어, 평화시대여성의삶, < 기고 > 서울겨레하나, ' 판문점선언시대 ' 를읽는아카데미 (4) 강혜진통신원, 통일뉴스 2018. 7. 27. tongil@tongilnews.com 155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실천을통한통일운동에적극나선다. ) 이남북여성공동의과제라면, 2번조항 ( 이땅에서전쟁을방지하고평화와안전을이룩하기위하여모든노력을기울인다. ) 은북측여성들의주요관심사를반영한것이며, 3번조항 ( 이땅에평화와통일을앞당기기위하여여성들사이에연대와단합을적극도모해나간다. ) 은남측여성들이남북여성교류에참여하는주요동기를드러내고있으며, 4번조항 ( 남녀가평등한통일사회의기틀을마련하기위해공동의노력을기울인다. ) 은남북여성들이궁극적으로도달해야할성평등한통일한국미래에대한비전과지향을보여준다. 그러나남북의여성들이어떻게한반도에서통일과평화를만들어갈것인가에대한내용과방법에대해서는위의결의문이상으로논의를진전시키지못했다. 앞에서언급했듯이북한의핵실험, 핵무기보유에대해서공식 비공식적으로다루지못했다. 평화를위해남북여성들이모였지만정장평화문제에대한진지한논쟁을할정도의자율성이남북여성들사이에확보되지못했다. 오히려첨예한논쟁은북한의핵실험을둘러싸고남쪽여성단체들사이에벌어졌다. 18) 이것은남북여성교류의한계성이기보다는남북관계에서기능주의적접근을선택한김대중 노무현정부의화해협력정책의기조하 사실상의통일 차원에서진행한사회문화교류의의일환으로진행된점에서비롯된한계성이기도하다. 남북여성교류에서통일과평화에대한접근방법이제대로다뤄지지못한것은북한여성들은제외하더라도남한의여성들이다양한이념적지향에서여성이라는공통성을기반으로하여분단으로단절되어잘모르는북한여성들에대한궁금함을여성교류를통해충족시키려는관심사가더컸기때문일수도있다. 즉다양한정치적 이념적 종교적정체성을지닌여성들이 6.15 공동선언실천이라는추상적혹은최소주의적관점수준의목표를위해모여단일하게조직된북한여성집단을만나는과정이바로남북여성교류였기때문에통일과평화에대한 내용 과 방법 에대해토론하고논쟁하는것자체가애초에불가능할수밖에없었다고본다. 북한여성들을만나는남쪽의여성들이한반도평화와통일에대한책임성을포기한적이없지만, 남북여성교류에서성인지적관점에서평화와통일의문제를의제로선정하지못했던점도한계성으로지적되어야한다. 남북여성교류가단절된 2008년이후남측의여성단체들은 여성 평화 안보에관한유엔안보리 1325 결의안 에대한국가행동계획 (NAP) 수립을촉구하고, 2014년 18) 일례로 2006 년 10 월북한이 1 차핵실험을했을때 6.15 여성본부내에서북핵실험을비판하는성명서기조를비핵평화주의차원에서전개할것인지혹은북미관계의적대적관계청산에초점을둘것인지를두고논쟁이벌어졌다. 결국공동성명서보다는개별단위차원에서성명서가발표되었다. 156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5월정부가국가행동계획을수립한이후에는 1325 국가행동계획의이행과평가에대한거버넌스구축을위한노력을기울이고있다. 앞으로남북여성교류에서성인지적관점의의제설정은북한여성들과의만남이단절된시기의전개된여성평화운동의성과를반영하여이뤄질것으로보인다. 즉 UN과국제여성평화운동에서 2000년이후성인지적여성평화의제로수립된 WPS (Women, Peace, Security, 여성 평화 안보 ) 관점에서향후한반도평화구축을위한남북여성들의교류와협력을위한고유한의제설정을통해성평등한한반도를지향하는남북여성의공통의관심사가모아지길기대한다. 3. 남북여성교류의과제 성인지적남북여성교류의제설정과액션플랜만들기 남북관계가새롭게열리면서사회문화교류, 민간교류, 그리고남북여성교류에대한새로운기대와전망이다양하게논의되고있다. 김대중 노무현정부의기능주의적접근방식이아닌, 남북관계발전과한반도비핵화문제를선순환적으로결합시킴으로써한반도신경제공동체구상에가장큰비중을두는문재인정부하에서민간교류나남북여성교류는과거의방식이아닌새로운패러다임으로전환할도전에직면해있다. 또한지자체나재계, 학술 문화 예술분야의사회문화교류도활성활될전망이다. 경기도여성들의남북여성교류에대한정책제안도최근에발표되었다. 19) 새롭게열리는남북여성교류의생태계는사실, 그렇게여성들에게우호적이지는않다. 일단민간차원의남북의자율적접촉자체가제한되고있다. 1996년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창립부터북한에대한인도적지원에참여해왔던강영식사무총장은문재인정부에서민간이남북교류에서기대와달리패싱당하고있다고한다. 20) 남북관계가경색된시기, 대북지원단체들을 19)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은 25 일 ' 남북한여성교류협력을위한경기도여성정책의방향 ' 보고서를발간하고, 남북여성교류협력필요성과추진방향을제안했다. 민선 7 기도가비전으로제시한 ' 실질적인성평등 ' 과 ' 남북교류의적극지원 ' 추진에남북여성교류협력사업이도정의성주류화실행에있어차별적이고의미있는정책이될것이며, 도가향후통일한국의중심지로서통일사회의성평등정책기반을수립하는역할을맡을수있는것이라분석했다. 구체적방안으로는 도남북교류협력위원회여성참여율 40% 충족 경기도성평등기금을활용한 ' 여성평화증진및통일을위한활동 ' 지원 도양성평등주간및세계여성의날행사공동개최 남북경제협력지구에서의여성근로자지원 북한여성및아동건강지원 성인지적평화통일교육등을제안했다. 인천일보 2018. 7. 26 일자참조. 20) ( 강영식 ) 평창겨울올림픽과 4 27 판문점선언이후남북당국간관계는좋아졌지만, 정부는 질서있는남북관계관리 를내세워대북지원을포함한민간교류협력에는신중한태도다. 판문전선언이후큰기대를걸었던대북지원민간단체들은예상못한 정부독점민간패싱 상황에직면했다. 한겨레신문 2018. 10. 4 157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말그대로엄혹한시기를견뎌왔지만, 새롭게열린남북관계에서민간교류와협력의장은기다리고기대한만큼열리지않고있다. 마찬가지로여성교류역시정부의관리하에접촉의기회를좀체갖지못했다가, 21) 2018. 10. 4 남북정상회담기념행사에여성계인사들이참석하면서겨우접촉과만남의기회를얻게되었다. 2018 년 9 월평양정상회담에특별수행원으로참석하고온이현숙여성평화포럼고문은최근에 정상회담참가보고회를연자리에서, 지금까지통일문제에있어여성통일 평화운동단체는 '~~ 이행 을 위한여성의역할 ' 을논의하는수준이었다. 이제는의제설정, 대안마련을위한액션플랜이필요하 다. 여성통일운동도이제 3 단계이므로질적도약을해야한다. 비난서사에서협력의서사로변화해야 한다. 경쟁이아닌서로기를살리는방식이어야한다. 시민단체들도새로운운동모델이필요하다. 민주적논의체계가필요하다. 보수와진보를아우르고각단체별로준비하고힘을합칠때는함께해야한다. 2030 세대를위한통일교육이필요하다. 와같은의견을제시했다. 이현숙고문의의견은남북여성교류의의제설정에있어매우중요한시사점을던져준다. 즉새로운평화의환경에서남북여성교류를위한새로운의제를설정하여대안마련을위한액션플랜을만들어야한다는점이다. 필자는남북여성교류가 여성 평화 안보 (Women, Peace, Security, WPS) 담론을기반으로하여의제를설정하고행동과제를만들어야한다고본다. 남한이 1325 국가행동계획을수립했듯이북한여성들역시북한한 1325 국가행동계획을수립할수있도록지원하는것이필요하다. 남북여성교류는성인지적한반도평화구축기반형성, 성평등한한반도평화만들기등을통해남북여성들의삶의조건을실질적으로개선할수있는방향을모색하는차원에서이뤄져야한다. 같은맥락에서민주평통여성분과는최근남북여성교류의방향으로 1 여성경제인교류협력확대, 2 경협추진시여성에대한지원체계마련, 3 여성공동행사및학술대회개최, 4 북한여성의건강 교육관련협력사업추진및지원, 5 남 북양성평등기본조약체결추진등을제안하였다. 22) 성평등한한반도를위한남북여성교류와협력의과제문재인정부가적극추진하는한반도신경제구상및북한개발협력과정에성인지적관점수립, 취약계층여성보호와역량강화를위한사업의진행, 여성경제인들의협력을통해남북여성의 일자참조. 21) 일례로최진미 6.15 여성본부상임대표는지난 9 월 20~23 일평양에서열리는 6.15 민족공동위원회남북해외위원장회의에참석하기위해방북신청을했지만통일부에서불허되었다. 이회의에서는민족공동행사와부문별교류등을논의되었다. 통일뉴스, 6 월 21 일자참조. 22) 민주평통여성분과위원회, 남북여성교류의방향성과우선과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2018. 2 차통일정책추진에관한정책건의, p. 105 이하. 158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격차해소와균형발전, 이를통해남북여성의평화공존의기반을조성해야한다. 북한개발협력은북한여성의역량을강화하는방식으로진행됨으로써북한여성들의주인의식 (ownership) 을가질수있도록임파워먼트하고동시에남북여성의상호책임이강조되어야한다. 이는 2017년발표된 [ 유엔전략 2017-2021] 문서에서유엔의북한내사업목표를 북한주민들, 특히취약계층의복리증진을위한북한당국의활동을지원하는것 23) 으로세운방향에상응한다. 이런맥락에서한반도신경제구상의구체화, 북한개발협력과정에서북한여성의역량강화를기반으로하여북한의여성노동자의인권보호, 모성보호방안을보장할수있도록해야하며, 여기에남한여성들역시책무성을가지고참여해야한다. 남한여성들의참여는첫째, 남한여성경제인의참여로서, 개성공단의재개를비롯하여남북경협에서여성경제인, 여성기업인, 여성관리인의참여가실질적으로이뤄져야한다. 특별히남북경협에서중소기업의비중이커질것으로예상되는바, 여성기업인이나여성경영관리인의참여는성평등한남북경제구조를만들어가는데기여할것이라본다. 둘째, 북한경제가새롭게발전하는데있어남한의산업화과정에서발생한여성노동자들이희생과피해가되풀이되지않기바란다. 남한여성들이선행적경험을가지고있는영역이라는점에서성인지적관점의한반도신경제구상및북한개발협력가이드라인이제시되어야한다. 이러한가이드라인은여성가족부, 여성노동계, 여성연구자, 여성시민단체가함께논의하여만들어가기바란다. 아울러유엔의 2030 지속가능한개발목표 (SDGs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2030) 이행을통해성평등실현, 여성건강권과아동발달권향상을위한남북여성협력사업진행하기바란다. 구체적으로남한의 2030 SDGs와북한의 SDGs 가운데공동의발전목표를설정하여협력사업으로진행하기바란다. 북한은 2030 SDGs를 전세계적범위에서사회적불평등과빈곤을없애고인간의존엄과창조적능력을마음껏발향하며우리세대뿐아니라후대들의유족한생활을담보하는세계를건설할것을공약한인류공동의행동강령 으로평가하였다. 이에따라 [ 유엔전략계획 2017-2021 지속가능하고복원력을갖춘인간개발을향하여 ] 가유엔북한팀과북한당국사이에체결되었다. 유엔북한팀에참여하는 13개국제기구들과북한당국은향후 5년간 식량과영양안보, 사회개발서비스, 재해및기후변화등에대한대응역량강화및지속가능성, 데이터와개발관리 4개부문을중심으로추진하기로하였다. 이러한바탕에서남북의여성들이여성건강권과아동발달권향상, 여성역량강화를위한과제를발굴하여협력해나가길바란다. 한반도와동북아의지속가능한평화체제형성과제 28년전남북여성교류의첫토론주제는 아세아의평화와여성의역할 이었다. 한반도에서새로운평화가지속가능한평화로정착되려면동아시아에서평화체제가구축되어야한다. 남북여성들을만나게한과제는아직끝나지않았다. 남북여성들이성평등한한반도만들기를위한노력을기울이는만큼동북아의평화를위한노력을기울이는데힘을합쳐야한다. 2018년 5 23) 강영식, 남북교류협력및대북지원에서의시민사회의역할, 남북관계개선과한반도평화정착을위한시민사회의역할국제포럼, 2018 년 5 월 23 일, ( 주관 ) 프리드리히에버트재단,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한반도평화포럼, 자료집 92 쪽참조. 159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월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 (SIPRI) 에서발표한 세계군사비지출통계보고서 에따르면, 2017 년의경우미국은 6,100억달러 (1위), 중국은 2,280억달러 (2위), 러시아는 663억달러 (4위), 일본 457억달러 (8위), 한국 392억달러 (10위) 등동북아에서군비경쟁과군사비증가는지속되고있다. 한반도에서남북관계가개선되어도미국-중국의패권경쟁, 군사동맹의강화, 군비경쟁이지속된다면, 지속가능한평화는사실상불가능할것이다. 따라서 동북아공동의집, 동북아다자안보협력체 와같이동북아평화공동체형성을위해한국의여성평화운동은동북아의여성시민사회의연대와협력을통해동아시아군축운동을전개해나가야할것이다. 이과정에북한여성들이참여할수있도록노력해야하는것이필요하다. 동북아여성시민사회대화의장으로서지난 2007 12년까지진행된 동북아여성평화회의 는본래한반도비핵화와평화제체형성을위한여성6자회담을지향하여기획되었다. 이제명실공히북한여성들도참여하는동북아여성평화회의가재개되길바란다. 그런의미에서정부간진행되는 3자혹은 4자회담에여성대표성을확대하고, 회담기간중에 1,5 트랙회담혹은 NGO 포럼이나여성포럼을조직할것을각국정부에요구해야한다. 동북아평화공동체형성을위한여성들의의지, 지식, 지혜가여기서모여져서동북아여성들이참여하여, 함께만들고지켜나가야할지속가능한동북아평화를만들어야하기때문이다. 남북여성교류의주체적역량형성과참여자확대하기 남북여성교류의한계로지적된문제가운데하나가여성교류협력의주체의문제였다. 교류협력주체의비대치성문제로앞에서언급했듯이남한의여성들은민간인으로시민단체를대표하는데비해북한의여성들이단체의이름으로나오지만사실상정부를대변하는인사들이라는점이다. 이문제는비단여성교류뿐아니라시민사회의사회문화교류전반에걸쳐제기되는문제이다. 또한북한의종교계와교류협력에서도과연 진짜 종교인인가? 하는질문이제기된다. 이점은남북사회문화교류전반에노정된한계인동시에문제점이라할수있다. 교류협력의자율성이확보되지않은채북한당국의정치적메시지를전달하는창구로서기능하는측면이크기때문이다. 이러한한계성에도불구하고남한의시민사회는북한과의교류협력을스스로중단하지는않았고마찬가지로 6.15 여성본부에소속된여성운동단체들역시북한의여성들을만나는일을포기하지않았다. 북한체제의특수성을반영한사회문화교류, 남북여성교류라는한계를인정하고출발한교류협력이기때문이다. 필자가보기에현재남쪽의여성교류단체나참여인사에게필요한것은, 중단된시기의공백 을메우고성평등하고평화로운한반도를형성을위한남북여성교류를본격적으로 추진하기 160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위해, WPS를기반으로하여남북여성교류의의제를개발하고전략을수립하여북한여성과의실무협상을통해이를관철시킬수있는역량이있는활동가를양성하는것이더필요하다고본다. 남북여성교류가활발하던 2000년대평화여성회는 남북여성협상전문가프로그램 을개설하여북한여성들에대한이해를높이고남북여성교류와협력을준비하는이들을지원했다. 이러한프로그램이다양하게개발되어향후양적확대뿐아니라질적으로심화된남북여성교류를이끌어갈수있는전문화된역량을배출할수있는기회가확대되기바란다. 아울러경제교류, 지자체교류, 사회문화교류등이확산되면남북여성교류참여자가대폭늘 어날것이다. 남북여성교류협력전문가양성을위한교육훈련프로그램개발을통해내실있는 남북여성교류가진행되기바란다. 북한사회와북한여성이해하기 남북여성교류가중단된동안북한사회와북한여성은커다란변화를맞이하고있다. 남북여성 교류에참여하려면무엇보다만나려는대상을이해하기위한공부가선행되어야한다. 북한여성들을만나는것은소수의선별된지도자급여성들만을만나는것은아니다. 핵무력을완성하여본격적인경제발전으로나아가려는북한체제전체를만나는일이다. 고난의행군시기장마당을통해생존을지탱해온강인한여성들을만나는일인동시에, 국가적재난의피해를온몸으로경험한피해자여성을만나는일이기도하다. 남북여성교류의허와실 (2007) 이라는논평에서남북여성교류가북한여성의인권에는침묵해 왔다는비판이제기된적이있다. 남북여성교류에주도적으로참여해온여성운동단체들이정작북한여성인권문제의심각성에는관심이부족하다는지적이있었다. 남북여성대표들의만남을주도해온여성평화운동진영은, 민간교류가갖는의미에대해여성의관점으로재평가를해야할시점이다. 북한여성들의인권과차별문제에대해여성평화운동진영이무관심한것아니냐는비판에대해, 더는 남북여성교류와북한인권개선문제를함께논의할순없다 고정당화해선안된다. 그동안북한측과만나온여성계대표들은 ' 민간교류가이루어지려면북한당국의심기를거스르면안된다 ' 는이유로, 북한사회의성차별이나여성인권침해문제에대해침묵해왔다해도과언이아니다. 24) 24) 윤정은, [ 논평 ] 남북여성교류의허와실북한인권관심갖는여성평화운동을, 페미니스트저널일다, 2007. 12. 11 일자. 161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이러한지적은남북여성교류에참여해온입장에서는매우뼈아픈내용이다. 평화여성회는 2000년대초반남북여성교류가활성화되면서탈북여성들과함께진행해온남북여성사회통합프로그램 진달래 무궁화모임 을중단했다. 25) 여성교류의한축인북한여성들이평화여성회의 진달래 무궁화모임 에대해비판하고, 회원들사이에서도남북여성교류라는단체설립목적에충실하려면탈북여성프로그램을중단해야한다는주장이강력하게제기되었기때문이다. 그렇지만, 정작평화여성회가위모임을중단한까닭은탈북여성들은남한사회에서적응하고생존하기위하여사회통합프로그램보다는좀더구체적이고실질적인도움을원하지만평화여성회는이를충족시킬만한재원이나능력이부족했기에내외적인상황을고려하여중단하게된점도있다. 그결과평화여성회는탈북여성프로그램을중단함으로써북한여성인권에대해침묵한다는비난을듣게되었지만, 남북여성교류과정에서 남녀평등한한반도를만든다 는목표를포기한적은없다. 이제재개될남북여성교류에서남북여성들은공히상대방에대한이해의폭을넓히려는노력이수반되어야한다. 이를위해상호이해프로그램을개발하는동시에남한여성단체들내부에서평화교육, 북한여성이해교육, 성인지적중재와협상훈련등다양한차원의교육훈련프로그램이진행될필요가있다. 지속가능한남북여성교류기반마련하기 민주평통여성분과는최근남북여성교류의지속성을보장하기위한과제로 1 교류협력에서여성대표성제고, 2 남북교류협력관련법률및제도정비에있어여성관점반영확대, 3 여성교류협력추진지원기구및담당인력배치, 4 여성교류협력추진을위한민관거버넌스구축을제안하였다. 26) ( 자세한내용은아래박스참조 ) 25) 남북여성사회통합훈련프로그램인 진달래 무궁화 모임은 2012 년창립된 < 조각보 > 단체에서재개되었다. 26) 민주평통여성분과위원회, 남북여성교류의방향성과우선과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2018. 2 차통일정책추진에관한정책건의 참조. 162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남북교류협력관련법률및제도정비 여성교류협력이그동안많은성과를축적해왔으나, 여타교류협력분야에비해추진역량이부족한현실을고려하여여성교류협력추진을위한법제정비가필요함. - 교류협력사업지원에서여성관련사업에대한우선지원또는여성사업할당에관한규정및제도마련 - 남북교류협력기금을사용하는데있어여성관련사업에대한비율을규정 ( 여성및유아관련사업들 ) 여성교류협력추진 지원을위한인력배치및기구마련 여성교류협력을안정적으로추진하기위해이를담당하는인력및기구역시보강될필요 - 각분야에서여성관련의제를다루기위한인력및기구가필요 - 여성가족부등유관부처와협력하여통일부내에여성정책기능강화를지향 ( 인사교류, 여성정책담당관배치등 ) - 개성에설치할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여성교류협력을보장할수있는조직 기능마련 여성교류협력추진을위한민관거버넌스구축 여성교류협력은민간과정부차원에서이루어져야함. - 최근시민사회에서그동안남북여성교류를추진해왔던민간단체를중심으로남북여성교류를위한여성평화네트워크 가만들어짐. - 정부차원에서도남북여성교류협력기구를마련하여민관협력을강화하고, 여성교류협력을추진함. - 시민사회단체활동가및전문가, 통일부및여성가족부, 민주평통여성분과위원회등을중심으로여성교류협력추진을위한거버넌스구축 지속가능한남북여성교류의기반조성에있어가장중요한것은여성교류의필요성에대한남북정부가인식하는것이다. 성평등한한반도를만드는것이평화와번영의한반도를위해반드시필요하다는공감대가정부당국에형성되어야한다. 여성교류의자율성이보장되지않는것은지난 28년의역사를통해확인되었고또한계로지적받아왔으며, 남북여성교류의진정성에대한회의를제기하는이유가되기도하였다. 새롭게전환되는한반도평화구축과정에서성평등과제를배제시키면북한여성들이흔히얘기하는 여성들이혁명의수레바퀴를절반을이끈다 는구호와같이, 남북한정부가추진하고자하는평화번영의한반도를향한역사의수레바퀴역시한쪽바퀴가빠진채덜컹거릴것이다. 분명한것은여성들의참여가배제된한반도의평화는여성들의평화가배제된평화랄할수있다. 여성들의평화와안정이보장된한반도의평화를이룩하려면, 남북여성교류의지속가능한기반조성에정부가적극지지하고지원해야할것이다. 163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마치는말 지난 28년의남북여성교류를돌아보면서향후의과제를전망해보았다. 이제새롭게열리는남북여성교류는바라건데, 남과북의여성들이자율성을지니고, 남북관계의부침에덜영향받으며, 성인지적관점의의제를설정하여남북여성들의상대방에대한이해, 욕구, 기대, 희망을담아냄으로써남북여성들의실질적삶의조건을개선하는데기여하는교류와협력의장이되기바란다. 또한남북여성들이힘을합쳐동북아평화를위해노력하기바란다. 이를위해남북정부는여성교류의필요성을인식하여지속가능한교류협력의기반을마련하는데적극적지원을아끼지않기바란다. 여성교류에참여하는단체들은교류협력의전문성을지닌역량을구축하기위한노력을기울여야한다. 이를위해중장기적목표와의제설정, 구체적인액션플랜을마련해야한다. 또한북한사회와북한여성에대한이해를위한학습, 평화교육, 협상훈련등다양한차원에서준비할필요가있다. 궁극적으로남과북의젊은여성들, 다음세대가선배세대들이겪었던어려움을겪지않도록 한반도에서지속가능한평화와안전을확보하기위한남북여성들의공동의노력이교류협력을 통해모아지기바란다. 164

제 1 회의 [ 자유패널 1] 핵과북한의정책변화 사회 : 김종수 ( 더불어민주당 )

Is the Denuclearization of North Korea Viable Policy Goal? : The Internal and External Factors of North Korea s Nuclear Policy 이승열 ( 국회입법조사처 )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Is the Denuclearization of North Korea Viable Policy Goal? : The Internal and External Factors of North Korea s Nuclear Policy 이승열 ( 국회입법조사처 ) Abstract 북한을대화로끌고나온외교적접근에는두가지방안이있는데, 첫째는북한에대한강력한경제적제재이며, 두번째는북한의요구를들어줌으로써적극적인포용정책을발휘하는것이다. 군사적접근또한두가지방안이있는데, 첫째는북한의핵과미사일시설에대한제한적인외과수술식타격이있으며, 두번째는전면전을의미하는예방전쟁이다. 마지막으로레짐- 체인지접근도두가자방안이있다. 첫째는미중의합의에의한레짐-체인지이며두번째는비밀공작으로북한을내부적으로레짐-체인지를유도하는것이다. 결과적으로두가지시나리오가가능하며, 첫째는외교적해결은북한의내적요인에의해결정될것이고, 군사적, 정권교체에의한접근은외적요인에의해결정될것이다. KEYWORDS: diplomatic approach, regime-change approach, militaristic approach, external factors, internal factors 1. Introduction On 6 September 2016, The New York Times featured an article with the title North Korea Far From Crazy, Is All Too Rational, which analysed that the background to the provocations of North Korea s nuclear and missile programs involved a rational survival technique based on the madman theory. That is, Kim Jung-un s strategy was intended to make opponents withdraw from action by threatening to initiate discussion about the crisis of nuclear war in order to ensure the survival of his regime. North Korea carried out its sixth nuclear test on 3 September 2017 at the Punggye-ri nuclear test site in Gilju. North Korea conducted 44 ballistic missile tests and three nuclear tests from January 2016 to the end of November 2017. The Washington Post cited a secret report from the Defense Intelligence Agency (DIA) on 8 August 2017, stating that North Korea has succeeded in miniaturizing the ICBM-equipped nuclear warhead. As a result, National Security Adviser HR 169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McMaster for the first time referred to preventive war as a military option against North Korea (Reid, MSMBC, 2017). In a heightened-war crisis situ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the PyeongChang Winter Olympics (held in South Korea beginning 9 February 2018) provided a good opportunity to create a new atmosphere of dialogue between North and South Korea. The high-level North Korean delegation, including Kim Yo-jong (sister of North Korean leader Kim Jong-un), visited South Korea to participate in the opening ceremony of the PyeongChang Winter Olympics, where they met with South Korean President Moon Jae-in. Kim Yo-jong relayed a letter from Kim Jung-un to President Moon and invited him to Pyongyang. Upon receiving the letter, President Moon emphasized that Kim Jong-un's invitation should include an environment for holding the third inter-korean summit by saying Let's create conditions for the future. President Moon also sent a special envoy led by Chung Eui-yong, Head of the National Security Office of the Blue House, to North Korea from 5-6 March 2018. North and South Korea agreed to hold summit talks at the truce village of Panmunjom in late April, and Chung Eui-yong relayed Kim Jong-un s intention to engage in a dialogue with the United States to discuss denuclearization while promising a moratorium on nuclear and ballistic missile tests during the talks. In response to Kim Jong-un's proposal, President Trump suggested in May that he would hold a summit for denuclearization. As a result, President Moon Jae-in and Chairman Kim Jong-un held an Inter-Korean Summit Meeting at the Peace House at Panmunjeom on April 27, 2018. The two leaders declared that there will be no more war on the Korean Peninsula. This remarked a new era of peace by sharing the Declaration of Panmunjeom which will bring new reconciliation of peace and prosperity between the two Koreas. After Inter Korean Summit, US President D. Trump and North Korean leader Kim Jong-un s historic summit on the resort island Sentosa, Singapore, also signaled new relations after the Korean War adversaries in 1950. The two leaders produced a joint statement addressing complete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and the start of new relations between the two countries. However, there will still be many crises, even leading to the final denuclearization agreement between two Koreas and US-NK countries. First of all, there has not been a detailed timeline for Washington s longstanding demand for the CVID(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 Dismantlement) of the North s nuclear program and its desperate reaffirmation for security guarantee(cvig: 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 Guarantee) for the Kim s regime. Inter-Korean relations can provide momentum for persuading the United States to engage in dialogue with North Korea. However, Washington reacted very cautiously. President Trump confirmed he had received a second letter from Chairman Kim and thanked him for repatriations of 170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the remains, but the U.S. Treasury declared large, sweeping sanctions that are slated to continue until North Korea takes a stance. Therefore, I would like to ask one fundamental question. Is the denuclearization of North Korea a viable goal? So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propose two hypotheses for resolving the direction of the North Korean nuclear issues. To accomplish this, I would like to analyse the contents and policy limits of the three approaches (i.e., the diplomatic, regime-change, and militaristic) that are being discussed to resolve these issues in international society. Theoretical Approach Why did the North Korean nuclear issues worsen? External factors The North Korean nuclear issue appeared at the forefront of the international community in 1993 when North Korea declared the withdrawal of the Non-Proliferation Treaty (NPT). However, North Korea's intent to develop nuclear weapons has started since the end of the Korean War in 1953. This is partly because the country experienced the great power and political value of the United States nuclear threat during truce negotiations North Korea's nuclear development grew into a full-scale arsenal for the survival of the regime because of changes in the surrounding external security environments (i.e., the Cuban Missile Crisis of October, 1962 and Shanghai Joint Declaration on February 27, 1972 and Malta Conference on December 2, 1989) that prompted North Korea's nuclear ambitions to eventually gain its nuclear-development program. As a result, North Korea triggered the first nuclear crisis in 1993. This crisis ended in 1994 with the establishment of the Agreed Framework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North Korea. However, a second and ongoing North Korean nuclear crisis began in 2002. After the six-party talks were held in August 2003, there were various negotiations and sanctions made to resolve North Korean nuclear issues. However, the results of these talks have not been successful. Not only internal factors (e.g., the perception of North Korean leadership that nuclear weapons development is crucial for the survival of the regime), but also external factors (e.g., the change in relations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China in Northeast Asia due to the rapid rise of China s power) could lead to continued nuclear development as sanctioned by North Korean leadership. Although China blamed North Korea shortly after its nuclear test and cooperated with the United States in adopting the United Nations Security Council (UNSC) sanctions, China returned to the principles of the North Korean conventional policy 171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for maintaining stability on the Korean peninsula whenever the crisis became notably heightened. China has regarded North Korea as a strategic asset and buffer zone, and has made the UNSC sanctions against North Korea neutral, thus adding to the difficulty of resolving the North Korean nuclear issues. The historical experience gained since 2003 through the six-party talks indicates that China did not agree with sanctions on North Korea that would lead to the instability or collapse of its regime. In the process of the Korean Peninsula peace process in 2018 through the PyeongChang Winter Olympics, We can observe how North Korea s behavior changed over China s influence. Shortly before the Inter-Korean Summits on April 27, 2018, the North Korean leader Kim Jong-un visited Beijing by the invitation of Chinese President Xi Jinping on March 25-28. And within two months of his first visit, Kim had his second visit again to Dalian, China to meet President Xi on May 7-8 before a historic summit between Kim and US President Donald Trump. Kim s third visit to China also took place shortly after US-NK Summit on June 19. In July, when Secretary of State Pompeo s visit to Pyongyang ended without a success, President Trump wrote on Twitter China exerted negative pressure on North Korea. The reason why President Trump insisted China to take responsibility was that he believed China was breaking the cooperation framework of sanctions against North Korea. The United States is convinced that North Korea came out of the dialogue table because of the regime crisis caused by the US led sanctions including the Secondary Boycott and the UN Security Council Resolution (i.e., No. 2270, 2321, 2371, 2375, 2397) which blocked more than $ 3 billion of North Korea's annual exports. Especially, the US Administrative Order No.13810 (2017.9.20) introduced the Secondary Boycott clause that led to China's participation in sanctions against North Korea. However, China's interests in North Korea are different. China held three summits with North Korea because of its concerns regarding North Korea's sudden close ties with the United States that could undermine China's strategic interests. China's sanctions against North Korea have been easing since the meeting. China, along with Russia, also attempted to adopt a UN Security Council statement on 30 th of June to ease sanctions on North Korea which was failed by the objection of the U.S. Therefore, the absence of cooperation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China is a key external factor that has deteriorated the stability of the North Korean nuclear issue. To the contrary, this means that cooperation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China regarding tough North Korean sanctions as requested by the Trump administration constitutes the external factors behind North Korea s willingness to 172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engage in dialogue. Internal factors During the Kim Jong-il period (1998-2011), the nuclear issue was more useful as an item of negotiation with the United States to secure the stability of the North Korean regime. Thus, it could be exchanged with the normalization of relations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North Korea and result in a peace treaty between the two countries. However, since the Kim Jong-un period began in 2012, the purpose of the North Korean nuclear issue has been further reinforced through survival interests of the regime. As a result, any negotiations on the premise of denuclearization could not be accepted. North Korea has conducted three nuclear tests (i.e., in January 2016, September 2016, and September 2017) and launched more than 40 missiles since 2016, including 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s (ICBM), Intermediate Range Ballistic Missiles (IRBM), and Submarine Launch Ballistic Missiles (SLBM). As mentioned earlier, even The New York Times reported on this North Korean strategy by referring to the madman theory. The reason North Korea s nuclear development has shifted from an item of negotiation with the United States to a program backing the survival interests of its regime is that Kim Jong-un s ruling base has been reorganized, moving from Songun (military-first) to Sundang (party-first) politics. As a result, the Organization and Guidance Department (OGD) (the supreme power group within the Central Committee of the Workers Party of Korea (WPK) strongly promoted the advancement of the nation s nuclear and missile capabilities under the purpose of early fulfillment of the revolutionary achievements of the supreme leader Kim Jong-un. The OGD has strengthened its power of control over North Korea s strategic weapons (especially regarding nuclear tests and missile launches) by removing them from the military and placing them under the domain of the WPK. North Korea announced through its WPK newspaper Rodong Sinmun that the fourth nuclear test was conducted in accordance with the Korea Workers Party's strategic determination. Rodong Sinmun also reported that Kim Jong-un had taken a commemorative photo with test-related scientists and soldiers in front of the WPK house on January 11. As a result, the first three nuclear tests (October 2006 to February 2012) were controlled by the Ministry of the People's Armed Forces under Songun politics. However, for the fourth nuclear test on 6 January 2016, the OGD transferred nuclear development and testing to a Nuclear Weapons Research Institute (run by Director Ri, Hong-seob) under the guidance of the Ministry of Munitions Industry of the WPK (run by First Vice Deputy Hong, Seung-mu). Not only nuclear tests, but all missile tests and nuclear-warhead launch vehicles were then controlled by Strategic Military 173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Units (Hwasong artillery units, Commander Kim Rak-gyeom) that were completely separate from the Korean People s Army (KPA), which operates under the guidance of the Ministry of Munitions Industry of KWP (Director Ri Man-geon). Therefore, the OGD gained an exclusive control over North Korea s strategic weapons (e.g., nuclear weapons and ballistic missiles). As a result, OGD organized a national power structure centered on the WPK with Kim Jong-un s new revolutionary achievements instead of pursuing Songun politics. Through the justification of this power structure, the WPK strengthened the party's economic control power and began managing Kim Jong-un's ruling money, which is located in Room 39 of the WPK facility. Therefore, the WPK s power monopoly among North Korean elite groups is the key internal factor in aggravating North Korean nuclear issues. Theoretical Frame We examined the reasons for the deterioration in stability of the North Korean nuclear issues through both external and internal factors. The first North Korean nuclear issue appeared as a result of North Korea s internal survival strategy, which intended to maintain the security of the regime following the collapse of Soviet Union. However, the second North Korean nuclear issue externally worsened following China s role in the process of the six-party talks in 2003, as well as from the conflicts that arose in relations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China due to China s rapid rise in power that began in 2008. Since Kim Jong-un s 2012 inauguration, the power structure moved from the military to the party initiated by the WPK s elite groups has internally exacerbated the North Korean nuclear issue. We can ask the question, why did North Korean nuclear issues worsen? This question partly answered by examining the correlation between the external and internal factors involved in the process of making North Korea's nuclear policy. The foreign policy process involves a linkage between international and internal politics. Thus, the state intends to maximize national interests by considering the external and internal factors of foreign policy. If this is the case, which of the external and internal factors will have greater impacts on a country's foreign policy decision-making process? This issue can be divided into factors of external and internal political dominance theory. Some researchers have emphasized foreign policy as an act of fighting with and taking profits from other countries through external politics. Other researchers have more paid attention to the political activities of major actors in internal politics. Despite these analyses, the consistent point of foreign policy exists in the outputs of the strong correlation between domestic and international politics Kenneth N. Waltz, a 21st-century realist, presented 'balance of power' as a way in which individual nations can defend national security in an anarchic international 174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system. And Stephen M. Walt, who further developed the theory of Waltz, said that "the most common response to threats is allying," and there are two such alliances: first, opposition alliance against major threats is called "balancing"; And on the contrary, the alliance that coalesces with the emerging countries which is called bandwagoning. Walt's empirical research has found that individual countries are more likely to strive for balancing rather than bandwagoning towards the stronger side if there is an imbalance of power. Above all, the target countries will endeavor to "balance" their own internal and external affairs in order to secure the survival of their own countries. As a result, North Korea, as Waltz s claimed, has focused on strengthening its armaments through nuclear weapons and missiles internally and externally while developing its relations with China to balance its power against the United States. Therefore, the framework of analysis for resolving the North Korean nuclear issue can be set as the relationship between independent variables, parameters, and dependent variables. The independent variables involve environment factors that are largely composed of external and internal factors. The external factors involve interactions with foreign countries (e.g., relations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China), while the internal factors involve domestic politics (e.g., the WPK s power monopoly on the strategic weapons). These environmental factors affect decisions of the elites of the US-NK countries regarding the formation of policies to produce three approaches for resolving the North Korean nuclear issues. Those are the diplomatic, regime-change, and militaristic approaches. Diplomatic Approach for Resolving the North Korean Nuclear Issues Policy contests On 26 April 2017, President Trump invited all senators to the White House to have the State Department, Ministry of National Defense, and National Intelligence work together to carry out a private policy briefing on the North Korean nuclear issues. A joint statement related that the North Korean nuclear issue is an urgent national security threat and foreign policy priority. Trump called this a 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 and stressed the need to reinforce strong economic sanctions against North Korea. On 30 June 2017, President Moon Jae-in and President Trump held the first summit meeting to share ideas involving the Driver of Korean Peninsula issues, thereby emphasizing the role of South Korea in resolving the North Korean nuclear issues. Both countries drew up a consensus on the two-phase solution, as follows. 175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Freezing is the starting point for dialogue, while abolition is the ending point for the denuclearization of North Korea. President Moon also stressed the need first impose strong sanctions and pressures on North Korea to convince the country to engage in dialogue. The State Department also supports sanctions to create an effective environment in which success can be achieved through the diplomatic approach. Thus, the additional sanctions (e.g., an administrative order for a Secondary Boycott ) on China (major sponsor of North Korea) will also exert maximum pressure on North Korea. Regarding this process, China's positive participation in such sanctions will be the most important issue. Unlike the policy of the United States, China preferred to create an atmosphere of dialogue rather than strengthen sanctions. President Xi Jinping proposed a dual-suspension ( 雙中斷 ) to create an atmosphere that would facilitate the simultaneous halting of nuclear and missile testing and joint military exercises between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United States. In addition, Foreign Minister Wang Yi suggested a double-track parallel ( 雙軌竝行 ), which indicates a parallel denuclearization and peace treaty between North Korea and the United States. China opposed extreme measures that could lead to instability of the North Korean regime, such as a total ban on the crude oil supply and the immediate prohibition of North Korean overseas workers. However, China has also agreed to UN Security Council resolutions 2371, 2375, and 2397, which banned all exports to North Korean, including mineral resources, textiles, seafood, and about 90 per cent of all crude oil. Thus, the crisis of the regime due to economic sanctions has begun to come true. Kim Jong-un immediately replaced the power elites to overcome the system crisis coming from the sanctions. Kim Jong-un appointed Choi Ryong-hae as the director of the OGD, the strongest power group within the WPK, at the 7th secondary WPK Conference in October 2017. In contrast, Kim Jong-un purged the power elites, Hwang Byong-seo and Kim Won-hong, who has strongly promoted the advancement of the nation s nuclear and missile capabilities for Kim Jong-un s revolutionary achievements. Kim Jong-un declared "Completion of National Nuclear Armed Forces" shortly after launching the "Hwasong-15 Type" 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 on Nov. 29, 2017, and had a sudden policy shift to engage in the dialogue. On February 9, 2018, North Korea sent high-level delegates to participate in the PyeongChang Winter Olympics. There, Kim Yo-jong (sister of North Korean leader Kim Jong-un) delivered a letter from Kim Jong-un and proposed the third inter-korean summit talks in Pyongyang. President Moon also strongly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creating environments rather than accepting North Korea's proposal immediately. Chung Eui-yong, head of President Moon s special envoy, visited President Trump to explain the results of 176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visiting North Korea and delivered a message relating Kim Jong-un s desire to meet President Trump as soon as possible. Trump indicated that he would meet Kim Jong-un by May to achieve permanent denuclearization. Therefore, the success or failure of the diplomatic approach to resolving the North Korean nuclear issues now depends on linking the inter-korean dialogue to the dialogue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North Korea involving denuclearization. Thus the 4.27 Inter-Korean Summit and the 6.12 US-North Korea Summit were successfully held, but the additional working negotiations are in progress to ensure denuclearization and security of the system. Policy Limits The common point among the 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 of the United States, China s dual-suspension and double-track parallel, and South Korea s two-phase solution for denuclearization is the focus on sanctions. However, the ultimate solution involves the diplomatic approach through negotiation. The first condition for a successful diplomatic approach is cooperation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China involving whether the economic sanctions should be continued until North Korea enters the dialogue. However, President Trump s administrative order (no 13810) a Secondary Boycott aimed at China in September 2017. China also strongly opposed sanctions impacting Chinese companies and individuals carried out by American domestic law in recent years. China has argued that the United States must play a more important role in the diplomatic approach to a resolution because the nation has more initiative than China on Korean peninsula issues in addition to a variety of ways of alleviating tensions. China is the largest economic trading country with North Korea and the de facto monopoly of North Korea s crude oil supply. The United States is acutely aware of China s influence. That is, China's sanctions temporarily eliminated the supply of crude oil to North Korea in order to bring the country to the six-party talks in April 2003. Trump signed an administrative order (the so-called secondary boycott ) aimed at China in September 2017. This uncompromising attitude has led to China s more active participation in helping to increase the economic hardships of North Korea. Under the agreement of the United States and China, the UNSC passed Resolution 2371 on North Korea's fifth nuclear test and the subsequent launch of a ballistic missile test to ban North Korea's export of mineral resources and aquatic products. On 11 September 2017, the UNSC passed Resolution 2375, which was much stronger in the wake of North Korea s sixth nuclear test. The resolution completely banned the export of textiles from North Korea, reduced its oil supply by approximately 30 177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per cent, and banned all new overseas worker recruits. After North Korea launched an ICBM test (Hwasong-15 type) on 29 November 2017, the UNSC passed resolution 2397, which reduced the amount of refined petroleum North Korea is allowed to import each year by 90 percent, thus exacerbating fuel shortages. Roughly 100,000 North Korean laborers working in overseas countries (a critical source of hard currency) will be expelled within two years (2019). These UNSCRs led to sanctions that could reduce North Korea s foreign currency earnings by more than $3 billion annually. Therefore, the first condition for a successful diplomatic approach is cooperation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China involving whether the economic sanctions should be continued until North Korea takes concrete steps to denuclearization. Although North Korea denies it, it is because of the sanctions that North Korea came to the table of dialogue. John Bolton, the U.S. national security adviser, also confirmed that what brought North Korea to the table was sanction. As a result, North Korea participated in the PyeongChang Winter Olympics, suggested engagement in Inter-Korean Summit talks and US-NK Summit. However, under the strong sanction of international society led by the United States, The fact that the working-level talks between the two countries have not progressed further is due to the conflicting views on the terms of denuclearization and regime security guarantees. The US Secretary of State Mike Pompeo has called for North Korea s first proposal for denuclearization roadmap such as 60-70% reduction of North Korean nuclear warheads within 6-8 months. However, North Korea has consistently rejected the secretary of state s proposal and demanded through the WPK s official media Rodong Sinmun on 9 th of August, 2018 that the declaration to end the Korean war to be declared before the denuclearization. Therefore, the cooperative sanctions between US-China were very effective in convincing North Korea to engage in dialogue. If North Korea engages in dialogue as a result of the external factors caused by sanctions, the completed achievement of denuclearization will be determined by its own strategic decisions as the internal factors. Because the most important internal factors is that nuclear capability and the regime survival are closely linked. Although North Korea has come closer to engaging in dialogue, the possibility of a diplomatic approach to the North Korean nuclear issue has become more difficult due to internal factors. 178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The Militaristic Approach to Resolving the North Korean Nuclear Issues Policy contents After North Korea's dual ballistic-missiles (ICBM) test launches in July 2017, Trump promised to rain fire and fury on Pyongyang, and United States National Security Adviser H. McMaster said in an interview with MSNBC for the first time that preventive war was priority in military options. DIA (Defense Intelligence Agency) officials said that North Korea will have the ability to attack the American mainland with ICBM-equipped nuclear warheads as early as next year. On 9 August 2017, Strategic Unit Commander Kim Rak-gyeom announced a North Korean operation involving the siege of Guam, which is a strategic American base in the Pacific. This announcement was a response to Trump s national security adviser s preventive attack that indicated a full-scale war with the United States. He accurately predicted within 100-meter units of a decimal point that four intermediate-range ballistic missiles (Hwasong-12 type, IRBM) would fly 3,356.7 kilometers for 1,065 seconds to hit around 30-40 kilometers of high sea areas around Guam. As soon as North Korea announced plans to attack Guam, Vice Chairman of the United States Joint Chiefs of Staff Joseph F. Dunford, Jr. and three other military heads visited the Osan base for observation of the Ulchi-Freedom Guardian (UFG) to have a joint press conference and deliver a strong warning message to North Korea. North Korea modified its position by test-firing two medium-range ballistic missiles (29 August and 15 September 2017) (Hwasong-12 type) that dropped into the Pacific Ocean over Japan instead of attacking Guam. Above all, North Korea wishes to avoid direct armed conflict with the United States following a missile strike on Guam. However, on 29 November 2017, North Korea threatened the U.S. again with an 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 (Hwasong-15type) that has capabilities of hitting the American mainland. The CIA also acknowledged that the success of North Korea's ICBM (Hwasung-15) test indicated that North Korea's nuclear capability will be completed within three months. With the increasing possibility that North Korea is able to complete a nuclear attack on the American mainland, the United States has specifically begun to examine its military options. The Telegraph reported on 20 December 2017 that the Joint Chiefs of Staff and U.S. Pacific Command is drawing up a limited military operation called bloody nose strike, which intends to destroy a launch site before it is used for new missile testing, while stockpiles of weapons could also be targeted. The White House has dramatically stepped up this operation as a military solution in recent months amid fears that diplomacy is not working. The surgical strike consists of a 'preemptive strike' on military installations when enemy attacks are imminent, while the preventive strike is intended for the 179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pre-elimination of dangerous facilities at the preventive level. An example of such a preemptive strike is when the Clinton administration considered a surgical strike on the Yongbyon nuclear facility in 1994. An example of the preventive strike can be found by examining the Israeli strike on a Syrian nuclear power plant on 6 September 2007. The bloody nose strike is also a type of surgical strike in which limited military options against North Korea are explored without igniting an all-out war on the Korean Peninsula. Unlike a surgical strike, the preventive war that McMaster emphasized as a last-resort option indicates all-out war on the Korean Peninsula. A representative example of such a preventive war is when the United States attacked Iraq in 2003, an event which began with the purpose of eliminating weapons of mass destruction. The reason for preventive war against North Korea was becoming increasingly likely that it is difficult to simultaneously disable the several secret underground nuclear facilities and various mobile missile launchers that have not been identified. In addition, a massive North Korean retaliation is possible. Thus, Bruce Bennett, a North Korean expert at the Land Institute, also stressed the need for a preventive war because we do not really know where North Korea's nuclear weapons are hidden. Policy Limits With President Trump's fire and fury remarks, Defense Secretary James Mattis and Chairman of the Joint Chiefs of Staff Joseph Dunford, who had stressed the need for the diplomatic solutions, also warned of a huge military response toward North Korea in a brief press conference after the National Security Council (NSC) had convened following North Korea s sixth nuclear test. However, as Former Secretary of State Henry Kissinger commented on the use of military force, its vocabulary must be restrained, but it cannot be precluded because of Pyongyang s strategy of holding greater Seoul s population of 30 million hostage; thus, the United States has been reluctant to use force. The militaristic option is still one of the worst choices for the United States because of the catastrophic consequences of a second Korean War. Former Secretary of State of the Obama Administration Antony J. Blinken pointed out that the danger of a military attack on North Korea was too great. Former National Security Adviser to the White House Susan E. Rice also criticized this option, saying that the prevention war is a lunacy. Because the 26-million person city of Seoul is within 36 miles of the armistice line, an all-out war could result in hundreds of thousands to millions of victims. The New York Times also analyzed the United States three unappealing choices, and pointed out three problems involved in all preemptive attacks (i.e., retaliation, enrichment, and strategy). Thus, the 180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militaristic option was scored as the best of a bad lot. On Feb. 23, Trump said that if sanctions against Pyongyang didn t work, Washington would have to move to phase two (military options), which could be very, very unfortunate for the world. But just two weeks later, Trump abruptly changed course and accepted an invitation to meet with North Korean leader Kim Jong-un. After the summit in Singapore, Trump was asked to discuss the military consequences of denuclearization. He responded Seoul has 28 million people think of that. It s right next to the border. It's right next to the DMZ." The New York Times pointed out that the possibility of preventative war on the Korean peninsula was very unlikely because of President Moon s strong veto of the military option. The first thing the United States should do prior to a war on the peninsula is to evacuate the noncombatant American civilians and noncombat personnel who reside in South Korea (i.e., the Non-Combatant Evacuation Operation (NEO)). To accomplish this, the cooperation of the Korean government is the most essential factor. However, President Moon already expressed strong opposition to the military option, saying that he can be assured that there will be no war on the Korean peninsula. As a result, there has been much talk about the possibility of military options for North Korea subsequent to its sixth nuclear test, but the disastrous results of war and the strong opposition of the South Korean government put several limitations the policy choices of the United States. However, the United States military options for North Korea will be determined exclusively by its own strategic decisions depending on its external factors. If the North Korean nuclear program becomes a crucial threat to American security, the United States will have no choice but to pursue a military option despite South Korea s opposition. Victor Cha and Katrin Fraser Katz also pointed out that Trump s newfound enthusiasm for diplomacy has temporarily lowered the temperature on the Korean Peninsula. However, it could go wrong: if negotiations fail, and military strikes are the only way forward. The Regime-Change Approach to Resolving the North Korean Nuclear Issues Policy contents Former Secretary of State Henry Kissinger used a column in the Wall Street Journal to emphasize that the North Korean nuclear problem required understanding between Washington and Beijing about denuclearization. To explain the reason that both countries should cooperate, Kissinger said, since denuclearization requires sustained cooperation, it cannot be achieved by economic pressure, so it requires 181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a corollary US-Chinese understanding on the aftermath, specifically about North Korea s political evolution and deployment restraints on its territory. The exact meaning of Kissinger's comments regarding the aftermath [of denuclearization] was revealed by an article in The New York Times on 29 July 2017 in which Mr. Kissinger made a proposal to Former Secretary of State Rex W. Tillerson and other officials. Mr. Kissinger said that the administration needed a new and different approach to convincing the Chinese to take a more forceful stance. This is because the Chinese fear that, with the buffer of North Korea gone, the United States military would be directly on its border. Thus, we need to first come to an agreement with China about what follows after the collapse of the North Korean regime. There are two meanings behind Kissinger s comment. First, North Korea s political evolution indicates the collapse of the North Korean regime; in other words, it means regime change. Second, the deployment restraints on its territory indicates that the United States should alleviate China's concerns through the withdrawal of its troops from the Korean Peninsula subsequent to a North Korean collapse; this should result in China taking a stronger position on denuclearization. In addition to the regime change involved in the consensus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China proposed by Kissinger, regime change or collapse as a way of resolving the North Korean nuclear issues has been raised several times previously. When the North Korean nuclear issue was serious in last year, CIA involvement in the removal of North Korean leadership has received the most attention. On 20 July 2017, CIA director Mike Pompeo said that the most important thing from the US perspective is to separate the people who had a nuclear development intentions with nuclear development capabilities, referring to the collapse of the regime through the expulsion of the North Korean leadership. On 10 May 2017, the CIA announced that it would establish a Korea Mission Center (KMC) as a dedicated organization in North Korea. Pompeo said that the role of the KMC would be to collect information, conduct covert operations against the North Korean government, and provide weapons to the Ministry of Defense. The United States Department of Defense will also reopen Military Intelligence Units under the Eighth United States Army, a 524-person intelligence battalion, which will be responsible for Human Intelligence (HUMINT). It is said that various secret activities, including a North Korean regime change, will be jointly conducted between the CIA and KMC. The Asahi Shimbun newspaper reported on August 25 that the North Korean escort commander of Kim Jung-un's security forces recently employed agents of the former Soviet Union Security Committee (i.e., the KGB (Komitet gosudarstvennoy bezopasnosti)) as advisers in preparation for the CIA s secret work. The CIA's plan 182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to conduct regime change through covert operations includes aiding elites in a coup, popular uprising, and the direct elimination of Kim Jong-un. These measures will attract more attention when North Korea's nuclear and missile tests resume. Policy Limits In an article in 38North (a publication on North Korea), Richard Sokolsky and Aaron D. Miller pointed out that, while the urge to rid the world of the regime is understandable, the risks, costs and consequences of acting on this impulse are rarely considered. They suggested four reasons to support this assertion. First, regime change is more complicated than Trump thought. It can worsen the situation, as seen in Afghanistan, Iraq, and Libya. Second, after the removal of Kim Jong-un, a new North Korean leader which will emerge from the military, intelligence, and security establishments, who may be the same or worse. Third, there is a risk that covert activities such as internal coups may substantially increase the risk of proliferation and the use of North Korean nuclear, biological, or chemical weapons (NBCs). Fourth, it can be a mistake to shoot yourself in the foot by stimulating North Korea and China by releasing information about the regime change. They pointed out that the United States needs to cooperate with regional countries China and South Korea. It is doubtful that the Chinese government would be willing to orchestrate an internal coup or become involved in the assassination of the North Korean leader, and South Korea is now headed by a leader who is deeply interested in engaging the North Korean regime. Washington State University professor Don Hellmann also insisted that it is not appropriate to resolve the North Korean nuclear issue through regime change. If the United States takes action to change the regime, it could result in war. This means that regime change could result in more harm than profit. Kim Jong-un's reason for developing nuclear weapons is regime maintenance. Thus, the international community should recommend the control of North Korea through peace treaties and economic support. Resolving the North Korean nuclear issue through regime change has definite policy limits due to uncertainties and risks, as well as military options. In particular, there is a fierce debate on the specific methodology expected, namely the coup d'état or revolt through a consensus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China, as well as the removal of Kim Jong-un through secret cooperation. Therefore, a regime-change approach will be affected by external factors. As Kissinger said, there needs to be an understand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China regarding North Korea s future. Because China is more sensitive than the United States to possible disruption caused by the collapse of the North Korean 183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regime, China holds more keys to the solution. However, if the North Korean nuclear crisis is escalating again, the United States will continue to consider regime-change as a policy tool which is less dangerous than a military option and more realistic than a diplomatic approach. Conclusion The diplomatic approach arises when internal factors affect North Korea s policy-decision elites. North Korea has been forced to engage in dialogue due to the effects of the sanctions led by the United States, including the secondary boycott, which forced China to engage in sanctions on North Korea. Washington will not withdraw its sanctions until they are confidence that North Korea will take action to denuclearize, even though Kim Jong-un reportedly promised to dismantle his nuclear weapons program within a year when he met with South Korean President Moon Jae-in at the 4.27 Inter-Korean Summit. Therefore, the diplomatic approach will be entirely dependent on the willingness of Kim Jong-un and the policy elites to denuclearize. These are the same elites who regarded nuclear capability as a core issue to maintain their power base. Even though Kim Jong-un expressed willingness to denuclearize, which includes not only a nuclear freeze but also a dismantling, it is only a declaration. More importantly, it is the elites who specifically implement the denuclearization process. Kim Jong-un has already declared the completion of North Korea s national nuclear-armed forces through his 2018 New Year s Address. Therefore, Kim Jong-un desires the United States to recognize it as a nuclear state in the Pakistani-style. To accomplish this, North Korea will demand the declaration of an end to the war which has been deeply related with the withdrawal of American forces from South Korea as a condition for a national security guarantee. And then, North Korea plans to conclude a peace treaty with the United States. As a result, there is concern over how to overcome these internal factors, especially the survival interests of the OGD elites, who recognize nuclear capability as regime security itself. If failed, denuclearization through the diplomatic approach would be virtually impossible. When all diplomatic efforts to denuclearize North Korea have been exhausted, the regime-change and militaristic approaches will be important options. While North Korea and the United States are in negotiations for denuclearization, the most important issue will be when the sanctions will be withdrawn. North Korea s policy-decision elites will strongly demand the withdrawal of these sanctions at the first stage of negotiations, but the United States, which does not want to repeat its failure, will try to withdraw sanctions at the final stage. The current sanctions on North Korea are a product of cooperation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Chin. Thus, continued sanctions mean that such cooperation will continue. 184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Therefore, the regime-change and militaristic approaches will be wholly determined by the level of cooperative sanction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China. If these two countries cooperate well with each other to further increase sanctions, the influence of these external factors will enable North Korean policy-decision elites to attempt a coup and revolt against Kim Jong-un for their survival. Then, both countries can reach an agreement on the future of North Korea in order to maintain the stability of the Korean Peninsula and Northeast Asia through the resulting uncertainty of the Kim Jong-un regime. However, if the two countries have different interests regarding a North Korean regime change, cooperation will not last. Because of the influence of these external factors, North Korea s policy-decision elites will resist, and attempt additional provocations to break the current confrontation. Then, the United States will choose a military option regarding North Korea to defend its traditional interests on the Korean Peninsula and in Northeast Asia. Such military options may lead to military conflicts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China. As a result, the consensus on the timing of the withdrawal of sanctions against North Korea is the most important factor for determining the regime-change and militaristic approaches. 185

북한국가경제발전 5 개년전략의 의미와성과 나정원 ( 고려대학교 )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북한국가경제발전 5 개년전략의의미와성과 1) 나정원 * 목차 서론이론적논의국가경제발전개년전략수립의배경 국가경제발전개년전략의주요내용국가경제발전개년전략의성과결론 국문요약본연구의목적은김정은집권기발표된국가경제발전개년전략의의미와내용성과를살펴보는것이다이를위해서우선국가경제발전개년전략이나오게된배경과그흐름에관한내용들을정리하였다 둘째로조선노동당제차대회에서발표되기까지북측최고지도자김정은의경영이념과그에따른경영전략이론의검토각정부의전략적정책의수립그리고경제전문학술지경제연구의내용들을검토하고자하였다 셋째로국가경제발전개년전략에서제시하는비전사명과전략목표그리고부문별세부전략에관한내용을도식화하고그내용을정리하고자하였다 마지막으로국가경제발전개년전략년차를맞이하는년도주요성과들을살펴보고자한다전략목표단계에서의성과와세부부문별주요성과들을도출한것에기초하여향후남북공동의경제전략에서의접점을찾는것은한반도신경제지도구상및경제통일구현에있어서도의미를부여할수있을것이다 * 고려대학교북한학과박사, 이메일 : jwon0312@hanmail.net 189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서론 김정은집권기북한의개혁 개방에관한기대감이고조되고있다. 지난시기선대지도자들이었던김일성-김정일에비해그가취한행보가기업을중심에둔시각에서의접근이고, 그에따른법률로써기업소법이제정되었으며, 나아가서경영전략과기업전략을중심에둔 전략적경제관리방법 에관한연구가진행된것에기초하여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이수립되었기때문이다. 2016년 5월당제7차대회를계기로수립된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은올해 3년차를맞이하고있다. 그것은과거시기북한에서수립한 5개년계획, 7개년계획과는다른성격을가진것으로볼수있다. 가장본질적차이점으로계획이란용어를대신하여전략이라는용어를선택한부분이다. 계획이가지는경직성대신변화하는환경에능동적으로대처하기위한전략적접근에초점을맞춘것이다. 위와같은가정하에본연구에서는첫째로, 북한의경제발전전략접근을위해중앙정부의 경영전략 수립에관하여검토하고자한다. 변화하는환경에능동적으로대응하기위한경영전략의수립이각국의중앙정부에서어떻게적용되고있는지그사례들을살펴본다. 둘째로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이제시된배경에대하여살펴보고자한다. 최고지도자로서김정은의경영이념이무엇을지향하고있는지, 그리고북한의경제전문학술지의 경제연구 의관련연구흐름과관련된내용들을정리한다. 셋째로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의비전 ( 사명 ), 목표등을도출하고자한다. 북한문헌들에서명시하는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내용들에근거하여, 국가경젝발전 5개년전략을도식화하고자한다. 넷째로, 2018년 8월현재 3년차를맞이하는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의부문별성과들을정리하고자한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에서는거시적차원에서산업별발전방향과내용들에관하여명시하고있다. 전략에서제시하는비전과목표, 그리고거시적방향들에관한성과의내용들을정리하는한편, 문재인정부의평화와번영의한반도구상과의접점을찾고자한다. 이론적논의 경영전략이론검토 경영전략 (business stratgy) 개념의시초는 1938넌 Chester, Barnard에의하여사용된전략적요소 (trategic factor) 로부터찾을수있다. 2) 이를근거로슘페터가경영전략을군사 2) Chester, Barnard. "The functions of the executive." Harvard University Presse, Cambridge (1938), pp.204-205; 체스터바너드, 이정혜역, 경영자의역할 : 경영자는어떻게조직의성패를결정짓는가, (21 세 190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행동에비유하였고오늘날기업행동을분석하는데선구자적기여를하였으며, 이후경영전략과기업전략 (Corporate Strategy) 은오늘날경제관련매체뿐아니라일반대중매체보도에서흔히쓰이는개념이되었다. 다수의컨설팅업체에서전략에주목하게되고경영대학원에서전략은하나의중요한과목으로자리잡은것이다. 1940년대이래로경영분야에서경영전략 기업전략, 그리고이에기반한전략계획 (strategic planning) 에관한연구는활발히진행되고있다. 3) 1962년 Chandler는미국기업 ( 듀퐁, GM, 시어스 ) 등경영전략을역사적변환에초점을맞춰다각화전략과사업부제조직성립관련한실증적연구를통한 조직구조는전략에따른다. 고명제를제시하며전략계획에있어서조직구조의결정을포함시켰다. 미국초기경영전략연구에서는전략이라는개념을기업의미션과목적을달성하기위한수단이라고하는견해가지배적이었으며, 특히전략의책정과실행을구별하여사용하였다. 상위조직의경영관리자에의해입안된전략을하위조직으로실행되어옮긴다는관점이지배적이었다. 다만이러한 Top-Down 방식의구조의문제점을인식하면서, 1980년들어서는조직내부의학습능력이라는새로운관점에서의접근이진행되었다. 그것은곧현장을통하여서서히형성되는창발적전략 (Emergent Strategy) 에관하여초점을맞추는연구를의미한다. 4) 한편 Michael Porter는경쟁우위를통한경영전략수립원칙을수립하는것과동시에경쟁우위를위한세부전략을제시하였다. 그에따르면경쟁우위에있는기업이란장기에걸쳐서업계내에서나전략그룹간에서의평균치보다도높은이익률을확보하는기업을의미하게된다. 그리고경쟁우위에있는기업들을경쟁단위로서수익성을규정하는그구조적측면을 5가지결졍요인 ( 새로운진입기업의위협, 대체재위협, 구매자교섭력, 공급자교섭력, 기존기업간경쟁 ) 으로명확히한이후, 경쟁우위를지속하기위한기본전략으로가격우위 (Cost Leadership), 차별화 (Differentiation), 집중화 (Focus) 의 3가지를제시하고있다. 5) 이외에도기업의경쟁력의원칙이기업내부에있으며자체의핵심능력에있다는 Hamel&Prahaland(1990) 의주장, 기업내부자원을체계적으로분석하기위한요인으로유가치성 (Value), 희소성 (Rareness), 모방곤란성 (Costly to Imitate), 조직성 (Organization) 으로구성된 VRIO분석을주장한 Barney(1997) 의연구흐름이지속되고있다. 6) 기북스, 2009) 3) 토머스매크로, 김형근 전석헌역, 혁신의예언자 : 우리가경제학자슘페터에게오해하고있었던모든것, ( 글항아리, 2012), p.472, p.822~824; Schumpeter, Joseph Alois. The theory of economic development: An inquiry into profits, capital, credit, interest, and the business cycle. Vol. 55. Transaction Publishers, (1934); Schumpeter, Joseph Alois. "Capitalism." Socialism, and Democracy. New York and London: Harper & Brothers Publishers (1947) 4) Barney, Jay B. "Resource-based theories of competitive advantage: A ten-year retrospective on the resource-based view." Journal of management 27.6 (2001): pp.643-650.; 임상혁 임병준, 쿠쿠 (CUCKOO) 전자구본학의경영이념과경영전략에관한연구, 경영사학, 31 권 2 호 (2016), pp.80-82 5) Porter, Michael E. "How competitive forces shape strategy." Readings in strategic management. Palgrave, London, 1989. 133-143. 6) 임상혁 임병준 (2016), 앞의글 191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각정부의전략적정책수립 세계각국정부에서는세계화시대가도래함에따라서, 내부요인과외부환경에보다능동적으로대처하기위한전략모델도입, 또는전략계획을수립하고이를통하여해당사업분야의혁신을이끌어내기위한다양한노력들을진행중에있다. 중국의경우국가현대화를위한 3단계전략이덩샤오핑과장쩌민에의하여수립되어시행된바있다. 당시수립된전략의 1단계는기본적의식주해결, 2단계는어느정도여유있는생활수준도달, 3단계는부강한사회주의국가실현을의미한다. 현재 3단계에진입한중국경제는종합경제현대화전략으로운하 (CANAL) 전략을채택하였다. 그의미는선진국들이위치한 지식경제 와개발도상국들이위치한 공업경제 가운데포지셔닝 (Positioning) 하고, 그사이에운하를개통하여경제적도약을이루겠다는구상인것이다. 운하 (CANAL) 전략의주된내용은공업화와지식화를통하여 1차경제현대화와 2차경제현대화를동시에진전시키면서, 점차적으로지식화와 2차경제현대화로나아가선진국수준의지식산업화된국가를건설하겠다는것이다. 그리고경제현대화달성을위한전략산업으로첨단기술산업, IT산업, 문화산업을지정하여각산업부문세부전략을시행중이다. 7) 그림 1 중국정부의일대일로 ( 一帶一路 ) 전략 자료 : 이신규, 중국의일대일로전략과시사점, 무역연구, 14 권 3 호 (2018) 내용재구성 한편시진핑시대중국에서는일대일로 ( 一帶一路 ; One Belt, One Road) 전략을추진중에있다. 육상과해상을잇는 실크로드경제벨트 를비전으로하는 일대일로 전략은대외적으로동남아및중앙아시아등에대한인프라투자를통하여경제개발의주도권을확보하고, 대내적으로는공급과잉산업의해외진출, 물류및관광산업의해외시장선점을통하여해외시 7) 김미정, 중국서비스산업전략과한중협력방안, e- 비즈니스연구, 7 권 1 호 (2006), pp.287-309 192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장선점을통하여대외경쟁력을강화하기위한목적에의한것으로볼수있다. 실크로드경제벨트를완성하기위한전략목표는 5통 ( 五通 ) 으로서정책의소통 ( 政策沟通 ), 인프라를정비하는시설의연통 ( 道路连通 ), 교역활성화촉진을위한무역의창통 ( 贸易畅通 ), 금융협력을강화하는자금의융통 ( 货币流通 ), 그리고민간교류를활성화하는민심의상통 ( 民心相通 ) 을주요내용으로하고있으며, 나아가서부문별세부전략을제시하고있다. 8) 미국에서는트럼프대통령이취임하면서이른바 트럼프노믹스 를발표한바있다. 트럼프행정부의경제정책으로볼수있는트럼프노믹스에서는미국우선주의 (America First) 라는비전을달성하기위한보호무역주의와전통제조업의회생, 그리고일자리창출이라는 3가지전략목표를설정하고있다. 그림 2 미국정부의트럼프노믹스전략 자료 : 황인석, 트럼프노믹스와한국관광산업, 경제연구, 67 호 (2017) 내용재구성 이에대한부문별세부전략으로는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TPP) 의폐기, 북미자유무역협정 (NAFTA) 의탈퇴, 한미FTA 재검토등기존무역협정의재검토및무역관세의대규모적자구조탈피, 대규모인프라투자와감세등확장적재정정책의도입, 화력발전규제철폐및셰일가스 석탄 석유를비롯한화석에너지개발을통한에너지독립실현을제시하고있다. 9) 일본의경우아베노믹스의일환으로 2013년 6월 14일일본재흥전략 (JAPAN is BACK) 을발표한바있다. 전략의명칭에서확인히드러나듯이본전략의비전은 일본의재흥 으로일명 세개의화살 을전략목표로설정하고있다. 첫번째화살은대담한금융정책으로전례업는금융완화정책을적극적으로추진하겠다는것이다. 두번째화살은기동력있는재정 8) 이신규, 중국의일대일로전략과시사점, 무역연구, 14 권 3 호 (2018), pp.559-568 9) 황인석, 트럼프노믹스와한국관광산업, 경제연구, 67 호 (2017), pp.58-62 193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정책으로경기부양을위해대규모재정지출을추진하겠다는것이며, 세번째화살은새로운성장전략으로산업경쟁력강화와전략시장창조및해외진출을추진함으로써, 기업과국민의자신을회복하고기대를행동으로변화시키겠다는것이다. 나아가서거시적으로 3가지, 미시적으로 13가지세부과제를설정하여시행중에있다. 10) 그림 3 일본정부의아베노믹스전략 자료 : 이동우, 아베정권의일본재흥전략과공간정책적시사점, 국토정책 Brief, 430 호내용재구성 마지막으로문재인정부의통일정책비전은 평화와번영의한반도, 국정과제로 한반도신경제지도구상및경제통일구현 으로설정하고, 그실현을위한목표와세부과제를다음과같이제시하고있다. 비전실현을위한전략목표로는남북간경협재개및한반도신경제지도구상추진, 남북한하나의시장협력지향, 경제활로개척및경제통일기반구축으로정리할수있다. 첫번째전략목표로서한반도신경제지도구상실행을위한세부전략으로는 3 대벨트 ( 동해권에너지 자원벨트, 서해안산업 물류 교통벨트, DMZ 환경 관광벨트 ) 구축을통한한반도신성장동력확보및북방경제연계를추진하는것이다. 두번째전략목표로서남북경협재개를위한세부전략으로는남북경협기업피해를지속지원하고남북관계상황을감안하여유연한민간경협을재개하는것을제시한다. 세번째전략목표로서남북한하나의시장을위한세부전략은민 관협력네트워크를통하여남북한하나의시장협력방안을마련하 10) 이동우, 아베정권의일본재흥전략과공간정책적시사점, 국토정책 Brief, 430 호, pp.1-6 194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고여건조성시남북시장협력을단계적으로실행하여생활공동체를형성하는것이다. 마지막으로경제활로개척및경제통일기반구축을위한세부전략은통일경제특구의지정 운영, 남북협의를통한남북접경지역공동관리위원회설치,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추진여건을조성하는것이다. 11) 그림 4 한국정부의통일경제구상전략 자료 : 통일부홈페이지 http://www.unikorea.go.kr/ 내용을재구성 11) 통일부홈페이지 http://www.unikorea.go.kr/ 195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국가경제발전개년전략수립의배경 경영전략을강조하는최고지도자의경영이념 김정은시대를대표하는용어가있다면, 하나는세계적추세와지향이고, 또다른하나는경영전략 기업전략으로볼수있을것이다. 선대지도자김정일의마지막현지지도 (2011.12.15. 보도 ) 장소로서통일거리에위치한하나음악정보센터와광복백화점을리모델링하여개점을앞둔광복지구상업중심은두핵심키워드를상징하는장소로서의미를갖는다. 당시이현지지도에는후계자김정은과후견인고모김경희와고모부장성택등이동행함으로써김정일시대의마지막임과동시에김정은시대의시작을알리는상징적의미를가진다고할수있다. 하나음악정보센터는세계여러나라음악, 무용과관련한자료들을수집, 편집, 보급하는종합적인예술정보기지로서, 건물 2층에는하나전자합영회사생산거점이위치하여있는곳이다. 한편광복지구상업중심은 1991년 10월개점한광복백화점을개건하여새롭게개점한상업봉사기지, 연건평 12,700m2의가정용품, 전자제품들과식료품들, 잡화등을갖춘일명슈퍼마켓으로소개하고있다. 당시하나음악정보센터에서는세계명곡을비롯한예술작품들을많이수집하고, 새노래모음과악보, 국가적으로출판하는음악무용도서등예술자료들을수집할것에관한부분이강조되었으며, 광복지구상업중심에서는올바른경영전략 기업전략으로봉사활동을인민의요구에맞게주동적으로창발적으로할것에대하여지적하는흐름으로이어지고있다. 김정은집권이후로는완공을앞둔창전거리현지지도 (2012.05.26. 17시보도 ) 에서경영전략과봉사성, 요리의질에대하여강조하고있다. 창전거리는김정일시대말기역점추진사업으로추진한만수대지구건설의상징적살림집건축물로서 5층부터 45층, 여러칸의방을가진수천세대살림집들과수십동의탁아소, 유치원, 중학교, 약국등교육및보건기관들, 해맞이식당을비롯한상업봉사망들, 목욕탕, 이발소등각종편의후생시설을갖춘주택지구로소개되어진다. 이날김정은은건축면적 2,790m2규모의해맞이식당을방문하면서, 손님들이제일많이찾아오는가하는것은봉사성자들의봉사성과경영전략, 료리의질에있으며, 창전거리에많은식당들이건설된만큼봉사성을놓고서로경쟁하게하여야한다고언급한바있다. 변화하는내외부환경에능동적으로대처하기위한기업의경영전략을강조하는그의이러한흐름은이듬해인 2013년룡정양어장현지지도의행보 (2013.03.12. 17시보도 ) 로도이어지고있다. 선군시대를대표하는본보기양어장으로소개되고있는룡정양어장은북한최대의양어장으로써철갑상어를비롯한고급어족을생산하고있으며, 공장내부에는 철갑상어는바다로, 조선은세계로 글발을통하여세계적추세의지향을나타낸다. 이곳방문에서먹이문제를해결하기위해서 올바른경영전략을세우고기업관리를짜고들어야한다. 는그의발언은기업자체로경영전략을수립하는것에관한중요성을다시한번확인해주고있다. 같은해 3월 19일에개최된전국경공업대회에서한연설에서또한 경공업부문일군들은경직과도식, 침체와부진을배격하고참신하고탄력있게일하며, 합리적인경영전략 기업전 196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략을세워자체적인힘으로확대재생산을실현하고생산을활성화해나갈것 에대하여강조하고있다. 연건평이 109,000m2규모의간장, 된장, 맛내기 ( 화학조미료 ), 기름, 버터, 당과류를비롯한여러식료품들과양곡가공을동시에할수있는종합적식료가공공장으로소개되고있는조선인민군 2월20일공장에서의행보 (2013. 05. 17. 17시보도 ) 에서도위의흐름은지속되고있다. 과업으로 기업전략 경영전략을바로세우고관리운영방법을끊임없이개선함으로써생산에필요한원료를넉넉히마련해놓아야하며식료가공품의질을보장할것 에대해지시하고있는것이다. 2014년도에는명사십리해변과갈마비행장이위치한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내갈마식료공장에서의행보 (2014.06.29. 17시보도 ) 에서이같은흐름이이어지고있다. 명란젓, 창란젓, 말린명태, 말린낙지를비롯한수산물가공품을생산하는물고기가공기지로소개된갈마식료공장에서김정은은맛과질에있어서다른나라의수산물을압도할수있는호평을받을수잇는제품을생산하기위해서 기업전략 경영전략을바로세우는것이중요하다. 는것을다시한번더강조한다. 그해평양양말공장의행보 (2014.08.07. 17시보도 ) 에서는 생산공정들의현대화를더높은수준에서실현하며기술준비와제품생산, 포장, 판매에이르는모든생산조직과경영활동을개선하기위한경영전략 기업전략을바로세워야한다. 는흐름으로이어지고있다. 2015년도부터는신년사에서 모든경제부문, 단위들에서경영전략 기업전략을바로세울것 과나아가서 모든경제기관, 기업체들이기업활동을주동적으로, 창발적으로해나가도록해나가도록하여야한다. 고명시하고있다. 함경남도신포시에위치한동해최대의수산부문기업으로알려진신포원양수산련합기업소행보 (2015.05.09. 15시보도 ) 에서는트롤선과대형가공모선 삼천리-1 호등을돌아보면서경영전략 기업전략을바로세울것과세계적인수산업의발전추세와선진기술을습득하도록과학기술보급사업을잘할것에대한부분의강조로이어지고있다. 2012년도 4월. 12월7일공장내부에위생용품분공장으로새로조업한위생용품생산기지로락랑위생용품공장의행보 (2015.07.14. 15시보도 ) 에서는전반적인생산공정의통합생산체계를확립하고경영전략 기업전략을바로세울것에대하여, 제4차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선구자대회참가자들에게보낸서한 혁명발전요구에맞게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에서근본적인전환을일으키자 에서는과학적타산에기초한기업전략 경영전략을바로세우며생산공정과경영관리의현대화 정보화를다그칠것에관하여강조하고있다. 제7차당대회가열린 2016년도에서또한 5월 8일 조선로동당제7차대회에서한당중앙위원회사업총화보고 에서 경영전략을잘세우고기업활동을주동적으로, 창발적으로하여생산을정상화하고확대발전시켜나가야하며, 국가적으로기업체들이부여된경영권을원활하게확대할수있도록조건을충분히보장해주어야한다. 는기조를이어가고있으며, 이후새로건설한평양기자재공장행보 (2016.06,02 15시보도 ) 에서또한경영전략을잘세워생산을잘세워정상화하고확대발전시킬것에관하여언급하고있다. 2017년도신년사에서는경공업부문에서원료와자재의국산화를틀어쥐고경영전략을바로세워생산을활성화할것에관하여, 새로건설된금산포젓갈가공공장과금산포수산사업소행보 (2017.01.15. 9시보도 ) 에서또한기업전략 경영전략을잘세우고두뇌진을잘갖출것 197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에관하여언급하는흐름으로이어진다. 2018년도다시한번방문한금산포젓갈가공공장 (2018.08.08. 15시보도 ) 에서또한기업전략 경영전략을바로세우고선진기술을적극탐구도입할것을지속적으로주문하고있다. 북한경제발전전략의연구흐름 북한이 2016년도 5월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을수립할수있었던배경에는지속적인경제발전전략관련연구가이뤄져온것에기인한다. 김정은정권집권이후로경영학관련연구의흐름이이어져오는가운데, 거시적차원에서의경제발전전략과관련된연구는꾸준히다뤄져오고있는연구주제중하나이다. 12) 대표적연구로는우선김정은집정권 2년차로되는 2013년도발표된 < 국가경제발전계획의본질과내용의특징 > 을통하여관련내용들을소개하고있다. 13) 연구에서는국가경제발전계획의설정을위하여목표와과업을과학적으로예견하는것에대한중요성을설명하고있는데, 이러한설정은비전, 목표, 과제를설정함으로써급변하는환경에보다효과적으로대응하기위한경영전략구성형태를차용한것으로보인다. 나아가서국가경제발전목표와과업은인민경제부문별, 경제관리측면별, 련합기업소별, 지방 ( 도 ) 별발전목표와과업으로구체화되며모든목표와과업들은서로연관되고의존되는유기적인계획지표를이룬다고명시하고있다. 목표와과업들이유기성을발휘하기위해서는각단위의경영전략, 기업전략에근거해야하며, 국가경제발전전략에도영향을주게되는것을의미한다. 한편으로국가발전목표와과업은현행계획과전망계획기간의경제발전목표와과업으로구분할수도있으며, 전망계획기간의발전목표와과업은보통5년정도, 장기적인경제발전목표와과업은보통 10년이상, 현행경제발전목표와과업은 1년또는그이하의경제발전목표와과업으로규정하고있다. 요컨대경제발전전략을나라의경제발전에대한개괄적인설계도로써경제발전의방향과목표, 방도를제시해주는것으로, 그하위개념으로써국가경제발전계획은제시된전략목표실현을위한단계별목표와과업을제시하고그실현을위한실제적인균형보장을기본내용으로하고있는것으로구분하고있다. 14) 2015년도연구에서는 전략적경제관리방법 용어를사용하고, 국가의전략적경제관리방법이지난시기경제관리방법과구별되는측면에대하여설명하고있다. 15) 내용에따르면, 우선지난시기국가경제관리방법이주로당면한현행경제문제들을푸는데기본을두었지만국가의전략적경제관리방법에서는먼앞날을내다보면서전망성있게발전시켜나가기위한사업에기본을두고있다. 이러한접근은경제발전의합법칙성과세계경제발전추이에맞게전략적기간은보통 3년이상의기간을포함하게되는데기인한다. 단기전략은 3년까지, 중기전략은 5-10년사이, 장기전략을 10년이상으로보고경제전략을작성하고있다는것을 12) 나정원, 김정은시대북한의경영학연구동향, 북한연구학회보, 22 권 1 호 (2018), pp.64-67 13) 서성철, 국가경제발전계획의본질적내용과특징, 경제연구, 161 호 (2013), pp.10-12 14) 나정원, 소유권개념을통해본사회주의국가의사유화연구 북한기업의사유화함의를중심으로 -, ( 고려대학교북한학과박사학위논문, 2018), pp.141-144 15) 송정남, 전략적경제관리방법의본질적특징, 경제연구, 169 호 (2015), pp.15-16 198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강조하고있다. 또다른차이점으로는지난시기기업체들에게있어서실제적인경영권은국가가틀어쥐고행사함으로써국가에대한의존도가높았다는점을지적하면서, 국가의전략적경제관리에서는기업체들이실질적인경영권을가지고독자성과창발성을최대한높이는데초점을맞추고있다는부분이다. 16) 2016년도연구에서는전략적경제관리방법에서나서는문제에있어서내각의역할을강조하는내용을포함하고있다. 17) 연구내용에따르면 국가의전략적경제관리방법은내각의기능과역할을높여경제에대한국가의중앙집권적통일적지도를강화할수있게한다. 국가의전략적경제관리방법하에서내각은나라의전반적인경제발전을예견하는총적인경제발전전략을작성하고그실현을조직지휘하는과정을통하여중앙집권적통일적지도를강화한다. 고명시하고있다. 나아가서나라의모든경제부문, 단위들은이경제발전의총적전략에기초하여경제활동을벌려나가게되며, 기업체들이실질적인경영권을가지고경영활동을독자적으로, 창발적으로벌려나가는과정도나라의총적인경제발전전략을더잘실현하는과정으로일관되는것이다. 결국내각책임제, 내각중심제를통하여내각이경제발전의총적인전략을세우고전략적관리를실현하는과정은국가의중앙집권적통일적지도를강화해나가는과정으로된다. 18) 2017년도연구에서는국가의전략적경제관리에있어서나라경제의기본단위, 기층단위를이루는기업의역할을강조하고있다. 19) 국가가나라의경제를전략적으로강조하듯이, 기업체들이전략을세우고그것을관철하는전략적관리를실현하여야국가의경제발전전략을성과적으로수행할수있다는것이연구의주요내용이다. 기업체들을전망성있게발전시키자면전략적실현을잘해야하며, 전략적관리는일정하게긴기간에경제발전을전망적으로예견하는전략을세우고그것을관철해나가는사업이라는것이다. 나아가서기업의전망적발전을보장하는전략적관리는변화된환경과조건에맞게기업관리를능동적으로하여기업체앞에맡겨진임무를원만히수행하기위한필수적요구로제기된다고강조하고있다. 전략을관철하는과정에변화되는환경과조건에대처하여전략적조종을통한융통성의발휘가가능한부분이다. 2017년도연구의또하나의연구흐름으로는경제전략수립에있어서의수자화 계량화와관련된부분을들수있다. 20) 전략적관리실현의중요한수단으로써경제전략은정확한경제계산에기초하여작성되어야변화하는환경과조건에맞게경제발전방향과도달목표, 목표달성을위한안들을과학적으로제시하여경제사업을목적지향성있게이끌어갈수있게된다. 그리고전략적목표를현실성있게세우자면국가경제실태를종합적으로, 구체적으로반영하는국내총생산액, 국민소득, 주요생산물의현물생산량등숫자적인계산자료들이있어야하며, 이러한자료들이있어야만그에대한분석을통하여생산발전의일반적인합법칙성을밝혀냄과동시에, 앞으로도달해야할국내총생산액장성목표는물론주요생산물의현물생산량을보다높은수준에서설정할수있음에관하여설명하고있다. 21) 16) 나정원 (2018), 앞의글, pp.141-144 17) 최성봉, 전략적경제관리방법의필요성, 경제연구, 170 호 (2016), pp.11-12 18) 나정원 (2018), 앞의글, pp.141-144 19) 송정남, 기업체의전략적관리의필요성, 경제연구, 174 호 (2017), pp.14-15 20) 김숙영, 전략적경제관리에서경제계산의중요성과기본방도, 경제연구, 174 호 (2017), pp.19-20 21) 나정원 (2018), 앞의글, pp.141-144 199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2018년도진행된연구에서또한국가의전략적관리, 경제발전전략에관한학술적의미가 변화되는환경과조건에주동적으로대처하면서제시된경제발전목표를달성하도록국가가여러가지경제조직적대책들을능동적으로활용하는것 임을다시한번확인하고있다. 22) 국가경제발전개년전략의주요내용 북한에서최초로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이제시된것은김정은의 2016년 5월 8일조선로동당제7차대회에서한당중앙위원회사업총화보고를하던상황으로거슬러올라가게된다. 당시의보고는 3시간여에걸쳐서진행되었으며, 보고가시작한지 1시간 35분이지난 2.3) 경제강국건설, 인민경제발전전략 부분에서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이발표되었다. 비전사명 2016년도 5월김정은의발표에서는경제강국을생산력발전수준과국민소득이높은나라, 인민들에게유족하고문명한생활을보장해주는인민의낙원으로그참다운면모와본질적특징이있다고설명하고있다. 그리고이를성과적으로건설하기위해서인민경제발전을위한단계별전략을과학적으로현실성있게세우고어김없이집행해나갈것에대해서강조하고있다. 그것은곧 2016년부터 2020년까지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 을철저히수행해야하는것임을의미한다. 즉,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수행에있어서의비전 ( 사명 ) 은경제강국의건설을끊임없이지향해나가는것이라고할수있다. 이같은내용은 5월 26일부터 28일간이어지는 조선로동당제7차대회에서제시된과업을철저히관철하기위한당, 국가, 경제, 무력기관일군연석회의 에서다시한번확인되고있다. 당시내각총리박봉주는 경제강국건설에박차를가하여국가의물질기술적토대를튼튼히쌓고인민생활에서전환을가져올데대한새로운경제발전전략을제시 하기도하였다. 23) 2016년 6월 29일진행된최고인민회의제13기제4차회의에서또한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은경제강국건설에서일대앙양을일으켜나갈수있게하는과학적이고혁명적전략이며, 사회주의강국건설의지름길을밝힌설계도라고설명하고있다. 24) 2017년도신년사와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수행을위한내각의 2016년사업정형과 2017년과업에관련된내각총리박봉주의보고에서도경제강국건설에총력을집중하는것은비전 ( 사명 ) 으로제시된다. 보고의내용에따르면내각은지난해경제강국건설에총력을집중하여인민생활향상에새 22) 윤진아, 경제사업에대한국가의전략적관리를실현하는데서나서는중요문제, 178 호 (2018), pp.12-13 23) 조선로동당제 7 차대회에서제시된과업을철저히관철하기위한당, 국가, 경제, 무력기관일군련석회의, 조선중앙 TV, 2016.05.29. 14:09 24) 최고인민회의제 13 기제 4 차회의진행, 조선중앙통신, 2016.06.29. 200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로운전환을일으켰다고평가하고, 결함들을잘극복해나갈것에대해서언급하기도하였다. 위와같은내용은평양시중구역남산재언덕에위치한인민대학습당에서 2017년 1월 27일 16시 4호강의실에서진행된강의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은사회주의경제강국건설의승리적전진을담보하는가장과학적이며현실적인전략 이라는데서다시금확인해주고있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의 3년차를맞이하는 2018년도에는노동신문과조선중앙통신의 8월 6일자발표된사설 당의부름따라 5개년전략목표수행증산돌격운동에총매진하자 를통하여위사실을다시한번더확인해주고있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수행을위한증산돌격운동은자립경제의토대를튼튼히다져경제강국건설의웅대한목표를성과적으로점령하기위한자력자강의대진군운동으로규정하고있는것이다. 정리하면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에서의비전 ( 사명 ) 은북한에서새로운주체100년대를맞이하는 2012년도제시한강성국가실현의연장선상에있다고볼수있다. 25) 김정일집권기에정치강국, 사상강국, 군사강국의업적을이뤘다면, 김정은시대에는경제강국을이룩함으로써강성국가의완성을이룩하겠다는구상인것이다. 즉, 경제강국건설의지향은김정은시대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의비전이자사명으로정리할수있다. 그림 5 김정은정권의국가경제발전 5 개년전략 25) 북한당국에서는 2011 년도 12 월김정일의서거당시최고지도자의업적을정치강국, 사상강국, 군사강국의지위에올려세워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의새시대를열어준것으로평가하고있다. 조선로동당중앙군사위원회부위원장김정은동지께서조선로동당중앙군사위원회와,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국방위원회성원들, 조선인민군주요지휘성원들, 조선인민군최고사령부작전지휘성원들, 조선인민군대련합부대지휘성원들과함께김정일동지의령구를찾으시여심심한애도의뜻을표시하시였다. 조선중앙 TV, 2011.12.25. 09:00 201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전략목표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에서제시하는전략목표는포괄적으로제시하는비전 ( 사명 ) 의일관성과는다소거리가있어보인다. 2016년도 5월조선로동당제7차대회에서한김정은의사업총화보고에서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의목표는인민경제전반을활성화하고경제부문사이균형을보장하여나라의경제를지속적으로발전시킬수있는토대를마련하는것으로규정하고있다. 당시이와관련하여에너지문제를해결하면서인민경제선행부문, 기초공업부문을정상궤도에올려세우고농업과경공업생산을늘일것을추가로당부함은물론이다. 나아가서석탄공업, 금속공업, 철도운수부문, 기계공업부문, 화학공업부문, 건설부문, 농업 수산 축산부문, 경공업부문에걸쳐포괄적과업을제시하고있다. 두번째로는내각책임제, 내각중심제의요구대로전반적경제사업을내각에집중시키는것이다. 당-국가체제를유지하는북한의상황에서경제현장에서당의힘을빼는한편, 내각에서이를통일적으로관리하도록하겠다는의도로볼수있는것이다. 세번째로는공장, 기업소, 협동단체들이경영전략을잘세우고기업활동을주동적, 창발적으로하여생산을정상화하고확대발전시켜나가도록하는것이다. 나아가서국가적으로기업체들이부여된경영권을원활하게활용할수있도록조건을충분히활용할수있도록보장해줄것에대해서도부연하고있다. 국가적차원에서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이, 기업적차원에서자체적으로경영전략에따른비전 ( 사명 ) 과전략목표를세우고그잠재력을극대화하도록하겠다는구상으로볼수있는것이다. 다만 2017년도에들어서면서경제부문사이균형을보장하는것을전략목표로제시하던흐름에는변화가있는것으로보인다. 2017년도신년사에서김정은은육성연설을통하여, 경제전략목표를수행하기위한투쟁에서전력과금속, 화학공업부문의기치를들고나가야할것에대해밝히고있다. 이어서신년사에서제시된전략목표내용은 1월 4일조선중앙TV를통해전파를탄선전방송 자력자강의위대한동력으로사회주의의승리적전진을다그치자! 에서도그대로인용되고있으며, 26) 1월 19일선전방송 경제전략목표를수행하기위한투쟁에서전력과금속, 화학공업부문의기치를들고나가자! 를통하여 2017년도의전략목표를확실시하고있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수행을위한내각의주체105(2016) 년사업정형과주체106(201 7) 년과업에대한박봉주내각총리의 4월 11일보고에서또한 과학기술에의거한자력자강의원칙에서전력과금속, 화학공업을추켜세우며, 농업과경공업발전에힘을넣어전반적경제발전을다그치기위한투쟁을조직진행 하고있음을밝히고있다. 내각의경제전략목표수행의관건적대상으로 전력과금속, 화학공업부문 으로명시하면서이러한흐름은지속적으로이어지고있는데, 이는과거시기제1차 5개년계획 (1957-1960) 기간제시된중공업우선경공업 농업동시발전을떠올리게하는부분이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수행의 3번째해가되는 2018년신년사에서는경제의자립성과주체성을강화하고인민생활을개선향상시키는것을전략목표로서제시하고있다. 위와같은전략목표설정의배경에는 2017년 12월현재국제사회와의갈등이고조되는가운데, 대북제 26) 자력자강의위대한동력으로사회주의의승리적전진을다그치자! 조선중앙 TV, 2017.01.14. 20:13 202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재또한강화되는흐름에따른것으로보인다. 동시에내각경제기관들의책임적역할, 국가적으로사회주의책임관리제가공장 기업소 협동단체들의기업활동의주동적 창발적역할을할수있도록적극적대책을세울것을제시하고있다. 위의전략목표는최고인민회의제13기제6차회의에서한박봉주내각총리의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수행을위한내각의주체106(2017) 년사업정형과주체107(2018) 년과업 에서다시금확인되고있다. 지난기간모든부문, 모든단위에서자립자강의창조대전을힘있게벌렸다고평가하는한편결함들을지적하고, 자립성과주체성을강조하는부문별과업들을제시하는것이다. 내각의경제사령부로서의역할,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의규정을보충갱신하는한편성과와경험을일반화함으로써공장, 기업소, 협동단체들이현장에서실제은을낼수있도록하는것에대해명시하였다. 2018년도 8월 6일노동신문과조선중앙통신에실린사설 당의부름따라 5개년전략목표수행증산돌격운동에총매진하자 에서또한 1자립성과주체성강화, 2내각의책임적역할, 3기업의창의창발성강화관련내용이실리고있다. 그에따르면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수행을위한증산돌격운동은자립경제의토대를튼튼히다지는자력자강의대진군운동이며, 이를달성하기위해서는경제사업과관련한문제를내각에집중시키고내각의통일적지휘밑에경제활동을진행해나가도록강한규률을세워야한다.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을비롯한생산단위들은 5개년전략수행에있어서예견성있게설계하고치밀하게조직하는한편, 과업과목표, 계획량을재확인하고이에기초하여직장, 작업반, 분조별생산과제를집행할것에대하여명시하고있다. 정리하자면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의전략목표는큰흐름에서 3가지로축약할수있다. 이중에서 1내각의책임적역할, 2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하에서기업의주동적 창발적역할은전략목표로써지속성을유지하고있는것으로보인다. 다만 2016년도전략목표로써제시된 경제부문사이균형보장 발전의흐름은 2017년도 전력과금속, 화학공업부문집중으로, 그리고 2018년도에는 자립성과주체성의강화하는것으로변화하는흐름을보이고있다. 부문별사업전략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은그비전 ( 사명 ) 으로경제강국건설의지향, 전략목표로서내각의책임적역할과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하에서기업의주동적 창발적역할을전제로한다. 다만부문별사업에접근하는시각은다소차이가있다고할수있을것이다. 2016년도에는경제부문사이의균형발전에초점을맞추고있는반면, 2017년도에는전력, 금속, 화학공업부문의집중을강조한다. 이후 2018년에는부문별사업에서자립성과주체성을강화하는방향으로변화가이뤄지고있다. 년도부문별전략우선 2016년도에는인민경제선행부문과기초공업부문과농업과경공업생산을늘이는것에대해중점을맞추고있다. 이를위해서우선적으로제시되는것이바로전력문제의해결 203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이다, 당제7차대회에서또한전력문제를푸는것은 5개년전략수행의선결조건이며경제발전과인민생활향상의중심고리로규정하고, 전력생산목표를반드시점령할것에대해서강조하고있다. 전력공업부문에필요한설비와자재, 자금을우선적으로보장하기위한국가적대책을세우는동시에, 국가적인통합전력관리체계를구성하고교차생산을합리적으로조직해야한다는것이다. 이를위해서기술적과제또한구체적으로제시하고있는데, 송배전망을개건보수하고전압단계와력률을높여전력의도중손실을극력줄이며송전계통을점차유연교류송전계통으로바꿀것에대해서언급하고있다. 단천발전소를최단기간에건설하고원자력발전소건설추진, 그리고도, 시, 군들에서중소형발전소를건설함과동시에풍력과조수력, 생물질과태양에네르기에의한전력생산을늘이며자연에네르기리용범위확대역시전력부문에서의전략으로제시되고있다고할수있다. 금속부문에서는제철, 제강, 압연공정의기술장비수준을높이며원료, 연료, 동력보장대책을세워철강재생산증대할것을주문하고있다. 이를위해서철광산들의생산능력을확장하고, 현대야금공업의발전추세에맞게선진기술에의거한철강재생산의기술경제적지표를개선하며합금강과규격강재품종을늘려야함은물론이다. 기계공업부문에서는철단설비들을새로장비하는것과함께이미있는기계설비들의성능을개선하며유연생산세포를구성하며, 기계제작기술의최신성과에토대하여새형의현대적기계설비들을세계적수준에서설계제작하고계렬생산공정을확립할것을주문하고있다. 철도운수부문에서는유일한지휘체계를세우고김종태전기기관차련합기업소의현대화, 교류전기기관차를비롯한전용화차및중량화차의개발생산, 철도망완비및철길의고속도화단계별추진, 철도시설과장비의현대화, 국산화된 자력 호계열무역짐배의건조및항시설의현대화내용등을세부전략으로제시한다. 화학공업부문에서는촉매의국산화실현, 새로운화학제품생산기지의건설, 그리고석탄가스화에의한탄소하나화학공업의창설, 갈탄을이용하는석탄건류공정의완성, 회망초를출발원료로하는탄산소다공업완비에따른메탄올과합성연유, 합성수지의생산이제시된다. 건설부문에서는중앙과지방의설계역량과건설역량을강화하고설계수단과건설장비, 기공구들을현대화하여건식공법을장려하고령에네르기와령탄소건축기술, 지능건축기술을널리받아들일것에대하여, 건재공업부문에서는최신기술을활용한건재의다양화, 다종화, 국산화의실현이부문사업전략으로제시되고있다. 농업부문에서는종합적기계화비중을 60-70% 수준으로끌어올리기위하여농기계공장들에서설비및생산공정을현대적으로개건할것을제시하고있다. 수산부문에서도고기배와어구의현대화현대화하고첨단과학기술에기초한기상예보, 해상지휘, 물고기가공체계와설비및전력감시체계, 배수리체계를완벽하게구축할것을, 양어에있어서는바다양어와그물우리양어를널리전개하는한편바다가양식면적과양식방법을개선할것에대하여부문별전략을제시한다. 경공업부문에있어서는공장들을지식경제시대본보기공장으로꾸리고원료, 자재의국산화의실현, 새제품개발과질제고에힘을넣어세계적수준의다양한경공업제품의생산, 지방들에서는자체힘으로지방경제를특색있게발전시킬것에대해서주문하고있다. 204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년도부문별전략 2017년도신년사에서는경제전략목표수행하기위한투쟁에서전력과금속, 화학공업부문의기치를들고나갈것에대하여강조하고있다. 추가적으로전력공업부문에서는국가통합전력관리체계를질서있게운영하고교차생산조직을통하여전력생산과소비사이의균형, 그리고다양한동력자원을개발할것을과업으로제시하고있다. 금속공업부문에서는선진기술을받아들여철생산원가를낮출것을과업으로제시하고, 김책제철련합기업소, 황해제철련합기업소를비롯한금속공장들의원료와연료, 동력보장을세울것이제시된다. 마지막으로화학공업부문에서는 2.8비날론연합기업소의생산을활성화하고주요화학공장들의능력을확장할것과기술개조등역할에방점을두는한편, 탄소하나화학공업을창설하기위한사업에힘을넣어단계별과업을원만히설계하여야할것에대해역설하고있다. 위에제시된전력, 금속, 화학공업이중심축이되는한편, 다른부문들에대한세부전략또한동시에제시되고있다. 우선석탄공업과철도운수부문에서발전소, 금속, 화학공장들에석탄과수송수요를최우선적으로보장할것에관해밝히는한편, 기계부문에서는새형의뜨락또르 ( 트랙터 ), 륜전기재, 다용도농기계의계열생산공정을완비할것을, 경공업부문에서는원료와자재의국산화와경영전략을바로세워다종화, 다양화와질제고할것에대해주문하는것이다. 건설부문에서는진행중인려명거리의완공과단천발전소건설, 김종태전기기관차연합기업소의현대화공사, 원산지구건설부문의역량집중하는한편, 국토관리사업에있어서도들에현대적양묘장을건설하고산림복구의진행할것을추가적으로제시하고있다. 신년사에서제시된위의내용은최고인민회의제13기제5차회의에서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내각총리박봉주대의원의보고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수행을위한내각의주체 105(2016) 년사업정형과주체106(2017) 년과업에대하여 에서보다구체적으로공개되어졌다. 전력부문에서는전력생산목표수행을위해단천발전소와어랑천5호발전소를비롯한수력발전소건설을진행하고, 이미건설한중소형수력발전소들을원상복구하여운영하는한편, 자연에네르기발전소들을대대적으로건설할것을전력부문의세부전략으로제시하고있다. 이와함께화학부문에서는 2.8비날론련합기업소의생산공정을전기절약형으로개건할것을,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와흥남비료련합기업소가질소비료생산능력을끌어올려국내산비료로수요를보장하고탄소하나화학공업의창설과린비료생산토대를다질것을주문하는흐름을보인다. 다만금속공업부문은신년사와큰변동사항이없는것으로보인다. 전력과금속, 화학부문의 3대축을중심으로석탄과수송수요를우선적으로보장할것또한다시한번확인하고있다. 철도운수부문에있어서는김종태전기기관차련합기업소현대화사업과동시에혜산-삼지연넓은철길건설사업추진이세부목표로써추가적으로공개되었다. 기계공업부문에서또한신년사에서제시된새형의뜨락또르 ( 트랙터 ) 와화물자동차, 다용도화된농기계의계열생산공정구축이외에도, 현대적측정설비생산공장건설과자연에네르기발전설비생산공정을갖출것이세부목표로공개되었다. 경공업부문에서는원료, 자재의국산화와다종화, 다양화, 다색화와질제고등거시적차원에서의과업을제시하는신년사의흐름과크게다르지않으며, 기업자체로인민소비품생산목표를점령할것이제시되는흐름을보인다. 내각의역할을강조하는한편과학농사에관한 205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강조, 수산부문에서현대적고기배건조등이추가로제시된다. 국토관리부문에서는산림복구를전략적과업으로설정하고, 강하천관리와도로보수, 환경보호사업에관하여명시함으로써신년사에제시된기조를그대로이어나가는흐름을보이고있다. 년도부문별전략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수행의세번째해로규정되어지는 2018년도신년사에서또한자립성과주체성을강화하는것을전략목표로각부문별전략을제시하고있다. 전력공업부문은화력및중소형수력발전소전력생산정상화, 전력낭비방지등 2017년도제시된부분과대동소이하고, 금속부문또한주체적제철 제강기술에기반한철강재수요충족등예년에제시된내용과큰차이점이발견되지않는다. 다만화학공업부문에서는탄소하나화학공업창설을위한촉매생산기지와린비료공장건설을계획대로추진하는기조는유지하면서도, 회망초를출발원료로하는탄산소다생산공정을개건완비할것에대한세부전략을추가로제시하고있다. 기계공업부문에서는금성뜨락또르공장과승리자동차련합기업소의기계공장의현대화및세계적수준의기계제품들을우리식으로개발할것에대하여세부전략을제시하고있는데, 직접기업단위를지정함에따라이들단위들의현대화동향을살펴보면기계공업부문의성과를추정하는데용이할수있을것으로보인다. 경공업부문에서는생산공정의노력절약형, 전기절약형개조와동시에도 시 군들에서자체원료에의거한지방경제를특색있게발전시키는것을세부전략으로제시한다. 농업과수산부문에서는우량종자와다수확농법, 능률적인농기계도입과배무이와배수리능력을높일것을세부전략으로제시한다. 건설부문에서는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건설의최단기간완공, 삼지연군꾸리기, 단천발전소건설, 황해남도물길 2단게공사를비롯한중요대상건설과살림집건설을세부전략으로제시하고있다. 국가경제발전개년전략의성과 기업자체경영권한의확립 김정은집권이래로북한에서공장 기업소 협동단체들이경영전략 기업전략을세우고기업활동을주동적 창발적으로할것에관한지침은지속적으로강조되고있다. 김정은이동행한김정일의마지막현지지도 ( 광복지구상업중심 ) 에서부터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에이르기까지북한기업이자체적권한을가지고경영을해야한다는메시지가일관적으로전달되고있는것이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의목표로, 과업으로제시되면서기업이경영현장에서의자체적인 206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경영전략 기업전략을세우고이에근거하여정형단위, 모범적인기업활동과관련한사례들이점차적으로그윤곽을드러내고있다. 금컵체육인종합식료가공공장 ( 평양시대동강구역위치 ) 의경우에는품질을인정받은 금컵 상표제품을계약하기위하여전국각지상업기관에서유통담당직원이직접공장을찾아오는수준이되었다. 공장이이처럼발전하게된것에는우선 2015년의개건현대화공사가진행된이후로소위 식료공업의본보기공장, 표준공장 으로전변되었기때문이다. 개건이후공장은생산능력이 1.5배로확대되고 2015년 10종에 360여가지생산에서 2016년 11월현재 30종에 600여가지품목을생산하고있다. 27) 두번째는 2016년 8월부터매주일요일저녁시행하는 새제품품평회 를실시함으로써니즈 (needs) 에맞는신제품들을생산하고있는점을꼽을수있다. 새제품품평회에서는공장지배인과빵, 사탕, 음료, 껌, 고기가공등생산품별로조직된작업반반장들이모여착상한새제품개발안에대하여반장이보고하고, 개발안이높은평가를받으면시제품을만들게된다. 시제품이출시되면판매량을집계하는데공장내설치된대형현시판을보면서제품별, 작업반별판매순위도함께확인하여, 최종적으로신제품을생산할지에대하여결정하는과정을거친다. 여기서중요한평가요소는세계적추세를참고하되고객들과소통하고의견을얼마나반영하였는지여부가된다. 세번째는공장자체통합생산및경영정보관리체계를통하여수집되는판매실적에따라제품의생산을결정하는시스템을갖추고있다. 주민들의수요변동에민첩하고대처하고, 고객들이많이찾는제품들을생산하는것을경영전략으로채택한이공장에서는새제품이라고하더라도판매실적이저조하면과감하게생산을중단한다. 즉제품의수가늘어도주민들의호평을받는제품들을생산하기때문에판매또한꾸준하고착실하게늘어나게되는것이다. 김정숙평양방직공장의데트론인견천직장의경우에는 2016년도에데트론인견사생산과정에나오는폐사와각지방직공장의인견폐사를재생하는재생인견사생산공정을갖추었다. 공장에서는연간수천ton에달하는생산능력을갖추고 100% 폐사를이용할수있는기술까지마련함으로써, 가격과질면에서경쟁력을확보하였다. 재생천을활용한가격경쟁력을갖추고일반천과동일한품질을지향하는것을경영전략으로내세운공장에서는, 수입천에비해서경쟁력을확보한것에기초하여전국적으로주문이들어오는성과를거두고있다. 나아가서양복점에서기존에없던색의천색깔을요구하면그에맞춰염색공정을갖추고, 고객사의니즈 (needs) 와고객의기호에맞춰경영을진행하고있다. 28) 대형할인마트로이름난광복지구상업중심 29) 과경쟁사평양제1백화점 30) 의경영사례도공개되고있다. 광복지구상업중심의경우 인민이즐겨찾는상업공간 을경영전략으로내세우고, 각종조명설비와장식수단으로매장을아름답고화려하게보이면서도고객의편리를도모하는것에중점을둔진열방식을고수하고있다. 건물의 3층은고객들이외식할수있는 400 여가지요리를즐길수있는뷔페 (buffet) 식의식당을도입함으로써고객들을유치하는데성공하였다. 동시에상품입고로부터판매를전자화하고, 고객들을위한멤버십카드를발행 27) 나정원 (2018), 앞의글, pp.64-67 28) 나정원, 진화하는북한기업가들, 월간북한, 2018.07, pp.70-77 29) 광복지구상업중심의전신은 1991 년광복백화점으로, 2011 년 12 월슈퍼마켓식상업봉사단위로개건되었으나, 이전백화점의경영과봉사방식을계승하였다. 30) 1982 년개업한국내최대규모백화점으로평양시중구역에위치하고있다. 207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함으로써고객에게상품정보를제공하거나이용금액에따른특혜를주고있다. 31) 평양제1백화점의경우도매단가를거치지않고생산단위들과직거래를통해상품을확보하는방식으로가격경쟁력은물론, 인기상품과주목을끄는신상품은모두제1백화점에있다는평가를받고있다. 상품에대한철저한관리도진행하고있는데, 각매장의수요연구대장을통하여상품에관한손님의반응을기록하고이를각생산단위에전달하는체계를세워놓은것이다. 나아가서광복지구상업중심에서먼저도입한뷔페 (buffet) 식식당을도입함으로써경쟁력을강화하고있다. 정리하자면기업이자체의경영전략 기업전략을세우고기업활동의주동적 창벌적역할의핵심은생산설비의개건과제품개발, 그리고고객의니즈 (needs) 를파악한것에따른경쟁이라고할수있다. 물론위의사례들은모범단위, 정형단위로서알려진기업들이라는점에서모든기업들을대표할수는없을것이다. 다만생산설비나공간이현대화되지못하거나전력, 수도, 근접성문제등으로현대화에성공하지못한경우들은그나름의여건을통하여생존을이어가고있다. 생산이어려우면소속된직원의다른분야의경제활동을허용하고그에대한금액으로수익을취하거나유휴공간을임대하는수익구조가가능할수있다. 더이상계획에대한중앙의지원이어렵기때문에기업은자체의전략을세우고수익을창출한것에기반하여금액을통하여목표를달성하게된다. 내각의책임적역할확립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에서제시한전략목표의하나인내각의책임적역할은 2016년도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을발표한이후로, 2017년도부터지난해의사업정형과올해의과업을구체적으로제시하는흐름으로이어지고있다. 2016년 6월 29일진행된최고인민회의제13기제4차회의에서내각총리박봉주는그해발표된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 (2016년 ~2020년 ) 에서제시한내용을보고에서그대로제시하는반면, 2017년도부터의보고에서는신년사에서제시한내용보다구체적인내용을담게된다. 2017년 4월 12일진행된최고인민회의제13기제5차회의에서의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수행을위한내각의주체105(2016) 년사업정형과주체106(2017) 년과업에대하여 박봉주내각총리의보고는지난시기의사업성과들을우선적으로설명하고있다. 여기에는지난기간이뤄낸성과들로려명거리, 백두산영웅청년3호발전소, 홍건도간석지 1단계, 류경안과종합병원의완공을비롯한새형의뜨락또르및화물자동차, 여러성능높은농기계, 풍력발전기와산림기계등의개발에관한언급이우선된다. 이후로보다구체화된각부문별에따른과업과목표를제시하고이를위한문제점또한지적하고있다. 다만내각책임제, 내각중심제에따라경제지도사업에서내각의통일적지도를언급하면서도, 텍스트에서의추상적으로당의사상과정책에관한내용이등장하고있는것은한계로지적할수있는부분이다. 실질적내용대신당의사상관철, 당정책옹위등의추상적내용들 31) 나정원. 北기업들의경영학적접근 고객니즈에반응한다. Daily NK, 2018.04.19 208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은실제기관단위, 기업소들의혼선만부추길뿐이다. 예컨대지난해내각사업의결함에관하여 경제사업에서나타난결함을통하여우리는경제지도일군들이당의사상과정책을끝장을볼때까지관철하기위한결사관철의기풍이부족하고발전하는현실의요구에맞게경제조직자적자질과실력을갖추지않는다면언제가도나라의경제사업과인민생활을추켜세울수없다는심각한교훈을찾게됩니다. 라는식으로메시지가명확하지않다. 당의사상과정책이도대체무엇인지명확하지않을뿐더러, 경제조직자적자질과실력이라는추상적표현만난무하는것이다. 따라서내각이중심이되어통일적지도를하는것에있어서보다명확한표현이전달될필요가있어보인다. 다만내각이경제사업에서의책임적역할에있어서의큰흐름은 2018년도최고인민회의제13기 6차회의에서이어지고있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수행을위한내각의주체10 6(2017) 년사업정형과주체107(2018) 년과업에대하여 에서박봉주내각총리는내각은경제사령부의위치와임무에대하여다시금확인하면서, 통일적인작전과지휘를확고히보장하고치밀한경제조직사업과완강한실천을통하여전투목표를성과적으로수행할것을언급하는것이다. 나아가서 2.8직동청년탄광, 금성뜨락또르공장, 승리자동차련합기업소, 대안중기계련합기업소, 평양화장품공장, 류원신발공장등주요기업과금속, 화확, 경공업, 농업, 건설, 과학연구, 보건부문에세부적으로성과들을소개하고,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세번째해로서 2018년도부문별세부전략들을제시하는흐름을보여주고있다. 정리하자면내각은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이수립된 2016년 5월이후로 2년간지난해사업의평가, 사업의결함에관한지적, 부문별세부전략을상세히제시함으로써경제사령부로서의지위를확고히하고있다고볼수있다. 나아가서박봉주총리의경제부문시찰의내용또한점차구체성을갖춰가고있다. 2014년도 2월총리의함흥시중요기업소현지시찰보도에서는총리가협의회를진행했고생산실태를돌아보았다는내용들만단순서술된반면, 2018년도여러단위현지시찰보도에서는협동농장들에서농업과학기술보급실운영을짜고들것과탄소하나화학공업창설을위한대상건설장과관련된전투조직과지휘, 시공지도와관련된내용등구체적인내용들을제시하는것이다. 이러한흐름은향후내각이경제사업을틀어쥐고책임적 통일적역할을지속되어질것으로보인다. 부문별세부전략성과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에서제시한부문별과업은 2016년도첫해에는경제부문사이의균형발전에초점을맞추고있었다. 이후 2017년도에는전력과금속, 화학부문에집중할것에대하여, 그리고마지막에는자립성강화에초점을맞추고있다. 다만북측에서제시하고있는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의세부전략을살펴보면, 부문별전략에서는다소그강도에서차이가있어보인다. 예컨대화학부문의세부전략은구체성을띄고제시하고있다. 2016년도에는촉매의국산화실현, 새로운화학제품생산기지의건설, 석탄가스화에의한탄소하나화학공업의창설, 갈탄을이용하는석탄건류공정의완성, 회망초를출발원료로하는탄산소다공업완비등구체적인전략을제시하였으며, 2017년도에는 2.8비날론연합기업소를비롯한주요화학공장들의능력확장에관한제시를, 2018년도에는촉매 209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생산기지와린비료공장건설추진과회망초를출발원료로하는탄산소다생산공정의개건완비에관한내용들을제시한바있다. 철도운수부문의경우에도김종태전기기관차연합기업소의현대화, 교류전기기관차를비롯한전용화차및중량화차의개발생산, 철도망완비및철길의고속도화단계별추진, 철도시설과장비의현대화, 국산화된 자력 호계열무역짐배의건조및항시설의현대화가 2016년도에세부전략으로제시된것에이어, 2017년도혜산-삼지연넓은철길건설사업등구체적인사안들이등장하는것을살펴볼수있다. 다만경공업부문에있어서는원료와자재의국산화실현, 새제품개발과질제고를통한다양한경공업제품의생산, 자체원료를가지고지방경제를특색있게발전시키는부분등으로구체성이떨어지는내용들이제시되고있다. 화학부문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에서화학부문과관련하여세부전략들이구체적으로제시되어지고있으며, 이에관한성과들도나타나고있다. 우선가장첫자리로제시되는과제로촉매의국산화실현과관련된연구들이꾸준히진행되었으며, 그결과촉매의국산화에성공함과동시에촉매생산거점들또한생겨나고있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이수립된지 6개월만인 2016년 11월 21일자조선중앙통신보도에따르면, 김일성종합대학화학부촉매연구소에서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에세계적수준의폴리프로필렌중합용 4세대촉매생산기지를갖추어놓음으로써새품종의섬유제품들을국산화할수있는전망을열어놓은전망에대해소개하고있다. 32) 이외에도흥남비료연합기업소촉매연구소에서의질소비료생산과정에서필요한암모니아합성촉매의국산화및촉매의재활용을실현한성과동향또한포착되고있다. 33) 두번째로는회망초를출발원료로하는탄산소다공업의개건완비를들수있다. 설명에따르면회망초는유산나트륨, 유산칼슘의복염으로되어있는나트륨과칼슘의유산염광물로써, 결정모양은판모양, 기둥모양이다. 밝은누른색, 회색등을띠며유리광택을낸다. 부가적으로회망초는주로말라드는짠물호수에서화학적퇴적에서의하여망초, 석고, 돌소금등과함께생기며화산분출구역에서주로나오는데, 그부존량이수억톤에이르는것으로설명한다. 즉풍부하게부존되어있는회망초를활용한탄산소다생산공정을통하여출발원료로서탄산소다, 유안비료, 석고를생산하겠다는구상인것이다. 여기서얻어지는탄산소다는유리생산원료등으로인민경제많은부분에서쓰이며유안비료는농업부문에, 석고는시멘트생산에사용될수있다는점을강조한다. 34) 한편김일성종합대학무기화학강좌에서화학제품생산의주체화실현에이바지하기위한연 32) 4 세대폴리프로필렌중합촉매의개발은양말, 세타, 학생용가방을비롯한각종인견사제품들을국내산원료에의하여생산할수있는전망을열어놓고나라의화학공업을더높은단계에로발전시키는큰의의를가지는것으로평가하고있다. 자력자강의정신력으로안아온자랑찬성과 - 김일성종합대학연구사들과남흥의로동계급 -, 로동신문, 2016.12.19 33) 김성일, 촉매를국내원료로 흥남비료련합기업소에서 -. 로동신문, 2018.03.23. 34) 회망초를통하여탄산소다를얻게되는일련의과정을소개하기도한다. 회망초를가루내어물어넣으면용해도차이에의하여유산나트륨용액과석고로갈라는데, 이렇게얻은유산나트륨용액으로부터유산, 탄산소다등을생산한다. 이유산나트륨용액에암모니아를흡수시키고탄산가스를불어넣어조중조 ( 조수소탄산나트륨 ) 을얻어낸다음그것을열분해하면탄산소다가얻어진다. 회망초와그리용, 로동신문, 2018.01.14. 210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구사업에서의성과로암모니아를쓰지않으면서도회망초로부터탄산소다를생산할수있는전망을열어놓은것에관한내용도소개하고있다. 나아가서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에서는이미갖추고있는탄산소다생산공정을개건함으로써, 회망초직장과분쇄직장에서전동기와감속기들을새로보충완비하여생산능력을높이기위한사업을, 침출직장에서새로운망초분리공정과결정화공정확립을위한준비작업을, 유안직장에서냉동압축설비를원상복구하면서냉동공정과결정화공정, 관로망들에대한정비보수가진행되는중이다. 35) 세번째로는주요화학기업소의능력확장부분이다. 석탄가스화에의한대규모메탄올생산공정을확립한순천화학연합기업소의경우, 아크릴계칠감생산공정을갖추고수성칠감으로서부착세기와물견딜성등이좋은외장재와내장재를생산해내고있으며, 김일성경기장보수와여명거리건설에도사용된바있다. 아크릴계유성칠감의경우광택이나는특성으로각종금색등을도색하는데이용되는데, 새롭게제작한지하전동차와트랙터, 자동차, 농기게를비롯한기게설비들을도색하는데활용되고있다. 한편테라코템생산공정또한갖추고전국적으로연간산림조성계획을실현하는데있어서필요한테라코템을생산하고있다. 테라코템은토양속의수분보존률과물흡수률을종전보다높이고나무생존율을거의 100% 로보장할수있게하는화학물질이다. 36) 2018년 3월한편순천지구에인비료공장의건설동향또한관측되고있다. 소개에따르면인비료는농작물들이영양원소들을잘빨아들이게하고빛합성을촉진시키며비바람과병해충의피해또한막을수있다. 공장은기본생산구역과보조생산구역으로완공될예정인데, 방대한공사가완공되면전국적인인비료수요를충족할것으로기대하고있다. 마지막으로탄소하나화학공업의창설을들수있다. 2017년 10월국가과학원함흥분원에서는석탄가스화에의한탄소하나화학공업의창설의핵심으로되는메탄올합성과저급올레핀합성공정및촉매연구에서성과를달성하였다. 가압가스청정체계를확립하고메탄올합성반응기를등온식반응기로개조하기위한연구를완성함으로써메탄올생산공정의기술과제를원만히수행하였다고소개하고있다. 37) 이러한성과들에기반하여함흥분원주도로메탄올생산공정을확립하는등탄소하나화학공업을위한공사가현재진행중에있다. 철도운수부문철도운수부문의가장큰성과를꼽는다면김종태전기기관차연합기업소의현대화사업을들수있다. 2016년도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에서제시된철도운수부문의중요한과업으로제시됨으로써 김종태전기기관차련합기업소를백년대계로일떠세우라民 의구호가제시되고, 현대화동향들이관측되고있다. 철도성운수설계연구소에서의설계에기초하여현대화공사가진행되는한편, 기업소에서는조종실에서통제할수있는무인자동차를개발하여화력발전소에서석탄운송에필요한화차를생산하는성과가이룩되기도하였다. 38) 다만교류전기기관차와관련해서는 6축교류전기기관차 개발제작에서전진을이룩하였다는동향만파악되고 35) 탄산소다공정개건추진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에서 -, 로동신문, 2018.03.23. 36) 세계적수준의아크릴계칠감과테라코템, 로동신문, 2016.09.20. 37) 탄소하나화학공업창설에이바지할가치있는연구성과이룩, 로동신문, 2017.10.29. 38) 김종태전기기관차련합기업소에서자체의힘과기술로화력발전소들에필요한무인자동차를만들어내는성과, 조선중앙 TV 2016.10.18. 20 시보도 211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있다. 39) 화차개발과관련한성과또한관측되는데원산철도차연합기업소에서는새로운 2축3 대차식 100t 화차를개발하고, 이를생산하여보내주고있다. 40) 철길의중량화 고속도화에필요한연구성과들도공개하고있다. 세계에서철길의중량화 고속도화를실현하는것은세계적인추세로되고있으며, 이것을실현하기에는합금강정량레루가도입되어야한다고소개하는 부강조국건설의밑거름이되어 라는조선중앙TV 프로그램에서는, 레루강생산에필요한탄소, 망간, 이외크롬, 몰리브덴, 니오브, 바나듐과같은원소가국내에아주적거나구할수없으므로, 우리식의새로운레루강을만들어내기위한연구를진행하여, 우리나라의현실적조건에맞는레루강에기본합금계와원소들의함유량을과학적으로확증할수있었으며복잡한열처리공정을거치지않고레루강을생산할수있는공정을확립하는성과에대해소개하고있다. 41) 김책공업종합대학재료공학부고영철연구팀의이러한성과는 2017년도제32차과학기술축전에서전시되는흐름으로이어졌다. 철도의중량화 고속도화에서나서는사업에서또다른연구성과로는철길곡선구간의콩크리트침목화의실현을들수있다. 철도건설연구소에서는새로운고착장치와침목구조를설계제작함으로써콩크리트침목화를실현하였으며, 철다리의적재능력을새로운검측기구제작, 철길구조물들예방보수와보호관리사업에서도성과를거두었다고밝히고있다. 42) 철도망완비를비롯한사업에서는일정지역의철길건설성과를들수있다. 가장대표적구간이혜산-삼지연철길건설사업으로양강도도소재지혜산시로부터백두산이위치한삼지연군까지의구간을철도화하는사업으로 2015년 6월 4일착공식을진행한바있다. 이후공사를넓은철길공사, 표준화공사를거듭하여완공하였으나, 2018년 8월 19일보도된김정은의현지지도에서혜산-삼지연철길노반공사가잘되지못하여열차진동이심하고자기속도를내지못하게건설한것이지적되고, 다음해까지철길노반보수공사를질적으로다시하여표준철길로완성하는것을목표로하고있다. 고암과송전반도를연결하는고암-답촌철길또한철도망완비사업의성과중하나로볼수있다. 2018년 5월 25일보도된김정은의현지지도내용에따르면, 몇해전부터수산업발전에유리한고암지구와답촌지구, 천아포일대에대규모어촌지구조성을구상하고, 그선행공정으로고암-답촌구간철길이착공되었다. 해당구간에는석전만해상철길다리가건설됨으로써, 생산한수산물을원만히수송할수있는조건이마련되었으며답촌어촌지구의건설또한속도를낼수있게되었다. 해당구간철길의완공은설계와시공도질적으로잘하였고동해강원지역에또하나의귀중한창조물로평가되어졌다. 43) 한편으로 소백수 호철길검사차종합측정분석관리체계를확립함으로써철도의안전성을보장하는담보가마련되었다고소개하고있다. 이철길검사차는 100-200km/h 속도로달리면서실시간적으로기록 분석평가하여불량위치와위험개소들의검사자료들을철길대들에보내주어철길의강도를높이는데이바지하였다. 39) 정경철, 철도현대화에서큰걸음, 로동신문, 2016.12.27. 40) 신천일, 화차제작과수리에서성과확대 원산철도차량련합기업소에서 -, 로동신문, 2018.07.12 41) 종합편집 - 부강조국건설의밑거름이되어, 조선중앙 TV, 2018.12.19. 22:16 42) 박현, 가치있는연구성과들을더많이, 로동신문, 2018.04.23. 43) 경애하는최고령도자김정은동지께서완공된고암 - 답촌철길을현지에서료해하시였다, 조선중앙통신, 2018.05.25. 212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경공업부문경공업부문은원료와자재의국산화실현, 새제품개발과질제고를통한다양한경공업제품의생산등거시적인방향을제시할뿐구체적인내용을제시하지는않고있지만, 자체적인경영전략 기업전략에의하여발전을이룩한분야로부각되고있다. 우선대표적성과로김정숙평양방직공장에서고온고압염색기를새로제작한것에기초하여현대적인학생가방천생산기지를구축한것을들수있다. 2016년 5월 21일조선중앙TV를통해모습을드러낸고온고압염색기를비롯한가방천생산공정이구축됨에따라, 자체로가방을생산할수있는토대를마련할수있게되었다. 44) 이러한동향은조선중앙통신의보도에서도다시한번더확인되고있는데, 그에따르면자체의힘과기술로우리식의가방천생산공정을갖춘김정숙평양방직공장에서생산되는여러가지색깔로된가방천으로만든가방의질이좋고학생들의신체적특성에맞게구조도편리한것으로하여인민들의호평을받고있다는것이다. 45) 한덕수평양경공업종합대학에파견된기술자들이두께가두꺼운가방천의염색문제를풀어내고고온고압염색기를통한가방천생산공정확립은곧평양가방공장의건립 ( 준공 1월 10 일 ) 으로이어졌다. 김정숙평양방직공장에서자체로가방이생산될수는있었으나보다전문적인가방생산공장의필요성이제기됨에따라, 평양시통일거리에연건축면적 10,590여m2, 연간학생가방 24만 2천여개, 일반가방 6만여개의생산능력을갖춘평양가방공장이설립되었다. 제품견본실, 재단작업장, 재봉작업장, 포장작업장, 과학기술보급실, 통합조종실, 기술준비실, 도안창작실로구성된공장에서는생산설비의국산화비중을 95% 이상보장하는성과도이룩하였다. 그해국가품질감독위원회에서수여한 12월15일품질메달또한평양가방공장에서생산한가방제품으로귀결됨은물론이다. 46) 평양가방공장이가방생산의정형단위로서건립되고, 신의주가방공장또한개건되는흐름을보여주고있다. 신의주가방공장에서는 3층으로된공장건물에무동력보일러를설치하여건물의온도를보장하는방식을도입하고, 건물내부에과학기술보급실, 기술준비실, 제품견본실, 제품창고, 자재창고, 완성작업반, 재봉작업반, 채판날염작업반, 재단작업반, 탈의실둥울갖추게되었다. 또한낙원기계연합기업소에서파견온기술자들과협업하여채판날염건조기와채판날염탁을제작하고 9건의기술혁신안을생산에도입하는흐름을보여주고있다. 47) 이외에도라선시라진지구가방공장 (3월 6일준공 ) 은 2층으로된건물에제품견본실과재단작업장, 재봉작업장, 과학기술보급실등으로이뤄져있으며, 이외에도청진가방공장, 원산영예군인가방공장, 사리원가방공장, 강계가방공장, 혜산가방공장, 남포가방공장등이준공및개건되어가방을생산하고있다. 류원신발공장또한신발생산에있어서의본보기, 표준공장의하나로서국산화및신제품개발, 질제고에서앞장서고있는단위이다. 공장에서는기술준비실과체육신개발실에서새제품개발을진행하고있는데, 신발창과갑피, 접착제, 신골, 재료등신발요소별로전문지식과기술기능을갖춘기술자와기능공들이배치되어연구를진행함과동시에, 기술공정확립을 44) 현지방송 / 생산의동음소리세차게울린다 김정숙평양방직공장 -, 조선중앙 TV, 2016.05.21. 19:59 45) 우리식의가방천생산공정, 조선중앙통신, 2016.05.23. 46) 경애하는최고령도자김정은동지께서새로건설된평양가방공장을현지지도하시였다, 조선중앙 TV, 2017.01.05. 보도 47) 신의주가방공장현대적으로개건 평안북도에서 -, 로동신문, 2018.01.19. 213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위해컴퓨터에의한설계공정을갖추고있다. 이들은제품개발사업과동시에독점지표를설정하고, 독점지표의달성을위한목표를설정하고 150여건의신발도안및설계를완성한것에기초하여근 70여건을생산에도입하고있다. 48) 이러한노력은 2017년 10월레이자3차원발측정기의제작 도입하는성과로, 12월에는새염화비닐신발창생산기술에기반한제품의경량화실현함으로써, 한켤레당무게를 30% 줄이고, 특히여름용여자운동신발의무게는 80g 줄이면서질을높이는성과로나타나고있다. 류원신발공장을정형단위로원산구두공장, 흥남구두공장, 평양구두공장, 보통강신발공장, 강계신발공장, 원산신발공장등에서의제품개발동향도관측된다. 신의주화장품공장에서도자체브랜드 봄향기 를개발하고, 개성고려인삼을주성분으로하는다기능성천연화장품을개발한사례들을밝히고있다. 49) 공장에서는의약품생산및품질관리기준 (GMP: Good Manufacturing Practice for Drug) 에맞는생산공정을갖추고, 화장품공업발전추세에맞게원료배합공정의자동화 무인화를실현하고이와유기적으로맞물려있는화장품생산공정을새로갖추어놓았다. 그리고공장안에봄향기화장품전시장을마련하고, 평양을비롯한전국각지의 봄향기 화장품상업봉사망을구축하고있다. 특히피부분석실에서는봉사원들이여러기능성화장품들과치료기구들을가지고손님들을대상으로치료활동을벌이고있으며, 손님대상의나이별, 성별에따라피부분석을진행한다음피부에맞는화장품들을선택하도록도와주고있다. 광학미안실에서는머리피부측정기와탈모치료기등과여러기능성화장품들을이용하여머리칼과머리피부를분석하고탈모증치료와잠재적탈모증증상의사람들에예방치료까지진행한다. 미안실에서는여드름과검버섯등을없애는데효과가있는레이저치료기와피부속노폐물을제거하는데도움을주는음이온미용기등이기능성화장품들과배합하여치료에이용되어진다. 이과정에연구사들이기능성화장품들에대한손님의의견을종합하고치료효과역시분석종합하는계기가되고있다. 50) 평양화장품공장의 은하수 상표화장품역시저자극적이고기능적인화장품생산을목표로제품개발을진행중에있다. 우선공장에서는색소를비롯한첨가제들의국산화실현, 20여종시제품들의중간시험및임성검토를마친데이어, 새로개발한화장품들을유화물형, 액형, 겔형, 기름형등 10여가지로분류하였다. 51) 공장정문밖에위치한화장품전시장에서는다양한종류의화장품을전시하고, 찾아오는사람들에대한피부진단을비롯한다양한봉사들도진행하고있다. 2018년 5월현재 GMP와품질관리체계 (ISO 9001:2008) 인증을받은공장에서생산하는보습, 미백, 로화방지화장품들과각이한치료작용을하는치료용화장품들, 아름다움을주는분장용품, 각종세척용품들을비롯한 100여점의화장품을생산하고있다. 52) 최근에는평양시모란봉구역에금강산화장품전시장에화장방법보급실이생겨나여성들이피부의상태를정확히알고어울리는화장품을이용하도록도움을주고있다. 보급실에서는여러가지빛을이용하여진행하는얼굴피부측정결과피부의유분및수분상태, 색소침착등이정확히나타내며, 그에맞는화장품을알려주고요구에따르는레이저빛치료와치료를위 48) 새제품개발에힘을넣는류원신발공장, 조선중앙통신, 2016.01.20. 49) 다기능성천연화장품새로개발, 조선중앙통신, 2016.02.05. 50) 첨단에로도약하는우리의화장품공업 최근생산공정의현대화와새제품개발에서뚜렷한성과를거두고있는신의주화장품공장을돌아보고 -, 로동신문, 2016.11.27. 51) 기술개발사업에힘을넣는평양화장품공장, 조선중앙통신, 2017.03.17. 52) 평양봄철국제상품전람회에서호평받는 은하수 화장품들, 조선중앙통신, 2018.05.23 214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한미안봉사도한다. 특히인삼화장품, 비타민이많은화장품, 줄기세포기술이응용된화장품, 장미화장품등의화장품종류들이주를이루고있다. 53) 결론 지난 2016년 5월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수립은김정은집권기강조하고있는두가지 세계적추세 와 경영전략 에입각한전망적전략수립이라고볼수있을것이다. 먼저미국과중국, 한국, 일본등주요국가들은내외부환경분석에입각하여전망적으로경제전략과전략목표, 세부전략들을설정하고이를달성하기위한노력들을진행하고있다. 이러한세계적흐름과동시에북한의경제전문학술지 경제연구 를통한연구동향들은북한이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수립이오랜준비끝에나온산물임을보여주는것이라고할수있다. 나아가서전략을관철하는과정에서여러가지경제조직적대책들을능동적으로활용하는것과기업의주동적 창발적역할을강조하면서, 기업자체의경영전략 기업전략을세우는것을강조해왔던그동안의흐름과도일치하는것이다. 이러한흐름들은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의전략목표에서도드러나고있다. 경제강국건설의지향을비전 ( 사명 ) 으로하는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에서전략목표는 기업의주동적 창발적역할, 경제의전반적역할내각집중, 경제부문사이균형발전 3가지로정리할수있다. 우선기업차원에서의경영전략수립을통하여생존을위한경쟁을독려하는것은국내시장에서소비자가즐겨찾고, 나아가서세계적인경쟁력을가진기업, 브랜드, 상품을육성해내고자하는김정은정권의의지의표명이라고할수있다. 두번째로내각책임관리제와내각중심제또한세계적으로내각 ( 행정부 ) 이경제를담당하고책임지는추세를따라가는것임과동시에, 사상이나이념에갇힌경직된사고로부터벗어난경제정책을펼치고자하는것임을의미한다고볼수있다. 세번째로경제부문별균형발전은다양한산업분야에걸친전략목표를제시하기위한것으로, 전력과금속, 화학분야의집중과자립성강화로이어지는흐름을보이고있다. 위의전략목표들은자체적인경영전략을세우고생존을위한경쟁을진행하는한편, 생산설비의개건, 기술및제품의개발, 고객니즈 (needs) 를파악하는기업들의경쟁력강화로나타나는한편, 내각이중심이되어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의직전연도의성과를평가하고당해연도를사업을통일적으로지도하는시스템의구축으로이어지고있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수행의 3년차를맞이하는현시점에서세부전략에서제시한과업에대한성과가나타나는분야로는화학, 철도운수, 경공업부문을들수있다. 화학부문에서는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에서폴리프로필렌중합용 4세대촉매생산기지건립을비롯한촉매개발성과, 회망초를출발원료로하는탄산공업의개건완비, 순천화학연합기업소의아크릴계칠감및테라코템, 인비료생산설비의구축을성과로, 탄소하나화학공업의창설을위한공사가진행중인것으로나타나고있다. 경공업부문에서는김정숙평양방직공장의가방천생산공정의완공과평양가방공장에이어 53) 과학적인얼굴피부측정에의한화장품봉사, 조선중앙통신, 2018.07.06 215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전국적인가방공장의건립, 류원신발공장의제품개발및생산성과를비롯한원산구두공장등의혁신성과, 신의주화장품공장자체브랜드 봄향기 와평양화장품공장의 은하수 상표화장품의제품개발성과들이화장품제품의질을높인것으로보인다. 철도운수부문의성과로는김종태전기기관차연합기업소의현대화사업을비롯하여, 철도의중량화 고속도화를실현하기위한연구성과들, 철도망완비사업의일환으로혜산-삼지연구간과고암-답촌철길구간의완공을들수있다. 다만철도운수부문에서교류전기기관차의개발생산부문과철길의중량화 고속도화와관련된부분은보다연구가지속되어야하는부분이며, 혜산-삼지연구간철길도표준철길로다시건설해야하는상황에직면해있다. 한편 3대벨트구축을통한신성장동력확보및북방경제와연계하겠다는문재인정부의평화와번영의한반도구상은철도운수부문의세부전략은흐름을같이하는것으로써, 9월평양공동선언을통하여올해안에동 서해선철도및도로연결과현대화를위한착공식을가지기로한바있다. 이외에도문재인정부가한반도신경제지도구상및경제통일구현을목표로하고있는만큼,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에있어서보다세부적인접근이필요할것으로보인다. 216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참고문헌 체스터바너드이정혜역 경영자의역할경영자는어떻게조직의성패를결정짓는가 세기 북스 토머스매크로김형근전석헌역 혁신의예언자우리가경제학자슘페터에게오해하고있었던모 든것 글항아리 김미정 중국서비스산업전략과한중협력방안 비즈니스연구 권호 김숙영 전략적경제관리에서경제계산의중요성과기본방도 경제연구 호 나정원 김정은시대북한의경영학연구동향 북한연구학회보 권호 소유권개념을통해본사회주의국가의사유화연구북한기업의사유화함의를중심으로 고려대학교북한학과박사학위논문 송정남 기업체의전략적관리의필요성 경제연구 호 전략적경제관리방법의본질적특징 경제연구 호 서성철 국가경제발전계획의본질적내용과특징 경제연구 호 윤진아 경제사업에대한국가의전략적관리를실현하는데서나서는중요문제 호 이동우 아베정권의일본재흥전략과공간정책적시사점 국토정책 호 이신규 중국의일대일로전략과시사점 무역연구 권호 임상혁임병준 쿠쿠 전자구본학의경영이념과경영전략에관한연구 경영사학 권호 최성봉 전략적경제관리방법의필요성 경제연구 호 황인석 트럼프노믹스와한국관광산업 경제연구 호 나정원 진화하는북한기업가들 월간북한 기업들의경영학적접근 고객니즈에반응한다 217

북한여성의군복무와 자부심형성배경 이현희 ( 고려대학교 )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북한여성의군복무와자부심형성배경 * 이현희 ** 목차 Ⅰ. 서론 Ⅱ. 북한의여성무력운영 Ⅲ. 여성군인군복무 Ⅳ. 자부심형성배경 Ⅴ. 결론및시사점 [ 국문요약 ] 본연구는북한에서군복무를경험한여성들의군복무의지고양과여성군인들이군복무전반을통해어떤자세로복무하는가를고철하고전역이후의자부심형성배경은무엇일까? 하는의문에서출발하였다. 10~30% 수준으로추정되고있는북한의여성군인의군입대목적은무엇이며, 어떤정신자세로복무하고있는지그리고, 자부심이어떠한지에대한연구는미흡한실정이다. 본연구는북한여성군인의군복무전반에관한조작적정의와 분석틀 로연구를진행하였다. 이를위해재북여성군인출신탈북민을대상으로한심층면접방법을통해여성의군입대유인책과군복무정신자세및전역후형성되는자부심요인을도출하였다. 북한의여성들은여러가지이유로 군입대를선호하는경향이있우며당과인민을위해봉사한다는마음으로적극적인군생활을하고있다. 이와연관하여군복무간투철한정신자세와복무의욕으로전투원및전투지원으로서책임과역할에최선을다하고있는북한여성군인은복무이후어려운여건에도불구하고당과군으로부터선택된복무라는긍지와자부심을갖는특징을나타내고있다. 이러한연구결과는향후통일시대를준비하며북한여성군인의재사회화과정에서의적용가능한유의미한자료가될것이다. 주제어북한여성, 여성군인, 군사복무, 영예, 자부심, 조국보위, 전민무장화 * 이논문은이현희박사학위논문 (2018) 의일부를수정하고보안한것임. ** 고려대학교북한학박사, grace4090@gmail.com 221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Ⅰ. 서론 2. 1. 문제의제기북한의여성군인들은열악한환경에서도적극적인자세로군복무에임하여왔음을북한여성군인의군복무실태 1) 를통해알수있다. 입대후 7년간의복무기간중외출및외박, 휴가도거의없는것이북한여성군인들의현재실태이다. 긴병영생활과전역이후에도자부심고양과형성배경이무엇이었을까? 하는의문에서연구는출발한다. 또한, 지금까지북한군관련연구는군사정책, 전략및전술군구조와편성및장비등의분야위주로진행되어왔고북한군사분야중여성군인관련연구는기초자료조차도미흡했다. 또한, 군기문란, 성희롱등표면적으로조명되어진북한여성군인에대한이미지고착의한계를극복하는것은앞으로의연구과제이기도하다. 북한군에대한심도있는연구방편으로여성군인영역의기초실태부터의연구필요성은본연구의계기가되었다. 2. 연구목적및방향 본연구의목적은북한여성군인의군복무와자부심형성배경을재북여성군인으로복무했던탈북민대상으로심층면접을통해어떻게자부심이형성되는가를연구하는것이다. 이를위해문헌연구로북한에서여성군인을선발하여관리하는과정과신병훈련을거쳐자대배치후활용하는실태를고찰하였다. 북한은 1945년해방이후여성을제도적으로활용하기위해남녀평등법을제정하고여성에게남녀평등권 2) 을부여하였다. 이와연계하여여성간부의양성을병행하여건국요원과 6.25 전쟁에서여성군인간부로활용한북한은 1960년대이후부터는여성군인이다양한병종에서확대운영되고있다. 여성군인입대는남군에비해상대적으로소수인원이입대하고있는데우수한여성자원을군으로유입하기위해다양한대책도활용되고있다. 그러나, 군생활전반을적극적인복무자세와투철한책임감만으로군생활의동력이될수는없다. 현재우리정부당국은북한여성군인의비율을 10~30% 3) 수준으로추산하고있다. 1990년이후북한여성군인은전투부대에도편제되어북한군전투력운영의한축을담당하고있다. 전통적으로북한에서군의위상은높지만북한군에서는다양한방법으로여성을군에입대시키기위한노력을하고있으며, 여성들은군입대를입당등사회진출의수단과방편으로활용하기도한다. 북한여성의군복무와자부심형성배경은 그림Ⅰ-1 의작동모형으로설명된다. 북한여성이군에초모 ( 招募 ) 4) 관리되어사상검증및최종신체검사합격후 인민군복무조례 에의해 1) 이현희, 북한여성군인의군복무실태에관한연구 ( 고려대학교대학원박사학위논문, 2018). 2) 남녀평등권은여성이국가및사회생활의모든분야에서남자들과평등한자격을가질수있는법적권리를말한다. (1946 년 7 월 30 일남녀평등권에대한법령을제정 ) 한국법제연구원, 북한법령용어사전 I: 기초법및헌법편, 한국법제연구원정책연구개발사업연구과제최종보고서, 2002. 12, pp. 78-79. 3) 통일부, 2018 북한이해 ( 통일연구원, 2018), p.93. 4) 초모는현대조선말사전에는희망하는사람을군대에뽑는것이라고표현되어있다 현대조선말사전, 과학 222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신병훈련소에입대하게된다. 신병훈련이후자대가배치되면군인으로서관련법령과규정 5) 에의거내무생활과전투준비를하게된다. 내용 그림 Ⅰ-1 북한여성군인의자부심형성분석틀 자원초모 ( 군사복무법 ) -사상검증, 신체검사 -당과군이선택및선발 신병훈련 / 복무 ( 복무조례적용 ) -군무생활 10대준수사항 -10가지중대관리준칙 전투수행준비 ( 정치상학 ) ( 전투정치훈련 ) ( 국방체육 ) 내무생활 ( 군형법 ) ( 인민군복무조례 ) (5대군사규정및전투규정 ) 복무기간에어떻게복무했는가? 북한여성군인이복무후느끼는자부심? 출처 : 이현희, 앞의논문, P.18. 활용재작성 연구과정에서심층면담시원할한진행을위한관계형성에진정성을다했고, 반복질문및교차질문을통해답변의신뢰성을고려하였다. 심층면담은 10명으로연령은 30대부터 60대까지다양한연령층을대상으로이루어졌다. 면담내용은북한여군을폄하하거나자존심이손상되지않는수준으로심층면담을준비하였다. 소수의재북여성군인출신탈북민들섭외와면접과정에서개인신분의부담등으로인해면담진행이후자체를거부하는등현실적인부담은감내해야했다. 면담은대면면담을원칙으로하였지만면담의향은있으나연구자와의대면면담도거나장거리에거주하는면담자의경우에는부득이면담자동의하에녹취를진행하며전화면담을하였다. 면담내용은설문내용종합분석하였으며면담자가북한에서여성군인으로복무한 백과사전출판사 1981. 조선말대사전에는 ( 군대에지망하는사람을 ) 모집하여뽑는것이라고되어있다. 조선말대사전, 사회과학출판사. 2017. 5) 군형법 과 인민군복무조례, 북한군 5 대군사규정 ( 내무규정, 례식규정, 대렬규정, 규률규정, 위수및위병근무규정 ) 을적용하고있다. 국방부, 집중해부북한북한군 ( 한국군사학회. 2012), pp. 236-237. 군무생활 10 대준수사항은김일성의저작집에 인민군군인들이군무생할에서지켜야할 10 대준수사항에대하여 나는오늘당중앙위원회총비서로서그리고인민군최고사령관으로서인민군대의모든군인들이군무생활에서반드시지켜야할 10 대준수사항를제시하려고합니다. 등에내무규정, 규율규정등에대해잘나타나있다. 김일성저작집, 제 32 권 ( 평양 : 조선로동당출판사, 1986), pp. 517-518. 223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시기와군복무기간, 최종계급과적응유형별사례를첨부하였다. 면담자의답변내용은사실적활용을위해면담자가응답한내용과표현, 사투리까지가감없이반영하였다. 심층면담대상자는재북여성군인으로복무한경험자 10명의일반적인사항은 표Ⅰ-1 과같다. 면담자들은개인의신분노출을꺼리는경향이강해면접자개인정보비밀유지약속과함께정보노출우려가있는나이, 고향면담자개인별이름등은비공개설정하였고성은가명으로만표기 6) 하였다. 표Ⅰ-1 재북여성군인출신심층면담대상 구분 면담자 연령대 군종 / 최종계급 복무기간 ( 년 ) 비고 면담자 1 이OO 40대 항공 반항공 / 상위 8 면담자 2 송OO 60대 지상군 / 대위 8 면담자 3 박OO 40대 지상군 / 상위 7 면담자 4 명OO 50대 지상군 / 상사 8 면담자 5 서OO 50대 지상군 / 중좌 29 면담자 6 성OO 40대 지상군 / 상사 8 면담자 7 김OO 40대 지상군 / 상사 8 면담자 8 정OO 30대 지상군 / 중위 9 면담자 9 이OO 30대 지상군 / 중급병사 4 질병제대 면담자 10 김OO 30대 지상군 / 상급병사 5 출처 : 연구자작성심층면담대상자 Ⅱ. 북한의여성무력운영 3. 1. 군사정책변화와여성군인북한은 군사정책 을 군사로선 ( 이하군사정책 ) 이라한다. 1945년해방이후북한의군사정책은당시국내외적인상황과연계하여지속적으로변화해왔고본연구에서는 3세대에걸친지도자집권기별로개관하고자한다. 해방이후 1990년초반까지의김일성집권기군사정책에서여성군인운영은당시상황을반영하고있다. 김일성은집권초기부터여성을건국에활용하고 6.25전쟁에대비시켰다. 특히군간부양성기관인 평양학원 에여성간부양성을목적으로입교시키라고지시하였다. 우리는해방된우리녀성들의세기적숙망을하루빨리실현시켜주어야합니다. 그들이공부도마음대로할수있게하고남자들과같이사회활동에도적극참가할수있게하여야합니다. 학원에서는좋은녀성동무들을한기에 50명정도씩받아서교육하여야하겠습니다. 그리하여그들이앞 6) 예 : 면담자 1( 이 OO) 으로표시. 224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으로훌륭한녀성간부가되여나라의여러부문에서핵심적인역할을하도록하여야하겠습니다. 7) 1948년 2월 8일조선인민군창건열병식에서김일성은 조선인민군은로동자, 농민을비롯한근로인민의아들딸들로써조직 되었다는내용으로볼때초기북한군에도여성이포함되어창설된것으로추정할수있다. 평양학원에서양성된여성간부자원은북한건국과 6.25 전쟁에참여하였지만대부분남군의전투수행보조역할을수행하였다. 6.25전쟁전후복구시기에는전여성노동자화가추진되었다. 내각에서는내각결정 84호 < 인민경제각부문에녀성들을더욱인입시킬데대하여 > 를 1958년 7월 19일공포하면서북한의여성동원은전면적으로표면화되었다. 8) 6.25전쟁중기습남침이의도대로되지않자 1950년 12월 21일부터 23일전쟁과정의오류분석결과는향후북한의 4대군사노선의전민무장화를통해여성을정규및민간무력으로편성하는계기가되었다. 1962년 12월당중앙위원회제4기 5차전원회의에서는당시국내외정세를반영한국방에서의자위원칙에의거제시된 4대군사노선의강령은북한체제의향후군사력건설방향을제시하였고, 김일성은 1963년 10월 5일김일성군사대학제7기졸업식에서의연설에서전민무장화와간부화를연설하였다. 전체인민이무장하는것은우리의특징이며우리의무궁무진한군사력의원천입니다. 이것은로케트보다더낫습니다. 전체인민이무장하려면어떻게해야하겠습니까? 인민군대를간부화하여야합니다. 9) 6.25전쟁기간중전투보조역할에서 1962년에는군단급병원배치에이어서 1964년에는여성평양고사포여단이창설되었으며, 평양사령부 5개여단은남녀혼성부대로편성되었다. 1970년에는 여성의사회적지위향상과여군의근무분야확대 시키라는김일성의비밀교시에따라 1972년 12월북한헌법에의해의무병제 ( 전시18~ 45세 ) 로전환되었다. 당조직들은녀성간부들을대대적으로키우기위하여노력하는한편모든부문에서녀성간부들을대담하게등용하도록하여야하겠습니다. ( ) 어떤녀성간부들은오히려남자들보다일을더잘합니다. 10) 김정일은 1991년 12월에군최고사령관이되었고 1993년 4월에는국방위원장에추대되며사실상김일성생전에모든권한을장악하였다. 1992년 4월자신의영도력에많은인민들이자식을군에보내고싶어한다며여성의군입대를종용하였다. 7) 조선중앙년감 1973 ( 평양 : 조선중앙통신사, 1973), p. 159. 8) 내각결정 84 호는여성의노력비율을전체 30% 이상으로여성들의취업조건을보장하기위하여관련시설을신설및확장하고, 다양한시간임금제실시와대학과각종양성기관의여성학생비율을높이자는내용이다. 배진, 김정은시대의북한여성동원정책연구 : 조선녀성 을중심으로 ( 고려대학교대학원북한학과석사학위논문, 2017. 12), p. 46. 9) 김일성, 우리인민군대를혁명군대로만들며국방에서자위의방침을관철하자 : 김일성군사대학제 7 기졸업식에서한연설. 1963 년 10 월 5 일, 김일성저작집, 제 17 권 ( 평양 : 조선로동당출판사, 1982), p. 444. 10) 김일성, 녀성들을혁명화, 로동계급화할데대하여 : 조선민주녀성동맹제 4 차대회에서한연설, 1971 년 10 월 7 일, 김일성저작선집, 제 26 권, ( 평양 : 조선로동당출판사, 1974). 225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요즘내가최고사령관으로된데대하여기뻐하면서아들딸을인민군대에내보내겠다고하는부모들이많습니다. 11) 김정일시대에는 1990년대중반부터구소련과동구공산권몰락과계속되는자연재해극복과정인고난의행군기시기는국가전략으로강성대국을, 위기관리정책으로선군정치를표방하였다. 2005년핵무기보유선언을한김정일은여성은가정에서는자식을잘키워조국보위에내세우고유사시에는후방을책임지기위해군사를열심히배워야한다고강조하면서여성의군사적동원을독려하였다. 우리의녀성군인들은물론, 사회의녀성들도군사를성실히배워일단유사시에는인민군군인들과한전호에서싸우며조국의후방을녀성들의힘으로지켜낼만단의준비를갖추고있어야합니다. 12) 2011년 12월김정일사망으로권력을세습하며 2012년헌법에 핵보유국 임을명문화한김정은은 2016년 5월 7차당대회에서는 경제 핵무력병진노선 을 전략적노선 으로밝혔다. 2016년에는신년사에서 4대강군화노선과 13) 훈련의실전화, 과학화, 현대화를주창하였다. 인민군대에서는위대한장군님께서오중흡7련대칭호쟁취운동을발기하신스무돌이되는올해에전군을당의유일적령군체계가확고히선혁명적당군, 죽어도혁명신념버리지않는견결한당의군대로더욱강화발전시키며당이제시한 4대강군화로선관철에서전환을일으켜나가야합니다. 훈련의실전화, 과학화, 현대화를종자로틀어쥐고훈련열풍을세차게일으켜모든군인들을김일성-김정일군사전략전술과영웅적전투정신, 완벽한실전능력을소유한현대전의능수, 진짜배기싸움군들로준비시켜야합니다. 14) 김정은시대북한군의변화는 1980년대후반부터스커드와노동미사일을운영하던포병군단이 2012년전략로켓군이되었다가 2014년다양한전략무기를통합운영하는전략군으로개편되었다. 현재전략군에서여성군인운영은확인되지않지만, 과거포병군단운영시여성군인이운영되었던점을고려할때전략군내에도여성군인은운영되는것으로추정되고있다. 4. 2. 북한의여성군인운영북한에서는정규전력과예비전력을 무력 이라는용어로사용하고있고, 무력은정규무력과민간무력 15) 으로구분한다. 현재정규무력은북한군과내무군이며, 민간무력은 표Ⅱ-1 과같이편성되어역할수행을하고있다. 여성이무력을접하는시기는고급중학교입학과동시에의무적으로가입해야하는학생민간무력인붉은청년근위대이다. 여성들은해방이후인 1946 년부터자원형태또는의무복무형태로군입대를하였고, 6.25전쟁기간동안전투에서보 11) 김정일, 인민군대를강화하며군사를중시하는사회적기풍을세울데대하여 : 조선로동당중앙위원회책임일군들과한담화 1992 년 2 월 4 일, 김정일저작집, 제 13 권, ( 평양 : 조선로동당출판사, 2012), pp.416. 12) 김정일, 강성대국건설대전에서주체의조선녀성운동의자랑스러운전통을더욱빛내여나가자 : 조선로동당중앙위원회책임일군들과한담화, 조선녀성, 4 호, 2010 년 2 월 24 일 (2010), p. 6. 13) 김정은의 4 대강군화노선은정치사상강군화, 도덕강군화, 전법강군화, 다병종강군화이다. 14) 김정은신년사주체 107(2018) 년 1 월 1 일조선로동당출판사. 15) 북한의정규무력은국방부발행, 국방백서 를활용하였고, 민간무력관련자료는국방부발간, 집중해부북한 북한군 (2012) 책자참조작성. 226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조적인역할을수행하였다. 1960년이후국방에서의자위노선에 전민무장화 로일부여성이준군사부대에편성되어개인화기사격과군사훈련에참여하였다. 그이후국내외상황변화에따라북한군의수적인증가에맞춰 1990년이후급격한증가와전투분야까지역할이확대되었다. 표Ⅱ-1 북한병역제도와여군운영변화 (1994~2004) 구분 내용 비고 1993. 4 10년복무연한제도입 -만 10년을복무후제대가능함 1994 신체검사기준하향 -초모기준, 키148cm이상체중43kg, 시력 0.4이상 1996. 10 군복무조례추가변경 -사병들의복무연령남성 30세, 여성 26세여성군관나이 28세로연장 2003. 3 군사복무법제정및공포 -전민군사복무제( 남자 13 10년, 여자10 7년 ) -초모기준완화, 학력기준은중학교이상졸업자 2014. 여성징병제도입 -신장 142cm이상 ( 사상검증, 신체검사 ) -7년의무복무 출처 : 유관기관자료종합, 연구자작성 고난의행군시기를거치면서군입대기피현상이확산되었고 16) 병력초모자원부족으로매년 3월, 9월 2회의정기초모와부정기초모가확대되면서병력수급의안정과체계적으로병력을확보를위해 4월부터는한번입대후 10년을복무하는 10년복무연한제 를실시하였다. 1994년에는신체검사기준하향조정과 1996년에는군복무조례를변경하여사병들의복무연령을연장하기도하였다. 17) 고난의행군기를거치며북한은근본적인군기피에따른병력부족문제로인해 2003년 전민군사복무제 를시행한다. 1990년이전여성군인은자원입대형식이었고 1990년중반이후입대자원의부족으로의무징병제형태롤운영하면서군사복무법이제정된 2003년 3월 전인민군사복무제 로군사복무를법제화시켰다. 초모기준도고급중학교졸업자이상의학력자 17~25세미만으로조정하였다. 이시기에는군부대에대한보급도원활하지않아군자체적으로영농과가축사육, 어로행위등을통해부식을조달하였다. 표Ⅱ-2 와같이 1990년이후부터북한군수는급격히증가하였지만, 정보의제한으로여성군인의정확한현황을알수없다. 하지만여러연구자들은북한의여성군인수를 1996년기준으로최효선 18) 은북한해군을제외한여성군인을 2만 1천여명등추정하고있다. 16) 정영태 박형중, 북한병역제도변화와병역감축가능성, 통일정세분석, 2003-06, 통일연구원 (2003. 9), p. 5. 17) 이민룡, 김정일체제의북한군대해부, 서울 : 황금알, 2004. p. 280. 18) 최효선, 한국군여군의현황과여군리더쉽에관한연구 ( 연세대행정대학원석사학위논문, 1996), 227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표Ⅱ-2 북한여성군인운영규모 ( 추정 ) 구분 예상인원 비고 1996 년 2 만 1 천여명 ( 해군미확인 ) 최효선, 한국군여군의현황과여군리더십에관한연구 ( 연세대학교행정대학원석사학위논문, 1996) 1997 년 2, 3699 여명육군본부, 외국여군운영실태보고 ( 육군본부, 1997) 2005 년 55,331 여명 인력개발연구센터편, 세계국방인력편람 (2003 2004) ( 한국국방연구원, 2005) 2005 년대략 10 만여명임홍군, 흔들리는북한군 ( 신서 & 생명의숲, 2005) 2007 년대략 10 만여명김선호, 북한군여군운영실태 ( 자유 408 호, 2007) 2007 년 15 만여명정희상, 해안포진지지키는여성감나무중대 "( 시사 IN 제 3 호, 2007) 2010 년대략 6~8 만여명권양주, 북한군사의이해 ( 한국국방연구원 ) 2013 년 10 만여명 박미희, 여군인력확대와운영방향에관한연구 ( 한성대학교석사학위논문, 2013) 김지용, 한국여군의역할확대에관한연구 ( 국민대학교일반 2014년 18만여명대학원박사학위논문, 2016) 박미희, 여군인력확대와운영방향에관한연구 : 전투병과에서의여군인력확대방안을중심으로, 한성대학교국방과학대학원석사학위논문 (2013). p. 57. 백미경, 북한의녀성군인에관한연구, 북한대학원대학교석사학위논문 (2012). pp. 23~24 참조재정리. 연구자들에의하면북한군의증가와비례하여여성군인도증가한것으로보았으며, 한국국방연구원에서는전민군사복무법시행후인 2005년기준으로여성군인을 55,331여명으로추정하였다. 1990년중반이후어려워진경제상황과대량아사자발생으로인한남성입대자원의부족을여성입대자원으로대체한것으로알려지고있다. 2016년국방부국방백서에는북한군병력은 128만여명, 통일부는여성군인편성수준을 10~30% 로추정하였다. 또한여성군인을 10% 로가정한다면 12만 8천여명이며, 20% 일때에는 25만 6천여명, 30% 일때에는 38만 4천여명으로추정이가능하다. 19) 2000년대들어서면서여성군인운영변화로 1990년대중반부터시작된경제적궁핍의후유증으로입대기피현상과자원부족의대안으로 2003년부터시행한 전민군사복무제 를 군사복무법 과헌법에명시했음에도부족한입대자원해소를위해 2014년여성징병제도입을하였고, 초모기준을신장 142cm이상의사상적으로문제없고최종신체검사에합격하면 7년의무복무를시행하였다. 5. 3. 북한여성군인초모 입대초기 자원선발제 형태였지만 2003년채택된군사복무법에의거전민군사복무제 20) 발효로선발징병제의형태로운영하고있다. 징병제는국가가국민을대상으로국가방위를 19) 통일부, 앞의책, 2018, p.93. 20) 2003 년 3 월최고인민회의 10 기 6 차회의에서기존의지원제를군사복무법에따른전민군사복무제로변경하였다. 정영태, 북한군대의대내외정세인식형성과군대변화, KINU 연구총서, 07-09, 통일연구원 (2007). pp. 43~44. 228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목적으로병역의무를강제로부여하는제도이다. 현재북한의 전민군사복무제 21) 는 2003년 3월최고인민회의제10기 6차회의에서법령으로채택 22) 되었으며남성 10년, 여성 7년, 특수병종 13년군복무를규정하고있다. 전민군사복무제 방침과관련하여당중앙군사위원회명령에따라북한당국이취한조치는다음과같다. -모든남자들은초모나이가되면무조건군대에나가야한다. -고등중학교졸업생들이학교를졸업한후에대학이나양성기관, 노동현장에직접가는경우에도재학기간이나근무기간그리고그것이끝난다음에반드시군사복무를하도록한다. -감정제대, 처벌제대등만기제대자들은병을고치거나결함을고친다음반드시이미복무하던부대 ( 중대 ) 에다시가서만기를채워야한다. -미복무자들에대해서는여러가지제한조건을만들어군사복무를하지않고서는배겨내지못하도록강한대책을세운다. 23) 북한학생들은고급중학생이되는만 14세에는국가기관에의무적으로초모대상자등록이되며, 2번의신체검사를받는다. 신체검사에합격하고신원조회결과군복무제외대상직근무자와산업필수요원, 대학생, 성분불량자등에해당되지않으면만 17세 ~20세에한하여입대가가능하다 24) 1994년입대했던면담자는고급중학교졸업 25) 시기인대학예비시험을볼때연 1회봄에만초모를실시하고, 고등중학교졸업자와직장인을대상으로신체검사, 체력검사등을통해선발된다고했다. 면담자는초모당시키가 162cm정도였는데본인보다큰아이들이 10여명있었다고한다. 현재알려진경제난으로북한군인체격이외소하다는단편적인인식은개인별여건에따라차이가있다는사실도알수있다. 또한, 남녀군인선발비율은군지표 26) 에따라지표가 21) 정영태는 전민군사복무제 의시행과관련하여이는의무병제의강화를의미하는조치로평가했다. 정영태 박형중, 앞의책, pp. 4-5. / 정형태외 1, 앞의연구총서. p. 43. 징병제란? 국가가국민을대상으로강제로병역의무를부여하는제도이나, 현재북한에서는본인스스로입대하고싶어도사상적인검토와신체적합격수준에미달되면입대자체가불가능하다. 또한본인이원하지않아도군입대조건에부합되면개인의의지와는상관없이입대해야한다. 현재북한여성군인의징병제도는선발된인원에한해징병제라는법적인의무가부여되므로 선발징병제 형태라고볼수있다. 22) 북한은 2003 년 3 월최고인민회의제 10 기제 6 차회의에서 군사복무법 을제정하고전민군사복무제의시행에들어갔다. 군복무기간은남성의경우 13 년에서 10 년으로, 여성의경우 10 년에서 7 년으로각각 3 년씩단축했다. 또징집연령층을 17 세이상 25 세이하로조정했으며, 병역을마치지않은 28 세미만의남성은무조건징집하도록했다. 통일부북한정보포털, 전민군사복무제 ( 북한지식사전 ), 검색일 : 2018. 5. 8. 23) 정형태 박형중, 앞의연구총서. pp. 43-44. 24) 북한의군복무연한변천과정은 1958 년내각결정에의해지상군 3 년 6 월, 해 공군 4 년 ( 그러나실제군복무는 4~8 년 ) 이처음규정되었다. 이후 1993 년 4 월김정일지시에의해만 10 년간군사복무연한제가실시되었고 2003 년 3 월전민군사복무제가도입된것이다. 군입대전까지 2 번의신체검사를받아합격자는만 17 세 ~20 세에한하여입대가가능하며각지역의군사동원부를통해입대통지서를받은후에는 3 개월신병훈련을거쳐해당부대에배치되게된다. 북한에서군복무제외대상은신체검사불합격자, 복잡계층자녀, 월북자, 정치범가족, 특별한영재, 특수분야종사자및요원이다. 북한의신검기준은신장 150 cm, 체중 48 kg이었으나,1994 년 8 월이후신장 148 cm, 체중 43 kg로하향조정되었다. 정은찬, 북한군의정치사상교육과조직생활, 군사논단, 제 86 호, 2016 년여름 (2016), p. 172. 참조작성. 25) 면담자결과에따르면고등중학교졸업식은 7 월 30 일이고같은해 8 월에는초모대상자의신체검사가군 시 도로행해지며, 대학예비시험을보기시작하며, 9 월 1 일은새학기가시작된다고했다. 면담자 9( 이 OO) 인터뷰. 26) 지표 는조선말대사전에가리키는표식이나표적, 또는사회경제현상의량적측면을질적측면과밀접히결부시키면서수량적으로나타내는구체적수치라고되어있다 조선말대사전, 사회과학출판사. 2017. 229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적으면적게 뽑는다고한다. 이시기에여성들이군초모에합격이되었다는것은집안의출신성분과토대가훌륭하다는사회적입증의계기가되고. 탈락하는경우는검증과정에서까다로운입대조건에합격해야한다. 따라서개인의자부심은높고부모형제등집안에서는자랑스럽게여긴다고한다. 여성이군에입대하기위한가장큰조건은당의요구에부합하는인재라야된다는점이다. 특히 3대에걸친사상검증과신체검사에합격해야하므로북한여성의군복무는당과군이원하는자원만입대시키는선발의미로 선발징병제 라할수있다. Ⅲ. 여성군인군복무 6. 1. 여성군인신병훈련북한여성군인초모는군인복무조례에의해초모통지를받으면각도와직할시소재지군사동원부에집결하게된고, 최종적으로신체검사와체력평가에합격하면군종 ( 군별 ) 병과 ( 병종 ) 별로분류되어대열 ( 인사 ) 참모인솔로열차편으로각신병훈련소에입소하게된다. 신병교육기간은육군의경우약 2개월, 해군은전대신병교육대에서, 공군은비행기지별신병교육대에서 2~3개월간교육받은후배치된다. 27) 지상군은군종과병종별로분류되어각군단과사단에한개소씩있는신병훈련소에입소하여남성군인과동일하게각제대별로훈련소에서훈련하며, 특수부대는별도의신병교육대를운영한다. 군단본부및군단직할부대에소요되는자원은군단신병훈련소에서훈련시키고사단소요자원은사단신병교육중대에서실시하며신병교육기간은군종 ( 군별 ) 과병종 ( 병과 ), 임무와기능에따라훈련기간차이가있으며이러한기간은북한군으로자격을인정받아군인선서에필요한훈련소요를모두마치는기간이다. 신병훈련을지도감독하는군관과사관은해당부대에서선발하며이때부터군인으로서인민군군사규정에의거군사복무를하게되며군사복무기간중군인이적용받는관련규정과방침은북한군과똑같이적용된다 28). 여성군인신병교육과목은남성군인과동일하게사상무장을위한정치사상교육 29) 과전투기술능력을갖추기위한전문기초훈련을실시하고있다. 최근김정은시대역시외부문화유입에따른조치로정치사상교육을강조하고있다. 2015년 11월에는 제7차군사교육일꾼대회 가 3일부터 4일까지 2일간평양 4 25문화회관에서개최되었다. 김정은은당위원장자격으로군인들속에서 정치사상교육 을앞세울것을주문하였다. 교원의헌신적노력은용사의붉은피처럼고결하고천길바닷속진주보석보다귀중하 27) 김응수, 김정은시대북한의이해, 서울 : 도서출판아이, 2013. p. 163. 28) 국방부, 앞의책 (2012), pp. 236-237. 한상용, 북한군병영문화연구 : 선군시대를중심으로, 북한대학원대학교박사학위논문 (2013). p. 115. 29) 1975 년 사회주의교육에관한테제 에서제시된교육강령에서는 공산주의인간 육성이정치사상교육의목적으로제시되었다. 이후 2009 년헌법을개정하면서 공산주의 용어를전면삭제하고 공산주의인간 을 주체형의새인간 으로개칭하였다. 정은찬, 앞의논문, p. 163. 230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다 며 군사학교교원들은학생들을군사가로키우기전에혁명가로키워야한다는관점을갖고정치사상교육을확고히앞세워야한다. 30) 신병교육정치사상교육은총교육의 25% 에해당하는 45시간을할애하고있고, 이는병기교육 (18시간), 사격 (18시간) 등의일반학과목의 2.5배이며, 북한군이정치사상교육에집중하는이유는북한군을군사노선과정책으로무장시켜군건설과군사활동을성과적으로수행할수있는방법론이라고주장하고있으며이처럼정치사상교육을군건설과군사활동에앞세울것을강조하고있다. 31) 신병교육기간에는비상소집훈련과국방체육, 전술행군을한다. 훈련에는조직의단체책임을부여하는반복훈련을통해낙오자에대한증오심과적개심을갖게함으로써훈련성과를높이는노력을한다. 모든신병은수료전교육판정을받아우수자는동료보다상위계급을부여함으로써군생활시작부터경쟁심의동기유발을시킨다. 32) 이러한훈련과목은여성군인도남성군인과동일하게훈련시켜유사시전투원으로활용할수있도록하고있다. 여성고사총중대는중대장, 정치지도원, 소대장모두가여성군인으로이루어졌으며고사포요원은사단고사포대대소속 14.5mm 고사기관총중대 ( 약 75~80명 ) 에서집중적으로훈련받는다. 구분정치상학 33) 군사규정상학사격반화학상학병기학대열상학 표 Ⅲ-1 북한여성군인신병교과과정교육및훈련내용 혁명적수령관 혁명적전쟁관 김일성, 김정일혁명활동 김정숙동지를따라배우자 위수규정 내무규정 주간및야간 100미터목표사격 조준훈련을주로하며각종훈련판정시 6발사격 ( 주 야간 3발씩 ) 방독면의구조및이용방법 화학경보시행동요령 ( 방독면착용방법 ) 자동보총의구조및작용원리 ( 통신병, 위생병 ) 자동보총의분해결합 도수시대열동작 집총시대열동장 체육 고저평행봉, 평형대실기훈련 (6 단계로구분숙달 ) 적군학 국군화기사용방법및제원 ( 개인화기, 수류탄 ) 전술상학 비상동원시 : 배낭 ( 모포, 백포 ) 휴대및무기, 장구류휴대법 정기행군 : 2km, 장거리산악행군 : 40km 무장강행군 : 4km무장강행군 ( 무기, 장구류휴대 ) 수기훈련 : 수기에의한송수신법 출처 : 국방부, 앞의책 (2012), P.197. / 국군정보사령부, 북한군교육훈련, (1994), P. 149, 참조작성. 30) 연합뉴스, 김정은 정치사상교육앞세워야 군사일꾼대회서주문, (2015.11.5.), 검색일 : 2018. 5. 6. 31) 정치사상교육과관련하여혁명의군대를건설하기위해서 전군을수령의혁명사상으로일색화된사상강군으로건설하는것이총적목표이고방양이며기본로선 으로밝히고있다. 김인옥, 김정일장군선군정치론 ( 평양 : 평양출판사, 2002), p. 98. 재인용및한상용, 앞의논문, p. 105. 32) 국방부, 앞의책 (2012), P. 197. 참조작성. 33) 정치상학은북한군의정치사상교육중사상학습을의미하는용어이다. 북한은군대내에서시행되는정치사상교육에정치상학, 강연회, 조직생활총화를포함시키고있다. 정은찬, 앞의논문, p. 164. 정치리론수준을높이기위하여하는상학. 조선말대사전, ( 사회과학출판사. 2017) 231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신병교육이끝나면개별적으로또는 5-6명으로조를편성하여김일성, 김정일초상화나석고상앞또는지휘관앞에서군인선서를실시하고군인신분증발급을받고군인으로서권리와의무를수행하게된다. 34) 7. 2. 자대배치및복무일과표에따른내무생활은동계와하계는일과시간이다르며, 특이한점은월력상의요일을적용하지않고평일에휴일이되도록군단단위조정의작전요일을사용하며작전일 ( 평일 ), 경리일 ( 토요일 ), 공휴일로구분하여사용한다. 35) 면담자9( 이OO) 는일주일에한번씩경리일을운용하는데그날일과는주로정리정돈하는개인및부대정비하는날이라고말했다. 또한 생활총화 라고부대내병영에서여성군인의표준일과 36) 는내무생활과군사훈련외에도강도높은정치학습과사상교양 ( 정치상학 ) 시간편성이특징이다. 저녁식사후일과에대한분대단위총화와각종방침과규정을암송하여군생활에집중하고사상무장시키는목적하에시행된다. 표Ⅲ-2 여성군인평일일과 시간 과업내용 06:00~ 기상 ( 하계 05:30) 07:00~ 청소, 정돈, 조식 ( 군복, 외모검사 ) : 독보회 09:00~12:00 정치상학 ( 김정은교시, 당노선, 사상, 보안 ) 등 12:00~13:00 중식 13:00~13:30 무기소제 14:00~18:00 군기상학 ( 훈련및작업 ) 19:00~20:00 석식 21:00~21:40 군중문화활동 ( 계급교양 ) 21:40~22:00 취침 ( 무기, 인원점검후 ) 22:00~ 필요시해당자체력, 전투기량보완연습등 출처 : 국방부, 앞의책 (2012), p. 213. 전북한여성군인면담내용을참고로연구자재구성. 자대배치및군사복무간교육훈련은인민무력성교육훈련강령을기초로각부대에서부대훈련주기표에의거자대교육훈련계획을작성시행하고있다. 이교육훈련강령은김정은교시로최고사령관명령으로연대급이상부대까지하달되며야외 ( 해상 ) 종합훈련까지매 34) 군인선서문 : 1 정부와인민에게생명의마지막순간까지충실할것입니다. 2 사회주의제도와전취물을헌신적으로보위하고혁명투쟁에모든힘과생명을아낌없이바칠것입니다. 3 고상한전우애와일치단결의정신을백방으로발산할것입니다. 4 자기의무기와군대재산을수호하고비밀엄수및명령을절대적으로집행할것입니다. 5 선거에끝까지충실할것을당과혁명동지들앞에굳게맹세합니다. 출처 : 국방부, 앞의책 (2012), P. 199. 35) 육군본부, 북한군병영실상 ( 계룡시 : 육군본부, 1990), p. 38. 36) 인민군표준일과는 06:00 분기상, 20 분간아침운동, 40 분간침구정돈및부대주변청소, 이후아침식사, 식사후에는정치상학 ( 정치학습 ), 군사상학 ( 군사훈련 ) 시간을보내며점심식사후, 무기청소및조준연습 1 시간, 이후다시시작되는군사상학, 저녁식사, 분대별 10 대준수사항총화 및 TV 관람, 저녁점검과취침등으로이루어진다. 출처 : 이소연, 육체마저병들게하는북한군정신교육, 월간북한, 2016 년 2 월호, p. 98. 232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년반복교육되고있다. 그주요내용은작전및전투정치훈련에관한김정은교시, 연간교육훈련기간과월수과목별교육훈련진행방향등이다 37). 표 Ⅴ-2 북한군교육훈련주기 구분 12 1 2 3 4 5 6 7 8 9 10 11 제 1 기전투정치훈련 제 2 기 - 지상군 : 동계훈련 전투정치훈련 내용 -해군 : 동계피항재박 / 해상전술훈련 영농작업 -지상군 : 하계훈련 -해군 : 하계전술 훈련총화 월동준비 - 항공및반항공군훈련 : - 항공및반항공군 : 동계훈련 혹서기지상학습 출처 : 정보사령부, 북한군교육훈련 ( 서울 : 정보사령부, 2009), p. 69. / 한상용, 앞의논문, p. 100. 재인용. 북한군의교육훈련은매년 11월초최고사령관명령이하달되면제대별훈련계획을수립하여실시되며교육훈련의중점은정치상학과국방체육, 그리고부대내에서숙달해야하는개인과집단훈련을한다. 야외전투정치훈련은 1년에 2회동계와하기로구분훈련목표달성을위해 여섯가지중점과제 를설정하여훈련하고있다. 38) 8. 3. 사관및군관양성 여성의신병교육이후자대배치를받게되면일반적으로현재부대에서제대하게된다. 여성군인간부선발도해당부대공석을고려하여병사중우수자를선발교육시켜활용하고있고사관은일반사관양성과정과기술사관양성과정및중대사관장양성과정으로구분된다. 선발은고등중학교를졸업자중가장기본적인조건은분대장가운데당성이강하고근무성적이우수해야하고교육기간은군별로차이가있지만통상 4~8개월간실시한다. 사관장교육은전임사관장제대일자를고려하여해당중대의 5~6년차사관중능력이탁월한자를선발하여 6개월간사관학교사관장양성교육수료후복귀하여전임사관장과 6개월합동근무후보직된다. 특수분야사관인군의 수의등은신병교육대를수료한병사중에서선발하고실무부대에서직접양성하여활용한다. 39) 1990년대중후반에사관으로임무수행한면담자에의하면식량배급부족과병사들의허약과비위생노출로인해사람관리가가장힘들었다고했다. 중대사관장들이좋은대학가기위해서, 중대허약자가안나올수록사관장들에게점수를높여줘가지고좋은대학을보내줬거든요. 우리사관장들이어떡해요일거양득이잖아요. 중대허약자안생겨서좋고나도배불러서좋고전사들도배불러서좋고, 나중에나는좋은대학가서좋고, 전사들이알아서맨날도적질, 37) 신광민, 앞의논문, p. 130. 참조재정리. 38) 북한군훈련의 여섯가지중점과제 는 1 사상무장의강화로혁명전사육성, 2 간부화교육으로지휘능력배양, 3 정규전과유격전의배합전술발전, 4 체력단련및사격훈련강화, 5 야간 사악및동계훈련숙달, 6 속전속결위주의공세적대부대훈련완성이다. 국방부, 앞의책 (2012), p. 204. 39) 국군정보사령부, 앞의책, P. 38. 참조재구성. 233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근데문제는잡히면불면안돼요. 사관장이시켰다고불면안되는거예요. 이게제일힘들어요. 40) 군관으로선발되는것은최고의영예인데선발은소요발생시상급부대에서할당되면중대에서는적격자를선발하여당및청년동맹회의에서심의결과를가지고상급부대에추천한다. 여성군인일반군관선발은하전사로 3년이상복무한 3~5년근무한미혼여성, 혁명학원출신 ( 혁명열사유자녀 ) 2년이상복무한자로출신성분양호, 당성이강한자중에서중대장과정치지도원이추천을하면서류심사로선발되면양성교육으로군관학교에서 2년간교육받고소위로임관하여소대장부터시작한다. 정치군관요원은당 정고위관리중에서선발하여정치군관학교인최희숙군관학교를 2년간다닌후졸업과동시에소위로서중대정치지도원으로배치된다. 41) 직발군관 은 1970년대중반군관소요증가로야전부대에서우수한하전사를선발하여양성시키는방법과곧바로군관학교에입교하는대상자가있었다. 직발조로 70년대중반에직발조가왜생겼냐하면청년근위대애가많이생기다보니까갑자기그러니까 00사령부산하에서직발조가생긴거예요. 거기날간거야, 장교가많이필요하니까 3개월동안교육받고별달고장교로배치된게 00사령부에배치되니까 00에배치받은거예요. 42) 이렇게선발훈련된군관은전역시기까지단일부대에근무함으로써고도의전문화와전술조치능력숙달로전군의간부화가이루어질수있는기반을유지하고있는것으로알려져있다 43). Ⅳ. 자부심형성배경 북한에서의무교육인고급중학교를졸업하면개인이진로를선택할수있는기회는제한되는데부모가고위직에있는핵심계층의자녀라면진학을고려해볼수있고, 대부분은군에입대하여성실히복무하면서기회를잡는것을출세의한방법으로삼는다. 44) 특히여성의경우에는군에입대하여입당후조기에사관이나군관자원으로선발되어정상적으로군생활을마치려고한다. 북한에서는제대군인으로서당원이아니면직장에서간부급으로근무하는것자체가불가능해여성은군에입대하는것자체만으로도자부심은대단하다고한다. 40) 면담자 9( 이 OO) 은사관장으로군복무를했던사례로재직중농사와허약자문제가힘들고부담되었다고했다. 41) 김지용, 한국여군의역할확대에관한연구 : 여군간부활용을중심으로, 국민대학교일반대학원박사학위논문 (2016). p. 58. 42) 면담자 4( 명 OO) 인터뷰에의하면군관이많이필요하니까, 3 개월동안교육을이수한후별달고배치되었다고했다. 43) 정영태 박형중, 앞의연구총서, p. 46. 44) 북한에서고급중학교를졸업 (7 월 30 일경 ) 하면정책적으로군입대가제외되는특수분야종사자및정책수혜자외에는대부분의젊은이들은미래를보장받기위해군입대를하는것이일반적이다. 234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9. 1. 선발과정의연속여성군인은그자체가선발과정의연속으로볼수있으며, 선발된것만으로도자부심이형성된다고할수있다. 고급중학교입학후 15세가되면초모관리에들어가초모관리가되는것만으로도주위의부러움의대상이된다. 약 2년에걸쳐초모관리가되며이과정에서신체검사와사상검증을받으며최종입대자원으로선발되면한학급에서 2~3명이내로개인과집안의영광으로인식하게된다. 결국북한에서여성군인입대는사전지명에의한지원형식이기때문에관리된이후군입대를거부하는것도현실적으로불가능하다. 고등학교 5학년때 5과로가서선발되어수도평양에가서보니까명령서를발표하는,,, 어느연락소,, 훈련을받는데어느날왕별단사람들도오고,,, 북한은초모대상으로해서군에나가지만저희는군에나가겠다는말도안했는데정당에서와서,, 신체검사를통해서이력서를쓰고,, 하는과정에선발이되고한쪽으로는신원조회를시작하죠. 소환장이라는걸들고가면기차타고가면저희를맞아주는사람이있거든요. 45) 초모관리된자원의입대는모집장소로부모형제, 친구들이함께여관을잡고동행하며배웅해주며, 이과정에서도부모에게는대견스러운딸이며친구들에게는부러움의대상이된다. 북한군의신병훈련기간은군별로 8~12주이며훈련기간을마치고수료하면전사계급을부여받지만우수한성적으로수료하면한단계높은초급병사계급을받는다. 군생활중에정치군관의평가에따라진급과보직, 교육, 휴가등이좌우되며, 노동당입당여부가달려있다. 특히북한에서는군생활을마치고노동당입당여부가군생활을잘했는지의척도 46) 제대와동시대학입학추천을받거나, 선호하는직장에추천등의혜택으로군복무기간최선을다하는것은장래를위한발판이될수있다. 군복무간에는일정기간이도래하면진급하는것이아니라상급자가상위보직이나, 군관선발, 전출을가게되면심사를거쳐진급하게되며, 이과정에서도엄격한선발절차가적용된다. 같은날입대하여신병교육을마치고같은날자대배치를받아도처음또는복무중간에다른계급으로군생활을하게되며, 심지어후임으로자대배치받은자원이어느날상급자가될수도있는엄격한선발과정이적용된다. 진급과보직을위해생활평정을작성하며군복무간에도우수한자는병사시절전사에서명예군사칭호를받고 6개월만에초급병사가되었다가 1년후에는 3개월과정의사관학교수료후추천을받아하사진급을했다. 2년후에는군관추천을받고군관학교졸업을하고자대로재배치되었다고한다. 군관학교졸업후소위로임관하여자대에복귀하니까 전사때중대부대원중 1년먼저입대한부대원은여전히하사, 신병훈련동기들은초급병사여서그때어깨가으쓱했다 고하며자부심을느꼈다고했다. 처음에전사였어요. 누구나똑같은아무런줄도없는새빨간전사,, 그담에나처럼사격훈련을잘해가지고그널특이하게잘했다하면은명예의 군사칭호 를주거든요. 1년이되어야줄한줄을주는데,, 6개월만에줄한줄달고그리고또사격을잘해서 1년만 45) 면담자 3( 박 OO) 인터뷰. 46) 윤규식, 북한의보훈정책 : 북한군보훈정책을중심으로, 2011 년한국보훈논총제 10 권제 2 호 ( 통권 19 집 ), 한국보훈학회 (2011). pp. 23-24. 참조작성. 235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에표창휴가도갔었고진짜나같은케이스가드물어요. 47) 또한대부분의군관은하전사로복무하다가우수한능력을인정받아선발되는북한의군사제도 48) 의특수성으로인해사관이나군관자원으로선발만되어도부러움의대상이며, 군관에선발되기위해서는반드시신병훈련으로부터자대에전입되어병사의과정을거쳐야한다. 병사로 3 5년정도복무하는기간은그들의인생평생을좌우할만큼중요한시기이다. 사상적으로건전하고당에충성심이강하며근무평정이좋아군관요원으로선발되어군관학교에입교하기위한경쟁이치열하다. 또한군생활중간에군관요원으로선발되지못해도나름묵묵히군생활을하면만기제대를앞둔사관의경우에도자격요건이되면직발군관과정인 3개월단기교육과정을거쳐소위로임관하는제도를통해인민군의전사와사관들은군생활전기간긴장하고스스로노력하고있다. 군인선서할때는기분이이제는진짜군대구나. 진짜군복을입고자긍심이있죠. 근데군에나오는여자들은대체로본인이희망해서다나와요가고싶어서나온애들이지우리때는그랬어요. 49) 노동당입당은정치지도원의추천과 2명의보증이필요하고, 소수지만노동당입당뿐아니라제대군인은대학추천에도우대받는다. 북한사회에서의결혼은장기군복무로인해남자는제대이후만 30세여자는 27세 ~28세의연령에결혼을선호하는편이다. 북한에서전사로입대하여사관이나군관으로군생활을마치면군과연관되어마지막선발은대학진학과직장배치이다. 군복무를마친후통상 0.5% 정도수준의우수군인들을대학에입학시키고제대군인을당원과대학추천등을하고있다. 제대를하며대학추천을받지못해도사회에나가면여러면에서우선시된다. 50) 북한에서직장배치를 노력배치 라고하는데, 노력배치는일반군대안간사람들과여성들은행정기관에배치하지만제대군인들은당이직접나서며, 결국같은일을하지만등급이다르다는뜻으로제대군인이나당원들이그렇지못한사람들보다한단계높고우월하다는자부심을심어주는것이다. 51) 면담자3( 박OO) 에의하면군생활전반과진급에서도남군과비교시상대적인불이익은없었다고한다. 여성군인이진급이늦다거나불이익은없나요? 47) 면담자 5( 서 OO) 48) 북한군의군간부충원은대한민국과달리의무복무기간중인병사급의진급에의해충원된다. 군관의경우도하전사로복무중인자중에서우수한자를선발하여군관학교양성과정을통해임관한다. 예외적으로직발군관, 민간발탁군관, 예비군관등이운영되고있다 ; 인력개발연구센터편, 세계국방인력편람 (2003 2004) ( 한국국방연구원, 2005). pp. 424 425. 49) 면담자 10( 김 OO) 의인터뷰에의하면군인선서는군사동원부에서약식으로규율상한번선서하고신병훈련이끝나면정식으로군인선서를하는데신병훈련때선서이후에군복무지를이탈하면탈영이고이때에는책임감과충성심그리고부담, 자부심등이생긴다고한다. 50) 안찬일외, 10 명의북한출신엘리트들이보는 10 년후의북한, ( 고양 : 도서출판인간사랑, 2006), p. 384. 참조작성. 51) 정추영, 탈북여성의군사적경험을통해본북한의군사화와성별위계에관한연구, 이화여자대학교대학원석사학위논문 (2002). pp. 75-71. 참조작성. 236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똑같아요. 똑같아,, 왜그냐하면내가별을달았다. 내가뭐포병무관학교나와서별을달았든직발조 3개월동안별을달았든상관없어요. 그런데예를들어서소대장이편제가소위야그럼소위달고있다가내가중대장이되잖아요. 그럼중대장이상위내지대위에요. 그러면 2 년에한번씩별을달아줘요. 52) 10. 2. 군복무는영예라는인식 1948년 2월 9일조선인민군창건식연설에서김일성은 오늘우리인민군대는바로이러한애국적혁명가들을골간으로하여장구한항일무장투쟁에서그들이쌓은풍부한경험을토대로하여창건되는것 이라고했고, 북한군의성격을 항일혁명군의계승 으로정의했다. 즉일제의강점은강한군대가없었기때문이며, 항일혁명군이무력투쟁을통해일제를몰아내고 8.15해방을맞았다고선전해오고있다. 또한 6.25전쟁역시정전협정이후부터제국주의자들과의전쟁에서승리한것으로선전하고있다. 북한주민의입장에서는일제를몰아내고 6.25전쟁에서세계최강미국군과싸웠고, 일본과미국두제국주의군대와싸워이긴북한군에근무한다는것자체가여성군인들에게는큰영예이다. 조선인민혁명군의창건은우리인민의반일민족해방투쟁과공산주의운동발전에서획기적인전환의계기를열어놓은력사적인사변이였습니다. 53) 소련의지원으로창건된북한군은일제강점기에는일본제국주의를물리친항일혁명군의전통을계승하였다고선전하고있다. 또한 6.25전쟁에서는미제국주의의침략을분쇄한영웅적인투쟁의역사를가르치고있고, 1948년 2월 8일북한군을창건했음에도항일혁명군창건일이라는 4월 25일을인민군창건일로적용하고있다. 6.25전쟁기간미군항공기공습의공포를기억하는북한주민들은유년시절부터 미제는철천지원쑤 라는교육을받았고, 미군의공습으로인한완전폐허를오늘의모습으로다시일으켜세운것도북한군이다. 또한 1990년대중후반의고난의행군기에도북한군이국가건설사업과농업현장을선도하였다. 특히, 김정일지시로북한군에의한 중요대상건설 사업을성공적으로수행한것을치하하며국가적으로군따라하기 54) 열풍이불기도했었다. 이렇듯북한에서북한군의위상은일본제국주의자를항일무장투쟁으로몰아낸조선해방군이며, 6.25전쟁에서는미제국주의자들을물리친조국의조국수호군, 6.25전쟁전후복구기에는폐허를일으킨조국건설역군이었고, 1960~1980년에는국토방위와산업건설의역군이었다. 또한선군정치시기대내외적으로어려운시기를극복하는과정에서는산업건설과농업부문에도앞장섰다고인식하고있다는점이다. 따라서북한에서여성이항일전통을계승하고제국주의를물리쳤으며건설및산업역군으로자력갱생에앞장선북한군복무했다는것만으로도대단한자부심이지만면담자들대부분군관과사관으로정상적인군복무를마쳤으므로그자부심은더욱크다고할수있다. 1990년대제대시기에는관련분야의주특기기량이높으면 3개월단기교육후임관시켜활 52) 면담자 1( 이 OO) 인터뷰. 53) 김일성, 주체의혁명위업을무력으로튼튼히담보하자 : 조선인민군창건 50 돐경축연회에서한연설, 1982 년 4 월 25 일, 김일성저작집 제 37 권. ( 평양 : 조선로동당출판사, 1992). 54) 수령결사옹위정신, 육탄정신, 자폭정신 의 혁명적군인정신 따라배우기운동이일어나기도했다. 237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용하는직발군관을할것을종용받기도했다. 제대명령하기전에사단에서그러더라고요. 직발군관하면어떻겠냐고, 내가능력이나기술적으로나높으니까, 내가제대하면나처럼원만하게할사람이없어가지고걱정이라면서직발로군관으로떨어지면어떻겠냐고하더라고요, 저희때는가장어려운사람들이군관을했어요. 55) 면담자6( 명OO) 는아버지와남매들까지전형적인군인가정에서성장하여군대실태를잘알고있었다. 사례자의아버지는조국이통일될때까지군복입고있겠다고했는데전역하면서의안타까움을편지로표현했고, 체제의특성이가능하게한면담자의입대였고, 대학을졸업하고도대를이어북한군에복무한전형적인온가족이군복무를경험한 총대가정 이다. 저는남매들이군인이고아버지도군관였댔어요. 형제들이조선인민군정치지도원대회참가해가지고배려를받으니까남매가다군관이었죠. 저희아버지께서조국이통일될때까지군복입고있겠다고했던분이셨는데, 이제전역하게되니까통일못보고군복벗게되니까! 근데이제아이들이잘되니까장군님께감사하다고편지를쓰다가마지막에맹세를쓴거에요. 아이들다장군님결사옹위하는총대를만들겠다. 그래서제가이제대학을졸업하고군에가는거죠. 56) 북한군에서병사나사관으로제대를하게되면군인제대식을거행한다. 군인제대식은성스러운군사복무의나날을자랑스럽게총화하고새로운혁명소에가서대를이어영원히충성과효성을다하려는결의가생기도록높은정치적분위기속에서진행하도록규정되어있다. 행사는연대급이상제대에서진행하며개별군인들에게일일이 군사복무증서 를수여하고군기앞에서 1명씩거수경례를하고 위대한수령님과경애하는최고사령관김정은동지께충성을다하겠습니다 라고결의하며, 연대분열을참관하게하는예우를보장한다. 제대식과관련하여군관들은제대식이없으며군사복무증서만수여하는것으로규정되어있다. 57) 하전사의제대식을통해장기간군복무한계급이낮은군인들을위로하고격려하는차원에서시행되고있다. 북한은 1988년 9월개정된현행사회주의헌법의제76조에서보훈대상자의명칭을 혁명투사, 혁명열사가족, 애국열사가족, 인민군후방가족, 영예군인으로국가와사회의특별한보호를받는자 58) 로분류하여명시하고있다. 김정일은담화를통해보훈의중요성과혁명선배를존경하며예의를다라고강조 했다. 혁명선배를존대하는도덕기풍을세우며사람들속에서고상한도덕의리적관계를발전시키는것은사회주의위업의계승완성을위하여나서는중요한과업입니다. 혁명이전진하고사회가발전하 55) 면담자 4( 명 OO) 은김일성시기입당한후에는군관추천을거절하고제대해서사회복귀로자리잡는것이보통의경우이고, 어려운가정자녀들은하전사복무후군관으로 26~27 세까지생활하면서결혼을준비하는것이 1992 년즈음의군대내현상이었다고함 56) 면담자 4( 명 OO) 인터뷰. 북한군 7 년복무후제대를했다. 57) 한상용, 앞의논문, p. 93. 58) 북한에서보훈대상자의위계는김일성빨치산가족 빨치산미망인가족 한국전쟁피살자 ( 민간인 ) 가족 한국전쟁전사자 ( 군인 ) 가족 한국전쟁영예군인가족 노력영웅등국가공로자가족순이다. 유영옥, 북한보훈정책상징성의이해, 한국보훈논총, 제 3 권제 2 호, 통권 5 집 (2004), p. 87. 238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는데따라도덕도끊임없이발전되고완성되여야합니다. 59) 면담자8( 정OO) 에의하면본인이존경하고좋아했던후방총국의여성소좌가있었는데남편이군복무중사망하자부인이어느날군복을입고군사칭호를받고소좌로군수물품쪽에서근무했다고한다. 남자가돌아가시면군복을입는경우가꽤있거든요여자가소좌중좌등일경우는남편이사망했을경우가많은건가요? 죽어야지되는거는아니에요. 총정치국이나총참모부쪽에여성장교들이있어요. 많지않아요. 회계쪽에, 그쪽에여성들장교등이좌급중좌상좌이렇게후방부분경제부분예술부분요. 매해마다군관가족화술소품대회평양에올라오는데이런분야에종사하는여성들이있어요 60) 또한면담자6( 성OO) 는공군에서군관복무중이던남편이사망하자본인 ( 미망인 ) 희망시군관사에계속거주가능하게배려했다고하고자녀의진학과미래도책임져주지만미망인에대한지나친관심으로관사에서나왔다고했다. 11. 3. 특유의이악함과승부욕북한에서여성군인으로복무한심층면담자의구술중북한여성들의특징을 이악하다 61) 라는말로자주표현한다. 김일성과김정일에의해서도북한여성의이악함이여러번거론되었지만면담자들은북한여성특유의이악함으로인해여성군인부대는항상최고수준의전투력을유지했다고했다. 병영생활에서할일에매순간최선을다하는것도있지만상급부대판정검열에합격해야하고, 특히남자군인들과의경쟁에서지기싫어하는중요한요인은이악함에서기인한다. 이는유년기와성장과정에서부터열악한환경을극복하는어머니를닮아이악하게살아가야하는방법을배우게되는것이다. 북한의 6.25전쟁관련수기가실린 조선여성 에의하면북한여군은 6.25전쟁간전투지원분야와전투근무지원분야의다양한병종에서근무한것으로알려져있다. 특히, 여성군인으로서폭격기조종사와전차병등실제전투요원으로도참전것으로알려지고있다. 6.25 전쟁당시공군조종사로참전한북한의공화국영웅태선희를회고하는김일성의발언에도 이악 이라는용어가나온다. 수령님께서는전쟁전에한나어린처녀가남자들도힘들어하는비행기를타겠다고하기에비행사를시켰는데그가어제공화국영웅이되었다고, 우리나라녀성들은슬기롭고강의하며이악하 59) 김정일, 혁명선배를존대하는것은혁명가들의숭고한도덕의리이다 : 조선로동당중앙위원회기관지 로동신문 에발표한담화, 1995 년 12 월 25 일, 김정일선집 제 14 권 ( 평양 : 조선로동당출판사, 2000), pp. 110-133. 60) 면담자 8( 정 OO) 인터뷰. 61) 여자들은이악하잖아요. 남자들에게지기싫으니까, 면담자 5( 박 OO) 인터뷰에의하면, 북한에서사용하는이악함이란? 1 달라붙는기세가굳세고끈덕지다 와 2 이익을위하여지나치게아득바득하는태도가있다 라는뜻이있다. 239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기때문에마음만먹으면땅크만이아니라그어떤전투기술기재도다룰수잇다고확신에넘쳐말씀하시였다. 62) 남자군인도비슷한상황이지만고급중학교를졸업하면서입대하게되는여성들은젊은시절을함께보내는동료들과의결속된전우애와단결력이매우높다. 그리고자대배치이전에실시하는 2~3개월의신병훈련때단체훈련으로강화된서로에대한배려심이매우높고전투력에영향을미치게된다. 특히여성군인들의입대이전부터목표를가지고입대하여타인에게절대지기싫어하는자존심과이겼을때의자부심이군생활을더잘하게한요인으로작용하였다고했다. 우리가여자들이라고남자들이깔보는거같은데절대로못그러게여자들도남자들못지않게잘한다는이미지로살았거든요. 63) 면담자7( 김OO) 은 1993년까지는군에서여성비율이 20% 내지는 25% 정도였는데고난의행군기에접어들며여성보병연대를시범적으로운영하였다고한다. 북한은남군연대를해체하며타부대로전출시키고여성들로연대인원을채우기위해전국에있는부대들에각연도입대생을차출해서여성으로만연대를유지하였고, 연대장과연대정치위원등도여성이지휘했다. 그러나 6~8개월이후연대장과정치위원등은남성으로교체했으며연대내의화학소대, 공병등은남군소대를유지했다. 또한, 여성연대의성실한운용결과여성을군에편입시키기위한입대신체조건의완화등을실시하며여성군인의편입이늘어나게되는계기도되었고현재의무제로전환하게되었다고한다. 그럼연대가여성으로되어있으면여성이책임감도있고이런걸느끼면서여성을많이모은건가요? 그러면서이제해마다여성군인들엄청많이나왔거든요, 그전에는여성군인들군에나가려면 155이상키가무조건넘어야됐고뭐이제기준이있었어요그후부터많은인원을보충하려다보니까그런거상관없이좀그때까지의무제는아니었다가김정일이이제그 2002년도인가 2003년도인가,, 그때여자도의무제를내놓았거든요 64) 정규무력에선발되지못한적대계층의자녀들은속도전청년돌격대에가는방법이있지만거절되면당지정의직장에서평생을일해야한다. 더구나군에입대하여군인선서를한이후과실은평생을따라다니기에군생활전기간최선을다해복무하는것이다. 여성군인은하전사및위관급으로사회복귀시남군과의차별을받고있다. 그러나, 입당을한여성장교는당의배려가있는경우원하는직장이나좋은지역에배치되기도하기때문에군생활전반최선을다해입당과군관에선발되려고이악함이발휘된다. 여성군관들같은경우는당의배려가조금있어요. 27 살에제대되기전에휴가를줘요. 휴가 62) 용감한녀성땅크승조원들로키워주시여, 조선녀성, 제 10 호, 2015 년, p.10. 63) 면담자 9( 이 OO) 인터뷰. 64) 면담자 7( 김 OO) 인터뷰. 240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를주면 15일간가서배우자를선택해야해요. 그러면배우자의거처에나를배치를해줘요. 결혼식안했어도요. 그런데 15일간연애가되나요? 그러니까군생활하고군관이돼서군생활하고제대될때는무조건평양시로가려고해요. 가서찌꾸배기고병신이고다얻으려고해평양시에떨어지기위해서,, 그리고여자군관같은경우에는아무데나배치하지않고유통부분이나상업부분이나이런데배치해줘요. 65) Ⅴ. 결론및시사점 북한에서여성이군인이된다는것은당군체제로부터의선택과개인적인영예의대상이된다. 의무복무제에속한여성군인에대한객관적인인식과 3세대세습을통한북한체제의구조적모순그리고, 체제에서삶을위한여성들의행동은연구의중요한관점이다. 북한여성들은군복무이전유년기로부터청소년기를거치며학습되어진책임감과체제순응의성실함으로군복무와전역이후에도높은충성심과자부심을유지하는동력으로나타나고있다. 탈북민중재북여성군인대상으로한심층면담에서의공통적인특징을세가지로정리하면다음과같다. 첫째, 북한군에서복무한사실자체를개인적으로영광스러운기간이었다고하고있다. 17 세에입대 24~25세까지를영광스러운기간이었다고말하는그들은 7년동안을당과군을위해봉사했다고생각하고있다. 둘째, 군생활은자랑스럽다고한다. 경쟁속에서초모관리과정과입대를통해군복무를잘마친것자체에대한자부심이강하다. 특히군생활회고할때는전사의모습과결기를보였다. 셋째, 병영기간동안후회없는생활을했다고한다. 여성군인들은큰꿈을안고입대했지만소수의인원만고급군관이되고대다수인원이사관과초급군관으로군복무를마치고일부는병사계급으로제대하지만일관된모습으로군복무와그결과에대해후회하지않고공민으로서의무를했다고생각하고있다. 여성군인으로복무하며본인들이느끼는자부심을세가지로정리하면다음과같다. 첫째, 북한여성군인으로군복무는영예다 라는인식이다. 북한군은항일혁명군의전통을계승하여일제축출과미제를물리친자랑스러운군대라고지칭된다. 이후어려운시기에북한군은항상최선봉에서당과인민을위해봉사하는군이라는인식으로군입대는개인적으로가장큰영예라는인식이개인적자부심으로군생활전반에최선을다하는모습으로나타나고, 제대이후에도그러한인식은지속되고있다. 둘째, 당과군에감사하는복무자세로유아기부터당과수령에대한감사함을표현하도록훈련되었다. 따라서초모과정부터입대하여입당과간부요원선발, 그리고제대후대학추천과, 직장배치등당과군에서는개인의활용이지만개인적으로는당과군으로부터선택받은것에대한감사의마음이또다른자부심으로전이되고있다. 마지막으로, 적극적인군복무자세이다. 북한군에서복무하는전기간신분상승의기회를갖고있다. 처음초모관리자원에서초모되면신분상승이며, 신병교육기간우수한성적을받으면주위동료보다한계급높게신분상승을경험한다. 자대배치이후성실한자세로복무해야만입당추천이되며, 이후군관으로추천되는기회가올수있다. 군관추천이되지않은인원은사관으로의전환이가능하며군생활을마치고도대학추천과좋은 65) 면담자1( 이OO) 인터뷰. 241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직장배치로신분상승의기회가있다. 이러한면에서나타나는모습은북한여성특유의이악함이다. 북한여성의이악함은어릴때부터삶을위해이악해져야하는어머니를따라학습되어지고, 자신도모르는사이에이악해지고, 군생활에서항상최선을다하는자세로복무하여전투력부문도최상을유지하는계기가되었다고했다. 그러나, 면담대상자들이북한여성군인전체를대변하지는못한다는한계는있다. 또한, 지금까지북한여성의군복무관련자료는병영의꽃이라는의미와성희롱, 인권유린, 군기문란등흥미유발요소로조명되어진부분에서탈피한다양한주제접근의기초연구가필요하고, 여성군인에대한다양한관점은필요한과제이다. 전투원으로책임감있는역할수행을했던군인이라는점을인식하며북한여성군인출신탈북민관리와활용도고려되어야야한다. 군생활을통해체득되어진의지와자부심을소유한이들의체제재교육을통해보다성공적인적응과경제적인자립을위한전문적인교육시스템이꼭필요한시점이다. 그리고, 남북대화가계속진행되고있는현시점에서통일이후를고려해야하며, 여성군인출신의사회통합교육과재사회화교육을통해통일한국의인재로활용할수있는후속연구가진행되어야하겠다. 242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참고문헌 12. 국문단행본 13. 국군정보사령부, 북한군교육훈련, 1994. 14. 국군정보사령부, 북한군교육훈련, 서울 : 정보사령부, 2009. 15. 국방부, 집중해부북한북한군, 한국군사학회. 2012. 16. 김응수, 김정은시대북한의이해, 서울 : 도서출판아이, 2013. 17. 김인옥, 김정일장군선군정치론, 평양 : 평양출판사, 2002. 18. 북한연구소,, 월간북한, 2016년 2월호. 19. 육군본부, 북한군병영실상, 계룡시 : 육군본부, 1990. 안찬일외, 10명의북한출신엘리트들이보는 10년후의북한, 고양 : 도서출판인간사랑, 2006. 20. 이민룡, 김정일체제의북한군대해부, 서울 : 황금알, 2004. 21. 인력개발연구센터편, 세계국방인력편람(2003 2004), 한국국방연구원, 2005. 통일부, 2018 북한이해, 통일연구원, 2018. 22. 국문논문김지용, 한국여군의역할확대에관한연구 : 여군간부활용을중심으로, 국민대학교일반대학원박사학위논문, 2016. 박미희, 여군인력확대와운영방향에관한연구 : 전투병과에서의여군인력확대방안을중심으로, 한성대학교국방과학대학원석사학위논문, 2013. 배진, 김정은시대의북한여성동원정책연구 : 조선녀성 을중심으로, 고려대학교대학원북한학과석사학위논문, 2017. 12. 백미경, 북한의녀성군인에관한연구, 북한대학원대학교석사학위논문, 2012. 신광민, 북한정치사회화과정에서의군의역할, 동국대학교대학원박사학위논문, 2003. 이현희, 북한여성군인의군복무실태에관한연구, 고려대학교대학원박사학위논문, 2018. 정추영, 탈북여성의군사적경험을통해본북한의군사화와성별위계에관한연구, 이화여자대학교대학원석사학위논문, 2002. 최효선, 한국군여군의현황과여군리더쉽에관한연구, 연세대행정대학원석사학위논문, 1996. 한상용, 북한군병영문화연구 : 선군시대를중심으로, 북한대학원대학교박사학위논문, 2013. 243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23. 연구논문유영옥, 북한보훈정책상징성의이해, 한국보훈논총, 제3권제2호, 통권5집. 2004. 윤규식, 북한의보훈정책 : 북한군보훈정책을중심으로, 2011년한국보훈논총제10권제 2호 ( 통권 19집 ), 한국보훈학회, 2011. 정영태, 북한군대의대내외정세인식형성과군대변화, KINU 연구총서, 07-09, 통일연구원, 2007. 정영태 박형중, 북한병역제도변화와병역감축가능성, 통일정세분석, 2003-06, 통일연구원, 2003. 9. 정은찬, 북한군의정치사상교육과조직생활, 군사논단, 제86호, 2016년여름, 2016. 24. 기타자료연합뉴스, 김정은 정치사상교육앞세워야 군사일꾼대회서주문, (2015.11.5.), 검색일 : 2018. 9. 166. 통일부북한정보포털, 전민군사복무제 ( 북한지식사전 ), 검색일 : 2018. 9. 27. 25. 북한자료김일성, 김일성저작집 제17권. 평양 : 조선로동당출판사, 1982. 김일성, 김일성저작선집 제26권. 평양 : 조선로동당출판사, 1974. 김일성, 김일성저작집 제37권. 평양 : 조선로동당출판사, 1992. 김정일, 김정일선집 제13권. 평양 : 조선로동당출판사, 2012. 김정일, 김정일선집 제14권. 평양 : 조선로동당출판사, 2000. 김정은신년사주체107년 1월1일, 조선로동당출판사. 2018. 근로단체출판사, 조선녀성 제7호, 2015년 7월. 근로단체출판사, 조선녀성 제4호. 2010년 4월. 사회과학출판사, 조선말대사전, 2017. 조선중앙통신사, 조선중앙년감 1973, 평양. 1973. 244

제 3 회의 [ 기획패널 4] 지자체남북교류협력의과제 사회 : 임경훈 ( 서울대학교 )

접경지역남북교류의쟁점과과제 : 경기도사례를중심으로 최용환 ( 국가안보전략연구원 )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접경지역남북교류의쟁점과과제 : 경기도사례를중심으로 최용환 ( 국가안보전략연구원 ) Ⅰ. 서론 종전 ( 終戰 ) 이아닌정전 ( 停戰 ) 으로마무리된전쟁과비무장지대 (DMZ) 의탄생 한국전쟁은정전협정체결당시의군사적대치선을경계로마무리되었으며, 남북간의군사 적충돌을방지하기위한목적으로군사분계선 (MDL: Military Demarcation Line) 으로부터 남북각 2km, 총 4km 의폭을가진비무장지대 (DMZ: De-Militarized Zone) 를설정 1) < 비무장지대, 한강하구중립수역, 북방한계선 > - 정전협정은남북간의육상경계에비무장지대를설정한이외에한강하구중립수역을설정. 2) 육상의 DMZ가일체의통행을제한받는것과달리한강하구중립수역은민간선박의무해통항을허용 - 정전협정체결당시양측의견해차이로인해해상경계선설정에는실패. 그결과 1953년 8 월 30일유엔군사령관클라크 (Mark W. Clark) 대장은해상에서의무력충돌을방지하기위해동해와서해에북방한계선 (NLL: Northern Limit Line) 을설정 3) 1) 정전협정제 1 조제 1 항 : 한개의군사분계선을확정하고쌍방이이線으로부터각기 2km 씩후퇴함으로써敵對군대간에한개의비무장지대를설정한다. 한개의비무장지대를설정하여이를완충지대로함으로써적대행위의재발을초래할수있는사건의발생을방지한다. 2) 정전협정제 1 조제 5 항 : 한강하구의수역으로서그한쪽강안이일방의통제하에있고그다른한쪽강안이다른일방의통제하에있는곳은쌍방의민용선박의항행에이를개방한다. 첨부한지도에표시한부분의한강하구의항행규칙은군사정전위원회가이를규정한다. 각방민용선박이항행함에있어서자기측의군사통제하에있는유지에배를대는것은제한받지않는다 3) 동해에는군사분계선연장선을기준으로북방경계선 (NBL: Northern Boundary Line) 을설정하였음. NBL 은 249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정전협정에따라 DMZ에대한관할권은군사정전위원회 (Military Armistice Commission) 가가지며, DMZ내 MDL 이남지역에대해서는유엔군총사령관이, DMZ내 MDL 북방지역은북한군총사령관과중국인민지원군총사령관이공동책임을짐 - DMZ는대한민국헌법상국토의일부이지만, 실질적으로는대한민국의주권이제한되는독특한위상을가지는지역 - 군사정전위원회 4) 허가없이어떤군인이나민간인도 DMZ에들어갈수없음 분쟁과단절의공간 DMZ 그리고접경지역 남북간의군사적대치가길어지면서 DMZ와남북한접경지역은민간인의접근이극도로제한된지역으로변모하였으며, 남북한을가르는장벽으로작용 - 유엔군사령관에의해설정된 NLL문제는남북한간의갈등요인이되고있으며, 수차례의해상군사충돌이발생하기도하였음 남북한의정치 군사적긴장이지속되면서 DMZ를포함한남북한접경지역에는세계최고수준의군사력이밀집되었으며, 이상태는수십년간유지되고있음 - 접경지역에광범위하게설정된군사시설보호구역은일상생활의불편은물론이고, 재산권등기본권의제한과지역발전의장애로작용 - 그결과남북한접경지역은경제적으로낙후한지역으로변모 DMZ 와접경지역에대한새로운관심과변화 군사적으로대립상태에있는양자를인위적으로분리시키려는의도로형성된 DMZ의특성상인위적개발은물론이고인간의발길이배제되면서생태와환경등의도하지않은변화발생 - 주기적으로이루어지는사계 ( 射界 ) 청소, 인간이설치한철책등장애물로인해왜곡된생태계도존재하지만, 자연복원력에의해생태 환경적가치가증가 - DMZ와그일원의생태와환경을보존하고복원하려는새로운관심도증가 2000년대남북관계가개선되면서남북한접경지역에서개성공단, 금강산관광, 남북도로 철도연결등의사업이진행됨 - 동사업들은직접적으로 DMZ 내부에서진행된것은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로 DMZ를관통하는효과를낳았으며, 단절된공간이라는접경지역에대한인식변화에기여 1996 년 7 월이후북방한계선 (NLL) 으로명칭이통일되었음. 서해 NLL 은당시의영해기준인 3 해리를고러하고, 서해 5 도와북한지역과의개략적인중간선을기준으로설정하였음. 더자세한내용에대해서는최용환, 한강하구모래준설을위한한강하구중립지역관할권검토, Policy Brief, 2008-5 ( 수원 : 경기연구원, 2008) 참조. 4) 군사정전위원회는정전협정에기초하여만들어졌으며, 협정의이행감독, 협정위반사건의처리등을담당하였음. 1991 년북한이군사정전위원회불참을선언하면서기능이중지되었다가, 1998 년 유엔사와북한군간의장성급회담 이개최되면서동회담이군사정전위원회의기능을대체하고있음 250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남북화해시대대비, 접경지역에대한새로운비전의필요 DMZ를포함한접경지역은여전히그이용이제한된지역이지만, 남북관계가개선되어남북교류협력사업이활발하게진행된다면커다란변화가예상되는지역이기도함 - 따라서이글에서는접경지역을대상으로논의되었던평화도시및통일경제특구구상에초점을맞추어그성과와한계를검토해보고자함 - 동구상에초점을맞추는이유는 2018년현재국회에관련법안이상정되어있으며, 한국정부의국정과제가운데하나이기때문임. 변화가능성이높아지는남북관계의현실을고려할때, 정책우선순위에있는과제를검토해보는것은의미가있는일이라고판단됨 Ⅱ. 접경지역의현황과쟁점 남북공동수계문제 북한강과임진강등남북공동수계를이루고있는강에서홍수기수해문제와갈수기하류지역의유량부족문제 - 두강모두북측이댐을건설하면서하류지역에피해증가 - 임진강수계의경우수해방지를위한남북협상이수차례개최되었으나별다른진전이없는상황. 임진강의유량감소는황강댐담수로인한것보다강수량의감소로인한영향이더크다는주장 5) 도있으나, 임진강하류지역의유량감소문제해결을위해서는남북협력이필요하다는사실은변함이없음 - 2010년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연구에따르면임남댐건설이후하류지역인화천댐지점의유량은 56.1 75.0% 감소 6) < 임남댐건설전 후화천댐지점유황비교 > ( 단위 : m3 /s) 댐명 유량 건설전 (A) (-1996) 건설중 (1997-2000) 건설후 (B) (2001-2009) 증감 (%) (B-A) 화천 풍수량 (95일) 67.7 46.5 29.7 38.0(56.1%) 평수량 (185일) 33.3 22.8 13.4 19.9(59.8%) 저수량 (275일) 18.1 12.8 7.0 11.0(61.0%) 갈수량 (355일) 8.1 4.3 2.0 6.1(75.0%) 출처 : 김익재외, 공유하천물안보체계구축을위한협력방안, p.82. 5) 송미영외, 임진강유량감소실태와대응방안, pp. 40-41. 6) 김익재외, 공유하천물안보체계구축을위한협력방안 ( 서울 :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2010), pp. 81-88. 251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 군남댐수위표유황분석 > ( 단위 : m3 /s) 구분 갈수량저수량평수량풍수량 (Q355) (Q275) (Q185) (Q95) 황강댐담수전 (1996-2007) 27 36 55 102 황강댐담수후 (2008-2013) 15 33 45 73 차이 12 3 10 29 비교 (%) 44.4 8.3 18.1 28.4 출처 : 한국수자원공사, 임진강유역갈수기가뭄극복대책 ( 안 ) (2014) 초국경질병의증가 서부접경지역의경우말라리아환자증가로강화, 김포, 파주일원지역주민들의경우헌혈이제한되는상황 - 북측내부에서전염성질환에대한통제가실패하면, 그것이남측지역에영향을미칠가능성증가 ( 말라리아이외에구제역이나조류독감등은좁은한반도의특성상철새뿐만아니라텃새도영향을미칠수있음 ) - 실제북한은전염성질환의확산에민감한반응을보여왔음. 2015년메르스검역장비지원, 2014년에볼라, 2009년신종플루, 2005년조류독감등사례 - 경기도는 2008년부터말라리아공동방역사업을추진한바있음. 2011년에는인천시와경기도가공동으로사업을추진. 인천-경기-강원 3개접경지역지자체공동사업으로추진에합의한상황 남한지역말라리아환자발생현황 말라리아위험지역 자료 : 질병관리본부, 2015 말라리아관리지침 - 동부접경지역의경우산림병충해및산불등자연재해문제증가 강원도는일찍부터솔잎혹파리등산림병충해남북공동방제사업을추진한바있음 - 지자체와중앙정부간, 지자체와지자체간협력체계는부족하며, 접경지역이슈에대한중앙정부차원의관심도높지않은편 252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접경지역의저발전문제 접경지역은다양한규제에노출되어있어, 지역발전이저해되고있음 - 특히다양한규제가중첩되면서하나의규제가해소되어도다른규제가남아있기때문에정주환경개선및지역발전정체지속 - 규제에대한지역주민들의피해의식은상당히높은편으로, 생태 환경등 DMZ의새로운가치에주목한국토활용구상에대해서도그것이규제로인식된다면반대하는모습을보이기도함 < 접경지역토지이용규제현황 > 단위 구분 행정구역규제지역개발제한규제비율산지군사시설농림지역면적면적구역 전체 9,632 20,296 210.7 6,638 4,923 5,197 213 인천 583 1,248 214.0 300 275 257 - 경기 3,125 6,188 197.9 1,676 2,017 1,279 213 강원 5,923 12,859 217.0 4,661 2,629 3,660 - 자료 : 행정자치부 (2017). 접경지역발전종합계획연구용역, p.94. 접경지역균형발전을위해 2000년접경지역지원법이제정되고동법률은 2011년특별법으로격상되었으나, 접경지역의개발은여전히정체된상황 Ⅲ. 과거남북교류협력사업및접경지역평화적활용구상 1. 경기도남북교류협력사업 남북교류협력사업추진기반조성 - 경기도는다른지자체에비해선도적으로법률, 조직, 기금등남북교류협력사업의추진을위한안정적기반을조성 - 2001년경기도남북교류협력조례를제정하고, 도지사를위원장으로하는경기도남북교류협력위원회를구성하였으며, 도의회특위결성, 남북포럼등자문기구고성등을통해추진체계를마련 - 경기도남북교류협력사업초기에는기획조정실산하에일부전담인력을배치하였으나, 2008 년 2월부터과단위의남북협력담당관을설치하여경기도남북교류를전담, 남북협력담당관실은남북교류협력기금운용, 북한이탈주민지원사업등업무를담당 ( 경기도남북협력담당관은 2014년이후통일기반조성담당관으로명칭을변경 ) - 경기도남북교류협력추진의재정적기반이되는남북교류협력기금은 2001년 30억원의출연 253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금에서시작한이래, 매년 50-60억원의기금을조성하여 2017년말기준조성총액은 392 억원으로전국광역지자체중최대규모. 이중 266억원을지출하여잔액은 126억원수준이나, 추가조성예정 경기도남북교류협력사업의전개 경기도는 2002년인도지원사업을시작으로사업영역을다각화하며지자체남북교류협력사업을선도하였으나, 2010년이후남북관계경색으로사업축소 - 경기도남북교류협력사업은 2003년북한민족화해협의회와남북교류를위한의향서를체결함으로써공식화 - 이후 2004년부터농기자재, 의료장비를지원하고, 북한룡천역폭발사고당시긴급구호약품을전달하는등인도적지원사업을본격추진 - 2005년부터는벼농사시범사업을시작으로평양시강남군당곡리협동농장을대상으로한농촌현대화사업을추진. 이사업은분단이후협동농장을대상으로한최초의협력사업 - 이후 2007년부터집중교류대상지역으로북측과합의한접경지역으로사업대상지역과내용을확대하여, 개풍양묘장조성사업, 말라리아공동방역사업등을추진하였으며, 농촌현대화사업의성과를확대하여농축산협력사업등추진 - 2010년천안함 연평도사건과이에따른한국정부의 5.24조치로북한과의교류협력사업이제한된상황에서도, NGO 등을통한다제내성결핵환자치료지원을비롯하여, 개성한옥보존사업및체육교류등을추진 최근남북및북미관계개선되고평화분위기가조성되자, 그동안중단되었던남북교류협력사업재개 - 경기도는 2018년추경예산안에남북교류협력기금 200억원을반영하였으며, 경기도의회역시평화경제특별위원회를구성 7) 경기도남북교류협력사업평가 경기도는남북교류협력사업을위한조례제정, 전담조직과인력배치, 자체기금조성등안정적사업추진체계를마련함으로써지자체남북교류협력사업의선도적역할을수행 - 다른지자체와의협력사업을통해지자체남북교류협력거버넌스형성에기여하고, 일방적인대북지원에서벗어나남북상생의협력사업을발굴및추진 - 경기도는 2011년부터인천광역시와공동으로말라리아공동방역사업을추진한바있으며, 동사업은광역지자체간연대를통한사업추진의유일한사례. 또한경기도는향후말라리아공동방역사업추진시인천및강원도와함께추진하기로협의하는등지자체간협력을통한사업에도관심 - 말라리아공동방역사업은일방적지원이아니라남북모두에게이익이되는상생의협력사업으로서의의를가짐 7) 지자체주도남북교류협력사업길열린다, 인천일보 (2018. 9. 28) 254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 이외에경기도는제주도와함께매년전국지자체가참여하는워크숍을주도하여남북교류협력사업의노하우를공유하고발전방향논의 경기도가중점적으로추진한북한농촌현대화사업은일방적지원을넘어선시범적인개발협력사업으로남북교류협력사업의새로운비전과모델을창출했다는점에서의의 - 북한농촌현대화사업은경기도가 2005년시범사업에이어 2008-2010년기간동안 3개년에걸쳐추진한대표적지자체남북교류협력사업으로, 농업기반조성, 인도적지원, 농촌주민생활환경개선등이연계된패키지형사업 접경지역이라는경기도의특성이반영된사업의개발, 북측의수요에대한고려, 사업대상지역및사업영역의확대 다양화등은지속적으로관심을가져야할과제 - 인도지원을넘어선개발협력방식의새로운지자체남북교류모델개발 - 초국경질병공동대처, 남북공동수계활용등접경지역특색사업개발 - 담당인력의전문성제고, 정책개발체계보완, 지자체남북교류의법 제도적위상확보등 2. 접경지역평화적활용구상 탈냉전과 DMZ 및접경지역평화적활용논의의진전 남한정부는냉전질서가붕괴하면서남북간체제경쟁이사실상종식되었다는자신감에기반하여적극적이고다양한제안들을내놓기시작 - 2000년대이후남북관계개선이이루어지면서개성공단과개성및금강산관광, 남북도로 철도연결사업등이접경지역에서추진 - 이는본격적인 DMZ활용은아니지만, DMZ내부를관통하는교통로가개설되는등제한적이나마변화발생 - 생태 환경을주제로한 DMZ활용구상이본격화된것도탈냉전이후 DMZ와접경지역의평화적활용에대한주민인식의변화 - DMZ를관통하는남북협력이이루어지면서접경지역주민들은남북관계개선에따른변화를낙후된접경지역발전의계기로인식 - 통일경제특구는개성공단사업이본궤도에이르면서제안되기시작함. 2006년최초법안제출이후 2018년현재까지지속적이고경쟁적으로관련법안들이제출되고있으며, 새로출범한정부역시통일경제특구를핵심과제의하나로제시 DMZ의가치에대한새로운인식의증가, 접경지역개발에대한주민요구의증가등에맞추어중앙정부와지자체는관련구상을구체화 - 2000년대남한정부는부처별로다양한 DMZ 활용구상을제시함. 이러한추세에따라경기도와강원도등광역지자체는물론이고기초지자체들까지자체계획을수립 - 예컨대 2009년에만도행정안전부는 남북교류 접경권초광역개발기본구상, 환경부는 255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DMZ생태평화공원조성기본계획, 문화체육관광부는 PLZ 광역관광개발계획 등을발표 - 이와같은중앙정부계획들은 평화, 생태 환경, 지역개발 등을주제로하고있는것으로 DMZ의성격변화를상징 접경지역평화적활용에대한기존구상평가 부처별 지자체별계획들이난립하면서몇가지한계들이부각 - 첫째, 사업명칭에는 DMZ 가명기되는경우가많았으나, 실제사업의내용은 DMZ가아니라그주변접경지역을대상으로한계획이대부분. 이는 DMZ내부에접근할수없는현실적한계를고려할때불가피한측면이있지만, 생태와환경관련이슈에접근할때에도행정구역경계를기초로접근하는등문제개선필요 - 둘째, DMZ의진정한평화적활용을위해서는북한이라는상대방과의협의와협력이불가피하지만, 대부분의계획들은이점에대한고려없이제안 - 셋째, DMZ활용을위해서는접경지역주민들의이해관계에대한고려가필수적임에도불구하고, 중앙정부중심으로정책이제안되면서해당지역주민들의의사반영에한계 < 그림 > DMZ생물권보전지역신청사례 * 자료 : 한국경제신문 (2011. 9. 21) - 2011년유네스코생물권보전지역신청사례는지역주민의사및생태 환경적고려, 북측과의협의등이결여된대표적인경우 - 위그림에서볼수있는것처럼생물권보전지역을신청하면서그경계는남북의인위적경계선을기초로하고있으며, 북한과의협의없이신청이이루어짐 - 또한철원지역에주민들의반대로완충지역과전이지역을설정하지못함. 이는생물권보전지역지정시개발제한을우려한철원지역주민설득에실패 8) 하였기때문 8) 목정민, DMZ 보전지역지정유네스코서퇴짜, 경향신문 (2012. 7. 12) 256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3. 통일경제특구구상 통일경제특구논의의시작 : 개성공단 2004년 12월개성공단시범단지첫제품이출시되고, 2005년말시범단지인프라가거의완공되면서통일경제특구논의본격화 - 2006년 2월여 야의원 100명이 통일경제특별구역의지정및운영에관한법률안 ( 대표발의임태희 ) 을공동발의 - 통일경제특구관련법률안이제안된시점은강원도의철원평화시제안이이루어진시기와정확히일치 통일경제특구구상은개성공단의성장과확대에맞추어논의가확대되었으나, 2008년이후남북관계가경색되면서실질적진전부재 - 그럼에도불구하고통일경제특구추진을위한법률안은국회에지속적으로상정되었으며, 2010년에는정부안이제출되는등논의는지속 - 이명박정부에서는통일경제특구와비슷한컨셉의 나들섬구상 제안 - 중앙정부차원의통일경제특구구상이답보상태에머무는동안접경지역지자체들은동구상실천을위한자체구상을구체화 접경지역지자체들의통일경제특구관련구상 통일경제특구법안이국회에지속적으로제출되면서접경지역지자체들은관련구상을구체화화여경쟁적으로제시하였음 - 인천시가인천 ( 강화 ) 과개성을연계하는발전구상을제시하자, 김포시는김포와개성을연계한교류협력단지구상을제시하는식이었음 - 이외에도최초통일경제특구법안제출당시염두에두었던파주시도독자적인통일경제특구구상을제시하였으며, 인근지자체인연천군과고양시도별도의계획을발표 - 강원도는설악과금강을연계한구상을발표 < 주요접경지역지자체들의남북연계구상 > 강화경제자유구역구상파주통일경제특구구상설악 - 금강연계구상 자료 : 강화도, 2010 년도주요군정계획 (2010); 신종호외, 경기도의통일경제특구유치방안연구 ( 수원 : 경기개발연구원, 2012), p. 97.; 김범수외, 강원도 DMZ 와한반도공간관리 ( 춘천 : 강원발전연구원, 2013), p. 36. 257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통일경제특구논의평가 통일경제특구구상은개성공단의성공과연계될수밖에없었음 - 개성공단자체가노동력문제를해소하지못하는상황에서북한노동자들을남측으로데려와활용하겠다는구상의현실성부족 - 값싼인건비를활용하겠다는컨셉의현실성부족 Ⅳ. 남북관계의변화와접경지역 1. 2018 년남북관계변화 한반도비핵화논의의진전과남북관계의변화가능성 9) 남북정상은 판문점선언 과 평양공동선언 채택을통해남북간군사적긴장완화와함께, 남북교류확대를위한다양한방안들에합의 - 특히평양공동선언에서는현정부의핵심국정과제가운데하나인한반도신경제지도구상관련, 핵심인프라 정책방향등에대해합의 2018년이내에동 서해선철도및도로연결착공식개최 조건이마련되면개성공단과금강산관광사업우선정상화및서해경제 동해관광공동특구조성문제협의등에합의 - 또한대북제재해소이전에남북교류협력확대가가능한분야별합의 산림분야협력을비롯한환경협력, 이산가족상봉등인도적협력, 전염성질병대응을포함한보건 의료분야협력에합의 스포츠및문야 예술분야협력등 국제경기들에공동진출, 2032년하계올림픽의남북공동개최유치협력 10 4 선언 11주년기념행사및 3 1운동 100주년기념행사공동개최 - 전국시도지사협의회회장자격으로방북한박원순서울시장은북한최고인민회의김영남상임위원장을만나남북공동시도지사협의회창설제안 - 평양정상회담이후 9월 20일문재인대통령의 대국민보고 에서남북지자체교류활성화에합의했음을언급 2. 한국정부의신경제지도구상과접경지역 한국정부의한반도신경제구상 10) 9) 이부문의논의는최용환, 북미정상회담의주요과제와전망 : 비핵화 & 평화체제, 문재인정부출범 1 년외교안보통일분야평가와과제 (4 개국책연구기관공동학술회의자료집 ) (2018. 5. 15) 내용을수정 보완한것임 10) 동내용은최용환, 한반도신경제지도구상의의미와추진방향, 한국 한반도신경제지도구상 과중국 일대일로 구상의협력방안모색 (2018 년한중국제학술회의발표자료집 ) (2018. 5. 18) 의내용을수정 보 258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한반도신경제구상은남북한이협력을통해 3대경제벨트및하나의시장을구축함으로써, 한국경제의활로를개척하고경제통일의기반을구축하겠다는국가프로젝트 신경제구상의핵심 11) 은 3대벨트구축을통해한반도신성장동력확보및북방경제연계를추진하겠다는것임 - 환동해벨트 : 금강산, 원산ㆍ단천, 청진ㆍ나선을남북이공동개발후한반도동해안과러시아를연결 - 환황해벨트 : 수도권, 개성공단, 평양ㆍ남포, 신의주를연결하는환황해경협벨트건설 - 접경벨트 : 설악산, 금강산, 원산, 백두산을잇는관광벨트구축및남북접경지역을생태ㆍ평화안보관광지구로개발 - 또한민ㆍ관협력네트워크를통해남북한 하나의시장 조성을위한협력방안을마련하고, 여건조성시남북시장협력을단계적으로실행하여생활공동체를형성 신경제구상의접경지역평화협력벨트의주요내용은다음과같음 - 남북접경지역은세계적으로유례를찾기힘들게독특한생태계를형성하고있으며, 분단된한반도의실상을생생하게관찰할수있는지역으로풍부한관광자원을보유하고있는지역 - 또한이지역은세계에서유일하게분단된국가의역사적현장을확인할수있는장소로, 전쟁의참혹함과평화의소중함을공유하고학습할수있는지역 - DMZ지역의친환경적이고평화적인활용을통하여이지역경제의활성화와지역주민들의삶의질개선가능 남북군비축소혹은군비통제가이루어질경우, 군사적으로가장첨예한대치를보이고있는접경지역에서의군사력재배치등도논의될가능성 - 접경지역평화적활용및동지역에서의남북교류구상들도구체화될가능성 - 동 서해철도및도로연결등남북간인프라연결이우선추진될가능성이있으며, 개성공단과금강산관광등기존사업재개에도우선합의한상황 - 접경지역의초국경질병공동대처등경기도가이미추진해왔으며, 관심을가지고있는사업들의재개여건호전 Ⅴ. 결론을대신하여 : 접경지역평화적활용을위한정책방향 평화도시와통일경제특구를포함한접경지역에서의남북교류협력이그동안추진되지못했던것은남북관계의구조적요인에기인한측면이큼 - 즉남북간의정치 군사적대립이첨예한상황에서접경지역에서의남북교류는제한될수밖 완한것임 11) 청와대 <http://www1.president.go.kr/government-projects#page5> ( 검색일 : 2018. 5. 10) 259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에없음 - 하지만종전선언과평화협정체결이이루어지면접경지역의위상은크게변화할것임. 남북간교통 물류등인프라연결이이루어지는것은단순한남북교류협력의확대를넘어대륙과의육상연계를의미 기존의단절된경계를넘어교류협력의폭과깊이가대륙까지확대되는것을염두에둔구상마련필요 - 중국의일대일로 ( 一帶一路 ) 구상, 러시아의신동방정책, 몽골의초원의길등동아시아주요국가들의국가전략을고려하여, 남북교류정책도기획할필요 접경지역의평화적활용을위해서는북한이라는현실적상대방의입장과수요에대한고려가필수적 - 김정은체제출범이후북한은비록낮은수준이나마지속적인경제성장을이루었으며, 증거가파편적이지만 1990년대중후반과같은인도적위기는크게완화된것으로판단 - 또한북한내시장화현상이확산되면서경제협력의여건도크게변화 - 남북교류협력의모든분야가마찬가지이지만, 군사적으로첨예한지역인접경지역의특성상북한의수용력과요구에대한고려가필수적 모든국가정책이마찬가지이지만, 접경지역에서의교류협력역시해당지역에거주하는주민들의이해관계에대한고려필요 - 특히접경지역은분단이후남북간대립과갈등으로인해지역발전의지체와개인재산권행사의제한등이지속적으로이루어져온지역 - 분단으로인해수십년간지역발전이정체된지역의개발요구를지역이기주의로치부하거나, 생태 환경과같은가치를일방적으로강요하는방식으로는지역주민들의반발에부딪힐수밖에없음 기타중앙정부와지방자치단체의역할분담및유기적연계등을고려하여접경지역현안에대해서도관심을기울일필요가있음 - 과거접경지역정책은중앙정부부처간, 중앙정부와지자체, 지자체와지자체, 공공과민간의원활한소통이이루어지지못하였음. 그결과중앙정부는부처별로게획을입안하고, 지자체들역시경쟁적으로별도의계획을제시 - 이것이크게문제되지않았던것은남북관계의경색으로실질적인사업진전이없었기때문이라고볼수도있음. 따라서향후남북화해시대에는각주체별유기적인연계가필요 폐쇄형경제특구방식보다는남북간산업연계등을통한폭넓은교류지향 - 개성공단은폐쇄형경제특구로운영되어, 북한내부경제와의연계는물론이고남북간경제적연계구조를만드는것에실패 - 북한내부경제가활성화되는상황에서는북한내부에서물자를조달하고, 특구에서생산되는제품역시북한지역판매를염두에둘필요 260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 또한남북한지역간산업적연계등을고려하여남북의경제적연계를강화하고, 그시너지를확보할필요 남한의자본과북한의저임금노동력이라는기존공식에서벗어나, 첨단분야에서의교류를병행할필요 - 2018년중국을방문한북한의 조선로동당친선방문단 의방문지는중국의실리콘밸리로불리는중관춘, 첨단농업기술현장인농업과학원등진일보한경제개발현장을중점적으로방문하였음 12) - 노동당중앙위 7기 3차전원회의에서새롭게채택한 사회주의경제건설총력집중 등과관련하여북측의수요와관심을고려하여특구의성격과산업배치등을계획할필요 접경지역의특성상교류협력이불가피한분야와의연계도중요 - 특히접경지역에서의인적교류를활성화하기위해서는전염성질병에대한공동대처등이필수적 - 남북한주민들간의갈등소지가있는공동수계에서의수량배분등의문제에대한남북합의와공동대처노력도매우중요 12) 노지원, 북대표단 중국의실리콘밸리 등잇단방문, 한겨레신문 (2018. 5. 15) 261

접경지역교류협력 - 강원도 김기석 ( 강원대학교 )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지방자치단체접경지역교류의현황과과제 : 강원도의사례 김기석 ( 강원대학교통일강원연구원원장 ) I. 들어가는말 강원도는 유일의분단도 분단의아픔을고스란히간직한땅, 분단의최대피해자, DMZ 의 2/3 를가진분단의최전선, 같은분단과그아픔을중심으로한레토릭을통해서스스로가가진한반도정치지형속에서의정체성과입지그리고역할등을정의해왔다. 실제로 38도선북쪽의강원도땅상당부분은과거격렬한접전지역으로서냉전체제하에서밀도높은군대의주둔, 안보의책임성과그에따르는높은긴장, 군사적특수성과특권을수반하는다양한규제와제약, 이산가족혹은실향민의아픔등삶전체가분단과남북대립구도의구조적한계속에서규정되어온측면이강하다. 특히민간인통제선 ( 민통선 ) 으로대표되고속초의아바이마을, 고성의... 철원의... 등으로상징되는강원도민들의마음속에자리잡은이산과실향그리고규제의고통과아픔은그자체로강원도의정체성과위상을보여주는표상들이었다. 하지만탈냉전기한반도의해빙이진행되고남북화해의기운이점차커져가면서강원도의그러한여건은한반도의긴장완화와남북교류협력의중심지로부각되는동기와계기를제공하였다. 그런변화는분단, 이산그리고실향으로표상된삶을살아온강원도민들의긴장완화와통일에대한강한염원이핵심원동력이었다. 또분단으로인한발전의제약으로부터입게된유형 무형의피해에대한보상의식도작용하였다고보아야한다. 1995 년제 1회전국동시지방선거가치러져본격적인지방자치시대가개막되고곧이어김대중정부가집권하면서남북화해협력시대가열리자강원도는정치적으로는매우보수적인성향을보여왔음에도불구하고일반적으로남북관계발전에대해소극적이었던한국의보수세력과달리남북교류협력에대해적극적인자세였다. 2대부터 4대까지 3선을연임한김진선도지사는관료출신이라는개인적배경과보수정당출신이었음에도불구하고그같은강원도민들의열망을등에업고지자체남북교류협력에선도적인역할을담당하였고상대적으로열악한정치경제적여건속에서도적지않은발자취를남겼다. 1999 년제주도의감귤사업으로교류협력이시작된이후 2000 년 6 15 정상회담이성공적으로치러지자강원도는김진선도지사를중심으로발빠르게움직여다양한원조, 교류, 협력, 그리고상호방문등전체지자체의교류협력사업에핵심적인원칙과중요한모델을제공하는역할을수행하였다. 265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이것은한마디로강원도의정치, 경제, 행정등여러영역에서유례를찾아보기어려울정도로발빠르고지자체차원의전국적인남북교류움직임을이끈 선도적행보 였다. 남북교류협력을위한제도화, 도지사의방북, 사업의실질적추진과성과등대부분의측면에서강원도는선도적이면서도주도적인역할을담당하였으며남북지자체협력의모형을구축하는역할을하였다. 이연구는그런강원도의남북교류협력사업을과거의경험, 현재의진행상태, 그리고향후계획들로구분하여종합적으로분석해보는것이그목적이다. 그한계를되짚어보고향후어떠한방향성과전략으로진행해나갈것인지를모색해보고자한다. 이미강원도는평창동계올림픽의개최를통해현재진행되고있는한반도의평화국면이전개되는데결정적인계기를제공하였다. 평창동계올림픽의유치와개최과정을살펴보면이것은 18년여에걸친강원도민들의노력의결실임을쉽게알수있다 ( 김기석 2018 참조 ). 이후진행된 427 남북정상회담와 612 북미정상회담, 918 3차남북정상회담등새로운상황의전개속에서강원도는여전히과거담당해왔던선도적이고주도적인남북교류협력사업들을이끌어나가기위해지속적으로노력하고있으며이것은경기도나인천같은접경지역지자체와의협력과경쟁속에서가속페달을밟고있다. 본논문에서는강원도가시도하고있는사업들이어떤측면에서중앙정부의남북교류협력사업들과상호작용하고시너지를만들어내야성과를낳을수있는지그진행과정과계획들을종합적으로살펴본다. II. 남북강원도교류협력사업 : 특징 1. 지자체남북교류협력의성격 지방자치단체가남북교류협력사업을본격적으로시작한것은 1995 년제 1회전국동시지방선거가실시되고 3년후, 김대중정부가집권한 1998 년부터이다. 이후지자체사업은 2008 년이명박정부의등장과더불어사실상전면적으로중단될때까지약 10여년간빠른속도로양적, 질적진화를보였고적지않은협력의성과를만들어냈음은물론지자체들의조직, 제도, 경험, 노우하우, 북한과의네트워크등을발전시켜향후새로운여건이조성되었을때교류협력을재개할수있는기반을구축하였다 ( 강원도 2010, 경기도 2012; 최대석 2009 등참조 ). 이 10년간의지자체남북교류협력사업진화과정은보통 4개단계로분류한다. 제 1 단계는남북교류협력사업의모색기 (1999-2001) 이다. 이때최초의지자체교류협력사업이었던 1999 년의제주도감귤지원그리고강원도의남북공동연어방류사업이시작되었다. 제 2 단계는대북인도적지원사업의추진으로진화하였던 2002 년부터 2005 년까지의기간이다. 이때는식량지원을비롯하여식품가공공장건립, 재난구호, 생필품, 의약품지원사업등이이루어졌다. 제 3단계는 266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2. 지자체남북교류협력사업의제도화 1) 조례제정 지자체남북교류협력은법적, 제도적, 재정적, 인적- 조직적측면에서괄목할만한성과를보였다. < 표 1> 에나타난바와같이광역지자체들은 1990 년대말강원도를필두로하여순차적으로남북교류협력관련조례를제정하였다. 경기도는강원도와같이접경지역을보유하고있어교류협력에대한관심이높았고광주나전남같은지역은통일에대한열망이큰지역으로서북한과의교류에대한관심이높았기때문에비교적일찍조례를제정했다. 기초자치단체역시강원도의철원군을시작으로조례를제정하여현재전체 39개의기초자치단체가조례를제정하고그에따라북한과의협력사업을추진하였으며관심이높은광역시도교육청역시교류협력조례나통일교육조례를제장하고교류협력기금을조성하여북한과의교육협력을추진하고자하였다. < 표 1> 남북교류협력조례제정현황 : 지방자치단체및교육청 광역자치제광역시도교육청조례및조례제정통일교육조례제정 기초자치단체 조례제정일 강원도 1998-09-09 2007-12-21 1998-12-30 2018-09-?? 철원군 2001-03-21 경기도 2001-11-09 2011-03 파주시외 5곳 2004-01-10 광주광역시 2003-06-05 2011-09 2012-10-04 전라남도 2004-06-05 2011-10 목포시외다수 2009-04-20 서울특별시 2004-07-20 구로구 2011-05 인천광역시 2004-11-08 2011-10 경상남도 2005-04-07 고성군 2001-11-05 대구광역시 2005-08-10 울산광역시 2006-04-06 북구 2011-10-30 제주자치도 2007-05-09 부산광역시 2007-07-11 전라북도 2007-12-28 2010-10-28 경상북도 2008-01-10 충청북도 2008-02-22 제천시 2008-10-06 대전광역시 2008-06-20 충청남도 2011-10-19 2) 협력기금조성 지자체들은교류협력사업을재정적으로지원하기위해남북교류협력기금조례를제정하고협력사업추진에사용하였는데이역시강원도가 1998 년최초로조례를제장함으로써주도하였으며경기도에비해서도 3년이나빠른행보였다. 시기적으로뿐만아니라내용면에서도 < 표 2> 에나타난바와같이강원도, 경기도, 서울시, 인천시등일부지자체들만이실질적으로사업을추진할수있을만큼 267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의기금을모아실제집행하였을뿐, 나머지지역은조성액수도크지않을뿐아니라사업추진실적및집행실적이전무한실정이었다. 말하자면지자체남북교류협력은접경지역인강원도, 경기도, 서울특별시그리고인천광역시만이실질적으로추진한셈이다. 기초자치단체들도협력기금을모금하였는데 10개자치단체가약 97억여원을모금하여운영중이다 ( 통일백서 2018, 76). < 표 2> 남북교류협력기금현황 : 2017 년 ( 단위 : 백만원 ) 지자체 기금설치일 총조성액 2016년집행액 2016년말잔액 비고 1 강원도 1998. 12. 13,793 159 5,194 2 경기도 2001. 11. 37,054 712 12,590 3 전라남도 2003. 06. 3,422-3,422 4 서울특별시 2004. 07. 27,299 656 19,187 5 인천광역시 2004. 11. 13,158 134 1,601 6 광주광역시 2005. 11. 4,356-4,228 7 제주자치도 2007. 05. 3,190-3,190 8 부산광역시 2008. 01. 6,188-6,188 9 전라북도 2008. 12. 8,236-8,236 10 충청북도 2009. 04 2,087-2,087 11 충청남도 2011. 11 2,373-2,373 12 경상북도 2013. 09 2.058-2,058 13 대구광역시 2014. 12. 4,106-4,106 14 대전광역시 2016. 05 505-505 합계 123,473 1,661 74,965 ( 출처 : 통일부, 2017) 3) 조직정비 강원도는교류협력사업을추진할조직정비면에서도전국최초의기민함을보였다. 1998 년 9월남북교류지원담당을지정하였다가 2001년 3월남북협력담당관실로확대개편하였다. 거기에범도민적인의견수렴및합의도출을위하여민간의의견을취합할기구들을도청주도로적극설치하였는데 1998 년 11월사회각계대표로구성된남북강원도교류협력위원회를, 그리고 2000 년 5월에는민간전문가가주축이된 남북강원도협력협회 를설립하였다. 이단체는 2002 년 3월통일부로부터 남북교류협력에관한법률 에의한대북사업자로지정되었으며시민사회등과의유기적인네트워크를형성함으로써남북강원도교류협력사업을민간과협력하여추진할수있도록하였다 ( 강원도 2010, 34-35). 또한남북교류협력을위한학술적연구기능을갖추기위해 2000 년 6월도산하연구기관인강원발전연구원내에 북강원연구센타 를설립하여운영하기시작하였으며 1999년 11월에는당시까지수집한정보자료를토대로 북강원편람 을발간하여북강원도에대한정치, 경제, 사회, 문화등정보를체계화하여수록하였고 2008년에는증보판을발간하였다 ( 강원도 2010, 35-36). 268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이러한강원도의노력은 2008 년이명박정부의출범과박왕자씨사건등으로금강산관광이중단되는등교류협력사업이급속히냉각되면서사실상 2017 년까지거의무력화되어버렸다. 3. 강원도남북교류협력사업 : 특징 (1) 진행 1998 년 7월 1일취임한김진선도지사는취임사에서남북강원도교류협력에대해 정부의통일정책에앞장서는것은물론, 설악산과금강산연계개발, 지방차원의교류방안등을통하여통일의물꼬를강원도에서먼저틀수있도록꾸준히노력할것 이라고역설하였고정책과제와실천과제로구분된향후추진할과제 1) 들을제시하였는데이것들은이후강원도의남북교류협력사업의기본틀이되었다. 남북강원도교류협력이본격적인물꼬를튼것은 1차남북정상회담으로협력의기운이고조되던 2000 년 12월김진선지사가강원도도지사라는공식직함을가지고북강원도를방문하면서부터였다. 이때는통상적인중국우회항로를통한방북이아닌동해안금강산 원산을통하여평향을방문하는경로였고이역시지자체교류로서는사상처음인특별사례였다. 이방문에서남북강원도의지도자들은회동하였고남북강원도교류협력을위한기본합의서를채택하였다. 이합의서는간단히 4개항의합의내용을담았는데 1) 남북강원도사이의협력을위하여함께노력한다. 2) 감자원종장시설, 솔잎혹파리방제, 연어자원보호증식사업을추진한다, 3) 적절한시기에북강원도인민위원회대표단이강원도를방문한다. 4) 상호관심사에대해협의를계속한다등이었다. 이합의내용에따라 2001 년 4월연어방류사업이본격적으로실시될수있었다. 2003 년 12월에김진선지사는다시한번북강원도를방문하게되는데안변에건설한연어부화장의준공식에참석하면서북강원도지도자들과연쇄회담을갖고남북강원도교류협력에대한합의서를새롭게채택하였다. 이합의서는기협력사업에대한긍정적평가를바탕으로건축, 수산, 산림분야협력사업을발전시켜나가되금강산에서남북강원도민속문화축전의개최와겨울스포츠교류의실시를합의하였다. 말하자면교류의영역을기존의경제협력에서부터자연스럽게문화 스포츠분야로확대한것이다. 1) 정책과제는 21 세기강원도의미래에대한비전 으로남북관계개선과동해권시대개막에따른강원도의국제적역할강화를위하여 1 환동해권시대개막에따라북한및동북아지역과의교류와경제협력확대를통한열린강원시대조성 2 남북한및국제교류확대에대비한도로, 항만, 항공등 SOC 사업추진및정보인프라구축 3 남북강원도교류기획단 과 동아시아국제관광포럼 의조직 운영등의 3 가지였다. 실천과제는 1 분단 1 번지 를 통일 1 번지 로만들기위한도차원의남북교류협력의적극추진 2 통일시대강원도도약을위한남북한경제협력및인적교류창구개설등이었다. 추진방법은 1 도청내에통일관련행정부서또는도지사특보신설을통한전문적인교류협력시책의입안및시행, 2 통일관련연구센터의설치 운영, 3 남북강원도, 간상호인적교류확대를통해 하나의강원도 라는공동체의식회복 4 남북강원도교류협력을위한북강원도에대한자료수집 5 북강원도주민에대한인도적지원사업추진등이었다. 269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2005 년 9월에금강산에서남북강원도주민 350 여명이참여하여개최된남북강원도민속문화축전은그자체만으로도남북강원도교류의중요한결실이라는의미를가질뿐아니라그자리에서다시한번남북강원도지도자들은새롭게추진할남북협력사업의합의서에서명하였고이는이후교류협력사업이보다다양화시켰다. 이합의서에서는그간의협력사업을긍정적으로평가하면서아이스하키교류, 수산협력사업추진, 농업전문가의상호교류, 연어자원보호증식및산림병충해방제사업의계속발전등구체적인추진사업들에대해합의하였다. (2) 특징 그동안의강원도남북교류협력사업은다음과같은특징을가지고있었다. 강원도는지자체남북교류협력사업에있어서선도적역할을담당해왔고추진의지, 제도화, 사업의내용, 성과등에있어서사실상그흐름을주도해왔다. 강원도출신인현대그룹의정주영명예회장이 1998 년 6월과 10 월두차례에걸쳐 1001 마리의소를이끌고판문점을넘어북한을방문함으로써남북교류의물꼬가트이게된이후교류협력조례를제정하고실질적인협력사업을추진하는데강원도는항상선두에섰던것이다. 김진선전도지사는최초로도지사공식직함으로북한을방문하였을뿐아니라평양을거치지않고고성및금강산을거쳐북한을방문하는등중앙정부와는다른동해안방문루트를개척하기도하였다. 두번째강원도는지자체남북교류협력의사업모형을제시하였다. 일단지역적아이덴티티를공유하는북강원도라는구체적협력대상이있던상황에서실생활과밀착된농업, 임업, 수산업등정치색을배제한실용적접근을시도하여신뢰관계를조성하면서실질적성과를거두었다그리고점차이를토대로점진적 단계적접근법을채택하여비교적성공으로협력의영역을확대하고실적을축적하였다. 농업, 산림, 어업협력들을해나가면서일정한성과를낳고이를토대로점차문화, 스포츠등협력의영역을확대시켜감으로써지자체들이어떤방식으로북한지자체와의교류협력을해나갈것인가에대한함의를제공한것이다. 세번째강원도는도의전체적인역량을총체적으로반영하는방식으로사업을진행해가고자노력하였다. 강원도는도차원의사업들을이끌어가면서시민단체나기업, 종교계그리고학계등도내의다양한목소리들을듣고이를정책에반영함은물론그들스스로적극적으로사업에참여하도록유도함으로써도민전체의목소리와의사가교류협력사업에반영될수있도록하는방식을채택함으로써사업을원활하게이끌어나가고자시도하였다. III. 한반도평화체제와남북강원도교류협력 1. 2018 년한반도평화체제의전개와강원도 : 평창동계올림픽의효과 2018 년 2 월개최된평창동계올림픽은한반도평화체제의시작을가능하게한계기를제공하였으며 270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그런측면에서강원도는한반도의분위기변화를낳은핵심동인중하나로기록될수있다. 2017 년내내지속되었던미국과북한의험악한대결적분위기가북한의화성 15형 ICBM 발사와핵무력완성선언에이은 2018 년김정은위원장신년사를계기로유화분위기로돌아서게되고이는결국평창동계올림픽에북한이고위급특사를파견하고, 문재인대통령의특사파견등으로이어지면서남북정상회담과북미정상회담을가능하게한산파역할을담당한것이다. 사실북한의동계올림픽참가는동계올림픽을평화올림픽으로만들고자하는문재인정부, 평창올림픽의흥행을우려하던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와강원도에게는커다란힘이되었을뿐아니라향후평창을동북아시아평화가시작된평화의메카로자리매김하는등올림픽레거시로서의가치도크게높여준것이사실이다 ( 김기석 2018). 개막식과폐막식을전후해서평창에서벌어진외교전은한반도를둘러싼정치적분위기를급속히반전시켰으며이를통해서남북관계는물론북미관계도완연한대화와화해의분위기로전환할수있게된것이다. 2. 2018 년남북정상회담이후강원도의남북교류사업 강원도는 2018 년의한반도평화국면에서도지자체남북교류협력사업의선봉장역할을자임하였다. 교류재개이후가장먼저강원도에서실시한사업은남북이산가족상봉행사였다. 물론이사업은금강산의관광시설을이용하기위해강원도에서개최하는인도적행사일뿐강원도가직접주관하는사업은아니다. 하지만금강산을방문하기위해이산가족들이고성에집결하고북한방문을위한절차를진행하는등금강산관광중단 10년의고통을겪어온고성주민들에게무언가새로운희망을불어넣는데는큰역할을하였다. 이어강원도의최문순도지사는 2018 년 8월 10일 151 명에이르는대표단을이끌고아리스포츠컵유소년축구대회 2) 를개최하기위하여평양을방문하였다. 이방북은관계개선이후최초로경의선육로를통해이루어졌고대회의전과정을운영하기위해무려 9박 10일이나머무는등교류협력이재개되면서지차체차원의협력에또하나의새로운이정표를만든것이다. 방북단은 151 명으로구성되었으며여기에는춘천, 원주, 그리고강릉시장이포함되는등기초지자체수준의협력사업활성화도추진한다 ( 강원도민일보 2018/08/13). 이사업이가지는의미는적지않다. 비록 15 세수준의학생교류이며스포츠교류로서대중적관 2) 아리스포츠컵국제유소년축구대회는남북민간교류활성화를위해마련되었다. 제 1 회대회는 2014 년경기도연천에서개최되었고 1 회와 3 회는 2015 년 8 월북한평양과 1027 년 12 월중국쿤밍에서각각개최됐다. 이대회는남북체육교류협회와북한 4 25 체육단이공동주최하며강원도와경기도연천군이후원한다. 남북한과러시아, 벨라루스, 우즈베키스탄중국등 6 개국에서 8 개침이참가하면남북한에서각각 2 개팀씩참가한다. 271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심과먼작은대회였지만남북관계가순조롭지못했던동안에도상호개최가어려우면중국을비롯한외국에서까지대회개최를이어옴으로써북한체육계인사들과신뢰관계를구축한것이매우중요한역할을하였다고한다 ( 최문순도지사와의인터뷰 2018/08/23). 방북한최문순지사는제 6회대회를춘천에서, 그리고내년 5월원산에서계속개최하기로합의함으로써이대회를지속적인강원도남북협력사업의토대로삼고자한다는것이다 ( 연합뉴스 2018/08/20). 3. 제 3 차정상회담및평양공동선언과강원도 제 3차남북정상회담에서 9 19 평양선언에서언급된사업들은대부분강원도와연관이있다는것이강원도내의정책결정자, 매스미디어및전문가들의해석이다. 3) 평양선언의합의내용은판문점선언에서언급한 1)... 군사적적대관계종식을한반도전지역에서의실질적전쟁위험제거와근본적적대관계해소로이어가는조치, 2) 민족경제를균형적으로발전시키기위한대책, 3) 이산가족문제의근본적해결을위한인도적협력, 4) 기타협력, 5) 비핵화조치, 6) 김정은국무위원장의서울방문등여섯부분으로구성되는데이중정치적의미를갖는 5, 6 번을제외한나머지대부분의합의들이강원도와밀접한연관관계를가질수밖에없다는것이다. 1) 군사위협의해소및전쟁발발방지대책 평양선언의가장큰성과중하나인군사부문합의, 특히 판문점선언군사분야이행합의서, 및남북군사공동위원회의조속한가동을통해이행될조치중가장먼저추진될사업은비무장지대내의시범적남북공동유해발굴사업이며그대상지역으로강원도철원대마리화살마리고지가선정되어이미 10월 1일부터지뢰제거작업이시작되었다. 비무장지대내 GP 6곳을올해안에철수하는방안에도합의하였는데이역시모두철원, 화천, 양구등강원도지역의 GP들이다. 또해상에서는동해의남측속초이북으로부터북측통천이남까지의수역에서포사격및해상기동훈련을중지할것을합의하였다. 또한비무장지대안의역사유적에대한공동조사및발굴사업에도합의하였다 ( 판문점선언이행을위한군사분야합의서참조 ). 전반적으로접경지역에서의육 해 공영역에서군사연습을중지하고서로우발적인무력충돌상황이발생하지않도록대책을취함으로써강원도가접하고있는약 2/3 상당의접경지역전반에서상당한긴장완화효과가나타나게될것임은쉽게예측할수있다. 그동안강원도가접경지역의군사적긴장과규제등다양한불이익을경험한것이사실이라면이번조치들을통해서나타나는그러한병폐들의개선이주는이익의가장큰수혜자가되는것은논리적으로당연한결과인것이다. 그리고그런긴장완화는강원도가그간추진해왔던다양한규제완화조치들의실현을빨리앞당기게될것이다. 예컨대강원도는안보와환경보전등을위해접경지역에적용되어왔던군사, 산림, 환경, 농업분야등다양한규제의해제를원했고민간인통제을 10km에서 5km로, 그리고제한보호구역 3) 272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은 25km에서 15km로축소조정해줄것을요구해왔으며동해안지역에남아있는군철책선 118.4 km의과감한철거를추진하였다 ( 연합뉴스 2018/05/15; 김범수 2014 참조 ). 이조치들은대부분군사적긴장완화를전제조건으로하는것들이며따라서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진행과함께실현가능성이높아지는것은당연하다. 2) 경제분야협력 안보협력못지않게강원도가기대를걸고있는것은북한과의경제협력사업이다. 이것은어려운강원도경제에돌파구를마련할수있는계기가될것이라는기대를담고있고어렵게평창동계올림픽을유치하고성공적으로치러냄으로써한반도평화프로세스가시작되는계기를마련하였다는자부심이기대로전환된측면도있다. 평양선언은판문점선언의연장선상에서, 동 서해선철도및도로연결사업의연내착공식, 개성공단및금강산관광의우선정상화, 서해및동해관광공동특구조성등의문제, 그리고환경협력과산림분야협력의실천적성과, 그리고전염성질병유입방지를비롯한방역및보건 의료분야협력등을명문화하였다. 물론이들사업들도대부분강원도와밀접한연관이있을수밖에없다. (1) 교통망연결사업 동해선연결은경의선, 경원선과함께남북철도연결사업의대표적사업으로인식되어왔으며판문점선언에서도인프라투자의우선추진사업으로지적한바있다 ( 판문점선언문참조 ). 이사업은경의선과함께한반도에서출발하여러시아의 TSR 을거쳐유럽까지이어지는루트를연결하는사업으로인식되어왔으며경원선은금강산관광활성화와밀접히연관된사업이다. 이사업들은 6 15 남북정상회담이후추진되기시작하여노무현정부하에서상당부분추진이된상태이다. 북측은경의선 개성-판문 구간 (15.3 km ) 과동해선 금강산 -감호 구간 (18.5 km ) 을 2009 년에착공하여 2014 년 10월에완공하였으며 2013 년 9월에는 러시아하산- 북한나진 간 ( 약 53km ) 철도를연결하였다. 남측도 2002년 10월경의선 문산 -군사분계선 그간 (12.0km ), 2005년 12월동해선 제진 -군사분계선 (7.0 km ) 구산을완공하였으며 2015 년 8월경의선 백마고지 -월정리 구간 (9.3km ) 을착공하였으나북핵과미사일발사등남북관계의경색으로사업이중단된상태였다 ( 육동한 김재진 2018. 2). 동해 ( 북부 ) 선은 1927 년조선총독부가자원반출을목적으로현재의북측안변과남측의포항구간 (478km ) 건설을추진하였으며 1937년강원도양양구간 ( 안변기점 192.6 km, 남측 122.6 km, 북측 70km ) 까지연장개통이후한국전쟁이전까지운행하였으나한국전쟁이전까지운행되다가 1951 년전면운행중단되었다. 이후북측은 안변-감호 구간을금강산청년선으로운행재개한상태이나남측은 1962 년동해북부선을영동선으로변경한뒤 1967 년속초-양양구간폐지와더불어묵호-강릉구간을제외한나머지구간운행을폐지하였다. 2007 년 5월 17일남북철도운행시범사업으로 제진-감호 273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구간의열차가시범운행하였으나이후중단되었다. 남측의동해선구간중울산-부산구간 (72.1 km ) 은이미완공되었고포항-삼척구간 (165.8 km ) 은 2019 년완공예정이므로나머지강릉-제진구간 (104.6 km ) 만연결되면 4) 북측철도 (800 km ) 및 TSR 과의연결이가능해진다. 5) 정부는 2016 년 6월제 3차국가철도망구축계획을수립하면서강릉-제진구간사업을신규사업으로반영하였지만강원도에서는이를좀더앞당기기위해 70 년침묵을깨는침목, 동해북부선연결추진위원회 ( 위원장정세현, 이철, 김미화 ) 를설치하고자발적인침목기부운동을전개하고있다 ( 육동한 김재진 2018, 3; 강원도민일보 2018/09/11). 동해선연결은 TSR-TKR 연결수송루트중화물의환적횟수와통관절차측면에서가장경제적인방안이며특히북한이추진하는원산국제관광특구와원산-함흥-김책-청진공업지구및나진-선봉경제특구등을지난다는이점을보유하고있고러시아의적극적인북측철도현대화사업추진과맞물려실현가능성이높은노선이다. 문재인대통령은 2017 년 9월러시아블라디보스토크에서열린 제 3차동방경제포럼 기조연설에서러시아와한국사이에 9개의다리 (9 Bridge) 를언급하면서한 러간철도협력방안을제안하였으며 2018 년의광복절경축사에서는남북한과주변 4강을포함하는동북아철도공동체를제시하기도하는등정권출범과함께내놓았던한반도신경제지도구상을철도사업등을통해서구체화하고자하였다. 이와함께강원도는고성에서원산으로이어지는국도 7호선연결사업과현재대구에서춘천까지만연결되어있는중앙고속도로를철원까지연장하는방안등을계속추진하고있는데특히중앙고속도로연장사업은북측의 평양-원산고속도로 와중국연결을통한한반도내륙종단교통 물류축형성의핵심사업으로인식된다. (2) 철원평화산업단지 철원평화산업단지와관련한아이디어는 2006년입안된철원평화시건설기본구상에서시작되었다 ( 김범수 김인중 2013 참조 ). 이는이듬해철원평화산업단지개발구상으로, 2012년에는철원평화산업단지시범단지개발및관리운영방안에대한구상등으로진화해갔다. 철원평화산단은남측에서공단을조성하고북측인력이남쪽으로출퇴근하는방식의산단이며이는개성공단운영방식의한계를보완하는개념으로착안된것이다. 여기에는섬유, 농식품가공, 농기계, 화학 ( 비료 ), 관광, 물류유통, 바이오, 신소재등첨단산업을유치한다는것이며통일부와강원도그리고철원군이공동주체가되어추진한다는것이다. 4) 총사업비 2 조 3490 억원. 5) 말하자면동해선연결은북측선로에대한조사및보강작업등이필요하기는하겠지만사실상남측에서진행해야할사업인것이다. 274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3) 동해안특별관광지구구상 동해안특별관광지구구상은새로운아이디어는아니며이미설악-금강연계관광의형태로 1980 년대부터산발적으로논의되어온것이다 ( 염돈민 2000 참조 ). 하지만북한이 2014 년도부터김정은위원장의사실상의고향이라고할수있는원산 갈마지구를원산관광특구로지정하고대형관광리조트를건설하는프로젝트를진행중임이알려지면서더욱탄력을받게되었다 ( 연합뉴스 2018/06/27). 원산지역에는 4km길이모래사장 ( 명사십리 ) 과 2015 년완공된현대식갈마국제공항, 마식령스키장 6) 그리고북한에서드물게발달된도시기반시설등해안관광지구를건설하기에매우유리한조건들을갖추고있으며따라서호텔, 해변, 공개무대, 국가문화체험구역등을조성한다는것이다. 김정은위원장은 2018 년신년사에서그건설을최단기간내에완공하라고지시하였으며 2018 년 9월까지완공을목표로공사를진행하였으나아직완공소식은들려오지않고있다. 동해안특별관광지구구상은북측의금강권과원산-갈마지구그리고남측의설악권과동해안관광지구들을유기적으로연계하되양양과갈마공항그리고속초와원산을잇는하늘길과뱃길을여는작업과함께진행한다는것이다. 이사업은현정부의신한반도경제지도구상의한축이면서통일경제특구를지정해본격적으로추진할필요가있다는것이다. 3) 인도적협력및기타협력 (1) 이산가족상설면회소조속개설 이산가족상설면회소설치는이산가족 1세대의고령화와사망이빨리진행되고있어인도적사업중가장먼저추진되어야할사업이다. 1차남북정상회담직후한매체가개성, 철원, 그리고금강산등세곳에상설면회소설치에남북이합의한것으로보도했다가통일부가사실이아님을확인한이후로상설면회소는금강산이유일한대안인상태이며평양정상회담에서이상설면회소조속개설에남북이합의함으로써금강산관광재개와함께강원도, 특히고성군민들에게는지난 10년금강산관광중단이후겪었던고통들을만회할수있는커다란계기로받아들여지고있다 ( 김기석외, 2018; 강원도민일보 2018/09/22 참조 ). (2) 2032 년하계올림픽남북공동개최유치 스포츠교류는남북이지속적으로추진해온비정치적신뢰구축의가장중요한방안중하나였으며평창동계올림픽을통하여그진가가증명된사항이다. 따라서평양공동선언은 2020 년하계올림픽을비롯한국제경기들에공동으로적극진출하며 2032 년하계올림픽의남북공동개최를유치하는데 6) 마식령스키장과갈마비행장은평창동계올림픽당시남북스키선수들이갈마비행장을통해서왕래하면서마식령스키장에서공동훈련을실시함으로써외부에비교적소상히알려지게되었으며전체적인시설과운영면에서국제적활용이가능한것으로판명된바있다 ( 허핑턴포스트 2018/01/23). 275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협력하기로합의하였다 ( 평양공동선언문 ). 문제는강원도가 평창올림픽시설사후활용도를높이고스포츠를통한남북교류와화합을이어가기위한방안 이라는명분하에 2021 년아시안게임의남북공동유치를추진하고있다는점이다. 최문순지사는지난동계올림픽기간중그런구상을밝힌바있고 ( 한겨레신문 2018/02/18) 이후로도기회있을때마다강조하고있으며 8월북한방문시와 2차정상회담시재방북해서도그에대해북한의당국자들과논의한것으로알려졌다. 최지사에의하면김영대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대표와의회의에서제안하자그정도문제는김정은위원장의결심이필요하므로논의를해보겠다고대답하였다고한다 ( 최문순지사와의인터뷰 ). 2차회담시에는공식화된문서로정식제안을하였다 ( 연합뉴스 2018/09/18). 평양선언에서남북정부가공동추진에합의한 2032 년하계올림픽공동유치가강원도가추진중인 2021 년동계아시안게임공동유치에어떤영향을미칠것인가에대해서는논란이있다. 긍정적견해는동계아시안게임의공동유치가성사될경우대회의공동개최를위한남북간협력의과정에다양한긍정적효과가만들어지게될것이며이것은 2032 년의공동개최를위한토대가될수있다는생각과정부의하계올림픽공동개최추진결정으로동계아시안게임공동유치가빛이바랬다는부정적견해이다. (3) 철원궁예궁성발굴및복원사업 철원궁예궁성발굴및복원사업에대한제안은과거에도몇차례있었지만실현되지는못했었고특히 2015년에는국회외교통일위원회가발굴사업을적극적으로검토하겠다고밝히기도하였다 ( 연합뉴스 2015/11/03). 남북관계가매우경색되어있는상황에서도남북이공유하고있는역사를토대로비정치적인접근을통해서관계개선을모색할수있는좋은소재로생각하였던것이다. 궁예궁성은군사분계선이도성을가로로양분하고경원선철도가이를세로로갈라놓는등 DMZ 내에갖혀서점차파괴되어가고있을뿐아니라남북이반씩나누어맡고있는셈이어서곳곳에지뢰가매설돼출입이엄격히통제되고있다. 말하자면군사적조치들을취하여사업의수행이가능한상태를만든후에공동발굴및복원을추진하지않을수없는것이다. 이러한특수성때문에남북간군사적신뢰관계가전제되지않으면사실상추진이어려운사업이었던것이다. IV. 강원도의장기구상 1. 강원평화특별자치도구상 강원도가장기적구상으로가장공들인것은강원평화특별자치도구상이다. 이는 2006 년제주특별 276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자치도가, 그리고 2012 년세종특별자치시가출범하여성공적으로정착하면서강원도역시특별자치도지위를부여받아통일에대비한발전전략을추진할필요가있다는인식하에강원도의회를중심으로논의하기시작하였고 2010 년지방선거에서당시한나라당의이계진후보가공약으로제시하면서구체화되기시작한것이다. 2012 년대통령선거에서도, 2017 년대통령선거에서도문재인후보가공약으로제시하였으며지방분권의추진경향과맞물리면서강원도가공들여추진하는사업인것이다. 평화특별자치도구상은강원도가군사안보를제외한남북관계에대해자율권을갖는것이기본이다. 말하자면강원도가자율적으로문화, 스포츠, 인도적교류등을해나가겠다는것이다 ( 최호열 2018). 그리고그런남북강원도의협력을통해서점진적통일모델을정립하고, 국가지방분권모델의확장성을강화하며강원도신성장동력의추진모델을정립하고평화 생태환경보전을위한다양한방안들을수립, 시행해나가자는것이다. 이중특히남북으로분단된강원도의특성을살려농업, 해양, 신산업, 에너지, 관광, 물류, 생태보전등다양한협력사업들을추진해나감은물론고성에서평화통일특별자치군의실험을통해남북일제의통일경험을축적해보자는사업도제안하고있다 ( 김주원 2011). 말하자면현재남북으로분단된고성군을남북일제가적용되는특별자치군으로지정하여남북과 UN 합의하에자치권을인정하고장기적으로홍콩과유사한준국가적기능을부여하며무비자왕래를통한관광등자유로운경제활동을보장하면서특구내에경제교류차원의 남북공동시장 을개설하여운영해보자는것이다. 그리고북방문화교류센터를개설하여공연장, 음식점등남북교류차원의사업들을시범적으로운영해보면서궁극적으로남북고성지역을금융, 관광, 식품산업, 카지노등을포함하는국제도시로발전시켜보자는것이다. 강원도는 2017 년 9월부터특별법기본방안을마련하고하고이를 10월에 강원평화특별자치도설치와평화통일특별자치구지정등에관한특별법안 으로최종마련하여국회에상정할예정이다 ( 강원도민일보 2018/10/09). 법안은정부직할로 18개시 군에강원평화특별자치도를설치하고국가특별지원을비롯한조직 재정특례, 특별회계계정및발전기금을설치하도록했다. 특히통일부장관이평화통일특별지구를지정, 내 외국인투자기업에대한지원 특례를부여하고입주기업에대해세제 자금지원, 기반시설에대한우선지원, 남북협력기금융자등을지원할수있도록했다. 평화통일특별지구는남북한경제협력공간으로지구기본계획은 5년마다수립된다. 지구입주기업직원또는북한주민등에대해서는왕래와교역절차간소화및면제특례를부여하는안도담았다. 평화통일특별지구는설악 ~ 금강국제자유관광지대등남북접경지역간경제관광벨트로조성하고북한이중점개발하고있는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와직접연결하려는것이다. V. 맺는말 2018 년강원도대표단으로평양을방문한인사들은물론 3 차남북정상회담을위해방북했던대부 277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분의인사들이공통적으로지적하는것은북한이이미비핵화와경제발전노선을향한방향성에서돌아올수없는루비콘강을건넜으며평양의곳곳에서그런변화를감지할수있었다는것이다. 이같은방북인사들의관찰은사실그다지새로울것이없다. 단지그들을통해확인했을뿐이다. 분단의아픔과피해를고스란히떠안아온강원도의입장에서는만약그것이사실이었다면남북화해와평화국면에서는가장큰수혜자가되어야한다. 평양선언이의미하는사실상의종전선언이사실이라면군사적대결의최전선에서그폐해를가장많이감내해온강원도와도민들은긴장완화와전쟁위협의감소가가져오는실질적혜택을가장많이볼수있어야하는것이자연스럽다. 실제강원도내에서는그런기대가커지는것도사실이다. 위에서살펴본바와같이강원도는지자체차원의남북교류협력사업에서주도적역할을하였고이번국면에서도그런역할을추구하고있다. 하지만강원도민들은과연강원도가정말로한반도평화국면의가장큰수혜자가될수있을지반신반의하고있다. 그것은강원도가가진정치력과경제력이매우왜소한상태이기때문이다. 강원도는현재국회의원이겨우 8명에불과하며민주당의비례대표중한사람이강원도출신이기때문에 9명을보유한것이전부다. 도세는인구와경제력모두전국의 3퍼센트수준을밑도는실정이다. 강원도가남북경제협력을통해서강원도경제의활성화를추구하지만그러기에는역내의실정이너무열악하여과연원하는목표를이룰수있을지에대해우려하는목소리도적지않다. 현재의최문순도지사는 MBC 사장시절부터 2008 년뉴욕필하모닉오케스트라평양공연을실현시키는등의과정을통해서북한과의인적네트워크를가지고있었고평창동계올림픽과정에서그것을부활시켰을뿐아니라아리유소년축구대회를마련하여이를지속적으로개최해오는등개인적인인적네트워크가작동하여 4 27 판문점회담이후최초의북한방문을성사시킬수있었다 ( 최문순지사인터뷰 2018/09). 물론여기에 1990 년대말부터강원도가심혈을기울여추진해왔던지자체수준의남북교류협력사업의경험과인적네크워크가상당히긍정적인역할을하였던것으로보인다. 하지만전체적으로강원도가빠르고대규모로전개되는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진행상황속에서뭔가자신의역할과몫을찾아가는과정은무엇보다국내정치적과정속에서상당한경쟁과협력의전략적노력을기울여나갈필요가있다. 비록가장선도적으로사업을추진하는데는성공적이었을지모르나그것을실질적인성과로이어나가는데는언제나적지않은한계를보여왔으며그것은현상황에서도예외가아니다. 무엇보다강원도내에산재하고있는남북협력및통일관련인적자원들을네트워크화하는데관심을가져야한다. 취약한인적, 물적자원을가지고여타지자체들과경쟁하려면효과적으로네트워크를만들고단합된힘으로사업들을추진해나가야한다. 278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참고문헌 강원도. 2010. 남북강원도교류협력 : 10년의발자취 경기도. 2011. 경기도남북교류협력 10년백서 김기석. 2018. 평창동계올림픽과한국외교, 현대일본학회하계학술회의발표논문, 2018년 8월 20 일, 평창알펜시아리조트. 김범수 김인중. 2013. 남북관계와철원평화산단, 정책메모 제 256호 ( 강원발전연구원 ) 안득기. 2007. 남북한교류협력과정에서 NGO 의역할평가, 21세기정치학회보 17집 2호염돈민. 2000. 남북강원의교류협력과설악-금강권연계개발, 대한부동산학회지 제 18권우상호. 2013. 지방자치단체남북협력사업활성화방안 ( 국정감사정책자료집 ) 육동한 김재진. 2018. 통일및북방시대 국가미래선도사업 : 동해선철도 강릉-제진 복원 정책메모 2018-26 호 ( 강원연구원 ) 전영옥, 김연근. 2017. 지방자치단체남북교류협력의변화과정에관한연구 : 다차원적분석모형을적용하여, 한국자치행정학회보 제 31권제 2호 ( 여름 ) 정주리. 2011. 강원도남북교류협력현황분석및발전방안모색, 한국행정과정책연구 제 9권제 1호 (6월) 최대석. 2009. 지방자치단체대북교류 10년백서 ( 통일부 ) 한반도의평화와번영, 통일을위한판문점선언 2018 년 4월 27일 평양공동선언 2018 년 9월 19일 판문점선언이행을위한군사분야합의서, 2018 년 9월 19일 279

북한개발협력과남북대학교류 정구연 ( 강원대학교 ) 자료집별도

제 2 회의 [ 기획패널 5] 평화 번영을위한남북교류와인도지원과제 사회 : 이주철 (KBS 남북교류협력팀 )

남북보건의료협력사업의 과거, 현재, 미래 엄주현 (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남북보건의료협력사업의과거, 현재, 미래 엄주현 (( 사 )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 I. 서론 1995년 8월, 북한 ( 조선 ) 1) 은공식적으로유엔에인도적지원을요청하였다. 김일성주석이사망한지 1년만이었고동유럽사회주의체제붕괴가시작된지 6년만이었다. 원조란 침략을위한방패이며예속과약탈을위한수단 이라며 이의본질을똑똑히알고배격해야한다. 2) 고주장하던북한 ( 조선 ) 이국제사회를향해원조를요청한것이다. 이는당시북한 ( 조선 ) 상황의심각성을나타낸것이자북한 ( 조선 ) 식사회주의체제의한계를드러낸것이라고할수있다. 북한 ( 조선 ) 은이미 1994년부터 고난의행군 으로명명한비상체제를가동하였고 1997년까지계속되었다. 이후 1999년말에고난의행군이 구보의행군 으로완화되었다고밝히고있다. 3) 유엔에서는북한 ( 조선 ) 수해지역의기초조사를위해 1995년 8월 29일부터 9월 9일까지유엔인도지원조정국 (UNOHCA) 의재해평가및긴급조정팀 (UNDAC) 이파견되었고 9월 12일유엔기구공동명의로국제사회에대북지원을호소하였다. 이를계기로대표적인국제기구들이평양에상주사무실을개설해인도적대북사업을추진하였다. 세계식량계획 (WFP) 가 1995년, 유엔아동기금 (UNICEF) 이 1996년, 세계보건기구 (WHO) 및세계식량농업기구 (FAO) 가 1997년에상주하기시작하였다. 4) 1995년 10월, 한국정부는쌀 15만톤 (1,854억원 ) 을북한 ( 조선 ) 에제공하였고민간단체차원에서도 2억원의물자를지원하였다. 5) 이는 1984년한국의태풍피해때북한 ( 조선 ) 의지원을수용한지 10여년만에역으로한국의대북인도적지원이시작된것이다. 6) 본논문에서는대북사업중보건의료사업을중심으로살펴볼것이다. 하지만우전 1995년부터 2016년 2월개성공단폐쇄로남북교류협력 7) 이완전히중단되었던 20여년의역사를정리 1) 한국에서북괴, 북한, 북측, 북녘등다양한명칭으로부르는 38 선이북지역의공식명칭은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이를줄여조선이라한다. 2018 년 3 차례의남북정상회담과종전선언및향후평화체제를논의하는현과도기적상황에서본논문에서는북한과조선을병기해사용한다. 2) 침략과략탈을위한죤슨도당의추악한 대외원조 방안, 로동신문 (1968. 2.12). 3) 박후건, 북한경제의재구성 ( 서울 : 도서출판선인, 2015), 136 쪽. 4) 임상순, 유엔인권메커니즘의관여전략과북한김정은정권의대응전략 - 로동신문과유엔문서분석을중심으로, 북한연구학회보 제 19 권제 1 호, 2015, 172 쪽. 5) 통일부, 남북교류협력동향 09 제 255 호, 2012, 131 쪽. 민간차원의 2 억은담요 8 천매가국제적십자사연맹을통하여기증되었다. 6) 1984 년 9 월 4 일자 로동신문 에는 남조선에서무더기비에의한피해막심 이라는기사를통해처음으로한국의태풍피해를보도했다. 9 월 10 일자에는 남조선인민들을구원하기위한동포애적조치 라며인도적지원을추진할것을알렸고, 9 월 15 일자에북한 ( 조선 ) 적십자회중앙위원회위원장명으로한국적집자사총재에게편지를보내물자지원을제안하였다. 당시전두환정권은이를수락하였고북한 ( 조선 ) 은쌀 5 만석 ( 약 1 만톤 ), 옷감 50 만 m, 시멘트 10 만톤, 의약품등을보내왔다. 7) 남북은체제를달리한분단국가로사용하는언어에도민감하게반응한다. 북한 ( 조선 ) 은공여국과수혜국의개념이명확한 지원 의사용을꺼린다. 남북은 2000 년정상회담이후교류협력이라는표현을많이사용하였 287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할필요가있다. 이역사가곧보건의료사업의역사이기도하기때문이다. 그역사에는새로운시도들과많은시행착오가담겨있다. 과거의현황과평가를보다명확히하여이를토대로현재를진단하고새로운평화체제를준비하는미래를전망하고자한다. Ⅱ. 남북교류협력의역사 20여년의남북교륙협력의역사에서한국은대통령이다섯차례바뀌었고정권이바뀔때마다대북지원을바라보는시각, 방법, 내용등이변화하였다. 더불어지원을받는북한 ( 조선 ) 또한이변화에반응하며가다서다를반복하며어렵게이어갔다. 대북지원을처음시작하며긴급구호에나섰던김영삼정부 (1995~1997) 와 2000년최초의남북정상회담을통해대북지원의확대기반을마련하였던김대중정부 (1998~2002), 김대중정부의대북정책을이어받아교류협력의방법을다양화하고대북지원에서개발협력차원의사업을진행했던노무현정부 (2003~2007) 까지의약 10여년간은많은시행착오를겪으며남북이서로이해하는시기였다. 그뒤를이어집권한이명박 (2008~2012) 및박근혜 (2013~2016) 정부의약 10여년은한순간에남북이대결국면으로전환되며민간단체의교류협력도정치와연동될수밖에없음을확인하는시기였다. 이는남북이분단과전쟁등냉전체제에서자유롭지못한결과이자체제경쟁과북한 ( 조선 ) 붕괴론이여전히상존하고있었다는반증이다. 김대중, 노무현정부를거치면서대북지원이비교적활발했을때에도, 퍼주기, 인민군또는특권층전용 등부정적여론이존재하였고이를설득해야하는역사였다. 1995년부터시작된한국정부및민간단체등의대북지원현황을보면 < 표 1> 과같다. 정부차원 < 표 1> 1995 년부터 2012 년까지정부와민간단체의인도적대북지원현황 무상지원 ( 단위 : 억원 ) 구분 1995 1996 1997 1998 1999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당국차원 1,854 - - - 339 944 684 832 811 949 1,221 2,000 1,432 민간단체기금 - - - - - 34 62 65 81 102 120 134 216 국제기구기금 - 24 240 154 - - 229 243 205 262 19 139 335 소계 1,854 24 240 154 339 978 975 1,140 1,097 1,313 1,360 2,273 1,983 식량 ( 쌀 ) 차관 - - - - - 1,057-1,510 1,510 1,359 1,787-1,505 계 1,854 24 240 154 339 2,035 975 2,650 2,607 2,672 3,147 2,273 3,488 민간차원 ( 무상 ) 2 12 182 275 223 386 782 578 766 1,558 780 709 909 총액 1,856 36 422 429 562 2,421 1,757 3,228 3,373 4,231 3,926 2,982 4,397 ( 전체총액 / 비율 ) 2,314(7.04%) 8,397(25.55%) 18,909(57.53%) 구분 2008 2009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2016 2017 합계정부무당국차원 - - 183 - - - - - - - 11,249 상민간단체기금 241 77 21 - - - - 23 1-1,177 다. 이에본논문에는교류협력을주로사용하였고대북지원, 협력사업, 개발협력등을시기와문맥에맞게적절히활용하였다. 288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지 국제기구기금 197 217-65 23 133 141 117 - - 2,743 차 원 소계 438 294 204 65 23 133 141 140 1-15,169 원이러 식량 ( 쌀 ) 차관 - - - - - - - - - - 8,728 계 438 294 204 65 23 133 141 140 1-23,897 민간차원 ( 무상 ) 726 377 201 131 118 51 54 114 28 10 8,972 총액 1,164 671 405 196 141 183 195 254 29 10 32,869 ( 전체총액 / 비율 ) 2,577(7.84%) 671(2.04%) 100% < 출처 > 통일부통계자료 : 총액의경우반올림하여집계. 이에금액에차이가있을수있음. 김영삼정부 3년동안의현황을보면당국차원에서 1995년 1,854억상당의쌀을지원한이후 1996년과 1997년은국제기구를통한지원만추진하였다. 북한 ( 조선 ) 의상황이가장어려울때였으나최소한의지원에그친것으로조문파동의여파와강릉무장공비잠수함침투사건, 북한 ( 조선 ) 붕괴론등에따른정치적판단에근거한것이었다. 하지만정부의입장과는달리한국의시민사회는대북지원을위해발빠르게움직였다. 그러나당시의 남북교류협력에관한법률 은기업간교역을상정한것으로무상지원에대한규정이마련되어있지않았다. 이에정부는국제적십자사연맹 (IFRC) 을통한대북지원허용조치를발표하였으나동시에모금자제요청을하면서쌀및현금지원, 기업체 언론사참여, 불특정다수대상모금활동등을제한하였다. 이러한영향으로김영삼정부때에는민간단체의대북지원이본격화하지못하였다. 8) 1997년, 시민사회의지원품목확대및창구다원화에대한요구가강해지면서정부는 3월민간차원의대북지원확대조치를발표하였다. 이발표로지원품목확대와기업들의참여가허용되었다. 또한민간단체들의성금기탁이증대되면서대한적십자사는 4월대북지원과관련한협의를위한접촉을북에제의했고, 5월 남북적십자사이의구호물자전달절차에관한합의서 가채택되어국제적십자사연맹을통한간접지원에서대한적십자사를통한남북직접전달방식으로전환되었다. 9) 1997년 6월부터 1998년 12월까지대한적십자사를통한지원규모는 < 표 2> 와같다. < 표 2> 민간차원의대북지원현황 기간 지원규모 ( 원 ) 지원내역 1997.6~7 75억7 천만 옥수수, 밀가루, 비료, 라면. 1997.8~10 81억 옥수수, 수수, 분유, 감자, 밀가루, 이유식, 식용유, 어린이영양제. 1998.3 2억8천만 비료. 1998.4~6 130억9천45만 옥수수, 밀가루, 식용유, 분유, 비료, 소금, 쌀, 씨감자, 양말, 한우, 비닐, 초콜릿, 구급차, 의약품. 1998.9~12 141억6천2백만 옥수수, 한우, 밀가루, 쌀, 분유, 설탕, 젖소, 비닐, 유리, 식용유, 의류, 엑스레이, 의약품. 계 432억2백45만 < 출처 > 통일부, 2000년통일백서. 굵은글씨는저자강조. 1998년김대중정부가출범하면서대한적십자사를통한지원에도변화를가져왔다. 4차에걸 친단계적민간차원대북지원활성화조치는민간단체의대북지원을보다확대하고활용하기 위한방안으로대북포용정책이본격적으로추진된것이었다. 8)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등, 대북지원 10 년백서 ( 서울 : 도서출판늘품, 2005), 41 쪽. 9)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2012 년북한보건의료연차보고서 ( 서울 : 앤드, 2012), 185 쪽. 289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 민간차원대북지원활성화조치내용 > 1998. 3.18 : 민간차원대북지원활성화조치 - 대북지원협의및분배확인목적의방북허용 - 협력사업방식의대북지원허용 - 언론사 / 개별기업체의협찬 후원및이벤트모금행사지원 1998. 9.18 : 한적을통한민간단체개별지원시범적허용 - 민간단체가대북협의물품구입 운송 모니터링등의직접담당 1999. 2.10 : 민간차원대북지원창구다원화조치 - 준법성, 전문성, 분배투명성등요건이확보된단체에독자적인대북지원창구로허용 - 기타단체및개인은대한적십자사창구를통해지원 1999. 10.21 : 민간대북지원단체에대한재정지원방침발표 - 보건의료, 취약계층, 농업생산성향상지원을위해남북협력기금지원기준마련 < 출처 > 통일부, 2000년통일백서. 이조치는대북지원의질적변화를가져왔는데우선민간단체는북한 ( 조선 ) 기관과의협상, 물자지원, 이후현장방문등을직접추진하며독자창구를마련할수있었다. 10) 두번째는 인도적대북지원사업처리에관한규정 을제정해민간단체에남북협력기금을지원할수있게되면서그동안의긴급구호성지원에서개발지원으로전환하는계기가되었다. 세번째는북한 ( 조선 ) 의어려움이단기적으로해결할수없다는판단과정부기금의확대로대북사업을전문으로하는사단법인들이많이창립하였고각단체의특성에맞는장기적인사업을고민하기시작하였다. 대북지원은크게일반구호, 농업개발, 보건의료사업으로분류되어추진되었는데규모가큰단체의경우위 3가지사업을모두추진하기도하였고각각의분야를특화해전문화하는단체들도생겼다. < 표 3> 은 2000년부터민간단체의개별사업에기금을집행한내역으로김대중정부마지막해인 2003년까지지속적으로기금이확대되는것을확인할수있다. < 표 3> 민간단체개발사업기금집행내역 구분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집행액 ( 억원 ) 33.79 38.43 54.48 75.47 88.28 77.78 80.76 123.99 97.77 48.04 사업수 8 16 16 16 25 30 47 44 40 15 < 출처 > 통일부, 2000 2012년통일백서 및 2008 남북협력기금백서. 이기조는노무현정부까지이어져 2007년에가장많은기금이집행되었다. 이개별사업기금은 2008년이명박정부첫해까지유지되다가중단되었고 2009년에집행된것은 2008년에집행하지못한이월금이추진된결과이다. 노무현정부는전체대북지원규모의 50% 이상을차지할정도로가장활발하게교류협력을진행하였으며다양한시도를진행하였다. 10) 1999 년에는 10 개, 2000 년 12 개, 2001 년 19 개, 2002 년 25 개, 2003 년 29 개, 2004 년 33 개, 2005 년 43 개, 2006 년 58 개의민간단체가독자창구가되어직접대북사업을추진하였다. 290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남북협력기금으로 1개의민간단체가 1년동안진행하는개별사업뿐아니라합동사업, 정책사업, 영유아지원사업등의명목으로정부기금이지원되었다. 합동사업은 3개이상의민간단체가컨소시엄을구성해중장기적인개발지원사업을진행하는것으로 2004년룡천재해와대북지원 10년의경험을통해북한 ( 조선 ) 의자립및자활능력제고를위해 2005년부터추진되었다. 하지만사업내용면에서개별사업과크게다르지않았고이명박정부가들어서면서기금사업이중단되었다. 이합동사업은북한 ( 조선 ) 이 2005년부터평양에상주해사업을추진하고있던국제기구및국제단체들에단순한인도적지원을중단하고개발사업으로의전환을요구하며나름의변화를모색했던시기와연동되어있다. 11) 정책사업은정책적으로일관성및파급효과가큰개발협력사업으로개별및합동사업과같이매칭펀드가아닌민간단체에사업비전액을지원하는것으로 2007년부터시행했다. 더불어영유아지원사업도결정되었는데, 이는 2005년 3월, 북한 ( 조선 ) 영유아와임산부의영양개선, 질병관리, 건강관리등을위한 5개년중장기사업으로한국정부, 국제기구, 민간단체, 전문가등이종합계획안을수립해추진하였다. 하지만 영유아 개념및지원에대한북한 ( 조선 ) 의반발과평양이외지역요청등으로진전을이루지못하다가 2년간의협상끝에 2007년어렵게합의되었다. 이러한다양한시도는 10년동안민간단체가맺은북한 ( 조선 ) 당국과의신뢰를바탕으로한국정부와관련전문가들이국제기구와같이장기적계획하에사업을추진하고자하는변화의모색과정이었다. 2007년에는남북정상회담을통해 10.4선언 이발표되었고 12월에는그후속조치로보건당국간에보건의료합의서가채결되었다. 합의서에는 2008년부터사리원인민병원현대화사업, 약솜공장착수, 전염병통제공동사업, 제약공장사업등이포함되어있다. 12) 하지만 2008년새정부가들어서면서교류협력은완전히새로운상황에놓이게되었다. 이명박정부가집권한 2008년부터정부차원의무상지원과식량 ( 쌀 ) 차관이전면중단되었다. 또한 2009년에는민간단체의기금사업도추진되지않았다. 이러한상황은집권 5년동안민간단체차원에서자체기금으로추진되었던대북사업도노무현정부마지막해인 2007년 909억원과비교하여 118억원으로약 1/9로축소되었다. 이는전체대북지원금액에서김영삼정부가 3년동안지원한 7.04% 와비슷한 7.84% 에그치는지표이다. 2008년이명박정부가집권한첫해부터금강산관광객피격사건, 2009년제2차핵실험, 2010년천안함사태, 연평도포격사건까지당국간경색을가져올수밖에없는사태들이끊이지않았고, 천안함사태이후취해진 5.24 조치 13) 로민간단체의대북지원은 1/3로줄어들었고그지원액수의감소는 2012년집권마지막해까지이어졌다. 대북사업을줄이기위한조짐은집권첫해부터나타났는데개발협력에바탕을둔의료장비및생산설비등의지원을막을방안이모색되었고 2009년부터는민간단체의물자반출승인요청에대해선별승인을시작하였다. 11) 펠릭스아브트, 임상순 권원순옮김, 평양자본주의 - 스위스사업가의평양생활 7 년 ( 서울 : 한국외국어대학교지식출판원, 2015), 132 쪽. 12) 통일부, 2008 년통일백서 ( 서울 : 통일부. 2008), 98 쪽. 13) 천안함사태대북조치발표문 (2010.5.24.) : 첫째북한선박의우리해역운항전면불허. 둘째남북교역중단. 셋째우리국민의방북불허. 넷째북한에대한신규투자불허. 다섯째대북지원사업은원칙적으로보류. 291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 표 4> 2006년 ~2012년민간차원의대북인도적지원현황 연도 지원횟수 지원규모 미승인건수 미승인규모 2006 962회 709억원 - - 2007 1,079회 909억원 - - 2008 778회 725억원 - - 2009 378회 377억원 21건 32억원 2010 221회 200억원 36건 64억원 2011.7 30회 29억원 10건 11억원 < 출처 > 2011년국정감사, 구상찬새누리당의원요청자료. 미승인물자를보면연탄, 건축자재, 안경테등이불허되었으며, 협동농장에지원예정이던비료, 농자재, 비닐, 종자등이불허되었다. 또한병원지원물자중에는의료장비, 건축자재, 트럭 버스등차량, 치과장비등이승인되지않았다. 2010년에는 5.24 조치 로인해미승인건수는더욱늘어나게되는데, 미승인물자내역도더크게확대되었다. 이는 5.24 조치 이후평양사업장으로물자가승인되지않았기때문이다. 당시한국의민간단체들대부분은평양에서사업을추진하였기때문에이는큰타격이었다. 이러한기조는 2012년 1월까지유지되다가 2월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가협력사업을추지하고있던평양의 < 만경대어린이종합병원 > 에엑스레이와의약품등이승인되면서보건의료사업의길이열리게되었다. 하지만물자를보낸이후기술이전을위한평양현지방문에대한요청을북한 ( 조선 ) 에서반응하지않아이명박정부마지막해까지사업을정상적으로추진할수없었다. 북한 ( 조선 ) 이반응을하지않은것은 2011년 12월김정일위원장사망이후김정은위원장이새롭게집권하면서대남사업에대한변화가있었던것으로보이며 2013년한국의새로운정부의대북정책을보면서대응하기위한것이었다고파악된다. 2013년 2월 25일, 박근혜정부가출범했다. 남북교류협력사업이정상적으로추진되지못했던 5년의세월속에서새정부를맞는민간단체와관련전문가들은기대가남달랐다. 많은대북전문가들은박근혜정부의대북정책이이전정부와는달리전향적태도를보일것이라고전망을하였다. 하지만북한 ( 조선 ) 은박근혜정부출범직전인 2013년 2월 12일축포라도쏘듯이 3차핵실험단행하였고이에맞서한미는핵잠수함등이등장하는유례없이강력한연합군사훈련을전개하였다. 또한북한 ( 조선 ) 은개성공단종업원철수담화를발표하였고한국은개성공단잔류인원을전원귀환하게하는등남북당국간의힘겨루기로시작하였다. 그러한가운데 2013년 7월, 통일부장관은개성공단및인도적지원관련성명을발표하면서, 개성공단의발전적정상화를위한북측의재발방지보장을촉구하면서회담을제의 하였고더불어 정치적문제와는별개로북의영유아등취약계층에대한인도적지원을추진하겠다. 며 5개민간단체의물자승인과국제기구인 UNICEF에영유아사업에대한지원을 언급했다. 14) 위 5개단체에본저자의소속단체가들어있었고 7월물자북송이후 8월평양현지를방문하였다. 평양방문은 2010년 5.24조치이후 3년 3개월만에성사된것이었다. 하지만반출된 14) 정부, 개성공단실무회담제안, 민간대북지원승인, 통일뉴스 (2013. 7.28). 292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물자대부분은영양식, 기초의약품등긴급구호성물자에한정되어있었고수혜대상역시영유아등취약계층에맞춰져있는등한계는분명하였다. 이러한한계는 < 표 1> 의통계에도나타나는데이명박정부마지막해인 2012년민간차원의무상지원은 118억원이었고박근혜정부첫해인 2013년엔 51억원에그친것이다. 즉 1/2 수준으로하락한것이다. 다만국제기구를통한지원은 23억원에서 133억원으로 6배가까이늘어박근혜정부는국제기구를통한지원에큰관심이있었음을잘보여주고있다. 2014년 3월 28일, 독일드레스덴에서박근혜정부의대북정책기조가발표되었다. 드레스덴선언은 인도적문제해결 공동번영위한민생인프라공동구축 동질성회복등 3가지큰방향을제시했고, 인도적문제해결과관련해이산가족상봉의정례화와유엔과함께임신부터 2세까지산모와유아에게영양과보건을지원하는 ' 모자패키지사업 ' 을펼치겠다고밝혔다. 이선언의구체적실천을담당하는기구로대통령직속의 ' 통일준비위원회 ' 를발족하기도하였다. 하지만북한 ( 조선 ) 은 남측당국이그누구의 고통 이니, 배고품 이니, 취약계층 지원이니하면서우리를심히자극하고있다 며 불순한목적에순수한인도주의협력사업이롱락되여서는안된다 라며한국에서보내오는물자를받지않을것이고일방적으로보내는물자는퇴송시킬것이라고알려왔다. 15) 박근혜정부와는교류협력을하지않겠다는선언이었다. 북한 ( 조선 ) 은박근혜정부의대북정책을예의주시하며기다렸고, 드레스덴선언을통해대북정책기조가북한 ( 조선 ) 을헐벗고굶주림의상대로상정하고흡수통일의대상이라고인식한다고평가한것이다. 실제로국방위원회는 4월 12일대변인담화를통해 " 선언에서밝힌 ' 대북 3대제안 ' 이라는것은북남관계개선과발전과는거리가먼부차적이고사말사적인 ( 자질구레하고중요하지않은 ) 것들뿐 " 이라고거부의사를분명히밝혔다. 16) 이러한가운데박근혜정부는 2014년과 2015년에이명박정부때중단되었던남북협력기금사업을 4년만에재개하였다. 통일부공모사업은농업 ( 온실 ) 축산 ( 낙농 ) 보건의료 ( 진료소 ) 3개분야사업에 30억원을지원하는것으로보건의료및농업분야각 7개사업, 축산분야 3개사업등이선정되었다. 하지만 < 표 1> 에의하면 2014년에는민간단체기금집행이없었는데, 이는 2014년한국정부의 인도적지원 을받지않겠다고공식화한이후북한 ( 조선 ) 의파트너와의협의가어려웠기때문이다. 이로인해선정된단체들은해외동포를통해사업을추진하였다. 2015년에도 30억규모의산림 환경분야의공모사업을추진하여산림분야 4개단체 24억원, 환경분야 3개단체에 6억원을결정하였다. 즉총 60억원의기금이결정된것으로하지만그집행은 2015년에 23억, 2016년에 1억원만이집행되어오랜만에진행된기금사업도정상으로진행되지못했음을보여주고있다. 박근혜정부는 2015년말에의료장비와구급차등을반출승인하였으나그마저도 2016년 2월개성공단이폐쇄되면서교류협력사업은마지막까지정상적으로진행되지못했다. 보수정부 10여년동안북한 ( 조선 ) 의사업파트너들과협의를할수있는민간단체는몇개남지않았고해외동포를낀간접사업이전면화되었다. 인도적지원과모니터링을그렇게강조하던정부가정작한국국적의사람이현장을방문하지못하는원인을제공하였던것이다. 15)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로보내온 4 월 28 일자북측민화협서신. 16) 정부, 대북인도적지원 자충수, 통일뉴스 (2014. 5.20). 293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이로써 1995년김영삼정부당시 1,856억원으로시작되었던대북지원은 2016년박근혜정부에서 29억원으로마감하며남북교류협력은완전히중단되었다. Ⅲ. 남북보건의료협력사업의과거및현재 1995 년부터시작된대북지원분야별세부내역현황은 < 표 5> 와같다. < 표 5> 대북지원의분야별세부내역현황 ( 단위 : 만불 ) 구분 1995 1996 1997 1998 1999 2000 2001 2002 일반구호 (%) 23,225 (100) 455 (99) 4,329 (92) 2,891 (91) 565 (12) 1,435 (13) 6,067 (45) 4,174 (31) 농업복구 5 205 254 3,941 8,562 5,476 7,351 - (%) (1) (4) (8) (84) (75) (40) (54) 보건의료 189 40 182 1,380 1,996 1,967 - - (%) (4) (1) (4) (12) (15) (15) 총계 23,225 460 4,723 3,185 4,688 11,377 13,539 13,492 (100) (100) (100) (100) (100) (100) (100) (100) 구분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12.10 누계 일반구호 6,157 10,472 4,346 11,446 12,858 3,924 1,131 1,765 595 625 96,460 (%) (39) (42) (20) (39) (42) (38) (21) (50) (34) (56) (44) 농업복구 7,673 8,695 13,744 14,081 11,900 743 374 47 83,051 - - (%) (49) (35) (65) (47) (39) (7) (7) (1) (38) 보건의료 1,933 5,624 3,164 4,301 5,703 5,789 3,773 1,716 1,143 496 39,396 (%) (12) (23) (15) (14) (19) (55) (72) (49) (66) (44) (18) 총계 15,763 24,791 21,254 29,828 30,461 10,456 5,278 3,528 1,738 1,121 218,907 (100) (100) (100) (100) (100) (100) (100) (100) (100) (100) (100) < 출처 > 통일부통계자료, 총액의경우반올림하여집계. 이에금액에차이가있을수있음. ( 식량차관제외 ). 일반구호와함께보건의료는인도적지원의필수적항목이다. 특히보건의료사업은아픈사람들을대상한다는점에서설득력이높고후원모금에용이하다. 또한북한 ( 조선 ) 은무료교육과무상치료가인민에대한대표적인시혜정책으로지원을통해서라 도자신들의열악한보건의료체계를복구하는데높은관심을보였다. 북한 ( 조선 ) 의보건의료체계는전형적인사회주의보건의료체계로 1차리 동진료소, 2차군 구 역인민병원, 3차시 도인민병원, 4차평양의조선적십자종합병원등의일원적체계로증상이심 각한환자들이 1차에서 4차의상급병원으로이송되는체계이다. 보건의료사업은 1999년까지전체지원분야중 1~4% 비율을나타내고있고 2000년 12% 로 확대된이후지속적으로확대되는것을확인할수있다. 이는북한 ( 조선 ) 에서처음에는의약품 위주로물자를받다가의약품생산설비와원료의약품지원등을요청해스스로의약품을생산 하고자하는의지가강했고병원현대화사업을추진하면서고가의의료장비들이북송되기시 작하였기때문이다. 294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민간단체들은초기에는 3 4차급병원에의료장비와관련의료용품을지원하였고차츰지역주민과좀더밀착된 1 2차급병원으로접근하기위해노력하였다. 또한관련병원에필요한의료장비와의료기기, 의료용품등을넘어병원현대화사업이라는명목으로병원건물개보수사업을추진하였다. 이는병원들대부분이 1960~70년대건립이되어병원내부시설과상하수도배관, 냉난방시설, 전기설비등이열악해이를개선하지않으면잦은정전으로의료장비가쉽게고장나거나안정적으로운영을할수없었고추운겨울에는환자진료가불가능했기때문이었다. 자금력이있는민간단체의경우아예새롭게병원을건립하기도하였으며병원시설뿐아니라제약공장건설등과같이보건의료인프라구축을추진하기도하였다. 이는 < 표 6> 에서 2000년의료장비의비중이 63.1% 로급격히증가한것에도보여지듯이정부기금집행이시작되면서보건의료사업에인프라확충이진행된것을확인할수있다. < 표 6> 보건의료분야세부내역현황 보건의료 보건의료 ( 단위 : 만불 ) 구분 1995 1996 1997 1998 1999 2000 2001 2002 전염병퇴치 - - 130 (68.8) 13 (32.5) 82 (45.1) 203 (14.7) 74 (3.7) 58 (2.9) 의약품 - - 25 (13.2) 26 (65.0) 75 (41.2) 306 (22.2) 1,584 (79.4) 1,158 (58.9) 의료장비기타 - - 34 (18.0) 1 (2.5) 25 (13.7) 871 (63.1) 338 (16.9) 751 (38.2) 총계 - - 189 (100) 40 (100) 182 (100) 1,380 (100) 1,996 (100) 1,967 (100) 구분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12.10 누계 전염병퇴치 (3.4) 66 82 204 101 312 135 124 1,004 387 (1.5) (6.4) (2.4) (5.5) (2.3) (3.3) (58.5) (33.9) - 2,975 (7.6) 의약품 875 4,010 1,518 1,782 2,033 2,518 2,902 664 749 385 20,610 (45.3) (71.3) (48.0) (41.4) (35.6) (43.5) (76.9) (38.7) (65.5) (77.7) (52.3) 의료장비 992 1,532 1,442 2,418 3,358 3,136 747 48 7 111 15,811 기타 (51.3) (27.2) (45.6) (56.2) (58.9) (54.2) (19.8) (2.8) (0.6) (22.3) (40.1) 총계 1,933 (100) 5,624 (100) 3,164 (100) 4,301 (100) 5,703 (100) 5,789 (100) 3,773 (100) 1,716 (100) 1,143 (100) 496 (100) 39,396 (100) < 출처 > 통일부통계자료, 식량차관제외. 2003년부터는전염병퇴치및의약품지원과같은긴급구호성사업보다의료장비등의인프라구축사업이 40% 이상을차지하였고그기조는이명박정부첫해인 2008년까지이어졌다. 하지만 < 표 5> 를보면 2008년부터보건의료항목이 55% 로비정상적으로확대되는것을볼수있는데이는이명박정부가그동안진행한개발협력사업에필요한장비및시설등의반출을불허했기때문이다. < 표 6> 에서도의료장비비중이줄어들기시작하였고 2009년에는의약품이 76.9%, 의료장비등이 19.8% 로영유아를비롯한취약계층에한정해의약품위주로물자를승인한것이지표로도확인되고있다. 이기조는박근혜정부때까지이어졌다. 남북보건의료협력사업의역사는다른분야의협력사업과비슷한경로를보여주고있고이는정권마다의대북정책에따른결과이다. 2014년 4월, 북한 ( 조선 ) 에서서신을통해한국민간단체가보낸물자를받지않겠다고한이후대다수민간단체들의대북협상파트너였던민족화해협의회 ( 이하민화협 ) 는전혀움직이지않았다. 아니움직일수없었다는것이현실일것이다. 295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2014년 7월에개성에서만난민화협참사들은 6.15 및 10.4선언정신에기반하여추진했던개발협력사업은계속추진할의향이있으나취약계층에한정한긴급구호성지원은받지않겠다. 는점을명확히하였다. 이로써 2014년은북한 ( 조선 ) 이인도적지원거부의사를밝힌해이자한국민간단체가평양에방북하지못한유일한해가되었다. 박근혜정부는이후정부기금사업을재추진하고그동안승인하지않던내시경, 초음파, 구급차등의료장비에대한반출승인을통해변화를시도하였으나북한 ( 조선 ) 은 2016년 1월새해벽두부터 4차핵실험단행및미사일발사등으로긴장감을높였다. 남북교류협력의역사에서 2014년과함께 2016년은중요한변곡점이되는해이다. 북한 ( 조선 ) 은김정은정부출범이후 4년만이자, 1980년제6차당대회이후 36년만에제7 차당대회를개최하였다. 사회주의국가를표방하는북한 ( 조선 ) 에서당대회는그어떠한국가행사보다중요한의미를갖는것으로 36년동안의국내외전분야에대한평가와분석을통해향후계획과청사진을밝히는공간이다. 특히김정은정부들어당대회를개최할수있었다는것은정치, 경제적으로안정성및자신감을확보했다는의미이기도하다. 보건의료와관련하여북한 ( 조선 ) 은총화보고를통해 우리당의주체적보건사상과정책에의해평양산원유선종양연구소, 옥류아동병원, 류경치과병원등현대적인의료기관건설과전국적인먼거리의료봉사체계수립으로인민에대한의료봉사개선 을주요한평가로꼽았다. 17) 2012년김정은집권이후평양에새롭게건설한병원시설들과 WHO와함께추진한먼거리의료봉사체계수립을가장중요하게평가하였다는것은보건부문에서큰성과가없었음을반증하는것이다. 이는보건의료분야의향후추진계획에서평균수명, 전염병예방률등보건지표에서세계수준을목표로개선할것과위생방역기관들의현대화를통해예방의학적방침을관철할것, 의사담당구역제강화및선진기술을통한진단및치료방법을적극수용하여의료봉사질개선, 의학과학기술발전추진, 먼거리의료봉사체계완비와구급의료봉사강화, 제약공장과의료기구공장의현대화를통한의료물자생산보장및군 리인민병원, 진료소들에대한물질적보장등모든보건의료상황개선이망라되어있는것에서확인할수있다. 즉향후보건의료사업은전체적으로정상화를꾀하겠다는의미로볼수있는것이다. 북한 ( 조선 ) 은제7차당대회이후핵문제와북미관계, 제재국면등대외적상황이불안정한것은여전하지만향후상황개선에대한자신감을보이고있다. 특히민화협은한국민간단체등과의사업평가를통해기존의일방적지원이아닌남북이상생, 공영할수있는방향으로의사업추진이결정된것으로보인다. 이는 2017년 2월, 오랜만에중국에서만난민화협인사들의언급에서도확인할수있었다. 민화협인사들은북한 ( 조선 ) 이얼마나변화했는지설명하려고노력하였고이를직접보여주고싶어하는기색이역력하였다. 대북교류협력에서도변화를강조하였는데단순히한국의물자를지원받는방식은지양하고자국내의원료를활용할수있는방안모색을제시하였다. 보건의료사업에서도경협사업, 예를들어제약공장을남북이함께건설해자본과기술을한국에서제공하고원료는북한 ( 조선 ) 의것을활용해의약품을생산하고이를국내외로공급및수출하여남북모두에이익이되는형식을원하고있었다. 하지만 2017년은박근혜대통령의탄핵결정, 문재인정부탄생과함께북한 ( 조선 ) 은핵무력 17) 조선로동당제 7 차대회에서한당중앙위원회사업총화보고, 로동신문 (2016. 5. 8). 296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완성이라는목표하에핵실험과로켓발사를계속하였고결국같은해 11월공화국성명을통해 오늘비로소국가핵무력완성의역사적대업, 로켓강국위업이실현되었음을긍지높이선포한다. 고선언하였다. 18) 북한 ( 조선 ) 의핵무력완성의자랑찬선언은유엔을비롯한국제적으로심각한제재국면에처하게되었고 2018년 1월 1일김정은은신년사를통해남북관계개선의지를밝혔고이글을쓰고있는현재까지 3차례의남북정상회담이개최되는등한반도는이전까지겪지못했던새로운국면을맞고있다. 현재국제적제재로인해민간단체의물자북송이거의어려운상황이다. 문재인정부에서대북교류협력사업이추진되는못하는이유중에하나이다. 북한 ( 조선 ) 은 4월판문점선언과 9월평양선언등으로다양한당국간협의를진행하고있으나제재로인해당국간에합의한사업도속도를내기어려운상황이다. 이러한가운데북한 ( 조선 ) 은 8월대북사업을추진하였던몇개민간단체에협의를제안하였다. 2018년초부터남북당국간협상이진행되면서그동안뒤로밀려있던민간단체와의협상이재개되었다는것은고무적이다. 하지만민화협은명확하게말하고있다. 자신들은이미전략국가가되었고남북이함께평화와번영을위한개발협력과경협사업을추진할것이라고말이다. 향후추진할사업은북에도분명히도움이되어야겠으나남측에도어떠한이익이있는지잘설명해주길바라고있는것이다. 결국 2016년제7차당대회기조와 2017년, 2018년민화협인사들의발언이일맥상통하는것으로 1990년대고난의행군과같은상태가도래하지않는이상북한 ( 조선 ) 의대남교류협력사업의방향은큰변화가없을것으로보인다. 다만, 북민화협도제재국면이쉽게해제될수없음을인식하기시작한것으로보인다. 당국사업조차도제재가빌미가되는상황에서민간단체들중지속적으로사업을추진할수있는의지가있거나능력이있는단체를선별하여 6.15 및 10.4선언당시추진한사업을매개로새로운합의서를맺고있다. 이를통해제재국면을돌파할방안을모색하는것으로보이며선진과학기술등의정보교류나선진기술교육사업을추진할있는인적교류추진을우선적으로진행하여제재완화및해제이후를준비하려는것으로보인다. Ⅳ. 결론을대신하여 : 평가및미래전망 20여년의역사에서남북교류협력의가장큰어려운점은바뀌는정부마다일관된대북정책을추진할수없었다는것이다. 인도적 이라는수식어가붙었으나언제나정치적으로활용될수있었고 10여년간신뢰를쌓아가며긴급구호에서개발협력으로서로논의해진행하던협력과정이순식간에긴급구호성지원으로강요되었으나이를그누구도강제할수없었다. 결국한반도의냉전체제속에서는주는쪽과받는쪽모두가정치적이해가우선으로작용하였고체제를위협하는경계의대상이었던것이다. 대북사업을하던 100여개이상의한국민간단체사업은 2014년을계기로중단되었고해외 18) 새형의대륙간탄도로케트시험발사성공, 로동신문 (2017.11.29). 297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시민권자또는중국동포를우회하는방법을활용하게되었다. 대북지원에서모니터링의강조는당연한것이었으나우회지원은사업을계획하고후원금을모금한한국인은돈만지원하고현지방문을못하면서사진등으로모니터링을대신하는처지에놓이게되었다. 이러한과정을통해현재북한 ( 조선 ) 사업파트너와대북사업을진행할수있는단체는몇개남지않았다. 이에반하여꾸준히사업을추진한국제기구나국제단체들은김정은정권들어서며북한 ( 조선 ) 당국과의신뢰가더욱확고해지는모습이감지되고있다. 첫째로 WHO의경우제7차당대회에서보건의료와관련한평가에서북한 ( 조선 ) 보건성과 WHO가 2007년합의해추진한먼거리의료봉사체계가선정되었다. 이사업은 2008년평양김만유병원과평안북도인민병원, 만경대구역병원을광섬유케이블로연결해 9월 15일첫시험통신을실시하였고 2010년에는김만유병원과전국의 9개도인민병원을연결해전국을대상으로사업을확대하고있다. 19) 두번째로평양에상주하는유엔기구들과북한 ( 조선 ) 당국이맺은 유엔전략계획 2017-2021 에는취약계층에대한인도적지원을우선순위 1위로설정하며투명성확보에더욱협조할것이명시되어있다. 20) 이는 20여년간지속된협력과신뢰구축의성과로자신들의활동을북한 ( 조선 ) 주민들의복지증진을위한당국활동의조력자역할에국한하면서사회개발과지속가능한발전에필요한사업도포함하여북한 ( 조선 ) 당국의요청을충분히고려했기때문이다. 세번째는북한 ( 조선 ) 당국이 UNICEF 등과함께추진한다중지표군락조사 (MICS: Multiple Indicator Cluster Survey) 를 2018년에발표 21) 하였는데조사를하는주민들의개체수도늘었을뿐아니라당기관지인 로동신문 에이보고서발표행사를보도하였다. 22) 물론보도내용에어린이및여성들에대한구체적지표는공개하지않았으나이보고서를발표하는자리를가졌다는사실과이사업이북한 ( 조선 ) 의관련정책작성과국제적인지속개발목표를달성하기위한활동계획실행에큰의미를부여했다는점에서새로운모습이라고할수있다. 국제기구등과같이정권에따라변화하는교류협력이아니라한국에서도 2007년 10.4선언이후맺은남북보건당국의합의가지속적으로추진되고민간단체의대북사업이 10여년동안이어졌다면, 대북사업이북한 ( 조선 ) 정부를비판하는빌미로, 경제의우월성을드러내보이려는정치적천박성이아니라국제기구와같은세련미를발휘했다면현재다른평가를내릴수있다는주장이국제기구등을대하는북한 ( 조선 ) 의변화가보여주고있다. 물론국제사회와북한 ( 조선 ) 의교류협력에서도어려움이없었던것은아니다. 2004년여름북한 ( 조선 ) 은유엔의대북인도적통합지원 (CAP : Consolidated Appeals Proc ess) 의수용을거부하고, 2005년 8월에는자국내활동하는국제기구및국제단체들에게모든인도적지원프로그램을 2006년 1월 1일까지종료하고이후부터는개발지원만받을것임을통보한바있다. 이에대해국제기구등은북한 ( 조선 ) 이원하는개발협력사업, 즉먼거리의료봉사 19)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2015 년북한보건의료연차보고서 ( 서울 : 앤드, 2015), 45 쪽. 20) UN DPRK Office of Resident Coordinator, STRATEGIC FRAMEWORK 2017-2021 for Cooperatino between The United Nations and The DPRK (Pyongyang: UN DPRK Office of Resident Coordinat or, 2017), pp. 11~13. 21) MICS 는아동및여성의건강이나영양상태에대한조사로 UNICEF 를중심으로 WHO, UNFPA 등이협력하여개발한조사방법이다. 해당국가는아동및여성의최신정보를제공하고국제사회의지원이어떤진전을가져왔는지를파악할수있는자료로 MDGs 달성여부를판단하는지표로도사용된다. 북한 ( 조선 ) 은지금까지 7 번의설문조사를실시하였다. 김슬기, 북한영유아의영양실태 : 장기적추세와국제적비교, KDI 북한경제리뷰 2018 년 7 월호, 41 쪽. 22) 2017 년전국다지표조사결과발표회진행, 로동신문 (2018. 6.21). 298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체계와같은사업을추진하며연속성을이어가기위해노력하였다. 북한 ( 조선 ) 과같이해외원조에대해부정적인식을갖고있고체제위협에민감한국가와의사업에서는국제적인보편적원칙과함께수혜국의특수성에대한이해를기초로한사업전략이필요했던것이다. 하지만냉전체제하에서는인도적지원도정치와연동되는것은필연적이었고오히려 5년단임정부에서대북사업에서장기적으로사업을계획한다는자체가얼마나비현실적이었고의욕이앞섰는지를역사가보여주고있다. 하지만현시점에서문재인정부는종전선언을통해평화체제로의수순을밟고있고, 이는남북교류협력에도영향을미칠수밖에없다. 우리의역사와국제기구등의활동을통해다양한체제를인정하며장기적전망을갖고사업을추진할수있는, 즉제도및법적장치수립의환경이조성되었다는것은큰의미가있다. 이를지금어떻게현실화할수있는지깊은고민이필요하다. 지난시기 100여개가넘는민간단체가교류협력사업을추진하면서단체들은몸집을키우기위해경쟁하며북한 ( 조선 ) 의요구를누가더열심히, 더많이진행하느냐에집중한것이사실이다. 규모를키워야협상력을높일수있었고민화협의과도한요청을수행하기위해정부와지자체등의기금을확보하기위해노력하였던것은대북사업의목적을간과하는오류였다. 이러한개별성은북한 ( 조선 ) 보건의료사업에대한기본적목적과이를위한전체적계획수립없이사업을전개하는결과는낳았다. 이는보건의료사업을하면서도북한 ( 조선 ) 보건성과의파트너십이아닌정치조직인민화협과사업을할수밖에없는현실과관계가있으며민간단체가평양중심의사업을전개할수밖에없었고주민과의직접적접촉이제한된것과도연동되는문제이다. 특히의료장비의지원은전기사정이뒷받침되어야하는데당시에는평양에서조차안정된전기가보급되지않았기때문에민화협이요구하는고가의의료장비를지방으로보내는것도한계가있었던것이사실이다. 또한자신들의치부를외국인들보다같은동포에게더보여주기싫은정치적판단은지역적한계성을넘어서지못하게하였으며지원현장인병원에가도환자와의접촉이어려웠고그나마북한 ( 조선 ) 보건의료인과기술이전협의를추진하는것을감지덕지해야하는상황이었다. 하지만최근움직임을보이기시작한민화협은그동안대북사업을전개하였던민간단체모두를상대할생각도여력도없음을명확히하였다. 몇개단체와합의서를채결하면서제재국면완화및해제전까지의임시적합의서이고향후에는남북이상생할수있는개발협력및경협사업을선호하고있음을감추지않았다. 이런상황의변화는향후대북보건의료협력사업에서새로운차원으로접근하는중요한계기가될것으로보인다. 특히보건의료사업은다른사업과마찬가지겠지만장기적이고대규모로추진해야하는사업이다. 그렇기때문에보건의료분야와관련한전체적인개발협력계획을수립해계획에맞춰진행할필요가있으며그시기에맞는역할분담이동시에이뤄져야한다. 이는궁극적으로이는통일비용을줄이기위한방안일수있다. 우선남북보건당국이머리를맞대고향후남북주민들모두에게건강권획득을위한장기적계획을수립하고보건의료협정을맺어야한다. 이에기반하여민간단체와보건의료전문단체, 기업, 정부와의협업체계를구축하고역할분담을통하여한반도전체주민들의건강및보건의료산업발전에공동으로대응할수있는방안이모색되어야할것으로보인다. 299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남북보건의료발전계획을수립함에있어서로의보건의료체계를인정하는것은중요하며특히북한 ( 조선 ) 의보건의료체계와수립한보건의료목표를감안하여사업내용을개발하는것이필요하다. 김정은정부들어북한 ( 조선 ) 은김정일이개척한과학기술을토대로새세기산업혁명인지식경제로사회주의강성국가를이룩하겠다는지침과노선을설정하였고, 이는보건의료분야에서도예외가아니다. 2016년제7차당대회에서의보건의료분야계획과 2018년주력보건의료사업으로꼽은것도모두북당국의목표와연계가되어있는데, 평양에건설된주요보건시설들을모범으로전국단위에서의료봉사및병원관리집중개선, 선진의학기술로보건의료인재교육강화및의학과학연구성과확대, 위생방역기관들의현대화및역할을높여질병발생률저하모색, 제약공장및고려약공장, 의료기구공장의생산활성화와원료 자재의자급화와생산공정에대한자동화및현대화를모색하고있다. 23) 이러한북한 ( 조선 ) 의욕구는보건당국과각보건의료기관간의네트워크연계와의료장비에서소모품이필요없는영상의학시스템구축에관심을보일것이고또한원료와자재의국산화와전체적인보건의료체계의현대화는필연적으로선진의학기술이나정보들의공유가필요한것으로지식공유를위한전문인력들의교류가확대될개연성이높다. 특히제재국면에서인적교류는상대적으로유연성을발휘할수있는부분으로이를잘활용한다면서로의보건의료체계를이해하고향후접목가능한세부사업을모색하는것에큰도움이될것으로보인다. 이러한전문적인적교류가확대되기위해서는남북사업파트너의전문성또한강화되어야하고북한 ( 조선 ) 보건당국과의직접적협의가담보되어야한다. 하지만한국국적의사람이나단체의경우민간경협을담당하는기구로는민경련 ( 민족경제협력연합회 ) 과경제를제외한남북교류협력은민화협이창구역할을하며사업을주도하고있으며이는향후에도큰변화가없을것으로보인다. 특히이들단체들은사실상당의대남사업중심기관인통일전선부의지도를받고있다. 24) 그렇기때문에대북사업을추진하면서도실용성보다는정치적입장이우선되었다. 북한 ( 조선 ) 이원하는공생공영의사업을실행하기위해서는이러한한계가극복될필요가있으며최근당과내각기관이교류협력을바라보는입장에차이를드러내는증언들이많이나타나고있다. 이는김정은정부들어하나의과도기적현상으로볼수있는데내각기관인사의경우자신들의처지에대해솔직히이야기하며인도적지원을적극적으로받으려는움직임을보이는것에반해민화협의경우오히려더욱강성한목소리를내고있다. 최근에만난민화협관계자는해외동포등과사업했던단체들에대한비판과언론을통해자신들의치부를공개한단체들에대해서는좌시하지않겠다는단호한목소리를내며결국한국국적자들의초청장을내주는기관은자신들이라며향후사업을추진할수없을것이라고주장하였다. 즉당및내각기관간에교류협력에대한입장에서차이를보이고있으며기존에추진했던당기관의사업행태에대한비판도존재하고있음이분명하다. 그럼에도불구하고민간단체와사업을추진하였던민화협의위상은큰변화가없이이어질것으로보이며북한 ( 조선 ) 주민및보건의료인들의요구사항을실질적으로파악하고있는담당 23) 인민보건사업에서새로운전환을, 로동신문 (2018. 1.10). 24) 통일부통일교육원교육개발과, 북한지식사전 ( 서울 : ( 주 ) 늘품플러스, 2016), 272 쪽, 286 쪽, 672 쪽. 300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기관과의협의및자문또한사업내용을결정짓는중요한변수로꼭담보되어야한다. 이에중간역할을민화협이담당하더라도실질적담당기관의책임자및전문가와의협의가확실히진행될수있도록민화협에더욱적극적으로요구할필요가있다. 한편에서는단체의정체성또는규모에따라북한 ( 조선 ) 의다양한사업파트너를개발하여다각도로접근하여사업을전개하는것도제고해야한다. 물론실무적으로보다섬세한접근이요구되겠지만북한 ( 조선 ) 의상황을다양한시각에서볼수있고현실을보다정확히파악할수있는중요한기저라고판단된다. 그동안민간단체는평양외지역에대한접근이거의불가능하였다. 하지만김정은집권이후북한 ( 조선 ) 전역에경제개발구를설정하였고이를충분히활용한다면보건의료경협사업을통해지방접근이훨씬수월할것으로보인다. 김정은정부들어서경제개발구에대한세부시행세칙을제정하는등중점적으로선진기술을받아들여질적발전을도모하려는모습을보이고있으며이를한국의사업자들에게도개방할가능성이높기때문이다. 2016년북한 ( 조선 ) 은경제개발구법의세부규정을마련했는데이규정에는경제개발구개발에서지켜야할원칙들을규정하고있다. 그내용을살펴보면첫째단계별개발원칙으로초기비교적작은규모에서추진하고점차그성과를확대해나간다는것이다. 둘째로는투자유치의다각화원칙이다. 몇개나라에집중되는현상을없애고많은나라의다양한투자자들을대상으로유치활동을벌려나간다는것이다. 세번째로는자연생태환경보호원칙인데국제적기준에따라친환경기업을받아들이고경영활동과정에서오염물이배출되지않게하겠다는것이다. 넷째로는토지와자원의합리적이용원칙으로노동집약형기업이나자원집약형기업은될수록제한하고점차기술집약형기업으로대체하겠다는것이다. 다섯째로는생산과봉사의국제경쟁력을높이는원칙으로대외시장을타깃으로제품과서비스경쟁력을높여야한다는것이다. 여섯째로는경제활동의편의보장원칙으로투자자들에게다른나라보다많은이윤을보장하고편의를최대한제공한다는것이다. 25) 이는 2017년만난민화협관계자들이중요하게요청하였던것으로남북이공동으로이익을얻을수있는합영이나합작사업을추진하길원하고있다. 특히매기업이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 26) 로운영되면서자체에서대외수출입이가능하고수출이가능한상품의생산을위한생산설비를현대화하고선진기술을배우기위한노동자들의교육에큰관심을보이고있는것이다. 또한이러한합영기업에서생산된물자를수출하거나북한 ( 조선 ) 내에서판매해그이익금을통해원료와자재를자체로해결할수있는방안을통해자립의기반을더욱확고히하려는의지를숨기지않고있다. 결국향후남북교류협력사업은냉전체제에서평화체제로의새로운시대가전망되듯이이또한새로운접근즉공여국과수혜국의관계가아닌남북이상생, 공영할수있는차원의교류협력이추진할것이고인도적지원의자리는협소해질수밖에없다. 인도적대북보건의료사업이 20년가까이진행되면서많은시행착오를겪기도하였고문제 25) 김일민, 경제개발구개발에서나서는몇가지원칙, 경제연구 2016 년제 3 호 ( 평양 : 과학백과사전출판사, 2016), 54~55 쪽. 26) 국가의통일적지도밑에자기에게부여된경영권을행사해국가과제를무조건수행하고국가의경제발전과제에기초해자기실정에맞는경영전략, 기업전략을세워생산을적극늘리고기업을확대발전시키는제도. 김정은 5.30 담화 와내각상무조, 통일뉴스 (2015. 1. 6). 301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점이드러나기도했다. 하지만지나온역사를되돌아보면서그시행착오가결코무의미하지않았다는결론을얻게된다. 결국앞으로새롭게전개될대북교륙협력은민간단체들에게운동이냐, 지원이냐, 사업이냐를선택해야하는기로에서있으며자신의정체성과규모에맞게빠르게전환해북한 ( 조선 ) 뿐아니라한국내에서의새로운파트너십구축을요구하고있다. 이는언제완화및해제될지모를제재국면을충분히활용할필요가있으며이미선도적민간단체들은움직이기시작하고있다. 302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 참고문헌 > 1. 북한 ( 조선 ) 문헌김일민. 경제개발구개발에서나서는몇가지원칙, 경제연구 2016년제3호. 평양 : 과학백과사전출판사, 2016. 로동신문. 1968년 2월12일. 로동신문. 1984년 9월 4일. 로동신문. 1984년 9월10일. 로동신문. 1984년 9월15일. 로동신문. 2016년 5월 8일. 로동신문. 2017년11월29일. 로동신문. 2018년 1월10일. 로동신문. 2018년 6월21일. 2. 한국문헌김슬기, 북한영유아의영양실태 : 장기적추세와국제적비교, KDI 북한경제리뷰 2018년 7월호.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등. 대북지원 10년백서. 서울 : 도서출판늘품, 2005. 박후건. 북한경제의재구성. 서울 : 도서출판선인, 2015.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2012년북한보건의료연차보고서. 서울 : 앤드, 2012.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2015년북한보건의료연차보고서. 서울 : 앤드, 2015. 임상순, 유엔인권메커니즘의관여전략과북한김정은정권의대응전략 - 로동신문과유엔문서분석을중심으로, 북한연구학회보 제19권제1호. 2015. 통일부. 2000 통일백서. 서울 : 통일부, 2000. 통일부. 2001 통일백서. 서울 : 통일부, 2001. 통일부. 2008 통일백서. 서울 : 통일부, 2008. 통일부. 2010 통일백서. 서울 : 통일부, 2010. 통일부. 2008 남북협력기금백서. 서울 : 통일부, 2008. 통일부. 남북교류협력동향 09 제255호. 서울 : 통일부, 2012. 통일부통일교육원교육개발과. 북한지식사전. 서울 : ( 주 ) 늘품플러스, 2016. 펠릭스아브트, 이상순외역. 평양자본주의-스위스사업가의평양생활 7년. 서울 : 한국외국어대학교지식출판원, 2015. 통일뉴스. 2013년 7월28일. 통일뉴스, 2014년 5월20일. 통일뉴스, 2015년 1월 6일. 3. 외국문헌 UN DPRK Office of Resident Coordinator, STRATEGIC FRAMEWORK 2017-2021 for Cooperatino between The United Nations and The DPRK. Pyongyang: UN DPRK Office of Resident Coordinator, 2017. 303

남북종교교류경험을통해본 민족화합의가능성과과제 윤은주 (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남북종교교류경험을통해본 민족화합의가능성과과제 윤은주 ( 이화여자대학교통일학연구원 ) I. 들어가는말 남북이적대와대립의관계가아닌화해와상생의관계로발전하기위해서교류와협력은필수적이다. 전쟁과평화의갈림길에서선택의여지가없는방식이기도하다. 1980년대부터시작된남북종교교류는대화를위한만남에서부터긴급구호와인도적지원을위한만남, 그리고개발협력을위한만남으로발전했다. 만남이장기화되고사업경험이쌓일수록북한과북한종교인들의존재양식에대한이해도커졌고상호적대적고정관념은연성화됐다. 비록현재로서는경색국면을맞고있지만 30년넘게이어졌던종교교류경험은앞으로민족화합과평화정착을견인하는데중요한힘으로작용할것이다. 종교별로지난시절교류에대한분석과평가가이루어졌고새로운남북관계가전개된다면그에걸맞은전략수립에참고가될것이기때문이다. 종교의남북교류분석은정부차원의남북관계발전전략수립에있어서도중요하다. 2015 년인구조사에따르면개신교 (968만명 ) 와천주교 (389만명 ), 불교 (762만명 ) 3대종교의인구수는 2,119만명에달한다. 이는총인구 (4,910만명 ) 의 43% 에해당한다. 1) 인구학적으로비중있는종교계는교류를통해다른시민단체와다른특징을나타냈다. 먼저종교계남북교류는공통적으로민족화합의근거를종교적신념에서찾는다. 종교적가르침은북한과의관계정립에있어서중요한기준을제공해준다. 뿐만아니라조직력이나인력, 재정동원력은종교계가중요한민간행위자로서역할을할수있도록하는배경이다. 본연구에서는종교의남북교류경험을분석하고종교교류를통한민족화합의가능성과과제를알아보고자한다. Ⅱ. 남북종교교류현황 1. 개신교 가. 1980 년대 개신교의남북교류는 1980대초반부터시작됐다. 1979년독일소재조국통일해외기독자회 ( 기통회 ) 가북한방문을희망하는편지를보낸지 2년후인 1981년 6월대표단 3인이방북하게됐 1) 통계청홈페이지 http://kosis.kr/stathtml/stathtml.do?orgid=101&tblid=dt_1pm1502 참조. 2018 년 9 월 1 일검색. 307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다. 조선해외동포원호위원회를통해방북한이들은조선기독교도연맹과원산의가정교회를찾아합동예배를드렸다. 북과해외신도간의첫만남이었다. 이후지속적으로평양과비엔나, 헬싱키, 북경과미국등지에서남과북, 해외동포개신교인들의만남이이루어졌다. 이들의통일대화시북한인사들의 사회주의와기독교, 주체사상과조국통일 등의강연도있었다. 1983년에는통일심포지움교수방문단으로평양을방문하여학자간대화가진행됐다. 이들대화에서는평화와통일과관련된정세분석도이어졌고기도문과선언문이발표됐다. 이기간북에서는신약성경과찬송가, 구약성경이출판됐고봉수교회와칠골교회건물이건축됐다. 2) 세계교회협의회 (World Church Council: WCC) 와미국교회협의회, 일본과캐나다교회협의회도방북하여북한교회를방문했다. 3) 재미동포의신분의천주교고마테오신부와불교신법타스님방북도개신교의대화채널을통해이루어졌다. 또한해외이산가족들 5천여명의친척방문도이루어졌다. 4) 한편국내통일운동차원에서는한국교회협의회 (NCCK) 가참여한 1986년 9월스위스글리온제1차협의회에서남북교회의공식만남이성사됐다. 1988년 2월에는 NCCK가 민족의통일과평화를위한한국교회의선언 (88선언) 을발표했다. 1988년 11월글리온제2차협의회에서는남북교회가 8.15 직전주일을공동기도주일로정하고공동기도문을제정하기로했다. 남북민간단체간의최초합의였다. 1989년 3월에는문익환목사가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 전민련 ) 고문자격으로방북하여김일성주석과회담했다. 정부가학생들의통일논의는물론대북접촉창구도통제하고있던당시문목사의방북은통일과민간행위자의역할을일깨우는사건이었다. 문목사는김일성주석과의회담에이어조국평화통일위원회위원장허담과 4.2공동성명을작성하고서명했다. 5) 1989년 8월 13일연동교회에서는글리온제2차협의회합의에따라최초로남북공동기도주일행사가진행됐다. 6) 나. 1990 년대 1980년대개신교교류는해외동포들과북한인사들의만남에남한인사들이함께하는방식으로통일대화와방북행사가추진됐다. 1991년에는 LA와뉴욕에서학자들간의학술발표모임이있었다. 1992년에는미국의대표적인복음주의권목사인빌리그레이엄목사가방북해서김일성주석과회동했다. 1990년대들어남북정부간기본합의서가채택되고유엔에동시가입하는환경속에서북한지역에는연거푸자연재해가발생했다. 신속한인도적지원이필요한상황에서기존의교류망을통해긴급지원이이루어졌다. 1995년북한정부가국제사회에공식적으로지원을요청하고난이후전세계구호단체들이대거북한지원에나섰고우리사회에서도북한돕기운동이대대적으로펼쳐졌다. 개신교의최초대북인도적지원은 1990년사랑의쌀나누기 2) 홍동근, 비엔나에서프랑크푸르트까지 - 북과해외동포 기독자간의통일대화 10 년의회고 ( 서울 : 형상사, 1994) p.40. 북과해외개신교인들의통일대화가시작되면서모임을이끌었던홍동근목사는김일성주석에게평양에서예배를드릴수있는교회를지어달라고요청하는편지를보냈다. 이후 1988 년 9 월 9 일건국기념일에봉수교회와장충성당이설립됐다. 3) 김흥수 류대영, 북한주요종교의현황과남북종교교류의가능성에대한연구, 한국기독교와역사 16 ( 서울 :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2) p.163. 4) 홍동근, 앞의책, pp.112-115. 5) 이유나, 문익환의삶과분단극복론 ( 서울 : 도서출판선인, 2014) pp.221-258. 6) 박성준, 1980 년대한국기독교통일운동에대한고찰, 神學思想 71 집 1990 년겨울, p.963. 308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운동본부의모금운동으로홍콩을경유해서전달됐다. 1991년엔사랑의의료품나누기운동이시작되어기초의약품과수술용소모품, 구급차등이지원됐다. 1993년에는개신교내보수와진보교단이결합한대북지원 NGO 남북나눔운동이설립됐고 1994년첫사업이시작됐다. 월드비전은 1994년부터축산, 병원, 긴급구호, 국수공장등다양한활동을이어갔다. 1991년설립된사회복지법인굿네이버스는 1995년첫구호활동을시작했고유진벨재단은 1995년설립되어결핵병원과결핵요양소를중심으로의료지원에앞장섰다. 진보적연합단체인 NCCK는 1996년대북지원창구다원화조치와쌀지원허용을촉구하며보수적한국기독교총연합회 ( 한기총 ) 과복음주의협의회등의참여를이끌었다. 1997년에는북한동포돕기사랑의쌀및의약품보내기운동이발족되어전국차원에서모금운동이벌어졌다. 한기총은남북교회협력위원회산하에북한동포돕기선교본부를두고대북지원을점담하도록했다. 또한기독교장로회 ( 기장 ), 기독교대한감리회 ( 기감 ),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 예장통합 ) 등교단산하에도전담부서가꾸려져독자적인지원사업을시작했다. 1990년대개신교내에서는교단연합체인 NCCK와한기총, 대북지원전문 NGO들, 그리고개별교단산하단체가출범하면서본격적인대북지원사업의토대가마련됐다. 7) 다. 2000 년대 1998년대북지원창구다변화조치와최초의정상회담이성사된이후개신교교류는사업별로특화되는특징을나타냈다. 초창기긴급구호중심의지원에서개발지원으로사업의성격이바뀌었고교단차원에서의사업규모도커졌다. 협력사업을통해대북지원노하우가쌓였고적대적대결속에서굳어진반공일변도의대북인식도연성화됐다. 다른한편에서는정치범수용소문제가제기되며대북지원에대한정당성논란이일어났다. 특히개신교와사업파트너인조선그리스도교연맹 ( 조그련 ) 의진위논란까지겹쳐보수적교단내부에서의견이상충했다. 중국에서의탈북민보호나북한의지하교회개척, 남한입국탈북민의정착지원사업등이보수적교회들을중심으로이루어졌다. 그러나이러한활동은조그련과의사업에는걸림돌로작용했다. 기장의대북지원은조그련을통해지속됐다. 모내기용못자리비닐, 용천사고로인한긴급구호, 수해발생시긴급구호등연합기구를통한지원과조그련을통한직접지원이병행됐다. 기감은 2003년평양에서사회과학자협회와함께손정도목사기념남북학술토론회를개최했다. 또한칠골교회재건축을위한모금활동, 평양신학원운영지원과산하의가정교회, 농장, 공장등을위한지원에집중했다. 예장통합도긴급구호는물론농업생산시설확충을위한제반설비지원을병행했다. 봉수교회재건축과부속온실설립, 평양신학원교육관건축등을위한모금이진행됐다.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 예장합동 ) 교단은 2002년북경에서조그련강영섭위원장과만나옛교회들의건물재건을상의했다. 사업은성사되지못했지만빵공장설립이추진됐고용천사고발생시긴급구호모금에도참여했다. 한기총내부에서제기된북한인권과조그련의진정성문제로지원에대한의견이대립될때예장합동은한기총소속교단이지만교단차원에서대북지원을지속하기로결정했다.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 기하성 ) 도이시기에 NCCK를통해지원하면서도독자적으로조용기심장병원실립을추진했다. 또한 1999년설립된 7) 윤은주, 한국교회와북한인권운동 - 선교패러다임과대북관분석을중심으로 ( 서울 : CLC, 2015), pp. 147-154. 309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대북지원 NGO 굿피플을통해대북지원사업을펼쳐나갔다. 이시기대북지원 NGO들은공통적으로긴급구호활동을이어가면서도특정지역개발사업을시도했다. 예컨대남북나눔운동은 2005년황해북도봉산군천덕리지역개발사업을시작했다. 농촌시범마을조성사업으로농민주택 400채, 공공건물 7채, 유치원, 탁아소 8동을건축했다. 굿네이버스는 2000년대안과용강에있는젖소목장을중심으로낙농사업을지원하고 2002년에는평양안과병원기공식도가졌다. 2004년 11월대동강제약공장, 삼석닭공장준공식도이루어졌다. 월드비전은 2000년부터 2004년 1단계사업을위해평양, 대흥단, 정주, 함흥, 배천등지에서씨감자생산시설구축과기술이전을추진했다. 2000년두루섬온실, 2004년숙천과수학연구실과수묘먹재배, 2007년월드비전북한농업연구소개소등도사업성과이다. CCC북한젖염소보내기운동은 2001년부터 2005년까지젖염소를보내다가 2006년부터는황해북도봉산군은정리에독자적인목장을준공했다. 의료지원도긴급구호에서점차지역병원현대화사업으로발전했다. 유진벨재단은 16개인민병원및전문병원에 X-ray 검진차를지원하였고 50여개결핵예방원및요양소를대상으로 21만키트결행갹과의료장비등을지원북한내 1/3에해당하는지역의료보건사업을실시해왔다. 8) 평양과학기술대학교설립은개발지원의대표적사례라고할수있다. 2002년 6월착공하여 2010년 10월개교한평양과학기술대학은개교를앞두고캠퍼스안에세워진영생상탑과주체사상연구소건립문제로어려움을겪었지만보수적교회들이연합해서후원했다는점이주목된다. 9) 2. 천주교 가. 1980 년대 천주교의북한에대한관심은 70년대민주화운동과통일운동에참여했던정의구현사제단을통해서시작됐다. 중앙조직차원에서는한국천주교창립 200주년기념행사를준비하는과정에서공식화됐다. 한국방문을앞둔교황요한바오로 2세의북한에대한현황보고요청이계기가되었다고한다. 10) 한국천주교 200주년기념사업위원회산하에북한선교부가조직됐고 1985 년부터주교회산하기구로서북한선교위원회가공식출범했다. 또한 1984년 3월해외이산가족상봉행사 11) 때신부로서는처음으로방북했던미국 LA의고종옥 ( 마테오 ) 신부는같은해 7월뉴저지박창득신부와함께천주교북한선교부해외활동위원으로위촉됐다. 1985년에지학순주교도이산가족고향방문단일원으로평양을방문했다. 그러나교회조직차원의이렇다할활동은없었고장익신부가 1987년 6월평양에서열린비동맹특별관료회의에교황청특사작경으로참여하면서북한천주교와의교류가시작됐다. 12) 당시북한천주교기구가불비했기때문에조선기독교도연맹 ( 조기련 ) 관계자를통해장익신부와 5명의천주교신자들만남이성사됐 8) 평양조용기심장전문병원은남북관계경색과국제사회대북제재로 30% 공정율진행후멈춘상태로있다. 윤은주, 앞의책, pp. 165-180. 9) 윤은주, 한국교회와북한인권운동 - 선교패러다임과대북관분석을중심으로 ( 서울 : CLC, 2015) pp.147-154. 10) 한국천주교회 200 주년기념사업위원회북한선교부, 북한선교 창간호 (1984), p.1. 11) 1988 년노태우대통령이 7.7 선언을발표했다. 남북동포와해외동포의자유왕래를개방한다는내용이었다. 이에북한출신동포들의이산가족찾기신청이쇄도했고실제방문도이루어졌다. 통일대화를이끌었던홍동근목사가미주이산가족찾기위원회책임자였다. 홍동근, 앞의책, pp. 66-68. 12) 김재완, 통일을위한남북종교단체의교류협력, 통일논총 16 호 (1998), pp.67-107. 310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다. 이들은 1988년 4월부활절에로마로초대되었고교황요한바오로 2세와도만났다. 이어서 6월 30일조선천주교인협회 ( 조선가톨릭교회협회로개칭 ) 가결성되고 9월에는장충당성당이건립됐다. 10월에는장익신부와정의철신부가방북했다. 1989년 8월에는임수경학생이단행한방북길에미국유학중이던문규현신부가동행했고장충성당에서미사를봉헌했다. 13) 나. 1990 년대 1991년프랑크푸르트에서개신교주도의제10회통일대화에고마테오신부가참여하여 민족화해와통일을위한민족교회, 신학정립 이라는주제로강연했다. 남 북 해외동포학자들이다함께모인자리였다. 14) 이후 1995년 3월김수환추기경이분단 50주년사순절담화를발표했고, 4 월에김상진신부가나진 선봉병원설립을논의하기위해방문했다. 10월에는미국뉴저지주힐튼호텔에서남북천주교신자들이처음으로공동세미나를개최했다. 조국통일을위한천주교인의역할, 남북해외천주교인의연대화등의주제를다루었다. 1997년 5월에는한국종교인평화회의회장으로서김몽은신부가남북종교교류와대북식량지원등에관해협의했다. 1998년 3 월에는북한신포경수로건설지역에간호수녀 2명을파견했다. 8월에는 8.15 행사와관련해서정의구현사제단소속문규현신부와함세웅신부등이방북했다. 또한최창무주교도방북해서장충성당에서미사를집전했다. 1999년추계주교회의에서는북한선교위원회를민족화해위원회 ( 민화위 ) 로개칭했다. 15) 이시기가톨릭교회대북지원은국제카리타스를경유해서이루어졌는데, 한국카리타스만 1995년부터 1999년까지 16억 270만원가량지원했다. 정의구현사제단도북한수재민돕기모금운동을벌여 1996년부터 1999년까지모금, 18억 2천만원가량의분유와식량, 의약품등을조선가톨릭교회협회에보내거나고아원이나탁아소에직접지원했다. 대한적십자사를통해서도비료 200톤, 옥수수도 2000톤을보냈다. 주교회의민족화해위원회는교구별, 수도연합회별로모금해서조선가톨릭교협회를통해지원했다. 서울대교구에서 7억 4천 9백만원가량, 춘천교구에서 1 억 9천 3백만원가량, 대전과인천, 대구, 청주, 안동교구에서 2억 3천 8백만원가량이지원됐다. 16) 다. 2000 년대 이시기천주교남북교류는 1990년대와마찬가지로주교회의민화위, 교구별민화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한국카리타스인터네셔날등의대북지원활동중심으로이루어졌다. 주교회의민화위는 2002년 6월통일부산하에대북지원법인을설립하고본격적으로지원사업을펼쳤다. 2002년옥수수 2천톤지원을시작으로밀가루와어린이영양제, 아동복과의약품등긴급구호물품을지원해왔다. 2000년 7억 2천 9백만원, 2001년 10억 6천 8백만원, 2002년 18억 9천 9 백만원가량의물품을지원했고이후기록은현물양으로기록되어있다. 17) 천주교정의구현사제 13) 김병로외 3 인, 남북한통합을위한종교교류 협력의제도화방안 ( 서울 : 2002, 통일연구원 ), pp.46-50. 14) 홍동근, 앞의책, p.102. 15) 김재환, 앞의책, pp.67-107. 16) 김훈일, 가톨릭대북지원의의의와성과그리고발전방향, 그리스도인의삶과대북지원 -2007 년제 10 차민족화해가톨릭네트워크 ( 서울 : 한국가톨릭주교회의민족화해위원회, 2007), p.81. 311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단은 2003년 2차례밀가루 2억원가량지원했고, 2004년한미구호재단이기증한 30억상당의의약품을지원했다. 2005년에는역시한미구호재단기증품 50억상당의의약품을지원했고, 비료 400톤과못자리용비닐 13톤도지원했다. 18) 국제카리타스대북지원특별소위원회로부터역할을위임받은한국카리타스인터네셔날은 2006년 11월부터대북사업을위임받아사업추진기구가되었다. 2000년부터 2005년까지지원금액은 40억 3천 2백여만원, 2011년부터 2017년까지지원금액은 37억 3천 9백만원가량으로알려졌다. 19) 2008년금강산관광객피살사건과 2010 년 5.24조치로남북관계가냉각됨에따라천주교교류도더이상심화되지못하고있다. 다만한국카리타스인터네셔날을통한대북지원은확장되지는않았지만지속되는모습이다. 3. 불교 가. 1980 년대 1980년대에는직접적인남북교류가성사되지못했고해외거주스님이방북하여조불련관계자들과만남이이루어지는정도였다. 남북교류를위한국내단체는 1988년 5월올림픽을계기로출범한민족화합공동올림픽추진불교본부가효시라고할수있다. 올림픽남북공동개최를주장했고민간차원의직접교류를추진했다. 올림픽이후 12월에는민족자주통일불교운동협의회가창립됐다. 해외에서는기대원스님이 1988년 9월중순방북했고 1989년 6월에는신법타스님이방북했다. 한편북에서는 1945년창립된조선불교도연맹 ( 조불련 ) 이 1972년중앙위원회를구성하면서활동을시작했다. 1976년 7월동경에서열렸던 4차아시아불교도평화회의에정식가입했는데 1981년 7월인도, 스리랑카, 태국등지에대표단을파견하면서국제사회에본격적으로등장했다. 1982년 8월몽고에서열린 6차아시아불교도평화회의에참가했고 1986년 12 월에는 15차 WFB 네팔대회에참가하여정식가입했다. 1987년 7월에는묘향산보현사에서국제불교도평화대행진을개최하기도했다. 1988년 1월에는역시보현사에서조국통일기원법회를개최했고 5월에는최초로석가탄신일기념법회를개최했다. 20) 나. 1990 년대 1990년대교류는국내가아닌미국 LA에서시작됐다. 1989년방북했던신법타스님주도하에 1991년 10월제1차남북및해외동포조국통일기원불교도합동법회가열렸다. 한국 16개종단대표와조불련대표 4명, 일본조총련계대표와민단계대표 4명등 70여명이 LA관음사에서법회와더불어한민족불교지도자연석회의를가졌다. 이전에 1991년 2월평양광법사가복원준공됐고 1992년 5월에는광법사와함께금강산보훈사, 묘향산보현사에서석탄절기념법회가 17) 서울대교구민족화해위원회홈페이지 http://www.caminjok.or.kr/ 참조. 2018 년 9 월 10 일검색. 18)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홈페이지 http://www.sajedan.org/sjd/contents/?doc=sjd01_02c 2018 년 9 월 10 일검색. 19) 한국카리타스 http://www.caritas.or.kr/dataroom/news/ 참조. 2000 년 ~2005 년까지금액은김훈일, 가톨릭대북지원의의의와성과그리고발전방향, 그리스도인의삶과대북지원 -2007 년제 10 차민족화해가톨릭네트워크 ( 서울 : 한국가톨릭주교회의민족화해위원회, 2007) 참조. 20) 이지범, 남북불교교류의흐름 ( 서울 : 대한불교조계종민족공동체추진본부, 2010), pp. 46-69. 312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봉행됐다. 스님들의방북도이어져 1991년 4월도안과법타스님이, 1991년 8월기대원스님이방북했다. 남북교류가이어지는가운데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 ( 평불협 ) 가 1992년 2월창립됐고, 1993년 7월엔전국불교운동연합이출범했다. 1994년 8월에는조국통일과불교중흥을위한남북해외불자기원법회와통일음악제가조계사에서열렸다. 이후 1995년 10월북한수재민돕기범종단추진위원회가발족됐고 1996년 8월에는한국 JTS가, 12월에는우리민족서로돕기불교운동본부가결성됐다. 1997년 5월엔북녘동포돕기불교추진위원회가구성됐고부처님오신날남북동시법회가조계사와광법사에서열렸다. 이때최초로남북공동발원문이발표됐다. 1997년 12월엔평화통일불교협회가황해북도사리원시에금강국수공장을설립했다. 1998년 6월에는뉴욕 JTS 가라진선봉대표사무소를개소했다. 11월에는평양광법사에서윤이상천도재가봉행됐다. 1999년 2월통일부의민간단체대북지원창구다원화조치발표이후 6월민족화합불교추진위원회가평양을방문했고 9월에는진각종총리원장이, 11월에는북녘동포돕기불교추진위원회가평양을방문했다. 12월에는평화통일불교협의회미주대표단이사리원시금강국수공장모니터링차방북했다. 21) 다. 2000 년대 최초의정상회담이후남북불교교류는무엇보다민족문화재보존차원에서진행됐다. 북관대첩비 (2005년 10월 ), 조선왕조실록 (2006년 6월 ), 조선왕실의궤 (2011년 12월 ) 등환수에남북불교가협력하여성과를거두었고개성영통사 (2005년 10월 ) 와금강산신계사 (2007년 10월 ) 복원이추진됐다. 남북교류가본격화되자제3국을거치지않고직접교류가가능해진상황에서 2000년 6월대한불교조계종민족공동체추진본부 ( 민추본 ) 가결성됐다. 2001년 12월에는조불련전국신도회가창립됐다. 2003년 5월에는북한사찰단청불사추진위원회가구성됐다. 신계사복원불사는 2001년 4월연등달기와봉축법요식에서남북공동발원문발표와함께시작됐다. 2003년 1월금강산신계사에서복원에관한기본합의서가교환되고 10월기공식이있은후 2004년 4월착공식, 2007년 10월낙성식이거행됐다. 2004년 4월착공식에는남측종단대표와문화재청인사, 북측조불련과문화보존지도국인사등 200여명이참가했다. 2007년 10월남북공동준공식은통일부와현대아산, 북한의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후원으로진행됐다. 영통사는 2003년 2월북경에서천태종과복원불사에관한약정협의서를체결한이후 2005년 10월복원이완료됐다. 사찰단청불사는 2002년 10월조불련이작성해서제출한자료를바탕으로 2004년자료집을발간하며본격화했다. 또한남북불교합동법회는 3.1민족대회, 8.15민족대회, 10.3개천절민족공동행사등역사적기념일과 6.15민족통일대축전을기념하여이루어졌다. 이들법회는방문단이남과북을오가며진행되기도하고남과북에서동시에이루어지기도했다. 2002년민족통일대회때는조불련박태화위원장이최초로방남했다. 2005년 6월에는조계종총무원장법장스님이평양광법사를방문하여남북불교도합동법회에참여했다. 조계종중앙신도회와조불련전국신도회도남북불교신도대표자회의를열거나앞의행사들을통해회동했다. 이밖에천태종, 태고종, 진각종, 조계종민추본, 그리고한국불교종단협의회, 평불협등각단 21) 이지범, 앞의책, pp.69-103. 대한불교조계종통일종책연구위원회, 민족통일과불교통합 ( 서울 : 2009, 조계종출판사 ), pp.47-49. 김재완, 앞의책, pp.67-107. 313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위에서대북지원이이루어졌다. KEDO 금호지구불상지원을비롯윤이상음악연구소악기지원, 용천폭발사고발생으로인한긴급구호와사리원금강국수공장운영, 못자리용비닐방막지원, 평양양묘장사업지원등을꼽을수있다. 22) Ⅲ. 민족화합을위한종교적신념과대북관 1. 개신교 민족화합과종교적신념남북교류를가능하게하는개신교의종교적신념은첫째, 북한지역에서의개신교전파라고하는일반적포교활동이외에해방전후강했던교세를회복하려는동기가중요하다. 당시교회당의 3분의 2가량이평안도, 황해도, 함경도지역에존재했었는데고토 ( 故土 ) 회복차원의관심이라고할수있다. 23) 실제로 1995년 6월북한교회재건위원회가설립되어각교단별로재건할 2,850개의교회들을특정하기도했다. 24) 물론현실적이지않은기획이었지만개신교의북한에대한관심을드러낸사례였다. 둘째, 북한에대한같은민족으로서의접근으로용서를강조하는개신교신념의발현이라고할수있다. 용서는상대를향해구하거나베푸는일이지만 1980년대이어지는교류속에서개신교인사들은민족분단의현실을사회구조적으로재조명하며자기성찰적자세로접근했다. 반공주의이념을종교적신념으로극복하는신호탄이었다. 민간부문최초의통일선언이며당시정체되어있던통일논의와정부정책에도영향을끼쳤다고평가받는 88선언 25) 에는분단과증오에대한죄책고백을담고있다. 우리는한국교회가민족분단의역사적과정속에서침묵하였으며면면히이어져온자주적민족통일운동의흐름을외면하였을뿐만아니라오히려분단을정당화하기까지한죄를범했음을고백한다... 특히남한의그리스도인들은반공이데올로기를종교적인신념처럼우상화하여북한공산정권을적대시한나머지북한동포들과우리와이념을달리하는동포들을저주하기까지하는죄를범했음을고백한다. 26) 88선언은이땅에서정의와평화를위한행동이성경적가르침에따른것이며한국교회인권운동과민주화운동의기본정신이었음을밝히고, 민족분단의현실을개혁하는데있어서도동일한원리가적용됨을알리고있다. 상대방이아닌자신속에서먼저죄책을인정하고변화하는 22) 이지범, 앞의책, pp. 103-117. 대한불교조계종통일종책연구위원회, 앞의책, pp. 49-58. 23) 대표적교단인장로교와감리교경우장로교는전체 1,113 개중약 1,000 개교회당이, 감리교는전체 200 개중 120 개가북한지역에분포되어있었다. 이들교회당은전쟁시폭격으로파괴된것으로알려졌다. 김양선, 한국기독교해방 10 년사 ( 서울 :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종교교육부, 1956), p.90. 24) 한국기독교총연합회북한교회재건위원회편, 북한교회재건백서 ( 서울 : 진리와자유, 1997), pp. 248-395. 25) 노태우정부가같은해발표한 7.7 선언에도 88 선언의정신이반영되어있다. 무엇보다북한을적대적경쟁상대가아닌민족의일원으로서동반자로포용하고있는것이다. 임동원, 피스메이커 ( 서울 : 중앙북스, 2008), pp.170-171. 26) 1988 년 2 월발표된 민족의통일과평화에대한한국기독교회선언 은개신교평화통일의종교적신념을집대성하고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통일위원회편, 한국교회평화통일운동자료집 ( 서울 : 2000,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 pp.102-110. 314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모습을보였다는점에서당시발표됐던성명서들과차이를보였다. 27) 선언은발표만으로도사회적파장을일으켰다. 반대측에선북한의교회에대한인정이나미군철수와주한유엔군사령부해제, 핵무기철거등에대한입장에반대했고 NCCK의대표성문제도제기했다. 이를계기로보수적교단들이총결하는한국기독교총연합회 ( 한기총 ) 가출범하기도했다. 그러나여신학자협의회, 여성협의회, 세계기독교한반도평화협의회, WCC( 글리온 2차회의 ), 재일대한기독교회총회등에서는잇따라지지선언이발표됐다. 28) 셋째, 개신교의대북지원은성경속화해의가르침을따른것이라할수있다. 88선언전문에는선언의근거로여러성경구절들이제시되어있다. 특히사회적책임을규명하는내용은다음과같이요약되어있다. 이제우리한국교회는그리스도인들모두가평화를위하여일하는사도로부름을받았음 ( 골 3:15) 을믿으며, 같은피를나눈한겨레가남북으로갈라져서로대립하고있는오늘의이현실을극복하여통일과평화를이루는일이한국교회에내리는하나님의명령이며우리가감당해야할선교적사명 ( 마 5:23-24) 임을믿는다. 29) 남북간에대립이아닌평화를이루는길은상대방의필요를채우므로만들어질수있다. 북한의식량난과경제난은남한교회가북한교회에다가수있는기회였다. 진보적인사들이앞장서서대화를통해신뢰를쌓은바탕위에보수적인사들이중심이되어대북지원에나선것이다. 빌리그레이엄목사의방북시수행했던스티븐린튼박사가이끄는유진벨재단을지원하기로결정하면서밝힌호소문에서는그리스도의사랑의실천으로서인도적지원을권하고있다. 3. 불행하게도북한이최초로식량난의심각성을자인하고 UN 에긴급구호를요청했음에도불구하고세계식량비축사정의악화로지금껏별다른도움을받지못하고있다. 4. 이러한북한의위기는우리그리스도인들에게는그리스도의사랑을실천할수있는하나님이주신절호의기회이다. 원수를사랑하라는그리스도의사랑을실증적으로보여줄좋은기회이다. 5. 남한의그리스도인들이정치적, 민족적이해관계를떠나서순수한그리스도인의사랑으로아무란조건없이그들에게도움의손길을펴야할것이다. 30) 민족화합과대북관해방직후북한지역에서개신교는소련의비호하에등장한김일성정권과여러면에서충돌했다. 토지개혁과정에서종교재산이몰수됐고 3.1절기념행사나일요일선거문제등으로갈등을빚었다. 더구나친정부성격의기독교도연맹을내세워포섭하려고하자신앙의자유문제를심각하게제기했다. 31) 신탁통치문제가불거지자개신교는결정적으로반공과반탁을내세우 27) 죄책고백은당시발표되었던통일관련성명서들과차별된태도였다고평가를받는다. 이만열, 한국기독교통일운동의전개과정, 민족통일을준비하는그리스도인 ( 서울 : 두란노, 1995), p. 64. 28) 88 선언이후한국여신학자협의회, 인천교회협의회, 여성협의회, 기장여신도회의전국연합회, 기장총회,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재일대한기독교회총회, WCC 중앙위원회, WCC 글리온 2 차협의회등이지지선언을발표했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와한국기독교남북문제대책협의회등은반대입장문을발표했다. 반대입장은무엇보다한국교회대표성을일부교단을회원으로둔 NCCK 에서주장할수있는가를문제시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통일위원회편, 한국교회평화통일운동자료집 ( 서울 : 2000,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 29)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통일위원회편, 앞의책, p. 102. 30) 김명혁편, 한국복음주의협의회성명서모음집 ( 서울 : CLC, 1998), pp.101-103. 31) 사와마사히코, 남북한기독교사론 ( 서울 : 민중사, 1997), pp.224-246. 315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며월남행렬에올랐다. 이같은맥락에서정권의비호를받으며반공주의의거점으로기능했던개신교가용서와화해의종교적가르침을통해북한을보기시작한것은 1980년대의일이다. 보수와진보를가릴것없이반공주의일색이었던개신교는 1970년대산업화와도시화가본격화하자교세확장을위해서공단주변과도시빈민촌을찾아나섰다. 노동자와도시빈민, 그리고동공화한농어촌주민들의곤고한삶을접하면서차츰사회구조적문제에눈뜨게됐다. 그러나곧바로이념공세를내세운정권의탄압을맞닿뜨렸는데이에진보적인사들을중심으로인권운동과민주화운동에나서게된다. 1980년대통일운동에나선이들중유학이나이민을위해유럽과북미주등지에거주하던인사들은북과직접대화에나섰다. 또한해외이산가족상봉행사로고향방문이이루어지면서북한에대한반공일변도의인식이변화했다. 88선언에서지적하고있듯이남한의개신교는남북적대적대결이지속되는가운데반공이데올로기를종교적신념으로삼다시피했다. 그런데이념을달리한다는이유로동포를저주하는일이바로죄라는인식이생겨난것이다. 북한에대한적개심이독재정권을이어가려는정권에이용되고있다는자각이있었기에가능했다. 직접교류는북한에서의개신교존재양식을이해하는데도움이됐다. 통일전선전술의일환일지라도종교교류가민간의접촉면을넓혀갈수있는현실적인통로임을받아들이게된것이다. 1990년대부터대북지원에참여해온보수적개신교인사들의대북관역시변화했다. 2008년 11월이명박정부출범첫해남북관계경색을우려하는개신교성명서가발표된바있다. 대표적인보수인사들도연명한성명서에서는 북한이미국과수교하여국제사회에진입하고한반도에평화체제가정착되면, 북한내부에도거부할수없는변화가예상 되므로 북한의내부변화를목표로하는대결유발적정책을강행하기보다는북핵폐기와북미 북일수교, 경제협력과평화체제정착등보다유연하고포괄적인접근을균형적으로추진해나갈것을 32) 촉구했다. 북한현지에서장기간사업을펼쳤던보수적개신교인사들역시북한정권하에서생존하는개신교존재양식에대한이해가생겼던것으로보인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조용기심장병원, 동북아교육문화협력재단의평양과기대, 월드비전의두루섬온실및월드비전북한농업연구소, CCC은정젖염소농장, 남북나눔운동농천시범마을조성사업등긴급구호가아닌개발협력사업에보수적개신교인들이주도적으로참여하고있는현실도이를뒷받침한다. 한동안가짜교회논란으로주춤했던봉수교회와칠골교회등공식교회를통한지원사업도예장통합과기감등보수교단에의해진행됐다. 2. 천주교 천주교에있어서남북교류를추동하는종교적신념은평화이다. 일차적으로는소극적인평화를실현하는의미에서전쟁에반대한다고할수있다. 전쟁은인간의존엄성을말살하고생명을빼앗기때문에어떤구실로도정당화될수없다고보기때문이다. 천주교주교회의차원에서는 1991년에 민족의화해와일치를위한기도문 을제정하고 1992년부터매해 6월민족의화해와일치를위한기도의날행사를열고있다. 1995년에는구체적인사목지침서인 민족의화해와평화통일을위하여-1995년주교회의북한선교위원장사목교서 ( 사목교서 ) 를발표했다. 38항의내용으로정리되어있는사목교서는먼저분단고착과민족사회분열에대한참회를명시하고 32) 윤은주, 앞의책, p. 201. 316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있다. 우리는일제통치, 한국전쟁, 그리고분단이더욱고착화된 60 년대에이르기까지이모든과정에담겨있었던시대의징표를깨닫는노력이부족하였음을스스로인정한다.(5 항 ) 이와같은참회와반성위에우리는남북으로갈라진민족사회의진정한화해와일치를위해끊임없이기도하며조국의참된평화통일을이루는도구가되고자한다.(6 항 ) 33) 전쟁반대가평화를추구하는교회의일차적인책무라고한다면민족화합은평화의사도로서교회가감당해야할본분이며평화를이루는방법론이기도하다. 이를위해서는북한에대한인정과존중이필요하다는논리가뒤따른다. 사목교서는 10항에서이문제를정리하고있다. 민족의화해와일치를이루기위해서는무엇보다먼저서로의존재를인정하고그존재이유를확인하며서로를존중해야한다. 서로를존중할때진정한대화가비로소가능하다. 이존재이유의긍정을통해서남과북은서로흡수통일또는적화통일이라는유혹으로부터참으로자유로워질수있는것이다. 우리는남과북이그리스도의복음에입각하여체제와이념을초월해진정한민족적화해와일치를이루도록끊임없이촉구하여왔으며앞으로도이를조금도게을리할수없다. 34) 이러한민족화해의입장에서볼때통일은분단으로강요된비인간화의굴레를벗고참된인간화에들어설수있는길이된다. 참된인간화의길은인간존업성에대한존중과실현에서비롯된다. 따라서참된통일은하느님의모상대로창조된인간존엄성의구현을바탕으로이루어져야만한다 (20항). 35) 평화의소극적실현이전쟁없는상태라면적극적평화의실현은인간존엄성구현된통일이라고할수있다. 사목교서가발표된같은해에나온담화문에서는이러한내용을좀더상술하고있다. 통일의궁극적의미는 [ 더불어함께사는것 ] 입니다. 비록분단 50 년동안남과북이서로다른모양의삶을살아왔다하더라도서로의다른모습을존중하며, 이를두려워하기보다오히려서로감싸는노력을통해상대방의두려움을걷어내는새로운발걸음이평화를심고통일을앞당기는원동력인것입니다. 36) 천주교사목교서는분단으로인한왜곡된삶을바로잡아민족화합과평화통일을이루는일이바로복음적구원이며하느님이원하시는평화의구현이라고설명한다. 성경구절속에서이같은종교적신념을뒷받침하는구절은에페소서 2:14이다. 그리스도는우리의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당신의몸으로유다인과이민족을하나로만드시고이둘을가르는장벽인적개심을허무셨습니다. 37) 성경속에서비유한유다인과이민족을하나로만드는일은남과북을하나로하는일과유사하다. 남과북상호간에장벽처럼쌓인적개심을허무는일또한그리스도로인해가능한일이라는것이다. 성경은또한평화를이루는사람들은세상에서 하느님의 33) 1995 년주교회의북한선교위원장, 민족의화해와평화통일을위하여, 천주교서울대교구시노드준비위원회, 서울대교구시노드연구위원단기초연구보고서 (2002.1.25.), pp.400-401. 34) 1995 년주교회의북한선교위원장, 천주교서울대교구시노드준비위원회, 앞의책. 35) 1995 년주교회의북한선교위원장, 천주교서울대교구시노드준비위원회, 앞의책. 36) 한국천주교통일사목자료집 2 ( 서울 : 2014, 한국천주교주교회의민족화해원회 ), pp.18-19. 37) 성경 ( 서울 : 2008,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 317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자녀라 불리게된다고가르치는데이는교회가민족화합을위해앞장서게하는기본동기가된다.( 마태오 5:9) 평화에대한종교적가르침을실천하면서북한에대한인식도변화되는근거를이해할수있다. 3. 불교 분단극복을위한불교의종교적신념은먼저, 불살생과평화, 발고여락 ( 拔苦與樂 ) 의이념이실현된불국정토라고할수있다. 한반도에서전쟁을반대하고민족의평화적통일을추구하는일은부처님가르침에따른실천행이다. 38) 한민족한핏줄이라는인연의원리또한민족화합을추구하는불도이다. 민족의분단은불국정토를가로막는장애이기때문에통일의추구는삼천리강토에지상정토를실현하는일이다. 39) 또한자타불이 ( 自他不二 ) 의가르침속에남과북의화합근거를발견할수있다. 평화로운세상을만들고정의로운사회를구현하여민족의평화와번영을도모하는일도자타불이의실천이라고보기때문이다. 상호존중과평화체제정착, 신뢰의통일민족공동체가바로지상정토를이루는일이라는것이다. 40) 이러한인식은남북불교가 1997년부터부처님오신날과 8.15 등을기해동시에발표해온공동발원문에서발견할수있다. 공동발언문들은부처님의가르침을바탕으로 7.4남북공동선언, 6.15공동선언, 10.4선언등의합의서들을지지하며민족통일이불국정토를실현하는실천행임을표방하는내용을담고있다. 2015년부처님오신날남북공동발원문을통해확인할수있다. 남과북사이에불신과대결의골은깊어만가고이땅에는언제전쟁이일어날지모를엄중한정세가조성되고있습니다. 전쟁은인간에대한최대의악행이고평화는만복의근원입니다. 우리들은불상생의계율과평화의이념을지켜한반도에서긴장을완화하며평화적환경을마련하기위한실천행을힘차게정진하겠습니다. 거룩하신부처님! 조국통일은더는미룰수없는민족지상의과제입니다. 부처님께서는일찍이너와내가둘이아니라는자타불이와화해와화합, 평화와평등에대하여가르치셨습니다. 남과북이통일의길에서마련하고그정당성을과시한 7.4 공동성명과역사적인 6.15 공동선언, 10.4 선언의실천이곧자타불이이고우리민족이화해하고화합하는길이며평화와번영에로나아가는길입니다. 41) 다음으로통합이론으로서의불교적논리는통일신라시기통합의구심력이됐던원효의화쟁 ( 和諍 ) 사상을꼽을수있다. 화쟁의원리를통일문제에적용시킨통일선언이 2015년발표됐다. 조계종민추본은 2015년창립 15주년토론회를열고한반도평화를위한 2015 불교통일 38) 1997 년남북공동발원문, 부처님발고여락의이념이실현된조국통일, 불국정토를내나라, 내조국땅에서일으켜세우려는우리들의간절한소망이하루빨리성취되도록자비를베풀어주십시오. 39) 1998 년남북공동발원문, 그러나오늘에이르러우리민족이분열과대결의고통을극복하지못하는것은부처님께서일깨워주신한민족한핏줄이라는지중한인연의원리를망각한채무명에가리워자비롭게화합하는불도의길을저버리고질시한공업의소산이며중도의바른길을잊은채양극단의사도를걸어온탓입니다. 이러한우리의어리석음을부처님앞에진실로참회하옵니다. 40) 2010 년남북공동발원문, 부처님은너와내가둘이아니라는자타불이를가르치시고실천하시였습니다. 우리민족이하나가되어 6.15 남북공동선언을이행하면그것이곧자타불이이며, 평화로운세상을만들고정의로운사회를구현하여민족의평화와번영을도모하는것역시자타불이의실천입니다. 41) 부처님오신날봉축법요식, 평화통일기원남북공동발원문발표 불교신문, 2015 년 5 월 27 일. 318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선언 ( 통일선언 ) 을발표했다. 42) 부처님의가르침과화쟁사상을따라민족분단해소에앞장서겠다는다짐을천명한통일선언은분단이민족의발전과번영을근본적으로가로막는장애물이라고규정하며이를해소하기위한불교가르침을집약하고있다. 공존과상생, 합심으로통일의길을열어나가자고하며남과북은부처님의말씀대로마땅히물과우유처럼서로어울리고사랑하고돌봐야할한민족이라고규정하면서다음과같이분단해소를위한요점들을정리했다. 원효스님의화쟁사상은사회통합의사상적기반을제공하였습니다... 이제한반도의불자들은남북갈등해소와통일을위한논리와지혜를부처님법에서찾고자합니다. 이것과저것이서로의지하고있다는연기법은이천오백년동안인류에게서로존중하고상생하는평화로운삶의방식을가르쳐주었습니다. 남과북은서로연결된존재이며서로를비추는거울입니다. 또한공존과상생은차이를인정하는데서출발한다고하며서로의다름을인정하지않을때갈등이심화되고배타적이게된다고지적했다. 남북화해와동질성의회복은남북한이먼저서로의다름을인정하는데서부터출발해야합니다. 서로의다름을인정하지않을때갈등은심화되고흡수통일과적화통일과같은배타적논리가힘을얻는법입니다. 마지막으로통일은마음의본바탕인일심과합심에서해법을찾을수있다고했다. 이는남북한주민들의서로다른마음을하나의마음으로묶어내어창조적통일로나아가는새로운인연으로이어집니다. 합심의마음문화는남북갈등, 남남갈등, 계층갈등, 지역갈등을해소하고불국정토의통일국가를만드는바탕이될것입니다. 43) Ⅳ. 종교간남북교류의공통점과특징 1. 종교간남북교류의공통점 종교간남북교류에서발견할수있는공통점은첫째, 남북직접교류가어려운상황에서해외에서만남을시도하거나국제조직을통해접촉했다는점이다. 개신교는기통회와북미주기독학자회, WCC 등을통해, 천주교는대북지원단체인국제카리타스를통해, 불교는 WFB등을통해교류가성사됐다. 개신교인사들로구성된기통회는 1981년처음방북하고조기련과교류를시작했다. 천주교인사들역시초기엔개신교관계망을활용하여교류를시작했고교황과의만남이성사된후 1988년에는북한에서조선천주교인협회가결성됐다. 불교는 1945년창립된조불련이 1972년중앙위원회를구성한후일찍부터국제기구와의교류에나섰지만 1980년대교류는개신교연계망을통해시작됐다. 둘째, 개신교는 8.15 광복절을기념해서, 천주교는 6월 25일전쟁발발일을기억하며, 그리고 42) 조계종민추본, 8 일창립 15 주년기념토론회, 통일뉴스 2015 년 6 월 5 일. 43) 총무원장스님, 통일을위한지혜를부처님법에서찾겠다, 불교신문 2015 년 5 월 16 일. 319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불교는 3.1절과 8.15광복절, 부처님오신날과 6.15등의미있는날에공동행사를진행해왔다. 개신교는광복절직전주일을공동기도주일로지키고공동기도문을채택한다. 천주교는 6월 25일이나그에앞서민족의화해와일치를위한기도의날행사를진행한다. 불교는합동법회나공동법회를열면서공동발원문을채택한다. 각종단들이직접만나서행사를주최하지않더라도남과북에서각기동시에진행하는종교행사를통해하나됨을추구하는방식이다. 셋째, 민족화합의추구는곧종교적신념을실천하는일과관련이있고북한에대한태도역시종교적가르침으로부터영향을받는다. 부처님의자비와하느님, 천주님의사랑을바탕으로북한에대해용서와화해를추구하는일이곧민족화합과통일을위한길이된다. 원수일지라도사랑하라는개신교와천주교의가르침, 화쟁사상과자타불이사상에숨어있는일심과합심의가르침은남북관계에그대로적용할수있다. 남북관계발전에있어서종교교류의가장큰장점은민족화합에있어서상대방의태도보다종교적가르침을얼마나실천하고있는지자기성찰에우선하여관심을수있는점이다. 갈등과긴장상황이벌어졌을때자신을먼저객관화하려는노력은상대의변화를조건으로하지않는점에서유연한대처를가능하게한다. 넷째, 종교교류의장기간에걸친경험은북한에대한태도에영향을미쳤다. 1980년대부터시작된남북종교인들의교류를통해이전에는없었던조직이생기거나 ( 조선천주교인협회 ) 존재가미미하던조직들이북한내에서영향력이커지는경우 ( 조그련, 조불련 ) 도생겨났다. 북한에서과연종교의자유가존재하는가의문제로북측종교인들에대한진위문제가대두될수있지만장기적관점에서볼때남북종교교류는북측에서해방전까지존재하던종교인들을불러내는역할을했다. 천주교의경우북한당국의협조하에신자찾기사업을벌이기도했다. 44) 천주교와개신교의예배당, 불교의사찰역시교류를위해복원되었다고볼수있다. 2000년대이후정상회담이진행되면서남북관계의새로운지평이열렸다. 종단내다양한주체들지원에참여하게됐고기존의단체들은점차전문성을더해갔다. 장기간에걸친대북지원사업을통해북한에대한인식도변화했다. 사회일각에서빚어진대북퍼주기논란에도불구하고개신교의대북지원은액수면에서가장크고사업면에서다양하게진행됐다. 특히 2010년개교한평양과기대는대표적인보수교회들의지원으로설립되고운영되었다. 북한현지에서다양한사업에참여했던개신교인사들은정부의대북정책에우려하는성명서를발표하기도했다. 대북지원에앞장섰던인사들일각에서북한인권문제를제기하며협력적대북정책을반대하는운동을펴기도했지만대북사업은이명박정부와박근혜정부들어남북관계가경색되기이전까지이어졌다. 천주교나불교도유사한상황이다. 천주교는주교회의민화위뿐만아니라춘천, 의정부, 제주도, 대구, 광주등전체 15교구별로민화위가조직되었다. 의정부민화위는파주에민족화해센터를건립하기도했다. 통일운동에앞장서던정의구현사제단도대북지원에꾸준히힘썼고국제카리타스는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에대북지원사업을위임하기도했다. 불교역시종단연합회나종단별로혹은조계종민추본을통해사찰복원사업과단청불사가추진됐다. 마찬가지로남북관계경색국면에서기존사업들은멈춰서있는상황이다. 대화를위한만남에서시작해서긴급구호와개발지원에이르기까지장기간다양한경험을쌓은종교인들은북한에대해민족공동체의구성원으로서공생과상생의파트너임을인정하게되었다고할수있다. 44)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북한교회사집필위원회, 북한교회사 ( 서울 :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6), pp.485-487. 320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2. 종교간남북교류의특징 개신교는교단과교단연합체, 전문 NGO 등지원주체가다양한특성을나타냈다. 주체별로독립적인사업을펼칠때사업내용이겹치거나지원지역이중첩되는경우가생길수있으므로유의할필요가있다. 한편, 조용기심장병원이나평양과기대, 남북나눔운동의농촌시범마을조성등대형프로젝트사업에보수교회들이중심이되어참여하는점도흥미롭다. 보수는대북지원을퍼주기라고비난한다는사회통념과다르기때문이다. 기획단계에머물렀긴했지만북한지역에있었던옛예배당복원프로젝트를위해북한교회재건운동을준비했던점도특징이다.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가해방이전북한지역에있었던교회이름과교파, 설립연도와설립자, 소재지등을정리해서발표했다. 45) 이는교회재건을꿈꾸는개신교인들의상상력에큰영향을끼쳤다. 비록현실화되지못했지만예배당건축이아닌새로운방식의남북교회협력을위한근거로재조명될필요가있다. 다양한지역개발사업을기획한다면교파별로연고지역을우선하여고려할수있기때문이다. 천주교는주교회의를포함해서 15개지역교구에민화위를설립하여조직적인연계망을구축하고있는점이특징이다. 서울대교구를비롯해서의정부교구와춘천교구등규모나지리적여건상선도적으로사업을개진할수있는교구들이남북교류에앞장선다면전국적으로가장빠르게사업이확산될수있을것이다. 주교회의차원에서통일의복음적원리와실천적지표를명확히한사목교서도발표되었다. 남북교류의방향이이미제시되어있는것이다. 향후남북관계가새로워지는환경속에서교류가진전되고사업이활성화된다면조직력에기반한저변확대를꾀할수있다. 불교는문화재복원사업에집중해왔는데북관대첩비와조선왕조실록, 조선왕실의궤환수에있어서남북협력의성과를냈다. 개성영통사와금강산신계사도남북협력속에복원됐다. 앞으로북한전역에걸쳐있는 67개사찰과 186개에달하는불교문화재관리에있어서남북이협력할수있다. 각종단별로역할을분담하는방법이나종단협의회혹은민추본등을중심으로교류협력을위한통합추진체를구성하는방법을모색해볼수있다. Ⅴ. 맺는말 북한의핵개발과관련해서멈춰선지오래된남북교류사업이새로운전기를맞아재개할수있을지어느때보다귀추가주목되고있다. 문재인대통령의평양방문에이어북미정상회담이열릴예정인데연내종전선언이실현된다면적어도남북교류는이전수준으로회복될수있을것이기때문이다. 지난남북종교교류의역사에서확인할수있었던바민족화합은오랜시간교류와협력을통해자연스럽게이루어진다. 우리사회가장보수적이라고알려진개신교교회들이퍼주기논란과는정반대로대규모지원사업에참여하고있는사례를통해알수있다. 개신교는다양성을기반으로프로젝트별개발협력사업을추진하거나완성할수있는특징이있다. 천주교는주교회의를중심으로교구별조직이유기적으로구축되어있는점이주목된 45)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북한교회사집필위원회, 앞의책, pp.517-604. 321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다. 이전까지는긴급구호와인도적지원사업에집중된편이었지만앞으로는조직력을바탕으로장기적인개발협력사업을구상할가능성이높다. 불교는기존의경험을바탕으로민족문화재개발과보존사업에특성화된개발협력을기획하고실행할필요가있다. 이와같이종교별특성을살리되특정교파의확산을목적으로하지않고보편적민간교류차원에서교류의지평을넓혀간다면종교간협력사업도얼마든지가능할것으로기대된다. [ 참고문헌 ] 김양선, 한국기독교해방 10 년사 ( 서울 :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종교교육부, 1956) 홍동근, 비엔나에서프랑크푸르트까지 - 북과해외동포 기독자간의통일대화 10 년의회고 ( 서울 : 형상사, 1994)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북한교회사집필위원회, 북한교회사 ( 서울 :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6) 사와마사히코, 남북한기독교사론 ( 서울 : 민중사, 1997) 한국기독교총연합회북한교회재건위원회편, 북한교회재건백서 ( 서울 : 진리와자유, 1997) 김명혁편, 한국복음주의협의회성명서모음집 ( 서울 : CLC, 1998)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통일위원회편, 한국교회평화통일운동자료집 ( 서울 : 2000,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 김흥수 류대영, 한국기독교와역사 16 ( 서울 :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2) 김병로외 3 인, 남북한통합을위한종교교류 협력의제도화방안 ( 서울 : 2002, 통일연구원 ) 대한불교조계종통일종책연구위원회, 민족통일과불교통합 ( 서울 : 2009, 조계종출판사 ) 임동원, 피스메이커 ( 서울 : 중앙북스, 2008) 이지범, 남북불교교류의흐름 ( 서울 : 대한불교조계종민족공동체추진본부, 2010) 이유나, 문익환의삶과분단극복론 ( 서울 : 도서출판선인, 2014) 윤은주, 한국교회와북한인권운동 - 선교패러다임과대북관분석을중심으로 ( 서울 : CLC, 2015) 이만열, 한국기독교통일운동의전개과정, 민족통일을준비하는그리스도인 ( 서울 : 두란노, 1995) 김훈일, 가톨릭대북지원의의의와성과그리고발전방향, 그리스도인의삶과대북지원 -2007 년제 10 차민족화해가톨릭네트워크 ( 서울 : 한국가톨릭주교회의민족화해위원회, 2007) 한국천주교회 200 주년기념사업위원회북한선교부, 북한선교 창간호 (1984) 박성준, 1980 년대한국기독교통일운동에대한고찰, 神學思想 71 집 (1990) 김재완, 통일을위한남북종교단체의교류협력, 통일논총 16 호 (1998) 1995 년주교회의북한선교위원장, 민족의화해와평화통일을위하여, 천주교서울대교구시노드준비위원회, 서울대교구시노드연구위원단기초연구보고서 (2002.1.25.) 한국천주교통일사목자료집 2 ( 서울 : 2014, 한국천주교주교회의민족화해원회 ) 총무원장스님, 통일을위한지혜를부처님법에서찾겠다, 불교신문 2015 년 5 월 16 일. 부처님오신날봉축법요식, 평화통일기원남북공동발원문발표 불교신문, 2015 년 5 월 27 일. 조계종민추본, 8 일창립 15 주년기념토론회, 통일뉴스 2015 년 6 월 5 일. 서울대교구민족화해위원회홈페이지 http://www.caminjok.or.kr/ 한국카리타스 http://www.caritas.or.kr/dataroom/news/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홈페이지 http://www.sajedan.org/sjd/contents/?doc=sjd01_02c 322

대북제재와인도적지원 문경연 ( 전북대학교 )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대북제재와인도적지원 1) 문경연 ( 전북대학교국제인문사회학부 ) Ⅰ. 서론 대북지원은지난 1994년북한이국제사회에원조를호소하며시작되었다. 이후 2016년까지국제사회는약 25억달러를북한에지원했으며, 한국은약 3조원을대북지원을위해공여하였다. 2) 지난 20여년간의대북지원총규모를살펴보면, 동일시기북한총생산량의약 2% 수준이다. 3) 특히대북지원이활성화되었던 1999년의경우, 북한의국내총생산이약 48억달러수준이었으며대북지원규모는약 4억달러로총생산의약 8.3% 였다. 4) 가장큰규모의대북지원이이루어졌던 2007년의경우, 국제사회는 1억 1,400만달러를공여하였으며한국은 4,400억원을공여하였는데, 그규모는같은해북한의국내총생산량 144 억달러의약 4.2% 이다. 5) 한국을포함한국제사회의대북지원은북한경제전반에다양한영향을미칠수있는유의미한규모로평가할수있다. 대북지원은오랜기간지속되어왔으며, 총규모도적지않다. 그럼에도불구하고대북지원의효과에대해서는부정적인평가가주를이루고있다. 대부분의연구는그원인이원조공여의비지속성에있다고서술하고있다. 실제로문재인대통령이북한에대한 보건 의료인도적지원은정치적상황과연계하지않아야한다 고입장 6) 을밝혔으나국제사회의대북제재가강화되는정치적으로민감한상황에서한국이대북지원을재개하기는쉽지않다. 본논문은이러한문제의식을바탕으로 20여년간의대북지원을비판적으로살펴보고정치적변동에도지속될수있는새로운대북지원의패러다임을모색하고자한다. 1) 본논문은통일부의 대북인도지원접근방법별평가및정책대안개발연구 연구용역과제중저자가참여한부분을논문화한것임 2) OECD CRS, https://stats.oecd.org/index.aspx?datasetcode=crs1# ( 검색일 : 2018. 3. 18); 통일부홈페이지통계자료, http://unikorea.go.kr/unikorea/business/statistics/ ( 검색일 : 2018. 3. 16). 3) OECD CRS, https://stats.oecd.org/index.aspx?datasetcode=crs1# ( 검색일 : 2018. 3. 18); 통일부홈페이지통계자료, http://unikorea.g o.kr/unikorea/business/statistics/ ( 검색일 : 2018. 3. 16); UN 통계, https://unstats.un.org/unsd/snaama/resquery.asp ( 검색일 : 2018. 3. 16), 20 년간 GDP 의총액 ( 약 2,800 억달러 ) 대비한국과국제사회로부터의지원규모 (55 억달러 ) 를의미함, 단환율은 $1 = 1,000 원으로계산함. 4) OECD CRS, https://stats.oecd.org/index.aspx?datasetcode=crs1# ( 검색일 : 2018. 3. 18); 통일부홈페이지통계자료, ht tp://unikorea.go.kr/unikorea/business/statistics/ ( 검색일 : 2018. 3. 16); UN 통계, https://unstats.un.org/unsd/snaama/resqu ery.asp ( 검색일 : 2018. 3. 16), 해당연도 GDP 대비한국과국제사회로부터의지원규모를의미함, 단환율은 $1 = 1,000 원으로계산함. 5) OECD CRS, https://stats.oecd.org/index.aspx?datasetcode=crs1# ( 검색일 : 2018. 3. 18); 통일부홈페이지통계자료, ht tp://unikorea.go.kr/unikorea/business/statistics/ ( 검색일 : 2018. 3. 16); UN 통계, https://unstats.un.org/unsd/snaama/resqu ery.asp ( 검색일 : 2018. 3. 16), 단환율은 $1 = 1,000 원으로계산함. 6) G20 정상회의 (2017. 7. 8), 세션 Ⅳ 문재인대통령발언, 청와대홈페이지, http://www1.president.go.kr/article s/60 ( 검색일 : 2018. 3. 4). 325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본논문은먼저한국대북지원의지속과변동을분석하며, 다음장에서는국제사회의대북지원에대한실제와한계를분석할것이다. 이후대북제재국면하인도적지원의가능성을탐색하고자한다. II. 한국대북지원의지속과변동 한국의대북지원은 1995년쌀 15만톤지원후 2016년까지총 23,898억원이공여되었다. 한국의대북지원은크게정부차원의무상지원과유상지원그리고민간차원의무상지원으로구분할수있다. 1995년이후대부분의대북지원은정부차원의무상지원의형태로공여되다가 2008년부터는민간차원의무상지원의비중이크게증대되었다. 민간차원의무상지원의절대규모는감소해왔지만, 정부차원의대북지원이크게줄면서한국의대북지원중민간차원의지원비중은더욱증대되어왔다. < 그림 1> 한국의대북지원 (1995~2016) 자료 : 통일부홈페이지통계자료, http://unikorea.go.kr/unikorea/business/statistics/ ( 검색일 : 2018. 3. 16). 한국정부의대북지원은정부의직접지원과민간단체및국제기구를경유한지원으로구분할수있다. 1995년첫해의대북지원은모두정부차원의직접지원이었다. 이후한국정부는 1998년까지국제기구를경유한소규모의공여를추진해오다가 1999년비료지원을시작으로정부의직접지원을본격화하였다. 2000년대들어한국정부는정부의직접지원의규모가크게증가하였으며, 동시에국제기구와민간단체를통한지원도점차확대하였다. 하지만 2008년이명박정부는정부차원의대규모직접지원을철회하였으며, 그결과국제기구와민간단체가대북지원의주된채널이되었다. 2013년출범한박근혜정부역시북한에대한직접지원의정치적부담을줄이기위하여국제기구를통한간접지원을선호하였다. 다만이명박정부와는달리민간단체채널을통한대북지원에대해서부정적견해를보였으며, 그결과 2013년이후정부의대북지원은대부분국제기구를경유한것이었다. 326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 그림 2> 한국정부의대북지원 (1995~2016) 자료 : 통일부홈페이지통계자료, http://unikorea.go.kr/unikorea/business/statistics/ ( 검색일 : 2018. 3. 16). 한국정부의대북인도적지원분야는영양, 재해 재난, 보건의료, 개발협력분야로구분이가능하다. 7) 영양지원은정부가직접지원방식으로북한에유상혹은무상으로제공한식량지원을, 재해 재난지원은북한의재해복구를위해공여한지원을, 보건의료지원은 WHO, UNICEF, IVI, 국제민간단체등국제기구채널을활용한공여를, 그리고개발지원은정부가직접지원한사업을중심으로정리할수있다. 먼저쌀등식량지원등을포함하는영양지원 8) 은 1995년부터 2016년까지공여된정부의대북지원중약 46.1% 를차지하며, 국제기구를통한지원중 WFP(1,531억원 ) 와 UNICEF(52.8억원 ) 9) 을포함하면영양지원분야에대한지원규모는총 16,600억원에달한다. 한편비료지원을대표사업으로하는개발지원은 1999년부터 2007년까지 ( 이후중단 ) 약 7,935억원이지원되었다. 10) 1999년, 첫시작된대북비료지원은정부차원대북직접지원의물꼬를튼사업으로 1995년이후중단된대북지원재개의신호이자 2000년남북정상회담개최의마중물역할을한것으로평가할수있을것이다. 또한대북비료지원은식량지원으로대표되는긴급구호성인도지원의성격을넘어서북한의식량생산량촉진을목적으로하는개발구호의성격을가지고있는데, 실제로 1999년대북비료지원과함께국내민간단체의개발지원이본격화되기시작하였다. 셋째, 재해 재난지원의대표적인사례로용천사고복구지원과수해복구지원을들수있으며, 해당지원의총규모는약 1,366억원으로추정된다. 11) 마지막으로국제기구를주 7) 정부차원의분야별지원중민간단체를통한지원의경우통계자료의불완전성과그지원규모의미미함으로인해여기서제외하였다. 8) 쌀지원과같은식량지원은 1990 년대중반부터 2000 년대초까지는영양지원으로구분될수있으나, 2000 년대중반이후부터는그성격이달라졌음을알수있다. 9) UNICEF 대북지원사업의경우백신, 보건, 영양지원등이혼용된사업이많은바영양지원으로만명시된 1996 년 8 억원과 2015 년 44.8 억원에한정하고있다. 10) 1997 년, FAO 를통한영농기자재 3 억원, 2005 년조류인플루엔자방역지원 12 억원, 2007 년구제역방제 26 억원, 산림병충해방제 18 억원, 2015 년국제민간단체를통한농업개발 / 식수위생지원사업 3.8 억원을포함한것이다. 11) 1996 년 WMO 를통한기상장비지원 0.4 억원, 1997 년 UNDP 를통한수해복구지원 11 억원, 2001 년내의 46 억원규모의지원을포함한것이다. 327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된지원채널로활용한우리정부의보건의료지원사업의경우 1995년부터 2016년까지약 1,254억원이지원되었다. 12) 연도 지원규모 내 역 23,200만 1995 달러 (1,854억원 ) - 국내산쌀 15만톤직접지원 (1$ 당 800원적용 ) 1996 1997 1998 1999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305 만달러 (24 억원 ) 2,667 만달러 (240 억원 ) 1,100만달러 (154억원 ) 2,825만달러 (339억원 ) 8,139만달러 (978억원 ) 7,522 만달러 (976 억원 ) 8,915 만달러 (1,141 억원 ) 9,377 만달러 (1,097 억원 ) 11,541 만달러 (1,313 억원 ) 13,588 만달러 (1,360 억원 ) < 표 1> 한국정부의대북지원분야별내용 - WFP 혼합곡물 3,409톤 (200만달러 /16억원 ) - UNICEF 분유 203톤 (100만달러 /8억원 ) - WMO 기상자재 (5만달러 /0.4억원 ) (1$:790원적용 ) - WFP 혼합곡물 9,852톤 (600만달러 /54억원 ) - UNICEF ORS 공장비용 (34만달러 /3억원 ) - WFP 옥수수 5만톤, 분유 300톤 (1,053만달러 /95억원 ) - UN기구 (980만달러 /88억원 ) (1$:900원적용 ) WFP 400만달러 (CSB 8,389톤 ), UNICEF 360만달러 ( 분유 781톤 ), WHO 70만달러, UNDP 120만달러, FAO 30만달러 - WFP 옥수수 3 만톤, 밀가루 1 만톤 (1,100 만달러 /154 억원 )(1$:1,400 원적용 ) - 비료 11.5 만톤직접지원 (1$:1,200 원적용 ) - 비료 30 만톤직접지원 (7,863 만달러 /944 억원 ) (1$:1,200 원적용 ) - 민간에대한정부기금지원 (276 만달러 /34 억원 ) - 내의 150 만벌직접지원 (353 만달러 /46 억원 ) - 비료 20 만톤직접지원 (4,921 만달러 /638 억원 ) - WFP 를통해옥수수 10 만톤지원 (1,725 만달러 /223 억원 ) - WHO 를통해말라리아방제지원 (46 만달러 /6 억원 ) - 민간에대한정부기금지원 (477 만달러 /62 억원 ) (1$ 당 1,296 원 ) - WFP 를통해옥수수 10 만톤지원 (1,739 만달러 /235 억원 ) - WHO 를통한말라리아치료제지원 (59 만달러 /8 억원 ) - 비료 30 만톤지원 (6,577 만달러 /832 억원 ) - 민간에대한정부기금지원 (540 만달러 /65 억원 ) - WHO 를통한말라리아치료제지원 (66 만달러 /8 억원 )) - UNICEF 취약계층지원 (50 만달러 /6 억원 ) - WFP 를통해옥수수 10 만톤지원 (1,619 만달러 /191 억원 ) - 비료 30 만톤 (6,967 만달러 /811 억원 ) - 민간에대한정부기금지원 (675 만달러 /81 억원 ) - 용천재해복구지원 : 의약품, 구호세트 (74 만달러 /9 억원 ) - WHO 말라리아치료제 (67 만달러 /7 억원 ), 용천재해 (20 만달러 /3 억원 ) - UNICEF 취약계층 (100 만달러 /12 억원 ) - 비료 30 만톤 (8,096 만달러 /940 억원 ) - WFP 를통한옥수수 10 만톤지원 (2,334 만달러 /240 억원 ) - 민간에대한정부기금지원 (850 만달러 /102 억원 ) - WHO 를통한말라리아방제지원 (81 만달러 /9 억원 ) - 조류인플루엔자방역지원 (123 만달러 /12 억원 ) - 비료 35 만톤 (12,064.4 만달러 /1,207 억원 ) - 수해복구지원 : 응급구호세트 (19.3 만달러 /2 억원 ) - UNICEF 취약계층지원 (100 만달러 /10 억원 ) - 민간에대한정부기금지원 (1,200 만달러 /120 억원 ) 12) 2007 년정부성홍열관련직접지원 4 억원, 2010 년신종플루치료제및손소독제지원 112 억원등을포함한것이다. 328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연도지원규모내역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22,740 만달러 (2,273 억원 ) 20,893 만달러 (1,983 억원 ) 3,996 만달러 (438 억원 ) 2,420 만달러 (294 억원 ) 1,780만달러 (204억원 ) 565만달러 (65억원 ) 210만달러 (23억원 ) 1,209만달러 (133억원 ) 1,330만달러 (141억원 ) 1,220 만달러 (140 억원 ) - 비료 35 만톤 (12,002 만달러 /1,200 억원 ) - WHO 영유아 (1,067 만달러 /106 억원 ), 말라리아방제지원 (100 만달러 /10 억원 ) - UNICEF 영유아지원 (230 만달러 /23 억원 ) - 쌀, 자재장비등수해복구지원 (8,003 만달러 /800 억원 ) - 민간에대한정부기금지원 (1,338 만달러 /134 억원 ) - 비료 30 만톤 (10,116 만달러 /961 억원 ), 성홍열 (42 만달러 /4 억원 ), 구제역방제 (274 만달러 /26 억원 ), 산림병충해방제 (189 만달러 /18 억원 ) 수해복구 (4,452 만달러 /423 억원 ) - WHO 영유아 (938 만달러 /89 억원 ), 홍역 (105 만달러 /9.9 억원 ), 말라리아방제지원 (138 만달러 /12.9 억원 ) - UNICEF 영유아지원 (315 만달러 /29 억원 ) - WFP 옥수수등곡물, 밀가루, 분유지원 (2,000 만달러 /190 억원 ) - IVI 보건의료지원 (50 만달러 /4.6 억원 ) - 민간에대한정부기금지원 (2,274 만달러 /216 억원 ) - WHO 영유아 (1,027만달러 /138억원 ), 말라리아방제지원 (120만달러 /10 억원 ) - UNICEF 영유아지원 (408만달러 /47억원 ) - IVI 보건의료지원 (19만달러 /2.5억원 ) - 민간에대한정부기금지원 (2,422만달러 /241억원 ) - IVI 보건의료지원 (30만달러 /4.5억원 ) - WHO 말라리아방제지원 (97만달러 /13억원 ) - WHO 영유아지원사업지원 (1,312만달러 /153억원 ) - UNICEF 영유아지원사업지원 (398만달러 /47억원 ) - 민간에대한정부기금지원 (583만달러 /77억원 ) - 신종플루치료제및손소독제지원 (967만달러 /112억원 ) - 신의주수해지원 (634만달러 /72억원 ) - 민간에대한정부기금지원 (179만달러 /21억원 ) - UNICEF 영유아지원사업지원 (565 만달러 /65.4 억원 ) - IVI 백신지원 (124 만달러 /13.8 억원 ) 및의료교육지원 (86 만달러 /9.6 억원 ) - UNICEF 영유아지원사업 ( 보건 영양 ) 지원 (604 만달러 /67.4 억원 ) - WHO 영유아지원사업 ( 의약품및의료기기등 ) 지원 (605 만달러 /65.1 억원 ) - WHO 영유아지원 (630.6 만달러 /67 억원 ) - WFP 모자보건사업 (700 만달러 /74 억원 ) - 민간에대한정부기금지원 (198 만달러 /23 억원 ) - UNICEF 모자보건사업 (400 만달러 /45 억원 ) - WFP 모자보건사업 (210 만달러 /23 억원 ) - 국제민간단체 MR 백신지원 (282 만달러 /33.6 억원 ) - 국제민간단체농업개발 식수위생지원 (33 만달러 /3.8 억원 ) - 국제민간단체장애인지원 (17 만달러 /2 억원 ) - UNFPA 인구조사지원 (80 만달러 /9.4 억원 ) 2016 10만달러 (1억원 ) - 민간에대한정부기금지원 (10만달러 /1억원 ) 자료 : 통일부통계자료및남북협력기금통계를바탕으로재구성, http://unikorea.go.kr/unikorea/business/sta tistics/;http://unikorea.go.kr/unikorea/business/interkoreanfund/bfpresent/( 검색일 : 2018. 3. 12). 주 : 영양 ( ), 재해재난 ( ), 보건의료 ( ), 개발지원 ( ) 으로표기함. 한편한국민간단체들은북한에대한지원이시작된 1995년부터 2016년까지한해도거르지않고계속지원을하였으며, 그규모는총 1조 135억원으로연간평균 460억원이모두무상으로공여되었다. 초기민간단체의대북지원은대북지원운동및모금활동을중심으로공여가이루어졌다. 13) 그결과민간단체의대북지원은김대중정부가 1999년대규 13)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대북지원 10 년백서 ( 서울 :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2005);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대북지원 20 년백서 ( 서울 :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2015). 329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모대북지원을시작하기전까지정부차원의대북지원규모와유사한수준의지원을하였으며, 김대중정부가집권한 1998년에는민간단체의대북지원이정부차원의지원규모를넘어섰다. 이후김대중정부는민간단체를햇볕정책확산의지지기반및파트너로인식하고, 민간단체를통한대북지원모금과직접지원을허용하였으며그결과노무현정부말기까지민간단체의대북지원규모는지속적으로증가하였다. 14) 1999년이전까지민간단체가모금한대북지원은대한적십자창구를통해이루어지고있었으나, 김대중정부의출범과함께 1998년민간차원대북지원활성화조치 ( 대북지원협의및모니터링목적의방북허용, 언론사및개별기업체의대북지원모금을위한행사허용, ARS 방식을이용한대북지원모금허용등 ), 1999년창구다원화조치로인해민간단체의대북직접지원규모가급격히증가할수있었다. 민간단체의대북지원은노무현정부말기에최대규모를기록하였다. 15) 2010년천안함사건과이로인한 5 24조치등으로인해민간경유정부지원뿐아니라민간차원의대북지원도급감하였으며, 2016년에는민간단체의대북지원규모가 29억원이었는데이중 28억원은민간단체의직접지원이었으며, 1억원이정부의민간단체경유지원이었다. 한편 1999년부터 2016년기간동안, 대북지원 100억원이상민간단체는 14개단체 16) 로, 이중 500억원이상지원단체도 4개단체에이르는등대북지원운동은인도적지원에있어대형민간단체가조직되는계기가되었다. 이들상위 14개민간단체의대북지원총규모는약 6,300억원으로전체민간단체지원규모 50% 이상을차지한다. 100억원이상지원민간단체 (14개) 는나눔인터내셔널, 남북협력제주도민운동본부, 샘복지재단, 어린이어깨동무,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월드비젼,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한국제이티에스, 한민족복지재단, 굿네이버스인터내셔널, 남북나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유진벨이다. 500억원이상지원민간단체 (4개) 는굿네이버스인터내셔날, 남북나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유진벨이다. 이들대형민간단체들의사업은노무현정부말기인 2007년가장활발한활동을하였으며, 이후이명박정부의출범과함께활동이축소되기시작하여 2011년을기점으로대부분의사업이종료되었다. 박근혜정부시기에는나눔인터내셔널,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유진벨과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등이명맥만을유지하다가유진벨을제외한나머지단체들은 2016년대북지원사업을실시하지못하였다. 14) 손혁상, 국내외 NGO 의북한개발지원논쟁과동향연구, 손혁상외, 북한개발협력의이해 ( 서울 : 도서출판오름, 2017), pp. 159-166. 15) 2004 년민간단체의지원이 1,117 억원으로급증한것은용천역폭발사건에대한재해지원으로일시적인현상이었다. 16) 용천돕기운동본부의대북지원규모는 167.52 억원으로 100 억이상의지원단체이나, 2004 년한시적으로운영된조직이었다는점에서제외함 148.14 억원을지원한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은보건복지부산하기구로민간단체로보기어렵다는점에서제외하였다. 330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 그림 3> 한국민간단체의대북지원 (1995~2016) 자료 : 통일부홈페이지통계자료, http://unikorea.go.kr/unikorea/business/statistics/ ( 검색일 : 2018. 3. 16). 정부와민간을포함한한국의대북지원에대한접근방식을살펴보면, 정치적환경에따라대북지원의규모, 채널, 분야등에서급격한변동이발생해왔음을알수있다. 대북지원의지속성의측면에서는두가지긍정적인결과가관찰된다. 먼저, 한국의대북지원은정부차원에서만이루어진것이아니라, 국제기구혹은민간단체를경유한공여의비중이지속적으로확대되고있다. 이러한현상은정치적의사결정으로부터의영향을피할수없는한국대북지원의불안정성을완화시킬수있다는측면에서긍정적인접근방법이라할수있다. 더불어오랜기간인도적지원이지속되면서자생적으로개발협력형태의지원으로확대되고있다는것도긍정적인현상이다. 특히한국민간단체들의대북지원이그예가될수있다. 2000년중반이후민간단체들이사회인프라분야의개발협력으로사업을확대하면서북한으로하여금현대식농업기술, 보건의료기술, 산림환경기술분야등에있어남북한간에다양한계층과분야의전문가가교류하는계기를제공하였다. 17) 이러한협력사업은남측참여자들로하여금사업분야에대한북한의현황을파악할수있는계기가되었고, 북측은사업분야에대해남한을비롯한국제사회선진기술의우월성과교류협력의필요성을인식하게만들었다. 18) 더불어대북지원사업추진주체의한행위자로서민간단체는남북당국간대화단절시대화채널의복구를가능하게만든중개자로서의역할을수행함으로서남북한간통일대화의지렛대역할을수행해왔다는의의가있다. 19) 한편한국정부는국제기구를경유하거나민간단체를활용하면서대북지원의공여방식을다양화하고지속해왔다는측면에서는긍정적인평가가가능하다. 그렇지만남북관계의부침 17) 손혁상, 국내외 NGO 의북한개발지원논쟁과동향연구, 손혁상외, 북한개발협력의이해 ( 서울 : 도서출판오름, 2017), pp. 151-187; 송정호, 통일정책거버넌스와시민사회의역할 : 대북개발지원에관한논의를중심으로. 시민사회와 NGO 8 권 1 호 ( 한양대학교, 2010), pp. 125-157. 18)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대북지원 10 년백서 ( 서울 :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2005);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대북지원 20 년백서 ( 서울 :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2015);. 안득기, 대북지원 NGO 의기능과역할에관한연구, 북한연구학회보 12 권 2 호 ( 북한연구학회, 2008), pp. 179-202. 19) 손혁상, 국내외 NGO 의북한개발지원논쟁과동향연구, 손혁상외, 북한개발협력의이해 ( 서울 : 도서출판오름, 2017), p. 183. 331

2018 북한연구학회추계학술대회 에따라전체지원규모의변동이매우컸다는비판을피하기어렵다. 이것은대북지원의접근방식의변화가정치적동기에따라발생한것으로해석된다. 예를들어, 최대지원규모 (2007년, 3,500억원 ) 가최소지원규모 (2016년, 1억원 ) 의 3,500배임을감안하면대북지원의규모의변동은매우심각한수준이라할수있다. 더불어한국민간단체의대북지원에대한접근에서도정치적부침의영향을살펴볼수있다. 정부가민간단체를경유한지원의규모의증감폭도크지만, 동시에민간단체의독자적인대북지원의경우에도그규모의증감폭이매우크다. 2004년민간단체의대북지원은 2,300억원이었으나 2016년에는 28억원을기록하였다. 국내민간단체의대북지원이한국정부의정치적의사결정의영향에서자유롭지못했다는한계를보여준다. Ⅳ. 국제사회대북지원의실제와한계 국제사회의대북지원은 1995년북한의원조호소를계기로시작되었으며, 2016년까지한국을제외한경제협력개발기구개발원조위원회 (OECD DAC) 공여국과국제기구의대북지원규모는약 24억 5천 5백만달러이다. 일시적인대규모지원이이루어졌던 1999년, 2002년그리고 2008년을제외한다면대북지원은 1억 5천만달러이하의수준에서 10여년간지속되었다. 2009년이후대북지원규모는급감하여 5천만달러내외로유지되고있다. 2016년대북지원규모는대북지원규모가가장컸던 2002년약 4억달러와비교해서 1/8 수준으로급감하였다. 국제사회의대북지원은개별국가의지원과국제기구의지원으로구분할수있다. 개별국가지원의경우절대규모의증감이매우두드러지고있는데, 예를들어 2002년에는해당규모가약 2억 7천만달러였으나, 2016년에는 2천만달러로 1/13으로감소하였다. 상대적으로국제기구의대북지원절대규모의변화는개별국가의지원규모변화보다는작지만, 해당규모또한 1997년 9천 1백만달러와비교해크게감소하여 2016년에는 9백만달러로보고되었다. 332

비핵평화프로세스와남북협력의방향 < 그림 4> 국제사회의대북지원 (1995~2016) 자료 : OECD CRS, https://stats.oecd.org/index.aspx?datasetcode=crs1# ( 검색일 : 2018. 3. 18). 주 : 약정액기준. 국제사회의대북지원은인도적지원분야에집중되어왔다. 지난 22년간지원규모의 52.5% 가인도적지원을위해공여되었는데, 전체인도적지원의대부분은긴급호 (Emergency Response) 에해당되며, 구호와재건 (Reconstruction Relief and Rehabilitation) 및재해예방및대비 (Disaster Prevention and Preparedness) 등의항목에대한공여는간헐적으로일부이루어지고있다. 20) 그외에사회인프라에대한지원이 14%, 경제인프라에대한지원이 7% 물품지원이 19% 등의규모로공여되었다. 한편최근 5년간국제사회의대북지원의경우, 인도적지원보다사회인프라에대한지원비중이크게증가해온것으로분석되며, 그외인프라분야, 물품지원분야등에대한지원사례가보고되고있는바, 지원영역의다양화가관찰된다. < 그림 5> 국제사회의분야별대북지원 (1995~2016) 자료 : OECD CRS, https://stats.oecd.org/index.aspx?datasetcode=crs1# ( 검색일 : 2018. 3. 18). 주 1: 약정액기준. 20) OECD CRS, https://stats.oecd.org/index.aspx?datasetcode=crs1#( 검색일 : 2018. 3. 18). 333